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 전망
일시
2017년 7월 18일 (화) 오후 2시
장소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한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 전망
사회 - 안정애(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공동대표) 발제 - 한미정상회담평가와 한반도 정세 분석_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토론 - 강태호 (한겨레 평화연구소장) - 김상기 (통일연구원 국제전략연구실 부연구위원) - 박순성 (동국대 교수,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연구기획위원) - 윤은주 (평화통일연대 사무총장) -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한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비판적 평가와 새로운 출발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1. 한미정상회담 이전 상황 많은 기대와 우려, 그리고 요구가 교차했던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 령의 첫 한미정상회담이 끝났다. 문재인 정부는 정상회담 준비 및 워싱턴 방문 중 에 대북정책 및 사드와 관련해 미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이번 정상회담은 큰 마찰 없이 끝났다. 정부는 물론이고 상당수 언론도 이번 정상 회담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지만, 냉정하게 짚어봐야 할 대목들도 적지 않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한국의 주도권’을 인정받았다는 평가가 많지만, 그 주도권 앞에는 ‘미국의 범위 내에서’라는 전제조건이 아른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 정상회담 및 그 이후 상황을 평가하기에 앞서 정상회담 이전에 한미 양국의 대북정책 방향부터 복기할 필요가 있다. 2017년 1월 출범 직후부터 대북정책 재 검토에 착수한 트럼프 행정부는 4월 26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의 공동 명의로 대북정책 합동성명을 발 표했다. 성명에선 북핵 문제를 “국가안보에 대한 긴급한 위협이자 외교 정책의 최 우선 순위”라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경제 제재 강화와 동맹·파트너들과의 외교적 조치를 추구해 “북한이 핵·탄도미사일, 그리고 핵확산 프로그램을 해체하도록 압 력을 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력 사용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대신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로운 비핵화를 추구한다”며, “우리는 그 목표를 향해 협상의 문을 열어두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과 동맹국들을 방어 할 준비가 돼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5월 3일에 틸러슨은 국무부 직원 대상 강연에서 이른바 '4 No' 입장을 밝혔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서 정권 교체나 체제 전복, 인위적인 한반도 통일 가속화를 꾀하지 않으며, 북한의 영토를 침범할 의사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 서 “미국은 조건만 맞는다면 언제 어디서나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그러나 협상 테이블로 가기까지의 조건을 만든다는 목적으로 (북한과) 협상할 생 각은 없다”고 밝혔다. “올바른 조건이 형성되었을 때에야 미국은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것”이라는 입장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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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6자 회담을 비롯한 다양한 양자·다자회담을 적극 활용해 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를 구축하겠다”며, “북한 핵 폐기에 따라 한 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제시했다. 그리고 조속한 안보 위기 해소를 다짐해온 문재 인 정부는 5월 10일 출범 직후 주변국들에 특사를 파견하고 외교안보 책임자를 일부 임명·지명하면서 정책과 진용을 가다듬고자 했다. 특히 미국과 북핵 공조를 재설계 하는 데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와 관련해, 한미 양국은 5월 16일 청와대 외교안보 T/F 팀장 정의용 전 대사 (현 국가안보실장)와 매튜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 관이 회담을 갖고 네 가지 합의 사항을 내놓았다.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가 궁 극적 목표 △제재와 대화를 포함한 모든 수단 동원 △북한과는 올바른 여건이 이 루어지면 대화 가능 △과감하고 실용적인 한·미 간 공동 방안을 모색이 바로 그것 들이다. 이후 한미간의 대북 정책 공조는 이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 28일 워싱턴 행 전용기에서 ‘북핵 2단계 해법’을 비교적 구 체적으로 밝혔다. 그 내용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조건부 대화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과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데 대화의 조 건이 갖춰져야 한다”며, “최소한도로 북한이 추가적인 핵과 미사일 도발을 하지 않고 핵 동결 정도는 약속을 해줘야” 한다는 점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둘째, ‘행동 대 행동’의 접근법이다. 