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와 리즈의 서울 지하철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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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와 리즈의 서울 지하철 여행기


찰리와 리즈의 서울 지하철 여행기 1판1쇄 발행 2014년 4월 1일 지 은 이

찰리 어셔

진 리즈 아델 그뢰센

역 공보경

펴 낸 이

김형근

펴 낸 곳

서울셀렉션㈜

기획편집 장우정 디 자 인

정현영

일러스트 주아롬 등

록 2003년 1월 28일(제1-3169호)

소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6 출판문화회관 지하 1층 (우110-190)

편 집 부 전화 02-734-9567 팩스 02-734-9562 영 업 부 전화 02-734-9565 팩스 02-734-9563 홈페이지

www.seoulselection.com

ⓒ 2014 Charlie Usher and Elizabeth Adele Groeschen

ISBN 978-89-97639-45-8 13980 책 값은 뒷표지에 있습니다. 잘못된 책은 구입하신 서점에서 바꾸어 드립니다. * 이 책의 내용과 편집 체재의 무단 전재 및 복제를 금합니다.


차례

8 12 녹사평역

서문 그들의 이야기 서울에서 가장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동네에서는 어떻게 일하고, 놀고, 생활할까

26 동대문역

수수께끼의 도시 서울에서 제일 묘한 동네의 비밀을 조금씩 맛보며

38 여의도역

강둑을 거닐며 한국 경제의 심장부에 피어난 자연

48 종로5가역

예스러운 모습 그대로 현재와 과거가 맞닿는 곳

62 독립문역

과거의 흔적들 식민지 시대의 수난사와 저항정신이 아로새겨진 서대문형무소에서

74 방이역

푸르른 삶 콘크리트 사막 한가운데 펼쳐진 오아시스

84 노량진역

물의 세상 왕실의 음모, 그리고 노량진수산시장의 축축하지만 생동감 넘치는 매력

96 반포역

우리 전에 만난 적 없나요? 우리 집에 잘 오셨어요. 당신 집이랑 똑같이 생긴 집이에요. 어서 들어오세요


102 한성대입구역 외딴 동네를 찾아 성북동에서 문학을 읽다

116 종각역

화려한 불빛 연등 사이를 잉어와 노닐다

126 창신역

냉면, 크레인의 쇳덩이 유배 간 어린 남편을 기다리며

140 강변역

서울이라는 행성의 출구 잠시 떠나거나 아주 가버리거나 혹은 그 중간쯤

148 상계역

상계동 철거민들 한때 내가 거주했으나 잘 알지 못했던 곳을 돌아보며

156 논현역

대로 안팎에서 강남에 공존하는 사뭇 다른 두 세상

162 상수역

오늘은 있지만 내일이면 사라질지도 모르는 늘 변화하는 동네

176 남구로역

스냅사진 우연히 스치고 바라본 장면이 바로 이야기의 시작


차례

184 당고개역

산 아래 동네 이야기 변두리의 시간은 더 천천히 흐른다

192 동대입구역

202 서울역

독립운동 400년을 이어온 자유를 향한 투쟁, 그리고 비영구적인 유산에 관하여

철로의 발자취 수십 년의 세월이 빚어놓은 역과 마라토너의 정체성 변화

214 잠원역

도시 속 전원생활 가을을 걷다

222 학동역

주택 개조 예술 혹은 과학소설의 경지에 오른 인테리어 용품들

230 을지로4가역 평범한 듯하나 알고 보면 서울 도심의 보석 같은 곳

240 명동역

삑! 쿵! 훅! 토요일 아침, 명동에서 보고 듣는 만화 같은 풍경과 소리들

254 올림픽공원역 최고의 비보잉 스텝을 위하여 한국 비보이의 세계적인 부상, 올림픽공원을 춤추게 하다


266 충무로역

시대물을 돌아보며 나무와 돌 그리고 영화에 새겨진 과거를 향한 충무로의 향수

278 합정역

서양 오랑캐일까? 커피 전도사일까? 저리 꺼져. 이곳은 누구의 영역도 아니야, 카페라테를 가져왔다고? 진작 말하지 그랬어

290 거여역

송파구의 빈털터리 한강의 기적이 남긴 흔적

298 신당역

접은 종이를 펼치며 이 도시를 정말 완전히 알 수 있을까

316 종로3가역

1,000개의 퍼즐 조각 서울 도심의 온갖 볼거리와 들을 거리의 향연

332 문래역

예술 공장 두드리고, 만들고, 칠하고, 짓고, 모양내고, 춤추고, 놀자

346 양재역

기묘한 세상 강 건너 토끼 굴 아래


서문

