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클레어 55호 세월호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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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클레어 55

“잊지 말자던 그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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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y are listening within themsel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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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55

“잊지 말자던 그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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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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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클레어가 싱클레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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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자던 그 약속

피터

박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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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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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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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위한 몇 가지 재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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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간을 산다

김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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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의 어느 봄

엄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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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카 시트

권지웅

주영 강군

이원희

싱클레어 55호 세월호 섹션의 내용은 크레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각 작품별 라이선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CCL에 관한 소개와 정보는 http://cckorea.org/xe/ccl 를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CC-BY :  ‘싱클레어가 싱클레어에게’, ‘벌써 1년이 다 되어갑니다’, ‘세월호 생각’, ‘기억을

위한 몇 가지 재료들’, ‘타인의 시간을 산다’, ‘사라예보의 어느 봄’, ‘아빠의 카 시트’

CC-BY-NC : ‘잊지 말자던 그 약속’, 표지와 p.8, 11, 12, 13, 14, 15의 일러스트 5


1.

싱클레어가 싱클레어에게

눈에 보이는 가짜는 오히려 귀엽다. 뻔한 거짓말은 이제 참을 만하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가짜는 참기 힘들다.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고 자기 최면을 걸고 지속하는 거짓은 너무 뻔뻔하다. 세월호 사건은 이명박 시절부터 이어온 거짓과 뻔뻔함의 향연이 어떻게 후계자를 만나 겉모습을 바꾸며 지속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데블스 에드버킷The Devil’s Advocate’이라는 영화가 있다. 알 파치노는 악마로, 키아누 리브스는 젊은 변호사로 등장하는 영화이다. 어떤 상황이든 악마는 계속 이어지고 생존해 간다. 우리는 지금의 상황을 악, 악마라고 생각한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라는 노래를 만들고 있다. 세월호를 탄 아이들과 다른 승객들은 금요일에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평소처럼 배가 심하게 흔들리고 직원들은 좀 불안하고 어딘가 숨겨진 투자자가 이런저런 체크를 하고 있었다고 해도 그날 (평소처럼) 항해를 마쳤다면 모두 금요일에 돌아와 주말에 쉬고 월요일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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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로 직장으로 출근했을 거고, 엄마아빠는 그냥 일을 지속했을 거고 아이들은 입시를 준비하고 연애를 하고 술도 마시고 홍대 앞에 놀러도 나오고 우리가 하는 공연에도 오고 우리 팀의 시디를 사서 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단 한 번도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날 그들은 금요일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냥 재수가 없어서 라고 생각하기에는 억울할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었다. 여전히 언제나처럼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하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당연히 진행되어야 할 일들이 미뤄지고 방해 받고 있다. 그래서 유가족들과 그분들과 함께 울고 함께 행동하는 사람들은 단식하고 농성하고 머리를 깎고 있다. 슬픔이 분노로 바뀌고 억울함으로 바뀌고 체념으로 변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억지로 그렇게 등을 떠밀어서는 안되지 않은가. 기침이 나오는 사람에게 기침하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짓은 이제 군대에서도 없어지지 않았을까. 한 달에 한 번 마지막 주 수요일에 신촌기차역 근처 ‘신촌서당’이라는 곳에서 때로는 10명이 때로는 30명이 모여 음악제를 열고 있다. 꼬박 두 시간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을 나눠 먹는다. 가끔씩 유가족 분들도 오셔서 같이 노래를 듣고 웃고 울고 새로운 이야기들을 전해주신다. 그 자리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건 끝을 알 수 없는 슬픔이다. 그래서 도대체 몇 명의 생각으로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 여기에도 기적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날을 같이 기다리고 기억하고 싶다.

I’m so sorry.

