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이리 2013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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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입니다. 비밀 안(not) 스러운 생활 / 사진. 글. beamil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 58, 59 / 사진. 글. @Ahopsi 회사옆 미술관 - 라이언 맥긴리 사진전 / 글. 강세기 영화로 읽는 시공간 - 저항의 예술화 / 글. 곡주대비 여기 문학이 필요한시간 - 시조 3수 / 글. 고수진 독신자의 독서일기 -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 그림. 이다솜 글.권고마 ‘금연시대’라는 짜증나는 현실 앞에서 / 글. K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거한 멤버소개 뼈그림 - 외뿔고래의 뿔 / 글. 그림. 왼손이 웹디자이너 생존 매뉴얼 - 이직의 생존 매뉴얼 / 글. 그림. 김성연 0,0,0 / 글.그림. Night Planet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 소개소 / 글. 신당동 파르한 건축이 좋아 - 카츠라 리큐 그리고 교토의 정원들 / 글. 사진. aoikasa 독후소설 - 일러스트 이방인 / 그림. 황은정 글. 김종소리 바다비 일요시극장 광고 우울한 청춘 / 그림. 글. 철민 부산 오뎅 이야기 - 나의 1년 / 글. odeng 마을길 마포 4로 “구 경의선 철길” / 글. 사진. exxx 루시안 프로이드 (Lucian Freud) / 글. 그림. 지인


벌써 일년, 처음이라 그래 며칠뒤엔 괜찮아져 그 생각만으로 벌 써일년이. 이런 허송세월을 하아.. 뇌주름보다 목주 름이 발달하는 요즘입니다. 그네누나와 함께 swing 하다보니 한해가 다 갔네요. 내년에는 좀 덜 어지럽 고 싶습니다. 많은 변화는 없었지만 많은 생각은 해 볼 수 있었던 한해가 아닌가 합니다. 월간이리 에서는 12월에 컬러 달력을 배포할 예정 입니다. 수량이 많지 않으니 트위터 등지에서 배포 한다는 글을 보시면 서둘러 습득하시길 바랍니다. 무슨 배짱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달력도 무료 입니다. 이쯤 되면 월간이리 광합성 설이나 월간이 리 흙먹는다는 소문이 돌 만도 한데 그런 소문도 없 는 걸 보면 무관심인건지 흑백이란 외형보다 럭셔 리한 내면이 있는건지 참으로 알 길이 없습니다만 은 그래도 3년 째를 버텨냈다는건 자부심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극적으로 뭔가를 이루지는 못해도 점진적으로 무언 가를 이루는 책이 되도록하겠습니다. 돌아보니 QR 코드도 도입하고 잠시나마 부수 증간도 했었고 알

편집: 이훈보

게모르게 많은 변화를 거쳐 이곳 까지 왔네요.

표지: 이주용, 한지인

필진 여러분과 십만(미래의) 독자 분들에게 깊은 감

월간이리 Refresh 2013

사의 말씀을 드리며 2013년 월간이리는 이렇게 물

주관: 프로젝트 이리

러갑니다.

지원: 서울특별시,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3 우리마을 미디어공방

공식트위터 @postyri


비밀안( not)스러운생활 2013 DECEMBER

11 / 14 13 : 53

‘grown-up’

조용히. 함께.

grow : 성장

가는 것. 걷는 길. 기다림. 시간. 성장. 침묵. 따로. 또. 같이. 가을. 비. 겨울. 눈. 그렇게. 변화. 받아들이는 것.


10 / 20 14 : 54

(1년동안 푸념 들어주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 넘어지고 실패하고 실패하고 넘어지는 제게 답을 내려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답을 요구하는 질문을 한 건 제 쪽이었으나 어떤 누구에게도 답을 받을 수는 없었던 거죠. 당연하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시엔 어떤 답을 반드시 받기를 원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었어요. 그리고 그들이 옳았습니다. 말 없이 지켜봐주는 덕에 아직 완전히 좌절하지는 않았습니다. 답을 받았더라면 당시의 저는 꼭 그렇게 따랐을 테고 그들을 원망했을 지도 몰라요. 본인의 선택대로 행동해서 누구의 원망도 할 수 없는 저는 다시 조금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쑥쓰러워 한 번도 보여주지 못한 지면을 이번에는 그들과도 나눌까 합니다. “모두 힘내길 바래. 함께 건실해질 때를 기다리고, 분명 실현될거야. 아주 빨리. 그리고 모두 고마워.”

* Android, i-Phone APP ‘인스타그램’의 필터를 이용하여 찍은 사진만 실어요.




회사 옆 미술관 라이언 맥긴리 사진전

강세기

http://kangjoseph.tistory.com 1. 영화배우 신현준이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보고 배

2. 라이언 맥긴리가 유명한 사진가인 줄은 알고 있

다. 영화 촬영을 위해 안성기와 같은 숙소 같은 방

면 많이 만나는 축에 꼽히는 보통 갤러리의 상반

우가 되었다고 훗날 무릎팍 도사에서 밝힌 적이 있

을 썼을 때 신현준은 이 사실을 안성기 본인에게 털어놨더랬다. 자신으로 인해 내 인생이 바뀌었다 는 고백 만한 매머드급 칭찬이 있을까. 예의상으로

었지만 이 정도까지 인줄은 몰랐다. 한 두 명 만나 된 분위기가 생각났다(아무리 큰 갤러리라도 상황 은 마찬가지이다).

나마 감동받은 연기라도 할 법 한데, 안성기는 눈

다른 곳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는 유독 특정 작가

답했다고 한다.

라이언 맥긴리가 젊은 층에 인기 많은 사진가라 그

도 안마주치며(……) 응~그런 애들 많아~라고 대 생뚱맞은 얘기를 서두에 꺼내는 이유는 라이언 맥

긴리 전시에 바글거리는 젊은 세대를 보면서 이 얘 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전시를 평일 오전에 보러 갔는데도 어림잡아도 백

명가량의 2-30대(라고는 하지만 30대같아 보이는

에 대한 편식이 강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런지 주머니 사정 가볍고 취향이 다양한 세대에 맞

춰 도록에 국한되지 않은 다이어리, 포스터, 책갈 피, 연필세트 등 다양하고 저렴한 마케팅을 편성 했다. 교보문고 핫트랙스 팬시점에서 물건 고르

듯 가벼운 마음으로 도록을 뒤적이는 젊은 아해들 이 많았다.

사람은 거의 없었다)의 젊은 아해들이 전시장에 몰

3. 대림미술관은 사진과 디자인에 대한 알맹이 있

는 픽셀 하나까지도 스캔 하겠다는 그런 태도였다.

싶다.

려 있었다. 설렁설렁 그림 앞을 지나치는 사람보다

는 전시를 가장 활발히 하는 미술관으로 손꼽고


특별히 칼라거펠트, 유겐 텔러, 그리고 라이언 맥

그렇게 찾고 찾다가 라이언 맥긴리를 알게 되었거

장까지 폭넓은 영역에 걸쳐 발을 담그고 있는 (패

만났거나 둘 중 하나다.

긴리 등 상업사진과 순수미술사진, 그리고 미술시 션)사진가들을 적극적으로 다룬다.

전시 이외에 재즈공연과 관련 영상상영, 그리고 강 연 등의 부대행사도 정성을 다하는 걸 보면 단순

미술전시의 영역을 넘으려는 움직임이 보기 좋다. 4. 사족으로 갈만한 다른 디자인미술관을 꼽으라 면 단연코 현대카드 디자인 도서관이다.

나, 아니면 잡지 GQ의 해외 아티스트 소개란 에서 6. 당시 낸 골딘을 위시한 포토”저널”리즘에 관심 이 많았다. 포토 “저널”리즘은 비슷한 느낌을 받은

사진가를 통칭하여 나 혼자 쓰던 말인데, 공공을

염두하여 보도와 기록을 목적으로 사진을 찍는 포 토저널리즘이 아닌 사생활에 대한 은밀한 기록을

사진으로 일삼는 사진가 무리를 굳이 구분하기 위 해 포토 “저널”리즘이라는 말을 붙인 것이다.

여기는 정말 괜찮은 곳이다. 이름에서도 나와있듯

해당 아티스트는 다이안 아버스, 래리클락, 윌리

료실 기반의 미술관이다. 설령 지금은 미술관 기

스, Less(한국 작가로 본명은 김태균이란다), 하

이 이 곳은 미술관이기 보다 도서관에 가까운, 자 능이 아니더라도 전시가 점차 많아질 것으로 기 대된다.

엄 이글레스턴, 스티븐 쇼어, 낸골딘, 볼프강 틸먼 시시 박 등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감흥 을 전해준다.

큰 대학교 도서관만은 못하겠다만, 일반인이 갈 수 있는 가장 큰 규모의 디자인/사진/미술 도서관

이다. 현대카드가 디자인이 남다른 데는 역시 이 유가 있었다.

회사차원에서 디자인 도서관을 별도로 세웠다는

것은 그만큼 디자인에 대한 경영진의 진지함을 보 여주는 반증이 아닐까? 데이트코스로 끝장나게 좋 은 곳이라 추천해주고 싶다.

미술에 대해 잘 몰라도 그림책이 많으니 슬슬 둘러

보다가 삼청동 커피한잔......전형적인 데이트 코

윌리엄 이글 스톤

스지만 나름 취향이 있는 남자로 여자들에게 어필 할 수 있는 곳이다.

5. 라이언 맥긴리를 언제 봤는지는 기억은 가물

하다. 군대 동료 중에 카메라 애호가와 놀면서 그

의 콘탁스 T2를 가지고 놀면서 필름 똑딱이의 맛 을 알게 되었다. 가격대가 비싼 콘탁스 T2(알고 보

니 유겐 텔러의 주기종이라고 한다) 시리즈를 멀 리하고 대안으로 찾은 것은 야시카 T4였다. 그런 데 아 해외 사진가들이 이 사진기를 많이 쓴다는 게 아니던가?

낸 골딘


래리 클락

볼프강 틸먼스 이네들 사진이 주는 여운을 곱씹어 생각해보면, 그

것은 또래에 섞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그

네들 만의 놀이 속에 들어가거나 그 행위를 몰래 지켜보면서 느끼는 은근한 카타르시스였다.

이 사진들은 중학교 때 길거리에 둥그렇게 모여 서있던 일진들은 항상 모여서 어디로 갈까며 머릿

속을 빠르게 긇고 가는 얇은 물음에 대한 답변과 도 같았다. 다이안 아버스

사진가마다 다른 영역(또는 공동체)에 속해있지만 이들이 기록하는 대상들은 세밀하게 차별화된다.

한결같이 우리 같은 범인들이 접근하기에는 어려

운, 성적소수자(낸골딘, 볼프강 틸먼스), 마약 중

독자(레리 클락), 파티장의 뒷골목(다이안 아버

스), 명동거리에서 차마 앞으로는 보지 못하고 한 발자국 스치고 난 후에 스윽 뒤돌아 보게 되는 독

특한 부류들의 방(레스, 하시시박), 왠지 한번 10 초이상 쳐다보고 싶은 앞집의 평범한 직장에 다니 고 있는 듯한 이웃(그러나 실상은 창문 열 때 스 리슬쩍 보고 눈을 깔아야 한다. 안 그러면 변태소 레스

리 들을지도.. 윌리엄 이글레스 톤과 스티븐 쇼어)


이미지는 다르지만 하나같이 쟤는 뭐 하는 애들일 까 라는 물음을 줄법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특이하기 때문에 알고

싶다기 보다는 평범한 이웃들 속에서 무언가 어긋 나고 비틀어진 것을 찾아보고 싶은 우리네 관음증 적 욕구를 드러내주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카메라가 내장된 스마트폰과 B급 문화 웹사

이트와 개인 미디어의 창궐로 포토”저널”이 주는 그런 훔쳐보기의 쾌감은 더 이상 예전만큼은 없 을 것이다.

회화나 조각 같은 영역보다 기술과 사회 흐름에 민

감한 사진의 특성이라 그런지 라이언 맥긴리나 언 급한 작가들의 결과물을 보면 자신의 이미지를 만 들어냈던 초창기 때의 폭로전 스타일의 작업에서 벗어나기 위한 다른 시도들이 감지되고 있다.

7. 이들 최근 작업을 한번 찾아보니 볼프강 틸먼 스, 낸골딘, 라이언 맥긴리는 작업의 방향이 ‘몸’으 로 가고 있는 공통점을 보여서 흥미로웠다.

그리고 상업사진 영역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 다는 점 역시 이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상업사진은 고유의 스타일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뭐랄까 많이 타협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전시작 의 강렬함에는 미치지 못하는 점 역시 비슷했다.

8. 그런 면에서 라이언 맥긴리의 씨오리 Theory 광 고 화보는 포토”저널”리즘 계열 작가들의 상업 사

그냥 라이언 맥긴리가 찍었다더라 해서 본 것일 뿐.

진 중에 단연 가장 인상이 깊다. 자신을 알린 사진

나이가 들면서 작업이 깊어지고 새로워지는 작가

묘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확신이 들었다. 누가 타협

서 서서히 연착륙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이 주는 아우라와 브랜드가 나가려는 지향점이 절 하는 것도 아닌 서로가 이긴 듯한, 그래서 보고 있

는 나 역시도 흐뭇한 웃음이 지어지는 사진들이다. 9. 다시 라이언 맥긴리로 돌아가면, 시각적인 진 화를 모색하려는 몸부림은 알겠지만 초창기 그의 나체 떼거리들과 벌였던 crazy한 사진들이 보여줬 던 기억들이 너무 강렬해서 그런지 공감이 쉽게 가 지는 않았다.

는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어떻게 하면 정점에 들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고 이전 히

트작을 되새김질하면서 조금씩 새로운 작업을 선 보이는 그런 얇은 걸음들이 쌓이면 나중에 또 다른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라이언 맥긴리를 비롯한 모든 포토”저널”리즘 작 가들에게 바라는 바다.


