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TONG ] 2014년07월 / 저만 불편한가요 (페이스북①) / 제4권3호(02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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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주년기념교회 20대 청년들의 통하는 이야기

2014년 여름호

:저만 불편한가요

에는 없는 이야기 ①


목차 Intro•우리 함께 불편함을 이야기하자•박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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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교역자 칼럼•김종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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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t 1.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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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그 자리에 누워 보는 겸허함•이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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❷ 계파에 대한 소고•여의도에 서식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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❸ 동성애, ‘좋아요’와 ‘싫어요’ 사이•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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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t 2.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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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나 자신의 불편한 부분에 대하여•(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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❷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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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t 3.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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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친교실: 외로움과 공허함의 공간•(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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❷ 뜨겁게 말하는 ‘하나님의 계획하심’•배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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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칼럼•노은지

39

❷ 교역자 칼럼•이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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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20대 청년 여름 수련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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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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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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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제6권 30호 발행처 20대 청년부(club.cyworld.com/fresh100, www.facebook.com/100Tong) (121-885)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진길 46 발행일 2014년 7월 13일 편집 송우리, 전은주 교정 박재 훈, 배온유 기획 20대 청년 홍보팀(iyyag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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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시작하는 글

“우리 함께 ‘불편함’을 이야기하자” 글 / 박재훈 기자

| 그리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확실히 배우게 되는 한 가지가 있다면, 내가 가진 상식(常識)이 남들에게는 상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 나에게 그것이 왜 상식인지 설명하라고 한다면 참 어려운 일이 되겠지만,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그러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던 것들에서 사람들의 의견차를 발견하게 되면 당황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그것이 ‘개성이나 성향, 선호의 문제’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아이 참, 독특한 사람 다 보겠네”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 의견차가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하는 문제’에서 발견될 때면, 나는 “내가 잘 못 살아온 것인가, 아니면 저 사람들이 잘 못 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큰 고민에 봉착하게 된다. 모르긴 몰라도, 분명 나만 느끼는 어려움은 아닐 것이다. | 가까운 과거에만 하더라도 서로 만나고 소통하는 주변 사람들의 대부분이 같은 지역에서 나고 자라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보니 이 문제가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십수년간 통신 기술과 교통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함에 따라 사람들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이 문제는 더 이상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내가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다른 환경과 오늘 날의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일을 하면서- 인터넷의 글을 읽으면서- 이른바 ‘상식의 미스매치’를 심심치 않게 겪게 되는데, 대부분의 경우에는 특별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마음 한 구석 ‘불편함’을 쌓아 두게 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미스매치가 단순한 불편함에서

관계 속에서 살아 온 사람들과 쉽게 만나고 함께 공부하며 함께 일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터넷을 활용한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 깊숙이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이 불편함을 어떻게

생활’이 일반화되면서, 오프라인에서는 ‘차마 하지 못할 말들과 행동’을 서슴치

다뤄야 할지 모른 채로 시간이 흐르다보니 ‘옳고 그름의 문제’에 대해 둔감해져 가고 있다. •Photo

않는 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특이하고 자극적인 컨텐츠가 더욱 더 빠르게

by 이선민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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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시작하는 글 |

전파되는 온라인의 특성상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훨씬 많이 일어나는 것처럼

최근 우리는 세월호 참사, 지방 선거, 내각 개편, 브라질 월드컵 등을 지나 오면서

느껴지게 되면서, 사람들에게 이 문제는 날이 갈수록 더욱 어려운 숙제가 되고

온 민족이 함께 고민하고 함께 결정하고 함께 감당해야 할 일들을 연이어 겪었다.

있다.

그 가운데 어느 누군가는 헤게모니를 점거한 승자로 살아 남았다 자부하지만, 그 |

가운데 또 어느 누군가는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피력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이렇듯 오늘날의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일을 하면서‐ 인터넷의 글을

누구의 의견이 정말 진리인지 가름해 볼 겨를도 없이 상처받고 고개 숙여야만

읽으면서‐ 이른바 ‘상식의 미스매치’를 심심치 않게 겪게 되는데, 대부분의

했으리라. 그리고 그렇게 수많은 페북 포스트들을 비롯한 뉴스들과 베플(인기

경우에는 특별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마음 한 구석 ‘불편함’을

댓글)들이 내 시야를 정신없이 교란시키는 사이, 내 머릿 속에서는 ‘판단’을

쌓아두게 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미스매치가 단순한 불편함에서 그치지

기다리는 많은 일들이 ‘무책임과 무관심으로부터 발현된 귀차니즘’과 ‘알량한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 깊숙이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이 불편함을

민주주의—합리주의적 상대주의’에 묻혀 기억 저편으로 소멸되지는 않았는가.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른 채로 시간이 흐르다보니 ‘옳고 그름의 문제’에 대해

|

둔감해져가고 있다. 매 순간 일어나는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는 것이 어렵다

이제 우리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해 보자. 사회 변혁이니 민주주의의 완성이니

보니,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고민하고 용기내어 상황의 전환을 시도하기보다는

하는 거창한 이유가 아니다. 일상적으로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고, 매일 같이

불편함과 찜찜함을 감수하더라도 그저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상대주의적 평화’

수만~수십만명의 ‘좋아요’가 달린 글에 내 ‘좋아요’를 더하고, 누군가로부터

를 택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다. 하지만 다수결 판정으로 어느 쪽이 선택 받건

배달된 ‘퍼온 카톡 메시지’들을 읽고 나르며 만성적인 몸살에 빠져들고 있는 ‘나

간에 그것과 상관없이 분명히 ‘옳은 판단’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의 영혼을 구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저 지나쳐도 좋을 인터넷에서 만난

있다. 이 문제가 ‘진리를 믿고 따른다’고 주장하는 크리스천들에게 더욱 중요하게

익명의 누군가로 인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함이 아니다. 내 사랑하는 가족과

다뤄져야 하는 까닭이다.

친구들, 존경하는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언제 드러날지 모를 ‘미스매치’를 무책임한 평화주의로 덮어버리지 않기 위함이다. |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불편하게 하였는가’, ‘그 불편함의 원인은 무엇이며 과연 나는 그 책임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운가’. 우리 함께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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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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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바람 글 / 김종필 목사

그때부터 저는 습관이 하나 생겼습니다. 제 영혼을 스쳐 지나간 ‘아픈 바람’ 의 여운을 붙들고, 내게 남겨진 ‘불편한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이었지요. 그냥 내버려 두면 또 아플 것 같았습니다. 그 바람은 어디서 불어온 걸까, 어떤 강도로 휩쓸고 지나갔는가, 왜 나는 그 바람을 피하지 못했을까, 하나님 앞에

|

탄식하던 시편의 시인처럼 기도와 탄식이 뒤섞인 일기를 기록하는 습관이 시작된

1995년, 군대에서 막 제대한 저는 중고 자전거를 하나 구입해서 ‘다크호스’

것입니다. 유능한 친구들의 진학과 취업 소식을 들으면 강풍이 붑니다. 공동체

라고 이름 붙이고는 밤마다 운동 삼아 타고 나가곤 했습니다. 어느 밤, 한강 다리

안에서 외로움이 찾아오면 쓸쓸한 바람이 지나갑니다. 부모님으로부터 호된

중간에 자전거를 멈춰 세우고 불어오는 강바람과 오래 마주 선 적이 있습니다.

꾸지람을 들으면 허리케인이 휩쓸고 지나갑니다. 말에 실수가 생기고, 책임을

그 때 제 귓가를 스쳐 가는 노랫말이 하나 있었습니다.

제대로 못 지고,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자신에게 실망감이 쌓이면 사방팔방에서 아픈 바람이 불어오고 스쳐갑니다.

홍순관, <어떤 바람> |

| 마음이 불편해진 건, 분명 어떤 바람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그

바람은 보이진 않지만

바람이 무섭고 미웠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니, 대개의 바람은 성령님의 흔적인

나무에 불면 녹색바람이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순결의 바람이 내 안에 불어오니, 더러운 제 영혼이 아픈

꽃에 불면 꽃바람 되고요

거지요. 촉촉한 단비를 몰고 성령님이 지나가시니, 가물어 메마른 땅이 이질감을

바람은

느껴 저항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불편한 마음’은 바람이신 성령님께서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지나가시며 게으르고 이기적인 우리를 흔들어 깨우기 위한 흔적이라고 생각합

어떤 바람 됐을까

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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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고난 주간부터 불기 시작한 세월호의 바람이 아직도 후폭풍처럼

방금 나를 지나간 그 강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그 바람에 이름을 붙인다면

제 영혼을 흔들고 있습니다. 허위와 가면을 날려버리고 흉측한 시대의 민낯을,

어떤 이름이 될까? 몇 가지 작명을 시도해 보았지요. 녹색바람, 꽃바람 같은

욕망으로 치닫는 교회의 생얼을, 그리고 용기 없는 무색무취의 제 자신을

낭만적 이름은 아니었습니다. 되레 칙칙한 바람, 우유부단한 바람, 무색무취의

고스란히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크고 작은 바람이 어제도 오늘도 제 영혼을

바람, 외로운 바람, 비겁한 바람… 제 병든 마음 속을 헤집다가 사라진 ‘아픈

스치고 지나갑니다. 불편하고 아픕니다. 그렇지만 거기서 성령님의 흔적을

바람’이 더 잘 어울렸습니다.

