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이리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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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입니다. 도토루의 하루 / 그림. 호지 백림서신 - 12. 서점에서 / 글. 사진. composer B 의미 없는 이야기 / 그림. 글. 사진. 철민 남들이 추천하지 않는 영화 - 베이비 드라이버 (2017) Ping Pong - 03. 요리 / 글. 황정운 이훈보 느낀다 그러므로 나는 - in other words / 글. 사진. 민하


꽃놀이 하기는 조금 추운 요즘입니다. 이달의 마감을 하고 보니 책이 무척 얇아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더군요. 얇은 게 조금은 창피하지만 그렇다고 막 또 얼굴도 못 들고 다닐 것 같고 그렇지는 않습니다. 책임은 모두 편집인에게 있으니 비난의 화살은 저에게 날리시면 됩니다 ㅠㅠ 부끄러우니까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월간이리 발행의 두 축을 맡고 있는 편집인과 표 지 디자이너가 이번에 커피를 만들었습니다. 이리카페에서 아메리카노나 커피 음료를 드실 때 사용하는 에스프레소가 그것입니다. 이 하나의 블랜드를 완성시키는데 5개월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맛은 괜찮습니다. 만든 저도 가끔 커피가 생각날 정도입니다. 말을 빙빙 돌려도 책이 얇은 게 조금은 창피하지만 그래도 이명박, 박근혜 임기 기간 동안 우리가 버텨왔고 그 들은 모두 구속 중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뭐 이달의 창피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래도 미래마저 어둡지는 않아서 몇 건의 연재 문의가 있었습니다. 성공적으로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괜찮은 연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 고 있습니다. 예상대로 흘러간다면 아주 흥미로운 필진들이 새로 여러분들에게 인사 를 드릴 예정입니다. 월간이리는 예술 잡지라는 것을 표방했으니 이달의 부끄러움은 안고 가겠습니다. 이 러니 저러니 해도 예술은 관철이니까요. 부끄럽지만 이달도 관철시켰습니다. 놀이와 건강을 동시에 챙기는 4월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월간 이리 EXXX 드림

공식트위터 @postyri




백 림 서 신

伯 林 書 信

Composer B

12. 서점에서

잘 지냈어? 나는 요 며칠간 갑작스럽게 닥쳐온 추위 고생을 좀 했어. 이 글을 쓰는 동안 밖에서는 계속해서 비바람이 불고 차갑고 습한 공기가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어. 특히 일정과 일정 사이에 시간이 오래 비는 날이면 이런 날씨가 원망스럽기만 해. 더군다나 한국처럼 들어가서 앉아있을 만한 카페가 그리 많지 않다 보니, 애써 찾아간 카페가 만석이면 더 막막하지. 나는 그럴 때면 서점에 가. 흔히 ‘두스만’이라고 부르는 이 서점의 정식 명칭은 ‘두스만 문화 백화점 (Dussmann das KulturKaufhaus)’이고, 건물 전체가 책, 음반, DVD, 문구류 등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야. 독일어를 모른다고 하더라도 잠깐 시간을 내어 가볍게 구경하기 좋은 곳인데다가, 요즘처럼 날씨가 궂을 때 잠시 쉬어 갈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피난처가 되어 주기도 해. 더군다나 번화가 한복판에 있으니 찾아가기도 쉽고 말야. 이 두스만 서점에서 내가 가장 자주 들르는 곳은 아무래도 음반 매장이야. 이 곳은 진열대에 이미 개봉된 채로 놓여있거나, 진공포장 상태가 아닌 음반들은 매장 한구석에 있는 CD플레이어로 가져가서 들어볼 수 있도록


해놨어. 특히 CD플레이어에 연결된 헤드폰은 음악감상용 헤드폰이 아닌 모니터링 헤드폰 인 것도 눈에 띄어. 특히 내가 좋아하는 재즈 전문 레이블인 ‘ACT’의 음반을 한국에 비해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좋아. 또 이런 세련된 음반들 뿐만 아니라 분단 시절 동독에서 유행했던 노래들만 모아 놓은 음반들도 있어. 이런 건 독일에서나 볼 수 있는거겠지?