한국 청년 영화 운동, 영상시대: 저항의 예술화

영화로 보는 시공간 _ 글. 곡주대비 (hjkanjy@gmail.com)

사실 이번호 기사로 다른 주제를 썼다가 하드웨어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바람에 황금 같은 토요일을 반납하고 이 미 국 시골구석 스타벅스에서 언제 채워질지 막막한 이 흰 종이를 조우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지금도 적시에 나를 배신 한 컴퓨터가 원망스럽긴 하지만 주제를 바꾸게 된 것에 대해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원래는 ‘배우는 배우 다’와 ‘톱스타’를 비교하는 조악한 글을 썼더랬다.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이번호에서는 영화읽기가 아닌 한국 영화사에서 일어났던 film movement; 즉 영화 운동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한다. 사실 영화 역사가들이 흔히 언급하는 우리나라에서 주목 받았던 영화 운동은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식민시대에 일 제를 대항하기 위해 봉기했던 카프 영화 운동 그리고 지금 이 지면에서 다룰 70년대 유신정치 시절 이루어진 ‘영상시 대’ 가 그것이다. 영상시대 (1975) 는 5명의 최고의 흥행 감독들 (이장호, 김호선, 홍파, 하길종, 이원세) 과 1명의 영화 평론가 (변인식) 로 이루어진 영화 운동 집단으로 당시 유신 영화법으로 고통받고 있던 한국 영화시장을 한국영화의 “예술성”을 회복 시켜 지켜내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영화를 자신의 정권 수호의 기제로 이용했는데 1973년 유신 헌법과 함께 유신 영화법 이라는 것을 제 정하여 영화들을 이중 검열하고 국책영화를 의무적으로 생산하게 하는 등 텔레비전의 증가로 하락하고 있던 한국영 화시장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이러한 정치적, 산업적인 상황들로 70년대 들어 한국 영화는 급격한 쇠퇴에 이르고 소 위 말하는 “한국영화의 암흑기” 에 이르게 된다. 이 “한국영화의 암흑기” 라는 표현은 많은 한국 영화학자들에 의해 회자 되었는데 이러한 낙인으로 인해 70년대 한국 영화사나 영화들의 연구가 더 더욱 이루어 지지 않아 사실상 나올수 있었던 연구 가능성을 저지한 셈이나 마찬가지다. 필자가 뜬금 없이 영상시대 에 대한 글을 써보고자 마음을 먹은 것도 동주제의 선행 연구의 부재의 이유가 적지 않다 (디스크 날아간 것 이외에). 다시 말하자면, 1970년대는 제작 편수나 시장 규모 면에서 한국영화의 불황기 임이 맞으 나 ‘질 낮은 영화들’ 이 판을 쳤던 ‘암흑기’ 라고 보는 것은 70년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던 80년대 한국영화의 결정적 인 양분이 되는 청년 영화들, 그리고 이들의 영화사 적인 활동들을 고려하지 않은 매우 단선 전인 주장이 아닐 수 없다.


1974년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을 필두로 1975년 김호선의 영자의 전성시대,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 1976년 김 호선의 여자들만 사는 거리 와 1977년 겨울여자 등의 연이은 흥행은 1970년대에 60년대 신상옥, 이만희 세대의 소위 말하는 ‘거장’ 감독들로부터 완전한 세대교체가 일어난 것을 의미한다. 이들 흥행 감독들은 자신들의 작품들에만 몰두 하는 것에서 탈피해 영화 공동체를 만들어 기존의 한국영화의 ‘질 적인 혁명’을 이루고자 했다. 3년여 간의 길지 않은 그들의 행보는 필자가 평가하기에 매우 의미 있는 영화사적인 변혁을 이루었다고 본다. 사실상 영화운동 자체가 전체 적인 한국영화에 영향을 끼쳤다고는 말하기 힘들지만 이 들이 가지고 있던 이상과 미학적인 기준이 영화운동을 통해 전파 되었고 사실상 이 시기의 그들의 영화들에서 그러한 시도들의 그대로 드러나 있다. 특히 이장호 감독은 80년대에 넘어서도 많은 흥행작들을 남기고 그의 영화들이 많은 영화 후배 감독들에 의해 회자되고 참고 되었다. “비키니 섬의 거북이’처럼 영화의 본질에서 벗어나 방향상실로 허덕여온 한국영화… 우리는 아직껏 이 땅에 영화는 있었어도 영화예술은 부재했음을 알고 있다… ‘새 세대가 만든 새 영화’, 이것은 구각을 깨는 신선한 바람, 즉 회칠한 무덤 같은 권위주의를 향한 예리한 투창이어야 한다. 과연 이 땅에서 단 한 번의 ‘누벨바그’나 ‘뉴 시네마’ 운동이 전 개된 적이 있었던가?” 일단 영상시대의 선언문을 보면 그들이 외국의 영화운동들, 예를 들어 프렌치 뉴웨이브나 뉴 아메리칸 시네마 같은 동 시대의 새로운 시도들에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 들은 이러한 새로운 시도들로 예술적인 가치가 있는 한국 영화를 만들기를 원했다. 흥미로운 것은 예술적인 영화를 만들되, 그것은 “권위주의”를 타파 할수 있는 “예리한” 영화 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박정권 아래 사회이슈나 정치적인 것은 그 어떤 것도 다뤄서는 안되었던 검열을 대항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공감하는 현실을 관통하는 영화를 만들자는 의지로 해석이 된다.

바보들의 행진


영상시대의 동인들이 만들었던 흔히들 폄하 하는 ‘호스티스 영화’ 도 이러한 투창 같은 작품들로 해석할 수 있을것이 다. 자칫 삼류영화로 오해할 수 있는 창녀들을 주제로 한 호스티스 영화로 이장호, 김호선, 하길종, 홍파 등은 노동자 계층의 여성이 산업화 시대에 감내해야 했던 성/노동 착취를 그려냈다. 당시 박정희 정권 영화 검열이 하층 계급의 영 화 속에서의 재현에 매우 예민 했기 때문에, 호스티스 영화 같은 성인물의 “가면” 이 없다면 검열을 피하지 못했을 것 이다. 물론 이 들이 만든 호스티스 영화에서의 여주인공이 모두 현실적으로 그려졌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이러한 일 련의 영화들이 아니었다면 하층민 중에서도 가장 아래 계급인, 시골 출신 창녀들이 영화 속에서 주인공으로, 혹은 동 시대 아픔을 재현하는 하나의 에이전트로 메이저 스크린에 등장해 사람들의 시선을 공유하는 것이 가능이나 했을까. 필자가 기억하기에 (참으로 감회가 새롭다) 이리에 제일 처음 기고 한 글이 호스티스 장르와 70년대 정권에 관한 글 이었던 듯 하다. 언급이 되었던 주제 임에도 불구 하고 지속적으로 호스티스 장르가 (이번호의 다른 주제임에도 불구 하고) 회자 되는 이유는 이 영화들이 몇몇 한국 영화학자들이 폄하했듯 “정치적인 암흑기의 사생아” 가 아닌 장르가 가진 ‘혁명’ 에 가까운 시도들로 – 신인 배우의 주인공 등용, 창녀들의 주제화, 영화 음악의 전문화, 실험적인 미장센 등 – 한국 고전영화에서 현대영화로의 결정적인 이행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매 호 마다 갖는 바램이지만, 일단 좀 더 많은 독자들이 이리를 읽었으면 하고, 둘째로 그 독자들이 작은 변화를 만들 어 주었으면 한다. 아직도 네이버 사전이나 많은 학술지에서 70년대 한국영화사는 통째로 ‘암흑기’ 였던 것처럼 연구 가치 자체를 부인하는 주장들이 실리고, 그에 따른 하나의 결과로 호스티스 장르는 실증적인 연구조차 이뤄지지 못한 채(1) ‘창녀물’ 로서 묻혀지고 있다. 내 주변의 지인들, 제자들, 그리고 이 지면으로 만나는 독자들이 왜곡된 인식을 바 꾸는 것은 필자에게, 그리고 70년대 영화운동에 참여했던 영상시대 동인들과 동인들 외에 주목할 만한 수 많은 작품 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영화사의 중추적인 서사에 받아 마땅한 헌정과 역사적인 비석을 부여하는 일이 될 것이다.

(1) 물론 호스티스 장르 연구가 전혀 이루어 졌다는 것은 아니다. 유선형, 박선아, 유지나 등이 소논문 등에서 장르와 산 업, 혹은 정책 연구를 한 바 있다. 하지만, 장르 자체를 심도있게 북렝쓰 길이로 다루었던 연구는 전무 하다.


여기, 문학이 필요한 시간

시조 3수

30대 만세! 벌써 12월호입니다. 늘 시작 글귀로 ‘저번시간~~’을 하지 않고 올 한해를 마무리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어느덧 8개월차에 접어든 원고기고를 자축? 하고자 이렇게 평소와 다른 서두, 그리고 공손한 말투로 문을 열었습니다. 이번호 소개할 문학작품은 늙음에 대해 담담하게 노래한 시조 3편을 골라 보았습니다. 맙소사, 전 2014년이 오면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게 되는 군요. 3월, 10월, 뭐 아무렇지 않았는데 확실히 연말이 되니 싱숭생숭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 30대를 맞이하며 문득 이십대가 그리워지네요. 자 이제 멜랑꼴랑한 타령은 멈추고, 함께 읽어 볼까요? 이 세작품의 공통된 주제는 ‘탄로’입니다.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춘산에 눈 녹이는 바람 건듯 불고 간 데 없다.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은 막대로 치려터니,

져근 듯 비러다가 마리 우희 불리고쟈.

백발이 제 몬져 알고 즈럼길로 오더라

귀 밑에 해 묵은 서리를 노겨 볼까 하노라 -우탁-

-우탁-

마음아 너는 어이 매양에 젊었는다. 내 늙을 적이면 넨들 아니 늙을소냐 아마도 너 좃녀다니다가 남 우일가 하노라 -서경덕-


늙음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도 인간이 막을 수 없는 시간의 섭리이기에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네요. 먼저 처음에 제시한 우탁의 두 작품을 이야기해 볼까요. 우탁은 고려 말 시인이자 의학자이며 성리학 도입의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또한 고려 말 불륜과 사치에 빠져 있던 충선왕을 깨우치기 위하여 도끼를 들고 (크헉;;;) 왕에게 훈계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가 말년에 늙음에 관한 시조를 두 작품이나 창작 했는데요, 우리나라 최초의 탄로가 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현대어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 손에는 막대를 쥐고 또 한 손에는 갓을 쥐고 세월을 갓으로 막고 노는 백발은 막대로 치려고 했지만 백발은 자기가 막힐 것을 알고 먼저 지름길로 오는구나.

봄산의 바람은 눈을 녹이고 사라 졌구나 잠깐 동안 빌려다가 머리 위에 불게하고 싶구나 귀 밑에 하얀 새치를 녹여 볼까 하노라

처음의 시에서 우탁은 세월과 늙음의 추상적인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묘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늙음을 백발로 세월은 늙는 길로 표현하고 있어요. 그것을 막기 위해 막대기로 막아 봤지만 이 세월이란 것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기에 지름길로 와 버렸다라고 우회적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나이 들어가는 것도 이렇게 유머조금, 여유조금 그 안에 낭만까지 더하여 표현하니 우리나라 선비들의 평소 삶의 자세가 느껴집니다. 갑자기 탐크루즈가 사무라이 정신에 반해서 영화 ‘라스트사무라이’가 떠올랐습니다. 그에게 우리나라의 낭만과 근원적 고독이 숨 쉬는 고전 작품들을 들려주고 싶네요. 아마 우왕 굿! 반할 듯합니다.

두 번째 시에서는 눈을 녹이는 따뜻한 봄바람을 보며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자라난 귀밑의 새치를 보며 저 따뜻한 봄바람이면 하얀 새치를 녹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발상에서 출발 한 듯 보입니다. 저 또한 거울을 보며 수분크림을 바르고 있는데 문득 턱 밑까지 내려온 다크서클과 팔자주름을 보며 울컥하는데요.

그 봄바람 저도 한 번 빌려보고 싶네요.

마지막 작품을 현대어로 해석해 보면 이렇습니다.


마음아 너는 어찌 늘 젊느냐 내 육체가 늙으면 마음 너도 늙을 것 같구나 아마도 늘 젊은 마음을 쫓아다니다가 남들이 비웃을까봐 두렵구나

황진이와 스캔들을 뿌렸던 서경덕의 늙음을 한탄하는 시조입니다. 자신을 두 개의 자아(감성적 자아, 현실적 자아)로 나누어 대화체 형식으로 표현한 발상이 매우 독특한 작품입니다. 시인은 또 다른 자아 즉, 마음에게 말을 걸고 있습니다. ‘남들의 웃음거리가 될까 두렵다’라는 그의 고백은 늘 젊고 감성적인 자아를 따라가다가는 현 실속에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까 염려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낭만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화자의 처지가 나이에 맞게 행동하라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괜찮은 척, 아닌 척하는 지금의 우리와 닮아 있어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마음으로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런데 현실적 제약에 막혀서 쩔쩔 거리는 모습이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네요. 사실 현실적 제약은 사람들의 시선이 제일 크겠죠.

어머니께서는 얼마 전 제 비비드 핑크 립스틱을 보시고 한 번 발라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바르시라고, 발라 드려요? 하며 립 붓을 꺼내어 들고 왔는데 극구 손사래를 치시며, 아이쿠 사람들이 주책이라고 욕한다. 하셨어요. 나이를 먹나 안 먹나 우린 다 핑크색 좋아하는 여성들인데.. 출근하여 종합 시험지를 만들고 있는데 그날따라 딱딱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문제는 저의 욕심이 담긴 시험지를 만들어 보았네요. 학생들도 서른을 목전에 둔 선생님의 유머로 이해하고 즐겁게 풀어 주겠죠.

편집자 주. 아 ... 정답은 니콜?


11월은 중,고등학생들의 시험기간 이었습니다. 학원 강사에겐 가장 진절머리가 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말고사가 끝나면 다음해 4월까지는 여유롭죠.시험기간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 평소에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를 마셨습니다. 일 년에 4번의 시험만 치르면 한 해가 가는, 저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학원 선생님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일 년이 후딱 가니까 좋은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남는 게 없더라는 참 마음이 울렁울렁한 이야기였습니다. 특히나 올해는 전 학원도 옮겨서 더 정신이 없었죠.

정말 아무 것도 없었나? 싶은데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보니 아니네요.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월간이리 원고를 시작하고, 고백해서 차이기도 하고, 그 와중에 고2 학생에게 고백도 받아보고(꺅!), 제 이름으로 교재도 만들었고, 종합건강검진도 받고. 참, 깨알같이 보냈네요.

조금 식상한 결론입니다만 나이를 먹어 가는 게 씁쓸하지만 또 그만큼의 추억과 경험이 쌓이니 즐겁게 웃으며 30대를 맞이하려 합니다.

누난 너무 예쁘다며 우리 블링블링 빛돌이들이 응원해주고 있네요.

30대 만세!!

조금 이르지만 내년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목표를 세우는 일은 언제나 즐겁네요, 물론 해 낼지는 모르겠지만 또 이게 있어야 재미지니까요. 어떤 목표들을 생각하고 계신가요?

전 이제 출근준비를 하고 출근하겠습니다. 오랜만에 비비드 핑크 립스틱을 발라 보겠습니다. 유후.

