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N
Inspiring Asia Empowering People Leading Change
JANUARY 2018
No.54
9 772288 328008 ISSN 2288-3282
01
N 값 12,000원
No.54
History of AJA, The AsiaN and Magazine N 2004.11. 2005.10. 2006.10. 2007.03. 2007.10. 2008.10. 2009.11. 2010.02. 2010.07. 2011.06. 2011.07. 2 011.11. 2012.11. 2013.02. 2013.06. 2013.09. 2014.03.
아시아기자협회(AJA) 창립 AJA-JAK 포럼 2006 아시아기자협회 포럼 AJA-JAK, ‘IFJ 금강산 특별총회’ 아시아기자협회 후원의 밤 및 AJA Award 아시아기자협회 Eco 포럼 아시아기자협회 포럼 및 AJA Award 아시아기자협회 룸비니 포럼 아시아기자협회 문화체육관광부 사단법인 인가 아시아기자협회 기획재정부 지정기부금단체 선정 (주)아자미디어앤컬처 설립 11월 11일 ‘아시아엔’ 한글·영문판 창간 ‘아시아엔’ 아랍어판 창간 수아드 알 사바 시집 ‘쿠웨이트 여자’ 번역 출간 6월 25일 ‘매거진 N’ 창간 아시아기자협회 ‘아시아 문화언론인포럼’ 이상기 창립회장, 쿠웨이트 왕실 주관 황금보트상 수상
Asia’s Window to the World, the World’s Window on Asia 2015.11. 2016.04. 2016.05. 2016.09. 2016.10. 2017.04. 2017.08. 2017.08.
‘아시아엔’ 창간 4주년 기념의 밤 ‘2016 아시아기자협회 총회’ 및 ‘AJA Award 2016’ 조코 위도도(Joko Widodo) 인도네시아 대통령 AJA Award 수상 아시아기자협회 ‘한몽미래포럼’ ‘아시아엔’ 네이버스탠드 제휴 ‘2017 아시아기자협회 총회’ 제인 구달 박사-최재천 교수 초청, ‘AJA 에코 토크’ ‘2017 AJA Global Leaders Forum Indonesia’
50개국 아시아기자협회 전문필진과 함께 만들어 가는 ‘매거진 N’
AJA in Brief 회원 52개국 357여명 사무국 서울 지부 몽골, 네팔, 방글라데시, 터키, 중동 등 이사장 김학준
창립회장 이상기
한국 인천대학교 이사장
한국 한국기자협회 전 회장, 한겨레신문 전 기자
회장 Ashraf Aboul-Yazid
명예회장 Ivan Lim
이집트 The AsiaN 아랍어판 편집장
싱가포르 The Straits Times 전 기자
수석부회장 Eddy Suprapto
부회장 Chuluuunbaatar Dolgor
인도네시아 RCTI 전 보도국장
몽골 UBS 설립자
부회장 Norila Mohd Daud
부회장 Bishnu Nisthuri
말레이시아 malaysiaworldnews 편집장
네팔 네팔기자연맹(FNJ) 전 회장
부회장 Pooneh Nedai
부회장 강석재
이란 Shokran 발행인
한국 세계태권도연맹 사무차장, 코리아헤럴드 전 기자
‘매거진 N’은 (사)아시아기자협회(AJA) 와 온라인 ‘아시아엔’(The AsiaN) 네트워 크를 기반으로 아시아 곳곳에 숨어있는 다양한 이슈를 보다 쉽게 풀이함으로써 아시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젊은 층 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문화 전반을 다룸 으로써 Asia Next Generation과의 가교 를 만들어 나갑니다.
Asia Journalist Association (AJA) is… 2004년 11월 공정보도, 언론자유 수호, 저널리즘 발전 등을 목표 로 한국, 중국, 일본, 몽골 등 동아시아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필리핀 등 아세안(ASEAN) 기자들이 중심이 되 어 발족했습니다. 이후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남아시아와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기자들이 참여해 현재 50개국, 500여명의 회원이 “한 줄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피와 땀을 아끼 지 않는다”는 모토 아래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시아기자협회는 종 교·인종·민족·국가·이념을 초월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 환경 보전 등 인류보편 가치 실현을 공통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The AsiaN (www.theasian.asia) is…
<아시아엔 영문판 메인>
<아시아엔 아랍판 메인>
2011년 11월11일 아시아기자협회가 창간한 인터넷 매체로 아 시아기자협회 소속 베테랑 언론인, 전문가들이 정확한 뉴스 와 깊이 있는 논평을 영어, 한글, 아랍어 등 3개 언어로 제 공합니다. ‘The AsiaN’의 N은 ‘미래비전(Next)’, ‘균형잡힌 뉴 스(News)’, ‘소통 한마당(Network)’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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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FF 대표이사·발행인 편집장 고문 이사 경영기획실장 취재·편집 광고 디자인
이상기 이주형 구명수 차재준 정현 박호경 서의미 Alessandra Bonanomi 유경수 김보배
Correspondents Alin Ferrer (Philippines) Ashraf Dali (Egypt) Bishnu Nisthuri (Nepal) Chuluunbaatar Dolgor (Mongolia) Eddy Suprapto (Indonesia) Ghina Halik (Lebanon) Gunjeet Sra (India) Ivan Lim (Singapore) Neelima Mathur (India) Norila Daud (Malaysia) Nasir Aijaz (Pakistan) Pooneh Nedai (Iran) Pramod Mathur (India) Shafiqul Bashar (Bangladesh)
제작·인쇄 홈페이지 제보 창간 등록 등록번호 발행 주소
㈜타라티피에스 www.theasian.asia 02-712-4111 / news@theasian.asia 2013.06.25 2013.05.02 종로 라00407 ㈜아자미디어앤컬처 주소 서울시 종로구 혜화로 35 화수회관 207호 (우 03068)
‘매거진 N’은 한국간행물위원회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2018년의 해가 떴습니다. <매거진 N>도 새해를 맞이해 새롭게 출발합니다. 현 시대의 화두와 이를 논하는 ‘Topics’, 전시회 또는 아티스트와 그 작품들을 다루는 ‘Art Obsession’, 영화, 음 악, 패션 등 다양한 스타일을 소개하는 ‘Style & Tastes’, 고유의 역사와 정체성을 간직한 브랜드를 소개하는 ‘Look Like Looking’, 한번쯤 가볼 만한 공간을 소개하는 ‘Where to Go’, 아시아 음식 맛집을 탐방하는 ‘Map the Asian Food’, 아시아를 살아가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전하는 ‘The Lives of Our Asian Neighbors’ 등의 코너들이 새롭게 선을 보입니다. 새로운 출발을 맞이하며 감히 바라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매거진 N>의 콘텐츠가 독자님께 의미 있길 바랍 니다. 커버의 ‘N’이 ‘Next News Network’를 의미하듯, <매거진 N>이 아시아의 세대를 연결하는 매체로 자라나길 바 랍니다. 한 분이라도 더 많은 독자님께서 이 책을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매거진 N> 개편을 준비하는 동안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모든 콘텐츠가 독자의 마음에 쏙 들기는 어 렵다. 잡지를 받는 누구나 가장 읽고 싶은 페이지부터 펴보기 마련이다.” 이 말처럼 모든 콘텐츠가 모든 독자님의 마음에 꼭 들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이 책을 통해서 만 접할 수 있는 고유의 콘텐츠를 하나라도 더 많이 담아내는 것이 <매거진 N> 제작진이 바라는 목표입니다. 커버의 N자만 보더라도 <매거진 N>이 ‘어떤 잡지구나’ 떠올리실 수 있게끔 말이죠. 한 권의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더 고민하고, 노력하겠습니다. PS: 지난 세 달간 ‘Letter from N’을 빌려 <매거진 N> 소식들을 전해드렸습니다. 앞으로 이 페이지에는 <매거진 N>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편지를 실을 예정입니다.
편집장
이주형
Letter From N
2018 has now arrived. Magazine N, too, faces a new beginning. With this our first issue of 2018, we bring to you a variety of quality content from Topics as a discussion of current events, Art Obsession introducing artists and galleries displaying their work, Style & Tastes bringing films, music, fashion, and different styles, Where to Go exploring the streets of Seoul, Map the Asian Food discovering Asian cuisine, and finally to The Lives of Our Asian Neighbors that depicts a clear and honest portrayal of local Asia. As we embark on this new phase, Magazine N carries the hope that our pages will be meaningful to readers. The N on the cover stands for the beginning character of Next News Networkâ&#x20AC;&#x201D;denoting Magazine N as a catalyst for a more connected and united Asia. It is our hope that our content would reach many more people in the coming years. For the past three months, Letter from N gave news of drastic changes that would be made to our content. Now, this page will feature the letters of our various contributing members. We understand that our content will not be able to please all readers and their preferences, but our ultimate goal is to provide insightful pieces that are unique to Magazine N; just like way the N on our front page tells readers what our magazine is all about. We will continue to dedicate our time in creating an ever-adjusting and ever-developing Magazine N to you, our cherished readers.
Editor-in-Chief of Magazine N
Lee Joo-hyeong
ON THE COVER MAGAZINE
N
No.54
Inspiring Asia Empowering People Leading Change
JANUARY 2018
No.54
9 772288 328008 ISSN 2288-3282
01
N 값 12,000원
<매거진 N> 2018년 1월호 커버는 ‘Art Obsession’에 실린 ‘PLASTIC FANTASTIC: 빛·컬러·판타지’ 전시회의 풍경을 담았습니다. 인류는 플라스틱의 탄생과 함께 전에는 상상조 차 할 수 없었던 새로운 발명품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2018년 1월, <매거진 N>은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있습니다. <매거진 N> 54호는 독자 여러분과 함께 무(無)에서 유(有)의 역사를 쌓아가길 바라는 제작진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Our January 2018 Cover brings to you an exhibition cut of PLASTIC FANTASTIC: Light, Color, Fantasy in our Art Obsession section. Plastic, since its birth, has enabled humanity to explore their creative potential in ways never before imagined. Likewise, this issue invites readers into the creative history of Magazine N as we continue to create new and better content out of nothing.
CONTENTS 04
Magazine N is...
08
Letter From N
10
Contents
14
Asia Round-Up
44
Special Report
Veneration & Attachment: Cats in Asian Culture 22
52
Special Report
“유기묘 봉사활동, 부담갖 Press Watch 지 마세요. 내가 먼저 나 Singapore: Reporter 서면 더 많은 사람들과 함 Warned Over Leakage 께 할 수 있어요” of Official Secrets 60 Topics 26 Southern Asia “Big Brother is Woes of the Third Watching You”: a Generation Asian Dystopian Journey through the Rating System for the 30 Chinese Citizens Southern Asia The “Son” Has Turned Black 64 ASEAN
Topics
34
Southern Asia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로힝야 난민캠프를 가다
Makli - the Necropolis 68 of Invaders, Kings, Topics Queens, and Saints 아시아기자협회, ‘2017 아시아 인물’ 발표 38 Middle East
The Political Domino Effect in the Middle East
72
Interview
Mr. Alpago Sinasi
80
Art Obsession
PLASTIC FANTASTIC 86
Style & Tastes
런던 슬럼가의 분노 녹여낸 ‘그라임’
90
Look Like Looking
LOEWE
92
Where To Go
MANMADE WOOYOUNGMI
106
Books
KUSHIMURA
Erections, Ejaculations, Exhibitions and General Tales of Ordinary Madness
98
110
94
Map the Asian Food
Personality in Crevices and Corners
Opinion
Frederick Heng
2018년 새해 첫 도전, ‘비만 벗어나기’
102
112
한국관객과 만나는 힙합 R&B 콘서트 4선
닮고 싶은 사람과 닮고 싶지 않은 사람
Preview
Opinion
중화를 대표하는 음식 ‘취두부’(臭豆腐). 소금에 절여 삭힌 이 음식은 일종 의 발효 두부로, 향이 굉장히 강한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이 향미에 익숙 하지 못한 외국인들은 난색을 표하지만, 중화권에선 지역을 대표하는 별 미로 통한다. 이러한 ‘취두부’를 놓고 중국과 대만의 온라인상에서 때아닌 논쟁이 벌어져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 논쟁은 작년 11월 보도된 뉴욕 타임즈(NYT)의 기사로부터 시작됐다. 뉴욕타임즈는 2017년 11월 말 대만 타이베이의 취두부 전문점 ‘다이지(戴 記) 취두부’를 보도했다. 그리고 이 기사를 접한 중국 톈안먼(天安門) 민주 화운동의 주역인 왕단(王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만 요리가 세계에
One of the representative features of Chinese cuisine has to
진출했다”는 게시물을 올렸다. 그러나 이를 본 중국 네티즌들이 “취두부
be stinky tofu. It’s tofu that has been soaked in salt and then
는 중국에서 유래했다”고 반박하며 논란이 시작됐다. 중국의 한 네티즌은
fermented, and like its name, is pungent to anyone who comes
“대만 요리가 세계에 진출한 것이 아니라 대만 취두부 식당이 세계에 진출
across it. Foreigners are repulsed when they first smell the tofu,
했다고 말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네티즌은 이어 “대만에서 개량한 음
but in areas of Chinese culture, it is a delicacy that has become a
식을 대만 음식이라고 말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staple of the diet. Such stinky tofu became a topic of contention
이에 대해 대만 네티즌들은 “중국의 라면이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지금의
between Taiwanese and Chinese SNS communities when it was
‘일본라멘’이 만들어졌다. 전세계도 라면하면 ‘일본라멘’을 떠올린다” “누
described as a Taiwanese dish in the New York Times (NYT).
가 취두부를 발명한 게 중요한가” “누가 안심하고 중국 취두부를 먹겠냐”
In November, New York Times reporter Chris Horton introduced
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태의 장본인 왕단도 대만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
a popular stinky tofu restaurant, The Dai Family House of Unique
에서 “중국 젊은이들은 그들의 국가와 문화에 대해 자신감이 없다”고 말
Stink located in Taipei (Taiwan), in his article “Where Stinky Tofu
하며 불 난 집에 불을 붙였다.
Is at Its Maloderous Best.” Seeing this, Wang Dan—formerly one
양국 온라인 상에서 뜨거운 감자가 된 취두부는 어디서 유래했을까? 결
of the most prominent student leaders in the Tiananmen Square
론부터 말하면 취두부는 중국 대륙의 마지막 왕국 청나라에서 유래됐다.
protests of 1989—posted online that “Taiwanese food has finally
청나라 강희제 때 두부를 만들던 왕즈허(王致和)가 제조과정에서 뚜껑을
entered the international scene.” However, Chinese netizens did
덮는 걸 깜빡했고, 두부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발효됐다. 그러나 이 두
not take the comment fondly. Some said, “A Taiwanese stinky
부를 먹은 왕즈허는 고약한 냄새가 잊혀질 정도로 맛있다는 것을 깨달으
tofu restaurant was introduced to international society; not a
면서 취두부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Taiwanese dish.” Others added, “You can’t possibly call a dish “Taiwanese” when it did not originate from Taiwan. It was a dish that was improved upon then made popular by Taiwanese locals.” Taiwanese netizens responded in anger saying, “Ramen in Japan was brought over from China and now it is widely known as Japanese Ramen…does it really matter who invented stinky tofu?” and, “Now no one can peacefully eat a dish of stinky tofu in China.” Wang Dan, who was at the center of the issue, touched on the dispute in an interview with a local Taiwanese reporter, “I think this shows that China’s millennials don’t have a lot of confidence in Chinese cuisine or their country,” causing yet another riot amongst the Chinese as if adding fuel to the fire. So, just exactly where did stinky tofu originate anyway? To put it briefly, the dish can be seen in records dating back to China’s last Qing Dynasty. During the reign of Emperor Kang Xi, a man named Wang Zi-he forgot to cover the lid over a pot that contained unmade tofu. When Wang tried the fermented result, it is said the tofu was so delicious that Wang did not even mind the putrid smell. From then on, stinky tofu was given its place worthy as dish of authentic Chinese cuisine.
14
일본의 씨름 ‘스모’(相撲)는 일본을 대표하는 스포츠로 큰 인기를 누려 왔 다. 그 중에서도 최정상에 위치한 선수를 칭하는 요코즈나(橫網)는 최고 의 명예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한 요코즈나가 술자리에서 후배 를 폭행한 사건에 연루돼 은퇴하며 열도가 발칵 뒤집혔다. 요미우리, 아사히신문 등 주요 언론은 2017년 11월 30일 몽골 출신 요코즈 나 하루마후지(日馬富士·33)가 일본스모협회에 은퇴서를 제출했다고 대 서특필했다. 그는 은퇴서가 수리된 직후 기자회견에서 “요코즈나로서 책 임을 느꼈다. 지지해준 분들께 폐를 끼친 것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과드 린다”고 머리를 숙였다.
Japanese sumo has long been one of the most representative and
몽골 출신인 하루마후지는 10월 26일 저녁 돗토리 현에서 몽골 출신 스
popular sport in the country. And at the top of the sumo pinnacle
모 선수인 하쿠호(32), 다카노이와(27) 등 10여 명과 술자리를 가졌다. 장소
was grand champion Yokozuna; one of the biggest stars of
를 옮긴 하루마후지가 후배들에게 “선배들에게 제대로 인사를 하지 않는
sumo history. To the dismay of fans, Yokozuna announced that
다”며 주의를 주는 사이에 후배인 다카노이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다카
he would retire after allegations that he had assaulted a younger
노이와가 전화를 꺼내자 하루마후지는 테이블 위에 있던 맥주병으로 그를
wrestler.
가격했다.
On November 30, 2017, major domestic outlets including
피해자인 다카노이와는 하루마후지를 폭행 혐의로 신고했고, 가해자 하루
Yomiuri and Asahi Shimbum reported Yokozuna Haramafuji (33)
마후지는 대회 출전을 포기하며 피해자에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그러나
had submitted his resignation to the Japan Sumo Association.
일본 스모협회가 관련 선수들을 상대로 진상조사를 벌이는 등 파문은 가
Minutes before the resignation was accepted, Yokozuna
라앉지 않았다.
addressed the public at a press conference saying, “As a
일본에서 스모 선수가 불상사로 은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
Yokozuna, I feel responsible for injuring Takanoiwa…I apologise
년 2월 당시 최고 스타였던 요코즈나 아사쇼류(朝靑龍)도 지인을 폭행 해
from my heart to the people, sumo fans, the Japan Sumo
은퇴한 바 있다. 하루마후지는 협회가 처분을 내리기 전에 스스로 은퇴해
Association, and supporters for causing such trouble.”
서 퇴직금은 받을 수 있지만, 일본 국적자가 아니라 스모협회에서 지도자
On 26 November, Yokozuna, originally from Mongolia, was said
로 남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모협회 관계자는 그의 은퇴에
to have been out drinking with around 10 wrestlers including
대해 “매우 큰 손실이지만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fellow Mongolian fighters, Hakuho (32) and Takanoiwa (27). Yokozuna Haramafuji said that he had heard some of the younger wrestlers were lacking in manners and civility and was teaching them a lesson on respecting elders when Takanoiwa’s phone rang. When Takanoiwa proceeded to take the call, Haramafuji struck Takanoiwa with a beer bottle. The incident was soon reported to the police by the victim and Haramafuji quickly apologized, but the stir the event caused did not die down easily. Yokozuna Haramafuji marks the second disgraceful resignation in Japanese sumo records, the first being Yokozuna Asashoryu, reigning champion at the time, who resigned for having also assaulted an acquaintance in February 2010. Although Haramafuji is able to receive his retirement funds for voluntarily stepping down before any action by the Sumo Association, he is no longer able to remain a leader in the scene of Japanese Sumo Wrestling. An affiliate of the Japan Sumo Association said, “It is
AP
unfortunate what happened, but violence can never be justified.”
15
세계적인 휴양지인 인도네시아의 발리 섬. 그러나 이 섬은 1963년 대형화 산 ‘아궁’이 분화하면서 주민 1천100여명이 목숨을 잃고 수백 명이 다치는 참사가 벌어졌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그리고 50여년이 지난 2017년 11 월, 아궁 화산이 다시금 분화조짐을 보이며 발리 응우라라이 국제공항이 폐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사태의 조짐은 2017년 9월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아궁 화산이 분화할 기 미를 보이자 당국은 경보단계를 ‘위험’으로 상향하고 분화구 주변 주민을 대피시켰다. 당국은 이후 화산활동이 잦아들자 경보단계를 ‘심각’으로 한 단계 낮췄었다. 그러나 지난 11월 27일, 인도네시아 국가재난방지청(BNPB)
Bali, one of the world’s most visited tourist destinations, is also
은 이 날 오전 6시(현지시각)를 기해 아궁 화산의 경보단계를 전체 4단계
an island that has had to face the danger of volcanic eruptions
중 가장 높은 단계인 ‘위험’으로 높였다. 또한 분화구 반경 6.0∼7.5㎞였던
by its volcanic Mt. Agung. In 1963, an eruption had resulted in
대피구역을 8∼10㎞로 확대하고, 해당 지역 내 주민에게 전원 대피를 지시
11,000 deaths and left hundreds of thousands injured. Now, 50
했다. 아궁 화산이 25일 오후부터 26일 오전 사이 네 차례나 화산재를 뿜
some years later, Agung is showing the birth pains of yet another
어내는 등 본격적인 분화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발리 서쪽
large-scale eruption, which has led to the temporary shutdown
자바 섬 남부 해상에 형성된 열대성 저기압이 주변 공기를 빨아들이며 화
of Ngurah Rai International Airport.
산재는 남서쪽으로 퍼졌고, 발리 섬 전역을 뒤덮었다.
Seismic tremors around Mt. Agung were detected as early as
결국 인도네시아 항공 당국은 27일 오전 발리 응우라라이 국제공항의 일
September 2017. At the time, authorities evacuated residents
시 폐쇄를 결정했다. 공항 폐쇄는 29일 오후 3시(현지시각)까지 이어졌다.
near the danger zone, but even as tremors began to increase
이로 인해 사흘간 모두 880여편의 이착륙 항공편이 취소됐으며 12만명에
in magnitude, the alert status was lowered to levels below
달하는 승객의 발이 묶였다. 인도네시아 발리 섬에서 발생한 화산재는 이
“dangerous”. Then came November 27th with the volcanic alert
웃 롬복 섬에도 영향을 미쳐 롬복 프라야 국제공항도 일시 폐쇄되는 소동
status once again set at the highest level. People living within
을 겪었다.
the 8-10 km radius around Agung were told to evacuate from what had been a 6-7.5 km radius standard for evacuation. It was because the tremors had come to fruition with Mt. Agung spewing volcanic ash a total of four times since November 25th to 26th—just in time for a tropical cyclone (from Southern Ocean waters) moving across Java island (west of Bali) to carry the ash over to the larger island of Bali. Unrest has amplified with the temporary closure of airports. Ngurah Rai Airport’s shutdown on the 29th alone caused a total of 880 flights to be cancelled, leaving 120,000 persons stranded on airport grounds. Agung ash that reached the neighboring island of Lombok also led authorities to close Praya Airport for a short period; it is speculated that the airport will have to repeat
AP
closure and reopening in the following days to come.
16
13억 인구 대국 인도. 그러나 인도 국민 중 약 5억명은 화장실이 없는 집에 서 살고 있으며, 이들은 화장실 대신 길가의 수풀에서 볼일을 보곤 한다. 때문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전국적으로 ‘클린 인디아’ 캠페인을 통 해 화장실 설치를 장려하고 있지만 녹록하지만은 않다. 가정에 화장실이 없는 사람들이 ‘야외 화장실’로 나서는 길은 말 그대로 험난 여정이다. 적당한 곳을 찾기 위해 20분 이상 떨어진 거리를 걷는가 하면 용변 도중에 전갈과 뱀 혹은 괴한의 습격을 받기도 한다. 무사히 볼 일을 보고 돌아오더라도 위생문제가 걸린다. 인도에선 야외 배설로 인한 전염병으로 매년 5세 이하 어린이 약 12만명이 사망하고 있다.
It is said that around half of India’s 1.3 billion population currently
지난 십 수년간 인도는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보였으나 화장실을 갖추
lack toilets in their homes. Instead, many resort to relieving
지 않은 가정이 많다는 것은 의외의 사실이다. 인도 국민들이 화장실을 싫
themselves in grassy areas nearby. Prime Minister Narendra
어하는 이유는 힌두교의 가르침에서 기인한다. 힌두교 교리는 “정(淨)한
Modi thus began his “Clean India” campaign to build more toilets
것과 부정(不淨)한 것”에 대한 관념이 매우 강하다. 이러한 연유로 인도에
around the nation, but meeting project goals appears difficult to
서 사람의 배설물과 땀은 매우 부정한 것으로 여겨지며, 고대 인도의 경전
achieve.
도 “대소변에 사용한 물은 집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말
Children seeking restrooms located far from their homes
한다. 그러나 2014년 인도 북부의 한 농촌에서 10대 자매 2명이 밤에 볼일
often travel for as long as 20 minutes before they arrive at the
을 보러 나갔다가 집단 성폭행을 당한 후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 하면서,
destination. The paths they take are also infested with scorpions
화장실 보급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됐다. 이에 모디 총리는 2019년까지 1
and snakes and children are sometimes posed with the danger
억2천만 가구에 화장실 설치를 목표로 하는 ‘클린 인디아’ 캠페인을 시작
of being attacked by strangers. Getting to the toilets was hard
했다.
enough, but the restrooms themselves are said to be filthy and
이 캠페인이 시행된 지난 3년간 인도 정부는 약 5천800만 개의 화장실을
contaminated with disease—leading to over 120,000 deaths
설치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듯 보이지만, 정작 화장실을 설치해도 사
amongst children under 5 who used the toilets.
용하지 않은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족한 상하수도 설
For a country that has seen incredible economic development,
비도 ‘클린 인디아’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화장실 정화조가 배설물로 가
it is surprising that many homes are still without restrooms, but
득 찰까봐 사용하지 않는다”는 주민들의 말처럼 용변을 처리할 시설조차
the situation is linked to Hindu teachings that warn families not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to live in close proximity to such “impurities”. Hindu practices generally place great emphasis between what is clean and unclean, and all things connected to human waste—urine, sweat, and fecal matter—are said should be placed (or excreted) away from human living quarters. But when two young girls, both only 10 years at the time (2014), were gang-raped on their way to an outdoor toilet, building restrooms inside homes became a national priority. Not long after, Prime Minister Modi demanded 120 million toilets be installed in homes by 2019 through the “Clean India” campaign.
Xinhua
Since the start of the campaign, the government built over 5,800 private restrooms and have seen progress in their major project, but many families continue in their Hindi customs by refusing to use the toilets in their house. Weak water and sewage pipelines are also obstacles to the Clean India campaign: some have said that they do not use their restrooms in fear that pipes would soon be clogged with waste material.
