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NESTY MAGAZINE 앰네스티인 * 2011* 002호
Photo essay 포토에세이
2011년 포토에세이 공모전
참가안내
신청자격 국제앰네스티 회원 접수기간 2011년 8월 1일(월)~2011년 9월 30일(금) 접수방법 이메일(amnestyin@amnesty.or.kr)을 통해 접수 JPG 파일과 에세이 파일(워드작성 요망)
공모내용
주 제 인권 사 진 본인이 직접 찍은 사진 또는 기존 국제앰네스티 사진(네이버 갤러리N 참고) 에 세 이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 A4 10폰트 5줄 이내
시상내역
공모작 중 우수한 작품을 선정해 향후 소식지에 게재 및 국제앰네스티 50주년 기념품 제공
* 제출된 모든 작품은 국제앰네스티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표절인 경우 시상이 취소될 수 있습니다.
AMNEST Y M AG AZIN E 앰네스티인 * 2011 * 002호
contents 02
Photo essay 포토에세이 2011년 포토에세이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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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review 뉴스리뷰 국제인권뉴스 / 굿뉴스
07
Act now 행동하세요 Act now for AI@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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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표지이야기 범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특별한 변화, 평 앰네스티 50년의 역사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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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앰네스티가 만난 사람 국제앰네스티 집행위원 고은태가 묻고,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이 처방하는 ‘불안한 시대’로부터의 탈출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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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여론 해군기지와 평화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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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nesty news 활동소식 지부활동소식 / 회원활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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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zone 문화공간 내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은 징역에서 배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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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ber story 회원이야기 작은 촛불들이 모여 횃불이 되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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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신입회원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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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ounting report 회계보고
2011 * 002호 통권 제39호 발행일·2011년 7월 20일 발행인·남영진 발행처·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편집인 및 편집장·김희진 주 소·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 사서함 2045호 홈페이지·www.amnesty.or.kr 전 화·02. 730. 4755 편 집·사무국 디자인·the DNC Am n e s t y Inter national Kor e a
국제인권뉴스
굿뉴스 영국
News review 뉴스리뷰
고문위기에 처한 타밀인, 영국에서 추방 비호신청을 거부당한 타밀인 20여 명이 6월 17일 영국에서 추방됐 다. 이들 중 다수는 본국인 스리랑카로 돌아갈 경우 고문 위험에 처 할 수 있으며, 살해 위협도 받고 있었다. 추방 예정인 한 남성은 공 항에서 누비 이불로 올가미를 만들어 자살을 시도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 국제형사재판소, 알-카다피 체포영장 발부 국제형사재판소(ICC)가 6월 27일 살 인과 박해 등 인도에 반하는 범죄 혐 의를 받고 있는 알 카다피를 비롯한 3명에게 체포 영장 발부를 승인했다.
국제노동기구(ILO) 가사노동자협약 채택……“이제는 모든 국가가 비준해야” 국제노동기구(ILO)가 6월 16일 총회에서 압도적 지지로 ‘가사노 동협약’을 채택했다. 가사노동협약이 효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2개 국가 이상의 비준이 필요하다.
적도기니 6월 23일 열릴 예정인 아프리카연합 정상회담을 앞두고 반정부 인사뿐만 아니라 학생 100여 명이 자의적으로 체포돼 구금됐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봉기가 확산되자 정부는 언론을 막 고 모든 시위를 금지했다.
© Amnesty International
아프리카 연합 정상회담 앞두고 자의적 체포 급증
news review 브라질 대법원 동성 결혼 합법화 브라질 대법원이 5월 5일 만장일치로 동성커플에게 이성커플과 동일한 권리를 부여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의 판결은 동 성커플의 연금, 재산 상속, 입양의 권리까지 인정하고 있다.
앙골라 6월 초 앙골라 정부가 강제 퇴거 피해자 450명에게 새로 살 집을 제공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대상자는 2004년과 2006년 사이 수도 루안다에서 고급 아파트 건설 때문에 집이 철거된 이들로, 9월부 터 입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정부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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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퇴거 주민들 새 집 마련
러시아
아프가니스탄 오사마 빈 라덴, 파키스탄에서 사망
이란에서 공개처형이 급증 했다. 올 들어 4월까지 13 건의 공개 교수형이 집행 됐으며, 이 수치는 작년 한 해 동안 집행된 총 14건에 육박한다. 특히 올해 진행 된 공개 교수형 중 8건은 2011년 4월 16일 이후 집행 됐다. 또한, 올 들어 처음 으로 미성년자에 대한 사 형도 집행됐다.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5월 2 일 파키스탄에서 미군에 의해 사망했다고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밝혔다.
체첸 대통령을 비방한 혐의로 고소당한 러시아 인권옹호가 올레그 오를로브에게 6월 14 모스크바 법정이 무죄를 선고 했다. 올레그 오를로브는 체첸에서 납치돼 살해당한 동료 나탈리아 에스테미로바의 죽음에 체첸 대통령이 책임이 있다는 발언을 해 기소 됐다.
이란 인권활동가 석방 인권활동가 에마데딘 바그히가 6월 20일 석방됐다. 바그히는 여전히 많은 이란인이 부당하게 감금되어 있기 때 문에 “비록 지금 출소하지만, 나의 절반은 아직 구속되어 있다”고 말했다. 바그히는 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차례 구속된 바 있다.
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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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처형 급증
명예훼손 혐의 러시아 인권옹호자 무죄 선고
© PRIVATE
이란
미얀마 모든 수감자에게 감형 조치 미얀마 정부가 5월 17일 복역 중 인 모든 수감자들에게 1년 감형 및 사형수에 대해서는 무기징역 으로 감형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에 따라 정치수 50명이 석방됐다. 미얀마에는 여전히 정 치수 2,200여 명이 구금돼 있다.
인도
유혈진압, 유엔이 나서야 한다
6월 12일 바레 인 군사법정이 여성 시인에게 징역 1년 형을 선고했다. 스 무 살의 아야트 알 카르메지는 학생 시 인이다. 지난 3월 개혁을 요구하는 집회 에서 시를 낭독한 혐의로 체포됐다. 죄 목은 불법 시위 참여, 공공질서 파괴, 국가증오 선동 혐의다. 구금 중 고문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운전 허용 촉구한 여성 마날 알-셰리프가 5월 22일 체포됐다. 이 여성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여성 운전을 허용하라고 촉구하는 온라 인 캠페인 “여성에게 운전을 (Woman 2 Drive)”을 지지해 운전하는 동영상을 유투브 에 올렸다가 체포됐다.
사형 집행 급증 5월과 6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형 집행 이 현저히 증가했다. 올해 들어 최소 27명 에 대해 사형이 집행됐다. 이 수치는 2010 년 한 해 집행된 사형건수와 같다. 올해 5 월에만 15명의 사형이 집행됐다. 올해 사 형이 집행된 이들 가운데는 외국인도 포함 되어 있다. 피고인이 공식적으로 변호사를 선임하기 어렵고, 대부분의 경우 이들에게 불리한 법적 절차를 고지 받지 못한다. 피 고인은 단지 강요와 속임수에 의해 얻어진 자백을 근거로 유죄 선고를 받을 수 있다.
말레이시아 선거 앞두고 표현·집회시위의 자유 탄압 심각해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시위대를 자의 적으로 구금하고, 표현의 자유와 집회 시위의 자유를 탄압하고 있다. 평화로 운 시위를 벌인 사회당 활동가 30여 명이 체포되었고, 선거 개혁 집회에 참 여한 활동가 100여 명이 6월 24일 이후 경찰에 체포되거나 심 문을 받았다.
© boxun.com
사우디아라비아
몬순철이 다가옴에 따라 인도 오 리사 주 수천 가구가 심각한 건강 상 위험에 처했다. 베단타 알루미 늄 제련소의 거대 유독 슬러지 저 수조인 ‘붉은 진흙 웅덩이’가 새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붉은 진흙 웅덩이는 약 9백2십억 리 터에 달하는 독성물질이 혼합된 것으로 추정되며, 보크사이 트 정제 과정에서 발생한 방사능 물질도 포함하고 있다.
© Amnesty International
감옥에 갇힌 시인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베단타 독성폐기물 유출
바레인 © Amnesty International
© Amnesty International
6월 첫 번 째 주말 있었던 시 위에서만 120명 이 상이 총격으로 숨졌다. 2월 시위가 시작된 후 가장 큰 규모의 유혈 사 태다. 6월 3일 시리아 200여 곳에 서 시위가 발생했으며, 지금까지 가 장 많은 참가자 수를 기록한 것으 로 보인다. 5월 16일에는 데라아 인 근 지역에서 시신 최소 5구가 발견 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사망 당시 정황과 사망자 수는 불분명하다. 일 부에서는 20구 이상 발견됐다고 전 하고 있다. 관련된 블로그 글을 6
인도네시아 아체주 공개 태형 아체주에서 5월 12일 이후 최소 21명이 공개적으로 태형을 당했다. 21명 모두 도박을 금지하는 주 조례에 따라 각각 목격자 수백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태형에 처해졌다. 주 조례뿐만 아니라, 2009년 의 회를 통과한 아체주 형법은 간통에 대한 투석형과 동성애에 대한 100대의 태형을 규정하고 있다. 이 국제인권뉴스와 굿뉴스는 2011년 6월 30일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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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시위대에 발포 할 수 없었다”
News review 뉴스리뷰 시리아에서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대에 대한 유혈진압이 멈추지 않고 있다. 6월 3일 시위에서만 12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리아 공화국 수비대에서 탈영한 병사의 이야기를 전한다. 왈리드 압 알-카림 알 콰샤미(Walid Abd al-Karim al-Qash’ami)는 탈영한 후 다른 국가에 피신해 있 다. 시리아에서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 시리아 공화국 수비대였던 나는 4월 “폭력배”를 진압할
은 남녀가 목숨을 잃는 광경을 목격했다. 한 아이는 바로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다마스커스(Damascus)
내 앞에 서 있던 장교가 쏜 총에 머리를 맞아 사망했다. 나
근처 하라스타(Harasta)에서 마주한 것은 2,000여 명의 비
는 그 장교가 계속해서 우는 게 짜증이 나서 쐈다고 말하는
무장 시위대였다. 어린아이와 여성도 있었다. 많은 남성들
걸 들었다.
이 무기를 소지하지 않았다고 항변하듯 셔츠를 벗어 보였 고, 시위대는 장미를 들고 있었다. 나는 수비대와 군대가 비무장 시위대에 발포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시위대는 “평화롭게, 평화롭게” 그리
나와 다른 병사 다섯 명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라는 명 령을 거부했다. 무기를 내던지고 시위대를 향해 목숨을 걸고 뛰었다. 시위대에 합류하자, 남성들은 나와 다른 병사들을 돕고 나섰고, 여성들은 우리를 인근 주택가로 피신시켰다.
고 “우리는 데라아(Dera’a)를 위해 우리의 목숨을 바친다”
우리는 도움을 받아 하라스타를 탈출했다. 나는 다마스
라고 외치고 있었다. 연호하는 소리를 듣고서, 나는 그들을
커스 군사법정에서 나에게 사형을 선고했다는 말을 듣고
조준할 수 없었다. 나는 데라아에서 왔고 시위대는 나의 고
시리아 탈출을 결심했다. 시리아를 떠나기 전 나는 내 증언
향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있었다.
을 유투브에 남겨 놓았다. 내가 잡히거나 살해당할 경우를
병사들은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금속으로 된 신분
대비해서다. 나는 시리아를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다.
증을 받았다. 이 신분증은 전시에만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
자수를 하면 보상금을 주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나
리고 검은색 ‘대테러 전투부대’ 유니폼을 착용하라는 명령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돈이나 명예를 위해서가 아
을 받았다.
니라, 진실을 위해 발포 명령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시위대는 도심으로 향하는 거리와 골목에 있었고, 보안 군은 출구를 봉쇄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시위대를 향해 발포를 하고 있었다. 대기 중에 어린아이 세 명과 젊
* 왈리드는 비무장 시위대를 겨냥해 발포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탈영해 국 제앰네스티에 증언한 두 번째 시리아 군인입니다. 국제앰네스티와 전화 통화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기사를 재구성했습 니다.
© wide
시리아 공화국 수비대에서 탈영한 병사의 이야기
석유산업으로 파괴된 니제르 델타의 환경, 정화되어야 합니다.
로, 수십억 달러의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석유채굴 및 정제과정에서 발생한 기름유출, 폐기물 그리고 가스소각 등은 니제르 델타의 땅과 바다와 공기를 오염시켰습니다. 이 로 인해 지역주민들은 건강, 식량, 물에 대한 권리를 침해 당했습니다. 특히 어업과 농업에 종사하던 대부분의 주민들이 자신의 터전이 오염 되면서 생계를 잃고 전보다 더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의 각종 기업규제나 환경보호법은 허술하기만 합 니다. 이를 잘 아는 기업들은 석유산업으로 인한 환경오염에 대해 수십 년째 책임을 지지 않고 있습니다. 주민들을 보호해야 할 정부는 인권침 해에 책임이 있는 기업들에게 책임을 요구할 수도, 책임을 물을 의지도 없습니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인권을 침해당한 니제르 델타 사람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새로 선출된 굿럭 조나단 나이지리아 대통령에게 석유산업을 효과적으로 규제하고 니제르 델타지역의 오염에 대해 광범한 정화작업을 약속하라고 촉구합시다.
