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A G A Z I N E
w w w.t heasian . asia
December
2 0 17
Richard Hamilton & the “Classic” of “Pop Art”
리처드 해밀턴, ’의 트 아 ‘팝 ‘클래식’
리처드 해밀턴, ‘팝아트’의 ‘클래식’ 값 12,000원
N o . 5 3 December 2017
Richard Hamilton & the “Classic” of “Pop Art”
11 12
9 772288 328008 9 772288 328008 ISSN ISSN 2288-3282 2288-3282
C
December 2017
O
N
T
E
N
T
S
No.53
025 Special Report 25
ENG
“마약사범 인권보다 일반국민 생명이 훨씬 소중”_이상기
2
목차
6
제작진 소개
Unconditional support for Duterte’s War on Drugs by citizens ENG “두테르테 리더십은 솔선수범·검소함에서 나와”_이상기
30
Interview with Philippines’ beloved reporter, Ramon Tulfo 32 ‘매거진 N’ 이상기 발행인 칼럼 인니·베트남 유력지에 실려
Partnership 8
Asia’s window to the world, the world’s window on Asia
Letter from N 10
M A G A Z I N E
w w w.t heasian . asia
DECEMBER
2 0 17
Richard Hamilton & the “Classic” of “Pop Art”
리처드 해밀턴, ’의 ‘팝아트 ‘클래식’
리처드 해밀턴, ‘팝아트’의 ‘클래식’ 값 12,000원
N o . 5 3 DECEMBER 2017
Richard Hamilton & the “Classic” of “Pop Art”
11 12
9 772288 328008 9 772288 328008 ISSN 2288-3282 ISSN 2288-3282
On the Cover 영국 대중문화를 이끌어가는 뮤지션에 가혹한 잣 대를 들이미는 사회를 비판한 리처드 해밀턴의 연 작 ‘Swingeing London’. 리처드 해밀턴이 남긴 ‘팝 아트’의 ‘클래식’들은 이 세상 팝아트 아티스트들의 자양분이 됐다. <매거진 N>은 리처드 해밀턴의 생애 와 그가 남긴 유산을 살펴본다. Through his series on “Swingeing London”, Richard Hamilton refers to the strict standard British society imposed on many of its musicians. Through this issue, Magazine N explores the life and legacy of Hamilton who combines the “classic” with “Pop Art” in expressing the popular culture of his time. He is thus considered the father of Pop Art and has influenced countless artists after him.
ENG
새로워진 ‘매거진 N’이 독자님 곁을 찾아갑니다
Photo Break 12
안나푸르나 대자연을 당신품에_펨바 셰르파
Asia Round-up 16
ENG
인도-파키스탄, 미세먼지로 뒤덮였지만 양국 공조는 요원
C
December 2017
O
N
T
E
N
T
S
No.53
050
044
058
South East Asia
Features
36
50
ENG
Penang floods:
ENG
Richard Hamilton: Serial Obsessions_Alessandra Bonanomi
리처드 해밀턴의 아시아 최초 전시회 ‘연속적 강박’
Human mistakes or nature’s fault?_Norila Daud 말레이시아 페낭 연이은 홍수, 인재인가 자연재해인가?
Middle East 38
ENG
The Diplomat’s Wife who stole
Views 56 시선이 바뀌면 시각도, 세상도 바뀐다_이원섭 58 대인관계 잘 안될 때, 당신은 어떤 방법을 택할 것인가?_김희봉
Middle Eastern Treasures_Ashraf Aboul-Yazid(Dali) ‘중동 유물’ 불법으로 도굴한 간 큰 외교관 부인 적발
Perspectives 60 [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People 40
ENG
The meaning of artist Yoon Mi-seon’s
distorted faces_Alessandra Bonanomi
윤미선 작가 화폭에 담긴 ‘일그러진 얼굴들’의 의미
요녕성 음식점 주인의 ‘2만 그릇의 감동’ 62 [박영순의 커피인문학] 7대 커피 생산국 인도에서 싹트는 ‘커피 르네상스’ 68 [박명윤의 웰빙 100세] 돈과 명예보다 중요한 ‘삶의 보람’
Special Topic 44 ENG Relaxing Sensory Media for the Overstressed Millennial “엄마, 나 슬라임 팔아 집 샀어”…‘슬라임’ ‘ASMR’이 뭐죠?_서의미
Books 72
ENG Pride and Prejudice_Alessandra Bonanomi 진부한 숙녀 엘리자베스와 오만한 신사 다아시 ‘오만과 편견’
C
December 2017
O
N
T
E
N
T
S
No.53 대표이사·발행인 이상기 편집인 Ashraf Aboul-Yazid 총괄고문 구명수 편집위원장 이오봉 부편집장 이주형 취재·편집 박호경 서의미 Alessandra Bonanomi Amiira Ismail 디자인 김보배 현지특파원 Alpago Sinasi(터키) Bishnu Gautam(네팔) Ivan Lim Chin(싱가포르) Kuban Abdymen(키르기스스탄) Nasir Aijaz(파키스탄) Pramod Mathur(인도) Shafiqul Basher(방글라데시) Uyanga Amarmend(몽골) 부사장 류진 사업이사 차재준 경영기획실장 정현 광고기획 유경수 제작·인쇄 ㈜타라티피에스 홈페이지 www.theasian.asia 기사제보 02-712-4111, news@theasian.asia 창간 2013.06.25. 등록 2013.05.02. 등록번호 종로 라00407 발행 ㈜아자미디어앤컬처 주소 서울시 종로구 혜화로 35 화수회관 207호(우 110-521) <매거진 N>은 한국간행물위원회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074 Introduction of Arabic Section 74 ‘아부다비 루브르’의 화려한 개막
글로벌 제휴사
정기구독 및 광고문의
(O) 02-712-4111 (F) 02-718-1114
정기구독(일시납 입금·신용카드 결제) 구분 구독료
1년
2년
3년
144,000원
288,000원
432,000원
※ 10년 정기구독(1,440,000원) 시 평생독자로 모십니다 정기구독 입금계좌 하나은행 274-910006-67504 / 국민은행 031601-04-171721 농협 355-0022-8500-13 예금주 (주)아자미디어앤컬처 신용카드 결제 http://kor.theasian.asia/에 접속하여 메뉴바 오른쪽에 위치한 “구독신청”을 클릭하여 진행 정기구독(CMS 자동이체 약정) 매월 12,000원 출금. 위 연락처로 전화 혹은 http:// kor.theasian.asia/에 접속 후 메뉴바 오른쪽에 위치한 “구독신청”을 클릭하여 진행
008
Partnership
magazine N | 201712
Asia’s Window to the World, the World’s Window on Asia 50개국 AJA 전문필진이 만드는 ‘매거진 N’
<매거진 N>은 아시아기자협회(AJA)와 ‘아시아엔(The AsiaN)’의 인적 네트워크를 기 반으로 국제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한 고급정보와 심층해설을 전달합니다.
The Asia Journalist Association is… 2004년 11월 공정보도, 언론자유 수호, 저널리즘 발전 등을 목표로 한국, 중국, 일 본, 몽골 등 동아시아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필리핀 등 아세 안(ASEAN) 기자들이 중심이 되어 발족했습니다. 이후 인도, 파키스탄 등 남아시아 와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기자들이 참여해 현재 52개국, 300여 명의 회 원이 “한 줄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피와 땀을 아끼지 않는다”는 모토 아래 활동하 고 있습니다. 아시아기자협회는 종교·인종·민족·국가·이념을 초월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 환경보전 등 인류보편 가치 실현을 공통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아시아기자협회 로고 2017 아시아기자협회 총회
The AsiaN (www.theasian.asia) is… 2011년 11월11일 아시아기자협회가 창간한 인터넷 매체로 아시아기자협회 소속 베테랑 언론인, 전문가들이 정확한 뉴스와 깊이 있는 논평을 영어, 한 글, 아랍어 등 3개 언어로 제공합니다. ‘The AsiaN’의 N은 ‘미래비전(Next)’, ‘균형잡힌 뉴스(News)’, ‘소통 한마당(Network)’을 의미합니다.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이 지역 최초의 온라인 매체로서 AsiaN의 출범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아시아가 세계 경제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오늘날 매우 뜻 깊은 The AsiaN 영문판·아랍어판 메인화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반기문 UN 사무총장
009
magazine N | 201712
History
AJA in Brief
2004.11. 아시아기자협회 창립 2010.07. AJA, 문화체육관광부 사단법인 인가 2011.06. AJA, 기획재정부 지정기부금단체 선정 2011.07. (주)아자미디어앤컬처 설립 2011.11. 11월11일 아시아엔(The AsiaN) 한글·영문판 창간 2012.02. 중국 온바오닷컴, Global Asia, THE KOREA TIMES 기사제휴 2012.03. 뉴시스, 연합뉴스, 터키 CIHAN 통신사 기사제휴 2012.11. 아시아엔(The AsiaN) 아랍어판 창간 2012.11. 네이버(NHN), 줌(ZUM) 뉴스검색 제휴, 모로코작가협회 제휴 2012.12. 다음(Daum) 뉴스검색 제휴, Al-Arabi Magazine 제휴 2013.02. 수아드 알 사바 시집 ‘쿠웨이트 여자’ 번역 출간 2013.03. 이집트 Al-Hilal Magazine 제휴 2013.06. 6월25일 ‘매거진 N’ 창간 2013.09. AJA ‘아시아 문화언론인포럼’ 광주서 개최 2014.03. AJA, 쿠웨이트 황금보트상 수상 2014.04. 아시아엔(The AsiaN) 편집위원회 발족 2015.01. 최초 해외인턴기자 라훌 아이자즈(Rahul Aijaz, 파키스탄) 연수 시작 2015.06. 6월25일 ‘매거진 N’ 창간 2주년 2015.07. 이집트 출신 라드와 아시라프(Radwa Ashraf) 연수 합류 2015.10. 네팔지진 후원 사진전, 조진수 작가 공동주관 2015.11. 아시아엔(The AsiaN) 창간 4주년 2016.04. 2016 아시아기자협회 총회, ‘아자 어워드 2016’ 개최 2016.05. 조코 위도도(Joko Widodo) 인니 대통령, 아자어워드 수상 2016.09. 몽골에서 ‘한몽미래포럼’ 개최 2016.10. 아시아엔 네이버스탠드 제휴 2017.04. 2017 아시아기자협회 총회 2017.08. 제인 구달 박사-최재천 교수 초청, ‘AJA 에코 토크’ 개최 2017.08. ‘2017 AJA Global Leaders Forum Indonesia’ 개최
회원
52개국 357여명
사무국 서울 지부
몽골, 네팔, 방글라데시, 터키, 중동 등
이사장
창립회장 이상기 한국 한국기자협회 전 회장 한겨레신문 전 기자
김학준 한국 인천대학교 이사장
회장
명예회장 Ashraf Aboul-Yazid 이집트 The AsiaN 아랍어판 편집장
회장대리
Ivan Lim 싱가포르 The Straits Times 전 기자
부회장 Eddy Suprapto 인도네시아 RCTI TV 본부장
Chuluuunbaatar Dolgor 몽골 UBS 설립자
Norila Mohd Daud 말레이시아 malaysiaworldnews 편집장
Bishnu Nisthuri 네팔 네팔기자연맹(FNJ) 전 회장
Pooneh Nedai 이란 Shokran 발행인
강석재 한국 세계태권도연맹 사무차장
부회장
Messages from AJA
Magazine N breaks new ground for rising Asia
‘아시아 시대’에 발맞춘 매거진 N
The inaugural issue of Magazine N is a commendable first effort by our columnists, reporters and correspondents to give readers insights on Asia from an insider’s perspective. They write with inherent knowledge and understanding of their own home turf matched by native feelings and regional sentiments. The pages appear in a refreshing and reader friendly format made attractive by photographs and other graphic illustrations. Style-wise, our writers have delivered content that is serious and substantive. However, they have not forgotten to give them a human touch as shown in the way stories are woven around political, business and sports personalities of the day. Our editors have also thrown in a good mix of topics and lively spread of photographs to suit a variety of interests and preferences among readers. They have also been imaginative and creative in projecting Magazine N as a ‘new frontier’ publication that will, as we go along, break new ground in our coverage of a rising Asia and the consequential re-shaping of the regional, political and economic architecture. That is the professional thinking and aspiration driving our efforts in Magazine N, as it is with our online - Ivan Lim Former President of the Asia Journalist news portal The AsiaN.
아시아기자협회 회원이 주축이 되어 <아시아엔>을 창간한 지 4년 남짓, 이들이 이제 월간 <매거진 N>을 이 땅에 선보였습니다. 굳이 내로라하는 석학들의 예측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라는 말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불과 수 십 년 전까지 전쟁과 기아에 신음하던 아시아가 ‘세계의 공장’, ‘문화의 중심’으로 발돋움한 바로 이때, <매거진 N>이 전달할 질 높고 다양한 정보는 독자들의 안목을 높여줄 것을 확신합니다. - 김학준 (사)아시아기자협회 이사장, 한동대 석좌교수
010
Letter from N
magazine N | 201712
새로워진 ‘매거진 N’이 독자님 곁을 찾아갑니다
안녕하세요, <매거진 N>의 부편집장 이주형 입니다. 지난번 편지에서 독자님들께 레이아웃을 비롯한 전반적인 개편에 대해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지난달 만 해도 개편 시기에 대해 정확히 고지해드리지 못했으나, 이제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새로워진 <매거진 N>이 2018년 1월 독자님 곁을 찾아갑니다. 개편 시기에 대해 내부적으로는 2018년 1월 통권 제54호를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콘텐 츠를 다룰 것이며, 어떤 틀에서 이를 소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길어져 시기를 맞출 수 있을까 우려도 됐 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원래 계획대로 진행할 수 있게 돼 독자님들께 기쁜 소식 전합니다. 앞으로 <매거진 N>은 새로운 틀 위에서 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소개하는 콘텐츠들과 그 동안 소홀했던 문화 콘텐츠들을 주로 다룰 계획입니다. 각각의 새로운 콘텐츠들에 대해선 다음 편지를 통 해 상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새로워질 <매거진 N>을 기대해 주세요.
Greetings to all, I am Lee Joo-hyeong, Deputy Editor for Magazine N. In our previous issue, we brought to you news of our plan to reinvigorate Magazine N through fresh new content and design. Now, it is my pleasure to formally announce to all our readers that the new Magazine N will finally be published as our 2018 January issue. At first, we were hesitant about sending to you a completely new magazine as our 54th issue of January 2018. Due to time and concern over which content to provide, we were not certain if deadlines could be met, but it is a relief that we have been able to come together at last: January 2018 has become a certainty. From now on, Magazine N will bring to you more pressing matters within the Asian continent and diverse cultural/social content that we had not been able to provide in past issues. We will give more information regarding each new section and the overall layout in the near future. We sincerely ask that you continue to look forward to our brand-new Magazine N. P.S. Sincere congratulations on another year of hard-work and perseverance. May 2018 be ever happier and successful than 2017. Sincerely, Lee Joo-hyeong, Deputy Editor of Magazine N.
012
Photo Break
안나푸르나 대자연을 당신품에
magazine N | 201712
magazine N | 201712
013
014
무더운 여름 한국에서 머물다 귀국한 지 1달 만에 나는 또다시 안나푸르나에 올랐다. 어려서부터 20여년 가까이 히말라야 산 맥 이곳저곳을 오르내리던 나의 삶은 산을 떠나서는 결코 생각 할 수 없다. 10년 전, 한국의 사진작가로 25년째 매년 네팔 오지를 탐험 하고 다니는 조진수 대표님을 만난 이후 내 삶은 훨씬 풍요로워 졌다. 산을 오르내리는 것만이 아니라 사진을 배웠고, 또 주로 한국에서 온 산악인들을 상대로 가이드를 하며 네팔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일이 잦아졌다. 특히 재작년부터는 <아시아엔>과 인연을 맺어 네팔의 생생 한 장면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게 됐다. 2015년 5월 발생한 네 팔지진 현장을 사진에 담아 전달하게 돼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 다. 특히 이 일로 조진수 작가님을 비롯해 김포시민들이 정성 을 모아 지진복구 성금을 모아주셨던 일은 평생을 두고 갚아나 갈 계획이다. 지난 9월 초, 3개월 간의 한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나는 한달 간 카투만두에서 머문 뒤 10월 중순 안나푸르나로 향했다. 한국의 블랙야크에서 27명이 트래킹을 온 까닭이다. 7박8일간 블랙야크와 함께 하며 틈틈이 사진을 찍었다. 이곳의 절경을 독자들께 소개하고 싶다. 아마 지금쯤 한국 도 한 겨울과 마주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진들 을 통해 청결무구한 네팔의 하늘과 공기와 바람이 전해지길 간 절히 소망한다. 글·사진 펨바 셰르파 <아시아엔> 네팔 통신원
magazine N | 201712
magazine N | 201712
015
Asia Round-up
016
magazine N | 201712
인도-파키스탄, 미세먼지로 뒤덮였지만 양국 공조는 요원 남아시아의 두 대국이자 앙숙 관계인 인도와 파키스탄 이 미세먼지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럼에도 양국은 미세먼지를 해결하기 위해 공조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11월 7일 인도중앙오염통제위원회는 현지 시각 이날 오 전 9시 뉴델리 서부 지역의 PM2.5(지름 2.5㎛-100만 분의1m-이하인 초미세먼지) 농도가 894㎍/㎥를 기록 했고 밝혔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 PM2.5 일평균 오염기준치 25㎍/㎥의 35배가 넘는 수치다. 뉴델리는 겨울로 접어드는 매년 11월 초부터 극심한 대 기오염에 시달린다. 전문가들은 “주변 농가에서 이듬 AP
해 농사를 위해 추수가 끝난 논밭을 태우면서 많은 재 가 발생한다. 디왈리 등 축제와 결혼 시즌을 맞아 곳곳 에서 터뜨린 폭죽으로 먼지가 많이 발생하지만,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아 오염물질이 계속 대기 중에 머물고 있는 것도 미세 먼지가 심해지는 이유”라고 말한다. 아르빈드 케지리왈 델리 주 총리도 “해마다 이 시기에 델리는 거의 한 달 동안 가스실이 된다. 우리 모두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그러나 11월 8일 뉴델리의 미세먼지가 WHO 기준치의 최대 40배에 육박하자, 주 정부는 결국 11월 12일까지 시내 6천여 개 초·중·고교를 휴교하기로 결정했다. 인도의 수도 뉴델리가 1주일 이상 극심한 스모그와 초미세먼지로 신음한 가운데, 이웃나라 파키스탄도 인도 접경 지역 등 에서 심각한 대기오염을 겪었다. 11월 14일 파키스탄 현지 언론들은 1천100만 명이 살고 있는 파키스탄 2대 도시이자 인도 국경과 인접한 동부 펀자브 주 라호르에서 일평균 기준치의 16배에서 33배에 이르는 초미세먼지가 측정됐다고 보도했다. 또한 파키스탄에선 약 20일간 스모그가 유발한 교통사고로 40여 명이 숨지고 150여 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파키스탄도 인도와 마찬가지로 해마다 이맘때 펀자브 평야 지대의 다음 해 농사를 위해 한꺼번에 논밭을 태우면서 미세먼 지가 심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펀자브 주 관계자는 “파키스탄과 인도 양국의 농민들이 논밭 태우기를 자제하며 대기오염 이라는 공동의 적을 막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카슈미르 영유권 분쟁과 핵무기 경쟁 등으로 앙숙인 두 나라의 협력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Pakistan and India scrambling over toxic smog India and Pakistan—two stronghold countries of South Asia—are both experiencing a dangerous surge in levels of toxic smog and airborne pollutants. And while the issue is raising international alarm that the two countries must cooperate to lower smog levels, neither side has shown a definitive stance in participating with their neighbor, probably because of recent tensions of nuclear warfare and the Kashmir dispute. Fine pollutants that are smaller than PM2.5 (micrometers) are the most hazardous to health because they are small enough to cross the body’s natural barriers and enter the bloodstream. On November 7, India’s Central Pollution Control Board (CPCB) announced that levels of PM2.5 in New Delhi reached 894 micrographs per cubic meter—a value 35 times higher than the World’s Health Organization’s standard for average pollution level. Pakistan, likewise, has seen PM2.5 levels ranging from 16 to 33 times higher than WHO safety limits in areas such as Lahore of eastern Punjab which lies close to the state boundary between India and Pakistan. A large part of the problem has been attributed to crop burning found in both neighboring countries. Farmers using a short window of time to prepare for the next crop have resorted burning crop residue.
017
magazine N | 201712
사우디 개혁 이끄는 젊은 왕세자 “내부의 불만을 외부의 적으로”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차기 국왕으로 알려진 모하마드 빈살만 왕세자(32)가 여성 운전을 허용하고 외자유치 계획을 발표하는 등 개혁을 추진하는 가운데, 왕세자 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대규모 숙청을 진행하고 있 다. 이에 더해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 포비아ʼ(이란에 대한 공포증)를 환기시켜 내부의 단결을 꾀하고 있다. 사우디 왕정은 그동안 석유에서 얻은 막대한 재력을 왕가와 유력 가문에 적절히 분배하며 안정을 유지해 왔으나, 엄격한 엄격한 수니 이슬람 원리주의(와하비 즘)를 따르기에 매우 폐쇄적인 사회였다. 모하마드 빈 AP
살만 왕세자는 경직된 경제·사회 구조를 바꾸기로 결 심했고, 그는 세계가 주목할 만한 획기적인 개혁안을 추진해 왔다. 이와 동시에 왕세자는 군과 국영회사를 장악, 왕실 안에서 기득권을 누린 왕자와 유력 가문을 숙청하며 반대 파를 진압하고 있다. 현재 모하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드라이브ʼ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집단은 종교계 정도라는 게 전문가들 의 분석이다. 하지만 왕세자 입장에서도 종교는 쉽게 건드리기 어렵다. 종교계는 사우디아라비아를 건국하고 지탱한 축이 며, 왕가나 기업인처럼 부패 혐의로 처벌하기도 어렵다. 이 지점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는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이란이라는 외부의 적을 부각시키며 내부의 불만이 국외로 뻗어나가길 바라는 것이다. 이란을 ‘악’으로 규정하면 전통적으로 친사우디아라비아 진영인 아랍 수 니파를 규합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때문에 양국의 긴장은 적어도 빈살만 왕세자가 왕위에 올라 내부의 반대파를 압도 하며 왕권이 안정됐다고 확신할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흘러 나오고 있다. 앞서 사우디아라비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대이란 독트린’을 선언하며 대이란 공세에 적극적으로 나서 양국의 긴장이 더욱 고조된 바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제2의 중동전쟁’으로 이어질 물리적인 충돌은 벌어질 가능성이 낮 다고 말한다. 대신 레바논, 이라크, 바레인, 예멘 등에서 양국의 외교 대리전이 상당히 장기간 지속할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 력을 얻고 있다.
