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TONG ] 2014년10월 / 싫어요 (페이스북②) / 제4권4호(03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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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주년기념교회 20대 청년들의 통하는 이야기

2014년 가을호

:싫어요

에는 없는 이야기 ②


목차 Intro•성형괴물 같은 우리의 ‘가상외모’, 싫어요(Hate it)•박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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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역자 칼럼 ❶] 드러남과 드러냄•김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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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t 1. 허영 가득한 SNS Life로 인한 실제 삶과의 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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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페이스북의 역기능에 대한 소고] 맨얼굴이 더 ‘좋아요’•오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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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t 2. 인생을 조망하는 비전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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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나의 페북 회심기•정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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❷ 페북이 좋아요?•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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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어가는 페이지] 김예슬의 라이프 레시피•김예슬

27

| [Part 3. 이용되는 타인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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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고통을 담은 사진을 바라보며•배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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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역자 칼럼 ❷] 함께 있는 사람들•이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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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양화진 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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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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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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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제4권 4호(030회) 발행처 20대 청년부(www.facebook.com/100Tong) (121- 885) 서울특 별시 마포구 양화진길 46 발행일 2014년 10월 12일 편집 송우리, 전은주 교정 박재훈, 배온유 기 획 20대 청년 홍보팀(iyyag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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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정정 알림 및 사과문] 2011년 4월(1회)부터 발행되어 온 100TONG의 통권 기록에 착오가 있 어 아래와 같이 정정하며, 이에 사과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완성도 높은 100TONG을 발행하도록

Intro

시작하는 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번 발간월

주제

통권(정정전) 제1권 01호

통권(정정후)

001

2011-04 부활 01호

제1권 1호(001회)

002

2011-05 또 다른 이름의 가족

제2권 02호

제1권 2호(002회)

003

2011-06 청년의 길

제2권 03호

제1권 3호(003회)

004

2011-07 길 밖의 길

제2권 04호

제1권 4호(004회)

005

2011-08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제2권 05호

제1권 5호(005회)

006

2011-09 함께하고 싶습니다

제2권 06호

제1권 6호(006회)

007

2011-10 복있는 사람

제2권 07호

제1권 7호(007회)

008

2011-11 다이어리

제2권 08호

제1권 8호(008회)

009

2012-01 새로운 시작

제2권 09호

제2권 1호(009회)

010

2012-02 함께

제2권 11호

제2권 2호(010회)

011

2012-03 짝

제2권 11호

제2권 3호(011회)

012

2012-04 꽃

제2권 12호

제2권 4호(012회)

013

2012-05 앨범을 펼치다

제2권 14호

제2권 5호(013회)

014

2012-06 여행

제2권 15호

제2권 6호(014회)

015

2012-07 레벨업

제2권 16호

제2권 7호(015회)

016

2012-08 열정

제2권 17호

제2권 8호(016회)

017

2012-09 아날로그

제2권 18호

제2권 9호(017회)

018

2012-10 노동의 미학

제2권 19호

제2권 10호(018회)

019

2012-11 오감

제2권 20호

제2권 11호(019회)

020

2012-12 테이크 아웃

제2권21호

제2권 12호(020회)

특별 2013-01 [2013 청년생활백서]

제1권 1호

제1권 1호

021 2013-01 무게

제3권 22호

제3권 1호(021회)

022 2013-02 다름의 인정

제3권 23호

제3권 2호(022회)

023 2013-03 부끄러움

제2권 24호

제3권 3호(023회)

024 2013-04 깨다, 깨어지다.

제5권 25호

제3권 4호(024회)

025 2013-07 빨래

제5권 26호

제3권 5호(025회)

026 2013-10 안부

제6권 27호

제3권 6호(026회)

성형괴물 같은 우리의 ‘가상외모’, 싫어요(Hate it) 글 / 박재훈 기자

사진과 텔레비전이 발달되고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은 외모를 아주 중시하게 되었다. 물론, 잘생기고 예쁜 사람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 이니 이것이 어디 이 시대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 고 개개인이 초고화질 사진기를 취미로 다루고, 컴퓨터를 조금 할 줄 아 는 사람이면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 휴대폰으로 찍은 영상을 배포하는 것쯤은 소일거리도 아닌 게 되어버린 이 시대에, 외모가 인생을 살아가 는 데에 매우 중요한 경쟁력이 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가 없다. 하지만

오늘 날의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일을 하면서- 인터넷의 글을 읽으면서- 이른바 ‘상식의

027 2014-01 시간의 제6권 28 호 제 4권 1호(대응할 027회)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한 미스매치’를 심심치길섶에서 않게 겪게 되는데, 대부분의 경우에는 특별하게 028마음 2014-한 04 구석 우리‘불편함’을 쌓아 두게 된다. 제6권 29호 더 큰제 4권 2호 회) (028 채 그런데 문제는 이 미스매치가 단순한 불편함에서 029 2014-않는다는 07 저만 불편한가요 6권 30깊숙이 호 제4권 3호느끼면서도 (029회) 이 불편함을 어떻게 그치지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제마음 불편함을 Facebook에는 없는 이야기 ①) ( 다뤄야 할지 모른 채로 시간이 흐르다보니 ‘옳고 그름의 문제’에 대해 둔감해져 가고 있다. •Photo by 이선민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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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시작하는 글

외모가 중요하게 여겨지면 여겨질수록, 실력과 인성보다 외모만으로 성

어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람들은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에 더

공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사람들의 ‘본질을 향한 갈구’도 더

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욱 커지게 마련이다. 소위 ‘철든 사람들의 인생담론’에 ‘외모보다 성품’ 이라든가 ‘결국엔 실력’이란 말이 빠지지 않는 것은 이런 까닭이리라. 이렇듯 영상세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보여지는 것’과 ‘본질적인 것’ 사이에서 긴장감 늦출 수 없는 줄다리기가 이어져 왔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고 보면 ‘페이스북’이란 이름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페이스 + 북 = 얼굴 + 책’. ‘얼굴’은 우리가 영상의 시대를 살 아오며 끊임없이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비본질의 표상, 외모의 첨병이 아니던가. 인생의 중요한 인간관계들을 존속시키는 소통의 장으로서 기

그런데 이런 와중에 텔레비전과는 게임도 되지 않는 ‘끝판왕’이 등 장했다. 바로 ‘인터넷 혁명’과 함께 찾아온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페이스북이다. 사실 SNS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과 연락 을 주고받는 방법이 매우 간편해지고 비용 또한 획기적으로 저렴해지 면서 사람들의 소통을 혁신적으로 증가시켰기 때문이다. 예전 같았으면 꾸준히 안부를 전하며 지내기 힘들었을법한 초중고 동창생들도 페이스 북만 있으면 직접 연락을 주고받지는 못할지언정 서로의 요즘 사는 이 야기를 보고 들으며 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 페이스북이 제공하는 소통의 특징과 한계에 있다. 페이 스북은 사람과 사람이 1:1로 연락을 취하는 창구이기보다는 1:多 간 소

억에 남기고 싶은 삶의 이력을 보관하는 기록소로서 오늘날의 페이스북 이 갖고 있는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이렇게 어마어마한 페 이스북의 영향력과 그 한계가 맞물려, 사람들은 페이스북 안에서 점차 실존하는 자신과는 거리가 먼 ‘가상외모’를 가꾸게 되었다. 더 큰 문제 는 이것이 그저 ‘또 하나의 외모’를 가꾸어야 하는 귀찮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상외모’를 ‘멋지게 가꾸는 일’은 성형수술보 다 쉽다. 원하기만 한다면 익명성도 보장된다. 자칫 문제가 생겼을 경 우엔 기록을 ‘삭제’하고 새로운 외모로 ‘새로운 가상의 삶’을 시작할 수 도 있다. 그리고 이런 특징들은 필연적으로 허영을 낳고, 과장을 낳고, 현실과의 괴리를 낳는다. 말하자면 우리의 가상외모는 성괴(성형괴물)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 채널로서, 내가 공개하는 소식과 사진들의 내용은 통제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진정한 소통은 사라져 가는데, 이러한 이유 모를 ‘가상

