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2019 the 7th Edition High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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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e 9 - Grade 12

2018 - 2019 The 7th Edition

APIS Korean Language Arts Program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High School

Designed by Eric Park (Grade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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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 ncipal of school
 고등학교 학생대표 인사말

Ms. Meg Hayne 김도현

8

숙제 나무

양지민 하준희

14

고드름

김상욱

16

폭풍우

황성빈

17

햄스터의 고백

심영은

18

아빠의 팔베개

유연서

19

강아지 코코 사랑하는 엄마 , 아빠

김수현 김 율

20

존경하는 부모님께

김혜린

22

권숙자 선생님께

유진규

23

가족 여행 함께여서 행복했던 여행

최상원 정명현

24

먹어서 죽는다

김재현

28

검은 백조 ‘미스티 코플랜드의 삶 ’

김 별

30

‘미세먼지’의 실체

정지우

32

해양 생태계 파괴의 심각성 새친구

전우민 한지호

34

진짜 미술

차연수

38

샤워

이완루

44

아침으로 가는 길 작은 개가 더 나은 이유

팀슨 루루

45

야마 네아 애이 드리 안

47

푸른 혀 도마뱀 내 나라 대만

우지윤 종이선

48

9

6학년

15

21

26

36

7학년

49


가장 기뻤던 순간

나윤재

50

고양이를 만나던 날 누구나, 아무 때나

조남현 곽다현

52

사이판에 태풍이 오던 날

이지이

56

나라 간의 관계 다지기 기업들을 위한 법률 조언가

곽홍주 김태인

59

You're what you eat 나 자신을 사랑하기

김준효 조은별

64

Alive

이노아

69

연탄재

김건우

73

54

61

67

8학년 아들아, 미안해

권예준 , 홍성현, 김나림

풀을 뜯어 먹으며 살자!

양소망 , 남윤욱, 윤희권 , 김상희

‘다이어트 학교 ’에 대하여

김남윤 , 서혜원, 박성윤

아픔을 극복하는 소년과 소녀

이종석 , 최재호, 박은혜

절망 속에서 결국 죽음을 택하다

이현준 , 최린 ,

77

85

93

99

양루민

107

나무 같은 삶 존경하는 우 선생님께

최세연 홍주영

114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다

강기윤

117

9학년

116


나의 정체성

김태윤

118

Ode to my Father 한국 역사를 영화에서 찾다

오예찬 제이슨

119

그 날 아침의 첫 끼

문제이

124

추억의 해물떡찜 나의 영원한 적 , 우유

구은서 이네오

126

꽃 피는 봄날에 추억과 경험

김양현 곽승화

130

나의 성장 이야기

김도아

134

험난했던 나의 일기 여차여차하니 15 살 , 운명적인 나의 삶

김태영 성세현

136

현재의 나 변화에 대한 두려움 극복하기

고유진 박연우

142

재미있는 책 읽기

최현무

149

나쁜 아이는 누가 만드는가? 행복의 뜻을 가르쳐 주는 책

이건희 이서진

151

화성에서 살아남기 마지막 이별

홍예준 길혜영

155

고시원 속에서도 빛나는 인생

유민서

160

웃기면서 슬프고 , 슬프면서 웃긴 이야기 인간관계의 현실

신태겸 이유빈

162

주고받는 상처 사회가 주는 상처

김재은 김남이

166

의지의 중요성

최하라

170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세계 가족의 중요성

서영빈 김지훈

172

중력의 세계 마음을 전하는 용기

문지우 박세현

178

회상

이성무

184

옥수수 아저씨의 착한 마음 가족의 현실을 알려주는 책 평범한 게 제일 어려워

서주원 고정우 김지완

187

122

128

132

138

145

153

157

164

168

175

181

190 193


계단 아래 숨긴 진실

김종서

197

사형 제도 폐지 탕수육, ‘부먹이냐 , 찍먹이냐 ’

김유진 손준호

203

낙태의 참혹한 현실

김애린

207

태아도 엄연한 生命 동성결혼의 허용과 그 문제점에 대한 고찰

임 담 하지민

209

사과

고우근

215

레몬 성장하는 법

김관희 정우진

217

길 나란 꽃

윤지나 장리준

220

시간

김 현

222

소나기 끝에는 무지개 흰 긴 수염 고래

주솔희 남경민

223

나의 인생 이야기 멕시코 음식

세라 마리아니

22 6

노찬성과 에반

권진희

233

우정의 중요성 찬성이의 강아지

김정민 정우성

235

찬성이의 첫 인생 경험 경험과 도움을 주는 이야기

박상우 최민경

241

재이의 흐린 미소

왕지원

247

벼랑 선과 악의 경계선은 하나뿐일까

송재민 박은세

251

작은 것이 아름다운 이야기 청소년의 색깔

현용준 김덕호

259

개인주의 사회와 그 진실

김규리

266

범죄 없는 세상 인간의 이중성

이정진 김동현

271

205

211

10학년

219

221

22 4

22 9

238

244

256

261

276


세상의 주인은 노동자

정강인

280

노동자들의 불편한 현실과 마주하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윤효진 김동준

285

참 교사의 길

김재인

294

양심의 무게 열릴 때까지 땀 흘리고 노력하라

최석형 오수진

301

법에게 ‘인간’ 이란 성별의 무게

김호제 최석현

310

남녀동권(男女同權)

권예지

32 6

무업 (無業) 밖

오승민 하대호

330

경술국치 (庚戌國恥)

윤병우

332

숨어서 소원

김윤지 이나현

333

피어나오는 빛 민들레

김수아 서윤영

336

큰 별이 지다

황연준

338

집에 가자

김상인 박준하

339

김조셉 오예준

342

아이를 위해 굶는 여인들

이관미

345

여름 이야기 나에게 소중한 공간

한민우 이주헌

349

기회와 선택 경복궁, 그 숨겨진 아픔

심서린 이현지

351

신미양요에 대하여

최현욱

35 9

신미양요, 조선의 의지를 더욱 강화시키다 당신을 떠나보내며

홍지완 이성준

361

289

304

322

11학년

조선 사람, 조선으로 얼마나 좋을까 봄의 기억들

331

335

337

341

343

350

355

364


오페르트 도굴사건

박정연

367

붉은 모래 만약에, 그러지 않았다면

권애나 이재우

368

별기군이 뭐라고

배지원

372

왕과 우정국 침입자들

강재원 유채영

374

자동차, 역사를 통해 달리다 같은 시대, 너무나도 다른 삶

홍성재 오형근

379

남다른 민족애 (愛), 나라를 만든다

정미령

384

‘조선어 학회 사건 ’ 조사 보고서 한국경제 성장의 초석

조성우 황수윤

387

비애 (悲哀) 미래의 과거

이지용 이채윤

396

내 사랑 야구, 기아 타이거즈

김 건

402

힙합이란 무엇일까 인류에게 선사하는 평생의 숙제

임 해 이진균

405

행진에서 온 사람들

권진아

412

화면 안의 세계 타인들

정예준 양혜연

413

피상적 성장 How hard is Korean

최 민 글로리

415

미래의 유승민에게

유승민

419

자연, 후손에게 잠시 빌리는 것 잘 먹어!

미 유 정석우

421

털보고된이 놀이터

서희원 최원석

42 5

APIS는 나에게 ‘제 2의 집 ’이다

노성헌

430

매봉산 꼭대기 조금 더 특별한 인연들

유병욱 김재엽

433

370

376

382

391

399

407

12학년

414

416

42 3

427

435


‘갑’과 ‘ 을’ 이 이루어가는 사회

이진성

437

한국 음식에 담긴 속도의 미학 성형에 빠진 나라

남윤준 이재림

439

‘나이'에 민감한 한국 문화

서대원

443

여유가 없는 사람들 우리의 효율성 , 득인가, 실인가 ?

김주성 강민규

445

단결의 한국인 밥심의 한국인

정민기 윤지민

449

단합의 양면성

박서정

45 3

한( 恨)의 민족 한국의 충(忠)과 정( 情)

김도현 구동수

455

O심 육개장 사발면 86g 절망의 끝은 아득한 어둠

윤수빈 권준혁

461

25 살, 꿈

황현선

465

국군 하영석의 전쟁일지 자랑스러운 7 일

안수영 장태호

470

제니에게 약속의 약속

정다은 김규한

479

할 걸 그랬다

김선주

490

그 날의 향기 늦가을 청계천의 기억들

김하령 김소정

495

마지막 상자 두통

이수빈 마요한

508

쿵. 쿵. 쿵

박세은

518

나의 그림자가 사람을 죽였다. 바나나 고무신

강응준 최사라

523

441

447

451

457

463

475

483

500

513

528


Dear Reader, It is my pleasure to introduce the hard work of our APIS stud ents. As your turn the pages of this publication, please enjo y both the hard work and the talent of the authors. Students have s hared with us their creativity and ideas and have gained skills to express themselves in new and unique ways. They have persevered through challenges and

learned

more about

how to

push

through writing

challenges in order to produce what we see here today. I hope that they have gained insight into themselves as well as sharing

their

p ersp ectives

with

o ur

whole

community.

Students are living out our mission of bridging the East and the West as they develop their language skills at thes e l evels. Please open yo ur mi nd and your heart as you r ead the works

of

our students. Pleas e encourage them and

engage them in the world around them that op ens up with the development of language skills. We are so proud of what they have accomplished

and

we

hope

you

join us

in

celebrating their work. Thank you to the teachers who pour into these students and help them grow and also a thank you to stud ents for s haring with us and working so hard to show your

perspectives and

creativity. Pleas e enjoy this

year&s p ublication! Sincerely, Ms. Meg Hayne Secondary Principal and Deputy Head of Acad emics Asia Pacific International School


‘I have been ‘green’ for twelve years in a small community since its founding in 2007,’ I said to my future alma mater last fall. When APIS comes to mind, other international school students are lik ely to think of that green school, but those students may be neglecting the ubiquitous benefits of being part

of

a

small

school: the tight-knit

atmosphere, the

accessibility of teachers, the pl entiful lead ership opportunities for granted—the list goes on. I would like to represent the student body to thank our Korean teachers for their commitments to organize and polish these crafted works

into

several

vol umes. I

am

especiall y grateful for Ms. Kong, who has b een my Korean teacher for six of the last eight years. The results of a nurturing annual

school

environment

Collection

Department,

where

of the

Literar y

are r eflected Works

stud ents&

by

immense

through the the

Korean

talent

and

potential are synthesized. Stud ent Representative Council (SRC) is a place where passio nate students gather to strive for reforms and student welfar e. As an SRC veteran, I approached each executive term thematically. My paramount objective for my Treasurer Term was transpar ency. While previous council chapters concealed

budget

details,

I

advocated

full

disclosure,

releasing comprehensive budgets monthl y. Although this year has not seen as many reforms as intended, I strived to ensure that no small handful of the council was excessively burdened, seeking to explicitly recognize those that put in their b est effort. It is the collective struggles of the twenty council members that led to event execution and student repres entation. Whil e there are a plethora of things I would


seek to do differently if I had the chance to restart my President

term,

this

experience

s erved

as

an

elegant

culminatio n for my Student Council career and hop efull y has left a mark for future co uncils. As a closing remark, I express my d eep gratitude to those that have helped foster a myriad of meaningful memories— fellow seniors that shared the burdens of a stressful college admissions process and senioritis, friends that tolerated my brutally honest dialogue, MUNers that willi ngl y starred in my vlogs, Calculus Kahooters that despair ed by selecting the wrong shape —anyone that made a positive difference in my life. All of these figures have molded my identity as a Green Hawk. I may have walked into APIS as a near sp eechless first-grader, b ut I am soon to walk out as a confident graduate: still green.

Henry Kim High School Stud ent Representative Council President Asia Pacific International School


‘ 저는 2007년 시작된 작은 녹색 공동체에서 지난 12 년간 자라왔습 니다.’ 나는 작년 가을 올해 다니게 될 대학 입시원서에 이렇게 글을 시작했다. 다른 외국인학교 학생들에게 ‘APIS’ 하면 ‘아 , 그 작은 녹색 학교 ’ 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 작은 학교가 가지는 수많은 장점 을 잘 모른다. 유대가 긴밀한 공동체 의식 , 언제든지 찾아가면 반갑 게 맞이해 주시는 선생님들 , 그리고 다양한 리더십의 기회 등 셀 수 도 없는 많은 장점들을 우리 학교는 가지고 있다. 학생회장으로서 학생들을 대표해 이 문집을 위해 장시간에 걸쳐 각각 학생의 글을 감수해 주신 한국어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 특히 지난 6년 동안 나의 한국어 선생님이셨던 공남희 선생님께 감사하다 . 우리 학교 학생들의 재능과 잠재력은 한국어 문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학생회는 전교생의 행복을 위해 일하는 , 학생 복지에 열정적인 학 생들의 모임이다 . 고등학교 4 년을 학생회에 바친 학생으로서 임원직 을 맡았을 때의 목표는 뚜렷했다 . 총무였을 때는 예산의 투명성을 강 조했다. 예전에는 예산 집행을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지만 나는 포괄적인 예산 발표를 매달 진행했다 . 올해는 계획했던 것에 비해 큰 변화들을 가져오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대신 학생회 내에서 열심히 맡 은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공이 가려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스무 명의 회원 모두가 합심해야 성공적으로 행사를 진행하고 전체 학생들을 대표할 수가 있다 . 회장 임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다 르게 시도해 보고 싶은 것들이 여전히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해를 마무리하며 내 학생회 생활의 매듭을 잘 지은 것 같아 만족스럽 다. 이 경험들을 미래의 학생회 학생들이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 이 자리를 빌려 나는 좋은 추억을 많이 쌓게 해준 사람들에게 고 마움을 표하고 싶다. 피 말리는 입시과정부터 느슨해진 2학기까지 같 이 겪은 12 학년 학우들 , 내 직설적인 화법을 받아준 친구들, 내가 촬 영하고 편집하는 브이로그에 흔쾌히 출연해주는 모의유엔 동아리 부 원들, 카훗에서 틀린 답을 고를 때마다 비명을 지르던 미적분 수업 후배들, 내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모든 사람들한테 감사하다 . 이 모든 사람들이 지금의 ‘나 ’를 조금씩 만들어 줬다 . APIS 에 처음 등교했을 때 숫기가 전혀 없던 1 학년 학생이었던 나는 현재 졸업을


앞둔 자신감을 가진 청소년으로 성장했다 . 졸업을 하고도 물론 계속 녹색은 나의 중요한 일부일 것이다.

아시아퍼시픽국제외국인학교 고등학교 학생회장 12 학년 김도현


9학년


나무 같은 삶 최세연 Sunny Choi

나무 이소민 바람이 불면 나무가 춤을 추고 바람이 쿨쿨하면 나무도 쿨쿨 잔다

7 학년 때였다 . 나는 행복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 친구들과도 좋았고, 공부, 운동 , 음악도 좋았고 행복했다 . 그러나 여름방학 첫 날, 아무것도 모른 채 나는 갑자기 학교를 옮기게 됐다 . 왜냐하면 할 아버지와 할머니가 너무 많이 아프셔서 , 엄마가 간호를 해야 하셨고 , 그런 상황에서 나를 픽업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 나는 절대 이런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 .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머리가 아팠다 . 어떻게 다른 학교에 가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며 , 새로운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을까? 나는 두렵고 겁이 났다 . 나는 새로운 학교 입학 후 , 거의 한 달 동안 잠잠했었다 . 되도록 말하지 않았었다 . 근데 잠잠한 나에게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말을 걸 기 시작했다. 나는 용기 내어 그들에게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 나는 다시 예전에 내 모습을 찾기 위해 노력을 했다. 나의 환경이 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 난 내가 변하기로 했다 . 나의 마음가짐 하나로 , 많 은 것이 변했다.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관계도 좋아졌고, 너무 재밌었 고 행복했다. 그런데 갑자기 겨울방학 때 또 다시 아무것도 모른 채 내가 다시 APIS에 오게 되는 상황이 됐다 .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가만히 내 자리에 있었을 뿐인데, 많은 상황들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

9학년 / 114


내가 이 시를 읽었을 때 , 나무는 나 , 바람은 내가 처해져있는 상황 같았다. ‘나무’ 라는 시는 바람의 상태에 따라, 나무가 변하는 것을 말 한다. 바람이 불면 나무도 움직이는 걸 춤춘다고 표현을 한다 . 또 바 람이 안 불면 나무도 가만히 있는 걸 쿨쿨 잔다고 표현을 한다. 나는 나무를 좋아한다. 나는 나무가 되고 싶다. 어떠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되고 싶다 . 아니면, 간혹 흔들리더라도 제자리 에 있는 나무가 되고 싶다.

9학년 / 115


존경하는 우 선생님께 홍주영 Timothy Hong

우 선생님, 안녕하세요 . 저는 APIS 9 학년 , 홍주영입니다 . 선생님에게 할 말이 있어요. 우리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 개인적으로 수 학은 정말 어렵지만, 우 선생님을 통해서 올 해 수학에 대하여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 그리고 선생님 덕분에 수학 시험도 좀 더 쉽게 접근 할 수 있었습니다 . 선생님은 조용하고 말이 없으시지만 항상 학생들을 도와주시려 애쓰시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 저 희들에게 틀려도 다시 할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을 주셨습니다 . 선생님 감사합니다. 우리 학생들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해 오신 선생님께서는 존경 받으시기에 마땅하십니다. 선생님, 언제나 건강하시고 , 다음 해에도 수학을 잘 가르쳐 주세 요.

2019 년 5 월 15 일 선생님의 영원한 제자 홍주영 올림

9학년 / 116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다 강기윤 Matthew Shima Kang

제 삶의 가치는 사랑과 충성입니다. 저는 세상을 살아갈 때 사랑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아껴줄 때 그리고 내가 만든 음식을 나눌 때 저는 마음이 풍성하고 따뜻해집 니다. 저는 선생님들과 고등학교 학생들 모두와 함께 2018 년 9 월 17 일 부터 21 일까지 경기도 가평에 있는 수련원으로 2박 3 일 리트릿 (Retreat, 수련회) 을 다녀왔습니다 . 여러 가지 많은 활동이 있었지만 리트릿에서 제일 재미있던 것은 카니발입니다. 그 이유는 카니발 안에 다양한 게임이 있었기 때문입 니다. 예를 들어서 콩 주머니를 멀리 던져서 바구니 안에 넣는 게임 도 있었고, 보드게임인 젠가, 물 풍선을 아이들이 떨어뜨리지 않고 나르는 것 등등이 모두 재미있었습니다. 리트릿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는 루시아노 (지우)입니다 . 우리는 같 은 Advisory 그룹 안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 둘 다 카니발에서 재밌 게 놀 수 있었습니다 . 저희는 계속 같은 방 안에 있었는데 루시아노 와 함께 있을 때 가장 마음이 편하고 제가 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 다. 저는 이번 수련회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또 기회가 주어진다면 많은 친구들과 여러 가지 좋은 추억을 쌓고 싶 습니다.

9학년 / 117


나의 정체성 김태윤 Tae Yoo n Kim

저는 한국에서 태어난 미국 사람입니다. 2003년, 4 월 5일 , 서울에서 오후 열두시 반쯤 태어났지요 . 엄마가 병원에서 퇴원하신 후로 우리 가족은 제가 다섯 살 때까지 한국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어요 . 그리고 7 년 동안 캘리포니아주 팰로스 버디스 (Palos Verd es)에서 살게 되었어요 . 저는 사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아서, 모국어인 한국어보다 영어 가 훨씬 더 편하고, 때로는 한식조차 맛이 없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 대신 좋아하는 음식들은 초밥과 이태리 음식들이지요 . 가끔씩 운동으 로는 펜싱을 하고 , 얼마동안 복싱과 축구도 했어요 . 틈날 때마다 축 구경기 보는 걸 좋아하죠 . 한국어는 열심히 배우려고 하는데, 배우면 배울수록 꽤 어려워요 . 하지만, 영어만큼 잘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에 요. 저는 한국인이기도 하고요 , 미국인이기도 합니다 . 많은 사람들은 저를 보고 모습은 한국인인데, 왜 미국인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곤 해 요. 저는 가족 관계를 제일 먼저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리고 가족 안 에서 느낀 애정과 사랑, 그리고 교육이 있기에 저는 한국인이라고 생 각합니다. 하지만, 제 인생에서 학교를 들어가서 , 배우고 자라면서 중 요하게 느낀 시간의 대부분은 미국에서 보냈죠 . 기억나는 어릴 적 소 중한 순간들은 모두 미국에서의 생활이었어요 . 그러한 이유들로 , 저 는 미국인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어요 . 그리고, 저는 영어가 의사소 통을 할 때 한국어보다 훨씬 더 편하기도 하죠 . 저는 앞으로 미국에 서 살고 싶기도 해요 . 그래서 , 저는 반은 한국인 , 반은 미국인이라고 생각해요. 이것이 저를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나의 정체성’ 이 라고 생각합니다.

9학년 / 118


Ode to my Father 오예찬 David Yechan Oh 우리 9학년 친구들은 한국어 수업 시간에 6.25 한국 전쟁을 배우게 되었 다 . 그리고 한국어 선생님께서는 한국 의 현대사를 잘 소개한 영화라고 하시 면서 ‘국제시장’ 이라는 영화 한 편을 보여 주셨다 . 처음에는 별로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없었지만 보면 볼수록 우리들의 생각에 영향을 많이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영화를 보면 서 한국 역사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고 , 우리나라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앞서 사신 분들이 겪은 고통에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 영화를 보면 서 우리 할아버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1950년 6.25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 흥남에 살고 있었던 가족이 부산으로 피난을 가려고 하는 도중에 , 오빠인 덕수가 동생 막순이를 등에 업고 있었다 . 그런데 미국 함선인 빅토리아호를 타려고 올라가 는데 불행히도 업고 있던 동생의 손을 놓치게 된다 . 아빠가 동생을 다시 찾으러 배에서 바다로 뛰어 내려가지만 아빠는 막내딸을 못 찾 고 배에도 다시 타지 못하게 된다 . 그래서 주인공은 아빠와 막순이 없이 부산으로 피난을 간다 . 부산에 도착해서 엄마와 함께 고모네 가 게인‘ 꽃분이네'를 찾아간다 . 그리고 부산에서 주인공 덕수가 스무 살 이 될 때까지 살다가 , 돈을 벌려고 독일 탄광으로 가게 된다. 그러다 가 간호사인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결혼 하게 된다. 그 후 고모가 돌아가시고 꽃분이네 가게를 고모부가 팔려 하는데 아버지와 다시 만나고 싶은 주인공은 꽃분이네 가게를 어떻게 든 살리기 위해 무리를 해서라도 가게를 지켜내려 한다 . 하지만 막내 여동생도 그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하고 싶다고 하고 동생을 결혼 시

9학년 / 119


키고 꽃분이네 가게를 사기 위해 주인공은 돈을 벌려고 베트남 전쟁 터로 나간다. 베트남에서 남진이라는 가수 덕분에 덕수는 목숨을 건 지고. 우여곡절 끝에 베트남에서 돌아오고 나서 동생을 결혼 시킨다 . 시간이 지난 다음에 KBS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에 나가서 미국에 살고 있던 막순이와 연결이 되어 동생을 다시 찾게 된다 . 영화의 마 지막 장면은 할아버지가 된 덕수가 자신의 어릴 적 아버지에게 그동 안 힘들었다고 보고 싶다고 고백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흥남 부두에서 동생 막순이가 오빠의 등에서 떨어질 때이다 . 덕수가 그때 얼마나 큰 죄책 감을 느꼈을지는 상상도 하기 힘들다 . 하지만 이 당시 전쟁 상황에서 는 누구나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추운 겨울, 아이를 안은 어머니도 있을 테고, 몸이 아픈 환자나 아직 말도 못하는 아이 들도 있을 텐데 바다를 건너 남쪽 부산까지 피난을 가야하는 상황에 서 가족을 잃은 덕수의 마음이 마치 우리 조상들의 마음을 대변한 것 같아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이 영화의 주제는 ‘ 사랑 ’이라고 생각한다 .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덕수의 모든 행동은 가족을 위해 하게 된 것들이다 . 흥남 부두에서 아빠와 막순이를 잃었다는 게 덕수에게 상당히 큰 책임감을 갖고 살 게 된다. 덕수의 모든 행동은 가족을 위한 삶이다 . 독일에 광부로 갈 때하고 베트남 전쟁에 가서 일 할 때도 모두 다 가족을 위해서 돈을 벌려고 간 것이다 . 가족을 사랑해서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을 더 많이 챙기고 희생하는 덕수의 삶이 너무나 안타깝고 불쌍했다. 그래서 그 런지 덕수의 아내도 덕수에게 자기를 위해서 제발 살라는 말을 하면 서 운다. 하지만 덕수의 아내 역시도 가족을 위해 독일에 가서 시체 를 닦고 환자들의 대소변을 치우는 힘든 일을 해낸 간호사였다. 덕수 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지만 이 말은 덕수의 아내도 들어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인생을 계속 가족들을 위해서만 희생하며 살게 되면서 하 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못한 게 더 많았을 텐데 , 주인공에게 과연 후 회하는지 아니면 지금에 와서라도 꼭 한 가지라도 하고 싶은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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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무엇인지 물어 보고 싶다 . 그렇지만 주인공은 사실 우리들의 할아 버지 할머니 세대의 인물들을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받은 사랑이 큰데 나는 한 번도 그 사랑에 보답한 적이 없다. 그들의 사랑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 내 더욱 더 가슴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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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를 영화에서 찾다 제이슨 Jason Misner 1950년 추운 겨울, 흥남 부두 피난길에서 오빠인 덕수가 동생 막 순이를 업고 있었습니다 . 그런데 큰 배에 올라갈 때 동생이 오빠 등 에서 떨어졌습니다 . 그래서 아버지가 배에서 내려서 동생을 찾고 있 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안 돌아오셨습니다. 동생을 잃어버리고 그 죄책감 때문에 고통스러웠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동생을 잃어 버리고 어떤 마음이셨을지 할아버지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 싶었습 니다. 그리고 오빠는 어느덧 훌쩍 자라 아저씨가 되었습니다 .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려고 독일 탄광에서 일을 하게 됐습니다 . 그런데 탄광에 서 사고로 돌덩이에 끼여 있었습니다 . 하지만 아저씨는 구조되었고 , 한국으로 돌아와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영화 ‘국제시장 ’의 줄거리입니다 . 저는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습 니다. ‘KBS 이산가족 찾기 ’가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이 방송은 6.25 전쟁에서 서로 헤어진 사람들이 가족을 다시 만나게 도와줬습니다. 영화에서 주인공 윤덕수가 잃어버린 막내 동생 막순이를 찾기 위해 KBS 이산가족 찾기 방송에 나간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 잃어 버린 가족을 다시 찾아 서로 만나는 것이 인상적이고 행복했습니다.

이산가족 찾기 KBS 방송국 앞

영화에서 막순이를 찾는 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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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 윤덕수가 할아버지가 됐습니다 . 하지만 가족들이 할아 버지한테 착하게 굴지도 않고 존중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사용 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학생들이 그 외국인을 놀렸습 니다. 할아버지가 그 순간 너무 화나고 전에 독일에서 일 했던 시절 을 생각 했습니다. 저는 이 영화의 주제가 가족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 세상에서 나의 가족은 오직 하나만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사랑해 야 됩니다. 따라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도와야 합니다. 저는 이 영화가 그러한 마음을 담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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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아침의 첫 끼 문제이 Jei Moon 서울과 달리 상쾌한 공기에 코가 막히지 않고 편안히 일어났다. 나는 눈을 뜨자마자, 오늘이 얼마나 특별한 날이 될지가 궁금했다 . 바로 오늘이 일 년에 한번 찾아오는 그 날이었기 때문이다 , 내 생일 . 나는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고 그림 같은 히말라야 산을 보았다. 거리엔 익숙한 차 소리와 빵빵 거리는 차들 대신 , 자전거와 오토바이 가 달린다. 어제의 피로가 아직 있어서 몸이 약간 무거웠다 . 나는 언 제나처럼 엄마랑 아빠를 찾아 내 방을 나섰다 . 옆방에서 엄마하고 아 빠가 주무시는지 확인을 하려고 문을 열고 컴컴한 방에 있는 전등 스 위치를 찾아 벽을 더듬었다 . 그리고 벽에 있는 볼록한 스위치를 누르 고 불을 켰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방에 계시지 않았다. 마음 속으 로 서프라이즈를 생각하며 기대를 했던 나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분노의 마음이 뜨거운 불처럼 타올랐다 . 생각이 복잡해지면서 서서히 커지는 실망을 안고 그 방에서 나왔다. 나의 시선은 점점 아래로 내려갔고,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려고 밖 에 나갔다. 짜릿한 바람과 비타민을 주는 햇빛을 맞으며 차가웠던 마 음이 녹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따뜻함과 시원함이 몸을 스치고 내려 오는 것을 느끼는 게 너무나도 좋았다. 그렇게 눈을 감은 상태로 있 는데 문득 어떤 냄새가 내 코 주변을 맴돌았다 . 내 식욕을 자극하는 그 냄새를 맡으면서 내 두 발이 멋대로 그 냄새를 따라갔다. 나는 천 천히 내 발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가면서 생각했다. “이 냄새는 아주 익숙한데? 뭐지? 한국이 갑자기 그리워지네.” 그렇게 생각하는 도중에 나의 발은 멈췄고 , 나는 바로 옆집 , 아빠 친구가 사시는 집에 온 것을 깨달았다. 나는 문틈 사이로 눈을 찡그 리며 그 음식의 정체를 알려고 애를 썼다 . 시큼하고 매운 냄새가 침 을 고이게 했고 방금 전까지 느끼던 그 슬픔도 뒤로 하게 했다 . 몇 분이 지나지 않아 , 엄마의 목소리가 문 넘어서 크게 들렸다 . “제이야, 일어나서 옆집으로 빨리 오렴 !” 나는 문을 벌컥 열고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내 뒤로 따라 오시면 서 나를 천천히 집 안으로 미셨다 . 나는 안쪽에 있는 아빠와 아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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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친구 분을 만나 인사를 했다 .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식탁에 있는 꽁치 김치찌개였다. 나는 거의 한 달 동안 먹지 못한 한국의 음식을 그리워했고 , 네팔 의 음식에 질려가던 참이었다 . 그런데 꽁치 김치찌개가 내 앞에 있다 니 너무나도 꿈만 같았다. 나는 옆에 있던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어 김치찌개를 먹기 시작했다 . 근데 , 정신을 차려보니 나만 김치찌개를 먹고 있었다. 나는 잠시 눈치를 보면서 먹는 걸 멈췄다 . 그때 , “빨리 먹으렴. 식으면 맛없단다 , 그리고 생일 축하한다 .” 라고 아빠가 말씀 하셨고, 나는 웃으면서 꽁치 김치찌개를 허겁지겁 먹었다. 나는 그 감동의 맛에 말도 하지 못하고 그리웠던 아빠의 김치찌개를 싹싹 비 워먹었다. 그 마지막 한 방울까지도 나는 쉬지도 않고 먹었다 . 냄비 를 다 비우는 동안 비록 좋은 곳에서 비싼 음식을 먹지 않아도 이런 생일이 빨리 다시 돌아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하염없이 지나갔다. 나는 아직도 정성이 가득 담겨져 있던 이 찌개의 맛을 잊지 못하 고 그 음식을 먹고 싶을 때마다 곰곰이 생각했다 . 나는 그 이후로 김 치찌개를 먹었어도 아직도 그 네팔에서 먹었던 아빠의 손맛과 정성이 있는 김치찌개를 다시 먹고 싶고 그때로 돌아가고 싶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생일 선물이나 그냥 맛있는 음식을 원한 게 아니라 감동과 정성이 가득한 축하와 음식을 원했던 것을 깨달았다. 이렇듯 모든 음식에는 그 음식을 만든 사람의 정성과 사랑이 같이 담겨져 있다고 믿는다 . 나는 내가 느낀 이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고 싶다 . 만약에 누군가에게 이런 음식을 해 줄 기회가 생 긴다면 내가 먹었던 그날 아침의 첫 끼처럼 그 사람을 향한 내 진심 을 담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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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해물떡찜 구은서 Sarah Koo 어린 시절 중국에 살 때 , 집 근처에는 ‘ 양반댁 ’이라는 음식점이 있 었다. 집에서 가깝기도 했고, 음식도 맛있어서 자주 가곤 했다. 그 식 당에서 우리는 해물떡찜이라는 메뉴를 가장 자주 시켜 먹었고 , 그것 은 그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하던 음식이기도 했다 . 외식하러 갈 때 ‘뭐 먹을까?’ 물어보면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수 있을 정 도로, 내가 가장 맛있게 먹던 음식 중 하나로 기억된다 . 내가 좋아하 는 해산물도 많이 들어 있고 , 떡도 들어있고 , 어린이가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매콤한데다가 맛까지 있으니 바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 친구들과도, 가족들과도 자주 갔고 ,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여 러 가지 상황에서 먹었고, 중국에 있었을 때 가장 많이 먹었던 음식 으로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몇 안 되는 음식들 중 하나이다. 해물떡찜 뿐만이 아니라 , 음식점 입구 쪽에는 작은 커피 자판기와 아이스크림 통이 있었다 . 커피 자판기에는 커피 말고도 어린 아이들 을 위한 코코아도 있었고 , 아이스크림도 여러 가지 맛이 다양하게 있 었다. 좋은 아이스크림이라고는 차마 부르지 못할 , 양 많고 싼 대용 량 아이스크림이었고 과일도 향만 날 뿐 , 달기만 했지만 그래도 맛이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이 맛 , 저 맛을 섞어 먹는 재미도 있고 , 어른 들이 아이스크림에다가 커피를 부어서 드시는 걸 보고 우리도 해보자 며 코코아에다가 아이스크림을 넣어 먹는 재미도 있었다. 무엇보다 맛이 있는 디저트였기 때문에 그 뒤로는 음식점에 갈 때마다 해물떡 찜을 시키고 후식으로는 늘 코코아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해물떡찜을 팔고 , 오히려 한국에서 더 흔하게 찾을 수 있는 메뉴가 되었지만 , 그때 양반댁에서 먹었던 것 만큼 맛 있는 해물떡찜은 찾을 수 없었다. 지나치게 맵거나 , 해물이 별로 들 어있지 않거나, 내가 싫어하는 홍합만 잔뜩 들어있거나 하는 , 그저 그런 해물떡찜밖에 찾지를 못했다. 가끔은 맛있는 해물떡찜을 먹은 기억도 있지만, 그래도 중국에서 먹었던 것만큼 맛있는 해물떡찜은 아직도 찾지 못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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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놀러 가면 꼭 다시 먹고 싶어서 몇 년 전에 다시 중국에 갔을 때 그 음식점을 다시 찾았다 . 그러나 그 음식점은 이제 이름만 같은, 다른 음식점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많이 변해 있었다. 메뉴도 , 맛도, 주인도, 인테리어도 전부 바뀌고 아이스크림과 커피 자판기도 다 사라진 상태여서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다행히 해물떡찜은 아직 팔고 있어서 시켜 먹어 보았지만, 그때의 그 맛은 나지 않았다 . 너무 오랜만에 먹어서 예전에 맛이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나서 그랬던 건지 , 실제로 맛이 많이 변해서 그런 것인지 는 모르겠지만 기대하던 맛있는 해물떡찜은 없었고 , 오히려 한국에서 먹었던 해물떡찜보다 별로인 맛이었다. 예전보다 해물의 양도 줄고 , 맛도 변하고 , 후식으로 먹던 아이스크 림과 코코아도 더 이상 없어서 굉장히 실망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는 같이 먹던 친구들도 없고 사람이 바뀌어서 그런 것인지, 실제로 맛이 변해서 그런 것인지, 인테리어가 변해서 그런 것인지 , 이유는 모르지만 가장 맛있던 음식을 팔던 음식점으로 기억되던 ‘ 양 반댁’ 은 이제 추억만 남아있는 , 동네에 있는 그저 그런 낯선 음식집 ‘1’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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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원한 적, 우유 이네오 Neo Lee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우유 알레르기가 있었다 . 그래서 나는 친구들과 맛있는 아이스크림도 못 사먹고, 초콜릿도 못 먹고 , 우유 대신 두유를 마셔야 했다. 나는 한동안 우유 알레르기 때문에 많이 속상했고, 우유를 못 마시면 키도 안 클까란 생각도 한 두 번은 해봤 다. 우유를 마시는 애들을 보면 많이 부러웠고, 저 아이들은 나중에 나보다 키도 많이 클 거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점심을 먹을 때면 선생님들은 매일 서울우 유를 친구들한테 주셨다 . 나는 우유를 마시는 친구들이 정말 부럽고 또 부러웠다. 나는 매일 우유를 마시는 친구들을 보며 미지근한 쇠컵 에 담긴 찬물을 마시곤 했다. 어느 날 친구들과 놀이터에 나가는 시간이 되었다 . 하지만 그날은 비가 아주 많이 왔고 , 그래서 놀이터에 나가는 대신 선생님들과 유치 원 안에서 블록 놀이를 했다 . 그 날은 우유가 떨어졌는지 선생님들이 전 날 조금 남아있던 우유와 미숫가루를 섞어서 친구들과 나한테 주 셨다. 나는 계속 블록 놀이를 하고 , 아주 큰 성도 만들었다 . 친구들은 카드 놀이를 했고 , 나와 우진이는 계속 성을 만들었다. 10 분 정도가 지나고, 선생님들은 친구들과 나에게 미숫가루를 주셨다 . 우진이는 목이 말랐는지, 미숫가루를 벌컥벌컥 마셨다 .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벌컥벌컥 마셨다 . 나도 목이 아주 많이 말랐다. 우진이와 계속 말을 하면서 목이 타들어가는 줄 알았다 . 나도 급하게 뛰어가서 쇠 컵에 담 긴 미숫가루를 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 잘 섞이지 않은 미숫가루 덩어리가 목을 통해 넘어갈 때까지도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다시 우 진이와 성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때부터 나는 나도 모르게 팔을 긁고 있었고, 점점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 팔을 너무 많이 긁어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 두드 러기도 목과 몸에 퍼지기 시작했다 . 나는 계속 몸을 긁었고 , 시간이 지나자 선생님들이 몸을 긁는 나를 말리려 뛰어오셨다 . 선생님은 피 가 맺힌 나의 팔에다가 미니언 밴드를 붙여주고 다시 점심을 만들러 가셨다. 나는 다시 우진이와 성을 만들었고, 점점 앞이 흐릿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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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깨어났을 때에는 , 모르는 사람들이 주사를 들고 나를 찌르고 있었다. 대각선 방향에는 엄마가 앉아 계셨고 , 내가 만들던 성은 찾 을 수 없었다. 나는 엄마한테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물어봤다 . “네오야! 괜찮니 ? 선생님들이 실수로 미숫가루에 우유를 넣었단 다.” 나는 그 사건 이후로 다시는 미숫가루를 마시지 못했다. 2019년, 나는 16 살이다 . 아직도 팔에 두드러기가 많이 남아 있고 , 여전히 흰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지 못한다 . 친구들과 놀러갈 때마다 먹을 것도 골라 먹어야 하고 , 치즈도 많이 먹지 못한다. 아이스크림 을 먹을 때도 영양성분을 읽고 우유가 없는 스크류바 , 죠스바 , 탱크 보이만 골라서 먹는다. 그 날 미숫가루를 마신 이후로 나는 이렇듯 음식들과 음료를 조심스럽게 고르고 먹고 마신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어른이 되면 우유를 마실 수 있다고 하셨다. 언젠가 초코파이도 먹고 , 흰 우유도 마시고 , 치즈 스틱도 먹고 , 빵빠 레 아이스크림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난 기다린다. 하지만 , 기다림이 끝날 때까지는, 우유는 나의 영원 한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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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봄날에 김양현 Karen Kim 어느 봄날, 벚꽃이 회오리처럼 휘날리던 어느 날 , 모두들 누군가와 같이 산책을 하던 날에 나는 혼자였다. 내 생각에 나는 아무런 죄가 없는 것 같은데 , 나도 모르는 죄가 있는 걸까, 그것만이 이 문제의 답인 것 같았다 . 아니면, 내가 단정지 은 이 답이 오답이라면, 과연 이것은 영원히 풀리지 못할 수수께끼인 것일까. 내 앞에 지나가는 저 아름다운 여자는 다른 사람들 눈에는 평범하겠지만, 나에게는 너무 부러운 일상의 한 부분이랄까. 나도 이 세상에 처음 등장을 했을 때 모든 주변 사람들에게 축복 을 받곤 했다. 그리고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 남들도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말이다 . 근데 그 당시에 그렇게 거하 게 축복을 받을 때 나마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또 너무 거만 하게 굴어서 지금 이렇게 벌을 받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 그렇다 면 저렇게 아름다운 다른 사람들은 태어날 때에도 그렇게 겸손했던 것인가, 그러니 그냥 저렇게 아름답게 태어난 건가 , 아니면 내가 못 난 것일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과연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 어 른들이 항상 하나보단 둘이 낫고 , 둘보단 셋이 낫다고 말해주셨으니 , 나도 나와 비슷한 사람을 한 명이라도, 혹시 두 명이라도 만나게 된 다면 내가 보는 이 세상은 조금이라도 달라질까? 항상 궁금하고 또 궁금했다. 하지만 이렇게 나설 용기가 없는 , 자신감이 없는 나임에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도 나처럼 이렇게 소심하고 적극적이지 못할 텐 데,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 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또 나와 같은 바람들을 항상 어딜 가나 지니고 다니겠지 , 숨을 쉴 때 공기를 항상 들이쉴 때처럼 . 내가 나의 사람들을 대신해서 나서게 되면 그들이 나를 따를까, 아니 면 나란 존재 자체가 바뀔까. 내가 나서야 되는 이유는 나와 같은 누군가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나 혼자 이 넝쿨 속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건지, 이런 생각을 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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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가 발버둥 치는 것이라고 가끔 생각이 들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이 환경은 평생 이대로 돌처럼 가만히 ,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 자꾸만 씻어내도 뭔가 묻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마음속엔 많 은 질문이 생긴다 . 바뀌지 않는다면 영원할 것인가 , 아니면 오해 따 윈 무시하고 내가 하고 싶은 , 내 갈 길을 갈 것인가 . 나에게 힘이 되는 생각은 나 말고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널 려 있다는 것. 혹시라도 , 하나도 없을 수도 있지만 , 각자의 상상은 자 유라고 했으니, 상상하는 것 정도는 나 혼자 자유롭게 해도 되는 것 아닌가. 앞으로 전진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 ,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바보인 것 같다 . 막상 나서는 건 또 왜 이렇게 서툴고 못하는지 . 나 말고 다른 나 같은 사람이 나서 주지 않는다면 나는 계속 이런 생각 , 상상 , 행동, 그리고 말들을 반복하며 인생을 헤 쳐 나가겠지. 정말로 나 ,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보는 이 세상은 정말로 행복해질 텐데. 이런 생각 하지 말아야지 하 면서 또 다시 이러고 있는 나는 정말로 이세상의 잡초 같이 느껴진 다. 하지만 내게도 분명히 꽃 피는 봄날이 오리라 믿어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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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과 경험 곽승화 Eunice Kwak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것들은 우리가 누구인지 , 어떤 사람이 되 고 싶은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를 형성한다 . 나는 어렸을 때부 터 이사도 많이 했고 해외에서 살면서도 많은 경험을 하고 추억도 쌓 았다. 내가 처음으로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는 나의 삶은 평범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가끔씩 내가 그 단어를 쓰는 게 과연 맞는 건 지 생각을 하게 된다 . 우리는 ‘ 평범 ’이라는 단어로 자신과 서로의 삶 을 표현할 때가 많다 . 하지만 사람마다 경험과 삶의 이야기가 다른 세상에서는 평범한 삶이 무엇일까? 나는 아기였을 때부터 건강하 고 웃음이 많은 아이였다고 부모 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 내가 태어 났을 때 부모님은 나로 인해 상상 도 하지 못할 큰 기쁨을 느끼셨다 고 한다 . 솔직히 나는 사람이 어 떻게 그런 큰 기쁨과 사랑을 느낄 수 있는지 아직은 모르겠다. 내가 태어나고 2 년 후 나에게 는 여동생이 생겼다. 다른 아이들 과 달리 나는 여동생이 생겼다는 사실이 기뻤고 동생을 예뻐했다. 물론 부모님의 관심이 동생에게 많이 가는 것에 질투를 하기도 했 었다 . 지금 나와 동생은 우리의 부모님보다 서로를 더 잘 아는 것 같다 . 우리가 이렇게 같이 살아오 지 않았다면 우리 둘 다 많이 힘들게 살았을 것 같다. 평범하다는 단 어를 나는 여기에 쓴다 .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부부와 아이들 . 가끔 씩 나는 그 평범함이 많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러나 이런 평범함은 우리가 중국으로 떠날 때 한국에 놔두고 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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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일로 인해 우리 가족은 중국 북경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 다. 나는 중국에서 많은 행복한 추억을 만들었지만 아픈 경험도 많이 했다. 그렇다고 내가 이런 경험들이 싫거나 혹은 내 인생에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 건 아니다 . 내가 이런 힘든 경험을 하지 않았더라 면 오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을 것이다 . 내가 중국으로 이사 갈 때 내가 아는 모든 것을 한국에 놔두고 가는 것이었지만 적응 하 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 하지만 , 몇 년 뒤 나와 동 생은 전학을 가게 되었다 . 나는 또 새로 시작을 해야 했다 .

어느새 5 년이 지나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2013년 동생과 나 는 APIS에 입학 하게 되었다 . 돌아보면 내가 지금까지 쌓아 온 추억들과 경험들이 오늘의 나 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아직 미래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경험을 할지 모르 지만, 서둘지 않고 지금까지 걸 어온 시간처럼 조금씩 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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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장 이야기 김도아 Jeremy Kim 나는 2004년 5 월 28 일, 이 세상에 태어났다 . 1 남 1녀 중에서 첫째 였다. 나는 일곱 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학교에 갔다. 나는 학교에서 처 음부터 진짜 많이 떠드는 아이였다 . 그때부터 같이 떠들고, 사고치고, 같이 친하게 지내온 애들이 몇 명 있다 . 니오 , 유진, 그리고 아직도 연 락하는 샘이다.

우리는 일 학년부터 넷이서 어울리며 운동도 같이 하고, 같이 놀기 도 하고, 그리고 혼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안 하는 것이 딱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공부였다 . 우리의 공통점은 자주 사고를 치 고 공부를 안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씩은 교장실에 불려갔다 . 혼자 가든, 친 구랑 가든 나는 매일같이 교장 선생님 Mr.Massiah한테 혼난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한 번은 내가 친구의 엄마 욕을 했다가 교 장실에 불려간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는 혼자 쓸쓸히 두려움에 떨며 교장실로 걸어갔었다 . Mr.Massiah 교장 선생님이 우리 엄마한테 이메 일을 보냈고, 교장 선생님한테 그렇게 크게 혼나는 것도, 교장실에 혼 자 가는 것도 그 때가 처음이었다 . 1학년 때는 니오랑 샘이랑 다른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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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되어서 내가 혼자 교장실에 가도 니오, 아니면 샘을 교장실에서 만 나기도 했는데 그 때에는 나홀로 Mr.Massiah 교장 선생님한테 혼이 났었다. 2 학년 때 나는 운이 좋게 니오, 샘 , 그리고 유진이하고 같은 반이 됐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이 매우 엄격했다. 떠들 때마다 선생님은 우리 에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의 엄격함도 2주 만에 익숙해 졌다. 나중엔 하도 혼이 나서 나는 이제 뭘 해도 혼나겠구나 라는 생 각으로 수업을 들었다 . 한 번은 , 샘이랑 장난치다가 실수로 사물함 문 을 부셨다. 나와 샘은 선생님이 많이 화를 내실 걸 예상했다 . 그런데 선생님은 웃으면서 우리보고 사물함 문을 들라고 하고 기념사진을 찍 으셨다. 그때는 샘이랑 나는 많이 당황했었다. 2 학년 한국어 시간은 유진이랑 같은 반이었다. 유진이랑 내가 엉뚱 한 행동을 많이 해서 권숙자 선생님께 많이 혼났던 기억이 있다. 한 번은 권숙자 선생님이 나랑 유진을 혼내려고 부르셨다. 권숙자 선생님 이 우리를 혼내고 있을 때 철이 없는 유진이랑 나는 서로 눈을 마주치 고, 웃음이 터져 버렸다 . 그 이유로 권숙자 선생님이 우리를 또 다시 교장실로 보냈다. 3 학년도 비슷한 시간들이 지나갔다 . 4학년이 되자, 샘은 전학을 가 고 유진이는 다른 반이 되고, 우리 4학년 반에는 남자 애들이 나랑 니 오만 남게 되었다 . 우리의 장난끼가 그렇게 잠잠해지려고 할 때, 준호 라는 새로운 애가 전학을 왔다 . 준호가 우리랑 친해진 이후 5 학년이 끝나갈 때, 나랑 준호는 정학을 받았다 . 우리는 다른 아이 인터넷 계정 을 해킹했기 때문이다 . 이것이 나의 첫 번째 , 그리고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정학이었다. 참고로 내 생일 날에 정학을 받아서 , 앞으로는 절대 로 이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새로운 교훈을 배우게 됐다 . 중학생이 되자 , 나는 6학년과 7학년을 지날 동안 교장실에 단 네 번만 불려갔다. ‘Most improved student’로 상장도 받았다. 8 학년이 된 후에는 내 평생 처음으로 1년 동안 성적도 다 A를 받고 , 교장실에 한 번도 불려가지 않았다 . 나중엔 교장실에 가 보고 싶을 정도였다 . 나는 지금까지 자라면서 실수하고 , 장난치고, 잘못하고 , 그리고 혼 나면서 많은 것을 배운 것 같다 . 앞으로 어쩌면 더 많은 잘못을 하겠 지만, 이미 교훈을 받은 잘못은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지금까지처럼 실수도 많이 하고, 잘못도 많이 하고, 그걸 보며 배우면서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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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했던 나의 일기 김태영 Taeyoung Kim 나는 한 4살 정도가 되었을 때 미국에서 1 년 정도 살았다 . 오빠가 영어를 배우기 위해 미국에 가게 되었는데 , 그때 가족이 경험삼아 다 이민을 가게 되었다. 언니는 가지 않고 한국에 남았던 것 같은데 그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 그때 우리 가족이 집에서 과자만 먹고 부스 러기만 흘리면 개미가 나오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 그리고 아직도 기억나는 사건이 하나 있다 . 그때 부엌은 바닥이 대리석이었다 . 내가 누군가가 앉아있는 의자 뒤에 매달려 있었는데 앉아 있던 사람이 갑 자기 일어나는 바람에 뒤로 넘어져 머리를 대리석에 박아서 엄청 울 었던 기억도 있다.

내가 한국에 돌아와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에는 겨울철이라 날씨가 많이 추웠다. 6 학년 선배들이 와서 종이로 만든 왕관을 씌워 주고 체육관까지 데려다주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1 학년 때 1 학년 1 반으로 배정받았는데 1학년 때에는 수업이 많지 않아서 4 교시까지만 수업을 하고 점심을 먹고 바로 집에 갔었다. 4 학년 때에는 정말 친한 친구와 같은 반이 되어서 정말 학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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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즐겁고 행복했었다 . 내가 다시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 나는 7 학 년이었다. 처음으로 룸메이트도 있게 되었고 기숙사 생활도 할 수 있 었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고 떨리기도 했지만 곧 친구들도 사귀고 잘 적응하게 되었다. 학교에는 한국 애들이 몇 명 없었기 때문에 그 아이들과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 8학년에 올라갔을 때에 는 룸메이트도 바뀌고 지내는 기숙사도 바뀌었다 . 하지만 새로운 학 생들도 오고 또 그 아이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그 후, 9 학년이 되어서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APIS라는 학교에 다 니기 시작했다. 부모님께서도 내가 한국에 있기를 바라셨고 , 나도 한 국에서 지내고 싶었기 때문에 한국으로 학교를 옮기는 것을 결정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친해진 친구들과 헤어질 땐 매우 슬프고 마음도 우 울하였다. 하지만 학교를 옮기고도 새로운 친구들과 친해져서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많은 것을 경험하였다 . 미국에서 살고 , 또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힘든 일과 즐거운 일을 동시에 경험했기 때 문에 이 자서전의 제목을 험난하다고 이름을 지었다 . 하지만 이런 일 들도 지금 뒤돌아보면 , 모두 큰 어려움보다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 그 래서 나는 앞으로 어려운 일이 또 닥치더라도 , 너무 힘들어하지 않고 잘 이겨낼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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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여차하니 15살, 운명적인 나의 삶 성세현 Aidan Sung

나, 성세현은 2004 년 4월 18 일에 미국 뉴저지 주에서 태어났다 . 나는 지금의 모습과는 다르게 처음 태어났을 때는 살집이 꽤 있는 우 량아였다. 10 개월 만에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모습을 보인 후 , 나는 3 년간 쭉 미국 뉴저지 주와 뉴욕 주를 옮겨 다니며 살았다 . 가족에서 도 첫째, 외가 쪽에서는 첫 손자였기 때문에 가족들과 친척들의 사랑 을 독차지해 왔다 . 세 살 때 대한민국 서울에 이사를 오게 된 이후 , 나는 집을 옮기지 않고 쭉 한곳에서 살았다 . 그 곳은 내가 현재까지 도 계속 살고 있는 삼풍 아파트인데 , 90 년대에 붕괴가 되며 큰 사고 가 일어났던 삼풍 백화점의 바로 옆에 있는 아파트이기 때문에 아직 까지도 삼풍 아파트라는 이름을 들으면 사람들이 깜짝깜짝 놀라곤 한 다. 어렸을 때의 나는 매우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유치원을 졸업한 후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 해가 지나가며 소심했던 내가 초등 학교 4학년쯤 되었을 때였을까 , 나는 한순간에 정신없는 천방지축 성 격으로 바뀌어 있었다 . 그때 당시 , 또는 이후의 친구들에게 나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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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이 어땠는지 물어본다면 아마 입을 모아 내가 모두 앞에서 나서거 나 친구들에게 웃음 주는 것을 좋아했다고 할 것이다 . 나는 장기자랑 이나 반에서의 소소한 행사가 있을 때 아무도 시키지 않는데 나서서 춤추고 나대는, 그런 아이였다 . (사실 친구들이 나가서 춤을 추라고 보챈 것도 맞다.) 지금까지도 선명히 기억이 나는 일이 있는데, 5학년 수련회에 갔 을 때의 추억이다 . 레크리에이션 시간이 되고 반별 장기자랑 시간이 되었다.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장기자랑에서 1 위를 하는 반은 밥을 제 일 먼저 먹을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하였다 .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별거 아니지만, 그때는 왠지 모르게 밥을 제일 먼저 먹고 싶어 친구들의 응원을 받으며 무대로 나갔다 . 혼자 나가기에는 부담스러웠지만 나와 친한 친구 중 나처럼 관심 받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가 함께 나가서 춤추자고 말했다. 하나에서 둘이 되었을 때 나는 용기를 얻고 함께 무대로 올라갔다. 둘이 무대에 올라오고 그 당시 대유행이던 PPAP 를 립싱크하며 춤을 추었다. 결과적으로 우리 둘은 많은 호응을 얻었고 , 장기자랑에서 1위를 하여 밥을 첫 번 째로 먹게 되었다 . 남들이 나대 며 관심 받고 싶어 한다며 비아냥거릴 때도 있지만 , 밥을 첫 번째로 먹으며 나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친구들을 보며 깨달았다. 나는 나대 면서 관심 받아야하는 운명이라는 것을. 6 학년 1 학기에 나는 부모님의 직장 때문에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가게 되었다. 미국 국적이 있는 나는 미국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 친 구들도 사귀며 6개월 동안 재밌게 지냈다 . 2 학기에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 학교에서 좋은 추억들을 만들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어느새 초등학교 6년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졸업을 하게 되었다. 졸업 식이 끝나고 나는 친구들과 강남역으로 가서 재밌게 놀았다. 밥도 먹 고 카페에 가서 아이스크림도 먹고 노래방에 가서 춤추고 소리도 질 러가며 초등학교의 마지막 날을 즐겼다 . 왠지 모르겠지만 노래방에서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하게 난다 . 친구들과의 마지막 순 간임을 알아서였을까. 마치 내일은 없다는 듯 강남역에서 신나게 논 후, 해가 진 저녁 나는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였다 . 어렸을 때부터 몸담아왔던 학교여서 그런지 6년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가슴 이 뭉클하였다. 중학교부터 외국인 학교로 진학하기로 한 나는 아쉬 움을 뒤로 하고 친구들과 나중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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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현재 다니고 있는 APIS로 전학을 오게 되었다. 첫 날 학교에 도착했을 때의 그 기분을 아직까지도 잊지 못한다 . 너무도 새 로운 교실, 새로운 학생들 , 새로운 선생님들, 모국어가 한국어인 나에 게는 아무리 영어가 편해도 영어로 수업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모든 것이 새로웠던 순간 , 나보다 한 학년 낮은 친구들이 나에게 먼저 다가와 주었다 . 나는 그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우정 을 쌓았고 점차 APIS에도 익숙해졌다 . 하지만 나보다 한 학년 낮은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며 알게 된 사실은, 학년이 다른 학생들끼리는 수업 특성상 계속 그 친분을 그대로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예비 고등학생이 되며 자연히 그 친구들과 조금씩 멀어져갔다. 그렇게 모든 관계가 애매해진 후 , 부모님과 선생님이 상담하는 날 갑자기 유민서가 다짜고짜 나에게 다가오더니 나에게 “나, 세라 , 제 이랑 같이 NHD 하지 않을래 ?” 라고 물었고 , 나는 그 친구들과 두루 두루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고민하다 알겠다고 했다 . 우리는 금요일 방과 후마다 제이의 집에서 모여 개성공단을 내용으로 한 연극을 준 비하며 밥도 먹고 , 같이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며 친해졌다 . 대본을 완성하고 연극을 최대한 완벽한 상태로 만들고 드디어 그 날이 찾아 왔다. 우리는 심사위원들 앞에서 연극을 하였다 . 특출나게 잘한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에 하던 대로 , 우리의 노력이 배어나왔기에 행복했 다. 결과를 발표할 때 어찌나 떨렸는지 그때의 조마조마했던 감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 우리 연극팀은 아쉽게도 1 위를 놓치고 2 위 를 하였지만, 연극을 준비하며 우리의 우정은 단단해졌기에 아쉬워할 것이 전혀 없었다 . 그렇게 연극을 하며 지금의 민서 , 양현 , 재은 , 은 서, 연우와 친해지게 되었다 . APIS로 전학을 오면서 미국에서 지낸 6개월을 제외하면 살면서 처음으로 새로운 환경으로 옮기게 되었기 때문에 완전히 새롭고 낯선 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 외롭고 우울 한 순간들, 세상에 내 편은 나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 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전학을 온 지 2 년이 넘은 현재 , 나는 좋은 친 구들도 사귀고 결과적으로 학교에 완벽히 적응하게 되었다 . 2 년 전의 나는 지금 내가 친한 친구들과 이렇게 친해질 것이라고 예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많은 순간 나는 ‘ 뭘 잘못했다고 이런 일들을 겪는거지?’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이렇게 자서전을 쓰고 있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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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수많은 확률을 뚫고 온 운명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을 어쩔 수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 안 좋 은 일들을 겪은 이후 나는 더욱 강인해지고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결국 그 일들을 겪은 이후 좋은 일들도 찾아왔다 . 우울하고 짜증나는 순간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운명을 믿고 따 라가다 보면 나처럼 행복한 순간이 찾아올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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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나 고유진 Eu Jean Ko 엄마는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첫째임에도 불구하고 별 어 려움 없이 잘 자라줬다고 하셨다 . 의사 선생님이 지정해 주신 예정 당일 날보다 하루도 늦거나 일찍 태어나지도 않았다 . 남동생에 비해 발길질이심하지도 않았고 건강하게 자라줬다고 하셨다 . 내가 태어나 기 전 날 엄마는 삼겹살을 배터지게 드셨다고 한다 . 그리고 그날 밤 엄마는 황금 돼지가 나오는 꿈을 꾸셨다 . 엄마가 내가 태어나기 전날 돼지고기를 드셔서 그런지 나는 삼겹살을 아주 좋아한다. 엄마도 어 렸을 때부터 내게 항상 고기로 요리를 해 주셨다 . 그래서 그런지 지 금도 돼지 고기를 매일 저녁으로 먹고, 그렇지 않으면 밥을 먹은 것 같지 않다. 그렇게 태어난 나는 올해 16 살이 되는 고유진이다 . 어린 시절 나 는 마음도 여리고 겁도 많은 아이여서 항상 엄마가 걱정하셨다 . 네 살이 되어서 처음 엄마와 떨어져 유치원에 갈 때마다 셔틀 버스 창밖 에 붙어서, 유치원에서는 창밖을 보면서 한참을 엄마가 보고 싶어 눈 물을 흘리곤 했다 . 그렇게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서 일 년 정도는 무 척 슬픈 표정으로 유치원에 다녔다. 유치원이 끝날 때까지 하루 종일 엄마 생각만 한 적도 있고 유난히 순한 나를 엄마가 항상 밀착해 따라 다니시던 기억이 난다. 나는 어릴 적 가족들과 아주 많 은 여행을 다녔다 . 산 , 바다 , 시골 , 도시, 할 것 없이 많은 곳을 다녔었 다 . 여름이 되면 운동을 좋아하시는 아빠 덕분에 나도 아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수영을 하고 수상스키를 탔다. 수영은 추운 겨울에도 했기 때문에 수영을 하는 게 참 힘들다고 생각하고 포기하고 싶은 때도 많았 는데, 그 순간을 지나고 보니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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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 인내심도 생기고 내 몸도 어려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많은 공부가 되었다. 나는 때론 역동적이어서 사람들도 좋아하지만 , 한 편으로는 조용 하고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아하는 그런 아이인 것 같다 . 어릴 때부터 만들기를 좋아했고 , 배운 적은 없지만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 했다. 지금도 자주 하진 않지만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 그런 것 들로 시간을 보내며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다. 작년쯤엔 내가 잠깐 고집불통이 되어 부모님 , 특히 어머니의 마 음을 아프게 한 적도 있다 . 지금 생각해 보면 내겐 엄마가 제일 편하 고 마음 속 안식처 같아서 그랬던 것 같다 . 앞으로도 아주 가끔씩 그 러겠지만, 엄마는 여전히 내게 가장 좋은 친구 같은 분이시다 .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고 배려해주는 그런 친구 같은 소중한 엄마다 . 내 동생은 이제 5 학년이 된 개구쟁 이 남동생이다. 아빠는 대부분의 아빠 들처럼 늘 바쁘시지만 주말이면 항상 우리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려고 하는 따뜻 하고 자상한 아빠다 . 아빠 덕분에 동 생과 나는 좋은 경험과 소중한 추억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 부모님의 바람 은 내가 개구쟁이 동생과 이제 그만 싸우고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다 . 비록 티격태격 하는 사이지만 내 마음 속으 로는 동생은 빨리 나보다 커져서 내 옆에서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길 바라 고 있다. 나는 6살 때부터 16 살이 된 지금까지 APIS 에 다니고 있다. 10 년 동안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게 된 것이 너무 행복하고 안정적인 것 같 은 느낌이 든다. 처음 이 학교에 왔을 때에는 너무 어려서 시도 때도 없이 엄마를 찾곤 했는데 지금은 학교가 집인지, 집이 학교인지 모를 만큼 나에게 안식처 같고 많은 배움과 가르침을 주는 곳이다. 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 정말 좋은 친구들 , 그리고 훌륭하신, 본받고 싶은 선생님들 덕분에 많이 배우고 많이 느낀다 . 나는 내가 다니는 학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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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학업을 배우지만 학습 이외에도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는 것 같 다. 사람과의 관계, 배려심 , 올바른 성품 등등 ... 아직도 부족하고 배울게 넘쳐나지만 앞으로도 내 부족함을 채우고 배워 나갈 것들을 생각하니 설레고 좀 기대되는 것 같기도 하다 . 아 직 이런 얘기를 하긴 어린 나이라고 할 수 있지만 , 사람들과 어우러 지며 조금 더 진취적인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 앞으로 남은 4 년이란 이곳에서 주어진 소중한 시간동안 더 많이 배우고 성장 하고 노력해서 꼭 내가 꿈꾸는 세상을 향해서 가고 싶다. 이상 16 살 된 나의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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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에 대한 두려움 극복하기 박연우 Idalene Park 처음 만나는 사람들한테 나를 소개할 때면 항상 나오는 질문이 있 다. “넌 어디서 왔어?”라는 질문이다 . 특히 어렸을 때부터 국제학교 에 다녀서 더욱 익숙해진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질문을 받을 때마 다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 국제 학교 선생님들이 흔히 얘기하는 ‘home country’라는 개념도 헷갈린다.

아빠는 대학을 졸업한 후 임신한 엄마를 데리고 인디애나로 가셨 다고 한다. 그리고 아빠가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시던 때 , 2003 년 11 월 17일에 내가 태어났다. 나는 그 후 태어난 동생과 함께 평화로운 블루밍턴의 가을 길을 아장아장 걷다가 처음으로 한국으로 가게 되었 다. 보통 한국이면 엄격한 교육 과정과 대치동 학원가가 떠올라야 하 지만, 내가 한국에서 처음 생활한 2-3년 동안 그런 스트레스를 느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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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없다. 동네 유치원을 다니면서 단짝 친구도 사귀고 선생님들과 친해지던 중, 어느 날 부모님은 나와 동생에게 조심스럽게 물으셨다 . “연우 성윤이 , 싱가포르라는 나라 알아 ?” 싱가포르는 정말 처음 듣는 곳이었다 . 두려우면서도 신비한 곳 같 았다. 지도에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고, 365 일 동안 더운 나 라라는 설명을 들은 나는 상상 속에서 야자수로 뒤덮인 섬을 떠올렸 다. 하지만 실제로는 야자수 대신 높은 빌딩으로 뒤덮여 있는 현대화 된 도시였다. 싱가포르로 이사한 초반에는 주변에 사는 한국 가족들 과 주로 어울려 놀았지만 , 학교에서 여러 나라 아이들과 점점 친해지 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 문화와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싱가포르는 나 에게 완벽한 환상의 세계였다 . 물론 나이가 좀 더 들고 나서 흔들렸 던 경제에 대해서 듣게 되었으나, 그 전 걱정이 없던 시절에는 너무 행복했다.

주말이나 방학 , 시간이 날 때마다 엄마가 나와 동생을 데리고 조 그만 싱가포르를 구석구석 돌아다녔던 기억이 생생하다 . 싱가포르는 푸른색으로 풍부하다. 크고 넓은 초록색 잎으로 벅찬 나무들이 도로 옆에까지 나란히 줄지어 서 있기 때문이다 . 놀러 가는 곳 대부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렸을 때에 나는 푸른 자연 보다는 전시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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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걸 가장 즐거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 활동적이고 팔팔한 동생 과 나는 취향이 완전 반대였다. 그렇다고 꼭 전시회에서 행복한 시간만 보냈던 것도 아니었다 . 미 라 특집 박물관 전시회에서 고대 이집트 관이나 폼페이 사람들이 살 아나서 덤빌까봐 보지도 않고 동생 손 꼭 잡고 뛰어 지나가던 기억이 난다. 되돌아보면 어렸을 때 얼마나 순수했는지 실감이 된다. 그렇게 싱가포르에서 8년이 지난 어느 날 , 수업을 마치고 동생과 집에 들어오자마자 피자 냄새가 온 거실을 뒤덮고 있는 것을 느꼈다. 평일에 웬 피자인가, 동생과 눈을 마주치고 의심을 했지만 , 아무튼 맛있는 먹을거리가 생겼으니 일단 두 쪽씩 먹었다 . 먹는 종일 엄마가 우리 둘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 그러다 엄마가 조심스레 말을 꺼내셨다.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이었다. 정말 충격 이었다. 싱가포르에서 생활하는 동안 한국으로 귀국하는 두려움이 항 상 있었지만, 한 번도 진짜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벌써부터 떠날 생각을 한 나와 동생은 훌쩍 훌쩍 거리며 엄 마의 위로를 계속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 학교는 예상대로 공부할 게 태산이었고 , 케이팝 문화로 뒤덮 여 있었다. 한국식 공부와 케이팝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는 힘겨운 느낌이 조금이나마 들었지만, 마음이 맞는 친구들도 만나고 공부법도 천천히 배우게 됐다. 특히 속상한 일이나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엄마와 아빠가 위로해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 결국 입시 기간 때 지금의 외국인 학교로 옮겼지만 한국 학교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아무 리 힘들어도 무척 소중했던 것 같다. APIS에서 학교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내 마음속은 한결 편안해졌 다. 거의 모든 숙제를 컴퓨터로 하면서 예전에 손에 생겼던 굳은살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 분위기도 활발해서 매일같이 즐겁다 . 비싼 학비 를 내고 이 학교에 보내 주신 엄마 아빠가 너무 고마워서 처음에는 마음먹고 열심히 다녔다 . 지금은 조금씩 그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아 살짝 불안하지만 , 나와 동생이 행복해하니까 우리 가족 모두 걱정거 리가 하나씩 없어지는 느낌이 든다. 정말 해외에서 살다 보면 변화를 수없이 겪을 때가 많다 . 나는 그 나마 양호한 편이어도 학교나 나라나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큰 변 화가 아무리 싫어도 힘차게 넘어갈 수 있는 법을 배울 수 있었고 ,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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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한 과정에서 가족의 중요성을 더욱 느끼게 되었다 . 또 두려움이 지 나면 항상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온다는 교훈도 얻을 수 있었다 . 이제 부터 나는 어떠한 운명을 마주하게 돼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할 거 다. 물론 내가 바라는 쪽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은 언제나 할 것이지만, 아무리 부담스럽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일어나도 절 망하지 않을 거라고 결심한다. 긍정적인 마음자세로 밀고 나가면 대 부분의 일은 잘 풀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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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책 읽기 제프 키니 , '다이어리 오브 어 윔피 키드 '를 읽고

최현무 John Choi 제가 읽은 책은 '다이어리 오브 어 윔피 키드 '입니다 . 제가 이 책 을 고른 이유는 그림도 있고 스토리도 재밌어서 입니다 . 이 책은 제 가 4 학년 때 맨날 읽던 책입니다 . 이 책은 2009년에 나왔고 쓴 사람 은 '제프 키니'(Jeff Kinney)입니다 . 이 책은 ' 그레그 '라는 아이가 자 기는 여름 방학에 친구들과 같이 놀고 싶은데 아빠가 둘이서 놀고 싶 다고 해서 아빠를 피하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 다. 마음에 들었던 부분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그레그가 컨츄리 클럽에서 음료수에 조그만 우산이 안 들어 있어서 불평을 하려고 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이 엄청 웃겨서 좋았습니다 . 이 부분이 웃겼던 이유는 그레그가 돈이 내 는 게 아니라 그레그 친구, 라울리의 아버지가 돈을 내는 입장이었는 데 자기가 서비스가 안 좋다고 불평하는 게 이상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들었던 부분 2 또 좋았던 부분은 그레그가 미용실을 갔을 때 입니다. 그레그는 미용실에 갔지만 막상 할 게 없어서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 그러다가 여자 분들이 갑자기 말을 걸어서 그 사람들과 계속 얘기하게 됩니다. 그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 여자처럼 행동하기도 했고 , 갑자기 흑인처 럼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 그레그가 미용실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 엉뚱하면서도 웃겼습니다. 비슷한 경험 밖에 나가기 싫어하는 그레그를 보면서 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습 니다. 어머니가 자꾸 밖에 나가서 놀라고 하시는데 그레그는 계속 집 에서 깜깜하고 시원하게 게임을 하고 싶어 합니다 . 이 장면이 저와 똑같이 느껴졌습니다 . 저도 여름에 에어컨을 틀어놓고 어두컴컴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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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시청하는걸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 엄마 는 좀 나가서 놀라고 하시지만 그레그처럼 그 말이 귀찮게 느껴질 때 가 많습니다. 제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책이 제가 거의 처음 좋아하게 된 책이기 때문입니다 . 4 학년 때 다른 아이들은 다 그림 없는 책을 읽는 걸 좋아했는데 저는 그림 없는 책에는 집중을 못 했습니다 . 그 당시에 우리 선생님은 우리가 그림 없는 책을 읽는 걸 원하셨어요 . 하지만 다이어리 오브 어 윔피 키드는 그림은 조금 있었는데 글이 더 많아서 그나마 낫다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 글도 많았기에 선생님도 할 말이 없으셨어요. 읽다보니 스토리 라인도 웃기고 재밌 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심심할 때마다 맨날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 니다. 똑같은 책을 네 번 다섯 번 넘게 읽었습니다 . 책이 재미없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 책을 진짜 싫어하던 저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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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아이는 누가 만드는가? 앙꼬 , ‘나쁜 친구’를 읽고

이건희 David Lee 교육부에 따르면 중학생의 7.9 퍼센트 , 고등학생의 6.4 퍼센트가 자해를 할 생각이 있다고 한다 . ‘ 과학 동아 ’의 프리미엄 리포트 ‘청소 년 자해, 스스로를 벌주는 아이들 ’이라는 기사에는 요즘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감정을 풀 수 없어 스스로 자신을 해하는 현상 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앙꼬가 쓴 책 ‘나쁜 친구 ’는 이런 청소년의 상황을 잘 반영한 책이다 . 기사에서 학생들은 혼자 자해를 하고 스스 로 자신에게 벌을 주면서 다친다 . 이 책에서도 학생들이 스스로를 망 가뜨리고, 부모님들이나 딴 어른들은 기사에서처럼 ‘어릴 땐 원래 그 래.’, ‘ 쇼하지 마라 ’ 등의 말을 한다 . 내가 본 첫 느낌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옛날 책처럼 느껴졌다 . 책의 아트 스타일 이랑 색깔들이 다 오늘의 책들과 달랐다 . 그리고 책 도중에 타임라인 책정이 유니크하게 달랐다 . 주인공 진주와 정애 둘에 대해서 책이 효 과적으로 잘 전달을 해준다 . 그리고 어떤 때는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통해서 책의 내용을 더더욱 잘 말해준다. 관심이 주는 힘 진주는 인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나쁜 짓들을 한다 . 혼자서 술을 마시거나 아니면 담배를 피운다 . 진주의 아버지는 폭력을 써서 진주 의 나쁜 버릇을 고치려고 한다 . 그런데 이것은 아버지가 진주한테 주 는 관심이기도 한다. 처음에는 이런 관심이 진주에게 도움이 되지 않 고 해가 되어 진주가 자해를 할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아버지 의 끊임없는 관심으로 결국 진주는 바른 길을 돌아가게 된다. 다른 주인공 정애의 아버지도 진주의 아버지처럼 딸에게 폭력을 가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폭력일 뿐 관심이 아니었고 그것은 정애의 인생 을 무너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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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줄 수 있는 힘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이 책의 등장인물과 똑같을 수 있다. 주변에 자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고 , 위험한 짓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 어느 날, 내 친구가 편의점 에서 물건을 훔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 내가 뭐라고 할 수도 있었는 데 그때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 내가 뭔가를 했으면 뭐가 달라졌 을까’ 하고 나한테 물어본다 . 책과 똑같다. 관심이 없으면 우리 주변 사람들이 자해를 할 수도 있고 , 나쁜 짓을 할 수도 있다. 이 작가는 지금 36세다 . 작가 말로는 이 책이 자신 혼자의 경험을 쓴 것이라고 한다 . 힘든 인생을 살다가 대학교를 졸업해서 작가가 되 었다. 이 책은 쓰다가 10 년 후 다시 돌아와서 쓴 책이라고 한다 . 내 생각엔 이 책은 아주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다른 사람들 의 인생들을 잘 반영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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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뜻을 가르쳐주는 책 김진혁, ‘행복해지는 방법’을 읽고

이서진 Matthew Lee 자살 행위에 대해 알고 있나요? 자살 행위는 위험하고, 굉장히 멍 청한 짓입니다. 지금도 자살을 하는 사람이 많지만 예전에도 그랬습 니다. “2009 년 대한민국에서는 1만 5,413명이 자살했다 .”라는 문구를 보면 알 수 있지요. 이 문구에서는 한국 사람의 자살 현황만을 보여 주는데, 지구에서 모든 나라의 자살 현황을 살펴보면 그 수가 얼마나 많겠어요. 현재 우리 주변에서도 여전히 자살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 다. 그렇지만 자살은 미리 알 수 있다면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습니 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을 잘 보고 , 살펴서 자살 위험에 처한 사람을 미리 알고 적절한 도움을 줘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골라서 제일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책이 중학생들 위주로 나와서 어려웠지만 , 읽어보니 많이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 그 래서 이 책을 즐기고 잘 끝냈습니다. 앗 나도? 저는 이런 글감을 읽은 다음에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저 애는 나보다 공부를 더 잘해.”, “저 애는 나보다 더 날씬하고 예뻐.”, “저 사람은 나보다 연봉이 더 높아.” 라는 말을 한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이런 말 속에는 한국인의 뼛속 깊은 비교의식이 담 겨 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은 다음에 깨달았습니다, 어떤 애들은 다른 거 를 잘하지만, 나도 잘하는 게 있다는 걸 말입니다 . 하지만 열정을 담 지 않으면 결국 잘하던 것도 못하게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 그래서 저는 이제 제가 잘하는 것들을 더욱 더 열심히 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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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가치 이 책의 가치는 어떠한 이유로 굉장하다고 생각하고, 또 슬픈 이 야기인 것도 같습니다 .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이 책의 가치는 꽤 큰 거 같습니다. 책의 처음 부분은 슬픈 이야기지만 이야기가 전 개되자 자살 대신 행복해지는 방법으로 대처한 것을 읽고 보니 저는 큰 교훈을 얻었고 , 저도 제 삶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도대체 왜? 김진혁 작가는 이 책을 쓴 이유는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분 명한 이유들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예를 들면 ,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것을 본 후 충격을 받아서 이 책으로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려고 했다고 생각합니다 . 그러나 이것 외에도 다른 이유가 많다고 생각합 니다. 그냥 제 생각에는 김진혁 작가가 한국의 충격적인 모습을 많이 봐서 그것들을 고쳐 보려고 이 책을 쓴 것 같습니다. 달라졌어 저는 이 책을 읽은 후 많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특히 ‘왜 사람들 이 자살할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깨달았습 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쉽게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 , 그 결정에는 상황, 환경 , 주변 사람들의 관심 등의 요소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 중에서도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자살하지 않고도 ,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 수 도 있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그래서 제 결론은 이 책을 읽고 , 큰 교훈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굉장히 재밌으면서도 ,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합니다 . 그래 서 저는 행복해지는 방법도 배웠고 , 사람이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 는 것은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마지막으로 , 저는 앞으로 더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하고 , 더 재밌게 살고 싶습니다 . 거만하지 않게, 제 삶을 즐기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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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살아남기 앤디 위어 , ‘마션’을 읽고

홍예준 June Hong 이 책의 이름은 ‘마션 ’이라는 책이고 ‘ 앤디 위어 ’라는 사람이 지은 이다. 나는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가 중학교 일학년이었다 . 그때에 는 그냥 재미로 몇 페이지만 읽었지만 중간 중간에 나오는 어려운 과 학 이야기 때문에 책을 접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 이 책을 지금 읽고 나니 아주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책인 거 같다. 이 책의 출판사는 아 주 많은데 그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책이기 때문이다 . 이 책 의 표지를 보고 어린이용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 아주 섬세한 스 토리와 정보를 꿰뚫고 있는 내용 , 민감한 내용과 언어가 나오기도 한 다. 나는 이 책을 도서관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가 그 책 이 맨 앞에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 나는 이 책에 대하여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어머니를 졸라 책을 빌렸던 것으로 기억한 다. 고립에서 생존까지 마션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 화성에 혼자 고 립되어도 희망과 끈기를 잃지 않는 주인공의 열정과 좋은 마음가짐을 볼 수 있었던 장면 중 하나는 그가 화성에서 깨어났을 때였다 . ‘와트 니’가 화성에서 깨어났을 때 그의 우주복은 구멍이 나 있었고 긴 회 색 안테나가 그의 옆구리를 관통하고 있었다 . 혼자 캠프에 고립되어 있었지만 그는 생존을 위해 싸웠고 그리고 생존을 하였다 . ‘과연 나 라면 저런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나 ?’라는 질문과 그리고 어떻게 저 런 기발한 생각을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 그리고 마지막 부 분에서 화성을 떠나는데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부분이 내게 감동 을 주었다. 그 이유는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를 버리지 않는 친 구의 모습이 너무나도 감동적이었고 , 그 또한 그의 동료들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믿음을 통해 위기를 해쳐 나아갈 수 있었고 생 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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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했던 기억 난 이 책과 똑같은 경험을 몇 번 해 본 적이 있다. 혼자 고립된 상황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생각되었다 . 내가 7 학년 때 친구들과 학교 여행 겸 공부하는 의미로 일본에 갔는데 그때 간 그 호텔에서는 뛰어서도, 큰 소리를 내서도 안 된다고 공지했던 것을 기억한다. 하 지만 철없는 나는 친구들과 밤에 복도에서 뛰어 놀았고 선생님의 발 자국 소리가 들린 그 순간 나를 제외한 모든 아이들이 한 방으로 들 어갔다. 나는 맨붕이 와서 고립된 내 상황을 파악하고 문 앞에 있는 구석에 숨었다. 그 선생님은 걸어가다가 날 보고 깜짝 놀라서 쌍욕을 하셨다. 이 책의 주인공의 상황과 비슷하지는 않지만 절박함은 동일 했다고 느꼈다. 긴 소설? 도전해보자 !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 중에는 책이 너무 길어서 망설이는 친구들 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 때우기로 좋은 책이 바로 이 책이라고 생각된다. 그 이유는 물론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의미로 말이다. 이 책을 사게 되면 잠이 잘 올 거라는 것도 물론 보 장하지만 스릴이 있는 부분은 밤을 샐 정도로 나에게는 재미있게 느 껴졌다. 이 책은 꼭 한 번쯤은 읽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과학이 싫 으면 추천은 하지 않겠다. 그 이유는 엄청나게 많은 과학 설명을 그 냥 독자에게 쏟아 붓는데 나도 솔직히 아직도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 하지만 그것은 다시 읽을 여지가 있다는 말이기 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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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별 유은실, ‘마지막 이벤트’를 읽고

길혜영 Jo yce Gill 유은실 작가가 쓴 ‘마지막 이벤트 ’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과정 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인 할아버지는 집에서는 무시 받는 노 인일 뿐이지만, 손자에게만은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사이가 안 좋았던 손자는 항상 할아버지만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그런 할아버지가 죽을 준비를 하니 , 손자가 많이 슬프고 힘들 어했습니다. 어느 날 , 할아버지가 심한 통증을 느껴서 죽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하지만 할아버지가 가족과 친척한테 죽는다고 하면서 다시 회복되는 일이 반복되어서 그는 양치기 소년이 되었습니 다. 할아버지가 죽었다는 문자를 받기 전까지도 아무도 안 믿었습니 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날 돌아가셨고, 며칠 후 , 할아버지의 장례식 이 있었습니다. 그 장례식을 치르면서 가족들은 할아버지의 여러 가 지 면들을 발견하게 되고 , 그러면서 할아버지를 더 이해하게 됩니다 . 의심받는 자의 마음 제가 마지막 이벤트라는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좀 슬펐습니다 . 살 면서 이런 거랑 비슷한 일을 겪어 본 적은 없었습니다 . 하지만 이상 하게 마음이 뭉클해지고 슬펐습니다 . 완전히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만약에 제가 비슷한 일을 겪으면 힘들 것 같아서 그런 생각에 슬퍼졌 습니다. 특히 그 할아버지가 진짜로 아팠는데 아무도 안 왔을 때가 슬펐습니다. ‘그동안 할아버지가 얼마나 많이 불렀으면 친척들이 결 국에 안 믿어서 할아버지가 죽어가고 있는데 안 왔을까 ’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장면을 보고 저는 확실하지 않으면 사람들한테 말하 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확신이 없는데 일이 안 벌어지면 양치 기 소년처럼 보이기 싫잖아요. 말도 상처가 된다 장례식장에서 고모부가 할아버지를 욕하는 장면은 제가 겪은 일과 비슷해서 그런지 쉽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 옛날에 용산국제학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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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닐 때 심하게 왕따 당하는 여자 애가 있었습니다. 매일매일 애들이 락커에 밀어 넣고 물건을 훔쳐갔습니다 . 왕따가 심해지고 매일매일 계속 되자, 그 아이는 결국에 우울증 증상을 보였습니다 . 저랑 버스 같이 타는데 맨날 지각하고 버스 타기 싫어하는 게 눈에 띄게 보였습 니다. 우울증이 너무 심해져서 결국에 자퇴했습니다 . 그 여자 애가 학교에 있든 없든 사실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 어차피 우리는 그렇게 친하지 않아서 저는 그냥 잊으려고 했습니다 . 하지만 어느 날 , 제가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 제 뒤에 있던 애들이 그 우울 증 있었던 여자 애를 욕하고 있었습니다. “우울증 괴물은 언젠간 우리 학교 나가야 돼.” 이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쓴 말을 들은 저는 아무 말 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혼자 속상해 했습니다 . 있을 때 잘 하자 제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마지막으로 느낀 건 후회입니다 . 책이 처음 시작했을 때 할아버지는 가족과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특히 아 버지와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 맨날 서로 탓하고 집에 올 때 인사도 안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죽을 준비를 하기 시작하니까 아버지 가 갑자기 당황해서 막판에 할아버지한테 잘해주고 걱정했습니다 . 책 을 읽으면서 아버지가 바뀌는 게 눈에 띄게 보였습니다 . 막상 할아버 지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버지는 황망하고 슬퍼서 막판에 잘 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 이 문장을 읽고 저는 모든 사람한테 항상 잘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제가 평소에 예민해서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예민하게 굴 때가 있습니다 . 앞으로는 사람들에게 예민하 게 굴지 말고 처음부터 잘해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우리 또래 학생들에게 이 소설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죽음이 라는 소재가 어린 애들이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 어릴 때 읽으면 이 책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또 , 이런 일을 언젠간 겪 을 텐데 어른이 되기 전에 이런 책을 통해서 죽음을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제 또래 학 생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 죽음이 현실에서 일어 났을 때 그것이 어떤 것인지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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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좋겠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살면서 가족이나 친한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음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고 , 고인 주변의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조금 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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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속에서도 빛나는 인생 박민규 , ‘갑을고시원 체류기’를 읽고

유민서 Katlynn Ryu 이 소설 ‘갑을고시원 체류기 ’는 결국엔 돌이켜보면 좋은 추억이었 지만, 또 한편으론 아픈 기억이었던 고시원 체류기에 대한 이야기이 다. 이 글의 주인공은 아버지의 동생, 즉 삼촌이지만 삼촌이라고 인 정하기 싫은 사람 때문에 한순간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고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져 혼자살기를 시작했다 . 뭐든지 처음이면 서툴기 마련인 데, 처음 이 세상을 맞서 혼자 살아간 곳이 고시원이기 때문에 더욱 더 많은 감정을 겪을 수 밖에 없었을 듯 하다. 정말 믿을 수 없지만 , 친구 집에 얹혀 살 때 계란 후라이도 못 먹 는 상황에 처한 경험도 있었고 , 아주 작은 소리도 못 내고 살아야만 했던 아픔도 있었다. 고시원이었기에 화장실도 마음대로 쓰지 못했 고, 아주 얇은 판을 사이에 둔 채 옆방 사람들과 함께 사는 불편함도 겪어야 했다. 심지어 방이 너무 좁아서 컴퓨터를 두면 다리를 펴지 못하고 새우잠을 자야 했던 고충도 있었다 . 고시원 생활을 하면서 점 차 괜찮아 졌지만 , 처음에는 누구보다도 힘들고 말 못할 고난을 몸소 겪으면서 느껴야만 했다. 나도 낯선 환경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본 사람으로서 이 글을 읽으면서 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 새로운 삶에 대한 어려움과 절대로 적응할 수 없을 것 같던 분위기에 서서히 적응을 하는 자신을 봤을 때 느끼는 그 감정을 이 글을 읽으면서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새로운 학교나 새로운 친구 , 또는 새로운 인간관계만 맺어도 설레는 마음과 두려움이 공존하는데, 처음 독립 생활을 고시원에서 하다니 놀랐고, 주인공이 나중에 고시원에 완벽히 적응 하였을 때 인간승리 다 라는 느낌도 받았다. 왠지 모르게 이 글을 읽으면서 주인공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다 응원하고 지지하게 되었다. 정말 열심히 , 또 치열하게 청춘이 보낸 시간들을 응원하고 “정말 수고했어.”라는 말을 해주고 싶을 정도로 열심히 사는 주인공을 보았다. 그러면서 나는 나의 생활이 각박하고 힘든 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많은 위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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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색다른 감정들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아프고 힘들 었어도 나중에 결국엔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놀 랐다. 이 글을 읽기 전에 나는 지금 엄청 힘들고 어려운 시기인데 나 중에 지금을 돌이켜봐도 ‘그때 참 힘들었지 .’ 라고 당연히 그렇게 생 각할 줄만 알았다. 하지만 ‘갑을고시원 체류기 ’를 읽고 나니 이 이야 기에서처럼 아무리 힘든 경험이어도 ‘ 그땐 그랬지 .. 생각해보면 별거 아니었는데’ 라고 회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꼈다 . 그래서 지금 내가 겪는 사소한 인간관계 문제들 , 괜스레 신경 쓰이는 일들 ,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소한 일들 등이 모두 나중엔 별거 아니라고 여 겨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일들에 신경을 조금 덜 써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읽고서 나의 많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고 , 평소에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들도 느낄 수 있었다 . ‘갑을고시원 체류기 ’는 감동과 위안이 공존하는 따뜻한 작품인 것 같다. 그래서 이 소설은 자기가 힘들게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자 추천 하고 싶은 감동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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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면서 슬프고, 슬프면서 웃긴 이야기 박민규 , ‘갑을고시원 체류기’를 읽고

신태겸 Tae Gyeom Shin 나는 ‘갑을고시원 체류기 ’가 꽤 흥미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갑 을고시원 체류기’ 는 시작부터 주인공의 행복을 앗아간다 . 그의 아버지 가 큰 사기를 당하고 빚쟁이들이 수시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 더 어이 없는 것은 사기를 친 범인이 그 누구도 아닌 주인공의 삼촌이었다는 점이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자기 친동생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다. 그 이후로 주인공의 가족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주인공의 부모님은 시골로, 그의 형은 막노동판으로 , 그리고 그는 친구의 집에서 얹혀 살 게 되었다. 나는 주인공이 친구 집에 얹혀 살고 있던 어느 날 밥을 먹는 장면 이 이 소설의 명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친구의 가족과 같이 밥을 먹고 있었는데, 자기 그릇에만 계란이 없는 걸 보게 된다. 주인공은 그것을 보고 그러려니 하면서 별생각하지 않고 넘긴다 . 식사 를 다 마친 주인공은 방으로 걸어가는 길에 냉장고에 꽉 차있는 계란 박스를 본다. 이 장면을 명장면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아주 짧고 간 단한 이 장면이 너무나도 많은 것을 상징하고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아무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현실과 주인공의 비극적인 상황, 그리고 그의 친구의 가족도 그를 더 이상 데리고 있기 힘들어 하는 것 등이었다. 주인공은 꽉 채워진 계란박스를 보았을 때 그것 하나만으로 도 이제는 친구의 집에서 나가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 다. 두 번 째의 명장면을 말하기 전에, ‘김 검사 ’라는 인물에 대해서 설 명해야 할 것 같다 . 김 검사는 법대 출신이지만 아직 검사나 변호사가 되지 못하고 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다 . 그는 고시원에서 가장 오래 있었고 그만큼 나이도 많았다 . 그는 고시원에 사는 모두들에게 항상 명령조의 반말을 사용했고 모든 행동에 당당했다. 주인공과 김 검사의 첫 만남은 주인공이 한밤중에 가방을 뒤지고 이어폰으로 음악 을 듣고 있었을 때였다. 김 검사는 노크를 하고 주인공이 문을 열자 충혈된 눈빛으로 주인공을 바라보며 “조용히 해.” 라는 한마디를 하 고 자기의 방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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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 번 째로 가장 인상 깊게 봤던 장면은 이 김 검사를 주인공 이 모임 이후 술에 취해 자기 고시원으로 혼자 걸어가고 있을 때 마주 친 장면이다. 김 검사는 주인공이 처음 보는 여자와 같이 있었는데 , 그 는 그녀 앞에서 하소연을 하면서 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여 자는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 마침내 여자는 김 검사의 손을 뿌리 치며 반대 방향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 그 후 김 검사는 자기 방에서 또 시끄럽게 울고 주인공의 방에 찾아와서 휴지를 좀 빌려달라고 했 다. 김 검사는 항상 자신만만하고 거의 뻔뻔하기까지 한 사람으로 독 자들과 주인공에게 인식이 된 인물이었다. 하지만 김 검사가 한 여자 앞에서 하소연을 하고 울며 힘들어하는 모습은 평소 김 검사의 모습과 는 정반대였다. 내가 이 장면을 좋아했던 이유도 그것이다 . 큰 자존심 을 내세우고 다니는 김 검사가 주인공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기도 휴지 를 빌려달라고 하는 찌질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웃기면서도 슬프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은 현대 사회의 젊은이들의 현실을 아주 와 닿고 자세하게 보여주었던 것 같다. 돈은 거의 없지만 부모에게 미안해서 고시원에서 고생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의 인생을 정말 현실적으로 재미있게 표현 한 게 이 책의 큰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 이 책의 주인공의 상황 이 침울하고 슬플 때도 있지만 결국 주인공은 자기가 추구하는 나름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 이런 불행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모두 이런 결말을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작가는 인생에 불행과 슬픔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매우 만족했다 . 무언가 웃기면서도 슬프고 , 슬 프면서도 웃긴 이 책은 작가의 메시지와 아이디어들을 아주 잘 표현하 였다. 현실처럼 실감나는 소설의 이야기들을 보며, 혹시 이 소설을 쓰 게 된 이유는 이 책의 작가 박민규가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면 서 겪은 자기의 경험을 생각하며 쓴 것이 아닐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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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의 현실 김애란 , ‘침이 고인다’를 읽고

