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매니페스토 아카이브 Design Manifesto Archive

Page 1

F.T. 마리네티 1909

알렉세이 간 1922

얀 치홀트 1928

비어트리스 워드 1932

W.A. 드위긴스 1922

엘 리시츠키 1926

마이클 록 1996

로레인 와일드 1998

페르난도 데페로 1929

알렉세이 브로도비치 1930

폴 랜드 1960

켄 가렌드 1964

허버트 스펜서 1964

빅터 파파넥 1975

디자인 매니페스토 아카이브 Design Manifesto Archive


일러두기 ・ 매니페스토는 원문을 번역한 것으로 옮긴이는 이지원이다. ・ 글은 서사순으로 연결되어 있다.


매니페스토manifesto란 대중에게 자기주장과 견해를 분명히 밝히는 연설이나 문서의 형태 운동이다. 주로 볼 수 있는 표현은 선거 매니페스토, 생활문화 매니페스토, 사회적 책임 매니페스토다. 인쇄 예술, 상업 예술, 그래픽 디자인, 시각 커뮤니케이션과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 디자인 분야에는 비평과 다양한 형태와 사상과 신념이 함께 했다. 저마다 자신의 속한 시간과 장소에 관한 내용을 글쓴이의 관점에서 풀어낸 매니페스토가 있다. 디자인이라는 넓은 범주 안에도 제목부터 매니페스토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글도 있고, 매니페스토의 성격을 띠고 있는 형식의 연설과 문서가 있다. 매니페스토를 통해 디자인이라는 영역에서 논의된 사건과 디자이너의 신념을 알 수 있다. 신념이 어떻게 실천으로 이어졌는지 연결고리를 파악하면 현재 매니페스토를 선언할 때 구체적인 실천 방향을 고민할 수 있다. 신념과 실천의 연결고리를 보기 위해서는 작업자였던 디자이너들의 행보를 살펴봐야 한다. 모더니스트로서 이성을 중시하고 디자인이 기능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이론을 만들고 실천한 디자이너들이 있다. 반대로 디자이너가 작가 혹은 예술가로서 영역을 구축하고 새로운 표현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들이 있다. 딱 잘라 두 가지로 나눠서 볼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신념이 충돌하고 지금까지 디자이너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두 가지 굵직한 축을 기준으로 매니페스토를 분류해서 살펴본다.

3



1900 Paris Exposition Universelle

미래주의 선언 F.T. 마리네티 1909

우리는 강하고 담대한 자세, 위험을 무릅쓰는 자세를 숭상한다. 용기와 배짱, 저항은 우리가 원하는 핵심 정신이다. 지금까지 문학은 몽환적인 고정관념과 쾌락, 무의식만을 찬미해왔다. 우리는 공격적인 행동과 잠들지 않는 열정, 빠른 도약, 추락할 운명을 진 비상, 때려 부수는 행위를 찬미한다. 우리는 속도로부터 오는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인해 우리의 웅대한 세상이 풍요로워지고 있음을 선언한다. 터질 듯이 가쁜 숨을 몰아쉬는, 마치 뱀과 같은 거대한 파이프로 뒤덮인 경주용 자동차, 탄환처럼 달리며 으르렁대는 자동차는 사모트라케 승리의 여신상보다 아름답다. 우리는 지구의 둘레를 따라 영혼의 작살을 내지르는 조종사를 찬미한다. 시는 열정을 키우기 위해 정열과 화려함, 여유로움으로 가득 채워져야 한다.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오로지 투쟁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 공격적 자세 없이는 걸작이 탄생할 수 없다. 시는 미지의 대상을 폭력적으로 공격해서 인간 앞에 무력화하고 굴복시킬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 세기의 낭떠러지에 서 있다! 불가능의 문을 열어야 하는 이 시점에서 왜 과거를 자꾸 돌아보는가? 과거의 시간과 공간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 시대는 절대적이다. 우리가 창조한 속도는 모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을 정화하는 유일한 수단인 전쟁, 군국주의, 애국심, 자유를 좇는 파괴적 행위와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이념, 여성 비하 사상을 숭배한다. 우리는 모든 박물관, 도서관,

5



1902 d'Orsay Train Station

학교를 파괴할 것이다. 윤리와 여성주의 그리고 모든 종류의 기회주의적이고 물질적인 비겁함에 맞서 싸울 것이다. 우리는 노동과 향락, 폭동에 열광하는 무리를 찬양한다. 우리는 모든 혁명을 찬양한다. 우리는 폭력의 불꽃에 휩싸인 무기고와 조선소의 격동하는 밤의 열정을 찬양한다. 연기를 뿜는 뱀을 꾸역꾸역 먹어치우는 기차역을 찬양한다. 스스로 내뿜은 연기에 매달린 공장을 찬양한다. 거인처럼 강을 성큼 건너뛰며 날카로운 비수처럼 빛나는 교각을 찬양한다. 수평선에 맞닿은 저돌적인 증기선을 찬양한다. 파이프로 엮은 굴레를 쓴 말처럼 철로를 내달리는 육중한 증기기관차를 찬양한다. 공중에서 깃발처럼 펄럭이며 군중의 열광적인 함성과 같은 소리를 내는 프로펠러 비행기의 날렵한 비행을 찬양한다.

7



1910 Wacky Wing Airplane

구성주의 선언 알렉세이 간 1922

펜실베이니아 역, 헨들리 페이지 주택 단지 혹은 고층빌딩을 짓거나 터보 압축기 같은 기계를 만드는 일을 우리의 임무가 아니다. 우리는 기술을 창조하지 않았다. 우리는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에는 예술가였으며 오늘날에는 건설자다. 우리는 인류를 변화시켰다. 우리는 기술을 만들었다. 우리는 예술을 향유하던 과거의 기술자와 기술을 향유하는 오늘의 예술가를 발견했다. 퍼뜨렸다. 말끔히 쓸어냈다. 통합했다. 우리는 쉼 없이 달려야 한다. 우리는 벽을 봤다. 우리는 평면을 봤다. 모두가 봤지만, 동시에 아무도 보지 못했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다가와 간단히 보여줬다. 사각형을 보여줬다. 평면을 바라보는 눈이 뜨였다. 우리는 기울어진 모서리를 봤다. 우리는 부분과 전체를 봤다. 모두가 봤지만, 동시에 아무도 보지 못했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다가와 간단히 보여줬다. 선을 보여줬다. 우리는 강철로 지어진 다리를 봤다. 군함을 봤다. 비행기를 봤다. 헬리콥터를 봤다. 모두가 봤지만, 동시에 아무도 보지 못했다. 우리는 이땅에 처음 태어난 구성주의 노동자 집단이다. 알렉세이 간, 로드첸코, 스테파노바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현재에 산다. 기술은 예술의 적이다. 우리는 최초의 투사이며 처벌 집행관이다. 또한 우리는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저항한다.우리는 몽상에 빠진 예술가가 아니다. 라디오 방송국, 엘리베이터, 그리고 야성을 이룬 도시 우리는 시작이다.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9



Russian battleships in the Black Sea during World War I

머그컵 바닥 청소용 솔 신발 카탈로그 누군가가 연구소에 정사각형을 가져다 놓고 라디오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정사각형을 전파했다. 필요로 하는 사람,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이윽고 모든 ‘좌익 예술을 실은 배’는 빨강, 검정, 흰색으로 칠해진 삼색기를 달고 항해한다. 정사각형은 모든 것을 이루고, 모든 것에 있으며, 모든 것을 담는다. 예전에 누군가가 자신의 연구소에 선과 그리드, 점을 가져다 놓고 라디오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선, 그리드, 점을 전파했다. 필요로 하는 사람,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이윽고 모든 ‘좌익 예술을 실은 배’는 ‘구성주의’라는 이름으로 서로 다른 깃발을 달고 항해한다. 모든 것은 선과 그리드로 이뤄진다. 정사각형은 예전부터 존재했다. 선과 그리드도 이미 예전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존재 여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존재가 밝혀졌고 세상에 알려졌다는 사실이다. 정사각형은 1915년 말레비치 연구소에서, 선, 그리드, 점은

1919년 로드첸코 연구소에서 밝혀졌다. 하지만 이 땅에 처음

태어난 구성주의 단체는 (알렉세이 간, 로드첸코, 스테파노바) 물질적 구성주의로 이룬 사회주의적 표현을 선포한다. 그리고 예술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울 것을 선포한다. 이제 모든 것이 명확하다. ‘구성주의’ 시, 소설, 회화를 비롯한 온갖 쓰레기들은 ‘새로운’ 구성주의 사상이 대세라고 말한다. 우리의 좌우명을 차용한 이들은 자신을 천재라고 여기며 엘리베이터, 라디오, 포스터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가장 중요한 점을 간파하지 못한다. 연구소에서 실험에 온 힘을 쏟아 부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새로움, 요소, 과정, 사물, 실험 이 모든 것은 연구소에서 밝혀졌다. 11



1740 John Bancks Book

신 타이포그래피 얀 치홀트 1928

신 타이포그래피의 핵심은 명료성이다. 오로지 ‘아름다움’ 만을 좇으며 명확한 의미 전달을 등한시한 과거 타이포그래피와 반대되는 점이다. 엄청나게 많은 인쇄물이 쏟아져나오는 요즘, 최소 표현만으로 메시지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명료한 타이포그래피는 필수 사항이 됐다. 우리에겐 순수하고 깨끗한 형태가 필요하다. 샹들리에처럼 복잡한 글자, (순전히 겉모습만 치장한)

‘아름다운’ 형태, 의미 없는 군더더기(장식)를 덧붙인

‘꾸미기’ 따위로는 절대 순수한 형태 근처에도 갈 수 없다. 중앙정렬선에 힘없이 대롱대롱 매달린 글자를 보고 있노라면 요즘 타이포그래피가 얼마나 보수적이고 경직됐는지 느껴진다. 과거 타이포그래피는 모든 요소를 중앙선에 정렬하는 대칭 구조를 고수했다. 앞서 소개한 역사적 배경에서 언급했듯이, 대칭 구조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져 내려오는 원칙이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만들어진 제목 페이지는 과거 타이포그래피가 어땠는지를 잘 보여준다. 의미를 전달하는 중요한 내용이 아무런 근거 없이 대충 널려 있다. 크기에 변화를 주어 구조를 만들어야 할 부분에 외부 장식이 끼어들어 무참하게 짓밟기 일쑤다. 제목의 4분의 1 정도를 잘라 줄을 바꿔서 작은 크기로 조판한 경우도 볼 수 있다. 요즘엔 이렇게 하진 않지만, 대칭 구조의 특징이 현대 인쇄물에 필요한 논리적 구성을 담아내지 못함은 명백한 13



1930 Kodax

사실이다. 중앙정렬은 마치 하얀 깃을 빳빳이 세운 빅토리아 시대 정장처럼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부자연스러울 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도 역부족이다. 우습고 어색하기 그지없다. 아무리 잘해도 ‘아름답게 줄세우기’ 이상이 될 수 없다. 전체 ‘형태’가 정해진 상태에서 내용을 꾸겨 넣어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도 부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다. 내용을 지면 중앙에 정렬하면서 어떻게든 눈에 띄게 해보려는 시도는 통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지면의 한쪽 모서리부터 읽기 시작하는 습관이 있어 사실 중심에 배치된 내용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유럽인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고, 중국인은 위에서 아래로 읽는다. 더구나 글줄은 무게중심이 항상 정중앙에 있지 않으므로 단순히 글줄 길이를 반으로 나눠 중심을 잡는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대칭 구조를 비롯한 과거에 유행했던 모든 선입견—가짜 구성주의 같은 방식—은 신 타이포그래피의 핵심과 완전히 반대다. 타이포그래피 이론을 몽땅 새로 써야 한다. 신 타이포그래피는 각각의 텍스트 요소가 담당하는 기능에 근거하여 형태를 만들어내는 최초의 객관적 조판 방식이다. 이런 점에서 이전 타이포그래피와는 확실히 구분된다. 오직 신 타이포그래피만이 현대인의 정신을 표현할 수 잇다. 인쇄물은 내용을 합리적으로 구성하고 중요한 부분을 강조해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텍스트는 내용에 근거해 절대적이고 합리적인 구조로 표현한다. 크기 및 굵기 변화, 위치, 색깔, 사진 등과 같은 요소를 사용해 내용 사이의 관계를 독자에게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타이포그래퍼의 임무다. 타이포그래퍼는

15



1920 Northwind Fan

독자가 어떻게 읽을지, 어떻게 읽혀야 할지를 신중히 생각하며 작업에 임해야 한다. 이런 원칙에 따라 만든 작업은 중앙정렬 방식 타이포그래피에서는 볼 수 없는 어떤 리듬감을 형성한다. 비대칭 구성은 기능에 근거한 리듬감 있는 표현이다. 대칭 구조에 비해 내용을 합리적으로 표현할 뿐만 아니라 시각 효과 면에서도 훨씬 월등하다. 따라서 비대칭 구성은 신 타이포그래피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비대칭 구조가 이루는 형태는 현대인이 경험하는 삶의 역동성을 대변한다. 비대칭 구조의 활력이 대칭 구조의 정적인 느낌을 대신할 때 우리는 변화의 힘을 느낀다. 그러나 자칫하면 이러한 활력이 불안과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그런 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질서 정연한 비대칭 표현으로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다. 질서가 성립될 때, 우리는 비로소 타성적인 대칭 구조를 벗어던지고 글의 내용에 따라 자연스럽게 흐르는 타이포그래피를 완성할 수 있다. 과거 중앙정렬 방식은 글꼴만 요란하게 많이 썼지 결국에는 다 똑같아 보였다. 그러나 신 타이포그래피의 비대칭 구성은 끝없이 다양한 종류의 지면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무한한 가능성은 현대 사회의 다양성에 잘 들어맞는다. 신 타이포그래피는 다양한 디자인을 살리면서, 동시에 배치 방식과 요소의 ‘규격화’를 지향한다. 과거의 타이포그래피는 이와 정반대였다. 오로지 중앙정렬만을 고집했음에도 온갖 잡다한 구성 요소(장식 및 수많은 글꼴)를 갖다 붙였기 때문에 어떤 부분도 결코 규격화될 수 없었다. 명확한 의사소통이 점점 더 절실해지면서 어떻게 하면 간결하고

17



1879 Light Blub & Albert Einstein

정돈된 형태를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의 근본을 새롭게 인식하고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관행처럼 이어져 내려오는 해결책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가 각자의 임무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확신에 찬 자세로 작업에 임한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믿는다. 무엇보다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 말은 모든 것을 생략하라는 뜻이 아니다. 읽기 쉽고 아무런 장식도 없는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객관성과는 거리가 멀다. ‘메말랐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이 디자인은 중앙정렬 방식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잘 보여준다. 요란한 글꼴과 장식을 빼버리면 앙상한 가시와 다를 게 없다. 불필요한 요소는 모두 없애버려라. 전통적인 방식은 내던지고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야 할 때다. 한 세기를 지배했던 온갖 ‘장식’들을 버림으로써 우리는 기능적 디자인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 장식에 대한 무지몽매한 욕구를 버릴 때가 왔다. 과거에는 아무렇게나 장식을 갖다 붙이곤 했다. 이는 타이포그래피의 주요 목표인 의사소통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방법이었다.

