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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013

Inspiring Leaders l Empowering People l Leading Asia’s Change Special Topics

아시아 40개국 부자 철저해부 미군 장성 142명, 6·25전쟁에 자식 내보냈다 발굴특종

People

필리핀 ‘부부 대사’의 러브송 강창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Country in Focus

동서 5000㎞ 바다 위 자원대국 인도네시아 중국 대국화, ‘사소(事小)의 지혜’로부터 최진석 칼럼 둥근 축구공은 정직하다 홍명보 칼럼 Special Report

북한·동남아·중동 한류 현황 아시아 대학생 한류스타 설문조사

‘Hallyu’ in the making 한류, 창조경제의 신성장동력인가 값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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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 Special Report ‘Hallyu’ in the ma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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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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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란 말이 우리 귀에 익숙해진 지 벌써 10여년이 지났다. 한류는 ‘IT 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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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브랜드에 매혹의 이미지를 부가했다. 한류는 과연 한국정부가 내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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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의 원천이 될 수 있을까. 아시아 언론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매거 진 N>이 한류의 변천과 매력포인트, 확산양상, 한계와 미래비전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What’s going on in August_윤지희

Letter to N 10 Keep spreading Asia’s voices!

22 한류, 창조경제의 신성장동력인가_김용길 27 해외진출 드라마 자막·영상처리 ‘엉성’_이서전

Letter from N

28 싱가포르는 왜 한류에 열광하나_채혜미 30 “열정의 나라 한국 가서 살고 싶어”_라드와 아시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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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한류, 분단의 벽을 넘다_김주성 34 선현우 지나인 대표, “한류 뜰수록 한국어 알고 싶어 하죠”_박소혜

Partnership

36 Kim Tae-hee chosen as top ‘Hallyu star’_윤지희, 리사 위터

한 달을 하루처럼 행복하게_이상기

14 Asia’s window to the world, the world’s window on Asia

Photo Break 16

Make it meaningful!

Asia Round-up 18 중국남성-러시아여성 결혼, 남초-여초 때문? On the Cover 이집트 아티스트 바스마 이브라힘(Bassma Ibrahim)이 디지털 소프트웨어로 그린 배우 신민아. 한국 캐리커쳐 양식을 따랐지만 중동 취향에 맞게 표현했 다. 작가는 SNS에 작품을 공개해 세계인과 소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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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shpoints

리핀 대사 부부, 국경 넘나들지만 각각의 줄이 하나의 음악 38 필 만들어_박소혜, 리사 위터 41 강창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 “요동치는 동북아 정세, 19세기

66 싱가포르의 ‘세력균형’ 외교전략을 배우자_이병효 68 중국 대국화 ‘사소(事小)의 지혜’로부터_최진석

재연 보는 듯”_이상기 44 만해대상 실천부문 수상자 압데라힘 엘 알람, “아랍-아시아 잇는 문화소통의 다리가 되고 싶어”_박소혜

Special Topics 46 아시아의 거부, 누가 얼마나 돈 많나_김남주 50 “미군 장성 142명, 6·25 전쟁에 자식 내보냈다”_이상기

Country in Focus 원시와 첨단문명이 함께 숨쉬는 ‘밀림의 왕국’ 인도네시아 53 동서 5000km 바다로 연결된 자원의 보고_김남주 56 2030년 세계 7대 경제대국 꿈꾼다_김남주 58 팜유 생산, 환경훼손 주범인가 재생에너지 개발인가_김남주 60 존 프라세티오 주한인도네시아 대사, “인도네시아 지도층,

박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_김남주, 리사 위터 62 ‘오랑우탄의 고향’ 그 숨겨진 매력_김남주

70 기대가 앞선 ‘아베노믹스’ 찬사와 우려 엇갈려_아오야마 슈지 72 재벌개혁, 타협의 대상 아니다_김영상

Cultural is Asian 74 8월, 라마단: 금식과 정화와 나눔의 성월(聖月)_박소혜

Insights 76 The Silk Road re-invented_Ashraf Aboul Yazid 80 N. Korea’s 2002 reforms to have lasting consequences _Andrei Lankov 83 Tracing history of Buddhism in Sindh_Nasir Aijaz 86 ‘Uncrowned king’ throws book back at China’s judicial system

_Ivan Lim 88 Can India’s gov’t empower its people?_Pramod Mathur 90 Beyond words: understanding body language_Rasha Abdellah

Feature 92 아시아 전통무술 한자리에 모였다_이오봉

People Brand Story 64 ‘호랑이연고’엔 정말 호랑이 기름이 들어 있을까?_박소혜

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수 만 명과의 소통도 한 사람과의 94 조 소통처럼 하고 싶다”_이상기 97 이란 출판인 푸네 네다이, 한국 책 11권 페르시아어로 출간_오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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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2 STAFF 발행인 이상기 편집주간 오룡 편집장 박소혜 취재·편집 김남주 Lisa Witter 윤지희 사진 이오봉 고명진 디자인 DesignZoo 박은주 디렉터 김경아 팀장 최혜란 조하늘 경영기획 차재준 정현 광고기획 조원덕 김기오 강대완 민태홍 유경수 SNS담당 이상현 제작·인쇄 신우문화인쇄 홈페이지 www.theasian.asia 전자우편 news@theasian.asia 기사제보 02-712-4111 창간 2013.06.25. 등록 2013.05.02. 등록번호 종로 라00407 발행 ㈜아자미디어앤컬처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1가 33-90 화수회관 207호(우 110-521)

121 Views 100 두 노학자가 그리는 한국의 미래_장재선 103 ‘선입견’이란 함정에 빠진 우리 뇌_김명근 104 도 넘어선 기득권층 부패_이종수 106 박 대통령 시안방문 효과 지속 기대_전재원 108 6·25 전쟁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한국_알파고 시나씨

<Magazine N>은 한국간행물위원회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Magazine N>에 실린 글·그림·사진 등 콘텐츠 중 저작권자가 별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모든 자료는 발행사인 ㈜아자미디어앤컬처에 저작권이 있으며, 서면동의 없이는 어떠한 경우에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표지디자인 박은주

Perspectives

글로벌 제휴사

110 [ 李中의 觀點 - 중국 엿보기] ② 중국,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을까_이중 112 [김용길의 편집력 시대 ②] 마음을 편집하고 산다는 것_김용길

Think Tank 114 아시아 인스티튜트, 국경 넘어 통합·협력 연구모델 만든다_김남주 정기구독 신청 및 광고문의

Culture 116 아시아영화, 한 마리 토끼라도 확실히 잡아라_전찬일 118 둥근 축구공은 정직하다_홍명보

Poetry 120 ‘여성복수어미 눈(‫ ) ن‬위의 4륜 쌍두마차’에서_수아드 알 사바

Travel 121 감몬터널과 재일조선인의 오늘_권기봉

(O) 02-712-4111, (F) 02-718-1114

정기구독(일시납 입금·신용카드 결제) 1년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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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구독 입금계좌 하나은행 274-910006-67504 / 국민은행 031601-04-171721 / 농협 355-0022-8500-13 예금주 (주)아자미디어앤컬처 신용카드 결제 http://kor.theasian.asia/에 접속하여 메뉴바 오른쪽에 위치한 “구독 신청”을 클릭하여 진행 정기구독(CMS 자동이체 약정) 매월 12,000원 출금. 위 연락처로 전화 혹은 http:// kor.theasian.asia/에 접속 후 메뉴바 오른쪽에 위치한 “구독신청”을 클릭하여 진행 Subscriptions & Advertisements (O) +82-2-712-4111 (F) +82-2-718-1114

Junior AJA Talk 124 “Thank you, but where is my hug?”_박소혜

Books 126 The great convergence of becoming one world _Lisa Witter

Commencement 128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_박상설

Outside Korea Subscription(Payment by deposit or credit card) Te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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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8 인도 크리슈나 잔마슈타미 (Krishna Janmasht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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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 신 크리슈나의 탄 생을 기리는 날. 신도들은 전날 자정까지 철야와 단 식을 하며, 크리슈나 신상 을 물과 우유로 목욕시키 고 새 옷을 입힌 뒤 경배 한다. 인간 피라미드를 만 들어 높은 장대 위에 걸 린 우유단지를 깨뜨리는 데(사진), 이는 크라슈나가 어렸을 때 목동들과 함께 어머니가 높은 곳에 매달아 놓은 응유(凝乳)를 훔치 며 놀던 것을 재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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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What’s going on in August: Month of Independence 2차 대전 종전일이 있는 8월엔 건국기념일이 유난히 많다.

8. 9 싱가포르 독립기념일 싱가포르는 영국 식민지였다가 1959 년 6월 자치령이 된 뒤 1963년 말레이 연방의 일원으로 말레이시아에 속했 다가 1965년 분리 독립했다. 도심 곳곳에서 축하행사가 열리고, 마리나 베이에서 성대한 불꽃놀이가 열린다.

8. 12 태국 왕비 탄신일 1932년 시리낏(Sirikit) 왕비가 태어난 날로 태국 국경 일이다. 태국의 어머니날이기도 하다.

8. 15 인도 독립기념일 1947년 영국의 마지막 총독 마운트 바튼 경이 인도 의 첫 수상 자와하랄 네루(Pandit Jawaharlal Nehru) 에게 실질적 권력을 이양한 날이다.

8. 19 아프가니스탄 독립기념일 아프가니스탄이 1919년 영국으로부 터 독립한 날. 19세기 중반부터 영국 과 3차에 거친 오랜 전쟁 끝에 독립을 쟁취한 국경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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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5 라일라트 알카드르(Laylat al-Qadr) 라마단(이슬람력의 9번째 달)의 마지막 10일에서 다섯 개 홀수일 중 하나. 여러가 지 설이 있으나 라마단의 27번째 날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천사 가브리엘이 예 언자 무함마드에게 처음으로 꾸란을 전한 날이다. 이슬람에서는 한 해 중 가장 축복받은 밤이라고 믿는다. 무슬림은 모스크와 집에서 밤새 기도 드린다.

8. 8 ASEAN의 날 1967년 인도네시아·싱가포르·필리핀·말레이시아·태국 5개국 외무장관이 태국 방콕에 모 여 역내 협력과 평화안정을 목적으로 ASEAN(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동 남아시아국가연합)을 출범시켰다. 이후 브루나이·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베트남이 합류해 현재 10개국 이 회원국이다. 사진은 ASEAN 기.

8. 8 에이드 알피트르(Eid al-Fitr) 라마단이 끝나는 샤왈(이슬람력 10월) 첫째 날. 라마단 기간 중 금식에 성공한 것을 기념한다. 무슬림들은 이날 동트기 전 일어나 기도 드리고 몸을 정갈하게 한 뒤 새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과 선물, 축하인사를 주고받는다. 광장, 모스크 등 열린 공간 에서 기도드리며 신의 용서와 자비, 평화와 축복을 기원한다.

8. 14 파키스탄 독립기념일 1947년 파키스탄이 영연방 자치국으로 독립한 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영국 은 식민지배하던 인도지역 독립과 권력이양을 약속했으나, 힌두교 중심의 국민회 의와 무슬림연맹간의 대립으로 인도와 파키스탄이 각각 분리 독립하게 됐다.

8. 15 한국·북한 광복절 1945년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주권을 회복한 것과 1948년 대한 민국 정부 수립을 기리는 날. 북한에서도 광복절을 기념한다. 두 번째 사진은 평양 만수대를 찾아 김일성 동상에 헌화하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

8. 17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는 1942년 3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에 네 덜란드가 항복하면서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일본이 1945년 8월15일 연합군에 항복을 선언한 이틀 뒤 인도네시아는 독립을 선포했다.

8. 20~24 제45회 ASEAN 경제장관회의 제45회 ASEAN 경제장관회의가 브루나이에서 열린다. 이 기간 중 ASEAN 기업 투자정상회의(ASEAN Business Investment Summit, ABIS), ASEAN-미국 비즈 니스 정상회의(ASEAN-US Business Summit)도 함께 개최된다.

8. 31 키르기스스탄 독립기념일 키르기스 지역은 소비에트 투르키스탄의 일부였다가 1924년 분리돼 키르기스자치주가 됐 다. 1936년 키르기스스탄공화국으로 승격된 뒤 옛 소련이 해체되면서 1991년 독립국가로 주권을 선언했다.

8. 31 말레이시아 독립기념일(Merdeka Day) 1957년 말레이연방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날. 8월 한 달 동안 말레이시아 전역 에서 축제·행사가 열린다. 말레이시아 13개 주와 연방정부를 나타내는 14개 선, 이슬람교를 상징하는 초승달과 별 등으로 이루어진 국기 ‘잘루르 그밀랑(Jalur Gemilang)’이 쿠알라룸푸르를 화려하게 수놓는다.

정리 윤지희 기자 thxrignt@theasian.asia


Letter to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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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p spreading Asia’s voices! 류성현 법무법인 ‘광장’ 조세전문 변호사

정대철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전 한국방송학회장

늘 세금과 관련된 사건 속에 바쁘게 돌아가는

<매거진 N>은 소소한 읽을거리만 제공하는

일상이지만 잠깐씩 쉬어가는 시간도 필요하다.

미디어가 아닙니다. 뉴스에서 다루지 못한

<매거진 N>은 이런 나에게 충분한 휴식처가

내용을 심층분석으로 가려내고 새로운 뉴스를

되어 주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아시아

탐사하는 강점을 지닌 연속적인 미디어입니다. <매거진

국가들에서 일어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N>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는 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꽤

주제들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았습니다. 멀리 갔다가 온 느낌을 주는 싱싱한 현장감을 <매거진 N>에서 받았습니다. 정치와

2013 창간호를 읽고

이영만 ‘헤럴드미디어’ 대표이사, 발행인

경제는 물론 문화와 스포츠, 생활까지 다루는 무겁고 가벼운

역사의 되풀이성을 보면 필연이다. 500여 년

기획이 돋보였고, 영문기사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향하는

서양의 시대는 석양을 향하고 있다. 지는 해가

기치가 돋보입니다. 두 마리 토끼는 잡을 수 있지만, 동시에

뜨는 그곳에 아시아가 있다.

잡기는 어렵지요. 하나씩 잡는다면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매거진 N>의 발간은 그런 점에서 참 적절하다. 창간 시기도

수평과 수직으로 엮어내는 옷감처럼 깔끔하고 정성이 담긴

그렇고 내용도 그렇다. 서로 알아야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창간호였습니다. 오래 오래 보관하렵니다.

수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어서다. <매거진 N>을 가득 채운 내용들은 깜짝 놀랄 정도로 훌륭하다. 아시아의 생각을,

황용복 언론인, 전 중앙일보 유통부장

아시아의 구석구석을 읽을 수 있다. 아시아기자협회가

개화기 일본은 아시아에서 탈피해 유럽에

있고, 네트워크의 달인 이상기 발행인이 있고, <매거진 N>을

진입하자는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외쳤다.

만드는 모든 사람들이 확실한 사명감을 갖고 임하고 있기

지금 영국에서는 유럽연합에서 탈퇴하고

때문인 것 같다. 케이만 아일랜드, 터키 기사를 관심 있게

아시아와 친해지자는 일종의 ‘탈구입아(脫歐入亞)’론이

읽었지만 전체적으로 정독할 가치가 있는 글들이 많았다.

나오고 있다. 세계의 중심이 된 아시아에 초점을 맞춘

정기구독자가 되어야겠다.

<매거진 N> 창간호는 왜 아시아적 세계관이 시대정신인지 잘 보여주었다. 창간사에서 선언한 대로 아시아의 변화를

이종상 화백, 5만원·5천원권 화폐도안작가

이끄는 힘있는 매체로 뻗어나가기를 바란다.

거듭, 거듭 경하 드리며 전 세계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호응이 있어 만세 무궁토록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시기를 간구 드립니다. 시間과 공間 속에 인間으로 태어나 소중한 세 가지 틈새(三間三才) 사이에서 너와 나, 그리고 절대자와의 관시(關係)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만듭니다. 이런 ‘이야기’가 햇빛을 만나면 역사가 되고, 달빛을 만나면 야사가 되며, 별빛을 만나면 전설이 되지요. 모든 관계 속에 태어난 ‘이야기’들의 온누리 빛이 되어 만세무궁토록 미래를 밝히는 등대지기, <매거진 N>이 되소서!

알파고 시나씨 특파원의 칼럼에서처럼 요즘에는 외국인들도 ‘강남스타일’을 부른 싸이를 통해 한국을 알게 됐다. 몽골에도 젊은 한류 팬들이 많아지고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 작년에 태국에 갔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강남스타일이 무슨 뜻인지, 오빠가 무슨 뜻인지, 강남에 무엇이 있는지를 많이 물어봤다. 한류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한국에 와서 한국문화,

이형균 언론인, KBS 시청자위원장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한류가

일찍이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가 서구문명의

세계적으로 한국을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몰락과 더불어 동양에 주목했던 것처럼 <매거진 N>은 아시아를 들여다보는 훌륭한 <Magazine N>은 독자 여러분의 소 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 기사에 대 한 코멘트, 제안, 바라는 점 등 다양 한 의견을 news@theasian.asia로 보내 주십시오. ‘Letter to N’ 코너에 서 다른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의견 을 공유하실 수 있습니다.

Uyanga Amarmend Mongolia Junior AJA Reporter, Undergraduate student of International Trade, Duksung Women’s University

창문입니다. 마샬 맥루한이 지구촌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지만 <매거진 N>은 아시아촌을 가꾸는 정원사입니다. 창간호를 보면서 아시아인들의 생활과 꿈을 직접 느낄 수 있었고, 아시아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David Koh Singapore Freelance translator

“To avoid misconceptions, I think using a tag line like “what you always wanted to know about the new Asia” would be effective. Also, even though the large white spaces might be an integral part of the page layout and design, it gives an impression that you are short of material. I would suggest making better use of this 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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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fiqul Bashar

Fatema al-Zahraa Hassan Egypt Writer, TV director

Magazine N is a real example of being born great. It is not only the crafted design, brilliant layout, or the vivid photos, it is also the open minded intellectuals of Asia and the world who contribute to this thinktank project. I hope there is more focus on Asian women in the issues to come. Peter Lee Korea Program officer in the MENA Center at the Asan Institute for Policy Studies

The AsiaN offers a glimpse into Korea’s future. It is a future in which Korea is intimately engaged with the issues and changes in the world around it. With its insightful articles rooted in a global perspective, Magazine N has embarked upon the ambitious task of covering the world’s largest continent. But more importantly, it is pioneering a new approach to Korea’s awareness of the world. As it continues to grow, one suggestion would be to add short English summaries for Korean articles and vice versa. Also, a focus on intra-regional perspectives on current events may further strengthen the magazine’s appeal. Nonetheless, these are minor points on what has been an exceptional first issue. Gail Ramsay Sweden Professor of Arabic at Uppsala University

The photography is beautiful and the format is accessible and comfortable to read. The idea of Asian-African and Middle East cooperation is not new but rests on a long tradition in modern times of mutual interests and mutual benefit. Remember Nasser and al-Sibaai and the AAPSO(Asian African Peoples’ Solidarity Organization). This kind of mutual interest and benefits may be even better expressed if you have English as well as Arabic features or portions represented. Summaries in English/Arabic/ Korean of the different articles may also help readers who do not know all the languages. This is a fine effort! Maadin Sahleselassie Ethiopia Junior AJA Reporter, Graduate student of International Development Area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방글라데시 다카(Dhaka) 대학의 아레핀 시디크(AAMS Arefin Siddique) 부총장 이 <매거진 N> 창간호를 읽고 있다. 그는 <매거진 N>이 세계 기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 고 아시아의 목소리를 세계 곳곳에 퍼뜨리는 플랫폼으로 역할할 것이라고 했다. Dr. A A M S Arefin Siddique Bangladesh Vice Chancellor of Dhaka University

“I would like to extend my heartiest felicitations to Magazine N for opening an Asian window to the world. The novelty of the bi-lingual magazine is evident in its very name; the letter “N” in the title has been unfolded to express the magazine’s interest not only in news but also in creativity (new) as well as in the future (next). I hope the magazine reaches the N-th degree of success by promoting ideas of free press and by bringing the world together. Needless to say, this magazine will work as a platform for international journalists to come together and ensure that the Asian voices are heard in different parts of the world. The window of Magazine N will allow both the world to enter the diverse regions of Asia and the Asian verbal sound bites and pixels to reach the people all over the world. Let me congratulate Magazine N and its efficient team once again on this impressive publication.”

Ivan Lim

Hello Magazine N. I have read and shown your new magazine to many of my university friends. We found it packed with a diverse range of plural views and articles interestingly written in English and Korean. Your great news analysis helped me increase my knowledge on the issues dealt with. Just to comment on one thing, I wish there was a summary written in English for those articles written in Korean as well. My best congratulations to you for the awesome work of this new wonderful magazine! Uwalaka Temple Nigeria The AsiaN Intern Reporter, MBA at SolBridge International School of Business

In an age when it is very difficult to get an English magazine; when people profess globalization but persistently act otherwise; an era when the tide of indiscipline cum lack of passion is sweeping out all journalistic value, where yellow nay sensationalism and laziness bestrides journalism, it is therefore consoling to have Magazine N that not only preaches globalism, but is also founded in the spirit of journalism. It is a plus for journalism in South Korea, Asia and the world. Hurrah Magazine N!

싱가포르 마케팅 전문가 앨리너 탠(Eleanor Tan)은 “처음에 표지를 봤을 때 라이 프스타일 매거진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세련돼 보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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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을 하루처럼 행복하게

<매거진 N> 창간호에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의 격려와 성원에 머리 숙여 감사 드립니다. 약속드린 대로 매 달 창간호를 만드는 마음가짐 잃지 않겠습니다. 늘 겪는 일이지만, 30년 가까이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 으면서도 특히 발간사나 기념사는 머리에 쥐가 나도록 고민해도 쉽게 완성되지 않습니다. 8월호 발간사를 준비하면서 <매거진 N> 사무실 인근 혜화동 문화이용원을 찾았습니다. 때마침 점심 을 들러 가려던 지덕용(76) 주인 아저씨는 자리에 앉으라며 가위를 들고 머리를 다듬기 시작합니다. 그는 매거진 N 발행인 이상기

Lee, Sang-ki

Publisher of Magazine N

스무살 나던 1957년부터 이곳에서 이발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56년간을 한길을 걷고 있는 분이지요. 때마침 라디오에선 70년대 젊은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어니언스의 ‘편지’가 흘러나옵니다. “말없이 건네 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 가슴 속 울려주는/ 눈물 젖은 편지~” 사각사각 아저씨의 능숙한 가위질이 계속되는 동안 제 머릿속엔 중국 푸젠성 출신으로 타이완에 서 활약하다 홍콩에서 숨진 대문호 임어당(1895~1976) 선생이 쓴 <생활의 발견>(The Importance of Living) 한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하루가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고, 일주일이 행복하려면 여행을 하라. 한 달을 행복하게 지내려면 집을 사고, 1년을 행복하고 싶으면 결혼을 하라. 그리고 평생 행복하려면 봉사를 하라.” 장맛비 속을 우산 없이 걸으며 <매거진 N> 8월호 ‘발행인 편지’가 하나둘씩 정리됐습니다. “스무살 독 자 정성원(경희대 언론정보학부 1년)이 문화이용원 주인의 나이가 되도록 한결같이 설레며 기다리는 매체 로 만들어야지. <매거진 N> 독자들이 한 달을 하루처럼 행복하게 느끼도록 해드려야지. 한 단어, 한 문장 도 갈고 다듬어 진실만 담아야지…. 그것이 바로 나와 집필진과 스태프의 최고 행복 아니겠는가?” 8월도 <매거진 N>과 함께 행복하십시오. I would first like to thank our readers for sending words of encouragement and support. As promised, we will not forget to make each magazine with the same heart and mind of the launching issue. While preparing to write the publisher’s note for the August issue, I went to “Munhwa Barbershop” near the AJA secretariat’s office. Luckily, I caught the owner Mr. Ji Deok-yong, 76, just before he left for lunch. He has been cutting hair since he was 20 in 1957 in the same place. He has been walking one path for 56 years. While getting my haircut, a passage from Chinese literary figure Lin Yutang(1895~1976)’s book The Importance of Living popped up in my mind. I f you want to be happy for a day, get a haircut. If you want to be happy for a week, go on a trip. If you want to be happy for a month, buy a house. If you want to be happy for a year, get married. And if you want to be happy forever, serve others. As I walked back in the rain, this month’s publisher’s letter came to me piece by piece. “My goal is to make a magazine that does not cease to excite our 20 year-old reader Jeong Sungwon until he becomes the age of the owner of Munhwa Barbershop. I want Magazine N to bring readers happiness each and everyday of the month. We need to grind and prune each word and sentence to make sure we are conveying only truth. Won’t this be the greatest happiness for Magazine N’s writers and sta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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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ne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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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s window to the world, the world’s window on Asia 50개국 AJA 전문필진이 만드는 ‘매거진 N’

<매거진 N>은 아시아기자협회(AJA)와 아시아엔(The AsiaN)의 뉴스 네트워크를 기 반으로 국제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한 고급정보와 심층해설을 전달합니다.

The Asia Journalist Association is… 2004년 11월 공정보도, 언론자유 수호, 저널리즘 발전 등을 목표로 한국, 중국, 일 본, 몽골 등 동아시아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필리핀 등 아세 안(ASEAN) 기자들이 중심이 되어 발족했습니다. 이후 인도, 파키스탄 등 남아시아 와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기자들이 참여해 현재 52개국, 300여 명의 회 원이 “한 줄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피와 땀을 아끼지 않는다”는 모토 아래 활동하 고 있습니다. 아시아기자협회는 종교·인종·민족·국가·이념을 초월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 환경보전 등 인류보편 가치 실현을 공통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아시아기자협회 로고 아시아기자협회 포럼

The AsiaN (www.theasian.asia) is… 2011년 11월11일 아시아기자협회가 창간한 인터넷 매체로 아시아기자협회 소속 베테랑 언론인, 전문가들이 정확한 뉴스와 깊이 있는 논평을 영어, 한 글, 중국어, 아랍어 등 4개 언어로 제공합니다. <The AsiaN>의 N은 ‘미래비전(Next)’, ‘균형잡힌 뉴스(News)’, ‘소통 한마당(Network)’을 의미합니다.

The AsiaN 한글판·영문판·중문판·아랍어판 메인화면

“I welcome the intent of The AsiaN to provide accurate and timely news coverage not only of Asia, but of the United Nations and its global mission. The AsiaN that upholds the higest standards of journalism and gives voice to a plurality of views can make a valuable contribution.” - Ban Ki-moon UN Secretary-Gene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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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AJA in Brief

2004.11. 아시아기자협회 창립

회원

2010.07. AJA, 문화체육관광부 사단법인 인가

사무국 서울

2011.06. AJA, 기획재정부 지정기부금단체 선정

지부

2011.07. (주)아자미디어앤컬처 설립

창립회장 이상기 한국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2011.11. 11월11일 아시아엔(The AsiaN) 한글·영문판 창간

회장

2012.02. 중국 온바오닷컴, Global Asia, THE KOREA TIMES 기사제휴

부회장

2012.03. 뉴시스, 연합뉴스, 터키 CIHAN 통신사 기사제휴 2012.05. 아시아엔(The AsiaN) 중국어판 창간 2012.11. 아시아엔(The AsiaN) 아랍어판 창간 2012.11. 네이버(NHN), 줌(ZUM) 뉴스검색 제휴, 모로코작가협회 제휴 2012.12. 다음(Daum) 뉴스검색 제휴, Al-Arabi Magazine 제휴 2013.02. 수아드 알 사바 시집 ‘쿠웨이트 여자’ 번역 출간 2013.03. 이집트 Al-Hilal Magazine 제휴 2013.06. 6월25일 <매거진 N> 창간

52개국 357명 몽골, 네팔, 방글라데시, 터키, 중동 지부 Ivan Lim 싱가포르 전 아세안기자연맹(CAJ) 회장

Xu Bao Kang 중국 전 인민일보 한국판 지사장

Dolgor Chuluunbaatar 몽골 Ulanbaatar Times 편집국장

Eddy Suprapto 인도네시아 RCTI TV 부국장

Bishnu Nisthuri 네팔 전 네팔기자연맹(FNJ) 회장

Norila Mohd Daud 말레이시아 Utusan Malaysia 선임기자

강석재 한국 세계태권도연맹 사무차장

Messages from AJA

Magazine N breaks new ground for rising Asia The inaugural issue of Magazine N is a commendable first effort by our columnists, reporters and correspondents to give readers insights on Asia from an insider’s perspective. They write with inherent knowledge and understanding of their own home turf matched by native feelings and regional sentiments. The pages appear in a refreshing and reader friendly format made attractive by photographs and other graphic illustrations. Style-wise, our writers have delivered content that is serious and substantive. However, they have not forgotten to give them a human touch as shown in the way stories are woven around political, business and sports personalities of the day. Our editors have also thrown in a good mix of topics and lively spread of photographs to suit a variety of interests and preferences among readers. They have also been imaginative and creative in projecting Magazine N as a ‘new frontier’ publication that will, as we go along, break new ground in our coverage of a rising Asia and the consequential re-shaping of the regional political and economic architecture. That is the professional thinking and aspiration driving our efforts in Magazine N, as it is with our online news portal The AsiaN. - Ivan Lim President of the Asia Journalist Association

‘아시아 시대’에 발맞춘 ‘매거진 N’ 아시아기자협회 회원이 주축이 되어 ‘아시아엔’을 창간한 지 1년반 남짓, 이들이 이제 월간 <매거진 N>을 이 땅에 선보입니다. 굳이 내로라하는 석학들 의 예측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라는 말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불과 수 십 년 전까지 전쟁과 기아에 신음하던 아시아가 ‘세계의 공장’, ‘문화의 중심’으로 발돋움한 바로 이때, <매거 진 N>이 전달할 질 높고 다양한 정보는 독자들의 안목을 높여줄 것을 확신합니다. - 김학준 (사)아시아기자협회 이사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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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re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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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e it meaningful! Old friends pass away, new friends appear. It is just like the days. An old day passes, a new day arrives. The important thing is to make it meaningful: a meaningful friend or a meaningful day. – The Dalai Lama 오랜 친구들이 떠나고 새로운 친구들이 옵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전날이 지나고 새 날이 옵니다. 중요한 건 그것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이지요. 의미있는 친구, 의미있는 나날. - 달라이 라마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최북단 아체 주(Aceh Province). 고산지대 가요(Gayo) 주민들 은 독특한 언어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말타기가 중요한 생활문화를 이룬다. 전 통 승마대회엔 토종말만 참가할 수 있다. 말안장을 사용하지 않고, 청소년들이 기수로 나선다. 마을의 한 소년이 단짝친구 말과 함께 산 속 호수를 찾았다. 둘은 8월에 열리는 말타기 대회에 나가기 위해 연습 중이다. 소년은 시원한 물로 말을 씻겨주며 무언의 대 화를 나눈다. 소년과 말은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까. AP


Asia Round-up

magazine N | 201308

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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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남성-러시아여성 결혼, 남초-여초 때문? 요즘 중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페이청우라오(非城勿 )’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다. 24명의 여성이 나와 남성 짝을 찾아 나가는 이른바 데이팅 게임쇼다. 장쉬 위성방송이 제작하는 이 프로그램은 중국 대표방송인 CCTV 뉴스에 버금가는 높은 시청률을 자랑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 러시아 여성의 출연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러시아 관영신문 <로시야스카야 가제트> 인터넷판이 전 했다. 중국 남성과 러시아 여성 간의 결혼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를 반영한 현상이다. 중-러 커플은 두 나라 접경지대인 동 북 3성 지역에 특히 많다. 러시아 여성이 중국 지방도시와 농촌 지역에 시집오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다. 이들은 신랑이 말 을 타고 신부를 찾아가는 중국 전통 혼례식을 올리곤 한다.(위 사진은 최근 충칭에서 전통혼례 방식으로 결혼한 커플) 중국남성-러시아여성 결혼이 늘어난 데 대해 일각에선 중국의 남초(男超)와 러시아의 여초(女超)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오 고 있다. 중국은 한 자녀 정책 탓에 남자가 여자에 비해 훨씬 많고, 러시아는 여자가 많아 자연스럽게 중-러 조합이 이뤄 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이에 대해 한 러시아 인터넷 매체는 “전혀 근거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인구통계를 보면 현재 27세의 경우 남녀 비율이 1000 대 989로 오히려 남성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비율은 결혼연령대 전체에 비슷하게 나타난 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러시아 여성과 결혼하는 중국 남성들은 러시아 여성이 중국 여성에 비해 활달하고 개방적이어서 좋다고 한다. 반면 러시아 여성은 중국 남성들이 친절하고 집안일을 잘 도와준다고 말한다. 아무도 물질적 조건은 입에 담지 않지만, 중국인의 높아 지는 재력과 무관치 않은 현상임은 누구나 다 안다.

오룡 기자 roh8033@theasian.asia

The number of Chinese men marrying Russian women is increasing, especially in China’s Northeast province, which borders both countries. This phenomenon is being interpreted as a result of a surplus of women in Russia and of men in China. However, although it is true that there is a surplus of Chinese men due to the one-child policy, there are actually more men of marriage-age than women in Russia. Chinese husbands said Russian women were more active and open than Chinese women and Russian wives said Chinese men were kind and helpful with household cho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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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308

“한·중·일 FTA, 지역 긴장완화 도움”

타이완 중서부 타이중 경찰은 공

한·중·일 자유무역회담은 정치적 긴장완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진전돼야 한

신화사

외설행위, 명확한 기준 무엇인가

다. 세 나라는 무역·서비스·투자뿐 아니라 지적재산권, 거래 투명성, 전자상

라질 출신 학생을 체포했다. 아이

거래까지 포함하는 폭넓은 협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중일 FTA가 체결되면

들도 있는 공공장소에서 있어선

GDP 15조 달러와 15억 인구를 묶는, NAFTA와 EU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

안 될 일이다. 그러나 타이완에서

로 큰 시장이 형성된다. 한·중·일 FTA를 위한 두 번째 협상은 상하이에서, 세

는 경범죄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

번째 협상은 연말 일본에서 열린다.

형법 234조는 공공장소에서 외설

한·중·일 3국은 격동과 긴장의 정치

적 표현을 한 사람을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게 돼 있지만, ‘외설적 행위’

관계 속에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다

의 판단은 다분히 사법당국의 주관적인 판단에 달렸다. 예를 들어 뉴욕은 여

양한 분야에서 포괄적 협의가 필요

성이 가슴을 드러내더라도 경범죄에 속하지 않지만, 타이완에선 이에 관한 규

하다. 최근 북아일랜드에서 열린 G8

정이 없다. 지난 2007년 외국인 여성노동자들이 노래주점에서 팬티만 입은

정상회의에서 EU와 미국 간 무역협

채 손님과 술을 마시다 경찰에 체포됐는데, 검사는 기소하지 않았다. 형법상

정에 대한 공식 협상을 개시하기로

기소할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외설행위는 공공장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했다. 사상 가장 큰 협상이 될 이 무역협정의 첫 회의가 워싱턴에서 열린다. 중

이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기준이 세워져야 법 집행에 논란이 생기지 않을

국으로서는 도전요인이 아닐 수 없으며, 한국과 일본 또한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것이다.

타이완 <The China Post>

중국 <China Daily>

Taichung police last week revealed that two foreign students from the US and Brazil studying Mandarin in Taiwan were arrested for having sex in a public park. They were arrested for indecent public behaviour and may face charges of offences against morality. However, the definition of “indecent public behaviour” or “obscene” acts is not clear in the Criminal Code of the Republic of China and therefore much depends on the police’s judgment. The China Post

Free trade talks involving China, Japan and South Korea are predicted to ease political tensions and meet challenges of other FTAs. The three countries are aiming to cover not only trade in goods, services and investment, but also areas such as intellectual property, transparency and e-commerce. This FTA will create a common market of 1.5 billion people with a combined GPD of US$15 trillion, making it the world’s third-largest regional market. China Daily

무게 줄이려 남 승무원은 고용 안 한다고?

“연무 일으킨 범죄자를 처벌하라” AP

인도 저가항공사인 고에어(GoAir)가 경비를 절감한다며 승무원을 여성만 뽑

AP

신화사

원에서 성관계를 가진 미국과 브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휩쓴 연

겠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여성이 남성보다 몸무게가 덜 나가기 때문에 비행

무가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이다. 학

기 무게를 줄여 연료비를 절약하겠다는 얘기다. 인도의 한 변호사는 “여성은

교는 휴교령이 내려졌고, 기업도 휴

모두 체중이 똑같은가”라며 “남성승무원을 고용하지 않겠다는 것은 헌법에 보

업이 권장됐다. 인도네시아 화재로

장된 기본권, 즉 고용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항공사의 논리는

시작한 연기가 말라카 해협을 넘어

억지다. 무게를 줄이겠다면 남성 승무원뿐 아니라 남성 조종사도 고용하면 안

브루나이를 포함한 보르네오 북쪽

된다. 인도사회엔 성 관련 이슈가 많

으로 올라오는 것은 연례행사가 되

다. 델리에선 여성 폭력에 대비해 모

고 있다. 호흡기질환에 취약한 사람과 노약자들은 숨쉬기조차 어려울 지경이

든 전철에 여성전용칸을 마련했다.

다. 인도네시아 화재는 대부분 야자나무 경작을 위해 땅을 고르느라 기업형

하지만 공공장소에서 남녀를 분리

농장들이 숲을 불태운 데서 비롯됐다. 이것은 처벌 받아 마땅한 범죄다. 그러

시키는 것이 과연 해법일까. 여성전

나 주권 문제로 인해 피해 나라에서는 이들을 처벌할 수 없다. 오직 인도네시

용칸은 미봉책일 뿐이다. 양성평등

아만 사법처리 권한을 갖고 있다. 인도네시아 농장의 절반 이상은 말레이시

을 위한 근본대책이 필요하지만, 고

아, 싱가포르 등 외국인 소유다. 그들이 수백만명의 삶에 피해를 끼친 가해자

에어와 같은 사기업의 기괴한 차별정책은 어떻게 해야 할까. 파키스탄 <Dawn> GoAir, a low-cost Indian airline, has recently stated that as a procedure to cut costs it would stop hiring male crew and only take women flight attendants aboard as women weighed less and this would help save on fuel. GoAir’s decision has been criticized as a violation of fundamental rights to equal employment opportunities guaranteed in the Indian Constitution. The GoAir issue is an extension of the complex gender issues in India not receiving the attention they deserve. Dawn

라는 증거가 있다면 국적을 불문하고 처벌해야 한다.

브루나이 <The Brunei Times>

Haze blowing onto Malaysia and Singapore from fires in Indonesia brings air population to life-threatening levels in some areas while most of Indonesia is not affected. The fires and the pollutants they send have become an annual affair. Even though most of these fires are of natural origin, there are cases of deliberate burning to clear land for cultivation and these criminals should be accountable for affecting the lives of millions of people. The Brunei Times


Asia Round-up

magazine N | 201308

외국인 재소자 교환, 국가에 이익 신화사

수감자 한 사람을 관리하는 데 하루 35링깃(1만2000 원)이 든다. 적지 않은 나랏돈이다. 정부는 외국인 재 소자 교환 프로그램을 통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외 국인 범죄자들을 그들 나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태 국과 협상이 진행 중이며 곧 인도네시아와도 체결 예 정이다. 현재 상당수 인도네시아 범죄자가 말레이시 아 감옥에 있다. 영국과 나이지리아가 시행했던 재소 자 교환 프로그램을 따져 보면 경제적 이익을 추산할 수 있다. 본국으로 송환돼 돌아온 수형자들을 위한 감 옥도 필요하다. 영국은 나이지리아 정부에 교도소 확 장을 요구해 라고스(나이지리아의 옛 수도) 형무소가 증축됐다. 인도네시아는 법 해석에 융통성이 커 지난 2005년 바텐더를 잔인하게 살해한 범죄자에게 가벼운 형벌을 내렸 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와 호주의 재소자 교환 프로그램에서 보듯 일부 재소자는 더 관용적인 감옥체제를 선택할 수 있다. 이를 막으려면 재소자가 본국 송환을 거부할 경우 권리를 제한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범죄의도를 지닌 외국인이 말레이 시아로 들어오는 것은 자국의 가혹한 처벌규정 때문일 수 있다. 재소자 교환 프로그램을 시행한다면 그들도 모국의 가혹한 처벌규정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말레이시아 <New Straight Times>

As prisoners are not cheap to keep, Malaysia should not be blamed if it seeks a way to reduce costs through prisoner exchange programmes as almost a third of its prison population are foreigners. An agreement with Thailand is already on board and soon with Indonesia. Once signed, these agreements will mean the repatriation of foreign prisoners to their country of origin and Malaysians in foreign prisons brought home. Therefore, might not a brutal prison system in the country of origin discourage foreigners with criminal intentions from coming to Malaysia? New Straight Times

필리핀대사관의 끔찍한 성범죄자들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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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지역에서 일하는 필리핀 노동자들에게 경악할 만한 일이 일어났다. 필리핀 여성노동자들이 귀국 비행기표를 얻기 위해 필리핀 관리들에게 성관계를 강요당했다는 소식이다. 요르단과 쿠웨이트 대사관에서 일하는 외교관 2명은 필리핀 여성을 동 원한 매춘조직 운영 혐의로 고소됐다. 해외에서 자국민 여성들 을 상대로 한 끔찍한 범죄다. 지금까지 중동지역 필리핀대사 11 명이 마닐라로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놀라운 것은 그런 폭력 이 낯선 땅에서 동포들을 보호해야 할 정부 관료들이 저질렀다 는 점이다. 이들의 약탈적 행위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처벌해야 한다. 외무부와 고용노동부는 단호하고 신속하게 조사해 진실을 알

려야 한다. 필리핀은 해외 근로자의 송금이 외화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 이번 사건으로 온 국민의 사기가 저하됐 다. 필리핀인들은 낯선 기후와 문화를 감내하면서도 해외로 나가 땀흘려 일하고 있다. 지난 40년 간 정부가 추진한 노동력 수출정책의 불편한 진실이기도 하다. 정부는 비행기표조차 살 돈이 없는 해외근로자들이 관료들에게 학대 당하지 않도록 관리할 의무가 있다. 또 피해자들에게 가능한 모든 지원을 다 해야 할 것이다.

필리핀 <Philippine Daily Inquirer>

News that officials at the Philippine embassies have sexually exploited Filipino workers in the Middle East has reached home in the Philippines. Two labor officials attached to embassies of Jordan and Kuwait have been accused of running prostitution rings and another official of sexually harassing a distressed worker. It is important to quickly find out the truth and condemn this horrifying behavior not only because the two departments are in a state of turmoil, but because the nation, which heavily relies on remittances from overseas workers, is demoralized. Philippine Daily Inqui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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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308

영국 무슬림도 대접받을 권리 있다

한 지방의원이 자신의 딸을 혼냈다며 여교사를 학생과 다른 교사들이 지켜

최근 영국에서 과격한 무슬림

AP

“생선은 대가리부터 썩는다”

이 영국 군인을 잔인하게 살해

사 대통령까지 나서 스리랑카자유당(SLFP)에 해당의원 징계를 지시했다. 주

한 사건이 발생한 뒤 성난 군

요 정부 지도자들이 교사를 괴롭힌 의원을 비난하느라 법석이다. 스리랑카에

중들이 모스크를 공격하고 손

는 폭풍 속에 쇠지렛대를 던지는 민간풍습이 있는데, 번개가 집으로 내려치

상시킨 일이 있었다. 이런 가운

지 않게 하는 지혜다. 이번에 문제가 된

데 <채널4>가 영국 인구의 5%

주의원이 바로 피뢰침 역할을 하는 쇠

에 이르는 이슬람 신도들의 신

AP

보는 앞에서 무릎 꿇게 했다. 이 사건은 수사당국에 넘겨졌고, 마힌다 라자팍

지렛대인 셈이다. 정부지도자들이 그를

앙생활을 돕기로 했다. 라마단

희생양 삼아 사람들의 분노를 누그러뜨

기간에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20초짜리 영상과 함께 기도시간을 알려주기로

릴 수 있을까. 생선은 대가리부터 썩는

한 것이다. <채널4>의 결정을 적극 환영한다. 이번 결정은 영국사회에서 제대

다. 문제의 의원은 그저 악취를 풍기는

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280만 이슬람 신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물론

수프 속 생선의 꼬리에 불과하다. 해당

정규방송 중간에 기도시간을 알리는 방송을 하는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비판

여교사는 경찰에서 진술을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요 받은 것이 분명하

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방송국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영국은 여러 종교와 문

다.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지만 정치인과 그 졸개들은 다른 사람보다 더

화로 구성된 다문화 국가다. 최근 발생한 불행한 사건에도 불구하고 영국 무

평등한 듯하다.

슬림들은 사회 일원으로서 떳떳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스리랑카 <The Island>

The Northwestern Provincial Councilor has been remanded for forcing a female teacher to kneel down in front of students and colleagues for reprimanding his daughter. The government did not hesitate to condemn this act of harassment even though the councilor will most likely be quietly let off with a light punishment. With an overall deterioration of Sri Lanka’s party discipline, much needs to be done to control those abusing their power such as politicians and political thugs. The Island

Recent events of violence again Muslims is a sad turn of events, given the fact that 5 per cent of the population of the United Kingdom will soon be observing Ramadan. Channel 4 is to air the Muslim call to prayer every morning during Ramadan and provide short video clips to remind about prayer time. The decision has brought criticism, but Channel 4 argues that it will appeal to the 2.6 million young UK Muslims who are not normally catered to in this nation of many faiths. Gulf News

도둑이 지배하는 나라로 만들려나

“체벌은 교육수단이 될 수 없다” AP

태국의 사회 투명도는 끔찍한 수준이다. 돈 많은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들의

신화사

UAE <Gulf News>

네팔 히말라야에 있는 한 사립학교

탐욕은 끝을 모른다. 국가반부패위원회(NACC)가 태국 76개 지역에서 임기 4

에서 교사가 숙제를 안 해온 8살 소

년의 ‘정직한’ 위원들을 임명한다. 이들은 지역 정치인의 금융거래를 조사하고

년에게 교과서를 던져 아이의 눈이

시민들에게 불법행위와 부정이 무엇인지 알려줘서 그들이 제보할 수 있도록

찢어지는 일이 일어났다. 아이는 각

활동할 것이다. 위원회 책임자인 프라사르트 퐁시바파이는 “NACC 지역위원

막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태

은 지자체의 부패 감소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이들이 지역 기득권 세력에

다. 대법원은 지난 2005년 학교체

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바시트데쥬쿤

벌 중단 명령을 내린 바 있지만, 아

천 전 경찰청장은 “만일 ‘탐욕스런 정치인들(kleptocrats)’을 바로잡지 못한다

직도 체벌은 네팔 어린이에게 가장 많이 가해지는 폭력의 형태다. 사회가 성

면 결국 태국은 도둑이 다스리는

인에 대한 폭력은 비난하면서도 어린이 체벌은 교육상 필요하다고 보는 경향

나라가 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

이 있는데, 폭력은 절대로 교육수단이 될 수 없다. 잠시 아이를 다스릴 수 있

다. 범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을 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안 된다. 아이의 계발을 막고 정신적 상처

불가능하겠지만 정부의 진지하고

를 남기며 아동학대 수준으로 치달을 수 있다. 교육은 배우는 내용뿐 아니라

절박한 노력이 필요하다.

가르치는 방법도 중요하다. 교육부는 네팔의 모든 교육기관에서 체벌에 대한

무관용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태국 <The Nation>

This month, Thailand’s National Anti-Corruption Commission (NACC) will select “evidently honest” members to serve its 76 provinces for four years. Their work will focus on examining and verifying the financial reports of local politicians and on encouraging citizens with knowledge of irregularities or corruption to inform them directly. Ranking dreadfully in terms of transparency, this move is one step forward to prevent the country from turning into one ruled by thieves. The Nation

네팔 <The Kathmandu Post>

Recently, in a private school of mid-western Nepal, a teacher hurled a textbook at eight-year-old Ajaya Dhobi for not finishing his homework. The book hit Ajaya’s left eye, severely damaging it to the point of needing a transplant. In 2005, the Supreme Court called for the end of corporal punishment in schools. Although violence has decreased, cases like Ajaya continue to be reported. The government needs to adopt a zero tolerance policy towards corporal punishment. The Kathmandu Post


‘한류’란 말이 우리 귀에 익숙해진 지 벌써 10 여년이 지났다. 그 동안 다양한 콘텐츠가 제 작돼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한류 상품 이 진출한 나라는 이제 한국의 수교국보다 더 많다. 한류는 ‘IT 강국’ 한국 브랜드에 매 혹의 이미지를 부가했다. 반면 획일성과 상 업성에 저항하는 ‘혐한’ 기류도 일부 나타나 고 있다. 한류는 과연 한국정부가 내세운 창 조경제의 원천이 될 수 있을까. 아시아 언론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매거진 N>이 한류 의 변천과 매력포인트, 확산양상, 한계와 미 래비전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 편집자

‘Hallyu’ in the making ‘IT 강국’ 한국 브랜드에 매력 얹은 한류


magazine N | 201308

Special Report

023

한류, 창조경제의 신성장동력인가 드라마에서 강남스타일까지… 한류 콘텐츠 진화 과정

김용길 동아일보 편집부 차장

시아인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역동적인 댄스 음악이 청소년을 열광시켰다. 2004년 일본에서 방

“싸이가 성공한 건 그가 꾸미지 않는 진정성이 있

영된 <겨울연가>는 일본 중년여성들의 폭발적인 호

었고, 잘생기거나 멋져 보이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

응을 이끌어냈고 주인공 배용준은 ‘욘사마’로 불리

이다. 그는 단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했고, 그

며 일약 한류스타로 발돋움했다. 현대경제연구원

러한 싸이의 모습을 전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은 그 해 배용준의 경제적 효과가 3조원에 달한다

- 조르디 산체스(스페인 남 31세, 한국 내 스페인어학원 강사, 4

고 추정했다.

년째 한국 거주)

일본 대중문화를 수입하기만 하던 한국은 드 라마 <겨울연가>를 기점으로 일본에 대한 한류 콘

한류(韓流, Hallyu, Korean Wave)의 출발

텐츠 수출을 본격화했다. 사극드라마 <대장금>은

은 1997년 한국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

2004년 대만과 2005년 홍콩에서 큰 인기를 끌었

CCTV를 통해 방영돼 4.2%의 폭발적인 시청률을

다. 홍콩 TVB에서 방영된 최종회 시청률은 47%로

차지하면서부터다. 이후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

홍콩 방송사상 최고 기록으로 남아있다. <대장금>

<의가형제> <목욕탕집 남자들>이 잇달아 방영되면

의 인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동남아·중동·아프

서 높은 시청률을 이어갔다. 여기에 한국 팝이 가

리카·동유럽으로 확산되었다. 한류가 중국에서 시

세했다.

작해 일본을 거쳐 세계로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하

중국 내 한류 열풍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은 2000년 2월 베이징 공인체육관에서 열린 아이

한류 2.0의 핵심은 K-Pop이다. 보아, 비, 원더

돌 그룹 H.O.T의 공연이었다. 이 공연을 두고 ‘한류’

걸스가 일본·동남아를 거쳐 대중음악의 본고장인

라는 용어가 국내외 신문기사 제목으로 등장했다.

미국까지 진출했다. 아이돌가수, 아이돌그룹이 뒤

<베이징청년보>는 중국 청년들이 한국의 유행가나

를 이었다. 2011년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SM

텔레비전 연속극, 영화, 옷차림에 매혹되고 있는 현

타운 콘서트는 유럽진출의 교두보가 됐다. 유럽전

상을 ‘한류’라고 표현했다. 처음 한류는 한국 기업이

역에서 몰려든 K-Pop팬들로 공연은 대성황을 이

나 한국산 제품을 지칭했으나 가수 클론, H.O.T가

뤘다. <르피가로>, <르몽드>, <뉴욕타임스>가 ‘한류

중화권에서 인기를 끌자 ‘유행하는 한국의 대중문

K-Pop, 유럽 강타’ 기사를 쏟아냈다.

화 흐름’을 가리키는 것으로 의미가 확장·발전했다. 문화체육관광부 <한류백서>·뉴시스

기까지를 한류 1.0으로 분류한다.

한류 전문가들은 K-Pop 안에 내재된 새로움, 개방성, 절제성, 친근성에 주목했다. 영어권 대중

“너무 재미있는 한국 드라마” 한류 1.0 탄생

음악이나 J-Pop과 달리 다이나믹한 군무를 추

한류는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중

는 아이돌의 모습은 유럽인에게 새로운 것이었다.