다음 시간에는 고전소설의 시작, 소설사의 시작, 금오신화를 살펴보겠습니다. 지각하면 보강입니다요~~~~

글, 고수진(gomin19@hanmail.net)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 평범하지 않지만 평범한 소수자들의 이야기 인권운동사랑방 엮음 | 오월의봄 | 2013년

녹취록을 읽고 또 읽으며 글쓰기를 시도할 때에서야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을 보고 듣는다 는 게, 숨기려는 속살을 파헤치거나 짐작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시 간을 돌아볼 때 연결되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 다시 돌아볼 때면, 전에는 연결되지 않았던 장면들이 연결되거나 연결되었던 장면들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 연결을 보는 것, 비어 있는 자리를 비어 있는 그대로 보고 침묵을 침묵인 채로 듣는 것, 그걸 통해서 지금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에서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이, 너를 만나기 위한 나의 자세여야 한다.(14쪽, ‘책을 내며’) 말하는 사람이 있다. 듣는 사람이 있다. 쓰는 사람이 있다. 그것을 읽는 사람이 있다. 이 책의 이야기들 뒤에는 이렇게 네 사람이 있다. 여러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으로 보이지만, 이 책의 특징은 바로 이들의 ‘사이’에 주목한다는 점에 있다. 말하는 사람은 대개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어떤 정체성 때문에 차별받는 사람들이다. 비혼모와 장애인, 여러 성 소수자들―게이·레즈비언·성 전환자, 이주 여성과 이주 노동자, HIV/AIDS 감염인, 그리고 바로 우리 일하는 사람들.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 그러니까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의 일부 혹은 되고자 하는 자 기의 어떤 모습 때문에 제도적으로, 인격적으로, 물리적으로 불편을 겪고 괴롭힘을 당한다. 2007년 노무현 정부 아래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정부는 ‘출신 국가, 언어,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범죄 및 보호 처분 경력, 성적 지향, 학력, 병력’ 등의 사유로 차별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 는 내용의 입법 예고안을 발표했다. 주류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몇몇 차별 금지 사유에 대한 극심한 반대 가 있었고 그 결과 정부는 위의 일곱 가지 사유를 삭제한 채 법안을 내 놓았다. 차별금지법의 함의와 사 회적 영향력, 누구나 차별을 반대하는 것 같은 사회적 분위기에 비해 사회적 논란의 규모는 초라했다. “ 무언가를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는 것은 그것의 부재를 선언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한 인 권 운동 단체 ‘인권운동사랑방’은 2011년 ‘변두리스토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래서 이들은 차별받는 혹은 차별받은 적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다. 여러 시민 단체의 활 동가뿐만 아니라 자원 활동가들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책의 꼭지마다 인터뷰어, 녹취자, 그것을 읽고 글로 쓴 저자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다. 대부분의 글에서 각각의 역할을 맡은 사람이 다르고 글을 쓴 사 람이 인터뷰이의 얼굴을 모르는 경우도 많은 듯했다. 바로 이 점이 독특했다. ‘쓰는 사람’이 우리 ‘읽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말하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다는 것. ‘쓰는 사람’은 낯모르는 사람들의 삶과 사연을 전해 듣고 우리에게 전한다. 그들은 사이에 선 사람, 외 면당하는 소수자들의 삶을 우리 무탈한 ‘읽는 사람’에게 전해야 하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사건을 둘러 싼 풍경을 삭제하고 간결한 보고서 형식으로 쓰려고 했다. 하지만 “사실을 재현하기보다는 우리의 설 렘이나 먹먹함을 표현하자는, 그러나 이야기들에서 문자가 되어 가라앉지 않는 생생함을 재현해보자는 욕심” 때문에 형식을 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쓰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전해 들은 삶을 1 인칭 화자의 일기나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글로, 3인칭 화자의 시선 아래 놓인 이야기로 풀어 놓는다.


책을 읽는 내내 ‘말하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사이에 대해서 생각했다.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듣는 사 람과 쓰는 사람을 거쳐 지금 우리에게 닿는다. 듣는 사람과 쓰는 사람은 타인의 삶을 전해야 하는 무거 운 짐을 지고 있다. 하지만 읽는 일이란 얼마든지 손쉬울 수 있다. 들은 이와 쓰는 이가 우리에게 글 속 의 긴장과 침묵을 살펴 달라고, 말한 이의 삶에 다가가 달라고 조곤조곤 요구해도 우리는 그 이상도 이 하도 아닌 채로 그냥 읽을 수 있다. 삶의 구체적인 사연을 담은 글들이 그렇듯이 대개 흥미롭지만, 그중 어떤 글은 인상적이었고 어떤 글은 밋밋했다. 또한 각각의 사연 뒤에 덧붙은 “반차별운동을 함께 모색하고 실천해온 활동가들”의 글들은 대개 지루했다. 말하는 사람과 읽는 사람 사이의 연결 고리를 보태려 했다고 서문에서 그 기획 의도를 설 명하고 있지만, 대부분 활동가들이 쓸 법한 전형적인 글로 보였고 감성적인 수사가 난무한 채 섣불리 단 정 짓는 글도 있었다. 대상에 정확히 가닿지 못하는 모호한 단어들이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세 번의 키스’에 덧붙은 글 ‘찰나의 풍경’은 인상적이었다. ‘찰나의 풍경’을 쓴 사람은 ‘성적소수자문화환경을위한 모임 연분홍치마’ 활동가 김일란 씨다. 그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꺼내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순간을 재현하고 싶다”는 바람, 즉 “매우 치명적이면서 정서적인 차별을 받는 상황에서 한 개인이 느끼는 감정적 사건”을 재현함으로써 “성적 소수자들이 ‘차별’을 받으 면서 느끼는 ‘감정’을 (카메라로) 포착하고, 그 감정의 의미를 (이미지로서) 소통 가능한 것으로” 만들겠 다는 바람은 고스란히 글과 작가 사이의 이야기에 대입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 앞에 놓인 글을 매 우 깊이, 잘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낯모르는 한 사람의 삶에서 섣불리 사회적 맥락을 꺼내기보다 눈앞 에 놓인 글만이 전부라는 생각으로 읽어 쓴 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쓴 글이란 무엇일까? 어떤 글이 독자로 하여금 글자 너머로 몸을 기울이게 만들까? 엮은이들의 바람 대로 “침묵의 지점”마저 드러내는 글일까? 만약 우리 읽는 사람이 침묵의 지점 같은 것은 발견하지 못했 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오직 글뿐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신호와 표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추천의 글과 서문의 당부가 한편으로 부담스럽기도 했다. 글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우리가 읽으 며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글 너머에 나아갈 의무 같은 것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 다. 우리 앞의 글이 무엇을 말하든 우리는 제각기의 장소에서 책 혹은 글을 읽는다. 보고 읽는 일은 사실 얼마든지 손쉬울 수 있다. 결국 잘 써야 하는 문제 아닐까. 결국 이 책에서 나름의 교훈을 하나 얻었다. 잘 쓰려면 잘 읽어야 한다는 것, 손에 익은 단어를 붙잡히는 대로 꺼내 놓을 것이 아니라 한 번, 또 한 번 멈추며 써야 한다는 것.

<끝>


‘금연시대’라는 짜증나는 현실 앞에서

정치는 우리의 삶과 먼 것 같지만, 당장 2014년 1월 1일부터 국민 건강 진흥법에 따라 이리카페는 비 흡연구역으로 바뀝니다. 담배를 태우며 월간이리 12월호를 읽는 분들은 일단 여기서 한 번 한숨을 쉬셔도 됩니다. (참고로 글을 쓰는 이는 비흡연자입니다.) 제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고 꼬시다. 드디어 이리카페에도 새 시대가 도래 했구나. 기나긴 투쟁 끝에 쟁취한 나의 건강.” 뭐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행복한 얼굴로 담배를 피우던 여러분들을 바라보던 동료_간접_흡연자의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법의 시행에 따라 비흡연자 이면서 제가 누릴 행복이라면 뭐 별거 있겠습니까. 실내 공기가 좀 상쾌해지는 정도죠. 카페에 다녀왔다고 옷이나 목도리 가방 등에 담배 냄새가 배는 일도 줄어들 겁니다. 뭐 언젠가 걸릴지 모른다는 폐암의 위험도 조금은 줄어들 겁니다. 폐가 안전하다고 해도 뭐 위도 있고 피부도 있고 구강도 있고 암 친구들은 다른 곳에서도 활발하겠지만 말입니다. 흡연자이면서 다른 사람의 담배 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제가 보기에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흡연자 분들도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의 담배연기로부터 자유로워지실 겁니다. 마찬가지로 옷에 냄새도 덜 배고 건강도 조금은 지킬 수 있겠죠. 자 그럼 이 작은 카페에서 잠깐 벗어나 한 가지 생각을 해 보죠. 잠깐 담배를 사러 가봅시다. 다가오는 대금연시대의 초조함을 달래기 위해 담배를 사러 가봅시다. 담배를 살 곳을 찾기란 아주 간단합니다. 어디서나 가장 쉬운 방법은 가까운 편의점이나 수퍼마켓과 같은 식료품 가게에 가면 됩니다. 없는 곳도 간혹 있지만 어지간한 시골의 구멍가게에도 담배는 있습니다. 기호식품이라고 명명되기 때문에 정말 어지간한 곳은 다 있습니다. 이 해롭다고 법까지 개정해서 불편하고 귀찮게 만드는 물건이 이렇게 사기 쉽습니다. 담배를 사 서 피우기 전에 겉을 살펴보면 주의문도 적혀 있습니다. 주의하라고는 하는데 꽤 따뜻한 말투입니다. “이거 피면 위험한데 피울래~? 응? 그럴 거야?” 왠지 모르게 목도리 두른 교회오빠가 읽어주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의 문구입니다. 아마 글을 쓰는 분들이라면 이 문장이거부감이 없도록 얼마나 세밀하게 조정되었는지 실감 하실겁니다. 아니 글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만큼의 묘한 문장입니다. 거부감도 없으면서 적당히 경계심을 주는 것 같지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 그런 문장. 이거 꽤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아무 경계심 없이 비닐을 뜯어야죠. 그럼 담배를 뜯어서 피워야겠죠? 어디서? 이제 이리카페는 안된다니 전신주 밑이나 뭐 마치 동물원과 흡사하면서 공기도 잘 안 통하는 흡연구역에서요. 흡연구역은 왜 필요한 걸까요? 담배를 부주의하게 피우다가 불이나면 끌 수 있게 소화기가 가까운 그런 곳? 아닙니다. 그냥 아주 단순하게 비흡연자로부터 격리시키는 공간. 피해를 덜 준다는 미명하에 몰아넣는 우리 같은 곳입니다. 일단은 급하니까 그렇게라도 담배를 피우면서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한번 봅시다. 담배를 피우면서 지나가는 사람을 한번 보고 그 사람들을 보고 있는 우리를 한번 봅시다. 아니 세상에 이게 금 그어 놓고 막아야 할 정도로 해로운 짓입니까? 그렇게 해로운 짓을 하고 있는 거라면 유통되고 있는 이 담배를 막아야지 왜 사람들 사이를 가릅니까? 제가 의아한 부분이 여기입니다. 정말 나라가 국력의 쇠퇴와 쇠약을 우려해서 국민을 걱정하는 이유라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기보다. 담배 그 자체를 좋게 바꾸어 나가는 게 우선이 아닌가 합니다.


우유가 상하면 우유를 걷어가고 물에 정체불명의 색소를 넣어서 해롭지만 예쁘게 팔려고 하면 넣지 말라고 하고 팔지 말라고 하면서 왜 담배만 맛을 위해 아무리 봐도 수상한 것을 넣는 것을 용인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능한 잘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해 나갈 생각은 안하고 그건 회사에서 몰래몰래 하는 것이니 나는 모르겠다며 손 놓는 국가는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요? 담배를 조금이라도 좋게 개선하는 것이 정말로 불가능 하다면 담배를 없애야지 담배는 이상하게 만들어 팔게 두면서 같은 식품인 물과 우유는 단속한다는 것이 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이렇게 된이상 담배를 살리기 위해 물이고 우유고 같이 막나가자고 하면 안되겠죠? 이 애매한 식품의 위치에 있는 담배가 일정부분 중독성(의존성)을 갖고 있는 것조차 알고 있으면서 담배 그 자체의 개선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신경쓰지도 않고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냥 피우는 놈이 나쁜 놈이고, 피우는 사람이 죄인이고, 안 피우는 내가 피해를 주지 않는 착한 사람. 대충 이런 구도로만 흘러가죠. 이런 걸 중재해야 하는 게 국가이면서 담배를 피우는 국민과 안 피우는 국민의 어색해지는 관계를 수수방관하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불을 붙이는 셈이죠. 이상한 일입니다. 파는 대상도 국민이고 피우는 사람도 국민이고 그 옆을 지나가는 사람도 국민이면 셋 다 좋게 좋게 해결 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야지 파는 놈은 휘장 걸어놓고 떳떳하고, 지나가는 놈은 흘겨보는 통에 피우는 사람만 구석으로 몰아가는 게 이게 제대로 된 방향인지 모르겠습니다. 담배를 기호식품이라고 인정하면서, ‘실컷’ 취향은 존중해 준다면서 가격은 참고 살만치로 쬐금씩 올리고 기껏 나라에서 허가받아 파는 것을 피우는 곳을 줄여가면서 방해하는 것은 조금 아이러니 한 것 아닌가 합니다. 이건 대놓고 중독자를 조롱하는 행위입니다. “중독되었으니 어쩌겠니 니가 참아야지? 응?” 이게 말이나 되는 논리입니까? 물론 타인의 건강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흡연권보다 혐연권이 더 우선한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정말 담배가 위험하다면 담배회사를 단속해서 담배 그 자체를 덜 위험하게 개선해 나가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방향의 접점을 찾아가야지 같이 사는 나라에서 흠연자만 불편하도록 하고 좋지 않은 이미지를 덧씌워 가는 것은 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이렇게 작은 카페 하나를 법으로 죄어 이 안의 행복했던 친구들을 귀찮게 합니다. 정들었던 흡연장이자 카페가 이렇게 한 시대를 마무리 하고 나면 언젠가는 더 작은 술집이나 카페에서도 금연이 되고 담배값은 고만고만하게 오르겠죠. 여전히 담배는 개선되지 않고 담배회사의 이익은 보장되면서 흡연자와 비흡연자로 편을 갈라 흡연자를 구석으로 몰아가겠죠. 아무리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방향성입니다. 이렇게 잡담이니 아우성이니 해도 홍대 흡연시대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이리카페는 국가의 법에 따라 2014 년부터 비 흡연 구역이 되어갑니다. 골드 G 로저도 죽은 마당에 흰수염도 가야죠. 그래도 실내 흡연은 불가하지만 야외 러브 러브 흡연장을 마련할 예정이라 하니 청춘 남녀들은 서로 서로 준비한 라이터를 감추어 교분을 쌓으시기 바랍니다. 그냥 속상해서 써본 글이었습니다. 그럼 이만... K로부터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이달에도 재미있는 것들을 준비했습니다. PDF를 보시면서 누르셔도 되고 스마트 폰으로 찍으셔도 됩니다. 여전히 월간이리 내 원고의 일부분이나 필진 이름, 블로그 주소등을 누르시는 경우 해당 페이지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거한 멤버 소개- 일년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바다로 가고 싶다 - 이주용


(위의 그림은 SNS 친구, Sunyoung 님의 선물입니다. 그녀는 워싱턴주 피어스카운티 퓨알럽이라는 도시에서 개인 화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그에 비해 비루한 자화상.)