이유빈 Yubin Lee 나는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 라는 소설을 읽었다 . 소설 속에서는 학 원 선생이 주인공이었고 그녀의 일상 생활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왔 다. 주인공의 자기 머릿속에 일어나는 생각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책에서 현재는 체육대회 날이었고 선생은 이어달리기를 하고 장기자랑 에 나가 춤을 추려한다 . 물론 원해서 나간 것은 아니다 . 그녀는 집에 서 후배랑 같이 산다. 후배랑 산 지는 얼마 안 됐지만 같이 살게 된 계기는 신기했다 . 대학 후배는 하룻밤을 묵을 수 있냐고 물어보고 그 녀는 허락한다. 얘기를 나누면서 후배의 진지하고 슬픈 이야기를 듣는 다. 껌을 씹으면서 가버린 엄마를 찾는 이야기였다 . 마지막 껌을 버리 지 않고 지금까지 간직했는데 그 껌의 반쪽을 그녀에게 줬다. 근데 시 간이 점점 흐르면서 주인공은 후배의 단점만 생각하게 된다 . 자기를 따라한다는 느낌도 들고 그래서 기분이 묘했다. 다시 체육대회의 기억 으로 가고 학원 과들은 경쟁 모드로 바뀐다 . 옷 색으로도 서로를 보면 기분이 좋거나 나빠지고 그냥 적으로 보인다 . 그날 주인공은 집에 돌 아왔고 후배가 그녀를 반겨줬다 . 갑자기 짜증이 난 주인공의 입에서 “이제 그만”이라는 말이 나왔다 . 후배는 그녀의 말을 듣고 알겠다고 하고 그녀는 이번 달까지만 편하게 지내라고 했다 . 샤워를 하고 나왔 을 때 후배는 이미 없었다. 그녀는 그냥 예전처럼 잠자리에 누워 드라 마가 전송되는 것을 기다리면서 그녀가 남기고 간 인삼 껌을 씹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공감이 가는 부분들이 있었다. 처음 이야 기가 시작할 때 주인공은 아침에 일어나서 지각을 할지 , 아니면 시간 내에 갈지 고민을 했다 . 아침에는 나 자신도 그런 생각을 하고 일어나 서 하루를 시작하기가 너무 귀찮다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계산을 하니 까 조금 머리가 아프기도 하다 . 내가 보기에는 주인공은 사람의 표정 과 감정을 잘 읽는 것 같다. 후배의 표정으로 감정을 다 볼 수 있는 게 느껴지고 공감이 된다. 나도 사람의 감정을 잘 파악하는 편이다 . 처음 후배와 지냈을 때의 어색한 공기가 답답했을 거라고 생각이 든 다. 그렇게 친하지 않은 사람과 계속 있으면 빨리 풀려고 노력하는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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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의 모습이 이해가 됐다 . 주인공은 후배에게 와인을 좀 마시자고 했다. 그렇게 둘은 조금 친해졌다. 가끔은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과도 깊은 얘기를 하면 속이 시원해지는 게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후배가 주인공에게 그런 것을 나눈 것 같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안 되고 공감이 안 된 곳도 조금 있 었다. 글에서 시간을 건너뛰고 왔다 갔다 하는 구성에 혼동이 되는 부 분도 있었다. 그리고 주인공이 집에 온 후에 갑자기 후배에게 감정이 폭발한 게 이해가 안 된다. 물론 신경 쓰이는 것들이 조금 쌓여갔지만 그것을 티도 안 내다가 갑자기 그렇게 후배에게 폭발하면 후배가 많 이 당황스럽고 깜짝 놀랐을 것 같다 . 나도 누가 쩝쩝 소리를 크게 내 면서 밥을 먹으면 매우 불쾌하고 말을 해야만 하는 스타일이다. 하지 만 주인공은 후배에게 그런 말을 하긴 했지만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서라도 좀 더 확실하게 말했어야 했던 것 같다. 그래야지 후배가 그것 을 기억하고 반복은 안 했을 것 같다. 후배에게 이제 그만 같이 지내 자고 말했을 때 후배는 괜찮다고 말한다 . 주인공은 후배가 왜 괜찮다 고 말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근데 나는 그게 이해가 간다 . 당연히 자기를 내보내면서 미안해 할 것 같으니까 괜찮다고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공감을 하지 못했던 부분은 주인공이 후배의 옛날 껌을 꺼내서 먹었을 때였다. 그것을 기억하면 나는 그냥 간직 할 것 같은데 왜 그녀는 그 껌을 먹어버렸는지 모르겠다. ‘침이 고인다 ’라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사람들끼리의 영향이 생각났다. 같이 살면서 서로를 닮아 가는 것 같다. 주인공은 생각이 깊은 사람인 것 같았고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가려고 하는 게 보였다. 나는 이 책에서 한국의 사회가 보였다 . 서로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 고 남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되게 예민한 사회인 것 같은 한 국 사회의 모습이 떠올랐다 . 책을 읽은 후에 나는 조금 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행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의 눈치 를 안 보고 상황에 맞게 행동한다면 , 그래서 건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면 좀 더 오래 가는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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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받는 상처 이기호, ‘최미진은 어디로’를 읽고

김재은 Jeslyn Kim 소설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은 다른 책들과는 조금 달랐 다. 먼저 누군가의 이름이 들어갔다는 것이 조금 특이했다 . 처음에는 최미진이라는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거나 최미진이 주인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 솔직히 작가와 제목만을 보고 이 소설을 사라고 한다면 사지 않을 것 같았다 . 그다지 제목에 그다지 큰 임팩트가 없 었고, 작가도 잘 모르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이 소설에 대해 검색을 해본 결과 , 현대문 학상 수상 소설집에 들어있는 단편소설 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 또 이기호 작가가 많은 유명한 책들을 쓴 대학교수이자 소설가라는 것도 새로 알게 된 사실이다 . 그리고 이 단편은 이기호 작가의 ‘누구에게 나 친절한 교회오빠 강민호 ’ 라는 책 안에도 실려 있는 작품이다 . 이 단편 소설 속 이기호는 소설 작가이다 . 어느 날 ‘ 중고나라 ’ 사 이트에 들어갔다가 ‘ 제임스 셔터내려 ’ 라는 사람이 자신의 소설책을 저가에 팔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 호기심에 열어본 게시글에는 책들 을 그룹별로 나누어 놓고 팔고 있었다 . 그중 자신의 책에 달려있는 코멘트를 보고 그는 모욕감을 느낀다. “이기호/ 병맛 소설 , 갈수록 더 한심해지는, 꼴에 저자 사인본 (4000 원 - 그룹 1,2에서 다섯권 구매 시 무료 증정 )” 작가는 ‘그룹2’에 있는 책을 5 섯 권 사고 직거래를 하기로 한다 . 그를 만나 책을 받는 순간 그는 책을 사러 온 사람이 이기호 작가라 는 것을 알아채고 달아났고 , 나중에 전화로 그 책은 여자 친구의 책 이었고, 자신이 이사를 가야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끝 이 난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다시 생각했을 때 딱 떠오르는 문장들이 있 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 내가 왜 책을 파는지 .. 내가 당신 글씨를 얼 마나 오랫동안 바라 봤는지... 우리 미진이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 아무 것도 모르잖아요... 그런데 ,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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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고 사는데... 꼭 그 말을 들으려고 ...” 교훈 같은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생각할 때 이 소설 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인 것 같다. 직접 들을 수는 없지만 이 인물이 어떤 행동을 취하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작가와 전화를 했는 지 알 것 같았던 장면이었다 . 글로만 쓰여 있지만 왠지 울분을 토하 며 억울해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할 수 없는 것 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도 느껴졌다 . 두 번 째로 기억에 남는 문장은 이것이다.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 모욕을 당할까봐 모욕을 먼저 느끼며 모 욕을 되돌려주는 삶에 대해서 . 나는 그게 좀 서글프고 부끄럽다 .” 이 소설의 제일 마지막에 나온 장면이었다 . 이 장면은 명대사로 떠오르는 대사 일수도 있지만 공감도 되어서 더 생각이 났었던 것 같 다. 아마 신중하게 생각해보면 정말로 내가 다른 사람에게 모욕을 당 할까봐 내가 먼저 느끼고 다른 사람에게 모욕을 되돌려준 적이 한 번 쯤은 있었을 것이다 . 고의이든 아니든 간에, 내가 잘못한 것이든 다 른 사람이 잘못한 것이든 간에 나 자신이 피해를 덜 받으려고 직접 상처를 주거나 피해를 받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생각하다 보니 공감도 되고 소설을 읽고 나서도 이 장면 이 머리에 남았던 것 같다. 이 소설을 읽고 난 후에 내가 생각하는 것이 달라졌다거나 정말 새롭게 깨달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 하지만 최미진이라는 사람이 떠난 것과, 이사를 해야 해서 책을 가져갈 수 없는 상황 등 이 소설 에 나오는 여러 상황 속에서 내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 는 문제들을 볼 수 있었고 , 아까 썼던 문장들을 포함해서 작가나 책 을 팔려는 인물이 말하는 문장들 또한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공 감할 수 있는 문장들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대해 더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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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주는 상처 이기호, ‘최미진은 어디로’를 읽고

김남이 Namee Kim ‘ 최미진은 어디로 ’라는 단편 소설은 한 작가가 우연히 누군가 중고 나라 사이트에서 자신의 책들을 염가 판매하고 있는 것을 보고 배후 자가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그 사람에게 연락해 직거래를 하자고 하는 내용이 담긴 소설이다 . 그 중고 사이트에 올린 사람인 , ‘제임스 셔터내려’와 만나는 과정에서 이 작가는 깨닫게 되는 것도 많고 느 끼고 배우는 것들 또한 많다. 이 이야기의 초반에서는 작가가 자신의 책만 싼 가격으로, 덤으로 취급 받는 것을 보고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끼고 그 사람을 만나고자 직거래를 신청했다 . 막상 그 둘이 만났을 때 , 작가는 예상했던 것과 는 다르게 작가와는 친분이 없는 그냥 아주 평범한 30대 남성이어서 당황하게 된다. ‘제임스 셔터내려’ 의 이야기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작가는 자기 자신이 ‘제임스 셔터내려' 에게 적의를 느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고 한다 .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나는 아마 이 작가는 나에게 소중하고 의미있는 것이 남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남에게는 중 요한 것이 나에게는 의미 없을 수 있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을 한 이유는 그 작가에게는 자기가 쓴 자기의 소설이 굉 장히 소중하고 의미있는 것이었을 테지만 ‘제임스 셔터내려 ’에게는 그냥 전 여자 친구가 남기고 간 책들 중 유일하게 ‘ 좋은 인연 ’이라고 적혀있는 책, 그 이상 ,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 그래서 ‘제임스 셔터내려’는 이기호 작가의 책들을 함부로 대하여 싼 가격에 취급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 하지만 ‘제임스 셔터내려’의 입장에서는 행방도 모르는 전 여자 친구가 남기고 간 책들 중 유일하게 작가로부터 ‘ 좋 은 인연’이라 써 있기에 소심한 복수를 하고자 그 책을 함부로 대했 을 수도 있다. 이렇게 개개인에게 소중한 것들은 다 다르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서로에게 상처와 모욕감 , 수치심 등을 줄 수도 있다는 걸 ‘제임스 셔 터내려’와 이기호 작가를 통해 볼 수 있다 . ‘제임스 셔터내려 ’는 의도 치 않게 이기호 작가의 책들을 함부로 대해서 작가에게 모욕감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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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심을 주었고 이기호 작가가 ‘제임스 셔터내려 ’를 일부러 만나려고 직거래를 한다고 속여서 사과하게 만든 것이 ‘제임스 셔터내려 ’에게 는 상처와 모욕감이었을 수가 있다. 이 단편소설의 이야기는 꽤나 현실적이고 독자들의 주변에서도 쉽 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에 참 공감이 많이 갈 수 있는 단편 소설인 것 같다. 누구나 겪어보지 않으면 그 사람의 입장을 완벽히 이해 못하고 의도치 않게 남에게 상처를 안길 수 있다고 본다 . 이러 한 사회적 문제들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굉장히 가까이서 접할 수 있 고 또는 우리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이 단편소 설에 더 공감이 가고 좋았다 .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을 읽음으로써 독 자들도 자기 자신의 행동들을 되돌아보고 타인의 입장도 더 생각할 줄 알게 되는 것 같아서 좋았다. 이 소설은 현실적이라서 좋기도 했던 반면 , 현실적이라 나빴던 부 분도 있었다. ‘최미진은 어디로 ’라는 단편소설에서 간간히 이기호 작 가가 살면서 작가로서 느꼈던 수치심과 모욕감들의 이야기를 몇 가지 하는데, 예를 들어 이기호 작가가 교통사고가 났을 때 직업이 작가라 고 했을 때 보험회사 직원은 피식 웃으며 비웃듯이 행동하고 작가들 은 잡급에 해당된다는 말들을 들으며 모욕감을 느낀다. 이와 같이 , 실제 사회에서도 학력이 나쁘거나 내세울 수 있을 정도의 직업 등을 갖고 있지 않다면 무시당하거나 깔보이는 일들이 다수이다. 전체적으로 이 단편소설은 우리가 일상에서도 자주 겪는 심리적인 갈등들과 굉장히 현실 적인 모습들이 많이 담겨있어서 공감도 할 수 있고 배울 점도 많은 단편소설이라 참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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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의 중요성 김중혁, ‘엇박자 D’ 를 읽고

최하라 Hara Choi ‘ 엇박자 D’의 저자 , 김중혁은 1971 년에 태어난 한국의 작가이다 . 많은 장편과 단편 소설을 썼고 , ‘ 엇박자 D’ 는 그의 단편 소설 중의 하나이다. 이 소설은 2008년에 김유정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 그 후 에도 김중혁 작가는 많은 수상을 했고, 한국 문학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며 자리잡고 있다. 김중혁의 ‘ 엇박자 D’라는 책을 처음 읽을 때는 , 살짝 유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목부터 시작해서 뭔가 글쓴이의 어릴 때의 소소한 일화를 풀어나가는 이야기인줄 알았다 . ‘엇박자 D’ 라는 별명 자체가 옛날 느낌이 나서 그랬던 것 같다 . 그렇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서 책 에 대한 큰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글을 조금 더 읽으면서 흥미가 점점 생겼다 . 주제 자체가 참신하고 새롭다고 생각했고 , 어릴 적 친구와의 기억을 어떻게 풀어 나갈지 궁금해졌다 . 각각 인물의 특성이 뚜렷해서 좋았고 , ‘ 엇박자 D’ 라는 인물의 성격 묘사가 개성 있었다 . 박자를 그처럼 완벽하게 못 맞추는 사람은 흔치 않고 , 그가 이야기에서의 주제가 된다는 것은 상 상할 수 없었을 정도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 특히 소설의 처음 부분에 서 ‘엇박자 D’가 공연에서 엇박으로 뛰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 내가 뽑은 명장면 중에 하나이다 . “입을 꽉 다문 채 솟아오르는 그의 진지 한 표정은 오래된 코미디 영화의 이상한 주인공 같았다 ”라고 작가는 설명 하였고, 이 표현은 ‘엇박자 D’의 음악에 대한 진지함과, 꿋꿋이 음악을 즐기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이 장면은 ‘엇박자 D’라는 인물을 독자들에게 적절하게 소개하고, 궁금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책 중간 부분에서, ‘엇박자 D’가 더블더빙 공연을 기획하고 싶다는 희망을 전했을 때 , 주인공은 매우 답답해하였다 . 나도 이 내용과 비 슷한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 조별 과제를 하고 있는데 , 미디어 영상 을 한 번도 만들어보지 않은 친구가 비디오 담당을 하겠다고 한 것이 다. 나는 경험자로서 얼마나 영상 편집이 복잡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 에,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걸 바로 하겠다는 그 친구가 답답하게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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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다. 나는 계속 설득했지만 친구는 말을 듣지 않았고, 속으론 엄청 걱정하고 있었다 . 그 과제는 성적이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 하지만 책 속의 주인공이 ‘엇박자 D’의 기발한 공연 계획에 놀란 것처럼 , 나도 그 친구의 의외의 개성 있는 발상들에 감탄했다 . 이처럼 글 부분 부 분에 나오는 사건들이나 장면에 공감할 수 있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마지막 부분도 인상 깊었다 . ‘엇박자 D’와 합창을 같이 했던 몇 명의 친구들이 ‘엇박자 D’의 공연을 보며 , 그가 했던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듣는 장면 말이다. 옛날의 아련한 추억을 잘 그려낸 것 같고 , ‘엇박자 D’의 오랜 희망의 끝을 잘 정리한 것 같다 . ‘엇박자 D’의 끈 기와 열정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 공연에서의 미묘한 화음과 특이한 음 들의 설명도 재밌었다. 이 글은 과거의 기억과 현재를 오가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 간다. 시간이 바뀔 때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재미있고 원활한 전 환이어서 따라가기 쉬웠다 .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책에 빨려 들어 가기보다는 겉돈다는 느낌을 주고 , 마지막을 아름답게 , 깔끔하게 끝 내려고 한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져 마음속에 그리 깊이 인상을 남긴 작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 하지만 주제와 이야기의 구성이 단순하고 쉬워서, 가볍게 재미로 읽기 좋은 글 같다 . 나이가 많은 사람들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을 법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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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세계 이상대 , ‘로그인 하시겠습니까?’를 읽고

서영빈 Sam Seo 책과 애니가 만나는 점 이 책 이름과 커버를 봤을 때는 나는 ‘ 소아온 ’(소드 아트 온라인 ) 애니 생각이 들었다 . 소아온은 어떤 소년이 VR 의 사용으로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는 이야기다. 그 애니에서도 처음 VR 에 들어갈 때는 로그인을 해야 된다 . 그래서 ‘로그인 ’ 읽었을 때 소아온 생각이 들었 다. 하지만 소아온에서는 그 세상에서 갇히게 된다 . 그 세계에서 어 떻게든 나갈 방법을 찾는 게 소아온 전체의 스토리이다. 다음으로 난 이 커버를 보고 나서 예전에 비슷하게 생각나는 소 설 생각이 났다. 예전에 읽었던 소설 제목이 생각은 안 나지만 진짜 세상이랑 온라인 세상을 구분 못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혹시 그 이야기랑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난 이 책이 편안하다고 느꼈다 . 이 책은 내가 지금까 지 읽은 책과 본 것과 비슷해서 내가 무슨 이야기를 읽을 걸 알아서 편했던 것 같다. 서린이와 마리의 관계 주인공인 서린과 그리고 절친 마리가 갖고 있는 관계가 흥미진진 하고 재밌다고 생각한다 . 서린이와 마리가 이 책을 읽으면서 아주 친 하다고 느꼈다. 서린이한테 무슨 일이 날 때마다 마리가 옆에서 농담 하고 친하게 지냈다 . 예를 들면 서린이가 게임 속에서 실베스테르를 만났다. 실베스테르랑 오래 동안 얘기를 한 후에 진짜 세계에서 만나 자고 결정했다. 그런데 실베스테르가 실제로 초등학생이라는 걸 알고 난 후에 마리가 계속 그 이야기에 대해서 놀렸다 . 아무리 멀리 있어 도 가까이 있을 수 있는 사이 같았다. 서린이와 마리는 아주 친하고 오래오래 동안 같이 다녔다고 한다 . 근데 나는 요즘 이런 친구 만들 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 내 친구들은 장난치긴 쳐도 아주 가까이 친 하게 지내긴 힘들다고 생각한다 . 특히 나는 외국인학교에 다니기 때 문에 나도 그렇고 우리 학교의 친구들도 외국에 들락날락 자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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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래 동안 이 친구랑 못 지낼 수도 있다 .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요새 이런 친구들을 많이 볼 수가 없다. 온라인 친구와 만나기 또 내가 재미있었다라고 생각했던 때는 서린이가 진짜 세계에 있 는 실베스테르를 만날 때였다. 나는 그 실베스테르가 서린이가 기대 하는 실베스테르가 아닌 걸 이미 예측했지만 초등학생이라고는 생각 조차 못했다. 나는 초등학생이 나타났을 때 엄청난 충격도 느꼈다 . 초등학생이 어떻게 고등학생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을까? 어떤 고 등학생들은 다른 또래 고등학생한테 말도 거는 것도 어려운데 어떻게 그렇게 똑똑하고 말을 잘 할까가 먼저 생각이 들었다 . 나도 언제는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도 어려운데 나보다 한국어를 몇 년 덜 배운 초등학생한테 패배한 느낌이 들었다. 공감하는 점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느꼈다 . 나 는 게임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온라인 친구들이 많 다. 내 목록을 보면 항상 온라인인 친구가 꼭 한두 명 정도는 게임 중이다. 나는 서린이가 실베스테르를 어떻게 만났는지 알 거 같다 . 게임 속에는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칠 수 있다. 그 중에 내가 제일 싫 어하는 사람들이 트롤들과 일이나 의무를 따위를 포기하는 사람이다. 나는 좋은 게임 경험을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한다 . 그래서 아무리 어 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대처해낸다. 온라인 친구와 오프라인 친구 혼자 게임을 하면 무책임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이 커진 다. 그래서 나는 내 온라인 친구들과 같이 게임을 한다 . 그러면 트롤 들과 만날 수 있는 확률이 작아진다 . 처음에는 친구들과 하는 게 긴 장되고 이상했는데 많이 해보니까 나중에는 게임 더욱 재미있어졌다. XSimba 라고 내가 예전에 같이 게임하던 온라인 친구가 있었다 . XSimba 가 페이스북의 친구추가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거기서 내 얼 굴이 있는 사진을 보고 싶어 했다 . 난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서 처음 에 거절했지만 나중에 친구 추가를 해 주었다 . 페이스북 친구가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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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도 그 친구와 조금 더 얘기했지만 다음 게임에서 만났을 때는 뭔 가 조금 어색해져서 전처럼 말을 많이 하며 지내지는 않게 되었다.

처음 읽었을 때 내 생각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별로 재미없는 온라인 게임 이야기인 줄 알았다. 어떤 애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서 온라인 게임에 빠져 드는 이야기인 줄 알고 책의 가치를 낮게 판단했다 . 나는 어떤 이야기가 뻔하다고 읽을 필요가 없는 것처럼 읽기 시작했다 . 책을 다 읽은 다 음에는 나는 나만 있던 경험인줄 알았던 온라인 친구 이야기가 또 있 을 줄은 몰랐다. 마지막으로 , 서린이는 처음에 게임 중독자였다. 하지 만 책이 진행되면서 서린이는 게임을 끊고 자기 일에 집중하기 시작 했다. 서린이를 통해서 나는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해야 되는 일을 미루면서 살면 삶이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온라인 게임에 빠져 있는 사람, 인터넷이 현실 세계보다 더 좋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 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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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중요성 유은실 , ‘만국기 소년’을 읽고

김지훈 Chris Kim 이 책을 처음으로 봤을 때 , 나는 국어시간에서 살짝 졸고 있었다 . 나는 평소에 책을 별로 안 읽기 때문인지 , 책 읽는 얘기에 나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나는 영어로도 책을 안 읽기 때문에, 한국어로 책 읽 는다는 얘기를 듣고 , 진짜 읽기 싫었다 . 어렸을 때는 영어책을 즐겨 보던 나는, 나이가 많아지자 , 서서히 책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운동 도 즐기고, 게임도 즐기던 나는 책을 볼 시간이 없었다 . 이어서, 나의 첫 느낌은 별로 안 좋았다 . 책을 안 읽다가 갑자기 읽게 되니까 별로 흥미를 찾지 못하고 그냥 읽게 되었다 . 그렇지만 , 책을 읽어가면서 , 조금씩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마음 “그리고… ...똑똑한 친구를 한 명은 꼭 사귀어라. 아빠는 ‘나린다’ 가 맞는지 ‘내린다’ 가 맞는지 물어볼 친구가 한 명도 없다. 내 친구들 은 죄다 무식해서 말이지……” (18) 이 장면에서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딸에게 자기 같은 사람을 만나 지 말라고 했다. 이 문장이 나에게는 제일 슬펐다 . 이 이야기에서 제 일 감동적인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 딸의 아빠는 자기의 생각들을 딸 에게 얘기해주고 , 딸에게 제일 좋은 것들을 주고 싶어 했다 . 아빠는 자신이 별로 똑똑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모습이 너무 슬펐다 . 그 래서 그런지 이 장면은 읽으면서 마음이 아주 아팠다 . 나도 아빠가 있기 때문에, ‘우리 아빠가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 이야기에 있는 아빠랑 차원이 다른 ‘ 우리 아빠가 이렇게 슬 픈 이야기를 하시면 나의 반응은 어떨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 이 문 장을 읽고 나서 나는 기분은 안 좋았고 , 이런 저런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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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어차피 가족이니까... “나는 있는 힘껏 동생 팔을 잡아당겼다. 동생은 꼼짝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뒤로 가서 어깻죽지에 손을 올려놓고 끌어 올렸다. 동 생은 조금 끌려 올라오는가 싶더니 아예 다리를 쭉 뻗고 바닥에 퍼져 버렸다.” (48) 이 장면에서는 주인공의 여동생이 길에서 떼쓰기 시작한다. 여동 생이 먹고 싶은 떡꼬치를 언니가 돈을 아끼라며 먹지 말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갑자기 먹고 싶다고 떼를 쓰기 시작한다 . 이 부분을 읽다보 니, 나는 나도 모르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 나는 평소에 다른 사람들 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이 여동생이 공공장소에서 떼쓰는 것을 읽고 나서는, 기분이 매우 안 좋았다 . 나는 여동생은 없 지만, 공공장소에서 많이 시끄러운 누나가 있어서 공감이 더 잘 되었 다. 매번 누나랑 어디를 나가게 되면 , 누나는 계속 노래 부르고, 시끄 럽고 그래서 너무 힘들다. 이 장면을 읽고 나서는, 나는 화가 나고 , 조금 더 침착해지니까, 나의 누나의 생각이 났다 . 누나의 대한 마음 나는 위에 말했듯이, 좀 많이 시끄러운 친누나가 있다 . 지금 대학 교에 가있는 우리 누나는 , 공공장소에 가면 나랑 계속 장난치려고 하 고, 집에서 보다 열배는 더 시끄럽게 웃는 것 같다. 그런 누나가 나 랑 어디를 가고 싶다 하면 나는 기분이 별로 안 좋았다 . 어딜 가든지 우리 누나는 시끄러울 게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에 시끄러 운 여동생이 있듯이, 나에게는 우리 누나가 있다 . 누나는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기 때문에 , 누나는 한국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도 별로 신 경을 안 쓴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누나의 행동들이 나에게 다 영향 이 간다. 다시 말하자면은, 누나가 민폐를 끼치는 행동들을 해도 , 그 행동들의 결과는 거의 다 누나랑 같이 다니는 사람에게 쏠린다. 책을 읽은 후 , 나는 우리 가정이 얼마나 행복한 가정인지 알았다 . 우리는 별로 싸우지도 않고 , 우리 가정에 어른과 아이의 관계를 책에 있는 관계들과 비교하면 우리 가정은 진짜 행복한 가정 , 평화로운 가 정이다. 아무리 누나가 시끄럽다 해도 , 엄마나 아빠가 조용히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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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바로 조용히 한다 . 솔직히 아빠가 너무 키가 커서 무서워서 그 런 것도 있겠지만 , 그냥 아빠를 존경하기에 아빠 말씀을 잘 듣는 게 더 크다. 또, 우리 엄마는 키도 안 크고 , 힘도 우리랑 비교가 안 되지 만, 우리는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엄마의 말씀도 잘 듣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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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의 세계 조진호 , ‘어메이징 그래비티’를 읽고

문지우 Luciano Moon 우리는 중력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 ‘우리는 지구 어디에 가 든지, 중력에서 도망가지 못한다 ’라는 말이 있다 . 중력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서 중력에 관한 책을 읽기로 했다. 그래서 “어메이징 그래 비티” 라는 책을 읽기로 했다 . 사실 중력에 관해서 이야기하기에 이 책은 중력이란 내용을 갖고 무슨 내용을 말할까 궁금했다. 그리고 중력이랑 , 수학에 관련된 이야 기를 해서 이 책이 어렵고 별로 재미가 없을 줄 알았다 . 하지만 이 책은 그림이 많아서 지루하지 않았다 . 평소에 책을 읽다보면 가끔씩 지루해질 때가 있어서 졸려울 때가 있었는데 . 이 책은 전혀 안 그랬 다. 글과 함께 많은 그림들이 있어서 재미있었다 . 또 내용이 어렵지 않아서 이해가 쉬웠고 읽을 때마다 기대감을 갖게 했다. 생명체도 중력으로 , 낮과 밤도 중력으로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지구에 처음으로 생물이 나 타난 일을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 자연적으로 공기 속에 우연히 생명 체가 생기고 환경에 적응하면서 점차 더 나은 상태로 발전됐으며 수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해면까지 나올 수 있는 생명체가 되었다 . 또 긴 시간이 흐르면서 현생 인류까지 오게 되었다는 설명이 그림과 함 께 나와 있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이 중력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몸집이 큰 공룡은 중력에 이길 수 있도록 힘센 뼈가 발달했고, 광합성이 필요한 식물들도 더 높이 자라는 게 유리하지만 그럴수록 중력에 부러질 수 있기에 아주 높은 나무가 없다. 또한 과 거의 초창기 인간들도 중력에 유리하게 서서 다니면서 , 눈, 뇌 , 팔과 발이 발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이처럼 모든 것들이 중력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그 다음으로 마음에 들었던 파트는, 지구에 아침과 밤이 있다는 사실을 설명한 부분이다. 처음엔 사람들이 지구가 가운데에 있고 , 태 양이랑 달이 지구 주변을 돈다고 생각을 했다. 물론 그 생각이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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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틀렸지만 그래도 그때 그 시절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믿을 수 있는 학설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옛날에는 지금처럼 수학이랑 기술이 발달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기술과 과학 , 수학 을 발전시켰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수학을 더 배우면서 , 과거에 틀 린 생각들이나 학설에서 현재의 맞는 답을 찾아서 바꾸었다. 그 예로 옛날의 사람들은 지구가 아침과 밤이 왜 있는지 몰랐는데 , 요즘 사람 들은 다 알고 있다. 지구가 아침이랑 밤이 있는 이유는 , 지구가 자기 자신을 한 바퀴 돌기 때문이다 . 그래서 한 쪽은 태양을 바라보기 때 문에 아침이고, 한 쪽은 태양의 반대쪽을 보고 있어서 밤이 된다 . 지 구가 자기 자신을 돌기 때문에 , 지구가 태양을 보는 위치가 서로 바 뀌기 때문에 아침과 밤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 그리고 태양을 안 보는 파트는 어둡지 말라고 달이 있다. 달은 밤의 어두움에 밝은 빛 을 주고 있다. 그림으로 배우면 더 쉽다! 이 책을 다 읽고 , 만화에 대해서 많이 배웠다 . 처음엔 만화들이 오 직 재미를 위해서만 만들어졌는지 알았다 . 그래서 만화를 읽으면서 , 만화로는 배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 이 책을 처음 봤을 적엔 평범한 만화라고 생각했다 . 그러나 책을 펼치면 그림이 있었고 , 글도 조금 있었다. 근데 아무리 글이 있어도 , 그림이 많이 있기 때문에 , 이 책을 만화라고 얘기할 수 있다 . 지금까지는 만화를 보면서 , 아무것도 배운 적이 없다. 그 이유는 만화를 읽는 이유는 뭘 배우는 게 아니라, 재 미로 읽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그런데 이 책은 , 앞에 얘기 한 것처럼 중력이랑 과학에 관해서 배울 수 있었다. 우리는 공을 던지면 , 왜 그 공은 쭉 안 가고 떨어지나? 그 이유는 중력 때문이다. 공이 공중에 있을 적에 , 중력이 공을 밑으로 끌어내 리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어디든지 있어도 , 지구 안에만 있으면 , 중 력한테서 도망가지 못한다 . 이 책에서 이런 지식들을 배울 수 있었 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배운 건 이런 지식들 외에도 만화책으로도 새 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중력을 알리고픈 작가의 마음 이 작가가 이 책을 쓴 이유는 , 사람들이 과학과 중력에 대해서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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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고 만든 것 같다 . 그리고 이 책은 글을 많이 읽는 걸 싫어하고 , 만화로 중력의 관해서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 같다. 많은 어린이들이 이 책을 좋아 할 것 같다 . 그 이유는 어린 애들은 만화를 좋아 하고 , 그리고 재미있으면서 중력에 대해서도 배 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가 있어야지 사람들은 더 집중을 할 수 있 다. 이 책은 만화라서 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중력은 원래 배우기 어려운거라서, 만화로 쉽게 배우면 더 잘 이해가 되고 , 더 빨리 배울 것 같았다. 이 작가가 중력에 관해서 배우는 방법 , 오직 공부만이 아 니라, 책을 읽으면서도 배울 수가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공부로 배우면 , 이해하는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고 , 그 리고 스트레스가 생길 수가 있어서, 재미있게 배우는 방법을 찾아서 , 중력에 관한 만화를 그린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중력과 , 옛날 과거의 역사 . 과학을 많이 배울 수 있 었다. 그리고 만화를 통해, 우리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이 책은 재미있으면서도 , 중력에 관해서 많은 사실 을 가르쳐 주고 있다 . 앞으로 우리에게 다른 더 많은 사실과 공부를 배울 수 있는, 우리를 더 재미있게 하는 다른 책들을 또 읽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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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전하는 용기 최양선, ‘미식예찬’을 읽고

박세현 Sean Park 예찬이를 좋아하는 지수 , 지수에게 마음이 있지만 곧 이사를 가야 해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예찬이 . 청소년 시기 에 경험할 수 있는 연애담이 담긴 예쁜 소설을 하나 읽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명장면 1, 이사가는 예찬이 이 책에서 명장면이 예찬이가 지수에게 이사를 한다고 말하는 부 분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궁금했던 부분은 예찬이가 왜 지수에게 메시지를 안 보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 하지만 갑자기 예 찬이가 이사한다하고 말 했을 때 다 이해가 되었다 . 내가 이 장면이 이렇게 인상 깊었던 이유는 이사를 가는 부분이 예고 없이 전개되었 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이 장면이 인상 깊은 이유가 너무 미스터리 처럼 공개를 빨리 안 하고 독자가 상상할 수 있게 책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예찬이가 지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지만 글 의 전개는 나의 생각과 달랐다. 명장면 2, 우리의 결말은 ? 다른 명장면은 결말이었다. 지수가 예찬이 엄마를 찾아가서 왜 예 찬이가 학원을 안 나오는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예찬이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 예찬이의 마음과 달리 곧 이사를 가야 하기 때문 에 지수를 더 이상 만나지 못 한다고 했다 . 여기서 예찬이는 자기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은 것 같다. 이 부분을 읽으며 답을 찾아 기뻤 지만 실망한 부분도 있었다 . 나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라 생각을 했지만 예찬이와 지수와의 관계는 알 수 없게 끝났기 때문이다. 하지 만 예찬이와 지수가 마켓에 가서 이야기할 때 지수가 예찬이 마음과 행동을 이해한다고 했을 때 나의 마음도 편해졌다 . 시간이 흐른 후 예찬이와 지수가 다시 만남을 가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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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사람의 아픔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생 안에 우리가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학교를 다닐 때 갑자기 싱가포르로 이사를 가야 했다 .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다. 왜냐하면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학교를 처음 다니고 그곳에서 5 년 이상을 친구들이랑 학교생활을 했기 때문에 친한 친구와 헤어지 는 것은 마음이 너무 아팠다 . 나는 예찬이처럼 친구들한테 어떻게 말 을 해야 할지 몰랐다 . 그 친구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을 알아서 이사 가기 전에 친구들에게 내 슬픈 마음을 잘 표현할 수가 없었다. 아마 예찬이도 이사를 가기 때문에 지수에게 자기의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힘들었을 것 같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아무리 상황이 불편해도 마음이 표현해야한다 는 것을 알았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가 말을 해서 표 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우리 감정과 생각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우리에게 힘든 일이 벌어지고 우리가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도움을 받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 생각 하고 결론을 짓는 부분에서 다들 다르기에 표현을 하지 않으면 상대 방의 감정이나 생각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그래서 예찬 이가 지수를 생각해서 사귀자는 말에 답을 하지 않았지만 좀 더 지수 를 생각했다는 본인도 지수를 좋아한다는 것을 이야기를 했어야했다 고 생각이 든다. 마음을 알아보기 위한 어리석은 시험들 책을 읽으면서 나의 느낌 점은 이 책의 내용이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로 많이 사용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예를 들어 로미오와 줄리 엣이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말에는 줄리엣이 로미오의 사랑을 알아보기 위해 약한 독약을 마시고 죽은 척을 했다. 하지만 로미오는 줄리엣이 진짜 죽은 줄 알고 로미오가 죽게 되었고 줄리엣은 로미오 가 죽고 나서 자신의 행동에 후회하였다. 자신을 사랑하는지 물어볼 수 있었지만 본인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아 슬픈 결말이 되고 말았다. 감정의 표현한다는 것은 어려우며 용기도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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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작가가 책을 쓴 이유가 우리 감정의 표현이 얼마나 중요 한지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 나는 이 작가의 전하고 싶은 메 시지를 이해한다. 지금 이 시대에는 우리의 감정을 점점 더 표현하지 않는다. 이 시대에는 핸드폰과 메시지가 있으니 사람들 앞에서 본인 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적어지는 것 같다 . 나의 생각에는 메시지는 우리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핸드폰의 문자와 소셜 미디어에 갇혀 본인들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 는 기회를 많이 상실해가고 있는 것 같다 . 사람들이 컴퓨터 속의 대 화가 아닌 서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다면 상대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이런 주제로 많은 책들 이 나와 사람들과의 대화를 해야 하고 심각성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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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 앙꼬 , ‘나쁜 친구’를 읽고

이성무 Sam Lee 이 책은 앙꼬 작가의 나쁜 친구라는 책이다 . 고등학생이었던 진주 와 정애의 일탈을 다룬 책으로 , 그들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다룬 책이다. 진주와 정애의 일탈 이 책에서의 명장면은 단언컨대 진주와 정애의 일탈이라고 할 수 가 있다. 가출한 뒤의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또래 청소년들 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진주는 친구인 정애와 함께 부모님의 학대로 도망쳤 고, 단순한 일탈이 아닌 생존을 위해서 가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인상 깊었다 . 이 둘은 가출한 뒤 , 정애 친구로부터의 원조와 주선으로 인해 모텔 방을 잡아서 지내게 되고 , 청소년이 가서는 안 되는 구역에 발을 들이게 된다. 이 책의 명장면 중의 하나인 이유는 너무 사실적이고 , 구체적으로 이 내용을 지은이가 썼기 때문이다 . 또한 , 이 장면에서는 함정이 있 기 때문이다. 함정은 바로 ‘누가 나쁜 친구인가 ’인데 , 이 장면만 본다 면 나쁜 친구는 정애로 보일 것이다 . 왜냐하면 정애가 룸살롱을 다니 는 아이와 친해 거기서 일하려고 하고, 거짓말을 해서 모텔 방에 들 어갔기 때문이다. 이런 외형적인 것만 본다면 나쁜 친구는 분명히 정 애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후에 일어나는 일들로는 나쁜 친구는 진주로 바뀌게 된다 . 진주는 어른이 되어서 정애를 계속 찾고 죄책감을 느끼면서 지냈지 만, 정작 정애를 목격했을 때 진주는 무시하였다 . 이러한 함정이 숨 겨져 있기 때문에 이 장면이 명장면이라 나는 생각한다. 룸살롱에서 만난 마음의 어머니 두 번째 명장면은 진주가 철이 드는 장면이다 . 전의 명장면과 이 어지는 이 장면은 , 진주의 철이 드는 것이 가장 크고 중요한 요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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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할 수 있다. 진주와 정애는 룸살롱에 들어갔지만 , 진주가 민짜의 뜻을 몰라서 결국 쫓겨나게 된다 . 둘은 가출을 하여서 돈이 모자랐기 때문에 결국 다른 곳을 찾게 되고 , 장사가 그전 가게보단 잘되지 않 았지만, 일손이 필요하였는지 , 여자 점주는 그녀들에게 방을 하나 줘 서 접대를 하라고 시키게 된다 . 진주와 정애는 결국 어떤 아저씨들의 접대를 하게 되었는데 , 정애는 어떻게든 계속하지만 , 진주는 몸을 만 지는 데에 있어 심한 모욕감을 느끼게 되고 , 결국 도망치게 된다 . 도 망가는 진주를 여자 점주는 잡아서 이야기를 해주게 된다 . 그 이야기 의 주된 내용은 다신 이런 일을 하러 오지 말라는 신신당부였다 . 자 신도 너희들 같았다면서 점주는 이해를 해주게 되고 , 진주를 보내주 게 된다. 이 장면이 명장면이 된 이유는 바로 점주의 마음 때문이다 . 모르 는 아이들을 자신과 똑같은 짓을 되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력 을 사용해 다시 방에 넣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 진주를 딸같이 생 각하여 조언해주기 때문에 이 장면이 명장면이 되었고 , 조언을 들은 진주도 감사함을 느끼면서 돌아가기 때문이다. 과거의 회상 나는 이 나쁜 친구라는 책에서 나 자신을 보았다 . 한때 나도 불량 한 학생이었다. 가출을 한 진주와 정애와 마찬가지로 , 유학 생활을 하면서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많이 엇나가고 이상한 일들을 하게 된 것 같았다 . 아는 형의 제안으로 모임 같은 것에 가입하게 되 었고, 폭력을 행하고 나이에 맞지 않는 일들을 하기도 했다 . 하지만 폭력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도 멈추지 않았다 . 폭력이라는 과일은 나 에겐 달콤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애 , 진주와 다르다고 할 수가 있 다. 정애와 진주는 생존을 위해서 나쁜 일들을 하였고 , 난 그저 좋아 서 했기 때문이다 . 하지만 , 나도 진주와 마찬가지로 부모님의 그늘로 돌아오게 되면서 점점 더 성숙해져갔고, 아버지의 조언을 들으며 나 쁜 짓들도 줄였기 때문에 , 진주와 비슷하다고 할 수가 있다 . 사치스럽게 높은 가치 이 책의 가치는 가늠할 수 없이 높다고 할 수 있다 . 나와 같은 아 이들이 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적어도 나는 과거를 회상하고 ,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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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저 지를 잘못들에 대해 무덤덤해지게 되었지만 , 이 책을 본 이후 다시금 과거가 떠오르면서 회개하고 성당에서 고해를 하며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받았기 때문에 , 이 책의 가치는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 또한 , 이 책을 본 다른 사람들도 이 책의 가치는 높게 생각할 것이라 생각한다. 어른들은 자신들의 철없고 어렸을 때 의 과거를 회상할 수도 있고 , 내 또래의 청소년들의 이 책을 보면서 자신들이 했던 잘못에 대해 속죄할 수 있고, 또한 앞으로의 일들은 미리 알고 하지 않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 따라서 나는 이 책의 가치 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고 과거를 돌아보는 중 요한 계기가 된 것 같아 이 책을 읽었다는 것에 매우 감사하게 생각 한다. 나쁜 친구라는 이 책을 다른 사람 , 옛 친구들 , 부모님께 홍보를 해도 될 만큼 읽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 사람들이 이 책 을 읽으면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했으면 좋겠고, 일상이 너무 힘들고 바쁘면, 내가 쓴 책의 서평을 읽으면서 과거를 회상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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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아저씨의 착한 마음 박상기, ‘옥수수 뺑소니’를 읽고

서주원 Justin Suh ‘ 옥수수 뺑소니 ’는 두 번의 교통사고를 당한 현성이라는 아이에 대 한 이야기이다. 현성이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길을 잘 안 봐서 옥 수수 트럭에 부딪히는 교통사고가 났다 . 이때 , 옥수수 트럭을 운전한 아저씨가 급히 와서 현성이가 괜찮은지 물어보았다 . 현성이가 괜찮다 고 했지만, 옥수수 아저씨는 전화번호를 주면서 무슨 일이 있으면 전 화를 하라고 친절하게 말씀하셨다 . 그 다음날 , 현성이가 또 차에 부 딪치는 사고가 났다 . 이번에는 , 현성이가 피가 나고 심하게 다쳤다 . 현성이의 전화기도 깨어졌다 . 하지만 , 이번에 사고를 낸 아저씨는 현 성이에게 형식적으로 괜찮은지 물어만 보고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 고 도망치듯 급히 떠나버렸다 . 현성이는 어쩔 수 없이, 부모님께 옥 수수 아저씨 때문에 일어난 사고라고 말씀을 드리고 , 잘못 없는 옥수 수 아저씨에게 연락을 하게 된다 . ‘ 옥수수 뺑소니 ’는 겉보기에는 단순 한 내용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현성이의 교통사고들 책 내용 중에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았다 . 그 중 현성이의 두 번째 교통사고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 이 사고에서는 어느 아저씨가 현성 이를 차로 치게 된다 . 차에 부딪친 현성이는 피가 날 정도로 다치고 , 넘어질 때 친구의 핸드폰도 깨어졌다 . 하지만 , 아저씨는 사과할 생각 은 안하고, 처음부터 현성이 탓을 했다. 나는 이것이 놀라웠다 . 원래 교통사고가 났을 경우에는 , 운전사의 잘못이 가장 크다고 알고 있다 . 그리고 운전사는 다친 사람을 먼저 살피고 걱정해야 한다 . 하지만 , 이 아저씨는 자기 잘못은 없는 척하고 현성이 탓만 한다 . 그것뿐만이 아니다. 아저씨 때문에 현성이가 많이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 아저씨 는 병원에 데려다 주지도 않고 , 전화번호도 알려 주지 않았다 . 오히 려, 주변에 사람들이 없는 것을 보고 , 도망을 친다 . 이것은 누가 봐도 나쁜 짓이다. 현성이는 아직 어려서 어떻게 대처할 줄 모를 줄 알고 그 아저씨는 자기 잘못을 책임지지 않고 도망친다 . 나는 이 장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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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충격을 받았다 . 저렇게 무책임한 어른이 있다는 것이 믿기 힘들었 다. 옥수수 아저씨의 마음 씀씀이 두 번째로 인상에 남는 장면은 옥수수 아저씨가 현성이가 있는 병 원에 와서 사과하는 장면이다 . 어떻게 보면, 옥수수 아저씨는 이 책 에서 가장 억울하고 불쌍한 캐릭터 중의 한 명이다. 옥수수 아저씨는 현성이를 차로 심하게 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게 현 성이한테 전화번호를 주면서 , 무슨 일 있으면 연락을 하라고 한다 . 현성이가 다친 것은 썬글라스 아저씨 때문이다. 하지만, 썬글라스 아 저씨는 자기 잘못을 책임지지 않고 도망친다 . 현성이는 사고를 수습 하기 위해 옥수수 아저씨한테 거짓말을 해서 옥수수 아저씨를 이용한 다. 나는 옥수수 아저씨의 행동에 무척 놀랐다 . 현성이를 의심하지 않고 전화를 받자마자 현성이 집을 찾아간다 . 그리고 , 현성이에게 옥 수수 한봉지와 돈 만원을 준다 . 나는 옥수수 아저씨의 착한 마음씨와 행동에 마음이 아팠다. 옥수수 아저씨는 가난했고 자기 아이도 아픈 상황이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현성이를 도와주었다 . 적당한 난이도와 적당한 분량 나는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 왜냐하면 내가 읽기 적당한 레벨이 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길지 않고 , 내용도 내가 쉽게 이해할 수 있었 다. 이 책은 시작할 때부터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와서 처음부터 흥미 로웠고, 책 뒷부분에 책의 줄거리가 나와서 무슨 내용인지 대충 안 상태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 솔직히 말해서 , 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는 별 기대가 되지 않았었다 . 하지만 , 읽다보니 재미있는 장면들도 있었고, 화가 나는 장면들도 있었고 , 마음이 아픈 장면들도 있었다 . 마지막으로, 처음에는 책 표지 색이 노란색이어서 어린 아이들이 보 는 책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 책 색깔과는 상관없이 , 책의 내용은 내 가 읽기에 아주 좋았다. 다양한 사람들 , 그리고 거짓말의 결과 이런 책들에서는 완전 새로운 것을 깨닫기는 어렵다 . 왜냐하면 , 우 리는 이미 비슷한 내용의 책을 읽었거나,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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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나, 아니면 한번쯤 생각을 해보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 나는 이 책 을 읽고 몇 가지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첫째로 , 이 세상에는 썬글라 스 아저씨처럼 나쁜 사람들도 있지만 , 옥수수 아저씨처럼 너무 착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아주 단순하고 당연한 생각이지만 , 이 사실 을 알아야 우리가 나쁜 사람들과 착한 사람들을 구별하고 이해할 수 가 있다. 두 번째는 거짓말은 무엇보다 자신에게 안 좋은 것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 현성이가 거짓말을 해서 우선 필요한 것들 을 얻게 된다. 하지만 , 그것이 진짜 좋은 것이었을까 ? 현성이도 자신 이 거짓말을 했을 때 자기 마음이 아팠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 우리의 거짓말은 처음에는 이익이 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 결코 우리에 게 좋은 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이 책에 대한 생각은 내 생각과 다를 수 있다 . 내 생각에는 읽기 레벨이 책에 대한 인상에 영향을 많이 주는 것 같다. 한국어 책들을 많이 읽고 좋아하는 친구들에게는 이 책이 조금 단순 하고 쉬울 수 있다. 하지만 , 한국어가 편하지 않고 한국 책들을 자주 안 읽는 친구들에게는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왜냐하면 , 책이 비교 적 짧아서 읽으면서 큰 부담이 없다 . 그리고 , 어려운 단어들이 많지 않아서 단어를 잘 모르는 친구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쉬우면서도 내용은 재미있고 , 감동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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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현실을 알려주는 책 최광형, ‘가족의 두 얼굴 ’을 읽고

고정우 Matthew Ko 이 책의 제목 ‘가족의 두 얼굴’은 영어로 “two sid ed nature of famil y”로, 현실적인 가족의 문제를 다 밝히는 책입니다 . 책 제목만 보고 별로 재미없고 의미 없는 책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 이 책 은 가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는 책입니다 . 전체 분량은 대 략 250 장 정도인데 그 250장 안에 아주 중요한 내용 , 한 번쯤 우리 가 깊게 생각해 봐야 할 내용들이 담겨 있습니다 . 이 책의 주요 목표 는 가족에게 상처 받은 사람들을 치유하려는데 있기 때문에 가족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가 많이 소개됩니다 . 독자들은 그 속에서 자신 에게 맞는, 자신의 상황과 연관이 있는 이야기를 통해 공감하고, 이 해하며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에 적혀 있는 내용들은 슬픔에서 가족에 중요성까지 가족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달해 줍니다 . 가족과 나쁜 관계로 지내는 사람이 아니더 라도 누구나 읽으면 좋은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 가족 사이를 더 욱더 돈독하게 해 줄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이 책이 제공하는 것 이 책에서 제가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한다 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 책이 시작부터 어떤 글이 있습니다. 거기서 가족에 중요성을 느끼게 하는 글이 적혀 있어요. 그리고 책을 읽을수 록, 더욱더 많은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 예를 들면 , 작가의 어린 시절 을 말하고, 어린 시설에 겪은 일이 다 쓰여 있습니다 . 거기에 부모가 어떻게 도와줬는지 , 가족들 사이에서 싸움이 일어났을 때는 왜 그 싸 움이 생겼고 또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철저히 설명합니다 . 하지 만 저에 개인적은 생각으로 이 책에 사진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합 니다. 뒤로 갈수록 사진들은 하나 , 둘 정도는 있는데 사진들이 있으 면, 책이 덜 지루하고 , 더욱더 설명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 책을 계속 읽을수록 감명 받은 부분은 가족에 다양한 부분들을 측면 탐구입니다. 사소한 일, 큰 일 가리지 않고 가족 관계랑 관련이 있다면 적혀 있습니다. 예를 들면 , 아이가 엄마 말을 안 들어서 상처 주는 사연, 남편이 바람피우면 아내한테 상처 주는 사연들이 적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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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처럼 이 책은 어떤 가족 문제라도 커버할 수 있는 다양한 예를 제공해 줍니다. 공감할 수 있는 책 이 책은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서 . 당연히 여기에 나온 내용에 공 감할 수 있습니다 . 다시 말하면 , 가족의 두 얼굴은 가족의 소중함을 중심으로, 웬만한 가족들이 겪는 일들이 다 적혀 있습니다 . 그 하나 의 예로 청소년들 사이의 흔한 의견의 불일치 때문에 부모랑 싸우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 저도 개인적으로 이런 일이 많았고, 여 전히 계속 되고 있습니다. 제 또래의 애들이 요즘 사춘기 때문에 신 중하게 생각 안 하고 더욱더 말썽을 피우고 , 부모의 옳은 생각에 괜 히 반기를 드는 일은 저 뿐만 아니라 , 웬만한 학생들이 다 한 번씩 경험하는 일 같아요 . 하지만 이 책 내용 중에서 저와 제일 비슷한 경 험을 이야기한 것은 바로 성적입니다 . 지금 현재 성적은 괜찮은데 , 하지만 최근에 나온 한 시험 점수 때문에 이 주제가 더욱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왜 이 책이 있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책을 쓴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 가족들을 위해서 쓴 것 같습니다 . 가족관계가 나쁜 가족의 관계 회복을 위해 서, 또 사이가 좋은 가족에게는 이 좋은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도록 , 세상의 모든 가족을 위해서 쓴 책인 것 같아요. 가족 사이가 별로 안 좋은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때마다 가족들을 못 믿고 서로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 사람에 대한 시야가 넓어질 것 같아 요. 왜냐하면 자기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의 입장도 설명해 주고 , 그 당시에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어떻게 느낄 수 있는지 알려주기 때문 입니다. 추천하는 이유 가족은 두 얼굴 보면 책이 두껍고 안에는 글만 있어서, 지루할 같아 읽기를 망설이는 사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 하지만 가족의 얼굴을 읽으면 이 책이 생각보다 재밌고 자신이 지금 얻고 있는 많아서 작가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마음이 들 것입니다 . 그뿐만이 니라, 가족의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해주는 아주 좋은 메시지를 달합니다. 사실 계속 읽으면 조금은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 그럴

것 두 게 아 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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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군데군데 있는 사진과 “리얼 스토리”를 중심으로 읽기를 추천합니 다. “리얼 스토리”는 실제로 일어났던 사연을 소개한 코너입니다 . 현 실에 일어난 일이지만 읽어보면 재밌고 여전히 좋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렇게 좋은 점이 많이 때문에 책의 가치는 높다고 생각합니 다. 이 책은 어른들 위주지만 저 같은 청소년이 읽기에도 아주 좋습 니다. 가족 관계 때문에 고민이 되는 모든 사람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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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게 제일 어려워 최은영 , ‘쇼코의 미소’를 읽고

김지완 Ji wan Kim ‘ 쇼코의 미소’ 의 저자 , 최은영 작가는 ‘서점인이 뽑은 2018 올해의 작가’ 로 선정되었다 . 2014년에 첫 책을 발간했으며 , 대표적인 작품 은 내가 읽은 중편소설 ‘쇼코의 미소’ 와 ‘내게 무해한 사람’이다 . 나 는 평소에 한국소설을 읽을 기회가 흔치 않아서 , 어떤 책이 재밌을 지, 유명한 작가 한 명도 모른 채 서점에 책을 구입하러 갔다 . 들어 가자마자 내 관심을 한눈에 사로잡은 책 바로 ‘쇼코의 미소 ’였다 . 물 론 파스텔 톤에 분홍색 책 표지가 예뻐서이기도 하지만 , 나의 일본인 친구, ‘쇼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 쇼코는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2 년 동안 한국에 있다가, 1 년 전 아버지의 두바이 발령으로 나와 작별을 해야 했다. 짧았던 만남이었지만 , 서로 같이 있었던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했기에, ‘쇼코 ’라는 이름이 나에겐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이 아름다웠던 추억 덕분에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 함께 밤을 새며 일본 편의점에서 산 간식들을 먹으면서 보냈던 쇼코와의 좋은 추억이 떠올라 기쁜 마음으로 ‘ 쇼코의 미소’를 읽기 시작했다 .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다 ‘ 쇼코의 미소’ 는 다른 국적을 지니고 있는 소유와 쇼코 , 두 여자의 이야기이다. 쇼코는 잠시 교환학생으로 소유의 집에서 머물게 된다 . 그리고 교환학생 기간이 끝나고 일본으로 돌아가서도 쇼코는 잘 지내 는지 거의 매주 편지를 적어 한국으로 소유와 소유 할아버지에게 고 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편지를 보내왔다. 쇼코는 어느 날 해변에 서 있으면 이 세상의 변두리에 선 느낌이 든다고 말했었다 . 중심에서 밀 려나고 사람들에게서도 밀려나서 , 역시나 대양에서 밀려난 바다의 가 장자리를 만나는 기분이라고. 쇼코가 보낸 편지엔 , ‘할아버지를 죽여 버리고 싶다’, ‘자살하고 싶다’ 등 부정적인 이야기들만 가득했다 . 쇼 코는 할아버지 때문에 계속 한 곳에 발이 묶여져 있다 . 야무지고 영 리한 쇼코는 아프신 할아버지를 간호해야 하기 때문에 와세다 대학의 입학 허가증을 버리고 도읍에 있는 작은 대학에서 재활의학을 배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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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고 소유에게 현재 상황을 간략하게 말하고, 그 뒤로부터 연락이 끊긴다. 쇼코가 한 말을 듣고 나는 쇼코가 느끼고 있는 고통을 더욱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 쇼코 주변에 아무도 그녀를 위로해 줄 , 응원해 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나도 안쓰럽게 느 껴진다.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 달리 해변에 가면 뻥 뚫린 기 분이 아니라, 사람들의 사회에서 밀려나고 밀려나서 온 것이라고 느 낀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안녕, 친구들 책 ‘쇼코의 미소 ’를 읽다보면 ,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가깝고 , 다시 만날 수 없어도 한때 나랑 정말 사이좋고 친했던 관계들에 대해 서 생각하게 된다 . 나는 어릴 때부터 여러 나라를 전전했고 , 남들보 다 많이 이사를 다니며 지냈다 . 그러면서 떠나가는 곳에서 많은 친구 들을 잃고, 새로운 곳에서는 나를 반겨주는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 새로운 곳에서 빨리 적응을 하고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어도, 향수 탓 인가, 가끔 옛 것들이 그리울 때도 있었다 .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이 책에서 쇼코는 잠시 교환학생으로 소유의 집에서 머물게 된다 . 그리 고 교환학생 기간이 끝나고 일본으로 돌아간다 . 돌아가서도 한국으로 거의 매주 편지를 적어 편지를 보내왔다 . 하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마 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듯이, 미운 정이든 고운 정이든 자주 보고 정 이 들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 쇼코는 멀리 있어도 , 보이지도 들리 지도 않아도 그를 친구라고 부를 수 있었다 . 나도 쇼코처럼 정말 정 든 친구들에게 계속 연락을 한다. 하지만 몇몇은 연락처를 알아도 , 너무 오랜 기간 동안 보지 않고 지낸 사이라 연락하기에 약간의 두려 움은 늘 있다. 그 친구가 날 잊어버렸으면 어떡할지, 과연 답변은 해 줄지 늘 걱정하느라 그냥 연락을 하지 않게 된다 . 나도 쇼코처럼 먼 저 나설 수 있는 그런 용기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 지금도 옛 친구랑 연락을 하고 지낼 수 있었을까 ? 종종 생각하곤 한다 . 헤어지 고 나서도 다시 웃으며 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 끝이 어떠했든 추억 만으로도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사이가 있는 한편 , 어떤 헤어짐은 긴 시간이 지나도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나도 많은 곳 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본 결과, 관계의 끝이 다 똑같지는 않 았다. 연락하고 지내고 싶은 친구들은 너무 나도 많지만 , 난 짧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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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동안 너무 많은 곳을 떠나왔고, 앞으로 더 갈 길이 멀기에 , 현재 또는 지금 이 순간만 바라보고 사는 거 같다. 연인과 같은 친구 사이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 쇼코를 생각하면 그 애가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 날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던 친구는 어디에 가나 늘 있었다. 관계에 있어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 저 아이가 날 친구라고 생 각 할지 마음속 한 곳에 고민이 항상 있었던 것 같다 . 이 책에서 소 유와 쇼코는 서로 다른 국적을 지니고 다른 언어를 쓰고 있다 . 나도 외국에 있을 때 아버지 일 때문에 아주 짧은 기간만 머물러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친구들을 사귀어야만 했다 . 특히 외국에서 만난 외국 인 친구랑 작별을 할 때에는 , 더욱더 다시 보기가 힘든 사이라는 것 을 이미 알고 있었다 . 떠나서도 친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더 솔직하고 진실한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통점을 찾아내 고, 그 공통점을 통해 서로 좋아하는 이야기만 말하려고 노력하는 나 의 친구관계는 마치 연인처럼 상대방이 날 좋아하게 만드는 법과 비 슷했다. 나와 친구에 대해서 생각하는 관점이 같아서 이 구절이 잘 기억에 남는다. 현대인들의 비극 쉽게 말하면 ‘ 쇼코의 미소 ’는 현대인들의 비극이다 .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두 주인공, 소유와 쇼코 . 한편으로 보면 너무나도 잔인하다 . 소설은 행복한 결말이 아니라 불공평하고 허무하게 끝을 맺는다. 처음으로 결말이 슬픈 소설을 접한 거라 매우 당황스러웠다 . 하지만 다시 한 번 우리 사회를 둘러보니 , 작가가 현재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불공 평한 삶을 잘 이야기 속에 담아 놓은 것 같다 . 수만 명의 사람들이 오직 ‘성공’ 만을 위해서 하루하루를 희생하며 살아가고 있다 . 하지만 피나는 노력을 해도 그들 중 어떤 사람은 성공하고 , 나머지는 빛도 못 본 채,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이 책에서 쇼코는 와세다 대학 법대 에 합격했지만, 현실에 붙들려 결국 포기한다 . 소유도 마찬가지이다 . 영화감독이 되려고 서울로 이사를 온 후 많은 곳에 지원을 해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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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거절당하고 만다. 자신의 모습이 너무 수치스러워서 , 가족들에도 안부도 전달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 어둠속에 묵묵히 각자의 삶을 살 아간다. 이 책은 우리가 평소에 쉽게 느낄 수 있는 정말 ‘ 단순한 ’ 것 들로 이루어져있지만 , 이 ‘단순한 ’ 것들이었기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같이 웃고, 아파하고,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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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아래 숨긴 진실 윌리엄 슬레이터, ‘계단의 집’을 읽고

김종서 John Suh Kim 20세기 공상과학소설 작가 윌리엄 슬레이터의 수작 , ‘계단의 집' 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1974 년 처음 출판 되었고, 옛날 에 나온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색다른 소설로 전해지고 있 습니다. 이 이야기의 플롯을 말씀드리자면 한 작고 아담한 감옥에 다 섯 고아 아이들이 갇혀 생체실험을 당하는 내용입니다 . 소설 속에서 는 인간의 근본은 무엇인가 , 우리는 사회가 씌어준 가식의 가면을 벗 고 나면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등등 흥미로운 토픽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훗날 이 소설은 ‘헝거 게임즈 ’, ‘메이즈 러너 ’, ‘ 다이버전트’ 같은 디스토피아적 철학 소설의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이 소설 안에서 말 하는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신선하게 들려옵니다. 신이 아닌 인간 이 소설에 메인 테마는 생각보다 매우 간단합니다 . ‘실험 ’, 그리고 ‘본능’이죠.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다섯 고아들은 전부 영문도 모른 채 한 공간에 갇히게 되었고 좋든 싫든 협력을 하여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미숙한 아이들은 서로를 헐뜯고 , 서로를 의심하 고 이용하며 이야기는 서스펜스를 높이게 되죠. 처음에는 서로를 친 절히 대하며 자신만만하게 탈출을 논의하다가 나중에는 서로를 욕하 고 완전히 짐승의 본능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이 책은 우리가 자라면서 자연스레 쓰게 되는 사회의 가면 , 이 가 면을 벗어던지고 우리의 동물적 판단으로 행동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지 알려줍니다. 위험한 실험이 가져다주는 본능의 발견, 우리가 생각 하는 순수한 어린 아이들이 마치 찌든 어른처럼 콩가루가 되어 서로 를 물어뜯기 바쁜 와중에 그것을 지켜보는 차가운 기계, 이성적으로 고민을 한다면 그저 기계를 파괴하고 탈출하면 되지 않느냐, 라고 생 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기계는 이 굶주린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 합니다. 배고픈 아이들은 기계가 이 모든 것의 원흉이라는 사실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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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는 알면서도 마치 인형처럼 기계의 명령에 순종하게 됩니다. 먹 을 것을 주는데, 그것을 마다하는 아이는 거의 없습니다 . 마치 권력 자가 얼마나 횡포스럽고 악마처럼 악한지 속으로는 잘 아는 어른이, 월급이라든지 어떠한 보상을 얻기 위하여 꼬리를 흔드는 것처럼요. 아마 반정부주의자였던 원작자의 사상이 많이 묻어있지 않나 싶습니 다. 아이들은 악에 맞설 생각을 안 하고 마치 순하게 길들여진 애완 동물처럼 기계가 하란대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이 아 이들이 모자란다거나 멍청한 애들이 아닙니다 . 다 웬만하면 알만한 건 다 알고 있는 애들이죠. 그렇지만 그들은 이득에는 정의도 없다는 것을 환하게 보여주는 작가의 메시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 이 소설 은 절대로 가식적인 희망이라든지 부자연스러운 행복은 보여주지 않 습니다. 참담하도록 현실적이죠 . 아마 그건 의도적이었을 겁니다 . 인생을 편집하여 “세뇌”, 그리고 그것에 의한 “판단 ”, 그건 계단의 집에서 들려주는 주요 사상입니다 . 실제로 현실에서도 많이 일어난 일을 공상의 세계 에서 은밀하게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이 작가의 특징입니다. 제 각각 소설 속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아이들은 처음에는 서로를 다그 치고, 일으켜 세우며 , 다소 경계를 하더라도 공통된 목적으로 팀워크 를 발휘했습니다 .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방법은 점점 없어져만 가 고 아이들 또한 절망적인 심정에 빠지게 됩니다 . 이제는 더 이상 인 정사정 봐주지 않고 , 그저 살아남는 것에만 신경을 쏟게 됩니다 . “우 리가 함께”가 아닌 “나 혼자서 ” 라는 방향으로 진행되죠 . 사실 이 부분이 저에게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원래 예상했던 전개와 정반대로 흘러갔으니까요 . 원래 대부분 이런 공상과학 디스토피아적 소설을 읽으면 거의 항상 위험한 세계에 맞서 싸우는 아이들이 스스로의 의리로 똘똘 뭉쳐 악을 물리치는 식 으로 갔을 텐데 이 소설은 그 클리셰를 의도적으로 박살낸 것으로 보 입니다. 처음에는 밝은 태도로 시작해 어둑한 결말로 이어지죠 . 이런 점에서는 전 꽤 신선함을 느꼈습니다 . 마치 판타지적 이상의 사로잡 히지 않고 만약에 현실이 이렇다면 정말은 이럴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세뇌된 인생에 진정한 행복 따윈 없다 , 구원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 작가의 글쓰는 태도는 매섭고도 비관적입니다 .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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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작가, 본인 또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기에, 어느 정도 실제 경 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이겠죠 . 이 세상에서도 비록 정확하게 “이렇다” 라고 말하기에는 뭣하지만 비슷한 사례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 계속 되고 있습니다. 인종 , 성별 , 종교, 생김새 , 등등 우리는 부정하려고 해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 그 어떤 것에도 우리 시선에는 , 어느 정 도 사회가 넣어준 고정관념이 들어있습니다. 인간이 운명을 만드나 , 운명이 인간을 만드나 2001년 9월 11일 , 미국 최악의 테러사건이라 불리는 9/11 테러 사건은 극단주의 이슬람교파인 탈레반이라는 조직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였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에 관련된 이슬람교도들은 매우 극소수 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미국 전역에 이슬람 혐오 열풍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테러의 “ㅌ ”자도 모르는 그냥 순진한 이슬람교도들은 하루아침에 폭력배 이미지를 덮게 되어 버렸고 , 세계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곳곳에서 탄핵을 받았습니다 . 당시 이슬람 국가였던 아프가니 스탄은 탈레반의 우두머리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준 죄로 미군에 연쇄공격을 받았습니다 . 심지여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과는 아무 관 계도 없고, 그저 우연히 탈레반의 기지가 아프가니스탄 국경 내의 있 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 학살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뉴스에서 알리 는 자극적인 콘텐츠와 여태까지 쌓여왔던 이슬람교에 대한 오해가 폭 발해 오늘날까지도 ‘이슬람= 폭력 ’이라고 너무 쉽게 연관 짓는 사람들 이 많습니다. 그리고 , 이것과는 또 정반대의 세뇌도 있습니다 . 1865년 미국, 아마 아메리카 땅뿐만 아니라 이곳 한국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위인, 아브라함 링컨. 미합중국의 16대 대통령이자 미국의 남북전쟁을 끝내고 , 190cm 에 큰 키의 인상적인 수염 , 긴 턱시도와 톱햇으로 유명한 인물이죠 .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링컨이 역대 대통 령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은 이유는 다름 아닌 “노예 해방 ”이죠 . 수백 년 동안 핍박받던 흑인 노예들 , 낯선 땅으로 끌려와 짐승 취급 을 받으며 지옥 같은 나날들을 보내야했던 흑인들에게 드디어 굴레를 벗겨주고 자유를 선사한 도덕 책 같은 자로 많이 알고 있습니다 . 자 유의 상징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 중 한명이기도 하죠 . 그 외 에도 “어니스트 에이브”, “맨 오브 더 피플 ”, 등등의 찬란한 별명과 함께 오늘날까지도 존경의 대상이 됩니다 . 그러나 이 얘기에는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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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적잖이 숨겨져 있습니다. 첫째, 링컨은 우리가 상상하는 만큼 자유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는 링컨의 이미지는 자유와 인권을 무엇보다 앞 세우며, 사람들을 , 백인이든 흑인이든 모두 평등하게 사랑한 예수 같 은, 거의 비인간적일 정도로 긍정적입니다 . 하지만 , 실제 사료를 뒤져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 링컨이 노예제도를 반대하고 그 폐 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건 맞지만 , 그건 언제까지나 정치적인 목적 이 있었습니다. 지역 감정의 악화로 점점 분산되는 미국을 다시 융합 할 핑계가 필요했던 거지요 . 당시 링컨은 북쪽 출신이었고 , 속해있는 당 또한 북이었으니 당연히 노예제도 타도를 꿈꾸는 북의 손을 들어 줘야할 의무가 있었지요 .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 1858 년 9월 18일 , 링컨은 분리되는 남북을 진정시키기 위해 일부러 친남적인 연설을 했 습니다; “I will say then that I am not, nor ever have been, in favor of bringing about in any way the social a nd political equality of the white and black races.” 이 연설의 핵심내용을 번역해보자면 , 링컨에게 정말로 중요했던 건 미국의 통일이지, 그것을 위해서라면 인종차별쯤이야 문제없다는 말입니다. 자유의 상징, 아브라함 링컨이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 왜냐하면 그들 머릿속 이미지에는 링컨은 정의롭고 , 대의를 위하며 , 결코 이런 반인륜적인 말을 할 사 람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 하지만 이건 분명히 기록되어있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링컨은 결코 노예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남북을 통일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죠 . 그래서인지 흑인들은 해방됐음에 도 해방이 안 된, 참 아이러니한 상황에 걸리게 됩니다. 북쪽에서는 어차피 노예가 없으니 노예법은 아무 의미가 없고 , 남쪽은 북쪽이 세 운 법이라면 콧방귀를 뀌고 꿋꿋이 제 갈 길을 갔습니다 . 흑인들은 그저 말로만, 법으로는 해방이 된 건 분명히 맞지만 핍박은 그 이후 로도 쭉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졌습니다. 이걸 아는 데도 사람들과 역 사학자들은 링컨을 추앙하는 것일까요 ? 아님 앞의 내용으로 돌아가 서, 왜 수만 명의 이슬람교도들은 저지르지도 않은 죄의 대가를 혹독 하게 치른 걸까요 ? 그건 사실 간단하지만 이해하게에는 좀 난잡한 데 에 있습니다. 바로 세뇌에 의함 판단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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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슬람교도들은 폭력적이고 과격하며 테러를 일삼는 자들 이라고 수없이 들었고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노예들 을 구원해준 위대한 리더라고 어렸을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 어봤기 때문이죠 . 우리가 오랫동안 어떤 것에 , 어떤 현실에 계속 존 속하게 되면 그 현실이 틀렸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려워지고 , 인정 하기가 힘들어지죠. ‘ 나’의 존재와 ‘ 나’의 인생의 차이 옛날에 선불교의 창시자, ‘달마’ 라는 대사의 이야기를 쓴 연대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 거기서도 엇비슷한 내용을 설명하더군요 . “넌 네 의식을 거쳐서 나오는 것만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 하지만 네 의식은 너 자신이 낳은 편견의 산물이야.” 이건 자신에게 부처님의 깨달음을 가르쳐달라는 한 젊은 중에게 달마가 남긴 한마디입니다 . 이게 뭔 말이고 하면 바로 인간의 현실 은, 즉 인간이 보고 배우는 것은 실제 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입 니다. 내가 무언가에 의해 ‘이 사물A 는 사물B다 ’라고 배우게 된다면 , 내가 느끼는 현실에서는 사물A는 사물 B가 되는 것입니다 . 내가 어떻 게 내 주변 사물에 대해 배우느냐에 따라서 내 세상과 현실이 증강되 는 것이지요.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 이 달마의 철학이 소설 ‘계단의 집 ’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 그 연관성은 생각보다 가 깝지요. 현실, 그것은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것, 즉 이 소설의 주인공들의 현실은 그들의 욕망이 , 그들이 기계로부터 세뇌되었기 때문에 차차 그들의 현실 평범한 것에서, 절 망적인 것이 되지요. 사실 이야기가 아이들의 입장에서 나열되어서 그렇지, 실제로 상황 바깥으로 나와서 얘기를 본다면 그리 심각한 상 황인 것도 아닙니다 . 식량도 제때 공급되고, 가끔씩 탈출에 대한 힌 트도 생기고, 그리고 누군가에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 것도 아닙니 다. 그러나 우리는 , 보는 관객들과 아이들은 모두 마치 뭔가 일이 고 조되고 있는 것 같은 서스펜스를 느끼게 되죠 . 그게 작가의 실험입니 다. 좀 더 거대한 스케일의 “파블로프의 개 ”인 것이죠. 서로를 헐뜯 고 모든 걸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현실을 뒤틀고 뒤바뀌게 해 마치 작은 일이 큰 일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착각이라고 부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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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만, 이 사람들에게는 현실입니다 . 그들의 정신이 창조해낸 현실 , 기계는 그저 집을 지었을 뿐 , 그 좌절과 고통의 집으로 들어가길 선 택한 것은 본의 아니게 아이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밖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던 그 과학자들에게 모든 잘못 떠넘길 수도 없는 것이 지요. 그 누구도 착한 등장인물이 없는 이야기, 주인공이 시간이 흐 를수록 스스로의 어둠에 먹혀져 자기 자신의 악당이 되는 이야기 , 마 치 모든 것이 순리대로 이루어진 것처럼 , 커다란 계단의 집 . 그것이 이 책의 주테마이기도 합니다 . 그런 면에서는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 다. 뇌가 만드는 필터 어렸을 때 장염에 걸려 앓아 누운 적이 있습니다 . 그때는 몸이 아 프고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처지라 굉장히 괴로웠습니다 . 그래서 인지 모든 게 부정적으로 보였습니다 . 세상이 어둡고 싫어졌습니다 . 세상은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내 정신이 괴로움에 빠지니 모든 사물이 제게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 평소에는 죽을 싫어하지는 않고 가끔씩 즐겨먹을 정도였는데, 장염에 걸리니 죽만 먹게 되고 , 그래서 죽만 보면 장염의 악몽이 되살아나 꺼리게 되었습니다 . 그렇 다고 그 죽을 탓할 수 있을까요 ? 내 현실은 바뀌었지만, 그 죽은 그 대로입니다. 제가 먹을 때랑 안 먹을 때랑 그 죽을 구성하는 입자는 똑같죠. 하지만 제 현실에는 다른 게 된 겁니다. 이게 바로 , 달마가 , 그리고 이 소설의 작가 “윌리엄 슬레이터 ”가 , 전하고자하는 주요 메 시지겠지요. 그저 화려한 게 아닌 어두운 다크 공상과학소설, 인간의 현실과 그것을 조종하는 실험 , 이 책 또한 , 여러 개의 메시지를 연결 하는 거대한 계단이 아니었을까요? 1974년도에 이런 수작이 나왔다 는 사실에 정말 감탄했습니다 . 요즘에는 도통 보기 힘든 장르의 유니 크한 소설이지요 . 이 이야기는 이런 내용만 봐서라도 누구한테도 적 극 추천하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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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 폐지 김유진 Eugene Kim 사형제도는 소위 ‘죽을 죄’ 를 지었을 때 집행되는 법이다 .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최근 사형 집행을 실행했을 때가 1997 년 12 월 30일이라고 한다 . 즉 , 한국에서는 10 년이 넘는 시간동안 사형이 집행 이 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한국은 국제사면위원회에 의해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도 분류되었다 . 하지만 한국은 아직 사형제도를 법으 로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도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 이 있다. 이렇듯 사형제도는 현재까지 아주 오랫동안 논쟁을 하고 있 는 문제이기도 하다.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논의의 가장 큰 필 요성은, 사형제도는 사람들의 심리를 불편하게 한다는 데 있다 . 왜냐 하면 사형 제도는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기 때문이다 . 또한 아무 리 엄격히 법을 시행해도 계속 흉악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사형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논의의 필요성이 있다 고 하겠다. 나는 우리 사회가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 사 형제도는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로 ,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합 법적으로 죽여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 이유가 어찌되었든 누가 누구 를 죽인다는 것은 엄연히 살인행위다 . 아무리 심한 범죄를 지었어도 사형제도를 실행한다면 법이라는 이름으로 누구를 죽이는 것이나 다 름없다. 만약에 범죄자가 사람을 죽여서 사형 제도를 실행해야 한다 면, 그 범죄자를 죽이는 사람도 그 범죄자나 다름없이 인간을 죽인거 나 똑같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두 번 째로 사형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근거는 우리나라에서 사 형 제도를 실행한지 무려 10년이 넘었다는 점이다. 아무리 아직까지 남아있는 법이라도 한국은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었기에 그 냥 이 기회에 사형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세 번째로는 사형제도에서도 오판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근래에 오판사례는 1992 년 어떤 사람이 애인을 살해한 혐의로 징역 12년을 받고 수감돼 있다가 진범이 잡히면서 풀려난 것이다 . 2005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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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서 부녀 납치 및 강도범으로 몰려 10주 6 일 동안 감옥살이를 한 이후 진범이 잡혀서 풀려난 사람도 있었다 . 국가인권위원회에 의 하면 법관이나 변호사들도 오판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사형제도에 비할 수도 없는 작벌도 오판이 있는데 , 사형 제도는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 사형제도는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법이다. 오판을 통해 잘못이 없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가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이런 위험이 있는 사형제도는 폐지해야 한다. 나는 이와 같은 생각들을 근거로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생 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실질적인 사형 폐지국이면서 아 직까지 실제로 폐지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형제도를 실행할 수 있다. 사형제도를 폐지했을 때 범죄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고려 하여 우리는 사형제도 폐지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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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수육, ‘ 부먹이냐, 찍먹이냐’ 손준호 Junho Son 세상에는 대답하기도 , 대답하지 않기도 에매한 질문이나 논쟁들이 많다. ‘ 엄마가 좋아 ?’와 ‘ 아빠가 좋아 ?’, 사이다냐 콜라냐 , 탕수육 부 먹이냐, 찍먹이냐 . 이것들은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끊이지 않 는 논쟁거리이다. 나는 이 글에서 그 중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 바 로 탕수육의 소스를 처음부터 뿌려서 먹을 것이냐 (부먹파), 아니면 찍어서 먹을 것인가 (찍먹파 )에 대한 논쟁이다. ‘ 부먹파’와 ‘ 찍먹파 ’의 차이점은 취향이 다르다는 것이다 . ‘부먹파 ’ 는 쫄깃쫄깃한 식감과 소스와 고기가 충분히 어우러진 맛을 좋아한 다. 하지만 ‘찍먹파 ’는 탕수육 튀김옷의 바삭한 식감과 고기 본연의 맛을 충분히 느끼는 것을 더 좋아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대립이 생기는 첫번 째 이유로는 요리사의 개인 역량을 들 수 있다. 직접 중국집을 방문하여 탕수육을 먹을 땐 대부 분 기본으로 소스가 얹어 나오기 마련이다 . 탕수육을 먹기 전 소스를 부었을 때 적당히 튀김옷과 어우러져 맛있는 탕수육을 만들어 낸다면 ‘찍먹파’ 와 ‘부먹파 ’ 둘 다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 음식점에서 먹는 시 간을 고려해 보아도, 오래도록 먹는 것이 아니라면 눅눅해질 일은 없 다. 하지만 먹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 여기서 근본적 인 해결 방법은 ‘ 찍먹파 ’는 탕수육이 나왔을 때 바로바로 빨리 먹어 치운다면 찍먹과 다름없이 그 맛을 즐길 수 있다. 부먹파는 자기의 주 메뉴, 예를 들어서 짜장면이나 짬뽕을 먹으면서 조금 기다리면 탕 수육의 소스가 튀김옷에 적당히 스며들어서 부먹 상태의 탕수육의 맛 을 즐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해결이 이처럼 쉽지 않은 문제의 충돌은 대부분 배달 상태 의 탕수육에서 일어난다 . 한국인들은 배달 음식을 전 세계에서도 가 장 많이 시켜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우리의 주요 배달 메뉴인 중화요리의 대표 메뉴가 탕수육이기도 하다 . 이 경우에는 찍먹도 부 먹도 애매한 상황이 일어나게 된다. 배달 요리의 특성상 요리를 하고 바로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므로 약간의 대기 시간 후에 먹게 되는 현 실을 피하긴 어렵다. 이 때 탕수육의 경우 대다수의 중화요리 음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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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랩으로 포장해서 배달되기 마련이다. 그럼 이미 부먹과 같은 상 태가 되어 버린다 . 습기로 인해 탕수육이 눅눅해버리기 때문이다 . 그 리고 그 맛도 ‘찍먹파 ’와 ‘ 부먹파 ’의 이상적인 맛과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하지만 집에서 편히 시켜먹는 배달 음식의 장점 앞에서는 그 어떤 논쟁도 사실 무의미하다. 내 생각은 결국 부먹이냐 , 찍먹이냐 상관없이 먹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왕 탕수육을 먹는다면 소스와 탕수육을 분리해서 내오는 게 논쟁을 가라앉히는 최고의 방법이다 . 엎지른 물은 다시 주 워 담을 수 없듯이 소스를 부어버리면 부먹외에 선택지가 없어지게 된다. 사람들은 때로 부먹과 찍먹의 논쟁 만큼이나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두 파벌이 나뉠 필요도 없이 맛있게만 먹으면 되는데 그걸 굳 이 더 맛있게 먹겠다고 편을 갈라서 싸우는 꼴불견이다 . 잘만 튀겨내 면 맛있다는 이연복 쉐프의 명언의 생각난다 . 완벽한 해결책은 없다 . 왜냐하면 음식은 결국 자기의 취향이기 때문이다 . 탕수육도 일단 뱃 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은 맛있는 탕수육이다 . 작은 것에 목숨 걸지 말고 더 중요한 본질을 볼 수 있는 우리가 되었음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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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의 참혹한 현실 김애린 Erin Kim 낙태란 여성의 자궁에 있는 태아를 의료기술을 이용하여 인위적으 로 없애는 것을 뜻한다 . 낙태의 과정은 실제로 매우 복잡하며 , 기본 적으로 의사를 동원해 수술로 인해 태아를 죽이는 행동을 가리킨다. 낙태를 결심하는 이유는 여성에 따라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원하지 않는 임신을 바탕으로 낙태를 선택한다. 낙태죄란 현재 대한민국 정부에서 낙태를 시행할 시 법적으로 처 벌하는 법을 말한다 .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현재 전 세계에서 낙태가 도덕적으로 혹은 상식적으로 올바른 행동인지, 그리고 낙태를 허용해 야 할지는 반복적으로 토론되고 있는 문제이다. 현재 유엔에 등록된 193 개의 나라 중에서 58개의 나라들이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고 한 다. 뿐만 아니라, 2017 년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51.9% 의 사람들이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36.2%의 사람들이 낙태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고 한다 . 이 정도로 팽팽 한 양쪽 의견이 있기 때문에 ‘낙태죄’ 라는 문제는 지금 사회에서 아 주 중요한 쟁점이다. 나는 낙태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다른 한 생명체의 생사 여부를 다른 제3자가 결정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머 니의 뱃속에 있는 태아라도 엄연히 독립된 생명체이기 때문에 소중히 여겨야 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근거를 뒷받침하자면 다음과 같다 . 첫 번째, 낙태는 살인이다. 살인의 사전 뜻을 보자면 ‘사람을 죽이 는 행위’라고 정의된다 . 낙태는 이와 마찬가지로 뱃속에 있는 태아를 죽이는 행동을 뜻한다. 태아는 여성의 몸에 있지만 혼자만의 독립된 개체이다. 아무리 여성의 몸에 있더라도 여성은 태아를 소유할 권리 , 당연히 죽일 수 있는 권리가 없다 . 낙태죄의 폐지를 주장하는 쪽에서 는 ‘태아는 생명체가 아닌, 세포 덩어리이기 때문에 이른 시기 낙태 를 허용해야 한다 ’는 의견이 근거로 종종 등장한다 . 하지만 나는 정 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을 하는 그 시점부터 생명은 시작되었다고 본 다. 그 이유는 태아는 놓아두면 그대로 자연스럽게 온전한 인격체로 성장하는 가능성을 지닌 생명이기 때문이다 . 이것은 혼수상태에 빠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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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 회복 가능성이 있는 인간을 죽일 때 그것은 명백한 살인에 해당 한다는 논의와도 같은 맥락이다 . 태아도 마찬가지로 그대로 발달하게 두면 정해진 시간 뒤 무조건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나게 될 것인데, 그것을 죽이는 것이 어떻게 살인죄가 아닌지가 내 의견이다. 사람들은 ‘태아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세우기도 한다 . 우리가 보기에 고통을 느끼지 못한 다고 여겨지는 태아도 당연히 도덕적으로 죽이지 않아야 한 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두 번째 , 많은 사람들이 낙태죄를 악용하며 사회를 혼 란에 빠뜨릴 수 있다. 낙태죄 를 폐지하면 원하지 않는 임 신을 하게 된 모든 여성들이 낙태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게 된다 . 정작 성폭행 을 당해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게 된 여성들에게는 필요할 수도 있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이것을 악용을 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게 되더 라도 낙태라는 선택권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임신을 가볍게 여기고 피임을 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다. 이런 경우에는 사회가 혼란에 빠 지며 불공평해진다 . 임신을 가볍게 여기고 피임을 하지 않아 임신을 하게 된 사람들에게 한 생명체를 죽여도 되는 권리가 주어지면 안 된 다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세 번째, 낙태는 위험하고 비인간적인 시술이다 . 많은 사람들은 낙 태가 안전하다고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 . 하지만 현실적으로 낙태 는 여성과 태아 모두에게 위험한 비인간적인 수술이다 . 7.9%의 출생 사망은 낙태로 인해 일어난다 . 언론에 공개된 낙태 수술의 영상을 보 면 얼마나 위험한 수술인지 알 수 있다 . 여성의 몸을 열어 태아를 억 지로 꺼내는 수술은 많은 신체적 부작용을 유발한다 . 이 부작용에는 불임 및 여러 신체적 장애 , 암 등이 있다 . 나는 이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우리 사회가 낙태죄를 유지해야 한 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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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도 엄연한 生命 임 담 Dahm Lim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낙태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낙태란 ‘ 태 아를 자연분만기 이전에 인위적으로 모체 밖으로 배출시키거나 모체 내에서 살해하는 것’ 을 말하는데 , 이는 살인행위와 마찬가지로 범죄 로 규정되어 있다 . 그럼에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낙태죄 폐 지’를 요구하는 청원 참여자가 2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고 한다. 이 렇게 적지 않은 수의 국민들이 낙태죄가 폐지를 원하고 있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낙태죄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낙태 행위는 태아의 생명권을 빼앗아간다 . 낙태죄 폐지를 주 장하는 사람들은 낙태가 죄가 아닌 여성의 권리라고 흔히 말한다 . 물 론 임신을 한 상태에서 낙태 여부를 정하는 것은 여성의 선택에 속한 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 하지만 이런 생각은 태아의 생명권을 무 시하는 것이다. 비록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라고 할지라도 이는 국 가가 보호해야 할 하나의 소중한 생명이다. 태아는 12주가 되면 머 리, 몸, 팔과 다리의 모습을 갖추고 , 심장도 박동한다고 한다. 12 주라 는 짧은 시간 안에 인간의 형상을 갖추어 나간다 . 여성이 출산의 권 리를 가지고 있듯이, 여성은 자신이 임신한 한 생명의 권리를 지키는 책임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낙태죄가 폐지되면 오히려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하 게 될 것이다. 생명의 존엄성을 느낀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하는 아주 기본적인 태도이다. 그럼에도 태아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발생할지도 모를 현실에서의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그 태아의 생 명을 멋대로 짓밟는다는 것은 오직 살아있는 사람이 자신만을 위한 무척 이기적인 태도로 보인다 . 특히 우리나라처럼 남아 선호현상이 강한 문화에서는 태아의 성별을 출산 이전에 미리 알고 원치 않는 성 별의 태아를 태어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 만약 이런 일이 법적으 로 허용된다면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엄을 어떻게 얘기할 수 있겠는 가? 셋째, 새로운 아기의 삶과 죽음을 결정짓는 것은 결코 임신부만의 권리가 아니다. 여성의 모체 밖으로 나온 순간부터 태아는 여성의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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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일부가 아닌 독자적인 권리를 지닌 한 인간 개체가 된다 . 태아를 임신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태아가 태어나 생명을 가진 이후에는 아기의 생사를 마음대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 우리나라의 현 행법에 따르면, 태아를 죽인 상태에서 여성의 몸 밖으로 인위적으로 배출하는 순간 낙태죄라는 범죄행위가 성립된다 . 그리고 여성의 몸 밖으로 살아있는 태아가 나오는 순간 그 태아는 하나의 생명체이므로 이를 죽이는 것 또한 살인죄로 벌을 받게 된다. 넷째, 낙태죄를 폐지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여성의 건강문제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려를 해봐야한다. 낙태를 하는 과정은 쉽지 않 다.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 2012년 10 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 친 여고생이 낙태수술을 받는 중 사망하였다 . 또한 뉴욕의 구트마커 연구소(Guttmacher Institute)가 발표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안 전하지 못한 낙태로 전 세계에서 매년 7만 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고 있다.”고 보고되었다 . 이렇게 낙태는 그 윤리적 문제점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인한 여성의 건강 권리마저 위협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 다. 이러한 이유를 통해 나는 낙태죄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한 국가의 법령은 소수의 이기적인 욕심이나 선택을 위해 존 재해서는 안 된다 . 그보다는 보편적인 다수의 국민들의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행복,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낙태를 죄로 금하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불편하고 어려운 문제점만 생각하지 말고, 낙태를 허용해서 생길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혼란을 고려해야 한다 . 아울러 인간이 다른 인간의 생명을 함부로 죽 일 수 있는 것을 국가가 합법적으로 용인함으로써 파생될 수 있는 도 덕적 측면도 깊이 성찰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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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결혼의 허용과 그 문제점에 대한 고찰 하지민 Benjamin Ha 모든 인간은 스스로가 바라는 바를 행하며 살아간다 . 이 선택과 행동의 권리는 헌법 제 10 조와 12 조에 명시되어 있는 국민의 기본권 이며, 정의의 실현에 있어서 침해될 수 없는 자유이다. 근현대 철학 자 존 롤스의 ‘정의론 ’은 이런 정의의 실현이 유지되기 위한 조건으 로 사회계약론을 제시하였다 . 필자 또한 동성결혼의 주제를 이 계약 론으로 풀어나가려고 한다 . 존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한 사회의 이끄 는 자와 이를 따르는 자에게 각각 다른 의무를 부여한다 . 이끄는 자 , 즉 정부는 국민이 정당한 선택을 만들 수 있도록 인도할 의무가 있으 며, 따르는 자, 즉 국민은, 이끄는 자의 인도를 받아들일 의무를 가지 고 있다. 물론 루소는 이것보다 훨씬 풍부하고 자세한 사회계약론을 내놓았지만, 사회계약론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끄는 자와 따르는 자의 의무, 즉 국민과 정부의 균형을 나타내는 데에 있다 . 동성결혼의 허용도 이 계약론과 비슷하게 행해진다 . 그럼에도 불 구하고 21 세기 국제 사회는 동성애자의 자유와 권리와 같은 극히 단 편적인 이유만을 가지고 동성애를 미화시키고 있다 . 국민에게 주어진 결정의 자유가 절대적인 자유인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 그러나 그 절 대적인 자유에는 포함하고 있는 한계가 있고 , 동성결혼의 허용은 그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기에 , 동성결혼의 허용은 사회계약론과 정의에 위배된다고 생각한다. 먼저 사회계약론에서 주장하는 국민의 권리의 한계를 설명하겠다. 전에 서술한 바와 같이 국민의 자유와 의무가 균형을 이루어야만 정 당한 사회를 구성해 나갈 수 있다 . 국민의 권리에는 헌법에 제시된 기본권과 그 부속 자유가 있으며, 의무에는 정부에서 요구하는 바 , 즉 납세와 국방의 책임 등의 4대 의무가 있다 . 루소는 이 의무가 자 유의 한계라고 주장하며 , 국민과 국가는 국가의 설립부터 주어진 계 약이 있기에 이 의무를 지키는 자만이 정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 갈 수 있다고 말한다 . 그러나 동시에 루소는 한 국가의 일원이 되지 않기 위해 이 계약을 철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 즉 , 모든 국 민과 국가가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 사회의 계약을 따르는 의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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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져야 하며, 이 의무의 부속 조약이 헌법상 4 대 의무가 되는 것이 다. 동성결혼은 이런 측면에서 허용될 수 없으며 , 그 자세한 이유를 서술하도록 하겠다. 첫째, 동성결혼은 법에서 정의하는 결혼의 궁극적인 목표와 그 사 회적 역할을 흐려지게 한다. 법상의 결혼, 즉 국가와 법 내에서 이루어지는 조약은, 결혼이라는 일종의 계약에 대한 특권이다 . 결혼이 권리가 아닌 특권인 이유는 결 혼의 성립 요건이라는 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약 결혼이 투표나 재산권과 같은 권리라면 , 결혼은 누구나 법이 정한 국민이라면 제약 없이 시행할 수 있어야 한다 . 하지만 대한민국 민법 제 809 조 , 8162 조 , 817조와 819조은 그 요건과 제약을 다음과 같이 명시한다. ▪배우자의 6 촌 이내의 혈족인 인척이거나 이러한 인척이었던 사 람과는 결혼할 수 없습니다 . (「민법 」 제809조제2 호 ) ▪현행법상 처제와의 결혼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 만일 결혼하게 되더라도 당사자 , 그 직계존속 또는 4 촌 이내의 방계혈족이 그 취 소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 ( 「민법 」 제 816조 및 제817조 참조 ) ▪당사자 간에 혼인 중 이미 임신을 한 때는 그 취소를 청구할 수 없습니다. (「민법 」 제820 조 ) ▪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다시 결혼하는 , 이른바 중 혼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 ( 「민법 」 제 810조 ) 이와 동시에 대한민국 민법은 다음과 같은 조약을 명시한다: “위의 실질적 요건을 갖추더라도 혼인신고라는 행위를 하지 않으 면 법률상의 부부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부부의 권리와 의무의 행사에 제약이 따르게 됩니다.” 이 조약에서 눈여겨 봐야할 단어는 ‘권리’ 와 ‘의무’ 이다 . 즉, 혼인 신고와 중혼 및 근친 결혼 등에 대한 법들은 모두 결혼을 위한 의무 임이 분명히 밝힌다 . 이 의무들은 결혼의 과정과 결과 속에서 어떤 이에 불이익이 주어지지 않기 위함인데 , 이는 모두 이성간 결혼에 토 대를 두고 있다. 민법 제 820조등과 같은 법률이 존재하는 이유와 민 법 제 809 조와 817 조가 존재하는 이유들은 모두 동성결혼을 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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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고, 법에서 이런 법들에 효력을 부여하는 이유인 출산 증가 또 한 동성결혼을 통하여 그 의미가 상실된다 . 이러한 점들에 있어서 동 성결혼은 기초의 법률과 사상 , 그리고 정의 그 자체를 무너뜨리는 어 찌 보면 사회의 혼란을 야기하는 존재이다 . 법을 만든 것도 국민이 며, 그 법을 시행하는 주체도 국민인데 , 소수 특정 집단의 개인적인 사상에 의해 이런 법을 바꾸거나 무시하는 것은 사회계약론과 Jeremy Bentham의 행복론 (Utilitarianism)에 어긋나며 , 결코 정의롭 지 않은 행동이다. 둘째, 동성결혼은 성병의 확산을 급증시킨다 .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히 민감한 이야기가 오고가게 되니, 일단 근거와 증거로 주장을 시작하겠다. 첫째, 성교를 하는 인구 중 10.5%만이 성병 방지 기구를 이용한다. 둘째, HIV와 AIDS 같은 성병에 매 해 2 백만 명의 인구가 감염되고 있으며 , 이는 23,000 여명의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중 대한 전염병이다 . 셋째 , 성병은 동성 성교를 통해 주로 확산되어진다 . 자료에 의하면 약 83%의 syp hilis( 성병 )발병은 동성 성교를 통하여 발생 및 전파되었다고 한다 . 국가는 국민의 건강을 보호할 의무가 있 으며, 건강을 보호받는 것을 국민의 권리이며 , 이를 위하여 노력하는 것도 국민의 의무이다 . 건강하지 않길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리고 남에 의하여 , 그리고 정부의 무능력함에 의하여 자신의 건강과 삶의 질, 그리고 행복이 침해되기를 원하는 이도 많지 않을 것이다 . 과학적인 근거들은 모두 동성애( 결혼 )과 그 결과가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민주주의가 왜 생겼는지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서로 뺏기고 빼앗기는 삶과 인생의 불확실 성에 지쳤고, 같은 목표를 향하는 사람들과 함께 서로의 자유과 권 리, 그리고 행복을 보장하는 사회적 공동체의 형태인 민주주의를 만 들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 헌법 제 1조 2항에 나와 있는 것과 같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 모든 권리는 국민으 로부터 나온다. 필자는 동성결혼이라는 중대한 사회적 이슈가 발생했 을 때 진정으로 국민이 원하는 바를 위하여 행동하는 것이 결코 그것 을 합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굳건히 믿으며, 소수의 사람들을 핍 박하지는 않지만, 그 옳고 그름을 객관적으로 따질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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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학년


사과 고우근 Wookeun Ko “미안해.” “미안합니다.” 사과를 하면 화가 나다가도 기분이 또 좋아진다 사과는 맛있는 과일, 빨간 껍질 속에 하얀 속살이, 그리고 그 안에 단단한 씨가 있다. 화가 나 사과 같이 빨갛던 내 얼굴 그 속에 사과할 수 있는 하얀 마음 보여주면 “다음엔 또 싸우지 말자” 단단한 친구사이 만들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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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ry” “I am sorry” Even if you are angry but apologize You are going to be happy again Apples are delicio us, Red in the o utside and white in the insid e, Ther e are s eeds inside When you get mad your face gets red like an apple But you r eally want to apologize like the pure i nside of an apple Next time we won’t agai n Like seeds inside an apple We will make a lot of 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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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김관희 Joseph Kim

노란색에 울퉁불퉁한 과일 그냥 먹으면 시어서 바로 뱉는다 하지만 달콤한 설탕과 만나 레몬에이드를 만들고, 다른 재료들과 만나 맛있는 요리가 된다 레몬 같은 사람들이 있다 혼자 있으면 고집이 세서 친해지기 어렵지만 친구와 만나 좋은 팀이 되고 어려운 일을 만나 단련이 된다 시다고 그냥 버리면 아까운 그런 과일, 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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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llow bumpy fruit It is too sour so you spit it out But when it meets the sweet sugar It makes lemonade When it mixes with other ingredients It turns it to a delicious meal Ther e are p eopl e like lemon They are stubborn And hard to become friendly with When friends meet they become a team When hard issues strike fri endship heights stronger Don’t throw it away b ecause its sour Fruit is called a le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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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법 정우진 Woojin Chung 어쩔 때는 하기 싫지만 해야 되고 해야지만 미래가 보이는 공부 한번뿐이지만 공부만 해야 되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없는 인생 사람들은 일만 하는 개미 그런데 어쩌겠나 일을 해야 먹고 사는 세상 이 모든 것들을 하며 사람들 모두 성장한다 조금씩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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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윤지나 Jeana Yoon 삶은 마치 길 같다 넓어서 편한 길 좁아서 힘든 길 다리가 아파지는 오르막길 힘이 빠지는 내리막길 처음에는 넓고 큰 평평한 길을 걷고 있었다 그 길은 점점 좁아지고 점점 오르막길이 되어갔다 나는 지금 좁아서 힘든, 다리가 아파지는 오르막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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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꽃 장리준 June C hang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어린이 철부지 아가씨 인생은 험난한 땅 같다 나를 갉아먹는 벌레들 따가운 돌멩이 가득히 혼자서 외롭게 자라니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열심히 물먹고 자라다 가끔씩 하늘을 보면 언제쯤 저만큼 클까 저렇게 높이 클까 이렇게 벌레들이 많은데 항상 나를 갉아먹는데 멋진 꽃으로 자랄까 여러 가지 시련을 겪고 시간도 많이 지나고 땅을 내려다 보았더니 어느새 꽤 높이 왔다 나를 괴롭혔던 벌레들 멀리서 작아 보이고 결국은 이렇게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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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김현 Sean Kim 시간은 흘러간다 좋았던 기억도 슬펐던 기억도 강에 흐르는 물처럼 주르륵 그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사람들은 말한다 후회하는 일이 많다고 하지만 과거는 과거대로 미래는 미래대로 시계바늘 움직이듯 시간을 그렇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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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끝에는 무지개 주솔희 Hail ey Joo 나는 갈색 물고기다 수많은 시련들 수많은 고통들 수많은 눈물들 그 속에서 헤엄치면서 살고 있다 다른 물고기들은 은빛 색깔의 지느러미를 자랑하며 나를 비웃었다 착한 햇님도 따가운 시선으로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파도가 몰아쳐도 나는 계속 어떻게든 헤엄쳤다 다른 물고기들은 쉬엄쉬엄 헤엄치지만 나는 쉴 새 없이 헤엄쳤다 5 년이 지난 지금 갈색 지느러미는 보이지 않았다 황금 색깔 지느러미로 마법처럼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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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긴 수염고래 남경민 Andy Nam 너는 아는가 깊은 바닷속에 잠겨 홀로 발버둥치는 흰긴수염고래의 기분을 너는 홀로 가득 등만

아는가 남은 방안 채워진 공허함에 잠겨 켜놓은 채 가만히 있는 기분을

너는 아는가 홀로 남은 방안 밖에서 들리는 웃음소리가 너무도 멀리 있는 듯한 기분을 너는 아닌가 흰긴수염고래 같은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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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이야기 My Life Story

세라 Sara Boyce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세라입니다 . 저는 오늘 제 인생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는 우리의 정체성을 만듭니다 . 저는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아프리카에서 태어났어요 . 아프리카에서 3년 , 브라질에서 4 년, 미국에서 5 년, 한국에서 3년 살았습니다 . 저는 아프리카 , 케냐의 수도인 나이로비에서 선교사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내가 처음 으로 배운 언어는 탄자니아의 언어 , Kiswahili였습니다 . 저는 8 개월 만에 말하기를 배웠다고 합니다. 저는 3 살이 되었을 때 브라질로 갔습니다 . 저는 많은 친구들을 사 귀었고, 포르투갈 어를 유창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 저는 브라질에 살면서 ‘이제 내가 브라질 사람이 되었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 저는 4년 후 미국으로 돌아와 5년 동안 살았습니다 . 저는 포르투 갈어를 들을 때마다 브라질이 너무 그리웠어요 . 그래서 더 이상 포르 투갈어를 말하지 않았어요 . 미국에서 저는 “나는 이제 브라질 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도 아니야, 난 도대체 누구지 ?”라고 생각했어요. 마 음이 답답했어요. 그리고 저는 한국에 와서 3 년 동안 살고 있습니다 .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아직도 저를 완전히 외국인으로 대합니다 . 제가 길거리에 다닐 때마다 “한국어 어디에서 배웠어요?”,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하는 질문을 수없이 들었어요. 저는 이렇게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서 나라마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왜냐하면 나라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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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브라질에서는 갈색 피부와 곧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 미인입니 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미인의 기준은 하 얀 피부와 큰 눈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 서로 다른 문화의 사람들 이 정말 아주 다른 사람들인가요? 어떤 나라의 사람들은 다른 나라의 사람들보다 더 많이 가지거나 , 적게 가진 것이 있나요?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우리 모두가 여러 부분에서 다르긴 하지 만 결국 우리는 모두 같습니다 . 우리에게는 모두 영혼과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랑과 행복을 원합니다 . 감사합니다.

