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N from Korea October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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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w w.t heasian .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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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17

Remains of the Exodus

로힝야의 자취를 따라서

Remains of the Exodus

로힝야의 자취를 따라서 값 12,000원

N o . 5 1 OCTOMBER 2017

10 9 772288 328008 ISSN 2288-3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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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51

048 Special Topics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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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standing the Plight of the Rohing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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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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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 소개

Understanding the Rohingya from their historical origin to the beginning of tension and conflict within modern-day Rakhine State of Myanmar. “영국 식민지배의 산물?” 미얀마 로힝야 향한 오해와 갈등_서의미

Partnership 8

Asia’s window to the world, the world’s window on Asia

Asia Round-up 10

M A G A Z I N E

w w w.t heasian . asia

OCTO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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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ains of the Exodus

로힝야의 자취를 따라서

Remains of the Exodus

로힝야의 자취를 따라서 값 12,000원

N o . 5 1 OCTOMBER 2017

10 9 772288 328008 ISSN 2288-3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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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 트라우마ʼ 중국에서 마약성 진통제 각광

On the Cover

Asian Envoys

로힝야 난민 캠프에 놓인 진흙으로 더럽혀진 옷들. 지난 8월 촉발된 ‘로힝야 사태’ 이래 수십만 로힝야 는 미얀마의 박해를 피해 피난길에 오르고 있다. < 매거진 N> 2017년 10월호는 로힝야가 어떤 민족이 며, 왜 이들이 고난의 길을 걷게 됐는지 조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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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ddied clothing left in the rain-soaked grounds of Cox’s Bazar, Bangladesh-remainders of Rohingya families where they had camped earlier only to be forced to other refugee camps. Some, refusing to be allocated made temporary shanties but these were also washed away by the rain. <Magazine N> brings to you the plight of the Rohingya from their origin to recent crises. (Photo by AP)

ENG

Salt of the Jungle Exhibition to commemorate Korea-

Vietnam diplomatic relations_Alessandra Bonanomi ‘정글의 소금’: 30년의 기다림

AJA FORUM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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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Indonesia, Where We Unite

[AJA 글로벌 리더스 포럼, 인도네시아를 가다 下] 인도네시아에서 함께 한 열정과 도전의 4박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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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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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East Asia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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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apore Buzz For Non-Chinese PM_Ivan Lim

중국계 총리들이 다스린 싱가포르, 다음 총리는 비중국계?

ENG

Todd Selby’s colorful world_Alessandra Bonanomi

#즐거운_나의_집, 토드 셀비가 그리는 타인의 공간과 취향

Southern Asia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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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yanmar_Shafiqul Bashar

66 카카오뱅크·아마존 이끈 ‘휴먼 네트워크’_이원섭 69 피카소가 예술의 극치에 이른 비결_김희봉

방글라데시, 미얀마에 ‘로힝야 안전지대’ 설치 제안 ENG CHANGING GEOPOLITICS

ENG

Bangladesh Proposes International Safe-Z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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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INDO-PACIFIC REGION_Neelima Mathur 미국-인도-일본 강화되는 3국 공조와 중국의 깊어지는 주름

Perspectives 70 [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Middle East 45

ENG

Middle East, Divided the Two_Ashraf Aboul-Yazid(Dali)

스티브 잡스가 ‘마지막 글’을 쓰면서 떠올린 것들 72 [박영순의 커피인문학] 미국이 자랑하는 ‘세계 2대 커피’ 하와이 코나커피 76 [박명윤의 웰빙 100세]

오일머니가 낳은 두 개의 중동

한국사회 ‘위선’ 폭로한 마광수, 세상에 ‘우울한’ 이별을 고하다

People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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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

Aspiring to be the National Painter

인도네시아 ‘민중화가’ 요스 수프랍토의 꿈_이상기

80 Dabbawalas’ Mission: Delivery Food On Time, Every Time_Alessandra Bonanomi 인도의 점심 책임지는 다바왈라를 소개합니다 84 [냥이아빠의 일본 엔타메] 믿음과 불신 그리고 ‘분노’_박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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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51 대표이사·발행인 이상기 편집인 Ashraf Aboul-Yazid 총괄고문 구명수 편집위원장 이오봉 부편집장 이주형 취재·편집 박호경 서의미 Alessandra Bonanomi Amiira Ismail 디자인 김보배 현지특파원 Alpago Sinasi(터키) Bishnu Gautam(네팔) Ivan Lim Chin(싱가포르) Kuban Abdymen(키르기스스탄) Nasir Aijaz(파키스탄) Pramod Mathur(인도) Shafiqul Basher(방글라데시) Uyanga Amarmend(몽골) 부사장 류진 사업이사 차재준 경영기획실장 정현 광고기획 유경수 제작·인쇄 ㈜타라티피에스 홈페이지 www.theasian.asia 기사제보 02-712-4111, news@theasian.asia 창간 2013.06.25. 등록 2013.05.02. 등록번호 종로 라00407 발행 ㈜아자미디어앤컬처 주소 서울시 종로구 혜화로 35 화수회관 207호(우 110-521) <매거진 N>은 한국간행물위원회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090 Books 88

ENG

Mom’s zucchini and bean paste soup

엄마를 부탁해 ‘엄마의 고추장과 백김치 가득한 항아리’_서의미 글로벌 제휴사

Introduction of Arabic Section 90 일본을 사랑한 이집트 예술가가 말하는 ‘일본’

정기구독 및 광고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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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구독(일시납 입금·신용카드 결제) 구분 구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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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nership

magazine N | 201710

Asia’s Window to the World, the World’s Window on Asia 50개국 AJA 전문필진이 만드는 ‘매거진 N’

<매거진 N>은 아시아기자협회(AJA)와 ‘아시아엔(The AsiaN)’의 인적 네트워크를 기 반으로 국제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한 고급정보와 심층해설을 전달합니다.

The Asia Journalist Association is… 2004년 11월 공정보도, 언론자유 수호, 저널리즘 발전 등을 목표로 한국, 중국, 일 본, 몽골 등 동아시아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필리핀 등 아세 안(ASEAN) 기자들이 중심이 되어 발족했습니다. 이후 인도, 파키스탄 등 남아시아 와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기자들이 참여해 현재 52개국, 300여 명의 회 원이 “한 줄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피와 땀을 아끼지 않는다”는 모토 아래 활동하 고 있습니다. 아시아기자협회는 종교·인종·민족·국가·이념을 초월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 환경보전 등 인류보편 가치 실현을 공통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아시아기자협회 로고 2017 아시아기자협회 총회

The AsiaN (www.theasian.asia) is… 2011년 11월11일 아시아기자협회가 창간한 인터넷 매체로 아시아기자협회 소속 베테랑 언론인, 전문가들이 정확한 뉴스와 깊이 있는 논평을 영어, 한 글, 아랍어 등 3개 언어로 제공합니다. ‘The AsiaN’의 N은 ‘미래비전(Next)’, ‘균형잡힌 뉴스(News)’, ‘소통 한마당(Network)’을 의미합니다.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이 지역 최초의 온라인 매체로서 AsiaN의 출범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아시아가 세계 경제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오늘날 매우 뜻 깊은 The AsiaN 영문판·아랍어판 메인화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반기문 UN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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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710

History

AJA in Brief

2004.11. 아시아기자협회 창립 2010.07. AJA, 문화체육관광부 사단법인 인가 2011.06. AJA, 기획재정부 지정기부금단체 선정 2011.07. (주)아자미디어앤컬처 설립 2011.11. 11월11일 아시아엔(The AsiaN) 한글·영문판 창간 2012.02. 중국 온바오닷컴, Global Asia, THE KOREA TIMES 기사제휴 2012.03. 뉴시스, 연합뉴스, 터키 CIHAN 통신사 기사제휴 2012.11. 아시아엔(The AsiaN) 아랍어판 창간 2012.11. 네이버(NHN), 줌(ZUM) 뉴스검색 제휴, 모로코작가협회 제휴 2012.12. 다음(Daum) 뉴스검색 제휴, Al-Arabi Magazine 제휴 2013.02. 수아드 알 사바 시집 ‘쿠웨이트 여자’ 번역 출간 2013.03. 이집트 Al-Hilal Magazine 제휴 2013.06. 6월25일 ‘매거진 N’ 창간 2013.09. AJA ‘아시아 문화언론인포럼’ 광주서 개최 2014.03. AJA, 쿠웨이트 황금보트상 수상 2014.04. 아시아엔(The AsiaN) 편집위원회 발족 2015.01. 최초 해외인턴기자 라훌 아이자즈(Rahul Aijaz, 파키스탄) 연수 시작 2015.06. 6월25일 ‘매거진 N’ 창간 2주년 2015.07. 이집트 출신 라드와 아시라프(Radwa Ashraf) 연수 합류 2015.10. 네팔지진 후원 사진전, 조진수 작가 공동주관 2015.11. 아시아엔(The AsiaN) 창간 4주년 2016.04. 2016 아시아기자협회 총회, ‘아자 어워드 2016’ 개최 2016.05. 조코 위도도(Joko Widodo) 인니 대통령, 아자어워드 수상 2016.09. 몽골에서 ‘한몽미래포럼’ 개최 2016.10. 아시아엔 네이버스탠드 제휴 2017.04. 2017 아시아기자협회 총회 2017.08. 제인 구달 박사-최재천 교수 초청, ‘AJA 에코 토크’ 개최 2017.08. ‘2017 AJA Global Leaders Forum Indonesia’ 개최

회원

52개국 357여명

사무국 서울 지부

몽골, 네팔, 방글라데시, 터키, 중동 등

이사장

창립회장 이상기 한국 한국기자협회 전 회장 한겨레신문 전 기자

김학준 한국 인천대학교 이사장

회장

명예회장 Ashraf Aboul-Yazid 이집트 The AsiaN 아랍어판 편집장

회장대리

Ivan Lim 싱가포르 The Straits Times 전 기자

부회장 Eddy Suprapto 인도네시아 RCTI TV 본부장

Chuluuunbaatar Dolgor 몽골 UBS 설립자

Norila Mohd Daud 말레이시아 malaysiaworldnews 편집장

Bishnu Nisthuri 네팔 네팔기자연맹(FNJ) 전 회장

Pooneh Nedai 이란 Shokran 발행인

강석재 한국 세계태권도연맹 사무차장

부회장

Messages from AJA

Magazine N breaks new ground for rising Asia

‘아시아 시대’에 발맞춘 매거진 N

The inaugural issue of Magazine N is a commendable first effort by our columnists, reporters and correspondents to give readers insights on Asia from an insider’s perspective. They write with inherent knowledge and understanding of their own home turf matched by native feelings and regional sentiments. The pages appear in a refreshing and reader friendly format made attractive by photographs and other graphic illustrations. Style-wise, our writers have delivered content that is serious and substantive. However, they have not forgotten to give them a human touch as shown in the way stories are woven around political, business and sports personalities of the day. Our editors have also thrown in a good mix of topics and lively spread of photographs to suit a variety of interests and preferences among readers. They have also been imaginative and creative in projecting Magazine N as a ‘new frontier’ publication that will, as we go along, break new ground in our coverage of a rising Asia and the consequential re-shaping of the regional, political and economic architecture. That is the professional thinking and aspiration driving our efforts in Magazine N, as it is with our online - Ivan Lim Former President of the Asia Journalist news portal The AsiaN.

아시아기자협회 회원이 주축이 되어 <아시아엔>을 창간한 지 4년 남짓, 이들이 이제 월간 <매거진 N>을 이 땅에 선보였습니다. 굳이 내로라하는 석학들의 예측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라는 말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불과 수 십 년 전까지 전쟁과 기아에 신음하던 아시아가 ‘세계의 공장’, ‘문화의 중심’으로 발돋움한 바로 이때, <매거진 N>이 전달할 질 높고 다양한 정보는 독자들의 안목을 높여줄 것을 확신합니다. - 김학준 (사)아시아기자협회 이사장, 한동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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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 Round-up

magazine N | 201710

‘아편 트라우마ʼ 중국에서 마약성 진통제 ‘오피오이드ʼ 각광 “중독성이 있는 건 알지만 오피오이드(opioid·아편 유 사 진통제) 밖에 의지할 데가 없어요. 최소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죠.” 중국에서 전립선 암으로 투병 중인 환자의 말이다. 그는 극심한 고통을 달래기 위해 하루에 진통제 15알을 섭취하고 이에 더해 모르핀 주사까지 맞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중국 국립통증치료센터의 디렉터인 판비파는 “말기 암 환자가 겪는 고통이 극심하기 때문에 가이드라인에 따 라 오피오이드를 처방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치과 나 외과 수술에서도 오피오이드의 수요가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19세기 영국과 아편전쟁을 치른 여파로 마약 성분이 강한 중독성 진통제 오피오이드에 대해 거부감이 강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암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한 2011년부터 ‘효율적인 통증 관리’를 이유로 태도를 바꿨다. 실제로 중국은 심각한 대기오염이나 높은 흡연율 등의 영향으로 폐암이 기승을 부리면서 암 신규 발병이 2000년 210만 건에서 2015년 430만 건으로 대폭 증가했다. 급격히 늘어난 암 환 자가 중국 사회의 문제로 떠올랐고, 이에 당국이 극약처방을 내린 셈이다. 2016년 중국의 진통제 시장은 전년보다 20% 증가해 5억3천만 달러 규모에 이른 것으로 중국제약업협회는 추산했다. 이는 전체 의약품 성장률의 두 배를 웃도는 것으로 전세계 2위 규모를 차지할 정도로 큰 시장이다. 아직까지 중국에선 현지 제약 사가 만든 토종 진통제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2016년 중국 진통제 시장에서 양쯔강제약그룹의 진통제 데조신은 시장 점 유율 40%를 차지한 반면 세계적인 제약사 바드파머의 진통제 옥시코돈은 중국 시장에서의 점유율이 6.5%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중국 진통제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글로벌제약사들의 중국 대륙 진출은 활발해질 예정이다. 그 중 하나 인 옥시콘틴의 제조사 먼디파마는 미국에서 마약성 논란을 일으켰지만, 중국 진출에 적극 나서면서 의사와 환자를 겨냥한 홍보 영상을 배포하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Addictive opioids back in China’s painkiller market “I know they’re addictive, but I can’t help but rely on opioids,” the words of a Chinese patient suffering from prostate cancer, explaining his reason for taking up to 15 opioid painkillers daily. Fan Bifa, Director of China’s National Center for Pain Treatment said in a statement that opioids were being prescribed for later-stage cancer patients that undergo extreme pain, adding that demand for synthetic opioids has been increasing for surgical procedures and dental operations. The sudden increase in China’s opioid use, despite risks, is said to be correlated with the sharp rise in lung cancer patients—a result of increased levels air pollution and smoking. Cancer rates have shot up from 2.1 million cases in 2000 to almost 4.3 million cases by 2015, creating a state of national alarm. And despite the trauma of its past Opium War, many have resorted to opioids for effective pain treatment. According to the China Pharmaceutical Industry Association, the market for painkillers increased by 20% in just the past year, reaching approximately $5.3 million in worth. Currently, domestic brand Yangtze River Pharmaceutical Group’s dezocine is the country’s most sought-out painkiller. By contrast, Bard Pharma’s Oxycodone that remains the international bestseller takes up only 6.5% of China’s mar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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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시대에 출판업 활황 맞은 인도 인터넷이 세계적으로 보편화되면서 종이 매체 시장이 갈수록 고전하고 있지만, 이런 시대의 흐름을 비웃는 곳이 있다. 아시아의 경제신흥국 인도다. 국가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도시의 중산층과 젊은이들이 책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인도의 오프라인 출판시장은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 조사회사인 닐센에 따르면 인도 국내의 서적 시장은 3 천641억 루피(약 6조4천263억 원)로 세계 6위 규모다. 2011년부터 매년 20%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영어 권에서의 매출은 미국에 이어 2위다. 인도 출판시장은 영국 식민시대의 영향으로 유럽이나 미국 출판사가 주 도해 왔으며, 독서 인구도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엘리트층에 국한됐었다. 그러나 경제가 급성장하기 시작한 10여 년 전부터 인도에서 성장한 국내파 작가들의 작품이 인기 를 끌기 시작했다. “외국 철학보다 토속 신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출판업이 비로소 ‘인도화’ 하기 시작했 다.” 힌두교 신화를 다룬 작품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트리파티의 설명이다. 신문 시장에서도 영어 이외 지방 공용어의 인기가 두드러진다. 출판물 판매 부수 등을 조사하는 인도 ABC협회의 5월 발표 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인도에서의 신문 구독 부수는 2천만 부 이상 증가했다. 인도 상공회의소연합회 등의 작년 조사에서 도 신문 매출액은 전년 대비 8.4% 증가했다. 영자지만 보면 증가율은 4%에 그친다. 발행 부수 상위 10개지 중 영자지는 최 대 일간지인 <타임스 오브 인디아> 하나 뿐이다. 비 영자지가 이처럼 위세를 떨치는 이유는 인도에는 아직 전기가 들어가지 않거나 전파가 닿지 않는 지방이 많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지만, 인도는 아직 인터넷 이용자가 전체 인구의 30%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인도 상공회의소 연합회는 “영자지는 도시 독자가 많아 인터넷에 시장을 잠식당하지만 비 영자지가 읽히는 지방에서는 종이신문의 인기가 높다”고 분석했다.

India goes back to the print days of old As the world becomes more digitalized with the dominance of electronic media, in one country, print media is back on the rise: India. It seems that for India, with more development comes a simultaneous increase in middle-class members and youth looking to books and offline sources instead of the internet. According to Nielson International, India’s print media market is the 6th largest in the world, worth over 364 billion rupees (552 million USD). Since 2011, the market has been increasing by roughly 20% each year. Historically, India’s publication sector was first influenced by British colonization with English as the main language for printing; reading English books became a common pastime amongst the literate elite. Now, with widespread education and national development, the trend has extended to “Indian books by Indian authors” and a public moving away from Westernized media. Likewise, while overall consumption of print news has increased by almost 20 million copies sold (increase in 8.4% of net profit), India’s English newspaper consumption lags behind with only a 4 percent increase. This may also be because English media that comes mainly in electronic forms are not readily available to rural populations that have limited access to electricity.


Asia Round-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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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op icon Namie Amuro to retire September 2018 Namie Amuro, uncontested Japanese pop-queen of the 1990s, announced on the day of her 40th birthday that she would be retiring in September of 2018. Having debuted as a member of the Super Monkeys girl group in 1992, Amuro soon won the hearts of fans and international recognition through her first solo album “Sweet 19 Blues” with the major hits, “Body Feels Exit”, “Chase the Chance”, and “You’re my sunshine”. The album hit a record 1 million copies sold, instantly marking Amuro as an icon of J-pop culture. By contrast, Amuro’s personal life was not exactly as bright as her public career. Her marriage to TRF member, Sam, in 1997, was short-lived when they divorced 6 years later, separating the two with their son who was born in 1998. Amid the instability, Amuro’s mother was tragically killed in 1999 and at around the same time, the star’s popularity began to wane. People had thought that her fame had finally reached its peak. Despite it all, Namie Amuro continued her work on the stage, producing regular albums and reviving performances. In 2007, her “Play” album sold over 50 million copies and the following year, her “Best Fiction” record topped 1.5 million copies sold worldwide. Then, last September 20th, after thanking fans for their continuous support, Amuro spoke of her plan to retire, adding that she would like to “make the last year of [her] music career meaningful by focusing [her] full attention on creating a final album and performing at concerts.”

“2018년 9월 은퇴하겠다” 이별을 준비하는 아무로 나미에 1990년대 일본을 평정한 디바 아무로 나미에가 “데뷔 기념일인 2018년 9월 16일자로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1992년 걸그룹 슈퍼 몽키즈로 데뷔한 아무로 나미에는 1995년 솔로 첫 싱글 ‘Body Feels EXIT’를 발매한 후 ‘Chase the Chance’ ‘You’re my sunshine’ 등의 싱글 앨범을 통해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고, 첫 정규앨범 ‘SWEET 19 BLUES’ 역시 300만 장 이상 팔리며 일본 대중문화 역사에 획을 그었다. 당시 일본의 10대 소녀들 사이에서 아무로 나미에는 절대 적인 영향력을 미쳤고, 일본 언론은 ‘아무라’라는 용어까지 만들어 낼 정도였다. 그러나 가수로서의 화려함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가정사는 어두웠다. 1997년 TRF의 멤버 SAM과 결혼 후 1998년에 아들을 출산했으나 2002년 이혼했고, 1999년에는 어머니가 살해당하는 아픔까지 겪었다. 설상가상으로 2000년대 초반 음악 스타 일에 변화를 주면서 대중적인 인기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아무로 나미에는 꾸준히 앨범을 발매하고 투어를 이어가며 부활 의 시기를 노렸다. 그녀는 2007년 정규 앨범 ‘PLAY’로 판매고 50만 장을 넘겼고, 2008년 베스트앨범 ‘BEST FICTION’으로 150만 장을 돌파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그리고 지난 9월 20일, 갑작스런 은퇴를 선언했다. 1년의 유예기간을 둔 아무로 나미에.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마음껏 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소망 처럼 그녀는 11월 8일 베스트 앨범을 발매하고 은퇴 투어를 다니며 남은 1년을 바쁘게 보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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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710

Punished for being single? Recently in Japan, a discussion about higher taxing of singles that ran between a member of a volunteer group and a government official of the treasury department was instantly splashed throughout SNS community sites as a hot topic of debate. In the small city of Gahuko in Ishikawa Prefecture, a woman from a service group by the name, “Mommy Section” asked the official, “Although having children is a matter of choice, those who do choose to have children often struggle to make a living. Can’t single-person households also share the burden?” What started as an innocent question was soon sharply contested by internet users who disagreed with the notion that singles were to be taxed at higher rates than families with children. And although the government official had replied that no specific policymaking had been undertaken for the tax on singles, angry commentators mistaking Mommy Section as a department of the local government criticized Gahuko city for even entertaining the idea. Many agreed that “Households with children aren’t the only ones struggling to make a living.” Meguro Yoriko, Professor at Sophia University in Tokyo commented, “Japanese society has always had a negative perception of women who do not get married or refuse to have children. Still, having children is always one’s choice; individuals must not be taxed as if to be punished.” Professor Hashimoto Hiroko of Jumonji Women’s University added that “the problem lies in the government urging singles to get married without providing an environment favorable for marriage.”

“혼자 사는 것도 죄?” 일본 독신세 신설 논란 일본에서 독신들에 더 많은 세금을 매기는 ‘독신세’ 신설을 놓고 인터넷 게시판과 SNS가 뜨겁다. 9월 7일 도쿄신문이 “지난 달 말 인구 30만명의 소도시 이시카와현 가호쿠시에서 자원봉사단체 ‘엄마과’ 와 재무성 공무원이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에 서 독신세 관련 논의가 오갔다”고 보도하며 독신세가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이다. 이 자리에서 자원봉사단체 엄마과의 한 회원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것도 선택지의 하나이긴 하지만 결혼해서 아이들을 키우 면 생활 수준이 내려간다. 독신자에게 부담을 지게 할 수는 없는 것인가”라고 묻자 재무성 공무원은 “독신세 논의는 있었지 만,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화 내용이 알려지자, 가호쿠시엔 “왜 독신세를 제안했나” “아이를 키우는 세대만이 힘든 것은 아니다”라는 항의가 쇄도했 고, 인터넷상에도 비판이 쏟아졌다. 시민들이 ‘엄마과’라는 이름의 자원봉사단체를 가호쿠시의 부서로 오해하면서, 시에 대 한 비판 여론도 더욱 커졌다. 이에 시 당국은 “독신세를 제안한 것이 아니다”고 해명했으나 사태는 사그러들지 않았다. 이 논란에 대해 메구로 요리코 조치대 교수는 “일본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을 문제시하는 풍토가 쭉 있어왔다”며 “하지 만 결혼 여부는 개인의 자유이기에, 벌칙처럼 과세를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하시모토 히로코 주몬지가쿠엔여대 교수도 “문제의 배경에는 결혼을 촉구하면서도 결혼할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는 정부의 자세에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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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710

Drug-resistant Malaria spreading across Southeast Asia A dangerous strain of the malaria parasite known as “Super Malaria” has been spreading at alarming rates along the Mekong River flowing in Southeast Asia. Because it cannot be killed with existing anti-malaria drugs, fear that the parasite will soon spread throughout the region has been raising newfound alarm. Scientists at the Oxford Tropical Medicine Research Unit in Bangkok announced in medical journal The Lancet Infectious Diseases a new strain thriving in the Mekong River basin. This malaria has evolved to resist artemisinin which has typically been used to treat malaria patients. First discovered in Pailin City of West Cambodia, Super Malaria comes with the PfKelch genetic mutation that enables its resistance to drugs. Now, it has spread to southeast Thailand and over to south Vietnam, becoming a serious threat for the over 200 million patients who contract Malaria each year. The Oxford Research Unit added in their report that while “artemisinin has become less effective over time, the parasite has evolved to resist the new drug piperaquine too,” noting how treatment was failing around one third of the time in Vietnam and in some regions of Cambodia, as high as 60 percent of the time. Professor Arjen Dondorp, head of the unit, warned that if Super Malaria continues to spread at current rates, it could eventually jump to Africa. “Around 700,000 people a year die from drug-resistant infections, including malaria. If nothing is done, this could increase to millions of people every year by 2050,” he said.