친한 동생이 제게 이런말을 했습니다. “지금을 이겨내고 성장할 언니가 기대돼요.” - beamil


Adios 2013. 2012년에서 2013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은 무척추웠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갔고 계절과 풍경이 바뀌었다. 한가지 큰 사실을 배웠는데, 인생에는 크고 작은 파도가 있다는 것과 그 파도는 내가 거스를 수 없다는 것. 그에 앞서 파도는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는 것. 크고 작든 파도는 끊임없이 오고 간다. 2014년으로 넘어가는 지금 나는 내가 갈 수 있는 곳중 가장 먼 북쪽에 와있다.

- Ahopsi


강세기

고등학교 때 친구가 야자시간에 3초만에 완성하여 준 내 모습인데 기가 막히게 닮았었다. 짧고 동그란 머리와 작은 눈, 큰코. 지금은 그렇게 닮지 않은것 같은데 “자화상”하면 생각나는 그림. 추억을 되살리는 그림이다.

기술이던 정보던 물질이던 나누며 사는 삶이 꿈이다. (미술에 대한 좋은 취향과 지식도 그 중에 하나이고 싶다)

직업생활을 하면서 평생 나눌만한 기술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실타래만큼 발견한 것이 가장 큰

수확으로 꼽고 싶다. 갈길은 멀지만 그래도 무작정 걷지 않아도 되는구나에서 오는 안도감?


곡주대비

매월 20일 정도되면 1년만 딱 채우고 미련없이 접어야 겠다는 다짐을 했었는데, 일년 하고도 두달을 넘겼습니다. 조악한 글을 쏟아내면서도 불평은 남들 천배는 더 한것 같아 또 한번 민망하고 죄스럽습니다. 월간 이리는 제게 개인적으로 굉장히 의미있는 순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34년의 길지않은 인생 동안 가장 학구적으로 지적으로 허덕이고 자학하던 시절, (논문이 아닌) 그 나마 피를 보지 않아도 되는 글을 쓸수 있겠다라는 기대를 가지고 시작 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글을 쓴다기 보다 자위하기 위한 마음으로 이리와의 인연을 시작했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횟수를 거듭하면서 한달에 한번이라는 적당한 압박이 얼마나 유쾌한지 그리고 그 유쾌함에보답해야 하겠다는 사명감이 들더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행복이나 기쁨은 나눌수록 는다는 지극히 작위적인 믿음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식과 생각이 공유할수록 커지고 그것이 변화를 가져온다는 믿음은 하루 하루 매 순간마다 경험 합니다. 제가 이리의 다른 필자들의 글을 읽으면서도 그렇듯, 제 기사를 읽는 독자들이 작은 잡식 이나마 하나씩 얹어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소망/목표가 있다면: 주량을 줄이지 않고 근육량을 늘리는것. 요리를 위해 가스렌지를 켜는것을 두려워하지 않는것, 그리고 제발, 제발 (아.. 욕나와) 졸업하는 것.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고수진입니다. 하는 일은 고등학생들 국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전 제 일이 무척 좋습니다. 보람도 있고, 무엇보다 제 눈에는 학생들이 참 예뻐 보여요. (눈이 잘못되어가고 있나 봐요.) 책 좋아하고, 밴드 음악 사랑하고, 가끔 신나게 춤추는 것도 좋아하고, 아! 딱딱한 복숭아, 사랑합니다. 싫어하는 것이 딱히 없는 도시여성이네요. 하하 앞으로도 제 글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외로워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중에 하기 싫은 일을 하지않기 위해’ 라는 이유도 댔지만 시작은 외로움이다. 글을 쓸 때도, 마감 후에도 혼자였기에 글을 쓴다고 해결되진 않았다. 날 뒤흔들 만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만큼 하고싶은 일로 바쁘게 살겠다. 혼자 놀면 의외로 돈이 많이 드는데 돈보다 시간을 쓰려고도 노력하겠다. - 신당동 파르한


첫 출근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습니다. 야근과 주말 출근이 이어지는 피곤한 나날입니다. 그나저나 “라면취향이 어떻게 되세요?”


2013 살아있어 다행이다 - aoikasa


김종소리 + 황은정

김종소리: 올해는 빡세게 살았으니 내년에는 좀 쉴 생각입니다? 황은정: 일기를 열심히 쓰겠습니다


왼손이

월간이리에 예전에 연재했던 <각자의전략>을 모태로 해서, 트위터에 지구생물봇@onEarthbot을 만들어 나름대로 여러 생물에 대해 정리한 내용과 사진들을 사람들과 공유했던 게 올해의 재밌었고 보람찬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혼자하는 덕질이 아니라 즐거웠던 것 같구요.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유익하고 예쁜 그림책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 작업해야되는데, 놀고만 있네요. ( 자아실현★좀 하자 쪠발!!!)


이다솜: 월간 이리에 들어갈 얼굴을 그려달라고 지인에게 부탁하였더니 망설임 없이 뚝딱 그려 보내주었습니다. 제가 저렇게 별처럼 빛나는 얼굴이라니 인생 잘 살아오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올해는 놀랄 만큼 나 자신에 대해 많이 파악한 해였기 때문에 뿌듯하고 놀랍기까지 합니다. 원래 나이 들수록 자신을 잘 알아가는 거라면 더없이 즐겁게 늙어가겠단 생각이 듭니다.

권고마: 좀 더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한 해가 지나고 보니 결국 내가 만든 몇 권의 책이 남았다. 2013년은 아마 여름에 나를 찼던 여자와 가을에 내가 찼던 여자 그리고 그 책들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실은 여기에 새로 생긴 취미도 더해야 한다. 어쩌면 2013년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일지도 모른다. 춤바람이 괜히 바람이 아니었다.


김성연

이것은 사실에 따라 그리고 진실 그대로 정확하게 그려진, 지금 존재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존재할 수 있을 유일한 인간상이다. - 고백록

내가 2013년의 시작을 루소의 고백록으로 시작했던 것은 진실하게 살자는 다짐 같은 것이었다. 한 해의 말미에 나 자신에게 그만큼 진실했었나요? 묻자 돌아오는 답변은 ‘내년으로’였다. 어김없다.


올해가 가기전에 친구들과 함께 3년전 쯤 부터 연락이 끊긴 친구의 집 앞에서 촛불시위를 할 예정이다. 따로 볼땐 그러지 않았는데 여럿이 모이면 항상 놀림의 타겟이 되던 친구에게 사과을 해야겠다 - 김철민

아무 생각없이 시작한 부산오뎅이야기 모든 만물의 이치가 마찬가지듯 처음 쓸때의 설레임은 기억속에선 이미 없어지고 초심으로 돌아갈려고 해도 초심이 뭔지 먹는건지도 모르겠고 이제는 소재의 고갈, 창작의 한계에서 오뎅파는일보다 더 고민스런 일인 부산오뎅이야기 영원히 쓴단말은 하지않겠습니다 쓰는데 까지 써보겠습니다 다음달일지 그다음달일지 내년일지 내후년일지 모르지만...


당초 작가 12명을 꼽음으로써 제 예술관이 12 사도의 복음전파처럼 밝혀져버릴까봐 걱정했던 것은 기우로. 그림을 공개된 곳에 놓으면 높은 곳에서 스카웃 해갈까봐 덜덜 떨었던 것도 기우로. 모든 것이 기우였음을 깨닫는 한해가 갑니다. 얼굴이나 얌전히 그릴껄 글욕심을 부려 송구하며, 여러분의 소중한 월간이리 한 지면을 차지해서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 지인

2012년에는 디아블로가 나오고 2013년에는 리그 오브레전드가 유행하더니 저는 그렇게 시류와 함 께 늙어가고 말았습니다. 아아 ㅠㅠ. 책을 쓰겠다 고 마음먹은지 2년이 지났네요. 잠시 후회는 접어 두고.. 어째 그림이 사진보다 더 성질 나빠 보이는 건 왜일까요. - exxx




Chapter 6 {이직}의 생존매뉴얼 별 볼 일 없는 스펙으로

이직의 때가 되었음은 인식보다 육감에 의해 선행된다 . 같이 밥 먹는 동료들의 얼굴이 오래된 영화의 재방송처럼 느껴질 때, 왠지 내가 앉은 자리의 채광만 다른 사람의 자리보다 안 좋게 느껴질 때, 팀장의 잔소리가 더는 견디기 힘들 때. 이 모든 것은 이직의 징후임이 틀림없다. 이와 같은 징후를 느꼈다면 며칠 가지 않아 이직이라는 단어가 디자이너의 머리 위에 반짝이기 시작한다.

잘 다니던 4년제 대학을 때려치우고 서울로 상경해 발 빠르게 2년제 디자인 과를 졸업.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는 것이다.

막상 졸업하고 나니 받아주는데도 불러주는데도 없다.

될 수 있으면 나 자신에게도 비밀로 하는 편이 좋다.

그때부터 이 악물고 익힌 갖가지 처세술과 생존법을 이용해

말을 하지 않아도 쓸데없이 해죽거리거나 하면

처음 취직한 회사에서 2년여 만에 팀장으로 승진했다.

곤란하니 말이다.

앞으로 수주에 걸쳐 별 볼 일 없는 스펙으로 몸 건강히

만약 당신이 축적해 놓은 재산이 많거나 최악의 리스크를

살아남는 방법을 쓸 예정이다.

고려할 수 있을 만큼의 자신감이 없다면 지금 다니는

거의 모든 텍스트가 주관적 경험에 의거한 것이기에 관점에

회사에서 최대한의 준비를 해서 나가는 것이 최선이다.

따라 비판적 지점들이 상당 부분 형성될 여지가 크다.

하지만 이직이라는 단어가 머리 위에 표상되기 시작하는

국내의 많고 많은 웹디자이너 중 하나의 개별적 사례로

시점부터 여러 형태의 죄책감이 찾아온다.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내 앞에 다가온 모든 죄책감을 과감히 외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직준비는 시작된다. 이직을 마음먹었다면 괜히 다른 에이전시의 웹사이트를 기웃거리는 시간이 많아진다. 팀장이 뒤로 지나가다 ‘왜 이직하게?’라고 우스갯소리로 던지는 말에 심장이 덜컹 내려 앉을 뻔 한다. ‘아닙니다. 팀장님. 잘 만들어진 웹사이트 서치 중이었습니다.’ 라고 변명해 보지만 팀장 너머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절어버린 배추 같은 모양새다. ‘음 그래? 열심이군 자네’ 어깨를 토닥이고 가는 팀장의 뒷모습에서 배신자 유다가 바라봤던 예수의 깡마름이 연상된다.


이직의 가장 중요한 점은 현재 자신의 위치 파악이

포트폴리오가 어느 정도 정돈되었다면 들어가고 싶은

아닐까. 그리스 델포이 신전 입구에 쓰인 ‘너 자신을 알라’

회사를 정한다.

라는 문구가 현재도 많은 사람의 가슴속에서 오래도록

나 정도면 ‘너이뻐’ 정도는 다녀야지!

회자 되고 있다는 것이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이너는 우리나라 굴지의 포털사이트 채용모집

나는 델포이에 신탁을 들으러 가는 가녀린 여인네의 심정으로

페이지에 접속해본다.

오랫동안 방치해둔 포트폴리오 사이트에 들어가 본다.

마침 채용공고가 떠 있다. 운명임을 직감한 디자이너는

회사에 입사하고 디자인한 포트폴리오가 총 3개가 되지

입사조건을 드래그해본다.

않음을 깨닫고 나자 뒤늦게 ‘조금 더 다녀볼까?’ 라는

필수조건은 아니지만, 어학 관련이라는 우대조건을 발견한다.

유약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가만있자 내 토익점수가 어떻더라.

하지만 그러한 마음도 잠시 칼을 빼 들었으면 소시지라도

군대 가기 전에 한 번 쳐본 내 토익점수가 신발 사이즈보다

썰자는 심정으로 포트폴리오를 뻥튀기하기로 마음먹는다.

약간 높았다는 사실이 불현듯 생각났다.

나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마치 여러 가지 프로젝트인양

디자이너는 우대조건이 곧 필수조건의 숨겨놓은 자아라는

이 각도 저 각도에서 캡처해 허겁지겁 사이트에

사실 또한 숱한 면접경험으로 알고 있던 터였다.

업로드 해보지만 얼마 못 가 헛수고임을 깨닫는다. ‘그럴듯한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

‘그래 요즘 포털 쪽도 살아남기 힘들다던데, 인간미 넘치는 에이젼시 쪽으로 알아볼까?’라고 어렵사리

갑자기 팀장에게 달려가 인원이 모자란 프로젝트에

합리화에 성공하며 에이전시 사이트가 모여있는

투입해 달라고 애원해본다.

페이지로 좌표를 이동한다.

팀장은 ‘아니 지금도 세 개나 하고 있으면서 더 하게?’ 라며 기특하다는 듯 웃는다.

‘디자인 삐뽀, 곱하기 나누기, 레프트 브레인...’

‘이 3개를 일 년이 넘게 하고 있다고요’ 라고 속으로 읊조리며 디자인이 너무 좋아 현기증 난다는

디자인 잡지에서 자주 목격한 유명 에이전시 사이트에

표정을 지어본다.

먼저 접속해본다.

그 후 팀장에게 감당치도 못할 프로젝트를 할당받고

인재모집 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현재 공채 기간은

기분이 좋아진 디자이너는 순간 현실을 인식한다.

아니지만 훌륭한 인재 분들을 항시 모집 중입니다.’라는

주말이 그의 인생에서 송두리째 사라져 버린 것이다.

글귀가 쓰여있다.

순간 이직하기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를 뵐 것 같은

디자이너는 자신에게 훌륭한 인재인지 물어 보고

불길한 예감이 양 볼에 스친다.

‘나 정도면 괜찮지 뭐’ 라며 어깨를 다독여본다. 다행히 우대조건에 어학 점수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른 자격들을 살펴보지만 크게 결격사유는 없어 뵌다. 여러 에이전시 사이트의 성지순례를 마치고 남은 내 작은 메모장에는 인상적이었던 몇몇 사이트들의 URL이 쓰여있다. 나는 면접 메일을 쓰기로 한 사이트들에서 약 일곱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1. 사이트에 플래시가 배제되어 있을 것.

중국의 철학자 왕수인이 말한 ‘마음이 곧 이치다.’라는

2. 타이포그래피 위주로 디자인되어 있을 것.

말을 상기시켜보며 내 마음 없이는 아무런 이치도 없다

3. 최근 포트폴리오 업로드 기간이 한 달 안일 것.

라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4. CEO 메세지가 없을 것. 5. 한 페이지 정도는 회사에 소속된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로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텅텅 비어버린 공란만큼이나

모습들로 꾸밀 것.