누구에게 보여지고 전달될지를 완벽하게 제어하기는 힘든 특징을 갖고

외모 경쟁’은 우리의 실존하는 삶마저 잠식해간다. 타인의 허영 가득한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래도 아주 솔직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들보다

가상외모가 나의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초라함을 불러일으키고, 삶

는 남들 보기에 좋을만하고 흉이 되지 않을 만한 소식과 사진들을 골라

의 비전을 고민함에 있어서도 ‘본질’보다는 ‘보여지는 것’에 집중하게

서 공개하게 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페이스북이 보편화되고 페이스북을

된다. 성취에 이르기까지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고통과 기회비용에 대한

이용하는 사람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증가하게 되면서, 점차 페이스북에

이야기는 생략되고, 수많은 노력과 실패 이후 인생의 절정에서나 맛볼

올리는 글과 사진들이 내 이미지를 결정하는 ‘나를 대표하는 수식’이 되

수 있을법한 달콤한 순간들만 조명된다. 여기에는 페이스북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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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시작하는 글

교역자 칼럼

(Like it)’ 기능은 있어도 ‘싫어요(Hate it).’는 기능이 없다는 사실도 한

드러남과 드러냄

몫하다. 사람들에게 보기 좋은 소식은 ‘좋아요’가 쌓여 타임라인(Time

Line)의 상단으로 계속 갱신되어 올라오는데, 사람들을 고민하며 많은

글 / 김우진 목사

생각을 하게 하는 진지한 이야기이거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이야기는 금세 ‘좋아요’를 받은 수많은 포스팅들 아래로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에 넘쳐나는 ‘좋아요’가, 내가 무심코 누르는 ‘좋아요’가

그래픽을 전공하는 스물다섯 대학생, Zilla Van den Bron(이하. 브

정말 내 실제의 삶에도 좋은 것일까? 오히려 그 중에 우리가 조심해야

론)양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거주한다. 브론은 방학을 맞아 5주간

하고 혹은 기피해야할 행동이나 생각들, 이야기들은 없는 것일까? 사

동남아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체류기간동안 가족과 친구들은 SNS를 통

람들이 좋아요를 누르지 않아 금세 사라져가는 평범한 삶의 이야기들과

해 그녀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송받았고, 화상채팅을 통해 생생한 현

진중한 고민들은 정말 좋지 않은 것일까? 오늘 하루만큼이라도 내 말초

장의 소식도 전해왔다. 그녀는 동남아의 드넓은 바다에서 스노우쿨링을

신경을 자극하는 사진과 글을 보고 반사적으로 ‘좋아요’를 누르기 전에

즐기며, 동양의 신비를 간직한 이교도 사원에서 기념사진을 찍어 올리

한번쯤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기도 했다. 그리고 무사히 5주간의 여행이 마쳤다.

평범한 여대생의 여행은 이내 사회의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놀 랍게도 그녀는 지난 5주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벗어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아파트를 벗어난 적도 없었다. 가족과 친구들 이 믿었던 사진들은 그녀가 자신의 전공을 살려서 합성한 사진이었고, 화상 통화 시 등장한 이국적 풍경은 암스테르담, 자신의 아파트에 꾸며 진 세트에 불과했다. 가족과 지인들을 속인 사건은 한 여대생의 실험이 었다. 그녀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실험에 대해 다음과 같 이 말했다.

“사람들에게 우리가 소셜미디어에서 보고 있는 것이 필터링 되고

조작된 것임을 보여주고 싶었고, 동시에 소셜미디어 사용자들이 더 이 상 현실 세계로는 충족시킬 수 없기에 온라인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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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자 칼럼 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청년이여. 하나님의 시선은 오늘도 그대를 향하고 있다. 그대에게

한 재기발랄한 청년의 실험에 우리는 정곡을 찔렸다.

주어진 삶을 진실하게 마주하며 살아가자. 비록 타인의 시선과 평가가 따뜻하지 못하더라도, 자녀를 향한 아버지의 시선이 그대 앞에 있기에

어린이는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즐길 뿐, 의식할 줄 모른다.

용기를 내어보자. 그대는 오늘의 소중한 다윗이다.

어른은 의식할 뿐 무엇을 잃었는지 모른다. 김장환의 시집, 드러남과 드러냄 <주소의 풍경 中>

다윗은 십대의 목동이었다. 양을 지키기 위해 막대기와 물매를 항 시 소지하고 다녔다. 손때가 묻어 반질거리는 막대기, 낡고 닳아 몇 번 이나 덧대고 꿰맨 물매는 타인의 눈에는 보잘 것 없는 쓰레기처럼 보였 을지 모른다. 하지만 다윗과 그가 보호하는 양떼들에게는 보물이었다. 골리앗과의 일전을 앞두고,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나라를 대표하기 위해 목동의 옷과 무기는 너무 초라했을지 모른다. 사울왕은 목동 다윗의 낡 고 초라한 옷을 벗기고, 왕을 위해 제작된 최고급 무기와 갑옷을 입힌 다. 사울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다윗을 바라본다. 사울은 화려한 갑옷과 무기로 무엇을 가리고 싶었을까. 그토록 숨기고 싶었던 막대기 와 물매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도구가 되었다.

현대사회는 드러냄의 사회이다. 현대인들은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드러내기에 바쁘다. 타인의 시선을 위해 가공하고 포장한다. 가공이 더 해질수록 원형은 변형되고 이내 전혀 다른 산물이 만들어진다. 현대인 이 지닌 모든 것은 타인의 시선 속에서 새롭게 빚어진다. 드러냄은 얕고 가볍다. 이내 소모되어 캄캄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에 반해, 드러 남은 깊은 내공의 산물이며 감출 수 없는 깊이와 무게를 지닌다. 드러남 은 진실이며, 거짓의 여지가 없다. 진실함, 그자체이다. 드러남에는 고 요와 평온이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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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Part 1. 허영 가득한 SNS Life로 인한 실제 삶과의 간극

[페이스북의 역기능에 대한 소고] 맨얼굴이 더 ‘좋아요’ 글 / 오윤아(2101구역)

유럽 배낭여행 도중 에펠탑의 야경을 배경으로 폼나게 찍은 한 컷, 고급 레스토랑에서 애인과 먹은 스테이크와 와인의 때깔을 충만하게 담 아낸 한 컷, 45도 각도와 뽀샤시 조명에 특별히 신경 쓴 셀카 한 장, 손 발 오그라드는 감상적인 멘트 한 줄, 오늘 내가 행한 자랑스러운 선행 이야기 한 꼭지 등등...

페이스북은 점점 더, 맵시 있게 치장된 모습만을 스크랩하여 전시 해두기 바쁜 대형 백화점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백화점은 철저 히 상업적인 논리로 운영되는 공간입니다. 페이스북이라는 이름의 백화 점에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라는 존재가, 내 삶이, 얼마나 그럴듯 한가를 드러내고자 합니다. 많은 이웃들이 그것을 보고 [좋아요]를 누 르며 호평해주기를 바랍니다. [좋아요]가 누적될수록 그만큼 자신의 멋 진 이미지가 많이 팔렸다는 만족감에 젖어들게 됩니다. 저도 한때는 그 런 종류의 만족감을 퍽 즐기던 SNS 유저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영혼 깊은 곳에 닻을 내리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건 ‘소통’이 아닌, 이미지의 ‘소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번지르르하고 성공한 모습들만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에겐 서로를 불쾌하게 만들기 충분한 구석들이 너무 많습니다. 쥐도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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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도 모르게 뒷골목에서 홀로 폐기해버리고 싶은 실패와 좌절의 기억들도

으면 좋겠습니다. 우린 때로 서로의 적나라한 쌩얼을 보고 ‘헉!’하게 될

숱합니다. 때로는 그 치부를 하나님도 모르게 하고 싶어서, 아담과 하

것입니다. 미처 상상하지 못한 강도 높은 쓰레기 냄새를 맡게 되는 괴로

와처럼 몸을 가리거나 나무 사이에 숨어버리는 게 고작인 우리의 실존

움을 감수해야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

의 맨얼굴. 예쁘지 않습니다. 지질하고 칙칙합니다. 그런데 누구나 가

간을 오히려 기뻐하고 긍정하게 되는 것이 사랑의 오묘함이라는 생각이

지고 있는 그 맨얼굴이 왜 페이스북에는 좀처럼 게시되지 않는 걸까요?

