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 Korean Mother Tongue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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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ntiane International School Korean Mother Tongue

라오스 비엔티안 국제학교

한국어반 글모음

G7

엄의용

G9

엄덕용

G10

김정훈

G11

곽승엽, 기혜성, 문정호, 백지민

G12

권준하, 기혜미, 남용환, 이주희, 한웅희

지도교사

박민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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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머리에

지난 몇 달간 인도차이나반도 한가운데에 있는 라오스에서 비엔티안 국제학교에 다니는 한국학생들이 모여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공부했습니다.

우리말보다 영어가 오히려 더 편한 아이들이 윤동주의 시를 읽고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으며 어머니 나라의 말과 글로 난생 처음 자신들이 직접 시도 짓고 단편소설도 썼습니다.

비록 아직은 풋내 나는 작품들이지만 학생들의 순수한 마음과 열정은 오래도록 진한 향기를 내며 우리들 가슴 속에 남아있을 것이기에 여기 학생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2013년 12월 20일 금요일 라오스 비엔티안 국제학교 한국어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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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민 애


VIS 한국어 수업 G7 독후감상문 쓰기

까마귀 소년을 읽고 난 후 G7 엄의용 Joy 이 책의 제목은 까마귀 소년입니다. 야시마 타로라는 일본 사람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는데 윤구병이라는 한국 사람이 옮겼습니다. 이 책의 줄거리는 한 산골 소년이 있었는데, 계속 친구가 없고 따돌림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시간이 흘러 6 학년이 됐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도 바꼈습니다. 그 새로 오신 선생님은 이 소년에게 관심이 많았습니다. 자주 이소배 선생님과 같이 학교 뒷산에 가서 놀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소배 선생님하고 그 소년이 시간 날 때마다 같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음 날에 학교에서 학예회가 열렸습니다. 그 중에서 이 소년이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까마귀의 여러 가지 소리를 내었습니다. 이 소년이 까마귀의 울음 소리를 잘 흉내 내어서 이 책의 끝이 아주 행복하게 끝났습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감동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소년이 아무리 친구가 없고 따돌림을 당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열심히 학교에 다녔기 때문입니다. 나도 처음에 VIS 에 왔을 때 친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도 그 소년처럼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래서 나도 친구도 생기고 따돌림도 당하지 않고 학교 생활도 잘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 소년처럼 한 가지 장점을 만들어서 학교 생활을 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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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수업 VIS 한국 G7 기행문 쓰기

루 루앙프라 라방 수 수학여행 행을 다녀와서 다 서 G7 엄의용 Joy

지난 주에 에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을 4 박 5 일로 갔다왔 왔다. 우리는 는 루앙프라 라방으로

갔다. 루 루앙프라방은 은 라오스의 의 북쪽에 있는데 비행기로 가면 1 시간 간, 차로 가면 아마 10 시간 간 정도 걸린 린다. 우리 반 7 학년 전부 다 갔다. 갔 우리의 의 목적은 라 라오스 산골 마을에 있는 중 중학교에 기숙사를 기 지어주는 지 것 것이다. 공항으로 공 가서 가 비행기 기로 1 시간 간 타고 루앙프라 라방에 도착 착했다. 도착 착하자마자 긴장되고 걱정도 걱 되었 었지만 친구 구들이랑 같이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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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을 을 것 같았다. 공항에 도착한 후 또 2 시간 간 동안 버스 스 타고 우리 리는 나포 마을 마 (Na Pho)로 갔다. 버스 스는 트럭의 의 짐칸에다 의자와 지붕을 지 만들 들어 놓은 트 트럭이라서 너무나 힘들고 불편했다. 우리랑 같이 드위치를 먹으라고 이 있는 여 행가이드가 가 우리한테 가면서 샌드 먹 주셨다. 근데 가다 다가 보니까 까, 길이 너무 무나 안 좋았고 좋 먼지도 많았다.. 그런데도 나하고 친구는 참고 2 시간 간 동안 버스 스에서 놀고 고 얘기하고 잘 도착했다.

우리가 도착 착한 마을은 은 다른 마 을에 비해서 서 작았다. 도착하고 바로 우리가 있을 곳으로 향했다. 나포 나 마을은 은 내가 사 사는 비엔티안보다 좋은 것 같았 았다. 산과 나무가 많아서 풍경이 멋있고 멋 공기도 맑고 먼 먼지도 없었 었다. 여기 바로 바 오고 느낀 점은 새로운 마을에 오니까 기분이 기 좋았 았다. 우리 마을은 다른 다 마을에 에 비해서 작 작았고 집도 도 많이 없지만 땅은 아주 넓었다. 짐 짐 정리를 끝 끝내고 나와서 점심밥을 을 먹었다. 오후에는 힘들어서 힘 원반 던 던지고 놀았다. 남자는 두 그룹으 으로 나누어서 서 두 개의 방에서 잤 잤고 여자는 라오스 가정집에 에서 잤다. 5


이번 수학여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우리가 강에서 대나 나무배를

타고

놀았던

것이다. 그룹을 여섯

그룹으로 그

나눈

다음에

배에

탔다.

그런데

배가 무너지고 무

떠내려

갈까봐

걱정을

했지만

친구랑 같이 있어 어서 그렇게 게 많이 불안하지는 는 않았다. 다행히 구 구명조끼가 있어서 안심했다 다. 처음에는 는 가다가 무섭기도 했는데 가다보니 가 재밌고 재 같이 이 많이 놀 용기가 생겼다. 물이 차가 가워서 수영 영을 안 하 려고 했는데 데 친구들이 이 나를 물 물에 빠뜨려서 서 그냥 수영을

하게

됐다.

강에서

하는

수영은

수영장에 에서 하는 것보다

물살이 몸이

세서 수영을

안해도

둥둥

떠내려

갔다. 발 밑에 크고

뾰족한

돌도 있 있고 물이 맑지

않아서

돌이 있 있나 없나 걱정했는 는데 무사히

다치고

재밌게 6


수영을 했다. 수영 영하고 나니 몸이 차갑 갑고 많이 추웠다. 추 하지 지만 내 머 머리는 자꾸만 다시 수영하고 고 싶었다. 내가 제일로 로 싫었던 점은 밤에 에 있는 일이었다. 일 밤에 밤 여러 가 한 점이 가지 불편한 는 밤에 샤워를 샤 해야 야 한다. 안 그러면 몸이 몸 찝찝해 해서 잠이 안 안 온다. 많았다. 첫째, 나는 하지만 샤워하기가 가 엄청나게 게 불편했다 . 왜냐하면 물이 많이 이 차가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도 잘 잘 나오지가 가 않았다. 물이 차가 가워서 처음 음에는 다리만 5 초 동 동안 물을 뿌렸다. 그러고 나니 내 친구가 문을 을 둥둥둥 때렸다. 그래서 그 무서워서 바로 뒤를 돌아 아보았다.

그런데 친구가 빨리 하고 나오라는 나 소 리가 들려서 서 바로 차가운 물을 5 초 동안 머리에 대고 머 머리를 감았다. 그리고 10 초 동안 안 몸에 물을 물 뿌리고 대충 나왔 왔다. 샤워가 끝나고 나니 안 안심 되었다 다. 왜냐하면 면 너무나 무 무서워서 빨리 빨 나오고 고 싶었다. 그때 바로 생각이 떠올랐다 다. 내 친구 구에게 다음 음부터는 팬티 티만 입고 같이 샤워를 를 하자고 말했고 내 친구도 동의했다 다. 왜냐하면 면 내 친구 구도 무서웠 기 때문이다 다. 그래서 수학여행 내내 친구랑 같이 샤워했다 다. 둘째, 날씨가 날 너무 추워서 잠 잠도 잘 못잤 잤고 지붕이 뻥 뚤린 곳 곳에 차가운 운 바람이 들어왔다 다. 거기다가 가 벌레하고 고 모기들이 이 많았는데 데 다행이 모기장이 모 있 있어서 안심 심되었다. 7


밤에는 안개하고 구름이 많아 아서 우리 방까지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 그래서 우리 옷하고 바지들이 이 차갑고 축축했다.. 그리고 침대가 아니고 아 그냥 냥 두꺼운 이불이 깔려있고, 깔 이불하고 고 배게도 냄새가 났고 벌레들이 이 방에서 기어다녀서 서 정말 무서 서웠다. 그래서 내 발에 뭔 뭔가 기어다니는 것 같았다. 우리가 이번 수학여행에서 할 목적은 바로 바 루앙프 프라방에 있 있는 어떤 라오스 중학교를 를 위해서 기숙사를 지어주는 것 것이다. 우리 리 수학여행 행은 4 박 5 일인데 그 중에 삼일동안 안 하루에 3 시간씩지 지어주는 것 것이다. 선생 생님이 이 말을 꺼내 자마자 나는 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우리가 아무리 아 중학생이라도 어 어떻게 일을 을 하게 합니까, 거기 다가 우리가 잘못 기라도 한다면 우리 책임 아 아닙니다.” 라고 하고 싶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선 지어주기 화내실까 까봐 그냥 일을 하였다 다. 이 기숙 숙사는 우리학교 선배들 들이 작년에 에 지어주던 곳인데 공사가 안 끝나서 우리가 계속해서 계 지 지어주게 되었다. 우리는 세 가지 지 작업을 했다. 했 첫 번째 작 작업은 쇠줄 줄로 틀의 네 네 꼭짓점을 을 묶었다. 두 두 번째 작업은 작은 틀을 세우기 위해 시멘트 가루를 물과 과 돌로 섞어서 기둥 틀에 부었다. 세 번째 째 작업은 기 기둥을 세우 우기 위해 땅을 파 파놓은 곳을 을 우리가 멀리서 멀 가져 져온 흙으로 로 덮어야 했다. 처음 음에는 정말 힘들고 8


귀찮았는 는데 하다 보니까 보 친구 구하고 선생 생님들이랑 같이 같 해서 재미도 있었 었고, 30 분 분 하다가 쉬고 300 분 하다가 가 쉬니까 그렇게 그 많이는 는 힘들지는 는 않았다. 리 작업을 끝내고 끝 우리 리는 이 중학 학교 학생들 들과 같이 축 축구를 했다.. 우리랑 마침내 우리 같이 축 축구 했던 사람들은 누구는 키 키가 작고 누구는 키가 가 아주 컸 컸다. 그래서 서 조금 어려웠는 는데 우리랑 랑 같이 온 VIS 선생님들 들도 같이 축구를 축 해서 서 다행이 3 대 3 으로 비겼다. 안 좋았 았던 점은, 이 이 축구장이 이 울퉁불퉁 퉁하고 잔디가 가 아니고 대부분 모래 래여서 공이 이 잘 안 굴러갔다 다. 그리고 공이 비엔티 티안에서 쓰 쓰는 공보다 딱딱해서 공을 찰때 아팠다. 그래도 그 안 져서 다 다행이다.

좋 것은 은 라오스 요리를 했던 것이다. 7 학년들 들을 여러 그룹으로 그 또 다른 좋았던

나누어서 서 각 그룹은 은 라오스 가정집으로 로 가서 서로 로 다른 라오 오스 음식을 을 만들었다.. 그래서 저녁에 각 그룹이 이 만든 요리 리를 만들어 어 가져와서 모두 함께 께 모여 저 녁을 먹었다 다. 나의 그룹은 나, 아틸라 라, 앤더스, 도모하고 조지였다. 우리는 라오스 라 음식 식 ‘랍’을 만들었다. 만 우리는 대부분 일을 일 안하고 고 그냥 얘 기했다. 왜냐하면 왜 우리 가정집에 에 살고있는 는 여러 사람들이 이 같이 도와 와줬기 때문 문이다. 거기 기다가 우리 음식은 만들기 만 쉬웠다 다. 다 만들 들고 나니 내가 그 그룹중에서 먼저 맛을 보았다. 그 그 맛은 따뜻한 물에 앉아서 새 새콤한 젤리를 먹은 거랑 비 비슷했다. 내가 만든 음식 음 들은 다 다른 음식보다 최고로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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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 수학여행에 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다. 어떤 날은 날 우리가 가 초등학교에 가서 여러 가 가지 놀이를 를 가르쳤다 다. 그런데 아 아이들이 말도 말 안 듣고 듣 장난꾸 꾸러기라서 어쩔 수 없이 참 참고 있어야 했다. 그리 리고 내가 버 버스를 탈 때 오래 걸렸다. 내가 멀미가 나고 나 배가 아팠는데 데도 꼭 참고 기다려야 야 했다. 정 말 많이 힘들고 힘 불편했는데 참고 고 잘 도착했 했다. 또 내가 참 참아야 한다 다고 배웠다. 그게 언제 제냐면 바로 로 우리가 재미 재 있는 곳 곳으로 갈 때 내가 흥분돼서 서 좋았는데도 내가 참았다.

그래서 다음부터 다 내가 내 참아야 야 할 일이 이 없게

선생님에 에게 부탁하 하고 싶다. 나는 지금부 부터 일을 할 때 참고 고 일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왜 힘든 일 일을 겪고 난 난 다음에 좋은 좋 일이 생 생기기 때문 문이다. (끝) 10


VIS 한국어 수업 G9 단편소설 쓰기

동규. Rose

한국어 수업 과제 – 소설 쓰기 VIS Korean Mother Tongue Class 9J. 엄덕용 (David 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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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부 라오스? 어디예요?

학원을 늦게 마치고 막차를 타고 12 시에 집에 들어갔다. 피곤함을 가방에 다

실어, 침대에 던지고, 귀찮은 마음에 샤워도 하지 않고 밥을 먹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밥이 입에 들어가지가 않았다. 집에 나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닌데 아무도 없는 마루에, 아무도 없는 식탁에 앉아 혼자 밥을 먹고 있으니 입맛이 없었다. 대충 먹어 치우고 티비를 켰다. 마침, 나의 외롭고 피곤한 마음을 달래줄 게임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다. 그 프로그램은 어른들이 제일 싫어하는 프로게이머들이 모여 서로 게임으로 통해 겨루고, 이기고 우승을 하는 거다. 어른들은 절대로 오랫동안 공들인 게임 경기에서 이겼을 때에 그 짜릿한 기분을 이해하지 못 할꺼다. 밤 12 시에 아버지가 비행기표 3 장 여권 3 장을 들고 엄마와 나를 불러 진지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회사에서 라오스로 해외지사 발령을 받았어.”

“예!? 거기가 어디예요?”

“내일 모레 타야 할 비행기다. 내일 모레까지 짐 다 싸고 할꺼 빨리 해놔.”

“아….. 예”

나는 아버지가 모르는 나라 라오스로 해외지사 발령을 받았다는 소리를 듣고

제일 먼저 떠오른게 친구들이었다. 어떻게 친구들에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침대에 누워 한참 동안 친구들 생각만 했다.

작별인사

문이 버럭 열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친구들이 “동규야!!!” 라고 부르면서 나란히

침대 옆에 꽃과 편지를 들고 있었다. 내 친구들은 한 명씩 자기들이 쓴 편지를 읽었다. 엄마의 부탁으로 친구들이 우리 집을 방문한 것이었다. 편지와 꽃을 다 받은 다음 바지를 입고, 친구들을 아파트 출입문까지 데려다 주고 집으로 들어갔다. 인제 서서히 12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짐을 정리하면서 한국에서의 추억을 생각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짐을 다 정리하고 밤 12 시 를 기다렸다. 시계는 4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난 12 시까지 뭐할까 생각하다가 남은 시간을 친구들과 보내기로 했다. 친구들과 학교에서 모여, 자주 했던 것들을 했다. 친구들과 피시방 가서 롤, 리그 오브 레전드를 실컷 하고, 농구도 실컷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다. 친구들과 논 후에 밤 10 시에 집에 가는 길에 심심해 핸드폰을 켜, 라오스가 어떤 나라인지 찾아보았다. 라오스는 세상에서 죽기 전에 가봐야 하는 나라 중에 라오스가 1 위였다. 또한 환경을 보니 아주 많이 시골적이었다. 한마디로 썩은 나라이다. 나는 라오스 나라의 사진을 보고 머리 속이 캄캄했다.

“아!!!!!~ 이게 뭐야~~~ 우리 할머니 사시는 시골보다 못하잖아!!! 그것도 도시가

아니라 나라가!!”

나는 갑자기 라오스 가기가 무척 싫어졌다. 라오스 사진을 보기 전까지 그래도

설렘과 신나는 마음이 있었는데, 라오스가 어떤지 안 후에 라오스가 무척 싫었다. 집에 온 후에 짐을 다시 정리하고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면서 한참 생각을 했다. 라오스에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영어 못해, 외국에 처음 가보는데 적응 문제, 친구 문제 성적 문제. 나는 정말 절망적이었다. 그냥 나 혼자 한국에 있고 부모님만 갔으면 좋겠다. 하지만 부모님은 나의 의견을 반대하시고. 생각을 하다보니 결국엔 11 시가 되었다. 그때 아버지가 “집합!!~~”이라고 하신 바람에 난 정신을 차리고 빌린 밴에다가 짐을 실었다. 그러곤 차에 타기 전에 3 년 넘게 산 아파트를 한번 둘러보고 차에 타 공항으로 향했다.

