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55
9 772288 328008 ISSN 2288-3282
N
02
MAGAZINE
History of AJA, The AsiaN and Magazine N 2 0 0 4 .11.
아시아기자협회(AJA) 창립
2005.10.
AJA-JAK 포럼
2006.10.
2006 아시아기자협회 포럼
2007.03.
AJA-JAK, ‘IFJ 금강산 특별총회’
2 0 07.10.
아시아기자협회 후원의 밤 및 AJA Award
2008.10.
아시아기자협회 Eco 포럼
2 0 0 9.11.
아시아기자협회 포럼 및 AJA Award
2010.02.
아시아기자협회 룸비니 포럼
2010.07.
아시아기자협회 문화체육관광부 사단법인 인가
2 011.0 6.
아시아기자협회 기획재정부 지정기부금단체 선정
2 0 11. 0 7.
(주)아자미디어앤컬처 설립
2 0 1 1 .1 1 .
11월 11일 ‘아시아엔’ 한글·영문판 창간
2 0 1 2 .1 1 .
‘아시아엔’ 아랍어판 창간
2013.02.
수아드 알 사바 시집 ‘쿠웨이트 여자’ 번역 출간
2013.06.
6월 25일 ‘매거진 N’ 창간
2013.09.
아시아기자협회 ‘아시아 문화언론인포럼’
2014.03.
이상기 창립회장, 쿠웨이트 왕실 주관 황금보트상 수상
Asia’s Window to the World, the World’s Window on Asia 2 0 1 5 .1 1 .
‘아시아엔’ 창간 4주년 기념의 밤
2016.04.
‘2016 아시아기자협회 총회’ 및 ‘AJA Award 2016’
2016.05.
조코 위도도(Joko Widodo) 인도네시아 대통령 AJA Award 수상
2016.09.
아시아기자협회 ‘한몽미래포럼’
2 0 16 .10.
‘아시아엔’ 네이버스탠드 제휴
2 017.0 4 .
‘2017 아시아기자협회 총회’
2017.0 8.
제인 구달 박사-최재천 교수 초청, ‘AJA 에코 토크’
2017.0 8.
‘2017 AJA Global Leaders Forum Indonesia’
50개국 아시아기자협회 전문필진과 함께 만들어 가는 ‘매거진 N’
‘매거진 N’은 (사)아시아기자협회(AJA) 와 온라인 ‘아시아엔’(The AsiaN) 네트워 크를 기반으로 아시아 곳곳에 숨어있는 다양한 이슈를 보다 쉽게 풀이함으로써 아시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젊은 층 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문화 전반을 다룸 으로써 Asia Next Generation과의 가교 를 만들어 나갑니다.
AJA in Brief 회원 52개국 357명 사무국 서울 지부 몽골, 네팔, 방글라데시, 터키, 중동 등 이사장
창립회장
김학준
이상기
한국 인천대학교 이사장
한국 한국기자협회 전 회장, 한겨레신문 전 기자
회장
명예회장
Ashraf Aboul-Yazid
Ivan Lim
이집트 The AsiaN 아랍어판 편집장
싱가포르 The Straits Times 전 기자
수석부회장
부회장
Eddy Suprapto
Chuluuunbaatar Dolgor
인도네시아 RCTI 전 보도국장
몽골 UBS 설립자
부회장
부회장
Norila Mohd Daud
Bishnu Nisthuri
말레이시아 malaysiaworldnews 편집장
네팔 네팔기자연맹(FNJ) 전 회장
부회장
부회장
Pooneh Nedai
강석재
이란 Shokran 발행인
한국 세계태권도연맹 사무차장, 코리아헤럴드 전 기자
Asia Journalist Association (AJA) is… 2004년 11월 공정보도, 언론자유 수호, 저널리즘 발전 등을 목표 로 한국, 중국, 일본, 몽골 등 동아시아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필리핀 등 아세안(ASEAN) 기자들이 중심이 되 어 발족했습니다. 이후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남아시아와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기자들이 참여해 현재 52개국, 357명의 회원이 “한 줄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피와 땀을 아끼지 않는다”는 모토 아래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시아기자협회는 종교· 인종·민족·국가·이념을 초월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 환경보전 등 인류보편 가치 실현을 공통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The AsiaN (www.theasian.asia) is…
<아시아엔 영문판 메인>
<아시아엔 아랍판 메인>
2011년 11월11일 아시아기자협회가 창간한 인터넷 매체로 아 시아기자협회 소속 베테랑 언론인, 전문가들이 정확한 뉴스 와 깊이 있는 논평을 영어, 한글, 아랍어 등 3개 언어로 제 공합니다. ‘The AsiaN’의 N은 ‘미래비전(Next)’, ‘균형잡힌 뉴 스(News)’, ‘소통 한마당(Network)’을 의미합니다.
N
Inspiring Asia Empowering People Leading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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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FF 대표이사·발행인 편집장 고문 이사 경영기획실장 취재·편집 디자인
이상기 이주형 구명수 김규진 차재준 정현 서의미 Alessandra Bonanomi 김보배
Correspondents Alin Ferrer (Philippines) Ashraf Dali (Egypt) Bishnu Nisthuri (Nepal) Chuluunbaatar Dolgor (Mongolia) Eddy Suprapto (Indonesia) Ghina Halik (Lebanon) Gunjeet Sra (India) Ivan Lim (Singapore) Neelima Mathur (India) Norila Daud (Malaysia) Nasir Aijaz (Pakistan) Pooneh Nedai (Iran) Pramod Mathur (India) Shafiqul Bashar (Bangladesh)
제작·인쇄 홈페이지 제보 창간 등록 등록번호 발행 주소
㈜타라티피에스 www.theasian.asia 02-712-4111 / news@theasian.asia 2013.06.25 2013.05.02 종로 라00407 ㈜아자미디어앤컬처 주소 서울시 종로구 혜화로 35 화수회관 207호 (우 03068)
‘매거진 N’은 한국간행물위원회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존경하는 <매거진 N> 독자 여러분께,
안녕하세요, <매거진 N>의 서의미 기자입니다. 새로운 출발을 맞이한 <매거진 N> 2018년도 1월호로 찾아 뵌 것이 엊그 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나 지났습니다. 전에 언급했듯이 <매거진 N>은 ‘Art Obsession’, ‘Where to Go’, 그리고 ‘Style & Tastes’ 등 ‘Culture’ 섹션의 다양한 연재물과 아시아의 매력이 담긴 흥미로운 콘텐츠들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 중 제가 맡은 ‘Personality in Crevices and Corners’는 개인적으로 애착이 많이 가는 섹션인데요, 여러 매체에서 볼 수 있는 나라의 지도층을 비추기보다는 아시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즉 우리의 일상이 말하는 솔직한 이야기들을 다 룰 예정입니다. 평범한 아시아인의 이야기 속에서 그동안 간과했던 ‘우리들만의’ 고민과 경험을 공유하는 기회를 갖고 싶습니다.
또한 <매거진 N> 2월호 ‘Special Report’ 섹션은 키르기스스탄 신부 납치와 필리핀의 십자가 재현과 같은 아시아의 숨어 있는 종교 및 문화 의식을 소개합니다. 이번 특집은 특정 민족과 문화, 종교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뤘음을 알려드립니다. 아시아 각지의 생활습관과 전통을 알아가며 아시아를 더욱 넓고 열린 시야로 바라보았으면 하 는 것이 제작진의 바람입니다. 작고 사소하게 보일지라도 문화라는 것은 인류의 삶, 그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매거진 N>을 통해 아시아 국가 간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정치적 갈등 대신 소통의 미래가 열리길 바랍니다. 하지만 이 는 <매거진 N> 제작진의 노력만으로 이룰 수는 없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꾸준한 관심과 조언, 참여가 있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가까이서 지켜봐 주십시오.
늘 함께 해 주시는 독자님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만 줄입니다.
기자 서의미
Letter From N
To our Magazine N readers, It seems only days ago since our January issue, but we are now slowly settling into our new and improved Magazine N. As previously explained, our updated cultural sections such as Art Obsession, Where to Go, and Style & Tastes have taken vibrant shape as we introduce to you aspects of Asian society that are not as easily accessed. Personality in Crevices and Corners is a section that I have personally taken on to impart, however brief, the lived experiences of ordinary Asians as opposed to the many national leaders that reach us through our media sources. There will be no agenda and nothing much to speak of, but sometimes it’s good to remind ourselves the value of honest, and often painful, reality. This month, dive into the largely unknown religious and cultural rituals of Asia that you may find at once unusual and intriguing. From public displays of spiritual devotion in the Philippines’ Crucifixion ritual to Bride Kidnapping in Kyrgyzstan, we bring to you snapshots of the lives of rural Asian communities. Please note, however, that our sections are not aimed at generalizing Asia into any specific cultural stereotypes. We only write for you to gain insight into the smallest corners of our continent in the hopes that we can give a more panoramic view of the world. This is to allow a space where many different cultures can come together to share in one another’s lives without having to worry about the political instability of our day. With each upcoming issue, our Magazine N staff ask for your continued interest and support; we will gratefully receive any feedback from you and do our best to take your thoughts into consideration.
Staff Reporter of Magazine N
Seo Eui-mi
ON THE COVER MAGAZINE No.55
9 772288 328008 ISSN 2288-3282
02
N
‘이게 뭐지’하고 당황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가까이 다가갈수 록 정답은 멀어지지만,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볼수록 윤곽은 서 서히 드러납니다. 정답은 <매거진 N> 55호 ‘Art Obsession’ 첫 페이지를 장식한 팝아트 작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헤어 리본 을 한 소녀'입니다. 일상에 쫓기는 우리는 언제나 가까운 곳에 서만 답을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답은 먼 곳에 한번쯤은 호흡 을 가다듬고 멀리 바라보는 여유를 갖는 것은 어떨까요?
You may be taken aback by the cover wondering what it could possibly be. But rather than pulling your eyes closer, take a look from a distance to find Roy Lichtenstein’s “Girl with Hair Ribbon”-found on the front page of the Art Obsession section exhibiting Pop Art illustrations. Sometimes we are so focused on finding the answers in the smallest of details; maybe it’s time we took a deep breath to see the bigger picture of things.
CONTENTS 6 Magazine N is...
10 Letter From N
12 Contents
16 Asia Round-Up
19
50
24 ASEAN
Press Watch Singapore: 28 ASEAN
Will Dr. Mahathir Succeed in the 14th General Election? 32 Southern Asia
Pakistan - Where People Consume Poisonous Water 36 Southern Asia
KIM - INDIA’S POSTER BOY
50 Special Report
Obscure and Unknown Asia 62 Topics
“We Cannot All Succeed When Half of Us Are Held Back”: The F-word and the Struggle of the Female Emancipation 66 Topics
40 ARABIAN TALES
Affordable Consultation for Connection and Community
44
70
Middle East
Topics
Dubai vs Gwadar: the New World Economy War
The Right to Be Fat or the Right to Health?
Southern Asia
82
88
94
74 Interview
SEYRAN ATES 82 Art Obsession
Hi,POP 88 Style & Tastes
Belle And Sebastian & Erlend Oye 104 92 Look Like Looking
Books
Until We Are Free
99%IS108 94
Opinion
IDAHO.
겨울철 불청객 독감, 원인과 예방책
96
110
Where To Go
Map the Asian Food
SAMARKAND 100 Personality in Crevices and Corners
Lee Young Jae
Opinion
스티븐 호킹을 천재 물리학자 로 이끈 ‘감지덕지’ 112 Opinion
투기를 권하는 사회
공유경제. 사전적인 의미에 따르면 한번 생산된 재화나 서비스를 여럿이 공 유해 사용하는, 협력소비를 기본으로 한 경제활동을 말한다. 이는 특히 중 국에서 열풍을 일으켜 공유자전거, 공유충전기, 공유우산, 공유헬스장까지 등장했고, 관련 스타트업 기업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중국 경제개발 을 총괄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향후 수년간 중국의 공유경제가 연평균 40%대의 고성장을 보일 것이라 전망했을 정도다. 이들이 꿈꾸는 ‘공유경제’ 장밋빛 미래는 꽃을 피울 수 있을까? 2018년 1월 중국 신문망은 남부 푸젠 성의 샤먼 시에 거대한 ‘공유자전거 무 덤’이 생겼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시 당국은 2017년 11월 이래 10만
Shared economy. By definition, it means a system in which
대 이상의 무단방치 된 공유자전거를 수거했다. 이 수치는 기업들이 샤먼 시
assets or services are shared between private individuals,
에 공급한 공유자전거 전체의 3분의1에 달하는 규모다. 신문망은 업체들이
typically by means of the internet. Such cooperative
경쟁에서 이기려고 과다하게 공유자전거를 공급했으며, 이용자들의 소양도
consumption has recently seen a boom in usage particularly in
부족해 이러한 결과가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China where shared bikes, shared chargers, shared umbrellas,
이상징후는 2017년 중반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 중국전자비즈니스연구센
and even shared fitness centers are fast becoming the latest
터에 따르면 공유자전거 이용자수는 최근 수년간 급증해 2015년 245만 명,
fads. Startups related to the shared system have also been on
2016년 1,886만 명, 2017년 4,965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the rise. The National Development and Reform Commission,
업체 중 상당수는 자전거가 잇따라 분실돼 큰 손실을 봤으며, 극심한 경쟁으
that is the central managing organization of the state economy,
로 자금이 부실한 업체들이 줄지어 도산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지
said that China’s sharing economy would see on average a
적했다. 실제로 베이징에 기반을 둔 ‘3V바이크’는 도난으로 추정되는 자전거
40-percent growth rate per year. But will the fruits of such
분실을 감당하지 못해 2017년 7월 영업을 중단했고, 한 달 앞선 6월에는 충
sharing really take hold?
칭의 ‘우쿵’이 같은 이유로 사업을 정리했다. 연구센터는 이와 관련 “중소 공
On January 2018, a Chinese news outlet reported that Xiamen
유자전거 업체들이 도산하는 사례는 더욱 늘어날 것이며, 이들이 대형 업체
City of southern Fujian province had become “a graveyard of
에 통폐합돼 소수 업체의 독과점 시장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shared bikes”. According to the report, as of November 2017,
중국의 공유경제를 이끌던 공유자전거 업체들이 잇따른 위기에 직면하면서
over 100,000 shared bikes had been illegally left by owners. That
공유경제에 적신호가 켜졌다.
number is said to have been one-third of the total number of shared bikes in the whole city. It was evident that excess supply for shared transactions were leading to wasted bikes due to insufficient demand. These negative signs were detected as early as mid-2017. At the time, data from the China Electronic Business Research Center showed the sharp increase in shared-bike users: 250,000 users in 2015, to 18,880,000 in 2016, and finally in 2017, 49,650,000 users. However, many bike-sharing companies had declared bankruptcy because of extreme competition and users frequently losing bikes. In July 2017, Beijing company 3VBike closed shop unable to handle the aftermath of missing bikes, often seen as cases of theft. Just one month earlier, in June, Wukong bike-sharing corporation stationed in Chongqing also closed for similar reasons. The Electronic Business Research Center stated, “cases of shared-bike theft are likely to increase in the future which may result in a monopolized shared-bike market of only a few companies.” For now, what had been the pioneer of the prospect of a brighter shared economy in China has become a big red flag for the entire system.
16
일본 고유의 자연종교이자 토착신앙으로 발달해온 신도. 모든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기에 무수한 신들을 숭배한다. 때문에 신들을 모아 제사 지 내는 곳인 신사는 일본 어딜 가나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신사 들이 심각한 운영난을 겪고 있다. 일본 현지매체에 따르면 야스쿠니 신사를 비롯한 소수의 유명 신사들을 제 외한 대다수는 유지조차 어려울 정도의 극심한 재정난을 겪고 있으며, 지방 일수록 더욱 심각하다고 한다. 하루 수입이 복전함에 들어오는 10엔짜리 동 전 몇 개에 불과한 곳도 있다. 최근에는 신사일에 종사하려는 사람을 구하기 어려워 한 명이 100여 개의 신사를 관리하는 경우도 있다고 알려졌다. 이처
Shinto, an indigenous faith and natural religion, is part of Japanese
럼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다 보니 신사를 정리하고 부지를 임대하는 사례
culture and way of life. It is believed in Shinto that all things are
까지 생겼다. 이에 대해 후지모토 요리오 국학원대학 신도문화학부 교수는
indwelt by gods and thus making it worthy to celebrate and
“고령화와 저출산에 따른 인구감소로 씨족을 모시는 사람들도 줄어들어 경
worship such gods. Shinto rituals were often carried out in shrines
영난에 빠진 신사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신사 수가 대략 300여 개 줄
that once could be found all over the nation. Recently, however,
었고, 남아있는 상당수도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분석했다.
many of these Shinto shrines have met serious financial crisis and
이에 신사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곳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are struggling to make ends meet.