17
2012년 2월 실각하기 전까지 30여 년간 예멘을 철권통치하던 알리 압둘 라 살레 전 대통령. 권좌에서 쫓겨난 이후에도 복귀를 노려왔던 그의 마지 막 순간은 처참했다. 2017년 12월 4일 알리 압둘라 살레 전 예멘 대통령이 후티 반군에 살해당 했다. 후티 반군은 이날 알마시라TV와 예멘 라디오를 통해 “반역자들의 우두머리 살레가 죽었다. 그가 이끄는 반역자 무리들 다수도 사망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살레 전 대통령은 예멘 수도 사나에서 탈출을 시도하던 중 후티 반군이 쏜 총탄에 머리를 맞아 살해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에 이어 전세계에서 두번째로 장기집권했던 권력
Before being ousted from office February 2012, Ali Abdullah
자 살레 대통령은 왜 이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됐을까? 2011년 ‘아랍
Saleh ruled Yemen with an iron fist, and even after his removal,
의 봄’에 따른 반정부 운동으로 2012년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살레는 후티
had hoped of a return to power. Unfortunately, his hopes were
반군과 연대해 현 만수르 하디 대통령에 맞서왔다. 그러나 살레를 지지하
not to be.
는 무장 대원들이 최근 후티 반군과 갈라선 뒤 사나에서는 양측간 전투가
On December 4th, 2012, Ali Abdullah Saleh, former President
이어졌다. 그리고 지난 12월 3일, 살레가 후티 반군과의 관계를 끊겠다고
of Yemen, was killed by his allies-turned-foes the Houthi rebels
공식적으로 선언한 다음날, 예멘의 전 대통령은 생을 마감했다.
near the capital, Sanaa. Local radio outlets and media such
그의 사망으로 내전의 아픔을 겪고 있는 예멘 정국은 더욱 불안해질 전망
as Al Masirah TV broadcast that Saleh—head of the rebel
이다. 2014년 9월 이란에 우호적인 시아파 반군 후티가 예멘 정부를 축출
group—had been killed along with many of his followers. It is
했고, 위협을 느낀 사우디아라비아가 2015년 3월 아랍권 동맹군을 결성해
said that Ali Abdullah Saleh had been trying to flee from the
군사개입에 나서며 예멘 내전은 본격화 됐다. 내전으로 현재까지 8,600여
capital when he was fatally shot in the head by Houthi militants.
명이 폭격과 교전 등으로 숨졌고, 약 5만명이 부상당했다. 인구의 70%인
Footage circulated by the rebel group appeared on social media
2천만명은 장기간 지속된 내전과 콜레라 등 전염병으로 끼니도 해결하기
displaying images of what appeared to be Saleh’s body covered
어려운 상황이다. 시아파인 후티 반군과 협력 관계를 유지해 오면서 사우
by a blanket; next to the body rebel fighters chanted, “God is
디아라비아와 관계 개선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진 살레 전 대통령이 살해
great.”
당하며 예멘 내전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After Libya’s Gaddafi, Saleh had been the second longest ruling dictator in the world. What was it that led to his disgraceful demise? Since being ousted from his presidency in 2012 with the Yemeni Uprising that began in 2011, Saleh combined his own forces with the Houthis to fight against Acting President Masur Hadi. But tensions began to simmer within Saleh’s coalition following split-offs between Saleh’s militant supporters and the
AP
Houthi fighters. Then, just a day after Saleh had announced to formally cut ties with the Houthi rebels on December 3rd, Yemen’s former President was killed. Saleh’s death is likely to result in more instability within Yemen what with the ongoing civil war. When Houthi rebels (predominantly Shia-led) had ousted the Saleh-led government in September 2014, by March 2015, neighboring forces in Saudi Arabia became increasingly alarmed and proceeded to unite Arab allied forces to intercede in Yemen. To date, more than 8,600 have been killed and 50,000 injured due to collisions—mostly air strikes—in conflict zones. Almost 70% of the population suffers from hunger and diseases like Cholera due to the prolonged war. Now, with Saleh’s untimely death, the former President who, supportive of the Shia Houthis had also expressed desire to improve relations with Saudi Arabia, tensions in Yemen are unlikely to abate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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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이 발발하며 중동은 피로 얼룩졌다. 이에 국제사 회는 지역의 평화를 위해 ‘두 국가 해법’을 제시했다. 1974년 유엔 결의안 을 통해 기본적인 틀이 제시됐고, 1993년과 1995년 두 차례에 걸친 노르 웨이 오슬로 협정에 따라 두 국가 해법이 확립됐다. 이스라엘은 3차 중동 전쟁으로 획득한 가자 지구와 요르단 서안을 팔레스타인에 반환하고, 팔 레스타인은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투쟁을 중단함으로써 평화적 공존을 꾀 하는 것이 골자였다. 그러나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 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면서 중동의 평화가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2월 6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
In the aftermath of the 1967 Arab-Israeli War, much of the
다고 공식 선언했다. 이에 이스라엘은 격한 환영을, 팔레스타인은 격한 반
Middle East remains war-torn and ridden with conflict. Though
발을 일으켰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the international society has consistently initiated “two-state
직후 TV 연설에서 “역사적이고 용감한, 정당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반면
solutions” for Israeli and Palestinian factions such as the 1974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트럼프의 결정은 미국이 평
UN Resolution and Oslo Accords of 1993 and 1995, the crux of
화 협상에서 중재 역할을 포기한다고 선언한 것과 다름 없다”고 비판했다.
the matter is still up in the air. The main purpose of such peace
그는 또한 “이 선언은 테러단체에 명분을 주는 것은 물론 중동 지역의 평
talks were oriented in creating a separate Israel and separate
화를 해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지도자 이
Palestine State with Israel returning the West Bank and Gaza
스마일 하니야도 그 다음날 연설에서 “우리는 시온주의 적(이스라엘)에 맞
Strip to Palestinian authority. But with US President Donald
서 인티파다(민중봉기)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Trump’s unexpected announcement recognizing Jerusalem as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수도 선언’에 국제사회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
the capital of Israel, previous efforts at bilateral negotiation are
였다. 이슬람을 국교로 한 57개국이 모인 이슬람협력기구(OIC)는 12월 13
expected to backfire.
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긴급정상회의를 열어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On 6 December 2012, US President Donald Trump publicly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라”고 국제사회에 촉구했다. 이날 정상회의에
recognized Jerusalem as the capital of Israel, announcing to
참석한 OIC 회원국 지도자들도 개별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relocate the US embassy in accordance. As it was, Israeli citizens
선언에 대해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그럼에도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were thrilled, while Palestinians immediately expressed their
12월 10일 유럽 순방에서 “성경에도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쓰
sentiment in angry protest. In support of Trump’s declaration,
여있다”고 역설하다 여론의 몰매를 맞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릇된
Israeli Prime Minister Benjamin Netanyahu said, “The US has
결단과 네타냐후 총리의 욕심이 이스라엘을 고립시키고 있다.
made the right move in this courageous and historic moment.” Meanwhile, Mahmoud Abbas, Head of the Palestinian Authority, responded by saying US President Trump’s recognition killed the Israeli-Palestinian peace process and has given up its position as mediator. Abbas further warned, “Not only will this give more room for terrorist activity in the region, it will create roadblocks to peace for the Middle East.” Ismail Haniya, leader of Palestinian militant Islamist faction Hamas, also declared in fury that Trumps’ announcement meant a war declaration against Palestinians that
AP
called for a new “Intifada” or uprising. The international society has also criticized President Trump’s statement. The Organization of Islamic Cooperation (collective of 57 Muslim member states) held an emergency summit on the 13th of December in Istanbul, Turkey, officially signing into agreement that East Jerusalem be recognized as Palestinian territory. On this day, numerous leaders took to the podium to voice their dissent for Trump’s announcement. Meanwhile, Israel’s Netanyahu was also fiercely criticized for saying during his visit to Europe that, “It is written in the Bible that Jerusalem is the capital of Israel.” For now, Donald Trump’s and Netanyahu’s misguided behavior continues to isolate Israeli in a myriad of opposition.
19
22 ― 25 ASEAN 26 ― 37 Southern Asia 38 ― 41 Middle East
2018
01
Press Watch – Singapore: Reporter Warned Over Leakage of Official Secrets Ivan Lim is Honorary President of the Asia Journalist Association(AJA). He was labour correspondent for The Straits Times in Singapore, President of Confederation of ASEAN Journalists(CAJ), Secretary General of the Singapore National Union of Journalists, and Chairman of Environmental Forum for Communicators of Singapore(ECOS).
22
It was what is being described as a state
and sellers of HDB properties.
secret that Janice Tai, a young reporter of
The HDB, which had kept the project under
The Straits Times (ST), Singapore’s premier
wraps, came to know of the information
mass-circulation daily, stumbled upon
leakage following the inquiries and filed
while chasing a story.
a police report on what was seen as a
She was following up on a tip-off about an
breach of the Official Secrets Act (OSA).
online resale portal that the state housing
It was stated in a police statement that
agency, the Housing Development Board
followed: “The government takes a serious
(HDB), was to set up but was yet to make
view of wrongful communication of
an announcement on the venture that was
confidential information, especially if the
planned to be inaugurated in January.
party involved is a public officer and will
An ST report on October 20 said the
not hesitate to take action.”
upgraded HDB resale portal would halve
HDB officer Ng Han Yuan was charged
the transaction time from 16 to 8 weeks.
in court for “wrongful communication of
Ahead of presenting her scoop to the
confidential information”, as he had shared
editors, Janice had done her leg-work,
information related to the project called
making various inquiries, as is done
“Streaming of Resale Transactions”.
routinely by journalists, sought comments
His case would be mentioned in court
from housing parties and approached
again on December 15.
HDB officer Ng Han Yuan for confirmation.
In turn, reporter Janice Tai received a
Apparently, the push for the story was that
“stern warning” from the Police. An offence
it would be of significant interest to buyers
against the OSA carries a penalty of $2000
fine and two years in jail.
dailies, as well as Business Times, and an
do not subject them to rigorous scrutiny
The Straits Times stood by Janice Tai,
afternoon tabloid, The New Paper. Those
and examination, the decline in SPH
saying she was only doing her job as a
retrenched received a severance package
revenue in the media segment is likely to
reporter of the newspaper. It added, “[Tai]
of one month’s worth of salary for each
continue unabated,’’ da Cunha said. To
continues to be a valued member of the ST
year of service and those aged 58 and
back up his point, he cited the New York
newsroom team.”
above got an additional one month’s pay
Times, which had seen a hike in paid
The Official Secrets Act covers a broad
for their years of service.
subscriptions in the face of challenges
range of responsibilities—from protecting
The shake-up, affecting 10 per cent of SPH
from the alternative media.
national security information, and
employees, came as advertising revenue
“People still have a thirst for quality
information that is market sensitive, to
dipped by $103 million or 6.7 percent
investigative reports and analysis despite
any and all material prejudiced against
year-on-year, an indication its lion share
the challenge from the social media,” he
government operations.
of advertisements is being eaten into by
said.
There was a precedent in 1992 when the
alternative media.
Strategy-wise, however, the SPH is going
government took legal action against five
Critics chided the SPH for cutting head
beyond its newspaper and magazine
people for violation of the OSA. At that
count despite posting a 32 percent rise
business and venturing into out-of-
time, Business Times, a business daily of
in net profits to $350 million over the last
home advertising. In September, the
the Singapore Press Holdings (SPH) group,
financial year. However, the higher profits
conglomerate struck a deal with MediaBox
had published the GDP growth figure for
came from its non-media investments and
Pte. Ltd. to focus on motion and static
the second quarter ahead of the official
property holdings.
outdoor advertisements and events
announcement.
Derek da Cunha, political analyst, reckoned
management, not only in Singapore, but
that the SPH’s declining advertising
also in the region.
SPH Journalists Lose Jobs
revenue stemmed less from digital media
In a separate development in October,
competition than from it being tied to the
journalists were among 130 employees
government’s apron strings.
who received their marching orders in
After all, many newspapers around the
an SPH retrenchment and restructuring
world continue holding their own despite
exercise. The affected journalists included
the challenge of digital media.
senior photographers, sub-editors, and
“As long as the SPH stable of newspapers
news desk staff from The Straits Times
keeps treating the ruling party and the
(English) and Lian He Zaobao (Chinese)
wider Establishment with kid gloves, and
23
싱가포르는 전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중 하나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높은 GDP와는 반대로 언론 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가 보장돼 있지 않은 나라이기도 하다. 싱가포르 대표 일간지 <스트레이트 타임 즈>의 선임기자를 지낸 베테랑 언론인 아이반 림이 싱가포르 언론의 현실을 보여주는 두 이야기를 전한 다. -편집자 이 이야기는 싱가포르 주요 일간지 <스트레이트 타임즈>의 젊은 기자 재니스 타이가 정부기관을 취재하 며 시작된다. 그녀는 싱가포르 주택개발위원회(HDB)가 오는 1월부터 새로운 정책을 시행할 계획이지만 아 직 공표하지 않았다는 제보를 입수해 취재하고 있었다. 특종을 발굴하기 위해 재니스는 다양한 취재원들 을 만났고, HDB의 고위관계자 응 한 유안을 통해 사실관계도 확인했다. 그리고 10월 20일 <스트레이트 타 임즈는>는 HDB 온라인 사이트를 통한 주택 거래 기간이 기존 16주에서 8주로 줄 것이라 보도했다. 그녀 가 취재하던 사안은 싱가포르의 공공주택인 HDB 판매자와 구매자 양측 모두에 중요한 정보였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진행해오던 HDB는 사전에 정보가 유출됐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내부 직원이 공 직자 비밀 엄수법을 위반했다고 경찰에 통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은 이 사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정부는 기밀 누설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정당이나 공직자가 관련돼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처벌할 것이다.” 결국 응 한 유안은 ‘기밀 유출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됐으며, 이를 취재한 재니스 타이도 경 찰로부터 ‘엄중한 경고’를 받았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스트레이트 타임즈>는 그녀가 기자의 본분에 충실 했을 뿐이라고 지지했다. 또한 “타이는 우리 편집국의 소중한 멤버다. 앞으로도 같이 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1992년 싱가포르 프레스 홀딩스 그룹(SPH)이 발행하는 경제지 <비즈니스 타임 즈>는 GDP 2분기 성장률을 정부 발표에 앞서 보도했고, 이와 관련된 다섯 명이 공직자 비밀 엄수법으로 처벌 받은 적이 있다. 이야기의 무대를 옮겨보자. 지난 10월 SPH 그룹 소속 기자 130명이 기업의 구조조정과 체질개선을 이유 로 해고통보를 받았다. 해고된 기자들은 <스트레이트 타임즈> <리안 헤 자오바오> <비즈니스 타임즈> 등에 서 일하던 선임 사진기자와 편집국 기자들이었다. 이들은 퇴직금 조로 월 급여에 준하는 돈을, 58세 이상 의 기자들은 두 달치 급여에 준하는 돈을 지급받았다. SPH 측은 인력을 감축하게 된 이유에 대해 “광고수 익이 전년 대비 6.7% 감소했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SPH의 순익 이 전년보다 32% 증가했음에도 구조조정을 빌미로 인원을 감축했다”고 비판했다. SPH는 또한 비(非) 언 론 사업을 통해 높은 수익을 거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정치평론가 데렉 다 춘하는 “SPH는 정부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다른 매체들보다 타 격을 덜 받을 것이다. 즉 SPH에서 발행하는 신문들이 정부 여당을 옹호하고 이들의 심기만 거스르지 않 는다면 수익이 큰 폭으로 감소하진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면 재정적 인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언론이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인가? 그러나 다 춘하는 “대안 매체들의 거센 도 전에도 불구하고 <뉴욕타임즈>의 유료 구독자는 오히려 급증했다. 소셜미디어가 범람하는 시대라곤 하지 만 사람들은 여전히 수준 높은 탐사보도와 분석기사들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콘텐츠의 질을 높이는 것이 언론사가 살아남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고, 사업 확장도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다. 얄궂게도 SPH는 싱가포르와 주변 국가들의 옥외 광고 및 행사 기획 등의 사업으 로 신문과 잡지 등 매체를 통한 수익보다 더 큰 돈을 벌고 있다.
아이반 림 아시아기자협회 명예회장
24
25
Xinhua
Woes of the Third Generation Asian
Pramod Mathur is an Indian journalist. He is CEO of SPOTFILMS and Chairman of Foundation For Responsible Media(FORMEDIA). Starting as a photo-journalist in late the 1960s, he moved on to be a television journalist and subsequently a documentary film-maker. He has been Cameraman-cumCorrespondent, Producer-Director at SPOTFILMS for over 2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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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traditional Asian societies prepared
40s grappled to understand the meaning
to venture into the New Year, it may be
of this new freedom. A new democratic
pertinent to introspect on how family units
constitution, a new parliament, new rights,
fared socially and financially thus far; How
and new obligations. For some, political
societies evolved and to which direction
freedom meant to rebuild the country in
future generations are headed.
terms of infrastructure. For others, it was
In most countries, much has happened
freedom to think what they would like to do
politically in the past seventy years.
with their own lives and families.
Many have come out of dictatorships,
Even through these thousand or more
dynastic rules, and monarchical systems
tumultuous years, traditional Indian society
of governance. The British, French, and
has retained its social norms, rites, and
Americans have condescended to allow
rituals. At the time of independence,
democracies to take root across the globe.
Indians who were in their 30s, and
India suffered over thousand years of
educated, began to plan the futures of
Islamic invasions and subjugation under
their children. Education was of utmost
the British crown for more than 300
importance. The welfare state began to
hundred years. The emasculated Indian
eradicate rural poverty by inducting new
society, too, experienced drastic changes
technologies.
in the seven decades since independence
What also continued to remain firmly
in 1947.
rooted within the traditional Indian society
The first Indian generation that became
was hierarchy as elders, grandparents,
free of invaders and alien rulers in the late
and parents, with wisdom through life
AP
progression. In the past few decades, some of these social scientists have begun to study the negative impact of this “freedom of the individual”, globalisation and the resultant loss of tradition and culture. As we prepare to step into the New Year, the Third Generation Indian continue to drift away from the parents. They adversely developed the curious perceptions that their (second generation) parents did not understand them or their aspirations. They did not want to belong in the shadow of their parents and were convinced that the path of their parents was impacted by stress and mistrust. experience, remained the binding force for
began to work hard and earned good
For the second generation Indian, it
most families in rural or urban India. They
money, enough to set up their own home
became a point of questioning the path of
were firm, and in some ways, orthodox and
and bear children. They had grown up
freedom that they had bestowed on their
domineering. Most decisions for the young
under the strict social norms led by their
children. Maybe, the second generation
children were always, without exception, in
grandparents and parents, but were now
should have heeded Budhha’s wisdom:
the hands of the elders. There were limits
venturing out in becoming global citizens.
“Wind a string too tight and it will break. A
placed on what a child could or could not
They engaged with the western world and
loose string does nothing. Only in between
do; which stream of education he or she
began to heavily borrow western mores.
can music be produced. Seek the middle
would go to. With whom she or he could
Often, western books became the guiding
way”.
marry and when. There were strict social
principles of their parenting styles.
norms that needed to be followed. Rebels
The first thing that this new global Indian
could face the risk of being ostracised
did was to dismantle traditional ways of
by the family or even the community and
parenting that he or she detested as a
society at large.
child. They showered freedom on their
If closely studied, this scenario may be the
children to do and think as they liked… and
same for most societies of South or South
grow up the way they wished. This freedom
East Asian countries that attained freedom
was bestowed without hesitation. Such
in the decade of the 1940s.
parents provided all the “good things” of
By the mid-1970s, a whole new second
life that they had not experienced in their
Indian generation was ready to get married
childhood. Children were sent abroad to
and set up homes. The so-called “modern
study. Parents did not mind if children did
young Indian” who had grown under strict
not enjoy the company of elders or follow
social norms imposed by elders was now
long-established traditions. Over time,
prepared to become a parent.
rejecting the wisdom of elders became the
The new generation rebelled against social
preferred path.
orthodoxies and began to wrest social
There were neither any training nor limits
freedom for themselves, especially from
of freedom for this third generation Indian.
their parents and grandparents. And as
The third generation Indian thus neither
they set up new homes, the age-old Indian
learnt the meaning of hard work nor did it
joint family system began to crumble. The
understand the value of money.
norm for nuclear families began to take
Anthropologists who study societies in
root by the 80s.
developing countries would perhaps
Soon, this second generation Indian
term this pattern of growth as natu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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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0년간 아시아 대다수 국가들은 대변혁을 겪었다. 다수의 독재, 왕정, 군주제 국가들이 역사의 뒤안 길로 사라진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이 새 시대를 맞이함에 따라 전통적인 가족 공동체도 변화된 사회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필자의 모국 인도는 1천년 이상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고, 300년 이상 대영제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너 무나 무력했던 인도는 1947년 독립 이래 급격한 변화를 체감했다. 외세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인도의 독립 1세대들은 자유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고심했다. 민주제도, 의회, 그리고 이에 따른 권리와 의무. 모든 것들 이 새로웠다. 이들에게 사회적인 측면에서의 자유는 국가의 재건을, 개인적인 측면에서의 자유는 개인과 가족을 위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을 의미했다. 인도가 막 독립할 즈음, 30대 지식 인층은 교육에 초점을 맞춰 자녀의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도의 전통적인 가족 제도는 이들 이 원하는 교육을 시행하기엔 어려운 환경이었다. 격동의 세월을 보냈음에도 인도 사회는 사회적 규범과 관습, 종교적인 의식들을 지켜 왔다. 전통적인 인도 사회가 간직했던 것은 가족 내에서의 서열이었다. 인도의 전통적인 가족은 삶의 지혜를 터득해온 연장자 를 존중했고, 또 그들의 뜻을 따랐다. 이 문화는 도시와 시골 가릴 것 없이 인도 곳곳에 남아 있었다. 가족 내 연장자들은 완고했고, 구성원 위에 군림하려 하기도 했다. 어른의 뜻에 따라야만 했던 어린 세대들에게 의사결정권이란 사치였다. 아이들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결정할 수도 없었다. 이는 누구나 반 드시 따라야만 했던 엄격한 규칙이기도 해서, 반항아는 가족 구성원들과 공동체로부터 배척당하곤 했다. 이러한 현상은 1940년대 들어서야 자유를 획득했던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대다수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겪었던 것이기도 했다. 다시 세월이 흘러 1970년대 중반, 독립국가 인도의 2세대는 결혼해 가정을 꾸릴 채비를 갖췄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엄격한 사회규범에 따라 성장한 ‘현대의 젊은 인도인들’이 이제 막 부모가 되려던 그 찰나였 다. 이 세대는 사회의 전통에 저항했고,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로부터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들이 가정을 꾸리기 시작하면서 오랜 전통의 대가족 제도 역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0년대에 이르자 핵가족 제도는 사회 전반에 뿌리내렸다. 2세대 인도인들은 열심히 일했고, 독립 가정을 충분히 꾸 려갈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인 보상도 얻었다. 비록 그들은 구세대가 그려놓은 틀 안에서 성장했지만, 세 계인으로 거듭날 각오가 돼 있었다. 이들 세대 중 일부는 서구의 관습을 받아들였고, 서구의 방식에 따라 자녀를 양육했다. 이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현대의 인도인들은 중대한 시사점들을 남겼다. 2세대는 그들이 그토록 혐오했던 전통적인 육아 방식을 바꿨다. 신세대 부모들은 자녀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부여 했다. 어린 시절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좋은 것들’도 아낌 없이 자녀에게 줬다. 또한 아이들이 예부터 내려오던 전통을 따르지 않는다 해도 그리 개의치 않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연장자의 지혜’는 뒷전으 로 밀려나 버렸다. 그러나 자유를 마음껏 누린 3세대들은 근면성실의 의미와 돈의 가치를 배우지 못한 채 성장했다. 지난 수 십 년간 개발도상국가를 연구해온 학자들은 이러한 과정을 자연스러운 진전이라 일컬을 지 모른다. 하지 만 적어도 인도에 있어 그리 간단히 치부될 문제는 아니다. 인도는 그 다음 세대로 나아갈 준비를 해야 하지만, 3세대 인도인들은 그들의 부모 세대와 점점 멀어져만 갔다. 3세대는 억압 속에서 자란 부모의 그림자에 갇히길 원치 않았고, 2세대도 3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2세대 인도인들은 자녀에 자유만 선사한 것은 아 닐까? 부처의 지혜를 따랐다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곧으면 부러지고, 반대로 너무 느슨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중용을 지켜야 한다.”
프라모드 마터 인도 SPOTFILMS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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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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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on” Has Turned Black
Neelima Mathur has worked in the field of media as researcher, writer, executive producer and now trainer for nearly four decades. Her experience includes print, radio, television journalism and documentary film-making. She continues as Executive Producer, Researcher ; Writer at SPOTFILMS, Trustee &amp; Trainer at FOR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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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is an interesting theory about China:
another north-eastern state, Arunachal
that it follows a policy of de-securitisation
Pradesh, the borders of which are a
particularly for water related issues. It
constant source of Indo-Chinese tensions.
means, China shifts the matter from a
China lays claim to parts of Arunachal
security issue towards a political issue. It is
Pradesh that it terms as “South Tibet”.
happening once again with India and it is
Recently, the waters of Brahmaputra
China’s way of maintaining a semblance of
became blackened, leading to much
stability with India and Bangladesh, while
concern. Local ministers began writing
at the same time, pursuing conflict with
to the central government and the Prime
India.
Minister. Soon after, the Home Minister
Brahmaputra is one of the ten largest rivers
of India, Rajnath Singh, assured that the
in the world and it flows from Tibet into
matter would be taken up by the Ministry
India and Bangladesh. It is variously known
of External Affairs. There is still no official
as Yarlung Tsangpo and Siang. While most
statement from the latter, a signal that India
rivers in India have a feminine name, this
is yet looking for an appropriate manner in
river is known as the “Son of Brahma (the
dealing with the issue.
Creator)”. Its transboundary character
Meanwhile, water from over 15 different
makes it vulnerable to political conflict
locations down the river have been
between two countries that have perennial
collected and sent for testing. Initial tests
disputes – China and India.
at the local level have revealed that the
Brahmaputra is a lifeline for the north-
turbidity level has hit over 480, while safe
eastern state of Assam. It also flows in
limits are between 0-5. The iron content
data with India, for which India has always
dispute-settling mechanism between the
Both these factors make the water unfit for
bought for a price. In its spirit of de-
two countries. Indeed, the Brahmaputra
human consumption and will greatly affect
securitisation, China has mixed this up
has been a point of conflict between India
aquatic life.
with a recent border issue with India, the
and China for over a decade. The key issue
Presently, there is a lot of speculation
Doklam Conflict. According to an Indian
has been dam-building by the Chinese on
regarding the reasons that have led to the
government spokesperson, this year, China
the Yarlung Tsangpo, the Tibetan part of
turbidity of Brahmaputra. It is therefore
has not shared its hydrological data but it
Brahmaputra.
important to understand the context.
has done so with Bangladesh.