편집장 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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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잊지 말자던 그 약속 박정은

기억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그라폴리오에서 ‘공간의 온도’와 뜻밖의 위로’를, 트위터에서 ‘하루한장’과 ‘먼지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 왜 그리운 것은 늘 멀리 있는 걸까? 』를 출간했습니다. 홈페이지 : http://pj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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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프리랜서이지만 대부분의 평일 하루는 비슷하게 반복된다. 아침에 힘겹게 일어나서 밥을 먹고, 회사에 가는 남편을 배웅하고, 조금 더 자다가 일어나서 커피를 끓이고, 책상에 앉아 작업을 시작한다. 그날도 여느 날과 똑같이 아침을 시작했다. 작업을 하면서 트위터의 타임라인을 종종 확인하는데 문득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라는 큰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이게 무슨 일이지? 놀란 것도 잠시, 이내 전원 구조에 성공했다는 기사가 떴다. ‘아 정말 다행이다.’라고 안심을 하며 나는 다시 작업에 집중을 했다. 그날은 점심때 엄마와 식사를 하기로 해서 그전까지 웹서핑도 하지 않고 정말 열심히 작업을 했다. 그리고 엄마를 만나 밥을 먹으며 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도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 다 구한 것 같다고,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던 중이었던 것 같은데 다행이라고. 다 구했다니까. 전원 구조했다니까. 살았다니까. 그런데 집에 돌아와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전원 구조했다던 기사는 단원고 학생들만 구했다는 기사로, 또다시 몇 명만 구해낼 수 있었다는 기사로 점점 구조된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갔다. 나는 그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새로 고침 버튼만 하염없이 눌렀다. 전원 구조 기사를 보고 안심하고 돌아서있었던 그 몇 시간 동안에도 세월호와 사람들은 가라앉고 있었다는 사실이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내가 눈을 부릅뜨고 주시하고 있었다고 해도 큰 힘이 되지는 않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았을까. 다른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계속해서 세월호가 아래로 아래로 잠기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한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손이 덜덜 떨리고 무력감이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무엇을 더 할 수 있었을까. 그냥 멍하니 진도 팽목항의 상황을 생중계하는 인터넷 방송만 보고 있었다. 주변 친구들의 상황도 비슷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보고만 있는 것이 더 힘들다면서 일단 가면 뭐라도 도울 일이 있지 않겠냐며 진도로 내려간다고 했다. 주변의 친구들과 함께 유가족들의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보냈고, 성금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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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그냥 손 놓고 바라만 보는 것이 너무 힘들고 아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고 조금 마음이 괜찮아졌냐고 가벼워졌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초라하게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림을 그리는 일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아주 작은 돌멩이로도 널리 퍼져나가는 파동을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 일이 비록 나 스스로의 마음에 위안을 주는 것에만 그친다고 해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그림을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그 사람들을 잊지 않고, 스스로의 마음과 다짐들을 잊지 않을 수 있게 조금은 도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하루에 한 장씩 글과 그림을 트위터에 올리는 ‘하루 한 장’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다. 매일매일 나의 생각이나 내게 생긴 일들을 그림으로 담아내는 작업이라, 한동안 계속해서 세월호에 대한 그림들을 그렸다.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 유가족들, 생존자들께 누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척이나 조심스러웠고 망설여졌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봤으면, 뭔가 바꿔나갔으면, 함께 기도했으면,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열심히 마음을 담아서 그림을 그렸고, 그림을 자유롭게 퍼가거나 프로필 사진으로 하거나 프린트해서 세월호 집회나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는 행사 등에 사용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림을 보고 조금은 힘든 마음에 위로를 받았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고맙다는 얘기도 들었다. 세월호 관련된 글이나 그림들에 RT나 관심글을 누른 사람들과 손에 손을 잡고 연대하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다시 그림을 그리고 위안을 얻으면서도 동시에 참담함을 느꼈다. 결국 나는 사건 밖의 사람이니까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렇게나 쉽다. 하지만 사건 안의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매일이 4월 16일의 반복이다. 그래서 너무 죄송스러웠다. 그렇게 벌써

1년이나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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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오랜만에 광화문 광장을 갔다. 노란 현수막들의 색이 하얗게 바래고 있는 것을 보자 왠지 더 울컥해졌다. 우리의 기억 속 세월호 참사도 그렇게 부옇게 잊혀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잊지 말자던 그 약속마저 잊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요즘 광화문 세월호 천막에서는 진상 규명을 위한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240일간의 육성 인터뷰집 도 출간되었다. 우리들의 꺼지지 않는 관심이 그분들에게 작지만 큰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 아주 작은 돌멩이라도 널리 널리 퍼져나가는 큰 파동을 만들 수 있다고 나는 여전히 믿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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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벌써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권지웅