1. 석유 산업을 효과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법의 강화 및 개정 2. 피해 입은 지역주민들과 완전한 협의를 통해 오염정화에 대한 약속 공식표명 3. 석유 산업의 오염문제가 가져오는 인권영향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결과 공개
Your Excellency, I am very concerned about the impact that oil industry pollution is having on the human rights of people in the Niger Delta. Traditional livelihoods such as fishing and agriculture have been damaged and the reduced access to safe food and clean water has put thousands of people's health at risk. I urge you to: - Enforce existing laws and reform legislation to ensure the oil industry is effectively regulated. - P ublicly commit to clean up oil pollution in full consultation with affected communities. - E nsure that the human rights impact of oil industry pollution is closely monitored and the results made publicly available. Yours Sincerely, (서명)
한국지부 홈페이지를 방문하셔서 탄원해 주시면 국제적인 탄원 숫자와 함께 자신의 탄원을 Earth Candle에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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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now 행동하세요
Act now for AI@50
나이지리아의 니제르 델타(Niger Delta)는 대량의 석유가 매장된 곳으
Cover story 표지이야기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특별한 변화,
50
앰네스티
50년의 역사
歷史
앰네스티의 첫 촛불을 밝히고, 평생 비전과 용기로 불의에 맞서온
지난 50년 동안 앰네스티는 고문을 국제적으로 없애 왔고, 전쟁범
© Amnesty International
앰네스티 스웨덴지부 회원들은 니카라과의 낙태 금지 정책에 반 대하는 탄원 서명 활동을 벌였다.
2011년 국제앰네스티 50주년을 맞으며, 지난 50년의 역사를 지난 호에 이어 두 번째로 연재한다. 억압과 불의에 맞서온 앰네스티 50년의 역사는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과 함께 연대하는 사람들이 놀라운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불의에 맞서 행동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앰네스티 50년의 역사이다. 이번 호에서는 1992년부터 2011년까지 20년의 역사 속에서 앰네스티가 만들어낸 특별한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앰네스티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전망해 본다(편집자 주).
피터 베넨슨은 2005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인권활동은 전
죄를 저지른 지도자들을 법정에 세울 수 있게 했다. 또한 국제형사
세계 감옥과 고문실 그리고 죽음의 수용소에 인권의 희망을 가져다
재판소를 설립하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고 학대와 잔혹행위를
주었다. 이로 인해 어떤 사람들은 감옥에서 풀려났고 형기가 줄어들
증명해왔을 뿐 아니라 정의를 위해 혁신과 투지로 활동하며 억압받
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또한 사
고 잊혀진 사람들에게 그들의 권리와 인권을 위해 연대해 왔다. 앰
형에서 벗어났다. 이렇게 한 사람의 용기에서 시작된 국제앰네스티
네스티는 인권을 침해하는 독재자들과 맞서 50년 동안 싸웠다. 이
는 반세기를 지나 2011년 현재 전세계 150개국 이상에서 300만 명
를 통해 앰네스티는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사람들이
의 회원 및 지지자 그리고 활동가들과 함께 인권실태조사와 캠페인
뭉치면 특별한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제앰네스
을 수행하고 있다. 이제 국제앰네스티는 인권분야에 있어 누구나 알
티는 지금 이 역사적인 순간, 우리가 걸어온 변화의 역사를 되돌아
고 있는 보통명사가 되었고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고 영향력 있는 인
보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조망하고자 한다.
권단체가 되었다. 표지설명 벨기에 지부가 광고회사인 Air와 픽셀아트 그룹인 eBoy와 함께 제작한 ‘Poverty is Mordern’이라는 아트웍. 50주년 기념 포스터이기도 한 이 아트웍은 빈곤에 사는 사람들이 궁핍할 뿐만 아니라 배제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한채, 폭력과 불안에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있다. ⓒ eBoy Arts Inc. and Air Brussels
© Amnesty International
© Amnesty International
런던 의회광장에서 벌어진 앰네스티 철야 침묵 시위
앰네스티 캠페인, 인권변화의 촛불을 밝히다 1992~2001년 앰네스티는 하나의 캠페인으로 시작되었다. 앰네스티의 국제적 운동을 시작시킨 “사면을 위한 탄원 1961(Appeal for Amnesty 1961)”은 단순 한 언론보도나 연구물로 의도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들을 움직 여서 행동하게 하고 변화를 위해 쓰여진 것이었다. 그 이후로 캠페인 활동을 통한 변화를 달성하는 것은 앰네스티의 임무가 되었다. 90년대 들어 앰네스티는 전세계적인 글로벌 캠페인을 폭넓게 전개한 다. “정치적 살인과 실종, 초법적 처형” 캠페인, “인권은 곧 여성의 권 리” 캠페인, “국제형사재판소 설립” 캠페인 그리고 “소년병” 캠페인 등 다양하고 폭넓은 캠페인이 이전 30년보다 더욱 활발히 국제적으로 전 개된다. 1990년까지 70만 명이었던 전세계 회원은 1992년 100만 명에 서 1999년에는 180만 명을 넘어서게 되고 수백 수천의 기부자와 지지 자도 지부활동에 함께 하게 된다.
90년대 이후 앰네스티 캠페인 활동의 주요한 특징은 이전 과 달리 감옥 밖에서 인권이 유린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활 동이 많았다는 것이다. 무력분쟁 속에서 살해되는 사람들, 가문과 지역사회에 의해 살해되거나 신체 일부가 절단되는 여성들, 거리에서 폭압적인 정치의 피해자가 되는 사람들이 그들이었다. 그래서 앰네스티는 이 시기부터 전쟁범죄 그리 고 여성의 인권침해에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1993년 정치적 살인과 실종, 비사법적 처형에 관한 글로 벌 캠페인인 “거짓 뒤의 삶(The Lives Behind the Lies)”이 전개되고, 1994년에는 여성에 관한 국제 캠페인인 “인권은 곧 여성의 권리(Human Rights are women’s rights)”가 펼 쳐지게 되면서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유엔 세계여 성대회에서는 “인권이 곧 여성의 권리”라는 결의안이 채택 된다. 그리고 1996년에는 가나지부 회원들이 여성할례에 대한 앰네스티 첫 워크숍을 개최한 후 7개 아프리카 국가로 부터 파견된 앰네스티 조사단이 여성할례에 대한 조사를 착 ‘관타나모 불법구금 6년’ - 관타나모 폐쇄를 촉구하는 시위, 영국.
Am n e s t y Inter national Kor e a
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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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mmanuele Gandolfo
© Amnesty International
© Amnesty International (photo: Mateusz Slecz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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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제앰네스티 전시회 2 피터 베넨슨 추모 행사 3 새천년개발목표 시행을 촉구하는 플래시몹 시위
앰네스티 지지 유명인사 앨라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e), 애니 레녹스(Annie Lennox), 아시안 덥 파운데이션(Asian Dub Foundation), 보노(Bono), 브루스 스프링스틴 (Bruce Springsteen), 달라이 라마(Dalai Lama),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Archbishop Desmond Tutu), 아웅산 수치(Daw Aung San Suu Kyi), 해리슨 포 드(Harrison Ford),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존 클리즈(John Cleese), 믹 재거(Mick Jagger),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 퍼프 데디(Puff Daddy), 김대중(Kim Dae-Jung), 라디오헤드(Radiohead), 스팅(Sting), 토니 블레어(Tony Blair), 트레이시 채프먼(Tracey Chapman), 유투(U2),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 요코 오노(Yoko Ono), 유쑨두(Youssou N'Dour), 요웨리 무세베니(Yoweri Museveni)
이 밖에도 1996년에는 인권침해실태
도적 범죄 및 전쟁범죄에 대한 사법권을
티 활동의 원칙에 있어 큰 변화를 결정한
폭로에 있어 의료 종사자들의 역할에 대
가진 공정하고 독립적인 국제형사재판소
다. 이 결정으로 앰네스티는 40주년을
한 캠페인인 “변화를 위한 처방(Pre-
의 설치를 위한 캠페인을 전개한다. 1997
맞으면서 인권침해의 범위를 이전보다
scription for Change)”이 진행되고, 1997
년에는 당시 사무총장이던 피에르 사네
광범위하게 규정하고 수임사항의 인권침
년에는 전세계 난민 인권보호를 주요 캠
(Pierre Sane)가 최초로 유엔안전보장이
해 유형에 대한 정의를 앰네스티 비전,
페인으로 전개한다. 그리고 1999년에는
사회에서 이러한 앰네스티의 문제의식을
임무, 핵심가치에 대한 광범위한 진술로
30만 소년병 문제에 대한 앰네스티의 캠
제기하게 된다. 그 결과 1998년 유엔총회
대체한다. 그러면서 인권의 불가분성에
페인이 전세계에서 큰 주목을 받게 된다.
에서는 120개 국가가 상설 국제형사재판
초점을 맞춘 새로운 미션을 채택하여 그
그러면서 앰네스티는 여러 국제적 비정부
소 설립의 법적 근간이 된 “로마조약
동안 자유권 영역에만 한정되었던 앰네
기구들과 함께 “소년병 동원근절을 위한
(The Rome Statute)”를 채택하고, 2003
스티 활동을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
연합”을 설립했다. 이 연합 조직의 캠페인
년에는 드디어 네델란드 헤이그에 국제
리에 대한 영역으로 넓히고, 그 범위를
은 2000년 5월 유엔 총회에서 무력분쟁
형사재판소가 설립된다.
더욱 확대하게 되었다. 이렇듯 앰네스티
1998년은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이 되는
의 수임사항은 40여 년 동안 새롭게 제
협약선택의정서가 채택되도록 하는 데 핵
해였다. 앰네스티는 “일어나 서명하
기되는 인권문제들에 직면하는 과정에서
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라!(Get Up, Sign Up!)” 캠페인을 통해
꾸준히 확대되어 왔다. 새로운
이 시기에 앰네스티와 국제사회는 역
세계인권선언을 지지하는 1,300만 명의
수임사항은 시민적·정치
사적으로 중요한 한가지 이정표를 세운
서명을 모아 당시 코피아난(Kofi Annan)
적 권리와 경제적·사회
다. 앰네스티는 제2차 세계대전 전쟁범
유엔 사무총장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다
적·문화적 권리에 대
죄 재판 이후 헤이그에서 처음으로 열린
시 한번 세계적 예술가들과 함께 1998년
한 구별을 없앰으로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전쟁범죄 재판을
세계인권의 날을 기념하는 콘서트를 파리
써 인권의 보편성
주목한다. 그 이유는 세계의 다양한 지역
에서 개최한다. 이번 콘서트에는 라디오
과 불가분성을 앰
에서 활동해 온 앰네스티의 경험에 따르
헤드(Radiohead), 아시안 덥 파운데이션
네스티의 가치
면 인권침해를 지속시키는 단일 요소로
(Asian Dub Foundation), 브루스 스프링
로 천명하게
가장 영향력 있는 것은 바로 불처벌이었
스틴(Bruce Springsteen) 등이 출연하고
된다.
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1996년 이후
달라이 라마(Dalai Lama)와 국제적인 인
앰네스티는 수년에 걸쳐 800개 이상의
권활동가들이 특별 출연했다.
비정부기구와 연대하여 집단살해, 비인
2001년 국제대의원총회에서는 앰네스
미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하는 앰네스티 영국지부 회원들
© Amnesty International
상황에서의 아동문제와 관련해 아동권리
새로운 시작, 새천년의 촛불을 밝히다 2002~2011년
1990년대 많은 사람들은 앞으로의 다가올 새천년에 대해 희망적인 전망을 내보였다. 특히, 2000년을 맞으며 유엔은 회원국 만장일치로 새천년개발목표를 통과시키면서 2015년까지 전
세계가 함께 빈곤을 퇴치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이러한 희망적 전망은 두려움으로 바뀌어 갔다. 자유시장 경제와 국제금융의 자유화를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는 일부 몇몇에게는 더 큰 자유와 부를 안겨 주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빈곤과 절망을 키워 놓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반면 이러한 정치적·사회적·경제적 변화의 맞은편에서 인권은 국제적인 기준으로 자리매김한다. 인권은 인지되는 수준을 넘어 세계 전역에서 변 화의 구호와 주장이 되었고, 인권의 목록은 각국의 헌법과 법률 및 국제적인 인권조약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다듬어지고 규정으로 명문화됐다. 인권운 동은 그 힘과 참여 인원이 모두 증가했으며, 인권의식도 그 어느 때와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아졌다. 이러한 희망과 공포의 2000년대를 거치면서 앰네스티는 전세계 150개국 이상에서 300만 명의 회원 및 지지자 그리고 활동가들과 함께 인권실태조 사와 캠페인을 수행하는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영향력 있는 인권단체가 되었다. 이러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2000년대에는 20여 년간 입국이 거부되던 나라들에 대한 조사활동이 가능해졌고, 빈곤과 인권침해의 악순환에 대한 캠페인을 통해 그간 인권 침해자로 인식되지 않았던 기업에 대한 활동으로 도 그 영역을 확장하게 된다. 또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난민과 이주노동자에 대한 캠페인도 더욱 강화하게 된다.
2002년과 2003년은 앰네스티 조사활동
야 할 “관타나모 수용소 불법구금 중단”
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을 포함한 17가지 요구사항을 전달한다.
2002년 수년간 국제적 로비와 압력으로
2009년 1월 오바마 대통령은 관타나모
국제앰네스티는 총 68개의 지부, 구조, 구
요청한 결과 처음으로 미얀마 입국이 허
폐쇄 및 CIA 비밀 구금프로젝트 중단 행
조 전 조직(pre-structures)이라고 하는
가되었고, 19년만에 처음으로 수단 입국
정 명령에 서명한다.
국제앰네스티 현황 지부와 구조들
국가별 사무실 및 지역별 국제사무국 (International Secretariat)으로 구성되어
이 허가되었다. 또한 2003년에는 20년
90년대 이후 앰네스티는 수많은 분쟁
간 입국이 허용되지 않았던 이라크에 대
지역을 조사하고 모니터링 했다. 그 결과
한 첫 번째 조사활동이 착수되었다. 조사
분쟁을 악화시키고, 막을 수 있는 분쟁을
팀은 실종된 사람들의 친척들의 삶에 대
더 장기화시키는 것은 분명 무기라는 것
케냐, 말리, 모리셔스, 세네갈, 시에라리
한 감동적인 인터뷰를 담아 다큐멘터리
을 앰네스티는 확인했다. 그래서 2003년
온, 남아프리카 공화국, 토고, 우간다
로 제작하기도 했다.