With increasing demand for water and
With 20% of the world’s population, China
In the meantime, allegations and denials fill
electricity, China has its plans chalked out
has only about 7% of freshwater resources
the air. Seeing the cement-like substance
to address those needs. India will be at a
globally. The distribution of this scarce
in the waters of Brahmaputra has led to
loss as to how to cope with a blackening
water is also unequal. Tibet has more fresh
speculation about suspected construction
Brahmaputra—particularly since China
water than northern China.
activities in Tibet. There has been talk
cleverly mixes up border and water issues
In early 2000, China embarked upon an
about a 1,000 km-long tunnel to divert
with politics.
ambitious project to carry water from the
water from Tibet to water-starved regions
Attention will now be fixed on how
south to the north. It included rampant
like the Xinjiang province. China denies this
the Ministry of External Affairs of India
dam-building that would also provide
and instead, talks about an earthquake in
responds to the attention drawn by
hydroelectricity to the northern regions.
Tibet that blackened the river water. Some
its Home Minister. Meanwhile, a large
Dam building on a river that flows across
experts mention the occurrence of an
population spread across the length of this
boundaries is potentially disastrous for
earthquake of 6.3 magnitude in the Tibet
river are at risk, along with dense aquatic
downstream communities found in India
region in mid-November.
life and its endangered species.
and Bangladesh. There have already been
Local people say the blackening is most
large-scale incidents of heavy flooding that
unnatural and must surely be linked
have affected thousands of people in the
to some heavy human activity. They
area surrounding Brahmaputra’s flow.
consistently site the cement-like content
On the Indian side, Brahmaputra accounts
of the water. People have also reiterated
for 29% of the country’s river run-off. It is
that between November and February, the
crucial to India’s river-linking project, and
water of Brahmaputra is always crystal
the Brahmaputra basin has over 40% of
clear.
India’s hydropower potential. For these
Until now, India and China managed
reasons, it needs constant monitoring and
cordiality on water matters through its
updating of all relevant data.
MoU and expert level committee, but
China is obliged to share its hydrological
there is no binding agreement or official
Xinhua
AP
has also increased to 1.65 mg per li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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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도크람 고원에서 대립했던 인도와 중국. 겉으로는 안정을 유지하고 있는 양국이지만 또다른 갈 등의 씨앗이 싹트고 있다. 티벳과 인도, 방글라데시에 걸쳐 흐르는 브라마푸트라 강은 지구상에서 가장 규모가 큰 10개의 강 중 하 나다. 인도 강들은 보통 여성을 뜻하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이 강의 이름은 ‘브라마(창조자)의 아들’을 뜻 한다. 브라마푸트라는 인도 북동부 아삼 주의 생명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강은 인도와 중국의 국경이 맞닿아 있는 아루나찰 프라데시 주에도 걸쳐 있기 때문에 양국의 긴장을 유발해 왔다. 중국이 아루나찰 프라데시 주를 ‘남 티벳’이라 칭하며 권리를 주장하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 브라마푸트라의 강물이 최근 검 게 물들며, 많은 우려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지방 정부는 강 하류 15곳의 강물 표본을 수집해 수질조사 를 벌였다. 그 결과 강물의 혼탁도가 안전치인 0~5를 훨씬 초과한 480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철분 함유량도 리터당 1.65mg까지 증가했다. 이 강물은 인간이 음용하기에 부적합하며, 강 생태계에도 악영향 을 미칠 정도로 오염된 것이다. 결국 주 정부는 중앙정부와 총리에 SOS를 요청했다. 그러나 인도 내무부 장관은 “이 문제는 내무부가 아 닌 외무부 소관”이라며 책임을 외무부로 돌렸다. 여기까지의 흐름을 보면 인도 측은 이 문제에 대처할 마 땅한 주무부처도 찾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듯하다. 브라마푸트라를 둘러싼 여러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 는 가운데, 이를 보다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선 강을 둘러싼 맥락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브라마푸트라 강 너머에 위치한 중국은 세계 인구의 20%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수자원 보유량은 전세 계 담수 총량의 7%에 불과하다. 수자원의 지역적인 분포 역시 고르지 못해 깨끗한 물은 중국 남부 티벳 쪽에 편중돼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은 2000년대 초반, 남부의 물을 북부로 끌어오는 대규모 수로 공사에 나섰다. 이때 중국은 북부에 수력전기를 끌어올 요량으로 댐 건설도 병행했다. 그러나 국경을 가 로지르는 강에 댐을 건설하는 것은 강 하류에 위치한 인도와 방글라데시 주민들에 위험하다는 전망도 뒤 따랐다. 실제로 댐 건설이 시작된 후 브라마푸트라 강 주변의 수천 거주민에 피해를 입힌 대홍수가 몇 차 례 발생하기도 했다. 인도에 있어 브라마푸트라 강은 국가 전체 강물의 29%를 차지하는 수자원의 보고다. 인도 강들의 수로를 잇는 이 강은 국가에서 사용하는 수력전기의 약 40%를 생산한다. 이러한 연유들로 인도 정부는 나름의 방법을 동원해 강의 실태를 철저하게 감시해 왔다. 물론 중국도 브라마푸트라 강을 분석해 자료로 남겨왔 다. 그 동안은 중국 측 자료를 인도가 제 값을 치르고 구매해 양국이 공유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지 난해 도클람 분쟁 이후 중국은 이 자료를 방글라데시에게만 넘겼다. 양국 불화의 원인이 돼버린 이 강은 어떻게 오염된 것일까? 티벳에서 진행 중인 대규모 공사가 사태의 원 인일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신장과 같이 물이 부족한 지역으로 강물을 나르기 위해 1,000km 길이의 수 로를 공사하고 있다. 공사과정에서 나온 자재들이 강으로 흘러 들어가 물을 오염시켰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중국은 이를 부인한 채 11월 중순 티벳에서 발생한 6.3 규모의 지진 때문에 강물이 오염됐다고 주 장했다. 이에 대해 현지 주민들은 부라마푸트라 강이 자연현상으로 오염될 일은 없다고 말한다. 주민들은 시멘트와 같은 물질이 강으로 꾸준히 유입돼 왔다고 주장했다. 서로를 불편해 하는 양국은 수자원 문제에 관해선 MOU를 체결하는 등 다른 사안들에 비해 깔끔하게 대 처해 왔다. 그러나 이 협정이 법적 구속력을 지닌 것은 아니며,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이를 해결할 공식적 인 창구도 없다. 이 사안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댐 건설이다. 중국은 늘어만 가는 물과 전기 수요를 충 족시키기 위해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불거진 잡음을 외교 영역으로 끌어들 였다. 인도 외무부의 행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닐리마 마터 <아시아엔> 인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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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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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li – the Necropolis of Invaders, Kings, Queens, and Saints Nasir Aijaz is a 40-year experienced Pakistani journalist. He has worked as editor, reporter, magazine editor, news editor and anchor in different newspapers, news agencies and radio news services. Until recently, he served as Bureau Chief and Editor at Pakistan Press International(PPI) news agency and Head of PPI radio news service. He currently serves as the Chief Editor at the Indus Chronicle, a monthly magazine based in Karachi, Pakistan.
Makli is one of Pakistan’s six world
the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heritage sites declared by UNESCO in
& Cultural Organization UNESCO has
1981, but owing to negligence by federal
launched a program in Pakistan to hold
government authorities in the past and
training workshops for the officials of
encroachments by local communities, the
provincial archeological departments of the
necropolis’ features began to decay. This
country on “involving the local communities
resulted in UNESCO warning that it would
in protecting and preservation of historic
de-list Makli as a World Heritage.
places and ancient monuments”. One
Just 90 km east of Karachi, the southern
such workshop was held in Karachi for the
port city and capital of Sindh province, a
officials of Archeology Department of Sindh
hilly area known as the Makli is known as
on November 2, 2017. The experts from
the final resting place of invaders, kings,
Bangladesh, Jordan, Nepal, and Oman
princes, saints, and philosophers spreading
also attended and presented case studies at the workshop. Speaking at the workshop, Syed Sardar Shah, the provincial minister for Culture & Tourism, announced that his department would be organizing a 2-day International Seminar at Makli, one of the largest necropolises in the world, on January 1 to 1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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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ir Aijaz
With funding by the Republic of Korea,
Nasir Aijaz
for many centuries.
graves and tombs of more than one
About 6 km from Makli’s southern entrance
hundred thousand people.
is located the Samma monument cluster.
Very little is known at present about the
Samma Dynasty rulers were native people
meaning and origin of the word Makli;
belonging to the Rajput clan. They gained
what is known is a myth. Legend has it
control of Sindh in 1335 and expanded
that a traveller on holy pilgrimage to Mecca
their territory north to modern-day Punjab.
(One of the Holy City of Muslims in Arabia)
It was during the rule of Jam Tamachi,
stopped at the site and, upon seeing a
a 14th-century Samma prince, that the
mosque just outside Thatta district of
foundations of Makli were first laid.
in the first week of December 2017, U.S.
Sindh, fell into a state of ecstasy repeating
Climatic conditions, such as erosion,
Consul General Grace Shelton visited
“Hadah Makka li” (this is Mecca for me). It
earthquakes, flash floods caused by heavy
Makli Hill to participate in the completion
is said a popular Sufi saint of the Samma
rains, pollution and lack of attention had
ceremony for the Ambassadors Fund for
period, Sheikh Hamad Jamali, then named
left the monuments in a critical state of
the Cultural Preservation project at the
the mosque Makli after this occurrence.
deterioration.
tombs of Sultan Ibrahim and Amir Sultan
The necropolis rose to importance as a
“Soon after the devolution of archeological
Muhammad. On this day, the US provided
burial site between 1352 and 1524 AD
department by the federal government
more than $260,000 in funds to restore the
when the Samma Dynasty made the
to the province, we started working
tombs.
coastal town of Thatta as their capital.
on rehabilitation of our heritage sites,”
Consul General Shelton addressed those
The structures here seem more like
Manzoor Ahmed Kanasro, Director General,
in attendance saying, “These sites are
small palaces than graves. Six types of
Antiquities & Archeology Department of
essential reminders of the contributions
monuments can be found across Makli.
Sindh, told The AsiaN.
and historical experiences of humanity,
They include tombs, canopies, enclosures,
“The department has designed a Master
and through conservation efforts like this,
graves, mosques, and khanqas, the
Plan for the rehabilitation of necropolis and
we preserve these cultural treasures and
learning spaces where saints would teach
fortunately the UNESCO has approved
the stories they tell for future generations.”
and preach to their disciples.
it,” he said adding that construction of a
Makli also has clusters of tombs and
boundary wall is also underway around
graves including those erected during the
historic tombs.
Arghun, Tarkhan and Mughal dynasties
The necropolis faced yet another threat
between 1524 and 1739. Rulers of these
by people who would dig the graves and
invading dynasties were of Turko-Mongol
steal precious gravestones with engraved
origin, who brought northern, central, and
inscriptions to be sold illegally. “In order
western Eurasian influences, such as
to curb this illegal practice, we have
delicate floral patterns and geometric
appointed guards and provided them with
designs, to the architecture, art, and stone
motorcycles to keep an eye on grave-
carvings found in Makli.
diggers,” Mr. Kanasro told.
For hundreds of years, the site has also
The department has further begun clearing
been a place of worship for Muslim and
the entire necropolis of wild bushes,
Hindu pilgrims. The two faiths, along with
graffiti, and installation of streetlights
Buddhists, have lived in this area peacefully
and construction of inner roads besides
Nasir Aijaz
over eight to ten square kilometers with
imposing a ban on plying vehicles. “But an important work undertaken by department is documentation of historic stones found broken and scattered in the necropolis, so that they could be erected again at their actual place,” authorities said. The good news is that the United States has also come forward to rehabilitate the necropolis, Mr. Kanasro said, adding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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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가 파키스탄의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워크숍을 개최했다. 이 워크숍은 파키스탄 역사 유적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기 위해 기획됐다. 이의 일환으로 파키스탄 신드 주 관련부처도 11월 2일 카라치에서 방 글라데시, 요르단, 네팔, 오만 등 국외 전문가들을 초빙해 사례발표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파키스탄 신 드 주 문화관광부 장관 사이드 사르다르 스하는 “오는 1월 세계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이자 지역의 문화유 산인 마클리 고원에서 국제세미나를 개최할 것”이라 발표했다. 마클리 고원 공동묘지는 1981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파키스탄의 6대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로, 8~10km2 의 규모를 자랑한다. 이 묘지는 왕족, 성인, 철학자 등 10만여 영혼의 ‘최후의 안식처’다. 마클리의 유래와 관련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설이 있다. 14세기 이슬람 성지 메카를 순례하던 한 순례자가 어느 날 우연히 이 지역의 한 모스크에 도달했다. 신의 깨달음을 얻은 듯 그는 갑자기 멈춰 서 “하다 마카 리”(여기는 나를 위한 성지)라고 외쳤다. 이 터를 발견한 사람은 수피교 성인이자 철학자로 유명한 셰이크 하마드 자말리. 그는 이 곳을 마클리라 불렀다. 이 유적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품은 공간으로 인류사에 이름을 남겼다. 이 자리는 라지푸트 원주민 출신인 삼마 왕조가 연안도시 타타를 건설해 수도로 삼았을 당시인 1352~1542년 사이 묘지터로 자리잡았다. 때문에 마클리의 남쪽 출입구에서 6km 떨어진 지점엔 삼마 왕 조를 기념하는 비석도 세워져 있다. 마클리 고원의 특징은 이 곳이 단순히 묘지터라기보단 작은 궁궐처럼 다양한 시설을 갖췄다는 점이다. 무덤, 캐노피, 울타리, 모스크, 그리고 성인들이 제자들을 가르쳤던 한카 까지 마클리를 이루고 있는 건축물들과 공간들은 각각의 기능과 역할을 다했다. 마클리는 여러 문화와 종교가 살아 숨쉰 공간이기도 했다. 1524~1739년 마클리는 아르군, 타르칸, 무굴 왕국 등으로부터 침략을 당했지만 이들의 문화와 융화했다. 침략자가 남긴 정교한 꽃무늬와 기하학적인 디자인은 이 유적의 건축과 예술양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슬람, 힌두교, 불교신자들도 수백 년간 이 곳 에서 평화롭게 공존해왔다. 그러나 마클리 공동묘지는 침식과 지진, 홍수 등 자연재해와 연방정부의 관리 태만으로 쇠락했고, 유네스코 측으로부터 문화유산 등재가 취소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받게 됐다. 마클리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은 주 정부도 잘 알고 있다. 신드 주의 관련부처 고위관계자는 <매거진 N>과의 인터뷰에서 “중앙 정부로부터 책임과 권한을 넘겨 받은 후 문화유산 재건에 착수했다. 우리는 공 동묘지 재건을 위한 기초 계획안을 설계했고, 유네스코의 승인도 얻었다”고 밝혔다. 마클리는 현재 또다른 위협에 직면에 있다. 무덤을 도굴하고 귀중한 묘비석을 훔치려는 도굴꾼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 다. 때문에 지방 정부 측은 이들의 불법행위를 막기 위해 경비인원까지 배치했다고 한다. 주 정부는 더 나 아가 주변 환경 정비에도 나섰다. 무질서하게 자란 덤불과 낙서를 정리했고, 가로등도 설치했다. 이 관계자 는 “도굴꾼들을 막고 주변 환경도 정리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파손되거나 뿔뿔이 흩어 져 있는 비석들을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리는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다행히도 마클리 재건 프로젝트는 더욱 탄력 받을 전망이다. 복원사업에 미국도 참여할 의사를 밝혔기 때 문이다. 2017년 12월 첫 주, 미국 총영사 그레이스 쉘턴은 이 재건 사업의 준공식에 참석해 26만달러(약 2 억 8천만원)을 기부했다. 총영사는 이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마클리는 인류의 역사를 품은 주요 문화유적이다. 우리 후손에 귀중한 유산과 이야깃거리를 전하기 위해 이 유적을 보존하고 가꿔나가 야만 한다.”
나시르 아이자즈 아시아엔 파키스탄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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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ir Aijaz
The Political Domino Effect in the Middle East
Ashraf Aboul-Yazid(Dali) is an Egyptian poet, novelist, translator, journalist, traveler and TV presenter. He won the Arab Journalism Award in culture 2015, and Manhae Grand Prize in Literature 2014. He has published more than 30 books of poems, novels, travels, and children literature. Some of his literary works are translated into Spanish, Korean, Turkish, English, and Persian. He is also President of AJA and Editor-in-Chief of the Arabic version of The As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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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ilitary occupation of the British, the
The second wave came shortly after these
French, and the Soviets departed from
years, with the independent waves in North
many parts of the Middle East during and
African Arab countries; as the departure of
after World War II, while Iran, Turkey, Saudi
the European powers from direct control
Arabia, and other Middle Eastern states on
of the region, the establishment of Israel,
the Arabian Peninsula generally remained
and the increasing importance of the oil
unaffected by World War II.
industry, marked the creation of modern
However, after the war, the following
-day Middle East.
Middle Eastern states had independence
These developments led to a growing
restored or became independent:
presence of the United States in Middle
November 1943 – Lebanon, January
Eastern affairs. The U.S. was the ultimate
1944 – Syria, May 1946 – Jordan (British
guarantor of stability in the region, and
mandate ended), 1947 – Iraq (forces of
since the 1950s, the dominant force in
the United Kingdom withdrawn), 1947
the oil industry. When local revolutions
– Egypt (forces of the United Kingdom
brought anti-Western regimes to power in
withdrawn to the Suez Canal area), 1948 –
Egypt (1954), Syria (1963), Iraq (1968) and
the Occupying State of Israel (forces of the
Libya (1969), another domino-effect wave
United Kingdom withdrawn).
shaped the region’s history for almost 50
A bird’s eye could see this common
years or more.
withdrawal of occupation forces as the first
After generations of political mistakes, a
of the political domino-effect wave in the
call for democratization and the protection
Middle East.
of human rights have typically been
powers that replaced previous occupation
their negotiations”. Hundreds of thousands
reminded us of the 1960s movements seen
forces were not good and honest enough
are killed in wars, in refugee’s camps;
in Europe.
to set the scene right.
as they flee from death, but international
However, popular commentary on Arab
So, people in this region had gotten rid of
organizations still stand helplessly not
Spring has included reference to the
the old foreign powers that had occupied
knowing how to provide assistance.
international dimensions of the diffusion
their land, but they are now facing a
Weapons are being used every day and
of democracy and human rights that
new national occupation by their own
everywhere in a destructive domino-effect,
began with the self-immolation of a street
domestic armies. For decades, the Arab
but with one great UN council veto-action,
vendor in Tunisia and the subsequent
states ensured all advantages possible
radical forces are permitted to carry out
spread of political protest, conflict, and
for privileged army members (and interior
their ugly mission.
transformation engulfing the region,
forces)—special rights not available to
The World has a solution, but no one dares
especially Egypt, Yemen, and Syria.
normal citizens. In Egypt, for instance,
to use it.
That this third wave of public political
advantaged citizens as ranked into classes:
A sigh of frustration comes now with the
movements of peoples was marked
armed force members, individuals of the
American President’s announcement to
by the obvious interference of the new
Ministry of Interior, Al-Azhar clerks, and
shift the American embassy to Jerusalem—
social media and their interplay with the
media personnel. These four ranks come
as the capital of Israel—this action shows
international dimension to democracy and
before the 5th level ordinary citizen.
great powers really do nothing other
human rights becomes evident.
Only democracy can solve this by
than send outside regions into a more
A hidden wave of religious domino effects
distributing rights and duties away
catastrophic future.
of Islamic groups jumped to control the
from ranking citizens in such inhumane
scene, with western support to give the
practices.
region over to Islamists, a step which was
Another step that would be beneficial is
wrong enough to destroy democracy at its
to prevent local governments from ruling
birth place.
societies as per a religious regime does.
Now the region is facing the final wave of
Religion should go back to mosques,
the domino-effect, with wars to determine
churches, and temples.
the scene as independence is unsure,
Finally, western powers only intervene
no human rights are fulfilled, no justice
when their interests are placed at risk or
guaranteed, no president elected, and
when such interests are questioned. Thus,
no economy progress achieved. Only
at a high price, big wars have destroyed
questions remain: Where was the mistake
countries like Libya, Yemen, Iraq, Syria,
then, and where is it now?
and Somalia, but those powers are still
The main answer is that the national
gathering in Geneva and Astana to “make
Xinhua
understood as domestic phenomena. It
39
중동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상처를 받은 곳 중 하나다. 서구의 식민지배를 받던 국가들은 2차대전 이후 독 립을 이뤘지만 민중들의 삶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또한 일부 국가들은 최근 몇 년간 의 전쟁과 민주화 과정에서 많은 피 흘리기도 했다. 이 모든 문제는 어디서 시작됐는가? 중동에서 나고 자란 아시라프 달리 아시아기자협회장이 중동을 휩쓴 네 차례의 도미노효과들을 짚어본다. -편집자 20세기 초중반까지 영국, 프랑스, 소비에트 연방 등은 아라비아 반도의 일부 국가들을 제외한 대다수 중동 국가들을 점거하며 지역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그러나 2차대전을 전후로 강대국들이 철수하며 1943년 레 바논, 1946년 시리아, 1947년 요르단과 이라크, 이집트가 자주권을 얻거나 독립했다. 이 과정을 중동 정세 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최초의 도미노효과라 볼 수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물결도 밀려왔다. 북아 프리카 아랍국가들이 유럽 강대국들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났고, 이스라엘이 건국했다. 또한 석유산업의 중 요성이 확대되며 중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2차대전 이후 새롭게 떠오른 강대국 미국은 1950년대 들어 석유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중동에서의 영 향력도 확대해 나갔다. 미국은 중동의 정세 안정에 기여한 측면도 있지만, 반발세력도 적지 않았다. 결국 1954년 이집트, 1963년 시리아, 1968년 이라크, 1969년 리비아에서 차례로 반미 정권이 들어섰는데, 이를 세 번째 도미노효과라 할 수 있다. 이때 형성된 중동국가들의 체제는 약 반세기 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당 시만 해도 민주화와 인권신장은 중동과는 다른 세상의 얘기였다. 50여년이 흐른 2010년 말,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은 중동의 정치지형도를 바꿨다. 당시 퍼지기 시 작했던 소셜미디어를 매개로 더욱 확산된 아랍의 봄은 특히 이집트, 예멘, 시리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 한 민주주의가 중동 전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아랍의 봄이 진행되는 동안 종 교 집단의 지배력이 확대됐고, 이는 오히려 역내 민주주의 발전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오늘날의 중동은 도미노 블록들이 쓰러지며 파생된 결과들과 직면하고 있다. 지금도 중동 각지에선 크고 작은 분쟁들이 일어 나고 있다. 이러한 국가들이 독립 주권, 인권, 정의, 민주주의, 경제적인 안정을 바라긴 힘들다. 첫 단추는 어디서부터 잘못 꿰였으며,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발견하기 위해선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중동국가들은 2차대대전 이후 서 구 열강들로부터 독립했지만 국력 기반이 약했다. 또한 외세가 차지하고 있던 권력을 되찾아 온 것은 맞지 만 이를 새로운 군부집단이 대체해 오랜 세월 특권을 누려왔다. 일반 국민들의 권리는 뒷전이었다. 민주주 의의 발전 만이 국민들의 권리와 의무를 균등하게 재분배할 수 있지만, 종교세력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종교의 논리가 아닌 인류의 윤리에 따라 접근해야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종교는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탄생한 모스크와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오직 이해관계에 따라 중동에 개입하려는 서방도 문제다. 리비아, 예만, 이라크, 시리아 등 중동국가들이 붕 괴되고 있지만 서방국가들은 스위스 제네바 협상테이블에서 중동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수많은 생명이 전 쟁으로 목숨을 잃고, 죽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이들로 난민캠프가 붐비고 있다. 하지만 국제기구들 은 여전히 탁상공론을 벌이고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며 아랍권은 또 한차례 폭풍우 를 맞이했다. 이는 중동에 거센 피바람을 일으킬 극단주의 세력에 명분을 주는 행동에 불과하다. 지역의 판 도를 흔드는 도미노효과에 중동이 신음하고 있다.
아시라프 달리 아시아기자협회 회장
40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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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â&#x20AC;&#x2022; 57 Special Report
42
2018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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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 가장 친숙한 동물 고양이. 하지만 고양이가 어디에 서 왔고, 아시아 각 지역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에 대해선 막연하다. <매거진 N>은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 고 있는 아시아의 고양이들을 전한다.
Cats—animals that have become so familiar to us and yet, we are still unsure of their origins and the meaning these felines have in our societies. Magazine N brings to you the history of such cats and their place in the culture of Asia.
Veneration & Attachment: Cats in Asian Culture
Alessandra Bonanomi Staff Repor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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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s in the Middle East The world can be divided into two main categories: people who love cats and people who hate them. To be more precise, the first group of people are really crazy for cats. But this is not a recent phenomenon. The bond between cats and humans can be traced back to centuries ago. Wildcats have lived among the people of Mesopotamia (a historical region in West Asia that roughly corresponds to most of Iraq, Kuwait, the eastern parts of Syria, Southeastern Turkey, and regions along the Turkish–Syrian and Iran–Iraq borders) over 100,000 years ago and were domesticated there approximately
By the time the Egyptian empire fell, cats
was usually depicted with a woman’s
12,000 BCE. Archaeological research has
were revered as master hunters and were
body and a lion’s head. She served as the
provided evidence that the Near Eastern
worshipped like gods by all Egyptians
sun’s personal guardian. Other Egyptian
Wildcat is the closest relative of the
including even the pharaoh. If an Egyptian
goddesses also assumed feline attributes.
modern-day domestic cat and was bred
killed a cat, they were punished by death.
So it was with Bast, or Bastet, who started
by Mesopotamian farmers, probably to
The pharaohs were mummified and
out as a “cave felem” case but eventually
control pests like mice that were attracted
buried with statues of cats as symbols
exchanged a lion’s mane and snarl for the
to wheat and grain supplies.
of good luck and safe companionship to
trim profile of a domestic shorthair and
the afterlife. Some cats were mummified
channeled her belligerence into maternal
and their bodies left to lay in tombs and
warmth. According to The New York Times,
shrines. According to some legends,
the concept of goddesses like Sakhmet
the veneration of cats was so deep that,
and Bast are shaped by its biases, which
during the battle of Pelusium (525 BC)
included a view of women as unpredictable
between the Achaemenid Empire and
and untamable, and therefore dangerous,
Egypt, Egyptians did not shoot because
and, like the cat, as fundamentally divided
enemies were carrying cats in front of
in nature: ruthless killer or tender mother.
them. In Ancient Egypt, cats and humans
Towards the end of the Egyptian empire,
developed a remarkably close relationship
cats were sold to the Greeks and Persians.
as shown by numerous depictions in art
According to legends, ancient Persians
from around 2,000 BC. At the time, art
believed that cats were magically created.
