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인터뷰 현장
토론 : 김영민 김혜진 박정현 양정선 조주리
(문화예술 기획자) (한예종 미술이론 전문사)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박사과정) (독립큐레이터) (독립큐레이터)
진행 : 주혜진 기자 (경향 아티클)
주혜진 : ‘떠오르는’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그룹이다. 한국 미술계에서 제도가 닦아 놓은, 즉 이미 만들어진 길은 매우 협소하다. 그래서인지 많은 미술계의 젊음에 대한 담론은 불안과 위태로움으로 착색되는 듯하다. 그 와중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길을 만들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오래가는 것 같다. 학교에 적을 두고 있지만 자신의 관심사를 좇아 미술계와 교접을 시도하는 이들도 있고, 전혀 다른 분야에서 미술로 옮겨와 경계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를 꾀하거나, 전시공모를 통해 미술관에 자신의 이름표를 단 전시를 올 린 이까지 각각의 면면이 다양하다. 무엇보다 어떤 기관에 속하기보다는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자신의 길을 확보하기 위해 부단히 움직이고 있다는 공통점이 엿보인다.
조주리 : 주로 미술 전시뿐만 아니라, 다양한 성격의 요구에 따라 일을 하는 편이다. 크게는 11월에 부산 해 양박물관의 특별 전시 기획을 맡아 준비하고 있고, 9월에는 난지 레지던시 워크숍에 참여할 예정이다. 또 모 기업의 창립기념전도 준비 중이다. 표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다른 기획자들이 진행하는 페스티벌이나 프로젝 트를 지원하는 역할도 틈틈이 하고 있다.
양정선 : 얼마 전까지 광주에 있는 아트 스페이스 미테-우그로(Mite-Ugro)의 지원으로 태국 미술 현장 곳곳 을 둘러봤다. 한 달간 여러 도시를 참 열심히 돌아다녔다. 방콕에서는 전시 공간 위주로 돌아보고, 치앙마이에 서는 현재 쓰고 있는 논문과 연관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작업실을 직접 방문했다. 그리고 같은 내용으로 전 시도 만들 계획이라 태국 작가 2명과 작업을 진행하며, 동시에 베트남 작가와 미술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이 밖에도 토탈미술관 신보슬 큐레이터가 기획한 트래블 프로젝트 <로드쇼 : 대한민국>와 9월에 오픈할 전시의 코디네이터도 맡고 있고, 일현미술관의 트래블 그랜트 공모전에 낸 기획안이 당선돼 강원도로 품평회를 떠날 예정이다.
박정현 : 올해 3월부터 한국과학기술원 기술경영전문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바이오, 의 학, 항공우주 등 분야별 혁신 기술을 이해하고 비즈니스 소비자, 정부, 연구소, 대학 등 여러 기관의 관점에서 기술과 우리 사회의 연계성에 대해 공부하는 중이다. 주요 연구는 계량 마케팅(Quantative Marketing)을 이 용해 모델을 구축하고, 문화적 맥락 안에서 예술적이거나 철학적인 의미를 발견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 있다.
김혜진 : 지난해 부산비엔날레 <배움의 정원>에서 본전시 코디네이터로 참여한 후, 베를린 등지에 리서치 여 행을 다녀왔다.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작가 혹은 큐레이터 어시스턴트, 미술관 같은 환경에 계속 있게 되었 다. 설령 외국을 나가더라도 늘 미술과 관련된 일뿐이었다. (웃음) 그래서 이번 방학 미션 1번이 ‘미술이랑 상 관없는 일을 하자!’였다. 사실 진짜 그런 의미라기보다는, 미술과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는 영역을 엿보고 싶 다는 호기심에서였다.
김영민 : 전시기획사에서 1년간 근무했고, 그 후로 1년 동안 아프리카 난민과 탈북자들에게 창의적 글쓰기, 문학, 및 미술사를 가르쳐 왔다. 사회적 불우·소외·소수 층과, 텍스트와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문화예술 간의 역동적인 상호 생존에 관심이 많다. ‘사회적 책임감’에 가치를 둔 큐레이터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인데, 아직은 앞으로의 갈 길을 고민하고 있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상황이다. 미술사, 학문을 더 전문적으로 공부해서 큐 레이터로서의 학문적인 기반을 확실히 다지는 것이 다음 스텝이 되지 않을까 싶다.