국제앰네스티와 옥스팜, 국제소형무기행
있다. 아프리카 베닌, 부르키나 파소, 코트디부아르, 가나,
중동 및 북아프리카 알제리, 이스라엘, 모로코, 레바논, 튀니지 미주 지역 아르헨티나, 버뮤다, 캐나다, 칠레, 멕시 코, 파라과이, 페루, 푸에르토리코, 우르과 이, 미국, 베네수엘라
50년간 앰네스티는 세 차례에 걸쳐 전
동네트워크 3개 단체는 국제 무기거래조
세계적인 고문반대 캠페인을 진행했다.
약의 제정을 위한 캠페인인 무기거래통
하지만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발생
제캠페인(Control Arms Campaign)을
한 항공기 동시 다발 자살테러 사건 이후
출범시켰다. 처음 캠페인이 시작될 때 많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불법구
은 사람들은 실현 불가능한 캠페인이라
금과 고문의 문제가 다시 전세계적인 화
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두가 된다. 이에 2005년에는 테러에 맞
하지만 캠페인 시작 3년만에 무기거래
서 싸우는 과정에서 ‘인권’을 중점적으로
조약의 제정을 위한 큰 수확을 거두게 된
고려하라는 내용의 “정의로운 방법으로
다. 2006년 12월, 61차 유엔총회에서는
테러에 맞서라(Counter Terror with
“무기거래조약을 향하여”라는 제목의 획
Justice)”라는 캠페인을 실시한다. 특히
기적인 결의안이 채택된 것이다. 이 결의
화국, 덴마크, 페로제도, 프랑스, 핀란드,
2007년에는 쿠바 관타나모만 미군기지
안은 총 192개의 유엔 회원국 중 153개국
독일, 그리스, 헝가리, 아이슬란드, 아일랜
에 5년간의 불법구금 종식과 관타나모
의 찬성표를 이끌어냈다. 이제는 어느 국
드,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몰도바, 네덜란
수용소 폐쇄를 위한 글로벌 캠페인을 진
가도 무기거래조약의 필요성을 부인하지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스페인, 스웨덴,
행하고, 2009년 1월 버락 오바마(Barack
못한다. 사실 그 어느 국가도, 심지어는
스위스, 터키, 영국, 우크라이나
Obama) 대통령 취임 첫 100일 동안 해
이 결의안에 반대표를 행사한 미국조차
아시아-태평양 호주, 홍콩, 일본, 대한민국, 말레이시아, 몽골, 네팔, 뉴질랜드, 필리핀, 대만, 태국 유럽 오스트리아, 벨기에, 크로아티아, 체코 공
드, 노르웨이, 폴란드, 포르투갈, 러시아,
Am n e s t y Inter national Kor e a
도 무기거래가 통제되어야 하고 이에 대
게 가해지는 성폭력문제에 대한 보고서
는 활동을 펼치겠다는 (((나는 존엄하
한 공통의 기준이 필요함을 원칙적으로
를 발간하여 각국 정부에 여성들이 성폭
다)))캠페인을 2009년 시작한다. 이 캠페
부인하지는 못하게 되었다.
력으로부터 자유롭게 그들의 권리를 향
인은 배제와 박탈, 불안, 강요된 침묵의
유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상황에서 빈곤한 사람들의 권리침해문제
국제앰네스티의 강점이 발휘되는 순 간이 바로 이 순간이다. 광범위한 조사
2009년 앰네스티는 역사적으로 기록
를 알리고 이들이 빈곤의 덫에서 빠져 나
와 연구를 통해 작성된 보고서를 바탕으
될 만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다. 그 동
와 스스로의 존엄함을 되찾을 수 있도록
로, 우리의 주장에 대한 명확한 근거와
안의 역사를 살펴보면 지난 50년간 앰네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이다. 또한 이 캠페
이에 따른 명확한 요구사항을 가지고 이
스티는 억압에 대항하고 정치적 권리를
인은 빈곤과 인권침해의 악순환적인 상
들 국가의 도덕적 책임감에 호소할 때
외치는 시민들의 결사 및 표현의 자유를
황 중에서도 슬럼과 산모사망, 기업의 책
아무도 인권의 보호와 증진이 우리의 관
위해 캠페인을 벌여왔다. 하지만 현실
무성을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다.
심사가 아니라고 드러내 놓고 이야기할
상황을 볼 때 아직도 전세계 수십억 명
2009년 시에라리온과 미국에서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의 사람들은 먹고, 자고, 쉬고, 배우고
수 있는 산모사망의 상황을 전세계에 알
앰네스티는 2004년부터 그 동안의 여
일하며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들
렸다. 특히 시에라리온의 경우 당국의
성관련 캠페인을 확대한 전세계적인 “여
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빈곤한 환경에서
무료 산모보건서비스를 도입하도록 이
성폭력추방캠페인(Stop violence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
끌었다. 그리고 나이지리아 니제르 델타
against women)”을 시작한다. 그 첫 단
의 모습을 바라보며, 앰네스티는 세계인
지역과 인도 오리사 지역의 기업의 책무
계로 무력분쟁 속 여성에 집중한다. 현
권선언에서 밝혔던 인간의 존엄함이 어
성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
장조사를 통해 수단에서의 대규모 강간,
느 한 부분의 인권만 개선된다고 해서
결과 인도 오리사 지역의 경우 선주민의
납치 그리고 살인의 심각성을 폭로했다.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
권리와 기업책무성 간의 상징적인 승리
이후 2006년에는 가정폭력에, 2008에
닫게 된다.
로 인도 정부는 인도 오리사 지역에서
는 소녀들의 교육에 집중한다. 이뿐 아
그래서 시민적·정치적 권리와 함께
니라 앰네스티는 미국의 선주민여성에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도 증진하
보크사이트를 채굴하려 했던 베단타 기 업의 계획을 취소시켰다.
새로운 50년의 촛불을 밝히다 편지를 보냈다. “카드와 봉투들이 바닥을
를 이뤄냈다. 1961년부터 반세기 동안 전
가득 메웠을 때 조그만 감옥에 앉아서 제 가 받은 느낌을 표현하기는 불가능할 것 입니다. 그 후부터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만 7천여 개가 출간되었다. 1961년부터
것을 깨달았으며 끝까지 나의 신념을 지
매년 발간되는 연례보고서는 25개 이상
켜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의 언어로 작성되어 각국 장관들과 국가
도 여러분 각자는 카드 한 장을 보냈을지
원수들을 포함한 전세계 다양한 관계자
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모든 카드들은
들에게 보내진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 바다를 이루는 것처
이러한 활동의 결과 앰네스티는 수많
럼 거대한 압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은 감사편지를 받았다. 한 가지 사례를
와 같이 이전 양심수들 또는 고문 희생자
들자면, 1998년에 석방된 나이지라아 신
들이 보내온 감사편지들로 앰네스티 캐
문편집자인 크리스 안야우(C h r i s
비넷은 가득 차고 있다. 또한 현재 고문
Anyanwu)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감사
은 국제협약에 의해 금지되었으며 매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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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 인권보고서와 공문서가 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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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이 지난 지금 앰네스티는 많은 승리
2
3
많은 국가들이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있
대중적 시위는 로비, 법적대응, 마케팅과
고 있을 뿐 아니라 국제형사재판소를 통
같은 다양한 방식의 도움을 받고 있다.
해 최악의 반인류적 범죄들은 정의의 심
대중의 행동은 어떤 사회에서는 더 이상
판을 받게 될 것이다.
유효한 수단이 되지 않고 있지만, 다른
1974 노벨평화상
하지만 여전히 많은 문제들이 남아 있
사회에서는 가장 중심적인 것이 되고 있
다. 아직도 세계에는 30만 명이 넘는 아
다.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그것을 이용하
숀 맥브라이드(Sean Mc Bride), 국제앰네스티 사무국장 1975 노벨평화상
이들이 전쟁터에서 총을 들고 싸우고 있
고 그것의 가능성을 아는 사람들에게 새
고, 고문은 금지되었으나 81개가 넘는 국
로운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앰네스티는
국제앰네스티
가에서 비밀리에 고문을 사용하고, 54개
반드시 우리의 지역공동체, 사회단체, 정
1980 노벨평화상
가 넘는 국가에서 불공정한 재판이 행해
부에 변화를 이끌어내는 새로운 방법들
아돌프 에스키벨(Adolfo Perez Esquivel), 양심수
지고 있다. 수많은 여성들이 관습, 문화,
을 이해하고 개발해야 한다.
양심수였던 사람들과 국제앰네스티의 개입, 그리고 노벨 평화상
안드레이 사하로프(Andrei Sakharov), 양심수 1977 노벨평화상
1986 노벨문학상 월레 소잉카(Wole Soyinka), 1965년 국제앰네스 티의 지원을 받음 1991 노벨평화상
종교에 의해 폭력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그동안 앰네스티는 인권의 기준으로
또한 너무나 많은 정부들이 정부관계자
국제사회를 변화시켜왔다. 특히 국제인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 양심수
들이 자행하는 양심수에 대한 잘못된 구
권질서를 변화시켜왔다. 이러한 변화를
1992 노벨평화상
금, 살인 또는 실종사건에 대해 면책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사회구조와 대항한
주고 있다.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리고베르따 멘추(Rigoberta Menchu), 1993 국제 앰네스티의 지원을 받음 1993 노벨평화상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중심에는 개인의 연대, 개인 간의 공감이
황에서 앞으로 앰네스티의 운동이 성공
바탕이 되었다. 이것이 변화의 원동력이
김대중, 양심수
하려면 운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환경의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회원 한 사람 한
2004 노벨평화상
변화에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 냉전과 같
사람과 지지자들이 가장 강력한 힘을 가
은 분명한 상황은 이미 지나갔다. 국제적
지고 있다는 앰네스티의 신념이 앰네스
오르한 파묵(Orhan Pamuk), 양심수
역학관계는 계속 변하고 있다. 사회 내에
티의 활동을 50년 동안 유지하고 존재할
2010 노벨평화상
서 저항과 사회발전의 과정도 또한 변화
수 있게 만들었다. 여전히 조금은 느리
류 샤오보(Liu Xiaobo), 양심수
를 거듭하고 있다. 오늘날은 비밀리에 이
고, 조금은 천천히 변화될지 모르지만 앰
에 서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선동가인
루어졌던 저항운동들도 이제는 밖으로
네스티의 활동은 전세계 곳곳에서 인권
것이다.
나와 새로운 정부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을 향상시키고 변화시키고 있다. 앰네스
앰네스티 50주년을 맞으며 평범한 사
티의 운동이 성공하려면 앞에서 언급했
람들이 만들어 낸 특별한 변화들을 돌아
던 사회구조와 대항하고 변화에 적절히
보면 앰네스티는 단 한 순간도 머무르지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변화하는
않고 변화해 왔다. 앞으로의 50년 역시
© Raoul Shade
이렇게 인권침해가 아직도 현실인 상
1 러시아에서의 회원 확장 2 부르카 형제 3 국제앰네스티 20주 년 촛불 재점화 행사 4 1983년 앰네스티 덴마크지부의 양심수 를 위한 주간
© Lars Borup
4
Am n e s t y Inter national Kor e a
2000 노벨평화상
왕가리 마타이(Wangari Maathai), 양심수 2006 노벨문학상
시대에 전통적인 그룹형태를 뛰어넘어
세상을 변화시키고 모든 사람이 인간답
개인의 연대와 공감을 어떻게 앰네스티
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의 가치로 강화해 갈 것이냐가 앰네스티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앰네스티가 더
의 새로운 도전과제가 될 것이다.
이상 필요 없고, 존재할 이유가 없는 세
이러한 개인 간의 연대를 바탕으로 앰
상을 상상해보는 것은 불가능할까? 피터
네스티는 인권침해 문제에 있어 사람들
베넨슨은 앰네스티를 처음 만들던 당시
의 무관심을 분노로, 분노를 행동으로,
앰네스티가 사라지는 날을 상상했다.
그리고 행동을 변화로 이끌어 내는 사람
“마지막 양심수가 풀려나고, 마지막 고
들이다. 사람들이 가진 작은 힘을 모아
문실이 폐쇄되고, 유엔이 세상 사람들에
큰 힘으로 만들어 불의라는 높은 벽을 무
게 인권이 실재한다고 선언하는 순간 우
너뜨리는 사람들이다. 함께 가야 할 길을
리의 일도 끝이 나게 될 것입니다.”
제시하고, 그 길에 동참하도록 저잣거리
-피터 베넨슨
Interview 앰네스티가 만난 사람
© Amnesty International
국제앰네스티 집행위원 고은태가 묻고,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이 처방하는 평범한 한 사람의 행동으로 시작된 국제앰네스티가 50주년을 맞은 2011년 한국사회는 공포와 불안이 만연해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한국 정부는 ‘경제회복’과 ‘안보’를 앞세워 공포와 불안을 조장함으로써 개인의 삶을 통제하고 억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공포와 불안이 만연한 한국사회의 돌파구를 ‘인권’에서 찾고자 합니다. 지난 50년 동안 평범한 우리가 불가능할 것 같았던 변화를 만들어 왔듯이 불안한 지금 이 시대에도 인권에 근거한 소통과 참여로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 다. 가장 많은 기업임원들을 상담한 치유전문가이자, 심리분석과 사회적 통찰이 깃든 글쓰기의 칼럼니스트로 알려져 있는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국가보안법’ 피해자들과 고문피해자 등 국가 폭력에 의 한 피해자들을 위한 치유활동을 했고, 최근에는 ‘쌍용차 해고노동자’ 심리 상담을 하며 피해자들을 돕고 있습니다. 고은태 국제집행위원이
‘불안한 시대’로부터의 탈출방법
정혜신 박사를 만나 우리사회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脫 出
고은태 집행위원(이하 고) 최근에 박사
최근에 들어서는 사회적 소수자, 약자들을
님께서 <홀가분>이란 책을 쓰셨잖아
보듬는 정신과 의사로서 인식되고 있는데요.