약해빠진 내 존재의 박약함에 좌절하곤 했었는데

6. MT 다녀온 모습이 스케치 된 페이지가 있을 것.

이제는 억지로 늘려 쓰지 않아도 될 만큼의 경험과

7. 소수의 큰 클라이언트에 회사 전체의 포트폴리오가

수상들에(비록 양적으로만 많아진 것이지만) 괜스레

집중되어 있지 않을것.

마음이 뿌듯해지기도 한다. 디자이너는 자기소개서 작성 전 그리스 시대의 서사시마냥

내가 세운 기준에 들어맞는 에이전시들에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의 일대기를 장황하게

감사의 묵례를 한 뒤 이력서와 자소서를 쓰기로 한다.

서술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디자이너는 양심상 이력서와 자소서는 집에 가서

또한, 자신이 작업한 모든 포트폴리오를 꾸겨 넣으려는

쓰기로 한다.

노력도 자제한다.

모자란 포트폴리오를 채우기 위해 자의적으로 투입된

디자이너 짬밥이 차면서 터득한 것 중 내가 가장 소중히

프로젝트팀과 나누는 어색한 저녁 식사 시간, 뭔가

여기는 생각은 과잉된 요소를 빼는 것이다.

냄새를 맡은 여대리가 의아하다며 내게 물어본다.

이는 디자인에 있어 불필요한 장식들만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김 대리님은 참 특이하시네요. 다들 프로젝트에서

내 삶 전반을 통제하는 커다란 규율로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빠지고 싶어 안달인데 자진해서 들어오다니요. 뭔가

옷을 입을 때도 액세서리가 너무 과하지는 않은가 하고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 아니세요? 호호호

생각하게 되었고 식사를 할 때도 반찬이 너무 많지는

나는 델포이에서 우울한 신탁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않은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사람들과의

아낙네의 얼굴을 하고는 ’그런 거 없음요 호호호’라고

관계에서도 내 역량보다 너무 많은 사람과 관계 맺고

여대리의 말을 되받아친다.

있지는 않은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먼발치에서 팀장이 기특하다는 듯이 쳐다 보고 있다. 평소 내게 약간의 호감을 느끼고 있던 후임들은 역시 김 대리님이야 라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밥을 다 먹고 계산하기 위해 카드를 내미는 팀장의 손에서 은화 30닢에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의 마른 뼈마디가 떠올랐다. 그 날 나는 소화불량을 호소하며 일찍이 집으로 귀가했다. 따뜻한 물에 샤워 후 간단히 커피 한 잔을 마신다. 그리고 맑은 정신으로 컴퓨터 앞에 앉는다. 디자이너는 예전에 작성해 둔 이력서를 열어본다. 현재 재직 중인 회사에 지원했던 파일이다. ‘음 그래, 그땐 열정이 참 대단했었는데’ 과거 자신의 이력서를 훑다 갑자기 감정이 격해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적당한 거리감을 가지는 편이 좋다.


이런 생각들은 여전히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팀장도 회사의 동료들도 모두 아는듯한 눈치였다.

간결함이라는 원형감옥에 사로잡힌 죄수 같다는 생각이

하지만 누구 하나 나에게 눈치를 주는 사람은 없었다.

들 때가 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게 다 미스 반데어 로에 때문이다.

왠지 그러한 당연함에 서글퍼져 속으로 ‘나 지금 면접 보러 가요 여러분’이라고 외쳐보았지만

대충 이력서의 공백을 메꾸고 나니 자정이 넘어버렸다.

돌아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뿐이었다.

디자이너는 오전에 저장해 두었던 가고 싶은 에이전시

이직 시기에 대해 선배들에게 물어보면 흔히들 2년 정도면

리스트를 메일에 차곡차곡 타이핑한다.

적당한 이직 타이밍이라고 조언해주었다.

타이핑을 마치고 난 디자이너는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그정도면 다음 회사로 연봉과 함께 점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첨부한 후 보내기 버튼을 누른다.

선배들에게는 죄송하지만 내 생각에 이직 타이밍이라는

디자이너는 홀가분한 마음에 침대로 뛰어들어 천장을

것은 실체가 없는 환영 같은 것이다.

바라보는데 뭔가 등골이 서늘함을 느꼈다.

글의 서두에서도 썼지만, 이직을 해야겠다는 것은

조용히 일어나 보낸 메일함을 확인해 보니 평소에

마음보다 몸이 먼저 안다.

회사에서 하듯 참조에 오늘 적어놓은 에이전시

몸의 이상기온을 감지했다면 꼭 이직과 같은 극단적 선택이

리스트를 몽땅 써버린 것이다.

아니더라도 회사 생활의 터닝포인트 정도는 스스로 마련하도록 하자.

크게 벌린 내 입에서 허옇고 멀겋게 생긴 것이 빠져나가고 있다.

가끔 나는 디자이너로 10년을 넘게 버틴 선배들을

나는 순간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다고 외쳤다.

바라보고 있으면 연민과 분노에 휩싸이곤 한다.

그리고는 재빨리 빠져나가는 영혼을 낚아채 입에 다시

그들은 몇 푼 안되는 연봉 때문에 혹은 후임 디자이너들의

꾸겨 넣고 메일을 보낸 에이전시 하나하나에

하극상 때문에, 때로는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는 작은

이력서만큼이나 공들인 사과 메일을 다시 보냈다.

회사의 덕 있는 사장님 때문에 새로운 둥지를 틀기로 마음먹었을 것이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눈을 감았다가 뜨니 디자이너는

가끔은 선배들의 너덜거리는 외투 주머니에서 진정으로

회사에 출근하는 중이다.

자신을 위한 이직이 들어있는 지갑을 발견할 수 있을까

회사에 출근하는 내 모습이 뿌옇게 서린 지하철 유리에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한 의문과 동시에 나는 분노를 느낀다.

비친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 모두 초췌한 모습이다.

어느새 내 외투역시 너덜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파마한 머리카락이 덜 마른 여자,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나는 대학 졸업 후 지갑에 넣어 두었던 메모 한 조각을

야구를 보고 있는 뚱보 회사원, 누가 봐도 신입처럼 생긴

외투에서 꺼냈다.

이긴장씨, 몇 년째 몰아치는 신도림의 인파속에서

꼬깃꼬깃한 메모에는 볼펜 똥으로 얼룩진 ‘나를 위한’이라는

꿋꿋이 살아남은 최대리님.

글씨가 삐뚤하게 쓰여있다.

순간 출근길 속 사람들과 나만 아는 끈끈한 유대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블로그 clichecliche.blog.me 그 뒤로 몇 군데에서 면접제의가 들어왔고 나는 회사에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이메일 clichecliche@naver.com


<0,0,0>

야행성Night Planet

twitter : @hitchhiker_j

아파트와 단독주택의 이종교배 타운하우스


<아홉번째 집(2010)>

필라델피아의 빛이 잘 들지 않던 학생 아파트에서는 6개월을 살았다. 언니와 형부가 여름 방학을 맞아 한국에 들어간 때에 맞춰 남미로 여행을 갔다. 북미에서 남미로 가는 비행기 티켓이 저렴하 니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계산도 있었고, 미국까지 왔는데 애기만 보다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초조함도 있었다. 3개월 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자 언니네 가족은 형부의 학교가 가까 운 뉴저지로 이사를 마친 후였다. 아홉번째 집은 뉴저지의 타운하우스다. 새로 이사한 곳은 넓은 땅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려는 듯 주택단지와 상업시설, 교육시설들이 넓찍 하게 흩어져 구역화 되어 있는 도시였다. 각 구역들을 연결하는 길고 긴 도로의 양 옆에는 관리되 고 있는 녹지이거나 관리되지 않는 녹지가 있었다. 슈퍼에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러 가려면 집에서 마트까지 거리가 먼 것도 먼 것이지만 인도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너무 좁고 중간 중간 끊겨 있기 일쑤라 일단 단지 밖으로 나가려면 차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차가 있으면 편하니 차를 갖 자’같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차를 가져야만 하는’자동차 위주로 계획된 도시였다.

차를 타고 도로를 따라 아홉번째 집이 있던 단지 안으로 들어가면 순환식의 내부 도로가 있어서 한 바퀴를 돌면 단지로 들어왔던 출입구를 통해 단지 바깥으로 나가게 되어 있었다. 도로를 빙 둘 러 서있는 3층짜리 목조주택들에는 70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 아담한 단지였다. 타운하우스는 아파트와 단독주택을 이종 교 배시킨 주거형태다. 아파트처럼 정원과 아 이들 놀이터, 운동 시설 같은 편의 시설들 을 공유하고 공동으로 관리하면서 단지를 이룬다. 각각의 집들은 저층 단독주택의 형 태지만 옆 집과 지붕, 옆 벽이 붙어 있다. 아파트보다 밀도가 낮은 대신 관리 비용이 상대적으로 많이 든다. 하지만 단지내의 각 종 시설 관리를 알아서 처리해주고, 개별 세대의 어딘가를 보수하거나 수리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관리 사무소에 전화 한 통 화만 하면 되니, 모든 걸 스스로 처리해야 하는 단독주택보다는 관리하기가 쉽다. 단 지는 한 동마다 여섯 개에서 열 개의 지붕

70세대가 살던 타운하우스 단지


지붕과 옆벽이 맞붙어 서있는 타운 하우스 들이 맞붙어 있었고 한 지붕 아래에는 윗집, 아랫집에 각각 한 가구씩이 살았다. 언니 가족이 살 던 집은 아랫집으로 도로의 가장자리에 차를 주차하고, 관리 사무소에서 공동으로 관리하는 잔디 가 심긴 앞뜰을 지나면 작은 포치Porch가 나왔다. 포치는 집의 입구 앞부분에 지붕을 만들어 차에 서 내려 집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머무는 곳으로 정원과는 구분되는 외부 공간이다. 미국 영 화에 보면 손님이 집안까지 들어가지 않고 집주인과 포치에 서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많이 등장 하는데 영화 <그랜토리노>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 할아버지가 매일같이 앉아서 시간을 보내던 곳 도 바로 포치에 해당된다.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면 거실로 이어지는 복도가 있고 바닥 에는 카펫이 깔려있었다. 복도를 들어가다 보면 왼쪽으로 타일이 깔린 주방과 식당이 있고 주방과 거실 사이 벽은 윗부분이 뚫려 있어서 요리나 설거지를 하면서 거실에 있는 가족들과 대화가 가능 했다. 이 주방과 거실 벽 아래에서 9개월 된 조카가 첫 걸음마에 해당하는 다섯 걸음을 걸었던 기 억이 있다.

베란다 윗층이 아랫층보다 면적이 작아 생겨난 공간 포치 위 <그랜토리노> 속 포치 아래 <에비타> 속 테라스

건물 입구에 바깥으로 튀어나와 지붕을 덮은 공간

발코니 건물의 외벽에서 돌출시킨 공간 테라스 건물의 1층에 정원의 일부를 높게 쌓아 만든 공간


거실에서 샷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나 무 바닥이 깔린 발코니가 있었다. 보통 우리 나라에서는 발코니와 베란다를 혼용해서 쓰는 데, 베란다는 아랫층이 윗층보다 면적이 넓어 서 생긴 아래층의 지붕 부분이다. 발코니는 외부공간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외벽에서 튀 어나오게 만든 부분인데 보통 난간만 설치한 다. 영화 <에비타>에서 마돈나(에바 페론 역) 가 ‘Don’t cry for me, Argentina’를 부르 던 곳이 바로 발코니다. 우리나라의 아파트에 서 창을 달아 실내 공간처럼 쓰는, 화초를 키 우고 식료품을 저장하고 각종 잡동사니들을 쌓여놓으며 베란다라고 부르는 부분도 원래는 발코니에 해당된다. 한번은 발코니 난간에 이 불 빨래를 널어 두었다가 관리사무소에서 이

지하층 평면

불을 걷으라고 전화를 한 적이 있다. 발코니 너머로는 단지의 뒷마당이고, 더 멀리로는 기 껏해야 도로 정도였는데 말이다.

거실의 오른편으로는 세탁실과 건식 욕실, 클로짓이 딸린 침실이 있었다. 미국의 집에서는 형광등 을 조명으로 잘 쓰지 않아서 밤이면 늘 집안이 어둡게 느껴졌다. 거실 왼쪽 구석에 달린 문을 열 면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있었다. 한 지붕을 쓰는 두 세대 중 아랫집은 지하에, 윗집은 지붕 밑 다락을 추가 공간으로 갖는 식이었는데, 지하로 불렸지만 집의 앞부분과 뒷부분 땅의 높이 차이가 있어서 집의 정면에서 보면 땅 밑에 묻혀 있고, 지하로 내려가 샷시문을 열면 뒷마당과 연결되었다. 지하의 절반은 창고였는데 마트가 멀리 있으니 한번 장을 볼 때마다 대량을 구매하게 되고, 그래서 미국의 주택들은 넓은 면적의 창고가 필요한게 아닌가 싶 다. 지하의 나머지 공간은 어른 공부방과 애기 놀이방으로 썼다. 이 곳은 내가 이 집에서 가장 좋아했던 공간이기도 하다. 공간 자체가 좋았던 건 아니고, 집 안에서 유일하게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라 좋아했다. 언니가 밥 먹으러 올라오라고, 또는 조카 좀 봐달라고 1층 거실에서 문을 열고 큰 소리로 이름을 부 르는 것도 좋았고, 이불을 깔고 잠을 자고 있으면 조카가 계단을 내려와서 작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찰싹찰싹 때리며 깨우는 것도 좋았다. 한국에 있는 엄마와도 떨어져 사니 부딪힐 일 없이 조카 얘기를 전화로 나누며 지냈다.


사 진 야 행 성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소개소 안녕하세요. 신당동 파르한 입니다. 사실 이번 달은 크리스마스가 있어서 신나는 외국 로커빌리 음악 특집을 해볼까했는데 저는 우리나라 로큰롤이 더 좋으니 여전히 요즘 생활의 일부가 된 우리나라의 밴드 음악을 소개 해 드릴게요. 신당동 파르한 (@chungchoon98)

1. CHANGE 블루니어마더 <Pygmalion Effect>(2012), 트랙 1 인디밴드 토크쇼 <락쇼>를 보고 뒤늦게 블루니어마더를 알게 되었다. 블루니어마더는 1996년 인천에서 결성되었고 탑밴드 1 출연 당시 ‘음악을 하기 위해 직장을 가진 것 뿐’ 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던 밴드이다. 블루니어마더 첫 정규 앨범의 타이틀 곡 중 하나인 이 노래는 꿈을 따라가라는 내용이지만 뻔하지 않다. ‘작별인사를 해’, ‘원망도 했고’ 부분에서 깊어지는 목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2. Walkin’ Blues 텔레플라이 <Ultimate Psychedelic>(2011), 트랙 10 이 앨범 외에도 현대카드 뮤직 <it tracks Vol.2>에 실린 노래. it tracks에 실린 다른 곡들만 줄기차게 듣다가 우연히 이 곡을 듣게 되었는데 계속 머릿속에 머물러 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시작 부분의 기타 소리가 정말 인상적이었고 다시 들어보니 보컬과 기타의 음이 하나하나 같은 것이 신기하다. 텔레플라이의 라이브 공연은 정말 좋다고 한다.