국·대만·베트남 등지에서 본격화됐다. 가족·휴머

K-Pop에는 폭력과 욕설이 들어있지 않고 안무와

니티·순애보 같은 사랑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아

가사는 경쾌하고 따라 부르기 쉬웠다. 아이돌 한

가수 싸이의 캐나다 토론토 2013 머치뮤직비디오 어워즈 공 연 모습 2012년 6월 뉴욕 타임스퀘 어에서 펼쳐진 미국 보위초등학 교 학생들의 태권도 시범


024

magazine N | 201308

류 돌풍을 일으킨 주요 엔터테이너를 살펴보면 동

다. 이후 음식한류, 의료한류, 관광한류라는 용어

방신기, 샤이니, 슈퍼주니어, 카라, 소녀시대, 빅뱅,

가 속속 등장한다. 한류 3.0의 키워드는 ‘K-Culture’다. K-Pop

세븐, 원더걸스 등이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었고 팬

을 선두로 한 한국 대중문화가 보폭을 넓히고 예술

들의 사랑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K-Pop의 성공요인을 제작과정의

과 전통문화가 콘텐츠로 정교하게 설계되어 세계

시스템화를 통한 세계화 전략(생산), SNS의 적극적

인과 공유하는 상태를 말한다. 즉 한국적인 문화

활용(전달), 전 세계 능동적 향유자와의 소통력(소

를 기반으로 하면서 탈(脫)한국문화를 지향하는

비자), 가창력·안무·외모를 갖춘 아이돌의 경쟁력

것이다. 2012년 하반기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한

(콘텐츠) 이 네 가지의 탁월한 조합으로 보고 있다.

한류 3.0의 키워드는

K-Pop이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었던

류확산의 가장 드라마틱한 분수령이 되었다. 2011

‘K-Culture’다. K-Pop

사회적·기술적 조건은 바로 유튜브와 SNS의 일반

년 K-Pop 열풍이 유럽발이었다면 강남스타일 신

을 선두로 한 한국 대

화였다.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해 K-Pop 소식은

드롬은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무엇

빠르게 각 나라 청소년들에게 공유됐다.

보다 대중음악의 중심인 미국을 강타했다. 미국 빌

중문화가 보폭을 넓히 고 예술과 전통문화가

K-Pop을 선두로 2011년 요르단 국영TV가 황

보드차트 7주 연속 2위, 아이튠즈 음원 다운로드

금시간대에 <대장금>을 집중 방영했다. 이란에서

2개월 이상 1위, 유튜브 누적조회수 세계 1위를 차

콘텐츠로 정교하게 설

<대장금>의 시청률은 86%(2007년), <주몽> 시청

지하고 세계 20여개국 음악차트 정상에 올랐다. 한

계되어 세계인과 공유

률은 85%(2009년)에 달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류 3.0이 지향하는 교감지역의 전 세계화, ‘전 세계

하는 상태를 말한다.

는 2011년까지 <주몽>을 무려 다섯 차례나 재방영

인과 함께하는 한류’의 목표를 노크한 것이다. 한

했다. 대개 사극은 역사와 전통문화의 차이로 인해

류는 계속 진화하면서 세계인과 교감·공감하는

외국에서 인기를 끄는 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대

K-Culture, 한국적 스타일을 의미하는 K-Style

장금> <주몽>은 전통음식과 전통의상을 앞세우면

의 광역화로 이어지고 있다.

서 권선징악적 보편적 스토리텔링을 결합시켜 기존 한국사극의 한계를 돌파하고 아시아를 넘어 세계

2.0으로 진화한 한류, 3.0으로 비상하라

로 번져갔다.

세계 10대 경제규모를 이룩하고 G20 정상회의

문화예술 분야의 대표적 성과는 작가 신경숙

를 개최하는 등 한국은 이미 세계 주요국가 반열에

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2011년 4월 미국에서

올라 있다. 6·25전쟁 이후 단기간에 세계무대의 주

출간돼 <뉴욕타임스> 양장본 소설 베스트 순위 14

역으로 올라선 한국의 현대화 속도는 타의 추종을

위에 오른 쾌거이다. 대중문화 중심의 한류가 문화

불허한다. 하지만 아쉽고 부족한 것이 있다면 바로

예술 분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

한국과 한국인을 특징짓는 문화적 아이콘이 없다

한류 변천사 구분

한류 1.0

한류 2.0

한류 3.0

시기

1997년 ~ 2000년대 중반

2000년대 중반 ~ 2010년대 초반

2010년대 초반 이후

특징

한류의 태동 영상콘텐츠 중심

한류의 확산 아이돌스타 중심

한류의 다양화

핵심장르

드라마

K-Pop

K-Culture

장르

드라마, 영화, 가요

대중문화, 일부 문화예술

전통문화, 문화예술, 대중문화

대상국가

아시아

아시아, 유럽 일부, 아프리카, 중동, 중남미, 미국 일부

전 세계

주요 소비자

소수의 마니아

10~20대

세계 시민

주요 매체

케이블 TV, 위성 TV, 인터넷

유튜브, SNS

모든 매체


025 뉴시스

magazine N | 201308

는 점이었다. 바로 이런 시점에 한류가 등장했다. 한국인들은 이제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K-Pop 과 한국 드라마에 관심을 나타내는 외국인을 만날 수 있다. 해외여행을 하면 한국산 전자제품을 사용 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외국인을 종종 볼

계, 북한과의 대립관계 등의 이미지로 한국을 그려

수 있다. 한류와 한국산 제품은 상호 시너지 효과

왔다. 이로 인해 외국인의 눈에 한국인은 가난하지

를 나타내면서 한국인에 대한 호감이 덩달아 올라

만 성실하게 일하는 공업단지 근로자와 같은 소극

가고 있다.

적 이미지로만 채워져 있었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한국은 경제원리와

한국에서 40년 넘게 체류 중인 피터 바돌로뮤

정치원리에만 휘둘리는 나라를 벗어나 문화원리를

영국 왕립아시아학회 이사는 서울시 명예시민이

추구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한다. 그는 이

다. 그는 한류의 효과를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한

렇게 설명한다. “산업화의 땀과 민주화의 피를 흘

다.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이 크게 줄었다.

린 한국인에게 땀과 피가 결합된 문화원리는 눈물

한류는 ‘대단한 국가에서 내뿜는 놀라운 움직임’이

이고 생명이다. 문화원리는 GDP나 숫자로 계산되

라는 국제여론이 느껴진다. 이제 한국인들은 재미

지 않는다. 종래의 숫자나 컴퓨터로 계산할 수 없

있고 유쾌하며 창의적인 사람일 뿐만 아니라 문화,

는 문제를 창조산업으로 전환하여 세상을 감동시

미디어, 기술 등 많은 분야에서 앞서가는 선도자라

키는 것이 문화산업이다. 눈물은 타자를 위하여,

는 긍정적 이미지가 작동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나를 위해서 울리는 공감이다. 죽음과 생의 문제이 다. 이것이 내재적 가치며 생명의 가치다. 바로 한류 가 이러한 가치를 담아내고 있다.”

콘텐츠 획일성, 상업주의를 극복하라

한국문화의 열풍이 세계 곳곳에서 불면서 그

염동훈 구글코리아 대표는 한류의 확산채널로

거센 바람의 역풍도 불고 있다. ‘혐한’ 또는 ‘반한’

서 개방적인 글로벌 플랫폼의 역할을 주목한다. 그

기류다. 한류의 출발점이자 한국 문화 콘텐츠 수출

는 “전 세계 수십억 사용자들을 하나로 묶는 글로

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시아에서 오히려 한류에

벌 플랫폼은 모든 콘텐츠 유통문제를 단번에 해결

반하는, 한류를 싫어하는 움직임이 생겨난 것이다.

해주고 있다. 양질의 콘텐츠 하나만으로 동등한 위

반한류의 원인은 △불균형적-일방적 한류 전파 △

치에서 경쟁할 수 있게 했고, 한류 콘텐츠는 그 기

자국의 문화산업 보호 △한류 콘텐츠의 경쟁력 상

회를 가장 잘 활용한 모델”이라고 진단했다.

실 등을 꼽아볼 수 있다.

한국 드라마 K-Pop을 즐기는 해외 사용자들

그 중에서 자신들과 비슷해서 좋아했던 한류

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한국 TV 프로그램, 영

가 이제는 그 인기가 지나쳐 자국의 문화발전에 부

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 다양한 한국문화상품

정적인 영향을 주고, 동아시아 문화적 주도권 행사

들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 한류 해외 팬들은 자

에 대해 경계심을 갖는 측면이 눈에 띈다. 이런 시

연스럽게 자신들이 좋아하는 한국 가수나 배우의

각은 중국에서 두드러진다. 한류 드라마의 TV 방

패션, 한국어, 한국관광, 한국음식으로 관심의 폭

영 편수를 제한하는 조치가 취해지기도 했다. 지난

을 넓힌다. 실제 유튜브에는 한류스타의 화장법,

해 독도가 이슈화되자 일본에서 한류 드라마 방영

패션 정보, 한국 요리 조리법, 한글강좌 등 수 만개

이 연기되고, NHK <홍백가합전> 출연진에서 한류

의 콘텐츠가 공유되고 있으며 관련 유튜브 동영상

스타가 제외되었다. 문화 전파는 다문화 속 소통현

들은 한국문화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상을 전제로 한다. 한류를 얘기할 때 항상 문화의

한류 효과 이전에 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이

상호작용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미지는 강한 경제력, 무역대국, 자동차, 전자제품으

반한류·혐한류에서 걱정해야 할 문제는 오히

로 한정돼 있었고 외국 언론도 주로 적대적 노사관

려 한국인의 문화적·경제적 우월주의가 부각되는

그룹 슈퍼주니어가 페루 리마 자키클럽에서 ‘슈퍼쇼 5’ 공연을 마친 후 무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026

magazine N | 201308

측면이다. 몇몇 아이돌의 말실수는 해명과 사과로

모였으나 2009년 한류열풍이 불면서 가파른 증가

수습될 수 있지만 문화적 우월주의는 돌이킬 수 없

세를 보였다.

는 역풍을 초래한다. 특히 한류를 경제적 이익으로

한류는 문화를 통해 한국산 제품의 부가가치

만 환산하려는 접근방식은 한류 발전의 최대 장애

를 확대시키고 연관산업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물이다.

한류의 긍정적 파급효과는 관광·식품·의료 등 직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문화 콘텐츠가 새로운

접적 연관산업 이외에도 ICT·자동차·의류 등 제조

성장동력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문화는 공감이고

업 전반에 미치고 있다. 2012년 대한상공회의소에

소통이다. 한류를 공연티켓, 제품판매 수단으로만

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한류의 매출 증대효과가

여기는 시각은 적절치 않다. 제품과 문화 콘텐츠는

서비스업종에서는 문화(86.7%) 관광(85.7%) 유통

문화는 공감이고 소통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향적이고 상호보완적이

(75.0%), 제조업에서는 식품(45.2%) 전자(43.3%)

이다. 한류를 공연티

어야 오래간다. 경제적 이익만 챙기는 물신주의는

화장품(35.5%) 자동차(28.1%) 의류(23.3%)의 순으

켓, 제품판매 수단으로

금방 도태될 수밖에 없다. 부가가치의 창출이 한류

로 나타났다. 한류 콘텐츠 전체 수출 규모는 2011

진흥의 결과가 될 수는 있어도 최우선 목적이 되어

년 기준 43억201만 달러에 이른다. 세계 엔터테인

서는 안 된다.

먼트 시장 점유율은 2.4%로 세계 10위 수준으로

만 여기는 시각은 적절 치 않다. 제품과 문화

한류 콘텐츠의 획일성은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

급등했다.

콘텐츠는 일방적인 것

야 할 현안이다. 멕시코 콜맥스대학의 김윤희 교수

한류는 무형자산이다. 기업이 가진 다양한 자

이 아니라 쌍방향적이

는 “최근의 한류 대부분이 K-Pop에 치우쳐 있거

산 중 화폐화시키기는 어렵지만 매출에 기여하는

고 상호보완적이어야

나 아이돌 그룹에만 치중되고 있다. 마치 인형처럼

보이지 않는 원천을 무형자산으로 볼 때, 한류는

오래간다.

똑같이 생긴 가수들이 젊은 취향의 시끄러운 음악

우리 경제의 무형자산으로서 ‘명성’, ‘브랜드’와 같은

만 반복해 연주하는 형국”이라고 꼬집었다. K-Pop

기능을 하는 핵심 경쟁력이다. 한류 덕분에 한국문

은 유사한 아이돌 그룹에 댄스곡 위주, 섹시 코드

화의 글로벌 경쟁력, 소프트파워 경쟁력도 강화됐

등 획일화된 콘텐츠 제공으로 차별성이 부족하다

다. 전 세계 한류 전파국은 235개국으로 한국과의

는 지적이 쏟아진다. 드라마는 비슷한 결말, 출생

수교국(189개국)보다 훨씬 많다.

의 비밀, 불륜, 복수 등 식상한 소재가 반복되고 있

한류를 중심으로 한 콘텐츠산업은 저성장 장기

다. 지나친 상업성과 콘텐츠의 획일성은 한류가 가

침체의 위기에 빠진 한국경제의 승부수이며 돌파구

장 먼저 돌파해야 할 장애물이다.

다. 21세기가 창조의 시대라고 할 때 창조적 역량은 교육·기술·과학·문화 영역에서 크게 발현된다. 한

한국의 목표는 문화콘텐츠 대국

류는 문화를 응용한 영역이다. 과거 한국 경제의 성

한국 드라마와 K-Pop을 통해 가장 주목 받는

장동력이 제조업과 IT산업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첨

점은 한류스타들의 미모다. 고조되는 스타의 인기

단 융합기술에 한류 등 문화콘텐츠산업을 접목한

는 고스란히 한국 화장품 구매로 직결되고 있다.

분야가 한국경제 전반을 끌고 갈 것으로 전망된다.

김현중·장근석·송혜교·소녀시대를 모델로 기용

전통과 현대, 스토리와 디지털 아트, 예술과 문

하면서 한국산 화장품의 2011년 수출액은 8억500

화콘텐츠가 융합해 세계의 소비자와 만날 때 한류

만 달러로 전년 대비 35% 증가했다. 이는 2001년

의 소용돌이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9600만 달러였던 수출액이 8배 이상 증가한 것으

타 산업 연관효과가 커지면 한류는 명실상부한 한

로 화장품은 한류의 최대 수혜품목이 됐다.

국경제 성장의 원천이 된다. 한류는 단순히 콘텐츠

2012년 11월 한국은 외국인 관광객 1000만명

산업 수출에 기여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창조경제

시대를 열었다. 제주도는 2013년 외국인 관광객 유

시대의 신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치 목표를 200만명으로 잡고 있다. 2000년대 초반

 이 글에 인용된 통계와 자료는 2013년 1월 문화체육관광부에

까지 한국의 한해 외래 관광객은 500~600만명 규

서 발간한 <한류 백서>를 근거로 한 것임.


magazine N | 201308

Special Report

027

해외진출 드라마 자막·영상처리 ‘엉성’ 같은 작품이 다른 제목으로 유통되기도

이서전 미국 훌루 본사 디지털 미디어 퍼블리셔

외국인 시청자에게 드라마 내용을 전달하는 데 중요한 자막도 문제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

한류 드라마는 지난 몇 년 간 해외진출에서 큰 성

다. 미국에서 본 한국 드라마 엔딩 부분에 자막 크

과를 거뒀다. 미국의 양대 스트리밍 서비스업체인

레딧이 나왔다. 그런데 그 번역팀 이름이 아무래도

넷플릭스(Netflex)와 훌루(Hulu)는 한국 드라마

실명인 것 같지 않고, 팬 문화 특유의 활달한 장난

를 큰 가지의 독립 장르로 분류해 놓고 라이브러리

기가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팬섭(fan subtitles)’

를 관리할 정도가 됐다.

을 그대로 공식 서비스에서 쓴 것이었다.

KBS 드라마 <상어>의 영 어 타이틀이 KBS World에서는 ‘Don’t Look Back: The Legend of Orpheus’, 드라마피버에는 ‘Shark’로 표기돼 있다.

미국회사 실무자로서 한국 드라마를 유심히 보

번역가를 직접 고용하는 드라마피버와 달리 커

면 상품의 완성도 면에서 의구심이 드는 경우가 종

뮤니티 멤버들을 동원해 번역하는 업체도 있다. 물

종 있다. 쪽대본으로 대변되는 ‘당일치기’ 제작과정

밑의 팬섭에서 한 발 더 나가 유저의 직접 참여로

부터 드라마 내용·구성의 엉성함까지 여러 가지를

이뤄지는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 방식의

해외시장에 부적절한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저급(cheesy)함’도 콘

번역이다. 전문 번역이 아니지만 생각보다는 우수

‘생짜배기’ 미처리 영상

텐츠가 갖는 일종의 매력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한 편이다. 그러나 한계는 분명히 있다. 자막의 질

도 자주 눈에 띈다. 예

미국의 소프 오페라(soap opera)나 남미 연속극

이 낮아서 판매에 차질이 생기면 책임을 묻기 어렵

텔레노벨라(Telenovela)의 예에서 알 수 있다.

고 틀린 곳을 고치기가 쉽지 않다.

컨대 드라마 맨 끝에 후원·협찬업체 크레딧

그보다 드라마 외적인 관리 부실을 꼬집지 않

해외시장에 부적절한 ‘생짜배기’ 미처리 영상도

을 수 없다. 한국 드라마는 국외 한인을 중심으로

자주 눈에 띈다. 예컨대 드라마 맨 끝에 후원·협찬

이 그대로 나오는 경우

코어 팬과 마니아층을 확보했다. 3~4 년 드라마피

업체 크레딧이 그대로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콘

가 허다하다.

버(DramaFever) 등 콘텐츠 배급업체가 판권을 확

텐츠 스트리밍 서비스의 수익모델 중 하나는 광고

보해 본격 플랫폼으로 해외시장 판매를 시작했다.

다. 해외시장과 한국시장의 타깃 광고가 자주 겹치

1~2년 전부터는 MBC 등 방송사가 북미지사 등을

지는 않겠지만 상권보호나 판권침해 기준이 완전히

통해 직접 판매에 나서고 있는 단계다.

다른 해외에서 문제가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 과정이 얽히고 설켜 같은 작품인데 중간 배

위에서 말한 문제들이 한국 드라마의 해외판

급업체가 한 번역과 방송사 자체 번역, 팬들이 자

매를 가로막는 결정적 흠은 아닐지 모른다. 한국

발적으로 한 번역 등 다양한 버전이 혼재한다. 드

드라마는 엔터테인먼트의 근본요소인 ‘재미’가 풍

라마 제목마저 제각각 붙여지는 바람에 별개 작품

부하고, 그것으로 세계 각국 시청자들을 끌어 모

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있다. 방송사가 과연 라이브

으고 있다. 그러나 소소한 결함이 여기저기 있으

러리와 외국어 메타데이터 관리에 진지한 관심이

며, 중요한 것은 해외 구매처들도 이를 잘 알고 있

있는지 의문이다. 해외진출 하려면 최소한 공식 영

다는 점이다. 한류 콘텐츠가 수익률은 쏠쏠하지만

문제목 정도는 일관성 있게 지정해 두루 쓰이도록

내용이 엉성하다는 인식이 계속된다면 더 큰 미래

관리해야 하지 않을까.

를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Special Report

028

magazine N | 201308

싱가포르는 왜 한류에 열광하나 아시아 문화적 뿌리 교감… ‘나눔의 한류’로 성숙 필요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

채혜미 싱가포르 칼럼니스트, ‘해외에서 보물찾기’ 저자

성한다. 한국어를 배워 한국 드라마와 노래 가사

하지만 아시아인의 피 가 흐르는 그들이 서양 문화콘텐츠를 공감하 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한류는 그 틈새를 파고

문화적 뿌리가 같은 아시아인끼리의 공감대를 형

싱가포르를 방문한 한국인들이 가장 먼저 놀라는

의 의미를 알고 싶다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것은 거리를 달리는 택시 대부분이 현대 소나타라

한국어 강좌는 여는 곳마다 호황이다. 드라마와

는 사실이다. ‘메이드 인 코리아’ 택시를 타고 한국

K-Pop은 싱가포르인의 갈급한 문화욕구를 채워

건설회사가 지은 싱가포르의 랜드마크 마리나 샌

줄 뿐 아니라 생활양식과 삶의 진로까지 바꿔놓는

즈(Marina Sands) 건물을 지날 때면 마음이 뿌듯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들어 공허한 내면을 채

해진다. 음식점이나 쇼핑몰에서 고객이 한국인임

한 모임에서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수입하는

워주고 있다.

을 알아채면 자연스럽게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싱가포르 사업가를 만나 얘기를 나눴다. 그는 서슴

라고 인사를 건넨다. 그들에게 한국어는 더 이상

없이 이렇게 말했다. “전에는 홍콩 영화를 주로 수

낯선 외국어가 아니다.

입했는데 콘텐츠가 한국처럼 다양하지 않더군요.

싱가포르 보태닉 가든에 설 치된 한국작가 이수홍의 조각작 품. ‘자연의 대화(Conversation from Nature)’란 제목의 이 작 품은 한국과 싱가포르의 국화인 ‘무궁화’와 ‘난’을 상징하는 형상 을 담아 양국 간 교류와 우정을 표현했다.

“제 아내가 한국드라마에 빠져서 식사를 제때

한국 드라마엔 공통된 메시지가 있어요. <광개토

차려주질 않아요”라는 택시기사, 한국에서 성형외

대왕>, <세종대왕> 같은 사극이든, <아이리스>, <추

과 잘 하는 곳을 소개해 달라는 아가씨, “매진된

적자> 같은 스릴러든 장르를 막론하고 가족애와 충

K-Pop 공연 표 좀 어떻게 구할 수 없느냐”는 청년,

성심이 담겨있어요. 그래서 저는 한국드라마를 항

<1박2일> 프로그램에서 나온 곳을 어떻게 찾아가

상 아이들과 함께 봅니다. 점점 서구화되면서 사라

는지 묻는 아저씨, 그들 모두 내가 단지 ‘한국인’이

져가는 소중한 가치들을 일깨워주기 때문이지요.”

라는 이유만으로 친절하게 대해 주고 부담 없이 다

영문학 전공자인 한 싱가포르 친구는 한국영

가온다. 유명 관광지 센토사의 특급호텔 뮈벤픽은

화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영어를 사용하는

최근 한국인 쉐프를 총주방장으로 앉히고 ‘강남 메

아시아인일 뿐이에요. 깊은 정서나 정신적인 가치

뉴’라는 한식 퓨전요리를 선보였다. 싱가포르의 지

를 표현하는 데 한계를 느껴요. 그런데 한국영화

하철 공사현장마다 한국 건설사의 로고가 붙어 있

대사 중 상황에 적절한 문학적인 표현들은 가슴에

고, 백화점의 유명 브랜드 화장품코너에 고가의 한

깊게 와 닿아요. 감성이 회복되고 치유되는 것을

국 한방화장품이 진출했다. 이 모두 싱가포르에 살

느껴요. 한국 영화 대사는 깊이가 있어요”

면서 체감하는 ‘한류’의 여파다. 과연 무엇이 싱가포르 사람들을 한류에 열광

창조경제 밑거름 콘텐츠 전략

하게 만드는 걸까.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지만 아

어떻게 보면 한국처럼 다양한 소재와 콘텐츠를

시아인의 피가 흐르는 그들이 서양 문화콘텐츠를

갖고 있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고대에서 현대

공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한류는 그 틈새를 파

까지 수많은 사료, 서한, 야화, 설화 등 각종 장르

고들어 공허한 내면을 채워주고 있다. 특히 사극

의 기록은 시대 흐름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시각으

과 가족드라마, 쇼, 오락, 교양 등 다양한 콘텐츠는

로 재해석이 가능하다. 식민지, 전쟁, 분단, 민주화


029

magazine N | 201308

운동 등 비록 아픔으로 점철된 역사지만 그 독특한

지원하는 기업에 대한 면세혜택(지원금의 2.5배 감

경험은 다양한 스토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소재로

면) 같은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또한 고급인력인

손색이 없다. 또한 한국의 경제발전은 각종 전문분

전문직 외국인과 배우자들의 자원봉사로 문화예

야(의료계, 재벌가, 정계, 산업계 등)를 다루는 드

술 분야의 인적자원을 확보한다.

라마 콘텐츠 개발의 보고다. 탄탄한 구성의 각본,

그렇다면 21세기 아시아의 미래를 주도할 한국

출중한 연기력, 선진화된 그래픽 효과와 기술력을

은 ‘한류’에 대해 어떤 청사진을 갖고 있을까. 한류

바탕으로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에 충분하다.

를 새 정부가 내세운 창조경제의 밑거름으로 삼으

몇 년 전 싱가포르 국립박물관에서 프랑스 디

려면 문화예술 콘텐츠의 글로벌 마케팅 시너지 효

자이너 크리스찬 라크루아(Christian Lacroix)의

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미래 전략이 필요하다. 이벤

오페라를 위한 무대의상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장

트 성격의 단편적이고 일회적인 행사보다 각 나라

에 오페라 아리아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프랑스 와

상황에 따른 사전 연구조사에 근거한 맞춤식 콘텐

인 시음장과 향수·화장품 부스가 관람객들의 시

츠 개발이 절실하다. 배정된 예산 소비를 위해 급조

선을 집중시켰다. 부대행사의 입체적인 기획은 고

된 행사나 현지 대중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콘서

급화된 상품 이미지가 수준 높은 예술과 접목돼 홍

트, 현지홍보 부족으로 객석이 텅 빈 공연, 콘텐츠

보와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고갈로 반복되는 공연 등은 피해야 할 것이다.

짧은 역사와 작은 국토 그리고 적은 인구를 가

‘공공외교’로서 문화예술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

진 싱가포르는 어떤 문화산업 전략을 갖고 있을까.

다. 그런 점에서 한인과 현지인이 함께 교감할 수

싱가포르 정부는 말 그대로 ‘글로벌 마인드’를 갖고

있는 자선 예술행사 등 확실한 목적을 지닌 전략적

문화예술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개방적이고 일관

인 콘텐츠·행사 기획이 바람직하다. 한국의 미풍

성 있는 정책·전략을 수립하고 관계기관들과 유기

양속인 ‘이웃돕기’ 정신을 바탕으로 한 ‘자선한류’가

적인 협력관계를 갖는다. 예를 들면 다국적 기업에

미래를 이끌어갈 새 세대의 한류문화로 도약했으

대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강조, 문화예술을

면 한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창작 발 레 <심청>. 아시아권 정서에 맞는 주제 ‘효’를 표현한 발레극으로 싱가포르 관객들에게 큰 갈채를 받았다. 한국의 뷰티풀 마인드 자선 공연. 장애인 음악가와 함께 세 계를 돌며 클래식과 국악 등 공 연을 해 수익금을 현지 장애인 복지기관에 전달하고 있다. 예술 을 통해 국격을 높이는 ‘공공외 교’의 한 예라 할 수 있다. 싱가포르 한국국제학교의 한국어코스는 3개월 단위로 진 행되는데, 1기에 200여명이 등 록한다. 대부분 직장인과 학생들 이 저녁시간에 한국어를 배우러 온다. 한국문화 행사로 열린 한 국요리 특강 ‘김치만들기’에 많은 학생들이 참여했다.


Special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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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나라 한국 가서 살고 싶어” 중동에서도 일상이 된 한류… 이제 ‘물결’ 넘어 ‘스타일’

라드와 아시라프(Radwa Ashraf) 아시아엔 중동지부 에디터

왔다. 배용준, 문근영을 비롯해 <내 여자친구는 구 미호>에 출연했던 노민우까지 다양하다. 한국 캐리

젊은이들이 거리에서 한국 노래를 부르고, 소녀들

커쳐 양식을 따랐지만 이집트인 취향에도 맞게 표

은 텔레비전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며 한국에 일하

현했다. 바스마는 태블릿PC에서 포토샵이나 코럴

러 갈 계획을 세운다. 요즘 이집트의 일상 풍경이

페인터 같은 프로그램으로 작업한다. 한 작품을 완

다. 한류는 이제 아랍권에서도 삶의 한 부분으로

성하는 데 6~8시간 정도 걸린다. 그는 페이스북을

자리잡았다.

통해 작품을 공개해 아랍권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

이집트 한류 팬들은 말한다. “한국 드라마와 노래는 우리 가슴을 울려요. 단순히 주인공들의 러브스토리만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들은 자신의 일과 인생에 대해 열정적이죠.”

이집트 한국대사관에서 주 최하는 ‘한국문화체험’ 홍보 포 스터

다. 바스마는 한국에 대한 애정을 창의력과 예술로 표현하는 여러 아티스트 중 한 사람일 뿐이다. 이집트 한국문화센터는 한국과 관련된 다양한 이벤트들을 열곤 한다. K-Pop의 날, 가요콘테스

이집트의 한류는 아랍권을 대상으로 한 ‘한

트, 한국음식경연대회, 한복의 날, 한글교육 등이

국TV(Korea TV)’라는 채널을 통해 전파됐다.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행사들이다. 이집트인

K-pop에서 시작해 뮤직비디오와 드라마, 한국어

들이 이토록 외국 문화와 언어에 관심을 가지는 것

배우기 프로그램 등을 통해 엄청난 한류 팬들을

을 이전엔 볼 수 없었다. 한류는 한국문학에 대한

불러 모으고 있다. <꽃보다 남자>, <추노>, <겨울연

관심으로도 이어졌는데,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가> 등 더빙과 자막을 입힌 드라마들이 여러 채널

부탁해> 같은 작품을 주제로 세미나가 개최되는가

을 통해 방영됐다. 한국드라마는 온라인 ‘다시보기’

하면, 한국 민화에 대한 토론회도 열린다.

와 DVD 구입을 통해 지속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집트와 한국 문화의 공통점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나왔을 때 한류는 더 이

을 말한다. 웃어른에 대한 예절이나 미래에 대한

상 한류 팬들만의 것이 아니게 됐다. 가사를 전부

젊은이들의 고민 등은 매우 유사하다. 한국이 좀

외우거나 이해하지 못하지만 많은 이들이 노래를

더 공개적으로 문제를 논의하는 반면 이집트는 그

한류의 여파로 의료·언

흥얼거린다. 박자에 맞춰서 몸을 움직인다. 한국어

렇지 않다는 것이 다르다.

론·기술 등 많은 분야

를 공부하기 시작한 사람들도 많아졌다. 온라인으

한류의 여파로 의료·언론·기술 등 많은 분야

에서 한국은 ‘코리안 드

로 익히고 개인과외를 받는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

에서 한국은 ‘코리안 드림’으로 불리는 꿈의 나라가

노래를 따라 부르기 위해서다. 한류는 더 이상 물

됐다. K-Pop이 점화한 한류는 한국을 가보고 싶

결이 아니라 스타일이 되고 있다. 한류에 묻혀서 어

고, 살고 싶은 나라로 만들었다. 더 중요한 점은 중

느 세계에 살고 있는지도 잠시 잊을 정도다.

동 사람들이 한류를 통해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을

림’으로 불리는 꿈의 나 라가 됐다. K-Pop이 점화한 한류는 한국을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은 미술로 이어진다. 이

귀중하게 여기고 다른 문화를 받아들여 사랑하는

가보고 싶고, 살고 싶은

집트 작가 바스마 이브라힘(Bassma Ibrahim)은

방법을 배우고 있다는 점이다. 한류는 세계화가 나

나라로 만들었다.

그동안 많은 한류 스타들을 디지털그림으로 그려

아가야 할 좋은 모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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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작가 바스마 이브라힘(Bassma Ibrahim) 이 그린 한류 배우들. 위에서부터 배우 문근영의 얼굴이 완성되는 단계별 일러스트. <내 여자친구 는 구미호>에 출연한 배우 신민아. <겨울연가>에 출연해 세계적 한류스타가 된 배우 배용준. <내 여 자친구는 구미호>에 출연한 배우 노민우


Special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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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분단의 벽을 넘다 DVD·USB 동원 남쪽TV 열풍… 연예인 패션 따라하기

한류는 어두운 북한사

김주성 통일교육원 강사, 2008년 탈북, 전 조선작가동맹 작가

“누가 봤다고 하던데? 텔레비전에 나온 걸.”

한 마리 새처럼 전 세계를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대

주민들이 텔레비전에 수신된 서울올림픽경기를 보

한민국의 ‘한류’는 분단의 장벽도 넘었다. 북한 주

았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철저한 통제

민들은 바로 북한사회 전반에 퍼지고 있는 한류를

와 단속, 그리고 사상교양선전이 강화되어 있던 상

남북접경지역이라 할 수 있는 군사분계선 유역

회에서 ‘해피 바이러스’ 처럼 뿌리 깊게 침투해 청년층의 의식을 변화 시키고 있다. 다만 철

통해 철저히 가려져 있던 남조선의 실상을 여실히

황에서도 어디서 누가 언제 보았는지는 알 수 없지

저한 통제사회의 특성

알게 되었던 것이다. ‘황금만능의 사회’, ‘약육강식

만 남한 TV전파가 콘크리트 장벽을 뚫고 북한 땅

상 남한사회를 보고 느

의 사회’, ‘착취계급이 군림하는 사회’로 인식하고

에 들어섰던 것이다.

낀 감정을 표출할 수

교육 받아온 그들에게 한류라는 요술지팡이는 발

1980년대는 북한사회의 텔레비전수상기 보급

없을 뿐이다.

전된 사회면모와 자유롭고 화려한 인간세상 ‘한국’

률이 극히 적어서 당시 TV가 있던 계층은 북한의

의 진모를 보여줄 수가 있었다. 철저히 폐쇄되고 통

간부들과 북송교포, 그리고 중국계 화교 정도였

제 당하는 북한사회에서 한류는 어떤 경로와 방법

다. 물론 공공시설에 TV가 비치되어 영화나 기록

으로 보급될 수 있었을까?

영화를 단체로 시청하는 경우는 있었다. 또한 남한

시작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 개최되면서 온

은 NTSC방식의 방송시스템이고 북한은 남한방송

세상이 대한민국을 주목했고, 동방의 작은 나라,

의 유입을 막기 위해 PAL방식의 방송시스템을 활

허리가 두 동강 난 ‘Korea’가 알려졌다. 그러나 밝

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한방송이 북한TV에 수신

은 여명을 맞이한 서울과 달리 평양은 여전히 나라

되더라도 화면이 전개될 뿐 음성은 나오지 않았다.

의 출입문을 단단히 닫아걸어 어둡고 침침했다. 한류는 북한사회 저변에 스며 들어 주민들의 생활양식과 의식 을 변모시키고 있다. 사진은 평 양거리를 활보하는 북한 여성들

당시 북에 살던 나는 직장에 휴가신청을 내고

“남조선에서 지금 올림픽을 한다고 해.” “누가

(북한은 1년 중 아무 때건 15일의 정기휴가를 신

그래? 그런 거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안 나왔어.”

청할 수 있다) 올림픽 개막행사부터 폐막까지 거 의 다 보았다. 일본에서 북송된 9만여명 중 한 명 에 속해 다행히도 일본산 멀티시스템TV가 있었고, VHS녹화기도 가지고 있던지라 얼마든지 시청이 가능했다. 1990년대 들어 남한은 PAL방식으로 전환한 ‘북한전용방송’을 북한의 유일한 TV방송인 조선중 앙텔레비전과 동시간대인 매일 오후 5시경부터 밤 12시까지 송출했다. 이때부터 북한주민들의 가려 졌던 눈과 막혀있던 귀와 입이 열릴 수 있었다.

AP

당시 학교에서 주고받았던 선생님과 학생의 대 화내용. “지금 남조선당국이 우리를 내부로부터 와


033

AP

magazine N | 201308

해하기 위해서 방송전파를 쏘고 있습니다. 절대 보

인기다. 국내 입국한 탈북자들이 <개그콘서트>를

면 안 됩니다.” “선생님, 정말 남조선TV가 나옵니

즐기면 비로소 진짜 ‘남한사람’이 되었다고 말하는

까?” “네, 몇시부터 몇시까지 몇통로(채널)에서 나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온다고 합니다. 보지마세요” 물론 유머로 만들어진

북한사회에 유입된 한류는 식을 줄 모르는 불

대화지만 북한사회에 ‘한류’가 바람을 일으키기 시

도가니마냥 주민들의 의식에 영향을 주고 있다. 한

작한 서곡과도 같다.

류스타의 ‘팬’이 된 젊은 세대들은 ‘한국식 말투’와 패션까지 따라하며 ‘유행’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개그콘서트’ 이해하면 “진짜 남한 사람 됐네!”

2006년 북한의 젊은 여성들은 ‘이효리 바지’, ‘구혜

처음으로 접한 남한방송은 북한주민들에게 어

선 머리’라는 표현을 써가며 따라했고, 최근에는

떤 영향을 주었을까? 썩고 병든 자본주의 사회로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현빈, <역전의 여왕> 속 김

알고 있었던 남조선의 드라마나 영화는 북한주민

남주 패션 등을 따라하려는 북한 청년들도 있다고

들에게 너무도 친숙하게 안겨왔다. 우선 언어가 통

한다.

했기 때문이다. ‘우물 안 개구리’ 신세로 항상 바깥

한류에 접하려는 북한주민들의 욕구는 극심한

세상이 궁금했던 북한주민들은 남한드라마와 영

전력난으로 TV시청이 원만하지 못한 조건에서 자

화를 보면서 배우의 연기나 이야기보다 화면 속에

동차배터리의 직류전원까지 활용하는 극성을 보이

서 엿보이는 화려한 거리와 아담한 건물들 그리고

고 있다. 청년층에서는 외장하드나 USB를 이용해

갖가지 음식들에 관심을 집중하게 되었다.

‘한류’를 돌려 보는 노력을 하기도 한다. 일부는 남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집단

한의 생활문화를 직접 수용하고 있는데, 북한 장

아사사건을 겪은 이후 개별적인 상업활동이 활발

마당에선 각종 전자제품이나 커피믹스, 초코파이,

해지면서 많은 북한주민들이 TV를 갖게 되자 ‘한

뺑때바지(몸매바지, 스키니진) 등이 거래되고 있으

류’는 본격적으로 전파됐다. 때를 같이 하여 중국

며, 이 중 고가제품은 뇌물이나 혼수용품으로도

동북지방까지 파급된 한류는 DVD로 만들어져 북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경 일대에서 암흑세상인 북으로 들어왔다.

한류는 어두운 북한사회에서 ‘해피 바이러스’

2000년 초 북한에는 ‘한국의 5대 명작’이라는

처럼 뿌리 깊게 침투해 청년층의 의식을 변화시키

단어가 유행했고 적지 않은 주민들이 <겨울연가>

고 있다. 다만 철저한 통제사회의 특성상 남한사회

<천국의 계단> <가을동화> <모래시계> <파리의 여

를 보고 느낀 감정을 표출할 수 없을 뿐이다. 북한

인>과 같은 남한드라마를 애청했다. 그 밖에 <올

사회를 토네이도처럼 휩쓴 한류는 남북간의 적대

인> <쉬리>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남북 주민

의식과 이질감을 해소시키고 미래지향적인 희망을

사이의 유머감각의 차이가 커서 초기에는 코미디

가질 수 있게 만들었다. 단기적인 체제 위기로 연결

영화나 시트콤이 인기가 없었지만, 최근에는 <개그

될 가능성은 약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북한 사회의

콘서트>, <1박2일>, <런닝맨> 같은 오락프로그램도

자유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주민들이 평양 3대혁명 사업관에서 열린 제16회 평양봄 국제박람회에 출품된 평면 TV 수상기를 살펴보고 있다. 북한은 만성적인 전력난에도 불구하고 TV, DVD 등 전자제품에 대한 인 기가 폭발적이다.


INTERVIEW

034

Special Report

magazine N | 201308

“한류 뜰수록 한국어 알고 싶어 하죠” ‘한글영토’ 넓혀가는 선현우 지나인(G9) 대표

박소혜 기자 fristar@theasian.asia

“한류 스타 한 명 없었지만, 열광적인 반응이었죠. 이게 바로 한류의 효과구나 싶었어요.” 선현우(지나인 대표·33)씨는 지난해 10월 멕시 코에서 ‘한류콘테스트’를 열었다. 한국어대회, 한국 노래경연, 한국문화퀴즈 등 멕시코인들만 참가하 는 행사로 장장 7시간 동안 진행됐다. 티켓은 3만 원. 싼 가격이 아니었지만 1500명의 현지인이 전좌 석을 메웠다.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행사장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를 정도였다고 했다. “한국에 대해 관심은 많은데, 정작 K-팝 가수 들은 미국이나 중국 같이 큰 나라에서만 공연하거 든요. 한국인으로서 그들의 애정을 확인하고 답을 해주고 싶었어요. 행사가 잘 되고 나니 공연기획사 들이 가더라고요. 이제는 제가 더 안 해도 되겠죠.” EBS 라디오 ‘귀가 트이는 영어’를 진행하는 선 현우씨는 한국인에게 영어를,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 인터넷에서 시작 한 한국어교육방송 ‘Talk to me in Korean(내게 한국어로 말해봐)’은 팟캐스트와 유튜브로 이어져 주간 순방문자만 3만명에 이른다. 지금껏 청취자 누계는 전 세계에서 40만~50만명에 이른다고 한 다. 지난해 겨울부터 낸 같은 제목의 책 4권은 유럽 과 미국 등지에서 1만부 이상 팔렸다. 웹에서 한국 어 첨삭지도를 해주고, 한국어 속어나 드라마에 나 오는 어휘집 등을 ‘E-Book’과 ‘오디오북’ 형태로 앱 스토어에서 판매한다. “외국인들이 한국어학당을 다니는데, 교사들 은 한국말만 하고 책도 한국어로만 돼 있죠. 한국 어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이 봤을 때 난감하지 않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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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요? 한국 문화나 맛집, 연예인 소개 등은 많지만

죠. 한국이 예절을 중시한다지만 세계 어느 나라나

한국어를 흥미롭게 가르치는 웹사이트와 책은 부

마찬가지에요. 표현방식이 다를 뿐이죠. 문화의 차

족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를 알아야 외국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어요.”

한류가 낳은 새로운 시장, 한국어교육 수요를

선씨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을 매주 만난

선현우씨가 채워주고 있는 셈이다. “언젠가 K-팝

다. 월요일 저녁 홍대 앞 한 커피숍에서 이뤄지는

가수 인터뷰를 한글과 영어 자막으로 올려놓았더

일명 ‘다국어모임’이다. 한국인 반, 외국인 반이다.

니, 각국에서 25개 언어로 번역해 자막을 만들더라

“2008년 시작했을 때는 3~10명 정도 모였어요. 외

고요. 자발적인 온라인 커뮤니티가 생긴 거죠.” 일

국어 학습이 목적이었는데, 기존에 없던 방식이죠.

본 애니메이션이 유행하던 시절, 작품이 출시되면

등록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정기적으로 안 와도 그

영어를 비롯한 각국 언어로 자막이 만들어졌고, 곧

만이에요.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와서 각자 테이블

이어 일어학습 열풍이 일던 때가 있었다. 문화전파

에 앉아요. 영어로 얘기할 수도 있고, 일어 하는 사

의 수단은 바로 ‘언어’일 수밖에 없다.

람들이 많으면 일어로 얘기하고, 그런 식으로 다양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들에게 한류는 어떤 매

한 언어로 얘기해요. 지금은 160명 정도가 모여요.

력일까. “운 좋게 한류 붐이 일었죠. 개인들이 관심

커피숍 2층과 3층이 꽉 차는 거죠.” 다국어모임은

을 갖고 대중매체가 이를 전파했어요. 한국 노래

현재 신촌과 강남, 고대, 부산, 대구를 비롯해 캐나

는 뮤직비디오가 같이 나오는데, 볼거리가 많거든

다 밴쿠버, 오스트리아 빈, 페루 리마, 일본 도쿄에

요. 후렴구를 따라 부르면서 배우고 싶다고 생각해

까지 생겼다. 그는 “홍대 앞 모임에만 가는데, 10개

요. 드라마를 보면서 한글에 관심을 갖는 거죠. 외

정도 언어가 사용되는 것 같다. 새로운 친구들과

국에 나가면 한국인들이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려

만나다 보면 2시간이 훌쩍 지난다”고 했다.

외국인에게 영어로 한글을 가 르치는 한국어 자습서 <Talk to me in Korean> 표지

“외국인들에게 영어를

요. ‘정의 문화’라 할까. 1년만 살아도 외국인들과

선현우씨는 영어뿐 아니라 일어와 프랑스어에

안 하고 한국어를 가르

‘오빠, 누나’ 하며 ‘친한’ 사이가 되지요. 다른 아시아

도 능통하다. 중국어와 스페인어는 의사소통할

칠 수 있나요? 한쪽으

문화에서는 없는 특성 때문에 외국인들이 한국에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올 여름에는 독일에 가려

끌리는 거죠.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 그것

고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이탈리아어는 공부

이 바로 한류라고 생각해요.”

한 적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여러 언어

로 닫혀 있으면서 상대 만 열라고 말할 수는 없

하지만 이제 한류의 저변을 넓혀야 할 때가 됐

를 하다 보니 유추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여

는 거죠. 한국에 관심

다. “가요, 드라마, 영화가 한류의 계기는 됐지만 거

러 언어를 잘 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언어를 공부

있는 만큼 우리도 관심

기에만 의지할 수는 없어요. 외국인이 좋아할만한

하면 10분 뒤에 어떤 말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

을 보여주는 것이 소통

문화를 소개해야죠. 한류를 찾아 한국으로 왔는

는 거예요. 단순히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뚜렷한 목

이라고 생각해요.”

데, 듣던 것과 다르면 실망하겠죠. 사람들이 불친

표가 정해지는 거죠. 당장 말하려는 것부터 배우

절하다면 한국을 모르던 시절보다 이미지는 더 나

면 됩니다.”

빠질 거예요.”

그래도 그는 언어가 전부는 아니라고 했다. 서 로 다른 문화를 알고 소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한류가 낳은 한글배우기 시장 급성장

것이다. “필리핀에 가서 타갈로그어 인사말만 익혀

한국인이 외국인에게 갖는 이해부족도 지적했

서 해줘도 아주 좋아합니다. 외국인들에게 영어를

다. “외국인을 만나면 이런 얘기를 해줘요. ‘한국사

안 하고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나요? 한쪽으로 닫

람이 여러분에게 매운 것 잘 먹네요? 젓가락질 할

혀 있으면서 상대만 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거죠.

줄 알아요? 묻는 것은 놀리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을

한국에 관심 있는 만큼 우리도 관심을 보여주는 것

처음 만나서 그런 것일 수 있다’고요. 사실 매운 음

이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눈에 보이지 않는 한류

식이나 젓가락 문화는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 세계적

의 접촉면은 이렇게 서서히 확장되고 있었다. 언어

인 것이에요. 사계절이 뚜렷한 것도 한국만은 아니

의 속도로 말이다.


Special Report

SURVEY

036

magazine N | 201308

Kim Tae-hee chosen as top ‘Hallyu star’ 아시아 27개국 대학생 설문조사… 베스트 한류 스타·작품은?

아시아 27개국 대학생 202명을 대상으로 설 문조사를 벌인 결과 김 태희, 소녀시대, 빅뱅, 이민호 등을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지희 기자 thxright@theasian.asia

국 작품으로는 이병헌·김태희 주연의 <아이리스>

리사 위터 기자 lisainaja@theasian.asia

에 이어 현빈·하지원 주연의 <시크릿 가든>, 장동

‘한류’하면 떠오르는 스타는 누구일까. 가장 좋아하

건·김하늘 주연의 <신사의 품격>, 차태현·전지현

는 한류 작품은? <매거진 N>이 아시아 27개국 대

주연의 영화 <엽기적인 그녀>(각 4.8%)가 나란히 2

학생 2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가

위에 올랐다. 이어서 비·송혜교 주연의 <풀하우

장 좋아하는 한국 가수는 소녀시대(12.0%, 모름/

스>(4.3%), 박유천·한지민 주연의 <옥탑방 왕세자>,

무응답 제외),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김태희(8.2%)

이승기·수지 주연의 <구가의 서>(각 2.7%) 등 가수

라는 응답이 나왔다. 한국 드라마·영화 중 가장 좋

출신 연예인들이 주연한 드라마의 인기도 높았다.

아하는 작품은 <아이리스>(5.9%)로 나타났다.

송승헌·송혜교 주연의 <가을동화>, 이민호·

소녀시대에 이어 빅뱅(11.0%)이 ‘가장 좋아하

구혜선 주연의 <꽃보다 남자>, 이영애 주연의 <대

는 한국 가수’ 2위를 차지했고, 슈퍼주니어(6.3%),

장금>, 김수현·수지 주연의 <드림하이>, 이민호·

싸이(5.2%), 아이유(4.7%), 씨엔블루(4.2%), 씨스타

박민영 주연의 <시티헌터>, 서인국·정은지 주연의

(3.1%), 2NE1·EXO·보아(각 2.6%) 등이 뒤를 이었

<응답하라 1997>은 모두 2.2%를 득표해 공동 7위

다. SM(소녀시대, 슈퍼주니어, EXO, 보아)과 YG(빅

에 올랐다. 상위 13개 작품 중 영화는 <엽기적인 그

뱅, 싸이, 2NE1) 소속 가수들의 선전이 눈에 띈다.

녀> 단 한 편에 그쳐 한류 작품 중 드라마 강세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로 아이돌 그룹에 속한 멤

두드러졌다. 영화 부문에서는 전지현이 출연한 <엽

버 개인을 꼽은 경우만 별도로 살펴보면, 빅뱅의

기적인 그녀>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1.6%)

G-Dragon(2.6%)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다

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한편 케이블방송 드라

음은 소녀시대 태연(1.6%), JYJ 박유천, 소녀시대

마의 약진도 눈에 띈다. <응답하라 1997>, <인현왕

윤아, 슈퍼주니어 규현, 엠블랙 지오(각 1.0%) 등의

후의 남자>, <연애조작단; 시라노>, <판다양과 고슴

순이었다.

도치> 등 케이블방송 드라마를 가장 좋아하는 작

아시아 대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배우

품이라고 한 응답자는 전체의 4.8%였다.

는 김태희에 이어 이민호(7.1%)와 송중기(6.0%)가 각각 2, 3위를 차지했다. 현빈(4.3%), 송혜교·이승

최고 인기 드라마 <아이리스>

기(각 3.8%), 이병헌·원빈(각 3.3%), 문근영·박신

드라마와 영화를 통틀어 출연작의 인기가 가

혜(각 2.7%) 등이 뒤를 이었다. 가수들이 드라마와

장 높은 배우는 김태희와 현빈이었다. <아이리스>,

영화로 활동영역을 확대함에 따라 공동 5위에 오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장옥정, 사랑에 살다>

른 이승기를 비롯해 박유천·수지(각 2.2%), 비·윤

등 김태희가 출연한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는 응

은혜(각 1.6%) 등 가장 좋아하는 배우로 가수를 꼽

답은 전체의 8.1%였으며, <시크릿 가든>, <내 이름

은 경우도 전체의 14.3%에 달했다.

은 김삼순>, <백만장자의 첫사랑>, <그들이 사는 세

드라마와 영화를 포함해 가장 좋아하는 한

상> 등 현빈이 출연한 작품은 7.5%였다.


037

magazine N | 201308

1. Who is your favorite K-pop singer? “Girls’ Generation was the first Korean girl band that I knew with lot of members. I am amazed at the 9 beautiful girls with their own distinctive characteristics and how they have harmonious relationships among each other. Also, their songs and dances are very catchy. It’s fun to sing along. That’s why I like Girls’ Amelia Indriana, Indonesia Generation.”

2. Who is your favorite Korean actor/ actress? “I chose Kim Tae-hee because she is the most beautiful and innocent looking Korean actress. Her acting makes the act alive to watch. She is a versatile actor who can take on a mature role as well as a cute one like in the ice cream song! She is very ‘예뻐요...’ All Ganesh Sable, India the best for her!”

