순서 입니다. 도토루의 하루 / 그림. 호지 글로 배우는 그림도구 - 종이 / 글. 사탕고양 남들이 추천하지 않는 영화 - 골든슬럼버 (2010) 백림서신 - 10. 불빛 / 글. composer B 만든다오 - 10. 3분 디퓨저 / 글. 사진. 진선 체니사이드 - 02. 농담 下 / 글. 사진. 장수양 사무실에서 드는 생각 - 06. 세속적이어야 할 때도 있다 / 글. 사진. 권근혜 의미 없는 이야기 / 그림. 글. 철민 느낀다 그러므로 나는 - 행복의 기원 / 글. 사진. 민하 Ping Pong - 01. 종교 / 글. 황정운 이훈보
자율의 힘이나 마음으로 되지 않는 일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때 시스템이 조금씩 필요하죠. 국가나 제도, 월간이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재용 씨의 판결을 보면서 이가 갈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한번 만난 적도 없고 원한 진 일이 없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왜이럴까요. 판이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물러서 온 것에 속이상하고 그렇게 사람들을 조금씩 물러서게 끔 공 작을 펼쳐온 무리들에게 치가 떨립니다. 당장은 쉽게 증명할 수도 없고 한 두 번의 불매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겠지만 세상여 기저기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을 애써 비난하거나 무시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때로는 스러져 갈 때 함께 슬 퍼할 수 있는 독자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저희는 그런 마음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달에는 과거 연재를 하셨던 황정운님이 새로운 시리즈로 돌아오셨습니다. 여러 주 제를 갖고 필담을 나누는 방식의 연재가 될 것 같습니다. 다음 달에는 이른 출간으로 다시 만나기를 기원하며 이만 줄입니다. 월간이리 EXXX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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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배우는 그림 도구
종이 그림을 시작하기위해 가장 먼저 준비하는 도구는 연필과 지우개 그리고 종이다. 하얀 종이 위에 연필이 움직여서 만든 선이 모여 하나의 그림이 된다. 때로는 색을 넣기 위해 색연필이나 물감을 칠하기도 한다. 어느새 하얀 종이는 그림으로 가득 찬다.
종류가 많은 종이들. 같은 종이라도 두께가 다양 그림은 캔버스나, 나무판넬, 벽, 가구, 비단 등에도 그리기도 하지만 가장 많이 쓰이는 바탕은 종이다. 종이는 몇 종류 없을 것 같지만 수천 종류가 된다. 재질에 따라서, 표면 엠보싱의 모양이나 색과 밀도 등의 특성에 따라서 이름이 달라진다. 같은 종이라도 여러가지 두께가 나오니 실제 종류는 엄청나게 많다. 종이의 두께는 평량으로 표현한다. 단위는 g/㎡. 1평방미터(㎡)면적의 종이의 무게가 클수록 두꺼워져서다. 복사지로 친숙한 A4지는 전지인 A0지를 4번 자른 크기다. 국제 규격인 A종이의 전지인 A0지의 넓이는 1평방미터다. A0 크기 종이 무게가 바로 평량인 것이다. 단, 다른 종류의 종이는 같은 평량이라도 두께가 다를 수 있다. 종이의 밀도가 높은 쪽이 얇아도 무겁다. 평량이 클수록 두껍다는 이야기는 같은 종류의 종이를 기준으로 하는 이야기다. 그림을 그리는 용도라면 종이에 따라 그릴 수 있는 두께가 다르다. 90g/㎡이하라면 스케치나 크로키 정도. 105g/㎡부터는 펜과 간단한 채색이 가능해진다. 물감을 가볍게 채색하려면 최소 150g/㎡이상이어야 한다.
본격적인 그림을 그리려면 200g/㎡ 이상의 종이를 권장한다. 소묘, 펜화, 색연필은 얇은 종이에도 가능하지만 두꺼운 편이 그림의 밀도가 높거나 다양한 기법에도 잘 견딘다. 특히 잉크나 만년필을 쓴다면 표면이 매끈하고 촘촘한 종이라야 한다. 물감을 쓴다면 300g/㎡ 이상을 쓰는게 좋다. 구하기 힘들긴 하지만 수채화지 중에는 640g/㎡인 종이도 있다.
종이의 기원과 발명 기록과 종이의 역사는 떼 놓을 수 없다. 인간은 의사 전달(처음에 적힌 건 그림이었을 것이다)의 수단으로 점토판, 대나무, 나무조각, 돌, 가죽 등을 사용했다. 이들 재료는 많은 양의 정보를 남기기에는 불편했다. 종이와 가장 유사한 발명품은 이집트의 파피루스가 있다. Paper란 단어의 어원이 된 파피루스는 줄기 속 부드러운 부분을 얇게 찢어 가 로와 세로로 붙여 만들어서 마치 삼배와 같은 무늬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가격이 높은데다가 습도 높은 지역에선 내 구성 문제가 있어 종이 도입 후 사용되지 않게 됐다. 종이의 역사는 서기 105년, 후한시대에 궁중의 물자 조달 담당자였던 채륜이 발명한 것으로 기록돼 있으나 그보다 150~200년전쯤에 만들어진 종이 유물이 발견되면서 채륜은 종이를 발명했다기 보다는 각지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만들던 종이의 제법을 정리하고 개량한 것으로 본다. 한나라 시대의 종이 원료는 나무껍질, 헌 어망, 헌 삼배, 넝마 등을 섞어 만들었다. 기술이 발달하며 재료가 조금씩 바뀌며 질이 증가했다. 대나무를 사용하기도 했고 16세기 이후에는 볏짚, 뽕나무 껍질, 삼과 모시, 닥나무 껍질 등 을 사용했다. 지금과 같이 목재 펄프를 쓰게 된 건 200년이 안됐다. 그래서 전에는 가정마다 나오는 옷감들을 모으는 일이 종이 제작에 중요한 과정이었다. 1840년 대에 캐나다의 발명가인 찰스 페너티와 독일의 FG 켈러가 쇄목 펄프를 발명 해 제지 산업에 혁명을 가져왔다.