처음 서울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지하철을 타고 새로운 역을 지나 칠 때마다 생각하곤 했다. ‘여기서 그냥 내려 볼까? 저 위엔 뭐가 있을까?’ 나는 그렇게 이 도시에서 우연히 맞닥뜨릴 놀라움을 상상하면서 도, 일상의 틀 속에서 늘 같은 곳만 오가며 먹고 자고 일을 했다. 그 러나 그 뒤에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뭔가 놓치고 있다 는 아쉬움 같은 감정이 언제나 나를 따라다녔다. 새로운 발견의 희열, 즉 아무것도 모르던 상태에서 ‘어떤 것’을 아 는 상태로 바뀔 때의 짜릿한 느낌을 위해, 우리는 여행을 한다. 심지 어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지금 살며 머무르 는 곳에서도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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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멀리 떠나와 처음 바다를 마주했을 때는 놀라워 하지만, 얼마 후 그 풍경에 익숙해지고나면 우리는 더 이상 바다를 궁금해하 지 않는다. 이렇듯 일상의 익숙함에 서울이라는 도시 특유의 복잡함 이 더해져, 나에게 서울은 세계 다른 도시들에 비해 한층 더 알기 어 려운 곳이 되었다. 서울은 거대한 외양에 미로 같은 복잡함을 함께 갖춘 여느 대도시 와 다르지 않지만, 특유의 빠른 속도감이 더해지는 곳이다. 모든 것 이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그 변화를 따라잡아야 하는 의무감을 강요받는다. 고속 열차의 차창 밖으로 스 쳐 지나가는 풍경처럼, 이 도시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외국인 인 나에게는 언어라는 장벽과, 간혹 한국 문화가 자국민과 외국인 사이에 그어놓은 선에 부딪히면 더욱더 서울을 알기 어려워진다. 그때문이었을까? 2005년 처음 서울에 머물렀을 때에는 이 도시에 무관심했다. 그런데 2009년 서울로 다시 돌아올 결심을 하면서, 이 번에는 이 도시를 좀 더 잘 알아보고 싶다고 결심했다. 그렇다면 예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서울에 접근해야 할 것 같았다.

9 서문


‘지하철역에서 내려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보자.’ 그렇게 해서 서울 지하철 프로젝트(seoulsuburban.com)가 탄생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는 사진가 리즈 그뢰쉔과 무작위로 서울의 아무 지하철역에서나 내려 구석구석 살펴보기 시작했다. 기준은 우 리 둘 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역이거나, 이미 셀 수 없이 많이 가본 역일 것. 그런 역들을 찾아가 좀 더 찬찬히, 세세히, 새로운 관점에 서 바라보기로 했다. 리즈가 서울을 떠나기 전, 우리는 100여 개에 달하는 역을 방문했 고 그중 일부를 추려내 글로 담아냈다. 명동역의 휘황찬란한 조명들 부터 거여역의 빈민가까지, 문래역의 설비 가게들부터 당고개역의 산비탈까지 곳곳을 둘러보며 우리는 시장 상인들, 예술가들, 건설 기술자들을 비롯한 다양한 서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우리의 생각, 관점, 이해 를 바꿔놓았다. 한국과 한국 사람처럼, 서울은 지금 이곳에서 일어 나고 있는 모든 것들과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 찰하며 한순간도 쉬지 않고 계속 변화하고 있다. 바로 이런 역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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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서울을 알기가 쉽지 않지만, 그것이 또 서 울의 매력이기도 하다. 서울은 너무나 복잡해서 제대로 알려면 시간 이 필요하고, 때로는 상당한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이는 서울에 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이 도시는 쉽게 속내를 내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최대한 한국식으로 접근하 기로 했다. 그러자 서울은 우리에게 마음을 열고 조금씩 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궁금한 것들이 더 많이 생 겨났고, 이런 궁금증은 우리를 감질나게 만든다. 하지만 바로 이 점 이 우리에게는 최고의 보상일지도 모른다. 속을 쉽게 보여주지 않아 내 마음을 애태우는 연인에게 깊이 빠 져들 때처럼, 곳곳을 누비고 난 후에도 서울은 우리에게 여전히 신 비로움 그 자체로 남아 있다. 서울이란 도시를 완벽하게 알아내기란 불가능하므로, 이곳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쁨도 영원히 그치 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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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사평역