문 대통령은 “핵 동결을 핵폐기를 위한 대화 의 입구라고 생각하면 핵동결에서 핵폐기에 이를 때까지 여러 가지 단계에서 서로 가 ‘행동 대 행동’으로 교환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가 1단계 목표로 제시한 북한의 핵동결에 대해서는 “나쁜 행동에 대한 보상은 아니면 서 한미가 북한에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 다. 구체적인 “보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고, “북한의 핵동결과 한미 군사훈 련은 연계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공식적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2단계, 즉 “북한이 기왕에 만든 핵무기와 핵물질을 모두 폐기하는 단계로 갔을 때 한미가 무엇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조명균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6월 26일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 “평화협정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핵심” 1) U.S. Department of State -Diplomacy in Action, Remarks to U.S. Department of State Employees by Rex W. Tillerson, May 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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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며 “평화협정은 북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 단계에서 체결되어야 한다”는 입장 을 밝힌 바 있다.2) 셋째, 검증이다. 문 대통령은 “각 단계의 하나하나가 완벽히 검증돼야 한다”며 “서로 검증이 확실히 될 때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단계적이면서 도 철저한 검증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끝으로 일종의 경고성 ‘플랜 B'이다. 이는 북한이 핵동결, 더 나아가 핵폐기 약속 을 해놓고 이를 지키지 않았을 때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북한이 합의를 파기하고 다시 핵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국제사회에게 완전히 고립돼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더라도 명분을 세워주게 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러한 문 대통령의 ‘북핵 해법’이 문재인 정부의 독자적인 판단에서 비롯된 것인 지,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과의 대북정책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에서 나 온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아마도 두 가지 모두가 종합된 결과가 아닐까 한다. 하 지만 나는 역부족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중요한 문제 몇 가지만 거론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문재인-트럼프의 대북공조는 이명박·박근혜-오바마의 ‘전략적 인내’가 실패했 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두 정상 역시 “전략적 인내는 실패했다”고 여러 차례 공 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문재인-트럼프의 대북공조도 ‘전략적 인내’의 틀에서 맴돌고 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험 중단 및 “핵동결 약속 표명”을,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의미 있는 조처를 하고 도발을 자제하는 것”을 대화의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화의 전제 조건을 달고 있다는 점에서는 거의 일치한다. 기실 이러한 내용은 한미 양국의 ‘전략적 인내’ 시기에 지겹도록 반복되어온 것이 다. 그 결과는 대화의 문은 더욱 굳게 닫히고 북핵은 나날이 고도화된 것이었다. 진정으로 ‘전략적 인내’를 극복하고자 한다면, 대화를 통해 달성해야 할 목표를 대 화의 전제조건으로 삼았던 과거와 결별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 를 제안하는 것은 그 출발점에 해당된다. 문재인 정부가 꼭 유념해야 할 대목이었 다.
2) <연합뉴스> 2017년 6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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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한미 양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나쁜 행동”, “악행”, “불법”, “도 발”로 규정하고 이를 공식화하면, 역설적으로 한미 양국의 선택지가 좁아진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규정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시 대북 제재와 압박 을 강화해야 한다는 근거로 작용한다. 거꾸로 북한이 이런 행동을 중단해도 한미 양국이 군사훈련 축소나 중단과 같은 상응조치를 “악행에 대한 보상”으로 간주하 면서 그럴 의사가 없다는 입장 표명으로 이어지고 만다. 그 결과는 ‘전략적 인내’ 시기에 똑똑히 봐왔다. 그런데 위에서 소개한 문 대통령의 발언도 이러한 악순환 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새로운 출발은 이러한 반성에서 비롯될 수 있다. 