치료제 안듣는 ‘슈퍼 말라리아ʼ 동남아에서 급속도로 확산 치료해도 효과가 없는 ‘슈퍼 말라리아’가 동남아시아 메콩 강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돼 역내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태국 방콕의 옥스퍼드 열대의학 연구팀은 영국 의학전문지 ‘더 랜싯’(The Lancet)에 게재한 보고서에서 말라리아 치료 약물인 아르테미시닌에 내성을 지닌 말라리아 원충이 메콩 강 유역 일대에서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전자 돌연변이 ‘PfKelch’로 내성을 갖게 된 원충은 캄보디아 서부 파일린 지역에서 처음 발견됐으며, 태국 남동부 지역을 거쳐 베트남 남부 까지 확산됐다. 때문에 치료제 내성을 가진 원충이 확산되면 매년 2억명 이상이 감염되는 말라리아가 통제 불능 상태에 빠 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모기를 매개로 퍼지는 말라리아에 걸린 환자에겐 아르테미시닌을 투여하거나 새로운 복합제인 파이퍼라퀸이라는 약물을 사용하지만, 최근 발견된 말라리아 원충은 두 가지 약 모두 듣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팀은 “베트남의 말라리아 감염 환자 3분의 1, 캄보디아 일부 지역의 환자 약 60%가 치료약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어 “이제 약제 내성을 가진 원충은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메콩 강 유역 전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 아프리카로 전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을 이끄는 아르젠 돈도프 박사는 “말라리아를 포함한 약제 내성 감염병으로 인해 전세계 에서 연간 70만 명 가량이 사망한다”며 “조처를 하지 않으면 2050년까지 약제 내성 감염병 사망자는 연간 수백만 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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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se in pet dogs considered “unclean” by conservative Iran In Iran, dogs have long been considered “unclean” animals unfit to live amongst humans. And in particular with those of Shia Muslim tribes, religious conservatism has despised the domestication of dogs that results in ceremonial uncleanliness. Recently, however, more and more of Iran’s city-dwellers are claiming that keeping dogs as pets is strictly up to personal choice. The number of dogs raised as pets are continuing to rise as sellers shout across Tehran’s black markets, “Rabie-free and gentle enough to keep in the home!” In such black markets, dogs ranging from the Spitz to the Siberian Husky are sold without official state-authorization at around 200 to 500 Euros (236~472 USD) each. “Since the last five years, more people have been wanting to keep dogs as pets. Not many think of them as dirty or unholy as they have in the past. I think people’s mindsets have changed,” said one seller. While there does not exist any policy outlawing pet dogs, any pet that barks excessively or is reported for unsanitary behavior may be confiscated from owners. Moreover, religious Shia officials have made statements such as the following: “Walking and playing with animals such as dogs and monkeys outdoors and in public places are harmful to the health and peace of other people.” Still, it is now not a rare sight to see families occasionally walking their dogs along parks and public areas. They have become the challengers of traditional conservatism influencing social perceptions permeating everyday life.

“개는 부정한 동물” 간주하는 이란에서 ‘애완견’ 사육 인기 개를 “부정한 동물”로 기피하는 이슬람 시아파 종주국 이란에서 최근 들어 애완견 사육이 인기다. 종교적 전통을 중요시 여 기는 보수파는 여전히 개를 혐오하지만, 도시민들 사이에서 개를 기르는 것은 “자유를 추구하는 행위”로 여겨진다고 한다. “광견병 예방주사를 맞혔으니 안심해도 됩니다. 얌전해서 실내에서도 기를 수 있습니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한 공터에 서 열리는 개 거래 암시장에서 상인들이 손님을 끌기 위해 외치는 소리다. 암시장에서는 행정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상 인들이 개를 판매하며, 스피츠와 시베리안 허스키 등 10여 종류의 강아지가 마리당 200~400 유로(약 26만 원~52만 원) 에 거래된다. 25년 이상 암시장에서 개를 판매해온 한 상인은 “최근 5년 사이 애완견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이 급격히 늘었다. 개는 지저 분한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확실히 적어졌다.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테헤란의 공원이나 거리에서 애 완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의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만은 않다. 이란에서 개 사육을 금하는 법은 없으나, 파수견과 맹도견 이외의 개 사육에 대해서는 “짖는 소리가 시끄럽다”거나 “비위생 적”이라는 진정이 경찰에 접수되면 몰수당할 우려가 있다. 또한 이슬람교의 전통을 지키는 보수강경파 사이에서는 개를 ‘부 정한 생물’이라 여기며 애완견 사육을 ‘서구화의 상징’이라 인식하기 때문에 반발하는 경향이 강하다. 때문에 보수파에게 들 켜 경찰에 밀고 당할 것을 우려한 나머지 개를 실내에서 몰래 기르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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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tar since June diplomatic freeze? In an unprecedented diplomatic freeze, Qatar has, since last June, been severed of all ties between many of the major neighboring Arab states such as Saudi Arabia and the United Arab of Emirates (UAE). As one of the richest Gulf nations, Qatar showed no signs of conceding its position, claiming that neighbors were falsely accusing the nation of supporting terrorist factions. Qatar was also unconcerned of any significant economic loss. But how have they actually AP

fared since the freeze? In their September report, the Qatar Development Planning and Statistics Division revealed that the number of passenger arrivals (including transfers) to Hamad International Airport decreased by 34% since June of the diplomatic freeze. Departing passengers also dropped by 30 percent, marking a significant reduction in commuting persons from both ends. Qatar’s stock exchange value also faced rapid decline with the 2016 value of 10,604 points falling by 11.3% at 9,406 points. Simultaneously, consumer price index (CPI) rates, too, have dropped from a factor of 99.70 in June 2017 to 103.90 in July. Qatar has largely relied on food imports from neighboring Arab nations, but with severed connection, they have turned to relatively costly Turkey and Iran imports. And yet, current sanctions have caused only slight damage to Qatar’s wider economy thanks to its huge oil deposits and sovereign wealth fund. Deposits of commercial banks have increased by 12.8 percent since July of 2016 and there has been an 11.5% increase in nationwide loans.

“끄떡 없다” 자신하던 카타르, 단교 여파는? 지난 6월 초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주변 아랍 국가들로부터 단교를 당한 카타르. 아랍에서도 손꼽히는 부 국인 카타르는 당시 “경제적 타격을 거의 받지 않을 것”이라 자신했다. 정말 카타르는 단교로 인한 타격을 받지 않았을까? 9월 초 카타르 개발계획·통계부가 낸 월간 보고서에 따르면 단교 첫 달인 6월 하마드 국제공항의 도착승객(환승포함)은 109만명으로 전월보다 34% 줄었으며, 출발한 승객도 126만명으로 전월 대비 30% 감소했다. 단교 국가들이 카타르행 항공 편 운항을 중단하고 카타르항공의 자국 취항도 금지해, 외국인 방문자 가운데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걸프 지역 국적자가 18.4% 감소했기 때문이다. ‘중동의 허브 공항’을 놓고 경쟁하는 하마드 국제공항으로서는 큰 손실이다. 카타르의 증시지수도 지난해 7월 평균 10,604에서 올해 7월엔 9,406으로 11.3% 급락했다. 희생제 연휴 직전 거래일인 지난 8월 30일 카타르 증시지수는 8,800선까지 떨어졌다. 단교 초기 사재기현상까지 일어났던 식음료의 소비자물가지수(CPI)도 6월 99.70에서 7월 103.90으로 올랐다. 식료품 수입을 의존하던 사우디아라비아가 교역을 중단하자 카타르는 터키와 이란 으로 수입선을 대체했지만 전반적인 가격 상승까지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다른 부문과 달리 금융부문에선 눈에 띄는 타격은 감지되지 않았다. 일반 상업은행의 예치금은 7월 기준 작년 같은 동기간보다 12.8% 늘었고, 대출도 11.5% 증가했다. 같은 기간 통화량은 협의통화량(M1)이 전년 동기 대비 8.2% 줄었지만, 시 중통화량(M2)과 총통화량(M3)은 각각 8.3%, 11.3% 증가해 ‘카타르 내’ 현금흐름은 원활히 돌아가고 있음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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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report

저작권 받는 ‘셀카 원숭이’ 나루토 2017년 9월 11일 인도네시아의 한 원숭 이가 찍은 ‘셀카’ 저작권 소송이 매듭지 어졌다. 앞서 2011년 인도네시아 술라웨 시의 원숭이 나루토는 영국 사진작가 데 이비드 슬레이터의 카메라로 수백장의 셀카를 찍었지만, 사진을 찍은 나루토와 원숭이들은 아무런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었다.

On September 11th, in an odd case regarding copyright of selfies taken by a monkey named Naruto and owner of the camera, David Slater, Naruto was the final winner of copyright ownership. In 2011, Naruto took hundreds of selfies with Slater’s camera but was not credited for any of the photos; this was then brought to court for trial.

COMMENTS from Asia

미즈하라 키코 “어떤 국가에서 태어나도, 어떤 국가에서 자라도, 어떤 국가에서 살아도 모두가 지구인이라는 것 에는 변함이 없다.” 모친이 한국계인 일본 모델 겸 배우 미즈하라 키코(27)가 SNS상에서 일본 네티즌들로부터 혐한 테 러를 당하자 올린 트윗이다. 헤이트 스피치에 일침을 가한 이 글은 온라인 상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Kiko Mizuhara

“No matter where you were born, which country you are from, or where you live, everyone is a citizen of Earth.” In a tweet, Japanese-Korean model and actress Kiko Mizuhara (27) recently addressed antiKorean hate comments directed at her. She was soon retweeted several thousand times over by netizens con-

cerned over racial hatred.

라구람 라잔 인도의 경제학자 라구람 라잔이 중앙은행 총재 시절 화폐개혁에 반대했다고 밝혔다. 그는 “단기적인 대 가가 장기적인 이익보다 커서 개혁에 반대했다”고 말했다. 또한 개혁의 취지 중 하나인 검은돈 근절에 대해서도“검은돈 소유자들은 추적이 어려운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사용중지된 화폐도 교환할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Raghuram Rajan

Indian economist Raghuram Rajan, spoke of his opposition of demonetization as currency reform during his tenure as Governor of the Reserve Bank of India. “Although there might be long-term benefits, I felt the likely short-term economic costs would outweigh them,” he said, adding that demonetization allowed more black money hoarders to find ways to turn their illegally attained cash into usable curr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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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Envo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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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t of the Jungle Exhibition to commemorate Korea-Vietnam diplomatic relations Salt of the Jungle Exhibition, (open August 17-October 18) created to commemorate the 25th anniversary of KoreaVietnam diplomatic relations, is hosted by the Korea Foundation Gallery in Seoul, focusing on the perspectives of young Korean and Vietnamese artists who shared similar historical moments and experiences. Both countries faced rapid changes in the past 30 years. On the one hand, Vietnamese artists who grew up after 1986 experienced the economic reform, Đổi mới. On the other hand, Korean artists of the same generation experienced democratic movements, social developments, and the Olympic Games. The title, Salt of the Jungle comes from the novel written by Vietnamese writer Nguyen Huy Thiep. It refers to a flower as white as salt, which blooms only once every thirty years in the jungle. Observing the social transformations of the past 30 years, both Korean and Vietnamese artists face mixed feelings: they suffer from the loss of nature, traditions, and myths due to rapid industrialization but are also happy about the changes that brought with them a chance to encounter different cultures.

‘정글의 소금’: 30년의 기다림 한국-베트남 수교 25주년을 기념해 한국국제교류제단이 주최한 전시회 ‘정 글의 소금’(Salt of the Jungle)이 8월 17일부터 10월 18일까지 서울 중구 KF갤 러리에서 열렸다. 전시회명 ‘정글의 소금’은 베트남 소설가 응우옌 휘 티엡의 소설 제목에서 따온 것으로, 정글에서 30년마다 한번씩 피는 ‘소금 같이 하 얀 꽃’을 뜻한다, 이 꽃을 보는 사람은 평화와 번영을 얻는다고 할 정도로 길 조를 상징한다. 그 의미처럼 양국은 지난 30년간 경제적 번영을 누려왔다. 베트남은 1986년 개혁개방(도이 머이), 한국은 1988 서울올림픽을 거치며 아 시아의 중심국가로 떠올랐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역사적 사건의 중심 에 태어난 세대들은 이제 양국의 주역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빛이 있으 면 그림자가 있듯, 잃은 것도 있다. 자연과 전통은 사라져 갔으며 사회분위기 또한 급격하게 변해버렸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아티스트들에 영감을 제공하 기도 했다. 이를 반영하듯 베트남의 누군가는 자연을 그리워하고, 또다른 누 군가는 산업화 과정에서 파생된 서브컬쳐의 주역으로 거리의 삶을 그린다. 다양한 형태,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을 통해 알 수 있듯, 이 전시회는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를 제시하진 않는다. 대신 한국과 베트남이 지난 세월 동안 겪 은 급격한 변화는 젊은 아티스트들의 자양분이 됐고, 이들은 ‘정글의 소금’이 지닌 의미처럼 30년을 기다려온 각양각색의 꽃을 피워냈다.

Alessandra Bonanomi Staff Reporter

Salt of the Jungle exhibition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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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y of the Blind Elephant” by Nguyen Phuong Linh Nguyen Phuong Linh is an artist based in Hanoi. Through videos and drawings, she captures the reality of rubber plantations in South-Central Vietnam. She transformed images of the rubber industry into poetic artwork. Born in 1985, Nguyen Phuong Linh is the daughter of the founder of Nha San (a non-profit art space). She usually explores themes of sexuality even though “essentially anything which touches on politics or sex” is censored in Vietnam, Linh declared to the international news agency AMA. The artist has participated in various exhibitions in Vietnam, other Asian countries, Europe, as well as the US.

“The Gillette”, “The song of Women” by Bo Min Kim Often using grey and green shades, Bo Min Kim (born in 1980) explores the realm of maps, myths, and traces of changes in the city by carrying them onto the drawing canvas. Her creations are usually drawn on hanji (traditional Korean paper), but she also uses other fabrics such as linen and hemp cloth as her med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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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ic Friction: Burning Rubber” by The Propeller Group Formed in 2006, the Propeller Group is a collective of artists Phunam, Matt Lucero, and Tuan Andrew Nguyen. Based in Ho Chi Minh and LA, the artistic group develop original content, bridging fine art and mainstream media in which information is their main medium and Vietnam is frequently their subject. In their famous work, “Viet Nam the World Tour,” the Propeller Group talks about the history, culture, and people of the country for a re-branding campaign. Shooting street muralists, graffiti artists, hip-hop dancers, and pop musicians, the artists made an effort to explain to a global public the image of contemporary Vietnam as fresh, vibrant, and creative. In “Static Friction: Burning Rubber,” the artists express a snapshot of everyday life in Vietnam. The country has the most motorbike usage per capita in the world, with over 85% of the population using motorbikes as their main source of transportation. The Vietnamese use motorbikes as a socioeconomical symbol. Regarding their work, the Propeller Group said, “Touching on issues of globalism, economy, industry, individuality, rebellion, violence and aesthetics, Static Friction: Burning Rubber is an attempt to discuss these larger issues with one simple act, the burnout”.

“They Come, Swiftly, Stealthily” by Ji Hye Yeom Born in 1982, Ji Hye Yeom also studied and lived in London. The artist created a video based on the fear that suddenly infiltrates ordinary days in one’s dail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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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uctures”, “Doshiru Archive Series” by Hyejin Jo Born in 1986, Hyejin Jo researched on the plastic palm leaves called “Doshiru”. Originally, “doshiru” was a Japanese word for the Tang-fortune palm, but as the word was pronounced in Korean, it picked up the unique indication of “fake leaves made up of plastic”. Through her piece, the artist examinates various meanings of such fake objects by looking through related documents of patent applications as well as their ontological dimension. Moreover, the artist expands her works into various forms of sculptures with an interest in the sculpted form of doshi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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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orrow I leave” by Lin + Lam Since 2010, Vietnamese artists Lin + Lam (Lana Lin and Lan Thao Lam) have produced multi-disciplinary research-based projects that address subjects such as immigration, sites of residual trauma, propaganda, democratization, militarism, national identity, and historical memory. Inspired by a particular site, historical incident, or political issue, Lin + Lam mix their backgrounds in architecture, photography, sculpture, installation and time-based media. Their work has been exhibited at international venues in the US, Europe, and Asia. “Tomorrow I leave” tells the story of someone who failed to settle down anywhere they went.

“Water/Mist/Fire/Off” by Young Zoo IM Born in 1982, Young Zoo IM is a Korean artist. Her work, “Water/Mist/Fire/Off” is the result of editing different found footages of fire. The artist used clips of fire she came upon on the web and added bizarre narrations to show the power of image-cross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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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lty-Image-Colony”, “The Wiped Wall” by Eun Sae Lee Capturing moments that involve no special event or narrative, Eun Sae Lee uses bright colors and unfamiliar compositions in her paintings. In “Guilty-Image-Colony”, a woman is lying in the bed near her green portable media players. The blanket is covered with strewn clothes, bags, and papers. Along with Do Thanh Lang, Nguyen Van Phuc H, and Nguyen Duc Dat, Eun Sae Lee represents the category of young painters inside the exhib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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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ck”, “The Ballade” by Do Thanh Lang Do Thanh Lang was born in Ho Chi Minh City in 1986. His works deal with bizarre occurrences that give off deep impressions in the moments then erupt energy. “To me, practicing art is an excitement. There is always spontaneity, accidents, and elements of surprise that go beyond my imagination. Emotion is a necessity to an artist. It needs to be captured and flourished. An uncontrollable burst of energy is always my creative premise. Ideas and images will eventually take place. Painting remains as a mysterious language, full of energy, and has profound content and philosophy.I want to do something fun and joyful,” he said describing “Stock”, and “The Ball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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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rai Dew Hammock Café” by Art Labor Art Labor is a group of artists based in Ho Chi Minh City and includes three core members as its cultural workers: artists Phan Thao-Nguyen, Truong Cong Tung, and curator/writer Arlette Quynh-Anh Tran. Founded in 2012, Art Labor has worked with many collaborators such as anthropologists, filmmakers, curators, writers, archivists, and entrepreneurs. “Jarai Dew hammock café” is part of Art Labor’s project “Jarai Dew”, which critically approaches the cost of the capitalized world through mythical narratives. Lying in hammocks, a common household appliance in Vietnam, visitors enjoy movies screened throughout the exhibition. In the same room, cups of coffee are placed on a table. The coffee served at “Jarai Dew hammock café” is made of 100% Robusta-a coffee variety introduced to Vietnam in the 1800s through French missionaries. It gradually became a crucial part of Vietnamese beverage culture and agricultural economy.


AJA FO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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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JA 글로벌 리더스 포럼, 인도네시아를 가다 下]

인도네시아에서 함께 한 열정과 도전의 4박5일

마냥 진지하고 그래서 더 뜨겁다. 여성발명가협회 직전 회장 조은경 다손 대표의 사업 경영담을 경청하고 있는 모습.

(사)아시아기자협회(AJA, 아자)가 주최하고 <아시아엔>과 <매거진 N>이 후원해 8월 23~2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수 라바야에서 열린 ‘2017 AJA 글로벌 리더스 포럼’ 개최안내가 시작될 때만 해도 “인도네시아 인구하고 자원 많은 나라지 만 가봐야 별 것 있겠어?” “일본 관광이나 중국 골프여행이면 모를까…” 대부분 시큰둥했다. 그리고 몇 주 후, 포럼 참가자 들 반응은 이랬다. “다시 꼭 찾고 싶은 나라 목록에 인도네시아를 넣겠다.” “딴 곳에서 경험 못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일정마 다 정성을 다해 진행해준 아자에 감사드린다.” “내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아시아기자협회 총회 때 참석할 기회를 달라.” 아시아기자협회는 작년 5월 초 인도네시아 대통령궁에서 조코 위도도 대통령을 만나 그의 방한 때 아주대에서 토크쇼를 하 자고 제안했다. 조코위 대통령은 이를 수락하고 2주 후 한국에 와 ‘청년의 미래’를 주제로 김동연 당시 아주대총장(현 기획재 정부 장관) 진행으로 토크쇼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당시 조코위 대통령은 “한국의 기업인들이 투자를 많이 할 수 있도록 지원 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인도네시아를 자주 찾아주기 바란다”고 했다. 그는 당시 토크쇼 에 앞서 아시아기자협회가 수여하는 ‘2016 자랑스런 아시아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7 AJA 글로벌 리더스 포럼’은 이렇 게 시작됐다. (사진 류진·김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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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수라바야로 이동하기 위해서 아침부터 서둘러야 했다. 금요일 아침 자카르타 거리를 헤쳐 공항까지 맞춰 가 려면 서둘러야 했다. 공항에 도착해 보니 자카르타공항이 상전벽해가 됐음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이번 이 다섯 번째인데, 놀랄 만큼 달라졌다. 내년 아시아경기대회 덕택이 아닌가 싶다. 자카르타에서 수라바야까지는 1시간20분. 비행기 창 밖으로는 연기를 간헐적으로 내뱉는 나즈막한 산들과 섬들이 보인다. 인도네시아가 아직도 활동중인 화산과 숱한 섬으로 이뤄진 나라임을 실감케 한다. 방문단이 지금 향하는 곳은 항구도시 수라바야다. 이 도시는 부산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고 한다. 공항에 도착하니 부라위자야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김진만 교수가 맞아준다. 그는 외교부에서 30년 이상 근무했다고 한다. 수라바야공항에서 숙소까지는 1시간30분 거리. 왕복 2차선과 4차선을 달려도 그리 막히는 길은 없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른한 오후 그늘막 안으로 일행이 모여든다. 2003년 초 전국민을 텔레비전 앞에 붙잡아 놓은 드라마 ‘올인’ 실제 주인공인 차민수 교수의 얘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차 교수의 차분하면서도 알맹이 있는 강의에 일행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주의를 기울인다. “지금은 무한경쟁의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고 있다. 4차산업은 정보·의료·교육·서비스산업 등 지식 집 약적 산업을 총칭한다. 스마트폰의 새로운 기술이 날로 향상하여 이미 정보화 시대를 맞았다. 뉴스가 급속히 전파돼 전 세계의 모든 상황이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특히 의료분야에 혁신적인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로 봇이 수술에 동원되며 수술 후 회복도 빨라질 것이다. 인간의 머릿속에 칩을 심어 모든 지식을 한꺼번에 집 어넣는 것도 가능해진다. 삶의 질 향상은 필연적으로 서비스분야의 발전을 가져올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카지노의 고급화와 대형화다. 인공지능으로 생산시설이 자동화되고 있는 것은 명암이 있다. 인공지능 발전이 일자리 감소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2020년대에 들어서는 현재직업의 47%가 사라질 것으로 전 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청년실업과 인구고령화에 직면한 한국은 이제 카지노와 같은 서비스산업의 발전을 꾀해 4차산업시대를 선도해야 한다.” 이날 저녁, 귀한 손님이 초대됐다. 수라바야상공회의소(Chamber of Commerce and Industry) 자마디 소장이 다. 그는 명함을 두 개 건넸다. 하나는 상공회의소 소장, 다른 하나는 자신이 소유와 경영을 겸하고 있는 ‘타 타 부미 라야’ 회사 대표 명함이다. 50대 중반인 자마디 소장은 “수라바야는 한국인들의 투자를 언제나 환영 한다. 우리는 부산시와 부산상공회의소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항구여서 운송이 편리하고 품질이 뛰어난 자원도 풍부하다. 여러분이 투자하신다면 도울 수 있는 게 많다”라며 홍보에 적극 나섰다. 적도 바로 아래 수라바야에서의 한여름 밤은 깊어가고 시계는 9시를 가리킨다. 일행은 서둘러 식사자리를 파해야 했다. 두시간 남짓 후면 브로모 화산지구로 향한다. 그 곳에서의 일출을 맞으러 가려면 잠시라도 잠 을 자둬야겠기에….