그들 중 상당수는 알코올 중독 상태이고, 고통
그런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속에서 일상에 너무 시달리다 보니 일을 할 수
요? 또 <홀가분>이란 카페도 운영하고 계시고. ‘홀가분’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 가 있으신가요?
콥터 소리가 연상이 되면서 진정이 안 되죠.
도 없고 아이를 돌볼 수도 없는 문제가 생겨 제가 낮에는 마인드프리즘이라는 회사에서
요. 그래서 아이들이 방치되면서 생기는 아이
대기업의 임원들, CEO들을 만나 심리분석을
들의 문제도 있어요. 그러면서 내가 부모로서
정혜신 박사(이하 정) 정신분석의 최
합니다. 또 다른 한편에서, 80년대 고문 피해자
도 참 한심하고 무가치한 인간이라는 생각을
종목표는 홀가분해지는 것입니다. 우
들을 심리 상담하는 일을 3년째 하고 있습니
하면서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겁
리가 심리상담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
다. 서울 봉은사의 방 한 칸에서 하고 있어요.
니다. 제가 한 집단에 7명을 상담하는 데요, 7
을 얻거나 깨닫는 것보다는 홀가분해지는 데
최근에는 매주 토요일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명 중 5명은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합
있습니다. 또 다른 의미로는 우리말 중 일상적
들 심리 상담을 진행하고 있어요. 보도 통해서
니다. 그런데 제가 심한 사람들만 상담하는 것
인 감정단어가 430여 개 정도 있다고 하는데
아시겠지만, 우리는 그저 ‘2년 전에 굉장히 과
이 아니고, 그중에 먼저 상담을 하겠다고 나선
그 중에서 7할이 불쾌를 표현하는 단어이고, 3
격한 시위가 있었고, 진압이 됐고, 구조조정 과
사람들, 가장 좋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할이 쾌를 표현하는 단어라고 합니다. 그 쾌의
정 중에 많은 사람들이 해고 당했다’ 이렇게 알
고 있는 것이거든요. 지금 숨어서 나오지 못하
감정단어 중에 사람들이 가장 최고의 쾌라고
고 넘어갔는데, 해고 노동자들 중에 15명이 자
는 사람들까지 감안한다면 상당히 비참하고
뽑은 단어가 ‘홀가분’이라는 언어분석 결과도
살을 하거나 젊은 남자들이 돌연사를 했습니
참담한 상황이죠.
있습니다. 언어분석의 결과나 정신분석의 결
다. 그 가족들의 자살까지 합하면 죽음을 당한
과로 보아도, ‘홀가분’은 우리가 가장 편안하고
사람이 20명이 넘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쌍용차 같은 경우는 아주 강한 사례라고 할
안전하다고 느끼고 치유가 되는 상태이기 때
가장 자살률이 높은 곳이 평택이지요. 이것은
까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폭력이 빈번하잖
문이거든요.
우리나라에서 남성의 심리를 들여다보고 치
이유가 있습니다. 그 당시 굉장히 무자비한 폭
아요. 그런 식의 폭력에 노출되는 사람들은 다
력에 노출되었기 때문이에요. 방사능에 피폭되
조금씩은 심각한 문제를 안게 되는 건가요? 예
면 피폭의 순간은 잠깐이지만 이미 일생 동안
를 들면 철거 현장이나 파업 현장들이요.
유하는 일에서 독보적인 활동을 하고 계시잖아
짊어져야 할 고통들이 생겨나는 것처럼, 쌍용
요. IMF 이후 남성들의 심리상태 등의 분야 등
차 역시 정신적인, 물리적인 무자비한 폭력에
독특한 분야를 개척한 이유가 있으셨는지요?
시달린 사람들이 그 후에 계속 죽어가고 있는
처를 주는 근본적인 기재가 뭐냐면, 내 존재가
상황입니다. 이것을 도저히 가만히 두고 볼 수
아무 것도 아니라는 느낌, 즉 바닥까지 가는 경
가 없어서 제가 먼저 찾아갔고, 매주 토요일은
험입니다. 삶이 물리적으로 짓밟혀도 그렇고
그분들 심리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요, 심리적으로 극단적인 모멸감을 느껴도 그
사실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여 성입니다. 주부, 젊은 여성들이 많이 오는데, 여성들이 주로 관계나 사람들의 마음에 관심이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고 씻을 수 없는 상
렇습니다. 철거 현장에서든, 쌍용차 파업 현장
많기 때문입니다. 남성들은 그런 것쯤은 내가
직접 만나보시면 그분들 상태가 어떤가요?
에서든, 제가 만나는 80년대 고문 피해자들이
나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서 잘 안 오는데 실
저처럼 언론을 통해서 접한 사람들은 ‘그렇지,
겪은 고문 현장에서든, 그런 심리의 가장 근원
제로 그들의 마음이 편안해서 그런 건 아니죠.
해고는 심각한 문제지, 또 해고 과정에서 무자
은 내가 물건만도 못한 존재 취급을 받는다는
남성들은 개인적으로 정신과를 찾아오지 않고
비한 폭력을 당하게 되면 심리적 상흔이 남겠
경험입니다. 그런 경험은 인간의 정신을 붕괴
주로 회사 안에 있는데요, 그래서 제가 직장으
지’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구체적으로 잘 와 닿
시키죠. 그렇게 바닥까지 가서 내 존재를 느낀
로 가서 그런 분들을 많이 접하기 시작했습니
진 않거든요.
사람은 이후 정상적으로 수습되기가 너무나 힘
다. 그런 활동을 시작하다 보니까 남자들의 속 마음을 많이 들여다 보는 사람으로 보여지게 됐습니다.
듭니다. 상담을 통해서 그분들을 한 12주째 만나고 있는데요.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죠. 진압을 할 때 헬리콥터가 저공비행을 하면서 해산시키려
또, 어느 날 제가 진료실에 찾아오는 주부, 노
고 하거나, 헬리콥터 위에서 최루액을 떨어뜨
고문 피해자의 경우 이제 30년이 지났잖아 요? 그런 분들은 상황이 어떤가요?
인, 젊은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 가운데 중년의
렸죠. 또, 거기서 ‘테이저 총’이라고 하는 진압
상황이 똑같아요. 어떤 것이냐 하면, 고문을
남자들의 마음에 굉장히 깊이 공감하고 그 사
장비를 사용하고, 새총 같은 데다 쇠 볼트를
당했던 그 현장에서 삶이 한 치도 벗어나지 못
람들의 말이 유독 마음에 와 닿는 제 모습을 발
넣어서 사람들을 향해서 쏘거나 해서 살상을
한 거예요. 일상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그 현장 을 심리적으로 배회하고 있죠. 30년 전에 고문
견하게 된 거죠. 제가 일생 동안 남자들의 마음
가능하게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 이후부터 비
을 들여다본 것은 우울증을 가지고 계셨던 아
행기가 지나가거나 헬리콥터가 지나가는 소리
을 당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천 명이
버지에 대해 어린 딸로서 느꼈던 기억과 경험,
가 들리면 그때 폭력을 당했던 기억이 떠오르
넘게 모인 장소에서도 자기를 고문한 사람의
상처가 장성해서 정신과 의사가 된 후에도 연
면서 잠을 못 자고 두통이 오기 시작하고, 가
목소리는 구별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된 것 같다고 느껴져요.
슴에 통증이 오는 거죠. 조그만 소리에도 헬리
모든 감각, 내 삶의 모든 촉수가 그 상황에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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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 있는 겁니다. 계속 억울하고요. 모든 것을
분들이 있어요. 얼마 전에 제가 ‘무죄 파티’에
파괴시키고 싶을 만큼 분노가 있고요. 그러면
갔었어요. 간첩으로 몰려서 가족들 중 몇 명은
어는 더 잘 되라는 의도에서 한 행동이거든요.
서 자해를 하거나 자살을 하는 겁니다.
사형집행도 당하는 등 끔찍한 일을 겪은 분들
저는 눈에 보이는 것에 너무 과도한 가치 부여
사람을 그런 상황으로 몰아넣는 것은 그의 인간성을 몰살하는 행위겠네요.
국제앰네스티 캠페인에서 ‘나는 존엄하다’
왜냐하면 상처 주려는 의도가 아니었고, 심지
이었는데, 얼마 전에 재심에서 최종 무죄 판결
를 하는 과정 중에 ‘사람’에 주목하지 않아서
을 받으셨어요. 그분이 앰네스티 이야기를 늘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을 잘 안
하셨어요. ‘내가 민주화 투사도 아니고 촌 무지
보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렁이인데, 이런 나를 위해서 어느 나라에서 편
주목하지 않는 것 같아요. 눈에 보이는 몇 가지
지가 오기 시작하고 시위를 한다는 얘기를 들
실마리를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고 재단하잖아
고 했는데, 그 전제가 깨지면 사람은 살 수가
었던 경험을 잊지를 못한다’고. 이제 무죄 판결
요. 그러다 보니 실상은 사람에 대해서 잘 집중
없습니다. ‘존엄성’은 사람이 생존하기 위한 기
을 받으신 분들이 3년 동안 10명이 넘으셨어
하지 않고요, 사람에 대해서 잘 집중하지 않다
본 조건이죠. 저에게 상담을 받는 80년대 고문
요. 이분들이 보상금의 일부를 출연을 해서 재
보니까 사람과의 관계에서 예측하지 못하는 일
피해자 중 한 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진짜
단을 만드셨어요. 그게 ‘진실의 힘’이라는 재단
들을 많이 겪는 것 같아요. 자기가 사람을 보지
지금까지 가족에게도,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이고요.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도 치유를 해야
않아서 생긴 일인데, ‘쟤가 저럴 줄 몰랐다’는
얘기가 있다고. 물고문, 성고문 등 끔찍한 고통
된다, 또 하나는 우리가 사형수 입장에서 고통
식으로 사람에 대한 일반론으로 받아들이는 경
을 겪는 중에 수사관이 조금 쉬었다 하자면서,
을 받았을 때 알지 못하는 누군가 도움을 줬듯
우도 많고요. 자꾸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이 벌
그분에게 노래를 부르라 그랬다는 거예요. 그
이, 우리도 먼 나라의 누군가 고문을 받고 있다
어지니까 그것을 막기 위해 또 다른 기준, 잣대
런데 그때 그분이 노래를 불렀대요. 그분은 그
면 도움을 줘야 한다고 해서 만드신 겁니다. 얼
들을 외부적으로 자꾸 찾게 되는 것 같아요. 그
모멸감 때문에 가장 심각한 손상을 입은 것이
마 전부터는 고문 피해자들이 쌍용차 피해 노
러다 보니 사람을 더 모르겠고. 이런 일들이 반
죠. ‘나는 죽어 마땅한 존재다, 노래하지 말았어
동자들 상담 과정에 와서 참여하고 계세요. 이
복되는 것 같습니다.
야 했는데, 내가 굴복했다.’ 하는 모멸감이 물고
분들은 타인의 고통에 너무 민감한 분들이에
문, 전기고문보다 끔찍했던 것입니다. 한 인간
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같이 울고 하다가, 그
저는 그런 게 연상됐어요. 한국전쟁 때 한강
의 존엄성을 무너뜨리는 것, 그런 것은 사람을
아이들의 치유 문제도 심각하다는 걸 인지하시
다리가 끊어지고 이런 상황에서 내 앞 사람 하
살 수 없게 만듭니다.
고 ‘진실의 힘’ 고문 피해자 선생님들이 쌍용차
나를 앞서면 살아남고, 뒤쳐지면 죽고 하는, 그
아이들의 치유를 위한 성금을 내셔서 그들을
런 식의 트라우마가 한국사회에 있었던 게 아
돕기 시작했어요. 피해자인데 치유자 역할을
닌가 하는. 한국사회가 60살 가까이 된 하나의
하고 계신 거죠. 이분들 마음이 치유가 되면서
인격체라고 본다면 우리가 이런 걸 진단해볼
놀라운 변화가 있었던 겁니다.
수 있을까요? 정신적 현상이라든가, 병리적 증
그렇다면 이런 분들에게 치유라는 게 가능 할까요?
네. 막막하게 들리실 수도 있지만, 그분들도
상으로요.
이런 상담을 통해서 치유해야 된다 생각하고
요즘 들어 한국 사회가 무척 잔인하다, 폭력
상담실까지 이끌려 나오는 데 참 어려웠어요.
적이다라는 느낌이 자꾸 들어요. 보통 사람들
사회적으로 우리 부모 세대는 전국민이 외
내 삶이 다 파괴되었는데, 이제 와서 지난 얘기
이 남에게 던지는 말들이 굉장히 폭력적이고
상후스트레스 증후군 환자라고 볼 수 있죠. 사
를 한들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셨죠. 정
잔인하게 느껴지는 때가 많고요, 또 한 가지는
람이 도처에 죽어 나가고 가족 중에 몇몇이 죽
말 우리들 생각으로는 그럴 것 같잖아요? 그런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고문이라든가 성폭행이
는 걸 보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이거든요. 정상
데 그렇지가 않아요. 이분들이 가족에게도 수
라든가 하는 문제처럼 가해자가 명확하지는 않
적일 수 없죠. 그런 심리적 상처가 한 번도 다
치스러워서 얘기를 한 적이 없었고, 혼자서도
지만, 직장에서도, 직장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뤄지거나 보듬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아주 물리
떠올리기조차 싫어했었는데, 상담소에서 이야
도 스스로 쓸모 없다는 느낌을 사회가 지속적
적인 것에 집중하면서 여기까지 왔잖아요. 정
기를 풀어내면서 많은 변화들이 있었어요. 처
으로 주는 것 같아요. 사회 구조적인 면, 사람
상적이기가 참 어렵다고 느껴요. 최근에 제 주
음 10주 동안 최초로 6명이 상담을 했어요. 한
들의 일상적인 삶, 두 가지 레벨에서 저는 폭력
변 사람들 보면, 국민 불안 시대라고 할 만큼
번에 2~3시간 되는 상담을 했는데, 치유 과정
을 계속 느끼거든요?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전체가 병들어 있다는 느낌을 일상적으로 받아
을 거쳐서 많이 좋아지셨어요. 그래서 이분들
지 궁금합니다.