Saudi Prince shifting internal discontent to external issues Going against strict Islamic fundamentalism (Wahhabism) in Saudi Arabia, Crown Prince Mohammed bin Salman (32) has enforced a series of reform in the nation towards liberalization such as permitting women to drive and policymaking driven to attract foreign investment capital. However, the Prince’s crackdown on traditional conservatism has also been followed with purging of opponents to the central power (including members of the royal family) all in the name of fighting corruption within Saudi’s internal system. At the same time, bin Salman has also fiercely denounced longtime rival, Iran, for its expansionist tendencies, spreading large-scale ‘Iran-phobia’ in the country. Some posit that the Prince’s constant focus on making Iran to be the enemy has been a way to consolidate his own power; almost as a way of shifting internal discontent to external problems. Both Saudi Arabia and Iran have been embroiled in proxy wars in the past, but all ties were severed in January 2016. At the time, Iran had almost finalized a nuclear deal with the U.S. under the Obama administration, but this was soon overturned with the election of Trump who has consistently supported the Saudi position.
Asia Round-up
018
magazine N | 201712
When the emperor of China meets the emperor of America Previously in November, Donald Trump made his first official visit to China to meet with Xi Jin Ping just after he won his second consecutive term as the national leader. The visit was covered extensively by domestic and international media in consideration of the fact that the World’s two superpowers had come face to face. In an unprecedented act of hospitality since the 1949 establishment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Xi invited Trump to the Forbidden City and Xinhua
entertained the American President with “an attitude of sincerity and willingness to improve bilateral relations” according to Hangzhou Times (sister paper to People’s Daily). Just the fact that President Trump, upon arriving at Haidu Airport, was greeted by China’s State Councilor Jang Jiechi (previously Director of the Foreign Affairs Leading Group Office) created a different ambience from diplomatic exchanges between the two countries in the past. When former U.S. President Obama made his state visit, he was greeted by Minister of Foreign Affairs, Wang Yi. Soon after Trump’s arrival, he was driven to the Forbidden City where Xi and his wife personally hosted the U.S. President and First Lady in a lavish event of shows and activities at various compartments of the royal palace. Experts say that China’s decadent display of hospitality and Xi’s way of showing the rich cultural heritage of China’s Imperial dynasty was the country’s way of, once again, positing “The Republic of China’s Great Revival” in its confidence as a G2 nation.
‘중국의 황제’가 ‘미국의 황제’를 만났을 때… 지난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났다.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두 사람의 만 남답게 회담 일거수일투족은 세계 유수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시진핑 주석도 트럼프 대통령을 장대하게 예우하며 손님을 맞이했다. 중국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11월 9일 사평에서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을 고궁(자금성)에 초청해 대접 한 것은 1949년 신중국 성립 이래 매우 보기 드문 사례” 라고 전했다. 이 신문은 또한 “중국의 환대는 미국에 대한 가장 진 실하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굴기(堀起) 중인 중국의 국제관을 투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을 태운 에어포스원이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하자 정치국원으로 승진한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영 접한 것부터가 이전과 사뭇 달랐다.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이 2014년 중국을 국빈방문 했을 당시 영접자는 왕이 외교부장이 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항 주차장에서 차량을 타고 곧바로 자금성으로 이동했다. 시 주석 부부가 고궁 보온루에서 트럼 프 대통령 내외를 직접 맞은 것도 파격이었다. 황제가 거닐던 길을 함께 걸은 두 정상 내외는 황제를 위한 공연장이었던 창 음각에서 세편의 경극을 함께 관람했고, 공연 후 건복궁으로 이동해 만찬을 가졌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극진한 예우에 대해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 중국 역사의 황금기를 소개하고 옛 황실의 분위기를 전한 것은 자신의 집권 비전인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강조하며 미국과 어깨를 견주는 강대국으로서의 자신감을 표출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019
magazine N | 201712
China foreign e-commerce to top 100 billion by 2018 As of July 2017, China’s population is almost 1.4 billion persons. And as the most populated country on earth, China’s e-commerce market is also that of another level. According to Hong Kong’s South China Morning Post on November 16, “China’s growing middle class and its love for foreign brands is creating an unprecedented boom in foreign e-commerce sales”. Market research company eMarketer in their new report predicted China’s cross-border eXinhua
commerce sales to reach $100.17 billion USD with a 27.6% percent increase by the end of 2017. Shelleen Shum, senior forecasting analyst for eMarketer said, “The average Chinese consumer is now more exposed to foreign brands through overseas travel and the internet and are more willing to spend.” Based on these numbers, the average cross-border online buyer spent $882 USD per purchase. Other surveys have shown that a fifth of digital buyers in China will make at least one cross-border purchase through online shopping sites and around 15.4% of internet users in China has made an online purchase. Considering China has some 751 million internet users, it has become the world’s largest e-commerce market. Quick action by China’s digital shopping malls to meet middle class demands has hyped up the momentum for foreign e-commerce sales. The country’s largest online shopping sites such as Alibaba and JD.com are the main drivers in such cross-border sales making over $50 trillion in revenue for this year’s November 11 Singles Day shopping festival.
스케일 다른 ‘대륙의 직구’…광군제 열풍에 올해 110조 넘어설 듯 2017년 7월 기준 14억에 조금 못 미치는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중국.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국가답게 해외 직접구매(직구)의 규모도 남다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1월 16일 “2017년 중국의 해외 직구 규모가 중산층 소비자의 성장과 수요 급증에 힘입어 신기록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보도했다. 시장조사업체인 이마케터도 “2017년 중국 본토의 해외 직구액은 전 년 대비 27.6% 늘어난 1천2억 달러(약 110조4천억원)를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마케터의 애널리스트 셸린 슘은 이와 관 련 “중국 소비자들이 해외여행과 인터넷을 통해 보다 많은 해외브랜드를 접하게 됐다. 이들의 수요가 직구 증가로 이어졌 다”고 설명했다. 이 수치에 따르면 중국 구매자 1명이 지난 1년간 온라인을 통해 평균 882달러(약 97만원)의 해외제품을 구매한 셈이다. 앞서 한 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인터넷 사용자 중 15.4%가 한 번 이상 온라인 직구로 제품을 사 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 기준, 중국의 인터넷 사용자가 7억5천100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중국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온라인 시장이다. 해외상품에 대한 중국 중산층의 수요가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이 수요를 잡기 위해 중국 온라인 쇼핑몰들이 발 빠르게 움 직였던 것도 해외 직구를 크게 늘린 원인으로 지목된다.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알리바바와 2위 업체 징둥닷컴은 중국 최대 쇼핑축제인 광군제(光棍節)를 맞아 다양한 프로모션을 진행, 50조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특히 알리바바는 광군 제 행사에서 총 6만 개의 해외브랜드와 제품을 소개하며 해외 직구 열풍을 이끌었다.
020
magazine N | 201712
Hopeless defeat for Koike’s Party of Hope For a couple of months, Tokyo Governor Yuriko Koike seemed like the potential candidate who would outperform incumbent (and scandal-ridden) Shinzo Abe in the upcoming snap elections. She had announced to challenge Abe’s Liberal Democratic Party (LDP) with her newly formed Party of Hope but without a formal decision of letting go of her duties as Governor of Tokyo to participate in the elections or of allowing another decisive substitute to run in her stead, “hope” for the Party of Hope AP
literally evaporated into thin air. On November 14th, local reports announced that Koike had relinquished her title as leader of the Party of Hope, announcing Yuichiro Tamaki as the new party leader. “Stepping down as the head, I want to support you in an appropriate capacity,” Koike said, alluding that she would focus on her duties as Governor. This comes after the Party of Hope’s October 22 defeat in the general elections; the party had fielded 235 candidates but only won 49 seats while Abe’s faction maintained a two-thirds supermajority. After founding the Party of Hope in September, Koike had agreed with Democratic Party Leader Seiji Maehara to combine efforts to gain a physical standing in the 10.22 elections. Unfortunately, when neither the democratic leader nor Koike herself could show up in person to represent their party, the result was insufficient votes. In just the past month, support for the Party of Hope decreased from 9.5% to 3.9% according to opinion polls conducted by Sankei Shimbun.
고이케 도쿄지사, 두달만에 물거품 된 정권교체의 꿈 지난 여름 일본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스캔들로 주춤하는 사이 고이케 유리코 도쿄지사가 대항마로 떠올랐다. 그러나 정권 교체의 꿈을 꿨던 고이케는 총선패배로 자신이 만든 희망의당 대표직까지 사임하고 말았다. 11월 14일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고이케 대표는 이날 중참의원 총회에서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 후방에서 여러분을 지원 할 것이다. 공동대표로 선출된 다마키 유이치로 의원에게 뒤를 맡기겠다”고 밝혔다. 그는 총회 후 “다마키 공동대표 주관의 새 지도부가 구성되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창업자의 책임을 끝냈다”며 도쿄도지사 역할에 집중하겠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 해졌다. 이에 따라 지난 9월 하순 희망의당 창당과 함께 10·22 총선에서 정권 창출을 노렸던 고이케 지사의 ‘희망’은 채 두 달도 못 돼 물거품으로 막을 내렸다. 형식상으로는 도쿄도정을 위해 대표직에서 사임하겠다고 밝혔지만, 고이케 지사는 10·22 총 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고이케 대표는 지난 9월 희망의당을 창당한 뒤 대표로 취임해 마에하라 세이지 전 민진당 대표와 10·22 총선 공동 대응에 합의하면서 태풍의 눈이 됐다. 창당했을 당시만 해도 일본에서 고이케 열풍은 거세게 불었다. 그러나 이후 민진당 대표나 총리 출신 의원을 신당의 공천 대상에서 배제하겠다고 밝히면서 지지층이 급속도로 이탈했고, 10·22 총선에서 아베 신조 총리의 자민당과 연립 공명당에 대패했다. 선거 참패 이후 한달 사이 정당 지지율도 급락해 11월 13일 발표된 산케이신문의 여론조사에서는 3.9%까지 내려갔다. 때문에 희망의당 안팎에서는 고이케 대표의 책임론과 함께 그녀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었다.
021
magazine N | 201712
Shift in ASEAN attitudes over South China Sea Claims over the South China Sea has always been a major issue at the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 (ASEAN) summits. It poses an old challenge over the disputed waterways, which is significant as chairmanship of the ASEAN has now been handed over to Singapore—to Prime Minister Lee Hsien Loong—from the Philippines. On Tuesday, November 14, Lee accepted Singapore’s new position as chair and announced to focus on ‘resilience and innovation’ in its year-long Xinhua
term. Lee also told media that talks to “work on the Code of Conduct (COC) of parties involved with the South China Sea would begin early next year,” and that “by managing the South China Sea issue well, we can keep ASEAN-China relations on the current positive trajectory.” Recent divisions within ASEAN over the South China Sea have been attracting attention with previous chairs Laos and the Philippines showing a more benevolent and understanding stance towards China. The Philippines has consistently preferred the COC to be a non-legally binding arrangement between ASEAN states. Countries such as Vietnam and Malaysia, however, have been warier of China’s expansionist tendencies. Now, Singapore has stepped in as the counterpoint between opposing groups, but seeing as how Singapore has always been in support of U.S.-led stance on free marine routes, it is not likely that China’s stance on the South China Sea will be left without opposition.
‘친중’에서 ‘친미’로 의장국 넘어간 아세안, ‘남중국해’ 실마리 풀까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이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국가들의 해묵은 난제가 된 지 오래다. 지난 11월 싱가포르가 필리핀 으로부터 아세안 의장국 지위를 이어받으며, 이해관계국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1월13일 현지 언론은 “싱가포르가 마닐라에서 열리는 이번 아세안 정상회의 말미에 필리핀으로부터 아세안 의장국 지위를 인계 받는다”고 보도했다.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는 연설을 통해 향후 1년간 아세안을 어떻게 이끌고 갈지에 대한 구상을 밝 혔다. 리 총리는 특히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 “아세안과 중국은 ‘남중국해 행동준칙’(COC) 초안에 합의하는 등 상황을 진전 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공식 COC 협상 개시 등 아세안과 중국 간 실질적인 협력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긴장 을 줄이기 위해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신뢰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2년간 아세안은 라오스, 필리핀 등 ‘친중 성향’ 국가들이 의장국을 맡아오면서 최대 이슈인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둘러싸고 극심한 분열 양상을 보였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분쟁 당사국의 강경한 목소리를 의장국이 억누르면서 파행도 잦았다. 때문에 아세안은 공식 석상에서 중국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나, 친중 성향 국가들의 항의로 이를 철회하는 촌극을 빚은 적도 있다. 반면 2018년 의장국인 싱가포르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둘러싸고 중국의 대척점에 서는 듯한 모양새를 연출했다. 이를 의식한 듯 중국은 지난 9월 리 총리를 베이징으로 초청해 관계 개선을 시도한 적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 주창해온 ‘항행의 자유’를 지지하는 싱가포르가 아세안을 이끌면, 아세안 내부에서 들끓는 중국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억누르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022
magazine N | 201712
2017 Deadliest earthquake: 7.3 earthquake rocks Iran Last September, a devastating earthquake tore through Mexico with numerous casualties, but only two months later, another great earthquake shook Iran with more than 530 casualties in the deadliest earthquake of 2017. The United States Geological Survey (USGS) recorded a 7.3 magnitude earthquake on November 12, 9:18 (local Iran time). The 23.2 km-deep epicenter was found to have been near the Iran-Iraq border in Iran’s western province of Kermanshah (30 AP
km south of Iraq’s Halabjah district of Sulaymaniyah province). Iran’s Seismological Center later reported that 118 aftershocks followed until the morning of the 13th and 17 of the aftershocks ranged 4 to 5 in magnitude. As of November 14, Iran’s Islamic Republic News Agency (IRNA) reported 530 dead and 7,460 persons injured. Casualties surpassed the 370 that died in Mexico’s earthquake that was of 7.1 magnitude. The majority of deaths occurred in the largely Kurdish regions of Kermanshah and Ezgele districts. Supreme Leader of Iran Ayatollah Ali Khamenei ordered the military to immediately begin rescue operations and President Hassan Rouhani, placing Vice President of Iran Eshaq Jahangiri as Chairman of the Emergency Committee, likewise issued rescue and relief operations throughout affected regions. However, rescue efforts proved difficult with the affected areas being mountainous and all electricity and communication circuits cut off. The earthquake was a result of the collision of the Arabian and Eurasian plates—a mark of the unstable geological region for what it is. In 1990, a 7.7-magnitude earthquake caused 30,000 deaths, also in the geographically volatile area.
2017년 최악의 지진…이란 7.3 강진으로 530명 사망 지난 9월 멕시코에서 대지진이 나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그런데 불과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이란에서 대지진이 발생 해 530명이 숨지며 2017년 최악의 지진으로 기록됐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11월 12일 오후 9시 18분께 발생한 이번 지진의 진앙은 이라크 술라이마니야 주 할아브자에서 남남서 쪽으로 32㎞ 지점, 깊이 23.2㎞로 측정됐다”고 밝혔다. 이란 지진센터는 케르만샤 주에서 13일 오전 11시 30분까지 여진이 118차례 이어졌고 이 가운데 17차례는 규모 4∼5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란 국경 IRNA 통신은 11월 14일 오후 기 준으로 사상자가 사망자 530명, 부상자 7,460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이란에서 발생한 지진의 규모는 7.3로, 2017년 9월 멕시코 강진의 규모(7.1)와 사망자(370명)를 넘어섰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군을 동원해 구조 작업을 신속히 진행하라고 지시했으며, 하산 로하니 이란 대 통령도 에샤크 자한기리 수석 부통령을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지명하고 구조·구호 작업을 지휘하도록 했다. 이란 당 국은 구조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피해 지역이 산간인데다 전기와 통신도 끊겨 인명구조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유라시아판과 아라비아판이 만나는 이란은 국토의 대부분이 지진 위험 지역이다. 1990년 이란 북부 만질 시에서 규모 7.7의 강진으로 3만여명이 숨졌고, 2003년 남동부 역사도시 밤 시에서 규모 6.6 지진이 나 2만6천여명이 사망했다. 2012년에도 북서부 타브리즈 시 부근에서 규모 6.4의 지진으로 250여명이 사망한 적이 있다.
023
magazine N | 201712
PHOTO report
‘중동의 비욘세’ 하이판 웨흐베, 이집트에서 반바지 논란으로 사과 ‘중동의 비욘세’라 불리는 레바논 출신 의 하이파 웨흐베(41)가 10월 29일 이집 트 공연에서 반바지를 입었다가 논란이 벌어지자 사과했다. 공교롭게도 공연 열 흘 전 이집트의 남성 변호사가 방송에서 “허벅지의 절반을 노출한 여자를 희롱 하고 성폭행하는 것은 국가적 의무”라고 망언하며 이 사건은 더욱 주목 받았다.
Lebanese pop star Haifa Wehbe (41) who is often called “Beyonce of the Middle East” was harshly ridiculed by Egyptian viewers for wearing shorts at a performance in Cairo on October 29. This incident came just days after an Egyptian lawyer made the controversial statement calling for the rape of women who wear revealing clothes.
COMMENTS from Asia
오사마 빈 라덴 “우리 사회와는 다른 사회라는 것을 봤다. 서양은 도덕적으로 느슨한 사회였다.” 9·11 테러 주모 자인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일기가 미국 중앙정보부(CIA)를 통해 공개됐다. 10대 때 어느 여름 영국을 여행한 빈 라덴은 여행 동안 서양이 ‘타락한’(decadent) 곳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Osama bin Laden
“I saw that they were a society different from ours and that they were morally corrupt.” America’s CIA recently made public a diary of the former leader of Al Qaeda and mastermind behind the 9/11 terror attacks. In it he recalls a summer spent studying in the U.K. as a teenager, describing what he saw as a
“degenerate and immoral” society.
부디 와세소 “마약상들이 학교 주변 상인들을 통해 음식에 마약을 섞고 있다. 중독된 어린이들이 고교생이 되면 새 로운 고객이 되기 때문이다.” 부디 와세소 인도네시아 국립마약청장의 발언이다. 현지에선 이에 대해 황당하다는 반응이 다. 언제쯤 구매자가 될 지 모르는 어린이들을 상대로 수년씩 몰래 마약을 먹이는 ‘장기 투자자’는 없기 때문이다.
Budi Waseso “[Dealers] work with the traders in the school’s neighborhood by mixing narcotics with food...these children are poisoned by narcotics so when they get into high school they will be come a new market for narcotics,” said Budi Waseso, head of the National Narcotics Agency in the Philippines, despite an unconvinced public over the Duterte administration’s continued crackdown on drugs.
024
Special Report
magazine N | 201712
출범 50주년 ASEAN의 중심축 필리핀, 현지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두테르테 지난 11월, 아세안(ASEAN) 50주년 기념행사를 주관한 직전 의장국 필리핀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필리핀이 세간의 화제가 된 것은 비 단 아세안 때문만은 아니었다. 2016년 6월 취임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고, 경찰의 단속 과정에서 많은 인명이 희생돼 국내외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아왔다. 정녕 두테르테는 필리핀에 독이 되는 존재인가? 이상기 <매거진 N> 발행인은 필 리핀을 방문해 현지 시민, 변호사, 기업인, 언론인들과 만나 이들이 말하는 두테르테, 그리고 필리핀의 미래를 전한다. 아울러 <매거진 N>은 50주년을 맞은 아세안과 한국의 미래비전을 담은 이상기 발행인의 칼럼도 함께 게재한다. 편집자 Last November, international attention was directed at the Philippines as the nation hosted the ASEAN 50th anniversary celebration. But much of that attention was not about the ASEAN—it was directed at current President Roderigo Duterte who, upon being sworn into office June 2016, announced his “War on Drugs” to wipe out systematic drug dealing and abuse across the country. Much of the global society has condemned Duterte’s actions and the number of deaths that have resulted in the police interrogations of drug users. But is that all there is to the story? In this issue, Lee Sang-ki, Publisher of Magazine N, gives an account of the Philippines’ domestic perception of President Duterte through interviews with a local citizens, lawyer, businessman, and reporters. – Editor’s note
magazine N | 201712
Special Report
025
“마약사범 인권보다 일반국민 생명이 훨씬 소중”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전쟁’ 현지 취재
Summary
Citizens’ unconditional support for Duterte’s War on Drugs Philippines: the country that sent troops over to support the Korean war; the country that used to be second in wealth to Japan. In mid-1980s, the people continued in the long-fought race against President Marcos’ dictatorship, winning that race in June of 1987. And even though many Philippines have lived in other nations and have helped other partner nations socially and economically, it is also true that many do not really know the country as much as they think. Since the past summer, news regarding the Philippines was regularly brought up throughout international news. More specifically, news about President Roderigo Duterte’s War on Drugs was on the international agenda. Since being in office, Duterte (formerly Governor of Davao city) announced his will to fight the nation’s issue with institutionalized drug dealing and abuse. It has been said that the number of deaths from this war on drugs ranges from 3000 to almost 10,000 persons. The large difference in numbers is mainly due to the fact that more than the extrajudicial killings, more people have been killed from organized crime offenders and drug mafia groups. People have generally responded in two ways regarding Duterte’s drug war. Citizens of the Philippines are in absolute support of the Duterte regime whilst the international society and foreign media have covered the policies as being inhumane. Thus, the conclusion after meeting with domestic reporters in Manila and Philippine reporters residing in Korea is as follows: “The current War on Drugs is the path that President Duterte has chosen. His war is being unconditionally supported by the majority of his people who consider the lives of innocent citizens at risk of drug abuse much more significant than those who are already addicted to drugs and to those who are the drug dealers. The people of the Philippines are those who are the most eager to see an end to this war with a drug-free nation able to move forward.” Lee Sang-ki
한국전쟁 때 군인을 파견해 많은 희생을 하고 원조
적인 접촉이 잦은 나라임에도 서로 제대로 알지 못
도 아끼지 않았던 나라. 일본 다음으로 잘 살던 아
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시아 국가. 필리핀 얘기다. 1980년대 중반 마르코
2016년 여름 이후 필리핀 관련 뉴스가 한국언
스 대통령의 장기독재에 맞서 민중혁명을 성공시켜
론에 종종 등장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로드리고
1987년 한국의 6월항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을 전후해 그가 마약과의 전
필리핀. 수많은 교민이 이곳에 거주하며 사회·경제
쟁을 선포한 것과 관련해서다. 다바오 시장 출신인
이상기 기자 winwin0625@theasian.asia
026
Special Report
magazine N | 201712
두테르테 대통령은 선거공약으로 마약범 소탕과 마
간의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두테르테는 마
약범죄 척결을 제1과제로 제시했다.
