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reator JEONG go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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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Edition

새김아트 창시자 zibook

정고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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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Edition

JEONG go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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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 one

새로운 예술 장르 ‘새김아트’를 창시하다! 새김아트란 문자(文字), 회화(繪畵), 조각(彫刻)의 예술적 특성이 집약된, 전각을 "새김"기법으로 극대화하여 현대적으로 승화시킨 정고암의 창의적 종합 예술이다. 새김아트에서 "새김"은 정신적, 물질적 새김을 의미한다. 전각전문가 회정 정문경으로 부터 전통 전각을 사사받은, 고암(古岩) 정병례 선생이 자신의 작품 활동을 ‘전각’에서 '전각예술'로 명명하면서 우리나라 최 초의 새김아트 창시자가 되었다. 2006년 고암 선생이 한국전각협회 이사와 인천가톨릭대 겸임교수를 역임(1998년도)할 때 전각에서의 각법과 인간의 근원적 행위의 하나인 ‘새김’ 행위는 발생적 경위를 보아 ‘새김’ 행위가 ‘전각’보다 먼저 우선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또한 기존 중국의 전통예술로 분류되는 한국 전각에 반발하여, 예술의 국가적 자주성을 확립한다는 차원에서 고암 정병례 선생이 스스로 ‘새김아트’를 창시하게 된다. 그 이후 고암 정 병례 선생외 다른 전각가들도 ‘새김’, ‘새김질’ 등의 단어를 전각, 조각 등 ‘새김’을 바탕으로 한 예술행위에 사용하면서 새김아트가 대중화가 되었다. 기존 전각과 비교하여 설명하자면 소재 면에서 암석, 나무, 광물 등에 칼로 요철을 구성하는 것과 달리 종이, 건축자재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고 있으며, 규모 면에서도 기존 전각이 규정하던 방촌(方寸)의 크기에서 벗어나서 땅에 직접 글씨를 새기는 등의 퍼포먼스가 시행되는 등 크기를 제한하는 관점을 벗 어나 있다. 기법에 있어서도 기존 동양미술의 수단인 붓과 전각도(刀) 등에서 벗어나서, 회화와 조소 등에 사용되는 도구들 전반에 대한 '새김'적 재탐구를 시도하고 사용한다. ‘새김’ 행위가 ‘서예’ 보다 먼저 우선하고 있다고 정고암 선생은 ‘새김아트’를 정의하고 있다. - 전각은 서예입니까? 그림입니까? “서예가 입장에서 보면 서예로 보이고, 화가 입장에서 보면 그림이고, 조각가 입장에서 보면 조각입니다. 그렇기에 전문 조각가 입장에서 보면 서예, 그림, 조각의 특성이 집약된 종합예술입니다. 옛사람들에 의하면 전각은 독자적 장르로써 서예나 그림보다 한 수 위라는 말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 목을 가진 마니아층이 두텁지 못하여 타장르의 예술보다 대중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또 과거의 것이라 해서 낡은 것으로 치부하는 것도 온당치 않 습니다. 과거는 오래된 미래입니다. 미래를 보려면 거울을 보면 됩니다. 거울은 과거입니다. 그 속에 미래가 담겨 있습니다. 새로운 작품의 창출은 과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문사철의 뚜렷한 내공이 바탕이 되어야 옛것을 가지고도 자기 시대를 표현하는 창조적 예술이 가능한 거죠. 솜씨나 테크닉을 초월하는 예술을 하려 합니다.”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정고암 선생은 앞에는 영산강이 흐르고 뒤로는 월출산이 버텨주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는 1992년에 대한민국미술대전과 대한민국 서예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그리고 1993년에 동아미술제에서 특선, 그 외 대한민국서예대전, 서울서예대전 등의 초대작가, 다양한 공모전 심사위원, 운영위원을 역임하는 등 폭넓은 활동을 해왔다. 430여회 개인전을 했으며 고암전각예술원에서 제자들을 지도하며 왕성한 작품을 활동중이다. 제자들이 주축이 된 고우회 전시회가 격년에 한번씩 진행되며 초·중·고 교과서에 그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 ‘삶, 아름다운 얼굴’, ‘마음새김’ 등의 저서도 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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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 two