According to other theories, domestic
was strictly related to religious beliefs. For
The Persian hero, Rustum, once saved
cats descended from felines that lived
instance, Sakhmet, the daughter of Ra with
a magician from a band of thieves. As a
thousands of years ago in Ancient Egypt.
the most complex and difficult personality,
token of his gratitude, the magician cre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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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the “cats country”
an upright paw. It is usually displayed in
Cats are very common in Japan today,
business activities. Some of the sculptures
but they are not native to the country.
are electric or battery-powered and have a
During the mid-sixth century, they came
slow-moving “paw beckoning”.
to Japan through Chinese ships. The first pet cats were rare; kept only by the elite and carefully cherished. Art of the period depicts them with leashes and living indoors. In earlier artwork, cats are shown living in the lap of luxury. However, in 1602, the government decreed that all felines should be set free to catch rodents that were destroying the silkworm industry. The Japanese also used them to kill mice on ships, in farms, and in temples—where they would be eating at Buddhist scrolls. During the Edo period (1603 – 1868), Japan began creating mass popular culture. Ukiyo-e, woodblock prints and paintings, was originally a popular art form. But now, there were a lot of ukiyo-e prints for sale. To attract buyers, the subjects printed on the woodblocks ranged from everything fashionable and popular. This included cats: people began rendering felines in all kinds of positions, locations, and a cat and gifted it to Rustum.
situations. Moreover, there are examples
In 500 BC, domesticated cats were given
of cat yōkai, supernatural monsters in
to the Emperor of China and the cat was
Japanese folklore, such as Bakeneko and
the most popular pet of the rich during
Nekomata.
the Song Dynasty. Such cats were bred
Ukiyo-e cats, however, are not the only
with the Wildcats of Asia and became
felines in Japanese art. The famous maneki-
a common asset of the first emperors,
neko may be the most famous example.
then the nobility, priests, and eventually
It is a common Japanese figurine (lucky
the peasants. The domesticated cat then
charm, talisman) which is often believed to
spread to all the surrounding countries of
bring good luck to the owner. Today, they
China, including India, and Japan.
are usually made out of ceramic or plastic. This figurine depicts a cat beckoning w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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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Japanese art environment has always
heralded modern exhibitions featuring
been full of artists in love with cats. One
cats in Japanese artwork was the “Life of
of the masters of ukiyo-e woodblock art
Cats: Selections From the Hiraki Ukiyo-e
of the 17th century, Utagawa Kuniyoshi
Collection.” The project was presented in
(1797-1861), was reportedly a serious fan
2015 by the Japan Society Gallery in New
of felines, often sharing his living space
York. Nearly 90 examples of Japanese art,
with multiple cats at any given time. The
in various mediums, was included in the
famous sculptor Asakura Fumio (1883-
exhibition.
1964) was also fascinated by cats. Known
All the cats of the exhibition may be the
for his many paintings of cats, Hishida
ancestors of the globally popular character,
Shunsou (1874-1911) was influential in
Hello Kitty. Produced by the Japanese
by cats: Kazuaki Horitomo Kitamura
establishing the "nihonga" style of painting
company Sanrio, Hello Kitty was designed
combinated his two great passions in
during the Meiji period. One of the most
by Yuko Shimizu. The anthropologist
life, tattoos and cats, created the famous
Christine R. Yano wrote a book titled
Monmon, a Japanese-American brand and
"Pink Globalization: Hello Kitty's Trek
style.
Across the Pacific". In it she examines the
Cats are also important features of
creation and rise of Hello Kitty as a part of
Japanese literature. I am a cat (1905-06) by
Japanese Cute-Cool culture. Yano argued
Natsume Soseki, Oh Nora (1957) by Uchida
that the international popularity of Hello
Hyakken, A Cat, a Man, and Two Women (1935-
Kitty is one aspect of what she calls pink
36) by Tanizaki Junichiro, Oh Tama (1986-
globalization—the spread of goods and
87) by Kanai Mieko, and The Guest Cat (2001)
images labeled cute (kawaii) from Japan to
by Takashi Hiraide are some examples of
other parts of the industrial world. She also
great books related to cats. Felines also
declared that Kitty's unreadable features
appear in Haruki Murakami's novels and
(she usually doesn't have a mouth), along
essays. In On the Death of my Cat, the author
with clever merchandising, has helped
writes: “Family- even if that includes cats
cultivate the character's following. The
too- is a living thing that has a certain
brand name comes from the English
balance, and when one corner of it falls
word “Kitty” and the emphasis on social
apart, it doesn’t take long before everything
communication: Hello Kitty.The famous cat
subtly breaks down”.
first took off in 1974 thanks to pre-school
Cats have been characters of manga,
and elementary school girls. In the 1980s,
movies, and animation film. For instance,
high school girls discovered the design and
the master of Japanese animation Hayao
created a second boom. After that, many
Miyazaki and Studio Ghibli have always
celebrities such as Naomi Campbell were
had a special link with cats: Lily and Jiji in
seen to have been photographed with
Kiki's Delivery Service, Nina in The Secret World Of
Hello Kitty.
Arrietty, Baron Humbert von Gikkingen and
The tattoo environment was also affected
Moon in Whisper of the Heart, Catbus in 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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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ighbor Totoro, and many more.
According to the Washington Post,
up to this day, few can tell with certainty
The proof that Japan is indeed a “cats
Japanese people own about 10 million
what was his real name. While dogs are
country” is indicated by all the places
cats. It is not surprising, then, that they
generally kept outside of Muslim homes,
related to felines: bookstores that collect
celebrate a cat-themed holiday, known as
cats are welcome inside it. Admired for
only cat-themed books, neko cafes or cat
"Cat Day" or “Nyan Nyan Nyan Day”, on
their cleanliness, the cat is considered "the
cafes (even though the first ever cat cafe,
February 22nd. The celebrity of the furry
quintessential pet" by Muslims. Another
Cat Flower Garden, was created in Taipei,
pets is also established through social
interesting fact is that Muslims do not
Taiwan), and cat islands. In addition to
media. Instagram plays an important role in
believe that you should buy or sell cats and
the famous Aoshima island, where cats
making famous many Japanese cats such
dogs; you can only give them as gifts. Cats
outnumber humans six to one, there is a
as Nyankichi5656 (73.3k followers), Ojarinn
were also frequently found in Islamic art.
massive presence of cats also in Enoshima
(69.9k followers), Kote218 (90.7k followers),
Christians do not seem to think the same.
(Kanagawa Prefecture), Okishima (Shiga
and Plumestagram (45.2k followers).
Apparently, there is no mention of cats in
Prefecture), Sanagishima (Kagawa
the Bible. In the Middle Ages, Christianity
Prefecture), Muzukijima (Ehime Prefecture),
Kitties in Religion and Beliefs
labeled cats as unclean and evil creatures.
Manabeshima (Okayama Prefecture),
Muslims’ love for cats is well documented
Many felines were burned alive like witches.
Iwaishima (Yamaguchi Prefecture), Aijima
in history: the Prophet Muhammad
According to Atlas Oscura, cat torture was
(Fukuoka Prefecture), Genkaishima
greatly appreciated cats and named his
seen as the one remedy to protect one
(Fukuoka Prefecture), and Kadarashima
favorite one Muezza. Moreover, one of
against sorcery; by breaking the cat, you
(Saga Prefecture). Cats were probably first
Muhammad’s companions was called
broke its malevolent power. In more than
introduced to the islands by fishermen who
“Abu Horayrah,” which translates to “the
one folktale, women who consumed cats
needed cats to protect silkworms from
man with a kitten.” Abu Horaryrah used
in stews gave birth to kittens. Irina Metzler,
mice. Interestingly enough, silkworms are
to have a cat on his shoulder all the time.
in her article “Heretical Cats: Animal
also used to spin fishing nets.
His nickname took over his name so that
Symbolism in Religious Discourse,” shares
48
the idea that it was the cat’s independent
that people act as middlemen to God’s
the society’s love for cats.
nature that gave humans their anxiety.
will. They’re not ungrateful. They just know
The obsession for cats is highlighted in
Buddhism is an animal-friendly religion.
better.” After watching the documentary,
the world of gaming, too. In 2016, the
there are no doubts regarding the large
cellphone game Neko Atsume was a big
number of cats that live in the Turkish
phenomenon. Downloaded more than 10
metropolis. In collecting all cases about
million times, the application's goal was
the high percentage of cats in many parts
to get cats to visit your virtual home and
of the globe, it is natural to wonder if the
garden. Once the cats visit, you get the
presence of the felines bring about any
chance to photograph them and collect
negative consequences to the ecosystem.
the photos in the “Catbook”. After the cats
According to a research about the impact
disappear, they leave behind a fish, which
of free-ranging domestic cats on wildlife
is the currency used in the game to buy
published in Nature Communications, cats are
more toys and food to attract other cats.
responsible for killing several endangered
At the end of the consideration, it is clear
bird species. In fact, cats have a strong
that there is something that strongly
hunting instinct even when raised in
connects human beings and cats. For
captivity. But despite the invasive nature of
some, it is a religious belief, for others they
cats, felines remain cute pets for the most
are symbols of luck. The feeling that cats
Moreover, some monks believed that
part. Adoring cats; the feeling sometimes
arouse in humans is probably the gateway
departed souls came back as cats.
turns into an obsession. For instance, in
to their success. “I collect records. And
The felines are mentioned also in Hinduism.
the Malaysian city of Kuching, the theme
cats. I don't have any cats right now. But
For instance, the Hindu folk goddess
of the entire city is cats. Statues, robots,
if I'm taking a walk and I see a cat, I’m
Shashthi is often pictured as a motherly
street art, museums, fountains, radio
happy” (Murakami Haruki).
figure, riding a cat and nursing one or more
stations, cafes; everything is dedicated to
infants.
Cute Pets or Invasive Species? As mentioned before, Aoshima island is full of cats. However, it is not the only place: cats and humans also coexist peacefully in Istanbul, as recounted by the 2016 Turkish documentary Kedi. Directed by Ceyda Torun, the movie describes many stray cats that live in Istanbul and their relationship with the community. Kedi (translation of “feline”) also analyses the spiritual side of this reality: “Dogs think people are God, but cats don’t. Cats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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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두 부류로 나뉜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과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전 자의 사람들은 정말로 고양이에 미쳐있다. 그러나 이는 최근 몇 년간 두드러진 현상만은 아니다. 고양이와 인간의 유대는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고양이를 너무나도 사랑한 고대 이집트 왕국 인류 역사상 ‘최초의 고양이’에 대해선 학자들마다 의견이 나뉜다. 일부 학자들은 인류역사에서 야생고양 이가 나타난 시기와 지역은 약 1만 년 전 중동 메소포타미아이며, 그 곳 주민들이 곡물을 축내고 전염병을 유발시키는 쥐를 막기 위해 고양이들을 사육했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다른 이들은 수천년 전 중동 이집트 에서 서식했던 고양이가 현재 고양이들의 선조라 말한다. 이들에 따르면 통치자 파라오를 비롯한 거의 모든 이집트인들은 고양이를 숭배했다. 이집트에서 고양이를 죽인 사람은 사형을 당했고, 파라오들은 미라로 매장될 때 행운의 상징이자 사후세계의 동반자인 고양이 조각상과 함께 묻힐 정도였다고 한다. 이집트인들이 고양이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이란의 고대왕조 아케 메네스 왕국과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도 고양이를 안고 있는 적을 차마 공격하지 못했다는 설도 남아있다. 그토록 고양이를 아꼈던 이집트였기에 인간과 고양이의 밀접한 관계를 암시하는 수많은 예술품이 이 곳에 남아있다. 고양이는 이집트 고대 신앙과도 관련돼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죽은 자를 수호하는 여신 바 스테트다. 본래는 사자의 형상을 지니고 있었던 바스테트는 고양이의 얼굴을 지닌 반인반수로 변모해 고대 이집트의 숭배를 받았다. 고대 이집트에서 고양이는 ‘사냥의 달인’이라 불릴 정도의 공격성과 가족을 지키 는 모성애를 갖춘 존재로 인식됐다. 고양이의 외모와 특징들을 닮은 여신 바스테트는 묘지를 노리는 맹수 와 맞서 싸웠다. 고양이는 고대 이집트 왕국이 끝나갈 무렵 그리스와 페르시아로 넘어갔는데, 이와 관련된 전설도 흥미롭 다. 페르시아의 영웅 루스탐은 우연히 한 마법사를 도적떼로부터 지켜줬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마법사가 고양이를 만들어 선물했다는 유래가 있다. 이는 고양이가 얼마나 신비로운 존재로 여겨졌는지를 반증하는 설화다. 그리고 기원전 500년경, 고양이는 고대 중국 황제에 진상되며 동아시아로 진출하게 된다. 처음에는 황제 의 진상품일 정도로 귀했던 고양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귀족, 그리고 일반 서민들까지 기르는 인기 애완동 물로 각광받게 됐다. 이 과정에서 고양이는 사람의 손에 길들여졌고, 인도와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들로 다 시금 퍼져나갔다.
매년 2월 22일 ‘고양이의 날’ 기리는 일본 6세기 중반 중국에서 일본으로 넘어온 고양이는 그 수가 매우 귀해 소수의 지배층만이 애완용으로 기를 수 있었다. 고양이를 묘사한 그림들을 살펴봐도 당시의 고양이는 지배층이 애지중지 기르던 고귀한 존재였 다. 그러던 17세기 초, 사원의 법전과 곡식을 갈아먹는 쥐를 잡기 위해 고양이를 방생하라는 칙령이 발포되 며 귀하디 귀했던 이 애완동물은 일본 대중의 삶 속으로 파고든다. 에도막부 시대(1603~1858) 들어 일본 대중문화는 더욱 발달했고 민중의 사랑을 받았던 고양이도 당시 풍 속을 묘사한 우키요에(목판화) 작품들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에도막부 이래 여러 화가들도 고양이를 사랑 해 작품에 담았는데, 그 중 우키요에의 대가 우타가와 쿠니요시(1797~1861)는 대표적인 고양이 애호가로 꼽힌다. 메이지 시대 일본의 전통회화 ‘니혼가’의 작풍을 다진 히시다(1874~1911)도 고양이를 묘사한 다수 의 작품을 남겼다. 일본 대중문화 속 고양이를 논하면서 ‘마네키네코’도 빼놓을 수 없다. 에도시대 유래된 것으로 알려진 마네키네코는 행운을 상징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해,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의 상점이 나 식당 등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다. 일본인들의 고양이를 향한 사랑은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도 여전했고, 고양이들도 외화를 벌어 국위선양 하며 보답했다. 1974년 일본의 캐릭터 디자인 회사 산리오가 내놓은 ‘헬로 키티’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전 세계를 강타했다. 헬로 키티는 자산 가치만 1조5000억엔(약 20조원)에 달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캐릭 터 중 하나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약 1천만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 매년 2월 22 일 사랑스런 고양이를 기리기 위해 ‘고양이의 날’을 제정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고양이 천국’ 일 본 곳곳엔 고양이를 위한 카페와 고양이를 다룬 책만 취급하는 서점 등이 널려 있다. 규슈 남부엔 사람보 다 6배나 많은 고양이들이 서식하고 있는 ‘고양이 섬’ 아오시마 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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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위한, 고양이에 의한 도시 쿠칭 아시아에서 고양이를 가장 사랑하는 나라로 일본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당연지사다. 하지만 언급하 지 않으면 서운할 곳들도 몇 있다. 그 중 말레이시아의 도시 쿠칭은 ‘고양이 도시’로 명성이 자자하다. 원주 민어로 고양이를 의미하는 쿠칭은 도시 전체의 테마가 고양이다. 랜드마크인 고양이 동상을 비롯해 미술 관, 박물관, 카페, 분수대 등으로 둘러 쌓인 쿠칭은 말그대로 고양이를 위한, 고양이에 의한 도시다.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는 터키의 이스탄불도 고양이를 아끼는 곳 중 하나다. 2016년 세이다 토룬의 다큐멘터리 ‘케디’의 무대가 된 이스탄불은 사람과 길고양이가 공존하는 가장 바람직한 예시를 제공한다. 대도시 이스 탄불엔 그 규모만큼이나 많은 길고양이들이 살고 있으며, 시민들도 늘 이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마찬가지 로 고양이를 뜻하는 ‘케디’는 “개는 사람을 신이라 생각하지만 고양이는 사람을 신의 중재자라 생각한다. 고양이는 사람들이 신을 대신해 환대하는 것을 잘 알고 또 고마워하는 동물이다”라고 말하며 예찬론도 펼 친다.
이슬람교 선지자와 추종자들이 아꼈던 동물 고양이가 정확히 어느 국가에서 발견됐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중동 지역에서 왔다는 사실은 다들 대체로 수긍한다. 그리고 이 지역의 절대다수가 믿는 이슬람교가 고양이와 가깝다는 사실도 부인하 기 어렵다. 이슬람교의 선지자 무함마드 마호메트와 그의 동료들은 고양이를 매우 사랑했는데, 동료 중 한 명은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사내란 뜻을 지닌 ‘아부 호라이라’라는 별칭도 얻었다. 항상 어깨에 고양이를 태 우고 다녔기 때문이다. 보통 무슬림들은 개를 집 안에 들이지 않았지만, 고양이는 언제나 환영했다. 이들은 고양이의 청결함에 감탄하면서 ‘애완동물의 정수’라 여겼다. 이슬람의 예술작품들에서도 고양이는 종종 등 장했다. 작고 털 달린 이 동물을 유난히도 사랑하는 일본의 대문호 무라카미 하루키는 “지금 내 곁엔 고양이가 없 지만, 산책하는 길에 고양이와 만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고양이는 어떤 이들 에게 종교적 신앙의 대상이고, 또 어떤 이들에겐 행운의 상징이기도 하다. 고양이로부터 영감을 얻어 성공 한 삶을 누린 이들도 있다. 인류와 오랜 유대관계를 쌓아온 고양이는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로 사랑 받을 것이다.
51
앞선 글에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아시아의 고 양이들과 만나봤다. <매거진 N>이 발행되는 이 곳 한국 에서 고양이들은 어떤 존재로 비춰질까?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에선 고양이의 애칭인 ‘냥이’라는 단 어가 빈번히 들릴 정도로 고양이 애호가들이 부쩍 늘어났 지만, 버려지는 고양이들도 급증해 사회 문제로 비화되기 까지 했다. 버림 받은 고양이들을 지키기 위해 유기동물보 호단체 ‘멍냥부족’을 만든 김도형 족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고양이 복지 현 주소에 대해 들어봤다.
“유기묘 봉사활동, 부담갖지 마세요 내가 먼저 나서면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요”
글 이주형·사진 멍냥부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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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멍냥부족’의 김도형 족장님. ‘매거
월엔 오랜 동안 지원하고 봉사해왔던 아산 천사원
대부분 버려지거나 학대 받던 고양이들이라 심적
진 N’ 독자님들께 멍냥부족이란 단체가 탄생
의 죽어가는 고양이들을 모두 구조해 ‘멍냥쉼터’라
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상처가 많은 아이들이지만,
하게 된 계기와 활동들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는 고양이 가정보호소도 개설했어요. 멍냥쉼터는
세상에 둘도 없는 제 새끼들입니다.
개인적으로 유기동물 봉사활동을 다니던 중
요일 별 관리자가 매일 1회 이상 방문해 쉼터를 청
고양이는 강아지와 다른 매력이 있어요. 고양이는
혼자서 하는 것에 한계를 느껴 단체에 가입해 봉
소하고 고양이들에 사료를 주는 방식으로 운영되
강아지처럼 사람에게 의지하거나 늘 애교를 부리진
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대규모 봉사
고 있습니다. 현재 멍냥부족은 멍냥쉼터 운영 및 타
않습니다. 대신 조용히 다가와서 체온을 전하거나
단체들 중 기부금의 출처와 사용내역 등에 대해 투
보호소 정기 봉사활동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죠.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교감을 나누죠. 때론 제멋대
명하지 않은 곳들도 더러 있었죠. 그래서 작더라도
후원금을 마련하기 위해 탁상달력이나 수건 등 물
로 행동할 때도 있고 때론 둘도 없는 애교쟁이가 되
정말 투명한 동물보호 단체를 만들자고 결심했고,
품들도 제작하고 있고요. 물론 후원내역은 빠짐 없
는, 종잡을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생명체죠.(웃음)
2015년 8월 제가 속해 있던 커뮤니티 디씨트라이브
이 투명하게 공개합니다. 멍냥부족은 한 달에 한번
하지만 단순히 이러한 매력들 때문에 고양이 혹은
(DC Tribe)에서 마음이 맞는 분들과 함께 ‘멍냥부족’
정기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며, 활동은 강제성이 아
강아지를 입양하시고 싶은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
을 만들게 됐습니다. ‘멍냥부족’이란 이름은 ‘강아지
닌 100% 자율에 의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참여를
이 있어요. 가벼운 마음으론 절대 동물을 키우지 마
와 고양이 부족’을 줄인 말입니다. 영어로 ‘Dog and
원하시는 누구나 저희와 함께 하실 수 있죠.
세요. 외로워서 동물을 키우고 싶다? 나가서 친구 들을 만나세요. 너무 귀여워서 키우고 싶다? 귀여
Cat Tribe’(DCT) 라고도 부르죠. 우리 단체가 파생 된 커뮤니티 디씨트라이브의 약자 ‘DCT’와도 이름
고양이 여러 마리를 기르시는 것으로 알고 있
운 동물들이 나오는 영화나 책을 보세요. 보들보들
이 같아요.
어요. 고양이 입양을 고려하시는 분들께 고양
한 고양이와 강아지를 만지고 싶다? 고양이 카페나
2015년 8월 ‘아산 천사원’이라는 보호소에서 첫 활
이의 매력포인트, ‘고양이를 기르면 이런 것이
강아지 공원 또는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지인의 집
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인원은 4명에 불과했지만
좋다’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을 방문하세요.
확실한 방향은 있었습니다. 인적, 물적 자원이 부족
결혼 전에는 고양이 네 마리를 길렀습니다. 결
현대인은 그 삶 자체로도 매우 힘든 하루하루를 보
한 보호소를 선별해 좀 힘들더라도 견사보수 등의
혼 후 와이프가 기르던 고양이들과 그 후에 입양한
내고 있습니다. 복잡한 일상에 동물까지 고민해야
시설공사에 중점을 맞춰 활동에 나섰죠. 2016년 11
고양이들까지 합쳐 총 여덟 마리의 대식구가 됐죠.
된다? 너무 리스크가 크죠. 동물과 함께 살다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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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 어려움에 빠질 수도 있고, 배우자가 동물을 싫
합니다. “수요가 있기에 공급을 맞추려면 이렇게 할
발정기를 맞은 고양이는 수컷의 경우 소변으로 영
어하거나 알러지가 있을 수도 있죠. 결혼 후 태어난
수 밖에 없다”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이
역을 표시하고, 암컷의 경우 특이한 울음소리를 냅
자녀가 동물 때문에 건강이 나빠질 수도 있고요.
과정에서 동물들은 ‘또다른 상품’을 만들어내는 소
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더라도 막상 마주하
이러한 모든 것들을 감수할 결심이 생기면 그때 다
유물로 전락해버린 채 어떠한 권리도 누리지 못하
는 현실은 생각했던 것과 다르죠. 이 시기동안 사람
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여러 조건들을 고려해 보시
고 죽어갑니다. 한국 동물산업의 슬픈 현실이죠.
뿐만 아니라 고양이도 큰 스트레스를 받죠. 개인적 으론 고양이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중성화를 권하
고, 그 중 아주 작은 것 한가지라도 걸리신다면 애 초에 시작도 하지 마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유기묘와 길고양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의미
기도 하고요.
할 수 있다는 확실하고 굳은 결심이 생겼다 하더라
를 지닌 두 단어의 차이에 대해 설명해 줄 수
관련 지식들을 사전에 습득하고 심사숙고를 거친
도 몇 번 더 고민해보고 결정하세요.
있으신가요?
후에 반려동물을 키워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
십 수년을 함께 하며 매일매일 정성과 사랑을 줘야
유기묘는 버려진 고양이를 뜻합니다. 사람 손
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런 분들이 동물을 버릴 확
하고, 그 기간 동안 적지 않은 돈도 들어갑니다. 대
에서 자라다가 졸지에 고아가 되어버린 아이들이
률도 높고요. 원론적인 얘기지만 무분별한 분양과
신 반려동물은 반려인에 조건 없는 사랑을 주죠. 반
죠. 대부분의 유기묘들은 생활력이 없기 때문에 길
입양을 지양하고, 입양자도 정확한 지식과 상당한
려인의 외모나 금전적인 상황이 어떻든 반려동물
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구조된다고
각오를 가지고 시작해야만 반려동물 유기를 줄일
은 개의치 않습니다. 반려인은 그저 자신을 아껴주
하더라도 유기동물보호소의 철창에 갇혀 온갖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병과 스트레스를 떠안다가 안락사 당하는 경우가 태반이죠.
정부기관인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서 2014년
길고양이는 말그대로 길에서 나고 자라는 고양이
1월 1일부터 동물등록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예요. 이 고양이들은 도시 곳곳의 거리에서 살고 있
등록대상이 3개월령 이상인 개로만 한정돼 있
죠. 길고양이들은 영역을 두고 싸우거나 발정기가
습니다. 고양이까지 대상을 확대한다면 사람
찾아왔을 때 울음소리를 내는데, 이로 인해 많은
들이 고양이를 함부로 버리는 것을 막을 수 있
분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렇
지 않을까요? 이외에도 도움이 될만한 정책이
다고 길고양이를 무조건 배척하기 보단 사람과 함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좋겠어요. 최근엔
동물 등록은 인식칩 이식, 목걸이 표식 두 방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들을 일컫는 ‘캣
식으로 이뤄지지만, 두 방법 모두 고양이에 실행하
맘’ ‘캣대디’란 말이 생길 정도로 이 문제가 사회적
긴 어렵습니다. 고양이의 피부는 연한 조직으로 이
인 문제로 부각되기도 했죠. 이 부분에 대해서 말씀
루어져 있어 칩을 이식해도 여기저기 움직이기 때
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
문에 이 방법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목줄도 고양
며 사랑해주는 가족일 뿐입니다. 가족을 맞아들이
면 더 많은 고양이들이 몰린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이에 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은 물론 머리가
는 것과 똑같은 마음으로 반려동물을 입양하세요.
이 계신데 이는 오해예요. 고양이는 한 구역에서 일
작은 고양이들은 목줄이 쉽게 빠지곤 해 이 방법도
정 개체 수 이상 서식하지 않는 영역동물입니다. 오
어렵죠. 고양이의 경우 동물등록제가 아닌 다른 방
‘반려동물을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라는 말이
히려 먹이를 챙겨주면 고양이들이 쓰레기를 뒤지는
안이 필요합니다.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일도 줄어들죠.
동물 복지 선진국들의 경우 ‘유기동물이 없다’고 봐 도 될 정도로 시스템과 인식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사지 말고 입양하라”는 말을 ‘불쌍한 유기동 물을 입양하라’는 의미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
고양이가 버려지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
그러한 국가에선 반려동물을 키우기 위해 가족 구
틀린 말은 아니죠. 하지만 제가 사지 말고 입양하라
고 생각하시나요?
