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난민을 위한 모금 캠페인 보고회 ㆍ 시리아 난민 모금 캠페인 보고 ㆍ 사진으로 보는 시리아 난민촌 이야기
년 3월 9일 (토) 참여연대 카페 통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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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자들 참여연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평화바닥
시리아 난민 모금 캠페인 경과 보고
○ 캠페인 경과 보고 ㆍ
년 11월, 급속히 늘고 있는 시리아 난민들이 겨울 시기 생활의 어려움이 알려지면서 4개 단체를 중심
2012
으로 모금 캠페인 논의 시작.
ㆍ 모금 방식 및 전달 경로를 결정하고 온 오프라인 모금 준비 및 소식 블로그 개설 ㆍ 년 월까지 한시적 모금을 진행 ㆍ 년 월 일 모금액 만원 송금 자따리 시리아 난민촌에 물품 구입과 전달 /
2013
2
201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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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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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금액 집행 내역 ㆍ 모금액 년 ㆍ 월 일 송금 ㆍ 송금 수수료 (2013
2
24
월 8일 현재)
3
원
: 2,756,932
원 (여성속옷 3600여장 구입 및 지원)
: 2,500,000
원
: 1,000
○ 모금에 참여해 주신 분들 김미정 김영희 김용엽 김은수 김정윤 남궁모금 남오성 마나르 박유진 산초 성혜란 송철호 심용훈 염창근 유 은정 이예정 이유경시리아난민 이은지 이현진 임재화 정소망 정수연 정은영 정준영 정해국 조선주 철가신민 궁시리아돕기 쿠짓티앙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평화바닥 한승희 허철/김민정/가희신궁 헤헤헤
cosmic Jineeya
Kim
이예정 월드비전 해외아동 결연 하고 있는데 이와 같이 한 가정이라도 섬길 수 있게 월
만원 선에서 매월 후원하는
2-3
정기후원으로 발전시켜주세요 정은영 시리아 난민들이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또 어서 편안한 집으로 돌아가 일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 다! 유은정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 시리아 아이들아~ 힘내... 기도할게. 헤헤헤 집 없는 게 제일 서러운디.. 구호물품 사는데 보태어지면 좋겠습니다. 김정윤 응원합니다^^ 김용엽 평화 남오성 태언아 잘다녀와라 이현진 가게에서 매달 3만원씩 모아서 후원하고 있는데 이번달엔 여기에 후원합니다 허철/김민정/가희신궁 시리아 난민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이 함께하기를 정말 바랍니다.....
시리아 난민 지원 보고
1.
전달처
요르단 북부 자따리 시리아 난민촌내 활동 NGO
※
ACTED (http://www.acted.org/en)
ACTED(Agency for Technical Cooperation and Development)
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첫 활동을 시작한
1993
로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다. 인도주의적 관점
NGO
에서 전쟁, 자연재해 등의 사회적위기에 영향 받은 취약층을 지원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30개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요르단에서는 자타리 난민촌에서 물, 위생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2.
지원 품목
여성 속옷 (프리 사이즈)
3.
장
3,600
단체 선정 및 품목 선정 과정
자타리 난민촌 내 의료
인
NGO
(Norwegian Refugee Council)
트를 토대로,
가 운영하는 병원의 총괄 매니저,
PAC(Physicians Across Continents)
NRC
물품배분 관계자 및 의사들과의 회의를 통하여 캠프에서 꼭 필요한 물품 리스
만원이란 한정된 금액으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품목 선정.
250
현재 자타리 난민촌 난민 지원사업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무분별하게 기부된 물품의 품목 중복 (Duplication), 복수 수혜, 기부된 물품을 파는 사람들 등이 있음. 따라서 품목 선정에 다음과 같은 점이 고려되었음. -
난민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
-
현재 난민촌에 들어와 있는 타 단체들과 중복되지 않은 품목
-
한정된 금액으로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는 물건
위와 같은 기준으로 회의 결과, 최초 요청받은 품목은 여성 속옷, 아동 양말, 아동 속옷 등이었음. 그러나 한 정된 금액 문제와 아동 부분에 집중하는 단체들이 많은 점 등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성인 여성 속옷으로 결정. 현재 자타리 난민촌은 요르단 정부가 주도하는 JHCO(Jordanian 고 있음.