벌써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책상에 앉아 찬찬히 그 때의 사건과 기억을 생각하는 게 오랜만입니다. 한참 동안이나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랩니다. 말로 다짐해온 저의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 무엇이 바뀌었나 자문해 봅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이후에 맞닥뜨렸던 질문에 아직도 답은 요원합니다. 참 시간이 빠릅니다. 누군가에겐 길고 고통스러웠을 시간이 제겐 너무도 무심히 지나갔습니다. 무색하고 죄송한 마음이 앞섭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 몇 가지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그것은 멈추어버린 국가에 대한 것 보다 오히려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신촌에서 유가족들과 서명운동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갔고,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명 부스 앞을 지나갔습니다. 수다를 떨다 서명운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보더니 민망했는지 가던 길을 재촉합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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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였는지 멈칫합니다. 멈칫한 시간이 1~2초나 되었을까. 그 멈칫한 시간만큼 그 아이는 뒤쳐졌고 이내 무리들과 몇 걸음이 멀어졌습니다. 멀어진 거리를 확인한 그 아이는 친구들을 쫓아 뛰어갑니다. 타인의 아픔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고자 하는 아이가 무리에서 뒤처진 모습을 보며, 우리는 무엇을 지혜라 부르고 무엇을 어리석음이라 부르는지. 혹 개인의 영위를 지키는 것을 지혜라 부르고, 개인의 영위에 도움되지 않는 관계 맺음을 어리석음이라 여기진 않는지. 그래서 자신의 스펙이 아닌 것에 관심 갖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자기 또래의 죽음에 공감하는 아이가 도리어 고립되게 내버려두진 않았는지. 제가 본 모습이 전체가 아니라 일부, 일상이 아니라 한 단면일지라도 익숙한 그 장면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또 다른 장면은 세월호 추모 행사를 청년단체들과 준비를 하다가 있었던 일입니다. 고민이 되었던 지점은 단순했습니다. 세월호 추모 행사에 각 단체의 ‘깃발’을 사용해도 될까?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 ‘세월호 유가족을 위한다면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면 안 된다’는 주장들 속에서 단체의 ‘깃발’은 분명한 모순이었습니다. 집단적 요구를 위해 시민의 공감을 호소하는 장에서 조차도 필요한 시민은 비정치적이고 순수한 개인이었습니다. 내면화된 개인과 경쟁 속에서 사회 속 개인의 위치조차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무조건적일 만큼 집단을 부정하고 협동을 낮추어보는 것에 너무도 익숙해져서 함께 주장하는 것마저도 스스로 검열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이 깊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시,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멈추어버린 국가를 움직이는 방법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국가 이전에 사회에 대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을 비용이라 여기지 않는 것,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집단을 왜 부정하고 있었는지 질문하는 것. 이런 것들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한 걸음입니다. 작년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글을 쓰다가 포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기고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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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하고 며칠을 쓰고 고치다 결국 올리지 못했습니다. 바로 곁에 서 있지 못함이 너무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조심스럽습니다. 제 알량한 생각이 혹여 누군가를 더 다치게 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하지만 제 자리에서 회복해야 할 것을 할 따름입니다. 한 방울의 물이 다시 개천과 강을 이룸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다만 당장 아파하는 이들에게 빨리 가 닿지 못함이 미안할 다름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에 세월호가 그러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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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월호 생각 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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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호랑이출판사는 『세월호 생각』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며 저마다 마음 속에 자리한 생각들을 엮어 만든 책이다. 사고가 참사로 바뀌었던 지난해 5월, 우리(호랑이출판사 동료 H와 나)는 지인들에게 책의 기획 취지를 밝히고 자유 주제/형식의 기고를 청했다. 제안을 받은 분들 대부분이 응해 주신 덕에 7월께 책이 완성되었다.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세월호 참사에 관한 책이 나오기엔 좀 이르지 않나’, ‘자유 형식, 자유 주제의 기고로 ‘책다운’ 구성이 되겠느냐’는 걱정의 시선이 있었다. 우리 자신에게도 ‘이 책을 잘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모두 열아홉 사람의 글과 그림을 모아 이 책을 만들게 된 것은, 작은 것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후 상황은 좋지 않았다. 단 한 사람의 생존자도 없었고 의혹들은 계속해서 제기되었다. 내게도 알 수 없는 무력감이 스며들었다. 이 사태를 변화시킬 능력도, 팽목항으로 찾아가 희생자 가족 분들에게 위로를 건넬 용기도 없다는 생각에 자책을 느꼈다. 그러던 중 SNS를 통해 ‘세월호를 지켜보며 느낀 것을 말과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작은 음악가들’을 보았다. 반드시 크고 직접적인 행동이 아니어도 마음을 담은 실천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보며 스스로를 무력감이나 자책 속에 두는 대신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람의 마음을 담아 책을 만들자. 『세월호 생각』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응원합니다!”, “함께 할 수 있게 제안해 주어 고마워요”, “화이팅!” 지인들은 수줍게 건넨 우리의 제안에 기쁘게 응답해 주었다. 함께 하기로 한 것만으로 이렇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니. 몇 주 후 그들이 보내온 글과 그림을 읽으면서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무력감과 자책 속에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과, 나를 포함한 그들 모두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런 마음이 지속되었던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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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후 『세월호 생각』은 판매되거나 기증되는 형태로 약 400부 가까이 소진되었다. 책의 취지에 공감하는 분들을 만나 인연을 맺기도 하고 많은 분들 앞에서 책에 관해 발표를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약 일 년의 시간 동안 우리가 주로 접한 것은 사고에 관해 밝혀진 진실보다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고초와 수모를 겪는 모습들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작은 행동을 이어가는 분들이 있었지만, 나와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이 참사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어려워하고 있었다. 책임감, 미안한 마음 혹은 부끄러운 마음들. 다시 자책이 들었다. 책을 만들 때의