그들의 이야기 서울에서 가장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동네에서는 어떻게 일하고, 놀고, 생활할까

어스름이 깔린 후 N서울타워 꼭대기에 올라가 서울을 내려다본 다. 조명으로 반짝이는 대도시 남쪽 한가운데 새까만 어둠으로 뒤덮 인 구역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용산 미군 기지가 위치한 곳이다. 도 심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 기지라는 이유로 지 도에도 표시가 안 되어 있다. 남산과 한강 사이의 이 노른자 땅을 한때 청국군과 일본군이 차지 했고, 지금은 이곳에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평택으로 기지를 이전할 예정이라고는 하나 이전 날짜를 수차례 미뤄온 터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미군이 이전하면 이 땅은 다시 서울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지도제작자들은 2.5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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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지를 열심히 지도에 그려 넣을 것이다. 녹사평역에 도착하면, 녹사평대로 양옆을 따라 늘어선 높은 담장 이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온다. 벽돌과 콘크리트로 지어 올린 담장 위에는 가시철조망까지 설치되어 있다. 이쯤 되면 이 동네의 분위기 가 다른 지역에 비해 삭막하다고 느끼게 된다. 담 너머로 보이는 단 순한 모양의 지붕들만 보면 군사 기지라기보다는 학교처럼 느껴지기 도 한다. 날카로운 가시철조망만 아니면 녹음이 우거진 대학 캠퍼스 로 여길 만한 풍경이다. 그러나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보초 선 경찰들과, 보도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거칠게 갈겨쓰긴 했지만 코발트색이라 절실한 느낌이 덜한 “GO HOME(너희 나라로 돌아가)”이라는 글귀가 담장 안에 민간인들이 아닌 외국 군인들이 살 고 있음을 알게 한다. 이 기지의 군인을 방문하는 사람이거나 기지에서 일하는 직원이 아니면 담장 너머로 들어가 볼 기회는 많지 않다. 외국인은 물론이 고 한국인은 더더욱 내부를 구경할 기회가 별로 없다. 나는 어쩌다 보니 기회가 닿아, 헌병대가 주기적으로 순찰하는 이곳에 슬쩍 들어 가 볼 수 있었다. 담장 안은 마치 미국 중서부의 작은 마을 같았다. 서울에서 제일 나무가 많은 곳이고 건물들이 낡고 품위가 있어서일 까. 향수와 술기운에 젖은 나는 거의 세 시간 동안 무언가에 홀린 것 처럼 하릴없이 기지를 돌아다녔다. 이 기지 안에서는 모든 거래가 미국 달러로 이루어지고, 텍사스식으로 제대로 구운 바비큐 냄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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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을 수 있으며, 체육관 외벽에 테이프로 붙여놓은 낡은 NFL(프로 미식축구연맹) 포스터를 볼 수 있었다. 개발 추세와 더불어 점점 더 많은 한국인이 녹사평의 매력을 발견 해내고 있다. 그러니 기지 안에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녹사평역에서 내려 그 주변을 둘러보기만 해도 충분히 이 동네를 찾아온 보람은 느 낄 수 있을 것이다. 녹사평은 외국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거리마다 한국어와 영어, 프랑스어, 아랍어, 포르투갈어, 아프리 카 어느 종족의 언어로 떠드는 소리로 왁자하다. 인구 구조가 다양 하다 보니 다른 곳에서는 구하기 힘든 상품을 취급하는 가게들도 많 다. 국제 전화 샵, 필리핀 식료품점, 서양식 스포츠 바 등이 그것이 다. 그런 이유로 녹사평을 다소 얕잡아 ‘외국인 게토(격리 거주지역)’ 라 일컫는 이들도 있다. 이 말은 어느 정도는, 아니 약간은 사실이 다. 한국인이 이 지역을 버리고 떠나서가 아니다. 자신의 모국을 떠 나 외국에서 지내게 된 사람은 같은 나라 출신의 사람과 함께 지내려 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대기업 계열의 편의점이나 슈퍼가 아니라 영세한 구멍가게가 있고 작은 식당과 세탁소, 옷수선 가게가 들어찬 이 소박한 동네에서 외국인들은 ‘진짜 한국 이웃들’과 오순도 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외국인이지만 녹사평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 내 취향과는 조금 다른 곳이기 때문이다. 