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SIWF Anth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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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비추는 천 개의 거울 Thousands of Mirrors Reflecting Us




우리를 비추는 천 개의 거울

천 개의 거울이 우리를 비춥니다.1) 거울은 황홀한 매혹의 세계이자 투명한 객관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 거울입니다. 서로에게 비추어 자신을 확인합니다. 돌과 벌레들, 나무와 새들, 별과 풀들, 하늘과 바다들도 서로에게 거울입니다. 만물은 서로를 비 추고 서로에게 비쳐져 비로소 그 자신입니다. 그렇게 함께 이어져 무한한 우주를 이 루고, 작은 물방울 하나에도 온 우주가 깃듭니다. 과거와 미래 또한 서로의 거울입니다. 과거와 미래가 서로 비추는 시간의 살갗이 현재입니다. 현재라는 이름의 무한한 순간들 위에서 서로 비추고 스며 시간은 한 영 원을 이룹니다. 문학은 세계의 거울이고, 인생은 문학의 영원한 거울입니다. 문학은 차가운 반영 이자 뜨거운 개입입니다. 투명한 숙고이자 황홀한 도취입니다. 문학은 다짐하되 명 령하지 않으며, 공감할 뿐 강제하지 않습니다. ‘2019 서울국제작가축제’는 세계의 작가들과 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을 모 시는 잔치의 자리입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담은 문학이 천 개의 거울처럼 우리의 삶을 비추고 있는 곳, 서울국제작가축제에서 하나의 거울이 되어주세요.

2019. 10. 5. 서울국제작가축제 조직위원회

1)

‘하나의 달이 천 개의 강에 비친다'라는 빼어난 시적 이미지가 중세 이래 동아시아에 있어왔습니다. 15세기초 에 지어진 5백여수의 한글 서사시 [월인천강지곡]은 대표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Thousands of Mirrors Reflecting Us

A thousand mirrors reflect us.1) Mirrors take us into an entrancing world of fascination and represent transparent objectivity. We are all mirrors to one another. We identify ourselves in our own reflection in others. Stones, insects, trees, birds, stars, leaves of grass, skies and seas are all mirrors to one another. All things in the world reflect and get reflected by one another in order to complete their existence. Thus, they form an infinite universe, and every drop of water contains the entire universe. The past and the future, too, are mirrors to each other. The present is the flesh of the time in which the past and the future reflect each other. The infinite moments of the present reflect and permeate one another to create eternity. Literature is the mirror of the world, and life is the eternal mirror of literature. Literature is at once cold reflection and passionate intervention— clear contemplation and blissful intoxication. In literature, we find pledges but never orders—empathy but never coercion. The 2019 Seoul International Writers’ Festival is a time of celebration that brings together writers from all over the world and those who love literature. Please join us at the SIWF and become one of the thousand mirrors reflecting our lives. October 5th, 2019 Seoul International Writers' Festival Organizing Committee

1)

In East Asia, the beautiful poetic imagery of ‘one moon reflecting on a thousand rivers’ has been passed down since the Middle Ages. Songs of the Moon’s Reflection on a Thousand

Rivers , a narrative poem from the 15th century written in hangeul, is a prime example.


목 차

1. 작가, 마주보다

2. 작가들의 수다

3. 소설/시 듣는시간

11 21 43 55 69 81 103 113 127 139

백무산 - 열정의 언어, 저항의 언어

153 165 173 205 223 237 247 269 279

김금희 - 책 버리기

287 299 309 325 335

박상영 - 나는 퀴어 작가인가?

349 363 383 395 403 413 425

황정은 - 「누가」

니이 오순다레 - 저항 행위로서의 시 이승우 -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니콜라 마티외 - 인간소외 오정희 - 밥상과 책상 플로랑스 누아빌 - 여성 작가의 소설을 (다르게) 바라보는 12가지 방법 성석제 - 골목이라는 보물지도 류전윈 - 작가는 한 마리 ‘소’다 문정희 - 외줄타기의 미래 포레스트 갠더 - 시학

데이비드 솔로이 - 이야기하기 아틱 라히미 - 자기각색 배수아 - 어디로도 가지 않고, 멀리,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전성태 - 스파이들의 무덤 정영선 - 우리 몸에 새겨진 분단 챈드라하스 초우두리 - 봄베이와 델리: 내 삶의 두 도시 한유주 -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면서 알렉산드라 치불랴 - 엄격성과 시적 감성, 그리고 정신적 삶에 관해서 정한아 - 매다 꽂기 모나 카림 - ‘그 여성’을 반대하는 선언문 김수열 - 어느 할머니의 거룩한 생애 황규관 - 혐오의 언어와 시

윤흥길 - 『완장』 이시이 신지 - 『보리밟기 쿠체』 손택수 - "거미줄" 외 2편 최승호 - "백수는 과로사한다" 외 2편 마이 반 펀 - "시내 속의 돌멩이" 외 2편 빅토르 로드리게스 누녜스 - "한밤의 기록" 외 2편


Contents

1. One on One

2. Writers in Conversation

3. Performance Readings

15 31 48 61 74 91 107 119 131 144

Baek Mu-san - Language of Passion, Language of Resistance Niyi Osundare - Poetry as an Act of Resistance Lee Seung-U - I Wish to Do Nothing Fiercely Nicolas Mathieu - Human Alienation Oh Jung Hee - Dining Table and Writing Table Florence Noiville - 12 Ways of Looking (differently) at Women’s Fiction Song Sokze - A Treasure Map of Alleys Liu Zhenyun - The Author is an Ox: A Non-Petty-Bourgeois View Moon Chung-hee - The Future of Rope Walking

Forrest Gander - A Poetics

157 Kim Keum Hee - Leaving Behind My Books 168 David Szalay - Telling Stories 187 Atiq Rahimi - Self-Adaptation 212 Bae Su-ah - Without Traveling Somewhere, Far, I Cannot Understand You 228 Jeon Sungtae - Spy Burial 241 Jeong Yeong Seon - Separation Engraved in Our Bodies 257 Chandrahas Choudhury - Bombay and Delhi: The Two Cities of My Life 273 Han Yujoo - Writing, then Erasing, Writing, then Erasing Aleksandra Tsibulia - On Austerity, Poetic Wit and the Psyche 282 292 303 316 329 339

Park Sang Young - Am I a Queer Author?

355

Hwang Jungeun - “Who?”

371 388 398 407 418 432

Yun Heunggil - Armsbands

Jeong Hanah - Judo Throw Mona Kareem - Manifesto against the Women Kim Soo-yeul - The Divine Life of an Old Woman Hwang Gyu-gwan - The Language of Hatred and Poetry

Ishii Shinji - Kutze, Stepp'n on Wheat Son Taek-su - “Spiderweb” and Others Choi Seung-Ho - “The Out of Work Are Worked To Death” and Others Mai Van Phan - “The Rock Inside Stream Bed” and Others Victor Rodriguez Nunez - “Midnight Minutes/ 7 (excerpt)” and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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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주보다 One on One 2019. 10. 8.(Tue) - 10. 12.(Sat) CREA, DDP Design Lab 2F

두 명의 국내외 작가가 그들의 작품 세계에 맞닿은 현대사회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대담을 나눕니다.

Pairs of writers from Korea and abroad will discuss various issues of modern society in relation to their works.


백무산 Baek Mu-san Korea

1955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1974년부터 대기업 노동자로 일하며 노동현장을 문학으로 형상화한 시 「지옥선」을 《민중시》 (1984)에 발표하며 노동문학에 발을 들였다. 대기업 노동자 출신 작가로 큰 관심을 받았으며 박노해 등과 함께 1980년 대 노동시를 대표하는 시인 중 한 사람이다.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 『동트는 미 포만의 새벽을 딛고』, 『인간의 시간』, 『길은 광야의 것이다』 등이 있다. 이산문학 상, 만해문학상, 오장환문학상, 임화문학상, 대산시문학상 등을 받았다.

Baek Mu-san was born in 1955 in Yeongcheon, Gyeongbuk. He worked as a laborer at a large company before launching his literary career by publishing the poem “Hell Boat” in Minjungsi journal in 1984. He is one of the leading labor poets of the 1980s alongside Park Nohae. His poetry collections include Workers of the World, Rising on Mapo Bay’s Dawn, The Time of Humans, and The Path Belongs to the Field. He is the recipient of the Isan Literature Prize, Manhae Prize for Literature, Im Hwa Literary Award, Oh Jang-hwan Literary Award, and Daesan Literary Award.


열정의 언어, 저항의 언어 | 백무산

열정의 언어, 저항의 언어

인간의 언어는 밤에 태어났을 것이다. 낮의 신호음은 밤의 열기에 휩싸여 음 악이 되고 그 리듬에 정념의 굴곡과 섬세함을 담아내기 위해서 소리의 분절을 가져왔을 것이다. 빛의 그늘에 가려진 정념과 생명의 열정은 춤과 이야기가 되 어 몸을 열고 나왔을 것이다. 루소는 언어의 기원은 필요가 아니라 열정이며, 형상적인 언어가 가장 먼저 태어나고 그래서 모든 표현은 시처럼 말해질 수밖 에 없었다는 것인데, 이것은 사위가 구분되지 않고 시야가 내면으로 향하는 밤 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흔한 주장처럼 언어가 노동 과정에서 만들어졌다면(노동설)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 노동을 극복하고 폐기해 나갈 방법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최초로 신 이 인간에게 말을 가르쳤고 그래서 언어가 신의 선물이라면(신수설) 저항의 언 어는 악마의 문법이었을 것이다. 또 언어가 필요에 의해 흉내를 내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면(의성설) 언어에 의한 창조는 억지스런 조작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 리고 언어가 낮에 탄생했다면 모든 이야기는 발단과 전개에서 더 창작되기 어려 웠을 것이다. 인간은 어둠이 내리면 혼돈에 빠져들고, 안에 갇힌 감각의 문은 열리고, 두려 움은 깨어나고, 분리되어 고립되는 공포에 몸을 떨게 되는 시간에 누군가를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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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주보다 | One on One

리쳐 부르고 말로 형상을 지어 서로를 연결했을 것이다. 함께 둘러앉아 불을 지피고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에게 누군가는 이야기를 풀어놓았을 것이다. 이야 기에 빠진 사람들은 거울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불러내어 불안을 마주하는 법을 배우고, 삶의 형식을 만들고, 무리에 질서를 부여하는 방법을 익혔을 것이다. 이야기는 사람의 가슴을 울릴 뿐 아니라 저 너머의 세계에 가 닿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야기는 삶의 계약이 되고, 형체 없는 곳에 형상을 부여하고, 공포를 불러내어 친숙하게 하고, 죽음을 불러내어 재생의 시간으로 바꿔놓기 위한 의 례행위가 되었을 것이다. 열정의 언어만이 이야기를 지어내었을 것이다. 열정의 언어는 언제나 현재의 행위로부터 그 다음의 행위에 놓여있고, 아직 펼쳐지지 않은 시간과 세계를 향해 있어 현재의 고통과 억압과 폭력을 이겨내 고 갇힌 자아를 광장에 불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폭력 앞에서 소멸하지 않고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열정의 언어활동 때문이었을 것이 다. 그것은 꿈을 불러오고, 위험을 분산하고, 삶의 가능성을 무한으로 확장하 기 위해, 자유를 확대하기 위해, 유한한 삶을 재생하기 위해서 언어를 유기체처 럼 살아있는 것으로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열정의 언어는 저항을 내용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저항은 다만 정치 적이거나 물리적 억압에 저항하는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열정의 언어는 자아 를 넘어서고 폭력과 억압에 저항하는 부정의 언어에 머물지 않고 삶을 만들어 내는 궁극의 언어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저항의 언어는 언제나 절망 가운데 있어 왔다. 시는 한 시대 의 절망과 울분과 고통을 함께하지만 그 힘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그 무력함은 시대의 문제이거나 그 무엇 때문이 아니라 시 그 자체의 운명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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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언어, 저항의 언어 | 백무산

것은 약자와 소수자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파울 클레의 어린 천사가 미친 바람 앞에서 안간힘으로 버티는 작은 날갯짓처럼 시는 어쩌면 무력함이 자신의 정체 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는 언제나 무력함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우리에게 가르친다. 그것은 한갓 눈물이고 슬픔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진실에 공감을 얻 어 내는 설득의 에토스는 시 아닌 그 무엇으로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대 저항의 언어는 저항 불가능성이라는 늪에 놓여 있다. 이제 열 정의 언어는 희귀한 것이 되고 사소한 욕망의 부산물이 되고 있다. 역사는 종 말을 고한 듯 사적 욕망이 모든 것에 우선하고 모두가 중심이 된 듯 자아가 팽창되는 시대가 되었다. 개인의 자유를 위해 싸워 온 결과물이지만 스스로 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신을 잃었다. 이전 시대에 자유를 가로막는 견고한 벽을 향한 저항과 투쟁 행위는 거대 체제에 균열을 내고 틈을 만들었다. 그것은 창조적 균열이었고 우리는 해체의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러한 해체는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듯했다. 하지만 거대 체제는 균열되면서 유연해졌고 해체되면서 확장되었다. 저항과 혁명의 의지까지 포섭하면서 내부와 외부의 경계까지 허물었다. 이제 부정의 대상은 전방위에 존 재하게 되고 허물어진 경계 위에서 실존의 위기는 자기긍정이라는 소극적인 저 항의 의지만 불러온다. 저항의 방향을 잃은 긍정은 자폐적일 수밖에 없다. 모 래 알갱이 하나에 우주가 다 들어 있다는 말은 이제 모두가 모두를 소외시키 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바뀐다. 틈은 쪼개고 쪼개져 미세하게 분리되면서 모래가 된다. 사막은 물을 가둘 수 없고 생명이 머물 수 없다. 과잉된 자기긍정의 언어는 필요의 언어이며, 열정이 사라진 언어다. 그 언어 는 무력감을 벗어나기 위해 현실 정치에 기생하고 현실 순응을 정당화한다.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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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주보다 | One on One

수자의 언어를 억압한다. 그것은 재생산의 언어다. 재생산은 끊임없이 권력을 구성하고 잉여를 발생시킨다. 착취를 지속하기 위한 체제에 복무한다. 그것은 자기 재생의 기회를 박탈한다. 억압된 노동과 착취노동은 잉여노동의 시간만 착취하는 것이 아니다. 밤의 시간을 빼앗아간다. 밤의 시간은 재생산의 시간으 로 전환되고 노동시간에 편입된다. 휴식의 밤도 착취의 공간이 된다. 이야기는 발단에서 전개로 이어졌다가 다시 발단에서 전개로 이어지기를 되풀이한다. 목 적 없는 궤도의 공전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저항이면서 곧 삶이 되는 언어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부정성을 유지한 긍 정의 언어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숙명의 언어로부터 재생의 언어는 어떻게 실현 될까? 저항이 삶의 예외적인 활동이 아니듯이 저항의 글쓰기는 언어활동 그 자 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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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of Passion, Language of Resistance | Baek Mu-san

Language of Passion, Language of Resistance Human language must have been born in the night. The signal tones of the day wereengulfed by the heat of the night to become music, and the intention to encapsulate the arcsand details of emotions would have led to the segmentation of sound. Emotions and the passion for life that were hidden in the shadows of light likely split out of the body in the form of dance and stories. According to Rousseau, the origin of language is not necessity but passion, and because figurative language was the first to be born, all expressions had to be poetically spoken. This would have been accomplished in the night, when one cannot disern one’s surroundings and gaze turns inward. If, as commonly claimed, language had been created in the process of labor (grunt theory), we would have had a difficult time finding a way to overcome and discard labor through language. If God taught man to talk in the beginning, and language had been a gift from God (phusei theory), then the language of resistance would have been the devil’s grammar. If language had been generated by necessity in the process of imitation (bow-wow theory), creation via language would h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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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주보다 | One on One

been a case of forced fabrication. If language had been born in the day, all stories would have been challenged to move further than the beginning and rising action. As darkness falls and humans slip into chaos, the doors open to the senses trapped within and fears awaken. During hours of isolation, as our ancestors shook in fear, they would have yelled to one another and created speech forms to connect to one another. They would have sat around a fire and someone would have told stories to the people shaking in fear. Engrossed in stories, people would have recalled their own stories like looking into a mirror, and learned to face anxiety, develop ways of life, and create order from disorder. They believed that stories not only moved hearts, they reached the world beyond. Stories would have become rituals, to serve as the contract of life, to give form where form was lacking, to summon fears and make them familiar, and to summon death and replace it with a time of regeneration. Only a language of passion would have composed stories. A language of passion is always positioned to connect the action of the present to the next action, and it is directed toward a time and a world that have yet to unfold. Through it, humankind has been able to overcome the pain, oppression, and violence of the present and summon the trapped ego into the public squ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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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of Passion, Language of Resistance | Baek Mu-san

Facing violence, humankind did not cease to exist, but sustained itself, thanks perhaps to the linguistic activities of passion. To summon dreams, scatter dangers, extend life's potential infinitely, expand freedom, and regenerate limited life, language would necessarily have been manipulated to be like a living organism. Thus, the language of passion would have had to adopt resistance as its content. Resistance refers not only to resistance to political or physical oppression. The language of passion must be beyond ego. It must not merely be a negative language that resists violence and oppression, but an ultimate language that creates life. Nevertheless, in reality, the language of resistance has always been at the heart of despair. Poetry accompanies a generation's despair, frustration, and suffering, but it is inevitably powerless against their force. This powerlessness is not a generational issue, nor is it caused by anything. It is the fate of poetry. This is because poetry is the language of the powerless and the minority. Like Paul Klee's new angel trying mightily to resist the gale with a tiny flap, poetry might find its identity in powerlessness. Therefore, poetry always teaches us what powerlessness can accomplish. Even if it is tears and sorrow at best, the ethos of persuasion that elicits empathy for truth cannot be accomplished by anything other than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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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주보다 | One on One

In this age, however, the language of resistance is in a swamp of irresistibility. The language of passion has become rare, a byproduct of trivial desires. We have reached an era when private desire is of the utmost importance, as if history has declared its end, and ego is expanding as though everyone is at the center. This is the outcome of having fought for independent freedom. However, we have lost conviction for what we want. Acts of resistance and the struggle against the rigid wall that stood in the way of freedom in the past have cracked openings in enormous systems. These were creative cracks, and we watched the process of the dissolutions. These dissolutions seemed successful at first. However, the enormous systems became flexible as they cracked, and they expanded as they were dissolved. Overtaking the will to resist and revolt, their internal and external boundaries crumbled. Now, the object of denial exists in all directions, and the existential crisis on the crumbled boundaries merely summons a will to resist passively through self-affirmation. Affirmation that has lost its direction was forced to become selfcontained. The saying that there is a universe in a grain of sand has changed, and now it is interpreted to mean that it is possible for everyone to exclude everyone else. The openings break down the systems repeatedly into fine sand. A desert cannot store water and life cannot sustain it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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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of Passion, Language of Resistance | Baek Mu-san

The language of excessive self-affirmation is a language of necessity, from which passion has disappeared. In order to escape powerlessness, that language lives off of real politics and justifies adapting itself to reality. It oppresses the languages of minorities. It is a language of reproduction. Reproduction endlessly constitutes power and generates excess. It serves a regime that exists to sustain exploitation. It deprives one of opportunities for self-regeneration. Oppressed labor and exploited labor do not merely steal time away to generate surplus labor. They take away nighttime. Nighttime is converted into a time of reproduction and incorporated into working hours. Respite and night become a space of exploitation. Stories begin and action rises. Then they begin again. Revolutions on an aimless orbit continue until death. What entails a language that embodies resistance and life at the same time? What entails a positive language that maintains negativity? How will the language of regeneration be realized from the language of fate? As a life of resistance is not exceptional, resistance writing is perhaps linguistic activity itself. • Translated by Eunji Mah  Edited by Jeffrey Karvon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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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주보다 | One on One

니이 오순다레 Niyi Osundare Nigeria/USA

Ⓒ Paul Punzo

나이지리아 출신 시인, 극작가, 수필가 겸 학자이다. 시집 18권, 시선집 2권, 희곡 4 편, 수필집 2권뿐만 아니라 학술 기사와 논평을 여러 편 냈다. 나이지리아 작가협회 시 부문상(Association of Nigerian Authors (ANA) Poetry Prize), 영연방 시 부문상(British Commonwealth Poetry Prize), 아프리카 최고 권위에 빛나는 노 마상(Noma Award), 우수한 문학성과 더불어 아프리카 인권 신장에 크게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폰론/니콜상(Fonlon/Nichols Award)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우수한 창작 및 지적 공로를 기리는 나이지리아 최고 권위의 나이지리아 공로훈장 (Nigerian National Order of Merit, NNOM)을 2014년에 받았다. 현재 미국 뉴 올리언즈 대학교 영어과 석좌교수 겸 나이지리아 이바단 대학교 객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Niyi Osundare is a Nigerian poet, playwright, essayist, and scholar. He has authored over 18 books of poetry, two books of selected poems, four plays, two books of essays, and numerous scholarly articles and reviews. Among his many prizes are the Association of Nigerian Authors (ANA) Poetry Prize, the British Commonwealth Poetry Prize, the Noma Award, which is the most prestigious Book Award in Africa, and the Fonlon/Nichols Award for "excellence in literary creativity combined with significant contributions to Human Rights in Africa". He was the 2014 recipient of the Nigerian National Order of Merit(NNOM), Nigeria’s highest award for distinguished creative and intellectual achievement. He is currently a Distinguished Professor of English at the University of New Orleans in USA, and a Visiting Professor at the University of Ibadan in Nigeria. 우리를 비추는 천 개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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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 행위로서의 시 | 니이 오순다레

저항 행위로서의 시

침묵이라는 압제에 대한 저항 표현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특징인 예술은 침묵에 대한 저항 행위이자, 공 허에 맞서는 영원한 싸움이다. 창조는 이 우주에 거의 언제나 이로운 결과를 가져오는 일종의 침입 행위이며, 무(無)가 발휘하는 공허한 힘과 겨루는 투쟁 이다. 화가는 캔버스의 정적에 ‘훼방’을 놓음으로써 시각적인 진공 상태에 도 전하고, 조각가는 목재에 진기한 모양과 형태를 부여하며, 도예가는 점토를 매만져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이미지로 변모시킨다. 작가는 말에 대한 의지 를 강화하고, 인류(humanity)를 일깨워 목소리를 내게 하며, 무언(無言)의 공 간에 생기를 불어넣어 소리와 울림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진실하고도, 참 된 방식으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삶의 모습은 침묵을 초월한 인류의 노력, 능숙한 발성, 말하고 행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형성되었다. 계획적이고, 가변적이며, 초 월적인 예술이 어떤 침묵으로 인한 죽음 앞에서 형식 차원에서도, 행위 차원에서 도 저항하지 못한다면, 그 예술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저항한다는 것은 타 성에 대항하여 전투를 벌이는 용맹한 행위이고, 변화가 일어나게 하거나 강제로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행위이며, 우리 안에 존재하는 본질적으로 가장 인간적인 부분을 표현하는 행위다. 즉, ‘나는 저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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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주보다 | One on One

데카르트의 명언을 내 방식대로 변형한 이 문구가 가장 진실될 수 있는 곳은 이 세상에서 아프리카밖에 없을 것이다. 아프리카는 지구상에서 쉴 새 없이 가 장 많은 침범을 당했던 대륙으로, 저항해야 할 대상을 너무도 많이 갖고 있는 장소다.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피해자가 되었던 아프리카는 과거에 대한 비판적 이고 건설적인 회고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어야 할지를 아는 능력을 함 양하고, 이를 통해 절망과 패배주의에 저항하는 방어벽을 구축함으로써, 현재 를 재건하고 미래를 개조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가나의 시인이자 학자인 콰조 오포쿠 아게망(Kwadzo Opoku Agymang)은 인 간의 기억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변하게 되는 현상을 시적으로 탐구하면서 대서양 전역에서 행해진 노예 제도를 다룬 시 「케이프 코스트 성」에서 “기억한 다는 것은 저항한다는 것이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이 문구는 지혜와 카리스 마의 소유자 부르키나파소 전 대통령 토마스 상카라(Thomas Sankara)에게 아 게망이 바친 헌사라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상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에 도 역사에 남을 지도력을 발휘했으며, 급진적인 지혜, 정치적 실천주의, 사회적 정의에 몰두하는 보기 드문 태도, 제도의 시행과 생계유지를 위한 투쟁이 돋보 이는 통치를 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상카라는 사람들에게 역사의 중요성을 거듭해서 상기시켰다.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미래의 모습을 규정하는 방식들은 다양하며, 추진력을 악화시키는 악령과도 같은 부정적인 기억과 회고 를 비롯해 망각에 저항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상카라 의 신념도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예컨대, 저명한 가나 작가 아이 케이 알마 (Ayi Kwei Armah)는 과거를 반성적으로 회고하다가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를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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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 행위로서의 시 | 니이 오순다레

과거를 잊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속에서 발견하는 과 거의 각 측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 과거가 하나의 디딤돌처럼 나를 지탱해줄 것인가? 아니면, 내 목에 느껴 지는 이 과거의 무게를 내가 지탱해야 할 것인가?

- 니이 오순다레, 『기억의 말(馬)들(Horses of Memory)』 서문

과거와의 비판적인 조우와 질문을 던지는 탐구를 통해 역사와 끊임없이 관계 맺기, 역사의 추함을 드러내고 난관에 맞설 용기를 갖기 위해 솔직해지기, 수 세기 동안의 역사가 아프리카 대륙에 팔아버린 레몬으로 레모네이드1) 만들기 등의 과제는 아프리카의 기억을 지켜야 할 수호자로서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 는 아프리카인, 아프리카 민족 해방주의자, 작가, 학자들의 핵심적인 우려가 되 었다. 그리고 이들은 망각에 저항하는 전장에서 최전선을 지켜왔다. 치누아 아 체베(Chinua Achebe)가 즐겨 말했듯, 빗줄기가 우리를 가격하기 시작하는 지점 을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시작점을 모른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옷을 말려야 할지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근대 아프리카 문학은 재건과 복구라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매우 시급한 작 업을 수행함에 있어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역할을 저버린 적 이 없었다. 그동안 작가(writer)와 운동가(righter)의 관계, 시인과 예언자 간의

1)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삶이 당신에게 레몬을 준다면, 그 레몬으로 레몬에이드를 만들라).”라는 격언에 바탕을 둔 구절. 역경을 마주했을 때 포기하지 말고 그것을 기회로 삼으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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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늘 상호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공생하는 관계로 간주되어 왔다.2) 198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윌레 소잉카(Wole Soyinka)는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인 1967년에 작가란 “당대에 대한 선견지명을 갖고 발언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3) 소잉카가 말한 ‘선견지명’이라는 개념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맹목(blindness)에 대한 저항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맹목은 침체와 저개발을 초래하는 가장 사악한 요인인 망각과 낙담이라는 황무지에서 사람들이 발을 헛디디게 만든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가 인 치누아 아체베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아프리카 작가들을 위해 작성 한 일종의 성명서 같은 에세이 「스승으로서의 소설가(“The Novelist as Teacher”)」에 서 자신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분명히 피력하고 있다.

작가는 재교육과 재건이라는, 반드시 완수되어야 할 책무를 면제받게 되 리라는 기대를 품을 수 없다. 사실상 작가라면 앞장서서 솔선수범해야 한 다. 왜냐하면 작가는, 어떻든 간에……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민감한 촉 수(sensitive point)’이기 때문이다.

- 치누아 아체베, 『희망과 걸림돌(Hopes and Impediments)』 45쪽

이 짤막한 인용구에는 문학이 저항의 양식이자 수단으로서 갖고 있는 애달

2)

니이 오순다레, 『작가로서의 작가: 아프리카 문학가와 그의 사회적 의무(The Writer as Writer: The African

Literary Artist and His Social Obligations )』, 호프 출판사(이바단), 2007. 3)

윌레 소잉카, 「근대 아프리카 국가에서 살아가는 작가(“The Writer in a Modern African State” )」, 『트랜지 션 31』, 1967, 11~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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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 행위로서의 시 | 니이 오순다레

픈 측면들이 명시되어 있다. 아체베에게 작가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민감 한 촉수’다. 소잉카에 작가란 ‘당대에 대한 선견지명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 고 나에게 작가란 ‘운동가’다. 이와 같은 선언, 이와 같은 문학사상적인 매니 페스토의 사례들은 시일 체니 코커(Syl Cheney Coker), 오디아 오페이문(Odia Ofeimun), 타누레 오자이데(Tanure Ojaide)와 같은 많은 아프리카 작가의 작품 들 속에서 풍부하게 찾아볼 수 있다. 오페이문은 자신의 신념에 대한 신중한 태도, 시와 예술이 지닌 중재와 변혁 의 힘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자신의 시를 아프리카의 ‘병적인 풍경’에 바치 는 ‘체제전복적인 기도문’으로서 ‘무기화’한다. 그리고 오페이문 자신은 사회 가 지닌 비유적 의미의 종기를 절개하는 인물, 그러한 압도적인 존재감을 지닌 시인으로 자리매김한다. 아프리카 시인이 보여주는 저항의 행위는 아프리카가 직면해 있는 골치 아 픈 문제만 겨냥하지는 않는다. 저항이라는 임무는 내용과 메시지의 타당성을 확보해야 하는 시급한 과제를 희생해 가면서까지 추상적인 유미주의에 방점 을 두는 형식주의, 예술 작품의 알맹이보다도 껍데기를 극단적으로 우선시하 는 형식주의, 창조적인 행위자이자 추동력인 작가를 아무렇지 않게 지워 버리 는 형식주의의 그 고압적인 권위에 반대하는, 전략적이면서 야단스러운 반항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근대 아프리카의 시들은 시를 공허하지만 보기 좋은 대상 (object)으로 미화하고 시에서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맥락을 전부 없애버리려 는 이론적이고 비판적인 정통(正統)과 대치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형식주의적인 정통에 맞서 텍스트 간의 상호연관성을 발견하는 방식 으로 저항한 프랭크 치파술라(Frank Chipasula)의 유명한 시 「시학에 대한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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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페스토(“Manifesto on Ars Poetica”)」가 탄생했었다. 시학을 저항의 행위이자 외부 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으로 재정의하고 설명한 사례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 는다.

그리고 “정치적” 시인이 온다 모든 작가는 정치 작가다. 문제는 어떤 정치, 누구의 정치에 관해 쓰는가 하는 것뿐이다.

- 응구기 와 티옹오, 『정치 작가(Writers in Politics)』

나는 그동안 무수히 ‘정치적 시인’이라 불렸고, 나를 정치적 시인이라 부르 는 비평가의 학파나 견해에 따라 그 호칭에는 때론 인정의 의미가, 때론 경멸 의 의미가 담겼다. 형식주의적 사고방식을 엄격하게 따른다면, 시는 시고 정치 는 정치며, 시와 정치는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만나서도 안 되고 만날 수도 없다. 정치는 시를 오염시키고, 시는 정치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아프리카 문학이 서구 세계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던 20세기 후반에 널 리 퍼져 있었다. 이 시기에는 T. S. 엘리엇(Eliot),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딜런 토마스(Dylan Thoams)라는 세 명의 거장 시인과 그들이 갖고 있던 모더니 스트적 원칙이 서구 세계의 시와 시학을 장악하고 있었다. 크리스토퍼 오키그 보(Christopher Okigbo), 윌레 소잉카, J. P. 클라크(Clark)와 같은 주요 아프리 카 시인들도 작품 활동 초기에 서구 세계의 모더니스트적 원칙으로부터 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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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 행위로서의 시 | 니이 오순다레

한 영향을 받았다. 곳곳에 스며든 초현실주의 운동의 마력 속에서 치카야 우 탐시(Tchicaya U Tam’si), 라베리아벨로(Rabearivelo) 같은 아프리카 시인들이 프 랑스어로 시를 쓰며 번영을 누렸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아프리카적 상 상력은 만연한 식민지적 상황 속에서 지배적인 문학 이론과 예술 이론의 바람 을 따라 움직였으며, 다른 두 분류로 존재하는 식민자(colonizer)와 식민지인 (colonized), 중심과 변두리, 주인과 하인, 부자와 빈자, 권력자와 피권력자, 의 견을 피력하는 자와 목소리가 없는 자 사이의 불균형은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식민자에게 좋은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식민지인에게도 좋은 것 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식민지인에게 좋은 것이 식민자에게 좋은 것으로 간 주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예술과 미에 대한 가치 평가도 자연스럽게 이 유해 한 이분법적 사고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서구의 시적 실천과 미적 기준은 아프 리카 지역을 장악해 버렸다. 그러한 시적 실천과 미적 기준 중의 하나가 바로 ‘시’와 ‘정치’ 사이에 벽을 세워 버린 형식주의적 원칙,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 장하는 예술 지상주의적인 원칙이다. 일상적인 상황에서의 저항은 어떤 필요한 행위가 되는 반면, 식민지 상황에서 의 저항은 필수불가결하고 불가피한 행위가 된다. 내가 시인으로서의 초창기 시절에 반란에 가담했던 가장 큰 원인은 형식과 내용을 의도적으로 분리하는 형식주의적 원칙을 비롯해, 형식을 내용보다 특권시하는 부당한 행태였다. 나 의 뿌리가 담겨 있는 요루바(Yoruba) 문화에서는 미적 가치가 총체적인 의미를 갖는다. 형식의 아름다움은 내용의 유용성 없이는 온전할 수 없다. 또한, 모든 예술 작품은 각자의 책임과 존재의 이유(raison d’être)를 다하기 위해 형식과 내 용 사이의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이러한 균형을 통해 텍스트를 맥락에 맞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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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주보다 | One on One

노래를 청중에게 맞게, 창조적인 공간을 사회적 무대에 맞게 조정해 주는 상상 력을 강화해야 한다. 빈 물병이 순전히 외양의 아름다움만으로 보는 사람들을 매혹할 수는 있어도, 절대 그들의 시급한 갈증을 해소해 줄 수는 없으니 말이 다! 오만한 태도로 알맹이를 홀대하면서 껍데기만 숭배하는 데 일생을 바치는 행위가 과연 얼마나 유용하고, 얼마나 가치 있을 수 있을까? 내가 따르고 있는 이론적, 문학적 실천은 차이의 미학(differential aesthetics)이 라는 원칙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나는 서로 다른 문화(그리고 그 문화를 통해 생성되는 동시에 그 문화를 표현할 수 있도록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는 언어)가 제각각 고유성을 지니는 동시에 전 세계의 다른 문화나 언어와도 연결될 수 있 는 미적 패러다임을 창조한다고 믿는다. 이들 문화가 지닌 사회적, 정치적 맥 락도 장소에 따라 달라지며, 이러한 다름은 각 문학 작품에서 나타나는 핵심 주제에 대한 몰두와 형식적, 양식적 특색 모두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즉, 어떤 곳에서 필수적이라고 간주되는 것이 다른 곳에서는 사소한 것 으로 간주될 수 있고, 어떤 곳에서 비극적이라고 간주되는 것이 다른 곳에서는 우스갯소리로 간주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이 금기라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차고 넘칠 정도로 많은 틀에 박힌 생각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 으로 볼 수도 있다. 어떤 문화에서 미의 전형으로 간주되는 것도 다른 문화에 서는 추함의 절정으로 간주될 수 있다. 내가 말하는 차이의 미학이란 양심에 기반한 상대주의, 공정한 비교, 불이익 없는 차이라는 대전제를 바탕으로 하는 개념이다. 차이의 미학은 균형에 대한 지적인 감각, 깊이 있는 섬세함, 사물을 양방향 혹은 모든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기반으로 실천이 이루어질 때에만 융성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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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 행위로서의 시 | 니이 오순다레

미학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지혜는 우리가 갖고 있는 사과를 다른 사람이 갖 고 있는 망고와 비교하거나, 우리 사과가 망고보다 맛 측면에서 더 뛰어나다 고 선언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 것이 너희 것보다 더 낫다.’라는 식의 사고 방식은 식민주의자의 미학과 극단적인 형식주의를 움직이고 이러한 신념을 강 화하는 추진력이 된다. 식민자와 식민지인이 식민주의를 정말로 똑같은 관점에 서 바라볼 수 있을까? 안락함을 누리고, 풍족하게 먹으며, 힘을 가진 사람들 이 굶주리고, 가난하며, 힘없는 사람들과 세상을 같은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 을까? 힘 있는 자의 미적 원칙을 힘없는 자에게, 애지중지 곱게 자란 부자의 미 적 원칙을 구타당하면서 자란 빈자에게 강요하려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러한 상황에 저항하고 이러한 상황을 다시 말해야 할 필요성은 내가 작가 로서의 삶을 시작한 첫 순간부터 매우 명백한 과제였다. 존재 자체가 전 세계 적인 현상이 되어 버린 한계 없는 음유시인 파블로 네루다처럼, “사람들이 각자 의 목소리를 나의 노래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고/나는 깨어질 수 없는 맹세를 했다.4)” 은밀하게 퍼져 나가며 흔적을 남기는 인종차별주의, 식민주의, 사회적 부정의, 곳곳에 만연한 아노미적 상황, 국가의 영토와 전 세계의 모든 생태계를 위협하는 환경 파괴와 투쟁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아프리카계 작가에게는 그밖에 별다른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소수의 억만장자와 수많은 빈곤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국가에서 어떻게 양심적인 시인이 두 눈을 감고 잠들 수 있 을까? 어떻게 거지들의 추한 울부짖음에 동요하지 않고, 호사스러운 착취자들 을 향한 저주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듣기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어떻게 유미주의자들은 내용이 얼마나 시급하든 그 내용보다 텅 빈 형식이 우

4)

니이 오순다레, 『시장의 노래들(Songs of the Marketplace )』, 뉴혼 프레스(이바단), 198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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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내가 나의 시집 『연못 속의 펜촉 하나(A Nib in the Pond)』에 수록된 메타시 중 한 편에서 물었듯, 어떻게 시인이라는 자가 한껏 거드름 피우며 오물을 뚫고 걸어 나와서는 이 세상에 대고 자신에게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 것처럼 굴 수 있을까?

• 번역 : 양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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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try as an Act of Resistance | Niyi Osundare

Poetry as an Act of Resistance

I. Resisting the Tyranny of Silence Art, at its most fundamentally expressive, is an act of resistance against silence—an eternal battle with the void. The act of creativity is, almost invariably, a salutary intrusion upon the universe, a contestation with the airy forces of nothingness. The painter challenges the visual vacuum by “disturbing” the quiescence of the canvas; the sculptor endows the wood with a curious articulacy of shapes and forms; the ceramicist molds raw clay into images which engage our gaze; the writer fortifies our will to the word, rouses Humanity to voice, and livens mute spaces into sounds and echoes. Life as we know it today came to be through Humanity’s transcendence of silence; through its articulatory competence; its capacity for both saying and doing. In its deliberative, transitive, and transgressive mode, Art is nothing if not both a form and act of rebellion against death by dumbness. To resist is to wage a gall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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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 against inertia; to cause and/or force change to happen; to give expression to the most fundamentally human in us. I resist, therefore, I am. Perhaps in no other part of the world is this variation of mine on the Cartesian dictum truer than in Africa. For as the most incessantly violated continent on earth, here is a place that has so much to resist, a perennial victim of History that must re-generate the present and re-shape the future by building a bulwark of resistance against despair and defeatism through the cultivation of a critical, constructive remembrance, and the capacity for knowing what to remember and what to forget. “To remember is to resist,” declares Kwadwo Opoku Agyemang, the Ghanaian poet and scholar, in one of the poems in Cape Coast Castle, his poetic exploration of the vagaries of human memory and the saga of trans-Atlantic slavery. Appropriately enough, this quote is credited by the poet to Thomas Sankara, the sagacious, charismatic former president of Burkina Faso, whose brief but momentous leadership was marked by a combination of radical wisdom, political activism, and a rare preoccupation with social justice and the struggle for its institution and sustenance. Sankara never ceased to remind us about the importance of History—the different ways the past influences the present and pre-shapes the future; the need to resist amnesia and the disempowering incub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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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try as an Act of Resistance | Niyi Osundare

of negative memory and negative remembrance. In this and many instances, the Burkinabe leader’s ideas resonate powerfully with those of Ayi Kwei Armah, the renowned Ghanaian writer who, in one of his reflective moments leaves the reader with this admonition from the preface of Horses of Memory: There is no need to forget the past. But of each part of the past that we find in our present, it may be necessary to ask: will it bear me like a stepping stone, or will I have to bear it, a weight around my neck? A constant engagement with History through critical encounter and interrogative exploration; the necessary candor for exposing its ugliness and courage for confronting its challenges, the need to make lemonade out of the lemon which History has, for many centuries, sold to the African continent—these and other desiderata have constituted the central concerns of African and Africanist griots, writers, and scholars in their various roles as custodians of Africa’s memory. They have been in the forefront in the battle against amnesia. For, as Chinua Achebe was fond of saying, we need to know where the rain began to beat us; otherwise, we may never know where and how to dry our clothes. From its very beginning, modern African literature has n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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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ed away from its role in the work of regeneration and retrieval that is so urgent on the continent. The relationship between Writer and Righter, poet and prophet, has always been regarded as symbiotic, not mutually exclusive (Osundare 1986, 2007). As far back as 1967, quite early in his writing career, Wole Soyinka, the 1986 Nobel Laureate in Literature, had described the writer as the voice of vision in his own time. Soyinka’s conceptualization of “vision” here encapsulates the resistance to blindness, the type that makes people stumble through a wilderness of forgetfulness and despondency, two of the most vicious agents of stasis and underdevelopment. Chinua Achebe, Africa’s most famous novelist, enunciates the following in “The Novelist as Teacher,” an essay from his work Hopes and Impediments, which serves as a statement of purpose, not only for him but also for other African writers: The writer cannot expect to be excused from the task of re-education and regeneration that must be done. In fact, he should march right in front. For he is, after all … the sensitive point of his community. Articulated in this short quote are poignant instances of literature as modes and means of resistance. For Achebe, the writer is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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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try as an Act of Resistance | Niyi Osundare

sensitive point of his community”; for Soyinka, he is the “voice of vision in his time”; for me, the writer is a “righter.” These mission statements, these literary-ideological “manifestoes” find ample exemplification in the works of many African writers, such as Syl Cheney Coker, Odia Ofeimun, and Tanure Ojaide. Deliberate in his conviction, confident in the interventionist, transformative power of poetry/art, Ofeimun“weaponizes” his verse as “subversive litanies” for the ‘morbid landscapes’ of Africa. Here is a compelling instance of the poet as the one who lances the proverbial abscess of society. The African poet’s act of resistance is not only aimed at Africa’s hydra-headed issues. The resistance imperative also involves a strategic, frequently vociferous rebellion against the overbearing authoritarianism of formalism with its emphasis on abstract aestheticism at the expense of urgent relevance of content and message; the extremist privileging of the how upon the whatof the work of art, and the off-handed erasure of the author as creative agent and inaugurative force. Modern written African poetry was confronted by this theoretical and critical orthodoxy which glorifies the poem as am empty but pretty object, and subjects the poem to a total divestment from its historical, cultural, and political context. It was this situation that provoked Frank Chipasula’s “Manifesto on Ars Poetica,” the poet’s fam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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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textual resistance against formalist orthodoxy. Here we have instances of re-definition and re-exemplification of poetics as acts of resistance and new ways of seeing.

II. And Here Comes the “Political” Poet Every writer is a writer in politics. The only question is what and whose politics. - Ngugi wa Thiong’o

I have been called a “political poet” countless times, sometimes approbatively, sometimes pejoratively, depending on the critic’s school of thought and parameters of opinion. In the rigidly formalist way of thinking, poetry is poetry, politics is politics, and never, never shall/should the two meet for politics pollutes poetry, and poetry is appalled by politics. This was the prevailing situation in the second half of the twentieth century when written African literature was beginning to capture the attention of the Western world whose poetry and poetics were dominated by the titanic trio of T.S. Eliot, Ezra Pound, and Dylan Thomas and their modernist doctrine. The early periods of major African poets such as Christopher Okigbo, Wole Soyinka, and J.P. Clark were strongly influenced by this doctrine more or less the s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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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y their Francophone counterparts such as Tchicaya U Tam’si and Jean-Joseph Rabearivelo thrived under the spell of the pervasive surrealist movement. Thus, the African imagination, in line with the prevailing colonial situation, bent to the winds of the dominant literary and artistic theory with very little consideration for the colonizer/colonized, center/periphery, master/servant, rich/poor, powerful/powerless, articulate/voiceless asymmetry between the two regions of the world. And so, whatever was good for the colonial masters was deemed good for the colonized, but never the other way around. Naturally, art and aesthetic valuations fell within this pernicious binary; and so Western poetic practices and aesthetic standards dominated the African scene. One of them was the formalist, Art-for-Art’s-sake doctrine that built that wall between “poetry” and “politics.” If ordinary circumstances make resistance necessary, the colonial situation makes it both vital and inevitable. In my early days as a poet, my first major cause for rebellion was the formalist doctrine of the willful separation of form and content, and the undue privileging of the former over the latter. For, in my native Yoruba culture, aesthetic valuation isholistic. The beautifulness of form is not complete without the usefulness of content. Every work of art requires the balance between these two for its own accountability and raison d’etre, and this balance fortif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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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t answerable imagination that justifies text to context, the song to the audience, the creative space to the social arena. An empty water-bottle may charm the viewer with the sheer beauty of its external shape; but it can never slake their pressing thirst! So, how useful, how worthwhile will it be to spend a lifetime on the worship of the container to the snobbish disregard of the content? My ideological and literary practice is guarded by the principle of differential aesthetics. I believe that different cultures (and the languages which emanate from them while also serving as their expressive anchor), create different aesthetic paradigms that are indigenous to them and relatable to those of other cultures and languages across the world. The social and political contexts of these cultures also differ from place to place, a difference that is bound to have fundamental impacts on both the major thematic preoccupations and formal/stylistic peculiarities of their literary productions. In other words, what is considered vital in one place may be deemed trivial in others; what is regarded as tragic in one place may pass off as comic in others; what some people see as taboo may be nothing more than a marketplace cliché to others; what in one culture is a paragon of beauty may be regarded as the pinnacle of ugliness in another. By differential aesthetics I refer to a concept whose major prem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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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conscientious relativity, fair comparativity, difference without disadvantage. It can only thrive when its practice is accompanied with an intelligent sense of balance, deep sensitivity, the ability to see things from both/all sides. Its wisdom asks us not to compare our apple with someone else’s mango and then proclaim the gustatory superiority of our apple. This “ours-is-better-thantheirs” mentality is the moving force behind colonialist aesthetics and the tendentious formalism which powers its credo. But can the colonizer and the colonized really see colonialism from the same angle? Can the comfortable, well-fed, and powerful see the world in the same way as the hungry, pauperized, and powerless? What then happens when you try to impose the aesthetic doctrine of the powerful on the powerless, of the pampered rich on the pummeled-poor? The need to resist and re-tell this state of affairs stared me in the face from the very beginning of my writing career. Like Pablo Neruda, that boundless bard and global phenomenon, “I made an unbreakable pledge to myself/That the people would find their voices in my song.” There was hardly any other choice for an African writer whose society was battling with the insidious vestiges of racism, colonialism, social injustice, and its pervasive anomy, environmental degradation, which was threatening the national landscape and the entire global eco system. In a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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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 a few billionaires and countless millions of the wretched-poor, how can the conscientious poet sleep with both eyes closed? How can he sing pretty songs untouched by the ugly wails of beggars, untinged by curses on opulent exploiters? How can the aesthete insist on the supremacy of the empty form to the exclusion of the relevant urgency of the content? As I found myself asking in one of the meta poems in A Nib in the Pond, how can the poet strut clean through all the mess and pretend to the world he never sme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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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Lee Seung-U Korea

195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났다. 1981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에리직톤의 초상」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다소 무겁고 관념적인 내용을 정밀한 인물묘사와 독특한 문체 로 표현함으로써 일반적인 이야기 중심의 소설전통을 넘어서는 문학세계를 추구하 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생의 이면』, 『식물들의 사생활』, 『지상의 노래』, 『사랑의 생애』 등의 장편소설과 『미궁에 대한 추측』, 『오래된 일기』, 『신중한 사람』, 『모르 는 사람들』 등의 소설집을 출간했다.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받았다. 조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Lee Seung-U was born in Janghueng, Jeonnam in 1959. He began his writing career in 1981 when his novella “A Portrait of Erysichthon” won the Korean Literature New Writer’s Award. He is known for pushing beyond the usual story-oriented narrative and dealing with heavy and ideological subject matters through precise character descriptions and a unique style of writing. His works include the novels The Reverse Side of Life, The Private Life of Plants, Song of the Earth, and Life of Love, and the short story collections A Conjecture Regarding Labyrinths, The Old Diary, A Cautious Person, and Strangers. He is the recipient of the Daesan Literary Award, Hyundae Literary Award, and Dong-in Literary Award. He is a professor of creative writing at Chosun Unvi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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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 이승우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알파고와 아자황 2016년 3월 한국의 한 호텔에서 이세돌은 구글이 만든 인공지능 알파고와 바둑 대결을 벌여 1승 4패를 했다. 이 1승은 인간이 알파고를 상대로 거둔 유 일한 승리이다. 이 세기의 대결은 세계에 생중계되었는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손 이 없는 알파고를 대신해서 바둑판에 착수를 해 주는 사람의 손이었다. 보도 에 의하면 그 손의 주인은 알파고를 만든 구글 딥마인드 소속 대만인 아자황 이라고 한다. 아마추어 바둑 6단인 그가 그 대국에서 한 일은 인공지능 알파 고의 손이 되어, 알파고의 지시에 따라 바둑판에 돌을 놓는 것이었다. 그는 정 말 그렇게 했고,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손 말고는 없는 사 람이었는데, 그 손은 그의 손이 아니고 알파고의 손이었다. 대국이 끝나고 난 후의 관례적인 복기도 하지 않았다. 하기야 그는 대국자가 아니고, 그러니까 복기할 자격이 없으니까 복기를 하지 않는 것이 맞다. 그는 로봇 같았다. 서유미의 소설집 『당분간 인간』(2012, 창비)에는 자본이 세계를 지배한 사 회를 진단하고 비판하는 단편소설이 여러 편 실려 있다. 그의 소설들에서 사회 를 지배하고 인간을 통제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은 정부나 독재자나 군대가 아 니라 ‘회사’로 호명된다. 이 소설집에 실린 한 단편의 제목은 「저건 사람도 아 니다」인데, 사람의 일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지능 로봇이 점차 인간의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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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주보다 | One on One

한 일을 맡아 하게 되고, 사람은 허드렛일만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인공지능 로봇은 능력만 아니라 매력까지 가진 것으로, 인간은 능력만 아니라 매력도 없 는 것으로 그려진다. 우리가 우리의 필요와 편의를 위해 만든 것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은 역설 이지만 부정할 수 없다. 중독 증상의 대부분은 인간이 인간의 필요와 편의를 위해 만든 것에 지배받는 전도된 현상을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가령 도박이나 게임, 인터넷, 알콜, 포르노, 그리고 최근의 스마트폰까지 어느 것 하나 인간의 필요와 편의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 인간은 이렇게 하면 편할 텐데, 이렇게 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텐데, 이렇게 하면 힘 안 들이고 능률을 올릴 수 있을 텐데, 이렇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을 텐데, 이렇게 하면 재미있을 텐데, 하며 이런 저런 것들을 상상하고 발명하고 개 발하고 탐닉하고, 그 결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들의 지배를 받는다. 이 지배의 과정이 어찌나 자연스럽고 유연한지 의식하기 힘들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계산대에 앉은 여자가 속사포처럼 빠르게 묻는다. “마일리지 있으세요? 포 인트 카드 있으세요? 할인 되는 카드 있으세요?” 단호한 표정의 남자 고객은 말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남자 의 표정은 무슨 선언문을 낭독하는 것처럼 엄숙하기까지 하다. 몇 년 전에 한 카드회사가 만들어 내보낸 광고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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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 이승우

너무 복잡해진 스마트폰은 인간을 기계와 소비의 종으로 만든다. 유용한 점 이 없지 않지만, 꼭 필요한 것인지 의심스러운 것들이 더 많다. 편리를 위한 인 간의 필요보다 이익을 위한 인간의 욕망이 더 크고 억세다. 통제 불능에 이른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필요하지 않아도, 필요와는 상관없이, 돈을 벌 수 있다 면 무엇이든 만들어 낸다. 싸우기 위해서 무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기를 팔기 위해 싸움을 벌이기도 하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의 필요가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기술이 인간의 필요를 만들어 낸다. 필요는 발명 된다. 자기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착취하게 하는 신자유주의의 착취 방법을 폭로 한 사람은 『피로사회』의 저자 한병철이다. 우리가 착취당한다는 의식 없이 자 발적으로 기꺼이 자신을 착취한다는 것. 자본이 주인인 세상은 사람에게 더 하 라고 하고, 더 가지라고 하고, 더 즐기라고 하고 더 출세하라고 한다. 더 하 는 것을, 더 가진 것을, 더 즐기는 것을, 더 출세하는 것을 보여 주라고 한다. 옷으로 몸으로 자동차로 SNS로 전시하라고 부추긴다. 그것을 통해 표면적 으로 우쭐해진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다. 그러나 그 표면적 우쭐함이 내면을 깎아내고 파내고 공허하게 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진실은 이야기되지 않는다. 르네 지라르는 모든 욕망이 매개된 것이라고 했다. 인간의 소외는 소외되기이 면서 동시에 소외시키기다. 소외의 주체와 객체가 같다. 발부터 시작해서 머리까 지 자기 몸을 먹어 치우는 상상 속의 동물 카토블레파스를 우리는 마리오 바 르가스 요사의 책 『젊은 소설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읽었다. 그는 소설가의 운명을 이 동물에 비유했는데, 즐기면서, 즐기는 방법으로 자기를 착취하는 한 병철의 현대인을 비유하는데 이 상상 속 동물은 손색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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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단식 광대 카프카의 단편 「단식 광대」에는 밥을 굶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나온다. 구경꾼들은 무언가 특별한 것을 매우 역동적으로 ‘하는’ 것 을 보여 주는 사람들을 보려고 서커스 장에 간다. 이를테면 불을 지나가든가 공중에서 그네를 타든가 접시를 돌리는 사람들. 그런데 그 모든 ‘하는’ 사람 들 가운데서 단식광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 는가? 그는 왜 밥을 먹는 일을 하지 않는가?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단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어. 왜냐하면 내 입에 맞는 음식이 없었기 때문이야.” 이 사람의 말은, 먹을 것이 넘쳐 나는 세상을 사는 우리로서는 특히 이해하 기가 쉽지 않다. 한편 이 광대의 말은 우리가 입에 맞는 음식을 먹고 있는지 질 문하게 한다. 우리는 ‘내 입맛’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기나 한 것일까?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이 없지는 않다. 맛있는 음식이 어느 시대보다 많을 것이다. 그 런데 그것들, 우리가 맛있게 먹는 그 음식들은 정말로 내 입에 맞는 음식일까? 그 맛은 내 입맛일까? 르네 지라르는 내 입맛에 대해 할 말이 없을까? 입에 맞 는 음식만 먹는다는 것, 내 입에 맞는 음식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는 것은 타인 에 의해 매개된 욕망이 아니라 주체적 입맛에 따라 음식을 선택한다는 뜻이다. 유혹과 중독, 모방 충동에 따라 필요와 욕망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필요에만 충실하다는 뜻이다. 자기 삶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모든 곳이, 심지어 가상공간까지를 포함해서,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거대 한 서커스 장으로 바뀐 세상에서 이 일이 쉬울 리 없다. 광고 속의 남자가 ‘격 렬하게 안 하고 싶다’라는 이상한 문장을 사용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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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 이승우

문장은 모순이다. 격렬하게 할 수는 있지만 격렬하게 안 할 수는 없다. ‘격렬 하게’는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안 하기 위해 필요한 태도가 아니다. 이 모순의 문장은 우리가 하지 않기 위해서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는 시대 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린다. 안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암시한다. 안 하려 기 위해 ‘격렬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우친다. 무빙워크 위에 올라선 사람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빙워크가 어딘가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욕망에 저항하기가 어렵다는 것, 시대와 세상이 요구하는 것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단호함이 필요하다는 것, 격렬함이 요구된다는 것이 이 문장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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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ish to Do Nothing Fiercely

AlphaGo and Aja Huang In March 2016, Lee Sedol played a Go match against Google’s AI AlphaGo at a hotel in South Korea, which ended with him winning one game and losing four. His one win is the only victory by a human over AlphaGo to date. In this battle of the century, which was broadcast live worldwide, one memorable element was the human hand that placed the stones on the Go board for the limbless AlphaGo. According to reports, that hand belongs to Aja Huang, a Taiwanese member of Google Deepmind, the team that developed AlphaGo. An amateur sixth-dan Go player, Huang’s job in that match was to be the hand for the AI AlphaGo, following AlphaGo’s directions to place stones on the Go board. Huang did just that and nothing else. He existed only as a hand, which belonged not to himself but to AlphaGo. He did not even stay for the customary replay after the match. As a noncontestant, he was not eligible to replay the match, and his n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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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ish to Do Nothing Fiercely | Lee Seung-U

partaking in the replay was correct. He looked like a robot. A collection of Seo Yumi’s short stories, Human for Now (2012, Changbi) includes several short stories that assess and criticize societies that have allowed capital to overtake the world. Seo’s stories point out that the absolute power that dominates societies and controls humankind is not a government, dictator, or military, but corporations. One short story in the collection, titled “It’s Not Human,” describes a situation in which AI robots created to assist human affairs gradually take over important human roles, and people are relegated to doing menial work. The AI robots have charm as well as skills, and humans are depicted as lacking both. The premise of us being dominated by what we create to satisfy our needs and increase convenience is ironic but undeniably real. Most symptoms of addiction exemplify the phenomenon of reversal, of humankind being dominated by what it has created to satisfy its own needs and convenience. From gambling to games, internet, alcohol, pornography, and more recently, smartphones, every example is created for the purpose of satisfying human needs and convenience. People think, Doing this would be convenient, would save time, would increase efficiency with little effort, would make more money, would be fun...They imagine, invent, develop, and indulge in new ideas, and before they know it, they are dominated by the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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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ventions. This process of domination is so natural and fluid that it is difficult to notice.

I wish to do nothing… I wish to do nothing more fiercely A woman sitting at a cash register asks like a rapid-fire gun, “Do you have mileage membership? Do you have a points card? Do you have a discount card?” A man with a stern face says, “I wish to do nothing. I wish to do nothing more fiercely.” The man’s expression is almost solemn, as if he is reciting a declaration. This is a commercial produced and released by a credit card company several years ago. Smartphones have become too complicated and make humans slaves to machines and consumption. Not every function is unhelpful, but the necessity of the majority of functions is doubtful. The human desire for profit is greater and more powerful than the human need for convenience. Impossible to control, capitalism today produces, without or regardless of need, anything that generates profit. Rather than producing arms to fight, humans sometimes start conflicts in order to sell arms. Rather than human necessity leading to products, capitalist-driven technology generates human necessity. Necessity is inv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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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ish to Do Nothing Fiercely | Lee Seung-U

In his book The Burnout Society, Byungchul Han discloses a neoliberalist method of exploitation that causes people to exploit themselves. According to Han, we exploit ourselves, unaware of the fact that we are being exploited. A capital-driven world tells people to do more, have more, enjoy more, and be more successful, to demonstrate that they are doing more, have more, are enjoying more, and are more successful. It encourages people to display this via their attire, bodies, cars, and social media. Through such displays, people feel superficially proud. This superficial pride is established by digging up, carving away, and hollowing out one’s inner self, but this truth is rarely discussed. RenÊ Girard claimed that all desires are mediated. Human alienation entails both becoming alienated and alienating. The subject and object of alienation are one and the same. Letters to a Young Novelist by Mario Vargas Llosa introduces us to the catoblepas, a legendary animal that eats its own body from feet to head. While Llosa compares the fate of a novelist to this legendary animal, it seems perfectly suited as a metaphor for a contemporary person as described by Han, who exploits himself as he enjoys himself, as a way of enjoying him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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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fka’s Hunger Artist Franz Kafka’s short story “A Hunger Artist” features a person who does nothing but starve himself. Spectators go to a circus in order to see special and dynamic “actions” performed by people. They want to see people walk through fire, swing on a flying trapeze, and spin plates. Amidst all of these performers of “actions,” the hunger artist has no action. Why is he doing nothing? Why is he not eating something? The hunger artist explains, “I was left with no choice but to fast. There was no food that suited my taste.” These words are difficult for us to understand, especially as we live in a world inundated with food. At the same time, the hunger artist’s words make us question whether we are eating foods that suit our tastes. Do we even have our “own tastes”? Certainly, there are foods that we like. Perhaps there are more savory foods now than ever. But are these foods, which we eat and savor, truly what suit our tastes? Is that taste my taste? Does Rene Girard have nothing to say about my taste? Eating only food that suits one’s taste, and not eating what does not, is not following a desire mediated by others, but choosing food based on independent taste. In other words, it is being faithful to one’s own needs rather than generating necessity and desire out of temptation, add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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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ish to Do Nothing Fiercely | Lee Seung-U

orimitative impulse. It implies mastery over one’s own life. This cannot possibly be easy in a world that has turned into a gigantic circus, where everywhere, including virtual spaces, is a place to “display action.” I can understand the reason that the man in the commercial used the peculiar phrase, “I wish to do nothing fiercely.” This sentence is contradictory. Doing something fiercely is possible, but doing nothing fiercely is not. “Fierceness” describes an attitude for doing something rather than nothing. This contradictory sentence states that we are living in an era when doing nothing cannot be achieved by sitting still. It implies that doing nothing is challenging. It reminds us that “fierceness” is required in order to do nothing. A person on a moving walkway does not need to do anything to move. As we do nothing, the moving walkway takes us along. The core message of the statement is that resisting desire is challenging, that not doing what the times and the world demand requires firm resolution, or fierceness. • Translated by Eunji Mah  Edited by Jeffrey Karvon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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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마티외 Nicolas Mathieu France

Ⓒ Piernck Delobelle

프랑스 에피날에서 태어나 역사, 영화, 예술사를 공부했다. 파리에 15년간 거주하 면서 박봉에 힘든 직업을 전전했다. 오랜 고생 끝에 2014년에 발표한 첫 장편 소설 『동물전쟁(To The Beasts, The War )』은 TV 프로그램으로 제작되었다. 두 번째 장편 소설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Their Children Who Came After Them )』 은 2018년 공쿠르상(Goncourt Prize)을 수상했다.