Hello everyone. My name is Sara. And I am going to be talki ng to you about my life story. Your id entity is made up of which country yo u are from. I have ma ny different id entities. I was born i n Kenya, Nairobi i n East Africa. I lived in Africa for 3 years, Brazil for 4 years, America for 5 years and Korea for 3 years. I was born in the capital of Kenya und erneath missio nary parents. The first language that I learned was

the language of

Tanzania, Kiswahili. I started speaking at 8 months old. When I was thr ee years old I moved to Brazil. I made many friends and I could speak Portuguese fluently. When I lived i n Brazil, I thought,” I had become Brasilian now.” After 4 years, I moved to America and lived there for 5 years. Everytime I heard Portugues e, I miss ed Brazil 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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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ch that I could n’t even speak Portuguese anymore. In America, I thought,” I am not Brasilian or American, then who am I?” I was frustrated. And then I came to Kor ea and have been living here for 3 years. But Korean people think of me as a complete foreigner. While I am walking out in public, people will stop and ask me,” Where are you from?”. I have heard that question nonstop. Since I have experienced many different cultures and been

to

several

country’s

ideal

different of

beauty.

countries, I Because

have

each

seen each

countr y

has

whatever is most important to them and every country has different ideals. In Brazil, their ideal of beauty is someone with tan ski n and straight hair. It is the same in America. However in Kor ea, the ideal of beauty is someone with white skin and big eyes . I want to ask you a questio n. Peopl e from different cultures, are they really that different? Just because someone is a nother race, does that make them better? The answer is ‘No’. We are all the same. Of cours e we are all different, but in the end we are all the same o n the inside. Because we all have a heart and a soul. We all want love and happiness.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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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음식 마리아니 Mariani Gutierrez Rodriguez

다양한 멕시코 음식

한국은 멕시코와 정말 달라요 . 특히 음식이 정말 달라요 . 멕시코 음식과 한국 음식은 비슷한 점이 하나 뿐이에요 . 그것은 매운 맛이 있다는 점이에요 . 그래서 저는 한국 음식에 적응하기가 어려워요 . 멕시코 음식은 정말 다양해요 . 다른 음식과 같은 맛을 가진 음식 은 없어요. 그런데 한국 음식은 맛이 다 비슷해요 . 예를 들어 김치랑 깍두기는 맛이 비슷해요. 멕시코를 생각할 때 내 마음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멕시코 음식이에요. 음식은 나에게 많은 경험을 떠오르게 해 요. 저는 멕시코에서 여름 동안 거의 매 일 승마를 했어요. 그때마다 고르디타스 를 먹었어요. 고르디타스는 천국의 맛이 었어요. 고르디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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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말, 토르타스 , 타코 , 토르티아는 멕시코에서 한국의 김치나 밥과 같아요. 토르티아는 멕시코 음식에서 정말 중요해요 . 그리고 달콤한 빵도 중요해요. 전통적인 빵도 있고, 현대의 빵도 있어요.

팬드모르또

콘차스

팬드모르또는 오래 전부터 온 빵이고 , 콘차스는 겨울에 마음을 따 뜻하게 해주는 빵이에요 . 이 빵들은 핫쵸코나 커피랑 같이 먹으면 정 말 좋아요. 저는 멕시코 음식을 사랑해요 .

English South Korea is really different compared to Mexico, specially food. Mexican and korean food have just one thing in similar, they are spicy. However for me it’s quite hard to adjust to this type of food. Mexican food is r eally divers e, there’s no plate that taste the same as another. While Korean food is still diverse, it’s not as diverse as Mexica n food. When I think of Mexico the first thing that comes to my mind is Mexican food . Food bri ngs me back many good and bad

memories . Duri ng

summer

almost

every

day after

horseback riding my family and I used to eat some gordi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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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the hot weather and an intense practice, eati ng a gordita felt like heaven. Tamales , tortas, tacos, and tortillas

are really common

dishes, that can b e eaten at any time and any situation. They are a really important part of Mexican cuisine. Sweet bread is also an important part of Mexican cuisi ne. Some of them were created thousands of years ago, whil e others are new. Pan d e muerto is a type of bread that is cons umed during the “Day of the Dead.” Co nchas are the best medicine for a cold heart during winter days. These two accompanied with a hot chocolate or coffee, are the best combination. I love Mexican food.

Spanish Corea

del

Sur

es

un

país

muy

disti nto

a

México,

especialmente si hablamos de comida. La comida coreana y la mexicana solo tienen una cosa en común, son picantes. Sin embargo para mí es un poco difícil acostumbrarme a su comida. La comida mexicana es muy diversa, ningún plato sabe igual que otro. Mientras que la comida coreana es diversa, no lo es tanto como la mexicana. Cuando pienso en México la primera cosa que se me viene a la

mente

recuerdos

es

su

tanto

comida. buenos

La como

comida malos.

me Por

trae

muchos

ejemplo

las

gorditas me r ecuerdan a Torreón, ciudad donde viví un añ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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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i

todos

los

días

d urante

las

vacaciones

de

verano

después de equitación, mi familia y yo pasábamos por unas gorditas, con el calor y la intensa práctica , comer una gordita s e sentía como el paraíso. Los tamales, las tortas, tacos y tortillas son comidas muy importantes, y se pueden comer

a

cualquier

hora

del

día.

Así

importantes el pan dulce también lo es.

como

estas

con

Hay panes que se

crearon desde hace miles de años, otros so n más nuevos. El pan d e muerto es un tipo de pan dulce que se consume durante el día d e los muertos. Las Conchas son la mejor medicina para un corazón frío d urante el invierno. Estos dos acompañados de un chocolate cali ente o un café son la mejor combinación. Amo la comida mexic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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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찬성과 에반 김애란, ‘노찬성과 에반’을 읽고

권진희 Jinhee Kwon ‘ 노찬성과 에반 ’은 김애란 작가님이 쓴 ‘바깥은 여름 ’이라는 책에 나와 있는 짧은 소설입니다 . 김애란 작가는 소설가이며 2003년부터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 2003 년에 ‘ 노크하지 않는 집 ’을 발표하며 작 품 활동을 시작했고 , 2005 년에는 대산창작기금을 받았습니다 . 또한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 2011 제 2 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 ‘두근두근 내 인생 ,’ ‘선릉 산책’ 등 많은 작품을 써왔습니다 . 2008 년 에는 인터넷 문학 라디오 방송 ‘문장의 소리 ’도 진행을 한 적도 있습 니다. 올해 국어수업 때 김애란 작가님의 작품들을 많이 읽어 보았습 니다. ‘ 노찬성과 에반 ’의 주인공은 10살인 아이 , 노찬성입니다 . 소설을 읽어가면서 찬성이와 에반의 첫 만남에 대해 읽었을 때 둘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졌습니다. 찬성이의 아빠는 사고로 돌아가셨고 엄마는 소설에 나오지 않으 며, 할머니께서 찬성이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 그래서 찬성이는 또래 아이들이 사는 것을 원했지만 많이 사지 못했습니다 . 어느 날 찬성이 가 휴게소에 묶여 있던 늙은 강아지를 봤을 때 무엇보다도 그 강아지 를 집으로 데려오고 싶어 했습니다 . 가난하다는 이유로 할머니께서 반대하셨지만 찬성이는 ‘에반’ 이라는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습니다 . 하 지만 찬성이 에반과 친해진 후 에반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 었고. 긴 고민 끝에 안락사를 시켜주기로 결심을 하게 됩니다 . 하지 만 안락사를 위한 돈이 부족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합니다. 그러던 어 느 날 에반이 집에서 사라져 집 밖에도 찾아보았지만 없어서 결국 에 반을 처음 만났던 휴게소로 찾아 갑니다. 찬성이 잃어버렸던 에반을 휴게소 근처에서 찾은 장면이 이 소설 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 찬성은 한 자루를 발견을 하고, 에반이 그 자루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찬성은 에반 의 죽음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아서 자루를 열어 보지 않고 그냥 그 자리를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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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은 꽤 오랫동안 그 자루 앞에 서 있었다. 몇 번 ‘ 노끈을 풀어 버릴까?’라는 충동이 일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자루 아래로 방금 전 보다 더 많은 피가 새어나왔다. 만지면 아직 따뜻할 것 같은 피였다. 이윽고 찬성이 몸을 돌려 걸음은 옮겼다. 자루에 든 게 뭔지 끝내 확 인하지 않고, 그때까지 오른손에 꽉 쥐고 있던 휴대전화를 든 채 자 리를 떴다.”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은 찬성이 집에 돌아가면서 에반을 떠올렸 을 때 용서를 생각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또한, 손바닥에 고인 땀을 보니 문득 에반을 처음 만난 날이 떠 올랐다. 손바닥 위 반짝이던 얼음과 부드럽고 차가운 듯 뜨뜻미지근 하며 간질거리던 무엇인가가. 그렇지만 이제 다시는 만질 수 없는 무 언가가 가슴을 옥죄었다. 하지만 당장 그것의 이름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몰라 찬성은 어둠 속 갓길을 마냥 걸었다. 대형 화물 트럭 몇 대가 시끄러운 경적을 울리며 찬성 옆을 사납게 지나갔다. 머릿속에 난데없이 ‘용서’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찬성이 선 데가 길이 아닌 살얼음판이라도 되는 양 어디선가 쩍쩍 금가는 소 리가 들려왔다.” 2 년 전에 우리 집에 강아지가 들어와 한 가족이 되었기에 , ‘노찬성 과 에반’의 이야기는 제게 많은 것들을 생각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아직 우리 집 강아지는 어려서 안락사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지만 , 나 중에 강아지가 나이가 들어서 많이 아프게 되면, 찬성이가 에반을 안 락사 시켜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던 것처럼 , 저 역시 한 가족으 로 있었던 강아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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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의 중요성 김애란, ‘노찬성과 에반’을 읽고

김정민 Brian Kim 동물은 늘 내 관심사 중 하나였습니다 . 그래서 애완동물을 키운 적도 있고, 동물에 대한 비디오를 보기도 했습니다 . 이 단편소설 ‘ 노 찬성과 에반’ 역시 동물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 어린아이 찬성은 아 버지가 돌아가신 후 고속도로에 있는 휴게소에 할머니랑 같이 살았습 니다. 어느 날, 찬성이는 휴게소에 놀다가 길가 옆에 아파하는 강아 지를 발견했습니다. 묶여있는 강아지를 푼 후 같이 놀고 , 씻고 , 돌봤 습니다. 그후 우정이 성장했고 찬성이는 에반을 가족으로 여겼습니 다. 할머니가 반대했었더라도 찬성이는 에반을 계속 돌보았지만 에반 의 상태가 악화되어서 찬성이는 동물병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 수의 사가 에반의 몸을 점검한 후 충격적인 소식을 찬성이한테 알려줬습니 다. 에반은 상황이 너무 악화가 되어서 결국 안락사를 하는 게 좋을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 하지만 찬성이는 돈이 충분하지가 않아서 결국 거절했고 돈을 모았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안락사는 미뤄졌습 니다. 그러던 어느 날 휴게소에서 놀고 있을 때 결국 큰 뉴스를 들었 습니다. 에반이 길가에서 차에 치여서 죽었다는 뉴스를 듣고 말아 찬 성이는 죄책감, 그리고 책임감에 빠졌습니다 .

내 슬픈 과거 나는 이 이야기에 많은 비슷한 경험이 많았습니다 . 내 강아지를 키우는데 책임을 질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한테 팔 수 밖에 없었습니다 . 나는 학교 때문에 강아지를 잘 돌볼 수가 없었고 , 또 우리 가족은 강아지를 씻길 때 모르고 다리를 골절시킨 적도 있어 2 달 동안 강아지의 부러진 다리를 돌봐야 했었습니다 . 그뿐만 아니라 나는 책임을 다할 자신이 없어서 결국 어쩔 수 없이 강이지를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 나는 그것 때문에 슬프고 미안했지만 책임감은 무거운 것이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 그 후 나는 더 조심하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반응을 할지 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 기로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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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면 나는 찬성이랑 에반이 처음 만났을 때가 명장면이 것 같습니다. 이야기에서 이렇습니다 .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찬성이는 햄버거를 먹 은 후 밖으로 나갔을 때 고속도로에서 하얗고 아픈 강아지를 만났습 니다. 찬성이는 이 풀이 죽은 강아지에게 다가가면서 묶인 강아지는 풀리고, 결국 찬성이와 살게 되었습니다 . 왜 이 장면이 명장면이었냐 면 찬성이가 에반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 이야기가 금방 끝이 났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나는 이 이야기가 재미있었던 이유는 너무 귀여운 찬성이의 성격을 더 알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결말에는 이 이야기가 더 우울해집니다 . 찬성이가 마지막으로 에반을 만나러 갔을 때 에반이 보이지 않아서 결국 휴게소 곳곳을 살펴봤는 데 결국 다시 찾을 수가 없어서 포기하려고 했지만 다른 운전사한테 강아지가 길가에서 치여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 왜 이 사연이 좋았냐면 찬성이의 책임감 , 그리고 죄책감을 드러나게 하는 부분이었 기 때문입니다. 찬성이는 결국 돈이 적고 안락사를 시킬 수가 없어서 미안한 마음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에반이 자살한 이야 기 때문에 찬성이는 미안한 마음밖에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 때 문에 나는 찬성이의 미래가 더 궁금해졌습니다 . 나는 이 이야기를 읽 은 후 찬성이 어떻게 자랄지 , 어떻게 책임지는 사람이 될지 궁금해졌 습니다.

왜 썼을까? 나는 왜 김애란 작가가 왜 이 이야기를 썼는지 궁금했습니다. 작 가가 왜 이 책을 썼는지 생각해보면 작가가 찬성이랑 똑같은 이야기 를 겪은 것 같았습니다 . 찬성은 에반 때문에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 었지만 끝에 에반이 죽어서 결국 미안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작가가 그런 똑같은 경험을 겪어서 결국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 한테 알려주려고 쓴 것 같았습니다 . 나는 이 작가의 책을 크게 존중 합니다. 나는 책임감, 그리고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 왜 냐하면 그것은 캐릭터를 성장하게 할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마지막이 우울했지만 이런 책을 만나게 된 것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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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 이 책은 가치가 풍부했고 , 이 책을 통해 인생의 중요한 레슨을 배 울 수가 있었습니다 . 이 책은 책임감뿐만 아니라 죄책감 , 그리고 미 안함을 잘 보여주는 책이었습니다 . 책임감에 대한 책을 좋아하는 사 람들에게 이 책을 다 보여주고 싶습니다. 찬성이는 에반을 고속도로 에서 발견한 후 같이 놀고 좋은 시간을 보냈지만 , 결국 에반은 고통 을 버틸 수가 없어 자살했고 , 찬성이는 죄책감이랑 책임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 그래서 이 이야기의 교훈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 이 시간을 보내며 좋은 우정을 만들고, 많은 기회를 사용해서 죄책감 을 최대한 느끼지 않도록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울하고 슬펐지만 다른 사람과의 우정, 그리고 책임 감을 배우게 하는 중요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 이 이야기는 죄책 감, 그리고 기회가 올 때 그 기회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슬프고 억울하지만 배울 점이 많습니다 . 그래 서 강아지를 키울 사람, 아니면 책임감을 기르고 싶은 사람들한테 이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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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이의 강아지 김애란, ‘노찬성과 에반’을 읽고

정우성 Woosung Chung 요즘은 애완견이 없으면 이상할 정도로 애완견을 키우는 것이 흔 해졌다. 애완견을 키우는 게 흔해지다 보니 유기견도 당연히 많이 생 겨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책임감이 없어서 강아지를 사고 끝까지 키우지도 않고 버린다 . 요즘 유기견이 너무 많이 생겨나고 있어서 유 기견이 들어오면 오래 가지고 있지 못하고 안락사를 해버린다 . ‘노찬 성과 에반’도 유기견에 대한 소설이다 . 이 소설은 찬성이라는 한 아 이와 할머니, 그리고 에반이라는 하얀색 강아지에 대한 이야기다 . 이 이야기에서는 찬성이와 에반이 어떻게 만나고 헤어지는지와 둘이 어 떤 일이 벌어지는지 얘기한다. 찬성과 에반의 이야기 이 책은 위에 말했듯이 찬성이, 에반 , 그리고 휴게소 분식집을 하 고 있는 할머니가 들어가 있는 소설이다 . 이 소설은 슬픈 소설이고 , 처음 시작은 에반과 찬성이 만나는 걸로 시작된다 . 둘이 만나서 찬성 이는 에반을 위해서 많은 것을 해오고, 에반이 아프다는 말에 안락사 비용까지 힘들게 얻으러 다녔다. 이 소설은 되게 실화 같았다 왜냐하 면 누구한테 진짜 일어난 일 같기 때문이다. 에반과의 만남

“흰 개가 찬성 주위를 빙그르르 돌며 찬성의 냄새를 맡았다. 그러 곤 뭔가 결심한 듯 찬성의 손바닥에 코를 대고 킁킁대며 혀를 내밀어 얼음을 핥았다. 순간 물컹하고, 차갑고, 뜨뜻 미지근하고, 간지럽고, 부드러운 뭔가가 찬성을 훑고 지나갔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 었다.” 이때가 찬성이와 에반의 첫 만남이었고 이때 소설이 시작되었다. 찬성이는 에반을 발견하고 얼음을 주면서 친해졌다 . 찬성이는 에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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핥는 느낌을 처음 느끼고 반한 것 같다 . 찬성이는 에반을 데리고 집 으로 향했고, 이제 에반 , 찬성이, 그리고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에반 을 처음 데리고 온 다음 할머니에게 처음으로 자기가 에반을 책임지 겠다는 말을 하면서 키웠다. 에반과의 이별 찬성이와 에반은 사이좋게 지내고 있엇다 . 찬성이와 에반은 잘 지 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에반이 이상했다 . “그런데 에반이 요즘 좀 이상했다.” 이 대사가 나온 날부터 찬성이는 에반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를 채고 무슨 일들이 생겨났다 . 이때 찬성이는 에반을 데리고 동물병원 을 데리고 갔고, 찬성이는 에반이 큰 종양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 찬성이는 강아지도 암에 걸리는 줄 몰랐다 하면서 놀랐고 , 에반에게 무엇을 해주고 싶어 했다 . 찬성이는 생각을 많이 하고 에반에게 제일 좋은 선택은 안락사라는 것을 알아채고 , 안락사 시킬 돈을 에반을 위 해 모으기 시작했다. 에반은 전단지를 나누어 주면서 10 만원을 모았 는데, 길 지나가다가 핸드폰 유심을 만들고 싶어 유심을 만들고, 또 지나가다 사고 싶은 게 보여서 바로 질러버렸다. 이제 에반을 안락사 시킬 돈이 없어졌고, 집으로 돌아갔다 . 찬성이가 에반을 잠깐 두고 어디를 갔다 왔는데 , 에반이 사라졌고 , 에반이 휴게소 앞에 차에 치 어 죽어있었다. 나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 내가 어렸을 때 좋은 장난감을 사고 싶 어서 돈을 모았는데, 다른 싼 장난감들이 사고 싶어져서 좋은 장난감 안사고 이상한 싼 장난감을 사서 후회한 적이 아주 많다 . 나는 참을 성이 없어서 보이는 것을 사고 싶어한다 . 그래서 찬성이와 나는 그점 이 닮은 것 같다. 참을성이 없거나 욕심이 많은 것 같다. 글쓴이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아마도 돈을 의미 있는 곳에 써야 한 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인 것 같다 . 왜냐하면 길가다가 보이는 강아 지를 데려가라는 이유는 아닐 것 같기 때문이다 . 찬성이가 돈을 번 것을 써야 되는 곳에 안 쓰고 다른 장난감이나 핸드폰 심카드를 사는 짓을 해서 에반의 안락사가 늦어지고 에반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 다. 내 생각에는 에반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자살을 한 것 같다 . 에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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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큰 종양이 있었고 , 많이 아파했다. 많이 아픈 상태에선 하루하루 가 아팠을 텐데 그것을 못 참고 자살을 한 것 같다. 일부러 차도로 쌩쌩 달리는 차에 뛰어 든 것이다 . 찬성이는 에반을 위해서 번 돈을 에반한테 쓰고, 자기가 사고 싶었던 것은 나중에 돈을 모아서 사는 것이 더 현명했을 것 같다 . 그래서 글쓴이는 돈을 잘 쓰라는 메시지 를 주고 싶어한 것 같다. 나는 이 소설을 나 자신에게 추천하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돈을 막 쓰기 때문이다 . 참을성이 없어서 보이는 대로 사고 싶어지고, 돈 을 오랫동안 모으는 스타일이 아니다 .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습관 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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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이의 첫 인생 경험 김애란, ‘노찬성과 에반’을 읽고

박상우 Benjamin Park 초등학생 찬성이와 그의 강아지 ‘에반 ’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 다. 우연히 유기견을 발견한 찬성이가 그 유기견 ‘에반 ’을 키우게 되 고 강아지가 아프면서 안락사를 시키기 위해 돈을 벌지만 , 결국 여러 유혹에 돈을 쓰게 되면서 결국 에반이 죽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노찬성과 에반의 첫 만남 찬성과 에반의 첫 만남이 이 이야기의 명장면이라고 생각을 합니 다. 찬성이는 할머니에게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떼를 부렸지만 할 머니는 화만 냈습니다. 찬성이는 꿈에만 그리던 강아지를 우연히 터 미널에서 버려진 아프고 나이가 많은 에반을 만나게 됩니다. 비록 찬 성이는 사람이고 에반은 강아지이지만 서로의 처지를 알게 된 둘은 한 식구가 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이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라고 생 각을 합니다. 찬성이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처음으로 책임을 갖게 됩니다. 즉 찬성이와 에반의 만남은 찬성이가 어린아이를 벗어나는 시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나와 노찬성의 공통점 저는 처음에 이 책을 읽고 나서 찬성이가 겪었던 일들을 머릿속에 떠올렸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지만 읽고 나서는 제 반응이 달라졌습니다 . 찬성이가 피가 묻어있는 비닐봉투를 확인 안했을 때 저는 제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저도 어렸을 때 제가 키 우던 강아지가 죽고 말았습니다 . 아빠가 아침에 일어나서 브라우니를 체크해 보니 숨을 안 쉬고 있었다고 말하였습니다 . 하지만 저는 찬성 이와 똑같이 브라우니가 진짜 죽었는지 확인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 냐하면 저는 오히려 브라우니의 싸늘한 시체를 보면 마음이 더더욱 아플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 옳은 판단인진 모르겠지만 저는 찬성이 의 마음을 충분이 이해하기 시작했고 책과 공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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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가혹함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느낀 점들이 많았습니다 . 그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았던 느낀 점은 얼마나 세상이 가혹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찬성이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다른 아이와 비슷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거기다가 돈도 없어서 휴게소에서나 밥을 때 우고 한참 친구들과 놀아야 할 나이에 핸드폰도 없어서 친구들과 연 락도 못한다는 점에서 찬성이가 안쓰러웠습니다 . 세상은 자비가 없습 니다. 겨우 핸드폰도 받고 에반도 만나서 한 식구가 되었을 때 세상 은 에반을 찬성이의 품에서 빼앗아 갔습니다. 저도 이런 비극적인 일 들이 어느 순간 방심을 하는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 습니다. 저도 만약에 찬성이와 흡사한 일이 일어나도 지나간 것은 지 나간 것으로 여기고 힘차게 맞서 싸우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현실의 고통을 말하는 용기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왜 글쓴이가 굳이 이런 무거운 주제를 골 랐는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글쓴이의 관점으로 보니까 이런 주제들도 써야 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가볍 고 즐거운 주제를 선호를 하지만 이러한 비극들도 있어야 현실의 고 통이 묻혀 지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 저는 오히려 글쓴 이의 결정에 동의를 하고 그의 생각에도 동의를 합니다 . 글쓴이는 아 마도 저 같은 사람들을 위해 이 소설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부모님도 있고 늘 원하는 걸 입고 그리고 먹을 경쟁력이 된다는 것이 어떠한 면들에서는 매우 평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 이유는 제 주 변에 있는 학생들도 대부분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기 때문입니다 . 하 지만 글쓴이는 오히려 힘든 인생을 사는 한 어린이의 삶에 주목을 하 기로서 저의 같은 운이 좋은 아이들의 무관심을 지적하는 것 같다고 도 생각을 했습니다. 나에게 주는 이 책의 의미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책은 충분한 가치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찬성이가 에반에게 주는 감정을 이해 못하는 친구들은 오히려 책이 따분하고 지루할 수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모두가 이 책을 한번 쯤은 읽어도 후회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 찬성이는 에반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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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추억뿐만 아니라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와도 아픈 추억이 있습니 다. 찬성이는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힘겹게 할머니와 살고 있습니 다. 이러한 일상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누구에게나 충 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 저는 이런 시나리오를 생각해 봤을 때 찬성이가 얼마나 대단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록 초등학생이고 돈도 많지 않지만 용기 있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친 구들도 반성을 하고 영감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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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과 도움을 주는 이야기 장강명, ‘알바생 자르기’를 읽고

최민경 Mink yung Choi ‘ 알바생 자르기 ’ 는 젊은 작가 장강명이 쓴 단편소설이다. 마치 현 실과 그래도 옮겨 놓은 것처럼 현실성 있는 내용으로 우리나라의 노 동과 고용 현실이 잘 담겨있다. 책 안에서 여러 갑을 관계와 여러 사람들의 관계가 여실히 드러나 있다. 사장과 직원 , 해외 바이어와 직원 , 중소기업과 대기업 , 노동자 간의 대립구조가 들어나 있다. 책 안에서 주인공은 과장인 은영과 알바생 혜미이다 . 이 소설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 혜미가 알바를 하는 동안 잘못한 부분이 많아 결 국 은영으로부터 부당해고를 받았고 , 제대로 된 알바 취급도 받지 못 한다. 사실 은영은 사장이 혜미가 2 년을 일을 해서 정규직으로 채용 되기 전에 해고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비췄지만 혜미가 불쌍하다는 이유로 계속 고용을 지속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혜미가 자신이 시키 는 일을 잘 하지 않고 , 지각을 계속 하는 등의 불성실한 근무태도를 보이며 자신에게 피해를 끼친다고 느껴지자 사장에게 혜미를 해고하 자고 말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느낀 점은 오직 혜미가 잘못한 부분이 눈 에 더 보여서 혜미가 해고를 당하는 게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소설을 읽고 마지막 부분을 보니까 회사 차원에서 4 대 보험 가입, 제대로 된 해고를 하지 않았다 . 처음에 읽을 때에는 , 혜미가 은영에게 요구하고 , 당당하게 따지고 , 그렇게 행동하는 모습 이 너무 괘씸해 보였다 . 하지만 , 내가 혜미의 입장이면 어떻게 했을 까 생각을 해 보았다. 생각을 하고 난 후 , 깨달은 것은, 내가 혜미의 입장이었더라면, 혜미가 마지막에 찾아와서 요구했던 것은 당연하게 나도 요구 했을 것 같다. 그냥 그런 것은 자기 자신을 현대사회로에 서 지키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혜미가 괘씸하기 보다는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졌다. 반면에, 혜미가 해고를 당하는 것 역시 이해가 된다 . 왜냐하면 혜 미가 한 행동들은 가끔 이해가 안가는 행동들이 많았다 . 특히 지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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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한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혜미는 인천에서 오는 1 호 선 지하철이 자주 고장이나 어쩔 수 없이 지각을 하는 것이라고 말을 하였다. 하지만, 혜미의 말만 따지고 보면, 그러면 인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지각을 한다는 뜻처럼 들렸다 . 혜미가 지하철이 여러 번 고 장 난 것을 아니까 그러면 조금 더 일찍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 다, 시간 약속은 사회에서 뿐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중요한 부 분 중 하나인데 그걸 그렇게 거의 항상 어긴다는 것은 해고를 당할만 한 충분한 이유라고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혜미의 문제점은 해보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고 과장 은영 이 시키는 일을 거절한 것이었다 . 은영이 혜미에게 여의도 공원에 가 보라고 시킨 일이 있었다 . 하지만 혜미는 단칼에 바로 자기는 위치를 모른다며 못 간다고 거절을 했다 . 보통 다른 알바생들이었으면 한 번 쯤 거기가 어디인지라도 찾아보고 노력이라도 하는 모습을 보였을 텐 데, 그렇게 바로 포기하는 혜미에게 너무 실망스러웠다 . 그러므로 , 나 는 이 소설을 읽고 알바생 혜미도 , 과장인 은영의 입장도 모두 이해 가 갔다. 이러한 노동과 고용 문제는 현실에서도 많이 일어나는 문제 중 하 나이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시대의 현재 노동문제를 많이 발견 하였다. 예를 들어 , 대기업의 경제 구조 , 노동자들 사이의 대립 구조 , 상사와 그 밑 직원의 관계, 회사의 회식 문화 등 , 많은 문제점이 드 러났다. 또한, 성차별로 인한 출산과 퇴직에 대해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 웃음을 요구하는 사장들, 혜미가 연예인을 닮았다는 얼굴 평가 등, 이러한 성차별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나왔다 . 특히 출산 때문에 퇴직을 하거나 휴직을 하면 , 요즘 많은 회사에선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데 현실에서 많이 나타나는 문제 중 하나이다 . 그리고 소설에서 는 혜미가 커피를 타오거나 누구를 대할 때 , 항상 웃는 모습으로 사 람을 대하기를 원하듯이 나온다. 예를 들어 소설 안에서 해외 바이어 들은 알바생 혜미가 뚱하고 싹싹하게 행동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 하면서도 혜미가 배우 ‘이다해’를 닮았다고 평가를 하였다 . 이 부분을 보면서 나는 왜 알바생을 이렇게 평가를 해야 될까 싶었다, 그냥 일 하러 온 것인데, 그것도 형편이 어려운 혜미인데 , 왜 저런 취급까지 받으면서 일을 해야 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또 우리나라는 새로운 사장이 새로 부임을 하면 여러 차례 회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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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게 된다. 하지만 , 회식비 중에 1 차만 해도 혜미의 한 달 월급보다 도 더 나왔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 회식비에서는 그렇게 혜미의 월급 보다도 더 쓰면서 혜미를 해고하려고 하는 이유 중 하나 , 혜미를 채 용한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말을 하는 회사가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우리나라 노동과 고용 현실이 하루 빨리 개선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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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이의 흐린 미소 김애란 , ‘가리는 손’을 읽고

왕지원 Ji na Wang 나는 이 소설을 처음 읽기 전, 일단 제목인 ‘가리는 손 ’부터 보았 다, 어쩌면 줄거리를 요약해 줄 수 있다는 생각에 . 제목을 처음 보았 을 때 손을 누가 가리는지 , 그리고 왜 가리는지 생각해 보았다 . 첫 번째 단락만 읽었는데, 어떤 사람이 요리하는 것이 눈앞에 펼쳐지듯 생동감 있게 묘사되었다 . 요리하는 사람은 주인공 ‘재이 ’의 엄마였다 . 한 요리에 많은 손질이 간다는 것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 그렇 게 엄마의 사랑을 받은 재이가 입을 가렸던 것이다. 그토록 간절히 아니라고 믿고 싶었던 재이 엄마의 마음은 재이의 열다섯 번째 케이크의 촛불 앞에서 촛불과 함께 꺼져 버린 것이다. 한참 동안 그 여운을 떨칠 수 없었다 . 소설을 다 읽은 후에 이런 생 각이 들었다. ‘재이 너무하네 . 어떻게 할아버지가 쓰러져 있는데 손을 가리고 웃을 수 있지?’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 혹시 ... 어쩌면 재이가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불리한 면

“앞으로 아이가 맞이할 세상은 이곳과 비교도 안 되게 냉혹할 테 니까. 이세계가 그 차가움을 견디려 누군가를 뜨겁게 미워하는 방식 을 택하는 곳이 되리라는 것 역시 아직 알지 못할 테니까.” 나는 이 부분이 마음에 와 닿았다 .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난다 . 어떤 일들은 좋은 일들이고 , 어떤 일들은 별 로 좋지 않다. 이 부분은 사회의 제일 큰 어려움을 비유하고 있다 . 싸움이나 다툼, 부정적인 생각들도 다 이것에 해당된다 . “다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은 인생을 살고 있구나 .” 나는 이것을 나의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 나는 처음에 이것 을 알지 못하고 깊은 상처를 느꼈다 . 세상이 나만 억누르고 , 나만 해 치는 줄 알았다. 그리고 반대로 다른 사람들은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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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사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 나는 그 사람이 아니었기에 . 인생을 살면서 나는 다른 사람들도 고통이 있지만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 자기의 약한 마음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듯 이. 이제 나도 그렇게 살기를 원한다. 더 이상 약한 마음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주저앉고 싶어도 다시 일어나는 그런 굳은 마음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의 진실

“불현듯 저 손, 동영상에 손, 뼈마디가 굵어진 손으로 재이가 황급 히 가린 게 비명이 아니라 웃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 문장은 재이가 쓰러져 있는 노인을 목격했을 때의 장면이다. 재이의 엄마는 그것을 모르고 재이가 가린 손을 비명이라고 생각했지 만 그것이 아닌 웃음이었다 . 재이와 그 학생들이 “틀딱 ”이라고 놀리 면서 웃었던 부분을 , 재이의 엄마는 여태까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 대부분 사람들은 상대방이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기는커녕 그냥 지나친다. 자기랑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 어떤 사람들은 모욕하고 웃기도 한다 . 재이와 학생들처럼 말이다 . BBC에 따르면 흑인 모델 나오미 캠벨은 자기 피부색깔 하나 때문 에 인종차별을 받았다고 한다. 캠벨은 아프리카 디자이너들 역시 재 능이 있고,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푸대접을 받을 이유가 전 혀 없다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 그리고 더 불쾌감을 보인 것은 아시안 들이 그녀를 초콜릿 광고에 사용한 이유를 알게 된 후였다 . 흑인들의 피부 색깔이 갈색이니까 사람들이 그녀를 초콜릿으로 비유하고 놀렸 던 것 같다. 그녀는 이 말을 듣고 충격받았다면서 이건 자기만이 아 닌 모든 흑인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했다 . 이 사건 말고도 다른 인종 차별 사건들이 사회 속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 재이는 사건에 대해 엄마한테 알려주었으면 됐을 것인데 , 그것을 감춘다.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다는 듯이 . 하지만 그 감춤이 엄마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 나도 그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나도 어쩔 때는 내가 말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감추려고 거짓 말을 한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마음을 생각해 주지 않았다 .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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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무거운 마음을 알지 못했다 .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감추지 않 고 솔직하게 털어놓을 것이라고 목표를 세웠다 . 사실 이 목표를 오래 전부터 실천해왔다 . 부모님께 이것저것을 털어놓으니까 내가 더 솔직 해진 기분도 들지만, 하루 종일 가지고 있던 무거운 마음이 훨씬 더 놓인다. 오늘날의 세상 우리의 사회는 모바일 게임 , 실시간 인터넷 방송 등등 여러 가지 ‘소셜’ 속에 있다 . 글쓴이는 우리가 그 ‘소셜 ’ 속에서 잊고 있는 무언 가를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 한창 청소년들은 사춘기 시기라서 그런지 책과 글을 뒤로 하고 미디어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 빠져 있다. 거의 로봇처럼 감정을 점점 잃어가는 그런 슬픈 현실에 놓여 있는 청소년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다른 일이 사회에서 변화되고 있다 . 그것은 바로 미풍 양속이다. 어른을 보면 인사하고, 자리를 양보하고, 인사는커녕 눈을 피하고, 말을 삼가는 이런 행동을 보이고 있다 . 소설에서도 이런 변화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 할아버지에게 말을 함부로 하기도 하고 , 위급 상황에서도 도우려 하지 않는다 . ‘틀딱’ 이 라는 노인 비하의 발언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다. 너에게 추천하는 글 이 소설을 처음 읽을 때 사람들은 전부 다 다른 의견이 있을 것이 다. 어떤 사람들은 표지에 있는 제목을 먼저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 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반대로 맨 뒷장을 보는 사람들도 있다 . 어떻 게 끝나는지 알고 싶은 듯. 처음에는 요리를 묘사하는 부분에서 ‘요 리에 관한 책인가 ?’ 싶기도 하겠고 , 그 다음은 재이의 아빠가 외국 사람으로 ‘ 다문화 가정에 한부모 가정을 다룬 주제인가?’라는 생각도 들 것이다. 하지만 소설 도중에 재이의 친구들이 등장하면서 요즘 사회에서 일어나는 청소년 문제를 알게 해준다 .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채 쓰 러져있는 할아버지를 두고 재이와 학생들은 손을 가리고 웃었다. 이 책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 모두를 되돌아보게 해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제가 요즘 사회에 만연해 있는 우리의 모습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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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까’ 하고 말이다. 모든 청소년들에게 이 소설을 추천한다 . 이 소설을 읽은 청소년들 이 이 이야기에 비춰진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사회에서 살아갈 때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깨닫고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그런 사람 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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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이금이, ‘벼랑’을 읽고

Jack Song 송재민 이금이 작가의 ‘벼랑 ’이라는 책을 소 개합니다. 수많은 책들 중에 이 책에 꽂혔던 이 유는 책의 주인공들이 제 나이와 비슷 한 또래의 학생들이였기 때문입니다 . 학 생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제가 이 책 을 읽을 때 공통점이나 공감되는 부분 들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책에 눈길이 갔습니다. 책 안에는 총 다섯 가지의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 다섯 가지의 이야기에서 는 총 네 명의 다른 주인공들이 나오는 데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관점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 면서 가장 신기했던 점은 네 명의 다른 주인공들이 나왔지만 각각의 스토리들이 서로 관련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총 다섯 가지 중에서 첫 번째는 ‘바다 위의 집 ’이라는 이야기가 나 왔습니다. 나은조라는 여자 아이가 주인공입니다 . 은조는 마치 ‘교도 소’라고 생각할 정도로 학교를 싫어하는 아이였습니다 . 은조는 지옥 과 같았던 날들을 버티고 버티다 끝내 자퇴를 합니다. 모든 것을 싫어할 것만 같았던 은조는 유독 블로그 하는 것은 엄 청 좋아했습니다 . 학교에서 돌아오면 항상 자신의 블로그를 확인할 정도로 즐겼습니다 . 수많은 블로거들 중에서도 미네르바의 블로그를 보는 것을 특별히 더 즐겼습니다 . 하지만 어느 날인가부터 미네르바 의 블로그에 아무 것도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한참 뒤에 그의 블로그 에 부모님의 미안함이 담긴 글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 미네르바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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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을 하였던 것입니다. “좀 기다려 주면 안 돼? 우리들이 바다 위의 집을 떠돌다 자신의 항구를 찾아 닻을 내릴 때까지 좀 봐 주고 기다려 주면 안 되냐고!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 이제 그 따위 말 다 소용없어 ! 그런 말은 죽기 전에, 살아 있을 때 필요한 말들이었다고 !”라는 미네르바의 마 지막 울부짖음이 청소년들의 답답한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습니 다. ‘ 초록빛 말'은 ‘ 바다 위의 집 '의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은조는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가게 됩니다 . 부모님이 사주신 디지털 카메라 와 전자사전도 지니고 갑니다 .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그 전자사전 을 잃어버립니다 . 홈스테이의 가사도우미 중에 제일 나이 어린 쟈스 민이 자신의 전자사전을 훔쳐갔다고 의심합니다 . 그러다 어느 날 아 침 일찍 은조는 쟈스민이 큰 보따리를 들고 집을 나서는 것을 우연히 목격합니다. 그 큰 보따리 안에 자신의 전자사전이 있을 거라고 확신 한 은조는 쟈스민을 미행합니다 .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자신이 어디 에 있는지도 모르게 되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쟈스민에게 자신이 심심 해서 따라왔다고 둘러댑니다 . 돌아갈 방법이 없어진 은조는 어쩔 수 없이 1박 2 일 동안 쟈스민의 가족들과 함께 머물러 있기로 합니다 . 이때 쟈스민은 은조의 전자사전을 찾아주게 되고 은조를 잘 챙겨줍니 다. 은조는 쟈스민과 머무는 동안 쟈스민의 남동생이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부담스러워 합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쟈스민의 남동생이 자신에게 투어도 시켜주고 잘 챙겨주는 모습을 보 고 괜찮은 아이라고 판단을 하게 됩니다 . 처음에 쟈스민을 만났을 때 는 의심도 하고 별로 안 좋게 보고 쟈스민의 동생도 꺼려하였는데 차 차 알아가다 보니까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우치게 됩니다 . 사실 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챈 후에는 잘 해주지만 그것을 모를 때 는 낯을 가리고 경계하는 모습이 인간들의 일반적인 본성인 것 같다 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세 번째 이야기인 ‘벼랑 '이 인간의 본성을 가장 잘 나타내 준 것 같습니다 . ‘벼랑 ’에서는 난주가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 난주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습니다 . 남자친구는 공부 때문에 너무 바 쁘고 돈을 벌 시간조차 없자 난주에게 헤어지자고 합니다 . 하지만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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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돈을 벌어서 모든 것을 다 부담하 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통해 받는 돈은 턱 없이 부족하 였습니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난주는 한 사진관에서 일하게 됩니다 . 난주는 이 사진관 사장을 많이 신뢰하였습니다 . 하지만 어느 날 사진관 사장 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맙니다 . 수차례의 성폭행을 당하면서도 돈을 벌어야 했던 난주는 자신의 친구에게 그 사실을 들켜버리고 맙니다. 그 사실을 비밀로 해주는 조건으로 친구는 뒷돈을 요구합니다 . 자신 이 벌었던 돈을 다 주었지만 계속해서 돈을 요구한 탓에 더 이상 줄 돈이 없어지자 난주는 다른 약한 아이를 폭행하고 그를 통해 돈을 받 게 됩니다.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당한 것을 똑같이 저질렀다는 것에서 인간의 본성을 볼 수 있었고 그 사실이 충격적이 면서도 안타까웠습니다. “생 레미에서, 희수 "는 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 선우라는 남자아이가 주인공입니다. 선우는 자신의 엄마 때문에 아주 바쁜 일상을 보냅니 다. 그러다 자신이 다니는 미술학원에서 우연히 희수라는 여자 아이 를 만나게 됩니다 . 희수라는 아이를 점점 알아가다 보니 선우는 희수 에게 호감이 생기게 됩니다. 우연히 선우는 자신의 엄마와 함께 주유소를 갔다가 희수를 만납 니다. 이때 희수가 선우에게 아는 척을 하자 선우의 엄마는 선우에게 그 여자 아이가 누구고 왜 이런 곳에서 일하는지 꼬치꼬치 캐 묻기 시작합니다. 희수가 주유소에서 일 한 탓도 있겠지만 희수의 노랗게 물들인 머리색과 귀걸이들이 이유일 것입니다. 원래는 선우의 엄마가 항상 선우를 학원에 데려다 주고 끝나면 데리러 왔지만 이 사건 이후 로는 선우가 자발적으로 지하철을 타겠다고 합니다. 엄마의 눈치를 보며 선우는 그래도 계속 희수와 친하게 지냅니다. 그러다 희수는 꽤 오랫동안 프랑스로 여행을 가게 됩니다 . 희수가 없 어도 선우에게 달라진 점은 급할 때가 아니면 더 이상 엄마의 차를 타고 다니지 않게 되었습니다 . 사랑과 관심이라는 이유로 부모님들에 게 받는 ‘ 통제와 감시' 같은 감정들이 선우를 통해 잘 표현되었습니다 . 부모님들은 자식이 걱정되고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렇게 행동하 는 것일 수도 있지만 청소년들이 느끼는 답답함이 이 ‘생 레미에서 , 희수' 라는 이야기를 통해 잘 드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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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야기인 ‘ 늑대거북의 사랑 '에서는 민재가 주인공입니다 . 어느 날 민재는 자신의 과외 선생님이었던 효진 선생님에게 한 통의 문자를 받게 됩니다. 선생님과 문자를 하고 통화를 하다 보니 민재는 자신이 옛날에 키우던 늑대거북이를 효진 선생님이 가지고 간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늑대거북인 ‘울프’ 를 보러 효진 선생님이 있는 곳 으로 가게 됩니다 . 민재는 평생 울프와 함께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지 만 민재의 성적이 오르지 않자 민재의 엄마는 민재 모르게 울프를 누 군가에게 줘버렸던 것입니다. 농구에 꽤나 소질이 있었던 민재였지만 자신의 엄마를 위해 농구 마저 포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 민재가 고등학교 입학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민재의 엄마는 유방암 판정을 받게 됩니다 .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민재의 엄마는 민재의 모의고사를 걱정할 정도로 민 재의 학업에 대한 관심이 지나쳤습니다. 민재는 자신의 엄마가 아픈 이유는 자신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엄마가 수술을 할 때 민재는 꼭 명문대에 합격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 그 후로는 자 신이 좋아하던 농구마저 접고 공부만 하기 시작합니다 . 민재의 희생 은 어린 나이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 인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희생하기 쉽지 않지만 누군가나 무언가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 이때의 상황을 민재를 통해 잘 재연해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억에 남았던 구절이 꽤 많았는데 그중 하나는 “나는 분명히 들 었다, 헉헉대는 콧숨에 섞여 나온 말의 말을 , ‘난 내가 드넓은 초원을 갈기를 휘날리며 달리는 말이란 사실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어. 난 늘 꿈을 꾸지. 언젠가는 비탈길을 마구 달려 내려가 산자락이 발을 담고 있는 저 넓은 호수 위를 들판처럼 달리겠다고 .”입니다 . 은조가 쟈스민을 따라서 같이 머물 때 쟈스민의 남동생이 은조에게 투어를 해줍니다. 이때 갈기가 다 헝클어지고 엄청 말라 보이는 말인 알렉산 더로 투어를 해주는데 투어가 끝날 무렵 은조는 알렉산더의 꿈에 대 해서 듣게 됩니다 . 어떤 사람이든 꿈이란 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 .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알렉산더를 통해 사람들의 꿈 을 꾸는 모습이랑 누구든 꿈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 것 같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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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작가님의 ‘벼랑 '이라는 책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관점이 반 영되어 있습니다. 모든 이야기들이 가슴에 와 닿고 배울 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 말했듯이 네 명의 주인공들은 서로 연관이 있었 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야기에서 나왔던 은조와 세 번째 이야 기에 나왔던 난주는 은조가 자퇴하기 전까지는 같은 학교를 다녔습니 다. 둘은 친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야자를 빠지던 아이들이였습니다 .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에 나왔던 민재의 과외 선생님인 효진 선생님은 첫 번째 이야기에서 자살을 했던 혜림이의 이모였습니다. 책에 나왔 던 인물들은 서로 연관도 있었지만 총 다섯 가지 이야기에서 독자들 에게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을 통해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기도 하였고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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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의 경계선은 하나뿐일까 헤르만 헤세, ‘데미안 ’을 읽고

박은세 Eric Park ‘ 데미안’을 처음 읽기 전부터 이 책의 제목은 나에게 꽤나 친숙했 다. 세계적인 가수의 앨범들 중 하나가 데미안을 주제로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 앨범에 수록돼 있는 곡들은 유혹에 넘어가 거나 타락한 쾌락을 추구하는 태도 , 혹은 길을 잃은 자의 지속되는 방황, 그 오랜 방황과 고뇌 끝에 날개를 펼친다는 것 등이 주제이다 . 주제와 걸맞게 앨범의 이름은 ‘Wi ngs’ 이다 . 앨범의 설명에는 성장을 주제로 곡을 편성했다고 한다. 데미안을 읽으면서 내용을 잘 이해했다고는 하지 못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어휘력의 빈곤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내용 구조가 낯설 기도 했다. 주인공 싱클레어의 속마음과 생각이 많은 분량을 차지해 약간 수필집 같기도 하였으나 현실에선 흔히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 자주 등장해 소설책 같기도 했다. ‘ 데미안’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이러하다 .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고 자란 싱클레어는 어렸을 때부터 세상을 선과 악 두 가지로 나누는 사상을 가졌다. 부모님이 있는 집은 선이었고 , 낯설고 어두운 바깥세상은 악이었 다. 어느 날 싱클레어는 무리에 끼기 위해 허풍을 떨었다가 또래의 아이에게 약점을 잡힌다 . 감당할 수 없는 양의 돈을 요구한 아이로부 터 피해를 입던 싱클레어는 자신의 학교에 전학 온 데미안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그동안의 갈등으로부터 해방된다. 데미안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성숙하고 독특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다. 다른 이들이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옹호하기도 하고 , 때론 보편적인 의견을 거부하며 다수를 상대로 반박하기도 했다 . 대다수를 모방하고 대중의 의견을 따르는 시기에서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으로부터 여러 가지 삶의 태도와 생각하는 법 등을 배웠지만 어느 날 갑자기 전학을 가게 되어 데미안과 헤어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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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이후 각종 유흥에 빠져 살던 싱클레어는 어쩌다 한 공원에서 자신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준 여성을 보게 된다 . 그 여성을 쉽사리 잊지 못한 싱클레어는 그 여성을 ‘베아트리체 ’라고 부르며 그를 떠올 리며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나중에 데미안을 다시 만나게 되는데 자 신이 그린 여성이 데미안의 어머니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깨달았 다. 이후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전쟁에 참전하였고 싱클레어는 큰 부 상을 입고 데미안은 목숨을 잃음으로써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장면은 데미안이 베아트리체를 그리려고 했 을 때 자신도 모르게 데미안을 그린 장면이다 . 싱클레어가 그린 베아 트리체는 데미안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 융합된 모습이었 다. 그림 속의 베아트리체는 감정과 성별이 불분명하였는데 여러 모 습이 동시에 보이는 싱클레어의 그림은 세상 속에서 그 어떠한 것에 도 확실한 경계선을 긋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의미를 담은 작가의 의도가 있 다고 느껴졌다. 이로써 싱클레어는 자신이 믿어온 올바른 가치관 , 즉 이 세상에 선과 악 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자신이 정해놓 은 ‘선 ’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것이 꼭 바르지만은 않다고 인정하게 되는 부분처럼 느껴졌다 . 선과 악의 경계선만을 생각하는 것 보다는 데미 안이 말한 자신의 관점에서 본 ‘카인 과 아벨 ’ 이야기처럼 자신만의 신념을 꾸준히 지키고 신으로부터 자기 자신 을 독립시키려는 태도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 알 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 그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이다.”를 해석하는 건 개인 나름이겠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 알 속의 새는 소설 초반에 나온 싱클레어 , 혹은 싱클레어처럼 정서발달이 아 직은 미숙한 청소년을 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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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아이들보다 선과 악이라는 경계를 더 민감하게 다뤄온 싱클 레어에게 내가 해석한 ‘알 ’의 의미는 더욱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알은 싱클레어의 이분법적인 가치관 , 그리고 부모님으로부터 받아 누려온 걱정 없고 편한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 태어나기 위해 서는 하나의 세계인 알을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부분에서 ‘태어 나다’ 라는 것은 성숙이라는 단계에 이르다 , 즉 어른이 됨을 뜻하는 것 같다. 하지만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알’ 에 있었던 것처럼 마냥 부 모님에게 의지해 편안하게 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그저 선 아니면 악 , 두 개의 카테고리로만 분류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전하는 작가의 의도처럼 느껴졌다.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고 신과 동시에 악마인 압락사스에게 날아 간다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일들 중 악이라고 판단되는 것은 무조 건 멀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째서 악으로 판단되는지 , 혹은 다른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는 절대적으로 악이 맞는지 등의 깊은 생 각들을 가지며 자신만의 가치관을 형성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 같다. 신은 성숙의 단계에 이르기 전 싱클레어의 입장에선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다. 만약 싱클레어의 가치관대로 이 세상이 선과 악 그 둘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싱클레어가 신으로 믿는 자는 이 세상의 반밖에 안 되는 존재이기에 다른 절반인 악마에게도 예배를 드려야 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선과 악 둘 다 가지고 있는 압락사 스가 ‘ 데미안’에서 절대적인 신으로 취급되는 것 같다 . ‘ 데미안’은 ‘ 관점의 차이 ’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 책이다 . 싱클레어의 관점과 데미안의 관점이 다른 것처럼 이를 세계적인 문제 들에 대입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 예를 들어 싱클레어 가 어떤 것은 선이고 어떤 것은 악이라고 생각해도 이는 절대적인 진 리가 아닌 것처럼 , 두 측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졌을 때 양쪽의 입장 에선 본인이 정의를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순이 일어나기 때문 이다. 또한 너무나도 큰 이 세상을 자신만의 기준으로 분류하고, 남 에게 의존하고, 한 가지만 가까이 한 채 다른 것은 멀리하는 차별적 인 태도들처럼 미성숙한 습관들을 버려야 한다는 메시지가 이 한 권 의 책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 아닐까 . 여운을 남기며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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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 아름다운 이야기 ‘작고 느린 만화 가게’를 읽고

현용준 Sam Hyun

‘작고 느린 만화 가게 ’는 자연과 더 불어 사는 삶 , 소중한 이웃과 함께 살아 가는 것을 소소하게 그려낸 36 편의 흥 미로운 만화들로 엮여 있다 . 이 책은 인 간이 자연과 더불어 공존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각각의 만화들은 그들만의 개성이 잘 표현되어 있다 . 그림의 스타일과 이야기 는 제각각이지만 자연과 더불어 사는 모습과 지금 현재 인간들이 잘못하고 있는 모습을 잘 표현해 냈다. 책 제목이 ‘작고 느린 만화 가게’ 인 이유는 만화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천 천히 읽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용은 짧지만 그 안에 많은 의미가 압축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만화는 ‘나는 도도새였다 ’ 와 ‘옛날 옛적에 ’ 다 . 전생에 도도새였던 주인공이 사람으로 환생해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우리가 얼마나 자연을 훼손하고 사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새로운 시각 적으로 그려 냈다 . 전생에 도도새였던 주인공은 “ 나는 사람이 무섭 다, 나의 죽음은 항상 사람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 주인공이 도도새 였을 때 주인공의 친구들은 친절하고 상냥했다 . 주인공을 위협하는 것도 없었고 땅에 떨어진 과일을 먹고 살아서 날 필요도 없었다 . 그 래서 사람들을 처음 만났을 때 주인공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 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리고 마침내 주인공의 종족은 지구 에서 사라졌다. 주인공은 비둘기도 좋고 악어도 좋으니 사람으로 다 시는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옛날 옛적에’ 라는 만화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한 편의 전래동 화를 들려주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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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대의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옛날 전래동화를 들려주는데 , 갑 자기 시대와 배경이 미래로 바뀌게 된다. 지구가 멸망하고 , 외계인들 이 지구별에 들러서 이 지구의 ‘옛날 옛적 ' 이야기를 미래의 학생들 에게 전한다. 오늘의 우리가 미래의 과거 시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 환경을 생각하 지 않은 결과 결국은 멸망하게 되었다는 상상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될 것만 같았다. 환경오염은 한 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 별로 인지하지 않고 사는 것이 현실이고 사실이다 .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우리가 멸망하고 나서 돌이켜 본다면 이는 모두 우리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벌어진 것일 테고 , 그 책임은 우리 모두가 지고 가야 할 것이다. 인간은 자기의 삶의 울타리조차 돌보지 않을 정도로 이기적인 존 재다. 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주변을 돌보지 않은 채 오로지 자 신의 이익에만 집중하여 모두가 힘든 상황을 만들어 낸다 . 일회용 물 건들로 넘쳐 나는 세상이다 . 또한 산란촉진제 , 항생제 등을 동물들에 게 거침없이 주입한다 . 울창한 숲도 파괴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 동물 들의 서식지도 고려하지 않는다 . 자신만 편하다면 먼 미래의 자녀들 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은 이와 같이 인간의 이기적인 면모를 만화로 담아내고 있 다. 인간은 이득 또는 원하는 것이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 고 목표를 이루려고 한다 . 그것이 종족의 멸종이 되더라도 말이다 . 이 책을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왜냐하면 이 책은 만화로 되어 있기 때문에 어린 아이나 한국어에 서툰 친구들 이나 나이가 많은 분들까지도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작 은 장면에서조차도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우리에게 열어준다. 우리는 항상 빠르고 , 큰 것을 추구한다 . 현대인들은 모두가 피곤 하고 지쳐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이 작고 느린 만화 가게 였을 때 나는 이 책을 주저 없이 고르게 되었다 . 하지만 이 책의 내 용은 전혀 작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 오히려 작은 것에서 큰 의미를 발견했고, 느린 것에서의 강력한 힘을 깨닫게 되었다 . 느리지만 비록 천천히 가지만 그것에서의 깊은 울림을 안다면 우리 모두가 이 책을 한 번쯤은 꼭 읽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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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색깔 이나미, ‘괜찮아, 열 일곱 살 ’을 읽고

김덕호 Daniel Ho Kim ‘ 괜찮아, 열일곱 살’ 은 청소년들의 보편적인 관점과 그들만의 독특 한 생각을 대변해 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 요즘 청소년들은 무슨 생 각을 하고 있으며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기술해주고 있다. 청소년의 입장으로서 모든 부분은 아닐지라도 몇몇의 장들은 나와의 공 감대를 형성했다. 우선 1장은 ‘ 나를 사랑하기 전에 알 아야 할 것들’ 즉 나의 정체성과 오래 습관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내용들이었 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까지 어떻 게 살아왔을까 ? 나를 돌아보는 과정에 서 옳지 않은 행동과 내가 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한 알 수 있었다. 가끔 청소년은 삶이 너무 힘들거나 주 변으로부터의 영향을 받아 잘못된 길로 들어서거나 잘못된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나 혼 자만이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다는 것을 강조하여 안 심을 시켜주는 것 같았다. 유독 공감이 되는 내용은 ‘인터넷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어요’이 다. 우리는 IT 강국에 사는 만큼 일상에서 인터넷을 많이 접한다 . 나 는 학교에서 공부 할 때도 컴퓨터를 사용하고 놀 때도 인터넷을 쓰며 심지어 다른 사람과 연락하는 것도 인터넷을 사용한다 . 하루 종일 컴 퓨터와 휴대폰을 붙들고 있다 보니 , 사람들과 마주보고 하는 대화나 진실성 있는 만남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한다 . 인터넷이라는 것은 한편 으론 좋아 보이지만 사람들의 관계를 소원하게 하는 부정적인 영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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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다고 생각한다. ‘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에서는 내 자신의 꿈에 다가가 기 위한 노력과 그에 대한 궁금증이 실려 있다. 무엇을 해서 나의 꿈 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지와 무엇을 해야 더 가까워질 수 있는지 에 대한 답변 겸 조언을 해주고 있다 . 모두 공감 할 수는 없었지만 청소년의 대표적인 고민인 진로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었다 . ‘ 우 리에게도 꿈이 있어요 .’ 에서는 한국에 있는 모든 청소년들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요즘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하고 싶은 꿈보다는 미래 에 돈이 되는 일을 택하라고 하시는 것 같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사 실 그렇지 않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기는 것을 더 중요시 여긴 다. 아직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즐기 고 열심히 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았으면 좋겠다. ‘ 왜 우리 집은 뒤죽박죽일까 ?’는 자기 문제보다는 가정에 불화가 일어나 생기는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 ‘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 이 맑다.’ 와 ‘ 자식은 부모의 거울’ 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 부모와 가 정은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자식은 부모를 보고 배우기 도 하며 가장 긴 시간을 같이 있는 사람이기에 영향력도 크다 . 하지 만 자식들은 부모님들의 좋은 점만 보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나쁜 점 또한 배우기도 한다 . 가정에 불화가 생기기 시작하면 정서적으로 엇 나가거나 삐뚤어질 수 있으며 심리적 불안을 겪을 수 있다. 비록 나 는 가정에 대한 문제가 없기 때문에 공감을 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공감 할 수 있는 내용 같았다. ‘ 왜 나는 친구가 없을까 ?’ 말 그대로 친구와 관련된 얘기이다 . 어 떻게 하면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으며 무엇을 하면 좋은 친구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들이 기술 되어 있다 . 청소년 시기에 부모님과 거의 동급으로 영향력이 큰 존재는 친구다 . 부모님 다음으 로 친구랑 제일 오래 붙어 있고 같은 연령대라 생각하는 방식도 비슷 하며 잘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친구이다. 내가 가장 공감 했던 내용은 ‘친구에게 먼저 사과하고 싶지만’ 이 다. 친구와 다툼이 일어나고 서로 말도 못 섞고 어색한 시기에 먼저 사과를 하고 싶지만 어떻게 하는지 모르고 괜한 자존심만 세우며 안 하는 이야기가 많다. 나는 친구들과 잘 싸우지는 않지만 싸우면 이러 한 상황에 놓인다 . 나는 소심한 편이라 먼저 다가가는 걸 좀 부끄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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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한다. 그래서 사과도 먼저 하지 못한다 . 다투고 난 뒤 문제를 풀지 않는다면 친밀한 관계가 유지 되지 않는다 . 또한 다툼이 있다면 먼저 가서 진심어린 사과와 대화를 해서 푸는 것이 좋다고 한다. ‘ 왜 공부를 해야 하는 걸까 ?’에서는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얼 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학생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했는지에 대 해서 쓰여 졌다. 학생으로서 할일은 첫 번째로 공부, 두 번째는 휴식 이라고 한다. 공부는 꿈으로 다가가는 첫 계단이라고 생각한다 . 지식 을 쌓아갈 때마다 한 단계씩 올라간다. 그 끝에는 내가 진심으로 원 하던 꿈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끊임없이 올라간다 . 휴식은 모두에 게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너무 과도하다보면 안 좋다고 한 다. 공부도 너무 많이 하다보면 자신에게 독이 될 수 있다. 그럴 때 에는 잠시 하던걸 멈추고 휴식을 취해야 된다 . 아무리 좋다한들 나에 게 독이 된다면 잠시 멈춰야 한다. ‘ 내게도 사랑이 올까 ?’는 사랑에 대한 얘기이다. 나보다는 더 성 숙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사실 공감되는 부분이 전혀 없었지만 마 지막 부분에 나오는 ‘운명적인 첫사랑을 기다리며’ 라는 주제에는 모 든 사람이 한 번씩은 공감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 사람들에게는 모 두 설레는 첫사랑이 있다고 언급한다 . 초등학생 때의 나는 사랑이 운 명이라고 생각하며 나의 첫사랑을 기다리며 살았다 . 환상을 가지며 혼자 설레기도 하고 모든 생각을 다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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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나의 생각

어른들이 아닌 청소년의 관점에서 읽어 볼 때에는 책에서 나오는 내용은 대부분 다 맞는 얘기이긴 하겠지만 사실 타인들과 공유하기 살짝 부끄러운 주제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나눠보진 않는다 . 하지 만 이러한 주제들이 책으로 나왔으니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 고,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 갈 수 있지 않나 생각하며 인상 깊 게 읽었다. 만약 청소년들 중에 고민이 있거나 차마 말 못할 사정이 있는데 말하기 어려운 주제라면 이 책을 읽는 것을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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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교훈

책에 있는 이야기들처럼 힘든 고난과 험난한 여정이 있다 한들,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 뛰어 넘는다면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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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러한 문제가 있다고 의지가 꺾여버려서 가서는 안 될 길을 걷 기 시작하면 미래에 후회를 낳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 문제들이 하나 하나 쌓여갈 때마다 청소년들은 한 층씩 강인해지고 점점 더 성숙해 진다. 비유를 해보자면 청소년들은 싹트는 식물이라고 할 수 있다 . 새싹이 땅에서 자라나고 있는데 거름을 뿌리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 다. 삶의 문제는 거름으로 비유한다. 거름들의 영양분만 얻어서 더욱 더 튼튼하고 잘 자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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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색깔

청소년들은 다들 각기 다른 색이 있고 그 잠재된 가능성이 무한하 다. 사람들마다 개성이 있듯이 청소년들의 사고방식 , 매력과 하고 싶 은 것들이 많다. 하고 싶다는 게 많다는 뜻은 그만큼 가능성이 많다 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 청소년들이 도전을 하고 경험을 쌓다 보면 자신의 적성이 맞는 것을 찾을 것이고 나라의 발전에 힘이 될 수도 있다. 나라의 발전 가능성은 당연히 청소년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라는 말이 있듯이 청소년들도 많이 도전 해보고 하고 싶은걸 하면 성공을 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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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과 후

책을 읽기 전 나는 사람들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난 뒤에도 생각해보니 사람들은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마 다 다 개개인의 사정이 있는 것이고 주어진 상황과 여건으로 인해 다 르다고 생각한다 . 하지만 나는 이기적이라는 것에는 단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자면 백만장자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 이 기적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는 것과 생활비가 모자란 사람 이 돈을 벌려고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한 다. 물론 이기적인 것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기적이라는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하느냐가 중요하다 생각한다. 사람이 이기적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오직 자신의 이득만 추구하고 남을 생각하지 않고 행동해서 그렇다 . 청소년은 이기적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청소년은 아직 다 성장하지 않았으며 미완성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청소년은 아직 미완성이기 때문에 이기적인지 이타적인 지 정의를 내릴 수 없다. 만약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기 위해 올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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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로만 인도된다면 이타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청소년의 성장기에 가장 큰 변화가 있기 때문에 그 시기에 똑바로 자 리가 잡힌다면 성공하는 삶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 책을 읽는 독자가 부모라면 지금이라도 자신의 자녀를 부여된 색깔에 맞게 좀 더 좋은 길로 인도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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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 사회와 그 진실 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고

김규리 Joan Kim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은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다 . 시간이라는 개념 의 시작에서부터 인간은 서로 연대하고 무리 지어 생활했다. 하지만 개인주의는 이기주의가 아니 다 . 남들의 것을 빼앗고 혼자 행복을 추 구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주의는 사회 속에서 개인 한 명 한 명이 더 높은 가 치의 행복을 얻을 수 있도록 한다. 무리한 집단주의 사회는 개인에게 상 처만 남겨줄 뿐 이런 사회에서 행복하기 는 힘들다. 개인주의자가 되는 것은 자 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자신이 만든 기 준과 목표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다 . 이 과정에서 개인주의자는 자신과 관심사와 공감대가 맞는 사람들,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에게 관심과 시 간을 투자하며 관계를 맺는다 . 개인주의자라고 사랑을 원하지 않는 것 도 아니고 똑같이 타인의 관심이 필요한 점에서는 동일하다 . 개인주의 는 하나의 이념 또는 문제의 해결책이지 개인주의자가 될지 말지도 결국 개인의 선택이다 . 그리고 타인의 선택 또한 존중할 수 있는 사람 이 진정한 개인주의자라 본다. 문유석 판사는 그동안 본인이 겪어온 많은 사건들과 사람들을 만나 면서 느낀 감정들을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설명하고 자신이 생각하 는 건강한 사회의 이미지와 행복이란 어떤 것인가 , 개인주의자란 어떤 것인가에 관하여 그의 책에서 구체적으로 잘 풀어냈다. 판사로서 그는 어느 한 쪽이 우월하게 옳은 사건은 한 번도 본적이 없다고 한다 . 그 렇듯, 우리들의 삶에서 무조건적으로 옳고 무조건적으로 그른 것은 없 다. 선과 악의 선을 정확히 긋기도 어렵고 , 다 같은 인간으로서 그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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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 그 답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 잘 알리가 없다. 『개인주의자 선언 』은 1,2,3부로 나눠져 있다 , 세 가지의 단계를 통 해 작가는 독자의 개인주의에 대한 이해를 점점 넓혀간다. 우선 1부에 서는 개인주의가 무엇인지 탐구할 기회가 주어지고, 2 부에서는 인간이 이해해야 할 타인의 존재를 알리고 , 끝으로 3부에서는 이 세상의 불편 한 진실과 이치를 깨닫게 해 , 읽는 이를 깊은 생각으로 인도하여 성숙 한 자기개발을 하도록 한다 . 나 또한 독자로서 이 책을 읽으며 세상에 대해, 성인이 되면 내던져질 사회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어떠한 어른 , 사회인, 부모가 될 지 생각해 볼 기회가 생겼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들과 배운 것들을 통해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내 고민의 끝에 닿아, 나만의 결론을 도출해 낼 것이라 믿는다 . 한국사회에서도 물론 행복한 개인들의 긍정적인 면들이 존재하지 만, 심한 집단주의적인 사회 분위기 탓인지 다양한 개인의 행복과 어 우러지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 사회의 단점으로는 남의 생각을 너무 의식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타인의 시선과 판단을 신경 쓰기 때 문에 어릴 때부터 경쟁은 한국인들에게 당연한 일이다. 초등학교 때부 터 아이들은 평균 이상에 도달하려 하고 남들보다 뒤쳐지지 않으려고 애쓴다. 점점 경쟁의식이 강해져 중학생이 되면 학원 서너 개쯤 다니 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뒤쳐지는 것을 너무 기피하고 경계하다 보니 아예 더 앞서 가려는 것이다 . 그러다 보니 모두 다 학원을 다니게 되 는 것이고, 또 고등학교에선 입시경쟁을 피할 수 없다. 붙은 대학의 간판으로 서로의 존재가치를 판단하고 나름의 서열과 급을 만든다.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 과잠 (대학교 학 과 야구 점퍼)’ 문화도 정밀해진 대학별, 과별 서열의 수직선 내에 자 신이 어디쯤 위치에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풍조다 .”(문유석 , 『개인주의 자 선언』, 문학동네 , 2017) 또한 같은 취업을 목표로 많은 젊은이들이 실패를 맛보고 좌절한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다. 학교에서부터 부모의 재력과 사회적 계급을 이용해 학생들은 남을 깎아내리는 법을 배우고 애써 살아남으려고 한다. 이 책에서도 그런 사회의 불편함을 잘 설명한다.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작가 문유석 판사는 비판적인 눈으로 한국 사회의 특징을 잘 집어냈다. “결국 취업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자기 통제형 자기계발에 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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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이십대는 상상을 초월하는 박탈감과 불안감 속에서 사회적 약자 의 고난을 ‘개인의 노력 부족 ’으로 돌리며 자신은 그래도 노력하고 있 기에 그들보다는 낫다고 구분 짓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수능 점 수를 거의 유일한 공정 경쟁의 결과로 받아들여 수능 배치표 피라미 드에 따른 ‘ 학력의 위계화 된 질서 ’에 심각하게 집착한다. ‘인서울’ 과 ‘지방대’에 대한 취업 시 차별은 당연한 것이고 지방대도 자기보다 하 위권 지방대에 대해 마찬가지 태도를 취한다 … ‘더 높은 곳 ’에 있는 학생들이 자신을 멸시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 스스로 자신보 다 ‘ 더 낮은 곳’에 있는 학생들을 멸시하는 편을 선택한다.” (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 문학동네 , 2017) 슬프게도 사람들은 이 비합리적인 사회의 문제점을 제기하지 않고 그 사회에 맞춰 살아간다 . 그 판단의 시간마저 아깝기 때문이다 . 사람 이 만드는 사회가 아니라 사회에 맞추는 사람들이 되어 버린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차별은 당연한 것이고 , 그들은 차별을 꼭 필요로 한다. 그들은 자신의 성과에 대한 대가를 받고 싶기 때문이다 . 취업할 때 서 울대 학생은 지방대 학생과의 차별을 원한다 . 본인이 ‘더 높은 곳 ’에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 이런 생각들과 정신이 지금의 한국 사람들 에게 심어져 있다는 것을 책을 읽고 실감하며 , 다시 한 번 놀랐다 . 서양 문화권에서 교육을 받으며 한국사회에 살고 있는 나에게 생소 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 또 공감할 수 있는 사회질서는 아니었다. 이 책을 읽으며 한국사회의 불편함을 잘 알게 되었고 , 개인주의가 어떻게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 , 어떻게 개인주의자가 행복 할 수 있는지를 배 웠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며 경쟁을 통해 상대를 이기고 사회적으로 모두가 생각하는 ‘높은 곳’ 에 있는 것만 좋은 것이 아니다 . 삶의 과정 속 소소한 행복이 결국 본인을 만들고 , 한 개인을 행복하게 한다 . 인 간은 모두 다 다르지만 특별한 재능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게 공부 이든 공부가 아니든). 개인주의자로서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인생에서 찾아가며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자신의 인생이 남과 다르다 좌절하지 않으며 자신이 펼쳐 나가 는 인생을 살았으면 한다. 또 , 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다름을 존중하고 부족함을 어루만져주는 건강한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다. 문유석 판사의 예시들은 나의 이해력을 높이는데 도움을 많이 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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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나는 내가 아는 일들, 내가 겪은 것들에 연결지어 더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책에서 문유석 판사가 ‘문학의 힘’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이 있 다, “문학은 겉으로 드러나는 세계에 머물지 않고 인간이 숨기고 싶은 속내 깊숙한 곳을 파헤쳐 보여주곤 한다 . 문학이 보여주는 인간 세상 의 민낯은 전형적이지 않다. 그들은 충동적이고, 불안해하고, 모순 덩 어리인 인간 마음의 꿈틀거림을 묘사하는 것에 몰두한다 . 그리고 그 관찰의 주된 재료는 작가 자신의 내면일 것이다 … 인간 행위를 기술 하는 방식에는 문학 이외에 육하원칙이 지배하는 신문기사가 있다. 두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다 . 인간이 저지르는 사건은 결국 인간 내면의 작용인데, 기자들은 주로 외형적 행위와 그 결과에만 치중하고 내면의 동기는 돈, 욕정 , 복수심 등으로 간명하게 유형화하곤 한다. 사람들은 복잡한 사건을 쉽게 이해하길 원하고,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착한 놈 인지 누구에게 분노하면 되는지 결론부터 알려주기를 성마르게 재촉하 기 때문이다.”(문유석 , 『개인주의자 선언 』, 문학동네, 2017) 정말 맞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남을 깎아내리기에 목말라 있다, 연예인들도 잘 되는 꼴을 못 본다. 아는 사람이여도 잘 되는 일 을 보면 배 아파하기 일쑤이다 .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분명한 선 과 악의 구분을 사람들은 원하기 때문에 , 기자들은 더 자극적이고 더 말이 안 되는 기사를 쓸 수밖에 없어진다. 최근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때 논란이 되었던 여자 스피드스케이 팅 팀 추월의 당사자 김보름 사건을 다시 재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논란의 시작은 간단했다. 팀 추월은 경기특성상 세 명의 선수가 돌아 가면서 공기저항을 나누며 체력을 아껴 같이 들어오는 게 효율적이다. 맨 마지막에 들어오는 선수의 기록으로 순위가 매겨지기 때문이다. 하 지만 김보름 선수와 박지우 선수는 동료 선수 노선영이 뒤쳐지는 것 도 모르는 채 일찍 들어와 버리고 만다 . 이 일로 두 선수는 대중에게 서 엄청난 욕을 먹게 된다 . 팀워크를 고려하지 않았다느니 , 노선영을 왕따 시킨다느니 , 일부러 버리고 갔다느니, 사람들은 떠들어대기 바쁘 다. 물론 두 선수가 잘 한 일은 아니지만 어린 내가 보기에도 안쓰러 울 정도로 김 선수는 심한 대중의 질타를 받았고 정신적으로 고통스 러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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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나 시합 밖에서는 평범한 사회인일 뿐인 선수들이 한꺼번 에 전국의 관심을 받으며 알려진다는 것만으로도 힘들 텐데 , 모르는 사람들한테서까지 안 좋은 말 , 욕설들을 지속적으로 받다보면 자신감 또한 떨어질 뿐만 아니라 자존감도 내려가게 된다 . 김보름이 선수촌에 서 훈련하지 않고 혼자 한국체육대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다고 특혜라며 김보름을 욕했다. 이게 그녀가 받을 욕이었을까, 메달이 시급했던 빙 상연맹의 결정이었을 수도 있고 , 메달확률이 높은 선수들에게 집중하 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 그녀가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된 것 같아서 씁 쓸하지만, 이 사건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친 삶에 대한 위안을 얻 고자 남을 무너트리고 싶어 미쳐있는 것 같았다. 연예인들의 안티나 악플러들도 같은 심리다 . 이런 현상이 다 경쟁 이 우선시 되어 있는 집단주의 사회 속의 문제점에서 출발하는 게 아 닐까 생각한다. 다름을 일단 받아들이고 , 나만의 개성으로 나만의 행 복을 추구한다면 타인을 존중하고 타인과 연대하는 같이 행복한 사회 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이 책을 읽은 후 믿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최근 팀추월 사건을 포함하여 현재 사회에 비슷한 사례들에 대해 생 각하게 되고 공감을 더 쉽게 할 수 있었다. 오늘날, 개인주의는 서양문화에 많이 물들어 있다. 서양이 가진 동양과는 다른 정서와 정신이 그들의 개인주의적인 사회를 형성한다. 대부분의 서양 사람들은 집단주의 사회 속에 사는 한국인들에 비해 자유롭고 남들의 시선이나 판단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법을 고민하고 남들과 다르게 산다 . “남부럽지 않게 살자.” 이게 많은 한국인들의 마음가짐이라면 우리는 발전 할 수가 없다 . 타 인의 등만 보며 뒤쫓으며 경쟁만 하다가, 결국 자기 개인의 행복을 놓 치고 만다. 이 말에 대해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문유석 판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냥 남을 부러워하지 않으면 안 되나 .” 이 말이 맞는 것 같다. 왜 굳이 내 인생을 남의 인생에 대보며 비교하며 살지 ? 행복하면 된 것 아닌가. 물론 한국사회를 비판하며 서양사회를 마냥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 분명 그 사회 속에서도 문제가 존재한다 . 다만 무리한 집단주의 사회 속에 사는 오늘날의 한국인들이 자기 자신만의 행복을 더 추구하고 다름의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옆 집 아들래미와 엄마친구 딸과 똑같이 재미없는 개인일리는 결단코 없 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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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없는 세상 표창원 ‘프로파일러 표창원의 사건추적’을 읽고

이정진 Jinny Lee 지구에서 가장 발달된 생명체인 인간 은 법을 인간 사회의 질서 , 평등함, 그리 고 평화를 지켜내려는 목적으로 만든 이 래로 현재까지 그 체제를 유지하고 있습 니다 . 나라가 195 개나 있는 만큼 법의 종류 , 형벌의 기준, 그리고 내용까지 나 라마다 각기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 모 든 법 중에서 허점 없는 법이란 존재하 지 않습니다 . 완벽하지 못한 법을 이용 하여 합법적으로 불법을 행하는 방법, 또는 가해자의 형량을 반 이상으로 줄이 는 등, 여러 방면으로 법을 피해 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돼 사람을 지키려고 만들어진 법은 오히려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고 이를 악용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물론 부당한 점은 개선이 되었으며 많은 법안이 통과가 됐지만, 과연 법의 문제점들이 모두 고쳐지는 게 가능할까요? ‘ 모든 국민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 나라에서 만든 명령이나 규칙 ’ 이것이 법에 대한 사전적 정의입니다 . 그렇다면 완벽하고 흠이 없는 법이란 모든 국민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 나라에서 만든 합당하고 정 당한 명령이나 규칙으로 간주되는데 , 역사를 돌아보면 법의 부족함은 얼마나 개선되었을까요? ‘ 프로 파일러 표창원의 사건 추적 ’은 프로 파일러와 경찰이 범죄 자의 범죄 방법과 그들을 추적하는 과정을 기술하여 , 법으로 인해 어 떠한 수사가 막혔으며 어떻게 판결들이 공정하게 해결되지 않았는지, 피해자의 삶은 어떠한지 , 그리고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대한민국 의 법적 당위성은 어떤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보이지 않은 범죄가 예상 외로 많고 법은 피해자에게 친 절하지 않으며 대한민국의 형량은 해외의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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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가볍다는 것을 꾸준히 강조하는데 , 대표적인 예로는 성범죄자들 이 있습니다. 성범죄자들의 신상은 법으로 보호받아 공개되지 않으며 형량은 비교적 가볍다는 점으로 인해 범죄율은 줄지 않습니다. 성범 죄 피해자들의 정신적인 고통은 평생 지속되지만 법은 이들의 고통에 비해 가해자들에게 지나치게 너그럽고 피해자에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을 책임을 묻곤 합니다. 가해자의 욕구는 이해하되 피해자가 어느 특정 시간에 돌아다녔다거나 무서워 말을 하지 못한 점을 범죄 를 당할 때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먹이며 피의자의 형량을 감 량하기도 합니다 . 인간의 욕구는 이해하되 아무 위협 없는 상태에서 피해자의 행동과 대처를 바라보는 법이 문제입니다 . 이 문제를 해결 하려 시민들은 국민 청원을 동원하여 법 개정에 대하여 투표하지만, 현재까지 눈에 띄게 바뀐 것은 없습니다. 물론 법은 서서히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그리고 아마 평생 완벽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 각합니다. 왜냐하면 법이 아무리 개선되어도 어떻게든 부당한 법의 판결을 받는 사람은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는 것은 법 의 개정과 더 많은 법안의 허용이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라는 게 답입 니다. 문제의 근본은 만들어진 법이 아닌, 법을 지켜야 하는 사람에 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범죄가 일어났을 때 개입된 사람은 대략 세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가해자, 피해자, 그리고 이들의 운명을 담당하는 경찰과 비슷한 분야 의 직종을 가진 사람 . 범죄자부터 살펴보자면 이들은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성격 , 성향 , 그리고 개성이 모두 다르겠지만 자신의 육체적 , 그리고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법을 어기며 여러 사람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만은 공통 되기 때문입니다 . 이들은 자신의 욕구를 위해 양심과 도덕을 외면한 채 오직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매우 순수하고 노골적인 이기심을 보입 니다. 피해자들은 상황마다 많이 다르겠지만 보통 이들은 자기 회복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며 생존과 연관된 본능적 이기심을 보입니 다. 이들은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회복해 다시 생명을 이어갈 수 있 도록 생존 본능에 충실해집니다 .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 가해 자와 피해자의 이기심의 차이는 ‘순수한’ 과 ‘본능적인 ’에 있습니다 . 가해자는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함과 생리적 욕구라면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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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모든 생명이 가지고 태어나는 생존 본능에 의해 만들어진 자기방 어 방식입니다. 마지막으로 경찰 또는 프로 파일러들이 수사 또는 재판에 얼마나 노력하는지와 연결되어 피해자나 가해자의 운명을 가릅니다 . 법을 거 스르며 수사 또는 재판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반면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체력과 시간을 아낌없이 쏟으며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 습니다. 후자는 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이타적인 면이 많이 드러 납니다. 돈이라는 물질 때문에 어느 특정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직업만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 생명의 위협을 감당할 거란 각오를 하고 선택해야 하는 직업이며 보수도 만족스럽지 못할 것입니 다. 이들은 오직 일의 가치를 알아보며 어쩌면 의사와 같이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셈입니다 . 하지만 자신의 자아실현의 욕구라고 본 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으로 이기심으로 해석될 수 도 있습니다. 여기서 아이러니함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타적일 수 밖에 없는 일을 이기심으로 인해서 한다는 점입니다 . 이들로 인해 인 간 존재의 정답을 찾자면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지만 이기심의 형태가 다양하기 때문에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 각자에게 다른 의 미의 이기심으로 해석이 됩니다. 책에 많이 언급된 내용으로 , 많은 범죄자들은 주위 환경에 영향 을 받아 범죄를 저지른다고 합니다 . 책 22 쪽 마지막 줄부터 23쪽 첫 줄까지 이어진 문장은 살인죄의 피고인이 법정에서 말한 걸 인용했는 데 이 문장은 앞서 나온 주장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 “나는 사람이 아닌 짐승을 죽였어요 .” 피고인이 이렇게 말하게 된 이유는 자신을 어렸을 적 주기적으로 강간하던 강간범을 법으로 처단할 수 없어 자 신이 직접 죽인 것인데 , 이는 법의 무책임함을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 많은 범죄는 오직 한 인간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닌 여러 인간의 이기 적인 본성으로 형성된 사회적 분위기와 상황에 사람이 휩쓸리고 등 떠밀려 일어납니다. 어쩌면 법의 허점을 간과한 큰 원인이 될 수 있 습니다. 더 나은 법을 위해서는 인간의 본질과 그를 개선하는 법을 살펴봐 야 합니다. 위에 언급됐듯이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 자신을 보 호하기 위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 그리고 생명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기심을 중심으로 삶을 이어갑니다 . 많은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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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이라 동의하는 부류를 살펴보자면 ‘배려할 줄 안다 ’, ‘도덕 적으로 옳은 일을 한다’, ‘사랑받으며 사랑할 줄 안다 ’와 같은 말들을 합니다. 정신적으로 질병이 있거나 표준 상식에서 벗어난 심리를 가 진 사람이 아닌 이상 사람은 자신의 심리적 안정이 우선 보장된 상태 여야 이러한 일들이 가능합니다. 또한 타인을 신경 쓸 여유와 주위의 관심으로 자신의 가치를 느껴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다르기 때문에 모두가 옳은 상식과 개념을 배 우며 그걸 실천하는 법을 안다 해도 범죄가 일어나지 않을 확률은 낮 을 것입니다. 인간은 본성을 넘어서면 개성이 있기 때문에 , 자신을 ‘좋은’ 사람에 가깝게 만들려면 각자 다른 노력 , 생각 , 그리고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 모두는 다르게 태어났으며 천성과 자라는 환경 , 성 격이 같을 수 없어 법이 효과적으로 사회에 제 몫을 하려면 이 사람 들이 모두 같은 개념과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 하지만 이것은 불가능 합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교육을 받고 사회적 질서와 가치를 실현한 다 해도 태생부터 표준 상식과 다르며 정신병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 은 무조건 존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좋은 ’ 사람으 로 성장할 수 있는 과정을 모두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며 어쩌면 평소 에 법을 잘 지키면서도 가끔 예고 없이 예상치 못한 범죄를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이며 결점이 없는 법을 바탕으로 생각한 다면 이러한 사람들은 형을 줄이고 정신 치료를 해야 한다는 법이 포 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정신적 질병이 있다며 거짓 증언하는 사람이 늘어나 법의 약점 아닌 약점을 끊임없이 악용할 것입니다 . 법 을 고의로든 실수로든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중에서 특 별한 사항을 배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 때문에 몇 백 년을 걸쳐서 사람들의 정 신을 교육해도 범죄는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며 모두가 만족할 적당한 처벌과 적당한 법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세상은 모두의 정신이 표준 일 거란 보장이 없는 이상 오기 힘들다는 결말을 맺습니다. ‘ 표창원의 사건 추적 ’이라는 책에서 나온 사례들을 살펴본다면 대 다수의 범죄자는 주위 환경과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행해진 일이 많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사회적 사고방식과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질 때 범죄율은 크게 줄어들 것이며 법은 효과적으로 납득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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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질 것입니다 . 또한 법의 허점은 악용되지 않을 것이며 범죄자는 합당한 법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 하지만 세상은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사람만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정신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 들과 세상 사람들의 개성을 억압할 수 없음을 감안해 법은 혼란 속에 서 최소한의 보장된 규정과 평화는 이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이든 각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사회는 법으로 안정을 지키고 있지만, 법의 근본적인 문제점과 법을 지키는 인간은 현재 시점으로 선 결코 고쳐질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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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중성 공지영 , ‘도가니 ’를 읽고