세계 최초의 ‘전각 애니메이션’ 창시자, 정고암 그는 ‘전각’을 ‘새김아트’라 작명하는가 하면 전각을 애니메이션화하여 또 하나의 미술 장르로 구축하고 있다. 전 세계에 ‘전각애니메이션’이라 하면 현재 그가 유일하게 최초의 예술가로 꼽히고 있다. 그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 최초의 전각 애니메이션 작가라는 점은 자타가 인정하는 부분인데 그 예로 2006년 안단테 갤러리에서 세계 최초로 새김아트 전각애니메이션인 <삼족오(2006년)>를 전시했으며 <연어(2006년)> <새색시 까치호랑이(2010년)> <시집가네(2011년)>,<꿈나래(2012년)> 등 많은 전각 애니메이션 작품을 전시하고 발표하기도 했다. 2010년 9월 10일 MBC가 생방송 한 ‘서울 드라마 어워즈’ 시상식에서 정고암 선생의 전각으로 전체 무대를 디자인하였는데 전각이 어떻게 TV 프로에 이처럼 대규모로 등장하게 되었는지 영문을 몰라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서울 드라마 어워즈’는 43개국에서 172편의 드라마가 출품되었고 한ㆍ중ㆍ일을 비롯 영국 캐나다 이태리 등의 심사위원이 참석하 였으며 전세계에 생중계된 바 있는 국제규모의 드라마 페스티벌이다. 그 날 그는 전각작품으로 시상식장 전체를 뒤덮었을 뿐 아니라 그 행사의 예술감독 으로 참석하여 작품상에 대한 시상도 맡았다.) "예술감독으로서 작품 의뢰를 받고 열심히 작업만 했습니다. 다만 제가 제작한 전각이 세계적인 심사위원들이 심사하는 2시간 분량의 공중파 생방송 프로 그램을 완전히 커버하게 될 만큼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뿌듯합니다. 그동안에 인정 못 받았다는 것이 한스러웠다기보다는, 이제부터라도 과거의 것을 새로 운 21세기라는 그릇에 담은 작품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일 뿐이라는 뜻입니다." 전각이라면 대개는 도장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정고암 선생도 '나는 도장장이었다.' 라고 토로하면서 도장으로 시작하여 40여년이 흘렀다. 지난 98년 6월에 그가 전각 애니메이션 전시회를 가졌을 때 그는 한국 뿐 아니라 세계에서 유일한 전각애니메이션 작가로 등극했다. 그 전시회 이후 전 각에 대해 알고 싶다는 문의가 외국으로부터 쇄도하고 때론 직접 찾아오기도 했는데, 한사람 한사람 모두 응대하기가 어려워서 결국 홈페이지(www. saeghimart.com)를 만들어놓아야 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는 외롭고 힘든 작업을 40여년이나 이어 왔다. 이제 전각애니메이션 작가로 인정을 받았지만 앞으로는 정부가 할 일이 많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미술 저작권 보호나 세계 특허 문제, 특히 전각애니메이션의 해외 수출 등에 대해서 제도 적 관심이 있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 서양에도 전각이 있나요? "역사적으로 보면 고대 이집트, 인도, 중국등 4대 문명 발상지에서 유래됐고, 이후 사라졌으며, 지금은 스탬프의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7-12세기때 귀족 들이 반지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의 상형문자 같은 것을 서양의 전각이라 볼 수도 있겠지요. '전각은 글자다.' 라는 것은 전각에 대 한 고정관념입니다. 또 그것이 사실이기도 하구요. 그러나 전각은 구상뿐 아니라 추상도 얼마든지 가능한 분야입니다. 우리가 쓰는 문자 자체가 추상성을 다분히 지니고 있고 회화적 성격도 있거든요. 그림에서 문자가 나왔고, 글자 위주의 전각도 사실은 추상을 배경에 깔고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글씨 자체가 그림이란 얘기입니다. 예를 들면 나무의 형상에서 나무 목(木)자가 나왔다든가... 그리고 중국의 전각은 주, 진, 한나라, 명, 청을 거치며 표의문자의 특성 때문에 글자가 전해 내려 오는데 유리하여 계승 발전되었습니다." - 전각의 느낌이 추상적 판화와도 비슷한데요. 선생님의 작품 스타일은 어떻습니까? “추상이라면 인물, 동물, 정물등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고 추상적 관념적으로 그린 것이 추상입니다. 글자와의 관계를 놓고 보자면 글자는 원래 표의문자였습니다. 모든 문자의 시작은 표의였다가 소리글로 변하며 표음문자가 되었다고 보는 것 아닙니까? 한국적인 것을 모티브로 작품을 한다 고 해서 표현 자체도 억지로 한국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자기 내면의 생각을 잘 표현해야 된다고 봅니다. 옛것을 옛것과 똑같이 그대로 재생시킨다면 그건 장인이 할 일이지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9