<ACT 레이블의 음반들과 두스만의 음악 감상용 CD플레이어>

추억의 동독 힛-트쏭 선집 과 Team KIM! 신간 코너로 가보니 얼마전 있었던 평창 올림픽 도록이 있더라. 사진을 취합해서 기록을 정리하고 편집하는데도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릴텐데, 생각보다 빨리 나와서 놀랐어. 각 종목별 메달리스트나 이변을 일으킨 선수들의 사진이 실려 있는데, 여자 컬링 종목에는 당당하게 ‘팀 킴 (Team Kim)’이 실려있고, 한국에는 ‘Kim’이라는 성씨가 흔하다는 설명까지 꽤 자세하게 담겨있어. 윗 층으로 올라가보면 계단 선반을 따라 자잘한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어. 소품이라고 해서 마냥 예쁘고 고운 것들만 있는 건 아니야. 독일이라는 나라의 이미지에 걸맞게 조금은 냉소적이고 의미심장한 물건들도 있단다.


예를 들면 마르크스의 두상을 모티브로 한 저금통이라든지, 독재자들을 소재로 한 카드게임 같은 것들 말야. 참고로 그 카드게임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어떤 분도 등장해.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사진을 보는 순간 “네… 영광이올시다….” 하는 말이 절로 나오더라. 다른 나라에 가서 서점을 구경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실 책이라는 것은 그 나라의 언어를 이해하지 않으면 온전히 읽을 수가 없는 것이다보니, 오히려 쉽게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부분인 것 같아.

머리에 든 것(?)이라고는 돈 밖에 없는 분 하지만 그 내용을 다 알지 못한다 해도 괜찮지 않을까? 때로는 표지와 그림만 보고서 ‘이 책은 과연 무슨 내용일까?’하고 추측해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고, 이 나라에 번역된 한국 소설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아. 한국 관광에 대한 여행서적을 찾아봐도


재미있겠지? 그러다 심심하면 아동서적 코너에 가서 엄마 아빠와 함께 놀러 온 아기들을 구경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날이 좀 더 따뜻해지면 서점에도 사람들이 늘어날텐데, 조만간 한번 더 가봐야겠어. 말이 길어졌네. 오늘은 책에 대한 얘기를 했으니, 책에서 영감을 얻은 노래를 듣자. 또 편지할게.

정밀아 - 방랑자


남들이 추천하지 않는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 (2017) 감독 에드가 라이트 오늘 소개해 드릴 영화는 바로 <베이비 드라이버> 입니다. 2억 달라가 넘는 흥행 기록을 생각하면 남들이 추천하지 않 을 영화와 연관이 없는 것 같지만 또 한편으로 한국 관객수 가 100만이 넘지 않는 걸 생각하면 또 이 영화를 추천할 사 람이 없을 것 같기도 해 슬그머니 추천해 봅니다. 우선 평소처럼 감독을 살펴볼까요? <베이비 드라이버>는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영화로 같은 감 독의 유명한 영화로는 <뜨거운 녀석들 HOT FUZZ>가 있죠. 저도 일요일 영화 소개 코너에서 보자마자 이영화는 봐야 한 다는 생각이 들었던 흥미로운 영화였습니다. 능력있는 경찰 (주인공)이 시골의 한적한 마을에 가서 겪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죠. 연출도 좋고 시나리오도 좋 았습니다. 그래서 2007년 개봉한 <뜨거운 녀석들>은 지금도 종종 사람들의 추천 목록에 올라 가는 영화로 남아있습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은 분이 있다면 지금 보셔도 큰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 <베이비 드라이버>로 넘어가죠. 저는 영화를 볼때 감독 도 잘 안보고 스토리도 잘 안보고 포스터를 보는 편입니다. 과거 음반을 CD로 사던 버릇이 남아서 인지. 아니면 어떤 정보도 없이 뭔가를 접하는 것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어서 인지 왠만해서는 포스터나 제목만 보고 영화를 고르는 편입니다. 요즘에는 한 두 개의 스틸샷을 보기도 합니다. <베이비 드라이버>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비록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를 봤지만 개봉 당시 포스 터만 보고도 이 영화는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뜨거운 녀석들>을 만들었던 감독이 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포스터만 봐도 재미있을 듯 영화입니다. 인물 표정이 과하지도 않 고 전통적으로 오락영화에서 필요하다고 하는 것들이 다 들어가 있는 포스터 입니다. 그럴듯한 보스, 악당, 젊은 주인공, 미녀, 총, 자동차 그리고 쫓는 경찰차 그리고 음악을 상징하게 되는 아이팟 이어폰까지 기본적으로 오락영화다! 라고 하면 필요한 것들이 전부 들어가 있죠. 안 의 배치가 그렇다해도 문제는 이것을 얼마나 재미있게 그리고 현대의 관람객의 입맛에 맞게 제 시해 주냐가 남아있는데 그 마지막 한 포인트를 영화는 핑크색 배경으로 해결해 줍니다. 정말로 쉽고 명확하게 난제를 푸는 마술사 같은 포스터입니다. 자 이 인물과 설정들이 감싸진 핑크색 포 스터를 봐라 우리가 너희에게 보여줄 것들은 이런 재미다! 라고 선언하는 듯 합니다.