미술용 종이의 기준 미술용 종이를 고를 때 가장 먼저 봐야하는 부분은 ‘Acid Free’마크다. Acid Free는 종이를 제작할 때 산성 물질 (보통은 염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표시다. 산성 물질을 사용하면 종이가 산성화 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색이 누 렇게 변하고 약해진다. 변성이 심하면 부숴져 작품 보관에 문제가 생긴다. 종이 표백에 산성물질을 사용하지 않으 면 더 오랫동안 작품을 보관할 수 있다. 다음으로 봐야할 것은 셀룰로오스 100%다. 목재로 펄프를 만들면 섬유질인 셀룰로오스 이외에 리그닌 등의 다른 성분도 포함되는데 기타성분이 많을수록 산성화되기 쉽다. 특히 리그닌은 공기중 이산화황과 반응해 종이를 산성화 한다. 하지만 100% 셀룰로오스라고 해서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셀룰로오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수분에 의 해 조금씩 분해되며 종이를 산성화 시킨다. 종이의 산성화를 막기 위해 다른 물질을 혼합하기도 한다. 비싼 종이는 돌가루를 섞어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종이를 무겁게 하기 위해서 섞은 것은 아니다. 탄산칼슘이나 고령토는 알칼리성 물질이라 종이의 산성화를 막고 희 고 불투명하게 만들어 인쇄가 잘되는 특성도 부여한다. 고급 미술지는 면으로 만들어진다. 아마가 혼합된 종이도 있으나 면으로 만들어진 종이가 구하기 쉽다. 면은 작품을 몇백 년 동안 보관할 수 있게 해주며 구조적으로 튼튼해서 여러가지 기법에도 잘 견디고 젖은 상태에서의 손상에도 강하다. 단 코튼 100%라 하여도 염소 표백 등의 방법으로 만들어 산성화 됐다면 품질을 보장할 수 없다. 수채화는 수채화지에 무슨 종이에든 수채물감으로 그릴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제 대로 된 수채화 표현을 하려면 수채 전용지를 써야한다. 수채 전용지는 표지에 watercolor, watercolour, aquarelle 등의 이름으로 표기돼 있다. 수채전용지와 일반용지가 다른 점 은 수채화를 위해 처리(사이징)가 돼 있다는 점이다. 수채 물감은 유동성이 높아 안료가 종이의 틈으로 가라 앉아 퇴색 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막아주는 처리가 돼 있다. 사이 징은 섬유의 결합력을 높이는 목적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머메 이드지는 표면이 수채화지 같은 엠보싱이 있으나 사이징이 안 돼 있어 수채화용으로 쓰기에 부적합하다. 수채화에서 가장 적합하다고 하는 종이는 면 100%로 만들어 진 수채화지다. 면으로 돼 있으며 사이징 처리가 잘 된 수채화 지는 수채화의 색조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으며 반복된 젖은 상태에서 반복된 붓질에도 견뎌 섬유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실제로 수채화의 잠재력을 100% 활용할 수 있는 건 코튼 수 채화지다. 그래서 프로 작가 중에는 붓과 물감은 제일 싼 것 을 써도 수채화지만큼은 고급종이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코튼 100% 수채화지라고 그림을 잘 그릴 수 있게 되 는 것은 아니지만 색감뿐 아니라 여러 기법을 사용하는 난이 도가 크게 낮아진다.
핫프레스, 콜드프레스, 러프 수채화지 표지를 보면 핫프레스(Hot press), 콜드프레스 (Cold press), 러프(rough)의 세 종류가 있다. 핫프레스를 세목, 콜드프레스는 중목, 러프는 황목이라고도 부른다. 종이
는 제작 후에 압착하는데 열을 가해 매끈하게 만든 것이 핫프레스, 열은 가하지 않고 압력으로 누른 종이 로 종이에 엠보싱이 있다. 러프는 압착 과정을 생략하고 건조해 말린 종이다. 일반적으로 거의 모든 종이는 핫프레스 종이다. 표면이 매끄럽기에 펜을 쓰기에도 좋고 정밀한 묘사를 하기 에도 쉽다. 아주 매끈한 종이를 브리스톨지라 부르는데 정밀묘사나 펜화, 종이 결이 보이지 않아야하는 색 연필화에서 많이 사용한다. 복사지도 브리스톨지의 일종이다. 핫프레스 수채용지는 매끈한 표면 덕분에 정밀한 묘사가 가능하나 물이 빨리 말라 얼룩 지기 쉽다. 같은 양 의 물이라도 컵에 든 물보다 접시에 든 물이 빨리 마르는 것과 같은 이유다. 지우개질이나 마스킹 기법에 의 해 표면이 손상되기 쉽다는 점도 핫프레스 수채화지를 쓰기 까다로운 이유다. 콜드프레스와 러프는 종이 엠보싱 들어간 부분에 물이 고여 있어 빨리 마르지 않는다. 수채화 특유의 번지 기 기법을 사용하기 좋다. 표면이 그렇게 민감하지 않아 다양한 기법에도 핫프레스 종이에 비해 잘 견딘다. 물이 빨리 마르지 않아 번지기를 할 시간적 여유가 생기지만 반대로 덧칠을 위해 말릴 땐 시간이 오래 걸려 작업 시간이 늘어난다.
글 사탕고양 제 블로그(soulcreator.blog.me)에 저의 그림 도구 덕질을 올리고 있습니다. 요즘은 유화를 시작했습니다. 과슈 그림도 시작해볼 생각이에요. 궁금한 점이 있다면 제 블로그 안부 게시판에 남겨주세요..
남들이 추천하지 않는 영화 골든 슬럼버 (2010) 감독 나카무라 요시히로 2010년에 나온 영화이니 이 영화를 지금 와서 추천하는 사 람은 없겠지요? 제가 무슨 영화를 두번 봤다고 해서 그 영화가 아주 대단한 작품이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두 번 본 영화가 많은 편은 아니어서 두 번 본 작품들은 저에게 꽤 의미있는 작품으로 기억됩니다. 가장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두번 본 영화는 <타짜> 와 <골든 슬럼버> 꼽을 정도 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모든 면면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 만 희미하게 그 영화가 좋았다는 기억만 남아있습니다. 그래 서 오늘의 소개가 조금 즐겁습니다. <골든 슬럼버>를 이야기하기로 결정하기 전까지 경합을 벌이던 작품은 <헬터스캘터> 와 <군 함도> 였습니다. 다만 이번에 <골든 슬럼버>가 개봉하는 만큼 한 번 더 이야기 하면 이 영화를 더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야기 해보기로 했습니다. <골든 슬럼버>는 평범한 택배 배달부가 총리 암살범으로 지목된다는 아주 자극적인 이야기 구 조를 갖고 있어서 쉽게 사람들을 매혹시키지만 실제 영화는 그렇게 흥미진진하고 어마어마한 작품은 아닙니다. 오히려 시작하는 스케일에 비해서는 심심하고 또 심심하다 못해 밋밋한 영 화라는 평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에 따라서는 허술하고 지루하다는 평을 하기도 합니다. 도입부에서 총리가 죽어나가는 스토리라면 여느 영화 같으면 주인공이 힘과 지혜를 총 동원해 역경의 파도를 헤쳐 나가다 못해 바다를 가를 정도의 활약을 펼쳐야 마땅하지만 <골든 슬럼버 >는 그런 맛이 전혀 없는 영화입니다. 주인공에 감정을 이입한다면 갑갑하다 못하 우울하고 힘 빠지는 영화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홍보 프로그램에서는 늘 긴장감 넘치는 영화처럼 이야기를 하지요. 파 는 것과 만드는 것의 차이가 아닌가 하는 지점입니다. 흥미롭게도 이번에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골든 슬럼버>의 예고편 또한 그런 흐름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홍보 방식이 이해는 가 지만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홍보가 영화를 제대로 보는데 방해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 좋은 영화가 또 다시 밋밋하고 재미없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괜히 걱정이 됩니다. 홍보를 조금 따뜻하고 쓸쓸한 감정이 뭍어나는 영화로 풀어가면 좋을텐 데 말입니다.