19



Crystal Goblet

투명한 술잔, 눈에 띄지 않는 디자인을 해야 하는 이유 비어트리스 워드 1932

포도주 병을 상상해보라. 당신이 좋아하는 포도주가 그윽한 적갈색을 내뿜고 있다. 그리고 옆에는 술잔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매우 세련되고 정교한 무늬가 새겨진 황금 술잔이고 다른 하나는 투명한 유리잔이다. 유리잔은 물거품처럼 얇고 투명하다. 당신은 포도주를 따라 마신다. 이때 어느 잔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당신이 포도주를 아는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인지 알아낼 수 있다. 포도주 애호회 회원이라면 아마 투명한 술잔을 골랐으리라, 투명한 잔은 ‘내용물’의 아름다움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좋은 포도주 잔은 좋은 타이포그래피와 통하는 면이 있다. 책 페이지 여백은 포도주 잔의 줄기 부분과 마찬가지로 책 내용에 손이 닿지 않게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도자기 잔이나 금속 잔 대신 유리잔을 선택했다면 그 사람은 단연 ‘모더니스트’다. 모더니스트에 대해 얘기해보겠다. 모더니스트는 ‘어떻게 보이나’보다 ‘어떤 역할인가’에 대해 먼저 고민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타이포그래퍼는 모두 모더니스트라고 할 수 있다. 생각을 언어로 명료하게 표현하는 능력은 인간이 지닌 우수한 특징이다. 입에서 터져나오는 어떤 소리의 조합으로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또한 종이에 잉크를 묻혀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에게 생각을 전달하는 일도 마술처럼 신기한 일이다. 말하기, 방송, 글쓰기, 인쇄 모두 언어를 통해 생각을 전달하는 활동이다. 21



1942 Ruins of the Renault Factory Boulogne-Billancourt,Paris

인간 사회는 마음속 생각을 주고받고자 하는 의지와 능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지금까지 내가 한 말에 수긍한다면, 당신은 인쇄물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생각, 사상, 이미지를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달하는 일이라는 데 어느 정도 동의하는 셈이다. 먼저 이런 자세를 갖춰야만 타이포그래피 과학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을 통과할 수 있다. 당신 앞에 있는 수백 개의 문 중에 “인쇄물은 구체적이고 분명한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는 팻말이 달린 문을 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올바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인쇄는 즐겁고 또 중요한 작업이다. 어떤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기 때문에 인쇄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인쇄를 예술이라고 함부로 단정 지으면 안 된다.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감각적인 아름다운 표현이 인쇄의 가장 큰 목적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캘리그래피는 이제 순수예술로 넘어갔다. 과거에는 경제적이고 교육적인 목적으로 캘리그래피를 활용했지만, 지금은 인쇄가 그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더는 실용적인 의미가 없다. 영어로 적힌 인쇄물을 예술로 취급하면 안 된다. 국어가 다른 언어로 바뀌거나 인쇄술을 대체할 만한 전달 수단이 탄생하기 전까지는 그렇다. 좋은 타이포그래피를 위한 훈련은 끝이 없다. 그리도 모든 위대한 타이포그래피 스승이라면 인쇄물은 내용을 전달하는 수단이라는 데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이런 겸손한 마음 없이 그저 의욕한 불타오른 디자이너들이 종종 눈에 띈다. 목표 의식이 확실하다면 눈에 띄지 않는 타이포그래피를 구사해 성공적인 길을 걸을 수 있다. 기본으로 돌아가는 건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아니다. 시간 낭비는 자신만의 생각에

23



Nasir al-Mulk Mosque Stained Glass

휩싸여 되지도 않는 방식을 억지로 끌어들여 한 페이지에 30분 이상을 소모하는 걸 말한다. 나는 왠지 액자에 끼워 넣어야 어울릴 만한 작품처럼 책 페이지를 장식하는 과도한 타이포그래피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나친 타이포그래피는 감각적 즐거움에 집착해 가장 중요한 것을 희생하는 무모한 행위다. 책을 이루는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결론을 말하겠다. 책은 그 안에 모든 타이포그래피 원칙을 포함하며 광고 타이포그래피에도 영향을 주므로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항이다. 책을 디자인하는 타이포그래퍼는 독자가 작가의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창문을 만드는 역할을 담당한다. 타이포그래퍼는 맘만 먹으면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창문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창문으로서는 실패작이다. 화려한 고딕체를 써서 내용보다 형태를 더 두드러지게 만드는 게 바로 이런 경우다. 반대로 타이포그래퍼는 완전히 ‘투명한’ 타이포그래피를 구사할 수도 있다. 그 책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글꼴을 썼는지 조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멋대로 왜곡하거나 어떤 ‘느낌’을 지나치게 덧입히는 디자인은 독자의 마음에 그려지는 그림을 망가뜨리는 질 나쁜 타이포그래피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지나치게 복잡하거나(빽빽한 공간, 긴 글줄처럼

글을 읽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가 이에 해당한다), 단조롭거나 어려운 것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악질적인 타이포그래피는 근거 없는 디자인 요소와 현란한 색깔로 내용 전달을 방해한다. 소리치는 듯한 제목 글, 좁은 띄어쓰기, 서로 맞닿은 글줄, 이런 것들이 독자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 25



Beatrice Warde Memorial Lecture

인쇄물을 만드는 사람은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많은 순수예술가들이 아직까지도 자기중심적이고 감상적인 실험 작품을 만들어보려고 버둥댄다.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페이지를 만드는 일은 절대 따분하고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천박한 겉치레를 양산하는 건 제대로 된 훈련을 받는 것보다 두 배는 쉽다. 저질 타이포그래피는 언제나 자신을 내세우려고 뽐내기에 바쁘다. 그런 오만함을 넘어선다면, 현명한 사람이 마음을 비우고 행복을 찾듯이 당신도 진정 아름다운 타이포그래피를 추구할 수 있다. 잔재주나 피우려는 타이포그래퍼는 글을 못 읽는 부자의 변덕만을 맞추려 애쓴다. 그들에게 세리프와 자간 따위는 중요치 않다. 여러분이 행간을 조절하든 말든 그들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당신이 하는 일의 중요성을 미처 알아채지 못한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여러분만큼은 인간의 영혼을 담을 수 있는 수정처럼 투명한 술잔을 만들고자 부단히 노력해주리라 믿는다.

27



1920s Telephone Directory Lemars,Iowa Plymouth County~Genealogy

새로운 인쇄물은 새로운 디자인을 필요로 한다 W.A. 드위긴스 1922

최고의 품질을 지향하던 전통적 가치는 산업화를 거치며 어느새 잊히지 시작했다. 하지만 인반의 예술적 취향을 높일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먼저 두 가지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인쇄는 예술이 아니라는 점과 인쇄에 예술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그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껏 인쇄의 역사는 예술가들이 써왔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른바 가장 유명하다는 인쇄 디자이너는 모두 디자이넹 예술적 취향을 첨가하려고 노력했던 이들이다. 지금까지 생산된 숱하게 많은 인쇄물 중 가치 있는 유물이라고 여길 수 있을 만한 몇 안 되는 채고가 문서는 모두 예술가들이 만든 것뿐이다. 지난 300년 동안 누군가가 수집하고 보관해 전해 내려오는 인쇄물들은 그것이 인쇄됐다는 이류로 소중했다기보다, 그 인쇄물에 예술적 가치가 담겨 있기 때문에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구텐베르크가 활자를 소개한 후부터 지금까지 예술가들은 활자를 자신의 예술적 성취에 이용해보고자 했다. 인쇄의 실용적 목표는 어느새 온데간데없고, 예술가가 손대지 않은 일반적인 인쇄물은 아무런 값어치도 없다는 식의 인식이 만연해졌다. 양립할 수 없는 두 현실이 뒤섞여 있으며, 표면으로 드러난 것보다 더 많은 문제가 얽혀 있다. 웬일인지 ‘인쇄’라고 불리는 행위에 어떤 계급이 존재하는 것 같다. 현재 예술 활동에서 인쇄는 어떤 의미인가? 근대 인쇄 산업은 평범한 보통 인쇄, 예술

29



1910 Paris Glass Factory

작품으로서의 인쇄, 평범한 용도지만 예술가의 솜씨가 얼마간 발휘된 인쇄, 이렇게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앞서 말한 세 부류 중 첫 번째인 평범한 인쇄는 인쇄 산업의 중추 역할을 담당한다. 이러한 인쇄물은 그 생산량이 다른 두 부류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반드시 필요한 내용을 다루며 업무를 처리하듯이 작업이 이뤄진다. 원하기만 한다면 ‘평범한’ 인쇄물에도 얼마든지 높은 기술적 완성도를 부여할 수 있다. 예술의 도움을 구하지 않으며,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일상 속의 평범한 인쇄물은 예술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작업이다. 어떤 사람은 업계 소식을 접하면서 인쇄를 예술 작품으로 여기는 작가는 과거에나 있엇을 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인쇄 예술가’라는 낭만적인 이름으로 불리는 스타일의 전도사는 여전히 활동 중이다. 그들은 업계 전체에 퍼져서 순수 예술적 취향을 담은 작품을 찍어낸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작품 활동은 실용적 용도를 소재로 삼으며, 여기에 예술가들은 지금까지 이어져온 예술의 전통 규범을 거의 바꾸지 않고 그대로 적용한다. 예술가들은 인쇄매체를 예술 활동의 도구로 여긴다. 그들은 예술가이고, 예술가는 어떤 상황에서든 예술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부류의 인쇄물에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특징이 있다. 일단 팔려고 만드는 게 아니다. 제품을 팔려고 무료로 나눠주는 새로운 광고 수단일 뿐이다(세상에 완전한 공짜는 없다). 모든 사람이 만들 수 있다는 면에서 민주적이고, 어디에나 존재하며 누구나 읽는다. 문명의 모습을 형성하는 데 책, 신문, 잡지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상품을 팔기 위해 밑밥을 깔거나,

31



1900 Boats on the Seine

아니면 직접 상품을 판매할 목적으로 제작한다. 유혹하고, 에두르고, 소리치고, 설득함으로써 목표를 달성한다. 광고 예술은 지금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광고 예술가를 둘러싼 제약과 불리한 조건을 능숙하게 타고 넘을 가능성이 있다. 어떤 제약 사항이라도 능동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더욱 간단명료한 구성의 동기로 삼을 수 있다. 일하는 자세를 새롭게 바꿀 필요가 있다. 사업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도록 하자. 사업가는 다음과 같은 작업 원칙을 요구하는데, 이는 타이포그래퍼가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과 상통한다. 단순하게 만들 것. 단순한 글자로 단순한 배열을 만들어라. 레이아웃을 할 때만큼은 예술을 잊고 일을 한다는 기분으로 작업에 임하라. 인쇄 디자이너가 맡은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정보의 배열을 통해 중요한 문구를 내세우고 덜 중요한 부분을 작게 감춤으로써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는 대중의 눈을 의식하고 예술보다 분석을 앞세우는 자세를 의미한다. 인쇄 공정에 적합한 이미지를 사용하라. 인쇄용 잉크와 인쇄용 종이에 가장 잘 표현되는 명도와 색조가 따로 있다. 이러한 기준을 잘 파악하고 여기에 알맞게 작업하라. 문양, 테두리와 같은 장식을 최대한 줄여라. 꽃문양을 남발해서 장례식장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지 마라. 여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 종이의 흰 공간은 또 하나의 이미지다. 잉크가 묻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잘 구성한다면 보기에 좋은 지면을 만들 수 있다. 글자의 형태를 파악할 것. 글자는 지면 전체에 있어 벽돌과 철근에 해당하는 최소 구성 단위다. 좋은 글꼴을 선택하고 이를 적절히 활용하라.

33



1771 Bodoni Saggio Tipografico

말은 쉽고 실천은 어렵다. 새로운 인쇄물은 새로운 디자인을 필요로 한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예전의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공예 시대부터 지금까지 지속돼 온 인쇄의 가치 기준이 어느 순간부터 재정의되기 시작했다. 망점 인쇄, 자동 조판, 4색 분해, 오프셋, 그라비어 등과 같은 새롭고 복잡한 공정이 인쇄공의 손에 쥐어졌다. 이에 따라 기계화 이전의 인쇄 디자인에 대한 가치 기준은 의미가 사라졌다. 종이 위에 찍히는 잉크는 이제 새로운 어떤 것으로 변했다. 예술가에게 유용한 정보가 있다. 우리가 다루는 인쇄물은 과거의 그것에 비해 존재감이 가볍다. 오늘 나와서 내일 사라지는 것들도 많다. 하지만 이렇게 한시적인 것도 얼마든지 좋은 디자인, 좋은 예술이 될 수 있다. 마치 아름다운 나비가 오래 살지 않는 것과 같다. 만드는 데 수개월이 걸리는 장식적인 그림은 사람들이 1시간 이상 들여다보지 않을 인쇄물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 경우 오랜 보관을 위해 공들여 만든 고대의 인쇄물에 새겨진 장식은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없다.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인쇄물에는 이런 디자인 방식이 잘 나타나 있다. 우리가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에 프랑스의 스타일을 입힌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종류의 인쇄물에 담기는 장식 요소에는 지금까지보다 더한 강렬함이 드러나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현재 상황에서 가능한 한 참신한 가치를 끌어내는 일이다. 모든 것을 새로운 자세로 바라보고 평가해야 한다. 현재는 모든 제한과 규칙이 무너진 시점이다. 최소한 겉으로 보기엔 그렇다. 하지만 기계혁명이 확실히

35



1913 Blaise Cendrars: Et Sonia-Delaunay Terk

37

잡았다 하더라도 예술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새로운 방식으로 만든다 한들 좋은 디자인은 여전히 좋은 디자인이다. 요소를 규칙적이고 우아하게 배치하려는 예술가의 고민과 노력은 계속되는 중이며, 읽기 위한 것이라는 인쇄의 가장 근원적 존재 이유는 변함이 없다. 이제 디자이너는 이런 관점에 따라서 과거의 것을 바꾸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할 것이다. 성공 여부는 대중적 인식과 예술적 취향을 어떻게 잘 섞어내는가에 달렸다.



1914 BLAST Magazine

우리의 책 엘 리시츠키 1926

예술 분야에서 어떤 새로운 발견은 그 시대에만 통할 뿐, 다음 발견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새로운 발견을 중심으로 형성된 여러 사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정교해지거나 혹은 둔탁해지는데, 한번 변질되면 처음만큼 강력한 힘을 내뿜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상은 끊임없이 변하며 한동안 영향을 미치다가 결국에는 닳을 대로 닳아서 아무런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답습만 되풀이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쯤 되면 예술가는 다시 새로운 발견을 물색해야 한다. ‘기술’ 발명은 ‘예술’ 발견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기술과 예술이 어떻게 연결 되는지를 알려면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구텐베르크는 금속활자를 발명해서 출판 역사상 가장 큰 업적을 남겼다. 그 후 사진술이 발명될 때까지 몇 세기 동안 인쇄술은 그다지 획기적인 발명을 맛보지 못했다. 기계의 성능이 향상됨에 따라 품질이 조금씩 나아진 게 고작이다. 두 번째 커다란 발명이라고 할 수 있는 사진 예술 역시 마찬가지다. 자만하지 말고 역사를 돌아보라. 최초의 은판 사진 기술로 만든 작품이 지금 우리가 만드는 결과물보다 전혀 못하지 않다. 기계를 쓰면 무언가 다르지 않을까라는 기대는 매우 근시안적인 발상이다. 다시 말해, 수작업을 기계가 대신해봤자 전혀 다른 형태나 제품이 탄생할 리 만무하다는 뜻이다. 변화는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발생한다. 여기서 소비자란 제품의 ‘수요’를 뜻하는데, 요즘엔 이 수요자층이 일부 상위 계층만이 아닌 대중 ‘전체’로 넓어졌다.

39



1917 Neue Jugend

많은 사람이 현대는 ‘물질주의’ 사회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물질주의가 아니라 ‘비물질주의’라고 말하는 게 옳다. 예를 들어보자. 편지 왕래가 늘어남에 따라 종이 소모가 증가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가 등장해 종이 소모가 줄어든다. 많은 사람이 전화를 사용하게 되자 이번에는 많은 전화선이 필요해졌다. 이어서 라디오가 발명되면서 전화선 설치의 부담이 줄어들었다. 이렇게 현대 사회는 성가신 물질 사용을 줄여나가며 비물질화를 지향한다. 세상에는 표음문자와 상형문자 두 종류의 문자가 있다. 이 두 문자 시스템에는 장단점이 있다. 먼저 상형문자는 전 세계 모든 이가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읽는 사람이 러시아인이든 독일인이든 미국인이든 상관없이 중국어나 이집트어에 담긴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 따로 언어를 학습하지 않은 상태라면 비록 소리는 못 내겠지만 그 뜻만큼은 기호(그림)를 통해 받아들일 수 있다. 반면 표음문자가 적힌 책에서는 이러한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앞으로는 표음과 상형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유연한 표현을 담은 책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상형문자는 세상 사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적어도 가능성이 있다).

2. 표음문자는 특정 국가 사람만 이해할 수 있다.

3. 새로운 형태의 책은 어떤 지역 출신 사람이라도 최소한의 학습을 거치면 이해가 가능한 유연한 표현을 추구해야 한다.