그 마음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싱클레어 에디터 강군님으로부터 『세월호 생각』에 대한 한 페이지를 제안 받았을 때도 많이 망설여졌다. 이런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어제 페친 C선생님께서 우편으로 보내주신 노란 리본 뱃지를 받았다. 그분은 원하는 이들 모두에게 노란 리본 물품들을 무료로 보내주고 계신다. 선생님의 글 ‘우리, 가만히 있지 말아요’를 읽으며, 그리고 내 가방에 새로 붙인 노란 리본을 보면서 나는 다시 생각했다. 『세월호

생각』을 기획하던 그 마음처럼, 자책을 느끼는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고. 그리고 이렇게 자책과 용기를 오가며 왔다갔다 하는 내 마음이라도 솔직하게 글로 옮기고, 응원하자고. 나는 우선 남아있는 『세월호 생각』 100부 가량을 열심히 팔아볼 참이다. 그래서 마지막은 (싱클레어에 심심한 사죄의 말씀을 드리며) 지난 53호에 이어 다시 광고로 마무리 지으려 한다. 열심히 만들었어요. 구입해주시고 주변에 선물해주세요. 고맙습니다.

『세월호 생각』 / 82page / 4,000원 / 무료배송 / 구입: 호랑이출판사 (http://tigerbook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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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억을 위한 몇 가지 재료들 강군

제주 4.3 평화기념관을 찾았다. 비가 제법 오는 평일이라 그런지 관람객이 거의 없었다. 덕분에 많은 관람객이 만드는 분주함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전시를 관람했다. 내가 직접 경험하지도 목격하지도 않은 시간에 대한 기록을 따라가며 뜨거워진 마음이 아득해질 무렵 바깥 공기를 쐴 수 있는 ‘해원의 폭낭’이 나왔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전시관을 나서는데 관람객들이 남긴 쪽지들이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왠지 마음이 동해 쪽지들을 잠시 살펴보았다. 절반 이상이 수학여행을 다녀간 중고등학생들이 남긴 글들이었다. 짧은 길이의 글들이었지만 아픈 과거를 마주한 소감을 남기는 모습들을 잠시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문득 그날의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이곳에 단원고 학생들의 쪽지가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여전히 추적추적 비가 내려 종종걸음으로 나서는 가운데에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 없이 지난 시간을 잊어간다. 일부러도 잊고, 잊고 싶지 않은데 잊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이 흘러도 잊혀지지 말아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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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들을 기록해두고 시간을 정해두고 부러 기억하기도 한다. 이러한 기억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만들어진다. 그것을 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인 기억은 개인적인 이유에서일 수밖에 없지만, 사회적인 기억은 어떠한 기준으로 선택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 기준 중 하나는 다시 일어나선 안 될 일이지 않을까. 똑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기억하고 있어야만 하는 일, 말이다.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 역시 다시는 일어나선 알 될 일이다. 이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선 그 사건이 무엇이었는지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도움이 될만한 재료들을 소개한다.