제 2 부 농구소년

VIS, Vientiane International School 이라는 학교에 입학을 했다. 그 동안 우리

가족은 회사에서 내준 집을 찾아, 짐을 정리하고 2 주 동안 라오스를 알아가는데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나는 학교 생할을 하면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공부를 하다가 심심해 라오스 티비를 켰는데 미국 농구 리그 NBA 를 하고 있었다. 13


시카고주 Bulls 와 오클라호마주 Thunders 의 경기였다. 나는 농구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농구에 빠져들었다. 특히 Derrick Rose 라는 선수가 눈에 띄었다. 그러곤 방에 들어가 한참 동안이나 농구에 대한 생각을 했다. 마침 학교에 농구부가 있었다. 나는 학교 농구부에 들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실력이 너무 하찮았다. 그래서 나는 혼자 열심히 1 년 동안 지독한 훈련을 했다. 나는 매일, 매일 5 시에 일어나 자전거 타고 학교에가 농구장 5 바퀴를 돌고 체력 훈련을 했다. 또한 농구의 기본기도 물론이고, 내가 존경하는 선수 Derrick Rose 란 선수의 화려한 묘기도 배우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실력은 늘어갔고 학교 생활도 익숙해졌다. 이제 남은 건 하나, 농구부에 입단하는 거였다. 나는 괜찮은 나의 영어 실력으로 농구 코치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러고 다음 날 아침에 이메일을 보니까, 코치님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읽어보니 “하하하 니가 농구를 그렇게 하고 싶어하는구나. 다음주에 안 그래도 농구부 입단 테스트가 있는데, 그때 너도 참여해서 너의 실력을 인정받고 입단해라.다음주에 보자” 다음주에 농구부 입단을 위해, 나는 체력 훈련도 했고 컨디션 조절도 잘했다. 농구 입단 테스트 3 시간전, 나는 물통과 수건을 가방에 싸는 중간에 엄마가 빨간 상자를 들고 하시는 말씀이, “오늘 4 월 15 일 이잖아. 니 생일. 생일 축하해. 이거 열어봐” 빨간 상자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농구선수가 만든 농구화 “ROSE 4”가 있었다. 나는 그걸 받고 엄마한테 꼭 농구팀에 들어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NIKE”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차에타 농구장에 도착했다. 내려서 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냥 하던 대로 해. 1 년 동안 꾸준히 연습했잖아.” 농구코트 문을 열고 기다리는 벤치에 앉아서 신발을 갈아신고 몸부터 풀었다. 30 분 후에 코트에는 농구코치님의 목소리가 울렸다. 테스트는 간단했다. 슈팅 실력은 5 번 슈팅을 해서 평가를 받는 거고, 팀플레이와 다른 여러 가지 기본 기술은 경기로 평가를 받을 것이다. 나는 5 개중에 4 개를 성공했다. 5 개 모두 넣은 사람은 뜸했다. 하지만 그 중에 흑인이고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의 애는 5 개 모두 넣었다. 한 30 분이 지나고 게임 경기로 이어졌다. 나는 5 개 슈팅을 다 넣은 흑인과 중국인 두 명 그리고 백인이랑 한 팀이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우리 팀이 먼저 공을 받았다. 백인이 “Point Guard” 였고 나와 흑인은 “Forward”였고 중국인 두 명은 “Post” 였다. 그렇게 팀 14


포지션은 정해졌고 경기를 진행했다. 전반전에는 우리가 지고 있었지만 후반전에는 역전을 했다. 전반전에서 지고 있을 때 흑인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예기를 하고 팀을 잘 이끌었다. 그러고 45 분이 지나고 휘파람이 불자, 우리가 경기를 이겼다. 테스트를 마치고 학교에서 우리에게 저녁을 대접했다. 밥을 먹으면서 시험에 참가한 인원수를 세어보니 20 명이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20 명 중에 몇 명이 통과할까?” 저녁을 마치고 코치님께서는 모든 참가자들에게 통과했는지 못 했는지 각각 이메일을 오늘 12 시까지 보내겠다고 했다. 나는 빨리 차에 타 기사에게 집에 서둘러 가자 하고, 집에 들어가 샤워를 금방 마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떨리는 마음에 천천히 이메일 아이디를 쳤다. 보니까 감독님에게서부터 메일이 왔다. 나는 합격이었다. “아싸!! 합격했다. 오마이갓!! 오 하늘이시여. 이 은혜를 어찌 갚을 수 있나이까!” 기분이 너무 좋아서 의자를 박차고 소리쳤다. 그러곤 아버지와 어머니가 내방으로 들어오셨다. “왜 그래?” “나….. 농구부에 합격했어!!” 엄마는 같이 기뻐했지만, 아빠는 실망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돌아서 방으로 들어가셨다. 다음날 학교 수업을 마치고 농구장에 가보니 시험경기때 나와 같은 팀이었던 흑인도 와있었다. 코치님은 나와 흑인을 불러 서로 소개시켜주셨다. “안녕, 내 이름은 알렉스라고 해. 나는 미국에서 왔어” 미국 사람이라서 그런지 영어 발음이 엄청 깊었다. “안녕, 내 이름은 동규야. 내 닉네임은 데릭이고. 만나서 반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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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인사를 마치고 코치님에게 농구부 셔츠를 받고 선배들 앞에 서게 되었다. 선배 앞에 서게 되니까, 엄청나게 떨리고 긴장되었다. 알렉스와 나는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고 내려왔다. 내려와서 우리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건네준 선배는 다니엘과 크리스토프 선배였다. 다니엘 선배님은 키가 무척 컸다. 그리고 반대로 크리시토프 선배님은 키가 작았다. 그리고 신고식 삼아 다 같이 바베큐 파티를 했다. 식당에서 나와 알렉스는 다니엘과 크리스토프 선배와 한 상에 앉아 먹었다. 농구부 선수 인원수는 알렉스와 나까지 포함해서 13 명이었다. 다니엘 선배는 키가 커서 “Center”를 담당하면서 우리 농구부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선배는 키가 작아도 공을 아주 잘 다루고 패쓰도 빠르기 때문에 “Point Guard”를 맡고 있었다. 우리 학교 농구 역사를 보면 2010 년 부터 2011 년 까지는 대회 경기기록이 좋았다. 반 이상은 우승을 차지했었고, 각종 대회에서 3 등안에는 꼭 들었다. 하지만 2012 년부터는 무슨 이유인지 기록이 무척 안 좋았다. 대회에서는 6 등 밑이었고, 다른 학교에서의 평가와 친선 경기에서도 거의 모두다 지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우리 농구부 기록을 보고, 2013 년부터는 내가 기록을 180 도 바꾸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농구선수 생활의 시작 알렉스와 나는 아직 신입생이라서 선배들하고 훈련은 못 하지만 기초 트레이닝부터 써브 코치님에게 트레이닝을 받고 있었다. 기초 트레이닝을 2 주 동안 받으면서 알렉스와 나는 친해졌다. 학교 끝나면 같이 간식도 먹으러 가고 집도 같은 길이기 때문에 집에도 같이 갔다. 어느 날 트레이닝을 시작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선배님들을 훈련 시키느라 바쁘실텐데 웬일로 우리에게 찾아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제 라오스 농구 시즌이 시작되려면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길어봤자 2 달 밖에.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너희들 인제 기초 트레이닝 말고 선배들하고 정식 트레이닝 받자. 그럼 너희도 이번 시즌때 뛸 수 있을거야.”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알렉스와 나는 그 말을 듣고 엄청 나게 신났다. 나는 때마침 그때 용돈을 받아서, 기분 좋은 김에 알렉스와 함께 피자집으로 가서 피자 3 개와 콜라 2 개를 샀다. 우리는 배불리 16


실컷 먹고, 서로에게 시즌 시작할 때까지 악착같이 훈련해서 좋은 성적을 받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2 달이 지나고, 알렉스와 나는 농구부에 들어온지 얼마 안 되도, 우리는 후보가 아닌 주전으로 뛰게 되었다. 나와 슈팅과 레이업이 좋다고 해서 “Forward”를 맡았고 주장 다니엘과 크리스토프 선배님하고 주전으로 뛰게 되었다. 나와 알렉스는 들어온지 1 년도 안 되는데 다른 선배들을 제치고 주전이 되서 그런지 어떤 선배들은 우리에게 안좋은 시선을 줬다. 그래서 가끔 선배들이 별것 아닌 것 가지고 트집 잡아서 혼내고 싸움을 걸지만 그래도 그럴 때마다 다니엘과 크리스토프 선배님이 도와준다. 어쨌든 자기들이 우리보다 못 하니까 주전이지 못한 거다. 알렉스와 나는 주전으로 열심히 경기에서 뛰었다. 매 경기마다 우리 주전 팀은 화려한 기술과 활동적인 팀워크를 보여줬다. VIS 농구팀은 매 경기마다 팀플레이와 기술이 늘었고, 모든 경기에서 승리를 얻었다. 그러고 어느 날 난 경기를 마치고 알렉스와 피자를 먹으러 가는 길에 어떤 한 어여쁜 소녀가 나에게 와 영어로 말을 건넸다. “안녕, 난 너와 같은 반인 노니라고 해. 넌 농구할 때는 엄청 진지하고 무섭지만, 농구 밖에서는 반대로 착하고 귀여워. 그래서 하는 말인데 니 핸드폰좀 줄래.” 노니의 얼굴은 엄청 빨갰다. 왜 빨간지는 몰랐지만 나는 처음으로 외국 여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서 무척 당황하고 놀랬다. “어…… 알았어. 여기, 020‐5483‐6604” “아…. 고마워. 난 020‐5674‐8394” “아. 알았어” “집에 잘 들어가. 연락 줄께” 그리고 나는 알렉스와 피자 집으로 가 넋 나간 채 피자를 먹었다. 그럴 때마다 알렉스는 날 깨워줬다. 그러면 나는 다시 넋이 나갔다. 결국엔 알렉스가 한소리 했다. “어이, 친구. 너 노니란 여자 맘에 들어? 내가 도와줄까?” “아니야 됐어. 너무 나대는 것 같애.” “그런가?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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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와 나는 피자를 먹고 각자 집으로 갔다. 난 집으로 가서 내내 핸드폰만 바라봤다. 밥 먹다가 핸드폰 보고 숙제하다가 핸드폰 보고. 샤워를 하고 나와 핸드폰을 보니, 노니한테 문자가 왔다. “안녕 ☺” 나는 뭐라고 보낼지 모르고 떨려 문자를 딱딱하게 보내버렸다. “어. 안녕.” “집에 잘 들어갔어? ㅋㅋ” “어. 넌?” “어, 잘 들어갔어.” 나는 문자하다가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왜 나에게 연락처를 물어본 건지 궁금했다. “내일 주말인데 뭐해?” “농구 연습도 없고, 할 것도 없어. 왜?” “그럼 우리 내일 놀래?” “어디?” “내일 학교로 와. 메콩강 가자.” “알았어. 내일 봐.” “어 잘자~ ㅋㅋ” 문자가 끝나고, 나는 처음으로 여자와 단둘이 만나서 논다는 생각에 무척 신나고 설렜다. 숙제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얼마나 떨렸는지 잠이 오질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일어나 내일 뭐 입고 갈지 정하고 있었다. 여자랑 처음으로 놀러 가는데 멋있게 입고 가야한다는 생각에 옷장을 다 뒤져 멋있는 옷을 찾았다. 그러고 대충 정리를 하고 입어 보고 맞다 싶어 옷걸이에다 걸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잠이 아직도 오질 않았다. 나는 핸드폰을 켜 페이스북에 있는 노니의 사진을 쳐다 보았다. 자세히 보니 이쁘고 귀여웠다. 나는 사진을 보면서 더더욱 설레면서 맥박도 빨리 뛰었다. 나는 노니 사진을 보다 잠이 들었다. 18


나, 사랑에 빠지다 눈을 뜨자, 내 눈은 시계로 향했다. 9 시 30 분이었다. 아직 약속 시간까지 3 시간이 남았다. 잠을 더 잘까 하다가 일어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준비 다 마치고 시계를 보니 11 시 였다. 그래서 난 차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노니도 엄청 이쁘게 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마자, 노니는 나를 격하게 반겼다. 그러고 우리는 오토바이를 택시처럼 사용하는 툭툭이를 타고 메콩강으로 갔다. 메콩강에서 내려 돌아다니며 퐁경을 볼 때, 노니는 계속 내 얼굴 사진과 자기 얼굴 사진, 풍경 그리고 우리의 사진을 마구 찍어댔다. 외국 사람들은 사진 찍기를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다. 얼마 있다 배가 무척 고팠다. 점심을 아직 안 먹어서 그런 것 같다. 마침 운 좋게 노니도 배가 고팠는지, 밥을 먹자고 권했다. 그래서 우리는 근처에 있는 일본 식당에 갔다. 엄청나게 비쌌다. 하지만 엄마가 주신 많은 용돈으로 잘 먹었다. 밥을 다 먹고 하늘을 보니 해가 지고 있었다. 그래서 노을을 구경하려고 강가에 갔다. 노을이 지는 동안에 우리는 조용했다. 그러다 갑자기 노니가 말을 걸었다. “저기 있잖아. 우리 사귈래?” 마지막 질문에 내 얼굴은 무척 달아올랐고 순간 멍했다. 나는 더듬거리면서 질문에 대답을 했다. “어..어 그래.” 그리고 노니와 나는 노을이 지는 걸 보면서 심장도 두근거렸다. 노을이 지는 걸 보고 집에 전화해 운전기사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기다리다 할 게 없어서 우리는 메콩강만 바라봤다. 바라보다가 나는 노니의 손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 속으로 웃으면서 노력하는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큰 맘을 먹고 노니의 손을 덥석 잡았다. 노니는 놀래면서 얼굴도 빨개지면서 좋아했다. 손을 잡으면서 메콩강을 보면서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갑자기 운자기사가 나타나 말했다. “저기…… 집에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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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기사의 한마디가 우리의 달콤한 시간을 와장창 깨버렸다. 노니는 부끄러워서 내 손을 놓으려 했지만, 나는 노니의 손을 계속 잡고 있으면서 운전기사에게 말을 했다. “네. 가요.” 그러고 같이 일어나 차에 타, 노니를 집에 데려다 줬다. 데려다 주고 나는 한숨을 쉬며 긴장을 풀고 누워 버렸다. 운전기사는 나를 보고 웃으면서 한마디를 건넸다. “연애는 원래 힘들면서 좋은 거예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노니에게 잘하기로 마음을 다짐했다. 핸드폰을 켜고 노니 사진을 봤다. 아무리 봐도 이뻤다. 나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노니 사진만 바라보았다. 그러고 집에 도착했을 때, 샤워를 하고 핸드폰 화면을 켰다. 핸드폰의 시간은 12 시를 가리켰다. 그리고 노니에게 문자 3 통이 와있었다. “집에 잘 들어갔어?” “씼어?” “피곤하다. 나 잘께. 잘 자.” 나는 노니가 남긴 문자를 보고 나 자신을 원망하면서 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문자를 자세히 보니 시간 내역이 9 시였다. 그럼 적어도 3 시간은 기다린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노니에게 “미안해, 늦었지? 자는 것 같은데. 잘자” 라고 보냈다. 그러고 나는 핸드폰을 끄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교회에세 오전 예배를 드리고 알렉스와 약속을 잡아 피시방으로 갔다. 우리는 요즘 유행하는 게임 “League of Legend”를 즐겼다. 우리는 서로에게 왜 이렇게 못하냐고 비난하면서 서로 죽여댔다. 그러고 게임이 끝나고, 나와 알렉스는 집으로 걸어가는데, 왜 그런지 자꾸 왼쪽 무릎이 계속 쑤셨다. 그래서 나는 걷다가 주무르고, 걷다가 계속 주물렀다. 집에가서 씻고 무릎을 보니, 무릎은 사과처럼 빨개져 가지고 부어올랐다. 나는 얼음 찜질을 하고 노니에게 문자를 건냈다. “안녕 ㅋㅋㅋ” “안녕 ㅎㅎㅎ” “오늘 뭐했어?” 20


“그냥 교회가고, 친구하고 게임하고, 밥 먹었지. 넌?” “그냥 하루 종일 집에서 잤어 ㅋㅋㅋㅋ” 그러고 우리는 학교 얘기도 하면서 농구 얘기도 했다. 나는 농구 경기가 잘 풀리고 있다고 하고 연습도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릎에 대해서 말을 하려고 하다가 말았다.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다. 문자를 하다보니 11 시 였고, 노니는 자러 갔고, 나도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선배 다니엘이었다. 주장이 웬일로 이 시간에 전화인지, 급하게 받았다. “야, 내일 우리 4 강 경기를 하는데 우리 학교 최강 라이벌 “HOFFET”랑 붙을 거야. 3 부터 6 시까지 연습 있으니까 꼭 와라.” “예, 알겠습니다.” 나는 라이벌이란 말을 듣고 알지 못한 정보였기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우리 학교 농구부의 기록이 최악이었던 것은 알았지만, 라이벌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무튼 내일 중요한 경기가 있다는 말에 무척 설레면서 떨렸다. 나는 내일 어떻게 농구를 게임을 펼칠지 생각하면서 잠이 들었다.