듭니다. “당신의 맨얼굴이 더 좋아요.”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진짜 사

이 질문의 답의 힌트를,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의 여주인공 전

랑은 그 때부터 시작입니다.

경(이나영 분)의 대사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잣집 딸 경이의 남자친구 고복수(양동근 분)는 전직 소매치기였지만, 경이를 사랑하게 되면서 도둑질하는 삶을 청산하기로 결심합니다. 다음은 그 고복수에게 경이가 건네는 대사 중 일부입니다.

“내가 공주인가요? 좋은 데서만 굴러다니게?

나는 복수 씨 쓰레기 냄새 같이 맡을래요. 자기 안에 쓰레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아마 그래서 사람은 착하고 예쁜 것만 보고 싶은가 봐요. 자기 안에 쓰레기 안 보려구. 그리고 드러운 거 보면 토하구.”

관심 받고 옹호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쉽게 택하는 방식이란, 말끔히 포장된 모습만을 선별하여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상 품판매율을 높이는 전략은 될지 몰라도 진짜 사랑에 뛰어들 준비가 되 어 있는 사람의 자세는 아닙니다. 한 사람을 알아간다는 건 그의 맨얼 굴까지도, 밑바닥에 켜켜이 쌓인 쓰레기까지도 직시하는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그 대상이 타인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페이스북에 너무 오래 머무르지 말고, 번거로운 포장 작업에 힘 빼 지 말고, 얼굴과 얼굴을 생생히 맞대어야만 하는 현실의 자리에서 만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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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나의 페북 회심기

Part 2. 인생을 조망하는 비전의 가벼움

글 / 정신실 집사

‘엄마, 이것 봐요’

아이가 자라면서 혼자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기면 하는 말이다. 낙서 같기도 피카소 작품 같기도 한 그림 한 장, 대충 쌓은 것 같은 블 록 몇 개, 심지어 어떤 때는 도대체 뭘 보라고 부른 것인지 찾을 수 없 는 경우도 있다. ‘와우, 잘 만들었는데’ 엄마의 피드백에 의기양양해져 또 다른 작품에 도전하며 자신감을 키우고 몸과 마음이 자랐다. 자아의 식이 생기던 그때부터 우리는 ‘바라봐 주는 누군가’를 부르고 찾고 기다 린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빠르게 보편화된 SNS는 앞 다투 어 현시 욕구를 발산하고 충족시키는 광장이 되었다. 이렇게 맛있는 걸 먹고 있다, 난 이런 멋진 직업을 가지고 있다, 여친과 나 멋진 곳에서 데 이트 중이다. 페이스북 뉴스피드에 띄운다. 그리고는 페친들의 ‘좋아요’ 를 기다린다. 어렸을 적 엄마가 ‘어머, 우리 아들 잘했어!’ 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관심이겠지만 그럴듯한 나를 봐주고, 부러워해주는 것 이 좋다. 표현하는 방법이 조금 더 세련되고 아니고의 차이는 있을지언 정 마음 속 욕구는 비슷할 것이다.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의도가 아니면 왜 굳이 일기장에 쓰지 않고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내놓겠나. 올리자마 자 속속 늘어나는 ‘좋아요’ 개수에 기분이 좋아지고 심지어 존재 자체로 인정받은 느낌까지 든다. 우린 모두는 봐주는 사람이 필요한 존재이다. 나도 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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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나도 수시로 본다. 시시각각 올라오는 친구들의 ‘지금 여기’를 본 다. 친구의 글과 사진을 본다고 믿지만 많은 경우 그 ‘글’을 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내 마음’을 비춰보는 것이다. ‘그 사람’의 ‘그 글’이 불 편하고 ‘보기 싫다’고 느끼지만 불편함과 보기 싫음의 절대 잣대는 없 다. 그 글이 내.게. 불편한 것이다. 내게는 몹시 불편한 글을 다른 멀쩡 한 사람이 매우 좋다고 열광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어떤 친구의 여행 사진에는 기분 좋게 ‘좋아요’ 해줬는데, 오랜만에 일상을 떠난다는 다 른 친구의 공항사진에는 ‘그래, 너 잘나가서 좋겠다. 좋은 직장이라 돈 도 잘 벌고 휴가도 마음대로 낼 수 있으니’ 하며 싸늘하게 쓱 밀어내리 기도 한다. 저녁으로 뭘 먹었다는 시시한 글에 ‘좋아요’ 누르는가 하면, 어떤 친구가 고백하는 깊은 아픔을 읽으며 ‘위선 떨고 있네’ 하며 시야 에서 쓱 치워버리기도 한다. 이런 심리적 ‘투사’는 일상에서 늘 일어나 지만 얼굴 맞대고 커피 한 잔 하면서 자연스레 해소되는 것이 많다. 휴 가내고 해외여행 간다며 공항사진 올린 친구를 우연히 만나 ‘여행 갔더 라. 잘 다녀왔어?’ 물었는데 직장 상사로 인해 사직을 고민하는 중이었 다는 얘기, 그 얘길 하는 친구의 피곤하고 슬픈 눈을 마주하고는 ‘잘 나 가서 좋겠다’며 뒤틀렸던 심사가 부끄러워진다. 이렇게 우리가 스마트 폰 화면의 이미지로만 관계를 맺는다면 결국 투사 속에 허우적대다 과 대망상, 피해망상 속에 빠져 돌아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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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내가 나를 본다

나만이 나를 본다

애매하게 주어를 생략해서 쓴 위의 이야기들은 불특정 페북 이용

연금술에서 ‘바스 헤르메티스’(‘vas hermetis’ 라틴어로 ‘헤르메스

자들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이다. 사람을 좋아하고, 즉흥적

의 그릇’)라고 불리는 금을 만들 때 사용하는 그릇이 있단다. 그 안에

인 반응에 강하고, 감각적인 농담 따먹기는 더 좋아하는 터라 페이스북

납을 담고 그릇을 밀봉한 뒤 열을 가하면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행

은 딱 내 스타일이었다. 무엇보다 현시욕 강한 내게 페이스북은 재미와

여 그릇이 깨지거나 금이 가서 열기가 새어나가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의미가 공존하는 놀이터였다. 문제는 항상 바보들의 놀이 ‘비교’에서 시