41



1920 Unovis Book

언어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시간을 타는 음성과 공간을 차지하는 형태가 바로 그것이다. 앞으로 발명될 새로운 책은 이 두 방식을 모두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피상적 답습만을 반복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독자는 질식당하고 있다. 기계적으로 찍어져 나오는 책이 더 이상 신선한 느낌을 공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책 전 체를 하나의 덩어리로 보이게 구성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언어와 스타일은 계속 변한다. 따라서 책의 형태도 변해야 마땅하다. 제2차 세계대전 전에 유럽에서 출판된 책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똑같았다. 하지만 같은 시기 미국에서는 새로운 움직임이 싹트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발행한 인쇄물은 당시 세태를 잘 반영했고 내용 에 따라 즉각적으로 표현을 달리하면서 새로운 형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림 옆에 설명글을 달기 시작했으며, 사진판을 이용한 인쇄술과 사진 합성술도 이 시기에 미국에서 처음 시도되었다. 전후 유럽은 전체적으로 혼란스럽고 회의적인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런 시류를 반영 이라도 하듯 날카롭고 울부짖는 투의 언어가 유행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에 집착하며 다른 이들에게 허세를 부리기에 바빴다. 인기 끌기, 속임수와 같은 유행어가 그 당시 사회 분위기를 잘 말해준다. 당시 나온 책들은 조각난 글자, 사진과 글자의 합성, 이 두 가지 표현이 특징이다. 우리 사회가 처한 상황은 마치 비행기와 같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 우리가 꿈꿨던 혁명은 활주로를 힘차게 달려 날아올랐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공중에 떠 있다. 비행기에 몸을 맡긴 희망이 어디로 날아갈지는 아무도

43



1922 Veshch

모른다. 여러 표현이 합쳐져 여러 의미를 동시에 전달하는 방식의 책은 세계대전 이전에도 이미 존재했다. 다만 그 당시에는 이런 표현법이 별로 주목받지 못했을 뿐이다. 소냐 들로네 테르크가 디자인한 블레즈 상드라르 시집이 그중 하나다. 이 시집은 시구의 내용에 따라 색을 지정해 1.5미터 길이의 종이에 인쇄하고 접어서 완성한 디자인이다. 내용과 색을 연관 지은 참신한 시도였다. 세계대전 중 보텍스 그룹은 영국에서 〈블라스트Blast〉 잡지를 출판했다. 블라스트는 커다란 판형에 블록 모양 글자로 조판했는데, 이런 방식은 오늘날 세계 어느 곳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시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1917년 독일에서 발행한 〈뉴에 융겐Neue Jugend〉지를

꼽을 수 있다.

1908년 러시아에서는 절친한 화가들과 시인들이 힘을 합쳐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당시 소개된 시집 중에서 화가와 시인의 공동 작업이 아닌 작품이 거의 없었을 정도로 두 영역은 강하게 엮였다. 석판화와 목판화 방식으로 시와 시화를 인쇄했고, 글자는 시인이 직접 조판했다. 이런 작업을 선보인 대표적 시인으로는 흘레브니코프, 크르체니크흐, 마야콥스키, 아시에프 등을 들 수 있고, 함께한 화가로는. 로자노바, 곤차로바, 말레비치, 포포바, 뷰르크 등이 있다. 이들이 합작해서 탄생시킨 세련된 작품은 소량 제작되어 제본되지 않은 채로 싼값에 판매됐다. 우리는 이런 활동을 보고 배워야 한다. 젊은 예술 세대가 보인 잠재력은 러시아혁명 기간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사회가 필요로 할 때까지 차곡차곡 45



1922 Of Two Squares

축적됐다. 그리고 이제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이들을 포함한 모든 대중이 매체를 향유하는 시대가 왔다. 우리는 혁명을 통해 교육과 사상 면에서 거대한 업적을 달성했다. 과거의 일반적인 책 형태는 가고, 백 배 정도 커진 낱장의 인쇄물이 길거리에 포스터처럼 나붙는다. 운전자를 배력하는 미국 포스터와는 달리 우리의 포스터는 사람들이 가까이서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담는다. 만일 요즘 유통되는 포스터를 모아서 크기를 줄이고 한데 묶으면 책 한 권이 될 수 있을 정도다. 사회는 점점 더 빨리 변하는데 인쇄 방식은 제자리걸음이다. 인쇄 방식이 뒤처지는 탓에 멋진 걸작은 대부분 수제품으로 완성될 수밖에 없다. 기계로 찍으려면 다량 복제를 목적으로 한 간략한 표준 형태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내놓는 법령집과 아이들의 글미책을 같은 방식으로 접어야 하고, 군대의 간행물과 일반 브로슈어를 똑같이 제본할 수밖에 없다. 내전 기간에(1920) 원시적인 기계를 사용해 새로운 책 디자인 방법을 발명할 기회가 있었다. 비테프스크라는 도시에서 우리는 우노비스라는 다섯 페이지 분량의 인쇄물을 타자기, 석판화, 동판화, 리놀륨판화 기법을 써서 작업했다. 나는 거기에 이런 글귀를 새겼다. “구텐베르크의 성경에는 글자밖에 없다. 그러나 이제는 글자 이상이 담긴 성경이 나와야 할 때다.” 사람들은 책을 귀로 듣지 않는다. 눈으로 본다. 시각은 청각보다 훨씬 빠르고 강하게 의미를 흡수한다. 말은 오직 목소리로 전달되지만, 책은 수많이 다양한 표현을 보여줄 수 있다. 1922년 재건 기간에 출판되는 책의 부수가 급격히 늘었다.

47



1930 Easel

예술가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그간 책 디자인이 안고 있던 문제점을 해결했다. 그해 초, 베를린에서 일리야 에렌버그라는 시인과 함께 〈베슈흐〉라는 정기간행물을 출간했다. 그리고 이때 접한 독일의 선진 인쇄 기술에서 힌트를 얻어 〈두 개의 광장〉이라는 제목의 그림책을 찍었다. 이 책은 1920년대에 우리가 만든 모든 작품의 완결판이라 할 만하다. 마야콥스키의 책도 이때 나왔는데, 책 형태 자체가 어떤 구체적인 기능을 발휘하는 특징이 있었다. 같은 시기에 우리는 인쇄소를 직접 운영했다. 국제 전시회에 몇 차례 소개된 책들을 연방 출판사와 여러 다른 인쇄소들이 인쇄했다. 포포바, 로드첸코, 클루치스, 시엔킨, 간, 스테파노바와 같은 동지들이 이런 작업에 참여했다. 알렉세이 간을 포함한 몇몇은 직접 조판하고 인쇄 기계를 다루기까지 했다. 이들의 활동으로 덕분에 인쇄는 예술이라는 인식이 한층 단단해졌고, 특별히 페이지를 할애해서 조판공의 이름을 새기는 관례가 생겼다. 급기야 인쇄가 뛰어난 예술가만이 수행할 수 있는 수준 높은 활동으로 알려지기에 이르렀다. 예술가는 대부분 사진 합성 작업을 한다. 사진 합성이란 사진 이미지와 그에 딸린 문구를 조합해 페이지를 구성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들은 효과적인 사진 합성 방법을 개발했는데, 이 방식은 복잡하지 않아 기계화가 용이한 데다 시적 표현을 쉽게 이끌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글 첫머리에서 새로운 예술적 발명이 불러일으킨 힘은 한 시대에만 해당될 뿐, 결코 계속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젤의 발명에 힘입어 많은 훌륭한 예술 작품이 탄생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젤이 가져다준 효과는 점차 사그라졌다.

49



1900-1903 lianozov Theatre

극장과 주간지는 지금까지 큰 인기를 누려왔다. 사람들은 기술의 발달이 안겨준 새로운 매체를 통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생생히 접하며 사회의 발전에 발맞춰나간다. 이에 따라 사람들의 안목도 상당히 높아졌다. 플라스틱을 자유자재로 이용하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다니는 세상이 펼쳐지며 발명 의지가 최고조에 달했다. 현재 상황에 비춰볼 때,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효율적인 기능을 갖춘 새로운 책 형태를 발명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새로운 책은 등장하지 않았다. 표지로 감싼 하드 커버, 책등, 1,2,3… 순서대로 이어지는 페이지, 극장을 생각해보라. 우리나라 최신식 극장은 사진 액자 같은 무대를 칸막이 좌석이 둘러싼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무대 구조를 새롭게 바꿔 큰 변화를 이뤄냈다. 극장은 더 이상 평면 그림을 배경으로 쓰지 않는다. 무대 공간에 실제와 흡사한 3차원 공간을 짓고 그 속에서 배우가 연기함으로써 4차원의 효과까지 얻어낸다. 근본적인 무대 구조 변화를 감당하기 위해 오래된 극장 건물들을 모조리 다시 지어야 할 정도였다. 반면 책이라는 매체는 아직까지 전통적인 출판 방식을 뒤흔들 만큼의 큰 변화를 겪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대단한 변화를 일으킬 태세를 갖춰야 한다. 출판 산업이 위기에 봉착했음에도 책은 매년 더 많이 쏟아져나와서 꾸역꾸역 쌓여만 간다. 책을 만드는 작업은 중요한 예술 분야로 자리 잡았다. 책은 더 이상 수집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금은 수십만이 넘는 가난한 사람들도 책을 접하는 시대다. 출판 산업 과도기에 만화를 실은 주간지가 유행했던 현상이 보통 사람들이 책을 보기 시작했던

51



Victorian Mens Clothing

상황을 반영한다. 우리 아이들은 새롭게 등장한 유연한 표현을 직접 체험하며 자라고 있다. 아이들은 공간과 형태, 색깔에 대입해서 세상을 바라본다. 먼 미래의 일이지만 나중에 이 아이들이 자라서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책을 만들어낼 게 분명하다. 우리가 거기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지금 우리 시대에 벌어지는 엄청난 변화를 책이라는 형태에 반영하는 데 힘써야 한다. 그만큼만 되면 만족이다.

53



Forget All the Rules You Ever Learned About Graphic Design: Including the Ones in this Book

작가로서의 디자이너 마이클 록 1996

그래픽을 하나의 독창적 저작물로 인정하는 시대가 왔다. 그리고 이에 얽힌 모순도 함께 다가왔다. ‘작가’란 말이 그래픽 디자인 사회에서 꽤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디자인 학교나 디자인과 예술의 애매한 경계를 넘나들며 한계를 시험하는 디자이너들은 이 개념을 더욱 환영한다. 디자이너라는 단어가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단순히 중간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이 아닌 독창적인 일을 하는 직업처럼 들리는 효과가 있다. 문제는 디자이너가 작가로서 창작을 한다는 게 쉽지 않거니와, 더구나 창작의 개념 역시 상당히 애매하다는 것이다. 도대체 창작성의 기준은 무엇이며, 누가 누구에게 작가의 자격을 부여할 수 있단 말인가. 창작성 여부를 따지려는 자세는 어쩌면 단순한 정보의 구성을 넘어 진정한 소통을 추구하는 새로운 디자인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창작에 대한 이론으로 어떤 전략을 세워서 작가주의적 열망을 추구하려고 덤빈다면, 고작 과거에 유행했던 주관적인 디자인에 대한 논의를 다시 한번 건드려보는 정도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디자이너가 창작 활동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오늘날 우리가 쓰는 ‘작가’라는 단어에는 과거에는 없던 다른 뜻이 담겨 있다. 지난 40년간 이 말이 지닌 뜻을 신중하게 분석하는 활동이 전개됐다. 애초에 이 말은 문학 활동에만 국한된 개념이 아니었다. ‘뭔가를 처음 시작했거나 의미를 부여한 모든 사람’을 작가라고 칭했다.

55



Forget All the Rules You Ever Learned About Graphic Design: Including the Ones in this Book

프레드릭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주제를 분해해 여러 갈래로 흐트러뜨린다”라고 표현한다. 작가의 의도보다 독자의 이해를 중심으로 하는 글은 이제 여러 주요 분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독자의 읽기에 초점을 맞추는 최근 디자인은 정해진 의도 없이 자유롭게 흐르는 소통 방식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캐서린 매코이는 디자이너가 문제 해결을 넘어서 “순수예술과 문학에서와 마찬가지로 부가 내용을 창작하고 메시지를 비평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흔히 잘못된 식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이른바 많은 ‘해체주의’ 디자이너들이 롤랑 바르트가 독자 중심 텍스트에 대해 “여러 다른 문화에서 빌려온 조합된 표현”이라고 한 말을 그저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는, 이곳 저곳에서 글줄을 따와 자신이 ‘창작한’ 포스터와 책 표지에 그대로 가져다 붙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부류의 디자인에서 이론에 근거한 표현 같은 것은 아예 찾아볼 수가 없다. 엘런 럽튼과 J. 애버트 밀러는 롤랑 바르트의 이론이 불러온 부정적 현상을 들추며 ‘자기표현을 합리화한 이론’이라고 비꼬아 말했다. 오랜 세월 동안 이름 없는 제작자로 활동해온 디자이너들은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려고 안달했다. 어떤 디자이너들은 폴 드만이 말한 형태주의 디자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디자인 영역 밖의 문제까지 직접 다루고 싶어 했다. 그리고 1970년대에는 몇십 년간 디자인을 지배했던 궁극의 그리드를 앞세운 이성주의자들의 과학적인 접근 방법이 외면당하기에 이르렀다. 요제프 뮐러 브로크만이 보여준 ‘수학적 사고의 아름다움’이 당시 디자인 사회의 움직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57



Forget All the Rules You Ever Learned About Graphic Design: Including the Ones in this Book

예다. 뮐러 브로크만과 케페스, 던디스, 아른하임을 비롯한 많은 동료들은 과학자들이 ‘진리’를 찾는 방법을 동원해 디자인의 규칙을 발견해내고자 했다. 요제프 뮐러 브로크만이 쓴 글을 읽어보면 그가 규범을 신봉하는 디자이너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디자이너는 시스템을 따라야 하며 개인적인 표현을 삼가고 재해석을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감히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원칙이 깨지고 다양한 시각 표현 연구가 이루어지자, 드디어 디자이너가 창작자의 역할을 하면서 무대 전면에 서는 듯 보였다. 표면적으로는 그랬다(반면 이 시기의 문학 이론은 이미 이런

생각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본인 중심의 표현이 난무하는 디자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자 상황이

좀 달라졌다. 아무런 기준 없이 각자가 알아서 메시지를 해석하는 방식은 실제의 업무 현장에서는 별로 쓸모가 없었다. 클라이언트는 디자이너가 구체적인 정보와 느낌을 전달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다. 디자인은 대부분 협력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디자인 사무실이 내놓는 작업은 딱히 누구 아이디어였고 누가 만들었다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탄생한다. 기술이 발달하고 인터넷을 통한 소통이 활발한 요즘, 원작자라는 개념은 날이 갈구록 더 희미해지고 있다. 영화작가주의 이론을 신봉했던 미국의 비평가 앤드루 사리스는 감독이 작가로 인정받기 위해 갖춰야 할 자세로 다음 세 가지를 꼽았다. 감독은 반드시 기술적 측면에 능통해야 하고, 작품을 전택하고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며, 언제나 일정한 관점을 통해

59



1994 The Art Of The Maker

내용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영화작가주의 이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영화 이론도 디자인과 마찬가지로 대중 오락물을 순수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으려고 꽤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화를 감독하는 일과 디자인 활동은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 영화감독과 마찬가지로 아트 디렉터와 디자이너는 자신이 모든 것을 직접 만들기보다는 많은 전문가에게 일을 맡긴 후 지시를 내린다. 또한 영화감독과 디자이너는 둘 다 똑같이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자신의 창의성이 곁들여지는 수위를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조절한다. 그러므로 작품의 내용만 따로 떼놓고 봐서는 감독과 디자이너의 특징을 판단할 수 없다. 내용에 곁들인 외적인 표현에서도 감독과 디자이너의 성향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떤 그래픽 디자이너가 작가로 인정받으려면 먼저 그 디자이너의 작업이 작품이 되기 위한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거의 모든 디자이너는 기술적인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작가라는 수식어를 달려면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추고 그에 따라 작업 영역도 구체적으로 좁혀져야 한다. 그러나 스타일만으로는 부족하다. 의미 있는 내용을 일관된 관점에서 표현했는지 여부를 마지막 조건으로 덧붙인다.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깊은 의미를 탐구한 디자이너다. 오로지 스타일만 추구하는 디자이너는 작가라고 부르기 어렵다. ‘작가’라는 용어에 대한 디자이너의 생각은 참으로 복잡하고 아리송하다. 최근에는 상처받은 디자이너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한 위로 차원에서 이 말이 많이 거론되곤 한다. ‘작가로서의 디자이너, 정체성을 찾는 목소리’라는 제목을 단 디자인 공모전은 이런 문구로 응모를 권장한다.