다 르 다 달 라
<골든 슬럼버>는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이 원작으로 둘 중 무엇을 먼저 봐야 하냐고 묻는다면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먼저 소설을 나중에 보시기를 권합니다. 영화가 이야기 하는 바와 소설 이 이야기 하는 바가 조금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마 기억이 맞다면 소설 속의 4장은 영화에 표 현되지 않았고 그 4장으로 인해 소설이 이야기 하는 지점은 영화와는 전혀 다른 지점에 도달 해 버립니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상업적 영상물이 보여주는 감정적 지점과 책이 진득하게 이야기 하 고자 하는 것이 다른 것을 생각하면 괜히 잘 만든 영화가 책 때문에 평가 절하 당하지 않을까 하 는 걱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먼저 본다면 반대로 책은 이런 깊이가 있고 또 감독은 어떤 선택을 통해서 성공 적으로 영화화 해 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접근한다면 어느쪽도 허투루 보지 않고 꽤 괜찮은 비교의 경험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골든 슬럼버> 가 한국에서도 만들어 진다 니 이제는 3방향에서 생각을 해볼 수 있겠네요. 기우지만 저는 이번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개봉작에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원작을 관 통하는 정서나 이미지가 조금은 일본적 색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미지’라 는 단어 표현이나 주요 인물들이 대학시절에 경험하는 동아리의 성격이나 인물의 감정 들의 근 간에 일본의 문화적 배경이 두루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특유의 무력감. 제도권을 이길 수 없다는 고질적인 패배감이 팽배해야 하는 포인트에서 한국의 설정은 지나치게 힘이 넘치는 것 이 아닌가 합니다. 영화의 주연 배우가 보여주는 표정의 디테일에도 아마 그런 차이가 드러나 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인 저도 공감하는 바가 있어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하 지만 저에게 그 특유의 느낌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한국의 연출로 녹여내라고 한다면 그것을 어 떻게 풀어내야 할지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영화의 리메이크 작품을 기대하 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걱정하기도 합니다. 잡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잠시 감독 이야기를 해볼까요? 일본판 <골든슬럼버>를 만든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 의 <예고범> 또한 볼 만한 작품입니다. 이 두 작품의 감 독이 같은 사람이란 것을 모르고 봐도 “앗!” 할 정도로 비 슷한 느낌을 주는 장면이 있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힌 트를 드리자면 이 감독은 달리기를 참 잘찍습니다. <예 고범>은 한국에 동명의 만화책으로 출시되었으니 만화 로 읽으셔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또 다른 잡담을 하자면 일본판 <골든 슬럼버>의 주연배 우였던 사카이 마사토의 다른 작품인 <열쇠도둑의 방법 > 아마 열쇠 도둑의 메소드 가 오역된 것 같은 이 제목 의 영화도 한국에서 최근에 리메이크 되었죠. 한국에는 <럭키>라는 영화로 나와 인기를 끌었던 것을 생각해보 면 같은 배우가 맡은 영화가 순차적으로 한국에서 리메 이크 된다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자 그럼 다음 이시간에
백 림 서 신
伯 林 書 信
Composer B
10. 불빛
잘 지냈어? 한국은 날씨가 많이 춥고 감기에 걸린 사람도 많다던데, 좀 어때? 내가 건강한 덕인지, 이 곳의 공기가 한국보다 좋아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감기도 한 번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 다만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감기다 미세먼지다 혹한이다 해서 힘들어 한다는 소식을 보면 마음이 영 좋지가 않아. 가끔 한국에 있는 친구가 나에게 묻곤 해. 독일의 맑은 공기를 한국에 주고, 한국에서 대신 받아가고 싶은게 뭐냐고. 난 그럴 때마다 ‘밤의 불빛’이라고 답해. 좀 의외지? 다른 것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밤의 불빛일까. 사실 좀 함축적으로 표현하느라, 내가 의도한바를 다 담아내지 못한 게 있기는 해. 단지 ‘밤에 보이는 불빛’이라고 하면 그건 독일에도 얼마든지 있기는 하지. 하지만, 한국처럼 밤 늦게까지 하얗고 환한 불을 밝히고 있는 가게들은 자주 보기가 힘들어. 한국에서는 밤 12시든 새벽 2시든 큰길이나 골목에 불을 켜놓고 사람들을 맞는 가게가 많잖아. 하지만 이 곳에서는 그만큼 늦게까지 문을 여는 술집이나 카페는 쉽게 찾기도 힘들고, 더 먹고 마시고 싶어도 일단 집으로 가야만 해. 아마 한국을 떠나 유럽에서의 삶을 동경하는 사람들에게는 좀 미안한 얘기지만 늦은 밤에 맥주 한 잔, 간식 하나 먹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는 점에 있어서는, 차라리 한국이 나은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한국의 그런 모습들도 늘 좋은 것만은 아니겠지.
내가 유럽에 와서 가장 많이 내뱉는 말 중 하나가 “사람 손 닿으면 비싸”거든. 그건 곧 무슨 말이겠어? 한국에서는 사람이 하는 일이 제 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해. 내가 홍대 골목 구석구석에서 밤 늦은 시간까지 누렸던 그 숱한 커피와 술과 안주들은 결국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는 거야. 물론 밤 늦게까지 일하는 만큼의 대가를 제대로 지불하는 세상이라면 덜 미안함을 느꼈겠지만, ‘최저시급’이 곧 ‘기본시급’처럼 굳어져버린 한국에서는 마냥 좋아라 할 수도 없을 것 같네. 내가 한국에 있을 때는 아무래도 쉽게 체감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이 곳에 오니 더더욱 크게 느껴진다. 한국에서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실 때면, 마감을 하기 위해 식탁을 닦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을 돌려보내는 사장님을 보며 속으로 ‘더 있고 싶은데…’라며 볼멘 소리를 하곤 했는데 말이지. 이 곳에 처음 도착했던 날 저녁이 생각난다. 생각보다 일찍 해가 떨어져 어두워진 거리에서 문을 닫는 가게들을 보고 당황하던 그날 저녁 말이야. 어두운 거리가 주는 은근한 조바심과 낯선 공간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그리고 다가올 날들에 대한 묘한 설렘이 어지러이 섞여 있던 그 저녁이 참 많이 생각난다. 아, 그리고.. 2월 1일은 내가 이 곳 독일에 온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야. 그때 생각했던 것들 중에서 생각보다 쉽게 풀린 일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이루지 못했던 것도 있어.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아쉬움과 기대는 한 세트처럼 늘 함께 하고 있다는 거야. 어쩌면 평생동안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앞날에 불안해하고, 사소한 것에 즐거워 하고, 또 별 것 아닌 일에 상처 받고… 뭐 그러면서. 오랜 시간 동안 한 나라에서만 살던 사람이 새로운 환경에 놓이면서 겪는 변화라는 건, 좋은 의미든 부정적 의미든 ‘다시 태어나는 것’에 필적하지 않을까 싶어. 좀 거창한가? 아냐. 사람이 살면서 이토록 다른 위치와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기회가 얼마나 자주 있겠어?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2월 1일은 나의 또 다른 생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일본의 뮤지션인 ‘World’s End Girlfriend(세상의 끝 여자친구)’의 음악인 <Birthday Resistance>를 같이 들어보고 싶어. 이 음악 속에 섞인 다양한 소리들을 듣고 있노라면,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그 속에서도 언뜻 언뜻 보이는 장난기와 아련함 덕분에 이 힘든 시간을 버텨내는 것 같기도 하고. 처음에는 좀 심란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찬찬히 들어보면 굉장히 재미있는 음악일거야. 말이 길어졌다. 또 편지할게.
‘세상의 끝 여자친구’의 ‘생일 저항일
만 든 다 오
시시콜콜하고 사소한 가내수공업 고군분투기
#10. 3분 디퓨저
좋은 향기가 나는 공간에서는 좋은 일만 일어날 것 같다. 그런 의미로 디퓨저는 부적이다. 향기를 머금은 공기를 들이 마시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특히나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 일을 오래 할 수가 없다. 시베리아 보다도 북극보다도 추운 바람이 집 안으로 쏟아져 들어와 얼어 붙어버릴 것만 같기에, 생활의 잡냄새를 내보내기에는 무리일 수밖에 없다. 실내가 향기로울 수 있도록, 과하지 않게, 그리고 은은하게, 숨 쉬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도록, 간단한 디퓨저를 만들어 보았다.