않는단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그릇을 ‘테메노스’(Temenos) 즉 심리

작한다. 본업은 아니지만 어쩌다 B급 글쟁이로 이런 저런 글을 쓰고 있

적 그릇이라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새어나가지 않는 나만의 비밀이

다. 의도하지 않았고, 원하지도 않았는데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은 내 글

있는 장소이다. 새어나가는 비밀이 없이 고요히 침잠한 심리적 에너지

과 다른 사람의 글을 줄을 세워 보여준다. ‘에잇, 이 사람은 도대체 언

가 쌓일 때 납이 금이 되듯 심리적으로 성숙하고 통합된 인간이 되어간

제 이렇게 책을 많이 읽은 거야. 글은 또 왜 이렇게 잘 써?’로 시작해

다는 것이다. 금으로 단련되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의 에너지를 단

서 투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마음은 금세 지옥으로 내려간다. 내 글보

속할 일이다. 페이스북 등 SNS를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다 뒤로 빠지

다 나을 것도 없는데 ‘좋아요’가 엄청나게 붙은 페친의 글을 째려보고,

고 그러다 어느 새 다시 몸을 담그고, 또 한 발 물러나고……. 이런 지

허점을 찾아내고, 그러다 자존감이 쪼그라든다. 신앙적으로든 정치적으

점에서 나는 ‘테메노스’를 생각한다. 그럴듯한 나의 통찰과 경험을 드

로든 나와 입장이 다른 사람의 수려한 글을 읽다보면 심장이 벌떡거린

러내고 싶어 안달이 날 때 나의 테메노스에 깊이 던져두기로 하면 시끄

다. 나보다 기수도 낮고 공부도 그리 잘했던 것 같지 않은데 교수님 호

럽던 내면이 조용해진다. 타인이 포장해 내놓은 이미지를 바라보며 혼

칭을 달고 있는 후배를 페친으로 만나는 날엔 유치한 줄 알지만 우울해

자 소외감 느끼고, 좌절하고, 분노할 때도 내 마음의 그릇에 담겨 있어

지는 마음 어쩔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이미지와 이미지의 충돌, 이미지

야 할 욕망들이 투사되어 나와 춤추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본다. 드러내

를 붙들고 씨름하는 투사라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 치러야할 시간적 정

고 표현하길 권하는 투명사회를 살면서 비밀스럽게 담아두는 것의 미덕

서적 비용이 컸다.

을 깊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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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Part 2.

나의 페이스북 사용법

페북이 좋아요?

여전히 나는 페이스북 유저이다. 뭣 모르고 뛰어들어 신나게 놀아

글 / 김단(2303구역)

보기도, 마음을 다쳐 앓아보기도 했다. 그러다 다른 사람 아닌 내 마음 에서 일렁이는 욕구와 숨어있는 욕망을 마주하게 되었다. 아, 내가 이 나이에도 나를 바라봐주는 눈을 그렇게나 갈망하는구나. 아무것도 아닌 ‘좋아요’ 하나에 울고 웃고 하는 어린아이 같은 내 모습이구나. 내가 불

교회를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보면 사람들 대부분이 고개를 숙

편하게 여기는 페친은 영락없이 나 스스로 보기 싫어서 밀어 넣고 숨겨

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고 있거나 핸드폰을 하거나 혹은 책을

놓은 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들이구나. 페이스북 뉴스피드을

읽고 있는 사람들. 그 중 대다수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고

거울로 인식하고 여기에 반사되어 꺾인 시선이 다시 내 안으로 향했을

있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사람들 간의 의사소통이 감소한 것은 사실인

때 생각의 전환, 일종의 회심이 일어났다. 그리고 내 의식수준과 마음

듯 하다다. 그리고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인해 빈약해진 소통을 sns를 통

그릇에 딱 맞는 페이스북 이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내 스마트폰 화면

해 채우곤 한다.

에 페이스북은 ‘언론’ 카테고리 안에 들어 있다. 뉴스 기능을 하는 페이 지나 개인만 팔로우하여 구독하고 있다. 뉴스를 보던 무심한 눈으로 친

수많은 sns 어플 중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어플은 아마 카카오

구들의 일상을 ‘보게 됨’을 당하지 않으려고 한다. 근황이 궁금한 친구

톡과 페이스북 일것이다. 특히 페이스북은 상대방의 번호를 알지 않아

는 일부러 검색해서 찾아 들어가 읽고 ‘좋아요’든 댓글이든 흔적을 남

도 국경, 나이, 성별을 초월하여 제한 없이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 심지

긴다. ‘조용히 훔쳐보기’가 모두에게 허용되는 곳이 SNS 타임라인이다.

어 똑똑한 페이스북은 내가 알 만한 친구들을 알아서 추천해주기 때문

은밀하게 훔쳐보며 내게 필요한 정보를 슬쩍 챙기고, 그러다 부러워하

에 번거로운 검색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쉽게 친구 추가를 할 수 있다.

고, 부러워하다 손가락질하고, 얼굴 보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낯선 웃 음을 짓는 나의 관음증적 관계들. 내 영혼이 갈망하는 참된 만남은 그 관음증적 관계를 뒤집은 정반대편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하여.

페이스북 이용자가 되자 어느새 나는 습관처럼 페이스북에 접속하 고 친구들의 뉴스피드를 확인 한다. 누구는 여행을 다녀왔구나 누구는 연애중이구나. 별다른 연락 없이도 sns를 통해 상대방의 근황을 확인하 며 묘한 쾌감과 스트레스를 동시에 받는다.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한 다. 때로는 열등감이 느껴지다가도 한없이 우월감을 느끼기도 한다. 게 시물이라도 올린 날에는 좋아요가 몇 개 달렸는지, 또 댓글은 몇 개 달려 있는지 계속 확인하여 댓글을 달아준 사람들에게는 다시 정성스레 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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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한다. 친구들이 좋아요 누른 재밌는 동영상, 감동적인 동영상들은 집 가

는 페이스북에 적응되다보니 이제는 가만히 앉아서 책을 보는 시간들이

는 길을 심심하지 않도록 달래주고 타임라인에 계속 올라오는 우리 동네

너무 힘겹다. 업데이트 되는 타임라인 속 분위기는 온갖 소비를 장려하

맛 집은 친구들과 분주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약속을 잡도록 도와준다.

고 지향한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돌보는 것에 힘쓰는 것이 아니라 맛 집을 찾는 것에 힘쓰고 친구가 가 본 곳을 나도 가봐야 한다는 마음에

어쩌면 페이스북은 급변하는 우리사회, 온갖 정보들이 난무하는 우

힘쓰게 된다. 알차게 시간을 보낸 것은 곧 페이스북에 자랑할 만한 곳

리 사회에서 빠르게 여러 정보를 습득하고 인맥을 넓힐 수 있는 정말 유

에서 돈을 쓰고 시간을 썼다는 것과도 어느 정도 일치하게 되었다. 과연

용한 도구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계속해서 페이스북을 사용한 나는

그것이 의미있는 소비이며 의미 있는 활동이었을까?

어쩐지 삶이 피폐해진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여행을 가서도 페이스북 에 올릴만한 사진을 건져가려고 계속 마음 쓰고, 마음에 드는 사진을 건

물론 사람들과 함께한 그 시간이 충분히 의미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면 내 타임라인에 올려놓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핀다. 심지어 나를 잘

사람들과 직접 만나는 약속을 잡아도 상황은 비슷하다. 얼굴을 맞대고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내 게시물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약간의 불안

있는 것이 아니라 핸드폰을 맞대고 있다. 진정한 의사소통이 사라진 것

감이 엄습했다. 사람들이 내 게시물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신경 쓰다

이다. 함께 얘기를 나누더라도 페이스북에 올라왔던 재밌는 동영상 이

보니 사진을 올려도, 글을 써도, 댓글을 달아도 그 속에서 나의 진정한

야기, 어느 친구의 최근 근황 이야기를 꽃 피울 뿐 서로의 속마음 이야

모습을 담기 보다는 가식적인 나의 모습이 종종 보인다. 좋아요 하나에

기, 속사정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어렵다. 상대방과 깊은 관계를 맺는

기분이 좋아지고 가벼운 댓글 하나에 어깨가 으쓱해지다가도 별로 내가

것에 한계가 느껴진다.