김동현 Dani el Kim 무진에 있는 청각 장애인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가 된 주인공 (강인호) 의 관 점에서 ‘도가니 '의 이야기는 전개된다 . 강인호는 학생들이 교장과 행정실 장한테 지속적인 성폭행과 구타를 당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 자신이 잘 아는 대학교 선배와 이 사건을 세 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을 한다. 그 과 정에서 무진에 있는 수많은 비리 때문 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결국에는 재판 이 시작된다 . 처음에는 모든 일이 순 탄하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이없게도 가해자들이 피해자들과의 합의서에 사인을 받아 내면서 형량이 자연스레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에 분노한 아이들은 계란을 던지면서 항의 하지만 , 이 사건을 통해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했다는 과장된 보도를 하면서 대중들의 질타를 받게 된다. 결국에 이 사건은 굉장히 흐지부지하게 마무리 된다. 그 리고 주인공인 강인호는 무진을 떠나게 된다. “십 삼세 미만의 아이에 대한 성폭행은 피해 당사자나 보호자가 고소를 취하하고 합의하면 기소자체가 무효가 돼. 가난하고 지적장애 도 있는 부모들을 설득해야 한다니까.” “아이들 성폭행에 무슨 합의가 있어?” (책 262 쪽 ) 이 구절에서는 합의서를 받으면 기소가 무효화되는 말도 안 되는 정책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간접적으로 성토한다 . 미성년자가 그 어 린 나이에 성폭행을 당했는데도 보호자한테서 합의서만 받으면 풀려 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도 부조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강 인호가 말한 것처럼 성폭행에는 합의 같은 건 말도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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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이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쓴 책이라는 사실에서 가장 많이 놀랐다 . 책을 읽으면서는 조사가 진행이 안 되는 과정에서 많은 답답함을 느끼고 재판이 별 의미 없이 끝났다는 사실 에서 굉장히 분노하기도 했다. 어린 아이들을 성폭행하고 구타한 사 람들이 큰 처벌 없이 살아간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어이가 없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권력층에 의해 숨겨져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이 책에서 보 여줬던 수많은 비리와 사회의 어두운 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얼마나 추악하고 더러울 수 있는지 이 책을 통해서 느끼게 된 것 같다. 사실 국어시간에서의 읽기 자료를 통해 살펴본 인간의 본성은 이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이득을 최대한 챙기려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 이 책을 읽으면서 보았던 주인공 (강인호) 과 그의 선배 (서유진) 가 보여준 모습을 보면서 한 가지 의문 을 가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손해를 보면서 남을 돕는 경우에서도 인 간이 이기적이라고 확신 할 수 있을까 ? 청각장애인 학생들이 성폭행 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강인호가 느꼈던 그 소름 끼친 고통은 왜 일어났을까? 만약에 그가 정말로 이기적인 인간이라면 과연 그 아 이들을 도울 수 있었을까 ? 나는 이 질문에 인간은 동정심을 통해 남 을 도울 수 있고 이타적인 사람이 되는 선택을 자발적으로 할 수 있 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간은 ‘ 공감’이라는 아주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입 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닌 ,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 우 선, 이 책에서는 강인호는 직업이 절실히 필요했던 사람으로 나온다 .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운 좋게 얻은 기회를 잃기 싫었을 것이다 . 하 지만 그는 아이들이 성폭행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 그들을 도 우려고 노력한다 . 이 장면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 강인호가 정말로 이기적인 사람이었다면 , 성폭행 당하는 아이들을 무시했을 거라는 것 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당해본 일이 비슷하게 일어나는 것을 보면 서 같이 마음 아파하거나 위로해 준다 . 강인호는 여기서 한 아이의 아버지이다. 그는 아마도 이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자신 의 딸을 떠올렸을 것이다. ‘만약에 내 딸이 이런 학교에 다녀서 성폭 행을 당했더라면… ’이라는 생각이 그가 그 소름끼치는 느낌을 받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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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일 것이다. 서유진은 살면서 여자라는 이유로 많은 차별을 받거나 성희롱도 당해봤을 것이다. 이 책에서 경찰들이 나이든 여자가 왜 이렇게 열정 적으로 일하느냐는 말투로 서유진을 무시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 이 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어린 여자아이가 성폭행 당했다는 소식에 화를 참지 못했을 것이다 . 이처럼 모든 인물들이 자신의 환경에서 습득한 경험을 통해서 그 아이들의 경험에 공감하게 되고 같이 분노하게 된 것 같다. 한 가지 의문은, 왜 나처럼 별로 이러한 사건과 연관 없는 사람도 분노를 느끼게 되는 것인가였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단순 했다. 나는 자라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서 수도 없이 많이 듣고 배웠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자연스레 이러한 나쁜 일에 대해서 는 거부감을 느끼게 되고 굳이 연관된 점이 없이도 이것은 옳지 않다 는 것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 만약에 자라면서 이러한 교육을 받지 않고 자란 사람이 이 책을 읽었더라면 별 거부감이 안 들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이 책에서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환경을 바탕으로 아이들과 공감 할 수 있게 되었고 , 이를 통해 분노 라는 감정을 불러일으켜 아이들을 도와야하는 동기를 만들었다 . 이를 통해 인간이 꼭 이기적이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에 대한 예화를 보면 부자들 이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통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던 부자들 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 나는 처음에 부자들이 자신들을 희생 하는 이유는 자신의 명예 때문이라고 여겼다 . 하지만 , 생각해보면 죽 게 된다면 명예나 돈은 상관이 없을 것이다 . 이들은 남을 돕고 싶은 마음 때문에 자기 자신을 희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 책에서도 장 애인 아이들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 강인호가 노블레스 오 블리주의 한 모습을 보여준 것 같다. 또한 등장인물들은 어떠한 이유 때문에 이 아이들을 돕게 되었는 가? 옳지 않은 것을 고치려는 의지를 느꼈을 것 같다. 살면서 부당한 것을 볼 때 왠지 모르게 욱하는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을 것이다 . 성 폭행 교사들이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을 보고 강인호와 서유진은 분노 하고 아이들을 돕고 싶은 욕구를 통해 동기부여가 되어서 아이들을 열심히 도왔을 것이다 . 물론 강인호는 직업을 지키고 싶은 욕구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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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을 것이다. 그가 아이들을 돕기로 다짐했을 때에 그는 자신이 직업 을 잃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강인호가 옳지 않은 것을 고치고 싶은 욕구를 직업을 유지하고 싶은 욕구보다 중요 시 여겼기 때문에 그 아이들의 아픔을 무시하지 않게 되었던 것 같 다. 동기이론에서도 인간의 욕구에는 여러 가지 단계가 있고 그 욕구 에서의 우선순위가 있다고 말했다 . 하지만 , 나는 이 동기이론의 일부 분만 동의한다. 욕구에 우선순위가 있는 것은 맞지만, 그 순서가 어 떤지는 자신이 정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이기적으로 행동하거나 이 타적으로 행동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결국 ,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 범죄자의 딜레마 ’에서는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신이 최소한의 손해 를 받고 리스크를 줄이는 길을 선택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 만약에 이 자료가 정말로 맞았더라면 강인호는 아이들이 성폭행 당한다는 사실 을 알았다 하더라도 그들을 도우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 직업을 잃 는다는 것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한테 큰 손해라는 사실을 인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옳지 못한 일을 봤을 때의 욕구를 중 요시 여겨 손해 보기 싫어하는 욕구를 억눌렀던 것이다. 이를 통해 강인호는 이타적인 모습을 보여주게 된 것이다. 자신의 선택으로 인 해 그는 이기적인 인간이 아닌 이타적인 인간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 인간은 공감 능력 덕분에 자신이 손해를 받 는 상황에서도 이타적인 욕구로 이기적인 욕구를 억누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때로는 이기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이타적이기도 한 다. 욕구의 우선순위는 자신이 정하는 것이고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 지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다 . 인간이란 자신의 모든 선택으로부터 그 본질이 존재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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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주인은 노동자 안건모,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를 읽고

정강인 Bryan Jung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는 한 버스 기사의 평범한 삶을 담백하면서도 명 쾌하게 담고 있는 책입니다. 매 장마다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 기 때문에 전반적인 흐름은 있으나 긴 소설처럼 이어지는 이야기는 없습 니다 . 한 버스 기사님의 삶을 성찰하 는 회고적 이야기로서 많은 이야기들 이 차례차례 나열되어 있습니다 . 책 에서 나오는 많은 인물들과 성격을 보면서 복잡한 인간의 면모를 버스 기사로서의 시각을 통해 배울 수 있 었습니다. 책의 주요 등장인물이나 상황을 설명하는 부분은 낯설지만 신기하다고 느꼈습니다. 평범하다고 해서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 매 페이 지마다 새롭고 신선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 술주정 부리는 할머니부터 조폭갱단 두목까지 20 년 동안 버스 기사로 일하면서 만 난 다양한 사람들과의 겪은 일들을 마주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 한구 석에 먹먹한 기분이 듭니다 . 버스기사의 일상생활의 고단함과 사회적 약자로서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배우면서 버스기사는 어쩌면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회적 피해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그러면서 버 스 기사님들에게 내가 평소에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지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한 무력한 시내버스 기사가 지닌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굳이 전쟁에서의 승리를 이끌어 내거 나 위대한 혁명을 일으키지 않아도 우리가 있는 현실의 자리에서용기 를 내어 자기 목소리를 낸다면 충분한 사회적 변화를 가져 올 수 있 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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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끔씩 친구들이랑 놀러가거나 학교 근처의 음식점을 갈 때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고 빨리 이동할 수 있는 대중교통을 선호합니 다. 지하철은 요즘 시설이 많은 정비와 개선을 통해 많이 안정되어 있고 운전하시는 기사님과 얼굴을 볼 일이 없습니다 . 더불어 지하철 안에는 출퇴근 시간을 피한 쾌적한 환경뿐만 아니라 빠른 와이파이까 지 제공되기 때문에 지하철을 참 좋게 여기고 있습니다. 책을 읽기 전 버스 기사님들에 대한 저의 인식은 상당히 불만족스러웠습니다. 대부분 매우 무뚝뚝하시고 카드를 기기에 찍기도 전에 출발해서 넘어 질 뻔하거나 커브 구간을 돌 때 과격하게 속도를 안 줄이고 돌아서 버스 균형이 무너지는 광경 때문인지 저는 매번 왜 버스 기사님들은 그렇게 운전을 험악하게 하시나 싶었습니다 .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이러한 저의 생각을 바로잡는 구절이 하나 있었습니다. “오전반 막차가 7시에 나가면 내가 첫차로 노선을 한 바퀴 돌고 와서 7 시 5분에 두 번째 탕을 나가야 하는 것이다 . 그러니까 첫차로 6 시 40 분까지는 노선을 한 번 돌고 와야 한다. 그래야 밥 먹는 시간 을 한 20분쯤 벌 수 있다 . 아니 똥을 누고 자판기 커피 한 잔 뺄 시 간이라도 있으려면 밥을 한 10분 안에는 먹어야 한다 .” (책 50쪽) 왜 평소에 버스기사님들이 언제나 빨리 달리시면서 운행을 하시는지 이 해가 갔습니다. 밥을 먹는 시간을 10 분에서 20분밖에 안주다니. 만약 비 오는 날이나 차가 엄청 막히는 날에는 얼마나 더 걱정이 심하실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장을 넘기다 보면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이 가는 장이 나 왔습니다. ‘졸음운전 ’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이 부분은 이상하면 서도 제가 가장 공감 할 수 있었습니다. ‘ 가만 있어봐, 내가 금방 홍은동 정류장에 서고 왔나 ? 사람이 내렸 나? 아니면 정차하지 않고 통과했나 ?’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잠 이 오기 시작하면 , 어떻게 왔는지 어떻게 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다. 오로지 앞서 가는 차를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갈 뿐이다 .’ (책 38 쪽 )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자마자 아직 컴컴한 새벽길을 달리는 저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니 정말 안쓰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 한국의 학생으로서 많은 날들을 늦은 시간에 취침하고 다음 날 새벽에 일어 나서 학교 가는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 때로는 밤에 공부하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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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마무리 짓기도 합니다. 저는 매일 아침 어머니 가 학교로 태워주시는데도 불구하고 피곤해서 반쯤 감긴 눈으로 등교 를 하는 입장으로서는 버스 기사님의 고단함이 안타까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버스 기사님들은 정말로 세상에 알려지지는 않 았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피해자라고 느꼈습니다 . 그 이유는 가정을 이루고 살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시급과 이에 더하여 회사들의 갑질 대접까지 겪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 기본적으로 1시간에 받는 시급 이 3,564원이라고 했을 때 한 달에는 684,288원 밖에 받지 못합니 다. 적은 돈임에도 불구하고 버스기사님들이 거의 매일 열심히 나오 시는 이유는 ‘ 만근 ’이라는 것을 해야지만 이 돈을 다 받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근이란 한 달 동안 자신의 휴일 (빨간 날이나 공휴일) 을 빼고 26 일 동안 근무하는 것을 말합니다 . 만근을 채우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버스기사님들은 월급제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근 을 못할시 15 만원에서 20 만원까지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나라가 IMF가 터졌을 당시 , 많은 회사들이 망하면서 택 시기사, 화물 운전사들이 다 시내버스나 마을버스 기사로 돌아오려고 했습니다. 버스기사님들의 시급이 비교적 안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 많은 사람들이 버스기사가 되고 싶어 하자 회사들의 갑질은 날로 심 해져 갔습니다. ‘ 입맛에 맞는 놈 ’만 골라 쓸 수가 있으니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있 나. 마음에 맞지 않는 기사들은 쫓아내기 일쑤다 . 조그마한 꼬투리만 있으면 일을 주지 않아 만근을 시키지 않는다 . 기사들이 남아도니 싫 으면 딴 데 가라 이거지.’ (책 145쪽 ) 이러한 갑질은 회사에 대한 불만을 가지거나 항의를 하는 사람의 기분을 더 이상 맞춰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 간단히 말해서 마음에 안 든다면 자르고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사람으로 교체하면 그 만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버스회사의 말을 순순히 듣던 이 책의 저자는 어느 순간 자신이 노동자로서 , 대한민국의 한 시민으로서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 본가들을 상대로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굴복하고 따라 하기만 한다면 자신의 권리를 주장 할 수 없다고 사고의 발상을 완전 히 180도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하셨습니다 . 회사 사장이 자신이 교통사고 때문에 병원에 있는 동안 일을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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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핑계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날짜만큼 임금을 주지 않으려고 했 다고 합니다. 그러면 노동부에 고소하겠다고 내용증명서까지 보내자 그제야 임금을 주었다고 합니다 . 대화하는 과정에서도 회사에게 한 마디도 지지 않고 싸워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회사 주인이 누구야 ?” “우리 노동잡니다 .” “사실 ‘회장님입니다 .’하는 대답이 나오기를 바랐겠지만 나는 주저 하지 않고 대답했다. ‘책임자는 회장님이지만 이 회사 주인은 우리 노동잡니다. 우리 노동자들이 아니면 이 회사가 돈을 벌 수 있겠습니 까?” (책 243 쪽) 개인적으로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가장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회사의 사장이라는 높은 직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맞서 싸우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용기가 저는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비록 영향력은 크게 없지만 진정한 회사의 주인은 자신 이라고 말하기는 참으로 어려울 텐데 당당히 말하는 모습이 정말 인 상 깊었습니다.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 (Maslow’s hierarchy of needs )은 인간의 욕구는 타고 나는 것이면서 동시에 하위 단계 욕구를 충족시켜야지만 상위 욕구로 넘어 갈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 예를 들어서 생리적 욕 구와 안전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돈이 없는 백수는 존경 욕구나 사회 적 욕구를 바라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 하지만 저는 이 책을 읽으면 서 작가 안건모 기사님의 행동은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과 맞지 않다 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버스기사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사회적 , 안전 , 그리고 생리적 욕구가 충족 되지 않은 상태에서 책을 출판하고 한 인 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욕구단계 이론이 언제 나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 그래서 그런지 작 가 안건모 기사님의 용기가 그만큼 더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 작가님이 착한 단 골손님부터 난폭한 손님들을 상대하는 것을 보면서 저는 사람은 결코 완벽할 수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단골손님 인 착한 중년의 아주머니가 어느 날 말없이 동전을 기사님에게 던진 다든지, 언제나 대낮부터 술에 잔뜩 취해서 난동을 부리던 백수가 박 카스 한 병을 건네는 장면들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 사람은 쉽게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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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진정으로 완벽히 좋은 사람도 완벽히 나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 다시 말하면 언제나 나빴다고 생각했던 사 람이 좋은 선행을 베풀 수도 있는 것이고 좋은 사람도 기분에 따라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 이런 역설적인 생각은 인간 은 가변적인 존재면서 미완성의 존재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말고 최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을 버리 고 사람들을 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인간이란 누구든지 자신의 이야기를 말 할 권리가 있고 사회 의 편견이나 사회 계층을 너무 신경 써서 스스로 위축될 필요가 없다 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책들보다는 이해하기 쉽고 전개가 간단 했지만 어렵고 복잡한 책들 보다 더욱 마음을 찡 하게 움직이는 울림 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제 생각에는 작가님의 진심이 책 속에서 묻 어나오기 때문에 이런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책의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작가님은 일반 노동자들이나 사람들이 세상의 주인이 돼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를 하셨습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글을 쓰고 책을 펴내는 것 자체가 세상을 향한 용기라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비록 고등학교도 중간에 가정 문제로 졸업을 못하셨지만 책을 쓰시고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의 마 음을 움직였다는 것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 책의 존재 자체 로 미약하더라도 분명한 변화를 우리 사회에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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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의 불편한 현실과 마주하다 안수찬 , ‘4천원 인생’을 읽고

윤효진 Hyojin Yun 많은 추천목록의 책들 중에서 ‘4 천원 인생 ’이란 책이 가장 눈에 띄었다. 옛날 부터 저임금 노동자들 , 즉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들의 삶을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 또한 , 지금의 나로서는 돈을 벌지 않고 , 과소비 성향이 있었기에 , 돈 의 가치를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낮게 바라보았다 . 그러므로, 지금은 알지 못 하는 돈의 가치와 그의 중요성을 좀 더 구체적으로 깨닫고 싶은 마음도 물론 있었다. ‘4 천원 인생’ 은 기자들이 직접 빈곤 한 노동자들 , 그리고 불법 체류자들의 삶을 취재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만든 책이다. 그러므로 ,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합리한 작업환경과 그들의 비판적 관점이 잘 반영되어 있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4 천원 인생 ’의 첫 페이지는 , 서울에 있는 모 갈빗집에서 시작한 다. 이 식당에서의 이야기를 통해 , 우리나라의 식당 아주머니들, 그리 고 이와 비슷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환경을 잘 이해할 수 있다 . 이 갈빗집에는 많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적은 임금을 받으며, 열 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 큰 규모의 식당에 비해서 노동자들의 인 원수가 적기 때문에 , 많은 노동자들의 불합리한 노동력 착취가 생겨 나고 있다. 덧붙여 , 기자는 이런 힘든 상황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사장들의 갑질을 듣고 항상 그들의 말을 들어야 되는 ‘ 파블로프의 개’라고도 비유를 하며, 그들의 있어서는 안 되는 ‘갑을 관계 ’를 나타 냈다. 마흔 남짓 된 여성 종업원들은 , 비정규직임에도 불구하고 노동현 장으로 뛰어든 계기가 대부분 비슷하다 . 주로 하고 있던 사업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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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부도가 나서 빚을 갚아야한다거나 , 어떻게든 생계를 유지하려고 일을 시작한 것이다 . 하지만 그녀들의 남편들은 집에서 나몰라라 하 고 쉬며, 100 퍼센트 맞벌이 하는 여성들에게 생계와 삶을 의지한다 . 이런 여성 종업원들은 남들보다 책임감이 막중해야 한다. 가장이 되 고, 가정의 생계를 유지해야 하고 , 갈빗집에서 쉬지도 못하고 10 시간 동안 손님들의 부탁과 사장님의 부당한 요구에 치이고 꾸중을 들으면 서도 묻지도 띠지지도 못하면서 묵묵히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자가 취재한 두 번째 작업현장은 대형마트다 . 대형마트에는, 스 무 살 남짓의 노동자들이 많다 . 그들은 청춘을 바치면서 대학 등록금 또는 가정형편과 살림에 보태기 위해 매일 마트에서 고된 일을 한다. 이런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20 대 종업원은 가정 형편이 좋 지 않거나, 대학을 중도 포기한 사람들이다 . 딱히 특별한 꿈이 없고 , 성공한다는 보장과 자신이 없기 때문에, 꿈을 포기하고 어린 나이부 터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이다 . 그들은 업무 도중에 쉬는 시간을 가지 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다 . 본사직원이 큰소리로 잔소리를 하기 때문 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불법 체류자들에 관한 것이다 . 그들이 일하는 공장시설은 매우 열악하다 . 톱질을 한 후에 발생한 수많은 먼지들은 밖으로 나가질 못하고 , 자신들의 입으로 들어가 그들의 호흡기관을 망가뜨린다. 그들이 아침 8 시나 9시 반 사이에 일을 시작해서 , 저녁 9 시에 일을 끝내도, 결국 받게 되는 돈은 최저임금보다 낮은 월급 190 만원이다. 하지만 , 이들은 관리자들에게 따지지도 못한다 . 사장들 이 불법 체류자들을 신고하면 , 이들은 짐을 싸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 기 때문이다. 마지막 이야기는, 파견 노동현장을 취재한 기자가 쓴 글이다. 파견 업체들은 170 만원만큼의 월급을 받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 그들이 계 약한 것과 받는 돈은 달랐다. 그들이 170 만원을 받으려면 , 더욱 더 많은 잡일들을 해야 된다. 때문에 , 노동자들은 결국 야근까지 하며 , 그들의 청춘, 그리고 그들의 시간을 회사의 갈취로부터 허락한다 . 이 잡일들과 상사의 거짓말들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향한 노동력 착취는 더욱 더 심해져 가고 , 노동자들의 건강은 극심하게 나빠져 간 다. 이 ‘4 천원 인생 ’이란 책을 읽고 , 저임금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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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기성세대부터 이어온 가난함이나 그들의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모순도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 자본주의 사회에 영향을 받아서, 부유하거나 가진 자들은 그들의 논리에 의해 서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고, 불합리한 노동현장의 시스템을 바꾸거나 다른 가난한 자들에게 양보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소 수의 부유한 사람들은 이들에 대해서 아예 관심조차 없다. 매슬로우의 욕구단계 (Maslow’s hi erchy of needs)이론에 비춰본 다면 부유한 사람들은 생리적 욕구와 안전과 관련된 욕구는 이미 충 족되었고, 자아실현욕구까지도 만족하고 있는 듯하다 . 하지만 , 책에 나오는 저임금 노동자들은 생리적 욕구와 안전에의 욕구 등 아직까지 도 충족을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책에서 나오는 노동자 들은 밥을 굶어가면서 , 혹은 쉬는 시간도 없이 힘들게 노동을 하지만 안전 또한 보장되고 있지 않다 . 불법 체류자들이 사는 곳은 많은 사 람들이 생활하기엔 매우 비좁고, 위생 점검 또한 주기적으로 받고 있 는 곳이 아니다. 아직까지도 , 이 심각한 문제는 계속 진행되고 있으 며, 현재까지도 이렇다 할 뚜렷한 해결책은 없다 . 이 때문에, 부유한 사람들은 쉬운 방법으로 얻고 싶은 것들을 쟁취하고 , 빈곤계층의 사 람들은, 노력을 많이 해도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는 현실이기에 , 그 들은 삶을 쉽게 포기해 버린다. 책을 읽고 난 후 나에게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 우선 비정규직 노동자들, 저임금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고 , 이해의 폭도 넓어졌다. 그리고 , 그들의 삶에 대하여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 옛날에 식당을 가면 , 식당에서 일하시는 아 주머니들께 서슴지 않은 ‘갑질 ’을 계속해 왔다 . 내가 낸 돈의 가치와 식당 아주머니들의 일들이 비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하지만, ‘4 천원 인생’ 은 내 기존의 가치관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 식당 아주머니 들이 몇 만원 남짓 하는 돈을 벌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다는 걸 알 게 되었기에 나의 이기주의적인 시각과 행동을 다시 돌아보게 되고 반성하게 되었다. 또한, 이 책은 나에게 돈의 가치를 알려주었다 . ‘ 시급보다 비싼 음 식님’ 이라는 구절이 가장 기억에 남고 , 그리고 평소에도 기억하고 싶 다. 이 구절을 읽기 전까지 나는 , 사람들이 조금만 일해도 돈을 버는 줄 알았고, 나에게 돈의 가치는 매우 낮았다 . 내가 직접 열악한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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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적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구절과 책을 읽고 최저시급이 얼 마나 낮은지 알게 되었고 , 그리고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해야 생계를 유지해야 되는지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힘들게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과 이러한 사람들이 어떻 게 한국이란 경쟁사회에서 힘들게 살아남아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사람들은 큰 틀에서는 이타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 그리고 대 부분의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다른 사람들과 협업을 하여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 취재진들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 문 제점을 파악하는 것을 원할 것이다 . 그리고 , 이 책을 읽은 사람들과 ,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같이 힘을 모아서 소수의 부 유한 사람들만이 성공 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닌 , 모두가 노력하여 성 공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에 노력 할 것이다 . 소수의 사람들은 다 수의 인원을 이길 수 없다 . 그리고 사람들은 다수의 의견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사회에 극심한 문제점을 깨닫고 사 회 전체에 영향력을 주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바뀔 수 있지 않을까라 고 ‘4천원 인생' 이라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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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이상석, ‘못난 것도 힘이 된다 ’를 읽고

김동준 Tom Kim ‘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 라는 주제에 대한 나의 처음 생각은 선 과 악의 대립이었다 . 왜 나는 인간을 ‘선과 악’으로 나누어 비교하기 시작했을까? 물론 생각이 깊어질수록 나는 더욱 구체적이고 다양한 인간의 존재 이유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 이 세상을 살아가는 또 하나 의 인간으로서 나는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그 존재하는 이유에 대하 여 생각해 보았다 . 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이 만든 존재이자 그의 사명을 다하기 위한 이유들을 가지고 태어났다 . 나는 그 무엇도 이것에 대한 부정을 할 수 없을 뿐더러 이보다도 더한 혹은 덜한 존 재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 모든 만물은 하나님 아래 평등하기 때문이 다. 최근 읽은 ‘ 못난 것도 힘이 된다 ’ 라는 책은 현재는 국어 교사로 활동하 시는 이상석 선생님의 과거 이야기이 다 . 처음에는 시골에서 생활하던 자신 의 여러 가지 어릴 적 모습들을 보여 준다 . 친구들과 물놀이를 했던 날들 , 연탄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 , 사랑했던 아이 , 할머니와 살았던 시절 등이 아 름답게 그려진다 . 하지만 그 순수하던 시절이 지나 중학교 3 학년에 들어서 자 방황하기 시작한다 . 싸우고 담배피 고 패거리까지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삶을 살면서 지금의 자신을 찾고 가꾸 게 되는데 그 못났었던 이유들 때문에 또한 지금 큰 힘을 이룰 수 있 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은 누구나 한번쯤 슬펐고 아팠다 . 인간의 삶을 여러 잣대로 구분 짓는 것은 결국 자신의 선택이 아닌가 싶다. 그중에서 인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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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존재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할 만한 생각들을 ‘매슬로우의 욕 구이론’, ‘노블리스 오블리주 ’, ‘죄수의 딜레마 ’, 그리고 ‘동기이론’ 에 연관이 되어 설명해보고 싶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는 너무나도 폭넓은 화두임을 안다. 하나 님이 주신 사랑을 비롯한 욕구 , 탐욕, 기쁨 , 분노, 좌절 , 절망 등 셀 수 없을 만큼의 많은 것들을 신은 우리에게 부여했다 . 그 중에서도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자유 ’라고 생각한다 . ‘ 자유 ’ 덕분에 다양한 생각과 감정들이 있고 존재의 여부를 확인하여 우리가 살아 숨 쉼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 이 말은 자유 또한 많은 사람들 이 갈망하는 욕구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 많은 것들을 전제로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에 대한 구체적인 분류를 하였다. 가장 하위 욕구인 생리적 욕구부터 안전 욕구 , 사회 적 욕구, 존경 욕구, 자아실현 욕구가 있다 . 매슬로우는 이러한 욕구 들은 하위 욕구부터 채워져 나간다고 하였다 . 매슬로우는 욕구가 발 생하기 위한 몇 가지 전제 조건들이 있다고 했다. 인간은 충족되지 아니한 욕구들을 만족하기 위해서 동기가 부여된다 . 사람들은 공통적 인 범위의 욕구가 있으며 , 이러한 보편적인 욕구는 충족되는 순서가 있고, 하위 욕구부터 만족될수록 상위 단계의 욕구가 발현된다 . 이 책에서는 이상석 작가 자신에 대한 못났던 삶을 보여준다. 그 에게도 방황하고 싸움질하고 담배 피던 시절들이 있었다. 그 시절들 은 하위 욕구로부터 3 번째 단계인 ‘사회적 욕구 ’를 충족시키고 싶던 마음의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 받기 위해 또 는 집단에 소속되어 집단의 일원으로서 의미를 찾으려는 욕구가 강했 다. 하지만 충분히 그러지 못했던 자신은 방황하고 패거리라는 잘못 된 길에 들어서게 되었을 뿐이다. 그 후 진정한 수용과 사랑을 혹은 우정을 찾은 이상석이라는 사람은 다음 욕구인 존경 욕구와 자아실현 욕구들을 채워가며 오늘의 국어 선생님이 되기까지의 길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자유라는 범주 안에서 우리는 인간마다 원하는 욕구가 다름을 느 낄 수 있고 그 다름이 인간의 존재를 명확하게 말해 준다고 생각한 다. 인간 한 명 한 명의 숭고한 자유 즉, 그 특별함이 우리의 존재 그 자체를 빛내준다. 만약 인간마다 그 특별함과 자유를 논한다면 인간은 모두 다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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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생 각한다. 보통은 그것을 선과 악으로 나눈다. 더 나아가 이기성과 이 타성 혹은 합리성과 비합리성이 있다 . 프랑스어로 ‘귀족은 의무를 갖 는다’ 는 의미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보통 부와 권력 ,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 하지만 궁극적으로 말 하고 싶은 것은 내가 나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과연 희생할 수 있 는가다. ‘ 사랑이 나를 아프게 하거나 슬프게 하여도 그 바탕에는 이 세상 을 살아 내게 하는 힘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책 343 쪽) 작 가 이상석은 아무리 아프고 슬퍼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이 세상에 머물러 아픔과 슬픔을 견디는 것을 택하였다 .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슬프고 스트레스 받고 화나고 죽고 싶을 때가 있겠지만 결국 이 세상 을 살 수 있고, 살고 있음을, 그리고 살아야하는 이유를 알려 주는 게 아닌가라는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보여주면서도 다시금 독자들에 게 당부하는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내가 아무리 못나고 슬퍼도 어쩔 줄 몰랐던 이유는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고 나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랑 이란 힘 덕분에 산다 . 그로 인해 , 인간은 자신의 보잘 것 없음을 인 정하고 사랑과 희생에 힘입어 살아가는 존재임을 알 수 있었다. 한편, 모든 사람들은 지금 합리적으로 살고 있는 것일까 ? 문제는 합리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에 대한 비합리성인 것 같다 . 대부분의 사 람들은 합리적으로 소비하고, 행동한다고 가정하며 경제 활동을 한다 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 . 매주 사는 복권만 봐 도 알 수 있다. 복권을 사는 대신 그 돈을 저축 하는 게 더 나은 것 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한 순간의 기적을 바라며 복권을 산다 . 지금도 사람들은 비합리적이지 않은 개개인의 선택들로 사회가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죄수의 딜레마’ 와 연관되어 있으며 이상석이 방황 하던 시절 패거리에 들어간 이유라고 생각한다 . 이상석이 방황하던 시절 사랑받지 못하자 어느 집단이라도 소속되어 집단의 일원으로서 의미를 찾기를 원하는 강한 동기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러자 결국 자신에 대한 거짓말이라는 즉 , 자칫하면 7 년형을 받을 ‘ 패 거리’ 라는 잘못된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한 지 금까지도 씻지 못할 과거들을 보여주며 다신 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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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그의 극복으로 인하여 자신에 대한 ‘패거리’ 라 는 거짓에서 나와 자백을 통한 합리적인 선택을 보여주며 국어 선생 님이 되었다는 것을 직접 증명하고, 자신의 과거에 대한 잘못을 뉘우 치고 책까지 내며 결국엔 힘이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 물론 거짓말을 하는 것이 가장 비합리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 다른 한 편으로는 가장 비합리적인 행동이 될 수 있다는 경우의 수가 있기 때 문에 자백과 거짓 사이에서는 더욱 비합리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선택의 자유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 .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 중에 인간을 구분하는 것은 자신만의 선택에서 비롯된다 . 슬프 고, 아프고, 실패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패배감으로부터 일어 설 수 있느냐와 없느냐가 합리성과 비합리성을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서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 일어서는 자는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고 거기로부터 일어서지 못하는 자는 결코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생 각한다. ‘ 못난 것도 힘이 된다’ 에서는 슬프고 , 아프고, 밑바닥을 경 험해 보았기 때문에 성공으로 인한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못나도 힘이 됨을 보여준다 . 이상석이 가지고 있던 동기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고 싶다 . 이상 석은 “어떠한 동기들이 있었기 때문에 일어설 수 있었을까 ” 그리고 , “왜 슬프고 아픔에도 불구하고 일어서야만 했을까 ”에 대한 질문이 정 말 궁금했다. 우선 동기이론은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로 나눌 수 있 다. 내가 설명하고 싶은 것은 이상석이라는 사람이 국어 교사가 된 동기이다. 이상석은 진정한 아버지이자 형 , 스승이었던 윤덕만 선생 님의 사랑을 통한 내적인 동기와 외적인 동기를 모두 보여준 것 같 다. 윤덕만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후 선생님만큼 좋은 선생 , 올바른 선생이 되고 싶다는 내적인 성취동기를 사랑을 통해 주시게 된 것이 다. 그로 인한 인격도야 , 전인형성, 자아실현을 위한 교육을 할 수 있 었다. 외적 동기 또한 있었다 . 외적 동기는 인위적인 동기로서 학습 목 표를 뚜렷하게 인식시키고 학습 결과를 인식시키는 데에서 비롯된다 고 한다. 학습자에게 성공감 또는 실패감을 맛보게 함으로써 학습에 대한 동기를 유발시킨다고 한다 . 이상석은 그 누구보다 방황과 고뇌 를 통한 밑바닥을 거리낌 없이 뛰어들어 좌절감을 느껴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석은 국어 교사로서의 외적인 학습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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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를 가지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러한 선택과 동기들이 있기 때문에 인간이 비로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에 대한 고찰을 ‘못난 것도 힘이 된 다’라는 한 권의 책을 읽음으로 인해 그동안의 가치와 사고의 전환을 이루어낸 듯하다. 뚜렷하게 알게 된 것은 내 자신이 못났다는 것을 그동안 인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노력하지 않고 공부를 잘 했으면 했 다. 노력하지 않고 무엇이든지 잘 했으면 했다. 하지만 내가 못났기 때문에 노력 할 수 있는 힘이 있고 결국 일어선다면 그것이 힘이 된 다는 것을 몰랐다 . 자신의 올바른 선택으로 인해 합리적인 길이 열린 다. 그리고 나는 특별하고 다른 인간이다 . 그 누구도 내가 될 수 없 으며 나도 그 누군가가 될 수 없다 . 어떤 존재인가는 내가 만들어 나 아가는 것이다. 내가 어떤 존재감을 보이느냐가 어떠한 인간을 만드 는 것이다. 그 존재감 덕분에 인간은 존재하며 그 어떤 존재도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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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교사의 길 이상석,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를 읽고

김재인 Charissa Kim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육이 모두에게 중요하다고 동의할 것이다. 교육이 있어야 현재 사회가 필요하고 사람들이 존경하는 의사와 변호 사와 같은 직업군의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물론 열심 히 공부한 결과로 의사나 변호사가 된 것은 맞는 말이지만 , 정말로 감사해야 되는 사람들은 바로 그 사람들을 가르쳐주신 ‘교사 ’들이다 . 교사들의 도움으로 인해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직업 에 들어가서 세상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 '는 평생을 교사로 살아온 이상석 선생님의 이야 기를 따른다 . 학생 시절 때 기억에 남는 교사들이 몇 명 계셨고, 영감을 얻고 본인도 교사가 됐다 . 교실은 자 기가 사랑하는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 누는 사랑의 자리로 생각했다 . 그러 나 다른 동료들은 그런 교육의 방식 을 반대하면서 , 지금 학생들에게는 대학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만 하고 계셨다 . 이상석 선생님은 결국 해직 되고 말았지만 , 학생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끝까지 얘기를 서로 나눌 수 있도록 노력을 늘 하고 계셨다. 이상석 선생님께서는 교사라는 직업 이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한 교사는 교실을 어떻게 이끌어야 되는지 본인의 인생에서 배운 점들에 대해 얘기를 해주신다 . 그리고 그런 배 움과 경험 속에서 보게 된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력도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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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심을 지닌 인간의 본성 인간의 본성은 이기성을 지닌 죄인이다 . 이것은 이 책에 등장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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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명의 선생님들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개념이다 . 많은 동료들은 이상석 선생님을 싫어하고 꺼려한다 . 이건 바로 이상석 선생님이 교 사를 선택한 이유와 동료들이 교사를 선택한 이유의 차이점이다. 학 교 선생님들의 회의 중에서 이상석 선생님을 제외한 모든 선생님들은 계속 어떻게 해야 1등이 나오는지 , 여고라는 다른 학교가 학문적으로 더 좋은 학교라고 알려져 있는데 자기 학교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어 서 어찌해야 되는지, 그리고 학생들이 꼭 대학을 잘 가야 된다는 걱 정만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화가 난 이상석 선생님은 “선생님 , 1등도 좋지 만 그게 교육의 전부는 아니지요 . 여고가 우리보다 나으면 어떻습니 까. 다 우리 대한민국의 딸 아닙니까. 그리고 성적 좋고 대학 더 많 이 보낸다고 일류가 되는 것도 아니고 ….”(책 181 쪽 )라고 반박했다 . 그러나 경쟁을 바탕으로 한 논리 앞에 이상석 선생님의 얘기는 힘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선생님들, 우리 애들 중에 일류 대학 가는 애가 몇 명이나 됩니까. 너무 입시 위주로만 치닫다 보면 나머지 애들이 더 소외당하게 되지 않을까요 . 교육의 본질은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책 181쪽 )라고 덧붙였다 . 그러나 돌아온 답변들은 모두 다 이 말을 무시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는 것 밖에 없었다 . 동료들은 학생들이 공부를 잘해서 대 학에 붙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고, 그렇게까지 못하는 애들은 어 쩔 수 없다는 듯이 불쌍해하기만 하고 끝났다. 어떤 동료는 “막상 대학에 떨어지고 보면 그 애들은 어디 갈 데가 없소. 그런 애들이 얼마나 불쌍해요. 학교 있을 때 어쨌든지 싸잡아 공부시켜 놓으면 한 명이라도 더 불행에서 건지는 것 아니요 . 대학에 가면 전부 우리보고 고맙다고 해요. 우리가 하는 데까지 했는데도 못 가는 애들은 어쩌겠소 . 할 수 없지요. 그 아이들까지 우리가 책임질 수 없는 일. 이 선생은 지금 애들에게 달콤한 말 해 주고 좋은 소리 들을라 하지 마소 . 지금 욕을 들어도 확실하게 잡아 주면 나중에 고 마운 줄 알 거요… ”(책 182 쪽 )라고 답했다 . 처음에는 이 동료들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하기 쉽다. 왜냐면 그냥 교육에 대해 아주 간단하게 생각하면 학생들을 잘 가르쳐서 좋은 대 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업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사들의 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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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 목표다. 그러나 이건 어떻게 보면 아주 이기적인 생각이다. 많 은 학생들이 공부를 잘 해서 대학에 붙으면 자기가 교사라는 직업인 으로서 성공한 것 같고 그렇지 못한 학생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감정 도 없는 이런 생각이 인간의 이기성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다. 이상 석 선생님께서는 학생이 성공하는 것에서 자신이 성공했다는 생각 보 다는 그 학생들이 바로 자기 학생들이기 때문에 ‘똑같은 시선 ’으로 봐주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 . 그리고 학교의 진학률이 다른 학교보다 더 낮은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 오히려 자기가 일하는 일터에 집중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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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선택하는 이타적 정신

이상석 선생님께서는 처음부터 완전히 이타적인 정신을 가지고 계 신 것은 아니었다 . 이상석 선생님도 처음에 교사 생활을 하면서 자주 아이들을 혼냈고, 그 아이들의 사정을 모르면서 감정 때문에 많이 때 리셨다. 그러나 계속 그런 방식으로 가르치면서 이런저런 경험으로 인해 반성을 하기 시작하셨다. 아이들이 선생님이 하라는 일의 양을 제대로 채우지 못했을 때 과연 마구 때릴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해 생 각하셨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러고 보면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은 그들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한 교사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라는 말과 “소란한 아이들을 보면 수업 방식부터 반성해 보자 . 잘못을 저 지른 아이들을 보면 이 잘못의 원인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찬찬히 살펴보자. 그리고 억누르기 어려울 만큼 화가 나면 교실 창밖 바라보 고 숨 한 번 크게 쉬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라고 말씀하셨다 . 그리고 예전에 때리고 엄하게 대했던 학생들을 다시 찾아가서 사과하 셨다. 이상석 선생님의 생각과 마음이 이렇게 바뀌는 과정을 보면 이 타적인 것은 이기성과 달리 배움에서 얻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기성은 선천적이지만 그걸 이겨내기 위해서는 살면서 얻는 지혜와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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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되려는 이유

이상석 선생님께서는 자기가 교사로 생활을 하는 이유는 바로 학 생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더불어 교실 안에도 사랑으로 가득 찬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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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다. 어느 날 학생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 “교사는 잘 먹고 잘 살 려 들어선 직업이 아니다 . 교사는 돈 문제에 추호의 부끄러움도 없어 야 한다. 월급 이외의 어떤 돈도 받아선 안 된다 . 이른바 민주 교육 을 들먹이는 사람들도 이 촌지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사로 성의니까 괜찮다고들 하는데 이것은 사회 정의를 세우는데 걸 림돌이 될 것이다 . 아니 , 그보다도 돈을 주고 싶어도 못 주는 학부모 를 생각해 보라. 아무리 돈과 관계없이 아이들을 대한다고 해도, 돈 을 받고 안 받는 차이는 어디에서든 드러나고야 만다 . 교육을 올바로 하는 교사가 되고자 한다면 금전 문제부터 철저히 맑아야 할 것이 다.” 이상석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올바른 교육은 경쟁이나 학생들의 학 문적 성공 보다는 학생들이 성장하는 것을 도와주면서 옆에서 지켜보 는 것이다. 그래서 이상석 선생님께서는 부모님들한테서 돈을 받는 것은 부담스러우며 , 그냥 자기는 학생들 인생의 일부라는 생각을 심 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상석 선생님은 교사라는 직업이 편안함과 부나 명예를 위한 직 업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다른 동료들과 달리 학생 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학교를 가는 그런 이타적인 정신을 가지고 계실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 또한 동료들의 이기적이고 인기 있는 생각과 의견에 대해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는 모든 학생은 똑같 이 귀하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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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인 삶, 보람 있는 삶

책을 계속 읽다보니까 이기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만 이타적인 삶이 더 보람 있는 삶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 이상석 선생님 은 다른 동료들이 욕을 하고 무슨 말을 하든지 계속 자신이 하고 있 는 일과 그 일을 하는 이유를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같 은 생각과 마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공부랑 전혀 관련 없는 얘기도 같이 해주고 수업의 분위기를 최대한 밝고 긍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늘 노력하는 교사가 되어주셨다 . 그러 고 보니 이상석 선생님은 다른 동료들에 비해 전반적인 행복 지수는 훨씬 더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아이들이 이상석 선생님들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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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고 선생님도 그 아이들과 사이가 엄청 좋다는 것을 동료들이 눈치 챘을 때 이상석 선생님께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커녕 계속 이해 를 못하겠다는 듯이 짜증이 나 있는 상태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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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차이

나중에 이상석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진정한 교육과 교사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책을 쓰게 되셨다 . 많은 선생님들에 비해 너무나 다른 관점인 이유로 방송사에서 찾아오기도 했다. 그러 나 동료들은 “누가 책을 못 내서 못 내는 줄 알아. 그 정도는 나라도 내겠다. 그러나 젊은 교사가 어찌 함부로 책을 낼 수 있어. 적어도 60이 넘어 확실한 평가가 내려지고 난 후면 몰라도 …”(책 236 쪽 )라는 말로 반응했다. 이상석 선생님의 이타적인 정신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은 동료들의 눈에는 하나도 인상적이지 않았고 , 저러다가 1 등하 고 대학 붙는 학생들이 많이 없으면 어쩌냐는 생각만 하고 있었던 모 습은 이기적인 정신이 행복을 전달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 아이들이 잘 해야지만 만족하는 동료들은 결국 아 이들의 존경을 받지 못하면서 교사 생활을 하게 되었고 , 매일 하루를 아이들과 지내야 하지만 선생님의 기대감에 따르지 못하는 아이들 때 문에 자주 실망을 하는 힘들고 지친 삶을 살고 있었다. 반면, 이상석 선생님은 뜨거운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안락함을 버리고 아이들을 사 랑하고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기 위해서 생활하다 보니까 아이들도 선생님을 존경하게 되고 매일 보고 하루를 넘겨야 하는 아 이들과는 좋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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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안타까운 현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상석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해 준 말과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동료들에게 당당히 했던 말들에 거의 다 밑 줄을 쳤다. 나도 꿈이 ‘교사’ 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을 다 읽고 나 서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교육의 의미는 바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 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 대학도 중요하지만 그렇게까지 못하는 아이 들은 소외되지 않고 다 자신 안에 숨겨져 있는 보물과 재능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쉽게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학생들은 교사에게 실망하는 경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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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많다. 가만 보면 그 문제는 교사의 이기심에서 생기는 것이다 . 아 직도 많은 교사들은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은 기준을 갖고 똑같은 기 대를 하면서 자신이 교사로서 얼마만큼 잘 하고 있는지를 학생들의 학문적인 성공에서 잰다 .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 붙은 후에 의사 나 변호사가 되는 학생들은 걱정할게 없을 수도 있겠지만 , 다른 분야 에 재능이 있거나 공부 말고 다른 것에 타고난 아이들은 그런 교사들 한테 실망 할 수밖에 없다 . 이게 바로 바람직한 교육이 되지 못하는 사회의 현실이다 . 그러나 만약 교사들이 이런 이기적인 정신을 버리 고 학생들을 정말 사랑하는 마음만 가지고 교사로 생활을 한다면 선 생님들도 학생들도 실망할 일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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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얻은 배움을 실천하자

나는 특수 교육 교사가 되고 싶다 .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매일 교실에 들어가서 아이들한테 기대하는 건 오 직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도와주면서 옆에서 같이 지켜보는 교사 가 되고 싶다. 내가 어느 한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마음에 너무 나 크게 와 닿았고 , 이상석 선생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특수 교육 교사로 생활을 하면서 나도 많이 배울 것 같다 . 오래 참음을 연습하고 아이들의 가장 작은 성취도 칭찬해 주고 싶다. 처음 에는 나랑 포옹하기 무서웠던 학생이 포옹을 할 수 있게 되고 , 무언 가 필요할 때 난리를 치다가 얌전히 소통하는 법을 배울 때가 나의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나는 교사로서 맞이하게 되는 어려움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그 어려움을 이타적인 정신으로 이겨 내면서 아이들과 함께 자라고자 하는 그런 교사 생활을 기대하고 있 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가장 빨리 밑줄치고 기억해야겠다고 다짐한 구절로 이 글을 마치겠다 . 바로 이상석 선생님께서 이타적인 정신으 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계실 때 하신 기도다. “오, 주님. 배반자의 쌀쌀한 얼굴도 마다 않으신 당신의 그 친절을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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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어, 가면 뒤에 숨어 있는 고독한 영혼을 보게 해 주소서. 나에게 통찰력을 주시어 나는 어른이라는 것과 이 젊은이들은 나만큼의 자제 력도 없으며 그 원하는 바도 다르다는 것을 올바르게 인식하게 해 주 소서. 학생들을 훈육하되 언제나 친절을 잃지 않게 해 주소서 . 모든 지식을 다 갖추고 있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 아무 유익이 없사 오니 사랑을 꼭 실천해야 된다는 것을 배워 알게 해 주소서” (책 46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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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의 무게 김형민, ‘양심을 지킨 사람들’을 읽고

최석형 Scott Choi ‘ 양심을 지킨 사람들 ’이 주는 감동은 한 권의 책이 줄 수 있는 감동 이상이 다 . 이 책의 핵심은 인간은 이기적이라 는 선입견을 깨고 ,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을 통 해 인간은 충분히 이타적인 존재로 거 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 이 책을 읽으 면서 나는 지금의 현대사회가 만들어지 는데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 필요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 폭군 연산군을 꾸짖어 모든 것을 바로잡으려 했던 환 관 김처선, 진주성을 끝까지 지키려했던 황진 장군 등 여러 위대한 사람들의 희 생 없이는 지금의 우리나라도 없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나온 여러 가지 사건들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나의 생 각마저 바꿔버렸다 . 이전에는 인간이 항상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존 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 인간은 자신의 짧은 인생을 최대한 가치 있게 살려고 노력하는 존재일 뿐이고 그러 기 위해서 때로는 이기적인 , 때로는 양심적인 선택을 내리게 된다 . 이 책에서 나오는 몇 가지 장면들이 인간이 항상 이기적인 동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 첫 번째 장면은 김처선 환관 이 연산군을 꾸짖으면서 바른 말을 하려고 할 때이다. 사실 이 책에 따르면 김처선은 젊은 시절 때 실수가 굉장히 많고 바르지 못한 행동 을 많이 저지른 환관이었다 . 이때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김처선 이 그저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이때까지는 김처선을 좋게 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에 나오 는 김처선의 행동들은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 특히 그가 연 산군을 만나러 가기 전에 주변사람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눈 행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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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이면서도 짠했다 . 자신이 분명히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김처선은 용기를 냈다. 연산군을 만나 바른 말을 한 그는 결국 몸이 찢겨 짐승에게 먹이로 던져졌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연산군에게 한 말들이다 . “조정의 대신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늙은 내시가 어찌 감히 죽음을 아끼겠습니까”(책 38 쪽 ) 라고 부르짖은 김처선은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놨을 것이다 . 만약 모든 인간이 항상 이기적이라면 이런 말 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 나이가 스무 살이든 일흔 살이든 이기적 인 사람은 목숨을 구걸했을 것이다 . 결국 김처선에게 중요했던 것은 자신의 목숨이 아니라 나라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 젊은 시절 때는 큰 실수들을 많이 저질러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친 김처선이지만 결 국 그는 나라의 운명과 미래를 위해 외로운 싸움을 하다 세상을 떠났 다. 김처선을 통해 내가 크게 느낀 점은 두 가지이다 . 인간은 항상 이 기적이지는 않다는 점과 인간은 세월을 통해 변한다는 점이다 . 김처 선은 비록 어렸을 때는 실수를 많이 하는 환관이었지만 나이가 들면 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면서도 나라를 살리려 하는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 또, 나는 김처선의 용기 있는 행동이 ‘공유지의 비극 ’과 연 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 ‘공유지의 비극 ’은 개인들의 이익을 얻고자 하 는 합리적 행동이 최종적으로는 전체에 대한 파국을 가져오게 된다는 이론의 예이다. 김처선의 행동은 ‘공유지의 비극 ’과 반대된다 . 그는 자신의 이익을 버림으로써 전체에 대한 파국을 막으려고 했다 . 그는 오히려 전체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받아들 이고 행동했다. 이러한 김처선의 행동을 통해 나는 모든 인간이 자신 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두 번째 장면은 궁정 관리였던 검군이 창예창의 곡식을 빼돌리는 것을 완강히 거절했을 때이다 . 사실 모든 것이 풍족한 상황일 때도 원하는 것을 훔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끌리게 된다. 하지만 검군은 풍족한 상황은커녕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먹을 음식이 많이 부족하다는 거였다 . 그런 상황 속에 처해 있을 때 검군의 동료들은 창예창의 곡식을 빼돌리려 고 한다. 이들 역시 가족들이 굶고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힘든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검군과 그의 동료들 모두 비슷한 처지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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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검군만 거절을 했다 . 과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검군은 “내가 명색이 이찬 나으리의 자제 근랑의 문도로 이름을 걸어 두고 화랑의 뜰에서 수련을 했는데 , 천금을 준다 한들 옳은 일 이 아닌 일에 마음이 움직일 수 있겠소 ”(22쪽 , 3-5줄 )라고 말하는데 , 더욱 놀라운 점은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는 점이다 . 모든 사람들이 자 신을 설득하려고 했지만 검군은 회유에 넘어가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켰다. 사람들은 가끔 인간을 양심이 없는 동물이라고 표현 한다. 우리가 일상으로 접하는 뉴스에 나오는 사건들은 모두 인간의 부끄럽고 당당하지 못한 행동으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 나 역시도 뉴 스에 나오는 흉악스러운 사건들을 볼 때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깊게 생각한다. ‘과연 모든 인간은 정말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양 심의 가책 없이 살아가는 존재일까’ 라고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본다 . 하지만 검군의 말을 듣고 그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았다. 검군의 선택이 과연 올바른 것이었는지는 쉽게 판단 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검군에게 양심을 선택하는 것은 굉장히 쉬웠다는 것이다 . 그에게 양심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검군을 통해 내가 배운 점은 인간의 양심에 대한 것이다 . 모든 인간이 본질적으로 양심 없는 이기적인 존재는 절대 아니다 . 오 히려 반대라고 볼 수 있다 . 모든 인간은 양심을 가지고 있고 자신에 게 더 중요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 양심을 지키거나 버릴 수 있는 선택권이 있는 것이다 . 또, 인간은 하위 단계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 은 상태에서도 상위 단계의 욕구를 추구 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존재 라는 것을 느꼈다. 인간의 본성은 사실 정의하기 쉽지 않지만 적어도 이 한권의 책으 로 바라 본 인간은 정의와 높은 뜻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스스로 그 숭고한 뜻을 지켜내는 위대한 존재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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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릴 때까지 땀 흘리고 노력하라 홍순범, ‘인턴일기’를 읽고

오수진 Clara Oh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새하얀 무릎까지 길게 내려오는 흰색 가운 , 주머니에 쭉 꽂혀 있는 다양한 색의 팬들 , 목에 걸려 있는 청진기 , 그리고 바삐 간호사들과 병원 복도를 누비며 회진을 도는 모습 이 뚜렷하게 떠오른다 . 회진을 돌 수 있 는 순간까지 의사들은 수많은 과정을 거치고 견뎌야만 한다. 의대에 들어가서 피 , 땀 , 눈물을 흘 리며 의학을 공부하고 , 졸업하고 나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제일 고생하는 인 턴 생활 , 그리고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야만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이다 . 우리가 시청하는 텔레비전 속 드 라마에서 비춰지는 의사 , 특히 많은 경험을 하지 못한 인턴들은 정말 편히 앉아서 여유로운 식사를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며, 정신없이 파란 가운을 휘날리며 병원 복도를 뛰어다니지 않는가. 간 접적인 체험을 통해서라도 우리는 흔히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을 존경하고 수긍 하는 것 같다. 나는 가끔 그런 채널을 볼 때마다 드라마니까 조금은 과장된 부분 이 있을 거란 의문이 없지는 않았다 . 시대가 발전하면서 이름조차 들 어보지도 못한 희귀한 질병도 흔히 나타나고 , 신체적인 불편함을 바 로 느끼면 주저함 없이 찾아가는 곳이 병원이 아닌가 . 의사들은 자신 의 건강을 챙겨야할 뿐만이 아니라, 타인들의 건강 , 그리고 극단적인 순간들에는 목숨을 두 어깨에 짊어져야 하는데 어찌 쉴 틈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남들이 편히 다리를 쭉 피고 자신만의 여 유를 즐길 때에 인턴들은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자세로 밤을 지세우 며 공책에 깨알 같은 글씨를 빽빽하게 써내려 간다 . ‘인턴일기 ’ 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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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페이지 한 쪽 한 쪽이 한 인턴의 성장 과정 같았고, 1 년이라는 시간 동안 몸에 배어있는 메모 습관으로 자신의 기록을 남 겼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 정말 보고 배워야 할 태도인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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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전쟁, 잊혀진 장군들

서울 한복판에서 찾아볼 수 있는 쭉 나열되어 있는 빌딩들도 해가 지면 불빛이 하나하나 줄어든다. 도로 위에 그렇게 쌩쌩 달리는 차들 도 퇴근 시간만 지나면 도로가 한적해진다 . 학생들도 학원 빌딩에서 지친 상태로 책가방을 어깨에 메고 부모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시각. 하루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고, ‘ 수고했어’ 라는 말로 하루를 마감하지 않는가 . 너도 나도 잠을 청하는 늦은 시간에도 병원이라는 곳은 사방에 불빛이 환하게 켜져 있다. 위급한 상황의 환자들이 구급 차에서부터 실려 오고, 늦은 시각의 병원의 광경은 정말 아수라장이 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 상태가 좋게 호전되는 환자들마저도 어느 한 순간에 블루코드를 띄는 이 위급한 상황을 감안하여 의사들 은 어느 순간에도 정신을 놓을 수 없다 . 몸이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투정을 부리고 결과가 뜻대로 나오지 않으면 화부터 내는 자연스러운 현상을 의사들은 하나같이 다 감안해야하고 , 이들도 다 똑같은 인간 인데 어떻게 상처를 안 받겠는가 . ‘ 누구는 새벽에 피 뽑고 싶은 줄 알아요?’ 라는 327쪽에 있는 구절이 나에겐 참 인상 깊었다 . 짧은 구 절이기도 하지만 , 참 많이 반성하고 가는 부분인 것 같기도 했다 . 내 생활을 예로 들자면 , 아침 5시 20 분에 알람이 내 머리 위에서 울리면 인상을 제일 먼저 찌푸리고 알람을 급히 한 손으로 폰을 내리 쳐 끊는다. 5분만 더...5 분만 더...라는 소리와 함께 나는 조금이라도 더 눈을 감으려 매일 아침마다 발버둥 친다 . 오늘 저녁엔 일찍 침대 에 편히 누워 잠들고 싶지만 , 산더미 같은 숙제를 떠올리면 밥이 목 뒤로 넘어가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 나는 분명 내 성적을 위해 숙제 를 하는 것이고, 나를 학교로 데려다주는 버스를 타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건 정말 너무나도 당연한 거지만 , 사소한 것에 투정부리고 불만을 가질 때가 많다. 의사라는 직업은 타인을 위한 직업이고 , 한 생명이라도 더 아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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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터 치유하고 고치려 자신의 잠을 줄이고 , 휴식을 포기한다 . 어쩌 면 우리는 조금이라도 어딘가가 불편하면 망설임 없이 ‘ 병원 가봐야 지’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 사람들의 편리함을 고려하여 제대로 된 식사를 거르고 묵묵히 빌딩 속에서 수많은 생명들을 구원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참 인상이 깊다 . 병원을 찾아가기는 참 쉽지 만, 병원 속 투쟁은 어떤 일보다도 치열하고 고단 할 것만 같다. 이 러한 그들의 고단함은 여러 환자들의 불편함과 그들이 호소하는 아픔 에 뒤로 잊혀 지기 일쑤이다 . 의사의 직업 정의에 충실하다면 , 몸이 불편한 환자들을 치료해주는 것이 맞지만 , 어쩌면 우리가 너무 당연 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예를 들자면, 대한민국은 국민들의 건강을 고려해 정말 무수하고 , 종류도 다양한 병원 보험을 개개인에게 제공한다 . 보험 가입 또한 점 점 편리해져 가기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여러 개의 보험을 노후를 등록해 놓는다. 국민 입장에서는 비용 부담도 줄고 , 시스템 또한 굉 장히 편리해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의사들의 입장에서 ‘ 건 강 보험’ 이라는 시스템을 바라본다면 , 그리 환영을 받는 시스템은 아닐 듯하다. 의사라는 직업이 본래부터 수입이 많긴 하지만, 그들의 장시간 노력에 비해서는 환자들이 ‘ 무임승차 ’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불만을 호소할 수 있는 입장도 이해가 간다. 물론 국민이 위주이긴 하지만, 너무 큰 비중을 이루고 있는 보험 금액이 의사들의 고단함을 갈취해 갈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 운명의 사다리 의사의 두 손에는 어쩌면 한 사람의 목숨이 달려있다 . 직업이라서 , 의사라서, 누구보다 두 손에 장갑을 많이 껴봤을 것이고, 누구보다 수술실에 많이 들어가서 이쯤 되면 익숙할법한데 말이다. 사람들은 종종 의사들을 냉정하고 감정이 없고 ,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라서 더 쉽게 판단한다고 지적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환자 수는 끊임없이 늘고, 병원에 있는 침대는 모자라는 극한 순간에서 그들은 냉정해야 지만 환자를 치료 할 수 있다 . 감정이 이입되는 순간 , 의사는 환자 하나하나를 같은 시점에서 보지 못할 것이고 , 극한 상황이 닥칠 때 결정을 내리는 게 더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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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한 젊은 남자가 자신이 의사라며 주장하고 자신의 아버 지를 꼭 살리고 싶다고 애원했던 부분이 있었다. 어떤 보답이라도 꼭 할 테니 제발 목숨만 돌려달라는 그 간절함이 강하게 와 닿았다 . 모 두 그분의 아버지를 치료하려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 끝내 좋은 성과 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가 아들의 품을 떠나자 다른 의사에게 안겨 눈물 흘리는 장면이 참 마음 한켠을 찡하게 했다 . 의사도 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죽음을 쉽게 ,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일까? 실제로도 의료사고는 흔히 일어나고 , 돌아가신 분의 가족들 , 혹은 지인들은 의사를 탓할 때가 대부분이다 . 환자의 상태가 충분히 호전이 되고 있었는데, 단지 수술을 하는 과정에서 잘못되어 사망했 다는 이성을 잃은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단지 탓만 한다는 생각을 했을 때, 그 가족들의 입장이 이해가 되지 않고, 너무나도 이기적이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그렇지만 , 이 글을 쓰면서, 그리 고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쩌면, 나에게 하나뿐인, 매일 같이 내 곁에 서 나와 모든 시간을 함께 한 정말 소중한 사람을 눈앞에서 잃는다 면, 내 세상도 어쩌면 함께 처참히 무너져 내릴 것 같다 . 모두의 존 재는 너무나도 소중하기에 , 마음에 넣어둔 빈자리의 공허함은 정말 크게 다가올 수 있다. 사람을 잃을 때 모든 것을 부정하고, 사실이 아니라고 강하게 주 장 할 때에 우리는 점점 이성을 잃게 된다 . 하지만, 의사를 탓할 수 도 없는 것이다. 그들도 손에 수술도구를 쥐고 있을 땐 누구보다도 신중하고, 온 신경을 한 생명에게 집중하고 있을 것인데 , 장시간 동 안 한 순간 흔들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인데 . 어쩌면 자신 의 손 끝이 환자의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고통스러운 생각에 시달리 고, 현실적으로 많은 의사들은 그 트라우마와 공포에 반응을 보인다 . 인간의 본성에 따르면, 어떻게 죽음이 쉬울 수 있을 것인가 , 생과 사 는 우리의 영역이 아니니까. 그들이 얼마나 슬프고 , 좌절할지라도 , 자 신의 가정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 병원에 잠시 그 걱정을 애써 내 려놓으려고 한다 . 책 37 쪽에 ‘병원에 치료 받으러 오는 사람들을 보 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 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 다. 주사기로 태어나 칫솔꽂이로 생을 마감하는 이네들의 모습처럼 ’ 이라는 말이 한순간의 비극을 설명하는 듯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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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체험하면서 개개인이 이루고픈 업 적은 더 뚜렷해지기 마련이다. 인간의 본성을 고려하자면 , 우리는 정 말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이 다양하게 있기 때문에 , 그것들을 쟁 취하려 끊임없는 시간을 투자한다 .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는 표현이 참 적합한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선생님과 장래희망에 대해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 고, 학생이 되어 그 꿈을 이루려 열심히 공부를 하는 순간까지도 , ‘ 정 말 내가 내 꿈을 이루려면 아직도 멀었구나 , 산 넘어 산이구나 ’ 라는 생각에 지쳐 잠시 발걸음을 멈출 때도 있다 . 나는 실제로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 이렇게 잠을 줄여가면서까지 공부에 매달리고 있는 것일 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하던 시기가 있었다 . 내가 아무리 남이 놀 때 하나라도 더 배우는데도 불구하고, 매번 같은 자리에 서 있고 , 더 나 은 사람이 당장 되지 않는 것 같아서 불안감에 떨고 허무함에 잠길 때가 있었다. 그 순간순간들마다 나는 좌절을 해왔고 , 어느 순간엔 ‘내가 못해서’ 라면서 내 탓을 하고 내 자신을 꾸짖을 때도 없지 않 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왜 나는 못할까 ’ 라는 생각에서부터 영원 히 벗어나고 싶어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고 , 항상 낮은 위치부터 겸 손히 노력하고 노력했다 . 내가 서있는 그곳에서부터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있는 문까지 나는 쉬지 않고 걸었고 , 어느덧 거대한 문 앞에 서있는 내가 보였다. 내가 멀리서만 구경할 수 있었던 문은 생각보다 너무나도 거대했고 , 문은 나를 반기는 것 보다는 , 정말 틈이 안보일 정도로 굳게 닫혀 있었다. 나는 문이 열릴 거라는 믿음에 문을 주먹 을 쥐어 피 멍이 들 때까지 두드리고 두드렸다. 성장통이라고나 할까 . 비록 멍과 상처는 가득했지만 , 아픔을 통해 이뤄낸 나만의 무언가라서 그런지 더 특별하게 느껴졌고, 마음 속 영 원히 간직하고 싶은 그런 느낌이었다 . 일기를 읽으면서 나는 의사들 의 태도 속 진정성을 한 번 더 몸소 느낄 수 있었다 . 의사라는 직업 은 누가 억지로 시켜서가 아닌 , 단지 큰돈을 벌 수 있어서가 아닌 ,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 ‘나 아니면 이 사람 못 살린다 ’라는 희생정신 으로 되는 게 아닐까 싶다. 단지 여러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가 아닌, 내 자신 한 명이 어떻게 이 넓은 세상에서 사람들의 생명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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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질 수 있는 자신과의 싸움인 것 같았다 . 병원이라는 곳은 어쩌면 그들이 우리가 편히 자고 먹고 여유를 가질 때에 홀로 피땀눈물을 흘 리며 고독한 싸움의 결과가 빚은 , 모두를 위한 시간과 공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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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종착역

‘ 인턴일기’ 라는 책은 나의 장래희망을 고려하여 고르게 되었고 , 의 사의 관점에서만이 아닌 , 지금 나 , 학생의 신분으로서도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가는 것 같다. 우리가 어느 지위에 있든 , 몇 살이든 , 어 디에 취직이 되든지 , 우리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할 때가 가장 빛이 나는 것 같다. 남에게 인정을 받는 것보다 내 자신에게 당당하고 자 랑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길 나는 희망한다. “햇살이 참 화창했다 . 마지막 날에 대한 기록을 남기려면 그 순간 이 적당 했을 것이다 .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 가방을 뒤척여 수첩을 꺼내 글을 쓰느라 그 순간의 감상을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았다. 이미 충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1 년간 수고했다 . 그것으로 되었다 .” ( 책 321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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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게 ‘인간’ 이란 김욱 , ‘법을 보는 법 ’을 읽고 김호제 Marcus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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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인간을 존중하는가 ?

우리는 스스로를 자유시민이라고 부르며 , 법이 존재함으로써 통제와 억 압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을 개의치 않 는다 . 질서와 탄압이 존재하는 이 사 회에서 인간은 자유를 갈망할 필요성 을 느끼지 못한다 . 혹자는 법이 자유 의 일부라고 할 수 있고, 인권을 보호 하기 위한 수단이라고도 할 수 있지 만 , 법은 본질적으로 자유와 억압을 적절히 분배하여 법에 통제당하는 모 든 사람들로부터 타인의 인권에 간섭 할 권리를 갖는다. 자유성을 보호하는 동시에 빼앗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완성된 사회에서 살아가 는 인간은 법을 지키는 대신 스스로의 인권을 보호하고, 법의 굴레 안에 존재하는 자유를 갈망한다 . 법은 대다수의 인간이 만족할만한 자율성을 부여하여 범죄를 저지를 동기를 억제하고 , 그럼에도 법을 어기는 자들을 멈추기 위해 공식적인 처벌을 가한다 . 법은 인간을 억 압하지만 동시에 보호하고 ,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동시에 존중한 다. 법치주의 체계는 , ‘인간 ’에 한해서 마치 신과 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 ’이 , 정말로 그 효력을 다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는가 ? 부당한 처세를 인 지하지 못해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받고 , 법의 근본적인 체계를 알지 못해 공식적인 절차에만 맹목적으로 의지하고 있지는 않는가? 필자는 자신의 무지로 인한 불이익은 정당한 권리의 포기라고 여기기에, 우 리가 법의 원리, 주장 , 조건 등을 이해하며 법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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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하고, 또 법의 시각으로 인간을 정의해 법이 수호하는 사회에서 우 리가 ‘ 인간으로서’ 어느 위치에 서있는지 알고 싶은 바람을 담아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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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정의롭지 않다

책의 제 1 부분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지는 않는 다. 다만 인간의 정체성과 법의 시각을 연결 짓기 위해서 법을 낱낱 이 풀이하는 과정을 가지는 것일 뿐이다 . 법이 어떠한 원리로 운영되 고, 왜 사회에 필요하고 , 또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탐구하면서 , 필자는 법의 창조자이자 법의 피지배자이기도 한 인간의 입장을 명확하게 파 악하고자 한다. " 인간의 기독교적 ‘원죄’ 저자 김욱의 ‘법을 보는 법 ’에서는 법의 정의를 설명하려 한 가지 예시를 든다. 바로 야훼 하나님( 기독교의 유일한 신 )의 창세기적인 죄 에 대한 해석이다 . 성경의 첫 목자인 ‘창세기 ’에서 아담과 하와 , 즉 최초의 인간들은 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 를 따 먹었고, 이는 앞으로 탄생하는 모든 인간에게 ‘원죄 ’를 심었다 . 우리는 여기서 연좌제에 대한 현대적 의문을 제기하며 , 하나님이 내 리신 벌에 대해 타당성을 문제 삼을 수 있다. 앞서 말한 것도 유효한 문제이지만 , 법의 가치를 판단하는 잣대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에서 온다 . 우리가 성경말씀에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한 이유는, ‘ 악 한 행동’을 타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지정하 신 법의 취지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지 않게 함으로 인간이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 왜 야훼 하나님은 그 능력이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을까? 짐승은 또 다른 짐승을 죽이는데 거리낌이 없다 . 사자가 그 새끼 를 스스로 물어 죽여도 , 그 어떠한 죄책감도 느낄 수 없다. 사자의 조상은 ‘선악과’ 를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기 전에 그 어떠한 옷도 입지 않았지만 , 선악과를 먹은 이후 발가벗은 모습에 수치심을 느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 그렇다면 하나님은 인간이 짐승처럼 살기를 원했는가 ? 그것도 아니다 . 태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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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이 선악과를 먹은 이후의 구절을 살펴보면 , 하나님은 “...생명 나무의 열매까지 따서 먹고, 끝없이 살게 하여서는 안 된다”라고 말 씀하시며 인간이 ‘ 영원히 사는’것에 대한 우려를 남기신다 . 이에 따라 우리는 인간이 선과 악을 알고 끝없이 살게 된다면 이는 즉 ‘ 신’을 일컫고, 선과 악을 모른 채 죽게 된다면 짐승이 되며 , 정작 하나님이 원하시던 인간의 참된 모습은 선과 악의 기준을 모른 채 영원히 살며 신의 말씀을 진리로 알고 따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아이러니 하게 도, 신은 인간에게 자유과 질서를 동시에 선물했지만, 정작 인간 그 자율성에 따라 선악과를 먹고 절대적 질서를 따르기를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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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법, 신의 법

인간이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자 . 신은 인간에게 ‘법 ’ 을 알려주고, 인간은 그 법을 철저히 따른다 . 인간이 신의 법을 어긴 다면, 신은 그에 대한 정당한 처벌을 내린다 . 인간은 신이 내린 법에 따라 행동하며, 그렇기에 인간과 인간 사이에 다툼은 일어나지 않는 다. 인간은 자신의 정의에 의거해 판단을 내릴 필요가 없고 , 이는 즉 의견이 없음을 뜻한다 . 인간이 의견을 가지지 않는다면, 상반되는 의 견끼리의 분쟁은 있을 수 없고 , 부당한 대우에 대한 불만이 생길 수 없으며 법의 견해를 정의할 필요도 사라진다. 하지만 ‘인간의 법 ’은 ‘신의 법 ’과 달리 맹목적인 질서를 유지시킬 수 없다. 신은 절대적이고, 인간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 앞서 말 했듯이, 인간은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지만, 끝없이 살지 못 해 신의 개념을 이룰 수 없었다 . 끝없이 살지 못한 만큼 , 후세에 법 과 질서를 남기기 위한 체계를 만들어 냈고 , 이는 즉 인간이 혼자서 는 법을 유지 시킬 수 없음을 뜻한다. 그에 따라 현대사회는 인간이 법의 주인이 아닌 , 법이 여럿의 인간을 수호하고 질서를 정의하는 형 식으로 만들어졌다 . 그렇기에 법은 법망이 발견하지 못한 여러 변수 들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 법의 개정은 힘의 판도에 따라 변화해 갔다. 법을 창조하는데 필요한 열매가 선악과였다면 , 그 법의 효율적인 유지에 필요한 열매는 ‘ 생명나무’ 의 과일이었던 것이다 . 그렇다면 우리는 절대성을 갖추는 신의 법과는 달리, 인간의 법이 가지는 효용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게 된다 . 신이 정하신 질 서를 떠나서, 인간이 만들었고 , 또 인간이 유지시키는 법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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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법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질서 있게 수호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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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과 정의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바로 정의와 도덕의 차이다 . 우리 는 우리가 만든 법이 한 사람의 가치관과 신념이 아닌 여러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도덕적 개념에 그 경계를 걸치고 있다는 사실을 인 지하고, 법은 인간이 아닌 사회를 수호함으로써 사회 내에 존재하는 모든 하나하나의 사람들을 완벽하게 존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 야만 한다. ‘ 정의 ’는 사회가 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기준으로 사용 되지만, ‘도덕’ 은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뜻과 의미를 가지며 , 누군가 의 도덕적 가치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완벽히 수용 될 수는 없다. 우리는 선과 악을 구별함으로써 자신만의 도덕적 가치를 설립할 수 있고, 욕망에 따른 행동을 제어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것 은 모두가 같은 도덕적 관념을 공유하여 똑같이 행동해야 한다는 뜻 이 아니다. 인간은 각기 다른 환경으로부터 다양한 경험을 쌓고, 스 스로를 끊임없이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 그것이 우리가 법을 만들고 , 또 법에 의존하는 이유이다. 도덕을 ‘내적 제어’ 라고 일컫고, 법을 ‘외적 제어’ 라고 일컫게 된다면 , 인간은 개개인마다 ‘내적 제어’의 기 준이 다르기 때문에 외부에서 간섭을 하여 개인의 행동을 제어해야 질서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정의는 그러한 면에서 도덕과는 차별된 모습을 보여준다 . 도덕이 올바름을 상징한다면 , 정의는 공익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법이 도덕 을 수호하지 않고 , 정의를 수호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 도덕이 개 인의 주관적인 관점을 내적 억압으로 구현한다면 , 정의는 다수가 가 지는 공통된 의견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 도덕과는 달리, 정의는 정당 성과 논리로 무장하여 질서를 유지하기에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훨씬 수월하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스스로에게 가하는 외적제어를 ‘ 법’ 이라는 형 태로 만들었을까 ? 왜 법 앞에 정의라는 가면을 씌워 통제 체계를 내 세우는 것일까? 그 답은 바로 ‘ 공유지’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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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합리적인가

‘ 공유지의 비극 ’은 양치기들이 자신의 양을 배불리 하기 위해 공 유지의 풀을 잔뜩 뜯어먹어 땅이 말라죽는 현상을 일컫는다. 바꿔 말 하자면, ‘제어되지 않는 무질서로 인한 공적인 소유물의 파괴행위’ 인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공유지의 희극 ’은 , 양치기들이 모두의 이익을 위해 서로가 양보함으로써 장기적으로 큰 이득을 얻는 현상이다. 정 작 법이나 규제는 존재하지 않지만 , 공동체의 도덕적 가치가 모두의 장기적 이익에 관심을 기울이며 결국 ‘공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 법은, 우리 사회에서 이와 같은 결과가 자주 일어나게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어기면 그에 대한 합당한 처벌을 받게 하는 규정을 만 들어, 개인들의 욕심을 법으로써 규정하여 ‘모두의 것’ 이 훼손됨을 방 지하는 것이다. 비록 법에 의해 강제로 규정되었지만 , 공적인 재산이 훼손되지 않음으로 사람들은 더 이상 ‘공유지의 비극 ’을 겪지 않아도 되고, 그 공적인 재산을 합법적으로 모두를 위해 유지시킬 수 있게 된다. 즉, 법이 지지하는 정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이나 이타 , 혹 은 선의 기준이 아니라 , 다수의 사람들이 이익을 얻고, 그들의 개인 적인 욕심을 통제되기 위한 ‘공익 ’의 현장이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호기심과 궁금증을 가지고 있으며 , 그렇기에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자유를 갈망한다 . 그러나 ‘사회체계 ’ 자체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상호작용에 제한을 두는 개념이기에 ,‘ 자유 ’와 ‘ 사 회’는 정반대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 인간이 완전한 자유를 누 린다면 사회 체계는 유지 될 수 없고, 각기 동떨어진 판단을 내리고 상반되는 관념을 주장하는 개개인만이 존재하여 , 이는 곧 무질서를 이룬다. 공동체에 무질서는 인간은 인간의 존엄성이 위배되거나 도덕 적 가치를 위협하는 상황에서의 적절한 통제 수단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이 지닌 원초적 욕망을 제어 할 수 없다는 뜻이 기도 하다. 법은 인간의 자율성이 가지고 있는 양면성을 지적하며 , 자유를 누 림으로 인해 발생하는 무질서를 통제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인간 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이해하고 내제된 욕구를 방출하게 함으로써 법의 체계를 더욱 견고히 한다. 자유를 제공하고 제어함을 반복하며 인간이 사회적 질서에 적응하도록 만드는 것이 , 법의 역할인 것이다 . 그러므로 법은 올바르지 못하며 , 대다수의 개인들이 납득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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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선에서 정의를 외침으로써 사회가 질서 있는 체계를 유지하도록 만들어진 일종의 도덕적 타협이다 . 인간과 법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타협이 존재해야 그 체계를 유지 할 수 있고 , 인간이 법을 무 시하거나 법이 인간을 심하게 억압한다면 그 사회에서는 언젠가 문제 가 발생 할 수밖에 없다 . 다만 , 그 타협을 이루기 위해서는 과거 무 질서를 경험한 사람들의 피로 적셔진 역사가 존재해야만 했고, 또 타 협을 유지시키기 위한 ‘ 힘’ 의 균형이 있어야 한다 . 법의 피지배자와 , 법이 갖춘 힘의 무게 균형을 이루어야만 서로가 만족하는 체계가 완 성된다. 그렇다면 이 ‘힘 ’은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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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힘

‘ 힘’의 사전적 의미는 물리학적 상호작용을 뜻하지만 , 이 단어가 포괄적으로 가리키는 의미는 법적 , 정치적, 정신적 아우라(Aura) 를 넘어서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타인에게 강제성을 부여할 수 있는 모종 의 능력을 뜻한다 . ‘ 힘’ 은 단순히 존재함으로 억압을 할 수 있고 , 두 려움을 전파하거나 또는 신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 ‘힘 ’의 종류와 사상은 시대에 따라, 또는 문화에 따라 항상 바뀌지만, ‘힘 ’이 개개인 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지금도 여전하다 . 이는 즉 , 인간의 사회 안에서는 힘이 존재함으로써 법이 누군가의 행동에 강제성을 띌 수 있고, 억압을 할 수 있으며 , 존중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힘이 없는 법 은 그 누구도 따를 필요가 없고, 무시해도 마땅한 처벌이 내려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이 존재하는 법은 조금 다르다. 법은 법이 ‘인간이다’ 라 고 지정하지 않은 사람들을 ‘인간 ’이라고 하지 않는다. 책 ‘법을 보는 법’에 따르면, 실제로 한국에는 호적이 없는 무적자가 1 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었고, 미신고 시설까지 합치면 3만 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누군가 그들 중 한 명을 죽인다면 , 그는 ‘살인자’가 되는 것일까? 살인의 대상이 주민등록상 존재하지 않고 , 법적으로 ‘인간’이 아닌데도 말이다 . 반대로, 사회의 대다수가 차지하는 법의 피지배자들은 어떠한 힘 을 갖고 있을까? 현대문명이 발달하기 전, 혹은 ‘ 민주주의 ’라는 개념 이 생겨나기 전에는 , 피지배자들은 어떠한 힘도 없었기에 법에 의한 핍박에 시달려야 했다 . 그들은 법에 대해 간섭을 할 힘이 부족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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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 이외의 다른 방법을 사용하여 자신에게 행해진 억압에 저항하였다. 그렇다. 바로 혁명 , 혹은 쿠데타 를 말하는 것이다 . 인간은 지속되는 핍박을 끊임없이 견딜 인내심이 있지 않고, 그 핍박을 다수가 받게 된다면 그 불합리성에서 탄생하는 분노라는 감정은 대부분 폭력으로 구현되기 마련이다 . 인간은 법에서 찾지 못한 해답을 위법적으로 찾아냈다. 다행히 현대 사회는 과거와 달리 그리 극단적이지 않다 . 폭력을 동반한 저항은 쉽게 진압되기 때문이다 . ‘ 민주주의 ’ 체계가 발달한 지 금은 사람의 수가 곧 힘이 되고, 개인적으로 큰 권력이나 힘을 동반 하지 못하는 일반인이라도 타인의 도움에 힘입어 법에 저항 할 수 있 게 되었다. 개인이 혼자서 법을 이겨내지 못하지만 , 사회적인 이슈나 다수의 피해자들이 속출하는 문제는 언론과 같은 매개체를 통해 사회 구성원들의 관심을 이끌 수 있기에 법이 지켜내지 못한 사회의 일각 들을 억압 없이 지적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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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평등하지 않다

제 1 부분에서 법의 여러 방면들과 그 원리를 파악했다면 , 바로 이 2 부분에서는 1 부분에서 설명한 같은 주제들을 다뤄 법이 인간을 어 떻게 정의하는지를 탐구할 것이다 . 그러나 , 법이 인간을 보는 시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인간 ’ 그 자체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기에 , 필자는 인간의 정체성을 풀이하기 위하여 ‘동기이론’, ‘합리성 (죄수의 딜레 마)’, ‘ 방관자 효과 ’와 ‘보상 -대가 체계 ’에 대해서도 설명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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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법을 불리하다 여길 때( 인간의 법, 신의 법 )

함무라비 법전의 가장 유명한 구절은 바로 , ‘눈에는 눈 , 이에는 이’이다. 외상을 일으키는 범죄에 대하여 물리적으로 평등하게 처벌 을 주는 것이다. 그렇다 . 함무라비 법전은 처벌의 강도를, 평등이라는 초점에 맞추어 만들어낸 법이다. 하지만 이 법 또한 허점이 존재한 다. 예를 들어보자면 , 노예의 손목을 자르는 것과 요리가의 손목을 자르는 것은 감히 그 무게를 달리한다. 오랜 시간 기술을 습득함으로 써 요리를 한 요리사의 손은 , 한낱 노예의 손목보다 훨씬 높은 값어 치를 하기 마련이다 . 그렇다면, 요리사가 노예의 손목을 다치게 했을 때 그 요리사의 손목을 자르는 것은 평등한가 ? 대답은 마땅히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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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할 수 있다. 모두를 위해 평등하기 위해선 , 개인의 가치관 또한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 가해자는 인생에서 피해자가 잃은 것만큼의 무언가를 잃어야 하고 , 그 가치는 주관적이기에 더욱 말이 되지 않는 다. 이와 같은 ‘완벽한 평등 ’은 너무 이상주의적인 만큼 , 비록 함무라 비 법전은 당시에 범죄를 억제하는 효율적인 법전으로 쓰였지만 문명 이 발전을 거듭하며 개인의 소유가 집 한 채 , 농장, 등의 간단한 개 념을 넘어 토지, 부동산 , 차 , 신용 등등 복잡한 제도가 탄생하며 그 효용성을 잃고 말았다 . 그러나 , 이를 대신하는 또 다른 종류의 법전 도 존재한다. 바로 우르 - 남무이다 . 우르- 남무는 함무라비와 달리 평 등한 처벌을 하지는 않지만 , 대부분의 처벌 내용이 돈으로 환산 가능 하고, 범죄가 무거울수록 더 많은 양의 돈을 내야 되는 체계로 이루 어져 있다. 이 체계는 당시 인류가 발달되지 않아 대부분의 인구가 사회적 약자일 때 좋은 효율을 띄었겠지만 , 그때 당시에도 부유한 소 수의 권력자들에게는 그저 위법을 할 권리를 쥐어주는 정당성이 부족 한 법체계일 뿐이다. 이렇듯 인간은 다수의 사람을 통제하기 위하여 보상 - 대가 중심의 법을 만들었지만 , 이는 즉 법의 통제권이 법에 저항할 힘이 있는 사 람에게 넘어감을 뜻했고 , 이것은 그들이 법의 모순에 피해를 입은 자 들을 갈취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줬을 뿐이다 . 또한 , 함무라비의 법전과 같은 경우에는 인간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지 않아 사회 분위 기 개선에 악영향을 미쳤고 , 우르 -남무는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관을 돈으로 환산하여 위법적 행동을 정당화시킬 기회를 주었다. 현대의 법은 과거에 비해 많은 진보를 보이지만 , 아직까지도 법의 견해를 두고, 혹은 사회적 움직임과 사소한 불평과 불만 등을 두고 법이 개정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 책 ‘법을 보는 법 ’에서는 “그러나 법 이 똑같은 잘못에 똑같은 처벌을 하는데도 어떤 사람은 인생의 고통 을 느끼는데 반하여 어떤 사람은 거의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면, 과연 법 앞에서 평등하다고 할 수 있을까 ?”(책 49쪽 )이라는 의문을 던지는 데, 이것은 현대의 법이 모두에게 같은 법을 똑같이 기계적으로 적용 하여 누군가가 상대적인 고통을 겪는 , 법의 비합리성을 비판하는 문 제이다. 현대의 법은 아직 저소득층의 피해를 보상할 수 없다는 것이 다. 인간은 아직까지도 법 앞에서 나약한 존재이고, 앞으로도 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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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개벽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아담과 하 와가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 누군가가 잘못된 법의 견해로 인한 피 해를 입지 않아도 되겠지만 , 이와 달리 인간의 법은 아직 모두를 만 족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마치 과거의 법보다 현재의 법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안전과 행복을 가져다주듯이, 앞으로 인간이 진보할 역사 를 가늠해보자면 우리와 우리의 법은 아직 발전할 방법과 길이 남아 있다. 인간은 스스로의 법이 신의 법과 비슷한 수준의 정의를 상징할 수 있을 때까지 발전을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정의가 ‘ 고귀한 인간 정신의 도정 ’이든 ‘역사 속 물질적 이해관계의 이데올로기적 포장 ’이든 인간의 역사가 어제보다는 오늘이 좋아졌다는 경험적 사실이다 . 이 경험적 사실을 믿는 다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좋아진다는 것도 믿을 수 있을 것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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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우리의 내면욕구를 잠재울 수 있을까?(도덕과 정의 )

동기란 참 중요하다. 선천적으로 에너지를 아끼며, 잘 움직이려 하 지 않는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할 용기와 이유를 정당하게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동기이론 ’은 동기의 종류를 두 가지로 나누게 되고, 하나는 내적 동기 , 또 다른 하나는 외적 동기라고 불린다. 간단 하게 설명하자면 , 내적 동기는 개인이 자신의 욕구와 부합되는 목표 를 찾아 스스로 행동을 실행할 동기를 키움을 뜻하고 , 외적 동기란 실패, 성공의 예라든지 외부로부터의 결과적인 이득을 봄으로써 동기 가 생기는 현상을 뜻한다. 즉, ‘동기이론’과 ‘도덕과 정의 ’는 사람의 행동을 통제 하는 데에 비슷한 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도덕은 내적 제어를 통해 행동을 다 스리고, 정의는 공익 , 혹은 외적 제어를 통해 위법 행동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내외적 자극에 대해 한 가지 결론은 내릴 수 있는데, 두 가지 상황 모두 외적인 요소는 효과가 좋지만 장 기적으로는 효용성이 떨어지고, 내적 요소는 개인에 성향에 따라 변 하기에 비록 그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는 않아도 그 영향이 오랫동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우리는 동기의 개념과 법을 연결 지을 수 있는데, 만약 인간이 모종의 내적인 동기로 인해 법에 저항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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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그 내적 동기는 도덕적으로 제어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지 , 아니 면 법적으로 제지하는 것이 더 좋을지에 대해서다. 아이러니하게도 , 내적동기로 인해 어떠한 행동을 하고 싶다는 심리는 애석하게도 스스 로의 욕구와 부합된 상태이기 때문에 차분한 설명보다는 강제적인 외 적 제어, 즉 ‘ 정의 ’가 더 효과적일 것이고 , 이와는 반대로 외적 동기 로 인해 추진되는 행동은 강제적인 제어를 부리면 더욱 강하게 반발 하기에 내적인 제어로 다스리는 것이 더 현명하다. 이를 인간의 정체성과 관련지어 풀이하자면, 인간은 어쩌면 법 없 이는 여타의 다른 동물들과 다름없는 생활을 했을지도 모른다 . 아담 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우리는 도덕과 양심 등의 선과 악의 구별 로부터 기인한 감정을 얻었지만 , 그 기준이 완전히 고착화된 형태의 ‘법’ 없이는 인간은 그저 조금 똑똑한 짐승일수도 있었다 . 문명을 이 룩하기 위한 규칙은 법으로서 세워 졌고, 그 이후로부터 인간이 이 행성을 지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한 , 이러한 법칙 없이는 인간 이 자신의 욕망을 어디까지 행동으로 실현했을지 누가 어찌 알겠는 가. 오히려 비도덕적인 행동을 반복하여 카타르시스을 느끼는 반인권 적인 움직임이 생겨났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법은 합리적인가?

죄수의 딜레마라는 게임은 , 인간이 리스크를 지고 공동체를 위한 선택을 할 것인지 , 혹은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한 심리 게임이다. 비록 리스크가 있지만 , 게임의 참가자들이 모두 함께 리스 크를 진다면 최상의 결과가 나오고 , 한명이라도 그러지 못한다면 그 한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최악의 결과를 맞게 된다 . 개인의 비합리 적인 행동이 공동체의 합리성을 이끌어낸다는 내용인 것이다. 선택은 확률에 맡기는 것이 가장 현명할 수 있지만 , 확률에 사로잡혀 주변을 둘러보지 못한다면 최악의 결과와 마주할 수도 있다 . 비합리성을 추 구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존재할 때, 인간은 단지 적은 확률만을 따지 고 그 선택을 기피하며 ‘개인을 위한 합리 ’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는 의미이다. 인간은 이처럼 철저히 개인주의적으로 합리적이게 행동하는 동물 이지만, 동시에 베타의 동물과는 다른 수준과 종류의 욕심을 갖고 있 어 오히려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데에 방해가 될 수 있다. 공동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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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수 있는 이익이 개인이 챙겨갈 이익보다 어중간하게 높다면 가장 합리적으로 선택하겠지만, 전자의 이익이 후자를 잔뜩 넘어선다면 협 력에 리스크가 따라도 반드시 하겠다는 경향을 띌 수도 있다. 법은 이러한 면에서 인간과 비슷하지만 , 동시에 죄수의 딜레마라 는 게임 보다 많은 종류의 선택지가 있다 . 여러 개의 선택지 안에서 는 무수히 많은 결론이 도출 되고, 그런 만큼 법은 다양한 종류의 상 황을 만들어 낼 수 있다 . 법은 분명히 말로써 개정이 되어있고 , 그 말을 어떻게 해석 하느냐에 따라 법의 뉘앙스가 달라지는 경우도 존 재한다. 그러나, 법은 하루하루 같거나 비슷한 사유를 위법 혹은 합 법인지 분별하기 위해 기계적 , 반복적 제도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이는 법이 짧은 시간 안에 합리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기도 한다. 두 번째로, 법은 공동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 법은 그저 법일 뿐 이고, 법이 수호하는 합리는 오직 그 스스로만을 위해서 존재한다 . 법은 어디까지나 합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공정한 이유를 얻어 공익 적으로, 또 신속하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 한 기계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법의 합리적 추구로 인해 , 특수한 상황 에서 피해를 입었거나 섬세한 조사가 필요한 상황들을 법망이 놓치는 경우는 비일비재 하다 . 이것은 법은 애초에 공동체의 공익을 위해 만 들어진 것이지, 사회적 약자 개개인을 전부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합리적인 법에게 ‘인간 ’은 , 그저 자유의사를 가진 존재에 불 가하다. 자유의사를 가졌다고 해서, 그 의견을 반영할 힘이 있는 것 도 아니다. 그러나, 법은 공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이타적인 성 향을 띄는 인간에게 더욱 유리하고, 또 공동체의 합리를 위해 리스크 를 지며 협력하는 개개인을 호의적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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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법이 두려운가?