찾습니다. 그러면 아픈 바람이 실은 치유의 바람이었음을 알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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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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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그 자리에 누워 보는 겸허함 글 / 2403구역 이병선 형제

| 『미니모 모랄리아』로 유명한 철학자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의 서정시는 야만’이라는 이야기로 홀로코스트에 대한 감정을 드러낸 적이 있습니다. 후일 아도르노는 그 어구의 의미전달이 많이 왜곡됐다며 해명을 별도로 하기도 했습니다만 우리가 통상적으로 기대는 그 의미로 4월 16일 이후를 사는 모두에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세월호 이후의 서정시는 야만이다.” | 홀로코스트와 비교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비약의 위험을 안고서라도 이같은 표현을 쓴 것은, 저를 비롯해 이 사회가 앓는 병증에 공감 능력 결여라는 심각한 숙고의 대상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숙명여대 김응교 선생님의 저서 『그늘(Shade)』에 보면 시인 윤동주에 대한 생각을 ‘타자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레비나스와 연결지어 이야기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병원>이라는 시가 있는데요, 앓고 있는 여인, 앓고 있는 ‘나’의 회복을 바라는 시이지요. 윤동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을 이렇게 맺고 있습니다.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 그 자리에 이미 여인은 없습니다. 여인이 누웠던 자리만 남아있지요. 그런데 시 속의 화자인 ‘나’는 그 자리에 가서 누워봅니다. ‘나’는 영원히 그 여인과 한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은 완전히 일치하는 시간과 공간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여인이 누웠던 자리에 가서 누워 본들 여인이 누웠을 때와 같을까요? 아니겠지요. 윤동주는 이렇게 영원히 동시에 한 자리에 함께 할 수 없는 ‘타자성’을 밝히고 있습니다. 11


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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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나’는 그 자리에 누워봅니다. 더 이상 그 자리에 가슴을 앓던 여인의

진도 앞바다에 거대한 슬픔을 묻은 지 석달여를 지내며 추악한 얼굴을 많이

온기가 남아있지 않더라도, 심지어 싸늘할지도 모르는 그 자리이더라도, 그

대합니다. 그것은 타인의 얼굴입니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거울

자리에 누워 그이의 온기를 상상해 보고 그녀가 보았을 풍경과 심정을 그려내려

속에 반대로 비치는 자신밖에 볼 수 없는 우리는 또한 영원히 타인의 얼굴에서

애씁니다. 레비나스는 ‘나’가 눕는 ‘여인이 누웠던 자리’를 ‘흔적(trace)’이라고

나를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 추악함은 저의 추악함일테지요. 세간을

표현합니다. ‘흔적’을 설명하기 위해 자주 인용되곤 하는 비유가 ‘눈길에 찍힌

뒤덮은 총체적인 괴물성 안에서 이 추악함은 때로 너무 당연해 보입니다.

발자국’인데요. 한 번 지나가버린 발자국은 눈이 다시 쌓이게 되면 처음과 같을

어디에서 가능성을 찾아야 할 지 막막해 보이고요. 그럼에도 어디선가 그 가능성을

수 없습니다. 무언가 달라져 있지요. 그것이 ‘흔적’입니다. ‘흔적’은 처음 그

찾아야만 하겠다면 아마도 ‘그 자리에 가서 누워 보는 것’이 될 것입니다.

순간과 같지 않기 때문에 존재가 이 자리에 있다는 ‘현전(presence)’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윤동주의 ‘나’는 그 자리에 누웠다고 하더라도 여인의 흔적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그리 애쓰는 걸까요? |

| 실종자 가족들의 아픔, 내 자식이, 내 가족이 허망하게 곁을 떠났다는 그 자리가 내 자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을 이해했다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 될 것입니다. 오직 ‘흔적’밖에 만날 수 없는 내가 그 아픔에 동참하는

‘그 자리에 누워보는 행위’는 어찌 보면 참 안타까운 몸부림입니다. 그

것은 겸허함과 동시에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망설임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자연히

몸부림은 역설적이게도 더 이상 그 자리에 그 여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같은 모습과 거리가 먼 사람들을 향한 분노도 일겠지요. 어렵습니다. 아마

사실과 더불어 내가 온전히 그녀를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영원히 그 자리에 가 닿지는 못할 테지요. 그래도 망설임으로 그 자리, 쭈뼛대며

겸허함이지요. 그 같은 사실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타인에 대한 이해에 가 닿아

가 누워보고 싶습니다. 그 침통함에 대한 예의로 말입니다.

보려는 몸부림입니다. ‘공감’을 위한 몸부림이고요. | ‘나는 너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오만함을 자주 만납니다. 저 역시 쉽게 빠지는 함정이고요. 공감이라기보다는 시혜자의 입장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의 권력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윤동주의 ‘나’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섣불리 그녀의 고통을 단언하지 않은 채 눈을 맞추어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려는 겸허함을 갖고 있습니다. 비록 영원히 ‘잡히지 않을’ 타자일지라도 그에게 공명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공감보다 경쟁과 대결을 강조하는 사회 구조 안에서 이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그 노력을 쉽사리 배격하는 것 역시 바람직한 태도는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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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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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파에 대한 소고: 한국 정치와 사회 암호화 해제함 글 / 여의도에 서식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

꿈자리도 뒤숭숭하던 6월에 급작스럽게 다가온 월드컵은, 큰 기대를 하지도 않았지만 1무 2패의 실망스런 국가대표팀 성적으로 일단락되었다. 성적보다 더 실망스러웠던 것은 선수 선발 및 기용을 둘러싼 잡음이었다. 분명 박주영은 뛰어난 선수였지만(프랑스 리게앙 꼴찌팀에서도 열골 이상은 꾸준히 넣어주었고, 아스날에 가지 않았더라도 리그 최상위권인 릴에서 스트라이커로 뛸 재목이긴

|

했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경기를 거의 뛰지 못했고, 실전감각과 실력, 의욕

한국의 정치 내지는 사회와 관련된 글을 써달라고 부탁받았을 때, 머릿속에

모두 바닥을 쳤다. 그럼에도 홍명보 감독은 박주영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았고,

떠오른 한 권의 책이 있었다. “이런 남자 절대 만나지 마라” 학교 도서관 서가에서

이른바 ‘의리’축구를 선보이며 그를 꾸준히 국가대표 선발로 기용했다. 러시아전

우연히 꺼내든 그 책은 여러 군상의 남자들을 보여주며, ‘결혼 전에 힌트

결승골을 터뜨린 이근호나 알제리전에서 맹활약한 김신욱이라는 걸출한

주는’ 피해야 할 남자들을 요목조목 따지고 있었다. 도박하는 남자, 마초적인

공격수들이 있었음에도,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박주영을 고집했다. 그것은 비단

남자 등등..어떻게 보면 당연한 항목들이었다. 그런데 중요한건, 개중에 ‘

홍 감독의 학연 뿐만 아니라, 축협 내부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결과였다. 그는

지나치게 뉴스를 잘 알고 있는 남자’도 있었다는 것이다. 으잉? 싶겠지만 책의

매 경기 0골 0슛팅 0도움 1따봉(혹은 1미안)의 화려한 전적을 남기며, 쓸쓸하게

논지는 간단했다. 스스로에게 투자하지 않고 성실하지 않은 남자들은, 집에서

돌아왔다. 국내 여론이 어떠했는지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더 잘 아시리라.

뒹굴거리며 TV 리모컨만 만지작거리기 일쑤라는 것이다. 뉴스 속의 인물이나

|

사건에 감정이입을 하고 거대담론에 푹 빠져 자기 자신이 대단한 존재라도 된 양

사실 월드컵 이전까지, 국대 축구팀에서 가장 큰 욕을 먹었던 것은 박주영이

착각하지만, 현실적으로 생활력이 부족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던 그 말이 마음에

아닌 기성용이었다. 감독은 묵직해야 한다던가, 니들이 뛰던가, 식의 거침없는

박혔다.