소녀 시대 가장 좋아하는 한국 가수

소녀시대 .............. 12.0% 빅뱅 ...................... 11.0% 슈퍼주니어 ............ 6.3% 싸이 ....................... 5.2% 아이유 ................... 4.7% 씨엔블루 ................ 4.2% 씨스타 ................... 3.1% 2NE1 ...................... 2.6% EXO ....................... 2.6% 보아 ....................... 2.6%

빅뱅

3. What is your favorite Korean movie or drama? “I was just wondering about relation between the two Koreas when my friend suggested Iris to me. There were a lot of interesting things in it. I like the way the actors and actresses acted and the many beautiful scenes in South Korea and abroad. I also liked the theme song of this movie. I sometimes sing this song and Vatsaphonh Sivilay, Laos it is so sad.”

이번 설문조사는 아시아 27개국 대학생을 대상

이민호 7.1% 송중기 6.0%

김태희 8.2%

가장 좋아하는 한국 배우

박신혜 2.7%

현빈 4.3%

문근영 2.7% 송혜교 3.8%

으로 6월26일~7월7일 구글서베이(온라인)와 대학 가 면접설문지(오프라인)을 통해 진행했다. 총 202

이병헌 3.3%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영화

다. 10대는 14.4%, 30대는 9.9%였고, 남학생(36.1%) 보다는 여학생(63.9%)의 참여 비율이 높았다. 응답자 국적별로는 말레이시아(21.8%) 인도 네시아(16.8%) 필리핀(12.9%) 인도(8.9%) 베트남 (5.4%) 미얀마(5.0%) 싱가포르(3.5%) 중국(3.0%) 등의 순으로 많이 참여했으며, 일본 방글라데시 캄 보디아 네팔 파키스탄 태국 몽골 스리랑카 대만 이 란 터키 부탄 브루나이 라오스 이집트 이라크 카자 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대학생들도 설 문에 응답했다.

이승기 3.8%

원빈 3.3%

명이 설문에 응했으며, 20대가 75.7%로 가장 많았

<아이리스>

아이리스 ................ 시크릿가든 ............ 신사의 품격 ........... 엽기적인 그녀 ........ 풀하우스 ................ 옥탑방 왕세자 ....... 구가의 서 ............... 가을동화 ............... 꽃보다 남자 ........... 대장금 ................... 드림하이 ................ 시티헌터 ................ 응답하라 1997 .......

5.9% 4.8% 4.8% 4.8% 4.3% 2.7% 2.7% 2.2% 2.2% 2.2% 2.2% 2.2% 2.2%


038

People

magazine N | 201308

리사 위터

국경 넘나들지만 각각의 줄이 하나의 음악 만들어 크루즈 주한-주싱가포르 필리핀 ‘부부 대사’의 러브송


039

magazine N | 201308

박소혜 기자 fristar@theasian.asia 리사 위터 기자 lisainaja@theasian.asia

한 첨단기술이 있지 않은가. “이메일이나 스카이

필리핀 독립기념일(6월12일)을 앞두고 주한 필리핀

활용한다. 우리 부부는 직업이 같아서 서로의 일도

대사관이 서울의 한 호텔에서 개최한 행사에서 루

더 잘 이해한다. 문자메시지에 바로 답하지 못할

이스 크루즈(Luis T. Cruz) 대사를 만났다. 부인

때도 있지만 부인은 그런 상황을 배려해준다.”

프, 구글행아웃 뿐 아니라 카카오톡, 바이버 등도

인 민다 크루즈(Minda Cruz) 여사도 함께였다. 그

루이스 대사는 부부관계의 지혜로 칼릴 지브

런데 알고 보니 부인도 대사였다. 남편은 한국에

란(Khalil Gibran)의 ‘결혼’에 나오는 시구를 소개

서, 부인은 싱가포르에서 각각 필리핀 대사로 일한

했다.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기뻐하되 서로는 혼

다. 그 다음 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독립기념일 행

자 있게 하라.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소리

사는 남편이 싱가포르로 가서 참석한다고 했다. 싱

를 내더라도 줄은 서로 떨어져 있듯이(Sing and

가포르에 갔다 돌아온 루이스 크루즈 대사를 서울

dance together and be joyous, but each one

이태원 주한 필리핀대사관에서 다시 만나 ‘대사 부

of you be alone, even as the strings of a lute

부’로 살아가는 얘기를 들었다.

are alone though they quiver with the same music.)”

한국과 싱가포르에서 각각 열린 국경일 행사에 부부가 나라 를 오가며 참석한 것인가.

“한국에서 열린 행사에는 아내 민다가 싱가포

필리핀, 여성 사회적 영향력 점차 확대 한국은 부부가 대사인 경우가 아직 없다. 필리핀은 어떤가.

르에서 왔고, 싱가포르 행사에는 내가 민다의 배우

“외무부에 처음 들어왔을 때 외교관 커플이 셋

자 역할을 하러 갔다. 필리핀대사관이 주최하는 행

있었다. 우리는 비교적 가까운 나라에 있었는데, 외

사를 통해 대사 부인들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무부에서 결혼한 커플들을 배려해주는 면이 있다.

있다.”

그래서 우리는 외무부(Department of Foreign

다른 나라에서 각각 대사로 지내면 얼마나 자주 만나나.

Affairs)를 ‘가족부(Department of Family

“우리는 1983년 함께 외무부에 들어왔다. 결혼 하면서 민다가 외교관 일을 그만둘 것인지를 놓고

Affairs)’라고 부른다(약자가 DFA로 같다).” 필리핀 여성의 사회참여도가 높은 것 같다.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결국 살면서 다른 나라에서

“필리핀 여성의 권리가 향상되고 있다. 젠더 이

지내게 될 것을 알게 됐다. 처음엔 둘 다 런던, 베이

슈에 민감하고 권리를 주장할 줄 안다. 그런 면에

징에서 같이 일했다. 대사가 되면서 민다는 홍콩,

서 그들을 존경한다. 2011년 필리피노한국배우자

나는 광저우로 가게 됐는데, 주말마다 내가 민다와

협회(FKSA)가 국회에 이중국적을 인정해달라고

아이들이 있는 홍콩으로 갔다. 금요일 오후 5시에

탄원해서 통과됐다. 부산에서는 필리핀 여성이 남

퇴근하면 8시에 도착했다. 그 후 민다는 싱가포르

편을 부부강간혐의로 법정에 세워 이기기도 했다.

에서, 나는 쿠알라룸푸르에서 일했다. 이때도 거의

필리핀은 인권이나 노동고용관련법에 관심이 많다.

주말마다 싱가포르에 가서 가족들을 만났다. 이후 둘 다 마닐라로 돌아왔다가 2008년에 민다가 싱가 포르, 나는 주한 대사로 부임했다. 지금이 가장 멀 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When Minda comes to Korea, she plays the role as spouse, and when I go to Singapore, I play the part of spouse. It makes me understand a little how the

크루즈 가족은 부부만 아니라 가족이 모두 따 로 산다. 딸은 결혼해서 호주에서 살고, 아들은 마

spouses of ambassadors must feel. Since my wife

닐라에서 영화업계에 종사한다. 남편은 서울, 부인

and I have basically the same job, it is easy for us to

은 싱가포르에 떨어져 지내지만 글로벌 가족을 위

understand each other.”


040

박소혜

magazine N | 201308

민다 크루즈 대사가 싱가포르 에 사는 필리핀인을 위한 잡지 ‘Magazine F’(2011년 8월호)에 표지인물로 실렸다. 루이스 크루즈 주한 필리핀대사 와 부인인 민다 크루즈 주싱가 포르 필리핀대사(왼쪽)가 6월7 일 서울에서 열린 ‘필리핀 독립 기념일’ 행사에 함께 참석했다.

최근에는 가정부 등에게도 각종 보험을 포함한 고

Unknown)>이다. 흑인 미군병사와 결혼한 한국여

용복지를 제공하는 법을 만들기도 했다.”

성이 아들과 지내는 이야기인데, 아들은 한국인이 라고 주장해도 사회가 받아들이질 않는다. 그는 인

“좋아하는 한류스타는 ‘수취인불명’의 김기덕 감독”

필리핀과 한국의 문화교류에 대해 크루즈 대 사는 ‘한류’의 영향을 높이 평가했다. 드라마나 영

종차별이나 다문화 아이들과 같은 무겁고 민감한 문제들을 다룬다. 그는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되는 주제를 말하고 있다.”

화는 관광과도 연결된다. 드라마 <주몽>과 <선덕여

필리핀은 6·25전쟁 참전국이다. 크루즈 대사

왕>을 모두 봤다는 그는 촬영지인 경주 밀레니엄파

의 아들은 지난 2009년 ‘6·25전쟁 60년’을 기념

크와 선덕여왕 무덤까지 가보게 됐다고 한다. 다문

해 필리핀 참전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그 작품이

화 어린이를 위한 프로젝트에서 배우 송일국과 함

<아리랑TV>에서 방송됐다고 한다. 참전군인 중에

께 작업한 얘기도 들려줬다.

는 피델 라모스(Fidel Ramos) 전 대통령도 있다.

“아시아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었

6·25전쟁에 장교로 참전한 그는 1992년 대통령이

는데 나는 타갈로그어로, 송일국씨는 한국어로 해

됐다. 정전 60주년인 올해 피델 라모스 전 대통령

설했다. 나라 간의 우호·영향·우정을 증진시키는

이 다시 한국을 찾아 박근혜 대통령을 만날 예정이

것은 외교관들만의 일이 아니다. 군대나 경찰과 같

라고 했다.

은 하드파워, 그리고 문화와 같은 소프트파워가 있

크루즈 대사는 한국과의 협력강화에 대해 이렇

는데, 한국은 소프트파워에 매우 강하고 이는 다

게 말했다. “필리핀은 전쟁 중인 한국을 도왔고, 한

른 부문에도 이득을 준다. 드라마 <대장금>은 필리

국은 가난한 필리핀을 도왔다. 앞으로 경제부문에

핀에 한식당을 유행시켰다.”

서 양국관계는 더 확장되어야 한다. 연간 100만명

크루즈 대사는 한국문화에 대한 특별한 관심

넘는 한국인이 필리핀을 찾는다. 필리핀의 제1 관

과 애정을 갖고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한류스타를

광객이다. 필리핀은 한국이 기술이전을 더 많이 해

물었더니 망설임 없이 김기덕 감독을 꼽았다. 그가

주길 바란다. 필리핀은 원자재를 한국에 보내고 한

만든 전 작품을 봤다고 했다. 김 감독 영화의 특징

국은 완제품을 필리핀에 보낸다. 우리는 한국에 바

은 “주연배우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며 “그의 영

나나를 보내고 한국은 바나나우유를 만들어 중국

화는 움직이는 시와 같다”고 했다.

에 보낸다. 우리는 반도체 부문 등 다양한 부문에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수취인불명(Address

서 교류를 넓혀 나갈 수 있을 것이다.”


People

magazine N | 201308

041

“요동치는 동북아 정세, 19세기 재연 보는 듯”

이상기 기자 winwin0625@theasian.asia

더라는 거다. 그런데 동료 한 명이 안 보이더라나.

이오봉

‘사람주의자’ 강창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

추기경님은 어떤 짐승도 같은 종은 안 죽이고 안 강창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민주당·3선·제

먹는데 인간은 사형도 시킨다고 하십디다.”

주시갑)은 여야는 물론 정부 인사들과도 두루 친

요즘 재벌들 행태에 대한 지적도 많고 개혁 필요성이 많이 제

하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관계로서의 인간’보다

기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위원장으로서 어떻게 보시는지?

‘사람 자체’를 좋아하며 스스로 ‘사람주의자’라고 말

“공룡 멸종이 좋은 비유가 될 거다. 공룡은 육

하는 것과 무관치 않은 듯하다. 기자는 강 위원장

식뿐 아니라 채식도 했다. 덩치 큰 놈이 짐승은 물

과 7월5일 낮 서울 여의도의 한 중식당에서 마주

론 풀까지 다 뜯어먹으니 먹이사슬이 끊어지고 마

앉았다.

지막엔 먹을 게 없어 흙까지 파먹다 굶어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공룡멸종의 교훈을 모르는 대

최근 펴낸 <여의도에서 이어도를 꿈꾸다>를 밑줄 쳐가며 다

기업들이 많다. 다행히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돼 재

읽었는데 ‘사람주의’란 말이 인상적이더라.

벌 오너들도 국회 증인 출석을 피할 길이 없게 됐

“한마디로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

다. 사법부가 사회 변화와 흐름을 잘 이해하고 있

람 없다는 얘기다. 평화, 생명, 시민, 감성 이런 말

어 이런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들이 어우러진 개념이라 할까? 홀로선 주체, 그게

한중 FTA에 대해선?

바로 인간이며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이 주인 되는 사회가 사람주의의 핵심이다.”

“나는 FTA 반대론자가 아니다. 굳이 말한다면 ‘시기상조론자’지. 농어촌에 자급자족 기반을 마련 해 준 후 해도 늦지 않다. 그런 면에서 일본한테 배

재벌, 공룡멸종의 교훈 되새겨야 개혁

울 점이 많다.”

음식이 나오자 그는 소주를 시켰다. ‘음주인터

강 위원장은 40년 이상 ‘제주4·3사건’에 천착해온 것으로

뷰’가 시작된 것이다. 강 위원장은 “인간이 참 독하

안다. 강 위원장께 4·3사건은 무엇인가? 심중에 언제나 제

다. 아마 같은 종끼리 무한경쟁하고 죽이는 동물은

주4·3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인간 외엔 없을 것”이라며 “80년대 일본 유학시절 저녁 사주시던 김수환 추기경님이 그립다”고 했다.

“맞다. 내 영혼은 온통 제주4·3사건과 맞닿아 있다. 4·3사건은 한민족 최대 양민학살사건이자

“추기경님이 일제 때 징병 끌려가 며칠을 굶은

냉전체제기에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개입된 세

적이 있는데, 동료가 멧돼지 고기 맛 좋다며 같이

계사적 사건이다. 1948년 봄, 토벌대에 의해 5개월

먹자더란다. 그걸 먹고 토하고 꿈자리도 사납고 하

간 하루 평균 130명 이상 모두 3만명이 목숨을 잃

기자와 강 위원장은 여러 차례 조우가 있었으나 둘이 앉아 깊 이 있는 대화를 나눈 건 처음이 었다. 강 위원장이 최근 펴낸 책 <여의도에서 이어도를 꿈꾸다> 가 말머리를 이어주었다.


042

강창일 의원은 지사·낭사·의사 형에 가깝고 이따금 돌사형 기 질도 보인다.

magazine N | 201308

이오봉

었다. 사건 후 만 31년이 지난 1979년에서야 처음

그는 1972년 서울대 제주도학우회 회장을 하

으로 4·3위령제를 지냈다. 이어 소설가 현기영 선

면서 처음 4·3의 진실을 접한다. 동문이었던 고광

생이 <순이삼촌>을 발표해 4·3의 아픔을 처음 세

옥(동아대 교수), 문무병(시인 겸 제주도전통문화

상에 알렸다. 1999년 12월26일 국회에서 ‘제주4·3

연구소장) 등과 제주도를 구석구석 누비며 4·3 원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혼들을 만났다. 강 위원장은 “제주4·3사건은 난징

이 통과되었고 4년 뒤인 2003년 10월31일 국가원

대학살, 타이완 2·28사건, 일본 오키나와 학살, 광

수로는 처음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유족들에게 사

주민주항쟁 등과 맥이 통한다. 그런 관점에서 동아

과했다.”

시아에서 자행된 국가테러리즘의 하나라고 규정할


043

magazine N | 201308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참 뜨겁게 살아왔다. 사람들 과는 조약돌처럼 둥글게 살아왔지만 야만의 역사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만나는 사이, 한편으로는 러시아와 일본 최고위층이 미국 용인 아래 긴밀히 접촉한다는

앞에서는 뜨겁고 치열하게 부딪치며 살아왔다. 몸

얘기가 있다. 남북한, 중국, 일본에다 미국과 러시아까지 몰려 있는

은 처절하게 부서졌지만 정신만큼은 더욱 단단하

동북아 질서는 19세기 중엽 이후를 연상케 할 만큼 급변하고 있다.”

고 옹골지게 변해갔다”고 했다. 기자는 ‘정치판’이라고 하지 않고 되도록 ‘정치권’이라고 표현 한다. 정치가 중요한데, 깎아내려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강 의원 책 곳곳엔 ‘정치판’이라고 돼 있더라.

“정치가 중요하긴 한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친구 들도 있다. 일반인 수준을 밑돈다. 내가 정치인을

는 지사형으로 볼 수 있다.” 애초 1시간30분 예상했던 인터뷰는 어느 새 두 시간을 훌쩍 넘기고, 다음 일정을 재촉하는 비서 의 전화가 걸려왔다. 역사학자 출신으로 동북아 미래를 어떻게 보시는지?

10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게 있다. 첫째 의로운 뜻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만나는

을 세워 강하게 밀어붙이는 지사(志士) 또는 의사

사이, 한편으로는 러시아와 일본 최고위층이 미

(義士)형, 둘째 말 잘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아나운

국 용인 아래 긴밀히 접촉한다는 얘기가 있다. 남

서형 의원들은 연사(演士), 변사(辯士)형이다. 셋째

북한, 중국, 일본에다 미국과 러시아까지 몰려 있

두뇌회전이 비상한 책사(策士)형, 넷째 카메라만 보

는 동북아 질서는 마치 19세기 중엽 이후를 연상케

면 환장하는 탤런트 같은 극사(劇士)형. 다섯째 겸

할 만큼 급변하고 있다. 한편으론 시베리아에서 블

손이 하늘을 찔러 귀신도 울리는 정치인, 그들은

라디보스톡을 거쳐 일본열도를 잇고, 중국대륙과

때와 장소를 안 가리고 입에 발린 좋은 말만 늘어

남·북한을 관통하는 철도건설 등 여러 가지 일들

놓는 첨사(諂士)형. 여섯째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

이 다각도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우리는

럼 사라지는 멋과 풍류를 아는 이들로 낭사(浪士)

NLL 갖고 여야가 정쟁이나 벌이니….”

형, 일곱째 힘깨나 쓰며 육두문자는 예사고 격투기

인생의 멘토가 있다면?

까지 자랑하는 장사(壯士)형, 여덟째 머리가 비상

“돌아가신 천관우 선생님이다. 내게 역사의식

하며 어느 분야에서든 두각을 나타내는 모범생으

을 심어주신 분이고, 주례도 서주셨다. 얼마나 후

로 재사(才士) 혹은 박사(博士)형이 있다. 아홉째는

배들을 좋아하시는지 유혁인, 남재희씨 등이 고급

이간질 잘 하고 끼어들기 좋아하며 자신 이익을 위

양주를 선물하면 그걸 남대문시장에서 소주로 몇

해선 살살거리지만 불리할 땐 홱 돌아서는 매몰찬

박스 바꿔서 당신도 드시고 우리들에게도 따라주

요사(奸邪)형, 마지막 열 번째는 럭비공이나 뇌관

셨다. 통일을 위해 도와달라는 전두환 대통령 권유

풀린 수류탄 같은 이들로 돌사(突士)형이 있다.”

로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의장을 맡으시자 주변에서 훼절(毁節)했다고 다 떠나 만년을 고독하게 살다 가

정치인 10개 유형 “책사·극사·낭사·요사…”

셔 너무 안타깝다.”

기자가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라고 하자 그는 “나쁜 유형은 내가 다 기록해 놓고 있지만 아직은 밝힐 수 없다”며 몇 사람의 실명만 거론했다.

강창일은 “섬과 뭍을 초월한 진정한 자유인이 내가 꿈꾸는 이상”이라고 했다. 그를 정계에 입문

“김대중 대통령은 지사형에다 연사형, 김영삼

시킨 정동영은 “강창일에겐 ‘정면승부’란 표현이 가

대통령은 장사형에다 지사형이고 JP는 책사형과

장 어울리는 말”이라고 했다. 기자는 헤어진 후 강

낭사형이다. 정동영은 지사·극사·연사형, 김한길

창일은 어떤 유형의 정치인인가 생각해 봤다. 책사

이강래는 책사형, 손학규 이종걸은 낭사·지사형,

나 연사와는 거리가 멀고 지사·낭사·의사형에 가

새누리당 의원 중 남경필은 낭사·돌사형, 이재오

깝고 이따금 돌사형 기질도 있지 않나 싶다.


People

044

magazine N | 201308

“아랍-아시아 잇는 문화소통의 다리가 되고 싶어” ‘책 읽는 기차’ 운동 펼친 만해대상 수상자 압더라힘 엘알람

박소혜 기자 fristar@theasian.asia

은 그의 문학적 명성이 아니라, 내가 그 분의 말씀 앞에 귀 기울이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2013년 만해대상 실천부문 수상자 압더라힘 엘알

겸손하고 꾸밈없이 우리에게 깊은 정을 보여주셨

람(Abderrahim El Allam·50)은 모로코 사람이

다. 따뜻하게 환대해 주신 그 분 손에 존경의 키스

다. 모로코는 아프리카 대륙에 있지만 아랍어를 사

를 해드렸다.”

용하는 아랍권이다. 아시아기자협회(AJA) 인터넷매

그는 오현 스님과 찍은 사진을 자신의 아이들

체 <아시아엔(The AsiaN)> 칼럼니스트로 활동해온

에게 물려주겠다고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오현 스

압더라힘을 쿠웨이트 알아라비 포럼에서 만났다.

님에게서 역사 속 훌륭한 사람들의 성정을 모두 갖

그는 지난해 가을 아시아엔 아랍어판 창간 준

춘 분의 모습을 느꼈다고 했다.

비를 위해 중동지역 언론인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

작가이자 문학비평가인 압더라힘은 모로코작

했던 때를 떠올렸다. 그 때 강원도 인제군 만해마

가협회(Moroccan Writers Union) 회장이다. 그

을에서 신흥사 조실 오현 스님을 만났다. 처음에

는 모로코에서 책읽기 운동을 펼친 공로로 올해 만

그는 오현 스님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

해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책 읽는 기차(Reading

는데, 이야기 도중 점점 앞으로 다가갔다. 이야기

Train)’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의 모든 기차역

가 마무리될 즈음 그는 오현 스님 바로 옆 자리에

에서 승객들에게 책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특히

앉아 있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책읽기와 글쓰기 프

“대시인이기도 한 오현 스님을 존경하게 된 것

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벌여왔다. 그가 교육활동에


045

magazine N | 201308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학창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교시절 휴일마다 미들 아틀라스 마을 (Middle Atlas villages)에서 교사로 일하던 형을 찾

“I will recommend my children to continue to keep my picture taken with Oh-Hyun, not because of the

아가곤 했다. 학교는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

fame of the man, but because he represents for

다. 나는 마을 학생들을 모아 학교에서 배운 것을

me a good example which I recognized in a brief

복습시켜줬다. 마을 사람들이 고마워하며 나를 천

circumstance only, which is the characteristic of

사라고 불러줬다.”

the great people throughout history.”

모로코 중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수 도 라밧(Rabat)에서 대학교육을 받으면서 모로 학전공 학생들이 모여 언어와 문학을 연구했다.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며 소통을 늘려 나가는 것이

이 무렵 그는 <소설 텍스트의 의미(The being

지속적 과제”라고 말했다.

of the novel’s text)>라는 첫 문학비평서를 출

만해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데 대해 그는 “모로

간하게 된다. 이후 아랍 시인 모함마드 다르위시

코의 영광”이라고 말했다. “나의 조국 모로코가 정

(Mohammed Darwish), 시리아 소설가 한나 미

치·문화·사회적 개혁에서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

나(Hanna Mina), 프랑스 철학자 로제 가로디

낸 것과 다름없다. 대내외적으로 모로코의 문이 활

(Roger Garaudy) 등에 대한 평론을 모로코, 이집

짝 열린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 문은 평화와 민주

트, 레바논 등지에서 잇따라 발간하며 문예비평가

주의의 세계로 뻗어나갈 길이다. 만해상이 세상의

로서의 입지를 쌓아 나갔다. 특히 1988년 노벨문학

평화를 지키려 애써온 선구자들에게 주어졌다는

상 수상자인 이집트 작가 나기브 마푸즈(Naguib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앞으로 문화 운동을

Mahfouz)에 대한 비평서는 이집트출판협회에서

게을리 할 수 없음을 다짐하게 된다.”

발간된 뒤 큰 호응을 받았다.

올해 만해대상 시상식은 8월11일 만해마을에

“모로코에서 표현의 자유는 다른 아랍 국가들

서 열린다. 시상식 참가를 위해 다시 한국을 방문

과 마찬가지로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할 예정인 압더라힘은 한국을 이렇게 기억했다. “어

모로코 지식인들은 변화의 물결에 동참해야 한다.

떤 특별한 소속감과 애정을 느꼈다. 인천공항에 발

문화와 예술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 특히 젊은 세

을 딛는 순간 문명과 교양 속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대의 창의성은 중요하다.”

한국인은 인간적 가치와 문화를 중시하는 사람들 이다.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이 마치 오래 전부터

“한국은 오래 전부터 알던 나라 같아”

알던 사람 같다는 느낌이 절절했다. 여러 곳을 다

그가 몸담고 있는 모로코작가협회는 1960년

니면서 친절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아시아기자

대 초 만들어졌다. 처음엔 마그레브(Maghreb, 북

협회와 <아시아엔>은 쿠웨이트 <알아라비 매거진>

아프리카 5개국) 지식인들을 한 데 모아 문화기

에 이어 아랍권에서 두 번째로 모로코작가협회와

구를 만들고 싶었지만 어려움이 많아서 모로코에

제휴를 맺었다. 이런 활동은 아랍과 아시아를 연결

서 먼저 출범했다고 한다. 이 때 창간한 문화잡지

하는 든든한 다리가 되어 줄 것임에 틀림없다.”

<AFAQ>는 모로코의 문화적 위상 확대에 선구적

그의 꿈은 뭘까. “나는 내 삶을 열심히 달려가

인 역할을 했다. 민감한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도

고 있다. 문학에 대한 성취도 이루고 싶고, 협회활

방향을 찾아 나가며 아랍의 민주문화를 확장시켜

동도 영역을 넓혀가려 한다. 다른 문화권에 모로코

나갔다. 압더라힘은 2008년 회장으로 당선된 이래

를 알리고 더 깊은 대화를 하고 싶다. 그렇게 소통

전국 콘퍼런스, 신인·여성작가 지원, 독서캠페인

해 나감으로써 세상이 관용과 평화, 사랑이 넘치는

등을 펼쳐왔다. 그는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고

곳이 되기를 소망한다.”

김남주

코에서 처음으로 학생문화협회를 만들었다. 문

압델라힘 모로코작가협회장이 오현 스님의 손등에 입을 맞추 고 있다.


Special Top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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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308

발 굴 특 종

아시아의 거부, 누가 얼마나 돈 많나 한국언론 최초 40개국 최고 부자 현황조사

김남주 기자 david9303@theasian.asia

Jambaljamts·46)회장이 최고 자산가로

사인 빈그룹(Vingroup) 회장 팜 낫 부엉

알려져 있다.

(Pham Nhat Vuong·44)은 베트남 최초

아시아 각국의 최고 부자는 누구일까. 부

중국 최대 음료업체 와하하그룹의 쭝

로 억만장자 반열에 오른 인물. 개인 총자

자 탐구는 해당 나라를 이해하는 데 흥미

칭허우 회장은 이 중 유일한 자수성가형

산 15억 달러로 올해 포브스가 집계한 개

로운 출발점이 된다. 이 분야에서 명성 있

기업인이다. 어려운 가정사정으로 인해

인자산 순위 974위를 기록하며 베트남 최

는 <포브스> <아라비안비즈니스> 등 매체

1963년 뒤늦게 중학교를 졸업한 쭝칭허우

대 부자로 등극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인

와 현지 언론, 각국 기자·학생 등을 통해

회장은 곧바로 생업전선에 뛰어들어 15년

스턴트 라면사업으로 출발해 부동산업

아시아 40개국 부자 현황을 조사했다.

간 육체노동을 하며 돈을 모았다. 쭝 회장

으로 큰 돈을 벌었다. 현재 베트남 최고

은 1987년 초 14만위안을 투자해 초·중학

급 상업시설인 빈

동아시아

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배달 서비스 회

컴센터(Vincom

중국 와하하그룹 회장, 자수성가형 부자

사를 설립했다. 1991년 국영 식품공장인

Center), 관광레

항저우관터우 식품공장을 8000만 위안에

저서비스 시설인

인수해 ‘어린이 웃음소리’라는 뜻의 ‘와하

빈펄(Vinpearl), 헬스케어뷰티 업

하’ 식품그룹을 창립했다. 이후 생수시장으 로 눈을 돌려 세계적 생수 브랜드 ‘에비앙’

태국 타닌 찌얀와논

생산업체인 프랑스 ‘다농’과 합작을 통해 일본 타다시 야나이

한국 이건희

승승장구 하고 있다. 자산은 116억 달러. 동남아시아

리카싱·타닌 등 세계적 갑부 많아

세계경제의 새로운 동력으로 부상하고

말레이시아 로버트 궉

필리핀 헨리 시

베트남 팜 낫 부엉

미얀마 타이 자

캄보디아 끗맹

브루나이 하지 하사날 볼키아

있는 동남아시아에는 아시아 최고 갑부 중국 쭝칭허우

몽골 오드자갈 잠발잠트

로 손꼽히는 홍콩의 리카싱 회장부터 태

동아시아는 전통적으로 거부들이 많

국 짜른포카판(CP)그룹의 타닌 찌얀와논

은 곳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일본은 타

(Dhanin Chearavanont·76) 회장, 샹그

다시 야나이(Tadashi Yanai·64) 유

릴라 호텔 소유주인 말레이시아 갑부 로

니클로 회장, 중국은 쭝칭허우(Zong

버트 궉(Robert Kuok·89), 필리핀 ‘소매

Qinghou·68) 와하하 그룹 회장, 한

왕’ 헨리 시(Henry Sy·90) SM프라임 회

국은 이건희(72) 삼성전자 회장이 최

장 등 100억 달러 자산가들이 즐비하다.

고 부자로 꼽힌다. 정확한 재산규모가

신흥경제국인 베트남, 미얀마, 캄보

파악되지 않는 몽골의 경우 자원개발

디아에선 40대층이 각 나라 최고 부자에

업체인 MCS그룹 오드자갈(Odjargal

올라 눈길을 끈다. 베트남 부동산 개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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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308

체인 빈참(Vincharm), 고품질 의료서비 스 사업체인 빈멕(Vinmec) 등에 주력하 고 있다.

아시아 40개국의 부자 국가

이름(나이)

회사

자산(억달러)

동아시아

포브스 명단에서 볼 수 없는 세계

일본

타다시 야나이(Tadashi Yanai·64)

유니클로

155

적 부호가 미얀마의 거물 기업인 타이 자

한국

이건희(72)

삼성그룹

130

(Tay Za·48)다. 타이자는 양곤 유나이티

중국

쭝칭허우(Zong Qinghou·68)

와하하그룹

116

몽골

오드자갈 잠발잠트(Odjargal Jambaljamts·46)

MCS

23

드 구단주로 있으며 미얀마축구연맹을

동남아시아

이끌고 있다. 흐투 기업집단을 운영하며

대만

차이옌밍(Tasi Eng-Meng·56)

왕왕그룹

98

보석회사부터 항공사까지 다방면에 걸쳐

홍콩

리카싱(Li Ka-shing·86)

청쿵그룹

310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미국은 타이자와

태국

타닌 찌얀와논(Dhanin Chearavanont·76)

짜른포카판

143

그의 가족들이 미얀마 군부와 연루된 사

말레이시아

로버트 궉(Robert Kuok·89)

궉그룹

125

인도네시아

R. 부디 하르토노(Budi&Hartono)

뱅크센트럴아시아

85

필리핀

헨리 시(Henry Sy·90)

SM그룹

132

싱가포르

Ng 로버트&필립(Ng Robert & Philip)

TST자산

101

베트남

팜 낫 부엉(Pham Nhat Vuong·44)

빈그룹

에서 가장 부자냐 물어보면 대부분 ‘훈센

캄보디아

끗맹(Kith Meng·46)

로얄그룹

N/A

일가’라고 답한다. 현지 언론에서는 훈센

라오스

카이손 폼비함 패밀리(Kaysone phomviham)

정치가문

N/A

미얀마

타이 자(Tay Za·48)

흐투 기업집단

N/A

브루나이

하지 하사날 볼키아(Haji Hassanal Bolkiah·66)

국왕

N/A

실 때문에 2007년 블랙리스트에 올려 놓 고 해외자산을 동결했다. 캄보디아 국민들에게 누가 캄보디아

일가를 제외하고 끗맹(Kith Meng·46) 로얄그룹 회장을 최고 갑부로 꼽는다. 현

15

남아시아

재 캄보디아 상공회의소 의장으로 활동

방글라데시

무사 빈 삼세르(Moosa bin Shmsher·64)

닷코그룹

중인 끗맹은 킬링필드로 부모를 잃고 태

네팔

비놋 차드하리(Binod Chaudhary·58)일가

차드하리그룹

10

국을 거쳐 호주로 건너가 자수성가한 케

파키스탄

미안 무하마드 만샤(Mian Muhammad Mansha·67)

MCD은행

25

리카싱 회장의 홍콩 청쿵센터

70

인도

무케시 암바니(Mukesh Dhirubhai Ambani·57)

릴라이언스인더스트리즈

스리랑카

해리 자야와르덴(Don Harold Stssen Jayawarden·72)

스타센그룹

215

우즈베키스탄

알리세르 우스마노프(Alisher Burkhanovich Usmanov·60)

메탈로인베스트

카자흐스탄

블라디미르 김(Vladimir Kim·52)

카작무스

타지키스탄

하산 아사둘로조다(Hasan Asadullozoda·42)

오리욘은행

N/A

키르기스스탄

막심 바키에프(Maxim Bakiev·37)

전 대통령 아들

N/A

2

중앙아시아 176 23

중동 이란

하세미 라프산자니(Rafsanjani·80)

전 대통령

11

이라크

나미르 알 아카비(Namir el Akabi·50)

ALMCO

20

시리아

라미 마클루프(Rami Makhlouf·45)

시리아텔

50

요르단

압델 하미드 쇼만(Abdel Hamid Shoman·67)

아랍은행

35

이스라엘

이단 오페르(Idan Ofer 57)

이스라엘코퍼레이션

65

팔레스타인

사이드 코우리(Said Khoury 85)

CCC

12

레바논

타하 미카티(Taha Mikati 68)

인베스트컴

35

터키

페릿 페이크 사헨크(Ferit Faik Sahenk 49)

도구스그룹

사우디

알 왈리드 빈 탈랄(Alwaleed Bin Talal·57)

킹덤홀딩

34 196

UAE

압둘 아지즈 알 구라이르(Abdul Aziz Al Ghurair)

알 구라이르그룹

31

바레인

카누 패밀리(Kanoo family)

카누그룹

61

쿠웨이트

나세르 알 칼라피(Nasser Al-Kharafi & family)

MAK그룹

86

카타르

세이크 하마드 알타니(Sheikh Hamad Bin Khalifa Al-Thani·61) 국왕

오만

카부스 빈 사이드 알 사이드(Qaboos bin Said al Said)

국왕

N/A

예멘

샤헤르 압둘학(Shaher Abdulhak 76)

샤흘러트레이딩

N/A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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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308

이스. 로얄그룹은 이동통신회사인 모비 텔(Mobitel)과 방송국인 CTN, 노스브릿 지 국제학교, 캄보디아나 호텔 등 통신·교 육·미디어·호텔·유통·외식업(KFC) 등 다방면에 진출해 있다. 미얀마와 마찬가 지로 정확한 재산 통계는 없다.

인도 무케시 암바니

파키스탄 무하마드 만샤

카자흐 블라디미르 김

타지키 하산 아사둘로조다

동남아에서 유일한 이슬람 왕국인 브루나이는 술탄(왕) 하지 하사날 볼키

Ambani·57)회

대 구리 생산업체인 ‘카작무스’의 고려인

아(Haji Hassanal Bolkiah·66)가 최

장. 한때 빌 게이

3세 블라디미르 김(Vladimir Kim·52)

고 갑부로 통한다. 포브스 평가 220억달

츠를 밀고 세계

회장. 2005년 카작무스가 런던 주식시장

갑부 순위 1위를

에 상장돼 그는 23억 달러 자산을 보유

차지한 적 있는

한 이 나라 최고 부자가 됐다. 알마티에서

세계적인 갑부다. 포브스 평가 자산 215

태어난 김은 알마아타 건축학교를 졸업

러를 소유했다. 자동차 수집광으로 최소 3000~6000대의 자동차와 보잉 747 전용 기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팔 비놋 차드하리

억 달러. 인도 프리미어리그 크리켓(IPL)

하고 소련 공산당 알마티 지역위원회 총

남아시아

뭄바이 인디언스의 구단주다. 최근 에픽

책임자를 역임했다. 카자흐스탄 독립 후

네팔, 라면제조업체 오너가 최고 부자

TV 지분 25%를 획득해 미디어와 엔터테

삼성물산이 위탁경영하던 제카간츠벳멧

남아시아 부자는 대부분 인도에 몰려

인먼트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ZhezkazganTsvetMet, 현 카작무스)

있다. 그 중 최대 갑부는 에너지 기업인

4G 통신 서비스도 준비 중이다.

책임자로 일하며 지금의 카작무스를 일궜

릴라이언스 인더스티리즈를 이끌고 있

MCD 은행을 계열사로 둔 니샤트 그

다. 현지 언론에 의하면 올해 초 회장 자

는 무케시 암바니(Mukesh Dhirubhai

룹의 무하마드 만샤(Mian Muhammad

리에서 물러나 이사로만 참여하고 있는

Mansha·67)회장은 파키스탄 거물급 자

것으로 알려졌다. 누르-오탄당 정치위원

산가다. 파키스탄 최대 민영은행 중 하나

회 멤버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주택이라는 인도 갑부 무케시 암 바니의 집 ‘안틸라’(Antila). 27층 건물에 방이 6000개로 집값만 1조111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로 꼽히는 MCD 은행은 1130여 개 국내

타지키스탄 에선 라 몬 대 통령의

지점을 두고 450만여 명의 고객을 두고

형제인 하 산 아사 둘로 조다(Ha s a n

있다. 니샤트 그룹은 은행 외 섬유·보험·

Asadullozoda·42) 오리욘(Oriyon) 은행

시멘트·전력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대표가 비즈니스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포브스에 따르면 네팔 최고 부자는

행사하고 있다. 그는 항공·자원·면직·보

차드하리그룹의 비놋 차드하리(Binod

험·투자·통신업 등 다방면에 걸쳐 사업

Chaudhary·58) 회장이다. 인스턴트 라

을 펼치고 있다.

면 ‘와이와이’ 브랜드로 유명하다. 치노베 이션(Chinnovation)그룹. 시겐코퍼레이

중동

션 지주회사. 나빌은행(Nabil Banking)

왕가·권력가 주변에 돈 몰려

지분과 인도 타타그룹 타지호텔 리조트

중동은 왕족 또는 고위 정치인 가족에게

지분을 갖고 있다.

부가 몰려있다. 사우디 왕가의 일원이자 기업가, 국제적 투자자로 활동 중인 알 왈

중앙아시아

리드 빈 탈랄(Alwaleed Bin Talal·57)은

카자흐스탄 고려인 3세 ‘구리왕’ 블라디미르 김

259억 달러를 보유하며 지난해에 이어 올

석유·가스 등 에너지 자원을 기반으로 중

해도 중동 갑부 1위 자리를 지켰다. 부동

앙아시아에도 백만장자들이 탄생하고 있

산과 주식 시장을 통해 부를 축적했으며

다. 가장 두드러진 인물이 카자흐스탄 최

2009년 에어버스 A380 여객기를 구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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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308

‘기부경영’의 달인 리카싱 310억 달러 보유… ‘포브스’ 선정 세계 8위, 아시아 1위

사우디 빈 탈랄

레바논 타하 미카티

홍콩은 리카싱(李嘉誠·86)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홍콩 사람들은 리카싱이 건설한 아파트 에서 잠을 자고, 그의 유통업체에서 물건을 사며, 그가 지은 도로·다리를 통해 출근한다. 홍콩 사 시리아 라미 마클루프

이란 라프산자니

람이 1달러를 지출하면 리카싱이 5센트의 수입 을 올린다는 말까지 있다. 한국에 진출한 왓슨스

서 통째로 개인 전용기로 개조해 화제를

(Watsons) 숍도 그의 브랜드다. 리카싱은 적절한

모으기도 했다.

시기에 회사들을 인수·합병하는 동시에 과감한

중동 북부 국가 중 타하 미카티(Taha Mikati·68)는 자산가치 35억 달러로 레 바논 최고 갑부다. 그의 형제는 현 레바논 총리인 나집 미카티(Najib Mikati)다. 타 하는 1980년대 통신회사인 인베스트컴을

부동산 투자로 오늘날의 부를 이뤘다. 부동산투 자회사인 청쿵실업과 14개국에서 항만과 통신 사업 등을 하는 허치슨 왐포아 등을 통해 20여 개 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리카싱 회장의 개인자 산 규모는 310억 달러. 올해 <포브스> 세계 부자 리스트 8위에 이름을 올렸다.

설립했다. 이후 런던과 두바이 주식시장

1928년 중국 광둥성 차오저우에서 태어난 리카

에 상장후 아프리카의 MTN그룹에 회사

싱 회장은 1940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자 가족

를 매각했다.

을 따라 홍콩으로 이주했다. 15세 되던 해 초등학교 교장이던 아버지가 사망하자 가족부양을

아사드 정권 주요 자금원이자 이종 사촌인 사업가 라미 마클루프(Rami Makhlouf·45)는 시리아 최대 부자로 통

까만 뿔테 안경은 리카싱의 트레이드 마크다.

위해 중학교를 중퇴했다. 가장이 된 리카싱은 플라스틱 외판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특 유의 성실함으로 불과 5년 만에 다니던 회사의 지배인이 된다. 22세에 빌린 돈으로 플라스틱 제조사 청쿵(長江)을 세우면서 ‘리카싱 제국’이 창업됐다. 30세 때 부동산 사업을 필두로 본격 적인 사업 다변화를 시작했다. 홍콩지역 부동산 개발로 큰 돈을 벌었다. 44세이던 1979년 영

한다. 자산 50억 달러. 국가 기간산업을

국계 홍콩 거대기업집단이던 허치슨 왐포아를 사들이며 재벌 대열에 들어섰다. 허치슨 왐포아

장악한 마클루프는 아사드 정권의 ‘사업

인수는 영국 식민지 아래 영국계 자본 대기업을 화교기업이 인수한 첫 번째 사례로 당시 홍콩

매니저’, ‘억만장자’로 불린다. 그는 아사드

은 물론 영국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가 부친에게서 권력을 넘겨받은 2000년

이같은 부, 명성과 달리 리카싱 회장은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0년 된 양복을

부터 통신회사 시리아텔과 은행, 부동산, 택시, 건설회사, 방송사 등을 운영하며 국

입고 3만원짜리 세이코 손목시계를 차며 고무 밑창을 댄 평범한 구두를 신는다. 삼성경제연구 소 <리더의 수업>은 그의 성공 비결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교만함을 멀리하고, 지식을 꾸준히 연마하며, 의로운 부를 이루는 것.

가의 정책적 사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

2008년 6월 자신이 설립한 중국 광둥성 산터우대학 졸업식에서 그는 “내가 지나치게 교만한

사해 왔다.

것은 아닌지 항상 스스로에게 묻는 것, 이것이 나의 성공비결” 이라고 말했다. 그의 집무실에

페르시아 반도의 이란은 최근 대선

는 ‘멈춤을 알라’는 글이 걸려 있다. 리카싱 회장은 아흔을 바라보는 지금도 자기계발을 게을리

후보로 다시 나왔다 탈락한 라프산자니

하지 않는다. 잠자기 전 30분은 반드시 문학·철학·과학·경제에 관해 읽으며 소설이나 무협지

(Rafsanjani·80) 전 대통령이 가장 많은

등 흥미위주의 책은 읽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집안은 거대 피스타치오 농장 경영과 오일 무역으로 부를 축적했다. 자산은 11억 달 러로 추정된다.

리카싱 회장의 마지막 성공비결은 ‘기부경영’이다. 1980년 설립한 자선재단을 통해 교육·의료· 학술 등 다방면에 기부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6년 6조원을 내놓은 그는 “진정한 부귀는 금전 을 사회봉사에 쓰려는 참된 마음에 있다”고 말한다. 리카싱은 빅토르와 리차드 두 형제를 두 고 있다. 큰 아들은 청쿵실업과 허치슨 왐포아 대표, 리차드는 홍콩텔레콤 경영을 맡고 있다.

김남주 기자 david9303@theasian.asia


Special Topics

050

magazine N | 201308

“미군 장성 142명, 6·25전쟁에 자식 내보냈다” 최승우 예산군수, 15년째 사재 털어 미 참전용사 보은행사

이상기 기자 winwin0625@theasian.asia

저를 위해 기도하지 마십시오. 대신 저희 승무원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최선

‘바람의 딸’ 한비야씨는 최승우(72·육사

을 다하겠습니다. 그것은 조국이 언제나

21기) 예산군수를 ‘영원한 청년’ ‘자유로운

저에게 부여한 의무와 책임입니다.”

영혼’이라고 부른다. 최 군수는 항상 최선

최 군수는 연설을 이어갔다. “밴플리

을 다하고 자신을 낮춘다. 그가 15년째 해

트 2세 중위는 웨스트포인트 졸업 후 다

마다 6~7월 미국 각 도시와 보훈병원을

시 공군에 입대해 조종사가 되어 아버지

돌며 6·25 참전용사 ‘보은행사’를 벌여온

밴플리트 대장과 나란히 한국전에서 싸

사실은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최

웠습니다. 중위는 압록강 남쪽 순천지역

군수는 “목숨 바쳐 나라를 구해준 분들께

에 단독 출격해 늘 생명처럼 여겼던 의무

감사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와 책임을 다하다가 적의 포격을 맞아 실

했다.

종됐습니다. 아들 소식을 보고받은 당시

올해는 7월13일 미국 워싱턴 앨링턴

8군사령관 밴플리트 대장은 압록강 주

국립묘지 밴플리트 장군과 밴플리트 2세

변 지도를 한동안 응시한 후 ‘내 아들 수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이어 14일 오후 1

색작전에 도를 넘지 말라’는 취지의 명령

시 버지니아 해거스타운 아메리칸 리전

을 내렸습니다. 며칠 뒤 ‘그 정도면 충분

홀에서 워싱턴DC, 버지니아주, 메릴랜드

하다’며 수색작전을 중지하도록 명령했습

주 출신 참전용사와 가족·친지 등 300여

니다. 6·25전쟁 당시 142명의 미군장성이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참전용사들에게 기념

아들을 한국전에 보냈습니다. 이 중 35명

메달을 걸어주었다. 그리고 예년처럼 짧은

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했습니다. 이 자리

연설을 했다. 그는 밴플리트 2세가 어머니

에 함께 하신 여러분은 모두 밴플리트 2

께 보낸 편지를 읽어내려 갔다.

세의 정신을 함께 나눈 위대한 영웅들이

“사랑하는 어머니, 눈물이 편지를 적

며 개인 신념에 따라 국가의 명령을 행동

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바로 선배님 덕분

시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한국전에

으로 실천한 대한민국의 영원한 은인이십

입니다”라고 했다.

참여하기 위해 비행훈련을 받았습니다.

니다.”

보은행사를 갖게 된 계기는 1999년으

B-26 폭격기를 조종할 것입니다. 아버님

자리를 꽉 메운 80·90대 노병들은 감

로 거슬러 올라간다. 육군 소장 전역 후

께서는 ‘한국인들이 두려움 없이 살 권리’

격의 박수를 그칠 줄 몰랐다. 최 군수는

현대사회연구소장을 맡고 있던 최 군수

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드디어 제게도

메릴랜드 보훈병원을 찾아 병상에 누워있

는 그해 6월 중대장 시절 부하였던 은병

미력이나마 보탤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는 노병들 손을 꼭 잡고 “선배님, 감사합니

곤(66) 당시 테네시태권도유도학회 회장


051

magazine N | 201308

최 군수가 장군 예복을 입고 6·25 참전용 사와 가족들에게 감사의 연설을 하고 있다. 병상에 누워있는 참전용사들을 찾아가 위 로의 말을 전하고 있는 최 군수 뉴저지 6·25 참전 기념비 제막식 보은행사장에선 감격의 눈물이 그치지 않 는다. 기념메달과 감사장을 받은 참전용사들

하는 기업·단체도 미처 하지 못한 일을 한 예비역 장성 개인이 묵묵히 해온 것이 다. “휠체어를 타고 행사장에 오셔 ‘우리가 피땀 흘려 지킨 한국이 자유를 되찾고 경 제발전을 이뤄 너무 고맙다’고 말씀하실 땐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오늘의 대한민국, 선배님 덕분입니다”

그가 방문해 기념메달을 전달한 킬 린, 템플, 낙스빌, 클락스빌 등 4개 시 는 ‘최승우 장군의 날’을 지정해 고마움 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중대장님! 테네

일이다. 이후 최 군수와 미국 각 도시의

을 표시했다. 켄터키주에선 ‘명예장교

시주 낙스빌시에서 7월11일을 ‘최승우 장

인연이 이어졌다.

(Kentucky Colonel)’ 증서를 수여했다.

군의 날’로 정해 초청을 하겠답니다. 꼭 오

최 군수는 올해까지 9개주, 30개 도

“산호세시는 작년 6월25일 태극기 게양식

십시오.”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과 태권

시와 지역 보훈병원에서 한국전 참전용사

과 함께 시청 앞 국기게양대에 태극기를

도로 신뢰를 쌓아온 은씨 등이 최 군수를

들을 위한 보은행사를 벌였다. 감사메달

45일간 내걸었다. 캘리포니아주 사상 처

추천한 것이다. 미국 주정부나 도시가 한

을 전달하고, 병상의 노병들을 위문한다.

음 일이라고 하더라”고 그는 전했다.

국인을 위해 기념행사를 갖는 것은 드문

줄잡아 7000명. 대한민국 정부도, 내로라

그는 2006년 예산군수에 당선된 이


052

magazine N | 201308

후에도 매년 미국을 방문해 참전용사들

최승우는 누구인가

베트남전 전투헬기 조종 예산군수로 고향 발전에 헌신

에게 감사메달을 전했다. 그동안 2억 여원 의 비용을 자비로 부담했다. 업무에 지장 이 없도록 휴가를 이용했음은 물론이다. 그는 무슨 일이든 건성으로 하는 법이 없 다. 하급자나 어린 사람에게 전화할 때도 본인이 직접 건다.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진짜 장군 출신 맞아? 저렇게 겸손할 수 있나?”며 묻곤 한다. 군 시절부터 남에 대 한 존중과 배려가 몸에 밴 탓이다. 군수에 당선된 이후 예산군수실은 활짝 열려있 다. 사전 약속 없이도 그를 만날 수 있다. 최 군수는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와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평 화봉사단원으로 예산에서 가르쳤던 스티 븐스 대사가 2008년 10월 부임 후 33년 만에 예산을 찾았을 때 일이다. 최 군수 는 스티븐스 대사의 이미지가 새겨진 목 제 항아리와 1975년 당시 예산중학교 전 경을 담은 그림을 선물했다. 그리고 스티 븐스 관련기사를 일일이 확대 편집해 20

6·25 참전 노병들과 전우애를 나누는 최 군수

쪽 넘는 앨범을 만들어 전달했다. 스티븐 스는 한동안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주

예산이 고향인 최 군수는 베트남전 참전용사다. 위관장교 시절 전장에서 육군 UH-1헬기 조종 사로 활약했다. 귀국 후 60년대 후반 경부고속도로 건설 때 이한림 당시 건설부장관 특명으로 한 달 간 이 장관이 탄 헬기를 조종하며 경부고속도로 노선 예정지를 살폈던 일은 꼭꼭 숨겨져 온 비화다. 이 장관은 “이 일은 대통령과 나만 아는 일이니 절대 외부에 알려선 안 된다”고 했 다. 입이 무겁고 임무에 충실한 최 군수의 인품을 보여주는 일화다.