우리집에는 개가 산다. 몸무게 10.5kg, 국내에서는 중형견, 해외에서는 소형견으 로 불리는 아메리칸 코카스파니엘이다. 지 나가는 사람들에게 할아버지 같다느니, 혹 은 잘생겼다는 소리도 드문드문 듣지만 이 래봬도 소녀라 새침한 구석이 있는 방년 6 년산의 견공이다. 녀석을 집에 들이기 전까지만 해도 푸들 과 요크셔테리어 같은 소형견은 키워본 적 은 있으니 중형견이라고 뭐 그렇게 많이 다르겠냐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만만 한 오산이었다. 덩치가 커진 만큼 냄새는 배가 된 것이다. 강아지 발바닥 특유의 꼼꼼한 냄새, 녀석의 배변 냄새는 아무리 탈취제를 뿌려도 잘 없어지지 않았다. 애초에 뻔히 존재하고 있는데 냄새를 지운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 렇게 깔끔한 성격인 것도 아니니 견디지 못할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만나고 만 것이다. 개가 없는 집의 청량한 냄새를. 그곳은 제주 돌집 독채 펜션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알싸하면서도 청량한 허브 냄새가 풍겨왔다. 폐 깊 숙이까지 초록빛이 들어차는 것 같았 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독소가 빠 지는 것 같았다. 매일매일 격렬하게 대청소를 하는 것 같진 않은데, 우리 집보다 먼지가 적은 것 같았다. 환기 가 잘 되는 구조도 아니었는데도 집안 공기는 갓 건조기에서 나온 수건처럼 보송보송했다. 개가 살고 있는 집에서만 5년 넘게 지낸 나에게 그 집은 충격이었다. 좀 처럼 그 냄새가 잊히지 않았다. 30년 가까이를 민트향을 싫어한다고 생각했었는데, 풀냄새가 향기롭게 다가올 줄이야. 그렇게 나는 향에 집착했 고, 디퓨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앞에 작은 캔들 가게가 있었다. 으레 캔들가게가 그렇듯 재료를 판다. 디퓨저베이스 500ml와 프래그런스 오일 을 샀다. 내가 고른 향은 머스크 계열의 ‘베이’와 상큼 달달한 ‘씨솔트유자’다. 싱그럽고 쌉쏠한 향을 찾고 있었는데 그 가게에는 없었다. 종류가 적진 않았는데도 없었다.
서울에 살 때는 방산시장을 종종 갔었다. 그때는 소이캔들에 빠져 있어서, 소이 왁스와 심지 등을 사러 갔더랬다. 진열장 가득 프래그런스 오일이 있었고, 하나하나 맡아보면서 살 수 있었다. 거기라면 쌉쏠한 허브향이 있을까? 부 산에 시장이라는 시장은 다 돌아봤지만 방산시장처럼 캔들 상가가 모여 있는 곳은 없었다. 새삼 서울에서 내가 당 연히 누리고 살았던 것들을 돌아보게 된다. 각설하고. 있는 재료만으로도 어떻게든 해보자. 디퓨저를 만들어보았다. 디퓨저 만들기는 너무 쉽다. 디퓨저 베이스와 프래그런스 오일을 섞어주기만 하면 된다. 8:2 정도의 비율이 있지 만, 정확히 계량하지 않는다고 해도 큰 일이 나진 않는다.
잘 쓰지 않는 향수가 먼지에 잠식되어 가고 있길래 데려왔다. 지미추와 랑방. 지미추는 머스크 베이스라 베이랑 잘 어울릴 것 같았고, 랑방은 무거운 청량함이 느껴져서 씨솔트 유자와 섞기로 했다. 디퓨저용 유리병은 몇 년 전 방산시장에서 1,000원, 2,000원 주고 업어온 것들이다. 거기다 바로 향을 넣고 섞어 주기 시작했다. 유리병 안에서 원액이 아지랑이 모양을 내며 뒤섞인다. 손 끝에도 향이 잔뜩 묻어있다. 네 가지 향 중에 가장 무거운 건 '씨솔트 유자'였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향이 제각각 다르지만, 참 질리지 않는 향 이다. 적당히 달고, 적당히 상큼하며, 적당히 짙다. 향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옅은 향은 디퓨저로 해놔도 잘 눈치채지 못한다. 우리집 개 냄새를 덮으려면 이 정도 무거운 냄새여야만 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시트러스 계열은 최소한 평타는 치니까.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뭔가를 만 드는 건 즐거운 일이다. 온 집안에 향이 가득 퍼지고, 개는 옆에 와서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다. 일전에 동네 벚나무 가지치기 할 때 주워온 나뭇가지를 적당히 자른 다. 재료상에 가면 디퓨저 용으로 꽂는 장식품들도 다양하지만, 사실 나무젓가락을 꼽아 놔도 향을 전달 할 수는 있다. 예쁘지 않아서 그렇 지. 허무하리만큼 빨리 끝났다. 디퓨저라는 건 그저 이 것저것 대충 섞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만들어서 쓰 다보니 완제품 디퓨저를 사는 건 사치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렴한 디퓨저 베이스는 500ml에 5,000원, 프 래그런스 오일은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30ml나 100ml 당 10,000원 정도면 구매할 수 있다. 용기는 생각보다 저렴하며, 다쓴 향수 공병이나 화 장품 병을 이용하면 더 멋스럽기까지 하다. 시중에 파는 것은 저렴해도 15,000원 대. 어떤 향을 넣었는 지, 설명만으로는 알 수가 없으니 신뢰하기가 어렵 다. 3분을 투자한 덕분에 집은 조금 더 향기로워졌다. 그저 물건을 사서 갖다놓는 게 아니라 직접 하나하 나 만드는 것은, 물건을 만드는 시간을 기억하는 매 개체가 된다. 오후의 햇살, 집안 가득한 향, 그리고 옆에서 시무 룩한 표정을 짓고 있던 강아지까지. 숨을 쉬는 것만 으로도 평화로워지는 기분이다.