『눈먼 자들의 국가』, 2014

『416세월호 민변의 기록』, 2014

김애란 외 11명 지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지음,

문학동네

생각의길

『세월호를 기록하다』, 2015

『금요일엔 돌아오렴』, 2015

오준호 지음,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지음,

미지북스

창비

‹Daum 세월호 72시간의 기록› http://past.media.daum.net/sewolferry/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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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타인의 시간을 산다 김탕

‘시간’에 대해 정의하기는 어렵다. 무엇이든 안 그럴까. 하지만 조작적 정의나 약속의 개념이 있다. 시간에 대해 가장 오랜 관심을 가진 학문은 역시 천문학이지만, 아인슈타인 이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상대적 시간을 증명해내면서 (굳이 표현하자면) 뒤틀렸다. 표준시간이란 그래서 천체를 중심으로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맞춰놓은 것이거나 약속의 개념이 된다. 그렇게 과학적으로 입증해 내려는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다는 말이다. 인간의 과학적 호기심과 끊임없는 자연과 현상에 대한 증명욕구로 인해 시간 개념이 만들어졌다. 개념적 시간이 아니라 사회적 약속으로. 봉건제 해체 이후 농민계급이었던 노동자에게 더 많은 생산을 요구하기 위해선, 더 효율적 관리 대상으로 시간개념이 확보되어야 했다. 그렇게 만들어져야 했던 표준시각은 인간을 시스템으로 몰아갔다. 표준이 된 시간은 생활의 편리를 가져왔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으로 생각한다면 인간에게는 무서운 결과를 만들어낸다. 가장 비정상적인 생태계를 만들어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 백칠십만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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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두발로 걷기 시작한 인류는 신화로 존재하는 아이테르를 바라보며 지구에 적응하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또한 에너지원이 되는 태양을 중심으로 살아왔다. 생존과 번식을 위한 자연의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에너지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문명의 핵심은 그 에너지를 어떻게 다루는가로부터 출발했다고 본다. 문제는 소유다. 초기 인류의 생존을 위한 투쟁적 관점이 아니라 소유를 위한 전쟁이 되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시간을 누가 소유할 것인가’의 개념이 되었단 뜻이다. 자본가는 노동자의 시간을 소유하려고 한다. 그 시간이 생산량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사회 대다수의 사람들이 체감하는 시간이란, 물리적 사건의 연속선의 한 지점이거나 독립적 물리량을 갖는 비연속적 객체라기 보다는, 재화와 교환되며 소비를 가능케 하는 화폐와 유사하다. 물론 이 관점은 생산주체인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의 쓰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긴 싸움이 계속된다. “나는 내 시간의 주인이다”라고 역설하는 자기 계발서를 보면 한심한 이유기도 하다. 오히려 “나는 시간을 저당 잡힌 노예일 뿐이다”라고 인정하면서부터 현재의 삶을 설명해 낼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4월. 한국사회는 기능이 정지된 정부로 인해 무력감을 갖는다. 세월호의 침몰로 인해 시작된 무력감이다. “왜··· ”라는 질문이 자꾸 생기지만 결국 기능상실의 가장 큰 원인은 모두가 타인시간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매뉴얼이 없어서 문제라고 말할까봐 나는 더 무섭다. 매뉴얼은 이미 있다. 엉성한 것이 문제라고? 그럼 완벽한 매뉴얼은 존재할까? 그건 사건이 잘 수습되었을 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지키지 않아서 문제가 아니라 시키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간을 사는 것이 당연해진 사회에서 그 무엇도 각성할 수 없이 마비된 인격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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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사라예보의 어느 봄 : 기억하는 것의 의미 엄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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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는 다른 해보다 조금 특별한 방법으로 봄맞이를 준비했다. 발칸전쟁이 끝난 지 딱 스무 해가 지난 때였다. 그 날은 4월 6일이었다. 티도바(Tidova) 가로 모인 사라예보 시민들은 사뭇 진지한 얼굴과 자세로 그 거리에 11,541개의 빨강 의자를 놓았다. 그 색깔 탓에 멀리서 보았을 때는 마치 도로가 피로 물든 것처럼 꽤 섬뜩한 광경이었다. 그냥 느낌이 그런 것이 아니라 20년 전 사라예보의 상황이 정말로 그랬다. 11,541개의 빨강 의자는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세르비아군이 보스니아 무슬림에 대한 제노사이드를 감행하기 위하여 사라예보를 무력으로 원천 봉쇄하는 동안에 희생된 이들을 상징함과 동시에 추모하는 것이었다. 11,541개의 의자가 티도바 가를 가지런히 메운 뒤에 시민들은 그 의자들 위에 싱싱한 꽃들을 한 송이씩 놓기 시작했다. 그 특별한 봄맞이에는 전쟁 당시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어린 꼬맹이들도 함께였다. 발칸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발생한 사망자 수는 최소 26만명으로 추정된다. 그야말로 잔혹하고 맹목적인 살육전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보스니아인들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를 잊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싸운다. 그들에게 ‘기억’은 그야말로 고문과 같은 일인데도 말이다. 전쟁 중에 남편을 잃은 한 미망인은 과거를 떠올리는 순간 손이 파르르 떨리고, 눈가가 저릿해 옴을 느낀다고 했다. 전쟁세대가 가지고 있는 극심한 트라우마는 그들이 현실과 미래를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런데도 굳이 왜 기억해야 하느냐고? 사라예보에서 만난 한 호주인 여행자가 이런 말을 했다.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을 뭣 하러 계속 되새김질하는지··· 잊는 것이 그들을 위해서는 최선일 텐데 말이지. 온통 과거에만 매달려있으니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이 나라가 계속 정체되어있는 거잖아.” 정말로 잊는 것만이 정답일까. 우리는 그들에게 그리 쉽게 잊으라 할 수 있을까. 돌이킬 수 없다는 것. 그건 보스니아인 자신들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들에게 ‘기억’이라는 행위는 그들의 가족과 친구, 이웃이 당한 종결되지 않은 죽음,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붙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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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유일한 동아줄이다. 한국과 일본 간의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근거가 과거 위안부로 일했던 할머니들의 기억인 것처럼, 전범자들을 처벌하고, 희생자들이 합당한 보상을 받고, 긴장상태에 놓여있는 발칸 국가들이 서로 화해하기 위해 그 때를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넌 이 땅에서 있었던 일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죽더라도 네가 기억해야 한다.” 보스니아인들은 그들 스스로 기억을 지속할 뿐 아니라, 전쟁 당시의 기억과 감정을 후손들의 머리와 가슴에 파종함으로써 기억을 실천한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이후 나는 줄곧 그런 그들을 상기하곤 한다. 20년이 지나도 굳건한, 오히려 의지와 힘을 갖는 그들의 기억력(물리적이 아니라 정신적인 힘)에 감탄한다. 그리고는 이내 나도 세월호를 잊지 않기로, 인간의 욕심과 어리석음이 빚어낸 부끄러운 역사의 한 점을 잊지 않기로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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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아빠의 카 시트 토끼도둑