북핵에 대해 도덕적·규범적 이름 짓기로 한미 양국의 선택지를 좁히기보다는 북한에 핵과 미사일이 아니라 ‘다른 방식에 의한 안보’가 가능하고 더 우월하다는 점을 주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여 제재와 국제적 고립화를 통한 “최대의 압박(maximun pressure)”은 ‘대북 협상을 통한 최대의 압박’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방향 전환이 한미 양 국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안겨줄 것이며, 실질적인 성과도 가져올 수 있다. 그러 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방향 전환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셋째, 검증 문제 역시 지혜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역설한 철저한 검 증의 당위성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당위적인 것이 비현실적인 경우가 많은데, 이게 바로 북핵 검증에 해당된다. 예를 들면 이렇다. 북핵 동결 및 검증 논의가 시작되면 당장 불거질 문제가 바로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의 존재 여부 이다. 이 시설은 은폐가 대단히 용이하기 때문에 북한 전역을 샅샅이 사찰하지 않 는 한, 철저한 검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미 양국과 “기술적으로 교전 상태에 있는” 북한이 전면적이고도 강제적인 사찰을 수용할 가능성도 극히 낮다. 그래서 필요한 게 바로 북미간의 적대적인 관계의 평화적인 관계로의 전환이다. 즉, 한미 양국이 군사훈련 하향 조정 및 평화협정 체결에 보다 능동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북한의 검증 체계에 대한 대폭적인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2. 한미정상회담 평가 6월 29-30일에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지만, 나는 첫 단 추를 잘못 꿰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한국의 주도권’을 인정 받았다는 평가가 많지만, 그 주도권 앞에는 ‘미국의 범위 내에서’라는 전제조건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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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공동성명의 내용을 보면 이러한 분석이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 저 언론 보도와는 달리 한미정상회담에선 북한에 어떠한 대화 제의도 없었다. 회 담의 결과는 문서가 말해주고 그 문서의 핵심은 공동성명이다. 공동성명에선 “북 한과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고 하면서도 그 앞에 “올바른 여건 하에서”라는 전제 조건을 달았다.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고 최소한 핵동결이나 더 나아가 비핵화 의사를 보이면 한미 양국이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걸 두고 대화 제의라고 할 수는 없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주의적 사안을 포함한 문제들에 대한 남북간 대화를 재개하려는 문 대통령의 열망을 지지하였다”고 한 부분과 관련해 “한국이 운전대 에 앉게 되었다”는 평가가 많다. 문 대통령도 베를린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통일 환경을 조성함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주도적 역할을 지지했고, 남 북대화를 재개하려는 나의 구상을 지지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 이 면에는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는 북핵 문제 해결에 상당한 진전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문재인 정부의 입장 표명이 깔려 있다. 오히려 냉정하게 평가하면, 한미정상회담에선 ‘대화 제의’와 ‘한국의 주도권 합의’ 보다는 한미동맹 강화와 군비증강, 그리고 대북 제재 유지 및 강화 방침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먼저 양 정상은 “모든 국가 역량을 활용하여 확장억제력을 강화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는 내용적으로 미국의 핵우산과 재래식 군사력, 그리고 미사 일방어체제(MD) 강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공동성명에는 “대한민국은 상호운용 가 능한 킬-체인,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KAMD) 및 여타 동맹 시스템을 포함하여, 연합방위를 주도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방어, 탐지, 교란, 파괴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 군사 능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해 나갈 것이다”라고도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다. 공동성명에는 “양 정상은 한미일 3국 안보 및 방위협력 이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여 억지력과 방위력을 증진시키는데 기여하고 있음을 확 인”하면서 “이러한 협력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핵심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한미동맹이 공동의 적으로 삼고 있 는 북한을 상대로 “모든 국가적 역량을 활용하여” 군사력의 강화 방침을 밝히면 서, 그리고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하겠다고 하면서, 북한에 핵과 미사일을 내려 놓으라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 접근법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대북 제재와 관련해서도 근본적인 성찰을 요한다. 