약단속을 빌미로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키고 있다.”
그는 대통령 취임 후 경찰을 동원해 마약범에
마약범 소탕과 관련한 보도 관점은 한국언론도
대한 대대적인 단속과 검거에 나섰다. 마약범이 반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특히 지난 9월 경찰이 비무
항하거나 도주할 경우 총기 사용을 허용하면서 수
장 10대 소년을 마약용의자로 지목해 사살한 사건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때문에 필리핀 전역의
이 발생하면서 두테르테의 마약과의 전쟁 관련보도
교도소는 마약사범으로 수용범위를 초과하는 일이
는 비판 일변도로 변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비판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여론이 높아지자 지난 10월 경찰의 마약 단속을 중
직후인 작년 7월 1일부터 최근까지 필리핀 마약단속
단시키고 단속 권한을 마약단속청으로 넘기기도 했
청(PDEA)의 단속 과정에서 29명의 마약범죄 용의
다. 그러나 한달만인 11월 중순 두테르테는 “마약범
자가 죽은 반면, 경찰의 단속 과정에서는 3900명
죄를 뿌리뽑기 위해서 대통령직을 걸겠다”고 밝혔
이상이 사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 언제라도 경찰력을 동원하겠다는 의지를 표명
대체로 마약범 단속과정에서 숨진 사람은 적게
한 것이다.
는 3천명에서 많게는 1만명 이상이라고들 말한다.
두테르테의 마약과의 전쟁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처럼 숫자가 크게 차이나는 것은 두테르테 정부
그것은 국민들한테 과연 지지를 얻고 있나? 두테르
의 경찰에 의해 사망한 사람에 더해 마약조직에 의
테는 왜 마약과의 전쟁에 대통령직을 포함한 자신
해 살해된 사람의 숫자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의 모든 것을 거는 것인가?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반
기자는 이같은 궁금증을 풀기 위해 11월 17~20
응은 크게 엇갈린다. 필리핀 국민들은 절대적으로
일 필리핀 수도 마닐라를 찾았다. 앞선 11월 12일,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외신 특히 국내의 관련보
기자는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필리핀 사람들과
도는 부정적이거나 ‘양비론’에 가깝다. 왜 그럴까?
만났다. 대학로에선 매주 일요일 필리핀 장터가 열
기자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대선 출마 훨씬 이전인
려 주한 필리핀인 수백명이 오고 간다. 이사벨이라
2015년 4월께 다바오시장인 그가 2016년 필리핀 대
는 30대 초반 여성은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전쟁
선에 출마할 것이란 얘기를 들었다. 당시 필리핀 한
을 절대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교민의 전언이다.
“필리핀 국민들은 마약 때문에 늘 불안한 생활
“다바오 시장을 하는 두테르테란 사람이 대선
환경 속에서 살고 있어요. 때문에 경제발전도 더디
에 출마할 수도 있다. 그는 20년 이상 시장을 하면
죠. 한국에 와서 놀란 것은 여긴 마약 하는 사람이
서 다바오를 범죄 없는 도시로 만들어 지지를 받고
없는 것 같다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잘
있다. 특히 마약범에 대해서는 어떠한 관용도 베풀
사는 것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어요.”
지 않는다. 그에게 출마를 권유하는 사람은 필리핀
대학로에서 만난 2~3명의 필리핀 사람들도 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언론인이자 방송인인 라
사벨과 비슷한 얘기를 했다. ‘마약단속 과정에서 숨
몬 툴포다. 툴포는 당시 출마를 주저하는 두테르테
지는 사람들 소식을 필리핀 현지에선 어떻게 받아
에게 ‘당신이 나서지 않으면 필리핀은 영원히 범죄
들일까?’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갔다. 현장의
특히 마약범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설득
목소리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결론도 유보하
하고 있다.”
자는 생각과 함께.
두테르테는 작년 봄 대선에서 승리하며 대통령
17일 밤 11시(현지시각) 도착한 마닐라공항은 한
에 당선됐다. 그리고 곧바로 마약과의 전쟁에 돌입
국의 늦여름 날씨다. 운전기사는 “평소의 마닐라는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미
교통난이 극심한데 금요일 밤늦은 시각이라 안 막
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고조됐다. 여기에
혀 좋다”고 했다. 몇 마디 주고받다 곧바로 두테르
인권단체들도 가세했다.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인
테의 마약전쟁에 대해 물었다. 대학 졸업 후 결혼해
027
magazine N | 201712
AP
마닐라 경찰청에서 열린 여성들과 함께 휴대전화 사진을 찍고 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3남매를 두었다는 40대 중반의 그가 이렇게 답했
소년의 야간통행 금지 정책을 전국적으로 확대 실
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아이들 걱정 안하고 산다.
시하고 있다. 여전히 전국에 많이 남아있는 마약복
딸들이 밤에 외출하면 늘 불안했는데 마약전쟁 이
용자들에 의한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다. 7천개가
후 맘놓고 밤거리를 다닐 수 있게 됐다.”
넘는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에서는 대학에 다니는
“마약 단속한다면서 사람을 죽이는 건 잘못 아
자녀들 대부분이 부모와 멀리 떨어져 생활하고 있
니냐? 당신 가족이 그렇게 된다면 어떻겠냐?”고 묻
다. 마약범죄조직은 가난한 청소년들을 마약 전달
자 그는 무슨 한가한 질문 하느냐는 표정으로 말한
책 등 여러 범죄에 이용해왔다. 미성년자들은 검거
다. “마약 하는 사람들한테 피해를 당해보지 않으
돼도 처벌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면 모른다. 가족 중에 마약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기자가 마닐라 체류기간 중 만난 테드 콘탁토
가족들은 늘 불안에 떨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변호사와 기업인 안토니오 에두아르도도 두테르테
없다. 내 주변에도 마약 하다 죽은 사람이 있다. 이
의 마약과의 전쟁에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다음은
렇게 얘기하긴 좀 그렇지만 가족들이 그렇게 행복
이들 두 현지인과 교민 문종구씨 그리고 기자가 나
해 할 수 없더라.”
눈 얘기를 정리한 것이다.
이튿날 만난 교민 문종구씨는 청소년 특히 소녀
“외국사람들이 보는 것과 우리가 직접 겪는 것
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청소년 야간통행을 제한하
은 차이가 많다. 우리나라에선 자산가들이 값싼 마
고 있다고 했다. “두테르테 취임 후 지난 1년 5개월
약을 공급하고, 노동자들은 이것을 수시로 복용하
간 치안상황이 현저하게 좋아졌다. 두테르테가 시
면서 일을 한다. 하루 1달러만 있으면 사부라고 불
장 재직 시 다바오에서 시행했던 금연 정책, 술집 외
리는 화공 마약을 먹고 신나게 일을 하니 고용주 입
음주금지 정책, 그리고 보호자와 동행하지 않은 청
장에선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하지만 복용한 사람들
Special Report
028
magazine N | 201712
은 몇 년이 못 가 몸이 상하고 정신도 이상해진다.
가 한 연설에서도 다시 확인됐다. 흰 셔츠 차림으로
국제앰네스티와 같은 인권단체들은 이런 현실을 간
350여 외교관·학자·언론인 앞에 선 그는 “당신들
과하고 있다.”
이 얘기하는 문명화된 방법으로 (마약)문제를 해결
“사업하는 입장에서 보면 값싼 임금에 노동자
할 수 있다면 와라. 환영한다”고 했다. EU와 국제인
들을 고용할 수 있으니 당장은 좋다고 할 수도 있
권단체 등을 비판한 것이다. 원고 없는 10분간의 즉
다. 그러나 마약 중독에 빠진 사람들을 치료하는
흥연설이었다.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역대 정권은 이를 수수
기자는 다시금 궁금해졌다.
방관했다. 어떤 면에선 방조하면서 기득권층의 이익
“마약전쟁을 한다면서 총기로 사살을 하여 수
을 보장해준 측면도 있다. 두테르테는 이것을 바로
천명이 숨졌는데, 국민들이 가만 있는다는 게 말이
잡겠다고 나선 것이며 지금 시점에서 절반쯤 성공했
되느냐? 특히 당신들도 유족 입장이 돼보면 억울하
다고 보면 된다.”
고 분하지 않을까?”
“작년 카지노 수익금이 100억원 이상 났는데,
앞서 두명의 필리핀 취재원-이들은 이 나라 최
관계부처 장관이 이것을 마약중독자들 치료에 쓰
고의 지식과 부를 가진 상류층들이다-은 주저 없
자고 대통령한테 건의했다고 한다. 두테르테가 얼
이 답을 한다.
굴을 찌푸리면서 ‘올해까진 치료약을 주지만, 못 고
“마약범의 인권도 물론 중요하다. 또 그들의 생
치면 내년엔 (스스로 목 매라고) 밧줄을 주겠다고
명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하다. 그러면 그들
하시오’라면서 서명했다고 한다. 그만큼 두테르테
이 마약에 중독돼 저지른 범죄에 무고한 시민이 죽
가슴과 머리 속엔 마약퇴치에 대한 불굴의 의지로
는다면 그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또 그들에 의
꽉 차있다고 보면 된다.”
해 온 나라의 치안이 불안하고 가족들은 평생 뒤치
두테르테 대통령은 외교가에서 ‘동남아의 스트
다꺼리만 한다면 과연 그것은 옳은 일인가?”
롱맨’으로 불린다. 그의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의지
“내가 만난 마약범 가족들은 정부가 무슨 수를
는 지난 11월 열린 ASEAN 정상회의 때 두테르테
써서라도 마약 하는 식구를 격리해주길 바란다. 그 AP
마약과의 전쟁 단속 과정에서 적발된 마약 사범들
029
magazine N | 201712
들 중 일부는 마약을 하느니 사라져 주길 바란다고
기득권 유지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두테르테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는 마약 전쟁이 마무리되면 범죄와의 전쟁과 부패
기자가 이런 비유를 들어 그들의 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물었다.
척결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다. 이는 공약사항이 기도 하다. 그러니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
“마을에 미친개가 날뛰면 주민들을 보호하기
는 주요매체들이 끊임없이 흔들어대는 것은 당연한
위해 미친개를 잡아 가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 아닌가? 하지만 따갈로그어로 발행되는 일부 신
많은 사람들이 물려 광견병에 걸리거나 심지어 죽기
문들은 두테르테를 지지하기도 한다. 서민들은 영
까지 한다. 그런데 미친개를 가두려다 물리기도 한
자신문을 읽지 못하니까 이 또한 자연스런 일 아닐
다. 그래서 달려들어 물려고 하는 순간 몽둥이를
까 싶다.”
휘둘러 개가 죽는 경우가 있다.” 테드 변호사와 에두아르도 대표는 동시에 “아 주 좋은 비유다. 바로 그런 상황이다”라고 했다.
3박 4일간 필리핀 체류 동안 만난 10명 가까운 취재원은 한결같이 두테르테의 마약과의 전쟁에 박 수를 보냈다. 귀국 후 불쑥 겁이 났다. 혹시 편향되
기자한테 풀리지 않은 의문이 하나 더 있었다.
게 취재원을 만난 것은 아닐까? 마약범과 중독자
왜 필리핀 주요언론들은 두테르테의 마약전쟁에 비
그리고 가족을 만나지 못했으니 분명히 한계는 있
판적인가 하는 점이었다. 이에 대해선 3대 일간지
을 것이다.
로 상류층의 의견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인콰이
기자는 11월 26일 다시 대학로로 나섰다. 이번
어러>지에 칼럼을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라몬 툴포
엔 두테르테와 그의 마약전쟁을 노골적으로 비난하
(70)의 말에 답이 담겨있다.
면서 호응해줄 것을 은근히 기다렸다. 하지만 버르
“필리핀은 사업가·종교인 등 상류층 10%가 나
나(45), 제럴드(42) 등 40대 남녀와 20대 노동자 토
머지 90%를 지배하는 사회다. 이들 지배층은 대선
니의 목소리는 한결 같았다. “두테르테 정말 잘 하
전부터 취임 이후까지 집요하게 두테르테에 대해 비
고 있어요. 마약범죄는 우리나라에서 하루 빨리 없
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두테르테의 정책이 자신들의
어져야 해요.” AP
2016년 6월 30일 필리핀 마닐라 말라카낭궁에서 16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고 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Special Report
030
magazine N | 201712
“두테르테 리더십은 솔선수범·검소함에서 나와” 두테르테 대선 출마 적극 권유 라몬 툴포 기자
Summary
Interview with Philippines’ beloved reporter, Ramon Tulfo Ramon Tulfo (70) is one of the most well-known and respected journalists in the Philippines. He was the first of four children born to his independence-fighter father and Japanese mother. Tulfo currently works with renowned media outlet The Inquirer as a columnist and runs the regular radio channel ‘DWIZ 882 AM’. Inside Tulfo’s office, one will see photos of his work experience and a sign that says “Ask Ramon Tulfo!” Tulfo’s radio show acts as a way the poor and disadvantaged groups in the Philippines can directly communicate their hardships. In one day, as many as 30 to 40 petitions are registered, oftentimes, the problems are issues that are immensely difficult to solve. As Tulfo and his staff receive the issues, they listen to the best of their ability and then try to think of practical solutions. “DWIZ 882 AM” is a nationwide radio station open for an hour starting 9 in the morning—special correspondent to The Asian Alin Ferrer also runs the radio station with Tulfo. 80% of the complaints are said to be directly solved through the radio station itself, which is one of the main reasons why Tulfo decided to maintain the channel for over 20 years. There had been news that Tulfo had suggested current President Roderigo Duterte to run for office at the time of campaigns. Tulfo acknowledged this saying, “As President, Duterte is fighting every day to erase corruption and crimes related to the drug trade and abuse throughout the Philippines. He is the kind of man that when he decides on something, he will see to it the decision is followed through. Our President is a man of integrity. When he was Governor of Davao city, he lived in a house just like those that ordinary citizens lived in. He has always led a humble life and is one who is on the side of the common people. Duterte’s strength lies in his way of exemplifying his promises to the people.” Reporter Ramon Tulfo was born November 22nd, 1946, in Davao city. In his previous birthday celebration (held November 26th, 2016), guests such as former Presidents Gloria Macapagal Arroyo and Joseph Estrada, including other prominent government officials, celebrities, and media personnel were in attendance to congratulate Tulfo (more than 200 guests were present). It is said that Tulfo did not invite any of the country’s millionaires. Much of what Tulfo believes in and his values can be seen throughout his writing. Lee Sang-ki
이상기 기자 winwin0625@theasian.asia
라몬 툴포(70)는 필리핀 안팎의 필리핀 국민들에게
진행하고 있다. 툴포의 사무실엔 그의 사진과 함께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
‘몬 툴포에게 얘기하세요!’라고 적힌 배너가 서있다.
언론인이다. 독립투사 출신 부친과 일본계 모친 사
툴포 기자를 11월 20일 아침 만났다. 마닐라 중
이에서 4남1녀 가운데 장남으로 출생한 그는 필리
심가에 있는 술루호텔 식당에서 시작한 인터뷰는
핀 유력지인 <인콰이어러>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그가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는 필리핀공보센터 사
있으며 라디오 고정채널 ‘DWIZ 882 AM’도 운영 및
무실로 옮겨 이어졌다.
031
magazine N | 201712
당신의 방송은 20년 이상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을 위한 ‘신문고’ 역할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왜 이 일을 시작했나?
“두테르테는 만약 아들이 마약거래에 연루됐다 면 쏴 죽이겠다고 말할 정도다. 거기에 대해서는 이
“억울한 문제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미 결론이 나오지 않았나? 필리핀 주류언론들은 두
하루 30~40명이 아침부터 와서 기다린다. 언론이
테르테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두테르테 아들과
나 정부에 호소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갖고
사위 건도 이들이 뜬소문을 갖고 기사화하면서 시
온다. 이야기를 들으며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어떤
작됐다. <인콰이어러> 칼럼니스트인 나의 경우도 2
거는 라디오방송으로 소개한다. 전국방송인데 아침
주일 전에 칼럼을 넘겼는데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
9시부터 1시간 동안 나와 <아시아엔> 필리핀 특파
다. 그들은 철저히 기득권 편에 서있다.”
원인 알린이 함께 진행한다. 이들의 민원 80% 정도 가 우리 사무실을 통해 해결되곤 한다.” 주로 어떤 내용들인가?
툴포는 “혹시 아시아기자협회 창립멤버인 조 파 비아 기자를 아느냐”는 물음에 “물론! 그는 내 멘토
“어뷰즈! 갑질에 관한 게 가장 많다. 법률다툼
나 다름없다”고 했다. 그는 “1972~74년 필리핀통신
이 필요한 경우는 변호사를 선임해 주기도 한다.(이
사 기자 시절 함께 근무했다”며 “조 파비아는 계엄
사무실에는 변호사가 1명 상근하며 상담에 응해주
령 아래서도 검열을 거부하며 우리들에게 용기가
고 있다) 아주 드문 일이지만, 시골에 가는 차비를
뭔지 몸으로 가르쳐줬다”고 했다.
달라고 오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자선단체는 아니
툴포 기자는 1946년 11월 22일 다바오에서 태어
라 이런 사람들은 그냥 돌려보낸다.”
났다. 2016년 11월 26일 열린 그의 칠순 생일엔 두
여기 오기 전 서울의 대학로에서 만난 필리핀 사람들에게 당
테르테 대통령을 비롯해 아로요, 에스트라다 등 전
신 얘기를 하니 ‘툴포는 필리핀의 로빈훗’이라고 하더라.
직 대통령과 툴포와 뜻을 같이 하는 정치인, 연예
“로빈훗? 그는 남의 재산을 빼앗아 도와주지만
인, 언론인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그 자리에 필리
나는 남의 것을 훔치거나 강도질 해 돕는 게 아니니
핀 갑부들은 한 사람도 초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다른 것 아닌가?”(웃음)
의 단면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출마를 권유했다고 들었다. 사실인가?
“맞다. 대통령이 된 그는 필리핀을 마약과 각종 범죄, 부패로부터 구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그는 한번 마음 먹으면 꼭 해내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 의 공약을 실천해 반드시 필리핀을 선진국으로 이 끌 것이다. 두테르테는 무엇보다 청렴하다. 그는 다 바오시장 시절 서민들이 사는 집에 살았다. 그렇게 검소하고 국민들 편에 서는 대통령은 두테르테가 처음이다. 두테르테의 리더십은 바로 솔선수범하는 데서 나온다.” 그의 임기가 끝나면 필리핀이 진짜 살기 좋은 나라가 될까?
“물론이다. 아시아의 호랑이로 부상할 것이다. 1997년 동남아에 불어 닥친 외환위기 때 놓친 기회 를 다시 붙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연한 부패와 범죄 그리고 마약을 퇴치한다면 우리나라도 새로운 미래를 활짝 열 수 있을 것이다.” 마약과의 전쟁에 두테르테 아들과 사위가 연루됐다는 보도 가 나왔다.
Special Report
032
magazine N | 201712
‘매거진 N’ 이상기 발행인 칼럼 인니·베트남 유력지에 실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과 ASEAN+3 등
서 이 발행인은 “한국과 베트남은 동족끼리 전쟁을
2017년을 마무리하는 최고정상급 국제회의가 열린
한 묘한 인연을 갖고 있다. 그리고 베트남전에서는
지난 11월 초중순 이상기 <아시아엔> <매거진 N>
적으로 맞서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두 나라는 전쟁
발행인 겸 아시아기자협회 창립회장과 알린 페레르
의 뼈아픈 상처를 극복하고 가장 좋은 우방으로 아
<아시아엔> 필리핀 특파원(온타겟미디어 편집장)의
시아의 공통의 이익과 질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칼럼이 잇따라 현지매체에 보도됐다.
가는 위치에 올라서 있다”고 썼다.
이상기 발행인은 문재인 대통령과 조코 위도
그는 “11일 문재인 대통령과 쩐 다이 꽝 베트남
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한-인니 정상회담이 열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미래의 비전과 꿈을 실현할
린 지난 11월 9일자 <자카르타 포스트>에 ‘All the
구체적인 방안을 이끌어 낼 것이라 믿는 것은 양국
best for the captains’ of summit of S. Korea,
이 이같은 상처를 극복한 경험과 열정을 똑같이 간
Indonesia’란 제목의 칼럼을 썼다. 이 발행인은 칼
직하고 있기 때문”이려며 “베트남 전쟁 최대 격전지
럼에서 “한국 속담에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 는 말이 있다”며 “북한과도 깊고 우호적인 관계를 맺 고 있으며 이미 1950년대 아시아아프리카 동맹(AA 그룹)의 리더역할을 한 바 있는 인니가 북한핵 문제 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반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주기 바란다”고 썼다. 그는 또 “인도네시아는 스케이트 등 동계올림픽과는 별로 관계가 없지만 조코위 대통령이 내년 2월 평창올림픽 개막식 또는 폐막식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 등 평화를 사랑하 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세계의 지도자들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세계에 전하길 바란다”고 했다. 또 알린 페레르 기자는 문재인 대통령과 두테르 테 대통령과의 회담을 주제로 필리핀 <인콰이어러> 지에 ‘2 leaders at crossroads of Asian history’란 제목의 칼럼을 썼다. 이와 함께 이 발행인은 ASEAN+3 정상회의 기 간중 열린 한-베트남 정상회담에 맞춰 <Viet Nam News> 11월 11일자에 ‘Toward a new future for Vietnam and Korea’ 제목의 기고를 했다. 칼럼에
033
magazine N | 201712
다낭 시민과 베트남 국민들이 자유·평화·번영을
을 꾸며서 했다. 그들은 내게 강력히 항의했다. 외
갈망하는 전 세계 인류의 아름답고 영원한 친구가
국인인 당신이 뭘 안다고 남의 나라 대통령을 비판
되리라는 바람과 믿음 또한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
하냐는 것이었다. 내가 다시 물었다. 당신들이 조코
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를 지지하는 이유가 뭐냐고. 그들은 한결같이 말
다음은 이상기 발행인이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매체에 기고한 칼럼 한글 전문.