61



Michel Foucault

“정통적인 상업 디자인을 초월하여 개인과 사회를 탐구하는 활동으로서의 디자인 작품을 찾습니다.” 중간 전달자의 역할을 거부함으로써 전통적인 방식을 초월할 수 있다는 말은 작가주의적 디자인이 그렇지 않은 디자인보다 더 높고 순수한 의도를 지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디자인에서 디자이너의 개인 표현 영역을 넓히는 것은 오래된 작가주의 개념에 들어맞는 방식이다. 최근 이론이 설교하는 바를 따라, 독자가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디자인을 한다면 어떨까? 이는 분명히 전통적인 작가주의 이론과는 반대되는 발상이다. 미셸 푸코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사람을 작가로 인정할 순 없다고 말했다. 텍스트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독자의 자유로운 해석 따위는 용납하지 않는다. 이것이 작가에 대한 기존 정의다. 작가는 텍스트를 관장하는 주인으로 독자의 자유 의지로 자신의 텍스트를 보호한다. 이런 생각은 천재적인 창작자의 권위가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던 시절에나 통용됐던 낡은 사상이다. 작가성을 다시금 부각되고 있는 창작자의 책임을 드러내는 말로 받아들일 수 있다. 작가는 때로 정당한 권리를 찾고자 노력하고, 중간 전달자가 없는 영역에 개입해 스스로 그 역할을 자청하기도 한다. 궁극적으로 작가라는 위치에는 어떤 권한이 부여된다. 그래픽 작가주의가 진정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이러한 공식적인 권한을 사회로부터 부여받아 디자인을 사회 속에서 긍정적인 움직임을 일으키는 활동으로 정착시키려는 게 아닐까? 지난 50년 동안에 디자인 역사를 바로 이 같은 생각을 바탕으로 굴러왔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것을 뛰어넘으려 하는 중이다. 일부 디자이너를

63



Imre Reiner’s Work

영웅처럼 모시는 상황을 넘어서려면 우리는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볼 날을 향해 달려야 한다. “누가 디자인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어떤 작품이든지 그것을 만든 사람이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작가의 죽음에 대해 말한 사람들은 모두 유명한 작가다. 모더니즘 시대에 비평이 세워놓은 정의와 부류는 이제 너무 낡았다. 우리는 새 시대에 맞는 새 방식으로 과거의 관념을 뜯어고쳐야 한다. 예술적이면서 상업적인 혹은 개인적이면서 협력적인 자세를 갖추는 것처럼 서로 상반되는 성격을 동시에 담아내는 디자인 구사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우리는 작가로서의 디자이너라는 개념에 비춰 디자인을 뒤돌아봄으로써 분야를 확대하고 역사를 더욱 정교하게 다지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이에 덧붙여 작가주의 그래픽 이론에 따라서 디자인 방법을 바꿔나가는 중에 대중과 비평가가 반드시 신경 써야 할 중요한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만든 사람이 누구냐보다 무엇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더 관심을 쏟는 일이다.

65



1955 CoritaKent Studioview

공예의 반란 로레인 와일드 1998

요즘 디자이너는 공예라 하면 으레 종이공예나 수공업 정도로 여기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발상이다. 컴퓨터와 인쇄 기술에 익숙하면 디자인 과정에서 닥치는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잇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공예를 사소하게 취급하고 오직 기술만을 중요시한다면 직접 만드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식은 영영 찾을 수 없다. 공예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관심은 학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크랜브룩에서는 직조공예, 도자공예, 금속공예 과목을 중요시했다. 학생이었던 나는 디자인과 공예 사이에서 혼란에 빠지곤 했다. 디자인은 대중매체에 관한 것이고, ‘공예’는 물체 하나를 만드는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공예 시간에 만들었던 것들은 예술 작품이 아닌 실용적인 물건들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용성 여부가 아니었다. 디자이너가 사물이 실제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겪으면서 얻는 이해와 생생한 느낌, 이것이 우리가 공예를 배우면서 습득할 수 있었던 가장 소중한 가치였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조사하던 중에 피터 도머라는 영국 이론가가 쓴 <장인의 예술>이라는 책을 읽게 됐다. 이 책은 공예를 두 종류의 지식으로 나눠서 설명한다. 첫 번째는 이론 지식, 즉 사물에 숨겨져 있는 개념을 묘사하고 이해하기 위한 언어로서의 공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오직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무언의 지식, 즉 ‘노하우’다. 사물을 제대로 만들어낼 수 있게 하는 무언의 지식은 원리를 이해하는 이론적

67



Craft with hand

지식과는 다르다. 이론은 우리에게 더 나은 길을 제시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느 단계에서는 반드시 공예 지식(고유 지식이라고도 한다)을 체득해야만 한다. 도머는 이 두 종류의 지식이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다고 말한다. 공예 활동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구석이 많다. ‘공예 지식’은 사유가 아닌 경험을 통해 완성되기 때문이다. 한 번 숙달하면 무엇을 만드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공예 지식은 매우 힘들게 얻어지지만, 일단 기술을 갖추면 별다른 생각 없이 능숙하게 사용할 뿐이다. 다분히 본능적이다. 숙달 과정을 통해 공예 지식을 터득하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이론적인 평가가 아니다. 훈련된 ‘눈’으로 좋은 것을 가려내는 순수한 가치 평가다. 공예 지식은 공예품을 통해 대중의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공예는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활동이므로 지극히 개인적인 면도 있다. 공예가 그래픽 디자인에 적용될 때 우리는 이를 ‘디자이너의 표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디자이너는 프로젝트에 주어진 요구 사항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 외에, 공예가로서 스스로 생각하는 어떤 표현 가치를 달성하려 노력한다. 그러므로 프로젝트의 외적 사항만을 분석해서는 디자이너의 성향을 파악하기 어렵다. 디자이너의 고유의 공예적인 표현 의지가 작품의 일관된 성격을 빚어내기 때문이다. 어떤 이론으로 모든 것을 조직화하는 것은 공예가 아니다. 공예는 디자이너가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표현의 기회를 포착하려고 노력할 때 만들어진다. 도머는 공예를 높은 수준의 수학과 물리학에 비교하며 이렇게 말했다. “실험적인 자세를 갖춰야 한다. 어떤 이들은 실험을 그냥 의미 없는 놀이라고 착각하는데, 이는

69



1970 William Addison Dwiggins Marionnettes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실험에는 평가가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분별력을 키울 수 있다.” 또한 도머는 공예는 매우 중요한 활동이고 문화를 이루는 핵심 요소하고 주장했다. 넓은 의미에서 공예는 의미를 탐구하는 활동이다. 의미를 탐구하는 활동으로서의 공예가 어떤 것인지 보고 싶다면 여러 가지 시장 제약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로운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의 작품을 찾아야 한다. 이런 작품들은 지나치게 개인적이거나 때로는 괴벽스러워 보일 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빛이 나기 마련이다. 보면 볼수록 아름답게 느껴지고 의미가 분명히 드러난다. 나는 이런 디자인을 볼 때면 다른 것 다 필요 없이 오로지 그 작품이 풍기는 고결함에 이끌린다. W.A. 드위긴스는 기계 생산 체제 디자인에 공예의 가치를 불어넣으며 미국 타이포그래피의 역사를 다시 쓴 디자이너다. 그는 직접 인형을 만들어 매사추세츠의 한 차고에서 인형극을 상영하기도 했다. 앨빈 러스틱은 건축, 인쇄, 디자인, 교육을 넘나들며 어느 한 분야만의 전문가로 불리기를 거부했다. 그가 쓴 책에 적혀 있는 디자인에 대한 정의는 나를 감동시켰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 아무도 원하지 않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모더니즘에 반대했던 스위스 타이포그래퍼 임레 라이너는 전통 타이포그래피 형식으로 휘갈겨 쓴 지극히 주관적인 작품을 만들어 모더니즘의 ‘객관성’에 도전했다. 캘리포니아 남부 지역의 성직자이자 인쇄 매체 디자이너인 코리타 켄트 수녀는 1960년대의 대중적 시각언어를 통해 자신이 활동했던 지역의 사람들에게 영적이고 반권위적인 메시지를 전파했다. 지역적이고 대중적인 시각언어가 전혀 인정받지

71



Ed Fella Free Work in Due Time

못하던 시절이었는데도 켄트 수녀는 이를 주저 없이 적극 사용했다. 빅 대디 로스의 작품은 글로 설명하기 힘들다. 그의 작품은 진정으로 대담하고 즐거운 방식으로 지역적 색채를 담아낸다. 에드워드 펠라는 자신이 스스로 문제를 규정하고 그에 따라 디자인을 함으로써 ‘상업 예술’의 개념을 송두리째 뒤바꿔놓았다. 펠라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계획되고 통제되는 디자인에 반하는 시적인 작품으로 (펠라는 이에 대해

‘불완전하고 모순된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라고 말한다)

디자인을 디지털 기술을 완벽함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사람들의 실생활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위에서 언급한 디자이너들은 ‘콘셉트’ 위주의 디자인이 곧 미래의 디자인이라는 통념을 과감히 뒤엎었다. 그들의 디자인은 주류가 아니므로 자칫하면 발견되지 못하고 잊히기 십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작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들은 디자인의 대안을 제시한다. 말콤 매클로는 〈추상 공예〉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작품은 ‘콘셉트’가 무엇이냐보다는 어떻게 만들었느냐에 따라 의미가 결정된다.” 나는 요즘(1998년) 등장한 괴상한 교육 방식에 절대 동조할 수 없다. 많은 학교가 디지털 기술과 그래픽 발명을 전제로 과거의 기본 색채이론, 드로잉, 구성, 기초 타이포그래피 과정을 완전히 새롭게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창의력을 개발하고, 도구에서 자유로워지고, 상상하지 못했던 것을 만드는 데 신기술을 활용해야 한다. 공예를 중시하는 자세는 디자인 이론을 바로 세우고, 디자인을 사회 속에서 문화에 기여하는 활동으로 되돌릴 73



Katherine McCoy The Graduate Program in Design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상업적인 면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우리가 미래의 디자인을 전적으로 콘셉트와 기술에만 의존하는 활동으로만 여긴다면 이런 변화는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열정적인 공예에서 얻는 지식과 즐거움을 무시한 채, 디자인을 그저 이론적인 논쟁으로만 끌고 가려는 많은 시도들을 보면 정말로 힘이 쭉 빠진다. 만드는 행위를 통해 지식을 얻는 과정은 우리의 일상이어야 한다. 간단히 말해 공예는 너무도 강력하고 중요한 활동이다. 디자인 교육과 작업의 기초는 공예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 디자이너는 자신이 만든 작품을 통해 사상을 형성하고 문화를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대체 뭐란 말인가?

75



Marconi’s Yacht “Elettra”

광고 예술 선언문 페르난도 데페로 1929

미래의 예술은 광고 예술이다. 여기에는 어떤 의심의 여지도 없다. 나는 박물관에서 과거의 훌륭한 작품들에서 이단적인 배움을 얻었다. 지난 세기 모든 예술 작품에는 전쟁과 종교를 찬미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과거의 예술은 그들만의 상징과 발견, 지식을 통해 당시의 사건, 의식, 기질, 승리의 찬양을 자랑스레 표출한다. 심지어 건물, 정원, 옥과, 기저귀, 창, 깃발, 갑옷, 무기, 휘장, 그림을 비롯한 모든 제품이 찬양 일색이었다. 과거의 모든 작품은 승리의 영광을 광고한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그런 것들은 존재한다. 압축 기구의 제왕, 자동차의 왕자, 자석의 왕, 선풍기의 귀족, 전동기의 황제, 기계로 만든 독수리를 타고 우리는 하늘을 정복했다! 전기의 마법이 기적을 이뤘다! 과거의 예술은 과거를 찬양한다! 오늘날의 예술은 지금 여기 있는 우리의 영광, 우리의 영웅, 우리의 제품을 찬양해야 한다. 속도, 실용성, 전기. 빛X빛X빛X빛 광고 예술은 현학적 불평으로부터 자유롭다. 흥겹고, 당당하고, 상쾌하고, 말끔하고 희망적이다. 광고 예술은 창의적이고 현대적인 작업을 요구하는 어렵고 복합적인 예술이다. 숙명적으로 필요하고, 숙명적으로 당당하고, 숙명적으로 새롭고, 숙명적으로 대가가 주어지고, 숙명적으로 활기차다.

77



Alexey Brodovitch Editorial Design

현대인은 무엇에 기뻐하는가 알렉세이 브로도비치 1930

산업화, 기계화, 규격화 그리고 그에 따른 경쟁과 속도가 지배하는 시대에 기민하고 격렬하게 사고하려는 자세가 요구된다. 요즘 사람들은 극도로 강렬한 삶 속에서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방법을 갈구하고 이는 곧 모든 분야에서 편리와 규격이 우선시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열띤 경쟁과 규격화라는 현대 생활의 두 요소는 새롭고 흥미로운 문화의 새 장을 펼침과 동시에 서로 대치되는 개념이 충돌하는 모순을 낳기도 했다. 규격화와 차별화, 간략화와 정밀화. 이러한 역설을 극복하는 일이 광고업의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광고는 대립과 역설의 결정체다. 광고는 생명의 탄생이며 그 생명은 광고가 만든다. 광고는 더 이상 비누나 재봉틀, 스파게티와 같은 단일 제품에 대한 것이 아니다. 광고는 거대해지고 깊어졌으며 보편적인 소통 수단으로 거듭났다. 광고를 예술의 개념에서 접근할 때 사람들은 흔히 ‘응용 예술’이라는 명칭을 붙인다. 나는 이런 인식에 동조하지 않는다. 광고는 ‘순수 예술’에 반대되는 뜻인 ‘비순수 예술’이라고 불려야 마땅하다. 우리는 위대한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전기, 라디오, 텔레비전, 비행기, 영화, 자동차와 같은 발명품과 아인슈타인, 에디슨, 마르코니, 무솔리니, 레닌, 린드베르크와 같은 인물이 우리 시대를 대표한다. 이러한 상과는 새로운 이미지와 인식을 낳고 우리의 사고 체계를 바꿔놓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유례없이 빨라진 삶의 속도로 사람들의 감정이 둔화된 면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79



Optical Prism

우리는 더 이상 신문에 소개된 신형 자동차의 어마어마한 성능이나, 마르코니가 자신의 으리으리한 요트에서 버튼 하나를 눌러 오스트레일리아 전기 박람회의 시작을 알리는 수백 개의 전구를 점등했다는 소식, 북해를 육지로 만드는 계획에 대한 기사를 읽고 놀라지 않는다. 기술은 얼마나 많은 형태, 질량, 조형, 움직임, 색깔, 음영에 대한 지식을 우리에게 가져다줬던가! 사람의 눈은 일상 업무에 길들면서 전통과 관습의 노예가 됐다. 영사기, 사진기의 렌즈, 심지어 간단한 프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어둠을 뚫고 나가는 광선은 심오한 의미를 담는다. 삼차원, 심지어 사차원 공간을 나타내며 질감과 형태, 요철의 다양함을 드러낸다. 코닥 렌즈는 사물의 축소와 새로운 시점을 가져다줬다. 영화 카메라는 형태와 움직임, 리듬, 움직이는 사물을 낱낱이 해체해서 보여준다. 프리즘은 빛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며, 색으로 형태를 구상하는 방법의 가능성을 열었다. 망원경과 현미경은 무한한 원경과 근경을 드러내 보였다. 비행기는 장대한 속도와 공간을 떠올리게 했다. 텔레비전은 빛의 속도를 알게 해줬으며 거리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했다. 단조롭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우리의 일상에는 어떤 새로운 미적 가치도 없다. 새로운 미적 가치는 도시의 반짝이는 불빛, 찰칵 돌아가는 사진기의 표현, 자동차의 빨간 불빛과 젖은 포장도로에 새겨진 바퀴 자국, 도로의 차들이 그리는 낭만적인 야경, 강철 피스톤과 기어가 뿜어내는 서정적 표현, 비행기의 실루엣이 선보이는 영웅적 담대함, 높이 치솟은 탑의 조화로운 영광, 정적인 움직임과 여객선의 장엄함, 기관차의 역동적 방대함,