*글쓴이_오진선(@ss_jinsun) 가내수공업 중독자 / 나노상공인 / 애견인 / 페미니스트 / 레즈비언 가정주부/홍대살다 부산거주 중/ 퀴어여성커뮤니티<언니네달방>운영자 /
체니사이드
글. 장수양(@condensed_bold)
2 농담 下
유지가 떠나기 전 나는 텔레비전도 없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우리가 함께 사는 집의 소파는 베란다를 향했고 꽃무늬 커튼으로 햇빛이 부서져 들어왔다. 유지는 화장실이나 부엌에 갈 때마다 내 등을 보아야 했을 것이다. 유지가 가끔 나를 인식하고 목격한다는 점이 불안함을 조금 덜어주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가장 편한 자세를 찾아 고정되어 있는 일이 불안의 근원을 해소시켜주지는 못했다. 현관에 내놓은 캐리어에 빠진 짐을 꾸리며 돌아다니는 유지의 기척이 들렸다. 도저히 가만히 있기 힘들어질 즈음 유지는 내게 같이 아침을 먹자고 했다. 우리는 일이 없는 주말이나 서로 일정이 겹치는 날이면 식사를 함께 했다. 나는 믿을 수 없는 말을 듣기라도 한 듯 가만히 있다가 유지가 반찬을 내놓는 소리가 들라자 소파에서 일어나 식탁으로 갔다. 오랜만에 마주 앉는 아침이었다. ―어디 갈 거야? 유지가 물었다. 지난 달 나는 여행 계획을 취소했다. 유지의 질문은 자신이 없는 동안 집을 비울 거냐는 의미였다. 나는 식탁에 갓 떨어진 것처럼 놓여있는 유리그릇들, 뚜껑만 연 플라스틱 통, 달걀 프라이가 있는 접시, 물이 반쯤 찬 머그잔, 김이 엉망으로 들어가 있는 네모난 고무 그릇을 젓가락으로 툭툭 쳐서 위치를 바꿨다. 유지는 냉장고에 있던 오렌지주스도 꺼내 놓았다. 나는 그 주스를 좋아했다. 그는 평소대로였다. 내가 신기하다고 생각하던 습관―소매를 팔꿈치 위까지 반듯하게 접어올리고 식탁에 앉는 것―도 그대로였다. 다른 여행 계획은 없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지는 난방, 가스 점검 등에 대해서 꽤 길게 말했다. 그렇게 길게 말하는 걸 참 오랜만에 보았다.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유지는 대체로 모든 일에 무던했지만 집에 대해서는 기민했다. 계절마다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잘 꿰뚫고 있었다. 어떤 장치나 구조에 대해서 머릿속에서 무척 또렷하게 정리해두는 편이었다. 나는 나란히 포갠 수건들처럼 차분하게 펼쳐지는 유지의 당부를 들으며 밥을 먹었다. 별 것 없는 반찬이었지만 유지가 필요한 것들을 전자레인지에 돌려두어서 따뜻했다. 달걀 프라이도 동그랗고 반숙이었다. 하고자 한다면, 이대로 나도 유지가 하는 만큼 평소의 분위기를 지킬 수 있었다. 밝은 낯으로 그를 배웅하며 돌아오면 할일에 대해 떠들어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이 평이함 뒤에 있는 긴장을 간과할 수 없었다. 유지는 알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의 관계가 다른 국면을 맞이했고, 그 형태는 앞으로 우리의 마음과 상관없이 이제까지 겪어온 과거의 것들을 반추하여 정해질 것이다. 우리는 이 집에서 더 이상 함께 살아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드라마에서처럼 누가 유지와 나를 갈라놓거나, 둘 중 하나가 아프거나, 지독하게 싸우거나 하는 일도 없이. 그저 우리가 각자의 시각을 갖고 각자의 일상을 영위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 그러고 싶지 않았다. 분명히 말하면, 생각해본 적도 없다. 다 먹은 밥그릇을 내려다보고 있자 유지가 일어나서 내 그릇까지 싱크대에 담갔다. 그는 연두색 고무장갑을 집어들었다. ―뭐해. 내가 말했다. 유지가 흘끗 나를 봤다. 우리 집에서는 식사를 준비하지 않은 사람이 설거지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내가 할게. ―됐어. 유지는 고무장갑 한 짝을 꼈다. ―내가 할 거야. 나는 다시 말했다. 유지는 다시 날 보더니 고무장갑을 벗어서 싱크대에 툭 내려놓았다. 그는 한숨을 쉬지 않았지만 난 그렇게 느꼈다. 그는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방금 전에 내가 언성을 높였는지를 곱씹고 있었다. 나는 일어나서 싱크대로 갔다. 유지는 아까 밥을 차리던 때보다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나는 묵묵히 설거지를 했다.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돌이킬 수 없이 상심한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유지는 어정쩡하게 내 옆에 서있다가 다시 식탁에 앉았다. 그는 내가 설거지를 다 끝내기를 기다렸다. 나는 그릇을 형편없이 대충 씻었다. 여기가 식당이어서 이 그릇에 음식을 담아 내면 손님들이 내가 미쳤다고 할 것이다. ―나 금방 올거야. 유지가 말했다. ―안 오지 않을 거야. 어감이 조금 이상했는지 유지는 턱을 매만졌다. ―아주 내려가는 게 아니야. 짐도 반만 가져가. 나는 고무장갑을 물이 찬 싱크대에 아무렇게나 띄워놓고 다시 유지와 마주앉았다. 유지가 반찬통을 냉장고에 다 집어넣어서 식탁은 깨끗하고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눈을 마주보면서, 두어번 눈을 깜빡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지금 이 시점에 유지가 고향에 간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를 이렇게 두고? 아무것도 합의하거나 토로하지도 않고? 하지만 내겐 막을 권리가 없었다. 그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유지는 잠시 후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건 그날 있었던 일 중에서 가장 끔찍한 일이었다.
―나는 유지가 있었으면 좋겠어. 농담은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내게도, 유지에게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 농담이 우리 집에서 유지와 나를 지켜보았거나, 내 속내를 조금이라도 간파했다면 그에게도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느껴질 터였다. 하지만 내가 어떤 형태로 유지와 함께 있고 싶은지는 전혀 다르다. 그 형태를 상상하는 그 자체가 참을 수 없을 만큼 부자연스럽다. 유지와 나는 다른 인간인 것이다. 나는 유지가 내게 했던 말들을 잊어버리기 위해 노력했다. 이전에 나는 우리가 그저 섹스리스의 연인일 뿐이라고 편하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나는 막연히 유지와 어떤 식으로든 함께 지낼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막연함’은 거짓이었다. 스스로 또렷하게 연상하고 계획하지 않았다 해도 내가 바라는 형태는 있어왔다. 우리가 살아온 세계에서 대개 취하고 있는 형태의 것, 유지와 내가 어떻게 지낸다고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만한 어떤 것. 그렇게 뚜렷하고 공인된 관계의 형태를 나는 그 막연함으로 지향하고 있었다. 나 자신이 그 친구와 정말 어떻게 지내고 싶은지조차 고민해본 적 없었다. 내 어깨에 몸을 기대고 있던 농담이 벤치에서 일어났다. 내 앞에 웅크리고 앉은 그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유지는 내게 그 자신이 내가 생각하는 어떤 것이 아니고, 그밖에 다른 어떤 것이 아니며, 아무것도 아닌 채로 계속 살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동물도 사람도 사물도 아닌 허공의 존재들을 보아왔으면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건 유지가 줄곧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었다. 그는 최선을 다해서 내게 전하려고 노력했다. ―거짓말이지? 나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물었다.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그는 아무와도 결혼하지 않고, 섹스하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지 분명하지 않은 채로 가만히 할일을 하며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물론 그는 이런 식으로 내게 밑도 끝도 없이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간신히 받아들인 바에 따르면 그 말의 목적은 몹시 명료했다. 그는 혹시라도 내가 하고 있을지도 모를 기대나 추측, 관계에 대한 일종의 가늠하기를 그만하도록 종용했다. 이제라도 그는 내가 확실하게 품고 있던 불확실한 불씨를 끈 것이다. 말을 끝낸 농담은 떠나기 전의 유지와 똑같았다. 나는 농담에게 어떻게 나와 유지가 나눴던 그 긴 대화를 다 기억하는지 묻지 않았다. 농담은 마치 내게 필요한 사물처럼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냥 의심해본 적이 없었을 뿐이야. 내가 말했다. 그때 돌려주지 못했던 대답이었다. ―어떻게 할 건데? ―이제부터 의심하면 돼. ―유지를? ―아니. 나를.