그저 가끔 먹을거리와 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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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즐기기 위해 들르기는 한다. 또 이 동네 한국인들과 외국인 들 사이의 역학 관계가 외국인 사회에서 늘 화제가 되기 때문에 궁 금해서 찾기도 한다. ‘녹사평에서 한국인들과 외국인들이 잘 어울리 며 지낼까, 아니면 서로 경계하고 상대방에게 거리를 두면서 살아갈 까?’ 이런 의문을 품고서 말이다. 내가 파악한 바로는 전자 쪽에 가까웠다. 오스트레일리아인 댄 윌 슨과 한국인 김기남 아주머니는 골목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식당 을 운영하고 있었다. 윌슨은 그리스식 샌드위치인 기로스를 팔고 김 기남 씨는 고깃집을 하는데, 두 사람 다 이웃 덕분에 골목에 활기가 돌고 장사도 잘된다고 말했다. 이 동네의 한국인들은 대개가 두 부류 중 하나다. 첫 번째는 외국 인들이 대규모로 모여 살기 훨씬 오래전부터 여기 살면서 일을 해온 김기남 씨 같이 나이 지긋한 분들. 두 번째는 국제화된 정서를 교육 받고 체험하며 자라난 젊은이들. 이런 젊은이들은 한국의 경직된 사 회 구조가 만들어내는 답답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여러 나라 의 음식과 음료를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두 번째 부류에 속하면서 개인적인 취향을 활용해 장사도 하는 이 가 있으니, 바로 ‘몬스터 컵케이크’ 가게를 운영하는 최수연 씨다. 나 는 회나무로를 지나며 이 가게에 잠시 들러 그녀와 얘기를 나누었다. 최수연 씨는 이 동네에서 외국인이라곤 주한 미군밖에 없던 시절부터 살았다. 지금은 이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전보다 다양해졌는데, 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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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외국인이고 나머지 절반은 이 동네 사람도 아니고 심지어 서울 사 람도 아니지만 그저 외국 같은 녹사평 분위기를 즐기러 찾아오는 한 국인들이라고 했다. “다른 동네보다 여기 분위기가 훨씬 편하게 느껴 져요. 더 자유롭죠. 여자들의 경우, 다른 데선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 기가 눈치 보이는데, 여기서는 안 그래요. 여기선 옷도 그렇고 패션 도 더 자유롭게 즐길 수 있어요.”라고 최수연 씨는 말했다. 나는 레몬 컵케이크를 먹느라 코에 묻은 설탕 가루를 닦아가며 최 수연 씨에게 이 가게의 주제에 대해 물어봤다. 몬스터를 주제로 한 컵케이크 전문점이라니 이색적이었다. 가게 안은 오래된 괴물 영화 포스터들과 공포를 자아내는 소품들로 꾸며져 있었고, 미국의 갱스 터 랩이 요란하게 흘러나왔다. 최수연 씨는 깔깔 웃으며 어깨를 으쓱 했다. “뭐, 그냥 좋아서요. 분위기가 이태원이랑 어울리기도 하고.” 한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이곳 특유의 밤 문화와 분위기를 즐기 러 녹사평을 찾는 이들 역시 늘고 있다. 근처 이태원에 비하면 한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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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한 수준이지만, 외국 문화와 한국 문화가 공존하며 만들어내는 독특한 국제적인 분위기가 사람들을 이끄는 듯했다. 특히, 생긴 지 얼마 안 된 술집 두 곳 덕분에 녹사평은 세련된 술꾼들이 주말 밤을 보내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장소가 되어가고 있었다. 여기서 잠시 한마디하자면, 외국인들은 한국 맥주가 맛이 없다며 한탄한다. 나 역시 맥주로 유명한 위스콘신 주에서 자라난 터라 맥 주 맛을 좀 아는데, 아무리 좋게 말해도 한국 맥주는 질이 너무 떨어 진다. 먹는 음식에 대해 ‘재난’이란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하 이트나 카스 같은 한국 맥주들은 홉 냄새 비슷한 풍미도 없는, 맥주 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할 지경이다. 30개국 이상을 여행해봤지 만 한국 맥주는 정말이지 최악이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남한 맥주가 최악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북한의 대동강 맥주를 마 셔봤는데 훨씬 맛이 좋았으니까. 