‘내추럴컬쳐센터’ 안 풀장 가운데 우뚝 서있는 成人像의 남색이 수라바야의 쪽빛 하늘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2003년 초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드라마 <올인> 실제주인공 차민수 강원관광대 명예교수가 ‘4차혁명시대와 한국의 미래’를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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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4 자정 언저리, 얼풋 들었던 잠에서 깨어난 나를 맞이해주는 건 풀벌레 소리, 수라바야 귀뚜라미 울음이 그다 지 낯설지 않다. 초저녁과 신새벽을 포함해 하루 5차례나 이슬람사원에서 스피커를 통해 퍼져오는 코란 낭 송소리에 비하면 자장가나 다름없는 풀벌레들의 합창을 뒤로 하고 버스에 오른다. 브라위자야대학 한국어과 4학년인 가이드는 “두시간 정도 간 뒤에 지프차로 갈아타고 1시간쯤 가면 브로모 화산에 도착한다”고 한다. 지프차로 옮겨타려는데 “안녕하세요” 하는 한국말 인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10대 후반쯤 돼 보이는 이곳 아이들은 브로모는 무척 추우니 모자와 장갑을 준비해야 한다고 외친다. 능숙한 곡예운전으로 포장 반, 비포장 반 덜컹덜컹 달려 도착하니 새벽 4시께, 인산인해다. 인도네시아 사람들 사이 에언 “브로모 일출을 보면 운수대통한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비운의 사도세자비 혜경궁홍씨가 지은 ‘동명일기’를 떠올리며 20~30분 지났을까, 멀리 하늘이 붉고 밝으스 레 물들기 시작한다. 정말 잠깐 사이다. “와, 와” 하는 소리와 함께 어느새 해는 허공 위로 쑤욱 솟아오른다. 이때 일행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화산인 듯 아닌 듯 1km쯤 떨어진 바톡산(Batok mountain)에서 흰 연기가 피 어오르는 거였다. 화산운동을 할 때는 불길도 보이지만, 지금은 연기만 나오는 정도다. 산은 위에서 아래로 가르마 타듯 화산재가 흘러내린 흔적을 안고 있다. 그때 드론이 연기가 나는 화산 주변을 빙빙 도는 게 보인다. 무슨 장면을 찍느냐고 물으니 분화구 주변을 중 심으로 촬영중이라고 했다. 방문단은 다시 지프차에 올랐다. 40분쯤 달리니 사막이 나오고 500개가 훨씬 넘는 계단 위로 사람들이 오르 내린다. 계단 100개쯤 남기고 “우우웅, 웅우웅, 우웅웅~” 소리가 점점 가까워온다. 분화구에서 허연 연기와 함께 나는 소리다. 화산이 쉬고 있는 동안에도 저 정도니 폭발 때는 어떨까 가히 짐작이 간다. 무섭고 위대한 자연의 힘이다. 나는 공연한 기대를 해본다. ‘저걸 전기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숙소로 되돌아오는 버스 안. 일행의 얼굴엔 다소 피곤함과 함께 뭔가 해냈다는 자신감이 동시에 묻어있다. “이 먼곳까지 와서 한밤중 일어나 일출도 보고 화산도 구경하고, 평생 한번 볼까 말까 한 장면들을 봤으니 이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잠시 낮잠을 즐긴 후 방문단은 회의실로 모였다. 이곳에서 인니 글로벌 리더십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진솔한 삶을 털어놨다. 주식농부 박영옥 스마트윈컴 대표를 시작으로 대통령 직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는 조은경 다손 대표, 정승원 (주)오쿠 회장, 이규진 삼성수내과 원장, 김기만 미라클팜 대표, 윤석호 (주)네 모파트너스 CEO, 박성현 에스명심 차장 등은 각자 10~20분씩 자신이 겪은 경험들을 털어놨다. 각자 처한 환경은 다르지만 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다.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겸손한 맘으로 정직하게 달려왔다. 그러다 보니 웬만한 어려움도 견딜 수 있었고 어느새 길이 보이더라.” 2시간 남짓 발표와 질의·응답을 마친 방문단들은 저녁 식사 후 풍등에 자신들의 바람을 하나둘씩 적기 시 작했다. 처음 나무에 걸릴 듯하던 풍등이 20분 이상 고공으로 순항하자 모두는 일제히 박수를 치며 얼싸안 고 환호했다. “뜻을 세우면 반드시 이뤄진다!” 수라바야의 둘쨋 밤 별은 유난히 빛났다.

DAY 5 4박5일의 일정이 언젠가 싶게 휙 지나간다. 자카르타로 다시 이동한 일행은 오후 쇼핑과 시내 관광 후 주인 도네시아 대사관저로 향했다. 만찬에는 호스트인 조태영 대사 부부와 세뮤얼 팡게라판 인도네시아 정보통신 부 차관보가 함께 했다. 인도네시아 국영통신사 임원으로 있던 그는 6개월 전 조코위 대통령에 의해 발탁됐 다고 했다. 이른바 ‘조코위 키즈’인 셈이다. 밤 11시 항공편에 맞추려면 만찬시간은 1시간 30분 남짓, 정성들 여 준비한 한식과 인니 현지식이 일품이다. 식사를 마친 조 대사가 노래방 기기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정확한 발음으로 인도네시아어로 노래를 두곡 잇따라 불렀다. 그때였다. 잠시 흡연을 즐기던 팡게라판 차관보가 마이크를 넘겨받더니 노래를 부른다. 프랑 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다. 어느 새 방문단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어깨를 걸고 한목소리, 하나가 돼 있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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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화산 ‘바톡ʼ 너머 해가 꿈틀대고 있다. 이 화산은 하얀 연기만 뿜어낼 뿐 불길이 솟는 일 은 없다고 한다. 이 일대엔 매일 아침 일출 장면을 보려는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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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수프랍토 아시아기자협회 차기회장과 송성희 LOA(Light of Astro) 이사가 일출 직후 바톡 휴화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하루 중 기온이 가장 낮을 때는 해뜨기 직전. 8월말 한국이나 인도네시아나 여름인데, 고산지대인 탓에 제법 춥다. 하지만 방문단은 미소를 결코 빼앗기지 않겠다는 모습이다. <매거진 N> 표지의 문재인 대통령과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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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프차에서 말 안장으로…. 그는 사막의 용사가 돼 브로모 화산을 향해 달리는 기수. 미지의 세계에 대한 아름다운 도전은 꿈을 포기하지 않은 자의 특권이라고 했다.

브로모 화산 등정을 위해 줄지어 달리는 지프차 행렬. 모래 먼지가 자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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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 이제 오십 계단만 더 걸으면 브로모 화산이다. 오를수록 가파르지만 그만큼 정상은 가깝다는 얘기. 브로모 화산. 물웅덩이도 불구덩이도 아니다. 深淵의 끝은 안 보이고, 태초의 소리와 휴화산의 후끈한 열기와 하얀 연기만 쉼없이 피어오른다.

정복자의 여유? 브로모 화산 정상에서 내려온 일행의 얼굴엔 여유와 미소가 넘친다. 이곳 에서도 <매거진N> 마케팅을 할 정도로….

삼성수내과 이규진 원장이 말 탄 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검은색 그림자는 말과 이 원 장의 것, 하얀 그림자는 그의 아우라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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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라바야 2일차 자체 포럼을 마친 방문단이 인도네시아 독립운동의 한 장면을 묘사한 그림 을 배경으로 단체촬영을 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 이상기 아시아기자협회 창립회장, 설명복 제주아라농어촌휴양림 대표, 박성현 에스명심 차장, 차민 수 강원관광대 명예교수, 윤석호 네모파트너스 대표, 김기만 미라클팜 대표, 이송주 국제해독 영양학회 회장, 송성희 LOA 디렉터, 구명수 공군사관학교 교수, 이규진 삼성수내과 원장, 정 승원 (주)오쿠 회장, 이경희 에스명심 이사, 박영식 (주)세보테코스메틱 회장, 박양술 에스명심 회장, 조은경 (주)다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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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교통난을 겪고 있는 자카르타에서 오토바이는 승용차와 버스 틈을 비집고 다니며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 되고 있다. 손님에게 돈을 받고 태워주는 오토바이 영업도 성업 중 이다. 인도네시아어로 ‘오젝’(Ojek)이라고 한다.

주인도네시아 대사관저에서. 왼쪽부터 이상기 아자 창립회장, 김기만 미라클팜 대표, 세뮤 얼 판게라판 정보통신부 차관보, 조태영 대사, 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

주인도네시아 대사관저에서 귀국 직전 만찬을 들고 있는 방문단. 조태영 대사는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날로 좋아져 보람이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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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Indonesia, Where we are together

It was the third day of our trip to Indonesia

live-action games, medical robots assisting in

(August 25th). We made our way to the airport

the surgery room, and even micro-chips that

that morning to make our prompt journey to

when ingested, can store all the information

Surabaya. Upon arrival, the first things to enter

inside one’s brain for later use. People are ever

our view was the low range of hills that were

busy in thinking of new and creative ways

puffing out curls of smoke. Recalling Indonesia

to improve overall life quality. Particularly in

as a collection of islands with active volcanic

Korea, in order to face the continuing problem

mountains, we continued on the path to where

of its aging society, more jobs need to be made

we would stay for the evening.

available for the young. Expanding the casino

The afternoon moved at a delightfully relaxing note. We soon gathered under

business could be one beneficial way to meet this need in such an age of industrial change.”

the shade of Surabaya forestry to listen to

On that same evening, Dr. Jamhadi, head

professional gambler, Jimmy Cha—the real-life

of Surabaya’s Chamber of Commerce and

protagonist of movie “All In”, which at the time

Industry, came as a VIP guest and expressed

of its release, was wildly popular in Korea.

his enthusiasm for Korea and Indonesia

Jimmy Cha related his view on current

partnership, “Surabaya always welcomes

t rends i n busi ness a nd tec h nolog ica l

investments by Korea’s businessmen. We

development: “In our age of limitless

currently hold a sisterhood with Busan City

competition, we have arrived at the fourth

and Busan’s Chamber of Commerce and

great industrial revolution. This time, the

Industry and can guarantee ease in trading

revolution includes all the combined sectors of

process and availability of quality resources. If

information, medicine, education, and service,

you are willing to invest, I believe that I can be

among others. As more information and news

of help in many ways.”

is circulated through web platforms, similar

Thus, the evening proceeded. Next

changes in development are simultaneously

morning, and early morning at that, we headed

occurring around the world. There has been

over to Mount Bromo to enjoy the majestic

a rise in incredible new inventions: you have

sunrise at the very top. Noon came around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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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rode a jeep along bumpy roads leading to Bromo. It is said amongst locals that your luck will increase if you do get to see the break of dawn on top of Bromo…And all of a sudden, it happened. With only a moment to proclaim our awe, the sun was already over our heads and had risen to the sound of birds calling above. Bromo is an active volcano that occasionally spits out fire, but not this time; only smoke curled out from the center. Back on the jeep, we could see hikers climbing what appeared to be a staircase of over 500 steps to Bromo’s volcanic crater. The closer we got to the center, a bellowing woo-ing sound could be heard as Bromo let out its smoke. It was truly a sight of awe to know the magnitude of sound Bromo makes even when it is not in eruption. We had set out so early in the morning that most of us were ready for a good long nap. Then we, the Korean visitation group, gathered ourselves to share our experiences being in very different but somehow, interconnected fields. Members (including CEO of Smartincome Park Young-ok, Dason CEO Cho Eun-kyung, Chairman of OCOO Jeong Hye-soon, Director of Samsung Soo Clinic Lee Gyu-jin, Miracle Farm CEO Kim Kee-man, CEO of Nemopartners Yoon Suk-ho, and Deputy Manager of ESS Myungsim Park Sung-hyun) each gave a 10-20 minute speech of their work and hardships they had to face along the way. But one feeling was shared by all: “Any difficulty can be overcome through diligence, hard work, and a humble mind.” In no time at all, our 5-day trip had come to a close. For the final dinner, Ambassador Cho Tai-young and his wife, along with Samuel Pangerapan, Director General of the Ministry of Communication and Informatics in Indonesia, graced us with their presence. The feast was a fusion of fine Korean and Indonesia delicacies, embracing both nation’s cuisines for a wonderful meal. Right then, Ambassador Cho held the microphone at the karaoke booth. He proceeded to sing two songs in perfect Indonesian pronunciation. Then Director General Pangerapan stood for his turn. He sang Frank Sinatra’s “My Way”. And before we could ask who started it, everyone had their arms across each other’s shoulders, swaying to the music. It was in that particular moment— our voices were one, and we had become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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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East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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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apore Buzz For Non-Chinese PM Ivan Lim is President of the Asia Journalist Association(AJA). He was labour correspondent for The Straits Times in Singapore, President of Confederation of ASEAN Journalists(CAJ), Secretary General of the Singapore National Union of Journalists, and Chairman of Environmental Forum for Communicators of Singapore(ECOS). Summary

중국계 총리들이 다스린 싱가포르, 다음 총리는 비중국계? 2017년 9월 13일, 싱가포르는 역사적인 날을 맞이했다. 대통령선거위원회의 대통령 후보 적격 심사를 유일하게 통과한 말레이계 할리마 야콥 전 국회의장이 여성으로선 최초로 대통령직을 맡게 된 것이다. 싱가포르는 1991년 6년 임기의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했지만, 이번 선거는 그동안 대통령직을 맡지 못 한 말레이계에만 입후보 권한이 주어졌다. 리센룽 총리는 작년 말 최근 5차례 임기 동안 대통령을 배출 하지 못한 소수인종에 단독 입후보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도록 헌법을 개정했는데, 야콥 대통령이 그 첫 번째 수혜자가 됐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엘리트계층은 제한된 대통령 선거가 싱가포르 민주주의에 역행한다고 비판한다. “싱가포르 국민들은 인종과 언어, 출신 지역에 구애 받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국민 모두를 정의와 평 등에 기반한 민주사회의 구성원이라 여긴다.” 대통령 제한선거에 항의하는 집회에 참석자의 발언이다. 9월 16일 홍림 공원에서 열린 이 자리에는 천명 이상이 참석했으며, 이들은 #NotMyPresident(우리의 대 통령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검은 티를 착용하고 시위에 나섰다. 대통령 입후보자격이 말레이계에 한정되지 않았다면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는 탄쳉복 전 인민행동당 (People’s Action Party, PAP) 의원이었다. 탄쳉복은 2011년 앞선 대선에서도 토니 탄 전임 대통령에 불과 7382표로 패배했다. 탄쳉복의 지지자들은 이번 제한 선거가 그의 입후보를 막으려는 정부의 의도가 담 겨있다고 항의한다. 싱가포르는 이 상황을 정리하지 못한 채, ‘어떠한 인종이 총리직을 맡아야 하는가’라 는 또다른 논란을 맞이했다. 리센룽 총리는 그동안 “2021년 1월 열릴 총선에서 (자신의) 정치적 후계자가 나와야 한다”고 밝혀왔다. 리센룽의 후계자로 여러 인물들이 거론되는 가운데, 타르만 샨무가라트남 부총리가 그 선두주자로 꼽 히고 있다. 60세의 타르만 부총리는 실론 타밀계 출신으로, 다른 지원자들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다. 이에 대해 리센룽 총리는 2015년 7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타 인종도 총리직을 수행할 수 있으 나, 인종에 상관 없이 싱가포르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소통능력이 전제되어야만 한다”고 밝혔다. 52년 독립국가 역사 동안 싱가포르는 세 명의 중국계 총리를 가졌다. 흥미로운 것은 싱가포르 초기에는 인종에 따른 갈등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싱가포르가 자치 국가가 되기 이전 총리직을 역임했던 데이비드 마샬의 공이 컸다. 유태인 출신인 그는 타고난 언변과 성실성으로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 등 여러 민족이 모여있던 싱가포르를 조화로 이끌었다. 리센룽의 후계자 논의는 머지 않은 시일 내에 싱가포르의 가장 중요한 의제로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싱가포르엔 그의 뒤를 이어 총리직을 맡을 인물은 단순 정치 지도력뿐만 아니라 다인종 국가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역량도 갖춰야 한다는 공감대가 자리하고 있다.

아이반 림 아시아기자협회 명예회장

Singapore made history on September 13, 2017 by choosing a woman as the Head of State. Halimah Yacob, 63, an immediatepast Speaker of Parliament, was elevated to be the Elected President (EP) in a walkover. A member of the Malay community, she rose to the highest office of the land in the first reserved Presidential Election since 1991 when the institution was created for the election of the President for a six-year-term on a nationwide, one-man-one-vote basis. This year’s election, restricted to Malay candidates, took place 11 months after the Government under Prime Minister Lee Hsien Loong pushed through Parliament amendments to the current election system. One key change is a built-in triggering mechanism that says if no President has been elected from the racial groups—Chinese, Malay, Indian and Others, including Eurasians, for five years, a reserved election will kick in for candidates from that racial group. Another new feature is the higher bar for private-sector candidates, namely, that they must have at least three years’ experience running a profit-making company with at least $500 million shareholder equity, up from the previous $200 million. The first Malay President, Yusof Ishak, appointed by Parliament in 1965, was followed by other appointed Presidents--Benjamin Sheares (Eurasian), Devan Nair (Indian) and Wee Kim Wee (Chinese)—including elected Presidents Ong Teng Cheon (Chinese), S. R. Nathan (Indian) and Tony Tan (Chinese). Halimah Yacob’s uncontested election came 47 years after President Yusof’s five-year term ended in 1970. The election of a second Malay President has been hailed by the government as affirming Singapore’s multiracial population (5.8 million) make-up of Chinese (75%), Malay (13%), Indian (11%), and Others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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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imah Yacob is surrounded by supporters in Singapore. Yacob was named Singapore’s eighth president on Wednesday without a vote.

“People think we may be going backwards, towards racial politics. But actually, the reality is the opposite. We are making necessary changes to strengthen our multi-racial system.” Lee Hsien Loong said during a grassroots meeting on Sept 30. But sections of the intelligentsia have decried the reserved presidential election as a regressive step for multiracialism. “How do I tell my son to believe in the national pledge ‘We the people of Singapore pledge ourselves as one united people regardless of race, language and religion to build a democratic society based on justice and equality...’” said a father of a school-going child, taking part in a silent sit-in on September 16 to protest against the Reserved President scheme in Hong Lim Park. At least

a thousand people, many clad in black T-shirt emblazoned with the hashtag #NotMyPresident, gathered at the designated Speakers’ Corner site close by Chinatown where citizens and permanent residents can stage demonstrations and air their views on controversial national policies. On social media, commentator Ismail Kassim said, “This (reserved Elected President) is the greatest setback to multiracialism since independence and a blow against meritocracy, and the concept of having the best man for the job, to be freely chosen by the electorate.” It was apparent that their preferred candidate in an open Presidential election was the outspoken former ruling People’s Action Party (PAP) law-maker, Tan Cheng Bock, who showed up at the

rally and was immediately mobbed by the crowd. The veteran politician who still retains a following in PAP ranks, came close to defeating the establishment candidate, Tony Tan, in the 2011 presidential election by a mere 7,382 votes. In his campaign for President, Tan Cheng Bock (77) declared he would ask “relevant questions” and would even “warn” the government if it should try to dip into the country’s reserves without justification, a stance on the President’s “second key” role to safeguard the nation’s accumulated reserves that did not endear him to the government. But Tan’s supporters were gearing for another go to send him to the Istana, the presidential palace, when the government sprang its surprise Reserved President gambit. Tan’s frustrated s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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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imah Yacob, left, walks before taking the oath of office and is followed by Singapore Prime Minister Lee Hsien Loong, center, and Chief Justice Sundaresh Menon before the presidential inauguration ceremony at the Istana Presidential Palace in Singapore, Thursday, Sept. 14, 2017.

porters read it as designed to block him out of the race, a charge the government denied. If not, why did the government implement the Reserved President scheme, which Parliament endorsed only in November last year, without giving the electorate time to prepare for the momentous change? Given that the Reserved Election went the government’s way, some protesters at the Speakers’ Corner and on social media were also upset that two other candidates—businessmen Mohamed Salleh Marican and Farid Khan—were ruled ineligible by the Presidential Election Committee for not meeting the $500 million capitalisation criterion, thereby allowing Halimah to be returned as President without contestation. Arising from the intense Reserved Presidency debate, the spotlight turned unwittingly towards the issue of a race-

blind way of choosing the next Prime Minister on the basis of best-person for the post. The idea gains currency as Prime Minister Lee, 65, had said his political successor should be identified soon after the next general election, which must be held by 15 January, 2021. And the name on many lips at the rally to succeed Prime Minister Lee Hsien Loong is the popular and capable Deputy Prime Minister who is also Coordinating Minister for Economics and Social Policies, Tharman Shanmugaratnam. Tharman (60) who is of Ceylonese Tamil ancestry, is rated highly against other potential candidates. A Yahoo commissioned straw poll shows him leading 69% against fellow Deputy Prime Minister Teo Chee Hean (34%), Finance Minister Heng Swee Kiat (25%) and Minister in the Prime Minister’s Of-

fice Chan Chun Sing (24%). “Mr. Tharman is well qualified and respected, with international experience,” said one rally participant. Indeed, the London School of Economics-, Cambridge-, and Harvard-trained economist had held the Finance and Education portfolios, and now helms the Monetary Authority of Singapore, the central bank and financial regulator. He had been the first Asian chairman of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financial committee. Despite such credentials, Tharman must still develop language skills to reach out to both the Chinese and nonChinese electorate. When asked “could a non-Chinese be Prime Minister?”, Lee Hsien Loong replied it is possible but a lot hinges on the person’s ability to communicate effectively with the grassroots. (Time interview July 2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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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wave the Singapore national flags during the national day parade and celebration held in Singapore’s Marina Bay on Aug. 9, 2017. Singapore celebrated its 52nd anniversary of independence on Wednesday.

“You must have the right person, you must have the politics worked out, you must be able to connect both with the Chinese as well as the non-Chinese population,’’ he said. He added that, with the new generation of Singaporeans, the prospects are better for a non-Chinese to gain acceptance as Prime Minister. The Englishspeaking Tharman finds himself at home with the young generation who speaks English, the administrative lingo in Singapore. Unlike the Presidency, however, there is no provision in the Constitution for rotating the office of Prime Minister among the different racial groups. In line with the Westminster parliamentary system, Singapore’s Prime Minister is chosen by his peers in the ruling party and on gaining majority support of MPs in Parliament is formally and duly appointed by the President.