끝
#6. 세속적이어야 할 때도 있다. 우리는 항상 정도(正道)를 걷고 싶어한다. 격이 있어 보이고, 스스로 의미를 느낄 수 있고, 고결 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가 않다. 정말 보이지 않는 피가 튀기는 격투 장이다. 그런 세상에서 자신의 격, 자신의 의미를 지키며 살려는 노력이 현실성이 있는 것일까? 연말에 템플 스테이에 다녀왔다. 일거수일투족을 논하고 공유하는 두 살 아래의 아는 동생과 다 녀왔다. 항상 그렇게 매년마다 그 친구와 바다나 산이 있는 추운 지방으로 겨울을 즐기러 다녀오 곤 했다. 그 시점이 연말이 될 때가 잦은데, 그때에는 숙소 값이 비싸지는 시즌이라 비싼 방을 부 담스러워하는 우리의 성격 덕에 오만원에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템플 스테이를 자주 갔었다. 복 잡하지 않고, 조용하게 자기 세계에 집중하고, 책도 보고, 차도 마실 수 있는 그 공간은 일평생 삶 의 의미를 쫓아 다니는 우리에게 일종의 정신의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이곳이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몸이 피곤한 것도 있었지만, 나름 피곤을 푸는 방 식이라고 생각한 사색과 책, 그리고 조용한 산사 분위기가 오히려 갑갑하게 느껴진 것이다. 뭔 가 안에서 이러한 조용한 분위기는 지금의 나에게 전혀 필요한 부분이 아니라고, 이미 나는 이 런 식의 치유는 충분히 채워놨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었다. 그걸 깨닫지 못하고 습관처럼 이 곳 에 온 것이다.
동생과 나는 작가수업에서 만나서인지 ‘삶, 글, 생각의 변화’같은 주제로 평소에 자주 얘기를 나누 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게 반복될수록 다람쥐 쳇바퀴 도는 느낌을 받았고, 내 몸을 붙들고 있는 현 실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에 드러내지 않지만 속으로 실망하고 실망하는 것을 반복해 왔 었다. 서로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 사이에 적어도 자신의 삶에서 이런 식의 사유는 충분하다는 것 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실’에서 차를 마시다 서로의 생각이 우연히 확인되었다.
“왜 예전만큼 편하지 않지? 몸이 많이 피곤했었나?” “언니도 그래? 나도 그래. 그런데 이건 몸이 피곤한 느낌이 아니라 왠지 여기가 갑갑하달까. 뭔가 정체된 느낌이 불편하게 느껴져”
다른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이 사찰은 주변 풍광과 소담한 규모에 반해 틈만 나면 찾던 곳이었다. 이번이 네 번째 방문인데,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사실 여기까지 와서 말하는 게 좀 우습지만, 이렇게 사유하고 내면을 찾아가는 게 뭐가 중요할 까 싶기도 해. 어차피 회사가면 바로 무너지는데 말이야”
동생이 조심스럽게 회의적인 발언을 했다. 하지만 나는 나와 같은 생각을 말해준 그 말이 반가 울 따름이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매년 이 곳에 오고, 내 삶의 중심을 찾겠다고 하는데, 점점 세상살 기는 어려워지는 느낌이야.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게 당연하지 싶어. 세상은 진 흙탕이고,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정치가 난무하고, 온갖 비열하고 치졸한 발상들이 난 무하는 데 말이야.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 혼 자서 ‘삶의 의미’를 외치고, 고고하고 고결하게 행동하려는 시도가 적절한 걸까? 너무 비 현실적인 욕심이 아닐까 싶어. 그래서인지 내 안에 집중하고 나를 찾으려는 노력들…… 약간 허망해 보이기도 해”
사무실에서 드는 생각
그랬던 것 같다. 생각과 의지는 안에서 맴도는데, 현실은 바뀌지 않는, 도리어 현실을 더 이해하지 못하고 내 주변의 현실적 친구들도 나를 이해할 수 없어하는 것 같은, 그런 물 과 기름의 얇은 막이 스멀스멀 형성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막을 내가 더 두껍게 만들 고 있다는 느낌 말이다. 나를 알고 나를 강하게 하겠다는 다짐과 시도들이 되려 이 세상 과 이질적인 자아의 괴물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의구심은 생각한 다짐들이 현실에 적용되지 못하고, 그럼으로써 내 삶은 변화되지 않으면서 점점 더 강해졌다. 여기서 말하는 현실은 바로 밥벌이이다. 직장과 생계의 고 민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또 내가 설정한 관계, 가치관에 대한 다짐 등은 직 장과 밥벌이 영역에서는 절대 관철될 수 없기 때문에 공들여 쌓은 내 자아는 월요일 출 근만 하면 쉽게, 너무도 쉽게 무너지는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회사를 그만두어라,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라’라고 말하는 것은 숱하게 퇴사와 입사를 반복한 경험에 비춰도 그렇고,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메커니즘을 봐도 무 성의하기도 하고 비현실적인 제안이다. ‘장인’처럼 오롯이 혼자 작업하고, 결과물의 ‘빼 어남’에 반해 자본과 사람이 몰려서 돈을 버는 방식이 아닌 이상 내가 무슨 일을 하든 나 는 그 ‘업계’ 사람들을 마주할 수 밖에 없다. 리서처라면 리서치 회사 상사와 동료, 클라 이언트를 대면할 것이고, 작가라면 출판사 편집자와 여러 미디어들을 접해야 한다. 그리 고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어느 업종이든 구조는 엉망이고, 비열하며, 자기이익만 보려는 사람들로 꽉 차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위해 배반, 배신, 비도덕적이고 비 윤리적인 행동을 감행하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속한 업계만 ‘거지’ 같은 게 아니라 사람들이 밥벌이 하는 ‘현실’ 그 자체가 ‘거지’ 같은 것이다.
이쯤에서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제 ‘나에 대한 공부’는 그만 하고, ‘세상에 대한 공 부’를 해 보자고. 싸움도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지 않는가. 내 능력 값 을 지불하는 직장과 나와의 관계에서 ‘지피지기’는 더더욱 중요하다.
이제 세상의 치열함, 사람들의 잇속 계산, 처세에 좀더 기울이고 싶다. 한때 이런 분야 는 ‘자기계발 영역’으로 분류돼 선망되다가, 그 뒤에는 ‘반인문적/반인간적’ 행태로 분 류돼 또 한창 비난을 받았었다.
둘 다 그 자체의 내용은 간과하고 한 방향으로 과도하게 부풀려진 듯 하다. 나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객관적인 탐색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다. 내가 몸담은 회사의 생존원리는 무엇인지, 그 안의 조직원들이 적응하고 때로는 자기 목소리를 내는 과정은 어떠한지, 그 안에서 내가 역할을 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포지션을 잡아야 하는지…… 등을 알아가는 건 중요할 것이다.
권근혜 (lynnox78@gmail.com
과거 마케팅리서처 / 쿠바다이어리 저자
지금의 나는 조금 더 구체적이고 세속적일 필요가 있었다. 연말에 친하게 지내는 리서치 후배와 술 한잔을 하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정말 리서치는 해도 해도 일이 끝이 없어요. 그 와중에 조직개편 앞두고 뒤숭숭하고요” 내가 그만둔 회사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정이 예상이 되었다. “그러게, 연말이라 정신 없겠다. 일단은 잘 버티시게” “그래야죠. 그런데 요즘 팀장님들 움직이는 거 보면 정말 가관이긴 해요. 그래서 든 생 각인데 차장님은 이 회사에서 어떻게 버텼나 싶어요. 지금까지 제가 본 리서치 팀장들 은 다들 자기 잘난 맛에 살거든요. 그런데 그러지 않으면 못 버틸 것 같기도 해요. 그런 데 차장님은 안 그러니까. 제가 본 차장님은 남의 의견을 끝까지 들어주고, 자기 주장도 강하지 않고, 허세도 없잖아요.”