했다. 국민들을 누구나 공정하게 대해주고 또 부정 부패를 없애려고 애쓰는 인도네시아 역사상 드문 대통령이라고. 그것뿐이냐고 내가 물었더니 그들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포스트’
필자는 작년 5월초와 금년 8월말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다. 그 9개월 사이에 인도네시아는 내게 매우 친근해졌으며 1년 앞둔 아시아경기대회를 성공적으 로 완수하기 위한 인도네시아 정부와 국민들의 노력 이 피부로 느껴졌다.
답했다. 조코위 대통령은 무슨 일이 벌어지면 현장 을 달려가 피해자나 당사자들과 의논하며 위로한다 고 답했다. 나는 일부러 그들에게 조코위 대통령을 비난한 것이 부끄러웠다. 인도네시아 독자들도 알다시피 한국의 문재인
우리는 이런 것을 리더십과 팔로우십의 조화라
대통령은 지난 5월, 전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됨에
고 부른다. 외국 기자의 눈에 비친 인도네시아는 조
따라 앞당겨 실시된 선거에 의해 뽑혔다. 그의 가장
코 위도도 대통령 정부가 출범한 지난 3년간 놀라
큰 장점은 역시 국민과의 소통능력이며 배려하는
운 변화를 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변화
마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지난 6개월 동
는 국민과의 격의 없는 소통이며 이에 바탕한 국민
안 과거 한국사회에서 소외되고 억울한 일을 당한
통합이다.
사람들을 껴안아주며 위로하고 있다. 돈과 권력을
작년 방문때 필자는 길가에서 만난 경찰과 호텔
향한 무한경쟁시대에서 패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
직원들에게 일부러 조코위 대통령을 비난하는 말
다. 그런데 문제는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 문이라는데 있다. 이것을 해소하지 않으면 사회는 결코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한국사회는 지 난 60년간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모델국가가 됐다. 하지만 한가지 간과한 게 있 다. 바로 더불어 잘사는 사회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부족했던 것이다. 다행히 지금 문재인 정부는 이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이번 양국 정상회담에서 “국민이 더불어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이냐” “더불어 잘 사는 나라를 만들려면 어떻게 하면 될 것이냐” “역사 이래 문화 와 의식을 이끌어간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아시아 지 역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이냐” “또 그를 구체 화시키려면 어떻게 하면 될 것이냐”와 같은 본질적 인 문제들을 허심탄회하게 나눴으면 좋겠다. 물론 경제발전과 협력 등 실무적인 문제도 무척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의 토대위에서 국민들의 행 복권 추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년 조코 위 대통령의 청춘들과의 토크 대담에 나선 한국의
Special Report
034
magazine N | 201712
재경부 장관과 인도네시아의 경제부처 장관들이 머
(Vietnam Journalists Association)와의 연례 정
리를 맞대고 지혜를 나누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기교류의 일환으로 한국의 리더십 있고 경험 많은
고 본다.
기자 10명으로 구성된 방문단을 인솔해 다낭을 방
대통령은 큰 배의 선장과도 같다. 선장이 방향
문했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와 아름다움의 극치를
을 잘 잡고 나아가면 바람도 뒤에서 불면서 순탄한
이룬 하롱베이에 이어 세 번째로 방문한 도시가 다
항해를 인도하며 선원들을 항구까지 안전하게 인도
낭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 일행을 놀라게 한 게
한다.
있었다. 바로 도로가 왕복 8차선으로 넓게 트여있
최고의 선장인 조코위, 문재인 두 대통령은 이
는 것이었다. 더구나 도로에는 자동차가 거의 다니
번 정상회담을 통해서 세계에서 가장 지혜롭고 용
지 않았다. 나는 차도 별로 없는데 그토록 넓은 도
기있는 지도자라는 사실을 세계인이 인식하게 되는
로를 만든 이유가 궁금했다. 당시 다낭시의 간부는
계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
이렇게 말했다.
한국 속담에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말이 있다. 한국은 지금 북한핵 문제로 어려움을 겪 고 있다. 두 사람이 싸울 때 본인들이 직접 화해하 는 것은 쉽지 않다. 누군가 옆에서 화해를 붙여주 는 사람이 필요하다. 아주 행운인 것은 인도네시아 는 북한과도 깊고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인니 가 바로 중재자 역할을 해주길 많은 한국인들은 바 라고 있다. 이미 1950년대 아시아아프리카 동맹(AA 그룹)의 리더역할을 한 바 있는 인니는 바로 지금 그 런 역할을 한반도에서 끈기 있게 성공적으로 수행 해 줄 수 있으리라고 나는 바라고 믿는다. 인도네시아는 스케이트 등 동계올림픽과는 별 로 관계가 없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선수가 아닌 관중으로 조코위 대통령이 내년 2월 평창올림픽 개 막식 또는 폐막식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 등 평화 를 사랑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세계의 지 도자들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세계에 전하길 바란 다. 그 메시지는 메아리가 돼 지구촌 방방곡곡을 돌 고돌아 내년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리는 인도네시아 의 하늘과 땅과 바다에 골고루 전해지리라 믿는다. 두 대통령의 아름다운 꿈이 베스트 프렌드십이 되어 올해 지구촌에 매우 소중한 선물이 되길 아울 러 바란다. 베트남 ‘베트남 뉴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 리고 있는 베트남의 다낭을 내가 방문한 것은 2005 년 10월초였다. 당시 나는 한국기자협회(Journalist Association of Korea) 회장으로 베트남기자협회
“지금은 차량이 별로 없지만, 언젠가는 이 도로 가 이용 차량들로 줄을 잇게 될 것이다.” 그렇다. 10년 20년 100년을 미래를 내다보고 정
035
magazine N | 201712
책을 시행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일행에게 “베트남
는 심정으로 기사를 씁니다. 피 한방울 한방울이
의 미래는 놀랄만큼 밝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당시
자유와 번영 그리고 평화를 이루는 길이라는 신념
동행한 한국기자들 역시 모두 내 말에 동의했다. 다
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베트남 기자
낭에 이어 호이안 방문을 마친 일행은 마지막 방문
들입니다.”
지인 호치민으로 국내선 비행기로 이동했다. 밤 11
베트남은 오랜 역사를 통해 수많은 전쟁을 겪
시가 넘은 시간,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공항에 50
어야 했다. 특히 2차대전 이후 30년간의 길고 비참
대 후반의 여기자가 3-4명의 베트남기자들과 한국
한 전쟁을 겪은 베트남은 어느 국민보다 자유와 평
기자들을 마중 나왔다. 손마다 꽃을 들고 있었다.
화를 절실히 갈망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피와 땀과
그의 이름은 Nguyen Thi Hang Nga다. 호치민기
눈물로 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고 지금 평화와 번영
자협회 회장으로 베트남기자협회 집행위원과 현직
을 이어가고 있다.
국회의원을 겸하고 있었다. 응우옌 회장은 한달 뒤
다낭은 피비린내 나는 전투 장소에서 각국의 최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기자협회 총회에 참석해 축사
고지도자들이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고민하
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베트남 기자들은
고 토론하는 ‘지혜와 대화의 광장’으로 변신했다.
기사를 쓸 때 펜에 잉크가 아니라 핏방울을 묻혀 쓰
APEC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는 다낭뿐 아니라 베트남 전국의 놀라운 변화는 어쩌면 내가 2002년 이후 5차례 이상 베트남을 방문하기 오래 전부터 이 미 예고돼 있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베트남 기자들 은 이같은 말을 자주 들려줬다. “우리에게 베트남엔 2개의 창이 있다. 하나는 과거를 되돌아 보는 창, 다 른 하나는 미래를 내다보는 창, 그 두 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과거의 창’은 닫아놓고 있다. 미래로 나 가기에도 바쁜데 언제 과거를 되돌아 보겠는가? 우 리나라가 발전이 되고 국민들이 모두 행복해질 때 그때 과거의 창을 열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 는 믿는다.” 한국과 베트남은 동족끼리 전쟁을 한 묘한 인 연을 갖고 있다. 그리고 베트남전에서는 적으로 맞 서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두 나라는 전쟁의 뼈아픈 상처를 극복하고 가장 좋은 우방으로 아시아의 공 통의 이익과 질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위치 에 올라서있다. 11일 문재인 대통령과 쩐 다이 꽝 베트남 국가 주석의 정상회담이 미래의 비전과 꿈을 실현할 구 체적인 방안을 이끌어 낼 것이라 믿는 것은 양국이 이같은 상처를 극복한 경험과 열정을 똑같이 간직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 최대 격전지 다낭 시민과 베트남 국민들이 자유·평화·번영을 갈망하는 전 세계 인 류의 아름답고 영원한 친구가 되리라는 바람과 믿 음 또한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South East Asia
036
magazine N | 201712
Penang floods: Human mistakes or nature’s fault? Norila Daud is Former President of Confederation of ASEAN Journalist (CAJ), Senior Vice President of AJA, and Editor of malaysiaworldnews.com Summary
말레이시아 페낭 연이은 홍수, 인재인가 자연재해인가? 지난 10월 21일, 말레이시아 북서부 페낭의 아름다운 섬에서 주택을 건설하던 인부 11명이 산사태로 사 망한 불상사가 발생하며 말레이시아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 언덕 경사로에 위치해 있던 대규모 건설 현 장은 애초부터 ‘재앙의 씨앗’이라 불릴 정도로, 어느 정도 예견된 사고였다. 그리고 11월 4일과 5일, 페낭 을 마비시킨 대형 홍수로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야 할 7명의 인부들이 사망하면서 ‘이러한 사고들이 오 롯이 자연재해 때문인가’ 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홍수는 17시간 동안 이어진 강풍과 폭우로 인해 발생한 페낭 역사상 최악의 재난으로 꼽힌다. 페낭 홍수는 얼마 전 베트남을 강타한 태풍 ‘담레이’와 태국 남부 걸프 지역에서 발생한 태풍이 만나며 시작 됐다. 복수의 태풍이 만나는 현상을 ‘후지와라’라고 하는데 태풍들의 만남은 인근 지역에 지속적인 폭 우와 대규모 홍수를 유발한다. 최근 말레이시아 해역에서 일어난 후지와라 현상은 그것 자체로는 단순 한 우연의 일치에 불과했으나, 페낭의 대규모 건설현장에 대규모 홍수와 인명피해를 일으켰다. 대홍수가 페낭을 휩쓸자 림 관 엥 페낭 주지사는 연방정부에 지원을 요청했고, 나집 말레이시아 총리도 그 즉시 “연방정부 차원에서 페낭의 홍수 피해 방지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해 10억 링깃(약 2,640억원) 의 추가 자금을 투입할 것”이라 밝힌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상사를 재현하지 않으려 면 단순 자금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 최근의 재해가 발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페낭의 NGO 단체들은 언덕꼭대기와 가파른 지역에서의 건설 부지 확장에 대해 염려하고 있었다. 지형적으로 홍수에 취약하기에 피해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실제로 NGO단체인 ‘사하뱃 알람 말레이시아’와 ‘네이쳐프랜드 말레이시아’는 페낭 주정부가 언덕과 경사로에서 진행하는 모든 개발 프로젝트를 중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2013년부터 2017년 10월 까지 페낭에서 갑작스레 발생한 홍수는 120건에 조금 못 미쳤다. 연 평균 20회에 가까운 수치이며, 이는 결코 가벼운 숫자가 아니다. 페낭의 재해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간에 의해 발생한 인재이며, 페 낭이 지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들로 더욱 피해가 커진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일찍이 나집 총리는 페낭 주 정부에 언덕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를 면밀히 감시해야 하며, 당국도 오직 이윤만을 추구해서 프로젝트를 허가하면 안 된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말레이시아는 지금도 자연재해를 가장한 인재로 고통받고 있다. 노릴라 다우드 전 아세안기자연맹(CAJ) 회장
The beautiful island of Penang, northwest of peninsular Malaysia, had
become the focal point on October 21st when 11 workers were buried under
a landslide that occurred at a housing project in Tanjung Bungah. The massive construction sites located on the slopes of hills and near the lower parts of some highland areas in the island are said to have been an “invitation for disaster”. This issue reached its climax on November 4th and 5th when seven people (mostly of golden age) were killed by a big flood that had swept the island, leaving much of Penang paralyzed. Those who died were either drowned or killed by trees that fell on them. The flood was considered to be one of the worst in Penang history when the 17-hour non-stop rainfall flooded five districts of the region with its strong winds and heavy downpour. The flood was soon followed by land erosions and countless trees falling due to weakened terrestrial foundation. Penang’s flood it seen to have come from the meeting of the Damrey typhoon (that had hit Vietnam) and another smaller typhoon originating from the Gulf of Siam—in what is being named the Fujiwara phenomenon. The meeting of the typhoons is alleged to have caused continuous heavy rainfall and dangerous floods in nearby areas. The Fujiwara phenomenon itself was a simple coincidence, nevertheless, it became a huge contributing factor to the floods that hit massive building constructions around Penang. Recently, Prime Minister Datuk Seri Najib Tun Razak said that the federal government was ready to consider giving additional funds of 1 billion RM to support the implementation of flood embankment projects in Penang. The government of Kelantan, under the opposition party Parti Islam SeMalaysia (PAS) also announced to contribute 50,000 RM and also send volunteers to help flood victims on site. Before the flood incident, Lim
037
magazine N | 201712
Xinhua Xinhua
Gaun Eng, Chief Minister of Penang who is also the Sectary-General of the Democratic Action Party (DAP), is reported in 2015 to have accused the Kelantan government under PAS for negligence right around the time the flood hit vulnerable regions (at the time, 2014). When Penang was hit by the big flood on 4th-5th November, Lim Guan Eng was forced to ask for help and aid from the Federal Government to facilitate and manage the flood situation in Penang. Before the flood, groups of nongovernmental organizations (NGOs) in Penang raised concerns of extensive construction sites on hilltops and steep areasâ&#x20AC;&#x201D;all susceptible to mass damage that could cause flash floods that are frequent in the area. Records have shown that around 119 flash floods occurred in Penang since 2013 to October of this year. On average, there are approximately 20 flash floods each year, proving that the state had serious environmental problems that were due to actions by the people in Penang; man-made disasters.
In another development, the environmental NGO, Sahabat Alam Malaysia (SAM) or Natures Friend Malaysia urged the government of Penang to immediately stop all developmental projects at the hill slopes including projects that had already received permission for future construction and those projects that reached under 76 meters above sea
level. Earlier on, Prime Minister Razak had visited flood victims and then requested the DAP government of Penang to closely monitor all housing projects set on hills that have been approved and urged developers not to accept projects solely on the potential of profit-making. The people always come first.
Middle East
038
magazine N | 201712
The Diplomat’s Wife who stole MiddleEastern Treasures Ashraf Aboul-Yazid(Dali) is an Egyptian poet, novelist, translator, journalist, traveler and TV presenter. He won the Arab Journalism Award in culture 2015, and Manhae Grand Prize in Literature 2014. He has published more than 30 books of poems, novels, travels, and children literature. Some of his literary works are translated into Spanish, Korean, Turkish, English, and Persian. He is also President of AJA and Editor-in-Chief of the Arabic version of The AsiaN . Summary
‘중동 유물’ 불법으로 도굴한 ‘간 큰’ 외교관 부인 적발 이집트 문화유산 대책위원회의 모니카 한나 연구원이 1967년 유엔에서 호주외교관으로 근무했던 키스 하워드의 부인 조앤 하워드의 문화유산 불법 도굴 및 약탈행위를 적발했다. 한나 박사는 주이집트 호주대사에게 보낸 서면을 통해서 하워드 부인의 불법 도굴 행위들에 대해 언급했 다. 간호사였던 하워드 부인은 남편이 유엔 외교관이란 지위 덕분에 11년간 시리아, 이집트, 레바논, 요르 단,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등지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다. 중동에서 머무는 시간의 대부 분을 도굴하는데 보낸 그녀는 타인이 누리지 못하는 ‘이동의 자유’를 악용해 문화유산을 불법적으로 약 탈해 온 것이다. 고고학을 전공한 한나 박사는 “하워드 부인이 중동의 역사가 담긴 유적지에서 불법 행위로 사욕을 채운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녀는 남편 덕에 얻을 수 있었던 외교적 특권을 악용해 해적처럼 노 략질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녀는 “지금 즉시 호주 퍼스에 있는 하워드 부인 수집품들의 출처를 밝혀 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이 유물들이 이집트에서 불법적으로 유출된 것이라면, 하워드 부인의 수집품들은 반드시 이집트로 송환 되어야만 한다. 이집트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전세계 문화유산의 보호라는 측면에 있어서도 이는 매우 중 요하다. 한나 박사가 밝혔듯, 문화유산을 불법으로 도굴하고 도둑질하는 것은 문화적 유산이 쌓아온 유 구한 역사적 맥락을 파괴하는 행위다. 유물은 불법행위로 인해 ‘그릇된 경로’로 세상에 나온 순간,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사료에서 한낱 인공품 에 지나지 않게 된다. 문화유산과 유물들이 미술품처럼 경매 등을 통해 쉽게 거래될 수 없는 이유다. 유물 들은 불법행위로 발굴 되었을 때, 그것이 지닌 본래의 목적과 역사적 중요성을 잃는다. 인류는 미학적 가 치뿐만 아니라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 체계적이고 합법적으로 유물을 발굴해야만 하고, 이를 문서로 기 록해야 유산의 역사적 가치를 재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불법 행위는 이집트 문화에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을 남겼다. 이집트는 이로 인해 후손에 전달해야만 하는 소중한 역사도 잃었다.” 한나 박사의 탄식이다. 아시라프 달리 아시아기자협회 회장
Eg ypt ian researcher of Eg ypt ’s Heritage Taskforce Monica Hanna has uncovered the worst case of illegal pirating by Australian citizen Joan
Howard, wife of Keith Howard who served as the Australian diplomat for the United Nations in 1967. In her open letter to H.E. Neil
Hawkins (Ambassador of Australia to Eg ypt) Monica Ha n na wrote about Joan Howard’s illicit activities. Howard was a nurse but spent most of her time during her husband’s tenure overseas looting ancient archaeological sites in Egypt and Palestine. It was said in the West Australian, “Through her husband’s UN connections, over 11 years she was given carte blanche to travel between Syria, Egypt, Lebanon, Jordan, Palestine and Israel. She used her diplomatic freedom to search for antiquities.” Mon ica Ha n na has si nce responded to the case saying, “It is not acceptable that Mrs. Howard behaved as a pirate and appropriated from the different archaeological sites. Mrs. Howard has broken all possible laws taking advantage of her diplomatic status.” Coming from the academic field of archaeological and preservation of cultural heritage, Hanna further demanded that investigations be carried out for more of the sources of Howard’s collection that is now in Perth. Hanna has said that such objects should be repatriated if they were taken by illegal measures. Monica Hanna’s almost celebratory tone i n her a r t ic le of t h i s ca s e seems to cast a very negative image about the continued destruction of archaeological sites in modern times—especially since 2011. It is true that we must counter examples like Joan Howard not only for Egyptian heritage, but to protect the world’s heritage. Monica Hanna also noted the problem of acquiring antiquities through methods of illegal digging and theft, these activities decontextualize cultural heritage and transform archeological finds from historical objects to mere aesthetic
039
magazine N | 201712
artifacts. Historical objects cannot and should not be traded like art. It is widely accepted that when such items are illegally excavated, they lose their original purpose, historical significance, as well as the intent of their product and usage. Legal scientific excavations take note of these aspects and work not only to present artifacts for aesthetic appreciation but also to document every shred of historical information t o r e c o n s t r uc t t h e s e p r e c io u s historical objects. Hanna closes by emphasizing preservation of cultural artifacts, â&#x20AC;&#x153;The illegal market leaves the Egyptian cultural heritage with holes that cannot be filled and many stories that cannot be told about the past.â&#x20AC;?
Monica Hanna
Joan Howard, wife of former Australian Diplomat for UN.