그렇지만 한국 맥주의 미래에 대해 나는 꽤 긍정적이다. 지난 수 년간 한국에 꽤 좋은 맛을 내는 소규모 맥주 제조업체들이 많이 생겨 났고, 하우스 맥주에 대한 정부 규제도 완화되었으니 지역별로 맥주 제조가 특화되는 건 시간문제일 거라 본다. 처음엔 커피에 대해 잘 몰랐던 한국인들이 그 맛을 알아가면서 이제는 다양한 방식으로 커 피를 볶아내고, 바리스타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까지 생겼으니 말이 다. 이처럼 한국인 특유의 완벽주의적 성향까지 발동하면, 맛 좋은 커피를 끓여내듯 조만간 맛 좋은 맥주를 생산해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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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는 ‘크래프트 웍스 탭하우스 앤 비스트로’에서 한국의 명 산 이름을 딴 ‘백두산 헤페바이젠’, ‘지리산 반달곰 인디아 페일 에 일’, ‘남산 퓨어 필스너’ 등의 맥주를 즐기도록 하자. 이 술집은 가평 에 있는 양조장에서 직접 맥주를 만들어 가져온다. 가게 뒤로 나가 서 옆으로 돌아가면 나무 몇 그루가 서 있는 야외 테라스가 있으니 한국에서 최고로 맛 좋은 맥주를 마시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안 믿을지 모르겠지만 서울에서 최고로 꼽을만한 막걸릿집도 녹 사평에 있다. 해방촌에 위치한 ‘다모토리ㅎ’이라는 곳이다. 한국 막 걸리는 상표별로, 생산되는 지역별로 다양한 맛을 내서 좋다. 이 집 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게 즐거운 이유도 다양한 막걸리를 마실 수 있 어서이다. 다모토리ㅎ은 한국의 각 도에서 생산된 25종의 막걸리 를 갖추고 있다. 그중에서도 나는 강원도산 찹쌀누룽지 막걸리를 즐 겨 마신다. 진초록색 벽에 설치된 진한 색깔의 나무 선반마다 반짝 이는 흙색 술 항아리와 막걸릿잔이 놓여 있고, 대화와 술에 집중할 수 있게끔 음악은 늘 잔잔하게 흐른다. 막걸리는 묵직한 도자기 술 병에 담겨 나온다. 데이트 장소로 손색이 없을 만큼 세련됐고, 오랜 친구들과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한 잔씩 따라 마시기 좋을 만큼 편안 한 술집이다. 다모토리ㅎ을 찾는 손님들 대부분은 한국인들이며 간 혹 외국인들도 섞여 있는데 다들 기분 좋게 막걸리를 마셔가며 대화 를 즐긴다. 친근하고 수다스러운 분위기의 다모토리ㅎ 얘기를 하다 보니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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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는 사람이 있다. 예전에 이태원에 위치한 제일시장에서 얘기를 나눈 적 있는 박금순 할머니이다. 지금은 여든이 넘은 연세로 거의 벗겨진 머리 위로 머리카락을 곱게 빗질해 넘기셨다. 밤을 새워도 모자랄 만큼 이야기보따리를 잔뜩 안고 계신 분이라, 이야기를 경청 하는 내게 녹사평에서 살아온 세월을 풀어놓으셨다. 젊었을 때 가족 이 소유하고 있던 건물이 정부의 재건축 계획에 따라 철거되었는데, 보상금이 얼마 되지 않아 가족들은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시장에 채소가게를 여셨다고 했다. 그렇게 스물일곱 살 때부터 줄곧 박 할 머니는 제일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다. 그 시절엔 건물도 없었고 그냥 나무랑 농장뿐이었는데, 심지어는 산에서 여우가 내려와 닭을 잡아 갈 때도 있었다고 했다. 그 후 이 동네에 미군 기지가 세워졌고, 할 머니는 결혼을 했고, 할머니의 남편은 그 기지에서 일자리를 얻으셨 다. 요즘엔 할머니에게 외국인 단골손님도 꽤 생겼다고 한다. 외국 인 손님이 찾아올 때마다 간단한 영어로 채소 이름, 가격에 대해 대 화를 나누신다. 지난 80년간 이 동네에 일어난 변화를 고스란히 목격해온 박 할머 니는 녹사평의 살아 있는 연감이다. 녹사평의 변화와 늘어나는 외국 인에 대해 할머니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 며 ‘오케이’라고 하셨다. “사람 안에 사람이 사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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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와 리즈는 이곳을 방문했습니다!