한 미 대사’가 ‘군수’를 서울 관저와 집무 실로 10차례 이상 초대하고 예산을 3차례 방문하며 우정을 이어 갔다. 최 군수의 미국 방문과 관련해 빼놓

최 군수는 군 시절 자율적인 부대지휘로 유명했다. 육사 생도대장이던 1987년 12월 대통령선

을 수 없는 인물들이 있다. 그의 초중고교

거 때는 생도들에게 자율투표를 허용했다. 사단장 때는 미리 예정된 당번병들과의 회식 약속

동창으로 보스턴에서 마취과 의사로 일하

을 지키기 위해 직속상급지휘관(중장)이 주관하는 부부동반 만찬에 “부하와의 선약을 지켜야

고 있는 김은한 박사, 방미 때마다 통역을

한다”며 불참한 일화도 있다. 조성식 동아일보 기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장성 7인의 이야기를 담은 <장군들의 리더십>(늘푸른소나무, 2005)에서 최 군수에 대해 “명령과 복종을 금과옥조로 삼는 군에서 이례적으로 자율과 책임, 정과 신뢰를 지휘철학으로 삼았다. 그가 지향했던 군은

도맡아온 이병효 <오늘의 코멘터리> 발 행인, 코헨 회장, 마이클 글래지 회장, 맥

한마디로 ‘민주군대’였다. 상급자와 하급자간, 장교와 사병간 대화를 중시하고 지시보다는 설

킨리 회장, 김승남 박사, 유근배 회장, 하

득을 중시했다”고 썼다.

세종씨, 마틴 핑스턴씨, 콘스탄트 시의원,

예산군은 최 군수 취임 이후 황새농법으로 생산한 무농약 유기농 쌀과 슬로시티 조성 등으로

챔벌린씨 부부, 홍양희 회장, 송이화 기

삶의 질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 귀도 디어본 시장, 빅터 애쉬 RFA 회

이상기 기자 winwin0625@theasian.asia

최승우 약력 △1941년 출생 △1965년 육사21기 졸업 △월남전 참전(14개월) △1989~91년 17사단 장(소장) △1991~93년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1995년 6월 육군소장 전역 △1997년 이후 현대 사회연구소장, 정동문화포럼 회장 등 역임 △2006년, 2010년 예산군수 연임

장, 리자 험프리 회장, 전 CIA 국장 페트 레이어스 장군,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 사 등등. 최 군수는 그들의 이름을 빠짐없 이 기억하고 일일이 열거했다.


Country in Focus

원시와 첨단문명이 함께 숨쉬는 ‘밀림의 왕국’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는 한국의 사상 첫 해외투자가 이뤄진 동남아 중심국 가다.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올해 수교 40주년을 맞았다. 맥켄지는 2012년 연례보고서에서 2030년 인도네시아가 세계 7위 경제강국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경제부총리를 역임한 고 이한빈 박사는 일찍이 1970년대 초 “한국의 장래를 멀리 보고 인도네시아를 연구하라”고 후학들에게 당부했다. 세계 최대 도서국가이자 2억4000만 인구의 천연자원 부국 인도네시아를 집중 조명한다. - 편집자

Indonesia at a Glance 국가이념 빤짜실라 (Panca Sila) 인구 2억4000만 명(세계 4위) 면적 190만㎢(한반도의 약 9배) 민족구성 자바족(45%), 순다족(13.6%)등 300여 종족 Kalimantan

Papua Sulawesl

행정구역 자바, 수마트라, 칼리만탄, 술라웨시, 파푸아 5개 섬에 33개 지자체 종교 이슬람(87%), 개신교(6%), 가톨릭, 힌두교, 불교 언어 인도네시아어(Bahasa Indonesia)

Sumatra

정부형태 대통령중심제(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 GDP 8818억 달러(2012년) Java

INDONESIA

1인당 GDP 3563달러(2012년) 경제성장률 6.2%(2012년) 주요산업 광업(석탄·석유·천연가스) 농업(고무·야자유) 제조업(섬유·자동차·철강) 특이 동식물 오랑우탄, 타이탄아룸


Country in Fo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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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308

동서 5000㎞ 바다로 연결된 자원의 보고 8개 키워드로 읽는 인도네시아

고 한다. 태평양판 가장자리를 잇는 ‘불의

봤을 자바 커피는 네덜란드에서 커피나무

고리’에 위치한 탓에 400개 화산과 129

가 이식되면서 17세기 말 자바섬에서 재

1만7500개 섬에 300여 개 종족, 2억

개 활화산이 있다. 동남아시아 최대 호

배가 시작된 뒤 네덜란드 상인들의 항로

4000만 명의 사람이 583개 언어로 소통

수인 북부 수마트라 토바호(Lake Toba)

를 따라 전 세계로 수출되며 유명해졌다.

하는 광경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인도네

역시 7만5000년 전 화산 폭발로 만들어

시아 얘기다. 교보문고에서 파는 인도네

진 호수다. 빙하도 볼 수 있다. 푼짝자야

시아 관련 책만 200종이 넘는다. 여행서

(Puncak Jaya, 4884m)산은 적도지역에

3

<론리 플래닛>은 “서쪽 수마트라 섬부터

서는 드물게 산악 빙하를 갖춘 뉴기니 섬

명시돼 있다. 인도네시아서 살려면 싫든

동쪽 파푸아 섬까지 하나의 잣대로 설명

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기후학자들은 기

좋든 종교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모든

할 수 없는 나라, 만화경의 나라”라고 표

온 상승으로 인해 2015년쯤에는 빙하가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현했다.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될 때 인도

완전히 자취를 감출 것으로 보고 있다.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의 87%가 무슬

2

림으로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지만 이슬

김남주 기자 david9303@theasian.asia

네시아도 여러 나라로 나눠질 거라 예상 한 사람이 있을 정도다. 이 복잡 오묘한 나라를 8개의 키워드로 풀어본다.

100% 종교인

인도네시아 주민등록증에는 종교가

육두구

람이 국교는 아니다. 개신교, 가톨릭, 힌두

유럽인들의 인도네시아 진출은 향신

교, 불교, 유교를 모두 인정한다. 인도네시

1

료에서 시작됐다. 술라웨시와 파푸아 사

아 무슬림은 동남아 무슬림이 대체로 그

1만7500개 섬

이 반다해(Banda Sea) 북부 말루꾸 군도

렇듯 신학적으로 아랍 무슬림들과 다르

인도네시아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

(Maluku archipelago)는 향료섬(Spice

다. 대부분의 신도는 유일신에 대한 강조

는 점이 섬으로 이뤄진 독특한 지리환경

Island)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유럽인

보다 토착종교와 결합한 물질적 축복이나

이다. 지리환경이 정치·사회·경제 문화

들은 이 곳에서 수지, 장뇌, 백단향, 육두

영적 구원에 집중한다. 인도네시아가 이슬

전반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

구같은 향신료를 가져갔다. 특히 육두구

람 국가가 된 배경에 대해 김형준 강원대

문이다. 인도네시아는 1만7500개 섬으로

(nutmeg)의 원산지인 런섬(Pulo Run)을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과거 인도 남부 무

이뤄진 세계에서 가장 큰 군도 국가다. 인

둘러싼 영국·포르투갈·네덜란드 간의 분

슬림과 활발한 교역의 영향이 컸고, 인도

도네시아란 이름 자체가 ‘섬’을 뜻하는 라

쟁은 유럽의 동남아 식민지배 역사와 깊은

네시아인의 성향, 토착종교 교리가 이슬람

틴어와 희랍어 어원에서 온 말이다. 동서

연관을 맺고 있다. 네덜란드가 런섬을 소

과 잘 맞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길이 5150km, 남북 길이 2012km에 달

유하기 위해 뉴욕 맨하튼을 영국에 판 것

한다. 서쪽 수마트라에서 동쪽 파푸아섬

은 유명한 일화다. 네덜란드는 런섬을 점령

까지 가는 데 여객기로 7시간 걸린다. 수

하고 육두구 무역을 독점한 200여 년 동

4

마트라, 자바, 칼리만탐, 술라웨시, 파푸

안 이를 통해 얻은 엄청난 부를 기반으로

이뤄진 국가가 어떻게 한 나라로 유지될

아가 대표적인 섬이다. 인구의 58%가 자

아시아 상권에 대한 지배력을 획득했다.

수 있었을까. ‘국가이념인 빤짜실라에서

끈질긴 토론

다양한 종족, 언어, 수많은 섬으로

대항해시대 동인도제도로 불린 인도

답을 찾을 수 있다. ‘빤짜’는 다섯, ‘실라’는

인도네시아 어디선가 하루에 한 번 지

네시아는 400년 가까이 포르투갈, 네덜

원칙, 즉 다섯 가지 원칙을 뜻한다. 유일

진, 1년에 한 번은 화산 분출을 볼 수 있다

란드의 식민지였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

신에 대한 믿음, 공정하고 교화된 인본주

바섬에 거주한다.


055

magazine N | 201308

자바섬 부르모 화산 전경

의, 국가 통합, 대표자들 간의 토론 및 협

폐지하자니 국민 저항이 심하고 유지하자

의에 기초한 민주주의, 국민 모두를 위한

니 정부 적자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실제

존 지지층보다 당수 개인을 브랜드로 내

사회정의가 바로 그것이다. 인도네시아 사

로 인도네시아가 도로 등 인프라 건설 사

세운 정당이다.

람들은 결과보다 절차를 중시하며, 시간

업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이유로 연료

인도네시아 정치에서 또 하나의 중요

이 걸려도 협의와 합의를 존중한다. 아세

보조금을 지적하는 학자들이 많다. 인도

한 특징이 분권화다. 국제통화기금(IMF)

안(ASEAN)도 이를 이어받아 ‘협상을 통

네시아 정부는 최근 연료 보조금 감축안

의 요구와 외방 도서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한 합의’를 제1원칙으로 삼고 있다.

을 발표했으나 이에 반대하는 시위로 전국

1999년 급진적 지방분권화가 실시됐다.

5

이 몸살을 앓았다.

외교·국방·재정·종교 등 몇 가지 중앙정

인도네시아는 국민들에게 국제시세

부 권한을 제외하고 농업·투자·환경·노

인도네시아인들은 ‘각각의 사람이

의 절반 정도의 가격에 연료를 공급해왔

동·토지 등 대부분의 권한을 시·도급 지

각자 처한 입장이 다르다’는 신념이 강하

다. 2013년 4월 기준 경유 가격은 리터당

방정부로 넘겼다. 1974년 전체 공무원의

다. ‘네리모(Nerimo)’란 인간을 포함해 우

4500루피아(약 46센트). 한국의 3분의 1

78.3%가 중앙정부 소속이었으나, 2005

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 이미 발생한 사

수준으로 저렴하다. 2012년 연료보조금

년에는 전체의 24%만이 중앙정부에서

실 모두를 존재로서 인정하고 받아들이

은 정부 예산의 16%인 220억 달러를 차

일하고 8.1%는 주정부에서, 67.9%는 시

는 태도를 말한다. 이 때문에 수동적이라

지했다. 박재봉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도정부에서 일하고 있을 만큼 판도가 바

는 오해도 받고 일본인과 비교되기도 한

연구위원은 “2014년 대통령과 국회의원

뀌었다.

다. 이들은 대의명분을 위한 개인의 희생

선거를 앞두고 공무원의 높은 월급과 연

과 투쟁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인간

료보조금 문제가 가장 중요한 정치 이슈

관계 역시 지속적인 흥정 과정에 있는 것

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8

네리모

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의리 없고 배신을

1000만 화교

전체 인구의 4.1%인 1000만명 화교

인들은 친구가 많은 것을 좋아하는 반면

7

가 국가경제의 절반 가량을 장악했다. 주

다당제와 지방분권화

로 자카르타, 수라바야, 반둥, 족자카르

인도네시아는 12개 정당이 정치활동

타, 보고르, 팔렘방 등 도시에 많이 거주

그 관계를 영구불변한 것으로 이상화하지

을 펼치고 있는 다당제 국가다. 여러 정당

하며, 슈퍼마켓·부동산·방직·관광업·

않는다.

이 자유롭게 선거에서 경쟁하지만, 정당

금융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6

잘 한다는 오해를 사곤 한다. 인도네시아

간의 차이가 인물과 단순 이미지 정도다.

화교는 총 2067개 기업을 거느린 10대 그

연료보조금

전국 12개 정당 가운데 9개가 교섭단체를

룹 중 9개 그룹을 장악하고 있다. 상장 기

연료보조금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구성하고 있다. 이 중 3개 신생 정당이 기

업의 73%가 화교 기업이다.


056

Country in Focus

magazine N | 201308

2030년 세계 7대 경제대국 꿈꾼다 중산층 규모 2015년 1억7000만명 예상

김남주 기자 david9303@theasian.asia

원은 인도네시아 경제의 고성장 동력 5가

시아는 최근 1인당 GDP가 3000달러를

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넘어서는 중진국으로 진입한 가운데 특히 가처분소득이 5000~3만5000 달러에 달

동남아 유일 G20 멤버인 인도네시아는 경 제로 주목 받는 나라다. 조셉 나이 하버

중국·인도 이어 높은 성장률

하는 중산층 규모가 2015년에는 1억7000 만명, 2020년에는 약 2억명으로 증가할

드대 교수는 “곧 빅스(BIICs, 브라질·인

첫째, 세계 4위 규모 인구를 바탕으로

도·인도네시아·중국)가 브릭스(BRICs)를

한 거대한 내수시장과 낮은 대외무역의존

대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맥킨지그룹

도는 인도네시아 경제가 대외경제환경에

넷째, 도시인구 증가. 도시화율이

은 2030년 인도네시아 경제규모가 세계 7

크게 노출되지 않고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2010년 53%에서 2030년경에는 71%대로

위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씨티그룹 역시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높아지고, 3200만명의 농촌인구가 도시

2030년께 인도네시아가 독일과 영국 등

2011년 현재 동남아 국가들의 대외무역의

로 유입될 것으로 기대된다.

을 제치고 세계 7대 경제대국이 될 것으

존도는 10개국 평균 109.7이고 특히 싱가

마지막으로 정치·사회적으로 안정돼

로 내다봤다.

포르는 298.3, 베트남은 161.9, 말레이시

있고 풍부한 천연자원과 녹색성장 잠재력

아는 144.4 등으로 높지만 인도네시아는

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6.2%로 아시 아에서 중국에 이어 2위다. 2013년 1분

45.0에 불과하다.

것으로 보인다.

이런 기대를 반영하듯 인도네시아

기 GDP 성장률도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둘째, 인구보너스 효과. 인구보너스는

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는 가파른

6%로 나타났다. 어려운 세계경제 상황에

전체 인구 중에서 생산연령층은 많고 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실투자 기준으로

서 기록한 수치라 더욱 의미 있다. 인도네

린이와 고령자는 적어 고도성장이 지속

2010년 162억 달러, 2011년 195억 달러,

시아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16위

가능한 상황을 의미하는데 인도네시아는

2012년 246억 달러를 기록했다. 인도네시

다. 전문가들은 2020년이면 인도네시아

현재 중위연령이 27세일 정도로 젊어 인

아 투자조정위원회에 따르면 2013년 1/4

에 중산층만 2억명이 형성돼 중국, 인도

구보너스 효과를 2040년까지 향유할 수

분기에도 외국인투자는 전년동기 대비

다음의 시장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23% 증가한 70억 달러, 분기별 사상최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정재완 전문연구

셋째, 중산층의 급속한 확대. 인도네

치를 기록했다. 김유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원은 “인도네시아에 대한 FDI 유입 증가는 인 도네시아 경제개발회랑(IEDCs) 계획 구 체화, 신투자계획안 발표 및 투자 관련법 령 개정, 인구 증가와 중산층 확대, 안정 적인 경제성장 지속과 풍부한 천연자원 등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했다.

신화사

IEDCs는 인도네시아 전역의 각종 허 자카르타 센나얀 씨티몰에서 사람들이 미드나잇 쇼핑 을 즐기고 있다.


057

magazine N | 201308

중장기 거시경제지표 전망 구분 GDP

자료= IHS Global insight

2013년

2014년

2015년

936.7

1046.7

1216.6

2016~2020년 평균 2021~2025년 평균 1656.7

단위

2532.5

십억달러 %

실질GDP성장률

6.1

6.2

6.3

5.2

5

소비자물가

5.4

4.9

5.6

4.7

4.7

%

산업생산증가율

6.1

6.4

6.9

4.9

4.8

%

임영근 코린도 부사장

인도네시아 진출 “현지 눈높이 필요”

상품수출

195

214.8

242.9

330.8

492.8

십억달러

상품수입

186.7

207.3

233.5

306.2

452.3

십억달러

인도네시아는 한국

-2

-1.9

-1.6

-1.2

-0.9

%

의 사상 최초 해외

9747

9749

9413

9560

10296

루피아/달러

투자가 이뤄진 나라

경상수지/GDP 평균환율

다. 1968년 한국남

IEDCs의 회랑별 주요 개발 및 투자계획 경제회랑(투자규모) 수마트라 (840억 달러) 자바 (1528억 달러) 칼리만탄 (1112억 달러) 술라웨시 (363억 달러) 발리, 누사텡가라 (156억 달러) 파푸아-말루쿠 (732억 달러)

구분

자료=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주요개발 및 육성계획

방개발의 산림자원 개발 투자였다. 현

개발주체

천연자원의 생산과 가공 중심지이자

중점산업

철강, 조선, 팜유, 고무, 석탄, 순다해협국가전략지역(SSNSA)

개발주체

국가 제조업과 서비스 산업 메카

중점산업

음식료, 섬유, 운송장비, 조선, ICT, 방위산업, 수도권투자촉진 특별구역(MPA)

67.4억 달러에 이른다. 코린도기업, LG전

재 한국의 제7위 투자대상국이다. 한국 의 대인도네시아 투자는 2012년 말 현재

개발주체

광물자원의 생산과 가공 중심지 및 에너지 보고

자, 현대건설, 경승 등 약 2000개 한국

중점산업

에너지(석유, 가스, 석탄), 광물(보크사이트, 철광석)

기업이 진출해 있다. 이 가운데 1969년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개발주체

농어업, 광업, 플랜테이션, 석유, 가스 생산 가공중심지

중점산업

농업(쌀, 옥수수, 콩, 카사바), 니켈, 석유, 가스, 코코아, 어업

코린도기업은 6개주 30여 개 계열사에 현

개발주체

관광 관문이자 식량생산 기지

지인 2만명을 고용하며 인도네시아에서

중점산업

관광, 축산업, 어업

가장 친숙한 한국기업으로 손꼽힌다. 임영

개발주체

식량, 어업, 에너지, 광업 중심지

근 코린도 서울사무소 부사장으로부터 인

중점산업

농업, 니켈, 구리, 석유, 가스, 어업

도네시아 진출 시 유념할 점을 들어봤다.

브지역과 산업단지를 연결하는 인프라를

간산업 전력 송전 대체에너지 발굴에 초

건설해 경제성장과 지역간 균형발전을 도

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현지사업의 애로점은. “해외진출 자체가 힘든 일이다. 인도네시 아 진출한 지 40년이 넘었는데, 현지사회

모하는 장기개발계획으로 총 4720억 달

이를 통해 인도네시아 정부는 2025

러가 투입될 예정이다. 인도네시아 정부

년까지 세계 9대 경제대국으로 도약하고,

새로 진출하는 기업들에게 조언한다면.

는 투자 활성화 대책의 하나로 대통령령

2025년 1인당 GDP 1만4250~1만5500 달

“인도네시아인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

2012년 16호인 투자계획안(RUPM)과 인

러, GDP 4~4.5조 달러를 달성하겠다는

다. 게으르고, 지저분하고, 못났다고 생

목표를 세웠다.

각하면 그걸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진

도네시아 정부령 2011년 52호를 발표해 투자환경을 개선했다. FDI 유입 활발… 지난해 246억 달러

그러나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만만찮다.

에 동화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심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날씨가 더우 니까 천천히 일하는 것 뿐이다. 같은 인

10대 수출품 중 9위까지를 1차 산업 관련

간이란 마음으로 진정성 있게 대할 때 사

품목이 차지할 정도로 자원 의존이 심각

업도 성공할 수 있다.”

RUPM의 주요내용을 보면 첫째, 투

하다. 또 수많은 섬을 연결해주는 다리가

관공서 일처리가 쉽지 않다고 들었다.

자절차를 간소화해 투자조정위원회가 도

필요하나 인프라 사업에 들어갈 재원이

입한 원스톱 서비스 적용지역을 수도권에

부족해 진척이 더딘 실정이다. 2개의 특별

서 전국으로 확대하고 둘째, 지역균형 발

자치주(족자카르타, 아체)와 31개 주로 이

전을 위해 중복투자를 금지하고 자바섬

뤄진 행정구역별로 다른 인구규모, 인종

외 지역에 투자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분포, 자연조건, 종교 등으로 인해 소비행

제공한다. 셋째, 쌀·옥수수·콩·사탕수

태나 산업구조가 판이하게 다른 점, 높은

다 들어줘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연료보조금 등도 풀어야 할 숙제다.

수·야자수 등 농업과 철강·시멘트 등 기

“부정부패는 어디나 있다. 정도 차이가 있 을 뿐이다. 외국기업이 개선할 수 있는 방 법도 없다. 다만 어떻게 응대할 것인지 방 법을 터득해야 한다. 예전에는 중앙정부가 막강했는데 분권화 이후 지방정부 목소리 가 커졌다. 심한 경우 중앙·지방정부 요구 김남주 기자 david9303@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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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ntry in Focus

magazine N | 201308

신화사

팜유 생산, 환경훼손 주범인가 재생에너지 개발인가 삼성·SK 등 한국 대기업, 남한 넓이만한 숲 확보

김남주 기자 david9303@theasian.asia

가포르와 말레이시아까지 뒤덮었다. 외교

르와 말레이시아 방향으로 향하면 문제

문제로까지 번지자 수실로 밤방 유도요

가 심각해진다. 올해 연무가 유독 심했던

인도네시아에서 여름철 산불은 연례행사

노 대통령이 두 나라에 사과하면서 사태

것은 오랜 가뭄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

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올해는 정도가 심

가 진정됐다.

고 있다. 산불은 수마트라와 칼리만탄 지

했다. 수마트라섬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

밀림 화재는 몬순기간인 5~9월 집중

역에서 밀림을 개발하기 위해 화전식 정

불이 뿌연 연무를 만들면서 바다 건너 싱

적으로 일어난다. 바람의 방향이 싱가포

지작업을 하면서 생긴 것으로 조사됐다.


059

magazine N | 201308

수마트라섬 산불은 연례행사다. 주민들과 기업농이 경 제적인 화전식으로 땅을 개간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펠랄 라완 지역에서 산불이 번지고 있는 모습.

성유지 사용량의 31%를 차지하고 있을

정부는 ‘바이오디젤 인증제’를 통해 팜유를

만큼 수요가 많다. 팜유 소비시장은 지난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로 인정하지 않고

10년간 평균 12% 고속성장해왔다. 화장

정책지원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불법임에도 현지 주민과 개발권을 획득한

품과 바이오디젤 주원료로 각광받으면서

‘밀림의 왕국’ 인도네시아는 야자수

기업들이 가장 경제적인 방법인 화전식

세계 각국 대기업의 팜농장 투자가 잇따

농장 때문에 역설적으로 세계 최대 온실

정지작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르고 있다. 팜나무 경작지는 매년 40~50

가스 배출국으로 지목돼왔다. 경작지를

만㏊씩 늘어나는 추세다.

개간하려면 탄소가 풍부한 이탄지대를 배

인도네시아 정부는 최근 열대우림과 이탄(泥炭)지 개간을 금지하는 법령을 2년

삼성·SK 등 한국 대기업들도 바이오

간 더 연장하기로 했다. 한시법인 개간금지

연료 사업에 뛰어들었다. 인도네시아 수마

법 효력이 중단되기 직전 내린 조처다. 유

트라섬에 위치한 삼성물산의 팜농장은 크

생태계도 파괴됐다. 기업농과 벌목회

도요노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팜나무 농

기가 무려 2만4000㏊에 달한다. 서울시

사들은 쓸 만한 나무들을 베어낸 뒤 다양

장 확대를 위해 숲에 불을 지른 기업에 단

면적의 40%에 해당한다. 업계에서는 대

한 식물종들이 어우러진 원시림을 무차별

호한 조처를 내릴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

기업들이 바이오연료를 생산하기 위해 인

적으로 태워 없애고 그 자리에 팜유나 성

다. 그는 벌채와 경작지 조성을 2015년까지

도네시아, 라오스, 필리핀 등지에 확보한

장이 빠르고 재질이 강한 나무를 심어왔

금지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이로써 6400만

숲이 대한민국 면적에 육박하는 것으로

다. 이 때문에 1982~83년 가뭄 때도 산

ha(64만㎢)의 산림이 보호대상이 됐다고

보고 있다.

불이 발생해 죽은 나무의 구멍 속에 살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이다.

박쥐나 작은 동물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인도네시아 환경당국은 밝혔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그동안에도 개

수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오랑우탄 멸종 위기… 생태계 질서도 깨져

나무열매를 먹는 오랑우탄은 멸종위

발금지 법은 있었지만 환경훼손이 심화돼

국제사회에서는 바이오연료 생산과정

기에 처했다. 1992~93년에는 칼리만탄

왔다고 지적했다.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

에 문제가 있고 현지 주민의 인권과 환경을

동부의 원시림 80만ha와 조림지 75만ha

지 않는데다 처벌규정이 미약해 실효성이

침해한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바

가 불 타버렸다. 쿠타이 국립공원 대부분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환경운동가들은

이오연료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에너지원이

이 파괴됐고 산불에서 살아남은 나무의

최소한 산림개발금지법을 시한이 없는 항

라는 긍정적 측면과 환경을 오염시키고 주

70%는 가뭄으로 말라 죽었다. 이 같은 이

구적 법으로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민들의 건강권, 인권을 침해한다는 부정

유로 1억ha가 넘는 인도네시아 산림 가운

적 측면이 상존하는 양날의 칼이다. 독일

데 1972~2000년 사이 20% 산림이 사라

팜나무는 바이오 디젤로 각광받으면

졌다. 지구의 허파 노릇을 하는 대규모 숲

서 경작이 늘고 있는 수종으로 인도네시 아가 최대 생산국이다. 팜열매에서 추출 하는 식물성 오일인 팜유는 전 세계 식물

수마트라섬의 잠비지역 처녀림이 팜나무 경작을 위해 대규모로 개간된 모습 한 농부가 야자수의 일종인 팜나무 열매를 따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팜유는 바이오연료로 쓰인다.

신화사

이 사라지는 건 전 인류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AP


060

Country in Focus

magazine N | 201308

“인도네시아 지도층, 박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 한국과 경협 상생효과… 중공업 기술이전 기대 커

김남주 기자 david9303@theasian.asia 리사위터 기자 lisainaja@theasian.asia

지난해 10월 부임한 존 프라세티오(John A. Prasetio·62)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 를 만나러 서울 여의도 인도네시아 대사 관을 찾았다. KBS 별관 앞에 자리잡은 대 사관은 그 나라처럼 넓었다. 철문을 통과 해 100m쯤 들어가니 미술관 분위기가 역 력한 대사관저가 나왔다. 탁 트인 공간에 다양한 미술작품과 탤런트 이범수의 사진 이 눈에 띄었다. 존 프라세티오 대사가 반 가운 미소로 일행을 맞았다. 동남아 스콜 같은 장대비가 쏟아지는 정원을 바라보며 가벼운 대화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범수씨와는 어떤 인연이 있나.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관 홍보대사다. 이범수 씨의 아내(이윤진) 가족이 오랫동 안 자카르타에서 살았다. 이윤진 씨의 어 머니가 화실을 운영하면서 가방 등 액세 서리도 만들었는데, 가방이 대사관 부인 들에게 큰 인기였다. 아내와 인연이 돼 그 의 사위인 이범수 씨를 친선대사로 섭외 할 수 있었다.” 대사관이 금융가인 여의도에 큼지막하게 자리잡 고 있는 게 색다르다.

“1973년 수교 당시 여의도를 개발 중 이던 서울시가 각국 대사관에 분양 문의 를 했는데 응한 나라가 인도네시아밖에 없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여의도가 이 렇게 변화하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한국이 첫 부임지라던데.

“나는 직업외교관 출신이 아니다. 인 도네시아에서 대통령 직속기관인 국가경 제위원회 위원으로 경제자문 역할을 했 다. 2012년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 이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 다녀 온 뒤 주한대사 자리를 권했다. 비즈니스 존 프라세티오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

맨다운 진취성을 살려 외교행사 외에도 김남주


061

magazine N | 201308

다양한 행사에 참석해 가능한 많은 사람

고 있다. 요즘 인도네시아는 ‘클린카’에 대

을 만나고 싶다.”

한 관심이 높다. 한국이 클린카 시장에 들

세계 여러 경제연구기관이 인도네시아가 2030년

어오면 어떨까 싶다. 어느 한 국가가 인도

7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네시아 산업을 독점하길 원치 않는 만큼

저력이 어디 있다고 보나.

한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진출해주길 바

“세계 경기불황 속에서도 인도네시아

란다. 또 앞서 언급한 대로 인도네시아는

경제가 좋았던 것은 젊은 층 중심의 탄탄

2차 산업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 내수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인도

포스코가 들어온 것처럼 한국의 우수한

네시아 소비층은 과거 어느 때 보다 더 많

중공업 회사들이 더 많이 진출하길 희망

고 씀씀이도 크다. 2020년쯤이면 중산층

한다.”

만 1억4000만명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한

최근 인도네시아서 일어난 산불로 이웃 나라가 피

다. 현재 목재·가스·농업 등 1차 산업에서

해를 많이 봤다. 해결방법이 없나.

박근혜 대통령이 영부인 역할을 수행하던 1970년대 후반 초대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 부인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자동차·철강 등 2차 산업으로 개편이 원

“완벽한 해결은 쉽지 않다. 일부에서

다. 나도 그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 아세안

활하게 진행된다면 7대 경제대국의 꿈은

는 산을 개간하기 위해 태우는 불법행위

대사들이 모여 박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

더 빨리 이뤄질 수 있다.”

를 근절하면 된다고 하지만 이는 산불의

하는 자리였다. 그 전에 꽃을 선물하고 싶

정부재정에 부담을 주는 연료보조금, 공무원의

일부 원인에 불과하다. 산불 발생 후 빠른

다고 의전담당자에게 알렸더니 대통령이

부패, 더딘 인프라 구축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

조치를 한다면 피해의 범위를 줄일 수 있

직접 받으시진 못할 거라고 했다. 그래도

지 않은데.

을 것 같다.”

괜찮다고 하고 모임 자리에서 선물했는데, 박 대통령이 직접 받아 본인 자리 앞에 두

“최근 정부는 유류가격을 인상해 연 료보조금 문제 해결에 나섰다. 연료보조

영부인 아니 여사 초대 주한대사 딸

고 얘기를 나눴다. 박 대통령의 배려에 모 두 감동했다.”

금은 자동차를 소유한 중산층에게 더 많

올해는 인도네시아와 한국이 수교를

은 혜택이 돌아간다는 지적이 많았다. 공

맺은 지 40주년 되는 해다. 프라세티오 대

무원의 부정부패는 권력이 지방정부로 이

사는 워보니 초대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

“수교 40주년 기념행사로 9월25일 ‘갈

양되면서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과거에는

아내와 박근혜 대통령이 환담을 나누는

라 디너’와 다음날 ‘비즈니스 포럼’ 행사를

가난했지만 지금은 많이 나아졌음에도 인

사진을 보여주며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특

개최한다. 갈라 디너에는 패션쇼도 진행

도네시아인 스스로를 낮추는 경향이 있는

별한 인연에 대해 소개했다. 박근혜 대통

될 예정인데, 유도요노 대통령의 며느리

것 같다. 하루빨리 극복했으면 한다. 개인

령이 영부인 역할을 수행할 때다.

가 모델로 참여한다. 인도네시아는 기회

앞으로 활동 계획은?

적으로 인도네시아 발전에 가장 큰 걸림

“워보니 초대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

돌은 인프라 구축 문제라 생각한다. 섬과

의 딸이 현재 영부인 아니 유도요노(Ani

섬 사이를 오가는 물류비용이 너무 크다.

Yudhoyono) 여사다. 아니 여사는 당시 2

프라세티오 대사 는 기업가 출신

불편하기도 하고. 2025년 중장기 로드맵

년간 한국에서 학교를 다녀 한국에 대해

이다. CBA 컨설팅 설립자며 페르마타

에 따라 6개 대형 섬을 잇는 경제개발회랑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이야기는 박근

(Permata)은행 이사, 앤더슨 월드와이드

계획안을 내놓았고 새로운 투자계획안도

혜 대통령에 대한 일화로 이어졌다.

싱가포르 아태지역 CEO 등을 지냈다. 부

의 나라다. 양국이 윈-윈 할 수 있도록 열 심히 뛰어다니겠다.”

발표했다. 한국은 영종대교 등 큰 다리를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부디오노 인

임 전 대통령 직속 국가 경제위원회 위원

건설한 경험이 풍부하다. 인도네시아 발전

도네시아 부통령이 참석했는데 부통령이

을 비롯해 산업부장관 특별자문, 국가지

에 기여해주기를 기대한다.”

크게 감동했다고 했다. 부디오노 부통령

배구조위원회, 투자조정청 투자위원 등

한국이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 진출하기를 원하

은 취임식 당일 칠순 생일이었는데, 박 대

으로 활동하며 런던 G20 비즈니스 서밋

나.

통령이 미리 알고 ‘고향에서 손주들의 재

(2009년 3월)과 토론토 G20 비즈니스 서

“인프라 시장은 중국이 장악하고 있

롱을 보며 생일을 기념해야 하는데 귀한

밋(2010년 6월)의 인도네시아 대표로 참석

고, 일본은 자동차 시장의 93%를 차지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는 것이

한 바 있다. 취미로 골프를 즐긴다.


Country in Focus

062

magazine N | 201308

‘오랑우탄의 고향’ 그 숨겨진 매력 인도네시아에서 꼭 가봐야 할 5곳

김남주 기자 david9303@theasian.asia

따라 꼭 가 볼 만한 곳 5군데를 소개한다.

처한 오랑우탄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1984

인도네시아는 관광대국이다. 세계적 관광 지 발리를 비롯해 롬복, 빈탄 등의 수려한

1

년부터 칼리만탄섬 남서쪽에 탄중푸팅 국 지구상에 유인원은 네 종류가 있다. 고

타에서 칼리만탄섬행 비행기를 타고 1시

명소가 널려 있다. 오랑우탄의 고향인 인도

릴라와 침팬지, 보노보와 오랑우탄. 이 가

간 20분 날아가면 펑칼란번에 도착한다.

네시아는 어느 섬을 가든 울창한 숲과 열

운데 오랑우탄만이 아시아에 사는 유일한

여기서 차를 타고 쿠마이까지 가 탄중푸

대식물, 야생동물을 만날 수 있다. 오랜 역

유인원이다.

팅 국립공원으로 가는 배를 타고 들어가

탄중푸팅 국립공원

립공원을 만들어 보호하고 있다. 자카르

면 된다.

사 속에서 불교와 힌두교 왕국이 흥망을

나머지는 모두 아프리카에 서식한다.

거듭하면서 남긴 다양한 문화유산과 독특

전에는 베트남과 태국, 말레이 반도에도

한 가옥형태는 섬마다 자기 색깔을 분명히

있었지만 모두 멸종했고 현재 인도네시아

한다.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관의 조언에

수마트라와 보루네오 섬에만 생존한다.

2

오랑우탄은 인도네시아어로 숲(hutan)에

할 곳. 독특한 그림, 목공예 작품을 저렴

사는 사람(oran)을 뜻한다. 멸종위기에

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과거 1930년대

유일한 오랑우탄 서식지인 탄중푸팅 국립공원 우붓마을 로열패밀리가 전통 장례행사를 재연하고 있다.

신화사

우붓마을

예술품 애호가라면 반드시 들려야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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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예술가들이 실제 살던 곳이다. 우봇

현지인 추천 비치 푸드

에 들어서면 거리 초입부터 범상치 않은

더위야 물러가라! 새콤달콤 디저트 ‘에스 피상 이조’

느낌을 받게 된다. 우붓의 중심거리인 라 야거리(JL Raya Ubud)는 고풍스런 발리 풍의 건물과 숍들이 도열해 있다. 또 이 거리에는 우붓왕 궁(Ubud (Museum Puri Lukisan), 네카 미술관

신화사

Place), 재래시장, 뿌리 루키산 미술관 부끼띵기의 프랑스마을

(Neka Art Museum), 블랑코 미술관 (Blanco Museum) 등 문화시설이 몰려있

부끼띵기가 매력적인 또 다른 이유는 미낭

다. 발리를 가면 꼭 들렸다 오자.

까바우족 때문이다. 이들은 모계공동체

3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대가족을 이뤄 문

토바호수

동남아에서 가장 큰 호수로 수마트

중 중심으로 살아가는데, 혈연은 어머니 를 따른다.

라 섬 북부에 있는 화산 폭발로 생긴 칼데

문중과 가족의 재산·집도 딸에게 상

라 호수다. 토바 호수의 진정한 매력을 느

속된다. 최근 유명해진 빅뱅 시계탑 등 볼

끼기 위해서는 호수 한 가운데 사모시르

거리도 풍성하다. 메단 공항에 내려 버스

섬으로 가야 한다. 파라팟에서 보트를 타

로 8~11시간, 택시로 4~6시간 소요된다.

5

시원한 아이스 칵테일 ‘에스 피상 이조(Es Pisang Ijo)’

보로부두르

인도네시아는 어딜 가든 아름다운 해변이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

넘쳐난다. 어른들은 스노클링, 다이빙, 일

아에 의외로 세계 최대 불교사원이 있다.

광욕을 즐기고 아이들은 모래성을 만든다.

자바 섬 족자카르타에 있는 보로부두르

어떤 이들은 인도네시아 전통 음식을 즐기

가 그 곳이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언덕 위

며 편안하게 일몰을 감상하기도 한다. 이 러한 모습은 인도네시아 어느 해변에서나

에 있는 불교사원’이란 뜻이다. 수많은 탑 동남아에서 가장 큰 호수인 토바호수 인근 전통가옥

볼 수 있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이 집합체를 이루고, 전체 모양 또한 탑 형

뜨거운 적도의 나라는 햇빛을 찾아 나선 이들의 천국이다. 그러나 가끔 너무 뜨거

고 약 1시간 정도 호수 위를 달리면 새로

울 때가 있다. 인도네시아에는 더위를 피

운 세상으로 들어간다. 호수에는 바탁족

하는 다양한 청량음료가 있다. 많은 해변 에서 에스 캄푸르 또는 과일 아이스 칵테

이 고유의 문화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 배

일을 즐기는 이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중 소개하고 싶은 간식이 에스 피상 이

트라섬 메단 공항에서 상용 봉고 등을 이

조(Es Pisang Ijo)다. 에스 피상 이조는 인

용하면 갈 수 있다.

도네시아 술라웨시섬 마가사르에서 왔

4

부끼띵기

신화사

모양을 닮은 가옥형태가 독특하다. 수마

보로부두르의 웅장한 석탑

다. ‘그린 바나나 아이스’라고도 불린다. 그 린 팬케이크로 돌돌 만 바나나에 얼음과 함께 코코넛밀크 소스가 곁들여진다. 달콤

수마트라섬 서남부 고산지대 마을

상을 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하고 새콤한 맛의 바나나가 부드러운 그린

부끼띵기는 활화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에 등재된 이 사원은 내년에 발굴 200주

팬케이크와 만나 환상의 궁합을 이룬다.

활화산 분화구까지 트래킹 코스가 정비돼

년을 맞는다고 한다. 각종 행사가 열리니

올 여름 바캉스, 따갑게 내리쬐는 짐바란

있고 주변에는 수많은 노천온천이 있다. 1

그에 맞춰 가도 좋고 그 전에 가도 무방할

비치에서 에스 피상 이조 어떨까?

달러 내외 가격으로 온천을 즐길 수 있다.

듯 하다.

Meidyana Rayana 주니어 AJA 리포터, 고려대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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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d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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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연고’엔 정말 호랑이 기름이 들어 있을까?

박소혜 기자 fristar@theasian.asia

호랑이연고는 19세기 말 중국 황제 직 속 궁중 한의사 후쯔친(胡子欽)이 피부에

공장을 세워 그들의 특별한 연고인 만금 유를 대량 생산하게 된다.

바르는 치료제로 쓰기 위해 약제들을 구

만금유는 말레이, 홍콩, 바타비아(현

가정마다 상비약으로 하나쯤 갖고 있던

성한 데서 비롯됐다. 1870년대 동남아시아

자카르타), 시암(현 태국)을 비롯한 중국

일명 ‘호랑이연고(Tiger Balm)’. 지금은

시장을 찾아 중국을 떠난 후쯔친은 미얀

여러 도시에서 엄청나게 팔렸고, 오늘날

호랑이연고 자체보다 ‘화장품계의 호랑이

마 랑군에서 영안당(永安堂)이라는 작은

까지 베스트셀러 의약품 명성이 이어지고

연고’니 ‘피부트러블의 호랑이연고’ 하는

약국을 냈는데, 이곳에서 자신이 만든 약

있다. 후원후는 이후 연고 이름을 ‘타이거

식으로 특효제품이란 의미의 보통명사가

제를 팔았다. 그 약제가 바로 ‘만금유(萬金

밤(호랑이연고)’으로 바꿨다. ‘타이거 밤’의

돼 버렸다.

油)’. 열대계절풍 기후로 덥고 습한데다 모

제조사는 싱가포르의 호파(Haw Par). 호

기와 해충이 많은 곳에서 꼭 필요한 피부치

랑이연고의 ‘호랑이’는 바로 이 연고를 만

료제였다. 이것이 훗날 ‘만병통치약 호표 고

든 한의사의 아들 이름에서 딴 것이었다.

‘빨간약’이라 불리던 상처치료제와 함께

‘호랑이’는 후계자 이름에서 딴 것

그 옛날 약장수는 ‘백두산 호랑이뼈

약’으로 불리게 된 치료제의 원조였다.

‘타이거 밤’ 브랜드의 주인공인 후원

를 통째로 갈아 넣은’ 이 약을 이곳저곳

1909년 후쯔친이 사망한 뒤 두 아들

후는 동남아 화상(華商)의 거물로 군림하

아픈 데다 바르기만 하면 낫는다는 ‘만병

인 후원후(胡文虎)와 후원바오(胡文豹)가

다 1954년 사망했다. 싱가포르와 홍콩에

통치약’으로 소개하곤 했다. 하얀색 반투

영안당 약국을 물려받았다. 원후(文虎)와

는 타이거 밤을 알리기 위해 조성된 ‘타이

명으로 ‘화~’한 느낌의 연고. 한동안 중

원바오(文豹)는 각각 ‘온화한 호랑이’와 ‘온

거 밤 가든’이 있다. 중국문화 관련 모형이

화권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선물

화한 표범’이란 뜻인데, 둘은 자신의 이름

1000개 이상 전시돼 있는 이 가든은 제조

로 꼭 챙기는 품목이었다. 과연 호랑이연

뒷글자를 하나씩 따서 ‘호표행(虎豹行)’이

사 이름을 따서 ‘호파(Haw Par) 빌라’로

고에는 호랑이뼈, 아니 호랑이기름이라도

라는 제약회사를 만든다. 이어 싱가포르

도 불린다.

들어 있을까?

에 공장을 세우고 중국과 동남아 각지에

지난 100년간 100개국 이상에서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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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밤 화이트와 레드 젤 형태로 개발된 타이거 밤(Tiger Balm ACTIVE Muscle Gel) 근육통에 붙이는 타이거 밤 파스(Tiger Balm Plaster (Cool))

된 타이거 밤. 지금은 6개 나라에서 생산 돼 70여개국에 판매되고 있다. 세기를 넘 어 인기를 끌고 있는 이 ‘호랑이 연고’는 과연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허브약제가 주성분… 벌레 쫓는 효과도

주요성분은 캄파, 멘톨, 박하유, 정향 유, 카주풋유, 클로브유 등이다. 부딪혀 서 생긴 타박상이나 어깨 결림, 류머티즘 통증 등이 있을 때 해당부위에 펴 발라주 면 파스처럼 진통과 수렴, 소염작용을 한 다. 박하향 등이 아로마테라피(향기치료) 역할을 하는데, 벌레 물린 데 발라도 가려 움증이 완화된다. 머리가 아프거나 한여름 너무 더워 맥 이 빠질 때도 관자놀이나 혈자리에 발라 주면 도움이 된다. 그래서 이 약은 ‘청량 유(淸凉油)’라고도 부른다. 열을 내리고 시원하게 만들어준다는 뜻이다. 허브향 은 모기나 해충이 싫어하기 때문에 벌레 를 쫓는 데도 사용된다. 호랑이가 상처를 입었을 때 이 연고의 원료성분이 되는 풀 에 몸을 비빈다는 말도 있는데, 이는 확인 되지 않은 얘기다. 카주풋유 같은 경우 고 대 인도에서부터 전통 민간 치료제로 널 리 사용돼 온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상처에 직접 바르는 것은 금 물. 피부연고제라고 해서 호랑이가 풀에

붙이는 파스, 패치, 로션, 젤, 스프레이,

날짜, 연고가 들어 있는 양 등 정품과 모

모기퇴치제 등 다양한 형태로도 생산되

조품의 구분방법은 이제 네티즌들의 관

고 있다.

심사다.

몸을 비비듯 온갖 피부병에 남용하거나

한국에서는 1900년대 초 시판됐다

한가지 더. 만금유는 원래 ‘할 줄 아

과도하게 바르면 독성을 나타내거나 접촉

가 10여 년 전 국내 유통이 중단됐는데,

는 것은 많지만 어느 것도 제대로 하는

성 피부염으로 악화될 수 있다. 약의 효능

2년 전 태전약품에서 다시 정식으로 수

것이 없는 사람’을 빗댄 말이다. 호랑이

은 성분함량과 배합이 관건이지만 사용

입해 판매하고 있다. 육각형 모양의 디자

연고 역시 여기저기 두루두루 쓰일 수 있

하는 사람에게도 달린 것이다.

인이 고전적인 향수에 젖게 만들지만 명

지만 큰 병이 났을 땐 역시 병원을 가는

호랑이연고의 기본은 하얀색, 그리고

성만큼이나 모조품도 많다. 포장의 색깔

게 맞지 않을까. 만병통치약이란 질환과

조금 더 강한 효과를 내는 빨간색의 크림

과 특징이며, 브랜드 위의 호랑이 앞발이

약이 제대로 맞았을 때의 감탄사일 뿐이

이 있었지만 요즘엔 차갑거나 따뜻하게

어떻게 생겼는지, 제조년월일이 써있는

다.


Flashpoints

066

싱가포르의 ‘세력균형’ 외교전략을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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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120개국이나 된다. 그러나 싱가포르 는 이념과 명분에 집착하는 제3세계 국가 들과는 전혀 다르다. 싱가포르는 오직 철 두철미한 현실주의 덕분에 한 세대 만에 제3세계로부터 제1세계로 진입한 나라다. 싱가포르의 세계관은 ‘국제정치의 정글 안에서는 힘이 곧 정의(Might is right)’라는 현실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아울러 ‘영원한 친구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는 인식 위에서 특정 강대국과 동맹

이병효 ‘오늘의 코멘터리’ 발행인. 외교·안보·통일문제를 오래 다뤄온 언론인이다. KTV 방송 주간, 한국방송광고공사 전문위원, 스카이라이프 신사업본부장, 한겨레신문 기자, TBC PD, 조 선일보 기자를 지냈다.

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속국이 되기보 다 강대국과 강대국 사이에서 ‘세력균형’ 을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세계에 는 이런 중립 입장을 고수하는 국가도 많

‘중국의 미래는 대만이고, 대만의 미래는

중국인 중심의 독립국가다.

다. 그러나 북유럽 국가들과 스위스 등 진

싱가포르는 도시국가일 뿐 아니라 리

정한 의미의 중립국들이 광의의 서방진

콴유-셴룽 부자가 대를 이어 이끌고 있는

영, 기독교 문명권에 속해있음은 주지의

중국이 세계 2위 경제로 성장했지만

유사 민주주의국가다. 이런 정치적 취약

사실이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2012년 1인당 국민총

성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가 이룩해 온

싱가포르는 과거 냉전구도에서 미·영

소득(GNI)은 구매력(PPP)기준 연 9210달

경제적 실적은 통치방식의 우수성(good

쪽에 서서 소련을 견제했고, 2000년대 ‘테

러(세계 86위)로 아직 저소득 국가에 불과

governance)과 리씨 부자의 지도력에 힘

러와의 전쟁’에서는 확고히 미국편을 들었

하다. 중국이 대만(4만1385달러, 2011년

입은 바 크다. 리씨 부자는 싱가포르 정부

다. 그렇다면 싱가포르가 서방 중립국과

기준)을 따라갈 만큼 경제사회적으로 발

의 초대 및 3대 총리로서 국가안보와 대

전하려면 아직 요원하다는 것이다. 홍콩

외관계, 사회통제와 부패추방, 경제개발

(5만3050달러, 7위)과 마카오(6만8710달

과 미래전략에 특장을 발휘해왔다.

홍콩, 홍콩의 미래는 싱가포르’라는 말이 있다.

러, 2위), 싱가포르(6만1100달러, 5위)는

이 가운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

모두 소득수준 상위권에 옹기종기 모여

은 대외관계와 외교전략이다. 한국은 동

있어서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사

아시아 요충에 위치한 중간 크기의 단일

회문화지표로 따진다면 싱가포르-홍콩-

민족 국가로, 주변국에 비해 상대적 소국

마카오 순이라 할 것이다.

이란 점에서 싱가포르와 비슷하다. 여건

이들 나라는 ‘중국인’이 절대 다수라

이 다른 점도 많지만 국력을 뛰어넘는 영

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중화민족’이란 국

향력 있는 국제사회 성원으로 부상하기

가적 정체성을 배양하려는 중국당국의

위해 싱가포르의 외교전략을 눈여겨볼 만

구호에 지나지 않지만 중국인이란 집단의

하다.

식은 분명한 실체를 갖는다. 중국인이 지 배하고 있는 나라로는 중국과 그 특별행

미·중 어느 편에도 기울지 않는 중재자

정구인 홍콩, 마카오 외에 중국이 실효지

1965년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로부

배를 하지 않는 대만이 있다. 싱가포르는

터 분리 독립한 이래 외교의 기본노선은

물론 중국의 특별행정구가 아니고, 대만

비동맹 중립이다. 세계적으로 비동맹 노

처럼 ‘하나의 중국’ 원칙도 적용받지 않는

선을 표방한 나라는 무수히 많다. 2012년


067

magazine N | 201308

다른 점은 무엇일까. 21세기 전반이 미·

broker)를 자임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리

과 수교한 것은 1990년 10월, 한·중수교

중 G2 체제임을 전제한다면 싱가포르는

셴룽 총리는 2012년 9월 중국공산당 중

(1992년 8월)보다 불과 2년 전이었다. 싱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편에도 기울어지지

앙당학교에서 중국어로 행한 연설에서

가포르는 대만과의 관계를 최대한 유지하

않는다. 또 미·중 가운데 누구와도 적대

“미국은 예측 가능한 미래에 최강대국으

기 위해 중국과의 수교협상에서 끈질긴

적이지 않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 모두 싱

로 남을 것”이라며 “미국이 쇠락하지 않는

교섭력을 발휘했다.

가포르의 중간자적 처신과 외교 역할을

다”고 단언했다.

2013년 5월 리셴룽 총리는 일본을 방

리 총리는 “싱가포르는 미·중 모두의

문했다. 2012년 아베 총리 집권 이후 일본

북유럽 국가 등 기존 중립국들은

친구이기 때문에 양국관계가 번창하기 바

이 중국과 영토분쟁을 일으키고 한국과

미·중 대결이 첨예화하면 궁극적으로 미

란다”면서 “두 나라 가운데 한쪽을 택하

역사논쟁을 벌여 동북아시아에서 고립된

국 편에 설 수밖에 없다. 이란이나 파키

도록 강요 받지 않기를 원한다”고 덧붙였

가운데 아베는 버마와 태국, 필리핀, 베트

스탄 등은 지금도 반미·친중이지만, 러

다. 그는 아예 “미국은 아·태지역의 파워

남 등 동남아 국가들을 부지런히 순방하

시아와 터키, 심지어 남아공·브라질도

로 남을 것이며, 싱가포르는 미국의 존재

고 다녔다. 그런데 아시아 정상 가운데 유

양자택일을 강요 받으면 중국 편에 설 가

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냉전시대의 미·

일하게 리셴룽 총리가 일본을 공식 방문

능성이 있다. 한국의 경우 현재는 미국의

소관계와 달리 미·중관계는 무역·투자

한 것이다.