평생을 창의적인 마인드로 전통의 틀을 깨다! 새김이란 ‘가슴에 새기다’, ‘마음에 새기다’, ‘아로새기다’ 등의 뜻도 있지만 어떤 무늬나 글자, 형상을 마음가는대로 새긴다는 등 그 쓰임새가 무궁무진하 다. 그래서 물 위에, 달빛에, 시공을 뛰어넘어 삼라만상의 모든 유형과 무형에 새로운 생명을 얼마든지 새겨 넣을 수 있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담 아내고 끝없는 상상력으로 허상과 실상을 아름답게 조화시킨다. 무(無)와 유(有)가 어우러져 새롭게 창조하고 변화시킨다. 즉, 노자의 유무상생인 것이다. 이것이 ‘새김아트’라는 예술분야를 창시한 그가 말하는 진정한 프로프셔널리즘인 것이다. - 전통의 틀을 깨고 새로운 예술분야를 창조하다 "어릴 적에 연이나 팽이를 만들고 부채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죠. 하지만 가난 때문에 미술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고 중학교를 졸업한 뒤 일찍 공장 에 취직했어요. 그러면서도 예술적 재능을 포기할 수 없었고 미술 전시 구경을 가는 날이면 가슴이 마구 뛰었어요. 그때마다 나중에 꼭 예술가가 되겠다는 것이 꿈이었죠. 의류공장에 다니던 27살 때 우연히 마주친 한 인장(印章)에서 어떤 운명 같은 것을 느꼈어요. 그러면서 ‘인장은 왜 아랫면에만 새길까’라 는 물음표를 던지면서 위아래, 옆면을 전부 새기는 ‘3D입체’의 전각을 생각해 냈죠. 이때부터 전각을 찾아 나섰어요. 전각에 관련된 자료를 뒤져가며 독학 으로 각법을 익혀 나갔죠. 그후에는 글씨와 그림, 조각이 어우러지는 방향을 모색하기 하다가 1983년에 한국전각가회장을 역임하신 정문경 선생을 만나 면서 정식으로 전각수업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공부한 지 수 년 후 재료와 도구를 구하고 만들어 먹물이나 인주로만 찍어 흑백과 빨간색 위주로 표현하던 기존 전각에 아름다운 오방색을 입혔죠. 글자뿐만 아니라 그림도 새겼고 한글의 아름다움에 점점 빠져들어 갔어요." - 디지털 전각을 생각해내며, 독학으로 각법을 익혀나간 새김 아티스트 정고암 "마침내 42살 때 첫 전각전시회를 하면서 본격적인 전각예술가의 길로 들어선 것이죠. 저는 제 자신을 전통 전각예술을 문자와 디자인을 조합해 재해석 한 현대 전각예술가, ‘새김아티스트’로 소개합니다. 새김이라고 하면 물질에 새긴다는 것만 생각하지만 우리는 정신에도 무언가를 새길 수 있죠. 기억하는 것, 기록하는 것, 되뇌는 것, 소리를 듣는 것이 전부 우리의 마음에 새기는 것이잖아요. 어떠한 의미, 철학, 이야기 등 무형의 것을 새겨 넣거나, 색을 바르 거나, 선을 긋거나 해서 형태로 빚어놓은 것이 새김예술입니다. 단순히 무언가를 새기고 칠하는 것은 기능성일 뿐이고 그 이전에 있는 무언가를 전달하려 는 것이죠. 사실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뿐이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 우리의 정신과 색깔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제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새김아트 는 다양한 문자 암각화, 초형인, 민화 등 각각의 스토리텔링에다 단순미와 색채의 미학을 확대 재해석한 한국적 정서의 현대 종합예술입니다." - 스토리텔링시대를 연 ‘새김예술’ "암각화는 원시사회의 친자연적인 삶을 반영하며 순수한 자연인의 시선과 감성으로 수많은 스토리를 내포하고 있고 조형인은 동물이나 사물을 관념적 또 는 추상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구상과 비구상을 넘나드는 형식입니다. 제 작품의 특징은 물질적인 요소와 정신적인 요소를 포함 포괄적인 개념으로 접근 해서 전각예술이라는 장르를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각종 전시를 통해 작품세계를 꾸준히 선보여 왔고 특히 전각과 설치미술, LED 등과 결합한 독특한 기법으로 끊임없이 예술의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어요. 일례로 정체되어 있는 작품을 정(靜)과 동(動)을 합일하기 위해서 전각 애니메이션으로 만 들었죠. 이처럼 아날로그 정신성을 집약해서 디지털이라는 그릇에 담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아날로 디지털’로 대중화를 추구하고 있답니다. 중 국, 대만, 일본 등 우리나라보다 전각이 훨씬 발전한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어요. 왜 굳이 새로운 예술분야를 개척했느냐고 요? 우리의 정체성, 정신, 색깔을 제대로 표현해내기 위해서였다고 답하고 싶습니다. 선사시대부터 축적된 코드 위에 제가 가진 코드를 얹어서 현재와 미 래로 연결하는 징검다리를 연속적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즉 과거의 것을 그대로 똑같이 따라 한다면 예술가가 아니라 예술기술자라는 겁니다.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거나 발견하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나는 나다운 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내가 타고난 것, 내가 노력한 것, 내가 찾아낸 것이 창 의적인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 이 시대에 내가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해야 할 역할이 과연 무엇일까, 나는 누구인가를 계속해서 찾아내려고 무지 애를 쓰는 것이죠. 단순히 아이디어가 번쩍여서 이것저것 가져다가 그럴싸하게 붙여놓은 것은 예술이 아니죠. 과거가 없이 현재가 있을 수 없고, 현재가 없이 미래가 있을 수 없으니까요. 옛 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새김 아트를 하고 있죠."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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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항상 불이 켜져 있는 작업실 "자기가 얼마만큼 노력해서 자기만의 질서를 찾아 냈느냐 하는 것이 자랑거리라고 생각해요. 즉 저만의 질서를 창조해내기 위해서 새김아트라는 동굴 바 깥의 세상을 개척했던 겁니다. 제가 처음에 전통 전각예술을 시작하면서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서예, 동영화, 문인화를 좋아하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이것을 본격적으로 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전통 전각예술 말고 내가 정말 주인이 되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했습니다. 전통 전각은 문자를 밑면에만 새깁니다. 밑면을 포함해서 6면 전체에 새긴다면 완전한 구성이 될 것이고 나의 역량을 전부 담아낼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발전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죠. 