일명 ‘방관자 효과 ’라고 불리는 사회적 현상은 상당히 많은 사람들 이 알고 있는 이 사회의 비참한 일부분일 것이다 . 방관자 효과는 사 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람들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당장 문제 가 일어나고 있는 현장을 외면하는 단체심리현상을 뜻한다 . 구출이 필요한 누군가가 앞에 있다면 직접 나서서 도와 줄 수도 있는데 , 괜 히 큰 문제에 휘말릴까봐 신경 쓰지 않고 , 다른 누군가가 도와 주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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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라는 안이한 마음가짐으로 여러 명의 사람들이 함께 생각하는 것이 다. 이는 반드시 구출 현장 등의 극적인 상황일 필요가 없다 . 자신들 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소규모 시위에 참가하거나 , 우리 사회에서 잠시나마 도움이 필요한 크고 작은 단체들을 찾아 그들이 법으로부 터, 또 법에 의존하다가 빼앗긴 권리를 주장하는 현장에 관심을 가지 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 만약 우리가 방관자 효과로 인하여 변화를 두 려워하고 법의 힘 앞에서 기죽게 되면 , 이후에 우리가 방관함으로써 방치되었던 법망의 구멍이 우리의 스스로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 기 때문이다. 법 앞에서 필자는 그저 한명의 자유시민이지만, 혼자가 여럿이 되고, 여럿이 단체가 되면 ,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지는 무게는 법의 힘만으로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책 ‘법을 보는 법 ’은 결코 특정한 결론이 내놓아져 있는 책이 아니 다. 각기 다른 결론을 지어내는 목차들이 ,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살 고 있는 사회에 부당함에 고뇌하며 변화를 추구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며 ‘법 ’과 동시에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 했던 필자는 , 인간이 지금의 인간처럼 살 수 있는 이유가 바로 법이 존재하기 때문 이고, 비록 그 법이 우리의 무지를 이용하여 불이익을 제공 할지라 도, 우리는 그 불이익에 대한 것마저도 알지 못하고, 또 바꾸지 못하 기에 행복하다고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스스로가 살고 있는 사회가 절대로 균형 잡히고 건강 한 사회가 아님을 인지시켜주고 싶었고, 미래에 우리가 어떻게 행동 해야 하는지를 강조하고 싶었다 . 필자가 사는 나라, 대한민국 또한 깨끗한 나라라고 할 수는 없지만 , 우리는 앞서 저자 ‘김욱 ’이 말했듯 이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 앞으로의 법의 진보에 관심을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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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의 무게 최석현 Nicole Choi 모든 사람들은 각자 다른 방법과 관념으로 살아가고 있다 . 삶을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고, 추구하는 것도 다양하다. 그러니 대부분 사 람들은 남녀평등을 주장하지만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에 대한 3가지 다른 분류가 있는데 , ‘성 차이 ’, ‘ 성 차별 ’, 그리 고 ‘성 역할’이 있다 . 우선 ‘성 차이 ’는 여자와 남자의 신체적 구조의 차이다. ‘ 성 차별 ’은 남자 혹은 여자에 대한 고정적인 생각 때문에 여 자 혹은 남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동을 포함하여 생각이나 행동에서 공평하지 못한 대우를 하는 것이다 . 마지막으로 ‘성 역할 ’은 성별에 따라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실제 나도 일상생활 속에서 많은 일을 겪었다. 내가 집에서 좀 털 털하게 지내거나 , 방을 어지럽히거나 큰 상의를 즐겨 입으면 할머니 께서는 항상 ‘넌 남자로 태어나려다 고추가 떨어져서 여자로 태어났 니?’라고 성차별적 말씀을 하신다. 또 할머니의 아들인 우리 아버지 는 내가 밥을 먹다가 실수로 쩝쩝거리거나 음식을 헤쳐 놓으면 나중 에 결혼을 못한다는 말씀을 하신다 . 공부를 잘 하고 취업을 잘 해도 너무 여자가 잘나면 결혼 상대가 여자의 기에 눌리는데 , 남자가 여자 의 센 기에 눌리면 안 좋다고 자주 말씀하신다. ‘ 남녀평등’ 이 사회적 화두로 대두된 요즘, 할머니 혹은 아버지가 갖고 계신 관념이 나와는 사뭇 다르다고 생각했다 . 그리고 그 공통점 이나 차이점을 생각해 보았다. 결론은 구시대적 사고방식이다 . 이 옛 날 사고방식은 남녀차별이 심한 가정이나 사회에 성별로 계급이 나뉘 어져 있는 분위기에서 할머니와 아버지가 오랫동안 살아오신 것 같 다. 그래서인지 할머니는 옛날 사고방식을 갖고 계시고, 아버지 또한 그 같은 공통분모의 옛날 사고방식을 물려받으셨다 . 남녀가 평등하지 않은, 남자가 조금 더 유리하고, 여자가 조금은 더 불리한 그 사고방 식은 요즘 세대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 할머니와 아버지가 조 금은 더 열린 공정한 마음으로 생각하시고 보았으면 좋겠다. 한 번은 내가 기사를 읽고 있었는데, 어떠한 사건 사고가 일어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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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때 여자가 피해자일 경우에만 너무 일을 크게 만든다는 느낌을 받 았다. 예를 들어서 ‘00 녀 '라는 수식이 자주 붙는데, 이것은 피해자뿐 만 아니라 개념이 없는 여자들에게도 자주 쓰인다 . 그래서인지 여성 은 욕을 먹을 때 , 피해를 입었을 때 항상 ‘00 녀' 라는 수식어를 듣는 다. 예를 들어서 지하철에 탄 여성이면 ‘지하철녀 ’와 같이 사소한 것 까지 여성들에겐 ‘00 녀' 라고 제목이 붙는다 . 조금 더 나아진 세상을 살고 싶다면 다른 점들도 고쳐야 하긴 하지만 , ‘00 녀 ’라는 단어들을 더 이상 쓰지 않아야 한다. 또한 2014년에 ‘HeForShe’라는 캠페인에 참여한 엠마 왓슨의 스 피치를 보았다. 그녀가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남자가 참 여를 안 하면 소용이 없다는 말에 공감을 하였고 , 여자 또한 남자에 게 차별을 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에 너무 공감이 되었다 . 실제로 지 하철에서 남자가 여자를 스쳐지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 여자는 남자 가 여자를 스치기만 해도 성추행이라고 하는 바람에 남자들이 여자, 혹은 페미니스트를 싫어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고 좀 권력을 쥐게 된다면 하고 싶은 일이 있다. 회사 안에 적어도 5 개 이상인 계명을 세워서 못 지키면 벌칙 같은 것을 시행 할 것이다 . 예를 들어서 , ‘회사 내에서는 남녀차별 금 지’, ‘남녀 사이의 스킨십 금지 ’, ‘눈치를 적당히 주기 ’ 등등 , 회사에 서 많은 성차별이 일어나지만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 때문에 신고를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런 계명들을 세우고 싶다 . 부모로서의 계명 도 만들고 싶은데 , 그 내용은 아이들에게 성차별이나 성범죄를 예방 하는 교육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당부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 여 성스럽다’, ‘남성스럽다 ’라는 말을 하지 않기 ‘머리가 길면 여자’, ‘ 짧 으면 남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 ‘여자가 마르면 예쁜 몸매 ’, ‘남자 가 마르면 멸치’ 혹은 ‘ 여자가 근육으로 다져진 몸매면 보기 안 좋 다’, ‘남자가 근육이 많은 몸매면 멋있다 ’고 하지 않기 ‘ 여자는 고집 이 세면 팔자가 세다 ’고 말하지 않기 ,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자는 살 면서 3 번 이상 울면 안 된다 ’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지 않기이다 . 내가 지금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에 제한이 많은데, 가능한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았다 . 페이스북이나 트위 터같은 유명한 s ns에 자신이 겪은 끔찍했지만 누군가에게 가서 이야 기하지 못했던 성 편견 문제를 서로 터놓을 수 있는 페이지를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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싶다. 요즘 한국 학교들 사이에서 유명한 ‘대나무숲 ’처럼 모든 사람들 의 익명을 보장하고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고, 이야기를 널리 퍼트 려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반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그리고 그 페이지를 통해서 여성뿐만 아니라 많은 남성들에게도 심각 한 성 편견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일깨워주 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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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동권( 男女同權) 권예지 Joy Kwon 여성들이 남성들과 동등하게 권리를 보장받는 나라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 세상의 그 어떤 나라에서도 성 평등을 성취했다고 단언할 수 없다. 세계 인구의 약 52%는 여성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 고 여성들의 가치는 남성들에 비해 비교적 낮게 평가되며 권력과 특 권이 있는 자리는 대부분 남성들에게 주어진다. 노벨 평화상의 수상 자 왕가리 마타이는 , “더 높이 올라갈수록 여성의 수가 더 적습니 다.” 라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 이처럼 성별 평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여성의 사회적, 정치적 , 법률적 권리 확장을 주장하며 남녀동권(男女同權)을 주장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 요즘 들어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비춰지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하는 일도 일어나 기도 한다. 하지만 이처럼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페 미니즘의 명시적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많고 , 왜 페미니즘이 애초에 생겼는지, 그리고 왜 필요한지를 인식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사 회는 페미니즘이라는 개념뿐만 아니라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것들도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 . 주로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받는 피해만 생각하며, 남성들이 받는 피해는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도 많다. 페미니스트로 널리 알려진 배우 엠마 왓슨은 페미니즘에 대 한 연설을 했을 때에도 “제가 페미니즘에 대해 발언을 더 많이 하면 할수록, 여성의 권리를 위한 투쟁이 너무 자주 남성에 대한 혐오와 동의어로 느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하 였다. 이것은 사실관계의 오류이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성에서 기인 하는 차별과 억압으로부터 극복 시키려는 사상이며 , 페미니스트들을 남성과 여성이 평등한 권리와 기회를 가져야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 다. 페미니즘에 대한 선입견이 지금까지도 존재하며 그에 대해 정확 히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 많이 없기에,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을 더 알려야 한다. 우리가 페미니즘을 우리 사회에서 더 나아가야 하는 또 한 가지의 이유는21세기인 지금까지도 성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세상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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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이 지속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 여성의 가치가 낮게 평가되고 , 선택권이 가장 나중에 주어지고 , 여성을 혹사하고, 남성에 비해 낮은 임금을 주고, 교육기회를 부여하지 않고 , 집 안팎에서 여성에게 폭력 이 발생되며, 사우디와 같은 일부 국가는 투표 할 권리조차 없는 여 성들이 많다. 또한 방송에서 성차별적 요소들을 , 그리고 성에 대한 이슈들을 소화하지 못하며 , 뉴스나 올림픽과 같은 여러 분야의 방송 에서 성차별 발언들이 끝없이 나온다 . 예를 들어 뉴스에서는 한 여성 이 피해자인데도 불구하고 ‘OO 女‘라고 사건이 퍼져 나가는 경우가 많으며, 그저 사람들이 기억하기 쉽게 제목을 만들어,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남긴다. 이어 뉴스, 예능 프로그램, 드라마 등등에서 여성 혐 오 프레임에 대해 여러 장면과 상황을 찾아 낼 수 있다 . 이를 통해 여성혐오를 인식한 관점들이 반영되고 , 성차별적 요소들의 방송을 보 고 상처 받는 여성들도 존재한다 . 이러한 문제들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존재하기도 전에 지금처럼 공공연히 진행됐었다 . 유명한 정치 인 힐러리 클린턴이 여성권리에 대해 “여성의 역사가 곧 침묵의 역사 였기 때문에 이러한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 )학대는 너무도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습니다 .” 라고 말한 바가 있다. 물론 여성들뿐만 아니라 남성들이 겪는 고충들도 존재한다 . 페미니즘을 알리는 것이 그 고충 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 남성들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를 힘들 어 하며, 책임감도 남성들이 더 있어야 할 때도 많다 . 또한 용기 있 게 선뜻 나서야 되는 게 남성들의 역할일 때가 많고, 주로 남자라면 가장으로서의 부담감 역시 존재할 것이다 . 사회는 남성들에게 부모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책임감 , 직장에서의 경쟁과 성공에 대한 부담감을 얹었다. 우리가 성 역할 기대의 부담이 없다면 더 자유롭게 자기다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회에서 페미니즘이라는 가치를 더 가져야 되 는 마지막 이유이다. 우리의 성별은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 나가 야 할지를 결정하지 않는다 . 사회에서 성별에 따라 차별화 된다면 우 리는 그것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이러 한 노력은 우리 자신으 로부터 시작한다 .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 그 개념을 더 알리 는 것이 다음 단계이다. 평등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날 때에는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보여줘야 한다 . 페미 니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면 그에 대해 설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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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개념을 가르치는 것 또한 중요하다 . 페미니스트 치마만다 응 고지 아디치는 “어떤 사람은 여자가 남자에게 종속되어 있는 게 우리 문화라고 말할 거예요 . 하지만 문화는 계속 변화해요.”라고 말한 적 이 있다. 성차별이 어느새 문화처럼 너무 흔해진 지금, 우리는 페미 니즘을 더 알려야 한다 . 특히 , 사회의 전통적인 여성 개념에 의한 속 박으로부터 해방을 외치고 남녀평등을 주장하면 , 우리는 성 역할 기 대의 부담을 조금씩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 연스럽게 더 자유롭게 각자 '나 '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 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남자와 여자는 충돌하게 된다 .”, “서 로의 차이를 명확히 인식해야 우리는 이성을 대할 때의 혼란을 줄일 수 있다.” 등등의 문장들을 통해 여성과 남성의 다름을 강조하고 , 서 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존중해야만 서로 조화롭게 지낼 수 있다고 주 장한다. 사회가 만든 성별이라는 틀을 깨야지만 남성과 여성이 평등 한 권리와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이에 동참할 것이고 , 나 스스로의 약속을 정해, 나부터 변해 사회에 영향력을 주고자 한 다. 그렇기에 나 스스로 나와의 약속을 정해 사회적 변화에 아래와 같이 동참하고자 한다. 성평등은 양쪽의 성별이 같이 노력해야만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즉 , 페미니즘이라는 것은 여성들의 바람만으로 성평 등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 이어 남성들이 겪는 고충을 또한 파악하고 남녀 간의 평등을 주장해야 한다. 남녀 간의 신체적, 심리적 차이점을 인정하고 공동한 사회를 같이 이어 나가야 한다 .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나온 비유를 쓰자면, 남성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 동굴에 들어가 , 해결 책을 찾아야만 스트레스가 풀리며 , 여성들은 남에게 자기 자신의 대 해 얘기를 하면서 표현만이 비로서 스트레스를 덜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를 통해 여자와 남자가 다르다는 것을 인식 할 수 있다 . 남 녀 간의 다름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명확히 인식하고 존중해야만 우리는 함께 조화롭게 살아 갈 수 있다. 성차별적 말들을 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남자라면 OO이어야 돼 ” 또는 “여자라면 OO 이어야 돼”라는 고정관념의 말들을 하지 않는다 . 개인적인 경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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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나는 털털하면서도 비교적 직설적인 모습도 있어 “여자답지 못하다”라고 들은 바가 있다 . 이어 “여자라면 조용하고 정숙해야 된 다”라는 말 역시 들었다 . 또한 같은 반에 있는 친구가 벌레를 보고 기겁 했을 때에,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남자가 그렇게 겁이 많으면 안 되지”, “남자답지 못하다 ” 와 같은 말을 듣게 되었다. 여자가 조 용하지 않아도, 정숙하지 못해도 , 겁이 없어도 여자인데 “여자라면 OOO이어야 돼” 라는 말이 왜 우리 사회에 오고 가는 걸까 ? 남자도 털털하지 않고, 직설적이지 않으며 , 겁이 많아도 남자인데 , 왜 “남자 라면 OO 이어야 돼” 라는 말이 난무하는 것일까 ? 우리는 성차별적인 발언들은 금해야 한다. 성에 따른 차별이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우리 사회에서는 페미니즘 에 대한 교류가 필요하며, 그에 대한 활발한 토론 역시 이루어져야 한다. 성차별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불편한 주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 하지만 조심스러운 주제라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그에 대해 소통하지 않는다면 남녀평등은 절대 이루어 질 수 없다. 성차별에 대해서 더욱 활발하게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그 문제를 정확 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고 , 이것이 성차별 해결의 첫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남자에게 , 여자에게 각각 고정된 역할에 대한 기 대를 줄인다면, 남녀동권은 언젠간 이루어 질 것이다 . 그러므로 페미 니즘은 우리가 사회에서 이루어 가야되는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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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학년


무업 (無業) 나라 잃은 고단함으로

오승민 Andy Oh 길을 걷다, 흩날리는 옷깃을 여미려 잠시 멈춰 섭니다. 그러다 언뜻 엿본 하늘에는 천지의 생사가 보입니다 그런 하늘에서 어제는 서쪽으로 날던 새가, 오늘은 날개짓으로 천지를 누비고 있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천중의 적막함을 헤아릴 수 없음에, 그런 하늘을 가르는 새가 노여워집니다 다시 길을 걷고자 발을 내딛어 보지만 계속해서 불어오는 바람에 다시금 멈춰 섭니다 얼마나 걸어왔나 되새기려 돌아보지만, 발자국은 모두 바람에 몸을 맡긴지 오래였고, 저기 멀리서부터 걸어왔음을 가늠할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갈 곳을 잃은 채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하는 게 우스워, 옷깃에 몸을 숨깁니다.

11학년 / 330


밖 빼앗긴 땅, 소망을 찾아서

하대호 Dae Ho Ha

창밖에 겨울비 내리며 마지막 남은 하나의 이파리 떠내려가네 마지막 남은 나의 소망마저 떠내려가네 나의 목표를 돌려놓고 빛을 받지 못한 나 별 조차 빛나지 않았던 날일지라도 벚꽃이 휘날리던 그 길 황금빛이 하늘에 보이던 그 시절 모든 산맥, 이파리, 그리고 연못 위에 있는 붉은 배롱나무 꽃 흔들려도 님은 하늘을, 까치가 날아다니는 하늘을 희망하길

11학년 / 331


경술국치 ( 庚戌國恥)

윤병우 Philip Yoon 나라는 어디 부모가 애를 있었던 법과 바다 파도가 바뀌었다

있는가 떠나듯 없어지고 질서도 모래집을 망치듯

길 위에 있는 굶주린 똥개들에게 우리는 먹이가 돼 버렸다 고기처럼 뜯겼으며 물처럼 빨려졌다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분노한다, 이 뱀을 분노한다 야비하며 악한 이 뱀을 분노한다. 저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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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서 구한말 , 서양의 침입을 피해

김윤지 Ella Kim 어느새 푸르던 하늘은 뿌연 화약과 슬픔으로 번진다 맑고 환한 계곡은 빨갛게 물들인다 따뜻함이 느껴지던 우리의 땅도 이제, 차갑고 두려움에 까맣게 잠긴다 나는 숨을 것이다 뿌연, 빨간, 까맣던 그 모든 것들을 피해 나는 숨을 것이다 죄책감에 나는 헤매인다 다른 모두들 두려움에 빠지기 전에 하늘, 물, 땅 지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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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려움에 숨는다 숨어서 밝아지길 기다리며

11학년 / 334


소원 광복의 꿈을 꾼다

이나현 Nahyun Lee 하늘에서 떨어지는 아름다운 첫 눈 바닥에 수북히 쌓일 때 까지 소원을 간절히 빌어본다 어느덧 하늘을 가린 검은 그림자 오늘도 내 소원은 전달이 되지 않았나보다 하지만, 하루하루 고통스러운 날들에 하늘이 답하여 꽃비가 내리는 날이 올 것이다 우리의 가혹한 시간의 피눈물은 결코 헛되지 않아 어느 날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 질 것이다

11학년 / 335


피어나오는 빛 해방의 빛, 비추다

김수아 Joshua Kim

매일 가혹한 장면을 눈에 담는 나 밤에 떠난 빛을 기다리며 마침내 시작된 오늘 완전히 다른 공기인 오늘 수갑 묶인 채 살아온 드디어 이 쇠사슬을 푸는 나 36년 동안 바라지 못했던 우리 해가 붉혀 오르던 그 세월 따숩고 밝은 해가 나를 녹이는 하늘이 주신 첫 선물 매일 그 악몽을 씻어주리라

11학년 / 336


민들레 독립의 씨 , 피어나길

서윤영 Joan Suh

자유로이 날으라 하였는데 걸음걸음 넓혀 노오란 들판 , 발자취 남기라 하였는데 야속한 흰 눈, 홀씨 위에 내려 저 아래 땅속 묻어버렸네 두 손 모아 눈이 녹길 기다리고 두 손 모아 꽃이 피길 기다리니 희망 없던 까만 땅 위 노오란 민들레 꽃, 우리의 발자국이 생겼다

11학년 / 337


큰 별이 지다 김옥균 , 조선의 별이여

황연준 Ian Hwang 가장 암울한 시기에 피어나 건장한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으려 했건만 기어코 맺지 못하는구나 좀먹는 벌레들과 썩어빠진 토양과 매서운 날씨아래 결국 쓰러져 가는구나 없는 햇빛 속에서 가지를 피고 썩어빠진 토양 아래 뿌리한번 내려봐도 현실은 바뀌지 않는구나 이제 날씨는 추워지고 벌레는 더욱 꼬이고 울창했던 숲은 온데 간데 없구나 김옥균 조선의 별이여 그대와 같은 큰 별이 지니 이제 조선은 어찌되리

11학년 / 338


집에 가자 되찾을 조국, 그 곳으로

김상인 Jacob Kim 집에 가고 싶다 가족이 보고 싶다 어머니의 따뜻한 미소, 여동생의 귀여운 웃음 너무나 보고 싶다 밥을 먹고 싶다 소박한 국이라도 찐득한 밥 한 공기만으로도 나는 행복하겠다 잠을 자고 싶다 조용한 밤에 따뜻한 방 안에서 잠시만이라도 눈을 부치고 싶다 나는 왜 이런 인생을 살고 있을까? 왜 하루마다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고 있을까? 우리의 핏줄은 왜 이런 상태인가? 언제 난 집에 갈수 있을까?

11학년 / 339


11학년 / 340


조선 사람 , 조선으로 박준하 Cole Park 시장에 가면 살 것이 많다 우리나라 것은 살 것이 없었다 왜 다 있는 게 그들의 것인가 왜 설탕, 소금, 과일 하고 음료를 남의 것을 사야하나 많고 많은 것 중 왜 우리 것은 많이 없을까 36년간을 힘들게 살았다 우리가 단지 할 수 있는 것 남자는 무명베, 두루마기 여자는 감정물감 들인 무명치마 난 믿는다 우리 토산품을 사용해야 한다고 그래야 되찾을 수 있다고 “조선사람 조선으로 ! 우리 것으로만 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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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좋을까 김조셉 Joseph Kim 매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눈도 제대로 못 떴을 때 그땐 참 좋았지 졸려서 우물쭈물하다가 , 마지막 전철 뛰어서 겨우 타고 헥헥 댈 때 그땐 참 좋았지 아침 학교 정문 앞에서 친구들과 같이 싱글벙글할 때 그땐 참 좋았지 점심시간 친구들과 시험성적으로 엉엉 울고, 또 활짝 웃을 때 그땐 참 좋았지 선생님들과 대화하고 가족 같은 관계 맺을 때 그땐 참 좋았지 음악의 아름다움과 운동의 에너지를 체험할 때 그땐 참 좋았지 추억의 유물을 대신할 수 없는 시간들 그때로 돌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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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기억들 오예준 Daniel Oh

봄 김소희 봄은 자기의 할 일을 한다 바람은 불어오고 게으른 졸졸졸 흐른다 이제 모두 깨어난다

이 시를 읽으면서 저는 미국 집을 생각했습니다 . 어렸을 때 동생 이랑 이층 침대를 같이 썼습니다. 제 침대 옆에 창문이 있었습니다 . 그 창문 바로 앞에는 큰 나무가 있었습니다 . 봄이 되면 창가의 나무 에 분홍 꽃이 핀 걸 볼 수 있었습니다 . 봄바람을 느끼고 꽃 냄새를 맡으면서 침대 위에서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 학교 끝나면 밖에 나가서 동네 애들이랑 자전거를 탔던 추억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저는 7 학년까지 다섯 살 때 샀던 자전거를 탔습니다. 슈퍼맨 자전거 였습니다. 처음 샀을 때는 네발 자전거였는데 2학년 때 보조 바퀴를 빼고 두발 자전거로 탔습니다. 봄을 생각하면 제 생일도 떠오릅니다 . 제 생일이 3 월 17일입니다 . 그래서 봄이 다가오면 제 생일도 다가와서 좋습니다 . 보스턴에는 겨 울이 길어서 가끔씩 제 생일에 눈이 올 때도 있었지만 저는 제 생일 이 겨울과 봄 사이에 있는 게 재밌고 좋습니다. 제 생일에는 파티 같 은 건 안 하고 푹 잡니다. 게으르게 뒹구는 게 최고니까요 . 한국으로 이사하고 고등학교에 들어온 후 , 봄에 더 많은 의미들이 생겼습니다. 이번 봄에는 중요한 시험이 많고 이제 대학교 진학에 대 한 생각도 많이 해야 됩니다 . 지금 이 겨울에는 뭔가 하는 느낌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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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만, 저는 이번 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제게 뭔가 하 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죠? 내년 봄이 지나면 졸업하는 게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 좀 지나면 봄에 더 많은 의미가 생길 것 같습니다 . 지금까지 저에게 봄은 좋은 추억만을 가져다주었습니다 . 계속 봄에 대한 좋은 추억이 더 생기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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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위해 굶는 여인들 이관미 Li Guan-Mei Timpson

Segments from “Starving Yemen Mothers Skip Meals to Save Their Children” from Associated Press. Written Michael. Photos provided by Nariman El-Mofty.

Umm

Mizrah

holds

by

Maggie

he r

baby

Mizrah, in Aden, Yemen. Image by Nariman El-Mofty. Yemen, 2018. The young mother stepped onto the sc ale for the doctor. Even with all her black robes on, she weighed only 84 pounds —38 kilograms. Umm Mizrah is pregnant, but starving herself to fee d her children.

Mothers hold their children suffering from malnutrition in Yemen. Image by El-Mofty. Yemen, 2018.

Nariman

Save the Children late last year estimated that 50,000 children may have died in 2017 of extreme hunger or di sease, given that up to 30 percent of children with untreated cases of severe acute malnutrition die. A sc reen

capture

from a

video of 8-month-old Fadl Halabi is shown on a smartphone. Alze kri)

(AP

Video/Ma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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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video filmed by a doctor shows 8-month-old Fadl in his last days of life. The baby twitches his legs in pain. He’s c rying but he is so dehy drated his eyes can’t produce tears. “We have no vaccination s. There are shortages in medicines. The aid stopped,” said Abdullah Doubala, head of al-Khoukha health department. Sitting on the floor of her home, Sherine fed her two children scraps of bread dipped in “be sbas,” a sauce of tomato and garlic. She took no bites herself. Her 1-year-old daughter Amal, has been diagnosed with acute malnutrition and can no longer stand up. Umm

Molham

and

he r

her 13-month-old son. Image by Nariman El-Mofty. Yemen, 2018. Sitting in

be d,

Umm

Molham was so weak she could barely lift her 13-month-old son. When the AP met her, she had been at the hospital for three days waiting for someone to examine him. Umm Molham didn’t say a word, even when asked questions, lost in her internal world of frailty and hunger.

“Starving Yemen Mothers Skip Meals to Save Their Children” by Maggie Michael and Nariman El-mofty, a Pulitzer Center reporting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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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위해 굶는 여인들 엄마는 공허만을 느낀다 아무것도 먹지 않는 정적 속에서 늘 똑같은 병원의 공기를 느끼며 “절망의 풍경”(“it is a landscape of desperatio n”)을 본다 느끼는 그대로가 옳고 그름이 된다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머릿속은 충격과 공포로 가득 차지만 내 아이를 위해 그 공포는 무시되어 진다 엄마는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굶는다 ” (“starvi ng herself to feed her children”) 저승사자만은 막을 수 있을 거란 희망으로 그러나 어미의 희생은 그들을 구하기에 충분할까? (“her sacrifice may not be eno ugh to save them”) 그녀의 정신은 찢어져 버린다 "질문을 해도 ... [ 그녀는 ] 단 한 마디 하지 않는다“ (“Even when asked questions…[she] did n’t say a word”) 어떤 것도 그녀에겐 들리지 않기에 그녀는 “굶주림 속에서 그녀 자신을 잃어간다 ” (“lost in her internal world of frailty and hunger.”) 그녀가 가진 유일한 에너지는 아이를 돌보는 것 삶은 슬픈 영화처럼 탈출구가 없는 끝없는 악순환 역시 영화처럼,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이들이 보여지기 위해서는 빛이 필요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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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ving Yemen Mothers Skip Meals to Save Their Children Hollowness is all she feels In the silence of her absent meals For “it is a landscape of desperation” In this hospital of accustomed desolation Morality is shaped out of sentiment As infatuation avoids the d etriment Arous ed by the horrors induced By the children whose bodies are reduced She is “starving herself to feed her children” As a hope to rid them of the devil’s brethren But “her sacrifice may not be enough to save them”; Instead, her acumen is torn in the spawned mayhem “Even when asked questions… [she] did n’t say a word” As ever ything said was left unheard For she was “lost in her internal world of frailty and hunger.” The only thing in her sight was of the younger Existence is merel y an incessant tape An endless cycle with no escape Yet a film is unable to perform on its own As it requires a light for it to be sh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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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이야기 한민우 Mi n Han 내가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입니다 . 여름에 긴 방학이 있어서 좋아 합니다. 여름에는 친구들하고 놀 수도 있고 , 여행도 할 수 있어요 . 여 름에 차가운 음식을 많이 먹어요 . 여름 날씨는 더워서 아이스크림을 자주 먹어요. 여름의 특별한 점은 밖에 나가서 불꽃놀이 세트를 사서 불꽃놀이를 직접 해 볼 수도 있다는 거예요. 9 학년 여름 방학에 나는 친구들하고 여행을 갔어요. 우리 가족이 소유한 해변 별장에 갔습니다 . 우리는 별장에 도착한 후 짐을 꺼내서 방으로 가져갔습니다 . 그리고 우리는 모두 해변에 갔어요 . 우리는 수 영, 낚시, 배구를 했습니다 . 너무 재미있어서 해가 질 때까지 놀았어 요. 해변에서 돌아온 후에 우리는 바베큐 파티를 했어요 . 너무 맛있 어서 많이 먹었어요. 잘 시간이 되어서 방으로 갔는데 잠이 안 왔어 요. 그래서 3 층 발코니로 나갔어요 . 쌀쌀했지만 기분이 좋았어요. 20 분 쯤 혼자 발코니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바다를 보고 있는데 내가 좋아하던 그 아이가 발코니로 왔어요 . 우리는 수다도 떨고 많이 웃었어요. 날이 추워져서 재킷도 나눠 입었어요 . 그날 밤 늦게 나는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어요. 그해 여름 방학을 보내며 나는 여자 친구가 생겼어요. 이것이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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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소중한 공간 이주헌 Ryan Lee 제게 소중한 공간을 소개하겠습니다. 그곳은 제 침실입니다. 제 침 실에는 책상, 침대, 옷장하고 책장이 있습니다. 제 책상 왼쪽에는 PC 본체가 있습니다. 제 책상 중간에는 컴퓨터 모니터가 있습니다 . 제 책상 오른쪽에는 플라스틱 모델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저는 제 책상을 매일 사용합니다. 공부하고 숙제를 하기 위해서 사용합니다 . 제 책상이 소중한 이유는 어렸을 때 썼던 책상처 럼 생겨서입니다. 책상 오른쪽에는 제 침대가 있습니다 . 제 침대 디자인 컨셉은 거 대한 가죽 소파입니다 . 제 침대에서 주로 매일 잡니다. 침대가 소중 한 이유는 나를 편안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침대 밑에는 제 옷장이 있습니다 . 옷장에는 옷이 있습니다. 티셔 츠, 바지하고 후드 티가 있습니다 . 옷장 색상은 흰색입니다 . 매일 옷 을 꺼내야 해서 옷장을 매일 사용합니다. 마지막은 책장입니다 . 책장은 옷장 옆에 있습니다. 책장에 프라 모 델들, 소설책, 학교 책하고 공부 책들이 있습니다 . 책장은 잘 안 씁니 다. 방학 때 다른 공부를 할 때 사용하고 심심할 때 소설책을 읽고 싶을 때 사용합니다 . 책장이 소중한 이유는 디자인이 예쁘고 저한테 소중한 프라 모델들이 진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방이 좋습니다 . 책상 , 침대 , 옷장 , 그리고 책장이 저를 편 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 곧 이사를 할 거지만 4 개월 동 안 저에게 편안한 공간이 되어준 방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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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와 선택 흥선대원군의 부상 (浮上)과 몰락

심서린 Serena Grace Shim ‘ 인생은 기회와 선택의 연속이다 ’라는 말을 어느 책에선가 본 적이 있다. 그것은 나의 그리고 누구나의 삶에 적용되는 말이지만 역사적 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는 더욱 마음에 와 닿는 글귀였다 . 그간 한국 근현대사 수업에서는 흥선 대원군의 부상 (浮上), 업적 그리고 그의 몰 락에 대하여 배우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 병인박해 분석을 하면서 흥선 대원군에게 주어졌던 기회들 그리고 그가 했던 선택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 한 나라의 지도자가 직면했던 ‘ 기회와 선 택’, 과연 그는 그 당시의 역사적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결해 나아갔을까? 19 세기는 ‘독점 자본주의 ’, ‘ 사 회 진화론 ’, 그리고 ‘민족주의’ 의 영향으로 식민지 쟁탈전이 치열했 다 . 서양의 가치관이 동양으로 서 서히 밀려들어오며 일본은 ‘문명개 화론 ’을 바탕으로 메이지 유신 (明 治維新, 1855-1873)을 통해 서양 의 진보된 사상과 기술을 완전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한편 , 청나라는 서양의 기술은 받아들이되 , 정신은 청의 것을 유 지하는 중체서용( 中體西用)과 양무 운동 (洋務運動)을 전개하게 된다 . 하지만 1894년 ‘청일전쟁 ’에서 패 한 후에 청나라는 일본과 동일하게 서양의 것을 완전히 받아들이게 된 다 . 그러한 상황 속에서 조선은 흥 선 대원군을 중심으로 서양세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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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교류를 거부하며 ‘통상수교거부정책 ’을 펼친다 . 러시아는 서구열강과 청나라의 관계를 중재해 주는 대가로 한반도 와 중국이 맞닿은 중요한 지역인 연해주를 손에 넣게 되고 , 조선과 러시아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국경을 맞대게 된다 . 그러한 상황 속 에서 러시아는 두만강을 건너 집요하게 통상을 요구하고 이에 조선은 위기의식을 느낀다. 조선에서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 김면호나 홍봉주 등의 천주 교도들이 ‘이이제이( 以夷制夷)’기법, 즉 ‘오랑캐는 오랑캐로 막자’ 는 제안을 하게 된다 . 조선에 들어와 있던 천주교 신부들을 통해 프랑스 와 연결해 러시아의 남하를 막으려 하였고 만약 이 일에 성공한다면 흥선 대원군은 천주교도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겠다는 암시까지 준다. 그러나 조선에 체류하고 있던 교주 베르뇌와 다블리가 지방에 서 수도인 한양에 도착한 것은 무려 한 달의 시간이 지난 후였고 , 그 사이 흥선 대원군의 처지는 급격히 바뀌어 있었다. 우선 청나라의 천주교 탄압 소식이 들렸다. 그 소식은 반 대원군 세력이 천주교도들과 접촉하고 있던 흥선 대원군에게 공격할 여지를 주었고 이에 흥선 대원군은 정치적 위협을 느끼게 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흥선 대원군의 자택인 운현궁에 천주교도들이 들락날락거린다 는 이야기가 퍼져 조 대비까지 천주교를 비난하기에 이르자 흥선 대 원군은 천주교도들을 탄압하는 천주교 박해령을 선포한다. 그 결과 12명 중 9 명의 프랑스 신부들과 도합 8,000여명 이상의 천주교를 믿 는 조선인들이 죽음을 맞이했다. 병인박해는 1866 년 봄부터 , 1866 년 여름에서 가을까지, 1868년 , 그리고 1871 년까지 도합 네 차례에 걸쳐 전개되고 이러한 최대 규모 의 천주교 박해는 1871년에 흥선 대원군이 실각하자 막을 내리게 된 다. 이 과정에서 탈출에 성공한 프랑스의 리델 신부가 톈진에 있는 프랑스 해군사령관 로즈제독에게 병인박해에 대해 알리며 같은 해 프 랑스가 조선으로 쳐들어와 ‘병인양요 ’가 일어난다 . 현재의 객관적인 시선으로는 병인박해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흥 선 대원군의 정책을 바라보았을 때 크게 다른 두 가지 의견이 대립된 다. 한 쪽은 서양세력을 견제하면서 우리 민족의 자주적 의지를 보여 주었다는 시각인 반면에 다른 한 쪽은 우리나라가 흥선 대원군의 정 책으로 근대화에 뒤쳐졌다고 한다 . 그리고 또 그로인해 우리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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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식민지로서 약 35 년을 고통 받게 된 것은 아닌가 평가되기도 한 다. 그러나 흥선 대원군은 부정부패로 찌든 전통사회의 폐단을 개혁 했으며 근대사회로 나아갈 기틀을 마련했다는 것에 있어 긍정적인 평 가를 받는다. 그는 삼정의 문란을 개혁했고 , 세도정치를 불식시켰으 며, 백성들을 위한 정책에 힘을 썼다. 또한 정조의 이념을 살려 정조 가 시작했던 탕평론적인 개혁정책이 흥선 대원군 때 이어졌다는 것에 흥선 대원군의 정책에 역사적 의의가 있다고 한다 . 제일 중요한 점은 그는 국가의 자주성을 확립하고 외세를 몰아냈다는 것이다 . 결과적으 로 흥선 대원군의 정책은 부정부패를 극복하고, 법전정비 , 능력위주 의 관료등용 등으로 우리나라가 근대사회로 나아갈 계기를 마련했다 고 평가 된다. 반면에 흥선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은 반외세로서 근대사회 발전에 역행했다고도 평가된다 . 특히 성리학적 이념을 가진 유생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생겨난 반외세적 이념으로서 나라의 안정과 백성들 의 생활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 따라서 새로운 사상 , 문물 , 또는 제 도에 열린 사람들인 개화주의자들은 시대착오적인 유교이념에 따른 반외세적 보수주의를 비난했지만 , 흥선 대원군은 개화주의자들의 의 견을 무시했다. 결과적으로 흥선 대원군의 정책은 지나치게 보수적이 었고, 현재는 그런 점들을 강조하며 흥선 대원군을 근대사회에 역행 하는 인물이라고 표현한다 . 그러나 흥선 대원군 집권 당시 일어난 역 사적인 사건들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정말 많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긍 정론이나 부정론은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 난재라고 한다. 사실 나는 흥선 대원군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에 가깝다 . 더 나아 가서 병인박해라는 사건은 성리학을 기반으로 둔 보수적인 유생들로 인해 일어난 잔인한 학살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 아무리 상황이 급 박했어도 아무 죄 없는 수천 명의 천주교도들을 처형시킨 것은 명명 백백히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흥선 대원군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흥선 대원군은 대 체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 각이 든다. 청나라의 천주교 박해에서부터 시작해 천주교도들이 자신 의 집을 드나든다는 소식을 안 주변인들이 흥선 대원군을 비난하고 그에 조 대비까지 표면적으로 나서서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면 흥선 대원군의 정치적 생명이 정말 위태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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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상황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몇 없었을 것이고 그는 어쩔 수 없이 천주교 박해령을 내리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 흥선 대원군이 천주교도들을 박해한 것 말고도 그가 정치적 입지를 다시 끌어올릴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지만 병인박해가 일어 날 수밖에 없었던 흥선 대원군의 정치적 그리고 개인적 입장이 이해 된다. 흥선 대원군은 안동 김 씨 세력과 풍양 조 씨 세력의 세도정치로 인해 갖은 고생을 한 사람이다 . 어린 아들이 왕이 되고 자신이 대원 군이 되었을 때 그래서 왕권강화에 제일 힘썼다. 삼정의 문란을 개혁 하고, 서원을 철폐하고 , 법전을 정비하고 , 인재를 고루 등용하며, 경 복궁을 재건하는 등 많은 업적들을 세웠다 . 하지만 내가 바라본 흥 선 대원군은 나라와 백성들을 생각하는 마음보다는 왕권과 자신의 안 위를 우선으로 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 처음에는 왕권을 강화시키고 그 다음에는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일하려 했지만 더 나아가려 하기 전에 주변 국가들의 근대화로 향한 변화의 돌풍 앞에서 흥선 대원군 의 정치적 이념이 너무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그의 강한 개혁 의 뜻이 변질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 왕권을 강화 시 킨 후 나라와 백성들의 안위를 위한 여러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행보 를 보이지만 그 후 급박하게 돌아가는 세계정세 속에서 역사 속 다른 왕들이 그랬듯 흥선 대원군은 점차 자신의 첫 마음가짐을 잊게 되며 나라와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안위를 위한 행동을 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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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그 숨겨진 아픔 이현지 Irene Lee " 나는 천리를 끌어다 지척을 삼고, 태산을 깎아내려 평지를 만들고 또 남대문을 3층으로 높이려 하는데 , 제공은 어떠시오 ?" 이 말은 흥선 대원군 (1820~1898)이 당시의 대신들에게 건넨 말로 유명하다. 천리를 끌어다 지척을 삼는다는건 힘이 약한 세력의 인재 를 선출한다는 뜻이고 태산은 안동김씨 가문 , 즉 그 당시 권력이 왕 보다 강했던 세력인데 태산을 깎아 내린다는 것은 이들을 무너뜨리겠 단 말이다. 그리고 남대문을 3 층으로 높이겠다는 말은 정치에서 제외 된 남인 세력의 힘을 다시 키우겠다는 뜻으로 주요 맥락은 무너진 왕 권을 되찾고 주변의 권세가들을 쳐내고 싶은 그의 정치적 야망과 목 적을 잘 대변해 주는 말이다. 최근 들어 경복궁 은 외국인들도 즐겨 찾는 유명한 관광지 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경복궁 뜰을 거니는 것이 유행처 럼 되었다 . 나 또한 친구들과 한복을 입 고 경복궁에 가 본 적이 있는데 유명한 곳은 사실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맛있는 맛집도 많고 명동같은 유명한 관광지도 인접해 있어서 꼭 한 번쯤은 가 볼만한 곳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나는 한국근현대사 시간에 경복궁에 담겨진 역사적 사실에 대해 배운 후 경복궁을 다시 찾아서 그런지 아무래도 느낌이 새롭고 군데군데마다 역사의 흔적이 조금씩 묻어있는 것 같아 신기하기만 했다. 흥선 대원군이 정치적 야망을 키워나가던 1800년대의 조선은 정 조(1752~1800)가 죽고 난 뒤 순조 (1790~1834)가 11세의 어린나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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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에 오르고, 뒤이어 어린 왕들이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하며 그런 힘없는 왕들을 대신해 주변에 힘이 센 세력들이 왕의 옆에 붙어 서 왕보다 더욱 커다란 힘을 가지고 왕을 좌지우지하면서 굉장히 혼 란스러웠던 시기이다. 그러던 중 , 안동김씨의 힘은 더욱 더 커져만 가고 자칫 밉보이면 귀양살이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 때 문에 그런 안동김씨의 감시망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자 흥선 대원군 은 불량배의 생활을 하며 사람들에게 ‘상갓집 개' 즉 불쌍한 사람으 로 여겨지며 미움을 샀다. 그는 이런 하대를 받으며 자신의 꿈 , 즉 안동김씨를 누르고 왕실의 위엄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키워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흥선 대원군에게 한줄기의 빛이 들어온다 . 1863년 , 철종(1831~1864) 이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 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 는데, 그 당시 왕실에서 가장 높은 직위에 있던 신정왕후 조대비 (1808~1890)가 흥선 대원군의 둘째 아들인 명복을 새로운 왕으로 임 명했다. 때문에, 고종은 12세의 어린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되어서 조 대비는 흥선 대원군이 아들이 클 때까지 대신 나랏일을 맡게 되는 섭 정이 시작되었다 . 또 , 그 당시에 ‘비변사’라는 임시회의 기구가 있었 는데, 이 기구는 양반들의 권력 독점기구로 국가의 행정체제를 혼란 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국내의 문제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 체 왕 권만 계속해서 약화 시켰다 . 왕권강화를 지지했던 흥선 대원 군은 1864 년 의정부 와 비변사의 사무에 한계를 줘서 비변사 가 외교, 국방 , 치안 관계만 관리 할 수 있도록 하였다가 다 음해에는 비변사를 폐지시키고 삼군부 를 부활시켰다. 흥선 대원군의 섭정이 시작 된지 2 년 만에 흥선 대원군은 그가 그 동안 키워왔던 꿈, 왕권강화를 위해 한걸음 내딛기로 결정하고 , 1865 년, 무너져 가던 왕권을 회복시키기 위해 임진왜란 때 타버린 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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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을 시작하게 되었다. 오늘날 이 흥선 대원군의 정책에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하 다. 하지만, 찬성보다는 반대하는 사람의 비중이 크다 . 왜냐하면 이 내정개혁으로 인한 이익보다는 사람들의 피해가 더욱 컸기 때문이다. 흥선 대원군은 그 당시에 부족했던 인력과 재정에도 불구하고 경 복궁 재건을 무리하게 강행한 탓에 백성들의 생활은 더욱 악화만 되 었다. 그중 흥선 대원군은 ‘원납전' 이라고 백성들에게 공사에 사용되 는 비용을 걷고 원납을 1만냥 정도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평민 이어도 벼슬을 주었다 . 그래서 완공될 때까지 다해서 770 만냥 정도의 돈을 걷었다. 또 , 엽전의 약 100 배에 해당하는 돈인 ‘당백전 ’이라는 것도 만들어냈다. 이 때문에 물가가 상승해 쌀 한 가마니의 가격이 8 배나 뛰며 화폐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며 사람들의 소비를 줄였다. 또 한, 문세라는걸 만들어내서 문을 지날 때마다 통행료를 받았다 . 여기서 멈추지 않고 , 흥선 대원군은 백성들에게 강제로 노동을 시 켜서 경복궁 재건에 힘을 보태도록 했다 . 이 때문에 나온 노래가 ‘ 을 축 4 월 갑자일에 경복궁을 이루었네 . 우리나라 좋은 나무는 경복궁 중건에 다 들어갔네 . 덩커덩 소리가 웬 소리냐. 경복궁 짓느라고 헛 방아 찧은 소리다 .’ 이라는 경복궁 타령이다 . 이렇게 억지로 기초공사를 거의 마쳐가던 중 , 다시 화재가 일어나 며 예산과 자원 등 많은 것을 잃은 흥선 대원군은 경복궁을 재건할 때 질 좋은 목재를 필요로 했는데 , 그런 나무들은 거의 양반의 땅에 있었다. 때문에 흥선 대원군은 경복궁을 지을 때 필요한 나무들을 양 반의 집이나 땅에서 허락 없이 베어갔다. 또한, 강원도와 함경도에서 나무들을 뗏목으로 힘들게 운반해 오고 각 집을 지을 때 사용되는 돌 을 가져오며 억지로 백성들의 소유물들을 빼앗아 사용하며 평민들뿐 만이 아니라 양반들에게까지 원성을 샀다. 반면에, 이 개혁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만약 그 당시 경복궁을 재 건하지 않았다면 임진왜란 때 다 타버린 지금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 재가 하나 없어지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 또한, 만약 지금에 서야 복원했다면, 조선시대의 그 특유의 기술과 모양을 갖고 있지 못 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더불어 , 경복궁을 재건한 탓에 왕권이 강화 될 수 있어서 일본의 식민지 시기가 늦춰졌다는 의견도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의견들과 사실들을 바탕으로 내가 내린 결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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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 대원군이 경복궁을 지은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억지로 부담스러 운 양의 돈과 재산을 걷고, 노동을 시키며 경제를 일으키기는커녕 너 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나라의 경제를 몰락시켰기 때문에 마냥 잘 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차라리 경복궁을 조금 더 찬찬히 세 우면서 그때그때 가지고 있는 만큼의 재산과 자원만을 사용하며 무리 하지 않았더라면 경복궁도 지으면서 백성들의 원성도 받지 않았을 것 이다. 또, 워낙 안동 김 씨와 풍양 조 씨들이 가혹하게 사람들을 내 쫓으며 정치를 해왔기 때문에 분명 백성들도 불만을 품고 있었을 것 이다. 때문에, 경복궁 재건이 아니더라도 힘 있는 경치를 하며 의로 운 왕임을 보여주었다면 충분히 왕권을 강화시킬 기회가 됐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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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양요에 대하여 최현욱 Matthew Choi

신미양요는 고종 8 년인 1871 년에 미국함대가 우리나라 강화도에 쳐들어온 사건을 말한다 . 신미양요의 역사적 배경이 된 사건은 병인 양요가 일어나기 직전에 발생한 ‘제너럴셔먼호 ’(General sherman incident)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 1866년 병인양요가 일어나기 전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대동 강을 거슬러 평양 부근까지와 통상을 요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평 안도 관찰사가 이들을 거절하자 , 제너럴셔먼호 선원들은 조선 관리를 살해하고 시민들을 약탈하였다. 이에 화가 난 조선인들은 배를 불태 우고 침몰 시켰다 .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조선의 개항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사건 발생 후 미국은 셔먼호 사건에 대한 응징과 배상 청구를 이유로 두 차례 조선에 와서 통상요구를 하지만 그들은 거부 당한다. 미국은 강제로 통상조약을 맺기 위해 주청미국공사에 조선 원정을 명한다. 이에 1871 년 미국 로저스 제독은 콜로라도호 등 5 척의 군함 과 천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강화도에 도착하여 통상을 강요하나 거 절당한다. 그럼에도 미국은 강화도 해협 측량과 정찰을 이유로 일방 적으로 군함을 파견한다 . 조선은 포격 경고를 시작하며 미국은 상륙 작전을 감행해서 전쟁이 발발한다. 미국은 강화도의 초지진과 덕진진 을 무력점령한 뒤 광성보를 공격하였으나 어재연이 이끄는 조선군의 저항이 예상 외로 강하여 조선과의 협상을 기대 할 수 없게 되자 후 퇴하였다. 결국 미국의 함대는 조선에서는 아무런 성과 없이 철수 하 였다. 이 사건 이후 , 흥선 대원군은 국방을 강화하고 각지에 척화비 2) 를 세우고 통상수교거부 정책을 더욱 강화 하게 된다 . 미국과 조선군의 실력과 그 차이는 매우 컸으나 전면적으로 미국도 출혈이 커서 물러 났다. 대원군은 승리를 선언했지만 조선군의 전멸에 가까운 결과는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다 . 개화파는 통상거부정책의 한계성을 재인식 2) 서양 오랑캐가 침범했을 때 싸우지 않는 것은 곧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라는 문구가 세겨진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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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위정척사파는 대원군이 외국의 군대를 막아낼 수 없다는 불안감 을 가지게 된다. 내적으로 불안감과 반발이 쌓여 흥선 대원군은 2 년 뒤 탄핵으로 물러나게 된다 . 흥선 대원군의 쇄국정책은 서양의 침략 을 일시적으로 저지하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변화하는 세계정세를 알 지 못하여 조선의 근대화를 지연시키게 된다. 조선이 계속 쇄국정치를 고집해 청나라와의 조공관계를 유지하기 를 바란 청의 힘이 강했던 것일까 ? 흥선 대원군의 조선을 지키려고 한 노력은 이해가 가지만 , 결국은 조선이 후퇴하고 뒤쳐지고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이를 계기로19세기 조선과 미국의 분쟁 과정에서 조선은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 어떻게 외교 에 대처해야 하는지와 외국과의 분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 조선의 낡은 무기와 실력에 비해 미국 이 보유한 첨단 무기들 때문에 분쟁에서 패배했음에도 제대로 인식하 고 제국주의적이 아닌 상황으로 조금씩 개항을 하였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 과연 문을 잠그고 모르는 척 하는 것만이 그 당 시 최선의 방법이었을까? 조선이 미국의 통상조약을 받아들였다면 과 연 조선은 훗날 일본에게 정복을 당했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 출처 http s://terms.naver.com/entry.nhn?docId=1118875&cid=409 42&categoryId=31778 http s://terms.naver.com/entry.nhn?docId=919480&cid=6204 8&categoryId=62048 http s://terms.naver.com/entry.nhn?docId=560203&cid=4662 3&categoryId=46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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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양요 , 조선의 의지를 더욱 강화시키다 홍지완 Ji ewan Hong 1871년 6 월 1 일, 미군은 전 보다 더 강력하고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군력을 이끌고 강화도를 침략하였다. 10 일 전부터 미군 들은 우리 조선의 땅에 공격을 퍼부었다.

우리 조정에서는 매우 당황스 러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 그러나 미국 측의 입장이 완전히 이해 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 이 일 의 발단은 5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불타는 제너럴셔먼호 현장

5 년 전, 제너럴셔먼호가 우리 조선 땅을 밟았다 . 그들은 조선 과 의 외교 통상을 요구하러 왔 으나, 조선 측에서는 외국과의 통 상은 금지되어 있었다 . 평안도 관 찰사 박규수는 이를 거절한 후, 속히 물러가라고 지시했다 . 그러 나 미군은 조선 측의 말을 무시 한 채 육지에 상륙하여 민가를 습격하여 조선의 소중한 문물과 역사를 약탈해 갔다. 조선 측에서

는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었 다. 화가 난 평양 주민들은 제너 럴셔먼호에 불을 붙여 침몰 시켰 다. 평양에 사는 조선 국민들이 비싼 배 한 척을 불 태워 버리니 그쪽에서도 큰 불만을 품은 것으 로 추정 된다 . 그러나 이 거대한 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온 건 좀 의외라고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 같이 큰 나라가 우리 한국 에 의해 배 한 대가 침몰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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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몇 천 명의 군사를 데리고 이 작은 나라를 함락 시킬 리는 없다. 우리나라에 온 이유는 다른 것 같다. 국민들의 의견들은 다양 하지만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밝혀진 것으로 보인다 . 미국의 속 셈은 조선과 통상과 외교를 하고

싶은 것이다. 사실 조선은 서양 문화와 문물을 받아들이지 않으 려고 굳게 외교를 하지 않고 버 텨왔었다 . 미국은 끝내 조선이 뜻 을 굽히지 않자 우리나라에 공격 을 시작한 것이다.

신미양요 사건 전쟁터의 현장

불과 10여일 전부터 이것이 커다 란 전쟁으로 번져버린 것이다 . 비 록 군사 수로는 많이 역부족이었 지만 병인양요 이래 국방력을 강 화해 온 우리 조선 측 군대는 훨 씬 강해져 있었다 . 어재연 장군이 이끈 조선 수비대가 끝내 미국 군대들을 격퇴시키면서 오늘, 6

월 11 일은 역사적인 날이 되었 다. 우리 조선 국민들은 두 차례의 강한 서양 국가들과 맞서 두 차 례 모두 이겼다 . 이 사건은 ‘신미 양요 ’, 조선이 미국을 상대로 이 긴 위대한 날로 새겨 질 것이다. 흥선대원군께서는 척화비를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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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곳곳이 세웠다. 이는 조선의 통상 수교 거부의 의지를 더욱 더 강화 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 다. 비록 전쟁은 이겼으나 앞으로 서양과의 수교는 더욱 불투명해 진 조선이 되었다. 흥선대원군께 서는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 가실 것인가? 이 질문은 곧 밝혀 질 것으로 보인다. 비록 많은 군사들 을 잃었지만 조선의 용맹함과 끈 기를 보여준 신미양요로써 우리 나라가 얼마나 더 발전할지가 이 제부터의 중요 발걸음이 될 것이 다. 과연 조선은 얼마나 더 오랫

동안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 일까 ? 조선은 서양의 도 움을 받지 않고 얼마나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 백성들이 조선 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에 관하여 많은 질문들이 있겠지만 우리는 흥선대원군과 조정이 나라를 위 한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을 기대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척화비가 세워지고 있는 현재에도 외교를 주장하는 통상개화파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해 야 할 흐름이 아닐 수 없다.

발급일: 1871 년 6 월 11 일 홍지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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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떠나보내며 신미양요 이후 남은 사람들

이성준 Andy Lee 1871년 6 월 2 일 꽤나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로운 날이었다 . 간만에 찾아 온 분위기 에 취해있던 나는 평소 자주 가던 주막에 국밥 한 사발과 술 한 잔을 걸치러 갔다. 늘 보았던 익숙한 외관과 몇 년 지기 친구 못지않은 서 글서글한 주모, 그리고 모락모락 나는 연기와 맛있는 냄새가 가득한 이 공간. 정말 너무나도 완벽한 평화가 그지없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아내와도 기분 좋게 화해하고 나온지라 행복감은 배가 되었다 . 그렇 게 뜨끈한 국밥에 반주를 하며 배를 채우고 있었는데, 큰 길가에 사 람들이 하나 둘 모이더니 이내 주모와의 말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시 끄러워졌다. 사람들은 무슨 배에 대하여 얘기를 나누는 듯 하였다 . 그 순간 광성진 쪽에서 큰 굉음이 났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순간 거리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놀란 나는 황급히 무슨 일인가 하여 쥐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달려갔다. 광성진은 주막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에 나를 포함한 일곱 명 정도가 그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도착한 곳에는 양놈들의 배가 접근하고 있 었고 그것에 대하여 경고용 포격을 쏜 듯 하였다 . 그들의 함대는 남 하하여 솔돌목을 지날 때 또 다시 포격을 하였다 . 그렇게 몇 차례 포 격이 있은 후 우리와 교섭을 하는 듯 하였다 . 몰래 지켜보던 나는 무 슨 일인지 혼란스러워 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 돌아가는 와중에도 나 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 다만 이 나라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 그들은 교섭을 강요하러 온 것이었다 . 어떠한 사건의 책임과 통상 교섭을 명분으로 침입한 것이라고 한다. 이후 사람들 사이에서 양놈들이 며칠 뒤에 다시 올 거라는 소문이 돌 았다. 나는 그 소문을 믿지 않았다 . 사실 믿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 왜냐하면 나에겐 가족들이 있었으니까 . 하지만 하루 하루가 지날수록 그 소문의 크기는 커져만 갔고 결국 소문은 사실로 변해갔다 . 앞날을 생각하면 머리가 너무나 아팠다. 사실 가족과 함께 멀리 도망가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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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살고 이 땅, 이 면 좋을지 쓰고 있는

싶었지만 내 나라를 버릴 수는 없었다 . 모두가 도망친다면 나라는 대체 누가 지켜내겠는가 . 그렇게 며칠을 어떻게 하 머리를 싸매며 혼란스럽게 시간을 보냈다. 사실 이 글을 지금도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 어떤 것이 정답일까 .

1871년 6 월11일 언제나 좋지 않은 예감은 딱 들어맞는 것 같다 . 역시나 소문대로 양놈들은 우리 조선 땅에 침입해 왔고 전투가 일어났다 . 사실상 이런 시기에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게 맞는 행동인가 싶다 . 하지만 지금 상황과 내 심정을 이렇게 글로 남기는 것이 훗날 가족들을 위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번 일기를 쓴 이후로 나는 밤새 고민을 하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생각했고 그 끝에 다다른 방법은 이곳에 남는 것이다 . 물론 나 혼자만이다. 이 세상 어떤 것이 가족보다 소중할 수 있겠는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족을 지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 다만 나 스스로에게는 나라를 버리고 도 망친다는 것이 용서할 수 없었다 . 끝까지 남겠다는 아내와 딸아이를 긴 실랑이 끝에 겨우 설득시켜 다른 지역으로 보냈다 . 당분간 떨어져 지낼 수 있도록 최소한의 짐만 지어 최대한 빨리 보냈다. 그렇게 아내와 아이를 보낸 다음 날 그놈들이 쳐들어왔다 . 나를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남았다. 양놈들은 함포의 지원을 받으며 초지진에 상륙하였고 그 수는 가히 셀 수도 없이 많았다 . 대 략 600여명이 넘어 보였고 그들의 무기와 화력은 우리 조선과 월등 히 차이가 났다. 그렇게 전투가 일어났고 상상하지도 못할 일들이 눈 앞에서 일어났다 . 그저 평민인 내가 전쟁을 경험할 일이 있었겠는가 . 주위에는 처음 보는 무기에 처음 맡아 보는 화약 냄새 , 그리고 피비 린내로 가득했다 . 하늘은 화약 때문인지 칠흑같이 어두웠고 땅은 누 구의 것인지 모를 피로 적셔졌다. 아직까지도 손이 떨리고 무섭다 . 같이 술을 마시던 친구, 일을 같 이 한 동료까지 주위 사람들을 하나둘 잃는 것도 무서웠다 . 많은 사람 들이 숨을 거두었고 나는 다리와 팔에 상처를 입었지만 다행히 목숨 에 지장은 없었다. 더 쓰고 싶은 말은 많지만 몸이 너무 고되어 오늘 은 이만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다 . 나는 꼭 살아 돌아와 다음 일지 를 이어 나갈 것이다 .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나러 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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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1871년 6 월 16일 전투는 끝이 났다. 수많은 피해가 있었지만 피 흘린 사람들의 희 생으로 양놈들을 돌려보냈다 . 양놈들도 11일의 전투로 인해 피해가 많아 이튿날 물치도로 철수하였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 다 쳤다. 길거리에는 가족의 목숨을 빼앗긴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넘쳐났 지만, 한 편에선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쁨과 눈물도 함께 흘렀다. 이 번 전투로 인해 원래부터 싫었던 양놈들이 끔찍할 정도로 싫어졌다. 우리 동네에서도 이들과의 교류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정치나 교섭에 대해 무지한 나지만 그런 역겨운 녀석들과는 교류할 수 없다.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이 동네에서 나는 이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으셨다 . 전투가 끝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나 와 우리 어머니는 최대한 빨리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집에는 아무 도 없었다. 어머니는 오늘도 아버지를 찾으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계신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아버지는 더 이상 집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되셨다는 것을 . 어머니도 알고 계실 것이다 . 다만 시신이 없으 니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드신 것이다. 내가 왜 아버지의 일지를 읽 고 아버지의 일지를 쓰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저 이렇게라도 아 버지와 대화를 하고 싶다 . 너무 많이 울어 더 이상 눈물도 나오지 않 는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 우리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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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르트 도굴사건 박정연 Clara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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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모래 권애나 Anna Fran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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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 그러지 않았다면 임오군란

이재우 Jaewoo Lee 우리 아버지는 구식 군인들 중에 한 분이셨다. 아버지가 벌어오신 봉급과 곡식으로 하루 하루 힘들게 살아가던 우리 가족은 어느 한 순 간부터는 더욱 더 가난해지고 굶주리게 되는 날이 많아졌다 . 아버지 와 같은 구식 군인들은 거대하고 쉽게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사용하 는 것이 아닌, 대부분 열악한 칼과 활을 사용하였다 . 따라서 조정의 지원을 받아 강력한 무기를 지닌 신식 군인들한테 밀릴 수 밖에 없었 다. 이 뿐만이 아니다 . 신식 군인들이 외세의 영향으로 새로운 무기 들과 새로운 갑옷들로 무장할 때 아버지 같은 구식 군인들은 일반 군 복을 입고 싸워야만 했다. 전술로만 따져 봐도 항상 구식 군인들은 신식 군인들에 비해 실력을 포함해, 대부분이 뒤쳐졌다. 체계적인 구 조와 전술을 가진 신식 군인들의 승률이 구식 군인에 비해 훨씬 높았 으며, 나라에서 우대하는 군인들은 신식 군인이었다 . 이런 차이들은 곧 구식 군인과 신식 군인들을 차등적으로 대하는 , 차별된 대우를 받 는 사례로 이어졌다. 어느 달부터인가 우리 아버지를 포함한 구식 군인들에게 13 개월 동안 봉급이 들어오지 않았고 , 나를 포함한 구식 군인의 가족들은 더 욱 더 자주 배고픔에 굶주려야 했다 . 어린 시절 , 아무 것도 몰랐던 어릴 적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께 밥투정만 하였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 시간이 너무나도 후회된다. 원래 있던 식량으로도 부족할 터였지 만, 배불리 먹고 싶은 생각만 나날이 늘어나고, 배불리 먹었던 날들 은 모두 추억으로 남겨져 한걸음 한걸음씩 더 멀어졌다. 어느 날 아침 , 아버지가 군대의 동료 분들과 같이 나라에 항의를 하러 간다는 소식을 어머니를 통해서 전해 들었다. 그날 밤 , 아버지 가 돌아온 후, 밀린 봉급을 쉽사리 받기에는 힘들 것 같다는 아버지 의 말씀을 들게 되었다 . 원래는 하루에 세 끼를 다 먹을 수 있었던 우리 가족은 시간이 점차 지나자 하루에 한 끼만으로도 만족해야 될 때가 많았고, 12달이 지난 후에는 일주일에 한 번 밥을 먹는 것만으 로도 감사해야 될 처지가 되었다. 그동안 밀린 봉급을 전혀 받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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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었고, 다른 구식 군인들의 집에서 쌀을 빌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 었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확신했을 때 아버지를 포함한 다른 구식 군인들은 누구보다도 거세게 , 열심히 항의하였다 . 13개월 후, 마침내 쌀을 달라는 항의가 받아들여진 후, 밀린 봉급 이 나왔을 때 누구보다도 아버지는 기뻐하셨다. 들뜬 마음으로 집으 로 돌아오신 아버지가 짚 가마니를 여셨을 때 예상과는 달리 쌀 대신 겨와 모래가 섞여 있었으며 , 무게로만 구식 군인들을 속이려는 속셈 이 드러나자 아버지는 심하게 분노하셨다 . 아버지를 비롯한 구식 군 인들 사이에서는 13개월 동안 밀린 봉급을 달라고 항의할 때보다 더 큰 분노가 터져 나왔다 . 누구보다도 나라를 위해 , 또 무엇보다 가족 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셨던 아버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 을 만큼 의 억울함에 , 단체로 군란을 일으킬 생각을 하셨다 . 구식 군 인들에게 주어야 할 쌀이 신식 군인들에게 더 많은 월급을 주기 위해 쓰인 것을 알게 되자 , 아버지를 포함한 구식 군인들은 끝내는 이성의 끊을 놓게 하는 사건으로 , ‘ 임오군란’ 이라는 혁명을 일으키게 되었다 . 이렇게 일본과 서구 열강은 우리나라에 변화를 주려고 하였지만, 변화가 아닌 돌이킬 수 없는 큰 이변으로 태세가 전환된 것 같다 . 신 식 군인들과 구식 군인들의 차별 대우로 시작된 마찰은 아버지를 포 함한 모든 구식 군인들에게 큰 재산적 타격과 분노를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이 모든 사태를 지켜본 구식 군인의 아들로서 나는 생각해 본다. 구식 군인들과 신식 군인들의 대우에 차별이 있더라도 , 다만 봉급만 이라도 제대로 지급했다면 이렇게 큰 군란과 이변은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마찰은 일제에 맞서 더욱 더 강한 대항력을 지니게 되었고 이 는 나중에 화력전으로 이어지며 일제와 우리나라 민족에게 큰 사상자 를 배출하게 된다. 신식 군인을 키우는 상황에서도 구식 군인들에게 그들과 똑같은 대우를 해 주고, 봉급을 제대로 주었다면 과연 임오군란이 일어났을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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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기군이 뭐라고 배지원 Jiwon Bae “타탕!” 총알이 발사되는 소리가 들리고 옆구리의 찢어질 듯한 고통에 땅 에 쓰러졌다. 한 사람이 쓰러져도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고 서로를 죽여 나갈 뿐이었다 . 아무리 살짝이라도 움직이려고 노력해도 손가락 조차도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 영순이 , 한순이 , 이순이 , 삼순이 , 오 순이, 그리고 우리 아내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한 명 , 한 명의 얼굴을 머릿속에서 그린 뒤 나는 정신을 잃었다. “아빠… 배고파… 우리 밥 언제 먹어 ?” 1881년 겨울, 우리 딸 , 영순이가 많이 배고픈지 밥 타령을 시작했 다. 쌀은 아니지만 감자와 채소로 끼니를 채우는 데는 한계가 오는 것 같았다. 벌써 우리 군인들은 월급을 받지 않은 지 13개월이 넘었 다. 매번 제대로 된 밥을 먹지 않아 아이들이 많이 야위고 피곤해 보 였다. 이것은 나와 아내 , 자식들 ,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닌 모든 구식 군인들의 가족 이야기들이다. 급료를 꼬박꼬박 주지도 않으면서 우리 마을 관리들은 자주 잔치 를 열며 돈을 흥청망청 쓰고 있었다 . 우리 군인들은 정부의 관리들과 대화를 누기 위해 그 다음날 아침 일을 끝내고 뜻이 같은 이들을 모 아 높은 관리를 찾아갔다. “저희 군인의 급료를 못 받은 지도 13개월이 넘어갑니다. 언제 주 실 것 입니까?” 키 작은 군인 한 명이 용기를 내 관리에게 물어보았다 . 목소리는 떨리다 못해 높은 음이 나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너네는 왜 매일 쌀 타령이냐 ! 일이나 가서 해!” 용기 있는 물음 뒤 돌아오는 것은 관리의 높은 언성이었다. “네…” “다시 한번 찾아오면 급료를 다시는 안 줄 거다 !” 관리들은 월급을 영원히 받고 싶지 않으면 물어보지 말라고 하며 우리를 다시 쫓아냈다 . 화를 식히며 우리는 다시 일하러 돌아가는 길 별기군에게는 정부에서의 지원이 많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 별기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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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는 우리와 다르게 신식 무기뿐만이 아니라 월급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이제는 자존심은 자존심대로 무너지고 가족의 생계 걱정은 걱 정대로 극심해져 갔다 . 이런 차별적인 대우에 이제는 너무 지쳐 화가 났다. 다음 달에는 정부가 심지어 구식 군인의 수를 줄인다고 발표하 였다. 이렇게 계속 줄이고 줄이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하지 ? “자 군인들! 월급을 지금 나눠주도록 하지 !” 관리들이 소리쳤다. “와아~!” 몇 개월에 걸친 월급을 받게 된다는 들뜬 마음에 구식 군인들은 소리를 질렀다. 관리들은 인심 가득한 표정으로 한 사람 , 한 사람에 게 눈웃음을 보내며 쌀을 나누어 주었다. 분위기는 마치 모두가 큰 축제를 맞게 된 것 같았다 . 정부의 관리들의 횡포에 난 진절머리가 났다. 그래도 혹시나 빵빵하게 쌀을 챙겨줬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심 에 쌀 가마니의 윗부분을 조금 열어서 쌀의 양과 질을 확인했다 . 쌀 가마니 안을 보자마자 나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 조금의 쌀과 같이 섞여있던 벼와 작은 모래와 자갈이 보이자 나와 같이 월급을 받 았던 군인들은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건 안 되겠다. 우리 정부를 치자” “그러자. 힘을 합쳐 중심인 명성황후를 죽이자” 불만을 품은 구식군인들은 개화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던 명성황 후를 살해하자는 의견으로 모았다. 이것이 바로 임오군란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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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우정국 강재원 Jenny Kang 나는 조선의 왕으로서 걱정이 많다. 내가 왕이 되었던 열두 살부터 10년 동안은 나 대신 아버지께서 나라 일을 대신해 주셔서 직접적인 걱정은 없었다 . 병인년에는 불란서 사람들이, 신미년에는 미국 사람들이 배를 타고 들어와 교류를 하자고 했지만 아버지께서는 단호하게 무찌르셨다 . 이상한 독일 사람은 할아 버지의 무덤을 도굴하려고도 하여 서양인에 대한 반감이 가득하게 만 들었다. 아버지께서는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시고 서양 오랑캐를 받아 들이지 말아야 된다는 것을 널리 알리셨다. 아버지께서 단호히 서양을 배격함으로써 많은 백성들은 조선에 대 한 자부심이 더 강해졌다. 또한 , 외국을 무찌르기 위하여 나라 힘을 강하게 기르려고 함께 노력하였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은 이미 서양 의 문물을 받아들여 새로운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는 박규수의 설명을 듣고 나자 내 마음은 다시 불안해졌다. 최익현의 상소로 아버지가 물 러나게 되고 내가 직접 나라 일을 하게 되어 걱정은 더 커져갔다. 중국을 다녀온 김홍집은 개화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일본을 다녀 온 김옥균과 박영효는 더욱 강하게 근대화를 주장하였다 . 물론 , 많은 유생들은 서양을 멀리 해야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보 았을 때 우리에게도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였다. 필요한 물건을 사고 팔기 위해서는 화폐가 필요했다. 그래서 화폐 를 만드는 근대식 기관인 전환국을 만들었다 . 요즘은 나라를 지키는 데 칼과 창만으로는 부족하여 총과 대포를 만드는 무기 공장인 기기 창을 설립하였다. 지금까지는 한지에 먹과 붓으로 책을 만들었지만 이 제부터는 근대적인 인쇄를 도입하여 서양식 책을 만들기 위해 박문국 을 건립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기관들이 백성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 고 나라를 튼튼하게 만들기를 바란다. 그런데 내가 가장 큰 관심을 갖는 새로운 기관은 우정국이다 . 지금 까지는 전할 소식이 있으면 각자 인편 , 또는 말을 탄 전령을 통해 전 달하고는 했었다. 이제 우정국의 개국되면 백성들이 전하고자 하는 소 식들이 우편을 통해 빠르게, 멀리까지 전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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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우정국이 첫 문을 여는 날이 되었다 . 나는 그 어떤 행사보 다 설레임이 가득했다 . 이 날이 조선의 근대화가 시작되는 날로 여겨 졌다. 그런데 이러한 기대감은 얼마가지 않았다 . 그날 저녁, 궁 안에 서 터진 폭탄 소리에 모두 화들짝 놀랐다. 그때 갑자기 김옥균 일행이 들이 닥쳐 거처를 경우궁으로 옮기라고 하였다. 나의 거처를 옮기는 일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폭탄이 터지는 상황에서 다른 선택이 없었다. 이 후 우정국 개국 축하연에서 많은 대신들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우정국이 조선 근대화의 시작이라는 기대감이 산산 조각나 는 것을 느꼈다. 더욱이, 나를 만나러 경우궁으로 찾아온 다른 대신들 도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이 컸다. 그래서 다음날 나와 명성 황후는 다시 창덕궁으로 돌아왔다. 곧이어 김옥균 일행에 의해 14개조 정강이 발표되었는데, 이것은 조선의 근대화를 위한 혁신적인 방향이 지만, 나와 충분히 상의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선언된 것이다 . 아무 리 그 방향이 옳다고 하더라도 현실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데, 조정의 입장도, 백성의 입장도 대변하지 못한 채 너무 조급하게 만들어진 것 같았다 . 조선의 근대화와 개혁이 필요하지만 , 그것이 이 루어질 현실이 반영되지 않으면 ,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조선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고, 내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 창덕궁으로 다시 돌아온 오늘밤에도 잠이 쉽게 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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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들 강화도 초지진의 군인이 본 개항과 운요호 사건

유채영 Cha e Young Yu 1875년 8 월 16일 나는 강화도 초지진 해안에서 군인으로 일을 한지 이제 20 년 무렵 이 되어간다. 최근 여기서 일을 하는 몇 년 동안 우리 군인들은 전보 다 더욱 해안을 조심히 감시해야 한다. 1863년 우리나라 왕권이 흥선대원군에서 고종의 손으로 바뀌고 나서 이상한 소문이 계속 들려온다. 바로 우리나라가 항구를 열어 외 국선박의 출입을 허용하는 ‘개항 ’ 을 할 것 이라는 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 소문이 현실이 될까 두렵다. 개항을 지지하는 고종은 집권 이후 조선의 국내와 국외 정책을 변 화시키기 시작했다. 그 무렵 , 흥선대원군 정권 때부터 존재하였던 개 항 지지자 세력은 더 커졌다 . 그들은 자신들을 ‘통상 개화론자 ’ 라고 부르며, 미래에 열강의 군사적 침략을 막으려면 개항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를 비롯한 초지진의 군인들은 이런 통상개화론자를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다. 우리나라 항구를 통해 외세가 들어왔다 갔다 하면 그 만 큼 우리나라에 대한 외세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이다 . 해외의 낯선 종교와 풍속이 우리나라의 유교와 전통을 변질 시킬 것이라고 생각한 다. 해외와 교류를 하기에도 우리나라의 농산물과 공산품은 충분하지 않다. 몇십 년 전 까지만 해도 나와 초지진 군인들은 개방에 대한 두려 움 없이 편한 마음으로 해안을 지켰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 1875년 9 월 20일 - <운요호 사건 > 오늘 아침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일어나자마자 초지진 해안을 수비하러 나섰다. 근데 오늘은 초지진에 오자 , 분위기가 심상 치 않았다. “오랑캐들의 선박이 지금 강화도 해안 근처 있다는 얘기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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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모를 공격을 대비해야 하니 얼른 총과 포격대를 준비하여 라!” 함께 일하는 수비하던 장군이 나를 보자 급하게 외쳤다. 나는 갑작스러운 공격 준비에 당황한 나머지 , 초지진 군인들을 살 펴보았다. 군인들의 표정은 평소와 너무나 달랐다 . 그 전에는 군인들의 얼굴 에서 혹시나 오게 될 외세의 침입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이 보였지만, 오늘은 그 두려움이 분노와 공포로 바뀌어있었다 . 군인들은 대포 준 비와 화약 준비를 바쁘게 하고 있었다. 나도 지금 이렇게 생각에 잠 겨있을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 얼른 나머지 군인들을 돕기 시 작했다. 한 시간 후… 우리 군인들이 포격 준비를 다 했을 무렵 … 저 먼 해안에서 배의 모양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 했다. “어? 저기 배가 하나 보인다. 아직 조선의 것인지 외세의 것인지 확인이 되어있지 않았다 ! 지금 당장 확인을 하여라 !” “저 배는 조선의 배가 아닙니다 ! 현재 조선 해안을 측량 하려는 목적으로 강화도 해안에서 초지진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 다면 일본의 배일 가능성이 큽니다!” “외세의 배가 우리의 초지진으로 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개항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 더 이상 근처로 오 면 안 된다고 전달해라!” “네! 당장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리 군대의 장군과 수병이 긴박하게 몇 마디를 주고받자마자 , 저 멀리서 포격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일본으로 추정되는 외세의 배가 초지진으로 점점 가까이 오면서 먼저 우리가 있는 초지진 해안을 향해 폭격을 한 것이다. “외세가 먼저 우리에게 공격을 한다 ! 더 이상 이 배가 가까이 오 면 안 되니 우리도 당장 방어에 들어가야 한다!” 외세의 폭격을 듣고 너무 놀란 나와 나머지 군인들은 총과 폭탄을 들고 외세의 배를 향해 무기들을 장전했다. 다시 외세의 포격 소리가 들렸다 . 하지만 이번에는 더 가까운 거 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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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리 초지진 군인들은 외세와 포격을 주고받으며 외세 선 박의 접근을 막아내려고 했다 . 우리 초지진 군인들 몇 명은 오늘 초 지진 해안을 지키다가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었지만 우리는 개항으로 부터,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우리의 조선을 지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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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역사를 통해서 달리다 홍성재 Jay Hong 나는 평소에 한국 역사에 관심이 별로 없었고 , 사실 공부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배우기 꺼려했었다. 하지만 올 해 처음으로 한국 근현대사 수업을 듣고,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으로 현장학습을 다녀 온 후에 한국 역사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 특히 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내 시선을 가장 끌었던 것은 바로 우리나라 자동차에 대하여 설명한 부스였다. 1903년, 집권 40주년을 맞이하여 , 고종은 미국에 있는 의사이자 선교사인 알렌 (Horace Newton Allen,1858 ~ 1932) 에게 자동차를 조선으로 가져와 달라고 요청했다. 그로인해 처음으로 한국에 들어온 자동차는 포드 (Ford ) 혹은 캐딜락 (Cadillac) 으로 알려졌다 . 1911 년, 영국의 다임러 리무진 그리고 , 캐딜락 리무진 (Cadillac Limousine) 이라는 브랜드가 조선으로 들어온 것이다 . 다임러 리무 진 (Daimler Limousine) 은 고종의 전용차였고 , 캐딜락 리무진은 순 종의 전용차였다고 한다. 그 리 하 여 1908 년에 서울 사람들이 자동차 를 처음으로 봤 고, 당시에 프랑 스 공사를 위한 자가용도 들어왔 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주권이 고종의 전용차 다임러 리무진 일본에게 강제로 빼앗긴 ‘경술국 치’로 인해, 프랑스 공사는 철수가 되었고 , 르노에서 만들었던 차를 황실에 팔아, 그 차를 순종이 타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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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913년 , 서울 낙산 부자 이봉래는 곤도라는 일본청년과 장 사꾼 오리기와 함께 첫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고 , 승용차 두 대를 시 작으로 서울에서 임대 영업을 시작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 택시 의 시작점이자 또한 운송사업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 한국 최초 운전 사의 이름은 윤권 이 씨였고 이후 여러 자동차 회사들도 생겨난 이후 1945년도에는 대략 7386대의 자동차가 우리나라에 생겨났다고 한다.

시발 (始發) 자동차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고 자동차의 역사를 알고 싶 어 했던 참에 박물관 안에서 가장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이 자동차 였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 유독 관심이 간 자동차는 ‘시발(始發) ’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동차였고, 그 후로 본 자동차의 이름은 ‘k-360’이름을 가진 세발 자동차였다. 자동차는 매 해를 거듭 할수록 항상 새로운 디자인과 기능성을 연구하고 계속 개발되는 중 이고, 앞으로 시판될 더 멋진 자동차도 기대된다 . 이번 현장학습을 통해 우리나라의 자동차 역사에 대하여 많이 알 게 되었다. 고종황제를 시작으로 , 한국에 많은 차들이 들어오기 시작 하였고, 그로인해 우리나라에서도 자동차 회사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 하였고, 많은 차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덕분에 해외에서 많은 차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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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다하더라도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 , 기아 등등의 우수한 자동차들이 해외로 멀리 수출되고 있음이 자랑스럽다. 현재 우리나라는 자동차 수출 세계 6 위이며 , 미국에 수출하는 우 리나라의 자동차는 연간 대략 85 만대 (약 15조 5500 억원) 이고 , 다른 해외까지 수출한 한국은 엄청난 수익을 번다 . 많은 사람들이 해외의 다양한 자동차를 소유한 것을 자랑하는 분위기지만 저는 아무래도 우 리나라에서 만든 자동차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인지 한국 자동차가 세 계 제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물론 멋진 모양의 자동차를 몰고 독일 의 아우토반 (단속 없는 구간 ) 을 달리는 상상만으로도 짜릿할 때가 있습니다. 카레이싱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 하지만 어떤 자동차이든 저는 우리나라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졌으면 하는 마음이고 , 그래서 해외여행을 할 때 한국 브랜드의 자동차를 만나게 되면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곤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역사를 배우고서부터 더욱 강해졌습니다. 역사를 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하는 대상에 대하여 더 깊은 이해를 동반하나 봅니다 . 차를 통해 우리나라를 더욱 사랑하 게 되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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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대, 너무나도 다른 삶 오형근 Francesco Oh 한국근현대사 수업 시간 때 일제 강점기의 역사에 대해 배우면서 우리나라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에 대해 좀 더 깊이 접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시기를 공유한 그들의 삶이지만 너무나 다른 역사적 평가를 받 는 그들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대한민국 의 독립운동가 중의 대표적인 인물인 안중근 의사와 친일파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완용의 삶에 대해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제가 얘기하고 싶은 독립 운동가는 안중근 (1879-1910)의사입니다 . 안중근 의사를 모르시는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독립운 동가로 삼흥학교를 설립하는데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 안중근 의사께 서는 1904년부터 자신의 상점을 팔아 그 돈으로 삼흥학교를 세우셨습 니다. 삼흥학교는 안중근 의사가 세운 학교로 , 구국영재를 양성하는 데 힘쓰기 위해 세운 학교이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1909 년, 11 명의 동료들과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손가락을 끊어 맹세하셨습니 다. 그리고 또,1909년 10 월 26일 , 안중근 의사께서는 하얼빈 역에 잠 입하여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이토 히로부미 (1841~1909), 그 당시 일본 제국의 헌법 학자를 사살하고 다른 비서관들에게 중상을 입히고 경찰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 그리고 경찰에 잡힌 이후 ,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으시고 1910 년3 월 26일에 돌아가셨습니다 . 안중근 의사의 업적과 그의 용기는 대단했습니다 . 자신의 생명을 나라의 독립을 위해 초개처럼 버릴 수 있다는 용기와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비장한 의지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독립을 도운 독립운동가가 있다면, 일본의 입 장에서 삶을 살아간 한국인 , 즉 친일파도 있습니다 . 대표적인 친일파 로는 이완용(1858~1926) 이 있습니다 . 이완용은 일본에 나라를 팔아 먹은 최악의 매국노로 불립니다 . 그 이유는 1905년 이완용이 고종을 협박하여 을사조약을 체결하게 만들고 이를 주도했으며, 1907 년 헤이 그 특사 사건 후에 고종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물러나는 것을 강요했 습니다. 그리고 1910년 총리대신 일본과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이 이왕용은 대한민국에게 치명적인 해가 되는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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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들을 했습니다. 목숨 바쳐 대한민국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가 이곳에 존재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되고 이분들에게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들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아마 힘들 것입 니다. 안중근 의사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면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것이 두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 하지만 그래도 전 이완용처럼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이완용처럼 자신의 욕심만을 위해 일본에게 모든 것을 떠 받들어 주는 것보다는 목숨을 잃더라도 대한민국 독립을 외 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모두 중요한 사람들로 여겨집니다 . 한 분은 대 한민국 독립을 외쳤지만 다른 한 분은 일본에게 나라를 팔아서 역사 적으로 기억됩니다 . 이렇게 항상 좋은 일을 하는 분이 있다면 나쁜 일 을 하는 사람들도 항상 기억 되는 게 역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후손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나중에 일어나면 안 되지만 만약에 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안중근 의사처럼 대한독립을 외치면 서 대한민국의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올 해 2019 년 3.1 절 100 주년을 맞이하여 대한민국의 자부심을 더 갖게 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안중근 의사와 같은 사람을 본받으면서 그가 남 긴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 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 는 마땅히 만세를 부를 것이다 .” - 안중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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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민족애 ( 愛), 나라를 만든다 독립운동가 ‘안옥윤' 그리고 친일반민행위자 ‘이기용’

정미령 Madeline Cho ng 한국 근현대사 수업 시간에 일제강점기의 한국 역사에 대해 배우 면서 나 자신이 얼마나 독립운동과 친일 행위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무지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또 무지에서 비롯된 어리석은 모습에 적잖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 나와 같이 무지한 학생들이 많은 것을 알기에 이에 대해 자세히 조사하며 독립운동을 하신 구국선열들 과 그와는 반대로 매국행위를 서슴지 않았던 친일파들의 행위를 기억 하고 그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자 대표적인 두 인물을 선정하였다 . 이 에 일제 강점기 당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남자현' 그 리고 친일반민족 행위자 ‘이기용 ’의 생과 업적을 비교해보도록 하겠 다.

남자현 (1872-1933)과 이기용(1889-1961)의 사진

남자현(1872-1933) 은 영화 ‘암살 ’의 여배우 전지현이 연기하였던 ‘안옥윤' 의 롤 모델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로 , 그녀는 일제강점기 당 시 만주에서 군사기관과 농어촌을 순회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독립정 신을 고취시킨 독립 운동가이다. 본관은 영양 , 경상북도 안동출신으 로 19 세 때 결혼하였고 1895 년 남편 김영주가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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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싸우다 전사하자 3대 독자인 유복자를 기르며 독립운동을 전개하 였다. 남자현은 1919 년 만주로 망명하여 서간도에 있던 조선의 독립 혁명단체였던 ‘서로군정서 ’에서 활약하였고 ,1928 년 같이 활동하던 김 동삼, 안창호 등 47 명이 길림에서 중국 경찰에 검거되자 지극정성으 로 간호하여 그의 석방운동에 온 힘을 기울였다 . 또 1932년 만주 사 변과 만주국을 조사하기 위해 국제연맹 리튼 조사단(Lytton Commission)이 당시 남자현이 있었던 하얼빈에 오자 흰 수건에 ‘ 한 국 독립원'이라는 혈서를 써서 보내어 우리나라의 독립을 호소하였고 1933년 주만일본대사를 암살하려다 일본 경찰에게 붙잡히고 6 개월 동안 갖은 혹형을 받다 출소하지만 결국 얼마 안 가 생을 마감하고 만다. 남자현은 이러한 직접적인 독립 운동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신과 문화 계승에도 힘썼는데 동만주 12 곳에 교회와 예배당을 세 워 전도하고 10여 곳에 여성교육회를 설립해 당시 사회적으로 약자 였던 여성을 계몽하려 노력하였다. 이러한 그녀의 모습은 오늘날의 우리가 말하는 신여성의 주체적이고 강인한 여성상과 가장 걸맞는 인 물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여성은 나약하다고 치부되던 시대에도 강인한 모습을 보여 준 남자현과 상반되게 당시 최고의 권력을 잡고 있던 이기용 (1889-1961)은 그 당시 누구보다 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 다. 이기용은 개항기 흥선 대원군의 맏형 흥녕군 이창응의 장손으로 서 왕족임에도 불구하고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인물이다 . 1889년 한성 즉, 오늘 날의 서울에서 태어나고 길러졌던 이기용은 당대 최고의 교 육 기관이었던 수학원에서 일명 엘리트 교육을 받은 수재였다. 1910 년 일제의 무력으로 인한 주권 강탈인 ‘경술국치 ’로 우리나라의 국권 이 넘어간 뒤 왕족으로서 일제에게 자작 작위와 수작금 3 만원을 받고 조선 귀족을 회유하기 위해 조직된 조선귀족관광단의 일원으로 일본 에 건너가 일본 천황 , 가츠라 수상을 비롯한 황족과 조야인사들에게 환대를 받았다. 그는 조선통감부의 초대 통감으로 잘 알려진 이토 히 로부미 묘소에 참배하고 일본 천황 탄신을 축하하는 천장절 관병식에 도 참석하는 전형적인 친일파의 모습을 보였으며 1914 년에는 두 차 례에 걸쳐 도로 부지로 자신의 전답을 기부하여 조선총독부로부터 포 상을 받았다. 또한 , 1937년 국방력 보급을 목적으로 조직한 조선국방 협회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 같은 해 일제의 작위를 갖고 있던 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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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명이 조직한 친일단체 동요회의 발기인으로 참여 , 1938년에는 전 쟁협력단체인 조선 보국회 발기에 찬조하여 결국 1945년 4월 조선인 들을 전쟁을 동원하기 위한 ‘정치 처우개선'의 직선 귀족원 의원에 선임되었다. 다행히 해방 후 1949 년 1월 반민특위에 검거되어 재판 을 받았지만 이 글에 다 밝히지 못할 정도로 수많은 친일반민족행위 를 실행한 대표적인 친일파였다 . 하지만 그 이름이 친일명부에 오르 고 마땅한 처벌을 받았다 한들 , 우리는 반민족 행위가 우리 선조들을 얼마나 힘들게 했을 지에 대한 그의 악행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동시대에 살았던 두 인물의 다른 삶의 태도는 그들의 업적만 봐도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 적에게 남편을 잃은 아픔 , 또 누구보다 나라 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남자현의 민족정신은 우리나라의 독립 운동에 큰 기여를 하였음은 분명하다. 오늘날의 평화로운 우리나라가 되기까지 헌신한 그의 정신을 영원히 기억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는 두 번 다시 이러한 고통이 반복되지 않도록 부끄러운 역사도 기억하여야 한다 . 그 어떤 견제도 불가능하고 언제든지 노골적인 폭 력으로 전락할 수 있는 무법 권력에 대한 부역행위를 저지른 이기용 의 모습을 기억하는 것 또한 우리의 과제이다 . 모순적이게도 독립을 위해 힘쓴 독립운동가가 아닌 친일 행위를 저질렀던 친일파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이 여전히 권력과 부를 갖고 있다. 그에 반해 독립 운동 가들은 정부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마땅히 받아야할 처우를 못 받고 조국을 위한 그들의 희생은 너무나도 쉽게 잊혀져갔다 . 이러한 부조 리가 나에게 그리고 내 또래 아이들에게 무지함을 가져다주었고 현재 우리의 나라를 만들어준 독립운동가가 아닌 나라를 배신한 친일파를 따르도록 하였다 . 따라서 친일파 청산은 ‘민족정기'뿐만 아니라 우리 의 어린 세대들의 바른 역사관을 위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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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어 학회 사건’ 조사 보고서 조성우 Louis Cho ▪ 시대적 배경 1910년대 조선 광문회 (光文會)에서 주시경 선생과 그의 제자 김두 봉 등의 언어학자가 참여해 최초의 현대적 우리말 사전의 원고인 말 모이를 편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 1911년에 조사를 시작하여 원고 편 찬이 거의 마무리 되었으나 1914년 주시경 선생이 사망하고 김두봉 이 중국으로 망명하며 결국 이는 사전으로 출판되지 못하게 됩니다. 이후 1921 년에 우리말과 글의 연구를 목적으로 ‘조선어 연구회’ 가 조 직되며 이 단체는 1931년에 ‘조선어 학회 ’로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 1929년에 조선어 사전 편찬을 위해 조선어 학회가 주동해 ‘조선어 사 전 편찬회’가 조직됩니다. ‘조선어 사전 편찬회’ 는 주시경 선생의 말 모이 원고를 이어 받아 우리말 사전 편찬 작업을 진행하게 되며 이후 1936년에 ‘조선어 학회’ 에 통합됩니다 .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이후 일제는 내선일체 · 일선동조론을 앞 세워 창씨개명, 민족적 문화 활동 금지 , 조선어 교육 폐지 등의 민족 말살 정책을 시행하여 조선어 교육을 폐지하고, 일본어 사용을 강제 하며, 한글 발간 신문과 잡지를 정간 및 폐간하였습니다 . 이러한 시대 상황 중 , 1939년에 조선어 학회는 조선어 사전 원고 의 1/3 가량을 총독부에 제출하고 많은 부분을 수정한다는 조건으로 다음해 출판 허가를 받게 됩니다. 1942 년 봄에는 조판이 시작되고 가 을에 모든 원고가 완성되어 교정이 시작될 무렵 ‘조선어학회 사건’ 이 일어나 사전 편찬이 중단됩니다. ▪조선어 학회 사건 일제 탄압이 숨막히게 조여들던 민족 말살 정책기에 조선어학회는 사전의 편찬을 서둘러 1942년 4 월에 그 일부를 대동출판사에 넘겨 인쇄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 무렵, 함흥영생고등여학교 학생 박영옥이 기차 안에서 친구들 과 조선말로 대화하다 발각되어 취조를 받게 되고 취조 결과 , 서울의 정태진으로부터 민족정신을 지키도록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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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당시 정태진은 조선어학회에서 사전 편찬 일을 하고 있었는데 , 일제 경찰은 정태진을 취조하여 조선어학회가 민족주의 단체로서 독 립운동을 목적으로 사전을 편찬하고 있다는 거짓 자백을 1942 년 9 월 에 받아냅니다. 이러한 자백을 토대로 일제는 조선어학회 관련 인사들을 검거하고 한글운동을 폐지하며 , 당시 조선 지식인들을 모두 검거할 수 있는 기 회를 만들게 됩니다 (죄목은 치안유지법의 내란죄 위반 ). 1943 년 4 월 까지 조선어 학회 회장인 이극로 등 간부 11 명과 회원 22명 , 총 33 명이 검거되었고 혹독한 취조와 고문이 뒤따랐습니다 . 고문으로 이윤 재와 한징 등 2 명이 옥중에서 사망하였고 , 이후 11 명이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 중 1945 년 8월 15일 조국이 해방되자 이틀 후인 8월 17 일 자유의 몸이 됩니다.