연 출 속 도 와 달 리 여 기 저 기 올 드 한 요 소 가 많 다

멋진 포스터와 별개로 재미가 없는 영화도 많지만 보통은 포스터의 솜씨가 감독의 센스와도 연 관이 있다고 믿는 저에게는 충분히 긍정적인 포스터 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제가 오늘 <베이비 드라이버>를 추천하는 이유는 포스터와는 조금 연 관이 없습니다. 요소가 아니라 요소를 잇는 기술. 즉, 편집이 주는 재미를 이 영화를 통해 느껴 보셨으면 합니다. 실제와 달리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영상물은 편집이 들어가죠. 사진의 프레임과 같은 무수한 연 속 프레임들이 하나의 영상물이 되는 와중에 이 리듬을 어떻게 끊어가고 연결짓는 것이 영화의 논리와 재미에는 무척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히 저는 이 부분을 높게 평가 합니다. 이게 아니면 단순 스토리로를 볼라치면 소설이나 만화를 봐도 되니까요. 이 편집이라는 측면에서 <베이비 드라이버>가 같는 재미는 무척 중요합니다. 에드가 라이트 감 독은 영상을 자르고 붙이는데 탁월한 감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베이비 드 라이버>는 90회 아카데미에 편집상, 음향 편집상, 음향 효과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습니다. (이건 저도 영화 이야기를 쓰기 위해 찾아보다 알게되어서 조금 놀랐습니다.) 흥겨운 음악과 함께 화면을 자르고 붙이는 속도가 남다른 재미를 준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독자 여러분들은 영화를 보면서 그런 재미를 강렬하게 느껴본 일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이 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아주 노골적으로 “보라 편집의 재미를!” 이라고 외치는 듯한 강렬함이 있 습니다.


영화의 음악이나 리듬감이 상당히 현대적인 것과 반대로 이야기 구조나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 은 고전적이라는 것도 꽤 흥미롭습니다. 물론 이게 성립하기 위해 충분히 긴장감을 줄 만한 조 연 배우들을 섭외해야 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주인공이 아닌 배우들로 꽤 고전적인 이야기를 힘있게 밀어붙입니다. 뻔히 알아도 이렇게 비틀면 재미있다는 것. 감독이 “내가 자라며 봐온 재미의 지점은 이런 것” 이라는 이야기 하는 듯 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이야기 구조가 아주 탁월하지 않아 도, 스토리가 혁신적이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죠. 사실 이 영화보다 조금은 흥행이 덜 된 영화를 추천해야 할 것 같아서 에드가 라이트 감독이 만 든 <새벽의 황당한 저주>를 추천해 볼까 하고 그 영화를 보기도 했지만 에드가 라이트 감독이 가진 재능이 리듬과 편집을 이용한 자극의 극대화 라고 본다면 <베이비 드라이버>를 보는 게 더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굳이 영화를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베이비 드라이버>를 보실 계획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상대적으로 무게도 있고 편집 리 듬의 속도도 느린 <새벽의 황당한 저주>나 <뜨거운 녀석들>을 미리 보시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되리라고 생각하며 이제 보여줄 밑천을 끝까지 시원하게 밀어붙인 감독의 차기적을 기대해 보 는 것도 앞으로의 좋은 관람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끝