성원 모두 정부가 시행하는 기본교육을 받아야 합
고 말씀 드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곳에 있습니
경제적인 사정으로 버리는 경우도 많지만, 고
니다. 동물의 금전거래가 전면 금지되며 유기 시 벌
다. 대부분의 펫샵들은 강아지와 고양이를 불법 농
양이의 특성들을 감당하기 힘들어 버리는 경우도
금도 매우 높죠. 국가에서 보호소도 직접 운영해
장에서 사옵니다. 불법 농장들은 동물들이 생명을
많죠. 고양이털은 일정 길이 이상으로는 자라지 않
동물 개체 수 유지에 적극 개입하기도 하고요. 때문
기계처럼 ‘생산’하는 곳이고요. 농장주들은 허리도
기 때문에 원래 있던 털들이 빠지고 새로 자라나게
에 ‘사설 보호소’라는 개념 자체가 없죠.
못 펼 정도로 좁은 철창에 동물들을 가두고 발정
됩니다. 또한 고양이는 길이에 상관 없이 일년에 두
한국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농장을 가장한 ‘동물
호르몬제를 주사해 새끼만 낳게 하다 번식능력을
번 털갈이를 하는데, 그 양이 상상 이상입니다. 고
공장’들이라 생각합니다. 동물의 권리를 무시한 채
상실한 아이들은 건강원 같은 곳으로 팔아버리곤
양이의 발정기도 보통의 각오론 감당하기 힘들죠.
단순히 번식하는 기계로 여기는 공장들을 제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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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막아야 합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동물 유기와
신의 장난인지, 이후 제 눈엔 다친 고양이와 강아지
주하며 살아가는 곳들도 많아요. 조금씩 인식이 바
학대에 대한 법적 제재도 강력히 시행돼야 하고요.
들만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뀌어 간다면 한국도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겠죠.
좁은 원룸엔 고양이, 강아지 열여덟 마리와 제가 함 수많은 유기묘들을 봐오셨죠. 그 중에서도 기
께 살고 있더군요. 또 다짐했죠. ‘그래 이 녀석들만
길고양이의 무분별한 번식을 막기 위해 불임
억에 남는 사연이 있으신가요?
큼은.’ 혹시 전염병이라도 돌까봐 동물병원을 통으
시술을 제공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이러한 시
미랑이가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어떻게 보면
로 빌려 치료하기도 했고, 그 와중에 어린 녀석 세
술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지나요? 실제로
제가 이렇게까지 봉사활동을 하게 된 것도 미랑이
마리는 세상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도 효과가 있는 편인가요?
의 영향이 컸죠.
나머지 아이들 모두는 좋은 주인을 만나 새로운 보
언젠가 다리가 부러진 고양이 한 마리가 보호소에
금자리로 떠나갔습니다.
중성화-방사)이라고 하죠. 포획된 길고양이들을 각
입소됐습니다. 고맙게도 구조해주신 분이 다리에
지금도 제 곁에 있는 고양이들은 버려지거나 학대
지자체가 지정한 동물병원에서 중성화한 후 방사
핀을 박는 수술까지 지원해 주셨죠. 아픈 다리를 질
받던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은 언제 괴로웠냐는
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이 사업은 각 시·군·구
질 끌면서도 손만 내밀면 부비적거리던 그 녀석은
듯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표정으로 제 품 안에서
에서 시술에 들어가는 비용을 보조해 주는 것으로
제가 보호소 아이들 중 처음으로 이름까지 지어준
잠들곤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 효과에 대해서 구체적인 수치로
이 과정을 TNR(Trap-Neuter-Return, 포획-
입증된 바는 없지만, 긍정적인 면들이 있어요. 실제
녀석이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정들고 헤어질 때 마 음 아플까봐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지만, 물결무늬
한국사회는 지저분하다는 등의 이유로 인해
로 TNR로 고양이들간의 영역다툼이 줄어들었고,
가 아름다운 녀석을 ‘미랑’(美浪)이라 불렀습니다.
길고양이를 좋지 않게 바라보죠. 이러한 인식
발정기를 맞은 암컷 고양이들의 울음소리도 전보
입양자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린 지 3주 남짓, 녀석
이 굳어지게 된 배경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
다 덜 해졌어요. 물론 신경 써야 할 부분도 있죠. 다
의 번호(보호소에선 품종과 번호로 구분해 부릅니
나요? 어떻게 해야 인식이 바뀔 수 있을까요?
시 말하지만 고양이는 영역동물이라 정해진 구역에
다)가 안락사 명단에 올라가 있더군요. 눈앞이 캄캄
길고양이들도 생태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생명
서 일정 개체 수 이상 번식하지 않습니다. 일정 수
해 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입양동의서를 작성하고
체입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과 마찬가지로
가 넘어가면 그 구역을 떠나기도 하고요. 이런 특성
무작정 입양해버렸습니다. 입양할 사람이 올 때까
도시 속에서 살고 있는 하나의 생명체라는 말이죠.
을 감안해 특정 구역의 개별 개체가 아닌 특정 구역
지 어떻게든 제가 책임지겠다고 다짐을 하고선 말
고양이가 사람의 영역을 침범한 건지 반대로 사람
의 무리 단위로 TNR을 시행한다면 더욱 효과적이
이죠. 그러고 집에 오는 길에 녀석의 다리 상태를
이 고양이의 영역을 침범한 건지 따지는 것도 불필
겠죠.
살펴보러 병원에 들렀습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요한 논쟁이죠. 같은 생태계를 살아가는 생명체를
무분별하게 늘어나는 고양이 개체 수를 조절하기
있는데 의사선생님께서 절 조심스럽게 부르시더군
이해, 존중하고 더불어 살아갔으면 하는 것이 작은
위해 시작된 TNR 사업은 인간과 고양이가 공존하
요. 미랑이에게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는데, 잿빛으
바람입니다. 외국의 경우 길고양이들과 반갑게 마
기 위한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어요. 우선 고양이들
로 변해버린 녀석의 다리는 뼈가 드러날 정도가 썩 어 있었습니다. 너무 충격 받아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던 제 귓가에 “항생제 투여를 한번이라도 했으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거다”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이 맴 돌았습니다. 그 길로 곧장 보호소로 되돌아 갔습니다. 국가에 서 지정했던 그 곳은 규모가 크고 시설이 잘 갖춰 진 보호소로 수의사까지 배정돼 있던 곳입니다. 그 때 당직수의사는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 더군요. 의약품 창고에는 항생제도, 소독약도, 붕대 도, 약도 충분히 구비돼 있었습니다. ‘주사 한번이면 그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텐데’라는 탄식과 함께 분 노가 쏟아져 나오더군요. 결국 미랑이는 오른쪽 뒷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고, 평생 높은 곳으로 폴짝 뛰어오르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미랑이는 지인분의 가정으로 입양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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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영역다툼과 울음소리로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 이 많이 줄었죠. 성묘가 되기도 전에 길에서 비참 하게 죽어버리고 마는 새끼고양이들을 위해서도 TNR은 필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길에서 만난 고양이를 데려오고 싶어하는 분 들이 종종 있죠. 이러한 고양이들을 가정으로 데리고 와 키워도 괜찮은가요? 새끼 고양이가 귀엽다고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은데 절대로 해서는 안될 행동입니다. 나름의 삶 을 살아가고 있는 고양이들을 망가뜨리는 행동이 라 생각해요. 인간의 입장에선 ‘구조’일지 몰라도 고 양이의 입장에선 ‘납치’인 경우가 많아요. 길에 홀로 서 있는 새끼고양이를 보더라도 위급한 상황이 아 니라면 절대로 손을 대지 마시길 바랍니다. 정말 걱 정이 되신다면 멀리서 장시간 지켜봐 주세요. 어미 가 먹이를 구하는 동안 길에서 기다리는 고양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 어미가 새끼를 데리러 왔다가 낯선 냄새를 맡고 버릴 가능 성도 있어요. 간혹 어미가 로드킬을 당하거나 사라 져서 홀로 버려진 새끼들이 있는데, 그럴 경우 장시 간 지켜보시다가 구조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유기묘 봉사활동 참여를 망설이고 있는 분들 께 한마디 부탁 드려요. 유기동물 봉사활동은 한국 현대사회가 낳은 병을 치유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급변하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반려동물 사업이 번 창했지만, 책임감 없이 동물을 키우고 쉽게 버리는 일도 급증했습니다. 유기동물 봉사활동은 인간이 만든 독을 정화하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인간의 욕 심에 의해 고통 받아온 죄 없는 생명체를 돕는 일 이죠. 겁 먹거나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내가 먼저 나서면 내 친구들과 가족을 비롯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동물학자 제인 구달 박사는 “인간에게는 동물을 다스릴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 체를 지킬 의무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인류가 동 물을 소유물이 아니라 지켜야 할 생명체로 여기는 날이 온다면 멍냥부족도 기분 좋게 자취를 감출 수 있겠죠. 멍냥부족의 힘만으론 부족합니다. 여러분 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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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멍냥부족 제공
In the previous article we explored the different cats of Asia. In the following pages, Magazine N presents to you the lives of cats living in South Korea. What are these felines to Koreans? In recent decades, cat-lovers have become so prevalent that they are often called by the endearment “nyangi” (which is a shortened version of the Korean goyangi for cat). At the same time, the number of stray cats have also been increasing, and it has become a social issue calling for the services of animal protection groups. Here Magazine N interviews Kim Do-hyung, Chief and founder of the Dog and Cat Tribe Volunteers (abandoned animal protection organization), on the current situation and condition of cat welfare in the country. Regarding Dog Cat Tribe, Kim said, “I first decided to create this volunteer group because I felt like I could do more for animals with the help of other people. But I also realized that the bigger the organization, the more difficult it is to be transparent in your work. So, I wanted to make a group that was as transparent as possible, though small, to help animals in a trustworthy and effective way. And on August 2015, I—along with members from the DC Tribe community that I was part of—created our own Dog and Cat Tribe (DCT), as in “a tribe with both dogs and cats”. Chief Kim Do-hyung’s family consists of him, his wife, and their 8 cats. “After my wife and I got married, we took care of both her cats and mine, and now we are a big family of 8 cats. Most of them were either abandoned or abused and come with their own scars, but they are all my precious children. Cats are different from dogs in that they tend not to be dependent on humans and do not act as friendly as dogs. But, in their own way, they will interact with humans; sometimes they will share their body heat with you, or stare deep into your eyes. Cats are interesting because they’re unpredictable. Sometimes they act according to their own will, and other times, they will be playing up to you acting all cute and warm. But I would like to say one thing to those who want to adopt a cat or dog: don’t raise an animal on a whim; just because you feel like it or just because they are cute. Consider all the things that come with raising the pet and if there is any one thing that bothers you, don’t think about adopting.” “In Korea, many people think that the reason we say, “Don’t buy pets, adopt them” is because we want people to take care of poor dogs and cats that have been abandoned. Well, part of that is true, but another part to the story is that the pets that are sold in pet shops often come from farms where animals are kept under harsh conditions to simply reproduce. Cats are given hormone shots to keep on having kittens. The farmers say this is the only way they can meet the demand, but it is also why animals continue to remain “products” and are taken of any and all their animal rights. It is the sad reality of Korea’s animal production industry,” Kim continued. Closing with an encouragement to all those hesitating whether or not to participate as an animal protection volunteer Kim said, “Volunteer programs designed for abandoned animals is what I consider the healing process for an illness created by Korea’s modern society. Korea as a whole has changed and as the country developed economically, the pet industry also grew. Yet, that only led to more irresponsible pet ownership and more abandoned animals. It’s the poison that we have made. Services for abandoned animals are a way to clean up our mess and help innocent animals suffering from our poor choices. Do not be afraid or hesitant in joining; it’s something that you can do with family members and friends who are also interested. Renowned primatologist Jane Goodall once said, “Humans have the responsibility of protecting animals, not the authority to rule over them.” If the world ever comes to the agreement that animals are not objects for possession but lives that need to be protected, then Dog and Cat Tribe will gladly step down from our work. But for now, our efforts are not enough, we need your help 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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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â&#x20AC;&#x2022; 69 Top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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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Brother is Watching You”: a Dystopian Journey through the Rating System for Chinese Citizens
Launched on Britain’s Channel 4 in 2011 and then acquired by Netflix in 2015, Black Mirror is a tv series created by Charlie Brooker. The episodes are standalone works about the interaction between people and technology and about future behaviors. Among the episodes, Nosedive is one of the most interesting: augmented reality and a social-media platform let users rate human interactions on a five-star scale. Everyone has a public score that determines their value in the society. The main character of the episode, Lacie Pound (Bryce Dallas Howard), has a respectable 4.2 score but she needs a higher rating in order to get a discount for her house deposit. Each score corresponds to certain benefits. In order to achieve her goal, the protagonist starts taking calculated steps but the unpredictability of life plays a cruel trick on her. In this fake and judgemental society, the people under scrutiny have to respond kindly and politely under any situation. Watching Nosedive, someone may feel frustrated by the fiction that permeates the society in the episode. However, in the end, it is just a TV series. Or maybe not. Back in 2015, a start-up announced it was working on Peeple, an app very similar to the one in Nosedive. Based on a five-star rating system, Peeple lets users rate other people’s characters in three distinct areas: professional, personal, and dating. Users can leave a positive, neutral, or negative rating, and then write a detailed description. Many internet-users voiced their concern, highlighting the anonymous nature of the app and the unpredictable consequences of it. Is there anything worse than an application with borderline dystopian implications? Unfortunately, yes. In 2014, the Chinese government published a document called “Planning Outline for the Construction of a Social Credit System”. The aim of this project is to judge the trustworthiness of Chinese people; 1.3 billion residents. Daily activities of citiz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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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 constantly monitored: what people buy, the kind of
“People with low ratings will have slower internet
friends they have, when (and if) they pay bills and taxes,
speeds; restricted access to restaurants, nightclubs
and so on. Ratings are tallied to create the Citizen
or golf courses; and the removal of the right to travel
Score.
freely abroad (...) Scores will influence a person’s rental
Participating in China’s Citizen Score is, for now,
applications, their ability to get insurance or a loan
voluntary, but it will become mandatory by 2020.
and even social-security benefits. Citizens with low
The government has given a licence to manage the
scores will not be hired by certain employers and will
system to eight private companies such as China Rapid
be forbidden from obtaining some jobs, including in
Finance (partnered with Tencent, developer of WeChat,
the civil service, journalism and legal fields”, WIRED
a social media mobile application software used by 850
UK reports. One wonders when the birth of reputation
million users) and Sesame Credit (a financial system run
black market will start and how it will look especially
by Ant Financial Services Group, affiliate company of
since the algorithms used for the Chinese Social Credit
Alibaba). The score ranking (350 to 950 points) is based
System do not take into account context such as the
on a secret algorithm that takes into consideration the
reason why someone missed a payment. On the other
credit history (which means, for example, if people
hand, the government declared that the project may
pay their bills on time), the verification of personal
help people excluded from the traditional credit system
characteristics such as phone number or address,
such as low-income individuals or students. Moreover,
the fulfillment capacity to contract obligations, the
according to the Financial Times, most Chinese still lack
monitoring of interpersonal relationships (for instance,
any formal credit history so it would be hard to grant
a person’s score may be affected by friends’ negative
loans to these people.
comments or actions), and the analysis of preferences
This said, I tried to understand what Chinese people
and behaviour. “Someone who plays video games for
think about the Citizen Score. Analyzing the opinions
ten hours a day, for example, would be considered an
of five educated Chinese living in China (20-40 years
idle person,” declared Li Yingyun, Sesame's Technology
old), who prefer to stay anonymous, I realized that three
Director. As in the episode of Black Mirror, each rate has
of them are in favor of the system. The first declared
specific benefits: 600 points give the chance to spend
payments and financial activities may become easier.
5,000 yuan (around $750) for online shopping; reaching
The second said that the Social Credit System may
650 points means renting a car without deposit; above
create a safer country especially in relation to terrorism.
700 gives the chance to apply for traveling in Singapore
The third person said that it is the best way to prevent
without providing specific documents, and the list goes
“fake news” created in Western countries.
on. But what if citizens do not fulfill the expectations?
The remaining two people I interviewed also w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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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altogether against the project. They mostly just wondered if the project would actually work. One pointed out that the same system should be extended to other countries such as Russia and Japan, and the second interviewee voiced whether there could be negative consequences related to foreign trade. In the end, none mentioned concern over privacy issues. The fact that the government, famous for silencing opposition, will collect and judge all the aspects of peopleâ&#x20AC;&#x2122;s lives is not perceived as a problem. Is there truly no option to sacrificing freedom and privacy for the necessities of say, a bank loan?
Alessandra Bonanomi Staff Repor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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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되고 있는 영국 티비 시리즈 ‘블랙 미러’는 첨단 기술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그린 작품 이다. 각각의 단편으로 구성된 시리즈 중 ‘추락’(Nosedive)은 가장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꼽힌다. ‘추락’ 속 사람들은 증강현실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람의 가치를 별 5개 만점으로 평가한다.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항상 친절하고 공손하게 행동해야만 하는 거짓된 사회를 살아간다.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인 4.2점을 획득하나, 집 사는데 필요한 보증금을 할인 받기엔 여전히 점수가 부족 하다. 그녀는 목표치를 달성하려 노력하지만, 예상치 못한 위기에 처하게 된다. 2015년 출시된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피플’도 이와 유사한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피플’의 사용자들은 타 인을 별 5개 만점으로 평가하며, 자세한 부연설명도 곁들인다. 인간을 점수로 평가하는 비인간적인 시스템 들. 이보다 더 나쁜 것이 지구 상에 존재할까? 불행히도 그렇다. 2014년 중국 정부는 ‘사회신용제도 구축을 위한 지침’을 발표했다. 이 제도는 이름 그대로 13억 인민의 신 용을 평가하기 위해 시행됐다. 무엇을 사고, 어떤 친구를 만나고, 공과금을 제때 내는지 등 시민들의 일거 수일투족이 감시된다. 당국은 이를 토대로 각 개인의 점수를 채점한다. 아직까지 이 제도의 참여 여부는 개인의 자유이지만 2020년경에는 의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시행하기 위해 중국 당국은 차이나 래피 드 파이낸스-중국 소셜미디어 ‘위챗’의 개발사인 텐센트와 파트너쉽을 맺은 금융기업- 등 여덟 곳에 이 시 스템을 관리할 권한을 부여했다. 각 개인은 최저 350점, 최고 950점 사이의 점수를 획득하게 되지만, 평가 방식은 정확히 공개되지 않았다. 이들 기업 중 하나인 세사미 크레딧의 기술이사 리 잉원이 “하루에 열 시 간 이상 게임 하는 사람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것이다”라는 모호한 답변만 남겼을 뿐이다. 이 시스템 하에서 각 개인은 점수대에 따라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예를 들어 600점을 얻은 사람은 5,000 위안(약 82만원) 상당의 온라인 쇼핑을 할 수 있고, 650점을 얻은 사람은 차를 보증금 없이 빌릴 수 있으 며, 700점 이상의 고득점자는 별도의 서류제출 없이 싱가포르로 여행갈 자격을 얻는다. 낮은 점수를 받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와 관련 월간 <와이어드 UK>는 “저득점자들은 인터넷 속도에 제한을 받을 것이다. 이들은 해외로 여행갈 권리는커녕 식당이나 클럽, 골프장 출입에도 제약을 받을 것이다. 여기서 끝 이 아니다. 보험이나 대출 자격 요건, 심지어 사회보장제도와 관련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라고 보도했 다. 때문에 평판을 사고파는 암시장까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이에 대 한 중국의 변론도 있다. 중국 당국은 “이 프로젝트는 전통적인 신용제도 시스템 하에서 소외됐던 저소득 층이나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항변했다. 중국인들은 이 제도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필자는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고학력자 다섯 명(20~40대)과 익명을 전제로 인터뷰를 가졌다. 그 결과 다섯 중 셋은 ‘사회신용제도’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세 명은 1) 금융거래가 용이해질 것이다 2) 테러를 방지하는 등 국가안보에 도움이 된다 3) 서구가 조장하는 ‘페이크 뉴스’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등 각기 다른 이유로 이 정책을 지지했다. 반대했던 나머지 둘 역시 이 프로젝트의 취지에 대해서 반대하진 않았다. 다만 이들은 ‘사회신용제도’의 실제 작동 여부에 대해 확신 하지 못했다. 인터뷰이 중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부작용을 언급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인터뷰를 정리한 후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은행대출을 보다 쉽게 받기 위해서라면 자유와 사생활까지 희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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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살해한 원수의 아이를 출생한 여인들, 이 아기는 누구의 책임인가요?
한 독자 분이 12월의 첫 주말,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내왔습 니다. “오늘 밤 방글라데시로 출국합니다. 가서 로힝야 병원 만드는 것 준비 잘 하고 오겠습니다. 가능하면 한번쯤 오셔 서 세계 최대의 난민촌을 둘러보고 격려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함께 어깨 걸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여 그에게 현 지 사정을 전해달라고 부탁했고, 12월 10일 아침 첫 글을 받 았습니다. 그는 “국내에 있는 동안 의약품·의료기 등을 확 보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정신 없이 다니다가 훌쩍 떠 나오게 되었다”며 “한국의 많은 분들이 이 곳 실상을 알고 기도해주시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매거진 N>은 독자 분이 방글라데시와 미얀마 접경지대 콕스 바자르 지역의 로힝야 난민캠프에서 보내온 현지 르포를 독자들께 전합니다. 필자 명은 본인의 요청에 따라 밝히지 않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 랍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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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힝야 난민들이 대거 집결한 콕스 바자르 지역 난민캠프에 도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착했습니다. 부근엔 방글라데시와 미얀마 접경지대의 국경선을
여덟 살쯤 앳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자기 몸보다 더 큰 땔감 나
따라 흐르는 조그만 강이 있습니다. 이 곳은 한 손엔 보따리 짐,
무 묶음을 허리에 끼고 가는 모습이 눈에 밟힙니다. 삶의 무게
다른 한 손엔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건너오는 로힝야 피난민들의
만큼이나 힘든 길입니다.
고난과 생명을 상징하는 자리입니다.
남루한 옷차림에 조그만 비닐봉지 하나를 가슴에 안고 가는 여
로힝야 난민캠프 입구는 발 디딜 틈이 없는 인산인해여서 우리
자 아이 하나를 만났습니다. 이마에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
일행도 차에서 내려 함께 걷기 시작했습니다. 로힝야 피난민은
는데 달랑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있습니다. 그 아이를 붙들고
물론 이들을 지원하는 방글라데시 사람들, 지원물품을 실은 트
통역을 통해 봉지에 들어있는 내용물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럭과 3륜차 오토릭샤 등이 함께 길을 메우고 있습니다. 많은 피
“밧!”(밥)이라는 단 한마디 답이 돌아왔습니다. 비닐 봉지를 푸니
난민들은 지원물품을 받으러 오거나 지원받은 물품을 가지고
몇 주먹 분량의 ‘께초리’(쌀과 카레, 녹두를 섞어 먹는 밥)를 보
갑니다. 필요한 천막지와 땔감 등을 이고 지고 바쁘게 길을 갑
여 줍니다.
니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도 부모들은 아이들의 손을 꼬옥 쥐고
연이어 질문을 던져봅니다. 이름은 ‘따슬리마’. 열한 살이라고 합
있습니다. 이들은 옆에서 염소가 울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쁜
니다. 미얀마 라카인주에서 살다가 엄마, 동생 네 명과 함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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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데시로 피난 왔다고 합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골목길에
볼세라 살짝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아이는 비쩍 마른 얼굴에 눈
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만 깜빡이면서 인사도 없이 잰 걸음으로 떠나갑니다. 신발도 없 이 맨 발로 길을 재촉하는 따슬리마의 뒷모습이 애처로워 보입
“가족들은 어디에 있어요?”
니다. 제 가슴은 먹먹하기만 합니다.
“멀리 천막(집)에 있어요.”
일행은 물품을 나누어 주는 난민캠프로 향했습니다. 넓은 공터
“가족은 모두 몇 명이에요?”
에 그어진 줄을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빼곡하게 모여 있습니다.
“여섯 명. 엄마와 나 그리고 어린 동생 네 명이 있어요.”
지원물품 차가 와서 물품을 내리면 순서대로 받아 가기 위해서
“아버지는 어디에 있어요?”
입니다.
“돌아가셨어요.”
군인들은 호루라기를 불어대며 중간에 끼어드는 사람들을 통제
“어떻게요?”
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대형 트럭 한대가 도착해서 후진으로 차
“미얀마 군인의 칼에 목을 베인 채 돌아가셨어요.”
를 들이댑니다. 군인들이 올라서 포장된 물품 하나씩을 건네주
“그 일이 언제 일어났어요?”
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서로 받으려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그
“한달 전에요.”
안에는 쌀과 기름, 양파와 감자가 들어 있다고 합니다. 어떤 여
“아버지가 그렇게 된 걸 어떻게 알았어요?”
인은 아기를 가리키면서 아기 몫으로 하나를 더 달라고 요구하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 자리에서 직접 보았어요.”
다가 퇴짜를 맞은 듯 밀려 나갑니다.
“방글라데시에는 언제 왔어요?”
캠프 한 켠에는 구호단체의 진료와 투약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주일 전이요.”
줄을 서 있는 한 여인이 품에 아기를 보자기로 감싼 듯해서 물 으니 자신의 아기라고 합니다. 보자기를 들추어 보여주는데 아
어린 따슬리마는 하염없이 눈물을 훔쳐내고 있습니다. 그 일로
기는 햇빛에 눈이 부신지 얼굴을 찡그리며 울려고 합니다. 아파
엄마는 자신과 어린 동생 넷을 데리고 국경을 넘어 왔다고 합니
서인지 배가 고파서인지 울 기력도 없어 보입니다. 엄마와 아기
다. 엄마는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있고, 큰 딸인 자신이 밥을 얻
는 치료를 받기 위해서 진료소에 줄을 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태
으러 나왔다고 합니다. 달랑 몇 주먹밖에 되지 않는 밥을 비닐봉
어난 지 15일 된 아기는 아직 이름이 없다고 합니다. 나중에서야
지에 받아 엄마에게 돌아가는 길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제 눈에
알게 됐지만 엄마는 이 아기의 이름을 지어 줄 엄두가 나지 않
서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았을 겁니다.
엄마와 어린 동생들을 만나보고, 사는 모습도 보고 싶었습니다.
이 여인의 이름은 ‘하시나’(28). 미얀마 라카인주에서 살 당시 남
그래서 가족이 있는 천막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습니다. 거기는
편은 미얀마 군인에게 학살을 당했고, 자신도 미얀마 군인에게
멀다고 합니다. 얼마나 멀리 있는지 다시 물으니 3시간을 걸어
강간을 당해 원치 않는 임신을 했습니다. 남은 자식들이 불쌍해
가야 한다고 대답합니다. 아뿔사, 갑자기 ‘어떻게 해야 할까?’ 머
서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 만삭인 채로 피난을 왔고, 낙태도 할
리가 어지러웠습니다.