NHK에 따르면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 신사는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친
According to one local report, excluding a number of popular
족의 보시가 줄어 기도료 등을 합한 연간 수입이 50만 엔 남짓까지 감소했다
shrines such as Yasukuni shrine, the majority of Japan’s shrines
고 한다. 결국 주지는 3년 전 인터넷을 통한 크라우드 펀딩을 추진하기로 결
are under financial instability to the point of being closed down.
심했다. 이 곳은 부지 내 건물을 카페로 개조해 모임장소로 활용했고, 판매수
And the crisis has decidedly affected rural shrines even more.
익을 신사운영에 보태 목표금액 100만 엔을 모으는데 성공했다. 이 신사는
Many of these shrines depend on visitor’s offerings and blessing
라이브 음악회 등의 이벤트도 개최해 온라인에서 입소문을 탔고, 현재는 참
fees, but sometimes such donations don’t reach more than 10
배객의 70%가 외지인일 정도로 명소가 됐다. 이는 신사도 필사적으로 생존
yen. It has also become so difficult to find shrine workers that
책을 모색해야 살아남는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사례다.
there are cases of one person managing almost 100 shrines alone. Understandably, many shrines have closed down with workers renting out the holy ground. Yorio Fujimoto, a professor of Kokugakuin University specializing in Shinto Cultural Studies said, “Japan’s aging society and declining population has seen a younger population less attached to traditional clan-based rituals. Now many of these shrines are struggling to survive. In the past 10 years, 300 shrines have shut down and the remaining continue to struggle immensely.” Meanwhile, there have also been cases where people have taken emergency measures to keep up shrine facilities. In a report, the NHK revealed one shrine dating back to almost 1000 years to have seen a 500,000 yen yearly decline in funds that used to come from prayer and blessing fees. In the end, three years ago, the shrine resorted to crowdfunding measures to maintain the grounds. The crowdfunding project with a goal to meet 1,000,000 yen was reached and revenue was used in creating a café and a gathering center to bring in additional funds. This particular shrine is known to have hosted live concerts and other events to attract visitors. Now, over 70% of shrine visitors are seen to be outsiders instead of local worshippers. Indeed, this is just one case in which a place of Shinto worship has had to take extreme measures just to salvage what remains of their ancient and historically preserved reli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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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인도네시아는 발리 섬의 아궁 화산이 분화 조짐을 보이며 주민 들이 대피하고 공항이 폐쇄되는 소동을 겪었다. 그로부터 한 달도 채 되지 않 은 2018년 1월, 이번엔 아세안 이웃나라 필리핀 중부 알바이 주 마욘화산의 폭발 가능성이 커지며 인근 주민 1만 2천 명이 대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필리핀 지진화산연구소는 1월 14일 밤(현지시각) 필리핀 중부 마욘화산에 대 한 경보 수위를 2단계 불안 증가에서 3단계 위험한 폭발 경향 증가로 높였다. 지진화산연구소는 “마그마가 마욘화산 분화구에 있어 위험한 폭발이 수일이 나 수주일 안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밝히며 화산이 폭발하면 낙석이나 산사태 등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연구소는 위험지역을
In December 2017, Indonesia’s Agung mountain had raised
마욘화산 반경 6㎞에서 남쪽 7㎞ 지역으로 확대하며 반경 안에 들어가지 말
alarm of potential eruption bringing local authorities to evacuate
것을 권고했다. AFP 통신은 이번 사태로 화산 인근의 주민 1만 2천여 명이 대
residents and to close nearby airports. Now, January 2018, only
피했다고 보도했다.
a month later, the Philippines’ Mayon volcano in central Albay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비행기로 약 1시간 거리에 위치한 마욘화산은 해
province also shows signs of erupting very soon. Authorities
발 2천472m의 활화산으로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명소다. 그러나 이 산 역시
have now evacuated around 102,000 civilians in the affected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분화 위협으로 고초를 겪어 왔다. 2013년엔 마욘화산
area.
이 화산재와 증기를 분출하며 폭발, 외국인 관광객을 비롯한 등산객 5명이
The Philippine Institute of Volcanology and Seismology on the
숨졌고 10명이 다쳤다. 또한 1814년엔 최악의 마욘화산 폭발 사태로 1200명
evening of January 14 (local time), reported that the government
이상이 사망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had raised the national alert level from a 2 to level 3 “critical”. The agency said, “Alert level 3 remains in effect over Mayon volcano, which means that it is currently in a relatively high level of unrest as magma is at the crater and hazardous eruption is possible within weeks or even days,” revealing potential risk of rockfall and landslides. The institute further increased the danger zone from a 6-km radius to a 7-km radius, warning all visitors to avoid this region. According to AP news sources, to date, 9,000 residents near the danger zone have been evacuated, and AFP sources revealed that a total of 12,000 people were given evacuation orders. Mayon volcano, situated just an hour’s–drive away from Manila, is known to be a popular tourist site with an elevation of 2473 meters. But its history of potential eruption has caused unrest amongst locals. In 2013, ash and steam that erupted from the Mayon crater resulted in 5 deaths and 10 injured foreign visitors. Previously, in 1814, more than 1200 persons were killed in what
AP
was Mayon’s deadliest eruption to 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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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부패로 얼룩진 잉락 친나왓 전 총리를 쿠데타로 물리치고 집권한 태국 군부. 그러나 2014년 쿠데타 직후 개혁과 부패 척결을 부르짖으며 집권한 현 군부정권의 2인자인 쁘라윗 왕수완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이 ‘명품시계 스 캔들’로 궁지에 몰렸다. 2017년 12월 4일, 쁘라윗 부총리는 내각 각료들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기 위 해 기다리던 중 햇빛을 가리려다가 팔목에 차고 있던 고가의 명품시계와 굵 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를 드러내고 말았다. 이 장신구들은 공직자 재산 신고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재산신고 목록에 들어 있지 않은 고가 장신구들의 실체가 드러나자 야당과 시민단체는 즉각적인 공세에 나섰
Thailand’s current governing body, after having taken power
고, 국가반부패위원회(NACC)에 조사를 촉구하는 청원서도 제출했다. 하지
through a coup to overthrow the defamed ex-Prime Minister
만 시민단체의 청원까지 나왔음에도 당사자인 쁘라윗 부총리는 침묵으로 일
Yingluck Shinawatra (in power 2011 August – 2014 May), is now
관했다. 그럼에도 시민과 네티즌들의 공세는 멈추지 않았고, 이들은 쁘라윗
riddled with a scandal surrounding Deputy Prime Minister Prawit
부총리의 과거 사진을 일일이 확인해 그가 신고하지 않은 채 차고 있던 명품
Wongsuwan for possessing undeclared luxury watches.
시계를 24개나 찾아냈다. 이에 더해 네티즌들은 ‘CSI LA’라는 페이스북 계정
December 4th, 2012, Wongsuwan was seen to have been
을 통해 24개의 모델명과 가격 정보까지 명시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 따르
blocking the sun whilst preparing for a photo with the Cabinet.
면 쁘라윗 부총리는 파텍 필립, 리차드 밀, 롤렉스, 랑에 운트 죄네 등 수천만
The problem was the huge diamond ring on his finger and what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고가 브랜드의 시계들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appeared to be a luxurious Richard Mille watch on his wrist.
결국 그동안 입을 다물었던 쁘라윗 부총리는 1월 17일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Such luxury items were not included in Wongsuwan’s asset
“시계 중 일부는 친구들에게 빌린 것이다. 모두 돌려줬다”고 답했다. 그러나
declaration back in 2014, during which time he began serving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어떤 시계를 빌렸고 누구에게 다시 돌려줬는지는 구체
as member of Cabinet. Opposition party members and other
적으로 밝히진 않았다. 대신 그는 “반부패위원회 조사 후 내가 유죄로 밝혀
civil groups immediately began probes, even requesting the
진다면 그때는 물러날 것”이라는 비장한 약속을 남겼다.
National Anti-Corruption Commission (NACC) to begin special investigations. Amid the unrest, the Deputy Prime Minister refused to make any public statement, inciting protest amongst citizens and the outpour of netizens’ angry comments. A few among those active online brought up previous photos of Wongsuwan carrying accessories that also had not been declared. These amounted to 24 undeclared high-end watches. Netizens then went on to creating a Facebook account—CSI LA—sharing through the platform official prices of Wongsuwan’s watches that ranged from Patek Philippe, Richard Mille, Rolex, to A. Lange & Söhne brands. Wongsuwan, who had thus far kept his silence, said at a press conference on January 17 that he had borrowed several of the watches from friends and had since then, returned all of them.” Refraining from explaining which friends had lent him the watches, Wongsuwan instead said that he would comply to corruption investigations, declaring that if found guilty, he would promptly step down.
19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곳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젊은 왕세자 모하마드 빈살만이 실권을 잡으면서 사우디아라비아는 대대적인 개혁에 나섰다. 지난해 말 여성에 운전을 허용하는가 하면 가장 최 근인 2018년 1월 여성이 축구 경기장에 최초로 입장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1월 12일 사우디아라비아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오후 8시 홍해변 도시 제 다의 킹압둘라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알힐랄과 알바틴의 프로축구 경기에 여성들이 입장했다. 그동안 보수적인 이슬람 율법을 따른 사우디아 라비아에선 축구경기장을 비롯한 야외 스포츠 경기에 여성 관중이 입장할
Saudi Arabia has for a long time been seen as one of the most
수 없었다. 라므야 칼레드 나세르(32)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 사건
conservative Muslim nations. But in a recent turn of events, led
은 우리의 미래가 번영할 것이란 사실을 증명한다. 거대한 변화를 목도할 수
by Crown Prince Mohammed bin Salman, women have been
있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제다 시의 여성 루와이다 알리 카셈도 “사우디아
permitted to carry a driver’s license, and now, as of January
라비아의 근본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날”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여
2018, women have for the first time, entered a football stadium
성이 외출할 때 남성 보호자(가족 중 남성)와 동행해야 하는 ‘마흐람’ 제도는
to enjoy a match.
지금도 남아 있어 여성팬이 홀로 축구장에 오진 못 했다. 여성은 남성 관중석
According to local reports on January 12, women entered the
과는 철제 장애물로 분리된 가족 구역에서 축구 경기를 관람했지만, 이만큼
King Abdullah Sports City stadium for Al Ahli’s match against
의 변화를 일구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Al-Batin in the Saudi Pro League. Before, women were not
사우디아라비아 국영매체 아랍뉴스도 이날 “오늘 경기의 진정한 승자는 관
permitted to watch such games according to strict Islamic
중석의 여성들이다. 이들은 당당히 입장했고, 열정적으로 팀을 응원하면서
doctrine. In an interview with Agence France-Press (AFP), Lamya
즐거움을 만끽했다. 오늘은 그들을 위한 밤이었다”고 보도하며 바뀐 분위기
Khaled Nasser, a 32-year-old from Jeddah, said, “This event
를 전했다.
proves that we are heading for a prosperous future. I am very
여성 최초의 축구장 입장은 온건 이슬람국가를 추구하는 모하마드 빈살만
proud to be a witness of this massive change.” Another female
왕세자의 개혁조치에 따른 것으로, 사우디아라비아는 스포츠뿐 아니라 문
Jeddah resident, Ruwayda Ali Qassem, said, “[It was] an historic
화, 경제, 사회 등 여러 분야에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day in the kingdom which culminates [in] ongoing fundamental changes”. However, it was still a day that marked more changes that should follow: women still could only enter stadiums with a male guardian under Mahram law. And though women were also made to enter through their own designated pathways, the event was a sure sign of well-earnt progress. State media Arab News reported on this day, “The real winners of today’s match are the women. They were the ones to boldly enter the stadium and passionately support the teams. Today, of all days, was their night.” In light of the changed mood and several other changes that remain to be made, Crown Prince bin Salman has become the catalyst for real and all-encompassing change for the nation as a whole.
20
2018년 첫 달부터 이란이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2017년 말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와 기득권, 종교지도자에 항의하며 촉발된 반정부 시위에 맞서 이슬람 체제를 수호하려는 시위대가 결집하며 판이 커져버렸다. 1월 14일 AFP통신은 2018년 1월 초 이란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로 최소 25 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란 사법 당국은 “최근 사태로 민간인과 경비 병 력 등 25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이란 당국은 이번 시위에 전국적으로 약 4 만2천명이 참가했다고 집계했다. 시위는 실업, 물가 폭등과 같은 정부의 경 제 정책 실패를 규탄하며 시작됐다. 그러나 시위가 테헤란, 이스파한, 케르만 샤, 아흐바즈, 하메단 등 전국으로 번지면서 단순 반정부 시위로 보기 어려울
Right at the outset of 2018, unrest is simmering in Iran as
정도로 복잡해졌다. 시위대는 민생고뿐 아니라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
protestors continue to gather against the ruling establishment’s
고지도자와 부와 권력을 독점한 기득권층에 대한 불만도 터뜨렸다. 또한 이
failed economic policies. At the same time, groups aimed at
란 군부의 시리아, 레바논 내전 개입도 비판했다. 사태가 확대되자 이에 맞서
retaining the status quo have also led anti-demonstrations
는 시위대도 등장했다. 1월 7일 오전 가즈빈, 라슈트, 야즈드 등 이란 전역에
creating even more instability.
서 이슬람 공화국 체제와 최고지도자를 지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린 것이
A January 14 AFP-report revealed that as of January 2018, at
다. 이 시위의 참가자들은 최고지도자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는 한편 미국과
least 25 casualties have resulted from related movements in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의 간섭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쳤다.
protest of ruling authorities. Iran’s judiciary claimed that “25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이란 정부도 진화에 나섰다. 이란 정부는 이번 시위가
people, including civilians and police members, have died
실업과 물가 폭등 등 민생고에서 촉발됐다고 보고 이를 달래는 데 초점을 맞
in recent skirmishes.” Official data further show that around
췄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도 실업과 물가 상승, 경제 침
42,000 people gathered for the most recent demonstration.
체를 해결하는 게 정부의 최대 임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하마네
The movement first came condemning failed administrative
이 최고지도자는 “미국과 시온주의자(이스라엘)가 수개월 간 폭동을 준비했
actions that has seen high unemployment, soaring prices,
다. 공작금은 페르시아만의 저급한 부자 국가들(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지
among other crises. But as the movement spread nationwide
역 수니파 산유국)이 지원했다”고 주장하며 오랜 숙적들을 사태의 배후로 지
to regions such as Tehran, Isfahan, Hermansha, Ahvas, and
목하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Hammedan, the fight became muddled in a mixture of issues, still all directed at the current establishment headed by Supreme Leader Ayatollah Khamenei. Civilians, angered over the highranking officials’ monopoly of state wealth and ruling authority, have also protested against Iran’s military involvement with Syria and Lebanon. Anti-protest movements that have arisen as a response have appeared since January 7 in Qazvin, Rasht, and Yazd, where supporters of the current regime loudly denounced their opponents. In turn, they have criticized outside influences in line with the U.S. such as Israel and Saudi Arabia. Unable to turn a blind eye to the unfolding events, Iran’s government had decided to respond to the main points of angst
AP
amongst protestors. Amid their claims to bring around Iran’s economy to increase employment rates and raise market prices, Supreme Leader Khamenei also emphasized the government’s will to jump-start financial holdings to solve ongoing problems. However, in regards to the seething protests, the Supreme Leader has also accused enemies of Iran (such as the U.S. and Zionist Israel) of meddling in Iran’s domestic affairs. He continued that their behavior was supported by the funds of rich Persian Gulf countries (referring to Saudi Arabia and Sunnioil Gulf nations). Such was Khamenei’s implicit declaration that he would keep an eye on old enemies cavorting with Western influences.
21
24 ― 31 ASEAN 32 ― 43 Southern Asia 44 ― 47 Middle East
2018
02
Press Watch – Singapore:
Ivan Lim is Honorary President of the Asia Journalist Association(AJA). He was labour correspondent for The Straits Times in Singapore, President of Confederation of ASEAN Journalists(CAJ), Secretary General of the Singapore National Union of Journalists, and Chairman of Environmental Forum for Communicators of Singapore(ECOS).
24
Singapore’s leader Lee Kuan Yew, who
Yeo noted that for starters, Lee had a very
dominated the political scene from 1959,
low opinion of journalism as a profession.
when he first came to power, till his death
This came through, he noted, in the Prime
on March 23rd, 2015, corralled the press
Minister’s observation, as guest of honour
as an instrument to help realise his own
at the Singapore Press Club annual dinner
nation-building agenda.
in 1972, that journalists often did not
Retired newsman Yeo Toon Joo, who
bind to rules of conduct. He also stated
spent 12 years (1963-1975) in an English
that, unlike doctors, surgeons, lawyers
major daily, The Straits Times, and a
or engineers, reporters in the country did
defunct tabloid, New Nation, has given
not have to pass stringent professional
insider’s account of how Prime Minster
examinations.