색깔, 재료, 크기, 형태를 수없이 바꾸고 확장해 왔지만 처음의 그 생각은 하나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죠. 서울의 어느 빌딩에 세를 들어서 살 때 24시간 항상 불이 켜져 있는 집은 제 작업실 밖에 없었어요. 밤샘이 다반사고 새 벽 6시가 되면 아쉬운 마음이 들었죠. 그때부터 3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9시에 작업을 다시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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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고의 노력과 연구로 일구어 낸 새김아트 "당시에 전시를 활발히 했는데요. 작품이 팔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전시를 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대로 그냥 작품을 만들었던 거에 요. 그러다보니 작업실 월세가 계속 밀려 쫓겨날 뻔 할 위기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전각예술을 다양하게 확장시키고, 대중화와 현대화를 시도하는 저에게 ‘정통이 아니다’라는 비판이 수없이 쏟아졌어요. 하지만 대중을 전통예술 세계로 끌고 가려면 전통예술가도 대중성과 현대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생 각에는 흔들림이 없었죠. 수백년 전 예술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보다는, 현대의 새 패러다임을 새겨 넣는 게 진정한 전통계승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사람들 이 하도 이 길이 아니라고 하니 제가 혹시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인간적인 갈등이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하늘에 대고 물어봤어요. “내가 하고 있는 짓이 사람들의 말대로 쓸모 없는 짓이면 아마도 하늘이 막을 겁니다. 그럼 어디 한번 망할 때까지 끝까지 힘내서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했는데 안 망하고 여기까지 왔네요. 하하하.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던 이유요? 새김아트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자기가 정말 열심히 해보면 그걸 알아 요. 그러면 정말 재미가 있거든요. 재미가 있으니 밤새도록 해도 즐겁죠. 책 한 권 던져주고 밤새 읽으라고 하면 졸음이 쏟아질 겁니다. 하지만 새김아트를 하면서 새벽이 오는 지도 모르고 작업을 했죠. 직장인들에게는 제각각 맡고 있는 업무가 있죠. 업무 속에서 창의적인 것들을 찾아내려면 자존감을 가져야 해요. 자존감을 갖지 않으면 즐겁지가 않으니까요. 예를 들어 내가 직장에서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을 업무라고 생각하면 재미없어요. 임무라고 생각하면 구속력이 생기잖아요. 일정한 범위 안에서 창조적 영감을 얻고 자유로움을 펼치려면 자기가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려면 자기가 주인이, 대장이 되 어야 합니다. 그 분야에서 타인과 경쟁해서 대장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대장이 되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일하면 우선 자기가 행복해지고, 대 가가 되지 않더라도 행복해요. 일이 행복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일 자체가 행복이자 목적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저 멀리 외부의 다른 어떤 것에서 재미 와 행복을 구하지 마세요. 바로 코 앞에서, 자기가 보이는 곳에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서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안에 즐거움을 추구 할 수 있는 방법들이 전부 들어있으니 그 안에서 찾으라는 겁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 충분히 노력하지 않아서 찾지 못할 뿐이에요. 당장 업무가 눈 앞에 떨어지면 언제까지 처리해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부담을 가지고 조바심을 내고 도피하니까 정점을 찍지 못하는 겁니다. 타고난 적성이나 역량에 맞지 않은 업무를 맡아서 하게 되었다면 다른 업무로 바꾸는 것도 노력을 해야 할 수 있는 일이에요. 타고난 사람은 노력을 적게 해도 바로 일등을 하지만 타고 나지 않는 사람도 노력하면 중간은 가고, 그러다보면 어느 방 향으로 가야할 지 본인 스스로 알게 됩니다. 그 일을 해보지 않았다면 자기 적성이 어떤지를 알 수가 없는 겁니다. 제가 공장에서 일할 때 굉장히 적성에 안 맞았어요. 저는 창의적인 사람이라 단순노동을 아주 싫어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항상 참 잘했어요. 이렇게 안 맞는 것도 꽤나 잘 하는데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걸 하면 내가 정말 행복하고 정말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때도 공장 일을 열심히 해봤기 때문에 그것을 깨달을 수 있었죠. 지금 당면한 일에서 깨달음이 있어야 다른 세계도 볼 수 있고, 그것이 다른 세계를 위한 준비작업이 되는 것이죠. 이런 자세로 일한다면 작은 일에도 성취감을 느낍니다. 남이 인정하고 알아주면 조금 더 행복하겠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겁니다. 내가 정말 주인이 되어 즐겁게 일하는 것이 진짜배기고 그 이외의 것들 은 전부 덤인 것이죠. 칭찬, 인정, 명성, 인기, 부는 있다가도 떨어지고 없어지고 그렇잖아요. 덤에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 보세요. 그렇게 진짜배기를 추 구하는 과정에서 실패는 당연히 겪는 일이죠. 똑같은 일을 똑같이 해도 항상 새롭다고 느낀다면 그 사람은 행복하게 사는 거에요. 약간 넘어져도 실패해도 그것 또한 새로움이잖아요. 넘어진 것도 새로움이요, 그것 때문에 한걸음 껑충 뛰어오르는 것도 새로움이죠. 실패했다고 좌절할 이유는 전혀 없죠.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경험이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가장 양심적인 것이 결국엔 가장 남는 장사죠." 넘어지고, 실패해도 그것을 새로움으로 받아들이며, 긍정적으로 사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새김아티스트 정고암 선생. 그는 한글, 그림, 인물조각이 합쳐진 한글 새김아트 작품을 세계 무대에 내보이기 위해 분주히 작업중이며, 앞으로도 우리의 정신과 색깔을 국내외로 더 많이 알리고 소통할 날을 기대 하며 오늘도 새김에 몰입한다. 13