JHCO
가 총괄하
Hashemite Charity Organazation)
외에 캠프 내 물품 배분에 관여하는 단체가 여럿 있었음.
는 각종 서류 등 절차상의 복
JHCO
잡성과 비리 문제 등이 있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음. 캠프 내 활동하는 국제NGO 중에 여성 속옷 등 분야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단체가 ACTED였음. 미팅 등을 통해 협력 단체로 선정.
WASH
※ 요르단 내 시리아 난민
UNHCR
통계, 여성 53% 남성 47%
물품 구입 과정
4.
요르단 수도 암만 현지에 각종 도매시장은 ‘와스트 발라드’ 지역에 위치해 있음. 운전기사 겸 코디네이터 역할 을 해준 ‘파우드’와 함께 도매시장을 둘러보며 가격 비교, 가장 저렴한 도매시장 찾을 수 있었음. 시리아산 여성속옷 12장 들이 1봉지가 5JD, 중국산 12장 들이 1봉지가 4.5JD. 시리아산이 좀 더 질이 좋았으나 재고량 부족으로 시리아산 200봉지와 중국산 100봉지를 구입. 총 3,600 장의 여성 속옷 구입.
물품 배분
5.
월 24일(일) 저녁, 구입한 물품을 자타리로 갈 스타렉스 차량에 적재해 두고 2월 25일(월) 오전 8시 출발, 오
2
후 10시 30분 경 자타리 난민촌 도착. 물품을
ACTED
창고에 내리고, 수량 확인 작업 실시 후 확인 증 수령. 추후
는 자타리 캠프 내
ACTED
을 통해 필요 수혜대상 확보 후, 배분 예정.
Womens Association
사용 금액
6.
원
JD
물품 구입 (여성속옷 3600장) 이동 수단(스타렉스) 운전기사 식사비 계 *
※
2,272,556
83
130,084
7
10,970
1540
2,413,610
원 원
36,204
수수료
당시 환율 (1$=1096원,
원
9,864 1JD = 1.43$)
* ATM
수수료 : 이용회수당 3$
으로 뽑은 금액이 500JD씩 3번, 총 1500JD. 차액 40JD.
ATM
원 원
해외 이용 수수료
* ATM *
원
1450
*
해외 이용 수수료 : 총 금액의 1.5%,
기고글 - 프레시안]
[
시리아, 제2의 아프가니스탄 되나 현지통신] 요르단 내 최대 난만촌, 자타리에서는
[
2013-02-26
김태언(팔레스타인 평화연대)
시리아 사람들의 자유에 대한 요구가 정권유지에 눈이 먼 바샤르 알 아사드 정부군의 총에 짓밟힌 지 만 삼 년이 되어가고 있다. 시리아의 소요는 안정되기는커녕 나날이 더 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고 있고, 정부 군-반군 간 교전은 더욱 치열해졌다. 매일 거의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유엔(UN)통계에 따
100
르면 지금까지 내전으로 희생된 사람은 6만 명, 실제로 실종자와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케이스를 고려하면 그 수는
만 명까지 치솟는다. 시리아 반정부군에 참여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20
반정부군에 대한 외부의 지원이 증가해 교전이 치열하지는 상황에서, 고통받는 대상은 힘없는 민간인이다. 소 위 중동에 분 '아랍의 봄' 바람에 정권이 붕괴된 주변 국가들과 달리 시리아의 경우는 분쟁이 장기화되고 내 전의 양상을 띤지 오래다. 사우디아라비아, 리비아 등 외부 용병의 유입이 증가하여 내전이 더욱 치열해지면 서, 시리아가 제2의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가 될 것이라는 우려는 점점 더 현실화되고 있다.
