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3일 금요일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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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서클

며칠 전부터 형광등을 켤 때마다 아슬아

슬했다. 스위치를 올리면 한두 번 끔뻑거린

뒤에야 불이 들어왔다. 그러던 게 오늘은 아 예 반응이 없다. 의자를 놓고 형광등을 떼어

보니 양쪽 끝이 거무스름하다. 백열등보다

느린 녀석이 제 긴 몸에 불을 당겨오려고 얼

마나 애를 썼던지 ‘다크 서클’이 짙다.

이젠 불을 끌어오지 못하지만, 일하는 내 내 뜨거웠을 형광등의 몸체를 잠시라도 선

선한 곳에 눕혀준다. 내가 형광등의 다크 서

클을 예사로 봐 넘기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십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남편이 두어 달

걸리는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면 나는 늘 그 의 눈 밑부터 살폈다. 눈 밑이 맑고 깨끗할

때가 별로 없었다. 거무스름하거나 심할 때

는 푸르죽죽하기까지 했다. 얼굴이 왜 이

렇게 되었냐고 하면 “이만하면 미남이지.”

라고 그는 얼버무렸다. 콘테이너선이 태평

양을 건너는 데는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는

다. 그래서 그 배를 타고 있는 선원들은 일

주일 만에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하게 된 다. 항해하는 동안 하루에 한 시간씩 시간을

전진시키거나 후진 시켜야 하니, 수면 시간 과 식사 시간이 매일 바뀌어 피로가 쌓일 수

밖에 없었다.

배라는 것은 화물을 싣고 바다를 오갈 때

만 운임이 산출되기에 바쁘게 움직인다. 아

무리 기상 조건이 나빠도 정해진 날짜에 입 항하고 출항해야 한다. 언젠가는 입항하자

마자 ‘선박 검사’를 받는 바람에 두 달 만에 보는 남편을 부산역 앞의 아리랑호텔 커피 숍에서 겨우 한 시간 만나고 헤어진 적도 있 다. 서로 얼굴 한 번 보고 시계 한 번 들여 다보고 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 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나는 것은 그의 눈 밑 에 짙게 드리워져 있던 다크 서클뿐이었다.

땅을 디디며 살게 되면서 그의 다크 서클

도 차츰 옅어져 갔다. 흔들리지 않는 침대에 서 잠을 자고 제 때 집 밥을 먹은 덕택이려

니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또 다른 다크 서

클이 있었다.

그는 자주 악몽에 시달렸다. 배에는 없었 던 마누라도 옆에 누워있겠다 그가 편히 못 잘 이유가 없는데도 그랬다. 자다가 다급 하게 소리를 지르거나 가뿐 숨을 몰아쉬었

다. 도대체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혹시 마 누라 몰래 사채업자의 돈을 끌어다 쓰고 그

들 로부터 갚으라는 협박을 받는 중이냐고

물었다. 아니면 우연히 지난날의 첫사랑을

만났는데 지지리도 고생하고 있어서 괴로

워하는 중이냐고 했더니, 어이없다는 표정

으로 “이젠 수필 대신 소설을 쓰는 거요?”

라고 했다.

그는 잠이 들면 다시 선장 업무를 보게 되

는데, 승선 중에 일어났던 사고들이 꿈속에

서 반복적으로 재현된다고 했다. 항해 중에

선원 한 사람이 사라져 배 곳곳을 수색하며

억장이 무너졌던 일, 갓 입사한 갑판부 선원 이 선체에 도색작업을 같이 하던 중 선창에

떨어져 죽은 일, 배에 적재되어 있던 콘테이

너 박스에서

성 민

나의 여름

오늘 아침

문을 열고 나오니

아, 여름 냄새!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

네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

분주히 너를 맞을 준비를 할거야

길어진 잔디를 깎았어

새로 핀 노랑 꽃들이 이제야 보이네

겨우내 덮어두었던 테이블과 의자를

깨끗이 씻어 말리고

예쁜 걸 좋아하는 너니까

반짝이는 알전구도 달아놓을 게

얼음은 넉넉히 준비해 두었어

네가 오면 시원한 커피부터 타 주려고

상큼한 과일도 냉장고 가득 채우고

예쁜 접시도 사러 가야겠어 깊어 가는 여름 밤,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할 노래도 골라놔야지

밤이 되면 조금 추울지도 몰라 얇은 담요를 꺼내 놓고

우리의 속삭임이 방해받지 않도록

낸다. 그도 힘들겠지만 그를

보는 우리 집 선풍기와 나도 힘들다. 자다가

지르는 고함이 고통스런 기억을 상쇄 시키기 위해 그의 몸이 터트리는 ‘에어백’이

라고 생각하면 반갑게 들리려나. 평생 순탄하고 평온하기만 한 삶이 어디

있으랴. 누구나 마음속에 한 두 개의 다크 서 클을 지닌 채 살아가는 게 아닐까. 짙고 옅음 의 차이가 있을 뿐. 어쩌면 ‘다크 서클’이란

자신의 일을 충실히 수행한 사람이 받는 ‘확 인 도장’ 같은 게 아닐지.

웬만해선 남편에게 화를 내지 않으려고

한다. 그가 가끔 철없는 행동을 하더라도 나

이 칠십이 될 때까지는 봐 주기로 했다. 그

가 이전에 내 마음에 새겨 놓은 여러 개의

다크 서클들이 지금은 그를 지키는 ‘마패’가

되고 있다.

발 밑엔 모기향도 피우자 내가 맞이하는 여름은

너를 맞이하는 여름이야 네가 함께 온다면 숨막히는 더위도 반갑기만 해 이 준비가 다 끝나면 너를 초대할거야 커튼 틈 사이, 내리쬐는 태양빛처럼 나에게 와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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