Interview - three

전각으로 문화적 유산을 남기다.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은 삼족오가 새겨진 전각을 직인으로 만들었다. 직육면체의 전각 직인은 가로·세로 7cm에 높이 18.5cm 크기로 삼족오를 주제 로 제작되었다. 전각아래에는 포효하듯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힘찬 날개짓을 하는 삼족오와 태양을 배경으로 ‘Ban Ki-moon Secretary-General The United Nations(국제연합 사무총장 반기문)’라는 문구가 독특한 전각체로 적혀있다 그리고 나머지 4곳에는 삼족오와 태양이 새겨져 있다. 고암 정병례의 30년 전각에 대한 고뇌와 열정이 물 흐르듯 그곳에 녹아 있다. 정고암 선생은 인류가 최초로 경험한 예술 행위인 전각을 21세기 현대식으로 재 해석내고 있는 걸출한 전각 예술가이다. 고암은 전각가(篆刻家)로 시작했지만 지금의 활동 영역은 광범위하다. 시작은 돌에 인장하는 작업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 은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을 타고 그 재료나 표현기법에 경계가 없어진지 오래다. 전각(篆刻)이 전각(全刻)으로 엎그레이드된 것은 남다른 사고와 노력이 있었을 터. 정고암 선생은 자신 안에 꿈틀대는 끼를 억누르려고 하지 않고 자유롭게 발산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었다. 정신의 한계인 자신의 울타리를 넘기 가 그리 쉬운가? 정고암 선생은 서예, 회화, 설치작업, 퍼포먼스, 판화, 일러스트, 캘리그래피, 애니메이션과 같은 장르를 소화해낸다. 활약하는 영역이 많 은 만큼 그의 작품도 전시장에만 머물지 않았다. 길거리 간판에도 있고, 텔레비전 모니터에도 있고, 극장에도 있고, 서점에도 진열되어 있다. 전각에서 일 가를 이룬 고암 정병례. 경지는 아무에게나 그리고 쉽게 열리는 법이 아니다. 10년을 독학으로 공부해 온 몸으로 전각을 익혔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열수 없는 어떤 의문의 문 앞에 다달았다. 그런던 중 우연한 기회에 <한국전각학연구회원전>를 관람하게 되었는데 그 전시를 통해 회정 정문경 선생을 알게 되 었고, 정고암은 1983년 우리나라 전각의 대가인 회정 정문경 선생의 문하생이 되었다. 그 와의 만남은 정고암에게 전각으로 통하는 문을 열 수 있는 열쇠 를 찾은 것과 같았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정고암이 쓴 전각 캘리그래피를 기억한다. 붓으로 종이 위에 쓰는 캘리그래피와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전각 캘 리그래피. 물론 정고암이 처음 고안했다. “최근 붓글씨를 서체화한 폰트를 비롯해 손글씨인 캘리그래피가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는데 전각 캘리그래피는 새김이 갖는 고유한 특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점에서 여실히 차별화 된다고 봅니다. 전각은 다루는 재료가 종이대신 돌, 붓 대신 칼입니다. 전각 캘리그래피는 먼저 돌이나 나무에 쓰고 새겨 찍어내는 과정을 거쳐야 완성되며, 따라서 다루는 재료의 물성과 칼맛이 느껴지는 질감 있는 서체가 됩니다.” 정고암은 전통의 의미를 옛 것에서만 찾지 않는다.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생각이 잘 드러난 것이 1995년부터 작업해오고 있는 <삼족오>이다. 정고암의 삼족오는 여러 작품에 등장하는데 특히 2007년에 만들어진 <평화 삼족봉황>은 다양한 재료를 활용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기본 바탕은 전각화지만 그 위에 철사로 날개를 표현하고 몸통은 한글로 표현하며, 바탕엔 금색의 전각 캘리그래피로 마무리를 했다. 정고암의 <삼족오>가 내포하는 예술적 의미는 현대적 조형미의 완벽한 결합으로 평가받는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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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과 평화의 상징 ‘삼족오’ 태양 속 세 발 달린 三足烏는 天上의 神들과 인간세계를 연결하는 신성한 神鳥다. 과거 光明 崇拜의 상징인 삼족오를 하늘과 땅 사람이 하나 되는 平和를 가져다주는 행운의 길조로 다시 새긴다. 고대사회 태양을 섬기던 시절, 삼족오가 갖는 수직적 개념을 넘어 조화와 균형의 우주적 본질을 향해 나래짓하는 수평적 개념으로 표현했다. -‘삼족오’를 선택한 이유는? ‘평화 삼족오’는 지구촌의 경제위기와 국내 여러 상황을 화합과 이해를 통해 상생의 기운을 되살려 마음의 평화를 찾자는 의도에서 선택했다. 시각적 효과 를 극대화 하기위해 평면적 느낌을 강조했으며, 질감이나 재료를 다양하게 활용하여 볼륨감으로 인한 입체감을 곁들였고, 지난 과거 역사 속 ‘태양과 나’ 라는 수직적 개념의 삼족오에서 21세기 수평적 개념의 삼족오로 ‘우주와 우리’라는 명제로 재해석하여 우주를 향해 자유의 나래를 편다는 뜻을 표현했다. - 삼족오의 가장 핵심은 무엇인가? 이번 삼족오를 형상화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소재를 접목시켰다. 재료는 돌, 나무, 황동철, 아크릴물감 : 종이, 금박등을 사용했고 컬러는 빨강, 초록, 검 정, 청보라, 황금색, 청색등을 사용했으며, 라인은 황동철사를 주로 사용하였다. 처음 시안작업 보다 조금 변형되긴 했지만, 그 달라짐 또한 발전한 것이기 에 만족한다. 서로 물성이 다른 종이와 금속 등 여러 오브제를 활용하여서 생기 있고 활기찬 작품으로 탄생되도록 완성도를 높였다. 기운 생동한 큰 힘을 이끌어 주는 행운의 삼족오(三足烏)이다. 몸통부분의 평화라는 한글은 직접적인 메시지이며, 한국적 정서를 느끼게 하는 디자인은 간접적인 메시지이다. 이미지와 글씨가 조화를 이룬 직간접 메시지의 작품이므로 마치 숨은 글씨 찾기처럼 마술 같은 경이로운 재미를 더하고 있다. - 디자인 행위, 표현 행위 감각은 선척적인가? 누가봐도 <디자이너가 되겠다> 라는 능력이 있었는가? 선천적 감각은 확신한 바도 있지만 이 감각 바탕위에 후천적 노력이 필요했다. 작품 진행과정이 순탄치 않거나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경우에는 주로 글을 쓰거나, 자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감상을 하거나,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아이디어 때문에 고민하기 보다는 수많은 아이디어를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오히려 더 큰 고민이다. - 현 직업의 미래전망은 어떠한가? 이미 40년 전에 확신을 했을 정도로 매우 희망적이다. 사실 미래는 모호함속에 가려져 있다. 그러나 그 모호함을 즐기는 자가 새로운 길을 연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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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 four