요. 제가 지금 어디가 아주 아픈 분들을 돌보고
이 동료들을 찾아 데려오기 시작했어요. 숨어
있지 않은데도, 그냥 친구나 이웃이나 친척이
사는 동료들을요. 처음에는 다들 거부하고 어
네. 폭력적이죠. 우리 사회에 많은 것들이
나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들이 너무 일
려워했는데, 그런 과정 속에서 지금 3년을 이
필요한데, 저는 그중에서도 치유가 필요하다고
상화 돼 있어요. 요즘엔 빈자나 부자나 예외가
어져 왔고요.
생각합니다.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고 받는, 내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여자들이 억압을 많
가 누군가에게 폭력적인 존재가 되는 가운데
이 받아서 우울증의 대명사였는데 요즘엔 남자
앰네스티 활동 중에 모르는 사람에게 구명 편
도처에 상처받는 사람이 넘쳐난다는 느낌이 들
들도 마찬가지예요. 정신건강과 관련한 지표가
지 쓰는 활동을 기억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
어요. 부하 상사 간에, 친구 간에, 부부 간에, 부
있는데, 동양권이 억압이 많아서 안 좋거든요.
가 만나는 분들 중에서도 그런 편지를 받았던
모 자식 간에도 마찬가지예요. 가해자가 없죠.
그 중에서도 일본이 가장 안 좋았었는데요, 한
© Amnesty International
‘성공’이란 것은 개인의 삶의 질과 본질적으로 관계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흔히 성공하면 잘 사는 데 유리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유리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회적 성공이란 때로 자기 억압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안정이 되고 현실적인 기반을 닦으면 삶도 그 기반 위에서 작동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인간 은 그렇게 기능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한데, 자기 존엄성을 지 키는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 그것이 물리적 생존에 더 영향을 미쳐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 자신을 치유할 수 있을까요? 박사님께 다 가서 상담을 받기는 힘 든 일이고요.
‘나’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존엄하다’ 그랬잖아요? 존엄하게 하려면 어떻 게 해야 하느냐, 존엄의 방법론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요, 저는 존엄의 방법론으로 넘어가기 전에 나에 대해서 집중하시라고 더 얘기하고 싶어요. 나를 잘 보지 않으면 나를 존엄하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존엄의 방법론으 로 해결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성공 한 사람들이 더 고통스럽냐? 그렇게 생각하진 않고요, 그럼 성공 못하는 것이 더 고통스럽 냐? 그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성공’이 란 것은 개인의 삶의 질과 본질적으로 관계 없 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흔히 성공하면 잘 사는 데 유리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유리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회적 성공이란 때로 자 기 억압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억압한 심리적인 대가는 삶에서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거든요. 사람은 여러 가지 심 리적 역할과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때 건강 해요. 예를 들어서, 고은태 선생님이 앰네스티 에서는 집행위원, 학교에서는 교수, 집에서는 아빠, 남편 이렇게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이런 것들이 유기적으로 작동할 때 한 인간으 10년 전부터는 일본을 제치고 우리나라가 1위
현실적이어서 더 잘 대처할 것 같은데 왜
로서 균형 잡히고 삶이 행복할 수 있는데요. 사
입니다. 지구상에서도 동양권, 그중에서도 대
그럴까, 비유를 하나 해볼게요. 2차 대전 때 아
회적으로 지나치게 가치를 부여하는 정체성을
한민국에 산다는 것만으로 스트레스성 질환의
우슈비츠에서도 그렇고 월남전과 관련한 연구
갖는 경우에, 예를 들어 장관이나 대통령, 학교
고위험 그룹에 우리가 속한다고 볼 수 있죠. 우
에서도 유사한 결과들이 있는데요, 아우슈비츠
총장 등의 직업을 갖게 되면, 나를 한 직업적
리가 이런 것에 무감각해져 있고 마비가 되어
에서 포로들에게 일주일에 물 한 통 주는 정도
정체성과 과도하게 동일시하게 되죠. 대통령으
있죠.
로 최소량의 식수를 주고 강도 높은 노동을 하
로서 그 사람의 삶이 다 지배되겠죠. 자기 자신
제가 몇 해 전에 전세계 주요 국민들의 마
게 했어요. 일주일에 한 통 식수를 주면 그 적
에 대해서 착각이 일어날 수 있고요. 한 인간의
은 물로도 반은 마시고, 반은 얼굴을 씻는 사람
건강성을 유지하는 여러 가지 다른 기능들을
음상태랄까 이런 것들을 조사한 연구를 봤는
이 있다고 합니다. 다 먹어도 시원찮을 양이지
잃어버리고 그 심리적 대가를 고스란히 치러야
데, 일본과 한국이 가장 세속적인 사회였대요.
만, 자기 자신의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한다는 거죠.
어쩌면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잘 살아갈 것 같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그 열악한 상황에서도
은 사람들인데, 뭐가 이 사람들을 자살로 몰아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생존율을 보면, 반을
가는 걸까요?
남겨서 자기 존엄에 투자를 했던 사람들의 생 존율이 더 높다는 겁니다. 우리가 물리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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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를 들여다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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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석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있는 그대로 분명히 화를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개인이에 요. 우리 사회에 폭력이 일상화되는 이유가 분 노하지 않는 것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용산 참사, 쌍용차 사태를 보면서 저에게 던 져진 가장 큰 질문은 ‘어쩌면 이렇게 사회가 무 관심할까’라는 것이었어요. 박사님 얘기를 들 으니 그것도 우리가 분노할 줄 모르는 것,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과 관계가 있겠네 요. 마지막으로 앰네스티 회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우리사회에 치유가 많이 필요하다고 했는데요, 저는 모든 인간은 치유적 존재라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은 고통을 같이 드러낼 수 나를 보시려면 내 느낌이나 분노를 잘 들여
그만둘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
다 봐야 돼요. ‘화’라는 건 내 경계를 무엇인가
리가 좀 간과하고 있어요. 보통 이렇잖아요?
면 누구보다 뛰어난 치유자가 될 수 있고, 우리
가 침범했을 때 심리적인 자기 방어를 위해서
이력서를 100군데 넣었는데 연락이 오는 데가
모두 그럴 수 있는 기본적인 전제를 가지고 있
있고, 누군가에게 내가 그런 상대가 되어준다
나오는 감정적 리액션이에요. 나를 알기 위해
없으면 나중에 ‘나는 무가치한 존재야, 사회가
습니다. 요즘에 쌍용차 관련해서 ‘박혜경과 레
서는 화를 비롯한 여러 가지 나의 감정을 아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결론에 도
몬트리 공작단’이라는 자원활동가들이 아이들
것입니다. 내 신념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내 스
달하게 되요. 그러니까 가해자는 없는 상황에
과 놀아주는 활동을 해요. 그 친구들이 진심을
승의 신념일 수 있고, 내 가치관도 내 부모의
서 피해자만 속출하는 상황인 거예요. 사람은
다해서, 온 마음을 다해서 아이들과 즐겁게 노
것일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 사람의 감정을 보
어떤 상황에서든 이걸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는데, 그중에 한 아이가 버스를 못 타요. 그 아
면 훨씬 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모습을 잘 알
해요. 그런데 가해가 불분명한 경우에는 그 이
이한테 버스라는 건, 아빠를 무자비하게 진압
수 있죠. 그래서 면벽하고 명상하지 마시고요,
유를 자기 자신에게서 쉽게 찾으려 해요. 내가
한 경찰 특공대들이 탄 버스예요. 레몬트리 공
자기 감정을 잘 들여다 보세요. 신문을 보다가
못나고, 내가 무능해서 이런 것이고 결국은 내
작단과 동물원으로 소풍을 갔는데, 그 아이는
도 ‘아, 내가 이런 일에는 이렇게 분노하는구
탓으로 되는 거죠. 그것 때문에 상처를 받고
버스를 못 타서 못 갔어요. 그런데 8주차 되는
나.’ 하는 거, 이게 나를 아는 거죠. 어떤 종류의
무너지게 되고, 그렇게 자기 규정을 한 채로
때 남산공원을 가려고 버스를 대절했어요. 그
사람을 유난히 부러워하는 경우도 있고요, 내
시간이 흐르다 보면 남들이 보기에도 저 사람
런데 아이가 자원봉사자에게 자기를 안아서 버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이 무능해서 저렇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저
스를 보여달라고 했대요. 그래서 그 친구가 아
분명하게 알 수 있죠.
는 어떤 상황에 대해서 분노하고 내 문제가 아
이를 안아서 버스 두 칸을 올라가서 버스 내부
닌 것에 대해서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우리가
를 보여준 거죠. 아이가 한참 버스를 보더래요.
제가 트위터를 통해서 젊은 세대들하고 얘
굉장히 치열해야 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생
봉사자는 그냥 놀아준 건데, 애정을 가지고 놀
기를 해보면, 존엄 이전에 존엄하기 위한 기본
각해요. 저는 지금 청년들이 겪는 자기에 대한
아준 건데, 2년 동안 버스를 못 타던 아이가 버
선, 아무리 자기 마음을 잘 다스려도 사람이
규정은 거의 99% 잘못된 것일 수 있다, 이건
스 두 칸 올라가서 버스를 한참 동안 지켜본,
돈도 벌어야 하고 어느 정도의 사회적 위치도
구조적인 문제지 개인 문제가 아닌데 이런 해
그런 훌륭한 치유를 할 수 있었던 거예요. 물론
필요한데, 그것 자체가 해결이 안 되서 힘겨워
석의 오류는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정신과 의사들이 그 아이를 데려다가 놀이치료
하는 친구들을 많이 봅니다. 참 답답하고 답이
이런 상황에 대해서 분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다 뭐다 해서 치료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게
없는 문제긴 한데, 어떤 조언을 하실 수 있을
생각해요.
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는 모두 다 진심
까요?
과, 애정과, 깊은 공감이 있으면 정신과 의사보 그런 사회 구조적인 변화는 어떻게 가능할
아까 ‘화’ 얘기랑 연결을 해서 말씀드릴게
까요? 우리가 어떤 걸 할 수 있을까요?
요. 저는 직장을 다니다 어려움이 있으면 그걸
다 더 훌륭한 치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여러분 안에 치유적 요 소들을, 앰네스티를 통해서 자극할 수 있는 기
극복하고 잘 다니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굉
각성된 개인들이 모여서 소리를 내면 들리
장히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면
지 않을까요? 각성된 개인이란 자신에게 부당
회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이 글은 2011년 6월 26일에 있었던 50주년 기념 특별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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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강정 해안가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 권보전지역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
해군기지와 평화의 섬
지사는 국책사업인 해군기지를 건설한다는 명 목으로 법과 절차를 무시한 채 무단으로 강정 해안변 절대보전지역을 해제해 버렸다. 주민들 의 거짓 주민총회를 통해 해군기지 유치를 조 작하더니 이번에는 제주 환경보전의 근간이 되 는 법체계까지 무너트리면서 해군기지가 들어
라산이나 성산일출봉 등도 국책사업이 결정되 면 더 이상 지켜낼 방법이 없어지는 셈이다.
마침 중덕바다에는 파도가 치고 있었다. 태풍
유치한다는 게 말이나 될법한 소립니까.” 사실
지난해 말 33명의 주민과 지킴이들이 경찰
이 제주를 지나 육지로 향하는 중이었다. 일찍
해군은 지난 2002년부터 제주의 화순이나 위
에 연행되었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올
바닷가로 나가 파도를 보려고 했는데 이미 바
미 같은 지역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 했지만
초부터 중덕바닷가에서는 농성이 계속되었고,
닷가에는 제법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바닷가
번번이 주민들의 반대에 포기해야 했다. 합법
그 과정에서 연행된 사람들은 단식을 하기도 했
한편에는 임시로 텐트를 쳐놓고 그곳에서 농성
적인 방식으로는 더 이상 제주 땅에 해군기지
다. 이것만은 지켜야 된다. 그리고 남은 주민들
중인 사람들도 보였다. 주민들과 지킴이들도
를 건설하기 힘들다는 것을 해군도 잘 알고 있
은 매일 트럭 아래 몸을 밀어 넣거나 포크레인
일찍부터 파도를 보러 나온 모양이었다. “파도
었던 것일까? 결국 강정에서 해군은 일부 찬성
위로 올라가 공사를 방해하는 위험한 행동들을
한번 기가 막히게 친다. 저기 하얀 게 보이나.
측 주민들을 사주해 반대측 몰래 임시총회를
계속하고 있다. 해군은 먼저 해법을 찾아본 후
그게 오탁수방지막이다. 파도에 다 찢겨졌나
열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도지사
공사를 시작하자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보다.” 다시 쳐다보니 커다란 스티로폼들이 육
는 명목상의 여론조사를 하고는 곧바로 해군기
채 본격적으로 공사를 강행하기 시작했기 때문
지로 떠밀려와 있었다. 해군기지가 건설될 바
지 강정동 유치결정을 발표해 버렸다. 대다수
이다. 평화의 섬. 이 평화의 섬이라는 가치는 4
다 주위로 커다란 막을 쳐놓았던 것이 태풍에
의 강정마을 주민들은 제대로 의견수렴조차 못
ㆍ3사건의 아픔과 한(恨)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
다 찢겨진 모양이었다. 올 초부터 시작된 육지
한 채 고향 땅에 해군기지가 들어서게 되었다
기를 바라는 열망이 담긴 것이었다. 그러나 정
부 공사가 이제는 해상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결국 2007년 8월
부가 해군기지 건설을 일방적으로 강행함으로
더군다나 최근에는 바지선까지 투입하고 있어
마을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결의를 주도
써 제주도는 ‘갈등의 섬’으로 전락했고 강정마
주민들이 몸으로 막아내는 데에도 여간 힘든
한 마을이장을 해임시켜버리면서 4년 여의 길
을 공동체의 평화는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기대하지 않았던
고 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당시 마을에서 다시
대개 국책사업을 통해 땅을 잃어버리는 곳에
태풍이 와서 해군의 설치물들을 걷어주니 주민
이루어진 찬반투표에서는 마을주민 94%가 해
서는 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일기 마련이다. 공
군기지 유치를 반대했다. 주민들은 그때 조금
사를 통해 이익을 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
들은 즐거울 수밖에.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건설된다고 발표가 난 것이 지난 2007년이었다. 그 전까지 강정은
만 민주적이었다면 지금 같이는 되지 않았을
람이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사실
거라고 말한다.