주혜진 : 각기 걸어온 길도 다르고 관심사도 모두 개별적이다. 그럼에도 여기 5명은 ‘CiA’라는 모임으로 묶인 다. 이 명칭은 마치 미국 정보기관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웃음)
조주리 : 지난해 가을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아시아성에 기반을 둔 ‘글로컬리즘(Glocalism)’을 화두로 삼아 콘 퍼런스를 열었다. 이에 앞서 국외 큐레이터, 국내 중진-신진 큐레이터 간의 워크숍, 네트워킹 프로그램이 진행 됐는데, 이것은 초대된 한국, 일본, 싱가포르, 인도, 호주, 아랍 출신 기획자들과 국내 큐레이터들이 한데 모여 아시아 내 새로운 미술 지형도의 정보를 공유하고 관계를 맺는 자리였다. 이중 신진 큐레이터 참여자를 물색 하는 공모에 우리 다섯 명이 당선되었고, 약 두 달 간 이 프로그램을 함께하게 되면서 친분을 쌓게 됐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콘퍼런스가 있기 한 달 전부터 국외 큐레이터, 국내의 중진-신진 큐레이터를 매칭해 서로 의 큐레이터십에 관한 사전 리서치를 진행했다.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매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다양한 예술 기관을 방문했고,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만나기도 하며 아시아 내 동시대 미술에 대한 토론을 이어갔다. 이런 기회가 없었다면 서로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을 아시아 내 기획자간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던 시 간이었다.
양정선 : 지원할 때 ‘글로컬리즘’이라는 주제에 내 관심사가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어필하면서 모인 것이긴 했 지만, 막상 모이니까 확실하게 정해진 것이 없었다. 또 워크숍에서 ‘글로컬리즘’에 대해 연구도 하고 사례 분석 도 했지만 너무 방대하고 불확실한 정의를 바탕으로 이야기하는 형태로 흘러갔다. 그래서 애매한 학술적인 논 의보다는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이슈들로 서로 관심사를 공유하도록 해보자는 의견으로 좁혀졌다. 이리하여 ‘큐레이팅 인 아시아(Curating in Asia)’ 라는 주제가 나왔고, 이것이 차후 이어진 모임의 이름인 CiA로까지 지 속된 것이다.
주혜진 : 한국에서 학연이나 지연으로 얽힌 ‘집단 문화’는 주로 폐해로 지적되곤 한다. 하지만 자칫 일회성으 로 끝나버릴 수도 있었던 콘퍼런스 행사가 맺어준 인연, 공통된 관심사로 엮인 네트워크는 그것과는 조금 다 른 방식으로 비춰진다.
김영민 : 우리가 하는 활동 중에 중요한 프로젝트가 한 달에 한 번씩 온라인 형태로 발행하는 매거진 《K.NOTe》다.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큐레이터나 작가들을 국외로 소개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곳곳에 서 ‘세계 속의 한국 미술’이나 ‘미술의 한류’에 대한 담론이 일고 있지만 사실 세계인들이 공유할 수 있는 한국 작가나 한국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자료는 그리 많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영어로 텍스트를 만들었다. 처음 에는 콘퍼런스에 참여한 멤버들끼리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뉴스레터 형식의 매거진이었지만 토론을 거쳐 논 의를 확장한 끝에 현재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조주리 : 매달 한 작가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성격이다. 지금까지 옥인 콜렉티브, 구민자, 킴킴 갤러리를 차 례로 소개했다. 아직은 잘 쓰인 영문 작가론을 발굴하거나, 한글 텍스트를 영어로 번역하는 단계다. 궁극적으 로는 직접 공을 들여 쓴 작가론을 싣고자 하는 것이 목표다. 국외 큐레이터와 관계자들에게 한국의 젊은 작가 들에 대한 정보를 가공하여 전달하는 일 자체가 의미 있을뿐더러, 우리에게도 많은 공부가 된다.
양정선 : 이메일이나 텀블러, 이슈, 페이스북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와 온라인으로 공유하는 범위까지 넓혀
가고 있다. 12월에 이런 결과물들을 모아 출판물을 만드는 계획도 하고 있다. 한편으론, 우리는 한주에 한두 번씩 모일 때마다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그 안에서 “전시 및 큐레이터 연대 기를 만들어 보자”, “아직 국내 역사가 짧긴 하지만 몇 년도에 누가 활동하고 무슨 일을 했는지를 차분히 정리 한 자료가 없지 않느냐”, “우리가 아카이브할 수 있는 자료들을 모아 만들어보자”는 여러 가지 플랜이 튀어나 왔다. 요즘에도 만나면 이런 얘기를 계속한다.
조주리 : 소규모 온라인 출판물이긴 하지만, 각자 돌아가며 에디터 역할을 맡고, 그와 동시에 때때로 서로의 근황을 챙기기도 한다. 얼핏 동질적 집단처럼 보일 수 있지만, 관심사나 성격이 굉장히 달라 오히려 관심이 간 다. 어디나 그렇겠지만, 미술계는 은연중에 알 수 없는 시기심과 경계심이 있어서 남들이 하는 것에 관심이 있 어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거나 뭔가를 같이하자고 제안하는 것에는 소극적이다. 반면 우리는 서로서로 굉장히 궁금하고, 도와주고 싶고, 같이 할 수 있는 건 없을까 늘 생각하게 된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주혜진 : 무한경쟁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고, 무엇보다 아쉬운 건 사람과 사람이 친구이기보다는 경쟁 상대가 된다는 사실이다. 각개전투가 아닌 지식과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지식 공동체를 이루고 경쟁상대가 아 닌 동료가 소중한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의 활동도 기대가 된다.