친하지 않다고 여겼던 애매한 관계의 사람이 댓글을 남기면 어떻게 반 응을 해야 할지 부담스러워진다. 이런 페이스북에 갇힌 듯 한 느낌이 나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은 연락을 자주 하는 것과는 다르다. 요즘은 상

는 너무 싫다. 사람들의 시선을 계속해서 의식하고 사람들의 관심에 목

대방과 너무도 연락하기 쉽기 때문에, 그리고 상대방의 상태를 확인 할

을 매는 것이 계속되니 지치고 회의감이 든다. 과연 무엇을 위한 ‘페이

수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이전, 전화와 문자만을 사용했을

스북 질’일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주님께 예쁨 받는 것에 만

당시의 긴밀하고 친밀한 소통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관심 있던 남자애

족하는 크리스천인데 왜 나는 이렇게 까지 사람들의 관심에 초점을 두

와의 문자 한통에도 설레이던 마음, 보낼 수 있는 글자 수를 최대로 꽉

고 살아가는 걸까?

채워서 친한 친구와 한 통씩 한 통씩 문자를 주고받았던 기억은 이제 먼 옛날의 것이 되어버렸다. 어느새 한없이 가벼워진 대화들을 의식할 때

내 마음은 계속해서 어렵다. 페이스북으로 얻는 즐거움이 어느새 삶의 방향이 되어 오로지 ‘재미’만을 추구하고 시간을 허비하게 되었다.

마다 씁쓸해진다. 항상 집에 갈 때 마다 텅 빈 지갑과 텅 빈 마음을 금 새 또 가득 찬 타임라인에 의지하며 돌아간다.

시간 낭비라는 것을 알지만 멈추는 것이 힘들다. 계속해서 업데이트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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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쉬어가는 페이지] 김예슬의 라이프 레시피

이런 상황 모두가 전적으로 페이스북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 다. 하지만 공허한 사회를 만드는 것에 어느 정도 책임은 있다고 생각 한다. 페이스북을 가치관 형성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하게 되면 어 느새 세상의 흐름에 물들게 되고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른 채 사회구성 원이 될 수 있다. 진정한 ‘어른’이 되기 전에 세상적 사람이 되어 버리 는 것이다. 이제는 세상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 나라에 구애받 고, 하나님 나라만을 의식하는 크리스천으로 회복되고 싶다. 우리는 왜 페이스북을 하는 걸까? 원초적인 질문을 열심히 고민해 봐도 답은 내릴 수 없었다. 그렇지만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면 점차 회복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영혼없이, 진정성 없이 그저 댓글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 이 아니라 온 맘 다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상대방의 생각을 하며 의미 있는 의사소통을 나누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언제나 그 분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 게시물을 올릴 때도 잊지 말자. 또 다시 습 관처럼 페이스북에 접속해도 기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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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는 페이지] 김예슬의 라이프 레시피

이유식의 농도 글 / 김예슬D(2313구역)

스콘(scone)이라고 하면 보통은 동그랗고 앙증맞은 영국식 티푸드

고 있는 게 이유식 같다는 생각이 언뜻 스쳐지나간 것이었다. 약간 되

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한때 백화점

직하면서도 부드럽게 조리된 이유식의 질감 그리고 농도가 스콘의 그것

지하 1층 식품코너에서 판매되던 넙대대한 사각 빵이다. 정확히는 그 뻑

과 슬며시 겹쳐졌다. 모유나 분유만 먹던 내게 조금은 뻑뻑하게 느껴졌

뻑한 식감이라고 해야겠다. 밀가루 반죽을 뭉쳐 놓은 모양 그대로 구워

을 낯선 음식, 그러나 잠자고 있던 미각세포를 깨운 생애 첫 음식다운

져 나오는 스콘의 수더분한 외양은 사실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그

음식이 바로 이유식이었겠지. 그 기분 좋은 자극을 스콘을 먹으며 다시

런데 이 평범한 빵에서 참으로 다층적인 맛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처음

느꼈다고 하면 너무 억지일까.

에는 빡빡하고 치밀한 입자들이 입 안을 콱 틀어막을 듯 엉겨 붙는다. 한참을 오물거리다 보면 양치질한 것도 아닌데 신기하게도 뽀드득거리

아쉽게도 이 사각 스콘은 백화점에서 몇 년 버티지 못하고 퇴출되

는 질감이 느껴진다. 그러면서 뭔가 굉장히 기분 좋은 농도로 입자들

었다. 요즘 베이커리에서 파는 스콘은 하나같이 파삭파삭하고 단단하

이 풀어지고, 은은한 단맛이 밀가루의 두터운 맛을 치고 올라온다. 나

다. 서양에서 실제로 만들어 먹는 스콘과 흡사한 버전으로 전부 바뀐 때

는 이 지점에 굉장히 집중했다. 스콘을 한 입씩 베어 물 때마다 서서히

문이다. 이제 속이 소다빵처럼 뽀송뽀송해 목이 턱턱 막혀오는 스콘은

그 지점에 도달했다가 멀어지고, 다시 다가갔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했

또 다른 추억 속으로 사라진 듯싶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오리지널 스콘

다. 어느새 스콘을 먹는다는 것은 그 만족스러운 경험을 최대한 연장시

레시피 대신 스콘빵 레시피를 구해, 이유식 같은 스콘빵을 만들어 먹으

키는 행위가 되었다.

며 나름 치열했던 미식 기행(奇行)을 기념하는 동시에 이 기행(紀行) 을 끝맺고 싶다.

나를 매료시켰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스콘의 뻑뻑함이었을까 부드럽게 풀어진 질감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뻑뻑함과 부드러움의 대비였을까. 무엇에 천착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한동안 나는 온몸의 감각을 동원해 스콘을 먹고 또 먹었다. 마치 스콘에서 진리를 구하기로 작정한 듯한 모양새로 말이다. 구도(求道)(?)의 노력 끝에 맺힌 결실 이었는지, 하루는 무의식중에 이유식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 우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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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는 페이지] 김예슬의 라이프 레시피

통밀 크랜베리 스콘 레시피

➏ 쿠키커터로 찍어낸 스콘을, 유산지를

➌ 건조 크랜베리를 넣고 대충 섞어요.

깐 팬 위에 올려요.

[재료] 통밀가루 100g, 박력분 140g, 베이킹파우더 12g, 설탕 10g, 소 금 1g, 차가운 버터80g, 사워크림 80g, 건조 크랜베리 적당량, 덧가루( 밀가루) 한 줌

[분량] 6개(원형 쿠키커터 5cm 기준)

➍ 반죽을 한 덩이로 뭉쳐 비닐로 감싼 후 냉장고에서 30분 이상 휴지시켜요. ➐ 노릇한 색이 날 때까지 오븐에서

[주의사항] 스콘은 부슬부슬하더라도 반죽이 뭉쳐질 정도로만 반죽해

12~14분 구운 뒤 식힘망으로 옮겨 완전

야 바삭한 식감을 즐길 수 있답니다. 반죽 상태에 따라 사워크림의 양

히 식혀요.

을 조절해주세요. 완전히 식혀요.

➊ 두 번 이상 체친 가루류를 큰 볼에 담

➋ 사워크림을 넣고 부슬부슬한 소보로

아요. 여기에 사방 1cm 크기로 자른 차

상태가 될 때까지 스크래퍼로 섞어요.

가운 버터를 넣고, 스크래퍼나 포크로 콩

➎ 오븐을 200˚C로 예열해요. 덧가루를 뿌린 작업대 위에서 반죽을 1.5cm 두께

알만 한 크기가 될 때까지 잘라가며 섞어

로 밀어준 후 3단으로 접어요. 다시 한 번

요. (절대 으깨듯이 섞지 말고 스크래퍼

반죽을 밀어 3단접기 해요.

를 수직으로 세운 채 긁듯이 섞어야 해 요. 키친에이드나 도우블렌더가 있다면 훨씬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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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Part 3.