Lee Kuan Yew (from now on: LKY) went
Most tellingly, Yeo mentioned LKY’s
about taming the domestic press in his
aggressive manner in the 1960s when
self-published book, Confessions of Lee Kuan
after making a speech, LKY warned
Yew’s Simplistic Pressman.
reporter Cheong Yip Seng: “If you print
His central thesis is this: “I was convinced
this, I will break your neck.
at an early stage that he felt pressmen
In the 1970s, the Straits Times Chief
were to be used primarily for his political
Editor T.S. Khoo was summoned to see
objectives, and not for a free play of
Lee Kuan Yew in his City Hall office to
ideas and views, or the building up of a
answer for perceived poor judgment in
population of thinking and questioning
news report and features as well as use
Singaporeans.”
of photographs. Khoo told his editors (as
on” the government and face Lee’s
of all mass media organisations in
any real dialogue between him and LKY
blowback. Yeo reckoned that Lee justified
Singapore. In 1984, the government
but more of just angering the leader.
his press control on the basis of his being
passed the landmark Newspaper and
“Boy, I had such a walloping from Chief
the elected leader, through the people’s
Printing Presses Act making it compulsory
Thunder Cloud,” Khoo was quoted to
mandate, given authority to govern
for newspapers to be publicly listed. “He
have said.
Singapore.
was designer, director and undertaker.”
A Straits Times photograph in its
But Yeo disputed this, asserting that
Yeo concluded.
afternoon daily New Nation offended
the press not being elected does
“In 1984, Lee Kuan Yew delivered
LKY for showing a happy family with
not disqualify it from reporting and
his coup de grace in taking over the
three children. He (LKY) regarded it as an
commenting on news events and
venerable Straits Times Press Ltd.; one of
attempt to sabotage the government’s
developments in the country—and on the
the world’s most profitable newspapers.
Stop at the Two Population planning
actions of the nation’s political leaders.
With one stroke of the pen—or was it
campaign. Lee also took umbrage at Yeo
Lee’s antagonistic relations with the press
just a word—he cornered all the major
for running a series on the homosexuals
came to a head in the Singapore Herald
newspaper publishing companies in
in Singapore in the New Nation tabloid.
episode. The newspaper got into trouble
Singapore into one umbrella organisation,
In hindsight, Lee’s perception of the
when it carried letters with readers’
Singapore Press Holdings Ltd.
right role of the media was spelled out
complaints over national service in which
Under the Act, management shares in
in his address to the International Press
citizens serve two to two-and-a-half years
newspapers were allocated to banks
Institute general assembly in Helsinki on 9
in the armed forces. It was a topic of
and other establishment figures, thereby
June 1971: “Freedom of the news media
taboo as conscription was seen as vital to
giving the government effective control of
must be subordinated to the overriding
Singapore’s defence and survival.
mass media.
needs of the integrity of Singapore, and
Yeo also mentioned Lee Kuan Yew’s
In lamenting the loss of an independent
to the primacy of purpose of an elected
crackdown on Chinese newspaper
press in Singapore, Yeo said: “It was
government.”
Nanyang Siang Pau for its report on the
sad but inevitable. Sadder still is then
Yeo added, “In the half century LKY held
decline of Chinese-medium schools,
Singapore Government’s loss of a
sway over Singapore society and its
accusing it of stoking up chauvinism and
credible platform to communicate with
politics, the press was to play to the tune
of playing up communist achievements.
the population of Singapore, weakened
of the Prime Minister.”
The family-owned paper was seen to be
further by the advent of social media.”
Over time, Yeo realised that LKY had
painting the government as oppressors of
become convinced that it was easier to
Chinese language and education.
control than to influence the mass media.
Summing up his account, Yeo said LKY
Any newspaper which dared to defy the
carried out a major restructuring the
official line would be accused of “taking
media industry to secure total control
Xinhua
said by Yeo) that “there had never been
25
총리직에 올랐던 1959년부터 세상을 떠난 2015년 3월 23일까지 싱가포르 정계를 지배했던 리콴유. 그 는 자신이 꿈꿔왔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언론을 이용했다. 은퇴 언론인 여툰주는 1963년부터 1975년까지 12년간 ‘잉글리시 메이저 데일리’ ‘스트레이트 타임즈’와 지금은 폐간된 타블로이드지 ‘뉴 네이션’ 등에 몸담았다. 그는 저서 ‘Confessions of Lee Kuan Yew’s Simplistic Pressman’을 통해 ‘리콴유가 어떻게 언론을 길들여왔는지’에 대해 고발했다. 여툰주는 저서에서 “리콴유는 집권 초기, 언론을 활용해 그의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리콴유는 기자들을 그의 정치적인 수단으로 동원했지만 언론을 존중하진 않았 다. 그는 언론인이란 직업을 업신여겼다. 여툰주는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사례도 제시했다. 1972년 싱 가포르 언론인 클럽의 연례 만찬에 초청받은 리콴유는 이 자리에서 기자들은 종종 행동규칙을 지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의사, 변호사 등 다른 전문직과 달리 기자는 엄격한 직능시험도 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보다 훨씬 이전인 1960년대부터 리콴유는 언론에 대해 호전적인 태도를 보였다. 싱가포르 의 최고 권력자는 청 입 셍 기자에게 “이 기사를 보도하면 네 목을 부러뜨리겠다”고 협박한 적도 있다. 1970년대 스트레이트 타임즈의 편집장을 지냈던 T.S 쿠는 리콴유의 집무실로 소환돼 스트레이트 타임 즈가 보도했던 기사와 사진을 어떤 판단에 근거해 실었는지 해명해야 했던 적이 있다. 여툰주는 쿠를 인용해 이 자리가 대화라기보단 리콴유가 언론을 질책하는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이봐. 난 국가 최고 권력자의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만 했다고.” 사건의 발단이 된 보도는 무엇이었을까? 스트레이트 타임 즈는 총리가 세 명의 자녀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장면을 보도했다. “리콴유는 이 보도가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었던 ‘두 자녀 정책’에 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총리는 또한 여 툰 주가 당시 뉴 네이션 타블로이드 지에서 싱가포르의 동성애자들을 시리즈로 다뤘던 것에 대해서도 불쾌해 했다.” 그렇다면 리콴유가 생각하는 싱가포르 언론의 역할은 무엇일까? 리콴유는 1971년 6월 9일 핀란드 헬싱 키에서 열린 국제언론인협회 총회에 참석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싱가포르 국가통합이 최우선 과제다. 언론의 자유는 그 후순위다.” 여툰주는 이에 대해 “총리는 반세기 동안 싱가포르 정치사회를 주물렀다. 언론은 그의 입맛을 따라야만 했다”고 덧붙였다. 여툰주에 따르면 리콴유는 언론에 영향을 미치는 것보다 통제하는 것이 더 쉽다고 판단했다. 공권력에 반하는 보도를 한 신문은 정부를 뒤흔들었다는 비난과 총리의 보복에 직면해야 했다. 여는 “리콴유는 싱가포르를 통치할 권력을 국민들로부터 위임 받은 선출된 지도자였다는 사실에 근거해 언론 통제를 정당화했다”고 밝혔다. 이와 반대로 싱가포르의 언론은 국가 중대사와 지도자에 대해 보도할 권리를 누리지 못했다. 리콴유의 언론에 대한 적개심은 ‘싱가포르 헤럴드’ 사태로 이어졌다. 이 신문은 싱가포르 국민들이 2년 에서 2년 반 동안 국방의 의무를 져야 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지니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방의 의무는 국가의 생존과 결부돼 있는 민감한 소재였지만, 이를 다뤘단 이유로 ‘싱가포르 헤럴드’는 총리의 눈밖 에 나고 말았다. 여는 또한 싱가포르 정부가 중국계를 억누르고 있다고 보도한 중국어 신문 ‘난양 시앙 파우’이 탄압받은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여는 리콴유가 싱가포르에서 발행되는 모든 언론의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 했다고 지적했다. 1984년 리콴유는 출판언론 법안을 제정하며 정부의 허가를 받은 신문만 발행될 수 있음을 법으로 명시했다. “그는 언론의 설계자이자 감독자였으며, 장의사의 역할까지 수행했다.” 여가 내린 결론이다. “1984년, 세계적으로 명성이 드높았지만 오히려 싱가포르에선 비틀거렸던 스트레이트 타임즈에 리콴 유가 결정적인 한 방을 날렸다. 그는 단 한 줄로 싱가포르에서 발행되고 있는 모든 신문들을 ‘싱가포르 프레스 홀딩스’ 산하로 만들었다. 언론의 독립성 상실, 비통하지만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보다 더 슬픈 것은 싱가포르 언론이 국민과 소통하는 ‘신뢰할만한 창구’의 자리를 소셜미디어에 내줬다는 사실이다.”
아이반 림 아시아기자협회 명예회장
26
은퇴한 언론인 여툰주. 그는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싱 가포르의 지도자였던 리콴유 전 총리가 어떻게 언론 을 길들여왔고, 또 어떻게 언론인을 대했는지에 대해 낱낱이 파헤친다.
27
Will Dr. Mahathir Succeed in the 14th General Election?
Norila Daud is Former President of Confederation of ASEAN Journalist (CAJ), Senior Vice President of AJA, and Editor of malaysiaworldnews. com
28
For the first time in Malaysia’s history
Prime Minister of Malaysia once again
since its independence in 1957, the
this year, he will be the oldest leader of
United Malays National Organisation
this era. Mahathir was the fourth PM of
(UMNO), being the dominant party in the
Malaysia, leading the country for 22 years
Barisan Nasional (BN) government today,
from 1981 till 2003. He spent around 72
will be challenged by its former president
years in politics since he first joined the
who is also the former Prime Minister
newly formed UMNO party in 1946.
(PM) of Malaysia, Mahathir Mohamad, in
Following Mahathir being the candidate
the 14th General Election (GE) that will be
for the next Prime Minister of Malaysia,
held any time before August this year.
some independent political analysts feel
Mahathir is leading a newly formed
that the opposition party does not follow
opposition party, the Malaysian United
conventional democratic practices.
Indigenous Party (PPBM) as its chairman.
Such analysts said the party should be
Recently, the opposition party, Pakatan
more open as to give way to a younger
Harapan leaders chose Mahathir as the
leader to lead the nation and not “closing
candidate for the Prime Minister’s post if
its doors” and clinging to the older
the pact wins the upcoming GE.
candidate (referring to Mahathir) to be the
Mahathir joined the opposition party in
Prime Minister.
late 2015 with the aim to overthrow the
An academic from a local university
current Prime Minister, Najib Razak and
emphasized that if Mahathir comes back
BN government.
into power, it will not be beneficial for
In the case where Mahathir becomes the
the country. However, he said foreign
receives a pardon from the Malaysian
his political career and was jailed a year
politically stable country with a long
King.
later after failing to overturn the verdict, as
reigning Prime Minister to enable them
Meanwhile, independent survey results
revealed by an international news agency.
to see their investment results for longer
have shown that the opposition would
Meanwhile, a strong opposition against
term.
have difficulty beating Najib due to the
Najib in the past few years over an alleged
Nevertheless, the decision of Mahathir
divisions within itself and unfavourable
corruption scandal involving state fund
being the candidate for the post of Prime
electoral boundary changes. Analysts
1Malaysia Development Berhad (1MDB)
Minister if the pact wins in the GE has
also said that if Mahathir manages to oust
has brought Anwar and Mahathir together
aroused some critics amongst opposition
Najib, it could pave the way for Anwar to
again.
party members. One critic said, “We just
return and take over as Prime Minister
cannot accept Mahathir after what he
of Malaysia. “If the opposition wins, the
has done to some opposition leaders like
process to obtain a royal pardon for
detaining them under the Internal Security
Anwar should start immediately so that
Act (ISA) during his premiership of 22
he is eligible to become a prime minister,”
years.’’
said a PKR leader at the alliance’s
At another angle, many observers said
recently held convention.
that Mahathir is not the only opposition
Anwar was once a protégé of Mahathir
candidate for the PM post. Leader of
but they had a falling out in the late
Parti Keadilan Rakyat (PKR), Anwar
1990s. Anwar was jailed on charges of
Ibrahim, who is now serving a 5-year
sodomy and graft after being sacked as
imprisonment for allegations of sodomy,
the deputy prime minister, but denied all
is also on the ballot. Recently, the Prisons
charges and dismissed them as politically
Department Director General, Zulkifli
motivated.
Omar, announced that Anwar will be
Anwar then led an opposition alliance
released from jail on June 8, 2018.
to win the 2013 general election. Najib’s
Anwar began serving his sentence in
coalition lost the popular votes in that
February 2015, but prisoners usually
election but won a majority of seats in
get a one-third reduction of their original
Parliament.
sentence under Malaysian law. Still,
Fast-forward, and Anwar was again
Anwar cannot legally run for political office
convicted in 2014 for sodomy. He claimed
for five years upon his release unless he
that the sentence was an attempt to end
AP
investors would far prefer a more
29
말레이시아 4대 총리로 오랜 세월 권좌를 차지했던 마하티르 모하마드. 올해로 92세를 맞은 그가 인생 에 있어 마지막이 될 대권 도전에 나섰다. 2016년 8월 창당된 말레이시아원주민연합당 의장으로 당을 이끌던 마하티르 모하마드가 지난 1월 7일 야당연합인 희망연대의 당원대회에서 총리 후보로 확정됐다. 앞서 마하티르는 2015년 말 현 총리인 나 지브 라자크와 여당인 국민전선으로부터 정권을 앗아오기 위해 야권에 합류했다. 마하티르가 다시 한 번 말레이시아 총리직을 맡는다면 그는 이 시대 현역 지도자 중 최연장자로 기록될 것이다. 22년 동안 말레이시아 4대 총리(1981~2003)를 역임한 그는 1946년부터 약 72년간 정계에 몸담아 왔다. 마하티르가 말레이시아 야권의 총리후보로 떠올랐지만,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그리 바 람직하진 않다고 말한다. 이들은 마하티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늙은 후보를 총리로 밀어주기 보단 젊은 지도자들에게 길을 터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하티르는 22년의 임기 동안 야당 당수들을 국가 보안법 하에 구금했었다. 우리는 마하티르를 받아들일 수 없다”라는 말도 나온다. 말레이시아 한 대학 의 교수는 마하티르가 다시 집권해도 국가에 도움되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외국인 투자자들 은 총리가 안정적으로 집권하는 국가를 선호한다. 투자자들이 장기간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기 때문 이다. 그는 너무 노쇠하다”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야권이 나지브 현 총리를 이겨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한 조사결과도 나왔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하나 있다.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전 부총리다. 마하티르가 나지브 를 몰아낸다면 동성애 혐의로 5년형을 선고 받아 복역 중인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에 총리직을 물 려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근 말레이시아 법무 담당 고위 관계자는 2018년 6월 안와르를 석방 할 것이라 발표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현행법에 따르면 안와르는 출소하더라도 5년간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 마하티르는 왕실의 특별사면을 동원해서라도 안와르를 그의 후계자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안와르는 한 때 마하티르의 정치적 후계자였으나, 둘은 1990년대 말 사이가 틀어졌다. 아시아를 휩쓴 금융위기가 1997년 발발하며 그에 대한 해법을 놓고 대립했기 때문이다. 마하티르를 대신할 인물로까 지 부상했던 그는 1998년 동성해 혐의로 구속되며 부총리직을 박탈당했다. 안와르는 2004년 혐의에 대 해 무죄를 선고 받고 석방됐으나, 2008년 또다시 동성애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그는 2012년에서야 혐 의를 벗고 2013년 열린 총선에서 야당연대를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2015년 2월 동성애 사범으로 몰 려 또다시 복역하며 정치인생의 위기를 맞았다. ‘내 원수의 적은 아군’이란 말이 있듯이 마하티르와 안와르가 다시 뭉치게 된 단초를 제공한 이는 나지 브 총리였다. 최근 몇 년간 불거진 현 총리의 비리 스캔들은 둘의 사이를 다시금 가깝게 만들었다. 이들 의 연대가 말레이시아 정국의 커다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노릴라 다우드 전 아세안기자연맹(CAJ) 회장
30
AP
지지자들에 손을 흔들며 화답하고 있는 마하티르 모 하마드 말레이시아 전 총리. 최근 야권의 총리 후보 로 확정된 그는 인생에 있어 마지막이 될 지 모르는 도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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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kistan – Where People Consume Poisonous Water
Nasir Aijaz is a 40-year experienced Pakistani journalist. He has worked as editor, reporter, magazine editor, news editor and anchor in different newspapers, news agencies and radio news services. Until recently, he served as Bureau Chief and Editor at Pakistan Press International(PPI) news agency and Head of PPI radio news service. He currently serves as the Chief Editor at the Indus Chronicle, a monthly magazine based in Karachi, Pakistan.