▲ 요르단 내 시리아 최대 난민촌 자타리 ⓒ김태언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발생한 난민은 유엔난민기구(UNHCR)에 공식 등록된 수만도
만 명을 훌쩍 넘었고,
70
등록되지 않은 인원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200만 명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주로 시리아와 국경을 맞댄 요 르단, 터키, 레바논, 이라크와 이집트로 피난을 간 사람들은 비좁은 난민촌에서 극단적인 날씨와 부족한 식량, 물자 등으로 고통 받고 있다. 목숨을 걸고 위험한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은 시리아를 벗어나서도 또 다른 장애 물과 고통을 겪어야 했다.
시리아에서 남쪽에 국경을 맞댄 요르단은 공식 집계 24만 명이라는, 가장 많은 수의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인 국가다. 난민촌의 수와 시설이 한정된 터키는 최근 들어 난민의 유입을 제한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더 많은 수의 난민이 요르단과 레바논으로 유입되었다. 매주 거의 7000명에 달하는 난민이 요르단으로 넘어오기 시작 하면서, 요르단 북부 자타리 난민촌과 주변 난민촌의 수용 능력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고, 천문학적 규모의 국 제사회 지원도 그 수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인 현실이다. 현재 요르단 북부에는 공식적으로 4개의 난민촌이 있다. 그 중 가장 큰 규모는 마프락 지역의 자타리 난민촌 으로 현재 수용인원은 공식적인 수치와 달리, 대략
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자타리 난민촌 외 람사 지역
15
에 킹 압둘라 파크 난민촌 그리고 사이버시티 난민촌 등이 있는데 각각 수용규모는 700~900명 정도이다. 요르단으로 넘어온 시리아 난민은 크게 두 부류로 구분된다. 공식적으로 여권을 가지고 국경을 넘어 요르단 내 통행이 자유로운 난민, 그리고 여권 없이 비공식적으로 국경을 넘어 통행이 자유롭지 못한 난민이다. 후자 의 경우에는 국경을 넘자마자 요르단 군인에게 인도되어 트럭으로 바로 자타리 난민촌으로 보내지게 되는데 대부분의 난민이 이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시리아에서 공식적으로 요르단 국경으로 가는 길은 매우 위험하 다. 또한 국경에 도착해도 시리아 군이 통행을 허가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그나마도 한 달 전에 국경이 봉 쇄됐다. 따라서 현재 요르단으로 넘어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걸어서 국경 근처로 간 후 주로 시리아군의 감 시가 허술한 밤에 국경을 넘는다. 시리아 난민들에 따르면 자타리 캠프로 보내진 난민은 공식적으로는 캠프를 떠나는 게 허용되지 않았다. 난민 촌에 도착하면 UNHCR에 난민신청을 하고, 대략 2주~3달에 거쳐 난민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하지만 17만 명 의 난민을 통제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난민들은 자타리 캠프내의 혹독한 추위, 안전 등의 이유 로 밤에 몰래 자타리 캠프를 빠져나가 이르비드, 람사, 자르카, 암만 등의 도시로 가서 정착하는 경우가 많았 다. 캠프 안에 있으면 식량, 물자 등을 캠프 내에 있는 구호단체 등에서 얻을 수 있지만 도시로 나간 난민들 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큰 도시 내에 있는 시리아 난민을 돕는 단체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 수는 매우 제한적이고, 물가가 비싼 요르단에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다. 자타리 난민촌은 요르단 북부도시 마프락에서 동쪽으로 10키로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의 사막 기 후는 2월의 날씨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햇볕은 뜨거웠고 바람은 매서웠다. 