제 3 부 농구, 이대로 끝인가…….. 학교갈 준비를 하면서 농구복과 농구화와 준비물를 챙기고 식빵 하나 물고 차에 탔다. 빵가루를 차에 흘리면서 학교로 향했다. 학교로 가는 길에 나는 노니가 걷는 걸 보고 차를 세워 노니를 태워줬다. 노니는 고맙다고 하면서 아침인사라고 나를 안아줬다. 그러고 손을 잡으면서 숙제 얘기를 나눴다. 하지만 숙제 얘기는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노니가 나를 안은 순간만 머리속에 새록 새록 생각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학교에 도착했고, 노니와 내가 같은 차에서 내리니까 사람들은 우리에게 수상한 눈길을 보냈다. 쉬는 시간에 남자애들과 주장과 크리스토퍼 선배가 나에게 다가와 질문을 했다. “오늘 아침에 뭐였어? 니들 뭐야? 무슨 사이야?” 21


노니를 보니, 노니도 마찬가지로 친구와 선배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당당하게 말을 했다. “우리 사귀어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못 믿는 눈빛으로 증명해 보라고 해서 나는 노니에게 가 백허그를 하고 사랑한다고 말을 했다. 그러고 답장을 주는 듯이 노니는 내 팔을 잡으면서 사랑한다고 말을 해줬다. 주위의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다 소리치면서 박수 치고. 그러고 나와 알렉스는 교실로 돌아갔다. 학교를 마치고 우리는 농구장으로 뛰어 옷을 갈아입었다. 갈아 입으면서도 무릎에 불편을 느꼈다. 계속 소리가 나면서 쑤셨다. 아파서 보건실에 가보려고 했지만 연습에 늦지 않으려고 그냥 괜찮다고 하고 농구장에 들어갔다. 우리는 연습을 시작했다. 코치님은 오늘따라 연습에서 유난히 엄격했다. 그래서 나는 선배에게 물었다. “오늘 따라 왜이리 엄격하신 거예요? 뭐 코치님하고 “HOFFET”하고 원수지간이에요?” 선배님은 차근 차근 설명했다. “코치님과 “HOFFET” 농구 코치님하고 고등학교 시절에 같은 학교에서 농구부였대. 둘은 너와 알렉스처럼 같이 농구부에 입학하고 엄청 친했대. 근데 어느 날, 농구 훈련을 하다가 코치님이 “HOFFET” 코치님에게 실수로 부상을 입혔대. 근데 심했는지, “HOFFET” 코치님은 1 년 동안 농구를 못하게 됐대. 그래서 코치님이 사과하러 병원에 찾아갔지만 HOFFET 코치님의 부모님은 코치님에게 욕을 하고 비난하면서 부모 흉도 봤대. 그래서 코치님과 HOFFET 코치님은 그일 이후로 서로 원수지간이 되어버렸어.”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코치님이 참 딱했다. 그래서 나는 더욱 더 훈련에 열중했다. 경기 시간이 왔고, 관중에는 “HOFFET” 학생과 우리 학교 학생들이 반반씩 농구 코트를 차지했다. 그러고 우리는 악수를 하고 경기를 시작했다. 경기는 우리가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고 우리는 “HOFFET”를 앞서기 시작했다. 코트 안에서는 치열한 몸싸움이 벌어졌고 코치님들 사이에서는 많은 고함이 흘러나왔다. 또한 한 점수씩 만들어질 때마다 관중에서는 엄청나게 큰 고함이 터졌다.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되면서 나는 공을 받아 엄청나게 빨리 뛰어 레이업을 하다가, 갑자기 무릎에 힘이 빠지고 통증이 엄청 오면서 쓰러지고 말았다. 일어나려고 했지만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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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에 경기는 잠깐 정지되었고 나는 간호실로 실려 갔다. 선생님은 병원에 가야할 것 같다고 했다. 선생님은 구급차를 불러, 나와 후보 코치님은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도착해 나는 의사 선생님과 초음파실로가 무릎쪽 검사를 하고 있는 동안에 코치님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은 모양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방에서 나가자마자 어머니가 나에게 달려워 쌔게 안으시면서 엄청난 양의 질문을 퍼부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 하나 천천히 말하라고 했다. 그러고 어머니와 코치님은 인사를 빨리 나누고 원장님에게 갔다. 원장님은 내 다리의 사진을 보고 나에게 한마디 물었다. “너 농구하니?” “아, 네. 농구합니다. 제 옆에 있는 분이 저희 코치님이세요.” “아 그렇구나.” 원장님께서 질문을 하시고 설명을 하시기 시작했다. 나는 짧은 기간에 무릎을 너무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많이 사용하는 바람에 무릎 주위에 있는 근육들이 심하게 손상되고, 인대도 찢어질 상황에 놓여있다고 했다. 하지만 왼쪽 무릎만 그러는 이유는 허리가 휘어져 나의 몸 전체 중심이 왼쪽으로 틀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허리와 중심은 재활치료로 교정할 수 있지만, 무릎은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은 간단했다. 내시경 수술인데, 3 바늘을 무릎에다 꽂고 찢어진 근육을 메워주고, 혹을 터트려 진물을 제거하고 인대의 상태를 살핀 다음 끝나는 수술이었다. 나는 수술하는게 나한테 좋은 선택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수술을 하겠다고 했다. 수술 날짜는 모레로 잡혔다. 상담을 마치고 코치님은 어두운 표정으로 나왔다. 나는 코치님에게 이유를 물었지만 코치님은 썰렁한 웃음만 남기고 내 휠체어를 밀었다. 코치님은 나를 차에 태우고 어머니에게 뭐라고 하셨다.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머니의 얼굴은 좋지가 않았다. 그러고 집에 왔다. 집에 도착한 후 병원에 있을 때 필요한 준비물을 대충 챙긴 다음 떨리는 마음으로 내일을 위해 잠을 청했다. 그러다 번뜩 노니가 생각났다. 노니 한테서 부재중 전화가 3 통이 와있었다. “여보세요. 노니?” “야! 괜찮아? 오늘 경기 도중에 쓰러졌잖아. 무슨 일 있는거 아니야?” “아니야. 오늘 전화 못 받은 거 미안해. 그리고 아무 일 없어. 그냥 살짝 다친 것 뿐이야.” 23


“알았어. 그럼 내일 보고 빨리 자. 피곤할 텐데” “어. 잘자~” 그러고 전화를 끊고, 크리스토퍼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알렉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이 받았다. “어이, 동무 안녕” “여 여, 괜찮아?” “아, 사실은 그게 좀 심각해. 수술을 해야한대. 그리고 재활 치료도 꾸준히 해야한대. 망했어…” “아, 진짜 망했네. 노니는 알아?” “아니 아직 몰라. 말 안 했어. 걱정할까 봐. 혹시라도 너한테 물어보면 아무 말 하지 말고 괜찮다고 말해.” “알았어.”

“경기는 이겼어?”

“어. 당연하지, 이겼어.” “올~ 알았어. 내일 학교에서 수고, 나는 ***병원에 입원하러 간다.” “그래, 수술 잘받어.” 전화를 마치고 나는 편히 쉬기 위해, 이어폰을 꽃고 음악을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나를 깨우고 병원으로 갔다. 그러고 떨리는 마음으로 환자복으로 갈아 입고, 옷을 정리하고, 본격적인 검사를 시작했다. 피도 뽑고, X‐Ray 검사도 해보고 소변도 난생 처음으로 컵에다 보고 나서 의사 선생님에게 주고. 그러고 힘든 하루를 보내고, 처음으로 병원 침대에서 잠을 잤다. 다음 날, 수술을 하러 방에 들어갔다. 지인들한테 잘 받고 오겠다고 하고 들어가, 나는 마취로 다른 세계에 가 있는 동안 수술은 진행되고 있었다. 일어나 보니까, 나는 병실에 누워있었고, 침대 주위에는 코치님과 어머니가 있었다. 일어나서 코치님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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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님 저 수술 잘됐죠? 저 인제 다시 농구해도 되죠? 다음주부터 훈련 시작인가요?” 한참 동안 입원실은 조용했다. 코치님이 긴 침묵을 깨셨다. “수술하겠다고 결정하기 전에, 말 안한게 있는데, 넌 지금 이 상태로는 농구를 할 수가 없어. 적어도 3 년 동안은 농구는 못하고 재활치료만 해야한대.”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참 동안 내 무릎만 보고 있었다. 보통같으면 어머니에게 왜 미리 말씀 안했냐고 짜증내면서 화냈을 텐데, 이번에는 어머니와 코치님이 이해가 가서 화를 꾹 꾹 참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어머니의 고개를 올리고 괜찮다고 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미안하셨는지 울기 시작했다. 나는 기사 아저씨에게 어머니를 집으로 데려가라고 했다. 그러고 나는 혼자 있고 싶었다. “코치님, 죄송한데 지금 혼자 있고 싶습니다. 다음에 얘기해도 됩니까?” “그래, 그래. 푹 쉬고 다음 보자.” “예. 안녕히 가세요.”

농구 안녕….. 나는 혼자 고요한 입원실에서 깊은 생각에 빠졌다. 나는 슬슬 내가 왜 농구를 시작했는지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만약 농구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 수술을 하지 않았겠고, 지금 이 병원에 누워있지 않았겠고, 그러고 1 년 동안의 고생을 하지 않았겠고, 지금 내 무릎은 정상이었을 텐데. 나는 농구를 하겠다고, 농구에 빠진 나의 모습이 참 한심스러웠고 후회됐다. 나는 농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만두는 게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말이 되는 선택인 것 같았다. 그러고 나는 농구를 포기하겠다고 다짐했다. 농구를 포기를 하겠다고 다짐해도 머리 속에는 계속 농구만 떠올랐다. 뭘 해도 내가 농구를 하던 모습이 뚜렷이 생각났고 그 행복도 생각났다. 노니한테는 문자가 매일 왔고 나는 슬프고 혼자 있고 싶다는 마음에 답장을 하지 않았다. 나는 15 일 동안 밥을 먹지 않고 링거를 맞고 살았다. 그러고 매일 밥을 주는 아줌마가 오면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다. “오늘도 안 먹니?” 25


“입맛이 오늘도 없네요. 매번 죄송해요. 먹지도 않는데 방으로 밥 배달해야 해서.” “아니다. 입맛 살 때까지 배달해 줄께. 우리 미래 농구 선수.” 아줌마는 내가 농구를 좋아했고 인제 못하게 되었다는 걸 알고 계신다. 아줌마가 내 입원방으로 배달하러 오실 때 시간이 남으면 같이 고민도 털고 많은 얘기를 나누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줌마는 계속 나에게 농구를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해주셨다. 나는 아줌마가 계속 나를 응원하는 모습이 좋았다, 그래서 더 더욱 하고 싶었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할수록 눈물이 났다. 다음 날, 내 아침은 밥 배달 아줌마로 시작됐다, 물론 밥은 먹지 않았지만. 그러고 일어나, 휠채어를 타고 화장실로 가 볼일을 보고 세수하고 샤워를 했다. 그러고 병원 스케줄을 읽었다. 나의 병원 스케줄은 이러했다. 스케줄 10 시부터 12 시까지 재활치료 12 시부터 2 시까지 점심시간 2 부터 4 시까지 쉬는 시간 4 부터 8 시까지 재활치료

이유는 모르겠는데, 내 스케줄을 다른 환자들보다 빡빡했다. 난 또 전체 병원이

내가 농구를 해야하기 때문에 그렇게 스케줄을 짜놓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나는 재활치료를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를 않는다. 재활치료를 마치면 다음에 농구를 할 수 있을지 다짐을 할 수 없고 또한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부모님하고 의사 선생님들에게 미안하지만 거의 매일 재활치료를 빠진다. 재활치료 시간에 재할치료실로 안 가고 옥상으로 가 노래 듣고 게임을 주로 했다. 근데 어느 날부터 의사선생님과 트레이너가 나의 아지트를 알았는지 맨날 나를 찾았다. 그래서 요즘에는 주로 옷, 츄리닝을 입고 몰래 병원 밖으로 나가 4 시까지 혼자 있다가 5 시 지나면 친구들을 불러서 논다. 그러고 9 시에 병원에 들어가 잠을 청한다. 나는 이렇게 산지 인제 2 달째, 그리고 노니한테 연락 안 한지 2 달째. 노니가 나를 안 찾아온 걸 보면 친구들이 내가 어느 병원에 있는지 아직 안 알려준 모양이다. 26


다시 시작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내 옆에는 알렉스와 다니엘 선배와 노니가 있었다. 나는 잠이 덜 깬 정신으로 환영했다. 그러고 노니 얼굴을 보았다. 노니의 얼굴은 토마토처럼 빨개져서 울고 있었다. “괜찮아?” 내가 말 한마디를 하자, 노니는 나를 와락 안고 펑펑 울었다. 그리고 알렉스와 다니엘 선배는 눈 버리겠다는 듯이 시선을 돌렸다. 나는 노니를 안고 4 분 동안 같은 자세로 있다가 노니의 팔을 풀고 눈을 마주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 괜찮아. 곧 있으면 나 무릎 다 나아서 걸을 수 있고 농구도 다시 할 수 있어.” “거짓말 하지마. 나 다 알아. 알렉스한테 다 들었어. 왜 말 안 했어? 사실대로 말했으면 내가 도와줬을거 아니야.” 나는 실망하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알렉스를 눈을 봤다. 그런데 알렉스는 찔렸는지 내 눈을 피했다. 노니는 계속 같은 말을 했다. “도와줬을거 아니야” 나는 계속 그 말을 듣다 화가 나 소리를 쳤다. “니가 뭘 도와줄껀데! 내 농구 인생은 끝났어. 끝났다고! 재활치료를 마치고 다 나아도 농구를 다시 할 수 없을 수도 있대. 니가 뭘 도와줄껀데? 나는 다 포기했어!” “지금 나한테 화낸거야? 나는 너를 위해 왔는데?” 다니엘 선배는 진심으로 노니한테 화를 낸게 아니라 내가 나에게 실망하고 후회해서 화낸걸 이해하고 노니를 밖으로 데려갔다. 그러고 알렉스는 내 옆에 앉아 그냥 한숨만 쉬었다. “휴~ 너도 참. 야 너를 위해 한 여자가 학교까지 빼먹고 니 옆에 널 간호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이 등신아. 노니 데리고 올테니까 사과해라.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 헤어질랑 말랑이냐? 나하고 선배 안보이냐? 부러워하는 눈빛?”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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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노니가 들어왔다. 삐져 있었다. 나는 그래서 노니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도 노니는 화가 안 풀렸다. 그래서 나는 진지하게 이유를 설명했더니, 노니의 화난 눈이 풀리면서 나를 이해하고 풀렸다. 선배와 알렉스는 가고 노니는 남았다. 노니와 인제 어떻게 할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노니는 내가 재활치료 안 할 것 같다고 내가 재활치료 다 할 때까지 나를 간호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학교를 가야하는데 어떻게 그 긴 시간 동안 학교를 빠지고 내 옆에 있겠다는 건지. 그리고 부모님한테는 뭐라고 할껀지. 노니는 우회전, 좌회전 생각은 안하고 무조건 직진하는 것 같다. 어쨌든 노니 고집으로 노니는 내가 재활치료를 다 할 때까지 간호를 하겠다고 했다. 병원에서 나와 함께 지내기 위해 짐을 챙기러 몰래 노니 집으로 가 옷과 필요한 물건을 챙기고 왔다. 엄청난 양의 짐을 들고 왔다. 많은 옷과, 게임기, 전자기계. 난 또 이사 온 줄 알았다. 노니는 나를 간호하면서 쇼파에서 잔다고 했다, 근데 쇼파에서 자면 불편할까봐 병원한테서 보호자를 위한 작은 침대를 빌렸다. 달콤한 잠을 자고 있는데 노니는 아침 9 시에 나를 깨웠다. 화장실로 나를 휠체어로 데리고 먼저 볼일을 보고 머리 감고 세수를 하는데에 도와줬다. 그러고 아침밥이 왔을때 간호사를 불러 링거를 뽑고 억지로 나를 밥 먹게 했다. 그게 나의 1 달 만의 첫 끼였다. 그러고 노니는 나를 하루종일 따라다니면서 재활치료에 보내고 같이 시간도 보내주고 같이 놀아주고 같이 있어주고, 또 나를 챙겨주었다. 가끔은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고맙다는 마음도 많이 든다. 병원에 있는 간호사와 의사와 트레이너들이 우리를 보고 귀엽다고 하면서 나는 행복하고 좋은 여친을 뒀다고 말한다. 그러고 내 주위에 있는 환자들은 내 여친을 보며 나를 부러워하고, 나랑 같은 또래인 환자들은 노니에게 와 껄떡 댄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모양빠지게 빠르게 휠체어를 타고 그 환자에게 가 내 여자라고 말을 한다. 쉽게 말해 떨어지라는 뜻이었다. 나와 노니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같이 보내며 서로에게 더 더욱 반했고 좋아했고, 또 더 오래 같이 있다가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노니와 나는 6 달이 넘게 같이 병원에서 생활하며 병원 밖에서 돌아다녔다. 그러고 어느 날, 나는 내일 모레면 노니와 내가 벌써 1 주년을 사귀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알렉스와 다니엘 선배와 병원에 나랑 친해진 트레이너와 간호사에게 도움을 청해, 촛불로 하트 모양을 만들고 장미 꽃잎으로 나에게 오는 길을 만들었다. 나는 이쁘게 차려 입고 기타를 들고 밤 9 시까지 기다렸다. 마침내 이벤트 시간이 다가왔다. 멀리서 노니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노니가 나에게 가까이 왔을 무렴, 알렉스가 휠체어를 밀어 숨어 있는 곳에서 나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의 제목은 “Jason Mraz”의 “I’m Yours”이었다. 그렇게 이벤트를 마치고 노니는 놀라고 눈물이 28


글썽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안았다. 나도 노니를 꼭 안았다, 그러고 노니에게 키스를 했다. 나의 첫키스였다. 무척 짜릿했다. 이벤트를 마치고, 쉬라고 노니를 집에 보내고 나와 알렉스와 선배와 다른 사람들은 뒷정리를 했다. 노니는 오늘 집에 가서 쉬고 있으니 노니 대신에 알렉스하고 다니엘 선배가 일주일 동안 대신 봐주기로 했다.