발언을 일삼아 욕을 먹었던 그는 그렇지만 이번 월드컵에서는 비난의 대상이 |

아니었다. 왜? 그건 기성용의 실력이 좋기도 했지만, 그를 대체할 만한 다른

이미 한국의 정치 문제,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청년들은 개론적인 수준의

선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그래도 열심히 뛰어줘서 고맙다,

글을 읽는다고 큰 흥미를 느낄 것 같지 않다. 반대로,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는

라는 것이 전반적인 국민들의 정서였다. 반면 박주영은 미운 소리 하나 한

많은 청년들(특히 교회 다니는 청년들!)에게 개론적인 글은 오히려 흥미를

것이 없지만 국민들의 원성의 대상이 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이전 월드컵에서

떨어뜨리고, 앞의 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기 앞가림 못하면서 ‘구름 위를

황선홍이나 이동국 같은 공격수들이 일시적으로 부진했을 때 들었던 원성과 같은

걷는’ 주장을 한다고 느껴질 것이다. 그러니, 우리 곁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류가 아니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 단지 ‘인맥’

말랑말랑한 이야기부터 풀어나가자. 월드컵의 계절이니, 축구 어떨까?

과 ‘계파’의 힘으로 올라갔을 때 주변에서 느끼는 박탈감에서 나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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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성용은, 아무리 재수 없어도 그 실력을 인정했기 때문에 그렇게 까임의 대상이

똘똘 뭉쳤을 것이다. 나와 다른 종족, 부족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다 나보다 더 약한 부족은 정복하고, 강한 부족에게는 |

조금 더 본질적인 질문으로 들어가 보자. 사람들은 왜 파벌을 형성하는 것일

공물을 바치며 화친을 맺었을 것이다. 강자는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는 이에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며 정치적 권력 강화를 누렸을 것이다.

까? 반칙 없는, 원칙에 충실하고 실력에 기반한 공정한 시스템이 민주자본주의

|

사회가 지향하는 방향 아니던가?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다시

내가 계파 없는, 능력 위주의 사회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자라온 환경,

이렇게 물어보자. 쓸데없이 술 마시고 파벌 만들 시간에, 자기 분야의 기술을

받은 교육과 관계있을 것이다. ‘착각하지마, 친구는 너 대신 공부해 주지 않아.’

연마하고 공부하고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일아닌가? 그런데 왜 사람들은

유명한 모 인강 사이트의 광고 카피는 사람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지만, 이 나라의

끊임없이 파벌을 만드는가?

교육이 어떠한 가치위에 서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우리는 스무살, 그리고 |

스물 다섯 여섯이 되도록 ‘너만 공부를 잘하면 되는거야’ 라는 메시지를 듣고

이것은 내 삶에 있어서도 실존적인 고민이었다. 대학생 시절에는 마음 맞는

자라났다. ‘공부 먼저 해. 공부해야 살아남아. 실력이 있어야 해.’ 사람을 사귀고

사람들과 어울려 지냈고, 내 앞 날을 준비하는데 시간을 쏟으면 충분했기에 저런

관계 맺는 능력이 부족한 채로, 우리는 공부하는 기계로 길러졌다. 그런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늦깎이로 군에 입대했을 때,

사회에 나와 보니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실력보다 중요한 것은 인맥이고, 계파일

나와는 전연 다른 배경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회사에

수 있다는 현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오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상대적으로 젠틀한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회사 내의 학연으로 이어진 계파 정치 라인은 공고했다. 남자들은 유흥문화를 즐기며 서로가 같은 라인임을, 형과 아우로 맺어진 관계임을 거리낌 없이 밝혔다. |

| ‘능력 위주의 사회’라고 하는 것은, 기득권에 포섭되지 못한 신진 계층이 개혁을 주장할 때 늘 들고 나오는 기치였다. 고려말 문벌귀족들의 계파에 항거하여 나온 신진사대부도 과거제도의 정비를 통한 개혁을 추구했다. 봉건제가 무너지고

사실, 내 질문은 근원적으로 잘못된 것이었을지 모른다. 사람들이 계파를

왕권으로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진 근대 초기의 유럽에서도 혈통에 의해 승진이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내 질문은, 어떻게 인류는 ‘계파를 만들지

막혀있던 이들이 관료가 되어 지위상승을 꿈꾸었다.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

않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는지’가 되었어야 했다. 아담의 타락 이후 인류는 성을

독립전쟁은 그 클라이막스로서, 개개인의 능력 발현과 자아실현을 억압하는

쌓고, 자신의 계파를 공고히 하며 다른 계파를 숙청하는 삶을 일상으로 살아왔다.

제도를 뒤엎으며 자유를 선포했다. 우리는 그 세대의 후손이기 때문에, 세상이

라멕이 그러했고, 사울이 그러했으며, 요압이 그러했고, 아합이 그러했다. 초기

점점 진보하고 있고 개인의 자유가 확장되고 있다고 착각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구석기 시대부터 인류는 맹수, 추위, 외부의 위협 앞에 자기 부족을 지키기 위해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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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문제는, 이처럼 계파를 넘어선 능력 위주의 사회는 자본주의 시스템과

정치를 종결시키는데 일조했음에도, 평등과 박애의 가치를 통해 교정되고 견제

함께 맞물려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가능케 했지만, 동시에 기존 공동체적 농경

받지 않으면 도리어 증오의 정치, 계파의 이합집산을 불러올 수 있으니 말이다.1)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에게는 상실감과 소외감을 안겨주기도 했다는

|

것이다. 힘을 모아 돌아가며 서로의 밭일을 대신해주던 농민들에게, 이러한

한국의 정치가 지긋지긋한 이유는, 이 나라의 정치가 이념이나 실용, 국민의

급격한 사회변화는 기존 공동체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전 세대에게는

복지나 국가의 미래와는 상관없이, 오직 이 ‘계파의 정치’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기

진보로 여겨졌던 것들이, 그 다음 세대에게는 고루한 물질만능주의로 여겨질 수

때문이다. 문창극 사태로 대변되는 인사 시스템을 보라. 그 배후를 움직이고 있는

있을 것이다. 심지어 도시로 진출한 신흥 중산계층조차도 이러한 관계에서의

실세들의 요란한 발놀림을 보라. 경제민주화를 이루겠다고 주창하던 현 정권은,

상실감을 느꼈는데, 원래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장례식 비용을 아끼라’고 이야기했다. ‘경제민주화’와

성공, 근면, 저축, 능력을 인정받는 것만으로 사람은 만족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관련된 정책은 단 하나도 시행된 것이 없다. 그렇기에, 이 지면에서 ‘경제민주화의

인권이 보장받았다는 안정감, 타인과의 우애, 소속감, 사랑이 필요하다.

필요성’을 논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들에게 이념, 혹은 사상이나 정책의

| 그렇기에 프랑스 대혁명은 기본적으로 자유, 평등, 박애의 세 가지 가치를

실효성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국민들에게 묻는 질문은 단 하나이다. “너는 우리 라인 사람인가? 내 밑에 들어올 것인가?” |

함께 주창했다. 무한한 자유 추구는 개개인에게 각자의 능력을 발현할 기회를 줄 순 있지만, 경쟁의 격화 속에 결국 인권과 사회의 공동체성이 쇠락할 수 있다는

이 글을 쓰는 동안, 전교조는 법외노조가 되었다. 현 정부는 다시금 자기

것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서로 긴장관계에 있는 이 세 가지 덕목을 함께 추구할

계파를 챙겨주며, 자신의 계파 안에 들어오지 않은 이들을 ‘종북좌파’라는 딱지를

때에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함께 발전할 수 있다. 우리가 학창시절 겪어왔던,

붙이며 적대시한다. 대학생 때는 젊은 혈기로 욕할 수 있지만, 사회 생활을

마치 배틀로얄과 같았던 살인적인 학업 경쟁은 결국, 평등과 박애 없는 경제적

조금 해보면 알게 된다. 모난 돌은 정 맞는다는 것을. 페이스북에 글 하나 잘못

자유만을 가르쳤고 배워왔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기본적 인권과 정서적 욕구가

올렸다가 회사 생활이 꼬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충족되지 않은 채로 무한정한 능력 위주의 사회로 내몰리게 되었을 때, 그리고

광장에 촛불을 들고 나가는 것이 전부이지 않은가 하는 자조가 생긴다. 회사를

각 개인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그 사회에서 충분히 먹히지 않는다는

나가면 밥벌이를 할 수 있는 기술이 딱히 있지 않다는 현실에, 나는 내가 속한

좌절감이 들 때, 인간은 다시금 계파를 형성하는 것 같다. 그것은 안전에 대한

조직을 쉬이 떠날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결국, 내가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갈구일 수도 있고, 응어리진 분노를 풀기 위한 희생양을 찾으려는 시도일 수도

있든 말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나의 삶과 생활은 이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에

있다. 사회민주당이 당권을 잡았던 독일에서조차, 대공황의 충격 속에 많은

일조하고 있다. 저들의 저 완악한 방식에 손가락질하고 싶지만, 그러나 나 역시

이들이 나치즘을 신봉했으며, 극단적인 인종 청소를 자행한 것은 그 좋은 예이다.