자타리 캠프 입구엔 두 개의 검문 소가 이중으로 둘러져 있었는데 번잡한 택시, 트럭, 상인 등이 한데 엉켜있는 것이 국경지대를 떠올리게 했다. 철조망 근처에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담배를 피고 있었고 입구 주변에서는 갓 도착한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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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이 매트리스, 음식 패키지 등을 받고 있었다. 자타리 캠프는 원형으로 캠프를 둘러싼 도로가 있고, 그 바 깥쪽으로는 난민이 캠프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중무장 한 군인이 300미터 간격으로 지키고 있었다. 사람들은 가족 당 3평정도 되는 천막 혹은 운이 좋은 경우 새로 지어진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캠프를 가로 세로로 크게 가로지르는 주도로를 따라 각 종류의 상점이 늘어서 있었는데 그 종류는 담배, 과자, 과일류부터 휴대전화, 샌드위치 가게까지 그 종류가 다양했다. 심지어는 중동 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물담배 를 파는 카페까지 있었는데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은 모두 시리아 난민들이고 이들 물건은 주변도시 람사에서 온다고 했다. 캠프의 특성상 모든 물건은 도시보다 비쌌고 유통기한이나 신선도 등 질은 매우 떨어졌다. 캠프
내부에서 일하는 구호단체 직원은 위생 등의 이유로 캠프 내에서 그 어떤 음식도 사지 말 것을 충고했다.
▲ 자타리 난민촌 내 상점 ⓒ김태언 캠프의 규모는 어마어마했고 그 안에 각국 정부, 구호단체 등에서 만든 각종 병원과 시설 등은 하나의 도시를
·
방불케 했다. 끝없이 늘어져 있는 모래 위 텐트 주변에는 변변한 배수, 오 하수 처리시설 등이 없었다. 비가 오면 곧바로 홍수로 이어졌고, 오 하수 시설 부족과 물 부족으로 인해 설사 등 각종 전염성 질환이 만연했다. 자타리 캠프 내의 한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여름이 되면 캠프 내의 각종 전염병 창궐이 심각해질 될 것이라 귀띔했다.
년 6월에 자타리 캠프가 문을 열 당시 1만 명에 불과했던 난민 수가 올여름엔 20만 명이 넘을
2012
것으로 예상되고, 사막 기후의 뜨거운 여름에 별다른 위생시설이 없는 천막에서 5명이 넘는 한 가족이 모두 생활한다는 것은 각종 질병을 불러오기엔 충분한 조건이었다. 인구밀도가 매우 높고, 빈곤한 도시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큰 규모의 난민촌에는 놀 것이 없어 구호물자를 시 설을 실은 트럭에 올라타고 돌을 던지는 어린아이, 멍하게 눈이 풀린 젊은 청년, 전쟁에서 부상을 입어 몸이 불편한 사람, 외국인이 신기해 말을 거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구호물자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받기 위해 쟁탈전을 벌이고, 난민신청을 위해 선 긴 줄에서의 다툼 등 암울한 '기운' 외엔 긍정적인 활기를 찾 아보긴 힘들었다. 난민촌을 둘러보는 동안 나에게 소리를 지르며 때리려는 사람이 셋이나 있었다. 이들은 아사드를 돕는 중국인 을 죽여버릴 것이라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중국인과 한국인을 외적으로 잘 구별하지 못하는 그들의 눈에는 내 가 중국인으로 보였던 것이다. 주변사람들이 겨우 뜯어말리고서야 나에게서 떨어진 그들의 눈빛은 증오와 분 노가 가득했다. 자타리 난민촌 내에는 질서를 유지하는 군인, 경찰이 한 명도 없었고, 전쟁에서 갓 빠져나온 사람들로 가득 찬 난민촌 내에는 구타, 살인 등 각종 폭력이 만연했다. 시리아 난민의 90%가 트라우마를 가지 고 있었고, 빈곤 등 각종 열악한 상황에 시리아 난민은 고통은 지속되고 있었다. 전쟁은 중동에서 가장 순수 하고 친절하기로 유명했던 시리아 사람들의 가슴속에 깊은 상처와 고통을 남겼다.