Nicolas Mathieu was born in Epinal. He studied history, cinema and history of arts. He lived in Paris for 15 years, where he had many jobs, almost always underpaid and frustrating. After years of struggling, he published his first novel To The Beasts, The War (Aux animaux la guerre) in 2014, which became a TV show. The Children Who Came After Them (Leurs enfants après eux) is his second novel, which won the Goncourt Prize in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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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소외 | 니콜라 마티외

인간 소외

그 어떤 사회도 진실로부터 살아남을 수 없다. 태양을 오랫동안 마주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1985년 노벨 아카데미 연설에서 클로드 시몽이 말했 듯이 이것야말로 세상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가톨릭 사제나 교회 전도사, 무사태평한 부르주아나 무정부주의자, 철 학자나 문맹자에 이르기까지 나는 아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왔습니다. 무뢰한들에게 빵을 나누어 주기도 했으며 세상 곳곳을 여행했습니다……. 그럼에도 일흔두 살이 된 지금 이 모든 일들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습니 다. 셰익스피어에 대해 바르트는 말했다지요. “만일 세상이 무언가를 의미 한다면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게 바로 그 의미입니다.”라고요.

의미라는 픽션 의미가 결핍되고 우리가 그저 한순간의 행인에 지나지 않을 뿐인 이 세상은 개개인에게는 물론이요 사회에 있어서도 냉정하다. 그래도 우리가 살아가고 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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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고 도전하는 것은 의미라는 거짓말 덕분이다. 존재하지 않는 의미를 바로 우 리가 한 조각 한 조각 만들어 낸다. 이렇게 의미의 우화를 끝없이 지어내며 무 질서, 무의미, 영원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방어막을 만드는 게 우리가 살아가 는 방식이다. 잔뜩 부풀린 헬륨 풍선처럼 우리의 믿음에 투자하는 가치, 사상, 원칙의 공백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끝없는 생산을 계속한다. 믿음이야말로 우리의 유일한 구원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 사람이 100, 1000, 1000만 에 이르렀을 때 그 가치는 더 이상 완전히 허구라고만 말할 수 없게 된다. 그 가치가 인간 문명을 콘크리트보다 더 탄탄하게 지탱한다. 소외라는 용어에 철학자와 법학자들은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해 왔다. 그런 데 소외란 한 개인 내부에서 세상에 명령하고 그에 부응해 우리 행동을 명령하 는 역사와 이 역사의 허구적 성격에 대한 은닉이 서로 만나는 지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소외란 동화 속 요정 이야기를 잊도록 만드는 힘이요, 인간이 다소 자발적인 맹신과 고지식함에 복종하고 의지할 때 우리는 소외에 이르게 된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가장 정교하고 아름다운 형태이면서 인간 세상의 가장 끔찍하고 황당한 이야기, 즉 우리 제도를 떠올려 보면 된다. 기관과 권력의 수 단으로 사용될 만큼 성공한 우화가 바로 제도이고, 이를 통해 제도는 힘을 얻 는다. 제도를 힘으로 무장하는 것은 우리 믿음이며, 그 대가로 제도는 우리를 지배한다. 국가, 정의, 교회, 학교, 경찰이 위조 화폐를 찍는 은행처럼 여기에 합세한다. 번번이 대리석인 척하지만 우리 앞에 놓인 것은 늘 종이로 만든 사원 이요, 우리 신뢰를 얻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가치의 덩어리일 뿐이다. 그럼에 도 이 가치 덩어리인 괴물을 창자로 만든 풍선처럼 터뜨리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 의심하는 자세만으로 충분하다. 이런 상황은 가령 프랑스 혁명 당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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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소외 | 니콜라 마티외

그랬던 것처럼 민중이 잠시 미루어 두었던 믿음을 되찾을 때 찾아온다. 그리하 여 우리는 이 불멸로 여겨지던 거대한 바다 괴물 리바이어던이 산산조각 나 손 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시체가 되고 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면 남는 것은 모든 게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움직였다는 뼈아픈 인식뿐 이다.

가치에 드리운 베일 프랑스라는 나라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세 가지 가치를 혁명으로부터 물 려받았으며 이 세 단어가 프랑스의 방향을 결정한다. 세 단어는 국민의 열망, 이데올로기적 지평, 우리 지도자들이 실행하는 정책의 토대를 가장 응집된 방 식으로 지시하고, 이는 일종의 공통된 초석, 우리 모두가 동의해야 하는 가치 들의 이상적인 종합이다. 이 보편적인 토대에서 다양성이 나온다. 자유, 평등, 박애는 그러므로 프랑스라는 하나의 집을 견고하게 하는 픽션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면 이 프로그램은 하나의 차폐막에 지나 지 않는다. 원칙의 선언이라는 편리한 가면 뒤에서 우리 사회의 곳곳은 근심스 러운 징후를 감추지 않는다. 박애라는 정숙한 베일 아래 수천의 적대적 이해관 계가 지칠 줄 모르는 전쟁을 이어 가고 가족, 기업, 법원, 집회, 학교 운동장에 서 권력 관계가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진행 중이다. 우리가 가장 열정적으로 믿 는 유혹인 자유도 은폐 내지 환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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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라는 코믹한 환상 생활 속의 매우 평범한 동작, 가령 볼펜을 잡기 위해 내 손이 취하는 동작 은 고의적이고 자발적인 나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본능적으로 생각하기 마련 이다. 내가 내리는 결정은 필연적으로 나에게 속해야 한다. 내가 맺은 모든 관 계를 마치 옷이나 직업, 학업, 아내와 같이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으려는 경향이 있어서 끊임없이 나는 내 의지의 승리를 되풀이한다. 매 행동마다 나는 내 자 유 의지에 대한 가설을 확신하지만 우리는 줄곧 스스로를 신으로 여기는 모르 모트다. 사실은 나의 자유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DNA가 눈, 머리카락, 피부, 특징과 약점을 전부 프로그래밍한다고 할 때 나의 자유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비만이나 그 반대, 알코올 중독, 당뇨 혹 은 혈우병 환자가 되도록 결정하는 건 유전자 속에 잠재된 코드다. 어쩌면 수 명에 대한 비밀도 세포 틈새 어딘가에 이미 들어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출생 조건 앞에서 자유가 하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나의 출생은 고유한 지리, 사회 환경, 유산과 신경증을 가진 가정에 등록되고, 모든 환경 요소가 출생과 동시에 중요성을 더하고 앞으로의 나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권력이 있는지 아니면 비루한 처지인지 같은 크고 작은 힘을 발휘할 제약 조건 은 한없이 많다. 물리 법칙, 법률 규범, 무의식의 역할, 생물학적 필요 사항 등 등. 그럼에도 나는 자유롭기를 주장하고, 그럴수록 더욱 소외되어 나를 대상 으로 하는 지배 권력을 무시하고 싶어진다. 장편소설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에서 나는 사회 조건, 출생, 가족, 영역의 운명성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는데 이 점에 대해 나를 비판하는 독자들이 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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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소외 | 니콜라 마티외

있다. 자유를 향한 사람들의 완벽한 믿음과 신뢰는 너무나 뿌리가 깊은 나머지 누군가 재생산의 메커니즘을 제시하기만 해도 자신을 자연의 스승이나 주인으 로 간주하는 인간에게 치명적인 과오나 비난으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소외되었으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 사람들 고대인들은 현대인들보다 덜 어리석었고 현대인들보다 덜 순수했던 게 아닐 까. 비극의 영웅들은 자발적인 의지로 운명에 맞섰다. 영웅들은 그들의 자유가 가진 한계를 더 잘 가늠할 줄 알았다. 반면 휴머니즘, 기술의 승리, 과학의 진 보는 우리를 도취시켜 자유의 한계에 눈멀고 귀먹게 만들었으며, 갓 세상에 나 온 아기들처럼 우리는 가능성과 욕망의 무한함을 맹신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한계를 가진 인간이다. 오늘날 과연 어느 만큼의 자유를 지녔는지 오해하고 있는 우리는 어느 시기 보다 소외되었다. 주어진 공간에서 엄청난 자유를 누린다고 믿지만 정작 우리 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조건화된 자유만을 가질 뿐이다. 소소한 자유와 이 거 대한 예속 사이에 작용하는 힘의 정확한 관계에 대한 인식이 떨어질수록 예속 의 강도는 더욱 세지고 자유는 더욱 옹색해진다. 자유 의지에 얽힌 우화는 우 리가 얼마나 예속된 존재인지 가늠하고 책략과 통찰력을 통해 우리의 행동 능 력을 키우는 것을 막아 역설적으로 우리를 더욱 속박되게 만든다. 자유에 대한 우리 믿음이 진정한 해방의 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방해하기 때 문에 우리는 소외된다. 그러나 이 비극에도 한 가지 긍정적인 면이 있다. 이러 한 자유는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지만 우리를 채근하는 거짓말을 탐색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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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적으로나마 정복이 가능하다. 우리는 그저 단 일 분이라도 태양을 정면으 로 바라보면 된다.

• 번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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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희


Human Alienation | Nicolas Mathieu

Human Alienation

No society can survive an hour of truth. No man can look directly into the sun for too long. For at the heart of these things, as Claude Simon expressed in his speech to the Nobel academy in 1985: “I have rubbed shoulders with a wide range of people, from priests to men who burnt down churches, from peaceable bourgeois to anarchists, from philosophers to illiterates, I have broken bread with crooks, and I have traveled all around the world… and never yet, at the age of seventytwo, have I discovered any meaning to all this, except what I believe Barthes said, following Shakespeare, that ‘if the world means anything, it means nothing’ – except that it is.”

The Fiction of Meaning This world short on meaning, in which we are only fugitives passing through, is undoubtedly intolerable for the individ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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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even more so for societies at large. How, from here, can we continue to live in spite of everything and hold it together? It is a daunting task that we take on at the expense of a lie: that of meaning. Given that there is none, we manufacture it from scratch. Constantly, we dream up fables to shield us from disorder, vacuity, and impermanence. We invent to overcome the emptiness of the values, ideas, and principals that we invest with our faith, like balloons bloated with helium. To believe is our sole recourse. And since we are a hundred, a thousand, ten million to believe in it, a value is no longer entirely a fiction. Like concrete, it has taken on and holds together an entire civilization. Philosophers and jurists alike have ascribed different meanings to the term alienation. But one can perhaps define alienation as that meeting point within an individual between a story that gives order to the world and governs our conducts accordingly, and the concealment of this story’s fictitiousness. Alienation acts by diverting attention from its fairytale-like quality and succeeds in doing so by relying on the more or less willful credulity of the man who obeys. To better understand, we need only look to the most elaborate forms (the most beautiful because the most terrible) what these stories take for granted: our institutions. An institution is a fable which has succeeded so well that it has created an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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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ers, and weapons to serve it. From there, it can exercise its strength. Our faith has armed it. In return, it dominates us. State, justice, church, police, school—each time it is the same banks issuing the same false currency. Each time we find the same house of cards pretending to be marble, aggregates of values that would be nothing without the credit we accord them. Yet, it takes but one doubt for these behemoths to deflate like the windbags they are. This happens, on the occasion of a revolution, for example, when a people retake the faith that they had left behind. We then see these supposedly indestructible Leviathans crumble, finding themselves cadavers with the snap of a finger. And all that remains is that painful realization: this all worked only because we wanted to believe in it.

Behind the Veil of Values In France, we inherited the motto of the Revolution, which holds in three words: liberty, fraternity, equality. These three words set the course for our Republic. They indicate in the most collected of ways the aspirations of a people, its ideological horizon, and the foundations that must guide the policies our masters put into place. Ideally, these three words summarize a kind of common precondition, the values upon which we are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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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posed to agree a priori. From this universal basis, we can be as diverse and disparate as we want. Liberty, equality, fraternity: this is the fiction that cements the French nation. At a closer look, however, this program is but a facade. Behind the convenient mask of this declaration of principle, our society can continue to be iniquitous throughout. Under the modest veil of fraternity, a thousand antagonistic interests continue to tirelessly go to war, as ageless power relations are actualized in families, businesses, courts, assemblies, and school yards. To say nothing of freedom, the lure we believe in most passionately.

The Comical Illusion of Liberty Indeed, in my daily life, I instinctively believe that the gesture of my hand to grab my pen is deliberate. A decision I make must be my own. As for the relationships I have built, I want to believe that I have chosen them, like my clothes, my career, my studies, my wife—almost everything, in fact. Incessantly, I exercise the triumph of my power of choice. With each act, I promote the hypothesis of my free will. And yet, I am still the laboratory mouse who takes himself for God. For in reality, my freedom is but a trifle. Where was my liberty when my DNA programmed the color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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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eyes, my hair, my skin, and no small number of my talents and weaknesses? In my genes, a code predisposes me to be obese or thin, alcoholic, diabetic, or hemophiliac. Perhaps even there, in the folds of my cells, lies the secret of my longevity. What power has this liberty given the conditions of my birth? For my entry into the world was inscribed in a geography, a social context, a family with its heritages and its neuroses, a whole environment that from my beginnings has held an unknowable weight and continues to contribute to the very being that I am. It remains necessary to further detail the constraints that act with varying levels of influence, depending on whether one is prince or pauper: the laws of physics, legal norms, social functioning, the role of the subconscious, biological necessities, and so on and so forth. Yet I claim to be free, and I am all the more alienated because I wish to disregard the reigns to which I am a subject. In my latest novel, Leurs enfants après eux, I place considerable emphasis on social conditioning, the fatalities of birth, of the family, of territory. And I am met with much criticism from readers. Belief in our total freedom is so firmly ingrained that the mere fact of bringing to light the mechanisms of reproduction at work appears as a fault, an insult to the man who still imagines himself master and possessor of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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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주보다 | One on One

Alienated, but Freeable It seems to me that the ancients were less sensitive, and far less naïve. In tragedy, their heroes knowingly faced their destiny. They better gauged the limits of their freedom. Humanism, the triumph of technology, and scientific progress have intoxicated us and made us blind and deaf to what confines us. Like newborns, we believe that our possibilities are unbounded, commensurate with our limitless desires. Yet, we cannot have it all. Today, I find us more alienated than ever, because we are mistaken about the dimensions of our freedom. We believe ourselves to be immensely free in an open space, whereas I believe we are primarily conditioned in a constrained space. And the less we are aware of the exact balance of power between this small freedom and this great servitude, the greater our enslavement and the lesser our autonomy. The myth of free will paradoxically condemns us to further confinement, because it forbids us to measure the extent of our servitude and thus to attempt, with cunning and lucidity, to increase our power to act. We are alienated because our conviction of freedom bars us from working toward the possibility of real emancipation. But there is good news in all of this. We can partially conquer this liberty we do not have, in the illusion we inhabit, on the con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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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Alienation | Nicolas Mathieu

that we examine the lies that summon us. To do so, one must simply dare to look directly into the sun for a moment. • Translated by Laura Gom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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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주보다 | One on One

오정희 Oh Jung Hee Korea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뒤 1968년 중앙 일보 신춘문예에 「완구점 여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인물의 섬세한 내면을 철학 적 존재론과 심리적 자의식 측면에서 섬세하게 묘사하여 새로운 소설경향을 선도 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소설집 『불의 강』, 『유년의 뜰』, 『바람의 넋』, 『불꽃놀이』, 『새』 등이 있다. 1979년 발표된 단편소설 「저녁의 게임」은 2009년 동명의 영화로 도 만들어졌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동서문학상, 독일 리베라투르 문학상을 받았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다.

Oh Jung Hee was born in Seoul in 1947. She attended Sorabol Art College where she received her BA in creative writing. She made her literary debut in 1968 by winning the JungAng Ilbo New Writer’s Award for her short story “The Toy Store Lady”. She is known for her delicate explorations of hidden human desires through her portrayal of characters who resolve real-life problems in their interactions with others. Her works include River of Fire, Childhood Garden, Spirit of the Wind, Fireworks, and Bird. Her short story “Evening Game” (1979) was made into the movie Today and the Other Days in 2009. She is the recipient of the Yi Sang Literary Award, Dong-in Literary Award, Dong-seo Literary Award, and LiBeratur Award. She is a member of the National Academy of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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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과 책상 | 오정희

밥상과 책상

여성의 시선이라는 주제는 대단히 포괄적이어서 짧은 지면, 제한된 시간으로 다루기에는 무리가 있고 일반화시키기에도 어려운 측면이 있어 개인적 경험과 생각이라는 단서를 달고 이야기해 보려 한다. 사람은 저마다의 창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달리 말하면 사유, 시선이라고 도 말할 수 있을 텐데 아주 단순하게 구분하자면 나는 세 개의 창을 가지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 여성, 작가로서의 시선이다. 동시대인으로 서 적응하고 타협하려는 생존 본능과 남성과 상대적인 존재로서의 여성적 현 실, 그리고 이들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성찰하면서 추상적 사유를 소설로 써 형상화하는 작가로서의 시선이 그것이다. 이 셋은 서로 겹치거나 어긋나거나 충돌하면서 나의 정체성을 이루는 것일 게다. 유년기를 지나 몸의 2차 성징이 나타나면서부터 어머니는 마치 비의를 전수 하듯 ‘몸을 지키는 일’에 대해 나름의 교육을 했다. 몸을 지키지 못해 인생을 망치는 여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자로 태어난 죄’로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펼쳐 갈 수 없음을 한탄하며 딸들은 당신들과는 다른 삶을 살 기를 원하면서도 제도와 규범 밖의 생활에 따르는 위험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 하였다. 그 모순과 자가당착을 비판하고 비난하면서도 오랜 전통, 남성중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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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주보다 | One on One

사회의 제도와 문화에서 형성된 가치관을 내면화시키며 어린 여자아이는 여성 으로 성장해 갔다. 십 대 후반의 내가 장차 작가로 살아가겠다고 하자 부모는 노골적으로 반 대하셨다. 생활인으로서의 건강성을 잃고 불행해질 것이라고 했다. 규범과 관 습에서의 일탈로 딸의 삶이 상처받고 훼손당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내가 아들 이었다면 부모의 반응은 좀 달랐을 것이다. 작가로서의 삶이 나를 온전히 나 로서 살게 하고 내 존재를 실현하게 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부모는 똑같 은 이유로 반대하셨다. 여성이 갖는 그러한 자유로운 정신과 욕망을 위험시한 것이었다. 부모의 반대에도 나는 결국 작가가 되었지만 은연중에 내면화시킨 가치관과 문화가 작가 생활 내내 내 안의 욕망과 충돌하고 억압했음을 부인 할 수 없겠다. 내 기억 속에는 우리가 흔히 밥상으로 사용하는 작은 상에 원고지와 필기구 를 놓고 글을 쓰는 여성작가들의 사진이 인상적으로 각인되어 있다. 조금 전 까지도 가족들이 둘러앉아 식사를 했을 것이 분명한, 음식냄새와 젖은 행주 자 국이 남아 있을 법한 밥상이었다. 자기만의 방이 없고 가족의 일상사를 꾸려가 야 하는 여성이 이 작은 밥상 앞에서 창작이라는 허구의 시간과 공간으로 건너 가기 위해 거의 사투에 가까운 과정을 겪는다는 것은 나 또한 작가로서의 생 활을 하면서부터 알게 되었다. 가족을 위해 가장 먼저 일어나고 가장 늦게 잠 자리에 드는 전천후 노동자로서의 여성의 모습을 보고 자란 세대이기에 자신의 내적 욕망과 가정에 대한 책무, 양육의 담당자로서 사회적 내면적 검열에서 자 유로울 수 없어 그 시대 여성의 문학은 안으로 피 흘리는 내출혈의 문학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밥을 짓는 힘, 밥상을 차리는 손으로 즉 밥상과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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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과 책상 | 오정희

상을 필사적으로 함께 끌어안고 산 여성들의 삶과 글을 읽으며 나는 문학의 세계로 입문하였다. 내 방을 따로 가질 수 없는 작은 집에서 살 때 나는 궁여 지책으로 부엌 귀퉁이에 책상을 놓고 그곳에서 가계부와 일기, 소설을 쓰고 책 을 읽었다. 이른바 ‘존재의 테이블’ 이었다. 나만의 공간을 가질 수 없는 형편 에 불만이 자심했지만 일상의 공간과 창작의 공간을 함께 끌어안는 일은 삶의 구체성과 더불어 나 자신이 그림자거나 유령이 아닌 현실을 토대로 발붙이고 있는 정직한 인간으로 느끼게도 해 주었다. 구체적 삶의 담당자로 ‘인간 존재 라는 이 기괴한 사건’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강한 힘을 느끼기도 하 였다. 작가로서의 나는 여성이라는 태생적 조건에서 그다지 자유로울 수 없었 던 것 같다. 실제로 소설 속에서 여성 인물을 주로 다루고 있기도 하거니와 일 상이 요구하는 공간과 창작이 요구하는 공간이 서로 길항하는 곳, 그 긴장이 나의 문학의 자리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또한 부엌에 놓인 책상이라는 것이 갇힌 공간, 한계로 작용하기도 했을 것이다. 내 소설 속의 주인공은 어린아이로부터 젊은이, 나이 들어 가는 이, 생의 끝 에 다다른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다. 안주하고자 하는 욕망과 자유롭고자 하는 욕망 사이의 긴장, 억눌린 욕망과 열정이 어떻게 평온 한 일상의 균열을 만들고 파국으로 치닫는가, 등등의 소설들을 쓰면서 그중 계속되는 관심사는 여성의 고유 특권으로 상찬되는 ‘모성’이었다. 우리 문학 에서 모성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볼 때 한나라의 고통과 간난의 역사는 또한 여성의 수난사이기도 하다. 전쟁을 겪고 남자들이 사라진 세상에서 가족의 생존, 양육의 책임은 여성에게 맡겨졌고 그 에 따른 여성의 고통과 희생 헌신에 대한 보상으로 모성 신화, 찬양이 이루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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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주보다 | One on One

부분도 있을 것이다. 남성적 시각에 의해서 여성을 억압하면서 모성을 찬양하 는 모순을 낳기도 했을 것이다. 작가이며 여성인 내게 ‘여성=모성=초월적 가 치’ 라는 것은 너무 안이하고 간단한 도식으로, 다분히 남성적 시각의 산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실제로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내 전존재, 자아가 사라지고 오 직 모성 그 자체가 되어 버리는 경험을 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모성 신화라는 튼튼한 덫인가, 자신의 존재를 지움으로써 더 크고 숭고한 세계를 얻는다는 환상에 빠진 것은 아닌가, 어쩌면 삶의 지난한 책무로부터의 도피가 아닌가 자 문하곤 했다. 언젠가 한 남성으로부터 자신의 가장 큰 소망은 아이를 낳아 보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작은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 때문 에 다른 내밀한 소망, 수줍은 토로와는 다른 처연함과 진정성이 느껴졌다. 여 성으로서의 고유성에 대한 자부심과 남성과 상대적 입장에서 약자라는 피해의 식을 함께 갖고 있는 나 자신이 여성의 자리, 여성 중심적 사고에 갇혀 있지 않 은가를 돌아보며 우리가 규정된 성을 갖고 있되 결코 단성적 존재는 아니라는 것, ‘남자가 되고 싶은 여자, 아이를 낳고 싶은 남자’란 불합리하고 기형적인 욕망이나 결핍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존재하는 양성성임을 인정하 고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모든 의문과 성찰, 혐의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여성의 문학에 는 슬픔이 깃들어 있다. 여성은 생명을 잉태하고 세상으로 내보내는 사람이기 에 이미 그 시작부터 죽음과 함께하는 생명을 품는 자로서의 원죄의식이 아닐 까 생각을 비약시켜 보기도 한다. 그러기에 모든 죽임과 폭력과 훼손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여성 문학은 실존이라는 고독과 불확실성 속에 머물며 인간과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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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과 책상 | 오정희

상, 뭇 생명들의 어우러짐을 향한 여성, 여성 작가들의 깊고 섬세한 슬픔과 연 민의 시선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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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Table and Writing Table

It is difficult to treat women’s perspective as a topic within the confines of time limit or page numbers. This topic covers such broad grounds that it is not possible to generalize. Thus, I will take a personal approach through my own experiences. Each person sees the world through his or her lens; one may call it a viewpoint or gaze. However, I would like to simplify the matter and say that I have three different types of lenses. I see the world through the lens of a human being, who has lived through my times. At the same time there is the lens of a woman, who instinctively struggles to adapt to the realities of being a male counterpart. Finally, I see the world through the eyes of a writer, who reflects and introspects ceaselessly to give form to her abstractions through novels. As such, my identity is shaped by these three components that overlap and collide with each other. When I reached puberty and went through physical changes, my mother educated me on “protecting myself ” as though she were telling me some untold truth. She did not wish me to become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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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Table and Writing Table | Oh Jung Hee

self-destructive woman by not being able to manage my own body. Feeling cursed as a woman, mother lamented that she could not live as she desired and wished upon her daughter an alternative fate. Yet, she warned her daughter endlessly against the risks of living outside the social norm. This little girl came of age not only criticizing her mother’s contradictions, but also internalizing the traditional patriarchal culture. In my late teens I announced that I would make my living as a fulltime writer. My parents blatantly objected to my plan and told me that I would become unhappy leading an unruly lifestyle. They did not wish their daughter to get hurt in any way. Had I been a son, perhaps they would have reacted differently. I anticipated that being a writer would allow me to manifest my own life as myself, but that was exactly the lifestyle that my parents did not wish me to lead. It was perceived to be dangerous for women to be free and desirous. Although I became a writer after all, I cannot deny that the traditional values I have subconsciously internalized have limited and collided with my desires. Images of a woman writer, who used her little dining table as her writing table, have left a profound impression in my memory. She perhaps had just fed her family and wiped down the table before sitting down. I imagined that the smell of the food and wiping marks had not yet completely disappeared from that table. With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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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om of her own, I could only imagine how difficult it would have been to carve out a creative space out of the chore-laden corner of her daily reality. I only began to understand such struggles when I became a writer myself. I grew up surrounded by women who take it on themselves to be the first to wake up and the last to go to sleep for the sake of their families; their sense of responsibility did not allow them to free themselves from limitations put on by the society. Women writers of the time clutched the table with the same hands that they cooked and served their families meals and created literature as if they were bleeding from the inside. I grew up reading this literature of internal bleeding and entered the world of literature myself. When I lived in a small house where I did not have the luxury to have my own room, I placed a desk in the corner of the kitchen, where I organized domestic finances, kept a diary, as well as read and wrote novels. It was my so-called “table of my own.” Although I was frustrated by not being able to have my own space, the duality of space kept me honest, and prevented me from feeling like a shadow or a ghost. It gave me a sense of agency and made me feel like an active participant of my own existence as a human being. In a way, I was never completely free from my identity as a woman in that my novels mostly focus on female characters. Not only that, the physical spaces I occupied were at the intersection of daily and creative l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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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Table and Writing Table | Oh Jung Hee

there was a certain tension between the two spaces, and I sometimes felt that it was where my writing was formed. However, the kitchen corner was a closed space—a threshold that I needed to overcome. The female characters of my novels are in various stages of their lives, from young children, adolescents, to those nearing the end of their lives. As I wrote, I focused on the tension between the characters’ conflicting desires to both comply to the social norms and be free from them at the same time. In fact, many of my novels were centered on such internal struggles of mothers, who are often celebrated as sacrosanct figures in Korea. I would say that it is universally true that a nation’s history is closely tied to the history of hardships as well as women’s history. It is certainly the case in Korea as women, often times mothers, had to fill in for their husbands to take on the responsibility of not only providing for the family, but also for raising the family. The sacrifices and struggles of women became the founding ground for the myth like notion of motherhood. Strangely enough, the patriarchy’s suppression of women and mythification of motherhood went hand in hand and eventually became an easy cliché. After giving birth and raising my own child, I noticed that my identity was being replaced by motherhood. When this happened, I realized that the sacrosanctity of motherhood was a deceptive trap. On the other hand, however, I found myself subscribing to a belief that I could enter the 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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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 sublimity through self-erasure. Perhaps I was merely trying to evade the burden that life has put on me. Once a man told me that his deepest desire was to be able to give birth. This was a little shocking to me. His statement was not coming from some vague desire to achieve something biologically impossible; but I could feel his sorrowful sincerity. This encounter made me reflect on the meaning of female authenticity and our tendencies toward victimization of womanhood. Perhaps I was trapping myself in a women-centric viewpoint. I came to a new realization that although we are all born with our biological gender, we are not limited to just one as there may be biological men and women who want to take on various roles across both genders. Such desire is neither a deficiency nor a perversion. The dualities in all of us ought not to blind us from seeing clearly. Despite all the questions, self-reflections, and suspicions, women’s literature is still inseparable from sorrow. A woman conceives and gives birth. Therefore, a woman necessarily embodies both life and death, carrying in her the notion of original sin. Women’s literature is vulnerable to all kinds of bloodshed, violence, and destruction. It is delicately situated in a lonely and uncertain place, reflecting the sympathetic viewpoints of female writers. • Translated by Sun Yoo 우리를 비추는 천 개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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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랑스 누아빌 Florence Noiville France

Ⓒ Francesca Mantovani

프랑스의 작가, 언론인 겸 문학 평론가로서 파리 일간지 《르몽드(Le Monde)》 문 학 증보판 《르몽드 데 리브레(Le Monde des livres)》의 외국 소설 편집인이다. 처음 펴낸 책은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 작가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의 전기이다. 이 책으로 2004년 전기상(Biography Award)을 수상했다. 그 다음에는 수필과 수 기 형식을 반반 동원하여 「경영대학에 진학해서 죄송합니다(I went to business

school and I'm sorry) 」라는 자본주의와 그 횡포에 관한 짧은 글을 썼다. 픽션 작품으로는 『선물(The Gift )』(2007), 『애착(The Attachment )』(2014), 『새를 찾 아나선 새장(A Cage in Search of a Bird )』(2016), 『절도광의 고백(Confessions

of a Kleptomaniac )』(2018) 등 네 권의 장편 소설이 있다. 13개 언어로 작품이 번 역되었다.

Florence Noiville is a French writer, journalist, literary critic and foreign fiction editor for Le Monde des livres, the literary supplement of the daily paper Le Monde in Paris. Her first book was a biography of the Nobel Prize-winning American author Isaac Bashevis Singer, for which she received a 2004 Biography Award. She then wrote a short text, half-essay, half-personal narrative, about capitalism and its excesses, entitled “I went to business school and I'm sorry”. Her fictional work consists in four novels including Confessions of a Kleptomaniac (2018), A Cage in Search of a Bird (2016), The Attachment (2014) and The Gift (2007). Her books are translated into 13 langu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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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작가의 소설을 (다르게) 바라보는 12가지 방법 | 플로랑스 누아빌

여성 작가의 소설을 (다르게) 바라보는 12가지 방법

몇 년 전에 나를 인터뷰했던 어느 미국 기자는 내가 엘레나 페란테에 대해 어 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J. D. 샐린저 와 토머스 핀천이 보여 준 익명성의 원칙에 대해 물었고, 제라르 주네트와 로 맹 가리를 인용한 다음, 결론적으로 엘레나 페란테가 익명으로 남고 싶어 한다 면 다른 사람들이 그 선택을 존중해 주지 않을 이유가 도무지 없다고 말했다. “네, 그건 그렇죠…….” 기자가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그녀 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더 알고 싶은 겁니다. 그녀가 아니라 그일 수도 있겠 군요. 그러고 보니 우린 페란테가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모르잖습니까. 그걸 알게 되면 뭐가 달라지기라도 하나요?” 내가 물었다. 기자는 당황스러워 하는 듯했고, 그러더니 작가의 익명성은 독자에게 좋지 않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후 대화 주제는 오늘날의 프랑스 소설로 넘어갔다. 우리는 프랑스 소설 중에서도 특히 자전 소설이라 불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가 끝 나갈 무렵, 기자가 말했다. “이런 소설들은 약간 나르시스틱하지 않나요? 카 트린 밀레의 성생활이나 크리스틴 앙고의 어린 시절에 대해 누가 관심을 갖겠어 요? 그걸 왜 독자들이 알 수밖에 없게 만드는 걸까요? 이런 건 독자에게 좋지 않은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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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리둥절했다. 처음으로 문학이라는 것이 마우스 커서가 올라가 있는 하나의 긴 문장처럼 보였다. 독자에게 좋은지 좋지 않은지를 판단하려는 것 이 문제는 아니었다. 문제는, 작가들이 얼마나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사생활에 대 해 이야기하는가가 마치 유일한 기준인 것처럼 말하는 것에 있었다. 나는 양 극단—너무 많이 말하거나, 너무 적게 말하거나—모두 지양해야 한다고 여겼 고, 독자에게 좋은 것은 작가가 그러한 양극단의 중간 지점 즈음에 서 있는 것 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기자가 언급하는 작가들이 모두 여성 작가 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연이었을까? 여자라는 것과 자기 자신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었던 것일까?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 러한 대화를 나눌 때, 나는 시리 허스트베트의 소설 『타오르는 세계(A Blazing World)』와 메그 윌리처의 소설 『두 번째 선반(The Second Shelf)』에 대해, 예술계에 서든 문학계에서든 어떤 작품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분명 해당 작가가 속한 장 르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 준 두 소설에 대해 생각했다. “작가님 소설은 어떤가요?” 기자가 나의 글쓰기로 화제를 돌리더니 그런 질 문을 던졌다. 내 책이 한 권 한 권 출간될 때마다, 사람들은 똑같은 질문을 한 다. “자전 소설인가요?” 이 질문에는 분명 프랑스 여성 작가의 소설을 바라보 는 많은 사람의 시선이 반영되어 있다.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이 질문이 진 정으로 의미하는 바는 ‘이 책도 어떤 여자에 대한 그런 흔해 빠진 이야기인가 요?’ 이다. 덜 정중한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이 책도 (조지 엘리엇의 말마따 나) ‘어떤 여류 작가가 쓴 유치한 심리소설’ 같은 건가요?’라는 의미를 내포 할 때가 많다. 기자는 어째서 모든 프랑스 여성 작가는 이 장르(자전 소설)에 사로잡혀 있는 거냐는 질문도 했다. “배꼽만 쳐다보는 게(기자는 프랑스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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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배꼽만 파고드는’이라고 말했다) 질리지도 않는 걸까요? 대체 언제쯤 바깥세상에 마음을 열려는 걸까요?” 이 모든 질문은 여성 작가가 쓴 소설이 실제로 어떠한지에 대해 오해한 것에 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오해는 이미 너무나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사 실, 자전 소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만큼이나 오래된 장르다. 자전 소설은 전형적인 여성 소설도, 전형적인 프랑스 소설도 아니다. 게다가 자전 소설은 실 제로 관음적이고, 자만적이고, 나르시스틱하게 보일 수 있지만, 정확히 그 반대 로 보일 수도 있다. 자전 소설이 어떻게 보이는가는 그저 우리가 얼마나 그런 소설을 세심히 들여다보는가에 달려 있다.

보르도, 프로마주…… 자전 소설? 다시 처음에 논의했던 문제로 돌아가 보자. 미국의 문인들은 대체로 소설과 전기를 명확하게 구별한다. 소설은 순수한 상상력의 산물로 간주하는 반면, 전기는 실제 사실에 기반한 산물로 간주한다. 프랑스(항상 뭐든지 남들과는 다르게 하고 싶어 하는 곳 아닌가!)에는 자전 소설이라 불리는, 말하자면 제3 의 장르가 존재하는데, 이는 소설과 전기 사이에 있는 일종의 혼합 장르다. 자 전 소설은 철저히 개인의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작가가 픽션적인 요 소들을 가미할 수 있는 장르다. 수많은 프랑스 현대 작가들이 놀라울 정도로 자전 소설을 잘 쓴다는 것은 사실이며, 내가 손에 꼽는 자전 소설은 단연코 아니 에르노와 에마뉘엘 카레르 의 작품이다. 카미유 로랑스나 마리 다리외세크의 작품도 좋아한다. 또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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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언급한 작가들을 보아도 알 수 있듯, 프랑스 여성 작가들이 특히 자전 소 설에 탁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이 자전 소설을 잘 쓰는 유일한 작가 들은 아니다.

오랫동안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자전 소설 장르의 거장이다. 그러나 분명 그가 자전 소 설을 발명한 사람은 아니다. 장자크 루소의 『고독한 산책가의 몽상(Reveries

of a Solitary Walker)』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에게 글쓰기는 행 동이 아니다. 나의 본질이다.(Ce ne sont pas mes actes que je décris, c'est moi,

c'est mon essence.)’라는 말과 ‘나 자신이 내 책의 주제다.(Je suis moi même la matière de mon livre.)’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은 몽테뉴 본인이 자신의 대작 『수상록(The Essays)』의 주제가 되고 싶어 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리고 서기 400년경에 『고백록(Confessions)』을 쓴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해, 많은 작 가들이 몽테뉴보다도 훨씬 이전에 자전 소설을 썼다.

내가 알기로, 진지한 작가치고 소설 속에 자기 자신을 투영하지 않은 작가는 없다 또한, 자전 소설이 프랑스 작가들의 전문 분야라고 말하는 것도 잘못되었 다. 버지니아 울프, 필립 로스, 폴 오스터,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등만 떠올려 봐도 그렇다. 실제로 아이작 싱어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내가 알기로, 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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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치고 소설 속에 자기 자신을 투영하지 않은 작가는 없다. 싱어의 말은 유럽 영화계에서도 적용된다. 잉마르 베리만, 나니 모레티, 우디 앨런과 같은 남 성 영화감독들은 단 한 번도 본인의 내적 생활에 대해 말하지 않은 적이 없었 고, 이를 본인의 작품을 통해 구현해 내기도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들의 영 화를 자전 영화가 아닌, 그냥 영화라고 부른다. 그리고 물론 누구도 이 감독 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기억은 마음을 재현한 산물이다……. 사실 어떤 예술 작품이 현실에 기반하고 있을지라도, 기억과 관련된 예술 작 품이라면 픽션일 수밖에 없다. 실험을 한번 해 보도록 하자. 대화를 나눈 후 에 종이 한 장에 내가 어떤 대화를 나눴고, 대화 상대는 누구였고, 상황은 어 땠고, 내 기분은 어땠는지 적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해에 똑같은 내용을 다시 적어 보자. 그리고 또 십 년 후에도 똑같이. 그런 다음 그 내용들을 비교 해 보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텐데, 이는 정상이다. 기억이 흐릿 해져서가 아니라 기억이라는 것의 본질적인 속성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우리가 우리의 기억을 일생 동안 재창조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원래 의 기억이 아니라, 우리가 마지막으로 그 기억에 대해 생각한 바인 것이다. 다시 말해, 기억은 상상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를 재현한 다. 신경과학에서조차도 이러한 우리의 직관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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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플링과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이야기」 사실, 자전 소설은 어디에나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말하는 순간에 도 필연적으로 하나의 자전 소설을 생산해 낸다. 진실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 는다. (인식, 해석, 감정, 주관, 언어 등과 같은 것만이 존재한다.) 한편 순수한 픽션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영감은 언제나 미스터리한 어딘 가에서 찾아오기 마련이다. 키플링의 단편소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키플링은 이 소설에서 순수한 상상이란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다 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상상은 우리의 무의식, 정신적 계보(조상의 삶들), 우리가 살았던 이전의 삶(전생을 믿는 사람에게는 윤회) 등 우리가 무엇이라 칭 하고자 하든 다른 것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가 쓰는 모든 글은 자전적이다 사실, 우리가 전기라고 부르는 것은 불가피하게 픽션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나는 자전적인 요소를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은 소설이 존재한다고는 믿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쓰는 모든 글은 자전적이며, 특히 우리가 자전적인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할 때 더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 고 확신한다. 심지어 J. K. 롤링도 해리포터 시리즈 속의 죽음을 먹는 자(death eaters)와 관련해, 자신이 쓴 책이 출간되지 못해서 무척이나 침체되고 우울했던 시기에 겪은 바를 바탕으로 썼다고 인정한 바 있다. 말하자면, 어떤 작가에 대 해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쓴 픽션(논픽션이 아닌, 윤회를 바탕으로 한 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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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작가의 모든 것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 작가가 쓴 글 속에 있다.

그 누구도 렘브란트가 자화상을 그린 이유에 대해 묻지 않는다 이쯤 되면 독자는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데 유령이나 뱀파이어나 탐정으로부터 영감을 얻을 수도 있을 텐데 어째서 당신이 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당신 자신이 있어야 하는 거죠?” 이 질문에는 도덕 적인 구석이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불건전하고 무례하다는 가정 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나를 사로잡는 사실은 그 누구도 자화상 을 그린 화가들에게는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렘브란트, 피에르 보나르, 반 고흐, 프랜시스 베이컨 같은 화가들은 자화상을 수도 없이 많이 그렸는데 말이다! 지금껏 어느 한 사람이라도 이 화가들에게 왜 자화상을 그렸 냐고 지적한 적이 있었던가? 그림보다는 글의 힘이 더 거슬리는 것일까?

왜 나인가? 이제 '왜 나인가?'를 물었던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야겠다. 사실, 내가 소 설을 쓰게 된 출발점에 나 자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출발점은 내가 어느 시점에 맞닥뜨리곤 했던 어떤 ‘질문’에 가까웠다. 『선물(The Gift)』은 어린 소녀 가 조울증을 앓는 어머니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고, 『애 착(Attachment)』은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끌릴 때 모든 논리와 이성을 뒤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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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게끔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새를 찾는 새장(A Cage in Search of a Bird)』은 집착이 우리를 살인과 광기로 몰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으며, 『어느 도벽환자의 고백(Confessions of a Kleptomaniac)』은 중독이 우 리의 뇌와 사회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나는 내 글을 통해 수수께끼와 미스터리를 다룬다. 나는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 쓴다. 쓰다 보면 결국에는 내가 이미 알고 있었던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테지만, 내가 그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전까지는 알지도 못한다. 언젠가 플래너리 오코너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하는 말을 글로 읽기 전에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 는지 모르기 때문에 글을 쓴다.

자전적 -전기적 -사회적 -심리적 -신경적- 픽션 소설을 쓰는 출발점에 내 개인적인 질문이 자리하고 있었던 경우라면 나는 그 출발점을 다양한 갈래로 펼쳐 나간다. ‘자전적-전기적-사회적-심리적-신 경적-픽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자전 소설을 쓰기보다는, 그 문제를 사회 학, 철학, 심리학, 신경과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탐구하려고 애쓴다. 만일 자전 소설이 가식적이라 한다면, 이런 소설이 자전 소설보다 5배는 더 가식적일 수밖 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식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글쓰기는 언제나 폭로(mise à nu)다. 쓰고 있던 베일을 벗는 행위다. 벌거벗은 채로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다. 이는 누군가와 처음으로 사랑 을 나누는 행위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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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다카에서든, 파리에서든, 똑같은 이유로 운다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와서 “저희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도대체 어떻게 아신 거죠?”라거나 “저를 위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이건 ‘제’ 이야기예요.” 라고 말할 때, 나는 내 소설이 성공적인 반응을 얻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번 은 방글라데시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내가 쓴 소설이 루아르 계곡에 살면서 조울증을 앓는 어머니의 감정 기복을 견디고 있는 어떤 무기력하고 우울한 어 린 소녀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에 특히나 이상한 기분이 들었었다. 나 자신의 이 야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 소설이 독자들에게서 감정이입과 공 감을 이끌어 낸 것이었다. 심지어 방글라데시의 독자들에게서도. 이 점에 대해 생각해 보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몽테뉴는 ‘인간의 조건 은 우리 모두에게서 발견된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방글라데시의 한 여성 독 자는 몽테뉴의 이 말을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표현했다. 놀라는 나의 모습 을 본 그는 아무렇지 않게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는 다카에서든, 파리에서든, 똑같은 이유로 울잖아요.”

1인칭 시점의 글쓰기가 최고 수준의 겸손일까? 자전 소설을 써 보면, 나 자신이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잘못된 착각이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혹은 나 자신이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느 낄수록, 실은 훨씬 보편적인 존재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느꼈던 감정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 어떤 작가가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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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은 겸손과는 거리가 먼 행동일 수도 있지만, 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특정 이미지를 전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 이 말하기 위해서다. ‘있죠, 이게 제가 한 경험이에요. 당신도 비슷한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나요? 당신도 그랬다면, 그리고 우리가 한 경험의 심오한 의미가 무 엇일지 궁금하다면, 함께 찾아보도록 해요. 같이 해 보는 거예요…….’

자전 소설인가, 비(非)자전 소설인가? 그건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작가가 자기 자신을 얼마나 드러내는지에 대해 누가 정말 신경을 쓰기는 할까? 혹은 작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에 대해서? 핵심은 다른 사람의 내면에서 공명하는 바가 무엇인지 발견하고 이를 공유하는 것에 있다. 그리고 바로 이 목적을 위해 새로운 목소리를 발명해내는 것에 있다. 마르그리트 뒤라 스는 이러한 작업에 뛰어난 작가였다. 페란테 또한 뒤라스와는 매우 다른 방식 으로 뛰어났다. 그리고 물론, 두 사람 모두 여성 작가다. 그런데 뭐, 어쩌겠나. 봉, 부왈라.(bon, voila.) 이렇게 된 것을.

• 번역 : 양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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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Ways of Looking (differently) at Women’s Fiction | Florence Noiville

12 Ways of Looking (Differently) at Women’s Fiction

A few years ago, I was interviewed by an American journalist who wanted to know my views about Elena Ferrante. During the conversation, I questioned the principle of anonymity, referred to J.D. Salinger and Thomas Pynchon, quoted Gérard Genette or Romain Gary and concluded that, if Elena Ferrante wanted to remain anonymous, why on earth shouldn’t we respect her choice? “Yes, yes…” said the journalist. “And yet, I’d like to know more about her and her life. Or him and his life. By the way, we don’t even know if Ferrante is a man or a woman.” “What difference does it make?” I asked. He seemed embarrassed and concluded that anonymity was “not nice for the reader…” Later, the conversation shifted to French fiction today. Particularly to what is called “autofiction.” At the end of the conversation, he said: “Don’t you think all this is a bit narcissistic? Who cares about the sexual life of Catherine Millet or the childhood of Christine Angot? Why impose it on others? It’s not nice for the re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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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puzzled. For the first time, I saw literature as a long line with a cursoron it. Good or bad, that was not the question. As if the criterion was only how much the writers said about themselves and their private life. I understood that the two extremes— saying too much or too little—were to be avoided and assumed that what was “nice for the reader” was for the writer to stand somewhere in the middle. Then I realized that this journalist had only mentioned women’s names. Was it a coincidence? What was the link between being a woman and writing about oneself ? At this stage of the interview, I was thinking about Siri Hustvedt’s novel, A Blazing World, or Meg Wolitzer's book “The Second Shelf ”, both of them making it clear that the reception of a work, in art or literature, is clearly not the same according to the genre of the artist. “What about you?” the journalist then asked, turning to my own writing. Each time one of my books is published, people ask me the same question. Is it a work of autofiction? Obviously, that is the way lots of people look at French female fiction. I have come to understand what it actually means: is it just another woman’s story? Which in a less polite wayoften means, as George Eliot put it, is it just another “silly psychological novel by a lady novelist”? The journalist also asked why all French women writers were obsessed by this genre (autofiction). Aren’t they getting fed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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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 naval gazing (“exploring their own belly button,” he said in French). When are they going to at last open up to the world? All these questions are based on a misunderstanding of what women’s fiction really is. A misunderstanding that has gone on far too long already. In fact, autofiction as a “genre” is as old as the world. It is neither typically feminine nor typically French. In addition, it can indeed seem voyeuristic immodest, and narcissistic. But it can also appear as the exact opposite. It just depends on how closely we look at it. Bordeaux, fromages and… autofiction? Let’s go back to the beginning. In the US, literary people usually make a clear distinction between a novel and a memoir. A novel is supposed to be a pure work of imagination, whereas a memoir is based on true facts. In France (where we always want to do things differently!) there is a third genre, so to speak, called “autofiction,” which is a kind of mix between the two. It’s a story that’s thoroughly rooted in a personal experience but in which the writer can include some elements of fiction. It is true that a great number of contemporary French writers are amazingly good at autofiction, my favorite being by far An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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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naux and Emmanuel Carrère. And also Camille Laurens or Marie Darrieusecq. It is also true, as this list shows, that French women are particularly good at it. But they are not the only ones. “ Longtemps, je me suis couché de bonne heure” (For a long time, I’ve been going to bed early) Obviously, Marcel Proust is a master of the genre. But obviously, he didn’t invent it. Think about Jean Jacques Rousseau, Les Reveries d’un promeneur solitaire (Reveries of a Solitary Walker) Above all, think about Montaigne: “Ce ne sont pas mes actes que je décris, c’est moi, c’est mon essence (It is not my deeds that I write down; it is my essence).”“Je suis moi même la matière de mon livre (I myself am the subject of my book).” Which means that Montaigne wants to be himself THE subject of his greatest book, Les Essais(The Essays). And way before Montaigne, many others including St Augustine and his Confessions written around 400 ad. “ I do not know of one serious writer who does not bring himself into his fiction” It is also wrong to say that autofiction is a French specialty. Just think of Virginia Woolf, Philip Roth, Paul Auster, Karl 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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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ausgard, etc. In fact, as Isaac B. Singer once said: “I do not know of one serious writer who does not bring himself into his fiction.” This is also true in European film. Ingmar Bergman, Nani Moretti, Woody Allen…: all these male directors have never stopped telling us about their inner lives while, at the same time, including invention in their work. And yet people speak of cinema, not of “autocinema.” And of course nobody blames them. Memory is a re-creation of the mind… The truth is, even when it’s based on reality, any work of art involving memory is fictional. Try an experiment. After a talk, take a sheet of paper and write about the talk, the speakers, the setting, how you felt about it… Then do the same thing next year. And then for the next ten years. Then compare the versions. Each time you’ll come up with a different narrative, which is normal. Not because your memory is fading, but because this is the very essence of memory itself. Freud thought that we reinvent our memories throughout our lives. What we remember is not the original memory but the one that we think of for the last time. In other words, memory is an act of imagination. We constantly recreate the past. Even neuroscience confirms that intu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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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pling and “The Finest Story In The World” In fact, autofiction is everywhere. The minute we speak about ourselves, we inevitably produce a work of auto-fiction. There is no such thing as truth(only perceptions, interpretations, feelings, subjectivity, language…). On the other end, there is no such thing as pure fiction, either. Inspiration must always come from a mysterious “somewhere.” Remember that short story by Kipling: “The Finest Story in the World.” Kipling hints at the fact that pure imagination never existed. It’s rooted in whatever we want to call, the unconscious, psychogenealogy(the lives of our ancestors), our own previous lives(metempsychosis for those who believe in it), etc. Every word we write is autobiographical As a matter of fact, what we call “memoir” necessarily contains fiction. And vice versa, I do not believe in novels that do not include at least some autobiography. I am convinced that, in the end, every word we write is autobiographical, perhaps especially when we try and avoid the autobiographical. Even J. K. Rowling admitted that in Harry Potter, the Death Eaters were based on what she went through when she was so terribly low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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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pressed, at the time when she could not get published. In other words, if you want to know a writer, you should read his/her fictions(metempsychosis, not his/her nonfiction). He or she is all there, consciously or unconsciously in his/her prose. Nobody asks Rembrandt why he painted himself Now I assume you are going to say: OK but you could have based your inspiration on ghosts, on vampires, on detectives… Why has it got to be YOU at the center of all your stories? There is a moral element in this question. It’s supposed to be indecent and immodest to speak about oneself. However, I’m always struck by the fact that no one ever says that to painters who do self-portraits. Like all these artists who—like Rembrandt or Pierre Bonnard or Van Gogh or Francis Bacon—have painted themselves hundreds of times! Did anyone ever blame them for that? Why? Is the power of words more disturbing? Why me? But let’s come back to the initial question: Why me? In fact, the starting point of all my books is not only me. It’s rather a QUESTION that I have been facing at some point. How 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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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ittle girl cope with a bipolar mother (The Gift)? What is it that makes us act when we are attracted to a person beyond all logic and reason (Attachment)? Can obsession bring us to the brink of murder and madness (A Cage in Search of a Bird)? How does addiction work in our brain and social life (Confessions of a Kleptomaniac)? I write towards enigmas and mysteries. Towards things that I don’t know. In the end, I will probably end up discovering something I knew, but did not know I knew it. Flannery O’Connor once said that: “I write because I don’t know what I think until I read what I say.” “Auto-bio-socio-psycho-neuro-fiction” If my starting point is a personal question, I then stretch it towards various directions. I try to explore the problem from various angles, including sociology, philosophy, psychology and neuroscience. Rather than autofiction, one should speak about auto-bio-socio-psycho-neuro-fiction. I am aware that if autofiction is pretentious, this should be five times more pretentious. But in fact, I don’t think it is the case. On the contrary. Writing is always “une mise à nu(exposure).” You unveil yourself. You get yourself naked and you take risks. It’s like making love with someone for the firs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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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cry for the same reasons in Dhaka or Paris A book is successful when people come to me and say: “You’ve told the story of my mother! How could you know?” Or: “I thought this story had been written for me. It’s my story. . .” It happened to me once in Bangladesh, which felt particularly strange because I had described a helpless melancholic young girl living in the Loire Valley and facing the ups and downs of a bipolar mother. I thought it was deeply rooted in my story, but identification and empathy worked. Even in Bengali. When I think about it, it is all but surprising. “The human condition is encompassed in each and every one of us,” says Montaigne. The Bangla woman had a more direct way of saying it. As she saw my surprise she simply said: “We cry for the same reasons in Dhaka or Paris.” Writing in the first person: the supreme degree of modesty? Write autofiction and you’ll discover how wrong you were in thinking that you were unique. Or rather, the more unique one feels, the more universal one turns out to be. What we feel is always very likely to have been felt by others. It can well be out of modesty that one talks about oneself. Not to promote a certain Thousands of Mirrors Reflecting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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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of the self. But to say to the reader: “Look, this is the experience I went through. Have you had a similar experience? And if you’re like me, wonder what its deep meaning is, come with me. We’ll try and find it together. . .” Autofiction or not autofiction? That is not the question. At this point, who really cares about how much of the author is revealed? Or if the writer is a man or woman? The real point is about finding and sharing what resonates in the other. And inventing a new voice for this purpose. Marguerite Duras did it very well. Ferrante also in a much different way. And yes, they are both women, but as we say in French, “Bon, voi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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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Song Sokze Korea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났다. 1994년 짧은 소설을 모은 『그곳에는 어처구니들 이 산다』를 간행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 다』,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 『이 인간이 정말』, 『 리도 괴리도 업시』 등이 있 으며 중장편소설로 『도망자 이치도』, 『인간의 힘』, 『단 한 번의 연애』, 『위풍당당』, 『투명인간』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즐겁게 춤을 추다가』, 『소풍』, 『농담하는 카메라』, 『칼과 황홀』 등이 있다. 최근 여행 에세이를 담은 『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와 장편소설 『왕은 안녕하시다』를 출간했다. 한국일보문학상, 동서문 학상, 이효석문학상,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오영수문학상, 요산문학상 등을 받 았다.

Born in Sangju in Gyeongsang Province, he started writing novels after publishing his short story collection, Absurdities Live There. His short story collections include Thus Spoke Hwang Man Geun, Songs that Mother Played for Me, and Muiri-do uiri-do eopsi. His novels include Fugitive Yi Chi-do, Human Strength, The One Love, Pomp and Circumstance, and Invisible Man. His essay collections include While Dancing Merrily, Picnic, A Camera that Jokes, and Sword and Rapture. Recently, Song published Where are You Going, Mr. Fish?, a travel essay collection, as well as The King is Doing Fine, a new novel. Song is the recipient of literary prizes including the Korea Daily Literature Award, Dong-seo Literary Award, Lee Hyo-seok Literary Award, Dong-in Literary Award, Hyundae Literary Award, Oh Yeong-su Literary Award, and Yosan Literary A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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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라는 보물지도 | 성석제

골목이라는 보물 지도

중학교 2학년 초봄, 혼자 기차를 타고 어둑어둑해진 서울의 영등포역에 도 착하자 아버지가 마중 나와 있었다. 아버지는 내게서 책가방을 뺀 나머지 보따 리를 받아들고 묵묵히 앞장서서 걸어갔다. 역사 밖으로 나오자마자 매연과 먼 지로 기침이 쏟아졌다. 기침 끝에 눈물이 났다. 버스에서 멀미로 고개를 숙인 채 헛구역질을 했다. 휙휙 지나가는 차창 바깥의 풍경에조차 적의가 숨어 있는 것 같았다. 버스 종점에서 내려서는 시커먼 땅바닥에 뿌려놓은 물 때문에 미끄러져 넘어 졌다. 일어났다 다시 넘어졌고 아버지의 손을 잡고 겨우 일어섰다. 편안하게 발 을 디딜 수가 없었다. 앙상한 가로수와 줄지어선 가게들의 간판, 차가운 형광 등 불빛 속에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사람들이 모두 낯설었다. 찻길에서 시멘트 포장이 된 내리막길로 접어들자 아버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저 골목이다.” 나무의 큰 줄기에서 작은 줄기가 갈라지고 거기서 다시 더 작은 줄기가 갈라 진 뒤에 마지막으로 잎과 꽃, 열매가 매달리듯 골목이 있었고 집들이 있었다. 키 큰 전봇대에 매달린 보안등에, 창문에 불이 켜져 있었다. 따뜻하고 편안해 보였 다. 집에 다가갈수록 골목은 깊어졌고 골목이 깊어질수록 안전하고 아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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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껴졌다. 그제야 서울에서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골목은 늘 나를 키우고 지켜 주었다. 골목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다 른 사람의 슬픔과 괴로움과 흐느낌을 알 수 있었다. 합격했다, 이겼다는 환호 도 골목에서는 쉽게 들렸다. 바깥세상을 거세게 후려치는 바람도 골목에 들어 오면 순해졌다. 친구와 꼬불꼬불한 골목을 따라 돌며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 었다. 골목을 만드는 건 담과 벽, 하늘과 땅이다. 벽에는 그림과 소문의 문장이, 땅에는 지붕을 거쳐 홈통으로 여행해 온 빗물이 그려 내는 자연의 낙서가 있 다. 담벼락 아래 풀이 돋아나고 벽을 기어오르는 덩굴에 밤하늘의 별처럼 꽃이 매달린다. 새들이 하늘을 날아가며 노래를 흩뿌린다. 연인이 손을 맞잡고 오래 오래 아쉽게 이별하는 곳이 골목이다. 눈이 오면 가래를 들고 나와 인사를 나 누던 골목, 연탄불이 꺼지면 이웃집에 불을 빌리러 가던 골목.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 혼자서 그럭저럭 살 수는 있겠지만 살맛은, 재미는 없을 것임을 골목은 가르쳤다. 골목은 다른 골목과 이어지며 확장된다. 수많은 골목을 걸어 다니고 구경하 며 내가 사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어디에 있는지, 나는 누 구인지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서울에 온 지 얼마 안 있어 아버지의 무거운 자전거를 빌려 타고 더 크고 넓 은 곳까지 돌아다녔다. 어디에나 골목이 있었고 골목 특유의 냄새와 빛깔과 소리가 느껴졌다. 같아 보이면서도 전혀 달랐다. 그것은 끊임없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나와 똑같아 보이는 아이들이 전혀 다른 말씨로 내게 말을 걸어왔 다. 혹은 적대감을 드러내고 쫓아오기도 했다. 나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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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라는 보물지도 | 성석제

도망쳐서 멀어지기도 하고 몰래 가까이 다가가기도 했다. 결국 우리는 서로에 게 섞였다. 오래된 도시에는 골목이 있다. 골목에는 집이 있고 사람이 산다. 삶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개개인의 역사가 있다. 그런 것들로 골목은 한없이 깊어지고 길 어지며 사람의 표정을 닮아 간다. 나는 어떤 도시에 갈 때마다 골목에 들른다. 거기서 숨을 쉬어 보면 안다. 이 도시가 살 만한 곳인가. 이 도시에서 품격을 지키며 산다는 건 뭔가. 꼭 옛날식 골목이 아니라도 사람 사는 데는 골목이 생긴다. 아파트 사이에도 세월이 흐 르면 사람들이 거니는 길, 골목이 생기게 되어 있다. 거기서는 사람 냄새가 나 고 사람의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우리에게 기억되고 머릿속에서 또 다른 골목 을 만들어 다른 골목과 연결 짓게 한다. 골목의 경험과 삶이 다른 사람의 경험 과 삶을 이해하게 하고 내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골목의 가로등,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그 불빛은 따뜻하고 다정하다. 상상 하고 그리워하고 생각을 하게 만든다. 추억을 끄집어낸다. 근본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면서 나는 안심한다. 소설을 ‘가담항설(街談巷說)’, 길거리와 골목의 이야기라고 한다. 여항(閭 巷)의 소산이 소설이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집이 없고 집이 없으면 골목과 거 리, 마을이 없다. 나라도 세계도 현재도 현실도 역사도 문학도 없다. 골목은 소설의 원석이 들어 있는 무한정한 광상, 광맥이다. 골목은 문학의 보물섬이 다. 골목 자체가 보물이기도 하다. 나는 보물을 찾을 수 있는 지도를 가지고 있다. 나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니겠지만. 나는 골목에서 나고 골목을 누비며 자랐다. 골목의 힘으로 살아가며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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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주보다 | One on One

의 이야기를 받아 적고 있다. 내가 무엇인가를 쓰고 있는 건 골목 덕분이다. 어 느 저녁 골목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불빛이 내게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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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reasure Map of Alleys | Song Sokze

A Treasure Map of Alleys

In the early spring in my second year of middle school, I rode the train by myself to Yeongdeungpo Station in Seoul. It was getting dark when I arrived, and my father was waiting for me. He took all my bundles except for my bookbag, then walked quietly ahead of me. As soon as we exited the station, the smog and dust gave me a coughing fit that brought tears to my eyes. On the bus, I kept my head down and gagged, feeling carsick. Even the rapidly passing scenery outside the window seemed to be harboring animosity. When we got off at the last stop, I slipped and fell on the wet black surface. I stood up and fell again, then barely managed to stand, gripping my father’s hand. I found myself unable to step confidently. The scrawny trees lining the streets, the rows of store signs, and the people sitting expressionlessly under cold fluorescent lights all seemed foreign. As we emerged from the street onto a cement path going downhill, my father spoke for the first time. “That’s our a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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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주보다 | One on One

Alleys and houses were laid out the way the main branch of a tree splits into smaller branches, and those branches split into still smaller branches and leaves, flowers, and fruits form at the tips. I saw security lights hanging from tall electrical poles and lit windows. They looked warm and cozy. As we approached our home, the alleys deepened, and as the alleys deepened, I felt increasingly safe and comfortable. I finally felt that I would be able to live in Seoul. Since then, alleys have raised and protected me. From the sounds heard in alleys, I learned of the sorrows and pains and tears of others. I got in! We won! Cheers were also often heard. Winds that thrashed the world outside became docile when they entered the alleys. Criss-crossing the winding alleys, my friends and I shared countless stories. Alleys are made by high and low walls, the earth and the sky. On the walls are rumored statements, and on the ground are nature’s scribblings, drawn by rain that has traveled down the roofs and through the gutters. Grass grows at the foot of low walls, and along the vines that climb the walls, flowers hang like stars in the night sky. Birds scatter songs as they fly across the sky. Lovers hold hands, facing each other, for a long, long time before parting hesitantly. It was in alleys that neighbors came out with spades and greeted one another when it snowed. It was through alle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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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reasure Map of Alleys | Song Sokze

that I went to borrow coal briquettes from neighbors when we ran out. Alleys taught me that people are connected to people, that one might get by alone, but such a life would be without flavors, without pleasures. An alley expands as it connects to other alleys. Walking through and observing countless alleys, I learned about the world I lived in. I even got a vague sense of where I was and who I was. Soon after arriving in Seoul, I borrowed my father’s heavy bicycle and rode into bigger, wider places. Alleys were everywhere, and I learned the smells, colors, and sounds of each alley. Even if they looked similar, they were completely different. This sparked endless curiosity in me. Children who looked just like me talked to me in strange tones. Sometimes they showed animosity and chased after me. I spoke with them, ran away from them, and snuck up on them. In the end, we were integrated with one another. All old cities have alleys. There are houses along alleys, and people live there. There are stories of lives, and histories of individuals. With them, alleys deepen and lengthen infinitely, and their expressions gradually come to resemble the people. Every time I visit a city, I stop in its alleys. Breathing the air, I can sense whether I could live in that city, what it means to maintain dignity living in that city. Besides old-style alleys, alleys appear anywhere people live. Even among apartment complex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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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주보다 | One on One

paths and alleys appear over time where people walk. There are smells and sounds of people. We remember them, and we create alleys in our minds and connect them to other alleys. Our experiences and lives in alleys make us understand the experiences and lives of others and feel them as our own. In alleys, the light flowing out of streetlamps and windows is warm and friendly. It invites us to imagine, pine, and think. It drawsout memories. It makes us think of our origins. When I do, I am relieved. Fiction is dubbed “tales of the streets and alleys.” Fiction is the product of villages and streets. Where people do not live, there are no homes, and where there are no homes, there are no alleys, no streets, no villages. There is no country, no world, no reality, no history, no literature. Alleys are a bottomless deposit and infinite vein of the gems of fiction. Alleys are a treasure island of literature. Alleys themselves are treasures. I possess a map of treasures. I am likely not the only person who possesses one. I was born in an alley and grew up roaming alleys. I live by the power of alleys and I am taking down the stories of alleys. When I am writing something, it is thanks to alleys. One evening, the warm, soft glow of the alleys taught me. • Translated by Eunji Mah  Edited by Jeffrey Karvonen 우리를 비추는 천 개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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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주보다 | One on One

류전윈 Liu Zhenyun China

중국의 현대문학계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다수의 베스트셀러와 수 상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장편 소설 『핸드폰(Cell Phone )』, 『누군가 말할 사 람(Someone to Talk To )』, 『나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I Did Not Kill My

Husband )』 등의 작품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일본어, 한 국어, 베트남어 등으로 번역된 바 있다. 중국 최고의 문학상인 마오 둔 문학상 (Mao Dun Literature Awards)(2011)과 프랑스 문화부 문화예술공로 훈장 기 사장(Knight of the Order of Arts and Letters)(2018) 등 국내외에서 권위 있는 상을 다수 수상했다.