은 정부나 국방부가 이러한 과정에서 갈등의 매
제주도 남단에 위치한 작은 해변 마을이었다.
사실 제주 올레길 7코스가 아니더라도 강정
개체가 된다는 점이다. 지금 제주에서 농성을
최근에는 사람들에게 제주 올레길 7코스로 더
마을은 제주에서도 손에 꼽히는 아름다운 지역
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공사 중단을 외치고 있
잘 알려졌지만 제주에서는 드물게 쌀농사가 가
이다. 문화재보전구역, 생태계보전지역, 생물권
다. 아무런 대화와 소통 없이 과거의 잘못된 매
능해서 ‘제주 최고’라는 뜻의 일강정(一江汀)이
보전구역, 제주도립해양공원, 절대보전연안지
듭은 절대 풀리지 않는다. 결국 언젠가 주민들
라고 불리기도 한 곳이다. 제주 강정마을이 이
역 등 무려 5개의 강력한 보호구역으로 묶여
은 고향을 잃어버릴지 모르지만, 이러한 정부와
처럼 비극의 현장이 되어버린 것은 지난 2007
있다는 사실부터가 이 지역이 얼마나 중요한
의 갈등, 그리고 주민들끼리의 갈등 속에서 마
년 4월 마을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결의
곳인지를 설명해 준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
음의 고향마저 잃어버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가 이루어지면서였다. 2,000여 명이나 되는 마
장 많은 법령이 보호하라고 지정한 곳이 이곳
그래서 무작정 강정마을 앞바다에 시멘트를 들
을에 불과 80여 명이 모여 해군기지 유치를 결
제주의 강정마을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도 이
이붓기 전에 마을 주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과
정해버린 일이 있었던 것이다.
곳에 버젓이 해군기지가 건설되고 있다는 사실
정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닐까?
“강정마을에도 다른 마을들처럼 향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이 작은 마을에도 약
을 믿을 수 없었다. 특히 한라산은 물론 성산 일출봉 등 우리가
태풍이 지나고 나면 강정 앞바다에는 다시 공사가 시작될 것이다. 다음에는 태풍이 아니
속이라는 것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
익히 알고 있는 지역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들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찬성하는 사람들
‘절대보전지역’ 제도는 제주특별법 상에서 제주
원, 그리고 방문이 강정마을을 지켜낼 수 있기
끼리만 모여 만장일치로 박수쳐서 해군기지를
의 자연환경을 지키는 근간이 되는 제도이다.
를 바래본다.
Am n e s t y Inter national Kor e a
라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격려와 응
Opinion 여론
서게 된 것이다. 이런 방식대로라면 제주의 한 박정경수 활동가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지부활동 소식
AMNESTY news 앰네스티 뉴스
+ 무기거래조약 국제행동주간 © Amnesty International
국제앰네스티 50주년 행동 ‘모바일액션 Mobile Action’ 5월 28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창립 50주년을 맞이하
1
여 역사를 공유하고, 기념하기 위해 50주년 특별페이지 (amnesty.or.kr/50)를 새롭게 오픈 했습니다. 또한 앞으로의 50년을 우리의 손 끝으로 밝혀나가기 위해 국제앰네스티 50 주년 행동 ‘모바일액션’(amnesty.or.kr/mobileaction)을 시 2
3
1 무기거래조약 국제행동주간을 맞아 진행된 거리홍보캠페인 2011. 6. 16. 2 무기거래조 약 국제행동주간을 맞아 홍대 걷고싶은 거리에서 열린 ‘죽음의 상인’ 캠페인 2011. 6. 18. 3 무기거래조약 국제행동주간을 맞아 홍대 걷고싶은 거리에서 열린 ‘죽음의 상인’ 캠페 인 2011. 6. 18.
작했습니다. ‘모바일액션’은 더욱 많은 사람들과 함께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담아 그 첫 발걸음을 내디뎠고, 현재 1,000명이 넘는 회원들이 ‘모바일액션’을 신청, 한 달에 두 번씩 문자를 통한 서명운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6월 13일부터 19일, 무기거래조약(ATT) 국제행동주간을 맞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모바일액션’을 통해 쉽고, 신속하
아 전세계 약 60여 개국 이상에서 강력한 무기거래 규제를
고, 효과적인 인권활동을 해 나갈 것입니다.
요구하는 캠페인이 열렸습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모바일액션’은 휴대폰 문자로 인권보호를 위한 서명에 참여
개척자들, 무기제로팀,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평화네트
하는 활동입니다. 문자서명은 신속하게 수천 명의 서명을 모
워크, 평화바닥, 평화군축박람회 준비위원회와 함께 트위
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인권보호에 매우 효과적이며, 휴대폰을
터 캠페인, 게릴라 홍보전, 거리캠페인 “죽음의 상인” 등 다
소지하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지 쉽게 모바
양한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특히 6월 18일 홍대 걷고싶은
일액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1961(문자수신번
거리에서 개최된 “죽음의 상인” 캠페인에는 약 30여 명이
호)로 [모바일액션신청:신청자이름]을 보내주세요. (정보이용
넘는 분들이 참여해 거리를 지나다니는 시민들에게 강력한
료100원) *1961은 국제앰네스티 창립연도입니다.
조약의 제정 필요성을 알리는 활동을 벌였습니다. 국제행동 주간을 통해 500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국방부장관에게 강 력한 무기거래통제를 촉구하는 엽서서명에 참여했습니다. 캠페인에 함께한 8개 단체들은 올 7월 개최되는 유엔 무기 거래조약 준비위원회 3차 회의에 앞서 국방부장관과 외교 부장관에게 구체적인 정책제안을 담은 공동명의의 서한을 발송하고 향후 조약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강력한 조 약 제정을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모바일액션’은 휴대폰 문자로 인권보호를 위한 서명에 참여하는 활 동입니다. 문자서명은 신속하게 수천 명의 서명을 모을 수 있다는 점 에서 인권보호에 매우 효과적이며, 휴대폰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이 면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지 쉽게 모바일액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1961(문자수신번호)로 [모바일액션신청:신청자이름]을 보 내주세요. (정보이용료100원) *1961은 국제앰네스티 창립연도입니다.
국제앰네스티 50주년 인권강연 <변화를 만드는 키워드, 참여>
+ 국제앰네스티 50주년이 말하는 인권, 위태로운 역사적 변화 2011 연례보고서 발표 © Amnesty International
50주년웹페이지 2011 연례보고서 발표
김희진 사무국장이 2011 연례보고서를 발표하 고 있다.
6월 26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불교역사문화박물관
국제앰네스티는 5월 12일
전통문화공연장에서 50주년 인권강연 <변화를 만드는
기자회견을 통해 ‘활동가들,
키워드, 참여>를 진행했습니다. 한국지부는 회원들과 함
새로운 방법을 사용해 억압
께 국제앰네스티 50주년의 의미를 기념하고 2011년 현재
에 맞서다’는 주제로 연례보
시대적 과제와 방향을 모색하고자 이번 인권강연의 자리
고서를 발표했습니다. 같은
를 마련했습니다.
날, 한국지부도 프레스센터
국제앰네스티 고은태 국제집행위원의 강연으로 진행된
에서 연례보고서 발표 기자
1부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온 특별한 변화’에서는 앰네
회견을 갖고, 세계 인권 및
스티가 진행한 캠페인을 돌아보고, 50년 동안 앰네스티
남북한 인권실태에 대한 보
운동의 원칙과 세계적 영향력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고
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은태 위원은 편지쓰기를 통해 개인의 구명활동에 집중해
국제앰네스티 50주년을 즈음한 이번 연례보고서는 중동과 북
온 앰네스티 활동을 언급하며 앰네스티 운동의 원칙인
아프리카에서 자유와 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평범한 사람들의 힘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소셜미디어가 성장하면서 인권 변화를 위한 전례 없는 기회
2부 ‘불안한 시대로부터의 탈출’에서는 정신과 전문의 정
가 주어졌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칼날 위에
혜신 박사와 고은태 위원의 대담을 진행했습니다. 그는
서 있는 듯 위태롭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인권침해의 가해자가 명확한 과거와는 달리 새롭고 교묘
한국의 인권실태를 발표하면서 한국지부 박진옥 캠페인사업
한 형태로 개인을 공포와 죽음으로 내모는 한국사회의
실장은 “인권의 관점이 사라지고 안보를 논리로 하는 ‘공포를
현실을 지적하며, 불안하고 고립된 개인이 자신의 아픔
통한 정치’가 인권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2010년
과 공포의 책임을 사회에 요구해 스스로의 가치와 존엄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자유로운 논쟁과 정부정책에 대한 비
성을 회복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판이 허용되지 않고, ‘형사고소·고발’ 등 형사절차가 적용되
2시간 30분 가량 진행된 이번 행사는 100여 명의 회원들
는 등 안보를 명분으로 양심과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이 참석해주셨습니다. 자세한 대담내용은 홈페이지와 이
중대하게 제한되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번 호 소식지 ‘앰네스티가 만난 사람’에서 확인할 수 있습
2011 국제앰네스티 연례보고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배포된
니다.
연례보고서나 홈페이지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Am n e s t y Inter national Kor e a
121주년 노동절 맞이 이주노동자 캠페인
“1,000명이 함께 외쳐요!!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을 허하라!” © Amnesty International
121주년 노동절을 맞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에서 는 “1,000명이 함께 외쳐요!!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동 조합을 허하라!”는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이 캠페 인은 고용노동부에 2007년 이주노조의 합법적 지위 를 인정하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존중하고, 고용 노동부가 고등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제기한 ‘이주노 동자노동조합설립신고반려취소소송건’ 대법원 상고 를 즉각 취하해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의 1,000명의 탄원을 모으는 캠페인입니다.
이주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을 허하라 캠페인 거리서명을 받고 있다.
거리 서명 캠페인의 첫 시작은 5월 1일 노동절이었습 배경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은 2005년 4월 24일 설
니다. 이 날 8명의 회원 및 자원활동가들과 6명의 사
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설립직후 당시 노동부가 이주노조 설립신고를 반려조치
무국원이 참여해 이주노동자 집회가 열리는 서울 종
했습니다. 미등록이주노동자는 한국법이 다른 노동자들에게 보장되어 있는 결사
로 보신각 주변 지하상가와 거리에서 시민들의 서명
의 자유와 같은 합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를 동등하게 갖지 않는다는 근거였습니다. 그러나 2007년 서울고등법원은 대한민국 헌법과 ‘노동조합 및 노
을 모았습니다. 국제앰네스티 홈페이지에서도 4월
동관계조정법’이 미등록 이주자를 포함하여 모든 고용관계에 있는 노동자들에
25일부터 온라인 서명 페이지를 열고 서명을 받았습
대한 결사의 자유를 보호하고 있다고 판시하여 이주노조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
니다.
다. 노동부는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항소했고, 2011년 5월 현재 사건이 대법원에
6월 10일 현재 1,010명의 서명을 모았습니다. 7월 12
계류 중입니다.
일 고용노동부에 전달할 예정입니다.
5월 15일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
+
부는 국내 여러 단체들과 연대해 병역거부권 실현을 촉구하 는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국회, 헌법재판소, 국방부 앞에서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행사 © Amnesty International
5월 2일부터 2주간 진행된 릴레이 일인시위에서는 남영진 이사장 등 많은 이들이 한 목소리로 우리 정부에 병역거부 권 인정을 촉구했습니다. 15일에 진행된 자전거 행진과 평 화난장에서는 다채로운 공연과 이야기마당이 펼쳐지는 작 은 축제의 장이 열렸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앰네스티대학생네트워크 회원들이 헌법재판 소에 병역거부권을 존중하는 결정을 내릴 것을 촉구하는 엽 서 서명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국제앰네스티 는 이날 성명서를 발표하고 한국 정부에 모든 양심에 따른
1 2011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기념행사 참가자들이 헌법재판소 앞 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11. 5. 15. 2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남영진 이사장이 국회 앞에서 대체복무 제 도입을 촉구하는 1인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2011. 5. 9.
병역거부자들을 즉각 석방하고 조속히 대체복무제를 도입 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진행했습니다. 할머니가 걸어온 정의회복 투쟁의 길을 응원
+
하고 앞으로도 함께 하겠다는 뜻을 모으기 위해 마련된 이 번 서약식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정의회복을 상징하는 나비
미얀마 인권 다큐 “This Prison Where I live” 상영회
모양의 스티커에 서명한 뒤 판넬에 붙여 앰네스티 촛불을 © Amnesty International
완성하는 퍼포먼스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날 서약식에는 앰 네스티 회원 및 시민 약 50여 분께서 참여해 주셨습니다. 국 제앰네스티는 분쟁 중 여성에 대한 폭력을 중단하고, ‘위안 부’ 할머님들의 정의가 회복되는 날까지 연대활동을 펼칠 예 정입니다.
+ 1
1 미얀마 인권 다큐멘터리 상영회가 진행
사형폐지간담회
되고 있다. 2 미얀마 인권 다큐멘터리 상영 회에서 한국내 친족 활동가가 버마 전통춤
5월 29일 불교역사문화박물
© Amnesty International
공연을 펼치고 있다.