수 없어 천막에서 출산을 했다고 합니다. 이 아이의 아빠는 남편
허리도 아프고 무릎과 발목이 좋지 않아 멀리 걷기도 힘든데다
을 살해한 원수입니다. 그 원수의 씨앗이 이 여인의 자궁을 통
가 함께 하는 10여명의 일행도 있고, 일정 상 다른 난민캠프들도
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돌아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혼란스러움을 느끼다 따슬리마네
모든 것이 운명의 장난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을 원망해야 될
가족 방문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함께 걸어 가주기를 포기한 저
이유일까요? 이 엄마는 아기를 계속 키워야 할까요? 우리는 이
자신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왜 괜히 물어 보았을까’ 후회가 되었
일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애써 외면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요?
습니다. 다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턱도 없이 적은 양의 밥을 가지고 가서 엄마와 어린 동생들과 함 께 나눠 먹어야 할 터인데 걱정이 되었습니다. 괜히 물어보고 함 께 가지 못하는 죄책감을 가리우고자 지폐 한 장을 꺼내어 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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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come to Cox’s Bazar, where many
tears falling from my eyes.
Rohingya have found refuge at the camps.
At another side of the camp, medical assis-
This area marks the suffering but also the life of
tance was being provided by relief organi-
the refugees as children cross the site hand in
zations. A lady was waiting in line with a child
hand, carrying their loads.
wrapped to her back. She said it was her
I met one girl that was holding a small plastic
baby. Both mother and child were waiting to be
bag to her chest. Her forehead was beaded
treated. Her name was Hasina. When she had
with sweat, and still, she held that one plastic
been living in Rakhine, her husband was bru-
bag. With the help of a translator, I asked her
tally killed, again by Myanmar soldiers. Hasina
what was inside. She said, “Bat!”-rice. She
was herself raped by the soldiers and became
shows me the few handfuls of kachori (a rice
pregnant with her unwanted child. She said that
and curry snack eating with mung beans) in
she couldn’t kill herself for the sake of her other
the bag.
children. Hasina fled the border heavily preg-
I ask her more questions. Her name is “Daslima”
nant, eventually giving birth in a tent. The father
and she is eleven. She used to live in Rakhine
of this child, strapped to her back, had killed
State of Myanmar before fleeing to Bangladesh
Hasina’s husband. The seed of the enemy was
with her mother and four younger siblings. We
borne to the world through her womb.
talked for a while in the alley. Daslima had seen
Were all these things just a trick of fate? Is it
with her own two eyes her father being killed
okay to curse the gods at this point? Did this
by Myanmar soldiers. And because of that, her
mother have to raise this child? And is it right for
mother took all the children and crossed the
us to turn a blind eye to all that is happening?
border. Daslima had been on her way back to
When will the tears flowing in Rohingya camps
her mother with the kachori. I could not help the
come to an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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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기자협회, ‘2017 아시아 인물’ 선정 필리핀 두테르테·알리바마 마윈·아시아 위안부할머니
(사)아시아기자협회(AJA·이사장 김학준 인천대 이사장, 회장 아시라프 달리 <아시아엔> 아랍어판 편집장)는 2017년 12월 13일 ‘2017 올해의 아시아 인물’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정치부문), 마윈(馬雲) 중국 알리바바그룹 회장(경제부 문), ‘아시아 각국 일본군 위안부 피해할머니’(사회부문)를 선 정했다고 발표했다. 2016년 아시아기자협회 선정 ‘2016 올해 의 아시아 인물’은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정치), 라 인 코퍼레이션(경제), 이준익 영화감독·이자스민 전 국회의원 (사회문화)이었다. 아시아기자협회는 “두테르테 대통령은 2016년 7월 취임 이후 필리핀의 오랜 숙제였던 마약사범 및 마약범죄 차단을 위해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며 눈에 띄는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두테르테 취임 이후 필리핀 치안은 급속도로 질서를 회복하 고 있으며 국민들도 안전한 일상을 되찾고 있다”고 말했다. 알리바바 그룹 마윈 회장 선정과 관련해 아시아기자협회는 “21세기 가장 주목 받는 경영자 마윈은 동서양의 사유방식을 넘나들며 알리바바를 경영해 왔다. 수많은 실패를 딛고 세계 적인 기업을 일군 마윈은 지난 11월 광군제에서 인터넷판매 신 기록을 달성하며 신화를 다시 썼다”고 밝혔다. 아시아기자협회는 ‘아시아 각국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들’ 선정에 대해 “위안부 할머니들은 20세기 중반 2차대전 당 시 일본이 저지른 가장 추악한 범죄의 피해자들이다. 할머니 들을 올해의 아시아 인물로 선정함으로써 이같은 일이 지구 상에서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아시라프 달리 아시아기자협회 회장은 “아시아기자협회는 회 장단과 권역별 대표들의 추천과 평가를 거쳐 올해의 아시아 인물을 선정·발표하게 됐다. 선정된 분들에게 경의를 보낸다” 고 밝혔다. 아시아기자협회는 시상과 관련 “2018년 봄 아시아기자협회 총회 때 실시할 계획이지만, 수상자들의 일정을 반영해 시상 하는 방식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2016년 수상자 조코 위 도도 대통령의 경우 4월 아시아기자협회 총회 때 주한 인니대 사관이 대리수상한 뒤 대통령이 5월 국빈방한하면서 이상기 창립회장 겸 상임이사로부터 직접 수상한 바 있다. 이번 아시아기자협회의 ‘2017 올해의 아시아 인물’ 선정은 해 외 언론들도 관심 깊게 지켜 보고 있어, 발표 당일인 12월 13 일 인도의 <수프라바담> 이집트 <알-아람> 등 해외 매체들도 이를 주요하게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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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sia Journalist Association announced
award him with the 2017 Asian Award.”
December 13 that the 2017 AJA Asian Award
AJA also announced that it had selected Chi-
will be awarded to President Roderigo Duterte
na’s Jack Ma of Alibaba Group as a recipient
of the Philippines (in the political component),
as “he is one of the most noted businessmen
Jack Ma President of Alibaba Group (finance
of the 21st century as he has literally become
component), and to all the Comfort Women in
a legend of the electronic trade market by im-
Asia (for the society component).
plementing unconventional modes of private
“President Duterte has since July of 2017 been
ownership in the business sector. “We thought
implementing an effective policy against the
highly of him for the way he combines his own
Philippines’ dire predicament with drug abuse
experiences and expertise with a vision for the
and institutionalized drug dealing through
future of Asia’s youth,” AJA noted.
his War on Drugs,” AJA stated, adding that
Adding, “AJA also awards the society com-
“over the course of his tenure, national crime
ponent to all of Asia’s Comfort Women. Since
rates have declined to establish more stability
the mid-20th century, Comfort Women who
amongst the nation’s citizens.”
are now quite elderly, were the victims of the
“While we understand international media
world’s most evil acts of hate. As we choose
speculation of President Duterte’s practices,
these women as the recipients of the award,
we have also kept close communication with
we hope that such atrocities will never be seen
local media and residents themselves to come
again in the world. Currently, Comfort Women
to the understanding that his War on Drugs
have been reported in Korea, Philippines, In-
stems from his innocent desire of ridding the
donesia, Netherland, and Taiwan.”
deeply-rooted societal issue of drugs. We thus
69
72 â&#x20AC;&#x2022; 77 Interview
2018
01
CJ E&M 제공
72
Mr. Alpago Sinasi 글 이주형
총 상금 1억5천만원을 놓고 22명의 출연자들이 무더운 여름 원형마을에서 13일간 경쟁을 벌인 서바이벌 게임 ‘소사이어티게임 2’가 2017년 11월 10일 막을 내렸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방송인과 운동선수, 정치인, 모델, 일반인 등 출연진들은 원형마을 속 ‘높동’과 ‘마동’이라는 두 마을 중 하나에 속해, 팀의 승리는 물론 각 동 당 최후 3인만이 나갈 수 있는 파이널 진출권을 얻기 위해 다양한 도전과제를 수행했습니다. 신체와 두뇌 역량을 필요로 하는 과제들을 풀어나가면서 참가자들은 때론 협력하고 때론 경쟁했습니다. 마치 우리 사회가 그러하듯 참가자들도 그 속에서 권력과 생존을 위해 사람과의 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 중 외국인 기자로 참가한 마동의 알파고 시나씨 님은 초반의 불리함을 딛고 오랜 기 간 선전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방송이 끝난 후 ‘수다쟁이’ 알파고 시나씨 님과 나눈 이야기를 독자들께 전해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알파고 시나씨 님. 독자들께 자기 소개 부탁 드려요.
배우고 알아간다는 단순한 원리를 따르면 편할 텐데, 공부에 학문적인 측면
안녕하세요, 터키에서 온 알파고 시나씨입니다. 원래는 카이스트에서 공
을 강조하다 보니 ‘공부가 싫어요’라는 말도 나오게 된 거 같아요. 관심 있는
부하려고 2004년 9월 한국에 왔는데, 어학연수 동안 제가 숫자보다 글자를
것을 배우고 습득하는 것 자체를 공부라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진로를 바꾸게 됐습니다. 이후 충남대에서 정 치외교학과 학사, 서울대 대학원에서 외교학과 석사를 공부했습니다.
전세계 화폐를 주제로 책을 쓰셨다고 들었어요. 한국어로 기사를 쓰다가 어느 순간 한계에 도달했다는 느낌을 받았어
한국에서 기자가 되셨다고 들었어요.
요. 기고하던 온라인 뉴스웹사이트 <아시아엔>의 이상기 발행인께 연재를
석사 시절 어느 여름 터키 대통령과 함께 방한했던 기자단 일행의 통역
그만둬야겠다 말씀 드리니, 발행인께서 “그럼 네가 쉬운 주제로 써보는 것
을 맡다가 좋은 기회를 얻어 지한통신사에 입사, 6년 동안 한국 특파원으로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취미로 수집했던 전세계 화폐를 주
일했어요. 현재는 한국 중심의 동북아 뉴스를 전하는 포털사이트 하베르코
제로 글을 써보겠다고 말씀드렸죠. 이상기 발행인께서도 좋은 생각이라고
레(Haber Kore)를 운영하고 있어요.
지지해주셨고요. 그때 썼던 글들을 모으고 편집해서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 >란 책을 내게 됐어요. 처음엔 각각의 화폐에 담긴 소재들이 무엇인지 궁금
한국인보다 한국 사회를 더 잘아는 외국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어요.
해서 관련 자료들을 찾기 시작했는데, 하나 둘 지식이 쌓여가다 보니 해당
한국에 살면서 특별히 느낀 점 있으신가요?
국가뿐만 아니라 관련 국가와 주변 지역의 역사까지 머리 속에 그려지더라
한국은 너무 ‘학’문적인 사회라 공부에 학술적인 의미를 크게 부여하는
고요. 보다 자세한 내용은 제 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웃음)
것 같아요. 공부는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라 단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 정인데 말이죠. 예를 들어 터키 차를 마시고 싶은데 만들 줄 몰라요. 그럼 아
방송활동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는 사람에게 가르쳐 달라고 해서 배우면 그게 공부라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2010년 지한통신사에 들어가면서 방송활동을 시작했어요. 이른 시간
73
에 방영됐던 아침뉴스들에 주로 나갔어요. 2014년 기자들의 하루를 담은
걸렸죠. 3회 러시아 장기에서 이기면서 나아졌어요. ‘할 수 있겠다’란 자신이
YTN ‘기사식당’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했었는데 박근혜 정권에 비판적이란 이
생겼거든요. 1차 주민교환 날, 리더 광재형에게 자원하는 사람이 없으면 저
유로 3회만에 폐지됐어요. 그래도 ‘기사식당’을 계기로 YTN과 인연을 맺게
를 보내셔도 된다고 말했죠. 그러고 나서 천수형이 저를 따로 부르더니 안에
돼 YTN의 아침 데일리 뉴스, 그 후에는 TV조선의 금요일 오후 2시 해외뉴
서 무슨 얘기했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아까 한 대답들 그대로 말했더
스 등에 나가면서 뉴스, 시사 프로그램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니 “너 우리 배신할거냐”고 하더라고요. 좀 당황해서 그게 무슨 배신이냐고 반문하니 “어제 그렇게 잘해놓고 높동에 가면 배신이지. 가면 안돼. 넌 마동
주로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하셨는데,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시
에 필요한 사람이야”라는 말을 들었어요. ‘인정받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들어
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기쁘고 감사했어요.
원래 예능프로그램은 안 나가려고 했어요, 제 본업은 기자니까. E채널 ‘용감한 기자들’도 나갈 생각이 없었는데 제작진 설득에 넘어가버렸어요. 그
알파고 님이 히든 힌트를 발견했을 때의 명대사죠. “찾았습니다!” 그때
리고 얼마 안 있다 지한통신사가 없어지면서 프리랜서 기자가 되니까 생계
상황을 설명해주세요.
문제가 걸리더라고요. 괜찮은 예능프로그램 있으면 나가야겠다 생각하고 있 었는데 작가들과 연이 닿아 JTBC ‘비정상회담’에 출연하게 됐죠.
‘찾았습니다’라고 외친 이유는 마을의 구성원으로 모두에게 알려야 했 기 때문이었어요. 제가 이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배신행위죠. 탈락 면제권을 찾은 것과 이것이 제게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는 다른 문
최근 막 내린 ‘소사이어티게임 2’에서 맹활약 하셨죠. 어떤 계기로 출연
제였어요. 쪽지에 ‘당신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라고 써 있었잖아요. 그 순간
하게 되셨나요?
느꼈어요. ‘나한테 필요 없다’고. 그래서 “왜냐하면 저는 하루하루 살아남을
사실 ‘소사이어티게임’ 시즌 1때도 제의를 받았어요. 소사이어티게임은
방식이 실력을 통해서이고 면제권을 통해서(가) 아니에요!”라고 말했고요.
여타 예능프로그램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고 느껴 출연을 고민했는데, 중앙 아시아 출장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나갈 수 없었죠. ‘소사이어티 게임’ 시즌
방송 8회분 ‘기억의 홀덤’에서 ‘갓파고’가 등장하죠.
2 출연은 제게 운명 같은 일이었어요. 2017년 4월에 가족들과 강화도로 가
그 이전에도 괜찮다는 평가가 있었는데.(웃음) 높동이 카드를 반씩 나
족여행을 갔는데 처제가 “형부 ‘소사이어티게임 2’ 한다는데 안 나가세요?”
눠서 외우는 전략을 준비해 왔는데 마동은 좀 더 앞선 전략을 준비해 갔어
라고 묻더라고요. 처제가 ‘지니어스 게임’ 같은 심리와 두뇌게임을 다룬 프로
요. 제가 전체의 반인 네 줄이 아니라 두 줄 더 외워서 여섯줄을 외우는 거로
그램들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연락 받지 못했어. 연락 오면 해야지”라고
요. 여기에 더 해 에이스랑 10, 높은 숫자들의 배치까지 외우고 게임에 들어
했는데 30분 정도 있다가 제작진으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같이 하자고. 그렇
갔어요. 본 게임 하다 보니까 중간 중간 카드 나올 때 나머지 배치도 다 외울
게 ‘소사이어티게임 2’에 출연하게 됐어요.
수 있을 거 같아서 3~4라운드때 전부 외워버렸어요. 이 전략이 특히 효과 를 발휘한 것은 마동이 선공일 때였어요. 마동이 선공일 때 카드 뽑기가 저-
방송 초반에는 힘들어 하는 모습들이 보였어요. 외국인이라 불리한 부
우리-새봄-인영 순으로 진행되거든요. 제가 우리가 외운 네 줄이 아닌 새봄
분은 없었나요?
이랑 인영 누나가 외운 쪽에서 카드를 뽑아버리니까 인영 누나 차례 때 좋은
줄리엔강 형은 외국인이지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여러 방송
카드들이 남아 있을 수 없었죠. 인영 누나 입장에서는 2대1로 싸우는 느낌이
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익숙하기도 했고요. 반면 저는 “알파고가 진짜 이름
들었을 거에요. 인영 누나한테는 개인적으로 미안한 게 꼭 저랑 게임 붙을
이냐? 관심종자 아냐?”라는 편견과 싸워야 했어요. 극복하는 데만 며칠이
때는 운이 따르지 못해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거 같아요.
74
축구 국가대표 출신 이천수 님은 마동에 어떤 존재였나요?
하고 만나죠. 그래도 고마운 사람을 꼽자면 우선 마동의 리더 준호죠. 마동
가끔씩 사람들의 의견이 다를 수 있죠. 그때마다 바로 중재해주고 하나
의 중심을 잡아줬으니까요. 준호는 단순한 신체 역할을 넘어 큰 틀의 전략을
로 뭉치게 해준 사람이 천수형이었어요. 하루 하루 챌린지에 지친 우리에게
짤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체육 관련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데 고전인문학에
기운도 북돋아 주고요. 다른 구성원들도 알고 있었죠. 천수형 나가면 마동
도 관심이 많더라고요. ‘소사이어티게임 2’ 촬영하는 동안에도 책 두 권을 읽
사회가 안 돌아간다는 것을. 그런 형이 나갔으니까 마동이 재미 없는 동네
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태호는 친동생 같은 친구에요. ‘저 대신 태호가 나갔
가 된 거에요. 분위기도 안 좋아졌고. 사실 출연 전에는 천수형이 어떤 사람
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파이널을 양보하기도 했고요. 새봄이도 많
인지 전혀 몰랐어요. 마동 들어가서도 그냥 ‘축구선수였구나’ 하는 정도로만
이 고마웠어요. 천수형의 빈 자리를 채우면서 마동을 격려해줬죠. 새봄이는
알고 있었어요. 같이 지내면서 느낀 건데 천수형은 머리도 정말 좋은 사람이
방송 후 우리 집에 놀러 올 정도로 친해졌어요. 추석 때는 잊지 않고 선물도
에요. 모든 면을 고려해서 생각하고 행동하거든요.
챙겨줘 너무 고맙더라고요. 높동의 우리도 진짜 좋은 친구예요. 아이돌이라 춤 잘 추고 노래 잘 부르고 예쁘기만 한 줄 알았는데 머리도 좋아요. 제가 전
왜 파이널 챌린지 진출권을 양보하셨나요?
세계 화폐 모은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가 외국 화폐도 챙겨주더라고요. 승
게임 초반부에 심리적으로 너무 위축돼 있었어요. ‘소외된 것만 같다’ ‘내
옥이도 제 생일에 케이크를 선물해 줬고요.
목숨은 얼마 안 남았다’ 제 머리는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했죠. 한 4회분까 지는 ‘오늘도 살아남았구나’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너무나 감사했어요. 그 때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문인지 욕심이 사라져버리더라고요. 그래서 마지막에 자리를 양보하고 나올
태호랑 여러 콘텐츠들을 기획하고 있어요. 우선 1년 정도 같이 해보기로
수 있었던 거 같아요. 파이널을 앞두고 이런 말을 했어요. “백화점 가면 팔에
의기투합했어요. 저희는 머리 쓰는 심리게임을 선보일 예정이고요. 곧 시작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쇼핑을 많이 할 거 같나요 아니면 팔이 짐으로 가득
될 ‘치외德권’이라는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도덕이 없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한 사람이 더 많이 쇼핑할 거 같나요? 물론 아무 것도 쥐고 있지 않은 사람
보드게임이 될 거예요. 태호랑 제가 1대1로 보드게임을 할 수도 있고, ‘소사
이 더 많이 쇼핑할 수 있겠죠. 전 이 곳에서 얻은 게 너무나 많아요. 더 이상
이어티게임’ 출연진이나 시청자가 나와서 같이 게임 할 수도 있어요. 촬영과
쥘 필요가 없을 정도로.” 진짜로 그랬어요. ‘소사이어티게임 2’를 통해 많은
편집을 거쳐 제가 활동하는 유튜브 채널 ‘하베르코레’를 통해서 나갈 예정이
경험과 사람들을 얻었어요.
예요. 개인적으로는 보드게임을 하나 제작하고 있어요. 고등학교 때 룰까지 직접 만든 게임인데 하도 많이 해서 입시에 지장을 받을 정도였어요. 가칭
알파고님이 파이널 진출 했을 때의 승리시나리오나 메달리스트의 집중
도 정했어요. ‘군주 1812’. 1812년은 산업혁명이 진전되면서 세계 정상들이 처
력을 주목한 선견지명 등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퍼지면서 재평가가 이
음으로 모임을 가진 해이기도 해요. 그래서 게임의 주요 키워드가 ‘산업혁명’
뤄지기도 했어요.
‘군사력’ ‘민족주의’고요. 기존 게임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스토리와 룰을
그건 저도 봤어요. 나가서 이겼으면 좋았을 텐데 지나간 일이니 어쩔 수
갖고 나올 거에요. 특허도 곧 나올 예정이예요.
없죠. 대신 와이프한테는 많이 미안했어요. 상금 받았으면 당장 차 한대 샀
제가 이전에 책을 낸 적도 있어서 사람들이 물어보시더라고요. 기자인지 작
죠. 아이도 곧 태어나는데. 와이프한테 할 말이 없죠.(웃음)
가인지. 갈림길에 있긴 한데 일단 저술 활동도 계속할 생각입니다. 첫번째 책 은 작년에 출판됐고, 두번째 책은 출판을 앞둔 상황이고요. 다섯번째 책의
방송하면서 특히 고마웠던 사람들이 있으신가요?
기획까지 마쳤죠. 방송은 제의 받는것 모두 나갈 순 없지만, 좋은 프로그램
높동 마동 사람들 다 두루 친한 편이에요. 출연진들과 요즘도 자주 연락
있으면 출연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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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erce survival competition, “Society Game 2,” for which 22 contestants fought one another with 150 million won at stake came to an end November 10, 2017. Airing as a TV show, “Society Game 2” presented to viewers familiar tv personalities, models, politicians, athletes, and other notable persons coming together at a circular village to battle it out during the hot summer season. Contestants were divided into two groups: the Nopdong, and Madong. Only the three remaining contestants in each dong were able to proceed to the final; until then, each member would fight tooth and cheek, sometimes working together, to get to the finale. Undergoing diverse missions in various conditions was like our real world; where we often face conflict with those around us, but at times, have to cooperate for survival. Among the contestants was Alpago Sinasi of group Madong¸ who entered the competition as a foreigner. Despite his disadvantages, he was able to go far in the competition, attracting viewers’ curiosity to his character. The following is an interview with said Alpago Sinasi, “chatterbox” that he is, and gives insight into his experiences.
“Hello, I am Alpago Sinasi from Turkey. At
now, after doing so well, now that’s being
first, I came to Korea in September 2004
a traitor. Don’t go, Madong needs you.”
to study Mathematics at KAIST University,
I felt as if my effort had been recognized
but as I began to learn Korean, I realized
and I was very grateful. For around the first
that I was more interested in language than
four episodes, I was just really thankful to
numbers. I thus received a B.A. in Political
be alive and competing, and I think that’s
Science and Diplomacy from Chungnam
what made me not become greedy, it was
University, and an M.A. in Diplomacy
why I was able to let go of the finale.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Graduate
Now, after the tv show, Alpago Sinasi is
School. During a summer of my master’s
preparing to launch several projects. “I’m
program, the President of Turkey made a
currently planning with Taeho (who was
visit to Korea and I worked as a translator
also on the show) new media content; I
for members of the press. This experience
may play board games with Taeho or other
led me to work at Cihan News Agency for
players who appeared in “Society Game”,
6 years as the special correspondent for
and it will be aired through the Youtube
South Korea.
Channel “Haber Kore”. Personally, I’m
Sinasi admitted to struggling during the
creating my own board game and plan
beginning episodes of the survival game,
on receiving a patent for it; I made all the
but he gradually earned the respect of his
rules and played it so much back when I
fellow contestants who saw his tenacity
was applying for university…I’m not sure it
that ultimately led him to reaching the
was such a great thing during application
level just before the finale. At first, I had to
season. This time, I’m going to upgrade
face questions like, “Is Alpago your real
it with an entirely different story and new
name?” or “Isn’t it just because you like
rules. Before, I also published a book, and
all the attention?” He said, “At one point,
people sometimes ask me if I’m a reporter
when the Nopdong and Madong teams were
or a writer. To be honest, I’m not so sure
trading team players, I had made up my
myself, but I want to continue writing. My
mind to go to the other side if no one
first book was published last year, and my
else volunteered, but one of the central
second one awaits publishing. I am also
members in Madong, soccer player Chun-
open to any good opportunities that may
su encouraged me by saying, “If you go
come in tv broadcas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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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gained so much from “Society Game 2”; I met friends that I continue to have a relationship with. Now, I’m preparing for multiple new projects—most of them will be related to board games. I’m also going to continue writing and am open to new opportunities on tele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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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 105 Culture 106 ― 107 Books
2018
01
PLASTIC FANTASTIC : 빛·컬러·판타지
D museum
2017.09.14. ~2018.03.04.
Tue-Sun 10:00AM~6:00PM Fri,Sat 10:00AM~8:00PM Mon Closed
80
Art Obsession Alessandra Bonanomi Staff Reporter
Inside the exhibition From September 14, 2017, to March 4, 2018, D Museum in Seoul presents Plastic Fantastic, an exhibition showcasing designs born from the artistic imagination of international designers and the unlimited potential of plastic. The project illustrates the magical journey of plastic, the substance sometimes described as the 20th centuryâ&#x20AC;&#x2122;s miracle material. The exhibition offers an overview of more than 2,700 products, items of furniture, lights, graphic designs, and photographs produced over the past half-century via the individuality and innovative spirit of around 40 international artists. The project was created with the collaboration of famous designers and Kartell, the leading Italian design brand that has helped in developing a new identity for plastic beyond that of a product of the single-use consumption system. At the same time, the exhibition conveys a sense of Italyâ&#x20AC;&#x2122;s humorous and bold design by a selection (handpicked from a vast archive) of remarkable advertising graphics, illustrations, and photographs that capture plastic furniture in novel ways from the perspectives of exceptional photographers and artists. Plastic Fantastic offers a wide-ranging illustration of the organic evolution produced by the interplay between this endlessly flexible, ever-changing material, and artistic inspiration. In effect, the project reveals the magical moment when the imaginations of master designers combine with plastic to produce pure innovation. Plastic Fantastic consists of six sections. The Beginning of a Dream, Polymer, is an installation located at the museumâ&#x20AC;&#x2122;s entrance, symbolizing the pure qualities and form of plastic before it acquires shape and color, also giving a sense of the trademark texture and characteristics of the material. The main exhibition begins with the section Bring Colors to Domesticity, showing how plastic, after starting out as an industrial material, was adapted to furniture and tableware thanks to advances in manufacturing technology and the introduction of color as a familiar part of everyday life. This is followed by Molding New Living, a section vividly illustrating how plastic has evolved with changing times and social trends, such as the space-age, and the culture of outdoor life.
81
82
Design Becomes Everyday Landscape is a section
ushered it into the realm of the household;
with photographs reinterpreting plastic
Joe Cesare Colombo, the godfather of
products not in terms of fixed function but
industrial design, Philippe Starck, the
through the unique perspectives of artists.
industrial design icon of the 20th century,
It offers a glimpse of the philosophy and
and Piero Lissoni, master of minimalism
passion of the designers featured in this
combining elements of simplicity and
exhibition. When Designers Dream showcases
function. Then, more recent works by
the imaginative and highly individual works
artists who have taken the center stage in
of contemporary designers fascinated by
contemporary design, such as Ferruccio
the exceptional material qualities of plastic.