고통을 담은 사진을 바라보며 글 / 배온유 기자

이용되는 타인의 고통 페이스북에는 종종‘l Like = l dollar’, ‘l like = 1 prayer’라는 문구가 붙은 수많은 사진이 떠돌아 다닌다. 그 사진들에는 어떤 특정한 맥락이 다. 전쟁에서의 부상으로 인해 사지가 절단된 군인, 커다란 종양을 달고 태어나, 숨을 쉬는 것도 버거워하는 아기, 어른 손가락만한 굵기의 다리 로 위태롭게 땅을 딛고 서있는 기아 상태의 아프리카 소년. 그러한 사진 들은 차마 보기에도 ‘끔찍하다.’고 할만큼 극도의 고통을 담고 있다. ’ 불쌍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인간이라면 으레 가지게 되는 연민을 자아내는 사진들. 이러한 사진들은 쉽게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다.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사진들이페이스북에 실리면어떤 미디어보다 도 쉬이 국경을넘어전세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것이다. 저마 다의 언어는 다르지만 그들은 한 마음으로 사진 속 고통 받는 이들의 안 녕을 비는 마음으로 ‘좋아요’를 누른다. 하지만 한편으로 사진들을 보는 것을 불편해하는 시각이 있었다. 나도 그러한 시각을 가진 한 사람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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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다. 그것은 고통 받는 어떤 존재를 보았을 때의 동요와는 결이 다른 불

이렇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영혼의 전율은 실상 그들의 극심

편함이었다. 일종의 위선이랄까. 나는 그러한 사진들을 올리는 게시자

한 고통함에서 우리의 무력감을 나타내는 것 이외의 다른 감정이 아니

들에게,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들에게서 일종의 위선을 느꼈다. 하지만

다. 고통의 당사자들은 우리와 너무도 먼 곳에 있고, 그들은 우리와 현

그 불편함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것이 위선

격히 다른 존재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는, 단절이 궁극적으로 이 사진

이라고 말하기에는 내 안에는 논리를 갖춘 근거가 없었다.

으로 초래되는 결말일 뿐이다. 이러한 ‘이름없는 고통’을 목격할 수 있는 곳이 페북에만 국한되어

이름이 없다.

있는 것은 아니다. 페북에서의 이러한 사진과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그러던 와중에, 나는 그 사진들에 대하여 특징적인 점을 발견하였

은 실상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고통에 찬 다른 이를 대하는 반응을 단

다. 그 사진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없었다. 그 사진들에는

적으로 보여준 예이다.

고통만이 존재했다. 그들의 사진에는 그들이 어떠한 경로로 그러한 고 통을 가지게 되었는지 어떠한 설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나이, 그

서사의 부재, 그 이상의 의미

들의 이름에 대해서는 어떠한 정보도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오직 주어

혹자는 말한다. 그러한 사진이 있어서 우리는 조금이나마 타인이

진 것은 그들의 고통 뿐. 사진 속 찍힌 인물들은 그들의 고통에 주인공

가진 고통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지 않느냐고. 그러한 사진이나마 없다

의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다

면 우리는 정말로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질 것이라고. 나도 사진이 어

그러한 사진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에게 연민을 느낄만

떤 곳의 고통의 존재를 드러내는 데는 정말 효과적인 매체라고 생각한

큼 도덕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사진의

다. 사진을 보는 우리는 어떤 설명도 필요하지 않는다. ‘형언’할 수 없다

문제는 그러한 인식으로 사진에 대한 반응이 끝나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는 말이 있다. 우리의 말은 불완전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것

미국의 저널리스트 수전 손탁은 “우리가그런 사진을 받았을 때 타인의

들이 존재한다. 아니 실상 우리가 말로 설명이 가능한 영역은 이 세상을

고통을 확인함과 동시에 자신의 안온함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인식하게

이루는 그 어떤 것의 아주 조그만 일부분일 수 있겠다. 그마저도 완전하

된다”고 말한다. ‘참혹한 전쟁의 배경은 무척이나 낮설고 이국적이다.

지 못하여서, 어쩌면 말을 한다는 것은 표현을 하는데에 있어서 실패의

빼빼 말라서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는 아이의 피부는 검다. 그들의 이름

역사라고 단정해도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사진은 그 형언할 수 없

을 알지 못하고 그들은 ‘우리’가 아니다. 그들은 참으로 멀리 있는 존재

는 부분을 메우는 매우 효과적인 매체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렇다

이고, 그들의 고통은 너무도 극심하고,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경감시킬

하여 현대 사회에 사진이 가지는 권위가 과연 온당한 것이냐는 전혀 다

수 있있는 어떠한 힘도 지니고 있지 않다.‘ 사진을 보면서 짧은 시간에

른 문제이다. 사진 기술이 발명된 이후로, 사진은 ‘증거’로서의 권위를

사진으로 주어진 정보를 사용하여 도달할 수 있는 생각의 결말은 결국

부여 받는다. 그림이 현실을 ‘모사’했다면 사진은 현실을 ‘포착’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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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믿음아래, 사진의 객관성과 진실성 인정받아왔다. 하지만 실상 사진은

우리는 또다시 고통에 찬 누군가를 사진을 통해 목격할 것이다. 또

지극히 주관적인 기술이다. 피사체를 선별하는데 있어서 이미 사진사의

다시 사진 앞에서 우리는 놀라고 충격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사

주관적인 시선은 작동한다. 심지어 사진에서 담아내고 있는 상황이 조

진이 주는 충격에서 머무르려고 하면 안 된다. 무력해져서는 안 된다.

작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존재한다. 전시의 척박한 분위기 속에서 사

우리는 궁금해 하여야 할 것이다. 사진의 후면의 ‘이야기’를.

랑스러운 연인의 키스장면을 찍어 유명해진 미국의 사진가 로베르 두아 노의 사진 속 연인들은 실상 사진사가 스카웃한 모델들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사진의 진실성은 크게 훼손된다. 사진이 포착하는 것은 ‘순 간’이다. 우리는 ‘순간’이 아닌 ‘순간의 연속’을 살아간다. 순간이 인간 의 모든 역사를 대변할 수 있다는 믿음은 무척이나 허황된 것이다. 사진 속에는 순간적으로 사람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 파괴적인 힘이 있지만 피사체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서사가 부재하다. ‘서사’, 즉 이야기를 듣고, 읽고, 이해하는 데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듣고 읽는 것 을 수동적인 행동으로 간주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 일단은 이 야기는 시간을 요한다. 이야기를 접하는 사람은 반드시 절대량의 시간 을 할애하여야 한다. 또한 수신한 이야기를 자신의 머릿속에서 다시금 이해를 위하여 재구성해야 한다. 그 뿐인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뉘앙 스를 계속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비록 하지는 않았지만 행간 에 있는 이야기도 잡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이야기를 접한다는 것은 이처 럼 철저하게 적극적인 행위이고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을 요하는 것이 그저 사진에 비해 비합리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러 한 노력은 상대방의 고통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낳는다. 그 사람의 아 픔의 본질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그 사람의 행동에는 어떤 의도가 들어 있었는지,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비 록 그 이해가 불완전할지라도, 그러한 이해가 기반이 되어있다면 적어도 우리는 고통을 직면하고 있는 사람 앞에서 ‘무력’해지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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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자 칼럼

함께 있는 사람들 글 / 이광희 목사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우셨습니다. 도대체 어떤 기준을 갖고 세우 셨는지 알기 힘듭니다. 핏줄로 이어진 형제가 있고 아무 연고도 없는 사 람이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알아 동업했던 사람들도 있고 지금까지 어 떻게 살았는지 전혀 관심 갖지 않았던 사람도 있습니다. 출신 지방도 달 랐고 직업도 달랐습니다. 우레의 아들이란 표현을 볼 때 성격이 다른 사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람보다 불같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처음 예수님을 만났던 때도 달랐습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니다. 부르심 받기 전까지의 신앙생활도 전혀 다른 모습들이었습니다.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나무 아래에서 매일 기도하는 사람도 있었고, 마음에 그리움을 품었지만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생업에 종사했던 이도, 등지고 돈을 추구하던 이도 있었습니다. 이후 기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록된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존재감도, 예수님과의 거리감도 달랐습니다.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이러한 제자들의 다른 부분들 때문인지, 복음서에서는 예수님 앞에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서 제일 큰 사람이 누구인지 논쟁하고 경쟁하던 모습들을 봅니다. 서로

(마가복음 3장 16~19절)

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사회 타락의 주범들을 암살하던 열 심당의 일원인 가룟 유다가 돈을 맡게 되었을 때, 로마 편에서 자국민의 돈을 착복하던 세리 마태에게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래 너 잘 만났다. 한번 당해봐라.” 같은 빵이라도 어떻게든 제일 작은 것을 찾아 주었을 것이고, 눈치와 짜증으로 기를 죽였을 것입니다.