자유롭지 못하다.

이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능력 위주의 사회의 도래가 계파와 학연, 혈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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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

| 그렇기에, 우리가 평생에 걸쳐 싸워야 할 한국 사회의 거대한 적은, 바로 이 계파주의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지역주의가 될 수도 있으며, 학벌주의가 될

동성애, ‘좋아요’와 ‘싫어요’ 사이 글 / 2301구역 이지수 자매

수도 있다. 매우 당황스럽게도, 수많은 예언자를 비롯하여 우리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마저 언제나 계파주의를 배척하시다 고난받으셨다. 그 분은 자신을

|

왕으로 삼으려던 사람들을 피해 도망가셨고, 충성의 댓가로 한 자리를 요구하던 제자들을 혼내셨다. 결국은 조직의 보호도, 안전도 받지 못하고 힘겹게 십자가를

몇 주 전, 교회에서 멀지 않은 신촌에서 올해로 15회째를 맞는 ‘퀴어문화

지셔야 했다. 나 자신을 비롯해 이 글을 읽는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 바로

축제’가 열렸다. 이번 축제가 특히 주목받았던 이유는 같은 시간 같은 거리에서 ‘

이런 길임을 믿는다. 나이가 먹더라도, 변하지 않고, 자신의 라인을 만들지 않고

동성애 타도’를 외치는 기독교인들의 맞불 집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공정한 사랑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

동성애자들을 병든 사탄이라고 손가락질했고, 또 한쪽에서는 동성애를 혐오하는 |

기독교인들이야 말로 치료 받아야 한다고 외쳤다. 서로의 인격은 안중에도 없었던

다만 나의 소망은, 죽기 전에 그러한 지도자를 이 나라에서 다시 한 번 만나

그 축제 아닌 축제는 결국 그 거리에 있던 사람 모두를 ‘환자’로 낙인찍고서야

볼 수 있는 것이다. 반칙 없는 사회, 특권 없는 사회를 꿈꾸고, 사람을 사랑하는

끝이 났다. 불편함을 끊겠다고 나선 것이 그만 더 깊은 골을 파는 꼴이 된 것이다. |

그런 지도자를 다시 만나 볼 수 있기를.

내게 동성애가 불편하게 다가오기 시작한 지는 2년이 좀 넘었다. 무심코 페이스북에 올라온 지인의 글에 ‘좋아요’를 누른 뒤 몇 시간, 가장 친한 친구에게서 문자가 날아왔다.

너도 그 글에 동의하는 거야? 왜 기독교인들은 동성애자들을 죄인 취급해?

| 순간 아차 싶었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좋아요’를 누른 그 글은 성경적 관점에서 동성애를 비판한 글이었다. 놀란 가슴에 다시 읽어 보았지만, 틀린 1) 이런 에세이에서 굳이 주석을 달고 싶진 않았지만, 이 문단에서는 뺄 수 없었다. 나치의 광기를 보면서 떠오르는 우리 나라의 모습 없나? 그래, 스스로를 벌레라고 칭하는 그 분들 말이다. 그 분들의 커뮤니티는 여느 극우주의자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이 글의 요지를 매우 매우 매우

구석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그 글에는 온기가 하나도 없었다. 성소수자를 향한 일말의 애정도, 존중도 없이 성경 말씀만 나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강화하는 좋은 예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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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

1년 뒤, 갓 사회인이 된 나는 아동청소년문학 출판사에 들어가 여러 가지 책을

이처럼 우리는 ‘동성애’라는 불편한 주제를 일상 속에서 빈번히 마주한다.

만들었다. 그러다 마주친 한 책이 있었으니, 바로 80년대에 출간되어 영미문단에

특히 동성애가 대중들 사이에 뜨거운 화두로 오르내리고, 미디어의 단골 소재로

큰 파문을 일으킨 동성애 소설, ‘내 마음의 애니(Annie on my mind)’였다.

등장하는 이 세대에는 더더욱.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람들인 우리는 동성애에

편집팀장님은 내게 이 책을 맡기기를 상당히 망설이는 눈치였다. “지수 씨, 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불편하지 않겠어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동성애 싫어하잖아요.” 나는 왠지 모를

|

오기가 생겨 그 문제의 책을 덥석 받아들었다. 호기롭게 시작한 편집은 다행히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생명을 잉태할

잘 마무리 되었으나 출판의 마지막 단계, 보도 자료 쓰기가 남아 있었다. 누구나

수 없는, 즉 ‘책임’을 간과하고 ‘쾌락’만 취하기 쉬운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셨다.

알고 있듯 보도 자료란 밑도 끝도 없는 찬사와 미사여구 몇 개를 늘어놓으면

아니, 이렇게 간단한 해답이 있는데 우리는 왜 그리도 동성애 이야기가 나오는

완성되는 무척 단순한 글이다. 평소에 쉽기만 하던 보도자료 쓰기가 내 발목을

것을 꺼리는 걸까? 결국 우리가 동성애를 ‘불편해’ 하는 것은 동성애가

잡을 줄이야! 기독교인으로서의 양심과 회사와의 으리 사이에서 갈등하던 나는

죄여서가 아니라 동성애를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이다.

결국 다음과 같이 글을 매듭지었다.

동성애자나 동성애 옹호자를 대하는 데 있어, 우리는 그들의 인격을 지켜 주고 |

“이 작품은 ‘동성애’냐 ‘이성애’냐의 가치 싸움보다는 어느 쪽이든 신뢰와 배려가 기반이 된 사랑을 지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제 막 성 정체성이 확립되는 청소년들에게는 성적 소수자들을 따뜻하고 건강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해심을 심어 줄 것이고, 동성을 사랑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자신감과 용기를 북돋워 줄 것이다.”

그들의 생각을 주장할 권리를 치열하게 존중하되, 동성애가 죄라는 진리를 선포하는 데에는 물러섬이 없어야 한다. 이재철 목사님은 이것을 ‘흡연자의 권리를 지켜 주되 담뱃갑에 경고 문구를 빠뜨리지 않는 것’에 비유했다. | 언제쯤 우리는 동성애자들, 나아가 성소수자들과의 불편한 관계를 청산할 수 있을까? 아마도 기독교인인 우리가 ‘좋아요’와 ‘싫어요’ 사이에서의 미적지근한

| 중립을 지키려 애썼으나 결국 비기독교인 대중 편으로 기운 보도자료였다.

방황을 끝낼 때, 성소수자들을 위한 ‘기도’와 ‘사랑’을 먼저 선택할 때, 그때서야 그들과 우리는 한 식탁에 마주앉아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동성애를 죄로 명시한 하나님의 말씀에 망설임 없이 ‘좋아요’를 누르던 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남의 시선이 무서워 동성애 앞에 꼬리를 내린 부끄러운 모습만 남은 것이다. 이렇게, 동성애를 향한 나의 불편함은 커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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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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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없는 이야기 ①

저만 불편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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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나 자신의 불편한 부분에 대하여

관계들도 세세히 들여다보면, 여전히 한 쪽 구석에 스스로 만들어낸 부담감

글 / (익명)

|

(스트레스)을 쌓아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고민이 든다.

이런 나의 특성들을 처음 받아 들였을 땐 참 많이 억울했다. 이 불편한 점을 |

‘떼려야 뗄 수 없는 나’로서 인정하고나니, 당장 내가 속해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불편함’을 고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내 성격, 나에 대한 것이었다.