2
관 전통문화공연장에서는 국 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아시아·태평양유스네트워크 (APYN)가 공동으로 주최한 미얀마 인권 다큐 상영회가 열 렸습니다. 이번에 상영된 다큐멘터리 영화 “This Prison Where I live(내가 사는 이 감옥)”는 독일의 코미디언 미카 엘 미터마이어가 미얀마 최고의 코미디언이자 59년 형을 선 고 받아 수감중인 양심수 자가나르(Zaganar)를 만나기 위 해서 미얀마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번
사형폐지입법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종교, 인권 시민사회 각계 인사와 국회의원들이 국회간 담회 ‘사형폐지운동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진행했다.
상영회는 영화 상영을 비롯해 미얀마 전통춤 공연과 전 정
6월 17일, 국회의원회관 제4간담회실에서는 사형폐지 입법
치수의 증언 순서가 준비되어 상영회를 찾아온 분들이 미얀
전략 모색을 위한 간담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사형폐지운동
마의 인권상황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번 간담회에는 18
습니다.
대 국회에서 사형폐지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한 주성영·김부 겸·박선영 의원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를 비롯해 사형폐
+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 주관
지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종교인권시민사회 각계 인사들이 함께했습니다. 참석자들은 2011 하반기 국회에서 법률적 사 형폐지라는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 적극적 입법운동을 펼치 고 다각적인 활동을 벌일 것을 결의했습니다.
6월 8일 수요일 오후 12시, 일본대사관 앞에 일본군 성노예 제의 피해할머니들의 정의회복을 요구하는 나비 물결이 일 었습니다. 한국지부는 제973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를 주관하며 ‘정의실현을 위한 나비서약식’을 Am n e s t y Inter national Kor e a
회원활동 소식
열악한 주거환경과 그 사연, 나아가 올바른 주거환경과 정
+
부의 대응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 회원들 각자가 상상한 집의 모양을 그리고 오려 완성된 여
온라인모임
러 가지 모양의 집을 이탈리아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5월 온라인모임 4월 정기모임에서는 (((나는 존엄하다))) 캠페인
정기모임에서는 사형제도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의 산모사망에 대해 학습했습니다. ‘산모사망에서 우리나라
몽골에 사형 폐지를 촉구하는 탄원편지를 쓰고, 각자 가지
도 자유로운가’를 질문하며 낙태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논
고 있는 도서교환을 했습니다. 6월에는 작은인권영화제 ‘꽃’
의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5월 정기모임에서는 몽골에 사
을 진행했습니다. 작년에는 촛불모임 자체행사로 시작한 영
형폐지를 촉구하는 탄원편지를 쓰며 시작해, 8월 ICM 안건
화제가 올해 2회째에는 한국지부 다른 회원모임과 공동으
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ICM 논의안건 중 특
로 진행했습니다. 상영작은 국내 이주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히 인권전략 부분(ICM circular 10 First batch 중 human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옴니버스 단편영화 ‘이주노동자
rights strategy 부분)에는 의료, 개인정보, 기후변화와 같
프로젝트: 여정(2003)’을 보았습니다. 이날 행사는 중학생
이 새롭게 부상하는 인권문제가 많아 이에 대한 논의를 진
에서부터 직장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회원 뿐 아니라 회원
행했습니다. 6월 모임에서는 무기거래통제 캠페인과 무기
이 아닌 분들의 참여로 매우 뜻 깊은 행사가 되었습니다.
거래조약에 대한 학습을 진행했습니다. 더불어 인도에
7월 정기모임은 오는 23일(토)에 진행될 예정입니다. 매달
POSCO 공장으로 인한 강제이주와 무기거래통제, 양심에
내는 회비만으로는 뭔가 좀 부족하신 분들, 인권이라는 공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탄원편지 쓰기도 진행했습니다.
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정겨운 만남을 원하시
온라인모임은 매월 세 번째 토요일 저녁 7시에 ‘서울 여성플
는 모든 앰네스티 회원분들을 초대합니다.
라자’ 4층 컨퍼런스룸에서 진행됩니다. 관심있는 모든 분들 의 참여를 환영합니다. 문의는 yeonjh@gmail.com으로 메
네이버카페 http://cafe.naver.com/amnesty2nd
일 주시거나, 저희 모임 홈페이지 http://cafe.naver.com/
블로그 http://amnesty2nd.tistory.com 트위터 @amnesty2nd
amnesty2238에 방문 부탁드립니다.
+
+ 민들레 예비그룹
촛불모임
© Amnesty International
© Amnesty International
촛불모임 4월 정기모임에서는 중국 재스민혁명 탄원서 작
민들레 예비그룹이 지난 4월 30일(토) 이화여대 ECC B129
성과 로마족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로마족이 처한
호에서 발대식을 가졌습니다.
예비그룹은 트위터를 통해 만난 한국지부 회원들이 지난
국제앰네스티 대학생네트워크(이하 앰대)는 한국지부에서
2010년 11월, 오프라인 모임을 가지며 시작됐습니다. 오프
가장 활발한 활동조직을 목표로 2011년 봄에도 열심히 달렸
라인에서 세 차례 정도 모임을 갖고 친목을 다져왔으며, 친
습니다. 5월에는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이 있어, 평화단체들
목모임에서 나아가 체계적인 인권학습 및 인권증진 활동을
과 연대해 ‘평화난장’ 행사에서 부스를 차리고 대체복무제
하고자 그룹을 결성하였습니다. 이날 발대식에는 모임의 계
입법을 청원하는 서명을 받았습니다. 6월에는 한국지부 내
기가 된 고은태 국제집행위원과 16명의 회원 및 사무국 국
다른 회원조직과 함께 작은인권영화제 ‘꽃’을 개최하는 한
원이 참석하였습니다.
편, 광화문에서 집회·결사의 자유를 위한 피켓팅을 하기도
6월 26일(일)에는 그룹 회원들이 함께 앰네스티 인권강연을
했습니다. 6월 2차 정기모임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듣고 조계사 근처에서 정기모임을 가졌습니다. 이날 정기모
에 대한 학습 및 논의를 진행하여, 7월에 있을 앰대 주관
임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사형수들을 위한 탄원편지를
978차 수요집회에 대한 준비도 만반을 기했습니다. 하반기
쓰고, 재개발과 강제퇴거에 관한 학습을 진행했습니다. 용
에도 많은 활동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앰대는 즐겁게 함
산참사 이후 또다시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명동 재개발
께 활동할 대학생 여러분들에게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문제 때문에 주거권과 상가 세입자의 생존권에 대한 열띤 싸이월드 http://bit.ly/ASNK
토론이 진행됐습니다.
페이스북 http://bit.ly/ASNKF
7월 모임은 오는 23일(토) 한국지부 사무국에서 진행될 예
트위터 @amnestyact
정입니다. 예비그룹의 활동에 함께하기를 원하시는 분은 이 윤중 대표(@eyunjung, eyunjung@naver.com), 박종옥
+
총무(@ForsythiaNsmile, judy_blue@naver.com)에게 문 의해 주세요. 대전모임
+
대전모임은 매월 둘째 주 토요일에 정기모임을 갖습니다. 인권침해상황을 공유하며 탄원편지쓰기를 통해 구명활동에
대학생네트워크
참여하기도 하고, 한 명씩 인권이슈를 발제하며 인권학습과 © Amnesty International
토론을 하기도 합니다. 인권학습은 5월에는 화학적 거세, 6 월에는 카이스트 사태, 7월에는 장애인의 권리 등을 주제로 진행했습니다. 하반기에는 직접 거리로 나가서 캠페인을 진행할 계획을 세 우고 있습니다. 8월 정모에서 캠페인 주제와 장소, 방식을 함께 논의한 후, 9월에는 직접 거리로 나가려고 합니다. 대 전모임에 관심은 있지만 참여를 주저하시는 분 계시면 언제 든지 함께 해 주세요. 대전모임은 매달 탄원편지 쓰기와 인 권학습, 나아가 캠페인을 통해 인권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참여할 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카페 : http://cafe.naver.com/amnestydaejeon
Am n e s t y Inter national Kor e a
Culture zone 문화공간
내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은 징역에서 배웠노라 『내 청춘의 감옥』 서평 이송원|도서출판 페이퍼로드 편집주간
몹쓸 시대가 아니었다면 분명 시인이 되
조국을 사랑한다는 것이 곧 감옥행을
두부를 안주 삼아 소주 한잔 나누면서 들
었을 친구가 있었다. 자신의 시만큼이나
의미하던 시절이었다. 미래는 고사하고
려주는 것처럼 생생하다. 감옥 안의 세세
심성도 고운 청년이었다. 어느 날 그와
목숨마저 어찌 될지 알 수 없었던 시절이
한 일상들과 일화들을 읽다 보면 마치 내
함께 성남 모란시장 근처로 가투(가두시
었다. 강제징집, 수배와 도피, 고문, 투신
가 징역을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위)를 나가게 되었다. 호각소리와 함께
과 분신이 일상처럼 벌어지던 기괴한 시
그런데 그 이야기가 짐작했던 것처럼 눅
시위를 주동하는 선배의 구호가 울려 퍼
절이었다. 다들 자기 잔을 받을 순서만 기
눅하거나 칙칙하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
지고, 골목과 도로변에서 숨죽이고 있던
다리고 있었다. 선배와 후배, 동기들 중에
다. 때로는 낄낄거리게 되는 것이 나만의
우리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8차선
이른바 ‘빵잽이’는 수두룩했다. 그러나 당
이상감각은 아닌 듯하다.
대로 한복판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스크
‘내 전과는 그저 내 젊은 날의 역사일 © Private
럼을 채 짜기도 전에 사복경찰들이 사과 탄을 던지며 우리를 덮쳤다. 암사자들의
뿐이고, 내가 세상을 헤쳐 오는 데에 가장 소중한 깨달음을 준 경험이었다. 심지어
습격을 받은 영양 떼처럼 우리는 속절없
내 청춘의 감옥은 즐겁고 유쾌하기까지
이 흩어져 도망쳤다. 학교 앞에서 밤이
한 기억이다.’
늦도록 기다려도 그 친구는 끝내 돌아오
신영복 선생이 ‘사람’과 ‘사랑’을 발견
지 않았다.
했고 황대권 선생이 ‘생명’과 ‘생태’를 깨
그런데 그가 붙잡힌 사연이 참 어이없
달았던 바로 그 공간에서, 이건범은 웃음
었다. 정신 없이 도망치다 행인 하나와 부
과 낙관의 힘을 배운 듯하다.
딪혔는데, 심성 고운 그 친구는 제 코가 석자인데도 되돌아가서 행인의 손을 잡고
이미 대학 4학년 때 한 차례 구치소 생
일으켜주었던 것이다. 예의마저 발랐던
활과 집행유예를 경험했던 이건범은 4년
그 친구가 행인에게 말했다.
만에 진정한 징역살이를 시작한다. 임시
“어이쿠, 죄송합니다.”
로 거처하는 구치소와는 달리, 형이 확정
“죄송할 것 없어.”
저자 이건범
그 행인이 옆구리에서 수갑을 꺼내 내 친구의 손목에 철커덕 채우더란다.
된 이후의 교도소는 생활의 공간이다. 그 러므로 그는 옹골차게 징역살이를 하리라
시에는 빵잽이들도, 빵에 가지 않은 이들
다짐한다.
다행히 그 친구는 며칠 있다 풀려났다.
도 감옥 안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는
그가 교도소에 가서 가장 먼저 장만한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제대로
그다지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것 같
도구는 칼이었다. 몇 날 며칠을 운동장
걸렸다. 술집에 가방을 두고 왔는데 그 안
다. 서로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평탄화 작업을 한답시고 땅을 파헤친 끝
에 ‘불온한 문건’과 학생증이 함께 들어
그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에 ‘발굴’한 꺽쇠로 날을 세운 칼에 손잡
있었고, 마침 그 가방을 습득한 이가 경찰
이를 붙이고, 굴러다니던 인조가죽으로
의 프락치였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그
20여 년이 지난 지금, 『내 청춘의 감
멋들어진 칼집까지 만든다. 이 칼로 우유
재수 없는 친구의 징역살이는 두어 번 더
옥』 의 저자 이건범은 그때 그 시절의 ‘징’
팩을 잘라 붙여 장롱과 선반, 책상을 제
이어지고서야 막을 내렸다. 그리고 그는
그럽고 ‘역’하다는 징역살이 이야기를 풀
작함으로써 그의 한 평 남짓한 독방은
시를 접었다.
어놓는다. 지금 막 출소해서 따끈따끈한
‘이씨 농방’이라는 명예로운 상호까지 얻
‘내 전과는 그저 내 젊은 날의 역사일 뿐이고, 내가 세상을 헤쳐 오는 데에 가장 소중한 깨달음을 준 경험이었다. 심지어 내 청춘의 감옥은 즐겁고 유쾌하기까지 한 기억이다.’
게 된다.
먹던 친구 재호의 얼굴이 떠올라 목이 콱
녀석 빤스를 내가 입을지도 모르고, 내 양
‘가벼움의 힘’을 믿는 이건범의 행각은
메었다. 입에서 터져 나와야 할 구호 대신
말을 놈이 신을지도 모른다. 그게 서로 거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엄혹한 시대의 감
눈물과 콧물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터
북하지 않다면 나는 우리 세대의 책임 가
옥이라 엄숙하고 치열하기만 했던 양심
져 나왔다. 그때 하염없이 흘렸던 눈물의
운데 하나를 다했다고 여길 수 있으리라.
수 사동의 물도 흐려놓기 시작한다. <스
짠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내 청춘의 징역살이를 기록함으로써 우리
포츠서울>을 시작으로 <TV가이드>에다
2년 4개월 만에 두 번째 징역살이에서
세대의 흔적을 탐색할 실마리를 아들 세
<우먼센스>에 이르기까지 그의 화려한
석방되던 날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을 마
장서 목록은 나날이 확장된다. 그가 동료
신 그가 다음날 아침 깨어난 곳은 24평
그렇다. 그는 한때 청춘이었던 세대의
들의 엄중한 질책을 받았냐고? 그런 건
아파트 화장실의 욕조 안이었다. 그것도
이야기를 지금 청춘인 세대와 나누기 위
잡범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눈살을 찌푸
문을 꼭 걸어 잠근 채. 그 화장실이 자신
해 이 책을 썼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
렸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의 방에 들어
이 지냈던 교도소 방 크기와 비슷했던 것
야기는 그토록 명랑하고 발랄하게 교도소
와 열람하더니 급기야 도서 대출에다 사
같아 거의 본능적으로 찾아들어 갔던 것
안팎을 종횡무진 넘나들었던 것이다. 그
진을 스크랩하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라고 회고한다. 슬픈 광경이다. 하지만
리고 『내 청춘의 감옥』은 친절하게도, 그
이루었다는 것이 그 이야기의 결말이다.