It was a frosty and misty Sunday morning
six handpumps at the bank of the canal
of December 2017 when I noticed several
where the subsoil water has been found
people of varying ages riding bikes and
comparatively safe for drinking,” he
three-wheeler Chinese rickshaws, locally
replied.
called “Chingchi”, loaded with empty
It was my hometown: Bhiria City in
plastic cans. They all headed to a British-
Naushehro Feroze, a district in the central
era canal flowing north to south in the
part of Sindh province of Pakistan. I had
east of town.
visited my hometown after a long time
“They’re going to the canal to fetch
and hadn’t known the change in situation
water,” my nephew says before I even
the townspeople faced.
ask, as he himself kick-starts his bike
Curious, I followed them to the canal
holding a plastic can. “All the residents
bank where people were hand-pumping
of the town have either handpumps or
water into their cans.
electric pumping machines installed
“We have come early in the morning, as
in their homes, but they have stopped
people come here in throngs to fetch
using the water for drinking. According to laboratory tests, the subsoil water running through town has turned arsenic,” he said. “So, they consume untreated and contaminated canal water?” I asked. “No uncle. Philanthropists have instal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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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er during the day,” a teenager said
underground systems.
whilst manually operating the pump.
“In most of the cities and towns, sewage
“You can find handpumps everywhere in
water is discharged into the same
all the towns of Naushehro Feroze and
canals from which water is supplied
other districts of this province because
to the citizens,”—he referred to the
apart from the water from these pumps,
issue recently taken up by the Supreme
the underground water has become
Court of Pakistan after a lawyer, Shajab
of Sindh province Syed Murad Ali Shah
poisonous,” another person explained.
Osto, filed a petition against the Sindh
to respond to the grave situation. And
It was a painful sight for me. I remembered
government for its inability to ensure safe
as revealed by that report, the provincial
my childhood days where there used
drinking water.
Public Health Engineering Department
to be small wells in each house and big
Myself being a journalist, I was well aware
provides drinking water to 17 million
wells situated around the neighborhood.
of the failed water supply and sanitation
of the rural population (53%) while its
The water had always been pure and of
system in my country. I can still recall
drainage plans cover only 13 million
high quality; cold in summer, and warm in
a report filed by a non-government
people—constituting 40 percent of the
the winter. Over time, wells were replaced
organization around two and half decades
rural population.
with handpumps and electric motor
back; it had said all the underground
Of course, the big cities have their own
pumps. And for some reason, the water
water in Sindh had turned arsenic. The
water supply and sewage systems, but
had also become smelly with increased
NGO had called for urgent measures
urban populations, too, face similar
salinity levels.
to be taken in control of the alarming
problems with their pipes that often carry
I contacted Mr. Majid Soomro, a civil
situation.
clean water from their own pipes with the
engineer and resident of Bhiria town,
Even after that, after all those years,
contaminated water of other obsolete
who said, “You will be surprised to know
official documents today paint a very rosy
pipes.
that the town of twenty thousand people
picture of water supply and the area’s
This same report has identified 755 points
has no working water-supply system
sewage system. According to government
where the sewage water of the cities and
even in the 21st century,” adding, “The
data Pakistan gave to the UN, more than
towns is discharged into canals and such
government had built a water supply
90 percent of the 200 million population
highly contaminated water is given out as
system with an overhead tank; they laid
have access to drinkable water and over
drinking water.
pipelines some thirty years ago, but it
72 percent are provided with effective
The hearing of the petition in the apex
never functioned.” The whole system had
sewage and sanitation facilities—contrary
court continues for which the Chief
become dilapidated.
to the fact that more than 50 percent of
Minister of Sindh has prepared a 12-page
To shed light on the grave situation
the population is devoid of safe water and
report. The petition made by Lawyer Osto
and find the reason behind the
sewage facilities.
has jolted the entire government since
arsenic-contaminated water, I further
The fact was admitted recently in a
he had also played videos that clearly
contacted Ghulam Rasool Keerio, a
report prepared by Sindh government to
revealed discharge of sewage water into
retired Conservator of Forests and
submit to the Supreme Court that had
clean-water canals—playing them in front
Consultant on Environment, Forestry, and
summoned the Chief Minister of Sindh
of the Chief Minister. The Minister, on
Landscaping—also a resident of a nearby
province Syed Murad Ali Shah to respond
that day, conceded the fact that a similar
village. “You know, chemical fertilizer has
to the grave situation. According to
situation can be seen in other provinces.
been used on agricultural fields since
this report, the provincial Public Health
During one of the hearings, it was said
decades ago. This has adversely affected
Engineering Department provides drinking
that citizens have to pay too much of their
the subsoil water,” he said.
water to 16.567 million rural populations,
income to buy bottled water to save them
“Moreover, there is no proper sewage
which is 53 percent, while its drainage
from water from national pipes. Another
system in the rural areas. You can see
schemes cover 12.513 million people,
comment was made by a lawyer who
big ponds and lakes contaminated
which constitutes 40 percent of the rural
remarked that “the government is focused
with sewage water surrounding the
population.
more on setting up cellphone companies
towns—also affecting the water,” Keerio
The fact was acknowledged in a report
in Pakistan rather than on the provision of
continued, adding that the situation
made by Sindh government which was
safe drinking water for its citizens.”
was worsened due to lack of rain
submitted to the Supreme Court. Again,
that increased the salinity of water in
officials summoned the Chief Mini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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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의 춥고 안개 자욱한 어느 일요일 아침, 빈 플라스틱통을 실은 릭샤(인력거)를 이끌고 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길을 재촉하고 있다. “사람들이 물을 구하러 수로로 향하고 있다.” 곁에 있던 조카 가 필자에게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가정 내에서 수동펌프나 전기펌프를 돌려 물을 얻었지만, 최근 음 용을 중단했다. 마을의 지하수에 비소가 상당량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필자가 “제 대로 정화되지 않은 수로의 물도 위험한 것 아니냐”라고 묻자 조카는 “자선가들이 비교적 안전한 지하 수가 매장된 수로에 수동펌프 6대를 설치해줬다”고 답했다. 필자의 고향이기도 한 파키스탄 신드 주 중앙의 비리아 시 이야기다. 오랜 동안 이 곳을 방문하지 못했 기에, 고향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이제서야 알게 됐다. 호기심이 생겨 사람들이 물을 길으러 가는 수로 까지 따라가기로 작정했다. “인파가 하루 종일 몰려 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왔다.” 펌프를 손으로 돌리 고 있던 10대 청소년이 말했다. 순서를 기다리던 또다른 사람은 “이러한 현상은 인근 도시들도 마찬가 지다. 지하수가 오염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필자에겐 매우 고통스러운 광경이었다. 필자의 어린 시절 각 가정에는 작은 우물이 있었고, 마을의 주 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큰 우물도 있었다. 우물의 물은 늘 깨끗하고 맑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우 물은 수동펌프와 전기모터펌프로 교체됐다. 물도 염분이 함유된, 악취가 나는 물로 변해버렸다. 비리아의 토목기사인 마지드 수므로는 “2만 이상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정부가 30년 전에 상수도 시설을 구축했으나 제 기능을 한 적은 없다”고 말했 다. 필자는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고자 환경부처에서 은퇴한 공직자 구울람 라술 키리오와 연락을 취했 다. 그는 이에 대해 “지난 수십 년간 토양에 뿌려진 화학비료가 주 원인이다. 농촌 지역엔 제대로 된 하 수처리 시스템이 없다. 오염된 연못과 호수들이 마을 수질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 것이다. 비가 내리지 않아 지하수의 염도를 낮추지 못한 것도 한 몫 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사태를 예방하지 못한 신 드 주 정부의 무능함을 파키스탄 대법원에 고발한 변호사 오스토의 사례를 들면서 정부의 태만도 지 적했다. 기자로서 필자 역시 파키스탄의 상수도와 위생설비 시스템이 실패했음을 익히 알고 있었다. 약 25년 전 한 NGO 단체는 “신드 주 모든 지하수의 비소 함량이 높아지고 있다. 주 정부 차원의 비상대책이 필 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정부가 발행하는 공문서는 이 문제에 대해 낙관하고 있다. 파 키스탄 정부가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2억 인구의 90% 이상이 음용가능한 식수를 보유하고 있으며, 인구의 72% 이상이 하수처리 시스템의 혜택을 보고 있다고 한다. 실상은 이와 전혀 다르다. 파 키스탄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안전한 식수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신드 주지사가 대법원에 소환됐으며, 공청회까지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오스트 변호사는 제대로 된 하수처리 시스 템을 통해 깨끗한 식수가 공급되는 영상을 제출하며 정부의 무능을 꼬집었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파이프를 설치해 깨끗한 식수를 공급할 경우 국민이 납부해야 할 세 금도 크게 증가할 것이란 설이 퍼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한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국민들에게 안전한 식수를 제공하는 것보다 휴대전화 회사를 설립하는 것을 더욱 중요시 하고 있다.”
나시르 아이자즈 아시아엔 파키스탄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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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신드 주 비리아 시에서 파이프로 정화된 물을 긷고 있는 한 소녀. 필자는 어린 시절 동네 어딜 가도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었다. 그러나 깨끗한 물 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주민들은 오염되지 않 은 식수를 구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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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 INDIA’S POSTER BOY
Neelima Mathur has worked in the field of media as researcher, writer, executive producer and now trainer for nearly four decades. Her experience includes print, radio, television journalism and documentary film-making. She continues as Executive Producer, Researcher ; Writer at SPOTFILMS, Trustee &amp; Trainer at FOR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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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December 2017, a peculiar
“North Korea is showcasing a better
development made the headlines of
example of defending the world against
Indian national news. The face and name
‘imperialist forces’”.
of North Korea’s Supreme Leader, Kim
“North Korea’s resistance against the US
Jong-un, came up bold and strong on
is ‘impressive’”.
posters. Such posters belonged to the
These statements were concerning to
Communist Party of India-Marxist (CPI-M),
much of India and social media became
a party prominent in the southern Indian
active with comments. One pun based on
state of Kerala.
a 1995 Kerala film referred to the Chief
A certain issue was unfolding and the
Minister Vijayan and Kim as: “Aniyan
Kerala CPI-M unit had made statements
Bava, Chetan Bava” - Elder Brother,
about the news being “mistakes”. This
Younger Brother.
should have quietened down after that,
And the most popular meme that
but they did not. A few days later, Pinarayi
circulated SNS platforms was:
Vijayan, the Chief Minister of Kerala,
Kim: I have a nuclear button on my desk.
made a series of statements at a CPI-M
Trump: My button is bigger and more powerful.
district committee meeting in the town of
Kerala CM: I like Kim’s button.
Kozhikode. Among the things he said:
Online media has now settled down
“North Korea has been following a tough
and people have moved on, but the
anti-US agenda.”
incident does leave many questions
“North Korea has been more effective
left unanswered. The Communist Party
than China in countering the US.”
of India had split once before, forming
Xinhua
assessing this and preparing. This will not be something unanticipated.” Does any of this have anything to do with Kim posters surfacing in India’s Kerala State and the statements made by its Chief Minister Vijayan? There sure is enough food for thought in a report based on a Press Trust of India feed published in the Economic Times of India. It turned out this was actually a 1985 CIA report that was declassified in January 2017. The CIA report states that the Soviets pumped cash into India in the era of the erstwhile Prime Ministers, the CPI and CPI-M. Both parties have
Korea and the Iranian nuclear program
Indira Gandhi and her son, Rajiv Gandhi.
continued in their affiliations with China
together with us. Are you OK? It just looks
It clearly states that Russia funded the
and Russia over the years.
weird. It just doesn’t make much sense…
CPI and CPI-M (among others) “through
Regarding North Korea, there have been
We don’t recognize North Korea as a
a combination of kickback schemes,
some developments between Kim and his
nuclear state, we think that all the things
normal business transactions and direct
big brothers, China and Russia; even as
happening there are counterproductive.”
cash payments”.
the two Koreas have been talking to de-
“There was an agreement in 2005
Looking at what is alleged about Russia in
escalate tensions. Historically, China has
that they would suspend their nuclear
the last presidential election of the United
been North Korea’s diplomatic protector.
program and they made a number of
States, the “KGB” type of machinery is
Now, however, with the UN Security
commitments. Everybody was happy; we
alive and well. How, then, can we know or
Council’s new penalties, China has
all agreed and signed to the agreement.
learn of their machinations to serve their
tightened its restrictions on North Korea
A few months later, the U.S. decided
political interests in the India of today?
since January 6, 2018. China will no
to go beyond this agreement. [The US]
longer be sharing any military or weapons
froze their assets and bank accounts, all
programme with the North.
of a sudden saying North Korea should
Thus, right now, the United States
do something beyond the previous
and China seem to be taking a united
agreement,” Putin said, adding, “North
tough stand, particularly after recent
Korea then withdrew from this agreement,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tests
and relaunched its nuclear program.
by North Korea. In this context, it is
Why did you do that? Why did you sign
interesting to note what the Russian
this agreement if you thought it was not
President, Vladimir Putin and the head of
enough? You provoked North Korea to
his Security Council, previously said in
withdraw from this agreement, and [now
December 2017.
it is] even worse…”
Putin was responding to a query from
“You have to stop at a certain point, you
an Associated Press journalist, when he
have to stop this from spiralling. This is
said: “You’re interesting people, really.
extremely dangerous.”
Have you noticed your congressmen,
Putin’s last line leads into what Nikolai
your senators, they look so nice and
Patrushev, Chairman of Russia’s Security
handsome with ties and shirts, and they
Council stated. In early December, he
seem to be smart people...”
indicated that Russia has been making
He continued, “But they put [Russia] on
preparations in the event of a diplomatic
the same shelf as North Korea or Iran.
crisis escalating into full-fledged war.
And at the same time, they ask the U.S.
When Nikolai was directly asked about
President to address the issues of North
the likeliness of war he said, “We 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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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뜻밖의 사건이 인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의 이름과 얼굴이 실린 포스터가 등장한 것이다. 이 포스터는 인도 남부 케랄라 주의 인도 공산당이 배포한 것으로 전해 졌다.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인도 공산당 측은 이에 대해 ‘실수’라 인정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런데 며칠 후 케랄라 주지사 피나라이 비자얀은 인도 공산당의 타운홀 미팅에 참석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북한은 거친 반미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에 대응하는데 있어 북한이 중국보다 효과적이다” “북 한은 지구를 둘러싼 ‘제국주의’에 항거하는 적절한 예시다” 이는 인도 사회와 소셜미디어를 강타했다. 1995년 김정은과 피나라이 비자얀를 형제에 빗댄 영화까지 풍자됐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다음의 대화다. 김정은 “내 책상엔 핵미사일 버튼이 있다” 트럼프 “내 버 튼은 더 크고 강력하다” 케랄라 주지사 “나는 그래도 김정은의 버튼이 좋다” 온라인 상에서의 관심이 가라앉았고, 사람들도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 들이 남아있다. 인도 공산당은 과거에 둘로 나뉜 적이 있다. 그리고 두 정당은 중국, 러시아와 수년간 관 계를 이어갔다.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긴장을 완화시키려 남한과 대화하는 와중에도 중국, 러시아와 발 걸음을 맞췄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북한의 정치적인 보호자였기에 이는 당연해 보였다. 그러나 유엔의 강력한 제재안이 통과되면서 중국은 북한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듯하다.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 이후 중국은 북한에 강경한 자세를 취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7년 12월 러시아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대북노선이 흥미로워 보인다. “미국과 중국은 러시아가 북한이나 이란 핵 문제에 대해 그들과 같은 입장을 취하길 바란다. 그들은 또 한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 이란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강력히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길 원한다. 그런데 정말 이 방법이 통할까? 러시아는 북한을 둘러싼 모든 말과 방안들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고 생각한다. 2005년에도 북한 핵개발 중단 협상이 있었다. 당시 이해당사국 모두는 이에 동의했고, 서 명했다. 그런데 몇 달 뒤 미국의 돌발행동이 발생했다. 미국은 북한의 자산과 은행계좌를 동결하며 북 한이 이전 협상보다 더 진전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북한은 협상에서 빠져나가 핵개발 을 재개했다. 미국은 북한을 자극했고, 모두가 잘 알다시피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무언가 더 바라는 것 이 있다 한들 선을 넘어가선 안됐다. 이는 극도로 위험한 행위다.” 푸틴 대통령이 AP 기자와의 인터뷰 에서 밝힌 내용이다. 푸틴의 마지막 문장은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안보회의 서기의 진술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 2017 년 12월 초 니콜라이는 “러시아는 전쟁을 불러일으킬지 모를 정치적 위기에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는 늘 이에 대해 분석하고 준비해 왔기에 (최악의 상황이 닥치더라도) 우리가 예상치 못했 던 뜻밖의 일은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련의 기록들은 인도 공산당의 김정은 포스터와 북한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한 케랄라 주지사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1985년 CIA가 작성한 보고서(2017년 1월 기밀에서 제외)는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 을 담고 있다. CIA는 소비에트 연방이 초기 인도의 총리였던 인디라 간디와 그의 아들 라지브 간디에게 자금을 댄 정황을 포착했다. CIA에 따르면 러시아는 인도 공산당에도 불법 리베이트, 상거래, 현금 지 급 등을 통해 돈을 지원했다. 즉 인도와 러시아가 밀월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소리다. 오늘날 인도 정치 판에서 벌어진 특정 인물과 특정 정당의 북한(공산국가) 지지 발언은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닐리마 마터 아시아엔 인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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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inhua
인도 남부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공산당. 이들 은 최근 김정은 북한국방위원장의 얼굴이 실린 포스 터를 제작해 물의를 빚었다. 이는 우연에 불과한 사 고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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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ABIAN TALES
Pramod Mathur is an Indian journalist. He is CEO of SPOTFILMS and Chairman of Foundation For Responsible Media(FORMEDIA). Starting as a photo-journalist in late the 1960s, he moved on to be a television journalist and subsequently a documentary film-maker. He has been Cameraman-cumCorrespondent, Producer-Director at SPOTFILMS for over 2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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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tions in India have grown listening
and went into hiding after six wars. The
to the “The Arabian Tales” (“One
victory and independence of Scotland is
Thousand and One Nights”). The story
traced back to a spider that kept trying
of Aladdin, Sindbad, and of course, the
again and again to spin a web. The spider
story of Alibaba and the Forty Thieves; all
succeeded in spinning the web after
of them carried a universal appeal. Each
falling six times from the roof of the cave.
fable read aloud to young children before
This inspired Robert of Scotland, who
bedtime always had a moral to it.
finally won the seventh war, establishing
There is yet another story that elders
his own kingdom.
narrate to their children: “Robert the
In this 21st century, if there is one man
Bruce and the Spider”, which is a story of
who emulates King Robert Bruce, it is
perseverance.