In the 52 years as a sovereign state, Singapore has had three consecutive Chinese heads of government. The first to take office as PM after Singapore attained self-government from the British Raj in 1959 was Lee Kuan Yew. The People’s Action Party leader presided over the merger with the Federation of Malaysia, and the British colonial territories of Sabah and Sarawak to form the Malaysia federation on September 1963. He continued as Prime Minister after Singapore’s secession from Malaysia in 1965 and held office till November 1990 passing the baton to Goh Chok Tong. Prime Minister Goh was at the helm till 12 August 2004 when Lee’s son, Lee Hsien Loong, became the third Prime Minister. Interestingly, in the early days of Singapore’s struggle for self-government, the race factor did not figure prominently in the rise of political

leaders. In 1955, David Saul Marshall, a Jewish criminal-lawyer-turned politician, led his Labour Front to victory in the Legislative Assembly election and became Singapore’s first Chief Minister. His oratory and genius in getting criminals off the hangman’s noose had made him a folk hero to the Chinese, Malays, Indians, and Eurasians caught up in the struggle for multi-ethnic independence. “He believed he was in a unique position to do so; he was an Asian but neither Malay, Chinese or Indian. He would gather all the races together so that they could live in tolerance and harmony,” according to Alex Josey, author of David Marshall’s Political Interlude. In the contemporary discourse on finding a successor to Prime Minister Lee Hsien Loong, the public sentiments expressed in favour of the best man for the job might appear to run ahead of the political leade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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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gladesh Proposes International Safe-Zone in Myanmar Shafiqul Bashar is President of AJA Bangladesh Chapter. He is a senior journalist and worked with various news media of Bangladesh and some other countries of South and South-East Asia. He earned his M.A. in Journalism from Dhaka University. He was a recipient of a Fellowship in Mass Communication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1995). At present, he is News Consultant of Bangladesh National News Agency BSS. Summary

방글라데시, 미얀마에 ‘로힝야 안전지대’ 설치 제안 8월말 시작된 미얀마 소수민족 로힝야 족의 방글라데시를 향한 ‘엑소더스’가 이어지는 가운데, 방글라데 시가 이들의 비극을 끝내기 위한 결단을 내렸다. 방글라데시 외교부 고위관료는 핍박받는 로힝야 족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지대를 미얀마에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 방글라데시 정부는 여러 단체와 국가들에 협조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방글라데시 다카의 유엔 사무소에 따르면 8월 25일 로힝야 족 과 미얀마 군이 충돌한 이후 약 30만명의 로힝야 족이 방글라데시로 유입됐다. 미얀마에서 로힝야 사태는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2016년 10월에도 로힝야족 거주지인 라킨주에서 유사한 박해는 발생해 84,000여명의 로힝야 족이 화를 피하기 위해 방글라데시로 향했다. 이들 로힝야 의 ‘피난의 역사’는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얀마 군부 정부가 로힝야를 박해하면서 수십만 로힝 야 난민들이 방글라데시로 피난을 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약 40만의 로힝야 족이 방글라데시로 건너 왔고, 이들은 현재 방글라데시 남동부 콕스 바자르 지역에 정착해 살고 있다. 후에 유엔 난민기구가 주도해 20만 로힝야를 미얀마로 송환시켰으나, 2만은 미얀마 당국의 거절로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이들은 현재 두 개의 메인 캠프에서 살고 있으며, 세월이 흐름에 따라 로힝야 거주민 은 총 3만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미얀마 군부와 경찰의 박해는 더욱 심해졌고, 이전보다 더 많은 로힝야들이 국경과 사선을 넘나들고 있다. 오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글라데시는 그동안 로힝야 난민들이 고국인 미얀마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국제사회에 요청해왔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로힝야 난민들이 수세기 동안 살아온 고 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정작 미얀마 당국은 로힝야 족을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 더러, 방글라데시에 정착한 사람들(벵갈리)이라 규정지었다. 그리고 지금도 미얀마 라킨 주에선 로힝야들은 인권을 비참하게 유린당하고 있다. 전 지구적인 이슈가 된 이 사안에 대해 유엔, 국제인권단체, 미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은 “미얀마가 로킨 주에서 자행하고 있는 폭력을 지금 즉시 중단하라”고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미얀마의 이웃국이자 로힝야 사태에 직접 적으로 관여된 방글라데시에서도 로힝야 사태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주요 매체 인 <더데일리스타>(The Daily Star)는 “미얀마에서의 잔악무도한 폭력에 정치인, 인권운동단체, 노벨상 수 상자 등 전세계는 로힝야 사태가 진정되길 바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세계는 또한 미얀마의 실질적인 지도자 아웅산 수치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사태를 방관하 고 있는데 대해 분노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에 맞서기는커녕 비판조차 하지 않고 있다. 평생을 미얀마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에 기여한 공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아웅산 수 치는 일그러진 영웅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샤피쿨 바샤르 아시아기자협회 방글라데시 지부장

The Arakan Rohingya Salvation Army (ARSA), that since August have raided a number of Myanmar police posts creating a bloodbath of fighting, signed into agreement on September 10 to a month-long ceasefire on the military so that more urgent humanitarian issues and aid could reach civilians. In this article, The AsiaN offers to readers a runthrough of the current dilemma surrounding the Rohingyas through Asia Journalist Association (AJA) Branch President Shafiqul Bashar (Bangladesh). -Editor’s Note W h i le t he exodus of Roh i ng ya refugees from Myanmar to Bangladesh continues, Dhaka has stepped up diplomatic efforts to bring an end to this humanity crisis that began in the last week of August. Top officials of the Bangladesh Foreign and Home Ministry told newsmen in Dhaka that Bangladesh has taken a diplomatic initiative to have an area in Myanmar declared an “international safe zone” under UN supervision to ensure safety, security, food and shelter for the homeless and repressed Rohingyas as well as to stop their influx towards Ba ngladesh. T he gover n ment of Bangladesh has sent letters in this regard to the United Nations, International Committee of the Red Cross (ICRC), 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 (ASEAN), Organization of Islamic Cooperation (OIC), and other organizations. According to information available from the UN offices in Dhaka, about 300,000 Rohingyas entered Bangladesh territory since August 25 when the Myanmar army cracked down on Rohingya minority communities in Rakhine province of Myanmar. The army began the persecution against Rohingyas following attacks on some police camps and military outposts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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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arrived Rohingya scuffle for puffed rice food rations donated by local volunteers, Kutupalong, Bangladesh, Saturday, Sept. 9, 2017.

insurgents. Nearly 1,000 Rohingyas were killed in this military operation and thousands of them, mostly women and children, fled to Bangladesh in search of refuge. About 100 drowned in the Naaf river while they were trying to cross over by boats to reach land. The people who successfully arrived in Bangladesh have spoken of barbaric killings, rapes, and Rohingya villages being set on fire. Previously in October 2016, similar sit uations occurred in Rak hine province and at the time, 84,000 Rohingyas escaped to Bangladesh. Persecution of Rohingyas in Rakhine province continues ever since 1978; since then, some 400,000 Rohingya refugees found shelter in Bangladesh and are living in Cox’s Bazar district. T he i n f lu x of Roh i ng ya s f rom Myanmar to Bangladesh is now a big

problem for the government and for the people of this country. Bangladesh also requested that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ake necessary steps for the repatriation of Rohingya refugees from Bangladesh to their homeland in Myanmar. The Bangladesh government believes that the Rohingya refugees should go back since they are, by law, still citizens of Myanmar and have been living in that country for centuries. Myanmar authorities, however, decline to accept Rohingyas as their citizens and describe them as Bengali settlers, denying them basic rights such as the right to vote in elections. But the fact remains that Rohingya settlers were found in Rak hine province since as early as the 8th century. Over the years, nomads and migrants from Bangladesh and South-

East India moved to the vast, empty, and barren land of Rakhine province and engaged themselves in cultivating the land by producing agricultural crops. Since then, they have lived there for generations after generations with relative peace and stability. They became known as the Rohingya and enjoyed equal status as the Burmese (now Myanmar) people. During the time Burma (Myanmar) and India were under British colonial rule for 200 years, British rulers recognized Rohingyas as an ethnic Burmese community. Indeed, the Rohingya have their own language and culture that differ from those who live in Bangladesh. Internationally, they are still considered as one of the ethnic minorities of Myanmar. There is no specific information about the size of the Rohingya population, but it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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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anmar military and police, many more Rohingyas have illegally crossed over to Bangladesh in the past years. This year being no different, since August 25, severe persecution of Rohingyas continues which has created a disastrous human crisis that has drawn the attention of the world. The United Nations, internal organizations, and many countries including the United States have expressed their deep concern, urging Myanmar authorities to stop violence in Rakhine province. Leading Bangladesh newspaper The Daily Star reported on September 9: “International outcry over the atrocities against Rohingyas is growing castigating the Myanmar government, as an estimated 2,700,000 of the persecuted community have sought refuge in Bangladesh over the past two weeks.” Many are slamming Aung San Suu Kyi, Myanmar’s de facto leader, for failing to condemn the violence against

the minority group of her country, leaving her global reputation as an icon of democracy in tatters. US lawmakers who once strongly backed her rise to power are shifting their position to criticism of her silence in the face of the bloody military c rac kdow n o n t h e Roh i ng ya s. Congressional leaders from both the Democratic and Republican parties have added their voices to the international condemnation (Washington Post). The Trump administration is under growing pressure by Congress and other agencies to condemn brutalities on Rohingyas. However, neither the White House nor the State Department has yet to come out with any such statement, writes Politico. Activists in the US say only direct messages from Trump or Secretary of State Rex Tillerson are likely to influence Myanmar’s repressive military and save civilian l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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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timated that they reach around 1.5 million in number. The then military government of Myanmar began their persecution of the Rohingyas in 1977 and started pushing them towards Bangladesh territory. Though the Bangladeshi government opposed such movement, several hundred thousand Rohingyas entered the country in 1978 and were given shelter at several refugee camps in the Teknaf of Cox’s Bazar district of Bangladesh. T h e s e r e f ug e e c a mp s we r e maintained jointly by the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 (UNHCR) and Bangladesh. Later, by the initiative of the UNHCR, over 200,000 refugees were repatriated to Myanmar, but some 20,000 could not go back as Myanmar authorities refused to accept them. These people are still living in two camps while their number has increased to 30,000 refugees. Due to persecutio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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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hingya woman holds a child and stands for a photograph at Palangkhali refugee camp in Cox's Bazar, Banglade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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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ING GEOPOLITICS IN THE INDO-PACIFIC REGION Neelima Mathur has worked in the field of media as researcher, writer, executive producer and now trainer for nearly four decades. Her experience includes print, radio, television journalism and documentary film-making. She continues as Executive Producer, Researcher ; Writer at SPOTFILMS, Trustee & Trainer at FORMEDIA. Summary

미국-인도-일본 강화되는 3국 공조와 중국의 깊어지는 주름 최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인도 방문과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극진한 환대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달라 진 역학관계를 드러낸 사례다. 인도와 일본은 최근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이후 더욱 가까워진 측면도 있 다. 이들이 가까워진 것은 비단 북한 때문만은 아니다. 두 국가는 남중국해 공세에 대처해야 할 필요성 또한 느끼고 있었다. 중국은 수년간 남중국해 영유권 문 제로 아세안 국가들(특히 베트남)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었지만, 필리핀이 균형을 깨면서 사태는 복잡해졌다. 필리핀이 오랜 세월 유지해왔던 친미 노선을 버리고 최근 친중 노선으로 선회하며 균형이 흔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도 마냥 속이 편한 것은 아니다. 중국은 지난 7월 미국-인도-일본이 인도 해에서 벌인 말라 바르 훈련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태 지역의 또다른 주요 국가 호주와 싱가포르 역시 3국의 편에 서 있는 상황이다. 최근 몇 년간 벌어진 아태지역의 지정학적 변화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우리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지난 세기 인류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20세기 초중반, 일본은 35년간 조선을 지배하면서 끔찍한 기억들을 남겼다. 일본은 패망하며 떠났지만 한반도는 분단돼 북한은 러시아, 남한은 미국의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된다. 한반도가 일본으로부터 독립 한지 불과 수년이 지난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38선의 비무장지대는 남북한 분단의 상징으로 지 금도 남아있다. 현재로 돌아오자. 북한 김정은은 전 지구를 상대로 연일 핵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는 언제라도 미사일 발 사버튼을 누를 듯이 호전적인 태도를 보이며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 미국은 김정은의 일거수일투족에 촉 각을 곤두세우는 한편, 인도와 일본 역시 북핵에 맞서 공조할 것을 선언했다. 일본의 아베 총리와 인도의 모디 총리의 우호관계는 일시적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만약 아베가 권력을 이어간다면, 이들의 관계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여기에 또다른 축인 미국을 대입해보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세계로부터 조 롱 당하고 있는 측면도 있지만, 미국의 군사력은 결코 얕볼수 없다. 또한 미국 역시 북한 이슈에 대처하기 위해 인도, 일본과 공조하고 있다. 3국의 연대로 중국이 골머리를 앓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중국은 세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실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각에선 통일 한반도가 중국 경제에 궁극적으로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 중국 경제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요소는 미국과 인도란 측면에서 타 당성이 있어 보인다. 이러한 역학 구도에서 미국-인도-일본의 동행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일련의 사건들이 더해지고 나서 완성될 새로운 역학관계에서 이들 3국이 아태지역의 주역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닐리마 마터 <아시아엔> 인도 특파원

Within a span of less than one hundred years, geo-politics is proving that alignments result from need and circumstance. The recent visit of Shinzo Abe, Prime Minister of Japan, to India fully reflects changing dynamics in what is now referred to as the IndoPacific region. A dynamic which could well influence positioning of global power. The recent missile tests by North Korea under President Kim Jong-un’s orders have included threats to USA and missiles flying over Japan. One is an existing super power, and one a technological super power probably aspiring to be a coalition super power. Then comes into play the South China Sea. China has been on an aggressive stance and the responses of Vietnam and the Philippines have changed the balances. While the Philippines did a flip-flop and “divorced” from the US to side with China (on the latter’s friendly advice), Vietnam along with India are in a tight situation. It was short-lived because Vietnam had to take heed of China’s stern warnings on oil explorations in what China considers is its own sea. Meanwhile, the issue of the Malabar naval exercises in the Indian Ocean came up, a joint event conducted regularly by the USA and India, with Japan joining in 2015. China has not taken kindly to this powerful trilateral arrangement last conducted as recently as July 2017. Australia and Singapore remain non-permanent members of this huge exercise to combat Chinese navy submarines increasingly lurking in the Indian Ocean. Now see all this in context of other historical and present pointers. Japan ruled over Korea for 35 years, leaving behind harsh memories. There was a complicated scenario of culminating events. Japan was defeated, Korea was divided, the Russians took over No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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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t forward to the present. Kim Jong-un cannot resist what are termed as his nuclear antics. Some actually believe he is exploiting the world’s fear that he is a madman who can press the button any day and is keeping up a belligerent stand. The USA ups its antenna, the Security Council calls an emergency meeting, India and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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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the USA, South Korea. More was in store when North Korea later invaded South Korea. Various forces under the United Nations command almost captured North Korea. Then China stepped in and rolled back the UN forces. The demilitarised zone (DMZ) at 38th parallel remains the thin line of tension between the two Kore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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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ese Prime Minister Shinzo Abe and Indian Prime Minister Narendra Modi press buttons to inaugurate ventures between the two countries during the India Japan annual summit in Ahmadabad, India, Thursday, Sept. 14, 2017.

declare they will deal with North Korea jointly, and India has been forced to comply with UN sanctions against North Korea. Conflicting dynamics and a world that runs on interconnectedness

The personal dynamics between Japan’s Shinzo Abe and Narendra Modi of India cannot be understated. If Shinzo wins the next elections, this partnership will only grow. While Trump himself is a President that the world laughs and mocks about, militarily the USA is not anywhere to be ignored and is on the same side as Japan and India on the North Korea issue. No wonder there is churning within China. There are murmurs that open discussions are already being allowed because China is probably beginning to realise that the world has changed since the Great Revolution. There is even talk that a unified Korea would ultimately be economically great for China. The biggest threat for China today is a roll back on trade by USA and India. That would hit the Chinese economy in a big way. Which could be the reason why, in line with United Nations sanctions, China recently firmly announced limits on exports of petroleum products to North Korea and textile imports from the nation. M e a nwh i l e, P ut i n r e m a i n s ambivalent. Russia voted in favour of sanctions during the UN Security Council meeting. On the other hand, Putin talks of a Russia-China roadmap for resolving North Korea issues and begs for calm even as he declares there could be a planetary catastrophe if North Korea is not reigned in. In this bizarre game of politics, the coming together of US, Japan, India as a force in the Indo-Pacific region cannot be understated. It may well be a precursor to a completely new geopolitical dynam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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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ddle East, Divided the Two Ashraf Aboul-Yazid(Dali) is an Egyptian poet, novelist, translator, journalist, traveler and TV presenter. He won the Arab Journalism Award in culture 2015, and Manhae Grand Prize in Literature 2014. He has published more than 30 books of poems, novels, travels, and children literature. Some of his literary works are translated into Spanish, Korean, Turkish, English, and Persian. He is also President of AJA and Editor-in-Chief of the Arabic version of The AsiaN . Summary

오일머니가 낳은 두 개의 중동 ‘중동’(Middle East)은 아프리카 북부의 이집트와 아시아의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 이라크, 예멘과 아 라비아반도의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 두 지역의 아랍국가들을 한데 묶기 위해 탄생한 용어다. 이 국가들은 통치체제에 따라 공화정, 왕정으로도 나뉜다. 80여년 전만 해도 아랍국가들은 연약했다. 인프라도 채 갖춰지지 않은 아랍국가의 통치자들은 영국의 조력 하에 근근이 권 력을 유지해나갔다. 때문에 아랍국가들은 유전이 발견되기 전까지 낙후된 경제체제 속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영국이 1차 대전 이후 이라크에서 아랍 최초의 유전을 발견하며 변화가 시작됐다. 1932년 스탠다 드오일캘리포니아도 바레인에서 유전을 발견했다. 1933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석유 채굴권을 획득한 스 탠다드오일캘리포니아는 1938년 이 곳에서도 유전을 발견했다. 1930년대 미국과 영국은 걸프 지역의 유 전 발견과 석유 채굴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러나 유전을 발견했다고 해서 아랍의 지배자들이 하루아침에 막대한 부를 획득한 것은 아니었다. 1930년대 발견된 아랍의 유전들은 2차대전으로 인해 개 발이 지연됐기에, 1950년대 들어서야 수익이 나게 됐다. 석유사업이 탄력을 받자 걸프 국가들은 황량한 땅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1953년, 쿠웨이트는 걸프에서 가장 큰 석유생산국이 됐다. 카타르 역시 1950년 대 들어 석유 채굴을 시작했다. 후발주자인 아랍에미리트의 토호국들도 수년 후 석유사업에 뛰어들었다. 석유는 아랍국가들의 사회-정치 분야에 있어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그 결과 아랍에도 공화국이 등장하 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랍 공화국들의 연이은 실패로 말미암은 불안전한 정세는 전쟁이라는 최악의 결과 를 낳았다. 아이러니한 것은 석유가 산업화 된 이후 수십년간 중동 각지에서 끝없는 전쟁이 벌어졌으나, 걸프 국가들은 오일 머니의 힘으로 피해를 복구해왔다는 사실이다. 이제 중동 국가들을 두 부류로 나눠보자. 이 중 한 그룹은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들로 둘러 쌓여 있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이집트와 레바논은 시리아, 이라크, 예멘 등 주변국 분쟁의 영향을 받은 탓도 크다. 무 엇보다 가장 위험한 것은 아랍 전역에서 싹트고 있는 급진적인 근본주의 사상의 확대다. 이슬람 급진주 의는 사람의 사고와 행동을 통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예술과 표현의 자유 또한 금하고 있다. 결국 두 개의 중동은 화합과 평화를 추구하는 하나가 아닌, 분열과 반목만을 일삼으며 뒤죽박죽 뒤섞이고 말았다. 곳 곳에서 들려오는 불협화음은 수단, 리비아, 시리아, 이라크 등지에 전쟁의 불씨를 남겼다. 이 모든 비극의 원흉은 정녕 오일 머니일까? 필자는 이에 동의한다. 아랍의 아랍에미리트와 같은 일부 국 가들은 오일 머니의 힘이 없더라도 평화와 번영을 추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중동의 지속가능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석유보다 값진 것을 찾아야만 한다. 이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이슬람, 기독교, 유대 교의 선지자들의 가르침이 남아있는 곳에선 지금도 인류의 평화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후손들은 성스러운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

아시라프 달리 아시아기자협회 회장

The term “Middle East” used to combine two different regions both inhabited by Arabs: Egypt and North Africa countries along with Syria, Lebanon, Palestine, Iraq and Yemen, on the one hand, and the rest of the Arabian Peninsula states: Saudi Arabia, Bahrain, Kuwait, Qatar and UAE on the other. Differentiating the two groups of countries depended on the ruling system, the first of the presidential republics and the second, of monarchies with tribal ruling systems. 80 years ago, these Arab states of the gulf were weak, with no modern infrastructure, and their local rulers maintained their autonomy only with British assistance. They continued to depend on the traditional economies of agricultural fishing, carrying goods from one country to another via the marine routes, and trading in slaves from Africa. These rulers controlled small port cities, many of which were deserted areas with no sight of any sort of civilization. The discovery of oil in the region changed all this. The British found oil in Iraq after World War I. In 1932, Standard Oil Company of California (Socal) discovered oil in commercial quantities in Bahrain. Socal then obtai ned a concession i n Saudi Arabia in 1933 and again discovered oil in commercial quantities in 1938. A chain of oil exploration activities occurred in the gulf in the 1930s with the United States and Britain competing with one another for oil concessions. Oil exploration did not mean immediate wealth for Arab rulers of the area, as it took a long time for countries to locate amounts of considerable size. Oman, for instance, was unable to export oil until 1967. World War II delayed development of discovered fields in the 1930s; by 195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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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e of the Rock Mosque is seen in the Al Aqsa Mosque compound in Jerusalem’s Old City.

with larger revenue from such oil fields, the Gulf states started to export to Arabs, Asians, and European manpower to build their rich deserted communities. In 1953, Kuwait had become the largest oil producer in the gulf. Qatar came onstream in commercial quantities in the 1950s, and Abu Dhabi began to export offshore oil in 1962. Likewise, Dubai began to profit from offshore oil deposits in the late 1960s. T h is haven of work markets for Arab countries with ancient civilizations brought considerable socio-political changes throughout the region, but while the Gulf state could build their countries, the origins of the working Arab force did not. The political failures of the Arab republics, one after another, sank them into wars that were a killing any sign of progress; the 1960s Egyptian war in Yemen against the royal regime in North Yemen, Egyptian-Syrian war

against the occupying state of Israel in 1967 and 1973, the Iraq war against Iran in the 1980s, the invasion of Kuwait by Iraqi troops in 1990, and so on. Still, the Gulf states were largely able to avoid much of the damage with the help of fast oil money. To live in peace

Now, looking at the scene of the two different Middle Easts: the first group has all types of problems which block any effort at development, including the poor economies in Egypt and Lebanon which are due to years of instability through the wars in Syria, Iraq, and Yemen. Most dangerously is that the radical fundamental thought raised in Saudi Arabia and countries alike, found its way to spread abroad, not only in appearing in the way tribal men and women behave and act, but with the banning of arts and violations against freedom of

expression. The two Middle Easts are mixed, so calls of splitting and dividing countries have been raised here and there, it happened in Sudan, and currently occurs in Libya, Syria, and Iraq. Did all the oil money go into the wrong hands? I suspect this is so, because some other countries in the region were able to make much development for its future such as the UAE (although, this particular country is embroiled in the Yemen war with Saudi Arabia—against Yemeni troops with Iranian allies). It seems we need to discover more than oil to sustain peace for the two regions; some features used to be seen and lived in those ancient civilizations countries. Where prophets of Islam, Christianity, and Jewish used to live, calling for the peace of the population, it seems their grandsons have forgot all the teachings of their holy books.


Special Top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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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standing the Plight of the Rohingya Summary

“로힝야가 영국 식민지배의 산물?” 미얀마 소수민족 둘러싼 오해와 갈등 “우리는 미얀마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 최근 로힝야 사태로 곤혹을 겪고 있는 아웅산 수치의 9월 7 일 발언이다. 지금도 매일 수천의 로힝야 난민들은 무분별한 폭력을 피해 국경을 넘고 있으며, 40만 이상의 로힝야가 방글라 데시 임시 피난처에 거주하고 있다. 1982년 미얀마 개혁 이래 소수민족 로힝야들은 시민권을 부정당했다. 개정된 법엔 “영국의 버마 강점기 이전부터 거주했던 토 착민에게 시민권을 보장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로힝야족은 법의 테두리 밖에서 살아왔다. 미얀마 정부 측은 이 모순 을 지적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를 내정간섭이라고 일축해 왔다. 로힝야는 어떤 민족인가? 이들은 ‘아르칸(현 미얀마 라킨 주)에 거주해온 무슬림 소수민족’이다. 로힝야는 주변과의 불화를 일 으키지 않는 온순한 민족이었다. 이들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됐는가? 현존하는 기록에 따르면 남아시아에서 건너온 로힝야 족은 8세기부터 아르칸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인구의 90%가 불교도인 미얀마에서 종교와 인종의 다름은 불화의 씨앗이 되 고 말았다. 국가간 경계가 흐릿하던 19세기 후반, 버마를 지배하던 영국이 통치를 용이하게 할 목적으로 벵갈의 무슬림들을 이 주시키며 로힝야의 역사는 뒤틀리기 시작했다. 현지 미얀마 불교도들에게 벵갈 이주민들은 불법이주자에 불과했으나, 이 지 역에서 오랜 세월 터전을 닦아온 로힝야는 이들과 가깝게 지내왔다. 그러나 현지 불교도들의 ‘영국이 불러들인 이주민’에 대한 증오는 다른 종교를 가진 민족 로힝야를 향한 증오로 이어졌다. 영국과 일본의 침략을 거치며 버마의 국경은 이전보다 뚜렷해 졌지만, 종교-민족 간의 경계도 보다 뚜렷해졌다. 스스로를 토착 불교도나 벵갈 이주민이 아닌 ‘로힝야’라고 여긴 그들도 자신 들이 모르는 사이 대립의 중심에 서게 됐다. 로힝야는 벵갈에서 불법으로 건너온 이주민들과 동일한 집단으로 여겨졌으며, 고 유의 역사와 문화마저 부정당하고 말았다. 미얀마 역사가들도 로힝야를 영국 식민시대의 산물이라고 착각하는 우를 범했다. 이러한 종교-민족 간 대립은 아신 위라투가 이끄는 반 무슬림 단체들에 의해 더욱 격화됐다. ‘969 운동ʼ을 촉발시킨 위라투는 미얀마 군부의 로힝야 여성 강간 사건에 대해 “로힝야족의 신체가 너무 불결해 불가능한 일”이라고 변명하며, 오히려 로힝야가 국제적인 지지를 얻기 위해 여론을 조작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왜곡된 시선은 최근 아라칸로힝야해방군(ARSA)이 급부상 하면서 심해진 측면도 있지만, 이들은 9월 9일 ARSA는 10월 9일까지 한달 간의 미얀마 군과 정전할 것을 선언했다. 라킨 주로 향하는 인도주의적 지원을 허가해달라고 미얀마 군부에 요청하면서. 그러나 아웅산 수치의 대변인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테러집단과의 협상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렇다면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미얀마 민주화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아웅산 수치는 긴장을 풀 기 위한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엠네스티, 휴먼라이트워치, 유엔 등 국제단체들은 아웅산 수치가 ‘눈뜬 장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영국 최대 노동조합 중 하나인 유니슨도 수치에게 부여했던 명예회원 자격을 박탈했다. 무슬림이 주류 를 이루는 국가들도 로힝야의 편을 들고 나섰다.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로힝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지속되면 더 큰 극단주의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아시아의 두 대국 인도와 중국은 미얀마 정부의 편이다. 이들은 유엔의 구조 에 반대해왔으며, 미얀마 국외로 탈출한 난민들 역시 즉각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엇갈리는 국제사회의 반응 속에 ‘평화 의 상징’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나섰다. 그는 오는 11월 30일 미얀마를, 12월 2일 방글라데시를 각각 방문할 계획이다. 물론 이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은 미얀마에 달려있다. 미얀마의 지도자들이 로힝야를 향한 잔학한 행위를 인정하고 바로 잡는 것은 사태 해결과 국가 통합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미얀마 지도층은 추방과 학살이 중단될 때 종교와 민족의 화합이 이뤄진 Eui-mi Seo Staff Reporter

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서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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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ept. 21, 2017, Rohingya Muslim children, who crossed over from Myanmar into Bangladesh, stretch out their arms out to collect chocolates and milk distributed by Bangladeshi men at Taiy Khali refugee camp, Bangladesh. Children make up about 60 percent of the sea of humanity that has poured in to Bangladesh over the last four weeks fleeing terrible persecution in Myanmar. And the U.N.’s child rights agency UNICEF has so far counted about 1,400 children who have crossed the border without their parents.