동맹국이지만 중국과의 경제관계가 중요

등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높다는 지적도

해지면서 언젠가는 선택의 기로에 설 수

덧붙였다.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셋째, 싱가포르는 외교협상에서 ‘주 고 받는 거래’를 하고, 내가 얻고 싶은 것 보다는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앞세운

도 있다.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먼저 해 준다

싱가포르가 남다른 것은 미·영과의 전통적 우호관계와 중국과의 문화적 동

여기서 싱가포르 외교전략의 숨은 원

족관계 사이에 끼여 눈치를 보는 것이 아

칙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다. 싱가포르는 1990년 필리핀에서 철수 하는 미군에게 싱가포르로 오라고 제의 했다. 또 2001년 양해각서에 의거해 미

첫째, 싱가포르는 늘 승자와 친구가

항공모함 기항을 허용할 뿐 아니라 접안

상호이해를 돕는 적극적 중재자(honest

된다. 승자가 복수일 때는 그들 모두와 친

시설을 개수하기까지 했다. 2005년 협

구가 된다. 그리고 승자들이 서로 편하게

정에 따라 미 해군 연안전투함(Littoral

지낼 수 있도록 접착제와 촉매 노릇을 한

Combat Ship)이 싱가포르 해군기지에

다. 싱가포르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순환 주둔하면서 말라카 해협을 순찰하

포위망을 구성할 때 거기 끼지 않는다. 외

도록 했다.

신화사

니라 오히려 양쪽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면상 중립을 유지하다가 오히려 미국이

싱가포르는 미군 주둔을 일방적으로

중국과 간접적 대화창구를 원할 때 그 역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 공군 조종사

할을 제공한다.

들이 미 공군기지에 머물면서 훈련을 받

둘째, 싱가포르는 옛 친구가 패자

을 수 있도록 했다. 2009년 5월 F-15SG

라 하더라도 저버리지 않는다. 리셴룽은

4대를 초도 인수한 싱가포르 공군 병력

2004년 총리 취임 직전 부총리로 있을 때

300여명은 미 아이다호주 마운튼홈 공군

개인자격으로 대만을 방문해 중화민국과

기지에 있는 미 제428전투기중대에 소속

의 우의를 다졌다. 중국 정부는 이에 반

돼 전술훈련을 받고 있다. 순환교육은 앞

발해 싱가포르와의 양자관계를 동결했지

으로 20년 동안 계속될 예정이다. 전투기

만, 이듬해 우이 부총리의 방문을 계기로

가 훈련할 수 있는 공역이 워낙 비좁은 싱

모든 교류를 재개했다. 싱가포르가 중국

가포르의 특성 때문이기는 하지만 미국과 의 군사협력에 있어서도 일방적 협정보다

2012년 9월 중국을 방문한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 원자바오 전 중국 총리가 조인식을 마친 후 축배를 들고 있다.

는 호혜적 성격을 강조한다는 점은 주목 할 만하다.


Flashpoints

068

중국 대국화, ‘사소(事小)의 지혜’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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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주(周)나라의 문왕(文王)은 곤이(昆 夷)를 섬겼던 것입니다. 지혜가 있는 군주 라야 소국의 입장으로 대국을 섬길 수 있 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주(周)나라 태왕 (太王)이 훈죽(獯鬻)을 섬기고 월(越)나 라 왕 구천(句踐)이 오(吳)나라 왕 부차(夫 差)를 잘 섬긴 것입니다. 대국이면서도 소 국을 섬기는 자는 천명을 기껍게 받아들 이는 자이고, 소국의 입장에서 대국을 섬 기는 자는 천명을 두려워하는 자입니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EBS ‘인문학특강’ 등을 통해 인문학 열풍을 주도한 철학자다. 베 이징대학에서 장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썼고, <노자의 목 소리로 듣는 도덕경>(2001)은 중국에서도 번역 출간됐다. <노자의 소> <중국사상 명강의> <장 자철학> 등을 해설하고 우리말로 옮겼다.

천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는 천하를 보존하고, 천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자신 의 나라를 보존할 수 있습니다.”(孟子·梁 惠王下)

중국이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내걸고 개혁

가 이제는 무의미해졌을 정도로, 중국은

개방을 추진할 때, 많은 서양학자들은 그

근대의 굴욕을 극복하고 제국의 풍모를

개념의 불안정성을 지적하며 성공에 회의

착실히 회복하고 있다.

여기에는 사소(事小)도 나오고 사대 (事大)도 나오지만 나는 현대적 관점에서

적인 시각을 보였다. 사회주의와 시장경제

중국이라는 거대한 현실과 어떤 관

사소(事小)의 의미에 더 큰 비중을 두고

는 개념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모순 현상을

계를 설정할 것인가가 한국에게는 매우

싶다. 맹자가 말하는 대(大)와 소(小)의 문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을 조금

중요한 과제다. 국가전략의 핵심적인 사

제는 주로 국가의 영토를 포함한 물리적

이해하던 나는 그 성공을 예상했다. ‘모순

항임에 분명하다. 여기서 나는 중국이

크기를 중심으로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

의 공존’, 이것은 중국문화의 가장 큰 특

단순히 제국의 풍모를 회복하는 문제에

만 현대적 의미에서 우리가 선린 우호관

색 가운데 하나이다.

갇히지 않고, 현대적인 삶을 리드할 수

계를 맺고, 상호존중의 관계를 유지하려

관심 있는 분들은 졸문 ‘개혁개방의

있는 새로운 형태의 패권을 수립할 수 있

면 국가의 크기와 상관없이 자기가 갖고

전통 문화적 기초’(<전환기의 중국 사회>

기를 희망한다. 그것은 서구와 다른 아시

있는 우위점을 휘둘러서 상대방의 감정을

오름 출판, 2004)라는 글을 한 번 읽어보

아적 패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상하게 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 무엇

시기 바란다. 서양에서 모순의 공존은 개

로 근본적으로는 아시아의 품위를 표현

보다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사소(事小)의

념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아

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보여줄 수 있지

지혜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어떤 한 방

니 불가능해야 한다. 모순은 상호 의존하

않겠는가.

면에서 우위점이 있는 나라는 대(大)의 입

거나 공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적

그렇다면 중국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대적이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서구

품위 있는 새로운 길은 무엇일까? 나는

의 패러다임을 우리는 학습하고 또 강요

그것을 아주 오래된 고전 <맹자>에서 찾

받았다. 아마 아편전쟁 이후부터일 것이

고자 한다.

다. 그러나 아시아는 아시아만의 특색이 있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장에 서게 되고, 우위점이 없는 나라는 소 (小)의 입장에 서게 된다. 작은 나라 섬기는 지혜 ‘부드러운 권력’ 창출

중국은 이미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었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이웃 나라

다. 중심 국가의 역할을 맹자 식으로 표현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방

와 관계를 맺는 데 원칙이 있는가?”하고

하면 “천하를 보존(保天下)”하는 것이다.

문하였다. 한중간의 우의가 더 돈독해지

묻자 맹자가 답하였다. “있습니다. 오직 인

중국은 거의 모든 부문에서 한국에 비해

고, 경제협력도 질적으로 고양된 방향으

자(仁者)적 군주라야 대국이면서도 소국

대(大)의 입장에 서게 될 것이다. 나는 중

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에서

을 섬길 수 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상

국이 한국에게도 존경 받는 나라가 될 수

중국의 중요성과 위상을 논하는 것 자체

(商)나라의 탕왕(湯王)이 갈백(葛伯)을 섬

있기를 바랄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그


069

신화사

magazine N | 201308

중국은 이미 세계 중심국가다. 약소국들과의 외교에 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탄자니아 수도 다르에스살람에 도착한 시진핑 주석과 펑리위안 여 사가 자카야 키크웨테 탄자니아 대통령 내외의 영접을 받는 모습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6월27일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한·중 양국 젊은이들과 만나 인사하고 있다.

이전의 중심국가와는 다른 아시아적 품위 를 갖춘 존경 받는 중심국가가 되기를 바 란다. 이는 단순히 ‘존경 받는다’는 만족감 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영 속적인 중심국가가 되고 또 진정한 강자 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한국과 중국 양국의 우호 관계를 더욱 튼튼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일은 사소(事小)의 지혜에 신화사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사소는 근 육이 울퉁불퉁 튀어나온 강건한 팔뚝으 로 행사하는 힘이 아니라 덕성이 가득 담 겨있는 자애로운 눈빛으로 행사하는 힘 을 갖게 한다. 이것은 매우 ‘부드러운 권력 (Benign Hegemony)’을 이룰 것이다. 미 식축구적인 강건한 권력이 아니라 우슈 (武術)의 부드러운 흐름과 같은 권력이 바 로 사소의 지혜가 빚어낼 수 있는 권력이 다. 이는 근대적인 권력이 아니다. 서구식 권력도 아니다. 바로 아시아적이고 중국적 인 권력이다. 현대적 권력은 바로 이런 모 습이어야 한다. 중국인에게 이런 지혜의 발굴과 실천 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모순의 대립’이 아니라 ‘모순의 공존’ 을 실천해 온 중국인의 유전인자에 들어

도 서게 해주고, 자기가 통달하고 싶으면

장하고 싶다. 이런 사소의 실천을 통하여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대표적 고전들에

다른 사람도 통달시켜 준다”(己欲立而立

중국은 ‘부드러운 권력’을 창출하고, 그 결

바로 이러한 ‘사소(事小)의 지혜’와 ‘부드러

人, 己欲達而達人. 論語·雍也)라고 말한

과 화해사회(和諧社會)와 화해국가(和諧

운 권력(Benign Hegemony)’에 관한 내

다. 인은 유가에서 말하는 중심덕목인데,

國家)를 거쳐 화해교린(和諧交隣) 및 화해

용이 가득 들어있다.

인을 실천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사소

세계(和諧世界)를 이루는데 공헌할 수 있

의 원칙을 실천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을 것이다. 이처럼 사소의 실천은 양국 간

공자(孔子)는 인(仁)의 실천방안으로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에

나는 한국과 중국 사이에 우호관계를

우호관계를 확립해 줄 뿐 아니라 중국적

게도 하지 말고”(己所不欲, 勿施於人. 論

더욱 증진시키기 위하여 한국과 중국 모

이고도 아시아적인 지혜를 세계에 보여주

語·顔淵) “자기가 서고 싶으면 다른 사람

두에게 사소(事小)를 실천해야 한다고 주

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Flashpoints

070

기대가 앞선 ‘아베노믹스’ 찬사와 우려 엇갈려

magazine N | 201308

시중에 통화량이 늘어나면서 주가가 상 승하고 엔고도 시정된 것은 틀림없다. 아 베 정권이 출범한 지난해 12월 하순, 닛 케이지수 평균주가는 1만엔 정도였지만 1 만4000엔 정도로 상승했고, 1 달러=84 엔이던 환율은 100엔대로 하락(7월초 현 재), 자동차·전기 등 수출 관련 산업의 실 적이 크게 개선되었다. 아베노믹스는 해외에서도 일정한 평 가를 받고 있다. 6월 세계주요국정상회의 (G8)에서는 아베노믹스가 일본의 성장을

아오야마 슈지(青山 修二) 일본 <홋카이도신문> 서울지국장. 홋카이도신문 도쿄지사 정치경제 부에서 2010년 6월 한국부임 전까지 총리관저, 자민당, 외무성, 방위성 출입기자로 일했다.

지탱하고 있음이 인정되었다. 한국에서 ‘일본 우경화의 화신’처럼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아베 정권의 지지율이 일본에

‘아베노믹스 도시락’. 일본 아베정권의 경

(금융완화), 기동적인 재정정책(재정출

서 60% 정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야당

제정책 ‘아베노믹스’와 연관 지어 다양한

동), 민간투자를 자극하는 성장전략의 세

인 민주당의 존재감 없음에도 기인하지만

반찬을 ‘믹스’한 도시락이 최근 도쿄와 후

기둥으로 이뤄져 있다.

침체하고 있던 일본경제의 분위기를 일거

쿠오카에서 잇따라 출시되었다. 도쿄의

구체적으로는 일본은행이 2년 내 소

에 뒤집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경기

반찬가게가 만든 이 도시락은 전복, 홍게,

비자물가상승률 2% 달성을 목표로 내걸

회복은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누구나

고급어종인 노도구로로 구성돼 있다. 각

고 국채를 대량으로 구입해 시중 돈의 양

바라는 정책이다.

각 일본어로 앞글자가 ‘아, 베, 노’가 되는

을 늘리고 기업이나 개인이 돈을 빌리기

6월 초, 아베노믹스 성장전략의 목표

식재료를 사용해서 ‘아베노믹스 도시락’이

쉽게 했다. 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지금까

로 내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을 2012

라 불린다.

지의 전통적인 수법을 크게 전환시킨 ‘차

년 말의 384만엔에서 10년 후에는 150만

가격은 약 1만엔(약 11만원)이다. 후쿠

원이 다른 금융정책’으로 평가되었다. 재

엔을 더 올리겠다”는 표현이 논쟁을 불러

오카의 도시락은 800엔(약 8800원)으로

정정책에서는 동일본 대지진의 부흥비를

일으키고 있다. 국민총소득은 임금 등의

저렴한 편이지만 아베 신조 총리의 고향

포함한 방재부흥대책과 부실 통학로나 교

가계소득뿐만 아니라 기업의 이익이나 주

인 야마구치현산 쇠고기와 일본어로 ‘경

량 정비 등 생활면에서의 안전대책 등으

주의 배당, 해외에서의 이자와 배당 등도

기’와 동음인 케이크를 넣었다.

로 약 20조엔(약 220조원)의 추가경정 예

포함되어 있어 GNI가 올랐다고 해서 국민

산을 편성했다.

의 연수입이 동액으로 오를 수 있는 것은

한국에서 도시락이라고 하면 저렴하

아니기 때문에 “아베노믹스의 성장전략은

고 젊은이들이 간단히 한끼 해결하는 이 미지가 있다. 일본에서도 편의점에서 파

‘아베노믹스 도시락’ 등장

연수입이 오른다는 이미지를 줘서 국민들 을 눈속임하려고 하는 의도가 있다”는 비

는 저렴한 도시락이 있지만, 고급요정이

“여름휴가 여행객 수, 사상 최대 전

나 각지의 유명 음식점에서 수천엔 정도

망” (JTB) “여름 보너스, 지난해보다 6만

의 도시락을 판매하고 있다. 어쨌든 ‘아베

4000엔 오른 평균 55만엔” (일본생명보

아직 일반 국민들이 경기회복을 실감

노믹스 도시락’은 아베노믹스에 대한 일

험 설문조사) “올해 세수, 1조3000억엔 증

할 정도는 아닌 것도 사실이다. 엔화 약세

본인의 기대감을 나타내는 상품이라 할

가 예측” (재무성).

로 전기요금과 식료품가격이 상승곡선을

판도 나오고 있다.

일본정부나 대기업에서 아베노믹스로

그리고 있는 것 외에 금리가 오르고 주택

아베노믹스란 무엇인가. 간단히 복습

인해 일본경제에 활기가 돌아온 것을 나

담보대출의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

하자면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기 위해 만

타내는 데이터가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

도 부상하고 있다. 내년 봄에는 소비세율

들어진 경제정책이다. 대담한 금융정책

정부가 디플레이션 탈출전략을 보여주고

이 8%로 인상될 예정이어서 가계 부담이

수 있겠다.


071

신화사

magazine N | 201308

의원들과의 연계를 모색해 헌법 개정에 필요한 국회의원 3분의 2 세력을 확보하 는 기회를 노릴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은 7월 참의원 선거의 공약으 로 ‘다케시마의 날’ 정부주최 행사에 대해 지금까지의 “개최한다”고 했던 표현을 “개 최도 검토하겠다”로 후퇴시키고 한국에 대한 배려를 보였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침략의 정의는 정해져 있지 않다”는 발언 이나 야스쿠니신사 각료 참배가 한·중의 비판을 받자 “협박에 굴복하지 않는다”고 했던 발언의 강렬한 인상 때문인지 한국 에서는 거의 보도되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 브레인은 아베 총리의 ‘배려’에 대해 “한국이 싫어하는 조치를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일 뿐”이라 고 일축해 역사 문제에 전향적으로 나올 수 없는 아베 총리의 한계를 지적한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의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일본

오히려 증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

일본 자민당 총재를 겸하고 있는 아베 신조 총리가 참 의원선거(7월21일) 유세를 하고 있다.

의 초대 총리이자 대한제국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의 표지 석을 사건현장인 하얼빈역에 세울 수 있

오기 시작했다. “아베 총리는 주가 변동에 과민해져

핵, 미사일 개발과 중국의 군사적 부상을

도록 요청하자, 이토 히로부미와 같은 야

있다”는 정부 소식통의 전언에서 시장의

배경으로 헌법을 개정해 집단적 자위권

마구치현 출신인 아베 총리는 “(각각의)

움직임이 아베노믹스에 대한 평가와 자신

행사와 국방군 창설을 실현하는 데 있다.

위대한 인물은 서로 존중해야 한다”며 불 쾌감을 표시하기에 이르렀다.

의 지지율에 직결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인정했던 무라

을 안고 있는 아베 총리의 속마음을 엿볼

야마 담화와 위안부 문제에 구 일본군의

박 대통령 취임 이후 한·일 정상회담

수 있다.

관여를 인정했던 고노 담화의 재검토에

이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양 정상 모

대해서는 국제적인 비판을 받기도 해서 5

두에게 좋은 만남이었다고 생각되게 하고

월 중순 이후로는 재검토라는 지론을 아

싶다”는 양국 외교당국의 바람과는 정반

한·일 정상회담 전망 불투명

성장전략을 구체적인 임금 상승으로

예 봉인했다. 일본 정부 소식통은 “담화의

대로 아베 총리와 박 대통령의 거리는 점

연결시킬 수 있을지, 아베노믹스에서 적극

재검토는 서방국가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점 멀어지고 있다. 한·일 외교당국은 “박

적인 공공사업을 전개하는 가운데 재정재

받지 못한다. 미국이 기대하고 있는 집단

대통령 임기 중반이 되고 한·일 국교정상

건의 길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을지,

적 자위권 행사부터 대처해 나갈 것”이라

화 50주년을 맞이하는 2015년을 관계개

경기회복 ‘기대’를 ‘실감’으로 바꿀 수 있을

고 말했다.

선의 절정으로 만들고 싶다”라는 인식도

참의원 선거 후에도 경제정책에 집중

거의 공유하고 있어, 당분간은 무리하게

하고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하시모토 토

정상회담을 추진하지 않고 꾸준히 관계를

아베 총리의 정치적 최종 목표는 아베

오루 오사카시장의 종군위안부 발언으로

구축해 나가는 쪽으로 노선을 설정한 듯

노믹스의 성공이 아니다. 본심은 북한의

인기가 급락한 유신회와 민주당의 보수계

하다.

지 등 아베 정권은 본격적으로 아베노믹 스의 성과를 추궁 받게 될 것이다.


Flashpoints

072

재벌개혁, 타협의 대상 아니다

magazine N | 201308

생들이 꼽은 첫째 이미지는 경영 리더십 (30.1%)이었다. 주목할 점은 둘째가 재산 에 대한 욕심(20.0%)이었다는 것이다. 5 명 중 1명은 대기업 회장 하면 ‘욕심’이 떠 오른다고 대답한 셈이다. 예비 사회인이 대기업 회장은 탐욕스런 사람이라는 인식 을 갖고 있음은 대한민국 대기업에 큰 숙 제를 던져준다. 이는 시시때때 터지는 대기업 총수의 비리, 사법처리와 언론보도에 따른 영향

김영상 헤럴드경제 재계팀장. 국회, 청와대 출입기자 등을 거쳐 현재 재계 4단체를 담당하고 있다. 학력과 무관하게 창조적 성취를 달성한 17인의 이야기를 담은 <한국의 아웃라이어들>(북 오션)을 지난 2월 펴냈다.

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재현 CJ 그룹 회장의 구속, 앞서 이호진 전 태광 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의 구속수감이 대표적이 다. <표1 참조>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아무리 예쁜

우리 사회에서 재벌에 대한 인식은

꽃이라도 때가 되면 시들고, 천하의 권세

탐욕과 집착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최근

최근 대기업 총수에 대한 사법부의 판

도 언젠가는 쇠락한다. 화무십일홍 권불

거세게 불붙은 경제민주화 논의의 출발점

단 잣대가 엄해지고 있다. 더이상 재벌의

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라 하지 않

과 무관치 않다. 과거 개발지향 시대에 수

전횡을 묵과해선 안된다는 국민 여론이

는가. 부(富)도 마찬가지다. 영속적인 부

혜를 입었던 대기업과 재벌이 이제 와서

반영된 듯하다. 그래서인지 최근엔 대기

는 없다.

나누는 데 인색하고 지속적으로 부만 축

업 총수에 대한 선고형량 공식인 ‘3+5(징

적하는 흐름을 보이자 이를 강제 규제할

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룰이 깨졌다. 비

각종 대책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리를 저지르고, 횡령을 해도 잠잠해지면

그런데 이를 인정하지 않는 일부 계 층이 있다. 대한민국의 0.1% 부자, 이른 바 ‘재벌’ 얘기다. 사회에서 얻은 부이기에

흥미로운 조사가 하나 있다. 최근 <헤

집행유예 혜택을 받던 과거의 관대함은

일정 부분 사회에 돌려줘야 하는데 영구

럴드경제>는 사회에 갓 발을 들여놓을

사라지고, 사법적 판단이 한층 엄해졌다

적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대물림에만 신경

특성화고 3학년생(711명)을 대상으로 대

는 의미다. <표2 참조>

쓰고 있는 게 한국의 재벌이다.

기업 회장에 대한 이미지를 물었다. 학

전경련

대기업 총수들은 훗날 큰일 날 줄 알

한국 정부와 재벌은 견제와 협력의 양면관계를 유지해 왔다. 규제 일변도를 달리다가도 필요할 때 협력을 요구 하는 정부와 온갖 눈치를 보면서도 필요할 때 정부정책 에 편승하는 재계의 특수관계는 오랜 관행이다. 사진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대선 당선 직후 재계인들 과 가진 모임


073

magazine N | 201308

면서도 왜 당장의 비리에서 벗어나지 못 하는 걸까. 인도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한 로이 알록 부산외대 교수의 말에 힌트가

<표1> 그룹 총수 최근 사법처리 현황 총수

구분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2심

혐의 내용

형량

시기

비자금 조성 및 회사 거액 손실 혐의 징역 4년6개월ㆍ벌금 10억원 2012년 12월

최태원 SK그룹 회장

1심

회사돈 횡령 혐의

징역 4년, 법정구속

2013년 1월

있다. “인도의 기업인은 기업을 내 것이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항소심

업무상 횡령ㆍ배임 등의 혐의

징역 3년, 벌금 51억원

2013년 4월

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맡고 있다는 개

이재현 CJ그룹 회장

구속(현재)

비자금 조성 및 탈세 의혹

미정

념이죠. 그런데 한국은 달라요. 기업은 당 연히 내 것, 영원히 물려줘야 하는 것이라 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진행 중

<표2> 그룹 총수 주요 사법처리 현황과 사면 (가나다순) 이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혐의 내용

선고형량

형 확정 시기

사면 시기

폭력행위 등

징역1년6개월, 집유3년

2007년9월

2008년 8월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배임

징역3년, 집유4년

2009년10월

2010년8월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있다 보니 횡령과 착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횡령 등

징역3년, 집유4년

2006년7월

2007년2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배임 및 조세포탈

징역3년, 집유5년

2009년 8월

2009년12월

복, 유용에 대한 죄의식이 없는 게 한국의

장세주 동국제강그룹 회장

배임 및 횡령

징역3년, 집유4년

2004년7월

2007년2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비자금 조성

징역3년, 집유5년

2008년 6월

2008년 8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횡령 및 배임

징역3년, 집유5년

2000년 6월

2002년 12월

최태원 SK그룹 회장

부당내부 거래 등

징역3년, 집유5년

2008년 5월

2008년8월

그렇다. 회사 돈을 내 맘대로 주무를

재벌이다. 여기에 총수 특유의 무소불위 권력을 견제할 기구가 없어 회사 돈을 총수 가 쥐락펴락하는 ‘불편한 진실’이 횡행한다. 물론 대기업과 총수가 죄다 비판의 대 상인 것은 아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놀 랄만한 기적을 일궈, 오늘날 한국 사회가 이만큼 살 수 있게 된 데 대기업의 역할이 있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경제민주화 입법 ‘지리멸렬’

<표3> 국회발 경제민주화법 처리 상황 법안명

자료: 2013년 7월3일 현재 상황

주요 내용

비고

유해화학물질법

화학물질 사고 사업장에 패널티

4월 국회 통과

일감 몰아주기 규제법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신규 순환출자 금지

부당이득의 5%까지 과징금 부과

6월 국회 통과

기존 순환출자 고리 끊기

6월 국회 무산

금융지주회사법, 은행법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 한도 9%에서 4%로 축소

6월 국회 통과

프랜차이즈법

프랜차이즈 본사의 불공정 행위 제재 강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횡령 및 배임

대기업 불공정 행위땐 일시 이행명령 도입

본회의 통과

6월 국회 통과 징역3년, 집유5년

오너경영의 위력도 입증됐다. ‘재계의 아이콘’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대표

경제민주화는 그래서 당위성으로 다

재계의 반발에 움찔한 것이다. 정부

적이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28%를 차

가온다. 재벌을 해체하라는 일부 과격론

초기 재벌개혁을 표방했지만, 점차 재벌

지하는 초일류기업 삼성그룹을 키운 리더

만 아니라면, 중소기업을 착취하고 기술

과 타협했던 역대정권의 전철을 밟을까

십은 오너경영이 아니면 불가능했다는 게

을 빼앗던 대기업에게 개과천선을 강제하

우려될 정도다. 물론 ‘법’이 최선은 아니다.

대체적인 시각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

고, 상생시스템을 구축하는 쪽으로 유도

재벌개혁은 법도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학과 교수는 “한국식 오너경영의 강점은

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기업 전권을 쥐고 있는 오너의 획기적 인

오너경영 외 괄목할 성과를 내는 기업이

문제는 한국의 대기업이 ‘진정한 상생’

많지 않다는 데서 반증된다”며 “공기업이

에 익숙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래서 투자

최근 동반성장연구소에서 주최한 갑

민영화되면 더 잘나가야 하는데, 현실은

와 일자리 창출에 도움되는 건전한 기업

을관계개선 토론회에서 한 방청객은 이렇

그렇지 않은 게 사실 아니냐”고 했다.

경영은 총력 지원하되, 상생을 저해하는

게 톤을 높였다. “상생하자는 데 법이 뭐

위법엔 강력한 처벌이 불가피하다.

그리 중요합니까.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과거와 오늘까

식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

지의 얘기다. 새로운 시대의 소통과 상생을

이렇게 볼 때 국회의 경제민주화 법안

오너들이 꿈쩍하지 않는 한 소용없습니

위해선 재벌이 구태를 벗어야 한다. 왕처럼

처리 상황은 현재로선 아쉽기 짝이 없다.

다. 20대 그룹 총수들 마음만 바꾸게 만

군림하는 총수, 거대조직에 숨어 소통 없

총수 일가의 상속수단이 돼온 일감 몰아

드세요. 그러면 많은 부분이 해결됩니다.”

이 은둔하는 대기업, 자식에게 기업을 물

주기 규제는 수위가 낮아지면서 모호해졌

100% 맞는 얘기는 아니지만 시사점

려주는 데만 혈안이 돼 있는 재벌…. 이들

고, 총수 일가가 1%도 안 되는 지분으로

이 적지 않다. 새 시대, 새 상생을 위한 재

이 재계를 지배하는 한 새시대 상생과 공

전체 계열사를 지배하는 순환출자 고리도

벌개혁은 멈춤 없이, 현명하게 추진되어야

존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다.

끊지 못했다. <표3 참조>

마땅하다.


Cultural is Asian

074

magazine N | 201308

August

8월, 라마단

금식과 정화와 나눔의 성월(聖月) 박소혜 기자 fristar@theasian.asia

전 세계 15억 이슬람 신도들은 요즘 특별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한달 간 금식과 기도에 들어가는 ‘라마단 (Ramadan)’이다. 라마단은 이슬람력으로 아홉째 달을 뜻한다. 천사 가브리엘이 무함마드에게 코란을 가르친 신성 한 달이다. 올해는 7월9일부터 8월7일까지다. 이 기간 중 해가 떠 있는 동안 음식과 물을 삼가고 하루 6번 기도를 드린다. 마음을 정화하고 강한 정신력을 기르는 훈련이다. 태음력인 이슬람력은 1년이 354일이어서 라마단 기간은 해마다 11~12일씩 빨라진다. 라마단이 끝나면 3일 간 ‘에이드 알 피트르(Eid al-Fitr)’ 축제를 벌인다. 새 옷을 입고 단 음식을 먹으며 집안을 단장한다. 라마단 기간에 성장한 자신을 돌아보고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는 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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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최대의 이슬람 사원 자마 마스지드(Jama Masjid)에서 무슬 림들이 기도드리고 있다. 기도를 올리는 이란 테헤란의 여 성 무슬림들 파키스탄 페샤와르(Peshawar) 의 한 모스크에서 코란을 읽고 있는 아이들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이 예루살 렘에 있는 모스크에서 기도를 하기 위해 이스라엘 분리벽 앞을 지나고 있다. 벽에 아랍어로 ‘예루살렘’이라 적혀 있다.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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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단 직후 열리는 ‘에이드 알 피트르’ 축제 때는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는다. 화려한 음식이 즐비 한 파키스탄의 한 시장 필리핀 마닐라에서 ‘에이드 알 피트르’ 축제를 즐기는 무슬림 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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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ilk Road Re-invented Ashraf Aboul-Yazid(Dali) is an Egyptian poet, novelist, translator, journalist, traveler and TV presenter. He is Editor of Al-Arabi Magazine(Kuwait) and has published more than 20 books of poems, novels, travels, and children literature. Some of his literary works are translated into Spanish, Russian, Korean, Turkish, English, Italian, Swedish, and Persian. He is also President of AJA Middle East Chapter and Editor-in-Chief of the Arabic version of The AsiaN. Summary

실크로드 재건 과거 아랍인들은 탐험과 교역을 위해 동방으로 향했다. 그 여정은 실크로드와 항로가 더 이상 존재하 지 않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실크로드는 중국에서 시작해 아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유럽에 이르 는 교통로를 통칭하는 말로, 고대문명이 이룩한 성과에 크게 기여했다. 이븐 바투타와 칭카의 이야기, 주나라 목왕에 관한 목천자전(穆天子傳),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등 수백권의 책이 실크로드 역사의 비 밀을 담고 있다. 실크로드를 따라 생긴 시장에서는 비단, 북극곰 가죽, 향, 차, 금, 은을 비롯한 모든 물 품이 거래됐다. 언어, 예술, 문학, 학자들의 교류도 여기서 이루어졌다. 실크로드는 동서양 문명을 잇 는 생명줄이었다. 오늘날 실크로드 재건을 겨냥한 프로젝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관통하는 아시아횡단 철도(TAR)가 있다. 이 프로젝트는 1960년대 싱가포르와 터키를 잇는 1만4090㎞ 철도 건설을 목표로 시작됐다. 쿠웨이트는 역내 무역·금융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항구·철도 등 교통시스템을 구축하 고 350억 쿠웨이트달러를 투입해 ‘실크 시티’를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 실크 시티는 유럽과 중앙아시 아를 연결하는 자유무역지대로 고대 실크로드 교역로 부활이 목표다. 실크로드 재건에는 미디어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전쟁과 난민, 질병, 가난, 환경파괴 같은 인류 공통 의 과제에 대처하는 데 미디어가 소통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나는 <아시아엔> 아랍어판을 창간하면 서 새로운 실크로드의 창이 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아랍에게 아시아는 세상의 3분의 2를 뜻한다. 아 랍과 아시아가 미디어 실크로드를 통해 손을 잡는다는 것은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의미한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다. 상호 신뢰와 이해의 다리를 건설하는 것이다.

아시라프 달리 쿠웨이트 알 아라비 매거진(Al-Arabi Magazine) 에디터·요약 윤지희 기자

Arabs – among other nations - travelled to the East in the past, by way of exploration. They were merchants in search of raw materials to earn their living, scholars in pursuit of knowledge, conquerors to spread religion and extend the boundaries of the emerging Islamic empire, or, as a reaction and on a journey backwards,

to fight against counter-conquests or invasions by warriors from the Far East who also planned to add new territories to their lands, like the Tatars, Mongols, and Persians. But the Arabs’ centuries-long journeys continued, even after the Silk Road and sea routes, which in times of war and peace linked our near and

middle Arab East with Asian countries, ceased to exist, as reported in historical facts or legends. The Silk Road, as we know it, is the name of the collected transportation lines of roads that started from China in the Far East and passed through the Asian continent to the West, all the way to the heart of Europe. From Chinese sources we can find the beginning of the road at several major cities and locations. The first road stemmed from Chang’an (now Xi’an) until it reached the oasis of Dunhuang, where it was divided into the northern and southern branches of the Silk Road tree, to cross the desert, beginning with the oasis of Dunhuang and reaching the city of Kashgar in China’s far northwest Xinjiang region near the border with Pakistan, Kyrgyzstan, Uzbekistan, Afghanistan, and India. My first visit to Kashgar during the summer of 2008 showed me the importance of its strategic location on the Silk Road. So it is not surprising that Kashgar was and is still considered the western gate of China. The days we spent in the cities of the Silk Roads in China, Uzbekistan, India, Iran, and other countries, were reviving the idea that such routes were the main reason for all glories and discoveries achieved by ancient civilizations. Scientists, scholars, linguists, writers, artists, travelers and diplomats were able to easily travel from one country to another, between East and West, from one language to another. The eminent historian Abdul Hadi Altazi, member of the Royal Moroccan Academy, wrote in reference to the famous traveler Ibn Battuta, mixing history and life, and giving evidence from Ibn Battuta’s travels, which he considered historical “Wikileaks” of the time. Among the things he show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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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ikh Mohammed Al-Abdullah Al-Mubarak AlSabah, the Kuwaiti Minister of State government spokesman. Trans-Asian Railway map

was part of a document engraved on wood in the capital of the Maldives mosque found by Ibn Battuta during his visit in AH 744 (AD 1344). Hussein Ismail, deputy Editor-inChief of the China Today magazine, who spent about two decades in China where he got quite familiar with the growth of this economic giant, wrote about a journey from China to the East: the seven travels of the Chinese Sinbad admiral Qing Kha. “He was different from European sailors in that in his seven travels across oceans and seas, he was a messenger of peace, making friends and exchanging presents, culture and knowledge, whereas the others were pirates and colonialists who used all means to achieve their ends, as Magellan did. Magellan’s discovery of a new route to India was not designed to identify these countries and their cultures, but rather to occupy them and plunder their wealth.”

Besides these two opposite travels, one written by Ibn Battuta and the other told about Qing Kha, there are hundreds of travel books that keep many secrets of the Silk Road history. Arabs’ centuries-long journey

Some examples of these travels start with King Mu (Mu Wang), West Chou king and the earliest reputed Silk Road traveler. His travel account, Mu tianzi zhuan, written in the 4-5th century BC, is the first known travel book on the Silk Road. It tells of his journey to the Tarim basin, the Pamir Mountains and further into today’s Iran region, where the legendary meeting with Xiwangmu took place. He returned via the Southern route. The book no longer exists, but is referred to in Shan Hai Zin, Leizi, Mu Wang Zhuan, and Shiji. Another wonderful selection is by Hwi Chao, a Korean monk who grew up in China. He traveled to India via sea route and lived there for several years and visited various Buddhist

kingdoms in India, Persia, and Afghanistan. On his returning journey, he traveled to Kashmir, Kabul, passed the Pamirs and entered Xinjiang from Tashkurgan, then skirted around the Taklamakan desert from the northern towns of Kucha, Turfan and Hami. His account Wang wou t’ien tchou kquo tch’ouan or The Record of Five Indian Kingdoms provided valuable information on the Islamic and Buddhist distribution among the Central Asian kingdoms during the 8th century. His book had been lost since the Tang dynasty until an incomplete copy (14 pages, approximately 6,000 words) was miraculously discovered by the French explorer, Paul Pelliot at Dunhuang cave in 1908. Even from the farthest point of Europe, we may note the travel of Pero Tafur, who was a native and notable of Cordoba, born ca. 1410, he traveled from Spain to the Eastern Mediterranean and back. While not a merchant, he was very interested in commercial affairs and well connected with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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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ing networks. He was in Egypt, the Black Sea region and in the sad remains of the dying Constantinople. While he thought about going to India, the closest he came to was a conversation with the famous traveler Nicolo di Conti, whom he met on the latter’s return journey from South Asia. In the bazaars along the Silk Road, we could ask: what was attracting people, the sellers and buyers in large markets? What goods were being carried by caravans of the Silk Road? You will find that the Russians were sending their wares such as fox and polar bear furs. You would find in each market, incense sticks needed for Buddhist temples. Tea was mainly there. Honey was brought from every Asian source. There were silver, golden, and wooden crafts, metal arrows and military armor, carpets, ornaments, and rice with all the dried foods. They were selling everything coming from everywhere. They sold silk. And, with trading came the cultures, tongues and dialects, art and literature, and emigrated scholars, which was the importance of the Silk Road that emerged as a lifeline of the world. I think that such books are the inspiring touch that marked the last century, as we could easily recognize how many nations were eager to re-live the Silk Road experience. If you surf the internet looking for the Silk Road, you will not only find those ancient travels, but you shall read about musical bands, car races, cultural festivals, dance bands, video games, research groups, documentation projects and so on. For example, the repertoire of the Silk Road Ensemble includes traditional music (both as an oral tradition—passed down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and in melodies arranged by and for members of the Ensemble) as well as newly commissioned works, many of which combine non-West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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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Western instruments, creating a unique genre that transcends customary musical classification. Kuwait eyes ‘Silk City’ projects

A mo ng s ome of t h e not a ble projects is the Trans-Asian Railway (TAR), a project to create an integrated freight railway network across Europe and Asia. The TAR is a project of the United Nations Economic and Social Commission for Asia and the Pacific (UNESCAP). The project was initiated in the 1960s with the objective of providing a continuous 8,750-mile (14,080 km) rail link between Singapore and Istanbul, Turkey, with possible further connections to Europe and Africa. Progress in developing the TAR was hindered by political and economic obstacles throughout the 1960s, 1970s and early 1980s. By the 1990s, the end of the Cold War and normalization of relations between some countries improved the prospects for creating a rail network across the Asian continent. The Trans-Asian Railway system will consist of four main railway routes including the existing Trans-Siberian railway, which connects Moscow to Vladivostok and will be used for a portion of the network in Russia. Another corridor to be included will connect China to Korea, Mongolia, Russia, and Kazakhstan. In 2003, the president of Kazakhstan proposed building a standard gauge link from Dostyk on the Chinese border to Gorgan in Iran.

A Chinese plate decorated with a Silk Road caravan

In the August 2010 issue of National Geographic, Brett Forrest wrote, “The Iron Silk Road will launch a new chapter in the history of the Caucasus. After the Soviet Union collapsed in 1991, the newly independent republics of the southern Caucasus—Georgia, Armenia, and Azerbaijan—regained strategic importance. A realization of the enormity of the oil and natural gas reserves lying beneath and along the Caspian Sea ignited a scramble to lay pipelines across the southern Caucasus to bring those resources to the European market. Today the pipelines are operational, and the BTK(BakuTbilisi-Kars) is being built to grease a trade boom, transporting European goods east and petroleum products west across the southern Caucasus. Once completed, by 2012, the railway will begin at the Azerbaijani capital of Baku and travel through the Georgian city of Tbilisi, before carrying on to Kars, a Turkish post town on the southwestern lip of the Caucasus region.” National Geographic (May 1969) once described Kuwait as “the Middle East’s Aladdin’s lamp.” This was not a linguistic exaggeration by the writer, but is read in the context of the huge projects that Kuwait had planned for home and overseas prosperity. But the crises and wars in the region stopped the lamp from playing its planned role. However, we look forward to the future in hope that it will be a real lamp, rather than a magic one, which lights our road by powerful hands, brilliant minds and a strong will to rediscover Asia’s treasures according to the constitution of the future. I recalled this when I read the details of Kuwait’s Silk City, called in Arabic “Madinat AlHarir.” The State of Kuwait has set aside KD 35bn of its bumper petrodollar earnings towards the Silk City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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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arbor, railway, and metro system aiming to diversify its oil-dependent economy to become a regional trade and financial center. This project is the first five-year development plan by Kuwait in a span of more than two decades, and part of the $77 bn Silk City will be financed by this plan. The project aims to revive the ancient Silk Road Trade route by being a major free trade zone linking Europe and Central Asia. Located at the northern edge of Kuwait, near the Iraqi border, the Silk City of Kuwait will start construction after the passage of the budget in the next parliament according to Sheikh Mohammed Al-Abdullah Al-Mubarak Al-Sabah, the Kuwaiti Minister of State government spokesman. A new Silk Road through media

In an interview with CNN in Arabic he said, “The Silk City will be an integrated city, home to more than 700 thousand people, designed with more means of communication and modern technology and will be the largest reconstruction project of Kuwait in its history and will be completed during the next five years. It will be a key factor to attract local and foreign invest-

A Silk Road musical band combines non-Western and Western instruments. An equestrian statue shows a well-to-do woman traveler on the Silk Road wearing a broad-rimmed hat with a veil hanging from its rim. This statue, veil included, is more than a 1,000 years old.

ments and reconstruction for 15 years to come.� Such a world bazaar will redefine the meaning of a modern city as well as re-invent the Silk Road idea. And we may ask ourselves what kind of media parallel projects could accompany such a huge economic plan? Actually, the Silk Road cannot be safe, fast and successful without media support. The question is: what can be done? It is a question open for those who can see the Silk Road project as a peaceful way to know each other on all sides, as ignorance is the friend of our main enemies: poverty and illness. In the very first newsletter greeting of the Arabic version of The AsiaN, I wrote that our media window is a new Silk Road. Today, nations are suffering from disasters made by people and nature. Millions of human beings are scattered, among them are emigrants, the exiled, and lost, as if fate were drawing a final end for humanity. The burden of wars is too heavy to carry on with for women who lost their children, as well as for sons and

daughters who lost their parents. But, all of this does not mean that we should lose hope. No dictator is immortal. No typhoon is forever lasting. No war is to burn if we insist on burying it. But, we have to work together to make the dream come true. The start could be shy, humble, but with continuous and hard work we can make miracles. For Arabs, Asia is two thirds of the world. Asia is the birthplace of heaven and land religions and a keen neighbor in good and bad circumstances. So, when Asia wants to shake hands with us, it means the opening of a new era, or as I like to name it, a new Silk Road through media, where opinions and experiences are exchanged for a better common future. When our Arab delegation came to Korea to prepare for the launching of The AsiaN in Arabic, we did not think too much of the far distance between Egypt and Korea. We were not afraid of visa challenges nor the different foods abroad described by myths or facts. We, men and women, old and young, had a message: we might be different but we have one goal, which is to build a bridge of trust and understa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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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Korea’s 2002 reforms to have lasting consequences Andrei Nikolaevich Lankov is a Russian scholar of Asia and a specialist in Korean studies. He is a professor at Kookmin University, Seoul, Korea and a former professor at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Lankov earned his PhD at Leningrad State University, and attended Pyongyang’s Kim Il-sung University. He regularly writes columns for The AsiaN and other major media outlets including The New York Times. Summary

북한 ‘7·1 경제조치’ 여파 여전히 남아 있다 북한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개혁개방 노선을 취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2002년 북 한당국은 진정한 개혁을 시작할 뻔했다. ‘7·1 경제개선관리조치’가 그것이다. 개혁은 최근 북한 총리 로 지명된 개혁파 관리 박봉주로부터 시작됐다. 2002년 당시 북한은 심각한 기근에서 벗어나는 중이 었다. 국가경제는 무너졌고 산업생산량은 1990년의 절반 수준이었다. 개인 상점과 농장, 작업장이 늘 어났고, 공동분배 체계는 기능을 멈췄다. 경제개혁은 시장에서 시작됐다. 다수의 민간 시장활동이 합법화됐다. 사실 북한 정부는 그동안 통제 할 수 없었던 영역을 개혁을 통해 합법화시킨 것이었다. 개혁 이후 물가와 임금수준은 폭등했다. 쌀 1㎏ 가격이 개혁 이전 0.08원에서 44원으로 폭등했다. 물가만큼은 아니지만 평균 월급도 90원에서 2000~2500원으로 뛰었다. 배급체계는 조용히 사라졌다. 경제개혁을 지휘한 사람들은 정부와 시장 가격의 조화를 바랐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후 몇 년간 북한은 쌀값이 44원에서 다시 900원으로 오르는 초인플레이션을 겪어야 했다. 정부 부문의 공장 관리자들에게는 근로자의 급여수준 결정, 고 용과 해고의 자유가 생겼다. 생산계획에 대한 정부 규제도 완화됐다.

to be quietly abandoned a couple of years later (well, some vestiges of the 2002 Measures have survived). The story of the 2002 Measures is not purely of historical and academic interest. These reforms were initiated by a man who was recently appointed as North Korea’s premier – his name is Pak Pong Ju, and he is widely reputed to be one of North Korea’s top reformorientated officials. There is therefore some hope that a round of reforms may be in the offing, so it makes sense to have a look at how the issue was approached last time. To start with, the 2002 Measures were never officially called ‘reforms.’ In official North Korean parlance, ‘reform’ is a dirty word; it is the name of a clever trick played by imperialists that aims to lure socialist states into a capitalist trap. Therefore, the 2002 Measures were never described as ‘reforms.’ We can afford to avoid such ideological formalities though, so from now on let’s just call the measures ‘reforms,’ after all they were indeed reforms despite whatever was said by the North Korean propagandists at the time.

하지만 2003년 말 북한정부는 개혁 조치를 중단했다. 인플레이션이 주요인이었음은 분명하다. 두세

Private market activities legalized

배 인상된 임금은 18개월 동안 20배나 오른 물가 앞에서 효력을 잃었던 것이다. 2003~2005년 경제

The reforms were implemented in 2002, as North Korea was beginning to recover from a cataclysmic famine. The state economy had collapsed, and industrial production had halved (compared to 1990 levels). A booming private sector had begun to take over, so many North Koreans had begun to run their own technically illegal market stalls, farm their own technically illegal private farms, and work in technically illegal private workshops. The public distribution system ceased to function, and people therefore had to buy grain and other basic foodstuffs at private markets – where prices were much

개혁은 슬그머니 원상태로 돌아갔다. 박봉주는 역할을 잃었고, 2007년 좌천됐다. 그러나 김정은이 권 력을 잡은 뒤 그는 다시 돌아왔다. 2002년 개혁은 단발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하지만 앞으로 북한의 미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개혁이 재시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레닌그라드대학 박사(한국사)·요약 윤지희 기자

One of the important peculiarities of North Korea is its stubborn unwillingness to take the reform path trodden thus far by Vietnam and China. Due to a number of political and social reasons, for decades the North Korean government has worked hard to keep the system that once was patterned upon Stalin’s USSR.

However, in the recent history of North Korea there was one remarkable, if half-forgotten, episode in which the North Korean authorities came close to initiating genuine reforms. This episode is officially known as the “1st of July Economic Management Improvement Measures.” These “measures” were implemented in 2002, on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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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er than in the state retail system. Therefore the 2002 reforms began from the markets. As a part of the reform package, many kinds of private market activities were legalized. Among other things, it became legal to sell industrial goods in the markets where it had hitherto been legal only to buy and sell foodstuffs. Many other restrictions on market activities were also lifted. Back in 2002~03, this was often perceived by the foreign observers as a major breakthrough. My own experience, though, makes me suspect that in this regard the significance of the 2002 reforms has been seriously overblown. Having spoken to dozens of market operators and vendors, I was somewhat surprised to discover that most of these people do not consider the 2002 reforms to be a significant turning point. It appears that some of the merchants did not even realize that their activities had suddenly become legal in 2002.

One should not be surprised about this: in many regards, the 2002 reforms were not so ground-breaking as they initially appeared. In essence, through the reforms the government lifted many bans that had been all but universally ignored for years. It ex post facto legalized activities that it was unable to control. Dramatic rise in prices and wages

Far more significant were changes in prices and wages. After the reforms, state prices of food stuffs and household goods, as well as official wages in state-run industries increased dramatically. Prior to the 2002 reforms, a kilo of rice if delivered through the public distribution system – the only legal way to obtain rice if you lived in the city – cost 0.08 won. After the reform, the price increased to 44 won, or some 550 times. Wages increased as well, though less dramatically. At the time of the reforms, the average monthly salary

was approximately 90 won and would barely suffice to buy 2 kilos of rice at the market. As a result of the reforms, the average salary increased to 2,0002,500 won overnight. At the same time, the rationing system was quietly discarded. It was assumed that from now on North Koreans would buy rice at market price, but in state-run shops. The shops were also given the additional right to freely purchase necessary supplies, thus becoming much more similar to shops in a market economy. From the little evidence that has surfaced thus far, it appears that the masterminds of the reforms hoped to harmonize state and market retail prices. The initial assumption was that inflation would not become a serious problem. This was the fateful error of the planners, for the following couple Commuters walk inside Puhung subway station, or “prosperity station,” in Pyongyang, North Korea, June 18, 2013. Foreign visitors are usually only allowed to take one stop, from Puhung station to Yonggwang, on Pyongyang’s north-south Chollima subway 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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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away inflation

The 2002 reforms also influenced the industrial management system, even though the details remain murky – no detailed reports about the reforms have ever been published by the North Korean media and therefore our knowledge is based on some isol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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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 years North Korea experienced an outburst of hyperinflation, with the market price of rice increasing from 44 won to roughly 900 won per kilo. For anyone with even a basic understanding of how markets work this is easy to understand and explain, but it seems that even among the best North Korean decision-makers this understanding was lacking. Therefore, contrary to the expectations that had underpinned the reforms, markets remained the major centres of trade in grain and other basic food stuffs – state-run retail outlets remained on the side lines. This runaway inflation was one of the reasons why the reforms soon came to be perceived as a failure by the top political leadership who in 2005 began to attempt to move back to a state-command distribution system – albeit without much success. At the same time, the 2002 reforms meant that North Koreans had to start paying for a number of services which had been heavily subsidized or free before. For example, North Koreans were required to pay rent for their houses. Since their houses are considered to be state property, the rent has to go to the state as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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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is Sept. 21, 2012 file photo, North Korean workers assemble Western-style suits at the South Korean-run ShinWon Corp. garment factory inside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in Kaesong, North Korea. South and North Korea have discussed the restarting of the jointly run factory park after weeks of testy silence between the two sides, which has been shut down due to a political showdown. People walk on a street in Haeju city, South Hwanghae Province, North Korea, June 22, 2013.

references in the North Korean press, as well as refugee testimony. It appears that in the state sector, factory managers were given a remarkable amount of freedom. Among other things, it seems that they were allowed to pay higher wages to encourage/reward work. Managers were also given some freedom in hiring and firing personnel. Central control over production plans was relaxed as well. Nonetheless, such measures appear to have been short-lived. By late 2003, if not earlier, the North Korean government decided that they had gone too far, the outburst of inflation obviously must have been one of the factors behind them reaching this conclusion. Even though a manager

could double or even triple a salary for a worker, this did not prove to be useful when retail prices increased some twenty times in 18 months. Therefore, official wages remained unattractive. Reforms were quietly rolled back between 2003 and 2005. Pak Pong Ju lost his job and was sent to the countryside in 2007 – he spent a few years as the chief manager of a rather large chemical plant, only to make a comeback with the ascension of Kim Jong Un. Therefore, the 2002 reforms remain a rather isolated episode, but one cannot rule out the possibility of this halfbaked attempt at structure reform having some serious consequences for the future of Nor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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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ing history of Buddhism in Sindh Nasir Aijaz is a 38-year experienced Pakistani journalist. He has worked as editor, reporter, magazine editor, news editor and anchor in different newspapers, news agencies and radio news services. Until recently, he served as Bureau Chief and Editor at Pakistan Press International(PPI) news agency and Head of PPI radio news service. Summary

신드 지방 불교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신드 왕국은 예로부터 힌두교와 불교를 믿었고, 이 두 종교는 지역민의 문화와 사상에 오랜 영향을 미쳤다. 나는 파키스탄 신드 출신으로서 불교와 매우 가깝다고 생각해왔다. 부처의 탄생지인 네팔에 서 불교사원에 크게 매료됐고, 2007년과 2008년 아시아기자협회(AJA)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백담사와 낙산사에서 템플스테이에 참여했다. 백담사에서 하루 머물면서 사찰 공양, 차훈명상 등 여러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때 느꼈던 평온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신드와 마크란 지방은 아쇼카 왕이 지배했던 고대 마우리아 왕조 시대에 불교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굽타 왕조 시대에 이르러 힌두교가 부활하면서 힌두교가 이 지역 사회를 지배하게 됐다. 711년 아랍세 력이 침략했을 당시 신드 지방에는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가 혼재했다. 신드 지방의 3분의 2가 침략 자에 평화적으로 복종하고 협정을 체결했다. 이들은 우마야드에게 복종하고 인두세를 제대로 내는 한 자신들의 신앙을 유지하고 땅과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다. 많은 불교 상인들과 장인들은 자발적으 로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무슬림 개종자들은 불교도, 힌두교도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았다. 우마야드 의 세력이 약화된 뒤에도 그랬다. 불교 수도원은 중국에서 시작해 신드 지방의 항구까지 연결된 실크로드를 따라 산재해 있다. 수도원은 상인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고 자본을 빌려줬다. 중국에서 들여온 준보석을 가공하는 불교 장인들도 이곳에 머물렀다. 당시 불교 상인과 장인들은 사원의 재정적 후원자였고, 불교사회의 복지를 위해서는 상업이 필수적이었다. 신드 지방의 불교 유적지는 인더스 문명의 유적이자 세계문화유산인 모헨조다 로와 북부의 시라즈지타크리, 남부의 카후조다로가 대표적인데, 아직 발견되지 않은 불교 관련 유적이 많을 것으로 보여 연구가 더 필요하다.