81



1930 Television

광택제, 콘크리트, 크롬의 자태, 자기 기압계와 도표가 표시하는 리듬감, 상형문자와 속기에 담긴 원시적 정확성, 지하철의 과학, 수기 신호, 신호등, 경찰관, 시계에 그려진 원이 내포하는 기호적 의미, 달리는 경주 자동차의 바퀴를 사진으로 찍었을 때 나타나는 분해된 형태, 새로운 미적 가치, 새로운 관점, 리듬, 움직임, 물질에 대해 생각할 것. 이러한 것들이 가져다주는 끝없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할 것. 오늘날의 산업은 광고 예술가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발상에 도움이 되는 여러 신료와 도구를 가져다줬다. 아연, 단단한 고무, 유리, 감광지, 필름, 셀룰로이드, 열가소성 수지와 같은 소재는 예전의 불편하고 다루기 어려웠던 석판, 값비싼 나무, 강철, 동판을 대체한다. 새로운 재료들은 완전히 새로운 표현과 효과의 가능성을 열어줬다. 공업용 광택제, 에어브러시, 극세 광선, 강하고 탄력있는 금속 바늘, 수술용 칼, 치과 치료 기구와 같은 도구는 투박하고 망가지기 쉬운 붓, 목탄, 크레용을 훌륭히 대체한다. 수작업으로 만든 판화와 인쇄물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아직까지는 수작업을 완전한 시대착오적 방식으로 치부할 순 없지만, 조만간 고상한 수집가의 낡은 장식장에나 들어가야 할 과거의 유물임은 분명하다. 테포, 헬리오, 오프셋과 같은 현대 복제 기술은 광고 예술가에게 어마어마한 표현의 가능성을 열어줬다. 인쇄 과정에 쓰이는 스크린과 형판의 성질을 연구하고, 인쇄기의 실린더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살피고, 라이노타입 작품을 꾸준히 접하고, 실패한 교정지를 잘 살펴본다면, 우리는 예술적 발상을 무한히 넓혀줄 새로운 그래픽 표현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광고 예술가는

83



1938 original “A” Scope that will be installed at the new Observatory in New Berlin

새로운 표현 가능성을 탐구하고 이를 수준 높게 표현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심리를 날카롭게 분석하는 능력까지 갖춘다. 광고 예술가는 소비자를 비롯한 대중의 취향, 욕구, 습관을 파악하고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 광고 예술가는 진부함과 대중의 저질 취향에 맞서 싸우는 진보적 선구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오직 자신이 익숙한 범위 내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것에 만족한다. 진부한 전통에 얽매인 채로 역사, 박물관, 전시회, 파리의 쇼핑 거리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다수가 따르는 가치를 의심의 여지없이 자신에게도 좋은 것이라고 여기고 조건 없는 애정을 쏟는다. 현대 광고 예술가에게는 이렇듯 마비된 사람들의 의식을 흔들어 깨워야 할 의무가 지워졌다. 우리는 산업화와 기계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의 창의력은 이미지의 표준을 세움과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무한한 다양성을 이룰 수 있게 해줬다. 이렇게 표준화되고 다양해진 이미지는 우리의 일상 업무를 간편하게 해줄 뿐 아니라, 새로운 미적 가치, 리듬, 구조, 구상, 구성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발판이 됐다. 우리는 새로운 이미지를 보고 느끼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우리는 새로운 재료에 맞는 새로운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예측불허한 가능성과 새로운 미적 가치가 탄생하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뤘다. 이제 광고 예술가는 이 성과를 더욱 찬란하게 빛내도록 노력해야 할 때다. 지금가지 말한 바를 요약하면, 오늘날의 광고 예술가가 추구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85



Alexey Brodovitch Editorial Design

1. 개별성

2. 보편성

3. 현대인의 삶을 느끼고 이해.

4. 소비자와 대중의 심리를 느끼고 이해.

5. 현대의 재료, 기술, 표현법, 복제술 향상에 따른 새로운 그래픽적 가능성을 모두 활용할 수 있는 능력 6. 기본적인 설득 방식을 취하고, 공리적이고 간단하게 새롭고 독특하게 논리적인 표현을 추구함으로써 소재로부터 광고 아이디어를 뽑아내는 능력.

87



Hamilton Appealing Pako Campo

광고: 현실의 모방? 혹은 인신공격? 폴 랜드 1960

모든 중요한 의미와 예술은 경험의 깊이와 타당성으로부터 나온다. 영리한 머리로 끌어낸 추론으로 짜 맞춘 예술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 알프레드 노스 와잇헤드 인류 역사에 존재했던 시각 예술가 중에 요즘의 상업 예술가만큼 감각적 경험을 무차별로 쏟아부은 이들이 있었던가. 상업 예술가는 자신의 디자인이 전시된 도심 거리를 지날 때마다 온갖 뉴스와 소음의 폭풍을 맞이한다. 사람을 만나기는커녕 사람들에게 짓밟히기 일쑤다. 자신이 만든 작품 또한 주변과 불협화음을 일으키며 그를 향해 비명을 내지른다. 너무나 다른 수많은 제품과 이벤트가 그를 에워싼다. 다른 예술가와 달리 상업 예술가는 이러한 주변 환경을 무시하고 지나치지 못한다. 이것이 그가 속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가 만들었고, 그와 함께하며, 그가 헌신하는 세계. 이렇듯 수많은 자극 요소에 압도당하는 광고 예술가가 진정한 예술의 기초가 되는 깊이 있고 타당한 경험을 갖춘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산업디자인에서 타이포그래피에 이르는 영역을 담당하는 예술가는 어쩌면 대중예술인의 위치에 있는 걸지도 모른다. 대량 소비시장의 수요에 의존하고 대중매체를 기반으로 작업한다는 점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다른 여러 문화적 층위에 고루 관여한다는 점에서 상업 예술가는 순수 예술가와 다르다. 대중 예술인은 전통이 강한 사회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익명성을 유지하며 사회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일반적인

89



Paul Rand Thoughts on Design

작업을 한다. 요즘 인기가 높아진 대중 예술가를 향한 의구심은 단지 그들이 얼마나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느냐에 그치지 않고, 과연 그들을 예술가로 봐야 할 것인가의 문제에까지 확장되고 있다. 기술 발전과 경제적 제약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이러한 의문은 더욱 커진다. 크게 봤을 때, 환경을 이루는 요소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생각하고 느끼고 신뢰하는 방식은 과거와 판이하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산업혁명의 음산한 울림과 이에 따른 삶의 구조 및 내용의 격변을 겪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다. 새로운 세상에서 ‘변화’는 아주 중요한 개념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는 현기증이 날 정도의 속도로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변화의 충격은 모든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변화를 파악하거나 평가할 시간 따위는 주어지지 않는다. 대중 예술가는 작업의 효율성을 위해 이러한 상황에 편승해야 하지 않을 수 없다. 변화는 주어진 상황이다. 대중 예술가는 산업사회의 예술가로서 무수히 많은 제품을 디자인한다. 대중 예술가가 사업가로 인정받는 경우는 드물다. 제품의 미적 가치와 판매량은 어떻게 관련될까? 대답은 다음과 같다. 아무 관련 없음,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임, 크게 상관됨. 상업 예술가가 단순한 ‘스타일리스트’ 이상이 되려면 반드시 둘 중 하나여야 한다. 자신이 어떤 식으로 문화에 기여하는지를 확실히 알거나, 아니면 클라이언트의 요구, 대중의 취향에 대한 환상, 소비자 여론조사 같은 것들에 완전히 사로잡히거나.

91



Coronet Brandy Magazine Advertisement 1946

이전 세대는 주어진 삶을 살았다. 개인이 수행해야 할 직업적 역할은 매우 분명했다. 과거에는 개인적 성취뿐만 아니라, 사회 속에서 역할을 수행하고 생산적인 인간으로 역할을 하는 것에도 인생의 의미가 있었다. 만약 어떤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적 목표를 찾지 못하거나 사회의 문화 속에서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그가 만든 작품뿐만 아니라 예술가 자신까지도 실패작 취급을 받아야 했다.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위태롭게 균형을 잡으며 판매 여부에 따른 비인간적 평가를 받아야 하는 요즘 상업 예술가들에게 예술적 개성이란 까마득한 얘기다. 하지만 예술은 지금껏 지역사회, 교회, 후원자로부터 오는 엄청난 제약 속에서 존재해왔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예술은 승리했다. 심지어 로렌초 데 메디치가 예술을 싫어했을지라도 미켈란젤로는 어떻게든 조각과 회화 작품을 만들어냈다. 순수 예술이든 디자인이든 상관없이 진심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몰입하는 예술가는 별다른 존재 이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가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사실을 간파하지 못한 예술가들이 있다. 사회 · 경제적 상황이 규정한 디자이너의 역할을 마치 절대적으로 따라야 할 원칙인 양 받드는 디자이너가 많다. 예술가는 자신이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할지를 스스로 규정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술가는 어느 정도까지 사회 · 경제적 상황을 창조하는 역할을 맡게 되는데, 미리 규정된 모습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고만 해서는 이런 본연의 활동을 수행할 수 없다. 싫든 좋든 누구나 새로운 환경의 형성에 어떤 식으로든지 기여하게 됨은 사실이지만, 각 개인이 그것을 인식하고 움직이는 것과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93



From a 1963 issue of Ladies Home Journal

흘러가는 것의 차이는 크다. 예술가의 창조력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했을 때 발생하는 존엄성과 긍지를 원천으로 한다. 어떤 알 수 없는 인생의 게임에 휘말려 거대한 힘에 놀아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신과 자신이 쏟아부은 노력에 대해 아무런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인간으로서, 예술가로서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런 제약이나 방향이 없는 변화여서는 곤란하다. 나는 그 제약과 방향을 설정하는 것, 즉 인간의 본능적 욕구와 그 욕구가 투명하게 드러나는 환경을 만드는 방법을 이해하는 것이 디자인 교육의 핵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고계의 거물, 미사일 개발자, 공인, 시민이기 이전에 우리 모두는 인간이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인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 인간이 인간을 최우선으로 받들지 않을 때 이익을 위해 공공의 가치를 무시하는 시스템이 생겨나고, 광고를 평가하는 기준이 ‘모델이 얼마나 섹시한가’로 귀결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대중 예술가가 이 사회는 너무 빠르고, 과하고, 분열됐고, 강압적이고, 도덕적 가치가 혼란스럽고, 미적 취향이 낮다고 느낀다면 스스로 나서서 상황을 바꿔야 한다. 여기에는 반박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남은 문제는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먼저 주변 환경과 자기 자신의 관계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나’라는 존재가 개입되기 시작하면 온갖 구체적이고 일반적인 저항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색안경을 끼면 모든 게

95



Kitschy, Kitschy, Koons

훨씬 단순하고 친숙해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개인이라는 섬을 둘러싼 혼돈의 파도에 몸을 던진다면 예술가는 간신히 고개만 내밀기도 벅차 어디를 향해 가는지는 생각하지도 못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될 것이다. 올바른 평가와 판단을 내릴 만한 자주적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사라지는 것이다. 독립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대중 예술가는 끊임없이 가속되는 변화상을 혼란스럽게 뒤섞인 형태가 아닌 안정된 현재의 모습으로 꿰뚫어볼 수 있다. 또한 그러는 와중에 표면적 변화와 근본적 변화를 구분하는 안목도 갖추게 된다. 표면적 변화와 근본적 변화를 구분해내는 것은 상업 예술가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클라이언트는 제품 디자이너가 ‘새로움을 자아내는 요소’를 알아내기를 요구한다. 카피라이터는 광고 디자이너에게 새롭고, 다르고, 역사상 최초인! 어떤 것을 만들자고 말한다. 이럴 때 말하는 모든 ‘새로움’이란 사실 진정한 새로움 즉 발명이라든지 인지 방식을 혁신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얘기들이다. 이른바 ‘새로움’이란 개념은 일시적인 놀라움을 수반한다. 분홍색 난로, 지느러미가 달린 자동차, 그래픽 잔재주 따위가 그런 깜짝 선물에 해당된다. 단지 새로워지고 싶어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열풍은 위선, 천박함, 쓰레기 등을 수반하며 이에 연류된 디자이너를 타락시킨다. 상업 예술가는 파급력이 높은 사안에 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놓이곤 하는데, 이때 사실과 허구를 구별하는 힘이 판단의 밑바탕이 된다. 산업 현장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활동하는 상업 예술가의 결정은 높은 미적 수준을 달성하는 것 이상의 효과로 이어진다. 상업 예술가가 어떤

97



No Way Out Film Poster

제품을 디자인하면 거기에는 단지 수억 원의 회사 돈만 걸리는 게 아니라, 그 제품을 제조하는 사람들의 생계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래픽 예술가 역시 제품을 팔리게 함으로써 회사의 이익과 직원의 직장을 보존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왜 그 일을 하는지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은 상업 예술가에게 지워진 사회적 책임이라 할 수 있다. 상업 세계에서 예술가의 역할은 분명하다. 예술가는 잘 팔리는, 잘 팔리도록 유도하는 제품, 시스템, 서비스를 디자인해야 한다. 높은 미적 가치를 이룰 만한 재능과 능력을 갖췄다면 보는 사람의 눈을 자극하고 즐겁게 해주는 그런 제품과 그래픽을 만들어야 마땅하다. 여기서 말하는 ‘자극’은 소비자의 경험을 풍성하게 해줌을 의미한다. 예술가의 자질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임과 동시에 가장 갖추기 어려운 것은 단연 재능이다. 그러나 아무리 재능이 있다 한들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신념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재능은 제대로 발휘될 수 없다. 진정한 예술가는 미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도덕적 자부심을 갖추고, 사회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역할을 상기하며 작업에 동기를 부여한다. 수행해야 할 역할이 있기에 클라이언트의 돈과 여러 사람의 직장을 담보로 걸고 실패를 무릅쓰면서까지 계획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과 관점을 통해 세상의 형성에 기여한다. 새로운 감각과 아이디어, 경험을 선사하고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여느 예술 분야와 마찬가지로 대중 예술 역시 형식과 물질을 연결하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예술에서 형식과 물질은

99



Cézanne Apple

아이디어를 매개로 하나가 된다. 아이디어는 주변 환경에 대한 예술가의 의식적 · 무의식적 경험, 그중에서도 독특한 경험을 토대로 형성된다. 이에 대해 조이스 캐리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 화가, 작가, 작곡가는 작품을 만들 때 과거에 뭔가를 발견했던 경험에서부터 시작한다. 발견이라고는 하나,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우연히 만난 것에 가깝다.” 피카소는 찾아 헤매지 말고 알아내라고 충고했다. 두 말은 같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조이스와 피카소는 모두 예술가의 창조적 행위는 경험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말한다. 예술가는 풍부한 경험을 통해 내재된 본질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발견이 예술의 형태로 변환하고 구현되는 것이다. 과다한 감각적 자극을 받으며 살아가는 요즘의 예술가는 자신에게 닥치는 수많은 경험을 선택하고, 정리하고, 몰입할 수 있어야만 그것을 사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아이디어는 굳이 독특하거나 흥미로울 필요가 없다. H. L. 멘켄은 「조지 버나드 쇼의 연극」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연극의 각각의 장은 지극히 상투적인 표현을 바탕으로 한다.” 그럼에도, 왜 버나드 쇼의 연극에 대해 모두 난리법석이냐는 물음에 멘켄은 이렇게 대답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예상치 못한 괴상한 조명으로 뻔한 것을 비범하게 과장해서 전시하는 순수 예술의 기법을 터득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세잔이 그린 사과 혹은 피카소가 그린 기타를 생각해보면 사실성은 복잡성에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는 1947년에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 “예술가는 일반적인 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작업을 한다.” 이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예술적 가치가 주제의 수준에 좌우된다면, 상업 예술가와

101



El Producto Cigars

광고 예술가는 도무지 구제할 길이 없을 것이다. 나는 그다지 독특한 구석이 없는 궐련(담배의 일종) 을 만드는 회사와 오랫동안 일하고 있다. 궐련은 사과만큼이나 평범한 주제다. 그러나 내가 생동감 있고 독창적인 궐련 광고를 만들지 못한다면 이는 내 표현의 문제이지, 궐련이라는 주제 탓으로 돌릴 문제는 아니다. 시각적 아이디어는 예술가의 경험과 관점을 다른 사람들에게 특별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장치라는 면에서 중요하다. 보는 이는 작품을 접하면서 뭔가를 발견한다는 느낌, 예술가가 겪은 그 느낌을 공유한다. 오직 이러한 경험만이 관객의 경험을 풍성하게 해줄 수 있다. 그래픽 아티스트의 경우, 이러한 시각적 아이디어를 활용해 제품의 판매를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예술가만의 고민이 아니다. 사업가, 과학자, 기술자도 같은 문제를 안고 씨름한다. 창의적 작업은 예술가 혼자서 이뤄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대중 예술가는 기계적 사상이 미쳐 날뛰는 세상과 기계의 노예가 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무력감과 소외감에 빠진다. 그러나 이러한 느낌은 환상일 뿐이다. 과학은 본질적으로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가득한 활동이며 이에 얽힌 미적 수준 역시 탁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러한 예술가와 과학자의 공통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기계적 관점은 자연과학에서 말하는 절대불변의 법칙과 유사한 어떤 법칙에 근거해서 세상을 규정한다. 기계적 관점은 사회적 현상을 인간의 행동 및 결정과 동떨어진 것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관점에 내재된 위험성은 과학 기술이 이룬 물질적 성과의 위험성에 비할 바가 못된다.