Jack Ma. He was born as the second
Hundreds of years ago, there was a king
child in 1964 to musician story-teller
of Scotland and his name was Robert the
parents in Hangzhou, China.
Bruce. It was a good thing that he was
Working as a tourist guide in China in the
both brave and wise, because the times in
70s, he learnt to use the English language
which he lived were wild and dangerous.
though he had already failed twice in his
The King of England, who was at war with
primary school exams. Ma failed three
him, had led a great army into Scotland
times in his middle school exams before
to drive him out of the land and make
finally passing. Again, rejected three
Scotland part of England.
times in university entrance exams, and
Robert Bruce lay defeated in a cave
ten times by Harvard University, he finally
graduated from Hangzhou University with
“opens sesame” for small to medium-
biggest companies in the world. In reality,
an English degree. Ma was often told,
sized companies”.
there is not much in common between
“you are no good” when he applied for a
In December 1999, Jack Ma and 17
“Alibaba”, the second son of a merchant
job as a policeman, and he was rejected
other founders released their first online
of the Arabian fable of Baghdad, and
30 more times when he applied for other
marketplace, named “Alibaba Online”.
Jack Ma of China. But one thing that is
jobs.
In the short period of just seventeen
shared is the password Alibaba of the
But now, Jack Ma stands tall as the
years; on July 2017, Alibaba became
fable learnt from forty thieves to open the
e-commerce giant and he is the second
the first Asian company to break the
cave of riches, “Open Sesame.”
richest man in China. Just like Alibaba in
US$400 billion-value mark. It has become
Instead, the story of King Robert Bruce
the famous “Arabian Nights”, Ma learnt
the world’s largest online business-
of Scotland’s perseverance fits Jack Ma
the magic words, “Open Sesame”, while
to-business trading platform for small
perfectly. In spite of so many failures,
watching businessmen from the side-
businesses.
Jack Ma has been relentless in weaving
lines.
E-commerce giant Alibaba’s chief
the proverbial web in the world of
In an interview, Jack Ma explained, “One
executive officer Daniel Zhang said India
business and succeeding like the spider
day, I was in San Francisco in a coffee
is a very important market to the company
passionately spinning its web.
shop, and I was thinking, ‘Alibaba is a
in its global strategy. “Globalization is
good name’. And then a waitress came,
one of our key strategies for Alibaba.
and I said, ‘Do you know about Alibaba?’
As part of this strategy India is a very
and she said yes. I said, ‘What do you
important market for us to look at,” he
know about?’, and she said, ‘Open
said continuing, “Before entering any new
Sesame’. And I said, ‘Yes, this is the
market, we ask ourselves how we can
name!’. Then I went on to the street and
help the local market. For a market like
found 30 people and asked them, ‘Do
India, the key aspect of our strategy is to
you know Alibaba?’ People from India,
help the local enterprises grow”.
people from Germany, people from Tokyo
“We have invested in Paytm. We are very
and China … they all knew about Alibaba.
happy to see digital payment becoming
Alibaba—open sesame. The name was
so popular in India. This is one of the best
so well known, so easy to spell, and was
examples to demonstrate how we want
a person who was kind. He was also a
to help the local markets grow” Zhang
smart business person and helped the
explained.
villagers. So…now Alibaba, [my company]
Today Alibaba Group is among the top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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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는 인도인들에게도 친숙하다. ‘천일야화’ 속 ‘알라딘’과 ‘신밧드’ 그리고 ‘알리바바와 40인의 도 적’ 이야기는 누구나 호감을 가질 만한 이야기들이다. 앞서 나열한 이야기들과는 조금 다르지만 ‘인내’ 에 대한 교훈을 전하는 ‘부르스 대왕과 거미’라는 이야기가 있다. 수백 년 전 스코틀랜드의 부르스 왕이 있었다. 거칠고 위험한 시대였으나 왕은 용감하고 현명했다. 이 웃나라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를 차지하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침범해 왔다. 고군분투했지만 6번의 전 투에서 패한 부르스 대왕은 한 동굴로 몸을 피했다. 이 곳에서 왕은 자신과 스코틀랜드의 운명을 바꾼 거미를 만난다. 동굴에서 살고 있던 거미는 6번의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 거미집을 지으려 노력했다. 그 리고 마침내 7번의 시도 끝에 동굴 천장에 거미집을 짓는데 성공했다. 거미에게서 영감을 받은 부르스 왕도 7번째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며 왕국을 지켜 낸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도 부르스 대왕에 견줄만한 인물이 있다. 알리바바를 이끌고 있는 잭 마(마 윈)다. 마윈은 1964년 중국 항저우에서 음악가와 작가인 부모의 둘째로 아이로 태어났다. 마윈의 삶은 유년기부터 실패의 연속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시험은 두 차례, 중학교는 세 차례, 대학교 역시 세 차 례 낙방했으며 하버드 대학 입시에도 무려 열 차례의 낙방을 경험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항저우 대 학에서 영어 학사를 받았으나, 구직 활동을 하면서 30곳 이상 떨어지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지금, 알리바바 그룹의 회장인 마윈은 전자상거래의 거인으로 우뚝 서 있다. 알리바바란 이름을 짓게 된 계기에 대해 마윈은 한 인터뷰에서 “샌프란시스코의 한 카페에서 있었던 일이다. 사업을 구상하던 중 ‘알리바바란 이름이 좋겠다’라고 생각하던 찰나 웨이트리스가 주문을 받 으러 왔다. 그녀에게 ‘알리바바에 대해 아느냐’고 묻자 ‘알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알리바바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재차 물었고, 그녀는 ‘열려라 참깨’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알리바바’란 이름에 대해 확신을 갖기 위해 30명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인도, 독일, 일본, 중국 등 세계 각지에서 온 그들 모두 알리바바에 대해 이와 같이 알고 있었다. ‘알리바바’와 ‘열려라 참깨’, 세계인에게 친숙한 이름이다. 이야기의 주인공 ‘알리바바’의 이미지도 좋았다. 그는 영리한 사업가이자 마을 사람들을 도와준 친절한 사람이었다. 알리바바가 그랬듯, 내가 경영하고 있는 ‘알리바바’도 중소기업들에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라고 밝힌 바 있다. 1999년 12월, 마윈과 17명의 공동창립자들은 그들의 첫 번째 온라인 마켓 ‘알리바바 온라인’을 세상에 내놓았다. 17년이라는 길지 않은 세월이 지난 2017년 7월, 알리바바는 400억 달러(약 42조원)의 가치를 지닌 최초의 아시아 기업이 됐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큰 소기업 B2B 플랫폼이 됐다. 알리바바는 최근 몇 년 전세계에서 중국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인도 진출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다니 엘 장 알리바바 그룹 CEO는 이에 대해 “인도는 알리바바의 글로벌 전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장이다. 우리는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때마다 ‘어떻게 해야 현지 시장에 도움이 될까’ 자문한다. 인도의 경우 역 시 마찬가지다. 알리바바는 그동안 인도의 전자결제 시스템 페이틈(Paytm)에 투자해 왔다. 전자결제 시스템이 인도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된 것에 대해 우리 역시 기쁘다. 이는 알리바바가 현지 시장의 성장 을 도운 가장 대표적인 예 중 하나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천일야화’ 속 주인공 알리바바와 마윈의 공통점은 그리 많지 않다. 이 둘은 그들을 부 자로 이끈 한 마디 “열려라 참깨”를 공유할 뿐이다. 대신 마윈은 스코틀랜드의 부르스 대왕처럼 인내를 통해 결실을 맺었다. 왕에게 영감을 준 거미가 수많은 실패를 딛고 마침내 거미집을 짓는데 성공했듯 이, 마윈 역시 역경과 고난을 물리치고 ‘알리바바 신화’를 써내려 가고있다.
프라모드 마터 인도 SPOTFILMS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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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inhua
수십 차례의 실패를 딛고 알리바바 신화를 쓴 마윈. 그의 성공을 요약하는 핵심키워드는 ‘인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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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bai vs Gwadar: the New World Economy War
Ashraf Aboul-Yazid(Dali) is an Egyptian poet, novelist, translator, journalist, traveler and TV presenter. He won the Arab Journalism Award in culture 2015, and Manhae Grand Prize in Literature 2014. He has published more than 30 books of poems, novels, travels, and children literature. Some of his literary works are translated into Spanish, Korean, Turkish, English, and Persian. He is also President of AJA and Editor-in-Chief of the Arabic version of The As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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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jor industrial infrastructure investments
and culture businesses. The majority
launched by the UAE government are
of such projects are set for completion
expected to push expenditure. According
before 2020, which is also the year Dubai
to a report published by the Dubai-based
will host Expo 2020.
Arabic Language Al-Bayan newspaper,
Some bright headlines placed at the top
the Dubai economy will remain the least
of magnificent buildings are “Museum
vulnerable to future economic crises due
of the Future”, “The Bluewater’s Island”,
to current investments made in the build-
“Dubai Frame” (where a giant rectangular
up to Expo 2020.
frame gives visitors the best view of
Current real estate and tourism
both old and new Dubai), “Dubai Creek
investments as well as major
Harbor”, “Dubai Water Canal”, “Dubai
infrastructure and developmental projects
Theme Parks”, “Deira Island”, “Aladdin
are expected to further consolidate the
City” (a project inspired by the tales of
economy. Increases in demand with the
Aladdin and Sindbad).
3.1 million UAE population (2017) further
But will this bright fairytale surrounding
pushes the real estate market in Dubai
Dubai continue to be true? The answer
and neighboring Emirates.
may be found on the other side of the
On any trip to Dubai, one will see building
Arabia-Persian Gulf, where the expansion
construction sites everywhere—a sign of
of Gwadar port in Pakistan is fast
the nation’s current success and bright
becoming a game-changing venture
future. These sites are not the result of the
that could potentially reformulate the
economy alone, but from Dubai’s tourism
economic agenda of the entire region.
Xinhua
government failed to transfer land needed to develop a free zone (as was promised under a 40-year concession signed in February 2007 during former President Pervez Musharraf’s regime). Since its official opening in March 2007, Gwadar Port has been unable to be fully operational because of the unsettled matters between Islamabad and the PSA. The national UAE newspaper reported that “the Chinese operational control of the port will also enable the “dragon to swim in the India Ocean”, which is strategically important for China as it expands its influence across the region. To ensure the security of shipments Tariq al-Shammari, freelance writer for
separating Kashgar from Shanghai—
along existing routes, a Chinese naval
North Africa West Asia, said that “many
which is a distance that would take longer
presence at Gwadar could also patrol
economic analysts believe Gwadar is
than getting to Europe. Cargo ships have
the Indian Ocean sea lanes. What upsets
another Dubai emerging on the world’s
to cover double the normal distance
Washington and New Delhi about this
map. The controversial issue here is
just to reach Midde-eastern waters.
development is Chinese naval presence
that an economically powerful Gwardar
“The [Gwadar] corridor will help reduce
near the Strait of Hormuz and its strategy
threatens the strategic influence of Dubai
transport time for goods from Gwadar
of building a “string of pearls” presence
in the region. This challenging point
port to western China and Central Asian
on the Indian Ocean rim.”
recently has caused a silent economic
regions by about 60 or 70 percent,” said
The infrastructure of Gwadar is developed
war in the Gulf of Oman between two
Vice Premier of China Liu Yandong.
to sustain heavy developments in the
groups of countries; Pakistan, China, and
The Gwadar Port is a new landmark in
near future. A good infrastructure speaks
Qatar on one side, India and the UAE on
the Silk Road Economic Belt and the 21st
volumes about things to come. GDA
the other.”
century Maritime Silk Road (better known
(Gwadar Development Authority) is
Currently, Dubai’s main revenue comes
as the One Belt and One Road Initiative
working on development of residential
from tourism, aviation, real estate, and
OBOR). The Belt and Road Initiative (BRI)
and commercial areas. With the increase
financial services, thanks to its two major
is a development strategy proposed
in port activity, a lot of people will move
commercial ports: Port Rashid and Port
by China’s Premier Xi Jinping who
to Gwadar looking for new economic
Jebel Ali (the biggest manmade harbor in
emphasizes connectivity and cooperation
opportunities. This in turn will increase
the world and the biggest Middle-eastern
in his policies.
demand of real estate in Gwadar:
port; home to over 5,000 companies from
China took operational control of Gwadar,
Residential Societies, Marine Drive
over 120 countries).
the deep-sea port built with financial
Commercial and Open Land. They will
However, al-Shammari added, “Gwadar
and technical assistance from China on
have their own Burj in Gwadar and even a
port is a serious rival to Dubai, where its
Pakistan’s southwest coast, after the Port
Greek City! With a glance, you could see
strategic location gives China and Central
of Singapore Authority (PSA) decided to
projects mirrored to what Dubai owns!
Asia access to the Gulf region and the
pull out of a 40-year port management
The New World Economy War between
Middle-east. Gwadar port will become the
and development contract signed in
Dubai and Gwadar is giving the region
main sea gate for Central Asia, making
2007. Now, China will help operate the
more oil on its continuous fires, another
it easier to send products from Xinjiang
port, it being strategically located close to
threat to shake peace in Asia.
(northwest of China) and Central Asian
the Pakistan-Iran border and the Strait of
countries to other regions”. Kashgar
Hormuz in the southwestern province of
(China) and Gwadar (Pakistan) are only
Balochistan.