3. 태양아 떠라 타카피 <본격인생>(2013), 트랙 2 타카피의 6집은 역시 타카피의 색깔로 가득했다. ‘짭’이라는 말이 이렇게 노래에 잘 녹아 있다니. <태양아 떠라>를 들으며 등교할 때는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으로)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태양아 떠라!’를 외쳤다. 대중적이라는 평이든 그렇지 않든 나는 몇 번 들으면 신나게 따라 부를 수 있고 하루에 한 번은 꼭 들어야 하는 타카피의 노래가 좋다.


4. 바코드 폰부스 <바코드>(2013), 트랙 1 이런 노래가 또 발견되기를 오래 기다려왔다. 젊은 밴드가 부르기 때문인지 괜시리 청춘이 느껴지는 노래. 그런 노래 중에서도 이 노래가 특별한 것은 평범한 멜로디 인 것 같다가 갑자기 우주 세계를 연상시키는 몽환적인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나는 전기뱀장어의 <별똥별>처럼 가사에 노래 제목이 된 사물의 특징이 언급되는 노래가 좋다. 노래에 ‘우주를 가로지르는’ 별똥별의 특징이 나타나는 것 처럼 말이다. 이 노래도 그렇다. 나의 개인적인 해석이지만 바코드라는 제목에 걸맞게 ‘팔리다’, ‘포장되다’ 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마음에 든다.

5. 째깍째깍 24아워즈 <Party People>(2013), 트랙 2 24아워즈 보컬의 목소리는 참 독특한데 그들 노래의 멜로디와 너무 잘 어울린다. 특히 가사를 길게 늘여 부르는 부분에서의 조합이 환상적이다. 최근 24아워즈의 공연을 보다가 ‘밴드란 정말 혼자 연주하는 것과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멤버 각자의 연주가 훌륭하게 합쳐진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6. 108 청년들 <청춘>(2013), 트랙 1 한동안 신선한 로큰롤이 없어서 심심했고 로큰롤은 다 비슷할 거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청년들의 노래를 들으면 로큰롤은 참 무궁무진한 것을 알게 된다. 신기한 것은 새로운 로큰롤 음악도 사람들을 춤추게 한다는 것이다. <EBS 스페이스 공감>의 말처럼 그들의 음악은 참 시원시원하다.

훌륭하고 유명한 외국 로큰롤 음악이 많지만 저는 우리나라 로큰롤이 정말 가사와 음이 잘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 만큼 잘 만들어진 한국 로큰롤 음악이 많거든요. 괜한 고집은 아니니 여러분도 어느 순간 그것이 느껴질 거에요.


건축이 좋아 #4 - 카츠라리큐(桂離宮), 그리고 교토의 정원들

글.

aoikasa

아름다움에는 절대적인 법칙이 있다.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시도하기만 해서는 미의 신은 미소 지어주지 않는다. - 야마모토 겐이치, 리큐에게 물어라

센 리큐라는 일본의 다인(茶人)이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총애를 받기도 했고, 질투의 대상이기도 했고… 일본에서는 다도(茶道)의 아버지쯤으로 여겨지는 사람. 절대 미가 무엇인지를 안다던 사람, 조선의 막사발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 것을 다도에 반영한 사람. ‘리큐에게 물어라’라는 소설에 따르면 그 아름다움은 리큐가 19세에 만난 조선여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던데… 그 사실여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센 리큐의 미의식은 조선의 그 것과 많이 닮아 있는 듯 하다. 센 리큐와 차문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다실과 정원이다. 결코 호화롭지 않은 작은 다실의 외부에는 역시나 결코 호화롭지 않지만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자신의 공간 안에 작은 자연, 작은 산과 물을 만들어 놓고 이를 바라보며 차와 자연을 음미하던 그 삶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사실 센 리큐 이전부터도 일본에서는 정원을 가꾸고 차문화를 즐겼다. 그러나 센 리큐는 지나치게 화려하고 자기과시적이 된 차문화와 정원을 반대하고 오히려 조금은 투박할 정도로 소박하면서도 지극히 절제되어 있는 아름다움을 보여주었으며, 이는 이후 일본 미학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일본에는 수도 없이 많은 정원들이 남아 있는데 그 중 최고로 꼽히는 건 바로 카츠라 리큐이다. 카츠라 리큐는 1930년대 서양 세계에 알려지면서 그 명성을 일본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떨치게 된 곳이다. 1930년대의 유명한 건축가인 브루노 타우트도 월터 그로피우스도 이 공간을 극찬해 마지 않았으니 말이다.


카츠라 리큐의 배치도(http://sankan.kunaicho.go.jp/guide/institution_katsura.html)와 2011년 가을 풍경

일본 정원의 정수, 카츠라 리큐(桂離宮) 카츠라 리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나 역시도 미국에서였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하버드 대학에서 건축 사진의 표상성(?)이던가 아무튼 그 비슷한 공부를 하던 일본인 박사과정 학생이 우리 학교에 와서 발표를 한 적이 있었다. 주 내용은 1960년 발간된 카츠라 리큐의 사진집에 출판된 사진과 실제 그 장소를 비교하면서 얼마나 많은 조작(?)이 카츠라 리큐의 이미지를 형성했는가… 뭐 그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사실 그 내용도 내용이지만 사진으로 보는 그 곳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 프레젠테이션을 끝내자마자 도서관으로 달려가 그 책을 빌려보았던 기억이 있다.


1960년 발간된 Katsura: Tradition and Creation of Japanese Architecture(Yale Press, 1960) 에는 월터 그로피우스와 브루노 타우트가 이 곳을 극찬하는 내용과 함께 사진가 야스히로 이시모토의 사진이 실려 있다. 이 사진집 속에서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 것이다. 17세기 일본의 건축이 얼마나 모던했던가. 마치 몬드리안의 그림 같은 카츠라 리큐의 벽체 사진. 영국수공예운동이나 독일공작연맹에서나 보았을 법한 패턴의 벽면 사진 등을 통해 20세기 모던의 눈으로 17세기의 카츠라 리큐를 발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카츠라 리큐(桂離宮) 는 말 그대로 카츠라(桂) 지역에 있는 이궁(離宮). 즉 별궁이라는 뜻이다. 카츠라 리큐는 본래 황족들의 빌라나 별장이 많았던 교토 서쪽의 카츠라 지역에 하치조 토시히토(智 仁; 1579–1629) 친왕이 설립한 별궁이다. 하치조 토시히토는 한 때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양자이기도 하였으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친아들이 태어나며 파양당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도 견제당하며 결국 천황이 되지 못했던 다소 슬픈 인생사를 겪은 황족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카츠라 리큐에 자신만의 아름다운 세계를 건설하고 그 안에서 세상사 다 잊고 살아가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든다. 그러나 어찌됐건 일본 정원의, 일본 건축의 정수라 불리는 카츠라 리큐를 조영하였으니 그의 심미안만큼은 타고난 것이었건 아니면 길러진 것이었건 그러나 어찌됐건 일본최고가 정원의,아니었을까? 일본 건축의 정수라 불리는 카츠라 리큐를 조영하였으니 그의 심미안 그러나 어찌됐건 정원의, 정수라 불리는 카츠라 리큐를 조영하였으니 그러나 어찌됐건 일본 일본 정원의, 일본 일본 건축의건축의 정수라 불리는 카츠라 리큐를 조영하였으니 그의 그의 심미안심미안 만큼은 타고난 것이었건 아니면 길러진 것이었건 최고가 아니었을까? 만큼은 타고난 것이었건 것이었건 최고가 아니었을까? 만큼은 타고난 것이었건 아니면아니면 길러진길러진 것이었건 최고가 아니었을까? 카츠라 리큐의 중심 공간은 커다란 연못인데 이 연에는 작은 섬들이 있으며, 이 공간을 중심으로 서원과 카츠라 리큐의 중심 공간은 커다란 이 연에는 작은 섬들이 이 공간을 중심으로 카츠라 중심 공간은 커다란 연못인데 이연못인데 연에는 섬들이 있으며, 이 있으며, 공간을 중심으로 서 정자가 둘러싸고 물과 섬을 바라보는 구조로 있다.(이런 구조는 일본 대표적인 것으로 회유식서 카츠라 리큐의리큐의 중심 공간은 커다란 연못인데 이 되어 연에는 작은 작은 섬들이 있으며, 이 정원의 공간을 중심으로 서 원과 정자가 물과 둘러싸고 물과 섬을 구조로 바라보는 구조로 되어 있다.(이런 구조는 일본 정원의 것대표적인 것 원과 정자가 둘러싸고 섬을 바라보는 되어 있다.(이런 구조는 일본 정원의 대표적인 원과 정자가 둘러싸고 물과 섬을 구조로 되어 있다.(이런 구조는 아니라 일본 정원의 대표적인 정원(回遊式庭園)이라 한다.) 즉,바라보는 카츠라 리큐에서 중요한 것은 건물이 다양한 자연의것요소를 가지고 으로 회유식 정원(回遊式庭園)이라 한다.) 즉, 카츠라 중요한 리큐에서 중요한 것은 건물이 아니라 으로 회유식 정원( 回遊式庭園)이라 한다.) 즉, 카츠라 리큐에서 것은 아니라 으로 정원이 회유식 정원( 한다.) 즉,자연을 카츠라 바라보기 리큐에서 위해 중요한존재하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있는 제일回遊式庭園)이라 중요한 것이다. 건물은 마치 그 듯건물이 하다. 그래서 카츠라 다양한 자연의가지고 요소를 가지고 있는 정원이 제일것이다. 중요한건물은 것이다. 건물은 마치 그 자연을 바라보기 다양한 자연의 요소를 정원이 중요한 마치 그 자연을 바라보기 다양한 자연의 요소를 가지고별궁이라는 있는 있는 정원이 제일 제일 중요한 것이다. 건물은 마치 그 자연을 바라보기 리큐 안의 어느 위해 건물에서도 명칭과는 달리리큐 화려함을 찾아볼 수 없다. 마치 자연을 담는 액자같은 존재하는 듯 하다. 그래서 카츠라 안의 어느 건물에서도 별궁이라는 명칭과는 달리 화려 위해 존재하는 듯 하다. 그래서 카츠라 리큐 안의 어느 건물에서도 별궁이라는 명칭과는 달리 위해 존재하는 듯 하다. 그래서 카츠라 리큐 안의 어느 건물에서도 별궁이라는 명칭과는 달리 화려 화려 건물의 구성, 그리고 다양한 다양한 자연을 보여주고자 하는구성, 건물의 배치들. 건물에 있어 허락된자 함을 찾아볼 수각도에서 없다. 마치 자연을 담는 건물의 액자같은 건물의 그리고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함을 찾아볼 수 없다. 마치 자연을 담는 액자같은 구성, 그리고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자 함을 찾아볼 수 없다. 마치 자연을 담는 액자같은 건물의 구성, 그리고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자 연을 보여주고자 하는 건물의 배치들. 건물에 있어 허락된 아주 조금의 사치는 바로 벽면과 문장식 아주 사치는 벽면과 문장식 등건물에 디테일한 부분들이다. 때로는 푸른 색 모자이크로, 때로는 꽃무늬 연을 보여주고자 하는 건물의 배치들. 허락된 조금의 사치는 바로 문장식 연을 조금의 보여주고자 하는바로 건물의 배치들. 건물에 있어 있어 허락된 아주 아주 조금의 사치는 바로 벽면과벽면과 문장식 등 디테일한 부분들이다. 때로는 푸른 색 모자이크로, 때로는 꽃무늬 패턴으로 포인트를 준 부분의 등 디테일한 부분들이다. 때로는 색 모자이크로, 때로는 꽃무늬 패턴으로 포인트를 준 부분의 패턴으로 포인트를 준 부분의 감각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등 디테일한 부분들이다. 때로는 푸른 푸른 색 모자이크로, 때로는 꽃무늬 패턴으로 포인트를 준 부분의 감각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감각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감각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카츠라 리큐는 가느다란 목재선과 하얀 목재선과 면, 직각과 직각의 한 치의 오차도 않는 용서하지 듯한 느낌의 카츠라 리큐는 가느다란 하얀 면, 교차가 직각과 직각의 한용서하지 치의 오차도 않는 카츠라 리큐는 가느다란 목재선과 면, 직각과 교차가 한 교차가 치의 오차도 용서하지 카츠라 리큐는 가느다란 목재선과 하얀 하얀 면, 직각과 직각의직각의 교차가 한 치의 오차도 용서하지 않는 않는 듯한 느낌의 건물들과 그와는 반대로 자유로운 곡선과 오색찬란한 빛깔의 자연이 만들어내는 대비 건물들과 그와는 반대로 자유로운 곡선과 오색찬란한 빛깔의 자연이 만들어내는 대비가 극대화되며 감동을 건물들과 그와는 반대로 자유로운 곡선과 오색찬란한 빛깔의 만들어내는 듯한 듯한 느낌의느낌의 건물들과 그와는 반대로 자유로운 곡선과 오색찬란한 빛깔의 자연이자연이 만들어내는 대비 대비 가 극대화되며 감동을 만들어 낸다. 지금 우리의 눈에도 카츠라 리큐가 가지고 있는 이 아름다움이 가 낸다. 극대화되며 감동을 만들어 낸다. 우리의 눈에도 카츠라 리큐가 가지고 있는 이 아름다움이 만들어 지금 우리의 눈에도 리큐가 가지고 있는 이 아름다움이 신비롭게만 느껴지는데, 1930 가 극대화되며 감동을 만들어 낸다.카츠라 지금 지금 우리의 눈에도 카츠라 리큐가 가지고 있는 이 아름다움이 신비롭게만 느껴지는데, 1930년대 이 곳을 방문한 브루노 월터 타우트나 월터 그로피우스 등 서양인들에 신비롭게만 느껴지는데, 1930년대 이 곳을 방문한 브루노 그로피우스 등 서양인들에 신비롭게만 느껴지는데, 1930년대 이 곳을 방문한 브루노 타우트나 월터 그로피우스 등 서양인들에 년대 이 곳을 방문한 브루노 타우트나 월터 그로피우스 등 타우트나 서양인들에게는 얼마나 신비롭고도 신기하게 게는 얼마나 신비롭고도 신기하게 느껴졌을까 싶다. 게는 얼마나 신비롭고도 신기하게 느껴졌을까 싶다. 게는 얼마나 신비롭고도 신기하게 느껴졌을까 싶다. 느껴졌을까 싶다.