103



Big Families advertising flyer 1947

우리가 사회의 흐름에 속수무책인 것은 우리 스스로 그렇게 되기를 택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기계의 노예가 되어왔고, 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노예를 자처했기 때문이다. 컴퓨터와 가상현실 기계가 엄청난 세계를 형성했다 할지라도, (적어도 최초에) 그것들의 용도를 결정하는 주체가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기계는 어디까지나 우리의 결정과 생각을 따른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기계가 아닌 기술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나갈지에 대한 것이다. 과학자와 예술가는 전반적인 방향과 구체적 목표 및 가치를 깨우치고, 그에 따라 기술 발전에 방향성을 부여할 수 있다. 무엇이 될지는 전적으로 우리가 결정한다. 사물을 알아보는 방식, 즉 사물에 대한 인식은 우리가 원하는 바에 따라 달라진다. 이것이 우리가 가치를 판단하는 방식이다. 증기 터빈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과학적’ 으로 디자인돼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디자인할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이런 결정은 필요가 아닌 욕구에 따라 내려져야 한다. 제품을 반드시 아름답게 디자인해야 하는 건 아니다. 외적 아름다움을 고려하지 않아도 제품을 생산하고 시장에 내놓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광고 역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지 않고도 구매를 설득할 수 있다. 예술 없이도 상업 세계는 (최소한 잠깐) 잘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길 원하는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세상은 정말 살고 싶지 않은 곳이 될 것이다. 상업 예술가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때 자신의 존재 이유는 제품과 서비스의 판매를 촉진하는 데 있다는 핑계를 댄다. 내 생각에 이러한 자세는 자기 무덤을 파는 꼴밖에 안 된다. 상업 예술가는

105



Advertisement for Jacqueline Cochran cosmetics designed by Paul Rand

종종 열등감에 사로잡혀 순수 예술을 신경질적인 태도로 바라본다. 상업 예술은 눈에 띄고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는 면에서 이른바 순수 예술이란 것과 확실히 다르다. 뭔가를 팔려고 노력하는 것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부끄러워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적 기준에 맞지 않는 제품이나 광고를 만들어냈을 때뿐이다. 대중 예술가는 클라이언트와 대중이 좋은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이런 불평꾼들의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업가가 거부한 자칭 ‘좋은 작품’이란 것이 사실은 수준 미달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클라이언트가 옳바른 판단을 내릴 때도 있고, 예술가가 지나치게 독선적인 경우도 있다. 어떤 예술가는 사업가가 현대적인 것을 거부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클라이언트가 이건 지나치게 현대적이다라고 말할 때는 대부분 자신이 무엇을 지적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다. 이때 클라이언트가 실제로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유선형이 남용됐다는지, 심벌이 별로라든지, 타이포그래피가 엉망이라든지, 제품이 잘 보이지 않는다든지 하는 사항이다. 예술가는 이러한 클라이언트의 평가를 오해 없이 잘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뭔가를 파는 행위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많이 파는 것도 잘못된 일이 아니다. 판매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경우는 딱 한 가지다. 허위로 팔아넘기는 것. 광고 내용이 거짓이거나, 오래된 제품을 새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경우 예술가와 디자이너가 윤리적으로 옳은 선택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예술가는 진실한 것에서 가치를 느낀다. 그렇지

107



Jazzways magazine, Volume 1, 1946, with cover design

못한 상황에서 예술가는 창의적인 활동을 펼칠 수 없다. 일이 잘못됐을 때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보는 대신 상업 세계의 근시안적 자세를 원망하고 대중이 원하는 것을 주려고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예술가는 자신이 만든 작업이 별로라는 사실 혹은 경제적 상황에 짓눌린 채로 그저 보스가 시키는 대로 왜곡된 표현을 해서 쉽게 빠져나간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질 낮은 작업물의 탄생을 몽땅 클라이언트와 대중의 나쁜 취향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실패한 이유 중에는 예술가의 용기가 부족했음도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작업의 진실성을 잃지 않으려면 예술가는 싸워서라도 자신의 신념을 지켜야 한다. 용기 있게 행동했다고 누가 상을 주지는 않는다. 멋있지도 않고, 심지어는 직업을 잃을 수도 있다는 차갑고 각박한 위험이 도사린다. 그러나 신념을 향한 용기는 재능과 더불어 예술가가 지닌 유일한 힘이다. 사업가는 자신이 하는 일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다. 이 경우 사업가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예술가를 써먹고, 해고한다.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해고를 당해도 예술가는 여전히 예술가인 것을. 사업가를 위한 ‘쓸모’를 유지한다면 직장을 꾸역꾸역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가로서의 긍지를 잃은 상태에서 예술을 계속할 수는 없는 노릇. 결국에는 스스로 예술가이길 포기하고, 아쉬움에 일요일에만 잠시 예술가로 복귀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예술가뿐만 아니라 산업 사회도 용기가 필요하다. 주의해서 살피지 않는다면 요즘 사회에 만연한 타성적 분위기가 모든 창의력을 말려 죽일 것이다. 타성은 광고 표현을 진부하게 만든다.

109



1960 Weyenberg shoes Advertisment

광고인들은 노골적인 성적 · 감상적 · 속물적 표현에 매달린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거의 모든 자동차에 지느러미가 달리게 된 것도 다 같은 이유에서다. 예술가는 타성에 맞서 싸워야 한다. 하지만 혼자 힘만으로는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다. 용감한 개척자가 독창적인 작품을 들고 나오면 사업가가 기다렸다는 듯이 합세하고, 그 뒤를 예술가들이 따른다. 이 행렬은 올바른 방향 따윈 안중에 없이 무작정 앞으로 나간다. 예전에 미국 콘테이너사에서 내놓은 광고가 크게 주목받은 적이 있었다. 그 뒤로 광고인들은 ‘콘테이너사가 했던 것처럼 하자’는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만드는 광고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는 생각지도 않은 채 말이다. 모든 문제에는 상황에 맞는 시각적 해결책이 따로 있다. 이는 비누 회사 광고와 콘테이너사 광고가 근본적으로 완전히 딴판이라는 뜻은 아니다. 토스터와 망치에 같은 디자인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는 뜻도 아니다. 이들 광고와 제품은 모두 기능과 미적 가치를 충족시킴으로써 소비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실현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산업 현장 및 광고 대행사에서 상업 예술가와 고용주가 서로를 이해하고 협조하는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올리베티, 미국 콘테이너, IBM, CBS, 티 담배,

CIBA와 같은 회사들이 협력 대행사와 힘을 합쳐 뛰어난

디자인을 탄생시킨 데 반해, 다른 수많은 회사의 광고는 형편없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산업 사회가 창의적 재능과 창의적 작품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함으로 인해 대중문화의 수준은 높아지지 못한다. 이미 유명하고 성공한 예술가는 많은 보수를 받는다. 성공은 111



Paul Rand

일에 대한 능숙함과 성실함에 주어지는 마땅한 보상이다. 그러나 성공한 예술가만 받아주는 상황에서는 초보자 및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무명의 혁신가가 일어설 가능성이 없다. 더구나 산업사회가 그저 ‘조금만 더 낫게’, ‘조금만 다르게’ 만 바라는 상황에서는 예술 분야 및 과학 기술 분야에서의 창의성을 기대할 수 없다. 긴 안목으로 볼 때 사업과 예술의 지향점은 서로 반대 방향이 아니다. 예술의 도움 없이도 사업은 얼마간 계속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술은 모든 종류의 성장을 가능케 하는 창조적 활동의 핵심이다. 우리가 자유 국가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의 여부는 경제, 과학, 기술이 얼마만큼 성장하고 진보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하는 온갖 연설과 신문 기사, 책, 구호가 빗발치는 중이다. 창조성을 인정하고 옹호하는 분위기는 사업가와 과학자를 대우함과 마찬가지로 예술가를 인정하고 독려하는 자세에서부터 형성된다.

113



1964 Carnation’s Friskies Cat Food

중요한 일을 우선으로 칼 가렌드 1964

그래픽 디자이너, 사진작가, 학생들은 지금껏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기에 수익과 효율적인 면에서 광고만한 분야가 없다는 잘못된 선입견에 빠져 살아왔다. 이러한 편견을 강화하고 제품을 팔아치울 목적으로 우리의 기술과 상상력을 이용한 작업을 찬양하는 내용 일색인 책들이 우리 주변에 넘쳐난다. 여기서 말하는 제품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고양이 사료, 위장약, 세제, 발모제, 줄무늬 칫솔, 면도 후 바르는 로션, 면도 전 바르는 로션, 살 빠지는 식품, 살찌는 식품, 체취 제거제, 탄산음료, 담배, 화장품, 옷, 신발 광고업계에서 일하는 이들의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국가의 번영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이런 사소한 것들에 의해 낭비된다. 일반 대중의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제품을 팔아먹기 위한 아우성도 이젠 포화 상태에 이르러 순전히 소음으로만 들리는 상태가 됐다. 세상에는 우리의 재능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더욱 가치 있는 일들이 있다. 도로 표지판, 책, 정기간행물, 카탈로그, 사용 설명서, 산업용 사진, 교육 보조자료,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 과학 및 산업 관련 출판물, 우리나라의 산업 및 교육, 문화, 세계화를 홍보하는 모든 매체가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소비 시장을 위한 광고가 송두리째 사라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게 되기는 불가능하다. 삶의 즐거움을

115



The First Things First Manifesto

부정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어떠한 소통 방식이 더 유용하고 오래갈지를 고려해서 일의 우선순위를 따져보자. 이 사회가 권모술수에 능한 장사꾼, 높으신 사업가, 보이지 않는 강요 같은 것들을 물리칠 것을 희망하며, 이 사회가 우리의 기술을 더욱 가치 있는 일에 활용해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가슴에 품고 동료와 학생은 물론 관심 있는 모든 이들과 경험과 의견을 공유할 것을 제안한다.

117



The Penrose Annual 1964

디자이너의 직업적 책임 허버트 스펜서 1964

직업으로서의 그래픽 디자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 직종은 지금까지 어떤 형성 과정을 거쳤는지 간단히 살펴보자. 세상에 디자인되지 않은 제품이나 인쇄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내용이 간단하고, 크기가 작아도 (혹은 품질이

형편없어도) 모든 제품과 인쇄물은 누군가에 의해 디자인된 결과물이다. 이 최종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많은 사람의 손길이 닿는다. 누군가는 크기, 모양, 색, 재료, 시각적 세부 사항을 결정한다. 취향, 유행, 전통, 관습, 편의성, 효율성과 같은 요인이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작용해 결과물을 빚어낸다. 산업 구조가 지금보다 훨씬 단순했던 과거에는 인쇄 및 공예 분야의 장인이 고객과 상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모든 결정을 내리고 ‘팀’원들에게 작업을 지시했다. 장인은 보통 수하보다 높은 안목과 솜씨를 갖춘 사람이었다. 18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기술자와 발명가는 자신들의 부와 명예를 몽땅 걸어 사업을 벌이곤 했다. 그들은 자신이 만든 증기기관차, 엔진, 기계 같은 것들을 자랑스럽게 선보이며 여기에 성공을 기념하고자 장식과 문양을 새겨 넣었다. 이러한 장식은 그것을 덧붙인 발명품의 재질과 그다지 잘 어울리지는 않았으나, 제품을 팔고 싶어하는 이들의 열정과, 그것을 만든 장인의 진심만큼은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제조 공정의 기계화에 발맞춰 새로운 인쇄 방식이 등장했다. 이전까지는 비교적 단순한 편지지, 청구서, 명함 같은 인쇄물로 충분했다면, 새로운 상황에서는 대량생산 산업을 119



Herbert Spencer Design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분배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인쇄물이 필요했으며, 늘어난 제품의 숫자와 치열한 경쟁 속에서 광고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1800년 이후 광고가 급속히 발달함에 따라 인쇄용 활자는 점점 커지고, 두꺼워지고, 변화무쌍해졌지만, 지면 구성은 제목을 중앙에 정렬하는 과거의 책 제목 페이지 형식에서 전혀 변하지 않았다. 19세기 초, 광고주는 경쟁 업체들 사이에서 눈에 띄고 싶어했으나 중앙정렬을 고집하는 인쇄공은 독특한 레이아웃을 탄생시키기에 역부족이었다. 결국 이러한 모순된 상황은 두꺼운 글꼴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타이포그래피 실험은 그저 다양한 글꼴을 활용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1870년경에 압반을 사용하는 인쇄기가 등장하면서 이른바 ‘예술 인쇄’라는 인쇄 방식이 탄생했다. 예술 인쇄는 색 잉크와 정교한 장식(내용과는 별 상관없는)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중앙정렬을 탈피한 책 페이지 구성이 처음 시도됐던 때가 바로 이 무렵이었다. 예술 인쇄는 높은 완성도와 테크닉을 실현했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그러한 솜씨가 단지 상업적 용도에만 한정되어 나타났지 때문에 인쇄의 진정한 목표에 부합하는 활동을 이끌어내지는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쇄공들은 인쇄의 근본 목적을 완전히 망각했다. 그들은 인쇄물을 소통 수단으로 인식하지 못한 채, 그저 낡은 관습에 얽매이거나 아니면 난잡한 테크닉을 모방하기에 바빠 자신들에게 주어진 창의적 유산을 쓸데없는 일에 허비했다.