김영민 : 우리 활동 전반을 아우르는 ‘Curators’ FAB Lab’이라는 명칭과 그것의 세부적 유기적인 틀은 박정현 씨의 아이디어다.
박정현 : 팹 랩(Fab Lab: Fabrication Laboratory)은 주로 경영계의 이노베이션 센터 같은 곳에서 등장하는 개념이다. 팹 랩은 미국 과학재단과 국방성의 지원을 받아 대중에게 공개되었는데, 한마디로 이것은 구비된 장비를 통해 누구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간단히 시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시스템이다. ‘Curators’ FAB Lab’ 역시 비슷한 개념으로 토탈미술관 큐레이터인 신보슬 선생님을 주축으로 글로벌 기획을 꿈꾸는 신진기획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프로젝트로 구상해 보았다. 이 프로젝트의 세부 활동인 O‘pen your project’에서는 강연형식의 워크숍에서 벗어나 국내외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기획자들과 직 접 만나는 것이며, ‘Open your file’은 전시기획에 필요한 다양한 기획서와 문서들을 공유할 수 있는 장이다. 즉 ‘Curators’ FAB Lab’은 전시 과정 및 프로젝트 진행에서 필요한 프레젠테이션, 작가 선정, 예산 계획 및 평가 등에 대한 실질적인 대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지향한다.
조주리 : 《K.NOTe》는 우리가 취합한 정보를 발신하면 누군가가 수신하는 일방향성이 있는데, 팹 랩의 구 조가 다수에게 열려 있는 멀티 플랫폼 개념이라는 점에서, 매거진의 다음 단계 활동으로 생각된다. 구체적인 방식은 아직 선명하지 않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오픈 랩이기 때문에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이 만나 교류하며 진화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아직 시작 단계이긴 하지만 많은 주체가 연대, 협력하며 모양과 내용을 갖춰나 갈 것이다. 그것이 강연이 될 수도 있고, 기획회의가 될 수도 있다.
공모전과 기금 제도
주혜진 : 어느 분야나 이 나이대는 늘 고민이 넘쳐나는 시기인 것 같다. 아직 신인이지만 가능성이 있고 또 그만큼 새로운 아이디어로 넘쳐나는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생겨난 제도가 공모전이나 지원 기금 등이 있다. 이런 제도에 기대 수혜를 받거나 실패한 경험이 있을 것 같다.
조주리 : 내 이름으로 처음으로 지원해서 당선된 게 큐레이터 펠로우쉽 프로그램인 CiA였고, 올해 아르코미 술관 기획공모전도 처음 지원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결과가 좋았다. 물론 이런 요행이 계속 있을 것 같진 않다. 사실 그전에 기관의 실무자로서 기금을 몇 차례 받아보았다. 개인의 기획이 아니라 기관에서 요구하는 사업을 위한 기금 수령이었다. 실제로 다양한 문화예술 진흥 기금이나 재단의 지원금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미션이 아닐 수 없다. 반복해서 이러한 일들에 관여하게 되면 결국에는 자연스럽게 당선의 포인트를 헤아리게 되고, 심사 주체를 사로잡을 만한 영혼 없는 텍스트를 생산해내는 스킬로 무장하게 된다. 사실 지원 기금에 대 한 반반의 마음이 있는 것 같다. 내가 받으면 좋지만 떨어지면 섭섭하고, 가끔씩은 전시 기획이나 작업 활동을 할 때 기획을 위한 지원금이 아니라 지원금 받기 위해 기획을 짜내는 역기능을 생각할 때도 있었다.
양정선 : 나는 처음 큐레이터 코스 인턴을 할 때, 인턴이나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같은 실무진행보다는 참여 자로 활동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었다. 받아들이기 나름이지만 너무 훌륭한 프로그램이었고, 광주라는 지역 적 한계가 있는 곳에서 자주 접하기 어려운 좋은 구성안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2009년부터 그런 코스나 워 크숍 혹은 공모전 등에 대한 자격 체크를 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의 자질을 갖추어야 여기에 지원할 수 있는 지, 각각이 요구하는 자질이 다르지 않나. 그게 쌓이다 보니까 그전의 경험 때문에 조금 더 큰 행사, 조금 더 큰 프로젝트를 계속해서 참여할 기회를 갖게 됐다. 나 같은 경우 동시대의 사회적 이슈라던가 개인적 관심사 가 가장 큰 원동력이기 때문에 그때그때의 관심사를 위주로 자료를 모아놓는다.