- 본 직업이 원래 꿈이었나. 아니면 운명이었나. 전각을 시작하게 된 것은 아마 운명인 것 같다. 정상적으로 미술교육을 받았다면 전각예술에 심취하지 못했을 것이다. 청년시절 어떤 꿈이 내 꿈인지 알 수 없었다. 주위에선 가수가 되라고 했고, 목수가 되라고 했 고, 화가가 되라고 했고, 서예가가 되라고 했지만 아무도 전각가가 되 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전각가의 길은 내가 스스로 찾아내었던 것 같다. - 최초의 자신이 직접 만든 작품을 기억하나. 어떻게 만들었나. 최초에 만든 것은 초등학교 시절 상수리 열매에 내 이름을 양각으로 새 겨 오랫동안 말려두어 중학교 때까지 가지고 썼는데 내가 새겼다고 찍 어 보여주면 아무도 믿질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내가 잘 해봤 자 얼마나 잘했겠냐? 하지만 주변 아이들은 그게 좋아보였던 것 같다. - 모티브는 주로 어디에서 찾는가. 어린 시절 자연친화적인 시골 생활과 민속, 노장자의 <채근담>, 우주의 질서를 이야기해주는 동양고전 <주역>, 우리나라 고전문학 작품 등 두 루두루 찾는 편이다. - 가장 애착이 가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킨텍스에서 했던 설치미술이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8미터 사각 안에 돌 1,600개를 설치했다. 마치 은하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표현 한 것이었는데 사람들 반응도 좋았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가장 기억에 남는다. - 본인과 함께 일할 파트너를 뽑는 기준은 무엇인가. 능력보다는 인성 중심으로 뽑는다. 그리고 꿈을 꾸는 사람을 선택한다. - 영감을 주는 사이트나 책을 추천해 달라. 정민 교수의 저서 <미쳐야 미친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열정과 기질 을 소개하는 책이다. 일관된 삶의 태도로 자신의 길을 걸어갔던 지식인 들의 자세에서 큰 위로와 활력을 얻는다. - 본인 작품 외에 훌륭하다고 생각한 작품이 있다면? 피카소 판화작품 <소>를 꼽는다. 간결함이 주는 임팩트를 잘 설명하고 있다. 간결하다고 해서 쉽게만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더 많이 관찰하 고 더 많이 연구한 결과에서 나온 것이다. 이 작품이 나의 작품 제작 스 타일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아 더 마음이 간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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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work of Jeong goam

한글 작품 : 보이는 세계와 가려진 세계가 어우러져 현상 세계를 이룬 다. 노자의 유무상생! 잘 배치된 물 고기나 태양, 강, 산, 물결의 문양만 으로도 보는 이의 시각을 사로 잡는 다. 그렇치만 아직 빙산의 일각만 보 았지 바다속에 가려진 거대한 실상 (한글)은 마술에 걸린 듯 보이지 않 는다. 어찌 되었든 그림 전체를 다 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림을 보 이는 대로 본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대로 보았기 때문에 한글은 보지 못 했던 것이다. 작가의 인생과 같이 끊 임없는 자기성찰에서 발견되는 사상 이나 철학을 통하여 작은 공간에 우 주의 이야기를 한글을 매계체로 작 가의 정체성을 이미지로 전환하여 마치 새로운 한글 상형문자를 창안 했다. 19


초가삼간 / 2003 / 380 x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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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 / 2003 / 400 x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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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정과동) / 2007 / 350 x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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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 2008 / 250 x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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ì–‘ / 2003 / 650 x 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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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 / 2007 / 910 x 1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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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나래 / 2011 / 4200 x 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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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작품 / 2016 / 1500 x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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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품다 / 2012 / 660 x 860 (한글입체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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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 1998 / 250 x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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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관 / 2004 / 200 x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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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건너고 / 2013 / 1060 x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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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건넌다 / 2013 / 1060 x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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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작품 / 2016 / 1500 x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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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영나영 / 2015 / 1470 x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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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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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 / 2007 / 4800 x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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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 48령 / 1999 / 1470 x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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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땅사람물불바람 / 2009 / 360 x 110 x 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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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mind of Jeong Go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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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각, 최초로 브뤼셀에 한글을 새기다 2016년 5월 12일부터 유럽 최초로 정고암 선생의 ‘새김아트 상생(相生)전’이 유럽의 수도라 불리는 벨기에 브뤼셀의 한국문화원 전시관에서 유럽 각국 의 예술 애호가들을 맞이했다. 정고암 선생은 과거 주로 서예의 낙관을 위해 쓰였던 부차적 의미의 전각을 하나의 독립적 예술로 승화시켜, ‘새김아트’라 는 이름의 독자적 예술분야를 정립하였다. 이번 전시에 정고암 작가의 작품 중 한글을 이용한 작품이 주를 이루며 전통 전각으로부터 전각에서 비롯된 애 니메이션까지 세대를 초월한 다양한 새김아트 35여 점이 유럽의 심장 브뤼셀을 두드렸다. 그 동안 전각 작품들이 미주, 일본 등에 활발히 소개되었던 것 과 반대로 유럽에서는 최초로 소개된다는 점에서 본 전시의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 제작된 벨기에 국왕의 초상화 는 한국과 벨기에의 진정한 소통의 시작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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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 개막 행사에 앞서 정고암 선생이 직접 진행하는 특별 강연회가 개최되었다. 70여명의 예술 애호가들이 함께 자리하여 정고암 작가의 그동안의 발자취와 예술 세계를 경청했으며, 진지하며 동시에 흥미로운 질문과 답변으로 컨퍼런스를 마무리했다. 또한 개막식 행사에는 정고암 선생이 직접 조각 하는 모습을 실시간 영상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펼쳐 박수 갈채를 받기도 했다. 단순한 전각이 ‘새김아트’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고 또 그 의미와 예술적 가치를 실제로 증명해 준 자리로, 유럽인들의 많은 호응을 얻어, 새로운 아트인 한국의 전각예술, 새김아트가 유럽 내에서 충분히 인 정 받으며 앞으로 더욱 가치를 높이 평가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는 기회였다. 특히, 이번 행사에 벨기에 각지 저명인사들이 다수 참석 하였으며, 루벤 대학의 한국학과장 아드리안 까르보네(Adrien Carbonnet)교수는 정고암의 한글작품에 대해, “처음 보인 디자인적 화려함 속에 천지인을 담고 있는 한글이 내재되어 있음이 매우 놀랍다”며 정고암 작가의 작품을 극찬했으며, 이름을 밝히지 않은 브뤼셀 시내의 갤러리스트는 “전통적 이미지와 한글이 가진 아름다움을 잘 조화시켰다.”고 말하며 '누구라도 소장하고 싶어할 작품' 이라며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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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고암은 자신의 예술을 "유와 무의 공존"이라고 요약한다. ‘전각’은 빈 공간과 채워진 공간 사이의 예술이다. 탁본에 드러난 이미지는 조각의 파이지 않은 부분(유)과 파인 부분(무)이 만들어낸다. 이 때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이 ‘유’와 ‘무’ 어느 하나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즉, 유는 무에 의해, 무는 유에 의해 드러나는 상호 보완적인 존재라 설명한다. 더 나아가, 하나의 존재는 다른 존재를 통해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또 한, 정고암 작가는 RTBF 벨기에 국영 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불과 몇 주 전, 벨기에는 끔찍한 사건을 겪었습니다. 깊은 슬픔을 겪어야만 했던 벨기에 인 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조금이나마 위로를 얻게 되길 바랍니다.” 라며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추모하는 마음을 전했다. 유럽에 팽배한 ‘불안’과 ‘불신’은 오 늘날 전 세계가 겪고 있는 현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벨기에 국민과 진정한 소통을 원하는 작가 정고암의 마음은 통한 듯하다. 전 유럽연합의회 위원 이었으며, 전 벨기에 외무부 장관이었던 카렐 드 규휴트(현 네어권 브뤼셀 국립대 유럽연구소 대표)는 작가 정고암에게 각 작품마다 그 의미를 물으며 깊 은 관심을 가졌고, “당신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 것 같다. 당신의 의도가 작품에 드러나는 그 표현이 매우 인상 깊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아야할 전시이다.” 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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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 five