“We have to take care of our citizens, we

of misinformation” regarding the

first seemed to gain dangerous

have to take care of everybody who is

Rohingya and stood by Myanmar’s

momentum; people finally began to

in our country, whether or not they are

majority Buddhist population on

monitor the scene closely. Suddenly

our citizens”: the words of Myanmar

claiming the issue too complicated for

t he Roh i ng ya con f l ic t wa s not

State Counsellor Aung San Suu Kyi

the world to understand.

simply domestic as the issue spread

on September 7, 2017, in the wake of

When the Rohingya were denied

to neighboring countries India,

more than 18,000 Rohingya fleeing to

citizenship under Myanmar’s reformed

Bangladesh, Thailand, and even to the

neighboring Bangladesh in just under a

1982 Citizenship law that guaranteed

Southeast Asian regions of Malaysia

day.

citizenship to persons “who belong to

and Indonesia.

And still, Suu Kyi would not refer

an indigenous race or lived in British

To date, nea rly one m i l l ion

directly to the plight of the largely

Burma prior to 1942,” the international

Rohingya have escaped the borders

Islamic Rohingya. With sudden

society maintained their silence. The

of the Myanmar with only another

international pressure to see an end

matter was a domestic affair not for

million remaining—of them, 120,000

to the conflict, she had previously

other nations to meddle in.

are internally displaced within the

blamed “terrorists” for “a huge iceberg

Then came 2012, when the fighting

Rakhine State terri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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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many of the international

migrants from the adjacent region

disgusting,” adding that Buddhists

onlookers, the crisis began with

of Bengal as there was no existing

need to be protected from Rohingya

t housa nds c rossi ng r ivers to

international boundary separating

Muslims who have manipulated media

Bangladesh. Before people had the

Bengal and Arakan territory. These

for international sympathy.

chance to even start to comprehend

inhabitants were encouraged by the

To be sure, Myanmar citizens are

the who, why, and how of Myanmar’s

British to occupy the Arakan region

themselves uncertain of when tensions

indigenous Rohingya, the fighting

as farm laborers but were, essentially,

began to simmer. What is known is

was at full gear with global agencies

illegal immigrants to local Myanmar

that suppressed angst between the

sounding emergency alarms to the

Budd h ists. For decades, et h n ic

Muslim and Buddhist factions led to

public.

Rohingya and Bengali migrants lived

the buildup of conflicts that each time,

closely with almost no distinction of

died-down without any permanent

race.

resolution.

Who are the Rohingya?

Therefore, coupled with hatred

For the Buddhists living in Rakhine,

for the “English Settlers” and groups

the Rohingya are a festering terrorist

Simply put, the Rohingya are a

that were favored such as the Bengalis,

group that could take over the region

mainly Muslim minority living in the

this made for ethnic rivalry and

at any moment. Not only this, for

territorial region of Rakhine, formerly

lasting negative feelings. Over time,

decades, they are outsiders who have

Arakan, situated in the western coastal

the boundaries of the Burmese State

been robbing Myanmar citizens of jobs,

line of Myanmar. Not much to cause

became more defined after successive

natural resources, and religious unity.

any problems. But, when placed in

British and Japanese invasions and

Especially since the rise of the

90% Buddhist Myanmar, religious

fortified nation-building. And the

Arakan Rohingya Salvation Army

differences and racial preference

8th Century Rohingya that had never

(ARSA), Myanmar’s citizens have

become a hotbed for instability.

considered itself part of either the native

become greatly alarmed by t he

Buddhist group or the migrant Bengalis

prospect of Islamic terrorism spreading

was found in the middle of the rivalry.

out from Rakhine. In assessment of

But how did it all begin? And who are the Rohingya anyway?

When did it all begin?

Existing written records reveal

At a cer ta i n poi nt, even t he

ARSA, a former Australian ambassador

Rohingya settlements in the Arakan

Rohing ya were grouped as

to Myanmar, Trevor Wilson, said,

region since as early as the 8th Century.

“Bengalis”—associated with illegal

“ARSA shows many of the attributes

Before the “nation-state” was a fixed

immigrants from India with lack of a

of Islamist terrorist groups. They have

concept, and before Arakan was

better origin to their settlement; many

declared links with Islamic State (IS)

considered a legal territory of modern-

of Myanmar’s historians mistaking

and show a willingness to introduce

day Myanmar, nomads primarily

all Rohingya to have arrived with the

arms into what was previously an

from the South Asian region dwelled

British colonists.

unarmed political struggle.”

along the Myanmar coast. Migrants

Such negative-sentiment has also

Publicly, however, t here are

from Bangladesh and Southeast Asia

been flamed by anti-Muslim activists

no credible sources behind ARSA

continued to flow into this region and

under the 969-movement leader,

connection to terrorist organizations

were naturally accepted as part of the

Ashin Wirathu. When questioned

other than the fact that Al Qaeda

Rohingya.

about the rape and abuse of Rohingya

separately issued a statement urging

It is said that British colonization in

women by Myanmar military, he

Muslims around the world to aid the

the late 1800s brought in many Muslim

said, “Impossible, their bodies are too

Rohingya 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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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an, body painted with a slogan, attends a protest rally against the persecution of Rohingya Muslims in Myanmar, after Friday prayers in Dhaka, Bangladesh, Friday, Sept. 15, 2017. Thousands of Rohingya are continuing to stream across the border, with U.N. officials and others demanding that Myanmar halt what they describe as a campaign of ethnic cleansing that has driven nearly 400,000 Rohingya to flee in the past three weeks.

2017 for the Rohingya

retaliatory methods of attacking local

Key Players

Before, they fled in small units,

Rakhine police posts and military units

Apart from her September 7 claim

eventually landing in countries as

are further aggravating hatred toward

that even non-citizens of Myanmar

far as Malaysia and Indonesia where

Rohingya Muslims, ensuing in violent

should be protected, Nobel Peace

Muslims form the majority. Now, it

bloodbaths. On September 9th, ARSA

Prize laureate, and forerunner of the

seems the Rohingya have had enough.

issued a statement of ceasefire until

country’s democratization movement,

Each day, refugees continue to flee the

October 9 to allow humanitarian aid to

Aung San Suu Kyi has made no public

remains of their ransacked homes in

reach the Rakhine territory, demanding

move to resolve tensions. Some have

Rakhine, and women and children are

the Myanmar army to do the same.

said she is powerless to go against the

leaving by the thousands from police

The request was roughly denied

Buddhist majority who gave Suu Kyi

attacks, gang rapes, and unmonitored

by the government. In a statement

her power in the first place. She has no

persecution. To date, 400,000 of the

responding to the proposal, Zaw

choice but to overlook the Rohingya.

Rohingya population currently dwell

Htay, Spokesman for the office of State

Others, however, are not so lenient.

in temporary shelters in Bangladesh.

Counsellor Aung San Suu Kyi, told

Prominent human rights associations

CNN that “[Myanmar] has no policy to

such as Amnesty International,

negotiate with terrorists.”

Human Rights Watch, and the United

Insurgent Rohingya fighters, m a i n ly f r om A R SA, a nd t h e i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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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ept. 21, 2017, Bangladeshis walk on the beach at sunset in Cox’s Bazar, Bangladesh. About 40 kilometers south, along an often scenic coastal road and lush green paddy fields, vast areas are now entirely taken over by a sea of makeshift bamboo and plastic tents, homes for the more than 430,000 Rohingya Muslims who have fled here with stories of terrible persecution in Myanmar.

Nations assembly have all condemned

supported the Myanmar government’s

prompt men and women of good faith

Aung San Suu Kyi for turning a

crackdown on Rohingya. Both nations,

to help ensure their full rights.”

blind eye. This was followed by a

with the help of Bangladesh, have

Li kew ise respond i ng to t he

permanent suspending of membership

opposed UN relief attempts and have

persecution of Rohingya, President

with one of Britain’s largest trade

pushed for the immediate deportation

Hassan Rouhani of Iran urged the

unions—Unison—with Margaret

of Rohingya refugees in regions outside

Organisation of Islamic Cooperation

McKee (Unison President) forcefully

of Myanmar.

(OIC), which was founded in 1969 to

denouncing Myanmar’s Counsellor

On the other side of the spectrum,

protect the global Muslim community,

for her ignorance, “The situation facing

spokesperson for peace Pope Francis

to remember the Rohingya, saying,

the Rohingya of Myanmar is appalling.

plans to visit Myanmar and Bangladesh

“Should the extensive violation of basic

Au ng S a n S uu Ky i ’s ho nora r y

t h is com i ng November 30t h to

human rights of the Rohingya Muslims

membership of Unison has been

December 2nd. The announcement

be left unattended, it would encourage

suspended, and we hope she responds

of his trip followed Pope Francis’

extremism.”

to international response.”

expression of sadness for the Rohingya

Unfortunately, India and China,

brothers, “I express my closeness to

key regional powers, have also largely

them ask the Lord to save them and to

Disconnected Humanitarian aid

Meanwhile, widesp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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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ept. 21, 2017, Bangladeshis walk on the beach at sunset in Cox’s Bazar, Bangladesh. About 40 kilometers south, along an often scenic coastal road and lush green paddy fields, vast areas are now entirely taken over by a sea of makeshift bamboo and plastic tents, homes for the more than 430,000 Rohingya Muslims who have fled here with stories of terrible persecution in Myanmar.

international attention has brought

numbers, with uncoordinated aid that

relief organizations to the regions and

is oftentimes sent, but not received by

to the refugee centers in Bangladesh.

those in need.

Perhaps more paramount is the simple acknowledgement by Myanmar leaders of the atrocities committed

The International Rescue Committee (IRS), Partners Relief and Development,

tolerance.

Acknowledgement of Atrocities

against the Rohingya population.

not to me nt ion U N op erat ion s

2017 marks a point in the Rohingya

Acceptance of the persecution is to be

i n pa r t n e r s h ip w it h A m n e s t y

crisis in which much wisdom is called

the stepping stone and foundation for

international and other associations

for all actors involved as refugee

reconciliation—not of blatant denial of

are currently pouring in food and

numbers are at the brink of reaching

domestic infighting.

healthcare resources for victims.

half a million persons.

Political leaders must certainly

But at present, the most critically

Despite calls for dialogue and

accept that no amount of ostracizing

affected Northern Rakhine region

rational understanding of ethnic

and killing will result in religious or

remains untouched by any NGO

origins, hatred is not easily sprouted up

ethnic harmony for the benefit of the

or international organization due

from its roots. Alongside physical aid

nation. A moment of humility and

to militant lockdown. Aid groups

must come a necessary shift in cultural

humanity will do lasting good for all

are essentially working in scattered

perceptions of race and religious

par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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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of Rohingya Origin and Crisis 800 A.D. Rohingya, mainly of South Asian origin, settle in an independent region in Arakan (modern-day Rakhine State in Myanmar).

1785 Invasion and annexation of Arakan by Burmese rulers. Arakanese Buddhists and Muslims lived in close proximity.

1885-86 Burma becomes province of British India under British colonialism.

1911 In the 1911 census, Rohingya are included with the Indian population as an ethnic group of Indian origin.

1942 Japan occupies Burma with help from the Japanese-trained Burma Independence Army (BIA).

1948 Burma is independent from Japanese rule with help by British. U Nu becomes Prime Minister and under Union Citizenship Act of 1948, Rohingya are recognized as citizens of Myanmar. Ethnic conflicts still present.

1962 U Nu is ousted in the military coup led by General Ne Win. The military junta are against Rohingya citizenship and begin persecution of the minority.

1977 The junta begins Operation Nagamin or Dragon King, a movement that screened the population for foreigners/illegal immigrants. More than 200,000 Rohingya flee to Bangladesh.

1978 Bangladesh enters a UN-initiated deal with Myanmar for the repatriation of refugees; most Rohingyas return to Myanmar.

1982

1978

New Citizenship Law erected in country; this law does not recognize the Rohingya as one of the 135 legal ethnic groups of Myanmar.

1991 Aung San Suu Kyi awarded Nobel Peace Prize for her commitment to peaceful change in democratization of Myanmar. More than 250,000 Rohingya refugees flee forced labor, rape, and religious persecution at the hands of the Myanmar army in Rakhine.

2001 The 969 movement led by Ashin Wirathu gained momentum in Burma in 2001, helping to precipitate an upsurge of anti-Muslim activity.

June 2012 Deadly violence erupts between ethnic Arakanese Buddhists and Rohingya Muslims in Arakan. A state of emergency is declared in Myanmar after death of 88 people and 90,000 persons displaced.

November 2012 Rohingya men accused of raping and killing a Buddhist woman. Rioting between Rohingya and Rakhine Buddhists kill more than 100 people, mostly Rohingya. Tens of thousands of people were driven into Bangladesh. Nearly 150,000 were forced into camps in Rakhine.

2012

February 2014 Government expels medical aid NGO Médecins Sans Frontières (MSF), removing all available emergency and health care services in northern Rakhine State.

March 2015 Myanmar refuses to acknowledge the identification cards (“white cards”) held by many Rohingya, forcing them to apply for citizenship as “Bengalis,” suggesting their illegal migration from Bangladesh.

November 2015 Myanmar holds its first general elections since 1990. Aung San Suu Kyi’s opposition party, the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NLD) wins the parliamentary elections as the new administration.

August 2017 Rohingya insurgents attack 30 police stations, triggering a massive military response. Thousands of Rohingya flee from Rakhine state.

September 2017

2017

Suu Kyi dismisses reports of atrocities: “That kind of fake information … was simply the tip of a huge iceberg of misinformation calculated to create a lot of problems between different communities and with the aim of promoting the interest of the terrorists.” UN report reveal that 125,000 Rohingya have fled the country to Bangladesh on foot. A second UN reports that nearly 30,000 of the refugee Rohingya are trapped in the mountains of Rakhine State, not having any access to food or water.

** Source: Partners & Development and The Wire ** All photos by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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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ing Rohingya Refugees Across Territorial Boundaries Where are the Rohingya fleeing to?

Bangladesh 890,000

UAE

10,000

Saudi Arabia 200,000

Pakistan

350,000

Myanmar Less than 1,000,000

India 40,000

•

•

120,000 Rohingya IDPs within Rakhine State

Thailand 5,000

Malaysia 150,000

Indonesia 1,000

** Source: Al Jazeera and agencies, UNHCR, IOM

Widespread persecution and domestic fighting has resulted in nearly one million Rohingya who have fled Rakhine since the 1970s. The following map shows the current number of Rohingya residing in nations outside Myanmar; numbers continue to increase to this day.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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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민중화가’ 요스 수프랍토의 꿈 Summary

Aspiring to be the National Painter Recently on Whatsapp, which is Asia Journalist Association’s (AJA) main medium for communication, the artwork of an Indonesian artist has been a hot topic of discussion amongst local reporters. He is Yos Suprapto, aged 65, and from Indonesia, who just opened an exhibition to display his paintings. Bilal Bassal, a renowned artist/web designer from Lebanon who currently works in Paris, asked about a particular art piece, “Outside the Earth,” through Eddy Suprapto who happens to be AJA’s special correspondent in Indonesia and younger brother of Yos Suprapto. “I really like Yos, can you tell me more about the background of ‘Outside the Earth’? I really want to know why he chose that topic and the kind of method he used in his creation.” Eddy answered swiftly, “The piece you ask about is directly related to events that occurred in Tumpang Pitu of east Java in Indonesia. For a long time, residents of this region had been using traditional methods to collect nuggets of gold. But soon enough, eager multinational gold mining corporations, with permission from the government, forced residents to go to the extremes of mining gold in dangerous areas such as river banks with ground prone to collapsing. Yos wanted to capture the hearts of the people who were struggling to find a better life amidst their difficult working conditions.” “That is great. The story that the artwork exhibits adds another level to Yos’ gallery and makes viewers want to know more about the situation of the workers. He is an artist that knows how to be true to his artistic identity and creative abilities which, I believe, will also help in creating a wide following in Indonesia in the time to come,” was Bilal’s reply. Doctor Yos Suprapto did not major in art. Born in 1952, he received his undergraduate degree in regional studies and his master’s (1984) in Southeast Asia student movement studies both from James Cook University in Australia. Afterwards, he obtained his doctorate with his thesis, “Myth and culture revealed in Indonesia’s political repression” at the Southern Cross University, Australia. Yos currently works as a freelancing professor teaching philosophy at multiple universities. His work expresses the endless effort that citizens made for the democratization and industrial development of Indonesia; their desire to make things better. In images of village residents collecting private funds for public welfare, young people rowing hard on a boat bound for the sun, and little lambs fighting, Yos, as if to emanate President Joko Widodo’s message about religious reform, “Fighting as if to have dialogue,” pictures his own inner desire for a better Indonesia. In Yos’ view, “I cannot see artwork that do not portray social realities as true art; such works only reveal that the artist is blind to what is going on around him.” In other words, Yos Suprapto is who people would call Indonesia’s national painter. 이상기 기자 winwin0625@theasian.asia

Lee Sang-ki Publisher | Summary by Grace Seo Staff Repor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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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중순 아시아기자협회 ‘왓츠앱’ 소통장엔

마침내 광부들은 뚝이 무너지기 쉬운 강가에까지 내몰려

인도네시아 화가의 작품들을 두고 현지특파원들

야 했다. 어둠을 뚫고 빛을 찾아 더 나은 삶을 살려고 몸

의 다양한 의견이 올라왔다. 그 주인공은 인도네

부림 치는 그들의 모습을 이 작품 속에 담고 싶었다.”

시아 화가인 요스 수프랍토(Yos Suprapto·65)다. 레바논 출신으로 파리에서 활동 중인 웹디자이너

요스의 답변에 빌랄이 바로 화답했다.

겸 화가 빌랄 바살은 요스의 작품 가운데 ‘지구 밖 으로’를 지목해 인도네시아 특파원인 에디 수프랍

“멋지다. 당신 그림 이면에 담긴 스토리들은 전시회를 한

토 기자에게 물었다. 에디는 전시회를 열고 있는

차원 높이고 있다. 당신 작품 속에 담겨 있는 사연들은 관

요스 수프랍토의 친동생이다.

객들에게 보다 많은 정보와 호기심을 더해주고 있다. 또 관객과 화가는 작품 속에 담겨 있는 스토리를 통해 영적

“내가 아주 좋아하는 분야다. 에디, 당신 형의 작품들이라

인 소통에까지 다다를 수 있다. 개인적으로 당신 형 요스

고 하는데 작품을 그린 배경을 형님한테 문의해 줄 수 있

수프랍토의 컨셉과 에너지 넘치는 스타일 그리고 감정이

을까? 왜 그 주제를 선택했으며 왜 그런 화법을 쓰는지 궁

스며든 것 같은 색조를 특히 좋아한다. 요스는 자신의 스

금하다.”

타일과 컨셉 그리고 예술적 노선에 매우 충실한 사람 같 다. 그같은 태도는 화가로서의 경력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당신이 문의한 작품 ‘지구 밖으로’는 동자바지역 툼팡 피

미술사에서 갖는 요스란 이름의 예술가를 위해서도 무척

투에서 내가 직접 목격한 사실에 기반해 그린 것이다. 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전시회 개최를 진심으로

래 전 지역주민들은 재래방식으로 금을 채취하고 있었다.

축하한다. 당신의 형에게 나의 찬사를 꼭 전해달라. 그리

그런데 다국적 금광회사들이 지역정부의 허가를 받고 주

고 머지않아 자카르타, 파리 혹은 서울에서 꼭 만나게 될

민들로 하여금 위험을 무릅쓰고 금을 캐도록 강요했다.

거라고 얘기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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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요스는 에디 편에 빌랄 기자에게 이렇게 답을 올렸다.

현한 것들이 그것이다. 요스 박사의 작품은 인도네시아 독립 후 지리 하게 끌어온 민주화·산업화 과정에 대한 국민적

“빌랄, 당신의 내 예술작품에 대한 코멘트에 깊이 감사드

열망도 함께 담고 있다. 가령 마을주민들의 공동

린다. 이번 전시품 외에도 수많은 작품들이 더있다. 내 작

사금 채취·바다의 여신·태양을 향해 힘차게 배를

품들은 대부분 내가 여행이나 연구를 하면서 얻은 영감을

밀고 가는 청년들 모습·착한 양들의 싸움 등은 이

통해 그려진 것들이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친구 초청

같은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 특히 갈등 대신 화

으로 유럽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다음 번에는 당신이 살고

해와 협력을 강조하는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

있는 파리에서 당신과 함께 전시회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통령 시대의 종교정책을 반영하듯, ‘싸우는 듯 대

불현듯 떠오른다. 꼭 가까운 시일 안에 만나자.”

화하는’ 그림 속에선 화가의 오랜 열망이 두드러지 게 나타난다.

요스 박사는 미술 전공이 아니다. 1952년생인

요스는 “미술이나 음악 등 예술활동이 사회현

그는 호주 제임스쿡대학교에서 동남아 지역학(학

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작가의 문제의식

사)에 이어 동남아 학생운동사 연구로 석사학위

이 결여된 것으로 진정한 예술이라고 볼 수 없다”

(1984)를 받았다. 그는 1998년 호주의 서던크로스

고 말한다. 그는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인도네시아

대학교에서 ‘인도네시아의 정치적 탄압에 드러난

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참여작가, 혹은

신화와 문화’ 논문으로 박사를 받았다. 그는 현재

민중화가인 셈이다.

프리랜서 교수로 다수의 대학에서 학생들에 철학 을 가르치고 있다.