제자로 세워진 우리는 지금 교회와 구역으로 함께 모입니다. 어떤 것을 기대하십니까.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배경과 상황 감정이어야 하고, 완벽히 나를 이해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가장 완벽한 인간인 예수님이 불러 세우셨던 제자 공동체를 볼 때, 그런 교회 는 세상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구역원 모두가 나를 정확히 이해해줘야 만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 사람들은 다르겠지 생각 된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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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자 칼럼

언젠가는 다른 부분들로 인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임을 인 정하고 함께해야 구역 안에서 상처 받는 일이 없습니다.

또한 서로 다른 모습을 보며 비교하고 경쟁해 판단하고 정죄하며 예수님 앞에서 누가 큰 지 싸움하는 것을 멈추길 부탁드립니다. 사단과 싸우며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는 예수님 앞에서 철없는 제자들의 다툼 이 이어질 때마다 얼마나 마음 아프셨겠습니까. 시대가 악하고 추수할 곳은 많은데 우리가 교회 안에서 서로 죽이고(마음으로, 말로, 사회적 으로) 교회를 떠나보내게 했을 때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계시겠습니까. 그렇게 잘난 척했던 제자들도 고난 앞에서는 도망하거나, 부인하거나, 심지어 주님을 팔아넘기기도 했습니다. 고난이 우리를 검증하기 전에, 서로가 서로를 검증한다고 상처주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자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었다면 결코 만 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우신 사람들을 불러 하나의 소 그룹으로 만드셨습니다. 그 중심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1) 우리를 제 자로 세우신 주님은 우리를 구역으로 부르십니다. 구역은 우리에게 선 택이 아닌, 걸어가게 될 자연스러운 종착지입니다. 2) 구역은 나 자신과 완벽히 일치하는 곳이 아닌,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3) 그 속에서 누가 큰 지 싸우는 것을 멈추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부족함 을 매워 주어야 합니다.

열네번째 양화진음악회

2014.10.02.Thu. PM 8:00

구역 속에서 ‘예수님 아니면 내가 이런 사람을 언제 만나볼까’ 생각

보드란 상현(上弦)을 차게 우려내듯 홍차내음의 는개비가 나리던 가을 밤, 양화진 묘원 에는 음악처럼 아름다운 사람들과 사람들처럼 향긋한 음악이 가득했다. 바이올리니스트

하고 계신다면, 지금 바르게 가고 있는 것입니다. 매주 모임 속에서 다

이미경과 피아니스트 아드리안 외티커가 그림같은 양화진의 밤 하늘에 모차르트와 멘델

름을 인정합시다. 그리고 유일한 일치점 되시는 주님을 붙잡고 함께 십

스존을 녹여내었기 때문이다. 아드리안은 함께 방한한 (피아니스트인) 아내와 함께 현

자가와 부활로 걸어갑시다.

장에서 즉흥적으로 포핸즈 피아노연주를 선보였고, 관객들은 공연 중 도둑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자리를 뜨지 않는 성원과 박수갈채로 보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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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소식

[ 21교구 | 김종필 목사] 두 분의 구역장님이 사임했습니다. 한 학기 동

이 글을 읽으시는 동안 구역모임에 나오시기 부담스러우셨던 분이 함께

안 귀하게 섬겨주신 정재욱 구역장님(2108), 최정미 구역장님(2109)께

할 용기를 얻으시길 기도했습니다. 보이지 않던 친구에게 연락하기 주저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한 분의 구역장님이 새로 부임했습니다. 초창기

했던 분이 통화를 시도해보는 일이 있길 바랍니다. 교구라는 이름으로

부터 구역장으로 섬겨주셨던 김경환A 집사님(2108)은 다시 복귀하셨

함께 모인 20대 청년들과 조금 더 자주 보며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습니다. 마찬가지로 두 분의 권찰이 사임하고, 한 분의 권찰이 새로 섬 기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수고해 준 이중헌 권찰(2109), 김수영E 권찰

[ 23교구 | 장재령 목사] 이재희 자매님(2309구역)은 올해 초 사랑을 시

(2111) 두 분께 감사드리고, 새로 섬기게 된 박은경B 권찰(2111)님을

작했는데 10월 4일에 결혼합니다. 사랑은 시간을 무색케 합니다. 사랑

환영합니다.

은 순식간에 깊어지기도 하고 결혼이 되기도 합니다. 시작된 사랑이 어 떻게 무르익어갈지 기대가 되고 기대는 기도가 됩니다. 재희자매님도

[ 22교구 | 이광희 목사] 2학기는 짧습니다. 벌써 종강일까지 남은 날

키가 큰데, 신랑될 강창인 형제님(이웃 교회)은 더욱 큽니다. 나무 같

을 손꼽을 수 있으니까요. 남은 시간동안 무엇을 하며 2014년을 맺으려

은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섰는데, 너무 활짝 웃지 않고, 은은한 미소를 지

하시나요? 저는 12월까지 22교구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은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10월 18일에는 묘역에 있는 잡초를 제거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오

홍지영 자매님과 이선민 형제님(모두 2306구역)은 묵묵히 사랑을

전에 시작해 함께 점심 식사를 합니다. 양화진을 보존하고 정신을 계승

지켜오다가 10월 18일에 결혼합니다. 지영 자매님이 남자친구를 소개

하는 우리 교회 정신을 배울 가장 소중한 시간입니다. 지금까지 보기만

하며 볼이 빨갛게 되었던 시절이 얼마전 같은데, 사랑은 시간을 무색케

했던 묘역들에 들어가 잡초를 하나씩 뽑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깊은 깨

합니다. 사랑은 다채론 시간을 지낼 수 있는 힘이 되었고, 이제 결혼이

달음과 함께함의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됩니다. 신랑될 선민 형제님은 사진찍는 것을 즐거워하는데, 그의 사진

11월 12일 저녁에는 감사주일을 맞아 교구별로 찬양을 부르는 시 간이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 가장 큰 감사는 기댈 수 있고 품어줄 수 있

속 지영 자매님은 에덴동산에 있는 표정입니다. 앞으로 그들의 사진이 얼마나 기대되는지요.

는 교회를 주셨음이라고 찬양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10

놀랍게도 23교구의 결혼소식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11월 14일

월부터 함께 찬양을 부르고 준비하는 시간들을 통해 조금씩 하나님의 기

에는 최수진 자매님(2304구역)과 원수민 형제님(2303구역)이 결혼합니

쁨을 찾아간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다. 수련회에서 스쳐갔던 그 사람이 평생의 벗이 되리라고는 누구도 생

마지막으로 구역모임 시간에 함께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매주 다

각하지 못했는데, 사랑은 우리의 예견을 무색케 합니다. 사랑을 타고,

짐하지만 세상의 바람 앞에 꺼져버렸던 나의 열정이, 우리라는 숲 속

하나님의 뜻은 우리 삶에 뿌리를 내립니다. 자라갑니다. 신랑될 수민 형

에서 서로의 불씨를 모아 서로를 따스하게 지켜주는 시간이 구역입니

제님의 눈은, 수진 자매님 앞에서 무척이나 작아집니다. 눈이 커질 새

다. 10번 정도 남은 2학기 구역모임 시간에 꼭 함께해 주시길 바랍니다.