121



1964 Tonic Spray Advertisment

당연히 인쇄공들은 대중과 고객에게 신임을 잃었다. 인쇄 산업 전반의 미적 가치 기준이 무너졌으며 희미해진 전통은 그 끝자락을 잡을 수도 볼 수도 없었다. 인쇄공은 윌리엄 모리스와 그의 추종자들과 같은 ‘아마추어’들에게 디자인의 권한을 넘겨줘야만 했다. 인쇄공들 입장에서는 분했겠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심각했다. 요즘의 그래픽 디자인 분야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19세기 인쇄공들이 겪었던 일련의 사태와 비슷한

구석이 많다는 느낌이 든다. 넓게 봤을 때 19세기 제품과 가구

디자인도 당시 인쇄 디자인과 마찬가지 상황에 부닥쳤다. 원인과 과정은 조금 달랐지만, 재료의 본래 성질을 무시하고 사용자의 편의와 안락을 무시하는, 근본 목적과 기능을 상실한 디자인이 범람했다는 점에서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혁신적 기술을 경솔하고 무책임하게 남용한 결과 19세기 인쇄 분야는 근본을 상실했다. 인쇄 산업은 소통 수단이라는 인쇄물의 근본 가치를 보지 못한 채 식자공들이 본인의 만족을 위해 멋대로 글자를 조판하도록 방치했다. 결국 화가, 작가, 건축가와 같은 외부 분야의 사람들이 치고 들어와 글자를 구출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인쇄공에게서 글자를 운용하는 권한을 빼앗은 그들은 20세기 절반의 시간 동안 조금씩 천박한 관례를 없애고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인쇄를 가꿔나갔다. 디자이너와 디자인에 관련된 사람들이 자신에게 부여된 기회와 의무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시간이 왔다. 디자인이 비전문직에서 전문직으로 변화함에 따라 일자리와 기회도 그만큼 늘어났다. 현장에서 입지를 굳힌 디자이너는 기업이나 123



Herbert Spencer and The Book of Numbers

대행사가 정해놓은 스타일에서 파생되는 여러 프로젝트를 소화하느라 분주하다. 이런 상황이 우리에게 주는 이득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큰 규모의 활동은 더 나은 작업 여견을 형성하고 조사, 연구, 실험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한다. 단일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는 누리기 어려운 장점이다. 가장 큰 규모의 몇몇 디자인 프로젝트는 꽤 괜찮은 상업적 결과를 이끌어냈고, 동시에 모두에게 유용한 디자인 지식과 자료를 확립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디자이너의 사회적 기여는 경제적 측면에만 있지 않다. 디자이너가 짊어진 더욱 중요한 책임은 사회가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레터링, 색, 패턴이 사람들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그나마 조금 실행된 실험은 디자이너 없이 과학자들끼리 수행한 연구로, 실제 디자인 문제와는 별개인 순수한 과학적 결론을 도출한 것이 전부다. 유럽에서는 매년 100명 중 한 명이 자동차 사고를 당하는데, 이들 중 많은 경우가 기술자와 공무원이 만든 어설프고 부적절한 도로표지판 때문에 생명을 잃거나 불구가 된다. 물론 기술자와 공무원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겠지만, 본인들의 지식과 경험 밖에 있는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계에는 최소 1000만 명의 맹인이 각종 자선 활동에 의지해서 살아간다. 그들 중 일부는 적절한 도움을 받아 점자를 읽는 법, 기계를 다루는 기술, 수공예 등을 배우면서 사회에 적응한다. 맹인을 비롯한 여타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수많은 새로운 장비와 기술이 디자이너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장애인을 위한 장비

125



Coka Cola with Time Magazine

디자인은 제작사들이 처한 시장 상황과 기술 수준에 맞춰 개선돼야 할 여지가 많다. 문맹 퇴치는 현재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다.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에서 벌어지는 문맹과의 전쟁에 참여하는 디자이너가 과연 몇이나 되는지 의문이다. 능숙한 디자이너가 30분이면 만들어낼 방법을 찾느라 교사, 선교사, 공무원들이 머리를 싸매고 몇 년간 고생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문맹을 퇴치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더 많은 액수의 돈이 코카콜라 판매량을 높일 목적으로 예술가와 디자이너에게 투입된다. 디자이너가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사회적 이슈는 여러 가지가 있다. 디자이너가 거대 자선 캠페인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20세기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실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 기술자, 의사, 교사가 각자의 영역에서 해야 할 일이 있듯이, 디자이너가 해결해줘야 할 중요한 부분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부탁받을 때까지 그늘에 앉아서 쉬고 있을 수는 없다. ‘누군가’는 나서야만 한다. 디자이너는 사회의 일원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수행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전문가로서 디자이너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디자이너 자신이다.

127



Victor Papanek Rolling Jugs

교육 그래픽학 디자인의 허구, 허구의 디자인 빅터 파파넥 1975

그들은 오직 ‘쓸모 있는 물건’만을 생산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쓸모 있는’ 물건을 너무 많이 생산하면 ‘쓸모없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사실은 인식하지 못한다. — 칼 마르크스 디자인 철학과 디자이너의 자긍심은 일련의 충격들에 의해 무너졌다. 약 20년 전 디자이너는 자신을 스스로 예술가라고 여겼다. 형태, 기능, 색, 질감, 균형, 비율과 같은 사항을 다룸으로써 기술과 마케팅을 한데 엮을 수 있는 예술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산업 디자이너와 건축가는 이와 더불어 비용, 편리성, ‘취향’까지도 고려해야 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고 디자이너의 역할은 제조 공정, 유통, 시장조사, 판매와 같은 시스템 영역에까지 확장됐다. 이런 상황으로 디자인 팀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는데, 그 팀이란 게 정치적인 기술자, 판매 전문가, 유행 따라 움직이는 ‘설득 전문가’와 같은 작자들이 뭉친 조직이었다. 그 이후에 극히 소수의 디자이너들이 도구를 사용하는 이와 도구를 만드는 이(소비자, 노동자), 인류학자, 생태학자를 비롯한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디자인 과정에 참여시켜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려는 시도를 했다. 최근 디자인 사회의 엘리트 집단은 자기만족에서 오는 쾌락을 높이기 위해 ‘노스탤지어 유행’이니, ‘키치 누보’니, ‘신 브루탈리즘’이니 하는 되지도 않는 말을 꾸며내어 퍼뜨렸다. 서구 사회에서 ‘사물의 디자인’과 ‘사물의 제작’이란 말이

129



Victor Papanek Radio Can

서로 다른 뜻으로 사용된 지는 불과 25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250년 전부터 디자인이란 용어는 상류 문화가 규정한 아름다움의 도덕적, 윤리적 기준에 따른 어떤 미적 가치에 관련된 활동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루이스 설리번이 말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말한 ‘형태와 기능의 합일’, ‘재료의 정직한 활용’, 바우하우스가 말한 ‘용도에 맞는 형태’, ‘다양성 안에 존재하는 통일성’과 같은 개념은 모두 윤리적, 도덕적으로 긴박하게 요구되는 사항이다. 그런데 이러한 도덕적 필요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무시당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만든 의자나 바우하우스에서 만든 ‘쿠겔리흐트’에 앉아 본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말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디자인이 겪고 있는 이러한 변화로 말미암아 디자인 교육은 앞으로 더 간단해질 것이다.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최우선 임문는 인간과 자연의 연결점을 찾는 것이다. 형태를 위주로 하는 디자인 화동에 대한 의문과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사람들은 디자인이 사람을 외면한다고 느낀다. 온갖 현대적 계획과 건축이 사람을 소외시킨다고 느낀다. (사실이다) 산업 디자인은 사회 계급을 나누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

그래픽 디자인은 하찮은 사항을 지루하게 다루는 것이라 여긴다. (맞다) 디자인은 점점 더 사람과 현실로부터 멀어져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데 우리는 ‘아래 세상’에 남겨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모두 맞는 말이다) 지금까지 디자인 교육과 디자인 사회는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응했다. 131



Tetrakaidecahedral Movable Playground Structure

1. 명칭을 새롭게 바꾼다. 근본적인 사항은 내버려 둔 채 새로운 수식어와 명칭을 미친 듯이 찾아다녔다. ‘상업 예술’이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으로 둔갑하더니, 이내 ‘그래픽 디자인’으로 바뀌고, 최근에는 ‘시각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이 되더니 이제 한 술 더 떠 ‘환경 그래픽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우스꽝스러운 말까지 생겨났다. 얼마나 한심한지를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다. ‘산업 디자인’은 ‘제품 디자인’, ‘제품 개발’, ‘조형’으로 이름을 바꾸더니, 이제는 새로운 대중에게 인정받고자 미쳐 날뛰며 ‘대안 디자인’, ‘대안적 디자인’, ‘적정 기술’, ‘사회적 디자인’, ‘중간공학’, ‘생각을 지지하는 디자인’과 같은 명칭을 쏟아냈다. 이 정도면 중증도 보통 중증이 아니다. 명칭을 바꾸는 것은 아무 소용도 없다. ‘화장터’를 ‘작별의 정거장’이라고 부르든, ‘바보’를 ‘교육 수준이 낮은 자’라고 부르든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눈에 보이는 글자가 대체됐을 뿐이다. 2. 한편에서는 종전의 비즈니스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다른 한편에서 ‘제3세계’ 디자인, 놀이터 조성 계획, 장애우 및 소수 집단을 위한 활동과 같은 편견에 근거한 소규모 디자인 장르를 억지로 만들어낸다. 새롭게 탄생한 제3세계의 ‘수요’에 중점을 두는 활동은 프로이트가 말한 ‘사물화’와 연관지어서 생각해 볼 수 잇다. 이런 식의 활동에서는 누군가의 필요를 소비 재화로 치환하는 사고과정이 적용된다. 주변부 혹은 피지배 집단 및 국가의 생존 문제를 엘리트 집단의 지식독점과 전문가의 생산독점이 좌우하게 하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전문가들이 ‘기본

133



We are all handicapped, section from Big Character Poster No. 1: Work Chart for Designers

수요’를 해결해주도록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외국으로 제품을 수출하는 ‘국내’ 기업들은 엘리트로 규정되는 내국인의 이익만을 챙기려 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기본 수요에 관련된 활동을 올바로 수행할 수 없다. 결국 억지로 꾸며낸 어떤 소수 집단을 위한 디자인에 몰두하는 역현상이 발생함으로써 주류 디자인은 방치되고 말았다. 일반적인 그래픽 디자인과 그래픽 디자인 교육은 여섯 가지 가시적 목표를 추구한다. 1. 필요도 없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제품을 구입하도록 설득하기. 2. 특정 제품, 서비스, 경험이 사회 계급을 상징함을 알리기.

3. 낭비적이고 환경에 유해한 방법으로 제품, 서비스, 경험을 포장하기.(장의사가 판매하는 관을 보라!)

4. ‘적절히’ 반응하는 법을 배운 계급에게 시각적 즐거움과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 5. 한 손이 한 일을 다른 손으로 무효화하기. (공해 반대 포스터, 금연 광고)

6. 지금까지 열거한 다섯 가지 활동에 얽힌 과거, 현재, 미래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지금까지 디자인 교육은 사회에 퍼진 디자인에 대한 허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여기에 우리만의 새로운 허구를 만들어 덧붙였다. 다음에 열거하는 항목은 디자인에 대한 10가지 허구, 이러한

허구를 없애는 10가지 방법이다. 135



Victor Papanek: The Politics of Design

허구1 디자인은 전문직이다. 전문직으로서의 디자인은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없다. 오로지 사람들의 참여를 통해서만 그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다. 전문직에 대한 허구는 늙은이들이 탈세와 자기보호의 방편으로 삼는 ‘디자인 단체’에서 꾸며낸 선동구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허구2 디자이너는 본인의 취향을 따른다. 알려진 바로는

각각의 디자이너는 선호하는 취향이 있지만(여기서 말하는

취향이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그러한 취향을 일에 반영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그런데도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여전히 ‘기능적 형태주의’, ‘급진적 소프트웨어’, ‘낭만적 프리미티비즘’, ‘사회적 현실주의’ 따위의 말에 홀려 있다. 허구 3 디자인은 상품이다. 상품은 소모되는 것이다. 디자인을

상품으로 취급할수록 더 많은 디자인이 소모되고, 측정되고, 분류되고, 먹힌다. 허구 4 디자인은 제조 활동이다. 생산의 균형이 붕괴하면서

우리는 이것이 대량생산인지 아니면 거대 대중에 의한 생산인지를 물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세계 인구 삼분의 일이 산업국가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지구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위험 요인은 사람이다. 창의적이지 못한 사람, 사람들을 기술에 속박시키려는 사람, 무조건 ‘성장’만 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잘못된 믿음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을 위협한다. 자연환경의 측면에서 봤을 때 제조업은 인구를 도시에 몰리게 하고, 재생 불가능한 자원을 재생 가능한 것처럼 남용함으로써 환경을 해치는 결과를 낳는다. 허구 5 디자인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디자인은 디자이너를 위한

것이다. 디자이너는 자신이 만든 디자인을 통과시키기 위해 137



Design Other 90 Percent

마케팅 담당자를 설득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다. 마케팅 담당자는 사람들에게 제품을 파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사포질을 해줘야만 때깔이 나는 만년필을 들고 다닌다. 그리고 그런 만년필을 만든 디자이너는 밀라노에서 상을 타고, 영국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실리고, 뉴욕의 현대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연다. 디자인이 진정으로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그 사람들이 직접 디자인과 제조과정에 참여해서 자원 소비를 줄이고 환경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허구 6 디자인은 문제를 해결한다. 그렇다. 디자인은 문제를

해결한다. 그런데 해결하는 문제란 것들은 죄다 디자인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그래픽 디자이너는 기차로 여행하는 것이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보다 낫다는 광고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나 이로 인해 걷기와 자전거 타기는 무시되고, 그럼으로써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좁아진다. 허구 7 디자이너는 특별한 기술이 있으며 그 기술은 전문 교육

기관에서 6년 동안 배워야 익힐 수 있다. 우리는 뭔가에 대해 말하고 (포스터, 영화, 기술적인 그림, 렌더링, 인쇄 지면, 언어,

프로토타입 모델 등을 통해서), 조각들을 결합해서 의미 있는

전체를 구성하는 기술을 지녔다.그러나 이러한 능력은 인간의 잠재력에 내재된 것이다. 팔아먹는 속임수는 직업학교에서 1년만 배우면 충분히 익힐 수 있다.

허구 8 디자인은 창조적이다. (창조적 사고 101 따위의

학과를 개설하는) 디자인 학교는 학생들을 분석과 법칙에 따라 사고하도록 지도하며, 창조적 사고는 학교가 정해놓은 테두리 안에서만 이뤄지도록 제한한다. (고양이의 철자는? 139



Airbrush

또는 ~1의 제곱 값은?과 같은 것이 분석을 요하는 질문이고, 어느 쪽이 옳은가?와 같은 질문은 법칙에 근거한 판단을 요하는 질문이다) 창조성은 단순한 지식의 답습이 아닌 보다 복합적인 과정에서 탄생한다. 교육은 능숙하고 경쟁력 있는 인재를 배출하고자 할 뿐, 창조적이고 자율적인 인간을 길러내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 허구 9 디자인은 필요를 만족시킨다. 필요를 채워주긴 한다.

그러나 이는 가공된 거짓 필요이며, 이를 채우기 위해 엄청난 사회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 에어브러시는 비싸고 전문적이고 차별적인 도구다. 에어브러시에 익숙해지려면 (혹은 에어브러시가 사람을 길들이려면) 몇 달이 걸린다. 에어브러시는 사용자를 전문 기능인으로 만든다. 반면 평범한 붓은 사용하기 쉽고, 누구에게나 제공되며, 사용자에게 엄청난 창조적, 가능성을 열어준다. 허구 10 디자인은 시대의 유행을 탄다. 많은 디자인이 의도적인

진부화와 관련돼 있다. 진부화는 가치 저하와 소외를 낳고, 결국에는 존재에 대한 ‘불안’으로까지 이어진다. 영구성은 디자인의 중요한 부분이다. 여기서 말하는 영구적 디자인은 최소한 5년에서 10년 정도 지속될 수 있는 디자인이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좋은 도구(자전거, 전동 손수레,

대형 냉동고, 도끼)란 내구성을 최소화한 것을 의미한다.

디자인은 인간이 자신을 스스로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하도록 돕는 기본 활동이다. 디자이너와 디자인 교육자는 인간의 존재와 활동을 허구적으로 조작함으로써, 세심히 선별된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독립성을 말살하는 일에 141



Abstracting Craft The Practiced Digital Hand

일조한다. 우리는 이러한 허구를 깨부수고 우리의 작업과 훈련에 얹어진 전문성의 거품을 날려 버려야 한다. 아래는 우리가 디자인을 삶의 중심에 되돌려놓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기록한 목록이다. 1. 일부 디자이너는 미래를 위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식의 활동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수천 명에 달하는 디자이너가 산업에 연계된 일에만 몰두하는 반면, 노동조합에 관련된 일을 하는 디자이너는 한 명도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담배 회사와 자동차 회사와는 일하면서 암 치료센터나 보행자, 자전거 이용자들의 모임과 같은 자치 단체들과는 일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2. 재생 가능한 자원과 그렇지 않은 자원을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해야 한다. 3. 디자인 과정과 제조 과정에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분야 사람들이 모인 팀에는 반드시 사용자와 재사용자가 포함돼 있어야 한다. 4. 디자이너는 제작자와 사용자로 구성된, 사용자와 재사용자로 구성된 새로운 연합체를 형성할 것이다. 5. 제대로 디자인된 기술은 독립적으로 작동하고 자원을 절약하는 것이어야 한다(여기서 말하는 자원이란 재생 불가능한 자원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그러한 기술은

간단하고, 작고 그것으로 인해 어떤 생태적 · 사회적 · 정치적 결과가 나타날지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6. 디자인은 제품에 중독된 사람들을 구제해야 한다.