제 4 부 웰컴 백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노니는 다시 병원으로 왔다. 그러고 나의 병원 생활은

전처럼 진행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노니는 나에게 진심으로 농구에 대해 말을 했다.

“너 농구 다시 시작하는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나 농구 다시는 안 해. 그리고 재활치료 다 해도 농구를 다시 할 수 있을

거라는 보장 못 한대잖아.”

“노력도 안 해보고 어떻게 알아? 우리 할 수 있는데 까지는 해보자. 어?”

“나 농구 잊은지 오래됐어. 농구 얘기는 하지 말자. 어?”

“아, 왜? 우리 한번 해보자. 의사 선생님하고 트레이너한테 허락 받아서 천천히

농구 실력도 끌어올리자.”

“아니야, 됐어. 오늘 농구 얘기는 여기서 끝!”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나는 휠체어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

올라가서 나는 고민을 엄청 했다. 농구를 다시 시작할지 말지. 내가 지금 두려운 것은 바로 농구를 다시 시작하면 내가 예전처럼의 실력으로 돌아가서 농구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다. 그러고 다음 문제는 내가 농구를 하다가 나에게 다시 부상이 올까봐 두려운 마음도 있다. 나는 다시는 무릎이 다쳐 긴 세월 동안 안 걷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또 다른 쪽으로 생각하면 농구를 다시 하고싶은 마음이 조금 있는 것 같다. 그때 내가 농구를 했을 때 신났던 느낌, 짜릿했던 순간 그리고 배웠던 순간. 노니는 나를 따라 옥상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병실로 내려가자고 했다. 들을 말이 있다고 29


하면서. 병실에 돌아가 침대에 누워 내가 들을 말이 뭔지 생각했다. 갑자기 나를 담당하는 트레이너와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너가 열심히 재활치료를 한 결과 인제 걸을 수 있게 되었어. 하지만 갑자기

무릎에 무게를 싣거나 뛰거나 무리하게 쓰면 안돼. 그래서 인제부터는 천천히 무릎을 쓰게 될거야.”

“아,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1 주일에 한번씩 테스트를 하면서 무릎 상태를 살펴볼꺼야. 또한 테스트

결과에 따라 니가 농구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알게 될꺼고.”

나는 그 말을 듣고 마음 속으로는 기분이 좋았지만 겉으로는 표현을 안 했다.

근데 아무래도 나 대신 노니가 기뻐해주는 것 같았다. 노니는 그 말을 듣고 나를 안고 의사선생님과 트레이너에게 악수를 하고 웃고 신나했다. 그리고 나는 걷기에 익숙해 지기 위해서, 나와 노니는 나란히 오랜만에 걸었다. 왠지 기분이 좋았다. 오랫동안 노니와 손 잡으면서 걷기 보단, 나는 휠체어에 앉고 노니는 밀고. 정말 따분한 연인 생활이었다. 하지만 인제 걸을 수 있으니, 나의 연인 생활은 한참 나아졌다. 그렇게 나는 더 편안한 병원생활을 하게 되었다.

1 주일 동안의 고민 끝에 나는 농구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인제

나는 노니 없이 잘 재활치료와 병원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노니를 집으로 보내고 나는 다시 혼자 생활하게 되었다. 나는 혼자서 재활치료도 병원 생할도 잘했다. 천천히 무릎을 쓰면서 뛸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재활치료의 강도는 점점 올라가면서 무릎의 상태도 점점 제자리도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고 어느 날, 나는 의사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직까지는 재활치료를 6 달 더 해야 하지만, 인제부터는 천천히 농구를 할 수

있게 되었어. 생각보다 너희 무릎이 많이 좋아졌어. 축하한다.”

나는 내가 나의 목표에 천천히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에 내 자신이 너무

자랑스러웠고 뿌듯했다. 나의 농구 정신은 다시 예전처럼 돌아왔다. 나는 전보다 더 열심히 재활훈련을 했다. 그렇게 남은 재활치료의 남은 기간 동안 나는 재활훈련도 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천천히 농구 실력도 쌓아갔다. 30


잘가 병원

나는 마침내 재활치료를 마치고 병원에서 나왔다. 정말 오랜만에 나오는 바깥

세상이었다. 나는 1 년 동안 병원과 농구장에서만 살았는데. 인제 병원에서 나오니, 답답하지도 않고 살만했다. 학교를 다시 다니기 전에 나는 1 주일 동안 쉬었다. 왜냐면 병원에 있는 동안 못한 것들을 실컷 하고 못 먹은 것도 실컷 먹었다. 무엇보다 1 년 동안 병원에 있었기 때문에 환경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다. 그렇게 1 주일이 지나고, 나는 다시 학교에 갔다. 학교 들어가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창문 밖으로 나를 보면서 환호를 했다. 난 또 무슨 연예인이 된 줄 알았다. 나는 그렇게 혼란스럽게 학교를 시작했다. 선생님들은 나를 볼 때마다 다리가 괜찮냐고 물으시면서, 농구는 다시 하냐고 물으신다.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아무래도 내가 농구를 다시 살릴 수 있는 중요한 선수인가보다. 내가 없을 때 우리 농구팀은 어떻게 지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제부터 내가 있는 한 좋은 결과만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점심 시간이 되었다. 농구부 전원이 나에게 달려와 나를 무지 반겼다. 농구부 전원이 한번 다같이 말을 하니까, 누구에게 먼저 답을 할지 모르겠고 뭐라고 하는지 말을 못 알아들었다. 뭐 어쨌든 학교 첫날 점심은 시끌벅적 했지만 오랜만에 농구부와 같이 있고 웃고 시간을 보내니 좋았다. 근데 농구부랑 있는 동안, 나는 내내 감독님을 찾았지만 감독님은 보이지 않았다. 난 또 나 없을때 다른 학교에 전학 가셔서 다른 학교에서 감독을 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렇게 학교를 마치고 농구 연습 시간 전까지, 나는 학교에 오랜만에 온 이유로 노니와 함께 학교를 투어하듯이 돌아다녔다. 내가 없는 사이에 학교는 엄청나게 변했다. 학교에는 어느새 영화관이 지어졌고, 그리고 공연장, 수영장. 여러 가지 예체능을 위한 건축들이 생겼다. 아무래도 우리 학교는 예체능 쪽인 것 같다. 그렇게 학교 구경을 마치고, 연습 시간이 되어 농구장으로 준비물을 챙기고 들어갔다. 나는 오랜만에 농구복과 엄마가 사준 농구화를 신고 농구코트에 올랐다. 농구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간단하게 무릎과 근육을 스트레칭을 하고 시작을 했다. 연습을 시작하려던 참에 감독님이 나를 방으로 불렀다.

“무릎 상태는 어때?”

“아, 괜찮아요. 의사선생님이 인제 농구해도 된다고 하셨어요. 저 인제 다시 농구

열심히 해서 다시 예전처럼 원상복귀 할거에요.” 31


“그래, 그런 정신 마음에 든다. 계속 꾸준히 연습하고 노력하고. 다시 잘

부탁한다.”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는 다시 예전의 농구 실력이 차근차근 매일 훈련할 때마다 천천히 제자리로

왔고 조금씩 늘기도 했다. 코치님은 매 연습마다 나를 흐뭇한 표정으로 쳐다보신다. 그러면 나는 코치님의 눈을 쳐다보고 엄지 손가락을 올리고 윙크를 한다.

다음 날 코치님은 우리 농구부 전원을 불렀다. 전국대회에 대해서였다. 작년

전국 대회에서 아쉽게 내가 불참하게 되었지만 3 등을 차지했다. 코치님은 우리 농구부가 3 등을 하게 된 이유는 물론 농구부 전원이 열심히 했기 때문이지만, 아쉽게 못하게 된 나를 위해서, 그리고 팀을 잘 이끌고 포기 하지 않은 주장과 새로 들어온 신인들. 신인인데도 불구하고 신인의 실력보다 더 뛰어나고 선배들의 실력보다 훌륭한, 우뚝 선 신인들의 활약이 컸다. 이번 전국대회가 시작하는데 고작 2 주 남았다. 코치님은 그때까지 지독한 훈련을 시켰고, 나와 농구부는 1 등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훈련을 열심히 했다. 코치님이 원하는 페이스에 우리는 잘 맞춰갔다. 나는 2 주 동안 노니 생각도 다른 고민도 다 잊고 오직 농구만 생각해 오면서, 내가 그 동안 못했던 농구를 이번 대회때 좋은 결과를 갖겠다고 다짐했다.

화이팅, 잘할 수 있어

2 주가 지나고 우리는 대회가 열릴 농구장으로 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다른

학교 학생들과 우리 학교 학생들이 우리 농구부를 응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내가 누군지 아는지, 나를 응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걸 보고 다니엘 선배는 말했다.

“올~ 너 인제 팬도 생겼냐? 노니 인제 너 지키느라 바쁘겠다. 바람피지 마라!”

칭찬인지 욕인지 헷갈리는 말이었다. 어쨋든 나는 다시 농구에 만 집중하고 농구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전국 대회의 스케줄은 이러했다. 대회에 기간은 3 일이고 한 팀당 하루에 5 게임을 하는 거다. 우리의 첫 게임은 2 시였다. 정확히 3 시간 후다. 그렇게 나는 다른 학교들의 경기를 보면서 천천히 몸을 풀었다. 그리고 오늘 우리와 게임을 32


하게 될 학교들의 경기 플레이를 주심이 살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어느새 1 시반이 되었다. 우리 농구부는 선수대기실로 가 신발을 갈아신고 농구복으로 갈아입었다. 농구장으로 오르기 전에 우리는 대기실에서 서로 어떤 활약을 보여줘야 할지 말했다. 그렇게 엄청난 환호 속에 우리는 경기장에 올라갔다. 이번 경기가 시작이다 보니 중요하고 나는 아직 재활치료를 마치고 들어온지 얼마 안 되서 후보로 뛰게 되었다. 벤치에 앉아 관중을 둘러보는데 바로 내 뒤에 있는 관중석에 노니와 노니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노니에게 사랑의 윙크를 보내고 나도 윙크를 받았다. 그때 감독님은 내 머리를 치면서 농구에 집중하라고 했다. 농구 경기는 시작되었고, 다니엘의 큰 키 덕분에 경기는 우리가 시작을 하게 되었다.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나의 스승이자 파트너인 알렉스가 후프에 뛰어 다니엘이 던진 공을 공중에서 받아 덩크를 했다. 경기 초반부터 관중들의 시선을 이끌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번 경기를 리드했다. 점수의 차이가 많이 벌려져 있을 때, 코치님이 나를 넣으셨다. 나의 포지션은 전처럼 Power Forward. 경기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오랜만에 들어가서 나는 게임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혼란스러웠고, 내가 뛴 경기 중에서 최악으로 뛰었다. 나는 혼란스러워서 게임을 진행도 못하고 좋은 활약도 보이지 못했다. 나는 슛과 레이업을 다 못 넣고 패스도 느려 다 스틸 당했다. 관중들은 다 나를 향해 비난을 했고 감독님은 나에게 화가 나 나를 바로 교체했다. 그러고 나는 패닉 상태로 밴치에 앉아 진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알렉스는 경기에서 나의 실수를 자기의 실력으로 받쳐줬다. 알렉스가 있어서 다행이었지, 알렉스가 없었으면 우리는 역전을 당했을 거다. 어쨌든 우리는 첫 경기에서 나 때문에 쉽게 이길 경기를 아슬하게 이겼다. 그리고 다음 경기 시작하기 1 시간 전 나는 감독님과 깊은 얘기를 나눴다. 감독님은 나에게 괜찮다고 하는 것보다 나에게 야단을 치셨다.

“전국 대회에 뛰면 너는 무슨 프로 선수인 줄 알았어? 니가 경기에 안 뛴지

1 년이 됐잖아, 근데 너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잘 뛸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 정신 차려. 너 이번 대회 잘 못하면 너 농구 인생 끝나는 거야.”

“네.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감독님에게 야단 맞고 선배와 동료들에게 괜찮다는 말을 들었지만, 다니엘

선배님은 나에게 더더욱 야단을 치셨다. 그리고 알렉스는 나에게 와, 다니엘 선배가 나에게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 나를 위해 한 말이고 또 욕하고 못된 말을 한 거는 맘에 없는 말이라고 했다.

33


나는 나의 미래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감독님과 팀원들을 위해 정신을 차렸다.

농구 경기 30 분 전 나는 밖으로 나가 뛰기 시작했다. 그러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번 경기에서는 상대팀이 경기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뜻밖에도 좋은 상대를 만났다. 전반전 게임까지는 우리가 지고 있었다. 후반전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뛰게 되었다. 내가 코트에 오르자 사람들은 마치 나에게 행운을 비는 듯이 함성을 쳤다. 그러고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알렉스가 공을 끌고 올라갔다. 나는 알렉스를 받쳐주기 위해 뒤를 따라가다가 나에게 공이 왔다. 나는 속동을 쓰면서 들어가다 막혀 뒤로 뛰면서 슛을 했다. 들어갔다. 들어가는 순간 사람들은 함성을 치고 알렉스와 다니엘 선배는 나에게 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감독님도 소리쳤다. 그렇게 나는 첫득점을 내고, 알렉스와 나와 다니엘 선배는 좋은 공격 팀워크를 선보였다. 결국에 나의 3 점 슛으로 우리는 역전을 했다. 이번 경기도 아슬하게 이겼다. 103 대 100 으로. 이 경기가 끝나고 사람들은 나에게 손을 흔들며 나의 이름과 알렉스의 이름과 우리 학교를 외쳤다. 그때 노니의 목소리가 들였다.

“동규~ 진짜 잘했어. 니가 엄청 자랑스러워.”

나는 노니를 보고 환하게 웃고 대기실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농구부들은

나를 안으며 잘했다고 엄청난 칭찬을 받았다. 그러고 감독님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보시고 웃으면서 내가 맨날 하던 엄지손가락 올리기를 나에게 하셨다. 그렇게 나는 이번 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다. 아쉽게도 다음 경기에 졌지만, 그 이후에 나는 다시 주전으로 뛰게 되었고 남은 2 일 동안은 10 게임 중에 2 게임은 지고 다른 게임은 다 이기고 말았다. 우리가 원하던 전국 대회 일등에게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었다. 결국엔 결승전까지 가 좋은 수비를 펼치면서 공격도 차근차근 팀워크로 공격했다. 그리고 90 대 85 로 우리는………..

이겼다! 그때 우리가 이겼을 때 우리 농구부는 소리를 치면서 농구코트를

뛰어다녔다. 어떤 선수는 울고 어떤 선수는 신나서 웃고. 나는 이 경기가 끝나고 우리가 이겼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감독님에게 달려가 안겼다. 그리고 감독님은 마치 내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 다음, 나는 노니에게 달려가 관중들 앞에서 노니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관중들과 우리 농구부는 나의 이름을 외치면서 함성을 질렀다. 노니와 키스를 마치고 나는 관중들 향해 섰고 손을 번쩍 들었다. 그렇게 대회는 끝났고 우리는 농구대회 파티에 갔다. 그 파티는 농구대회에 참석한 학교들의 34


농구부들만 초대 받은 파티다. 그 파티에서는 밥도 먹고 다른 학교와 인사도 하고, 또한 가장 하이라이트인 건 각 농구부의 MVP 를 선발하는 것이다. 다른 학교들의 MVP 는 거의 다 주장이었거나, 덩치가 가장 큰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나도 우리 학교의 MVP 도 우리 주장이 될 줄 알았다, 그래서 기대도 안 했는데, 갑자기 내 이름이 들렸다. 나는 내 이름을 듣고 나는 멍을 때렸다. 그러다 갑자기 알렉스의 이름도 나왔다. 우리 농구부는 1 등이라고 MVP 를 2 명이나 선발할 수 있었다. 다른 학교들은 우리가 신인인데도 MVP 상을 받았다는 것에 무척 놀랐다. 나도 마찬가지 였고. 인사를 마친 다음에 갑자기 한 기자가 나와 알렉스에게 다가오더니 나와 알렉스를 취재했다. 나는 나의 고생과 끈기와 이야기를 얘기했고 알렉스도 자기의 이야기를 말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가 신문을 들고 내 방으로 달려오셨다.

“동규야! 이게 웬일이야, 너 어저께 전국 대회에서 1 등 한거 때문에 너 취재

했잖아. 너 신문에 나왔다!”

“진짜? 내 친구도?”

“어. 막 신문 읽어보니까 너하고 알렉스가 신인인데도 불구하고 가장 좋은

활약을 보여줬대.”

제 5 부 나의 미래는?

다음 날, 나는 학교로 등교했다. 등교하자마자 사람들은 나를 보면서 잘했다고

칭찬을 해줬다. 나는 전국 대회로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눈길을 받았다. 나는 처음 학교에 왔을 때보다 나의 학교 생활은 더 시끄러워져졌다. 대회를 마치고 우리는 3 주 동안 연습이 없었다. 그런데 감독님은 학교 마치고 나를 부르셨다.

“어, 그래 우리 동규. 니가 이렇게 클 줄이야. 니가 참 자랑스럽다. 전국 대회를

마치고, 너는 다른 학교들한테서 너한테 스카웃 제의가 왔어. 한 학교가 아니라 엄청 나게 많이. 근데 더 좋은 건 미국에서 왔다는 것이야.”

