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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람 이 바 람 을 불 어
작 서 고 치 고 더 하 기 까 지
폰 트 품 질 에 대 한 이 해 와 공 감
번화한 길을 걷다 보면 빼곡히 들어선 가게와 그 앞 삼삼오오 모 여있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가게도 유행에 따라 뜨는 업종과 지는 업종이 있듯이, 10여 분만 걸어도 커피집 두세 곳은 쉽게 볼 수 있 는 것을 보면 요즘은 분명히 커피집이 대세인 듯합니다. 최근 커피 업계의 조사를 보니 우리나라 사람 중 15세 이상은 커 피를 하루 평균 두잔 정도 마신다고 하며, 우리나라 1년 커피 시 장 규모가 2조 이상이라고 합니다. 저도 하루에 커피를 두세 잔 마시고 (맛있는 커피를 적당한 값에 파는 집을 찾곤 합니다만) 하 루 평균 5천 원 정도를 커피값으로 씁니다. 한글 폰트와 다른 업 종 일이지만 이런 기사를 읽을 때면, 한글 폰트 시장을 생각해봅 니다. 거의 모든 집에 컴퓨터가 있고,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을 사용합니 다. 학교 숙제를 하기 위해 컴퓨터를 켜 한글 폰트를 쓰고, 직장에 서는 수많은 서류를 컴퓨터에서 한글 폰트를 이용해 작성합니다. 심지어 친구에게 이-메일을 보낼 때도 한글 폰트를 씁니다. 그리 고 일상에서 흔히 보는 광고와 간판에도 한글 폰트를 씁니다. 이 렇게 보면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한글 폰트를 쓰고 있는 것입니 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거의 매일같이 쓰는 한글 폰트는 고작 300명도 채 안 되는 사람들이 만들고 있으며, 한 해 한글 폰 트 시장 규모는 200억 원 정도로 추정합니다. 이 수치는 10년 전 과 비슷하고, 근로자의 임금도 10년 전과 비슷합니다. 커피와 한글을 비교하는 것이 좀 어색하다면 물(생수)은 어떨까 요. 1990년 중반 물을 팔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비난하거나 비 웃었습니다. 어디서나 수도꼭지만 틀면 나오는 물을 누가 돈 주고 사 마시느냐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은 많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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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이 생수를 사 마시는 것에 거부감이 없습니다. 음식점에서도 수 돗물인지 생수인지 묻곤 합니다. 물맛 때문에 생수를 마시는 것 이 아니라, 수돗물에 대한 불신과 기업의 홍보 그리고 자신의 몸 을 위해 조금이라도 좋은(깨끗한) 물을 마시려는 마음이 생겨서 이러한 변화가 있었다고 봅니다. 마시는 물에 대한 생각과 습관이 변하는데 2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지만, 한 해 생수 시 장 규모는 2014년 기준으로 5,000억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커피와 물 산업이 호황을 누리는 반면 한글 폰트 산업이 침체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커피와 물은 마시고 나면 다시 사서 마셔야 하지만, 컴퓨터에 설치된 한글 폰트는 사라질 일이 거의 없습니다. 설령 샀던 한글 폰트 파일을 실수로 잘 못 관리하 거나, 컴퓨터 환경이 바뀌어 기존의 폰트를 쓸 수 없게 되어도 인 터넷상에 떠돌아다니는 폰트가 많다 보니 다시 사는 일은 많지 않 습니다. 그리고 커피와 물은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건강과 관 련이 있습니다. 의견 차이가 있지만, 커피가 우리 몸에 좋은 작용 을 한다고 하며, 물이 우리 몸을 유지하는데 가장 필수적인 요소 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한글 폰트를 건강과 연결지어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좋지 않은 한 글 폰트를 사용하는 것이, 정신 건강과 정서에 해롭다고 생각하며 직업병을 유발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한글 폰트 산 업이 커진다면 이러한 연관성에 관한 연구도 진행될 것이라고 믿 습니다) 또한 기호 식품인 커피는 많은 애호가가 다양한 맛을 음 미하며 서로 취향을 공유하고 즐깁니다. 물맛 또한 섬세한 미각 으로 차이를 느끼면서 취향을 드러냅니다. 한글 폰트는 어떨까요. 파격적으로 달라진 활자가 아닌 섬세한 진보를 한 한글꼴을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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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한글 폰트 애호가는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요. (아마도 <바 람.체> 프로젝트를 후원하신 분들이나, 새로운 폰트가 나오면 이 모저모 살펴보고 사는 사람이 한글 폰트 애호가가 아닐까 생각 합니다) 한글 폰트 산업과 커피와 물 산업이 가진 가장 큰 차이는 품질을 판단하는 방법과 기준의 유무라고 생각합니다. 바리스타는 커피 의 품종과 로스팅 방법 그리고 커피 내리는 방법과 숙련도 등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생수를 파는 기업 역시 물을 얼마나 안전하게 생산하고 있는지, 물이 우리 몸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알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커피나 물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우리가 섬세하게 맛을 구분할 줄 모른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이들의 말을 믿습니다. 그동안 그들이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검증하고 수치화하며 예를 만들어 보여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전문가가 있고, 논리가 있고, 기준이 있고, 예시가 있습니다. 한글 폰트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한글 폰트의 품질과 상관없이 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한글 폰트를 돈 내고 쓰라고 하면, 처음 물 사 마시라는 것처럼 마땅치 않아 합니다. 더욱이 한 글 폰트 품질을 판단하는 아무런 기준이 없어서 내 마음에 드느냐 들지 않느냐 외에 논리적인 대화를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글 폰트에 읽는 것 이상의 가치가 필요하다면, 또는 미세하지만 아름 다운 한글꼴을 원한다면, 품질 좋은 한글 폰트를 사용하기 바란다 면, 폰트 공급자는 판단 방법과 기준 그리고 예시를 보여줘야 합 니다. 그래야만 머지않은 미래에 한글 폰트의 품질 차이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한글 폰트 애호가가 많아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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