무한경쟁사회가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살면서도

올해로 서른을 맞는 나는 살아오면서 부모님, 친구들, 군대 동기들, 선생님과

문제없이 잘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나만 불평이 많고 주체적이지 못한 사람

같은 가까운 사람들은 물론, 심지어는 한의사나 미술치료사 지망생에게서도

같아 보였다. 겉으로는 소탈해 보이지만 마음 한켠에는 스트레스의 짐을 늘여만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 있는 것 같다는 소리를 들어왔다. 또 게중에는 나 스스로가

가고, 사람을 대하며 매사에 쿨 하게 지내려고 노력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얼마만큼 스트레스를 쌓아두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소심함을 들키게 된다. 내가 가진 장점들을 능수능란하게 살려 인생을 화려하게

있었다. 처음 이런 스트레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땐 자존심이 상하기도

꾸려 나가고 싶지만, 이러한 나의 단점에 발목 잡혀 뜨뜻미지근하게 살고 있다는

하고 크게 와닿지 않아 그냥 흘겨 들었었다. 그런데 스물여덟살 이후에는 그런

상실감마저 들었다. 다시하는 말이지만 너무 억울했다. 출발은 공정하게 같이

이야기들이 조금씩 마음에 와닿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나는 나 스스로를

했지만, 나만 운동화 사이즈가 맞지 않는 지도 모른 채 출발한 비운의 마라토너

불편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같아 억울했다. 사실, 교회에 다니기 전까지는 그냥 그러려니 하는 마음 반,

| 처음에는 가부장적인 가정의 장남으로 살면서 가족들의 기대감에 대한 무게를 이기지 못해 소극적인 성격이 된 것이 문제의 뿌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바람을 채워드리는 일이라면 나에게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살아서 뭐하나 하는 마음 반이었다. 내가 나의 이런 특성을 떼어내려 노력한들 내 힘으로는 절대 떼어낼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평생 이 짐을 지고 살아가다 허무하게 생을 마감할 것이라 생각했다. |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억지로 노력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렇다보니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물론 내 힘으로는 나 스스로를 불편하게 하는

많은 실패도 겪어야 했다. 예컨대, 반장은 많이도 맡아봤지만, 리더십을 발휘하는

이 특성을 떼어낼 수 없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스스로를 불편하게

것에는 어려움을 느껴 반장일을 잘 해내지 못하거나 속앓이를 하는 식이었다.

하는 것’이라 여겼던 내 특성이 내 삶에 미치는 영향으로서의 ‘의미’가 조금씩

|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3년 동안 나는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고 교회식구들의

다행스럽게도 대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어느 정도 주체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고,

삶나눔을 들으며, ‘어쩌면 나도 혹시 그 구원(하나님이 나에게 바라시는 어떤

군대를 전역한 후 직장인으로서 살아가는 지금에 와서는 사회에서나 교회에서나

것)을 받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하는 희망이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희망에

부족함 없이 원만한 인간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내 인간

내가 살아온 인생을 비추어보자, ‘나를 스스로 불편하게 하는 것들’이라 여겼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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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특성들이 ‘내가 하나님과 구원을 고민하기 이전에 인생을 우쭐대며 살지않게 해 준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불편함’이라 여겼던 것들이 어쩌면 ‘구원을 향한 깊은 의미가 닮긴 교육’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관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글 / (익명)

| 물론 이런 나의 모습이 나 스스로의 단점을 해결하지 않으려는 나태함으로

|

비춰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를 스스로 불편하게 하는 것들에 대한 당장의

나는 한 가정의 장녀이자 막내로 태어났다. 그리고 그 가정 안에서 어렸을

해결책이 없으니, 그것들이 나를 힘들게 할 때마다 그것들을 ‘나를 하나님께로

적부터 많은 풍랑을 겪었다고 자부하는 한 사람이었다. 자랑할 것도 자랑치 못할

인도하는 방향 판’으로 여기며 살아가면, 내게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을 지언정

것도 아니지만 우리 가정의 질곡 많은 가정사를, 그리고 그러한 가정사 속에서 내

나중에 특별히 손해 볼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임시방편을

자신이 딛고 일어났다는 사실을 항상 훈장처럼 여기고 있었다. 부모님의 이혼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준비해야겠다.)

재혼, 그리고 폭력 가운데서 제 3자가 봐도 나는 참으로 잘 자라준 아이였고

|

나는 그런 스스로를 가정 밖에서는, 가족이 아닌 제 3자 앞에서는 참으로 떳떳해

“내게 이것만 없었다면, 정말 더 잘 살 수 있었을 텐데….“라는 불편함. 어쩌면

했었다. 하지만 가정 안에서의 나는 실상 그러하지 못하였다. 여전히 우리 가정은

내 야망과 욕심을 이루기 위한 부족함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를 만든 하나님이

피해자투성이였기 때문이다. 가해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돌아보려 하기보다

‘나의 목자’되시며 그 분께서 ‘부족함이 없다’ 하셨으니, 부족함이라는 것도

피해자로서만 자기 자신을 인식했던 우리 가정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들의

어쩌면 그 분안의 나를 이루는 완전함의 일부가 아닐까.

상처를 드러내기에 급급했다는 사실이다. ‘너도 아팠겠구나.’라는 공감과 이해의 과정이 부재한 채, ‘내가 더 아파. 그러니 나에게 집중해.’가 먼저였다. 어쩌면 가장 가까운 상대에게 자신의 상처가 인정 받아 주길 원했었던 것 같다. 그러니 하루가 지날수록 우리 가정 안의 골은 더욱 깊어질 수 밖에 없었다. | 어느 날이었다. 우리 가정에서 가장 고귀한 척 뽐을 내던 내가 더 이상 참을 수 없겠다는 듯이 가족들에게 말을 했다. 나도 이제 참을 만큼 참았다고, 언제 한 번 내 아픔은 돌아봐 준 적이 있었냐며 말이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다 잊으려고 했는데 왜 자꾸 기억하게 만드냐며 화를 냈다. 한번 시작된 분노는 마치 폭풍이 몰아치는 듯 했다. 난 항상 우리 가정 안에서 웃는 얼굴이었고, 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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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 딸이었으며, 아픈 내색조차 하지 못하는 존재라고 내 스스로를 여겼다. 그래서 그

이 세상엔 어느 누구도 take만 할 수 없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동안 고스란히 축적되어온 내 안의 분노가 터지자 절제할 길이 없었다. 집 안에서

give만도 할 수도 없다. 연인과의 관계에서 take와 give가 적절히 이루어져야

몰아치는 폭풍은 가실 길이 없었고, 내가 분노하는 날에는 한동안 집 안의 평화는

건강한 관계를 유지 할 수 있다고 하듯이 가족 관계 또한 마찬가지임을 느낀다.

찾을 길이 없었다.

관계라는 것은 결국엔 혼자만의 상상과 행동으로 결과물을 도출해 낼 수 있는 |

우리 가족의 (여전히) 아픈 기억에 대해 써 내려가 보았다. 이 글을 적어가며

것이 아니라, 상호 작용을 통해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사랑함도 미워함도 말이다.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가족 중에서 가장 이기적인 것은 내가

|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적부터 혼자 다 참아왔다고 하지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고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내 가족을 내

집 안의 막내이자 사랑을 독차지하는 존재로 그 누구보다 사랑을 받아오며

몸과 같이 사랑하라.” 가 나에게 있어서는 첫 번째 주님이 주신 관문인 듯 하다.

자라왔다. 그리고 가족들은 가장 사랑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나의 존재를

내 가족조차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한 채 내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한다 고백하는

보호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 노력해 왔다는 사실을, 나는 지금 이 순간 글을 쓰며

것은 모순이기 때문이다.

깨닫고 있다. 그들의 사랑은 날 ‘누가 봐도 잘 자라준 아이’로 성장하게 하였다. 만약 그들의 사랑이 없었다면 난 지금의 ‘나’로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 여태껏 나는 잘 변화하고 있기에 다른 가족들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

| 나에게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어 주신 이 사람들을 한 평생 사랑하는 존재로서 더욱 아끼며 사랑하기를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하늘 아래 당신이 지으신 것 중에 최고의 선물임을, 다시 한번 감사드릴 수 밖에 없는 시간이다.

왔었다. 내가 이만큼 뒤로 물러나줬으니 이제는 당신들이 뒤로 물러나줘야 할 때라고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교만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들이 내가 막내라는 존재의 이유만으로 끊임없이 사랑해 주었듯이, 나 또한 먼저 그들을 부모로서 존경하고 형제로서 사랑할 줄 아는 자였어야 했다. | 세상 속의 많은 관계들 속에서 가장 사랑해야 마땅한 가족에게 이렇게나 이기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나를 버릴 수 없다는 확신으로 인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가족이란 이름을 나의 이기적인 수단으로 이용해 버렸음을 이 순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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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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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없는 이야기 ①

저만 불편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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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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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교실: 외로움과 공허함의 공간 글 / (익명)

나는 더 이상 누군가를 궁금해하지도, 알아야할 이유도 찾지 못했다. 그럴수록 그저 내 진심보다 앞서 나가는 리액션들이 부담스러워졌고 불편해졌다. 인사를 하는 나조차도 불편한 인사였으니, 인사를 받는 사람들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서로를 향한 웃음 뒤에 숨어 있는 암묵적인 불편함. 그 불편함은 쌓이고 쌓여,

|

어느 순간부터는 친교실에 가는 것마저 꺼려지기 시작했다.