조선어학회 표준어사정위원들의 1935년 현충사 방문 기념 사진

▪‘우리말 큰사전 ’의 편찬 해방과 함께 석방된 학자들은 조선어학회를 다시 만들고 조선말사 전 출간을 재개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 조선어학회 사건 당시 조선어 사전 초고 원본은 일제에 압수당하였고 , 사본은 재판 당시 증빙 자료 로 경성고등법원에 제출하기 위해 이송했던 것이 전쟁 말기에 혼란하 여 법원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 서울역 운송회사 창고에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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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되어 있었습니다 . 운 좋게 서울역에서 발견된 원고를 토대로 1947년 ‘조선말 큰사전’ 1권이 출간되고, 이후 1957년에 총 6 권 완 간되며, 이름을 ‘우리말 큰사전 ’으로 변경하게 됩니다 .

▪ 사건의 의의 조선어학회 사건 당시 함흥지방재판소는 예심 종결 결정문에 다음 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고유 언어는 민족 의식을 양성하는 것이므로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은 조선민족정신을 유지하는 민족운동의 형태이다 (중략 )” 다시 말해, 말과 글은 그 민족의 정신을 담고 있고, 민족 문화의 실존 형태입니다 . 이는 영화 ‘말모이 ’에서 다음과 같은 대사로도 표현 됩니다. 글자가 모이면 단어가 되고, 단어가 모이면 말이 되며, ‘말’이 모이면 ‘정신 ’이 된다 . 통일된 언어야말로 근대 국가 설립의 첫 번째 조건으로 , 합의된 철자법과 표준어를 담는 것이 바로 사전입니다. 우리말 사전의 출간 으로 우리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철자법과 표준어를 가지게 되었습니 다. 영화 ‘말모이’ 의 엔딩 크레딧 부분에서 나오듯이, “한국어는 현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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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약 3,000개의 언어 중 고유의 사전을 가지고 있는 단 20여개의 언어 중 하나이며 , 한국은 제 2 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식민지 국가들 중 거의 유일하게 자국의 언어를 온전히 회복한 나라입니다.” 한국어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 분들에게 너무나 감사하다고 생각합 니다.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한 분들 덕분에 우리 국민들은 서로 한국 어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고 , 지금도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울 수 있 게 되었습니다. 조선어 학회 회원들이 한국어를 보존하기 위해 활동 하지 않으셨으면 우리는 지금까지도 일본어만 사용을 했을지도 모릅 니다. ▪ 출처 -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http://encykorea.aks .ac.kr/Contents/Searc hNavi?keyword= %EC %A1%B0%EC%84%A0%EC%96%B4%ED%95%99%ED%9A% 8C%EC%82%AC%EA%B1%B4&ridx=0&tot=3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A1%B0%EC%84%A0%EC%96%B4 %ED%95%99%ED%9A%8C%20%EC%82%AC%EA%B1%B4 - 민족말살정책 (학생백과 ) http s://terms.naver.com/entry.nhn?docId=1997088&cid=473 22&categoryId=47322 - 원고로 남은 최초의 우리말 사전 , < 말모이 > (국립국어원 ) http://www.korean.go.kr/nkview/nklife/2014_3/24_030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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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성장의 초석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에 대하여

황수윤 Soo yoon Hwang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거론하라면 당연 히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뤄낸 한강의 기적이 아닐까 싶다 . 1950 년 한국전쟁으로 세계 최빈국에서 오늘날 경제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까지의 우리 선조들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사실 시장경제의 자연스러 운 논리로 경제성장이 이뤄졌다기보다 국가의 계획경제 아래 온 국민 이 하나의 목적을 갖고 모두가 잘 살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 다. 그 가운데 경제개발계획이라는 국가적 프로젝트가 큰 몫을 담당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 이는 1962년대부터 시작되어 한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한 총 7 차에 걸친 대대적인 국가 프로젝트이다. 1962 부터 1996 년까지 총 7 번에 걸쳐 이어져왔으며 우 리는 박정희(1917~1979)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로 기억 한다. 1962년부터 1966년까지 진행된 최초의 경제개발계 획은 전력, 석탄의 에너지 원과 기간산업을 확충시켰 다 . 제조업의 기초가 되고 공업화를 위한 촉매가 되는 산업을 기간산업이라 하는 데 금속 , 석탄 , 석유 , 전력 등의 에너지 산업, 기계 차 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념우표 량 등 주요 기계 산업과 비 료 등의 중요 화학 공업도 포함한다 . 이어 , ‘사회간접자본’을 충실히 하여 경제개발의 토대를 형성시켰다 . 사회간접자본 (infrastructure) 이 란 생산 활동에 직접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경제 활동을 원활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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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사회 기반 시설을 말한다 . 대표적인 예로 도 로, 항만, 철도 등이 있다 . 이 시기에는 수출을 증대시켰으며 GNP를 $83 에서 $126 으로 올렸다 . 1967년부터 1971년까지 의 2 차 경제개발계획은 식량 자급화 , 산림녹화 (산을 더 푸르게 ), 화학 , 철강 , 기계공 업의 건설에 주력 하며 산업 을 좀 더 발전시켜 7 억 달 러 수출을 달성시킨다 . 고용 확대 , 국민소득의 비약적 증 대, 과학기술의 진흥 , 기술 수준과 생산성의 향상이라는 경제개발계획 종합평가교수단 보고 청취 놀라운 결과를 볼 수 있었으 며 소요자금은 9800억 , 국내자금은 6029 억, 외자 $14 억 2100 만을 달성시킨다. 이중 6 억 달러는 지금으로써는 상당히 부당하게 느껴질 지 몰라도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3)로 들어왔으며 일제 식민지 피해 의 “보상금”으로 받은 것이다 . 1972년부터 1976 년까지의 3 차 경제개발계획은 중화학공업화를 추 진, 안정적 균형 이룩을 목표로 두었다. 1973 년 10월 석유파동4) 으로 인해 석유값이 올랐으며 외자도입 5) 의 급증을 볼 수 있었다 . 이어 수 출 드라이브 정책에 의하여 수출이 올랐으며 중동건설경기 , 즉 , 중동 에 건설을 위해 노동력을 많이 보냈다. 이로 인하여 난국을 극복했으 며 연평균 9.7% 성장률을 유지시켰다 . 1977년부터 4년간 진행된 제 4 차 경제개발계획은 자력성장 구조 를 확립시켰다. 기술을 혁신 , 능률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였고 1977

3)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 또는 한일기본조약은 대한민국과 일 본이 서로 일반적 국교관계를 규정하기 위해 1965 년 6 월 22일에 조인한 조약이 다. 4개 협정과 25 개 문서로 되어 있다. 4) 유류 파동, 석유 파동, 오일 크라이시스는 원유 값이 급등하여 전 세계 각국에 경 제적 타격을 준 경제 위기를 말하며, 지금까지 대한민국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2 차례의 유류 파동은 각각 1973 년과 1978년에 일어났다. 5) 정부나 공적 기관, 사업체 등이 외국의 자본이나 기술 따위를 국내로 들여오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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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에 100억 달러 수출을 달성 , GNP 1000달러의 성과를 이뤄냈다 . 하지만 1978년에 물가상승 , 부동 산 투기, 생활필수품의 부 족으로 인하여 생산액 6) 등의 누적된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 이 어 , 1980 년에 전두환 전 산업 역군이라 불리던 당시 노동자들 대통령의 정권수립 직전, 민주화의 기회가 없어진 것으로 받아들여 광주 시민들의 저항이 있었던 광주 5.18 민주화 운 동에 의하여 정국혼란 , 사회적 불안, 흉작 등 때문에 마이너스 성장 을 겪었다. 하지만 1981년 경제가 다시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1982년부터 1986 년에 진행된 제 5 차부터는 “경제사회발전" 계획 으로 명칭을 바꾸었으며 성장보다 안정 , 능률 , 균형에 집중하였다 . 물 가안정, 개방화, 시장경쟁의 활성화 , 지방 및 소외부문의 개발들이 주 요정책들로 진행되었으며 이때의 가장 큰 성과는 물가를 획기적으로 안정시켰던 것이 가장 큰 쾌거이다 . 국제환경변화를 맞아 경상수지의 흑자전환, 투자재원의 자립화 7)로 경제의 질적 구조를 튼튼하게 만들 었다. 1987년부터 1991 년까지 진행된 제 6 차 경제개발계획은 능률과 형 평에 집중하였고 21 세기 선진사회에 진입하기 위한 제 1단계 실천계 획으로 수립하였다 . 이때 흑자기조 8) 로 전환시켰으며 선진국의 보호주 의 압력과 대내적인 소외부문의 소득보상 욕구가 더 커졌다. 경제 성 장률은 목표 7.5%를 넘어 10%를 달성시켰으며 실업률은 2.4%로 고 용안정을 가져왔다 . 마지막으로 저축증대에 노력한 결과 국내저축률 은 예상보다 높은 36.1%를 달성시켰다. 1992년부터 1996 년까지 진행된 7 차 경제개발계획은 자율과 경쟁 에 집중하여 경영혁신, 근로정신 , 시민윤리 확립을 통해 21 세기 경제 6) 일정한 기간 동안 만든 재화의 수량. 또는 그 재화를 값으로 계산한 액수. 7) 투자를 해준 기업이 외국이 아닌 국내기업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의지 하지 않 게 됨. 8) 총소득과 총비용을 뺐을때 비용보다 소득이 높을 때 흑자전환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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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선진화와 민족통일을 지향한다는 기본목표를 두었으며 기업의 경쟁력 강화, 사회적 형평 제고와 균형발전 , 개방 -국제화의 추진과 통일기반 조성 등을 3대 전략으로 삼았다 . 실질경제성장률 연평균을 7.5%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소유 집중을 분산 , 산업구조조정을 원활하게 했다. 더불어 기술개발, 정보화를 도모 , 사회간접자본에 대 한 투자를 확충시켰다. 36년간 진행된 경제개발 5 개년 계획은 1996 년에 끝났으며 마지막 연도인 1997 년에 국가부도 사태가 일어나고 1998 년 정부는 IMF 의 지지로 민간 경제활동 자유 보장과 시장경제질서 편입 재정 안정화를

대한민국 역대 정부의 GDP 성장 곡선

근거로 경제 개발 계획을 폐기하였고 재정정책 , 공공재 관리 등 꼭 필요한 것만 담당하였고 이외의 것은 가급적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였 다. 사실 한국 근현대사 수업을 듣기 전에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대해 거의 아무 것도 몰랐다 . 하지만 조사를 하면 할수록 이 장기적 인 과정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기여한 영향력이 정말 컸다고 생각한 다. 비록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상당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다르게 나뉘는 부분이 크지만 적어도 경제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우 리나라의 경제개발 5 개년 계획의 과정이나 결과 그를 주도했던 정권 에 대하여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잘 추진되었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이 가능했던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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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전 국민이 하나가 되어 한 마음으로 나라의 동력이 되었기에 오 늘날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이지 않을까 한다 . 따라서 경제적 기 반이 갖춰진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시장경제의 자발적 힘과 자생적 시 스템을 통해 좀 더 새로운 패러다임을 지향해 나아갈 것으로 전망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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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애 (悲哀) 이지용 Eric Lee 우리 조상들은 끊이지 않는 시련에 , 싸워야할 운명에 , 주변나라와 강대국의 억압에 밀려 속절없이 목숨을 바쳐야 했다 . 오늘날의 이 찬 란한 불빛과 풍요로운 삶은 무 (無)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 고난과 극복을 거듭하며 한국은 세계 경제 대국이라 불릴만한 위치에 올라섰 고, 우리는 우리의 역사적 숭고함 덕분에 현재를 누리며 살고 있다 .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중대한 사실 을 간과한 채 매일 숨을 쉬며, 하루를 보내고 , 밤이 되면 잠이 든다 . 우리의 조상이 아니었다면 이러한 평범한 일상도 없었을거늘. 우리는 우리들의 현재와 한 치 앞의 미래만 내다보기 바빠 사실상 역사를 외 면하고 있다.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때론 뒤를 돌아 볼 줄도 알아야 한다 . 그리하여 나는 이 감상문을 우리 선조들의 시련 의 속내를 모른 채 전쟁의 전후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쓰려고 한다. 한국인의 정신을 성공적으로 일 깨워주며 한국인의 아픔을 재확인 해준 대표적인 영화로 ‘국제시장 ’이 있다. 6.25 전쟁 당시의 고통도 나 타나지만, 그 이후의 삶을 그려낸 이 영화는 주인공 ‘ 덕수 ’를 중심으 로 전개된다. 영화 속 ‘덕수’ 의 삶 은 그렇게 달갑지만은 않은데, 여 러 장면들은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 을 암시한다. 6.25 전쟁 당시 1.4 후퇴를 시작으로 , 그 후 베트남 전 쟁 등 냉전시대의 고뇌를 보여준 다. 이 영화의 중요한 요점은 전쟁 의 과정과 승패여부가 아닌, 그 당 시 살았던 일반인의 모습이 어땠는 11학년 이지용 그림 지 담아내서이다 . 지극히 평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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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전쟁 하나로 얼마나 삶이 격변할 수 있는가, 전후( 戰後)에도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를 보여준다 . 여기서 내가 주의 깊게 본 인물은 다름 아닌 ‘덕수’ 다. 당연한 것 일지도. 영화의 전체는 현재의 ‘ 덕수 ’가 과거를 회상하며 서술해 나가 는 방식이다. 그럼으로써 모든 사건의 시점은 ‘ 덕수 ’의 눈으로 보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럽게 ‘덕수 ’라는 인물에 끌릴 수밖에 없었 다. 그 외에도, 그 시대를 남자로 살아가며 느꼈던 감정들을 나타낸 ‘국제시장’을 보면 , 현재를 살고 있는 남자인 나와의 차이에 대한 고 민에 빠졌고, 지금도 그 감정으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 ‘ 국제시장’ 이 해석한 당시 남자의 삶은 ‘책임감 ’이다 . 자식으로서의 책임감,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 남편으로서의 책임감 모두 강렬히 뇌 리에 박힌다. 영화의 첫 장면 중, 1.4 후퇴 당시 어린 ‘덕수 ’의 모습 이 나온다. 여기서 그의 막중한 책임인 자신의 여동생을 지켜야함에 도 결국 잃어버리고 만다 . 현재라면 한창 친구들과 뛰어 놀며 학교에 입학하기를 기대하고 있어야 할 소년이 , 아들로서의 책임이란걸 지게 되며 또한 그 책임의 막중한 무게까지 깨달아 버렸다 . 여동생의 손을 놓친 아들의 실수를 책임지기 위해 그의 아버지가 대신 어린 딸을 찾 아 떠나고, 몇 분 사이 ‘덕수 ’는 자기의 여동생과 아버지마저 눈앞에 서 잃었다.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덕수 ’는 그 무게를 받아들이 기도 전에 이제는 가장의 책임까지 짊어지게 된다 . 그리고 이 모습은 영화 내내 이어진다. 남동생의 대학 진학을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독일에 광부로 일하러 가고 , 여동생의 결혼 자금을 준비하기 위하여 전쟁이 한창인 베트남으로 향한다. ‘ 덕수’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 그의 꿈은 빛 을 발하기는커녕 그 누구 하나 알아주지도 , 알려고 들지도 않았다 . 어느새 ‘덕수’ 의 희생은 당연한 일상이 되어 있었고 , 나는 그 장면들 을 보며 화를 감출 수 없었다. 나는 ‘덕수 ’를 보며 우리 아버지에 대 한 생각을 많이 되뇌였다 . 방식은 다르더라도 , ‘덕수 ’의 모습 안에서 너무나도 슬플 정도로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한 아내와 두 자식을 모두 먹여 살리기 위해 하셔야 하는 일들, 어깨 위에 놓여진 그 책임감의 무게는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이 안 간다. ‘덕수’를 향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영화 속 ‘덕수’ 에게 직접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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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공감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꼈다. 사실상 완벽한 공감을 하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 어떠한 어려움을 겪었는지 듣고 알 수는 있 어도, 절대 그의 무게는 어림짐작조차 안 된다 . 그래서 나는 나의 아 버지에게 느낀 감정을 바탕으로 ‘국제시장 ’을 보았고 , 남자의 책임감 이 뭔지 어느 정도 감을 잡았을 때 즈음 문득 겁이 났다 . 아이가 커 가며 자유가 생기고, 어른이 되고 나면 인생은 당사자 본인의 완벽한 절제 안에 있게 된다 . 그러나 자유는 책임과 비례한다. 책임은 시간 이 지날수록 쌓여간다. 내가 과연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지 , 버텨 내고 이겨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불안하고 무서웠다. ‘ 국제시장’ 은 근현대사의 전쟁을 ‘덕수’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세 계적 단위로 일어나는 전쟁들을 보여줌과 동시에 , 개인이 느끼는 고 통과 아픈 마음, 또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고뇌까지 모두 잘 보여주고 있다. 역사 안에 있는 여러 가지 메시지를 전달하며 사람들 은 매료 시킨 영화 ‘국제시장 ’은 날 포함해 사람들의 지난날들을 뉘 우치게 하고, 깨달음을 얻게 한다 . 사람들은 우리 선조들의 삶을 비 애(悲哀)라고 칭하지만 , 역사는 비통할지언정 그 역경을 이겨낼 수 있 었던 사람들만큼은 기쁨과 환희로 가득했다. ‘ 국제시장’ 이 끝이 아니라 이 영화를 계기로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역사에 더 관심을 가지고 그 내면의 의미를 찬찬히 들여다볼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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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과거 이채윤 Lucy Lee 영화 ‘국제시장 ’은 한국전 쟁 이후 가족을 지키려는 주 인공 덕수의 이야기다 . 영화 는 1950 년으로 돌아가 주인 공 덕수의 어린 시절 남북전 쟁이 시작되어 가족들과 함 께 부산으로 피난 가려는 시 점에서 시작된다. 미군 함대에 올라타던 도 중 업고 있던 막내 동생 막 순이를 수많은 인파 속에서 잃어버리게 되며 , 막순이를 찾으러 간다며 힘들게 오른 배에서 내린 아버지와도 결 국 헤어지게 된다 . 그 시절 , 모두가 어렵고 모두가 힘든 때에 , 가장으로서의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된 어린 덕수는 어머니와 동생들을 위해 살아가기 시작 한다. 아버지와 헤어진 후 부산에 있는 고모네 ‘꽃분이네 ’에 얹혀 살며 어머니와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성인이 되자 돈을 벌러 일을 시 작하였다. 동생들의 학비를 대기 위해 단짝 친구 달수와 독일의 탄광 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까지 하며 묵묵히 돈만 벌던 덕수는 독일에서 시체 닦는 간호사였던 영자에게 첫눈에 반해버리고 나중엔 결혼까지 하게 된다. 광부로 일하며 열악한 환경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하 고 베트남 전쟁에선 한쪽 다리에 총을 맞아 평생 절뚝거리며 살게 되 었지만 가족들을 위해서 계속 돈을 벌었다 . 덕수의 고생과 희생 끝에 남동생은 서울대에 입학하게 되고 여동생 끝순이는 결혼을 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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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된다. 1980 년대 이산가족찾기가 생방송으로 방영됐을 때에 막순이 를 찾기 위해 방송에 나가게 되고 미국에 입양이 되어버린 막순이를 극적으로 찾게 된다. 영화의 첫 장면이었던 흥남부두 철수는 당시 피난민만 10만 명이 넘었고 마지막 미국 군함 메러디스 빅토리호(SS Meredith Victory) 의 모든 군수물자를 버리고 피난민들을 태워 부산으로 이동하였다고 한다. 1950 년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성공적인 계획이 었다. 1960 년대부터 근대화를 추진하며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하 는 한국에서 돈을 벌기란 쉽지 않았고 영화에 표현 되었듯이 많은 사 람들이 해외로 나가 막노동을 하며 돈을 버는 모습은 흔했다 . 갑작스 런 남북전쟁 발발에 수만 명의 고아들과 이산가족들이 생겨났고 주인 공 덕수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꿈을 포기하고 가족들을 먹여 살 려야만했던 집안의 가장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할아버지가 된 덕수가 혼자 방에 들어가 아버 지의 사진을 들고 그동안 힘들었다며 펑펑 우는 모습이 너무나도 감 동적이었다. 비록 나의 아빠가 그 당시 한국의 힘들었던 시절을 겪어 보진 않았지만 현재 나를 포함한 삼남매를 키우시고 우리를 위해 열 심히 묵묵히 일하시는 모습 이 상상이 되어 더욱 가슴이 아팠다 . 또한 , 덕수처럼 여 러 번 자신의 꿈을 접어야 했을 때가 있었을 수도 있지 만 아무 말도 않고 가장으로 서의 책임감을 안고 살아가 시는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 께 너무 감사하다고 느껴졌 다 . 이 영화가 먼 옛날이야 기가 아닌 나의 할아버지 , 할머니 , 엄마 , 아빠가 직접 겪으셨던 일들 을 배경으로 만들어져 훨씬 현실감 있고 마음이 뭉클했던 것 같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이런 한국의 아픔을 생생하게 몸으로 겪으신 분 들이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고 진심으로 존경받아 마땅할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영화를 보며 내가 만일 그 시대의 한국을 겪어야 했다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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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덕수만큼 가족들을 위해 나의 꿈과 희망을 버리며 희생을 했었 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몇 번의 죽을 고비와 여러 번 눈앞에 서 꿈을 놓치게 되는 상황에서 나는 단 한 번도 불평 불만없이 가족 들에게 돈을 벌어다 줄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 분명 나도 하고 싶 은 일이 있는데 맏이라고 해서 나만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 억울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하지만 아무리 이러한 생각이 들어도 묵묵 히 일해주신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 한민국이 있을 수 있다고 믿는다. 만약 그때 아무도 나서지 않고 희 생하지 않았더라면 현재까지도 대한민국은 미군에게 생필품을 도움 받으며 가난을 겪고 있지 않을까? 70년간의 세월밖에 지나지 않았지 만 그 때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삶과 현재 우리의 삶은 극과 극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들의 마음과 심정을 100% 공감할 수는 없겠지만 이 영화를 통해 어르신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참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이 영화를 보고 나는 다시 한 번 우리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겠다 고 다짐했다. 나의 자녀들, 손자 손녀와 그 이후의 후손들에게 한국 역사의 감동과 아픔을 꼭 느끼게 해주어 항상 감사함을 마음에 담고 살아가도록 도와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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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야구, 기아 타이거즈 김건 Danny Kim “우리는 기아 타이거즈 ~ 뜨거운 열 ! 정 ! 으 ! 로 ! 하나 된 ! 최! 강 ! 기 ! 아 ! 타이거즈여 !” 기아 구단은 1982년 , ‘해태 타이거즈 ’라는 이름으로 창단하고 2001년 기아 타이거즈로 구단명을 바꿨다 . 나는 원래 넥센팬이었지 만, 야구에 대해 잘 몰랐고 아버지의 권유로 기아가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선수들 이름도 잘 모르고 응원가 역시 전혀 몰랐 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서동욱 , 안치홍 선수의 이름뿐만 아니라 많은 선수들의 이름과 응원가도 많이 안다. 현재 14개의 응원가를 알고 있다 . 가장 좋아하는 응원가는 ‘풀카 운트송’, ‘기아 열광송’, ‘기아를 응원하라 ’, ‘최강 Kia Tigers’, 2017 년 응원가 저작권 사태 이전의 김호령 응원가를 제일 좋아한다. 지 금 나에게 기아는 행복과 기쁨 그 자체를 가져다주는 팀이다. 1983년, 1986 년, 1987 년, 1988 년 , 1989년 , 1991년 , 1993년 , 1996년 1997 년, 그리고 2009년에는 당시 내야수였고 현재 지명타자 인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으로 , 2017년에는 유력한 우승 후보 두산을 상대로 한국시리즈를 이겼다. 1983년에는 MBC 청룡 (현 LG 트윈스 )과 5차전까지 갔지만 여러 선수들의 적시타 9) 로 우승을 했고 1986 년에는 삼성과의 경기에서 삼 성 팬들이 해태 버스를 파손하고 불태운 사건이 있었지만 무등산 폭 격이라고 불리는 투수 선동열과 한국시리즈 최다승과 최다 경기 출전 이라는 대기록을 가지고 가을까치라는 별명을 가진 투수 김정수의 활 약으로 우승하였다 . 1987년에는 정규시즌에는 별로 좋지 않은 성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국시리즈 때는 매우 뛰어난 성적을 세운 김준환의 활약으로 우승하고 , 1988년에는 해태 투수 문희수가 3차전 때 해태 의 한국시리즈 10연승을 이끌고 6 차전 때 3 번째 우승을 이끌었다 . 9) 주자가 루에 나갔을 때 안타를 쳐 점수를 올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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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에는 문희수의 활약과 4 차전에 홈런 4개가 해태로부터 나오며 5 차전에 우승하고 1991년에는 해태 포수 장채근의 활약 , 1993년에는 발이 빨라 바람의 아들이라 불리는 이종범의 여러 도루로 우승했다. 1996년에는 상대팀 현대의 노히트노런이 있었지만 해태의 이강철 선 수가 활약을 해 우승했고 1997 년에는 이종범의 연타석 홈런 (두 번 연속 홈런)을 쳐 MVP가 되고 해태는 한국시리즈에 9번 진출해 9 번 모두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017년 한국시리즈에서는 3차전 때 2009년과 동일하게 나지완의 데자뷰 홈런이 나왔다 . 2009년 끝내기 때처럼 같은 위치에 공이 들어왔고 나지완은 이 공을 2009 년 홈런을 때린 위치와 비슷한 곳으로 때리고 5 차전 때는 만루의 사나이라는 별 명의 이범호의 만루 홈런과 2차전 때 완봉승 10)을 한 양현종이 경기 를 끝내 11 번째 우승을 했다. 이로써 한국 프로야구 및 한국 프로스 포츠 역사상 최초로 V11(한국시리즈 우승 횟수 )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다. 그리고 2017 년 7월 4일 , SK 전에서 한•미 •일 프로야구 역대 최초로 7 경기 연속 10 득점 이상을 달성했다 . 기아는 내 삶에 색다른 것을 선물하였다 . 매년 새로운 선수를 뽑 는 ‘신인 드래프트11)’에도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 뿐만 아니라 역대 국가대표 감독 및 선수단에도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2017년도 기아 타이거즈 한국 야구 시리즈 우승

10) 상대팀이 득점을 못하게 막고 9회까지 끝까지 던져 승리 11) 대한민국의 18세 이하 U-18 야구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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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는 내 삶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 매일 야구 관련 기사를 읽 고, 선수들의 소식에 궁금해 하며 , 하루의 많은 부분을 야구 관련 정 보를 탐색하는 등 이제 야구 없는 내 삶은 너무 건조할 것만 같다. 야구는 내게 행복을 가져다주고 WBC(World Bas eball Classic)등 국 제 야구 대회에까지도 관심이 생겼다. 나는 야구를 단지 보는 것 말고도 직접 해보고 싶기도 하다 . 아직 배운 적은 없지만 만약 배울 기회가 생긴다면 투수나 포수를 해보고 싶다. 현재는 직구 (4 s eam fastball)12)은 던질 수 있고 서클 체인지 업(Circle change up)13)도 약간 할 수는 있지만 지금은 커브 (Curve), 슬라이더 (Slider), 스크류볼(Screwball)을 일단 어느 정도 배우고 그 공들의 변화를 느끼면 그때 서클 체인지업의 변화에 신경 쓸 것 같다. 욕심이 있다면 최동원의 커브, 선동열의 슬라이더 , 메이저리그 알 프레도 사이먼 및 브렌트 허니웰의 스크류볼 , 윤석민과 메이저리그 디키 선수와 같은 서클 체인 지업도 던져 보고 싶다. 일상의 행복과 적잖은 자 부심을 주는 야구 , 특히 늘 신선하고 새로운 걸 알려주 는 야구에는 ‘9 회말 2아웃부 터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아무리 우리들의 상황 이나 삶이 절망적이어도 항 상 새로운 기회를 기다리고 얻고 또 그 만회한 것을 통 해 더 많은 것을 바라볼 수 있는 희망이 우리에게 언제 나 있다는 것입니다 . 제게 있 어서 야구는 ‘사랑이자 희망 ’입니다.

12) 패스트볼, 즉 직구와 동일한 투구폼으로 던지지만 구속을 떨어뜨려 타자의 배팅 타이밍을 빼앗는 구종. 13) 서클 체인지업은 역회전성 체인지업으로 우완 투수 기준 슬라이더가 좌타자 ( 왼 손잡이 타자)의 몸쪽으로 간다면 이건 슬라이더의 반대방향으로 가는 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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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이란 무엇일까 김봉현, ‘한국 힙합 에볼루션 ’을 읽고

임해 Lin Hai 올해 한국어 수업에서 김봉현 작가의 ‘한국 힙합 레볼루션 ’을 읽 었습니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제가 음악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 때 문입니다. 또한 한국 힙합이 재밌다고 생각해서 이 책을 골랐습니다 . 힙합의 역사 힙합은 1990년도쯤에 미국 뉴욕에서 발전된 음악 장르입니다. 그 후에 힙합은 한국까지 전달되었습니다 . 하지만 시간이 점점 지나면 서, 한국의 힙합은 미국의 힙합과 구별 되면서 색다른 스타일로 발전 되었습니다. 비트, 제목 , 혹은 가사도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졌습니다 . 책에서 알게 된 내용 ‘ 한국 힙합 레볼루션’ 은 한국에서 제일 처음 발표된 힙합 곡으로 합합에 대한 소개를 시작합니다. 한국에 있는 힙합 노래 중에 , 홍서 범의 노래, ‘김삿갓’ 이 그것입니다 . 이 노래는 힙합치고는 간단한 비 트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간단한 비트로 한국 힙합의 역사를 펼치며, 한국의 힙합이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홍서범의 ‘ 김삿갓 ’은 힙합의 역 사에서 위대한 탄생은 아니지만 , 한국에서 제일 먼저 힙합장르의 노 래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그의 도전을 고마워하고, 기억하게 되었습 니다. 한국에 발전된 힙합 현재 한국에서 발표되는 힙합 곡은 음악적으로 성숙한 모습을 보 여줍니다. 래퍼들이랑 작곡가들은 그 공통점이 있는 상황에서, 다양 한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 미국에 있는 힙합 노래를 벗어나서, ‘ 한국 ’ 스타일 로 된 것이죠 . 예를 들면, 요즘에 항상 나오는 비트들은, 순수 한 비트가 아닙니다. 프로듀서들이 새로운 리듬을 탐색하면서, 재즈 의 요소를 곡에다 넣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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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나, 그 관련성 저도 음악을 만드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 나중에 대학에서 공부 할 땐 경제를 전공하고 싶지만 . 그와 동시에 작곡에 관련된 지식 또 한 배우고 싶습니다. 그래서 경제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해도 , 음악 쪽이랑 연결 되어있는 방향으로 진로를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 이 책 을 읽으면서 중국에도 발전해 온 , 앞으로 발전할 힙합 문화가 생각났 습니다. 중국은 미국이랑 한국의 영향을 받아서 앞으로 또 어떤 힙합 을 만들어 낼지 되게 기대됩니다 . 아마도 제가 나중에 이런 책처럼 중국판 힙합 레볼루션 같은 책을 출간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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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선사하는 평생의 숙제 조지오웰, ‘ 동물농장 ’을 읽고 이진균 Jin Lee 처음으로 접했던 ‘동물농장 ’은 칼럼니스트의 추천으로 읽었다 . 칼 럼에는 ‘동물농장 ’이 많이 인용되어 있어서 나는 호기심과 궁금증 덕 분에 자연스럽게 책을 접할 수밖에 없었다 . 당시 나는 ‘마르크스주의 ’ 에 많은 관심이 있어서인지 책은 술술 넘어갔다 .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을 읽은 사람으로서 이 책의 내용은 쉽게 다가왔다. 구소련의 정치적 상황을 빗대어 동물들로 표현한 책이었던 것이다 . 우스꽝스러 웠지만 꽤 현실적인 책이었다. 다 읽고 나서 이 책이 왜 이토록 많은 칼럼들에 등장하게 되었는지 이해 할 수 있었다. 책은 ‘메이저 영감 ’이라는 늙은 돼지의 말로 시작된다 . 자신들 , 즉 동물들이 인간에게 억압 받고 노예생활을 하고 있으며 모든 동물들은 인간들로부터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연설이었다 . 동물들은 메이 저 영감을 존경하고 그의 말을 깊이 있게 듣고 , 머리에 새겨 두었으 며, 머지않아 농장에서는 동물들의 ‘혁명 ’이 일어나고 농장의 주인 존 스는 쫓겨나게 된다. 그 후, 동물들은 일곱 계명이라는 무조건적으로 따라야하는 자신 들의 법을 만들었고 글과 말을 쓸 수 있고 할 줄 아는 동물, 돼지들 은 이러한 법을 준수하는지 다른 동물들을 이끄는 상황에 놓이게 된 다. 다른 동물들은 이러한 법규에 찬성을 하고 주인 존스가 없는 농 장에서 자유를 누리게 된다. 그 와중에 동물농장의 소식을 들은 인간들은 이러한 문제를 고치 고자 동물농장으로 향했고 동물들은 인간들과의 전투를 치르게 된다. 결국엔 동물들이 이긴 전투로 끝이 나고 동물들은 이 전투를 ‘외양간 전투’ 라고 부르게 된다 . 초반에는 동물들이 꿈꾸던 나은 삶을 살게 된다 . 여기까지는 동물 들이 일으킨 ‘혁명 ’ 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따르지만 머지않아 동물농 장의 새로운 권력을 가진 돼지들의 욕심에 의하여 동물농장의 초기 ‘혁명’의 철학과 이데올로기는 부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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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를 생산하여 편히 생활하자는 마음에서 돼지들은 풍차를 건설 하자고 동물들에게 제안하고 동물들은 돼지들의 말에 동의를 했다. 그후 모든 동물들은 풍차건설에 참여하게 되었고 돼지들의 권력은 점 점 커져만 가고 있었다 . 그 와중에 돼지 스노볼의 생각과 맞지 않았 던 돼지 나폴레옹은 권력의 맛을 보게 되고 자신의 세력들로 스노볼 을 한순간에 인간과 손을 잡은 배신자로 만들었으며 스노볼은 농장에 서 내쫒기게 된다. 책은 역사적인 배경을 토대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 늙은 영감 돼지 메이저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체제를 처음 세상에 알린 ‘칼 마르크 스’를 연상케 하고, 돼지 스노볼은 ‘트로츠키 ’, 그리고 돼지 나폴레옹 은 스탈린주의 혹은 전체주의와 공산당 소련을 이끈 ‘요셉 스탈린’ 을 연상케 한다. 따라서 책 ‘동물농장’ 은 역사적인 배경을 토대로 쓰여졌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예를 들어 풍차는 스탈린의 드네프르 댐 건설 을 보여주며 ‘외양간 전투’ 는 러시아 내전을 암시하고 있는 셈이다 . 하지만 조지오웰의 ‘ 동물농장’ 은 꼭 구소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여러 가지의 사건 사고들이 발생하 는 것들과 연관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예를 들어 정치나 법 제도 혹은 사회생활의 직장동료 또는 학교 사람들을 ‘동물농장 ’의 캐릭터 들과 쉽게 연관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한 가지 사건을 연관시키자면 2017 년도의 국정농단이 생각난다. 박근혜 정부의 폐단과 추락을 보며 정치와 권력을 남용하 는 자들을 ‘동물농장 ’과 비교 할 수 있었다 . 마치 ‘농물농장 ’의 말처 럼 대한민국은 허무하게 무너진 듯 보였다 . 결국 ‘동물농장 ’은 동물들 이 되지 말자고 했던 인간들의 형태를 보여줬으며 동물들의 자유도 버려졌다는 결말로 끝이 난다 . 대한민국 국정농단 사건도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의 부정부패로 나라가 휘청거리긴 했지만 국민의 목소리 로 대통령이 탄핵이 되면서 국민의 권리를 되찾은 상황을 ‘동물농장 ’ 과 대조 할 수 있었다. 같은 해 여름동안 카자흐스탄을 다녀왔다 . 거기서 본 것들은 아직 도 잊히지 않는다 . 서민들은 굶주린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도시의 국 회의사당을 보니 금으로 도배를 하고 있었다. 평소 유럽 정치에 관심 은 있었지만 중앙아시아 쪽에는 무관심했기에 독재 정권이 중앙아시 아를 지배하고 있다는 걸 몰라봤다 . 에모말리 라흐몬 타지키스탄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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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령,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씁쓸하게도 20년 이상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 동물농장’ 이라는 책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 나자르바예프는 정치를 권력으로 악용하고 있었던 돼지 나폴레옹과 다름이 없었다. 심지어 우리가 자유롭게 봐야 할 뉴스 또는 여론마저 도 조작을 당하고 있었다 . 당시에 tv를 켰을 때 뉴스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짧은 지역 뉴스를 볼 수 있었 다. ‘당시 시골 지역에 있었던지라 뉴스가 오래 방영되지 않는구나’ 라 고 생각을 하고 넘어갔다 . 하지만 도시로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 TV는 멀쩡했다. 케이블도 연결이 되어 있었다 . 어린이 프로그램, 코 미디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 영화채널 등등이 있었지만 시 사 교양 프로그램은 없었다 . 하루 한 번 똑같은 뉴스만 방영이 되었 고 세계 소식을 알 수 없었다 . 이러한 사실이 너무 희한하기만 하였 다. ‘TV 가 방영되지 않는다면 나에겐 핸드폰이 있지’라는 생각이 머 리를 스쳤고 핸드폰을 꺼내어 검색을 해보았다. 러시아어에 능숙하 지 않아서 러시아어로 된 뉴스는 제대로 읽을 수 없었지만 한국 뉴스 는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와 연관된 몇몇 뉴스는 페이지 로 딩이 느려지는 걸 볼 수 있었다 . 역시 내 짐작대로였다. 나자르바예 프는 독재 정치를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하지만 ‘동물농장’ 과 비슷하게도 사람들은 이에 대하여 반격을 하지 않았다 . 알고 보니 시 도하게 되면 정치범으로 몰려 감옥에서 평생 갇혀 지낼 수밖에 없다 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냥 조금 더 자유가 허용된 북한 혹은 구소련 과 다를 게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비판하는 ‘ 조지오웰 ’의 동물농장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경험이었다. ‘ 동물농장’ 은 참 흥미로운 책이다. 구소련의 이데올로기와 역사를 빗대어 만든 책이라고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보니 우리 시대 사회의 문제점들도 제기하고 있었다 . 현 시대 역사와 구소련 당시의 이데올 로기를 비교해 보고픈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 우스꽝스러운 배경에 현실성이 더해지니 과연 조지오웰은 시대를 넘나들며 인정받 는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마지막으로 , 더 이상 국민의 목숨 을 담보로 정치적 권력을 남용하고 악용하는 사회와 지도자가 등장하 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서평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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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 월 20일 , 얼마 전, 기쁘고도 두려운 소식을 접했다 . 1 년 전 읽었던 책 ‘동물 농장’ 을 다시 접근할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 동물농장을 읽으며 당시 방문했던 나라, 카자흐스탄의 대통령 … 정확하게 말해 독재자 누르술 탄 나자르바예프가 현지시간 3월 19 일 TV로 방송된 대국민 연설에서 "대통령직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고 밝힌 것이다. 누군가 또 다른 이 름으로 그의 권좌에 앉아 또 똑같은 권력을 휘두를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 혹은 더한 폭력을 보여줄 것인가 ? 카자흐스탄 국민들의 환호 속에는 기쁨과 두려움이 공존했다 … 책 ‘동물농장’ 이 인류 평생의 숙 제를 풍자를 통해 일깨워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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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학년


행진에서 온 사람들 권진아 Jina Kwon 파란 피부 ‘커너 ’ 한 눈으로만 보이는 ‘왈도’ 발음을 굴리는 ‘ 미달 ’ 이백 센티 ‘사라 ’ 주황색 안 보이는 ‘루너 ’ 지우개 살 돈 없는 ‘아도 ’ 치느님 믿는 ‘에란달 ’ 백 오십 킬로 나가는 ‘나라’ 지구로 와서 살을 찢어 안을 들여다 봤더니 “다 똑같더만” 이라 하더라

12 학년 / 412


화면 안의 세계 정예준 John Cheng 모두가 자유롭게 살아가는 화면 안의 세계 모두가 아름답고 깨끗하다 생각하는 화면 안의 세계 자만에 빠져 주변을 보지 않고 자신을 빛낼 때에 자신을 봐줄 거라 생각했던 한 명의 광대, 언젠가는 누군가와 어울리며 하하호호 했었던 한 명의 친구, 그의 주변에는 그 누구도 남지 않고 정신 차리면 그는 그저 무대 위의 광대 정신 차리면 그는 그저 친구라곤 없는 외톨이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이 그 무대 위는 그 자를 괴롭히기 위해 만들어진 고문장 언젠가는 친구였던 관객들은 이제 그 자에게 키보드라는 검을 세운 맹수 모두가 자유롭게 살아가는 화면 안의 세계 모두가 아름답고 깨끗하다 생각하는 화면 안의 세계 언제나 유명하고 모두에게 추앙받았던 한 명의 빛 모두에게 칭찬받고 존경받았던 한 명의 빛 빛의 광도가 조금이라도 흐릿해질 때 그를 추앙하던 자들은 가면을 쓰고 빛을 죽이려하는 집단으로 빛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는 눈빛은 더 이상 없고 이제는 열등감에 빠져, 질투심에 빠져 , 빛이 죽기를 바라는 광기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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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들 양혜연 Irene Yang 얼굴이 어여쁜 그녀는 마음마저 예뻤다 그녀가 너무 완벽했던 탓일까, 타인들의 시기는 그녀를 겁에 질리게 만들었고 우리가 모르게 그녀는 어둠 속 깊이 숨어 무기력하게, 멈추지 않고 울부짖는다 많은 시간이 지나 감정을 다독이며 상처가 아물어갈 때 쯤 그들은 어둠 속 그녀를 찾아낸다 너무 어여쁜 그녀를 갖고 싶어 천사의 탈을 쓴 채 , 손을 내민다 그들만을 믿은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 채 다시 만난 환한 세상에서 행복만을 꿈꾼다 하지만 어김없이 그들은 그녀가 다르다는 이유로 다시 그녀를 어둠 속에 밀어 넣는다 그리고 그들은 살아간다 그녀를 대체할 새로운 예쁜 여인을 찾으며 그들은 알 리 없다 어둠 밖 햇볕에 타버린 피부에 아파하며 울고 있을 그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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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상적 성장 최 민 Min Choi 그릴 수 없는 그림 전시회를 열고, 부를 수 없는 노래 행사를 진행하며, 읽을 수 없는 책들 공부를 하고, 볼 수 없는 영화를 눈물을 흘리니, 없음에 있음에 있음에 없음에

모아 모아 모아 보며

감탄하고, 질투하며, 감탄하고, 질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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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How hard is Korean! 글로리 구티에레스 로드리게스 Glorilaura G utierrez

안녕하세요? 저는 글로리예요 . 그리고 제 동생 마리아니입니다. 우 리는 자매예요. 그리고 멕시코 사람이에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Hello! We are sisters and we are from Mexico. Nice to meet you.

우린 2017 년 겨울에 한국에 왔어요 . 우린 전국을 여행했어요. 서 울에서 부산까지 갔어요. 우린 독특한 요리도 먹었어요. 그리고 좋은 사람들도 만났어요. We have traveled throughout all Korea, from Seoul to Busan we have b een, we have tried peculiar dishes and met wonderful p eopl e. 하지만 아무도 한국어 배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말해주지 않았어 요. 오늘 저희는 지금까지 한국어를 어떻게 배웠는지 말하겠습니다 . But they never told us how hard is Korean. Today we are going to explain o ur journey learning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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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노력했어요 . 무료 사이트에서 한국 드라마도 봤어요. We tri ed everything from online free co urses to Pinter est posts, we watched K-dramas thinking we would learn something. 하지만 우리는 딱 한 문장만 배웠어요. “오빠 사랑해 ". But we only learnt “Oppa, I love you.”

Oh! 한국어는 너무 어려워요! Oh! How hard is korean! 우리는 한글을 배우면 한국어로 대화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요. We thought that with k nowing the alphabet we co uld be at least able to communicate something. 하지만 우리가 틀렸어요 ! 우리는 마트에 갔어요 . 사과를 사고 싶었 어요. 우리가 아줌마에게 사과 18 주세요 ! 라고 말했어요 . 아줌마는 우리에게 화를 냈어요. We were so wrong when we asked for eighteen apples and the Ajumma at the store shouted at us.

Oh! 한국어는 너무 어려워요. Oh! How hard is korean! 이젠 한국어 배우는 것 포기하고 싶어요.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 으악! 너무 어려워요 . We are now giving up in the language, is stressful how similar the vowels sound. 미안!, 미안해 , 미안해요 , 미안합니다, 고마워 , 고마워요, 고맙습니 다. 으악!!!! 존댓말도 어려워요 . All the honorifics are horrific, I don’t get why asubn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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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난 오빠한테 “언니!”, 엄마한테 “아줌마!”라고 불러요 . I still call my brother ‘Unnie’ and my mother ‘Ajumma’. 우리는 반 친구들이 하는 말을 듣고 한국어를 배웠어요 . “아이고 , 진짜? 어떡해, 아이씨...” 어린 아이들도 있지요? 미안해요 . We just know the common words our classmates use, “Aigo , ottoke, ani, A-s hiii… .”

Oh! 한국어는 너무 어려워요. Oh! How hard is korean!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아요 . 계속 한국어를 공부할 거예요 . 왜 냐하면 한국어는 진짜 멋진 언어이기 때문이에요. But at the end, we don’t give up and continue learning. Because Korean is c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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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유승민에게

유승민 Andrew Yoo 승민아, 잘 지내고 있니 ? 오늘은 날씨가 어떤지 , 네 기분은 날씨에 맞든지 맞지 않든지 그 저 상쾌한지, 그리고 그 기분과는 상관없이 하는 일들은 잘 되고 있 는지 궁금하다. 승민아. 그 동안 고생 많았지 ? 네가 여기까지 이렇게까지 잘 오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 어릴 때부터 여러 학교에 다니면서 이런저런 크고 작은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또 그만큼 엄마한테 잔소리도 많이 듣고 과연 대학은 갈 수 있는지 꽤나 고민이 많았지 . 그래도 네가 이 렇게까지 여기까지 와서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기쁘다 . 고등학교 다니 면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때는 왜 그리 결정하기 어려웠을까. 미래 에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하고 싶어도 내 능력이 될까 고민이 많았 지. 그런데 이제 이렇게 유명하고 훌륭한 유투버가 됐고 게다가 이제 브로드웨이랑 디즈니랜드에서 가장 인기 많고 유명한 쇼들을 만들게 되다니 나는 사실 믿 기지가 않아. 예전에 Mr. Lenord 선생님 생각나니? 내가 졸업하기 전 에 연극반 Dir ector로 세워주셨던 그 고마우 신 선생님 말이야 . 그 선생님처럼 학교 선생님으로 미디어랑 드라마 를 가르치고 있잖아. 그 선생님 덕분에 오늘 내가 이렇게 아이들 앞 에서 당당할 수 있는 것 같아 . 이젠 예쁜 아내가 있고 곧 아빠가 될 거라는 것도 너무나도 기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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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민아, 앞으로 너의 미래 모습도 너무나도 기대가 되고 또 다른 일로써 무엇에 도전 할 건지 너무나 궁금해 . 만약에 말이지 , 무슨 일 이 생겨도 한 가지만은 절대 잊지 마 . 그건 말야 , 어려운 일이 생겨 도 결코 포기 하지 않기 . 승민이 너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테 니까.

승민아, 화이팅 ! 2019 년 5 월 20 일 널 사랑하는 유승민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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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후손에게 잠시 빌리는 것 후지모토 미유 Fujimoto Mi yu 긴 시간 속에서 길러져 온 지구의 자연 환경은 인간을 포함한 모 든 생명의 기초다 . 인간은 산에서는 신성한 공기와 , 먹을 수 있는 열 매, 종이나 집을 만들 수 있는 나무를 공급받고, 바다에서는 해산물 과 금속, 풍부한 에너지 자원 등을 통해 살아가고 있다 . 그런데 인간 은 이제까지 개발을 위해 많은 산림을 훼손하고 다수의 플라스틱이나 유해 물질을 바다와 지구 곳곳에 버려왔다 . 그 결과 동물들은 서식지 를 잃고 바다는 쓰레기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는 망가진 자연을 회복해서 , 다시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살기 좋은 곳으로 새롭게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연을 보호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 지금 한국의 커피숍이 나 음식점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종이컵 대신 유리컵을 사용하는 것도 자연보호의 방법으로 이어진다 . 매일 많은 양의 플라스틱을 사 용하기 때문에 재활용의 속도가 이를 따라 가지 못해 바다에 흘려진 플라스틱은 해양생물의 몸에도 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플라스틱의 사 용 규제와 재활용의 실천은 중요한 것이다 . 이 외에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고, 이를 만들 때 법적으로 제한을 두어야한다. 음식물 쓰레기양도 어마어마하다 . 따라서 우리가 먹는 음식의 양 을 항상 조절하여 먹을 만큼만 요리하고 또 그릇에 알맞게 담는 습관 을 길러야 한다. 레스토랑에서는 음식을 남기면 추가요금이 생긴다는 등 적절한 대책을 만들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지 않도록 하는 의식을 높일 필요가 있다. 또한 육류 사용을 줄여야 한다 . 왜냐하면 가축을 기르는데 드는 비용이 사실 소비하는 비용보다 훨씬 더 많이 들고, 이들을 기르면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밖에도 등산을 가면 쓰레기를 산에 버리지 않고 다시 가지고 되 돌아오는 것이나 그다지 덥지 않은 날씨에는 에어컨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 것, 사용하지 않는 전기나 불을 끄는 것만으로도 환경보호에 도 움이 많이 된다.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자연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생활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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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그것이 환경보호로 이어진다 . 이처럼 자연을 보호하기 위에서 제 일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의식과 이에 따른 실천인 것이다. 그 의식 을 바꾸기 위해서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을 후손에 물려주어야 할 책 임과 의무가 있다 . 우리의 것이 아닌 바로 우리 자녀들의 것을 잠시 빌려 쓴다는 마음가짐을 갖는다면 , 우리가 함부로 자연을 훼손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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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어! 정석우 William Chung 내가 학교 급식을 처음 먹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입학 이후부터 였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라서인지 급식으로 뭐가 나오든 정말 맛 있게 먹었고 급식 시간은 나의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 중 하나였 다. 급식에 대한 나의 사랑은 중학교 때 유학을 가고 나서 보스턴 메 세추세스에서 미국 학교를 다니면서도 계속 되었다 . 뷔페식으로 나오 던 아침은 American breakfast 스타일로 팬케이크 , 시리얼 , 와플 , 베이컨, 계란, 과일 등 다양한 음식이 제공되었다 . 점심과 저녁도 매 우 맛있었고, 급식 시간만 되면 너무나도 행복했다. 급식 시간마다 음식을 나누어 주셨던 영양사 선생님은 항상 웃으면서 영어로 “잘 먹 어!”라고 하시곤 했다 . 이렇게 나의 급식에 대한 즐거움은 미국에 처 음에 왔을 때까지도 여전히 좋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유학 생활에 작은 문제가 생겼다. 한 달 , 두 달 시간이 지나 점점 미국 생활에 적응이 되면서 느낀 것은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나의 생활비, 즉 용돈이 너무나도 적다는 것이었다 . 기숙 사 학교였던 우리 학교는 급식 말고는 제공되는 음식이 없었다. 그런 데도 미국에서는 한국과는 달리 나의 생활에서 지출되는 금액의 전부 를 나의 용돈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문제는 그 금액이 너무 터무니없 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 나의 부모님은 내가 미국 생활을 하면 건강에 해롭거나 내게 안 좋은 것을 경험하는 것을 두려워하셨던 탓에 용돈 은 한 달에 250 불 (한화 약 25 만원 )만을 보내주셨다. 하지만 이 돈으 로 나는 미국에서의 전체 생활비 , 이를테면 쇼핑 비, 간식 비 , 외출에 드는 비용 등 모든 것을 담당했어야하므로 터무니없이 부족하였다. 그 당시 주변 선배들이나 친구들을 보면 적어도 한 달에 1000 불은 받았던 것을 보면 , 내 용돈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알 수 있다 . 돈이 모자라서 가장 타격을 받는 것은 나의 먹을 거리였다 . 학교 식당에서는 아침 , 점심 , 저녁 외의 식사나 간식을 전혀 제공하지 않 았던 까닭으로 야식을 매우 좋아했던 나는 매일 저녁마다 친구들이 시키는 음식을 얻어먹던지 , 굶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상황은 더욱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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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되어서 나는 당시 중학교 1학년의 나이로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그 돈을 식비나 생활비에 추가하여 살아왔다 . 나는 어느 날 마지막 희망을 바라며 늦은 저녁 9 시쯤 학교 식당을 찾아갔다 . 역시 식당의 불은 다 꺼져 있고 음식의 흔적은 공기에서 남아있는 그날 저 녁 음식의 냄새만 남아 있었다 . 한숨을 쉬며 다시 돌아가려 하자 식 당 뒤 주방에서 문이 열리면서 영양사 선생님이 나오셨다 . 대화를 하 고 나의 상황을 완전하게 파악하신 선생님은 주방으로 들어가 그날 저녁에서 남은 음식들을 정성스럽게 이것저것 담으셔서 나에게 포장 해주었다. 이것은 내게 너무나도 큰 변화였다 . 이후로도 선생님은 종 종 나에게 음식을 주셨고 , 나도 보답으로 용돈을 모아 선물을 사드리 며 우리는 더욱 더 친한 사이가 되었다.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갔고 , 어느덧 나는 스무 살이 되었다 . 그 선생님으로 받던 것이 내게도 연습이 되었는지 나는 지금도 항상 먹 을 것이 생기면 친구들이랑 나누어 먹는 것을 무척 좋아하고 , 길가에 빈곤한 사람을 보면 음식을 주기도 한다. 그 선생님의 작은 나눔이 나의 이러한 나누어 주는 습관을 만들어 주었다. 베풂과 배려심은 이 렇게 전달이 된다는 것을 그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다 . 정말 그 선생님 께 아직도 고맙고 ,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찾아뵙고 감사하다고 인사 를 꼭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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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보고된이 서희원 Heewon Seo 2011년 2월, 설이 지나고 바로 미국에서 4학년 한 학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캘리포니아와는 다르게 한국은 몹시 추웠고 거리는 눈이 쌓여 있었다. 숨을 쉬거나 말을 할 때마다 보이는 하얀 입김이 낯설었지만 신기했다 . 내가 한국에 돌아 와서 기쁜 엄마와는 달리 나는 모든 것이 걱정이었다 . 새로운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 학교 친구들과는 금세 친해질 수 있을까 ? 나 의 어눌한 한국어 때문에 놀림을 당하지는 않을까? 부모님을 따라서 공항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내 걱정들은 추운 날씨 때문인 지 나를 더욱 움츠려 들게 만들었다. “딸, 뭐 먹으러 갈까?” “I don’t know. Anything mom wants.” 아직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했던 나는 아무거나 먹자고 했고, 엄마와 아빠가 저녁 메뉴를 상의하시는 동안 나는 따뜻한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일어나 보니 화려한 간판들과 사람들이 가득한 노원 거 리에 도착해 있었다. 차에서 내려 여전히 추운 거리를 잠깐 걸었는데 넓지만 늘 조용하며 화려하지 않았던 미국의 동네와는 달리 저마다 불빛을 뽐내는 간판들과 많은 사람들이 어서 오라고 반갑게 나에게 인사를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 골목길로 들어서자 작은 가게 앞에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난로 앞에 줄 서 있었다 . 무슨 일이지 ? 사람들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 ? 나는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 은 채 부모님을 따라 줄을 섰다 . 은은한 카레 향과 비릿한 냄새가 나 는 것도 같기도 했다. 여기는 이 동네에서 아주 유명하다는 ‘털보고된이 ’라는 생선구이 집이었다. 줄이 조금씩 줄면서 안에 자리가 났고 , 미리 주문했던 김 치찌개와 고등어구이가 나왔다 . 배가 고팠던 탓인지 밥 한 그릇을 다 비웠고, 긴 비행의 피로가 말끔히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 맛있는 음 식을 먹는다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고 행복한 일이라는 걸 그때 처음 으로 안 것 같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시간이 점점 흘러갔고 , 나는 조금씩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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른이 되었다. 시험이 끝나거나 기분이 우울할 때마다 그 집의 음식이 생각난다. 때론 친구들과 , 때론 부모님과 가서 김치찌개와 고등어구 이를 먹는다. 데려가는 친구들마다 맛있다고 해 그들과 자주 가는 곳 이 되었다. 그 뒤로 나는 몇 차례 미국에 , 홍콩에, 이탈리아 등 해외 로 나갈 일이 생겼고 , 길지 않은 기간들이었지만 가기 전이나 또는 한국에 돌아와서 늘 그 집에 들러 밥을 먹는 것이 나만의 의식이 되 어 버렸다. 얼마 전 미국에 두 달간 다녀오면서 엄마와 그 집 음식에 대해 얘기하면서 한국에 가면 제일 먼저 ‘털보고된이 ’에서 밥을 먹자 고 약속을 했었고 ,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그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 ‘ 털보고된이’는 내가 자라는데 항상 있어주었고, 비싸지도 , 화려하 거나 넓은 식당도 아니지만 긴 줄의 기다림을 감수할 만큼 소중한 곳 이다. 힘들거나 외국을 다녀오고 나면 꼭 그 집의 김치찌개와 고등어 구이가 생각나는 걸 보면 , 영어를 한국말처럼 하는 내가 진정한 한국 인인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 . 소박하고 좁은 식당에서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해지는 이런 소소한 일상이 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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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 최원석 Wonseok Choi 처음에는 그저 가슴 설레는 이사일 뿐이었다 . 일곱 살까지의 유치 원 생활을 끝마치고 원래 살던 아파트 단지보다 더 커다랗고 새로운 곳으로, 그리고 내가 다닐 초등학교가 있는 곳으로의 이사는 지금 생 각해보면 어떻게 그랬는지 모르지만 긴장감 보다는 기대가 더 컸던 것 같다. 지금의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인 것이 지금 만약 내 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한다면 새로운 환경에 대해 불안해하기만 하 였을 것이다. 어쨌든 그때의 감정 , 그리고 기억은 지금도 비교적 생 생히 나를 찾아온다. 처음 아무런 가구도 없는 새 집에 들어갔을 때 와 드넓은 아파트 단지를 보았을 때는 묘한 감동을 느꼈었다. 그렇게 긍정적인 감정들이 내 마음을 채우긴 했지만 사실 그 전에 살던 곳도 나에겐 굉장히 특별했고 그래서인지 나에게 무엇인가 큰 변화가 찾아올 거라곤 딱히 생각지 않았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 아서 나는 자연스럽게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 아직 어리숙했지만 어찌 어찌 친구들도 사귀게 되었다 . 그 당시에는 지금 많은 아이들이 빠져 사는 스마트폰이라는 것도 없었고 컴퓨터 게임에 빠지기엔 내가 너무 어렸었다. 그렇다면 사실 어린 나 , 그리고 나의 친구들이 같이 놀면 서 할 수 있는 것들은 정해져 있었다 . 축구, 야구, 배드민턴 등의 운 동들이었다. 정말 과장을 보태지 않고 거의 매일같이 친구들과 드넓 은 나의 아파트 단지를 방황하며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였다 . 신 축된 나의 아파트 단지에는 제대로 된 배드민턴장이 있었고 그것은 큰 축복이었다. 당연히 축구장이나 야구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 하지만 그 어린 시 절 우리에게 그것은 하등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공간들을 백분 활용했다 . 높은 건물처럼 솟아있는 아파트들의 두터운 성벽과도 같은 벽들이 포수가 없고 스트라이크 존이 필요했던 우리에 게 야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줬고 벽들 사이 , 혹은 계단 등이 기꺼이 우리의 골대가 되어주었다 . 그때에는 마치 정신이 나간 것처럼 뛰어 놀았고 그것은 우리의 큰 행복이었다 . 가끔 경비 아저씨들이 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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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아파트 말고 학교 운동장 같은 다른 곳에 가서 놀라고도 하셨지 만 우리는 죄송하게도 개의치 않았다 . 무리지어 이동해 다니며 , 아니 면 경비 아저씨가 가시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 있는 힘껏 공을 찼다. 아파트 단지 내에 근사하게 지어진 많은 놀이터들도 있었지만 , 우리에겐 아파트 단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운동장이었고 또한 놀이 터였다.

그렇게 5학년 무렵까지는 이렇게 우리의 공간을 배회했었다 . 그런 데 우리의 이런 시절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 되자 많은 아이들이 발길을 피씨방과 학원이란 곳으로 돌리기 시 작했다. 그때까지도 자전거를 타고 단지 내를 누비던 나 역시 더이상 운동을 하면서 노는 친구들을 찾기 어려워지자, 아쉬운 마음을 감추 며 자전거로 뺑뺑 돌기만 하다가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가곤 했다 . 그 러다가 나도 결국엔 더 이상 뛰어 노는 것보다는 다른 친구들과 피씨 방에서 컴퓨터 자판이나 두들기며 서서히 옅어져가는 추억의 잔재를 외면했었다. 물론 그때는 , 그리고 지금도 컴퓨터 게임은 어쩌면 뛰어 노는 것보다도 더 큰 즐거움이었고 내가 상상만 했던 것들이 조금이 나마 이뤄지는 마법 같은 공간이었다 . 그것은 지금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이제는 스마트폰까지 비약적으로 발전한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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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 시대에 자신들만의 놀이터를 휘젓고 다녔을 친구들은 이제 바 깥 공간보다는 화면 안의 공간에 더 집중하고 집착한다 . 물론 할 것 도 많아지고 어릴 때와는 또 다르니 이것은 필연적인 변화다 . 나 또 한 이러한 변화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진 않는다. 다만 그 어린 시절에 대한 미련 , 그리고 향수는 아직도 나를 때때 로 우울하게 혹은 그 추억에 설레게도 한다 .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지만, 그리고 기술의 발전에 따라 요즘 아이들에게서 사라져가 는 것이지만 나는 분명히 그 시절을 갈망하고 어쩌면 완전히는 아니 더라도 그 시절과 비슷한 시간을 앞으로 내 인생에 언젠가는 보내고 싶다. 행복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이제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느라 바쁜 나에게 그 시절에 대한 추억은 분명히,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뭉클한 감정을 때때로 불러일으킨다. 지금은 너무나도 특별해진 그저 수없이 많은 아파트 단지들 중 하나인 나의 아파트 단지는 내 인생 최고의 놀이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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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IS는 나에게 ‘제2의 집’이다 노성헌 Leo Rho 오래된 기억이지만 지금 생각하자면 지금의 나를, ‘노성헌 ’, 또는 ‘Leo’ 라는 사람의 형태를 만들어준 소중한 공간은 APIS다 . 언뜻 남들 이 들으면 중2병 , 혹은 “왜 학교라는 공간이 이 사람한테 소중한 것 이지?” 하고 의문을 갖기 마련일 것이다 . 하지만 APIS란 나의 초등 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인생을 보낸 곳이기 때문에 내가 이사를 다 닌 집보다 더 소중한 공간이다. APIS에 너무 오래 다닌 탓에 언제부 터인가 ‘ 내가 몇 년 동안 다녔지?’ 하고 나 자신에게 질문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아마 11 년이나 12 년 정도 되었을 것이다. 음식으로 이 주제를 비유한다면 한 음식을 오래 먹었다고 소중한, 또는 추억의 음식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 그 음식에 소중한 추억 이 담겨 있기 때문에 계속 찾게 되고 먹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단 지 APIS 에 나의 학생 시절을 바쳐서가 아니라 , 처음 전학 왔을 때의 기억이 소중했기 때문에 졸업을 하고서도 이 곳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올 해가 APIS에서 보내는 마지막 해가 되겠지만 이 지긋지 긋한 곳을 막상 벗어나 미국으로 가게 될 때에는 왠지 모르게 많은 추억이 생각날 것 같다 . 이제부터 나의 APIS 에서의 첫 해를 설명하 고자 한다. 나, 노성헌이라는 아이는 경기도 일산 고양시에서 태어나 평범하 게 초등학교 2학년까지 성라 초등학교에 다녔었다 . APIS로 갑자기 전학을 가게된 것은 아버지의 뜬금없는 결정이었다 . 병원 일로 서울 로 집을 옮겨야 했지만 나는 평범하게 한국 학교에 다닐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영어를 배웠으면 했고 , 세계를 넓게 보라는 큰 뜻을 가지고 계셨다 . 나는 그 당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 다. 전학이 확정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순수하게 학교 구경만 하러 부모님을 따라 시험을 보러 가게 된 나는 국제학교라는 이름에 설레 임과 동시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 당시에는 시험을 통과해 전학이 확정된다면 전학을 가고 싶었지만 막상 떠나기 전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APIS로부터 입학 통지를 받았고, 새로운 학교를 간 다는 생각에 너무 붕 떠 있었다 . 그래서 친한 친구들에게도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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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로 전학간다고 온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녔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야 그러면 우리 두고 가는 건데 너는 좋냐?” 라고 나에게 물었 다. 그 질문에 나의 감정은 급격히 바뀌기 시작했다 . 설레임에서 모 든 것을 두고 떠나는 두려움으로 말이다 . 친구들과의 추억 , 내가 살 던 곳, 내가 태어난 곳 , 내가 태권도를 하던 곳 , 나의 유치원 동기들 이 있던 곳, 모든 것들이 서울로 이사 가고 학교를 전학가면 한 순간 에 없어지는 것이었다 . 나는 그제서야 전학이라는 것이 두려워졌다 . 학교에 갔다온 뒤 부모님께 , “엄마, 아빠 전학 안가면 안 돼 ? 나 가 면 친구들도 하나도 없고 나 영어도 못하잖아.” 라고 말씀드렸더니 부모님께서는 친구야 새로 만들면 되고 너의 미래를 위해서 가는 것 이니까 조금만 참아 달라고 하셨다 . 맞는 말씀들이었지만 왠지 모를 서러움에 눈물이 차올랐다 . 그런 날들이 지나고 나는 친구들과 작별 하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였다. 2008년도 1학기 개학식 날 , 나는 부모님과 함께 APIS를 찾았다 . 나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 처음의 APIS는 정말이지 휑하고 가꾸지 않은 황무지에 놓인 건물 하나가 세워진 것처럼 보였다 . 지금의 APIS 는 거의 혁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런 나를 생각하면 나는 APIS 의 진정한 역사의 조각 중 하나 , 또는 APIS의 화석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정문을 들어서면 파릇파릇한 인조 잔디와 알록달 록한 벤치, 그리고 주차장과 농구장이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바 람이 불면 코를 찌르는 듯한 이상한 냄새와 알록달록한 색깔 따위 없 는 모래사장이 전부였다 . 부모님은 차를 계단 앞에서 주차한 뒤 차에 서 내려 나와 같이 학교로 가셨다 . 다른 아이들은 버스를 타고 혼자 걸어가는 듯 했으나 나는 예외였다. 학교를 들어가니 웬 미모의 여성 분이 나를 교실까지 안내하겠다며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셨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 등 뒤에 숨어 거부하였다. 그 분은 5 분 동안 나를 잘 다 독이신 뒤, 나를 데리고 가셨다 . 나는 걱정되는 얼굴로 그분의 손을 잡고 교실로 향하였다 . 교실로 들어서자 난생 처음 본 외국인 선생님 과 영어를 쓰고 있는 아이들이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여기서 한 가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나는 알파벳을 겨우 떼고 이 학교로 전학을 온 것이었다 . 영어로 말하는 선생님에다가 반 전체가 영어로 도배되어 있었고, 친구들마저 영어를 쓰자 내겐 큰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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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이 찾아왔다. 나는 그렇게 꿀 먹은 벙어리로 교실에 툭 던져졌었 다. 수업이 시작되고 첫 번째로 한 것이 자기소개였는데 나는 내 첫 이름 Seongheon을 말하는 것조차 버거웠었다 . 그에 비해 나의 친구 들은 너무 영어를 잘해서 풀이 죽고 말았다 . 하지만 영어 실력을 늘 리기 위해 집에서 돌아오면 영어 공부를 하였고 그렇게 매일 조금씩 이지만 영어가 느는 듯 했다 . 하지만 여전히 영어를 잘 못하는 탓에 나는 친구가 많이 생기지 않았고 혼자 있는 시간일 때면 Ms. Bennet, 나의 담임선생님께서 나를 잘 돌봐주셨다 . 그분은 나의 천사 나 다름없었다. 내가 그 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 자신이 어떻게 되 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 선생님은 영어를 잘 못하는 나를 위해 영어 공부를 따로 많이 도와 주셨고 관심과 사랑으로 정성껏 돌봐주 셨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책을 한 권 소개해주셨는데 제목은 ‘Leo the late bloomer’ 라는 책이었다 . 이 책의 주인공, ‘리오 ’라는 호랑 이는 배우는 것이 느려 처음엔 잘 못했지만 나중에는 노력과 정성 끝 에 성공한다는 내용이었다. 선생님과 그 책을 읽은 뒤 부모님과 PTC 때 나와 너무 흡사하다는 생각에 내 이름을 Leo로 바꿔주신다고 하 였다. 부모님도 매우 기뻐하셨고 나도 그 이름이 되게 마음에 들었었 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3학년이 끝나자 선생님은 우리 학교를 그만 두신다고 하셨다 . 나는 비록 다른 학년이었지만 마지막 날에 선생님 품에 안겨 울었었다. 선생님께서는 이제 영어도 잘 쓰는 의젓한 3 학 년인 나를 보고 “You have grown up so much that you won’t need my help” 라는 말씀을 웃으시면서 하셨다. 나는 마음 한편에 선생님을 많이 좋아했었기 때문에 너무 슬펐었다. 선생님이 떠나시고 4 학년,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이 흘러 나는 이제 12 학년이 되었다. 나는 한 편으론 이 학교가 지긋지긋하고 졸업한다는 생각에 너무 기쁘지 않을 수 없다 . APIS의 변화는 매년 엄청났고 나는 그 변화를 보면서 나도 같이 성장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힘든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친구들도 많이 만들고 시행착오도 겪으며 이제는 새로운 집, 대학으로 떠나려고 준비를 하고 있다 . 그런 성숙한 성장을 도와준 소 중한 장소는 APIS가 아닐 수 없다 . 제 2 의 집이었던 APIS를 떠나려 고 하니 설레기도 하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하지만 만남이 있으 면 작별도 있는 법, 나는 이 새로운 시련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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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봉산 꼭대기 유병욱 Byung Ouk Yu 수요일과 금요일, 그리고 일요일, 일주일에 세 번은 두 시간을 매 봉산 꼭대기에서 보낸다. 젊은 사람이 산에 올라가는 것을 좀 당황스 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난 등산을 즐겨서 거기에 올라 가는 것이 아니다 . 그 곳 꼭대기에는 작은 텐트로 덮여진 shelter가 있는데 거길 가기 위해 나는 그 산을 오르고 내리는 것이다. 거기에 놓여있는 1.5kg~20kg 바벨들 , 벤치봉 등 다양한 운동 기구들 때문에 난 오늘도 매봉산 꼭대기에 올라간다. 난 어릴 때 운동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구기 종목은 폐활 량도 안 좋고 골격도 좋은 편이 아니라 , 못하는 편이었고 달리기는 또 래들에 비해 심각하게 느렸다. 중학교 때까지는 몸도 상상 초월할 만 큼 말랐었다. 그리고 중학교 때 학교에서는 아니었지만, 몸도 빈약하 고 여드름 많고 안경을 써서 동네에서 좀 노는 형들한테 무시도 많이 당했다. 하지만, 나란 사람을 바꿀 계기가 생겼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다음에, TV에서 이병헌과 장혁의 남자다움과 카리스마에 반했다. 그리고 그들의 팬이 되면서 그들에게 영감을 준 이소룡,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실베스터 스탈론도 좋아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공통점이 있는데 운동을 잘한다는 것이었다 . 하지만, 그들은 내가 싫어했던 팀 운동보다는 개인으로 하는 운동을 더 즐기는 것이 었다. 예를 들면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실베스터 스탈론은 웨이트 트레 이닝을 잘하고, 장혁의 절권도는 우리나라 최고이며 , 복싱도 현역 복 서 못지않게 잘한다는 것이었다 . 그리고 ‘Enter The Dragon’에서 브 루스 리의 삼각형 몸매를 보면서 ‘저 몸이다 ’라면서 판타지를 가졌다 . 그래서 그들을 통해 난 ‘운동이 축구, 농구 말고도 다른 것들이 있구 나’라고 느끼고 운동에 대한 반감이 없어졌다 . 그리고 고등학교 수학 여행 때, 선배의 말을 듣고 난 큰 결심을 했 다. 남자끼리 있을 때 게임을 해서 내기를 했는데 지는 사람이 그 숙 소로 온 여고 애들 중 한 명 번호를 따는 것이었다 . 그런데 내가 졌 다. 그런데 그 선배가 “병욱이는 봐주자 .”라고 하자 난 그 선배의 뜻 이 이해가 안 가 되물었다 “왜?” 그러자 그 선배가 나랑 되게 친한 선배였는데 농담 식으로 “넌 얼굴하고 피지컬이 딸려서 좀 .”이라 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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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그 농담 속에 진심이 약간 보여서 기분이 좀 상했다. 하지만 , 그날 밤 자면서 생각해 보니 ‘얼굴은 내가 노력으로 안 되지만 몸은 내가 키우면 되지 않겠냐. 실베스터 스탈론도 어릴 때는 영양부족으로 마른 몸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그래서 수학여행에서 돌아와서 운동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 처음 에는 헬스클럽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인터넷이나 유투브에서 많이 봐서 가기 좀 솔직히 쫄렸다 (그러니깐 몸 안 좋은 사람이나 초보자 좀 안 좋게 보는 경향이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집 앞에 있는 매봉산 꼭대기 텐트 속에 운동 기구가 다 있었다. 그리고 거기는 할아버지들이나 운동에 진심으로 관심 있는 사람들만 가서 걱정이 되 지도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좋은 점은 그곳은 무료라는 점이었다 . 무료이면서도 시설은 다 있었다. 처음에는 역시 운동을 못해서 할아버 지들한테 많이 혼났다. Leg press도 살살 하고 그리고 벤치프레스를 처음 했을 때는 봉을 떨어뜨려서 죽을 고비도 넘겼다. 하지만 난 포기 하지 않고 일주일에 세 번은 꼭 올라갔다. 내가 기구의 무게를 늘려가 면서 힘이 세지는 걸 느꼈고 몸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 어서 자신감이 더 생겼다 . 그리고 길거리를 나가면 사람들이 날 바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가끔은 길거리에서 일부러 팔에 힘주고 다닌 적도 많다. 지금은 기구 운동들은 다 제일 높은 무게로 하고 벤치프레 스는 봉 무게 제외하고 60kg쯤 든다. 그리고 복싱에 관심이 많아졌고 , 이소룡에 대한 환상 때문에 활배근 운동을 즐겨한다. 하지만, 아직도 실수는 하긴 한다. 예를 들면 저번 주 금요일에 65kg 벤치프레스를 하려고 했는데 여섯 번까지는 잘 되는데 일곱 번 째에서 못 들겠는 거다 . 다행히 초보자였을 때 이런 일이 하도 많아서 배에 딱 고정시키고 주변에 있던 아저씨 도움으로 살았다. 난 아직도 헬스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고 오늘도 산을 올라갈 것이다 . 그리고 학교 헬스장도 열어줬으면 좋겠다 . 왜냐하면, 분명히 과거의 나처럼 운동을 하고 싶은데 시설이 없어서 못하는 학생이 있을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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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특별한 인연 소설을 통해 본 한국

김재엽 Michael Kim ‘ 엇박자 D’, ‘침이 고인다 ’ 등의 소설들을 읽으며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간의 인연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역설적이게도 한국 현대 사회가 인간관계를 우선시 하지 않는 현상이 드러나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도리어 특정한 인연들의 의미가 더 빛나게 되는 것 같다. ‘ 엇박자 D’라는 소설에서 화자는 이름도 기억이 안 나는 ‘엇박자 D’라는 별명을 가진 인물을 졸업하고서도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다 . 이 화자는 ‘ 엇박자 D’라는 인물과는 진실된 대화도 한번 나누어 보지 않았고, 분명 학창시절 때 더 친한 친구들이 있었을 것이다 . 하지만 한국 사회의 공부만 추구하는 분위기과 학우들 간의 우정보다 성적을 우선시하는 문화가 결국 학창 시절에서 끈끈한 연을 서로 못 맺도록 하는 것 같다. 그러기에 그저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보다 더 개성이 강하고 눈에 띈 그런 친구들이 더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 침이 고인다’라는 소설에서도 화자는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의 평범한 생활은 매우 힘들고 바쁜 일상이 반복 되는 삶이다. 그렇기에 직장을 가진 후에도 여유를 가져 본 적이 없 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 또한 깊이가 얕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고 달프고 바쁜 일상 속에서 한 후배가 화자의 삶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오히려 사람과의 교류가 많이 없는 이 사회적인 배경에서 화자는 처 음에 이 관계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고 이 새로움이 관계를 더 발전해 나가는 디딤돌이 된다 . 하지만 이 호기심도 얼마 가지 못해 불편함으 로 바뀐다. 오히려 예전의 반복적이고 혼자 지냈던 삶이 그리워지고 타인의 모든 행동과 말투가 거슬리고 짜증나기 시작한다. 모든 인연이 깊어지려면 이 단계를 거쳐야 된다고 생각한다 . 흔히 연인 관계에서 ‘ 권태기 ’라고 부르는 관계가 있듯이 서로가 질리고 서 로에 대한 애정이 식어가는 관계의 과정이 있다 . 이것을 같이 헤쳐 나가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진실된 관계를 맺어보지 못한 사람으로써는 매우 힘든 일이다. 결국 화자는 이 인연과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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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지기를 결정한다 .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모든 일이나 사건들보다 더 기억에 남는 사람간의 관계라는 것은 매우 소중하다는 것을 반어 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이처럼 우리 한국 사회에서의 경쟁 위주의 입시 문화가 결국 더 소중한 사람간의 인연과 관계를 빛나게 한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맹 목적인 공부만 강요하는 현상이 다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 그것 은 바로 학창 시절에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봐지는 독특함과 자기만의 개성을 추구하는 방식이 오히려 나중에는 더 빛을 본다는 것이다 . 학 창 시절에는 모두 일관적으로 책상에 앉아서 책을 펼치고 모두 같은 공식을 풀고 같은 문장을 읽고 외우지만 , 간혹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 는 다른 무언가를 쫓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 이러한 사람들은 학생으 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며 욕도 많이 먹고 비판도 많이 받 는다. 하지만 ‘ 엇박자 D’ 처럼 아무도 신경 안 쓰고 자습 시간이라 여 기는 성악 동아리 시간에 홀로 열심히 하며 자신만의 목표를 세우고 달려간 결과 결국 그는 그 나름대로의 성공을 이루게 된다. 이처럼 한국 사회는 공부를 일순위로 두며 그것만 강요하는 모습 이 강하게 보이지만 이러한 것들이 사람과의 인연이나 사람만의 개성 을 오히려 의미 있는 것으로 드러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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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 ‘을 ’이 이루어가는 사회 박민규 , ‘갑을고시원 체류기’를 읽고

이진성 Joseph Yi 박민규의 소설 ‘갑을고시원 체류기 ’는 이름부터 하나의 사회를 나 타낸다. ‘갑’과 ‘을 ’로 나누어져 있는 고시원은 그곳에서 성공하면 ‘갑’으로, 그러지 못하면 지금 그대로 ‘을 ’인 것을 보여준다 .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단 하나의 작은 건물 안에서 서로 나누어져 있는 공간을 만들어 그 좁은 ‘관 ’과도 같은 공간에서 한 명씩 각자 살아가는 곳이 고시원이다 . 마치 그 고시원이 이 세상을 반영하듯 서 로가 서로에게 ‘ 갑’ 이 되고 ‘을 ’이 되기도 한다. 서로를 대면하고 서 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눈치를 보 는, 결코 친구가 , 또는 같은 처지가 아닌 , 서로가 서로를 상관없는 사 람인 것처럼 행동하고 살아간다 . 그 밀폐된 공간에서는 사람들이 작 은 소음도 같이 공유하지만 정작 소통은 벽으로 막혀있다 . 다른 사람 이 어떤 인생을 살고 있든지 서로 아무런 관심도 없는 , 그러나 서로 에게 피해가 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런 곳이다. 살 때는 마치 ‘관 '같이 느껴졌던 공간이지만 그래도 그나마 서로 눈치보고 서로에게 적어도 피해는 안 되려고 안간힘을 쓰는 행동에서 어느 정도의 따스함이 느껴진다 . ‘갑을고시원 ’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갑을고시원에서 살면 살수록 점점 서로가 서로의 인생에 관심 없이 각자 사는 것에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주인공 역시 처음에는 ‘관 ’처럼 느꼈던 공간이 나중에는 저절로 작은 소음도 느끼지 못한 채 생활하 게 되고 익숙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짧지만 강렬한 소설은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담고 있 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일을 하러 나오지만 마땅 히 살 곳을 찾지 못해 향하는 곳들이 고시원이다. ‘고시원 ’이라는 이 름 자체는 고시생들을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 알고 보면 꽤나 많은 일반인들이 고시원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산업화가 가속되고 핵 가족들이 늘어나면서 우리 사회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사회로 변질 되어 간 지 오래이다 . 고시원이라는 공간은 이런 현상들을 꽤나 정확 하게 묘사한다. 작지 않은 공간을 애써 벽으로 나누고 또 나눈 채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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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방을 만들어 자신만의 공간을 누리는 사람들이 살고자 들어온 다. 그들은 서로를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서로 피해를 최소화 하는 편으로 생활하고 있다 . 서로에게 진심을 보여주지 않은 채 선을 긋고 소통을 거부한다. 정말 안타까운 사실은 이런 젊은이들조차 외로움을 느끼고 불안에 떤다는 사실이다 . 일을 찾아 , 공부를 하러 집을 떠난 이들은 자신들 이 처한 현실을 받아들인 채 하루하루 사회와 타인들과 싸우고 있다 는 것이다. 고시원에 사는 이들 중 고시 합격의 단맛을 누리지 못하 는 이들은 과연 을이 아닌 갑으로 살 날이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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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음식에 담긴 속도의 미학 남윤준 Jos hua Nahm 2018년 10월 12일 드디어 한국에 도착했다. 10시간을 넘는 비행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와보고 싶던 한국에 도착했다 . 뭐부터 하지? 어디부터 갈까 ? 설레는 마음을 갖고 한국 땅에 첫 발을 디뎠다. 예약했던 호텔에 도착했다 . 호텔까지 택시를 타고 왔는데 가격이 너 무 저렴해서 놀랐다 . 한국에 도착한 시간은 약 한 시였고 호텔 도착 시간은 약 두 시였으니 한 시간 정도를 달렸는데 가격이 이만 원 정도 밖에 안 나오는 것은 미국에선 꿈도 못 꾸는 가격이다. 짐을 풀고 몸에 긴장이 풀리니 배가 고파졌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 하다 어제 봤던 한국 가이드 책에서 소개하던 백반 집에 가기로 결정 했다. 백반 집은 호텔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나오는 곳으로 여러 가지 반 찬과 다양한 음식을 제공해주는 24 시간 식당이라 읽었다 . 백반집에 도 착하니 사장으로 보이는 분이 큰 목소리로 “어서오세요 !”라고 했다. 새 벽부터 이렇게 식당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에 놀랐지만 한국에 처음 온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당황하지 않은 척했다. 사장님께서 안내해 준 자리로 가서 음식을 고를 수 있는 메뉴판을 보고 ‘된장찌개’ 라고 하는 음식을 시켰다 . 된장찌개는 주문한 뒤 10분 후 나왔다 . 한국의 백반 집은 너무나 놀라운 곳이라 생각한다 . 국 하나만을 시 켰을 뿐인데, 다섯 가지 이상의 반찬과 물을 무료로 제공해 주기 때문 이다. 이렇게 많은 음식을 무료로 제공해주면 무엇이 남지? 라는 생각 을 하며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된장찌개라는 soup도 신기한 음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이드 책에 서 추천하는 음식이라 시켰는데 무슨 구린내가 나는 갈색 국이 나와서 당황했다. 하지만 냄새와 모습과는 상반되게 된장찌개라는 국은 정말 맛이 있었다. 구수하면서도 약간 짠 맛이 나를 사로잡았다 . 밥을 배불리 먹고 나니 피곤해져서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 룸에 들어가자마자 시차에 적응하지 못해 바로 잠에 들었다. 일어나고 나니 밖은 어두워졌고 도시는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 마치 거대한 불꽃 놀이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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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에 취해 가만히 서있다 문득 배가 고픈 느낌이 들었다 . 잠을 자 서 그런지 백반 집에서 먹은 된장찌개는 소화가 빠르게 됐고 , 얼른 저 녁을 먹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을 먹어야할지 몰랐다 . 다시 가이드 책을 꺼내 읽어보니 한국에선 배달 음식을 시켜 먹어 봐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 무엇으로 먹을지 고민하다 점심엔 밥을 먹 었으니 저녁은 고기를 먹기로 결정했다 . 인터넷으로 찾아본 치킨 집 전화번호에 전화 해 오리지널 프라이드 치킨 한 마리를 시켰다 . 15 분 간 씻고 화장실에서 나오니 치킨이 도착했단 전화가 와 있었다. 어떻 게 이렇게 빨리 배달이 올 수가 있는 거지 ? 라는 생각을 하며 빠르게 옷을 입어 치킨을 가지러 로비로 갔었다. 치킨은 빠르게 온 것이랑 달리 완벽하게 익어있었고 튀김 또한 바 삭바삭했다. 평소에 먹던 미국 치킨이랑 맛이 달랐다. 한국 치킨이 내 입맛에 더 맞는 것 같다. 인상적인 하루였다. 10월 16일 2018년 한국에서의 여행은 끝이 났고 난 이제 미국으로 돌아간다 . 짧은 시 간이었지만 한국은 나에게 인상 깊은 느낌을 주었다. 두 가지의 상반 되는 요소는 모두 한국에 존재했다: 빠른 것은 빠르고 , 느린 것은 느린 것. 첫날에 먹은 백반 집 된장찌개에는 여러 가지 반찬과 물을 무료로 제공해 주었다. 집에서 먹는 것처럼 음식을 천천히 , 여유 있게 먹으라 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한국 문화였다. 하지만 반대로, 급할 때는 급 하게, 빠르게 도착하는 배달 음식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 성격 급하고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빠르게 음식을 만들어 배달하는 것은 참 합리적인 문화라 생각한다. 한국은 나에게 여러 가지 문화의 다양한 면을 알려줬고 만약 여유 가 생긴다면 꼭 다시 오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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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에 빠진 나라 이재림 Robi n Lee 2018년 7 월 4 일 내가 처음 캐나다에서 한국에 들어왔을 때, 공항에서 본 한국 여 자들은 정말로 꽤 예뻤다. 이곳 , 저곳을 봐도 예쁜 사람들밖에 없는 것 같았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가는 길에는 정말 높은 건물들이 많 았고, 거리에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걸 확인했다 . 호텔에 도착했을 때, 아무런 도움 없이 방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 이 있었다. 우선 , 말이 통하지 않았다 .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의 도움 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 뒤에서 한국 여자 분이 나한테 오셔서 도와 주겠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분이 나보다 어린 줄만 알았는 데, 얘기하다보니깐 21살인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30대였다. 확실 히 느낀 것은 한국에서는 많은 여자들이 관리를 받아 어려 보인다는 것이다. 게다가 화장을 진짜 잘한다고 느꼈다 . 캐나다에서 지내면서 한국 화장품들이 좋다고 들었는데 확실히 좋은가 보다 . 이것저것 한 국의 문화를 좀 더 느껴보고 싶어서 내일 시내로 나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몸이 지친 상태로 잠이 들었다. 2018년 7 월 5 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대충 씻고 , 호텔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다 . 근 데 많은 한국 여자들은 진짜 부지런한 것 같다 . 사람들이 거의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내려왔다. 어떤 여자들은 머리는 다 안 말렸어도, 화 장은 완벽하게 다 되어 있었다 . 아침을 먹고 나는 호텔방에 올라가서 마저 준비를 하고 , 택시를 불러서 강남에 나가 보기로 했다 . 주말이 라서 그런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 거리를 걷다 보니 여자들이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 처음에는 몰랐지만 , 한 두 명이 아 닌 몇 십 명을 봤기 때문에 의아해졌다 . 게다가 어디를 가든 항상 성 형외과가 보였다 . 계속 한국 여자들을 보다 보니 , 대부분 비슷하게 생긴 것 같았다 . 아직까지는 한국의 미의 기준을 정확히 모르겠다 . 하지만, 성형외과가 많은 것을 봐서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느꼈다 . 거리를 걷다 나도 한번 성형외과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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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봤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성형을 하는지 궁금해 졌기 때문이다. 성형외과로 들어가자마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차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도 접수를 마치고 앉아서 기다 리고 있었는데 성형외과 벽에 걸려있는 사진들을 눈에 들어오기 시작 했다. 정말 하나같이 다 똑같이 생겼다 . 한국의 미의 기준은 턱이 뾰 족하고, 쌍까풀이 있고 , 코도 높아야 되나 보다. 그것을 자기 얼굴에 맞추려고 사람들은 계속 성형을 하나보다. 나도 온 김에 들어가서 의 사 선생님하고 상담해보기로 했다. 한 30 분 정도 상담하고 나왔는데 나도 모르게 그 이야기에 빠져들 것 같았다 . 컴퓨터로 내 자신이 조 금씩 바뀌고 더 예뻐지는 모습을 보면서 확실히 느꼈다 . 한국 사람들 도 이렇게 처음에는 조금씩 시작했다가 자기 자신도 모르게 성형에 빠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자기 자신이 성형을 한 번 할 때마다 바 뀌는 모습을 보면서 만족도도 올라가는 것 같았다 . 그렇게 계속 얼굴 을 고치면 자기도 모르게 중독에 빠지게 되는 거 같다 . 한 부위를 하 고 붓기 빠지면 또 다른 얼굴을 고치고 . 만약에 코 성형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더 높아지기 위해서 , 코 수술만도 두 번, 세 번 다시 하는 사람들도 있는 거 같았다. 심지어 쌍까풀 수술은 요새 너무 많은 사 람들이 해서 그런지 의사선생님은 쌍까풀 수술은 성형이라고 생각하 지도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 이렇게 계속 성형하는 시대가 지속되다 보면 한국 여자들은 자기 자신만의 개성을 잃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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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에 민감한 한국 서대원 Daniel Suh 2018년 12 월 1일 이제 한국 대학에 온 지 1년이 되었다 . 주변에서는 1 년 밖에 안 되었는데도 한국말을 정말 잘한다고 나에게 칭찬해준다 .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말이 많이 늘은 것 같아서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 그러나 한 국말은 또 어찌 생각해보면 배워도 , 배워도 끝이 없을 거란 생각도 든다. 한국 문화는 나이를 너무나도 중요시하고 한국말은 그런 문화 를 그대로 담고 있어서 나에게는 그게 매력 포인트이자 언어를 배우 는 데 있어 힘든 점이 된다. 오늘은 수업이 끝나고 오랜만에 친한 한국 선배를 만났다 . 같이 저녁을 먹으러가자고 하길래 “그래 .”라고 했다 . 왜냐하면 저번에 술 을 같이 마시면서 서로 말을 놓자고 그 선배가 먼저 말한 것이 생각 났기 때문이다. 그 선배가 식당에 자리를 잡아 앉으면서 “춥지 ?”라고 물어서 나는 “아니 , 별로 안 추워 . 형은 춥냐 ?”라고 했더니 형한테 누가 “그러냐”라고 하냐면서 막 뭐라고 했다. 그 표현은 나이가 나보 다 어린 사람이나 친한 친구들한테나 쓰는 말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형한테 “형 추워 ?”는 되는데 “형 춥냐?”는 왜 안 된다는 것인가. 또 , 저번에는 그 선배와 술을 마 실 때 맥주를 따라주길래 컵을 들어서 받았더니 옆의 선배가 말하기 를 선배한테 누가 한 손으로 잔을 받냐고 두 손으로 받아야하는 거고 했다. 그리고 그 벌로 술을 원샷하게 해서 당황했었는데 , 오늘은 또 말의 표현 때문에 실수를 한 셈이 되었다.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나이를 중요하게 생각할까 ? 내가 처음에 왔을 때에도 나이를 소개할 때 옆의 학생이 99 년생이라고 하여 나도 99년생이라고 했더니 그 학생이 자기는 99년생인데 빠른 99라고 하 여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몇 개월이나 지나서야 알게 되었고 쌍둥이 인 경우에도 태어난 시간을 기준으로 형, 동생을 나누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한국에서는 나이가 사회적인 위치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 돈, 학벌 , 사회적 지위와 같은 권력 외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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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 많다는 것만으로도 권력을 인정받는 것 같다 . 그리고 나이에 따 라 소속감을 갖는 문화도 있는 것이 느껴진다 . 동기 , 동창의 개념만 이 아니라 20 대, 30 대 같은 나이로 연결된 집단에 자신을 소속시키면 서 그 집단 안에서 비슷한 점을 찾고 나누려는 것 같다. 나는 처음에는 한국 문화가 나이를 중요하게 따지는 것에 대해서 정말 불필요한 것이고 없어져야 할 구식 문화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한국에 살면서 내게도 점점 나이에 따라 선후배가 생기고 선배가 권 력만 갖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배는 후배를 챙기고 조언도 해주고 가이드를 해주며, 또 후배는 그런 선배에게 존경을 표 시하고 선배가 챙겨주는 것에 대해 감사함과 편안함을 느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한국에 와서 형들이 너무 좋고 나를 챙겨주고 걱 정해주는 마음이 너무 감사하고 후배들도 나를 형이라고 부르고 따르 면서 의지하니 내가 마치 대단한 존재가 된 것같이 기분이 좋고 그 후배에 대해 잘 해줘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 이는 내가 미국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묘한 감정이다. 이러한 문화가 언어에도 복잡 하게 반영이 되어있는 것 같고 그런 언어의 작은 차이들을 공부해야 하는 것이 힘이 들기도 하지만 이 맛에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 문화 의 매력에 더 빠지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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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가 없는 사람들 김주성 Justin Kim 2018년, 세계 방방곡곡 한국의 열풍이 불고 있다 . 대한민국의 케 이팝, 음식, IT 계열 유명회사 등이 이름을 널리 떨치며 한국이라는 아시아의 작은 반도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고 있다 . 한국이 이렇게 유명해진만큼 외국인들이 한국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이유는 없다. 통합 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국인들이 생각하는 한국인은 겨울철 일개미들과 다를 바 없다 . 주로 한국에서의 소식들을 외국인들에게 전해주는 뉴스사이트 ‘ 허프포스트’의 통계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 2013년 2~3 월 국제무역연구원이 만 15 세 이상 국내 및 국외 거주 외국인 1,16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 한국인의 장점 3 가지는 근면성실함 21.5%, 친절함 16.7%, 애국심 13.3%였다 . 이러 한 장점들을 얼핏 보면 “어 ? 좋은 말만 했는데 왜 일개미들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하는 듯 얘기하지 ?”라고 할 수 있다 . 그 이유는 외국 인들이 뽑은 단점 3 가지에서 드러난다. 외국인들이 뽑은 한국인들의 단점 3 가지는 여유가 없다가 15.6%, 자존심이 지나치게 강하다 14.3%, 폐쇄적이다 12.3%였다 . 장점이나 단점이나 한국인들의 특성 지나친 성실함이 드러난다 . 실제로도 유럽 , 미국과 같은 선진국들과 평균 근무시간과 최저시급을 비교해보면 근무시간은 월등히 높고 , 최 저시급은 비교적 낮다 .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동료들 간의 경쟁심이 개개인의 기량은 높이지만 , 직장에서의 승진은 극소수만 가 능하기 때문에 상향평준화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쯤 되어서 묻고 싶다 . 대부분의 직장인들이나 알바생들이 좋아 서 일을 할까? 물론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뤄 자신만의 신념을 갖게 된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빨리 일 끝내고 집 에 가고 싶은 심정일거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근무시간이 늘어나면 개개인의 행복을 점차 앗아간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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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면성실함은 당연하게 듣기 좋은 칭찬임이 틀림없다 . 하지만 그 장점이 언제든 단점으로 변질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 을 깨달을 때 그것은 더 이상 분명한 장점이 아니다. 따라서 필자는 한국인들이 이 장점이자 단점을 지우지 말고 정도를 지키며 단점으로 서의 가능성을 없애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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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효율성, 득인가, 실인가? 강민규 Simon Kang