040
People
magazine N | 201712
The meaning of Yoon Mi-seon’s distorted faces Summary
윤미선 작가 화폭에 담긴 ‘일그러진 얼굴들’의 의미 경기도 일산에서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윤미선 작가. 그의 작품들은 일반적인 초상화와 궤를 달리 한다. 초상화 속 일그러진 얼굴들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Alessandra Bonanomi Staff Reporter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 드린다.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윤미선이라고 한다. 경기도 일산에서 거주하며 작업도 하고 있다. 2017 년 1월에 서울 청담동 노블레스 컬렉션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작가 윤미선의 작품들에 대해 설명한다면. 나는 다양한 인물을 표현한다. 오랜 시간 동안 원단을 이용한 포트레이트(초상) 작업 을 해왔는데, 작업의 특성상 무거운 기계를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건강상의 이유로 더 이상 이 작업을 할 수 없게 됐다. 원단 작업 과 함께 꾸준히 병행해왔던 페인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은 다행이었다. 원단을 이용할 때는 직접적인 감정 표현이 주를 이루었고, 페인팅으로 작업한 이후론 표현하고 싶은 대상을 바라볼 때 느낀 왜곡된 감정을 담아내려 하고 있다. 페인팅을 할 때는 캔버스와 하드 페이퍼 위에 아크릴 물감, 연필, 펜, 오일파스텔 등을 활용해 표현한다.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나.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수시로 감정의 자극을 느낀다. 작품 속 여러 인물들은 내 자아 를 비추는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동질된 감정을 느끼기에 작품 속 모델과 교감을 나누며 작업한다. 한국 예술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표면적 인프라는 거대해 보이는데, 그 내부까지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작품 구매에 관 심을 갖는 사람들이 전보다 늘어난 것 같다. 세계적인 온라인미술품갤러리 ‘사치아트’에 실린 인터뷰를 봤다. 사치아트와 특별한 인연이 있나? 작업을 시작하면서 사치아트 라는 온라인 갤러리를 우연히 알게 돼 그림들을 등록했다. 그 계기로 인터뷰도 하게 됐다. 작가 윤미선이 정의내린 예술은 무엇인가. 예술은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의 삶과 생각이 반영된 시선이며, 자기만족의 소산이다. 영국의 비평가 올더스 헉슬리는 “예술은 삶의 고통에 대한 저항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멕시코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를 비롯한 많은 아티스트들은 고통 속에서 작품을 남겼다. 당신은 이에 동의하는가? 당신의 예술적 동기는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동의를 하고, 하지 않고는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개인적으론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의 압박과 폭력으로 인해 생겨난 트라우마로 본연의 나를 잃었다. 그 자리에는 학습과 강요에 의해 생성된 거짓 자아가 자리잡게 됐다. 나는 점점 소심하고 우유부단하며 나약 해졌지만 ‘그림’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유아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성장할수록 쌓여가는 내면의 아픔들 을 뱉어내고 나약함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져 자연스레 그림에 더욱 열중하게 됐다. 대학에선 섬유미술을 전공하면서 섬 유를 이용한 작업에 매료됐다. 당시엔 수없이 원단을 조각 내고 다시 이어 붙이는 고단한 과정을 통해 완성된 결과물이 나의 상처 를 치유해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작년부터 이 작업을 못하게 됐다. 대신 이전부터 꾸준히 병행해 왔던 드로잉과 페인팅 작업을 중점적으로 시작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심적 고통을 극복하려고 했던 원단 작업이 오히려 자기 연민에 빠지게 하는 동시에 아픔 을 더욱 깊은 곳으로 가두었고, 반대로 그림을 통해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일종의 해방감을 맛보았다는 것을. 스스로를 자유롭 게 만드는 것이 페인팅임을 깨달으면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시선에 대해 솔직해지고 싶었다. 물론 나는 개인적인 아픔이 있었지만, 순수한 즐거움 만으로 예술활동을 하는 사람도 많다고 생각한다. 존경하는 예술가와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면. 존경하는 예술가들은 너무 많다. 그 중에서도 페르낭 레제를 말하고 싶다.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건축적인 균형감, 나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도형적인 느낌들이 좋다. 현재 근황과 앞으로의 계획은? 다양한 인물들을 나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형태로 그려나가며, 치유하고 싶었던 감정을 ‘타인의 거죽을 빌린 자화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내가 바라보고 표현하고자 하는 대 상을 조금 더 세밀하게 분해하고 다시 결합해 나가는 훈련을 하고 있다. 마치 나 자신을 분석해 재구성하는 과정과도 같다는 느낌 알레산드라 보나보미 기자 을 받고 있다. 이를 통해 나를 대변하는 하나의 특정한 형상을 그려나갈 계획이다.
041
magazine N | 201712
a relief, however, that I could continue to present the minute and subtle expressions in portraits through the medium of painting—emotions that I felt were in conflict with one another could be captured through paint on the canvas. So now, I use acrylic paint, pencil, pen, oil pastels, among other utensils over canvas and hard paper for my pieces. Where does your inspiration come from?
I am constantly inspired by the emotions stimulated within me when I meet or see various people—unspecified and random. The people in my artwork are those who reflect elements of my own ego. This mutual feeling and connection persists as I work on a specific portrait. What is your opinion about the art environment in Korea?
Yoon Mi-seon is currently a full-time artist work-
On the surface, it seems that the art en-
ing in Kyunggi province of South Korea. Her art
vironment is vast and offers a wide range of
is different from typical portraits—what lies in
possibilities—I’m not sure if that’s true beneath
the significance of her distorted faces and im-
the surface, but I do think that more people are
ages?
becoming interested in buying artwork than before.
Please introduce yourself (name, job, studies,
I saw you have been interviewed by Saatchi
where do you live and work, previous exhibi-
Art. Can you explain to me your relationship
tions, etc)?
with Saatchi Gallery?
Hello, I am Yoon Mi-seon, full-time artist and
I randomly came across Saatchi Gallery as I
currently residing in Ilsan (Kyunggi province,
was working on my art collection and registered
Korea). I opened a personal exhibition at Seoul
a select few of my pieces; this connected me to
Cheongdam Noblesse Collection in January of
Saatchi Art and hence, the interview.
this year.
What is your personal definition of art?
Can you describe your artworks? What do you use as your medium?
I like to artistically portray a diverse array
Art is a particular expression of people’s lives and thoughts, and it is the product of the artist’s self-satisfaction.
of characters and personalities. For a long time
Aldous Huxley once declared "Perhaps it's
I used to use heavy fabrics as my main medium
good for one to suffer. Can an artist do any-
for creating portraits (textile art) but because of
thing if he's happy? Would he ever want to do
the weight of the fabric and the heavy-duty ma-
anything? What is art, after all, but a protest
chines that were needed in the process, I could no
against the horrible inclemency of life?" Do
longer use this method to create artwork. It was
you agree? What is your opinion about that?
042
magazine N | 201712
In fact, many artists (Frida Kahlo, for example)
So naturally, I dug deeper into art.
have suffered in their lives and they are
Majoring in textile art in university got
strictly linked with that pain. Where is your art
me fascinated with the process of creating art
coming from?
through the recontouring of fabrics. I felt that I
Iâ&#x20AC;&#x2122;m not sure if this is a matter of agreeing or
was healing my inner wounds by cutting out dif-
disagreeing with. As a child, I lost a significant
ferent pieces of fabric and then combining them
part of my identity due to the pressure and
in what I considered to be a masterpiece. But,
violence inflicted upon me by family members.
since last year, as I became no longer able to use
Forced learning and training replaced much of
textiles in art, I had to turn to drawing and paint-
my original self and in some ways, a false ego
ing. And all of a sudden, I realized that my desire
settled in me. I became more timid and indeci-
of healing my pain through my textile artwork
sive, but it was through the world of pictures and
was only placing me into a deeper hole of self-
drawing that I was able to overcome my weak-
pity; without my even noticing, it was causing
nesses. I loved to draw even as a toddler and fell
more pain and shutting me out from the outside
even more in love growing up; I loved to release
world.
the pain inside of me to be freed from weakness.
Acrylic on canvas_53.0x45.5cm_2017
And so, painting and drawing necessarily
A man striped t-shirts_Acrylic on canvas_90.9x72.7cm_2017
043
magazine N | 201712
became a wake-up call, another liberating ex-
Leger. I like the way he incorporates architectural
perience knowing that I don’t have to wallow in
balance to his works because it’s such a different
my pain through artwork. And it’s also true that
perspective—a graphic point of view—from the
many artists create art just out of pure joy, not
way I approach my art.
because of some experience of hurt.
Current work and future aspirations?
A book and song that you just cannot live without?
Well, right now I’m working on re-expressing a variety of different personas through portrait
Marcus Aurelius’ Meditations. I don’t think I
art. My art is based on “portraits of the borrowed
have any song that I can’t live without. I actually
outer appearance of subjects”. I am continuously
don’t like hearing or listening to any music when
in the process of understanding and reinterpret-
I work; I like to focus on the art. Sometimes, when
ing the people I draw by paying attention to the
I am meditating or resting, I like to listen to in-
minute details and combining those aspects into
strumental music like cello music.
a single portrait. It’s almost as if I am dissecting
Who are your favorite artists and why?
and micro-analyzing—and then reconstruct-
I have so many favorite artists it’s hard to name only a few, but I want to mention Fernand
Acrylic on canvas_53.0x45.5cm_2017
ing—my own self. Based on this, I hope to create another representation of myself.
Acrylic, oil pastel, pencil on hard paper_42x30cm_2017
044
Special Topics
magazine N | 201712
Relaxing Sensory Media for the Overstressed Millennial Summary
“엄마, 나 슬라임 팔아서 집 한 채 샀어”…‘슬라임’ ‘ASMR’이 뭐죠? “잠 못 드는 어느 밤, 우연히 한 영상을 보게 됐다. 누군가 반짝이는 슬라임을 만지작거리는 것을 몇 분 간 멍하니 지켜봤다. 곧 이어 재생된 또다른 영상 속 사람들은 마이크를 입에 대고 낯선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소리는 내게 ‘잘자’라고 굿나 잇 키스를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이 사람들이 특별한 행동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눈과 귀를 뗄 수 없을 정도로 넋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이내 편안히 잠이 들었다.” 감각을 자극하는 콘텐츠등이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21세기의 서브컬쳐(Sub-culture)로 떠오르고 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앞서 언급한 슬라임과 ASMR이다. 이들이 무엇이고, 어떻게 미디어 플랫폼을 휩쓸었는지 알아보자. ‘슬라임’은 한마디로 응고된 풀이다. 붕산이 함유된 액체(렌즈세정액 등)를 풀과 섞기만 하면 슬라임이라 불리는 끈적거리고 자 그마한 물질이 탄생한다. 2017년 초 인스타그램 유저들이 슬라임을 마구 찌르고 만지작거리는 영상을 올리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온라인은 슬라임 관련 콘텐츠로 도배됐다. 유튜브에서 슬라임을 검색하면 6만건 이상의 영상이 검색된다. 그 중 인기콘텐츠는 조회수가 2000만을 넘어섰으며,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관련 게시물은 지난 6월 300만건을 돌파했다. “뭐가 그 리 대단하길래 풀로 만든 자그마한 공에 열광하지?”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기껏 작은 공 하나는 지구를 놀라게 할만한 비즈니스로 성장하고 있다. 초기 슬라임 비즈니스에 뛰어든 사람 중 하나인 미국의 카리나 가르시아는 <CNBC>와의 인터뷰에 서 “슬라임 덕분에 최근에 집도 샀어요. 엄마가 어찌나 웃던지”라고 말했다. 자율감각 쾌락반응(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약자 ‘ASMR’은 듣는 이로 하여금 자극적인 흥분을 만끽하 게 한다. 마치 누군가 귀 너머로 소중한 비밀을 속삭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ASMR에 대해 혹자는 ‘뇌의 오르가즘’ 혹은 ‘뇌의 포르노’라는 그리 달갑지 않은 별칭을 붙이기도 한다. 그러나 ASMR은 성적인 쾌감이라기 보다는 평온과 진정 효과를 전 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하다. ASMR 영상들은 2008년 즈음 온라인을 통해 퍼지기 시작했다. ASMR 제작자들은 다양한 사 물로 다양한 소리를 낸다. 이를 듣는 사람들은 마치 최면에 빠진 듯 곧 잠에 빠져버린다. 즉 슬라임과 ASMR은 사람의 시청각을 자극함으로써 심리적인 안정을 주는 콘텐츠라 할 수 있다. 이 열풍은 한국에서도 거 세게 불고 있다. 한국의 애청자들은 매주 일요일 밤마다 업데이트 되는 유튜버 데이나의 ASMR 영상을 기다린다. 2016년부터 DIY 슬라임을 제작, 판매해 온 슬라임 코리아(CEO 임새미)는 알리바바와 같은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 소비자들에게까지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구매개수를 제한할 정도라고 한다. 한국에서 슬라임과 ASMR이 사랑을 받는 이유로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한국인이 유행에 민감한 것이 그 첫번째다. 두번째로 한국인들이 받고 있는 지나친 스트레스를 들 수 있다. 미국 국립생물공학정보센터가 약 17%의 한국인이 수면장애로 고통 받 고 있다고 발표할 정도로 불면증도 심각하다. 현실의 스트레스에 지친 청년들이 가상의 공간을 통해 접한 슬라임과 ASMR로 심리적 안정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현상, 특히 ASMR의 이면에는 ‘이러한 것들이 인간에게 정말 도움이 될 만한 휴식과 안정을 제공하는가’라는 논란이 남아 있다. ‘이런 영상으로부터 받는 자극이 이로울까’ ‘우리를 흥분시킬 수는 있지만 오히려 지키게 만드는 것도 아닐까’ ‘플라 시보 효과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들이 떠오르는 것도 당연하다. 이와 관련된 논란을 잠재울만한 연구결과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인간의 감각을 자극하며 현실의 고통을 달래주는 새로 운 문명에만 지나치게 의존해선 안 되는 이유다. 디지털 미디어와 네트워크 플랫폼은 우리의 삶을 보다 이롭게 만들기 위한 수 Eui-mi Seo Staff Reporter
단이지,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수단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서의미 기자
045
magazine N | 201712
As a girl, I often struggled with bouts of
my eyes, or my ears, away. It was all so
became something of a 21st century
insomnia. Sleep came slowly, typically
satisfying…and I was asleep.
subculture with kids and young
after an hour of lying awake in bed,
Without thinking, I had stumbled
adults crazy over sensations felt across
and no amount of tossing and turning
upon the world of slime and ASMR. I
cyberspace, and the two most widely
would help. Now, as an adult, insomnia
was so intrigued that I would make my
viewed sensory media were slime and
still keeps me wide awake in the
own slime and then create videos to
ASMR.
evenings even though I am exhausted
upload on my Instagram account, but
By now, some of you are confused,
from a long and stressful day.
the videos that other “professionals”
so it seems appropriate to give an
made were always more appealing and
overview of the slime and ASMR
the sounds always better.
phenomenon sweeping our media
It was on one of those sleepless nights that I that saw them: videos of
platforms:
glittery blobs of slime with little fingers
I don’t know exactly when it started,
poking and squishing it for minutes on
but at a certain point, relaxation could
end, and then a little while later, videos
come straight from our smartphones
of people making strange mouth noises
and they came in the form of digitally-
Simply put, it’s glue that has been
in front of microphones as if they were
enhanced sensory experiences. You
congealed (hardened). When you take
kissing me good night.
Slime: gooey sensation
had videos of people pulling on slime,
any liquid solution that contains boric
Basically, they were clips of people
squeezing and popping the weirdly
acid (common in contact lens solutions)
doing nothing in particular, pushing
satisfying blob, and then others who
and combine that with glue, the result
and pulling on slime and creating
were breathing, eating, and whispering
is a slimy and gooey substance that,
repetitive noises into microphones
into amplified microphones—all in the
although sticky, doesn’t make too big of
on high volume, but they were just so
name of rest and relaxation.
a mess.
weirdly captivating that I couldn’t take
Just like that, sensory digital media
For all that is known of slime, it
the reporter making DIY slime after seeing slime videos on Instagram and YouTube. This slime is made mixing glue, contact lens solution, and baking soda.
046
magazine N | 201712
has been around since the late 1900s but recently resurfaced on Social Networking Service (SNS) platforms as videos and how-to-make tutorials. The craze began taking momentum early 2017 with a growing number of Instagram users posting homemade slime videos, poking at the goo to make the satisfactory popping sound. By m id-Ju ne, over 3 m i l l ion I n stag ra m users had uploaded their pictures and clips of slime that ranged from glittery ones to buttery slime made with the addition of shaving cream. Those who were more experimental added beads and shiny pearls to make their slime extra glamorous. On YouTube, search “slime” and you’ll find 6 million results—some with over 20 million views. You might ask what the big deal is? Why is every going nuts over a ball of glue? But as you speak, young adults
047
magazine N | 201712
around the world have now gone on
“ L aug h” i s t h e r ig ht wor d,
a secret by someone special. As such,
to make large amounts of cash with
because as ridiculous as it sounds,
some have called ASMR a type of
those balls of glue. Kids as young as
slime is literally creating CEOs out of
“brain orgasm” and ASMR videos as
thirteen have begun selling their DIY
young people and it’s still a growing
“brain porn”. While the experience is
slime through Instagram and some
business—even in Asia. In Hong Kong,
not a sexual one, ASMR videos seem
are making over $3000 USD a month
some teens make HK$1600 (approx. 205
to have an immediate calming and
(TIME).
USD) per week by selling slime at the
sedative effect on viewers; that’s why
nine-story Dragon Centre shopping
many have made it a pre-bed ritual to
mall in their own private cubicles.
doze off to ASMR clips.
Karina Garcia (U.S.), one of the first slime entrepreneurs to make a
The videos have been around the
successful career out of making and selling slime, is only 23 years-old and
ASMR: tingling pleasures
web since as early as 2008, and in them,
has built a slime empire for herself
Short for Autonomous Sensory
a person simply makes sounds into a
with a 6-figure monthly salary. Much
Meridian Response, ASMR is just a
high-quality microphone. They use just
of her income comes from advertising
hard word for a pleasurable tingling
about anything to create noise: makeup
revenue from platforms like YouTube
sensation at the back of the ears from
brushes, water droppers, animals—
and Instagram. In an interview with
certain auditory stimulus.
some even eat in front of the mics. In the
CNBC news Garcia said, “I recently
The physical sensation of ASMR is
end, whatever the object, the amplified
bought a house (from slime money),
compared to having one’s hair combed
noise, when repeated, has somewhat of
and my mom laughs about it.”
by one’s mother, or being whispered
a hypnotic effect and before you know
048
magazine N | 201712
most popular video is her sleep trigger session that has over 4.7 million views. Korea’s slime and ASMR
In the end, they’re one and the same: the slime and brushing of microphones all are intended to evoke a therapeutic sense of relaxation by stimulating one’s audio-visual nerves. And nowhere has this phenomenon taken quite the same shape as it has in South Korea. Koreans love it all, the slime and the ASMR. Korean followers of YouTubers are religious in their viewing, patiently waiting every Sunday evening for ‘ASMRtists’ like Dana to upload her newest video. Moreover, slime has a particular nickname in Korea called “liquid monster” and it is used like an endearment in Korean slime communities. Im Sae-mi, CEO of Slime Korea, a company that since 2016 has sold DIY slime not only to Koreans but to numerous customers in Japan and China through online shopping malls such as Alibaba, said that slime sales skyrocketed when high-profile celebrities like IU (singer) uploaded Instagram clips of slime on their own pages. YouTube channel with the most
“It’s gotten to the point where we’re
First-time viewers are usually put
followers in Korea, says that her
limiting the number of orders per
off by the whispered talk and mouth
channel is mostly watched by those
person because we can’t keep up with
and saliva sounds that the video-
who suffer from insomnia. She, too,
the demand” Im said in an interview
makers make, but that disgust is soon
earns a sizable income from YouTube
with The Korea Herald.
replaced by an intrigue over why
advertising revenue (including Paypal
While many have said Korea’s
something this weird could sound so
and Patreon crowd funding systems)
special love for slime and ASMR is
good.
but has said that she makes the videos
because Koreans have a tendency to
mainly for her own enjoyment. Dana’s
copy one another (especially the latest
it, you’re already asleep.
Da n a , wh o r u n s t h e A SM R
049
magazine N | 201712
fads), others point to dangerous levels of
Relaxation through media overload?
immediate sense of relief. So much so
stress and anxiety that is causing more
The underside of the slime and
that we cannot remember why it is we
young girls and boys to find comfort in
ASMR craze is whether or not these
are stressed to begin with. It’s a question
online sensory media.
modes of relaxation are in fact giving
worth asking.
T he Nat iona l Center for
users true rest. We are constantly being
As of yet, t here hasn’t been
Biotechnology Information (NCBI) has
bombarded by visual and electronic
enough research on this issue to
found approximately 17% of Koreans
stimuli, so it’s questionable whether
make a ny decisive claim for or
to be suffering from insomnia and
more stimuli from sensory media like
against slime and ASMR, but as
other forms of sleep deprivation as of
ASMR videos would be beneficial.
with anything completely new, a
2015. While most are in need of medical
Could it be that social media is
healthy dose of skepticism should
treatment, the NCBI also found that few
actually making us more interested but
follow the excitement. As society
Koreans seek medical help.
all the more tired? And are the relaxing
embraces sensory media as a new
M a y b e i t ’s b e c a u s e o f t h e
videos only acting as placebos that
business platform for creative minds,
competitive Korean society; students
prevent us from tackling the real cause
it is also important to be cautious
scrambling to enter the best schools
of our stress?
when cyberspace begins to be more interesting and therapeutic than reality
with a perfect suneung score and college
The convenience of de-stressing
graduates anxiously preparing to land
oneself by a numbing process of video-
the prestigious jobs. When there really
watching can be good in the short term,
Bearing in mind that digital media
is no way of release outside in the real
but the consequence of avoiding the
and networking platforms are simply
world, cyberspace seems to be the
true issue at hand continues a vicious
tools designed to make our lives easier,
quick and easy, and all at once, safer
cycle of exhaustion giving birth to
we remember that the real world has
alternative.
more exhaustion. We are taught to
so much more to offer in nature and in
face our problems, not forget them, but
humans than our smartphones could
social media has a way of giving us an
ever dream of.
No wonder so many youngters are glued to their smart screens.
itself.