서양에 소개된 카츠라 대한 대표적인 책들 대한 리큐에 대표적인 서양에 소개된 카츠라 리큐에 대한 대표적인 책들 서양에서양에 소개된소개된 카츠라카츠라 리큐에리큐에 대한 대표적인 책들 책들 (좌)Tradition Katsura: and Tradition andofCreation of Architecture(Yale Japanese Architecture(Yale 1960) (좌) Katsura: Tradition andPress, Creation of Japanese Architecture(Yale Press, 1960) (좌) Katsura: Creation Japanese 1960) (좌) Katsura: Tradition and Creation of Japanese Architecture(Yale Press,Press, 1960) (중)Imperial Katsura:Villa Imperial Villa (Arata Isozaki,Press, Phaidon Press, 2005) (중) Katsura: Imperial Villa (Arata Isozaki, Phaidon Press, 2005) (중) Katsura: (Arata Isozaki, Phaidon 2005) (중) Katsura: Imperial(우)Villa (Arata Isozaki, Phaidon Press, Photographs 2005) Katsura: Picturing ModernismModernism in Japanese Architecture: Ishimoto Yasuhiro (Yasufumi Nakamori, Museum ofIshimoto Fine Arts, Houston, 2010) (우) Picturing Katsura: Picturing in Architecture: Japanese byArchitecture: Photographs by Yasuhiro Yasuhiro (우) Katsura: Modernism in Japanese Photographs by Ishimoto (우) Katsura: Picturing Modernism in Japanese Architecture: Photographs by Ishimoto Yasuhiro (Yasufumi Nakamori, Museum of Houston, Fine Arts,2010) Houston, 2010) (Yasufumi Nakamori, Museum of Fine Arts, (Yasufumi Nakamori, Museum of Fine Arts, Houston, 2010)


물이 없는,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 아마도

교토의

정원

하면

먼저

머릿속에

떠올리는 건 아마 ‘료안지(竜安寺)’의 그 하얀 자갈이 깔려 있는 정원이 아닐까 싶다. 카츠라 리큐의 정원이 중앙의 큰 연못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료안지의 정원과 같은 곳에서는 물의 공간, 즉 연못을 찾을 수가 없다. 하얀 자갈이 깔려 있고 큰 돌들이 서 있는 이 정원양식은 ‘가레산스이(枯山水)’라 불리는, 즉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면 고산수 양식의 정원이다. 즉, 마른 산과 물이라는 뜻인데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 정원에서 이 하얀 자갈은 곧 물을 의미한다. 특히 이 가레산스이 정원은 선종 사찰들에서 자주 나타나는 정원으로(은각사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 곳을 바라보며 앉아 있노라면 ‘무념무상’의 상태에 빠질 듯할 듯한 기분도 든다. 단, 료안지는 언제나 북적이는 관광객으로 인해 홀로 고요히 이 공간을 감상한다는 것은 불가능. 정말 고요하고 고즈넉한 가레산스이 정원을 홀로 감상하고 싶다면 다이토쿠지(大德寺)의 료겐인(龍源院)을 추천한다. 료겐인에서는 다양한 사이즈와 다양한 느낌의 가레산스이 정원을 만나볼 수 있으며, (운이 좋으면) 그 공간을 혼자 즐길 수도 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액자식 정원 (額縁庭園) 가레산스이

정원만큼이나

교토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건 바로 액자식 정원(額縁庭 園)이다. 액자식 정원은 말 그대로 건물의 기둥과 바닥, 지붕으로 이루어진 프레임이 마치 액자처럼 보이며 그 안에 자연이 하나의 그림처럼 들어오는 구성을 말하는 것이다. 카츠라

리큐에서도

이러한

액자식

구성을

상당수 발견할 수 있었지만, 교토에서 1시간 여 북동쪽으로 떨어진 지역인 오오하라(大原) 지역의 호센인(玉泉院)의 반칸엔(盤桓園)은 액자식 정원의 정수를 보여준다. 마치 당장 정령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노송과 대나무, 단풍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섞여 건물의 2면을 둘러싸며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놓은 풍광은 건축의 내부가 모두 외부를 향해 존재하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호센인의 경우 11월 동안은 야간 Light-up 행사를 진행하여 액자식 구성의 정원을 마치 환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밤’의 정원의 풍경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센 리큐의 정원, 지키츄우테이( 直中庭 ) 그리고 마지막으로 센 리큐가 디자인 한 정원, 지키츄우테이(直中庭)는 센 리큐가 다이토쿠지의 오바인(黄梅 院) 내에 62세에 디자인한 정원이다. 다이토쿠지는 센 리큐와 이래저래 관련이 깊은 사찰이다. 다이토쿠지에 센 리큐의 목상을 세웠다는 이유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분노를 사 결국 센 리큐가 자살을 하기에 이른 원인을 제공한 곳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센 리큐의 손길이 곳곳에 닿은 사찰이기도 한데, 이 다이토쿠지 안의 지키츄우테이는 그 느낌부터가 여타 정원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회유식 정원의 연못도 없으며, 가레산스이식 정원의 하얀 자갈도 없다. 가레산스이식 정원이나 액자식 정원의 정교하게 디테일까지 디자인되고 정제된


느낌 대신 유유히 흐르는 작은 시내에 가까운 수공간과 작은 다실,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싼 회랑과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정원 가득 자연스레 자라나고 있다. 이는 지나치게 정원을 가꾸는 데 욕심을 내던 당시 분위기에 좀 반하는 듯해 보이기도 하는데 이야 말로, 센 리큐가 주장한 와비(侘び)의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키츄우테이라는 이름처럼, 솔직하고 곧은 그 자체의 자연의 모습ㅇ르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아, 이 곳에는 조선에서 가져왔다는 석등도 놓여 있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 곳에서는 사진촬영이 전면 금지… 그저 앉아서 보며 느끼며 센 리큐가 이야기하던 아름다움에 대해 느끼라는 것이었을까.

오바인(黄梅院) 그리고 지키츄우테이(直中庭). 사진을 못 찍게 해서 부끄럽지만 스케치로…

정원의 풍요. 정원의 압박. 카츠라 리큐에 두 번을 다녀 왔었다. 그렇게 예약이 어렵다던 카츠라 리큐를 운 좋게도 두 번이나 예약을 성공하고 가을과 겨울 두 계절에 걸쳐 본 것이었다. 그런데 2013년 10월. 스트레스가 최절정에 달하던 그 시점. 카츠라 리큐의 가을이 너무나도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주말 비행기를 사버리고 금요일에 교토로 퇴근해서 월요일에 오사카에서 출근하는 아름다운 일정으로 교토에 다녀 왔다. 그러나 이 ‘아무 생각 없이’가 결국 문제가 되어, 카츠라 리큐 관람 예약에 실패… 결국 다른 곳들만 돌다 왔다. 그런데 그 덕에 다이토쿠지도 호센인도, 그리고 은각사 앞 요지야 까페도 후미히코 마키가 디자인한 교토근대미술관도 가 볼 수 있었다. 다이토쿠지와 호센인의 정원은 처음부터 ‘정원’을 보러 간 것이었지만 요지야 까페에서도 교토의 ‘정원’을 만날 수 있었다. 요지야 까페에서 모두 정원을 마주보고 앉아 차를 마시던 풍경, 교토근대미술관에서 커다란 창 밖 정원을 바라보며 길게 놓여있는 의자들과 그 곳에 앉아 사색하는 사람들의 풍경을 보며 교토에서는 따로 정원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어디에서나 언제나 그 곁에 정원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할까. 정원의 풍요. 한편으로는 정원의 압박으로 느껴질 만큼 말이다.

(좌)요지야 까페 은각사점 내부에서 바라본 정원과 (우)교토근대미술관 내부에서 바라본 정. 묘하게 닮았다.


그래도 압박 조금 받으면 어떠한가. 마치 절대적 아름다움이 무언지 아는 듯 하게… 그 아름다움의 자리를 자연에 내어 주고 뒤의 배경이 되길 자처한 건축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걸…

요지야 카페, 그리고 은각사. 2013년 가을. 교토.



- 이 달의 선정 도서 『『일러스트 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역, 호세 무뇨스 그림, 책세상, 2013

『이방인』 출간 70주년, 알베르 카뮈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판. 그래픽노블의 거장 호세 무뇨스의 손끝에서 새로이 태어난 프랑스문학의 영원한 신화.

『일러스트 이방인』 띠지.

- 침대 위 시체 혜원 씨와 헤어지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랑이 시작하고 끝나는 건 지극히 자연 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하지만 이별의 순간이 슬프거나 괴롭지는 않길 바랐다. 첫 만남이 설렜던 것 처럼, 마지막도 설레길 바랐다. 전화를 걸었지만 혜원 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


“어떻게 네가 해진 씨와 사귈 수가 있어? 정말 너 뻔뻔하다. 게다가 그걸 나한테 말하고 있는 거야? 내

가 너한테, “잘 됐다. 축하해”라고 말할 줄 알았어? 그걸 기대한 거야? 내가 어떻게 그러겠어. 난 해진 씨 때문에 매일매일이 지옥 같아. 그날 이후로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잔 날이 없다고. 물론 시간이 지나

면 점점 나아지겠지. 하지만 해진 씨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미쳐버릴 것 같아. 알 아? 그걸 알면서도 네가 해진 씨랑 어떻게 사귈 생각을 해? 내 말이 틀려? 해진 씨랑 사귄다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고. 왜 고개를 숙이고 있어? 아무 말이나 해봐. 핑계라도 대보라고. 지금 왜 나한테 그 이야기를 하는 건데? 나보고 해진 씨한테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는 거야? 아니면 해진 씨가 뭘 좋아하는지, 뭐 그런 이야기를 해주길 바라는 거야?”

“그런 게 아니야. 단지 네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이 이야기를 듣는 게 싫었어. 어차피 너도 언젠가는

알게 될 거고.”

“너랑은 이제 볼 일 없겠다.” “응?”

“너랑은 이제 볼 일 없겠다고. 잘 먹고 잘 살아.”

혜원이 자리를 떠난 뒤에도 희정은 오랫동안 테라스에 앉자 머그컵을 만지작거렸다. * 저녁에 희정 씨가 찾아와, 자기와 결혼할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희정 씨와 결혼할 마음이 없 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그럴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그녀는 내게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머릿속이

멍해지고,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이유’라는 단어만 계속해서 떠올랐다. 이유, 이유, 이 유……. 잠자코 있는 내게 희정 씨는 근사한 곳에서 저녁식사를 하자고 말했다. 근사한 곳, 근사한 곳, 근사한 곳……. 그녀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그제야 나는 알겠다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식사 내내 생각들이 떠올라 희정 씨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희정 씨는 어째서 나와 결혼을

하고 싶은 것인지, 나는 어째서 희정 씨와 결혼할 생각이 없는 것인지, 결혼이라는 것이 대체 어떤 의 미를 가지는 것인지…….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식사 도중 잠시 로비로 나와 담배를 한 대 피우는데 창가 쪽에 혜원 씨가 어떤 남자와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환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나는 그녀가 행복하길 진심으로 기 원했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 나는 희정 씨에게 결혼하자는 이야기를 건넸다. 그러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

며 손사레를 쳤다. 굳이 자신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붙 잡고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웨이터를 불러 와인 한 병을 주문했다. * 무더운 여름날, 식을 올리기로 했다. 혜원에게도 청첩장을 보냈지만 식 당일까지도 혜원에게선 아무

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내가 혜원에게서 해진 씨를 빼앗은 것은 아니었지만, 혜원은 그렇게 생각하 는 것 같았다.


해진 씨는 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그의 표정은 늘 그런 식이니 어쩔 수 없다

고는 생각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밝은 표정이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그는 세심한 부분까지 친절히 대해주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에도 내 손을 놓지 않았고, 가끔씩 볼에 키스를 해주었다.

피로연이 끝나갈 무렵엔 조금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오랫동안 햇빛을 받아서 피로하기도 하였고, 긴

장한 탓인지 속이 거북했다. 해진 씨에게 말하자, 그는 호텔에 들어가 잠시 쉬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 다. 그는 나를 호텔방으로 데려다주고, 다시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피로연장으로 나갔다. 나는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우리를 축복해주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보였

다.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 사이로 스치듯 혜원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몸을 일으켜 세우고 창가로 가서 혜원의 모습이 보였던 쪽을 보았다. 하지만 혜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침대 에 누워 눈을 감고, 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혜원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 아침부터 내리쬐는 뜨거운 햇빛 때문에 온몸이 끈적였다. 희정 씨의 생각대로, 호텔 야외에서 결혼식

을 진행하기로 한 것이 문제였다. 더욱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 둘의 결혼을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하지만 희정 씨가 원하는 것이었고, 나는 최대한 그녀를 배려하기로 하였다. 식이 진행되는 내내 불쾌한 마음을 감추고 있는 것 이 곤욕스러웠다.

피로연 도중 희정 씨가 힘들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를 호텔방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다시 피로

연 장소로 돌아가 격식을 차리며 인사를 나눴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혜원 씨를 본 것은 그때였다. 혜 원 씨는 어떤 남자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내 그녀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내 쪽을 바라보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그녀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반갑게 내 인사를 받은 뒤, 자신의 연인을 내게 소개해주었다.

피로연을 마친 뒤, 호텔방으로 들어가 잠들어있는 희정 씨를 바라보았다. 나는 모든 것이 잘못되었

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


시만 먹고 살 수 있을까?