후배는 칭찬으로 한 말이었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울림이 되었다. 어쩌면 난 내가 발을 내디딘 세상을 외면한 채 너무 고고한 척을 한 건 아닐까. 나 자신을 붙잡고 보듬어보느라 세상과 너무 멀어진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면, 진흙탕 같을지언정 세상 안으로 몸을 담가야 할 때도 있는 것 같다.
사무실에서 드는 생각
의미없는 이야기 글. 그림. 철민
월간이리에서는 새로운 필진을 찾고 있습니다. 차분 하게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듯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하실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장르를 가리지 않으며 이것이 될까 싶은 연재들도 가능한 연재 할 수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습니다. 연재와 관련해서 문의 사항이 있으신 분들은 언제든 exxx2x@gmail.com 으로 문의 주시면 정말 정말 친절 응대 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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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논문 해적방송
느낀다 그러므로 나는 I feel therefore I am
행복의 기원
오늘은 논문이 아닌 책을 소개해보려 한다. 내가 심리학을 좋아하게 만들어준 분의 책을. 언제부턴가, 행복이라는 단어를 우리는 상당히 많이 듣게 되었다. 그런지도 이젠 꽤 된 것 같다. 그 후로 우린 더 행복해졌을까?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대로일지도. 서점가에 넘쳐나는 책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여러 가지 방책들을 일종의 스킬 혹은 전략처럼 제시한다. 느리게 사세요, 생각을 바꾸세요, 아침에 일어나세요, 비우세요, 버리세요, 거 리를 두세요, 고독을 즐기세요 등등. 덕분에 보다 더 바빠지고들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많은 책들에 빠져 있는 건, 인간이 ‘왜’ 행복감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과 그에 대한 탐색이다. 인간이 어떤 때에 행복감을 느끼는 동물이며, 왜 그럴 때에 행복감을 느끼게 되었 는지에 대한 학문적 고민 말이다. 그러니까, [행복의 기원]은 이런 부분의 가려움증을 긁어주는 책이다. 저자는 독자들이 얼마나 행 복해지는 데에는 그닥 관심이 없으며, 인간이 어떻게 행복을 느끼도록 진화해온 동물인지를 간결 하지만 분명한 학문적 토대를 둔 일련의 문장들로 전달한다. 요는 이러하다. 행복이라는 것은 인간이라는 종이 존재하는 ‘목적’이 아니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개개인의 의식적인 삶의 목표는 될 수 있으나,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이 과학적 인 팩트라고 볼 수는 없다. 우리는 존재하기 위해 존재하다. 즉, 생존해서 유전자를 남기고, 이를 통해 인간이라는 종이 계속해서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기나긴 과정에 기여할 뿐이다. 행복은 바로 이러한 과정을 순탄하게 하기 위해 생겨난 일종의 시그널이다. 인간은 그 생존과 번 식에 직결되는 것들을 할 때 (즉 음식을 먹을 때라든지, 사회적인 안전망을 형성할 때라든지, 성 적 행위를 할 때라든지) 쾌락을 느끼도록 진화해왔다. 그래야 그 행위들을 할 것이고, 이를 통해 생존하고 유전자를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 고열량의 단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진화 의 흔적 중 하나이다. 최근의 논문들 몇 편은 이런 얘기를 한다. 행복에의 집착은 오히려 그 사람을 행복으로부터 더 멀 어지게 한다고. 필요한 건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도, 행복을 쟁취하기 위한 집착도, 타인과 나의 행 복을 늘상 견주는 비교 행위도, 행복을 즉시 가져다준다는 스킬도 아닌 행복이라는 현상 그 자체에 대한 약간은 차가운 이해와 그를 토대로 쌓아가는 하루하루가 아닌가 싶다. 또다른 논문에 의하면,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에 달려 있으니까.
서은국, [행복의 기원] 글, 사진: 민하 (ㅇㅅㅌ @min.ete ㅇㅁㅇ minha@berkeley.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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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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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황정운
이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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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
선생님을 알고 지낸 것은 여러 해 되었으나 이렇게 편지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처음인 듯 합니다. 제가 일전에 가볍게 말씀 드렸던 것을 장난으로 넘기지 않고 응대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부터 한 달에 하나의 話頭에 대해 선생님과 진중한 이야기를 가볍고 재미있게 나누어볼까 합니다. 사실 아직 선생님을 직접 뵌 적은 없습니다만. 그래서인지 제 생각, 지식, 경험, 사상을 펼치는데 마음의 주저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저희가 처음 이야기 나눌 話頭는 ‘종교’입니다. 선생님은 종교, 라고 하면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지요. 여의도순복음교회나 서초동 사랑의교회 같은 성전(聖殿)이 우선 생각날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험준한 토함산 산길을 헤치고 만난 석굴암 본존불상의 염화미소도 떠오릅니다. 연말 시상식 때 많은 이의 수상 영광을 가장 먼저 받는 하느님 아버지도 떠오릅니다. 무언가를 믿는 행위는 같지만 믿음의 대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박해가 자행된 아일랜드의 슬픈 이면을 다룬 영화 <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도 생각납니다. 글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최근 읽었던 유발 하라리 교수의 <사피엔스(2015)>에서 종교의 본질을 다룬 한 대목이 떠오릅니다. 그에 따르면 종교란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체계’ 라고 합니다.
오늘날 종교는 흔히 차별과 의견충돌과 분열의 근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상 종교는 돈과 제국 다음으로 강력하게 인류를 통일시키는 매개체다. 모든 사회 질서와 위계는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모두 취약하게 마련이다. 사회가 크면 클수록 더욱 그렇다. 종교가 역사에서 맡은 핵심적 역할은 늘 이처럼 취약한 구조에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있었다. 조교는 우리의 법은 인간의 변덕의 결과가 아니라 절대적인 최고 권위자가 정해놓은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러면 최소한 몇몇 근본적인 법만큼은 도전 받지 않을 수 있었으므로, 사회의 안정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 책 <사피엔스> p.298
저는 지금껏 종교를 이토록 인간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문장을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사고일런지요. 물론 유발 하라리 교수는 그 인간 중심적인 사고, 인본주의야말로 사피엔스가 지금까지 생존한 원동력이라고 보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두 가지 측면에서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종교를 기능과 수단으로 해석하지 않으려는 것이고 둘째는 지식과 정보가 아닌 직접 느낀 경험으로 종교를 더듬어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스물 네 살 무렵 일 년 정도 성당에 다녔습니다. 돌이켜보니 정확히 십 년 전이군요. 대학 친구를 따라 집에서 꽤 먼 성당을 찾아가 함께 미사를 드린 적이 있는데, 한 시간 남짓 저 아닌 다른 이들이 경건하게 미사를 드리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경건한 모습을 더 보고 싶어 성동구 금호동 언덕에 있던 성당을 매 주 일요일 저녁마다 찾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가 아닙니다. 저는 성가를 따라 부르지도 않았고 미사 중간에 성체를 받아 모시는 영성체에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이질적인 관찰자였고 이방인이었습니다. 섞이지 않는 그것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계절이 아직 봄으로 바뀌지 않은 쌀쌀한 늦겨울로 기억합니다. 성당에는 이제 막 사제 서품을 받은 애기 신부가 있었는데 일요일 미사 직전이 그 분의 생일이었나 봅니다. 그 사실을 안 신도들이 미사가 끝나자 미리 준비한 영상과 선물을 전달하더군요. 박수와 함께 말입니다. 선물을 받은 애기 신부는 달리 준비한 것이 없어 답례로 노래를 하나 부르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이 부른 노래는 <내 발을 씻기신 예수> …… 정식 성가는 아닙니다. 반주도 없이 마이크도 없이 몸의 육성으로만 온 힘을 담아 부른 그 노래는 작지 않은 성당 곳곳을 단단하게 찔러댔습니다. 애기 신부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두어 칸 앞에서는 흰 면사포를 머리에 쓴 어떤 할머니가 조용히 두 손을 맞잡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 분의 등을 바라보았습니다. 애기 신부가 부른 노래 제목을 알게 된 것은 조금 나중의 일입니다만, 그 모든 광경을 숨죽인 채 지켜봤습니다. 목소리에 담긴 밀도 있고 단단한 감촉이 지금까지도 생생합니다. 저는 그 순간 종교를 보았다고 단언합니다. 신을 본 것은 아닙니다. 종교란 무엇인지, 종교가 사람들을 어떻게 한 자리에 모으고 어떻게 그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지 살짝 엿본 듯 합니다. 엿본 것을 몇 개의 단어로 쉽게 정의 내리기 쉽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이 후회하는 동물인 이상 종교는 영속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 <일대종사(2013)>에서도 여주인공 궁이(장쯔이)가 남주인공 엽문(양조위)에게 속내를 터놓으며 이런 말을 하지 않던가요.