050
Features
magazine N | 201712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Gwacheon, Gallery1
Richard Hamilton : Serial Obsessions
2017.11.3 - 2018.1.21
051
magazine N | 201712
‘팝아트의 시초’ 리처드 해밀턴의 개인전 ‘연속적 강박’이 11월 3일부터 2018년 1월 2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다. 192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리처드 해밀턴은 1938년부터 1940년까지 영국왕립 미술원에서 기본기를 닦은 후, 여러 곳에서 미술을 공부하다 1948년부터 약 3년간 슬레이드 미술학교에 정착해 수학했다. 그 시기, 리처드 해밀턴은 런던 현대예술관 (ICA)에서 개인 작품들을 전시하면서 동료 아티스트들과 교감을 나눴다. 1950년대, 리처드 해밀턴과 ICA의 예술가들은 보수적이고 경직돼 있던 예술의 권 위주의에 도전하고자 젊은 예술가, 작가, 비평가들이 중심이 된 영국의 전위적인 미 술 단체 인디펜던트 그룹(IG)을 만들었다. 당시의 해밀턴은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었던 대량 생산된 이미지와 제품들에 매료됐다. 그는 대량으로 생산되는 이미지 혹은 제품들이 어떻게 소비자들의 구미를 당기고 어떻게 소비되는지에 대해 흥미를 느꼈고, 그 흥미는 팝아트란 새로운 시류의 출발점이 됐다. 리처드 해밀턴은 팝아트에 대해 “대중적이고, 일시적이며, 소모적이고, 저비용 대 량생산이 가능하고, 젊고, 섹시하고, 재치 있고, 교묘하며, 매력적인 사업”이라고 정 의 내리면서 “가장 순수한 예술가로서 팝아트를 시도한다. 나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 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는 팝아트 아티스트들의 지침이 됐다. 리처드 해밀턴의 이번 개인전은 한국은 물론 아시아 최초의 전시회이기도 하다. 아 시아에서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밀턴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실제로 해밀턴은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과 같은 팝아트 거장들 에 영향을 끼쳤다. ‘Toaster’ 1966년 해밀턴은 오로지 토스터기 한가지 피사체에만 초점을 맞춘 ‘토스터’ (Toaster) 초기작을 세상에 선보였다. 이 작품은 약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 ‘토스 터 디럭스’로 재탄생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해밀턴이 현대 산업주의를 자신의 작품 에 반영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그는 토스터로 유명한 독일브랜드 ‘브라운’(Braun) 의 토스터를 모델로 작업하면서 브라운사의 로고 대신 자신의 브랜드 ‘해밀턴’ (Hamilton)을 빨간 글자로 새겨 넣었다. 오차 하나 없는 정교한 가전제품이 그만의 아 이콘으로 다시 태어난 순간이었다. 그는 새롭게 런칭한 브랜드 ‘해밀턴’을 위해서 사 용설명서-해설-를 더하는 재치도 곁들였다. ‘Swingeing London’ 해밀턴은 1967년 신문에 실린 한 장의 사진에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만들었다. 롤 링스톤스의 멤버 믹 재거(오른쪽)와 미술품 딜러 로버트 프레이저가 마약을 복용 한 혐의 경찰에 체포돼 수갑을 차고 있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1960년대 런던은 ‘Swinging London’(활기차고 멋진 런던)이란 단어처럼 멋쟁이들로 넘쳐났는데, 그 흐 름을 이끌어 가던 뮤지션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미는 사회를 비꼬며 ‘Swingeing London’(극도로 비판적인 런던)이란 작품명이 탄생했다. 이 작품에서도 그의 작품관은 여지 없이 드러났다. 그는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 는 이미지를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해 ‘Swingeing London’를 연작의 형태로 완성해 냈다. 아티스트로서의 태도를 지키는 동시에 도덕적 결벽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비 판을 잊지 않으면서.
Alessandra Bonanomi Staff Reporter
052
magazine N | 201712
Richard Hamilton, Daddy of Pop Art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MMCA) in Gwacheon presents Richard Hamilton: Serial Obsessions (November 3rd-January 21st), an exhibition created to celebrate the history and progress of UKKorea relations. Richard Hamiltan was born in London 1922 and attended the Royal Academy Schools from the years 1938 to 1940. He then went on to study engineering draughtsmanship at the Government Training Centre in 1940. When he returned to the Royal Academy schools in 1946, Hamiltan was soon after expelled and between 1948 to 1951, he attended the Slade School of Art. During his time at Slade, Hamilton began exhibiting pieces of his work at the Institute for Contemporary Arts in London (ICA), and it was in this period that he came to know many other artists involved with the ICA. In the 1950s, Richard Hamilton and other exponents of the ICA created the Independent Group (IG) which was a radical collective of young artists, writers, and critics who challenged the modernist culture dominant at the time— so that it would be more inclusive of other aspects of popular culture. IG members included Eduardo Paolozzi, Nigel Henderson, Reyner Banham, Jim Stirling, Cedric Price, and Terence Conran. As an artist, Hamilton was particularly fascinated by mass-produced images that were seen throughout modern life. He was also interested in the reproduction of images in the process of consumption and patterns of consumerism. Hamilton has said that his work is related to “Pop art” which to him is: “popular (designed for a mass audience), transient (short-term solution), expendable (easily forgotten), low-cost, mass-produced, young (aimed for youth), witty, sexy, gimmicky, glamorous, and big business.” Since then, Pop Art has been defined along Hamilton’s definition and his works exhibit his curiosity and imagination of mass-produced cultural images. Richard Hamilton: Serial Obsessions is the first monographic exhibition to be dedicated solely to Hamilton in Korea. It focuses on series and individual works Hamilton created during a very specific period in time. Although Richard Hamilton remains largely unknown in Asia, it is undeniable that he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artists of the 20th century. Hamilton is known to have influenced both British and American Pop artists such as Andy Warhol and Roy Lichtenstein.
She
Completed in 1961, $he explores the imagery of consumerism and female identity, bringing together advertisements of household appliances with fragmentary images of a model taken from Esquire magazine. At the time, the role of women was being analyzed through a spark that is now identified as the second wave of feminism in the United States. In 1963, Betty Friedan’s The Feminie Mystique became the bestselling analysis of female domestic frustration and it created more social awareness of the situation and experiences of housewives in general. It has sold more than 3 million copies.
053
magazine N | 201712
Attic
In 1994, Richard Hamilton began working on a series of large-scale computer-generated paintings made specifically for a group exhibition at the Anthony d’Offay Gallery in London. To create this collection of works, Hamilton photographed each of the exhibition walls in the D’Offay Gallery and scanned the images into his computer. He then digitally inserted cropped and modified photographs of his home into the scans of the gallery walls. The “frame” of the gallery space represented in each of the paintings is common across the series and connects each panel to the precise environment that bore it. Within this “frame” is an image that appears to be a photorealistic painting but is actually a digitallymanipulated photograph portraying a room in Hamilton’s home in North End (each work is respectively named: Kitchen, Bathroom, Passage, Dining room, Bedroom, Dining room/kitchen and Attic). Toaster
Hamilton made the first of his Toaster works in 1966 in which the object was always the focal point. Through an unequivocal embrace of modernity and its reflective surfaces, Hamilton constructed in Perspex and chromed steel a new rendition of the front side of the Braun HT 2 toasting machine. Hamilton’s close identification with the object was confirmed by his substituting the Braun logo with his own name—which he inscribed in red on the black surface. The immacuately engineered object was transformed into an unlikely icon and Hamilton had reintroduced the language of marketing to his iconic artwork.
054
magazine N | 201712
Swingeing London
Hamilton based this work on a photograph from a newspaper, showing Mick Jagger handcuffed to art dealer Robert Fraser. The photograph appeared following their appearance in court on charges of drug use. The title of this work plays with the term Swinging London against the judge’s insistence on imposing a “swingeing” (also meaning enormous/large) penalty. This occasion typified the moral backlash against the liberalization of the 1960s. Hamilton then made a photo-offset lithograph of the collage. Having identified the specific image of Jagger and Fraser handcuffed together in a police van he needed, he secured a copy of the print from the photographer, and made versions of the same image using different media. The titles are indicative of the process: Swingeing London 67 – poster; Swingeing London 67 – working drawing; Swingeing London 67 – screen print. Hamilton emerged from this immersion with the image and his analysis of how it could be cropped, coloured, and framed to produce variations of interpretation. In a series of paintings, photographic silkscreen based on enlarged print of the original news article photo was combined with different types of paint—oil, acrylic, enamel, and polymer—giving each version a different tonality. In the final work of the series, Swingeing London 67 (f), additional elements were also introduced such as a collaged detail of an autumnal forest and chromed steel handcuffs. Hamilton’s commitment in capturing the reality he was living makes him more than “Daddy Pop” as people have called him. Professor Norbert Lynton has defined Hamilton as having been “passionately responsive to his own time”. Another important aspect to mention is the link between Hamilton and writer James Joyce. Hamilton first started reading Ulysses during his military service with the Royal Engineers. In 1947, he began to study and make illustrations of the text. It has been noted of Hamilton that “what [he] loved so much about Joyce was the mastery of language, the fluency of movement, the polyphony of tongues, codes that released and inspired Hamilton himself to try out some implausible associations in paint” (The Guardian).
055
magazine N | 201712
The Citizen
Hamilton painted The Citizen after watching a TV documentary on the political situation in Northern Ireland. The work touches on representation of politics in the media and portrays a protestor as a Christ-like, cloaked figure that is surrounded by sensuous and decorative swirls of his own excrement. Hamilton wanted to show how Irish Republican Army prisoners systematically created an image of themselves as martyrs. “They lived in excrement and wore blankets and refused to have their hair cut and they created this image. They liked to have a little cross hanging around their necks too,” the artist said.
Unorthodox Rendition
This piece shows Mordechai Vanunu, the Israeli who revealed details of Israel’s nuclear weapons programme to the British press. Vanaunu was abducted by Israeli secret service and was hence imprisoned for 18 years. Hamilton based his painting on a press photograph of Vanunu on his way to trial in Jerusalem: when Vanunu was denied the right to talk to the media, he wrote on the palm of his hand (which he pressed against the car window) that he had been “hijaked in Rome”. Hamilton also addressed the politics of this region in his Maps of Palestine— demonstrating the protests surrounding Israeli occuption of Palestininan territories based on his interpretation of the situation.
056
Views
magazine N | 201712
이원섭 IMS KOREA 대표컨설턴트
시선이 바뀌면 시각도, 세상도 바뀐다 이런 말이 있다.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
라는 개념으로 보면 어두운 색의 막대들
는 화살표를 볼 수 있는 어른들은 매우 드
자” “역경을 거꾸로 하면 경력” “내 힘들다
만 보일 것이다. 그러나 학교 교육을 아직
물다. 자기만의 고착된 인지를 갖고 있기
를 거꾸로 하면 다들 힘내!”
받지 않은 어린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보이
때문이다.
이 말의 의미는 거꾸로, 다르게 보면 정반대의 세상이 보인다는 뜻이다. 우리
는 대로 말한다. 즉 어른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아이들이 많다.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면, 그것은 또 다른 세상을 보게 하는 혜안을 준다. 세
는 너무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 집착하고
아래 그림은 세계 곳곳에 4만4000이
계적인 국제광고제인 칸이 올해로 64
몰두하며 살지는 않는지…. 그리고 그것
넘는 곳에 사무실을 갖추고 우리 가까운
회를 맞는 동안 광고제 타이틀을 2017
이 전부인 양 말을 하고 산다. 내가 아는
곳에서 발송물을 빠르게 접수해 신속하
년처럼 쓴 것은 처음일 것이다. 2016
것이 모든 것인 양 그렇게 관점을 고집해
게 배달하겠다는 페덱스의 로고다. 하지
년에는 ‘2016 Cannes international
거꾸로, 다르게 보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만 저 로고 안에 그들의 철학이 숨겨져 있
advertising festival award’라고 통상의
아래 두 그림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타이틀을 썼지만 올해는 ‘Cannes Lions
윗 그림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지식
우리의 관점으로 파랑과 노랑의 글자만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라
으로 보자면 검정은 글자요 밝은 건 종이
보았지 그들의 익스프레스 철학이 들어있
고 표기했다. 광고라는 직접적(왼쪽의 두 그림들처럼) 표기보다는 그 속에 담긴 보 이지 않는 의미를 강조했다. 이는 4차 산업시대의 광고가 예전처 럼 더 이상 광고에 머물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철학과 뜻을 담으려는 창작물로 변 하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올 해 수상작들은 광고라기보다는 차라리 작품이라 할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예전에도 그렇기는 했지만 판매자의 메시 지를 전달하려는 것보다는, 광고에서 벗 어나 감성에 호소하고 소비자 스스로 느 끼게 하는 작품들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 다. 어떻게 보면 “저 광고가 저 회사와 무 슨 상관이 있지?”라며 다시 한번 돌아보 게 하는, 생각하게 하는 광고들이 많았 다. 그래서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057
magazine N | 201712
필자가 강의를 할 때 자주 활용하는 영상물이 있다. 단어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주제인데 내용은 이렇다. 한 시 각장애인이 거리에서 동냥을 하는데 피켓 에는 다음과 같이 써있다. “저는 시각장애인입니다. 제발 도와 주십시오.” 하지만 지나가는 행인들은 그 에게 아무런 관심도, 도움도 주지 않는다. 이를 지켜보던 숙녀가 지나가다 안타까워 한다. 그녀는 다시 돌아와 그 피켓의 내용 을 고쳐 써주고 간다. 그러자 행인들이 그 에게 돈을 건네고 간다. 시각장애인이 무 슨 상황인가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숙녀 가 다시 돌아온다. 숙녀가 고쳐주고 간 말은 바로 이것이 다. “참 아름다운 날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아름다운 날을 볼 수가 없습니다.” 똑 같은 상황이지만 시각장애인의 시각이 아 니라 돈을 주려는 사람들의 시각으로 바 꾸니 그렇게 변화를 이끈 것이다. 이 영상 의 마지막 결론 자막에 이런 말이 있다. “단어 하나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칸 광
판>이었다. 하지만 그 제목은 책을 구매
을 이끌어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
고제의 주제처럼 크리에이티브가 빛나는
하는 독자에게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한다. 이 책의 저자 탈러 박사는 올해 노
문구가 아닐 수 없다.
소위 말하는 자칭 전문가들의 시각에서
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그 아는 것이 세상을 답답하고 어렵게도 한다. 아는 것
만족스러운 이름이었으니 판매가 부진한 것은 당연했다.
넛지효과의 유명한 사례가 바로 남자 화장실의 파리 한 마리 그림이다. 남자 화
으로부터의 탈출을 못하고서는 시각은 전
1998년 당시 시인 류시화씨는 친구
장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이 파리 그림
혀 바뀔 수가 없다. 내가 보고, 듣고, 아는
가 출간한 이 책이 팔리지 않자 책 이름을
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키폴공항 남
것이 열이라면 내가 아직도 못 보고, 못
<성자가 된 청소부>라고 바꾸어 주었다.
자화장실의 파리 그림 소변기에서 비롯됐
듣고 알지 못하는 것은 수천 수만이다. 그
초판 4000부도 팔리지 않던 책의 내용은
다. 남자들이 소변을 볼 때 주변으로 튀거
런데 이 조금 아는 것 때문에 우리는 오류
그대로 두고 이름 하나만 바꾸었을 뿐인
나 소변기 밖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보
를 너무 많이 저지른다. 그것도 자기의 시
데 100만권이 팔렸다.
려고 여러 노력을 기울였지만 효과가 없었
각에서, 화자(話者)의 시각에서….
‘넛지효과(Nudge Effect)’라는 것이
다. 그러다 궁리해 낸 것이 바로 소변기 안 의 파리 그림이다.
이런 사례도 있다. “제목만 바꾸었을
있다. Nudge의 사전적 의미는 ‘팔꿈치로
뿐인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얘기가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이다. 행
아무리 좋은 문구와 설득에도 별 효
들어맞는 사례다. <성자가 된 청소부>다.
동경제학자 캐스 R. 선스타인(Cass R.
과가 없었으나 소변기 중앙에 파리 그림
이 책이 처음 출간됐을 때 제목은 원작자
Sunstein)과 리처드 탈러(Richard H.
하나 그려 놓은 것만으로 효과는 엄청났
인 바바하리다스라는 저자에 집중해, 출
Thaler)의 공저 <Nudge>는 팔꿈치로 슬
다. 이후 전세계의 수많은 남자 화장실에
판사 사장이나 편집자의 시각에서 아주
쩍 찌르는 것처럼 강제와 지시에 의한 억
파리 그림이 퍼져 나갔고, 이 그림은 한국
만족스러워할 만한 <바바하리다스의 칠
압보다는 부드러운 유도로 특정한 행동
까지 진출했다.
058
Views
magazine N | 201712
김희봉 교육공학박사 현대자동차그룹 인재개발원
대인관계 잘 안될 때, 당신은 어떤 방법을 택할 것인가? 를 기대한다면 낮은 수준의 방법이 아니 라 높은 수준의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높은 수준이란 아무나 할 수 없는 수준 을 말한다.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은 어 렵기 때문이 아니다. 익숙하지 않으며, 노 력도 요하기 때문이다. 높은 수준의 방법 은 수많은 책과 교육을 통해 제시되고 있 으며 독자들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를 다시 강 조한다면 먼저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지 식이나 경험, 상대방이 그동안 속해 왔던 “이게 이해가 안 돼?” “내가 언제 그렇게
나 말을 잘 따를까? 혹은 화를 내면 상황
문화 등이 자신과 다르다는 점에 대해 계
말했어?” “도대체 말귀를 못 알아먹어.”
이 좋아질까? 그다지 생각해 보지 않아
속 인식하고 인정해야 한다. 이는 개인별
이와 같은 말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도 독자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화를
패러다임의 차이가 있는 것을 이해하는
주로 상대방에게 화가 났을 때 하는 말이
내더라도 달라지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는데
것을. 그리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달라
이러한 말들은 누군가로부터 들어본 기
지는 척 한다는 것뿐이라는 것을.
다음으로는 자기중심적 관점과 사고, 접근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기중심적
이렇게 잘 알고 있으면서도 화를 내
인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이 상대방의 변
하나는 자신의 과거 성공경험을 고집하
상대방에게 화를 내는 경우는 다양
화를 원하거나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도
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의 성공경험이
하겠지만 보통은 자신의 생각이나 말을
나 감정을 전할 때 낮은 수준의 방법을
현재나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는
따르지 않아 몹시 못마땅하거나 언짢은
선택하기 때문이다.
생각은 상대방과의 관계뿐 아니라 스스
억은 있지만 자신이 했던 기억은 거의 없 다는 것이다. 이 점은 신기할 따름이다.
로에게도 매우 위험천만하다.
때일 것이다. 잘 알고 있겠지만 화를 내면
낮은 수준의 방법은 누구나 할 수 있
말뿐만이 아니라 얼굴 표정, 목소리, 행
다. 그래서 쉽고 편하다. 상대방이 처한
최근 자신이 가족, 친구, 직장동료,
동 등 많은 것이 평소의 자신과는 달라진
여러 상황이나 측면은 물론 드러나지 않
후배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윗사람을
다. 목소리가 커지기도 하고 얼굴 표정이
은 것까지 생각해서 말하거나 행동하는
대했던 상황을 떠올려 보자. 당신의 수준
바뀌기도 한다. 심한 경우 주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 생각나는 대로 말
은 어떠했는가? 당신은 어떤 수준에 있는
사물을 훼손하기도 한다.
하고 행동하니 얼마나 쉽고 편한가? 그러
방법을 선택했는가? 상대방을 대할 때
나 쉽고 편한 만큼 효과도 없다.
높은 수준의 방법을 선택하면 당신의 수
그렇다고 화를 내면 상대방이 달라질 까? 화를 내면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이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상대방의 변화
준도 높아진다.
Perspectives
060
magazine N | 201712
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요녕성 음식점 주인의 ‘2만 그릇의 감동’
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원불교 청운회 전 회장
하늘은 짓지 않은 복을 내리지 않는다고 한다. 짓지
원, 군인 그리고 70세 이상 노인 등에게 무료로 음
않은 죄를 받지 않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식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인과의 법칙이다. 그런데 은
그 순씨가 공짜로 건넨 음식만 자그마치 2만 그
연중에 짓지도 않은 큰 복을 자꾸 기다리는 경향이
릇이 넘는다고 한다. 가게 바깥에는 아예 “환경미
있다. 참 어리석은 생각이다.
화원, 군인, 70세 이상 노인 분들에게 음식을 공짜
10월 19일, 중국의 <료녕신문>에 이런 보도가
로 드립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어려운 집안
나왔다. 한 음식점 업주가 환경미화원 등에게 2년
에서 주위 사람들 도움으로 자라온 순씨는 형편이
간 무료로 음식을 제공해온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나아지면 받은 만큼 자기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
훈훈한 감동을 준 내용이다.
겠다고 생각했다.
구이저우(貴州)성 쭌이(遵義)시에서 두부 음식
순씨는 “미화원분들은 아침 일찍 나와 점심에
점을 운영하는 ‘순 쥐엔’씨가 2015년부터 환경미화
야 들어가신다”며 “그들에게 따뜻한 아침식사를 제
061
magazine N | 201712
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군인들도 일하느라
보시는 중생이 공덕을 쌓는 최고의 방법이다.
고생하고, 노인 분들에게도 힘이 되어주고 싶어서
그렇다고 무조건 많이 베푼다고 공덕이 되는 것은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순씨는 “돈을 얼마
아니다. 주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주거나, 받을 자격
나 버는지는 중요치 않다. 보다 많은 이들에게 친절
이 없는데 욕심껏 받아 챙기면 이는 도리어 죄악이
을 베풀고 싶고, 받은 만큼 은혜를 갚고 싶다”고 덧
될 뿐이다.
붙였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주는 사람, 받는 사람, 그리
나누는 기쁨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 분이다. <비
고 주고받는 물건이 다 깨끗해야 한다는 삼륜청정
야사문경>(毘耶恣問經) ‘상편’에 석존(釋尊)께서 여
(三輪淸淨)을 강조해왔다. 주는 사람이 깨끗해야
러 제자들과 함께 중부 인도의 아유쟈국의 고오가
한다는 것은 어떤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안
강기슭에 계셨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500명의 선
된다는 것이다. 반대급부를 기대하다가 나중에 돌
인(仙人)을 거느린 ‘비야샤’라는 선인이 제자들을
아오는 것이 없어 섭섭해 할 바에는 차라리 안주느
데리고 석존을 찾아와서 예배를 드린 다음 ‘보시(布
니만 못한 것이다.
施)의 공덕’에 대해 물었다.
받는 사람이 깨끗해야 한다는 것은 받을 자격 도 없이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조건
“세존님을 여기서 뵈옵는 것은 저희들의 크나큰 기쁨입니
욕심을 내면 반드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다. 보시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요? 그리고 무슨
주고받는 물건이 깨끗해야 한다는 것은 뇌물을 주
까닭으로 보시를 하는지요? 또한 시주(施主)란 어떤 사람
는 행위나 훔친 것을 나누는 행위는 보시가 아니라
을 말하는 것인지요? 또 보시의 공덕은 죽은 다음에도 그
는 것이다.
사람에게 복덕을 준다고 하는데,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
보시를 행하는 데에도 세 가지 목적이 있다.
는 것인지요?