Seal engraving artist Jeong Go-am puts the final touches on a piece in his atelier in Samcheong-dong, central Seoul. He is known as the pioneer of Saeghim art.

Carving out a future for ancient art of seal cutting Artist Jeong Go-am, 67, has devoted his entire life to transforming traditional engraving art to contemporary seal carving art, pioneering a new genre called Saeghim art, which maximizes the aesthetics of design, painting, and scripts. When I arrived in his atelier in Samcheong-dong in central Seoul, his iconic work “Heaven, Earth, Human, Water, Fire and Wind” caught my eye. In the piece, he explores how hangul, or the Korean alphabet, came to life by showing ancient Korean letters behind King Sejong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the creator of hangul. Next to the work was “Swaying Dreams,” in which flowers, the sun and fish were engraved with hangul consonants and vowels. “Conceptual art takes everything in this world into the art,” explained the virtuoso, by pointing at the engravings of fish on the table. “As Buddha once said, ‘Form is identical to void, while the void itself is identical with form.’ This theme penetrates my work as well. From yin comes yang, and from life comes from nothingness.” Born in Naju, South Jeolla in the late 1940s, Jeong has excelled in calligraphy and painting since he was young, but was never able to afford a proper art education because of the economic situation. So as soon as he graduated from middle school, he decided to work for his family instead. He did not start his career as a seal artist until he was in his late 20s, but he also had to do it all by himself, without a mentor to rely on. Jeong says that his turning point came in 1983, when he finally met accomplished seal artist Jung Mon-kyung (1922-2008), who taught him the basics of traditional seal art. Since then, he has tried to delve deeper into the art of sealing by instilling a unique Korean style to an art that originated in ancient China. Above, “Heaven, Earth, Human, Water, Fire and Wind” is Jeong’s work inspired by hangul and King Sejong, who created the Korean alphabet. Right, Jeong said that Saeghim art is reinterpreting the aesthetics of Korean traditional art. The most notable work he did at that time was recreating the ancient wall paintings of the Goguryeo Kingdom (B.C. 37 - A.D. 668) by seal engraving. Then he started to categorize his works as Saeghim - the Korean noun for engraving - because he always engraves his works in an original style, regardless of the artistic form. But his works haven’t always been celebrated by mainstream art critics. Some said his attempts to “modernize” traditional seal art were unorthodox.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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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rave on Your Mind He is an engraver. But he is no ordinary engraver in that he carves out images in the sought-after language of this era. He has revived and transformed the art of seal engraving, long the epitome of Asian craftsmanship, through his own unique art form known as “Saeghim Art,” which combines calligraphy, industrial design, and mass culture. Jeong Byung-rye, 66, prefers to be called Jeong Goam, his pen name. With this name he dreamed of being born again, of his own free will, thereby shedding the fetters of his original name given by his parents. This pen name is not the only thing that he has made for himself. Jeong has created an art form that he named “Saeghim Art” (derived from the Korean word saegida, meaning “to engrave”), a modernized version of the time-honored traditional art of seal engraving. He has rediscovered the purpose of his life and knowledge in this world of art, dubbed the “beauty of the square” because it normally involves a 3-square-centimeter space. “This is my way of playing. My work is my play. You have to empty your mind. No creative artist should carry a heavy load in his mind. At the same time he should ask, ‘Who am I?’ In college classrooms, I find many students who copy other people’s work and claim it as their own. I tell them, ‘Create your own art.’ The act of engraving may be nothing but a technique. It’s in the process that you find yourself. On that path, we all become creators,” he said. Goam constantly engraves one thing or another. He engraves on stone as well as wood. He engraves on the ground as well as the walls. He has scattered his works around Caf? Deulmeori, situated at the entrance to his studio and showroom in Samcheong-dong, Seoul. Is he marking his territory just as the caveman did with his wall paintings? “I engrave, therefore I am,” he says. “Engraving is like ruminating, recording, or reciting. It’s a kind of communication and dialogue. We talk to the people of the world using new visual letters resulting from a fusion of language and image. So, I say that I engrave not on stone, but in the heart. I wanted to create a new language for better communication,” Goam explains. For a long time, engraving has been described as an act of inscribing something in the heart. Goam has been reinterpreting this old axiom through his own experiences. Engraving is the art of carving the hard surface of stone using strong metal tools. Accordingly, it requires tremendous physical and mental strength, which, in turn, enables the engraver to realize that he is writing in his own heart. 47