1500 miles apart, compared to the more
The Singaporean firm decided to quit
frequently used pathway of 2500 miles
the Gwadar project after Pakist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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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연방의 두바이와 파키스탄의 항구도시 과다르의 ‘경제대전’이 아시아를 뒤흔들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최근 사회인프라를 구축하는데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두바이에 근거지 를 둔 아랍어 일간지 ‘알-바얀’은 두바이가 ‘2020 엑스포’를 준비하며 너무 많은 자금을 투입했기 때문 에 외부의 경제 위기에 매우 취약해질 것이라 보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이 무색해질 만큼 두바이의 부동산과 관광산업에 대한 투자액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2017년 기준 인구 310만의 아랍에미리트의 투자열풍이 과열 양상을 보일 정도다. 두바이 곳곳엔 국가의 번영과 밝은 미래를 상징하는 건축물들이 널려 있다. ‘미래의 박물관’ ‘대양의 섬’ ‘두바이 프레임’(2018년 1월 완공된 세계 최대 규모의 액자모형 전 망대) ‘두바이 운하’ ‘두바이 테마파크’ ‘알라딘의 도시’(알라딘과 신밧드의 우화에 영감을 받은 프로젝트) 등이 이미 완공됐거나 완공을 앞두고 있다. 두바이의 희망찬 미래는 현실이 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파키스탄 남서부 과다 르 항구의 행보에 달려있다.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를 무대로 활동하는 프리랜서 작가 타리크 알-샤마 리는 “많은 경제학자들이 막 떠오르고 있는 과다르를 ‘제 2의 두바이’라 보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논란 의 소지가 있다. 과다르의 확장이 두바이의 지정학적인 전략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과다르의 과감한 도전은 걸프 지역을 둘러싼 소리 없는 전쟁을 야기했다. 이미 패는 둘로 갈렸다. 파키스탄, 중국, 카타르가 한 편을 이뤘고 그 반대편에는 인도, 아랍에미리트 등이 서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두바이의 주 수입원은 관광, 항공, 부동산, 금융업이다. 라시드 항구와 세계에서 가장 큰 인공항구 이자 120여국의 5,000여 기업이 활동하고 있는 제벨 알리 항구 덕이 크다. 그러나 알-샤마리는 “과다르 항은 두바이의 강력한 라이벌이 될 것이다.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할 때 과다르는 중국, 중앙아시아-중 동을 잇는 중개지로 떠오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류옌둥 중국 국무원 부총리도 “과다르 회랑를 통하면 과다르에서 중국 서부와 중앙아시아 발 화물운송 시간이 60~70% 가량 단축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 러냈다. 과다르는 중국이 사활을 걸고 있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든든한 우군이 될 것이다. 싱가포르로 부터 과다르의 항만관리 및 개발 권한을 넘겨받으면서 중국이 과다르항 지원에 적극 나설 수 있는 환경 도 마련돼 있다. 중국과 파키스탄의 반대편에 서 있는 아랍에미리트는 이를 심상치 않게 보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국영 언론은 “중국의 항구 통제권은 중국의 역내 영향력을 확장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수송로의 안전 을 보장한다는 명분 아래 중국 해군은 과다르를 통해 인도양을 오가며 영향력을 자연스레 확대해 갈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과다르는 이들의 우려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머지 않은 미래에 과다르엔 여러 사회기반 시설이 들어설 것이다. 항만의 경제활동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며, 상업지구와 거주지역도 개발될 것이다. 과다 르는 새로운 기회를 찾는 이들로 붐빌 것이다. 그 누가 아는가? 과다르에 그들만의 부르즈 칼리파가 들 어설지.
아시라프 달리 아시아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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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inhua
아직은 한적한 파키스탄 남서부 항구도시 과다르. 일 대일로 프로젝트에 사활을 건 중국은 이 항구에 지 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과다르가 두바이의 대항마 로 떠오를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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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â&#x20AC;&#x2022; 59 Special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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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02 49
Ever think you’ve known all there is to know about a country? Well, think twice, because you will find on the following pages religious, spiritual, and cultural practices in Asia that, for the most part, have not been wellknown around the world. These rituals take diverse shape—speaking for the lives and values of people groups dispersed across the continent—but they also bring together such people with the deeper understanding that life is about our habits. The way we think influences all aspects of our lives, and as beings that feed on action, our customs reveal aspects of our soul. Take a closer look at each of our obscure rituals and traditions, beginning with the religious and spiritual rituals of Ashura, crucifixion reenactment, hanging coffins, and then the cultural traditions of baby tossing and bride kidnapping in the hidden areas of our Asian border. As a disclaimer, the respective content in our feature is often associated to rural Asian regions—hence, the reason why they are being considered obscure and unknown rituals. -Reporter’s Note
Obscure and Unknown Asia
한 나라의 문화나 관습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자신하나? 그렇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봐라. 당신이 미 처 알지 못했던 아시아의 종교와 문화적인 관습들이 곧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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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 Eui-mi, Alessandra Bonanomi Staff Reporter
Ashura Literally meaning “ten”, Ashura marks the 10th day of the first Islamic month, Muharram. Each year, on Ashura, Muslims around the world take to the streets to commemorate a day that means different things for different Muslim sects. Sunni Muslims say Ashura is a day of fasting for two reasons: it is said that Prophet Muhammad fasted during this time and before him, Moses, prophet of the Israelites, fasted to thank Allah for saving the people from slavery. Other Muslims see it as the day Noah left his ark after Allah’s great floods. More importantly, however, is what Ashura has come to mean for Shia Muslims. The Shiites consider Ashura a day of mourning for the death of Husayn—grandson of Muhammad—in 680 AD at Karbala (modern-day Iraq), on the tenth day of Muharram. At the time, the Shia were a political faction of Ali who was the fourth caliph (spiritual authority), son-in-law to Prophet Muhammad, and father to Husayn. Upon Muhammad’s death, disagreement over succession of leadership led to division between Ali’s followers and those who supported his opponent, Muawiya. At one point of the conflict, during the Battle of Karbala, Husayn was brutally killed for supporting his father. This became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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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aration of Islam into the largely Shiite
injustice, oppression, and tyranny” (BBC
can be seen in the Qu’ran, Tatbir and
and Sunni denominations.
report). Today, Shiites make up Islam’s
Matam continue to be practiced annually
To this day, Husayn is celebrated as hero
second-largest denomination (around 15
by devout Shiites as the only way to
of the Shiites who, on Ashura, reenact
percent of the world Muslim population)
express the deep sorrow of the Islamic
his death to commemorate the act of
and still believe Husayn to be the one true
divide in 680 AD.
martyrdom. Shia men and women, often
heir of Prophet Muhammad.
in rural Shia communities, dressed in
In 1994, fearing the practices as being
Philippines Crucifixion
black parade through streets hitting
dangerous, Iran’s Supreme Leader Ali
“The first time I was nailed to a cross, I
their chests and chanting. Sometimes,
Khamenei issued a decree against self-
was terrified, but I prayed to Jesus to take
they will undergo rituals of self-injury by
mutilating Ashura rituals. Sometime after,
the pain. Now, I don’t feel anything. It’s
whipping themselves with metal chains
even Hezbollah, the militant Shia group,
like getting an injection.” -Laranang, who
(called Tatbir/Talwar Zani) or cutting their
repeatedly asked Shia Muslims to donate
experienced crucifixion (Reuters).
foreheads till blood pours down (Matam).
blood to hospitals instead of cutting
Easter. For most of the world’s Christian
Ashura, therefore, is a day symbolizing
themselves to bleed.
population, Easter is seen as a day to
“the Shia cult of martyrdom and to their
Though sayings such as, “Let not your
remember Christ’s death and resurrection.
sense of betrayal and struggle against
own hands contribute to your destruction”
Festivities include Easter-egg hunting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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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rch services spent in joyful peace with the knowledge that one’s sins have been forgiven through Jesus’ cross. But that cross is seen quite differently in the Philippines, especially in Pampanga, located in central Luzon, the largest and most populous island of the country. On the weekend of Easter, beginning with Good Friday, many flock to the area to see dozens of devotees imitating Christ’s suffering. They are first flogged with long wooden sticks and then are made to carry heavy wooden logs that will be used as the cross. Once the cross has been assembled, real nails are hammered into devotees’ hands and feet to complete the full imitation of the pain Christ experienced. Those who voluntarily undergo the ritual understand it as an outpouring of their faith, and an expression of loyalty to their lord. Although reenactment of crucifixion has also been seen in areas close to Manila, the tradition takes place mostly in Pampanga, with its “origins in a dramatic version of the Passion of Christ written by a local playwright in the 1950s, leading to the first crucifixion [there] in 1962” (CNN). Those who choose to be crucified often do so to repent of sins committed, or in gratitude of the many blessings they received in the past. More frequently, however, are those who believe that s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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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ct of devotion obviously comes with
placed in cliff caves, or on projections in
its scars; devotees say the wounds can
the rock. Some of these coffins were hung
take as long as two weeks to heal—but
at least 10 meters above the ground with
are considered only a small price to pay
the highest ones reaching 130 meters.
for the amount that they will receive from
Experts are still trying to figure out how
God. “My faith got me through my illness.
the Bo were able to reach such heights
I will continue doing this for as long as I
without proper equipment. Maybe that’s
live,” a man, Wilfredo Salvador, said as he
why there used to be ancient legends that
came down from a cross (The Telegraph).
Hanging Coffins Some coffins are left to hang on cliffs. They can be found in various locations such as in China and the Philippines. In south-eastern regions of China, between the regions of Yunnan and Sichuan, there are vertical cemeteries. extreme acts will bring luck and divine
The ritual was first practiced by the
help. Meanwhile, medical personnel wait
Bo, an ethnic minority that created for
below in case of emergency situations.
themselves a vibrant culture as early
Catholic religious authorities in Pampanga
as 3,000 years ago. The Bo differed
disapprove of the crucifixions and have
from other ethnic groups in their burial
said, “[Believers’] acts should be geared
customs. Typically hewn from durable
toward good works. Christian life is
hardwood logs, their hanging coffins went
not something that is done overnight,”
unpainted. The hanging coffin was the
according to The Telegraph report. Many
most widespread form of burial in ancient
have said that it has become an act of
southwest China. However, the practice
mysticism blinded by personal desire
ended with the mysterious disappearance
and is not genuine to the Christian faith.
of the Bo people. “It is something unique
Nevertheless, Good Friday activities
and mysterious,” once declared by
with bustling town markets and event
explorer Wong How Man.
halls account for a large fraction of
Hanging coffins come in three different
Pampanga’s local business profits.
types: supported on wooden stak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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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 could fly.
provided day-to-day items inside the
position as they entered it (CNN).
Even so, why did the Bo go about using
coffins.
It is, without a doubt, fascinating to see
this burial custom? Based on a practical
Hanging coffins are also an ancient
how cultures located far from each other
reason, they wanted their coffins to be
funeral custom in Northern Luzon,
and from different times took on similar
protected from enemies and animals.
Philippines. The Igorot tribe has practiced
beliefs and traditions that reveal their core
Researchers also suggested a spiritual
such burials for around 2,000 years,
values and worldviews.
motivation: the Bo may have believed
believing that this location gives the dead
heaven existed in the sky. According to
closer access to heaven. In several areas,
Baby Tossing in India
this theory, hanging coffins became the
coffins of various shapes and sizes can
One would think parents would never put
stairs leading to heaven.
be seen again, hanging either on beams
their baby in harm’s way. Think twice. A
Through analysis of Bo culture, explorers
projecting outward from vertical faces
number of families in rural Maharashtra
also discovered that the ancient
of the mountain, in caves in the face of
and Karnataka (southern Indian States)
population treated the dead as though
cliffs, or on natural rock projections. The
are known to practice a ritual dating back
they were still alive; they believed the
coffins are quite small due to the fact that
to almost 700 years—baby tossing over
deceased had simply moved to a new
the dead were buried in fetal position.
buildings.
place where they would go on to carry
This was because the Igorot believed that
According to a New York Times finding,
normal lives. For this reason, the Bo
people should leave the world in the same
the ritual is based on a legend back when infant mortality rates were dangerously high. A saint suggested parents with dying children to “build a shrine and drop the ailing infants from the roof to show their trust in the almighty.” The babies, again, based on the myth, were miraculously healed of their sickness. And so, the tradition continues in rural communities where fertility rates remain low compared to urban areas. Families gather at their local shrine with the priest ready to toss babies and family members waiting below with an outstretched blanket. The custom is repeated by other families so that their child, too, would be blessed with health and good fort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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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aring such young babies. Some refused
blanket, shouts of joy and cheering is
to acknowledge that such behavior
heard amongst all those watching.
existed in India claiming they had never
Local villagers have said the tossing is
seen anything like that happen anywhere
harmless to children, and it seems it has
in the country.
continued because of its ancient cultural
With that incident, local campaigners
value provided that both Hindus and
called for the attention of India’s National
Muslims in the region took part in the
Commission for Protection of Child Rights
ritual.
and by 2011, tossing was made illegal.
Unfortunately, in 2009, a clip revealing
Lov Verma, from the National Commission
the practice was made public to internet
said at the time, “I’m absolutely shocked
drive her to the man’s house, where all
users causing widespread outrage for
by this. It’s not simply the government’s
the female members of his family try to
overlooking the psychological risk of
job. We need to educate all those who
convince her to wear the bridal veil. The
take part in this barbaric practice—the
process may take hours or even days.
temple priests and the community.”
Once she accepts, a delegation from the
And yet, reports have found the tossing
husband’s family visits her house, asking
has not stopped and some babies not
her parents to agree to the marriage.
more than two months are thrown over
Finally, after an informal wedding, the
shrines. Research on the ritual still needs
ceremony is celebrated by an official
time to observe any real damage of being
imam. The tradition also includes the
tossed, but it is yet a cultural aspect
showing of bloody sheets: a sign of
locals hope to preserve.
virginity.
YouTube
Once the baby has been caught by the
Based on locals’ opinions, the tradi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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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de Kidnapping in Kyrgyzstan
way of proposing usually ends in failure.
In rural Kyrgyzstan, men often marry
In fact, even if women want to get
women abducting them off the street and
married, it is thought that they typically
forcing them to be their wife. Sometimes
respond negatively as a sign of purity and
the bride and the groom already know
naivete. That is why men kidnap women.
each other and are in a relationship;
Based on the tradition, if a girl stays for
sometimes not. The ritual begins with a
one night, she will stay forever.
good-luck blessing given to the future
“Bride kidnapping is an old tradition that
husband and his friends. Then, they
comes from the times of the ancient
kidnap the woman from the street and
Manas hero,” declared an old man from
rural Kyrgyzstan. However, there is no mention of this ritual in the oral tradition of the country. The only exceptions have been reported in the 19th century when tribal groups went through villages stealing horses and women. Even so, this situation created much conflict between tribes and it was not seen as an acceptable practice of tradition. Conversely, the ritual may have begun
became a way to convince families to
get a longer prison term for stealing a
in response to the Soviets who tried
accept couples that met in such settings
sheep than for abducting an underage girl
to create an equal system for women
provided by the Soviets.
to force into marriage (Huffington Post).
and men. In fact, reports show that
Today, even though the practice is illegal,
It is now known that female suicide rates
kidnappings increased during the late
the majority of the police and members
are found to be higher amongst women
Soviet period. Soviets did not allow
of authority do not even know of it, if
who have been kidnapped. 95% of
marriage of individuals under 15 years
they do, they suppose it is a tradition that
brides who are abducted stay with their
old and gave both boys and girls the
should be respected. Bride kidnapping is
kidnappers, even if they do not know
chance to attend high school and college.
considered illegal, not only by law, but it
them. Unfortunately, this seems to be the
Once there, students probably found the
also violates Islamâ&#x20AC;&#x201D;the main religion of
case because Kyrgyz girls are taught at
partner they wanted to marry, but many
Kyrgyzstan. In 2013, President Almazbek
a very young age to be submissive and
families rejected the proposals, arranging
Atambayev approved legislation that
obedient. As it often turns out, girls in this
on their own end weddings with locals
increased the penalty for bride kidnapping
setting are easy to be put "where they
in rural areas. Kidnapping most likely
up to 10 years. Prior to that, a man could
be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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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의 후계자가 순교한 날 ‘아슈라’ 문자 그대로 ‘10’을 의미하는 ‘아슈라’는 무하람(이슬람력 1월)의 10번째 날을 상징한다. 아슈라가 다가오면 전세계 무슬림은 각 분파에 따라 저마다의 의식을 행한다. 수니파 무슬림은 이 날 단식을 행한다. 무함마드 마호메트가 이 날 단식했으며, 그보다 훨씬 이전 시대에 살았던 이스라엘의 선지자 모세도 알라신이 사람들을 노예제도로부터 구원해준 것에 감사해하며 음식물 섭취를 금했다. 시아파 무슬림에게 아슈라는 슬픈 날로 기억된다. 이들은 680년 무하람 10번째 날에 사망한 예언자 무함마드의 손자 후사인을 애도 한다. 시아파 무슬림은 4대 칼리프(이슬람 제국의 최고 통치자) 알리를 섬긴다. 그는 무함마드 마호메트의 사위이자 후사인의 아버지 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함마드의 후계자리를 놓고 이슬람교는 분열했고, 그 과정에서 후사인은 비참하게 살해됐다. 이 사건으로 이슬 람은 크게 시아파와 수니파로 나뉘게 된다. 이슬람 분파 중 두 번째로 큰 시아파(무슬림 인구의 약 15%)는 후사인을 예언자의 참된 후계자라고 믿는다. 이들은 후사인을 ‘시아파 를 위해 순교한 영웅’으로 여긴다. 때문에 시아파 신도들은 쇠사슬로 자신을 채찍질하는 ‘타뜨비르’나 피가 날 때까지 이마에 상처를 내는 ‘마탐’ 을 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소 과한 측면이 있어, 이 의식을 자제할 것을 당부하는 이들도 있었다. 1994년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자해행위를 금하는 법령을 발표했다. 레바논의 호전적인 시아파 단체 헤즈볼라마저도 “자해해서 피 를 흘리느니 차라리 병원에서 헌혈하라”라고 당부할 정도 였다. 이슬람 경전 꾸란에 “네 손으로 파멸을 부르지 말라”는 구절이 있다. 하지만 독실한 시아파 무슬림들은 이 날만큼은 타뜨비르와 마탐 을 행하며 후사인을 추도한다.