다음 이시간에


월간이리에서는 새로운 필진을 찾고 있습니다. 차분 하게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듯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하실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장르를 가리지 않으며 이것이 될까 싶은 연재들도 가능한 연재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니 연재와 관련해서 문의 사항이 있으신 분들은 언제든 exxx2x@gmail.com 으로 문의 주시면 정말 정말 친절 응대 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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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그림. 철민



PinG

03

PonG

‘요리’ 황정운

이훈보

보내는 공

선생님께,

저희가 오늘 주고받을 공의 이름은 ‘요리’ 입니다. 본격적으로 공을 던지기 전에 어떤 책에 대한 이야기부터 드리고 싶어졌습니다. 요리책은 아닌데, 요리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 책이 있었거든요.

저는 지난 한 달 동안 러시아 세계문학에 푹 빠져 지냈습니다. 푸슈킨, 고골,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솔제니친, 고리키 ...... 아, 여기 열거한 작가들의 작품을 모두 읽어본 것은 아닙니다. 때로 이름만 나열하는 것으로도 가슴 한 편이 가득 채워지는 그런 기분이 있지요. 저는 그 중에서 톨스토이의 장편 소설을 두 권 읽었습니다. 먼저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펴낸 <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습니다. 모두 합하면 약 1,6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고 다 읽는 데는 꼬박 2주가 걸렸습니다. 아시겠지만 같은 소설도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하는데 그 중 문학동네 출판사를 선택한 이유는 역자가 박형규 교수였기 때문입니다. 이 분은 국내 번역가 1세대이자 톨스토이 작품의 권위자로 유명하지요. 고위관리의 아내 안나와 귀족청년 장교 브론스키의 비극적인 사랑을 읽고 나니 톨스토이의 또 다른 작품을 읽고 싶어졌습니다. 톨스토이의 나머지 3대 장편소설 중 <전쟁과 평화>는 정말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그의 나이 일흔에 완성한 <부활>로 마음이 갔습니다. 역시나 어떤 출판사에서 펴낸 <부활>을 읽어야 할지 직접 보고 결정하기 위해 회사 근처 교보문고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안나 카레니나>를 번역한 박형규 교수가 이번에는 문학동네가 아닌 민음사 출판사에서 <부활>을 번역해서 펴냈더군요. 박형규 교수의 번역이 마음이 들었던 저는, 그런 이유로 한참 동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코너 앞에 서서 전집 목록들을 찬찬히 훑어보았습니다. 한 손에는 <부활> 두 권을 손에 쥐고 말이지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 그 목록을 눈으로 훑던 도중 저는 한 권의 책등에 시선이 머물게 되었습니다. 108번째로 펴낸 책의 제목은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이 책을 다시 마주한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햇수를 세어보니 12년만이었죠. 12년 전에 저는 동두천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미군들과 함께 생활했는데 제가 지내는 숙소 각 층마다 부엌이 하나씩 있었어요. 사실 군 생활 중에 요리를 하는 낭만과 여유는 그리 허락 않기 때문에