김혜진 : 국내외 큐레이토리얼 코스는 오픈콜 형태로 열리기 때문에 일종의 공모전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 다. 정해진 기간이 아니더라도 연관된 다른 재단, 기관을 통한다거나 직접적으로 주최 측에 연락을 취하는 방 법으로 접근했다. 특히 큐레이터 워크숍 같은 경우 외국은 대부분 미술관과 학교의 협력이다. 물론 이러한 기 관들은 1년 동안 전시 스케줄이 정해져 있는 걸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비전이 명확한 곳이기 때문에 지원하기 전에 나와 ‘과연 매치가 되는 곳인가?’를 충분히 조사하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지원은 고사하고 생뚱맞은 사람 될 수도 있으니까. 이력이든 인터뷰든 기본적인 건 ‘연결’이다. 이것도 앞에서 이야기 한 믿음과 관련된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이 사람의 방향이나 믿음이 명확한지, 함께할 만한 방향이나 믿음인 지가 기본이니까. 어디든 공식적 창구가 막혀 있는 것 같아도 (가령 지원 기간이 지났다던가), 인간적으로 접 근해서 차분히 이야기해 보면 길이 열리고, 더불어 재정적 지원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주혜진 : 제도적 지원을 받는 것에도 한계가 있지 않나?
김혜진 : 공식 제도의 지원이 충분치 않다면, 제도 밖을 두드려도 길이 나오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외국에 서 학위를 받은 교수들에게 그들이 다닌 학교에 대한 조언을 구하면 현지에 있는 지인을 소개해 주시거나 관 련된 행사 등을 알려주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된다. 한국에 이미 방문한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그들이 전해준 정보로 얻게 된 기회가 많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뚜렷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도와줄 수 있다. 코스 나 공모가 없다고 해도 펀드가 모여 있는 곳에 가서 어필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공모전만 공략해서는 스펙 싸 움에서 밀리게 된다.
양정선 : 공식적인 공모 같은 경우 길이 좁기도 하지만 선정 절차나 방식에서 한계를 느낄 때가 잦다. 그 예 로 국내 모 기업에서 후원하는 미국 대형 미술관 인턴십 프로그램에 지원한 적이 있었다. 외국에서 경험을 쌓 을 좋은 기회인 것 같아서 지원했는데 물론 떨어졌다. 당시 지원자가 900명 정도 되었고 그중에서 3명 정도 가 선발되었다고 한다. 몇 달 뒤에 선정자 인터뷰가 나왔는데, 당선된 이들 모두가 이 공모를 왜 한국에서 했 는지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뿐이었다. 뽑힌 사람들은 굳이 기업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국외파들뿐이었다. 기업에 좋은 구실 만드는 일에 동원되었단 기분이 들어 허탈했다. 이런 게 김혜진 씨가 말한 어차피 스펙이 안 되면 밀린다는 것인 것 같다.
김혜진 : 내가 준비를 해서 응모하는 것이 사실상 의미가 없는 공모전이 있는데 여기에 현혹되는 것은 소용 없는 짓이다. 이미 발사될 로켓은 따로 있고, 나는 거기서 발사될 로켓이 아닌 거다. 언제나 발사대가 필요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내 주변 환경에서 디딤돌을 찾고, 주도적으로 자기가 가야 한다.
조주리 : 기관이 그 해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비전, 내부적인 키워드와 내 주제가 맞아떨어져야 하는 것 같다. 나는 이게 너무 하고 싶은데, 그 기관에서 받아줄 리가 없는 이슈를 내미는 것은 소모적일 수 있겠다 싶다. 그 런데 그런 것을 눈치 채려면 상당한 내공과 오랜 연구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주혜진 : 앞서 제기된 한계나 문제점들이 적극적으로 수정됨으로써 애초에 의도한 혜택이 미술계에 진출하
고자 하는, 진정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유익한 양분으로 작동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기 보단, 재미와 열정을 동력으로 미술계 내부 곳곳을 부지런히 움직여 온 행보가 몸소 전해져오는 대 화여서 개인적으로 뿌듯한 시간이었다. 오랜 시간 솔직하고 열정적으로 의견과 경험을 나누어 주어서 고맙다.
※ 본 내용은 2013년 9월 경향《아티클》에 실린 『솟는 문화생산자들, 세 개의 영토』의 일부를 더아트로에 서 편집한 글입니다.
관련링크 파일럿 프로젝트로 거듭나는 큐레이터들의 만남, Curating in Asia 프로젝트 비아(PROJECT VIA) 기획단체 지원 프로그램 Ⅱ . Curators Fab 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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