요스 박사는 “한국 현대사는 일제 식민지배, 해방과 전쟁, 민주화·산업화 과정 속의 숱한 부작

그런 만큼 그의 작품들에는 굴곡 많은 인도네

용, 그리고 최근엔 촛불혁명에 의한 현직 대통령의

시아 현대사가 곳곳에 베어 있다. 즉 노동착취를

탄핵과 구속, 새 대통령 취임 등 다이나믹 그 자

벗어나기 위한 광산노동자들의 탈출·정치적 억압

체”라며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전세계 관객들에

에 대해 눈물로 저항할 수밖에 없는 지식인·무자

내 작품을 선보이고 평가 받고 싶다”고 자신있게

비한 권력과의 투쟁을 상어잡이로 은유적으로 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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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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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d Selby's exhibition at Daelim Museum in Seoul

A universe of illustrations, installations, and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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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d Selby Summary

#즐거운_나의_집, 토드 셀비가 그리는 타인의 공간과 취향 사진작가이자 예술가 토드 셀비(Todd Selby)의 첫 개인전시회 ‘The Selby House: #즐거운_나의_집’이 10월 29일까지 서울 경복궁역 대림 미술관에서 열린다. 1977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토드 셀비는 자신의 웹사이트에 사람들의 사적인 공 간과 이야기를 담은 사진을 포스팅하면서 유명해졌다. 작가는 그동안 펜디, 루이비통, 나이키, 이케아, 이베이, 에이비엔비, 하 이네켄, 헤네시 등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만한 브랜드들과도 협업해 왔다. 평소 호기심이 유달랐던 작가는 개인의 고유한 개성이 담긴 공간들에 흥미를 느꼈고, 이를 온전히 그려낼 수 있는 프로젝트 ‘셀비’(The Selby)를 시작했다. 이러한 작품들을 한데 모아낸 전시회가 ‘The Selby House: #즐거운_나의_집’이다. 미니멀리즘과는 다소 거리를 두고 있는 작가처럼, 이 전시회는 사진, 일러스트레이션, 영상, 설치미술 등 여러 형태의 작품들 을 보여준다. 전시회 1층은 작가의 사진으로 구성돼 있다. 1층은 세 개의 섹션으로 나뉘는데, 디자이너와 뮤지션 등 크리에이 티브한 사람들의 공간을 담은 ‘셀비 인 유어 플레이스’(The Selby in your place), 작가 개인의 패션에 대한 흥미를 반영한 ‘패 셔너블 셀비 ‘(Fashionable Selby), 마찬가지로 작가의 음식에 대한 흥미를 반영한 ‘이더블 셀비’(Edible Selby)가 관객을 맞이 한다. ‘셀비 인 유어 플레이스’에서 관객은 ‘나와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유명인들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관객은 올리비 에 자함 프랑스 퍼플패션 매거진 에디터가 프랑스의 유명작가이자 연인을 집필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팬이고, 지금의 샤넬 을 만든 칼 라거펠트가 독서광이며, 힙스터들 사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진작가 레츠 우드가 아날로그 카메라를 사랑 한다는 사실들을 공유한다. 전시장 2층으로 오르는 계단. 화려한 색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곳에서 관객은 고양이, 볼링, 여행, 그리고 피자와 피클 을 좋아하는 작가 개인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앞서 다른 이의 공간을 보여준 작가는 이 장에서 ‘토드 셀비가 어떤 사람인 지’를 관객과 공유한다. 전시장에는 작가 개인의 방도 마련돼 있다. 화려한 패턴과 옷으로 가득해 일견 지저분해 보이는 방이 지만, 이 공간은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의 삶까지를 비춘다. 이 곳에서도 작가는 언어를 사용하는 대신 일러스트레이션, 사진, 설치물 등 여러 매개체를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ʼ 표현한다. 전시장 마지막 층. 열대동식물 사이에 둘러 쌓인 관객들은 형형색색의 화려한 정글과 마주한다. 토드 셀비는 어린 시절 가족 과 휴가를 갔던 추억을 모티브로 이 공간을 설계했다고 한다. 애초 그의 가족은 하와이에서 휴가를 보낼 예정이었으나, 넬슨 록펠러 미국 전 부통령의 아들인 마이클 록펠러를 잡아먹은 것으로 알려진 식인종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 파푸아 뉴기니로 행선지를 갑작스레 옮겼다. 식인종을 찾아 열대정글을 돌아다닌 작가는 이 공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방이 있으면 어떨 까 상상하곤 했다고 한다. “당신의 물건은 당신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The Selby House: #즐거운_나의_집’을 관통하는 질문이다. 다방면에서 재능 을 드러낸 작가는 타고난 호기심으로 사람과 공간,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개인의 특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작가가 “당신의 집 을 촬영해도 되겠느냐”고 묻는다면? 내 공간을 찍는다면 어떨까? 매번 감명받아 샀지만 절대 벽면에 붙이지 않았던 수많은 포스터들, 침대 머리말의 책 더미들, 거실에서 뒹굴고 있는 고양이 장난감들… 그는 나를 지저분한 사람이라 여길지 모른다. 토드 셀비가 “당신의 집을 촬영하고 싶다”고 한다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그가 담아낼 당신의 공간은 어떠한 곳인가? Alessandra Bonanomi Staff Reporter

알레산드라 보나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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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bika Conroy “What’s even more impressive than the hats, vests, and stoles that Ambika makes from wool is how Ambika’s love and respect for the animals inspire her in creations”

Retts Wood “Retts lives on a funky canal boat moored at a private marina in central London. She bought it and, never having navigated a boat before, piloted it for five days by herself through the canals to London”

Virginia Bates “I was a teenager when I first saw Virginia Bates, when she played the role of a beautiful and sadistic temptress in Stanley Kubrick’s A Clockwork O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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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d Selby’s colorful world

The Selby House, Todd Selby’s first solo exhibition Until October 29, the Daelim Museum in Seoul hosts The Selby House, first solo exhibition of Todd Selby. Born in 1977 in California, Todd Selby is a photographer and illustrator who became well-known by posting on his website (theselby. com) photos about people’s houses and their stories. He started the project, named The Selby, because of his curiosity about the way in which personal space reflects personality. “I’ll see an interesting character and think, what does their apartment look like?”, he declared to New York Times. The photos tell compelling stories of the people leading unique lifestyles, capturing scenes from their daily lives and work space. After opening the website in 2008, Todd Selby published three books, created short movies and collaborated with famous brands such as Fendi, Louis Vuitton, Nike, Ebay, Airbnb, Heineken, and Hennessy. Far from being minimalist, Todd Selby captures and creates unique environments. In The Selby House exhibition, the audience can enjoy a comprehensive collection of the artist’s works based on photography series, illustrations, movies, and installations. “Being a photographer is an instant excuse to jump into some really interesting situation”

The first floor of the exhibition is based on Todd Selby’s photos. In this section, the artist combined photos from his three series works: “The Selby in your place” focusing on creative peoples such as designers, musicians, artists and their home, “Fashionable Selby” exploring the environment of fashion, and “Edible Selby” reflecting the artist’s interest in the food world. Looking at the photos, I discovered that I share many interests with the characters of Todd Selby’s series: Olivier Zaham, editor of Purple Fashion, is a fan of Marguerite Duras, Karl Lagerfeld collects books, Retts Wood loves analog cameras, Angelo Garro likes globes. Through images of faces, things, and places, the artist is able to describe people’s lives without using any words. The visual experience is all that is needed.

“Painting and drawing have become a larger part of my creative output”

Climbing the stairs leading to the second floor, colors draw the attention. Through illustrations, photos, and installations, the artist describes his own world. Thus the audience discovers Todd Selby's passion for cats, bowling, and travels. His love for pizza, pickles, and carrots. After showing other people’s houses, he finally recreats his own spaces in the exhibition. A messy room full of patterns and clothes grabs the spotlight: it is a bedroom combining elements from Selby’s childhood, student days, and life today. The Jungle Room

Entering at the third and last floor of the exhibition is a wild and wistful experience at the same time. Surrounded by tropical animals and plants, visitors experience the view of a colorful jungle. Installations of zebras, flamingos, and monkeys move around the room in harmony with the environment. This section was inspired by a true-life event from Todd Selby’s childhood. When he was 13, he went on holidays with his family. Instead of going to Hawaii as it was planned, his father brought them in Papua New Guinea in order to find and take photos of a cannibalistic tribe which was responsible for eating Michael Rockefeller, son of the US President Nelson Rockefeller. During that travel, the artist dreamt of the Jungle Room. Do your stuff define you?

The Selby House exhibition is leisure and learning experience suitable for all ages. In fact, Todd Selby is a versatile artist who is able to use different media to express his artistic intention. He is still a messy child who is using his innate curiosity to investigate people’s lives. On my way back to the exhibition, I thought of what would happen if Todd Selby asked me to shoot my house. Then I recalled all the posters I bought and never attached to the wall, the pile of books near my bed, cat toys laying around the living room. I think he would define me a messy person.

What would he say about you after shooting your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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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gs I Like “Painting and drawing have become a larger part of my creative output. I started doing watercolors seriously while working on my first book, The Selby in Your Place, in order to humanize my photographs and to make them feel more relatable and intimate. Painting also became a great way for me to move away from documentation and move towards pure creation. Through my paintings, I aim to inspire people and share my interests. My subjects often include animals, people, plants and silly doodles. They are very simple, yet I try to impart a cheerful and vibrant vibe. Rather than technically reproducing my subjects, I strive to bring my personality in terms of colors, aesthetic fun, energy to everything I paint.”

Jungle Room “When I was around 13 years old, my dad, mom, brother and I went on our last family vacation. I had been complaining for years that my family always went on strange trips, and I wanted to do something more traditional like going to the beach. My dad finally gave in and we were off to Hawaii. When we landed in Hawaii, I started to get suspicious as the name of the airport, 'Port Moresby' , was very unfamiliar; everything seemed not like the Hawaii I had seen as a child. My biggest fears were confirmed as we boarded a dugout canoe and went down a river to load into a small river boat. We were in Papua New Guinea, not in Hawaii. My dad let us know we were going to go up the Sepik River for a few days in an effort to find and take photos of a cannibalistic tribe which was allegedly responsible for eating Micheal Rockefeller. I remember eating crocodile and piranha before I headed down to my room. That night, I dreamt of the Jungle 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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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lby House is not only an exhibition. In fact, Todd Selby is an artist who is able to let visitors enter in other people's universe. Many children attend the exhibition eager to learn the habits and secrets of famous artists such as Christian Louboutin, Lou Doillon, and Olivier Rousteing Balmain. It is a stimulating experience that can inspire everyone to know more about artists’ l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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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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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섭 IMS KOREA 대표컨설턴트

카카오뱅크·아마존 이끈 ‘휴먼 네트워크’ ‘플랫폼 비지니스 시대’ 당신이 기억해야 할 것들 ② 뉴시스

7월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세빛섬에서 열린 카카오뱅크 출범 행사에서 윤호영 공동대표가 카카오뱅크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4차산업혁명 시대가 따라옴에 따라 글로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개인적으로 다

들도 늦지 않았다고 본다. 이러한 분들은

벌 기업들도 각 산업별로 플랫폼 비즈니

행이라 느낀 것은 필자가 하려는 문화분

지금 구상하거나 진행하고 있는 사업을

스 모델을 적용시키고 있다. 초기에는 IT

야에서의 전문 플랫폼은 아직 뚜렷한 성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로 빨리 전환할 것

기술과 관련된 운영시스템, 커뮤니케이션

장세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을 권한다.

과 네트워킹 서비스, 미디어 등이 중심이

어디에선가 분명 유사한 모델을 준비하고

필자는 앞서 4차산업혁명의 특징 중

었으나 이제는 교육, 운수, 여행, 에너지

있을 것이지만, 필자처럼 특별한 분야에

하나가 초연결성이라고 설명했다. 플랫

등 거의 전 산업 부문으로 확대되고 있다.

서 플랫폼을 만들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

폼 비즈니스도 다르지 않다. 양면성(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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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d) 또는 다면성(multi sided)이라고

수하면서 한국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플랫

고객의 로열티를 확보하기까지는 많은

불리는 ‘그룹간 네트워크 효과’가 플랫폼

폼이 될 때까지 로열티(휴먼 네트워크)를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며 이런 네트워크

비즈니스의 특징이다. 그런데 이 양면이나

구축해 온 것이다. 그 결과가 최근 돌풍을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소유자, 공급자가

다면 네트워크는 사람들 간의 ‘휴먼 네트

일으키고 있는 카카오뱅크다.

양질의 인프라와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제

워크’이기 때문에 형성되어 가치를 창출하 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카카오뱅크는 먼저 출범한 케이뱅크

공하고 소통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

는 물론이고, 한국 메이저 금융권 수십

하다. 이를 위해선 생산자 역시 나만이 생

양질의 콘텐츠나 서비스 등을 지속적

년의 아성을 위협할 정도로 많은 고객을

산의 주체라는 버려야 한다. 인프라와 콘

으로 제공함으로써 사람 간의 우호관계가

단기간에 유치했다. 그동안 묵묵하게 네

텐츠를 통해 창출되는 가치를 소비자들끼

형성되어야 휴먼 네트워크의 효과가 나타

트워크를 구축하고 고객의 로열티를 얻은

리 자유롭게 공유하고, 그 연결고리가 공

난다. 단기간에 일방적(one sided)인 목적

것이 오늘날의 돌풍으로 이어지며 플랫폼

급자(소유자)에까지 이어질 때 초연결·초

추구만으로는 절대 플랫폼 비즈니스는 성

비즈니스 성공의 모범 모델을 제시한 셈이

지성 효과를 볼 수 있는 세상으로의 혁명

공할 수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로열티

다. 여타 기업 같았으면 벌써 속내를 드러

이 가능해진다.

나 휴먼 네트워크가 형성되기도 전에 성

내고 로열티와 휴먼 네트워크가 구축되지

급하고 무리하게 비즈니스를 추진하다 실

않은 상황에서 고유 비즈니스를 손쉽게

패하는 기업들이 여럿 있다.

추진하려다 사업을 망쳤을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만큼 더욱 커지는 가치

플랫폼 비즈니스는 가치를 생산하는

예를 들어 한국 커뮤니케이션의 대표

플랫폼 비즈니스가 기존 산업의 틀을

생산자와 그 가치를 얻는 소비자가 언제

적 플랫폼인 카카오톡은 서비스 초기에

바꾸는 동시에 효율성 높은 비즈니스를

든 뒤바뀔 수 있는 상호시장의 형태를 띄

가입자 간(소비자) 커뮤니케이션의 장만

추구하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아무리 4

고 있다. 따라서 플랫폼 비즈니스는 일반

제공해 줄 뿐이었다. 어떤 목적성이나 비

차산업혁명이나 플랫폼이 중요하다 해도

비즈니스에서와 같이 생산에서 유통, 소

즈니스의 야망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그 중심에는 사람이 존재한다. 소비자(사

비를 일방으로 통제하기 어려우며, 생산

(있었을지 모르나 이를 표출하지 않고 로

람)의 마음을 잡지 못하는 네트워크는 고

자와 소비자가 무작위로 연결되고 뒤바뀌

열티만 추구) 그저 묵묵히 커뮤니케이션

객의 숫자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언제 무

기도 한다. 예측 불가능한 비선형으로 연

플랫폼만 제공해왔다. 엄청난 적자를 감

너질 지 모르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결되는 구조를 지녀 까다로워 보일 수 있

아마존 공식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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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나, 창출되는 가치의 규모는 기존의 비

수 있다. 이제 우버, 에어비엔비, 아마존처

만든 플랫폼도 소비자에게 외면 받기 십

즈니스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럼 공장이나 창고, 배달 차량이 없어도 비

상이다.

어마어마하다.

즈니스를 할 수 있다는 시대가 온 것이다.

플랫폼 그 자체를 특정 기업의 고유

플랫폼 비즈니스의 성공이 위력적인 것은

경쟁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진입장

바로 이러한 수익구조 때문이다.

벽이 낮은 분야나 기술이라면 더욱 그렇

지난 호에 언급한 차 없는 플랫폼 우 버나 방 없는 플랫폼 에어비엔비처럼 전

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성공은 초연결·초

자상거래에서도 플랫폼 비즈니스가 전성 기를 맞이하고 있다. 전자상거래 대표 플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로열티

지성(집단지능)이며, 이는 고객들의 로열

랫폼 비즈니스인 아마존의 경우 판매자와

하지만 4차산업혁명이나 플랫폼 비즈

티 형성과 휴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구매자를 아마존 플랫폼으로 연결하기만

니스가 아무리 좋다고 맹목적인 믿음과

다. 이에 더해 아주 기초적인 마케팅 커뮤

하면 된다. 따라서 그 부가가치는 예전의

준비 없는 추진은 금물이다. ‘우버나 에어

니케이션 기법들이 플랫폼 비즈니스를 보

파이프라인 비즈니스와는 비교가 되지 않

비엔비, 그리고 아마존의 소비자들이 다

완할 것이다. 겉만 따라 하다가는 실패한

을 정도로 엄청나다. 물품 생산과 보관에

른 2등 플랫폼은 가지 않고 굳이 왜 그곳

다. 로열티 형성이라는 기본에서부터 출

드는 공장이나 창고 비용의 부담이 없고,

을 가는지?’ 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

발해야 한다.

관리 인력도 극히 소수면 가능한 비즈니

고 그저 겉만 따라 하면 성공할 수 없다.

플랫폼은 잘 포장된 껍데기다. 감동

스다. 소요되는 제반 비용이 적으니 얼마

가장 중요한 것은 로열티 형성이다. 휴먼

을 주는 알맹이와 로열티가 없다면 바로

나 많은 이익이 창출되는 지 쉽게 상상할

네트워크를 구축하지 못하면 아무리 잘

쓰레기통으로 던져진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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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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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봉 교육공학박사 현대자동차그룹 인재개발원

피카소가 예술의 극치에 이른 비결 “당신의 일을 예술(art)로 만들어보자.”

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기도 한다.

는 오랜 기간의 연마가 필수적이다.

지금은 이런 표현을 거의 쓰지 않지만

그런데 예술을 이야기할 때 함께 생

그 예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표적

과거에는 프랑스 축구를 아트 사커(art

각해야 하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인 입체파 화가 피카소(Pablo Picasso)

soccer)라 일컬은 적이 있었다. 1998년

과학이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과학

를 들 수 있다. 피카소는 젊은 시절, 선긋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프랑스는 남

은 검증된 방법으로 얻어낸 지식으로서,

기·색칠하기·명암 넣기 등 미술가로서의

미의 개인기에 유럽의 힘과 조직력이 조

그 방법을 따른다면 누구나 같은 결과를

기본기를 갖추는데 시간과 노력을 아끼

화를 이룬 축구를 선보였는데 프랑스의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술과 과학을

지 않았다.

경기는 글자 그대로 예술이었다.

왜 함께 생각해야 할까? 특정 분야에서

비단 피카소만이 아니다. 자신의 분

예술의 영역에 닿기 위해서는 과학의 영

야에서 예술의 경지에 이른 이들은 하나

역에서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같이 연습으로 재능을 뛰어 넘었는데, 그

보편적으로 예술은 아름다움을 표현 하는 인간의 활동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축구 등 스포츠뿐만 아니

과학의 영역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기

시간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과학에서

라 미술, 음악, 사진, 무용 등의 분야에서

본기부터 탄탄하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

시작하여 예술로 마무리되는 것은 몇몇

빈번하게 사용된다. 우리는 또한 일상에

한다. 기본기가 없다면 예술로 나아가기

특정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

서 마주하는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멋지

어려우며 반대로 기본기가 튼튼하면 어

다. 일상에서 우리들도 충분히 구현할 수

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 “와, 예술이다”

느새 예술로 승화된다. 물론 이를 위해서

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해볼 수 있는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자신이 현

위키피디아

재 하고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자신이 하는 일을 예술이라고 가정 해보자. 어떤 느낌이 드는가? 말 하나, 행 동 하나 소홀히 하거나 대충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예술로 만들기 위한 방법을 찾아보 자. 의외로 방법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일 을 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과 기술 등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면 된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기본기를 갈고 닦는 반복적인 연습의 시간이 필요 하다. 인내와 끈기 역시 빠질 수 없다. 이 러한 과정을 반복한다면 당신은 어느덧 파블로 피카소

예술의 경지에 다다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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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pec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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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스티브 잡스가 ‘마지막 글’ 쓰면서 떠올린 것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

일한 책을 깨닫는데 그 책은 바로 ‘건강한 삶ʼ에 대한 책이

다. 그 좋은 예가 스티브 잡스의 마지막 글이다.

다. 우리가 현재 삶의 어느 지점에 있던, 결국 시간이 지나 면 우리는 삶이란 극(劇)의 커튼이 내려오는 순간을 맞이

“나는 비즈니스에서 성공의 끝을 보았다. 타인의 눈에 내

할 것이다. 가족 간의 사랑을 소중히 하라. 배우자를 사랑

인생은 성공의 상징이다. 하지만 일터를 떠나면 내 삶에

하라. 친구들을 사랑하라. 너 자신에게 잘 대해 줘라. 타인

즐거움은 많지 않다. 결국 부(富)는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

에게 잘 대해 줘라.”

린 하나의 익숙한 ‘사실ʼ일 뿐이었다. 병들어 누워 과거 삶 을 회상하는 순간, 깨닫는다. 사회적 인정과 부는 닥쳐올

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원불교 청운회 전 회장

세계 굴지의 부자도 결국 가져가는 것은 ‘업’뿐

죽음 앞에 희미해지고 의미 없어져 간다는 것을….

이라고 했다. 그럼 우리가 받을 업보(業報)는 어떤

어둠 속에서 생명 연장 장치의 녹색 빛과 윙윙거리는 기계

것일까? 업보는 자신이 행한 행위에 따라 받게 되

음을 보고 들으며, 죽음의 신(神)의 숨결이 다가오는 것을

는 운명이다. 업보는 깨달은 존재인 부처와 윤회의

느끼며 깨달았다. 생을 유지할 적당한 부를 쌓았다면 그

존재인 중생의 차이다. 중생들의 윤회하는 영역과

이후 우리는 부와 무관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인간사회의 사회적·경제적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그 무엇이 부보다 더 중요한지 살펴보자. 인간관계나 예술,

이른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도덕적 법칙에서다.

또는 젊었을 때의 꿈들…. 끝없이 부를 추구하는 것은 결

<화엄경>에 이런 말이 나온다. “여러 꽃들이 피

국 나 같은 비틀린 개인만을 남긴다. 신은 우리에게 부가

지만 이름 모를 꽃들도 대단히 많다. 이런 세계가

가져오는 환상이 아닌,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선사

화엄세계다. 이름을 알리지 않고 하는 보시(布施),

하였다. 일생을 통해 얻은 부를 나는 가져갈 수 없다. 내가

상(相)을 드러내 않고 하는 보시가 최고의 보시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사랑이 넘쳐나는 기억들뿐이다.

고 공덕(功德)이다. 괜히 이름이 드날려서 불리면

그 기억들이야말로 당신과 함께하며 지속가능한 힘과 빛

그 만큼 공덕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라.”

을 주는 진정한 부다. 사랑은 수천 마일을 넘어설 수 있다.

죽음을 앞두고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오직

한계는 없다. 가고 싶은 곳을 가라. 성취하고 싶은 높이를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무상공덕(無相功德), 둘은

성취해라. 모든 것이 너의 심장과 손에 달려있다.

상생의 선연(相生善緣), 셋은 청정일념(淸淨一念)이

이 세상에서 제일 비싼 침대가 무슨 침대일까? 병들어 누

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청정일념’이다.

워있는 침대이다. 당신은 차를 운전해줄 사람을 고용할 수

그러나 아무리 공덕을 쌓고 선연을 맺었다 해도

있고, 돈을 벌어줄 사람을 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신 아

평소에 수행이 없는 사람은 이것이 다 아상(我相)이

파할 사람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잃어버린 물질적인 것

나 착심(着心)으로 화(化)하기 쉽다. 그래서 우리가

들은 다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인생ʼ은 한번 잃어버리면

가져갈 수 있는 최고의 보배는 ‘공수래공수거’(空手

절대 되찾을 수 없는 유일한 것이다.

來空手去)임을 철저히 깨달아 최후의 일념을 청정

한 사람이 수술대에 들어가며 본인이 끝까지 읽지 않은 유

하게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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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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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pec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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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순의 커피인문학

미국이 자랑하는 ‘세계 2대 커피’ 하와이 코나커피의 모든것 ①

박영순 경민대 호텔외식조리학 겸임교수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

“태평양에서 커피가 난다”고 하면 깜짝 놀라겠지

문에 커피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물론 비닐하우스

만, 하와이에선 가능한 일이다. 이 곳은 커피를 ‘가

에서 재배되는 것은 예외다. 비닐하우스에서 수확

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 미국’에서 커피가 나는 유

하는 커피는 양이 적기 때문에 ‘생두 비즈니스’를 하

일한 곳이기도 하다. 2016년 한해 소비량이 15억

기 어려운 환경이다. 그러나 하와이에서는 코나커

2046톤으로 전 세계 소비량의 16.3%를 차지한 것

피가 재배된다.

으로 국제커피기구(ICO)는 집계했다. 한국보다 13

특히 하와이 코나 지역에서 생산되는 커피는

배 많은 양이다. 인구수를 고려해도 한국보다 압

품질이 우수해 자메이카 블루마운틴과 더불어 ‘세

도적이다. 미국의 인구수는 2016년 7월 현재 3억

계 2대 커피’로 손꼽힌다. 코나에서 생산되는 커피

2399만명으로 한국(5171만명)의 6.2배인데, 단순

는 연평균 500톤이다. 전 세계 커피생산량(2016년

비교를 해보면 미국인 한 명이 우리 국민 한명 보다

90억9720만톤)의 0.000005%, 즉 20만분의 1을 차

커피를 2배 이상 마시는 셈이다.