Liu Zhenyun is a Chinese writer of many bestselling novels and one of the most famous and award-winning writers in contemporary China. Among his books of novel are Cell Phone, Someone to Talk To and I Did Not Kill My Husband. Throughout the years, Liu’s works have been translated into English, French, German, Italian, Spanish, Japanese, Korean, Vietnamese and other languages. Liu has been awarded with many prestigious prizes at home and abroad, like the highest Chinese literary award Mao Dun Literature Awards (2011) and Knight of the Order of Arts and Letters (2018) from the Minister of Culture of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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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한 마리 ‘소’다 | 류전윈

작가는 한 마리 ‘소’다 - 소시민이 아닌, 어떤 시각

작가에게 ‘소시민’은 매우 매력적인 묘사의 대상이다. 그들은 소규모 수공 업자, 상인, 자영업자, 신분이 낮은 지식인 등으로, 나는 많은 작품 속에서 이 계층들을 묘사해 왔다. 『닭털 같은 나날(Tofu)』, 『만 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 마디(Someone to talk to)』에 등장하는 두부 만드는 사람, 돼지 잡는 사람, 머리를 깎는 이발사, 소 없는 찐빵을 파는 사람 등이 모두 이러한 이들이다. 그러나 소시민의 시각을 작품이나 작가의 시각으로 삼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소시민의 시각은 오직 눈앞의 사실에 한정되는 특징을 지니기 때문이다. 작가는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하는가? 멀리 내다 볼 줄 알아야 한다. 2013년에 나는 『나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I did not kill my husband)』라는 소 설을 출간했다. 주인공인 리쉐롄(李雪莲)은 평범한 중국 농촌 여성으로 한 마 디 말을 듣기 위해 법정투쟁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것은 “나는 행실이 나쁜 여 자가 아니다”라는 한 마디였다. 그녀는 촌(村)에서 현(縣)까지, 현에서 시(市) 까지, 마지막에는 또 베이징까지 가서 법정투쟁을 했고 이십 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했지만, 결국 그 사실을 법적으로 정정하는 말을 들을 수는 없었다. 처음 에는 그녀를 동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중에 그녀의 이러한 법정투쟁은 결 국 우스갯소리가 되었다. 이십 년 동안, 그녀는 결국 자신의 비극을 코미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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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 버린 것이다. 작년 겨울, 이 책이 네덜란드어로 번역되었을 때, 나는 출 판사의 프로모션 활동에 부응해 네덜란드로 갔다. 한번은 서점에서 독자들과 교류를 가졌는데, 어떤 네덜란드 여성이 이 책을 보고 처음부터 끝까지 웃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또 그녀는, 리쉐롄이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 면서 아무도 말을 들어주지 않자 오직 자기 집 안에 있는 소 한 마리 앞에서만 속에 든 말을 하게 되는 장면을 보다가 결국 목 놓아 울었다고 했다. 이어서 그녀는 말했다. 세상에서 오직 소 한 마리만이 그녀의 말을 들어줄 때, 사실은 또 다른 한 마리 소가 리쉐롄의 말을 듣고 있었던 거라고. 그 소는 바로 이 책 의 작가 류전윈이라고. 이 말을 들었을 때, 내 마음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처음으로 작가라는 존재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기분이었다. 작가는 다름 아닌 한 마리 ‘소’였 던 것이다. 여기서 가장 근본적으로 철학적이고 수학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세 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CNN부터 BBC까지, 또 NHK에 이르 는 모두가 미국 대통령과 러시아 대통령, 독일 대통령은 중요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미디어에서 그렇게 생각할 뿐 아니라, 아마도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 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말을 하는 바로 그 날 전 세계의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된다. 말하자면, 그들의 말은 이 지구상 에서 일정한 시간과 공간을 점유한다. 즉 지배 면적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리 쉐롄의 한 마디 말은, 이십 년 동안이나 알은체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은 그 녀의 말이 지배 면적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는 곧 세상 사람들 이 미국 대통령과 러시아 대통령, 독일 대통령은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리쉐롄의 희로애락의 감정은 소홀히 여겼다는 말이다. 사람들의 발걸음과 역사의 수레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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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한 마리 ‘소’다 | 류전윈

퀴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리쉐롄의 감정을 짓밟거나 깔아뭉개면서 지나가 버 린다. 나는 작가이다. 제 손으로는 닭 한 마리 잡을 힘조차 없는 나는 사람들 의 발걸음과 역사의 수레바퀴를 막아 낼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글을 쓸 수 가 있다—리쉐롄이 속에 든 말들을 꺼내 넋두리를 할 때, 나는 그녀의 곁에 쪼 그려 앉아 귀를 기울이는 경청자가 될 수 있다. 지금 이 책은 20여 종의 문자 로 번역—당연히 한글 번역본도 있다—되었다. 그리하여 보다 더 많은 경청자 가 그 삶 속에서 전혀 아무런 무게도 지니지 않았던 사람 곁에 쪼그려 앉아 그 녀의 말을 들어주게 되었다. 이것은 내 능력 때문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문학의 힘이다. 이것은 문학이 지닌 상상과 시각의 힘이다. 문학의 힘은 삶 속에서는 태양이 비추지 않는 곳까지 빛을 끌어다 비춘다.

2009년에 나는 『만 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 마디』라는 소설 한 권을 썼다. 그 이야기 속에는 이탈리아 신부 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1900년대 초에 내 고향 허난성(省) 옌진현(縣)에 와서 전도를 한 사람이다. 그가 처음 이 곳 에 왔을 때 그는 중국어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십 여 년이라는 세월을 지내 면서, 그는 중국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허난 지역의 사투리를 쓰게 되었으며, 옌진 사투리까지 하게 되었다. 처음 왔을 때, 그의 눈은 푸른 빛이었으나 황허 의 강물을 많이 마신 탓인지 눈동자조차 누렇게 변했다. 처음 왔을 때 그의 코 는 상당히 높았다. 허난 사람들은 밀가루 음식을 좋아한다. 허난 휘1) 같은 음 식이 대표적이다. 이탈리아 신부는 사십 여 년 동안이나 밀가루 음식을 먹더니, 코마저도 밀가루 반죽 덩어리처럼 변해 버렸다. 뒷짐을 지고 거리를 걸어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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烩面. 얇은 수제비처럼 넓게 밀어 만든 면, 뜨거운 국물에 말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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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옌진에서 대파를 파는 노인들이랑 전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는 사십 여 년동안이나 전도를 했지만 겨우 여덟 명의 신도를 얻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 는 여전히 마음에 박힌 그 돌을 빼내지 못하고 미련을 가진 채 바람이 부나 비 가 오나 필립스 자전거를 타고 매일같이 촌마다 돌아다니며 전도를 했다. 그 는 황허 강가에서 돼지 잡는 라오쩡을 만나자 곧 그에게 주님을 믿으라고 권 했다. 라오쩡이 물었다. “주님을 믿으면 어디가 좋소?” 그가 말했다. “주님을 믿으면, 당신은 스스로 누군지 알게 됩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게 되지요.” 라오쩡이 말했다. “안 믿어도 나는 다 아는데. 나는 돼지 잡는 사람 이고, 쩡자좡에서 왔으니까. 그리고 촌마다 찾아가 돼지를 잡지.” 이탈리아 신 부는 생각을 해 보더니 말했다. “당신의 말도 맞군요.” 신도가 겨우 여덟 명뿐 이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교회가 따로 없었다. 그는 버려진 낡은 절에서 살았다. 그는 매일 저녁 잠들기 전에 관음보살에게 향까지 한 대씩 피워 올렸다. “관음 보살이시여, 제게 신도 한 사람만 더 허락해 주십시오.” 그래서 그는 마음속에 가득한 교리를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 그는 매일같이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여동생의 여덟 살 난 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교리에 대한 뜨거운 열정 과 이해를 쏟아 부었다. 그 여덟 살 난 아이는 그래서 자기 삼촌 존 신부가 세 상에서 가장 위대한 전도사라고 생각했다. 그는 삼촌이 세계의 동쪽 끝에서 적 어도 몇백 명의 신도를 거느리고 있는 선교사라고 여겼을 것이다. 존 신부가 옌진에서 세상을 떠나던 그날, 돼지 잡는 라오쩡은 그의 장례를 갈무리하기 위 해 그곳에 갔다. 존 신부의 얼굴에 천을 덮으려고 할 때, 그는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그 종이 위에는 밀라노 대성당과 같이 웅장하고 장엄한 교회가 그려 져 있었다. 라오쩡이 그 종이를 펴 보았을 때, 종이는 문득 생명을 얻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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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났다. 교회의 모든 창문은 활짝 열렸고, 교회의 첨탑 위에서는 은은한 종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그제야 라오쩡은 알 수 있었다. 이 이탈리아 신 부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전도사였던 것이다. 그는 옌진 사람들에게 전도를 할 수는 없었지만, 자기 자신은 전도할 수 있었다. 작년 겨울, 내가 프랑스 파리 제7대학(디드로 대학)에서 사람들과 교류할 때, 어떤 프랑스 남성이 프랑스어로 번역된 『만 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 마디』 를 읽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이 이탈리아 전도사가 중국에서 했던 모든 일에 대해 무척이나 크나큰 감동을 받았고 오래도록 그 인상을 지울 수 없었 다고 했다. 이어서 그는 내게 그 전도사 여동생의 여덟 살 난 아이가 지금 무엇 을 하고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순간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작품 속에서 한 번도 전면에 등장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그저 수신자에 불과했다. 그 프랑스 남성은 내게 말해 주었다. “그는 지금 밀 라노 대성당의 대주교랍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또 한 번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그의 생각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멀리, 더 깊이 나아갔기 때문이다. 마침 다음 날 나는 이탈리 아 밀라노로 갈 수 있었고, 밀라노 대성당에서 미사가 있는 날이었다. 나는 밀 라노 대성당으로 갔다. 성당 안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고, 미사의식은 너무도 장엄했으며, 두어 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대성당의 대주교—벌써 여든 살 을 훌쩍 넘은 노인—가 자비롭고 친절한 태도로 느릿한 걸음을 걸으며 앞으로 나섰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어르신, 나는 당신을 압니다.’ 팔십 년 전, 존 신부가 옌진에 전도를 하러 왔을 때, 옌진 사람 가운데 누구도 전도하 지 못했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전도하는 데 성공했죠. 더 중요한 점은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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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리나 떨어진 이역 땅에서 이탈리아에 있는 당신을 전도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이 책은 이십 여 종의 문자로 번역—당연히 한글 번역본도 있다—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 책을 쓸 때 아주 멀리, 아주 깊이 내다보지 못했다 는 사실을 후회한다. 만약 내가 그때 프랑스 남성이 말했던 그런 거리와 깊이 를 생각할 수 있었다면, 작품 속의 인물들은 틀림없이 조금 더 멀리까지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작가는 소시민에 대해 쓸 수 있다. 그러나 소시민의 시각에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나의 관점이다.

• 번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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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선


The Author is an Ox: A Non-Petty-Bourgeois View | Liu Zhenyun

The Author is an Ox : A Non-Petty-Bourgeois View

It’s very enticing for a writer to take the notion of “pettybourgeois” and turn it into descriptive objects. They could be small-time craftspeople, business people, office workers, intellectuals, or self-employed professionals, among others. Many of my works describe this class of people. Xiao Lin in Tofu (『一 地鸡毛』), for instance, and the butchers, tofu sellers, barbers, and steamed bun sellers in Someone To Talk To (『一句顶一万句』). It would be wrong, however, to take a petty-bourgeois perspective as the perspective of the work, or of the author. This is because the hallmark of a petty-bourgeois perspective is shortsightedness. What kind of perspective must an author have? An expansive one. In 2013, I published a novel called I Did Not Kill My Husband (『我不是潘金莲』). The protagonist, Li Xuelian, is a typical rural Chinese woman, and in order to clear her name and declare that she is not a “bad woman,” she begins her long “career” of fi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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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awsuit. She takes her case from the village, to the county, to the city, and finally all the way to Beijing, spending over twenty years in the process—yet she is never able to clear her name. At first some people are sympathetic, but as time goes by, her case becomes a complete joke. In the course of twenty years, she spins her tragedy into a comedy. The winter before last, when the Dutch translation of this novel was coming out, I went to the Netherlands to promote it. At one point, when I was talking with readers in a bookstore, a woman came up and told me that when she read the novel, she laughed the whole way through. However, when she read the parts where no one Li Xuelian tried to talk to would listen, and she could only go home and talk to her cow, the woman cried. She went on to say that when it seemed there was only this one cow in the whole world that Li Xuelian could talk to, there was actually one other cow that was listening—this was the book’s author, Liu Zhenyun. When I heard her say this, I was shocked. It was the first time I really understood what an author is: the author is an ox. This touches upon a basic philosophical and mathematical question— who, in the world, is important? The major broadcast networks CNN, NHK, and the BBC all feel that the American president, the Russian president, and the German chancellor are important, and people everywhere feel the same way—each day, every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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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uthor is an Ox: A Non-Petty-Bourgeois View | Liu Zhenyun

these three people say is broadcast all over the world. That is to say, their words occupy a lot of time and space all over the globe—they have a presence. Li Xuelian, on the other hand, just wants to say one phrase—“I am not a bad woman”—yet for twenty years no one listens to her, proving that her words have no presence. Because everyone feels that the American president, the Russian president, and the German chancellor are important, they ignore Li Xuelian’s feelings. People carelessly trample over Li Xuelian’s feelings, and the wheels of history roll over them. I am just an author, without even the strength to catch a chicken, as the saying goes, so I have no way to ward off others’ trampling or the wheels of history—but I am able to write. When Li Xuelian finds herself with nowhere to turn with her problems, I am able to sit by her side and listen. This novel has now been translated into over twenty languages, which of course includes Korean— so this allows more people to sit by the side of this insignificant person and listen to her. This is not due to my own power, but rather the power of literature, the power of literary perspective and imagination. It can shine a light on the parts of life that the daylight can’t reach. In 2009, I wrote a novel called Someone To Talk To (『一句顶一万 句』), which includes an Italian priest who came as a missio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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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my hometown of Yanjin, in Henan Province, at the beginning of the twentieth century. When he first arrived he didn’t know how to speak Chinese, but after forty years, he could not only speak standard Mandarin, but the Henan and Yanjin dialects as well; when he first arrived his eyes were blue, but after drinking so much water from the Yellow River, his eyes also turned yellow; when he first arrived he had a very prominent nose, but people in Henan love to eat things made from wheat flour, like Henan braised noodles—so after he ate this for over forty years, his nose became like a lump of dough. To see him walking down the street with his hands clasped behind his back, he looked no different from a local Yanjin scallion seller. After preaching for over forty years, he managed to gather only eight followers, yet he continued to persevere, riding his Phillips bicycle around to different villages through the wind and rain to spread the Gospel. He ran into Old Ceng, the pig butcher, on the banks of the Yellow River and tried to persuade him to believe in God. Old Ceng asked, What are the benefits of believing in God? When you believe in God, answered the priest, You know who you are, where you come from, and where you’re going. Old Ceng said, I don’t need to believe in God to know that I’m a pig butcher from Ceng Village, and that I travel from village to village butchering pigs. After thinking it over for a minute, the priest said, Yo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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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ght. Because he only had eight followers, he had no church, and he lived in an old abandoned temple. Every night before he went to sleep, he would burn incense and ask Buddha to help him recruit another follower.Because there was no one with whom he could share his teachings, he would write a letter every day to his younger sister’s eight-year-old son in Milan, relating his love for the doctrines along with his own interpretations. That eightyear-old child thought that the priest, Old Zhan, was the greatest missionary in the whole world, and that he had at least several hundred thousand followers in the Orient. The day that Old Zhan passed away in Yanjin, Old Ceng the pig butcher went to make his funeral arrangements and discovered a drawing at the head of his bed—blueprints for a great cathedral like the one in Milan. When Old Ceng opened the drawing, it suddenly came to life—all the windows of the cathedral opened, and the great bell on top began to ring. It was then that Old Ceng understood that this priest from Italy was the world’s greatest missionary: he may not have spread the Gospel to anyone in Yanjin, but he had transmitted it to himself. Last winter when I was in France, visiting Université Paris Diderot, a man told me he had read the French translation of Someone To Talk To and had been deeply moved by this Italian missionary in China. Then he asked me, Do you know what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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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ght-year-old son of his younger sister is doing now? I didn’t respond right away, because this child never really made an appearance in the novel, and was only the recipient of the priest’s letters. The man then told me: he was now the Archbishop of Milan. When I heard this, I was shocked—he had thought about this more deeply and expansively than I had. As luck would have it, the next day I was headed to Milan, and the next day there was Mass at the cathedral.When I went to it, it was filled with people, and the ceremonies were quite involved, lasting over two hours. When the archbishop—who was already over eighty— benevolently hobbled out, I thought to myself: I recognize you, old man. Eighty years ago, when Old Zhan was a missionary in Yanjin, he didn’t spread the Gospel to anyone in Yanjin, but he transmitted it to himself; more importantly, though, he transmitted it to you, thousands of miles away in Italy. This novel has now been translated into over twenty languages, which of course includes Korean. But I regret that when I wrote it, my vision wasn’t deep enough, or expansive enough.When I was writing it, if I could have thought of a man in France telling me this, the characters in the novel could have gone much fur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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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a writer, you can describe the petty-bourgeois class, but you can’t adopt their field of vision. That’s how I see it. • Translated by Todd Fo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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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Moon Chung-hee Korea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다. 한국 여고생 최초로 시집을 발간하였다. 1969년 등단 이후 『카르마의 바다』, 『작가의 사랑』 등 14권의 시집과 시선집, 시 극, 에세이집 등 저서 60여권을 출간했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웨덴어, 스페인 어, 러시아어, 일본어 등 9개 국어로 출판된 14권의 번역 시집이 있다. 미국 아이오와 대학과 버클리대학, 이탈리아 베니스대학, 프랑스 '시인들의 봄' 및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 쿠바 '아바나 북 페어', 스페인 '책의 밤' 외에도 중국, 일본, 칠레, 아르헨티나, 러시아 등 다양한 국제 행사에 초청받았다. 현대문학상을 포함한 다수의 문학상과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삼성 여성창조상을 받았다. 마케도니아 테토보 포럼에서 올 해의 시인상을, 스웨덴 노벨상 수상 시인 마르틴손 재단이 주는 시카다상(Cikada Prize)(2010) 을 수상했다. 현재 동국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중이다.

Moon was born in Boseong, Jeolla Province and is the first female writer to publish a poetry volume in Korea. She has published 14 volumes of poetry, poetic play, and essays and over 60 volumes of other writings including such titles as The Sea of Karma and The Writer’s Love. 14 volumes of her poetry collections have been translated and published into 9 different languages, including English, French, German, Swedish, Spanish, Russian, and Japanese. She was invited to international literary symposiums at the University of Iowa,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in the U.S. as well as University of Venice in Italy and Stockholm University in Sweden. She was also invited to various literary fairs and events of France, Cuba, Spain, China, Japan, Chile, Argentina, and Russia. She garnered various literary prizes in Korea including the Hyundae Literary Award, Korea Culture and Arts Grand Prize, and the Samsung Award for Creative Women. She has also won international awards such as Poet of the Year in Macedonia and the 2010 Cikada Prize, an award founded in commemoration of the birth of Swedish Nobel-laureate-poet, Harry 우리를 비추는 She is a chair professor at Dongguk University. Martinson. 천 개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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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줄타기의 미래 | 문정희

외줄타기의 미래

사람의 몸이 저마다의 음악 소리를 지니고 있다면 나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나는 가끔 하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듯이 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내 유년의 기억으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하늘을 뒤덮는 폭음과 불꽃놀 이의 기억이다. 그것은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인데 지금까지도 나에게 불꽃과 파 열음으로 남아있다. 이 비극적인 파괴와 살상의 소리가 하늘 가득히 피어나는 불꽃과 반짝이며 쏟아지는 폭음으로 기억되는 아이러니에 나는 가슴이 막힌다. 언어의 절망과 불가능에 대해 고통스러운 질문을 하는 것이다. 나의 시 쓰기는 그러므로 예민하고 풍부한 언어 감각이나 사물에 대한 천부 적인 투시력으로부터 시작되었다기보다 언어의 한계와 허위와 역설로부터 출발 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분단으로 막을 내린 한국전쟁은 오늘까지 휴전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나의 삶은 그런 배경 위에서 벌이는 곡예의 시간이고, 나의 시 쓰기는 그런 배 경위에서 외줄을 타고 뒤뚱거리는 줄광대의 춤이다. 기실 나의 시 쓰기의 토양은 전통적인 가부장 사회였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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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주보다 | One on One

다. 그 어느 사회보다 여성 차별이 심한 농경사회였다. 여성에게는 교육의 기회 조차 부여되지 않아서 일생 동안 부엌과 안방을 오가며 가사 노동과 육아를 천직으로 남성의 보조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다. 다행히 나는 이러한 전통 보수 사회에서 태어났지만 곧 산업사회로 전환하는 시기에 성장하며 차별 없이 제도권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20세기 초 한국 현대시는 새로운 형태와 운율을 가진 시문학으로 등장했다. 일제 강점기에 한국어는 큰 상처를 입었지만 우리 고유의 가락과 새로운 감각 에 대한 갈망으로 여러 시인들이 절창을 남기었다. 전후(前後)에 보급된 교과 서와 함께 교육의 대중화로 한국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나는 일찍이 고향을 떠나와 어린 시절부터 대도시에서 유학을 하며 땅위에 혼자 서야 한다는 두려움과 슬픔을 시로 썼다. 이상하게도 시를 쓰고 있을 때 만이 두려움과 고독은 사라지고 온전히 숨 쉬고 있음을 느꼈다. 엄혹한 군사독재를 거쳐 민주화를 향한 사회 변혁을 치르며 한국은 자본주 의 소비사회로 거칠게 전환되어 갔다. 물질에 대한 욕망은 극대화되어 갔고 언 론은 검열당했으며 급기야 저항 시인이 투옥되는 상황을 목격했다. 한국은 어 느 수준의 정치 발전과 경제 성장을 이룩했지만 압축 성장의 폐해로 극심한 경 쟁과 인간 소외와 환경 파괴를 불러왔다. 나는 투사를 꿈꾸거나 정치적인 대결 의지를 가진 시인이 아니었지만 늘 정 확한 표현에의 갈망과 함께 이러한 현실과 삶을 언어로 왜곡하거나 공소한 정 서로 늘어놓지 않으려고 했다. 침묵으로 진실이 은폐되고, 거짓에 대한 저항을 정직하게 몸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괴로워했다. 나는 식민지 시대 자유를 부르짖다 죽어간 소녀 유관순의 자유혼과 용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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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줄타기의 미래 | 문정희

초점을 두고 장시를 발표했다. 또한 포악한 왕에게 눈알을 빼앗긴 신화 속의 목수 도미를 상징적인 인물로 설정하여 시극을 써서 공연하기도 했다. 민주화 과정에서 강하게 외쳤던 인권과 차별의 문제가 정치에 국한되고 구호 에 그치는 것을 또한 주목했다. 국민의 반수인 여성의 인권과 차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방치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반공(反共) 이데올로기와 프로파간다 적인 남성 중심의 정치 언어 속에서 특히 여성에 대한 시각은 거의 인종차별에 가깝다는 것을 빈번히 체험했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벌이는 반전, 민권 운동이나 우먼파워와 페미니즘 이 론들을 주목했다. 세계사적 의미에서라는 거창한 전제를 하지 않더라도 나의 시와 삶은 이렇게 내가 살고 있는 시대 현실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기를 원했다. 특히 내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남성 중심의 합법적인 지배 언어라는 것을 깨 달은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는 나다! 라는 자각과 함께 내가 생명의 태반을 몸 안에 지닌 여성 시인이 라는 자각을 했다. 이것은 남성과 상대적인 성으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쓰는 존 재, 즉 창조 주체로서의 여성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동안 성스럽다고까지 치켜 세운 모성애마저도 굴레일 수 있다는 개념 또한 나를 크게 확장시켰다. 신화나 철학, 과학을 통하여 사유를 풍성하게 만들어 준 이론의 수용과 함 께 지배 언어가 아닌 포용과 감수성의 언어인 여성언어에 대한 개안(開眼)은 나 의 시 쓰기에 큰 전환을 불러왔다. 열한 살에 홀로 고향을 떠나온 떠돌이로 호기심 많은 시인으로 나는 세계 여러 곳을 떠돌았다. 80년대 초 폭압적인 군부정권에 의해 내 고향 광주에서 벌어진 민중 학살은 시를 쓰는 손이 부끄러울 만큼 시인으로서의 정체성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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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주보다 | One on One

를 회의하게 했다. 나는 한국을 떠나 한동안 뉴욕에 살며 다양한 장르와 실험 예술들을 보았고 인간과 예술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세계는 이제 클릭 한번으로 정보와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 시대이다. 이것은 경이롭지만 한편 소중한 전통과 개성들이 쉽게 파괴될 수 있다 는 점에서 폭력적이다. 나의 시속으로 이런 것들이 새로움이라는 이름으로 그냥 홍수처럼 들어와 내가 또 다른 식민지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여러 사회 변혁을 경험하며 언어의 불완전성에 저항하며 겁쟁이 시인으 로 살았다. 하지만 시인으로서 시를 쓸 수 있는 풍요한 소재를 가질 수 있어 행운이었다는 고백을 여러 번 했다. 더구나 나는 외부적인 것으로 인하여 시 쓰기를 중단하거나 굴복한 적은 없다. 시는 힘이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매혹적인 힘으로 나를 혁명하고 세계를 혁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시 내 몸속의 음악소리를 들어 본다. 죽음을 품은 생명의 소리가 아 름답게 들린다. 시로 태어날 수 있을까? 발가벗은 언어들이 자궁 속으로 일제 히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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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uture of Rope Walking | Moon Chung-hee

The Future of Rope Walking

If there were unique musical sound that belonged to each person, what kind of music would my body play? Sometimes I attend closely to my own sounds as though I am listening for some resonances from above. When I look back on my childhood, the first thing that I remember is the banging noise that filled the sky, combined with the sound of fireworks. To this date, such clamors of destruction and explosion are what remains as my memory of the Korean War. The irony in which the tragic sounds of carnage overlap with sparkly explosions tightens my heart. This can be understood as my painful exploration into the ever-so impossible and desperate confinements of language. In other words, my poetry was derived neither from my meticulous grasp over language, nor from my extraordinary abilities to observe all kinds of things and phenomena. Rather, it was my subversion on the limited and deceptive nature of 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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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주보다 | One on One

The Korean War came to a halt in an unresolved armistice, suspending the country to a state of war to this day. Against such a backdrop, my life also suspends as if I am walking on a rope. Thus, my poetry is like the acrobatic dances of circus rope walkers. To tell the truth, my poetry was first cultivated on the soil of traditional patriarchal society. It was an agrarian society in which women were subordinated more than any other society I know of. Women occupied the inner rooms and the kitchen to merely assist men, solely taking on domestic labor and childbearing. Although I was born into such conservative society, as I grew up, South Korea went through a rapid process of industrialization, which enabled me to receive formal equal education without harsh discrimination. The early twentieth century was a period in which poetries of new cadences and formats emerged. Although the Japanese occupation of Korea was acutely damaging to the Korean language, it was also during this period that various poets produced extraordinary verses in contemplation of traditional rhythms and modern sensibilities. With distribution of textbooks through public education, these poetries had significant influences on the Korean masses. I left my hometown at an early age, writing poems filled w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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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uture of Rope Walking | Moon Chung-hee

words of anxiety and despair that reflected my determination to survive in the vast metropolis. Whenever I wrote down my verses, my fear and loneliness would disappear, and I felt my own breathing. South Korea escaped military authoritarianism and established itself to be a democratic nation. As a newly formed capitalist society driven by individual consumption, materialist desires reached new heights while the media continued to suffer from heavy censorship, which became so intense that a poet in protest was unjustly incarcerated. Although South Korea was remarkable in its speed in achieving a certain degree of political and economic sophistication, the rapidity of development also produced an absurd amount of competition as well as discrimination and environmental damage. I never joined the army of poets who dreamt of political justice; however, I have always longed for accuracy in description and avoided distorting reality through the empty use of words and sentiments. I felt tormented by the fact that I was not able to physically fight against lies that masked reality. This inspired me to write an epic poem focusing on the courage and spirit of Yu Gwan-sun, a teenage girl who fought for the independence of Korea during Japanese colonial rule. I also wrote a poetic play based on a traditional Korean fable about Carp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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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주보다 | One on One

Domi, who lost his eyeballs as a punishment after his beautiful wife refused the evil king’s pursuit. While paying close attention to the fact that the issues of human rights and discrimination have been relegated to mere political rhetoric, I continued to recognizethe silencing of woman’s rights issues. Amid national anti-communist propaganda led by maledriven political bodies, the lack of feminist representation was so severe that it almost seemed like a form of racial discrimination. Being attentive to theories of social movements, including antiwar, human rights, and feminist movements, I studied what was happening in places like the United States and Europe. It was not intended to be a formal study in the context of world history, but I fully intended my poetry to be in touch with the realities of the times. It was especially important that the language I had been using was in fact the language of the patriarchal hegemony. I became self-aware not only as a writer, but also as a female writer, whose body has the potential to carry the placenta of life. I am not saying that my femaleness was in direct confrontation with the male populace; I am saying that my femaleness is defined by my biological agency to procreate. I expanded the thoughts even further to recognize that the idea of “maternal instinct” could be seen as a social construct. My writing reached a turning point as I opened my eyes to the all-encompassing language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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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uture of Rope Walking | Moon Chung-hee

my womanhood instead of the language of the male hegemony. I embraced a broader body of theories that provided expansive grounds for understanding mythology, philosophy, and science. As a curious writer who had left her hometown at age eleven, I roamed around the world. When a bloody massacre led by a military dictator wiped out my hometown in the early eighties, I doubted myself as a writer and questioned my role as a poet. I left South Korea and lived in New York for some years in order to further explore the relationship between human and the arts through various genres of experimental arts. The world today is ever more connected through a network of data so complex that all sorts of knowledge are available through a simple click of the mouse. While this is a marvelous achievement, it also embodies violence in which small but individual voices can easily be muted away. It is my hope that I do not become yet another place of colonization, where a rapid flood of newness takes over everything in me. As cowardly as I am to have assumed a role of a poet in her perpetual resistance to the incompleteness of language, I can also say that being an eyewitness to social turmoil has never devastated me from my writing. In a way, I am very lucky to have lived through the times, which provided me with a seemingly endless supply of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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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주보다 | One on One

Poetry has no physical strength; it has invisible yet is captivatingly powerful to transform me and world. I listen again for my body’s unique music. I hear the beautiful music of life embodying death. As I question whether I would be able to reincarnate as a poem, naked words all gather to my womb. • Translated by Sun 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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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주보다 | One on One

포레스트 갠더 Forrest Gander USA

미국의 시인이자 번역가로서 스페인과 멕시코의 여러 작품집을 편집했다. 『과학과 첨탑꽃(Science & Steepleflower )』(1998), 『깨어 있다(Torn Awake )』(2001), 『눈 대눈(Eye Against Eye )』(2005), 『함께하다(Be With )』(2018) 등 다수의 시집 을 펴냈다. 미국 의회 도서관, 휘팅 재단(Whiting Foundations) 등에서 지원작가 로 선정되었다. 가장 최근에 펴낸 시집 『함께하다』는 2018년 전미 도서상(National Book Award) 후보에 올랐고 2019년 퓰리처상(Pulitzer Prize)을 수상했다. 2011 년에 출간된 시집 『세상의 핵심 견본(Core Samples from the World )』은 퓰리처상 과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National Book Critics Circle Award) 최종 후보에 올 랐다.

Forrest Gander is an American writer, translator, and editor of several anthologies of writing from Spain and Mexico. His books include several poetry collections: Be With (2018), Eye Against Eye (2005), Torn Awake (2001), Science & Steepleflower (1998), etc. He is the recipient of fellowships from the Library of Congress, Whiting Foundations, etc. Gander’s most recent collection Be With was longlisted for the National Book Award in 2018 and won the Pulitzer Prize in 2019. His poetry collection Core Samples from the World published in 2011 was a finalist for both the Pulitzer Prize and the National Book Critics Circle A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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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학 | 포레스트 갠더

시학

I 유대교인도, 기독교인도, 불교 신자도 아니지만 글을 쓸 때면 나는 내 상상 력 속에 은둔한다. 내 글쓰기의 기본자세는 듣기이다. 어쩌면 이런 태도는 종 교인들의 자세를 닮은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내 신념의 원천은 세속적이다. 내 게 있어 신앙은 가장 흔한 계시에서 비롯된다. '존재하는 것'은 드러나 있다. 프 랑스 시인 에드몽 자베스와 뜻을 함께 하지만, 나는 진리가 아닌 진실과 질문 을 찾았고, 현실이 아닌 느낌과 해석을 찾아냈다. 우리는 모두 변할 것이다. 물론 대개의 우리에겐 그 변화는 순간적인 것이지 만. 사랑은 우리를 쫓아내고, 우리는 우리들 에고의 둔중한 숲으로 다시 느리 게 우리 자신을 이어 간다. 노자가 침이 마르도록 얘기했듯, 변함없는 경외감을 이어 가기란 쉽지 않아서 비극은 우리에게 들이닥친다. 우리는 평생토록 지속 하는 경탄을 구축하지 못한다. 하지만 예술적 정신적 시도를 통해 우리는 그 러한 경탄을 만들어 가도록 노력한다. 노력 자체도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만약 세계 역사를 징발하는 언어 습관이 더욱 표준화되고, 실용화되고, 표기 화된다면, 시는 타자와의 관계에 색다른 질서를 제공한다. 시의 의미는 수량적 이지도, 입증 가능하지도 않고, 이성적이고 계산적인 절차에 따라 나온 의미와 는 별개의 것이기 때문이다. 시의 의미가 기적처럼 여겨지는 것도 당연할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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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주보다 | One on One

른다. 감정의 영역을 횡단하며 대화를 나누고 통찰을 자아내고 또 우리가 보는 세 상을 마치 처음 보듯 표현하는 언어의 행위를 다른 어떤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시는 지각을 빙글빙글 돌리는 말들의 황홀경이다. 시와 독자 사이의 의 미 있는 대화는 바로 내가 대면하고픈 신성한 발현이다. 우리가 사포의 시 한 조각을 읽을 수 있다는 게 내게는 기적처럼 여겨진다. 2600여 년 전 이 지상에서 사라진 언어, 그걸 읽고 우리는 '감응'할 수 있다. 언어가 나를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서 나는 언어를 판단한다. 시는 변환하는 호출을 제시한다. 또 시는 나 자신의 감각되는 욕구가 감정적, 미학적, 지적인 경험과 이기적이거나 착취하지 않는 형식 안에서 관계를 맺도록 해 준다. 로즈 메리 월드롭이 어느 인터뷰에서 우리에게 허용된, 우리가 진입할 수 있는 단 하 나의 초월성은 바로 언어라고 말했을 때, 이는 언어가 인간의 경험에 형식을 주 고 우리 모두를 품는 안식처임을 뜻한다. 언어의 위대한 잠재력은 우리들 사이 를 좁혀 서로 인접하게 두는 힘에 있다. 우리는 인식으로 가득 채워진다. 나 자 신이 시와 마주할 때 나는 존재가 주의 깊게 되는 양식을 상상으로 만드는 그 가능성에 가까이 간다. 내 관점을 변화시키면서 시는 나와 세계, 나와 미래와의 관계를 새롭게 구축한다. 나는 깨어 쪼개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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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학 | 포레스트 갠더

II ……하지만 이십 대였을 때 나는 훨씬 더 열변을 토했다. 대학에서 나는 지질학을 전공했다. 결정형들을 식별하는 데 사 년이 걸렸고, X선 회절계를 이용해 광물의 구조도를 만들었고, 고대 포유류의 방사선을 추 적했다., 매우 압축된 상태라 거의 연필 자국만큼이나 분간이 어려운 필석류들 을 연구하기 위해 검은 이판암들을 부수고, 그것들을 코로 들이마시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때때로 나는 내가 선호하는 구조를 따라 시를 짓기 시작하지만, 구조는 그 안에 무엇을 내포하는가에 따라 변형된다. 한 편의 장시는 『바가바드 기타』의 어느 한 장에 담긴 수사학적 모티프를 모방하려는 열망에서 시작했지만 최종 버전에서는 원래 양식과 닮은 부분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음악적, 의미론적 관심을 뛰어넘으면서 시가 바뀌었다. 패턴을 느끼고, 결혼하라는 로버트 크릴 리의 잠언 시구가 말하듯, 나는 그렇게 작업한다. 시를 촉발시키는 것이 형식이 됐건 운율이 됐건, 시의 운율은 항상 내 글쓰기 를 주도한다. 글을 쓰며 나는 시간에서 공간으로, 지속에서 병치로 옮겨 간다. 나는 동시에 전 방향으로 시를 쓰고, 낱낱의 말들의 균형에 신경 쓰기보다는 말들 가운데서 비롯되는, 혹은 하나의 단어와 그 단어가 연상하는 고리, 침묵 의 연결고리 사이에서 나오는 전이를 중요시한다. 의미에 대한 내 관념은 전이 의 지속성에서 발원하는 것이며 이 점이 내게는 에로틱하게 느껴진다. 나는 여성들 속에서, 여성들의 손에 자랐다. 나중에야 내가 알게 된 것이지 만 우리 식구들의 대화 방식은 남성들의 심리와는 사뭇 다르다고 느껴지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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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주보다 | One on One

식이었다. 임신과 출산은 내가 지속적으로 글쓰기와 연관시키는 은유들이지만, 이 문제는 성별보다는 우리 가족과 더 관련된 문제일지 모르겠다. 줄곧 나는 하나의 주된 장소로, 지각과 각성의 도구로서 내 몸이 내 생각과 연관되어 있 다고 믿어 왔다. 펜과 종이는 손을 마음으로 변형시킨다고 말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단순하다. 정신적, 지적, 감정적 그리고 기술적 요소 들을 내구성 좋은 음악적 형식으로 결합하는 것. 소리와 리듬의 정치, 사회적 의미와 함께 의미론 저 아래 혹은 위에 그 진실들이 존재하는 의미들을 소환하 는 것. 의미론이 함축의 활력소를 품기. 재즈의 전설 텔로니어스 멍크가 명료하 게 말했듯, 음들을 어떻게 다르게 다루는지, 그저 그뿐. 여러 시 가운데 내가 관심을 쏟는 것들은 합리적인 지성의 부록 같은 것이 아닌 관능적인 경험에서 발견하는 것, 낯설며 더욱이 가늠할 수 없는 형식의 통 찰 같은 것이다. 나는 정의를 내리는 것과 설교, 생명보험을 불신한다. 또한 나는 그 리듬과 문장이 이미 친숙하고, 확실하고, 명문화된 것으로부터 나를 벗어나게 하는 그런 시들을 따라간다. 녹색 줄기에 모여든 가시벌레와 그녀의 님프들, 양로원에서 구닥다리 도자기 인형으로 차를 휘젓는 여자, 빈 비행기로 피츠버그로 회항하는 쌍둥이 승무원들, 강아지 이부자리 위 물음표로 몸을 웅크린 소년, 태양의 사지 근처에서 휘어지는 별빛, 인동이 그려진 커피 컵, 버려 진 노천 탄광으로 스며드는 산화지의 석탄 폐수, 우리가 폭격한 나라들, 그 이 국의 신문에 실린 얼굴들, 에틸렌 가스로 익은 토마토, 카누를 타고 앨리게이터 가아1)를 낚시 중인, 몸무게 130킬로그램을 훌쩍 넘는 두 남자, 자잘한 자작나

1)

주둥이 부분이 악어를 닮은 것이 특징인 원시적 조기 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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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학 | 포레스트 갠더

무, 오전 나절 이미 잠잠해진 개똥지빠귀, 그리고 눈을 맞으며 함께 소변을 보 는 죽은 내 친구와 그의 개 찰리 파커, 이것들이 내 시의 넘어설 수 없는 선험적 인식이다. 드러난 채, 나는 눈을 감는다. 귀 기울이며. 열리며. 깨어 쪼개지며.

• 번역 :

김래이

 윤문 :

정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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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주보다 | One on One

A Poetics

I. Neither Jewish, Christian, nor Buddhist, I am nevertheless cloistered, when I write, in my own imagination. The basic gesture of my writing is a listening. Perhaps this attitude resembles that of the religious. But my credal source is worldly. Faith, for me, derives from the most common revelations. What is stands revealed. Yet, in keeping with the French poet Edmund Jabés, I have found no Truth but truths and interrogative, no reality but feeling and interpretation. We shall all be changed, though for most of us it is momentary. Love unseats us, but we thread ourselves slowly back into the dull wood of our egos. It is hard to sustain a constant awe, as Lao Tzu importuned, and so tragedy befalls us. We fail to construct a lifelong state of wonder. And yet artistic and spiritual endeavors inspire our efforts to do so, as though the efforts themselves were all important. If the language practices commandeering world history 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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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oetics | Forrest Gander

increasingly standardized, utilitarian, and transcriptional, poetry offers a different order of relationship with the other. Because poetry's meanings are neither quantitative nor verifiable, because they are distinct from those meanings obtained by rational and calculative processes, they might well be considered miraculous. How else can we account for acts of languag e that communicate coursing emotional registers and instigate insights and so articulate the world that we see as though for the first time? Poetry can be an ecstasy of words spindling perceptions. The meaningful dialogue between poem and reader is as much a sacred manifestation as I hope to encounter. I count it as miraculous that we can read a fragment of a poem by Sappho, whose language disappeared from the earth more than 2,600 years ago, and we can feel moved. I come to consider language by how it uses me. Poetry offers a transformative summons. It enacts my own felt need to engage emotional, aesthetic, and intellectual experience in forms neither self-serving nor predatory. When, in an interview, Rosmarie Waldrop says that "The one transcendence that is available to us, that we can enter into, is language," she implies that language houses all of us together, shaping human experience. The great capacity of language is to bring us into proximity with one another. We fill with recognitions. In my own encou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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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주보다 | One on One

with poetry, I approach the imagined possibility of an attentive mode of being. Shifting my perspective, poetry reconstructs my relationship to the world and to the future. I am torn awake.

II. ...but I was more declamatory in my twenties. In college, I majored in geology. I spent four years learning to recognize crystal forms, using an x-ray diffractometer to make structural maps of minerals, tracing the archaic mammalian radiation, cracking open black shales to study graptolites so compacted they were hardly more distinguishable than pencil marks and I was careful not to inhale them. Sometimes I begin poems with a structural penchant, but my architectures deform according to what they come to contain. One long poem started as mimetic enthusiasm for a rhetorical motif in a section of the Bhagavad Gita, but in the final version of my poem, no approximation of the original pattern remains. Overriding musical and semantic concerns transformed the poem. "Feel pattern, be wed" goes Robert Creeley’s gnomic verse, and so I do. Whether form or cadence triggers the poems, measure always conducts my composition. Writing, I pass from time to 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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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oetics | Forrest Gander

from succession to juxtaposition. I write the poem in all directions at once, emphasizing not the stability of single words but the transition that emanates between them, or between a word and its rings of association, rings of silence. My idea of meaning derives from the continuity of the transition, which is, for me, erotic. I was raised by women and among women; we communicated in a way that rendered men's minds—when later I came to think I knew them—strange to me. Maybe this has more to do with my family than with gender, though gestation and birth are metaphors I continuously associate with writing. I have always believed my body is involved in my thinking as a locus and means of perception and its arousal, that pen and paper transform the hand into the mind. What I want is simple enough: to combine spiritual, intellectual, emotional, and technical elements into a resistant musical form. To summon the social and political meanings of sound and rhythm as well as meanings whose truths lie beneath or above semantics. And for it to have the fillip of implication. As the jazz legend Thelonius Monk put it succinctly: "Just how to use the notes differently. That's it." Among other poetries, I am interested in those that find in sensual experience not a supplement to the rational intellect but a different, even incommensurable form of insight. I distr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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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주보다 | One on One

definitions and homily and life insurance. And I follow those poems whose rhythms and syntax draw me away from what is already familiar, secure, agreed upon. The thorn-bug and her nymphs clustered on a green stem, the woman at the nursing home stirring her tea with a frozen Charlotte, the twin flight attendants deadheading back to Pittsburgh, the boy in the dog’s bed curled into a question mark, starlight bending near the limb of the sun, coffee cut with honeysuckle, lagoons of coal slurry leaking into an abandoned strip mine, the faces in foreign newspapers of those we have bombed, tomatoes ripened with ethylene gas, two 300-plus pound men in a canoe fishing for alligator gar, fingerling birches, the thrushes already quiet at midmorning, and my dead friend and his dog Charlie Parker peeing together in the snow: these are the insurmountable a priori of my poems. Exposed, I close my eyes. Listening. Open. Torn aw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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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수다 Writers in Conversation 2019. 10. 8.(Tue) - 10. 13.(Sun) Academy Hall, DDP Design Lab 3F

다양한 국적을 지닌 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입니다.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다 양한 주제에 대해 작가와 관객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눕니다.

Writers from different corners of the world gather together to discuss various global issues with readers.


작가들의 수다 | Writers in Conversation

김금희 Kim Keum Hee Korea

1979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삶 속에서 겪 게 되는 고통을 인물들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내는 작가로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 다.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오직 한 사람의 차지』와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나의 사랑, 메기』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현대문학상 등을 받았다.

Kim Keum Hee was born in 1979 in Seoul. She made her literary debut in 2009 when she won the Hankook Ilbo New Writer’s Award. She has been drawing attention for her vivid portrayals of life’s ordeals through her characters. Her full-length novels include Kyungae’s Heart and Maggie, My Love. Her short story collections include Sentimentality Works Only for a Day or Two, Too Bright Outside for Love, I’ve Been Thinking about It for a Very Long Time, and Only One Person’s Share. She is the recipient of the Shin Dong-yup Prize for Literature, Munhakdongne Young Writer’s Award, and Hyundae Literary A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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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버리기 | 김금희

책 버리기

지난여름 평생을 살아온 도시를 떠나 이사를 결심했을 때 가장 먼저 한 것은 책을 버리는 것이었다. 우리 집에는 방 하나를 모두 채우고도 거실까지 반을 점 령할 정도로 많은 책들이 있었고 그 넘쳐나는 수를 견디다 못해 서재의 문은 열어 두지도 못하고 있었다. 청소를 하거나 책을 찾으러 들어가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거기에는 사뿐히 발을 디딜 공간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끊 임없이 사 두고 싶은 책들은 출판되었고 더러는 선물을 받았고 심지어 나조차 도 책을 냈기 때문에 나는 조만간 이 책들이 무성한 먼지 숲을 이루어 나를 병 들게 하지 않을까 염려했다. 이사를 결심했고 그러자면 이삿짐센터 인부들이라 면 질색을 하며 심지어 이사 대금도 더 쳐서 받는 책을 처분해야 했다. 사십여 년을 살아온 도시를 떠나는 것과 오래도록 간직해 온 책들을 처분 해야 하는 것, 그 둘을 동시에 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여름은 아주 고통스러웠 다. 나는 아침이 되면 의기양양하게 서재로 들어가 더 이상 내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는 책들을 처분하겠다고 호기를 부리다가도 책 한 권 한 권을 들 때마 다 쏟아져 나오는 과거의 기억과 감정들, 실제 눈앞에 일어나는 것처럼 생생한 장면들에 녹다운이 되어 방을 나오곤 했다. 책은 단지 책이라는 상품이 아니라 내 삶이라는 것과 완전히 엉겨붙어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당연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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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수다 | Writers in Conversation

은가, 나는 그것을 어느 장소에서 움직여 가져왔고 시간을 들여 읽었으며 그 러는 동안 무수히 많은 일상들이 흘러갔다. 아이였던 내가 어른이 되고 그 책 이 환기하는 누군가는 완전한 안식의 세계로 떠나기도 했으며 작가가 되고 싶 은 열망에 사로 잡혀 있던 나는 정말 글 쓰는 사람이 되었다. 그 모든 시간들 이 적층된 것이 그 방의 책들이었고 방은 내가 평생 살아왔지만 이제 떠나게 될 그 도시에 있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나라는 사람 자체가 뜯겨 나가는 듯한 기 분이 들었다. 일례로 한국의 대표적인 아동문학가인 이원수가 쓴 『가로등의 노래』가 있었 다. 그 동화는 초등학생 때 일하러 나가신 부모를 기다리며, 외울 정도로 여 러 번 읽은 것이었다. 물론 그때 책을 여태껏 보관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과 거 한국에서는 전집을 다 읽고 나면 또다른 전집으로 서적판매상이 교환해 주 기도 했기 때문에, 알뜰했던 부모는 그 이원수 동화전집을 한국사 전집인가 백 과사전인가로 바꾸어 버렸다. 그래서 민중의 시각으로 어린이들의 세계를 재구 성하여 가난과 불평등, 계급의 문제에 대해서 일깨워 주었던 이원수의 작품들 은 한동안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게 되었다. 가난이 부끄러운 아이와 그 부끄 러움과 싸우는 아이, 일개미로 머물지 않고 버젓한 일가를 이루기 위해 탈주하 는 개미들의 모험 이야기가 만들어주었던 그 감정과 사유의 지도들. 세세한 내 용은 세월에 따라 휘발되었지만 그것이 만들어낸 지도는 아직도 내 안의 중요 한 부분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니 이야기는 망각된 것이 아니라 교환된 것처럼 느껴졌다. 문자가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가 감정과 사유가 되고 그것이 레이어 를 이루어 나를 구성해내는, 그렇게 해서 영속된 힘을 갖는 것. 「가로등의 노래」는 첫 직장을 다니던 이십 대 어느 날, 서울의 한 지하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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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버리기 | 김금희

무인문고에서 가져온 책이었다. 시에서는 시민들의 양심과 지성을 믿고 지하철 역에 그런 장소를 마련해 놓았는데 내가 그런 영예로운 시민이기를 거부한 셈 이었다. 변명하자면 그 서고의 책들은 모두 몇십 년은 된 것들로 제대로 관리 조차 되지 않는 듯했다. 아무도 거기에 그 위대한 책이, 한 어린아이의 고독과 상처를 보듬고 마음을 추슬러 한 발 더 나아가게 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 했다. 그러니 내가 가져오는 것이 정당했다. 왜냐면 나는 그 책이 만들어 준 세 계에서 출발해 무인문고 앞의 그날에 당도한 사람이니까. 그 책의 가치는 내가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고, 바꿔 말하면 나라는 사람의 가치 역시 그 책이 증명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회사의 최말단, 이미 사회에서 자리 잡아 능숙하고 안정감 있어 보이는 상사와 선배들 사이에서 어딘가 막막해하며 적응해 나가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책 한 권을 집어들 때마다 나는 끊임없이 어느 시기로 회귀해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능률이 날 리가 없고 힘들지 않을 수 없는 작업이었다. 울지 않 고 서재에서 나올 수 있는 날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삿짐센터 직원은 견적을 내러 와서 책들을 보며 “대체 무슨 일을 하는 분이세요? 이 책 들 다 가져가요?” 하고 물었고 나는 “그렇지 않아요!”라고 서둘러 답했다. “반 이상은 버릴 거예요!”

이사를 오고 나서 나는 한동안 외출도 하지 않은 채 집에 틀어박혔다. 심지 어 집 안에서도 최소한의 동선으로 방과 부엌 사이만 오갔다. 내가 평생을 살 아온, 작품을 쓸 때마다 매번 중요한 장소가 되어 주었던 그 도시에 관한 소 식을 우연히 들을 때마다 상실감이 몰려왔다. 그럴 때는 결국 계획만큼 처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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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수다 | Writers in Conversation

지는 못한 책들이 나를 둘러싸면서 눈에 보이는 세계 이상의 것들이 있음을 여 름 내내 환기했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 이야기를 쓰고 책이라는 것을 만들어 세상에 통용시키고 있다고. 심지어 최종적으로 이삿짐 트럭에 싣지 않고, 다감 하게 헌책들을 옮겨 담던 헌책방 주인을 통해 나 자신이 버리기를 선택한 책들 조차도. 기꺼이 내 기억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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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ving Behind My Books | Kim Keum Hee

Leaving Behind My Books

Last summer, after I decided to leave the city I had lived in all my life, the first thing I did was to throw away the books. There were enough books in my house to occupy one entire room and, that not being enough, half the living room as well. Because of these overflowing books, I couldn’t leave the door to my study open. It wasn’t easy to vacuum the study or wander in to locate a book I suddenly felt like reading because there simply wasn’t any room for me to stand, much less walk around in. Even so, I couldn’t help but purchase more books as there were so many interesting finds out there, and this, on top of the books I received as gifts and the books that I myself had published, was why I couldn’t help but worry that the swirls of dust created by the books would soon make me ill. I had decided to move, and as such, I had to get rid of these books that even professional movers would recoil at and for which they’d likely demand a surcharge to hand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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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수다 | Writers in Conversation

The fact that I was leaving the same city I had lived in for over forty years and that I was compelled to simultaneously get rid of the same books I had kept for so long made for one very painful summer. Each morning, I walked confidently into my study, more than ready to throw away those books that didn’t interest me anymore, but each time I picked up a volume, I was flooded with old memories and emotions that knocked me down as if they were from events that were playing out right before my eyes, until eventually, I had to leave, defeated, from the room. For me at least, books were more than products to be bought and sold. They were completely intertwined with my life, and this was a fact I had to come to terms with. And that couldn’t be helped, since I had, at a certain point in my life, took the books from a certain place, brought them home, and devoted a certain period of time to reading the booksas life continued to go on. I had gone from being a child to a grown woman; some of the people that I’ve known and whose memories are still inspired by some of the books I’ve kept are no longer of this world; and the same person who longed to be a writer found herself writing for a living. All those layers of time had accumulated in the books in my study, which was in turn located in a city I had lived in my entire life, which was again the same city I was leaving behind. With only a pinch of exaggeration, I felt that I myself was being torn 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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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ving Behind My Books | Kim Keum Hee

One example that illustrates this feeling is my copy of Songs of a Streetlamp by Lee Won-su, an influential children’s book author. I had read this story so many times when I was in elementary school and waiting for my parents to come home from work to the point that I ended up memorizing the lines. Of course, the book I had in my study wasn’t the same copy I used to read as a child. When I was little, booksellers would offer to replace a story collection with a new one after a child finished the series. My thrifty parents had taken this opportunity to exchange the Lee Won-su anthology with either a series on Korean history or an encyclopedia collection. This is why Lee’s works, which reconstructed a different world for children as seen from the perspective of the working class, and which enlightened me to the issues stemming from poverty, inequality, and social hierarchies, were, for a time, kept only in my memories. I remember reading about the child who was ashamed of being poor, and about another child who fought against those feelings of shame; I remember the different feelings and ideas inspired by the adventures of the worker ants who escaped their daily toil in search of a better life. The details have been lost to time, but the big maps of ideas in my head that have been etched by these stories still take up an important part of me. Which was why it felt like the stories were not so much lost, but exchanged.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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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turned into stories, and the stories turned into feelings and ideas that gradually accumulated as layers that formed a part of me—a part that continues to have lasting strength. I found my current copy of Songs of a Streetlamp at a bookstore kiosk in a Seoul subway station when I was in my twenties and working at my first job. The city had set up these kiosks in subway stations across Seoul in a show of trust for the conscience and intellect of the people of Seoul, and I had flatly refused to be the kind of good citizen the city had hoped to serve. In my defense, I took that copy because the books in that kiosk were at least a few decades old and weren’t being properly looked after. No one seemed to know that this great book had once comforted a little girl and embraced her loneliness and suffering to encourage her to take a step further in life. So it seemed only fair that I take the book for myself. I had started my journey in the world created by that book, and it was a journey that brought me to that kiosk. I believed I could prove that book’s worth better than anyone, and conversely, I believed that book could prove my own worth. In those days, I was the most junior person at the office, someone who was lost and struggling to adjust while surrounded by my boss and senior colleagues who looked more confident and assured of their place i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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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ving Behind My Books | Kim Keum Hee

Each time I dusted off a book in my study, I was transported back to a certain time and forced to backtrack old memories. The task was incredibly time-consuming and emotionally challenging. There weren’t many days I left the study dry-eyed without reaching for a box of tissues. Before I could finish sorting through the books, one of the movers came to assess my belongings and work out a quote for their services. Looking at the piles of books, he asked, “What exactly is your job? Are you going to take all these books to your new place?” To which I hurriedly replied, “No! I’m going to throw away more than half of these.” After the move, I didn’t leave the house for a long time and chose to remain indoors. Even inside my new place, I stayed confined to a strictly limited part of my house, that is, my room and the kitchen. Every time I heard or read something about the city I had lived all my life in, and which had featured as an important setting in my works, I was overwhelmed with a sense of loss. Whenever that happened, the books that I had brought to my new home after having failed to meet my self-imposed quota reminded me all summer long that there are things beyond the world we can see with our eyes. It is for those things that we write stories and create books and introduce them to the world, they continue to remind me. Even those books that I didn’t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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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movers’ truck and instead chose to leave behind with the benevolent owner at the local used bookstore. Even now, in my memories. • Translated by Amber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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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수다 | Writers in Conversation

데이비드 솔로이 David Szalay UK

캐나다에서 태어난 후 영국 런던으로 이주했다. 현재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거주 중 이다. 옥스포드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했다. 처음으로 돈을 받고 쓴 글은 BBC 라 디오 4의 극본이었다. 라디오 극본을 몇 편 더 쓰다가 집필하기 시작한 장편 소설 은 『런던과 사우스이스트(London and the South-East )』로 출간되었고 2008 년 베티 트라스크상(Betty Trask Prize)과 제프리 파버 추모상(Geoffrey Faber Memorial Prize)을 받았다. 그 후 네 권의 책을 더 발표했다. 그 중 『올 댓 맨 이 즈(All That Man Is )』는 2016년 맨부커상(Man Booker Prize) 최종 후보에 올랐 고 같은 해에 고든 번 상(Gordon Burn Prize)을 받았다. 최신작은 2018년에 나 온 『격동(Turbulence )』이다. 작품이 20여개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David Szalay was born in Canada, but moved to London. At the moment, he lives in Budapest. He studied English at Oxford University. The first piece of writing for which he was paid was a radio play for BBC Radio 4. He wrote a few more of those and then started work on a novel, which was eventually published as London and the South-East. It won the 2008 Betty Trask Prize and the Geoffrey Faber Memorial Prize. Since then, he has published four further books, including All That Man Is –which was short-listed for the 2016 Man Booker Prize and won the 2016 Gordon Burn Prize– and most recently Turbulence in 2018. His work has been translated into nearly twenty langu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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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기 | 데이비드 솔로이

이야기하기

우리의 세계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와 서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침실, 부엌, 사무실, 술집에서 주고받는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불가분의 관계로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다. 자기 자신과 타인에 게 하는 이야기는 대부분의 경우 언어, 즉 말로 구성되어 있다. 구어는 사멸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일까? 그러한 주장은 엉뚱하다. 인간은 계속해서 서로 말 을 걸고 항상 이야기를 주고받을 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소위 ‘문학’(썩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이란 일상적인 이야기하 기 행위를 확장한 것에 불과하다. 인간이라서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하게 되는 이야기에 기교를 부려 수준 높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문학은 더 강한 자 의식을 보여주고, 당연히 더욱 정제되어 있다. 어떤 복잡한 목적들을 이뤄내기 위한 글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작동 방식과 목적에 있어서 이야기하기 행위 와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문학의 목적은 의미 있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방식 으로 세상을 그려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문학’은 구어에 단단히 뿌리내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 다. 식물이 흙에서 생명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학은 구어에서 생명을 얻기 때문이다. 어떠한 형태의 문학이든 당대의 구어에서 멀어지면 소멸할 위험이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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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수다 | Writers in Conversation

박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문학이 구어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는 한, 살아남아 번성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본다. 구어는 살아있는 유기체이고 ‘문학’은 언제나 그 생명의 일부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이 주제에 낙관적인 근본적인 이유이다. ‘문학의 죽음’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우리가 목격할 가능성이 있고 실제 목격하고 있는 것은 특정 문학 형식의 죽음이다. 특히 내가 성인이 된 이래 계속 중태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 는 장편소설을 일례로 들 수 있다. 그러나 특정 문학 형식의 죽음이 중요한 의 미를 갖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를 문학 자체의 죽음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사실, 쓸모없어진 문학 형식이 사라지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다. 그런 의미에 서, ‘장편소설’의 매력이 지속되고 있고 과거의 영광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은 문제이다. 왜냐하면 ‘장편소설’은 장엄한 19세기에 당대의 가장 중대한 문제 를 논의한 문학 형식이었지만 현대의 산문 작가들에게도 여전히 그들의 기교에 대한 궁극적인 실험장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오페라, 혹은 소위 말하는 ‘순수예술’처럼 한때는 숭배되었으나 이제는 소외와 무시의 대상 으로 전락하여 마치 좀비처럼 더 이상 제대로 살아 있다고 보기 어려운 문학 형식에 에너지가 낭비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따라서, 장편소설이라는 형식 이 사라지는 것을 염려하지 말아야 하며 어떠한 작품을 접할 때 “장편소설인 가?”라고 매번 질문해 볼 필요는 없다. 영화, TV 등 시각적인 이야기 방식 역시 언어적인 이야기 방식을 눈에 띄게 위 협하고 있다.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확실히 이제 우리 문화에는 시각적인 서 사 형식이 지배적이다. 굳이 다른 방식으로 해야 할 이야기가 아닌 이상 시각 적인 방식이 선택된다. 영화 장면을 옮겨 놓은 것처럼 읽히고 별다른 수고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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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기 | 데이비드 솔로이

그대로 가져다가 영화로 만들 수 있는 장편소설은 어떤 면에서 시간 낭비이다. 없애도 되는 불필요한 중간 단계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돈을 많이 벌 수단이 될 수는 있다.) 문학이 단순히 영화와 TV 프로그램에 소재를 제공하는 존재에 머무르지 않 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화면상으로 재현하기 불가능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 러한 원칙을 내 작품에도 적용하려고 노력한다. 각색이 얼마나 까다로울지 생 각하면 묘한 쾌감을 느낀다. 실제로 내 작품을 시각 매체로 표현하려고 시도 했다가 실패한 사람들이 여럿 있다. 여기에서 관건은 역시 언어라고 생각한다. 즉, 실제 사용되는 언어이자 살아 있는 유기체인 구어이다. 글로 쓰인 이야기들은 어떻게든 ‘언어’에 관한 것이어 야 한다. 우리 세계의 일부가 ‘언어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중요시되어야 한다 는 뜻이다. 그뿐만 아니라, 글로 쓰인 이야기들은 우리가 언어를 통해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을 어떻게든 재현해 내야 한다. 우리의 생각 자체가 말로 구성되 어 있고, 특정한 말의 형태로 빚어지며, 어렸을 때 배운 언어로 창조된 의미론적 공간에서 지내게 되는 방식 역시 재현해 내야 한다. 훌륭한 문학작품을 각색한 영화들이 원작에 비해 밋밋하고 평범해 보이는 경우가 그토록 많은 이유는 그 런 점이 부족해서이다. 영화는 사물의 세계를 나타내지만 사실 우리는 말의 세 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말의 세계는 문학이 자연스럽게 머무는 집이다. 시각 매체는 결코 그곳에 따라 들어올 수 없다.