주중에는 거의 비어있다시피 한 공간입니다. 그렇지만 주말이 되자 이 부엌을 이용하는 여성 군인들이 종종 있었어요. 그들 입장에서 보면 고향을 떠나 머나먼 타국에서 생활하는 것이기 때문에 뭐라도 좀 더 집에 있는 것 같은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안되지 않았을까, 지금 돌아보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가깝게 지내는 여성 군인 중에 파디야(Padilla)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빠디야라고 적어야 좀 더 그 이름을 부를 때의 느낌에 가깝긴 합니다. 파디야는 푸에르토리코에서 온 친구인데 굉장히 가정적이고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였어요. 어느 날 주말에 외출하지 않고 부대 안에 머물다가 부엌에 가보자 파디야가 오븐 장갑을 끼고 오븐에서 무언가 커다란 플레이트를 꺼내고 있었습니다. 주말에 동료 군인들과 나눠 먹을 브라우니를 구웠던 모양입니다. 정말 먹음직스러웠습니다. 브라우니가 참 맛있게 보여서 슬쩍 한 조각 집어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파디야가 제 손에 들린 책을 가리키며 무슨 책이냐고 물어봅니다. 제가 방에서 책을 읽다가 그대로 부엌으로 갔던 모양입니다. 네, 아까 교보문고에서 시선이 멈추었다고 했던 그 책이었어요.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죠. 그런데 한국어로 쓰여진 책이라 책 제목을 영어로 바꾸어 이야기해주니 파디야가 환한 얼굴로 손뼉을 칩니다. 아, 나 그 책 알아! 파디야는 손뼉을 치며 스페인어로 뭐라고 이야기 하더군요.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파디야가 원래 태어난 푸에르토리코는 모국어를 스페인어를 쓰고,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작가인 라우라 에스키벨은 멕시코를 고향으로 둔, 역시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하죠. 스페인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파디야가 뭐라고 이야기했는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만 마지막 ‘초콜라떼’라는 발음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군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소설과 요리라는 낯선 것들이 생경하게 존재를 드러낸 것. 나는 그녀의 요리를 먹고, 그녀는 나의 소설을 알아본 것. 저는 쉽게 말하여지지 않는 묘한 기쁨을 느꼈답니다.

그 날 이후 조금씩 주말에 부엌에서 요리를 시도해 봤습니다. 요리라고 하기에는 다소 부끄럽습니다. 아주 간단한 빵과 과자를 굽는 정도에 불과했거든요. 처음에는 요리를 잘하는 파디야의 도움을 받을까 ...... 생각도 했지만 이내 혼자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아무도 없는 부엌에서 혼자 이것저것 만들어보는 것은 스스로 굉장한 재미였습니다. 부대 근처 마트에서 밀가루나 버터 등을 사오면 기본적인 준비는 끝나는 셈입니다. 계란은 공용 냉장고에 있는 누군가의 계란을 몰래 빌려 썼고, 그릇은 부엌 찬장에 있는 누군가의 그릇을 몰래 가져다 쓰면 그만이니까 무언가를 미리 더 준비할 필요도 없었죠. 인터넷에서 몇몇 레시피를 봐두었다가 한 주 동안 받았던 스트레스와 함께 밀가루 반죽을 이리저리 치댑니다. 아, 밀가루 반죽을 이리저리


치대는 것은 빵을 만들 때였고 과자를 구울 때는 반죽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했네요. 과자의 바삭한 식감을 위해서는 밀가루 반죽을 가급적 덜 매만져야 했거든요.

그때 제가 만들었던 요리들, 제가 오븐에서 구웠던 빵과 과자를 떠올려 봅니다. 초코 쿠키, 진저 쿠키, 크로와상, 커스터드 크림빵, 고구마 크림빵 ...... 아까 러시아 작가 이름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목록을 눈으로 훑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가득 채워지는 행복함이 느껴졌던 것과 비슷한 감정이 듭니다. 그런데 조금 아이러니한 것이란. 사실 12년 전 저는 외로워지고 싶어서 주말마다 요리를 했거든요. 군생활은 원치 않는 것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군생활 자체가 원치 않는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였고, 내가 선택하지 않은 집단과 사람들로 둘러싸여 원치 않는 업무를 계속했죠. 물론 하고 싶은 것만 선택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만. 하지만 한 주 내내 원치 않는 무언가에 짓눌려 있다 보니 주말 이틀만큼은 주변 동료들과, 심지어 외출하면 만날 수 있는 친구나 가족들과도 거리를 두고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에 있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요리는 스스로 원한 단절이었습니다. 주변의 것들로부터 거리를 두어 조금은 외로워지고 싶었고, 외롭다는 감정을 더 느끼고 싶어 찾아낸 것이 요리였죠. 그것도 조금은 역설적이지요. 흔히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요리를 찾아낸다고 하잖아요. 나의 친구 파디야처럼요.