지난 8월, 저는 나사렛국제병원 국제협력팀의 인턴으로 외국인 환자들을 위해 통역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 제 업무는 외국인 환자 들이 원활하게 진료를 마치고 이후 기타 서비스로 환자가 편안하게 병원을 다닐 수 있도록 같이 다니며 통역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병원 에 다니던 여드레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 다. 환자분들이 우리나라에 온 이유는 다양했고 병원에 온 이유들 역 시 다양했습니다. 하지만 , 공통적으로 외국인 환자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공통적으로 말한 것은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효율적이다’ 라 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항상 ‘효율’ 을 중요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 특화된 직업에만 몰두하는 장인 같은 사람들은 예외지만, 이들은 극 소수라 열외로 두고 생각해 봅시다 . 이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 은 주어진 시스템 내에서 가장 적은 노력 , 시간 , 돈으로 가장 많은 일을 해내려는 기량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터넷 방송인들은 아주 간결하거나, 공식을 따르듯 정 해진 레파토리로 방송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적지 않은 시청자를 끌어 모으니 굳이 나쁜 방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 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무엇가를 사는 장면에서 , 더 가깝게는 우리가 시장에서 물건을 구매할 때를 생각해 봅시다. 역시 가장 싼 가격으로 가장 많은 양을 얻으려는 흥정을 즐겨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효율 ’이 그렇게 좋게만 보기에는 힘들다는 생각도 듭 니다. 물론 이것이 우리나라의 문화이기는 하지만 , 한국인으로서, 그 리고 외국인으로서, 이 점을 조금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위에 말한 시장의 예나 회사 등의 산업적인 목적을 가진 것들은 어쩔 수 없이 효율을 따지는 것이 옳을 수도 있습니다 . 그러나 정보화 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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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서면서 인터넷 방송 같은 창의적인 직업들이 형성되는 시기에서 는 하나의 공식만을 따르는 것이 옳지만은 않다고 봅니다. 한국인들이 효율을 따지는 것은 생활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런 행동들은 한국인들만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 모든 곳에서 효율만을 따진다면 결코 지속적인 발 전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 효율도 ‘효율적으로 ’ 이용하는 지혜가 필요 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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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결의 한국인 정민기 Mingi Jeong 1950년 세계는 보다 역동적이고 새로운 삶을 추구하기 시작했지 만, 광복 이후 한국은 국민 평균 국민 소득은 45 달러에 그쳤다. 하지 만 이내, 한국은 국민 평균 소득 2만 달러라는 엄청난 경제 성장을 단기간에 해내면서 ‘한강의 기적’ 신화를 만들어냈다 . 하지만 이렇게 단기간에 큰 변화를 만들어 낸 경우는 그때만이 아니었다. 1998년 한국은 외환 금융 위기로 IMF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고 , 잘나가던 대기업조차 금융을 위기를 피할 수 없어서 , 많은 회사들이 파산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은 평정심을 잃지 않았고 , 대 한민국 국민들은 외환 금융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 금 모으기 운동 ’ 을 실천하였다. 난 이 당시 1살이 조금 넘은 나이여서 직접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 에 참여할 수 없었지만 , 나대신 우리 부모님은 내가 돌 때 받은 돌반 지로 금 모으기 운동에 참여하셨다고 하셨다 .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 게 금을 기부하는 것이 어려웠을 것인데 부모님을 포함해서 자신이 갖고 있던 금을 나라의 외환 금융위기 모면을 위해 쉽사리 기부하신 분들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 같다 . 그리고 이때, 대한민국은 국민들로부터 단기간 내에 30억 달러에서 100 억 달러 정도 되는 외환 달러의 금을 모을 수 있게 되었고 , 대한민국의 신용도는 단기간에 증가함과 더불어 IMF에서 벗어 날 수 있게 되었 다. 1950년, 국민 평균 소득의 급격한 증가와 1998년 , IMF 금 모으기 운동, 이 두 가지 중요한 예만 봐도 한국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 는지 확실히 알 수 있게 된다 . 한국의 정체성, 그것은 바로 애절함과 단결성인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서로 간의 단결과 단합이 뛰어 났 기 때문에 한국은 단기간에 큰 성과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 만, 그 당시 애절함이 없었더라면 , 한국인의 단결성이 이루어진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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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모순이었을 것이다. 그때 그 시대 , 대한민국 국민들은 애절함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한국인들의 단결성을 만들어 냈고 , 한국인들 의 단결성은 단기간 내에 전 세계가 놀랄 만한 큰 성과를 거두게 만 들었다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이 이러한 크나큰 성과를 단기간 내에 보여 준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 보다 중요한 것은 언젠가 이러한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날지 모르기에 , 앞으로 한국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한국인으로서의 단결심이 나태해지지 않게 보존하는 것과 그 당시 그 애절함은 기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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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심의 한국인 윤지민 Jamie Yoon 한국은 예로부터 만세의 민족이라 불리면서 진한 의리와 우정 , 모 국의 사랑으로 다져진 나라이다. 수많은 위인의 피 , 땀 , 눈물이 지금 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지만, 그 위인들을 굳건히 서 있게 한 것은 바 로 ‘밥심’ 이다. 하지만 이 ‘밥 ’조차도 국내 수많은 지역에 따라 맛과 모양 모두 다르다. 한국은 지역별로 특유의 향과 모양을 자랑하는 음식이 다양하다. 지리적으로 동, 서, 남, 삼면이 다 바다로 되어 있어서 북쪽으로는 북 방문화가 전래하였으며 , 남쪽으로는 해양 문화가 발달하였다 . 이러한 여건으로 인해, 북방 음식의 유입과 남방계 식품과 조리법이 유입되 었다. 이에 더해 지역적 날씨 , 지형에 따라 다르게 발달해왔다 . 한강 북쪽 지역에서는 팥 , 콩 , 좁쌀 등을 쌀밥에 섞어 먹었고 , 한강 남쪽 지역에서는 밥 이외에 죽 , 면, 떡 , 부침개, 만두 , 그리고 묵 등을 먹 었다. 나에게 있어서는 이 다양한 음식 중 어릴 적 먹었던 강원도 , 서울, 그리고 경기도의 음식이 가장 인상 깊었다 . 강원도는 동해와 접해있고 태백산맥을 이어주는 산과 골짜기에 있 어서 옥수수, 감자 , 메밀 , 등 잡곡 , 산채 , 그리고 해산물이 풍부하다 . 이에 이런 특이한 재료를 주식으로 삼아 향토 별미음식이 되었다 . 강 원도에서는 육류를 주로 쓰지 않아 담백한 음식이 비교적 많다 . 또 한, 해안 지방에서 나는 생태 , 오징어 , 미역 등의 해산물을 가공하여 황태, 건오징어, 건미역 , 명란젓 등으로 만들어 먹는데 육류 대신 조 개나 멸치로 향을 낸다 . 음식은 꽤 소박한 편이며 주식을 쌀과 감자 로 지지는 조리법과 물 좋은 생선으로 양념을 한다. 또한 고추장으로 간을 내지만 크게 맵거나 짜지 않은 맛이다 . 논농사보단 밭농사가 활 성화된 강원도는 표고버섯 덮밥 , 옥수수죽 , 수제비 , 도토리묵 , 감자 부침, 오징어 회 , 녹두 부침 등의 요리가 유명하다 . 이 음식들은 소박 하지만 먹음직스럽게 나온다. 대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는 이 곳의 음식은 한국인 특유의 정을 마음속으로부터 느껴지게끔 하였다. 서울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직접 생산되는 산물이 별로 없다. 하지만 한국의 수도인 만큼 전국 각지에서 생산된 여러 가지의 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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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모여 있어서 음식은 대체로 다양하다. 서울이 한양이었을 때부터 왕족과 양반 계급이 많이 살던 곳인지라 궁중음식의 영향을 많이 받 아 고급스럽고 화려한 요리들이 특징이다 . 이 화려한 음식들은 맛에 더해 그 의례와 과정을 존중하는 관습이 포함되어 있다 . 음식은 곱게 다져진 양념류를 써서 짜지도 맵지도 않은 적당한 맛을 지니고 있으 며 양은 적게, 가짓수는 많이 하여 모양과 멋을 중요시한다 . 아무래 도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겐 익숙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올라온 친구들을 만날 때면 언제나 음식을 먹는 습관과 맛에서부터 큰 차이 를 느낀다. 나의 친구들은 언제나 소금과 고추장을 찾기에 급급했고 , 심심한 양에 “역시 서울 사람들의 정이란 ...” 등의 이야기를 우스갯소 리처럼 하였다. 서울 다음으로 음식이 호화롭고 다양한 지역이 경기도이다. 바다 와 접해있는 서쪽은 해산물이 풍부하고 산이 많은 동쪽은 밭농사와 벼농사가 발달해있다. 경기도는 농산물과 산채 등 여러 가지의 재료 가 고루 생산되는 지역이다 . 개성은 고려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개성 경단, 개성 약과 , 홍해삼 , 꿩김치, 양주 메밀국수 , 수수 도가니 등이 유명하다. 서울 음식과 비슷하게 양념을 많이 쓰지 않아 간이 적당하 며 종류는 다양하되 양은 소박하다 . 주식으로는 오곡밥과 찰밥을 먹 고, 맑은 국물보다는 걸쭉하고 구수한 국수를 주로 먹었다 . 근대에 이르러서는 서구의 음식문화까지 도입되어, 한국 음식문화 의 다양성에 풍미를 더하였다 . 흔히 말하는 패스트푸드 (fast food)는 나조차도 먹기 쉽고 자극적인 맛에 손이 자주 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이 전통적인 음식들은 한국이 걸어왔던 역사를 나타내고 지역별 사람들의 특성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향의 향기도 음식에서 어우러진 것이며 그 음식들로 본가에 대한 애착도 나날이 강해진다 . 이럴수록 우리나라의 맛의 매력을 더 느껴 야 하며 외국에도 이 전통을 자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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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합의 양면성 박서정 Seoj ung Park 한국인들은 대체적으로 어디를 가나 무리를 지어서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미국에는 코리안 타운 , 즉 한국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존재하고, 페이스북에는 한국인 유학생을 위한 페이지가 존재한다 . 학교에서는 학부모님들이 모여서 아이들을 위한 좋은 과외이나 컨설 팅 학원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다음 카페에서 는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여러 가지 팁을 주는 모습을 통해 한국인들의 단결성을 볼 수 있다 . APIS에서도 올해 졸업생들이 10학년일 때 그 학생들의 단결성을 볼 수 있었다 . 화학 같은 어려운 과목을 들을 때 같이 그룹으로 모여서 서로 도와주고 가르쳐 주는 모 습을 보였다. 또한 , IMF 도중에 , 한국인들이 금 모으기 운동을 시작 했을 때, 국민들의 단합을 통해 대한민국이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 게 힘을 모았다. 또한 최근에 박근혜 대통령이 부정한 행위를 하였을 때, 같은 마음으로 광화문에 모여 시위를 하고 서로의 말과 의견을 모아 대통령을 탄핵시켰다 . 이러한 점들이 통합적으로 한국인들을 서 로를 돕고 같이 위기를 헤쳐 나가는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만든다 . 우 리는 한 민족이라는 사고방식은 서로를 남이 아닌 같은 민족으로서 가족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 또한 , 같이 힘을 합칠수록 원하는 공통의 목표를 짧은 시간 안에 효율적이게 움직여서 달성할 수 있다 는 것을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단합성은 모든 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 단결성 때문에 한국 문화에서는 외국인들을 배척하는 습성이 있다. 한국인들은 서로를 믿고 단합성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 그만큼 외부인 들을 피하고, 외부인들이 끼지 못하는 분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 특히 한국어라는 고유의 언어가 있어서 , 많은 한국인들은 다른 언어를 배 우기 어려워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특히 한국 친구 들을 보면, 영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 하고, 그저 교육 과정에 들어가 있어서 배우는 애들도 많다 . 지하철에서 외국인 옆 자 리는 피하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눈초리를 주는 사람들도 공공장소 에서 종종 볼 수 있다 . 폐쇄적이고 외국인한테 불친절하다는 것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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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에 가진 이미지이기도 하다. 또한 , 한국인들 도 다른 나라 외국인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중국인은 시끄럽 다, 흑인들은 냄새 난다 등이 그것이다 . 이러한 편견들은 한국인들이 외국인들을 한국에 받아들이는 태도에 영향을 준다 . 물론 이러한 점 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존재한다. 하지만 유독 한국이 외국인 들에게 개방되어 있지 않는 나라라는 점과 , 외국인들은 이해할 수 없 는 언어를 쓴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어쩌면 더 조심해야 되는 입장 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부정적인 한국인의 정체성이 , 외국인들을 배 척하려는 습성이 굳혀진다면, 한국의 미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칠 것 같다. 이런 부정적인 부분들은 한국인 스스로가 고치고 다른 정체성 으로의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의 정체성에는 단결성이 있지만, 그 단결성으로 의해 누 군가는 배척당하고 무리에 끼지 못한다는 것을 자각해야 된다 . 외국 인들을 빼놓고 한국인들만 단합한다는 것은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긍 정적인 정체성을 잘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단결성을 이용해 서 외국인들까지 포용한다면 한국의 미래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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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恨)의 민족 김도현 Henry Kim 한국인은 ‘한(恨)’이 맺힌 사람이다 . 수천 년간 외세의 침략을 당하 면서 한국전쟁으로 인한 분단의 아픔까지 겪어야 했다 . 하지만 이 한 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는 부지런히 일해서 뛰어난 경제성장의 결실을 맺었다. 물론 이 성장의 부작용이 오늘 한국인의 가장 큰 단점이 되 기도 했다. 우리는 정답이 하나라는 오해를 가지고 살고 있다. 대한민국 학생들은 시험을 잘 봐서 국제적으로 똑똑하다고 유명하 다. 하지만 호학( 好學), 창의성과 호기심을 강조하는 서양 교육과 달 리 대한민국 교육은 OMR 카드를 잘 채우는 것을 강조한다. 나는 AP 세계사를 듣고 있는 학생으로서 역사를 다양하게 해석하는 것에 중점 을 두고 공부를 한다 . 하지만 한국 고등학교 학생들은 역사를 배울 때 한 가지 해석만이 정답이라는 것을 외우고 계속 외운다. 수학 문제 풀이 과정보다는 정답을, 영어 문장의 내용보다 문법을 강조하는 한국 교과 과정은 외국인학교를 다니는 나도 생소하게 느껴 지는 개념들도 많았다 . 한국 학교 학생들과 영어로 대화해보면 그 학 생들이 서툴게 느껴지는 이유를 알 수 있는데 그들은 영어 문장 구조 를 생각하다가 유창성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영어권 나라들은 인 사를 할 때 “How are you?”(잘 지내시나요 ?)를 물어본다 . 이 문장 을 들은 한국 사람들은 주로 “I’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대답한다. 이 대답은 미국 사람들도 자주 사용하는 문장이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이 질문이 수사적인 질문이 된다 . 그래서 사람들 은 십중팔구 변함없이 같은 대답을 추구한다. 다른 대답은 틀린 대답 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 오답 기피증 ’은 한국학교 학생들만이 가지고 있는 현상이 아니다. 외국인 APIS 선생님들은 우리가 소심하다는 표현을 많이 하 신다. 대부분 정답이 아닌 것을 말할까봐 발표를 꺼려하는 학생들이 다. 이 현상은 APIS뿐만 아니라 한국학생들이 주로 겪고 있는 현상 이다. 우리는 오답을 피하기 위해 정답을 말할 기회를 버린다 . 나도 내 생각이 수업에서 하고 있는 토론에 관련성이 조금 떨어질까봐 , 나 와 동의하는 사람이 없을까봐 손을 드는 것을 주춤한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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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화학 수업 당시에 학생들이 다 문제를 풀 때 계산기에 알맞은 숫 자를 넣어서 정답이 나왔을 때도 나는 이 숫자가 정답이라고 확실하 지 못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정답을 말해달라고 요청하실 때에도 나는 조용히 정답이 나온 계산기만 계속 두들긴 적도 많다. 많은 한국 학생들은 미국 명문대에 진출을 목표를 두고 고등학교 를 다닌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합격 통지서를 받은 학생들은 기쁜 마음에 입학한다. 하지만 상위권 고등학생이 대학교에서 학업으로 성 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수업마다 학생 수가 줄어 들면서 강의보다는 발표와 토론 위주의 수업들로 이루어진다 . AP 세 계사 선생님께서 ‘대학 강의 수업에서 성공 비법은 공부만 열심히 하 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발표 수업에서는 전문분야가 아니더라도 자 신 있게 발표하는 것이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다 ’라고 하셨다 . 나는 이 말을 듣고 내가 왜 정답만을 추구했는지 돌이켜봤다 . 나는 다양한 생각을 환영하는 외국인학교 교과과정에서 내 주장을 뚜렷하게 내세 워야 최대한 많이 배울 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인은 이견에 ‘한( 恨)’이 맺힌 사람이다. 인류 역사 속 가장 큰 발전들은 현상(現狀) 의 불편함에 대한 의문을 가져서 이루어졌다 . 갈 릴레오는 교회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태양 중심설을 주장했다. 과학자 들은 그의 주장을 생각하면서 나중에 그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사회적 민주주의 ’ 를 시행해야 한다 .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면서 주견을 망설임 없이 발표해야 좋은 생각들이 많이 나오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 동 방예의지국에서 기성세대를 계속 존중해야 하지만 답정너 (답을 정했 는데 너는 대답만 하라) 질문들만 답하면 우리 사회의 진전이 불분명 하다. 이제는 이견에 대한 이 ‘한 ’도 풀어야 할 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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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충( 忠)과 정( 情) 구동수 Daniel Koo 한국인의 특성을 알기 위해서는 한국의 지리적 특성을 알아야 된 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리적 특성에 따라 각 나라의 으뜸가는 가 치나 이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을 보자 . 중국은 하나 의 거대한 대륙 국가고 일본은 나라의 사면이 바다인 섬나라이다 . 중 국의 경우, 대륙의 특성상 여러 집단이 각지에서 자신의 세력을 넓히 기 위해 혹은 외부의 침략 때문에 끊임없이 전쟁에 휘말렸다. 이런 숱한 전쟁을 오랜 기간 겪으면서 중국 사람들은 하나 (一)라는 가치관 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이는 나라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어야 이러한 전쟁들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가 유지된다는 믿음에서 온 것이다. 그 래서 중국은 진시황 시절부터 글자와 제도 등을 항상 통일시키는 데 에 노력하였으며 오늘날까지도 ‘하나의 중국 ’을 기본적인 이념으로 삼고 있다. 하나( 一)에는 혼자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 역사적으로 많 은 전란을 겪으면서 중국 사람들은 세상에 믿을 사람은 자신과 자신 의 가족뿐이라는 믿음이 생겨 남의 일에 비교적 무관심하다 . 중국에 서 진행한 실험 중에 길에서 아이가 납치당할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 을 관찰한 것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무관심했다 . 자신과 가족만을 중요시하는 중국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침략당할 일이 비교적 적었 다. 이러한 지형에서 가장 위협적인 것은 외부의 적이 보다는 내부의 분열과 다툼이다. 그래서 일본은 화( 和), 즉 서로 다투지 않고 평화롭 게 지낸다는 가치를 중요시한다 . 그래서 일본사람들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비교적 개인의 영역을 중요시하며 이를 침범하지 않으려고 노력 한다. 이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다테마에 (建前 겉마음 ) 와 혼네(本音 본심 )다 . 다테마에 (建前)와 혼네 (本音)는 자신의 본심을 숨기고 상대방에게 에둘러서 얘기하는 것이다 . 즉 , 일본은 화 (和) 를 지키기 위해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상호 갈등의 불씨가 될 만한 행 동을 최대한 피하려 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국가다 . 우선 반도는 대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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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 그러기 때문에 한국은 역사적으로 임진왜란과 여몽전쟁 같이 대륙에 진출하려는 섬나라나 섬으로 진출 하는 대륙의 침략을 많이 받았다 . 이러한 침략에서부터 민족에 정체 성을 지키기 위해 한국 사람들은 이민족에게 배타적인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저출산 문제가 논란이 되면 이민을 받아들 여 해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으로 보는 반면 한국에서는 저출산 문 제가 심각해져도 이민을 받자는 얘기는 정치권과 사회에서 거의 나오 지 않으며 그럴 바에는 인구 감소가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타민족 에게 매우 배타적이다. 한국 사람들은 중국 사람의 하나( 一)나 일본의 화( 和)랑은 또 다른 가치관인 충( 忠)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 충 (忠)의 본래 의미는 ‘모두에 게 올바르고 공평하다 ’이다.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뜻은 내가 정한 가 치관이나 이념보다는 사회에서 통용되고 정해놓은 가치관 , 태도 , 방 법 등 전통성을 우선시한다는 뜻이며 한번 정한 가치관에 대해서는 바꾸는 데에 매우 비교적 소극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 이러한 가치관 은 이분법적 사고가 퍼지는 데에 일조했으며, 쉽게 편견과 아집에 사 로잡히는 한국인의 모습에도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일본 문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념은 한국이 일본으 로부터 광복 후 생긴 특수한 역사적 정서로 인해 생긴 것이다 . 이러 한 정서에 반하는 행동은 한국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다 . 이로 인해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을 수입해 올 때에는 왜색은 철저히 배제된 채 들여온다. 모든 이름은 한국식으로 바꾸며 지명의 경우 도쿄는 서울 , 오사카는 부산, 야마카타는 강원도로 , 다른 자잘한 것들, 예를 들어 가라테는 태권도, 기모노는 한복으로 모든 면에서 일본스러움은 전혀 보이지 않도록 현지화 시킨 후에야 들여오게 된다 . 왜색이 너무 심해 현지화가 불가능할 경우 아예 들여올 생각조차 하지를 않는다 . 그에 비해 미국 디즈니 작품을 들여올 때에는 어떠한 현지화도 없이 이름 부터 영어식 이름을 음차하며 뉴욕이면 뉴욕 , 캘리포니아면 캘리포니 아 등 지명도 그대로 쓴다. 모두가 공평해야 한다는 생각은 더 나아가 주위 사람이 가진 것을 나도 가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무서운 노력을 기울이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 또한 이러한 특성은 원형과 정통성을 고집스럽 게 중요시하여 어떠한 개조와 변형도 인정하지 않는다 . 중국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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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각각 1964 년과 1949 년에 한자를 신자체와 간체자로 간소화 시킨 반면, 한국은 여전히 전통 한자를 쓴다는 점에서 이 보수성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대학 입시 혹은 고등학교 입시에서도 수능 혹은 시험 등을 봐서 대학을 가는 것을 정통으로 여기며 수시나 특례, 혹은 기 부입학에 경우, 대중들이 아니꼽게 보는 경우가 많다 . 정치에서도 충 (忠)과 정통성을 중요시하여 당적을 자주 바꾸거나 말을 바꾼 정치인 들은 질타를 받는다. 한국 사람들을 정의할 수 있는 또 다른 단어는 바로 정(情) 이다 . 한국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이민족의 침략에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 해 공동체를 구성하였으며 현대에 와서도 공동체 없이 존재하기는 매 우 힘든 사회이다 . 정 (情)이란 , 이런 공동체 안에서 같이 공유하는 부 분이다. 남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꺼리는 일본과는 달리 한국 사람 들은 서로의 영역 일부를 침범하는 것을 매우 당연하게 여긴다. 공동 체 내의 사람들에게 어떤 필요가 있을 때는 서로를 도와주려고 애쓴 다. 이러한 공동체들의 특징은 자신의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서운 단결력을 보여주지만 한편으로는 집단이기주의와 ‘나만 아니 면 돼’라는 생각을 갖게 하기 쉽다는 것이다 . 또한 이런 정 (情)문화는 오늘날 와서는 학연 , 지연 등으로 발전해 이러한 ‘혜택 ’을 받지 못하 는 이들을 간접적으로 차별하게 하며, 이러한 정 (情)이 일방적일 경우 서로가 불편해지는 일도 많이 생긴다 . 현대에 들어서 자유주의 , 개인 주의와 같은 현대적인 가치관이 점점 발전하고 정착하면서 이러한 정 (情)문화를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났다. 한국인의 특성에서는 유교에 관한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 조선 시대에 들어서 유교를 나라의 국가 통치의 기치로 내세우면서 유교의 문화와 의례가 한국인에게 녹아들어 현대 한국에서도 그 영향이 많이 보인다. 현대에 들어 많은 한국인이 입으로는 유교와 유교의 잔재를 비판하지만 정작 이러한 사람들을 보면 이들도 여전히 유교적 관습과 규범이 몸에 배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나이가 많은 사람이나 직급 이 높은 사람에게 깍듯이 대한다 . 위에 있는 사람들은 아랫사람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관념은 여전히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며 자신도 그 자리에 올라가면 그러한 혜택들을 당연시하며 누린다. 그리고 모 든 일에서는 명분을 중요시하여 아무리 결과가 좋더라도 명분이 없으 면 비난을 하는 등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유교적 관습이 많이 남아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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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한국인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지향점은 상식과 원리원칙 , 그리고 시스템이 좀 더 잘 지켜지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식 과 원리원칙, 그리고 시스템이 잘 지켜지기 위해선 서로 감싸주는 것 을 정(情)으로 착각해 부정부패와 같은 문제까지 감싸주는 일이 있어 서는 안 된다. 이러한 시스템이 잘 지켜지지 않으면 조직과 사회의 기강이 무너지고 서로 간의 신뢰를 잃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방 해가 된다. 과거에는 발전을 핑계로 이러한 것을 무시하는 것이 인정 되었으나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점이 더욱더 잘 지켜져야 한다. 한국인이 서로 간에 과도한 경쟁심에 쏟는 시간과 노력도 또한 앞 으로는 상호 간의 협력을 하는 데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에게 있어서 교육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중 요한 교육이 과도한 경쟁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 빌 게이츠가 한국 에서 태어났으면 컴퓨터나 팔고 있을 거라는 말이 있듯이 한국인에게 교육을 다양한 경험으로 꿈과 희망을 키우는 터가 아닌 오직 입시와 경쟁의 문이다. 특히 앞으로는 한 명의 뛰어난 사람보다 팀워크와 커 뮤니케이션이 잘되는 사람이 더 필요해질 전망이니 , 입시 위주의 교 육사고방식에서 좀 더 다양한 길을 제공해주는 사회를 만들었으면 좋 겠다. 또한 이 정( 情)으로 뭉친 공동체는 자신이 속한 집단 외에는 적대 시하는 경향이 있다 . 앞으로는 이 정 (情)을 폐쇄적인 공동체 안에서만 나눌 것이 아니라 모두와 함께 나누는 열린 공동체로 나아가야 된다. 그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던 폐쇄성은 우리나라에서 여러 갈등을 일으 켰으며 앞으로 한국의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미국 같은 나 라의 인종차별은 비난하면서 정작 우리나라 내의 외국인 노동자나 조 선족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거나, 장애인 학교를 짓는 것에 대 해서는 반대하는 사람이 없지만 정작 그것이 자신의 공동체 내에서 지어질 경우 결사반대를 하는 등의 점에서 그 모습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앞으로 열린 사고와 융통성 있는 생각으로 세계를 다시 한 번 놀 라게 하는 한국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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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심 육개장 사발면 86g 윤수빈 Joyce Yoon 수도꼭지를 연다. 나는 휴대폰을 애타게 쳐다보며 너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 너 는 연락이 없었다 . 어쩌다 이렇게 연락이 없게 된 걸까 . 대화를 이어 나갈 줄 모르는 너와 대화를 시작할 줄 모르는 나 사이의 침묵의 거 리가 길어진다. 해가 조금 기울고 휴대폰의 조도 센서가 화면 밝기를 높인다. 서로의 마음의 행방이 보이지 않는 , 이럴 땐 GPS도 별 소용 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가정으로부터 , 사회로부터, 너로부터 방임에 길들여져 왔기에 차라리 체념하는 편이 익숙하다. 주전자에 물을 받는다. 방에는 글자가 떠다니고 있다. 수도꼭지를 닫고 물을 받은 주전자를 가스레인지에 올린다. 잉크로 된 수많은 문자가 공중에 두둥실 떠있다. 지면에 가두지 못한 글자들은 망령이 되어 이 방에 묶여있다 . 편지는 이따금씩 너에 게 전해졌고 너의 서랍에는 지금쯤 종이가 잔뜩 쌓였겠지 . 그러나 가 장 중요한 말들은 해독 불가능한 상태로 나의 방에 붙잡혀 있고 나는 네게서 답장을 받은 적이 없다. 편지를 쓸 줄 아는 인구는 점점 줄어 만 간다. 마음의 가치는 내려갔고 너의 비가시적인 진심은 내게 전 해지지 않겠지. 네 몫의 잉크는 네 방을 떠돌겠지 . 밸브를 돌리면 탁탁탁 , 불꽃이 올라온다 . 주전자에 뚜껑을 덮는다. 결국 흉내 내려고 하는 게 고작이었을지도 모른다. 컵라면 뚜껑을 반 뜯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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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좋다는 음식을 찾아먹듯이 , 유사 과학처럼, 영혼의 비어있는 반쪽을 채울 수 있다는 미신에 이끌려서 여기까지 왔다는 사람들 , 그 중 한 명, 그 중 두 명이다 . 마주앉는 방법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채 어깨를 기대고 시선을 피해왔다 . 심장의 생김새도 모르면서 수많은 하트를 그려왔다 . 평면의 하트를 받고 , 평면의 하트로 답장했다. 스프를 뜯고 전부 뿌린다. 타인의 몸을 만지는 방법을 아무도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선까지 물을 붓는다 . 컵라면 뚜껑을 닫고 젓가락을 올린다 . 깜빡 졸고 나서 눈을 떴을 때 새우잠을 자고 있었던 너는 TV를 보고 있었다. 나는 이불을 덮고 너의 곁에 파고들어 가족을 흉내 냈 다. 신촌의 해가 저물었다. 3 분. 컵라면 뚜껑을 완전히 뜯는다 . 말랑해진 라면을 젓가락으로 휘휘 휘젓고 후후 불어서 입으로 가 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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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끝은 아득한 어둠 권준혁 Leo Kwon 이제 다 질렸다 .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충혈되고 피곤한 눈을 떨 리는 손으로 비비며 , 컴퓨터 앞 의자에서 ‘끽 ’ 하는 소리와 함께 무거 운 몸을 일으켜 멍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 컴퓨터에서 흘러나오 는 푸르스름한 빛이 방안의 어두움을 조금은 없앴다 . 방의 형태가 보 이는 게 싫어 컴퓨터의 전원을 발가락 끝으로 신경질을 내며 눌러 껐 다. 기계음과 함께 빛이 없어지자 , 포근한 어둠이 방을 이불처럼 덮 었다. 아늑한 느낌이 좋았다. 아무 생각과 미동도 없이 멍하니 그 자 리에서 몇 초간 서 있었다 . 바깥 세상에 질려 방으로 후퇴하고 , 방 밖이 보이는 것 자체가 버거워 , 두꺼운 커튼으로 창문을 가린지는 얼 마나 됐을까...언제부턴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 아, 담배가 땡긴다 . 흐린 눈으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담배를 어디다 놨더라 . 아 , 빨리 피고 싶다. 저기 컴퓨터 옆에 놓여 있는 게 얼핏 보여 , 손을 그쪽으 로 뻗어 보았다. 가느다란 팔뚝이 거미같이 얇고 긴 손가락을 이어주 고 있었다. 손이 떨렸다 . 묘한 진동이다 . 담배를 한 대 피면 괜찮아 질 것 같기도 하다. 한 손으로는 담뱃갑과 싸구려 라이터를 쥐고 , 다른 손으로는 커튼 을 잡았다. 심호흡을 한 번 했다. 밖은 왠지 아침일 것 같았다 . 아침 이면 어떡하지. 아, 햇볕은 좀 버거운데 . 이런 생각을 하며 커튼을 옆 으로 살짝 걷었다 . 밖은 밤이었다 . 이제 창문을 열려고 유리창에 손 을 댔다. 왠지 많이 차가웠다 . 유리가 이렇게 차가운 느낌이었던가 . 창문을 옆으로 밀어 열어보니, 밖의 칼같이 차가운 공기가 둔해졌 던 나의 몸을 덮쳤다 . 얇은 셔츠로 가려지지 않았던 모든 살의 면에 닭살이 돋는 것 같았다 . 조금은 기운을 차려 밖을 보니 , 저 밑에 보 이는 조용한 주차장에 새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 벌써 겨울이었다 . 이 방에 들어왔을 때는 , 밖은 분명히 해가 쨍쨍하고 더웠던 기억이 났다.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있었던 것인가 . 마치 차가운 공기가 머릿속에 생기를 불어넣은 듯, 많은 생각들이 나기 시작했다. 담뱃갑 에서 얇디얇은 담배 한 대를 꺼내어 , 능숙한 손놀림으로 입술 사이에 잡았다. 엄지에 굳은살이 생긴 자리로 라이터의 불을 켰다 . 춤을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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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생겨난 주황색 불꽃을 담배 끝에 댔다 . 슥 연기를 들이켜, 시원하 게 밖으로 내뿜으며 , 담뱃갑을 창틀에 내려놨다 . 창 앞에 얼마나 서 있던 것일까 . 밖에 눈이 오기 시작했다 . 잠이 든 듯 조용한 아파트 단지에 눈이 내렸다 . 니코틴 덕분인지 생기가 도는 덕에 묘한 감성에 젖었다 . 몸을 내려 창틀에 기대었다 . 팔꿈치 가 실수로 담배갑을 쳤다. ‘ 엇’, 하고 저 아래쪽으로 떨어지는 담뱃갑을 쳐다보고 , 자신도 모 르게 손을 뻗었다 . 손가락이 담뱃갑을 스쳐, 중지로 아파트 벽 사이 에 잡아놓는 것에 성공했다 . 몸을 앞으로 더 뻗었다. 조금만 더, 조금 만 더. 어느 샌가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다 . 중심을 잡으려고 안간힘 을 썼지만, 무거운 머리가 앞으로 쏠렸다 . 머리가 하도 멍해져 있어 서, 주마등처럼 스치지도 못한 것들을 남긴 채 고요한 밤 속으로 떨 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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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살, 꿈 황현선 Gerry Hwang 아침의 따스한 햇살이 나의 무거운 몸을 깨운다 . 눈을 떠보니 , 밝 게 빛나는 햇살이 나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나는 공무원 준비생 (뭐 무직이라 해도 무방하다), 25살 , 어른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지 금 이게 뭐하는 일인지 내 처지를 생각하면 매일 아침 헛웃음이 나올 따름이다. 분명 ‘ 젊은 ’시절의 나는 학교에 심히 다녔다 . 열심히 다녔 다 은, 학교에서 준 과제나 시험은 언제나 1 등급 가까이 받았고 , 고 등학교 시절 마지막에 봤던 수능도 무난하게 상위권 점수를 획득하였 으며, 인(in)서울 대학교를 나왔다는 말이다 . 그런데 , 작년까지 벌써 두 번째 공무원 시험에서 떨어졌다 . 심지어 9 급 공무원 시험인데 말 이다. 그저 웃음만 나온다.

명 도 의 은 고

고등학교에서 인서울 대학교 합격 통보를 받을 당시, 나에게는 분 ‘꿈’이 있었다 . 근데 지금 이게 무엇인가 ? 전혀 내 꿈과 비슷한 일 하고 있지 않다. 나는 한국 정치인이 되어 , 내가 살고 있는 나라 국민들을 더 잘 살도록 보살펴 주고 싶었던 게 엊그제 같다. 지금 그냥, 정치인보다는, 그냥 안정적인 직업 , 집, 그리고 가족을 가지 싶다… 지금 나에게 예전의 꿈은 너무 야망이 큰 꿈같다…