• 번역 : 김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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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수다 | Writers in Conversation

Telling Stories

Our world is made of stories, stories we tell ourselves, and stories we tell each other—stories we tell each other in the bedroom, in the kitchen, in the office, in the pub. These stories are not separable from our everyday lives, they are entirely embedded in them, and the stories we tell ourselves and others are, for the most part, made of language, made of words. Is spoken language in danger of dying out? It would be an eccentric proposition to put forward. It seems likely that human beings will continue speaking to each other, that they will continue to tell each other stories all the time. In my opinion, what we call “literature”—not a word I’m very fond of—is simply an extension of the day-to-day storytelling we do all the time. It is simply that sort of storytelling—instinctive, involuntary, just part of being human—raised to a level of high craftsmanship. So more self-conscious, of course, and more finely calibrated. More directed perhaps towards particular complex ends. But not essentially different, either in the way it works 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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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ling Stories | David Szalay

the purpose it has, which is to construct some kind of meaningful and communally shared picture of the world. All of which is why “literature” must remain firmly rooted in spoken language if it is to stay alive; like a plant, it draws its own life from the soil of spoken language, and when any form of literature loses touch with the spoken language of its time it is, I think, in imminent danger of dying. As long as it does remain so rooted, however, I don’t see why it will not survive and thrive. Spoken language is a living organism, and “literature” will always be able to partake of that life. That’s the fundamental reason why I am optimistic on this subject. Why I don’t in any way anticipate the “death of literature.” What we may see, what we do see, is the death of particular literary forms. The novel, for instance, seems to have been in intensive care for my entire adult life. But it’s important not to confuse the death of any particular form, no matter how essential it may seem, with the death of literature itself. In fact, the passing away of outmoded forms is a positive development. There is something problematic about the persistent allure and residual prestige of “the novel”—by which I mean the sort of grand nineteenth century edifice housing a discussion of the weightiest issues of the day that prose writers often still feel is the ultimate proving-ground of their craft. It’s problematic because it dive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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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rgy into a form that is no longer properly alive—like opera or so-called “fine art,” other zombie-zones of the culturally undead, where the reverence of old forms has led to marginalisation and irrelevance. We should not be afraid to let them die, and when confronted by any work of fiction, “Is it a novel?” is a question that probably doesn’t need to be asked. Another apparent threat to verbal storytelling is of course visual storytelling, in the form of film and television. This is hardly a new development but clearly we’ve reached the point where the dominant narrative form in our culture in visual. If you have a story to tell, you tell it visually unless there are reasons to do otherwise. Novels that read like films-on-the-page and that can be adapted for the screen with little more than a bit of cut-and-pasting are in a sense a waste of time, an unnecessary intermediate step that can really be dispensed with. (Though they may be lucrative for their authors along the way.) If it is to survive as more than a quarry for film and TV producers, literature has to tell the sort of stories that wouldn’t really be possible on the screen. I try to apply this principle to my own work, and I take a certain grim satisfaction in the challenge it presents to would-be adaptors, several of whom have tried and failed to imagine how it might be presented in a visual medium. The key here, I think, is again language, spoken language,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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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ling Stories | David Szalay

living organism of language-in-use. Stories made of writing must always in some way be about language. I mean that they must be about the way in which our world is partly made of language. More than that, they must somehow recreate the way in which we experience the world through language, the way in which our thoughts themselves are made of words, are shaped by the shapes of particular words, are lived in semantic spaces created for us by the language we learn as children. Film adaptations of great works of literature so often seem flat and unsubstantial compared to the original work because they lack this—they present a world of things, whereas in reality we inhabit a world of words. That is literature’s natural home, and visual media can never follow it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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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수다 | Writers in Conversation

아틱 라히미 Atiq Rahimi Afghanistan/France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소설가 겸 영화감독이다. 아프가니스탄-소련 쿠데타를 피 해 1984년 프랑스로 망명하여 현재까지 파리에 거주 중이다. 프랑스에서 작가 겸 영화/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명성을 얻었다. 첫 장편 소설 『흙과 재(Earth and

Ashes )』를 각색, 감독한 영화가 2005년 개봉되어 큰 호평을 받았다. 권위 있는 프랑스 문학상 공쿠르상(Goncourt Prize)을 수상한 2008년도 장편 소설 『인내 의 돌(The Patience Stone) 』을 각색, 감독한 영화 「어떤 여인의 고백」 은 12개 상 을 수상했고 20개 영화제의 선택을 받았다. 전 작품이 33개국에서 번역되었다.

Atiq Rahimi is an author and film director. He was born in Afghanistan and then fled to France to escape the Soviet coup. He currently lives in Paris. He has made a name as a writer, film and documentary maker in France. He directed the film adaptation of his first novel Earth and Ashes, which was released in 2005, to great acclaim. He directed another adaptation, namely of his novel from 2008, The Patience Stone that won the prestigious French literary prize, Prix Goncourt. It won 12 awards and was selected in 20 film festivals. All of his books are translated in 33 coun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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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각색 | 아틱 라히미

자기 각색

당연한 것부터 시작하지요. 움직임과 시간성의 예술인 영화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욱 이 영화가 세상의 현실을 재현하거나 반영하는 매체로서 의미를 가질 때는 더 욱 그렇습니다.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1896)처럼 짧은 초창기 영화조 차도 우리에게 시작(기다림), 중간(도착) 그리고 끝(하차)이 있는 짧은 이야기 를 들려 줍니다. 그런데 이야기라는 것은 극작법, 즉 문학입니다. 둘 사이의 경계선상에 시나 리오가 있습니다. 그것이 소설 작품의 각색이든, 어떤 독창적인 아이디어에 바 탕을 둔 것이든 말이죠. 전세계 영화의 3분의 1이 각색한 작품이라는 것은 어쩌면 전혀 놀라울 것이 없습니다. 영화는 다른 예술보다 문학과 가깝습니다. 초창기 영화의 비약적 발전은 ‘연극성’에 기인하지만, 그것은 단지 연출의 차원이었습니다. 영화인들은 그들 만의 언어와 글쓰기를 만들어 내면서 재빨리 연극적 장치를 청산했습니다. 이는 소설의 기술 덕분이었죠. 그러나 같은 이야기라도 이 두 매체를 통하면 서로 다르게 전달됩니다.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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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수다 | Writers in Conversation

이 이미지가 전달하지 못하는 것을 묘사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는 단어가 감추는 것들을 드러냅니다. 매체는 다른 매체가 드러낼 수 없는 현실, 사건, 사유, 감정의 다른 차원을 드러냅니다. 그렇지 않고 영화가 문학과 같은 것을 들려준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여기서 두 예술 사이의 명백한 기교적 차이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마찬가지 로, 이 두 예술의 역사와 이론도 다루지 않겠습니다. 이는 다른 이야기이니까요. 다시 돌아와서, 제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고자 합니다.

첫 걸음 제 첫 기억, 첫 경이로움의 경험은 문학적이기보다는 영화적이었습니다. 이 경 험에 대해서는 무척 희미한 기억만 갖고 있습니다. 제가 여섯 살 때였던 듯 합 니다. 온 가족이 월트 디즈니의 코미디 영화 「러브 버그」(1968)를 보러 갔습니 다. 그 영화에서 저는 생각하고 말도 하는 꼬마 자동차에 반했습니다. 그다음 은 세르조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1964)였습니다. 제대로 차려 입고 레드 카펫을 밟고 들어가야 하는 카불의 영화관에 저를 데려가 준 사람은 서부 영 화 팬이던 삼촌이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스스로를 클린트 이스트우드라고 여 겼죠! 그리고 우리 집 커다란 정원에서 친구들과 이 영화 놀이를 하고 또 했습 니다. 그렇지만 저는 매우 일찍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카불의 프랑스-아프간 학교를 다니던 당시 열세 살 때부터 글을 썼습니다. 좀 더 후에는 문학적인 글 말고도 청소년 주간지에 정기적으로 영화 평론을 발표했습니다. 그래서 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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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각색 | 아틱 라히미

의 영화관뿐만 아니라 미국문화원, 알리앙스 프랑세즈, 괴테 인스티튜트 등의 문화원에서도 영화를 많이 봤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영화사의 명작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1985년 프랑스에 정치 망명객으로 오게 되었을 때, 저는 먼저 프랑스어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 문학을 공부했고, 이어서 영화를 공부하였습 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저는 제가 원하는 대로 프랑스어로 글을 쓰지 못했 기 때문입니다. 모국어로 글을 쓴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누구를 위해 서 쓰겠습니까? 따라서 영화는 제 자신을 표현하고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데 가장 근접한 언어였습니다. 그러나 이 길로 뛰어들면서 저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이야기를 잘 하고 잘 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 니다. 그래서 다시 문학으로 돌아왔습니다. 독자들이 늘 제 소설이 매우 시각적이고 나아가 영화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퍽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제 영화의 관객들은 제 영화가 매우 시적이며 문학 적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영화를 찍을 때는 작가이고 글을 쓸 때는 영화인입니다. 이 얼마나 모 순인가요! 그렇지만 제가 글을 쓰거나 영화를 찍을 때의 유일한 관심사는 다 른 매체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어떤 특별한 형식을 찾아내는데 있습니다.

왜 자기 각색하는가? 영화 연출을 전공한 저는 광고와 다큐멘터리 몇 편을 찍은 뒤 영화를 만들 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상반된 이 두 분야에서 저는 영화를 공부했던 긴 세월 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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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수다 | Writers in Conversation

문학은 그다음에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내면의 필요였습니다. 마치 자 기 자신과의 만남 같았습니다. 저의 첫 소설인 『흙과 재(Earth and Ashes)』는 아 프가니스탄 내전 중에 죽은 형을 기리고자 썼습니다. 나중에 출판하려는 계획 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 뒤 이 책이 페르시아어에서 프랑스어로 번역 되어 출간되었고, 예상치 못한 성공은 영화 제작자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 렇게 저는 자기 자신의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미묘하고 까다로운 작업을 통 해 픽션 영화 세계에 데뷔했습니다. 사람들이 제게 처음 그 제안을 했을 때 저를 괴롭힌 첫 질문은 바로 이것이 었습니다. 자신의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게 무슨 의미인가?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미 소설에서 말했습니다. 반복해서 말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 니다. 자신의 작품이든 다른 작가의 작품이든, 작품의 성공 때문에 문학 작품을 영화로 각색하는 것이 매우 나쁜 선택이라는 것은 영화사를 보면 알 수 있습 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각색할까?’라는 문제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왜 각색하나?’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첫번째 대답은 간단하고 실제적인 것이었습니다. 제 모국의 문맹률이 90퍼센 트를 넘기 때문에 제 책은 거의 읽히지 않습니다. 반면에 소설이 영화로 각색된 다면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많은 국가에서 엘리트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과는 달리, 영화는 대중적인 매체임을 알아 차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기 각색’의 모험에 뛰어들었습니다. 제 소설 속에서 형을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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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낸 슬픔을 모국의 언어, 문화로 소통하기 위해서. 그리고 일단 뛰어들고 나니, 저는 ‘어떻게 각색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영화가 소설에서 밝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했습 니다. 영화는 어떤 차원을 밝혀 줄 것인가? 그리고 소설의 각 부분과 사건 하 나하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던 공동 각색자를 마주하고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 비로소 예전에는 수수께끼 같았던 것들에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 다. 마찬가지로 영화제작자들, 투자자들, 제작진 등도 소설의 모든 것을 이해 하고 싶어 했습니다. 제가 소설을 쓸 때는 자잘한 세부 사항들에 대해 제게 질문하는 사람은 아 무도 없습니다. 문학은 우리의 깊숙한 곳에 있는 신비롭고 헤아릴 수 없는 근 원을 가진 내면적이고 고독한 활동입니다. 영화에서는 현실을 통해 신비의 세계를 재창조하기 위해, 자신의 욕망, 의구 심, 내면, 꿈, 혼란 등을 비롯한 모든 것, 그리고 저의 기술적, 재정적 한계들을 제작진과 배우들과 공유합니다. 그에 반해, 책을 쓰기 위해서는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 홀로 자신의 의구심과 불안감 등과 마주해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영화에서는 각 장면, 시선과 대사 모두 하나하나 정당화되고, 설명되고 논리적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제약은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이 텍스트 의 난해한 부분들, 인물의 깊은 내면, 핵심 서사 구조 등에 대해 탐색하게 합 니다. 각색은 정말로 데리다가 말한 ‘텍스트의 해체’ 작업입니다. 제 영화의 경우, 이것을 소설의 각색 또는 다시 쓰기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서사 구조뿐만 아니라 작품의 근간에 영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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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다른 매체와 다른 언어, 다른 표현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서 영화는 제가 소설에서는 의식하지 못했던 다른 차원을 볼 수 있 게 해줍니다.

논의를 이어가기 전에, ‘독자-관객’이 곧잘 잊어버리는 각색의 문제에 대해 한 마디 덧붙이고 싶습니다. 어떤 독창적인 아이디어에 기반을 둔 영화조차도 쓰인 글에 대한 일종의 각색입니다. 그 글이 바로 시나리오지요! 그러나 시나리 오는 매우 기술적이고 비밀스러운 문서이기 때문에 아무도 원작에 대한 충실도 의 관점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이 얘기하듯, 시나리오는 모래 위에 쓰인 글인 셈이죠.

배반을 무시하기 그 작품 이후로 저는 제 소설들을 영화로 각색하거나 다시 쓰는 데 열중하 고 있습니다. 충실도의 문제 때문은 아닙니다. 오히려 원작의 작자로서 양심의 가책 없이 스스로를 배반하는 호사를 부릴 수 있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저는 장클로드 카리에르와 함께 저의 책 『인내의 돌(Syngué Sabour, Pierre de Patience)』을 각색했던 작업에 대해 얘기하고자 합니다. 책을 읽고 제게 축하 전화를 하면서 영화로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한 것은 오히려 장클로드 카리에르였습니다. 그 소설은 연극으로 만들기 쉽다고 여겼던 다른 사람들과는 반대로 말입니다. 그는 제 소설이 영화적 연출에 적합 한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소설의 여주인공은 그가 루이스 브뉘엘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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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창작했던 등장인물들을 떠올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거장에게 매료되 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작업에 착수했을 때 그는 제게 물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제 자신을 배신하는 것부터요!”라고 저는 대답했습니다. “그럼 당신에게 충실하기 위해 저는 당신을 배신하겠소.” 그가 저를 안심시 켰습니다. 이것은 도발이 아니라 영화적 소명이었습니다.

제 소설의 핵심 내용은 “생게 사부르”라는 인내의 돌에 관한 전설입니다. 사 람들은 그 상상의 돌이 깨질 때까지 돌에게 자신의 불행, 불평, 비밀을 토해 냅 니다. 제 소설에서 돌은 전사였지만 뒷덜미에 총알을 맞아 전신이 마비된 주인 공의 남편입니다. 남편을 되살리기 위해 여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것도 구 십구 일 동안,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점차 고백으로 변합니다. 여자는 수년 동안 마음속에 품었던 모든 것을 남편의 귀에 속삭입니다. 제 앞선 책들에서처럼 우리는 극적으로 극단의 상황에, 그리고 닫힌 공간에 갇혀 있는 등장인물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각색 작업은 우선 소설적 서사를 해체하여 순전히 영화적인 연출에 이 르기 위하여, 부적절할 수도 있지만 ‘연극적’이라고도 불릴 수 있는 이 소설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데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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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에 관하여 제 다른 소설들과는 달리, 저는 『인내의 돌』을 모국어인 페르시아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바로 썼습니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이 배경이고, 등장인물은 모 두 아프가니스탄 사람인 이야기를 어떤 언어로 각색해야 할까요? 처음에는 제 책의 도입부에 나오는, ‘아프가니스탄 혹은 다른 곳 어딘가에’라는 문장에 충 실하고자 이야기에 짐짓 보편적인 면을 가하려고 영어로 영화를 찍으려 했습니 다. 그렇지만 곧 페르시아어로 찍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습니 다.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로 표현되고 그 시대의 지 배를 받습니다. (그들의 복장, 분장, 발음을 비롯해 배경이나 소도구 등……) 반면에 문학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정확하고 사실적인 방식으로 묘사되었다고 하더라도 독자는 자기만의 기준에 따라 상상 속에서 이것들을 재구성합니다. 따라서 영화에서는 어떤 ‘진정성에 대한 요구’가 있습니다. 이는 시대가 뒤 엉킨 영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어도 영화 속 대화의 언어는 진정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페르시아어로 찍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하여 이 이야 기는 또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보이고, 들리고, 이해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페르시아어로 찍는 것은 캐스팅이라는 새로운 난제를 가져왔습니 다. 어떤 여배우가, 꾸밈없는 말로 자신의 모든 공상과 욕망, 자기 몸의 모든 비밀을 말과 이미지로 드러내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여인의 역할을 맡을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가 익히 아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위험 부담을 감히 감수할 아프가니스탄이나 심지어 이란 여배우는 흔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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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화의 여신은 우리에게 골쉬프테 파라하니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녀 는 숭고하고 용감한 이란 출신 여배우입니다.

얼굴 입히기 배우를 고르는 일은 영화감독에게도 까다로운 단계입니다. 마음속에서 자신 만의 각색을 해 놓은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제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 소설에는 여자의 얼굴을 묘사하는 대목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영화에 서는 여자의 얼굴을 창조해야 했습니다. 장클로드 카리에르의 집에서 골쉬프테 파라하니를 처음 만났을 때 저는 그 녀가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와 함께 테스트 촬영을 해야만 했습 니다. 왜냐하면 그녀와 같은 아름다움이 영화의 인물과 이야기를 혹시 가려 버 리기라도 하면 영화에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은 인간의 모습 으로 체화되어야 합니다. 골쉬프테는 이 역할을 너무나 맡고 싶어했고 저를 설득시키려고 여러 차례 테스트 촬영을 거쳤습니다. 그녀는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라 이란 출신이므로 첫 번째 어려움은 그녀의 이란 억양을 없애는 일이었습니다. 촬영에 들어가기 일 년 전부터 그녀는 아프간 억양을 배우기 시작했고, 촬영 중에는 이모 역할을 맡 은, 아프가니스탄 출신 여배우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골쉬프테와 같이 작업하 는 것은 무척 즐거웠습니다. 그녀는 등장인물, 저의 연출 의도, 그리고 영화에 서 대사의 중요성을 금방 이해했습니다. 저와 함께 대사 하나하나를 같이 연구 했습니다. 그녀는 카메라가 그녀의 몸짓과 시선이 아니라 그녀의 대사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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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문학은 이 모든 것을 무시하죠.

무엇을 찍을 것인가? 「인내의 돌」1) 의 주요 테마는 말입니다. 말 덕분에 주인공은 자신의 고통에 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자의 말을 정보의 원천이 아니라 행위로 담아야 했습니다. 이 영화는 침묵과 속삭임의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말은 행 위로 등장합니다. 그 말은 (닫힌 공간은 아닌) 방에 누운 남편의 몸 곁에서 자 기 자신에게 고백하는 여자의 말입니다. 열려 있는 이 방은 남편의 침묵과 여자 의 고백을, 밖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야만성과 아이들의 외침을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말은 조명, 화면 배치와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가시화되고 재현된, 온 전한 등장인물이 됩니다. 여기서 문학과 영화는 서로 만납니다.

시점의 문제 제 소설과 영화 사이의 큰 차이는 바로 시점의 변화입니다. 소설에서 화자는 남편만큼 마비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의 화자는 생각을 하지 않는 서술자입니다. 화자는 남편처럼 방에 갇혀 있습니다. 화자는 듣고, 보고, 모든 것을 전달합 니다.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요. 남편 외의 다른 모든 등장인물들은 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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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시 영화 제목은 「어떤 여인의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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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을 통해 서술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술의 시점을 바꿨습니다. 여자의 시점을 취하면서 카메라는 방을 벗어나서 이 주인공을 따라 집 밖에, 카불의 거리에, 전쟁의 한가운데를 관통합니다. 카메라는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의 「독일 영년」(1948)에서처럼 동적이고, 가볍고, 떠돌아다닙니다. 그것은 현장을 즉석에서 잡아내는 느낌을 줍니다. 반면에, 관능, 친밀감, 꿈, 공상, 기억, 회한, 후회, 분노 등이 여주인공 의 정신을 사로잡는 실내 장면에서 카메라는 인물들의 말, 감정과 호흡의 리듬 에 맞춰집니다. 유연하고 우아하고 관능적인 카메라는 마치 비밀친구나 공범 자처럼 방 안으로, 여자의 은밀한 세상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옵니다. 밖/안, 사교적/내밀한, 전쟁/사랑 등 두 세계 사이의 대조는 조명의 차원에서 대조적인 이미지로 재현됩니다. 야외 장면은 날 것 그대로 나타나고, 빛과 색채 의 원천인 여자를 환하게 비춰지는 실내 장면은 부드럽고 뿌옇습니다.

과거이자 현재 이 영화는 현재에서 과거로 넘어가는 구조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서사는 선 적(線的)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여자의 기억이 비체계적이고 자의적인 플래시 백 형태로만 서술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항상 현재의 요소와 상황이 우리를 과 거로 안내해 줍니다. 예컨대, 주인공이 얼핏 보게 되는, 카불 거리의 메추리 싸 움 장면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현재 시점의 이 장면은 여자가 어린 시 절 겪었던 과거를 반영합니다. 현재는 점차적으로 과거의 기억으로 변모합니다. 마찬가지로, 유곽에서 치르는 결혼식 잔치는 주인공의 결혼식을 재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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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과거와 현재의 공생은 기교적이기보다는 시적으로 됩니다. 이렇게 소설 속에서는 여자의 기억과 이야기를 통해서만 존재하는 인물들이 영화에서는 이모나 아버지처럼 자신의 육체를 가지게 됩니다. 문학에서 영화로의 이행은 정신에서 살로, 사유에서 얼굴로 가는 여행입니다.

마지막 한두 마디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길 때 원작자를 배신하거나, 독자나 관객을 실망시킬 까 두려워 사람들은 소설 속에서 촬영이 불가능한 대목을 영화적으로 새롭게 창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트뤼포는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이라는 제목의 유명한 기고문에서, “각색 한 소설에는 영화로 찍을 수 있거나 찍을 수 없는 대목들이 있는데, 후자를 삭 제하는 대신 이와 등가(等價)인 장면을, 다시 말해 작가가 영화화를 가정하여 썼 을 수도 있는 장면들을 새로 창작해야 한다.”는 점을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각색은 결코 움직이는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책의 삽화가 아닙니다. 또한 단순 하게 말을 이미지로 구현한 것도 아닙니다. 각색은 영화 기술과 연출을 통해서 재창조된 또 다른 우주 속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의, 그리고 말의 환생입니다. 영화는 또한 문학과 마찬가지로, 니체가 말한 의미로, 세상에 대한 해석이기 도 합니다. 해석 없이 각색한 영화는 실망스러운 작품입니다.

저는 처음으로 다른 작가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를 최근 마쳤습니다. 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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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각색 | 아틱 라히미

은 르완다 작가 스콜라스틱 무카송가가 쓴 『나일 강의 성모』입니다. 거의 자 전 소설에 가까운 이 소설은 가톨릭 여학교에서 투시족의 집단 학살의 시작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 각색은 작가의 삶이나 당시 사건들에 대한 정확하고 충 실한 재현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집단 학살의 메커니즘에 대한 성찰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저는 어떻게 순수함이 성스러움을 낳고, 성스러움이 신성 모독을 야기하고, 신성 모독이 희생과 폭력을 요구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습 니다. 소설 속에서 이러한 것들은 인물들의 삶보다는 그들의 상상, 꿈, 악몽을 통해서 재현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저는 또 다른 영화를 한창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도 제 작 품이 아닌 다른 작가의 소설을 각색한 것인데, 레바논계 프랑스인 작가인 아민 말루프가 쓴 『동방의 계단들』2) 이라는 제목의 작품입니다. 이번 작업에서 저는 말들이 감추고 있는 것, 등장인물들이 감추고 있는 것, 그리고 작가가 감추고 있는 것을 영화로 찍고 있습니다. ‘영화는 보이지 않는 것의 예술이다’라고 고다르가 말했잖아요!

소설가인 제게 삶이 글쓰기의 소재이듯이, 영화인인 제게 제 소설은 영화의 소 재입니다. 문학에서 저는 제 자신의 감정을 통해 세상을 묘사할 단어를 찾습니다. 영 화에서는 저의 말을 연기해줄 배우들을 통해 감동과 감정을 추구합니다.

2)

한국 출간 제목은 『동방의 항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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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으로서 저는 변덕과 욕망, 요구, 필요, 연약함을 지니고, 돈과 예술과 기술이라는 군대를 이끌며 자신의 ‘에고들(l-égos)’을 통해 세상을 재창조하거 나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어린아이 제왕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감 독의 에고가 추방되어야 할 때, 작가로서의 저는 자신의 외로움 속에 묻혀 빈 페이지 앞에 질질 짜며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 번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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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영인


Self-Adaptation | Atiq Rahimi

Self-Adaptation

First, let’s state the obvious. Cinema, as an art that involves both motion and time, cannot but tell a story. All the more because it is a medium whose purpose is to reproduce or reflect the world’s reality. Even a film as short as L’Arrivée d’un train en gare de La Ciotat (The Arrival of a Train at La Ciotat Station) in 1896 by the Lumière brothers tells us a story, with a beginning (waiting for the train), a middle (the train’s arrival) and an end (getting off the train). When I say “story,” I mean drama, that is, literature. Writing is the interface between picture and narrative, it is about writing a screenplay, be it an adaptation from a novel or based on an original idea. So it comes as no surprise that one out of three feature films across the world is an adaptation. Cinema is closer to literature than any other art form, even though “theatricality” defined its beginnings, but only on the scenographic level. Filmmakers soon got rid of the stage-set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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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ices in order to invent their own language and style—through the art of the novel. However, the same story told by these two different media will be quite different. Cinema exposes that which words conceal, conversely, literature describes that which the image cannot tell. Each reveals a dimension of reality—events, thoughts, feelings— that the other wouldn’t be able to convey. What would be the point if cinema told the exact same story which literature can narrate? I shall not mention the blatant difference between the narrative techniques of these art forms. Nor do I wish to retrace their historical and theoretical developments. That’s another story. I would like to look back on my own experience.

My First Steps My first memory, my first epiphany was more cinematographic than literary. I remember it very vaguely. I must have been six. The whole family had gone out to see a Walt Disney comedy, The Love Bug (1968). I was enthralled that the car could think and speak. Then I saw Sergio Leone’s A Fistful of Dollars (1964). My uncle, a great fan of Western films, had taken me to Kabul, to that cinema with a red carpet, where you had to put on a s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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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Adaptation | Atiq Rahimi

Afterwards, I pretended I was Clint Eastwood, I never stopped playing and replaying the scenes in our big garden with my friends. I began writing at an early age, from the age of 13, when I was attending the French-Afghan School in Kabul. Later, beside the more literary texts, I wrote film reviews for a youth weekly journal. I went to see lots of films in movie theatres but also in cultural venues, such as The American Center, the Alliance Française, the Goethe-Institut. . . I thus discovered a treasure trove of great classics of the history of film. When I came to France as a political refugee, I first took a literary course so as to acquire a better knowledge of French. I also studied film, for my language skills hadn’t allowed me to write directly in French as I wished. Why not write in my mother tongue? What for? Who would ever read me? Cinema would be for me a language in which I would more easily express myself and convey my vision of the world. But then again, going in that direction, I realised that in order to make films you had to know how to tell a story in an articulate manner, I had to return to writing and literature. It is no coincidence that some readers tell me how visual, if not cinematographic, my books are. Likewise, viewers of my films have found these very poetic, not to say, literary. I am a writer when I make films and a filmmaker when I 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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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What a paradox! And yet whenever I take up a pen or a camera I look for the specific form that belongs to either medium, which the other cannot attain.

Why Adapt Your Own Work? Having trained in cinema, I wanted to direct a feature film after having made documentaries and commercials. Almost opposite manners of making images, and yet I have learned more from these two ways of filming than during those long years of film school. Literature came later. It was more of an intimate urge. More like having to come to terms with myself, with my grief. I wrote my first novel Terre et cendres (Earth and Ashes) in order to deal with the loss of my brother killed during the civil war in Afghanistan. I’d had no intention to publish. But it eventually got published in French, and even translated into Farsi. Its unexpected success drew the attention of producers. So I started my career in fiction by taking the most perilous of steps: adapting my debut novel for the big screen. When the idea was aired to me, my first query was: why make a film? Had I not said all that I wanted to say in this book? I had no desire to repeat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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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Adaptation | Atiq Rahimi

If you’re going to adapt a literary piece, whether it be yours or someone else’s, just because it’s a bestseller; experience recorded by the history of film teaches you: it’s a terrible choice. “Why?” rather than “How?” was the question I tried not to ask myself. But then again, why? One answer is simple and pragmatic: in my original homeland, ninety percent of the population is illiterate, so there was little chance that my book had been read at all. On the other hand, once adapted into a film, it could be seen by everybody. From this perspective, you understand why, in so many countries, cinema is considered a popular medium whereas literature is deemed to be reserved to the happy few of the elite. So here I was—fully engaged in the adventure of Self-Adaptation in order to communicate in my original tongue and culture, the grieving of my loss, which I had expressed in my book. Once started, I had to deal with the “How?” question, I had to find out what cinema had to tell me about my own book. Which dimension it could reveal? While working on the screenplay, because my co-writer never stopped asking me questions about such-or-such event in the story, pressing me for every detail in the narrative, I discovered some parts of my book had been more elusive than I had thought. Producers, investors, technic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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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one wanted to understand what I meant. When I write a novel, nobody is there to ask me so many detailed questions. Literature is a visceral, solitary activity whose origin comes from deep down and is very mysterious, quite unfathomable. With a film, I share everything—my desires, my fears, my intimacy, my dreams, my despair… as well as all the technical and financial constraints with my crew and the actors, so that I can reconcile the magic of my fantasy world with the hard facts of reality. When I’m in a writing process, on the contrary, I must keep away from the real world, remain alone with my own doubts and uncertainties. In other words, in a film every shot, every angle, every word must be justified, explained, argued. This prerequisite demands that the screenwriter and the film director delve into the enigmatic parts of the text, explore the psychology of the characters, reveal the inner structure of the narrative. Adaptation is deconstruction, in Derrida’s sense of “deconstructing a text.” I don’t know if in my case, “adaptation,” or “rewriting,” is the appropriate word. For I use another language all together, it’s another material, another form of expression that informs not only the structure but the substance of my work. In so doing, I see another dimension of my novel which h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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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viously escaped my conscience. Before going further, let me just say a word on the question of adaptation that the viewer-reader often ignores: even a film based on an original idea is a manner of adaptation from… the screenplay! As a screenplay is a technical document for private use, no one ever thinks of it in terms of faithfulness to the words. It’s written in sand, as the specialists say.

You Don’t Have to be Faithful Ever since I started adapting my own books or rewriting them for the silver screen, the main focus hasn’t been about being faithful to the original text. Quite the reverse, being the author, I had the privilege of betraying myself without a guilty conscience. About the question of faithfulness, I would like to share with you my experience working in collaboration with the great French screenwriter Jean-Claude Carrière when he adapted my novel Syngué sabour, pierre de patience (The Patience Stone). It was JeanClaude who called me, telling me how much he liked my book and suggesting I have it adapted into a movie. Unlike some who thought it had a dramatic structure easily transferable onto the stage, he saw in it a potential film script that would make a very good drama for the cinema. The female character remin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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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m of some parts he had written for Luis Buñuel and so I was persuaded by the master to work with him. Once our collaboration was decided, he asked me: ‘Where shall I start?’ — By betraying my words! I said jokingly. — Indeed! In order to be faithful to your book, I’ll betray your words, he assured me dead serious. This repartee wasn’t a mere provocation it truly became for me an article of cinematographic faith. The core subject of my book was the legend of the Patience Stone, Syngué Sabour, in Persian, a rock upon which people pour all their mishaps and grievances, and their innermost secrets, until it is sated with their angst and it bursts. Here the stone is the husband, a soldier who is left paralysed after being shot in the neck. To bring him back to life, the wife has to pray for ninetynine days. But after a while the praying gives way to a personal confession. She whispers in his ear the secrets she had kept to herself for so many years. As in my previous books, you have characters in an extreme situation, behind closed doors. Our adaptation work first consisted in extracting the narrative gist from an unduly labelled “stage” material and transforming it into a purely cinematographic d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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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Authentic Unlike my other novels, Syngué sabour, pierre de patience (The Patience Stone) was written directly in French and not in my mother tongue, which is Persian. So in what language were we supposed to adapt a novel that entirely takes place in Afghanistan with Afghan characters? At first, we thought of shooting the film in English to give it a universal—albeit affected—tone, since the opening lines of my book were: “Somewhere in Afghanistan or someplace,” but we soon realised that the film couldn’t be shot in any other language but Farsi. In cinema, characters are flesh and blood, they belong to a certain period of time, they live in a particular place. This must be reflected by the clothes, the makeup, the speech as well as the setting, the props… Whereas in literature, even if descriptions are precise and realistic, there is still room for the imagination of the readers, who can reconstitute the situation with their own references. With films, there is a need to be authentic. The rule applies even to films that toy with anachronisms, let alone when you have dialogue. At the end of the day, we decided on a film in Persian. That would allow the story to be seen and understood by an Afghan aud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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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xt hurdle was now the cast. How on earth would we find a Persian-speaking actress from Iran, or from Afghanistan, who would accept to play the part of an Afghan Muslim woman who speaks crudely of her body, her most intimate secrets, and would have to enact those sexual fantasies verbally as well as visually? Few and far between are those Iranian actresses, let alone Afghan ones, who would be ready to take such risks in the context of those regions. But the Goddess of Cinema sent us an angel named Golshifteh Farhani. An actress originally from Iran, sublime and incredibly brave!

The Face of a Story The choice of actors is also a tricky stage for a director because he must deal with the expectations of an audience who may have surreptitiously made their own adaptation. In my novel, the woman’s face is never described. For the cinema, I had to give her one. When I first met Golshifteh Farahani at Jean-Claude’s, I was stunned by her beauty. We decided to have her auditioned. Beauty can be fatal for a film if it takes over the character and the narrative. Beauty must embody the story. Golshifteh was determined to get the role; she accepted to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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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ditioned over and over again in order to convince me. As she was born an Iranian, and not an Afghan, one difficulty was to efface her Iranian accent. For almost a year before shooting, she learnt to speak with an Afghan accent; on set she was helped by the actress who played the aunt and who was Afghan-born. Working with Golshifteh was a real pleasure: she immediately understood her part, what I wanted to convey through the character of the woman, my directing style, the importance of speech in the film. We worked on every word. She knew that the camera had to move not so much with her body and look as with the words she said. Literature ignores all that.

What to Film When Filming an Adaptation Speech is the core subject of Syngué Sabour. Only through speech can the female character in my story free herself from suffering. Words in the film are more like action than a source of information. It is all about silence and whispering. Speech is staged like an act: the woman’s words reveal her inner self by being delivered to the body of her husband lying in the room— not a closed chamber. Quite the opposite: the room is open, welcoming her confession as well as the man’s silence, letting in the noise of children playing as well the murderous rumour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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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 outside. Words have thus become characters, made visible and alive through the lighting, the frame and the camera shots. Here, literature and cinema are reconciled in full embrace.

The Question of the Viewpoint The great change from the original novel was the viewpoint. In the book, the narrator is paralytic like the bedridden man in the film. But the narrator doesn’t think. He is a man locked in a room. He hears, sees, tells all. Even what is happening outside of the room. But for the man, all the other characters are being told by the woman. The narrative viewpoint has changed. Espousing the woman’s perspective, the camera can actually leave the room and follow the protagonist out of the house, into the streets of Kabul, into the heart of the conflict. It is light and mobile, wandering as in Rossellini’s Germany, Year Zero (1948), capturing live situations. But when memories, regrets, fantasies, remorse or anger come to haunt the heroin, the camera is attuned to the rhythm of words, emotions, characters that dwell in her consciousness. Supple, graceful, sensuous, the camera glides into the room, then into the woman’s intimacy, like a confidante, or an abet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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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e contrasting worlds, the coupling of opposites: inside/ outside, social/intimate, war/love… are translated through lighting and with high-contrast images. Outside the light is crude, inside it is soft, filtered, the woman is lit as though she was herself the source of light and color.

Present-Past The film is structured by the passage from present to past. The narrative isn’t linear. However, the woman’s memories are not told through automatic or arbitrary flashbacks. Rather, present elements or events introduce us into the past. For instance, only when she sees quails fighting in the streets of Kabul does she become aware of certain things. The contemporary scene mirrors a situation the heroin experienced in her childhood. The present meshes with images of the past. In the same way, the wedding party taking place in a secluded house re-enacts her own wedding party. The symbiosis between past and present times is more about poetry than technique. So the characters, like her aunt or her father, who in the book only exist through the wife’s telling about their existence or remembering them, are actually embodied in the film. To go from page to screen is a journey from spirit to flesh, fr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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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ng in somebody’s mind to seeing a person’s face.

A Few Last Words For fear of not being faithful to an author, of disappointing an audience of viewer-readers, film-makers, when they adapt a novel to the screen, tend to write up extra-scenes for those so-called unfilmable passages of a book. Truffaut criticized this in his seminal article, “A Certain Tendency of French Cinema,” calling it the equivalence process – it “presumes that in an adapted novel there should be scenes one can shoot and scenes one can’t, and that, instead of getting rid of the latter, some scenes have to be invented as an equivalent to those which the author would have otherwise written for the film.” Adaptation is absolutely not an illustration of the book in motion pictures. Nor is it a mere incarnation of words into images. It is reincarnation, in the religious sense of the term—a reincarnation of the fiction’s characters, the story, the words, that are being reinvented by the cinematographic art through its own language, its own technical and narratological devices. Film is about interpreting, as Nietszsche understood it, i.e., it is the interpretation of a world, as much as literature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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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film adaptation that leaves no room for interpretation is always disappointing. I have just shot my first adaptation from a novel that wasn’t mine. It was Notre Dame du Nil [Our Lady of The Nile] by Scholastique Mukasonga. Written in the autobiographical vein, the novel recounts life in a convent school in Rwanda at the start of the Tutsi genocide. My adaptation is absolutely not a faithful reconstitution of the author’s life or the events that unfurled during that period. It is more a reflection on the mechanism of genocide. History has taught me that innocence begets the sacred, that the sacred entices to sacrilege; that sacrilege demands sacrifice and violence. So I made use much more of the fantasies and nightmares of the characters than of the historical facts that were recorded in the book. Right now I’m in the midst of a film preparation, yet another adaptation—a book by the great French-Lebanese author, Amin Maalouf, entitled Les Échelles du Levant (Ports of Call). In this project, I’m trying to film what is behind the words, what the characters are hiding, what the author is trying to keep away from view. Godard says: “Cinema is the art of the invisible”! In the same way, life is the material for the novelist me’s books; these books are the stuff of which the film-maker me makes his fil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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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writing a book, I look for words that describe the world according to my emotions; when shooting a film, I look for emotions through which my cast can interpret my words. My filmmaker me is a Child King with his whims, cravings, needs, and his own fragility, and his capacity to reinvent or reconstruct his many egos like a game of Lego, thanks to an army of financial, technical and artistic soldiers. But when the film director’s ego is sent to the naughty corner, then the author’s self comes back, only to retire far from the crowd and write, sobbing over his blank page. • Translated by Seamus Lack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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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Bae Su-ah Korea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화여자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 단편 「천구백팔십 팔년의 어두운 방」 이후 수권의 장편과 단편 소설, 에세이를 출간했다. 독일어 번역 가로도 활동하며 독일 작가 마르틴 발저의 『불안의 꽃(Angstblüte)』 외에 카프카, 제발트, 로베르트 발저, 예니 에르펜벡, 헤르만 헤세, 페르난두 페소아 등의 저서를 번역했다.

Born in Seoul, Bae graduated from Ewha Womans University with a degree in Chemistry and debuted as a writer with the publication of “A Dark Room” in 1993. After her debut, she published various essays and novels. She also translated Angstblüte, a German novel written by Martin Walser. In addition, she translated various works in German language including those by Kafka, Sebald, Walzer, Jenny Erpenbeck, Herman Hesse, and Fernando Pess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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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도 가지 않고, 멀리,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 배수아

어디로도 가지 않고, 멀리,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1979년은 내게 특별한 해였다. 그해에 나는 처음으로 러시아 작가인 파스테 르나크가 쓴 소설을 읽었기 때문이다. 첫 문장을 읽는 즉시 벌써 그의 글을 좋 아하게 되었으므로, 그래서 나는 이듬해에 나온 그의 산문집도 찾아서 읽었다. 산문집에는 파스테르나크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모스크바 기차역으로 누 군가를 배웅 나갔던 기억이 나온다. 아마도 이른 아침, 플랫폼에는 한 남자와 여자가 서 있었다. 인상적인 외모의 그들 남녀는 외국인이었고, 작가였으며, 여 행 중에 모스크바에 들렀던 것이다. 파스테르나크는 나중에 큰 다음에야, 어린 시절 그가 만났던 플랫폼의 남녀가 릴케와 루 살로메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특별할 것이 없는 그 장면은 어린 시절 내내 기이할 만큼 집요하게 내 의식의 배경을 이루던, 설명할 수 없는 그림들 중의 하나이다. 나는 그런 그림들을 얼 마나 자주 떠올리면서 살았던지. 아마도 그것이 내 의식의 밑바닥에 기차역 플 랫폼이 특별한 장소로 인식되고 있는 원인일지도 모른다. 물론 여행은 작가만의 일은 아니며, 더욱 멀리 여행하는 것은 이제 플랫폼이 아니라 공항에서 이루어진다. 허공을 여행하는 일은 기이하다. 국경을 넘어야 하는 육지나 바다 여행과는 다르다. 산도 들판도 도시도 강물도 지나지 않으 며 대신 구름의 초현실적인 형상들 위로 지나가는데, 그 느낌은 마치 내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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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텍스트를 초월한 문장을 읽는 것과 비슷하다고 나는 항상 느낀다. 문장이 설명하는 줄거리로부터 뜯겨져 나온다는 것은 그 자체로 폭력이기도 하고 해 방이기도 하다. 마치 산란하는 플랫폼의 기억처럼. 그러나 내게는 공항에 대한 기억들도 있다. 어느 날 나는 베를린에서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내가 단 한 번 만났을 뿐인 어떤 사람이 며칠 뒤 베를린을 방문할 예정인데 도착하는 날 공항에서 만 나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자는 내용이었다. 11월의 베를린은 내 기억 속에서 언 제나 밤이었다. 긴 꼬리를 늘어뜨린 붉은 여우가 불빛 없는 거리를 가로질러 갔다. 그 도시에서 내가 배운 단 하나의 문장은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습 니다.(Ich verstehe dich nicht)’ 였다. 나는 이메일이 가리키는 공항으로 갔 는데, 그때까지는 그런 공항이 도시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는 공항에 도착했으나 입구를 찾지 못했다. 공항은 마치 성이나 요 새처럼, 마치 감옥처럼, 드높은 돌담으로 사면이 둘러싸인 듯이 보였다. 그 어 디에도 입구는 없었다. 깜깜한 밤, 나는 가도 가도 끝없는 공항의 담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거대한 블록을 돌아, 동쪽에서 서쪽, 남쪽에서 북쪽으로 걸었다. 길바닥에서 하얀 조약돌이 흰 빵처럼 반짝였 다. 공항은 스스로 초현실적인 의식을 구축했다. 이곳은 정말로 공항일까? 왜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한 대도 보이지 않는 걸까? 왜 사람들이 한 명도 없고, 그 어디에도 불빛이 보이지 않는 걸까? 어느새 약속시간이 지나고 있었으나 여 전히 나는 공항 주변을 길 잃은 여우처럼 빙빙 돌고만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 간 거짓말처럼, 숨겨진 듯 작은 모퉁이에서 불빛이 새어나오며 환한 입구로 통 하는 통로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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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공항에서 만난 사람은 나를 시내의 문학 박물관으로 데리고 갔다. 아 무도 없는 박물관 2층으로 올라가자 작은 전시실 스크린에는 잉게보르크 바 흐만의 시 낭송 녹화 필름이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바흐만의 시를 한 편도 읽어보지 못했다. “말해다오, 사랑이여…….” 수많은 청중을 눈앞에 두고 긴 시를 읽어 나가는 바흐만의 얼굴이 스크린에 가득 찼고, 그녀의 목소리는 미 세하게 떨리고 균열되었다. “……나는 모든 불길을 관통해서 가는 도롱뇽 을 본다. 그는 조금의 몸서리도 치지 않는다. 그 무엇도 그를 아프게 하지 못 한다.” 공항에서 만났으며 이제 곧 함께 저녁을 먹게 될 사람은 내게 바흐만 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좋아하지 않는다는 의미 가 아니라, 바흐만의 시를 모른다는 의미였다. “바흐만은 담뱃불을 끄지 않고 잠이 들었다가 발생한 화재로 죽었습니다. 사고의 원인은 수면제일 거라고 다 들 추측하죠. 하지만 나는 그녀가 매우 기묘한 죽음을 맞은 거라고 생각합니 다.” 우리는 잠시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그리고 박물관을 나와 어느 스페인 식 당으로 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채 당황한 나는 메뉴판의 아무것 이나 가리켰고, 작은 접시에 든 고추절임 네 개를 저녁식사로 받았다. 그날 밤 의 모든 일이 불가사의했다. 그래서 몇 년 후 신문에서, 내가 11월의 밤 내내 입 구를 찾아 헤맸던 그 공항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 나는 놀라 지 않았다. 내가 갔던 그날 밤 그 공항은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되 었기 때문이다. 그날, 사라진 공항에서 만났던 사람이 이듬해 한국에 왔다. 우리는 또다시 공항에서 만났다. “무엇이 보고 싶은가요?” 내가 묻자, 그는 양양 공항으로 데려다 달라고 말했다. 양양국제공항. 하고 그는 또렷하게 말했다. 나는 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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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아마도 작은 도시고, 그런 곳에 국제공항이 있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노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어느 책에서 한국의 양양 국제공항 에 관한 신비로운 기사를 읽었다고 했다. “양양 국제공항의 2층 레스토랑에서 신비로운 맛의 생선 수프를 먹을 수 있다” 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그 자리에서 차를 몰고 양양으로 떠났다. 나는 운전을 하면서도 그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믿었다. 양양국제공항은 존재하지 않았을 터이니까. 한 국어를 모르는 그는 옆자리에서 지도를 펼치고, 도로 표시인 아라비아 숫자로 우리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를 가늠했다. 도중에 우리는 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양양 공항에 관한 글을 어떤 책에서 읽었는지 물었으나 그는 잊었다고 했다. 대신 한 여성 작가의 기이한 사고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녀는 담 배를 피우다 잠이 들었는데, 채 꺼지지 않은 담뱃불이 커튼으로 옮겨 붙어 큰 화재가 났죠. 하지만 그녀는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든 바람에 일찍 깨어나지 못 했고,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는데…….” 나는 그 작가를 안다고 생각했으므로 자신 있게 끼어들었다. “그녀가 누군 지 알아요, 당신이 옛날에 말해 주었잖아요. 잉게보르크 바흐만이죠!” “아니, 아주 비슷한 사례이긴 하지만, 지금 내가 말하려는 작가는 클라리스 리스펙토르입니다.” 그가 대답했다. “내가 모르는 작가로군요.” 나는 의기양양하게 그의 말을 끊은 것이 좀 부 끄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비슷한 일이 아주 먼 곳에 사는 두 명의 여성 작가에 게 일어났다는 것이 좀 기이하게 느껴졌다. “브라질 작가지요.” “브라질이라니, 너무 먼 곳이에요. 나는 결코 그곳에 가게 되지도, 그녀를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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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되지도 않을 거예요.” 우리는 계속해서 갔다. 마침내, ‘양양국제공항’이라고 적힌 표시판이 나타 나자, 나는 충격을 받았고 믿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무척 배가 고팠기 때문에 신비로운 생선 수프를 먹을 기대에 잔뜩 부풀었다. 하지만 공항 주차장에 들어서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월의 햇빛이 잔뜩 쏟아지는 주차장은 그야말로 한 대의 차도 없이, 비현실적 인 광채 속에서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공항청사는 문이 닫혔고, 그 어디에도 인기척이 없었다. 2층에 있다는 생선 레스토랑 역시 흔적도 보이지 않는 건 당 연했다. 정적이 흘렀다.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우리는 한동안 자동 차 주변을 서성였다. 물 한 방울 없는 사막 같았다. 신비하여라. 자신의 나라에 서 이토록 비현실적인 느낌에 휩싸이다니. Ich verstehe nicht. 한참 후, 어디선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아마도 직원인 듯한 한 남자가 다 가왔다. “이상한 질문처럼 들리겠지만, 혹시 이곳이 정말로 양양국제공항인가 요?”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그는 맞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양양국제공항은 스키 시즌에만 오픈하는 공항입니다. 주로 중국에 서 오는 스키 관광객들이 사용하죠.” 그는 일부러 이 외곽의 텅 빈 공항까지 찾아온 나와 일행을 매우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설명했다. 나는 6월 의 석양을 등지고 서 있는 일행을 향해 말했다. “당신 말이 맞아요. 공항은 있지만, 공항은 작동하지 않아요. 우리 떠나요.” 우리는 바다가 나타날 때까지 계속해서 앞으로 갔다. 바닷가에 차를 세워두 고 골목길 안쪽에 있는 허름한 식당에서 생선구이로 저녁을 먹었다. 나는 내가 바닷가에서 자랐노라고 그에게 말했다. 그리고 불현듯, 우리가 베를린에서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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났던 그 11월 밤의 공항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지금은 사라진 공항을 찾지 못해 깊은 밤 오랫동안 방황하듯 공항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노라고. “그 공항은 마치……. 감옥처럼 보였어요.” 내가 말했다. 그러자 그는, 종신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혀 있는 오래전 여자 친구 이야기를 했다. “삼십오 년 동안 나는 적어도 일 년에 한번은 그녀를 면회하기 위해 프랑크 푸르트로 갔죠. 작년에는 당신이 말한 바로 그 베를린의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갔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어떤 생의 예감에 내 내면의 빈 방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삼십오 년이나 그녀는 감옥에 있었군요! 도대체 그녀는 무슨 짓을 했길래!” “비행기를 납치했죠.” 그는 생선구이를 양 손으로 들고 살을 뜯어먹으면서 말했다. 나는 사로잡 혔다. 그때 나는 어떤 소설을 막 쓰기 시작한 참이었는데, 그가 하는 이야기가 내 소설 속의 여자 주인공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식당의 모든 사람들이 말없이 우리를 쳐다보았다. 나는 ‘한국에서는 아무 도 그런 식으로 생선을 손에 들고 뜯어 먹지 않아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식 당 주인이 와서 문을 닫아야 한다며 나가달라고 요구할 때까지, 말끔하게 뜯 어먹은 생선의 등뼈를 접시에 가지런히 내려놓으며, 그는 자신이 젊은 시절 여 행한 먼 나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는 당시 막 쓰기 시작했던 소설 이야기를 했다. 제목을 「북쪽 거실」이라고 붙일 생각이라고도 말했다. 어떤 내용이냐고 친구가 물었다. 하지만 나는 소설의 첫 페이지를 겨우 시작한 참이었으므로, 아니 사실은 겨우 제목 정도만 막 생각해 둔 상태이므로, 구체적인 내용은 대 답할 수 없었다. 그래서 즉흥적으로 떠오른 대로, 그 어디로도 가지 않았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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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이야기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문득 생각난 것을 질문했다. “내가, 프랑크푸르트에 있다는 당신의 여자 친구 이야기를…… 「북쪽 거실」 에 써도 될까요?” 그는 생선 기름이 묻은 손가락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이번에 독일로 돌아 가면, 그녀에게 다시 가 보려고 합니다. 그녀에게 물어볼게요. 그래서 좋다고 하면, 그녀에 관해서 전부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그것을 「북쪽 거 실」에 쓰게 되겠죠.”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내가 어느 날 멀리,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멀리, 거의 브라질과 같은 나라까지 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대답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하고 그가 물었다. 나는 정말로 멀리 간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없이 손가락으로 눈앞의 검은 바다를 가리켰다. 아니 맞아요, 당신은 멀리 가게 될 겁니다. 저렇게, 멀리. 왜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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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eteen seventy-nine was a special year for me. That year, I read a novel by the Russian author Boris Pasternak for the first time. I liked his writing from the first sentence, and I sought out and read a collection of his essays that came out the following year. In one essay, Pasternak recalls a childhood memory of going to the Moscow railway station with his father to greet someone. Perhaps early in the morning, a man and woman were standing on the platform. The impressive-looking man and woman were foreign authors who were making a stop in Moscow in the middle of a trip. Pasternak only learns in his adulthood that the couple that he met on that platform as a child were Rainer Maria Rilke and Lou Andreas-Salomé. This utterly ordinary scene is one of the inexplicably persistent images that formed the backdrop of my consciousness throughout my childhood. How frequently I recalled such pictures throughout my life! This is perhaps the reason that at the base of my consciousness, I recognize railway station platforms to be special pla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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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rtainly, traveling is not reserved exclusively for writers, and traveling great distances now involves airports rather than platforms. Traveling through the air is strange. It is different from traveling overland or by sea, both of which involve border crossings. One does not pass by mountains, fields, cities, or rivers, but surreal cloud forms, and this always elicits in me a feeling akin to reading a sentence that transcends content and context. A sentence being ripped away from an explicable storyline simultaneously represents violence and liberation. Like the scattered memory of the platform. I also have memories of airports. One day in Berlin, I received an email. A person that I had met only once before wrote that he was scheduled to visit Berlin several days later and suggested that we meet up at the airport on the day he arrived and find supper together. In my memory, it is always nighttime in Berlin in November. A red fox with a long tail stepped across the unlit street. One sentence that I learned in that city was “I do not understand you (Ich verstehe dich nicht).� I went to the airport as indicated in the email. I had been completely unaware that an airport existed right in the middle of the city. I arrived but could not find the entrance. The airport was like a castle or a fortress, like a penitentiary. It appeared to be surrounded by tall stone walls. I did not see an entrance any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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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dead of night, I walked blankly along the neverending airport wall. I did not come across another person. Rounding a huge block, I walked from east to west, then south to north. White pebbles gleamed on the street like pieces of bread. The airport had constructed a surreal consciousness. Is this truly an airport? Why do I see no planes taking off or landing? How come there is not a single person, and no light anywhere? I was on time for the appointment, but I was still circling the airport like a fox that had lost its way. Then, in a moment, out of nowhere, light escaped from a small recess, and a path appeared, leading to a bright entrance. The person I met at the airport took me to a literature museum downtown. We went up to the deserted second floor.A film of a poetry recitation by Ingeborg Bachmann was being screened in a small exhibition room. I had never read any of Bachmann’s poems. “Tell me, love…” The face of Bachmann filled the screen, reading a long poem in front of a large audience. Her voice trembled slightly and cracked. “. . . I watch the salamander slip through every fire. No dread haunts him, and he feels no pain.” The person I met at the airport and was about to dine with asked if I liked Bachmann. I shook my head. I did not mean that I did not like her, but that I was not familiar with her poetry. “Bachmann died from a fire caused by a cigarette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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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failed to put out before sleeping. Most people suspect that sleeping pills were the cause of the accident. But I think that she had a rather peculiar death.” For a moment, we stood facing each other. We left the museum and went to a Spanish restaurant. At a loss for what to say and flustered, I pointed to a random item on the menu and received four pickled peppers on a small plate for dinner. Everything that happened that night was mysterious. A few years later, when I read in the newspaper that the airport where I had searched all over for an entrance on a November night was scheduled to be decommissioned, I was not surprised. That airport, on the night I was there, felt truly nonexistent. The person I met that day, at the airport that is no longer, came to South Korea the following year. Again, we met at an airport. “What would you like to see?” I asked. He asked me to take him to Yangyang Airport. Yangyang International Airport, he articulated. I told him that I thought that Yangyang was a small city, and I had never heard of an international airport there. However, he said he had read a fascinating article somewhere about Yangyang International Airport in South Korea. According to the article, “One can taste marvelous fish soup at a restaurant on the second floor of Yangyang International Airport.” Without further ado, we drove straight to Yangyang. Even as I drove, I was convinced that he was mistaken. Yangyang International Airport could n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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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ist. Having no knowledge of the Korean language, he opened the road map and followed our progress by numerical signs on the road. We stopped once, at a rest area, and had coffee. I asked him where he had read about Yangyang Airport, but he said he had forgotten. He changed the topic to the strange tragedy of a woman writer. “She fell asleep while smoking, and the drapes caught fire from her unextinguished cigarette, and the fire grew out of control. But she had taken sleeping pills and did not wake up in time, putting her life in jeopardy. . .” I knew who the writer was, and I butted in confidently, “I know who. You told me before. It’s Ingeborg Bachmann!” “No, but it is a very similar case,” he responded. “The author I am telling you about now is Clarice Lispector.” “I don’t know that writer.” I was slightly embarrassed about having cut him off assumptively. At the same time, I was astounded by the fact that two women writers in distant places suffered a near identical accident. “She is a Brazilian author.” “Brazil is so very far away. I will never go there or get to know her.” We continued on our drive. Finally, a sign for “Yangyang International Airport” appeared, which shocked and amazed me. We were both rather hungry and buoyant in anticipation of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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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velous fish soup. Entering the airport parking lot, however, something felt odd. The June sun was pouring into the parking lot, which was completely empty in the surreal light, literally without a single parked car. The doors to the airport terminal were closed, and there was no sign of activity anywhere. Obviously, there was no hint of a fish restaurant on the second floor, either. There was only stillness. No sound could be heard. We paced around by the car for a while. It felt like a desert without a drop of water. How mysterious! How could I be overcome by such a surreal feeling in my own country! Ich verstehe nicht. After a while, an official-looking man appeared out of nowhere and approached us. “This might sound like a strange question, but is this really Yangyang International Airport?” I asked carefully. He confirmed that it was. “But Yangyang International Airport is open only during the ski season. It is used mainly by ski tourists from China,” the man explained, looking suspiciously at my companion and me, who had sought out this empty airport in the middle of nowhere. To my companion, who was standing with the June evening sun at his back, I said: “You were right. The airport is here, but it is not in operation. We’d better leave.” We kept going in the same direction until the ocean came i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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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We parked at the shore and ate grilled fish for supper at a humble restaurant in an alley. I told him that I grew up by the sea. Then, out of the blue, I told him about my experience at the airport on the November night when we met in Berlin. How for a long time that night, I had wandered around looking for the airport that had since disappeared. “That airport felt like. . . a prison,” I said. Then he told me about his girlfriend from a long time ago who is serving a life sentence in prison. “For thirty-five years, I have gone to Frankfurt at least once a year to visit her. Last year, I went to the airport in Berlin that you mentioned to fly there.” The foreboding chill of an unimaginable life froze an empty room inside me. “She has been in prison for thirty-five years! What could she have possibly done?” “She hijacked a plane,” he said, biting the flesh from the piece of grilled fish he was holding in both hands. I was captivated. I had just begun writing a piece of fiction, and the story he was telling seemed to overlap with the story of my heroine. All of the diners in the restaurant watched us in silence. I did not tell him, “People in Korea don’t hold fish in their hands and gnaw on it the way you’re doing.” He picked the fish clean.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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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out Traveling Somewhere, Far, I Cannot Understand You | Bae Su-ah

restaurateur asked us to go because it was closing time. As he laid the spine of the fish neatly on his plate, he told me about a distant country where he traveled in his youth. I told him about the story that I had just begun writing. I added that I was thinking of titling the story “North-facing Living Room.” He asked what the story was about. Because I had only just started the first page of the piece, no, I had merely thought of the title, I was unable to give him any details. Therefore, I improvised and answered that it was about a woman who did not go anywhere. Then I suddenly thought of something. “Could I . . .write the story of your girlfriend in Frankfurt in ‘North-facing Living Room’?” He wiped the fish oil from his fingers with a handkerchief. “When I return to Germany, I plan to visit her again. I will ask her. If she agrees, I will tell you everything about her. Then you will write her story in ‘North-facing Living Room’.” He added that I might one day travel far, much farther than I think, perhaps as far as Brazil. I told him that would never happen. “Why do you think that?” he asked. I told him that I had never really travelled very far. He shook his head, then without a word, pointed at the black sea before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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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수다 | Writers in Conversation