기고글 - 프레시안]
[
전쟁터 난민 여성, 비참한 생계형 성매매 실상 현지통신] 혼란의 자타리 캠프, 전쟁의 피해자는 여성
[
2013-03-01
김태언(팔레스타인평화연대)
자타리 캠프에는 약 15만 명 정도의 시리아 사람들이 임시 거주하고 있다. 시리아 난민 캠프 중에서 가장 큰 규모다. 캠프 내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많은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다. 캠프로 통하는 모든 구호물품과 기 부금을 요르단 정부 관련 자선단체가 독점하여 관리하다 보니 기부금이 온전히 난민에게 가지 않는 문제를 비롯한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고, 거대 규모의 캠프 내 치안문제도 심각했다. 비록 캠프에 형식적으로 군인과 경찰이 존재해 있었으나 주로 캠프 외곽 경비, 구호인원 보호 등 임무가 제한적이었고 그 수도 충분치 않아 캠프 내부는 공권력의 부재에 따른 각종 범죄가 심각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캠프 내부에서의 폭행, 살인 등 의 폭력사건이 만연했으며 알콜, 마약 등의 약물 밀수도 이뤄지고 있었다. 그런데 캠프 내부의 문제점에 대해 직접 자타리 캠프를 방문하고 캠프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알게 된 사실은 거친 캠프환경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 여성이라는 것이었다. 캠프 내부의 문제점에 대해 보다 자세 한 상황을 알기 위해 캠프에서 오랜 기간 일하고 있는 구호직원 다수와 익명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조혼, 난민촌에서는 더 어린 나이에 요르단 내 시리아 난민 대다수는 시리아 남부 도시인 다라의 농촌 출신이었다. 오랜 기간 전통적으로 조혼문 화가 발달한 시리아 남부 출신 사람들의 문화는 전쟁 이후 캠프에 와서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캠프 내 여성 부문을 담당하는 직원에 따르면 불안정한 미래와 경제 상황의 악화로 인해 지참금이 저렴해지고 캠프 내 강 간 및 성추행 등 각종 성범죄에 대한 두려움으로 어린 나이에 여자아이를 결혼시키는 부모가 많아졌다고 했 다.
살도 결혼하기에 어린 나이는 아니었고 캠프 내에서 14,
12, 13
살 정도밖에 되지 않아 보이는 여자아이
15
가 아이 둘, 셋을 낳아 데리고 다니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게 됐다.
▲ 요르단 내 시리아 최대 난민촌 자타리 ⓒ김태언 난민 여성 두 번 울리는 위장결혼 예전부터 시리아 여성은 중동지역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했고 많은 중동 국가 남성들의 이상형이었다. 이들이 난민으로 요르단에 몰려들면서 이들의 절박한 상황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바로 위장결혼이다. 캠프 에 정통한 여러 명의 관계자로부터 들을 수 있었던 공통된 이야기는 아랍 주요 산유국의 부유한 사람들이 일 정 금액의 기부금 전달 명목으로 자타리 캠프에 방문해 캠프를 둘러보며 마음에 드는 여성을 물색하고, 선택 한 여성의 가족에게 결혼을 약속하고 지참금을 지불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선택된 예비 신부에게 외국에서의 화려한 삶을 약속했지만, 요르단 내 도시에 집을 단기간 임대하거나 호텔로 데려가 1주~1달간의 동거 생활을 한 후 여성을 홀로 남겨두고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대부분의 가족들은 절박한 경제 상황과 난민으로서의 특수 상황 때문에 공식적인 결혼 문서 없이 구두로 약속한 결혼을 믿고 딸을 보냈지만 결국은 버림받는 고통 을 안게 된 것이다. 난민 생활에 위장결혼까지, 이들 여성은 이중고통을 받게 됐다. 아무 데도 갈 곳이 없고 의지할 곳이 없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캠프에 있는 가족에게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 고, 여성의 정조를 특별히 중요시하는 이들 문화에 의해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수치스럽게 살아가 게 된다. 이와 같은 경우는 2012년 여름 캠프 초기에 특히 많이 발생했으며, 캠프의 인구가 거의 10배 넘게 증 가한 지금까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공식적인 법적 절차 없이 구두로 약속한 위장결혼은 피해 여성들을 구제할 방법이 없어 결국 결혼을 빙자한 성매매나 다름없게 돼버렸다.