지한다. 하지만 존재감은 무시할 수 없다. ‘작지만

미국 본토와 한반도는 커피를 재배할 수 있는 커피벨트의 북쪽 한계선인 북위 24도 위에 있기 때

큰 커피생산지’ 하와이 코나커피의 어제와 오늘을 짚어봤다.


073

magazine N | 201710

하와이 탄생 신화 ‘하와일로아’

영웅을 주인공으로 하는 탄생신화를 갖고 있다.

하와이는 지리적으로나 인종적으로 폴리네시

태평양의 이름 모를 섬에서 태어난 하와일로아

아(Polynesia)에 가깝다. 수천 개 섬들로 이루어진

는 거친 바다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카누를 만들어

폴리네시아는 육지 총 면적이 약 2만6000㎢로 제

항해를 하다가 일련의 섬들을 발견한다. 섬의 아름

주도(1825㎢)의 1.5배에 불과하지만, 해역은 태평양

다움에 매료된 하와일로아는 고향으로 돌아가 가

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 흔히 하와이 남단, 뉴질

족들과 8명의 항해전문가를 대동하고 원정을 떠나

랜드 북단, 이스터 섬을 잇는 삼각지대를 일컫는다.

자신이 발견했던 섬에 정착한다. 후손들은 그의 이

폴리네시아인들은 광대한 해역에 퍼져 살지만 남서

름을 따 이 섬들을 ‘하와이’라고 불렀다. 주요 섬들

단의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과 최북단의 하

에는 하와일로아의 세 아들인 카우아이(Kaua’i),

와이 원주민인 카나카족의 언어가 서로 통한다. 폴

마우이(Maui), 오아후(O’ahu)의 이름이 붙었다.

리네시아인들은 이들과 현저한 동질성을 보인다. 폴리네시아인이 넓게 퍼질 수 있던 것은 뛰어

영국 제임스 쿡, 하와이를 발견하다

난 항해술과 카누 덕분인 것으로 추측된다. 기원전

하와이 제도는 1778년 스코틀랜드계 영국인 탐

150년경부터 폴리네시아에는 인류가 거주한 증거

험가인 제임스 쿡이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최

가 있다. 이스턴 섬에는 4세기, 하와이는 9세기, 뉴

북단에 있는 카우아이 섬에 상륙하면서 세계에 알

질랜드는 14세기부터 인류가 살았던 흔적이 방사성

려지게 된다. 영국은 당시 세계적 무역상품인 설탕

탄소에 의한 연대측정을 통해 확인됐다. 역사가들

을 조달하기 위해 하와이에 사탕수수 농장을 추진

은 기원 후 300~400년 하와이 제도에 폴리네이사

하고 원주민을 효율적으로 동원하기 위해 하와이

인이 정착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1700년

왕국 수립을 지원한다.

역사에서 하와이는 하와일로아(Hawaiiloa)라는

하와이 코나커피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방앗간

카메하메하 1세는 1795년 하와이왕국을 선포


Perspectives

074

magazine N | 201710

하는데, 수도를 빅아일랜드 북쪽에 접한 마우이 섬

나간다. 미국은 1948년 골드러시(Gold rush)가 시

의 라하이나(Lahaina)로 정한다.

작돼 거대 자본가가 등장하고 서부 해안에 도시가

카메하메하는 하와이어로 ‘고독한 자’를 뜻한

생기면서 본격적인 태평양시대가 열렸다.

다. 그는 당시 하와이 섬에서 가장 세력이 큰 부족

하와이 왕국의 자산을 대거 확보한 미국은

의 족장이었다. 영국은 카메하메하 족장에게 소총

1887년 칼리카우아 국왕에게 의회 권한을 강화하

과 대포 등 신식무기를 제공하면서 통일전쟁을 치

는 개헌안을 내민다. 당시 하와이 의회는 미국에서

르게 한다. 그는 1810년 카우아이 섬의 족장한테

건너간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하와이를 병합

항복을 받아내면서 하와이제도를 통일하고 스스로

하려는 속내가 마침내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실 미

대왕 자리에 오른다.

국은 하와이를 편입하기 전인 1887년 이미 진주만

하와이왕국은 7대 국왕과 릴리우오칼라니 여

에 해군기지를 설치했다.

왕의 시대를 거치면서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영

칼리카우아 국왕이 1891년 지병으로 사망하자

국과 프랑스, 미국의 각축장이 된다. 그러나 1840

여동생인 릴리우오칼라니가 국왕이 된다. 그녀는

년대 대영제국의 빅토리아 여왕과 프랑스의 루이

하와이 역사에서 유일한 여왕이자 최후의 국왕이

필립 국왕은 하와이왕국의 독립과 주권을 보장하

다. 여왕은 선대 국왕 시절에 미국과 맺은 불평등조

겠다고 선언한다.

약을 무효화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이미 기운은 미국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권력을 강화하려는 여

미국, 하와이를 거머쥐다

하와이는 사탕수수 판매를 통해 큰 돈을 벌지 만, 7대 국왕인 칼라카우아가 영국 빅토리아 궁전

왕에 대항해 미국의 정치세력은 1893년 민병대를 동원, 여왕을 감금하고 임시정부를 구성하는 ‘쿠데 타’를 일으킨다.

을 모방한 이올라니 궁전을 짓느라 재정을 상당 부

이때 하와이 원주민들이 무장 봉기하지만 3일

분 날려버린다. 이 시기가 1880년대인데, 미국 자본

만에 제압된다. 하와이왕국은 영토를 통일한 지 83

가들은 이를 비집고 왕국의 자산을 하나둘씩 챙겨

년, 건국된 지 103년만에 사라졌다.

하와이 코나커피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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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돌 상원의원 조상들이 독점한 ‘Dole’ 상표

인도인들은 기원전 4세기 사탕수수에서 설탕

미국 자본가 세력은 “왕제 타도를 위한 혁명”이

을 제조하는 기술을 깨우쳤다. 기원전 327년에는

라고 주장하며, 호놀룰루에서 태어난 미국인 선교

알렉산더가 인도를 침략, 사탕수수를 보고 “벌 없

사의 아들이자 법률가인 샌퍼드 돌(Sanford Dole)

이 꿀을 만드는 갈대’라고 탄복했다. 500년경쯤 페

을 1894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하와이공

르시아에서도 사탕수수를 재배했다. 이곳을 점령

화국을 출범시킨다. 그는 대통령이 된 뒤 4년만인

했던 마호메트 군대가 이집트로 재배농법을 전했

1898년 하와이를 미국령으로 편입시킨다. 하와이

고, 이집트를 통해 755년 지중해를 건너 스페인으

가 미국의 50번째 주가 된 것은 이로부터 60여년이

로 퍼진다.

지난 1959년이다. 샌퍼드 돌 가문은 ‘돌(Dole)’ 상표

설탕은 11~13세기 십자군전쟁을 통해 유럽 전

를 만들어 과일, 채소, 해운업을 독점하다시피 하

역에 확산되며,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운 후 대대로 상원의원을

는 1493년 두번째 항해에서 카리브해의 아이티섬

배출하는 명문가가 된다. 공화당의 밥 돌 상원의원

에 사탕수수를 전한다. 이후 페루, 브라질, 콜롬비

이 그의 후손이다.

아, 베네수엘라 등 남미의 거대한 땅에서 사탕수수 가 재배됐다.

하와이왕국 전성기 연 사탕수수

1600년 무렵에 설탕은 엄청난 돈벌이로 부상

하와이가 18세기말 서구에 알려진 뒤 처음엔

해 세계적으로 생산량이 늘었지만, 여전히 유럽에

무역선이나 고래잡이 어선들의 기항지로 관심을 끌

서는 사치품으로 분류될 만큼 귀했다. 이런 마당에

었다. 그러나 하와이 섬에서 사탕수수가 야생으로

18세기말부터 거대한 미국시장이 부상했으니, 하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알려

이왕국으로서도 사탕수수 생산에 집중할 수밖에

지면서 운명이 바뀐다. 사탕수수는 8000년전쯤 남

없었다. 하와이에 사탕수수 농장이 최초로 들어선

태평양의 뉴기니에서 경작되기 시작해 인도네시아

것은 하와이왕국의 전성기로 꼽히는 카메하메하 3

와 필리핀을 거쳐 인도에 상륙했다.

세 통치하인 1837년이었다.(계속)


Perspectives

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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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윤의 웰빙 100세

한국사회 ‘위선’ 폭로한 마광수, 세상에 ‘우울한’ 이별을 고하다 마광수(馬光洙) 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학>에 ‘배꼽에’ 등 여섯 편의 시를 발표했고, 박두

우울증(憂鬱症, Depressive Disorder)으로 9월 5

진 시인 추천으로 문단(文壇)에 데뷔하였다. 1977

일 자택에서 자살했다. 향년 66. 고인은 아파트 베

년 2월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1983년 ‘윤동주(尹

란다에서 스카프로 목맨 채 숨져 있었으며, 주변

東柱, 1917~1945) 연구’ 논문으로 연세대에서 문

엔 “내 시신 처리와 재산 양도를 누나에게 맡긴다”

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는 내용이 담긴 친필 유서가 발견됐다. 마광수는 시인으로, 그리고 작가로서 많은 작

주 탄생 100주년’인 올해 세상을 떠난 것이다. 마

품을 남겼다. 그의 첫 시집 <광마집>(1980)의 결

광수는 윤동주 시(詩)에 나타난 상징적인 표현을

론은 사랑이었으며, 26년 전 소설 <즐거운 사라>

중심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연구했으며, 상징적 표

는 도발적 성애(性愛)를 다룬 음란물로 몰려 금서

현과 관련된 시대적 배경을 배려하여 객관적으로

가 됐다. 1991년 첫 출간된 <즐거운 사라>(서울문

윤동주 시의 본체를 파악하였다. ‘윤동주 연구’는

화사)는 아직 출판금지 상태이며, 마광수 사망 후

철학과현실사 출판사에서 2005년 5월 239쪽 단

이 소설(정가 5800원)은 중고 판매 사이트에서 권

행본으로 출판됐다.

당 25만원에 팔리고 있다.

1979~1983년 홍익대 사대 국어교육학과 조교

마광수는 1951년 1·4후퇴 당시 피난 중에 태

수로 재직 후, 박사학위 취득과 함께 1984년 연세

어났다. 종군 사진작가였던 아버지는 6·25전쟁

대 국어국문학과 조교수로 임용된 마광수는 제5

중 전사하는 바람에 그는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공화국과 6공화국 시절부터 문학의 지나친 교훈

자랐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서울에 정착하였으며,

성(敎訓性)과 위선(僞善)을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1966년 대광고에 진학하여 대학 진학 시 미술대학

풍자하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과 인문계 국문학과 사이에서 고민하다 1969년 연 세대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박명윤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아시아엔> 보건영양 담당 논설위원

‘윤동주 연구’로 문학박사가 된 마광수가 ‘윤동

1989년 장편소설 <권태>로 소설계에 데뷔한 후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출간하였으나 언론

그는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수석으로 입학하

의 혹평을 받았고, 대학에서 강의가 취소되는 시

여 재학 중 학과 내에 연극부 창설을 주도했다. 그

련을 겪었다. 1992년에는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

리고 연세문학회, 교지 기자, 교내방송국 PD 등으

가 외설적(猥褻的)이라는 이유로 구속되었다. 검

로 활동했다. 1973년 수석 졸업 후 곧이어 대학원

찰은 공소장에서 “소설 <즐거운 사라>는 성관계를

에 진학했다. 대학원 재학 중에 마당극 ‘양반전’ 각

노골적이고도 구체적으로 묘사해 성욕(性慾)을

색·연출을 맡았다.

자극한다”며 총 17개 부분을 적시했다.

1975년 대학원 박사과정에 들어가면서 국문학

마광수는 구속 파문으로 1993년 연세대로부

과 강사가 되고, 이후 1978년까지 연세대, 한양대,

터 교수직위가 해제되었고, 1995년 8월 대법원에

강원대 등에서 강사로 활동했다. 1977년 <현대문

서 유죄가 확정되어 교수직에서 해직되었다.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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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710

뉴시스

년 그의 제자인 연세대 국문과 학생들은 <마광수

국내에서 외설성 문학작품이 사법처리 된 첫

는 옳다>는 책을 발간하며 항의했고, 1998년 김대

사례는 1969년 건국대 박승훈 교수의 소설 <영

중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사면·복권되어 연세

점하의 새끼들>이다. 박승훈은 그해 7월 형법상

대에 복직했다.

음란물제조 혐의로 구속되었다. 1973년에는 <반

그러나 2000년에는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탈

노>(叛奴)를 쓴 염재만 작가도 같은 혐의로 기소

락했으며, 2002년 우울증으로 휴직 후 복직하였

됐다. 두 사람은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대

다. 마광수는 2005년 연세대 국문과 정교수로 임

법원에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용된 후 2016년 정년 퇴임했다. 마광수는 자살하

한국에서 음란물제조 혐의로 최종 유죄판결

기 전까지 집필 활동을 계속하였으며, 2017년 등

을 받은 사람은 ‘즐거운 사라’를 쓴 마광수가 처음

단(登壇) 40년을 맞아 시선집 <마광수 시선>을 펴

이다. 문단에서도 마광수에게 우호적이지 않아

내기도 했다.

‘왕따’를 당했다. 문학가(文學家) 마광수는 자기가 하고픈 말을 모두 그의 작품 속에 쏟아 부었다. 그

예술 혹은 포르노그라피

‘20세기 가장 위험한 거인(巨人)’이라 불렸 던 미국의 소설가 헨리 밀러(Henry Miller,

대가(代價)로 대학교수 해직과 소송, 징역, 왕따 등을 두루 겪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저 세상 으로 떠나버렸다.

1891~1980)도 프랑스에서 출판한 1930년대 작품

마광수 교수를 자살로 이끈 우울증은 정신질

<북회귀선> <남회귀선>에서의 대담하고 솔직한

환으로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는 흔한 질병이다.

성(性) 묘사 때문에 미국에서 오랫동안 수입이 금

그러나 우울증은 원활하지 못한 대인관계 등 여러

지됐다. 1961년 미국판 출판이 가능하게 된 뒤로

가지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며, 심한 경우 자살에

도 그를 ‘포르노 소설가’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를 수 있는 뇌질환이다. 일반인에 비해 시인이나

마광수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도 이와 그리

작가는 중증(重症)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4배 정

다를 바 없었다.

도 높다고 한다. 마광수도 우울증이 심하여 병원


Perspectives

078

magazine N | 201710

에서는 입원 치료를 권하였다고 하나, 약만 복용

르몬 불균형도 원인이 될 수 있다. 환경도 우울증

했다고 한다.

발생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경제적 문제와 강한

우울장애(憂鬱障碍)는 우울감과 의욕 저하를

스트레스 등도 원인이 될 수 있다.

주요 증상으로 하여 인지장애 및 정신적, 신체적

우울증의 핵심 증상은 우울감과 삶에 대한 흥

증상을 일으켜 일상 기능의 저하를 가져오는 질환

미 및 관심의 상실이다. 우울증 환자의 대부분은

이다. 즉 감정, 사고, 신체, 행동 등에 변화를 일으

삶에 대한 에너지 상실을 호소하며 과업을 끝까지

키는 심각한 질병이다. 우울증은 일시적인 우울감

마치는 데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우울증 환자의

(憂鬱感)과는 다르기 때문에 개인적인 의지로 없

80% 정도가 수면 장애를 호소하며, 그리고 90%

앨 수 없다.

정도가 불안 증상을 보인다. 또한 집중력 저하와

우울한 기분인 우울감은 누구나 경험하는 문 제다. 하루 또는 일주일에 몇 번씩 기분이 좋았다

같은 인지기능 저하 증상도 환자의 상당수에서 나 타날 수 있다.

가 나빴다 하는 변화는 정성적이며, 그 변화의 정

정신상태 검사로 우울증이 의심되면 우선 우

도가 크지 않다. 만약 2주일 내내 하루 종일 기분

울증을 일으킬 수 있는 다른 질환에 대한 감별 진

이 가라앉아 있고, 평소 하던 일의 양을 똑같은 조

단을 우선적으로 실시하여야 한다. 다양한 질환

건에서 절반 정도 밖에 못한다면 우울증 가능성

이 우울증과 연관성이 있으므로 증상에 따른 정

이 높다.

밀검사를 실시해야 한다. 뇌졸중(腦卒中)과 같은 신경과적 문제에서도 우울증이 발생할 수 있다.

마광수 앗아간 우울증이란?

우울증 증세가 가벼운 경우에는 전문의 상담

우울증 유병률(有病率)은 나라에 따라 차이가

만으로 충분한 경우도 있으나, 중등도 이상의 우

많다. 미국, 유럽, 뉴질랜드 등은 평생 유병률이

울증에서는 약물치료가 필수적이다. 정신과 전문

10.1~16.6%로 높은 수준을 보이는데 비하여, 비

의는 환자의 증상과 전신 상태, 우울증 진행 정도,

(非)서구권국가에서는 5% 이하의 낮은 수준의 유

환자의 선호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적절한

병률을 보인다. 2016년 보건복지부의 ‘정신질환실

치료법을 환자와 함께 선택한다.

태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주요 우울장

우울증은 약물치료와 정신치료를 함께 하는

애(우울증) 평생(平生)유병률은 5.0%(남자 3.0%,

것이 효과적이다. 작용하는 신경전달 물질 체계에

여자 6.9%), 그리고 일년(一年)유병률은 1.5%(男

따라 다양한 계열의 약물이 있기 때문에, 우울증

1.1%, 女 2.0%)로, 지난 1년간 우울증을 경험한 사

증상이 좋아진 후 약물유지 요법이 재발 방지를

람은 61만 명으로 추산된다.

위해 중요하다. 입증된 우울증 예방법은 없으나

우울증은 나타나는 자각 증세에 따라 대개 세

스트레스 조절, 교우(交友) 관계, 사회적 지지 등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경고(警告)단계로 몸

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흡연과 음주는 우울 증상

과 마음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한다. 둘째

을 악화시키므로 피해야 한다.

는 신호(信號)단계로 몸에 이상이 나타난다. 즉 불

우울증을 질병으로 인식하지 않고 방치하다가

면증, 불안, 흥미 상실 등 각종 증상이 나타난다.

극단적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셋째는 질병(疾病)단계로 병적인 우울증이 온다.

우울증은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인식하고 정신

우울증의 원인은 다른 정신질환과 같이 유전

건강의학과 의사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 또한 우

적 요인, 생화학적 요인, 환경적 요인 등이 있다.

울증은 치료가 잘 되는 질환이라는 사실을 인식

우울증을 가진 가족 내에서 우울증이 더 잘 발생

하고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우울증을 극복하기

한다는 연구도 있다. 생화학적 요인으로 뇌 안의

위하여 긍정적인 사고, 규칙적인 운동, 균형 잡힌

신경전달 물질이 감정 등의 뇌 기능과 연결되어 있

식생활이 좋다. 명상, 요가, 이완요법(弛緩療法)

어 우울증 발생에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며, 호

등도 도움이 된다.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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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710

Dabbawalas’ Mission: Delivery Food On Time, Every Time Summary

인도의 점심 책임지는 다바왈라를 소개합니다 어느 평범한 날의 점심시간, 뭄바이는 20만명 분의 점심식사를 나르는 다바왈라의 5천여 배달부들로 붐빈다. 1890년 창립된 다바왈라는 고객의 점심을 가정에서 받아와 사무실까지 배달해주는 인도 고유의 배달시스템이다. 가격도 매우 저렴해 한 달 에 약 7~9달러만 지불하면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또한 배달 과정에서의 사고가 나거나 지연 되는 일이 거의 없어 고객 의 신뢰도와 만족도도 높다. 하얀 모자를 쓴 배달부들은 점심식사가 담겨 있는 다바(철제 원형 통)를 고객의 집에서 받아 기차역으로 향한다. 배달부는 목 적지 인근의 역에 다다르면 도시락을 다른 직원에게 전달하고, 바통을 이어받은 직원은 이를 고객의 사무실로 배달한다. 물론 도시락통은 식사 이후 고객의 집으로 반환된다. 다바는 고객의 집을 나타내는 숫자, 사무실의 위치를 나타내는 캐릭터, 기차역 을 나타내는 색 등으로 표기된다. 다바왈라 직원 대다수는 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간단한 표기로 업무의 효율성을 높였다. 약 200개의 소그룹으로 구성된 다바왈라는 그룹당 약 25명이 소속돼 있다. 다바왈라의 구성원들은 개인이 직접 고객과 협상 하고 배달물을 다루기 때문에 고객과의 신뢰관계를 기본으로 한다. 때문에 다바왈라에선 고객을 뺏으려는 직원 간의 경쟁은 찾아보기 힘들다. 합리적인 가격을 차치하더라도 인도 사람들이 다바왈라를 애용하는 이유는 여럿 있다. 인도에선 긴 통근 시간 때문에 직장인 들이 매우 이른 시간 집을 나서는 경우가 흔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점심까지 준비하긴 어렵다는 뜻이다. 설령 음식을 만 들어간다 하더라도 점심 때 쯤이면 이미 식어버린 후다. 또한 인도는 외식하는 비용이 비싼 편이며 음식의 질도 그리 좋지 않 다. 다양한 식성이 공존하는 인도의 특성도 많은 사람들이 다바왈라를 찾는 이유 중 하나다. 채식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소고 기를 먹지 않는 힌두교도,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교도, 양파와 마늘, 감자 등을 먹지 않는 자이나교도들에겐 외식보다 집밥이 더 편하다.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다바왈라가 8,000만 건 이상을 배달하는 동안 배달 사고는 불과 300~400건에 그쳤다고 한다. 종사자 대부분이 문맹인 것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사실이다. 페덱스 등 유수의 운송업체들도 그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가질 정도다. 이는 조직 구성원들의 끈끈한 공동체 의식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구성원 대다수는 인도 서부의 푸네 지역 출신이기에 문 화적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비탈신을 숭배하는 힌두교 분파 바카리에 소속돼 있다. 우리는 고기는 물론 술도 입에 대 지 않는다. 우리 분파의 가장 주요한 신앙활동은 사람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전하는 일이다”라고 한 직원은 말한다. 다양한 종 교와 방언이 숨쉬고 있는 뭄바이에서 다바왈라 구성원들은 동일한 언어, 식습관, 종교, 그리고 문화를 공유한다. 신규 직원들 도 기존 직원들의 친척 또는 친구이기에 이들은 집단의 유대감을 공고히 다지며 협력한다. 파완 아그라왈 박사는 테드의 강연에서 다바왈라의 또다른 성공 요인에 대해 “제로베이스에서 탄생한 영웅들”이라 설명했다. 다바왈라의 직원 다수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문맹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더욱 열심히, 그리고 겸손히 일한다. 구성원들 은 그들을 인정해주는 직장 다바와라에서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다바왈라에도 불안요소는 존재한다. 얄궂게도 여성인권 신장이 그 중 하나다. 인도는 보통 각 가정의 여성들이 식사를 책임지지만, 최근 들어 여성의 사회진출이 증가하면서 점심도시락을 만드는 가정이 줄어들고 있다. 음식을 포장해먹거나 식 당에서 사먹는 중산층과 세계화의 여파로 피자나 햄버거를 사먹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문제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다바왈라 시스템의 효율성과 필요성을 인정한다.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안 Alessandra Bonanomi Staff Reporter

정적인 직장을 제공해 주는 곳은 지구상에서도 손꼽히기 때문이다.