“네? 진짜요? 그럼 전 뭐하면 돼요?” 35


“내가 어떤 학교들이 요청을 했는지 보여줄께, 그리고 어떤 학교에 전학을 가고

싶으면 부모님과 상의하고 서명받고 와. 하지만 내가 추천하는 건데 만약 계속 농구를 하고 싶으면 미국으로 가는게 좋아.”

“그럼 저 미국에서 온 학교 요청들만 보여주세요. 여기에 있는 학교에 가서

감독님과 제 친구들하고 겨루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저 미래에도 농구하고 싶어요. 저 미국 갈래요.”

나는 감독님에게 그렇게 얘기하고 미국에서 요청한 미국학교들의 리스트를 들고

집에 갔다. 나는 집에 가서 진지하게 부모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말을 들으시고 나의 선택에 무조건 동의하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Derrick Rose 가 뛰고 있는 팀 (Chicago Bulls)가 운영하고 있는 학교에 전학 가기로 했다. 나는 이번 크리스마스까지만 이 학교에 다니기로 했다. 그때까지는 계속 여기 농구부에서 훈련을 했다.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서. 그렇게 나는 나의 미래를 결정하고 나는 VIS 에서 다시 평범하게 연인으로 학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근데 내가 잊은게 하나 있었다. 노니와 나의 미래. 내가 만약 미국에 가면 노니는 어떻게 하지? 아직 사랑하는데. 그때부터 나는 다시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맨날 노니를 보면서 어떻게 말해야 하지, 말해야 하나, 헤어질까. 매일 노니 생각만 했다. 알렉스에게 말을 하려다 말았다. 왜냐면 노니에게 말을 할 거기 때문이다. 그리고 겨울이 왔다. 나와 노니는 겨울방학을 맞이했다. 바로 내가 미국 가기 2 주 전. 나는 내가 미국 가기 전 2 주 동안 방학이니까 매일 노니와 함께 있으면서 추억을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는 노니가 좋아하는 추운 날씨가 있는 시엥쿠앙에 놀러갔다. 우리는 8 박 9 일 동안 시엥쿠앙에 계속 붙어 있고 손도 잡고 진지한 이야기도 하고 다투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그리고 시엥쿠앙에서의 마지막 날에, 나는 노니에게 다 말했다. 노니는 그 말을 듣고 믿지를 않았다. 나는 계속 사실이라고 말했지만 믿지를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울었다. 나는 노니에게 같이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사과하고 같이 울었다. 노니는 울음을 그치고 나에게 한마디를 했다. “너 농구하러 미국 가는거지? 그럼 가. 나는 항상 니 꿈을 응원했는데, 이제 와서 막을 수는 없지.” 나는 그 말을 듣고 미안하다는 말만 떠올랐다. 그렇게 슬프게 시엥쿠앙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돌아왔다. 어머니는 벌써 짐을 다 싸놓으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남기로 하셨고, 36


나 혼자 가서 미국에 있는 이모와 살기로 했다. 나는 내 짐을 챙기고 친구들과 학교에서 만나 인사하고 감독님께도 인사와 약속을 하고 떠났다. 공항에서 비행기 탑승할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나를 뒤에서 안았다. 뒤를 돌아서 보니 노니였다. “너 왜 여깄어?” “나도 미국 가는데?” “왜?” “너 좋아서 따라가는 건데” “미국에서 어떻게 할려고?” “그런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같이 조용히 있자.” 결국 우리는 헤어지지 않고 같이 가서 노니는 미국고등학교에 잘 다니고 있고, 나도 열심히 미국 고등학교 농구부에서 뛰게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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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후기

이 이야기는 수업 시간에 공부한 “나는 브라질로 간다”를 읽고 영감을 얻어 나의

상상력을 덧붙여 쓴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을 쓰면서 자세하고 깊게 쓰다 보니까 생각보다 너무 많이 길게 썼다. 소설을 쓰기 시작하기 전에, 나는 뭐에 대해서 쓸지 막막했으나 점점 소설에 투자할 만큼 소설이 저절로 써졌다. 물론 저절로 쓰면서 어휘력과 언어 실력이 딸려 여러 문제점들이 있었지만, 천천히 고치면서 소설을 이어갔다. 이 이야기에는 동규가 나와 같은 상황에 놓여져 있는 사건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감정과 표현력을 더 살릴 수 있었다. 쉽게 말해, 나의 경험을 이용해 소설을 쓰기에 더욱 쉬워졌다. 나는 소설을 마치고, 나의 소설의 분량을 보니 놀라웠다. 비록 소설이 길긴 하지만 읽는 이는 내 소설을 잘 읽고 이해했으면 좋겠다. 2013 년 12 월 3 일 엄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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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한국어수업 G9 기행문 쓰기

시엥쿠앙 수학여행 기행문 G9 엄덕용 David Eum

수학여행 가는 당일, 비행기 시간은 2 시간 연기되었다. 우리 반은 밥과 게임과

함께 2 시간을 낭비했다. 그렇게 시간을 버리고 비행기 탑승을 했을 때, 나는 팍새에서 일어난 비행기 추락 뉴스를 보고 라오스 비행기 타는 것에 대해서 두려웠다. 비행기가 흔들거릴 때마다 나는 혹시라도 비행기가 추락할까봐 심장이 철렁거렸다. 나는 2 시간 동안 심장이 철렁거리면서 시엥쿠앙에 도착했다. 우리 수학여행은 4 박 5 일 동안 일어났다. 원래 우리 반은 25 명인데, 22 명만 시엥쿠앙에 갔다. 나머지 3 명이 안 간 이유는 부모님이 비행기 추락할까봐 못 가게 하셨기 때문이다. 시엥쿠앙의 공항은 정말로 작았다. 믿기지 않게 작았다. 우리 집보다 작았다. 나는 15 년 살면서 이렇게 작은 공항은 처음 봤다. 시엥쿠앙의 날씨는 무척 추웠다. 겨울옷과 자켓을 입어도 추웠다. 첫날에 비행기에서 내리자 마자, 바람이 힘차게 불었다. 내 친구는 모자가 날아갔고, 어떤 애의 스카프도 날아갔다. 정말 무언가로 얼굴을 가리지 않으면 얼굴이 얼 기세다. 시엥쿠앙의 환경은 자연적이고 시골적이다. 그나마 우리의 기숙사는 시엥쿠앙에 가장 좋은 곳이었다. 시엥쿠앙에는 산들이 무척 많았다. 그 산을 자세히 보면 구멍들이 무척 많다. 그 구멍들은 폭탄들이 터진 흔적이다. 마을 밖에는 논들이 무척 많았다. 그 논에는 추운 날씨에도 일하는 농부들이 많았다.

우리 수학여행의 목적은 사회숙제를 마치기 위해서이다. 라오스는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폭탄을 짧은 시간에 맞은 나라다. 거기다 라오스에서 시엥쿠앙에 아직도 터지지 않은 폭탄들이 숨어있다. 사회 시간에 우리가 요즘 집중적으로 배우고 있는 것은 39


바로 과연 라오스의 폭탄 문제가 “Global Justice” 인지 아닌지를 의논하는 거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수학여행은 숙제에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수학여행에서 폭탄 부상자와, 폭탄을 제거하는 단체를 만난거 빼고는 도움이 안됐다. 우리는 적어도 3 박 4 일 동안은 왕이 옛날에 심은 항아리에 대해서만 배웠다. 폭탄 부상자를 인터뷰 했을 때, 나와 내 옆에 있던 친구들은 우리가 멀리 있어서인지 아니면 부상자가 작게 말해서인지 부상자가 하는 말이 안 들렸다. 근데 내가 부상자에게서부터 알수 있는 것은 2 가지 였다. 그는 폭탄으로 왼쪽 팔 하나가 절단되서 가짜 팔을 썼고 그리고 양복의 가슴에는 유엔 마크가 새겨저 있었기 때문에 유엔에서 일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수학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참 많이 있었다. 밤마다 추운 날씨에

5 명의 친구들과 패딩을 입고 베란다에서 기타 치며 커피를 마실 때다. 그게 좋은 추억이었던 이유는 시엥쿠앙의 밤은 생각보다 무척 추웠다. 정말 이 날씨가 라오스의 날씨인지 믿기지가 않았다. 근데 그 추운 날씨에 뜨거운 커피가 목으로 들어갈 때 그 따뜻함이 정말 좋았다. 추운 날씨에 시렸던 목이 뜨거운 커피로 인해 목이 녹여지는 느낌, 정말로 다시 느끼고 싶은 느낌이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면서 친구들과 기타를 치면서 안되는 노래를 열창하는게 정말 웃겼다. 네번째 날에 우리는 시엥쿠앙에 있는 현지의 학교에 갔다. 우리의 목적은 2 팀으로 나눠 한 조는 잔디밭을 만들고 우리 조는 멀리뛰기장을 지었다. 그렇게 멀리뛰기와 잔디밭을 다 만들고 몇 사람들은 축구를 하고 있었고 나는 배구를 했다. 나는 라오스 현지 애들과 배구를 할 때 쉬울 꺼라고 생각했다. 내가 안그래도 우리 학교 배구부 였는데. 근데 안타깝게도 우리 반은 완전히 발렸다. 라오스 애들이 생각보다 높이 뛰고 팔힘도 상당히 쎘다. 밥을 먹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서 정식 축구를 했다. 우리 반과 선생님이 알기로는 라오스 사람들은 축구를 하루에 한 번씩은 하기 때문에 잘 할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반대였다. 라오스 학생과 선생님들이 못 했던 건 아니지만 우리는 5 대 1 로 이겼다. 경기 초반에는 내가 수비수로 뛰다가 숨이 차서 골키퍼로 들어갔다. 나는 1 골 빼고 다 막았다. 나는 내가 골키퍼를 잘할 줄은 몰랐다. 그렇게 우리는 라오스 사람들과 같이 땀을 흘리며 축구를 같이 하고 음식도 나눠먹고 정말 좋은 날을 같이 보냈다. 그리고 이번 수학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내 친구가 마지막 밤, 캠프파이어에서 직접 작곡한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치며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을 했다. 고백은 성공했다. 여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나온 긴 미소를 짓는 고양이처럼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그들은 밤에 2 시간의 산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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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수학여행에서 맘에 안 들었던 점은 헛고생이었다. 선생님들의 엄격함

그리고 밤마다 샤워. 우리는 수학여행 첫날부터 시간을 낭비했다. 버스에서 내리지 말고 그냥 탄 상태에서 가면 될걸, 굳이 햇빛 쨍쨍한 낮에 2 시간을 걷게 한다는게 이해가 안 갔다. 그것도 하필이면 구경할 것 없는 곳에서. 우리는 2 시간을 땀 흘리면서 먼지 풍기는 길을 걸으며 생고생을 했다. 하지만 더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 우리의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선생님들한테 대놓고 불평하지 않았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는 불평이 쏟아졌다. 다른 안 좋았던 점은 밤마다의 샤워였다. 낮에 땀나는 힘든 일과 신나게 놀고 나서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하려고 하는데, 보일러가 안 됐다, 매일. 4 밤 동안 한 번도 보일러가 된 적이 없다. 만약에 밤의 날씨가 더웠다면 차가운 물로 씻어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는 밤마다 무지 추웠다. 10 도였다. 물방울이 몸에 닿기만 해도 몸이 떠는데, 물을 몸에다 쏟으니 온몸이 얼고, 몸 안에 있는 혈기들이 쭐어드는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맘에 안 들었던 거는 선생님의 엄격함이었다. 우리 수학여행의 규칙은 이러했다. 밤 9 시가 되면 바로 취침해야 하고 친구들의 숙소에 들어갈 수 없고, 남자와 여자는 같은 방에 있을 수 없었다. 또한 안 그래도 피곤한데 하루 하루 일기와 감상문을 써야했다. 그리고 어느 날은 나와 친구들이 9 시부터 방에만 있기 너무 답답해서 우리 숙소에서 나와 다른 친구의 숙소에 놀러갔다. 그러다 선생님한테 걸렸을 때, 그 다음 날 학교에 전화해, 교감 선생님과 얘기를 하며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하는지 의논 중이었다. 그래도 다행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무척 식겁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수학여행에서 추억들도 있었지만, 나쁜 점 때문에 더 만들 수 있는 추억을 못 만들었다.

수학여행에서 기억에 남고 웃겼던 일들은 드물었다. 우리가 머물렀던 리조트는

산 위에다 지은 곳이었다. 그래서 덕분에 우리는 아침마다 환상의 자연을 만끽했다. 아침마다 숙소에서 나오면 내 앞에는 정말 안개들이 둘러싸여 있었다. 거기다 앞에는 산 사이에 햇빛이 비치면서 안개를 통해 빛이 반짝일 때 정말 마치 티비에서만 보던 대자연과 같았다. 또한 수학여행 중에서 가장 웃겼던 점은 통역사였다. 우리 반은 수학여행을 갈 때 라오스말과 영어를 하는 투어가이드와 함께 갔다. 그는 우리가 시민들, 마을 이장 그리고 회사에 방문하러 갔을 때 통역을 맡았다. 하지만 가끔 통역을 할 때 문제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한 회사에서 캐나다의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투어가이드는 캐나다를 호주로 통역을 했다. 나와 라오스 말을 알아듣는 내 친구들은 크게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지만, 라오스어를 못하는 선생님과 다른 친구들은 “아하” 이러면서 틀린 정보를 얻었다. 41


이번 수학여행은 정말로 재미없었다. 하지만 나와 친구들은 그렇게 재미없는

수학 여행에서도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엄청나게 애썼다. 재미없는 일들에서도 좋은 추억 만들자고 웃긴 짓도 하고 쓸데없는 짓도 했다. 하지만 수학여행이 끝나고 생각을 해보니 재미없고 선생님들의 엄격함도 하나의 추억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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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한국어수업 G10 단편소설 쓰기

한 달 반의 중독

한국어 수업 과제 – 소설 쓰기 VIS Korean Mother Tongue Class 10M. 김정훈 (James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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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나는 간다, 라오스로! (Boom Boom YO, A-yo whsupaw ffkvdivdbivfisoijoqoienqejFQ..) 이어폰 사이로 랩소리가 선생 말소리를 덮는다. 역시 나랑 공부랑은 맞지가 않다. 나는 꼭 크면 래퍼가 될 것이다. 에미넴 투팍 등을 뛰어넘는 래퍼. 근데 선생이 하는 말이 이 성적이면 졸업은 물론, 한 학년을 꿇어야 한다고 한다. 망할놈의 한국 교육 정책. 오늘 나는 마음을 잡았다, 한국을 뜨기로. 인터넷을 찾아봤다. 공부하기 편하고 살기 조용한 곳을 추천해주는 블로그들이 다 라오스란 나라를 추천한다. 언젠가 한번은 들어봤는 나라인데 죽기 전에 가봐야할 곳 100 개중에 Top 1 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엄마,아빠, 나에게 관심이라고 가지진 않는다. 아빠는 일 중독, 엄마는 돈 중독이라 나는 시간을 집사랑만 보낸다. 사실 우리 아빠는 삼성의 부회장이다. 집에 돈은 널렸는데 이제 쓸 곳이 없다. 근데 우리반 아이들은 내가 갑부아들인지는 모른다. 잘 생각해봤는데 말은 안하고 있지만 내가 우리반 왕따인 듯하다. 학교 성적도 개판이고 곰곰이 생각해 봐도 나는 이민이 답인 듯하다. 공부를 하든 말든 조용히 살수 있고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그런 곳으로 이민을 가고싶다. 그래서 결정한 곳이 라오스다. 부모님께 얘기를 해봤다. 아빠는 반대 하는 분위기지만 엄마는 상관도 안한다. 그러다 아빠가 사업이 대충 4-5 년은 걸릴듯 한다면서 가도 된다고 결정을 내렸다. 아빠가 했는 말은 “신대욱이, 니 알아 하그라.” 그 말은 들은 직후에 바로 여행사로 찾아갔다. 요새 성수기라 그런지 비행기 값은 좀 비싸다. 그래도 내 돈도 아닌데, 쿨하게 50 만원 돈을 내기로 했다. 부모님께 용돈 이야기를 해보았다. 엄마랑 아빠는 용돈 챙겨줄 여유가 없다고 하면서 내 통장으로 10 억을 넣어주었다. 3 년 동안 10 억을 들고 살든지 죽든지 한다는 소리이다. 라오스나 태국쪽 물가를 보니 10 억으로 한 20 년 정도는 살 수 있을 듯하다. 비행기 뜨는 날이 왔다. 아빠는 일때문에 회사에 나가있고 엄마는 계모임 아줌마들과 놀러 나간다고 마중나온 사람이 집사뿐이다. 집사가 말하길 태국쪽에서 아는 가이드가 안 그래도 라오스로 넘어온다고 해서 그 가이드가 배웅을 오고 기본적인 집거래, 매반 (라오스어로 가정부는 매반이다) 들 등 일을 처리해준다고 하였다. 드디어 비행기에 올라왔다. 노래소리가 비행기 소리를 덮는다. (Boom check this out yo, a yo wasupp..kfpsdojomgofgs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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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학교 입학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니 어느새 라오스에 도착을 하였다. 날씨를 보니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듯하다. 첫날부터 비가 오더라. 라오스 수속을 마치고 가이드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가이드가 대기시켜놓은 벤을 타고 일단 호텔로 들어갔다. 라오스라하면 다 촌동네 정도 될까 하고 생각했는데, 이 플라자 호텔만 봐도 그게 아니란 것을 알아챘다. 플라자 호텔 체인은 우리아빠 친구가 경영하는 곳이다. 역시, 들어가보니 좀 고급스럽긴하다. 그래도 가이드가 나를 위해 잠시나마 일을 해주는데 호텔 방 정도는 내가 잡아줘야 싶어서 플라자호텔 스위트룸 하나는 가이드를 위해 내가 돈을 내 주었다. 다음날 가이드와 함께 집을 보러 갔다. 서양쪽 아저씨가 사는 곳인데 그 아저씨가 집과 함께 매반도 같이 내놨다. 그 서양아저씨와 집 주인과 얘기를 하는데 한 달에 500 달러를 달라고 한다. 그러자 역시 내 가이드, 동남아 쪽 생활을 오래하다보니 쇼부를 잘 볼 줄 안다. “그 옆에 수영장까지 끼워서 500 불에 하쇼, 아니면 딴 곳을 알아 보든지.”, 그러자 집주인은 수영장은 옆집에서 이미 가져간거라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고는 그냥 다른 곳을 알아 보라고 했다. 차를 타고 가다 보니, 엄청나게 크고 좋아보이는 집을 팔고 있다는 푯말을 보았다. 일단 그집에 가서 집에 사는 사람과 이야기해보니 아주 좋은 조건에 팔고 있다고 한다. 집에 정원, 수영장, 운동장 과 매반까지 다 끼워서 한달에 700 달러를 한다고 했다. 나는 바로 알았다, 쇼부 볼 일도 없이 이 집은 내꺼다 라고. 바로 계약을 마친 후 차를 알아보러 갔다. 차는 내가 아직 배운적이 없으니 차를 살때 기사도 한 명 고용하기로 했다. 차는 중고차를 사면 좀 뭐하니까 새 차를 한 대 뽑기로 했다. 근처에 보이는 매장이 벤츠 매장이 한 군데 있었다. 들어가서 차를 파는 사람한테 5000 만원 대로 한 대 좋은거 추천해달라고 했다. 이번것도 망설임 없이 질렀다. 기사를 고용하러 갔는데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쿨하게 내가 라오스어를 배우기로 하고 기사를 잘할 것 같이 생긴 사람을 고용했다. 진짜 문제는 학교에서 있었다. 가이드가 말하기를 라오스에서 가장 좋은학교는 Vientiane International School 이라고 했다. 근데 문제는 내가 한국에서 받은 성적이 좀 안 좋아서 입학을 못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단 입학상담을 받아 보기로 했다. 입학 당담하는 뉴질랜드 선생이 하는 말이 일단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근데 갑자기 두려움이 찾아왔다. 그 선생이 하는 말이 들리지가 않는다. 너무 힙합노래만 듣다 보니 악센트가 검은 영어 쪽으로 단련이 되어있다. 그 여자가 헬로우 라고 발음을 한다면 내가 하는 발음은 엘로 이다. 영어는 둘째치고 일단 테스트를 받으러 들어갔다. 첫 번째는 수학이었다. 이 학교 레벨이 우리나라로 치면 한 6 학년 정도 수준의 문제 였다. 일단 수학은 통과. 그 다음 관문이 스피킹이었다. 발음은 아주 힙합적 발음이었지만 그래도 영어 실력을 보고는 통과를 했다. 그 45