No, I know. You will travel far. Far, like that.Because . . . • Translated by Eunji Mah  Edited by Jeffrey Karvon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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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수다 | Writers in Conversation

전성태 Jeon Sungtae Korea

1994년 계간 《실천문학》 신인상에 단편 「닭몰이」로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으 로 『매향埋香』, 『국경을 넘는 일』, 『늑대』, 『두번의 자화상』이, 장편소설로 『여자 이발사』가, 산문집으로는 『세상의 큰형들』, 『기타 등등의 문학』이 있다. 초기에는 성장기를 보낸 농촌을 무대로 한 소설을 발표하였고, 차차 한국 근대화와 다양한 타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관심을 넓혀왔다. 2005년 몽골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소 설집 『늑대』를 발표했다. 신동엽문학상, 채만식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Jeon started his writing career when he won the 1994 Silcheon Munhak New Writer’s Award with his short story, “Chasing Chickens”. His short story collections include Maehyang, Over the Border, Wolves, and The Second Self-Portrait. He also published a full-length novel titled The Female Barber. His essay collections include Big Brothers of the World and Miscellaneous Literature. His earlier works are set in rural areas, where he has spent his childhood. His later works’ settings have broadened to include modernization process of Korea and its various characters. His 2005 work, Wolves was based on his personal experience in living in Mongolia. He is the recipient of Sin Dong-yeop Literary Award, Chae Man-sik Literary Award, Oh Yeongsu Literary Award, Hyundae Literary Award in Fiction, Lee Hyo-seok Literary Award, and Korea Daily Literary A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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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들의 무덤 | 전성태

스파이들의 무덤

더러 외국 친구들이 묻는다. 불안하고 위험한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 이런 질 문은 분단체제에 사는 우리들의 일상을 낯설게 환기시킨다. 한국인들이 느끼는 온도와는 다르다. 남북 분단은 한반도의 표상이고 CNN과 같은 글로벌 매체 는 남북의 군사적 긴장을 반복적으로 전달한다. 핵무기, 탄도미사일, 한미군사 훈련, UN의 대북제재……. 한국전쟁의 흑백필름도 자료 화면으로 재생된다. 외 국인들은 내전 상태에서 한국인들이 일상을 영위한다고 믿는다. 마치 우리가 해 외 여행지에서 알자지라(Al Jazeera) 방송을 통해 테러와 공습, 희생자의 장례 식과 규탄 영상을 반복해 보면서 아랍 세계에 대한 이미지를 갖는 것처럼. 2002년 6월 한국에서 월드컵이 열리고 있을 때 서해 연평도 근해에서 남북 해 군이 삼십 분 남짓 충돌했다. 일명 연평해전. 양측에서 군인 19명이 전사하고 함 정이 침몰하는 등 휴전기간에 벌어진 국지전으로서는 규모가 컸다. 연평도에서 만난 노인은 자신은 정작 인근 해상에서 교전이 벌어진 줄 몰랐는데 하와이에 사는 조카가 전화해 빨리 뭍으로 피하라고 해서 상황을 알았노라 증언했다. 우리는 분단 체제와 휴전 상태를 일상적으로 감각하고 산다고 말할 수 없 다. 분단 체제가 칠십 년에 이르러 내면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은 아 직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임에도 우리는 1953년에 끝난 것으로 감각한다.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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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당위성에 의문을 표하는 젊은 세대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그들 도 분단 체제가 주는 비용이라든가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모르지 않는다. 다 만 통일 역시 예측 불허의 혼란으로 인식한다. 굳이 지금의 안정된 양국 체제 를 흔들 필요가 있느냐고, 각자 잘 살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분단 체제의 극 복은 곧 통일이라는 신념을 갖고 살아온 기성세대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젊은 세대의 감성이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다. 한국의 앞선 세대와 다른 이런 태 도 역시 분단 체제가 길어지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분단 체제에 사는 한국인들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다면 그 일상성 보다는 분단 체제의 내면화 형태, 집단 무의식이라든가 국가와 민족이라는 상 상 공동체에 대한 세대적인 감각들을 눈여겨봐야 한다. 작년, 올해 분단 체제의 시계가 다시 작동하며 한반도 정세가 급변했다. 남 북회담이 열리고 북미회담이 수차례 열리면서 우리에게는 어떤 기대와 희망이 생 겼다. 기대와 희망이 생기자 아이러니하게도 분단 체제가 생생하게 실감되었다 고 할까? 북미 정상이 만나 종전 선언에 합의할까 기대하며 중계 화면을 떠나 지 못한다. 한편으로 평소 감각하지 못하던 한반도에 드리운 주변국들의 힘 들이 아침 거미줄처럼 선명하게 인식된다. 그래서 우리는 절망한다. 냉전 시대에 우리의 분단에 작용한 열강들의 역학이 망령처럼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 에, 우리의 운명을 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이 원고를 작성하는 동안 DMZ의 판문점에서 트럼프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 문재인 대통령이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다.(6월 30일) 세계인들은 이 외신을 접 하며 어떤 느낌을 가질지 궁금했다. 묵은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보듯 기이하 게 바라보았는지 모른다. 아니면 쇼맨에다가 비즈니스맨인 트럼프와 매우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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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들의 무덤 | 전성태

니크한 스타일의 독재자 김정은이 연출하는 리얼리티 쇼를 시청하듯이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우리의 운명이 제발 기적과 같이 바뀌길 바라며 사 뭇 간절했다. 한국은 일제에 의해 식민지를 경험하고 이후 분단과 전쟁을 겪으며 이산(離 散)을 경험한 특수한 난민 공동체이다. 러시아에는 고려인들이, 중국에는 조선 족들이, 그리고 재일동포, 하와이 동포들은 그 배경이 난민이었다. 분단과 전 쟁으로 인해 휴전선 이남에 고향과 가족을 두었으나 이북에 살게 된 사람이 나, 이북에 고향과 가족을 두었으나 이남에 살게 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우 리는 ‘이산가족’이라고 부른다. ‘이산가족상봉 행사’라는 남북의 슬픈 이벤 트는 분단체제의 상징이다. 그런데 특수이산가족도 있다. 정치적으로 서로 인 정하지 않았던 비전향기수, 전쟁 중 납북자, 미송환 국군포로, 월북자, 탈북자 (북한이탈주민), 거기에 휴전기간 동안의 동해 납북어부들과 같은 납치자, 미 귀환 공작원들의 경우도 특수이산가족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이탈 주민은 한반도의 분단 체제가 낳은 특수한 난민 문제이고 진행형 이며 대규모이다. 앞서 열거한 특수 이산가족의 범주에 미귀환 공작원들이 눈에 띈다. 휴전 후 남북이 체제 대결을 하며 서로의 영토로 잠입시킨 스파이들에 대해서 말이다. 자료에 따르면 미귀환 공작원 규모는 1950년대 이래로 1999년까지 북이 남으 로 보낸 공작원은 6,446명이고, 남이 북으로 보낸 공작원 중 현지에서 사망했 거나 행방불명된 인원은 7,726명 정도로 추산된다.1) 그러나 사안의 특수성 때 문에 정확한 통계는 없다고 할 수 있다.

1)

『은닉된 분단의 희생자: 북파공작원 리포트』(김성호,통일외교통상위원회 2000년도 국감자료집, 2000)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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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전선 접경지역인 파주시 적성면에는 일명 ‘적군묘지’가 있다. 이 묘역은 1996년 조성되었는데 교전 중 사망한 적군의 유해도 존중해야 한 다는 인도적 국제협약인 제네바협정에 따라 조성되었다. 한국전쟁 중 사망한 북한군 유해와 중국군 유해를 1묘역과 2묘역을 조성해 안장했다. 전국에 산재해 있던 적군 유해들을 모은 데다 2000년부터 국방부에서 6.25 전사자 유해 발굴을 하면서 추가로 찾은 적군 유해를 이곳에 안장해가고 있 다. 전쟁 중 사망한 유해들의 목비에는 대부분 발굴지가 명기되고 무명인으로 표시되어 있다. 예외적으로 제1묘역에는 휴전 후 북이 남파한 공작원들의 유해를 안장했고, 그들의 목비에는 계급과 이름, 그리고 침투 사건 명이 상세히 새겨져 있다. 일 테면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 에 침투한 사건인 ‘1.21사태’의 사망자 28인이 여기에 묻혀 있다. 소위 조명환, 소위 권호신, 소위 한수군…….(게릴라 두 명은 탈출해 월북하고 김신조는 생 포되었다.)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 자살 공작원 김승일(김현희는 생 포되었다), 1998년 남해안 반잠수정 침투사건 공작원 6인…….

나는 2010년 무렵에 두 차례에 걸쳐 이곳을 찾은 적이 있는데 이런 묘지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고, 묘비에 새겨진 사건들이 하나같이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던 사건들이라 두렵기까지 했다. 어쩌면 스파이들의 공동묘지라고 부를 수 있을 텐데 이런 묘지가 여기 말고 세상 또 어디에 존재할까 싶었다. 중 국군 묘지에는 더러 성묘객이 두고 간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중국 관광객들 중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돌아오지 않은 병사를 둔 가족들이 찾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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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들의 무덤 | 전성태

그들은 무명씨의 무덤 앞에 꽃다발을 놓고 자기의 가족인 양 성묘를 하고 돌 아갔을 것이다. 중국군 유해는 이후 2013년 589구가 중국에 송환되었다. 북한 공작원들의 묘지에는 꽃다발이 있을 리 없었다. 고향을 향해 묘지가 북향으로 조성된 것만이 이들에게 베풀어진 배려 같았다. 북은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송환도 요원한 일 같았다. 통일이 되어 많은 게 원위치가 된다고 해도 아마 이들은 가장 나중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문득 이들 묘지 중 하나에 꽃다발이 놓인다면 어떨까, 하고 상상해 보았다. 누군가가 성묘를 다녀간 흔적이 남는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궁금했다. 그 상상을 담아 2013년 써낸 단편소설이 축제 공식 웹사이트에 게재된 「성묘」이 다. 올해 3월 불교인권위원회 주최로 이곳에서 추모제가 열렸다. ‘조선민주주 의인민공화국 군인 추모제’. 묘지마다 흰 국화가 한 송이씩 놓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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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y Burial

My foreigner friends ask from time to time how it is possible for me to live in the anxious and unsafe environment of divided Korea. The familiarity of my daily life is rendered unfamiliar in an instance by such questions. The division of two Koreas, which now symbolizes the peninsula, is perceived differently by those outside the peninsula. International news media like CNN repeatedly focuses on the military tension between the North and South Koreas, while showing video clips of nuclear weapons, ballistic missiles, ROK-US joint training, UN sanctions on North Korea, and even old newsreel clips from the Korean War. Those outside of Korea might think that Koreans continue to live in war-stricken despair. It is just like when we encounter foreign news channels like Al Jazeera on our trips abroad; our perception of the current state of Arabic nations become skewed by video clips of terrorist attacks and crying victims. In June 2002, when Korea was hosting the World Cup Games, naval forces of the two Koreas collided for about thirty minu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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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y Burial | Jeon Sungtae

off the western coast, near Yeonpyeong-do Island. Referred to as the Battle of Yeonpyeong, both North and South Korean ships took casualties and lost nineteen lives in total. The scale of the damage was large, considering the fact that two sides were under an armistice agreement. An old man living in Yeonpyeong-do Island was interviewed about the battle but, he did not know about the collision until his nephew living in Hawaii had telephoned him to evacuate the island. It is difficult for us to agree that we notice the state of division and ceasefire in our daily lives. We have internalized the division over the past seventy years; although the war has never officially ended, we feel as though the war has ended in 1953. Thus, younger generations often challenge the justification for reunification. It is not that they do not comprehend the cost of anxiety caused by the division, but it is that they also see the unforeseeable cost of reunification. They think that it is unnecessary to disrupt the equilibrium that the two seem to have reached; they think that the two Koreas should go their separate ways on their own terms. It is difficult for the older generations to accept such sentiments because they lived their entire lives believing that reunification was the only way to overcome the division. But no one is at fault here for formulating these divergent thoughts over time; it is only natu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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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one wants to know more about Koreans living in this state of division, it is pertinent to examine the collective internalization of the division and different notion of imagined communities, such as the nation and race, throughout various generations. Between last year and this year, the circumstances of the divided Korean peninsula have taken a sharp turn. Talks between the South and North as well as between the U.S. and the North have brought about a new wave of anticipation and hope. Such anticipation and hope, however, have made us to come face-to-face with the division. We could not stop watching the live coverage of the talks between the U.S. and the North on officially reaching peace agreement. On the other hand, what the talks have revealed to us is the sense of hopelessness as we come to understand that Korea’s fate is in the hands of a handful of foreign entities. It is as though we are caught in a tightly woven spider web. As I am writing this, a historical gathering of President Trump, Kim Jong-Un, and President Moon Jae-in is taking place at the Panmunjom at the DMZ. I wondered how this event would be portrayed by the foreign media. Perhaps they felt like like they were reading the last page of an old history book, or maybe they felt that they were watching a reality TV show put on by a businessman named Trump and an absurdly unique dictator Kim Jong-un. But Koreans were wishing on the off chance that the fate of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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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y Burial | Jeon Sungtae

peninsula might change for once. Korea is a special community made up of refugees. Koreans have collectively experienced a series of events: the Japanese colonization, national division, and a war. These events have led to a full-scale displacement of people. There are distinct groups of Korean diasporas in Russia, China, Japan, and Hawaii; they are all refugees or descendants of refugees. There are those who ended up in the North of the demarcation line with family left behind in the South, as well as those who ended up in the South but family remaining in the North. They, too, are displaced families. The historical events in which dispersed families from both sides of the peninsula were reunified have become a sad representation of the political division. There are other cases of displaced people. For example, there still remain unswerving Communists remaining in the South, as well as those who were taken as prisoners by the North; there are prisoners of war, defectors to North and South Koreas, those who were abducted by the North Korean fishing boats, and spies who have never returned to where they came from. Among these special group of displaced people, North Koreans who have defected to South Korea make up a large portion and is an on-going societal matter. From the list of special group of displaced peoples, spies immediately grab my attention. I am talking about the spies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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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th the North and South sent to the other side during the era of fierce competition between the two Koreas. According to statistics, between 1950 and 1999, there were as many as 6,446 spies that the North sent to the South. Similarly, there were 7,726 South Korean spies who either died or went missing while on duty in North Korea. Due to the nature of the topic, the statistics may not be completely accurate. At the western front of the war zone, in Jeokseong, Paju, there is a place referred to as the “enemy burial.” This cemetery was established in 1996 in accordance with the humanitarian protocols of Geneva Conventions to provide respectful burial for the dead members of the enemy armed forces. This cemetery has become the final resting ground for many North Korean and Chinese casualties. Remains of enemy soldiers that were dispersed all over the peninsula were collected and buried here. In addition, since the Defense ministry has started an active exhumation project of casualties of the Korean War, more remains found resting place at this site. Each burial is marked by a wooden memorial with the name of the dead missing, only to be marked with the name of the person who exhumed the body. There are some exceptions found in one area, where North Korean spies sent to the South are laid to rest. These tombs are marked with their name, position, and a brief description of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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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y Burial | Jeon Sungtae

espionage mission. For example, twenty-eight of thirty-one armed agents who entered Seoul in order to attack the Blue House on January 21, 1968 are buried in this area. Their names, “Lieutenant Jo Myeong-hwan, Lieutenant Gweon Ho-sin, Lieutenant Han Sugeun… (two of the guerilla members escaped to the North, and Kim Sin-jo was captured alive)” are all marked clearly. In addition, the suicide terrorist Kim Seung-il, the man responsible for the explosion of Korean Air 858 in 1987 is also buried at the site. The six agents responsible for the semi-submarine boat entering the southern coast of Korea in 1998 are buried there as well. In 2010, I visited the burial site twice. I was not only amazed by at the existence of such place, but also shivered in fear while reading about all the spy missions that were marked on the tombstone. I wondered if there were any other cemetery for enemy spies in some other parts of the world. While visiting, I noticed that some people have left flowers at the tombs of Chinese soldiers. I heard somewhere that some Chinese tourists come to Korea to search for their lost family members who were dispatched to Korea, but never made back home. Such visitors would leave flowers at a tomb of an unknown soldier, pay respect as if it were for their family member, and would return home. In 2013, 589 remains of Chinese soldiers were returned to China. It is probably not likely that anyone would leave flowers 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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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n spies at this burial site. It seems that only piece of consolation offered to their eternal remains is that they were buried facing north. North Korea does not acknowledge that these spies ever existed, so they will never be taken back to their homeland. Even if the two Koreas were to reunite and restore many things to back to how they were, it is not likely that they will ever return home. Thinking about this, I suddenly thought about what it would be like to leave flowers for one of them. What kind of reaction would there be if someone came and paid respect to the North Korean spies? I wrote a short story, “Seongmyo”, based on this ponderance of mine, which is published on the website of the literary festival. In March of this year, there as a memorial service for the North Korean soldiers at this burial site. A chrysanthemum blossom was offered to each of the spy burial. • Translated by Sun 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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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선 Jeong Yeong Seon Korea

1963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났다.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문예중앙》에 발표한 「평행의 아름다움」으로 등단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조 명한 『물의 시간』과 다양한 내력을 지닌 탈북이주민들을 등장시킨 『생각하는 사람 들』을 통해 시간과 한국사회의 변화에 대한 통찰을 드러냄으로써 폭넓은 작품세 계를 지닌 작가로 알려져 있다. 소설집 『평행의 아름다움』과 장편소설 『실로 만든 달』, 『물의 시간』, 『물컹하고 쫀득한 두려움』, 『생각하는 사람들』 등을 출간했다. 부산소설문학상, 부산작가상, 요산김정한문학상 등을 받았다.

Jeong Yeong Seon was born in Namhae, Gyeongnam in 1963. She received her BA in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from Pusan National University. She made her literary debut when Munye Joongang journal published her short story “The Beauty of the Parallel” in 1997. She is known for her wide range of subject matters and her insights into the changes of time and Korean society through her depiction of the assassination of Empress Myeongseong in Time of Water and of North Korean people who defect for different reasons in Thinking People. Her works include the novels Thread Moon, Time of Water, Soft and Chewy Fear, and Thinking People, and the short story collection The Beauty of the Parallel. She is the recipient of the Busan Literary Award, Busan Writer's Award, Bongsaeng Culture Award, and Yosan Kim Jeong-han Literary A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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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에 새겨진 분단 | 정영선

우리 몸에 새겨진 분단

일흔한 살의 딸이 세 살 때 헤어진 아버지를 만났다. 아흔 둘의 어머니는 일 흔두 살의 아들을, 아흔아홉의 어머니는 일흔둘, 일흔한 살인 두 딸을 만났 다. 6.25전쟁 때 헤어졌으니 육십팔, 구 년만이다. 또 있다. 여든아홉 살의 아버 지는 아내의 배 속에 있던 딸을 만났다. 예순아홉 살인데 태어났는지도 몰랐단 다. 2018년 제21차 이산가족 상봉 이야기이다. 이들이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열 두 시간, 처음으로 개별 상봉 세 시간을 가졌으며 잠은 각자의 방에서 자야 한 다. 사연도 나이도 다르지만 만나는 장면은 비슷하다. 말보다 눈물이, 말보 다 몸이 먼저이다. 와락 껴안고 등을 두드리는 늙은 손들이 조난에서 구조된 가족을 부둥켜안은 듯했다. 차마 울지도 못하는 한 할아버지의 얼굴은 영화 「25시」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앤서니 퀸의 표정과 닮았다. 작별을 앞둔 아버지와 아들은 말없이 소주를 마시고 아흔아홉 살, 일흔두 살의 모녀는 차창을 사이에 두고 손을 맞대며 서로 울지 말라고 한다. 다시 만나자는 말을 아버지도 아들도, 엄마도 딸도 하지 못한다. 그저 전쟁을 피해 잠시 헤어졌던 것뿐인데, 육십구 년만의 만남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니. 왜 부 모와 자식이, 형제와 자매가 만나는 데 육십구 년이나 걸리는 걸까. 육십구 년 을 기다리면 만날 수는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경쟁률이 569대1이라,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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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한 번 신청했는데 스물한 번 떨어진 분도 있었다. 국가가 주선한 이산가족 상봉은 분단의 벽을 허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견고함을 확인하기 위한 만 남인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가족을 만나는데 육십구 년이 필요하며 육십구 년이 지났는데도 만나지 못할 수가 있단 말인가. 북쪽에 있는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의 수가 생존자의 수보다 더 많다는 사실은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전쟁을 경험한 이산가족의 수는 줄어들지만 미체험 세대의 신(新)이산가족, 탈북민의 수는 조금씩 늘어난다. 나는 그들 중 몇 명을 만났다. 내가 만난 아 이들은 마지막 인사도 없이 몰래 집을 나와 강 수풀에 몸을 숨기고 국경 경비 대의 눈을 피해 강을 건넜다고 했다. 강을 건너면 낯선 중국 땅, 숨을 죽이고 그들을 안내할 누군가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중 한 명인 열네 살 난 소년의 시 가 잊히지 않는다.

5월 1일 /그날은 내게 슬픈 날이다 더운 날 땀 냄새 나는 몸으로/새 길을 찾아 나선다 가족과 헤어지며/눈물 흘릴 때 그때 나의 몸에서도 땀 냄새가 났다 무서운 국경을 넘을 때도 땀 냄새가 나고 중국을 지나오면서도/땀 냄새는 나를 따랐다 그 땀 냄새가 이제는 나를 따라/여기까지 왔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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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에 새겨진 분단 | 정영선

나는 그 땀 냄새를 생각조차 못했다. 지금 글을 쓰는 /이순간도 가족이 그리워 나의 눈에는 눈물이 나고 /나의 몸에는 땀내가 난다

두려움과 기대가 섞여 있을 소년의 땀 냄새는 남한에 도착한 순간 더 복잡 해질 것이다. 이제는 갈 수 없는 고향, 만날 수 없는 가족들, 편지도 전화도 할 수 없는 곳. 소년이 진정 두려워했던 건 이런 상황이 아니었을까. 그 며칠 뒤 만난 소녀는 한국말이 서툴렀다. 중국에서 태어난 소녀는 어머니의 몸값을 기 억했고 어머니가 당한 폭행도 기억했다. 스무 살이 넘은 여학생은 같이 탈북 하던 어머니가 중국에서 북송되었다며 눈물을 보였다. 새로 산 자동차를 몰고 출근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 선주씨도 북한에 있는 오빠가 수술을 한다 는데 회복이 될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문자를 사용하고 눈 코 입이 닮은 우리지만 눈물만은 달랐다. 뜨겁고 진한, 귀중한 걸 두고 온 사람만이 흘릴 수 있는 눈물이었다. 그 눈물에 내 몸에 새겨진 분 단의 무늬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분단은 한 겹이 아니고 여러 겹이었다. 한 장소에 있지 않고 여러 곳, 세계, 당신과 나의 몸에도 있다. 그것은 한 색이 아니라 여러 색이며 때론 두 가지 이 상의 색이 혼합되어 새로운 색이 되기도 한다.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가는 방법은 없다. 누군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비행기도 기차도 배도 가지 못 한다. 북쪽에서 태어난 사람도 남쪽에서 태어난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벽은 두 껍고 높은 것 같기도 하고 때론 낡은 차의 범퍼처럼 손만 갖다 대면 허물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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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수다 | Writers in Conversation

것 같기도 하다. 아니다, 허물어질 것 같다가도 다시 단단하게 원상복귀되었 다. 자주 쌀과 비료를 보내 주는 걸로 정치권에서 다투었고 미국과 중국의 눈 치를 봐야 했다. 끊임없이 만나자는 제안을 하고 축구 경기를 하고 음악회를 했지만 늘 그 자리, 분단의 가장자리를 뱅뱅 돌았다. 무엇보다도 분단은 우리 만의 것이 아니라 세계의 것이어서 예측 불가능한 상태이거나 충분히 예측 가 능한 상태로 유지된다. 그러는 동안 분단의 구덩이는 더욱 깊어지고 넓어지고 벽은 높아지고.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은 그 웅덩이를 가로질러 우리에게 온다. 그들의 뜻과 상관없이 억눌러 있던 분단 상황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우리 내부에 다시 분단의 벽을 세우고 그들을 의심하고 경계하고 이용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들이 뚫어 놓은 구멍으로 분단의 상처를 본다. 아무튼 우리 몸에 새겨진 분단의 기호들이 각각의 불을 밝히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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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aration Engraved in Our Bodies | Jeong Yeong Seon

Separation Engraved in Our Bodies

A 71-year-old daughter reunited with her father from whom she was separated at three. A 92-year-old mother met with her 72-year-old son, and a 99-year-old mother saw her two daughters, aged 72 and 71. They were separated during the Korean War, 68 to 69 years ago. There are more examples. An 89-year-old father met his daughter whom his wife was carrying when he last saw her. The daughter was 69, but he did not know that she was ever born. These are stories from the twenty-first reunion of divided families, in 2018. The families were given twelve hours for the reunion, including three hours for private meetings, which were allowed for the first time. At the end of the day, the parties had to sleep in separate rooms. Stories and ages of family members differed by group, but the scenes of the reunions varied little. Tears came out and bodies reacted before words were spoken. Elderly hands rushed to embrace and pat backs, as if holding a family member rescued from a disaster scene. One old man could not bring himself to tears, and his expression looked like Anth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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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수다 | Writers in Conversation

Quinn’s in the final scene of the movie The 25th Hour. A father and son drank soju together in silence before saying goodbye, and a 99-year-old mother and 72-year-old daughter covered each other’s hands from either side of a car window and urged each other not to cry. No father, son, mother, or daughter was able to suggest that they meet again. They had been running from war, and their separation was supposed to be temporary. Now, after 69 years, their meeting had to be their first and last reunion. Why must a parent and child, a brother and sister, wait 69 years to see one another? Sixty-nine years of waiting does not guarantee a meeting, either. The odds of winning the lottery are 569 to 1. I have heard of a case where someone applied 21 times and failed all 21 times. I wonder whether the purpose of the state-led reunions of divided families was not to tear down the wall that separates the two countries, but to affirm its impervious nature. How else could family members be required to wait 69 years to reunite, or not meet at all after 69 years? How can we explain the fact that more people passed away having never reunited with their families than are living and waiting for their chance? While the number of people who were separated from their families during the war is diminishing, more families are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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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aration Engraved in Our Bodies | Jeong Yeong Seon

separated today with the gradual increase of North Korean defectors. I have met a few of them. The children I met told me that they snuck out of their homes without a final goodbye and hid from border guards in thickets before crossing the river. Once they crossed the river into China, they held their breath, waiting for someone to guide them. One fourteen-year-old boy wrote a poem that stays with me. May 1 / Is a Sad Day for Me One hot day My body smelling of sweat / I set off in search of a new path As I parted with my family / And shed tears Again, my body smelled of sweat As I crossed the scary border, too, it smelled of sweat As I passed through China, too / The smell of sweat followed me That smell of sweat followed me / All the way here But I never even thought about the smell of sweat. As I write this poem / Even at this moment Missing my family My eyes tear up / And my body smells of sweat The smell of the boy’s sweat, mixed with feelings of fear and anticipation, likely became more complex the moment he arr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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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South Korea. Home is a place he could never return to. He cannot see his family. He cannot send letters or make a phone call. I wonder if this is the situation that the boy truly feared. A girl I met several days later spoke broken Korean. The girl, born in China, remembered what her mother’s labor was worth and the abuse she suffered. One student, who was over twenty years old, teared up remembering her mother, who was sent back after escaping North Korea with her. A woman named Seonju confessed that she felt happiest when she drove to work in her new car, then cried, worried about the recovery of her older brother who was getting an operation. We eat the same food, use the same language, and have the same eyes, noses, and mouths, but their tears are different. Such hot and heavy tears can be shed only by people who have left something precious behind. Those tears uncovered the stark pattern of separation engraved in my body. Separation exists not in one layer, but many. It is not in one place, but spread across the world, in your body and mine. It comes not in one color, but many colors, and sometimes several colors combine to create a new color. There is no legitimate way to travel from South to North, or North to South. Without permission, no plane or train or boat can cross the border. This is the same for those born in the North and the South.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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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aration Engraved in Our Bodies | Jeong Yeong Seon

wall sometimes seems thick and high, and other times it looks as though it will crumple from a light touch, like the bumper of an old car. But each time it looks about to crumble, it is always firmly restored. Politicians fight often about sending rice and fertilizer to North Korea, and they have to ingratiate themselves with the U.S. and China. Meetings are proposed constantly, and football matches and concerts are held, but everything remains in place, hovering around the edge of separation. Above all, separation does not belong to us, but to the world, and it is maintained in either an unpredictable or sufficiently predictable state. Meanwhile, the pit of separation deepens and widens, and the wall becomes taller. Whatever the current state, they cross that pit to come to us. The suppressive state of separation wavers regardless of their will. Some people erect another wall of separation in their minds, doubting the defectors, standing guard against them, and even using them. Others see the scars of separation through the hole that the defectors have opened. In any case, the symbols of separation engraved in our bodies are lighting up now. • Translated by Eunji Mah  Edited by Jeffrey Karvon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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챈드라하스 초우두리 Chandrahas Choudhury India

현재 인도 뉴델리에 거주하며 활동 중인 소설가 겸 수필가이다. 첫 장편 소설 『난장 이 아르지(Arzee the Dwarf )』는 커먼웰스 퍼스트 도서상(Commonwealth First Book Prize) 최종 후보에 올랐고 《오늘의 세계 문학(World Literature Today)》 이 뽑은 “영어로 된 근대 인도문학 60선(60 Essential Works of Modern Indian Literature in English)”에 선정되었다. 두 번째 장편 소설 『구름(Clouds )』은 2018년 초 인도 사이먼 앤 슈스터(Simon & Schuster)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인 도 뭄바이의 중국 식당을 배경으로 한 신간 제목은 『‘차이나 드래건’ 중식당 경영 기(Days of My China Dragon )』(2019)이다. 2010년 아이오와대 국제창작 프로그 램(IWP)에 객원 연구원으로, 2012년 한국 토지문화센터에 객원 작가로 참여했다. 《월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 등 의 매체에 문학, 여행, 정치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인도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에 게 인도문학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책 『인도: 여행자를 위한 문학적 동반자(India:

A Traveler's Literary Companion )』(2010)의 서문을 편집하기도 했다. Chandrahas Choudhury is a novelist and essayist based in New Delhi where he lives now. His first novel, Arzee the Dwarf, was shortlisted for the Commonwealth First Book Prize, selected by World Literature Today as one of "60 Essential Works of Modern Indian Literature in English", and published in US by New York Review Books. His second novel, Clouds, was published earlier this year by Simon & Schuster. His new book, set in a Chinese restaurant in Mumbai, is called Days of My China Dragon. He writes about literature, travel and politics for a number of Indian and American journals, including the Wall Street Journal and the Washington Post. He was a Visiting Fellow at the International Writing Program at the University of Iowa in 2010, and a Visiting Writer at Toji Cultural Centre in Korea in 2012. He is also the editor to a short introduction to the pleasures of Indian literature for the literary-minded traveler, India: 우리를 비추는 A Traveler's 천 개의 거울 Literary Companion (Whereabouts Press, California,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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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베이와 델리: 내 삶의 두 도시 | 챈드라하스 초우두리

봄베이와 델리: 내 삶의 두 도시

작가로서의 내 삶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봄베이1)와 델리라는 두 도시를 둘 러싸고 끊임없이 깊이를 더해 가는 이야기와 같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두 도시 사이를 부단히 오가는 삶을 살아 왔다. 생애 처음으로 봄베이라는 도시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아홉 살 때 우리 가족이 그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였다. 그러다가 열여덟 살 때, 델 리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강고한 주장에 못 이긴 나는 발 버둥 치고 절규하다 결국 봄베이를 떠났다. 델리에서 대학 공부를 마친 후였던 스물세 살에는 다시 봄베이로 돌아가서 지냈다. 봄베이에서 작가로서 보낸 삶 의 첫 팔 년 동안, 나는 거듭해서 엄청난 고통과 불안에 부딪히면서도 예술적 으로는 풍족한 생활을 했다. 내 첫 소설이 탄생한 곳도 봄베이였다. 그 후, 봄 베이를 배경으로 한 새로운 소설 작업을 몇 년 동안 지속하던 와중에 나는 다 시 델리로 떠났고, 그곳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 내 소설 『난쟁이, 아르지(Arzee the Dwarf)』와 『구름(Clouds)』은 모두 봄베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나는 “봄베이 출신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 나의 예술적 삶을 지탱하는 곧은 뿌리와 심연의 구조는 델리에서 온 것 같다.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의 주도이자 인도 최대의 도시 뭄바이의 옛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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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에서 받은 문학 교육, 델리에 존재하는 지적인 문화와 대위(對位)적인 도 회풍뿐만 아니라 델리를 통해 얻게 된 봄베이에 대한 관점과 봄베이로부터 떨 어져 있다는 거리감이 없었더라면, 나는 봄베이 출신 작가가 될 수 없었을 것이 라고 확신한다. 대부분의 인도 사람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나는 두 도시를 동등하게 사랑한다. 삶의 여러 단계마다 내가 충실했던 도시 는 봄베이였을 때도, 델리였을 때도 있었지만, 내가 두 도시와 맺어 온 관계의 일반적인 패턴이 점점 분명한 형태를 띠게 되면서 두 도시는 내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기둥들이 되어 주었고, 한 도시는 다른 도시의 결점과 역경, 황폐함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물론, 두 도시가 나에게 동등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이는 부분적으로 는 내가 봄베이에서 누렸던 구 년간의 호시절 때문이기도 하고, 또 부분적으로 는 그 구 년이 청소년기—성인의 삶에 대한 집착이 의도치 않게 생성되곤 하는 삶의 시기—였기 때문에, 또 독립 이후의 인도 세계가 봄베이를 중심으로 천천히 부상했던 ‘원대한 90년대(Grand Nineties)’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에게 봄베 이는 마치 나의 상상력과 소설 세계를 관장하는 신 같다. 봄베이에 대한 내 기억 의 깊이와 강도 덕분에 나는 봄베이의 변천사를 머릿속에 그려 볼 수도 있고, 내 가 과거의 봄베이에서 두 발로 거닐고 기차로 오갔던 길들을 현재의 봄베이 위 에 그대로 옮겨 놓을 수도 있다. 내가 느끼기에—틀림없이 착각하는 부분도 있 겠지만, 무엇에 대해서든 확신을 갖는 것은 예술가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봄베이는 삶의 숨겨진 음표들을 들을 수 있는 장소다. 봄베이는 내 두 발바닥 이 지도를 간직하고 있고, 내가 사람들의 표정에서 아주 미묘한 의미까지 섬세 하게 읽어 낼 수 있으며, 나의 관찰과 기억과 감성으로 축조된 추상적인 구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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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베이와 델리: 내 삶의 두 도시 | 챈드라하스 초우두리

속으로 스며들 새로운 무언가를 끊임없이 제공해 주는 도시다. 그런데 봄베이는 여러 모로 빈곤(델리에 사는 지인을 통해 뒤늦게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하기도 했다. 인도의 ‘원대한 90년대’는 봄베이의 정치가 서서히 초라한 배척주의로 변모하던 십 년의 세월이기도 했다. 한때 경쟁적인 소리를 냈던 봄베이의 테너는 원한에 불타고 심지어는 살기까지 띠는 소리를 냈고, 번 영하는 상황에는 상당히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나 예술적으로는 교양 없고 정 치적으로는 침묵하는 교육받은 중산층 소비자 계층이 부상했으며, 이들은 거 의 경멸에 가까운 코웃음으로 선거와 시를 업신여기면서 여가 시간마다 인도 영화들로 가득 찬 다양성의 바다를 행복하게 유영했다. (역설적이게도, 봄베이 에서의 일상생활은 델리에서의 일상생활보다 훨씬 더 민주적이었고 여전히 그러 하다. 봄베이의 열차 안에서는 부자와 빈자가 서로 어깨를 맞부딪히는데, 이는 델리의 지하철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봄베이는 델리보다 훨씬 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으며, 자기와는 다른 존재 양식들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봄베이의 이러한 태도를 만물의 자연스러운 질서처럼 받아들였고, 델리로 이사 해 그곳에서 색다른 가치관들이 지닌 매력과 추동력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봄베 이의 태도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는 이러한 가치관들 을 처음에는 대학의 교수와 동료 학우들을 통해, 그로부터 훨씬 많은 시간이 흐른 최근 십 년 동안에는 자유주의적인 가치관과 심오하고 급진적인 또는 평 등주의적인 감성을 지닌 다양하고도 많은 사람들을 통해 경험했는데, 내가 이 들에게 가 닿을 수 있었던 것은 봄베이에서 쓴 소설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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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설가가 되는 법을 독학했던 장소는 봄베이였다. 그리고 나의 이러한 정체성은 내 자아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내가 봄베이라는 세상을 방문했던 경험들은 향수를 비롯해 온갖 종류의 감사함으로 가득 차 있다. 봄베이는 나의 문학적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이십 대 초반 즈음, 나는 내가 작가가 되고 싶어 한다는 사실과 봄베이가 내 소설의 배경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우글거리는 그 세계에서 정확히 무엇을 포착해 나만의 소설 지평을 마련할 것인지는 계속 불분명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더군다나, 봄베이는 여러 도시 중에서도 가장 자주 글의 소재로 등장했던 곳이었다. 나는 안데리(Andheri)에 위치한 한 잡지사에서 이 년간 일하면서 앞으로 나 아갈 길이 보일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나 적은 보수를 대가로 그토록 지적으 로 숨 막히고 존재를 말살시키는 것 같은 삶을 사는 것은 나에게 한(恨) 많 고, 미성숙하며, 그저 그런 노인으로 늙어 가는 확실한 방법 같아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 직장을 그만두었고, 어머니 댁에서 신세를 지면서 문학 평론 (내가 요령 있게 해낼 수 있고, 분명 즐겁게 임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였다.)과 서평을 쓰기 시작했다. 스물다섯이라는 나이에 조직화된 직장 세계에서 발을 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종류의 일이었고, 가족과 친척들에게 커다란 실망감 도 안겨 주었다. 그러나 불현듯, 나는 너무도 의욕적이고 자유로워진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간이 넘쳐나는 시간 부자로 사는 삶을 즐기며 살 아가고 있다. 봄베이에서 지내고 있던 시절, 어떤 움직이는 이미지를 보며 사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아침에 집을 나서서 도시를 배회하곤 했다. 그때 봄베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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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베이와 델리: 내 삶의 두 도시 | 챈드라하스 초우두리

70년대, 80년대, 90년대의 오래된 인도 영화를 아주 저렴한 값에 재상영해 주 는 오래된 영화관(지금도 있기는 하지만, 예전보다는 수가 줄어들었다.)이 많 았다. 나는 도시를 거닐다 그런 영화관 중 한 곳에서 표를 사서 영화를 보기 도 했다. 어둡고 거무죽죽한 동굴 같은 영화관에서 내가 본 것은 직장을 잃었지만 절 망감에 미쳐 버리지 않으면서 시간을 보내고자 애쓰고 있는, 완전히 지쳐 있는 도시인들이었다. 이제 막 시작되는 화려한 그 어둠—특히 봄베이 내의 생활공 간 면적을 고려한다면—속의 어딘가에서, 나는 봄베이의 오래된 영화관에서 영 사기사로 일하고 빛 보다는 어둠을 사랑하는 남자, 길거리의 세계와 영사실의 세계에 대한 시각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만큼이나 그 천성도 황홀과 분노, 순진함과 의심의 극단 사이를 오가는 어떤 난쟁이처럼 작은 남자에 대한 나의 첫 소설 『난쟁이, 아르지』의 분위기와 줄거리를 (영화가 시작된 이후에 영화관 복도를 따라 걷는 사람마냥, 작은 보폭으로 손을 더듬거리며) 발견했다. 『난쟁이, 아르지』를 쓰고 있을 때—초고를 마치고 이제 다 “되었다”고 생 각할 때마다—델리에서 배운 한 가지 교훈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기도 했다. 내가 소설가가 되기를 처음으로 꿈꿨던 곳은 봄베이였다. 그러나 좋은 소설가 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배운 곳은 델리였다. 델리에 도착했던 열여덟 살 무렵의 나는 꽤나 순진한 독자였다. 그리고 그 곳에서 처음으로, 내면을 드러낼 준비가 되어 있고 충분히 무르익어 있기도 한 십 대로서, 나는 문학이 천직임을 경험했다. 수세기에 걸쳐 세계 곳곳에서 들려 오는 목소리들과 정신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천직. 문학에서의 과거는 오래 되지도, 고루하지도, 무기력하지도 않았다. 문학의 과거는 수많은 억양과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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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으로 울려 퍼졌고, (과거의 작가들이 했던 것처럼 현대에 맞는 새로운 형식과 새로운 언어를 발명할 필요성을 인지하라고 촉구하면서도) 현대 작가들을 위 한 기준을 마련해 주고 있었다. 대학 졸업 이후, 나는 학문에 대해서 더한 야망을 품고 있지는 않았지만 나 를 가르쳤던 많은 분들과 지속적으로 연락했고, 봄베이에 있다가 향수를 느 끼며 짧게나마 델리를 방문할 때마다 그분들을 만났다. 그리고 마침내 내 책 이 활자로 출판되었을 때에는 그분들이 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마음의 눈 으로 지켜보았다. 과연 그분들의 경의를 받을 수 있을 만큼 좋은 책이었을까? 『난쟁이, 아르지』는 봄베이에 관한 소설이었고, 나로서는 소설 속 인물 아르지 가 장악한 노르 영화관의 프로젝터가 발하는 강렬한 빛처럼, 문장마다 녹아들 어 있는 델리가 발하는 버거운 빛을 받으며 쓴 책이었다. 그러나 『난쟁이, 아르지』의 집필을 마무리했을 무렵, 봄베이에 대한 나의 애 정은 사그라들어 버렸다. 봄베이에서 다음 소설 집필을 시작할 엔진을 가동시 킬 수도 없었다. 내게 봄베이라는 도시는 계속해서 줄어드는 어떤 공간을 갖고 있으며 나와 같은 성향(어쩌면 그저 삼십 대에 느끼는 나이 듦에 대한 압박이었 을 수도 있다.)을 가진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는 곳 같았고, 물질적인 부에 노 골적으로 몰두하지 않는 모든 종류의 창작물에는 해로워 보였다. 도시가 궁 핍한 상황에 처하게 되자, 시민들도 점점 돌연변이종에 가까운 존재로 변해 갔 다. 말하자면, 호모 뭄바이쿠스(homo mumbaicus)라고나 할까. 호모 뭄바이 쿠스들은 자기 자신이 세속적이고, 억세고, 냉소적인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 을 자랑스러워했다. 일상생활은 위축되었고, 따분하고 소모적이었다. 모두가 그런 생활에 고통스러워했고, 또 자랑스러워했다. 봄베이에서 삶이란 그 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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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베이와 델리: 내 삶의 두 도시 | 챈드라하스 초우두리

어떤 것이든, 어떤 것이 될 수 있든, 하나의 총력전이었고, 그 누구도 어떤 시절 을 기억하지도, 미래를 꿈꾸지도 않았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나는 그 어떤 도 시도 봄베이처럼 하루가 막 시작되는 새벽녘에 그토록 지쳐 보이리라고 생각하 지 않는다. 그때 나는 그런 도시에서 계속해서 내 길을 밟아 나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런 도시를 버릴 수 있을 것 같지도 않 았다. 봄베이는 단지 소설을 만들어내는 장소였던 것이 아니라, 소설의 주제이 기도 했으니 말이다. 나는 꼼짝할 수 없었다. 나는 오로지 내 마음이 내킬 때마다 델리에 사는 옛 친구 두 명의 집을 찾아 가곤 했었다. 친구들의 집은 지난 수년 동안 내가 봄베이로부터 벗어나 위안을 얻고 싶을 때마다 수없이 찾은 장소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친구들의 집 옆에 위치한 아파트에 공실이 생기고 있었다! 마침 델리에서 그 친구들과 이웃지간으 로 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던 때였다. 그런데 봄베이에 박혀 있는 내 뿌리가 한 번에 뽑아 낼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나는 델리의 아파트에 세를 얻은 다음, 봄베이에서 세를 얻어 지내고 있던 작고 허름한 아파트 계약도 연장해 버렸고, 그리하여 내 모 든 욕망과 갈등의 상징들이 자리하고 있는 장소들에 잠시나마 두 개의 보금자 리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두 집에 세를 내며 지낸 지 불과 몇 달 만에, 이러한 생활을 지속한다는 것이 완전히 현실성 없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하루아침에 생각 없이 짐을 싸서 떠나는 대신, 나를 목적지까지 한결 안전하게 인도해 줄 다리를 델리에 구축해 버렸다. 즉, 나는 델리에 얻은 아파트에 머물렀고, 봄베이에 있던 보금자리를 포기했다. 그렇게 해서 두 도시 가 내 삶 속에서 차지했던 위치는 뒤바뀌었고, 새로운 것들을 기록하고 새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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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을 쌓기 위해 단기간 떠나는 곳은 봄베이가 되었다. 델리로 이사를 하자마자, 한동안 진척이 없었던 새 소설 『구름』이 갑자기 진 행되기 시작했다.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도시를 떠남과 동시에, 그 도시를 다시 되찾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추구했던 혹은 의심했던 모든 것이 가능해질 것 같았고, 델리에서의 새로운 생각들, 가르침을 주는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삶의 방식들, 타지로 향하는 새로운 여정들이 그 사실을 증명해 주었다. 또한, 갑작스럽게도 공항에 갈 일이 많아지는 바람에 마치 수평으로 놓여있던 삶이 수직으로 변형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구름 위 에 떠 있을 때 가장 좋은 생각들이 떠오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예술가 의 삶에서 전성기는 아무런 표지판도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오기 마련이며, 일단 찾아오면 최대한 즐겨야 하는 법이다.) 마치 내가 새로운 유형의 사람이, 새로운 유형의 작가가 되어 가는 듯한 기 분이었다. 그전까지 내가 소설을 다뤘던 방식은 다소 전통적이었지만, 그때부 터는 내가 소설의 소재로 삼고 있던 장소의 실제적이고도 상징적인 지형을 새 롭게 구축하는 등 형식적인 면에서 독창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마음을 갖 게 되었다. 나는 『구름』 속 봄베이가 『난쟁이, 아르지』 속 봄베이보다 훨씬 커다란 도 시가 되기를 바랐는데, 그 작업을 해낼 방법을 떠올려 볼 수 있게 해 준 장소 는 내가 봄베이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인도에 대한 시각도 얻을 수 있게 해 준 델리였다. 델리는 생태, 젠더 관계, 민주 항쟁, 도시 계획, 노동의 역사, 인도의 가치에 내재된 이론상의 의도와 실제적인 의도 등 인도라는 국가의 그토록 많 은 영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배울 수 있는 정말 훌륭한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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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베이와 델리: 내 삶의 두 도시 | 챈드라하스 초우두리

시간 부자였던—가능한 한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고, 그것이 글로만 벌어 먹고 사는 작가가 되는 일의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스스로에게 일깨웠던 이십 대의 내 가 나 자신에게 준 쓸모 있는 선물이었다—나는 거의 내가 바랐던 것만큼의 지 식을 흡수할 수 있었고,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다방면에 대해 알고 있 는 꽤 유능하고 야망까지 있는 제너럴리스트가 되어 갔다. 또한 델리는 나의 시야를 확장해 줌으로써, 델리뿐만 아니라 내 삶에서 이 런저런 방식으로 포착된 또 다른 도시를, 즉 외가와 친가 양쪽에서 좋게 말하 곤 했었던 오디샤(Odisha)주의 주도 부바네스와르(Bhubaneswar)를 독창적 인 방식으로 알아갈 수 있게 해 주었다. 내가 소설 『구름』에서 봄베이라는 도 시를 한쪽에서는 내부인의 시선으로, 또 다른 쪽에서는 외부인의 시선으로 그 려낼 것을 염두에 두고 봄베이의 모습을 구상해보기로 결정했을 때, 문득 봄베 이와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기에 가장 그럴듯해 보였던 도시는 그 어떤 거대한 대도시도 아닌 부바네스와르였다. 부바네스와르에 대해서라면 상당히 많은 기억을—내 기억뿐만 아니라 나보 다 두 세대를 앞서 살았던 이들의 기억까지를—마음 한구석에 간직해 두고 있 었지만, 그 기억을 끄집어내 볼 생각이 들었던 적은 그전까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나는 이상할 만큼 자신감 넘치면서도 종종 삐딱한 방식으로 세상을 바 라보는 부바네스와르의 관점에 늘 저항해 왔었다. 그런데 내가 여태껏 세상을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본다고 생각했던 어떤 관 점이 내 생각만큼이나 실제로도 제한적이었을까? 만약에 인도의 새로운 도시가 가진 도회풍과 도시성에 그 도시만의 가식과 어리석음, 과도함이 깃들어 있다 면, 때로는 지역적인 상상력이 세계적인 상상력의 대안이자 단비 같은 대책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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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수다 | Writers in Conversation

는 것일까? 삼십 대 시절 가운데 몇 년 동안, 내 삶은 델리와 봄베이와 부바네 스와르를 삼각형으로 이으며 뒤얽는 하나의 여정이 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 세 계에서 『구름』 속의 봄베이가 발효되고 탄생했다. 그리고 그 여정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나는 봄베이 의 어느 곳을 가든 현지인으로서의 기분을 느낀다. 그러나 델리에서는 내가 사 는 동네인 칼카지(Kalkaji)를 제외하면, 여전히 뒤늦게 도착한 외부인이자 이민 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 나는 이러한 소속 방식과 애착 방식에서 기쁨을 느끼기도 하고, 도피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도시들이 나라는 사람을 바꿔 나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도시들에 대한 나의 관념을 바꾸는 일에 주 저하고 있다.

내 삶과 내 책을 이루는 도시들이기 때문이다.

• 번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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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래


Bombay and Delhi: The Two Cities of My Life | Chandrahas Choudhury

Bombay and Delhi: The Two Cities of My Life

The story of my life as a writer seems an ever-deepening tale of two cities: Bombay (now called Mumbai) and Delhi. I have been shuttling between them for as long as I can remember. I had my first, germinal glimpse of Bombay when I was nine, when my family moved to live there. At eighteen, at the insistence of my father, I left Bombay kicking and screaming to begin life as an undergraduate student in Delhi. After my studies I returned to Bombay again at twenty-three and lived there, often buffeted by great, if artistically fertile, torments and anxieties, for the first eight years of my working life. I also wrote my first novel there. Then, even as I continued to work for several years on a new novel set in Bombay, I left once again for Delhi, where I have lived happily ever since. Although my two novels Arzee the Dwarf and Clouds are set in Bombay and I am known as a “Bombay writer,� I myself feel that the taproots and deep structure of my artistic life come from Delhi. I am convinced I would not be a Bombay writer with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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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stance from and perspective on Bombay provided by Delhi, as well as my literary education in Delhi and the intellectual culture and contrapuntal urbanity of Delhi itself. Unusual as it is for most Indians, I love both cities equally. Although one or the other city has enjoyed my allegiance at different stages of my life, as the general pattern of their relationship to each other has become more apparent, they have come to represent extremely stable poles in my world, each supplying solutions to the defects and difficulties and depredations of the other. Of course, the two cities are not equal for me. Partly because of the nine-year head start enjoyed by Bombay in my life, and also because those nine years were those of adolescence—that period of life when the obsessions of one's adult life are often involuntarily generated—and those of the “Grand Nineties,” when the world of post-liberalization India slowly emerged with Bombay as its center. I feel as if that city is the presiding deity of my imagination and my novelistic prose. Because of the depth and intensity of my Bombay memories, I have a history for its changing character, and can superimpose the past onto the present on my walks and train journeys there. It is the place where I feel— doubtless deludedly, but conviction of any kind is very important for an artist—I can hear the hidden notes of life. It is the city for which the soles of my feet have a map, where I can read the subt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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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anings of the expressions on people's faces—and which is always offering something new to be assimilated to this edifice of observation and memory and sentiment. Bombay (I saw belatedly, and from my acquaintance with Delhi) was also impoverished in many ways. The nineties was also the decade when Bombay's politics slowly became meanly nativist. Their tenor changed from competitive to rancorous and even murderous, and a class of educated middle-class consumers emerged who seemed fairly content to be prosperous but artistically philistine and politically reticent, happy to float in their leisure hours on the sea of diversion provided by Hindi films, disdaining both elections and poetry almost with the same snort of contempt. (Paradoxically, the everyday life of Bombay was and remains much more democratic than that of Delhi, and the rich and the poor rub shoulders in local trains in a way they never do in the Delhi metro.) And since Bombay, to a much greater degree than Delhi, is a world unto itself and does not acknowledge that there can be any mode of existence other than its own, such attitudes were accepted by me as the natural order of things, and did not appear to be problematic until I moved to Delhi and experienced the charm and propulsive force of another set of values. In the beginning from my professors and fellow students at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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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much later, in the present decade, from the large complex of people with liberal values and deep radical or egalitarian sensibilities, to whom I now had access because of the novel I had written in Bombay. It was in Bombay that I taught myself how to be a writer of fiction, and as this aspect of my identity is to me the most important part of my selfhood, my visits to that world are replete with nostalgia and gratitude of many kinds: Bombay is my literary mother. By my early twenties I knew that I wanted to be a writer and I knew that Bombay would be the setting for my books. But what exactly I would pick out of that teeming world for my own plot of fictional land remained elusive to me. And, of course, Bombay was also the most written-up of cities. I worked for a magazine in an office in Andheri for two years, biding my time until I could see a way forward. But the intellectual suffocation and existential claustrophobia of such a life in exchange for a small salary seemed to me the surest way of ending up mediocre, resentful, and prematurely old. I gave up my job and began to write literary criticism (the one trade I had learnt the ropes of, and unambiguously enjoyed) and book reviews from under the roof of my mother's house. Retiring from the world of organized work at the age of twen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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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ve was unheard of, and caused wide consternation at home and among the extended family. But suddenly I felt very ambitious and free; ever since, I have always enjoyed being time-rich. Often, to give my mind some moving pictures to contemplate, I'd leave home in the mornings and wander around the city. At the time, Bombay had many old cinemas (it still does, although they are fewer) that would show reruns of old Hindi films from the seventies, eighties, and nineties for a pittance. I bought a ticket and went in. In these dark and dingy caverns, I found washed up all the denizens of the city who were out of work and were trying to make the hours pass by without driving themselves mad with frustration. It was a germinal, opulent darkness—especially given the size of living spaces in Bombay—and somewhere inside it I found (by small, groping advances, very much in the same way that one walks down the cinema aisle after the film has begun) the tone and plot of my first novel Arzee the Dwarf, about a diminutive man who works as a projectionist in an old cinema of Bombay, loves the darkness more than light, and has a nature that, like his tilted double-viewpoint on the world from the street and the projectionroom, flies between extremes of ecstasy and rage, naiveté and suspicion. As I worked on this book—and whenever I finished a draft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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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 the book was “done”—one lesson from Delhi proved very useful to me. It was in Bombay that I had first dreamed of being a writer of novels. But it was in Delhi that I had learnt how hard it was going to be to be a good one. I had arrived in the capital at the age of eighteen, a somewhat innocent reader. For the first time in Delhi, as a teenager ripe and ready for revelation, I had an experience of literature as a vocation. A calling, allowing a mental conversation with voices from many parts of the world, many centuries. The literary past was not old, stuffy and inert; it sang with a thousand accents and reverberations and set the standard for writers of the present day (even as it called on them to recognize the need to invent new forms and a new language for the present, as those past writers had also done). After university, although I had no further ambitions in academia, I stayed in touch with many of my teachers, saw them on my brief, nostalgic visits to Delhi from Bombay, and saw them, in my mind's eye, reading my book when it finally came out in print. Would it be good enough to earn their respect? Arzee the Dwarf was a novel about Bombay, written with the demanding light of Delhi focused on its sentences, like the great beam of the projector in the Noor cinema which is Arzee's dominion. By the time I finished writing Arzee, though, I had fallen out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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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with Bombay. Nor could I start up the engine of another book there. I felt the city had an ever-shrinking space and sympathy for someone of my inclinations (or perhaps this was just the pressure of being older and in my thirties) and that it was inimical to all kinds of creation that were not explicitly focused on material wealth. Conditioned by the privations of the city, the Mumbaikar too had become almost a mutant species: let’s say homo mumbaicus. He or she prided himself or herself on nothing more than being worldly, wiry, and wry. Daily life was constricted, banal and exhausting; everyone suffered and was proud to do so. The city had two modes: a pulsating energy and a profound exhaustion. Life was a pitched battle here and nobody could remember a time, or dream of a future, when it was or could be anything else. Even today I think that no city ever looks so weary at dawn, at the very beginning of the day, as Bombay. I could not see myself lasting the course here. But I felt that I could not abandon it, either, for it was not merely the site of my storytelling trade but also the subject. I was stuck. My mind was only made up for me when I visited my two oldest friends in Delhi, in whose home I had taken refuge from Bombay many times over the years . . .and it turned out that the apartment next to theirs was falling vacant! I so badly wanted to live there and be their neighbor, but I felt as though my roots in Bom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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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re too deep to be pulled out in one go. I ended up taking out a lease on the Delhi apartment while also renewing my lease on the tiny run-down apartment I was renting in Bombay, thereby ending up for a brief while in the possession of two properties that between them symbolized all my desires and conflicts. A few months of paying double rent was enough to show me the complete impracticality of this. But I had managed to end up improvising a bridge to Delhi that took me more securely to my destination than if I had just packed up and left overnight. I kept my Delhi apartment and gave up my place in Bombay. Now the place of the two cities in my life was reversed, and it was to Bombay that I made short trips to update my records and refresh my friendships. As soon as I moved to Delhi, work on my new book Clouds, which had been stuck for a while, suddenly took off. It felt as though I had both left behind the city in which it was set and regained it at the same time. Everything I had sought, or suspected would be available to me, in Delhi proved to be so: new ideas, new people to learn from, new ways to live, new travels to other places. Suddenly I was making so many trips to the airport that it was as though I had transformed life on a vertical axis as much as a horizontal one. I discovered that for some reason it was while I was up in the clouds that I did some of my best thin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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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e sudden highs in an artist's life sometimes arrive without any signposting and they should be enjoyed to the fullest.) It seemed to me that I was becoming a new kind of person— and a new kind of writer. My approach to the novel form had thus far been somewhat traditional, but now I felt as if I also wanted to write formally inventive stories that remade the actual and symbolic geography of the place I was writing about. I wanted, that is, the Bombay of Clouds to be a much bigger city than that of Arzee the Dwarf, and it was Delhi that allowed me to conceive of how to do this by giving me a point of view not just on Bombay, but on India. Delhi was a wonderful vantage from which to learn about what was happening around the country in so many realms: ecology and gender relations, democratic resistance and urban planning, labor history, and theoretical and actual schemes of Indic values. Rich in time—a useful gift to myself from my twenties, when I taught myself to live fairly frugally because I knew it was an essential part of being a writer who made a living only from his words—I was able to soak up almost as much of this as I wished, becoming not a specialist in anything but a fairly competent and even ambitious generalist. And by expanding my horizons, Delhi gave me, creatively, not just itself but another city that had somewhat passed under the radar of my own life: Bhubaneswar, the capital of Odis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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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ate from which both sides of my family hailed. When I decided to construct a Bombay for Clouds that narrated the city from the point of view of the insider on the one side and of the outsider on the other, it was Bhubaneswar, rather than another great metropolitan capital, that suddenly seemed to be the most suggestive site of juxtaposition. I had so many memories stashed away of this city—not just my own, but those of the two generations before me—but it had never occurred to me to use them; if anything, I had always resisted Bhubaneswar's bizarrely self-assured but often perverse way of looking at the world. But was what I had so far understood as a provincial way of looking at the world really as limited as I thought, or, if urbanity and urbane-ness in the new Indian city had its own pretensions and follies and excesses, was the regional imagination sometimes an alternative and a much-needed corrective to the cosmopolitan one? For a few years of my thirties, my life became a triangle and tangle of journeys across the top half of India: Delhi, Bombay, Bhubaneswar. This was the world and the ferment from which the Bombay of Clouds was written up. And so the story continues. Even today, everywhere in Bombay I feel I am a local; but everywhere in Delhi other than in my own neighborhood, Kalkaji, I still feel I am a late-arriving outsider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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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igrant. I partake of the pleasures and evasions of both these modes of belonging and attachment, and am reluctant to alter my city self-conception even as these cities change me. These are the cities of my life and my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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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주 Han Yujoo Korea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미학과 대 학원을 수료했다. 2003년 《문학과사회》에 단편 「달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한 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전통적인 이야기 중심의 소설구성과 문체를 벗어나 언어 자체의 소통불가능성을 끝까지 탐색하는 새로운 소설경향을 보여주는 작가로 알 려져 있다. 『달로』, 『얼음의 책』,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연대 기』 등의 소설집을 출간했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의 외국 소 설을 작가만의 섬세함을 바탕으로 번역하기도 했다.