Laviani, who uses light to express bold
At the end, the Constantly Evolving section
Italian style, Patricia Urquiola, owner of
uses video and installation works to
the Midas touch that influences the entire
express the hopes and dreams for plastic
global design market, Ronan and Erwan
as the material develops onward and into
Bouroullec, the brothers who have won
newer realms.
a global fan base with an aesthetic that
The exhibition includes artworks by
combines elegance and simplicity, and
the giants of the design world, such as
Tokujin Yoshioka, the genius creator of
Anna Castelli Ferrieri, the pioneering
inspiring poetic designs that transcend
designer who brought new elegance
beyond the boundaries of convention
and functionality to industrial plastic and
design and art.
The addition of Showmakers, the visual creative group that designs experimental spaces beyond the realm of the familiar, and works of artist Yeojoo Park, noted for her spatial installations that make use of site-specific elements, bringing a further dimension of experience to the exhibition, are seen over the course of the halls. In the same spirit of the etymology of the word plastic, â&#x20AC;&#x153;to mold,â&#x20AC;? Plastic Fantastic offers a wide-ranging depiction of organic evolution produced by the intermixing of flexible medium and artistic thought. Other Italian designers featured in the exhibition are Sergio Asti, Gae Aulenti, Mario Bellini, Achille Castiglioni, Pier Giacomo Castiglioni, Antonio Citterio, Gino Colombini, Ignazio Gardella, Vico Magistretti, Alberto Meda, Alessandro Mendini, Ludovica and Roberto Palomba, Franco Raggi, Paolo Rizzatto, Giotto Stoppino, and Marco Zanuso. In the group of Asian artists there are also Chosun Hong and Isao Hosoe. Centrokappa (an Italian group actived from 1970s to 1980s), Front (a Scandinavian group that erases boundaries between art and design), and Nendo (a Japanese designer studio that is now considered one of the world's most influential teams) are the design groups of Plastic Fantastic. Others names of the exhibition are Patrick Jouin, Christophe Pillet, Eugeni Quitllet, Richard Sapper, Ettore Sottsass, Ron Arad, and Olaf von Bohr.
83
Is plastic really fantastic?
84
Plastic was invented in 1855 by Alexander
hazards in agricultural towns in the Korean
Parkes, who created the innovative material
countryside, as more than half of the
using chemicals found in crude oil. Since
waste is abandoned in empty fields. At the
then, plastic has become an essential part
global level, humans have produced 8.3 bn
of industries. â&#x20AC;&#x153;Plastic first came to be used
tonnes of plastic since the 1950s with the
in Korea in the late 50s and 60s, and it was
majority ending up in landfills or polluting
mostly used as a tool for industrial growth
the worldâ&#x20AC;&#x2122;s continents and oceans. The
at the time. This exhibition seeks to tell
total amount of plastic produced will last
the stories of plastic after it came into our
for hundreds, if not, thousands, of years.
ordinary lives, in the form of furniture and
Plastic Fantastic is surely an interesting
other things we use everydayâ&#x20AC;? declared
exhibition based on famous and important
Kim Ji-hyun, the curator of the exhibition.
design pieces. But, in 2018, some are
The celebration of plastic in this project
expectant of a new venture: perhaps
disregards the criticisms related to the
exhibitions that are able to connect art
material. According to Korea Herald,
to renewable and environmental-friendly
plastic waste is causing environmental
projects.
1855년 알렉산더 파크스가 발명한 플라스틱은 인류에 새로운 시대를 선사했지만, 환경파괴의 주범이라는 오명도 얻었다. 인류는 지금까지 약 830억 톤의 플라스틱을 생산했고, 이중 대다수는 매립지에 묻혀있거나 바다를 더럽히고 있다. 용도폐기 된 플라스틱은 단순 산업폐기물에 불 과할까? 그러나 이를 반박하듯, 한 전시회가 기능적인 차원을 넘어 우 리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예술작품’ 플라스틱을 소개하고 있다. ‘PLASTIC FANTASTIC : 빛·컬러·판타지’가 2017년 9월 14일 개막 해 2018년 3월 4일까지 서울 한남동 디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이 전시회 는 플라스틱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한 전세계 40여 아티스트들의 작 품 2700여점을 소개한다. 작품 카테고리도 가구, 램프, 생활용품, 그래 픽 디자인, 사진, 설치미술 등 다양하다. 이 프로젝트는 플라스틱에 단 순 소비재 이상의 정체성을 부여한 이탈리아 디자인 브랜드 카르텔과의 협업을 통해 성사됐다. ‘PLASTIC FANTASTIC : 빛·컬러·판타지’는 여섯 섹션으로 구성돼 있 다. 전시장 초입의 ‘폴리머 꿈꾸다’ 섹션은 플라스틱 본연의 모습을 소개 한다. 이 섹션에서 관람객은 다양한 형태와 색을 띠기 이전의 플라스틱 을 만날 수 있다. 전시회는 다음 섹션 ‘컬러로 물들이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이 장은 가구와 식기, 생활용품 등 다양한 용도와 형태, 색 을 갖추게 된 플라스틱이 우리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게 된 과정을 전한 다. 이어지는 섹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만나다’는 변화하는 시대상 과 그 유행에 발맞춰 진화한 플라스틱의 변천사를 소개한다. 디자이너의 철학과 예술적 영감이 특히 반영된 ‘디자인 풍경이 되다’ 섹 션은 플라스틱의 기능성을 넘어 아티스트 고유의 관점에 따라 이 소재 를 재해석한 사진들을 전시한다. ‘마스터 디자이너, 일상으로 돌아오다’ 역시 플라스틱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참여진들의 상상력을 담아낸다. 마지막 섹션 ‘또다른 세상을 꿈꾼다’는 오랜 세월 영역을 확장해 온 플 라스틱의 또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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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 tastes 글 이주형
2015년 2월 25일 런던 O2 Arena에서 열린 ‘2015 Brit Awards’. 미국 힙합을 대표하는 뮤지션 칸예 웨스트(Kanye West)가 ‘All Day’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특별한 무대에 오른 그는 ‘특별한 게스트’를 불렀다. 시상식을 앞둔 칸예 웨스트 는 영국 힙합의 주류가 된 그라임(Grime) 씬의 정점 스켑타 (Skepta)에게 동료 뮤지션들을 섭외해달라고 요청했다. 스 켑타를 위시한 아티스트들은 그라임을 상징하는 ‘올 블랙’ 을 차려 입고 등장하며 이들의 음악을 세계에 알렸다. 1960 년대 비틀즈(the Beatles) 킹크스(the Kinks) 등 영국 락밴드 들이 미국에 진출하며 ‘브리티쉬 인베이젼’(British Invasion) 을 이끌었듯, 반세기가 지난 2015년 이 날은 영국의 그라임 이 미국의 주류 힙합과 어깨를 나란히 한 역사적인 날로 기 록됐다. 우리가 흔히 들어가는 초록색 사이트에서 그라임을 검색하 면 “2000년대 초반 영국에서 발생한 대중음악 장르. UK 개 러지, 힙합, 댄스홀, 드럼 앤 베이스, 월드뮤직 등 다양한 장 르가 혼합된 것이 특징이다”라는 요약과 함께 음악적 용어, 관련 아티스트들의 이름이 쭉 나열되지만 이해가 쉽진 않 을 것이다. 아직은 낯설은 그라임, 탄생한 배경과 역사부터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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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슬럼가의 분노 녹여낸 ‘그라임’
년 솔로앨범 ‘Boys In Da Corner’로 18세의 나이에 미국
그라임이 탄생한 영국도 여느 나라가 그렇듯 계급 혹은
의 그래미 어워드에 준하는 영국 머큐리상을 수상하며,
세대 간의 갈등을 겪어 왔고, 음악은 젊은이들의 불만을
음지의 그라임을 양지로 이끌어냈다. 2007년 그는 두 번
표출하는 매개 역할을 해왔다. 일렉트로닉 뮤직의 한 장
째 앨범 ‘Maths + English’에서 당시 떠오르던 여성보컬
르인 UK 개러지(UK Garage)는 이전 세대의 주류였던 락
릴리 알렌(Lilly Allen)과 협업한 히트 싱글 ‘Wanna Be’를
으로부터 바통을 물려받아 1990년대 근 10년간 영국 음
발표, 갱스터를 꿈꾸는 10대들을 타이르는 성숙해진 모
악의 주류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거주민
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거리에서
의 대다수가 유색인종이었던 런던 동부의 슬럼가에서 여
탄생한 그라임 MC들이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공격
러 장르가 혼합된 그라임(Grime)이 탄생해 UK 개러지로
성과 정체성을 잃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했다. 역사가
부터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라임은 영국 빈민의 분노
그리 길지 않았고, 기반도 단단하지 않았던 그라임은 그
를 노래했기에 다른 음악들보다 공격적인 성향을 보였고,
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했다. 쇠퇴해가던 그라임
‘거리의 분노’를 양분 삼아 자라나갔다.
을 다시금 씬의 중심으로 올려놓은 이가 스켑타다.
그라임의 탄생에는 영국 음악이 처한 상황도 한몫 했다. 20세기말 유행했던 해적 방송-정식 허가 없이 전파를
‘영국의 세종문화회관’에 한방 먹인 스켑타
타는 무면허 방송-은 런던 음악 씬의 근간이 됐다. 장르
2007년 ‘Greatest Hits’으로 데뷔한 스켑타는 무너져가던
의 정확한 명칭을 채 갖기도 전이었던 그라임은 해적 방
씬에서 오랜 세월을 버티고 또 버텨서 마침내 정점에 올
송의 DJ들을 통해 UK 개러지의 한 장르로 소개됐다. 너
라섰다. 지금의 그라임은 영국 힙합을 대표할 정도로 씬
무 차갑고 공격적이라 개러지 올드팬들이 외면해버린 곡
의 기반도 잡혔고,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MC들 간 디스
들은 그라임의 프로듀서와 DJ들에 의해 새로운 사운드
(diss)도 벌어지고 있다. 영국 안에서만 인기를 누렸던 ‘그
로 창조되면서 대중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해적 방송의
들만의 잔치’였던 그라임은 이제 미국 힙합 씬과도 교류
꼬맹이들(kids)이 런던 음악 씬의 미래를 만들고 있다”고
하며 갈수록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대부 스켑타는 최
한 UK 개러지 프로듀서의 말처럼, 언더그라운드 유망주
근 수년간 드레이크(Drake), 에이셉 라키(A$AP Rocky)
들은 주류와 떨어져 있던 공간에서 그들만의 기회를 낚
등과 협업했고, 긱스(Giggs)도 드레이크의 최근작에 참
아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라임이란 장르는 세상에 모
여했다. 서두에 언급한 칸예 웨스트의 ‘2015 Brit Awards’
습을 드러냈고, 해적 방송 ‘Kiss and Rinse’와 같은 채널
퍼포먼스도 영국-미국 아티스트들 간의 교류를 나타내
들은 그라임 아티스트들의 성지가 됐다.
는 사례 중 하나다.
그라임 초기, 씬을 주도했던 크루 롤 딥(Roll Deep)은 디
영국 그라임 씬 안에서 주목할만한 이슈들도 몇 있었다.
지 라스칼(Dizzee Rascal), 와일리(Wiley)와 같은 아티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2015년 4월 스켑타의 ‘Shut Down’
트를 배출하며 이름을 알렸다. 특히 디지 라스칼은 2003
퍼포먼스다. 영국 그라임 씬 안에서 주목할만한 이슈들
87
도 몇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2015년 4월 스켑타의 ‘Shut
특성에 기반해 살펴보자.
Down’ 퍼포먼스다. 당시 그라임 아티스트들은 서울 세종문화
1980년대 탄생한 미국의 힙합은 장르 초창기 1970년대 소울, 훵
회관 정도의 상징성을 지녔으며 런던 패션위크가 열리는 곳인
크, 재즈의 샘플링을 기반으로 발전했다. 반면 영국의 그라임은
‘Barbican Estate’에서 페스티벌을 기획했지만, 특별 규정(본명
이들의 자랑거리인 하우스, 테크노 등 전자음을 기반으로 발전
및 전과기록 제출)을 이유로 행사 개최를 거절당했다. 이에 스켑
해왔다. 때문에 미국 힙합은 그루브함을 중시하지만, 그라임은
타와 크루들은 “우리가 범죄자라 못하게 하는 거면 너희도 앞으
보다 빠른 비트 위에 기계음으로 곡을 전개해 나간다. 랩퍼들이
로 패션위크 같은 거 열지 마라”고 보이콧하며 한 방 먹이는 곡
랩을 구사하는 방식에도 당연히 차이가 있다. 미국 랩퍼들이 혀
‘Shut Down’과 그 퍼포먼스를 선 보였다. 이 곡은 그라임 씬의
를 굴리듯이-물 흐르듯- 랩을 한다면, 그라임 랩퍼들은 비트
찬가(anthem)와도 같은 곡으로 자리매김했다.
위에 딱딱 맞아 떨어지는 정박자의 랩을 구사한다. 이는 영국식 영어의 강한 악센트와 잘 어울리는 경향도 있다. 미국 힙합이 동
Versace Out, Nike In
부(East Coast), 서부(West Coast), 남부(Dirty South) 등 여러 지
그라임을 논하는데 패션도 빼놓을 수 없다. 그라임은 음악적 영
역적 기반을 토대로 성장한 반면, 영국 그라임은 런던 단일 지
감의 일정 부분을 UK 개러지로부터 물려 받았으나, 패션만큼
역을 기반으로 성장했다는 것도 큰 차이다.
은 개러지의 유산을 거부했다. 개러지는 코카인과 샴페인을 즐
그럼에도 그라임을 미국 본토의 힙합과 완전히 다른 그것으로
기고 사치스런 옷으로 치장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때문에 1990
구분 지을 수만은 없다. 미국의 랩퍼들이 그러했듯, 영국의 그라
년대 후반 영국엔 트레이닝 수트, 청바지, 야구모자 등의 캐주얼
임 아티스트들도 거리의 삶을 랩으로 풀어내며 빈민가 출신들
한 복장을 제한하는 개러지 클럽들이 많았다. 그라임 스타일은
이 겪었던 설움을 노래하며 성장했다.
개러지의 이런 거만한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작용에서 출발했 다. 그라임 초기 뮤지션 디지 라스칼은 이를 한마디로 “Versace
세기의 전환점. 누구나 쉽게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들
Out, Nike In”이라 표현했다. 그라임은 비싸고 예쁘지만 불편한
을 통해 그라임이 창조됐고, 울려 퍼졌다. 이 사운드는 스튜디오
실크 셔츠 대신 친구들과 동네에서 즐기기 편한 검은 색 스트릿
에서 창조된 결과물 같이 정교하진 못했지만, 런던의 거리와 공
웨어, 트랙수트, 나이키 에어맥스를 택했다. 물론 그라임 아티스
명했다. 그리고 2018년, 그라임은 단순한 음악 장르를 넘어 하나
트들 중 일부는 명품을 입기도 했다. 하지만 스켑타가 “한 때 입
의 문화적 현상으로 세계와 공명하고 있다.
었던 구찌는 쓰레기통에 버렸어. 그건 내가 아니니까”라고 말했 듯 그라임 스타일은 그 근본을 거리에 두고 있다.
빠른 비트 위에 얹어진 기계음과 정박의 랩 이 지점에서 한가지 궁금하다. 랩을 기반으로 한 영국의 그라임 과 미국 본토의 힙합은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을까? 음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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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Drake] Man's never been in Marquee when it's shutdown eh? Trusss me daddi (Man's never been in) [Hook: Skepta] When it's shutdown That's not me and it's shutdown Ring ring pussy, it's shutdown Fashion week and it's shutdown Went to the show sitting in the front row In a black tracksuit and it's shutdown Touch the road and it's shutdown Boy Better Know when it's shutdown [Verse 1: Skepta] Yeah, take time If a man wanna try me, no time Usain Bolt when I run up on stage I pick up the mic and it's reload time Don't know your songs but they know mine That's why I got gigs just like Joe Grind After the show I be rolling mine Don't care bout the no smoking sign They try to steal my vision This ain't a culture, it's my religion God knows I don't wanna go prison But if a man wanna try me, trust me, listen Me and my Gs ain't scared of police We don't listen to no politician Everybody on the same mission We don't care about your -isms and schisms [Hook: Skepta] Cause it's shutdown That's not me and it's shutdown Ring ring pussy, it's shutdown Fashion week and it's shutdown Went to the show sitting in the front row In a black tracksuit and it's shutdown Touch the road and it's shutdown Boy Better Know when it's shutdown
Shutdown Lyrics by Skepta
[Verse 2: Skepta] You wanna act like a G for the camera You say you're Muslim, you say you're Ra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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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ok like looking 글 김보배 이주형
1846년 스페인 마드리드의 중심가 로보 거리. 지금은 에체가라이 거리라 불 리는 이 곳에서 후안 로에베 라테가 가죽 공방을 설립하며 로에베의 역사는 시작됐다. 1872년 독일 장인 엔리케 뢰스베르그 로에베가 이 공방에 합류해 장인들과 노하우를 공유하며 로에베는 성장해 나갔다. 어느새 로보 거리는 로에베의 광고와 로고로 가득해졌다. 그리고 1905년, 로에베는 왕족에 물건을 납품 해 스페인 왕실의 공인을 받으면서, 스페인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한창 사업 이 확장되던 시기인 1939년 개설된 마드리드 그란비아 지점은 초기의 모습 을 고스란히 유지한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로에베는 1945년 브랜드를 상징하는 송아지 가죽가방을 선보였고 이후 여 성복, 향수 등을 차례로 출시하며 제품 라인업을 확장했다. 스페인의 가죽 장인들은 1963년 영국 런던 지점을 시작으로 해외진출에도 나섰고, 1973년 일본에 첫 지점을 개설하며 아시아까지 그 영역을 넓혔다. 1996년 창립 150 주년을 맞은 로에베는 전환기를 맞이, 1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 그룹에 인수됐다. 최근 수년간 세계 패션계는 ‘공예’를 주목해왔다. 2016년 ‘로에베 공예상’을 제정한 로에베는 이러한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로에베는 오랜 세월 ‘장인정 신’에 바탕을 둔 가죽공예품을 선보여왔기에 그 누구도 이러한 행보를 일시 적인 그것이라 폄하하지 않는다. 2013년 9월부터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해온 2조나단 앤더슨 은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패션브랜드는 사람의 손으로 빚어낸 가치를 담아야 발전할 수 있다. 공예는 우리에게 빵과 버터 같이 빼놓을 수 없는 존재”라고 말했다. 170여년 전 스페인 마드리드의 한 거리에서 탄생한 로에베의 ‘장인정신’과 그 유산은 현재진행형이다. 1
LVMH(루이비통모엣헤네시) 모엣헤네시 MH와 루이비통 LV가 만나 탄생. 프랑스 파리에 본사를 두고 있는 명품 회사. 로에베를 포함한 60여 브랜드 제품을 제작 및 유통. 디자이너 양성에 큰 관심을 갖고 있 으며 관련 교육과정을 후원 중. 2 조나단 앤더슨 (Jonathan Anderson) 1984년 9월 17일 북아일랜드 태생. ‘로에베’ 와 개인 브랜드 ‘J.W. 앤더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LOEWE Seoul 2018 S/S 컬렉션 프 리뷰’를 아시아 최초 서울 성수동에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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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pe » Spain
LOEWE The history of Loewe began in 1846 when Juan Loewe Latte opened his leather workshop in the main district of Lobo in Madrid, Spain. By 1872, Juan Loewe started collaborating with German craftsman Enrique Roessberg Loewe and other artisans, all the while maturing his own brand. In 1945, Loewe debuted with his calfskin leather bags and then continued to expand the Loewe lineup to female attire, perfumes, and other items. Loewe brand, reaching a turning point in 1996 with its 150th-year anniversary, was taken up by Moët Hennessy Louis Vuitton SE (LVMH), and with the help of newly recruited renowned designer Jonathan Anderson, LOEWE has seen much success with a transition back to quality craftsmanship. What was born in the streets of Madrid 170 years ago continues to this day with Loewe’s master craftsmanship.
loewe WOMEN’s sPRING/sUMMER 2018 Fruits campaign (Photographer: Steven Mei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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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to go 글 김보배 이주형
http://www.wooyoungmi.com/manmade/
OPEN Store : 11am ~ 8pm Café : 11am ~ 9pm Open everyday Valet Parking is available ADDRESS 648-1. Sinsa-dong, gangnam-gu, Seoul, Korea TEL Store: +82 2 515 8897 Café: +82 2 548 8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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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MADE WOOYOUNGMI
맨메이드 우영미
Located near Seoul Dosan Park, MANMADE WOOYOUNGMI officially opened its doors on May 2012, introducing its flagship brand “Solid Homme” and designs by none other than Woo Young-mi herself—in a culture complex of male fashion brands and a café street for visitors. MANMADE WOOYOUNGMI begins from the second floor to the fifth, with each level expressing its unique aura. Visitors will find on the second floor the MANMADE SQUARE & CAFÉ where drinks and desserts made by various artists are put on display and sold. Customers sit in the spacious café and select their orders. The interior layout; the placing of furniture, the knitted seat cushions, and the customized black and white bill, all suggest a particular WOOYOUNGMI-ness and minimalism to the area. The third to fourth floor consist of shops displaying Woo Young-mi designs for men’s attire and the fifth floor presents her flagship store, “Solid Homme”; these floors, like the level below, contain a unique sense of the designer within the interior design. For a designer who had felt “that there was no space just for men in fashion”, the concept of space and spatial layout was important in creating the WOOYOUNGMI complex. Korea’s first café, gallery, and flagship store complex, MANMADE WOOYOUNGMI, is scheduled to open its second store in Marais, France in early 2018.
2012년 5월 서울 도산공원 인근에 문을 연 MANAMDE WOOYOUNGMI. 패션브랜드 ‘Solid Homme’와 ‘WOOYOUNGMI’의 디자이너 우영미가 선보인 이 곳은 카페와 갤러리, 남성패션브랜드 전문매장을 품 은 복합문화공간이다. 2~5층으로 이뤄진 MANAMDE WOOYOUNGMI는 각 층마다 저마다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 2층 MANMADE SQUARE & CAFE는 음료와 디저트를 판매하는 카페와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이용객들은 넓은 간격으로 나열된 테이블에 앉아 그 자리에서 메뉴를 주문하고 받을 수 있다. 테이블 배치와 인테리어, 니트원단으로 쌓여진 의자, 계산서까지 이 카페 곳곳 엔 모던하고 미니멀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우영미스러움’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3층부터 5층까지는 디자이너 우영미가 전개하는 남성복 브랜드 매장의 기능에 충실했다. 3~4층 ‘WOOYOUNGMI’, 5층은 ‘SOLID HOMME’의 플래그십 스토어로 활용되고 있다. 디자이너 우영미의 의 류들이 간직하고 있는 고유의 감성은 매장의 인테리어와도 잘 어우러진다. ‘남자를 위한 공간이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고 말했던 디자이너 우영미이기에 이 공간만큼은 남성들을 위해 설계됐다. 한국 최초로 카페, 갤러리, 플래그십 스토어를 한 곳에 모은 복합문화공간 MANAMDE WOOYOUNGMI 의 2호점은 2018년 상반기 프랑스 파리의 마레 지구에서 오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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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p the asian food 글 이주형
‘야끼토리’(일본식 꼬치)로 유명한 ‘쿠시무라’는 제대로 된 일본식 닭꼬치를 선보이는 곳이다. 쿠시무라 는 비장탄(일본 최고급 숯)으로 꼬치를 구우며, 주재료인 닭의 신선도를 위해 하루에 정해진 양만 팔아 매진되는 일이 잦을 정도로 재료 하나하나에 신경 쓰는 식당이다. 쿠시무라는 재료를 낭비하는 일 없이 닭 한 마리의 거의 모든 부위로 만든 꼬치들을 선보인다. 처음이 라 낯설거나 종류가 너무 많아 고르기 힘들면 꼬치 다섯 종을 제공하는 세트를 시키거나 단품 꼬치를 추천 받아서 주문하면 된다. 메뉴를 주문하면 음식이 나오기에 앞서 자그마한 그릇에 담긴 양배추가 나온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소스가 배어있는 양배추를 한 입 베어먹으면 식욕이 솟아난다. 곧 이어 다리, 날개, 가슴살, 염통 등 닭의 다양한 부위로 만든 꼬치들이 등장한다. 술 한잔 곁들여 꼬치를 즐기다 보면 접시도 금새 비워진다. 쿠시무라는 음식에 맞는 술만 내놓는다는 방침에 따라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초록병 소주는 취급하지 않는다. 대신 꼬치에 알맞은 맥주나 하이볼(위스키-탄산수 칵 테일)이나 일본주, 한국의 프리미엄 소주들을 구비해 놓고 있다. 쿠시무라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식당의 규모가 다소 아담하다는 것이다. 평일 피크타임이나 주말의 경 우-심지어 자정을 넘긴 시간까지도- 자리가 없어 착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름과 전 화번호를 남겨 대기예약을 걸어놓을 수 있는데, 회전율이 비교적 빠른 곳이라 인근 상수동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면 곧 자리가 난다. 혹자는 ‘내가 왜 이 돈과 시간을 투자해 닭꼬치를 먹어야 하지’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일 본식 꼬치요리를 맛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곳은 분명 매력적인 장소다. # 일본은 기원전 2세기 야요이 시대부터 닭을 사육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닭 요리의 역사는 그리 길 지 않다. 17~19세기 에도시대에도 닭고기보단 계란 확보가 닭 사육의 주 목적이었다. 그러나 메이지 유 신 이후 육식 문화의 보급, 생산 체제 및 유통의 정비 등으로 닭 요리가 발달하며 지금의 야끼토리 문 화가 자리잡게 됐다. 대개 꼬치 요리를 먹을 때 꼬치에 꽂힌 것을 한번에 빼서 접시에 놓고 먹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따로 떼어 놓으면 붙어 있을 때보다 음식이 빨리 식으며, 정교한 식당들은 꼬치가 꽂힌 순 서에 따라 간을 다르게 하기 때문에 차례대로 먹는 것이 좋다.
KUSHIMURA OPEN 19:00 - 04:00 (일요일 휴무)
ADDRESS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3길 13
TEL 02-333-2650 꼬치 단품 : 2,500~5,000원 꼬치 세트 : 12,000~3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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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완자 꼬치 쯔쿠네는 쿠시무라를 대표하는 메뉴 중 하 나다. 쯔쿠네를 주문하면 계란 노른자 위에 완자 세 덩 어리가 꽂혀있는 꼬치가 나온다. 한 덩어리를 소스에 찍 어 한입에 먹어도 좋고, 덩어리를 둘 혹은 셋으로 나눠 서 찍어 먹어도 맛있다.