시계를 보니 10 시다 . 오늘은 일주일에 한 번 약속이 있는 목요일 이다. 12 시에는 시청역에서 혜진이를 만나기로 했다. 혜진이는 나와 4 년째 교제중인 여자 친구이다. 나는 힘겹게 일어나 무거운 몸을 일 으킨 후, 집을 나섰다 . 몸이 무겁다는 것은 살이 쪘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짊어진 책임감들이 너무 많아서일 것이다. 나는 시청역 으로 향하였다. 12시다. 시청역은 혜진이가 일하고 있는 법무원 주변이다. 혜진이 를 만나서, 우리가 평소에 가던 국밥집으로 향하였다 . 국밥집에서 우 리는 둘 다 소머리 국밥 (8,000 원, 내 아르바이트의 1시간 10 분 어치 의 시간) 을 시켰다 . 우리는 서로 일주일간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 재미있었거나, 슬프거나 , 힘들었던 순간들을 서로 공유하는 유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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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다. 나는 먼저 입을 열었다 . “이제 회사는 어때 ? 이제 벌써 3 개월 동안 다녔는데, 적응은 잘 됐어?” 혜진이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말한다. “어어! 이제 회사동료들도 서서히 알아가고, 내 능력도 서서히 인 정해주고, 너무 잘 적응하고 있는 거 같아 ! 넌 공무원 준비는 어 때? 이번엔 될 거 같아 ?” 나는 불확실한 말투로 말을 꺼낸다. “어, 응… 잘 돼 가기는 … 하는 거 같… 아니 잘 돼 가고 있어 !” 혜진이가 바로 눈치 챈다. “야, 걱정 마, 많이 준비했잖아! 이번에는 .” 이름이 혜진이다. 김혜진 , 동갑이다 . 혜진이와는 처음 대학교 2 학 년 당시, 같은 정치학 수업에서 만났다 . 그 당시에는 서로 인사만 하 고 지내다가, 어쩌다 서로 친해져서 , 지금까지 계속 만나게 되었다 . 그때에는, 정치인이 되어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그런 꿈이 서로에 게 있었다. 헌데 지금은 우리 둘 다 깨달은 것 같다 . 세상은 공평하 지 않다는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사실을 말이다. 국밥을 거의 다 먹어갈 무렵, 혜진이가 갑작스럽게 무거운 이야기 를 꺼낸다. “나, 할 말이 있는데… ” 나는 침을 삼키고, 물어본다. “어어… 뭔데 …?” 혜진이는 잠시 고민하는 것처럼 보인다 . 내 눈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그러다가 결심한 듯 매서운 눈으로 내 눈을 뚜 렷하게 쳐다보면서 말을 꺼낸다. “우리… 결혼은 할 꺼야… ?” 나는 갑자기 몸이 더 무거워진다 . 나는 내 무거워진 손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해서인지, 국밥을 먹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 “혜진아… 전에도 얘기하지 않았어 ? 이 ‘이야기 ’는 내가 이번 공무 원 시험 본 다음에 … 하자고 … 몇 번을 말했어.” 갑자기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 어쩔 줄 몰라 하는 혜진이를 보자니 , 마음이 더 아파진다 . 결혼을 안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 다만 , 아직 때가 아닌 듯하다 . 그것이 전부이다. 혜진이는 이미 안정된 직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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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있고, 나는 아직이다. 혜진이는 직장 생활을 하느라 바쁜데 , 나는 공무원과 취업 준비 ,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바쁘다 . 그저 웃음만 나온다. 그리고, 결혼. 참으로 애매하기 짝이 없다 . 나도 혜진 이와의 결혼을 생각은 했지만 , 돈과 아기 . 이 둘의 막막함이 나를 나 락으로 떨어뜨린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 국밥을 다 먹어 버렸다. 식사를 마친 후에 , 여느 때처럼 혜진이는 직장으로 , 나는 동네 도 서관으로 향한다 . 도착하니 오후 2시 즈음이 되었다 . 한가하지만 눈 치가 보이는 도서관이다 .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르신들이거나 , 나같이 공무원 준비생들이다 . 나는 내가 평소에 가던 넓은 구석 책상 자리에 갔다. 이 자리에서 벌써 2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버렸다. 공무원을 처 음 준비하던 시절부터 말이다 . 나는 내 사물함으로 갔다 . 2 년 전부터 쓰던 7번 사물함에서, 나는 내 공책과 교과서를 책상으로 가져왔다 . 자리에 앉아 나는 의미 없는 공부를 시작하였다 . 어느 새 정신을 차 려보니 7 시다. 나는 짐을 쌌다 . 8시에 아르바이트가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 학자금 대출 이자 , 내 원룸 월세비, 그리고 내 생활비 (랑 공무원 시험 준비 교육비). 이 세 가지 까다로운 친구들이 , 내 심기를 매일 불편하게 만든다 . 특히 월세비라는 녀석은 내 비축해 놓은 돈을 매번 훔쳐간다. 이 세 친구들을 모두 만족시켜 주기 위해 나는 매일 새벽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다 . 내 집에서 5 분이 채 안 되는 거리 에, 작은 편의점이 있다 . 그 곳에서 나는 매일 밤 8 시부터 새벽 3시 까지 아르바이트 일을 한다 .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동네 편의점으로 향하였다. 도착한 시간은 7 시 45분 , 계산대는 편의점 점장님이 맡아 서 일하고 계신다 . 내가 들어오자 , 점장님이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 이하신다. “어, 오늘은 일찍 왔군 . 좋아 , 좋아 . 얼른 일 복장으로 갈아입고 일하게.” 나는 점장님의 말을 듣고, 후딱 옷을 갈아입고 , 계산대로 나왔다 . 오늘은 보니 유난히 사장님의 얼굴이 되게 밝아 보이신다 . 계산대에 들어가면서, 나는 물어보았다 . “오, 사장님, 뭐 오늘 좋으신 일이 있으신가요 ?” 점장님이 웃으며 대답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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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내 마누라와 결혼한 지 30 주년 되는 날이네 . 그래서 오늘 저녁에 고급 레스토랑을 가기로 했지!” 나는 감탄을 표출하였다. “와, 좋네요! 오늘 오붓한 시간 보내고 오시길 바랄게요 !” 점장님은 내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 고 문득 생각난 듯 , 점장님은 계산대를 나서며 허둥지둥 짐 (명품 코 트)을 쌌다. “어어… 이러다 약속 시간에 늦겠네 … 오늘도 잘 부탁하겠네 !” 나는 있는 힘껏 대답하였다. “네! 맡겨주세요 !” 그리고서는 점장님은 편의점 입구로 향하였다. 문을 여는 도중 , 또 문득 무엇인가 생각난 듯,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오며 , 명품 코트 안 주머니 안에서 꾸깃꾸깃 있던 봉투를 꺼내신다. “이봐! 이번 달 월급이야! 이번에 특히 더 열심히 해서 보너스도 두둑하게 넣어줬네 ! 앞으로도 부탁하네 !” 나는 두 손으로 공손히 구겨져 있던 봉투를 받았다 . 나는 사장님 이 나가신 후에도 , 봉투를 있는 힘껏 부여잡았다 . 사장님이 나서시고 한참 후에, 봉투 내용물을 확인하였다. 내 시급이 정확히 들어있고 , 보너스는 두둑하기는커녕, 단 돈 3 만원이 들어가 있었다 . 나는 돈 봉 투를 계속 쳐다보았다. 이런 망할 인생. 나는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어버렸다 . 이 일을 늙을 때까지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저런 사장님처럼 되어 버리는 걸까 . 사장 님이 하찮다는 게 아니다 . 물론 편의점 사장이 꿈이었을 수도 있으니 까 말이다. 그러나 물론 다른 꿈을 가지고 있다가, 어쩔 수 없이 편 의점 운영이라는 장사를 하게 되었을 가능성도 높다. 나도 내 꿈은 이루지도 못하고 그냥 이런 골목길 가게에서 매일 하루하루를 보낼 생각에, 갑자기 나의 미래가 두려워졌다 . 나는 편의점 일을 정확히 새벽 3 시 34 분에 끝냈다. 새벽 2 시 반 즈음, 가게 안에 만취객들이 들어와서 , 테이블로 가서는 갑질을 하지 를 않나, 오늘도 편하지 많은 않은 편의점 알바였다. 뭐 아무튼 끝이 났다. 나는 집으로 바로 돌아갔다 . 집에서, 나는 씻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 누워서 매일 보던 천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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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서 문득 생각이 났다. “나의 꿈은 언제 이룰 수 있는 걸까… ” 이 생각을 하면서 나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나는 공무원 준비생이다 . 25 살인 공무원 준비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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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하영석의 전쟁일지 안수영 Lucas Ahn 1950. 9. 16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 어제 유엔군의 지원으로 인해 맥아더 장군이라는 분이 부대를 이끌고 인민군을 물리치는데 성공했다 . 나는 몇 주 째 지금 여기 부산 항구에서 대기하는데 심장이 쫄려 죽는 줄 알았다. 인민군이 우리 남한을 침략하기 직전까지 왔었다 . 지금 대구 , 포항, 부산 직전까지 인민군이 밀고 들어와, 몇 주 째 지금 부산에서 대기하고 있다. 하루하루 잠에서 깨면서 ‘ 오늘은 인민군이 안 쳐들어 오게 해 주세요’ 기도하고, ‘오늘은 유엔군이 와서 하루라도 빨리 인 민군을 물리치게 해 주세요 ’라고 생각했는데 , 드디어 어제 유엔군이 도착했다. 지금 유엔군이 서울 가까이까지 점령했다는 말이 들려왔 다. 엄마, 아빠, 세희야, 어디 있는 거야 .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가는 데 왜 소식이 없어 . 제발 다 어딘가에 무사히 있게 해주세요 , 아무 죄도 없는 우리 가족 제발 무사히 있어야 해. 매일매일 속이 타는데 방법이 없다 . 내가 도저히 소식을 알 수 있 는 방법이 없다. 나는 근데 아버지를 믿는다 . 아버지가 어머니랑 세 희를 절대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실 거야. 내가 존경하는 우리 아버 지, 사랑하는 어머니 , 세희 , 너무 보고 싶다. 소식이라도 제발 누가 들고 와줬으면 소원이 없겠다. 유엔군도 왔으니 이 전쟁 끝내주세요 제발 죄 없는 우리를 제발 평화 속에 살 수 있게 해주세요. 아까 허진이랑 민식이가 내일 우리는 다시 천안으로 간다고 지시 가 내려졌다고 한다 . 드디어 한 달 동안 있던 여기서 벗어나게 돼 기 쁘지만, 정말 언제 또 인민군이 쳐들어올지, 폭격이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일이라 마음이 무겁다 . 빨리 이 악몽에서 깨게 해 주세요 . 언 제가 내가 살아있는 마지막 순간일지 몰라 틈틈이 일지를 쓰는 것이 다. 유엔군이 왔으니 , 좋은 소식만 앞으로 듣고 싶다. 잠깐 눈 붙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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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10. 28 믿기질 않는다 . 오늘이 꿈이었으면 좋겠다 . 내가 여태껏 꾼 세상에 서 제일 잔인하고 슬픈 악몽이길 난 간절히 바라보지만 아닌 것을 아 는 순간 가슴이 너무 아파온다 . 꿈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 제발 꿈 이기를. 나와 어제까지 옆에서 싸우던 친구들이 죽었다. 아침까지 같이 나 란히 있었던 내 친구들 . 몇이 포로로 끌려가는 것을 나는 숨죽이며 목격했고 몇이 내 눈앞에서 총에 맞아 아니면 폭격으로 인해 죽어가 는 것을 나는 보았다 . 생각만 해도 몸이 떨린다 . 머릿속은 하얗다 . 아 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 몇 시간 동안 , 하지만 이제야 현실직시 를 조금씩 할 수 밖에 없어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를 내 목숨을 생각하 며 일지를 꺼낸 것이다 . 어제 저녁까지 함께 주먹밥 2 개 가지고 싸우 던 녀석들이 하루아침에 이 세상을 떠나버렸다 . 나는 아직도 안 믿긴 다. 이제 곧 깜깜해지면 장난도 치고 수다도 떨고 해야 할 시간인 데… 이제는 걔네들이 없다. 오늘 오후에 중국군들이 쳐들어왔다 . 인천상륙작전 후 우리 국군 이 압도적으로 진격을 했다는 소식을 나는 들었다 . 하지만 , 중국군들 에 대한 소문도 자자했다 . 중국군이 오고 있다는 말은 들려왔지만 , 우리는 매일 수백 개의 소문들을 듣기 때문에 하나하나 신중히 받아 들인다. 헌데 오늘 낮에 폭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중국군의 침입을 인지했다 . 우리는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 총알도 턱없이 부 족했었고 압도적인 중구군의 수로 인해 당황해 크게 당했다. 내 친구 들은 내가 눈 깜박하는 사이에 없어지거나 총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 었다. 내가 슬퍼하기도 전 , 내 뒤에서 어느 거칠고 큰 손이 내 옷을 잡아 나를 끌고 갔다 . 순간 머릿속에 ‘나는 포로로 끌려가는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뒤돌아보니 익숙한 얼굴이었다 . 나와 멀지 않은 부대에 있던 사촌형이었다 . 나는 슬퍼하기 전에 내 목숨을 위해 달려야 했 다. 형이 다행히 안전한 곳을 찾아 목숨을 건졌지만 , 앞으로 이 전쟁 에서 살아나갈 희망이 없어진 것 같다 . 자신이 없어졌다. 친구들과 전쟁이 끝나면 뭐 할고 살지 매일 밤 얘기한 게 머릿속을 스치면서 이제는 꿈만 같은 얘기로 들린다 . 오늘 이게 마지막 일지가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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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다. 눈꺼풀에 힘이 풀린다, 기도하고 오늘 하루를 마쳐본다. 내일 일어났는데 전쟁이 끝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1951.1.5 새해가 밝았다 . 그런데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 매일 기도해도 소용이 없다고 느낀지 몇 달 되었다 . 희망을 갖고 싶어도 이 혹독하 고 잔인한 현실이 나의 희망을 계속 헛꿈이라고 얘기해 주듯이 희망 을 갖는 틈에 언제 내가 총에 맞을지 폭격에 맞아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었다. 중국군이 다시 추세를 몰아 밀고 내려오고 있다 . 지난 몇 주 동안 중국군과 우리 국군의 대립이 심해졌다 . 서울을 두고 계속 대립이 이 어 졌는데 몇 주 사이에 몇 백 명이 죽은 걸로 알고 있다. 저번 주 중국군과 전투 중에 나는 귀 한 쪽의 청력을 잃게 되었 다. 폭격이 바로 옆에서 터져 다행히 두 쪽 귀가 아닌 한 쪽만 청력 을 잃게 되었는데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귀 한 쪽만 다친 것도 감사 하다. 지난 몇 달 동안 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 하다. 친구들을 잃고, 가족의 행방을 모르고 지낸지 몇 달이 되어가니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고 가족의 생사만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 엄마 , 아빠, 세희, 제발 살아만 있어 줘 .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곧 중국군이 또 내려온다는데 이번에는 수가 많다고 한다. 전투준비 하느라 지금 바쁘게 움직인다. 며칠 째 물만 마시고 감자 하나로 어제 오늘 버텼다 . 너무 배고프고 춥다 . 어제 눈 도 와서 전투하기에는 최악의 상황이다 . 바닥에 쌓인 눈에는 피가 묻 어있다. 새하얀 눈을 본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징그럽다 . 피만 보면 토하고 싶다. 이 전쟁을 시작한 자들에게 묻고 싶다, 이 전쟁을 통해 얻는 것은 무엇인지. 수천 명의 목숨이 죽어 나가는 것을 목격할라고 전쟁을 시작한 것 같다 . 정치적 이념이 달라서, 사상이 달라서 전쟁 을 일으킨 자들이여, 과연 그대들의 소중한 핏줄도 총을 들고 싸워야 했다면 이 전쟁을 일으켰겠나 . 밖에서 들리는 앓는 소리가 너무 고통 스럽다. 우는 소리에 가슴이 찢어진다 . 밖에 나가서 돕다가 잠시 눈 을 붙여야겠다. 추워서 잠은 못 들겠지만 , 내일을 위해 억지로라도 눈을 잠깐 붙여야한다.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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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12.25 오늘 성탄절이다. 작년 성탄절 때는 내년 성탄절 때 가족이랑 집 에서 같이 보내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 역시 일 년이 지난 오늘도 전 쟁은 한창이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끝없는 투쟁이 이어졌었다. 나는 지난 몇 개월 동안 수많은 동료들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했고 나 또한 죽을 뻔한 적이 수없이 많았다 . 작년에 나를 중국군으로부터 구해준 사촌형 또한 죽었다는 소식을 몇 주 전에 접했다 . 형님 , 부디 편안하게 쉬고 계세요 . 저는 곧 형님 곁으로 가겠습니다 . 형님 보고 싶습니다. 저는 이 세상을 떠날 준비가 된지 오래 됐습니다 . 먼저 편 히 쉬고 계세요. 오늘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곧 휴전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가 있다 고 한다. 중국이 지난 몇 달 동안 전투로 인해 본 피해가 상당하여 휴전 얘기가 나온다고들 한다. 우리 국군과 유엔보다 인민군과 중국 이 입은 피해가 상당하다고 한다. 이 소식은 제발 사실이길 바란다 . 휴전얘기가 들려온다는 것은 일단 희망적이라고 본다 . 여태껏 그런 얘기를 못 듣다가 처음으로 들려오는 소식이다 . 근거 없이 나올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 누가 휴전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겠나 , 그럴 이 유 또한 없다. 이 소식만은 사실이어야 한다 . 중국과 유엔 사이에 협 의를 보자는 얘기가 들려오는데 , 제발 사실이기를 바랄뿐이다 . 더 이 상의 전쟁은 서로가 망하는 길이다. 오늘 성탄절인데 눈이 온다 . 전쟁만 아니었더라면 정말 아름다웠 을 것 같다. 미국에서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라고 부른다고 배웠다 . 오늘 유엔군에게 , 유엔군이 우리한테 오늘 성탄절인데 눈까지 와 정 말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라고 했다. 미국에서는 성탄절을 크리스마스 라고 부르고, 이날에는 서로에게 선물을 주며 맛있는 저녁을 먹는 날 이라고. 듣기만 해도 황홀한 기분이었다 . 오늘 미군과 얘기를 나누면 서 곧 휴전이 올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끝까지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휴전이 곧 올 수 있다면 , 나는 살아야한다 . 살아서 어 머니, 아버지, 세희를 찾고 남은 인생 감사하며 사랑하면서 살 거다 . 날씨가 영 별로라 제대로 잘 수는 없지만 잠시 불 앞에서 눈 붙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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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7.27 휴전이 왔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 내가 지난 3년 동안 꿈꿔왔던 휴전이다. 중국군과 인민군은 38선 기준으로 빠진지 몇 주 되었지만 , 오늘 신문에 휴전이 발표되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날을 제가 살아 있는 채로 볼 수 있게 해줘 서 감사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하느님을 한없이 원망도 해보고 , 절실할 때 목숨 걸고 기도도 해봤다. 나는 휴전이 오는 날, 내가 이 세상에 있을지 , 있어도 몸이 망가졌 을지, 정신이 바르게 있을지 알 수 없었고 , 나는 솔직히 내가 두발로 서 있을 수 있는 채로 이날을 맞이할 것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 하 지만, 나는 살았고 휴전은 이루어졌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이뿐만 아니다 . 나는 오늘 어머니와 세희를 찾았다 . 며칠 전부터 인민군과 중국군이 빠져나가고 , 우리 살아있는 국군들은 혼란스러웠 다. 갈 곳도 없었고 ,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 나는 몇 달 전 서울로 이동하는 중 고향 분을 만나게 됐다. 우리 아랫집에 사 시던 아저씨였다. 아저씨가 지나가던 나를 알아보셨다 . 아저씨께 어 머니, 아버지, 세희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저씨는 우리 어머 니와 세희를 살던 동네 근처에서 봤다고 전해주셨다 . 아버지랑은 중 간에 흩어졌다고 어머니가 말했다고 하셨다 . 어머니는 세희랑 둘이 원래 살던 동네 근처에 있을 곳을 찾는다고 말했다고 하셨다 . 그래서 나는 오늘 아침에 신문으로 휴전을 확인하고 기차타고 고향 전주로 내려갔다. 고향에 도착하니 어머니와 세희 찾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 다. 3 년 만에 만날 줄 몰랐던 엄마와 세희 , 너무 미안하고 감사했다 . 따듯한 엄마 품에 안기는데, 눈물밖에 나오질 않았다. 감사합니다 . 꿈 에서만 볼 수 있었던 엄마와 세희, 살아있어 줘서 너무 감사했다 . 세 희는 숙녀가 되어 있었고 , 우리 엄마는 지난 3년의 아픔이 새겨진 얼 굴로 나를 울며 반겨주셨다 . 아버지는 내가 찾을 것이다 . 절대 아버 지는 돌아가시지 않으셨을 거야 .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우리 아버 지까지 집으로 모시고 올 거다 . 아버지 , 조금만 기다리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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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7일 장태호 Michael C hang 어머니가 유년기 시절에 자주 독립이라는 것에 대해 얘기를 하셨 다. 그 얘기를 하시면서 한국의 역사를 연관을 지어서 많이 말씀하셨 다. 일본 식민지부터 6월 25 일 전쟁, 그리고 4월 19 혁명까지 … 정말 어릴 때부터 많은 정보를 들어서 모르는 것이 없었다. 물론 그땐 내 가 태어나기 전이었지만 부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공포 그 자체였다 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나에게 닥칠 거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않았다. 1987년 3 월에 우리 가족은 다 같이 서울로 올라왔다. 내가 고등학 교를 졸업하면서 대학입학 예비고사를 잘 봐서 연세대학교에 진학하 게 된 것이다. 나는 가족 형편이 아주 좋지는 않아 백사마을이라는 곳에 살게 되었다. 아버지는 신문사 직원이셨다 . 매일 아버지와 함께 집을 나가며 한 국에 대한 많은 얘기를 했다 . 워낙 마을길이 울퉁불퉁하고 좁은 길에 또 가파르기까지 하니 하루하루가 등산을 하는 기분이었다 . 입학 첫 날에는 아버지와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버스 정류장 앞이었다. 아버지와 나는 같은 버스를 20분 동안 타고 내렸다 . 아버 지는 내가 다닐 대학 근처에서 일하셔서 항상 같이 집에 가신다. 대학교를 처음 입학하면서 신입생들과 같이 입학설명회를 들었다. 나는 한국사 전공으로 입학하였다 . 대학을 다니면서 우리는 특히 민 주주의, 독립, 혁명에 대한 주제로 토론하고 발표를 하며 지식을 쌓 아갔다. 과제를 하며 다양한 한국 위인들의 대해 알게 되었는데 이때 나는 미래에 한국의 위인이 될 것이라고 굳게 다짐하게 되었다. 대학교에서 기말고사를 끝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집 현관에 서 편지를 한 통을 받았다. 할머니한테서 온 것이었다. 어머니께 얼 른 드리자, 편지 봉투를 열어서 읽어 보셨다. 나는 물었다. “할머니께 무슨 일 있으세요 ?” “할머니가 매우 편찮으시단다 . 그래서 우리 모두 내려가 봐야 할 것 같다.” “갑자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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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나 말이다 . 짐부터 싸렴.” “네, 짐 쌀게요 .” 그렇게 우리 가족은 그날 광주로 내려가게 되었다 . 할머니 집은 광주 산골에 있어서 간호할 사람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 할머니 집에 도착해보니 예상대로 많이 위독하셨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며 칠 째 이렇게 누워 계셨다고 한다 . 어머니와 아버지는 새벽까지 교대 로 병간호를 하셨고 나는 이웃주민들에게 약을 주실 수 있냐고 물어 보며 다녔다. 다행히 약을 구해서 할머니의 병은 호전되었지만 나는 약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단숨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온 동네를 다니면서 약국을 찾아다녔다 . 하지만 열려있는 약 국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 하지만 멀리서 큰 함성이 들렸다 . 나는 아침부터 축제를 하는 줄 알고 사람들에게 약국이 어디 있는지 물어 보려고 함성소리를 쫒아 걸어갔다. 함성소리가 커지자 나는 여기가 축제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하지만 늦었다 . 저 멀 리 도로 반대편에서 서 있는 헬멧을 쓴 군인이 몽둥이를 들고 사람을 잡아먹을 표정을 지으며 뛰어오기 시작했다 . 나는 한순간에 나를 때 리려고 쫓아오는 것을 직감하였다. 군인이 뛰기 시작하자 나는 숨을 곳을 찾아 입술을 깨물고 뛰기 시작했다. 군인과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져 왔다 . 나는 골목으로 들어 가 얼른 작은 창고 안에 숨어 문을 잠갔다 . 군인의 발소리가 조금씩 들려왔다. 그는 크게 소리쳤다 . “아이씨, 놓쳤잖아. 이런 .” 그 순간 갑자기 발걸음이 또 들려오다가 멈췄다 . 나는 안도의 숨 을 쉬려고 하는 그때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 여자의 비명소리 였다. 나는 많이 무서웠지만 문을 박차게 열고 나왔다. 군인은 여자 의 머리를 세게 쥐고 있었고 때리고 있다가 나를 보았다. “뭐야, 저기 숨어있었군 .” 나는 손에 모래를 한 움큼 쥐고 그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 그 도 뛰기 시작했다 . 나는 어렸을 때부터 유도를 배워왔지만 단 한 번 도 사람에게 써본 적은 없었다 . 그와의 거리가 가까워 질 때쯤 나는 손에 갖고 있던 모래를 군인 눈에 뿌렸다 . 그리고 그가 눈을 찌푸리 는 사이에 유도 기술로 그를 기절 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나도 군인 에게 머리를 세게 맞으면서 일어나려는 순간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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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여기는 어디지?” 피와 땀 냄새가 가득하고 온갖 비명소리가 들리는 여기는 병원이 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병원은 환자들로 꽉 차 있었고 총상으로 인한 부상자들 또한 상당히 많았다 . 내 옆에는 가족이 아닌 한 여자 가 나를 간호해주고 있었다. 아까 비명 지르던 여자였다. 그녀에게 물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요 ?” “여기는 민주주의를 위해 지금 사람들이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 7 년 전의 일이 다시 시작된 거죠 . 그러자 계엄군들이 사람들을 끝까지 쫓아가 폭행을 가하고 있습니다. “ “이런, 망할 놈들 .” 하지만 생각해보니 나는 지금 할머니 약을 찾고 있었다 . 나는 땅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 약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약 을 찾아오겠다고 하고 잠시 떠났다 . 나는 그녀가 올 때까지 내가 집 에 들어갔다가 무엇을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나에게 알약 한 봉지를 주고 구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나는 약을 받고 할머니 집으로 곧장 뛰어갔다 . 할머니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나는 어머니께 얼른 약을 드렸다 . 어머니는 나에게 약을 받으시고 할머니에게 약을 드리신 후 나에게 물었다. “도대체 나가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 “계엄군들이 사람들을 잡아 때리고 있어요.” 나는 부모님께 밖에서 겪은 일들을 모두 설명하였다. 그리고 나는 다시 병원 쪽으로 가려고 한다고 말씀드렸다 . 하지만 부모님은 나를 말리기 시작하셨다 . 나는 부모님에게 말했다 . “부모님, 제가 대학교에서 과제를 하고 책을 읽으며 배운 것이 하 나 있습니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독립을 위하여 싸워왔습니다. 만약 그 당시 사람들이 독립을 위한 헌신과 희생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한 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어머니께서도 항상 독립에 대해 얘기 해 주셨잖아요. 저는 지금 민주주의를 위하여 싸우는 것이고, 우리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 오직 우리만이 대한민국의 미래 를 바꿀 수 있습니다.” 나는 굳게 다짐하고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부모님과 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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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할아버지께 인사를 하고 할머니 집을 떠났다 .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병원 앞마당에 집합해 시위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진기자, 회사원, 택시 또는 버스 기사들 , 대학생까지 한마음 한뜻으 로 모이기 시작하였고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할 수 있는 온갖 노력을 다하여 이 시위에 참여하였다 . 우리는 자유를 얻기 위해 계엄군을 향 해 싸우러 가는 것이다 . 우리는 다 같이 계엄군들이 서 있는 큰 도로 에 나가 줄을 맞춰 섰다 . 그리고 우리는 다 같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외쳤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 ! 호헌 철폐 독재 타도 !” 그리고 우리는 한발 한발 나아가기 시작했다 . 물론 모두가 두려웠 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래 왔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계 엄군들이 두려웠다 . 하지만 여기서 물러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기에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었다 . 계엄군들에게서 총 성이 들리면 우리는 다시 후퇴하다가도 다시 일어나 전진하였다. 옆 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다치고 계엄군들에게 끌려가도 우리는 굳은 마 음으로 민주주의라는 목적 하나로 외쳤다. 그러자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이 6월 항쟁은 6월 29 일을 마지막으 로 막을 내렸다. 모든 땅바닥에는 대통령 직선제를 개헌한다는 내용 들로 가득 찼다. 많은 사람들이 기쁨의 함성을 지르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8 년 전 광주 시민들의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돌아가셨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눈물을 흐르며 앉아 있었고 제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내가 할머니 집으로 갔을 때는 이미 할머니의 제사가 진행되려고 하였다. 어머니께 물어보니 내가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 다고 한다. 나는 아무 말 없이 할머니의 사진만 보며 슬픔의 눈물밖 에 흘리지 못했다 . 마지막 순간까지 할머니를 지켜드리지 못한 것이 마음이 아프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후 에는 가족들과 함께 7 일 만에 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 나는 나 의 목표를 이루어 내 자신이 부끄럽지 않았고 할머니께서도 분명히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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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에게 정다은 Iris Jeong 제니야, 잘 지내니? 너한테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도 정말 오랜만 이다. 네가 미국에서 뉴스를 보고 , 나 정말 걱정 많이 한 거 알아. 너 의 최근 편지들 정말 내 걱정밖엔 없더라 … 그래서 더더욱 네가 최근 몇 달간 보낸 편지들에 이렇게 늦게 답을 하게 되어서 미안해 . 네가 나 괜찮으냐고, 살아는 있냐고 , 답도 없는 편지에 혹시나 하는 마음 에도 계속 편지를 보내는 널 보고, 정말 힘이 많이 됐어 . 내가 힘들 때 마다, 정말 하루하루 사는 것이 괴롭고 견디기 힘들 때마다 , 너 편지 읽고 다시 또 읽고 하면서 울고, 너의 재밌는 얘기들에 웃고 , 겨우 하루하루 벼텼던 것 같아. 네가 내가 지금 하는 얘기들을 듣고 , 아마 내 걱정을 더 할 수도 있고 , 내 고통을 덜고 싶어 하는 욕심에 괜히 너를 걱정하고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어 . 그래서 난 괜찮으니까 이 편지를 끝까지 안 읽어도 돼 . 안 읽고 그냥 다행이다 , 사랑하고 보고 싶다, 이런 얘기만 해줘도 난 기쁠 거야 . 내가 그냥 이 편지를 계속 쓰는 이유는 단지 누군가는 내 이야기를 알았으면 해서 , 누군가 는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았으면 해서 , 그리고 그 한 사람을 골 라야 한다면 너라서 , 너한테 솔직하게 다 말하는 거야. 제니야, 정말 1980년 5 월 18일 이후 행복이란 걸 잃은 것 같아 . 아마 내 평생을 이 날을 생각하며 살지 않을까 싶어. 정말 평화로운 날 이었어. 우리 병원에 한 남성이 배에 피가 흘러넘치는 총상을 부 여잡고 병원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 그 한 남성을 시작으로 하여, 밖 에서는 총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 병원에는 온 몸에 피를 철철 흘리며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하는 사람들의 발 길 이 끊이질 않았어 .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날 필요로 했지만 , 뿌듯함은 안중에도 없고, 슬픔 , 고통 , 그리고 걱정밖엔 없었어 . 병원 모든 곳에 서 “간호사님, 저 좀 제발 봐 주세요 ,” “간호사님 , 저 좀 살려주세 요,” “지영 씨, 여기 와서 이 환자 좀 잡아주세요 ,” 라는 말이 울려 퍼졌어. 솔직히 처음에 한 남성이 총상으로 병원에 살려달라고 왔을 때까 지만 해도 무슨 일인 줄 몰랐고 , 168 명이 숨지고 4,782 명이 부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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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 내가 아침에 출근할 때까지만 해도 너무너 무 날씨도 좋고 평범한 , 아니 오히려 평소보다 더 화창한 날이었고 , 전두환 대통령의 독재를 반대하는 시위야 평소에도 종종 일어났었기 때문에 오늘도 별반 다를 것 없이, 무슨 일이 있겠나 싶었어. 그래서 더더욱 이 사건으로 인해 내 삶이 바뀌었을 때는 부정밖에는 할 수 없었고, 그래서 너의 편지에 대한 답장도 이렇게 늦어지지 않았나 싶 어. 이 모든 게 꿈이길 바랐고 , 언젠간 이 꿈에서 깨어날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렇게 몇 달을 살고 나니까 이 꿈에서 절대 못 깨고 , 이것 이 현실이고, 정말 일어난 일들이구나 싶더라 . 너도 알고 있겠지만 , 이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정말 많은 사람들 이 죽었고, 우리 병원에서도 치료만 기다리다 , 치료도 못 받은 채 숨 진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았어 . 간호사로서 , 사람을 구하는 직업을 가진 나로서는 죄책감으로 날 휘감았지만 , 그것조차 제대로 받아들일 시간도 없었어. 그래도 제정신인척, 다른 사람들이 다치고 죽어가면 서 날 필요로 하고 있는데 나까지 무너지면, 그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한 명이나 준다는 심정으로 겨우 내 마음을 붙잡고 있었어. 하지만, 수환이가 내 앞에서 자기의 피가 묻은 손으로 내 손을 잡고 눈을 감았을 땐, 무너질 수밖엔 없더라 . 너, 나, 수환이 , 태어났을 때부터 같은 동네 , 초등학교, 중학교 , 그 리고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정말 서로 모르는 거 없이 지냈는데… . 정 말 그만큼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너무나도 많았는데 … . 그래서 나랑 수환이가 너한테 사귀는 사이라고 말했을 때 네가 손 들고 반대하는 걸 그때 들을 걸 그랬어 .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우리 셋의 옛날을 회 상하면 행복과 즐거움밖에 없었고 , 힘들 때마다 그 추억들 생각만 했 는데, 지금은 그 추억들을 생각하면 수환이를 보고 싶다, 수환이를 너무너무 보고 싶다, 그때 수환이한테 조금 더 잘할 걸 , 그 때로 돌 아갈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나 또한 전두환 대통령의 독재를 반대했지만 , 수환이가 매일 아침 시위에 동참하는 건 정말 죽어라 반대했어 .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 까봐. 그래서 그 날도 내가 반대할 줄 알고 나한텐 집에서 하루 종일 아버님 모실 거라고 그랬는데 … 그래서 처음엔 내 말 안 들은 수환이 가 너무 원망스러웠어 . 왜 내 말을 안 들어서 , 왜 날 이렇게 자기를 좋아하게 만들어 놓고 가버려서 날 힘들게 하는지 정말 너무너무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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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스럽고 밉더라 . 그런데 , 나도 이렇게 힘든데 아버님은 얼마나 힘들 까 싶어서, 나의 고통과 아버님 고통을 비교도 안 되는 걸 잘 알기 에, 아버님을 위해서라도 무너지지 않으려고 . 매일 아침, 저녁 , 수환이 아버님 집에 들러서 밥을 챙겨드리고 있 어. 연세가 연세인지라 , 자주 깜빡하시고 , 항상 수환이를 찾아 . 아버 님, 나 앞에선 슬퍼하시면 걱정하실 거 아니까 , 괜히 나 앞에선 수환 이가 괜찮은 거처럼 행동하시는 거 알아. 저번에 한번 내가 수환이 집에 반찬통을 두고 가서 다시 갔는데, 수환이 사진 들고 미안하다고 하면서 울고 계시더라고 . 그래서 그때 아버님 보고는 나라도 힘내서 아버님한테 조금이라도 힘이 되야겠다 싶었어. 너도 얼른 한국 돌아 와서 우리 같이 아버님 보러가자. 너 얘기도 종종하셔. 하지만 아버님보다 더 내가 살아가야 할 의무를 느낀 건 병원에서 였어. 수환이가 병원에서 10일 동안 사투를 하면서 , 수환이 뿐만이 아니라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찾았고 , 어느 날은 하루 저녁에 20명이 넘는 환자를 수술하기도 했어 . 의사들과 , 나를 포함한 병원에 있는 모든 간호사들이 이렇게 많은 부상자와 사망자들을 보면서 항상 눈물이 앞을 가렸고 제대로 생각조차도 못 하였지만 , 우리가 아니면 남은 시민들은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버텼던 것 같아. 근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필요로 하면서 한 가지 문제가 생겼어. 하루에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수술을 하고 , 몇 백 명이 병원 을 찾고 치료를 받으면서 , 며칠 만에 병원에는 피가 모자라서 수술이 불가한 상황까지 왔었어 . 그 소식을 전해들은 소설가 홍희담 씨와 캐 나다인 미스 ‘팝 ’ 씨가 가두방송을 하며 그 소식을 광주 시민들에게 전하였어. 그런데 정말 몇 시간채 지나지 않아 몇 백 명의 사람들이 병원 앞에서 헌혈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대열을 이루었어. 그 많은 사람들이 자기 피를 뽑아서 치료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써달라고 사정 을 했어. 정말 더 마음에 아팠던 건 정말 계엄군들이 남녀노소 , 나이 제한 없이 모든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폭행에서부터 살해까지 했더라. 어린아이들은 물론 임산부 , 노인들까지 총살과 단검에 베이고 찔린 부상과 함께 병원을 찾아왔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 영안실에 자리도 모자라서 총상과 부상으로 숨진 사람들의 시체를 병원 한 쪽 뜰에 방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왔어 . 그리고 어느 한 여자아이는 헌혈을 하러 가는 도중에 시위하는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착각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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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를 당했어. 정말 죄 없는 사람들이 무고하게 다치고 살해를 당했 어. 정말 대략 10일정도의 시간을 뜬 눈으로 밥과 잠은 잊은 채 살아 간 것 같아. 그래서 ‘도대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 꼭 이렇게 까지 해야 할까’ 라는 생각은 할 틈조차도 없었어 . 지금 생각하면 정 말 힘이 들기도 했지만 , 나뿐만이 아니라 병원 모든 의사 간호사들 , 부상자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까지 그렇게, 아님 더 심하게 지냈기 때문에 힘듬 보단 견뎌내야 된다는 마음으로 지냈어 . 하지만 수환이 가 5월 29 일 3 시경 숨졌을 땐 , 정말 견뎌내야 된다는 마음은 싹 사 라지고, 전두환을 원망하는 마음밖에 안 남더라 . 제니야, 지금 보니까 너무 어두운 얘기고, 이 얘기를 듣고 네가 나 를 더 걱정하게 될까봐 걱정이긴 하지만 , 우리나라가, 우리 광주 시 민들이, 우리가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이런 일을 당했고 , 너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끝내 이 편지를 너한테 보냈어 . 앞으로 우 리 광주가 어떨지 , 우리나라가 어떨지 너무 걱정되고, 죄 없는 시민 들의 죽음이 무고한 죽음이 될까봐 너무 걱정돼. 지금 하루하루 그래 도 이겨내려고 노력하고 있고 , 수환이의 죽음이 , 그리고 몇 천 명의 부상자들과, 몇 백 명의 사망자들의 희생이 절대 헛되지 않게 될 수 있게끔 정말 최선을 다 할 거야. 너도 미국에서 우리를 꼭 응원해주 고 기도해주길 바랄게. 너무너무 사랑하고 , 보고 싶고 , 거기서 걱정 대신에 응원을 해주길 부탁할게. 너희 부모님한테 안부 전해드리고 , 물론 뉴스로 들으셨겠지만 , 네가 우리가 얼마나 참담한 일을 당했는 지 말씀드리고, 미국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말해주라 . 고맙고 , 잘 지내 제니야. 다시 또 편지 보낼게 . 널 많이 보고 싶어 하는 지영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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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약속 김규한 Chris Kim 동대문구에 여름이 찾아왔다 . 청량중학교 학생들은 벌써 방학을 바라보고 있었다 . 점심을 먹은 학생들은 모래밭에서 축구를 하고 있 었다. 그런데 관람석 위에 앉은 학생 한 명이 누워있었다. 이름은 강 형철. 중학교 3학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 미룬 숙제들을 생각하며 좌우로 굴러다녔다 . ‘숙제 3 개가 웬 말이냐 ? 특히 수학은 더 하기 싫 어.’ 형철 머릿속은 온통 짜증으로 가득했다 . 옆에 있는 나무에서 울 고 있는 매미들이 형철이의 귀를 거슬리고 있었다 . 얼마 후 형철이는 일어나서 학교에 뛰어가기 시작했다 . 점심시간에 끝나기 시작했다 . 다른 학생들 사이로 계단을 허겁지겁 올라간 끝에 자리에 앉았다 . 형 철이는 가방에서 아침에 들고 온 보리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긴 수업 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수업인 수학이 끝나자 학생들은 한꺼번에 교실 문으로 향 했다. 형철이는 지친 뇌를 들고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 앞주머니에 지갑을 꺼내려고 하는데 지갑이 없다 . 순간 당황하기 시작하는데 알 고 보니 집에 두고 왔다 . 버스로 5 분이면 집에 갈 수 있는데 도보로 무려 4 배나 더 걸린다. 형철이는 학교 밑 사물함으로 향했다. “야, 가위바위보 신, 나랑 한판?”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였다 . 철이였다 . 형철이는 같은 반 짝궁들 한테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 학교에서 형철이를 가위바위보 신 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 ‘쟤 나 오려고 지금까지 기다린 거야 ? 쟤 또 질게 뻔한데.’ 고민 끝에 형철이는 승부를 받아들였다 . “가위바위보!” 형철이는 가위 . 철이는 보. 아주 가벼운 승리였다 . 철이한테 벌써 4 연승. 형철이는 실내 단화를 사물함에 넣고 검정 고무신을 꺼냈다. “방학 끝나고 반드시 이길 거야 !” 철이는 대문을 향하면서 질렀다. “허! 그러셔? 이겨봤자 4승 1패야 !” 형철이는 대답했다 . 검정 고무신을 신고 대문으로 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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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은 그 어느 때보다 쨍쨍했다 . 형철이는 고무신을 앞으로 차는 놀이를 하면서 집을 향했다 . 집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 . 바로 골 목 계단. 체육시간보다 더 힘든 계단 오르기 . 경사가 매우 가파르면 서 좁다. 발을 헛디뎌 뒤로 넘어질 가능성이 있다 . 형철이의 해결 방 법은 이렇다. 검정고무신 한 짝을 계단으로 찬다 . 착지하는 높이만큼 오른다. 그 대신 한 발로 . 그래야 계단을 오를 만 하다. 오늘 형철이 의 고무신은 옆집 대문에 착지했다 . ‘너무 높은데 ...’ 형철이는 후회스 러운 표정으로 계단을 올랐다 . 고무신을 다시 신은 형철이는 집 앞에 도착했다. 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야! 현철! 뭐 하느라 이제 집에 와 ?!” 현철 엄마였다 . 마당 앞에 빨래를 말리고 있었다 . “아니, 지갑을 두고 와서 버스를 탈 수가 없었어요 .” 현철이는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가서 시장에 양파랑 피망 사 갖고 와. 오늘 저녁은 찌개다 . 또 초 코만 사오면 혼날 줄 알아.” 엄마는 현철이 눈을 보며 말했다 . 현철이는 무거운 책가방을 내려 놓고 건넨 돈을 받고 다시 집을 나갔다 . 장을 본 형철이는 경찰서에 들리기로 했다. 삼촌이 그 경찰서에서 근무한다 . 이름은 현기택 . 29 살에 현철 아빠랑 14 살 차이난다. 오른손에 쥔 바구니를 들고 경찰서 에 들어간다. 때마침 계단에 삼촌이 내려오고 있었다. “기택 삼촌!” 형철이는 소리쳤다. 삼촌은 동료에게 인사를 하고 형철이한테 다 가갔다. “여긴 웬일이야? 설마 또 초코 달라는 거 아니지 ?” 형철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삼촌은 웃음을 지었다 . “내가 초코보다 더 좋은 거 보여주지 !” 뒷주머니에 종이 두 장을 꺼냈다 . 형철이가 자세히 보니 영화 관 람권 두 장이었다 . 두 눈이 바둑알처럼 커졌다. 형철이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이번 주 주말에 가서 같이 보자. 맨 앞하고 뒷자리가 아니라서 더욱 더 잘 보일거야.” 형철이는 삼촌을 꼭 안았다. “고맙습니다! 주말에 꼭 만나요 ! 약속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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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손가락 약속을 했다 . 형철이는 기쁨으로 가득한 채 경 찰서 밖으로 껑충 뛰며 나갔다. 삼촌은 미소를 지어냈다 . 얼마 후 동 료가 뛰어내려와 삼촌 어깨를 두드렸다 . 고개는 출구를 계속 향한 채 근무실로 뛰어갔다. 저녁이 끝난 후 형철이는 국어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탁상 등이 그의 숙제를 비추며 형철이의 눈을 따갑게 하고 있었다 . 내일 모레에 내야하고, 2000 자 넘게 써서 굳이 당장 할 필요가 없었다. 선생님이 4000자 이상 써 오라고 했고 말이지 . 연필로 쓰다 보니 손목 밑에는 검정 색으로 변했다. 탁상 등을 끄고 손을 씻으러 나갔다가 책가방을 싸고 누웠다. 형철이는 엄청 긴 달리기 시합을 하고 있는 꿈을 꾸었다 . 갈증이 심했는지 잠에 깨버렸다. 창밖을 보니 해가 뜨기 훨씬 전이었다. 하 늘이 밝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형철이는 방을 나와 물을 마셨다 . 도대체 무엇을 했기에 달리기를 하고 있었지 ? 꿈이 점점 기억 속에 사라지자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 ‘ 일찍 일어난 김에 서랍에 있는 초코를 먹어야지 .’ 형철이의 장난꾸러기 성격이 다시 발동했다 . 다시 부엌으로 나와 서랍을 바라보았다. 서랍을 열 때는 최대한 조용히 . 초코가 드디어 본 모습을 드려내기 시작했다. 형철이가 손을 뻗는 순 간 무언가 뒤통수를 후려 쳤다. 불은 켜졌고 엄마가 파 한 단을 오른 손에 쥐고 있었고 들뜬 눈으로 형철이를 쳐다보았다. “도둑인 줄 알았잖아 . 아침부터 무슨 과자니 ? 밥할 거니까 얼른 씻기나 해.” 형철이 엄마는 어이없다는 듯이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쳇. 엄마는 맨날 번개처럼 부엌에 나타난다니까 .” 형철이는 투덜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학교 가는 길은 그나마 시원했다 . 해가 아직 밝아지기 전이라 형 철이가 땀을 흘린 채 학교에 등교하는 일은 없었다. 지각할 때 빼고 . 대문 앞에 도착한 형철이는 무언가 심상치 않는 기분이 들었다. 학교 대문 앞에 종이 몇 장이 붙어 있었다 .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다 . 기 껏 온 학생들은 다시 돌아가는 길을 갔다 . ‘오늘 6월 9일인데 무슨 일 이지? 학교에 문제가 있나?’ 학교에 갈 필요가 없어지자 다시 집에 뛰어가기 시작했다 . ‘뭐 , 알게 뭐야 . 오늘 쉬는 거네. 그리고 내일 삼 촌이랑 영화보네 !’ 형철이는 기쁨으로 가득한 채 집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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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철이는 경찰서에 들리기로 했다 . 가서 삼촌 책상에 과자를 갖고 올 생각이었다. 경찰서는 거의 텅 비어 있었다. 안내 직원 달랑 한 명이 계셨다. 철이는 홀로 계신 안내원에게 물었다 . “혹시 현기택이라는 분이 지금 계세요 ?” 안내직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모든 경찰원은 대학에 파견되었어 . 학생들 폭동을 막으려는 명령을 받았대. 그게 내 아는 게 다야. 그 분도 파견되셨을 거야 .” 조용한 경찰서를 본 형철이는 다시 출구로 향했다 . 오늘은 정말 이상한 날이었다 . 학교가 쉬고 , 늘 계신 삼촌은 어디 가시게 되었다 . 형철이는 집으로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온 형철이는 집 앞마당에 앉았다 . 머릿속을 정리해보니 시험 보는 날들은 변하지 않은 것 . 그리고 가장 궁금한 것이 삼촌의 파견. 그렇게 하루가 저물고 저녁이 다가왔다 . 형철이는 궁금증을 참 지 못하고 삼촌네에 전화를 해본다 . 그런데 아무도 받지 않는다. ‘ 바 쁜가 보네’. 형철이는 다시 방에 앉았다 . 걸려있는 달력을 보니 영화 를 보는 날이 동그랗게 표시되었다. 오늘로 봐서는 삼촌이랑 정말 영 화 볼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다음날이 오고 삼촌은 끝내 형철이네 집에 오지 않았다 . 형철이는 실망한 채 마당을 떠나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 주말이 지나고 , 일 주일, 3주, 몇 달이 지나고 있었다 . 형철이는 아직도 달력을 바꾸지 않았다. 토요일에 동그랗게 표시된 날 . 벌써 가을이며 겨울이다. 여름 에 많던 초록색은 없어지고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형철이가 그토록 기다리던 겨울방학이 찾아왔다 . 두꺼운 옷을 입 어야 했고 조롱하던 매미 대신 바람이 형철이를 괴롭혔다 . 이번 겨울 방학은 어느 방학보다 길어서 형철이에게는 가장 중요한 방학이었다. 하지만 형철이 마음 구석 한 쪽에는 삼촌이 보여준 영화 관람권이 아 직도 생생하였다 . 까먹을 뻔 했지만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 ‘방학도 긴데, 삼촌을 한번 찾으러 가볼까 ?’ 형철이는 삼촌네 집을 향하기 시 작했다. 다행히 지갑을 챙겨 와서 버스를 타고 금방 갈 수 있었다 . 형철이는 네 번째 아파트 계단을 오르며 7층 가장 왼쪽 문을 찾아가 봤다. 챙기지 못한 편지가 우편함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 옆방 창문 을 들여다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 불이 꺼진 것을 짐작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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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도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 그러다 옆집 사람이 문 밖으 로 얼굴을 내밀었다 . 삼촌이 알려 주던 배달 아저씨 강만섭이었다 . “내가 우편배달 놈이거든. 걔는 아직도 편지 받지 않은 거 보면 어디 갔나 봐. 베란다로 배달해 주는데 불러도 창문이 안 열려.” 형철이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 분명히 삼촌을 잘 아는 사람이 근처에 계실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 한 분이 떠올랐다 . 삼촌의 전 친 구. 지금은 싸워서 거리를 두고 있지만 삼촌을 잘 아는 분 중 한 명 이었다. 형철이가 어렸을 때 집을 잠시 들린 적이 있었다. 거기로 다 시 갔는데 예전과 달리 환영을 받지 못했다 . 형철이가 삼촌의 이름은 말한 순간 문이 열렸고 찻잔이 형철이를 향해 날아왔다 . 다행히 피했 지만 질문을 물어 볼 상대는 아닌 것 같다 . ‘ 차은혜라는 사람 , 인성은 바닥을 치네.’ 그렇게 실망스럽게 다시 삼촌네 집에 돌아왔다. 곧 있 으면 해가 지는데 아직 얻은 정보가 턱 없이 부족하였다 . 참다못해 문을 수리하는 아저씨를 불러왔다. 집 열쇠가 손상되었다는 이유로 겨우 아저씨를 설득해 문을 열 수 있었다. 집은 어둠뿐이었다. 불을 켜보니 가구들 사이에 먼지가 끼어있는 게 보였다. 형철이는 바닥을 살펴보다 종이가 떨어져 있었다. 펼쳐보 니 전남 목포 지도가 나왔다 . 지도 어딘가에 별 표시 모양이 있었다 . 시내 끝자리에 표시되어 있었다 . ‘좋아, 목포로 가자!’ 형철이는 지도 를 갖고 집을 다시 향했다 . 엄마는 분명히 가지 말라는 생각이 가득 할 것 같았다. 형철이는 가방 챙기는 동안 엄마한테 편지 한 장을 두 고 가기로 선택했다 . 모았던 용돈으로 목포로 갈 생각이었다. 기차는 너무 비싸고 버스로 가야했다. 아침이 다가오자 형철이는 조용히 집 을 나섰다. 일찍 나가면 혼잡도가 훨씬 적기 때문이었다 . 아침 일찍 나왔지만 앉을 곳이 없었다 . 형철이는 두 손을 손잡이 를 잡으면서 천장에 있는 선풍기를 보았다 . 난리 법석이었던 여름이 생각났다. 지하에 있는 전등이 하나씩 지나가면서 어느새 역에 도착 했다. 형철이는 가장 먼저 내려 갈아탈 열차를 잡기 위해 뛰었다 . 다 행히 놓치지 않았지만 숨이 차고 있었다 . 역시 저칠 체력. 맨날 체육 시간에 누워있으니 . 열차가 동호대교를 지나 형철이가 내릴 역에 금 방 도착하였다. 버스 매표소를 급하게 찾은 형철이는 목포로 가는 버 스표를 구할 수 있었다 . 뛰고 또 뛰었다. 버스를 찾은 형철이는 자리 를 찾아 뻗었다. 그리고 버스는 출발하였다. 이제 돌아갈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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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한 번 갈아타는 게 그렇게 힘들었는지 , 형철이는 깊은 잠 에 빠졌다. 시간이 흘러가더니 버스가 정지를 했다 . 정지소리를 들은 형철이는 잠에서 깨어났다 . 목에 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자세를 잘못 잡은 채 자서 그렇다 . 형철이는 지친 몸에 학교 책가방을 매고 내렸 다. 앞 건물에 ‘목포’ 라고 쓰여 있었다 . 형철이는 가방에 지도를 꺼내 며 역을 나왔다. 우역곡절 끝에 마침내 별 표시를 향한 길을 잡았다 . 형철이는 한 때 반대로 가고 있었다. 지리학을 잘하는 학생한테 쑥스러운 일이었 다. 해가 벌써 주황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 저녁이 다 되어가고 있었 다. 숙소를 잡으려면 다시 시내로 돌아가야 했다 . 앞을 보니 언덕이 끝날 쯤에 조그만 집 한 채가 있었다. 지도를 확인해보니 맞는 장소 였다. 언덕이 끝나기 직전에 표시되었다 . 형철이는 집을 향해 걸어갔 다. 옆에는 밭이 있었다 . 그런데 자세히 보니 검은 물체가 있었다 . 형 철이는 밭을 걸어갔다 . 무언가 탄 흔적이 있었다 . 그리고 그 옆에는 경찰 복과 헬멧이 반쯤 타 있었다 . 여기가 삼촌이 있는 곳이 확실해 졌다. 형철이는 집 문을 두들겨 보았다 . “삼촌! 저예요 , 형철이! 어서 나오세요 !” 형철이는 고함을 지르면서 불렀지만 집 문은 계속 잠겨 있었다. 뒤에서 발걸음이 느껴졌다 . 해가 벌써 저물었고 누군지 잘 보이지 않 았다. 다행히 가방에 손전등이 있었다 . 학교 시간 때 장난으로 쓴 게 그대로 있었다. 불을 비추니 비슷한 체격 , 키, 삼촌이었다. 형철이는 삼촌한테 달려갔다 . 6개월 만에 다시 만났다 . “삼촌! 왜 여기 계세요 ! 빨리 서울로 올라 와야죠 ! 얼마나 찾으러 갔는데!” 삼촌은 조용히 형철이를 바라보았다. “집에 가서 얘기 해줄게 . 엄청 긴 이야기거든 .” 저녁이 지났고 삼촌은 형철이한테 사실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6 월 9 일 대학에 시위를 막기 파견된 삼촌은 시위자들을 향해 무장한 채 최루탄을 발포해야 했다. 그리고 시위자들을 잡아야 했었다 . 물론 그 가 잡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 그리고 다음 날 다른 곳에 또 파견 돼 시위자들을 또 잡아야 했다 . 동료들이 사람들을 때리고 잡는 것을 보고 충격이 컸다고 자백했다 . 형철이는 학교 휴교령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삼촌이랑 일하던 동료들의 체포소식을 듣자 목포로 잠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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탔다. 그래서 지금까지 행방불명이었다 . 형철이가 버스 터미널 뉴스 에서는 경찰이 목격자를 찾고 있다는 것이 기억났다. “삼촌, 돌아와서 사실대로 말하세요 . 아마 사실대로 말한 사람은 아직 한 명도 없을 거예요 . 경찰로서 솔직하게 말하는 것도 의무 아 닌가요?” 삼촌은 한숨을 쉬며 고민을 하고 있었다 . 두 사람한테 엄청 긴 밤 이었다. 긴 고민 끝에 삼촌을 서울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했다. 영 화를 보고 경찰에 돌아가 모든 것을 말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 다음날 형철이하고 삼촌은 서울로 돌아와 무려 6개월 늦은 약 속을 지켰다. 형철이의 영화 꿈은 마침내 이루어졌다 . 영화관 바깥에 나오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삼촌, 돌아가서 사실대로 말하는 거 약속하죠?” 삼촌은 긴 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약속하마 . 이번에 꼭 시간에 맞출게 .” 두 사람은 다시 각자의 길로 갔다 . 형철이는 삼촌 뒷모습을 다시 보았다. 분명히 큰일을 해낼 것 같은 느낌이 났다 . 형철이는 자기 여 행을 다시 돌이켜 보았다. 목포까지 내려와 자기 삼촌을 구한 게 가 장 인상 깊었다. ‘ 이 이야기를 숙제로 내야지.’ 형철이는 눈이 내리는 지하철역을 향했다 . 며칠 만에 듣는 엄마 잔소리가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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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걸 그랬다 김선주 Grace Kim 조용히 가방 하나와 대한민국 깃발을 하나 들고 집을 나섰을 때, 잡았어야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셔츠 끝자락을 손으로 움켜잡고 바 닥에 내 엉덩이를 붙였어야 했다. 그날 나의 손은 아무것도 잡고 있 지 않았고 지금 나의 손은 내 얼굴에 흐르는 눈물만 하염없이 닦고 있다. 아침부터 햇살이 창문을 뚫고 들어온 날이었다. 일어나려고 하는 그 순간에 얼굴이 서서히 따스해지면 나는 입꼬리가 올라간 채로 하 루를 시작한다. 내 방문 사이로 어머니께서 끓이시는 냉이 된장국의 산뜻한 냉이 냄새가 솔솔 들어왔고 아버지께서 물을 세게 틀어놓고 세수를 하시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 이렇게 나의 아침은 여느 때 와 똑같이 흘러갔다 . 하지만 내가 왜 이 하루의 아침에 듣고 보고 느 낀 걸 이렇게 자세히 기억하는 까닭은 잊을 수 없는 고통이 내 뼛속 까지 파고 들었기 때문이다 . 나의 숨이 끊길 때까지 이 날의 모든 기 억은 나와 매 순간을 함께 할 것이다. “달래야 시방 얼른 나와서 아침 먹어야 .” “아따 된장국뿐만이 아니라 오늘은 갈비가 있당께 .” “어머니, 송달래 그만 불러 그래야 내가 먼저 먹제 .” 자존심이 음식 앞에서는 쥐뿔도 없는 나는 곧장 냄새가 나를 이끄 는 곳으로 달려갔다 . 나를 움직이는 놈, 송달이. 나를 가장 자극하는 내 유일한 오빠이자 앙숙이다. 하지만 오빠가 없으면 나는 한순간도 즐거운 시간이 없었다. “자 이제 달래도 왔으니 얼른 먹자야 ” 아버지의 말씀과 함께 우리 가족은 아침 햇살을 기분 좋게 맞으며 먹기 시작했다. 다른 날보다 오빠의 얼굴은 조금 더 붉은색이었고 상 기되어 보였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눈을 감고 오직 나의 직감을 이용해 밥을 먹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보니 나의 밥그릇에는 많은 반찬이 올라와져 있었고 특히 갈비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오빠의 젓가락은 바쁘게 여러 가지 반찬을 나에게 주느라 바 빴다. 이상했다. 이상했지만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는 나는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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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꼬리가 올라간 채로 아침을 먹었다. “정부가 요즘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누구를 믿어야 할지 , 뭐가 진실인 건지,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버지는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 거였다. 우리 가 족은 이렇게 화목하지만 바깥세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시민들은 정부에서 계속해서 내보는 군대로부터 무차별 폭력으로 인해 장애인 이 돼버리거나 죽어나가기 일쑤였다. 실제로 본 적은 없다 . 광주민주 화운동이 시작된 이후로 나는 중학교가 최루탄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바람에 학교를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 하지만 전남대학교를 다니는 우리 오빠는 자기는 어엿한 성인이라며 학교에 매일 같이 등교를 했 다. 그런 오빠의 외출이 나는 부러웠다 . 하지만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대신 집에서 공부를 해야 했고 그랬기에 매일 오빠는 4 시면 집에 들 어왔다. 그렇게 나는 매일 4 시가 되면 문 앞에 앉아 오빠를 기다렸 다. “어머니 아버지 학교 다녀오겠습니당께 .” “아이고 우리 송달이 , 잘 다녀와야 . 근데 태극기는 왜 들고 나가는 거야?” “아, 오늘 학교에서 필요하다고 해서 갖고 나가는 거제.” “그렇구먼. 우리 달이 몸조심하고 하교하면 곧장 집으로 들어와 야.” 오빠는 환한 미소로 부모님을 꽈악 껴안았다 . 그리고 나에게는 내 까치집 머리를 매만져주며 미소를 짓고 곧장 나갔다 . 오빠가 나가면 나의 시간은 더디게 갔다 . 마치 누군가 시곗바늘을 손가락으로 잡고 있는 듯, 매시간 나는 시간과 싸움을 벌였다 . 어느덧 3 시 50분이 되 었다. 나는 헐레벌떡 마루에 나가 현관문 앞에 앉아 뻥튀기를 먹고 있었다. 열두 장이나 있던 뻥튀기가 여섯 장이 되어갈 때쯤 나는 정 신을 차리고 시계를 쳐다봤다. 4 시 15 분이었다 . 짜증이 나기 시작했 다. “아따 엄마, 왜 오빠가 안 들어오제 ?” “그러게... 근데 아직 15 분밖에 안 지났잖아 . 좀만 더 기다려 보자 야.” 하지만 시곗바늘이 5 시를 가리켜도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 어머 니도 나와 함께 현관문 앞에 앉아계시기 시작했다. 어느덧 5시 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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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퇴근하실 시간이 되었다. 그동안 어머니는 무언가 아시는 듯이 나에게 아무 말을 하시지 않았다 . 화가 나신 얼굴도 아니었고 짜증이 난 얼굴도 아니었다 . 그저 어머니 얼굴은 절망감으로 가득 차 보였다. “나 왔당께. 오늘 너무 열심히 일을 했더니 저녁밥이 너무 기다려 져서 한달음에 왔당께.” 아버지는 배를 쥐어 잡으시며 들어오셨다 . 하지만 어머니의 얼굴 을 본 아버지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 다. “송달이 어딨어야. 왜 내 사랑하는 아이들 중에 하나가 없지 , 이 시간에?” 아버지의 눈 밑은 분홍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어떡해, 여보 … .” 어머니는 꾹꾹 참았던 눈물을 아버지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하셨다. 나는 아직도 아무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 에게도 지금 상황에 대해 물어볼 수가 없었다. 조용히 나는 내 방으 로 들어갔다. 집에는 어머니의 통곡과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는 나의 심장 소리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오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 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전혀 예상을 할 수가 없었다 . 나는 더 이 상 혼자서 견딜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야 ? 시방 오빠한테 무슨 일 생긴 거야?” “...” “...오늘 오빠가 태극기를 갖고 나갔제 ?”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나에게 갑자기 오늘 오빠가 들고 간 태극기 에 대해 물으셨다. “응. 그랬제. 그게 왜 .” 내가 이렇게 답하는 순간 나는 무슨 일이 생겼는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나는 곧장 현관으로 달려가 신발을 신기 시작했다 . 아버지 나에게 처음으로 큰 소리를 치며 신발을 신고 있던 한 쪽 발을 잡아 신발을 바깥으로 내던지셨다. 그러고서는 신발을 신으시며 나에게 매 섭게 말씀하셨다. “너는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나오지 마 . 너는 엄마를 지키는 게 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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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씀하신 후 아버지는 눈물을 닦으며 밖으로 나가셨다 . 어 머니는 눈물을 그칠 줄 몰랐고 나의 마음은 뜨겁게 불타오르기 시작 했다. 손이 떨릴 정도로 화가 나기 시작했다 .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느꼈을 때, 내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 내가 지금 무 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나는 무작정 집을 나갔다 . 마침 옆집 우 리 오빠의 친구가 서 있었다. “달래야, 너 왜 나와 있어야 ?” 오빠는 내가 바깥에 있다는 게 놀라운 듯이 물어봤다. “오빠가 오늘 아침에 학교 간다고 나갔는데 지금까지 집에 안 들 어왔어야.” 이렇게 대답을 하자마자 눈물이 내 볼을 타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 우리 학교 오늘 휴교령 내려져서 나는 오늘 학교 안 갔는데.” 나의 심장은 더 이상 쿵쾅거리지 않았다. 어떠한 소리도 나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너무나 확고했다 . 우리 오빠는 시위를 나간 것이다 . 그리고 그 뜻은, 언제든지 우리 오빠는 공수부대의 탄압과 무차별 폭 력 아래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 나에게 전남대학교가 휴교였다는 걸 말한 순간, 옆집 오빠도 나의 눈치를 살피며 나를 얼른 다시 집으 로 들여보냈다. 어머니는 다리의 힘이 풀린 채 넋을 놓고 계셨다 . 나 는 우리 아버지와 오빠, 둘 다 걱정되기 시작하였고 끓어오르는 분노 를 참기 어려웠다. 쓰레기 같은 정부 . 인간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들. 나는 이들이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 인간 무기들이었고 그들은 심장이 없는 괴물들 같았다 . 공수부대까지 투입하여 시민들을 공격하고 탄압 을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으로 해결하는 괴물들 . 그 괴물들이 우리 아버지나 오빠의 살결을 조금이라도 스쳤다면 나는 그들을 어떻 게 해서라도 죽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단 한 명의 권력을 위하여 계엄령을 선포하여 국민들을 짓밟아버리고 헌법까지 고쳐버리는 우리 나라. 이런 불공평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나의 발목은 땅에 묶여버리 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 어머 니와 나는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나의 분노는 걱정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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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와 오빠는 지금쯤 같이 있을까 ? 혹시라도 다치진 않았을 까?’ 그 순간 우리 집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 나는 헐레벌떡 맨발로 뛰쳐나갔다 . 아버지의 얼굴은 너무나 메말라 있었다. “어서 까만 옷 챙겨 입어 .” 그렇다. 우리 오빠 송달이의 목숨도 앗아가 버렸다 . 다 가져가 버 렸다. 나는 바닥에 털썩 앉아버렸다 . 마침 틀어져있던 텔레비전에서 는 거짓말이 난무했다 . 뉴스는 사실을 전하기는커녕 국민들을 미친 사람들인 거 마냥 떠들어댔다 . 나의 손은 또 떨리기 시작했다 . 나는 옆에 있던 꽃병을 들어 텔레비전을 부수었다 . 더 이상 그 화면의 빛 조차 나오지 않게 조그마한 소리도 들리지 않게. 잡았어야 했다 . 무슨 일이라도 그 셔츠 끝자락을 잡았어야 했다 . 그랬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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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향기 김하령 Eunice Kim “이미연, 일어나. 언제까지 누워있을 생각이야 ! 에휴 , 언제까지 깨 워줘야 될런지.” 오늘도 미연은 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으며 침대에서 깼다 . 밖에서 는 동생 민혁이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아침부터 왜 이렇게 많이 차리셨어요 , 냄새 되게 좋네 요.” “호호, 우리 이쁜 아들이 든든히 먹고 가서 공부 열심히 하라고 그렇지~” 어머니의 콧소리도 같이 들렸다 . 하지만 미연은 아침밥의 그 좋은 냄새를 맡을 수는 없었다. 17년 전, 어머니가 벌을 준다면서 비가 끊임없이 내리던 새벽에 어린 미연을 집으로 들여 보내주지 않은 후 , 그녀는 심한 폐렴에 걸 렸다. 다행히 아버지가 그녀를 발견하여 병원으로 데려갔지만, 의사 는 그녀를 완전히 치료할 수 없었고 미연은 후각을 잃게 되었다 . 하 지만 어머니는 자신이 저지른 일은 생각도 않은 채 딸이 장애인이 되 었다며 미연보다 그녀의 동생 민혁을 더 챙기셨다 . 서울대 의예과에 수석 입학한 민혁은 어머니의 든든한 지원을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미연에게는 어머니에 의한 서러움도 잊은 오래였다. 그 녀의 약혼자인 도지석 덕분이었다. 지석과는 2년전 , 도서관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 미연은 평소처럼 좋아하는 책을 읽으러 수업이 끝난 뒤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가 창가 옆,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김승옥의 단편집을 읽고 있었 다. 햇빛이 창문을 통과하여 책에 열중하고 있는 그녀의 옆모습을 비 추었다. 유난히 피부가 하얗던 미연은 햇빛을 받으니 더 빛이 나 보 였고, 이를 알아본 사내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 . 하지만 그날, 그녀에 게 용기 내어 말을 건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 도지석 , 연세대학교 의 예과 2 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 그렇게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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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사귄지 2 년 만에 약혼을 하였다 . 미연은 전날 지석이 그녀에게 선물해 준 귀걸이를 보며 미소 지었 다. 그리고서는 씻고 식탁에 앉아 숟갈을 들어 아침밥을 먹기 시작했 다. 아버지는 라디오를 듣고 계셨다. “대통령 각하께서 .. 남베트남에 지원을..외과병원에 먼저 ..” 라디오에서 치직 소리가 났다. “아 거 차암! 생판 모르는 나라에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왜 보내 ?” 아버지가 쯧쯧 혀를 차셨다. “당신도 그 입 좀 조용히 해요. 밖에서 그런 소리 했다가 그, 누구 였더라, 옆집 김 씨처럼 안기부에 끌려간다니깐요 ..” 어머니가 식탁에 장조림을 놓으시면서 말했다. “저는 다녀올게요 .” 미연이 집을 나서며 말했다. “어, 그래, 조심히 다녀오고 .” 아버지가 라디오에서 귀를 떼며 말하셨다 . 어머니는 민혁에게 눈 을 붙인 것처럼 얼굴은 돌리지 않은 채 “갔다 와 ~”라며 건성으로 답 하셨다. 미연은 걸어서 15분밖에 안 걸리는 동네 도서관으로 걸어간 뒤 그녀의 자리에 앉아 제일 선배인 미숙에게 인사를 했다. “좋은 아침이에요 .” “미연 씨도요 . 아 참 , 미연 씨 ! 지석 씨가 이걸 전해달라고 했어 요.” 미숙이 미연에게 편지 한 통을 건네었다. ‘미연아 , 퇴근하고 데리 러 갈 테니까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할 얘기가 있어 .’ 미연은 살짝 불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일 끝나고 지석을 볼 생각에 서둘러 책을 정 리하고 사서 일을 열심히 하였다. 그러더니 6 시간은 훅 지났고 , 곧 미연은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미연아!” 지석이 도서관 계단 밑에서 그녀를 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미연은 방긋 웃음을 지으며 계단을 내려왔고 둘은 가로등만이 비추고 있는 깜깜한 밤을 함께 걸어갔다. “저기 말이야 .” 지석이 힘겹게 입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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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무슨 일이에요 ?” “그게.. 내가.. 동료 몇 명이랑 월남에 가게 됐어 . 내일 아침 출발 이야.” 지석이 미연을 흘끗 쳐다보았다 . 미연은 아침에 아버지가 듣고 계 셨던 라디오 방송이 생각났다. “그 전쟁 난 곳 말이에요 ? 아니 왜요 , 왜 의사까지 데려 간대요?” 미연이 걱정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한국군도 파병될 테니, 의사들을 먼저 보내서 자리를 잡아 두라는 거겠지. 다치면 치료할 사람이 필요하니까 .” 지석은 체념한 듯이 말하였다 . 두 사람은 미연의 집 앞에 도착하 였다. “그래서 오늘 저보러 기다리라 한 거예요 ?” “응. 그리고 너희 부모님께도 얘기해야겠다 싶어서 .” “어머 우리 도 서방 왔네에!” 미연 어머니가 예비 사위를 맞이하며 문을 활짝 여셨다. “아이구, 바쁠 텐데 뭐 하러 왔어 .” 아버지도 신문을 접으시며 일어나셨다. “아니에요, 어머님 , 아버님. 잠시 말씀드릴 것이 있어 늦은 시간에 왔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지석을 가만히 바라보셨 다. “저, 이번에 월남에 의사로 파견 결정됐습니다 . 내일 아침 출발합 니다.” 아버지는 바로 인상을 찌푸리셨다. “응, 그래, 우리 대통령이 아주 미 (美)를 위해 우리나라를 바치겠 구만, 그래.” “허, 그러면 미연이는 어쩔 거야, 약혼해 놓고 버리고 가겠다는 거 야? 그러면 안 되지 , 누가 또 얘를 데려가겠어 ?” 어머니는 미연이를 가리키며 언성을 높이셨다. “어머니, 그만 하세요 .” 민혁이 어머니의 팔을 잡았다. “어머님, 아버님 . 죄송합니다 . 하지만 정부에서 통보한 것이라 저 는 가야만 합니다 . 그리고 미연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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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이 어머니를 보며 말했다. “제가 끝까지 책임질 테니 버린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으셨으면 좋 겠습니다.” “지석 씨, 몸 조심히 하고 , 빨리 다녀와요 . 저는 누가 뭐라 해도 계속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미연과 지석은 마지막 포옹을 하고 서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 을 흔들었다. 이윽고 지석이 떠나자 어머니는 멍하니 책상에 앉아 있는 딸을 보 며 쓴 소리를 퍼부었다. “너, 내가 동네 사람들한테 의사 사위 보겠다고 다 말해 뒀는데 지금 이걸 봐, 온 동네 망신 될 판이야!” “당신, 제일 힘들 애한테 그게 할 소리야 !” 아버지가 어머니를 향해 소리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미연은 어머 니의 잔소리는 한 귀로 흘려보낸 채 지석과 함께 찍은 사진을 계속 어루만졌다. 지석은 월남에 도착하자마자 미연에게 편지를 보내왔고 , 몇 주 동안은 그렇게 서로 연락을 했다. “미연아, 여기는 아픈 사람이 많아 . 그래서 더욱 치료해 주고 싶은 마음이 커.” “너는 잘 지내니? 어머님 , 아버지는. 민혁이에게도 안부 전해줘.” “요즘은 매일같이 바빠 . 하지만 조금만 버티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생각을 하면서 지내고 있어.” 그렇게 두 사람이 편지를 받고 보내던 중 , 어느 날, 영문으로 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고 이후 지석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 미연은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몇 번이나 읽으려 했지만, 영어를 전혀 모르는 그녀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와 아버지 는 싸우게 되고, 아버지는 신촌 근처에 집을 구해 잠시 떨어져 살기 로 한다. 마침내 정신 차린 미연은 매일 밤 도서관에 늦게 남아 영어 교과 서로 공부를 한다. “에이치.. 호스피탈 ..”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던 사서 선배인 미숙이 그녀를 도와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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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미연 씨, 이 책들이 제일 좋아요 . 학생들도 써야 되니까 빨리 공 부해요.” 그렇게 미연은 영문 편지를 번역하기 위해 공부를 한다 . 집에서는 어머니가 매일 아버지와 연락이 안 된다며 발악하고 , 민혁에게 더욱 더 집착한다. “민혁아, 너는 늬 애비랑 누나처럼 되면 안 돼. 우리 아들은 다르 지?” 민혁은 그런 어머니를 보기가 괴로운지 아침 일찍 집을 나가 밤늦 게 귀가하는 습관을 들이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 미연은 피 나는 노력 끝에 드디어 기본적인 영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그녀 는 서둘러 가방 안에 고이 모셔 두었던 영문 편지를 꺼내어 천천히 읽는다. “당신의.. 남편 도지석..병원 붕괴로 팔 다리 다쳐 ..병원에 입원 .. 방 문..바람?!” 미연은 편지의 내용을 읽은 뒤 서둘러 배표를 산다. 짐을 싸는 그 녀를 보며 어머니는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인데 그래, 너도 니 아비 따라서 집 나가게 ?! 어디가 ! 어 디 가냐고!” 하지만 민혁은 그런 어머니를 붙잡으며 미연을 응원한다. “누나, 조심히 다녀와 , 우린 신경 쓰지 마!” 오랜 여행 후 , 미연은 베트남에 도착하게 된다 . 그녀는 땅에 발이 닿자마자 들고 온 가방을 메고 서투른 영어로 지석이 있는 병원을 찾 는다. 그리고 그녀는 베트남의 한 병원에 도착해 창가 옆 침대에 누 워있는 지석을 보고 달려간다. “미연아, 어떻게 왔어 , 아니 왜.” 지석은 말끝을 흐린다 . 미연은 그런 지석을 보고 손에 빛이 바랜 편지 뭉덩이를 쥐어주면서 말한다. “이제 됐어요 , 내가 왔으니까 다 상관없어요 .” 그 날, 햇빛은 유난히 밝았고 그 빛에 비춰진 미연과 지석의 웃는 모습은 마치 한 쌍의 학과 같았다 . 그리고 그 둘은 그렇게 한참동안 손을 맞잡고 그동안 못했던 얘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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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청계천의 기억들 김소정 Elly Kim 우리 딸 소연이의 생일이 언제인지 확인하려 11 월 달력을 보다가 ‘곧 그날이겠구나’하고 문득 생각했다 . 아내가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 “벌써 태일 씨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다 돼가네요 . 당신도 올해 는 갈 거지요?" 그가 힘겹고 고단한 삶만 살다가 제대로 된 끼니 한번 못 채우고 가버린 탓에 오랫동안 태일이가 원망스러웠다 . 그와 친했던 바보회 회원들끼리 그가 잠든 곳에 가기로 했지만 , ‘소중한 목숨만큼은 아끼 자’라고 한 내 말조차 듣지 않고 간 그의 사진을 보면 눈물이 멈추지 않을 것 같아 바쁘다고 둘러대고 바보같이 집에서 숨어있었다. ‘ 올해만큼은 꼭 가야지 .’ 굳게 결심하고 난 뒤에 달력을 다시 놓기 위해 탁자로 다가갔다. 탁자 위는 종이 더미와 책들로 너저분해져 있었다 . 달력을 놓고 종이 들과 책들을 정리하다가 전에 미싱사에서 일할 때 썼던 작은 수첩 하 나를 발견했다. 수첩을 열어보니 내가 평화시장에서 재봉사로 처음 일하게 된 날부터 작년 11월 말까지 쓴 일기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 었다. 일기의 내용을 살펴보니 높은 하숙비를 적은 임금으로 채우며 죽 을 만큼 일하는 나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 여름에는 불타는 듯이 덥고 겨울에는 얼음장 같은 추위를 버텼던 나 , 그리고 내 소중한 동료들 . 그중에는 태일이가 제일 씩씩했고 어른스러웠다 . 나보다 한참 어리지 만 더욱 형 같았고 바보회 내에서는 늘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며 동료 들을 이끌었다. 일기를 넘기면서 평화시장 동료들과 태일이랑 첫 번 째로 찍은 사진을 발견했다 . 그 옆에 작은 글씨로 ‘바보회 첫 모임’ 이 라고 쓰여 있었다. ‘ 태일이 요 녀석 이 모임 활동 준비하면서 고생 많이 했는데 … ’ 그는 늘 속이 빈 채로 동생들을 부양하기 위해 희생하며 고된 근 무를 참아왔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처럼 고생하는 것을 볼 때 마다 안타까워했고 나중에는 노동자의 서러움을 알리고 바로 고치려 고 노력하였다. 그가 처음 평화시장에 왔을 때는 늘 여성 노동자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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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보다 어린 노동자를 보면서 ‘여기처럼 숨 막히고 답답한 곳은 그 들이 일할 곳이 못 되는데 … ’라고 중얼거렸고 노동자들이 최대한 빨 리 퇴근할 수 있게 늘 도왔다 . 고된 일이 끝나면 집이 같은 방향이었 던 태일이와 나는 항상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위로를 하곤 했다. 나는 자주 쥐꼬리만한 임금과 우리가 기계인 듯이 일만 시키는 나쁜 상사 욕으로 속에 있는 앙금을 털어놨지만 , 태일이는 늘 자신보다는 남에 대한 걱정이 가득한 채 그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늘 궁리 하였다. ‘ 요쯤에 일어난 일 같은데 , 일기에 내가 썼나 ?’ 나는 수첩을 휘리릭 넘기면서 태일이가 나에게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울분을 토했던 그 순간이 담긴 일기 내용을 찾으려 했 다. ‘ 여기 있네… 1966년 5월 xx 일 봄. 한 번 읽을까 ?’ 처음으로 그날 내가 썼던 일기를 찬찬히 , 한 글자 한 글자씩 읽었 다. 태일이와 함께 집으로 걸어오던 중 갑자기 태일이가 진지한 목소 리로 내게 물었다. “형은 여기가 지옥 같아요?” 나는 오늘도 ‘어린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무리하면서까지 일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털어놓는 건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응 , 지옥이 따로 없지 ’하고 대답했다 . 내 대답을 들은 그는 갑자기 고개 를 푹 숙였다. 힐끔 쳐다본 나는 그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슨 일인지 물어볼 용기가 없었던 나는 가만히 앞을 보며 걸었고 태일이는 집에 도착하기 전까 지 땅만 보며 걸어왔다 . 태일이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내일 보자 , 수고했다’라 말하고 발걸음을 떼려 했다 . 그러던 와중 태일이가 나를 불렀다. “형, 어떻게 해요 ? 나 여기가 너무 지옥 같아서 마음이 아파요.” 그 말을 들은 나는 다시 태일이를 향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 그의 눈은 토끼처럼 빨갰다. 처음에는 오랜 시간 눈물을 흘려서 그런 것 같았지만, 저번 주와 이번 주 내내 야근하면서 생긴 내 충혈된 눈과 비슷해 보여서 고된 노동으로 생긴 듯했다 . 태일이는 나에게 그가 보 았던 충격적인 일을 한 줄로 요약해서 말해주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기계 같아요. 망가지고 닳으면 쉽게 새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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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체하는 우리 미싱 기계처럼.” 처음에는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 그 다음 날 평화시장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가 ‘폐렴에 걸렸던 계집애 한 명이 잘린 걸 보고 태일이가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 말해주기 전까지는 . 충격이 컸던지 태일이는 그가 다니던 삼일사에서 해고되기 전까지 혼 자 다녔고 회사가 달랐던 나는 평화시장에서 종종 그를 볼 수 있었지 만 태일이는 늘 고개를 푹 숙이면서 홀로 거리를 배회했다. “태일이가 삼일사 여자애들 고생 안 하게 도와주는 거 걸려서 결 국 잘렸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어린애가 또 얼마나 큰 낙담을 하게 될까 걱정 이 되어서 일이 끝나자마자 곧장 태일이의 집으로 향했다 . 문을 두드 려도 나오지 않은 태일이가 가족을 부양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헛된 생각을 할까봐 나는 문을 뜯어서라도 그를 보려고 했다 .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턱 잡은 순간 , 태일이가 문을 열고 나왔다 . 그가 살아있다 는 안도감과 오랜 기간 고생과 근심을 견디면서 일해 더 말라진 그의 손목이 너무 안타까워서 말없이 그를 안으며 울었다. 그날 밤 나는 밤새도록 태일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나 그가 노동자를 위한 세상 을 펼치고 싶어 했는지 알게 되었다 . 그리고 그의 꿈을 이룰 수 있게 조금씩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여보, 얼른 자요 . 내일 출근해야지 .” 아내의 말을 듣고 나는 수첩을 다시 탁자 위로 두고 잠을 청하러 이부자리에 누웠다 . 눈을 감으면서 태일이와 내가 보냈던 추억을 떠 올렸다. 삼일사에서 부당하게 해고된 후 그는 한미사에서 새 일자리 를 구했고 재단사의 자리까지 올랐다 . 그는 평화시장에서 일하면서 더욱 어른스러워졌고 ‘대학입시시험 응시 ’라는 새 꿈을 꾸게 되었다 . 나는 해진 참고서 하나라도 더 찾을 수 있게 도와주었고 생일에 빳빳 한 필기 공책을 하나 선물했을 때 태일이는 마치 천금을 얻은 듯 기 뻐하였다. 교육에 대한 열망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에 대한 열정도 키 워나갔다. 우연치 않게 근로기준법에 대하여 알게 된 후로부터 우리 의 험난한 노동환경과 병이 날 듯한 노동시간을 법에 비교하면서 그 는 늘 분노하며 바뀌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일깨웠다. 평화시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도 일깨워야 한다고 바보회도 조직하여 틈만 나면 근로기준법에 대해 다른 노동자들에게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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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회라… 참 이름도 재미있어야 되는데 왜 이렇게 슬프지 ? 배 우고 깨우쳐서 바보가 되지 않으려는 노동자들의 모임인데 … 왜 나는 태일이를 바보처럼 잃었지?” ‘ 더 이상 자책하지는 말자 , 그 사건에 대해 더 이상 나를 원망하지 말자’ 라고 늘 속으로 되새겨 쓰지만 오늘도 그 일에 대한 슬픔으로 가슴 한편이 아렸다 . 그는 바보회를 통해 여러 사람들에게 노동자인 우리도 먼저 사람이라는 것을 알렸고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실현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해나갔다 . 웃음을 지으면서 늘 다른 노동자들 이 더 나은 근무환경을 가질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게 최선을 다했 다. 동대문구청에서 호소하고 시청에서 근로 감독관실을 찾아갔으며 노동청을 연락했지만 그들은 그를 위해, 아니 우리 노동자들을 위해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그는 어른스럽고 다정했으며 늘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을 일 깨워 주었지만, 때론 아이처럼 나를 찾아와 서러움을 털어놓을 때도 있었다. 자주 노동청과 심지어는 평화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조롱 거리가 되었지만, 그는 잘 버텨냈다 . 하지만 그를 아프게 한 것은 바 보 회의 회원들이 ‘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될 것 같다 , 태일아’ 라 고 하면서 등을 돌릴 때였다 .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서 바보회를 조직했다는 것을 그의 동료들은 알았 지만, 그가 해고를 당하면서 , 비웃음을 받으면서까지 어려운 일들을 해낸다는 것이 점점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의 말들이 귀찮은 설교로 바뀌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 나도 참 나빴다 . 그때 위로는 해주지 못할망정 …’ 태일이가 힘들어할 때마다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기로 했는데 나 는 가끔 태일이에게 되레 화내면서 ‘제발 현실을 깨닫고 우리 밥그릇 부터 먼저 채우자 ’라고 따끔하게 말했다 . 비록 그가 꿈꾸는 노동자들 을 배려하는 세상이 오길 나도 바라고 있었지만, 현실은 너무 가혹하 고 바뀔 조짐조차 없었으니깐. 오랫동안 뒤척이면서 깊은 회상에 잠 겼던 나는 지쳤는지 깊은 잠 , 그리고 깊은 꿈속으로 빠졌다 . ‘ 어, 태일이네? 여기가 어디지 ?’ 꿈속인지 현실인지 알지 못할 만큼 내 주변에 사람들 , 말소리 , 그 리고 태일이의 환한 웃음과 맑은 눈동자 모두 생생했다. ‘ 평화시장이구나 . 바보회 때문에 모인 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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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놓인 신문의 날짜를 보니 1970년 11월 12 일이었다 . 태일이 가 떠나기 전날… 내 기억에 의하면 이날 우리는 중대한 결정을 내린 다. “형, 내 말 듣고 있어? 우리 내일 쓸 문구 적어 놔야지 ?” 태일이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시위 말이야? 태일아 정말 해야 하는 걸까 ? 사고라도 나면 어쩌 려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미 알고 있는 나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그에 게 말했다. “형, 왜 그래 ? 방금 전까지는 내 의견 지지했으면서 . 노동청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노동자들을 위해 바뀌려면 이 방법이 최선인 것 같아. 다시는 윗사람들이 우리들을 기만하지 않게, 우리들을 위한 대 우와 근무환경이 나아지게 , 그리고 형 식구들이 웃음만 가득하게 … ” 태일이가 나에게 한 자 한 자 말할 때마다 그의 진실된 마음이 담 겨있다는 게 느껴졌고 , 나는 울음을 참으려 꾹 마음을 다스렸다. 한 번 더 생생하게 들으니 더 고맙고 더 아픈 말이었다 . 그가 내게 해준 가장 큰 위로들은 우리 식구들이 걱정 없이 항상 웃게 될 거란 말들 로 가득했다. ‘우리 식구 ’라는 말 뒤에는 내 식구들뿐만 아니라 우리 의 가족 같은 동료들을 포함한 따듯한 말이었다. “고맙다, 태일아 . 꼭 해내자 .” 꿈에서만큼은 그를 다시 응원해주고 싶었는지 그에게 따듯한 응원 을 남기고 잠에서 깼다 .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고 주위를 살폈다 . 아직 늦은 밤이었는지 날씨는 서늘하고 어둠이 방을 뒤덮고 있었다. 지금 일어나면 아내와 아이가 깰까 봐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다시 잠 을 청하려 모든 생각들을 내려놓으려 했다 . 하지만 태일이가 나를 위 해 해준 말이 또 한 번 머리를 스쳤고 나는 그 말을 몇 번씩 머릿속 에 새기며 11월 4 일 , 그날의 기억을 되돌리고 말았다 . 우리의 노력이 처참히 무산이 된 아침의 시위 , 음식 하나 없이 한숨과 걱정만 가득 했던 그와의 마지막 점심시간, 갑작스러운 그의 선택에 무엇도 해줄 수 없었던 나, 마지막으로 그와 그의 어머니의 눈물. 아직 그날의 충 격은 나를 괴롭힌다 .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채 , 눈물을 참지 못한 채 , 눈을 감았고 결국 울다 지쳤는지 나는 꿈속에 빠졌다. ‘ 여긴 평화시장 뒷골목일 텐데 ? 설마 13일 점심시간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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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정신도 없이 나는 누군가에 의해 내가 일 하던 공장 깊은 골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 나를 끌고 가던 사람은 근로기준법 준수 시위에 썼던 한 손에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고 다 른 한 손으로는 나의 팔목을 잡고 있었다. ‘ 손이 얼음장같이 차갑네 … 손목도 엄청 앙상하고 … 태일인가?’ 내 추측이 맞았다 . 그는 얼마 가지 않아 나를 잡던 손을 놓았고 나를 향해 뒤를 돌아보았다 . 그리고 나는 그에게 재빨리 물었다 . “태일아! 여긴 왜 …” 그는 한숨을 쉬었고 입을 우물쭈물하면서 말하기 어렵다는 듯이 고개를 숙여 서있었다. 그때 골목이 매우 조용했던 탓에 나는 그의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를 들었다. “태일아 대체 며칠을 굶 …” 내 말을 끊고 태일이가 드디어 입을 뗐다. “형, 우리 정부 하물며 시민들까지 우리들의 목소리를 진심으로 듣고 느끼기 위해서는 방법이 없어 … 누군가 희생을 … ” ‘ 미친놈. 바보회 나간 사람들 말대로 한 명이 사라진다고 법이 바 뀌겠어? 제발, 너의 목숨만큼은 소중하게 여겨야지 . 왜 , 대체 왜 , 우 리만 더 힘들게 하면서까지 … 현실을 봐봐 … ’ 그의 말에 나는 그때처럼, 아니 그때보다도 더한 상처만 남길 말 을 할 뻔했다. 하지만 이번에 나는 그의 말을 끝까지 들으려고 했다 . 그때 내가 한 모질 말 때문에 태일이가 불에 덴 것보다 큰 상처를 입 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1년을 후회하고 자책하며 보냈고 꿈에서만 큼은 그 실수를 다시 한 번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희생을… 해야… 그래야 노동자만 아픈 이 지옥은 끝날 거야 . 형, 나는 다른 사람들이 더 이상 고통 받는 것을 볼 수가 없어 . 그러면 내가 사는 게 사는 게 아닐 것 같아 . 그러니까 형이 …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내 형이… 나를 도와줘.” ‘ 설마 불을 내게 붙이라고 …’ “내가 사명을 다하고 떠날 수 있게 내 몸에 불을 … ” 이 말을 남기며 내 손에 라이터를 쥐여 주고 얼른 골목 밖으로 달 아났다. 그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라이터를 껐다 켰다를 반복하며 멍하니 라이터의 불안정한 불씨를 바라보았다 . 태일이는 살아야 한 다. 하지만 그가 남긴 말 중 가장 가슴 아픈 말 , “내가 사는 게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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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아닐 것 같아 .” 아무리 내가 태일이를 놓아주고 싶지 않지만 그는 어떻게든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역사에 자신의 고난 가득했던 자취 를 남길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그때에도 태일이는 내가 하는 걸 원했던 건가… ?’ 결국 나는 살면서 내린 가장 무모한 결정을 내렸다. 뜀박질로 골목을 나와 평화시장으로 향했고 온몸을 적시고 나온 태일이의 뒤통수를 볼 수 있었다 . 사람들이 가득한 앞길로 뛰쳐나간 태일이를 따라 나도 뛰었다 . 갑자기 멈추더니 그는 뒤를 돌며 나에게 웃음을 넌지시 지었다. ‘ 아마 이게 신호겠지.’ 그는 라이터를 켰고 다시 빠르게 뛰면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 라!”를 외쳤다. 그때 나는 태일이를 따라잡았고 그의 소원을 들어주 었다. 그리고 타오르는 따듯한 그의 손을 꼬옥 잡아 나도 그와 함께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라고 소리 지르며 고통을 애써 무시하며 평 화시장의 거리를 불로 밝혔다 . 정신을 잃어가고 있던 그때 누군가 우 리가 남긴 불길을 향해 근로기준법 책을 던졌다 . 마지막으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고통이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렸던 탓에 방 황했고, 옆에 태일이가 있을 것만 같았다 . “여보, 일어났어요? 지금 누가 찾아왔는데… ” ‘ 이른 아침에 누가 찾아온 거지 ?’ 출근 준비를 서둘러 하고 나는 밖으로 나갔다 . 문을 열어보니 낯 이 익은 한 남자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이른 아침에 무슨 일로 …” 질문을 끝내기도 전에 그 남자는 내게 말하였다. “오랜만입니다. 한때같이 바보회 활동했던 사람인데 그동안 잘 지 내셨는지요. 실은 이번에 제가 청계피복노동조합 주요 단원이 되었는 데, 바보회 회원들이 다시 한 번 모일 수 있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 이번만큼은 제대로 힘을 합쳐 태일 씨가 이루고 싶어 했던 것들 모두 해내려고요. 지금 평화시장 의류 공장에서 일하신다고 들었는데 , 지 금이라도 저희와 함께 뜻을 모으고 싶으신 의향이 있는지요 . 노동자 들이 모두 웃을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게 모두 노력하고 지지하고 있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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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를 한 번 옮겼지만 여전히 평화시장에 머문 탓에 청계피복 노조 가입을 여러 번 하라고 여기저기서 부추겼었다 . 하지만 나는 그 곳에서 활동하는 것이 태일이를 보낼 때 생긴 그 아픈 상처들을 더욱 더 쑤시는 일이라 믿었다 . 그래서 일 년이 다 되어 갔지만 노조 가입 없이 조용하게 일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 그런데 어젯밤 그 꿈을 꾸 면서 나는 태일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 노동자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다 . 내가 나서서 끊 임없는 노력을 해야만 바뀌는 세상을 태일이는 먼저 직시했고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다시 한 번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할 만한 결정을 내렸다. “저도 활동하고 싶습니다 . 태일이의 뜻을 이어갈 수 있게 .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는 걸 모든 이들이 알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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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상자 이수빈 Claire Lee “여보 저기 한 박스 남았어. 거실 탁자 앞에 .” “어어. 갖고 나갈게.” “난 차에 있을 테니까 당신은 천천히 나와 .” 그녀의 목소리에는 나를 향한 마음이 묻어났다. 가끔 배려심이 너 무 지나치면 그 속에 숨겨진 걱정과 동정이 형태를 잡기 시작한다. 유독 날씨가 좋던 하루가 끝날 무렵, 붉은 하늘의 해는 이미 창틀 에 걸터앉아 있었다 . 살짝 열어놓은 창문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땀에 젖어있는 내 옷을 스치며 그 언제보다 더 시원하고 개운했다 . 잠시만 아무 생각 없이 서 있고 싶었다 .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생각도 안 해도 되는 여유를 느껴보고 싶었다 . 하지만 노을이 지면 밤이 올 거 고,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들 생각에 나는 거실로 향했다 . 벌써 먼지가 수북이 쌓인 거실을 둘러보다 내 시선은 어쩔 수 없 이 그 탁자 앞에 다시 멈췄다 . 망설임의 끝에 무거운 마음으로 박스 를 열었다. 사실 이 상자가 마지막인 건 우연이 아니었다. 큰 글자로 ‘엄마 꺼’라고 쓰여 있는 그 상자는 엄마의 얼마 없는 어릴 적 소품 을 모아 둔 상자였다. 나에게 ‘엄마 ’라는 사람은 참 헤아리기 어려운 존재였다 . 분명히 나를 사랑하는 건 알았다 .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계란 후라이와 빵을 구워주며 하루를 잘 보내길 바라던 그녀의 눈빛에는 사랑이 넘쳐났 다. 그녀는 분명히 나를 사랑했다 . 늦은 밤 과일을 깎아 내 방으로 갖고 오던 그녀의 소심한 발걸음 소리에는 공부에 집중하던 나를 배 려하는 마음이 보였다. 하지만 모든 사람처럼 엄마는 이해할 수 없는 면이 있었다 . 가끔 공부하다 거실로 나오면 창밖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그녀를 봤다. 그 녀의 눈빛에는 내가 다가갈 수 없는 깊음이 있었다 . 그녀는 비 오는 날에도 아침에는 선글라스를 꼈다 . 어렸을 때 그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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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왜 맨날 썬글라스 껴 ?” “음~ 엄마는 눈이 예민해서 조금이라도 밝으면 눈이 너무 아파서 그래.” 그녀의 환한 웃음에 나는 속았다 . 몇 년 뒤 , 고등학생이 다 되고 나서야 그 선글라스 뒤의 퉁퉁 부은 눈을 보고 진짜 이유를 알았다. 엄마는 앞에서 볼 땐 보름달처럼 은은한 빛이 나는 사람이었지만, 뒤에는 길고 긴 그림자를 지니고 다니던 사람이었다 . 엄마는 늘 슬픔 을 끌고 다녔다. 나는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고 , 나이가 들수록 우리의 사이는 서먹해졌다. 하지만 왠지 이 박스를 들여다보면 마치 엄마의 속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 같을까봐 긴장되고 한편 무서워서 이삿짐 중 제일 마지막으 로 남겨 두었던 거였다. 첫눈에 유난히 특별해 보이는 소품은 없었다 . 일기장 몇 개, 책 몇 권, 사진, 엽서, 그리고 오래된 키링 . 사실 생각보다 너무 평범해서 아쉬웠다. 왠지 엄마의 박스는 훨씬 더 신기한 물품이 많을 거라고 나름 기대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바닥에 앉아 물건을 하나하나씩 빼던 중 , 일기장에서 사진 한 장 이 떨어졌다. 딱 봐도 오래돼 보이는 사진 . 마치 커피를 쏟은 것처럼 누렇게 변해버린 사진이었다. 흐릿하고 구겨져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 만 그 사진에 나온 여자는 분명히 젊은 엄마였고 , 그 옆에 팔짱 끼고 서 있는 남자가 있었다 . 엄마의 어릴 적 사진을 본 적이 없어서 처음 에는 마냥 신기했지만 , 엄마 옆에 있는 그 남자의 얼굴은 손에 힘이 풀릴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 그 남자는 20 대의 나와 너무 닮았기 때문 이다. 내 두눈을 의심할 정도로 똑같았던 나머지 , 나는 사진에 적혀 있는 날짜를 확인했다 . 1979 년 4월 20 일 . 내가 태어나기 10 년 전 . 분명히 내가 아니었다 . 사진 뒷장에는 연필로 이름이 쓰여 있었다 . 현우. “여보, 나오고 있어?” 생각에 잠긴 나를 깨웠다 . “어? 어 바로 나갈게 .” 갑자기 모든 게 혼란스러워진 나는 허겁지겁 그 사진과 일기장을 챙겨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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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아이들을 재우고 서재에 들어가 엄마의 일기장을 조심스 레 읽기 시작했다 . 1976 년부터 시작해, 띄엄띄엄 쓴 일기를 하나씩 읽을 때마다 불편함은 어느새 사라져가고 호기심은 커져만 갔다. 왠 지 엄마의 속마음을 다 알아만 갈 것 같았는데, 막상 읽어보니 난 엄 마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새삼 느끼기만 했다. 한참 읽던 중 , 하루가 유독 눈에 띄었다. 1979년 4 월 20일 내일은 현우가 돌아오는 날 . 벌써부터 반가워 . 오랜만에 나가서 저녁 먹고 밀린 이야기 나눠야지 . 현우는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들 을 얘기할 때 제일 행복해 보여 . 그 사이에 더 이상 어린 남동생이 아닌 의젓한 어른으로 변했을까봐 무섭다. 1979년 4월 20 일. 현우 … 남동생 ? 나의 삼촌 ? 엄마는 지방에서 올라온지 오래된 나머지 가족이랑 친하지 않았고 딱히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지만 나는 엄마가 외동딸이라고 알고 있었다 . 형제가 있었으면 당연히 내가 알았겠지. 그날 밤에 나에겐 잠이란 없었다 .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그 사 진밖에 떠오르지 않았고, 엄마의 남동생 (?)이라는 그 의문에 ‘현우’... 왠지 엄마를 이해하려면 이 사람이 누군지 반드시 알아내야겠다는 생 각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외가 쪽 가족 , 엄마의 고모에 게 전화를 걸었다 . 어렸을 때 이후로 한 번도 전화해보지 않아 오래 된 전화번호부를 뒤져서 겨우 찾아낸 번호였다.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를 몇 번씩 반복한 것 같다 . 번호가 맞는지 도 열 번 넘게 확인한 것 같다. “여보세요?” “...” 말문이 막혔다. “여보세요?” “저… 박춘자 씨, 맞으신가요?” “네, 그런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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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김성훈입니다 . 서희 아들이에요 .” “서희? 우리 서희 ?” “네…” “어머, 너무 반갑다 성훈아 ~ 어렸을 때 한번 보고 지금까지 연락 이 없었네. 무슨 일이니 ?” “혹시… 아 이렇게 갑자기 전화 드려서 죄송해요. 전화로 물어보 는 것도 죄송한데 제가 좀 급해서요 . 혹시 엄마는 남동생이 있나요 ? 현우라는 사람이요.” “어..?” 그녀의 떨린 목소리에 섞인 두려움이 전화기를 통해 나에게 전달 됐다. 나도 그녀의 답이 두려웠다 . “갑자기 왜 성훈아 … ?” “있죠?” “있… 있었지 …” “네? 있었다고요 ? 그게 무슨...” “성훈아, 너 아직도 서울에 살지 ? 나도 작년에 서울로 올라왔단다 . 이런 건 얼굴 보고 얘기하는 게 맞는 것 같다 .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다음날 아침, 허겁지겁 받아 적은 주소를 꼭 쥐고 고모할머니를 찾아갔다. xx구 xx 동 514-3. 내 집에서 딱 15 분 거리 . 이렇게도 가까웠는데 . 고모할머니의 집은 아주 작은 주택이었다 . 정문을 열고 들어가 보 니 그녀는 벌써 문을 열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그녀의 얼굴엔 환 한 미소가 떠올랐지만, 경직된 그녀의 몸은 긴장을 하고 있었다 . 김이 모락모락 피는 따뜻한 커피 한 잔에 온몸이 녹아 내렸다 . 그 녀는 한참 잔을 바라보더니 무겁게 말을 꺼냈다. “너의 엄마는 아주 강한 사람이었어 . 너를 위해서 더 그러고 싶었 을 거야… 어렸을 땐 아주 활발한 아이였어 . 착하고 , 발랄하고 . 동생 을 유독 잘 챙겨줬어.” 그녀는 작은 한숨을 내뱉고 거실 창가 쪽을 바라봤다. 밖에 있는 산보다 더 멀리에 있는 그 어딘가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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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도에, 너의 엄마가 한창 대학생일 때 . 현우가 미국에서 유 학 하다가 잠깐 한국에 들렀어 . 그때 한참 길거리에 시위가 많아서 할머니가 그렇게, 그렇게 밖으로 못나가게 막았는데 . 그래도 현우가 오랜만에 왔으니까 밖에 구경 좀 시켜준다고. 시내에 가서 한참 영화 보고 놀다가 갑자기 사람들이 막 도망가기 시작하더래 . 다들 도망치 니까 같이 도망친 거지 뭐. 그러다가 현우가 어떻게 잡혔나봐 . 걔는 어렸을 때부터 약했어. 곱게 자란 애를 때리니까 아무것도 못하다가 겨우겨우 누가 도와줬대. 엄마가 업고 병원에 뛰어갔는데 , 현우는 많 이 힘들었나봐. 며칠 버티다 갔어 .”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 다가갔다. “사람은 참 쉽게 죽지 ? 너무 허무하지 .” “왜… 왜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요?” “그야… 자기 잘못이라 생각해서 그럴 거야 . 못 지켜줘서. 받아들 이기에는 너무 힘든 거지.” “그래서 늘 그렇게 슬프셨던 걸까요?” “그렇겠지?” “저는 늘 엄마는 저 때문에 슬픈 줄 알았어요 . 저를 볼 때마다 슬 픈 표정을 지으셨어요. 늘.” 그녀는 잠시 주저하다 말했다. “그거야… 네가 현우를 너무 닮아서 그래 . 똑같이 생겼어 .” 해가 지며 붉은 빛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 람은 나를 감싸 안아줬다 . 엄마는 늘 운전할 때 너무 깊은 생각을 하 면 안 된다고 했었지만 , 오늘만은 엄마의 생각을 내 머릿속에 가득 채웠다.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엄마와의 기억이 사라질까 봐 무서웠 다. 나는 엄마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 어떻게 그렇게 몰랐을 까? 그녀는 나를 바라볼 때마다 그의 기억과 싸웠을 것이다 . 나를 향 한 사랑은 엄마를 죽여만 갔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늘 더 주길 바랐 다. 그녀는 늘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 , 나는 그런 그녀를 이해할 마 음도 없었던 걸까? 모두 다 뒷이야기가 있는데, 왜 나는 엄마의 이야기는 궁금하지 않았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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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 마요한 Yo Han Mah “아야야, 머리야 .” 학교 가는 길에 머리 아파서 잠시 멈춰 섰다 . 갑자기 생긴 두통에 발걸음이 쉽게 이어지지 못했다. “성호야, 괜찮아 ?” 옆에 같이 걸어가던 미경이가 걱정하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 미 경이는 중학교 때부터 옆집에 살아서 알고 지낸 친구인데 , 몸이 아픈 나를 위해 아침부터 보살펴 주다가 오후가 되서야 학교에 같이 가는 길이었다. “괜찮아, 그냥 살짝 두통 .” “그러게 몸 관리 좀 해 … 이렇게 비실비실하게 맨날 아파가지고 어떻게 먹고 살려고 ? 시위에도 참여 못하고 말야 .” 항상 이런 식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항상 걱정만 끼치는 쓸모없는 놈이다 . 이제 대학교 졸업하면 취직도 해야 되는데, 미경이의 옳은 말이 그저 쓰게 느껴졌다 . 나는 가족의 장남 으로서, 국민학교 다니는 동생과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빨리 돈을 벌 기 시작해야 되는데 … 풀이 죽어서 걸음을 끌어가는 내 모습을 보던 미경이가 기운 내라고 한 마디 해줬다. “힘내라! 그렇게 한 마디 했다고 바로 기분 나빠져서 되겠나 . 어차 피 네가 돈 못 벌어도 내가 얼른 취직하면 …” “으아악!” 미경이의 말이 비명 소리에 먹혀 들리지 않았다 . 우리 둘은 깜짝 놀라 주변을 돌아보았다 . 시내 쪽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 나오기 시작했는데, 전부 다 겁에 질려 비명 지르며 허겁지겁 도망치는 것이 었다.. 나는 깜짝 놀라 멈춰 서 있는 와중에, 미경이가 내 팔을 잡고 당기면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빨리 와!” 우리는 서둘러 우리 집 쪽으로 향해 갔다 . 우리 집으로 가려면 동 네 시내를 지나서 가야한다 . 시내 방향으로 달려가면서 나는 우리 가 족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하는 생각뿐이었다 . 우리는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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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달려가는 사람들을 겨우겨우 제치고 시내에 도착했다 . 하지만 거기서 발걸음을 잇지 못했다 . 바닥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 피를 잔뜩 흘리는 몸은 조금씩 꿈틀거렸고 , 찌그러진 머리와 초점 없는 눈 을 보니 죽음에 가까웠다 . 몸에 난 피멍을 보면 이건 분명 구타... “우웩” 옆에서 미경이가 토했다 . 벌벌 떨면서 주위를 돌아봤다 . 내 앞에는 군인이 몽둥이로 사람을 패고 있었고 , 왼쪽으로는 옆집 아주머니가 바닥에 누워 비명을 지르면서 팔을 움켜쥐고 있었다 . 내 오른쪽으로 는 평소 자주 다니던 야채 아저씨가 군인 두 명한테 끌려가고 있었 다. 보는 곳마다 사람이 도망가거나 맞고 있거나 쓰러져 있었다. 다 내가 알고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움직이 질 못했고, 옆에 미경이는 팔로 입을 닦고 겨우 정신을 차리는 중이 었다. “도망쳐!!” 뒤에서 누가 내 뒷덜미를 잡아당기면서 외쳤다. 정신을 번쩍 차린 나는 미경이를 잡고 도망쳤다 . 내 뒷덜미를 잡은 사람은 처음 보는 중년 아저씨였다 . 그는 한쪽 다리가 안 좋은지 절뚝거리면서 달렸고 , 우리는 일단 급한 마음에 그를 따라갔다 . 뒤에서 군인 몇 명이 쫓아 오고 있었다. 한 명을 제치면 또 한 명이 연속으로 달라붙어서 애를 썼지만 결국 외딴 골목길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나는 우리를 구해주신 분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그는 피에 물 들은 하얀색 셔츠를 입고 있었고 꽤나 비싸 보이는 시계를 차고 있었 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죠?” 그에게 여쭈어 보았다. 그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바닥에 털썩 앉고 한숨을 깊게 쉬었 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 근데 군인이 사람을 패 고 다니는 걸 보면 , 아무래도 정부랑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 “정부에서 왜 사람 구타를 시키죠?” 미경이는 믿겨지지 않는다는 말투로 여쭸다. 그를 대신해서 내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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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파서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오늘 아침부터 우리학교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잖아 ,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건가 보 네…” “아니 그렇다고 사람을 패는 거냐고??” 미경이는 소리를 질렀다 . 나는 깜짝 놀라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 “아직 저쪽에 놈들이 있습니다 , 조금만 조용히 얘기하죠.” 비싼 시계 아저씨는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 미경이는 축 처져 조용히 말했다 . 나는 그녀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 입이 떨려 말을 꺼내지 못했다. “성호야… ” “왜?” 나는 겨우 말을 꺼냈다. “우리 가족… 다 괜찮겠지 ?” 나는 말문이 다시 막혔다. 내 동생과 어머니를 생각하니 ,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괜찮을 겁니다.” 아저씨가 말했다 . 나는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봤지만 , 그도 역 시 표정이 어두웠다 . 미경이가 울기 시작했다 . 가족의 생사여부를 모 른다는 것은 정말 비극이었다. 우리는 골목에서 나와 가톨릭회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계 아저씨 말로는 그쪽에 전남대 학생들이 모여 시위하고 있으니 우리도 어떻게든 도움이 되자는 거였다. 그는 정말 용감했다 .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굴하 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말이었다 . 하지만 나는 일단 가족부터 확 인하고 싶었다. 그는 내 상황을 이해해 줬고 , 결국 나와 미경이는 우 리집 방향으로 조심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사방에 군인들이 폭력을 휘두르고 있었고, 우리는 결국 포기하고 다시 가톨릭회관 쪽으로 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 최루탄 이 발사되었다. 얼굴에 모든 구멍이 너무나 가렵고 아팠다 . 극의 고 통을 느끼며 결국 미경이를 놓쳤다. 같은 전남대 학생들 사이에서 나 는 미경이를 찾으려고 헤매면서 눈물 , 콧물, 침을 내뱉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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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오른쪽 팔에 몽둥이를 맞았다 . 나는 ‘억 !’ 하고 반사적으로 팔을 움 켜쥐었고, 몽둥이가 다시 날아오자 그 팔을 잡은 내 왼쪽 손은 부서 졌다. 고통에 비명을 지르면서 무릎을 꿇었다 . 손가락들이 춤추듯이 헐렁하게 각각 다른 방향을 향하면서 시퍼런 색으로 변했고, 나는 죽 음을 예시했다. “껴져!” 쿵! 왼쪽에서 방패를 든 사람이 군인을 날려 보냈다 . 겨우 고개를 들 고 흐린 시야로 간신히 누군지 알아차렸다 . 아까도 살려주셨던 시계 아저씨였다. 그는 수건을 얼굴에 둘러싸고 있었지만 , 하얀 셔츠에 피 자국과 시계로 알아볼 수 있었다. “아아아… ” 나는 반가운 얼굴에 눈물을 흐느끼며 그를 올려보았다. “괜찮으세요?” 그는 손을 뻗었다 . 나는 아직 멀쩡한 오른쪽 손으로 잡았다 . 그리 고 그는 나를 일으켜 세워줬다. “감사합니다.” 나는 콧물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갑자기 내 멀쩡한 손에 돈을 움켜쥐더니 , 나에게 말했다 . “이 돈을 갖고 얼른 도망가세요, 치료비로 낸다고 하면 병원에서 우선순위로 해줄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잠시 그 돈을 쳐다보았다 . 그리고 그의 옆을 지나서 앞으로 나아갔다. “...도망 안갑니다 ...” “예?” 그는 당황했다. “도망 안갈 겁니다 … 미경이 … 미경이를 찾아야 돼요 … ” 손가락에서 뿌득 소리가 났다. 나는 고통에 얼굴을 찡그렸으나 , 깊 게 한숨 쉬고 한 발짝 더 나갔다 . 다리가 저렸다 . “아니, 당신 그 상태로 어딜 가겠다는- 억 !” 그는 앞으로 털썩 쓰러졌다. 뒤에서 군인이 잠시 주저앉아 시계 아저씨를 살펴보더니 그의 몸에 침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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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빨갱이 새끼가 돈이 이렇게 많아 ?”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 어떤 건물 3 층 계단까지 올라 가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 “이런 한심한 … 이런 한심한 놈 !” 나는 부러진 손으로 내 머리를 때렸다. 뿌득! 뿌드득 ! 부러지는 소 리와 함께 나는 울었다 . 손보다 머리가 더 아팠다 . 내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내 행동에 대한 죄책감은 끊이지 않았다 . 시계 아저씨께 죄 송하다는 말을 수십 번 조용히 반복한 뒤 , 나는 천장을 멍하니 올려 보았다. 미경이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지 ? 우리 가족은 ? 밑에 일층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 나는 숨을 죽인 채 잠시 기다렸 다. 몇 초 후, 사람 몇 명이 계단을 달려 올라오는 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또 다시 한 번 겁에 질려 옥상으로 나가려고 안절부 절 했지만, 문이 잠겨 가지 못했다 . 계단을 달려오는 소리가 점점 커 졌고, 나는 덜덜 떨면서 밑을 살짝 내려 보았다 .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리긴 하지만, 언뜻 보면 여자인 것 같은데… 미경이었다. 그녀는 뒤에서 퍽 소리와 함께 앞으로 쓰러졌고, 뒤통 수에서는 피가 쏟아졌다. 나는 충격에 눈을 떼지 못했다 . 오늘 아침 까지만 해도 내 집까지 병문안 와준 그녀는 내 앞에서 죽었다 . 희망 이 더 이상 없었다. 계단 바닥에 엎드린 미경이 시체를 밟으면서 군 인 두 명이 성큼성큼 올라왔고 , 한명은 몽둥이를 든 팔을 올렸다 . 더 이상 발버둥 칠 의지가 남지 않았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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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쿵. 쿵 박세은 Seeun Park 나는 상쾌한 밤공기를 마시기 위해 창문을 활짝 열었다 . 아무 생 각 없이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 까만 하늘에는 많은 별들이 반 짝이고 있었다. 그날은 유달리 마을에 평화가 느껴지는 날이었다 . 집 마당에는 봄을 느낄 수 있는 예쁜 꽃들이 피었고 새들도 그 느낌을 알았는지 노래를 부르면서 날아 다녔다. 쿵쿵쿵. 쿵쿵쿵쿵 . 고요한 집 안에 울려 퍼지는 소리에 놀라 나는 거실로 뛰어 나갔 다. 부모님은 방에서 자고 있는 상태였고 오빠는 방에 있어 문소리를 듣지 못하는 듯 했다. 쿵쿵쿵. 쿵쿵쿵쿵 . 또다시 울리는 문소리가 이번에는 더 크게 울렸 다. “뭐야? 무슨일이야 ?” 방문이 열리며 놀란 표정으로 오빠가 나왔다 . 밖에서 들리는 다급 한 목소리가 집 안으로 들려왔다. “문 열어주세요. 저 동하예요.” “누구세요” 하진오빠가 물었다. “동하누나야, 동준이랑 같이 왔어 . 빨리 문 좀 열어줘 !” 갑작스러운 방문에 하진오빠도 놀랐는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열어줄게. 너는 엄마, 아빠께 말씀 드려.” 오빠는 문을 열기 위해 나갔고 나는 오랜만에 보게 되는 사촌 언 니, 오빠가 너무 반갑고 신나는 마음에 얼른 엄마 아빠를 깨우러 갔 다. “동하랑 동준이가 왔다고 ?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니? 일단 나 가 있어. 금방 나갈게 .” 거실로 다시 나가 보니 하진오빠는 방석을 거실로 들고 나와 탁자 앞에 놓고 있었다 . 나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방석을 내려놓기 시작 했다. “어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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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돌려보니 동하언니와 동준오빠가 들어오고 있었다. 마침 그때 부모님도 거실로 나와서 사촌 언니 오빠 반겨주셨다. “연락도 없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로 왔어? 낮에 버스를 타지 너 무 늦은 시간에 버스를 탔네” 사촌 오빠는 난처한 듯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희 사는 광주에 시위가 일어났어요. 학생들을 마구 잡아가요. 그래서 무서워서 여기로 도망왔어요 . 거긴 지금 거의 전쟁 터예요. 전쟁터.” 아빠는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로? 여기 학생들도 오늘 시위를 한 것으로 아는데 . 다른 지 역은 아무 일 없었던 걸로 알고 있었는데. 오늘 뉴스에서도 학생들의 시위에 대해 별 얘기가 없었는데 대체 무슨 일이지 ? 다친 곳은 없 고? 아버지 어머니는 괜찮으시고? 위험했을 텐데 부모님과 함께 오 지 그랬어.” “전남대학교 학생들이 주로 시위에 참여하는 거라서 대학생들이 제일 위험해요. 모든 대학 휴교령이 내려졌어요 . 그 곳 근처에 대학 생들이 있으면 이유 없이 잡아가요 . 특히 그 대학 다니는 학생은 위 험해서 이곳으로 왔어요.” 엄마는 물 두 잔을 부엌에서 들고 나와 사촌언니와 오빠에게 건네 주며 말했다. “힘들었을 텐데 일단 이것부터 마셔라. 멀리서 들었는데 위험하다 는 게 뭐야? 대학생들의 시위는 여기서도 일어났는데 .” 동하언니는 잔을 받으며 대답했다. “아, 오늘 저희 대학 학생들이 학교 정문 앞에서 시위를 했는데 공수부대의 구타와 폭행으로 진압해서 너무 많은 학생들이 다쳤어 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다시 아빠가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시위하는 사람들이 어린 학생들인데 투입된 공수 부대가 그렇게 과격하게 나왔던 이유는 뭘까? 학생들이 다쳤으면 부 모님들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굉장히 화가 났겠다 . 이 일로 너희 부모님 또한 많이 놀라셨겠다 . 안 다친 걸 보고 많이 안심이 되셨겠 지만 그 곳에 계속 있으면 위험해질 수 있기에 너희들을 여기로 보내 신 거구나. 이제야 이해가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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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 땡. 땡. 12시를 알리는 시계의 종소리가 울렸다 . 엄마는 탁자를 치우기 시작하며 말했다. “일단 너희들 오느라고 수고했어 . 여기로 온 건 좋은 선택이었어 . 일단 그럼 늦은 시간이니 자고 내일 다시 얘기하자.” “네!” 부모님과 사촌언니, 오빠의 얘기를 듣고 나서인지 마음이 불안했 다. “언니 오늘 나랑 자면 안 돼?” 언니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 같이 자자 . 시간이 늦어져서 아까 못한 말들 또 오늘 있었던 이야기 해 줄게.” 불을 끄고 우리는 방으로 들어갔다. 어두워서 그런지 앞이 잘 안 보이고 무서웠지만 오늘은 언니와 함께라서 무섭지 않았다. “언니, 이불 필요하지 않아 ?” “아, 그렇네. 이불 가져 올게 .” 그때 엄마는 옷장에서 이불을 가지고 나오고 있었다 . 나와 있는 언니를 보고는 물었다. “동하니? 이미 잠들었을까봐 걱정했는데 잘됐다 . 동준이에게도 이 불하나 가져다줄래?” “네. 그럴게요 ! 안녕히 주무세요 .” 언니는 대답하고 다시 어둠속으로 걸어갔다. 언니는 다시 우리 방 으로 와서 이불 하나를 내려놓고 그리고는 나머지 이불 하나를 전해 주기 위해 동준오빠가 있는 방 쪽으로 걸어갔다. 이불이 무거워 잠시 내려놓고 앉았다 . 누울 자리를 정하고 이불을 펴기 시작했다. 이불의 펄럭거림 탓인지 방안에서 날리는 먼지로 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환 기를 위해 창문을 활짝 열었다 . 창 밖에 보이는 밤하늘을 다시 올려 다보았다. 아까 보았던 하늘이 떠올랐다 . 어떻게 여기는 이렇게 평화 로운데 왜 광주에선 사촌언니 오빠가 도망칠 정도로 위험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 탁. 언니가 방문을 닫고 이불이 놓여 있는 곳으로 걸어오며 웃으 며 말했다. “이불이 무거워서 힘들었을 텐데 잘 폈다 . 고마워 .” 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누우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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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괜찮은데 언니가 여기로 오느라 힘들었을 거 아냐 ? 언니 친 구 중에도 다친 사람 있어?” 언니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천장을 바라보며 누웠다. “다친 사람? 많지 . 많아 그 중 내 친구들도 있고 ” “어떻게 됐는지 알아 ?” “글쎄. 너무 정신없고 다들 피하고 도망가느라 친구들의 소식을 몰라. 나는 동준이가 보이자마자 집으로 바로 뛰어온 기억 밖에 안 난다. 그래도 분명 끝까지 남아서 시위한 애들도 있었을 텐데 . 함께 시위하던 친구들이 걱정되지.” “연락해 보면 안 돼 ? 괜찮다면 통화 할 수 있지 않을까 ?” “안 그래도 아까 서울로 출발하기 전 시위 때 안보이던 애들 집으 로 전화했는데 아직 상황이 진정되지 않았는지 전화가 안 돼. 지금 애들도 정신없을 거야” “지금 전화해 보면 안 되나?” “지금은 다들 자고 있을 시간이잖아 . 그래서 낼 아침에 한 번 전 화해 볼 생각이야 . 시간도 늦었는데 일단 자자 .” “그래! 잘 자, 언니 .” “그래 너도 잘 자.” 나는 이불을 끌어당기며 몸을 돌렸다 . 광주에 사는 언니 가족은 안전한 걸까? 여기 서울은 괜찮을까? 이런 일이 서울에서 일어났다 면 어떻게 됐을까 ? 어디로 도망쳐야 했을까? 끝이 없는 생각에 빠져 나는 잠들 수 없었다 짹짹 짹짹짹- 탕 탕 탕 어제와 같이 평화로움을 알리는 새소리가 들려왔다 . 또 아침 식 사 준비를 하는 엄마의 음식 하는 소리도 들렸다 . 맛있는 된장국 냄 새를 맡으며 서둘러 일어났다. 언니는 이미 일어났는지 방에서 보이 지 않았다. 난 이불을 한쪽으로 밀어 놓고 거실로 나왔다 . “여보세요? 여보세요? 들리니 ? 무슨 일이야 ?” 가족들은 통화중인 언니를 근심스런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밥상을 차리고 있는 엄마를 돕기 위해 부엌으로 갔다. 내 앞에 보이는 수저부터 놓기 시작했다. 한 개 , 두 개 , 세 개, “식사 준비가 다 되었으니 식기 전에 얼른 먹으러 오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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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외침에 모두 식탁 앞으로 와서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방금 전까지 통화하고 있던 동하언니는 통화가 끝난 후 얼굴이 어 두워졌다. 언니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저 오늘 광주로 다시 내려가야 할 것 같아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동준오빠가 말했다. “누나, 왜 그래? 어제 같이 봤으면서 그런 말이 나와 ? 좀 더 있다 가자. 상황이 진정될 때를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 ” “그래 며칠 있다가 가라 . 부모님도 걱정하실 텐데 .” 엄마의 말에도 동하언니는 단호했다. “친구들이랑 연락이 안 돼요. 친구들에게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 긴 것 같아요.” “그렇다고 그렇게 위험한 곳으로 다시 돌아가선 안 되지 . 너희들 의 안전이 먼저잖아. 너희들이 다치거나 없어져도 아무도 모를 것 아 니니?” 결심한 듯 동하언니는 말했다. “그래도 여기 계속 있을 수는 없어요. 시위에 나가지 않으면 괜찮 지 않을까요? 상황이 또 다시 안 좋아진다면 그땐 부모님과 함께 서 울로 다시 올라 올게요.” 동준오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동하누나가 가겠다면 나도 가야지. 부모님과 친구들이 걱정되는 건 나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말없이 식사만 했다. 아침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 위험하면 꼭 다시 올라와야 한다.” 엄마, 아빠는 조심하라고 당부 , 또 당부하셨다. 그렇게 우리 가족 은 동하언니와 동준오빠를 배웅했다. 동하언니와 동준오빠는 광주로 다시 내려갔다 . 돌아오는 길에 서 울의 하늘은 너무 맑고 깨끗했다. 그날 그 곳 광주의 하늘은 어땠을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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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림자가 사람을 죽였다 강응준 Aaron Kang 매일 같이 기상 알림이 초소부터 생활관 안까지 울려 퍼졌다. 누 구는 귀찮음에 이불로 몸을 덮어버리고 , 누구는 다가오는 고생스러운 훈련에 겁을 먹어 눈을 더욱 질끈 감아버리고 , 또 누군가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우며 일과를 준비한다. 하지만 나는 이 세 가지 종류에 분류되지 않았다 . 나는 항상 눈은 퉁퉁 부어, 눈에 잔뜩 끼어있는 눈곱을 닦고 , 내 흐릿한 시야를 깨끗 하게 정리한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 눈도 제대로 안 보이는 상태 에서 나는 기상 알람에 자동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 몸에 동작들이 배 어버린 것이다, 매일 같은 훈련과 취침의 반복으로 . 하지만 오늘은 어떤 분류의 사람이든, 모두 꼭두새벽에 기상하게 되었다. 우리를 잠에서 깨운 것은 커다란 군용 헬리콥터의 소음이었 다. 곧 헬리콥터의 소음에 가려졌던 아침 기상 알람이 들려오자, 모 두 허겁지겁 잠자리를 정리하고 아침 점호를 위해 생활관 운동장으로 집합했다. 바로 무기 배급을 시작했다 . 상병까지의 군 생활 동안 총 을 많이 잡아봤던 나였지만 손이 많이 떨렸다. 예상 못 했던 상황 때 문이었을까.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 깊은 생각에 빠져있던 나를 깨운 건 상관의 목소리였다. “이제 무기 배급이 끝났으니 수송기에 탑승을 시작하겠다. 현재는 우리나라의 미래가 달려있는 매우 긴박한 상황이니 신속하고 정확하 게 행동하도록. 상황 설명은 이동 중에 하겠다 .” 모두들 당황한 눈치였다 . 하긴 , 새벽부터 총을 들고 출동 준비를 하고 있으니 그러는 것도 당연하다. “임무 장소는 어디입니까?” 한 병사가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고 경직되고 겁먹은 목소리로 물 었다. “광주다. 이제 더 이상의 질문은 받지 않겠다 .” 상관이 대답했다. 그렇게 아무런 정보도 받지 못 한 채 우리들은 수송기에 몸을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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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총을 드는 행동은 낯설지 않았다 . 단, 훈련과는 다르게 , 내가 이 총으로 무엇을 어디를 , 누구한테 , 무엇을 하러 가는지도 모른 채 이 헬리콥터에 몸을 실은 내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그렇게 나의 비몽사 몽함은 서서히 공포로 변했고 , 그 커져만 가던 내 두려움이 나의 입 을 열게 만들었다. “임무에 대해 더 자세히 알려주십시오 .” 정적을 깨고 나온 내 목소리가 물었다 . 사람들의 시선은 나를 향 했다. 또 다시 피부로 느껴질 만큼 공기가 무거워지려하는 그 때 , 답 이 들려왔다. “지금은 다 알고 있겠지만 , 전 17일부터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 되었다. 국회도 폐쇄되고 학교들 또한 휴교령이 내려졌는데 , 이를 반 대하는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고되었다.” “폭동을 진압하러 가는 겁니까 ?” 내 앞에 앉아있던 전우가 물었다. “그렇다. 광주에 착륙하면 더 자세히 명령이 내려질테니 대기하도 록.” 아무도 그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광주 군 시설 에 도착해 아침을 제공받고 명령 대기하고 있었다 . 기다림 끝에 우리 가 받았던 것은 짧디 짧고 간결한 작전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폭동시 민을 제압’하라는 말과 소총에 장착 시킬 수 있는 대검이었다. “현 상황 광주에서 계엄군의 명령에 순히 응하지 않는 사람은 폭 동 시민으로 간주되어 무력을 행사해도 좋다. 이 시민들은 나라의 질 서와 평화를 빼앗는 잔인한 인간들일 뿐이다.” 상관이 말했다. “5 월 18 일, 전남대에서 학생들이 일으킨 폭력 시위로 인해 우리 전우들이 부상을 입고 죽어나갔다 . 임무 중 사망한 전우들을 위해서 라도 폭동 진압에 힘써주길 바란다.” 나도 바보는 아니었다 .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나도 뻔 히 잘 알고 있다 . 계엄령이 떨어진 후부터 나라가 점점 산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 내가 이기적이었던 걸까 . 이 소식을 접한 나는 전우들을 위한 슬픔보다 이 나라를 향한 묘한 안타까움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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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현장으로 이동하도록 하겠다 .” 그렇게 모두 차에 타고 도심 속으로 이동했다. 도심 속으로 더 들 어 갈수록 많아져야 할 사람은 더욱 더 보이지 않았고 내가 알던 도 시의 북적함과 상반되는 정적에 나는 왠지 모를 이질감이 느꼈다 . 폭 동 현장에 가까워질수록 소음은 커져갔다. 얼마 더 가지 않아 , 현장 이 눈에 들어왔다 . 광장에는 도시 버스들이 길을 막아서고 있었고 경 적을 끊임없이 울리고 있었다 . 사람들은 버스 위로 올라가 목이 쉬도 록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 그 긴 행렬의 버스들과 택시들 반대편에는 군용트럭이 대기하고 있었다 . 우리 트럭도 같이 열에 맞춰 길 한 가 운데에 주차하고 우리는 이미 대기하고 있었던 군인 뒤로 대열을 맞 추어 섰다. ‘ 전두환을 타도하자 !’라는 구호와 함께 버스 위에 올라타 태극기를 흔드는 사람들과 대열을 지키고 있는 군인들 사이에서의 팽팽한 신경 전이 계속 되었다 . 사람들은 군인들에게 욕설을 난무했고 , 우리들은 침묵으로 대답했다 . 그 정신없는 상황 속 갑자기 담당 중위에게서 명 령이 들려왔다. 그 시끄러운 상황 속에서도 중위의 목소리는 잘 들리 기만 했다. “지금 이 시점부터 중위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시에는 상관 불복 종 죄, 그리고 폭동에 개입한 죄로 처벌될 것이다 .” 겁을 먹을 틈도 주지 않은 채, 다음 명령이 내려졌다 . “조준.” 내 머릿속이 순간 새하얘졌다 . 앞 열이 무릎 하나를 굽혀 앉았고 , 내 옆에 서있는 전우들도 다 조준 자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나도 본 능적으로 몸이 명령을 따랐지만 , 머릿속에는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 다. “정말 쏘는 건가?” 이렇게 아무런 정보 없이 이렇게 끌려오듯이 소환되고 사람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던 나에게 자괴감이 몰려왔다. 저기 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우리 군인들도 , 같은 나라에게 나고 자라고 같은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지만 , 한 명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있지 만, 한 사람은 그 총구의 반대편에 서 있다 . “내가 이 방아쇠를 당기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 내가 정말 총을 쏘고, 폭동을 잠재운다고 하면 , 그 다음에는 뭐가 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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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현재 권력를 잡고 있는 전두환은 내려오지 않을 것이고 , 이런 혼 돈은 언젠가 또 다른 곳에서 반복된다는 것은 너무 뻔히 알 수 있었 다. 하지만, 그 미래의 또 다른 어느 곳에 , 어느 시간에는 방아쇠 반 대편에는 내가 있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나는 나 자신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던 것과 다름이 없었다. “도망치자.” 이 생각이 순간 뇌리를 스쳤다. “그래. 도망가서 광주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거야.” 하지만, 내 생각을 누가 읽기라도 한 듯 , 앞줄에서 사격 준비를 하 고 있던 군인 한 명이 대열을 벗어나 옆 제일 가까운 건물 사이로 뛰 기 시작했다. 매우 짧은 순간이었지만 , 내가 본 그 병사의 눈 속에는 용기도 비장함도 찾아 볼 수 없었던 두려움으로 흔들리고 있던 동공 뿐이었다. 탕. 분명 사격 명령이 없었음에도 총소리가 들렸다 . 총소리 방향으 로 고개를 돌렸을 때는 중위의 총이 도주 병사를 향하는 것이 보였 고, 그 반대편에는 그 병사가 앓는 소리를 내며 쓰러져있는 모습이 보였다. 숨은 붙어있었다. 탕. 탕.탕.탕. 미동조차 없어졌다. 땅에는 피가 흐르고 우리들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내 머릿속에 잠시나마 있었던 완대한 계획은 두려움에 가려 진 체, 다시 자세를 잡았다. 손이 떨린다. 내가 지금 뒤에서 날아오는 총알에 죽을 수도 있다 는 생각에, 내가 총을 누구를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 그리고 무엇 보다, 이 상황에서 벗어 날 수 없다는 생각에. 머리가 비워지고 총을 겨눈다. 눈을 가늠쇠에 맞춰본다 . 내 가늠쇠 안에 들어온 건 한 어른 여자였다. 버스 위에서 국기를 흔들고 있다 . 국기가 흩날리고 있다. 광장에 구호가 또 다시 울려 퍼진다 . “전두한을 타도하자 ! 전두환을 타도하자 !” … 지금이 이 광장에 누구는 이 상황을 피하고 싶음에 창문과 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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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하고 건물 속으로 숨어버리고 , 누구는 다가오는 현실에 겁을 먹 어 눈을 더욱 질끈 감아버리고 , 또 누군가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 우며 나라를 위해 싸운다. 하지만 나는 이 세 가지 종류에 분류되지 않았다 . 나는 소총에 대 검을 끼우고, 총을 사람들한테 겨누고 , 상관의 명령을 따르고 있는 군인일 뿐이다. 지금의 두려움과 매일 같은 훈련으로 몸에 배어버린 명령 복종과 임무 집행. 그 이하 , 이상도 아니었다 . 내 생각이라도 이해해 줬으면 하는 내가 한심했다 . 내가 무슨 생 각을 하고 있던,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옳지 않음을 알고 있던, 내 그림자는 총을 장전한 채 나라를 위해 싸우는 사람을 향해 겨누고 있 다. 그 사실은 이제 바뀌지 않는다 . “탕 ” 오늘, 내 그림자 , 아니, 나는 사람을, 그리고 내 나라를 , 죽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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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고무신 최사라 Sarah Choi 광주로 가는 버스는 덜컹거렸다 . 비포장도로를 마치 잘 깔려진 고 속도로처럼 달리는 탓에 뒤에 걸터 앉아있던 두 소년이 미끄러져 떨 어졌다. “에이 젠장할 .” 바지를 툭툭 털며 다시 자리에 안착한 소년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거 이름이 뭐라고?” “빠나나.” “본나? 뭐?” “귀에 먼지가 쌓였나 , 빠나나라고 .” 덥수룩하게 길러져 버린 머리가 눈앞을 찌르는지 소년이 눈을 비 볐다. “그 머리 좀 어떻게 하면 안 되겠냐. 보기 꼴사납다.” “영이한테 잘 보이려고 삭발했다 보기 아주 좋게 차인 국인호가 할 말은 아니다?” 욕바가지를 한 가지 읊더니 멋쩍은지 헤헤 웃으며 머리를 만지는 인호가 어깨로 툭 밀쳤다. “근데 너도 은정이한테 자랑하려고 광주 가는 거 아니였나? 차명 씨?” 차명은 힐끗 보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했다. 고등학교 갓 졸업하고 광주로 가고 있는 인호와 차명은 그다지 중요한 일 때문에 고향을 떠난 것이 아니었다. 그 놈의 바나 나가 뭔지, 부잣집 상훈이가 자랑하는 게 눈꼴 시려서 직접 먹어보러 가는 길이었다. 어차피 돌아가는 나라 꼴 덕분에 담양에서 다니고 있 던 대학은 잠시 쉬고 있었다. 광주 어느 시내에 도착한 인호와 차명은 정류장에 내렸다. “여기서부턴…” 둘은 어딘가로 배낭을 메고 터벅터벅 걸어갔다. 인호는 자기 친구가 전국에서 가장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 계집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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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잡으려고 광주까지 온 게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 물론 은정 이가 예쁘장하고 착하긴 했지만 , 하루에 여덟 시간씩 막노동해서 바 나나 먹어보겠다고 호들갑을 떠는 차명이 참 바보 같았다. ‘ 의리, 사내라면 의리 아닌가 .’ 흐뭇해하며 인호는 까슬까슬한 머 리를 슥 만져보았다. 어느 공장 앞으로 도착해버린 두 명이었다 . 공장보다는 큰 대형 창고가 더 말이 되겠지만 , 일단 공고에는 공장일이라고 했으니까 인 호는 눈감아 주기로 했다. 옆으로는 트럭 열대 남짓 주차해 있었고 , 그 중 몇 대는 창고 앞에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 그 사이로는 여러 청년들이 박스를 실어 나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 비록 선선한 오월 초순밖에 되지 않았어도 그들의 이마에선 땀이 비 내리듯 흐르고 있 었다. 멀리서 보자니 마치 인호 눈에는 일꾼 개미들 같았다 . ‘ 집에 있을걸 그랬나.’ 옆에 서있는 차명을 곁눈질로 살펴보니 여느 때와 같은 평안한 모 습이었다. 멀쩡해 보이는 차명은 사실 버스를 탔을 때부터 후회하고 있었다. 땀 흘리며 겨우 바나나 몇 개를 먹고 있는 사이에 그 녀석이 은정이한테 치근덕대고 있을 것 같았다. 꽃놀이라도 하러 갔으면 좋 았을 걸, 속으로 자신을 욕했다 . “가자.” 일을 시작한지 여섯 시간째 , 기절해서 집에 가고 싶다 생각될 때 즈음 아저씨들 중 한 명이 말을 걸었다. “너 이 녀석들은 스승의 날에 선생들 안 모시고 여기서 뭐하냐?” “스승님 빠나나 잡수시게 하려고 왔슴다 .” 넉살 좋게 인호가 웃으며 대꾸했다. “오늘이 15일인가?” 공장 안 멀리서 또 누군가 외쳤다. “그런 것 같은데요 ?” 또 한동안은 조용했다 . 평소 같으면 따뜻했을 햇볕이 차명 눈에는 거슬렸다. “며칠 동안 있다 가냐 ?” “사흘 있다 갑니다 .” “허, 농땡이 피우지 말고 열심히 하다 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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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나뭇잎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마당에는 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 다. 해가 하늘에서 터벅터벅 계단 내려가듯 어둑해졌을 때가 되어서야 인호와 차명은 공장을 벗어났다. 잠들어가는 하늘, 점점 고요해지는 길을 방해하려는지 까마귀가 하나 울며 하늘을 가로질러갔다. 노동을 막 마치고 나온 두 소년의 배에서 소리가 났다. 잠이야 사장님 댁 빈 방에서 해결하면 되었지만 , 밥은 제공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 둘은 끼니를 어디서 채울지 착잡했다. “배에 있는 거지가 어째 번식한 것 같다 .” 꼬르륵거리는 배를 부여잡은 인호가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길가에 가면 뭐든 있지 않을까 .” “아아- 하이얀 쌀밥에 국밥 말아먹고 싶다 .” “그 놈의 국밥은 질리지도 않냐 ?” “내 국밥사랑이 어디 가겠나 . 평생 먹고 살 거다 인마 .” 아니나 다를까 길가에 들어서자마자 인호의 마음은 흰색 간판에 빨간 글씨로 쓰여 있는 국밥집에 사로 잡혔다 . 평소 같았으면 다른 곳 좀 가자며 실랑이를 벌였을 차명이 , 어지간히 피곤했는지 순순히 가게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 차명은 가게 안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 한 상 빼고 거 의 다 차있는 탓에 가게 안은 시끌벅적했다. 아저씨들이 술 마시는 소리, 그릇들이 부딪히는 소리, 하루의 피곤을 수다에 풀어버리는 소 리. 덕분에 인호가 뭔가 말하려 할 때마다 다른 소리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옆을 보자 하얀색 , 초록색으로 칠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벽은 달력과 액자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 어디 벼룩시장에서 사온 듯한 액 자에 있는 그림은 이름 모를 논밭이 그려져 있었다 . 거칠게 붓으로 칠한 듯한 논을 한참 멍하게 바라보다 창문 밖으로 눈을 돌렸다 . 거 의 밤이 되어버린 하늘이 보였다 . 이 짓을 며칠이나 더 해야 한다니 . 한숨을 내쉬고 인호가 뭐라 나불대는지 들어나 볼까 하며 시선을 바 꿨다. “뭐 먹으려고 오셨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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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호에게 향한 시선은 바로 종업원에게 뺏겨버리고 말았다. 사실 차명 앞에 서있는 여자는 종업원이라고 하기엔 조금 어려 보았다 . 얼 굴이 피곤에 살짝 그늘이 져서 그렇지, 분명 생기 있는 또래 여자아 이였다. “국밥 두개 주세요 . 깍두기는 좀 많이.” “이모 국밥 두 개요 .” 주방 쪽으로 소리를 지른 여자아이는 다시 돌아서며 물었다. “이 동네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 “담양에서 왔수.” 인호가 대꾸해주자 소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퍼졌다. “담양에 친구 한 명 있는데. 수연이라고 혹시나 들어봤나?” 둘이 곰곰이 앉아서 생각하다 동시에 입을 열었다. “처음 들어보는데 ?” “혹시나 임수연이라고 보게 된다면 , 온심이가 보고 싶어 한다고 전해주면 고맙겠어.” “온심?” 차명이 되물었다. “내 이름.” 길게 땋은 머리를 빠르게 휙 돌리며 다시 급히 주방으로 돌아가는 소녀를 보며 인호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온심 ? 부드럽게 생긴 인상 에, 웃을 때 초승달처럼 휘어지는 눈 . 이거이거 , 차명이 갈아탔겠는 데? 앞을 보니 인호가 예상했듯이 차명은 긴 앞머리를 더 내리며 새빨 개진 얼굴을 숨기고 있었다. “이럴 거면 광주로 내려온 의미가 없잖아 .” 벌써 이틀이 지나 , 광주에 도착한지는 셋째 날이 되던 아침 , 세수 를 하며 인호가 짜증내듯이 말했다. 첫째 날 밤 , 그 국밥집을 간 뒤 로, 매 두 끼를 온심이네에서 때우고 있었다 . 물론 차명 때문에. 국밥 을 좋아하는 인호는 별말 안하려 했지만, 바나나는 대체 왜 먹으러 왔나 싶었다. “너 먹고, 나 먹고 , 온심이 주면 되지 .” 수건에 머리를 탈탈 털며 차명이 마당으로 나왔다 . 어째서인지 사 장님 댁 대문에 걸려 있는 달력을 보며 흐뭇하게 중얼거렸다 . 17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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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늘은 온심이랑 영화보러 가기로 한 날 . “안 먹고 말겠다.” 아쉽게도 인호와도 함께. 공장으로 걸어가는 길이 즐겁기는 또 처음이었다. 일을 끝낸 후 점심은 국밥집에서 먹고 온심이를 데리고 영화관을 가는 게 계획이었 다. 더군다나 오늘, 드디어 바나나를 맛볼 수 있었다 . 원래 바나나는 공장에서 일한 급여를 조금 덜 받는 대신 받는 것 이었다. 오늘은 하나만 받고 , 떠나는 월요일에는 자그마치 한 송이나 받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바나나의 삼분의 일이 온심이에게 가겠지. 말은 못하고 인호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인호도 온심이는 좋았다 . 차명이만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 그래도 온심이가 썩 마음에 들었다 . 똑똑한데다가 말도 야무지게 하 고, 무엇보다도 마음씨가 따뜻했다. 언제나 국밥집에 가면 단무지랑 깍두기는 가득 채워서 주었다. 그리고 셋이서 있으면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다. 별 실없는 소리일지라도 온심이가 있으면 더 이야기가 재 밌어지는 법이었다. 일이 끝나 정오가 되자마자 차명은 땀을 옷에다 닦고 바나나를 받 은 후 바로 국밥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뒤늦게 아저씨들과 얘기를 나누다 알아차린 인호가 이름을 부르지 않았으면, 바나나도 그대로 놓고 갔을 게 눈에 훤했다. 점심 먹고 보러 간 영화는 온심이의 첫 영화였다 . 언니에게서 말 로만 듣던 영화관을 내가 직접 가보다니 , 온심이는 다시금 차명과 인 호가 맘에 들어졌다. “그래서 어땠어?” 차명이 길을 걸으며 슬쩍 물었다. “뭐, 재밌었다 . 신기하기도 하고 .” “진짜 신기한 거는 차명이한테 있지.” 인호가 말을 건넸다. “뭔데?” 아무 말 없이 차명이 잠바 주머니에서 노란 과일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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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고무신?” 예상치도 못한 대답에 웃음이 터져버린 인호였다. “고무신이 아니라 , 바나나.” 차명이 온심이의 손에 쥐어주었다. “아, 이게 그건가 ? 이거 먹으려고 광주로 온 거 ?” 인호가 소리 내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말로 고무신 같이 생겼네 . 서양 고무신. 내 고무신도 노란색으 로 칠하면 이것 같이 생겼으려나?” “별 같잖은 소리하지 말고 까봐 .” 어떻게 까는지 알리가 없는 온심이가 다시 차명에게 건넸다. “이게 대체 무슨 맛이다냐.” 이십분 간의 사투 끝에 바나나를 쪼갠 차명이 평을 내었다. “고구마 같기도 하고 . 상훈이가 자랑할 만 했는데 .” “응, 내가 보기엔 그냥 고무신 맛인데.” 온심이의 장난스런 말을 끝으로 셋은 음미하지 않고 바나나를 삼 켰다. 어차피 월요일이면 다들 맘껏 먹을 텐데 , 뭐 . 하지만 이날이 온 심이가 바나나를 먹은 첫 날이자 마지막 날이었다. 5 월 18일, 일요일 아침은 어수선했다. 담양에 계신 차명의 어머니 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인호는 뉴스를 보면서 몸이 점점 굳었다 . 어 젯밤 비상계엄이 확장되면서 대학생 한 명이 계엄군에게 쫓기다 추락 사 한 것이었다. 차명의 어머니는 둘이 당장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이 었다. 그 마음은 나머지 둘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오늘은 그냥 집에 있어라 . 밖이 좀 뒤숭숭해지는 것 같다.” 사장님이 집 대문을 나서기 전 주의를 주고 나갔다. 마당은 고요했다 . 점심시간이 좀 지나서야 인호가 엉뚱한 질문으 로 고요함을 깼다. “우리 바나나는?” “지금 바나나가 문제냐 목숨이 날아가게 생겼는데 .” 인호가 한숨을 쉬었다. “사흘 동안 의미 없는 개고생 … ” 차명이 갑작스레 우뚝 섰다. “잠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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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뭔데.” “온심이는?” “집에 있겠지 .” “아니, 일요일은 무슨 시위하러 간다고 했잖아.” 인호의 눈이 커졌다. “맞다. 시내로 .” 숨을 참고 도착한 삼거리는 더더욱 차명의 숨을 막히게 했다. 거 리에선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 옆으로는 교련복을 입은 고등학생들이 , 아이 손을 꼭 쥐고 있는 아주머니가 지나갔다 . 그 뒤를 눈에 초점을 잃은 듯한 계엄군이 수없이 쫓아갔다 . 그들의 눈에는 뭐가 보였을까 . 뭐가 그리 화가 나서 사람들을 잡았을까. 과 연 우리는 사람들로 비춰지기나 했을까 . 그 때를 다시 생각해보니 떠 오르는 차명의 생각들이었다. 당황해서 순간 인파를 따라가다 차명이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 양 옆, 앞뒤로 사람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 나이, 성별과 상관없이 무자비 하게 잡아서 구타하고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 땅에 넘어진 청년 한명은 벌떼같이 몰려든 계엄군에게 삼켜져 버렸다 . 그리고 계엄군의 빠르게 움직이는 다리, 팔, 사이로 그의 몸에 새겨지는 멍이 보였다 . 숨이 더 이상 쉬어지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여기를 왜 왔더라 . 다시 달리다 옆에 머리카락이 잡 혀 끌려가는 여자아이가 보였다. 아, 온심이. 퍼뜩 머릿속이 온심이로 꽉 차버렸다. 그리곤 돌아서서 온심이의 이름을 울부짖기 시작했다 . 앞으로 나아가려고 해도 나아가지지 않는 늪 같은 꿈을 꾸는 것만 같이, 사람들을 뚫고 가려고 해도 갈 수가 없었다. “이차명! 돌아가자고 ! 정신 차려 !” 어느새 따라온 인호가 뒤에서 부르는 게 들렸다 . 그 순간 골목에 누워있는 여자가 한 명 눈에 띄었다 . 길게 땋은 머리 , 영화관 갔을 때 입은 빨강 줄무늬 셔츠 . 근데 이상하게도 빨강 줄무늬들이 번진 것 같았다. 헐레벌떡 골목으로 차명이 달려갔다 . 온심이가 차디찬 바닥에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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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있었다. “어?” 숨을 몰아 내쉬며 온심이를 내려다보았다. “왜, 여기 있어 .” “글쎄.” 온심이가 약하게 미소를 지었다. “업혀. 병원 가자 , 피 너무 많이 흘렸어 .” 차명이 무릎 꿇은 바닥이 더 붉어지고 있었다. “못 업혀. 갈비뼈 때문에 .” 눈물 한 방울이 차명의 뺨을 쓰다듬었다 . 저 멀리서 인호가 소리 지르는 게 들렸다 . 혼란 속에 둘 사이에는 순간 정적이 흘렀다. “바나나 못 먹겠네 ?” 온심이가 피식 웃었다. “어째 인호나 너나 쓰잘데기 없는 말이나 하는 건데 !” 울음으로 갈라진 목소리가 비명소리로 시끄러운 길가 속으로 묻혀 들어갔다. “병원 가자, 응 ?” 온심이가 아무 말 없이 옆에 너부러져 있던 고무신을 잡아서 차명 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속삭이고, 아직 미소를 띤 채 눈을 감았다. “워낙 폐가 약한 아이인데다가 ,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안에 출혈이 생겨서… 회복은커녕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단다.” 병원 대기실로 걸어 나온 인호가 차명에게 말했다 . 둘이 앉은 의 자 사이로는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결국 차명의 고집에 못 이겨 둘은 온심이의 소식이 올 때까지 병 원에서 기다렸다 . 하지만 끝내 돌아온 말은 온심이가 더 이상 이 세 상에 함께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러고는 차명의 어머님의 간절한 부탁으로 차명과 인호는 담양으로 다시 돌아갔다. 다시 집을 도착한 차명은 한동안 방에서 나오지 못했다 . 테레비에 서 광주 얘기가 나올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더군다나 아나운서 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을 들을 때면 화가 치밀어 올라 주체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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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할 것 같았다. 방 안에서 차명은 한동안 고무신만 바라보았다. 인호에게 부탁해 어디선가 구해온 노란색 물감으로 칠해놓은 고무신이었다 . 지나가다 가 얼핏 본 누나가 가족에게 말해 모두 차명이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인호는 진실을 알았다. 바나나 고무신 . 햇살이 잘 들어오는 창가에 고무신을 올려놓으며 차명은 온심이가 양지가 잘 드는 곳에 묻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지긋이 바라보다 차명은 눈을 감았다 . 고무신이 떠오르게 하는 추억들이 바나나보다 더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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