‘불편함을 함께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며 처음 들었던 생각은 ‘

|

불편함을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불편하다는 점이었다. 더욱이 그것이 교회

그냥 습관처럼 읊는 형식적인 인사는 더 이상 우리가 발전되지 않을 관계임을

공동체 안에서의 이야기라면 더욱 마음이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저 투덜거림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과연 우리는 이런 친교를 계속해야만 하는 것일까?

끝내거나 누구를 탓하려는 의도로 이야기를 꺼내는 ‘불편함’이 아닌, 우리가 함께

‘교회라는 곳은 특정한 이익이나 목적이 없이 모여 만나는 조금은 이상한 단체’

고민하고 반성할 수 있는 취지로도 ‘불편함’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라던 한 교회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 우리가 처음 교회에 나올 땐, 어떠한

이 글을 써내려가고자 한다. 그렇기에 이 글은 ‘불편함’의 고발이기도 하지만

이익도 목적도 내세우지 않고 서로를 알아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모였다. 이것은

한편 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교회가 갖고 있는 아주 좋은 특징이자 자산이다. 어쩌면 지금도, 나와 함께하는

|

사람들이 있다는 안도감이 나로하여금 교회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일지도

사실, 평소 크리스천으로서 교회 생활을 하며 크게 ‘불편함’을 느낀 것은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을 진심으로 사귀고 깊은 관계를 꾸려나가는 것에는 ‘진심’

아니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오랜시간 고민하게 되면서, 평소에는 깨닫지 못했던

이 필요하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진심으로 안부를 묻고 진심으로

작은 불편함이 있었는데, 바로 ‘친교실’에 관한 것이었다.

반가워하는…. 물론 한동안이나 각자의 삶을 살다 일주일만에 모인 사람들이

| 친교실. 처음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곳은 나에게 어려운 공간이었던 것 같다. 삼삼오오 모여서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 누구하나 아는

나누는 안부와 인사 속에 진심이 담기기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번쯤은 고민 했으면 좋겠다. ‘친교실’에서 우리가 나누는 인사에 ‘진심’이 담겨 있었는가에 대해 말이다.

사람 없이 홀로 있어야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아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인사를 나누는 횟수가 늘어나도 그 공간에서는 왠지 모를 외로움과 공허함이 느껴졌다. 아마도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형식적인 인사와 웃음에 지쳐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날엔 ‘잘지내죠?’ 라는 나의 안부인사에 ‘진정한 궁금함’이 들어있긴 한 걸까 하는 의심도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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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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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게 말하는 ‘하나님의 계획하심’ 글 / 배온유 기자

‘하나님의 계획하심’이란 언어가 타인의 불행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남용될 때, 그 말이 담고 있는 본질적인 의미와는 달리 무척이나 폭력적인 언어가 되고야 만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계획하심이란 말을 타인에게 적용하려면 먼저, 자신에게 온전히 수용되는 내용이어야 한다. 그러한 통찰 없이 한 사람의 고통을

|

두고 하나님의 계획하심이라는 말로 단정한다는 것은, 오히려 그것이 성숙한

수많은 생명들이 바다 한가운데서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는 죽음을 맞았다.

태도라기보다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려는 술수에 지나지

우리 모두는 그 사건 앞에서 할 말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언어도단(言語道斷)

않는다. 고통의 당사자가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해결을 위한 노력도

이란 말을 실감했다. 관련자가 아님에도 우리는 그 비극 앞에서 한없이 부끄럽고

필요하지만 다른 이들이 고통을 향해 뛰어드는 과정이 있어야만 하는 경우가

죄스러웠다. 그런데 그 사건을 두고 한 목사는 ‘하나님의 계획에 있는 일’이라

있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예화다. 사마리아인

말했다. 그 말에 국민들은 분노했고, 그 말을 자주 인용하는 나 또한 분노했다.

이전에 강도 맞은 이를 지나쳤던 사람들의 뒷이야기를 상상을 해보자. 나름의

|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그 분노의 연원을 묻는다면 안타깝게도 침묵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계획’은 크리스천인 나에게 있어서 ‘엄연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유를 가지고 강도 맞은 이를 돕지 않았던 그들의 행동 또한 하나님의 계획에서 비롯되었다 이야기할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성경에서는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사마리아인의 태도만이 옳은 것이었다고.

도대체 하늘아래 하나님의 섭리와 무관한 것이 존재하긴 한단 말인가. |

| ‘계획하심’이란 말을 들여다보자. 타인의 고통을 두고 하나님의 계획하심이라는

하지만 ‘하나님의 전능함’이란 본질적인 의미와 무관하게 남용되고 오용되는

말로 단정하고 끝을 내는 것은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제 자신은

‘하나님의 계획’의 언급에는 당위가 결여되어 있다. ‘말’에는 단순히 지시적인

제해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자신은 그 사건과는 무관하다는 인식이 숨어있는

의미만 담겨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말이라도 그 문장이 등장하는 맥락에 따라서,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그런 무책임한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인가. 그렇다면

또 그 말을 하는 화자의 태도에 따라서, 그 의미가 여실히 달라지는 것이 바로

우리는 모든 불의와 타인의 고통을 두고 하나님의 계획하심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언어이다.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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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문화 칼럼

한공주

|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이란 말을 사용할 때는 분명 갖춰야 할 태도가 몇 가지 있다. 먼저,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무능력을 고백함과 동시에

(2013, 이수진)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획하심 속에서 나의 소명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글 / 노은지 기자

그리고 그러한 소명을 고민할 때에, 가장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 타인에 대한 사랑이다. 그 사랑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랑이다. 다른 이의 아픔이 고스란히 내 아픔처럼 느껴지는 것이 사랑이다. 그 사람이 고통에

말의, 폭력이란 말의 의미를 재정의하길 요구한다. 법에서 정의하고 있는 폭력의 범주에 들어가지

잠겨 비명을 지르며 울 때,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함부로 타인의

않지만 분명 무척이나 삶의 의지가 강했던 공주를

고통을 재단하지 않는 것이, 재단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이다. 아픈 이가 자신의

사지로 몰아가는 것이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는 것처럼 다른

않는 것이다. 공주의 고통을 뻔히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을 방관한 공주의 주변 사람들은

이의 아픔에도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공주를 죽게 했다. 이들에게 이러한 방관에는

|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고통에 관여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고통에 관여하는 자들을 힘겹게

‘하나님의 계획하심’이란 말은 이런 맘을 지닌 이들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것처럼 메마르고 차갑고 허무로 가득 찬 문장이 아니다. 그것은 진실로 뜨거운 사랑의 말이다.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짊어지기에도

|

힘에 부치고, 남의 고통의 영역에 발을 들여 놓는

주인공인 공주는 집단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다.

순간, 내가 그토록 사력을 다해 구축한 나의 삶이

공주는 자신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남의

무너질까 두려워진다. 그것은 자신의 안위뿐만

시선을 피해, 전학을 가게 된다. 평범한 일상으로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위와도 관련

되돌아가려는 공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있기에, 그것을 두고 마냥 이기적이라고 욕할 수는

피해자라는 꼬리표는 계속 공주에게 남아 공주를

없다. 또한 일개 개인이 나선다고 하여 무엇이

괴롭힌다. 이러한 공주를 더 힘겹게 하는 것은

달라지겠는가. 아무것도 달라질 것이 없다. 하지만

공주의 이러한 고통을 이해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그러한 이유를 제시하는 와중에, 공주는 죽어갔다.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공주는

|

돌이길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마는데….

기실 한공주라는 영화가 불편한 것은 그 영화를

|

결코 영화를 보는 나 자신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한공주는 소규모

없기 때문이다. ‘한공주’는 어디에나 있고, 우리는

예산으로 제작되었으며, 무척 적은 상영관의

그 고통을 목격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못할 때가

수에도 불구하고,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많다. 나와 내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과, 또 무엇도

그것은 영화가 피해자와 가해자의 역학관계에

할 수 없다는 무력감 때문에. 영화는 그런 우리를

대한 불편한 현실을 무척 적확하게 담아냄과

고통의 당사자의 시점으로 이끌어 가, 또다시 묻는

동시에, 너무나도 불편하여, 피하고 싶었던 질문을

다. 그러한 방관이 여전히 가능한 지를.