다음은 인터뷰였다. 그냥 횡설수설하다 보니 어느새 끝났다. 다행히 입학 조건에 맞춰져서 입학에 성공했다.

Chapter 3. 새로운 친구 첫 수업날이다. 선생도 내가 영어실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을 아는건지, 일부러 말을 천천히 하는 듯하다. 첫날 첫수업부터 과학이다. 하지만 나는 그다지 상관을 하지 않는다, 라오스까지 공부를 하러 온것이 아니기 때문에. 옆에 앉은 동남아 아이가 나에게 말을 건다. “에이 왓쬬네임 (Ey, what’s your name).”. 역시 동남아놈, 나보다 발음이 썩었다. 근데 막상 이름을 얘기하려니 영어이름을 만들어야 할지 한국이름을 쓸지 고민이 된다. 그래서 그냥 즉석에서 David 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David Sin, 아임 코리안 보이. 설틴 이열스 올드”. 이만하면 내 영어실력이 니들보다 좋다는 것을 깨달았겠지 동남아 보이, 아니 잠깐만, 그 동남아 보이 옆으로 2 명이 더 있었다. 딱 보아하니 그 둘도 내 옆에 보이와 같은 나라 출신인 듯했다. 내 소개를 옆에 아이에게 하고있는데 선생이 4 명씩 조를 만들어서 시험을 하라고 했다. 내 옆에 보이가 자기 옆에 앉은 두 명까지 끼고 4 명 조를 같이 만들자고 했다. 나는 일단 아는 아이들이 없으니 같이하는게 나쁜 생각은 아닌 듯했다. 자연스럽게 그 옆에 투 보이들과도 친구가 되었다. 그들의 이름은 알렉, 옴, 보 였다. 가만 보니 이 3 명 참 좋은 보이들인 것같다. 그렇게 한 달,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영어 수업도 적응이 되었다. 가장 기쁜 일은 그 세 보이들과는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다. 취향도 비슷하고 (힙합 노래등..) 그냥 잘 통하는게 많았다. 내가 이 학교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은 이 학교는 무슨 방학이나 휴일이 한 달에 3 번 이상은 있다는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돈이 아깝다고 생각해본 날이었는 듯하다. 내가 이 소리를 하는 이유는 내일부터 5 일 + 주말, 고로 일주일간 학교에 휴일이 있어서이다. 일주일 동안 집에만 쳐박혀 있을 바엔 차라리 라오스를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해서 내 베스트 프렌드들과 유명한 여행지인 방비엥을 가보기로 했다.

Chapter 4. 신세계 역시 여행은 친구들끼리 가야 또 추억이 있는 법, 내 기사와 친구들 부모님은 내버려 두고 가기로 했다. 교통수단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보네 집이 46


좀 잘사는 편이라 자기 개인 자가용이 있었다. 차에 내비도 달려있어서 길잃을 걱정은 없었다. 3 시간에 걸쳐 방비엥에 도착했다. 일단 호텔부터 체크인 하기로 했다. 짐을 후딱 풀어 놓고 일단 밥부터 먹으러 갔다. 메뉴를 보는데 뭔가 이상한 메뉴가 있었다. 메뉴 뒤 판에 조그만한 글씨로 “Ask staff for happy menu.” 라고 적혀있었다. 어리둥절 하고있는데 옴이 해피메뉴를 달라고 했다. 나는 뭐 그냥 좀 비싼 음식이다 하고 넘겼다. 사건은 식사를 마치고 난 후에 일어났다. 나는 배가 덜 고파서 무난하게 볶음밥을 먹었고 나를 제외한 3 명은 다 해피메뉴 음식을 시켜먹었다. 내 예상과 맞게 그 메뉴들은 다 비싼 음식들로 되어있었다. 내가 음식들을 잘 봤는데 일반 메뉴에 파는 음식들과 다른게 없어보였다. 식사를 마친 후 아이들에게 그 메뉴는 왜 그렇게 비싸냐고 물어보았다. 그 아이들이 말하기를 “This food includes ‘weed’.” 라고 하였다. 나는 도저히 weed 가 무엇인지를 몰랐다. 내가 weed 가 뭔지 물어보자 알렉이 마리화나라고 대답해 주었다. 마리화나는 한국에서도 많이 들어본 단어다. 흔히 알려져 있는 대마초가 그 음식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말로 표현은 하지 못했지만 그 3 명들을 미친놈들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더 안좋은 것은 저녁때 나타났다. 방비엥 지리를 잘 몰라 떠돌고 있는 중 이상한 골목 같은 곳으로 들어가버렸다. 그 골목에는 딱 봐도 나쁜 짓만 골라서 할 것같은 사람들만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보가 라오스말로 그 사람 중 한 명에게 뭐라뭐라 말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은밀하게 무언가를 주고 받았다. 그 거래를 하고 난뒤 다 같이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보에게 뭘 했냐고 물어보자 주머니에서 비닐에 담긴 하얀 가루 같은 것을 꺼냈다. 나는 그게 뭔지 알 수 있었다. 그건 딱 봐도 마약종류 중 하나였다. 나는 그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근데 그들이 약을 하고 난 후, 나는 왠지 그들이 기뻐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마약은 나쁜 거라고 생각을 하고 나는 약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마음 속 한군데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났다. 그러다 갑자기 옴이 나에게 한번 해보고 다음부터는 하지 말라고 말하였다. 나는 그럴까 한번 생각해보고 두 번 생각해보고 결정을 내렸다. 오늘 한번만 해보고 다음부터 하지 말아야지 라고. 그래서 옴에게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고 시키는대로 하였다. 약을 하고난 뒤 10 분 쯤 지나자, 약빨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막 기분이 좋아지고 엔돌핀이 넘쳐나는 느낌이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최홍만도 쉽게 이길 수 있을 듯한 그런 엄청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방비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4 박 5 일 여행을 술, 담배, 그리고 마약과 함께 보내버렸다. 일반 생활 속에서 어른들, 아니 어른들 조차 못하는 행동들을 나는 방비엥에서 다 경험해 버린 것이다. 마지막 돌아가는 날에 나는 큰 결심을 했다. 방비엥에서 살 수 있는 모든 마약을 사서 비엔티엔으로 들고 가겠다고.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나는 비상금으로 들고온 500 달러를 모두 마약에 써버렸다. 그리고 나는 라오스가 아주 좋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본 날이었다. 그리고는 비엔티엔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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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 비극 마약을 아주 많이 산 기념으로 많은 아이들과 파티를 하기로 했다. 물론 약을 사고 싶다는 애들이 있으면 돈 좀 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만 보니 이런 방법으로 돈을 벌어 먹고 살아도 될 것 같다. 파티 당일날, 엄청난 아이들이 왔다. 딱 봐도 갱스터 대장급 되는 애들만 골라서 우리 파티에 온 것이다. 알고보니 그 대장 보이들은 보의 친구였다. 아주 친한 친구라 그런지, 그들은 마약을 서로 공유하고 교환하였다. 보는 난생 처음 보는 약 종류를 보면서 이거 한번 해봐도 되냐고 물어봤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그 파란 액체를 보고는 아주 많이 본 듯한 물건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도 호기심에 한번 해보려고 했지만, 그 덩치 보이는 자기 친구가 아닌 사람은 못 믿는다면서 못 하게 하였다. 보는 그 액체를 주사기로 몸에 집어 넣고는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20 분 쯤 지났을까, 보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봤을 때는 그 액체가 환상을 만드는 그런 종류의 약인 듯했다. 그렇게 파티는 계속되었다. 다음 날, 술에서 깰려고 해장국을 한 그릇 하러 한국 식당에 갔다. 해장을 하고나니 머리가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고는 어제 본 그 액체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그 액체를 어디서 본 듯한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해 봤는데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그러다 문득 사진을 한 장 보았다. 그건 옛날 아버지 친구의 병원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보고는 갑자기 생각이 났다. 옛날에 아버지 친구에게 궁금한게 있어서 질문을 한 개 하였다. “아저씨요, 저 파란 물은 뭐에요?”, 그러자 그 아저씨는 나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저거는 수술 마취제 중 가장 독한 건데 잘 못 쓰면 훅 가버릴 수도 있다.”. ‘ X 됐다.’. 나는 보의 집으로 엄청난 속도로 뛰어갔다. 문을 두들기고는 문을 열으라고 고래 고래 고함을 질렀다. 보의 부모님이 문을 열고 누구니 라고 물었다. 나는 보의 친구인데 급한 일이 있어서 보의 방에 들어가봐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보의 부모님은 들어오라고 말하고 나는 서둘러 2 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보의 방에 문을 열고는 보가 있는지 확인하였다. 다행이 그는 자기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그가 숨을 쉬는 소리가 들리질 않았다. 나는 보를 깨워보는데 반응이 없었다. 보를 흔드는데 보의 팔이 침대 밑으로 힘없이 내려갔다. ‘아 XX, 아,, 이 새끼 뒤졌어.’ 그렇다. 보는 약물 과다복용으로 죽어버렸다. 서둘러 옴과 알렉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그 둘은 문제가 없었고, 나는 그 둘에게 서둘러 보네 집으로 오라고 하였다, 보가 죽었다고. 보네 부모님께도 알려드렸다. 보네 부모님들은 아주 서럽게 울었다. 엄청 서럽게 울더라. 우리는 보네 시신을 부검을 요청했다. 부검 결과, 내가 알고 있던 그 마취제가 맞았다. 의사가 보는 그 마취제에 대마초에 여러 마약과 술 까지 겹쳐서 약물 과다복용으로 심장마비가 와서 어제 새벽 쯤에 죽은 걸로 추정된다고 말해 주었다. 48


Chapter 6. 나는 간다, 한국으로! 그 사건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마약을 너무 많이 해서 죽은 사례가 있다는 것까지 내가 경험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때까지 별로 관심도 없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마약이 위험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이렇게 살다가는 나도 보 꼴이 나겠다고. 내 방 한 구석에는 아직도 엄청난 양의 약들이 있었다. 나는 집 마당과 연결되있는 하수구쪽으로 약들을 들고 걸어갔다. 나는 봉투를 다 풀고는 하수구에 다 부어버렸다. 나는 약을 시작한지 일주일이 되어서야 그만 하자고 마음을 잡은 것이다. 가만히 돌이켜 보며는, 이 일주일동안 나는 마약을 하지 않은 시간이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별로 없었는 것 같다. 방으로 돌아가서는 컴퓨터를 켰다. 인터넷을 켜고 나는 ‘라오스 마약’ 이라고 검색창에 쳐 보았다. 젤 위에 있는 기사를 눌러보니 라오스, 캄보디아 그리고 태국은 세계 마약 3 대 위험 국가로 지정 되어있다고 적혀있었다. 그 기사를 보자 마자 나는 최종 결정을 내렸다. 도저히 이런 정신상태로는 음악에도 집중을 못할 것은 물론, 일반적인 생활도 불가능 할거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는 제일 빠른 시간 안에 있는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이제 한 1 시간쯤 남아있는 것 같다. 기사와 매반들에게는 다 돌아가라고 했고, 라오스에 들어온 초반에 나를 도와준 가이드에게 전화를 해서 나는 지금 라오스를 뜰터니 학교, 집, 차 들은 다 자기가 팔든지 쓰든지 알아서 하라고 전화를 하고 기사에게 공항까지 데려달라고 했다. 비행기 시간 탑승시간이 딱 10 분 남았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이어폰을 꼈다. 노래소리가 비행기 소리를 덮는다. (Boom Boom YO, A-yo whsupaw ffkvdivdbivfisoijoqoienqejF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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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여담으로 하는 말인데, 대욱이는 한국으로 돌아온지 1 년이 지나도록 마약에 손을 대질 않았다.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한국에 돌아온뒤로 정신과에서 보의 죽음때문에 받은 충격을 치료로 완화시키고 약물 중독 상담도 다 끝내서 이제 제자리로 돌아온 듯하다.

작가 후기

이런 숙제를 끝낼 줄은 나도 몰랐습니다. 신이 있다면, 신에게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이런 필력을 주셔서요. 처음에는 이 숙제를 언제쯤 끝내려나 하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써보니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스토리는 실화 (fact)+픽션 (fiction) 을 섞은 팩션 (Faction) 으로 사실인 부분도 몇 부분 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라오스라는 나라에 있는, 특히 방비엥이라는 라오스 북쪽 지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주 큰 문제를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그런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이 작품에 나오는 대욱이처럼 알아 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마약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모두들 화이팅.

2013. 10. 31. 김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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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한국어수업 G10 수필 쓰기

라오스 후기

G10 김정훈 (James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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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내가 라오스에 있는 동안에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쓰는 후기글 이다. 라 오스에 2년 동안 살아보면서 좋았던 점, 안 좋았던 점, 다 내가 비평해 볼테다. 일단 첫 번째로 나는 라오스에 아빠가 라오스로 발령이 되어서 옮기게 되었다. 처음에는 라오스 로 옮기기 싫었지만, 나중에는 결국 옮기게 되었다. 일단은 라오스로 옮기고 천천히 적응 해 가자고 했지만 처음 경험해보는 국제학교 생활, 그 중 여러 나라 아이들 사이에서 적 응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영어로 생활하는 것부터 난관이었지만 그나마 한국 에서 해온 사교육이 효과가 있기는 있었다. 그래도 영어 실력이 아직은 좀 안 되니깐 반 에 있는 한국애들에게 한 한달 정도는 빌붙어 살았다. 그러다 한두 달쯤 되니까 적응이 되고 또 몇 달 후 한 학기가 끝났다. 아 나는 8학년 2학기에 입학했다. 그래서 한 학기 만 하고는 9학년으로 올라갔다. 8학년에서 9학년 사이에 있던 겨울방학에는 자막 없이 영화만 봤더니만 영어 실력이 늘게 되었다.