알레산드라 보나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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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uster of traditional Korean homes, or Hanok, each housing an individual gallery of Architecture and Urbanism. Inside one particular Hanok, the Dabbawala delivery system of India was introduced as an example of adaptation to rapid urbanization. In a constantly expanding and growing metropolis such as Mumbai, there exists the best lunchboxdelivery system that has been operating since the 1890s. Dabbawala delivery system

Around 5,000 workers distribute more than 200,000 tiffins (Indian English word for light meal during midday) every workday in Mumbai. Founded in 1890, the Dabbawala service begins with picking up lunches from families’ homes and then delivering them to people’s offices. The service is very cheap (customers pay around $7 to $9 as monthly payments) and highly reliable as there are hardly any delayals or errors in delivery. Wearing a white Gandhi cap, a worker picks up a dabba (a cylindrical tin suitable for preserving lunch) from the customer’s home and takes it to the train station. Then, A display of dabbas at Seoul Biennale of Architecture and Urbanism Exhibition, Seoul

it is transported by train to another station where yet another worker takes it and

New discoveries at Seoul Biennale of Architecture and Urban 2017

The Seoul Biennale of Architecture and Urbanism (open Sept. 2-Nov. 5) was launched as an information-sharing exhibition on the notions of sustainable cities, ecological

delivers it to the office just before lunch. In the afternoon, the box is returned to the customer’s house.

and technological developments, biodiversity, and global climate change. Through

Lunch boxes are marked with basic

the showcasing of various city projects, this exhibition provides a foundation for

symbols: a number in the center that

planners and developers from around the world.

indicates the neighborhood that it is to

The exhibition itself is composed of multiple galleries spread throughout different

be delivered, a group of characters that

parts of Seoul. One portion of the exhibition is situated in Dongdaemum Design Plaza,

indicate the building and floor, and a

which deals mainly with graphics showing modern-day overcrowding of cities.

combination of colors that indicate the

The latter portion, located in Donuim Museum Village comes in the form of a

station of origin. Since Dabbawalas 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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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ually workers who have not received an education, this simple system of codes can

mainly managed by non-literate people.

be understood by all.

Many organizations such as Harvard

The Dabbawala is made of approximately 200 units of about 25 persons each. The

Business School and FedEx tried to analyze

Dabbawalas manage their work independently as each worker directly negotiates

the reason behind such accuracy and the

prices with customers and handles acquisitions and any problems that arise. The

success of Dabbawala deliveries. It seems

relationship that is established with clients is based on trust, with no Dabbawala

that firing negligent works and lowering

infighting or competition. Unspoken rules such as not eating until all deliveries

expenditures are not enough for other

have been completed are strictly kept; showing that workers have local autonomy to

delivery systems to be as efficient as the

organize their system of work.

Dabbawala. Most credit the accomplishment to

Why the need for so many lunch deliveries?

Dabbawala workers’ identity. Many of

Apart from the affordable price and efficient service, Indians have many reasons

the deliverers come from a region near

for making use of the Dabbawala delivery system. Because of long commutes, some

the city of Pune and share the same

workers have to leave home very early in the morning. Consequently, often no one

cultural roots. “The majority of us belong

is awake at home to prepare lunch. And even if there is someone to cook the food, it

to a Hindu sect called Varkari, who

would be cold by lunchtime.

worship the god Vitthal. We do not eat

Moreover, in the case of India, eating out is costly and the quality of food in many

meat or drink alcohol. One of our most

office canteens are below par—not to mention that the majority of Indians who use

important devotional acts is to give food to

the Dabbawala service have specific dietary requirements being either vegetarians

people,” said a supervisor of the Mumbai

or vegans. Hindus do not eat beef, Muslims must not eat pork, and Jainists are not

Dabbawala Association to the New York

allowed to ingest onions, garlic, or potatoes.

Times. I n a melt i ng p ot of r el ig io n s

Sharing the same identity

and dialects such as Mumbai, most

According to studies, the Dabbawala system has had only 300 to 400 cases of error

Dabbawalas share the same language,

over 80 million deliveries. This is incredible considering the fact that it is a system

diet, religion, and culture. New workers are typically relatives or friends of current workers. They also remain in the same group for their entire career, creating friendship relations based on cooperation. Relying on each other to work, younger workers often help older workers in carrying dabbas loads. Unlike much diversity that is seen in other companies, Dabbawala is based on homogeneity. Karna hai to karna hai : no excuse

During a his speech, “Zero to Hero,” hosted by TED, Dr. Pawan Agrawal explained other keys to the Dabbawalas’ Dabbawala men enjoying their work

success. He pointed out features such 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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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sion, commitment, time management, and accuracy. However, another attribute

with obtaining driver’s licences would

that was highlighted: for the Dabbawalas, doing everything is necessary for doing

significantly affect the current system.

their best. It means they have a strong problem-solving attitude that is important in

Therefore, Dabbawala future remains

accomplishing goals. “No excuses” is their motto.

uncertain in the era of modernity and fast-

Aware of their condition as poor and illterate people, Dabbawalas work extra

paced urbanization.

hard with the humility in knowing that they have a good-paying job, including a one-

Still, one can only acknowledge the

month bonus payment. Thus, no strikes or polices cases have occurred within and

cleverness and efficiency of the Dabbawala

about the Dabbawalas since 1890.

system. Its structure includes the poor and allows them to exhibit their full potential;

Uncertain future

Apart from all the important elements mentioned so far, the efficiency of the train

giving them decent work and a satisfactory lifestyle.

system in India is essential for the future of the Dabbawala delivery system. The tiffin men rely on suburban trains to ensure delivery of lunch boxes. Last September, the Dabbawalas of Mumbai canceled deliveries over problems that arose with suburban rail services closed with heavy rains.

Reporter’s note

C r eat i ng a s e c t io n ab out t h e Dabbawala delivery system in the Seoul

The female condition and gender roles in India also play important parts to the

Biennale of Architecture and Urbanism was a

delivery system as most lunch boxes are generally prepared by the women of each

great idea in allowing visitors to discover

household. But as recent trends show more women in the workforce, fewer people

this excellent service. For all one can know,

will be able to make the food for deliveries. What is more is that there has been a rise in

technology and globalization perhaps

the middle class ordering takeouts and eating in restaurants. Thanks to the effects of

could change or destroy the Dabbawala

globalization, more people want just the pizza or hamburger.

delivery system, but it is important in

New phone applications permeate the Indian market, but “new technology is for

learning the amazing system as it teaches

the literate. We Dabbawalas do not know much about technology,” declared a tiffin

the necessity of social inclusion in the job

deliver to the Financial Times. In response to the higly digitalized era, some suggested

market. Indeed, everybody and anybody

the Dabbawalas use motorcycles to deliver food, but costs related to vehicles and issues

can contribute in our global society.

Dabbas delivery loads

Indian woman preparing lunch box for husband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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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불신 그리고 ‘분노’ 원초적인 감정 앞에 적나라하게 파헤쳐지는 ‘인간’

‘분노ʼ 포스터

고 그 예상은 보기 좋게 적중했다. 불편해진다는 표현으로 모자라 주말 내내 내 머릿속은 ‘분노’에

박호경 기자 hoo9513@theasian.asia

어느 금요일 밤, 일본을 상징하는 여배우 중 한명

잠식당해 버렸지만, 영화 <분노>에 잠식된 필자는

인 미야자키 아오이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영화

이 작품을 한번 더 보는 고통을 감수했다.

<분노>와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두 편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분노>는

을 놓고 고심했다. 한 작품은 파격적인 소재의 심

독자들에게 굳이 추천하고 싶은 영화는 아님을 말

리스릴러물, 또 다른 작품은 잔잔한 영화. <분노>

씀 드린다. 이 작품을 밝은 문체로 표현하는 것도

는 보고 나면 왠지 마음이 불편해 질것만 같아 보

어려워, 기존의 글과는 다른 문체로 글을 풀어갈

기가 꺼려지는 영화였지만, 그 날 따라 무슨 바람

것이다. 또한 이 글에는 필자의 자전적인 내용도

이 들었는지 이 작품이 먼저 보고 싶어졌다. 그리

포함될 것이라는 점을 미리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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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연기를 펼친 아야노 고(왼쪽)와 츠마부키 사토시

재일교포 이상일 감독의 영화 <분노>는 올해 3월 열린 제40회 일본아카데미 시

영화는 장소를 바꿔 도쿄의 가부기초

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해 최다 13개의 상을 휩쓴 작품으로 지난해 부산

를 비춘다. 거리를 헤매는 한 남자(와타나

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됐던 작품이다.

베 켄 분).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한

요시다 슈이치 작가의 신문연재 소설을 각색한 <분노>는 이상일 감독의 전작 <악

풍속점에 들어간다. 집 나간 딸을 찾는 듯

인>이 그러했듯, 전형적인 일본영화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오히려 한국의 나홍진 감

하다. 3개월 만에 찾은 딸 아이코(미야자

독과 박찬욱 감독을 섞어 놓은 듯, 드라이하지만 영화 전반을 휘어 감싸는 스산한 분

키 아오이 분)는 몸도 마음도 망가져 있는

위기가 풍겨 나온다. 여기에 사카모토 류이치의 절제됐지만 절망감을 느끼게 하는 음

상태다. 우여곡절을 거쳐 치바의 집으로

산한 사운드가 얹어지며 보는 이를 긴장케 한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부녀는 서로를 살뜰

동성애, 성폭행 등 파격적인 소재를 다룬 이 영화는 겉으로는 심리스릴러물을 표

하게 챙긴다. 미묘한 어긋남이 보이지만,

방하나, 이는 단순한 트릭에 불과하다. <분노>는 믿음, 불신, 분노라는 원초적인 감정

사랑하는 마음은 여느 부녀와 다를 바 없

앞에 초라해지는 인간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필자는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이야

다. 이윽고 부녀는 치바 항구의 고향집으

기를 풀어 가겠다.

로 돌아온다. 그때 아버지 밑에서 일하고

뜨거운 여름날의 오후, 도쿄의 평화로운 마을 하치오지에서 결혼 7년차의 부부

있는 낯선 남자(마츠야마 켄이치)가 딸의

가 처참하게 살해당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怒’(분노) 글자만을 하나 남겨둔 채 용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딸은 그 남자에게

의자는 사라지지만, 1년이 지나도록 잡히지 않아 공개수배 명단에 오른다

묘한 끌림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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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신주쿠 게이 거리를 걷고 있는 두 남자. 이들은 신주쿠 거리에서 우연히 만

이들은 블록을 쌓듯 사랑과 믿음을 차

나 관계를 맺은 후 서로에 이끌려 동거를 시작한 사이다. 섹시하고 유능한 이미지의

곡차곡 쌓아가지만, 어느 순간 블록의 틈

남자 유마(츠마부키 사토시 분)는 자신이 게이라는 것에 대해 전혀 거리낌이 없다. 오

새 사이로 ‘의문’이란 공간이 점차 커져간

히려 당당해 보일 정도다. 번듯한 직장과 좋은 빌라에서 윤택하게 생활하는 그는 자

다. 이윽고 극이 종반부로 향하면서 믿음

신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연약해 보이는 남자 나오토(아야노 고 분)에 점점 빠져들어

의 블록은 한 순간에 허물어져 버린다. 블

사랑을 느낀다.

록이 허물어진 후 밝혀지는 진실은 감당하

오키나와 바다를 달리는 조그마한 보트. 고교생으로 보이는 소녀(히로세 스즈)와 소년이 탄 보트가 무인도에 도착한다. 남학생은 모래사장에서 낮잠을 청한다. 여학

기에 너무나 가혹해, 이들은 오열하고 분 노한다.

생은 무인도를 혼자 구경하던 중 쓰러져 가는 건물 더미에서 배낭여행족으로 보이는 의문의 한 남자(모리야마 미라이)를 만난다. 치바, 도쿄, 오키나와 세 곳을 무대로 펼쳐지는 영화는 세 개의 에피소드를 교차

“삼촌 혹시… 삼촌 딸이 행복해질리 없다고 생각하는거 아냐?”

하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세 명의 ‘알 수 없는’ 남자들 모두

종반부 파국의 시작점을 알리는 한마

는 하치오지 살인사건의 용의자와 많이 닮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정확한 신원

디다. 치바 항구로 돌아온 딸은 마을 사람

을 밝히지 않은 채 저마다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이들

들에게 ‘몸 팔던 여자’로 낙인 찍혀 주위의

에겐 각각 사랑하는 여자와 그녀의 아버지, 사랑하는 남자, 믿음을 주는 아이들이 생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된다. 그녀의 아버지

긴다. 극은 중반부까지 이들에게 싹트는 사랑과 믿음에 초점을 맞춘다. 이에 흡입된

는 누구보다 딸을 사랑하고 믿지만, 그런

관객들은 세 남자에게 애틋한 감정마저 느낀다.

차가운 시선 속에서 딸을 지킬 수 없다.

미야자키 아오이(왼쪽)와 마츠야마 켄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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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세 스즈(왼쪽)와 모리야마 미라이

‘분노ʼ 포스터

오히려 딸의 믿음을 저버리고 ‘보통의 여자들과는 다른’ 자신의 딸이 행복해질 수

동양인 최초로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아버지는 그런 속 마음을 조카에게 들켜버리고 만다. 아버지

미 음악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음악감독 사

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치부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카모토 류이치 역시 관객의 심장을 들었다

이 장면과 대사는 영화 속 아버지의 마음뿐만 아니라 필자의 폐부도 찔렀다. 필

놓는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멜로디는 항

자에겐 정신분열증을 오랜 기간 앓고 있는 친누님이 있다. 지금은 많이 나아진 상태

상 동일하다. 다만 상황에 따라 악기와 리

이지만, 1년에 한 두 번씩 집을 나가기도 한다. 필자도 영화 속 아버지처럼 누나를 찾

듬만이 달라질 뿐이다. 영화 내내 흘러나

기 위해 거리를 헤맨 적이 부지기수이지만,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영

오는 동일한 멜로디는 관객들로 하여금 ‘누

화 속 대사를 듣고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어 하는 필자 또한 영화 속 아버지와 별반

가 범인일까’하는 궁금증을 더욱 고조시킨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아플 뿐이다. 그러나 우리 누구나 가슴 깊은 곳에 저마다의 치

다. 그리고 클라이막스에 도달하는 순간,

부를 담고 살아가기에 쉽사리 그녀의 아버지에게 돌을 던질 수는 없다.

그동안 억눌려 있던 선율은 한 순간에 폭

종반부에 치달으면서 영화 속 주인공들의 감정의 곡선은 더욱 격해진다. 진실과

발해 관객에 그 충격을 전한다.

맞닥뜨린 아이코가 오열하는 장면에선 대사가 묵음처리 된 채 절망스러운 음악만이 울려 퍼진다. 사랑하는 이를 끝내 믿지 못했다는 자괴감은 그녀의 가슴에 큰 상처를

“정말 소중한 건 늘어나는게 아니라 줄어드

남긴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에도 절망과 괴로움만이 남는다. 비록 피 한

는거야”

방울 나오지 않지만, 이 장면은 가장 잔혹한 순간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된다.

영화 종반부의 빼놓을 수 없는 대사

종반부 내내 요동치는 감정은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을 심연으로 몰고 간다. 그러

다. 묘령의 여인(타카하타 미츠키 분)은 사

나 영화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헤쳐나갈 키잡이를 배치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인셉

랑하는 이를 믿지 못하고 도망친 자신에게

션> <라스트 사무라이> 등에 출연한 일본을 대표하는 중년배우 와타나베 켄은 감정

분노하는 유마에게 나오토의 메시지를 전

을 최대한 절제하며 미야자키 아오이의 폭발하는 분노를 가라앉히는 아버지 역할로

한다. 오열하는 유마와 마주하지만 감정을

출연해 극의 중심을 잡아준다.

절제한 그녀는 “진정하세요” 한마디로 파

와타나베 켄 이외에도 동성애자 역할을 맡아 강도 높은 베드신을 소화한 두 배

국의 분위기를 가라앉힌다. 이윽고 진정된

우 츠마부키 사토시와 아야노 고를 비롯해 히로세 스즈, 모리야마 미라이, 마츠야마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이 영화가 던지는

켄이치 등 일본 최고의 배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열연을 펼치며 영화 속 캐릭터들에

메시지를 떠올린다. 단 한번의 의심으로

생동감을 불어 넣는다.

소중한 사람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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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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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s zucchini and bean paste soup Please Look After Mom

By Shin Kyung-sook | Alfred A. Knopf | 2011

“It’s been one week since Mom went missing,” and two daughters, two sons, and a bereaved father are left to pick up the pieces to an unexpected mystery of the woman they had all needed so much but taken for granted. On a busy afternoon, Mom goes missing in Seoul Station, never to return home again. Her maiden name is Park So-nyeo, little girl in Korean. Yet, to her four children and husband, she has always and only ever been, Mom. In the aftermath of her disappearance, the children try to make sense of her absence, reliving past memories that shed light to the woman, So-nyeo. “Why did I think of Mom as a mom from the very beginning? She didn't have the opportunity to pursue her dreams, and all by herself, faced everything the era dealt her, poverty and sadness…Why did I never give a thought to Mom's dreams?” Across memories beginning to fade, Sonyeo’s family recalls the burden only Mom could

carry, introducing the particular nuances and familial disputes of the Korean family: mistreatment by in-laws, days and nights spent in the kitchen, favoritism of the eldest son, betrayal of the typical stoic husband, and the sweat and blood put into feeding four selfish but precious children. Most importantly, they remember what could only be understood as unconditional love. “Even when I was so busy…when I watched you sitting around the table, eating, I felt like there was nothing else I wanted in the world…You dug in happily when I made a simple zucchini-and-bean-paste soup, and your faces lit up if I steamed some fish once in a while.” And in so doing, Author Shin Kyung-sook, with her first book to be translated into English, captivates the international audience with what was thought to only apply to the peninsula of Korea. From the rural town of Jeongup in North Jeolla Province, Mother’s clay jars filled with redpepper paste and white Kimchi remind us what is true of mothers anywhere in the world, “Life is sometimes amazingly fragile, but some lives are frighteningly strong.” Eui-mi Seo Staff Reporter

엄마가 전북 정읍에서 보내온 고추장과 백김치 가득한 항아리 :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ㅣ창비ㅣ2008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첫 대사다. 두 딸과 두 아들, 그리고 아빠는 그렇게 남겨졌다. 어느 분주한 오후, 엄마는 서울역에 서 사라진 채 다시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사라져버린 엄마의 이름은 박소녀다. 그러나 네 자녀와 남편에게 그녀는 항상 가정을 지키고 있어야만 하는 엄마로만 기억된다. 이들은 엄마가 사라지고 나 서야, 그녀의 부재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아닌 여성 ‘소녀’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소녀’의 가족은 오직 엄마 만이 책임져야 했던 짐들을 떠올렸다.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이기적이지만 소중한 자녀들을 먹여 살리기 위 해 피땀 흘려온 엄마. 뒤늦게나마 소녀의 가족은 엄마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해 기억하며 감사해 한다. 드라마로도 각색된 <엄마를 부탁해>는 저자 신경숙의 작품 중 영어로 번역된 최초의 작품이다. 이 소설은 한국 사회의 전형적인 가정에서나 벌어질 법한 상 황과 부조리들을 그려냈음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소설 속 내용처럼 전라북도 정읍에서 엄마가 보내온 고추장과 백김치 가득한 항아리 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도 ‘우리들의 엄마’는 전세계 어디에서나 똑같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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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x reincarnations with the Chinese Communist Party Life and death are wearing me out Mo Yan | Arcade Publishing (Eng. trans.) | 2008

In 1948, Ximen Nao, a rich landowner, was exec uted by the sharecroppers who were working for him. He felt he had been unjustly murdered since he thought he had been an excellent landlord. After spending two years in the kingdom of darkness, on January 1, 1950, he was sent back to earth by Lord Yama, ruler of the underworld, since he could not bear to listen to his complaining any longer. But Ximen Nao finds he is not himself, as he lives through successive reincarnations as a donkey, ox, pig, dog, and monkey until finally being born again as a man. Through the 540 pages of Life and death are wearing me out, the protagonist experiences the political movements that swept China under Communist Party rule, including the Great Chinese Famine and Cultural Revolution, all the way through to New Year's Eve in 2000. Author Guan Moye, better known as Mo Yan, was born in 1955 into a rural family in northern

China. His pen name means, do not speak. The cultural revolution forced him to leave school at 12, and he went to work in the fields, completing his education in the army and publishing his first work in 1981. His style has often been described as magical realist as he has cited Gabriel Garcia Marquez as a contemporary influencer on his work. The prolific author he is, Mo Yan describes intricate portraits of Chinese rural life. His work has been widely translated in the West, but he is perhaps best known abroad for his 1986 novel, Red Sorghum, which follows the story of a family's struggle during the second Sino-Japanese War. The novel was also reinterpreted in film-version, directed by Zhang Yimou. In 2012, Mo Yan won 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for works of “hallucinatory realism” that merged “folk tales, history, and the contemporary”. However, several human rights activists have criticised the writer for toeing the government line and for failing to speak up for the writers and dissidents who have been jailed in China for their political beliefs. Alessandra Bonanomi Staff Reporter

여섯 번의 환생 통해 ‘격동의 중국’ 마주한 지주 서문뇨 : 인생은 고달파 모옌(이욱연 역)ㅣ창비ㅣ2008 ‘인생은 고달파’의 주인공인 지주 서문뇨는 1948년 중국 토지개혁기 때 소작농들에게 악덕지주로 몰려 총살당한다. 스스로를 좋은 지주였다고 생각한 서문 뇨는 자신의 죽음이 부당하다고 느껴 염라대왕에게 하소연한다. 그의 불평에 지친 염라대왕은 2년여 흐른 1950년 새해 첫날 그를 환생시킨다. 그러나 환생한 서문뇨는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인간의 몸이 아닌 동물의 몸으로 환생했기 때문이다. 결국 서문뇨는 당나귀, 돼지, 소, 원숭이 등 6번 의 환생 끝에 2001년 들어서야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는 태어나고 또 다시 태어나길 반복하는 반세기 동안 대기근과 문화혁명기 등 공산당이 전토를 휩 쓸어버린 중국의 격동기를 목격한다. 1955년 중국 북부의 농촌에서 태어난 작가는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뜻을 지닌 필명 모옌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서구에서도 널리 번역되는 그의 글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1986년작 <붉은 수수밭>이다. 제2차 중일전쟁 당시 한 가정의 고난을 그린 이 작품은 중국이 낳은 거장 장이모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됐 다. 그리고 2012년, 모옌은 “마술적 사실주의에 민간설화, 역사, 동시대 상을 작품에 녹여낸다”는 극찬을 받으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공산당에 줄 을 댄 모옌은 정치적 신념으로 감옥에 갇힌 반체제 인사들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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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사랑한 이집트 예술가가 말하는 ‘일본’ 경제 | 세계 최대규모 태양열 발전소 건설, 탄력받는 ‘두바이 클린에너지 2050’ 86

아랍에미리트의 부통령이자 두바이의 통치자 셰이크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이 세계 최대규모의 태양열 발전소를 건설 한다고 발표했다. 민간이 참여하는 이 프로젝트는 700메가 와트의 규모를 자랑한다. 두바이의 통치자는 이에 대해 “이번 프로 젝트는 아랍에미리트가 깨끗하고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음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두바이 클린에너지 계획 2050’을 달성함으로써 전세계 최소 탄소 배출국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회 | 일본을 사랑한 이집트 예술가 라가이 완 93 일본에서 오랜 시간 거주한 이집트 예술가 라가이 완은 현지인과 혼인해 정착했을 정도로 일본에 애착을 갖고 있다. 라가이 완은 그가 사랑하는 두 국가의 문화와 사회를 비교 분석해 독자들에 전한다.

갤러리 | 요스 수프랍토가 그리는 ‘반전의 지평선’ 97 예술은 문화 혹은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화가 요스 수프랍토는 모국 인도네시아의 역사와 전설을 화폭에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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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 이집트 대표 해안관광지에서 열린 ‘글로벌 금융포용성 정책포럼’ 101

이집트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해안관광지 샤름 엘-셰이크에서 ‘글로벌 금융포용성 정책포럼’이 열렸다. 94개국 경제학자 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이번 행사는 ‘금융포용성’ 그 중에서도 사회적 취약계층에 소액대출 등을 제공해주는 마이크 로 파이낸스를 주요 의제로 삼았다. “마이크로 파이낸스는 과연 사회취약층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는가?” 이 포럼 이 남긴 숙제다.

경제 | 이집트 최대통신사 ‘텔레콤 이집트’, ‘WE’ 설립 103 텔레콤이집트가 이집트 네 번째 모바일 회사 ‘WE’를 설립했다. 이집트 최대 통신사 텔레콤이집트는 자회사 설립을 기점 으로 사업 영역을 더욱 확대할 것으로 기대된다.

문학 | 마이순의 추억과 마이문의 귀환 105 지구촌이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지금, 하산 후메이다 박사는 어린 독자들과 부모들에 유럽, 그 중에서도 특히 독일이 ‘난민을 맞이하는 자세’를 문학으로 풀어낸다.

에디토리얼 | 베트남의 참족(族) 사람들 이야기 110 다년간 여러 차례 베트남을 다녀온 아시라프 달리 <매거진 N> 아랍판 편집장. 그가 현지 경험을 바탕으로 베트남 참족 공동체 이야기를 전한다.

<매거진 N> 아랍판은 ‘고대 문명의 부활’을 넘어 실크 로드 국가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조망하는 새 로운 창이 돼 독자 여러분과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아 시라프 아불 야지드 아시아 기자협회 회장 겸 <매거진 N> 아랍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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