다모토리ㅎ 크래프트웍스 탭하우스 앤 비스트로 몬스터컵케익

2번출구 1번출구

용산미군기지

녹사 평역

이태원역

4번출구

녹사평역 주변 여행 정보 용산미군기지 1번, 4번 출구 크래프트웍스 탭하우스 앤 비스트로 2번 출구 방향 녹사평대로로 직진. 중간에 녹사평대로 횡단 필요 서울특별시 용산구 녹사평대로 238 / 02-794-2537 다모토리ㅎ 2번 출구 방향 녹사평대로로 직진 중 왼쪽, 신흥로로 직진 서울특별시 용산구 신흥로 31 / 070-8950-8362 몬스터컵케익 2번 출구 방향 녹사평대로로 직진 중 오른쪽, 회나무로로 직진 서울특별시 용산구 회나무로 11 / 02-790-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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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역

수수께끼의 도시 서울에서 제일 묘한 동네의 비밀을 조금씩 맛보며

보통 내가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그 분위기’가 시작된다. 플랫폼 에서 한 남자가 칸칸이 구획 지어진 상자에 허리띠를 잔뜩 담아 발치 에 놓아두고 승객들에게 허리띠를 사라고 외친다. 출구를 빠져나갈 때까지 역 곳곳에서 그런 상인들을 본다. 상품의 종류도 천차만별이 다. 가방, 옷, 배터리로 빛을 내며 달각달각 움직이는 장난감 등등. 역 계단을 마저 올라간 나는 온갖 상품들이 어마어마한 규모로 거래 되는 동대문을 만난다. 세일 물건을 사러 나온 나이 지긋한 손님들은 대단위 도매시장으로, 유행에 민감한 젊은 손님들은 한국 패션의 원 천인 쇼핑몰로 몰린다. 세련된 상점들과 신제품 진열대들이, 수십 년 에 걸쳐 무수한 뒷골목을 차지하고 있는 허름한 가게, 식당들과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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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로 서울 구석구석을 누빈 미국인 찰리와 리즈 서울 사람도 잘 모르는 ‘서울의 아름다움과 독특함’을 세계와 나누다 지하철을 이용해 매일 출퇴근하거나 등하교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숨 막히는 혼잡함을

찰리

뒤로하고 “이번 역에서 그냥 내려 볼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미국인 찰

무엇보다도 우리의 책을 지금 집어 들어 펼쳐 주신 분들,

역씩 탐험하는 야심찬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의 글은 매일 지나치는 비슷

저희 이야기를 블로그로 읽어주신 분들, 그리고 저희 둘을

비슷해 보이는 지하철역과 그 주위의 지역이 모두 자신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색을 지니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고 있음을 알려준다.