한미 공동성명에선 북한의 도발 행위 중단 및 대화로의 복귀를 위해 최대의 압박 전략으로 “기존 제재를 충실히 이행하면서 새로운 조치들을 시행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제재 위주의 접근이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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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북한으로 하여금 “피해 의식과 피포위 의식”을 더 욱 강화시켜 생존 수단으로서의 핵무기에 더욱 집착하게 만든다는 데에 있다. 즉, 북한이 감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제재가 부과되어도 김정은은 핵 포기보다는 ‘제2의 고난의 행군’으로 맞설 공산이 크다. 흔히 문재인 정부의 북핵 대처는 ‘제재와 대화의 병행론’으로 설명되곤 한다. 그러 나 이는 진실과 거리가 멀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대북 제재는 ‘현재 진행 형’이다. 반면 대화는 ‘조건부 미래형’이다. 이렇게 시차가 있고 조건도 걸려 있는 데 이를 두고 ‘제재와 대화의 병행’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엄밀히 말해 ‘선 제재, 후 대화’라고 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한미 양국에 조건부 대화에 집착할 수록 북한은 그 조건으로부터 멀어져왔다는 것이다. 북한의 ICBM 발사가 이를 여 실히 보여준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가 9년 넘게 실종되었던 한중 공조체계 복원에 이렇다 할 성과 를 내지 못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이는 비단 사드 문제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 니다. 문재인 정부는 중국이 제안한 쌍중단 및 조건 없는 대북 대화를 사실상 거 부하고 말았다. 이에 더해 북한의 ICBM 발사 이후에는 “중국이 북한을 더욱 강하 게 압박하고 제재해야 한다”는 미국 및 일본의 입장과 함께 하고 있다. 한중간에 사드 갈등은 여전한 상태에서 대북 정책 공조마저도 이뤄내지 못하고 있는 셈이 다. 한미공조 및 한미동맹 강화에 치우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조건부 대화론, 대북 제재 유지와 강화, 확장억제력을 비롯한 한미연합 전력의 강화 및 한미일 군사협력 추진, 중국의 대북 압박 및 제재를 통한 북핵 해 결 추구 등은 이명박·박근혜-오바마 행정부 시기의 접근법과 거의 일치한다. 문재 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략적 인내는 실패했다”고 선언했지만, 정 작 두 정부 역시 실패한 정책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다. 한미 양국에서 정권은 교 체되었지만, 정책은 거의 바뀐 게 없는 셈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3. 악순환의 반복이 잉태하고 있는 우려 사항들 한미정상회담과 북한의 ICBM 발사, 그리고 G-20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문재인 정 부의 통일외교국방정책은 중대한 갈림길에 서게 됐다. 문 대통령의 정상외교에 대 해서 긍정적인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기실 냉정한 평가는 문 대통령 입을 통해 나왔다. 7월 11일 국무회의에서 “우리가 뼈저리게 느껴야 하는 것은 우리에 게 가장 절박한 한반도 문제인데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해결할 힘이 있지 않고 우리에게 합의를 이끌어낼 힘도 없다는 사실”이라고 말한 것이 이에 해당된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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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를 잡겠다는 다짐으로 시작된 정상외교가 자괴감의 토로로 일단락된 셈이다. 핵문제는 근본적으로 북미간의 사안이다. 또한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반 동안 쌓여온 적폐, 핵보유국을 향한 북한 김정은 정권의 고집스러운 행보, ‘거대한 럭비 공’ 트럼프 행정부, 우경화로 치닫고 있는 일본의 아베 정권, 중국과 러시아의 전 략적 결속, 국내 보수 언론과 야당의 공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이러한 절 망감을 토로하는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정부 정책에도 문제점은 없 는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조속히 정책 전환을 하지 않으면 감당하기 힘든 상황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몇 가지 우려 사항을 제기 할 수 있다. 첫째, 문재인 정부가 공언했던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발전의 선순환’이 있어 야 할 자리를 ‘북핵 문제 악화와 남북관계 정체 내지 악화의 악순환’이 차지할 가 능성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제적인 대북 제재 국면에서도 인도적 사안 및 민간·스 포츠 교류 분야에 있어서는 최대한 유연성을 발휘하려고 한다. 하지만 북한은 이 들 사안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남측이 대북 제재에 동의하는 상황에선 응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이다. 