첫째, 자신의 마음을 항복받는 것이다. 열심히 보시 행을 실천하면 자신의 마음을 항복받고 욕심
“잘 들어 보아라. 마음에 믿음을 가지고 베푸는 것을 보시
을 버려 마음을 비울 수 있게 된다. 몸과 마음을 다
라고 한다.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또 타인을 경시하지
해 보시를 하면 본래의 자신이 점차적으로 드러난
않으며 행하는 것을 참다운 보시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
다. 이렇게 중생이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아온 습(習)
이 복덕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마음에 믿는 마음
과 인식을 보시를 통하여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을 가지고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염원(念願)을 품고 재물
둘째, 보시 행을 통하여 공덕을 쌓는 것이다. 현
을 베푼다면 이런 사람을 참다운 시주자라고 하는 것이다.
재의 괴로움은 대부분 자신의 과거 행동에 대한 결
보시에는 법을 풀어서 들려주는 법시(法施), 사람이 살아
과로 받는 것이다. 그동안 각자가 지녔던 이기적인
가는 의식주를 베풀어 주는 자생시(資生施), 사람이 사는
마음에 따라 행한 것들이 모두 갚아야 할 빚이 된
옥택시(屋宅施), 등명시(燈明施), 향시(香施) 등 다섯 가지
다. 그래서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빚도 갚고 미래의
가 있다. 이들 다섯 가지의 보시를 만족하게 하는 사람을
편안한 삶을 위해서는 공덕을 쌓아야 한다.
시주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보시자는 그 과보(果報)를 절대로 잃지 않는 법이다.”
셋째, 삶을 풍요롭게 영위하기 위해 공덕을 쌓 는 것이다. 물질적으로는 얻는 것이 없어도 정성이 담긴 마음을 주고받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깨끗한 보시라 하심은 어떠한 보시를 말씀하시는 것입니 까?”
우주의 진리는 원래 생멸(生滅)이 없이 길이 돌 고 도는 것, 가는 것이 오는 것이 되고 오는 것이 곧 가는 것이 된다.
“그것은 사람이 생명을 가진 모든 생물에 대하여 자심(慈
그러므로 주는 사람이 곧 받는 사람이 되고 받
心), 상심(常心) 희심(喜心)의 세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재물
는 사람이 곧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만
을 베풀 때 이것을 깨끗한 보시라고 하는 것이다.”
고에 변함이 없는 상도(常道)다.
Perspectives
062
magazine N | 201712
박영순의 커피인문학
7대 커피 생산국 인도에서 싹트는 ‘커피 르네상스’ 인도(India)를 수식하는 용어는 참으로 많다. 그 중
커피가 이처럼 많이 생산됨에도 불구하고,
하나가 ‘커리(Curry)의 나라’다. 커리는 특정한 향
사실 인도의 대표적인 기호음료라고 하면 ‘짜이
신료를 지칭하는 게 아니다. 여러 종류의 향신료를
(Chai)’다. 짜이는 홍차와 우유, 향신료를 섞어 끓
혼합한 마살라(Masala)가 들어간 요리를 총칭하
인 음료로서 ‘밀크 차(Milk tea)’ 또는 ‘향신료 차
는 용어다. 기후가 무더운 데다가 습도가 높아 음식
(Spiced chai)’라고도 불린다. 짜이는 마치 인도 특
이 잘 부패하는 바람에 향신료가 발달했는데, 인도
유의 신분제도인 카스트(Caste) 제도마저 무색하
사람들은 아주 먼 옛날인 고대부터 커리를 즐겨온
게 만들겠다는 듯 전 계층이 자유롭게 즐기는 대중
것으로 추정된다.
음료로 깊이 뿌리를 내렸다.
뼈 속 깊이 맛을 추구하는 습관이 배인 덕분일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 젊은 중산층을
까? 인도 커피는 ‘몬순 커피(Monsooned Coffee)’라
중심으로 커피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 움직임은
고 해서 특이한 맛을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커피
1971년 미국 시애틀에서 문을 연 스타벅스가 팽창
역사에서 인도는 ‘아랍에서 태어난 커피를 세상 밖
하면서 이끌어낸 세계적 현상의 하나였다. 인도에
으로 꺼내온 주역’이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서는 1996년 8월 ‘카페 커피데이(Cafè Coffee Day)’
세계 7대 커피 생산국으로 손꼽히는 인도 커피 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2016년 매장 수가 2000개에 육박한 카페 커피
인도는 2016년말 기준으로 인구가 13억명을 넘
데이는 2000년대 초반 ‘매장 하루 방문객 100만명
어섰다. 면적은 남한의 33배, 한반도의 15배다. 국
돌파’ ‘매주 약 4개 매장 오픈’ 등 기록을 만들어가
토가 북위 8도에서 37도까지 걸쳐 있어 열대 몬순,
며 인도 차문화를 커피로 바꾸는 견인차 역할을 한
온대, 고산 등 기후대가 다양하다. 커피나무는 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의 무역진흥원인 코트
도가 24도 이하인 지역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인도
라(KOTRA)에 따르면 2001~2010년 10년간 인도
의 커피 산지는 주로 남부에 펼쳐져 있다. 그 중에
의 커피시장은 50% 증가했다.
서도 인도양에 접한 지역이 고도가 높아 품질이 좋 은 아라비카 품종이 생산된다.
박영순 경민대 호텔외식조리학 겸임교수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
라는 토종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2012년 10월 스타벅스가 인도에 매장을 낸 뒤 커피시장의 팽창속도는 더욱 가속화됐다. 국제커
국제커피기구(I nt er n at ion a l C offe e
피기구가 집계한 결과, 인도의 커피소비량은 2013
Organization)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인도에서
년 12만톤을 기록한 이후 매년 평균 4%씩 성장해
생산된 커피는 31만9980톤으로 전 세계 생산량
2016년에는 13만 5000톤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것
(923만2140톤)의 3.5% 가량을 차지했다. 생산규모
은 시작에 불과하다. 한국의 커피소비량은 2016년
는 60여 커피생산국 가운데 브라질, 베트남, 콜롬
12만 9660톤으로 인도와 비슷했다. 인도의 인구수
비아, 인도네시아, 코트디부아르, 온두라스에 이어
가 한국의 25배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도
7번째다.
커피시장의 성장 잠재력을 가늠해볼 수 있다.
063
magazine N | 201712
커피비평가협회(CCA)
자연 조건이 와인 맛을 결정한다는 테루아(Terroir) 개념을 커피에 적용할 때, 가장 이해하기 쉬운 예가 인도 커피일 것이다. 인도 마이소르 지역 의 커피 밭에서는 커피나무와 후추나무 넝쿨이 함께 자란다. 이 때문에 인도에서 생산되는 커피에서 후추향이 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Perspectives
magazine N | 201712
을 제외한 전역을 통일하고 전성기를 열었다. 아소
커피비평가협회(CCA)
064
카왕이 불교에 귀하면서 당시 북인도의 지방종교에 머물던 불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성장하는 계기를 연 것이다. 마우리아제국이 기원전 2세기 멸망하면서 인도 는 여러 나라로 다시 분열됐다. 이 때 그리스인들이 인도 서북부 지역을 침탈하면서 그리스 문화가 유 입된다. 이로 인해 불교 미술이 그리스·로마 계통 의 미술과 혼합되면서 간다라(Gandhara) 미술이 탄생한다. 기원후 78년 쿠샨족 카니슈카(Kanishka) 왕 이 그리스 세력을 몰아내고 서쪽으로는 이란, 동쪽 으로는 중국의 한나라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 인도 마이소르 지역의 커피 밭에서 함께 자라고 있는 녹색의 후추열매 와 빨갛게 여문 커피체리
면서 ‘쿠샨왕조(Kushan Dynasty) 시대’를 열었다.
흔히 커피가 차를 즐겨 마시던 인도 사람들의
(Sasan)에 의해 이내 멸망하고, 인도는 다시 여러
입맛을 바꾸고 있다고 말하지만, 잘 따져보면 틀린
그러나 쿠샨왕조는 226년 이란에서 생겨난 사산 소국으로 분열된 시기로 들어갔다.
말이다. 인도 사람들이 짜이를 마시기 시작한 것보
이후 100년 가량이 흘러 찬드라굽타 1세
다 거의 200년 앞서 커피음용문화가 인도에 퍼져
(Chandragupta Ⅰ, 재위 AD 320~335)가 등장
나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도에서 커피의 음용문
해 굽타왕조(Gupta Dynasty, 380~606)를 세
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을 ‘커피의 르네상스’
운 뒤, 찬드라굽타 2세(재위 380~413)까지 전성
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 점을 이해하기 위
기를 이룬다, 이 시기 인도는 불교, 힌두교, 자이나
해선, 인도의 역사를 간략하게 짚어봐야 한다.
교(Jainism) 등이 융성하고 부흥해 문화적 르네상
인도의 뿌리는 기원전 2500년경부터 거
스를 구가한다. 하지만 찬드라굽타 2세때부터 중
의 10 0 0년간 번성했던 인더스문명(I ndu s
앙아시아의 유목민인 훈족(Hun)의 침입이 시작됐
Civilization)이다. 기원전 1500년 무렵부터 중앙
고, 굽타왕조는 결국 606년 멸망했다. 인도는 이후
아시아에 살던 인도 게르만 어족계의 아리아인
900여년 간 또다시 여러 개의 소국으로 갈려진 분
(Aryan)이 비옥한 갠지스강 유역으로 이동하면서
열의 시기를 거쳐야만 했다.
인도에서 ‘베다(Vedas) 시대’를 연다. 아리아인들은
7세기 아라비아의 메카에서 이슬람교가 창시
이 때 원주민들과 달리 자신의 문화를 기록으로 남
된 이후, 인도는 운명적으로 이슬람 세력의 영향
겼다. 이들이 산스크리트어로 작성한 ‘베다’는 ‘지식’
을 받게 된다. 8세기 이슬람세력이 지중해와 중국
을 뜻하는 것으로, 훗날 브라만교의 성전을 지칭하
에 진출하기 위해 해상무역에 나서면서 이미 바닷
는 용어로 활용된다. 인도의 역사는 베다의 출현과
길을 누비던 인도와 자주 마찰을 빚었다. 그러다가
함께 시작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10세기에 들어서 이슬람세력이 인도에 인접한 아프
기원전 4세기에는 마우리아왕조(Maurya
가니스탄에 투르크계의 가즈나 왕조(Ghaznavid
dynasty, BC 317~180)의 시조인 찬드라굽타
dynasty, 962~1186)를 세웠다. 이에 따라 이슬람
(Chandragupta Maurya)가 알렉산드로스대왕
세력의 인도 침입이 잦아졌는데, 특히 마흐무드 왕
이 원정을 끝내고 철수한 틈을 타 군사를 일으켜
(재위 998~1030) 때는 17차례 인도를 공격해 힌두
인도 최초의 통일제국을 세운다. 그의 손자인 아소
교 신전을 파괴하고 재물을 빼앗아 갔다.
카(Asoka, ?~BC 232) 왕은 인도 남단 타밀지역
인도는 이런 시련을 겪으면서도 힌두왕국끼리
065
magazine N | 201712
내분이 잦아 공동대응을 펼치지 못했다. 점차 북인
사람들이 처음부터 영국인처럼 차 문화를 좋아했
도가 이슬람 세력에 넘어갔고, 불교 유적도 대부분
던 것은 아니다. 지배층인 영국은 지속적인 차 생산
이 파괴되면서 불교 세력도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
을 위해 인도사람들에게 차 문화를 퍼트렸다. 공장
어 버렸다.
과 광산 등 노동자들에게 티타임(Tea time)을 제공
13세기에 들어서 이슬람세력은 델리를 손에 넣
하고, 직장에서 하루에 서너 차례 이상 커피를 제
으면서 인도를 북부에서부터 지배하기 시작했다.
공하자,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길거리에서도 짜이를
그러나 데칸고원 이남의 남인도는 16세기 무굴제국
파는 ‘짜이왈라’가 등장했다. 짜이를 즐기는 문화가
이 등장하기 전까지 이슬람에 저항하며 힌두교를
인도에서는 깊게 뿌리내려 있지만, 따지고 보면 역
믿는 여러 왕조가 영토를 나누어 다스렸다. 그러나
사가 그리 길지 않다.
힌두교세력의 저항은 오래가지 못했다. 카스트제
반면 인도에 커피가 도착한 시기는 이보다 2세
도의 신분차별에 신음하던 하층민들이 “알라 앞에
기나 빠르고 사연도 드라마틱하다. 인도 사람들은
서 모두 평등하다”는 이슬람의 교리에 끌려 이슬람
이슬람 신비주의자였던 바바 부단(Baba Budan)이
세력을 반긴 것도 인도의 운명에 치명적으로 작용
등장하는 ‘커피기원설’을 자랑한다. 바바 부단은 사
하게 됐다.
우디아라미아의 메카로 순례를 다녀오던 길에 커피
1526년, 몽골 티무르의 5대손 바부르가 북인도
씨앗 일곱 알을 몸 속에 숨겨 온다. 이 시기를 두고
의 중심지인 델리와 아그라를 점령하면서 이슬람왕
는 1600년경이라는 주장과 1695년이라는 주장이
조인 ‘무굴제국(Mughal Empire)’을 만들었다. 무굴
맞서고 있지만, 17세기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당시
제국은 이후 1857년 영국이 세포이(Sepoy)의 항쟁
메카와 예멘을 지배하던 오스만제국은 큰 부를 안
을 진압하고 인도를 식민지배하기 전까지 330여년
겨주는 커피 씨앗이 아라비아 권역 밖으로 나가는
간 유지됐다. 인도는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
것을 엄격하게 금했다. 커피 생두가 외부로 나가야
는데, 이 때 건국 지도자들의 견해 차이로 영토가
하는 경우에는 삶거나 볶는 방식으로 번식력을 없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나뉘어 독립하게 됐다.
앴다. 이런 상황에서 바바 부단이 순례길에 예멘에 들려 산지에서 신선한 커피 생두를 몰래 인도로 가
‘짜이’보다 200년 먼저 인도에 도착한 커피
져간 것은 목숨을 건 일이었다.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이슬람교 등 종교적으
우리에게 이 대목은 고려 말의 문신 문익점
로 유난히 굴곡이 심했던 인도의 역사에서, 커피는
(1329~1400년)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숨겨 들여
17세기 이슬람왕조인 무굴제국 때 전파됐다. 반면
온 역사적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따라서 한국의
짜이는 이보다 200년 늦은 1857년 영국의 지배를
커피애호가들에게 바바 부단은 ‘인도판 문익점 선
받던 시기에 홍차문화의 영향을 받아 비로소 인도
생’으로 불린다. 바바 부단은 커피 씨앗을 카르나타
내부에 퍼지게 됐다. 따라서 인도에서 짜이보다 커
카(Karnataka)의 마이소르(Mysore) 근처에 있는
피 음용의 역사가 더 깊다.
찬드라기리 힐(Chandragiri Hill)에 심어 재배하는
짜이 문화는 북인도에서 융성했다. 영국은 중
데 성공했다. 해발고도가 1800여m에 달하는 고지
국에 의지하지 않고 차를 조달하기 위해 노력을 기
대로서, 지금은 ‘바바 부단 기리(Baba Budan Giri)’
울인 끝에 인도 동북부 아삼지방에 대규모 차 생산
라고 불리는 곳이다. ‘기리(Giri)’는 ‘언덕’이라는 뜻
지를 조성할 수 있었다. 덕분에 영국은 차와 관련해
이다. 바바 부단에 의해 아랍의 커피 독점은 막을
90%에 달했던 중국무역의존도를 인도를 강점한
내리고, 커피는 더 넓은 지역에서 경작되기 시작했
뒤 10%까지 낮출 수 있었다.
다. 인도를 식민지배하던 영국과 네덜란드 상인들
인도에서 차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저급한 찻잎 이 많이 남아돌게 됐고, 이를 인도인들의 입맛에 맞 도록 우유와 향신료를 섞어 만든 것이 짜이다. 인도
이 커피를 대량 본국으로 보내면서 인도는 거대한 커피수출국으로 부상했다. 이 즈음 인도의 남동쪽에 있는 ‘실론섬(스리랑
Perspectives
066
magazine N | 201712
커피비평가협회(CCA)
인도 현지 교육생과 추출된 커피를 살피고 있는 필자
카)’은 네덜란드의 식민통치(1658~1796년)를 받고
향미의 측면에서도 인도커피는 기분 좋은 향
있었는데, 바바 부단과는 다른 경로로 커피나무가
신료 느낌과 함께 달고 순해서 매력적이라는 평
유입돼 재배됐다. 네덜란드는 1616년 직물상인 피
가를 받는다. 인도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커피
테르 반 데르 부뢰크(Pieter van der Broeck)가 예
를 정향(Clove), 시나몬(Cinnamon), 카르다몸
멘에서 묘목을 몰래 암스테르담으로 가져가 키웠
(Cardamom)과 함께 나란히 재배한다. 이 때문에
는데, 여기서 키운 커피를 실론에 심었던 것이다.
인도사람들은 커피가 특별한 향미를 지닌다고 말
1796년 영국이 실론섬을 차지한 뒤 커피를 대량 재
하는 걸 좋아한다. 또 많은 인도커피들이 농약 없
배하면서, 실론은 1860년대에는 세계 커피생산량
이 재배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보면 토양의 질을
의 50%를 차지하는 생산지로 부상했다. 하지만
향상시키고 숲을 보호하는데 유익하다.
1869년 실론에서 커피 녹병(Leaf Rust)이 창궐하 면서 커피나무가 전멸했다. 그 후로 실론은 차나무 를 재배해 차의 왕국이 됐다.
몬순드 커피가 탄생한 배경
18세기부터 인도에서 커피가 대량으로 생산되
인도커피는 대부분 남부지역에서 나온다. 카르
자, 영국의 동인도회사 소속 선박들은 이를 유럽에
나타카(Karnataka), 케랄라(Kerala), 타밀 나두
팔면서 큰돈을 챙겼다. 당시의 선박들은 인도 남부
(Tamil Nadu)가 대표적인 커피생산지다. 이들 지
에서 수확한 커피를 싣고 아프리카 최남단의 희망
역은 수풀이 무성하고 우기가 규칙적이며, 높은 산
봉을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항해는 6개월 가량 소
맥이 지나는 곳이어서 커피가 자라기에 최적의 장
요됐다.
소로 손꼽힌다.
1846년 수에즈운하가 생기기 전까지 이런 상황
인도커피의 절대다수인 95%는 그늘에서 자
은 적어도 150년 이상 계속됐다. 배에 실려 유럽으
라는 덕분에 열매가 천천히 성숙돼 자연적인 당
로 가던 커피 생두는 몬순 기후의 고온 다습한 해
(Natural sugars)의 함량이 높아지고, 따라서 향
풍의 영향을 받아 배에서 자연스레 숙성됐다. 유럽
미도 더욱 풍성해진다. 그늘재배 커피(Shade-
사람들이 인도커피를 마실 쯤에는 숙성된 향미가
grown coffee)는 자연에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하
인상적이었다. 유럽인들은 인도커피라고 하면 부드
기 때문에 친환경 커피(Eco-friendly coffee)를 찾
러우면서도 복합미가 넘쳐나는 숙성커피, 즉 몬순
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
커피를 떠올렸다.
067
magazine N | 201712
그러나 수에즈운하가 개통된 뒤에는 선박으로 싣고 가는 시간이 절반 이하로 짧아지면서 항해 동
는 노란색으로 변하고 독특한 향미와 진한 맛을 가 지게 된다.
안 부여되는 숙성의 맛이 사라졌다. 인도커피를 좋
커피에서 나는 짚(Straw) 냄새 역시 인도 몬순
아하던 유럽 소비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커피 맛
커피의 특징이다. 생두를 몬순의 습기에 2~3개월
이 달라졌다는 불평이었다. 이에 영국은 인도양에
노출시키면 금빛을 띠면서 크기가 커지는데, 이 과
접한 인도 남부의 말라바(Malabar) 지역에서 수확
정에서 생두는 짚의 단향(Sweet smell of straw)을
한 커피를 인위적으로 숙성시켰다. 커피 생두가 오
얻게 된다. 짚냄새가 고르게 분포된 몬순커피는 품
랜 항해에서 얻게 되는 향미를 습한 남서 계절풍,
질이 탁월하고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즉 몬순(Monsoon)에 노출시킴으로써 비슷하게 만 들어낸 것이다.
영국의 커피전문가인 스티브 막타토니아는 “몬 수닝 가공법은 커피에 깊은 바디감과 촉감을 부여 하고, 미세한 산미와 강한 향신료 향기가 어우러져 풍성한 향미를 불러 일으킨다”면서 “달콤하고 맛
고에서 습한 환경에 커피 열매를 노출시키는 과정
좋은 한 잔의 몬순 커피에서 시나몬과 코코넛크림
이다. 이렇게 하면 진녹색이던 생두는 황금빛을 띠
의 느낌을 찾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커피비평가협회(CCA)
이 방식을 ‘몬수닝(Monsooning)’이라고 한다. 몬수닝은 계절풍이라는 의미로, 환기가 잘 되는 창
커피비평가협회(CCA) 트레이너가 금색빛을 띄는 인도 몬순커피(오른쪽)와 숙성전의 커피 생두를 살펴보면서 향미를 비교 하고 있다.
Perspectives
068
magazine N | 201712
박명윤의 웰빙 100세
돈과 명예보다 중요한 ‘삶의 보람’ 106세로 타계한 ‘평생 현역 의사’ 히노하라 박사
105.9세를 일기로 별세한 히노하라 박사는 1911년 10월 4일 야마구치(山口)현에서 목사의 아 들로 태어났다. 1937년에 교토(京都)대학 의학 부를 졸업한 뒤 성누가국제병원(聖路加國際病 院, St. Luke’s International Hospital) 내과 의로 의사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내과과장, 병원 장 등을 역임한 후 1996년부터는 명예병원장으로 활동했다. 또한 신노인회(Society of New Elder Citizens) 회장, 라이프 플래닝센터 이사장 등을 맡아 활동하였다. 히노하라 선생이 전 생애를 바치다시피 근무 한 성누가국제병원은 미국 루돌프 토이슬러 박사 가 개설한 병원으로 112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 며, 6층 건물 옥상에 십자가(十字架)가 세워져 있 고 현관에 들어서면 예배당이 있다. 누가(Luke)는 의사이며,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성인(聖人)이다. 히노하라 박사의 신장은 162cm, 체중 63kg, BMI 24.2이며, 하루 섭취 열량을 1300kcal로 제 히노하라 박사의 마지막 저서 ‘살아가는 당신에게ʼ
박명윤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아시아엔> 보건영양 담당 논설위원
한하는 소식(小食)과 규칙적인 운동을 실천했다. 하루 일과를 살펴보면 오전 6시30분 기상, 오전 8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평생 현역’ 의사인 히노
시 출근 후 각종 회의, 오후에는 강연 및 특별 외
하라 시게아키(日野原重明) 박사가 지난 7월 18일
래진료, 저녁 6~9시 귀가, 밤 11시~새벽 2시까지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그는 둘째 아들 부부가 지
서류 정리나 글쓰기를 한다. 수면시간은 약 5시간
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었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
이다. 국내외에서 연간 100회 이상 강연을 하며, 2
도했다. 그는 “나이가 들어도 창조하는 일을 잊지
시간 정도는 꼿꼿이 서서 강의를 했다.