나지르 아이자즈 전 파키스탄통신(PPI) 지부장 겸 에디터·요약 윤지희 기자

I have always found myself very close to Buddhism. Maybe it was because we Sindhis (natives of Sindh, the land of great Indus civilization, now a province of Pakistan) are by nature Sufis believing in inter-faith harmony, brotherhood, non-violence and wishing best for progress and prosperity of the universe, as prayed by our great

Sufi saint poet Shah Abdul Latif Bhittai (1689-1752) in his poetry: Oh Lord! Bless Sindh and the whole of the universe with peace, progress and prosperity. The closeness of the Sindhi nation to Buddhism can also be traced to when the Arab Muslim invader Muhammad Bin Qasim conquered this

region in 711 A.D. At this time, Hinduism and Buddhism were practiced in Sindh and its neighboring countries, leaving long lasting effects on the culture and minds of inhabitants of this land. I have studied some books on Buddhism, and have witnessed the Buddhist remains at the hilltops while traveling in the Pakhtoon areas (Khyber Pakhtoonkhaw province, formerly known as North West Frontier Province of Pakistan bordering Afghanistan). The statues of Buddha were my main focus during my visits to the museums in Peshawar, the capital of Khyber Pakhtoonkhaw, Taxila, archeological site of Buddhist city located 32km northwest of Islamabad, capital of Pakistan, and elsewhere in the country including Karachi, the capital of Sindh. During my visit to Kabul (Afghanistan) in December 2011, I especially went to see statues of Buddha damaged by Taliban militants. The present government had those statues repaired and put on display at the national museum. I also saw the statue of a smiling Buddha at the museum of Bahawalpur city of Southern Punjab province of Pakistan in April 2013. Bahawalpur was once part of Sindh in the olden days. I was so impressed by the ideology of Buddha that I named my first son Rahul after the son of Great Buddha, which I read about in a book authored by an eminent Indian writer Ms. Quratul Ain Haider. My son Rahul Aijaz is now a budding photojournalist, filmmaker and a contributor for The AsiaN. During my visits to Nepal, the birthplace of Great Buddha, I took a keen interest in Buddhist temples, and my two visits to South Korea – in 2007 and 2008 on the invitation of the Asia Journalist Association (AJA), added a lot to my experience of Buddhism. In 2007, the hosts t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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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legation of Asian journalists to Baekdam temple where we met chief monk Samjo and had a Buddhist-style lunch. We also visited another ancient complex of temples Ohbangsan Naksan-sa located on the East coast. The chief monk we met there was Jeongnym, who had passed some time in the Indian state of Rajasthan, neighboring Sindh, my home province. He presented each delegation member a replica of a Buddhist bell, which I have preserved in my home. At this temple I also witnessed the Buddhist prayers. I had an especially unique experience the following year when the hosts arranged an overnight stay at Baekdam temple. The entire delegation consisting of men and women stayed there sharing small wooden rooms and enjoyed a Buddhist dinner. The serenity I experienced there was unforgettable. On my return from Korea in 2008, I started writing a travelogue in my mother tongue Sindhi, with a special focus on the Buddhist temples, their history, meetings with monks, Buddhist meals, etc. One day when I was watching a TV program, I listened to an imminent writer and intellectual Amar Jaleel, considered to be a living legend in Sindh, saying that he was a Buddhist (by nature). This inspired me to write on the history of Buddhism in Sindh. Long and winding road

Buddhism was practiced by the majority of the population of Sindh up to the Arab conquest by the Umayyad Caliphate in 711. During Caliph Walid`s rule (705-715) when Hajjaj Bin Yousuf was the governor of the Eastern part of the Umayyad Empire, an army was sent to conquer Sindh. Both Makran (part of Balochistan province of Pakistan) and Sindh were part of the Mauryan Empire 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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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cient times and due the efforts of King Ashoka, these regions had been converted to Buddhism. However, Hinduism revived during the Gupta period and dominated society in Sindh. Yet, Sindh`s culture and society was quite different from that of North Indian as the caste system was not rigid here. Sindh, at the time of the Arab invasion, had a mixed population of Hindus, Buddhists and Jains. A Chinese traveler Xuanzang reported more than four hundred Buddhist monasteries there with twenty-six thousand monks. The Buddhists constituted the majority of the urban mercantile and artisan class, while the Hindus were mostly rural farmers. The Hindus had a warrior caste, which along with their political and religious leaders fought the huge Umayyad force. The Buddhists, on the other hand, lacking martial tradition

Rahul Aijaz

or caste, and discontent with Chach’s policies, were willing to avoid destruction and submitted peacefully. When the Umayyad forces set out against Nirun near the present-day Sindh city Hyderabad, the Buddhist governor of the city surrendered voluntarily. However, to set a further example, the triumphant Muslims constructed a mosque on the site of the main Buddhist monastery and spared the rest of the town. Both Buddhists and Hindus cooperated with the Arabs, although Buddhists were more willing to. Thus, two-thirds of the Sindhi towns submitted peacefully to the invaders and made treaties. The Buddhists and Hindus were given the status of protected subjects. So long as they remained loyal to the Umayyad caliph and paid the poll tax, they were allowed to follow their faiths and keep their land and property. M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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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t merchants and artisans, however, voluntarily converted to Islam. The Arab General also imposed a pilgrim tax that the Buddhists and Hindus had to pay to visit their respective holy shrines. Perhaps this indicates that the Buddhist monks of Sindh, like their counterparts in Gandhara to the north, also had the degenerate custom at this time of charging pilgrims admission to their temples and that the Umayyads merely took over the income. After spending only three years in Sindh, General bin-Qasim returned to Hajjaj’s court, leaving to his underlings the task of implementing his pragmatic policy of exploiting the Buddhists’ and Hindus’ religious sentiments to generate revenue. Within a very short time of his departure, however, the local Hindu rulers regained control of most of their territories, leaving the

Statue of Buddha kept at National Museum of Pakistan at Karachi Another statue of Buddha at National Museum of Pakistan at Karachi Statues collected from different places displaced at Bahawalpur Museum Statue of smiling Buddha at Bahawalpur Museum

Arabs in only a few of the major Sindhi cities. The Muslim converts lived in harmony with the Sindhi Buddhists and Hindus, a pattern that continued even after the decline of Umayyad rule. Pala Dynasty (750 - late twelfth century) inscriptions from northern India during the subsequent centuries continue to refer to Buddhist monks from Sindh. Chinese Buddhist ambassador to Sindh in 641 Hiuen Tsiang reported seeing many temples to the Hindu deity Shiva, especially along the banks of the Indus. Buddhist monasteries dotted the Silk Route from China to the Sindh ports. They provided rest facilities and capital loans for merchants. Further, they housed Buddhist artisans who cut the semiprecious gems brought from China. The Buddhist merchants and artisans provided the main financial support for the monasteries. Thus, commerce was essential for the welfare of the Buddhist community. Buddhist archeological sites

The biggest archeological site in Sindh is Moen Jo Daro (Mound of Dead), which is a world heritage being the ancient abode of Indus civilization. Some historians call it Moohan Jo Daro (Mound of Moohan, the Hindu name of a person). The stupa at Meon Jo Daro is said to be of the Buddhist era. A Sindhi scholar and historian Dr. Prof. Ghulam Ali Allana and some other researchers have written about many remains of the Buddhist period. One of the Buddhist archeological

sites is Sudheran jo Thul located near Hyderabad city of Sindh. Dr. Allana mentions an annual fair at Thul where Buddhist pilgrims got their heads shaved and performed rituals. Buddha’s bones were said to be preserved here. Another archeological site of a Buddhist city is Siraj-ji-Takri, located along the western limestone terraces of the Rohri Hills in the Khairpur district of Upper Sindh. Its ruins are still visible on the top of three different mesas in the form of stone and mudbrick walls and small mounds, whilst other architectural remains were observed along the slopes of the hills in the 1980s. This city is not mentioned in any text dealing with the history of the Buddhist period of Sindh. Researchers also described some buildings and traces of construction on three corners of the rock, which resemble security posts and that of a smaller complex of rooms with thick walls of burned bricks along the western end of the terrace, while the central area of the hill accommodates a flat construction identical to a speaker’s stage or salute platform. The eastern periphery of Rohri, along the northern fringes of the hills, was destroyed in January-February 2001 without conducting any rescue excavation. A few artifacts were collected by Prof. G.M. Veesar of Shah Abdul Latif University, Khairpur and are now in the stores of the Archaeology Museum of the university. The third Buddhist archeological site is Kahu Jo Daro (Mound of Kahu) located in Mirpur Khas, the southern district of Sindh where a Buddhist stupa also exists at the village Mir Rukan of Nawabshah, the central district of Sindh. There could be several other archeological sites with Buddhist background in this part of Pakistan, but it needs to be researc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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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crowned king’ throws book back at China’s judicial system Ivan Lim is President of the Asia Journalist Association(AJA). He was labour correspondent for The Straits Times in Singapore, President of Confederation of ASEAN Journalists(CAJ), Secretary General of the Singapore National Union of Journalists, and Chairman of Environmental Forum for Communicators of Singapore(ECOS). Summary

‘무관의 제왕’, 중국 사법체계를 고발하다 언론계에서 ‘무관의 제왕’으로 칭송받는 홍콩 언론인 칭청은 2005년 4월 중국의 국가기밀을 대만에 누설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5년형을 선고받았다. 2008년 2월 풀려난 이 63세 중국전문가가 그 사이 겪은 고초를 최근 출간된 책 <1000일간의 시련: 애국자의 고문>에서 털어놓았다. 칭청은 “시민의 권리 를 존중·보호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중국 사법체계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칭청은 1974년 홍콩 ‘문예보(Wen Wei Po)’ 기자로 입사한 뒤 1980년 베이징 특파원이 됐다. 그는 특 파원 자격으로 중국당국이 개최하는 연회에 초청되고 공산당 주요인사들의 모임을 보도했다. 1997 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당시엔 중국 입법부에 진출할 유력한 홍콩 대표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1989년 톈안먼 민주화운동 진압에 관한 회사의 보도지침에 반대해 문예보를 떠났다. 이후 대만 국제 양안관계재단(FICS)에 월간 분석을 제공했다. 중국당국은 FICS를 스파이 집단으로 간주했고, 대만에 국가기밀을 제공한 혐의로 칭청을 체포했다. 칭청의 사례는 기자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취재·보도 활동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기자와 정치 참여 자의 역할을 혼동하거나 권력의 압력 아래 기자가 취재원 보호 윤리를 망각하고 타협할 때 맞닥뜨릴 문제를 말한다. 칭청은 이에 관한 비판을 모두 수용했다. 그는 기자들이 자신의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 고 권리의식을 일깨워 어려운 상황을 슬기롭게 해결하길 바랐다. “투옥 전까지는 기자의 양심이 동반 된 펜의 위대한 힘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의 한마디는 ‘무관의 제왕’이란 칭호에 걸맞는 무게를 전달 한다.

He might be hailed an “uncrowned king” in media circles, but the Chinese authorities had him by their book. Hong Kong correspondent Ching Cheong, whose perspectives are greatly influenced by the Chinese traditional portrayal of a journalist, found himself labeled a spy by the Communist government in Beijing. He was convicted in 2005 of leaking state secrets to Taiwan - deemed by

아이반 림 아시아기자협회 회장·요약 윤지희 기자

the mainland as a renegade province for its aspirations for independence after a closed-door trial and sentenced to five years imprisonment. That is now history. The story of the trial and tribulations of the 63-year-old China watcher, who was released after serving half his term in 2008, is related in his book, My 1,000 Days Ordeal: A Patriot’s Torture. Ching Cheong said he wanted

“to bring attention to China’s judicial system, so that we can together build a country that respects and protects the rights of the people.” “Otherwise, my time in jail would have been in vain.” Chinese prison ordeal

It is ironic for the self-proclaimed patriot who had made personal sacrifices in his desire to help publicise China’s modernisation reforms under Deng Xiaoping to be imprisoned. “In the 30 years from 1974 to 2004, I had used my pen continually to explore the path towards progress for my country,” he said. In 1974, the graduate teacher took a pay cut to be a journalist for Wen Wei Po, a pro-Beijing newspaper in Hong Kong. As the paper’s correspondent in Beijing in 1980 and deputy chief editor in 1988, he enjoyed privilege access. He was often invited to state banquets and also covered the Chinese Communist Party leaders’ annual retreat at Beidaihe resort. Ching Cheong was even touted a potential Hong Kong delegate to the National People’s Congress after the colony’s return to China in 1997 as a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under the one-country, two-systems formula. But things took a sour turn with t he militar y crackdow n on prodemocracy student demonstrations at Tiananmen on June 4, 1989. Wen Wei Po, which earlier had criticised the move, was ordered to change tack and back the repression. Ching Cheong resigned in protest from the paper. He shared the students’ democratic aspirations, having grown up in a democratic milieu in Hong Kong under British colonial administration. His severing of ties with the Chinese Communist Party authorities was a fateful decision. The vete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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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ver of Ching Cheong’s recently published book My 1,000 Days Ordeal: A Patriot’s Torture A placard saying “Free Ching Cheong ASAP!” hung up at Hong Kong’s Victoria Park.

newsman’s subsequent fall from grace was linked to his writing a monthly situational analysis for Taiwan’s Foundation for International Cross-straits Studies (FICS). The Chinese authorities had regarded FICS as a spy outfit and saw Ching Cheong’s work as supplying intelligence that they deemed state secrets. They took him in when he travelled to the southern city of Shenzhen to see a manuscript of the late Chinese leader Zhao Ziyang’s memoirs. Zhao was deposed as party general secretary after losing out in a behind-thescene power tussle over the handling of the Tiananmen Incident. Paramount leader Deng Xiaoping and other party elders had felt he was soft on the prodemocracy student demonstrators. Revisiting his traumatic days under solitary confinement, the detainee No. 5022 said he was almost driven to take his life. “I suffered indescribable mental anguish that grew out of a deep sense of frustration, regret and loss. I was frustrated because my loyalty to China and my honesty had sold me out.” While under investigation, Ching Cheong had written a 20,000-word statement detailing his writings for the Taiwanese think-tank and the fees he received. He candidly said if the Foundation for Cross-straits Studies was indeed a spy agency, then his work would be tantamount to spying and detrimental to China’s security. He added, “Then I expressed my regrets and would be willing to accept legal responsibility for it.”

This was seized upon by the court as a confession of crime. It was good enough for it to hand down a guilty verdict against the defendant. Avoiding legal pitfalls

Ching Cheong’s case underscored a professional pitfall for journalists. China’s wide definition of “state secrets’’ shows that “this is the easiest way to incriminate a journalist,” he said. “(For) journalists are in the business of finding out information that may be sensitive, whether it is already in the public domain or not.” Besides inadvertently crossing the information/ intelligence boundary, the Straits Times correspondent also said he mixed up his “reporter and political participant” roles. For while stationed in Taipei, he had also through his writings engaged in bridging differences between China and Taiwan. In 1995, cross-straits relations were rocked by the then Taiwan president Lee Teng-hui’s visit to the United States. Beijing saw Washington’s approval of the visit as violating the one-China policy, infringing upon China’s sovereignty and detrimental to efforts for peaceful reunification. There has been precedence, he noted, citing a study by Professor Lee Chin-chuan of the City University of Hong Kong, that showed that Chinese journalists were not contented to be “purely professionals.” Instead, “given that Chinese newspapers were closely inter-linked with politics, journalists sometimes went beyond their responsibilities as journal-

ists. This was the difference between Chinese and Western journalists.” The Ching Cheong saga also highlighted an instance of professional indiscretion: under pressure, a journalist might compromise his/her contacts. To show he had nothing to hide, he had instructed his secretary to bring his laptop from Hong Kong and handed it over to the investigators in Shenzhen. “I had voluntarily handed over my laptop, forgetting the professional ethic of protecting my sources,” he said. This had earned him stiff criticism from the Hong Kong Journalists Association’s chairperson Mak Yin-ting. Ching Cheong said he accepted the criticism, including the comment by the Hong Kong Foreign Correspondents’ Club convener of press freedom Francis Moriarty that “the professional standards of journalists in Hong Kong were behind that of Western societies, leading to a lack of clarity of professional boundaries.” A humbler but wiser Ching Cheong hopes journalists would not only cull lessons from his mistakes, but also know about their rights and deal with difficult situations professionally. A couplet he composed under detention reflects his comeback: a scholar serves his country with nothing, other than his pen and a fiery heart. “Until my imprisonment, I had never felt its great force, especially when combined with a journalist’s conscience,” he said. True to the adage of the “uncrowned emperor” Ching Cheong has the last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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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 India’s gov’t empower its people? Pramod Mathur is an Indian journalist. He is CEO of SPOTFILMS and Chairman of Foundation For Responsible Media(FORMEDIA). Starting as a photo-journalist in the late 1960s, he moved on to be a television journalist and subsequently a documentary film-maker. He has been Cameraman-cum-Correspondent, Producer-Director at SPOTFILMS for over 25 years. Summary

인도 국민의 행정참여 이뤄질까 최근 인도에서는 국민의 행정참여 권리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1947년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 한 이래 지역공동체의 산림관리·생산 정책 참여에 관한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식민지 시대의 산림정책은 숲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공동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히말라야 마을 주민들은 영국 의 사냥, 목재사용, 방목제한 조처에 맞서 환경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독립 후에도 정책은 바뀌지 않 았고 지역 주민들의 생활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산림부가 상업적 벌목에 적합한 나무만 심으면서 히말라야 마을 여성들은 땔감과 물 등 생필품을 구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농사에는 적은 시간을 할애하게 됐다. 식량 확보가 어려워지자 젊은 층은 마 을을 떠났고 여성과 노인들이 모든 중요한 책임을 떠맡았다. 지역 공동체는 사회적, 심리적으로 쇠약 해졌다. 전 세계 기후변화도 이들의 삶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 현재 히말라야 마을 주민들은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산림부도 문제 해결을 위해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서 농업을 병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 다. 이를 위해 주민참여 행정이 필수적이다. 또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의식개혁 캠페인을 벌이고, 여성 의 참여도 인정돼야 한다. 관료들이 정치적 의지를 갖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면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부패문제와 같은 긴급한 사안들에 집중한 나머지 환경이나 기후변화 문제는 뒷전으 로 밀려나 있다. 인도정부는 과연 이 불안정한 정치적 환경 속에서 국민참여를 보장하고 권력을 공유 할 준비가 돼 있는가.

The Indian politician and the bureaucrat have struggled for the past 65 years to shed the legacy and the mechanisms of British rule and empower the people but have failed…why? As is well known across the world, the regimes of the newly born independent countries breaking out of the British rule in the late 40s did little to change the essence of British style ruling. Even though they claimed to

프라모드 마터 인도 스포트필름 CEO·요약 윤지희 기자

be democratic societies, most nations retained the police, judicial and bureaucratic framework that the British had placed to their convenience to rule over the natives. The shrill rhetoric of “empowering the people” in India has continued to this day. There are hundreds of areas of governance that have not been addressed in the past 65 years. Management of forests and the rights of the

local communities on forest produce is one such domain. Under the British, colonial forestry had serious negative consequences. The impact on native forest communities was overwhelmingly detrimental, causing irreparable environmental damage. The impact on livelihood of communities who subsisted on forests was most severe during the British period and continues to be so even today. During the British period, environmental movements by local people in the Himalayan region were responses to the forest policies that resulted in tightened state control, restricting hunting, timber use and grazing. In independent India, the same policy became the role model for forest management thus ensuring its insidious continuity. Even today, species chosen for new plantations are only for harvesting commercial timber for revenue… completely devoid of any concern for the needs of firewood, fodder and water resources of the forest communities living in the Himalayan region. An elaborate document, signed by the then Secretary of the Ministry of Environment & Forests in 1988, was called “National Forest Policy.” Though very thoughtful and rational, the document is replete with the word “should.” At best, it can be considered a good essay written by an undergraduate for an examination. However, the document does acknowledge, “Having regard to the symbiotic relationship between the tribal people and forests, a primary task of all agencies responsible for forest management, including the forest development corporations, should be to associate the tribal people closely in the protection, regeneration and development of forests as well as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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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vide gainful employment to people living in and around the forest. While safeguarding the customary rights and interests of such people, forestry programmes should pay special attention to the following…” Much has changed in the past sixty odd years. In the absence of any accountability and reprimand, the bureaucrats have become comfortable with the perks and the big title jobs they hold, with little efforts in thinking out of the box. They continue to look at the people who “know nothing” and “need to be told what is good for them” – without realising that the internalised traditional knowledge about natural resource management within the communities may not be passed on to the next generation unless it is first respected by the Government. Commercial forestry: A legacy of British rule

Women in the Himalayan villages have always had a hard life collecting fuel-wood, fodder and water from long distances. In the 70s, they walked for an hour every day to the forests to lop trees for firewood and collect fodder for the cattle and of course, the natural water springs were flowing round the year. While the forest department continues to plant species for commercial timber needs in the name of increasing forest cover…the life of women has increasingly become more and more difficult. Today, a woman in a Himalayan village walks for nearly four to six

Pramod Mathur

hours collecting fuel wood, fodder and water, leaving little time for agriculture. Appropriate forest cover has impacted adversely on mountain farming systems in terms of food security and poor hydrological recharge. Reduced food security has led to significant outbound migration of young and educated youth in order to supplement family incomes, leading to severe strains on local societies where significant responsibilities have to be borne by women and the elderly alone. Migration is having a negative impact on the psycho‐social health of the communities. The elderly members of this basin are facing major hardships with no help for domestic chores or during times of illness, leading to conditions of severe mental depression. The impact of global climate change has made their life much tougher in the past two decades. The micro-climate has changed, leading to depleted water resources and slow regeneration of plants and grasses, bringing the Himalayan village communities at a crossroad. The forest department is aware of the fact that the only way out is agromix forestry in village forests lands closer to their villages. Essentially, this will need “Participatory Governance.” It needs an awareness raising campaign about the adverse impact of climate change and above all it needs empowerment of women, who have suffered the most and are likely to con-

A mountain village home on barren hills impacting the micro-climate of the region Local village women during a religious ritual

tinue to suffer even more in the coming decades. Only if there is political will and if there is an affirmative sense of urgency within the bureaucrats can anything change on the ground. People lived in the Himalayan villages even before the British came, even before we became independent and even before the clamour for power took centre stage in modern India. They passed on the traditional wisdom of their elders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they did not need to buy grain; they depended on the herbal medical systems to manage their traditional water resources. In recent years, issues of governance in India have become more complex. The government has become more and more concerned about urgent matters like rampant corruption, economic downturn and lower industrial production…in this scenario, matters of environment and impact of climate change have been pushed to the backburner. At this time, India not only needs a long vision that peeps into the future, it needs to empower and energise the people and take them along in nation building. India needs the help of her own people in participating in governance. The question then is, is the Government ready to share power by empowering the people in this unstable political environment?


Ins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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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words: understanding body language Rasha Abdellah is a writer and professor in psychology at Ajman University in the UAE. She worked as Director of the Counseling Department in Sharjah University from 2009 to 2012. She has been holding workshops and training courses in coaching, self concept, body language, leadership, problem solving, etc. Summary

언어를 넘어: 몸짓언어 이해하기 인간은 느낌과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독특한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의사소통의 또 다른 주요인인 몸짓언어는 종종 간과되곤 한다. 몸짓언어는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도구다. 특히 경쟁적인 글로벌 비즈니스 문화에서 몸짓언어에 잘 적응하고 이해해야 한다. 표정: 얼굴을 구성하는 90개 근육 중 30개는 순수하게 표정을 나타내는 데만 쓰인다. 일반적으로 미 소는 행복, 비웃음은 싫음과 역겨움, 꽉 다문 입은 긴장이나 화를 뜻한다. 눈: 영혼의 거울이자 감정을 나타내는 훌륭한 지표다. 일반적으로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것은 정직하 지 못함을 의미한다. 입: 입에서 나타나는 표정은 보이는 그대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소는 행복 외에 공포, 슬픔, 안도 도 뜻한다. 입은 말할 때 추가적인 신호를 보내는데 입을 조금만 벌리고 우물우물 말하면 말하기를 꺼려한다는 의미다. 반대로 입을 많이 움직이는 것은 “말하고 있으니 방해하지 말라”는 신호다. 자세: 똑바로 서서 어깨를 뒤로 젖히고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배를 당겨 넣은 사람은 개방적이고 자 신감이 있다. 반면 어깨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머리와 목을 내리고 있는 사람은 자신감이 부족하거나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제스처: 손과 뇌 사이에는 다른 부위보다 많은 신경이 연결돼 있어 감정상태에 대한 많은 단서를 제공 한다. 만약 누군가가 상대방을 속이려 한다면 정직한 사람에 비해 손동작을 자제할 것이다. 몸짓언어는 생각의 확장이다. 국제적인 환경에서 자신의 것을 포함한 여러 몸짓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자.

라샤 압델라 아랍에미리트 아지만대학 교수·요약 윤지희 기자

Humans pride themselves on their seemingly unique ability to verbalize feelings and ideas. While the mouth tells one story, gestures and posture may tell a different story. In today’s competitive and increasingly global business culture, the value of effective and active communications seems obvious. Often times, however, so much thought is put into the verbal message

that another key factor of successful communication can be overlooked: body language. Body language means how you physically present yourself to others. It has been proven to be an extremely powerful viewer into the inner workings of the human psyche. Many studies and research underline that when we are talking, most of our

communication is non-verbal: body language (55%), followed by the tone of voice (38%), while verbal communication (talking) accounts for a mere 7%. Actually, body language can help us become more likeable, make our presentations more memorable and solidify business opportunities. However, it can also make us look incompetent, ignorant or untrustworthy. And that’s why it is imperative for you to be attuned to and aware of body language. Here I will try to recognize some common body language cues, tell how to observe and decode them, define what emotions are behind common uses of body language, and share how to use this body language information to put your best foot forward. Language of gestures is transmitted through the eyes, face, hands, arms, legs and posture (sitting and walking). Each individual, isolated gesture is like a word in a sentence; it is difficult and isolated and dangerous to interpret in and of itself. Therefore, consider the gesture in the light of everything else that is going on around you. Facial expressions: The face has around 90 muscles in it, with about 30 of these purely for expressing emotion. There are some common facial gestures that are famous between people: frowns for unhappiness or anger, smiles for happiness, sneers for dislike or disgust, clenched jaws for tension or anger and pouting lips for sadness. Eyes: Windows of the soul, excellent indicators of feelings. Shifty eyes, beady eyes and look of steel demonstrate awareness. Generally speaking, failure to make and maintain eye contact can be sign of dishonesty. Mouth: Some of us think that the expressions made with the mouth may seem easy to interpret at first glance, but in fact they can be deceiving. Taking smiles for example, people smile for a variety of reasons – not just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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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s

Top ten body language 1. Make eye contact 2. Relax your body 3. Maintain some distance 4. Smile 5. Hand gestures 6. Don’t cross your arms or legs 7. Mirror 8. Don’t cover your face 9. Pause and breathe 10. Body posture

The combo picture shows former U.S. Secretary of State Hillary Clinton speaking at a joint press conference with Israeli Foreign Minister Tzipi Livni in Jerusalem in 2009.

express happiness. Many people also smile when they feel fear or sadness or simply to reassure. The mouth sends additional signals when it is speaking. If the mouth moves little, perhaps including incoherent mumbling, this may indicate an unwillingness to speak. A mouth that moves a lot during speech can indicate excitement or dominance as it sends clear signals that “I am speaking, do not interrupt!” What posture is saying

A person who is standing straight with shoulders back, chest out and stomach in is someone who is open, exuding confidence and commanding attention, alternately. A person who is standing with his shoulders slouched inward, with the head and neck down is someone who is either lacking confidence or feeling inferior. A person sitting with his legs crossed and elevated foot moving in a slight circular motion indicates boredom or impatience. Interest and involvement are usually projected by leaning forward, while those who walk with his shoulders hunched and

hands in his pockets tend to be secretive and critical. Interpreting gestures

Hands have 27 bones and are a very expressive part of our anatomy, and there are more nerve connections between the hands and the brain than between any other parts of the body, and therefore the gestures and positions we take with our hands give powerful insights into our emotional state. Tightly clenched hands usually indicate that the person is experiencing undue pressure. It may be difficult to relate to this person because of his tension and disagreement. Rubbing gently behind or beside the ear with the index finger or rubbing the eye usually means the other person is uncertain about what you are saying. Leaning back with both hands supporting the head usually indicates a feeling of confidence or superiority. Cupping one or both hands over the mouth, especially when talking, may well indicate that the person is trying to hide something. Putting your hand to your cheek or stroking your chin gener-

ally portrays thinking, interest or consideration. Fingers bent across the chin or below the mouth most often show critical evaluation. When a person is lying or hoping to mislead someone, this person is more likely to use hand gestures less frequently than someone who is not being deceitful. Certain gestures can also let you know when a person is nervous or anxious. Fiddling, touching the face or neck, playing with jewelry or rubbing their hands on their thighs are gestures that people do as a way to self–soothe or distract themselves from their feelings. Certainly, these are some signs of body language, but not all. I tried here to explain the most important ones. Are men and women speaking the same dialects of body language? Actually, many studies and research show that in terms of gender, men and women often speak different dialects of body language and here are some examples: - Women tend to gesture less than men. - Women break eye contact sooner than men do. - Women prefer face-to-face interaction, while men prefer side-by-side. - Men send and interpret fewer facial expressions than women. - Men naturally tend to have more relaxed or aloof postures. Body language is the extension of thought. It has been used for centuries predating common language between cultures. It is an important part of effective communication. Knowledge is power and the eyes have it. Take the time and effort to become familiar with others’ exhibitions of body language, especially in the global context and to become familiar with your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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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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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전통무술 한자리에 모였다 무에이·카바디·크라쉬 등 박진감 넘치는 격투

글·사진 이오봉 기자

6월29일~7월6일 제4회 인천 실내·무도(武道) 아시아경기대회가 인천시 일원에서 열렸다. 아시아올림픽 평의회(OCA·Olympic Council of Asia) 45개 회원국 선수·임원 4400여명이 참가해 각종 실내경기를 겨 뤘다. 대회 주제는 ‘평화의 숨결, 아시아의 미래’. 종목은 당구, 볼링, 체스, 바둑, e스포츠, 댄스스포츠, 풋 살, 실내 카바디, 킥복싱, 무에이(무에타이의 새 명칭), 크라쉬, 25m 쇼트코스 수영 등 12가지다. 이들 종목은 모두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 포함되지 않은 전통문화·생활스포츠여서 관람객들에게 색 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5천년 이상 태국을 지켜온 ‘무에이’와 인도 전통 격투기 ‘카바디’, 우즈베키스탄 고대 스포츠 ‘크라쉬’ 등 낯설지만 박진감 넘치는 아시아 각국 전통무술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 였다. OCA는 분리 운영돼온 실내 아시아경기대회와 무도 아시아경기대회를 이번 인천대회부터 통합했다.

유도 종목과 비슷하나 그라 운드 기술(누르기, 꺾기, 조르기) 이 없고 손기술은 상체만 허용 하는 크라쉬 경기. 3500년 된 우즈베키스탄의 전통 스포츠다. 52kg 여자 결승전에서 베트남 선수(초록색)가 금메달을 획득 하는 순간 크라쉬 73kg급 결승전에서 투 르크메니스탄의 테미로프 선수(초 록색)가 금메달을 따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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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팀이 5명으로 구성된 풋살 경기. 전후반 20분 경기를 한다. 하프타임은 15분, 오프사이 드가 없다. 결승전에서 일본 여자 풋살 팀(청색) 이 이란 여자 풋살 팀을 2 대 1로 극적으로 제치 고 우승, 3위는 태국 팀이 차지했다. 남자 풋살 결승전. 일본(흰색) 대 이란 경기 에서 5 대 2로 이란 금메달 차지. 인도(흰색)와 이란의 남자 실내 카바디 결승 전에서 격돌한 순간. 인도가 42 대 32로 우승, 금메달을 차지했다.

킥복싱 경기는 2분 3라운드로 진행한다. 매 트에서 진행하는 포인트 파이팅 경기와 국제 표 준 크기의 링에서 하는 풀컨택/로우킥 경기로 세분된다. 56kg급 여자 킥복싱 풀컨택 준준결 승 경기에서 한국 대 요르단 알 압시 바라 선수 (청색)가 격돌하고 있다. 킥복싱 포인트 파이팅 여자 55kg 준준결승 전에서 우즈베키스탄과 요르단 파라 알리 슈드 퀴 선수(청색)가 격돌하고 있다. 요르단 선수가 9 대 8이라는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 석별의 정을 나누는 폐회식. 2014 인천 아시 아경기대회 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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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수 만 명과의 소통도 한 사람과의 소통처럼 하고 싶다” 박 대통령을 ‘정치 스승’으로 여기는 조윤선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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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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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기자 winwin0625@theasian.asia

조윤선 여성가족부(여가부) 장관 하면 얼른 떠오르 는 단어가 ‘대변인’이다. 변호사 출신으로 시티은행

“ ‘위머노믹스(womenomics)’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여성노동력은 세계경제의 역동적인 성장엔진이자 미래경제의 핵심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부행장을 지내다 정계에 입문해 한나라당 최장수 대변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대변인을 거쳐 인수 위원회에서도 대변인을 맡았다. 기자와 조 장관은

다. 정치인으로서 여성의 힘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대선 직후 그가 인수위 대변인에 임명되던 지난해

“‘위머노믹스(womenomics)’라는 신조어가 등

12월24일부터 이튿날 사이 다음과 같은 문자 메시

장할 만큼 여성노동력은 세계경제의 역동적인 성

지를 주고 받았다.

장엔진이자 미래경제의 핵심요소로 떠오르고 있

“겸손, 불필요한 언급 자제, 콜백, 먼저 인사

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두터운 ‘유리천장’

이런 거 꼭 지켜 더 중책 맡길 축하!”(12.24 오후

이 존재한다. 비례대표 여성 할당제가 도입됐는데

6:09) “선배님 고맙습니다. 사랑 받는 정부로 출발

도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아직 2012년 현재 15.7%

할 수 있도록 겸허하게 성심 다하겠습니다. 푸근

에 불과하다.”

한 연말 되세요”(12.25 오전 3:59) “새벽 문자 잘 봤

중동국가와 아프리카, 아시아 일부 지역에선 여성에 대한 차

어요. 난 박 대통령이 귀걸이 안 하시는 게 참 맘에

별, 심지어 학대도 자행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 입장에서

들어요.”(12.25 오전 10:15) “박 당선인 새해 첫날

할 수 있는 대책이 없을까?

광주 방문하여 호남 민심을 어루만져 주길 바랍니 다”(12.25 오후 10:11) “옙”(12.25 오후 10:12)

“양자적 지원과 동시에 유엔 등 국제기구와 손 잡고 지역 여성들의 역량강화 및 인권보호 사업을

이후 신문이나 텔레비전 화면에서 조 장관 귀

지원하고 있다. 여가부가 진행 중인 공적개발원조

걸이는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박 대통령에게

(ODA) 사업은 크게 세 가지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가장 신임 받는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박

중남미 등 39개국에 여성직업 능력개발 교육훈련

근혜 대통령의 평가마냥 ‘뭘 하나를 하면 깊이 들

지원, 베트남에 여성직업능력개발센터 구축 및 운

이 파는’ 성격에다 기자들과 소통도 잘하고 빼어난

영, 그리고 캄보디아의 성매매 피해자 지원프로그

미모 덕도 있었을 것이다.

램 등이다. 유엔 여성 기여금도 올해 467만 달러(약

박 대통령은 새 정부 첫 국무회의에서 조 장관

53억원)를 부담한다. 유엔이나 OECD, APEC 등

에게 “여성의 임신부터 출산, 육아까지 전 라이프

주요 국제회의에 참가해 분쟁지역 여성인권 보호

사이클에 맞춰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정책을 만

와 여성 분야 협력네트워크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들라. 일과 가정의 양립, 여성인력 문제는 전 부처와

있다.”

연결돼 있으니 부처간 칸막이를 없애고 조율하는

알렉산더 대왕의 마케도니아, 인류역사상 최초로 동·서양을

‘코디네이터’ 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조 장관은

아우르는 대제국을 이룩한 몽골의 경쟁력은 다른 문화 수용

“관성대로 하지 말고 창의적으로 해달라는 대통령

과 융합의 결과라고 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다문화 자녀들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게 귓전에 맴돈다”고 했다.

에 대해 우리와 ‘같은 울타리’ 안의 ‘똑같은 국민’이라는 사회

기자는 7월8일 오후 여가부 접견실에서 조 장

적 공감대가 필요한데, 여가부의 복안은?

관을 인터뷰했다. 하루 십 여 개 일정을 소화하느

“국제화를 넘어 ‘다문화국가’를 향해 가고 있는

라 30분도 내기 어렵다고 했지만 예정된 시간을 넘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다문화가족의 생활을 안정

겨서야 마무리됐다.

시키고 일반국민과의 조화를 이뤄내는 것이다. 다 문화를 둘러싼 우리 사회 인식개선과 사회통합을

세계적으로 여성 지도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힐러

위해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고

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도 미국 차기 대선후보로 예상된

있다. 아이들은 성인에 비해 남과의 차이를 오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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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검해 나갈 것이다.”

서 자연스럽게 다문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주한외교 사절 부인들은 대체로 남편을 따라 활동하거나 겨

있도록 하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할 계

울철 김장 담그기 정도밖에 언론에 노출되지 않고 있다. 이

획이다.”

들과 함께 자국의 여성 혹은 가정문제 같은 포럼을 주도하면

여성 지도자 가운데, 박 대통령 외 롤모델로 삼거나 후배들

한국의 여성지위 수준을 소개도 하고 벤치마킹하도록 유도

에게 추천하고 싶은 분은 누구인지? 그리고 그 이유는?

할 수도 있을 텐데…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의 경우 그 분의 추

“주한 외교사절 배우자들은 언론에 노출되는

진력과 결단력을 닮고 싶고, 조정과 설득, 책임의

것보다 훨씬 활발하고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리더십을 보여주었던 미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문화와 자선 부문 등에서

령도 롤모델 중 한 분이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

는 외교사절보다 더 교류의 중심이 되고 있다. 앞

장관도 여러 차례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마음

으로 여성문제, 다문화가족 문제 등 관련해 주한

을 담은 섬세한 소통으로 수 만 명과의 소통조차

외교사절 부인들과 여가부가 함께 협력하고 협의

한 사람과의 소통처럼 느끼게 하는 모습에 깊은 인

하는 방안을 모색해 보겠다.”

상을 받았다. 박 대통령께서 정치 지망 후배들에게

아시아 각국은 중앙아시아 몇 개국을 빼고는 여성 저널리스

‘오로지 국민만 보고, 국민을 믿으면 된다. 그러면

트 활동이 매우 활발하고 특히 한류를 계기로 한국에 대한

국민들이 소박하게 보답해 주신다. 그리고 국민들

관심이 많다. 이들에게 대한민국 여성부 장관으로서 전하고

사이에 정이 쌓인다’고 한 말씀을 늘 새기고 있다.”

싶은 메시지는?

국무위원으로서 부처 간 이해가 상반될 때 어떻게 수용하

“한국에서 아시아 최초의 직선 여성대통령이

고 조정하는지? 예를 들어 ‘셧다운제’ 같은 경우 문화체육

탄생한 점은 역사적이고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한

관광부와의 의견대립과 이해관계가 충돌되는 것으로 알고

국의 집단지성 수준과 민주주의 성숙도를 보여주

있다.

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제규모 등을 감안할 때

“정책추진 때 부처 간 추진방법에서 이견이 있

경제활동 참여율이나 정치권한 등 양성평등 면에

을 수 있지만 그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 큰 틀

서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여성대통령 탄생을 계기로

에서의 원칙, 수요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정말 필요

양성평등을 실현하고 여성 전 일생을 통틀어 일과

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면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구축해나가

도출될 수 있다. 현 정부는 모든 부처가 공개·공

고자 한다.”

유·소통·협력 원칙에 따라 정책을 추진하려고 노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무엇인지? 7월6일자 <조선일보> 북

력하고 있다. 초기단계인 셧다운제는 계속 성과를

섹션에 휴가철 읽어야 할 책으로 <불평등의 대가>, <비엔나 1900>, <자기만의 방> 등 3권을 소개했더라.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최연혁)를 읽었다. 스 웨덴에서는 국회의원직이 철저한 국민의 공복으로 힘겨운 직종으로 여겨져서 충원이 어렵다고 한다. 이같은 스웨덴 사회의 발전상과 양성평등의 면모 를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었다. 우리가 나아갈 방 향을 어느 정도 제시하는 듯한 느낌도 좋았다. 내 가 추천한 세 권의 책은 여성과 성평등, 문화와 관 련된 것들이다.” 문화예술 쪽에도 특히 관심이 많은 그는 자신 의 문화관을 담은 책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 다>(2007)와 <문화가 답이다>(2011)를 낸 바 있다.

차재준

쉽게 받아들이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교과과정에

이오봉

조윤선 장관은 ‘섬세한 소통능 력’을 여성 정치인의 강점으로 꼽았다. ‘정치 스승’이라 여기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배우고 싶은 것도 바로 그런 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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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책 11권 페르시아어로 출간 한국문화와 사랑에 빠진 이란 출판인 푸네 네다이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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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룡 기자 roh8033@theasian.asia

국을 앞두고 서울 명륜동 아시아기자협회(AJA) 사 무국에 나타났다. 그는 2008년 AJA 회원으로 한

이란의 잡지 발행인이자 출판인 푸네 네다이

국과 인연을 맺은 뒤 다양한 교류활동을 벌여온 이

(Pooneh Nedai·39)는 이번에 10번째로 한국을 방

란의 대표적인 ‘지한파’ 문화인이다. 최근에는 한-

문했다. 페르시아어로 출간된 한국 관련 책 11권

이란 교류에 초점을 맞춘 전문 계간지(The Blue

을 들고서다. 그 중에는 자신이 쓴 <불사조의 나

Silk)를 창간했다.

라 한국 기행(Korea Travel Diary: The Land of

기자에게 건네준 그의 새 명함에는 한국 홍보

Phoenix)>도 포함돼 있다. 이란에서 자국어로 한

대사(Goodwill Ambassador of Korea in Iran)

국에 관한 책이 출판된 것은 처음이다.

라는 직함이 추가돼 있었다. 지난 12월 테헤란에서 열린 제1회 한국영화축제 당시 한국대사관으로부

한국 홍보대사 맡아

네다이는 지난 3년 동안 만든 책 11권을 소중 히 들고 와 6월19~2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터 위촉된 명예직이라고 한다. 그에게 지난 6월 대 통령 선거를 계기로 전환기를 맞은 이란 정세와 문 화교류에 관한 얘기를 들어봤다.

열린 2013서울국제도서전에서 선보였다. 그는 도 서전 부스에 이란 소개문구를 ‘World within a

온건개혁파로 불리는 하산 로하니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border’라고 달았다. ‘국경 안에 세상의 모든 것이

어떤 기대를 갖고 있나?

다 있는 나라’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많은 사람

“그가 당선된 날 거리로 뛰어나가 축하했다. 그

들이 페르시아어로 나온 한국 책과 이란에 관심을

는 좋은 협상가다. 서방과의 협력이 기대된다. 하

보여줘 고맙다”고 했다.

지만 변화가 쉽지만은 않다. 실질적 권력은 여전히

도서전을 마친 뒤 여행에 나섰던 네다이가 귀

하메이니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로하니도 개혁파 (reformist)라고는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개혁파는 아니다.” 선거 때 언론자유 신장, 여권인권 보장 등을 공약했는데, 지 켜지리라 보나?

“글쎄. 두고 봐야 한다. 오는 9월 새 정부가 들 어설 예정인데, 우파의 힘이 워낙 세서 개혁이 쉽지 만은 않을 것이다.” 한국에 관한 페르시아어 책을 선보인 서울국제도서전 부스. 네다이가 운영하는 출판사 이름 암루드(Amrood)는 페르시아어 로 ‘배(梨)’라는 뜻이라고 한다.

로하니가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말할 것도 없이 서방의 경제제재를 푸는 일이 다. 경제제재가 이란 국민들에게 너무 큰 고통을

“ The moment I arrived in Korea, I felt I knew the place. This happens to everyone. People sometimes feel some unknown connection with somebody or some place. I hope your readers do not only seek a logical reason for my interest in Korea. Since I am a poet, sense is the first powerful thing that influences me. After knowing more about the culture and people, I came to the truth that Korea has many things to teac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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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다이는 강원도 춘천 남이섬 관광휴양지와도 교류활동을 벌 여왔다. 사진은 남이섬에 설치 된 돌 조형물. 영어와 페르시아 어로 그의 시가 새겨져 있다.

주고 있다. 교역이 제한되면서 물자부족과 물가앙

나는 시인이다. 나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등이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1년 사이 대부분의 물

감각이다. 한국에 대한 나의 애정은 논리로 얘기하

가가 3배로 치솟았다고 보면 된다. 환율도 크게 뛰

기 어렵다.”

었다. 로하니 당선 이후 환율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

그러면 한국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으니 기대해볼 수밖에 없다” 이란이 완전히 개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상당히 복잡한 문제다. 개방은 필요하지만 우

“자애로운 어머니, 산사의 종소리, 은행잎, 진 달래꽃, 자연을 향한 사람들의 경외심….” 한국에 관해 출간한 책은 어떤 내용인가.

리의 정체성을 지킬 힘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라크,

“내가 쓴 기행문은 지리·역사·관습·교육·예

이스라엘, 파키스탄 같은 주변국과의 민감한 사안

술·인물·관광지 등 한국에 관한 모든 것을 28개

이 많다.”

장에 담았다. 앞으로 한국의 깊은 속살을 더 탐구 해 개정판에 담을 계획이다. 독도에도 한번 꼭 가

서방의 경제제재로 인한 고통 심각

보고 싶다. 다른 책들은 페르시아어로 옮긴 전래

노벨평화상을 받은 인권운동가 시린 에바디와 절친한 사이

동화, 강우현 작가의 동화집, 고은·최종렬 시집 등

로 2009년 그의 첫 한국방문을 주선하기도 했다. 요즘 그의

이다.”

근황은?

이란에서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는?

“여전히 이란에 입국하지 못하고 가족들과 영

“가장 존재감이 강한 것은 드라마다. 대장금,

국에 머물고 있다. 하루빨리 그가 이란에 돌아와

주몽, 선덕여왕 등이 TV에서 방영돼 큰 인기를 끌

인권운동의 구심점이 돼주었으면 한다.”

었다. 이란인과 한국인은 연장자를 존중하고 가족

화제를 돌리자. 한국과의 문화교류에 애쓰는 연유는?

을 중시하는 등 공통적 심성이 있다. 작년 말 한국

“문화는 누구나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지 않

영화축제에서 소개된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 이창

나. 나라 간의 교류는 문화가 우선이라고 생각한

동 감독의 ‘밀양’ 등도 큰 호응을 받았다.”

다. 정치·경제는 그 다음이다.”

한글을 배우는 사람도 있나?

한국문화가 왜 좋은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언젠가 와봤던 것 같은 데자뷰가 있었다. 누구나 그런 경험 있을 것이다.

“아직 정규학교에서는 한글 가르치는 곳이 없 지만, 각종 어학원에서 한글을 배우는 사람이 크 게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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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선 문화일보 전국부장, 소설가

두 노학자가 그리는 한국의 미래 미 하와이대학 ‘미래연구과정’ 연수기 짐 데이터(Jim A. Dator). 올해 만 80세

에 참여한 덕분이었다. 8개 신문, 방송 매

지, 그리고 목이 긴 캔버스화를 신는 것

가 된 하와이대 정치학과 교수다. 명예교

체의 부장급 기자가 참여한 이번 연수는

도 한결같다. 그의 외양은 자신의 철학

수나 석좌교수가 아니라 현역 교수다. 그

한 달 과정으로 정부, 우주, 종교, 에너지,

(데이터의 제2법칙)을 반영한다. “미래

는 ‘미래학(Futures Studies)’이란 학문분

국방의 미래 등을 다뤘다. 각 분야 석학

에 대한 가장 유용한 아이디어는 우스꽝

야를 개척한 선구자다. 세계미래연구협회

들의 강의가 모두 흥미로웠으나 특히 이

스럽게 보일 수 있다. (Any useful idea

(WFSF) 창립멤버로서 이 협회의 사무총

과정의 지도교수인 짐 데이터와 그가 특

about the futures should appear to be

장과 회장을 지냈다. 1970년대에 그와 뜻

별히 초청한 글렌 페이지의 강의가 인상

ridiculous.)”

을 함께 한 앨빈 토플러가 미래학을 기업

적이었다.

대공황이 끝날 무렵에 플로리다에서 태어난 그는 자신의 성(Dator)이 어디서

에 접목시켜 경영 컨설팅으로 이름을 떨 했다. 최근엔 한국을 자주 방문하며 아시

짐 데이터

온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다고 했다. 9세 때

“한국이 첫 드림 소사이어티일 수도”

아버지를 여의었는데 부계 혈통의 근원을 뉴시스

치는 동안 그는 학교에 남아 연구에 전념 아의 미래, 세계의 미래를 위한 한국인의

찾을 수가 없었다. 9세 이후론 어머니와 이모, 할머니 등 여자밖에 없는 집에서 자

역할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글렌 페이지(Glenn D. Paige). 올해

라났다. “남자가 없는 집안에서 외롭게 자

만 84세인 하와이대 정치학과 명예교수

랐다. 오히려 이 덕분에 보수적인 플로리

다. 21세 때 미군 대공포부대 통신요원으

다에서 가부장적 전통에 얽매이지 않았

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저서<The

다. 과거가 없기 때문에 오로지 미래만 생

Korean Decision>에서 미국의 한국전 참

각할 수밖에 없었다.”

전이 자유수호를 위한 합리적 결정이었다

그가 80세에도 티셔츠를 입고 바이크

고 주장했다. 이후 많은 한국전 피학살자

를 타는 것, 손자뻘 후학들과도 스스럼없

유족들을 만나 그들의 상처를 돌아보면

이 유머를 주고받는 것 등은 어렸을 때 형

서 생각을 바꿨다. 그는 미국이 평화의 이

성된 성정인 셈이다. 겉모습은 이처럼 자

름으로 전 세계에서 살상하는 것을 우려

유스럽기 그지없었지만, 그와 한 달을 함

하며 ‘비살상(No More Killing)’을 설파하

께 생활해보니 속으로는 아주 엄격한 학

는 세계비살상연구소(Center for Global

자였다. 그는 이번 연수과정의 모든 강의 데이터 교수는 외양이 독특하다. 얼

에 참석했다. 만 80세의 노학자는 한 번도

짐 데이터와 글렌 페이지. 미래학자와

핏 보면 서양 할머니처럼 보인다. 바가

빠짐없이 강의를 경청한 후에 반드시 토

평화학자인 80대의 두 노학자를 최근 하

지 머리 스타일 때문이다. 그는 40 여 년

론에 참여했다.