북한은 개발협력과 남북경협의 본격적인 재개에 대 해서는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높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들 사안은 북핵 문제 해결 에 진전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북핵 해결에 진전을 도모하기가 대단히 힘든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가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고 평가하는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는 북핵 해결의 진전이 남북관계 복원에도 중대한 관문이라고 생각했다 면, 이에 걸맞게 돌파구 마련에 힘써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북한의 ICBM 발사 이전에도 북한이 수용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요구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했 고, 북한의 ICBM 발사 이후에는 추가 제재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에 따라 유엔 안보리에서 추가적인 대북 결의가 나오고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지지하는 입장을 밝히면, 상황은 더욱 꼬이고 어려워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이 러한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남북관계는 제로 상태에서 서성거리고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북핵 고도화의 완성, 즉 북한이 핵탄두를 장착한 ICBM 보유나 이를 저 지하기 위한 미국의 군사옵션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있다. 남북경협과 유라시아 대 륙으로의 진출을 통한 한국의 신성장 동력 확보 비전도 공염불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둘째, 한반도 문제의 ‘자주성’은 더욱 위축되고 ‘국제화’가 가속화될 위험이 크다. 북핵 위협 대처를 이유로 한미동맹 및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하면, 이는 북한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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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우려도 자극하는 속성이 있다. 사드 논란이 대 표적이다. 사드를 비롯한 미사일방어체제(MD)를 고리로 삼아 한미일 군사협력이 강화될수록, 중국과 러시아는 ‘한반도 안정과 평화, 비핵화,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이라는 기존의 한반도 정책에 ‘전략적 균형 유지’라는 우리에겐 새롭고도 낯 선 목표를 추가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미일 대 중러 사이의 전략적 갈등 은 더욱 격화되고 만다. 이 와중에 세력균형과 전략적 균형을 중시하는 중국과 러 시아의 북한에 대한 태도가 바뀔 수도 있다. 1980년대 말부터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한국이 주도적이고 자주적인 위치를 넓힐 수 있었던 데에는 미소간의 냉전 종식과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에 따른 한소, 한 중 수교에 힘입은 바가 크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한미동맹을 중시하면서도 남 북관계 개선과 균형외교를 펼친 것도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제고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에 부활할 조짐을 보였던 동 북아 냉전 구도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물론 관성의 법칙이 큰 탓일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선택도 이에 한몫하고 있다. 사드를 배치 키로 한 “동맹 차원의 결정 존중”,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합의, 한반도 문제 해결 을 위한 한중 공조 복원 미미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렇듯 동북아 신냉전의 도래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기란 더욱 어려워진다. 위안부 문제 등 한일 과거사 문제 의 전향적인 해결도 난망해질 것이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위안부 합의”의 이 면에는 과거사를 털고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가자는 미일동맹의 전략이 깔려 있었 다. 이에 따라 한미일 안보협력의 강화, 즉 사실상의 3자 동맹 추세는 위안부 문 제 해결 노력과 충돌하게 된다. 셋째, 문재인-트럼프가 합의한 ‘위대한 동맹’이 한국에겐 ‘위험한 동맹’으로 귀결 될 우려가 크다. 공동성명을 통해 두 정상은 “한미 동맹을 더욱 위대한 동맹으로 만들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6월 30일 CSIS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나와 통화에서 한미동맹을 단순히 좋은 동맹이 아니라 ‘위대한 동맹’이라고 강조했다”고 소개했다. 그리고는 “위대한 동맹은 평화를 이끌어내는 동맹”이라고 역설했다.3) 하지만 트럼프의 생각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문 대통령과 회담에서 “한국은 미국 방위산업업체에서 매우 대량의 무기들을 구매하 고 있다(give big orders). 록히드 마틴에서 F-35 전투기를 구매했고, 유례없이 많은 양의 군사 장비들을 구매하고 있다. 