십자가 못 박힌 예수의 재연 ‘필리핀의 수난일’ “처음 십자가에 못 박힌 그 순간, 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하나님께 고통을 덜어가 달라고 기도하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떠오르 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별다른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단지 주사 한방 맞은 느낌이다.” 로이터통신 기자 라라낭의 ‘필리핀 수난 일’ 체험기다. 부활절.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리는 날이다. 전세계 기독교인들은 부활절 달걀을 나누고 예수의 부활을 축하하는 찬송을 부 른다. 하지만 크리스찬 국가인 필리핀에서 이 날은 사뭇 다른 의미를 지닌다. 필리핀에서 가장 큰 섬인 루손 섬의 중심부 팜팡가 주에 선 더욱 그렇다. 부활절 주간이 시작되는 금요일, 이 곳은 예수의 수난을 재연하려는 사람들과 이를 지켜보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이 의식은 참가자 들을 나무막대로 채찍질하며 시작된다. 참가자들은 무거운 통나무를 짊어지다 손과 발에 못이 박힌 채로 십자가에 매달린다. 이들은 고난을 재연하면서 예수와 영적인 동질감을 느끼고, 그들의 간절한 신앙을 고하기도 한다. 참가자들은 이러한 극단적인 행동이 신의 은총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다. 고행으로 인한 생채기는 약 2주가량 지속되지만, 신의 축복을 바라는 이들에게 그깟 상처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필리핀 수난일은 수도 마닐라 부근에서도 행해지는 의식이지만 시초는 팜팡가였다. CNN에 따르면 1950년대 팜팡가에서 ‘그리스도 의 수난’이 연극으로 각색됐고, 1962년부터 수난을 실제로 재연하는 전통이 시작됐다고 한다. 반면 수난일 의식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시선도 존재한다. 카톨릭 당국은 이에 대해 “신도들은 올바른 의도를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기독교인의 삶은 단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개인의 신실한 신앙에서 나온 것이 아닌 개인의 욕망에 가 리워진 행위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금요일 밤의 수난일’은 팜팡가 지역 경제에 큰 수익을 안기는 이벤트임은 틀림없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 ‘절벽에 매달린 관’ 이번엔 ‘절벽에 매달려 있는 관’에 대한 이야기다. 이 관들은 중국과 필리핀 등지에서 볼 수 있다. 중국 남동부 위난과 쓰촨 성 사이의 지역에는 수직으로 매달린 공동묘지들이 있다. 이는 약 3,000년 전 고대 중국에서 독창적인 문 화를 간직했던 소수민족 ‘보 족’의 풍습이다. 이들은 단단한 통나무를 잘라 관으로 만들어 매달곤 했다. 그러나 이 의식은 보 족의 불 가사의한 실종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보 족은 관을 나무 막대를 지지대 삼아 매달거나, 절벽 동굴에 매달거나, 혹은 바위 돌출부에 매달곤 했다. 관은 지상으로부터 낮게는 10미터, 높게는 130미터의 높이에 매달렸다. 학자들은 마땅한 장비도 없던 시대에 보 족이 관을 높은 곳에 매달을 수 있었던 비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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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답을 여태껏 찾지 못했다. 보 족이 하늘을 날 수 있었다는 믿기 힘든 전설만이 남아 있다. 이 신비스러운 소수 민족은 왜 높은 곳 에 관을 달았을까? 이에 대해선 보 족이 망자를 적이나 동물로부터 지키고자 했을 것이란 가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학자들은 또 한 보 족은 천국이 하늘에 존재할 것이라 믿었으며, 그들에게 관은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의미했다는 가설을 내놓기도 했다. 관을 매다는 풍습은 필리핀 북부의 루손 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망자가 높은 곳에 묻혀야 천국에 가까워 질 수 있다고 믿은 이고 르트 족은 약 2,000년에 걸쳐 이 전통을 지켜왔다. 이고르트 족은 사람이 막 세상에 태어났을 때와 같이 웅크린 자세로 세상을 떠나 야 한다고 믿었기에 관의 크기는 상당히 작았다고 한다. 두 민족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그들이 망자를 대하는 태도와 관습만큼은 비슷했다.
아기가 건강하고 부자 되길 바라는 ‘인도의 아기 던지기’ 자녀를 위험한 상황으로 내모는 부모. 상상조차 힘들다. 그러나 인도 남부의 마하라시트라와 카르나타카 지역에선 약 700년간 ‘아기 를 던지는 의식’이 행해졌다. 이 의식은 유아사망률이 높았던 시대의 전설에서 유래했다. 한 성자가 죽어가는 아기의 부모에게 “신전을 지어라. 병든 아기를 건물 의 꼭대기에서 떨어뜨려 전지전능한 신에 대한 믿음을 증명하라”고 말했다. 그 후 높은 곳에서 떨어졌던 아기의 병은 거짓말처럼 사 라졌다고 한다.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출생률이 낮았던 농촌지역에선 아기 던지기 전통이 오랜 세월 이어졌다. 성직자를 동반한 가족들이 신전 높은 곳에서 아기를 던지면 남은 가족들은 지상에서 담요를 펼쳐 아기를 받는다. 아기를 담요로 받고 나면 기쁨과 격려의 함성이 주 변을 가득 메운다. 가족들은 이 의식을 통해 아기가 건강해지고 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왔다. 그러나 2009년 이 광경을 담은 영상이 온라인을 통해 확산됐고, 영상을 본 사람들은 어린 아기들이 느꼈을 심리적인 공포에 치를 떨 었다. 결국 지역운동가들은 인도 아동인권국가위원회에 청원을 제출했고, 2011년 아기 던지기는 법적으로 금지됐다. 하지만 아기 던지기가 완전히 사라지기까진 시간이 좀 더 걸릴 듯 하다. 미신을 믿으며, 또한 전통이 보존되길 바라는 일부 부모들은 지금도 생후 2개월이 채 안된 아기들을 건물 아래로 내던지고 있다.
“내 신부는 내 손으로 구해온다” 키르키스스탄 신부 납치 키르키스스탄 농촌 지역에선 남자가 여자를 길에서 납치해 강제로 혼인하는 풍습이 있다. 신랑과 신부가 실제 연인 관계인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예비신랑과 그의 친구들은 거리에서 여자를 납치하고 차에 태워 남자의 집으로 데려온다. 일행이 집에 도착하면 남자 가정의 모든 여자들은 납치된 여자에게 면사포를 쓰라고 설득한다. 여자가 이를 받아들이면 남자 가족의 대표가 여자의 부모를 방문해 결혼에 동 의해 줄 것을 요청한다. 부모의 승낙이 떨어지면 이슬람 성직자 이맘이 입회하는 결혼식이 열린다. 키르기스스탄 농촌 지역 주민들은 일반적인 프로포즈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말한다. 여자가 결혼을 원할지라도 순결해 보이기 위 해 부정적인 대답을 내놓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신부 납치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됐다. 이 요상한 풍습의 기원에 대해선 “키르기스스탄 고대 영웅 마나스 시대 때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키르기스스탄의 구전에는 이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질 않다. 대신 19세기 일부 부족들이 다른 마을로 쳐들어가 말과 여성을 훔쳤다는 기록은 있다. 이는 부족간의 다툼을 유발했고, 그래서 이 관습은 지속돼선 안 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와 달리 신부 납치가 남녀평등 체제를 구축하려 했던 구소련 시대에 나왔다는 설도 있다. 구소련은 15세 이하의 혼인을 금했다. 대 신 10대 소년, 소녀에 고등교육 받을 권리를 공평하게 보장해 줬다. 10대들은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에서 자신의 배우자가 될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부모는 자녀가 시골로 돌아와 그들의 허락을 받고 혼인을 치르길 바랐다. 결혼을 승낙 받으려는 두 남 녀가 고향에서 신부를 납치하는 다소 과격한 방법까지 동원한 것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는 설이다. 현재 키르기스스탄에서 신부 납치는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하지만 경찰과 공무원들은 이를 알고도 모른 척 넘어간다. 지켜야 할 전 통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한편 신부 납치는 키리기스스탄의 주요 종교인 이슬람 규율에 어긋나기도 한다. 그래서 2013년 알마즈벡 아 탐바예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은 신부 납치범에 최고 10년의 형벌을 내리는 개정안을 승인했다. 납치된 여성들의 자살률이 유독 높아 신부 납치는 키르기스스탄의 사회문제로 비화됐다. 그러나 서로 몰랐던 사이라 할지라도, 여성 의 95%는 자신을 납치한 남성과 함께 지내는 길을 택한다. 이는 소녀들이 남성에 복종할 것을 미덕으로 여기며 자라온 탓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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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â&#x20AC;&#x2022; 71 Top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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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02 61
“We Cannot All Succeed When Half of Us Are Held Back”: The F-word and the Struggle for Female Emancipation
The Republic of Gilead is the authoritarian, theocratic regime that takes over the United States in The Handmaid’s Tale, a Hulu original series based on Margaret Atwood's 1985 novel. The TV series portrays a world overrun by misogyny and radical Christianity. The residents believe in their patriarchal society, which involves the oppression of women by erasing their rights. In fact, women are no longer allowed to drive, walk alone, own property, receive an education, or even read. Since the population has been dwindling due to high rates of infertility caused by environmental pollution and sexually transmitted diseases, the few remaining fertile women in Gilead—the Handmaids—are assigned to the homes of the ruling elite, where they must submit to ritualized rape by their male masters to bear children for them. Other women in the society are the Aunts (who train the Handmaids), Commanders’ wives, and Marthas (housekeepers). The men are also divided into groups: Angels, who are soldiers, Eyes, the secret police, Guardians, and Commanders. Based on a strict hierarchy, the Republic of Gilead does not allow anyone to escape the society. Public execu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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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 implemented to remind everyone
measures taken as in “who shall be
rise to a worldwide movement for the
what happens when people break the
allowed to have babies and what shall be
empowerment of women and for gender
rules. Residents must also use certain
done with babies.” In the US, Christian
equality. As such, “Women’s rights are
expressions such as, “Blessed be the
fundamentalists have committed
human rights” was one of the most
fruit” as the standard greeting, and the
atrocities such as bombing of abortion
famous slogans of the Women’s March.
traditional reply is, “May the Lord open.”
clinics and murdering doctors who
On International Women’s Day, March
Rather than saying hello and goodbye,
perform abortions—the most recent
8th, the feminist movement also joined
residents say, “Under His eye.”
murder to have occurred in 2015 in
“A Day Without a Woman”, a worldwide
As a woman, watching The Handmaid’s Tale
Colorado (The Telegraph). Moreover, under
strike campaign in solidarity with the fight
is scary as it shows how a Western and
the Trump administration, the US has
for equality.
developed society may slowly change,
seen new regulations on abortion rights,
2017 was the year of yet another huge
ending up as a type of hell for the female
for instance, cutting of NGO funds that
campaign. In October 2017, when The
population. But the scariest part is that
provide abortion services.
New York Times and The New Yorker reported
many of the dystopian elements can also
Apart from the new policies about
that dozens of women accused Harvey
be found in the real world. For instance,
abortion, President Trump has never
Weinstein, one of the biggest American
the modest dresses worn by Handmaids
been respectful with women. Fat, pig,
film producers, of sexual abuse over a
recall the habits of Catholic nuns.
dog, slob, disgusting animal. These are
period of at least 30 years, more than 80
Imposing certain dress codes for women
just some of the ways in which Donald
women in the film industry subsequently
such as headscarves in Islamic nations
Trump has called women. His attitude
accused him of similar acts. After that,
remains common. In Saudi Arabia,
and his governmental projects caused a
using the hashtag #Metoo, millions of
most women are banned from voting
spontaneous rallying cry via social media.
women shared on Twitter, Facebook, and
and interacting with the opposite sex
On January 21, 2017, a huge protest
Instagram their own personal experiences
unsupervised. Women are not allowed to
called the Women’s March first took place
of sexual harassment and abuse.
travel or study without the permission of
in Washington. The aim of the protest
More recently, in January 2018, notable
a man, and they have little to no financial
was to advocate legislation and policies
Hollywood figures laid out the mission of
independence. Public executions have
regarding human rights and other issues,
the Time’s Up campaign, a movement
also taken place recently in Iran, North
including women’s rights, immigration
against sexual harassment born in
Korea, Somalia, and Saudi Arabia.
reform, healthcare reform, reproductive
response to the Weinstein scandal and
Margaret Atwood once declared that
rights, environmental issues, LGBTQ
#MeToo. Time's Up has already raised
in totalitarianism such as Nazism,
rights, racial equality, freedom of religion,
$13 million in funds to subsidize legal
there has always been family planning
and workers’ rights. The revolt has given
support for “women and men who h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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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erienced sexual harassment, assault,
for those of some other nations. In Italy,
All be Feminists written by Chimamanda
or abuse in the workplace,” according to
when actress and director Asia Argento
Ngozi Adichie and campaigns for gender
CNN.
said that she had been assaulted by
equality such as HeForShe are useless
Time’s Up also encouraged women to
Weinstein, she was criticized by members
and a waste of time.
wear black for the most recent Golden
of the public and some media agencies
In this messy frame of voices for and
Globe Awards in protest against gender
for reporting the abuses “too late”. Many,
against the “F-word”, there are elements
and racial inequality and to raise
even till now, do not believe her. Instead
that must be taken into account: almost a
awareness for the initiative. During the
of condemning Weinstein’s behavior, they
quarter of a million American girls under
ceremony, Oprah Winfrey said: “A new
criticized Argento’s response; effectively
18 were married between the years 2000
day is on the horizon! And when that new
turning the victim into perpetrator and vice
and 2010; in Nigeria, husbands can hit
day finally dawns, it will be because of
versa. Many women were actually on the
their wives if they do so in “correcting”
a lot of magnificent women...and some
frontline of the criticism, highlighting lack
them, whatever that means. In the
pretty phenomenal men, fighting hard to
of female solidarity in the nation. Sexist
Democratic Republic of Congo, sexual
make sure that they become the leaders
culture in Italy remains powerful and the
violence and rapes are daily practices,
who take us to the time when nobody
word “feminism” provokes controversial
and in Russia, more than 16 million
ever has to say Me too again”.
reactions; most do not understand or
women experience domestic violence
Without a doubt, 2017 was the year of
believe that there is yet a long way to go
each year.
women’s voices, at least for Hollywood.
before gender equality is achieved. For
Are we sure that the need for feminism is
Unfortunately, the same cannot be said
many, the book-length essay We Should
still debatable?