와이대에서 만났다. 국내 한 언론단체가

째 이 헤어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며

그가 하와이대에서 배출한 후학들을

하와이대에 개설한 ‘미래연구과정’ 연수

웃었다. 할리 데이비슨 티셔츠에 진 바

마노아 학파라고 한다. 하와이대가 있는

Nonkilling)를 만들어 활동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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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이 마노아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노

과학부’를 만든 것을 높이 평가했다. 국가

에 큰 감명을 받았고, 학자로서 ‘폭력의

아 학파는 미래학자가 점쟁이가 아님을 강

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중시하며 창조성

정치학’이 아닌 ‘평화의 정치학’에 대해 깊

조한다. 이 학파는 ‘예언된 미래(Predicted

을 핵심 경쟁력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

이 생각했다. 그는 1974년부터 ‘No More

Future)’가 아니라 ‘선호된 미래(Preferred

다는 것이다. 정부가 관 주도로 한류를 이

Killing’ 운동을 펼치며, 전 세계 평화주

Futures)’란 개념을 사용한다. 인류에

끌어가려는 것, 새 정부가 추상적 의미의

의자들과 연대를 구축해나갔다. 이번 강

게 유용한 대안적 미래를 모색하기 때문

이름을 지닌 미래부를 만든 것에 대해 냉

의에서 그는 1980년대에 한국 대통령이

에 단수의 미래가 아니라 복수의 미래

소적인 반응이 있음을 알면서도 데이터

었던 전두환 씨가 하와이대를 방문했을

(Futures)를 연구대상으로 삼는다.

교수는 그것이 한국이 세계 최초의 드림

때 ‘No More Killing’ 표지판을 들고 1

소사이어티로 진입하는 신호일 수 있다고

인 시위를 했던 장면을 찍은 사진을 보여

봤다.

줬다.

예컨대 화석연료 고갈이라는 위기에서 신

글렌 페이지

점에서 자격을 갖춰야 한다. 국가 내부에

재생 에너지를 개발해 에너지 소비를 계

“ 한국이 첫 비살상 국가 될 수 있다”

서 서로를 죽이지 않는 것, 외국에서 이

그는 미래 시나리오를 ‘발전(Grow)붕괴(Collapse)-조정(Discipline)-변형

그가 꿈꾸는 비살상 국가는 세 가지

장재선

(Transform)’ 등 4개 모델로 설명한다.

속 늘려 가면 발전모델이 된다. 신재생에

나라로 와서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 그리

너지를 개발하지 못한 채 소비구조를 유

고 외국에 나가 그 나라 사람들을 죽이지

지하려면 붕괴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 지

않는 것. 페이지 교수는 의과학적으로 사

구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 소비를

람들의 살해 충동을 억제하는 일이 가능

극소화하면 조정모델이 된다. 이런 체제

해질 것이라고 했다. 제도적으로 사형제,

에서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것이

군대 폐지 등의 나라가 늘어나면 ‘Non-

변형 모델이다. 이 모델에서 인간이 가장

Killing Society’가 실현될 수 있다는 희

선호하는 미래가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것

망을 피력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세계 최초로 비살

이 미래학자들의 소임이다. 데이터 교수는 스스로 점쟁이가 아

상 국가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고

니라고 강조하면서도 “한국의 미래를 밝

개가 갸웃거려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전

게 보고 있다”는 점은 숨기지 않았다. 정

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상되고, 현재 세

보사회 다음에 드림 소사이어티(Dream

계 유일의 분단국가로서 전쟁의 위험에

Society)가 오는데, 한국이 첫 번째 드림

노출돼 있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 는 그가 이런 예측을 하는 것은 왜일까.

소사이어티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말

글렌 페이지 교수는 대공황이 시작될

하는 드림 소사이어티는 경제의 주력엔진

무렵인 1929년 보스톤에서 태어났다. 80

“한국은 자신을 제국주의로 억압한

이 정보에서 이미지로 넘어가고, 상상력

세를 훨씬 넘긴 노학자는 심장병 때문에

일본의 장점을 수용했다. 해방 이후 북쪽

과 창조성이 국가의 핵심 경쟁력이 되는

거동이 불편한데도 한국 언론인들에게

에서는 러시아 것을, 남쪽에서는 미국 것

공동체를 말한다.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 미래학연

을 받아들였다. 역사적으로 무수한 외세

“미국과 일본, 홍콩 등이 한국보다 먼

구과정에 참여했다. 3시간짜리 강의를 위

침략을 받았는데 모두 그것을 다이나믹

저 드림 소사이어티에 다가갔다고 할 수

해 보름 동안 준비했다고 하와이대 스태

한 변화로 만들어냈다. 한국은 홍익인간

있지만 이런 나라들은 결정적 고비를 넘

프들이 전했다.

사상을 갖고 있는 나라다. 그 정신은 오늘 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것이 세계 최초

지 못했다. 한국은 정부가 주도해 한류를

한국전에 참전했던 그는 1959년 미

지속적으로 이끌어가는 유일한 나라라는

국 미네소타대가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측면에서 앞선 다른 나라들이 넘지 못한

파견한 연구교수를 자원했다. 그는 이듬

페이지 교수가 강의를 마치고 돌아갈

고비를 넘을 것으로 생각한다.”

해 4·19혁명을 현장에서 지켜보며 자유

때, 데이터 교수가 정치학과 건물 엘리베이

민주주의를 위해 평화시위를 하는 모습

터까지 배웅했다. 두 사람은 마치 헤어지

짐 데이터 교수는 한국이 ‘미래창조

의 비살상 국가가 될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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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308

The embrace in Hawaii Just as they embrace each other passionately, I know why we come in Hawaii in the month of May. Man who was born by the end of the Great Depression embraced Man who began his life shortly before that. At that time I saw their hug, I took courage to envision the future of human village. Desolated name who grew up without father has made a great effort to open the way to the future, with upholding the majesty of present life. A name who fought Korean war in the past has exclaimed ‘No More Killing’ after throwing away military medal for brave act. Though a fully ripened summer of Hawaii is apt to decay, the hug of two man overpower the smell of rotting season. On the beach harmonized between natural moon and artificial fireworks, their hug made me freshly breathe the Pacific breeze. Reviewing rare island where the sea meets the mountain and the urban gets at rural, made me realize the beauty of intermingling.

바이크를 타는 짐 데이터 교수 강의 후 한국 언론인들과 대화하는 페이지 교수

는 연인처럼 깊숙이 포옹하며 서로의 어깨 를 두드렸다. 네 살 차이로 같은 학과에 오 랫동안 재직한 두 사람은 젊은 시절 한 때 한 여인을 두고 연적이기도 했다고 한다. 잠시 불편한 적도 있었겠으나, 두 사람의 포옹에서는 학문적 동지로서 오랫동안 나 눠온 우정의 깊이가 느껴졌다. 그 포옹을 보며, 하와이에서 한국인

When my colleague said that the dog with the bird smile with pleasure here, I also smiled mischievously. Only I know the meaning of my smile, which isn’t something forgotten the hard labour at sugar cane field and the bombing of Pearl Harbor. When I saw the shade of Banyan Tree having the branches which look same but different, ! got an inspiration about win-win world. Here isn’t well-versed people in the way to open tomorrow. Aha!, in the Manoa I get to know that We can only see futures differently, think futures differently. As we approach the year of 2043 and beyond, In human world growing, collapsing, disciplining, transforming, l will ask like a curious kid, I will embrace passionately the present keeping away past, the future throwing away present.

으로 미래학을 껴안게 된 것에 대한 감회

하와이에서의 포옹

가 새삼스럽게 솟았다. 세계의 미래는 어

5월의 하와이에 왜 왔는지를 / 나는 그 때 비로소 알았다. 대공황의 그림자를 안고 태어난 남자와 / 그 끝 무렵 세상에 온 남자가 마노아에서 포옹할 때, 사람의 마을이 마주해야 할 미래를 / 앞날에도 생각해 볼 용기를 얻었다.

떻게 나아갈 것이며, 거기서 나는 자연과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앞날을 꿈꿔 야 할까. 그런 느낌을 운문으로 담아 미래 연구과정 마지막 프레젠테이션에서 낭송 했다. 제목은 ‘하와이의 포옹’. 영시는 두 운(頭韻)을 넣었다. 지도교수 이름인 ‘JIM A. DATOR’와 감탄사 ‘WOW!’, 그리고 하 와이에 ‘I’를 하나 더 넣어 위트를 의도한 ‘HAWAIII’가 그 두운이다.

아버지 없이 자란 외로운 이름이 / 미래로 가는 길을 열며 / 스스로의 나날을 늘 오늘로 지켜온 것은, 과거의 전쟁에 참가했던 이름이 / 용감함이라는 수컷의 훈장을 버리고 / 더 이상 죽이지 말자고 호소하는 것은 하와이의 번성한 여름에서 / 썩는 냄새를 지우고, 달과 불꽃이 어울리는 해변에서 / 태평양의 바람을 신선하게 부풀게 했다. 바다와 산이, 도시와 시골이 만나는 곳에서 / 섞인다는 것의 아름다움에 벅차오르게 했다. 여기선 개도 웃고 새도 웃는다고 / 누군가 말했을 때 함께 웃었으나 / 사탕수수 밭의 노역을, 진주만의 폭격을 잊어버린 웃음은 아니었다. / 다르지만 하나인 무수한 가지를 지닌 반연 트리 그늘이 서늘했던 것은 마노아가 준 선물을 품을 수 있어서였을까. / 내일을 여는 길에 도가 통할 수는 없는 법,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일 뿐. / 2043년이 오기까지, 혹은 그 너머까지 더욱 어린아이처럼 묻고 물으며 / 깊숙이 포옹하리라. / 과거를 멀리하는 현재를, 현재를 버리려는 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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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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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근 행복한마음 한의원 원장 <애노희락의 심리학> 저자

‘선입견’이란 함정에 빠진 우리의 뇌 뉴시스

목표에 집착하는 정보기관장, ‘창으로 날아가는 나비’와 같아 유리로 된 건물에 날아든 나비는 무조건

에서 욕망의 종으로 타락시키는 것이 선 입견이다.

창 쪽으로 날아간다. 보통 밝은 곳은 열린 곳이다. 어두운 곳은 막힌 곳이다. 나비는

남북화해를 추구하던 정권은 좌파 정

본능적으로 그걸 안다. 그래서 가장 밝은

권이었다는 선입견을 갖게 되면 어떻게 될

곳으로 날아간다. 유리면을 따라 열심히

까? 모든 기록이 그런 관점에서 보인다.

출구를 찾는다. 절대 문 쪽으로는 날지 않

남북이 함께 이롭게 하자는 제안을 봐도

는다. 결국은 지쳐 죽어간다. 나비의 본능

공평하게 보지를 못한다. 남쪽에게 이로 운 점은 축소돼 보이고, 북쪽에 이로운 점

이 스스로를 가둔 것이다. 이성이 있는 인간은 좀 다를까? 인간 의 이성은 그렇게 정교한 것이 아니다. 이 성은 원래 본능에 봉사하도록 만들어져

나비는 밝은 곳으로 날아간다. 유리면을 따라 출구를 찾는다. 문쪽으로는 날지 않는다. 한번 형성된 생각을 바 꾸는 것은 쉽지 않다. 나비의 본능이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다.

은 확대돼 보이기 마련이다. 밝은 쪽이 무 조건 출구라고 판단하는 나비와 마찬가 지다. 북한에 유화적인 표현이 단 한 마디 라도 섞인다면 국익을 포기하는 태도라

있다. 하나의 욕구만이 느껴질 때는 인간 은 그것을 바로 한다. 이성은 그 욕구가

능은 집단에서 따돌림 당하면 바로 생명

고 판단하는 것이다. 망상에 빠진 오셀로

채워지기 쉽도록 방법을 찾는 일을 할 뿐

을 위협받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

에게는 데스데모나의 사소한 모든 행동이

이다. 이성은 두 개 이상의 욕구가 충돌할

래서 사람은 자신이 주장하던 논리를 바

뚜렷한 불륜의 증거로 보였다. 북한의 붕

때 비로소 바빠진다. 예를 들어보자. 신상

꿔야 할 때 큰 괴로움을 겪는다. 잘못되

괴에 모든 초점을 맞추는 사람은 우리의

품을 사고 싶은 욕망을 이성이 억제한다

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 느낌을 굳

국익에 도움되는 내용조차 북을 이롭게

고 생각한다. 아니다. 신상품에 대한 소유

이 외면하며 그냥 갈 것인지, 아니면 태도

하려는 의도를 감추기 위해 덧붙인 치장

욕과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는 것을 두려워

를 바꿔 일관성을 잃을 것인지를 선택해

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는 안전의 욕구가 서로 싸우고 있을 뿐

야 한다. 그것이 괴로운 것이다. 대부분의

정보 활용의 기본은 ‘판단은 나중에’

이다. 이성은 이를 중재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까지의 자기 주장이 옳다

로 요약할 수 있다. 정보를 먼저 수집하

숙련되지 않은 이성은 올바른 결론으로

는 것을 뒷받침할 자료를 찾는 쪽을 택한

고, 분석을 하고, 그 결과에 따라 목표를

잘 가지 못한다. 하나의 욕구에 핑계거리

다. 모든 자료를 객관적으로 다시 검토하

정한다는 합리적 이성, 이것이 정보를 다

를 대주거나 서로 싸우는 두 개의 욕망 중

고 바꾸는 쪽을 택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루는 태도의 기본이다. 목표를 먼저 설정

더 강한 욕망이 승리할 토대를 만들어주

않다.

하고 정보를 모으는 사람이 정확한 판단

그래서 인간은 한 번 형성된 생각을

을 내리는 경우는 없다. 목표가 먼저 설정

이러한 욕구 중 일관성에 관한 욕구가

바꾸기가 쉽지 않다. 이런 식으로 잘못 형

되면 시각은 왜곡된다. 이것은 인간의 본

있다. 누구나 일관성이 없는 사람을 싫어

성되어 바른 판단을 계속 방해하는, 본능

능이다. 정보기관장이 특정 목표를 고집

한다. 일관성이 없는 사람은 예측이 안 되

도 이성도 아닌 어중간한 놈을 우리는 선

하는 나라는 창을 향해 날아가는 나비의

고,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

입견이라고 부른다. 이성을 주체적 위치

꼴이 되기 십상이다.

는 일에 종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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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308

이종수 팍스코리아나연구소 소장 한성대 행정학과 명예교수

도 넘은 기득권층 부패 자녀취업·학비대납 등 편법 극성… 제도화되기 전 막아야 얼마 전 언론에서 검찰총장이 한 발언을

온 기존의 인식을 뒤집은 조사결과다. 고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

읽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일선 검찰에서

위공직자비리수사처와 같이 강력하고 독

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내놓은 자료를

확실한 입장을 제시하지 않은 채 구속기

립적인 사정기관 설치가 필요함을 확인시

보면 현행 법규상 범죄로 규정하기 어려

소부터 무혐의 처분까지 모든 결정이 가

켜준다.

운 자녀 취업보장, 학비 대납, 장학금 지

능하다는 식의 보고서를 보내 총장의 결

전관예우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사

급, 고액 임대차 계약, 특허 공동등록, 용

정에 의존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법부와 검찰은 말할 것도 없고 공정거래

역발주 등 부패행위가 다양화·은밀화·고

일”이란 얘기다. 비록 검찰총장의 권한을

위원회·국세청·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

도화되고 있다.

분권화하겠다는 선의에서 한 말이라 하

와 국방부·교육부 등 비경제부처에 이르

전직 고위관료들은 대형 로펌과 대기

더라도 한국은 법치국가가 아님을 선언

기까지 거의 모든 정부부처가 ‘갑 중의 갑’

업 등에 취업하면서 ‘범죄수법’ 전수까지

한 것에 다름 아니다. 특정 피의자가 범

으로 행세하며 대형 로펌. 민간기업, 대학

도 서슴지 않는다. 실제로 2011년 3월 공

죄의 경중에 관계없이 구속 기소될 수도,

등에서 수억원의 연봉을 받고 고위직에

정거래위원회를 떠나 한 법률회사로 자리

무혐의 처분될 수도 있다면 그런 사회에

안착하고 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제17

를 옮긴 전 사무처장은 짬짜미 의혹을 받

서 어떻게 공정한 법질서를 기대할 수 있

조)은 “공무원과 공직 유관단체 임직원은

고 있던 한 정유회사가 수천억원대의 과

겠는가.

퇴직일로부터 2년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

징금을 면제받도록 한 혐의를 받았다. 이

최근 판사 사위의 불륜상대라는 의심

속했던 부서 업무와 관련 있는 사기업체

런 사건은 특성상 사법당국에서 공식 개

을 품고 여대생을 청부 살인한 중죄인에

에 취업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

입하기 전에는 사실 여부가 쉽게 확인되

대해 검찰과 법원이 수형기간의 상당 기

만 상당수 퇴직 공무원들이 재직 당시 업

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후배 공무원들이

간을 민간병원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무와 관련 있는 사기업에 취업하면서 유

퇴직한 선배 공무원들의 청탁을 거절하기

호화생활 하도록 허용하고 방치한 행태는

무형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상식

어려운 것도 문제다. 자신들도 머잖아 그

검찰과 사법부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

에 속한다.

길로 들어설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불공정성은 여기서 그치

다. 지난해 사회를 뒤흔든 ‘스폰서 검사’, 권한을 행사하는 검찰권력을 견제하지 않

유관업무 근무경력을 세탁하기 위해

고서는 사회정의를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

퇴직 전 일정기간 동안 업무 관련성이 없

운 지경임을 확인시켜주었다.

는 부서로 옮겨 근무하는 편법이 동원되

사회 각 부문의 부패도에 관한 인식

기도 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12년 8월

조사(2010년)에서 국민이 부패했다고 생 각하는 비율은 사법부 71.1%, 입법부 67.7%, 행정부 64.6%로 나타났다. 사법영 역이 상대적으로 부패가 덜하다고 생각해

사법당국의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들의 눈초리가 따 갑다. 사진은 지난해 말 ‘벤츠 여검사’ 사건 당시 전직 검 사가 특임검사팀에 체포돼 부산지검으로 압송되고 있는 모습

뉴시스

‘벤츠 여검사’ 사건은 무소불위의 막강한

전관예우, ‘범죄수법’ 전수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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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308

뉴시스

뉴시스

지 않는다. 몇 년 전 재벌그룹 자회사에서

행태는 워낙 광범위해 가늠하기조차 쉽지

신입직원 50명을 채용하는데 청와대와 국

않다.

대법원 대법정. 사회 각 부문 부패도 인식조사 결과 사법부가 부패했다는 응답이 입법부, 행정부보다 많았다. 부정부패 문제는 한국사회 안정과 통합을 위한 최우 선 과제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벌어진 전국민주연합노동 조합원의 부정부패 추방 피켓팅

회, 국세청 등 권력기관으로부터 100건이

공직자가 공익(public interests)을 수

넘는 인사청탁이 들어왔다. 기업의 사활

호하기 위해 국민으로부터 부여 받은 권

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권력기관의 청탁

한을 사익(private interests)을 위해 행

바 권력형 부패가 그것이다. 지배집단은

을 거절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간부회

사한다면 그것이 바로 부패다. 경제부처

나아가 사회적 가치의 지속적 장악을 위

의를 거쳐 권력층과 고위공무원의 직계비

관료가 개발지역 예정지 농지를 사들인다

해 특권의 제도화를 획책하게 된다. 특정

속만 배려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더니

거나, 특정주식 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

사회적 제도는 지배집단이 자신들의 이익

수용해야 할 청탁 건수가 3분의 1 정도로

는 위치의 공무원이 해당 주식을 대량으

을 도모하기 위해 만든 도구라 할 수 있

줄었다고 한다.

로 사들였다가 되판다거나, 판사가 가족·

다. 안정된 사회란 지배집단의 특권이 공

국제투명성기구(T I)가 발표하 는

친지가 연루된 사건에서 해당자에게 유리

고화, 제도화되어 소외계층(have-nots)

2011~2012년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한 판결을 하는 등의 이해충돌 행태는 형

의 도전이 억제된 사회다. 그만큼 사회적

Perceptions Index, CPI)에서 한국은

법이 적용되는 부패행위로 규정되어야 마

역동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OECD 34개국 가운데 27위로 국가청렴

땅하다.

어지기 이전 불법화 단계에 놓여 있는 상

도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게 나타 났다. 국민권익위원회 조사도 이같은 실

부패는 기득권층의 특권이 제도로 굳

한국 국가청렴도 OECD 27위

태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사회적 게

태를 확인시켜준다. 부패공직자의 수는

어느 사회나 일정 발전단계를 거쳐 사

임의 룰이 공정하게 유지되고 있는 상황

2007년 761명에서 2008년 835명, 2009

회가 안정화되면 기득권집단이 형성된다.

에서는 기득권층의 특권이 부패로 규정되

년 1226명, 2010년 1652명으로 증가추세

큰 부패는 보통 힘있는 기득권층에 의해,

지만 그것이 굳어지게 되면 제도로서 정

에 있다.

또는 특권층과 연계해 저질러진다. 기득

당성을 획득하고 사회체제는 곧바로 신분

부패 관련 통계치는 그러나 한 사회의

권집단은 권력·부 등 사회적 가치를 부당

사회로 바뀌게 된다.

개략적인 변화 추세만 나타내 줄 뿐이다.

하게 많이 차지한 ‘특권집단’을 말한다. 기

한국사회가 역동성을 상실한 신분사

사정당국에 의해 적발된 부패공직자의

득권집단의 특권이 제도적으로 고착화되

회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려면 기득권층의

수는 거대한 빙산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

면 사회적 게임이 공정하지 않은 계층사

권력형 부패에 대해 보다 엄정한 잣대를

현행법에 의해 위법으로 간주되지 않는

회, 신분사회가 된다.

적용해야 한다. 기득권층의 특권이 제도

온갖 부패행위, 공직자들이 일상적으로

지배집단은 사회적 가치를 획득하기

저지르는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

위해 다양한 부패활동에 관여한다. 이른

화되지 않도록 사회구성원 모두가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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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308

전재원 주시안 총영사, 베이징대 정치학 박사

박 대통령 시안방문 효과 지속 기대 역사와 경제가치 공존하는 시안… 인문유대협력 기대 박근혜 대통령이 6월 말 중국 국빈방문

강화를 중시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국정

사상 최대 규모인 70억 달러짜리 외자 프

에서 1박2일 일정으로 고도(古都) 시안

기조로 내세우고 있는 문화융성과도 일

로젝트다. 박 대통령의 중국방문 추진과

(西安)을 방문한 것은 ‘외교의 결’을 잘 읽

맥상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안과 경

정에서 애초엔 중소기업을 중시하는 현정

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시안은 서부대개발

주를 인문유대협력 시범도시로 선정하는

부 정책방향에 맞춰 심텍, KMW 등 중소

의 거점이며 역사·문화 중심도시로 미래

것을 고려해 볼 만하다.

기업 방문도 고려대상이었다. 그러나 산

한·중협력의 잠재력이 매우 높은 곳이다.

과거에는 한국과 중국동부 연해지역

시성(陝西省) 정부가 삼성전자 반도체공

박 대통령 자서전에 “중국정부는 소강

간 교류가 빈번했지만 최근에는 서부지역

장 건설현장 방문이 양국 경제교류의 상

사회 실현을 위해 신농촌운동과 서부대

과 교류협력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서부

징성이 크다는 의견을 적극 제시하면서

개발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는 대

개발의 교두보인 시안은 한·중 경제교류

삼성전자쪽으로 정해졌다.

목이 나온다. 그런 면에서 대통령의 시안

의 주요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더욱이 삼

또한 박 대통령이 중국의 대표적 역사

방문은 중국 문화에 대한 존중과 양국 우

성전자가 올해 말 완공을 목표로 시안에

유적지인 병마용갱을 돌아본 것은 중국

호증진에 대한 염원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건설 중인 반도체공장 건설현장을 대통령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양

수 있다. 시안을 중심으로 한중 문화교류

이 방문한 것은 한국과 중국서부 경제교

국간 문화교류 및 신뢰관계 강화에 기여

의 지평을 넓혀 나가는 좋은 계기가 될 것

류의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할 것으로 보인다. 병마용갱은 1974년 농 민들이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한 유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건설은 중국 역 청와대

이 틀림없다. 정부는 중국과의 인문유대

적으로 1987년 유네스코(UNESCO) 세 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박 대통령은 병마용갱 관람 뒤 “몇 천 년 전부터 이렇게 정교한 병마용이 있었 다는 게 놀라울 뿐”이라며 “인류를 발전시 킨 문화가 위대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방명 록에 “병마용에서 장구한 중국문화의 진 수를 느끼고 갑니다”는 글을 남겼다. 산시성과 한국 산업통상자원부는 지 난해 11월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현재 구체 적인 연구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 중국 시안공항에 도착한 박근혜 대통령이 권영세 주 중대사(왼쪽 네번째) 전재원 주시안총영사(왼쪽 세번째) 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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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magazine N | 201308

중국을 국빈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산시성 시 안에 있는 진시황릉 병마용갱을 둘러보고 있다.

정도였지만, 지금은 높은 고층빌딩이 즐비

시안은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뽐내는

시안에 진출하는 한국기업이 빠르게 증가

하고, 현대화 요소가 유입된 대도시로 발

자부심의 근원지로 의미 있는 도시이다.

하고 산시성은 서부의 개발 허브로 더욱

전하였다. 중국은 땅이 넓고 물자가 풍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니콜라 사르코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산시성은 우

하여 지역마다 특색음식이 있다. 시안은

지 전 프랑스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미 대

수한 기업환경과 정부의 우대정책, 방대

특히 면 요리가 유명한데 필자는 사오즈

통령,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등 각국

한 내수시장을 갖춘 투자의 적지라 할 수

미엔(臊子面, 잘게 다진 고기 면)과 요포

정상이 잇따라 시안을 방문한 것도 그 때

있다.

미엔(油泼面, 매운 비빔면), 궈쿠이(锅盔,

문이다.

밀전병)을 좋아한다.

시안은 중국문화의 정수이자 시진핑

박 대통령 “속마음을 아는 오랜 친구”로 불려

시안의 기후는 겨울에 춥지 않고 여름

주석의 정치적 고향이기도 하다. 중국인

앞으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엔 덥지만 습도가 높지 않아 크게 불편하

들은 자신을 진정으로 알아주는 벗 ‘지기

체결되면 한국과의 경제협력은 중국 서부

지 않다. 단지 겨울에 바람이 적어 스모그

지우(知己之友)’를 중시한다. 시 주석은

지역이 동부보다 더욱 강화될 것이다. 산

가 자주 발생하는 것이 환경 과제이다. 주

박 대통령을 자신들의 속마음을 알아주

시성에서 생산되는 사과, 키위, 포도는 전

시안 총영사관 관할지역인 산시성, 간쑤

는 오랜 친구 ‘라오펑요우(老朋友)’라 칭

국에서 유명하고, 산시성의 동천시와 상

성(甘肃省), 닝샤우히족(寧夏回族)자치구

했다. 라오펑요우는 어려울 때 서로 기댈

낙시는 약재가 풍부하다. 자유무역협정

와 한국의 교류는 최근 몇 년 사이 급속

수 있는 지속적인 신뢰관계를 표현한 말

을 통해 관세장벽을 낮추면 양질의 농산

히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닝샤

이다.

물을 한국에 수출할 수 있어 농민소득 증

우히족자치구 인촨과 인천 사이 직항로가

박 대통령이 시안 방문을 통해 중국

가에 기여할 것이다. 산시성은 광산자원

개설됨으로써 인적·물적 교류가 급증할

인과 진정한 벗이 되어 깊이 공감하는 모

도 풍부해 그 잠재적 가치가 42억 위안

여건을 갖췄다.

습을 보여준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

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된다. 석탄·석유·

역대 한국대통령 중 처음인 박근혜

정상외교는 당장 효과가 나타나기보다 보

천연가스 매장량은 중국 내 3위를 차지하

대통령의 시안 방문은 한·중 관계의 구체

약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우러나오는 효과

고 있다.

적이고 실질적인 변화 발전에 중요한 디딤

가 있다. 이번 방중 정상외교는 앞으로 한

20년 전 필자가 처음 시안을 방문했

돌을 놓았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표

국 외교의 이정표가 될 한·중 관계에 두

을 때 ‘유구한 역사를 지닌 고도’라는 느낌

현이 어울리는 역사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고두고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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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308

알파고 시나씨 Alpago inasi 터키 지한통신사 한국특파원

6·25전쟁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한국 임진각·땅굴·백령도를 관광지로 만들어 내 고향은 터키 동부지역 끝에 있는 으드

화관광부 관리에 들어가 예전 낙서들은

다. 백령도의 아름다운 생태보다 더욱 신

르(Iğdır)다. 이 도시에서 40분 정도 떨

없어졌고 복구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기한 것은 바로 11km 앞에 북한이 있다

어진 곳에 이스학 파샤 궁전(İshak Paşa

감동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궁

는 사실이다. 만약 아버지가 한국에 오신

Sarayı)이 있다. 오스만 제국 시기 동부지

전은 무료가 아니었다. 2명이 30리라를

다면 무조건 모시고 갈 곳 중 하나가 백

역을 지배한 곳이다. 어린 시절 그 궁전으

내야 하니 슬펐다. 궁전을 둘러보며 친구

령도이다.

로 소풍을 가곤 했는데, 벽 곳곳에 이런 낙

에게 “터키 유적지 운영을 한국인에게 맡

한국의 창의적 작업은 기억 속의 가

서가 있었다. “알리는 레일라를 사랑한다”

겨야겠어”라고 말하자 그 친구는 깜짝 놀

장 충격적인 사건을 토대로 활발한 외

“여기 귀신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낙서들

랐다. 나는 전 세계에서 아마도 가장 위험

교사업을 펼치는 데서도 볼 수 있다. 즉

로 가득한 그 벽이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

한 지역인 임진각을 공원으로 만들어 관

6·25전쟁 참전국들을 형제로 삼아 특별

적지라는 것을 알게 됐다.

광지로 활용하는 한국인이 정말 천재적이

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한국의 수많은 재

라고 생각했다.

단과 협회가 6·25전쟁 관련 사업을 한다.

작년 여름 한 일본인 친구와 그 궁전

일부 단체는 참전용사의 자손들에게 한

을 다시 방문했다. 행복하면서 동시에 슬 펐다. 궁전은 문

알파 고

시나 씨

할아버지의 슬픈 추억을 자산으로

국에서 장학생으로 유학할 기회도 준다.

한국인들의 대단한 작업 중 하나는

한국전쟁기념재단 정보에 따르면, 미국 같

할아버지의 슬픈 추억으로 관광산업을

은 초강대국에서도 이 장학생 프로그램

하는 것이다. 북한이 파놓은 땅굴을 외

으로 유학생이 온다. 일부 NGO도 자손들

국인에게 보여주는 것 역시 고마우

에게 장학금을 지원한다.

면서도 용감한 일이다. 다른 나

6·25전쟁 발발과 정전협정 체결 시기

라들은 위협적인 사건을 숨

가 가까운 것도 어쩌면 행운이다. 매년 6

기려 하지만 한국은 관광지

월25일과 7월27일 큰 행사들이 열려 많은

로 만들어 돈도 벌고 보다

참전국 대사들이 참석한다. 이를 통해 참

더 안전한 이미지를 심어

전국들이 6·25전쟁을 일년에 한달 정도

주고 있다. 이런 창의적

기억하게 해주고, 그 형제의식이 식지 않

인 관광산업은 38선에

고 따뜻하게 만든다.

만 있는 게 아니다. 백령 도와 연평도도 마찬가지

불행이 행운 되는 ‘역발상’

6·25전쟁이 가장 많이 쓰이는 분야 지난 3월 터키에서 열린 ‘한국-터키 민주화 워크숍’에 참석한 한국인 방문단 을 위해 터키 요리사가 태극기와 터키 국기가 그려진 디저트를 준비했다.

에는 교육도 있다. 학생들은 미술시간에 파란색으로 한반도 그림을 그리며 통일을 꿈꾼다. 한국학생들은 외국에 나가면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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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308

뉴시스

뉴시스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6·25 사진전이 6월28일~7월 4일 미국 로스앤젤리스 갤러리아 마켓에서 열렸다. 경기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자유의다리 철책 에 희망의 메시지가 적힌 리본이 매달려 있다.

이념이 갈린다. 하지만 이런 이념 차이는

의 정치제도 변화는 터키보다 더 쉬울 수

적어도 터키보다 크지 않다. 대학시절 한

있다.

국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봤다. “한국

가끔은 우리에게 불행한 일로 보이

단된 조국을 통일시킨다며 더욱 부지런해

에서 민족주의적이지 않은 정당이 있니?”

는 것들이 행운이 되기도 한다. 결론적

진다. 이는 6·25전쟁의 역사적 감정이 지

한국엔 공산당, 사회당, 노동당이 없다.

으로 한국인들이 오늘날 이렇게 선진국

닌 효과이다.

6·25전쟁은 한국의 이념적 간극을 줄여

수준으로 잘 살게 된 원동력 중 하나는

6·25전쟁은 정치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 사건이다. 단점도 있겠지만 이런 현상

6·25전쟁이다. 한국인은 할아버지의 슬

미쳤다. 지금 한국 정당들은 대한민국 분

의 장점은 이념이 가까워서 정치계가 보

픈 추억을 많은 행복한 일들로 바꿔가고

단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있다.

터 키 유 머

어이없는 테멜 아저씨 이야기

국에 ‘최불암 시리즈’ ‘사오정 시리즈’ 같은 유머가 있었다면 터키에는 ‘테멜 아저씨’ 시리즈가 있다. 터키 신문에서는 칼럼 아래 칼럼니스트 한 가 직접 소개하는 ‘유머란’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시나씨 특파원이 전하는 ‘테멜 아저씨’ 얘기를 들여다보자.

#1

테멜이 분실된 주민등록증을 다시 발급 받기 위해 동사무소에 갔다. 공무원이 테멜에게 이름을 물었다. 그러자 테멜은 “이 름은 테멜이고, 성은 이시욕”이라고 답했다. 공무원이 계속해서 질문했다. “생일이 언제에요?” 그러자 테멜은 “7월 28일”이 라고 답했다. 테멜의 답변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공무원이 다시 물었다. “몇 년인가요?” 테멜은 쿨하게 이렇게 답했다. “매년!”

#2

테멜이 작은 실수로 감옥에 들어가게 됐다. 그 감옥에서 알게 된 친구 한 명이 병에 걸렸다. 병으로 그 친구는 다리 하나를 잘라내게 됐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 이번에는 그 친구의 팔 하나가 잘리게 됐다. 상처가 오염되며 다음에는 다른 다리와 팔도 잘라내게 됐다. 그러자 테멜은 그 친구에게 살짝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모를 줄 알아? 너 이렇게 해서 조 금씩 감옥을 탈출하고 있는 거 아냐?”

#3

테멜과 부인 파티메가 말싸움을 벌였다.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게 된 부부는 필요한 말을 쪽지에 적어 주고받는 식으로 소 통했다. 그러던 어느날 테멜은 자기 전 파티메에게 “파티메, 내일 아침 6시에 날 좀 깨워 줘”라고 적힌 쪽지를 파티메가 볼 수 있는 자리에 놓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테멜이 눈을 떠보니 오전 10시가 된 것이 아닌가. 중요한 회의에 지각하게 된 테멜은 너무나 화가 나서 파티메에게 따지려고 하는데 쪽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쪽지에는 “테멜, 일어나. 6시야!”라고 적혀 있었다.

#4

테멜은 글을 쓸 때마다 장갑을 꼈다. 이러한 모습을 본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테멜에게 왜 그러는 거냐고 물었다. 테멜은 조 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답했다. “다른 사람들이 내 글씨체를 알아보면 안 되거든.”


Perspec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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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308

李中의 觀點, 중국 엿보기 [ 2 ]

중국,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을까 일당체제-개방경제 ‘덩샤오핑 이원론’에 머물러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로 불리는 ‘작은 거인’ 덩샤오핑

덩샤오핑의 이원론(二元論). 이를 협공하는 좌우

시간을 거슬러 올라 1973년, 덩샤오핑이 복권

(左右) 강경파들. 무슨 철학논쟁이 아니다. 아니,

된 직후 어느 날, 저우언라이가 한 뭉치의 서류를

철학논쟁일 수도 있겠다. 세상에 흔히 알려진 중국

덩에게 보여주었다. 복권을 앞둔 당 간부들의 명단

공산당의 권력투쟁은 늘 이런 이론투쟁과 안팎을

이었다. 단번에 이렇게 많은 노(老) 간부들이 풀려

이뤄왔다.

나는 것을 마오쩌둥이 허락할까 걱정하는 덩샤오

이원론의 주된 골자는 경제개혁에서 부르주아

핑에게 저우언라이가 말했다. “이 일은 주석이 내

자유화를 추진하면서 정치에선 이를 허용하지 않

게 맡긴 일이오. 전국 현, 시 급 이상 간부 가운데

는 것. 정치는 공산당 일당체제를 유지하되, 경제

현재 심사를 받고 있는 사람이 3700명, 이 가운데

는 개방을 지향해 시장경제를 과감하게 도입한다.

368명은 중앙기관과 국무원 간부, 위원회 국장 급

이런 중국공산당의 이원론적 입장에 대한 좌우의

이상이오. 몇 십 년 동안 혁명사업을 해온 노 동지

협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들이 7~8년씩 감옥에서 썩고 있었소. 가슴 아픈

극좌(極左)는 이미 꼬리를 내리다시피 했지만 요즘은 정치자유화를 부르짖는 우파의 공세가 거

일이오. 샤오핑 동지. 당신 보기에 이 명단에 꼭 들 어가야 하는데 빠진 사람 있으면 말해보오”.

세다. 공산당의 가장 큰 골치거리다. 전 충칭(重慶)

덩샤오핑은 만년필을 꺼내 문서 뒷면에 네 사

당 서기 보시라이(薄熙來)의 정치적 야망과 실험이

람의 이름을 적었다. ‘완리(萬里) 후챠오무(胡喬木)

막을 내리면서 좌파의 기세는 한풀 꺾인 모양새가

후야오팡(胡耀邦) 자오즈양(趙紫陽)’.

되었지만 보시라이의 ‘타흑창홍(打黑唱紅)’의 여진 (餘震)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시진핑, 똥장군 지는 노역 경험

부패척결(타흑)과 마오쩌둥 찬양(창홍)을 결부

후야오팡과 자오즈양은 대표적인 개혁파로 역

시킨 것은 분명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마오쩌둥 시

사에 기록된다. 공산당 이론가인 후챠오무는 두

대엔 나라 덩치는 컸지만 인민은 배가 고팠다. 고

사람과 첨예하게 맞서 이들의 실각에 일역을 했다.

르게 배고팠다. 평준화된 가난이었다. 고달픈 삶을

후챠오무만이 아니고 많은 당 원로들이 두 개혁파

인민들은 함께, 고르게 나누었다. 배고프다는 원

의 실각에 앞장섰다. 대표적 인물은 천윈(陳雲), 경

성은 있었지만 오늘의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

제통인 그는 먼저 사회주의 경제의 골자인 계획경

貧)’ 같은 불평등에 의한 ‘배 아픔’은 없었다.

제의 붕괴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보시라이의

보시라이 좌파는 바로 그 점, ‘배 아픔’을 노렸

아버지 보이보(薄一波)도 강경파였다. 자오즈양 실

다. 소외계층의 ‘배 아픔’ 현상을 부패척결과 결부시

각엔 리펑(李鵬)도 큰 몫을 했다. 그러나 덩샤오핑

이중

켰다. 그는 중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 충칭

은 자오즈양을 실각시키면서 제3의 인물이라 할 장

연변과기대 명예총장, 전 숭실대 총장, 중국학자, 시인

을 실험무대로 삼아 중국공산당 최고위부 진입을

쩌민(江澤民) 상하이 시 당 서기를 당 총서기에 앉

노렸고 그 이후까지도 노림수의 대상으로 삼았다.

혔다. 리펑은 국무원 총리로 균형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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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308

신화사

청와대

시진핑(뒷줄 맨 왼쪽) 가족. 앞줄 가운데가 시진핑의 아버지 인 시중쉰, 왼쪽이 어머니, 오른 쪽이 이모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주 석으로부터 선물받은 서예액자. 당나라 시인 왕지환 시 ‘관작루 에 올라(登觀雀樓)’ 중 ‘천리 밖 까지 멀리 바라보려면 누각 한 층을 더 올라가야 하리(欲窮千 里目 更上一層樓)’는 구절이다.

후야오팡, 자오즈양 두 사람 다 덩샤오핑의 절대

시진핑은 신중하고 관후한 인품으로 알려져 있

적 지지로 개혁에 앞장섰다. 경제개혁과 정치개혁을

다. 리커창은 활달하고 논리적이다. 시진핑은 체질

한꺼번에 이루고자 했다. 엄청난 반발이, 폭풍이 몰

적으론 아버지 시중쉰의 DNA로부터 일탈하기가

아쳤다. 덩샤오핑은 두 사람의 강력한 후견인이었지

어려울 것이다. 시진핑을 시장(市場)친화적, 실용적

만 결국은 좌우협공 속에서 곱사등이가 되고 말았

이며 실사구시(實事求是)에 강하다고 보는 것도 다

다. 그러나 후야오팡이 결정적으로 실각하게 된 배경

분히 아버지 시중쉰을 떠올리기 때문이 아닐까. 시

은 세대교체 주장이었다. 표적은 덩샤오핑. 함께 물

진핑은 이제 막 10년 집권의 출발점에 서 있다.

러나자고 했다. 덩샤오핑은 물러서지 않았다.

시진핑은 청소년 시절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대부분의 당 원로들이 후야오팡에 적대적 입

문화혁명 때까지도 아버지의 후광으로 당 간부 자

장을 취할 때 그를 감싸고 돈 사람은 시중쉰(習仲

녀들이 다니는 베이징의 학교에 다녔다. 1966년부

勛)이 거의 유일하다시피 했다. 덩샤오핑이 중국 개

터 10년 가까이 시진핑은 서북의 오지에서 똥장군

혁개방의 총설계사였다면 시중쉰은 아이디어맨으

을 지며 제방쌓기 등 힘든 노역을 감수해야 했다.

로 일등 공로자였다. 그런 두 사람도 후야오팡을

시진핑에 대한 기대가 큰 것도 냉온탕을 왔다갔다

둘러싼 갈등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시중쉰은 부총

한 그의 값진 인생역정 때문 아닐까 싶다.

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후야오팡의 개혁을 완강하게 거부했던 보이보

시중쉰, 오늘의 중국 국가주석 겸 당 총서기 시

의 아들 보시라이는 ‘창홍’의 깃발을 거창하게 내걸

진핑(習近平)의 아버지이다. 1953년 시진핑이 태어

었지만 아내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살이를 하고

날 때만 해도 시중쉰은 당의 실력자였다. 그러나

있다. 시중쉰의 아들 시진핑은 국가 최고권력자가

1962년 모함으로 당 선전부장에서 쫓겨났다. 이어

되었다. 하지만 오늘 이 시점의 그는 시중쉰이 밀었

문화혁명 10년, 통틀어 그의 고초는 장장 18년이었

던 후야오팡, 자오즈양의 개혁이념을 이어받은 우파

다. 덩샤오핑의 복권, 등장과 때맞춰 시중쉰도 광

세력의 파상공세 앞에 최후의 방어자가 돼있다.

둥(廣東)성 당 서기, 국무원 부총리로 화려하게 부 활했다. 거기까지였다.

박 대통령에게 ‘등관작루’ 족자 선물

그 뒤로 후야오팡 집안과 시중쉰 집안은 좋은

역사는 늘 이런 아이러니를 즐기는 것 같다. 중

관계를 이어왔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해마다 설날이

국공산당은 덩샤오핑의 이원론에서 아직은 한 발

면 시진핑은 후야오팡 미망인을 찾아뵙고 문안을

자국도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 있다. 중국이 한 단

드렸다. 시진핑 앞의 국가주석 후진타오 역시 해마

계 높이 올라갈 수 있을까. ‘아직’일지, ‘언젠가’일지,

다 후야오팡 가족을 찾았다. 후야오팡은 중국 공청

그것이 궁금할 뿐이다.

단(共靑團)의 대부이다.

시진핑은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족

후진타오는 덩샤오핑에 의해 점지되어 정상에

자를 하나 선물했다. 당(唐) 시인 왕지환(王之煥)

올랐지만 그의 정치적 배경과 기반은 공청단이다.

의 ‘등관작루(登觀雀樓)’란 시가 적혀있었다. “천리

공청단은 후진타오의 정치적 고향이다. 후진타오와

밖까지 멀리 바라보려면 누각 한 층을 더 올라가야

시진핑은 후야오팡 말고도 칭화(淸華)대학 동창으

하리(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한·중 관계에 국한

로도 연결된다. 시진핑에 이어 1인자에 버금가는 2

된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의 눈높이가 올라갈 때마

인자가 된 총리 리커창(李克强)은 공청단 인맥이다.

다 세계가 변한다.


Perspec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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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308

김용길의 편집력 시대 [ 2 ]

마음을 편집하고 산다는 것 내 삶을 다독거려 줄 몇몇 아포리즘

사람과의 관계를 맺고 끊어야 할 때가 있다. 지리멸

부했습니다. 11학년이 되었을 때 거처는 옮기더라도 더 이상

렬한 인연의 흔적이 한둘인가. 헝클어진 나의 삶을

학교는 옮기지 않겠다고 어머니께 말했습니다. 대학에 가려면

시원하게 청소하고 재배치해야 할 때가 있다. 시기

저에 대해 잘 아는 선생님의 추천서가 꼭 필요했기 때문입니 다. 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학교에 갔고 밤 11시가 되어서야

적절하게 정리되고 새롭게 의미부여 될 때 나의 영

돌아왔습니다. 전 똑똑하다는 것에 언제나 자신감을 가졌어

혼은 재충전되어 새 출발할 수 있다.

요. 주변에서 ‘노숙자니까 대충 해도 돼’라고 말하는 것이 가

비우고 채우고 다시 텅 비우는 과정 속에서 유

장 싫었습니다. 전 가난이 결코 변명거리가 되지 못한다고 생

한한 생은 알알이 익어간다. 호젓이 떠난 남쪽바다

각해요. 제 이름은 카디자 윌리엄스입니다. 더 이상 사람들은

올레길 키오스크에 쓰인 한 줄의 문장이 내내 입안

저를 노숙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에 맴돈다. 그가 보내온 이메일 속 고백 한줄기가

-노숙자의 딸로서 하버드대학에 입학한 카디자 윌리엄스

장편소설 한 권보다 가슴을 찌른다. 삶의 산책길 주변에 많은 잠언과 금과옥조의 경구들이 흩어져

2009년 6월 미국 <LA타임스> 기사 하나가 미국

있다. 한나절 지치도록 자전거 페달을 밟아 강줄기

인의 심금을 울렸다. 당시 18세 홈리스 흑인소녀 카

가 드디어 바다로 진입하는 지점에 이르렀다. 느티

디자 윌리엄스의 극적인 인생 스토리 때문이다. 카

나무 그늘 아래 나무벤치. 먼 데서 건듯 불어온 바

디자는 미혼모 엄마가 14세 때 낳았다. 모녀는 컨테

람 한줄기가 이마를 어루만지듯 내 삶을 다독거려

이너 박스나 노숙자 쉼터에 머물다 여의치 않으면 ‘이

줄 몇몇 아포리즘을 모아본다.

사’ 했다. 이 때문에 카디자는 고교 때까지 12년 동 안 12곳의 학교를 다녔다. 노숙자들이 “너는 빈민가

“노숙자 주제에 대학은 꿈도 꾸지 마라.” 사람들은 항상 같은

출신이니 대학은 꿈도 꾸지 말라”고 놀렸지만, 카디

말을 했습니다. 저는 노숙자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항상 머리

자는 자신의 재능을 믿었다. 엄마는 그녀를 ‘오프라

를 단정하게 했고 옷도 깨끗하게 입었습니다. 이를 악물고 공

윈프리’라 부르곤 했다. 하버드대학 입학사정관은 강 조했다. “이 학생을 뽑지 않으면 제2의 미셸 오바마

노숙자 출신으로 하버드대학에 입학한 카디자 윌리엄스의 장래희망 은 교육전문 변호사다. 고교 졸업식 연설에서 그녀는 말했다. “한 달에 다섯 권의 책을 꼭 읽었습니다. 뉴욕의 모든 신문을 정독했습니다. 거리 의 길바닥은 제게 세상에서 가장 넓은 공부방이었습니다.” LA타임스

를 잃는 것이다.” 카디자는 브라운, 컬럼비아, 암허 스트 등 20여 개 대학의 합격통지서를 받았고 그 가 운데 하버드를 선택했다. LA타임스 기사제목은 ‘그 녀에게 마침내 하버드라는 집이 생겼다(She finally has a home: Harvard)’였다. 용기를 내어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김용길 동아일보 편집부 차장

-폴 발레리 (프랑스 시인·비평가·사상가 1871~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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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308

참 무서운 경구다. 많은 대한민국 중년남자들

가 펴낸 책이다. 이 간호사는 수년간 말기환자 병

이 이 문장을 좌우명으로 삼고 살지만 현실은 녹

동에서 일하며 환자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보여

록지 않다. 오늘 하루도 사는 대로 살아갈 수밖에

준 ‘통찰’을 꼼꼼히 기록했다. 사람들은 임종 때 경

없기에 의지는 여리고 희망은 멀다. 타성의 뱃살은

이로울 정도로 온전한 정신을 회복하는데, 저마다

두꺼워지고 머릿속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소극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지만 놀랍게도 후회하

적 관성에 길들여져 간다. 자, 단 하루라도 자기 생

는 것은 거의 비슷했다고 한다.

각대로 주체적으로 판단하여 실천의 발걸음 뚜벅

가장 큰 회한은 ‘타인의 기대에 맞추지 말고,

뚜벅 걸어보면 어떨까. 하루를 건지면 한 달도 건질

스스로에게 진실한 삶을 살 용기가 있었더라면’ 하

수 있다.

는 것이었다. 어떤 것을 하지 않기로 한 자신의 ‘선

사람이 생을 마감한 뒤 남는 것은 ‘쌓아온 공적’이 아니라 ‘함 께 나누었던 것’입니다.

-미우라 아야꼬 (일본 소설가 1922~1999)

택’ 때문에 꿈의 절반조차 이루지 못한 채 죽어야 한다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일 좀 덜 할 걸’ 하는 후회는 모든 남성에게서 나타난 공통점이었다. 동 시에 자신의 감정을 억누른 ‘부작용’을 지적했다. 그

소설 <빙점>으로 유명한 일본 여성작가 미우라 아야꼬가 남긴 유언이다. 그녀는 독실한 크리스천 주부였다. 남편의 수입이 변변찮아 구멍가게를 열 었는데 친절하고 정직하게 물건을 팔아 손님이 많 아졌고, 급기야 하루 종일 가게에 매달릴 정도로

들은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해 내면에 쌓인 냉 소와 분노가 ‘병’을 만들었다고 여겼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12가지 방법 1.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논쟁을 피하는 것뿐이다. 2.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라.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지 말라.

고객이 쇄도했다. 하루는 퇴근한 남편이 말한다.

3. 잘못했을 경우에는 빨리, 분명하게 잘못을 인정하라.

“우리 동네 다른 가게들은 이제 손님이 거의 없대.

4. 우호적으로 시작하라.

저 건너가게는 아예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더군.”

5. 상대가 선뜻 ‘YES’라고 대답할 수 있게 만들라.

이 말을 들은 미우라는 당장 파는 물건의 종류

6. 나보다도 상대가 더 많이 얘기하게 하라.

를 줄였고 손님들이 찾아오면 이렇게 말했다. “그

7. 상대가 스스로 생각해냈다고 느끼게 하라.

물건은 건너편 가게로 가시면 살 수 있습니다.” 그

8. 상대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려고 진심으로 노력하라.

후 바쁜 가게 일에서 시간여유를 찾게 되자 미우라 는 독서에 빠질 수 있었고, 마흔 두 살에 불후의 명 작 <빙점>을 썼다. 나 죽어 남는 것이 있다면 남에 게 주었던 것이 아닐까. 타인들은 세상에 없는 나

9. 상대의 생각과 욕구에 공감하라. 10. 상대의 고상한 동기에 호소하라. 11. 당신의 생각을 극적으로 표현하라. 12. 도전 의욕을 불러일으켜라.