바다비 일요 시극장

바다비 일요 시극장 2013.12.29 http://cafe.daum.net/badabie


우울한 청춘

글. 그림. 철민


부산오뎅 이야기 ( 나의 일년 )

올 한해 여러분에겐 무슨 일들이 있었는가? 졸업 입학 취업 결혼 출산 이별 여행 연애기쁨 슬픔 개빡침 멘붕? 다들 한 해를 돌아보면 무언가가 좋던 크 고 작은 일들이 왔다가 갔을 것이다. 필자는 올 한 해를 캔디크러시(*)의 해로 하고 싶다 핸드폰 게임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스팸과 같은 친구들의 무차별적인 초대 아이템 요청- 수락-거 절-선물-단계를 넘어갈 때. 도와 달라는 메세지를 받을 것이다. 게임을 한 두 가지라도 하는 사람들이야 이 해를 한다쳐도, 게임자체를 안 해본 사람들에겐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관계의 스트레스. 그러나 미워하지 말자. 그것이 아니라도 우리 얼마나 다른 스팸 메시지에 노출되어 무방비로 당하고 있는 가... *(페이스북 연동게임으로 최근에는 카카오버전도 출시 전세계1억명이상의 유저 기존의 애니팡과 최근 출 시된 포코팡과 같은 게임들이 요구하는 스피드에서 자유로운 천천히 바둑을 두는 것과 같은 여유로움을 가 지고 할 수 있는게임으로 20판 이상만 하면 중독, 40~50판 정도만하면 재미를 느끼며 어느 정도 하다가 그 만 둔다는 건 10년 담배 핀 사람이 하루 만에 담배를 끊는 것과도 같이 독한 사람을 판단하는 또 다른 잣대 로 사용. 스테이지를 못 넘길 때의 괴로움은 세상의 모든 짐을 다 얹고 있는 기분이나 깼을 때의 쾌감은 새 로 태어난 기분)


작년부터 이게임을 수많은 지인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애들이나 게임이지 게임은 무슨 게임이냐며 꿋꿋하 게 버티고 있던 여름쯤 도저히 유혹과 권유를 이기지 못해 하게 된다. (망할 편집장이 권유) 첨 할 때는 몇 판만 해보자고 한 게 이제는 끝을 보기 전까지는 관두지 못하게 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날. 추석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명절 때 부산을 간 나는 이 게임을 어머니에게도 권유하고 친구들에게 도, 동생과 동생제수씨에게 가르쳐준다. 동생 제수씨는 친정어머니에게 소개를 하고 (내가 다단계를 했으 면 성공했을꺼 같다.) 추석 때의 내가 저지른 입방정(?)에 추석 이후 나는 더 많은 하트(게임아이템) 요청 메세지를 받게 된다. 어쩔 수 없다. 이것 또한 나의 업보로 받아 들여야 했다. 내가 모든 이들에게 가르쳐줬으니 내가 중간에 관 둘 수는 없다. 재미도 있지만 사명감과 동질감을 줄려면 해야 됐었다. 그래서 계속하고 있다. 그러면서 힘들 다. 괜히 했다.라는 생각에 그만두고 싶은 적도 많다. 아버지한테 책을 봐도 시원찮을 판에 게임이나 하고 있 다며 게임 할 시간에 연애를 하라며 구박도 받았다. 나도 내가 미쳐있다는걸 안다. 올 한해 게임만했다. 내 가 한 해를 헛 산 느낌도 들었다. 어머니는 새벽까지 하시느라 눈이 아프시고 사돈어른이 어머니를 넘어섰 다며 괴로워하신다. 내가 불효를 한 것 같았다. 통화를 하면서 이거 하시면 치매 안 걸리실 거라며 긍정적 인 요소도 쥐어짜봤다. 12월의 마지막 날이면 나의 일년이 게임으로 결국 다 보냈구나하는 자괴감은 더더욱 심해질것이다. 며칠 전 어머니 생신이었다 조그만 핸드폰으로 게임하시느라. 눈 아프신 어머니생신 선물로 아이패드를 사 드렸다. 큼지막한 화면에 어머니는 어지럽다고 하셨다. 2시간이지나니 이젠 적응이 되셨는지 “얘야 이젠 핸드폰은 작아서 못하겠다.”며 활짝 웃으신다. 어릴 적 우리가 장난감 선물받았을때의 그 웃음과 같은... ‘됐다 나의2013년은 그렇게 헛되지 않았다. 어머니의 활짝웃는 모습을 보았기에...’ 엄마 화이팅!!!


마을길 마포 4로 “ 구 경의선 철길”

마을길 마포 4로 “구 경의선 철길” - 약 1시간 30분 (4.4km)

언제 부턴가 나무보다 높은 건물들이 생기고 생명이 없는 것들이 길 위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용산과 신의주를 잇는 철도가 생기고 1911년에는 이 철길이 유럽까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한국전쟁이 시작되고 남북 교류가 끊기고 큰 용도가 사라진 노선은 90년대 까지 드물게 기차가 다니다가 2000년대 들어 운행 중이 중단됩니다. 여전히 기차는 경의선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운행되지만 전부 다 땅 속으로 숨어들고 용산에서 시작해 마포를 크게 지르던 철길만 몇년간 휑하니 놓여있다가 이제 공원이 될 참이랍니다. 마포구에서 마지막으로 진행되는 마을길은 이 길을 소개합니다. 한참을 생각 했습니다. 어디가 좋을까? 마포에 남아있는 마지막 하나를 소개한다면 어디를 소개할지를 한참 고민하다가 한참 사람이 많아지는 이 동네에서 가장 한산한 아니 가장 휑한 길을 하나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몇 년은 버려져서 쓰레기가 무수히 쌓여있다가 몇년은 공사로 바쁘던 길입니다. 지금은 어느정도 정리가 되어 깔끔하지는 않아도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길이 되었습니다. 서울에 어디 이렇게 거대한 황량함이 남아있을까요?


출발: 공덕역 1번출구 오늘의 길은 꽤 깁니다. 길고 찾기 쉽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스마트폰 지도앱을 켜고 다니시면 좋습니다. 지하철 5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공덕역 1번출구에서 내려 마포 우체국 앞으로 오시면 오른편으로 엄청나게 훤히 하늘이 보이는 길이 있습니다. 마치 서울 한 복판을 마그마가 휩쓸고 지나간 것 처럼 사방의 콘크리트 사이로 벼랑이 보일 겁니다. 오늘은 그 길을 따라갈 셈입니다. 그러니 어디서든 휑한 방향으로 가시면 옳은 방향으로 가시는 겁니다. 그 길을 따라 가봅시다. 처음 길을 따라가면 아직 공원으로 되지 않은 부분에 벼룩시장이 열려 있습니다. 그 벼룩시장을 지나면 경의선 숲길이란 이름의 안내 판이 있습니다. 오늘은 마포 구간. 공덕에서 연남까지의 길을 따라갈 계획입니다. 언젠가 이 길에 기차가 다녔다는 생각을 하면서 걸어보세요. 길을 따라 가다보면 중간중간 찻 길이 가로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찻길이 있어도 바로 앞으로 또다시 기차길이 보이기 때문에 길을 잃기도 쉽지 않습니다. 첫 찻길을 지나면 아주 조금 남아있는 철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채 다듬어 지지 않은 공원 후보지도 만날 수 있습니다. 멀리 그래피티가 그려진 철제 벽들이 보이면 제대로 걷고 계신 겁니다. 서강 대학교 앞 길에 가시면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를 수 있습니다. 왼편으로 가셔도 되고 오른편으로 가셔도 됩 니다. 여기서는 지하철 서강역을 찾아 가야 합니다. 오른 편으로 가시면 서강대 정문으로 가시다가 왼쪽으로 휑한 하늘 방향을 가시면 됩니다. 가장 좋은 것은 한번 물어보는 것입니다. 지하철 서강역을 지나면 다시 신 촌 대로와 이어진 8차선을 만나게 됩니다. 신촌 대로에서 기찻길은 돋워진 둔덕 위에 있기 때문에 바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연세 병원 앞의 횡단보도 를 지나 신촌의 지금은 사라진 다주쇼핑 쪽으로 걸어가시다가 왼편으로 꺾어주시면 됩니다. 사람들에게 물어 볼 때는 “기찻길 고기 골목”을 물어보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고기골목을 지나 멀리 보이는 다리 위에 올라가 좌우를 훑어 보시면 갈대가 자라있는 큰 공터가 휑한 것을 높 은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오른 쪽으로는 공덕부터 걸어온 길이 보이고 왼편으로는 앞으로 걸어갈 연남동이 보입니다. 큰 건물 하나가 멀리 막고 있으면 제대로 가고 계신겁니다. 다리에서 다시 길을 건너 휑한 하늘을 따라 걷습니다. 이번 목적지는 공항철도 홍대입구 역입니다. 길 사이사이 그래피티도 구경하면서 슬슬 걷다보면 홍대 앞 대로와 마주칩니다. 지하보도건너 또 다시 펼쳐지는 연남동의 공터를 따라 걸으시면 됩니다. 걷다 걷다. 휑한길이 끝나는 곳이 오늘의 길의 종점입니다. 그 즈음이 마포구의 경계이기도 합니다. 왼편에 공터를 두고 잘 따라가셨다면 연서 지하보도를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곳으로 나가면 다시 신촌이나 홍대로 돌아올 수 있는 사천교 버스 정류장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간의 길과는 달리 꽤 길고 거대한 코스입니다. 천천히 걷거나 길을 헤메면 족히 두시간은 걸어야 할 길입니다. 언젠가 이곳에 기차가 다녔을 것을 그리고 앞으로는 드물게 거대한 서울의 산책로가 될 길을 미리 둘러보시 는 좋은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길을 가다 뒤돌아보면 나무보다 높은 빌딩이 있습니다.

벼룩시장의 풍경과 경의선 숲길 입구

안내판과 길


서강대학교 앞 철길

걸어온 길이 보입니다.


지하철 서강역의 주차장과 홍대 산울림 소극장 옆 다리에서 본 풍경

공항철도 홍대 근처 그래피티와 연남동으로 뻗은 구 철로

계속 휑한 풍경들

연서 지하보도를 지나면 사천교 버스정류장이 나옵니다.


연남동 3거리에서 본 풍경

연서 지하보도 앞


루시안 프로이드 (Lucian Freud)

빵덩어리, 살덩어리, 물감덩어리. 덩어리라는 말엔 특별한 응축이 있는 것 같습니다. 덩어리 안에, 덩어리의 핵이라고 할 만한 자리 에 혹은 덩어리진 더기더기 사이에 덩어리는 뭔가를 숨겨놓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작위 로 써놓은 것이긴 하지만 빵덩어리, 살덩어리는 예수께서 자신의 살을 빵에 비유한 바도 있고, 멍 하니 생각해도 빵을 먹으면 살이 되니 어느 만큼의 유사함에 가 닿습니다. 빵덩어리, 살덩어리, 물 감덩어리. 잘 해보면 물감덩어리도 낄 수 있을 것 같네요. 사람-살덩어리를 가장 생생하게 표현해 낼 수 있는 그림의 수단은 유화일겁니다. 효과로도 상징 적으로도요. 효과면에서, 유화는 물감을 기름에 녹여 사용하는 것입니다. 온전히 굳은 뒤엔 기름 으로도 다시 녹지 않습니다. 물감은 안료와 접착제를 섞은 것으로 유화물감은 기름으로 농도 조절 된 뒤 화면에 접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접착력이 약해져 떨어져버리기도 하는 겁니다. 그림 표면의 번들거림은 사용하는 기름의 성질에 따라 더욱 번들거리게도, 혹은 전혀 번들거리지 않게 도 만들 수 있는데 보통 천천히 마르는 성질의 기름이라면 광택이 나고, 빨리 마르는 속건성-휘발 성 기름이라면 광택이 없게 됩니다. 기름을 많이 섞어 캔버스 천에 얇게 스며들도록 그릴 수도 있 고, 기름을 거의 섞지 않다시피 하여 물감 자체를 두껍게 쌓아가며 그릴 수도 있습니다. 덩어리를 두껍게 쌓아가며 그릴 때 그림은 그 자체로 덩어리가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법으로 사람을 그 리면 그 두툼한 물감은 살덩어리로 보입니다. 변사또의 부정을 낱낱이 살핀 이몽룡의 시의 ‘금동이 에 담긴 향기로운 술은 천사람의 피요, 옥쟁반의 아름다운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하는 구절에 서 보듯 사람의 진은 피와 기름의 비유로 담깁니다. 피부의 덩어리감, 피부결의 반짝임을 효과적으 로 표현할 수 있는 유화는 그뿐만 아니라 기름에 녹여 그리는 그 성질로써 살덩어리가 될 수 있습 니다. 기름에 엉겨붙은 안료의 덩이 덩이들 그 색들 하나하나가 사람의 뼈와 근육과 피와 살의 빛 을 내며 덩어리가 되죠. 루시안 프로이드의 그림을 처음 본 것은, 물론 엄밀하게는 그림 사진을 본 것이지만. 대학교에 방 문 판매를 오는 화집아저씨의 매대였습니다. 화집아저씨는 책을 뒤적이는 내게 프로이드의 화집 을 본다면 누드화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을 장담하셨죠. 그리고 덩달아 잘 나가는 화집 몇 권을 추천해주셨는데 호크니와 베이컨의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회화과 출신들에게 데이비드 호크니, 프란시스 베이컨, 그리고 루시안 프로이드는 조용한 경외의 대상일겁니다. 회화는 죽었다고 선언 되던 시절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시없을 화면을 보여주었고 그것을 인정받았죠. 그 중에서도 프 로이드는 전통적인 주제인 인물을 모델과 대면한 상태로 그리는 방식을 꾸준히 지속했습니다. 그 의 그림의 단골요소인 회반죽 벽, 오래된 나무 마루, 낡은 철제 침대와 매트리스, 그리고 뒹굴고 난


듯한 이불 같은 것은 실제 그의 작업실 정경이며 그는 모델이 되어줬으면 하는 이들에게 요청을 하 고 그들이 수락하면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정기적으로 함께 작업합니다. 전문 모델이 아니라 작업 을 하며 모델로 인해 엎어지는 작업도 꽤 많다고 합니다. 그가 그린 인물들은 귀가 튀어나왔다면 더욱 도드라지게, 피부가 붉다면 더욱 붉게, 추하다면 추할 특징. 살이 늘어졌거나 턱이 접혔다거나 하는 정작 모델들은 자신의 모습에서 빼고 싶을 특징들에 매달려 꼭 그려내고야 맙니다. 그러한 그림은 모델을 닮기도 하고 왜곡하기도 하여 묘하게 닮은, 묘하게 다른 인물이 됩니다. 모델을 얼마만큼 충실하게 그리냐에 대해서는 모델마다, 또 작가마다 견해가 다를 겁니다. 프로이드의 경우엔 다음 문장을 들어볼 수 있습니다. “자연을 섬기고자 노력하는 미술가는 그저 수행적인 미술가일 뿐이다. 그가 그토록 충실히 복제한 모델이 그림 옆에 함께 걸리지는 않을 것이고, 그림은 단독으로 그곳에 있을 것이므로 작품이 모델 을 정확하게 복제했는지 여부는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우리를 감동시키기 위한 그림은 그저 단순히 우리에게 삶을 상기시키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정확히 삶을 반영하기 위해 그 자체 고유의 삶을 획득해야만 한다.” 마틴 게이퍼드 저 [내가, 그림이 되다]에서 인용된 1954년의 프로이드 글 48p, 108p 그가 의뢰받은 그림을 그린 일은 적다는 점, 그리고 신분이 널리 알려진 모델을 제외하곤 담배를 피우는 사람, 한 남자와 그의 딸, 파란 스카프를 맨 남자 등으로 그림의 제목을 삼은 점과 함께 위의 글들을 참고해 말해보자면 프로이드는 자신이 매력을 느껴 모델로 삼은 개인의 고유함을 인간 자 체의 어떠함으로 그려내려 한 것일 겁니다. 참. 그림 잘 그리면서 글도 잘 쓰네요. 프로이드의 살덩어리 가득한 그림을 보며 받는 많은 좋은 것들 중 하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고민할 바는 더 좋은 그림을 그리는 것에 있음에 초점이 맞춰진다는 겁니다. 물론 사람이 더 좋은 그림에만 고민할 수 있는 것은 무척 사치스러운 일이지만, 갈팡질팡하는 때에 내가 바라볼 큰 덩어 리를 다시금 발견하는 것은 무척 소중한 일이죠. 루시안 프로이드의 초상화 모델이었던 마틴 게이퍼드가 프로이드와 나눈 대화를 책으로 냈는데 그 책이 최근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었습니다. [내가, 그림이 되다]라는 제목입니다. 저자는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인터뷰집을 내기도 했죠. 둘 다 무척 재밌습니다.

글. 그림. 지인 freshdrawing.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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