말아야 한다. 내 인생에 은퇴는 없다. 죽을 때까지
히노하라 박사는 일본에 서양의학을 본격적
현역으로 뛸 것이다”라고 말했다. 100세가 넘어서
으로 도입한 의료계 거물로 ‘생활습관병’(生活習
도 병원에서 진료를 계속하면서 환자의 마음까지
慣病, life-style related disease)이라는 개념
보듬어준 히노하라 박사의 죽음에 일본 사회가 존
을 만드는 등 예방의학(豫防醫學, preventive
경 어린 애도를 보냈다.
medicine) 발전을 이끌었다. 그는 일본 제55대 총
069
magazine N | 201712
리 이시바시 단잔(石橋諶山)의 주치의를 맡을 정
스가 905세, 최장수자인 므두셀라(Methuselah)
도로 실력과 명성을 인정받은 인물이다.
가 969세까지 살았다. 그러나 바로 그 창세기 6장
히노하라 박사는 일본 적군파가 비행기를 납
3절에 인간의 한계수명을 120세로 규정해 두었다.
치해서 북한으로 갔던 ‘요도호 사건’을 직접 겪었
즉 “생명을 주는 나의 영이 사람 속에 영원히
다. 1970년 3월 31일부터 4일간 북한에 억류됐다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살과 피를 지닌 육
가 서울 김포공항에 내려 자유의 땅을 밟았을 때
체요, 그들의 날은 120년”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셨
느꼈던 감격을 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다. 한편 구약성경 시편(Psalms) 90편 10절에는
죽었던 삶을 새로 산다는 마음가짐으로 다른 사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
람들을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했다.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빠르게 지나가
히노하라 박사가 지난 7월에 별세한 후 그의
니, 마치 날아가는 것 같다”고 기술되어 있다.
마지막 말을 모은 책 <살아가는 당신에게>가 9월
현대에 와서 노화·장수학자들은 현대인의 성
발간되었으며, 발간 직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책
장 발육이 24~25세에 완성되며 그 발육기간의 5
에서 그는 유언을 남기는 것처럼 삶과 죽음, 고통
배가 인간의 한계수명이라는 것을 근거로 하여 인
과 행복, 가족과 우정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간은 120~125세까지는 살 수 있다고 보는 견해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이 책은 2016년 말부터 2017
지배적이다. 또한 70~80세는 요즘 선진국의 평균
년 1월까지 11회에 걸쳐 20시간 이상 이야기한 내
수명 수치로 2000년 전 성경 말씀과 현대 과학연
용을 정리한 것이다.
구가 거의 일치하고 있다.
이 책은 “죽음이 무섭지 않느냐?”는 질문으로
최근 발표된 인구통계 보고서에 의하면 2012
시작되며, 그는 “듣는 것만으로 다리가 떨릴 정도
년 기준으로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1세이지만 건
로 무섭다”고 솔직하게 답한다. 하지만 이어 “죽음
강수명 즉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정상적인
과 생명은 나눌 수 없는 것이며 도망갈 수도 없다.
생활을 하며 사는 기간은 73년에 불과하다.
단지 부여 받은 사명을 완주하려고 노력할 뿐”이라
또한 나이가 들수록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고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그는 마지막 인터뷰에서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비율은 점점 낮아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남은 인생의 여정을 이
진다. 예를 들면, 80~84세 연령대는 80% 이하,
어가고 싶다”고 다짐한 6개월 후에 세상을 떠났다.
85세가 넘으면 60% 이하로 떨어진다. 결국 혼자
그는 “나이를 먹는 것은 새로운 자신을 만나
설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는 축복이다. 최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지금
일본의 히노하라 박사는 2007년과 2010년
까지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고 말한 바 있
두 차례에 서울에서 강연을 하였다. 첫번째 강연
다. 히노하라 박사는 갑상선암(thyroid cancer)으
은 제20차 세계노년학·노인의학대회에 즈음하여
로 목소리를 잃었다가 일본인 의료진의 도움으로
2007년 10월 1일 오후 2시 서울 잠실 롯데호텔 그
성대(聲帶) 복원수술을 받은 뒤 목소리를 되찾은
랜드볼룸에서 ‘빛나게 산다-자신의 살아가는 방
한국인 성악가 배재철 테너를 자신의 진정한 친구
법을 어떻게 디자인 하느냐’라는 제목으로 강연
로 꼽았다. 그는 102세 때 배씨의 열창을 접하고
했다. 그는 “인생은 자신이 디자인해서 사는 것임
“노래로 신(神)의 존재를 느낀 것은 처음”이라고 감
을 인식하고, 생활방법·교제 상대·살아가는 보람
동했다. 이후 열성적인 후원자로 변신해 전국을 돌
(Quality of Life) 등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며 10회 이상 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두 번째 강연회는 이길녀 가천길재단 이사장
사람이 건강하다면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과 박상철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의 초청
인간의 수명을 성서적 차원에서 보면 구약전서 창
으로 한국을 찾았다. 그는 2010년 10월 5일 롯
세기(Genesis)에 아담은 930세, 셋이 912세, 에노
데호텔에서 ‘늙지 않고 잘 사는 법, 행복한 인생
070
Perspectives
magazine N | 201712
AP
2016년 7월 도쿄에서 열린 배재철 테너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 히노하라 박사(왼쪽)와 미치코 일본 왕비
을 위한 나의 메시지’를 주제로 열렸다. 일본이 직
인’이라는 단어를 싫어하여 65세에서 74세까지의
면한 저출산 고령화문제, 100세 이상 장수자, 노
노인을 ‘전기(前期) 고령자(高齡者)’, 그리고 75세
화를 촉진하는 요인과 향후 연구영역, 노화방
부터는 ‘후기(後期) 고령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히
지의학(anti-aging medicine), 인간의 영혼성
노하라 박사는 75세 이상을 ‘신노인’이라고 부르고
(spirituality) 등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신노인회’(新老人會)를 조직하여 회장직을 맡았다.
가천의과학대학교는 히노하라 이사장에게 명
신노인회의 기본이념은 사랑·인내·창조에 두고
예 이학박사학위를 수여하고, ‘히노하라 건강법-
있다. 75세 이상 고령자 중 자립할 수 있는 노인들
행복한 100세 장수를 위하여’라는 주제로 특별 강
이 회원으로 가입한다.
연회를 열었다. 강연회에서 히노하라 박사는 건강
히노하라 박사는 어릴 때 운동을 좋아했으나
하고 행복하게 노년(老年)을 보내는 비결로 △사랑
열 살 때 신장염(腎臟炎)을 앓아 운동을 포기했
하고 사랑받자 △도전을 시작하자 △인내하자 등
다. 의과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결핵(結核)에 걸려
세 가지 실천방안을 제시했다.
몇 년간 요양을 했기 때문에 의사를 못 할 것이라
히노하라 박사는 <100세 시대를 살아갈 비결>
고 남들은 말하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하고
<新老人으로 산다> <인생의 四季> <어떻게 잘 살
행동하기에 따라 건강이 달라지고 체질도 변했다.
고 어떻게 잘 늙고 어떻게 잘 죽는냐> <삶이 즐거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선 ‘잘 먹기’ ‘잘 움
워지는 15가지 습관> <행복한 우연> 등 250권이
직이기’ ‘잘 쉬기’를 실천했다. 히노하라 박사는 장
넘는 저서를 출판했다. 그 중 150여권이 베스트셀
수 비결을 ‘신체건강’보다 ‘정신건강’에서 찾아야 한
러라고 한다. 그는 음악요법(音樂療法)의 창시자이
다고 강조하며, 복식호흡, 음악 감상, 명상, 일기와
며, 그의 뮤지컬이 여러 곳에서 공연됐다.
편지 쓰기 등을 권장한다.
히노하라 박사는 신노인(新老人), 생활습관병
당뇨병과 같은 성인병은 잘못된 생활습관에서
등 여러 신조어(新造語)를 만들었다. 일본에서 ‘노
비롯되므로 음식은 검소하게 먹는 것이 좋다. 동
071
magazine N | 201712
물성 지방, 설탕, 소금 섭취는 가능한 한 줄이고
호기심 등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건강
우유, 생선, 콩류, 채소 등을 매일 먹는 것이 좋다.
은 자신이 받아들이는 ‘건강한 느낌’과 어떤 환경
운동부족은 노화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명심하여
에도 잘 순응하는 ‘적응력’ 두 가지가 중요하다.
야 한다. 걷기 운동은 근육을 단련시키고, 심장과
히노하라 박사의 ‘신노인 長壽 건강생활’ 법칙
폐의 기능을 강화해 주고, 뇌의 노화를 방지하는
은 다음과 같다. △죽는 시간까지 인생의 현역으
효과가 있다. 히노하라 박사는 1주일에 1~3회 출
로 산다는 자세를 갖자. △많이 사랑하고, 많이 사
장을 가는데, 역이나 공항에서 약 8kg 무게의 가
랑받는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 산다. △항상 창조
방을 들고 다녔다.
하는 일을 하고 남을 위해 살자. △살기 어려운 것
일본에서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 사회를 맞
은 어느 세상에서나 똑같다고 생각하자. △남이
아 노인의 나이에 대한 정의를 65세 이상에서 75
쉽게 방문할 수 있는 집에서 활발한 교제를 하자.
세 이상으로 연장하고, 노인이 사회의 보호를 받
△젊은 사람들의 관심사에도 귀를 기울이자. △항
는 대상에서 사회에 봉사하는 주체가 되자는 취지
상 걷는 습관을 지니고 몸을 쉴 새 없이 움직이자.
로 2000년에 ‘신노인운동’을 시작했다. 또 노인이
△노년 건강의 최대 적은 낙상과 골절이므로 잘 구
건강하게 살기 위해선 ‘사랑 주고받기, 도전하기,
르는 연습을 하자. △몸에 좋은 심호흡과 복식호
인내하기’를 실천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2005년
흡을 하자. △웃음으로 얼굴에 주름을 늘리자. △
문화훈장을 수훈했다.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의사를 찾는다. 우리는 건강하게 장수하기 위하여 식생활, 생
역에서 물러나면 새로운 일을 해보도록 노력하
활습관, 마음가짐 등이 삼위일체를 이루도록 삶을
여야 한다. 일본 신노인회 1만2000 회원 중에는
소중히 여기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인생
70~80세에도 컴퓨터와 같은 새로운 일을 배우고,
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과 명예가 아니라 ‘삶의
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어린이들과 어울리
보람’을 느끼며 사는 것”이라고 강조한 히노하라
는 사람들이 많다. 즉 나이를 먹을수록 정열, 꿈,
시게아키(日野原重明) 박사가 그립다.
가천길재단/뉴시스
은퇴 후에 갑자기 늙는 사람이 많다. 이에 현
2010년 10월 인천 가천의대 대강당에서 특강을 하고 있는 일본의 노인건강학자이자 100세 현역의사로 유명한 히노하라 시게아키 박사
072
Books
magazine N | 201712
Questioning the Role of Women in 19th Century Britain Pride and Prejudice
By Jane Austen | Thomas Egerton | 1813
Set in rural England in the early 1800s, Pride and Prejudice is a novel of the Bennett family’s story. The family includes a negligent father, a silly empty-headed mot her, a nd f ive daughters: the eldest Jane, Elizabeth (also called Lizze and sometimes, Eliza), Mary, Kitty, and the youngest, 15-year-old Lydia. With no male heir in the Bennett Family, the daughters must marry in order to secure their welfare. So for obvious reasons, Mrs. Bennet is obssessed with marrying her daughters off before Mr. Bennett’s death. Pride and Prejudice, written by Jane austen, centers on the second eldest daughter, Elizabeth and her irregular fairytale with handsome but proud Mr. Darcy. Pride and Prejudice has sold over 20 million copies to date. The key to its international success has been the heroine—Elizabeth. As is usually the case with Jane Austen’s main characters, Lizze is intelligent, independent and fiercely strong-willed; uncharacteristic of women of 19th
century English literature. Elizabeth is all at once smart, funny, passionate, sensible, irreverent, and feisty, embodying virtues that appeal to both genders. The sheer brilliance of this story has been adapted many times for TV and movies (for instance, the famous 2005 Pride and Prejudice film with stars Keira Knightley and Matthew Macfadyen), and has oddly been adaptable to different cultures and diverse performance genres. There has been a Bollywood version, a Galilee-based Israeli TV mini-series, a Japanese comedy version, a Mormon-university update, and even the Broadway musical version, First Impressions. Born in 1775, Jane Austen is one of the great novelists of her time with the successful classics Sense and Sensibility (1811), Pride and Prejudice (1813), Mansfield Park (1814) and Emma (1815) all under her name. Through her novels, Austen is known to have exhibited the female condition of the 19th century, when women’s financial wellbeing was dependent on marriage.
Alessandra Bonanomi Staff Reporter
진부하지만 매력적인 숙녀 엘리자베스와 잘생겼지만 오만한 신사 다아시 :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ㅣ토마스 에거튼ㅣ1813 <오만과 편견>은 1800년대 초반 영국의 한 시골에서 살고 있는 베넷 일가의 이야기를 그린다. 무관심한 아버지와 어리석은 어머니, 그리고 22살 제인, 20살 엘리자베스(리지), 18살 메리, 17살 키티, 15살 라이다 등 다섯 딸은 베넷 일가를 이루고 있다. 아들이 한명도 없던 베넷 일가는 반드시 남자 상속자를 찾아야 만 했고, 이러한 연유로 베넷 부인은 남편 베넷이 죽기 전에 딸들을 결혼시켜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된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엘리자베스 베넷과 잘생겼지만 오만한 신사 다아시의 러브스토리를 담아낸다. 지금까지 2,000만 부 이상이 판매된 <오만과 편견>이 독자들을 끌어당긴 요소는 단연 엘리자베스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 모든 여주인공들이 그랬듯, 엘 리자베스는 똑똑하고 의지가 강하다. 영리하고 합리적인 동시에 열정적인 그녀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 매력적인 인물로 비춰진다. 덕분에 <오만과 편견>은 2005년 키이라 나이틀리와 매튜 맥퍼딘이 주연한 동명의 영화를 비롯해 다양한 국가, 다양한 장르의 작품으로 재해석 되기도 했다. 1775년에 영국에서 태어난 제인 오스틴은 19세기를 빛낸 대문호다. 제인 오스틴은 19세기 초 영국의 시대상을 누구보다 잘 표현한 작가로, 그녀의 작품들은 경제적 안정을 누리기 위해 결혼에 의존해야만 했던 당시의 수동적인 여성상을 독자들에 설명한다.
073
magazine N | 201712
A Journey Between Literature and Philosophy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By Milan Kundera | Gallimard | 1984
Set in 1968 Czechoslovakia,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explores the artistic and intellectual life of Czech society in the 1960s a nd 1970s across the stories of four characters. Tomas, a surgeon, has managed to separate love and sex. He has a wife, Tereza. He loves her, but he has sex with other women. Tereza comes from a traumatic childhood: hated by her mother who laughed about her body, she was also sexually abused by her step-father. Among Tomas' lovers, Sabina is his favorite; she is a smart and beautiful artist. The events of the Prague Spring result in the Soviet military occupation of the city and all characters move to Switzerland. In Geneva, Sabina begins an affair and a love relation with Franz who is an unhappily married academic. Sabina will move to other countries leaving behind Tomas, Tereza, and Franz. An assuredly postmodern novel written by Milan Kundera,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
ing is composed in episodes where characters’ stories are interspersed with the author’s philosophical ruminations. The philosophical framework of the novel is based on the discussion of lightness against heaviness. Kundera contrasts Nietzsche's philosophy of eternal return with Parmenides' understanding of life as light, where accepting the lightness of being means accepting a certain lack of ultimate meaning in life, and living for momentary beauty. Kundera also groups his characters into two categories: the first being Tereza and Franz, who are both heavy characters and are linked to Nietzsche's philosophy; second, Tomas and Sabina, who are characterized by lightness of Parmenides thought. Milan Kundera is a Czech-born French writer who was born into a middle-class family in Czechoslovakia. He joined the Communist Party of Czechoslovakia though he was soon expelled because of his “anti-party” activities.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was first published in 1984 as a French translation; in 1985, it was published in the original Czech version as Nesnesitelná lehkost bytí, but it was banned in Czechoslovakia until 1989. Alessandra Bonanomi Staff Reporter
인간이 지닌 모순, 당신은 가벼운가 무거운가?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ㅣ갈리마드ㅣ1984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1960~70년대를 살아가는 4명의 주인공들은 각자 저마다의 이유를 갖고 누 군가를 사랑한다. 외과의 토마스는 사랑과 섹스를 별개라 여긴다. 그에겐 부인 테레사가 있지만 섹스는 다른 여자와 즐긴다. 테레사는 유년시절 트라우마를 겪었다. 그녀의 신 체를 비웃곤 했던 그녀의 모친은 테레사를 증오했고, 계부는 의붓딸을 성폭행했다. 토마스는 자신의 파트너들 중 영리하고 아름다운 예술가인 사비나를 가 장 아꼈다. 그러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자유화운동 ‘프라하의 봄’이 발발하며 소설의 배경은 스위스로 옮겨지고, 제노바에서 사비나는 교수인 프 란츠와 불륜 관계를 갖게 된다. 밀란 쿤데라의 포스트모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작가의 철학적 담론들이 담겨 있다. 이 작품은 인간의 삶과 죽음을 가벼움과 무거움, 두 측 면에서 조망한 소설이다. 때문에 4명의 주인공 중 테레사와 프란츠는 ‘무거운 존재’로, 토마스와 사비나는 ‘가벼운 존재’로 묘사됐다.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은 이 작품은 후에 미국에서 영화로 각색됐다.
Introduction of Arabic Section
074
magazine N | 201712
‘아부다비 루브르’의 화려한 개막
환경 | 성난 지구 80 전 지구적인 자연재해가 증가하고 있지만, 인류는 지금도 우리의 한정된 자원을 아낌 없이 사용하고 있다. 글로벌포럼 등 전세 계적인 공조가 이를 해결할 수 있을까?
영화 | 말레이시아 영화에 담긴 아랍 문화 79 권선징악, 코미디 등 아랍의 문화적 요소들을 담은 영화가 말레이시아에서 개봉했다. 이 영화는 아랍에서 하녀로 일했던 한 여인의 아픈 사연에 초점을 맞춘다.
경제 | 헝가리 부다페스트-중국 창사 연결하는 화물철도 개통 83 중국과 헝가리를 연결하는 화물철도가 개통됐다. 중국산 가전제품, 신발 및 의류, 섬유, 전자부품 등을 41개 콘테이너를 싣고 중국 남부 창사에서 출발한 이 열차는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 무사히 도착하며 양국 교류 증진의 신호탄을 쏘았다.
영화 | 탈레반 손아귀에서 살아남은 아프간 영화들 87 이집트 영화프로듀서 파티마 알-자라 하싼이 21세기 초반 아프가니스탄 영화사를 되짚었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 했을 당시, 이들은 아프가니스탄의 문화를 담은 영화들을 없애려 했다. 그러나 몇몇 용기 있는 이들이 문화적 유산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했고, 그 결과 7,000여 편의 작품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덕분에 세바 사하르와 같은 신진 감독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작업할 수 있는 환경도 마련됐다.
magazine N | 201712
075
문화 | 아랍에미리트-프랑스 잇는 아부다비 루브르 82 2017년 11월 11일 ‘아부다비 루브르’가 개관했다. 두 국가의 문화적 협력에 기반한 아랍권의 성취다. 아랍권 최초의 세계적 인 박물관 아부다비 루브르는 고대와 현대를 넘나드는 역사·문화·사회학적인 작품들을 관객에 소개한다.
시 | 이란 문인 푸네 네다이 89 이란에서 언론인 겸 문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푸네 네다이의 시를 아시라프 달리 <매거진 N>아랍판 편집장이 직접 번역 했다.
에디토리얼 | ‘가족이여, 안녕’ 93 프랑스 소설 ‘슬픔이여 좋은 아침’(굿모닝, 새드니스)의 저자는 그녀의 나이가 불과 19일 때 이 작품을 저술했다. 이 작품 은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달리던 작가와 그녀 가족들의 갈등을 그린다. 이 소설은 서구의 가족이 겪는 전형적인 성장 통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매거진 N> 아랍판은 이러한 가족의 모습이 아랍권에서 퍼지는 것이 올바른지 진단한다.
에디토리얼 | ‘2019 세계 책 시장 전망’ 94
<매거진 N> 아랍판은 ‘고대 문명의 부활’을 넘어 실크 로드 국가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조망하는 새 로운 창이 돼 독자 여러분과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아 시라프 아불 야지드 아시아 기자협회 회장 겸 <매거진 N> 아랍판 편집장
076
magazine N | 201712
magazine N | 201712
077
078
magazine N | 201712
magazine N | 201712
079
080
magazine N | 201712
magazine N | 201712
081
082
magazine N | 201712
magazine N | 201712
083
084
magazine N | 201712
magazine N | 201712
085
086
magazine N | 201712
magazine N | 201712
087
088
magazine N | 201712
magazine N | 201712
089
090
magazine N | 201712
magazine N | 201712
091
092
magazine N | 201712
magazine N | 201712
093
094
magazine N | 201712
095
magazine N | 201712
89
93
84 93 90 89 87 083 083 082 082 81 79
87
096
magazine N | 201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