그는 여기서도 너스레를 멈추지 않는다.
시대를 모르는 세대를 위해 본문에 등장
이건범이 체득한 이런 가벼움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사람 사는 어딘들 감옥 같은 단절과
대에게 쥐어주고 싶은 욕심이다.’
‘일종의 직업병인지 산업재해인지, 나
하는 주요사건들을 각 장 말미에 모아 ‘토
는 지금도 좁고 아늑한 공간을 좋아한다.’
막토막 읽는 한국 현대사’라는 꼭지로 풀
어준다.
금지, 좌절과 고통이 우리를 구속하지 않
세월이 흐른 뒤의 어느 날, 다 큰 아들
겠냐만, 눈을 크게 뜨고 보면 그 고통 속
이 이어폰 잭에 붙어 있는 플라스틱 지지
‘너무도 빛나던 청춘의 눈동자를 가졌
에도 웃음과 행복의 소재가 있다. 나는 고
대를 자르느라 낑낑대고 있었다. 이건범
기에 이제는 시각장애인이 된’ 이건범은
통의 무게감보다는 웃음의 가벼움이 삶을
은 감옥에서 배운 대로 실을 꼬아 만든
글자의 폰트를 최대로 키워놓고도 모니터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임을 역설적
끈으로 순식간에 그것을 잘라주었다. 놀
에 코가 닿도록 얼굴을 갖다 대야만 겨우
이지만 감옥에서 배웠을 뿐이다. 그래서
란 눈으로 아빠를 바라보는 아들에게 저
글을 읽을 수 있다. 그는 그런 눈으로
습관처럼 가볍게 나를 발가벗겨 놓는다.’
자는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아빠가 배워
2010년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은 역작 『좌
야 할 모든 것은 감옥에서 배웠노라고.
우파사전』의 기획과 편집, 집필을 도맡았
그러나 아무리 낙관으로 무장하고 명
그 아들과 함께 빨래를 널다가 그는 문
고, 『내 청춘의 감옥』을 말 그대로 ‘한 땀
랑하게 맞선다 한들, 감옥은 감옥이다. 처
득 깨닫는다. 자신이 젊은 시절 가졌던 슬
한 땀’ 써내려갔다. 풀코스 마라톤도 몇
음 구속되어 영등포 구치소에 있던 이건
픔과 영광은 이제 빛이 바래고 자식 세대
차례 완주했다고 한다. 그에게 컵 속의 물
범은 같은 서클 동기였던 이재호가 분신
는 또 다른 고민과 재미를 맛보며 자란다
은 ‘아직도’ 절반이나 남아 있는 듯하다.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구치소 동료들과
는 것을.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수 송창식이 방
함께 단식 투쟁을 하며 끼니때마다 화장
‘그 상처와 웃음이 하나씩 널려가는 빨
실 창 밑에 고무 양동이를 놓고 올라가
랫줄 사이사이에 나도 색깔이 빠지고 무
“인간만사 새옹지마라고 합니다. 나는
창밖으로 구호를 외치는 그의 목이 멘다.
릎과 팔꿈치 군데군데가 불거져 나온 우
생각이 좀 달라요. 세상의 모든 나쁜 것이
리 세대의 흔적을 넌다. 어떨 때는 아들
사실은 다 좋은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구속되기 전 내 방에서 함께 컵라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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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Member story 회원이야기
© Amnesty International
작은 촛불들이 모여 횃불이 되는 그 날까지
안녕하세요, 이자형입니다. 광고디자이너이자 앰네스티의 회 원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앰네스티 촛불모임의 온라인관리를 맡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되셨습니까? 원래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이 있었어요. 그러던 중 촛불집회 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다니던 회사가 광화문에 있었기 때 문에 더욱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는데요. 집회에 모인 사람 들을 진압하는 과정을 보며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하 는 권리가 대한민국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 고, 스스로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촛불집 회는 제가 앰네스티에 대해 알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많은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신데요, 활동을 시작하
회원 인터뷰
크고 작은 앰네스티의 행사에서 언제나 만날 수 있는 반가운 얼굴 . 작은 체구에 차분한 목소리 뒤에는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활동가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 앰네스티촛불모임의 이자형 회원님을 소개합니다 .
본인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자형
은 아니지만 꾸준하게 활동 중입니다. 한 달에 한번씩 정기적 으로 만나 탄원편지쓰기, 도서교환, 인권세미나 등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특 별히 관심 있는 캠페인이나 인권이슈가 있다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인 집 회의 자유에 특히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집 회를 할 수 있어야 하며, 그로 인해 처벌받아서는 안 될 것입 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불거지고 있는 문제이지요. 그 밖 에도 해외에서 이루어지는 미성년자에 대한 사형문제에도 관 심을 갖고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무엇보다도 편지쓰기 마라톤이 가장 인상에 남습니다. 2008 년부터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세 번 다 참여했거든요. 사례에
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었나요?
대해 토론하고 편지를 썼던 일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사람들
2008년에 가입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새내기회원모임에 참가
과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이라 더욱 좋았던 것 같습니다.
했습니다. 당시에 두 번째로 열린 모임이었는데요. 1기와 2기
올 초에 광화문에서 있었던 ‘이집트를 위한 연대시위’도 생각
참석자들이 모여 촛불모임을 만들게 되었어요. 아직 정식그룹
이 나네요.
© Amnesty International
당일 캠페인을 취재한 신문에서 회원님의 성함을 본 기억이 납니다. 네(웃음). 모인 사람들 앞에서 발언할 기회가 있어서, 그 내용
2
1
이 짤막하게 실렸습니다.
사 회인으로서, 열성적인 참여가 쉽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힘들 때에도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저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유복하게 태어나 큰 어려움을 겪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축구공을 만드는 아동노동 문제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축구를 좋아하다 보니 관 심을 갖게 되었지요. 제가 당연하게 누려왔던 권리들을 누리 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제가 가진 힘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3
1 나는존엄하다_로마족 탄원 2 새내기회원모임_단체 3 새내기회원모임_2기 4 이집트 국제행동의날_발언
쓰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앰네스티 활동 이후 생겨난 변화는 어떤 것이 있나요?
4
회사에서도 동료들에게 서명운동에 동참하도록 권유하고 있 는데요. 이런 활동을 통해 잠시라도 그들이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시 간 중 1%는 일이나 개인사를 떠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면 저로서도 기쁜 일입니다. 친구
앰네스티 촛불모임 네이버카페 http://cafe.naver.com/amnesty2nd 블로그 http://amnesty2nd.tistory.com 트위터 @amnesty2nd
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인권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 고 서명운동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활동이 저와 제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폭넓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 각합니다.
국제앰네스티 활동은 회원님께 어떠한 의미인가요? 제가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지요.
활동을 하면서 느끼신 점이 있다면?
이런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삶이 무의미하지 않을까요? 제가
2009년에 아프리카의 우간다에서 게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형
사회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있다는 만족감도 큽니다.
에 처하거나 주변인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상정된 적이 있었는데, 이 사실이 트위터를 통해 알려지면서 국제사회
이자형 회원님이 생각하는 ‘인권’이란 무엇인가요?
를 들끓게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법안은 수정되었습니다.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제3세계 어린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비록 이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지만 사람들이 함께 행동해 변
그들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학교에 갈 수 있으며, 가족들
화를 만들어 낸 과정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지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함께 행동한다면 분명히 변화를 만들 수
인권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나비가 떠오릅니다. 자유롭게 날아
있습니다. 요즘 저는 트위터를 통해 사람들에게 참여를 권유
다니는 나비처럼 사람들 역시 자유롭게 인권을 누려야만 한다
하고 있는데요. 지금은 이란에 억류된 미국인 사례에 관심을
고 생각해요.
갖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국제앰네스티 회원들에게 한 말씀 앰네스티 활동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어떤 것인
부탁드립니다.
가요?
앰네스티는 다른 시민단체들보다도 어울릴 수 있는 활동이 많
우리나라에서 집회·시위의 자유를 비롯한 표현의 자유가 완
습니다. 활동들도 재미있고 강렬하고요. 우리나라에서도 외국
벽하게 보장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은 시민으로서 갖는 기본
의 앰네스티 지부들처럼 자발적인 참여가 많아진다면 좋겠습
적인 권리를 억압받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국민의 모든 이
니다.
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정부의 자세가 인권실현을 위해 필
작은 촛불들이 모이면 횃불이 될 수 있습니다!
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 참, 촛불모임에도 관심 갖고 많이 가입해주세요.
Am n e s t y Inter national Kor e a
2011.04.01~2011.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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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금미 기예진 김민희 김영주 김지현 남윤아 곽민지 김가은 김범수 김영태 김지현 남현주 곽보람 김강령 김범식 김예리 김진갑 내종호
안준영 유재원 이명석 이승환 이지선 장보윤 정서인 조성현 안진환 유정민 이명숙 이아롱 이지수 장서란 정선진 조수경 안태은 유정범 이명은 이양희 이지언 장세중 정세영 조수빈 안혜련 유정화 이명재 이에스더 이지영 장세혁 정소혜 조수영 박성률 박한솔 송신혜 안희은 유제연 이명찬 이연성 이지영 장애령 정솔아 조승연 박성은 박해성 송영경 양명용 유진경 이명호 이영란 이지은 장연식 정수현 조아라 박세용 박현서 송요한 양미숙 유태훈 이미경 이영주 이지현 장우승 정아람 조아라 박세원 박현성 송유리 양민경 유하라 이미령 이영희 이지혜 장윤정 정애숙 조아련
최수근 한흥섭
고재석 권정용 고현진 권지원 고혜림 권초롱
곽우림 김강산 김병존 김예지 김진경 노 건
최 설 한지혜 최성빈 한창윤 최성은 한혜경 최수지 한희연 최수현 한희정 최승용 함수지
단위 : 원
집행예산 항
2011.04.01-06.30
사업수입
승인예산
2/4분기
1/4분기
4월
5월
누계
6월
(%)
정기기부금
1,591,500,000
336,661,431
121,908,492
114,816,372
115,181,489
688,567,784
일시기부금
30,500,000
7,339,200
1,078,500
1,796,300
601,410
10,815,410
1%
고액기부금
50,000,000
300,000
8,080,000
9,390,000
17,770,000
2%
행사참가회비
사업외수입
82%
6,000,000
2,245,000
2,245,000
0%
국제기금
174,400,000
96,431,746
20,684,047
515,953
-
117,631,746
14%
이자수익
4,000,000
868,344
337,807
1,180,814
1,309,472
3,696,437
0%
-
221,205
2,880
49,842
501
274,428
0%
1,856,400,000
443,766,926
144,311,726
126,439,281
기타
총 액
126,482,872 841,000,805 100%
82% 정기기부금 1% 일시기부금 2% 고액기부금 0% 행사참가회비 14% 국제기금
회계보고
관
Accounting report
수입
단위 : 원
집행예산
지출 2011.04.01-06.30
관
항
운영비 사업비
승인예산
2/4분기
1/4분기
1월
2월
누계
3월
(%)
인건비
57,074,100
14,384,576
4,728,192
4,857,869
4,047,230
28,017,867
사무관리비
116,503,440
25,007,297
7,317,233
7,616,734
8,450,331
48,391,595
7%
사업진행비
1,211,679,587
192,640,555
55,123,432
124,115,785
116,213,565
488,093,337
68%
국제분담금
199,592,816
49,898,145
-
-
49,898,145
99,796,290
14%
국제
59,880,000
-
540,468
56,730,000
57,270,468
8%
411,924
138,822
21,772
33,809
606,327
0%
-
-
-
-
0%
282,342,497
67,307,679
137,152,628
235,373,080
722,175,884
100%
사업외비용 기타(잡손실)
1,000,000
예비비 합 계
62,800,000 1,708,529,943
4% 인건비
인건비
7% 사무관리비
사무관리비
사무실 운영비
68% 사업진행비
사업진행비
페인, 홍보사업, 회원사업 등 한국지부의 사업진행비 캠
14% 국제분담금
국제분담금
국제운동을 위한 분담금
8% 국제
국제
FIF 차입금 상환, 이자비용
4%
운영을 위한 인건비
단위 : 원
목적별 사업비 지출
전략적캠페인 회원모집캠페인
모금
홍보
회원프로그램
거버넌스
분담금
관리사업
합 계
59,640,252
90,636,002
72,553,026
39,909,996
20,124,515
5,491,853
49,898,145
7,097,138
345,350,927
17%
26%
21%
12%
6%
2%
14%
2%
100%
2011.04.01-06.30
17% 전략적캠페인
전략적캠페인
26% 회원모집캠페인
회원모집캠페인 일반 대중들에게 앰네스티를 알리고 참여를 권유하는 캠페인
21% 모금
모금
각종 모금 행사 및 위원회 구성, 기업모금
12% 홍보
홍보
연례보고서, 기자간담회, 언론상, 광고 등 홍보행사
6% 회원프로그램
회원프로그램
소식지, 기부금영수증 등 회원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
2% 거버넌스
거버넌스
총회, 이사회 등 국제앰네스티와 한국지부의 정책결정에 회원들의 참여를 지원하는 사업
14% 분담금
분담금
국제적 활동을 위한 지부의 기여금
2% 관리사업
관리사업
적극적인 지지자로 활동하고 있는 자원활동가 및 인턴십프로그램
인권상황 개선, 인권의식 증진 등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캠페인
국제앰네스티 홈페이지를 통해 재정보고의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Am n e s t y Inter national Kor e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