Han Yujoo was born in Seoul in 1982. She graduated from Hongik University majoring in German and completed the course work for a post-graduate degree in aesthetics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She made her literary debut when Literature and Society journal published her short story “To the Moon” in 2003. She is known for moving away from the traditional story-oriented narrative and writing style and exploring the incommunicability of language itself. Her works include the novel The Impossible Fairy Tale and the short story collections To the Moon, Book of Ice, My Left Hand the King and My Right Hand the King's Scribe, and The Chronicles. She has also produced Korean translations of books like Lewis Carroll’s Alice in Wond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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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면서 | 한유주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면서

한 달 전 나는 미국을 여행했다. 처음부터 여행이 목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삼사 년 동안 머릿속에서 제목만 여러 번 바뀐 장편소설을 이제는 끝내야 했는데, 그러다 문득 마지막 장면부터 떠올렸던 것이다. 하나의 소설을 요약한 다는 것은 덧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면, 그것은 개와 친구, 그리고 애도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은 유기되어 보호소에 머무는 개를 미국에 입양을 보내는 과정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이 과정을 보통 해외 이동 봉사라고 부른다는 것과 몸집이 크거나 나이가 들었거 나 털이 검은색이라는 이유로 한국에서 입양처를 찾지 못한 개들이 주로 미국 이나 캐나다로 보내진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개를 화물칸에 태울 수밖 에 없으므로 직항으로 가는 비행기여야 했다. 그나마 싼 항공권을 서둘러 구 입해야 했는데, 어쩌다 보니 미국 시애틀로 들어가서 애틀랜타로 나오는 여정 이 되었다. 해외 입양 단체를 찾아 연락했더니 시애틀은 진도견이 많이 가는 도 시라며 차질 없이 준비하겠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기다렸다. 그리고 두 달쯤 지나 출국 사흘 전이 되었을 때, 현지 단체 사정으로 내 여정에 개를 보낼 수 없게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현지 담당자가 휴가를 갔다는 거였다. 한 국 담당자는 무척 아쉬운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시애틀에 사세요?”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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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대답했다. “미국에 자주 가세요?” 아니라고 대답했다. 작업 중인 소설을 마 무리하려고 개와 이동과 미국이 필요했다고 말할 수가 없어서 부끄러움과 간 지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모든 지불이 완료된 상태였다. 나는 개 없이 떠나기로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타코마 공항 입국장에서 직원이 미국에 온 이유를 물었다. 여행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나의 직업을 물었고…… 나는 작가라고 대답했다. 누군가가 직업을 물을 때마다 일종의 수치심을 느끼며 작가라고 대 답하고는 하는데, 그건 내가 매일같이 정해진 시간 동안 글을 쓰는 사람이 아 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관해 생각은 하지만 실행에 옮기려면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데, 용기를 내려고 용기를 내다보면 어느덧 새벽이 오는 것이다. 그는 재차 어떤 종류의 작가냐고 물었고, 나는 당황해서 I…… I am…… a fiction writer……라고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아니잖아, 다큐멘터리를 쓸 거였 잖아,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개가 없으니 결국 허구가 되어 버렸네, 나는 생각 했다. 이후 직원은 별다른 말 없이 즐겁게 여행하라는 말로 입국심사를 종료했 다. 천천히 돌아가는 수하물 벨트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나는 얼굴도 보지 못 한 개와 얼굴을 알지만 이제는 없는 개를 상상했다. 오전 10시쯤이었고, 숙소 에는 오후 3시나 되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짐을 찾고 공항 밖으로 나왔더니 여름이라는 계절이 무색하게 쌀쌀했다. 공항 내 스타벅스에 앉아 노트북을 열 고 빈 페이지를 들여다보았다. 억지로 몇 줄인가를 쓰고 지웠다. 그 후 시애틀 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보잉필드에 다녀오는 것 말고는 딱히 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다만 오래된 서점에 들렀다가 발레리아 루이셀리의 에 세이를 샀다.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넘어오는 아동들을 위한 통역관으로 일했 던 루이셀리 자신과 그의 가족들 역시 미국 영주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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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면서 | 한유주

와중에 그들은 뉴욕 주에서 남부로 자동차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러다 마주 친 경찰이 그에게 묻는다. “그러니까, 영감이라는 걸 얻으려고 이 여행을 한단 말이죠?” 내 독서는 여기서 중단된다. 그러니까, 영감이라는 걸 얻으려고 이 여 행을 한단 말이죠? 이 질문이 메아리처럼 자꾸만 되돌아온다. 시애틀에서 라스 베이거스로, 다시 피닉스로, 투산으로, 휴스턴으로, 포트로더데일로, 마이애미 로, 키웨스트로, 다시 애틀랜타로 이어지는 기나긴 여정 내내 렌터카 뒤에는 유 령 개와 함께 이 질문이 탑승하고 있었다. 가부좌를 튼 채, 오만한 표정으로.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나는 많은 친구들과 가족과 개들을 잃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쓸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감히 하지 못했다는 말이 적절할 것이다. 나는 늘 스스로를 형식주의자로 생각했고, 그 쉬운 정체성을 별로 의 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수년에 걸쳐 친구와 가족과 개를 하나씩, 때로는 복수로 잃으면서, 그리고 때로는 시민사회의 동료 구성원들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잃으면서, 이제는 ‘어떻게’의 문제와 더불어 ‘무엇을’ 앞에서 더는 도 망칠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이 주에 걸친 여정에서 나는 아무런 영감도 얻 지 못했다.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며칠 전 꿈에서 텅 빈 페이지를 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텅 빈 것이 아니라는 걸 차츰 깨닫게 되었다. 책의 한 페이지로 보이는 백지는 투명한 액자로 감싸 여 있었고, 그 액자는 사실 내 팔이었고, 내 팔과 이어진 손목과 그 손목에서 나온 손과 그 손에 달린 손가락이 연필을 쥐고 역시 무언가를 쓰려고 하고 있 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꿈에서도 그것이 형식과 내용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강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만 기억날 뿐이 다. 어쩌면 내일도 영감은 오지 않을 것이다. 다만 써야 한다는 것, 실행에 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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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것만이 중요할 것이다. 내가 아는 한 강박을 진정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강박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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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then Erasing, Writing, then Erasing | Han Yujoo

Writing, then Erasing, Writing, then Erasing

A month ago, I traveled across the United States. I didn’t intend on traveling at first. I had reached the point where I needed to complete a novel whose title I had changed several times in my head over the past three, four years, when suddenly, I was struck by an idea for the last scene of the book. Although any attempt to summarize a novel—any novel—is a futile exercise, if I were to describe this book in three words, they would be dog, friend, and sympathy. The last scene of the book would have to involve sending a rescued shelter dog to the United States for adoption. That was the first time I heard that this process involved people whose work had a name—overseas flight escort volunteers—and that dogs who were rejected in South Korea for being too big or too old or having black fur were typically sent to families in the U.S. or Canada. If I were to do this, because the dog, being bigger, would have to be kept with the cargo, my flight would have to be non-stop. I needed to buy the cheapest ticket available, and in the search for the cheapest option, somehow I ended up paying for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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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ti-destination trip that had me flying from South Korea into Seattle, then out of Atlanta back to South Korea. I called an animal shelter and they told me that Seattle was one of their biggest destinations for Korean Jindo dog breeds, and that they would have the process completed soon. I waited. About two months later, just three days shy of my flight, I received word that the shelter couldn’t send a dog to go with me for reasons having to do with the local organization in the U.S. Apparently, the person in charge in the U.S. was on vacation. The shelter employee in South Korea sounded upset. “Do you live in Seattle?” she asked, to which I replied no. “Do you travel often to the U.S.?” Again, I said no. I felt embarrassed and frankly, self-conscious, since I couldn’t tell her I needed the dog to go with me to the U.S. to finish a novel I was working on. The flight had all been paid for. I decided to leave without the dog. I had no choice. At the Seattle-Tacoma International Airport, the immigrations officer asked me my reason for coming to the U.S. I told him I was there to travel. He asked me what my occupation was. I told him I was a writer. Whenever someone asks me what my job is, I always feel ashamed of having to say I’m a writer, because I’m not one of those writers who write every single day for a certain block of time. I think often about writing, but it takes an immense amount of courage on my part to put writing into practice, and I’ve often found that as soon as I’ve mustered up enough cour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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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then Erasing, Writing, then Erasing | Han Yujoo

to summon the courage necessary to begin writing, it’s already too late at night. The officer asked me what kind of writer I was. Taken aback, I stammered, “I. . . I am. . . a fiction writer. . .” Wait, no, I chided myself. I thought I was about to write a documentary. But now that I was without a dog, that plan had fallen through as well. The officer told me to enjoy my travels, and with that, I was let go. Staring at the slow rotation of bags on the conveyer belt, I tried to imagine the dog I didn’t know, and the dogs that I once knew but were now gone. The time was ten in the morning, and I had to wait until three o’clock to check in. I picked up my luggage and left the airport, where I found the weather unseasonably chilly for summer. I sat inside the airport Starbucks, opened up my laptop, and stared into a blank white document. I forced myself to write a few lines, which I promptly deleted. I stayed in Seattle two days. Other than going to see the Boeing Field, there was nothing much I wanted to see or do. What I did do, however, was to stop by an old bookstore and pick up a book of essays by Valeria Luiselli. Luiselli, who had served as a translator for children who crossed the border from Mexico to the U.S., was herself waiting for a green card, along with the rest of her family. She and her family went on a road trip from New York to the south. When they met a police officer, he asked, “So, you’re on a trip to find inspiration?” That’s when I closed the book. So, you’re on a trip to find inspiration? The question ke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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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ing back to me like an echo. In the long journey that had me going from Seattle to Las Vegas, back to Phoenix, then Tucson, then Houston, to Fort Lauderdale, Miami, and Key West, then back to Atlanta, this question, along with the phantom dog, remained sitting in the backseat of my rental car, both of them sitting sternly with their legs crossed and their expressions haughty. Over a period of time that wasn’t necessarily long, but not that short either, I lost many friends, family members, and dogs. But I never thought to write about any of that loss. It would be more precise to say I didn’t dare. I always considered myself to be something of a formalist, and I don’t think I ever doubted that part of my identity. But over the years, as I had to say goodbye to friends, family, and dogs one by one, or in some cases, more than one at the same time, and as I had to bid farewell to other colleagues and members from civil society for reasons I simply couldn’t understand, I came to realize that I can no longer run away from the question of “how” as well as the question of “what.” Now I know. During my two week-long trip, I did not find inspiration. Which was to be expected, I guess. A few days ago, I saw a blank white document in a dream. Slowly, I realized the document was not in fact empty. The piece of white paper, which looked to be a page taken from a book, was tucked inside a transparent frame, which happened to be my arm, wh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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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then Erasing, Writing, then Erasing | Han Yujoo

led to my wrist and my hand and my fingers, which were clutching a pencil and attempting to write something. I don’t remember what it was I was trying to write. But I knew that I felt compelled to write something that was a complete marriage of form and content. Inspiration will not come knocking on my door anytime soon. What matters is that I must write—that I must put it into practice. As far as I know, the only thing that can calm a compulsion is to do as it tells you to do. • Translated by Amber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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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라 치불랴 Aleksandra Tsibulia Russia

Ⓒ Katya Snigirevskaya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시인이자 유럽문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예 술사학자이기도 하다. 2014년 첫 책 『혈통의 끝으로의 여정(Journey to the End

of the Blood )』이 출간되었다. 《새로운 문학 옵저버(New Literary Observer Magazine)》, 《보츠더(더 에어)(Vozduh (The Air) Magazine)》, 《텍스트온리 (TextOnly)》, 《더 빌리지(The Village)》, 《볼가(Volga Magazine)》 등의 잡지 에 작품이 소개되었다. 또한 작품이 영어, 이탈리아어, 폴란드어, 우크라이나어, 핀 란드어 등의 언어로 번역된 바 있다.

2014년 러시아 걸리버상(Russian Gulliver

Prize), 2015년 아르카디 드라고모쉬첸코상(Arkadii Dragomoshchenko Prize) 을 수상했다.

Aleksandra Tsibulia was born in St. Petersburg. She is a poet, art historian, holder of a master’s degree in European Literature. The first book under the name Journey to the End of the Blood was published in 2014. Poems were published in the magazines such as New Literary Observer, Vozduh (The Air), TextOnly, the Village and Volga. Her poems are translated into English, Italian, Polish, Ukrainian, and Finnish. She won the Russian Gulliver Prize in 2014 and the Arkadii Dragomoshchenko Prize in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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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성과 시적 감성, 그리고 정신적 삶에 관해서 | 알렉산드라 치불랴

엄격성과 시적 감성, 그리고 정신적 삶에 관해서

이 글은 고정된 틀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형식과 새로운 언어로 의도한 이성 적인 탐구에 관해 말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진부한 표현은 언어의 빈곤과 식상함을 선언하는 예술적 기법이 될 수 있다. 같은 말 을 반복함으로써 종종 원래의 의미를 확장하고 추가적인 의견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어떻게 하면 텍스트를 보다 불투명하게 만들 수 있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예술가이면서 어느 정도 문학 연구가이기 때문에 내 초기 텍스트에는 많은 인용과 (프리드리히 횔덜린, 에즈라 파운드, 모리스 마테를링크 등이 남겼던) 인용구가 숨겨져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나의 삶과 사고방식, 독서와 교우 관계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다. 나이가 들수 록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공간과 자유롭게 독서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 어들고 있다. 나의 시는 변했다. 나의 시는 창작 방법을 포함하여 점점 엄격해 졌다. 지금 생각하니 과거에 내가 사용했던 많은 기법이 불필요한 사치처럼 보 인다. 얼마 전에 나는 시 텍스트에 다음과 같이 썼다. 더 이상 시가 불투명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는 엄격하고 은밀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문학, 특히 시에서 중요한 것은 어조이다. 어조는 거짓이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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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없으며, 내적 경험, 발화의 깊이, 화자의 진실성과 취약점에 관해 있는 그대 로 알려 준다. 내 생각에 화자는 단순한 발화자가 아니라 주위의 모든 것을 파헤쳐, 피를 흘리면서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견뎌 내는 존재다. 나는 화자가 이 모든 것을 자신의 목소리로 치유한다고 생각한다. 말해진 것들은 살아 있 으면서 점진적으로 이런 현상을 치유한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예술사와 관련된 다양한 것을 인용하고 있다. 예를 들 면, 내 시 가운데 다람쥐와 그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노동에 관한 시가 있다. 다람쥐는 견과와 도토리를 땅에 파묻는다. 그러나 그 다람쥐는 자신이 그것 을 어디에 묻었는지 찾지 못하고 대신 다른 다람쥐가 그것을 발견할 수도 있 다. 이것이야말로 특이한 다람쥐의 공산주의다. 어쩌면 도토리는 땅굴 속에 그 대로 비밀스럽게 남겨져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다 나중에 언젠가는 거기에서 참 나무가 자라날 것이다. 이 시 텍스트에서 나는 다람쥐를 작은 요제프 보이스 라고 부른다. 실제 인물인 보이스는 지역주민을 설득하여 독일 카셀 지역에 7000그루의 나무를 심는 ‘7000그루의 참나무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보이 스의 이미지는 이 시의 가장 마지막에서 다람쥐를 공상과학예술(Science Art) 분야에 종사하는 예술가로 변모시키는 아이러니한 문구로 나타난다. 인용이 시를 난해하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편안하게 한다. 나의 시적 감성은 이런 식 으로 작동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내밀한 것은 정신적 삶이다. 이것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불쾌할 것이다. 성적 매력, 욕망, 유혹, 에로스에 관해 이야기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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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성과 시적 감성, 그리고 정신적 삶에 관해서 | 알렉산드라 치불랴

누는 것이 훨씬 편할 것이다(물론 에로틱한 것과 정신적인 것을 분리하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 시는 정신적 삶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시가 갖는 고유 권한이다.

시는 일상에서 한 줄기의 빛이 생기고 단조로운 생활이 점차 사라질 때 탄생 한다. 시를 창작하는 것은 미술작품을 제작하는 것과 달리 비용이 들지 않는 다. 시란 시인이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로, 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 모두 가 소유할 수 있다. 단조로운 생활 속에서 꽃을 피우는 이 선물을 갖고 누군 가를 만나는 것, 시인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일정 시간 함께 하나의 주제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기쁨이다. 이 박스 안에 시인의 고뇌, 믿음, 억제된 욕망 이 있다는 것은 이들 각자에게 자유이고 기쁨이다. 한 편의 시란 시인이 자신의 의지로 모든 사람들 앞에서 행하는 공개적인 연설이다.

• 번역 : 이지은  윤문 : 조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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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수다 | Writers in Conversation

On Austerity, Poetic Wit, and the Psyche

This session will deal with the refutation of stereotypes and the deliberate, rational search for new forms and a new language. As we know, a cliché used consciously can become an artistic device that elucidates the paucity and limits of speech. And a tautology frequently provides for a broadening of meaning by adding yet another dimension. I should note, however, that for me there has never been an issue with making a text less transparent. I am an art historian and, to a lesser extent, a literary scholar; all of my early texts were coded, containing numerous allusions and hidden references (to Hölderlin, Pound, Maeterlinck). This happened naturally and was linked to my way of life and thinking, book preferences and social circle. The older I now become, the less space I have for free contemplation and less time for reading. My poetry has changed. It is now more severe, including its means of production. Many devices that I used to employ now seem like unnecessary luxuries. In a recent poetic text I wrote: "I no longer think that poetry should be non-transparent, / it should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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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Austerity, Poetic Wit, and the Psyche | Aleksandra Tsibulia

austere and intimate." For me, the most important thing in poetry and literature is intonation. This cannot be faked; it honestly shows the inner experience, the depth of utterance, the bare and exposed nature of the speaker. I feel like everything around the speaker, not just what is spoken, is exposed and bleeding, holding on desperately, and the speaker reveals this, but also mends and heals it with their voice. When uttered, these various things and phenomena will eventually heal. I do still employ art-historical references. For example, I have a poem about squirrels and non-estranged forms of labor: they bury nuts and acorns, but later fail to always find their cache, which then may be dug up by other squirrels; this is a form of squirrel communism. The acorn also may remain in the ground and grow into an oak. That is why in the poem I refer to squirrels as “little Joseph Beuyses.� Beuys had a project entitled 7,ooo Oaks, the artist was going to plant 7,000 trees throughout the journey from Kassel to Russia in an attempt to convince the locals that such an action was necessary. Beuys’s image appears at the very end of the poem as an ironic remark that transforms the squirrels into artists who are working in the Art & Science sphere. Yet the poem is not overloaded with references; it remains light, which is how I believe poetic wit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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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수다 | Writers in Conversation

The most intimate thing that a person has is their psyche. This is not commonly discussed. It is far easier—comme il faut—to talk about sexual attraction, desire, temptation, Eros (distinguishing between the erotic and the psyche is quite difficult, of course). Poetry can speak freely about the psyche, as is its right. Poetry appears when life's monotony recedes and you feel freedom of mind. Poetry, unlike painting, is gratis. A poem is the poet's gift to all people, it belongs to everyone who needs it. One's encounter with this gift blooms amidst the days’ monotony, the possibility for the poet and the unknown other to become equals, to meet at a point of communication and intimacy— this is freedom and a delight for both; whatever lies in the box— the poet's distress, trust, or delayed desire. The poem is a form of public speech that the poet holds up in full view of their own accord. • Translated by Dan Khazankin  Edited by Christopher John Matt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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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수다 | Writers in Conversation

박상영 Park Sang Young Korea

Ⓒ 김봉곤

대구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프랑스어문학과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동 국대학교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수료했다. 2016년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 다」로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 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이 있다. 제9회 젊은작 가상, 제10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았다.

Born in Daegu, he graduated from Sungkyunkwan University where he earned his bachelor’s degrees in French Literature and Media Communications. He pursued graduate studies in Creative Writing at Dongguk University. The recipient of 2016 Munhakdongne Rising Writer Award for his short story, “Searching for Paris Hilton”, his published works include The Tears of an Unknown Artist, or Zaytun Pasta and How to Love in a Metropolis. Park also received the 9th and 10th Young Writer’s A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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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퀴어 작가인가? | 박상영

나는 퀴어 작가인가?

2016년 나는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라는 작품을 써서 문학동네 신인상 을 받으며 데뷔했다. 해당 소설은 헤테로섹슈얼 남성화자인 ‘김’의 입장에서 전개된다. 이 소설은 데뷔 전 습작생 시절의 내가 써 왔던 (이를테면 첫 번째 작품집 속 수록 된 「조의 방」이나 「세라믹」과 같은) 이전의 소설과는 완벽히 다른 방식 으로 쓰였는데 이전에 내가 써 왔던 소설이 너무 우울하고 침잠되어 있어, 작가 인 나조차도 읽기에 버겁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가벼운 문체에 현실에 가깝고 지금 이 순간에 내게 당면한 문제들을 얘기하는 소설을 좋아하는 독 자였다. 때문에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를 쓸 때 내가 가장 주안점을 두었 던 것은 일단 2010년대 지금 이 순간, 서울에 존재할 법한 누군가의 이야기에 대해서 쓸 것. 그리고 최대한 나 자신과 거리가 먼 화자를 쓸 것. 전자의 경우 는 나의 취향에 기초한 판단이었다면 후자는 아직 소설 쓰기 훈련이 덜 된 내 가 (그 유명한) 자기 객관화, 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할까 봐 생각해 낸 방법이 었다. 만고의 노력 끝에 나는 자신이 기르는 개를 학대하며, 자기 자신도 학대 하고, 자신의 여자친구를 관종으로 매도하면서도 사랑하는, 매우 문제가 많 은 인물을 화자로 하는 소설을 썼다. 여혐(미소지니)을 체화하고 있으며, 온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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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수다 | Writers in Conversation

사회의 메이저 요소(서울에 살고, 대기업에 다니는, 대졸의 이성애자 남성)를 훈 장처럼 달고 있는 화자를 내세우며, 나는 독자들이 그 인물을 마음껏 비웃었 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소설을 완성한 후 대학원 소설 창작 워크숍에 발 표했을 때 꽤 좋은 반응이었기 때문에 용기를 얻었다. 그래서 같은 방식으로 쓰되, 이번에는 나와 화자의 거리가 훨씬 더 가깝고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가 진 소설을 쓰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완성한 작품이 「중국산 모조 비아그라 와 제제, 어디에도 고이지 못하는 소변에 대한 짧은 농담」이었다. 당시 「제제」 는 20대 시절 나의 감정을, 내가 표현하고자 했던 어떤 모든 것을 쏟아 부었 다고 봐도 될 정도로, 나의 어떤 시절의 단면을 담고 있었고, 때문에 이 작품을 완성하고 났을 때 처음으로 소설 쓰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두 편의 단편소설을 내야한다는 출판사의 신인상 공모 규정에 맞게 「패리스 힐튼을 찾 습니다」와 「제제」를 응모했고, 당선됐다.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로. 설사 당선이 되더라도 「제제」로 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있던 내게 그것은 꽤나 의 외인 결과였다. 내 등단작이 실린 문예지가 출판되고 난 후 나는 조금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내 기준에서는 매우 문제가 많은 헤테로섹슈얼 남성인) 화자와 작가인 나를 동일시하는 독자가 꽤 많았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는 내가 아니었고, 내 생각에는 너무나도 문제가 많은 남자라 약간 억울하 기도 했지만, 여러 작품을 써 나가면서 극복해 나가면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데뷔한 지 일주일 만에 나는 한 문학잡지로부터 청탁을 받았고 당시에 내가 가진 소설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제제」를 발표했다. 연말의 시상식에서 나 는 평론가들이 「제제」를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곳의 누군가는 내 소설을 두고 수다스럽다고 평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소설 속 게이 캐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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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퀴어 작가인가? | 박상영

터들이 에세이를 써 놓은 것처럼 생동감이 있다고 했다. 한 원로 평론가는 소 설은 재밌으나, 그 속에 재현된 퀴어가 너무나도 행복하고 발랄해 ‘마음속에 우물이 느껴지지 않아’ 이질감이 느껴진다고도 했다. 나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애매하게 웃었다. 전문가 비평 집단에게도 나의 소설은 다소 에세이처럼 읽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로도 나는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라는 퀴어 소설을 썼으며 그 소설에서 주인공 영화감독의 이름이 나와 비슷하다는 설정을 넣었다. 운이 좋게 해당 작품은 제 9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하였고, 해당 수상 작품집의 해설을 맡은 한 평론가는 나를 ‘게이 소설가’라고 명명하였다. 나는 그 문구를 수정해 줄 것을 요청했 는데 일단은 내가 (지금까지도) 공식적으로 커밍아웃을 한 적이 없고, 스스로 를 게이라고 지칭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한 비평 대담에서 또 다 른 평론가가 나를 커밍아웃한 소설가로까지 지칭해 나는 해당 구절 역시 수정 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 이후로 나는 데뷔작의 후속편의 개념으로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에서 철저히 대상화되었던 박소라라는 여성 캐릭터를 화자 로 하는 「부산국제영화제」라는 작품을 썼고, 몇몇의 독자들은 여성화자인 박 소라의 ‘여성 심리 묘사’가 ‘남성적’으로 느껴지며, 작가(즉, 남성인 내)가 여 성의 심리를 알지 못하는 게 분명하다고 평을 남겼다.(물론 반대의 의견을 남 긴 독자도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마지막으로 나는 첫 번째 소설집 『알 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묶어 냈고, 그 후 비평가 집 단과 독자들은 내 책을 퀴어 문학으로 나를 퀴어 문학가, 퀴어 작가로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런 호칭에 부응이라도 하듯 이후로 내가 발표한 모든 소설은 게이 남성 화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었는데, 그중 「우럭 한 점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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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수다 | Writers in Conversation

의 맛」이라는 (남성) 퀴어 소설이 또 다시 제10회 젊은 작가상을 수상하게 되 었으며, 작품집이 발간된 후 내가 꽤 많이 들었던 독자평은 ‘초반부에는 화자 가 여성인 줄 알았다’, ‘여성적인 어조가 느껴진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도대체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마초적인) 것, 퀴어적인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생 각이 들었다. 나는 한 번도 나 자신을 퀴어,라고 소개한 적이 없는데 사람들은 나를 퀴어 작가라고 불렀고, 심지어는 첫 번째 작품집 속에 나는 고작 두 편의 퀴어 소설을 담았으며, 나머지 다섯 편의 경우 철저히 헤테로섹슈얼적 관계를 다루고 있다. (물론 그 소설들조차 퀴어적 맥락을 띠고 있다고 말하는 비평들 도 존재한다.) 그런 평가들에 불만을 가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나는 내 가 어떤 작가이며,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 또 어떤 방향의 글을 쓰게 될지, 작 가인 나조차 알지 못하는 어떤 미지의 영역까지도 이미 한정되어버린 것 같은 피로감 혹은 공포감에 가끔 시달리곤 한다. 나는 남성이고 작가이며 남성 퀴어가 화자인, 퀴어 소설을 많이 썼다. 그러나 헤테로섹슈얼 남성이 화자인 소설과 여성이 화자인 소설도 많이 썼다. 나는 젠 더 문제에 격렬한 토론을 하거나 거창한 의제를 달 수 있을 정도로 뭔가를 대 단히 많이 알고 있지는 못하다. 다만 나라는 작가를 규정해온 비평 집단과 시 장(?)의 소비 행태에서 젠더에 대해, 퀴어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을 해야만 하는 경험을 했다. 지금까지의 나는 꽤나 열심히, 치열하게 이런 일들에 대해서 생각해 왔고, 공부했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내 선에서 적절한 발화를 하 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남성 퀴어 화자만이 등장하는 두 번째 책을 묶을 때가 다 된 지금은, 이런 논의들이 내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나 를 뭐라고 규정하든 그것은 내 몫이 아니다, 라는 다소 미진한 결론에 이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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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퀴어 작가인가? | 박상영

되었다. 나는 퀴어 작가인가? 어쩌면 그에 대한 해답은 당신들의 몫일 수도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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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수다 | Writers in Conversation

Am I a Queer Author?

I debuted in 2016 with the short story “I Am Looking for Paris Hilton,” for which I received the Munhakdongne New Writer Award. This story unfolds from the perspective of Kim, a heterosexual male narrator. I wrote this story in a completely different way from the predebut stories I had written as an aspiring writer (“Jo’s Room” and “Ceramic,” for example), the reason being that my earlier stories were so depressing and withdrawn that even I, the author, found them unbearable to read. As a reader, I like lighthearted stories that are close to reality and speak of the problems I am facing in the present. Therefore, when I wrote “I Am Looking for Paris Hilton,” my priorities were to write a story about someone who was likely to exist in Seoul at the time I was writing, in the 2010s, and to keep the narrator as distant from myself as possible. The former was a decision based on my personal taste, and the latter was a methodology I had devised just in case I, with my lack of training in fiction writing, was unable to overcome the (infam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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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I a Queer Author? | Park Sang Young

issue of self-objectification. After trials and tribulations, I completed a piece of fiction featuring a narrator with myriad problems, who abuses his dog, abuses himself, and condemns his girlfriend as an attention seeker, while loving her at the same time. I presented a narrator who has internalized misogyny and flaunts his privileged social status (university graduate, heterosexual man who lives in Seoul and works for a large corporation) like a medal of honor. I hoped for readers to laugh freely at that character. I presented the completed story at a fiction writing workshop at my graduate school, where it received a fairly warm response, giving me courage. Thus, I decided to continue with the same method, only this time I would write a story with a narrator who is much closer to me, with a more colorful personality. The result was “Knock-off Viagra Made in China and Jeje, a Short Joke about Urine That Cannot Be Pooled Anywhere” (“Jeje” hereafter). I can say that the story encompasses a phase of my life because I poured everything I wished to express, the emotions of my twenties, into it. As a result, when I finished writing this piece, I was glad for the first time that I decided to write fiction. Following the application guidelines for the New Writer Award, which required two short stories, I submitted “I Am Looking for Paris Hilton” and “Jeje,” and I was selected for . . . “I Am Looking for Paris Hilton.” I had been thinking that if by any chance I w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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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수다 | Writers in Conversation

selected, it would be for “Jeje,” so I was quite surprised by the result. After the publication of the literary journal that featured my story, I had a somewhat astounding experience: quite a few readers identified the narrator (the heterosexual man who, in my opinion, is teeming with issues) as me, the writer. Obviously, he was not me, and I felt falsely accused since the man has so many issues in my opinion, but I figured it was a matter that I would overcome as I wrote more stories. One week after my debut, I was contacted by a literary journal, through which I published “Jeje,” which was my favorite story in my portfolio at the time. At a year-end award ceremony, I got to listen to critics discussing “Jeje.” One person called it garrulous, and another person said the gay characters in the story were full of life, as if it were an essay written by the gay characters in the story. One established critic said that while the story was intriguing, the queer people presented in the story were too happy and bubbly, and they seemed foreign because “the deep wells in their hearts cannot be felt.” I responded with a noncommittal laugh, not knowing what to say. I realized that among professional critics, too, my fiction is read somewhat like essays. After that, I wrote a queer story titled “The Tears of an Unknown Artist, or Zaytun Pasta”, and gave the main character of the story, a filmmaker, a name similar to mine. As luck would have it,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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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I a Queer Author? | Park Sang Young

story won the 9th Young Writer Award. One of the critics referred to me as a “gay writer” in a literary analysis of the awardwinning works. I requested that this phrase be corrected because, first of all, I have never (to this day) officially come out or referred to myself as a gay man. (In a literary discussion, another critic went as far as to call me a “fiction writer who has come out of the closet,” and I asked for this phrase to be corrected, too.) As a kind of sequel to my debut title, “I Am Looking for Paris Hilton”, I wrote a story titled “P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which is narrated by a female character named Park Sora, who had been thoroughly objectified in the earlier work. Several readers wrote in their reviews that the “psychological description of the female narrator,” Park Sora, came across as “masculine,” and that the author (me, a male) clearly does not understand the psychology of women. (There were certainly other readers who disagreed.) At the end of writing “P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I put together my first collection of short stories under the title The Tears of an Unknown Artist, or Zaytun Pasta. Since then, critic groups and readers have shown no hesitation in calling my book queer literature and calling me a queer literary expert or queer author. As if to gratify those titles, a gay male narrator is the main character of every story I have published since. For one of those (male) queer stories, “A Piece of Rockfish, Cosm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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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수다 | Writers in Conversation

Taste”, I received the 10th Young Writer Award. After the publication of the collection of award-winning stories, readers commonly disclosed that they “thought the narrator was a woman in the beginning,” that they sensed “a feminine tone.” I puzzled over what exactly constitutes feminine, masculine (macho), and queer qualities. Without ever introducing myself as queer, people called me a queer writer. My first collection of stories includes only two queer stories, and the remaining five deal with thoroughly heterosexual relationships. (There is certainly criticism that even those stories are set in a queer context.) I am by no means complaining about such evaluations. From time to time, however, I suffer from fatigue or fear that the kind of writer I am, how my work is consumed, the direction my writing will turn, and other aspects in realms unknown even to myself as an author have become limited. I am a male author, and I have written many queer stories featuring queer men as narrators. But I have also written many stories featuring heterosexual men or women as narrators. I do not know enough to engage in a heated discussion on gender issues or bring a grandiose topic to the table. Nevertheless, I was forced to ponder endlessly the meaning of gender, and the meaning of queerness within critic groups and the consumption patterns of the market that have regulated me as an author. 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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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I a Queer Author? | Park Sang Young

far, I have considered and studied these issues rather diligently and fiercely, and made an effort to speak up appropriately when I can, in any way possible. Now that I am ready to put together a second book of short stories in which the narrators consist only of queer men, I have come to the somewhat tepid conclusion that these discussions are no longer important to me, and that I have no part in how people describe me. Am I a Queer Author? Perhaps the answer to this question is yours to give. • Translated by Eunji Mah  Edited by Jeffrey Karvon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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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아 Jeong Hanah Korea

1975년 경남 울산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국어국문 학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6년 《현대시》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기교를 부리지 않 은 일상의 언어를 통해 주변 사물의 낯선 이미지와 의미를 통찰하는 깊이를 보여주 는 주목할 만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시집 『어른스런 입맞춤』, 『울프 노트』가 있 다. 2019년 구상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시동인 ‘작란(作亂)’의 구성원이다.

Jeong Hanah was born in Ulsan, Gyeongnam in 1975. She graduated from Sungkyunkwan University majoring in philosophy and received her PhD in Korean literature at Yonsei University. She made her literary debut by winning the Hyeondae-si New Poet Award in 2006. She is known for her deep insights into unfamiliar images and the meaning of surrounding objects using unpretentious everyday language. Her works include the poetry collections Grown-Up Kiss and Wolf Note for which she received the Ku Sang Literary Award in 2019. She is a member of the poetry collective “Jaknan (作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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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다 꽂기

| 정한아

매다 꽂기

첫 시집을 냈을 때 내가 전해 들은 내 시에 대한 한 선배 시인의 반응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정한아 시는 이름을 가리고 읽으면 마치 남자 시인의 시를 읽는 것 같아. 남자 시인과 여자 시인의 시가 따로 있다는 말인가? 나는 크게 놀랐지만 가벼 운 자리였기 때문에 그저 농담을 하는 것으로 화제를 전환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 마음속에 아저씨가 한 명 살고 있나 봐요. 심각하게 이야기하면 내 마음속에 살고 있는 그 아저씨는 이제까지 내가 사 랑하며 읽어 온 고전들의 저자가 주로 백인 중년 남성들이었다는 점에서 비롯 될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햄릿』이나 『몬테크리스토 백작』 같은 고 전적인 복수극도, 셜록 홈즈 시리즈나 『기암성』 같은 추리소설도, 십 대 시절 에 푹 빠져 지냈던 실존주의 작품이나 누보로망도 대부분 백인 아저씨들이 쓴 것이었다. 그뿐인가. 엄마의 강요로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읽어야 했던 성서의 어 떤 페이지도 아마 여자가 쓴 것은 없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가설은 내가 언제나 나의 ‘성’을 의식하지 않고 살았던 어린 시절 의 나를 보존하고 싶어 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여덟 살 때 내 장래희망은 미래 소년 코난이었고 매일 질질 짜서 코난을 난감하게 만드는 라나만큼 이 만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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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수다 | Writers in Conversation

서 짜증나는 인물은 없었다. 나는 코난처럼 달리기도 잘하고 발가락 힘도 센 데, 라나처럼 늘 울어서 구해 주지 않고는 미안해서 견딜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면 내 인생은 얼마나 짜증이 날까? 코난은 어째서 포비와의 우정으로 만족할 수 없는 거지? 망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만도 힘든데 우정도 지키고 질질 짜 는 라나도 무시할 수 없다니, 코난의 어깨는 얼마나 무거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우리 반에는 ‘유도하는 백신양(물론 실명이 아니다)’이 라 불리는 아이가 있었다. 여덟 살짜리에게 이런 성격 묘사가 너무 가혹하다 생 각할 수 있겠지만 백신양은 천성이 냉혹하고 잔인한 데다 자기가 체육관에서 배운 매치기 기술을 사소한 시비를 걸어 아이들에게 매일같이 써먹고 있었다. 『햄릿』이며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좋아했다는 앞선 고백에서 예상할 수 있겠 지만(원치 않은 독서였으나 구약 성서도 한몫했을지 모른다), 나는 복수에 동 반되는 정의로운 분노와 승리의 감정을 희구하는 어린이였기 때문에 특히나 백 신양의 반복적인 악행을 늘 눈여겨보고 있었다. 어느 날 나에게 복수의 빌미가 찾아왔다. 1982년 12월 초순의 어느 날, 첫눈임에도 눈이 꽤나 많이 내려 운동 장이 하얗게 덮이자, 담임선생은 수업 대신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눈싸움을 하 고 놀도록 허락했다. 여러분은 눈싸움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별로 외향적이지 않은 나는 예나 지금이나 좀 바보 같은 놀이라고 생각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를 올려다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하얗게 덮인 운동장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뽀드 득거리는 소리를 듣거나 눈사람을 만드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굳이 그걸 뭉쳐 서 누구한테 던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남자아이들이 눈 싸움을 시작했고 점점 거칠어지더니 가만히 서 있는 여자아이들에게도 던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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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다 꽂기

| 정한아

시작했다. 몇몇 여자아이들은 교실로 들어가고 싶어 했고, 너무 단단하게 뭉친 눈에 맞아 우는 아이가 생겼다. 아, 저 라나들을 어떻게 하면 좋지. 짜증이 나 려던 찰나, ‘유도하는 백신양’이 던진 눈뭉치가 내 눈두덩을 때렸는데, 아, 글 쎄, 피가 나는 것이 아닌가. 다른 방법으로 복수해서는 안 되었다. 녀석이 두 학기 동안 다른 아이들을 괴롭힐 때 항용 쓰던 바로 그 방법을 써야만 했다. 눈뭉치 속에 든 돌멩이를 본 순간 나는 복수심에 눈이 멀어 ‘유도하는 백신양’에게로 곧장 달려가 녀석 을 눈 쌓인 운동장 위에 매다 꽂았다. 매다 꽂았는데, 녀석은 분명 윽, 하고 얼굴을 찌그러뜨리고 신음소리를 냈 는데, 다음 날 등교하며 복도에서 마주친 녀석의 낯빛은 뻔뻔했다. 낙법을 충 실히 배운 것일까? 녀석은 기가 죽거나 고의로 눈빛을 피하지도 않았고 그렇 다고 아직 기뻐하기는 이르다며 내게 승부욕을 불태우지도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 아니, 녀석은 그렇게 가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무 반응으로부터 온 충격의 의미를 나는 십여 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된다. 나는 녀석의 위계질서 안에 카운트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녀석을 세 번쯤 더 운동장에 매다 꽂았더라도 녀석은 내게 눈을 깔지 않았을 것이다. 녀석이 다른 남자아이들에게 매다 꽂혔을 때도 그렇게 반응했는지는 알 수 없거나 기 억나지 않는다. 이후로도 나는 줄곧 ‘유도하는 백신양’을 매다 꽂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 러나 그것은 녀석이 남자아이고 내가 여자아이였기 때문이 아니다. ‘유도하는 백신양’은 나에게 인간성의 자기도취적이고 냉혹하고 기만적이고 조악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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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상징이 되었다. 이 글의 첫머리에 썼던 내 시에 대한 선배 시인의 반응이 다음과 같았더라면 약간 더 나았을 것이다. -정한아 시는 이름을 가리고 읽으면 남자 시인이 쓴 시인지 여자 시인이 쓴 시인지 알 수가 없어. 실로 나는 마음속에 소녀가 사는 좋은 남자 시인들과 마음속에 소년이나 아저씨, 할아버지가 사는 좋은 여자 시인과 소설가를 여럿 알고 있다. 미래소년 코난은 라나를 사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남장 여자였을 수도 있고 실은 포비를 사랑하는 게이였을 수도 있다. 혹은 포비를 사랑하는 남장 여자였을 수도. 그걸 확정 짓는 것이 그렇게나 중요한가? 그리고 나는, 괜찮은 인간이라면, 우리가 사회적으로 여성적이라든가 남성 적이라든가 동성애적이라든가 이성애적이라고, 혹은 양성애적이거나 범성애적이 라고 불러온 차이들을 가로질러서 그 모든 복합적인 이질성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조악한 자기애와 냉혹하고 기만적인 폭력성을 문제 삼을 것이라고 생 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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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do Throw | Jeong Hanah

Judo Throw

When I published my first book of poetry, a fellow poet had this to say about my work: “When I read her poems without knowing who wrote them, it feels as if I’m reading a male poet.” Did he mean to say there’s such a thing as female poetry and male poetry? I was greatly surprised to hear this comment, but since we were at a casual gathering, I didn’t want to draw too much attention to those words, and instead tried to laugh it off. “I guess there must be a man lurking inside of me.” Seriously though, the reason I have this “man” inside of me could be for the fact that the classic novels I’ve read and loved over the years were all written by white middle-aged men. The classic revenge stories of Hamlet and The Count of Monte Cristo, the mystery thrillers of the Sherlock Holmes stories and Arsene Lupin, Gentleman Burglar, as well as the existentialist works and nouveau roman I had loved during my teens were all written by older, white men. That’s not all. The pages of the Bible that my mother forced me to read each night before bed were unlikely to h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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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n penned by a woman. Another theory that could explain this “male” voice is that I might have tried to preserve my childhood identity, from a time when I wasn’t conscious of the concepts of gender and sex. When I was eight years old, I wanted to become Future Boy Conan when I grew up, and nothing annoyed me more than Lana, the girl who would cry nonstop and make things hard for Conan. I could run as fast as Conan, and my toes were as strong as his. If I had a big crybaby like Lana who was always following me around and guilt-tripping me into saving her each time she got into trouble, how annoying would that be? Couldn’t Conan be satisfied with his friendship with Jimsy? Life is hard enough as it is. On top of his friendships and having to deal with crybaby Lana, Conan must have had his plate full indeed. When I was in the first grade, there was a kid in my class who we called Judo Boy Baik Shin-yang (obviously not his real name). One might think it was harsh of us to have thrown around hurtful nicknames at the tender age of eight, but Shin-yang was an inherently mean kid with a cruel streak. He loved to taunt other kids and practice his throwing skills on them which he had picked up at the local judo gym. As evidenced by my earlier confessions of having loved such tales as Hamlet and The Count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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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e Cristo, even as a child I savored the feelings of victory and justified anger that came with righteous revenge (the readings of Scripture probably had an influence as well, though it wasn’t my choice to read it). And so I kept an eye on Shin-yang’s repeated misdemeanors. One day, I glimpsed an opportunity. It was early December 1982, and the first snow of the year had fallen. The school’s soccer field had become thickly blanketed with snow, and our teacher decided to let us have snowball fights instead of our usual class. I don’t know what your thoughts are on snowball fights, dear reader, but as for myself, never having been the most extroverted person, I always thought they were pretty silly. I love looking up at the falling snow, touching the snowflakes, walking over the snow and hearing the crunching sound it makes, and perhaps even building my own snowman. But I never once relished the thought of packing snow into little balls and hurling them at people. On that day, the boys in our class inevitably began a snowball fight which soon escalated into something rougher. They even started throwing the snowballs at the girls. Some of the girls wanted to return to the classroom. One girl burst into tears when a particularly hard-packed snowball hit her with a smack. What am I going to do with these crybabies? I was thinking to myself, get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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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oyed. Just then, Judo Boy threw a snowball that hit me directly in my eye. I started bleeding. I knew I had to get my revenge using the same means he himself had used to bully our classmates for the last two semesters. When I saw the little rock he had hidden in his snowball, I went blind with revenge. I ran straight to Judo Boy and threw him in the air, judo-style, on that very soccer field. As he fell, he let out a moan and I saw his face crumple. Yet the very next day, when I saw him again in the school hallway, he looked none the worse for wear. Had he also learned how to break falls in his judo class? He didn’t look ashamed. He didn’t even shy away from me. Nor did he threaten me with a rematch or try to flame my rage. He acted as if nothing had happened at all. Actually, it didn’t seem like an act. I believe he truly felt in his heart that nothing had happened. Only after ten years had passed did I understand the shocking meaning behind his non-reaction. The reason he didn’t react was that I had absolutely no place in his idea of the peer status hierarchy. Even if I had thrown him three times in that soccer field, it wouldn’t have mattered— he wouldn’t have considered that as “losing.” I don’t know how he would have responded if a boy had thrown him. Or if I do, I don’t rem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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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do Throw | Jeong Hanah

I have been throwing Judo Boy in my mind ever since, not because he is a boy or because I’m a girl. For me, Judo Boy had become a symbol of the narcissistic, cruel, deceptive, and nasty side of human beings. It would have been better if my poet colleague said this about my poetry instead: “When I read her poems without knowing who wrote them, I can’t tell if they were written by a man or a woman.” I actually know many great male poets who write in the voice of young girls, as well as many great female poets and novelists who have a little boy, a man, or a grandfather inside of them. In the comics, Future Boy Conan might not have been in love with Lana. He might have been a drag king instead. Or maybe he was gay and actually in love with Jimsy. Or maybe he was a drag king in love with Jimsy. Does it matter though? I like to believe that decent human beings would think beyond the differences of being feminine or masculine or gay or straight or bi or pan-sexual, and not care about this complex heterogeneity; rather, they would say the real problems are the nasty narcissism and the cruel, deceptive violence that mark human nature. • Translated by Amber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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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 카림 Mona Kareem Kuwait/USA

쿠웨이트에서 태어나 아랍어 시집 3권을 낸 시인이다. 이후에 첫 영문 시집 『주 인들과 연인들(Masters and Lovers )』을 썼다. 포이트리 인터내셔널(Poetry International), 노리치 작가 센터(Norwich Writers' Center), 밴프 센터(Banff Center) 등에서 창작 및 연구 활동을 했다. 번역서로는 2017년 최고 번역 도서상 (BTBA) 후보에 오른 아쉬라프 파야드의 『내부의 지시(Instructions Within )』가 있다. 작품이 9개 언어로 번역되어 선집으로 출간되었다.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빙엄 턴에서 비교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메릴랜드 대학교 객원 조교수로 재 직 중이다.

Mona Kareem is the author of three poetry collections in Arabic. Her next book Masters and Lovers will be her first manuscript in English. Kareem’s work has been translated into nine languages and anthologized. She holds a PhD in Comparative Literature from the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Binghamton and is currently a Visiting Assistant Professor at the University of Maryland. She has been a resident/fellow at Poetry International, the Norwich Writers' Center, Banff Center, and the Forum Transregionale Studien. Her translations include the selected work of Ashraf Fayadh's Instructions Within, which was longlisted for the BTBA 2017 awa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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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성’을 반대하는 선언문 | 모나 카림

‘그 여성’을 반대하는 선언문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몇 주 앞둔 시점에 인도의 이론가 찬드라 탈 파데 모한티는 『경계 없는 페미니즘(Feminism without borders)』을 출간했다. 이 책 에서 저자는 서구 페미니즘의 헤게모니와 이것이 여러 나라에 미치는 치명적인 영향을 논하고 있다. 이것은 다른 페미니스트들이 어쩌다 놓친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구 페미니스트들이 세계를 조망할 때 기댄 야만적 인 발판을 두고 모한티가 “제3세계 차이”라고 명명하여 이론화한 건 사실이 다. 서구 페미니즘은 제3세계 여성들을 대변한다고 주장하지만 저자는 그 통 로가 되는 관행과 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이를 비판하기 위해 “제3세계 차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저자에게 이 “차이”란 “영속적이고 몰역사적인 어떤 것”이다. 깊고 좁은 틈과 같은 이 차이로 인해, 중산층의 문화와 그 역사 는 모든 이의 경험을 망라하여 마음대로 움직이는 하나의 “규칙”이 된다. 페미니스트 사상에서 차이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의문을 갖는다. 이 러한 의문은 여성들의 통합이 중요하다는 식의 지나치게 단순화된 훈계로 변 질되기 쉽고 여성들은 누구나 약하다는 의견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리고 이는 남성들이 사회의 모든 권력을 쥐고 있다는 통념에 기반한다. 내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성 정체성 문제라든가 한 “여성”과 “남성”이 일상적으로 겪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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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니다. 나는 통합이라는 이 끔찍한 개념에 대해 말하고 싶다. 모한티가 『경 계 없는 페미니즘』에서 “가부장제는 필연적으로 항상 남성 지배적이고 종교, 법, 경제, 가족 체제는 남성들에 의해 구축된 것이라는 전제가 은연중에 깔려 있 다”고 말한 대목은 중요하다. 이러한 제도들이 하늘에서 여성들에게로 뚝 떨어 졌다는 통념을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가부장제를 만든다고 주장하는 맥락에서는 여성들이 비관적이고 수동적인 존재로 여겨지며 심지어 자신들의 경험과 저항에 대해 대항 서사를 쓰려는 시도에서조차도 여성들은 피해자로 간주된다. 차이에 관한 질문들은 무시되고 “정치적인(또는 페미니즘적) 주체의 무의식적, 자기 지시적 개인주의 개념”으로 매도된다. 즉, 소외된 계급과 집단, 또는 종속 집단에 속한 여성들 의 경험은 성 억압의 정도를 재는 도구 정도로 전락한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에 대한 서구의 헤게모니를 해체하기 위해 차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이에 나는 “그 여성”을 반대하는 선언문을 쓴다. 나를 향 해 거세된 페니스를 세우고 나를 감시한 “그 여성”에게 반기를 드는 것이다. 다수의 작은 여성들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작은 여성들도 함께 이야기 되거나 논의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반기를 드는 대상은 거슬리는 단일 주 체인 ‘그 여성’이다. 어머니의 강요로 억지로 치르는 결혼식의 그 여성들처럼. 여성 전용으로 지정된 사교 행사 장소나 공공 대기실로 인해 거북하고 불편했 던 적이 많다. 우리를 드러내는 것이 허용되는 소위 “안전한” 장소에서 가부장 제의 강렬하고 날카로운 시선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성의 공간에서 나는 허락받은 이들이 아니라 신성을 모독당한 이들을 본다. 나는 우리가 하나라는 낯 두꺼운 생각을 하는 ‘그 여성’에 반대하여 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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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성’을 반대하는 선언문 | 모나 카림

을 쓴다. 그 여성은 등 뒤에 시민권, 계급, 인종을 댄 편안한 의자 위에 앉아 있 다. 집에 아시아인 하인들을 두고 일하러 가고 훌륭한 시민이 되는 그 해방 된 여성, 인도나 이집트 출신 이주민 덕에 야근할 필요가 없고 휴가도 가는 그 ‘칼리지 카필라’(아랍계 여성 스폰서)에 반대하는 것이다. 여러 명의 아내를 두 는 것(일부다처제)은 부당하다 외치면서도 여러 명의 하인을 두는 것에는 침묵 하는 그 여성. 이러한 ‘그 여성’은 다른 여성들이 아닌 자신의 지위와 계급을 닮아 있다. 나는 ‘그 여성’ 시민에 반기를 들어 이 글을 쓴다. 그 여성은 자신에게만 해 당되는 “평등”을 찾아 소위 “민주적 절차”에 신나게 참여한다. 쿠웨이트에서 는 여성 시민들이 외국인과 결혼한 쿠웨이트 여성들의 자녀에게 시민권을 부여 하겠다는 말만 나와도 겁을 먹는다. 그런 법을 만들면 “그 아이들이 내 자녀 들과 똑같아지기에” 안 된다는 말을 선거 운동 중에 들은 기억이 난다. “그 여 성” 시민은 절대적인 평등을 아주 싫어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자들과 시민권을 연구해 온 학자 소라야 알토키의 주장 에 따르면, 시민권은 개인주의에 기반한 서구 개념이기 때문에 사우디 사회에서 여성들의 지위를 바꾸는 도구나 경로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알토키는 여성들이 스스로 더 나은 지위를 확보하려면 가족 제도를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우디 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알토키는 가부장제 폐지를 추진하지 않는다. 오 히려 가부장제의 영속성을 인정하고 사우디 여성의 변화를 위한 매개체로서 가 부장제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알토키는 『중동의 성과 시민권』이라는 선집에 게 재한 글에서 사우디 여성들 이외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내 다른 태생의 여성들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사우디 여성 작가들의 소설들을 직접 살펴본 결과,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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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어 호평 받고 번역된 작품들에도 ‘그 다른 여성’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는 것 으로 드러났다. 기껏해야 지나가는 그림자, 조용한 노동자, 남편 도둑, 욕망 에 끌려 문제나 일으키는 몸으로 등장할 뿐이다. 시민권은 국가가 반동적 집단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나누어준 배타적 사회 의 회원 자격이다. 수아드 조셉의 주장에 따르면 시민권은 “국가주의의 수단,” 즉, “민족국가 사상 실천에 필수 불가결한 핵심 개념”이다. 시민권의 힘은 배제 의 힘에 기대고 있다. ‘그 여성’ 시민은 다른 국가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조 건부 “평등”을 실천하고 스스로에게 유리하게 이를 맞춰 나가면서 이 배제의 힘에 연료를 제공한다. 조셉은 여성들이 다른 여성들보다 우위에 서서 또는 다른 여성들과 맞서서 사회 집단(계급, 인종, 종교)과 동맹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우리는 여성들이 여성들과 함께 설 것이라고 결코 가정할 수 없다. 앞서 언 급한 동맹을 상정하려면 먼저 “그 여성”의 정의를 분명히 내려야 하기 때문이 다. 아니, 나는 이걸 말하고 싶다. 내가 “그 여성”을 반대하는 이유는 그 여성 이 가부장제를 자기 어깨에 짊어지고 가기 때문이다. 그 여성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국가, 계급, 가족제도의 특혜를 누리고 모성, 여성스러움의 덕을 보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 여성”은 가족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 아니고, 남 편 때문에 임신하는 것이 아니며, 아들을 위해서 아들 낳는 것을 선호하는 것 이 아니다. 다만 그런 행위들이 이 가부장제 안에서 한 몫을 얻고 권력을 얻는 길이기 때문에 그리 하는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나는 ‘그 여성’에 반기를 드는 나의 소명을 작년에 쓴 「쿠마 리」라는 시로 마무리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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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쿠마리에게, 나는 물론 쿠마리가 진짜 네 이름이었는지 몰라. 하인은 도착 즉시 개명하는 것이 걸프 지역 풍습이 되었으니까. 엄마는 네게 “네 이름은 마리암/파티마/쿠마리/찬드라야”라고 말씀하시지. 너한테 면 앞치마를 건네주시기 전에도 그런 말씀을 하시지. 예전의 쿠마리가 쓰던 그 앞치마를 주면서 말이야. 넌 도망쳐서 자유의 몸이 되어 좁은 방 한 칸을 다른 열 명과 같이 쓰고 있지. 에어컨 밑에서 빛이 바래어 가는 벽에 붙은 자기들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들.

쿠마리, 그들은 네게 영어로 말을 걸고 네 방을 따로 마련해 줄지 몰라. 그런데 그들은 네게 분홍색 제복을 입힐 거야. 첩은 더 이상 유혹할 필요가 없으니까.

아니면 네게 아랍어와 손가락 언어로 말을 걸지도 몰라. 어떤 날은 손짓을 사용하고 또 어떤 날은 네 뺨을 후려치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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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아들이 성적인 욕망을 발견하도록 도와줘야 할지도 몰라 아니면 몸이 말을 잘 안 듣는 아버지를 위해 희생해야 할지도 몰라. 어떤 경우든 경찰서로 도망가지는 마. 그곳에는 모든 아버지와 아들이 오니까.

쿠마리, 머리를 자주 잘라 줘야 해. 어느 날 엄마가 화가 나서 네 땋은 머리를 밧줄처럼 붙잡고 휘두를지 모르니까.

네가 좋아하는 노래는 몽땅 공책에 적어 두렴. 공책에 적은 노래는 결코 잊히지 않으니.

화를 내라, 쿠마리, 빨랫줄로 목도 매고, 부엌 밖에서도 칼을 쓰려무나, 엄마와 아빠, 그리고 ‘바카’에게 한 수 가르쳐 주렴. 그치들이 너의 신들에 대한 그 모든 신화를 만들도록 하렴. 너의 꿈속에서 역사의 뱃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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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성’을 반대하는 선언문 | 모나 카림

아랍계의 피를 채우라고 명령하는 그 신들.

도망쳐, 쿠마리, 도망쳐. 눈에 띄는 것은 죄다 훔쳐 가렴. 유령은 유령답게 굴면 되는 거야.