다시 시계바늘을 지금으로 돌려볼까요. 얼마 전 주말이었습니다. 아이를 재우고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번에 던지는 공의 이름이 ‘요리’라는 이야기를 하고는, 아내에게 요리라는 단어에서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냐고 물어봤어요. 아내는 잠깐 갸웃하더니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외로움 아닐까. 요리를 할 때면 언제나 거실을 등진 채 벽을 마주보고 혼자 부엌에 서 있어야 하잖아. 요리를 시작해서 같이 식사를 하는 순간까지 요리하는 사람은 혼자일 수 밖에 없는 것 같아.

저는 그 날 밤 잠을 청하며 아내가 했던 이야기를 곱씹어 보았답니다. 요리를 하는 사람과 그 요리를 먹는 사람. 그러니까 서경식 선생의 표현에 따르면 ‘창조하는 인간’과 ‘감상하는 인간’ 사이의 어쩔 수 없는 단절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스스로 외로워지고 싶어서 요리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12년 전의 일입니다. 12년이 지난 지금은 아내와 딸과 함께 저만의 가족을 만들어 살아가고 있지요. 외로운 순간도, 외로워지고 싶은 순간도 있지만 정작 손쉽게 외로워져서는 안 되는 삶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누군가가 있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니 나와 함께 살아가는 누군가도 가급적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하고 싶어졌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 만들어준 요리를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먹는 일 아닐까요. 거실을 등진 채 벽을 마주보고 혼자 부엌에서 요리를 만들어 같이 식사를 하는 그 순간까지 조금 느꼈던 외로움이 잊혀질 수 있도록요.


아니, 거기에서 만족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맛있게 먹는 것뿐만 아니라, 아내와 딸이 제 요리를 맛있게 먹는 것이 보고 싶어졌어요. 누군가의 요리를 먹는 것에 만족해서는, 감상하는 인간의 자리에서 멈추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저에게는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 생겨버렸네요.

[끝]

황정운 9년째 석유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글쓰기와 현대미술을 좋아합니다. https://brunch.co.kr/@aboutexpression


돌아온 공

안녕하세요. 정운님.

이달의 주제 ‘요리’는 조금 어려운 듯도 하고 쉬운 듯도 합니다. 생존의 측면에서 본다면 의식주 가운데 ‘식’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니 아무래도 무게감이 있지만, 한편으로 ‘식’이라는 것이 일상의 요소라별 것 아닌것도 같고 그렇습니다.

이달의 주제를 이야기 하기 위해 얼마 전 저희 할머니와 있었던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합니다. 저는 최근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시골에 자주 가는데, 그 이유는 할머니의 운전연습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10년도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이후에 걷는 것도 불편하시고 말씀도 전 같지 않고 기억력도 떨어지고 허리도 굽으셔서 움직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인데요 이런 상황에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자칫하면 할머니가 사회적으로 고립될 염려가 있어 자식들이 바퀴 4 개짜리 전동 스쿠터를 사드렸습니다. 제가 그 스쿠터의 운전 선생님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 이유로 시골에 벌써 3주 정도 연이어 가고 있습니다.

그중 첫 번째 주의 일입니다. 전날 저녁 할머니가 냉장고에서 소고기를 꺼내 놓으면서 내일 국을 끓여 먹는다는 이야기에 그러려니 하고 말았는데 아침에 미역국을 끓이셨더라고요.