날카롭게 대면하고 있어서이다. 영화는 가해자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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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자 칼럼

쓰러진 나무 글 / 이광희 목사

비바람에 쓰러져

썩어가고 있는

허연 뿌리가 줄기 되어 솟구치고

죽어가고 있는 너를 본다

대지에 엉겼던 흔적들이 보이면

다시 서자

툭툭 털어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어둠 속 홀로 헤치고

얼마나 힘들었기에

물줄기를 찾을 때까지

물 한 방울 얻으려

열매를 나누고

고개를 땅으로 파묻은 것일까

생명의 호흡을 나누며

흙바닥을 쓸어대며 생명을 찾았겠지만

진액까지 주어야 한다 해도

바람을 맞고 삶이 뒤집혀

생명이란 그런 것이다

하늘만 바라보고 누워있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너의 모습이

아픈 마음을 뒤로 하고

이제 그만 쉬어라

두 팔 벌려 꽉 안아

내 너의 마음 안다

일으켜 봅니다

편히 머물러라

내 너를 붙잡아 주리

내 너를 괴롭히지 않으리라

함께 있으리

하고 생각했지만

다시 살아갈 그날까지

뽑혀진 뿌리였기에 숨구멍을 막고 살아갔기에 세워지지 않은 나무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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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수련회(7.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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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수련회에 가야 할까 | 목회자가 되기 전엔 한 번도 왜 수련회에 가야 하는지 고민해 본 적이 없습니다. 당연히 가는 줄 알고 갔고, 가면 항상 좋았습니다. 기도해서 좋고, 놀아서 좋고, 추억이 만들어져서 좋고. 수련회는 한 번도 저를 실망하게 한 적 없었지요. 목회자가 되고 부터는 왜 수련회에 가야 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지 않으려는 청년들에게 수련회에 가야 할 이유를 설명해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수련회는 의무도 아니었기에 안 가도 전혀 문제가 없는, 교회 행사의 일부이더군요. 그러면 왜 가야 할까? 왜 가자고 청해야 할까? 왜 교회는 엄청나게 많은 돈을 들여 수련회를 하는 것일까? 좀 순진한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제 경우에 수련회는 일종의 엔진 오일 교체와 비슷한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염려가 많아져서 그런지, 매일 매일의 삶은 점점 무거워지고 느려집니다. 별거 아닌 일 가지고 짜증이 많아지고, 자연스러운 섬김이 불편한 율법이 됩니다. 예배의 감격도 사라지고 무료한 버티기 시간이 됩니다. 왜 그럴까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수련회에 다녀오면 제 영혼의 혈관 속에 성령께서 기름을 부으신 건지, 한결 마음은 가벼워지고, 예배에 대한 기대가 생기고, 섬김이 즐거워지더군요. 아하! 그래서 가는구나. 비록 또 시간이 지나면 내 영혼과 육신은 연식이 오래되고 낡아지겠지만, 그래도 신선한 엔진 오일로 채워져야 이 육신이 또 사는 거겠구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여름 수련회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 저는 가끔 목놓아 부르짖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찬양 중, 주의 임재 안에 흠뻑 젖어 두 손 번쩍 들고 “주님, 제 삶을 받으소서.” 그렇게 노래하고 싶습니다. 작은 촛불 하나 들고 어색하고 미안했던 지체들 곁으로 다가가 마음의 담을 허물고 부둥켜안고 기도하고 싶습니다. 들려 주신 말씀에 제 인생을 던져 말씀의 사람으로 다시 서고 싶습니다. 수련회가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오순절이 다시 다가 오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청년들과 구역장님들이 함께, 한 자리에서, 한 마음으로, 한 성령 안에서, 한 분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며,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휩싸여,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아 아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20대 청년 교구 모두에게, 이번 여름 수련회가 그런 장이 되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 김종필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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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팀 소개 [담당 교역자]

예배와 삶이 풍요로워지는 섬김의 자리에 함께 해요!

장재령

홍보팀: 주일 4부 예배 때 배포되는 20대 청년 계간 소식지

을 통해

섬기는 팀입니다. [모임 장소] 교회 근처 카페 | [봉사 시간] 오후 1시~3시 30분 [문의] 송우리 010.6889.5292 배온유 010.3588.3760 [비정규 팀원 모집] 홍보팀 정식 팀원이 아니더라도 백통의 컨텐츠를 함께 만들 수 있습니다. 평소 글 쓰는 것을 즐기거나 관심 있는 분, 일러스트·사진·

[담당 교역자] 김종필

만화·컬쳐 리뷰 등의 출판물 컨텐츠에 관심 또는 달란트가 있는 분의 연락을

안내팀: 주일 4부 예배의 인원 계수와 자리 안내를 담당하는 팀입니다.

기다립니다. 부담 없이 연락 주세요.

[봉사 장소] 홍보관 지하 3층 | [모임 시간] 2시 50분~3시 10분 [봉사 시간] 2시 50분~5시 30분 | [문의] 황신재 010.5152.1708

성극팀: 극적 극적*인 팀입니다. [봉사 장소] 제 4별관 2층

친교팀: 주일 4부 예배 후 친교실 정리를 담당하는 팀입니다.

[봉사 시간] 오전 10시~오후 1시

[봉사 장소] 친교실 | [봉사 시간] 5시~5시 30분 | [문의] 강서현 010.2122.7731

[담당 교역자] 이광희

[문의] 황규진 010. 8586.1103 마이로드 성가대: 주일 4부 청년 예배 때

미디어팀: 주일 4부 예배 때 음향, 영상, 편집으로 섬기는 팀입니다.

한 마음 한 목소리의 성가로 섬기는 팀입니다.

[봉사 장소] 홍보관 지하 3층 미디어실 | [봉사 시간] 3시 50분~5시 30분

희극적이기도 하고 비극적이기도 하고 적극적이기도 하고 소극적이기도 하고 머리를 긁적긁적 거리기도 하고 종이에 펜으로 긁적긁적 대기도 한다.

[봉사 장소] 선교기념관 지하 1층

[문의] 전준규 010.4744.8963

[모임 시간] 2시 30분~예배 전, 예배 후~6시 30분 [봉사 시간] 4부 예배 | [문의] 오영훈 010.6747.5870

새가족팀: 주일 4부 예배 때 홍보관 지하 2층에서 예배를 준비하고, 예배 후에 새 가족분들을 도와드리는 팀입니다. [봉사 장소] 홍보관 지하 2층 | [봉사 시간] 3시~4부 예배 전 [문의] 김예슬D 010.7579.1548 온더힐(On the Hill) 찬양팀: 4부 청년 예배 때 부르신 곳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찬양하는 팀입니다. [봉사 장소] 홍보관 지하 3층, 제 4별관 201호 [모임 시간] 토요일 6시~9시, 주일 3시~4부 예배 전 [봉사 시간] 4부 예배 | [문의] 이형탁 010.7131.8918

[담당 교역자] 김우진

예배팀: 주일 4부 청년 예배 전 기도자와 봉헌자에게 연락을 하고, 원활한 예배 를 위한 전반적인 일들을 담당하는 팀입니다. [봉사 장소] 홍보관 지하 3층 | [봉사 시간] 3시~5시 30분 [문의] 김명준B 010.5592.0075 관리팀: 4부 예배 후, 성전을 정화하며, 주님 주신 말씀을 묵상할 수 있는 달콤한 관리팀♥ [봉사 장소] 본당 | [봉사 시간] 5시 20분~6시 | [문의] 김진주A 010.5023.3699 중보기도팀: (담당 교역자: 김우진 010.2048. 9177) 재정팀: 주일 4부 예배에 들어오는 헌금을 수거하고 계수하여 합산하는 팀입니다. [봉사 장소] 홍보관 3층 사무실 | [봉사 시간] 4부 예배 후~6시 30분 [문의] 임선정 010.7281.5755 (*30대 청년으로만 편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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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2 · 23· 24

교구 소식

[21교구 | 김종필 목사] 우리 교구엔 너무 멋지고 매력적인 권찰들이 있습니다.

사랑받지 못한다며

어느덧 목소리만 들어도 제 마음이 따뜻해지고, 얼굴만 보아도 제 안면근육이

가슴을 찢어 갈 때,만남이 있습니다

활짝 피어오릅니다. 그네들의 영혼 속에 있는 교회를 향한 열망, 예수님을 향한

중심으로부터

사랑, 지체들과 나누고픈 열정이 그들의 향기가 되었기 때문일 거라 믿어요.