결국에는 9학년때 애들이 이제 나의 영어

실력을 인정했다, 내가 들어봐도 영어를 잘하게 되었다. 외국애들과 진짜로 친해지면서 새로운 문화가 시작되었다. 학교이야기는 이쯤 하고 라오스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 야기 해보자. 일단 라오스에는 게이랑 여장남자가 아주 많다. 아마 라오스가 태국에 영향을 받 아서 그럴 것이다. 라오스에 시내를 나가면 한 7시쯤 해가지면 게이들이 나타나기 시작 한다. 목소리는 남자고 몸 체형도 남자인데 여자로 변신 되어있다, 몸도 다 수술 하고. 라오스에는 이런 성전환 문화를 아주 당연한 듯이 받아들인다. 그 다음으로는 돈은 부르 는 게 값이다. 시장이나 택시(툭툭) 가격은 주인이 부르는 게 값이다. 대충 만킵, 우리돈 으로 1000 원정도 하면 학교에서 시내까지 간다고 치면, 외국인에게는 한 5배는 받는다. 라오스 사람들이 외국인이 라오스 환율을 모른다는 점을 이용하고는 사기를 잘 친다. 이 런 점을 보면 라오스 사람들의 잔머리는 아주 뛰어나다. 이거는 내가 새롭게 경험한 것 이고 전체적으로 라오스는 한국보다는 조용하다. 하지만 외국인이라든가 술만 마시는 그 런 안 좋은 곳들에는 아주 시끄럽다.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라오스가 조용하다. 그래서 조 용한 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살기 좋은 곳이다. 라오스에 와서 나는 이 프리한 환경 속에서 살게 되었는데, 일단 공부를 한국만 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았다. 한국과는 달리 학원 같은 것들은 안 가도 되니까 남는 시간 동안 나는 기타를 시작해보기로 했다. 기타를 배우는 것은 나에게 아주 쉬었 52


다, 왜냐하면 아빠가 아주 뛰어난 기타리스트이고 엄마도 피아니스트라 집안에 음악적인 감각은 아주 뛰어났다. 한 3주 정도만에 기타를 마스터 하고 1달 후에는 학교 락밴드에 메인 기타리스트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 봐야 코드 쫌 친다는 기타리스트가 뭘 잘 치 겠냐 하던데, 아마 지금 이 글을 쓰는 날이 기타를 배운지 1년쯤 되었을 것이다. 기타에 코드 스케일들을 마스터 했다. 코드 스케일을 알면 이제 솔로 연주를 할 수 있고, 작곡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마 한 학기 전에 쯤이었나, 학교에서 열리는 장기자랑 대회인 VIS IDOL에 나가서 우승하였다. VIS Idol은 우리 학교에서 해마다 열리는 장기자랑 대회인데 일단 실력이 되어서 오디션을 통과해야 무대 위에 올라갈 티켓이 생긴다. 나는 우리반에 있는 대만계 미국 남자애 한 명과 호주 여자애 한 명이 나에게 갑자기 우리를 위해 기타 를 쳐볼래 라고 해서 한번 해보았다. 그러다 어쩌다 보니 우승을 해버렸다. 우승을 하고 트로피는 여자애한테 그냥 주었다. 이 때 나는 기타를 잘 배워놨다라고 생각을 했다. 그 나마 좀 프리한 라오스에 있는 국제학교를 다니면서 시간이 남아 도니까 아마 이랬지, 한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기타를 배웠으면 이런 일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라오스에 있는 국제학교를 다니면서 또 얻은 것은 친구들이다. 나중에 커서 직장 을 얻으면 외교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마. 그러니까 지금 친해져서 나중 에 한국 가서도 연락을 계속하면서 어른이 되어서도 친하게 지낼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 다. 이제 라오스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이제 진짜 공부를 해야 한 다. 왜냐하면, 나는 한국에서 공부를 좀 오래 쉬었기 때문에 한국에 학교에서 배우는 과 목들을 안 배웠으니까 수능을 못 치기 때문이다. 수능을 안 치려면 글로벌 전형밖에 없 는데 영어 공부, 문법이나 단어 등을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가고 싶은 대학에서 주는 시험을 영어로 쳐야 된다. 그니까 일단 기타 같은 취미는 접어두고 공부를 하는 수 밖에 없다. 이러다가 나중에 외국에 가서 살아도 쉽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결론은 라오스에서 잘 살다가 돌아간다.

2013. 12. 12 목 G 10 김정훈 53


VIS 한국어수업 G11 창의적인 글쓰기 - 수필

내 인생의 강아지

G11

곽승엽, Terry

강아지는 세상에서 가장 흔한 동물이다. 길에 걷다보면 볼 수 있고, 친구네 집에 가봐도 볼 수 있다. 아무리 흔한 동물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강아지한테 특별한 애정과 사랑을 쏟아 붓는다. 강아지는 보통 10년 동안 사는데 그 10년 동안 인간들이랑 같이 산 다. 보통 10년이면 그 주인과 함께 주인의 인생의 1분의 10을 같이 산다. 당연히 특별한 우정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나에게도 강아지는 굉장히 특별한 존재이다. 아무리 흔한 강아지라고 해도 나는 내 강아지를 미치도록 좋아한다. 아무리 나를 귀찮게 해도, 아무리 문제를 일으켜도 나는 강아지를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아무리 나이가 많은 개라고 해도 나한테는 강아지다. 나 는 강아지를 처음으로 키워본 게 내가 라오스에 왔을 때다. 총 3마리를 키우게 됐는데 처음에는 엄청나게 울고, 시끄럽게 하고 심지어 잠을 못 잘 정도로 울었다. 며칠 동안 진 정을 시킬 정도로 강아지들이 겁을 먹었다. 진정시킨 후 걷는 모습을 보니깐 너무나 귀 54


여웠다. 너무나 어려서 중심을 못 잡고 뒤뚱뒤뚱 걷는 모습으로 인해 내가 강아지들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2마리는 퍼그였고 나머지 한 마리는 덩치가 큰 골든리트리버였다.

2년 동안 키워본 결과 생각보다 문제를 안 일으키고 의젓했다. 이빨이 간지러운 1년 차에는 슬리퍼를 물어뜯었지만 2년 차에는 같이 싸우는 일 말고는 힘들게 한 행동 들이 없다. 어린 이유로 굉장히 힘이 넘쳐나는 강아지들이었지만 사고를 안 치고 의젓한 강아지들이었다. 퍼그 한 마리는 굉장히 순진한 강아지였고 다른 한 마리는 순진한 강아 지와 같은 배에서 태어났지만 같이 엄청 싸우는 강아지였다. 나머지 골든리트리버 한 마 리는 엄청나게 순진하지만 싸울 때는 엄청나게 쎈 강아지였다. 큰 덩치를 이용해서 조그 만한 퍼그를 때리는 힘은 엄청났다.

하지만 3년차에는 문제가 생겼다. 저녁에 밥을 먹다가 3마리가 전부 다 싸웠다. 순진한 퍼그는 먼저 빠지고 기 쎈 퍼그와 골든리트리버랑 같이 싸웠다. 싸운 다음에 상 태를 확인해 보니까 문제가 없어 그냥 재웠다. 하지만 다음 날에 일어나 보니깐 기 쎈 퍼그가 집 구석에 영원히 자고 있었다. 한 10분 동안 엉엉 울다가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엄마는 골든리트리버가 퍼그의 급소를 눌러서 퍼그가 어제 밥을 전부 다 토하고 죽었다라고 얘기 했다. 듣고 보니 가장 신빙성이 있어서 여태까지 그렇게 믿고 있다. 그 때는 나도 6학년때 였으니깐 죽음을 많이 접하지 않았다. 내가 가장 소중히 하던 강아지 가 갑자기 죽었으니 나는 며칠 동안 “이게 혹시 꿈인가?” 라고 생각했다.며칠 동안 이러 다가 현실을 깨닫고 나한테 죄를 덮었다. 내가 아무리 강아지들을 좋아해도 미운 짓을 하면은 혼내는 주인이라서 이 죽은 퍼그에게 굉장히 미안했다. 이 퍼그는 다른 퍼그를 맨날 괴롭히는 이유로 순한 퍼그를 더 만져주고 이뻐해 줬지만, 지금 깨달아 보면은 죽 은 퍼그에게 굉장히 미안하다.

시간이 갈수록 퍼그의 죽음은 잊혀져 갔다. 현실을 깨닫고 6년차를 두 마리의 강 아지랑 살다 보니 두 마리 강아지도 시간을 못 피해갔다. 골든리트리버는 무게 때문인지 55


일어나길 벅차했고, 가끔씩은 다리를 절뚝절뚝거린다. 한때는 너무 아파서 밥이랑 물이랑 타이레놀이랑 섞어서 약을 줬다. 생각보다 효과가 있어서 아직도 그렇게 예방을 한다. 나 는 주인으로서 죽음을 곧 맞이할 강아지들에게 더욱 더 잘해주고 최대한 오래 살라고 최 선을 다한다. 항상 늙은 강아지들을 볼 때마다, '왜 10년 밖에 못살까? 평생 같이 살면 참 좋을 텐데.' 라고 생각한다. 나는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혹시 죽었을까?” 걱정하면서 아침에 항상 강아지의 건강 상태를 살핀다. 내가 학교를 가야 하기 때문에 아파도 어쩔 수 없지만, 내가 내 눈으로 직접 봐야지 편해진다. 이렇게 늙어가는 강아지는 나의 가장 큰 고민에 속한다. 그런데 이미 몇 년 전에 당황스럽게 죽음을 봐야 했기 때문에 내 스 스로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알아서 옛날보다는 덜 슬플 것 같다.

약 8년이 지난 후 엄마는 늙은 강아지들이 힘이 없으니깐 활기를 넣으려고 새끼 강아지를 데리고 오셨다. 처음에 데리고 왔을 때는 주먹만큼 작아서 굉장히 귀여웠다. 처 음에는 퍼그 집에 넣어놓고 다른 강아지들을 전부 다 내놓았더니 사납게 짖어서 다음 날 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고민 했다. 하지만 막상 같이 놀라고 하니깐 함께 잘 놀았다. 이 새끼 강아지는 아직 중심을 못 잡아서 걸어 다니거나 뛰면 항상 넘어진다. 이게 너무 귀여워서 항상 놀아주고 일부러 뛰고 해줬는데 막상 크니깐 문제가 많았다.

최근에는 힘이 없는 강아지들이랑 노니깐 힘이 안 들었는데 새끼 강아지랑 놀면 힘이 엄청나게 필요하다. 그 강아지는 힘이 넘쳐나서 항상 뛰고 점프하고 뒹군다. 같이 놀아주려고 하니깐 내가 힘이 딸려서 귀찮아진다. 그런데 귀찮아도 귀여우니깐 결국엔 놀아준다. 하지만 애기였을 때는 엄청나게 좋아해주던 엄마는 크니깐 문제를 일으킨다고 싫어한다. 어렸을 때는 이빨이 간지러우니깐 신발을 물어 뜯어도 이해가 가지만 이미 1 년에서 2년이 되었는데도 신발을 가져가서

문다. 생각보다 사고를 오랫동안 치니깐 엄

마는 귀찮아져서 맨날 혼낸다. 나도 이 심정을 이해하는 이유는 나도 이 강아지가 너무 귀찮게 굴어서 처음으로 엄청나게 때린 적도 있다. 이로 인해 이 강아지는 항상 눈치를 보는 표정으로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옛날에 후회를 엄청나게 했기 때문에 최대한 좋게 놀아주고 문제를 일으켜도 최대한 좋게 끝낸다. 56


내 인생에서 강아지는 엄청나게 큰 존재다. 내가 슬프거나 우울할 때 항상 웃는 골든리트리버를 볼 때는 훨씬 나아지고 애교를 떠는 작은 퍼그를 볼 때도 나아진다. 강 아지는 나한테 성숙해지라고 준 선물과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내 인생만 챙길 것이 아 니라 강아지도 같이 챙기라고 강아지와 운명이 맺어진 것 같다. 내가 아무리 혼나고 집 에서 존재감이 없을 때라도 항상 날 반겨주는 건 강아지뿐이다. 아무리 귀찮고 싫어도 긍정적으로 사는 방법을 찾은 것 같기도 하다. 강아지는 나한테 마치 나와 반대인 또 다 른 나와 같다.

(끝)

VIS 한국어수업 57


G11 창의적인 글쓰기 – 수필

일요일 아침

Sunday Morning

G 11 기혜성

Sonia, Ki

다 날라간 잠에 눈을 떠 시계를 보니 오후였다. 하품을 하며 부스스한 머리를 대 충 손으로 넘기고 눈꼽을 뗀 후에 느릿하게 일어났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나오니 배 가 밥을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어기적 어기적 부엌으로 향해 냉장고 문을 여니 먹을 게 하나도 없었다. 밥통도 텅텅. 라면도 다 떨어지고 없었다.

아 슈퍼가기 귀찮은데.

거실 쇼파에 누워 휴대폰을 꺼내 밖에 나가 있을 엄마에게 SOS를 친다. 저번에 휴대폰을 떨어뜨려 오른쪽 위에 거미줄같이 허옇게 깨진 액정이 심히 거슬린다. 엄마올때맛잇는거사와 전송. 내 느려터진 휴대폰은 문자 하나 보내는데 30초를 소비한다. 아아, 새로나온 쌔끈 한 갤럭시로 바꾸고 싶구나. 시간이 흘러 몇 분이 지났지만 엄마에게서 답장은 오지 않 는다. 포기하고 방으로 기어가 컴퓨터를 켰다. 네이버에 들어가니 아이돌 모양과 모군의 열애설이 한창 뜨고 있었다. 솔로는 언제나 외롭습니다 흑흑. 그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를 도로로록 굴리며 해가 질 때까지 시간을 보냈 다. 어두워지자 엄마가 집에 들어왔다. 저녁을 차리는 엄마에게 애교도 좀 부리고 재롱도 좀 떨었다. 그리고 따끈한 밥을 먹고 배를 땅땅 두드리며 침대에 누웠다. 아, 이 58

얼마나


좋은 하루. 매일 이렇게 살면 좋으련만. 잠깐, 오늘이 일요일… 내일은 월요일?!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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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한국어수업 G11 창의적인 글쓰기 ‐ 수필

1 막 2 장 : 라오스 G 11 문정호 James Moon

일단 이 글의 제목에 대해 얘기하는 걸로 시작하자. 나의 삶은 4 막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 같다. 1 막은 성장기, 학생이라는 신분이 약육강식의 사회로부터 지켜주는 기간이며 2 막은 학생이란 신분을 벗고 자유롭게, 왕성하게 나의 꿈을 쫓으며 살지만 많은 책임과 결과를 감수하는 시기다. 3 막은 가정을 이루며 나의 가족을 부양하는 봉사적인 시기이며 4 막은 노년기, 가족부양이 끝나고 다시 자유로워 지지만 활동하기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각각의 막은 몇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라오스로 가는 것이 1 막에선 반환점 역할을 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서 라오스에 간 시기와 그전으로 1 장, 2 장이 나뉜다. 라오스에 가게 된 계기는 아빠가 라오스라는 나라로 직장파견을 맡으면서 생겼다. 부모님은 매우 걱정하는 듯 보였지만 나는 뛸 듯 기뻤다 왜냐하면 처음으로 한국을 벗어나는 것이었고 특히 그 나라에 거주하러 간다는 점에서 이제 이 지긋지긋한 한국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어 너무 행복하였다. 나는 계속 이어지는 시험, 답답한 학교 분위기, 몇몇 질 나쁜 다른 애들과 이로 인해 점점 떨어지는 시험성적에 신물이 나 있었다. 그런데 이 때 이 모든 것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는 점에서 매우 기뻤고 떠날 날만 기다렸다. 60


라오스가 새롭고 내가 경험하지 못하였고 특히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는 점으로서 이 나라의 모든 것이 신기하였다. 비행기가 구식이며 덜덜 떠는 소음을 내도 재미있었고, 많은 오토바이와 뚝뚝이, 거리와 건물 등등 새롭고 신기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비행기 창문에서 내려다본 이 나라의 풍경은 전부 정글과 군데군데 있던 집들이었다. 이걸 보며 “나도 저런 숲과 집에서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처음 라오스에서 받은 인상은 “영화에서만 보던 게 현실로 나타났다” 였다. 이 기분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가 없는데, 이곳이 수도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나무 특히 야자수가 많았고 고층 건물은 찾아 볼 수 없었다. 툭툭이가 거리를 활보하고 까무잡잡한 사람들이 생전 들어보지 못한 언어를 쓰며 가끔 나한테도 말을 걸어왔으며 우기의 강력한 폭우가 인상적이었다. 또한 내가 다닐 학교 VIS 를 가보았는데 규모, 시설 에선 웬만한 한국 사립학교를 간단히 제쳐버릴 정도로 좋았다. 비교적 낙후되었을지라도 나는 이 날 참신하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으며

비엔티안은 3년

6 개월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라오스와 새로운 학교가 매우 좋았었지만 이에 적응하기는 꽤 힘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특히 언어적인 부문에선 몹시 어려움을 겪었다. 생각해보자, 중 2 까지 15 년 동안 한국토박이에, 외국인은 영화에서나 보았으며, 영어라곤 한국식 영어교육 문법, 지문해석을 제외한 건 눈곱만큼도 몰랐고 거의 외국인과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처음 학교간 날 외국인을 보았을 때 “나한테 말을 걸면 벙어리인 척할까 아님 도망가 버릴까?” 하는 고민도 한 적이 있다. 당연히 학교 첫 날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상한 녀석”으로 낙인 찍혔으며 영어로 간단한 몇 마디를 나누기까진 6 개월이 걸렸고 수업을 이해하기 까진 1 년이 걸렸다. 이 기간 동안엔 학교 가기가 싫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어느 날 갑자기 수업내용을 이해하고 있는 걸 깨닫는 순간의 환희와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적응의 어려움이 있었을 지라도 VIS 에서 얻은 것은 굉장히 많다. 일단 많은 가지각색의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며 많은 나라를 다녀보고 그들만의 문화를 배우고 한국이라는 우물을 벗어나 나의 사고와 가치관은 깊어졌고 사물이나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제야 깨달았으며 색안경을 벗고 통찰력(?)도 얻었다. 나는 세상의 이치와 국제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가 궁금해져 끊임 없이 뉴스나 정치사설 같은 걸 들춰 보았다. 더 나아가 이같은 변화는 나의 장래희망도 의사에서 외교관 혹은 유엔 관련 종사자로 바뀌었다. 이 덕분에 원래 61


공격적이고 다혈질적인 성격이 이성적 그리고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이 학교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게 MRISA 라고 다른 국제학교에 가서 많은 활동을 하는 것이었는데, 나는 수영으로 베트남에 가 메달을 수상 받았고 MUN 이란 베트남에서 열린 국제토론회에도 참가하였다. VIS 에서 있었던 몇 년 동안 많은 경험을 쌓고 인성을 기르며 사물을 바르게 보는 시각을 길렀다. 얻은 것이 있다면 잃은 것도 있다. 한국에서 가졌던 공부에 대한 급박한 노력과 의지가 거의 없어졌고 환경이 편해질수록 내 자신이 느슨해졌으며 이는 집중력 결핍으로 이어졌다. 한국 학교에서 가르치던 과학, 국어, 역사 같은 기본지식들이 남들에 비해 얕아졌고 특히 수학에서 두드러졌다. 이곳에서의 생활을 거의 마치며 아쉬운 점이 많은데 그 중 하나는 영어를 모국어처럼 완벽하게 구사할 정도까지 하지 못한다는 점이며 학교 내신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재외국민 특례를 받게 되었다.