도시의 늦은 기상시간에 익숙했던 저는 할머니의 호출에 잠에서 깨 식탁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미리 끓여두신 미역국을 한 술 떴습니다. 기분 좋은 아침 미역국의 맛은 누구나 알만큼 익숙하죠. 국을 끓이는 방식에 조개를 넣거나 감자를 넣거나 고기를 넣거나 혹은 아무것도 넣지 않고 미역만으로 푹 우리거나 조리 방법은 다양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날 태어나서 처음 먹는 맛을 경험했습니다. 그 맛의 강렬함은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도 되지 않아 같은 식탁에 앉아있던 삼촌과 이야기를 나눠봐도 쉽게 추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신듯 하면서도 달콤하고 설명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맛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설탕을 넣었나 보다 했지만 할머니를 가운데 두고 저와 삼촌이 한참 동안 추궁한 끝에 얻은 답은 바로 ‘매실청’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셨습니까 매실청을 넣은 미역국? 그 맛은 정말 세상 누구도 모른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이런저런 음식 경험이 많다고 생각하고 어지간한 음식을 먹고 놀라는 일이 없는데 그 미역국의 맛만큼은 완전히 새로운 영역의 경험이었습니다. 뭐 삼촌이나 할머니도 마찬가지였죠. 미역국에 매실청을 넣은 할머니는 부끄러움에 머리만 긁적거릴 뿐이었습니다. 결국 소금을 넣어서 먹을 만 해지기는 했지만 놀라운 맛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매실청을 넣은 미역국의 맛은 소금 간을 하고 나니 마치 태국 어느 집의 비밀 수프 같이 달고 시고 짭짤하면서 미역과 소고기가 들어간 기이한 맛을 내는 국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국물 맛을 볼 당시의 저는 이달의 주제가 이미 ‘요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다른 지점에서 이 ‘요리’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연 이 요리는 무엇인가? 왜 나는 이 요리를


먹어야 하고 왜 할머니는 이 요리를 완성했을까? 기묘한 지점입니다. 맛이 없을 것을 맛이 없을 줄 모르고 만드는 요리라는 것은 요리가 갖는 기본적인 사랑과 희망을 망가트리는 기이한 측면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존재 (나 혹은 타인)에게 맛있게 먹이기 위해서? 도 성립하지 않고 이것이 노력을 한 끝에 맛이 있는 그러니까 행복감을 느낄만한 결과물에 도달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닙니다. 기이하죠.

물론 할머니는 위에 적힌 모든 것을 성립시키기 위해 국을 끓였다는 것을 알기에 삼촌과 저 그리고 할머니는 모두 한 그릇을 비워 냈습니다. 하지만 그 국은 누구도 요리라는 이름으로 기억하지 않겠지요. 식당에서 팔 수도 없고 일상적으로 재현되지도 않을 음식입니다. 궁핍해서 먹을 수 없는 것도 아니고 풍족하다고 만들 요리도 아닌 묘한 지점의 완성작입니다. 이상한 일이죠. 그 미역국이 요리에 가까워지려고 무수히 앞으로 달려갔다는 사실 말입니다. 도착한 곳은 요리에서 가장 먼 곳이었지만요.

맛있다는 것은 뭘까요? 나에게 행복을 느끼는 지점 혹은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을 재현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요리에서 우리는 맛이 아니라면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 걸까요 아주 낮은 단계의 행복. 그러니까 생존이라는 단계? 혹은 그 다음의 찾아오는 조금은 맛있는 음식을 맛보았다는 여유로움? 혹은 왕의 조리장처럼 눈이 번쩍 뜨이는 인지의 폭을 넓히는 놀라운 결과물을 도출해 내는 것일까요? 그것이 어느 쪽이든 요리라는 것은 보통 앞의 1.2.3을 차례로 관통하곤합니다. 그 요리의 곁에서 우리는 그 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요리는 저에게 기이한 맛의 무엇으로 기억되지만 저는 할머니의 요리로 그 미역국을 기억하기로 했습니다. 마음만큼은 확실하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할머니가 맛있는 음식을 많이 경했으면 좋겠습니다. 20년 전에는 한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베스킨 라빈스의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면 참 즐겁습니다. 스파게티도 아직 못드셔 보셨다고 합니다. 지금 스파게티를 맛보신다고 해서 경험한 맛을 재현할 수 없게 체력도 떨어지고 신체 기관도 불편해졌지만 의식주라는 굴레 안에서도 웃으면서 남은 시간을 보냈으면 합니다. 요리가 아니어도 먹는 행위를 통해서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저의 할머니 이외의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입니다.