Bridge between the Past and the Future “Engraving is all about bringing together the spiritual and material, yin and yang,” Goam said. “It’s the act of reducing ideas and abstractions into real-life objects or forms. Only when you have completely digested them within yourself can you create good artworks that the public will understand and appreciate. If you don’t do the job in earnest, you’ll never persuade anyone. That’s why it’s so important to study. To reach a certain level of Saeghim Art, you have to make an effort to study the so-called humanities as well as the latest trends in modern art.” Goam has expanded the scope of seal engraving from its previous focus on Chinese characters to include Hangeul letters and graphic images. He has paved the way for the creation of countless variations and applications of his art by combining engraving with calligraphy, industrial design, and even animation. He has modernized the traditional, old-fashioned craft, for which most people had little appreciation, and given it a distinctive beauty by applying the methods associated with mass media. Those who do not understand him could think of him as merely a designer who has abandoned tradition to venture along his own path. “In the past I engraved mostly Chinese characters and was quite famous as an engraver of Chinese script, though many people mistook my work for ordinary seals. Then suddenly one day, I asked myself, ‘If I’m an engraver of Chinese characters, what’s my real identity?’ It dawned on me that I should look to our own culture, that I should find my own originality. That’s when I decided to reinterpret Hangeul. After all, Hangeul is the greatest product of our wisdom and intellect, isn’t it?” Goam said. Through his engraving, Goam came to realize the potential of Hangeul becoming a global alphabet. After all, art is an endless process of drawing the past into the present and jumping into the future. He found that the path for the art of engraving lies in globalizing the Korean formative language in the 21st century and building a bridge between the past and the future. “Think of shaman rites or ancestral memorial rites. On these occasions we hang up banners, cloth, and pieces of paper bearing various forms and patterns. That’s because of our desire to communicate with heaven or the spirits. Does it help you understand my work better to say that the whirlwind or comb patterns in my artworks are expressions of the desire to talk honestly with today’s lonely people?” Goam sa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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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eul’s New Energy for Hallyu Born in Naju, South Jeolla Province, Goam began to work for a living after completing middle school. Born into poverty, he knows what it means to be ragged and hungry. Therefore, he is naturally neither arrogant nor greedy for money. “I don’t know the limits, because I’m not well-educated. I would never have started this kind of work if I had an advanced degree from a prestigious university. Fortunately, I don’t know the limits because I had little schooling. Everybody is busy using up their energy while envying and being jealous of others. But I don’t know how to do that,” he quipped. Goam asks his students not to compare him with university graduates or famous people. This is because he believes that a person who succeeds in finding his own world will have nothing to envy. He despises those who wield power, using art as a tool. Being self-taught and having created his own art form is proof that he is right, he said proudly. Goam’s work is arousing interest far and wide. Experts from China, which has a much longer history of engraving art, are visiting his studio as well as art critics, who have studied Western art history. “After carefully looking at my works, they ask me about my source,” Jeong said. “They suspect that I’ve copied some prototype. I tell them, ‘This is my own creation.’ But they don’t believe me. This proves the excellence of Hangeul as a script. I’m dreaming of taking the Korean Wave [the popularity of Korean pop culture overseas] to a higher level through Saeghim Art.” Certainly it is Goam’s dream to have Saeghim Art sweep over the whole of China, birthplace of the art of seal engraving. He said he saw potential for this about 10 years ago when he held an exhibition in China. He keeps working with a mind to take on any and all challenges. “I found my roots in ancient rock engravings. I saw my heart in old folk paintings. I call folk paintings ‘paintings of happiness’ in that they are supposed to make you happy and bring you good fortune. These are the goals of Saeghim Art. They are images of engraved letters that are fun to look at and have stories to tell! That’s what I want to show you,” he sa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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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G goam 새김아트 창시자 (2006) 극동대학교 환경디자인 교수역임 현) 한국전각예술원 원장 현) 한국미술협회 자문위원 1989~2016 2016 2015 2014 2013~2014 2010 2008 2002~현

개인전(35회) 및 단체전 110여회 벨기에 브뤼셀 주유럽연합 한국문화원 특별초대전 대한민국 서예대전 심사위원장 청와대 신년인사회 무대작품 양평군립 미술관 가족일기전 행정자치부 장관표창 개천절, 한글날 경축식 무대,실외 작품디자인 이스탄불 아트페어 대표작가(AnB 갤러리 초청) MBC방송연예대상 예술원작가 제5회 서울드라마어워즈 예술감독 베이징올림픽 타이틀 애니메이션(MBC) 초, 중, 고 국정교과서 작품수록

Founded<Saeghim art >(2006) Professor of Environment Design at Far East University, Korea Korea Jeonggak the Art Academy, director / present Korea Art Associatoin, Consultant / present 1989~2016 2016 2015 2014 2013~2014 2010 2008 2002 ~ present

35 private exhibitions and 110 team exhibitions Korean Cultural Center Brussels Art Competition jury president of Korea New Year Event by the Korean Government (the Blue House) stage work Yangpyeong-gun art museum Ministry of Government Administration and Home affairs The National foundation Day of Korea, Hangul Proclamation day stage design Representative artist in Istanbul Art Fair(invitee of AnB Gallery) Original artist for MBC TV awards 5th Seoul Drama Awards art director Beijing Olympic Title Animation (MBC) Art pieces included in the government-designated text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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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Edition 정 고 암 저자Author 편집인 편집Edit&Production 발행처Publication 등록번호Registration NO. 연락처 Contact 홈페이지 URL SEOUL, KOREA Editor

정고암 JEONG goam 곽숙경 KWAK, SookKyung zibook 지북미디어 zibook media 제2016-000019호 +82 2 3453 6220 zibook@naver.com www.zib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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