디자인에 대한 허구뿐만 아니라 사물에 얽힌 허구까지도 걷어내야만 사람들을 제품 중독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 143



Josef Müller Brockmann Beethoven Poster

7. 학생들이 인간의 필요를 상상으로 지어내게 하는 대신, 현실 세계의 현실적인 사람들이 원하는 현실적 요구를 지속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8. 디자인은 앞으로도 도구에 관한 사항을 다룰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어떤 특정 도구만이 작동할 수 있도록 껴맞춰진 상황 때문에 인간의 노동, 참여, 능력이 폄하하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9. 일전에 내가 어디선가 말했듯, 모든 인간은 디자이너다. 건강한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은 디자인이다. 우리는 그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스스로의 · 경험, 서비스, 도구, 사물을 스스로 디자인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난한 국가는 국민에게 일거리를 줄 수 있을 것이고, 부유한 국가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10. 기술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알파벳, 아라비아 숫자, 활자, 타자기, 복사기, 녹음기, 카메라와 같은 기술은 허구가 아닌 참여의 가능성을 열어줬다. 그리고 참여는 즐겁고 자주적인 개인의 성취로 연결됐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한 속담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치겠다. 이 속담은 디자인과 디자인 교육이 왜 작업하고 참여하는 삶과 생생히 연결돼야 하는지를 알게 해준다. 나는 듣고 나는 잊는다. 나는 보고 나는 기억한다, 나는 행동하고 나는 이해한다.

145


F.T. 마리네티

페르난도 데페로

Filippo Tommaso Marinetti 1876 - 1944

Fortunato Depero 1892 - 1960

이탈리아의 미래주의자인 필리포 토마소

유럽의 아방가르드 운동은 속물적 미를

마리네티가 내놓은 일련의 글과 그래픽

거부하고 기계와 속도, 전쟁의 가치를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찬양했다. 포르투나토 데페로는 이러한

기존의 상징주의에 대항하는 시인이었던

아방가르드 운동을 지지하는 이탈리아의

마리네티는 자유로운 언어를 통한

미래주의자였다. 그는 신문에 선언문을

표현가능성에 큰 관심을 쏟았다.

발표했으며, 미래주의 예술 잡지인 <디나모>를 창간했고, 여러 미래주의 예술

엘 리시츠키 El Lissitzky 1880 - 1941

엘 리시츠키는 1921년 베를린으로 건너가 자신의 포토몽타주, 인쇄, 그래픽 디자인, 회화 작품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전시회를 개최했다.

알렉세이 브로도비치 Alexey Brodovitch 1898 - 1971

당시 유럽 현대 광고 산업의 선구자였던

구성주의와 절대주의 운동을 서유럽의

그는 1930년에 미국으로 이민해서

예술 디자인 사회에 전파하는 데 중요한

필라델피아 뮤지엄 스쿨에 광고 학부를

역할을 했다.

개설했고, 1941년에는 뉴욕의 뉴 스쿨 포 소셜 리서치에 디자인 연구소를 설립했다.

W.A. 드위긴스 W.A. Dwiggins 1880 - 1956

브로도비치는 학생들에게 모더니즘의 가치를 교육했다.

윌리엄 에디슨 드위긴스는 그래픽 디자인

비어트리스 워드

용어를 처음 언급한 주인공이다. 그래픽

Beatrice Warde 1900 - 1969

장인과 예술가에게 분야의 체계를 확립할 것을 촉구한다. 1920년대 영향력 있는

1900년대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을

광고 예술가였다.

중심으로 활동한 타이포그래퍼이자

알렉세이 간

모노타입 리코더』의 편집장으로 취임했다.

타이포그래피 이론가다. 1927년에는 『더

Aleksei Gan 1887 - 1942

알렉세이 간은 러시아 무정부주의자로 볼셰비키 마르크스주의를 지지하는 아방가르드 화가이자 미술 이론가, 그래픽 디자이너였다. 러시아 혁명 이후 구성주의 발전의 핵심 인물이었다.

이후 30여 년 간 격동하는 유럽의 역사 속에서 타이포그래피의 전통적 규범이 지닌 가치를 설파는 글들을 발표했다.


얀 치홀트

빅터 파파넥

Jan Tschichold 1902 - 1974

Victor Papanek 1927 - 1998

얀 치홀트는 독일 출신 타이포그래피

빅터 파파넥은 사회와 환경에 책임을

디자이너다. 그는 순수함, 명료성,

지는 제품 디자인, 도구 디자인, 사회

단순함을 가치로 하는 신

기반 시설 디자인, 적정기술 디자인을

타이포그래피의 원형을 제시하여 신

강력하게 주장한 디자이너이자

타이포그래피를 정립하였다. 하지만

교육자이다. 물질주의가 팽배했던 시대에

스위스 이민 후 정작 자신은 고전

디자인의 정신적 가치를 부각시키면서

타이포그래피로 회귀하게 된다.

생태적 균형을 전제로 한 디자인의 실현을 강조했다.

폴 랜드 Paul Rand 1914 - 1996

폴 랜드는 미국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켄 가렌드 Ken Garland 1929 -

아트디렉터로 다양한 기업의 로고 디자인

켄 가랜드는 1956년부터 62년까지

작업을 했으며 스위스 스타일의 창시자

<디자인>지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했다.

중 한 사람이다.

First Things First 선언문은 제품을 팔아먹기 위한 아우성에 집중하는 대신,

허버트 스펜서

좀 더 가치 있는 일에 관심을 돌리자는

Herbert Spencer 1924 - 2002

내용을 집약해서 서술한다.

허버트 스펜서가 <타이포그래피카>의

로레인 와일드

편집 일을 그만둘 무렵, <런드 험프리>라는 잡지 발행자로부터 「펜로즈

Lorraine Wild 1953 -

연감」의 편집과 디자인을 맡아달라는

로레인 와일드는 캐나다 출신 작가,

연락을 받았다. 1964년에 처음으로 그가

미술사학가로 크랜브룩 아카데미에서

작업한 「펜로즈 연감」이 나왔다.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마이클 록 Michael Rock

저술가, 디자이너, 교육자. 뉴욕의 디자인 스튜디오 2×4를 공동 설립하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디자인 찾아보기 ㄱ

가구 디자인 121

디자인 문제 123

아름다운 디자인 103

디자인 공모전 59

문제해결 디자인 137

완성한 디자인 43

디자인 과정 64

미래의 디자인 71

디자인 용어 129

디자인 과정 127 디자인 과정 141 과학적 디자인 103

디자인 원칙 109 ㅂ 디자인 방법 63

디자인 교육 69 디자인 교육 73

디자인 역사 61 디자인 이론 71 인쇄 디자인 33

인쇄 디자인121

디자인 교육자 139

사람을 위한 디자인 135 일과 디자인 59

디자인 권한 121

디자인 사무실 57

디자인 결과물 117

사물의 디자인 127

기능적 디자인 17

디자인 사회 129

디자인 작품 61

기능 상실 디자인 121

산업디자인 87

디자인 장르 131

디자인 구사하기 63

산업 디자인 129

좋은 디자인 35

디자인 권한 121

산업 디자인 131

중앙정렬 디자인 17

그래픽 디자인 53

디자인 상품 135

제품 디자인 89

그래픽 디자인 117

서비스 디자인97

디자인 지식 123

근거없는 디자인 23

새로운 디자인 27 새로운 디자인 53

새로운 디자인 127

창조적 디자인 137

디자인 단체 135

새로운 책 디자인 45

책 디자인 23

덧입히는 디자인 23

시각 디자인 131

디자인 철학 127

대안적 디자인 131

수학적 디자인 55

들로네 테르크의 43


디자이너 찾아보기 ㅋ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131 감독과 디자이너 59

ㅇ 디자이너의 역할 91

광고 디자이너 95

영웅같은 디자이너 61

규범을 신봉하는 57

요즘 디자이너 61

디자인 팀 127

그래픽 디자이너 59

의미를 탐구한 59

그래픽 디자이너 137

의욕만 불타오른 21

그래픽 디자이너 113

이름 없는 제작자 55

ㅍ 디자인 프로젝트 123

인쇄 디자이너 27 ㄴ

능숙한 디자이너 125

인쇄 디자이너 31 인쇄 매체 디자이너 69

디자인 학교 53 디자인 학교 137 디자인 화동 129

ㄷ 디자이너 35

형태주의 디자인 55

ㅈ 디자이너 자신 125 디자이너의 자긍심 127

작가 디자이너 53

모든 디자이너 59

작가로서의 59

모든 인간 143

디자이너의 작품 69

ㅅ 산업 디자이너 127

ㅍ 디자이너의 표현 67

상처받은 59 디자이너의 성향 67

소수의 디자이너 127

한계를 시험하는 53

스타일만 추구하는 59

해체주의 디자이너 55

디자이너의 손길 123


Image Source 3 1900 Paris Exposition Universelle http://socks-studio.com/2012/04/30/technologicwizardries-at-paris-1900s-exposition-universelle/

5 https://i.pinimg.com/originals/f7/2c/9c/f72c9cdd 3585574954a2b4dcd70325c2.jpg

7 1910 Wacky Wing Airplane https://www.historynet.com/the-wacky-wing-onthis-1910-airplane-actually-worked.htm

27 https://www.worthpoint.com/worthopedia/vtg1920s-lot-telephone-directory-1734736082

29 https://www.worthpoint.com/ worthopedia/1910s-postcard-paris-glass-factoryparis-il

31 https://retronaut.com/capsules/c-1900photographs-by-emile-zola

33 https://i.pinimg.com/originals/5a/ee/a8/5aeea8db 866b9419aa686fc25ce38b62.jpg

9

35

Russian battleships in the Black Sea during World War I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ba ttleships_of_Russia_and_the_Soviet_Uni on#/media/File:Black_Sea_Battleships.jpg

https://www.aguttes.com/lot/24360/5249419

37 https://en.wikipedia.org/wiki/Blast_(magazine)#/ media/File:Tate-blast.jpg

11

39

https://digitalcollections.nypl.org/ items/510d47e1-0360-a3d9-e040-e00a18064a99

https://www.johnheartfield.com/JohnHeartfield-Exhibition/about-johnheartfield-photomontages/dada-political-arthistory/heartfield-grosz-neue-jugend-1

13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 commons/thumb/9/91/Kodak-Six-20-ArtDeco.jpg/546px-Kodak-Six-20-Art-Deco.jpg

15 https://mk0migazoviyiqveg0dt.kinstacdn.c om/wp-content/uploads/2013/07/vintage-1920Northwind-fan.jpg

17 https://www.thoughtco.com/who-invented-thelightbulb-1991698

19 https://www.grandrental-stl.com/shop/tableware/ glassware/stemware/stemware-crystal-gobletbordeaux-cabernet-22oz/

41 https://www.amazon.com/SuprematismDrawings-Unovis-Vitebsk-Russian/ dp/0946311048

43 https://thisisdisplay.org/bookstore/rassegna_piet_ zwart_bruno_monguzzi/

45 https://thecharnelhouse.org/2014/07/25/ellissitzky-about-two-squares-1922/

47 https://www.arteslonga.com/en/art-history/205large-painting-easel.html

21

49

https://www.agefotostock.com/age/en/StockImages/Rights-Managed/HEZ-1527312

https://en.wikipedia.org/wiki/ Moscow_Art_Theatre#/media/File:Moscow_Art_ Theater,_Fyodor_Schechtel,_1902.jpg

23 https://conpaper.tistory.com/66294

25 https://www.sbf.org.uk/whats-on/view/theannual-beatrice-warde-memorial-lecture/

51 http://www.victoriana.com/Fashion/ victorianclothing/howtodressvictorianman.htm

53 - 55 - 57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 umeNo=8265488&memberNo=37502600


59

87

https://medium.com/not-so-different-emergingdigital-craft-practices/malcolm-mcculloughabstracting-craft-the-practiced-digital-hand189d2f90137a

https://www.logodesignlove.com/all-about-paulrand

61 https://m.blog.naver.com/ virilio73/220049046630

63 http://www.letterology.com/2011/02/iconoclastdesigner-imre-reiner.html

65 http://www.galerieallen.com/en/artistes/ oeuvres/8/corita-kent

67 https://www.insidescience.org/news/anotherpair-eyes-does-see-different-things

69 https://indexgrafik.fr/william-addison-dwiggins/

71 https://www.lacma.org/art/exhibition/ed-fellafree-work-due-time

73 http://cranbrookartmuseum.org/artwork/ katherine-mccoy-posters-the-graduate-programin-design/

89 https://jonpersson.co/blog/thoughts-on-design/

93 https://flashbak.com/30-sexy-swingin-sixtiesundergarment-ads-around-world-387546/

95 https://www.tabletmag.com/sections/artsletters/articles/koons-kitsch

101 https://baileystreetdesign.com/2020/10/05/paulrand-designer/

109 https://www.dailymail.co.uk/news/article3318841/Shocking-posters-1950s-60s-sexistracist-campaigns-seen-acceptable.html

113 http://www.vintageadbrowser.com/animals-ads1960s/8

115 http://palaceoftypographicmasonry.nl/order/thewritten-keystones/5-first-things-first-the-allpowerful-lure-of-advertising-set-against-thesmall-scale-of-graphic-design/

75

119

http://www.seefunknetz.de/ibdk.htm

https://designobserver.com/feature/herbertspencer-and-the-book-of-numbers/37654

77 http://www.lafrimeuse.com/en/alexeybrodovitch-the-genius-of-editorial-design/

79 https://www.alamy.com/optical-prism-vintageengraving-old-engraved-illustration-of-opticalprism-image277833368.html

121 https://www.flickr.com/photos/aprilmo/7948060748

127 https://m.blog.naver.com/ sangsanggagu/130177460772

81

131

https://en.tab-tv.com/?p=11824

https://barcelonarchitecturewalks.com/victorpapanek-exhibition/

83 https://sites.google.com/site/ biologytimeline19301949/1932---first-electronmicroscope

133 - 135 https://www.wired.com/2015/04/paul-randvisionary-showed-us-design-matters/

85

139

http://www.iconofgraphics.com/AlexeyBrodovitch/

https://en.wikipedia.org/wiki/Airbrushl


우리는 모든 혁명을 찬양한다. 시는 미지의 대상을 폭력적으로 공격해서 무력화하고 굴복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에는 예술가였으며 오늘날에는 건설자다. 우리는 인류를 변화시켰다. 우리는 몽상에 빠진 예술가가 아니다.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불필요한 요소는 모두 없애버려라. 책을 디자인하는 타이포그래퍼는 독자가 작가의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창문을 만드는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현재 상황에서 가능한 한 참신한 가치를 끌어내는 일이다. 모든 것을 새로운 자세로 바라보고 평가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우리 시대에 벌어지는 엄청난 변화를 책이라는 형태에 반영하는 데 힘써야 한다. 그것은 만든 사람이 누구냐보다 무엇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더 관심을 쏟는 일이다. 만드는 행위를 통해 지식을 얻는 과정은 우리의 일상이어야 한다. 디자인 교육과 작업의 기초는 공예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 광고 예술은 현학적 불평으로부터 자유롭다. 광고 예술은 창의적이고 현대적인 작업을 요구하는 어렵고 복합적인 예술이다. 현대 광고 예술가는 진부함과 대중의 저질 취향에 맞서 싸우는 진보적 선구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작업의 진실성을 잃지 않으려면 예술가는 싸워서라도 자신의 신념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신념을 향한 용기는 재능과 더불어 예술가가 지닌 유일한 힘이다. 다만 어떠한 소통 방식이 더 유용하고 오래갈지를 고려해서 일의 우선순위를 따져보자. 디자이너가 짊어진 더욱 중요한 책임은 사회가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우리는 이러한 허구를 깨부수고 우리의 작업과 훈련에 얹어진 전문성의 거품을 날려 버려야 한다.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