없는 청춘은 어찌나 아름다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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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소식

그리고, 12월이되면 19일에 최려화 자매님(2307구역)과 김천룡 형

*하반기는 또래모임으로 진행됩니다.

제님(2311구역)이 결혼합니다. 중국에서 한국에 이른 이들의 사랑이야

3) 11월 12일 수요일, 감사 주일맞이 교구대항 합창대회가 있습니

기는 “to-get-her”로 정리될 수 있는데 꼭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다. 청년의 목소리와 몸짓으로 하나님께 함께 찬양합시다. 누구나

사랑은 평범한 투게더라는 글자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보게하는 매직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아이가 됩니다. 얼마전 교회 마당에서 신랑될 천룡형제님이 려화자매

4) 12월 교구종강의 밤, 2014년 한해를 돌아봅시다.

님과 어깨동무한 모습을 보았는데, 저녁햇살이 그들에게 살포시 내려

5) 24교구, 겨울수련회가 준비 중입니다. 더불어 좋은 시간을 만들

앉더군요.

어보아요. 일정: 2015. 1. 29(목)~31(토), 준비팀으로 자원해주세

23교구 벗들이여, 누군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무어냐 제게 묻

요. 봉사+교제+영적도약으로 어우러질 시간들을 기대합니다.

는다면 저는 “사랑이요!”라고 대답할 텐데, 기꺼이 “사랑”하며 살기로 언약하는 그대들이 저는 무척이나 자랑스럽습니다. 사랑합시다. 사랑

2. 24교구 결혼한 청년들이 있습니다. 새로운 가정에 주님께서 함께하

할 수 있도록, 구역모임을 쉬지 맙시다. 사랑할 수 있도록, 구역 간 소

시길!

개(팅)도 게을리 하지 맙시다. 사랑할 수 있도록, 매 월 마지막주 4부

1) 공하영(2413) 7/26 결혼과 독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답니다.

예배 후에 열리는 <더불어,구역모임>도 놓치지 맙시다. 우리 교구에 사

유학과 결혼생활, 파이팅!

랑이 무성하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도하며, 장재령 드립니다. 하나님은

2) 손소진(2407) 9/20 구역장님께서 따님을 보내는 심정으로 보

“사랑”이시라!

내셨어요. 심지어 우셨다는 후문도 들리더군요. 3) 하은빈(2408)

9/26 온더힐 찬양팀의 김대훈 형제와 오랫동안 교제 후, 부부의 연

[ 24교구 | 김우진 목사]

을 맺었답니다.

1. 24교구, 2웃4촌(이웃사촌) 가족들 평안하신지요. 하반기 스케쥴 알 3. 2415구역(구역장-김신혜A, 권찰-김보은)이 지난 1학기 말에 새롭게

려드릴게요.

1) 10월 18일 토요일, 짝수교구가 함께 묘원관리를 한답니다. 우리

시작했답니다. 많은 청년들의 관심과 기도 부탁드립니다.

교회의 사명을 기억하시지요? 묘지기의 사명. 모두 나오셔서 함께 땀 흘리며 한층 가까워집시다.

2) 11월 9일 주일 4부예배후, 교육관 지하2층에서 교구모임이 있습 니다. 벌써 교구모임이 1년이 되었습니다. 꼭 참석하시어 같은 시 대를 살아가는 이웃사촌들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두 팔 벌려 그 대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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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팀 소개 [담당 교역자]

예배와 삶이 풍요로워지는 섬김의 자리에 함께 해요!

장재령

홍보팀: 주일 4부 예배 때 배포되는 20대 청년 계간 소식지

을 통해

섬기는 팀입니다. [모임 장소] 교회 근처 카페 | [봉사 시간] 오후 1시~3시 30분 [문의] 송우리 010.6889.5292 배온유 010.3588.3760 [비정규 팀원 모집] 홍보팀 정식 팀원이 아니더라도 백통의 컨텐츠를 함께 만들 수 있습니다. 평소 글 쓰는 것을 즐기거나 관심 있는 분, 일러스트·사진·

[담당 교역자] 김종필

만화·컬쳐 리뷰 등의 출판물 컨텐츠에 관심 또는 달란트가 있는 분의 연락을

안내팀: 주일 4부 예배의 인원 계수와 자리 안내를 담당하는 팀입니다.

기다립니다. 부담없이 연락주세요.

[봉사 장소] 홍보관 지하 3층 | [모임 시간] 2시 50분~3시 10분 [봉사 시간] 2시 50분~5시 30분 | [문의] 황신재 010.5152.1708

성극팀: 극적 극적*인 팀입니다. [봉사 장소] 제 4별관 2층

친교팀: 주일 4부 예배 후 친교실 정리를 담당하는 팀입니다.

[봉사 시간] 오전 10시~오후 1시

[봉사 장소] 친교실 | [봉사 시간] 5시~5시 30분 | [문의] 강서현 010.2122.7731

[담당 교역자] 이광희

[문의] 황규진 010. 8586.1103 마이로드 성가대: 주일 4부 청년 예배 때

미디어팀: 주일 4부 예배 때 음향, 영상, 편집으로 섬기는 팀입니다.

한 마음 한 목소리의 성가로 섬기는 팀입니다.

[봉사 장소] 홍보관 지하 3층 미디어실 | [봉사 시간] 3시 50분~5시 30분

희극적이기도 하고 비극적이기도 하고 적극적이기도 하고 소극적이기도 하고 머리를 긁적긁적 거리기도 하고 종이에 펜으로 긁적긁적 대기도 한다.

[봉사 장소] 선교기념관 지하 1층

[문의] 전준규 010.4744.8963

[모임 시간] 2시 30분~예배 전, 예배 후~6시 30분 [봉사 시간] 4부 예배 | [문의] 오영훈 010.6747.5870

새가족팀: 주일 4부 예배 때 홍보관 지하 2층에서 예배를 준비하고, 예배 후에 새 가족분들을 도와드리는 팀입니다. [봉사 장소] 홍보관 지하 2층 | [봉사 시간] 3시~4부 예배 전 [문의] 김예슬D 010.7579.1548 온더힐(On the Hill) 찬양팀: 4부 청년 예배 때 부르신 곳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찬양하는 팀입니다. [봉사 장소] 홍보관 지하 3층, 제 4별관 201호 [모임 시간] 토요일 6시~9시, 주일 3시~4부 예배 전 [봉사 시간] 4부 예배 | [문의] 이형탁 010.7131.8918

[담당 교역자] 김우진

예배팀: 주일 4부 청년 예배 전 기도자와 봉헌자에게 연락을 하고, 원활한 예배 를 위한 전반적인 일들을 담당하는 팀입니다. [봉사 장소] 홍보관 지하 3층 | [봉사 시간] 3시~5시 30분 [문의] 김명준B 010.5592.0075 관리팀: 4부 예배 후, 성전을 정화하며, 주님 주신 말씀을 묵상할 수 있는 달콤한 관리팀♥ [봉사 장소] 본당 | [봉사 시간] 5시 20분~6시 | [문의] 김진주A 010.5023.3699 중보기도팀: (담당 교역자: 김우진 010.2048. 9177) 재정팀: 주일 4부 예배에 들어오는 헌금을 수거하고 계수하여 합산하는 팀입니다. [봉사 장소] 홍보관 3층 사무실 | [봉사 시간] 4부 예배 후~6시 30분 [문의] 임선정 010.7281.5755 (*30대 청년으로만 편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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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가을호 : 싫어요

www.facebook.com/100Tong 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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