• 번역 : 김소영  윤문 : 정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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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ifesto Against the Woman

Weeks before the 2003 US invasion of Iraq, Indian theorist Chandra Talpade Mohanty published her book, Feminism without Borders, in which she discusses the hegemony of Western feminism and its deadly transnational effects. In doing so, Mohanty did not reveal a truth that other feminists had somehow missed. She did, however, theorize what she called “third world difference”—that brute pedestal upon which Western feminists stand as they survey the world. Mohanty uses the term to critique the problematic practices and relationships through which Western feminism purports to speak for Third World women. Mohanty describes this “difference” as “that stable, ahistorical something.” Through this difference, or perhaps a chasm, middle class culture and its history becomes a “code” that subsumes everyone’s experiences and moves them at will. Many question the importance of difference to feminist thought. These questions can often turn into simplistic lectures on the importance of the unity of women and a belief in the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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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ifesto Against the Women | Mona Kareem

shared weakness. This belief relies on the commonly held notion that men are all-powerful in society. I do not, however, want to address the matter of the gender identity and daily experiences that a “woman” and “man” are presumed to have. What I do wish to address is this repulsive idea of unity. Mohanty makes an important point when she states that “patriarchy is always necessarily male dominance, and the religious, legal, economic, and familial systems are implicitly assumed to be constructed by men,” critiquing the widely-held belief that these institutions were simply dropped upon women from the heavens. In this context of men allegedly creating patriarchal systems, women appear pessimistic and passive, victims even in their attempts to write a counter-narrative about their experiences and resistance. Questions about difference are marginalized and summarized as “automatic self-referential, individualist ideas of the political (or feminist) subject.” That is, the experiences of women in marginalized classes and groups, or subaltern groups, become simply a tool to measure the extents of gender oppression. In that case, how can we use difference to dismantle Western hegemony on the body of feminism? I thus write this manifesto against the Woman. Against the Woman who erected her phallus in my direction and policed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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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 not write against women, for no women can be spoken with or about. I write against the Woman, this single bothersome entity. Just like the women at the weddings my mother used to force me to attend. I often felt anxious and disturbed by spaces that were designated as only-for-women, like those for social events and as public waiting rooms. In these “safe” spaces, where we are assumed to be able to expose ourselves, it is impossible to move under the intense and piercing gaze of patriarchy without noticing it. In women’s spaces, I do not find the permitted but rather the profaned. I write against the Woman who thinks brazenly that we are one. She, whose behind perches upon the comfortable chair of citizenship, class, and race. Against the Khaleeji “kafila” [female sponsor] who goes to work and becomes a good citizen and liberated woman on the backs of Asian servants in her home, or goes on vacation and is exempted from work at night because of the Indian or Egyptian migrant. Against the Woman who cries foul about multiple wives (polygyny) but not about having multiple servants. This Woman resembles her state and class, not other women. I write against the Woman citizen, the excited participant in the “democratic process,” searching for an “equality” that includes only her. In Kuwait, women citizens fear the mere suggestion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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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ting citizenship to children of Kuwaiti women married to non-Kuwaitis. I remember a disapproving comment, made during an electoral campaign, that opposed such a law because it “[would] allow these [children] to become equal to my own children.” The Woman citizen abhors absolute equality. In her work on women and citizenship in Saudi Arabia, scholar Soraya Altorki has argued that citizenship can’t be a tool or path to change the status of women in Saudi society because it is a Western concept based on individualism. Thus, Altorki suggests that women should use the institution of the family in order to negotiate a better status for themselves. Altorki, a member of the Saudi elite, does not seek to demolish patriarchy, but rather assumes its timelessness and insists on its importance as a medium for change for the Saudi woman. In a chapter, published in the anthology Gender and Citizenship in the Middle East, Altorki mentions no women in Saudi Arabia other than Saudi women themselves. My own research on novels by Saudi women writers, even those celebrated and translated, reveals a total absence of the Other Woman except as a passing shadow, a silent worker, a thief of husbands, or a passionate and misbehaving body. Citizenship is membership into an exclusive society distributed by the state to create a collective reactionary identity. It is the “vehicle of nationalism,” as Suad Joseph argues, a “key conce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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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out which the idea of the nation-state cannot be translated into practice.” The power of citizenship rests upon the power of exclusion. Like her peers among the members of the state, the Woman citizen feeds this power as she practices conditional “equality” and customizes it to her benefit. Joseph reminds us that women often ally with their social groups (class, race, religion) over or against other women. We can never assume that women will stand with women: such an alliance as I have mentioned can only be presumed once “woman” has been fully defined. Rather, I want to say that I am against the Woman because she carries patriarchy on her shoulders, because she thrives like others on the benefits of the state, class, and the institutions of family, motherhood, and womanhood. This Woman does not marry because of her family, she does not become pregnant for her husband, she does not prefer to give birth to a son for the son’s sake; rather she does so because such acts often are a way for her to gain power and for a share in this patriarchy. In this spirit, I conclude my call to incitement against the Woman with a poem I wrote last year called “Kumari”: Dear Kumari, I, of course, do not know if Kumari was really your name, It became a custom in the Gulf to change the name of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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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ifesto Against the Women | Mona Kareem

servant upon arrival, The mama says to you, “Your name is Maryam/Fatima/ Kumari/Chandra,� Even before she gives you your cotton apron, The same apron that the previous Kumari used before she ran away and became free crowded in a single room with ten others watching their pictures on the walls fading under the air conditioners. Kumari, They may talk to you in English and give you your own room, but they will dress you in a pink uniform, For the concubine is no longer required to seduce. Or they may talk to you in Arabic and the language of fingers, That which depends on hand signs in some days, or on slapping your cheeks in others. You might have to help the son discover his sexual desi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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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 even sacrifice for the father’s bodily failures. In both cases, do not run to the police station, from there all fathers and sons come. Kumari, You must cut your hair regularly, Mama might get angry one day and claim your braid as a rope in her hand. Write all the songs that you love in a notebook, No forgotten songs can be found here. Get angry, Kumari, Hang yourself with the clothesline, Use your knife outside the kitchen, Teach the Mama and the Baba and the Bacha a lesson, Let them create all those myths about your gods who ask you in your dreams for some Khaleeji blood to feed the belly of history. Run, Kumari, 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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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ifesto Against the Women | Mona Kareem

And steal everything you find; A ghost gotta act like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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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열 Kim Soo-yeul Korea

제주에서 태어났다. 1982년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신호등 쓰러진 길 위에서』, 『바람의 목례』, 『생각 을 훔치다』, 『빙의』, 『물에서 온 편지』, 4·3시선집 『꽃 진 자리』가 있고, 산문집으로 『김수열의 책읽기』, 『섯마파람 부는 날이면』 등이 있다. 제4회 오장환문학상과 제3 회 신석정문학상을 받았다.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제주4·3 70주 년 범국민위원회 공동운영위원장, 사단법인 제주작가회의 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현재 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이사와 제주4·3평화문학상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Born in Jeju, he debuted his poetry in Silcheon Munhak literary magazine and began his career in 1982. His collected poetry includes Regardless of Place, On the Road of Fallen Traffic Lights, Silent Bow of the Wind, Stolen Thoughts, Possessed, and Letter from the Water. Also published poetry collection Where the Flowers Fell to memorialize the Jeju April 3 Massacre. He has also published essay collections Reading with Kim Soo Yeol and When the Wind Blows from the Southeast. He is the recipient of the 4th Oh Chang Hwan Literary Prize and the 3rd Shin Seok Jeong Literary Prize. He was also on the board for the Jeju Foundation for Arts & Culture as well as the Memorial Committee for the Jeju April 3 Massacre. He served as the president of the Jeju Writers Association. He is presently on the board of the Society of Korean Writers and the Jeju Masscare Memorial Literary Pr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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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할머니의 거룩한 생애 | 김수열

어느 할머니의 거룩한 생애

제주4.3항쟁 70주년을 맞아 준비한 제주4.3 생존 희생자 그림 기록전(展) < 어쩌면 잊혀졌을 풍경>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칠십 년 전 제주섬에서 3만의 죄 없는 목숨을 앗아간 항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지 못해 살아 온몸과 마음 에 상처와 흠집이 아로새겨진 열여덟 명의 생존 희생자를 보듬고 위로하기 위 한 그림 채록 작업이었다. 화가가 어르신들을 직접 만나 체험담을 공유하고, 살아남은 게 죄가 되어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그들의 ‘그날’을 손수 그림으로 그리고 삐뚤빼뚤 한 문자로 기록하는, 결코 쉽지 않은,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그날’을 세상 밖으로 드러내는 작업이었다. 모든 분들의 작업이 소중했지만 그 전시에서 내 발걸음을 단박에 동여맨 전 시는, 다름 아닌 지금 소개할 윤옥화 할머니의 삶과 그림이었다. 할머니와 동행한 작가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투쟁으로 제주와 인연을 맺고, 지금은 제주 사람이 된 홍보람 화가가 할머니에게 여린 손을 내밀어 <그 리움은 언 마음을 녹이고>라는 할머니의 이야기와 그림이 세상과 만나게 된다. 할머니의 ‘그날’은 이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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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수다 | Writers in Conversation

-음력 12월 19일, 눈이 엄청 왔던 날. 오후 5시쯤 군인들이 와서 나오라고 했다. 북촌국민학교에 갔다가 아빠는 학교 안으로 들어가고, 둘째 언니는 학 교 안으로 큰어머니와 들어가고 나, 엄마, 큰언니, 동생, 오빠는 ‘당팟’으로 끌려갔다. 맨발로 급하게 나오느라 높이 쌓인 눈에 발이 푹푹 빠지며 갔다. -‘당팟’에서 엄마가 우리 모두를 치마 속에 다 안았다. 갑자기 총소리가 들 렸고 큰언니가 ‘아이고’ 해서 보니 배에 총을 맞아 배 안에 있는 것이 나왔다. 나는 등에 총다마를 맞았다. 동생은 총을 일곱 군데 맞았다. 하지만 죽지는 않았다. 오빠는 총을 한 군데도 맞지 않고 살았다. 엄마는 그 자리에서 돌아 가셨다. 큰언니도 죽었다. -나는 등에 총을 맞아서 손가락만한 총알이 등에 박혀 있었다. 동네 어른이 친척을 찾으러 왔다가 나를 보고 총알을 뽑아 주었다. 소독을 하고 쑥을 짓 이겨서 붙이는 것이 다였다. 몇 년 전까지 날이 안 좋으면 쑤시고 아팠지만 지 금은 괜찮다. -다음 날 우리는 함덕으로 갔다. 내 머리가 온통 피범벅이 되어서 둘째언니 가 내 머리카락을 잘라 주고 씻겨 주었다. 동네 사람들이 옷도 주고 먹을 것 도 주었다. 다음 날 큰어머니와 사촌언니와 언니, 오빠가 북촌으로 와서 어머 니, 아버지 시신을 수습했다. 다음 날 서우봉 산자락에 두 분을 합장해서 모셨 다. 이장할 때 옷이라도 한 벌 해 드리는 것이 지금까지 가슴 아픈 나의 소원 이다. -총을 일곱 발 맞은 동생은 고모가 업고서 함덕에 왔다. 고모가 동생을 구 덕에 눕혀 항상 흔들어 주었다. 약은 소독약밖에 없었다. 동생은 삼 개월 있다 가 갔다. 먹을 것이 없어서, ‘성! 밥 좀 줘!’ 했던 것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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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할머니의 거룩한 생애 | 김수열

-함덕에서 삼 개월 정도 있으니 이제 자기 가고 싶은 데로 가서 살라고 했 다. 우리는 옛 집터로 돌아와 산에 가서 나무와 새를 해 와서 움막을 지었다. 여기서 이십 년 정도 살았다. -어느 날 동네분이 초신을 삼아 주었다. 그전까지 맨발로 살다가 초신을 신 으니 매우 지꺼졌다. 그리고 3년 정도 후에 큰어머니가 검정고무신을 사오셨 다. 머리맡에 두고 아까워서 신지를 못하고 손에 들고 맨발로 다녔다. -나는 언니를 따라 우리 밭에 김을 매러 갔다. 잡초를 뽑는데 자꾸 잠이 왔 다. 언니는 자꾸 나에게 일어나라고 돌멩이를 던졌다. 그래서 깨었다. -열두 살쯤 본격적으로 물질을 했다. 처음에 언니가 물소중이를 바느질해서 만들어 주었다. 다음부터는 내가 직접 만들어 입었다. 7, 8월이 되면 억새를 해 서 심은 다 버리고 껍질을 두드려 부드럽게 만들고 새끼를 꼬아 미역 담을 망 사리를 만들었다. 미역을 따서 말려 장에 나가 팔았다. 10원, 20원 받으면 군 것질도 하고 옷도 사 입고 신도 사 신었다. -지금은 몸이 아프지만 그래도 견딜만하다. 우리 동네 퐁낭에 점심 먹고 가 면 친구들이 있다. 이 친구들과 한 삼십 분 논다. 한참 웃다가 온다. 다리 운 동을 해서 다시 바다에 나가면 좋겠다.

홍보람 작가의 표현을 빌면 ‘모든 것이 갑자기 뚝 하고 떨어진’ 윤옥화 할 머니의 ‘그날’은 말과 글로는 어찌 해볼 수 없는 ‘언어절(言語絶)’ 그 자체 다. 적당히 아프고 적당히 슬퍼야 말이 되고 글이 되는데, 한 날 한 시에 왜 끌 려가야 하는지 왜 죽어야 하는 지도 모른 채 부모 잃고 형제자매를 잃은 우여 곡절을 담아내기에 말과 글은 너무도 빈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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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수다 | Writers in Conversation

더 기막힌 것은 그러한 아픔과 상처를 망각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던 시절 이었고 세월이었다. 누구의 표현을 빌면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나 죽어서 공 산주의자가 되어 버린’ 통한의 시절이었기에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었고, 내일을 살아갈 자식을 위해서는 스스로 망각을 자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었다. ‘기억의 자살’ 인 동시에 ‘기억의 타살’인 것이다.

‘말은 태어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속설 그 리고 ‘섬 밖으로 나오는 자는 무조건 엄벌에 처하라’는 이백여 년에 걸친 이 른바 ‘출륙금지령’이라는 극단적인 지역 혐오의 유령이 미군정기에 일어난 4.3 당시까지만 해도 서슬 퍼렇게 살아 있었던 것은 아닐까? 혹시 모른다. 국책 사업이라는 이유로 주민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군사 기지 를 들이고, 공항을 건설한다는 이유로 자연의 뭇 생명을 송두리째 앗아 가고 있는 지금, 내가 사는 이곳 제주는 여전히 누군가의 혐오의 섬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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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vine Life of an Old Woman | Kim Soo-yeul

The Divine Life of an Old Woman

The Scenes That Might Have Been Forgotten was an unforgettable exhibition of documentary drawings by the surviving victims of the violence committed on April 3, 1948. The exhibition commemorated the 70th anniversary of the Jeju Uprising. The illustrated record project was organized to embrace and console the eighteen surviving victims who were caught in the whirlwind of the uprising, which took 30,000 innocent lives on Jeju Island 70 years ago, and who were left with permanent scars and bruises on their bodies and in their minds. Artists met with the elderly survivors to hear their experiences. Having survived had been a stigma, and the victims had hidden away “that day” in their hearts all their lives. They drew pictures and wrote about their experiences in crooked letters, overcoming the enormous challenge of revealing their independent versions of “that day” for the first time in their lives. Every presentation was meaningful, but Yun Okhwa’s life story, which I am about to summarize, and her illustrations, stopped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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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d in my tracks. Yun was accompanied by artist Hong Boram, who connected with Jeju while protesting the construction of the naval base in Gangjeong Village and who now lives in Jeju. With Hong’s tender helping hand, Yun’s story and illustrations, titled Longing Melts a Frozen Heart, was presented to the world. “That day” began like this for Yun (I regret that I am unable to show her illustrations of “that day”): - December 19 on the lunar calendar. We had a huge snow. Around 5 p.m., soldiers burst in and ordered us to come outside. My father, who was at Bukchon Elementary School, went into the school building, as did my second eldest sister and aunt (father’s sister-inlaw). My mother, eldest sister, younger brother, and elder brother were taken to a “shrine site.” In a hurry, I had come out barefoot, and as we walked, my feet sank in the deep snow. - At the “shrine site,” my mother wrapped us all in her skirt. There was a gunshot, and my eldest sister cried “Argh!” I saw that she had been shot in the stomach, and its contents were spilling out. I took a bullet in my back. My younger brother was shot in seven places. But he did not die. My older brother survived without getting hit once. My mother passed away on the spot. My eldest sister also died. - I was shot in the back. A bullet the size of a finger was stuck in my back. A village elder who had come looking for a relative f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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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vine Life of an Old Woman | Kim Soo-yeul

me and pulled out the bullet. This entailed merely disinfecting the wound and applying mugwort paste. The wound felt sore and painful in bad weather until a few years ago, but it has been fine lately. - The following day, we went to Hamdeok. My head was covered with blood, and my second eldest sister cut and washed my hair. Village people brought us clothes and food. The next day, my aunt, elder female cousin, elder sister, and brother went to Bukchon and recovered the bodies of my mother and father. We buried them together at the foot of Seoubong hill the following day. My heart aches with the wish to prepare a new set of clothes for them when we move their gravesite. - My aunt (father’s sister) carried my younger brother, who was shot seven times, on her back to Hamdeok. She laid my brother in a basket and rocked him steadily. The only medicine we had was disinfectant. My younger brother lived for another three months. We had nothing to eat. I remember him saying, “Brother! Give me something to eat!” - After about three months in Hamdeok, we were told to go where we wanted. We returned to the site of our old house. We built a hut using logs cut from the hill. We lived there for about twenty years. - One day, a neighbor wove a pair of straw shoes for me. I was living barefoot until then, so I was elated to have straw shoes. About three years later, my aunt bought me a pair of black rubber shoes.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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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pt them by my bedside and, worried they would wear out, I carried them in my hand and walked around barefoot. - I followed my elder sister to weed our field. I kept falling asleep while pulling weeds. My sister kept throwing pebbles at me to wake up, and I did. - I began diving when I was about twelve years old. My elder sister sewed together my first diving clothes (mulsojungi). I made my own after that. In July and August, I harvested flame grass, discarded the core and pounded the hull to soften it, twisted it into rope, and made nets for seaweed. I picked and dried seaweed to sell at the market. When I earned ten or twenty won, I bought snacks and clothes and shoes. - My body ails, but I can bear it. After lunch, I find my friends at the neighborhood hackberry tree. I hang out with my friends for about half an hour. We laugh a lot. I hope that exercise will make my legs better and I can go out into the ocean again. According to the artist Hong Boram, “that day,” as experienced by Yun, when “everything fell suddenly out of nowhere,” cannot be described in speech or text; it is truly beyond language. There is a limit to the pain and sorrow that speech and text can express. They are too weak to embody the complexity of her experience: not knowing why she was dragged away from home, or why they tried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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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vine Life of an Old Woman | Kim Soo-yeul

kill her, and losing her parents and siblings in one day. More shocking are the years the victims had to live through, when they could not live unless they forgot about the pain and scars. Borrowing someone else’s words, those were bitter times when “noncommunists became communists through death,” and they could not share their experiences, and for their children’s futures, they had to choose oblivion. This resulted in both a “suicide” and “homicide” of memories. Extreme regional discrimination can be found in the common saying, “Send a new foal to Jeju and a new baby to Seoul,” and in the ordinance that banned people from leaving the island, which stipulated “severe punishment for anyone who leaves the island” and which was in place for over two hundred years. Was the ghost of this acute hatred still present during the April 3 Incidents under U.S. occupation? It could be. Now that a military base is being constructed with no regard to the opinions of residents, and nature is being uprooted to make room for a new airport, my home, Jeju Island, might still be the target of someone’s hatred. • Translated by Eunji Mah  Edited by Jeffrey Karvon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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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 Hwang Gyu-gwan Korea

1968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3년 「지리 산에서」 등 9편의 시로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물 들을 통해 가치 있는 삶을 꾸리기 위한 태도를 언어의 기교 없이 담백하게 그려냄으 로써 깊은 울림을 주는 시세계를 지닌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시집 『철산동 우체국』, 『물은 제 길을 간다』, 『패배는 나의 힘』,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 『정오가 온다』, 『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 등과 산문집 『강을 버린 세계에서 살아가기』를 출간했다. 출판사 ‘삶이 보이는 창’을 운영하고 있다.

Hwang Gyu-gwan was born in Jeonju, Jeonbuk in 1968. He graduated from Pohang Jecheol Technical High School and debuted as a writer in 1993 by winning the Jeon Tae-il Literary Award for “At Jirisan” and eight other poems. He is known for the deep resonance of his poetry in which he displays an attitude of building a worthy life through objects we encounter in our daily lives without resorting to tricks of language. His poetry collections include Cheolsan-dong Post Office, Water Runs its Course, Failure is My Strength, Time to Wait for the Storm, Noon is Coming, Let’s Take the Next One, and the essay collection Living in a World That Has Abandoned the River. He runs the publishing company ‘Sam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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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언어와 시 | 황규관

혐오의 언어와 시

최근에 한국에서는 이십 대 남성들의 보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많다. 최근에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미디어 환경의 변 화로 인해 예전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사건들이 부각되는 것인지 아니면 예전에 는 없었던 사건들이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는 아직 확실히 모르겠다. 다 만, 스마트폰이 일반화되면서 소셜 미디어를 통해 온갖 작은 사건들이 시시각각 중계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느 언론 기사에 의하면 소셜 미디어를 통한 관 심 끌기가 하나의 경제 현상을 이루었는데, 여기에도 경쟁 구조가 만들어져 점 점 더 과격화해지고 있다고 한다. 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혐오 콘텐츠’ 가 양산되고 꾸준히 업데이트된다는 것이다. 이 믿기 힘든 현실은 직접 목격하지 않아도 우리 주위를 빠르게 침식하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문제는 개인이 만든 ‘혐오 콘텐츠’들을 떠받치고 있는 사회의 구조일 것이 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지금 시대의 언론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사건의 심 층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클릭을 유인하는 선정적 보도를 일삼을 뿐이며, 정 치적인 흐름에 야합해 사건의 진실보다는 표면에 떠다니는 정확하지 않은 이야 기들을 유포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런 현상은 내게 매우 심각한 질문을 던 진다. 무엇보다도 시가 그동안 지켜 왔던 ‘진실’에 대한 태도 또는 어떤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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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문학은 진실보다는 손쉬운 ‘정치적 정의’에 기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여기서 세심해야 할 것은 ‘정의’라기보다 ‘정치’인데, 언젠가부터 한국의 시가 지시하는 정치는 특 정한 정치 집단이 되고 말았다.) 정치적으로 정의로우면 ‘진실’은 일단 생각하 지 않는 듯하다. 그런데 진실에 입각하지 않은 정의는 과연 어떤 미래를 가리키 는 것일까? 1997년에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달러를 차입했다. 국내에 보 유 중인 달러가 소진되어 국가 간 무역 거래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때 한 국은 일본과의 통화 스와프(currency swap)를 통해 사태를 해결하려 했으 나 미국의 개입의 의해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어쩔 수 없이 달러를 빌려야 했 다. ‘미국의 개입’이라고 쓴 것은, 훗날 이 모든 것이 미국의 기획인 것은 아닌 가 하는 의혹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른바 ‘구제금융 체제’는 한국에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는데, 한국의 사회적 전통이랄까 고유한 문화가 금융자 본주의 질서에 의해 파괴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누구나 ‘혁신’을 말하지만 오 늘날 혁신의 의미는 미국을 위주로 한 국제 자본의 언어에 가깝다. 쉽게 말하 면 ‘구제금융 체제’는 한국 사회를 돈에 대한 물신주의에 빠뜨리고 만 것이 다. 이게 국제 자본이 원하는 혁신이었던 것이다. 금융자본주의 체제 안으로 한국이 본격적으로 편입되고 나서 벌어진 일은 내면의 황금화였다. 이제 사람들은 돈을 숭배하기 시작했고, 돈이 되지 않는 일은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일터를 잃었고 가정은 파괴 됐다. 일터는 돈이 되지 않는 노동자를 내쫓았고 가정에 돈이 들어오지 않자 가정이 해체된 것이다. 물론 일터는 다시 노동자를 불러들였지만 짧은 기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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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언어와 시 | 황규관

안만, 그전보다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하라고 했다. 또는 노동 에이전시를 통 해 채용을 했다. 일터를 쪼개고 쪼개 산업 현장 자체를 원자화한 것이다. 삶의 최소 단위까지 이윤을 위해 재편성한 이런 일련의 ‘혁신’들은 사람들의 내면에 돈이라는 마몬(mammon)을 들앉히면서 그나마 남은 인간적 가치를 비웃고 그것에 의혹의 눈길을 던졌다. 돈이 되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당연히 의혹의 눈 금이다. 얄궂게도 ‘구제금융 체제’에서 한국은 정보통신산업을 새로운 경제 방향으 로 잡았다. 인터넷 보급률이 한때 세계 최고를 자랑했고, 정보통신산업은 노동 을 가혹하게 재편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성과가 새로운 한국을 만들었다 고 믿지만, 이 과학기술 문명이 사람에게 끼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통찰은 거 의 없었다. 시도 더 이상 삶의 진실과 리얼리티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도리어 진실이나 리얼리티는 혁신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가 사물이나 사건의 진실을 알 기 위해서는 인식론적으로 재현이 필연적 과정인데도 말이다. 포스트-모던 세 상이 도래한 것이다. 나는 감히 혐오의 언어는 이런 역사적, 사회적 바탕에서 본격적으로 생산되었 다고 본다. 돈에 대한 물신숭배는 자연스레 자신의 ‘미래의 돈’에 장애가 되는 그 무엇이든 부정되어야 했다. 그게 여성이든, 장애인이든, 비정규직 노동자이든 말이다. 늙었든, 젊었든, 농촌이든, 과거이든 말이다. 숲이든 강물이든 말이다. 이 글의 모두에서 한국의 이십 대 남성의 보수화를 언급한 것은 지난 구제 금융 체제의 문화가 심어준 배제와 좌절이 내면화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였다. 그들의 성장기는 그 시절과 정확히 겹친다. 내게는 물론 사회학적인 데 이터와 논리가 없다. 어디까지나 경험에 의한 직관에 의존할 뿐인데, 나는 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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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수다 | Writers in Conversation

직관이 그리 크게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도 그렇지만 구제금융 시 기 이전에도 나는 노동자였고, 그 시기에도 노동자였다. 내 친구들도 거의 노 동자였다. 결론은 이렇다. 혐오의 토대는 바로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세상이 다. 미국을 등에 업은 국제통화기금이 한국 사회에 강요한 혁신이 노동자들의 내면을 어떻게 바꿔놨는지 나는 내 경험으로 입증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현실에서도 시는 필요한 것일까? 경험이 평균화되고, 그 질적 차 이가 사라진 오늘날 같은 자본주의 현실에서 말이다. 언어가 꿈틀대는 구체적 인 세계에서 탄생하지 않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다중에게 강요되며, 산업화된 문화를 흉내 내는 일에 몰두하는 지금 이 시간에 말이다. 앞에서 시를 ‘진실’ 에 대한 태도 또는 윤리라고 했지만, 사실 시는 진실의 진실, 그 진실의 진실의 진실……을 찾아나서는 여정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시에게는 영원히 출발선 만 주어진다고 할 수 있는데, 독자들은 시가 진실을 찾아나서는 발걸음이라는 진실을 혁신하자고 한다. 그것은 또한 시장의 언어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파문당하는 것도 간단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이 파문을 긍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파문을 몸 에 두르고 평생 이성의 렌즈를 깎은 스피노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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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nguage of Hatred and Poetry | Hwang Gyu-gwan

The Language of Hatred and Poetry

There is growing concern about the conservative swing among Korean men in their twenties. The issue has been a focus topic discussed in the media. I am still unsure whether cases that were hidden in the past are being magnified due to changes in the media environment or whether we are experiencing an emergence of unprecedented events. What I know to be true is that as smartphones have become ubiquitous, all kinds of small occurrences are being broadcast minute by minute through social media. One media article claims that once attracting attention through social media became a kind of economic phenomenon, a competitive structure was created, and this structure has become increasingly aggressive. In order to “survive” within this competition, “hate content” is mass produced and updated constantly. Without witnessing it directly, we can intuit that this unbelievable reality is rapidly encroaching on our surroundings. I suspect the problem is a social structure that bolsters hate content created by individuals. To be honest, I do not tr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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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media. They seem uninterested in the in-depth reporting of events and are concerned merely with releasing sensational reports that elicit clicks. They collude to sway political trends and spread unverified stories floating on the surface rather than uncovering truth. This phenomenon gives me serious doubt. Above all, the attitude or certain ethics surrounding “the truth,” which poetry has protected, is being brutally trampled. Korean literature today seems to be relying on simple “political justice” rather than the truth. (Here, the word to pay attention to is politics rather than justice. At some point, a specific political group came to represent all politics in Korean poetry.) The phrase politically just seems to imply the abandonment of truth. What kind of future does a justice that is not grounded in truth lead to? In 1997, South Korea borrowed dollars from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IMF). This measure was taken because South Korea’s dollar reserves had been depleted, making international trade impossible. At this time, South Korea sought to resolve the crisis through a currency swap with Japan, but U.S. intervention forced the country to borrow dollars from the IMF. I write “U.S. intervention” because suspicions arose later that everything had been planned by the U.S. The so-called “bailout financial system” had a tremendous impact on South Korea, and Korean traditions and original culture were destroyed by the financial capita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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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nguage of Hatred and Poetry | Hwang Gyu-gwan

order. Everyone speaks of “innovation,” but innovation today is a term that belongs to international capital centering on the United States. Simply put, the “bailout financial system” hooked Korean society into a fetishism of money. This was the innovation intended by foreign capital. South Korea’s full incorporation into the financial capitalist system was followed by Mammonism. People began to worship money, and what did not generate money no longer had meaning. At the same time, people lost jobs and families were destroyed. Workplaces kicked out workers who did not generate profit, and families broke up when they lost income. To be sure, workers were called back to workplaces, but they were told to work for shorter durations and for smaller salaries. Alternatively, companies hired through labor agencies. Workplaces were broken down and industrial sites were atomized. Reorganizing workplaces down to the smallest social unit for profit, this series of “innovations” planted Mammon in the hearts of the people. It ridiculed and cast doubt on what humanistic values remained. Obviously, doubt judges everything by whether it generates money. As fate would have it, under the “bailout financial system,” South Korea chose the IT industry as the new direction for its economy. South Korea boasted the highest Internet distribution rate in the world at one point, and the IT industry reorganiz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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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or severely. The majority of the population believes that the achievements from this development created a new South Korea, but there was little insight into the negative impact of the culture of science and technology on people. Poetry, too, did not take interest in life’s truth and reality. Instead, truth and reality became objects of innovation, even though reproduction is an essential epistemological step to understanding the truth of an object or event. A post-modern world had arrived. I dare to believe that the production of the language of hatred burgeoned in this historical and social context. The fetishism of money dictated that anything that got in the way of personal “future wealth” was naturally shunned, whether it was women, disabled persons, or irregular workers; whether old, young, rural, or in the past; whether forests or rivers. I mentioned a conservative swing among Korean men in their twenties in the beginning of this essay because I am concerned that the exclusion and discouragement planted by the culture under the “bailout financial system” might have become internalized. These young men grew up through those exact years. Of course, I do not possess sociological data or logic. I depend purely on intuition based on experience, but I do not feel that my intuition is too off-base. I am a laborer now, as I was a laborer before and after the financial bailout. Most of my 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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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nguage of Hatred and Poetry | Hwang Gyu-gwan

were also laborers then. My conclusion is this: the root of hatred is the capitalist world that we live in. My experience proves how the innovations forced on Korean society by the IMF, with the backing of the U.S., changed the laborers’ inner world. Is poetry necessary in this reality, in today’s capitalist reality where experience is standardized and qualitative differences have been eliminated, at this time when language is not born in the live, concrete world, but forced on a crowd through social media, and people are absorbed by imitating industrialized culture? Earlier I described poetry as an attitude or ethics surrounding “the truth,” but actually, poetry is a journey in search of the truth of truth, and the truth of that truth, and so on. This means that poetry is perpetually given only the starting point. However, readers seek to upend the truth that poetry is a step toward discovering the truth. The same goes for market language. Not conforming could quickly result in excommunication. Despite the circumstances, I believe that poetry must affirm this excommunication, like Spinoza, who wrapped himself in excommunication and took to grinding the lens of reason for the rest of his life. • Translated by Eunji Mah  Edited by Jeffrey Karvon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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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임 맥레이 버넷 Graeme Macrae Burnet UK

스코틀랜드 서부의 산업 도시 킬마녹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현재 글래스고에 거 주 중이다. 2014년에 첫 장편 소설 『아델 베듀의 실종(Disappearance of Adele

Bedeau )』을 발표했다. 두번째 장편소설 『블러디 프로젝트(His Bloody Project )』 (2015)는 2016년 맨부커상(Man Booker Prize)과 LA 타임즈 올해의 미스터리 책 (LA Times Mystery Book of the Year) 최종 후보에 올랐다. 풍자 소설상(Satire Prize for Fiction)을 수상했고 《브리즈 네덜란드(Vrij Nederland)》지 올해의 스릴 러(Thriller of the Year)로 선정되었다. 2017년에 나온 세번째 장편 소설 『A35번 도로에서의 사고(The Accident on the A35)』는 영국 텍스턴 올해의 범죄 소설상 (Theakston’s Crime Novel of the Year) 후보에 올랐다. 같은 해 《선데이 헤럴드 (Sunday Herald)》지 문화상 올해의 작가(Author of the Year)로 선정되었다. 전세 계에 한국어를 비롯한 22개 언어로 출간되었다.

Graeme Macrae Burnet was born and brought up the industrial town of Kilmarnock in the west of Scotland and now lives in Glasgow. He has released his first novel The Disappearance of Adele Bedeau in 2014. His second novel His Bloody Project, which was published in 2015, was shortlisted for the 2016 Man Booker prize, the LA Times Mystery Book of the Year, and won the Satire Prize for Fiction and the Vrij Nederland Thriller of the Year. It has been published in twenty-two languages including Korean. In 2017, he was named Author of the Year in the Sunday Herald culture awards. His third novel The Accident on the A35, which was published in 2017, was longlisted for the Theakston’s Crime Novel of the Year a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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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 듣는 시간 Performance Readings 2019. 10. 6.(Sun) - 10. 7.(Mon) Academy Hall, DDP Design Lab 3F

작가들이 무대 위에서 작품을 낭독하고, 관객은 문학작품과 함께 다채로운 공연을 즐기는 시간입니다.

Readers will have a chance to enjoy various performances alongside onstage readings of literary works by wri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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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Hwang Jungeun Korea

Ⓒ Meenyoung Jung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마더」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서정적인 분위기 속에 폭발할 듯 잠재된 인간 본연의 욕망과 좌절을 무 겁게 담아 낸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 열차』, 『파 씨의 입문』, 『아무도 아닌』과 장편소설 『백의 그림자』, 『계속해보겠습니다』, 『야만 적인 앨리스씨』, 연작소설 『디디의 우산』을 출간했다. 한국일보문학상, 신동엽문학 상, 대산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Hwang Jungeun was born in Seoul in 1976. She made her literary debut by winning the Kyunghyang Shinmun New Writer’s Award for her short story “Mother” in 2005. She is noted for her lyrical studies of latent human desires and frustrations that seem ready to explode. Her works include the novels One Hundred Shadows, Savage Alice, and I’ll Go On, and the serial novel Didi’s Umbrella and the short story collections The Seven Thirty-two Elephant Train, Into the World of Pa, and Being Nobody. She has received the Hankook Ilbo Literary Award, Shin Dong-yup Prize for Literature, Daesan Literary Award, and Kim Yujung Literary A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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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 황정은

누가

그녀는 본래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니었다고 그녀는 생각하 고 있었다. 싫어져서 싫은 거다. 이제 사람이 싫다, 싫어졌다. 결정적으로 그렇 게 된 것은 이전에 살던 집에서였다. 일주일 전까지 살던 집, 그 동네, 거기 살던 사람들. 그녀는 그 동네에서 십오 년을 살았다. 정류장이 있는 대로변에서 산 책로가 있는 야산까지 오백 미터 직선으로 이어진 완만한 오르막이었는데 그녀 가 처음 그 동네로 들어갔을 땐 아무것도 없었다. 세탁소 하나. 구멍가게 하 나. 철물점 하나. 중화반점 하나. 연탄과 쌀을 파는 가게 하나. 그 밖엔 뭐가 아무것도 없는 동네. 그게 그녀가 그 동네로부터 받은 첫인상이었다. 동네 옛 이름이 월촌月村이었다. 그녀가 월촌에 사는 동안 월촌은 여러 차례 변했다. 길이 변했다. 아니야 길은 그대로 있었는데 길가가 변했다. 아무것도 없던 길에 분식점이 들어섰고 나들가게가 생겼고 무지막지한 양으로 빵을 구워대는 빵집 이 생겼고 책도 빌려볼 수 있는 비디오대여점이 생겼고 그것 말고도 여러 가지 가 생겼는데 대부분 오래지 않아 업종을 변경하거나 문을 닫았다. 이름이 무려 빵빵빵이었던 빵집의 빵은 남아돌고 음식 만드는 솜씨가 없었던 부부의 분식 점은 언제나 한가했다. 비교적 나중에 들어선 나들가게와 비디오가게는 처음부 터 의욕적이었는데 그녀는 이 두 가게의 주인들을 가장 불편하게 여겼다. 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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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회사에서 과장급으로 일하다가 명예퇴직을 하고 자영업을 시작했다는 그들 은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과도하게 친절하고 친밀하게 굴었다. 그들의 의욕 적인 모습은 그녀를 불편하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의욕적일수록 보기에 괴롭 고 심정적으로 그랬다. 그녀는 그 가게 주인들이 손님을 향해, 그녀를 향해 싱 글싱글 웃는 모습을 피해 비스듬히 서 있거나 시선을 다른 데 두고는 했다. 비디오대여점, 거긴 그녀가 살던 집 맞은편이라서 이따금 들른 적이 있었다. 처음에 대여점 사장은 그녀의 고향을 물은 뒤 방향이 같으니 그 정도면 동향 同鄕 사람이라고 우겼다. 그는 대여점에 들어서는 대부분의 손님들에게 동향 사람, 형이나 누님이라고 부르며 붙임성 있게 굴더니 나중엔 빨대를 꽂은 우유 팩에 소주를 담아 대낮부터 그걸 먹으며 계산대 안쪽에 침울하게 앉아 있고는 했다. 하루는 그녀가 사흘쯤 연체된 책을 들고 가서 늦었을 거예요, 봐주세요, 라고 말하며 책을 건네자 그가 갑자기 볼펜을 내던지고 얼굴을 붉혔다. 모두 봐주고 그러면 어? 대여료가 얼마라고 일일이 그러면 나더러 어떻게 먹고살라 고 어? 요즘 사람들 진짜 뻔뻔하고…… 너무들 하네! 귓불까지 빨개져서 그녀 를 노려보는 그를 바라보다가 아뇨 연체료가 얼만지 봐달라는 거였는데…… 라고 설명하지도 못하고 가게를 나선 그녀는 너무하네, 라고 생각했다. 그녀 는 다시는 그 대여점을 방문하지 않았고 대여점 사장은 머잖아 장사를 접고 월촌을 떠났다. 대여점이 빠져나간 자리엔 부동산이 들어왔고 그 옆으로 하나씩, 하나 건 너 하나씩, 부동산 중개사무소가 들어서면서, 아니야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많 은 부동산이, 그런데 정말 어느 틈엔가 갑자기 그렇게 되었지, 하고 그녀는 생 각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부동산이 많아져서 앞을 보아도 부동산, 옆을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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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 황정은

도 부동산, 뒤를 돌아도 부동산, 그 길이 온통 그렇게 되는 바람에…… 대여 점 자리에 들어왔던 부동산도 가게를 빼서 나가고 마지막엔 핸드폰 매장이 되 었지…… 하고 그녀는 계속 생각했다. 핸드폰 매장은 처음부터 최저가 판매, 사거리 어느 집보다 싼 집, 어떻게 하면 안으로 들어와 보실래요? 등등의 문구 를 유리에 덕지덕지 바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공기를 넣어 부풀리는 풍선간 판을 세우고 LED조명등을 설치하고 바깥을 향해 스피커 두 개를 설치해 음 악을 틀어대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즈음 실업급여를 받으며 집에 머물고 있었 고 그 음악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쿵 칙 쿵 칙 쿵 직 쿵 직 붕 지 붕 지, 하 는 소리들. 소음들. 음악 말고 소음들. 아이돌 그룹의 최신 곡으로 그중엔 그 녀가 호감을 가지고 있는 곡도 있었으나 그녀는 견디기가 어려웠다. 끝없이 이 어지고 반복되는 그 음악들은 누군가의 플레이리스트였으니까. 누군가의 취 향으로 조합된 플레이리스트. 그녀가 사는 집 창가에 서면 건너편 건물 일층의 핸드폰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 들여다보였는데 무료한 듯 앉아서 컴퓨 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남자가 둘, 여자가 하나였다. 그 재생 목록은 그 들 중 누군가의 취향이었고 그녀는 자기 집 안에서 그걸 어쩔 수 없이 듣고 있 어야 한다는 게 너무도 고약하게 여겨졌다. 특별히 유행하는 곡이 몇 번이고 반복될 때도 있었고 그녀는 그것으로부터 차단될 방법을 찾아낼 수 없었다. 이 불 속에 머리를 묻어도 들리고 욕실에 들어가서 문을 닫아도 들렸다. 소리는 소리라기보다는 공기의 떨림이자 외벽과 내벽의 진동으로 다가왔고 집이라는 공간 자체가 붕 지 붕 지, 하고 흔들렸으므로 그 공간에 갇힌 그녀의 몸도 흔 들릴 수밖에 없었다. 두 달 동안 그녀의 몸엔 특별한 증상도 없이 미열이 이어 졌다. 그녀는 그게 소음들 때문이라고 믿었고 공기관에 민원도 넣어보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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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뿐이었다. 어떻게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그때 자신이 계급적 인간이 라는 것을, 자신이 속한 계급이라는 걸 알았다. 이런 거였구나. 이웃의 취향으 로부터 차단될 방법이 없다는 거. 계급이란 이런 거였고 나는 이런 계급이었어. 왜냐하면…… 왜냐하면 더 많은 돈을 가져서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수 있다면 더 좋은 집 에서 살 수 있을 테니까. 더 좋은 집에서 산다는 것은 더 좋은 골목, 더 좋은 동네에 살게 된다는 것이고 더 좋은 동네라는 것은 이웃의 소음과 취향으로부 터 차단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동네일 테니까. 그런 동네에서는 서로 간섭하거 나 간섭되는 일이 없으니 사람들의 표정은 편안하고 너무하네, 라고 외친다거 나…… 너무 친절하게 구는 일도 없을 것이고 지속적인 소음에 시달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 세계는 좋을 것이다. 내게도 권리가 있어. 남들에게 시달리 지 않을 권리가 말이다. 예컨대 잡상인, 이런저런 방문객, 확성기 소음, 핸드폰 매장의 무자비한 플레이리스트, 사람들이 망해가는 모습, 그런 것으로부터 해 방…… 해방이라기보다는 차단될 수 있는 권리…… 그런 게 있고 그것이 내게 도 분명 있는 권리인데 그걸 확실하게 실현하려면 돈을 가지고 있어서 돈으로 그 권리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하는 거야. 그렇게 할 수 있는 인간이라야 비로소 그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계급인 거야. 그런데 나는 그게 아니지. 나는 지금 그게 아니고 아마 죽을 때까지도 그게 아니다. 나는 그래 그거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계급…… 하고 그녀는 그 집에서, 어쩔 수 없 게도 계급에 속하는 계급적 인간으로서의 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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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 황정은

요즘 들어,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왜 이렇게 참을 수 없는 일이 많아졌을까. 다 른 사람들은 이런 걸 어떻게 참고 있는 걸까. 그보다 나는 여태까지 어떻게 참 아왔지? 그녀는 침대에 누워서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았다. 고기 굽는 냄새가 그녀 의 방에 가득했고 연기도 조금 내려온 것 같았다. 무라무라, 하고 크게 떠드 는 소리는 더는 들려오지 않았는데 그게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그녀는 가슴 에 손을 올렸다. 그녀가 완전히 피로해진 상태에서 눈을 감았을 때 딩동, 하고 누군가 벨을 눌렀다. 그녀는 두 번째 벨소리가 들려왔을 때까지 눈을 감고 있다가 침대에서 빠져 나와 거실로 나갔다. 자동으로 점등된 인터폰 불빛으로 거실이 푸르스름했다. 세 번째 벨이 울렸고 그녀는 인터폰을 통해 누군가의 넓은 이마와 다급히 계단 을 오르는 뒷모습을 보았다. 야 야……. 웃는 소리가 들려왔고 위층 어딘가에 서 쿵, 문이 닫혔다. 그녀는 인터폰 화면으로 떠오른 텅 빈 계단과 스테인리스 난간을 보고 있다가 인터폰에 연결된 코드를 뽑았다. 거실이 어두워졌고 고요 해졌다. 이게 무슨 일이지……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사 람들이 왜 이렇게 하지. 대체 이 사람들이 나한테 왜 이렇게……. 나는 평생 누군가에게, 하고 그녀는 계속 생각했다. 나는 평생 누군가에게 특별하게 해를 끼친 것도 없는 사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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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땐 방이 특별하게 어두웠다. 베란다로부터 비쳐들던 빛도 사라지고 아주 컴컴했다. 그녀는 벨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고 일어나 앉 았다. 발에 뭐가 밟혀서 불을 켜려고 했는데 전등 스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컴 컴한 벽에 손을 대고 이리저리 쓸어보았지만 항상 있던 자리에 그게 없었고 너 무 어두워서, 항상 있던 자리 자체를 잘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벽을 더 듬으며 거실로 나갔다. 인터폰에 불이 들어와 있었고 그 빛이 거실에 번져 있었 다. 내가 저것을 껐나 끄지 않았나.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그걸 외면하고 문 쪽 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소리를 죽이며 다가가 얼굴을 대보았다. 아무런 소 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시험 삼아 누구세요, 라고 물어보았다. 뜻밖에도 대답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열쇠 구멍 쪽에 바짝 귀를 대고 누구시냐고 다시 한 번 물었다. 아주 가까운 곳에 서 누군가 대답했다. 아래층이야 씨발 년아.

- 『아무도 아닌』 (문학동네, 2016) p.120~124, 13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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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 Hwang Jungeun

Who?

She hadn’t always hated people. That’s what she thought. She hated them because she grew to hate them. Now she hated people, had grown to hate them. What played a crucial role in that was the house she had lived in previously. The house she had been living in until a week before, the neighborhood, and the people who lived there. She had lived in the neighborhood for fifteen years. From the roadside where there was a bus station to the hill with a trail, it was a gradual, straight ascent of about five hundred meters; when she first moved into the neighborhood, there was nothing there. A laundry. A small shop. A hardware store. A Chinese restaurant. A sooty shop that sold coal briquettes and rice. A neighborhood that had nothing besides that. That was the first impression she got. The old name of the neighborhood was Wolchon, Moon Village. During the time she lived in Wolchon, it went through several changes. The roads changed. No, the roads remained the same, but the roadsides changed. A snack bar opened on the side of the road where there had been nothing, 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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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l as a little supermarket, a bakery that produced a prodigious amount of bread, a video rental shop where books could also be rented, and various other businesses. But most of them changed businesses or closed down not long after. The bakery, whose name, in fact, was “Bread Bread Bread,” had bread to spare, and the snack bar run by a couple who had no knack for cooking was always empty. The little supermarket and the video shop, which came into business later, were highly motivated from the beginning, and she found the owners of these two shops made her the most uncomfortable. These people, who said they started their own business after voluntarily retiring from respectable companies where they’d held the position of a section chief, were excessively nice and friendly to their customers. There was something about their enthusiasm that made her uncomfortable. The more enthusiastic they were, the more difficult it was for her to see them and the more uncomfortable she felt. She stood askance or looked elsewhere to avoid seeing them smiling at customers, at her. The video rental shop, she used to drop by now and then, because it was just across from the house where she used to live. At first, after asking where she was from, the owner insisted that they were from the same place, since their hometowns were in the same direction. He was very friendly to the customers w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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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 Hwang Jungeun

came into the shop, calling most of them a friend from home, or older brother or sister; after some time had passed, he always sat dejectedly behind the counter, drinking soju from a milk carton with a straw in the middle of the day. One day, she went there with a book that was a few days overdue, and she handed it to him, saying, It’s late, I’m sorry, and he hurled a pen into the air, his face flushing red. You’re sorry? You’re sorry, huh? The late fee isn’t even that much, and everyone tries to get off the hook, saying they’re sorry. What am I supposed to live on, huh? People these days are so shameless . . . it’s too much! She stared at him as he glared at her, flushed red to his ears, Leaving the shop without getting a chance to explain that she was going to ask him how much the late fee was, she thought, This is too much. She never went to the rental shop again, and the owner closed down the business and left Wolchon before long. A real estate agency replaced the rental shop, and another, then another real estate agency opened next to it, turning every other building into a real estate agency, she thought, Wait, why are there so many of them, and when did this happen? She went on thinking, All these real estate agencies opened up all of a sudden, so many that no matter where you look—ahead of you, next to you, behind you—the street is full of real estate agencies . . . and there are so many of them that the one that opened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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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lacing the rental shop, closed down and in the end a cell phone shop opened in its place . . . The glass window of the cell phone shop was plastered from the beginning with signs saying, “The Lowest Price Ever!” “The Lowest Price You Can Find at This Junction!” “What Can We Do to Make You Come Inside?” and soon enough, advertising balloons were set up, and LED lighting installed, and two speakers facing outward began to boom out music. She was staying home at the time, receiving unemployment benefits, and she was completely exposed to the music. Boom bara boom bara boom boom boom boom! Noise. Noise, not music. They were the most recent hits from boy and girl bands, some of which she actually liked, but she couldn’t stand it. The songs, which went on endlessly repeating themselves, were someone else’s playlist. A playlist made up of someone else’s taste. From her window could be seen all the people who worked at the cell phone shop on the ground floor of the building across the street: two guys who sat looking bored, staring at computer screens, and a girl. The playlist reflected the taste of one of them, and she found it awfully offensive to have to put up with it in her own home. Sometimes a particularly popular hit song would play over and over again, and she couldn’t find a way to block it out. She could hear it even with her head buried under a blanket, and even when she went into the bathroom and shut the do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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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 Hwang Jungeun

The sound was more a tremor in the air, a vibration of both the outer and inner walls than a sound, and the space itself shook, going boom bara boom bara boom, and her body, trapped in the space, could not help but shake along with it. For two months, she suffered from a slight fever for no reason. She believed it was because of the noise and even filed a complaint at a public office, but with no lasting results. There was no way to put a stop to it. That’s when she realized that she was a hierarchical person, and understood which class she belonged to. So this is what it’s like. Not being able to block out a neighbor’s taste. That’s what class means, and this is the class I belong to. Because . . . Because if I had more money and could pay more money, I could live in a nicer place. Living in a nicer place means living in a better alley, a better neighborhood, and a better neighborhood would mean one where you could block out your neighbor’s noise and taste. In a neighborhood like that people wouldn’t meddle with each other, so they would look at peace, and no one would shout, It’s too much! or be too nice, and you wouldn’t have to suffer through never-ending noise. That would be a nice world. I have rights, too. I have the right not to be harassed by others. Solicitors, for instance, and all kinds of visitors, and loudspeaker noise, and the ruthless playlist of the cell phone shop, and seeing people going to ruin, the right to be free of things like that . . . 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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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to block them out . . . there is such a thing, and it’s a right that I, too, certainly have, but to be able to practice that right you need to have money, with which you can then practice the right. Only when you’re a person who can do that are you really in a class in which you can say you have the right. But that’s not what I am. That’s not what I am now, and I’ll probably never be that till I die. What I am is, yes, someone belonging to a class in which you have no way to do that . . . Living in that place, she came to think of herself as a hierarchical person who, having no choice, belonged to a certain class. (omit)

Why, she thought. Why are these things happening to me lately? Why are there so many things I can’t bear? How do other people put up with things like that? More importantly, how did I put up with them for so long? I feel like I’ve completely lost my know-how on things . . . Lying in bed, she stared at the dark ceiling. Her room was filled with the smell of meat grilling, and the smoke seemed to have come down a little as well. The noisy clamor of people going muramura had stopped, but that wasn’t any comfort to her. She put her hands on her chest. When she closed her eyes in complete exhaustion, someone rang the b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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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 Hwang Jungeun

When she opened her eyes again, the room was especially dark. The light that used to come in through the veranda was gone, and it was very dark. She thought she heard the bell ring and sat up. She stepped on something and tried to turn on the light, but couldn’t find the switch. She put her hands on the dark wall and fumbled this way and that, but the switch wasn’t where it had always been, and it was so dark that she couldn’t really tell where the spot itself was. Fumbling along the wall, she went into the living room. The interphone light was on, and had spread out through the living room. Did I turn it off or not? She hesitated, then looked away; she walked stealthily toward the door. She went quietly up to the door and put her head against it. She didn’t hear a sound. To see if anyone would answer, she asked, Who is it? A voice answered to her surprise, but she couldn’t make out what it said. She put her ear right against the keyhole and repeated the question. Someone answered from somewhere very close. I live downstairs, bitch. • Translated by Jung Ye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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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길 Yun Heunggil Korea

1942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68년 한 국일보 신춘문예에 「회색 면류관의 계절」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절제된 문체로 왜곡 된 현실과 삶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인간의 극복의지를 형상화한 작가로 알려져 있 다. 대표작으로 『완장』,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장마』, 『소라단 가는 길』, 『문신』 등이 있다. 한국문학작가상,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 상 등을 받았다. 대표작 『장마』는 1979년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한서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를 역임했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다.

Yun Heunggil was born in Jeongeup, Jeonbuk in 1942. Yun received his BA in Korean literature from Wonkwang University. He debuted in 1968 by winning the Hankook Ilbo New Writer’s Award for his story “Season of the Gray Crown.” He is known for his indictments of distorted realities and the absurdities of life and his portrayal of the human will to overcome. His works include Armsbands, The Man Who Was Left as Nine Pairs of Shoes, The Rainy Spell, The Way to Soradan, and Tattoo. He has received the Korean Literature Writer’s Award, Hankook Ilbo Literary Award, Hyundae Literary Award, and Daesan Literary Award. His masterpiece The Rainy Spell was made into the movie Rainy Season in 1979. He is professor emeritus of creative writing at Hanseo University and is an active member of the National Academy of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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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 | 윤흥길

완장

“그 악질놈 이름이 뭣이라고?” “느닷없이 그놈은 또 왜요?” “왜요는 이 사람아, 일본놈 담요여!” “종술이, 임종술이라고……” “그 종술이놈은 어떤 잡놈인가?” 익삼 씨는 한 차례 씁쓰레하니 웃고 나서 방구석에 무르춤히 서 있는 마누 라더러 어서 나가라는 눈짓을 보냈다. “하이타이로 씻고 봐도 미운 구석지라고는 한 태기도 없는 놈이지요. 농사 는 땅이 없어서 못 짓고, 장사는 밑천이 없어서 못 허고, 품팔이는 자존심이 딸 꾹질허는 통에 못 허고, 그저 허구헌 날 노친네가 삶어주는 밥이나 똑 따먹고 는 그 밥알맹이 곤두서지 말라고 옥골선풍 활량 행세로 낚싯대 담그고 방죽 가에 나앉어서……” “아닌게아니라 미운 구석지라고는 한 태기도 없는 놈이구만.” 최 사장은 빙긋이 웃고 있었다. 익삼 씨 역시 어처구니가 없어 덩달아 웃고 말았다. “그놈 뚝심이나 아굿발은 제법 사줄 만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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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고, 말도 마시기라우. 어려서부터 대처로만 떠돌면서 쌈질로 잔뼈가 굵 은 놈이라서 그놈 낚시질 말리다가 지가 한두 번 혼난 게 아니요.” “되얏어!” 갑자기 최 사장이 무릎을 손바닥으로 쳤다. 이것은 또 무슨 변덕인가 하고 익삼 씨는 뱁새눈을 한껏 크게 떴다. “내가 찾던 놈이 바로 그런 놈이여. 가서 당장에 그놈을 이리 데려오게.” “아니, 아자씨, 차라리 도둑고앵이한티 생선전을 맥기는 낫지, 종술이 그놈 을 감시원으로 썼다가 낭중에 무신 변을 당헐라고……” “나 따러올라면 자네는 아직도 멀었어. 내가 이 환갑 나이를 짓고땡판에서 개평으로 얻은 줄 아는가? 잔소리 말고 어서 불러오라면 불러와.” 익삼 씨는 잠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노랑이 아저씨의 그 샛노랗게 오 묘한 뜻을 순간적으로 퍼뜩 납득할 수가 있었다. 그는 방문 밖에 대고 급히 큰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태봉이는 아직 핵교서 안 돌아왔는디요.” 큰딸 화순이 소리였다. 익삼 씨는 마루 아니면 토방 어딘가에 서 있을 화순 이한테 급히 일렀다. “너 핑허니 가서 종술이더러 내가 쪼깨 만나잔다고 전허고 오니라.” 최 사장은 본디 농사꾼이었다. 이리시 근처에 전답 마지기깨나 가지고 있었는 데, 그 일대에 공업단지가 들어서는 바람에 땅을 처분해서 한목에 상당한 돈을 쥐게 되었다. 밑천이 잡히자 그의 잠자던 이재 수완이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 해서 그는 때마침 이리시에 몰아닥친 부동산 경기에 편승해 집장사에 뛰어들었 다. 거기서 한동안 재미를 톡톡히 본 다음 그는 여세를 몰아 트럭을 사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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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했다. 현재 그는 어엿한 운수회사의 사장으로서 그를 아는 많은 사람으 로부터 평생을 농부로만 지내다 죽었더라면 굉장히 억울한 인생이 될 뻔했다는 평판을 듣고 있었다. “정옥이네 할머니 기세유?” 있으나 마나 흔적만 남은 대문간에서 누가 조심스럽게 어머니를 찾는 소리 를 듣고 종술이는 질펀히 짊어지고 있던 방구들을 벗어버렸다. 그는 몹시 게으 른 동작으로 방문을 열고는 밖을 내다보았다. 이장 딸 화순이었다. “없는디, 어째 그런다냐?” 행여 누가 잡아먹을까봐서 그러는지 화순이년은 잔뜩 겁먹은 얼굴로 주춤 주춤 뒤로 물러섰다. “정옥이네 할머니한티 헐말이 있는디요……” “대신 나한티 허면 안 되는 말이냐?” “우리 아버지가 그러는디, 우리 집에 정옥이 아버지 조깨 댕겨가시라고……” 결국 종술이 바로 저한테 건네는 전갈이었다. 그걸 당사자한테 직접 건네지 않고 굳이 없는 사람을 통해 간접적으로 건네는 형식을 취하는 화순이년의 맹 랑한 조심성에 그는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정옥이 아버지는 바쁜 몸이니깨 헐말 있거든 느그 아버지가 직접 오라고 전 허거라!” 호통을 듣고 화순이는 어마 뜨거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출렁거리는 머리 타 래와 팽팽한 엉덩짝을 보면서 종술이는 저걸 그냥 한입에 넣어도 비리지 않겠 다고 생각했다. 여중을 나온 후 진학을 포기하고 집에서 노는 일 년 사이에 화 순이는 완연한 처녀티가 사방에 배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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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네 집 근처에 까만 자가용차가 와 있다는 것은 이웃집 조무래기들이 떠 드는 소리를 들어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무슨 일로 자기를 부르는지 도 통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최 사장인지 나발인지가 왔다면 틀림없이 도둑 낚 시질 때문일 텐데, 그건 천만의 말씀이었다. 고드름 똥 쌀까봐 자기는 겨우내 널금저수지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전했으면서도 종술이는 좀이 쑤셔서 더 참을 수 가 없었다. 그러잖아도 심심해서 주먹하고 입이 근질거리던 참이었다. 이쪽에서 먼저 걸어도 시원찮을 판에 저쪽에서 자진해서 걸어오는 시비를 안 받는다는 건 그로서는 도무지 사람의 도리가 아니었다. 집어갈 만한 물건도, 또 업어갈 만한 여편네도 없는 살림이었으므로 그는 집을 비워둔 채 밖으로 나섰다. 해동(解凍) 머리의 푸릇푸릇한 보리밭에 오도카니 서 있는 까마귀 한 마리 가 눈에 띄었다. 겨울 들판에 새까맣게 머물면서 까옥거려쌓던 까마귀 떼도 이 젠 어디론지 멀리 떠나버리고 없는 마당에 그놈 한 마리만 외돌토리로 남아 있 었다. 한 차례의 팔매질만으로는 꼼짝도 않는 그놈을 향해 종술은 돌멩이를 여러 개 날려서 멀리 쫓아버렸다. “와따, 이 집 성님은 이장 노릇 혀서 자가용 사는 재주도 다 있구만잉!” 이장댁 앞마당으로 들어서면서 종술은 냅다 이렇게 소리부터 질렀다. 기다렸 다는 듯이 안방 문이 열리면서 익삼 씨의 웃는 낯꽃이 네모꼴 테두리 안으로 쏙 볼가졌다. “예끼 사람, 성님이라고를 말든지 물구뎅이에다 꼬나박지를 말든지 양단간 에 한쪽으로 나갈 일이지.” 그 말을 제꺽 들어오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종술은 성큼 방 안으로 들어섰 다. 아랫목에 버티고 앉아 있는 오종종한 이목구비의 늙은이를 보긴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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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쪽을 거들떠도 안 보는 척하면서 다짜고짜로 익삼 씨를 집적거리기 시 작했다. “떡 줄라고 불렀소오, 엿 줄라고 불렀소오?” “씨잘디없는 소리 말고 어서 인사부터 디리게. 자네도 아다시피 저수지를 관 리허시는 최 사장님이시라네.” “나 종술이, 지금은 끈 떨어진 가오리연 같어도 왕년에 서울 동대문시장서 험악허게 놀 적에는 방구깨나 뀐다는 진짜배기 사장님들 여러 뭇놈 조져본 솜 씨요. 시시허게 복덕방 사장, 담뱃집 사장, 잉어 동네 붕어 동네 사장 따우는 영 우습게 아는 놈이요, 나 종술이가!” “이 사람아, 이분은 그런 사장이 아니라 솜리(이리)에서 제일 큰 운수회사를 경영허시는……” “암만 그리봤자 성님 사장이지 내 사장은 아니니깨!” 피차간의 입장을 분명히 가르고 나서 종술은 책상다리의 앉음새 속에 두 손 을 넣어 사타구니를 감싸고는 고개를 삐딱하니 치켜들었다. 천장 구석을 올려 다보면서 그는 휘파람이라도 불고 싶은 표정이었다. 익삼 씨가 민망해서 어쩔 줄 모르는 동안에 최 사장이 두어 번 헛기침을 놓았다. 헛기침에 이은 헛웃음 과 함께 그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젊은 사람 혈기가 과시 듣던 대로 똑같구만.” “솔직히 얘기혀서 나는 요 멧달 동안에 붕어는 그만두고 물강구 새끼 한 마 리도 건진 적 없구만이라우.” 종술은 입찬소리로 계속 뻣세게만 나갈 작정이었다. “누가 자네더러 고걸 탓허는가?” 최 사장은 농사꾼 경력의 과거가 남긴 주름투성이의 검붉은 얼굴에 깊은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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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랑을 지어가며 한바탕 호탕하게 껄껄거렸다. 집장사로 돌면서부터 서서히 익 혀나온 웃음인데, 아직도 약간 공부가 부족한 점이 없지 않아 오종종한 그 얼 굴하고는 별로 안 어울린다는 평판을 주위에서 듣고 있었다. “자네만 같으면 저수지를 통째로 다 맥겨도 상관없겄네. 날만 풀리거든 나 가서 맘대로 잡으소. 자네, 노느니 염불헐 생각은 없는가?” 늙은이가 속임수를 쓰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종술은 그 속임수에 넘어 가지 않으려고 바짝 긴장하면서 최 씨 숙질간을 번갈아 돌아다보았다. “종술이 자네는 인자 잉어회 먹고 잡으면 잉어만 잡고 붕어찌개 먹고 잡으면 은 붕어만 잡고, 이렇게 맘대로 골라잡게 생겼네.” 익삼 씨가 비죽비죽 웃으면서 하는 말이었다. “자네 혼자만 맘대로 잡고 다른 낵기꾼들은 일절 범접을 못 허게코롬 막어 준다는 조건으로 말이네. 자네, 저수지 감시원 맡을 생각은 혹 없는가?” “저수지 감시원이라니!” 그제야 종술은 두 숙질간의 술책을 간파했다. “사람을 무시혀도 유분수지!” 그는 퍼르르 소가지를 부리면서 발딱 일어섰다. 익삼 씨가 기급을 하고 그 의 다리를 양팔로 껴안았다. “와따매, 이 사람 슷달 그뭄날 장개가놓고는 정월 초하룻날 칠거지악 들먹 거릴 신랑이네. 어서 앉으소. 부애를 내도 무신 말인지나 듣고 나서 부애를 내 든지 어쩌든지 혀야지.” 익삼 씨가 이수일을 붙잡으려는 심순애의 동작으로 바짓가랑이를 끌어당겼다. “공으로 일 봐달라는 소리는 아니네. 자네가 감시를 맡어준다면 매달 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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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썩 월급까장 주기로 내 약조험세.” 땅딸막한 체구하고는 담력이 여간 아니어서 최 사장은 눈썹 하나 까딱 않고 차근차근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말이 종술의 가슴에 더욱 불 을 질렀다. 그는 걷어찰 듯한 기세로 발을 휘둘러 익삼 씨의 팔을 뿌리쳤다. “청룡이 개천에 빠져서 가만히 엎뎌 있응깨 당신들 눈에는 비암장어로뿐이 안 보이요?” “그러고 그것만이 아니네. 내년이나 내후년쯤에 정식으로 유료 낚시터가 개 장된 연후에는 자네를 수금원으로 채용허신다는 말씸까장 기셨다네.” 익삼 씨가 허겁지겁 설명을 서둘렀다. “모든 게 죄다 자네 한 사람 맘먹기에 달린 일이지.” 최 사장은 여전히 차분한 말씨로 자신 있게 나왔다. 십리 길을 한달음에 뛰 어온 사람처럼 종술은 씨근벌떡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마침내 삿대질까지 곁 들이기 시작했다. “사람이 운수 불길혀서 잠시잠깐 이런 촌구석에 처백혀 있다고 그렇게 호락 호락 시삐 보들 마시오! 에이 여보쇼들, 저수지 감시가 뭐요, 감시가! 내가 게 우 오만 원짜리 꼴머심 푼수배끼 안 되는 것 같소? 나 임종술이, 이래 뵈야도 왕년에는 사장님 소리까장 들어본 사람이요!” 그것은 공연한 허풍 아닌 사실이었다. 동대문 시장바닥에서 처음에는 목판 부터 시작해 나중에 포장마차를 할 때라든지, 마지막으로 양키 물건에 손을 대기까지 종술은 그를 상대하는 사람들로부터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좌우간 사장님 소리를 곧잘 듣곤 했었다. 딸 하나를 낳아놓고는 호남지방의 야산개발 사업이 한창일 무렵에 마을에 가끔 나타나던 측량기사 보조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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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지 하고 눈이 맞아서 달아나버린 마누라까지도 처음에는 자기를 사장님이라 고 불렀었다. 식도 안 올리고 살림부터 차린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그가 한 때 단골로 드나들던 맥주 홀이었다. “무작정 화를 낼 일만은 아니네. 사람이 과거는 어쨌을망정 시방은 사세에 따를 줄도 알어야 장차 또 늘품수가 생기는 벱이지. 안 그런가? 한번 자알 생 각혀보소.” 지칠 줄 모르는 최 사장의 끈기에 힘입어 익삼 씨도 다시 설득에 나섰다. “내가 자네라면 나는 기왕 낚시질허는 짐에 비단잉어에다 월급 봉투를 암냥 혀서 한목에 같이 낚어 올리겄네. 삽자루 들고 땅띠기허는 배도 아니고 그냥 소일 삼어서 감시원 완장 차고 물 가상이로 왔다리 갔다리 허면서……” “완장요?” 그렇다, 완장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이 순간적으로 종술의 흥분한 머리를 무섭게 때려서 갑자기 멍한 상태로 만들어놓는 것이었다. “팔에다 차는 그 완장 말입니까?” 종술의 천치스러운 질문에 최 사장은 또다시 그 어울리지 않는 너털웃음을 호탕하게 터뜨렸다. “이 사람아, 팔 완장말고 기저구맨치로 사추리에다 차는 완장이라도 봤는 가?” 완장이란다! 왼쪽 팔에다 끼고 다니는 그 완장 말이다!