그건 아주 좋다”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3) http://www1.president.go.kr/news/speech.php?srh%5Bview_mode%5D=detail&srh%5Bseq%5D=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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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을 “위대한 동맹”이라고 치켜세운 데에는 이러한 장삿속이 반영된 것이라 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이처럼 트럼프 행정부는 ‘북핵 공포 마케팅’을 앞세워 한미동맹을 돈벌이 수단으 로 이용하려고 한다. 미국의 이런 행태는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트럼프처럼 노골적이고도 염치없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 러한 무기 상업주의가 문재인 정부의 자주국방 노선과 만나면서 뜻하지 않은 결과 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현재 GDP 대비 2.6% 수준의 국방 비를 임기 내에 3%로 올리겠다는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만약 이러한 공약이 이 행된다면, 2022년 한국의 국방비는 60조원을 넘나들게 될 것이고,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미국 군수산업체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는 곧 세 가지 동 반 성장의 가능성을 잉태한다. ‘북핵 증강-한국 국방비 증액-미국 무기 판매 증 가’가 악순환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끝으로 전쟁 가능성이다. 이는 두 가지 차원에서 검토할 수 있다. 하나는 미국의 대북 예방적 공격 가능성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후의 수단으로 대북 예방적 선 제공격을 옵션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다. 이러한 군사 옵션을 검토할 때, 주한미 군 재배치가 완료되고 한국에 사드 및 X-밴드 레이더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어 떤 차이가 있을까? 이는 한국의 운명을 가를 수도 있지만, 한 번도 진지하게 공론 화되지 못한 질문이다. 미국은 대북 제재나 외교와 같은 다른 수단이 고갈되고 북 한이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보유 문턱에 다다르고 있다고 판 단하면, 예방적 공격을 검토하게 될 것이다. 또 하나는 한미동맹과 중국 사이의 마찰이 커지는 문제이다. 제주해군기지 완공과 가동, 사드 배치, 주한미군 재배치 등은 하나같이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심각한 딜레마를 잉태하고 있다. 더구나 이들 세 가지 문제는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가령 미중간의 무력 추돌 발생시 사드와 함께 배치된 X밴드 레이더가 중국용으로 이용되면, 혹은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중국이 판단하 면, 중국은 이에 대한 군사적 대비책을 준비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 는 엄중하다. 평시에 중국의 군사적 대비는 주한미군 및 해외 주둔 미군도 중국을 겨냥한 활동이 늘어날 것임을 예고해주고, 미중간의 무력 충돌 발생시 한국이 이 에 휘말릴 위험성도 높여주기 때문이다. 4.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요약하자면 이렇다. 한반도 문제가 난마처럼 얽히고설켜 있어 어느 것 하나 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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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대단히 쉽지 않다. 이러한 와중에 문재인 정부는 첫 단추를 잘못 꿰었고 북한 의 ICBM 발사는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신의 한 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법을 찾기 위해 부단 히 노력해야 한다. 이게 우리 국민과 정부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문 재인 정부에 몇 가지 주문을 하고자 한다. 첫째, 대통령의 대북 인식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 하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선거용 발언인지, 아니면 정말 김정은 위원장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는 대통령이 되어야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고 여기고 있는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문 대통령이 한편으로는 평화와 화해 협력의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마지막 기회”,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지 말라”는 식의 표현도 사용해왔다. 북한을 압도할 군사적 능력 확보 도 공언해왔다. 그러나 ‘두려움 주기’는 결코 김정은을 상대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김정 은은 결코 ‘위험 회피형’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재와 대화는 양립할 수 없 다’거나 ‘무력 사용 위협에는 전쟁불사론으로 맞서겠다’는 북한식의 화법과 행동은 김정은 시대 들어 더욱 강해지고 있다. 더구나 '두려움 주기‘로 북한의 선택을 바 꾸겠다는 접근은 미국이 주로 사용해왔다. 그런데 북한은 오히려 핵 고도화를 통 해 미국에 ’두려움 돌려주기‘로 맞불을 놓고 있다. 북한의 선택을 바꿀 수 있는 마 땅한 두려움 주기의 수단이 없고, 또 이를 선택해서도 안 되는 문재인 정부가 대 북 인식-발언-정책을 재검토해야 할 까닭이다. 둘째, 한국의 주도적 역할의 재설정이다. 