제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에 선생님을 만난 것이 제겐 큰 행운이에요. 안타까운 건 이제 제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거에요. 생각해보면 인생은 후회 없다는 말, 모두 다 객기에서 나온 소리에요. 만일 인생에 후회가 없다면 사는 게 얼마나 재미 없을까요? - 영화 <일대종사> 부분
후회하기에 삶이 흔들리고, 흔들리기에 흔들리지 않고 싶어 누군가에게 의지하게 됩니다. 그 누군가가 후회와 흔들림 없는 절대자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끝내 종교로 이어지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 바람이 종교의 탄생이자 종교의 본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보리밭을
흔드는 작은 바람에 이토록 쉽사리 흔들리는 존재인지, 저는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해보면 종교란 꼭 성당에 가야, 교회에 가야, 사원에 가야 생성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내가 흔들릴 때, 또 내가 흔들리고 싶지 않을 때 종교가 나에게 다가옵니다. 그래서인지 얼마 전 읽었던 이문재 시인의 詩 <오래된 기도>를 곱씹어보게 됩니다.
처음 드리는 편지가 길었습니다. 선생님에게 종교는 어떤 것일지, 답신을 기다려 봅니다. 황정운 드림.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 (중략)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 <오래된 기도> 부분 (문학동네시인선 052 이문재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 [끝]
황정운 9년째 석유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글쓰기와 현대미술을 좋아합니다. https://brunch.co.kr/@aboutexpression
돌아온 공
저에게 선생님이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조금 더 부-드러운 표현으로
... 누군가에게 종교 이야기는 불편한 내용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종교를 떼어놓고서는 특정 시기 인간의 투쟁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기에 종교는 늘 중요한 주제인 것 같습니다.
오늘 할 이야기는 종교와 그로 인한 역사의 굴곡에 대한 내용은 아니고 우리의 인생에서 종교를 만나는 시점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때로 종교는 맹목적이라는 표현과 맞물려 사용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정말로 주변의 상황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한 믿음을 가져서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고민하고 깨달아 가면서 선택하기 이전에 주어지는 천부적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일까요?
예를 들면 오리나 거위가 알에서 깨어난 후 처음 보는 존재를 부모로 인식하는 각인효과와 같은 것이 종교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질문을 문득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부모로부터 특정 성씨나 음식 취향, 지병과 같은 것을 이어받는 것처럼 종교를 그렇게 접하는 것이 아닐까요? 모태 신앙이라는 표현을 떠올리면 보다 간단할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에 친구들이 모태신앙이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 저는 ‘이 친구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교회를 다녔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인간의 생에서 청소년 이전 시기가 그 이후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을 감안하면 이것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자기 의지나 결정권과는 상관없이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에게서 전수받는 아주 강력한 사고체계가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물론 우리는 살면서 여러 문화를 습득하고 그 중에서 결국 버리게 되는 것도 있고 수긍하고 남겨두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종교의 경우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이 종교는 의도적으로 정제된 방대한 분량의 문화를 쏟아 붓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해 종교의 특수성을 생각하면 경험 하는 것들을 충분히 비판적으로 돌아보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 집단 안에서 자체적으로 해석된 의미를 배우고 공유하면서 고착화 할 확률이 더 높지요. 뿐만 아니라 의문을 제기 했을 때 주장의 근거가 거부할 수 없는 존재. 즉, 절대자의 말에 근거한다고 하면 그것을 쉽게 거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를 외가 쪽은 기독교 친가 쪽은 불교에 가까운 편인데 양쪽 모두 제가 자라는 동안 생활 공간을 공유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저는 성경학교도 따라가고 절도 따라다녔지만 둘 중 어느 곳에 뿌리 내리는 일은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아버지를 닮은 개인적 기질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제가 어린 시절, 그러니까 질문을 차근차근히 그리고 오랫동안 물고 늘어질 나이 이전에 저에게는 신과 같을 부모님의 영향 아래에서 특정 종교에 노출 되었다면 개인적인 기질을 뒤로 하고라도 사랑을 받기 위해 (혹은 유지 하기 위해) 노력을 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제가 예절을 배우고 부모님 마음에 들 만한 성적을 받아오기 위해 별로 좋아하지도 않은 학과 공부나 학원을 성실하게 다닌 것처럼 말이죠. 그렇게 종교활동을 하더라도 성인이 되거나 사춘기 즈음에는 개인적 기질로 인해 뛰쳐나가는 일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아마 어린 시절에는 엄청난 노력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 부모님 모두 강력한 종교의 영향권에 있지는 않아 저는 한국에서 가장 널리 퍼진 두 종교의 중간 즈음에 놓여져 어느 것에도 푹 빠지지 못했습니다.
학창시절 또래집단을 통해 종교 활동을 권유 받은 일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존의 신자들이 보기에 저는 불순하고 의심 많아 교화되지 않는 그 무엇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질문이 있었고 대답에 납득하지 못했고 상대는 저의 질문을 의아하게 생각했으니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소 닭 보듯 바라보고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는 부족한 존재이지만 가능하면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고 존중하는 삶을 살아 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자연스럽게 되는 것을 버둥거리며 흉내 내고 있지요. 그러다 보면 몸에 좀 익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에서 비롯한 행동입니다. 어찌되었든 그런 이유로 각 개인이 믿는 모든 종교 또한 존중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존중한다고 해서 종교를 믿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러기에는 믿음이 너무 부족합니다. 다만 사람들이 더 많이 믿거나 현실적인 힘이 강하다고 해서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숭상하기 보다 가능한 비슷한 눈 높이에서 모든 종교를 생각해 보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사람들이 마음의 쉴 곳이 필요하거나 사업 인맥을 위한 이유나 영적 체험을 통해 종교를 갖는 것은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흔히 일어나는 일이고 그만큼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하지만 사람이 자라는 환경에서 일방적인 믿음의 순서를 갖게 되거나 지니게 하는 것은 더 늦게 전에라도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인생을 뒤흔드는 사건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훈보 드림 https://brunch.co.kr/@exx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