생명이 뚫고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매주일 권찰들 얼굴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 제 영혼의 비타민?!

싹이 틔워 갑니다

● 권찰님들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으로 교구 소식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지은, 아름, 은혜, 지민, 예정, 임주, 안나, 은혜, 중헌, 은교, 진우, 수영, 빛나. 13

모든 것이 지나야 들린다는

명의 권찰님들, 한 학기 동안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수고와 섬김의 열매는

가녀린 부르심

먼저 권찰님들의 영혼 안에서 시시각각 나타날 거라 믿어요. 또한 곁에 있는

어귀에서의 만남

어떤 영혼에게도! 그리고 제게도 열매로 나타났고요! 아쉬운 것들이 없는 것은

그리고, 들어주심

아니자만, 2학기 때는 더 친해지고, 더 높아지고, 더 깊어지면 좋겠어요. 7/6( 주일) 교구연합모임도 수고 많았어요. “그댄 솔잎이어라~”

왜라는 질문에 무엇이란 대답을 듣고 돌이켜 광야를 뚫어

[22교구 | 이광희 목사]

고개 들어 봅니다 <씨앗> 두 손 들어 축복하고 숨 쉬기 힘들고

몸에 기대어 세워주며

뒤척이기도 민망한 자리에 누워

열매로 먹이겠습니다

괴로워만했습니다

함께하겠습니다

돌아봐 주는 이도

보이지 않지만

밝힐 불도

기다립니다

도망칠 길도 없이 ●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열왕기상 19장 18절)”

왜 여기 있는 것인가 버려진 것일까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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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2 · 23· 24

교구 소식 [23교구 | 장재령 목사]

분은 아시겠지만, 그는 ‘산’ 같은 느낌을 줍니다. 꼭 그래서라기보다 군복을 입은

● 23교구 막내 나상원 자매는 7월 2일 미국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상원자매가

덕재 형제의 모습을 생각하면 한없이 늠름한데요, 휴가 나오면 반갑게 인사해요

미국으로 간 이유는 마음을 두고 있는 ‘요리’를 공부하고자 함입니다. 얼마 전에

^ ^ “부모 형제 덕재 형제 믿고 단 잠을 이루겠습니다!”

상원자매가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들여 만들었던 요리를 먹어본 적이 있는데요, 요리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그 시간과 정성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먼 길

● 23교구 허승준 구역장님이 우리 교회 김예슬 양과 결혼을 하셨습니다. 지난

떠난다는 소식에 아쉬움도 들었지만 마음 한켠에 고마운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6월 28일 토요일 5시 결혼식장에 저도 있었는데요, 구역장님의 행복에 차오른

고향을 떠난 그곳에서 그가 쌓아갈 시간과 희로애락이 무르익어, 때가 이르면

얼굴과 그 사이로 흐르던 긴장이 아직도 눈 앞에 생생합니다. 두 사람이 한 몸이

누군가를 위한 요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오랜 시간과 청춘의

되는 ‘신비’의 여정, 하나님의 손길이 이 가정을 때때마다 돌보시고 세워가시기를

고민이 담긴 그의 요리가 허망한 삶에 희망의 맛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빕니다. 아, 무엇보다 허승준 구역장님의 결혼으로, 올해 9월 결혼이 목표였던

호산나!(상원 자매님의 다른 이름^^) 잘 다녀와요, 편지할게요!

황진성 구역장님이 부담과 용기를 백배 가지시기 바랍니다.

● 한편, 23교구 박희상 형제도 미국으로 길을 떠납니다. 스물아홉 살인 희상

● 23교구에서 어머니와 같은 이지현 구역장님은 얼마전 가족이셨던 고 김형신

형제는 올해 4월에 군복무를 마쳤습니다. 늦깎이 군인으로 사느라 쉽지 않았을

장로님을 하나님 품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 구역식구들은 아시겠지만, 아침이면

텐데,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주어 고맙습니다. 이제 미국에 가면, 졸업식을

권사님은 묵상하신 말씀을 문자로 보내주시는데요, 저 또한 권사님의 말씀 문자를

한다고 합니다. 스물아홉 살에 전역과 졸업이라, 희상 형제에겐 특별하지 않을

받고 작은 기도를 드리며 아침을 맞곤했습니다. 누구보다 말씀을 사랑하시고

수 없는 한 해가 되겠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희상 형제님의 지극한 눈빛과

말씀 안에 사신, 우리의 어머니! 권사님! 이지현 구역장님께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둥근 이마가 참 좋았습니다. 빠름과 경쟁을 미덕으로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도

함께 계시길 빕니다. 권사님,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나의 모습’, ‘나의 걸음폭’으로 살아도 된다는 안정을 느껴서요. 스물아홉, 희상 형제의 여정을 응원하고,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 그리고 몇 가지 소식을 더 전합니다. 지난 2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교환 학생으로 갔던 왕찬현 형제가 7월 26일 귀국합니다. 23교구 연합 성경 공부인

● 그리고 23교구 유덕재 형제가 8월에 군입대를 합니다. 전역하는 자가 있으면,

<더불어, 구역모임> 첫 시간에 영상으로 소식 전해줬던 기억이 생생한데

입대하는 자도 있네요. 덕재 형제는 미국에서 대학생활을 하다가 군생활하고자

돌아온다니 반가움 새록새록합니다. 더불어 23교구 최윤영 자매는 6월 17일

한국으로 왔고, 마침 통역병 시험에 합격해서 통역병으로 복무하게 되었습니다.

오후 2시에 석사 논문을 통과했습니다. 준비했던 오랜 시간, 그 시간 안에 담겼을

사람들은 군 생활을 가리켜 ‘썩는 시간’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그곳에

많은 감정과 이야기들… 너무 수고 많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구 김은지 자매는

함께 계신다면 그 시간은 전혀 새로운 의미가 됩니다. 무엇보다 군생활이 이

7월 29일 부터 2주간 탄자니아로 단기선교를 갑니다. 탄자니아라니요?! 그 먼

나라의 오래된 아픔을 공감하고 보듬는 시간되기를 빕니다. 덕재 형제를 보신

땅까지 가게 된 은지 자매의 마음과 열정이 너무 궁금합니다. 다녀와서 듣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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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2 · 23· 24

교구 소식

하고, 단기선교팀이 또 은지자매님이 하나님의 손길을 잘 따르는 시간되기를

❷ 2웃4촌 번개모임 (5월 10일, 남산 dating)

빕니다. 강현석 형제는 전역 후 구역모임에 열심이고, 양민규 형제는 역시 전역

바쁜 주말, 마음을 정하고 시간을 내어 남산으로 향합니다. 시간이 허락된 24

후 등록해서 더불어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학교로 인해 멀리 있었던 허지혜

교구 구역장님들과 청년들이 모였습니다. 단촐한 모임, 소박한 저녁, 운치 있는

자매는 방학을 맞아 다시 재회했어요. 아, 반가워요!

밤하늘 아래 산책, 울림이 있는 연극.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누리지 못했던 소소한 특권을 맛보았습니다. 다음 초대에는 더 많은 분들이 함께 하면 좋겠어요.

[24교구 | 김우진 목사] ❶ 100주년기념교회 24교구 전체 모임— 2웃4촌(이웃사촌) 수없이 ‘좋아요’가 난문하는 SNS에 둘러싸여 있지만, 정작 익명 속에 외로움을 묵묵히 견뎌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익명과 외로움에 맞서기 위해 24 교구 전체모임의 이름을 ‘이웃사촌(2웃4촌)’으로 정했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알아가기에 더없이 좋은 이름입니다. 지난 1월 19일, 4월 27일, 5월 25일 2웃 4촌 모임이 진행되었습니다. 이웃사촌임을 확인하기 위해 떡도 돌리고 교제와 성만찬도 나누었지요. 2웃4촌 7월 모임은(2014.7.13. 주일 4부 예배후 pm5:307:30) 교육관 지하 2층에서 모입니다. 한 달에 한번, 서로의 얼굴을 대면하고 마음과 소식을 나누며 말씀을 나누는 모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갑시다. ❸ 24교구담당 김우진씨, 목사안수식 (2014.4.21.) 담당교역자 김우진씨가 목사안수(지난 2014.4.21.)를 받았습니다. 동일한 주일에 진행되었던 2웃4촌 모임에서 교구친구들의 많은 축하와 격려 속에 목사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20대 청년부와 24교구 이웃사촌들께 새롭게 인사드립니다. 목사 김우진, 많이 애용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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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여름호:저만 불편한가요?

www.facebook.com/100Tong 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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