- 『완장』(현대문학, 2011) p.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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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s this guy’s name?” “Why do you ask?” “Why? Did you know ‘wai’ is a blanket in Japanese?” “Ok, ok, I got it. His name is Jongsool. Jongsool Lim.” “What kind of joker is he?” Iksam gave a wry grin in response and turned to his wife standing in the corner uncertainly, shooting her a look that said “leave.” “Well, I’d characterize him as a man without a single unlikable thing about him, however hard you try to find one. He doesn’t have any land to farm. He has no nest egg to start a business of his own. His bloated ego won’t allow him to hire on as a day laborer. So he’s just content to let his old mother cook for him and spends his days sitting on the embankment with his fishing line in the water as if he were on some kind of peaceful vacation without a care in the world . . .” “’A man without a single unlikable thing about him.’ What 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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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t expression to refer to a loser like that!” Choi said with a grin. Iksam smirked, too, at the absurdity of the description. “Does he have the grit to make him worthwhile?” “Grit doesn’t begin to describe him. He grew up drifting from town to town and getting into fights. He nearly beat the hell out of me many times for trying to stop him from fishing in the reservoir.” “Perfect!” Choi blurted out, slapping a palm on his knee. Iksam’s small eyes went wide at the sudden vehemence in his uncle’s voice. “That’s the man I’ve been looking for. Bring him over to me at once.” “But that’s just letting the fox guard the henhouse. You don’t know the risks you’d be taking by putting him in charge of guarding the reservoir . . .” “That only proves you’re still a ways from being in my league. I didn’t win my sixty years in the lottery. So shut the hell up and bring him over right now.” Iksam’s jaw dropped and stayed dropped for a moment as he suddenly caught on to the wicked plot his stingy uncle was planning. He called out to his oldest son through the closed door. “Taepoong isn’t back home from school, yet,” came back the voice of his oldest daughter, Hwa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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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n you scoot over to Jongsool and tell him I want to see him right now.” Choi had been a farmer in his previous life. He used to own quite a few acres of farmland near the city of Iri. When an industrial park came to that area, he sold off the land and scored a big windfall. With the hefty nest egg in his hand, his latent business sense began to shine through. He jumped into real estate to cash in on the boom that was sweeping over the city, which netted him a small fortune. He plowed that money into transportation, buying trucks in subsequent years to build the respectable trucking company he now owned. His acquaintances would often quip about his flair for business, saying how it would have been wasted if he had remained a farmer. “Is Jungok’s grandma home?” Jongsool heard someone, a girl, calling his mother through the gate or what remained of it. He peeled himself off the floor where he had been sprawled out, sitting up slowly. He opened the door lazily and looked out. It was Hwasoon, the village head’s daughter. “She isn’t. What’s up?” Hwasoon took a few cowardly steps back, looking frightened like a small animal facing its predator. “I have a message for Jungok’s grandmother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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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 I take it for her?” “It’s from my father. He wants Jungok’s father to come by my house.” Jongsool almost laughed aloud at the girl’s nervous fright. The message was for him. But she was trying to relay it to him via his mother, who wasn’t home at the moment. “Tell your father that Jungok’s father is tied up with something. So he needs to come over himself if he wants to talk to him,” he thundered. At this command, the girl took off, running out through the gate like a scalded cat. His gaze followed her, her long hair flying behind her and her round firm bottom swinging side to side. So adorable. I could eat her up in one bite, he thought to himself. A year earlier, Hwasoon had quit school after middle school. She had since blossomed, with obvious hints of mature young womanhood all over. Jongsool had heard the next-door kids babbling about a black sedan parked outside the village head’s house. Still, he was completely clueless as to what possible business Iksam could have with him. If that car belonged to that fella named Choi, then he could be here for only one reason — people sneaking in to fish in his reservoir. If so, Iksam was barking up the wrong tree. Jongsool hadn’t been anywhere near that reservoir all w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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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use he saw no point in freezing his butt off out there. Having downright rejected the village head’s summons, Jongsool burned with restless curiosity, which finally got the better of him. He was bored to tears, and his fists were itching for a fight, and his mouth hungry for a quarrel. As far as he was concerned, walking away from someone trying to pick a fight bordered on the unethical, particularly, as now, when he was spoiling for a scrap. He ambled out of his house, leaving it unlocked. There was nothing valuable to be stolen, no wife to be shanghaied. On his way over, he spotted a single crow standing alone in a barley field, which was now a vibrant green with the spring thaw just around the corner. The swarms of crows cawing loudly in the fields were long gone, having left for some unknown destination — except for this loner. Jongsool picked up a stone and threw it in the bird’s direction. It didn’t budge. Irritated, he let fly a torrent of stones, which finally sent the bird flying away. “My, Big Brother in this house has a knack for getting himself a new car on a village head’s wage,” Jongsool barked as he swept into Iksam’s courtyard. As if on cue, a door swung open, and Iksam poked his head out through the rectangular door frame, with a grin plastered on his face. “Either you stop calling me Big Brother or take that chip off your shoul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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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ing that as an invitation to come in, Jongsool stalked into the room. Out of the corner of his eye, he caught sight of a weaselfaced old man sitting on the far side of the floor. Feigning a total lack of interest in the old man, Jongsool started in on Iksam. “So, what did you want to see me about? You have something good for me?” “Cut the crap, and say hello to this gentleman here, Mr. Choi. He’s the CEO of a company, and he owns the reservoir, as you may already know.” “Look, with my luck lately I’m like a paper kite without a tail, but I used to make the squares tremble when I hung out around Dongdaemoon Market in Seoul. That place has got real highpowered CEOs, and I beat the crap out of many of them. Now, you introduce me to people who run a real-estate agency, a tobacco shop or some mom-and-pop stores and call them CEO? I laugh at them!” “No. This gentleman is nothing like that. He owns the largest transportation company in the city.” “Still, that doesn’t mean shit to me. He may be your CEO, but not mine.” Having made clear what he thought of the old man, Jongsool plopped down on the floor, cross-legged, his hands thrust into the front pockets of his pants, folded over his crotch. He held 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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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d high at an angle, his gaze focused on a corner of the ceiling, looking as if he were about to start whistling. Iksam looked dumbfounded beyond words at his act. Choi cleared his throat a couple of times and, with a dry laugh, spoke for the first time since Jongsool had entered the room. “Young man, you’re one hot-headed tough guy, like I heard.” “Let me make it clear to you. I’ve never fished on your reservoir these past few months. Naturally, I haven’t caught any of your fish, not even a minnow, let alone a carp,” Jongsool blustered, set on playing tough. “We aren’t accusing you of anything,” Choi burst into a roar of laughter, which deepened the hollows in his cheeks, his dark reddish face etched with deep lines from his previous life as a hard-working farmer. It was a laughter he had carefully cultivated since he had started selling houses. Yet, the general opinion among his acquaintances was that it sounded out of place coming out of his small-featured face. Maybe it needed more work. “You strike me as a person I can work with. I might as well put you in charge of guarding the whole reservoir. You’re welcome to fish there once spring sets in. Catch as many fish as you want. Would you be interested in making some dough while you’re at it?” Those words raised a red flag for Jongsool. He was certain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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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 fart was up to some kind of funny business. Fully alerted, he divided his suspicious look between the old man and his nephew. “Congratulations, Jongsool. Now, you can catch any fish you want, whether it is common carp for sashimi or crucian carp for a fish stew,” Iksam chimed in, his mouth curled in a twitchy grin. “That is, on the condition that you keep other anglers away from the reservoir. How does working as the watchman of the reservoir sound to you?” “Watchman!” Now, Jongsool knew what the two men were up to. “What the hell do you take me for?” He shot to his feet, trembling with anger. Alarmed, Iksam lunged forward, clamping his arms around one of Jongsool’s legs. “Hold your horses! You’re as quick-tempered as a groom who accuses his bride of cheating on their honeymoon. Now, sit back down. You can decide whether to be angry or not after you’ve heard us out,” Iksam said, tugging on Jongsool’s pants leg like a girl clinging to her boyfriend after a break-up. “I’m not asking you to work for nothing. I’ll pay you fiftythousand won a month, if you take the job.” Unfazed by Jongsool’s angry outburst, Choi began to lay out his offer without turning a hair. For a short guy, he was full of grit. His words, however, only added fuel to the angry fire alre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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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zing inside Jongsool. He shook Iksam off his leg with a vigorous kick. “Make no mistake! This person in front of you is a dragon, not the eel you think you see, although he’s lying in the gutter right now, licking his wounds!” “There’s more to the offer,” Iksam rushed to add. “Mr. Choi plans to keep you on as a fee collector once the reservoir is opened to the public as a paid fishing ground next year or the year after.” “That all depends on how you make up your mind,” Choi said calmly, still not a crack in his confident façade. Yet, Jongsool’s breath was now coming in short bursts, as if he had run miles without stopping. He shook his finger at the other two men as he spoke. “Just because I’ve fallen on misfortune and am rotting away in this goddamn backwater for now doesn’t mean you can treat me like a piece of dirt. What is a watchman, huh? A freaking watchman? So, you think I’m only good for a slave job worth fifty-thousand won a month? Then you’ve got another think coming, ‘cause as pathetic as I may look to you right now, I was once flying high, and people would call me ‘CEO.’” That wasn’t a lie. His beginnings at Dongdaemoon Market had been as a humble street vendor. Soon, however, he stepped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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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running a street-food cart. Then, he started trading in goods smuggled out of US military bases. In those days, people around him would frequently call him CEO, whether they meant well or ill by it. His wife had referred to him as CEO at first, too. That woman, after bearing him a daughter, had run away with a land surveyor’s assistant who had often shown up in their village when the development of a nearby mountain was in full swing. He had first met his wife in a beer joint he used to hang out at, and they had moved in together without getting married. “Don’t get so riled up, young man,” Choi said. “A man needs to be able to take stock of his present situation and adapt himself to it no matter how glorious his past was. Only then can he be ready for his next big break. Don’t you agree? So give my offer some serious thought.” Inspired by Choi’s undaunted persistence, Iksam joined again in trying to persuade Jongsool. “I’d jump at the offer if I were you. What’s to complain about earning a paycheck while you’re catching all the fish you want? It’s not like we’re asking you to take a shovel to dig a pit or something. All you’ll have to do is put on a watchman’s armband and stroll around the reservoir . . .” “Did you say an armband?” That word made Jongsool’s ears prick up. It hit him with such force it left him in a stupor for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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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ent. “You mean the thing you put on your arm?” The question was so naïve it made Choi burst into another roar of that deep-throated laughter, so ill-suited to his stature. “Where else do you wear an armband? Never heard of one you wrap around your crotch like a diaper!” “An armband!”, Jongsool exclaimed to himself. They were talking about that blasted thing you put on your left upper arm! • Translated by Lee Chang-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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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이 신지 Ishii Shinji Japan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만 5세 때 처음으로 쓴 소설의 제목은 「태풍」으로 첫 장편소설 『그네 타기』(2000)에 수록되었다. 1994년 『암스테르담의 개』로 데뷔했 으며, 2000년에 『그네 타기』를 발표한 후 현재까지 주로 장편소설을 발표하고 있 다. 『보리밟기 쿠체』(2003)로 쓰보타 죠지상(Tsubota Literary Award), 『어떤 하루』(2011)로 오다 사쿠노스케상(Oda Sakunosuke Prize), 『악성』(2016)으로 가와이 하야오 모노가타리상(Kawai Hayao Prize for Stories)을 수상했다. 이외 의 주요 작품으로는 『쥬제페, 사로잡힌 남자 이야기』(2002), 『플라네타리움의 쌍 둥이』(2004), 『포의 이야기』(2006) 등이 있다. 그 자리에서 소설을 쓰며 낭독하는 즉흥소설이나 축음기를 사용한 음악 이벤트 등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Ishii Shinji was born in Osaka, Japan. His first story, written at age five, is entitled “Typhoon” and featured in his first novel Once Upon a Swing. He made his literary debut with The Dog of Amsterdam in 1994. Since Once Upon a Swing in 2000, Ishii has published mostly novels, including: Kutze, Stepp’n on Wheat (2003), which won the Tsubota Literary Award; One Day (2011), which won the Oda Sakunosuke Prize; and Bad Voice (2016), which won the Kawai Hayao Prize for Stories. His other major works include: The Story of Giuseppe, A Man Prone to Everything, Twins in a Planetarium, and The Story of Po. Ishii is also actively engaged in ‘improvised storytelling,’ in which he recites a story as he writes it, and musical events where phonographs are u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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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밟기 쿠체 | 이시이 신지

보리밟기 쿠체

초록 잔디에는 정말 개가 있었다. 그것도 네 마리. 벨을 울리자 유난히 큰 놈이 어 슬렁어슬렁 다가와 바지 무릎의 불룩 튀어나온 부분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 를 맡았다. 가정부 차림새의 여자가 문 틈새로 얼굴을 내밀었다. 내가 용건을 말하자, “지금 선생님은 쉬고 계십니다. 얘기는 들었어요. 어서 들어오세요.” 안은 원형의 큰 방이었는데 벽 옆에 흰색과 검은색 소파가 여럿 놓였다. 2층 까지 훤히 뚫려 있고 계단이 발코니에서 현관 앞까지 물결치듯 굽이굽이 뻗었 다. 계단에 깔린 융단은 회색. 나는 새하얀 가죽 소파에 앉았다. 냉홍차를 가 져다준 가정부는 흘금흘금 불안정한 내 시선을 의식한 듯, “선생님은 인테리어에는 전혀 흥미를 갖지 않아서, 따님이 세간을 고르셨어요.” “그럼.” 나는 앉은 채로 말했다. “저 그림도 그 따님이?” “네.” 가정부가 대답했다. “아직 어렸을 때 그리신 겁니다.” 큰 방의 가장 깊숙한 장소에 그림이 딱 한 장 걸렸다. 야외에서 첼로를 연주 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연주자의 표정, 활을 잡은 자세, 그것을 바라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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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의 뒷모습. 세부적인 묘사는 진짜와 똑같았다. 그러나 거기에 색칠된 요란 한 그림물감이 그림의 분위기, 나아가서는 방의 정적 그 자체를 완벽하다 할 만큼 망가뜨렸다. 예술가의 가정에서 자라다 보면 역시 미적 감각이 어떻게 돼 버리나 보다. 나는 가정부에게 딸의 나이를 물어보았다. “올봄에 열아홉이 되셨어요.” 그녀는 퍼뜩 놀라 계단 쪽으로 눈길을 줬다. 나도 따라서 2층을 올려다봤다. 위아래가 붙은 암갈색의 북슬북슬한 옷에 푹 파묻힌 작은 사람 그림자가 계단 난간에 기대어 한발 한발 발 디딜 자리를 확인하면서 내려왔다. 키는 겨우 난간에 가슴이 올 정도. 그야말로 새끼 곰이 일어섰을 때의 크기밖에 안 됐다. 암갈색의 북슬북슬한 옷을 입은 남자는 짧은 다리를 큰 방의 융단에 간신 히 내려놓고는, 후우 하고 숨을 내쉬며 얼굴을 들었다. 옷 위에 파인 구멍 밖 으로 나온 얼굴은 공같이 동그랗고 두 눈은 희미한 안개가 낀 것처럼 하얗다. “누구야, 응? 누구지?” 그 사람은 높은 쇳소리를 냈다. 가정부는 아까부터 보여왔던 공손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친구 분이 소개하신 외국 분입니다. 방금 전에 도착하셨습니다. 선생님이 편하실 대로 하세요. 먼저 앞으로 묵으실 방으로 안내해 드릴까요?” “아무래도 괜찮은데.” 선생님이라 불린 사람은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하아하아 숨을 쉬었다. 가정부는 계속했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짐은 제가 날라둘 테니 그동안 선생님께서 젊은 분을 일터로 안내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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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러지.” 그는 그 자리에서 빙그르르 내 쪽으로 돌아 둘째 손가락을 조금 들고, “이 리 와.” 그러더니 큰 방을 가로질러 그 악취미 그림 쪽으로 재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굉장히 빨랐다. 나는 큰 걸음으로 뒤를 쫓았다. 일터는 지저분하다는 말 가지고는 어림없을 만큼 어지러웠다. 첼로의 현이 한쪽 언저리에 철조망처럼 똬리를 틀었고, 여섯 대의 첼로가 픽픽 쓰러져 관처 럼 굴러다녔다. 창문을 쭉 닫고만 지냈는지 멸치초절임 같은 냄새가 온통 코 를 찔렀다. 첼로 아래 바닥에는 똑같은 모양의 암갈색 작업복이 여러 장 벗어 던져진 상태였다. 남자는 방 한가운데에 놓인 다리 네 개 달린 둥근 의자에 올라타더니, “자아, 해.” “네? 뭘?” 남자는 천연덕스럽게 계속했다. “방을 치워줘.” 화가 조금 치밀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렸다. 남자는 내 가 첼로를 벽에 기대 세우고 현을 감는 동안 의자 위에서 몸을 흔들며 무―무 ―, 무무무― 하고 낮은 소리로 노래했다. 그리고 말했다. “바닥도 닦아.” 나는 가정부 아줌마를 불러 걸레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 암갈색 작업복을 집어 올리자, 바닥에서 한층 더 강하게 식초 냄새가 피어올랐다. “선생님이 첼로를 연주하시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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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걸레를 짜면서 외국어로 물었다. “글쎄.” 남자는 다리를 흔들흔들하면서 대답했다. “연주하겠지.” “선생님의 첼로는 이 세상에서 최고라고 생각해요. 우리 할아버지도 그렇게 말했어요.” “그거 굉장하군.” 남자는 귓불을 만지작거리면서, “야아, 대단해.” 가정부 아줌마가 물을 가득 채운 양동이를 가져다줬다. 나는 가볍게 인사하 고 다시 첼로 연주자를 향해, “저는 지휘를 배우러 왔어요.” “그래애? 그거 좋네.” “청소 담당으로 고용된 건 아닙니다.” “그거, 대단해.” “저기요.” 나는 걸레를 바닥에 두고, “좀 진지하게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남자는 건성으로 듣고 작업복 속에서 등으로 손을 뻗으면서, “아아, 손이 안 닿아. 여기 좀 긁어줘.” 나는 들으라는 듯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 남자의 뒤로 돌아가 북슬북슬한 작업복 위로 등을 긁기 시작했다. “직접! 직접!” 남자가 쇳소리로 말했다. 나는 등의 지퍼를 열고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섬뜩했다. 벗은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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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은 등뼈는 아래로 내려가면서 둥글게 굽어 있었다. “거기, 거기.” 드디어 남자는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며, “등을 잘 긁는구나. 고양이라고 한댔지? 좋아, 정했다. 널 동지로 넣어줄게, 고양아. 알겠니? 넌 지금부터 우리 동지야.”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가는 눈썹을 씰룩거렸다.

- 『보리밟기 쿠체』 (해냄, 2007) p.295~300

• 번역 : 서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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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tze, Stepp'n on Wheat Seeing Green

There were four dogs out on the lawn. And when I rang the bell, the largest of them wandered over and sniffed my knees. A thin woman stuck her head through the door, and I told her why I was there. “He’s resting at the moment, but he did mention you were coming,” she said. “Come on in.” She introduced herself as the housekeeper, and I followed her into a large circular room with black sofas and white sofas against the walls. A spiral staircase wound its way to the second floor, the steps covered in gray carpet. I sat down on a white sofa and looked around the room. The housekeeper brought me a glass of iced tea. “I’m afraid he has absolutely no interest in interior design,” she said, “so he lets his daughter choose everything.” “Did she choose that painting too?” I asked. “She actually painted that when she was a little girl.” The painting had immediately caught my eye. It was of 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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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air cello performance, and it seemed, even at a distance to suggest an incredible degree of detail—the expression on the cellist’s face, the way he gripped his bow, and the faces of people in the audience. But shockingly, the painter had chosen very loud colors that seemed to ruin the atmosphere of the scene—as well as the room where the painting was hanging! Does growing up in a family of artists have an effect on your aesthetics? “How old is the cellist’s daughter?” I asked. “She turned nineteen this spring,” the housekeeper replied, then glanced up at the stairs as a small man, covered from head to toe in fluffy brown fur, made his way down. Leaning against the railing, he took one careful step at a time. He was about as tall as a bear cub on its hind legs, and his chest only came up to the railing of the staircase. The furry man stepped onto the carpet with his short legs, then he let out a deep breath. The face sticking out through the hole of the outfit was as round as a ball. The eyes were foggy. “Who’s that? Who is it?” he asked in a high-pitched voice. “It’s our guest from abroad. The one who came by way of your friend’s introduction,” said the housekeeper, maintaining her courteous tone. “He just arrived. But if you’re busy, I could show him to his room first.” “Either way is fine,” said the man, his shoulders heaving as 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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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athed. “Why don’t I take the young gentleman’s luggage to his room while you show him your studio?” the housekeeper said. “Okay, I’ll do that then,” said the man. Then he turned to me, raised a finger slightly and said, “Follow me!” The cellist walked across the living room in the direction of that horrible painting. He walked very fast for someone who couldn’t see, and I had to hurry after him. To say that his workplace was a tip would be a gross understatement. There were cello strings everywhere, coiled up like hedgehogs, and there were six cellos that lay on the floor like coffins. It was clear the room hadn’t been aired out in a long time—it smelled like pickled sardines. There were also several fluffy brown outfits that lay under the cellos on the floor, as if the man had simply left them there after undressing. On reaching the round chair in the middle of the room, the man sat down and stretched out. “Go on then,” he said. “What do you mean?” I asked. “Go on, start cleaning my room,” he said matter-of-factly. Despite my annoyance, I rolled up my sleeves without a word. I hung the cellos on the wall and collected the strings from the floor. All the while, the man moaned in a low voice while swa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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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his chair. “Wipe the floor too, will ya?” he said. I asked the housekeeper for a rag, then picked the brown outfits off the floor, which had the effect of filling the air with a pungent vinegar smell. “Sir, you play the cello, right?” I asked, speaking in the foreign language as I wrung out the rag. “I guess,” he replied, dangling his feet. “Maybe I do.” “Well, I think your cello playing is the best in this world. My grandfather thinks so, too.” “That’s an amazing thing to say,” he said, fiddling with his earlobe. “That’s really quite something.” The housekeeper brought me a bucket of water. I thanked her and turned back to the cellist. “I’ve come here to learn how to conduct.” “That’s nice.” “But I haven’t come to be your cleaner.” “That’s quite something.” “Excuse me,” I said, dropping the rag to the floor. The cellist absentmindedly stretched his hand behind his back and into his overalls. “Ah, I can’t reach it. Can you scratch it for me?” he asked absently. I let out a sigh that was loud enough for him to hear. Then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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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ed to him and started scratching his back through his outfit. “Directly! Directly!” the man snapped. “Scratch it directly.” Doing what I was told, I pulled the zipper down in back. I was immediately caught by surprise. The man’s backbone was visible through his skin. It was coiled and curved along his back, not unlike the cello strings on the floor. I scratched his back. “There, there,” he said. “You’re a good backscratcher. You’re called Cat, right? Well, Cat, I’ve decided I’m letting you into our group. You’re part of our gang now, okay?”

From Kutze, Stepp’n on Wheat (Thames River Press, 2014) p. 175 ~196

• Translated by David Kar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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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Son Taek-su Korea

전남 담양 강쟁리 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어릴 때 꿈은 농부였 다. 별(辰)과 노래(曲)가 하나가 된 농(農) 자를 업으로 삼고 싶었는데 꿈이 좌절 되면서 시를 쓰게 되었다. 유년시절의 실향과 실패와 숱한 실연이 시를 쓰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1998년 한국일보에서 시로, 국제신문에서는 동시로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실천문학사 주간과 대표를 역임하였으며 지금은 노작홍사용문학관에서 일하고 있다. 시집으로 『호랑이 발자국』, 『목련전차』, 『떠 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등이 있으며 산문집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를 펴냈다. 신동엽문학상, 임화문학예술상을 받았다.

He was born in 1970 in Damyang, South Jeolla Province and grew up in Busan. His childhood dream was to become a farmer but turned to poetry after personal losses and failures. In 1998, he won both the Korea Daily New Writer’s Contest for poetry and the Kookje Shinmun New Writer’s Contest for children’s poetry. He served as the president of Silcheon Munhak literary magazine and currently holds a position at the Nojak Literary Association. His published works include A Tiger's Footsteps, The Magnolia Streetcar, The Drifting Dust are Shining, and his essay collection, Jasan-eobo: A Book that Embraced the Sea. He is the recipient of Sin Dong-yeop Literary Award and the Imhwa Literature Pr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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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 외 2편 | 손택수

거미줄 어미 거미와 새끼 거미를 몇 킬로미터쯤 떨어트려놓고 새끼를 건드리면 움찔 어미의 몸이 경련을 일으킨다는 이야기, 보이지 않는 거미줄이 내게도 있어 수천 킬로 밖까지 무선으로 이어져 있어 한밤에 전화가 왔다 어디 아픈 데는 없냐고,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매사에 조신하며 살라고 지구를 반바퀴 돌고와서도 끊어지지 않고 끈끈한 줄 하나 -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창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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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의 사랑 수묵은 번진다 너와 나를 이으며, 누군들 수묵의 생을 살고 싶지 않을까만 번짐에는 망설임이 있다 주저함이 있다 네가 곧 내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니 경계를 넘어가면서도 수묵은 숫저운 성격, 물과 몸을 섞던 첫마음 그대로 저를 풀어헤치긴 하였으나 이대로 굳어질 순 없지 설렘을 잃어버릴 순 없지 부끄러움을 잃지 않고 희부윰히 가릴 줄 아는, 그로부터 아득함이 생겼다면 어떨까 아주 와서도 여전히 오고 있는 빛깔, 한 몸이 되어서도 까마득 먹향을 품은 그대로 술렁이고 있는 수묵은 번진다 더듬 더듬 몇 백 년째 네게로 가고 있는 중이다 -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창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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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 외 2편 | 손택수

탕자의 기도 나무는 종교가 없는데도 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여러 종교를 가져보았지만 단 한 번 기도다운 기도를 드린 적이 없다 풀잎은 풀잎인 채로, 구름은 구름인 채로, 바람은 바람인 채로 이미 자신이 되어 있는데 기도도 없이 기도가 되어 있는데 사람인 나는 내가 까마득하다 가도 가도 닿을 수 없는 타향살이다 제자리걸음으로 천만 리를 가는 별이여 떠난 적도 없이 끝없이 떠나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바위여 누가 세상 가장 먼 여행지를 자기 자신이라고 했던가 명소란 명소는 다 돌아다녀 봤지만 흔들리는 꽃 한 송이 앞에도 당도한 적이 없는 여행자 하여, 나는 다시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이 부끄러움이나마 잊지 않고 살게 해 달라고 이 생에 철들긴 일찌감치 글러먹었으니 애써 철들지 않는 자의 아픔이나마 잊지 않게 해 달라고 -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창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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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 듣는시간 | Performance Readings

Spiderweb If you place the mother spider a few kilometers away and poke her baby, the mother’s body twitches. Strung without strings over thousands of kilometers a see-through web is attached to me too. A call arrives in the middle of the night. Are you okay? I had a nightmare. Please be careful. A sticky string strung half-across the globe. Hung to me, unbrok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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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poems | Son Taek-su

Ink Love Ink bleeds, connects you to me. Who wouldn’t want to live a life of ink? Ink bleeds indecision. Second thoughts. It’s not possible for you to be me. Even when ink pushes boundaries it stands by the beliefs it made when it first mixed with water. With an innocence it unleashes in itself, I can’t harden like this. I can’t lose the thrill. What if I could cover my embarrassment milky-white? What if that’s where distance comes from? An already-arrived shade approaches, becoming one body, remote, undulating ink, fragrant, spreading, feeling, feeling backwards hundreds of years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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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 듣는시간 | Performance Readings

The Libertine’s Prayer Even though trees have no religion, they look like they’re praying. I’ve tried many religions but I haven’t once prayed real prayer. Leaf as leaf, cloud as cloud, wind as wind, just as everything is already itself prayer becomes prayer without praying, but human me finds me to be so far away. I go and go and never arrive. I’m an exile. Star that has gone a million miles by walking in place, Rock that leaves endlessly without leaving, returning to itself, who was it that said the farthest place to reach was the self ? I’m a tourist that has been to every landmark. I’ve seen all the attractions, but I’ve never stood in front of a single trembling flower. So I pray again. Let me not forget this shame. It’s far too late for me to grow wise in this life, so Let me not forget this pain of the human who refused to mature. • Translated by Jake Levine Hedgie Choi 우리를 비추는 천 개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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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poems | Son Taek-su


소설/시 듣는시간 | Performance Readings

최승호 Choi Seung-Ho Korea

춘천에서 태어났다. 사회의 부조리와 생태와 선불교에 관심을 갖고 시를 썼다. 출 판사 편집자로 일하면서 문학계간지 《작가세계》, 《현대시사상》, 어린이잡지 《민음 동화》 를 창간했다. 환경운동연합에서 10년 간 환경운동에 참여한 뒤,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시를 강의했다. 시집 『대설주의보』로 오늘의 작가상, 『고슴 도치의 마을』로 김수영 문학상, 『그로테스크』로 대산문학상을 받았다. 번역시집 으로 『대설주의보』(프랑스), 『그로테스크』(스페인),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 인 나』(스페인)가 있다. 시선집 『얼음의 자서전』이 독일, 일본, 아르헨티나에서 번역 출간되었고, 생태시선집 『변기 속의 꽃들』이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열일곱 권의 시집 외에 여러 권의 어린이 그림책, 말놀이 동시집. 카툰 동시집 등이 있다. 작곡가 방시 혁과 『말놀이 동요집』을, 뮤지와 『랩 동요집』을 함께 작업했다.

Born in Chuncheon, Choi started writing poetry based on social injustices, inspired by Zen Buddhism. While working as an editor for a publishing company, he established literary magazines such as Jakga Segye and Hyeondae-si Sasang. He also established children’s literary series called Minum Donghwa. After serving as an environmental activist for ten years, he joined the faculty of Soongsil University, teaching poetry. He is the recipient of various literary awards including the Today’s Writer Award for his poetry collection Snowstorm Warning, the Kim Soo Young Literary Award for Hedgehog Village, and Daesan Literary Award for Grotesque. Snowstorm Warning has been translated in French, and Grotesque and I am Everything Through Nothing in Spanish. His poetry collection, Autobiographies of Ice, was translated and published in Germany, Japan and Argentina. His eco-poetry selection, Flowers in the Toilet Bowl, was translated and published in the U.S. His other publications include seventeen volumes of poetry selections, children’s poetries, picture books, and comic poetries. He also collaborated with music composer Bang Sihyeok and producer Muzie to publish poetry books in 우리를 비추는 music and rap formats for children. 천 개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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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는 과로사한다" 외 2편 | 최승호

백수는 과로사한다 죄의식은 죄 에 혹사당하고 성기는 성 에 혹사당하고 재벌은 돈 에 혹사당한다 항문은 똥 에 혹사당하고 시체는 장례 에 혹사당하고 구도자는 도 에 혹사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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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 듣는시간 | Performance Readings

애국자는 국 에 혹사당하고 백수는 과로사한다 - 『방부제가 썩는 나라』 (문학과 지성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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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는 과로사한다" 외 2편 | 최승호

내 눈에 지느러미를 다오 나는 바라는 것 없이 바라보려고 애 쓴다 어부들이 긴 칼로 상어 지느러미를 도려낼 때 상어들이 폐기물처럼 바다에 던져질 때 나는 바라는 것 없이 바라보려고 애 쓴다 벌목으로 토막난 통나무들처럼 상어들이 지느러미 없는 지느러미를 꿈틀거릴 때 아무것도 물어뜯지 못하고 바다를 물어뜯을 때

나는 바라는 것 없이 바라보려고 애 쓴다 바라는 것이 바로 고통이기 때문이다 나는 바라본다 휘둥그래진 눈으로 아가미를 벌름거리며 무력하게 무력하기 짝이 없게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지느러미 없는 상어들을 지느러미 없는 눈으로 바라본다 - 『방부제가 썩는 나라』 (문학과 지성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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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 듣는시간 | Performance Readings

누란(樓蘭) 왕국 양파 껍질을 벗기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살가죽이 아직 마르지 않았다는 증거 죽은 왕의 텅 빈 눈두덩뼈에 양파를 올려놓아도 왕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양파 껍질을 벗기면서 코를 훌쩍이는 것은 혈관이 아직 마르지 않았다는 증거 죽은 왕비의 무너진 코에 양파를 올려놓아도 왕비는 재채기를 하지 않는다 양파 껍질을 벗기면서 아직도 무슨 생각을 한다는 것은 뇌수가 아직 마르지 않았다는 증거 죽은 공주의 손가락뼈에 양파를 쥐어 주어도 공주는 사막의 오아시스 왕국을 기억하지 못한다 - 『방부제가 썩는 나라』 (문학과 지성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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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poems | Choi Seung-Ho

The Out of Work Are Worked To Death Guilt is overworked by sin. Sex organs are overworked by sex. The ultra-rich are overworked by money. Anuses are overworked by shit. Corpses are overworked by funerals. The seekers of truth are overworked by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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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 듣는시간 | Performance Readings

The patriotic are overworked by the country and the out of work are worked to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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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poems | Choi Seung-Ho

Give Me Fins for Eyes When the fishermen take their long knives and slice off shark’s fins, when sharks get tossed into the sea like waste, I try to watch without want. When sharks wriggle their finless fins like the logs of felled trees, when sharks unable to bite anything bite into the sea, I try to watch without want. I try to watch without want because want is pain. I watch wide-eyed. Gills flared, helpless, hopeless, finless sharks sink into the dark. I watch with finless e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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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 듣는시간 | Performance Readings

The Loulan Kingdom Crying while peeling onions is proof that your flesh hasn’t dried out yet. Even if you place onions on the hollow eye sockets of the dead king, the king doesn’t cry. Sniffling while peeling onions is proof that your veins haven’t dried out yet. Even if you put an onion inside the collapsed nose of the dead queen, the queen does not sneeze. Having any kind of thought while peeling onions is proof that your brain hasn’t dried out yet. Even if you put an onion on her finger bones, a dead princess doesn’t remember the oasis kingdom of the desert. • Translated by Jake Levine Hedgie Choi 우리를 비추는 천 개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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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반 펀 Mai Van Phan Vietnam

베트남에서 태어난 시인이다. 『지붕 없는 창공(Firmament Without Roof Cover )』, 『사찰 뜰에서의 제초(Grass Cutting in a Temple Garden )』, 고형렬 시인과 함께 낸 한국어 시집 『대양의 쌍둥이』 등 16권의 시집을 출간했으며 작품이 25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2010년 베트남 작가 협회상(Vietnam Writers' Association Award), 2017년 스웨덴 시카다 문학상(Cikada Literary Prize of Sweden) 등 국내외 문 학상을 다수 수상했다.

Mai Van Phan was born in Vietnam. He has published 16 poetry books. Among his books of poetry are Firmament Without Roof Cover (A Ciel Ouvert), Grass Cutting in a Temple Garden (Ra vườn chùa xem cắt cỏ), and Born as Twins in an Ocean (대 양의 쌍둥이), which is a poetry book in Korean written with a Korean poet Ko

Hyung-Ryul. Poems of Mai Van Phan are translated into 25 languages. He has won a number of Vietnamese and international literary awards including the Vietnam Writers' Association Award in 2010 and the Cikada Literary Prize of Sweden in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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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속의 돌멩이" 외 2편 | 마이 반 펀

시내 속의 돌멩이 물이 흘러가도록 숨죽이며 있는데 계속 소용돌이치며 돌멩이를 차갑게 한다 봄은 어떠할까? 꽃들이 길을 따라 펼쳐지고 새소리가 졸졸졸 내려앉는다 나무 그림자가 돌멩이를 때때로 흐리게, 밝게 하는데 어찌 저 야생 꽃 색이 영원히 평안하리오 돌멩이는 굽이치는 물결에 아랑곳하지 않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몇 마리의 듀크 원숭이가 나무 그림자를 위아래로 흔들고 빗방울이 사방으로 튀니 가장 깊은 곳도 젖는다 구름이 구름 위에 머물고 잘 익은 구아바 향이 숲으로 파고든다 고슴도치 한 마리 털을 세우고 죽은 체한다 이때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사람들아 그곳에서 편히 지내도록 두어라.

• 번역 : 배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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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 듣는시간 | Performance Readings

아침 햇살의 무정함 물은 산자락 아래 괴이고 조약돌은 큰 바위 위에 싸인다. 천애의 고독 속에 미동도 없이 지난 밤에 비가 내렸는데 폭우를 전후하여 누가 저기 앉았었던가 괜스레 그대가 그립다, 몹시도 그립다 감히 다른 곳을 보러 갈 수도 없으니 푸른 하늘이 내 발굼치를 파고 들도록 해야지 폭우가 쏟아진다, 정말 큰 폭우다 조약돌을 목욕시켰다. 이 단순한 이미지가 나의 삶을 사랑하게 하였다 마치 이른 아침 햇살이 산봉우리를 싸고 돌듯이 온 땅을, 모든 나무를 속속들이 비추도록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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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속의 돌멩이" 외 2편 | 마이 반 펀

제 2장 : 진홍색 (長歌 “재처리 시대”에서 인용) 이울어 가는 등불이 피의 강을 깨운다. 피와 피가 서로 섞여 농도가 짙어지고 영혼은 피폐해 간다. 붉은 망상. 마치 누군가 내 목을 끈으로 묶어 어둡고 눅눅한 좁은 복도를 질질 끌고가는 것 같 다. 고개를 치겨드니 목이 콱 막혔다. 때때로 땅위에 있는 못이나 유리 파편 위에서 몸 이 비 틀리는 것 같다. 타는 듯한 아픔에 피투성이가 되어 뒹굴었다. 피가 몸을 더욱 미 끄럽 게 했다. 진흙속의 장어처럼 내 몸이 미끌어져 나갔다. 나는 깍아놓은 동물의 털더 미로 몸을 던졌다. 목에 감긴 줄이 금새 풀어지더니 내 뒤의 다른 사람을 질질 끌고 가 는 데 쓰이어졌다. 보초 교대가 시작됨을 알고, 숨을 참고, 얼굴을 묻고, 꼼짝않고 죽 은 체 하였다. 보초 교대때 먼저 섰던 보초가 새 보초에게 뭔가 인계하는 것을 목격하지 못했네. 새 보 초는 망루에 서 있을 뿐이라. 나는 가끔, 이게 도망갈 구멍이자, 기회요, 보초의 부 주의요, 책임감 결여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저들이 보초 수칙을 잘못 수행하고 있는 것 이겠지. 아 니면 아마도 보초들의 통상적인 일이거나 버릇이겠지. 왜냐하면 오랜동안 이 망루에서 큰 일이 벌어진 적도 없었고, 심각한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지. 나는 보초 뒤로 기어 올라가 목덜미를 힘차게 내리쳤지. 보초를 망루 창에 묶고, 그의 군복 을 입고, 아직 온기가 있는 동물들을 풀어주었지, 생존하기를 기대하면서. 나는 재빨리 탈출하였다. 나는 식물이 누렇게 뜨고, 빈혈이 뚝 떨어지는 악몽을 꾼다. 마른 잎이 나를 혈액 상실, 혈액 경시, 혈액 사기, 혈액 이용, 혈액 칭송의 시대로 데려 간다. 잎 줄기를 오르는 성별 을 알수 없는 망령이 핏방울이었다고 밝힌다. 근처의 나무와 꽃새들은 머리를 흔들고 는 그 슬픈 망령과 더 이상 말타툼하지 않는다. 핏방울은 별빛을 품은 이슬 방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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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 듣는시간 | Performance Readings

침의 투명한 빗방울, 아기의 턱에 흘러내리는 오렌지 쥬스같다. 그것은 희망과 기대로 가득찬 눈 언저리에 괴인 눈물 방울이어라. 수 차례에 걸친 토지개혁에 대한 비난이 있은 후 마을회관 넓은 마당에는 피가 뿌려 졌 었지. 자신을 강제로 성노예로 삼았다고 시아버지를 잘못 기소한 며느리는 이제 그가 묻힌 공동묘지에 누워 안식하고 있다. 그녀의 혼령은 자주 시아버지의 관을 노크하며 매일 저녁 죄송하다고 사과를 한다. 시아버지는 꿈속에서 돌아와 살아있는 이들에게 말 하기를, 아주 청명한 날을 잡으렴, 그 슬픈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들려주게시리. 그리 고 는 그 이야기를 다시는 하지 않았다네. 피의 꿈은 죽을 때까지 충성했던 애국전사들이 갇혔던 감방 독실에 지독한 냄새를 풍 겼다. 그들은 자신들이 택한 이상을 절대적으로 신봉했고, 민족을 향한 최고 아름다운 꿈을 꾸었었지. 그들은 자신들의 이상을 배신한 사람들, 진정한 피의 길을 더럽힌 동지 들을 목격하였네. 꿈속에서 나는 독실 감방 자물통이 갑자기 툭 열리는 것을 보았지. 지독한 냄새는 여전한데 애국전사들은 떠난지 오래로구나. 피가 솟구쳐 오르고, 전장에서 피 위에 피가 쌓여만 갔다. 원시림에 흘린 피는 시신과 함께 부패되었네. 강과 개천, 연못에 흘려진 피는 시신을 부풀게 했지. 많은 사람들이 피 를 보았고, 볼 수 없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 운명이 다 했거나 종말을 당한 것이지. 피가 분출되었고, 시체속에는 내출혈이 되었지. 피는 빨리 응고 되거나 응고될 수 없지. 피는 세척되고 흔적을 지울 수 있고 검은 흙속으로 스며들 수 있고, 배수관 속으로 사 라 질 수도 있지. 피의 손짓은 피를 부르나 볼 수는 없는 것이지. 오늘밤 사람들은 검붉은 강이 흘러가는 동안 단잠을 잔다. 사람들은 입을 벌린채로 자 고, 팔다리를 쭉 뻗고 자고, 마치 꽃이 꽃잎을 여미고 자듯 자고, 썩은 과일 처럼 자 고, 따오기 처럼 자고, 죽은 듯이 자고, 머리를 숙이고 자고, 서서 자고, 앉아서 자고, 끄덕 이며 자고, 자며 먹으며 하면서 자고, 가슴을 안고 자고, 팔베게를 하고 자고,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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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속의 돌멩이" 외 2편 | 마이 반 펀

사람에 다리를 올려 놓고 자고, 엎드려 자고, 오른쪽으로 누워 자고, 침을 흘리며 자 고, 신음 소 리를 내며 자고, 눈을 뜨고 자고, 문을 열려고 걸어가며 자고, 오줌을 싸 며 자고, 몽정 (夢精)하며 자고, 이를 갈며 자고, 갑자기 탁탁 소리를 내고, 코를 천둥 소리같이 골며 잔다네. 기억이 돌아와 잊었던 과거를 찼았네. 스파이크 판의 뾰쪽함, 탄환의 둔탁한 폭발소리, 자신의 몸으로 총가(銃架)나 총안(銃眼)으로 삼은 사람들, 심문(審問) 책상 위에 말 라 버린 잉크 자국, 회의록 서류 더미, 봉인된 투표함, 급여인상 파티, 문안차 병원 방 문, 퇴직을 앞둔 사람에게 화환 선물, 마지막으로 친척 얼굴 보기, 막 승진한 사람에 축 하 하기... 모든 것이 연극에서 정식으로 배역을 맡길때 처럼 냉랭하다. 연극 감독은 갑 자기 나타나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더니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운다. 그는 곧바로 주최자 로, 선지자로, 투시력을 가진 자로 둔갑한다.

• 번역 : 안경환

 윤문 : 김성규

마이반펀의 메모 :

장가(長歌) “재처리의 시대”는 20세기부터 지금까지 내 조국과 시대의 비극, 잘못된 역 사 에 대하여 쓴 것이다. 시는 자문(自問)형식과 독자적인 비평 형식으로 쓰여졌다. 누구를 대신하여 쓴 것이 아니고 솔직하게 썼다. 작품의 구조에 따르면 “재처리의 시대”를 따라 흐르는 피의 강이 있다. 어둡고 검은 과거에서 나온 피는 진홍색으로 변해 현재의 주홍색 으로 변했다. 피의 강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고, 역사적인 사건들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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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 듣는시간 | Performance Readings

The Rock Inside Stream Bed Be quiet for water flowing Swift, deep, unending, icy cold over the rock. Is there the Spring? Festoon climbing the trail Voice of birds resounding down gurgling Shadows of trees tremble on the rock, shade or sun-How can the colors of wildflowers could unscathed forever? The stone closes its eyes in calm to let the water sweep across it. Langurs with ashen thighs 1) Cause the tree-shadows again to bob and rise; Gentle drizzling rain disordered flies Creeping into the deepest crevices. Clouds stop where the clouds... The fragrant odor of ripe guava creeps through the forest A porcupine ruffles up its quills, goes still. Above all in this moment Let’s stay put at the spot where you are 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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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d of gibbon (vọoc chà vá chân xám or ‘vọoc Java (?) chân xám’) Scientific name: Pygathrix cine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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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poems | Mai Van Phan

Early Morning Sun Water collected at the mountain's feet A pebble was lying on a high rock Without blinking in pristine solitude Last night it rained Who had been sitting there before or after heavy rain All of a sudden I missed you, truly missing I dared not look elsewhere Or let the blue sky penetrate my heels A heavy rain, truly heavy Had given a bath to the little pebble This single image by itself Made me wildly enraptured with life It seemed the early morning sun was enveloping the mountaintop And rendered transparent the earth, and the tr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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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II: DEEP RED (From long poem “Era of Junk”) A fading night lamp wakes up a river of blood. Blood mixed with blood and the foul trickles down. A red obsession. It’s like — someone has just tied a rope around my neck and dragged me through a narrow corridor into the murky and dank. I turn my head up and feel my throat block. From time to time my body impales upon a nail or a shard of glass on the ground. I am scraped, bloody with such burning pain. Blood makes my body slippery, and I slither like an eel on mucky mud. I am heaved into a heap of fleeced and bled-out animals. The rope around my neck is quickly removed to reuse in the dragging of other bodies behind me. I see the change of the guards beginning, so I hold my breath, lie face down, stay motionless, fake my own dead body. At the changing of the guard, I do not see the guard from the previous shift hand over anything to the one from this shift. The new soldier simply stood in his position. Perhaps this is a loophole, an opportunity, a slip, a lack of responsibility. Perhaps they executed the process incorrectly. Or maybe it has become the guards’ routine or habit, because for a long time there have been no big mistakes at this watchtower, no slip-ups to cause a serious issue. I crawl up behind the unsuspecting guard and unleash a mighty blow to the back of his head. I tie him to a watchtower window, don his uniform, release the still-warm animals, hoping they will survive. I 우리를 비추는 천 개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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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poems | Mai Van Phan

quickly escape. I suffer through a nightmare where vegetation is turning yellow and withering, raining down bouts of anemia. Dried leaves bring me to an era of blood loss, an era of blood undervaluation, an era of praise for blood in its exploitation. A soul of unknown gender climbs a leaf stem and admits it was once a drop of blood. A nearby tree and flowerpecker shake their heads and withdraw from arguing with a sad soul. That drop of blood then has the same shape as a dewdrop bearing lights from night stars, a raindrop fresh from the morning, a streak of orange juice as it dribbles down a baby’s chin. It is a teardrop settling in the corner of an eye full of hope and expectation. Blood has been spilled in vast puddles on the yard of the communal village house after sessions of public denouncement in the land reform period. A woman who once falsely accused her father-in-law of forcing her to be his sex slave, is now laid to rest in the same cemetery where he has been buried. Her restless soul comes over to knock on his casket, apologizing to him each evening at dusk. He came back to the living in a dream, telling them to choose one of the brightest days in late spring to retell his sad story, just once. Then never to talk about it again. The dream of blood reeks of a strong odor specific to solitary confinement cells, those used for patriotic soldiers, loyal unt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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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 듣는시간 | Performance Readings

death. They believe absolutely in the ideals that they have chosen, and they dream of the best for the people and Motherland. They bear witness to those who betray their own ideals and comrades by deliberately tarnishing their true path of blood. In my dream, I see the locks on the doors of the solitary confinement cells spring open. The strong odor is still there, but the patriot soldiers have long gone. Blood erupts. Blood builds up, blood upon blood, in battles. Bled out forests are filled with decaying bodies. Bled out rivers and streams know bodies, ponds and lakes see bloated bodies, sink or float. Blood is spilled when many can witness it, and even when nobody can see it. Fates end themselves and are forever finished. Blood erupted, and bodies used to bleed internally. Blood clots fast and cannot clot. Blood is washed, erased of all traces, blood seeps into the dark soil spaces, escapes through veins of sewage. Blood waves and calls to each other, bloody without seeing. Tonight everyone sleeps on into night, while a dark red river flows by. People sleep with their mouth open, sleep with their arms and feet extended, sleep like a flower closing its petals, sleep like rotten fruit, sleep in an ibis-like pose, sleep like dead, sleep with their heads bent, sleep standing, sleep sitting, sleep while working, sleep while holding food in their mouths, sleep embracing their chests, sleep leaning their heads on their arms, sleep with their limbs on somebody next to them, sleep face-down, sleep on their right si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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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poems | Mai Van Phan

sleep drooling, sleep moaning, sleep with their eyes open, sleep while they walk to the door and open it, sleep while peeing, sleep while having a nocturnal emission, sleep — gnashing, suddenly passing wind, snoring like thunder. Memories arrive, taking back the space of the past. Sharp ends pointing up from spike-boards, a dry explosion from each bullet, people using their own bodies as gun mounts or to plug crenelles, ink stains dried on an interrogation table, piles of numbered meeting minutes, a sealed ballot box, a celebration for a salary increase, a trip to the hospital to visit the sick and the dying, giving flowers to a retiring person, looking at the face of a relative for the last time, congratulating someone just promoted… All are showing up coldly, as exact as the casting chart for a play. The play’s director suddenly appears like a magician, smiles mysteriously then goes out for a cigarette break. In an instant he becomes an organizer, a clairvoyant, a prophet.

Mai Văn Phan’s note:

That is the long poem “Era of Junk”. I wrote about the mistakes of history, about the tragedies of the era and of my nation since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until now. The poem was written in the form of self-questioning and a criticism of an individual. It was written honestly and not on behalf of anyone. According to the structure of the work, there is a river of blood flowing along the "Era of Junk". Blood from the dark black past turned into deep red and then scarlet in the present. The river of blood kept flowing and awaken historical events. Thousands of Mirrors Reflecting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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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로드리게스 누녜스 Victor Rodriguez Nunez Cuba/USA

쿠바 하바나에서 태어난 시인, 언론인, 문학 평론가, 번역가 겸 학자이다. 『한밤 의 기록 I』(2006), 『한밤의 기록 II』(2007), 『해빙』(2013), 『붉은 곡창으로부터』 (2013), 『곧 [혹은 핏방울]』(2018) 등의 시집이 있다. 그의 시 작품은 오랜 기간에 걸쳐 쿠바의 데이비드상(1980), 코스타리카의 EDUCA상(1995), 스페인의 프라이루 이스 데 레온상(2005), 레오노르상(2006), 하이메 힐 데 비에드마상(2011), 알폰소 엘 마그나님상(2013), 로에베 시문학상(Loewe Foundation)(2015) 등 스페인어권 의 주요 상을 받았다.

Victor Rodriguez Nunez was born in Havana. He is a poet, journalist, literary critic, translator, and scholar. Among his books of poetry are Midnight minutes I (2006), Midnight minutes II (2007), Thaw (2013), From a red barn (2013) and Right away [A drop of blood] (2018). His poetry has long been the recipient of major awards throughout the Spanish-speaking world including the David (Cuba, 1980), the EDUCA (Costa Rica, 1995), and in Spain, the Fray Luis de León (2005), the Leonor (2006), the Jaime Gil de Biedma (2011), the Alfons el Magnànim (2013), and the Loewe Foundation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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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기록" 외 2편 | 빅토르 로드리게스 누녜스

한밤의 기록 어쩌면 너를 구할 수 있을 것도 같아 홀로 영혼 없는 나의 그림자를 불러낸다 내 얼굴도, 감출 욕망도 없는 밤 거울 속에서 나를 찾는다 욕실의 전신 거울에는 안개 자욱하고 어느 것 하나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다른 실체들처럼 유리와 수은은 희미한 그림자 속으로 흩어진다 세상이 시선들로 더러워지고 갈라졌다면 대체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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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 듣는시간 | Performance Readings

기원 결국 나는 이 이발소의 유령이다 그림자가 갉아먹은 거울들 끔찍한 의자들 지난 허리케인 때 박살난 창문들 녹슬어 반세기 된 턱수염을 깎는 동안 너무나 많은 것들을 물어대는 이발사들 가위가 나를 겁낸다 나는 고집불통이다 나는 수탉들이 울어대는 다른 꿈에서 왔다 도둑 너구리 욕실 위생 이국적이다 화산조차 없다 눈발의 숯검정 나는 침묵 속의 푸른 자국이다 갓 깎은 잔디 불꽃나무 의심의 경이 거울 속에는 빛에 약탈당한 채 나를 응시하는 누군가가 있다 정체성의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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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기록" 외 2편 | 빅토르 로드리게스 누녜스

윤이 나는 유리 우리가 똑같지 않다는 확신으로 체크무늬 셔츠를 입는다 둥그런 콧수염 우리는 계단에서 굴러떨어진다 다시 한번 추방당하고 구어체주의자라는 이유로 머리가 박박 밀린 채 이 시대와 세계관의 불화 창문으로 몸을 날리지도 양수(羊水)에서 조난당하지도 무모한 학교 정원에 마라부 나무1)를 심지도 못해 난 어정어정 넓지만, 그러나 낯설지 않은 이 세상을 떠돈다 나는 눈발 속에서 뭉그적댄다 어깨에 대왕야자를 얹고 죽겠다 그러나 향수에서 되살아난다 무엇보다 난 누구에게도 아무런 빚이 없다 앤솔러지는 나의 조국이 아니다 내가 토호시스타2)임을 잊지 마라 중요한 것은 생존 경제로 얻은 페이지들뿐

1)

아프리카 원산의 미모사과 나무로 쉽게 번식되어 울창한 숲을 이루며 목재는 매우 단단하여 땔나무나 숯을 만 드는 데 사용됨.

2)

1970년대에 구어체에 반발했던 쿠바의 시 경향으로 대지의 시(Poesía de la tierra)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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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 듣는시간 | Performance Readings

또 하나의 대조 악절 나는 자유로울 것이다 이발사들은 잠든 내 팔의 무중력 앞에서 흔들린다 나는 그들의 장갑 아래서 습기를 볼 수 있다 극도로 섬세하게 작업하는 눈썹 나의 혈관은 깊고 그 무엇도 나를 피 흘리게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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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기록" 외 2편 | 빅토르 로드리게스 누녜스

악천후 하수도의 영혼을 가진 비 물거품을 토해내며 지나가는 호박색 트럭 이발소 앞에 고이는 옹색한 물 볼레로 재킷만 두른 정처 없는 자전거 여행자 천둥이 이름을 불러도 사과는 비를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 무엇도 비가 그치길 원치 않고 모두 비의 메마른 행로를 따라간다 캄파나리오 가(街)에 비가 내렸을 때처럼 이 시(詩)에서는 날이 푹푹 찌리라 그리고 아스팔트에서 무지개가 떠오른다 적황색 꽃잎들 아무도 비춰보지 않은 거울들 태양은 음절들을 거둬들이기 시작한다 구름 조각들 빛나는 상처들 발작적인 꿈 시계는 씨앗을 흩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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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 듣는시간 | Performance Readings

씨앗은 오직 너의 엉덩이로만 휘저어진 미풍 속에서 발아한다 담벼락 위 종려나무 보리수 화원 모든 것이 꽃을 피울 것이다 비가 으름장을 놓으면 노란 트럭이 다시 지나가리라 음악의 먼지 폭풍 목공소 벤치 위에 윤기 없는 태양이 내리쬔다 벰베 축제1)를 준비하는 막사에서 쳐다본 경찰의 얼굴이 빛난다 그러나 으름장을 놓으며 마침내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자갈 밀림이 포유동물들을 팽개친다 자주색 망토는 구별의 표시일지 모른다 흘려 쓴 글자 노소를 불문하고 사용 중인 홈통의 물줄기를 두고 다툰다

1)

북을 치는 특징이 있는 아프리카 기원의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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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기록" 외 2편 | 빅토르 로드리게스 누녜스

분명 기적이다 파도 치는 산 라사로 가(街)에서 누군가가 판지에 올라타 서핑을 한다 그들이 미래의 폐허를 견뎌낼 것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 번역 : 김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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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 듣는시간 | Performance Readings

Midnight Minutes/ 7 (excerpt) I invoke my unsouled shadow alone because maybe it can save you I search for me in the night mirror where I’m faceless no desires to hide There are too many mists in the bathroom moon not one thing to tell the truth The glass and mercury clear like any other essence in the watchful shadow So where to look if the world is cracked and dirty with gla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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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poems | Victor Rodriguez Nunez

origins after all I’m a phantom in this barbershop mirrors eaten away by shadow chairs gutted windows x-ed from the last hurricane barbers asking too many questions while they rustily cut beards half a century old scissors dread me I’m hard-headed I’m from another dream of roosters crowing raccoon bandit hygiene of bathrooms both exotic not so much as a volcano a sooting of flurries I’m a blue mark in the silence freshly cut grass flamboyant trees wonders of doubt in the mirror there’s someone gazing back ransacked by the light an old acquaint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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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 듣는시간 | Performance Readings

identity’s distress glass polished certain we’re unequal we put on a checkered shirt and stumble down the stairs uprooted once more crew-cut for being colloquial failing to square these times and worldview for not jumping out the window or shipwrecking in amniotic fluids or planting marabu bushes in the academy’s reckless garden unrushed I wander through this world ample but not alien I linger in the snow a royal palm on my shoulder I die but revive from nostalgia most of all I owe nothing to nobody my homeland isn’t anthologies don’t forget I‘m a tojosista all that counts are the pages salvaged from a bare bones economy one more antistrophe and I’m free the barbers sh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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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poems | Victor Rodriguez Nunez

before the weightlessness of my sleeping arm I can see the damp beneath their gloves eyebrows doing their subtle work my veins are deep nothing makes my blood 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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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 듣는시간 | Performance Readings

inclemencies rain has the soul of a sewer the amber truck passes by spewing foam water fallen on hard times stagnates in front of the barbershop wandering cyclist wrapped only in a bolero though thunder names it the apple doesn’t heed the rain nothing waits for it to stop and everything follows its dry course it must be hot in this poem like when it’s rained on Campanario Street and a rainbow springs up from the asphalt rusty petals mirrors that never reflected a glance and the sun begins to gather syllables bits of cloud radiant wounds shaky illusion the clock scatters its kern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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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poems | Victor Rodriguez Nunez

they sprout in the breeze stirred up only by your hips palm tree above the wall bed of linden everything will bloom if the rain carries out its threats the yellow truck passes by again music’s dust storm an unpolished sun beats down on the carpenter’s bench the policeman glows eyed from the tenement preparing for the bembé yet the rain carries out its threat when it rains it pours the adobe jungle throws off its mammals a purple raincoat might be a sign of distinction a cursive letter young and old fight over the stream of a working gutter miraculously no doubt on a piece of card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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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 듣는시간 | Performance Readings

someone surfs the waves of San Lázaro Street it’s the only moment when we know they’ll resist the future’s ruins

• Translated by Katherine M. Hed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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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서울국제작가축제 에세이집 발행인

김사인

발행처

한국문학번역원

책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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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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