한국이 조건부 대화론, 대북 제재 지속과 강화, 북한의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중단에 대한 보상 불가, 중국 책임론 제기, 사드 배치 기정사실화 등 미국의 입장에 대부분 동조하는 상황에선 결코 주도적 역할이 불가능하다. 한국이 미국을 견인하거나 독립 변수가 되지 못하면, 북한은 한국을 계속 외면할 것이고 미국과 중국이 서로 치고받는 상황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주도적 역할은 제재 국면에선 결코 확보할 수 없다. 대화가 열려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가 대화의 문을 여는데 우선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직접 당사국들이 조건을 내려놓고 상호간의 관 심사를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다. 조건 없는 대화는 중국과 러시아가 줄곧 요구해왔고, 북한도 6월 20일 계춘영 인도 주재 대사를 통해 “언제든 전제조 건 없이 대화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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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트럼프 행정부를 집중적으로 설득해 조건 없는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한다. “협 상을 통해 북한에 최대의 압박을 가해보자”며 트럼프의 협상 요구를 자극해야 한 다. 그 시점도 유엔 안보리 결의 표결에 앞서 이뤄지는 것이 좋다. 만약 협상의 문이 열리면, 한국의 주도적 역할은 빛을 발할 수 있다. 북미간의 거친 말싸움과 입장 차이를 조율하고, 북미 양측의 요구를 조율하고 상호 만족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면서 진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조속히 남북 군사회담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정 전협정 64돌인 이달 27일을 기해 군사분계선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체 의 적대행위를 중지하자”는 제안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한 군사회담 제의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한편 북한은 작년 5월 제7차 당대회 결정서에서도 남북간 군사당국 회담을 제의한 바 있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정치군사 문 제의 우선적인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북한 사이에 접점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걸려 있다. 우선 군사회담을 먼저 해서 이산가족 상봉 및 평창올림픽의 북한 참가와 같은 다른 현안들의 해결을 도모할 것인지, 아 니면 이들 사안을 포괄적으로 다룰 회담을 추진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또한 의 제의 문제도 있다. 문 대통령의 제의에는 “군사분계선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 키는 일체의 적대 행위 중지”라고 표현되어 있다. 이는 남북 간 확성기 방송과 전 단 살포 중단을 주로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북한의 최대 요구 사항 은 한미군사훈련 중지이다. 또한 서해 문제도 거론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회담 을 누가 먼저 제안할 것인가도 관심사이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볼 때, 문재인 정부는 ‘2+2’ 회담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북한 에 제의할 필요가 있다. ‘2+2’ 회담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및 통일부장관과 북한 의 군 총정치국장 및 통일전선부장이 참석하는 회의를 말한다. 이러한 회담은 남 북관계 현안을 비교적 폭넓게 논의할 수 있고, 박근혜 정부 때 시작되었다는 점에 서 국내 보수 진영의 반발이 상대적으로 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부는 이 러한 회담 제의에 앞서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에 전략 자산 전개를 자제하는 방 안도 미국과 긴밀히 협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전략 자산 미전개 방침을 공식 발표하지 않고 조용히 보내지 않기로 하면 이를 둘러싼 논란도 최소화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다고 갑갑해하기 전에 지난 9년간 외면당해온 방법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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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화이다. 2005년에 채택된 6자회담 9.19 공동성명에선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라고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12년이 지나도록 별도의 포럼은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 다. 한미 양국이 북핵 해결 진전 및 궁극적인 비핵화 달성에 가장 유력한 방법을 외면해온 셈이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북핵문제와 평화체제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으로 완 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에 사라졌던 평화협정을 되살리려는 노력은 분명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보다 구체적이고 혁신적인 방식으로 보완될 필요가 있다. 