닭안심 꼬치 사사미는 굽는 정도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 이다. 오래 구우면 고기가 퍼석해지고, 덜 구우면 접시 에 핏물이 고이지만 쿠시무라는 안심이 가장 부드러워 지는 순간까지만 구워서 내놓는다. 곁들여 나온 와사비 에 찍어 먹으면 입에서 사르르 녹는다.
물론 이 곳이 닭꼬치 요리만 하는 곳은 아니다. 표고버 섯, 은행, 가지나 베이컨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꼬치 들도 있다. 사이드 메뉴 중 하나인 오뎅탕은 메인 메뉴 가 아님에도 퀄리티가 상당하다. 여러 종류의 오뎅들을 한 입씩 먹다보면 입이 심심할 겨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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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 »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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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ity in Crevices and Corners Eui-mi Seo Staff Reporter
“Coming to Korea as a tourist is vastly different from actually living here.” Some say you can only truly know a country once you’ve passed a tourist’s honeymoon phase. And for Frederic Heng who hails from Singapore, the veil of his first impression of South Korea was gradually lifted over the 4 years he spent studying at Yonsei University in Seoul. At first, it was the garbage; the way almost everything had to be separated out and recycled—the food waste with leftovers to put into small bags, and the recyclables in their own plastic trash bags each designated by color and size. “In Singapore you live in apartments and send all your trash (clothes and food) down a single chute and you never see it again.” It just didn’t register with Frederic that he had to pay for bags to throw his trash away. Later, it was the toilets. Cleanliness cannot be emphasized enough back home, but in Korea, it took some time for Frederic to get used to different standards for restroom cleanliness. “We take our toilets very seriously.” In Singapore’s Changi Airport, people are asked to evaluate their bathroom experience after using one of the stalls; by a cool device attached to toilet doors. But then, “there was this Korean concept of jeong”. The dictionary translates it to mean “affection”, but the nuances of the term imply a familial attachment amongst Koreans that is often extended to strangers. Without a strong grasp of the Korean language, there were many occasions where Frederic would have been seriously stuck if it had not been for some Koreans—absolute strangers— who went out of their way to help a foreigner in distress. “I come from a very individualistic culture and it was difficult to respond to jeong which I had never really experienced before. It was hard to reciprocate that kindness.” Of course, there are those unfriendly people on the subway who shout at foreigners that unknowingly sit on pink seats reserved for
or in his quaint home not far from Yonsei East Gate, opting for the
pregnant women…and there is a certain gap that just cannot be
cheaper dosirak (“Korean lunchbox”) as his main meal. And on a
overcome because of different social perceptions, but Frederic has
“good week” he will have around 300-500 pages of readings to
found that jeong is something unique to the culture—though it is
complete, characteristic of Korea’s heritage of education being
also an aspect that has been decreasing as Korea, too, becomes
very important for a person’s development and success. But that’s
more individualistic over time.
also found in Singapore, “maybe it’s an East Asian thing,” Frederic
On a typical day, Frederic will be studying either on school grounds
thinks a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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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Frederick Heng Age 27 Major Political Science and International Relations
Nationality Singaporean Institution Yonsei University, Seoul, South Korea Interests Enjoying new and exotic foods, traveling in spare time
Hoping some day to work in the civil or foreign service in Singapore, Frederic dedicates each day to hard work, but he also reserves some of his personal time for traveling around Korea. He prefers traveling alone and often will up and by himself cheap air tickets to places like Daegu and Jeju Island, taking in the various scenery and sights belonging to the peninsula. “I don’t plan on staying in Korea, but I am open—open to all op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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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여행 다니는 것과 실제로 사는 것은 많이 다르네요.” 4년 전 한국에 온 페데릭 홍(싱가포르·27)은 연세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있다. 같은 동 양문화권 국가라 비슷할 줄 알았지만 막상 살아보니 한국과 싱가포르는 다른 점이 많다. 맨 처음 놀랐던 것은 쓰레기 분리수거. 재활용 되는 것들을 따로 구 분해 배출하고, 음식물쓰레기와 일반쓰레기도 각각에 맞는 봉투를 구매해 버려 야 하는 것이 신기했다고 한다. 싱가포르의 주된 거주공간인 아파트에선 쓰레 기를 별다른 구분 없이 긴 배관으로 연결된 수거함에 버린다. 두 나라의 가장 큰 차이는 ‘정’이란 정서의 유무였다. 사전적인 의미에 따르면 ‘애정’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외국인이 겪으며 느낀 보다 정확한 의미는 타인에 게까지 전해지는 ‘가족과 같은 애착’에 가깝다고 한다. 페데릭은 한국어를 정확 히 구사하지 못하는 외국인이기에 난처한 상황에 놓일 때가 많았지만 그럴 때 마다 낯설지만 친절했던 한국인들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말한 다. “개인주의 문화가 발달한 곳에서 왔기 때문에 정이란 것을 한국에 와서 처 음 접했다. 이러한 친절함에 어떻게 보답해야 하는지조차 혼란스러울 정도로 낯설었다.” 외국인에게 정이란 문화는 낯설지만 특별했다. 평범한 어느 날, 페데릭은 저렴한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한 후 학교나 자취방 에서 공부한다고 한다. 이러한 학구열만큼은 한국뿐만 아니라 싱가포르에서도 높다. 페데렉은 동아시아 문화권의 공통된 현상인 듯하다고 말한다. 물론 한국 이 조금 더 치열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매일 공부만 하는 것은 아니다. 홀로 여행 다니는 것을 즐기는 그이기 에 인터넷으로 항공표를 구매해 대구나 제주도 등지를 찾기도 한다. 한반도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 것은 그의 건전한 취미생활이다. 졸업 후엔 전공을 살려 외교부나 정부기관에서 일하고 싶다는 페데렉. “앞으로 도 한국에 머물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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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항아리.
MOON JAR
조선시대 백자 ‘달 항아리’다. 달 항아리의 둥글고 풍만한 자태가 세계적인 가죽공예브랜 드 로에베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을 사로잡았고, 로에베는 이 공예품으로부 터 영감을 얻어 2018 SS 컬렉션을 전개했다. 이 달 항아리는 2017. 11월 서울 성수동 ‘로에베 2018 SS 컬렉션 프리뷰’에서도 전시됐다. 이 도자기는 스페인 마드리드 본사를 비롯한 유럽 전역과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곳곳의 로에베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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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view 글 이주형
2018년 1월은 흑인음악 팬들에게 행복한 달이다. 페스티벌이 활 발한 시즌이 아님에도 한국을 찾는 뮤지션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다. <매거진 N>은 2018년 1월 내한하는 뮤지션들의 공연을 소 개한다.
한국 최초의 겨울 시즌 힙합페스티벌 ‘2018 골든나인 힙합 페스티벌’(2018 Golden Nine Hip-hop Festival, GNF)이 1월 6일 서울 고척돔에서 열린다. 올해로 첫 회를 맞은 GNF는 넬리(Nelly), 키샤 콜(Keyshia Cole), 제레미(Jeremih)를 메인 라인업으로 내세웠다. 세인트 루이스에 기반한 그룹 활동으로 랩퍼 커리어를 시작한 넬리는 ‘Country Grammar’(2000), ‘Nellyville’(2002) ‘Sweat/Suit’(2004) 등의 정규앨범을 내놓 으며 2000년대 초중반 빌보드를 장식했다. 특히 ‘Nellyville’에 수록된 ‘Hot in here’와 ‘Dilemma’는 그 해 여름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곡들이다. R&B 싱어 키샤 콜은 한국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곡 ‘Love’가 담긴 앨범 ‘The Way It Is’로 2005년 데뷔했다. 그녀는 2007년 발매한 두 번째 앨범 ‘Just like You’ 를 통해 17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2009년 가을 히트 싱글 ‘Birthday Sex’로 화려하게 데뷔한 제레미는 한동안 활동을 쉬었지만, 2015년과 2016년 내놓은 정규앨범 ‘Late Nights’ 연작으로 자신이 건재함을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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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 list ─ 2017. 10. 7 at East Atlanta Village, Atlanta, GA, USA
1. Special Affair 2. Under Control 3. Thangs Steve Lacy demo 4. Dark Red Steve Lacy demo 5. Dontcha 6. Gabby 7. Diamond in da rough Matt Martians 8. Something's Missing 9. Just Sayin 10. Girl 11. Syd Fin Song (Body) 12. Curse 13. Get Away
미국 힙합 씬에서 가장 요상한 크루 중 하나인 오드 퓨처(Odd Future)가 품었지만, 그 테두리 안에서도 그들만의 빛을 내뿜고 있는 밴드 인터넷(The Internet) 이 1월 22일 예스24 라이브홀에서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 밴드 인터넷은 싱어송라이터와 엔지니어 역할을 맡고 있는 시드니 베넷(Sydney Bennett, 이하 시드)과 프로듀서 매튜 마틴(Matthew Martin)이 중심을 잡고 있다. 이 둘은 밴드로 데뷔하기 전부터 오드 퓨처 멤버들과 교류하다 자연스럽게 크루에 합류했다. 오드 퓨처 소속으로 데뷔를 준비해 온 이 밴드는 2011년 12월 첫 번째 정규 앨범 ‘Purple Naked Ladies’을 발표했다. 그리고 2013년 ‘Feel Good’, 2015년 ‘Ego Death’ 두 장의 후속 앨범을 선보이며 그들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이들의 음악을 전형적인 장르로 구분 짓기는 어렵다. 대신 그들은 소울, R&B, 트립합, 힙합, 일렉트로닉 등 여러 요소가 뒤섞인 소리에 ‘인터넷’만의 색을 입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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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 list ─ 2017. 11. 9 at Theaterfabrik, Munich, Germany
1. Rockabye Baby 2. Ring the Alarm 3. Paper Trail$ 4. Big Dusty 5. 95 'til Infinity 6. Christ Conscious 7. No. 99 8. Waves 9. Temptation 10. For My People 11. Land of the Free 12. Y U Don't Love Me? 13. Legendary 14. Amerikkkan Idol 15. Survival Tactics 16. Front and Centre 17. Pull Up 18. Devastated
근 몇 년 한국 힙합팬들 사이에서의 화두는 붐뱁(Boombap) 스타일의 재조명이었다. 드럼의 킥이 내는 소리 ‘붐’과 스네어가 내는 소리 ‘뱀’에서 유래한 이 스 타일은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말까지 미국 힙합 이스트코스트 씬의 주류로 자리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라져갔던 붐뱁을 다시금 주목 받게 한 이 가 조이 배드애스(Joey Bada$$)다. 이스트코스트 힙합의 성지 뉴욕 브루클린 출신인 그는 지역에 기반한 크루 프로 에라(Pro Era)의 창단 멤버로 커리어를 쌓아 갔다. 2012년 6월 믹스테이프 ‘1999’로 데뷔한 그는 2012년 9월 ‘Rejex’, 2013년 7월 ‘Summer Knights’ 세 장의 앨범으로 자신의 이름을 전세계 힙합팬들에 각인시켰다. 데뷔 초기 붐뱁 스 타일의 음악을 내놓았던 조이 배드애스는 1990년대 유행했던 타미 힐피거와 노티카 등의 레트로 패션을 이끌며 힙합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기도 했다. 세 장의 믹스테이프로 음악적 성취를 거뒀고, 두 장의 정규앨범을 내며 음악적 영역을 더욱 넓혀나간 조이 배드애스는 오는 1월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 그의 라이브 퍼포먼스는 1월 22일 예스24 라이브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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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 list ─ 2017. 10. 22 at Shoreline Amphitheatre, Mountain View, CA, USA
1. Mr. Carter 2. Got Money 3. I'm Goin' In (Drake cover) 4. John 5. Believe Me 6. Bitches Love Me 7. Rich As F**k 8. 6 Foot 7 Foot 9. Go DJ 10. Lollipop 11. Mrs. Officer 12. She Will 13. Every Girl (Young Money cover) (with Mack Maine) 14. Traphouse Blues (Chris Brown & OHB feat. Hoody Baby, Young Blacc, Young Lo & Dee Cosey cover) (with Hoody Baby) 15. Rollin' 16. Wasted (Gucci Mane cover) 17. Pop That (French Montana cover) 18. HYFR (Hell Ya Fucking Right) (Drake cover) 19. Loyal (Chris Brown cover) 20. The Motto (Drake cover) 21. I'm the One (DJ Khaled cover) 22. I'm Me 23. Drop The World 24. Mirror 25. We Be Steady Mobbin' 26. A Milli 27. No Problem (Chance the Rapper cover) 28. No Worries
미국 남부 지역에 기반한 서던 힙합(Southern Hip-hop)은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미국 힙합 씬에서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했다. 그런 서던 힙합 을 주류로 끌어올리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 중 한명이 릴 웨인(Lil Wayne)이다. 그리고 그가 1월 27일 한국에서 공연을 갖는다. 강력한 팀인 TMT(The Money Team)와 함께. 릴 웨인은 1월 내한하는 뮤지션들 중 커리어가 가장 화려하다. 그가 2008년 내놓은 6번째 앨범 ‘Tha Carter III’는 힙합 역사에 길이 남을 클래식으로 꼽힌다. 이 앨범의 수록곡 ‘Lollipop’과 ‘A Milli’는 2008년을 대표하는 싱글들로, 특히 ‘A Milli’는 지구상의 수많은 랩퍼들이 리믹스를 내놓을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물론 그의 다른 앨범들도 설명하기 귀찮을 정도로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보장한다. 최근 몇 년간 수차례 발작증세를 보이기도 했고 랩퍼로서의 활동이 뜸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놓칠 수 없는 릴 웨인의 공연이기도 하다. 그는 얼마 전 TMT 산하 레이블에 합류했는데, 이 팀을 만든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Floyd Mayweather Jr.)와 소속 프로듀서 릴 제임스(Lil Jamez)도 이 자리에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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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불편해 한 ‘이단아’ 찰스 부코스키와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 알레산드라 보나노미 기자
1972년 출판된 찰스 부코스키의 단편 모음집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는 작가 개인의 삶을 다룬 각 각의 이야기들을 1인칭 시점의 나레이션으로 풀어간다. 부코스키는 이 책을 내놓기 전 생계를 위해 안정적인 직업을 찾으려 했으나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 한 채 이혼당하고 말았다. 홀로 남겨진 그는 경마와 술로 세월을 낭비했다. 불면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 한 날이 더 많은 와중에 끊임없이 섹스도 갈구했다. 남은 것이라곤 산산조각 나버린 부코스키 그 자신 뿐이었다.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를 집필할 당시 부코스키의 나이는 55세. 겉보기에는 별다른 연 관성 없어 보이는 각각의 이야기들은 사실 작가 자신의 삶을 자전적으로 묘사한 글들이다. 1920년 독일 안더나흐에서 태어난 찰스 부코스키는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가 로스엔젤 레스에서 자랐다. 그는 로스엔젤레스 시티 컬리지를 다니다 중퇴하고 뉴욕으로 건너가 책을 출판하려 했다. 하지만 기회는 쉽사리 찾아오지 않았다. 절망에 빠진 부코스키는 집필활동을 포기한 채 10년간 술에 빠져 살기도 했으나, 오랜 방황 끝에 다시금 펜을 잡았다. 작업을 재개한 부코스키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여러 일자리를 전전했다. 때론 거리의 벽에 포스트를 붙이기도 했고, 때론 비스킷 공장에서 비스킷을 만들었다. 도살장에서 일한 적도 있다. 그러나 오랜 인 고 끝에 그의 재능을 알아본 City Lights Publisher의 오너 로렌스 페링게티를 만나게 된다. 든든한 후원 자 덕분에 그의 문장들은 책으로 태어날 수 있었다. 오늘날 찰스 부코스키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 소설가이자 단편작가로 손꼽힌다. 지나칠 정도의 극사실주의에 기반한 그의 작품들엔 작가의 또다른 자아 ‘헨리 치나스키’가 종종 등장한다. 이 캐릭터 는 술고래에 천덕꾸러기 노동자 신세지만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며 그 이상의 애정을 경마에 쏟기도 한 다. 치나스키는 현실의 부코스키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일부 비평가들은 부코스키의 글이 지나치게 공 격적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오히려 ‘남자다움’을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는 당시 세태를 비꼬았다. 찰스 부코스키는 남들이 말하지 않았던 불편한-당대에 금기시됐던- 주제들을 다룬 작가임에는 의심 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2차대전 이후 세계 초강대국의 지위를 누려온 ‘아름다운 미국’이 드러내놓고 싶 지 않았던 섹스, 알코올 중독, 폭력 등을 과감히 묘사했기에 대중은 그를 불편해 했다. “사람들은 늘 나를 혐오스러운 존재로 여겨왔다. 그러나 내 눈엔 타인을 짓밟으며 살아남으려 안간힘 을 쓰는 당신들이 더 불편하다.” 그의 일갈이다.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 찰스 부코스키Ι시티 라이트 퍼블리셔Ι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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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Bukowski, the Outsider Genius of American Literature Alessandra Bonanomi Staff Reporter
Erections, Ejaculations, Exhibitions, and General Tales of Ordinary Madness is a paperback collection of short stories written by Charles Bukowski published in 1972. Each story is based on firstperson narration, compiling stories that are personally linked to Bukowski’s own life. At the time he wrote the novel, the author was fifty years-old. He twice tried to find a stable job but failed; he got divorced and started betting on horses, he was poor and was always drunk. He could not sleep because of insomnia, and he was constantly looking for sex. What was left was a very broken and lost individual—Bukowski. All of these seemingly random events can be found in Erections, Ejaculations, Exhibitions, and General Takes of Ordinary Madness, recounting a semi-autobiographical and anecdotal reflection on the author’s own life. The collection was republished in 1983 as two volumes: Tales of Ordinary Madness and The Most Beautiful Woman in Town. These two stories originally appeared in underground newspaper stands, the Berkeley Barb and Open City. Charles Bukowski, born in Germany in 1920, moved to the U.S. with his family in 1923. He grew up in Los Angeles, where he studied at the Los Angeles City College from 1939 to 1941—before quitting to leave for New York. Publishing success did not come easily so he gave up writing in 1946. After he developed a bleeding ulcer, he decided to take up writing again. Bukowski worked a wide range of jobs to support his writing career such as diswashing, working as a parking lot attendant, a post office clerck, sometimes an elevator operator. His biggest break came some time after, when he began to work with City Lights Publishers owner, Lawrence Ferlinghetti, who was one of the first to recognize Bukowski as a talented short-story writer. Bukowski had a daughter and he died at 73 because of complications with leukemia. Today, Charles Bukowski is considered one of the most important poets, novelists, and short-story writers of his time; and pioneer of American literature. His works are respected for being unsparingly realistic with a degree of comedy, often observing the thoughts of Bukowski’s alter ego, Henry Chinaksi, who is a hard-drinking, a lover of classical music, and a horse-better. While some critics find his writing style offensive, others claim that Bukowski satirized machismo attitudes through his routine use of sex, alcohol abuse, and violence as images in his works. It is without a doubt that Charles Bukowski was a prolific underground writer who made use of distasteful topics—taboos at the time—to criticize the society he was living in. In the past he wrote, “The human race had always disgusted me. essentially, what made them disgusting was the family-relationship illness, which included marriage, exchange of power and aid, which neighborhood, your district, your city, your county, your state, your nation-everybody grabbing each other's assholes in the Honeycomb of survival out of a fear-animalistic stupidity.”
<Erections, Ejaculations, Exhibitions and General Tales of Ordinary Madness> By Charles BukowskiΙCity Lights PublishersΙ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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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새해 첫 도전, ‘비만 벗어나기’
박명윤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아시아엔> 보건영양 담당 논설위원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2016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 비만율(BMI 25 이상) 이 34.8%로 2015년 33.2%보다 1.6%포인트 늘었다. 국민건강영양조사를 처음 시작한 1998년의 성인 비만율은 26%였으며, 2005년 31.3%로 처음 30%대를 넘어 선 이후 10여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다 2015년에 33.2%, 그리고 2016년에는 34.8%로 상승했다. 특히 성인 남 성 비만율은 2015년 39.7%보다 2.6%포인트 상승한 42.3%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40%대에 진입했다. 성인 남성 중에선 특히 30대와 40대의 비만율이 두드러지게 높다. 30대는 18년 동안 19.3%에서 32.4%로, 40대는 33.3%에서 45.6%로 급증했다. 반면 성인 여성의 비만율은 1998년 26.2%에서 2016년 26.4%로 엇비슷 했다. 40대 여성은 오히려 29.8%에서 28.7%로 비만율이 소폭 감소했다. 이는 외모와 몸매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는 여성이 남성보다 식생활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성인의 비만증 진단에 많이 사용되는 지표로는 비만지수, 체질량지수(Body Mass Index, BMI), 허리-엉덩 이둘레 비(Waist-Hip Ratio, WHR), 피하지방 두께 등이 있다. 비만지수는 실제체중과 표준체중과의 차이를 표 준체중과 비교하여 백분율로 나타내며, 20% 이상이면 비만으로 판정한다. 체질량지수는 신장과 체중을 이용하여 계산하는 지수로, 체중(kg)을 신장(m)으로 나누어 100을 곱한 수치 다. 대한비만학회(Korean Society for the Study of Obesity)에서 제시한 비만의 진단기준은 체질량지수 25 이 상, 허리둘레 기준으로 남자 90cm 이상, 여자 85cm 이상을 복부 비만으로 진단한다. 2015년 한국인 영양소 섭취기준 연령 및 체위기준 중 30~49세 연령층의 신장(cm), 체중(kg), 체질량지수 (kg/㎡)는 다음과 같다. 남자는 신장 172.0cm, 체중 66.6kg, BMI 22.5이며, 여자는 159.0cm, 54.4kg, BMI 21.5이다. 영양소 섭취 부족이나 과잉, 그리고 불균형 섭취로 인한 건강문제를 예방함과 동시에, 대다수 국민들이 최적 의 건강상태를 유지하고 질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는 영양소 섭취기준(Dietary Reference Intakes, DRIs) 이 있다. 우리는 다양한 식품을 매일 필요한 만큼 섭취하여 균형 잡힌 식사를 유지하며, 규칙적인 운동으로 건강을 지 켜 나갈 수 있다. 즉 균형 잡힌 식사, 충분한 수분섭취, 적절한 운동을 통해 알맞은 영양을 섭취하고 건강을 유지 하며, 비만도 예방할 수 있다. 우리는 몸매와 체형에 관심이 많지만, 실제로 건강관리에는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많다. 식습관도 나빠져 아 침 식사를 거르는 사람이 2005년 21.2%에서 2016년 29.6%로 늘었으며, 남성(32.4%)이 여성(26.4%)보다 많았 다. 아침을 결식하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점심식사를 과식하면 비만으로 이어진다. 운 동도 덜 하는 것으로 나타나, 하루 30분씩 1주일에 5일 이상 걷는 인구가 2005년 60.7%에서 2016년 39.6%로 급 감했다. 각종 만성질환 유병률도 악화되었다. 고혈압은 2007년 24.5%에서 2016년 29.1%로, 그리고 당뇨병은 9.5%에 서 11.3%로 증가했다. 흡연율은 2015년 22.6%에서 2016년 23.9%로, 음주율(한달에 1회 이상 음주)도 60.6%에 서 61.9%로 늘어났다.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도 1998년 42.5%에서 2016년 32.3%로 떨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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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불가(佛家)에서 전하는 건강십훈(健康十訓) 중 소식다작(小食多嚼)은 음식은 적게 먹고 잘 씹어 먹어서 먹 길, 소차다보(小車多步)는 자동차는 적게 타고 많이 걸을 것을 권장한다. 주역(周易)에서도 복육분천수(腹六分 天壽)라 하여 자기 양식(糧食)의 6할만 먹으면 하늘이 내린 수명인 천수를 누릴 수 있다고 했다. 세계적인 장수촌으로 꼽히는 일본 오키나와의 주민들은 섭취열량을 제한하는 식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들 이 자주 쓰는 말 중에 ‘하라하치부’(腹八分) 가 있다. 식사를 전체 포만감의 80% 정도만 먹음으로써, 배가 불러 ‘허리띠를 풀기 전에’ 수저를 놓는다는 뜻이다. 엣 성현은 “사람이 천하를 얻고도 자기의 생명을 상실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했다. 100세 시대에 걸맞 는 건강관리를 위하여 우선 만병의 원인으로 꼽히는 비만을 예방하자. 이를 위해선 균형 잡힌 식생활과 규칙적 인 운동을 생활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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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고 싶은 사람과 닮고 싶지 않은 사람
김희봉 교육공학박사 현대자동차그룹 인재개발원
우리는 ‘롤 모델’(role model)이라는 표현을 통해 특정인을 닮아 가고자 한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롤 모델보 다는 이에 반하는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절대 저 사람처럼 되지는 않을 거야’ ‘내가 저 자리에 가면 저렇게 하지는 않겠어’ ‘도대체 이해가 안 되네’ 마음속으로 수백 번 되뇌어 보았지만 막상 시간이 흐르고 그 위치에 가보니 나도 모르게 내가 그렇게 닮고 싶 지 않았던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상황에 직면해서야 자신이 왜 이 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되돌아보게 된다는 점이다. 그동안 스스로 했던 다짐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지 기억조 차 나지 않고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거나 변화해보려고 노력 해보지만 쉽지는 않다. 우리는 왜 닮고 싶지 않은 사람을 닮아가는 것일까? 언뜻 생각하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곰곰이 생 각해보면 오히려 닮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우리가 그 사람을 닮게 되는 이유 중 하나를 들자면, 그 사람을 닮기 위한 행위는 했으나 닮지 않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닮기 위한 행위는 그 사람과 함께했 던 과정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소위 코드를 맞추거나 혹은 갈등과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지불식간에 혹은 의도적으로 그 사람 이 즐겨 쓰는 용어와 선호하는 행동을 모방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덧 습관이 되고 생각이나 행동도 점점 엇 비슷해진다. 물론 이와 같은 행위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러 가지 측면에서 권장할만하다. 순 기능도 분명히 있다. 다만 닮고 싶지 않은 것까지 닮아가는 자신에게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자신이 닮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충분히 희석시킬 수 있을 정도의 글을 읽어 볼 필요가 있다. 글을 통해 정제되고 순화된 용어나 다양한 관점을 접해보게 되면 한 쪽으로 편중되었던 자신을 성찰하게 되는 것은 물론, 스스로 균형을 잡고 언행을 가다듬을 수 있다. 이것만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일시적이나마 지금 까지 접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경험의 장에 뛰어 들어보자. 익숙했던 환경과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거나 외부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조망해보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군가를 직, 간접적으로 닮게 되어 있다. 많은 경우 자신이 닮고 싶 은 사람의 언행을 본보기로 삼고 살아간다. 그렇지만 간혹 자신이 닮고 싶지 않은 사람 혹은 닮고 싶지 않은 언행 과 마주하게 될 때도 있다. 이때 어쩔 수 없다는 자조나 타협보다는 적극적으로 극복해 볼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해 보면 어떨까? 아울러 자신이 닮고자 하는 모습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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