이 말은 영어와 국어로만

시험을 쳐 대학에 가, 한국을 떠나면서 얻은 불이익이 다 커버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지금 한국에 가서 보낼 시기는 분명 라오스보단 훨씬 힘들 것이다. 공부량은 몇 배로 늘어날 것이고, 치열한 경쟁 속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할 것이고 또 몇 년 동안 더운 날씨에만 있어서 한국 겨울에 적응하려면 꽤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어려움에도 내 생각엔 충분히 잘 이겨내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라오스에서의 짧진 않지만 길지도 않은 3 년 6 개월의 기간은 나의 전체 인생 4 막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라오스에서의 삶은 한국사회에 지쳐있던 나를 꺼내서 휴식을 취하게 해주었고, 많은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장소를 돌아다니면서 사고의 깊이가 매우 깊어졌다. 한국이라는 우물을 벗어나 밖에서 봄으로써 통찰적이고 철학적인 사고가 가능해졌으며 끈임 없이 궁금해 하고 탐구해보는 정신을 일깨워줬다. 라오스 덕분에 불투명했던 미래가 희망차졌으며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이곳의 생활 기간 동안 몸도 성장했지만 정신적 성장이 훨씬 컸으며 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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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한국어수업 G11 창의적인 글쓰기 – 시

너의 이름

G11 백지민 Rupina

쫀득하고 달콤한 속살에 바삭한 겉살. 노릇노릇하게 구워져서 고소한 냄새를 풍긴다. 꼬리먼저냐, 머리먼저냐, 그것이 문제로다. 겨울에 빼놓을 수 없는 너의 이름은 붕어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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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한국어수업 G11 창의적인 글쓰기 – 시

나와 내 동생

G11 백지민 Rupina

나와 내 동생은 같이 일어나고, 밥을 먹고, 얘기를 하고, 학교를 가고, 숙제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다른 애들의 흉을 본다.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싸우고, 소리지르고, 짜증을 내고, 못되게 굴고, 서로 흘겨보고, 쓸데없는 경쟁을 한다. 나는 가끔씩 동생이 아니라 언니나 오빠가 있었으면 한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 친한 친구이고, 서로를 잘 이해하는 사이좋은 남매이다. 나와 내 동생은, 언제나 이렇게 항상 함께 서로의 든든한 지킴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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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한국어수업 G12 시 쓰기

끝이 아니다

G12 권준하 Brian

절망 했었다 갈망 했다 소망 한다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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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한국어수업 G12 시 쓰기

만 물

G12 권준하 Brian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 천천히 가도, 뒤를 보지 말라 그리고 힘들 때에는 별을 보라 이 세상은 넓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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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한국어수업 G12 시 쓰기

바 람

G12 권준하 Brian

바람이 저 멀리서 불어온다.

멈춤 없이 나의 바람처럼 불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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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한국어수업 G12 시 쓰기

소 리

G12 기혜미

Amy

연필이 사각사각거리는 소리부터 팔랑팔랑, 하고 넘어가는 종잇장 소리까지.

보이지는 않지만, 모두 아주 잘 들리는 걸요.

그래서 나는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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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한국어수업 G12 시 쓰기

공 기

G12 기혜미 Amy

생소한 너 불편한 너 차가운 너 새삼 네가 익숙하지 않게 느껴질 때마다 또 나를 무심한 눈빛으로 쓸어 내릴 때마다 내 자신이 그리고 내 미래가 불투명해 보여 그때마다 깨닫는 한 조각의 투명한 진실 나 아직은 숨 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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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한국어수업 G12 시 쓰기

시 간

G12 기혜미 Amy

너는 참 희한하게도 가끔 뜬금없이 달리기를 해 그러다가 또 이따금씩 느림보가 되지 제발 둘 중에 하나만 하지 나 적응 좀 할 수 있도록

너 왜 자꾸 내가 후회하게 만들어 너 왜 자꾸 내가 포기하고 싶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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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한국어수업 G12 시 쓰기

G12 남용환 Kevin

은은한 오렌지 빛이 나는 방에서 잠을 청한다 어둠에서 어슬렁거리는 것을 피해 이불을 덮고 눈을 감는다

오늘을 되새긴다 내일을 고민한다 어제를 후회한다

조용한 선풍기는 생각의 정적을 깬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고뇌하며 밤새 뒤척인다

끝내는 그저 생각인들 사실은 그렇게 말 못하는들 왜 나는 밤새 뒤척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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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한국어수업 G12 시 쓰기

사 랑

G12 남용환 Kevin

사랑, 사랑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애인을 포옹하고 키스해주는 것인가? 핸드폰에 느끼한 이름을 지어주는 것인가? 매일 전화해서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것인가?

사랑, 사랑이란 무엇인가? 100일, 1년등, 기념일을 축하하는 것인가? 생일때 중딩만한 인형을 사주는 것인가? 보기 싫은 영화를 억지로 보는 것인가?

아니다, 사랑은 그게 아니다 사랑은 가까워도, 멀어도, 죽어도, 살아도, 언제나 나를 반겨주는 것이다 72


사랑은 말을 안 해도, 행동으로 안 보여도, 나를 생각해주는 것이다

사랑은 돈이 없어도, 기념일을 까먹어도, 나를 받아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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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한국어수업 G12 시 쓰기

달 빛

G12 남용환 Kevin

삐걱삐걱 자전거가 움직이며 난 하늘을 바라봅니다 마침 그녀의 생각이 떠올라, 왠지 이 밤이 더 외로워집니다 달빛은 그렇게 환하게 빛나면서도 왜 그녀는 보이지 않을까요? 달빛은 밤 속에 파묻혀 있어도 왜 그녀 얼굴은 생생하게 떠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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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한국어수업 G12 시 쓰기

황 혼

G12 남용환 Kevin

아직 온기가 남은 황혼에 서쪽 저 멀리에는 아직 빛이 보입니다

저 빛은 얼마나 가야지 볼 수 있을까요? 거기는 새로운 날의 시작인가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하늘은 그 빛을 따라가지만 저는 그저 여기 남아있을 뿐입니다

아직 온기가 남은 황혼에 서쪽 저 멀리에는 아직 빛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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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한국어수업 G12 시 쓰기

엄마의 김치

G12 남용환 Kevin

딴 나라에 살아 김치가 흔하지 않아서 별의별 김치를 다 먹습니다 한국에선 맛있는 김치가 많기에 엄마의 김치는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얘 엄마, 쟤 엄마의 김치를 다 먹어보았지만 우리 엄마의 김치랑은 다릅니다 우리 다 그런 생각을 하겠죠 그렇기에 우리 엄마 김치는 세계 최고의 김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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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한국어수업 G12 시 쓰기

2013년 12월 5일

G12 남용환 Kevin

늙은 개가 죽었다 그의 가족은 울었다 청년은 바빴기에 개를 못 본지 며칠 되었다 그의 슬픔은 누구보다 더했다

늙은 남자가 죽었다 한 나라의 영웅, 한 나라의 대통령 날이 밝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날밤 늙은 개의 영혼은 자유롭게 떠났다 하늘로 가던 중 그는 늙은 남자를 보았다 남자의 영혼은 깨었다 남자는 개를 따라가며 늙은 몸을 떠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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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몸을 벗어 던지고 자유로운 영혼은 날아간다 언젠간 돌아오겠다고, 언제나 기억해달라고, 그날밤 둘은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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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한국어수업 G12 시 쓰기

찰나의 순간

G12 이주희

찰나를 간직 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행복하고 가치 있는 찰나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순간들은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기억에서 희미해진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기억에 지배당한다 만일 그 찰나를 기억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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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한국어수업 G12 시 쓰기

아삭아삭

G12 이주희

아삭아삭 오늘도 아삭아삭 짭쪼름하고 달콤한 아삭아삭 늦은 밤 배고플 때 아삭아삭 학교 쉬는 시간 출출할 때 아삭아삭 모두 아삭아삭 다 같이 아삭아삭 80


VIS 한국어수업 G12 시 쓰기

하 루

G12 이주희 이젠 입김이 나오는 쌀쌀한 새벽 당신은 따뜻한 곳에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보며 당신은 무엇을 먹고 있을지 생각해봅니다 따스한 햇살을 느끼며 당신도 이 햇살을 느끼고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어느 때보다도 높디 높은 하늘을 보며 그대도 같은 하늘 아래 있을지 생각해봅니다 빛은 사라지고 어둠이 다가올 때 그대가 혹시 무서워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러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할 때 그 빛이 내가 됐으면 이라고 빌어봅니다 눈이 스르르 감기고 숨이 고르어질때 그대가 내일을 기대하는 이유가 내가 됐으면 이라고 빌어봅니다. 또 다시 아침은 오고 나는 어제와 같이 그대를 생각해봅니다. 81


VIS 한국어수업 G12 시 쓰기

스 무 살

G12 한웅희 William 이제 곧 스무 살 일년 뒤 스무 살

혼자가 되는 스무 살 성인이 되는 스무 살

한 것도 없이 스무 살 할 것이 많은 스무 살

군대를 가야 할 스무 살 대학을 가야 할 스무 살

빨리 왔으면 하는 스무 살 오지 않으면 하는 스무 살 2013-11-07 82


벌써 VIS 한국어수업 G12 시 쓰기

삼 년

G12 한웅희 William

한국을 떠난 지 벌써 삼 년 라오스에 온지 벌써 삼 년

휘문 중학교를 떠나온 지 벌써 삼 년 VIS에 온지 벌써 삼 년

아직도 엊그제만 같은데 내일 모래면 벌써 삼 년

2013-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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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한국어수업 G12 시 쓰기

공 부

G12 한웅희 William 신입사원에게 술 한잔 훈련병에게 담배 한대 중1에게 문제집 한 장

계장에게 술 한 병 상병에게 담배 한 갑 고1에게 문제집 한 권

대리에게 술자리 한번 병장에게 담배 한 보루 고3에게 문제집이 아닌 공부

직장인에게는 술이 군인에게는 담배가 학생에게는 공부가 2013-11-07 84


VIS 한국어수업 G12 시 쓰기

한 국 어

G12 한웅희 William

나라의 국민으로서

국가의

언어를 말하고 쓰고 읽고

사용한다는 것은

어느

무엇에도 꿇리지 않는

자랑스러운 행위이다

201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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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한국어수업 G12 시 쓰기

윤 동 주

G12 한웅희 William

윤동주는

오랜 시간 동안

억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동굴과도

같은 어둠 속에

갇혀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리가

틀리는 것보다 아픈

고통들에도 불구하고

일본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201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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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한국어수업 G12 시 쓰기

사라질 것들

G12 한웅희 William

사라질 것들에 미련을 갖지 말자 꽃이 그러듯 시간이 그렇듯

우리들의 사이엔 끝이라는 게 있지 상황이 그렇듯 시간이 그렇듯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고 어떻게 될지는 이미 정해져 있는 거고

우리는 모를 뿐이야

2013-11-22 사라질 것들 by. 병살 87


VIS 한국어수업 G12 시 쓰기

친 구

G12 한웅희 William 유대라는 이름의 커다란 엔진을 돌리자

지금 바로 여기서 돌리자 그리고 함께 나아가자

서로에게 등을 맡긴다면 무서워할 것이 그 무엇 있을까

누군가의 발이 멈춰져 버린다면 다른 누군가가 어깨를 빌려주겠지

끝나지 않을 여행을 떠나자 내일도 바빠질 거야 My fellows 201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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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한국어수업 G12 시 쓰기

맹 세

G12 한웅희 William

주고 싶은 것은 미래라서

싹트기 시작한 마음이 가슴에 울린다면 네 곁에서 변함없이 계속 지켜나갈 것이다

울고 있는 밤을 끌어안은 채 탄식하며

마음을 숨긴다 지금 여기에 있는 의미를 가르쳐 주었다면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강하게 있을 수 있겠지

확실한 인연을 절대 놓치지 않게 붙잡고 어디까지라도 나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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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여놓은 발을 머나먼 이상이 살며시 달래간다

망설임 따위에는 눈을 뜨고 뿌리치고 손을 뻗자 가깝지만 머나먼 이상을 향해서

201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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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한국어수업 G12 시 쓰기

하늘과 바람

G12 한웅희 William

하늘은 어째서 이리도 푸르고 아무런 슬픔을 모르는 것처럼 언제나 망설이지 않고 내일을 향해 무너져 내리는 걸까

하늘은 높고 바람은 노래를 부른다 꿈을 꾸던 기쁨으로 우리는 언젠가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의 눈동자로 너는 믿었지 얼어 붙은 숲을 지나서 그 눈동자가 세상의 한탄에 길 헤매이지 않도록 곁에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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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높고 바람은 노래한다 네가 보았던 그 꿈의 기억이 네가 들었던 그 외침이 상냥한 메아리를 되돌려 주고 있어 곁에 있을게 하늘에 바람을 남겨두고

201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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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한국어수업 G12 시 쓰기

형 제

G12 한웅희 William 너와 나의 관계 항상 다투는 관계 서로 투덜거리는 관계

너와 나의 관계 가장 중요한 관계 절대 끊기지 않을 관계

브라더 내 동생들 가끔은 험악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서로 믿자 나도 너희들을 믿을 테니 너희들 우리 브라더들도 딱 이 형만 믿으면 돼 2013-12-13 93


VIS 한국어수업 G12 시 쓰기

비가 오면

G12 한웅희 William

하나 둘 눈물방울이 맺힌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 눈물방울들을 흘려 보내고 마는구나

그 무엇이 그렇게 슬프기에 이렇게 울고 있느냐 그 무엇이 그렇게 기쁘기에 이렇게 울고 있느냐

눈으로 보아 알 수 없는 너의 눈물과 너를 위해 마음속으로나마 너와 함께한다

201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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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한국어수업 G12 시 쓰기

사 랑

G12 한웅희 William

너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이 한 편의 소설과도 같이 너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너에 관해서는 항상 들어왔었다 그 누구와 비교할 수 없고 그 누구도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한 너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어찌하여 내게 온 것이냐 대답 없는 무의미한 질문이 메아리마냥 머리 속에 울려 퍼진다 그래서 너를 지켜본다 혹시 나의 행동들이 95


너의 심기를 거슬리지나 않을까 조용히 너의 반응을 기다린다

너는 찾아온 것만큼이나 빠르게 돌아갔다 너로 인해 고민한 나의 생각들과 시간들이 부질없이 느껴질 만큼이나 빠르게 너는 돌아갔다 결국 너와 함께한 나의 시간들은 너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였나 보다

201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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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한국어수업 G12 시 쓰기

혜미와 양말 이두목과 시인들 G12 한국어반 학생들 (기혜미, 남용환, 이주희, 권준하, 한웅희) 친구들이 놀렸다 슬펐다 이해할 수 없다 양말을 안 신은 것 가지고 왜 놀리는가 아... 꼬랑내 항상 안 신었는데 왜 오늘만 놀리는가 아... 꼬랑내 하, 구슬피 우는 귀뚜라미야 너는 냄새가 날 발이 없어 다행이구나 하, 슬퍼하는 혜미야 너는 냄새가 나는 발이 있어 불행이구나

시 “혜미와 양말”은 양말을 신지 않은 채 운동화만 신고 온 혜미를 보고 친구들이 짓궂 게 놀리다가 그 마음을 모두 함께 시로 지어보며 시 공부를 한 것입니다. 실제로 혜 미의 발냄새와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97


글모음 후기 한국어반 한 학기를 마무리하며 각자의 소감을 남겨주세요. (친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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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비엔티안 안 국제학교 교 마더텅 텅 한국어 반 oon), 남용환 환 (Kevin), 곽승엽 (Terry), 권준하 하 (Brian), 문정호 (James Mo 김정훈 (Jam mes Kim), 엄덕용 (David), 한웅희 희 (William)), pina), 기혜성 (Sonia), 이주희 (Ju 기혜미 미 (Amy), 백지민 백 (Rup uhui ), 박민애 선생님 (Minae Parrk), 엄의용 (Joy)

♡ 감사합니다 다 ♡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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