리 어셔는 바로 그 순간 300여 개에 달하는 서울의 미로 같은 지하철역을 한 번에 한 지

두 명의 외국인이 여러분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닐

〈LA타임즈〉

때 보여주신 관심(그리고 인내!)은 저희에게 큰 기쁨이고

서울의 맨 얼굴을 바라보기 위해 떠난 지하철 여정, 외국인 여행가들의 서울 탐험기. 이

여러분들에게는 너무 익숙한, 하지만 실제로는 세상에서

들의 여행기는 ‘정통 여행정보’라기보다는 한편의 ‘차분한 에세이’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가장 멋진 도시 중 하나인 서울을 새롭게 바라보고, 느끼고,

받는다. 사진과 글의 수준이 이전의 어떤 자료보다 성실하고 시적이다. 특히 우리에게는

즐기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일상적인 모습이라 홀대 받는 풍경들이 이들 외국인의 눈에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독창적 인 그림으로 가치를 평가 받는다. 〈동아일보〉

리즈 이 책을 읽어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때때로 제가 지하철에서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들고 힘들어하고 있을 때 제게 자리를

서울 지하철 여행기

찰리 어셔(Charlie Usher)는 이 책의 글을 썼다. 그는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태어나 위스콘신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이탈리아, 뉴질랜드, 호주 등 30개 이상의 나라를 여행했던 찰리는 한국의 음식과 사람에 반해 서울에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9년부터 ‘진짜 서울’을 스스로 탐험하기 위해 ‘서울 지하철 여행’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 서울 탐험기를 영어 블로그 ‘Seoul Sub→urban blog (seoulsuburban.com)’에 담아내, 서울 사람도 잘 모르는 서울의 아름다움과 독특함을 세계인과 공유하고 있다.

공보경 옮김

“서울은 역사와 문화 그리고 첨단 기술이 공존하는 멋진 도시예요. 이 지구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죠. 그래서 저는 서울이 너무 좋아요.”

양보해 주신 분들 고마워요. 서울의 거리에서 제가 여러분의 사진을 찍는 것을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고마워요. 제가 시장을 지나가고 있을 때 제게 주신 맛있는 과일들 너무

리즈 그레쉔(Elizabeth Adele Groeschen)은 이 책의 사진을

고마워요. 여러분이 사시는 곳을 구석구석 누비고 다닐 때

찍었다. 그녀는 미국 켄터키주에서 태어나 로욜라 대학에서 사진과

보내주신 환대와 미소 고마워요. 여러분들이 제게 베풀어

비디오 아트를 공부했다. 그리고 20대 초반부터 프랑스와 체코,

주신 모든 것들이 제가 서울을 떠나 세계 속으로 나아가는

독일 등의 나라를 여행하며 사진 작업을 하던 중, 한국에 끌려

데 큰 용기가 되었어요. 또한 제가 앞으로 사진가로 그리고 인간으로 성장하는 소중한 밑거름이 될 거예요. 이 모든 것,

찰리와 리즈의

“서울이란 이 거대한 도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죠. 덕분에 서울을 알아가는 기쁨도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겁니다.”

찰리 어셔 쓰고 리즈 아델 그뢰쉔 찍다

찰리 어셔 글 리즈 아델 그뢰쉔 사진

즐거움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서울 탐험기가

찰리와 리즈의 서울 지하철 여행기

찰리와 리즈가 독자와 서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값 15,000원

다 고마워요!

잠시 들렀다가 서울의 친절함과 편리함에 반해 서울에 머무르기 시작했다. 2012년 9월 서울을 떠나 세계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2014년 초 뉴욕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세계를 돌며 찍은 멋진 사진은 개인 블로그(www.thiskentuckygirl.com)에서 볼 수 있다.

www.seoulselect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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