김포에 살기 때문에 혼자 서울 갈 일이 있을 때 광역버스를 이용하는 편이다. 주로 이런 광역버스들은 고속화 도로를 달리기 때문에 꼭 안전벨트를 하게끔 방송이 나오곤 한다. 그런데도 버스에 타보면 아직 많은 이들이 안전벨트를 채우지 않는다. 귀찮은 게 가장 큰 이유겠고, 벌건 백주대낮에는 뭔 일이 나겠냐 싶어 벨트 안 하고, 늦은 퇴근길 만원버스에서는 저 사람들도 안 하니까 괜한 군중심리에 그만 두고 마는 치들도 있을 것 같다. 나도 원래 그런 이들 중 하나였는데 아기가 생기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진다. 내 자가용에선 안전띠를 매고 아기에겐 꼭 카 시트를 결속시키면서, 왜 대중교통에선 다른 성격이 되는가. 예고 없이 닥친 사고 앞에선 우리 어른들 역시 카 시트가 절실한 아기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그리고 나 역시 부모님에게 있어선 ‘아이’일 뿐이다. 당신이 아빠고 엄마라면 그리고 당신이 부모님의 자식이라면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거대한 사회 구조가 안락하게 지켜줄 거라는 생각은 지금 어리석다. 무심하게 이어져온 안전불감증엔 나의 내일이 없다. 무서운 세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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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 많은 내가 살아가기에 참으로 무시무시한 세상 같다. 원래부터 심약하고 조심성이 많았지만 한 여인의 남편이 되고 아이의 아빠가 되어보니 오히려 이런저런 겁은 더 늘어만 간다. 아이를 지켜주고 아내를 지켜줘야 하는데 내 몸 하나 지켜낼 자신도 들지 않는 세상이다. 나에게 불안과 두려움을 주는 것들이 사방에 널려있다. 길 위에서, 텔레비전 방송 안에서, 이미지들 속에서, 세태들 속에서, 심지어 집안에서도, 꿈속 까지도 그것들은 나를 따라 온다. 피해망상인 걸까. 하지만 그렇게만 넘기기에 너무 많은 비현실적인 사건과 광경이 현실에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버스정류장에 서 있다 보면 갑자기 도로를 이탈한 차량이 달려들지도 모르고, 내가 운전대를 잡고 조심해도 어떤 상황을 맞닥뜨려 사고를 당할지 모른다. 하늘을 날던 비행기들이 우수수 떨어지는가 하면, 평온의 정적 속 풍경의 건물이 폭발해버리기도 한다. 짓던 건물이 무너지고 멀쩡한 땅은 밑으로 꺼져 도시를 종잇장 바닥이 받치고 있단 착각마저 들게 한다. 전화를 받으면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거짓말이 들리고, 미디어를 열면 누군가 멱살을 잡을 것 같다. 쫓기우는 복잡한 조바심에 무기력해짐을 느낄 때도 허다하다. 다리가 무너지고 보물이 불타고 배가 가라앉아 사람들의 생사를 알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사를 가른 진실들을 알 수 없다. 정신 없이 바삐 쫓기고 세상이 급변한다. 특히 이 나라는 무던히도 갈급해왔다. 늘 배고팠고 먹어도 배불러할 줄 모른다. 피를 봐도 체기가 풀리지 않을 정도로 병적인 폭식은 멈추질 못 한다. 이 미친 시스템들이 양산하는 충격의 소식들은 늘 그래왔듯, 우레와 같이 왔다가 사라져간다. 언제 올 줄 모르고 맞을 수밖에 없는 소나기와 같다. 흠뻑 젖었다가도 마르고 나면 잊었다가 무방비로 또 맞는다. 그 때 뿐이다. 그렇게 굳어져가는 딱딱한 군상들이 나다, 내 이웃이다. 버스에서 나란히 앉은 치들이다. 쉬이 피로해지고 무감각해지고 무기력해진다. 그렇게 표류하다가 납득 못하는 죽음으로 흘러갈 수 있다. 큰 우산이 지켜주지 못한다면, 우리 스스로라도 죽음의 항해에서 깨어 살아나와야 할 것 같다. 보통의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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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하여 소진하도록 종용하는 사회 속에서 생명을 지켜내는 작은 안전 고리들만큼은 잊지 말고 채워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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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자던 그 약속”