생계형 성매매 성매매는 자타리 캠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업 중 하나였다. 어느 사회나 성매매가 없는 곳은 없다고 하지만, 이슬람교의 영향이 강하게 미치고 있던 보수적인 시리아 남부에서 성매매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자타리 캠프에서 발생하고 있는 성매매의 성격은 절대적으로 생계형이었다. 남편을 전쟁으로 잃고 홀로 남은 여성은 많은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성을 팔기 시작하였고, 좁은 캠프 내부의 보수적인 사회에서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캠프 내 갱조직의 관리를 받기 시작했다. 난민촌 내부에는 성매매 전용 컨테이너 가 있었으며, 여성들은 남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밤에 몰래 자기 텐트에서 이 컨테이너로 이동하였다. 이런 조직적인 성매매 외에도 드문 경우로 가족의 가장이나 남자 형제가 성매매를 알선한 경우도 보고됐다.
성폭력 위험에 노출돼 있는 자타리 난민 여성들 공식적으로 자타리 캠프 내에는 경찰이 없고 난민 중에는 범죄자, 스파이, 군인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이 모 여 있기 때문에 범죄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었다. 전쟁터에서 갓 벗어난 사람들로 가득한 캠프에서는 폭력과 혼란은 일상이 되어버린 듯했고 성폭력도 그 일부였다. 자타리 캠프 내 여성 의료인에 따르면 캠프에서는 시 리아에서 친정부군 민병대에 강간을 당하고 캠프로 온 사람들뿐 아니라, 캠프 내부에서 강간을 당한 경우도 꽤 많았으며 대부분의 경우 밤에 발생했다.
난민촌 캠프 특성상 간이 화장실과 샤워실은 거주용 텐트 바깥에 일정 간격으로 있었고 식수 탱크도 200미터 에 한 대씩 있었다. 음식을 준비하거나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는 텐트 바깥으로 나가 상당한 거리를 걸어가야 하는데 많은 경우 이때 성폭행이 발생했다.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성을 가문의 얼굴로 생각하는 이들 문화에 집안 여성의 성폭행은 가문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당하는 것이었다. 피해 여성들은 성폭행 사실을 가족에게 알릴 경우 가족의 남자 구성원에게 살해당할 것이 두려워 자신의 피해 상 황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따라서 성폭행범에 대한 처벌이나, 캠프 내 성폭행에 대한 공식 집 계도 거의 불가능하다. 여성들은 이런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의 시간을 텐트 내부에 머물러 있고, 화 장실이나 샤워도 가족끼리 함께 가서 차례로 볼일을 본다. 이러한 캠프 내 여성에게 매우 가혹한 환경 때문에 부모들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딸들을 일찍 결혼 시키거나, 몰래 캠프 바깥으로 빠져나가 도시로 가기도 한다. 시리아의 문제는 시리아 내부의 전쟁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을 한곳에 몰아넣은 이곳 자타리 난민촌은 그 인구만큼이나 벌어지고 있는 일들도 다양했다. 전쟁은 사회를 보수적으로 만들었고, 여성을 더욱 억압하고 남성에 종속되게 만들었다. 사람들을 극단적인 광기로 몰아넣은 전쟁에 난민촌의 특수상황까지 더해져 자타리 난민의 여성들은 더욱 불리한 환경에서 생활하게 됐다. 결국 시리아의 전쟁에서 가장 크게 고통을 받는 이는 바로 이들 여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