평화협정은 평화체제의 중요한 제도적 기반이지만 평화체제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평 화협정을 평화체제의 ‘중간 단계’, 혹은 ‘전환기적 단계’로 설정해서 접근할 필요 가 있다. 이는 세 단계로 나누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1단계는 6자회담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 논의 ‘재개’와 남북미중 4자회담을 통한 한반도 평화협정 협상 ‘개시’이다. 이와 더불어 북한은 핵실험과 위성 발사를 포함 한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하고 한미 양국은 군사훈련을 횟수와 규모를 축소 하는 것을 신뢰구축 조치로 삼아야 할 것이다. 2단계는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영구적이고 검증가능한 북핵 동결과 한반도 기본 평화협정 체결이다. 여기서 영구적인 동결은 영변 핵시설 및 풍계리 핵실험장의 불가역적인 폐쇄를 의미한다. 또한 이러한 조치는 검증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인되 어야 한다. 이러한 제안에 대해 세 가지 반론이나 의문이 나올 수 있다. 첫째는 북핵 폐기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북핵 보유를 인정하는 셈이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평화협정에 북핵 폐기 대상, 방식, 시한을 명시하면 이러한 우려는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 둘째는 북한이 검증을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래서 평화협정 체결이 필요하다. 평화협정은 교전 상태의 공식적인 종결을 의미하기 때문에 북한이 검증 요구를 거부할 명분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 이다. 셋째는 복잡하고 어려운 평화협정 체결을 단 시간 내에 할 수 있느냐의 문 제이다. 그래서 ‘기본’ 협정을 제안하는 것이다. 즉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결과 상호 불가침 약속과 같은 원칙적이고 합의가 용이한 내용을 먼저 ‘기본 협정’에 담고 세부적이고 까다로운 문제는 추후에 부속 합의서 형태로 접근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기본 평화협정은 가속화될 수 있다. 이러한 두 단계를 거쳐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완성이라는 3단계로 나아 갈 필요가 있다. 3단계에선 북핵 폐기뿐만 아니라 미국 핵우산의 철수와 남북한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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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의 군축, 북미·북일관계 정상화 등 근본 문제의 해결도 도모해야 할 것이 다. 이러한 접근법은 한미 양국에 훨씬 유리하다. 북핵 동결과 폐기는 기본적으로 되 돌리기 힘들거나 거의 불가능한 속성을 지닌다. 반면 한미 군사훈련을 축소하거나 중단해도 북한의 약속 위반시 언제든 되돌릴 수 있다. 북한이 핵 동결이나 폐기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평화협정을 무효화할 수도 있다. 협상 국면에선 한미 양 국이 쓸 수 있는 카드가 훨씬 많은 것이다. 내가 ‘제재를 통한 최대의 압박’보다 ‘협상을 통한 최대의 압박’을 주장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끝으로 인사 문제이다. 정책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또한 사람이 실행하는 것이 다. 그래서 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사람이 가장 중요하 다. 아직 평가하기에는 이르지만 문재인 정부는 세 가지 문제점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문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를 다뤄온 경험이나 전문성이 풍부하지는 못하다 는 점이다. 또 하나는 현재 외교안보 핵심 인사들이 한미동맹을 지나치게 중시하 고 있는 나머지 미국을 견인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부족해 보인다는 점이다. 끝으로 정부의 정책 검토 및 결정 과정에서 국내 여론과 지지율이라는 정무적 판 단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 통령 본인이 전문성과 비전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하고, 외교안보팀은 미국과 국내 보수 여론을 상대로 ‘눈치 보기’보다는 ‘설득하기’에 방점을 찍어야 할 것이다. 무 엇보다도 외교안보라인의 남은 인사 기용은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향 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정책 재검토와 외교안보라인 정비를 통해 ‘협상을 통한 최 대의 압박’ 전략에 돌입해야 한다. 일각에선 협상 피로감이나 무용론을 제기하지 만, 지금까지 협상다운 협상은 없었다. 그래서 협상이야말로 가장 강인한 자의 선 택이며, 김정은의 전략적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다. 생 각해보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놓고 협상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피곤 할 일이 될 것인가를 말이다. 까다로운 북한과 미국은 말할 것도 없다. 국내 보수 언론과 야당의 반대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한다. 한국 주 도의 해법을 마련해 북한과 미국의 동의를 구해내고 국내 여론도 설득해야 한다. 나는 문재인 정부가 이 몫을 해주길 바란다. 우리 국민을 믿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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