싱클레어 Vol. 55

발행인

이아립

편집장

피터

수석에디터

강군

에디터

김탕

아트디렉터

현영석

등록번호

문화 바02837

창간일

2000년 3월 1일

인쇄

세종 C&P

ISBN

1599-0818

발행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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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클레어는 한국 간행물 윤리위원회의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싱클레어에 실린 글과 사진, 그림 등의 저작권은 월간 싱클레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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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클레어 55 :

“잊지 말자던 그 약속”

『싱클레어』는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라는 모토로 홍대와 신촌의 뜻있는 젊은이들이 모여 창간한 문 화잡지입니다. 글, 그림, 사진, 음악 등 ‘개인작업자’들의 다양하고 자유로운 기고를 중심으로 발간하고 있으며, 독 자와 필자의 구분이 없는 열린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싱클레어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등장하는 데미 안의 친구로, 작품 속에서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가운데 성장해 나갑니다. 『싱클레어』의 ‘한 페이지들’에 기고하는 개인작업자들은 자기 삶의 모순들을 페이지에 담고, 독자 들은 『데미안』의 싱클레어가 그러했듯 다양한 개인작업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판매처 교보문고 매장(광화문, 강남, 목동, 잠실) 및 온라인, 스토리지 북앤필름, 헬로 인디북스, 책방 별책부록, 이음책방 (이상 서울), 샵 메이커즈 (부산), 명태(대구), 우주계란(전주), 카페 5km(부천), 도어북스(대전), Like It(제주), 달팽

이마켓(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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