-데일 카네기(미국 작가·자기계발 전문 강연가 1888~1955)

를 무엇으로 기억할까. 나에게 유익한 일은 오직 자 신만이 실감할 수 있지만 타인에게 베풀고 타인을

인간경영 전문 저술가 카네기는 구체적 사례로

도우려 했던 일은 타인들이 두고두고 기억하고 칭

써 청중을 설득하는 연설로 유명하다. 인간관계 인

송한다. 그것이 진정한 유산일 것이다.

간심리를 전문적으로 천착하면서 소통과 화술의

말기환자들이 죽을 때 후회하는 5가지 1. 내 뜻대로 살 걸 2. 일 좀 덜 할 걸 3. 화 좀 더 낼 걸 4. 친구들 챙길 걸 5. 도전하며 살 걸

중요성을 강조한 최고의 컨설턴트였다. 사회적 대 인관계의 절반 이상은 타인 설득과정이다. 설득하 고 설득 당하는 일상이 인생살이다. 위 12가지 설득지침은 매출만 추구하는 겉핥기

2012년 초 영국신문 <가디언>은 화제의 책

마케팅 지침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윤택하게 하는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The top five

대인관계상의 편집 방침이다. 프랑스 철학자 라 로

regrets of the dying)>를 소개했다. 오스트레일리

슈푸코는 말했다 “적을 만들려거든 친구에게 이겨

아에서 말기환자들을 돌봤던 간호사 브로니 웨어

라. 벗을 만들려거든 친구가 이기게 하라.”


Think T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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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인스트튜트는 청소년 교육에 주목한다. 고창 중학교에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파스트라이 시 소장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혼다 히로쿠니 도 쿄대 경제학 교수를 비롯해 중국·인도네 시아·인도 등 각국의 석·박사급 인재 20 여 명이 함께 작업하고 있다. 연구인력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아시

국경 넘어 통합·협력 연구모델 만든다 글로벌 네트워크로 움직이는 ‘The Asia Institute’

아 인스티튜트는 아시아의 청소년과 여성, 과학기술이 사회문화에 미치는 영향, 교 육 문제 등에 집중한다. 파스트라이시 소 장은 “이러한 것들이 아시아의 미래를 위 해 중요하고 신중한 분석과 토론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재 시행중인 프로그램은 3E, 기술융 합, 한-인도 비즈니스 정책, 핀란드-동아 시아, 아시아 여성 등이 있다. 3E 프로그램 은 환경(Environment), 에너지(Energy), 경제(Economy)의 앞글자를 따온 것으 로 일본 추쿠바 대학의 3E 포럼과 협력해

김남주 기자 david9303@theasian.asia

아시아지역을 대상으로 한 연구기관이 여

는 진지한 토론이 부족하다”며 “국경을 넘

2009년부터 진행됐다. 아시아와 세계의 모

어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분석

델이 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생태도시를

과 토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일본·중국 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럿 있지만 균형 잡힌 관점에서 연구활동의

연구소에 참여하는 회원과 그들이 운

국제화를 이룬 곳은 흔치 않다. 오늘날 세

영 중인 프로그램 면면을 보면 접근방식

기술융합 프로그램은 카이스트, 한국

계적으로 경제·금융·기술 통합 움직임이

을 짐작할 수 있다. 아시안 협력전략 프로

전자통신연구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활발한 가운데 지역연구도 그에 발맞춰 협

그램 디렉터인 후첵텍(Foo Check Teck)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그 외 다른 연구기

력·통합적 방법론을 필요로 한다.

박사, 라크빈더 싱(Lakhvinder Singh)

관, 벤처기업과 협력해 운영한다. 조엘 몸

서울 서초동에 사무실을 둔 아시

한국-인도 비즈니스 정책 포럼 회장, 마

버거 박사가 이끄는 이 프로그램은 기술

아 인스티튜트(The Asia Institute)는

쿠 하이스카넨(Markku Heiskanen) 핀

융합에 대한 정책을 논의한다.

아시아 전 지역 이해당사자들의 대화채

란드 전직 외교관, 존 페퍼(John Feffer)

널을 자임하며 2007년 출범한 연구소 다. 임마누엘 파스트라이시(Emanuel Pastreich·49)소장은 “아시아가 지적, 기 술적, 재정적 측면에서 세계의 허브로 자 리잡고 있지만 정작 아시아인들 사이에서 2010년 한 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서 개최한 세 미나. 왼쪽 부터 러시아 유학생 비탈리 자 카로 프 (Vitaliy Zakharov), 인도 유학생 아킬 카시나트(Akhil Kashinath), 파스트라이시 소장, 중국유학생 왕양 (Wang Yang), 송인진 원자력 안전기술원 수석연구원

연구소는 또 라크빈더 싱 박사가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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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는 한국-인도 비즈니스 정책 포럼의 파트너로 한국-인도 산업·정치·문화 협 력을 위해 다양한 대화의 장을 만들고 있

INTERVIEW 파스트라이시 소장

“환경파괴·빈부격차… 아시아 공통과제에 집중”

다. 핀란드-동아시아 프로그램은 핀란드 와 동아시아 사이의 연계와 협력의 기회 를 모색한다. 외교관 출신으로 아시아 전

임마누엘 파스트라이시 소장은 고교 시절부터 아시아에 끌렸다.

문가인 하이스카넨이 선임연구원과 프로

그래서 간 대학이 예일대 중문과였다. 국립대만대 교환학생으로 1

그램 디렉터로서 핀란드의 대표 연구기관

년간 대만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학부 졸업 후 1991년 그의 발걸음

인 VTT와의 가교 역할도 맡고 있다.

이 닿은 곳은 일본. 도쿄대에서 비교문화학으로 석사를 취득했다. 박사학위는 하버드 대학원에서 ‘한·중·일 통속소설 수용과정 비

영어 기반 6개 언어로 소통

연구소는 전통적 의미의 씽크탱크와

교연구’로 받았다. 그리고 한국에 왔다. 파스타라이시 소장은 “학부 시절부터 동북아가 세계의 중심이 될 거란 막연한 느낌이 있었다”면서 “오늘날 한류 흐름 속에는 전

좀 다르다. 상근 연구원도, 연구시설도 갖

세계인들의 한국탐험 욕구가 들어있다. 내가 중국과 일본 문화에

추지 않았다. 대신 NGO, 연구기관, 정

대한 탐구를 거쳐 최종적으로 한국에 닻을 내린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인

부, 기업과 폭넓은 결연을 맺고 아시아 각

아내와 결혼해 장인으로부터 ‘이만열’이란 한국이름까지 받았다. 한국어도 유창하게 한다.

국의 젊은 사람들과 SNS, 홈페이지 등 을 통해 상호작용하고 있다. 인터넷의 이 점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다. 홈페이지

연구소 설립 배경은? “주미 한국대사관 홍보원(KORUS House) 이사로 있으면서 ‘다이나믹 코리아’를 발간했다. 당 시 ‘동아시아 정치·경제’에 관한 강연시리즈를 기획했는데 지금도 홍보원의 주요사업으로 큰

는 영어를 기본으로 한국어·중국어·일본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일을 하면서 연구소를 설립하고 싶은 꿈이 생겼다. 충남도지사 국제관

어·프랑스어·스페인어를 지원한다.

계보좌관 겸 우송대 교수로 일하면서 아시아 인스티튜트를 설립했다. 2007년 6월 일이다.”

아시아 인스티튜트는 청년들의 참여 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청년들이 정책입안 자와 전문가에게 관심사를 직접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면서 의미 있는 논

연구소의 비전은? “아시아는 경제와 지식 면에서 빠르게 세계의 중심이 되고 있다. 그러나 군비증강, 성장을 위 한 잘못된 계획, 생태학적 부진, 환경부담, 기술의 무분별한 사용, 소비 지상주의에서 오는 전 통문화 쇠퇴가 아시아의 거대한 잠재력을 누르고 있다. 아시아 인스티튜트는 이 같은 일련의 이슈에 집중해 시대를 이끌어갈 더 큰 아시아의 비전을 보여주고자 한다.”

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개인적 관심사는 무엇인가.

파스트라이시 소장은 “요즘 시대의 전문

“한·중·일·미 간 공동연구 추진이다. 워싱턴 주미대사관에서 정무·공보 공사 자문관을 지

가들은 청년들의 경험으로부터 많은 것을

냈고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한국 대사관에서 미국 국내·국제 정책에 관한 자문, 외교행사 주

배우고 있다”며 “청년들과 다음 세대에게

관, 한국정부에 대한 현안 보고서 작성을 담당했다. 워싱턴에서 일본과 미국 정부가 관련된 문

권한을 위임해줄 전문가들이 함께 협력해

화·경제 관련 합동 프로젝트를 주관하기도 했다.”

전 아시아 지역을 연결하는 다리를 만드 는 중”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그린 유

홈페이지를 보면 청소년 대상 행사를 자주 여는 것 같다. “진부하지만 청소년은 우리의 미래 아닌가. 개인적으로 그들에게 배우는 것도 많다. 청소년뿐 아니라 청년에게도 기대가 크다. 요즘 시대의 전문가들은 청년들의 경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스 서밋’을 열어 왜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앞으로 계획은?

지를 아시아적 관점에서 풀어 학생들의

“연구소를 사단법인화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연구소에서는 세계적인 석학들과 학생들 만남

호응을 이끌어 냈다. 파스트라이시 소장

을 힘닿는 한 많이 주선할 생각이다. 기회가 된다면 청소년과 대학생들의 연구논문집도 내길

은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에 대한 논의를 위해 이전에 불투명했던 문제의 양상을

희망한다.” 파스트라이시 소장은 2011년부터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부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 다. <문화일보> 등 일간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연암 박지원의 단편소설을 영문으로 변역하

분명히 밝히면서 중동 또는 동남아 전문

고 한국 생활의 소회를 담은 책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지난해

가의 견해까지 이끌어 내는 연구소가 되

에는 노엄 촘스키, 프랜시스 후쿠야마 등 세계적 석학 13명과 나눈 대화를 모아 <세계의 석학

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들, 한국의 미래를 말하다>란 책을 내 화제가 됐다.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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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영화, 한 마리 토끼라도 확실히 잡아라 한·중합작 ‘미스터고’ ‘이별계약’ 흥행성공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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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통속적이다. 스토리의 보편성은 여전하나, <선 물>의 ‘한방’이 부재한다. 반전의 임팩트도 견줄 바 못 된다. 리메이크임을 감안해도 둘 사이에 놓인 12년 여란 짧지 않은 시간이 무색하다. 중국에서의 기념비적 성공과 대조적으로 한국에서의 흥행실적 이 저조하다 못해 언급조차 되기 부끄러울 정도로 초라한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위 두 영화는 향후의 합작 방향을 제 시하는 성공적 사례로 손색 없다. 김성수 감독의 <무사>나 허진호 감독의 <위험한 관계> 등에서 드

전찬일 영화평론가

러나듯, 과거엔 우리 배우, 감독, 일부 스태프들이 중국 영화에 참여하거나 로케이션 촬영을 하는 정

최근 선보인 두 편의 화제작은 한·중 합작을 넘어,

도에 그쳤다. 반면 이 두 영화는 투자부터 배급, 개

합작 영화 자체의 어떤 가능성을 제시한다. 7월17

봉에 이르기까지 프로젝트 전반에 걸쳐 긴밀히 상

일 개봉된 김용화 감독의 <미스터고>와 6월20일

호 협업하는 본격적 글로벌 프로젝트로 기획·진행

첫 선을 보인 오기환 감독의 <이별계약>이 그 주인

됐다. “한·중 합작영화들이 영화계에 새 바람을 일

공이다.

으키고 있다”는 진단이 나올 만도 하다.

<미스터고>는 본업인 서커스보다 야구에 걸출

<이별계약>은 아예 중국 대륙을 염두에 두고

한 재능을 보이는 마흔 다섯 살 중국산 고릴라 링

기획됐다. 영화는 대한민국 제1의 영화 투자·배급

링, 그와 가족이나 다름없는 열다섯 살 소녀 서커

사인 CJ E&M이 기획·배급을 맡았건만 이곳에서

스 단장 웨이웨이(쉬자오 분), 그리고 링링을 스카

는 고작 60개 스크린에서만, 그것도 교차상영 방식

우트해 한국 프로야구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으로 선보였다. 개봉 첫날 3000명도 채 되지 않는

‘거물’ 스포츠 에이전트 성충수(성동일 분) 등 세 캐

관객밖에 동원하지 못했다. 박스 오피스 9위에 오

릭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코믹 감동 드라마다.

르더니 당장 다음 날부턴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1985년 출간돼 선풍적 인기를 일으켰던 허영만 원

이 땅의 관객들에게는 처절하게 외면당한 것이다.

작만화 <제7구단>을 자유롭게 각색해 빚어냈다.

그에 반해 한국보다 두 달 여 전인 4월 <이별

<이별계약>은 오기환 감독, 이정재와 이영애 주

계약>은 중국 최대 국영 배급사 차이나필름그룹

연의 <선물>을 역시 자유롭게 리메이크한 코믹 최

에 의해 대대적으로 선보이며 중화권 관객을 사로

루성 멜로드라마다. 5년 간의 ‘이별계약’을 맺는 커

잡았다. 개봉 첫날 1600만 위안(한화 약 29억 원)

플 리싱(펑위옌 분)과 차오차오(바이바이허 분)의

을 벌어들이며, 중국 역대 로맨틱 코미디 최대 흥

사랑과 이별을 축으로 펼쳐진다.

행작 <실연 33일>의 1500만 위안을 넘어섰다. 제작

사실 텍스트미학적으로 두 영화는 크고 작은

비 3000만 위안을 단 이틀 만에 회수했다. 이후 5

아쉬움을 드러낸다. <미스터고>는 스펙터클 층위

주 동안 1억9000만 위안을 벌었다. 한·중 합작영

에서는 수준급 성취를 자랑하나, 드라마 구축 및

화 사상 최고액일 뿐 아니라 중국 로맨스 영화 중 8

안배에서 <오! 브라더스>부터 <미녀는 괴로워>,

위의 대기록이다. 한국 콘텐츠 기획력·기술력이 중

<국가대표>에 이르는 감독의 전작들에 다소 못 미

국의 자본·배급·유통력과 일궈낸 ‘사건’이었다. 오

친다. 상대적으로 성기다. 130여분의 러닝타임이

죽했으면 정상회담 차 중국에 머물던 박근혜 대통

짧진 않아도, 혹 편집과정에서 잘려나간 것 아닐까

령이 한·중 문화산업 분야 성공사례 중 하나로서

싶은 의문마저 든다.

<이별계약>을 들었겠는가.

<이별계약>도 <선물>에 비해 지나치게 무난하

<이별계약>의 기록적 성공이 시사하는 바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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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뉴시스

엇일까. 합작 당사국 모두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

<미스터고>는 중국 3대 메이저 스튜디오 중 하

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어느 한 곳에서라도 확실한

나인 화이브라더스와 함께 제작비의 25%에 달하

수익 등 목표한 성과를 일궈낼 수 있다는 확신이

는 500만 달러를 투자받으면서 큰 화제를 불러일

든다면 주저하지 말고 시도하라는 것이다. 그 시도

으켰다. 그 스튜디오가 나서 중국 내에서 5000개

가 일대 모험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것은 할리우

이상의 스크린을 확보했다. 영화는 7월18일 중국

드가 해를 거듭하며 해외시장에 더 큰 비중을 두

과 싱가포르에서 선보인 데 이어, 8월에는 말레이

는 것과 같은 이치다. 톰 크루즈, 아놀드 슈왈츠제

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대만, 홍콩, 베트남, 몽골

네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윌 스미스, 로버트

등에서, 9월에는 필리핀, 중동 국가 등에서 개봉될

다우니 주니어, 브래드 피트 등 초특급 월드 스타

예정이다. 물론 그 나라 수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들이 올 상반기에만 줄줄이 대한민국을 찾은 까닭

흥미롭지 않은가.

도 그 때문 아니겠는가.

<미스터고>가 한국 안팎에서 거둘 최종 결실은

<미스터고>의 시도는 <이별계약>을 압도한다.

두고 봐야 한다. 하지만 그 결실이 ‘역사적’일 것임은

김용화 감독은 영화를 위해 제작사 텍스터스튜디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이른바 ‘K-Film’의 새로운

오를 꾸렸다. 감당키 불가능한 거액을 요구하는

패러다임을 창조할 것이라는 홍보자료의 캐치프레

통에 외국의 시각효과 업체에 의뢰하려던 당초의

이즈가 과장이나 허풍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이들

계획을 바꿔, 국내 인력들을 모아 그 스튜디오에

의 시도에 적잖은 거품이 내재돼 있으며, 따라서 보

서 주인공 링링을 100%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

다 내실을 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경청할 필요가 있

냈다. ‘4년여에 걸친 기획 및 기술 개발’ 외에도 ‘총

다. 그런 비판은 그러나 또 다른 성격의 문제제기다.

400여 명의 스태프들이 1년 이상의 후반 작업을 거

중요한 건 위 두 영화의 시도와 성공이 그들의

쳐 완성’시킨 한국 최초의 주인공 디지털캐릭터다.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열악한 산업환경 등

링링 등 영화에 등장하는 두 마리 고릴라의 털을

으로 인해 아직 주목할 만한 산업적 열매를 맺지

섬세하게 표현하기 위해 디지털 털 제작 프로그램

못하고 있는 다른 아시아 나라들도 언제든 유의미

인 ‘젤로스 퍼(Zelos Fur)’를 개발했다. 덕분에 80

한 성취를 이뤄낼 수 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

만 개 이상의 털로 뒤덮인 링링의 몸과 표정을 사실

전하고 시도한다면 꿈은 이뤄진다. 그 말 자체는 진

적으로 구현했다.

부하게 들릴지라도.

타이완 배우 펑위옌(31·彭于 晏), 중국 여배우 바이바이허(29· 白百何)가 출연하는 영화 <이별계 약>. 중국 작가들이 시나리오를 쓰고 한국의 오기환 감독이 연출 을 맡았다. 김용화 감독의 스포츠 휴먼 블록버스터 <미스터고>. 중국이 제작비의 25%를 투자해 한국 과 중국에서 동시개봉했다.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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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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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축구공은 정직하다 브라질에 최초 월드컵 안긴 17세 펠레의 꿈 좇아

홍명보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아시아기자협회 홍보대사

앞으로 1년, 브라질월드컵으로 가는 길은 결코 평탄 하지 않을 것이다. 고난과 비난으로 향한 길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뒤돌아볼 겨를도 이유도 없다.

2010년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의 월드컵 트로피 투어에 참가한 펠레가 트로피에 입맞추고 있다.

나는 그 길을 후회 없이 뚫고 나아갈 것이다. 나아가야만 한다. 우리가 승부를 벌이는 그곳은 바

다. 하지만 이들의 기량이 정체되거나 퇴보하지 않

로 펠레라는 20세기 최고의 축구선수를 낳은 본고

도록 축구인과 국민들께서 도와주셔야 한다.

장이다.

은 이유’가 무엇일까 종종 생각해 본다. 그리고 우

톡홀름에서 열린 제6회 월드컵 결승전에서 주최

리 현실을 둘러본다. 20세 이하 대표팀 출신 유망

국 스웨덴을 5대2로 꺾고 우승한 주역이다. 당시 17

주 대다수가 벤치나 관중석에서 선배들 경기를 지

살 소년이었다. 등번호 10인 그는 프랑스전 해트트

켜보게 해서는 안 된다.

릭, 결승전 2골 등 6골을 터뜨렸다. 브라질은 사상

유럽 클럽들은 보통 13세부터 20세 안팎에 이

처음으로 줄리메컵을 안았으며 이후 5차례 월드컵

르기까지 연령별 유소년팀을 보유하고 있다. 각 연

우승을 차지했다.

령별 리그도 활성화돼 있다. 일본의 J리그도 실력

펠레는 브라질 빈민가에서 태어나 축구공 하 홍명보 감독이 축구대표팀 새 사령탑으로 선임된 직후 경기 파 주 축구트레이닝센터(NFC)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이 자 리에서 “한국형 전술, 한국형 플 레이로 월드컵에 도전하겠다. 우 리 선수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플레이로 경쟁력 있는 전술을 만 들겠다”고 말했다.

‘17살 펠레가 이후 20년간 국제무대를 주름잡

펠레가 누구인가. 1958년 6월28일 스웨덴 스

이 엇비슷하면 젊은 유망주를 우선 활용한다.

나에 일생을 걸었다. 13살에 브라질 프로축구 산토

월드컵에서 우리 팀이 어떤 성적을 낼지 기대

스에 입단한 이래 1363경기에 출전해 1281골을 뽑

도, 우려도 많을 것이다. 국민들께 한 가지 당부 드

아냈다. 사람들은 그를 ‘축구황제’로 불렀지만, 그

리고 싶은 말이 있다. 월드컵 결과보다 그를 향해 달

는 결코 오만하지 않았다. 1976년 9월22일 호나우

려가는 과정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한다.

두가 태어나던 날, 35살 나이에 은퇴할 때까지 펠

나는 최고의 선수들을 뽑아서 팀을 만드는 게

레는 그라운드를 누비며 전 세계인, 특히 어린이들

아니라, 최고의 팀을 만들기 위해 선수를 선발할

에게 꿈과 도전정신을 심어주었다.

것이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나는 너희들

펠레의 고향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리 선수들

을 위해 죽을 것이다. 너희들은 (감독 말고) 팀을

이 최선을 다하리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올 7월

위해 죽어라.” 지금껏 말해왔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초 20세 이하 대표팀이 8강에 올라 한국은 2009

나는 이렇게 외칠 것이다.

년 이집트 대회(8강), 2011년 콜롬비아 대회(16강)

‘One Team, One Spirit, One Goal!’ 바로 그

에 이어 최근 3개 대회 연속 16강 이상 성적을 냈

정신으로 오늘도 둥근 축구공을 바라본다. 공은

다. 한국축구의 저변이 그만큼 튼튼해졌다는 증거

정직하다.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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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복수어미 눈( ) 위의 4륜 쌍두마차’에서 남자들은 이야기합니다 말(言)은 남자들의 전유물이라고 하여 말하지 말라고 연애시는 남자만의 예술이라고 하여 사랑하지 말라고 글쓰기는 심해(深海)라고 하여 잠수하지 말라고 나는 많이 사랑했습니다 나는 자주 수영했습니다 나는 바다에 뛰어들었지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수아드 알 사바(Souad Al Sabah) | 시인, 쿠웨이트 왕족, 16회 만해대상 문학부문 수상, 시집 <쿠웨이트 여자> 추천의 말 눈을 번쩍 떴다! 수아드 알 사바 여사의 시는 강물의 긴 시간 위에 있다. 진실의 음향이 출렁인다. 그녀의 시는 태양의 정오를 기억하는 석양의 수평선을 잉태하고 있다. 그녀의 시

는 절규의 모성으로만 가능할 것이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자신의 정체성과 조국에 바치는 저항과 귀의의 제단 앞에서 누가 경건하지 않을손가. 그녀의 여성 선언이야말로 인간 선 언이다. 또한 그녀로 하여금 누구는 저 팔레스타인의 다르위시를, 누구는 제3의 세계사를 지향한 나세르를 새삼 만나게 된다. 수아드 알 사바는 아랍의 한 영광이다. 고은 시인


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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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몬터널과 재일조선인의 오늘 바다 밑 터널 뚫은 강제징용 역사의 현장

글·사진 권기봉

다행인지 불행인지 순직비에는 4명의 조선인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모두 상급 기술자들이다. 당

권기봉 작가는 전 세계를 다 니며 글을 쓰는 역사여행가다. SBS 기자를 거쳐 현재 YTN 라 디오 ‘권기봉의 걸으며 생각 하며’와 EBS ‘요리비전’을 진 행하고 있다. <다시, 서울을 걷 다>(2013)를 썼다.

일본은 혼슈와 홋카이도, 큐슈, 시코쿠 등 큰 섬 4

시 사망한 조선인의 전부는 아님이 짐작된다. 상당

개와 그 외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섬들로 이뤄

수 조선인 하급 노동자들은 순직비에조차 이름이

져 있다. 그 중에서도 혼슈-시코쿠, 혼슈-큐슈 등

오르지 못한 채 죽어간 것이다.

은 터널, 다리 등으로 연결돼 사실상 이어진 땅과 다

그러고 보면 그저 다 끝난 역사 속의 일로만 치

름 없다. 그 중 가장 먼저 연결된 게 혼슈와 큐슈다.

부할 뿐 지난 세기 강제동원의 역사가 현재진행형

1936년 착공해 42년 개통된 ‘간몬(關門)터널’이 그것

으로 남아 있다는 데 관심을 갖는 이는 여간해서

이다. 혼슈의 시모노세키(下關)와 큐슈의 기타큐슈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그 당사자들이 여전히 살아

(北九州)를 잇는 길이 약 3.6km의 해저터널이다.

있다거나 후손들이 오롯이 그 역사를 감내해오고

이 터널엔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돼 노역을 했

있다는 사실 역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 생각

던 조선인들의 넋이 서려 있었다. 간몬터널의 시모

은 간몬터널 북쪽에 위치한 혼슈 서남단 도시 시

노세키 쪽 출입구에 순직비가 서 있다. 철조망 때

모노세키에서 더욱 명확해졌다.

문에 더 가까이 가서 살펴볼 수는 없지만 1942년

그 옛날 조선통신사가 에도로 가는 길에 묵었

간몬터널을 파던 중 발생한 폭발사고로 사망한 이

던 숙소로 쓰인 아카마신궁이 있는 시모노세키.

들을 기리기 위한 순직비가 틀림없다.

하지만 시모노세키에 한·일 우호의 현장만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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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몬터널의 시모노세키 쪽 출입구에는 지난 1942 년 간몬터널을 파다가 발생한 폭발사고로 사망한 이들을 기리기 위한 순직비가 서있다. 조선인도 4명의 이름이 새 겨져 있는데, 그들이 조선인 희생자의 전부는 아니다.

건 아니었다. 재일조선인 2세인 60대 노인 배동록 선생과 함께 시 외곽에 자리 잡은 ‘오츠보(大坪)’라는 동네를 찾았다. 그는 1940년 시모노세키 맞은편 기타큐슈의 야하타제철소에 강제동원돼 고된 노동을 해야만 했던 부모 밑에서 태어난 4남매 중 한 명이다. “이 동네는 오츠보보다는 다른 이름으 로 더 잘 불렸어요. 바로 똥굴마을이죠. 생 활환경이 그만큼 열악했다는 뜻이에요.” 그에 따르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츠 보 근처에는 형무소는 물론 분뇨처리장과 화장장까지 있어 어느 정도 경제력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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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은 살기를 꺼리던 곳이라고 한

를 비롯해 일본의 내해인 세토나이카이

다.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일제강점기에

건너편 시모노세키에 사는 학생들까지 기

강제동원돼 끌려온 조선인들, 해방 뒤에

차를 타고 통학하는 주요 조선학교 가운

는 졸지에 무국적 신세가 된 하층 재일조

데 하나다.

선인들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찾았을 때와 비교해

“이 동네는 오츠보보다 다른 이름으로 더 잘 불렸 어요. 바로 똥굴 마을이죠. 생활환경이 그만큼 어려웠다 는 뜻이에요.” 적막한 큐슈조선중고급학교. 일본 조야의 탄압과 한국 정부의 편협함 탓에 일본 내 조선학교들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 있다.

“일본에서 조선사람들이 할 수 있는

학교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예전과는 달

거라곤 고철을 주워다 팔거나 돼지나 닭

리 교문이 굳게 닫혀 있고 운동장도 적막

잡는 일처럼 험한 일 밖에 없었어요. 고국

해 보였다. 학생들의 모습도 이전과는 달

으로 돌아갈 돈도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

랐다. 교복 삼아 입던 저고리를 입고 있

었던지라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닥치는

는 여학생이 눈에 띄지 않았다. 요 몇 년

교를 지원하려는 한국 시민단체들에 대해

대로 일해야 했죠. 당연히 일본사람들에

새 조선학교 학생들에 대한 일본 우익들

정작 한국정부가 국가보안법 위반 문제를

비해 가난했고, 이런저런 멸시를 많이 받

의 위협적인 언행과 공격이 늘어나자 학생

거론하고 있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았어요. 그러면서 사람이 살지 않는 냄새

과 학부모, 교사들이 회의를 거쳐 치마저

1957년 이래 오랜 기간 북한정부가 조선

나는 공터에 움막이나 함석집을 짓고 살

고리를 입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치마저

학교를 지원해와서다.

기 시작한 겁니다. 이 동네의 역사가, 우리

고리를 입으면 조선학교 재학생이라는 게

사실 조선학교는 북한이 세운 게 아니

재일조선인의 역사가 그랬어요.”

드러날 수밖에 없고, 그러면 학생들의 안

라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

전이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 그 후손들이 해방 직후 세운 학교다. ‘돈

존폐 위기에 몰린 재일조선인학교

이 학교의 윤경룡 총무부장 겸 상임

이 있는 자는 돈을, 힘이 있는 자는 힘을,

새 건물들이 들어서기는 했지만 지금

이사 얘기를 들어보니 바뀐 건 교복만이

지혜 있는 자는 지혜를’이라는 모토로 자

도 시모노세키에서 하꼬방(はこ房), 즉 궤

아니었다. 그 동안 일본정부가 외국인학

손들에게 우리말과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짝 따위로 만든 판자집들이 여전히 남아

교를 포함한 모든 고등학교에 평등하게 지

즉 민족교육을 위해 설립한 것이다. 그러나

있는 마을이 오츠보다. 경제대국 일본의

원해오던 ‘취학지원금’을 조선학교에 대해

부러 색안경을 쓰고 보려는 이에게는 안타

여느 일본인 마을들과는 달리 어두운 구

서만 일방적으로 삭감해버렸다고 한다.

깝게도 원래 색깔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석이 고스란히 엿보이는 마을이다.

고등학생 1인당 약 12만엔, 한화로 약 130

1946년 9월 당시 525개교에 달했던

문제는 그 역사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

만원 정도였는데 그 돈이 끊기면서 조선학

조선학교는 2012년 말 현재 유치원에서부

다는 데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재일조선

교 운영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

터 대학을 다 합쳐 102개교로 원래의 5분

인에 대한 차별과 박해가 여전하다는 것

었고, 그 결과 적잖은 조선학교가 문을 닫

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나마 있는 조선

이다. 간몬터널 남쪽의 기타큐슈에 있는

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리고 있다.

학교들마저 일본 조야의 탄압과 한국정부

큐슈조선중고급학교로 향했다. 큐슈조선

조선학교를 옥죄는 것은 비단 일본정

중고급학교는 학교가 자리한 기타큐슈시

부와 지자체, 우익만이 아니었다. 조선학

의 편협함에 밀려 운명이 경각에 달려 있 다.


Junior AJA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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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 you, but where is my hug?” 주니어 AJA 리포터… 아시아 각국 선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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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80개 민족이 72개 언어를 사용한다. 아프리카에서 식민지배를 받지 않은 유일 한 나라라 그런지 외래문화가 거의 없다. 내 얘기는 에티오피아 지방 85%의 이야 기라고 보면 된다. 사실 에티오피아에선 선물을 주고받는 특별한 날이 없다. 어린 이날이나 어버이날, 심지어 밸런타인데이 도 일부 도시를 제외하고는 없다. 우양가 마딘

여자친구에게 선물 안 주나?

여자친구가 있지만 밸런타인데이를

축하하는 것은 유행을 따라 하는 것처럼 어머니날이나 생일 등 특별한 날 선

보일 뿐이다. 여행을 다녀와서 기념품이

물을 주고받지만 가장 중요한 선물은 포

나 꽃 등을 선물로 주는데 특별한 날을 챙

세계는 다양한 문화만큼이나 ‘선물 풍

옹(hug)이다. 생일날 친구에게 선물을 건

기는 것은 아니다. 생일 축하도 따로 없다.

속’도 다양하다. 언제 어떤 선물을, 누구

네면 이런 답이 온다. “고마워, 그런데 허

한국처럼 태어난 지 처음 1년 되는 날 손

와 어떻게 주고받는지 아시아기자협회

그는 안 해줘?” 생일선물을 준비하지 못

님들을 초대해 특별한 파티를 할 뿐이다.

(AJA)와 ‘아시아엔(The AsiaN)’에서 활

했더라도 ‘허그’면 된다. 멕시코는 ‘터칭

도시에서는 고깔모자를 쓰고 케이크를 자

동 중인 주니어 AJA 리포터들에게 물

(touching) 문화’가 있다. 처음 만난 친구

르기도 하지만, 에티오피아 문화는 아니

었다. 타카하시 타카히로(高橋孝弘, 일

라도 악수를 한 뒤 가벼운 키스를 나눈다.

다. 많은 사람들은 언제 태어났는지조차

본, 선문대) 우양가 아마르멘드(Uyanga

물론 멕시코에 마약, 부패와 같은 사회문

모른다. 생일은 그저 여권에 적힌 날짜일

Amarmend, 몽골, 덕성여대) 찬란홍

제가 많지만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뿐이다. 다만 남의 집을 방문할 때 빈손으

(Chan Lan Hong, 말레이시아, 한국

것은 이런 문화 때문이 아닐까 싶다.

로 가면 안 된다. 음료수 같은 것을 사간

박소혜 기자 fristar@theasian.asia 리사 위터 기자 lisainaja@theasian.asia

사울

다. 대부분의 공휴일은 종교와 관련된 날

트, KDI) 사울 세르나(Saul Serna, 멕

에티오피아에선 생일축하 따로 안 해

시코, 강원대), 마딘 게세스(Maadin

마딘

Sahleselassie Gessese, 에티오피아, 한

고 허그한 뒤 두 볼에 가벼운 키스를 3번

이 주고받는다. 가장 큰 공휴일은 음력설

국외대)가 각국의 선물 문화에 대해 얘기

씩 한다. 이건 동성끼리만 가능한데, 같은

인 차간사르(Tsagaan Sar)와 7월에 열리

를 나눴다.

키스문화라도 민족마다 다르다. 에티오피

는 나담축제다. 차간사르는 ‘하얀 달’을 뜻

에티오피아에서도 인사할 때 악수하

들이고, 국경일은 따로 없다. 우양가

몽골은 공휴일도 많고 선물도 많

김남주

외대) 호삼 솔탄(Hossam Soltan, 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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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데, 전통 옷을 입고 친적집에 방문해 초콜릿이나 옷, 돈 등을 주고받으며 부즈 (buuz)라고 불리는 만두를 먹는다. 몽골

Saul·Mexico

If I give a small gift to someone on their birthday, they will say, “Thank you, but where is my hug?” And you can just give them a hug and that is enough.

에서는 ‘세계 여성의 날’도 중요하다. 매년 3월8일이면 남성이 여성에게 꽃과 초콜릿

Maadin·Ethiopia

을 주고 파티를 한다.

In the cities, people do celebrate birthdays with coneshaped party hats and cakes, but many Ethiopians don’t even know the exact date of their birthdays.

찬란 말레이시아는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

계 등 여러 인종이 모여 산다. 이중 중국 계는 우산과 시계를 선물하면 안 된다. 시

Uyanga·Mongolia

계는 ‘송종’이라 하는데, 발음이 죽음을

In Mongolia, another important holiday is International Women’s Day, which is marked on March 8 every year. On this day, men give flowers and chocolate to women.

뜻하는 말과 비슷하다. 우산의 발음도 화 장 전 산으로 보내는 것을 의미하는 ‘송 산’과 발음이 비슷해서 꺼린다. 중국이 숫

Chan Lan·Malaysia

자 8을 좋아하는 것은 그 발음이 재물이

The common gift that is not supposed to be given is anything that is sharp like a knife or scissors as it means that you are severing the relationship.

라는 단어와 비슷해서다. 무슬림에겐 돼 지나 개와 관련된 선물은 피해야 한다. 또 할랄 제품인지도 살펴야 한다. 할랄은 이 슬람교에서 가축을 고통 없이 도살하는 것을 이른다. 인도계에게 소고기를 주지 않는 것도 종교적인 이유다. 말레이시아 는 서양문화 영향을 받아서인지 생일 때 케이크를 먹지만 선물 대신 대개 돈을 건 넨다. 세 민족 모두 공통적인 것은 칼이나 가위 같은 날카로운 것은 관계단절을 뜻

Takahiro·Japan First say “sorry” and then you can say “thank you.” Also, in Japan, we take into consideration the past, present and future when giving gifts.

Hossam·Egypt When giving someone a gift, you usually use your right hand and if the gift is heavy or big, you can use both hands. And you should always wrap the present.

하므로 선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인에게 시계·우산 선물은 금물 타카히로

외국에선 크리스마스나 밸런타인

이 선물하는 것은 한국에서 돼지가 복을

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초대받은 집을 둘

상징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다.

러보며 칭찬을 과하게 하면 그걸 달라고

호삼

이집트에서 만일 다른 집에 식사 초대

강요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으니 주의해야

데이가 있지만 일본은 그런 날이 없고 설

를 받았다면 반드시 선물을 가져가야 한

한다.

날과 추석이 중요하다. 보통 음식을 선물

다. 과일이나 초콜릿 같은 간식이 좋다. 그

사울

로 주며, 설날에는 아이에게만 돈을 준다.

집에 며칠 머무는 거라면 좀 더 비싼 걸

문화도 소개하고 싶다. 이 날은 모든 사람

일본에선 선물을 받았을 때 ‘고맙다’는 말

가져간다. 아이들을 위해 옷이나 장난감

들이 묘지를 방문한다. 자정까지 무덤 앞

보다 먼저 ‘미안하다’고 말한다. 특히 나

같은 작은 선물을 준비하면 더 좋다. 돈은

에서 먹고 노래하고 춤추며 소풍처럼 즐

이 많은 사람에게 선물을 받았다면 ‘미안

특별한 날에만 주기 때문에 가정집 방문

긴다. 초콜릿이나 사탕을 선물로 주기도

하다’고만 말한다. 선물을 줄 때 과거와 현

에선 필요 없다. 명심할 것은 꽃은 선물해

한다. 상점에서는 사람 이름이 새겨진 두

재,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하는데, 오랜만

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꽃은 병문안 때만

개골 모양의 사탕을 만들어 파는데, 고인

에 만났다면 과거에 대한 선물을 준비하

가져갈 수 있다. 선물은 반드시 오른손으

에게 바치는 특별한 선물이다. 미국 영향

고 새로 만나는 사람에겐 미래에 잘 부탁

로 건네는데, 무겁거나 큰 선물이라면 양

으로 할로윈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

한다는 의미에서 수건 등을 준다. 결혼했

손을 사용해도 된다. 포장도 중요하다. 선

는데, 멕시코 정부는 전통 관습에 따른

거나 가게를 열었을 때 고양이 모양을 많

물을 준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열어보

‘고인의 날’을 더 권장한다.

멕시코에서 11월에 열리는 ‘고인의 날’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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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at convergence of becoming one world The Great Convergence

Asia, the West, and the Logic of One World By Kishore Mahbubani | Public Affairs | 2013

Kishor Mahbubani, a Singaporean scholar and diplomat and the Dean of the 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s Lee Kuan Yew School of Public Policy, takes an optimistic stance as he writes about a new global civilization and world order in his new book, The Great Convergence. His book on the growing divide between the East and the West, Can Asians Think? also received much attention. Mahbubani predicts that we are not far from a global governance system, which will unite regions, civilizations and great powers. However, he calls for the West, U.S. and Europe, to relinquish some of its power and for emerging powers to “stop acting like developing countries” and take on more responsibility. He criticizes that too much of the world’s power is in the hands of Western powers and how the US tries to keep the UN weak. He emphasizes the role of the West to change its attitudes and behavior and “get off the proverbial moral ‘high horse’ and notice that it’s walking on the same moral ground as the rest of the world.” He also points out how institutions of world governance such as the UN Security Council and the World Bank must be reformed. Mahbubani suggests that the people in the world are becoming more and more alike. A growing consistency can be found in the middle classes’ values and aspirations in different regions. 88 percent of the world living outside of the West is rising to Western standards. Also, the interests and behavior of the elite and policy makers are becoming increasingly similar. Overall, he takes a rosy view of the future. He describes how there has been more positive change in the last 30 years than in the last 300. He observes that the world is improving in terms of less wars and conflict, steady decline in poverty, a more educated population and more people joining the middle class. He predicts the endurance of peace and prosperity, “stating that wars among major powers have become a sunset industry.” His predictions could downplay the risk of resurgent nationalism, populism and resource scarcity though. Citizens have greater material aspirations and wish for their nations to focus on economic development rather than war and there is pressure for governments to build better infrastructure to raise standards of living. Mahbubani’s book is a good read full of key insight about world order shift, the future of international organizations and prospects of progress on key global issues.

Lisa Witter lisainaja@theasian.asia

위대한 통합: 아시아와 서구, 그리고 하나의 세계 논리 키쇼어 마부바니 저 | 퍼블릭 어페어즈 | 2013 싱가포르 학자이자 외교관 키쇼어 마부바니 싱가포르국립대 공공정책대학원(리콴유 스쿨) 원장은 최근 출간한 책 <위대한 통합>에서 새로운 세계 문명과 질서에 대해 낙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는 인류가 지역과 문명, 세력을 통합할 글로벌 지배체제를 구성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그 는 세계 권력이 너무 서구 강대국에 집중돼 있다고 비판하며 미국과 유럽은 권력의 일부를 내려놓을 것과, 신흥국가들도 더 이상 개발도상국처럼 굴지 말 고 더 많은 책임을 떠맡을 것을 요구한다. 마부바니는 세계인들이 점점 닮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미 비서구권의 88%가 서구 수준으로 올라섰고, 엘리트계 층과 정책 입안자들의 관심과 행동 역시 점차 비슷해져 간다. 그는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제시한다. 전쟁·갈등·빈곤의 감소, 교육받은 집단과 중산층의 증가 등에 근거해 세계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본다. 또 평화와 번영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세계질서의 변화와 국제기구의 미래, 주요 이슈 전망에 관 한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윤지희 기자 thxright@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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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attered Sand

The World through Arab Eyes

Shooting for a Century

By Hsiao-Hung Pai and Gregor Benton | Verso Books | 2013

By Shibley Telhami | Basic Books | 2013

By Stephen P. Cohen | The Brookings Institution | 2013

The Story of China’s Rural Migrants

Award-winning journalist Hsiao-Hung Pai brings to light the reality of rural migrants in China after spending two years traveling throughout the country visiting laborers at O l y m p i c c o nstr u c ti o n s i te s, c oa l mines, brick kilns, factories, etc. China’s indispensable 200 million rural migrant workers, who are the countr y’s most marginalized and destitute group, are referred to as “scattered sand,” a dismissive term given to the unorganized workforce. Pai portrays these workers as heroic men and women toiling and shedding their blood, sweat and tears to support their families. 흩어진 모래: 중국 시골 이주민들의 이야기 샤오-훙 파이, 그레고어 벤튼 저 | 버소 출판사 | 2013 샤오-훙 파이 기자가 2년 간 중국 전역의 올림픽시설 건설 현장, 탄광, 벽돌가마, 공장 등을 찾아 다니며 지방 출신 이주 노동자들의 실상을 전한다. 중국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임 에도 가장 소외되고 빈곤한 2억명의 이주 노동자들을 사람 들은 흔히 “흩어진 모래”라는 경멸적 어구로 부른다. 저자는 이들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땀과 피와 눈물을 흘리며 애쓰 는 영웅으로 묘사한다.

Story of the Nine Asian Scripts

By Asia-Pacific Center of Education for International Understanding under the auspices of UNESCO | Hallym Publisher | 2013

APCEIU raises awareness of the diversity of cultures and protection of heritages by sharing the nine Asian scripts: Arabic, Chinese, Hindi, Indonesian, Japanese, Korean, Mongolian, Thai and Vietnamese. The book offers a platform to learn about the respective countries and their wisdom, exchange cultures and cultivate respect for one’s culture. 유네스코가 들려주는 아시아 아홉 문자 이야기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 지음 | 조민석 그림 | 한림출판사 | 2013 “문자를 보면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대요!” 유네스코 아 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이 아랍어, 중국어, 힌디어, 인도 네시아어, 일본어, 한국어, 몽골어, 태국어, 베트남어 등 아시 아 9개 문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문자로 남겨 진 기록을 통해 과거의 지혜를 배울 뿐 아니라, 현재의 지혜 를 미래에 전달할 수 있다. 이 책은 독자들이 다양한 문자를 배우면서 각 문자를 사용하는 나라뿐 아니라 사람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이해하고, 나아가 아시아인으로서 자부심을 키 우도록 이끈다.

Arab Public Opinion and the Reshaping of the Middle East

The 2010 Arab uprisings have brought much political change to the Arab world, giving it an almost new identity. Eminent political scientist Shibley Telhami refers to a decade’s worth of original polling data to understand and analyze the driving forces and emotions of the Arab uprisings. Distorted, partial and often humiliating Western perceptions of the Middle East have left the pride of many Arabs wounded. Telhami reveals that although the hearts and minds of these people are often misunderstood, they are growing central in the globalized world.

The India-Pakistan Conundrum

The ongoing rivalry between India and Pakistan goes back to 1947, when the British left South Asia. Renowned South Asia expert Stephen P. Cohen presents a comprehensive work of this deeply historical, cultural and international conflict and he shares his prediction that this enmity is likely to persist for another thirty years. He describes the terrible cost of this animosity on the citizens of both nations and suggests that the US can play a role in ameliorating tensions. 한 세기를 향해: 인도-파키스탄 난제

아랍의 눈으로 본 세계: 아랍 여론과 중동의 재형성

스티븐 P. 코헨 저 | 브루킹스연구소 | 2013

시블리 텔하미 저 | 베이직 출판사 | 2013

인도와 파키스탄 간 고질적인 대립은 영국이 남아시아를 떠 난 19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명한 남아시아 전문가인 저자는 이 역사·문화·국제적 갈등에 대한 포괄적인 분석을 제시한다. 적대감은 앞으로 30년은 더 계속될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그는 적대관계가 두 나라 국민들에게 미치는 엄청 난 손해를 설명하며 미국이 긴장 완화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2010년 ‘아랍의 봄’은 아랍권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할 만 큼 큰 정치적 변화를 몰고 왔다. 명성 높은 정치학자인 시블 리 텔하미는 광범위한 자료를 인용해 아랍의 봄을 불러온 원 동력을 분석한다. 중동에 대한 왜곡되고 편향된 서양의 인식 은 많은 아랍인들의 자부심에 상처를 냈다. 저자는 세계화된 지금도 아랍인의 생각과 정서가 종종 오인되고 그런 오해가 널리 퍼져 있음을 보여준다.

Great Games, Local Rules The New Great Power Contest in Central Asia

By Alexander Cooley | Oxford University Press | 2012

Great Britain and Russia’s struggle for influence in Central Asia in the 19th century was the original “Great Game.” Now, the new great game of the last quarter of a century is the contention between the U.S., Russia and China for the same region. American international relations scholar Alexander Cooley explores the new dynamics in this region where Central Asian governments have established local rules to fend of these preying external powers.

Iban Dream

By Golda Mowe | Monsoon Books | 2013

Bujang, an orphaned boy raised by a family of orangutans, must leave his ape family when reaching adulthood and serve the warpath god as a warrior and headhunter. He goes on many adventures where he converses with gods, shamans, animal spirits and nomadic people of Borneo as he fights evil spirits. His greatest test is to save his captured wife and fellow villagers. In this work of fantasy fiction, author Golda Mowe of Bornean Iban origin incorporates real beliefs, taboos and terminology of the Iban people. 이반의 꿈

그레이트 게임, 현지 룰: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권 력다툼 알렉산더 쿨리 저 | 옥스퍼드대학 출판부 | 2012 19세기 중앙아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던 영국과 러시아의 노력은 최초의 ‘그레이트 게임’이었다. 지난 25년 간 벌어진 새로운 게임은 미국·러시아·중국이 같은 지역을 두고 벌인 다툼이다. 미국의 국제관계 전문가인 저자는 자신을 집어삼 키려는 외부세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현지 룰 을 만든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지역정세 역학을 탐구한다.

골다 모위 저 | 몬순 출판사 | 2013 고아가 돼 오랑우탄 품에서 자란 소년 부장은 성인이 되자 오랑우탄 가족을 떠나 전사이자 사람 사냥꾼으로서 전쟁의 신을 섬겨야 했다. 그는 악령들과 싸우면서 신과 주술사, 동 물의 혼, 보르네오 유목민과 대화하며 수많은 모험을 겪는 다. 그의 최대 과제는 포로가 된 아내와 마을주민들을 구하 는 것이다. 이 판타지 소설에서 보르네오 이반족 출신인 작 가는 그들의 실제 신앙과 타부, 용어를 통해 그들의 삶을 실 감나게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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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cement

magazine N | 201308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조하늘

박상설 캠프 호스트, ‘캠프 나비’ 대표, 심리치료사

한여름이다. 휴가를 맞은 이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산과 바다를 찾아 나선다. 나도 인적이 드문 산중턱 호 젓한 산 길을 걸으며 무더위를 식혔다. 고요는 경관을 다스린다. 내가 버티고 사는 큰 힘은 자연이 주는 고요다. 그 힘이 생동의 원천이다. 얼마 전 전곡의 오토캠핑장을 찾았다. 텐트를 다닥다닥 붙여놓은 캠핑장은 마치 아파트 주차장처럼 보였다. 모두들 시장바닥 같은 먹거리 판을 벌이고 있었다. 먹고 마시고 고성방가해야 잘 놀았다고 여기는 걸까. 먼 길 떠나와서도 푸른 자연은 본 체 않고 난장판을 이룬다. 나무그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은 눈 을 씻고 봐도 없다. 캠핑장을 둘러보니 호화찬란한 장비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20명은 충분히 잘 만 한 돔 텐트에 연달아 대형 타프텐트를 치고, 거실과 주방시설을 늘어놓았다. 전 세계 캠핑 명품브랜드 전 시장이다. 적게는 300만원에서 2500만원 하는 비싼 장비들이다. 5인용 텐트는 초라해서 구석에 끼기도 민망하다. 여기가 캠핑장인가, 장비 경연장인가. 그 무겁고 많은 캠핑장비를 설치하고 치우는 데 짓눌려 즐기는 자유는 영 없을 성 싶다. 산악회 등산버스에 탔다. 술잔을 돌려가며 차내에서 방방 춤을 추지 않는 것은 다행이었다. 그런데 교외 를 벗어나자 노래를 고막이 터지도록 크게 틀어놓는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산행에 오르는 모습이 마치 운동 장 레이스 출발점에 선 것 같다.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걷기 시작했고 나는 맨 뒤에 처졌다. 생각하며 걷는 게 아니라 힘으로 밀어붙이는 난폭등산이다. 그러니 신문을 펴면 병원마다 관절염 치료 광고가 넘쳐난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아웃도어가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평생 탐색해온 나로서는 근심에 찬 넋두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혼란에 익숙하면서도 적당히 질서를 헤쳐나가는 이해하기 어 려운 암호체계를 갖고 있다. 그래서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고들 한다. 우리는 산업화·정보화 물결 속에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를 잃고, 씨 뿌리고 땀 흘리는 노동선의 즐거 운 자유정신을 멀리했다. 땀방울을 통한 행복의 속삭임은 오직 자연 안에 있다. 삶은 기초가 탄탄해야 흔 들림이 없다. 그 기초는 걷기다. 그런데 편리함을 추구하는 문명에 둘러 싸여 걸을 일이 없어졌다. 다리를 움직이면 뇌로 가는 에너지 공급이 활발해져 피로가 가시고 마음이 상쾌해진다. 그래서 칭찬은 집에서 하 고, 질책은 걸으면서 하라는 심리학 연구보고서가 있다. 걷기는 무상의 가치에 흡족해 하며 들판이나 숲을 허허롭게 거니는 것을 이른다. 걷다 구름만 바라 봐도 “아~ 내가 너 같구나”는 말이 절로 나온다. 숲 속 오솔길을 걸으면서 사색·사유한 철학자들을 ‘소요 (逍遙, peripatetic)학파’라 하지 않는가. 스트레스 쌓이고 마음이 답답할 때, 자연을 걷다 보면 마음이 가 벼워지고 좋은 생각이 번쩍 떠오른다. 무턱대고 걷는 것이 으뜸이다. 루소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걸을 때 만 명상에 잠길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내 마음은 언제나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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