생존을 넘어 행복으로 가는 길에 정치가 도움이 될 수 있겠지요. 인문에서 요리는 그런 지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나와 모두가 즐겁게 먹는 방법으로 가는 제도, 우리는 당장은 아니라고 해도 장기적으로 그런 미래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상급식이라는 말도 과거보다 익숙해 졌고 그 사회적 무게도 알게 되었으니까요. 너머의 세계는 어디에나 존재하고 결국 도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할머니의 미역국으로 시작해 무상급식으로 마무리 되어 이상하게 끝을 맺는 것 같지만 인문을 이야기 하는 과정에서 제가 요리로 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달에도 재미있는 주제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훈보 드림 https://brunch.co.kr/@exxx


심리학 논문 해적방송

느낀다 그러므로 나는 I feel therefore I am

in other words



노래 fly me to the moon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In other words, please be true. 그러 니까, 진실해주세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처럼 뭔가 알아서 막 친구도 추천해주고 일분일초 내 발 자취를 기억해가며 정보를 던져주는 과도한 기능의 소셜 서비스들로 우리들이 옮겨가기 전, 좀더 단순하고 만만했던 싸이월드 시절, 친구 미니홈피 대문에 적혀 있던 말이다. 그 때 그 아이 주위의 사람들은, 우리는 그닥 진실하지 못했던 걸까. 사회심리학에는 authenticity란 용어가 있다. 진실성, 진정성 정도로 번역 가능할 것이다. 이런 저런 상황 속의 내가, 이런저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의 내가, 혹은 그냥 일반적으로 내가, 얼마나 진짜 내 모습에 가깝다고 느껴지는지를 일컫는 용어라고 볼 수 있다. 얼마나 진짜 나로 존재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가짜가 되어가고 있진 않은지. 우리는 기왕이면 다른 사람들이 진실했으면 싶다. 여전히 가짜는 진짜보다 가격이 저렴하며, 다른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진실한 사람인지 내가 저 사람에게 진실되게 다가갔을 때 저 사람도 나를 진실되게 대할지를 판단하는 건 아주 옛날부터 인류의 진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우리에 게 꼭 필요했던 능력이다. 기왕이면, 가능하다면 진실해주세요. 하지만 어지러운 사회 속에서, 내 맘 같지 않은 상황들 속에서 매 순간 순간을 진실하게 존재한다 는 것이 쉬운 일인가, 하는 건 또 생각해볼 일이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요구하는 그 진실함 만큼, 우리 또한 적어도 그 정도로는 진실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또 하나의 용어, self-compassion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연민, 자기동정이라는 표현은 그다지 정확하지 못한 번역인 듯하고 그보다는 ‘스스로를 향한 너그러움’이라고 풀어서 이해하는 편이 가장 정확하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도 사용하게 된 ‘자존감(self-esteem)’이라고 하 는 것의 대안으로 최근 점점 거론되는 개념 혹은 태도이다. 자존감이라는 말 참 많이 듣지만, 그래 서 자존감이 높다는 게 좋다는 줄은 알겠지만, 그 자존감 늘 높게 지탱하기 좀 피로하지 않던가요. 자존감이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여기는 태도라고 한다면, self-compassion은 긍정이든 부정이 든 그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관대하게 지켜봐주는 쪽에 가깝다. 필자를 관대함과 갈 굼이 섞인 태도로 지켜봐주다 구박하다 하던 선배였던 Jia Wei Zhang의 논문에 따르면, selfcompassion은 진정성을 가능하게 해준다. 스스로를 마냥 긍정적으로만 보려고 하면 정작 자신 의 약점에 솔직해질 수가 없다.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하면 타인에게도 솔직할 수 없다. 그러느 니 차라리 우리, 스스로의 찌질함도 고고함도 있는 그대로 지긋이, 약간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봐준다면 그 찌질한 모습이든 빛나는 모습이든 좀더 진실하게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진실 하면 좋잖아요.

Zhang, J. W., & Chen, S. (under review). How to be true to your self?: Self-compassion promotes authenticity independent of self-esteem.

글, 사진: 민하 (ㅇㅅㅌ @min.ete ㅇㅁㅇ minha@berkeley.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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