Alessandra Bonanomi Staff Repor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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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출신의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가 1985년 집필한 소설 ‘핸드메이즈 테일’(The Handmaid's Tale)이 미국 채널 ‘훌루’의 TV시리즈로 각색됐다. 핸드메이즈 테일 속 길리드 공화국은 미국 전역을 장악하고 있는 권위주의적인 신정 정권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원로회는 여성을 혐오한다. 여성은 운전할 권리, 홀로 걸을 권리, 재산을 가질 권리, 교 육받을 권리를 갖지 못한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길리드의 환경오염과 전염성 성병으로 임신할 수 있는 여성들이 소수만 남게 된 것이다. 결국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여성들은 지배층의 가정에 배속되고 만다. 이들은 주인(남성)의 의례화된 강간을 감내해야 하며, 그들의 주인과 부인을 위해 아이를 낳아야 만 한다. 엄격한 계급사회인 길리드 공화국에서 그 누구도 사회의 규칙을 위반할 수는 없다. 지배층은 때때로 공개처형을 행해 룰을 위반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상기시킨다.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필자 가 핸드메이즈 테일을 보면서 더욱 소름 끼쳤던 것은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일들이 현실세계에서도 벌어 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슬람권에서 공통적인 현상으로 남아있는 여성의 신체를 가리는 옷차림은 그나마 가벼운 사례에 해 당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들은 투표할 권리를 갖지 못하며 남성보호자가 없으면 여행을 자유롭 게 다닐 수 없다. 이들에게 경제적인 독립은 사치다. 드라마처럼 여성을 공개처형 하는 곳도 있다. 가장 최근의 이란, 북한, 소말리아,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그렇다. 선진국인 미국도 여성인권과 직접적으로 결 부되는 낙태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낙태클리닉과 낙태시술을 한 의사들을 탄 압해 왔고, 2015년 콜로라도에선 낙태시술을 했다는 한 의사가 살해당하는 일도 발생했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은 낙태를 지원하는 NGO 단체들의 자금줄을 조이기도 했다. 그리고 2017년 10월, 미국의 유명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 스캔들이 터져버렸다. 그동 안 그의 권력이 두려워 숨죽였던 80여명의 영화종사자들은 30여년간 계속된 그의 악행을 고발했다. 이 는 전세계 SNS를 뜨겁게 달군 #Metoo으로 이어졌다. 수백만 여성들은 그가 겪었던 성폭력 사례들을 트위터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 공유하며 캠페인에 동참했다. 2018년 1월, 영화감독 에바 두버네이와 제작자 캐슬린 케네디, 배우 아메리카 페레라, 엠마 스톤 등도 ‘타임즈 업’(Time’s Up) 운동에 동참하며 성범죄와 성차별 근절에 나섰다. 이 프로젝트는 일터에서 성폭 력을 경험한 여성과 남성들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 1,300만 달러 (약 140억원)를 짧은 시일 내에 마련했 다. 타임즈 업 캠페인은 또한 2018년 1월 7일 열린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 참석한 여성들이 검은 수트를 입길 독려했다. 검은 수트를 입은 참석자들은 성차별과 인종차별에 대해 간결하지만 강렬한 항의의 의 사를 전했다. 시상식에 참여한 미국의 유명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새로운 날이 다가 오고 있다. 이 자 리엔 변화를 이끌어갈 여성들뿐만 아니라 이에 동참하는 멋진 남성들도 함께하고 있다. 열심히 투쟁하 는 그들이 주인공이다”라고 말하며 이들을 격려했다. 2017년은 할리우드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증진된 한 해로 분명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마법은 미국에서나 가능했던 것일까? 이탈리아의 배우이자 감독인 아시아 아르젠토 역시 하비 와인스타인 스 캔들의 피해자 중 하나다. 그녀는 20여년전 신인 시절 와인스타인에게 심한 모욕을 당한 적이 있다. 하 지만 성차별이 만연해 있는 이탈리아의 대중과 일부 매체는 오히려 “고백이 너무 늦었다”고 그녀를 비판 했다. 피해 사실이 유야무야 돼버린 셈이다. 성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고 험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치마만다 은고 지 아디치에의 저서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We Should All Be Feminists)나 ‘히포 쉬’(HeForShe) 캠페인을 쓸모 없는 시간낭비라 여기고 있다. 나이지리아에선 8세 이하의 소녀들이 어린 나이에 원치 않는 결혼을 하고 있으며, 남편들은 ‘행동을 고 친다’는 이유로 가정폭력을 행하고 있다. 콩고에서 성폭력과 강간은 일상적인 관습이고, 러시아에선 매 년 1,600만에 달하는 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류는 여전히 페미니즘 운동의 필요성 에 대해 길고 지루한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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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fordable Consultation for Connection and Community
Have an idea but don’t know what to do
not just in the United States revealed their
logo symbolizing the heart of the clients—
with it? Every day of our lives, we are
own personal experience of being sexually
the “changemakers”—creates a nurturing
bombarded by new concepts, projects,
violated by men in episodes ranging from
and safe environment for anyone to
and information through digital media
light harassment to molestation, and
begin a sustainable campaign. Company
and the convenience of smart devices.
even to assault. That movement has now
staff not only make it a priority to ensure
We are constantly interested, reacting,
evolved into a campaign that raises funds
funding for each campaign, they also
processing, and sometimes, coming up
to support other female victims.
make sure that their changemakers are
with our own cool new ideas.
And so it was with founder William
able to make a living out of their work.
But that’s where it stops, because
Gondokusumo who said he saw “people
The way they go about doing this is
more often than not, we don’t have the
coming together with a shared objective
by creating networks of associations
resources to turn those thoughts into
to make a positive change in our world”—
between individuals, experts, community-
reality. It’s easy to be innovative, but
this was his driving force, and it now
based organizations, volunteer and
actually doing—now that’s not easy. Two
drives Campaign.com as it aims to make
student-led groups, social enterprises,
rising Asian startups, on the other hand,
real the passions of people around the
and international agencies to help
argue that it doesn’t have to be hard. The
world.
spread clients’ key campaign message
following introduces leading startup CEOs
Founded in 2014 in Jakarta, Indonesia,
and goals. Once the social connections
Chris Chong and William Gondokusumo
Campaign.com, with a blue heart as its
are made, informational websites with
who believed in great ideas and felt it worth facilitating them.
Campaign.com A world where good people can make a good living doing good things Today, our SNS communities show that many are willing to voice their thoughts on matters they care about. Consider the #MeToo hashtag movement that swept social media platforms with the outbreak of the scandal revolving around renowned film producer Harvey Weinstein. W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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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wdfunding links are created and then
with a staff member; from there on, the
Himself having failed often in his other
spread throughout internet communities.
campaign planning begins.
businesses, Sumostory founder Chris
Moreover, company events such as
Campaign.com projects are diverse
Chong wanted to make a platform for
Networking Nites and #ForChangeID Hub
in nature and often promote issues
startups to get the jump-start they needed
form gathering opportunities for relevant
rarely addressed in public spheres. The
to exercise their potential. Sumostory,
members to meet and mingle through
#DoubleTigers movement worked to
also being a startup itself, is simply put,
press events, fun evening activities, and
increase the population of Indonesia’s
a startup for startups, meaning, it is an
simple get-togethers. Campaign.com also
endangered Sumatran tigers, while the
affordable public relations (PR) firm that
provides workshops in their Learning Lab
#AyoMembaca campaign sought to
bridges baby startups with notable media
during which changemakers learn from
encourage reading books amongst young
outlets.
experienced campaigners what is needed
Indonesians.
Using a boosted automated algorithm,
to influence society.
Consultation fees are not always free,
Sumostory collects and organizes
All it takes is downloading the free
but they come at reasonable prices that
data from startups and from journalists
Campaign.com app to begin chatting
take into consideration clients’ budgets.
(their writing history, publications, and
Campaign.org is unique in that it meets
interests) to quickly and efficiently match
the many needs of any individual or group
startups with media personnel. The
in their entire campaign cycle whereas
result is immediate press coverage for
petition and crowdfunding sites such as
such startups and valuable content for
Change.org and Kickstarter only see to
reporters.
one specific need (TechinAsia).
The most obvious benefit of Sumostory is its low PR fees. While traditional PR
Sumostory
agencies typically require a fee of $5000
Get started, get matched, get published, get
per month, Sumostory offers startups
noticed
a base fee of $1800 per 6 months with additional (optional) offers for upgraded
Sometimes it takes years for a startup
consultation. The company takes pride in
to gain the publicity it needs to maintain
its “100% money back guarantee” that
its business. And the harsh reality is that
promises a full refund if clients are not
countless startups end up failing, unable
satisfied with Sumostory services.
to reach customers and reap company
In just a few months since its founding
profits.
in August 2017, Sumostory has built 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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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wn PR reputation and regularly connects startups with prominent media groups such as Bloomberg, The Straits Times, The Business Times, Vulcan, and CNBC to name a few. Apart from the fact that 100% of clients that went through the Sumostory algorithm have now been published, personal testimonials by startup CEOs reveal the effectiveness of Chris Chong’s vision. Carol Chen, founder of fashion marketplace Covetella, and once client of Sumostory said, “Having a full page feature in The Straits Times was a huge win for me and my startup. Very impressed that the team was able to get us such major publicity so fast!” What began as CEO Chris Chong’s wish to give all struggling startups a winning chance is quickly blossoming into a major PR enterprise bringing more equal opportunity to even the competitive world of business marketing.
Seo Eui-mi Staff Repor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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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새로운 것들이 쏟아지는 디지털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새롭고 멋진 무언가를 자연스레 떠올리기도 하지만, 이러한 상상들은 이내 중단되고 만다. 이를 구체화하기에 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시아의 떠오르는 스타트업 기업 두 곳은 위대한 생 각들을 믿고 따랐다. 그리고 이를 실현시켰다. 윌리엄 곤도쿠스모의 ‘캠페인닷컴’(Campaign.com)과 크 리스 청의 ‘스모스토리’(Sumostory)를 소개한다. Campaign.com이 꿈꾸는 보다 나은 삶 오늘날 대중은 SNS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시한다. 얼마 전, 소셜미디어를 강타한 #MeToo 해시태그 만 해도 그렇다. 유명 영화프로듀서 하비 와인스타인이 성추문 논란에 휩싸이자, 이와 유사한 성폭력에 노출됐던 전세계 여성들이 #MeToo 해시태그를 달며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한 것이다. 이와 같은 캠페인 들은 펀드로까지 조성돼 많은 피해여성을 지원하는데 쓰이고 있다. 캠페인닷컴의 창립자 윌리엄 곤도쿠스모는 “사람들은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함께 나서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열망을 현실로 만드는 게 캠페인닷컴의 창립배경 이다. 2014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탄생한 캠페인닷컴은 고객의 심장을 상징하는 파란 심장을 로 고로 사용한다. 이 기업은 누구나 지속가능한 캠페인을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직원들은 고 객의 캠페인을 위한 펀드 조성을 도우며, 또한 고객들이 생업에 지장 받지 않고 캠페인을 진행할 수 있 도록 지원한다. 캠페인닷컴의 핵심은 다자간 네트워크다. 각 개인과 전문가, 온라인 커뮤니티, 봉사단체, 학생 그룹, 국 제 에이전시 등으로 구성된 네트워크는 고객의 캠페인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와 같은 연 결고리를 통해 웹사이트에 크라우드펀딩 링크가 생성되며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관련 정보가 확 산된다. 사내 연구실에서 워크숍을 여는 것도 캠페인닷컴의 특징이다. 워크숍엔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 을 가져온 적이 있는 유경험자들이 초보자들에 노하우를 전수한다. 캠페인닷컴은 여러 분야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DoubleTigers는 인도네시아의 멸종 위기에 처한 수마트라 호랑이의 개체수를 늘리는데 한 몫 했고, #AyoMembaca는 인도네시아 청년들 이 책을 읽도록 장려했다. 캠페인닷컴의 무료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는 순간 당신의 꿈은 시작된다. 스타트업 기업들의 따뜻한 요람 Sumostory 스타트업 기업이 대중적 인지도를 얻기까진 오랜 세월이 걸린다. 가혹한 현실이지만, 셀 수 없이 많은 기 업들이 고객들에 도달하지 못한 채 실패하는 일도 다반사다. 여러 차례 사업에 실패했던 경험이 있는 크 리스 청은 스타트업 기업들이 그들의 잠재력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플랫폼을 만들고자 했다. 그가 스타트업 기업을 위한 스타트업 기업 스모스토리를 만든 이유다. 스모스토리는 알고리즘을 활용해 기업의 데이터를 구성하며, 이러한 정보를 토대로 기업과 매체를 매 칭시킨다. 이 과정을 통해 스타트업 기업들에게 오아시스와도 같은 언론보도가 나오는 것도 순식간이 다. 스모스토리의 가장 큰 장점은 갓 태어난 스타트업 기업들도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이다. 일 반적인 홍보대행사들이 한 달에 5,000달러(약 530만원)의 비용을 받는데 반해, 스모스토리는 여섯 달 에 1,800달러(약 190만원)의 기본비용을 받는다. 만족하지 못한 고객들에 “100% 환불 보장됩니다”고 할 만큼 서비스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스모스토리는 2017년 8월 막 설립된 곳이지만, 업계에서 좋은 평판을 얻고 있다. 블룸버그, 스트레이트 타임즈, 비즈니스 타임즈, CNBC 등 다수의 유명매체들과도 업무제휴를 맺고 있다. 드레스 렌탈 스타트 업 기업인 싱가포르 코브텔라의 창립자이자 스모스토리의 서비스를 이용했던 캐롤 첸은 “싱가포르 대 표일간지인 스트레이트 타임즈의 한 페이지를 빌려 우리를 알린 적이 있다.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최적 의 결과물을 얻어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각박한 비즈니스 세상에서 생존을 건 투쟁을 하고 있는 스타트업 기업들. CEO 크리스 청은 그들이 한 번쯤은 스스로를 알릴 기회를 얻길 바랐다. 그의 바람은 순탄한 항해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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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ight to Be Fat or the Right to Health?
No one likes fat-shaming. Our generation
This was the underlying argument for
to take annual checkups measuring
has it that people—all people—have
Japan’s 2008 ruling of its “Metabo
their waistlines administered by their
the right to be whatever size they want,
Law”, named after metabolic syndrome
local corporations. Since 2008, the
be it super slim or obese. The so-called
which is a collection of symptoms that
Japanese government was bent on
“right to be fat” was clearly stated in anti-
can lead to diabetes and heart disease.
shrinking the overweight population by
discrimination lawyer Yofi Tirosh’s 2012
For a country that has consistently had
25 percent by 2015. Comparable figures
article that “the law should recognize a
one of the lowest obesity rates out of all
for obesity rates in 2008 are unclear as
new realm of liberty: the realm of body
OECD nations—averaging 3.6% obesity
measurements were not officially taken
size” and that everyone should “scrutinize
amongst adults (15 years and older) in
in the past. But fast-forward to 2017, and
governmental policies aiming to create
2014—it came as a surprise that national
Japan now has the lowest obesity rate
incentives for losing weight.”
authorities would see a need to take out
amongst OECD nations with 3.7% obesity
Tirosh argues throughout the course
the measuring tape. Professor at Tokai
(South Korea comes in second lowest at
of her article that it is strange for
University’s School of Medicine Yoichi
5.3%).
a government to impose any laws
Ogushi even said that there was “no need
Although Japan’s current figure does not
prohibiting weight gain when it ensures
at all” for the Japanese to lose weight.
differ greatly from its 2014 measurement,
freedom of personal choice in matters
It is said, however, that growing concern
it seems government regulations have
ranging from sexual orientation,
over health costs for a large elderly
effectively kept the national weight in
contraception, and numerous aspects of
population resulted in the government
check.
matters considered private to individuals.
taking preventive measures. Strictly
Interestingly enough, sumo wrestlers are
But when organizations such as the World
speaking, the Japanese government does
also placed under the same government
Health Organization (WHO) began laying
not outlaw citizens from being overweight,
restrictions when they, too, become 40
out the facts: that worldwide obesity has
but it imposes a fine on companies if
years old. Fortunately, most wrestlers
nearly tripled since 1975, that 41 million
a percentage of their workers’ waist
retire in their mid-thirties, before time for
children no older than 5 were overweight
circumferences exceed the state limit
the checkups (Nihon Scope).
or obese in 2016, and that cardiovascular
of 90cm for women and 85cm for men.
What remains debated is the issue of
disease (considered the common health
These numbers adhere to the standards
personal choice and privacy; and whether
consequence of obesity) was the leading
given as a guideline by the International
the negative light imposed on overweight
cause of death in 2014, the words “obesity
Diabetes Federation to prevent lifestyle-
individuals will only cause more anxiety in
is preventable” on the WHO’s main page
related diseases.
Japanese society.
suggest the value of the right to live, and
Under the Metabo Law, people between
the right to live a quality life.
the ages of 40 and 74 are requ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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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 Eui-mi Staff Reporter
뚱뚱하다는 이유로 핀잔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지나칠 정도로 마르든 아니면 살 이 찌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체형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2012년 인권변호사 요피 티로시가 기고문을 통해 “법은 체형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감량에 인센티 브를 부여하는 정책들이 과연 옳은 것인지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하며 이른바 ‘뚱뚱할 권리’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그녀는 “동성애, 피임, 개인의 사생활 등 여러 사안에서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 는 시대에 정부가 오히려 체중 증량을 금지하는 법안을 시행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같은 단체들이 제시한 자료들에 의하면 1975년 이래 비만인구는 약 세 배 가량 증가했으며, 2016년엔 전세계 5세 이하의 어린이 4,100만이 과체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비만과 관련 있 는 것으로 알려진 심혈관 질환을 앓는 환자가 갈수록 증가하자 WHO는 2014년 “비만은 예방할 수 있다” 는 문구를 웹사이트 메인 페이지에 내걸기도 했다. 이들은 ‘살 권리’와 ‘나은 삶을 누릴 권리’를 위해 비만 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만에 대한 전세계의 주의가 환기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은 2008년부터 이미 ‘메타보 법’이라는 관련 법률을 시행해 왔다. 이 법은 당뇨병이나 심장질환을 야기할 수 있는 메타볼릭 신드롬(비만·고혈당·고 중성 지방 혈증·고(高)콜레스테롤 혈증·고혈압 등의 위험 인자가 겹쳐진 상태)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됐 다. 그런데 놀랍게도 법안을 시행하고 있는 일본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마른 나라’ 다. 15세 이상 인구 중 비만인구가 약 3.6%에 불과하다. 토카이 의과대학 요이치 오구시 교수가 “일본은 체중을 감량할 필 요가 전혀 없다”고 말할 정도다. 엄밀히 말하면 일본 정부는 국민들이 비대해지는 것을 법적으로 금하진 않는다. 대신 기업 직원들의 허 리둘레가 기준치(남자 85cm, 여자 90cm)를 초과할 경우 기업에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이 수치는 사람 의 생활습관과 관련된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마련된 국제당뇨병연맹의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이다. 일본 은 법이 시행된 2008년부터 2015년까지 과체중 인구를 25% 줄이는데 초점을 맞춰왔다. 메타보법 아래 40~74세 사이의 성인은 매년 허리둘레를 측정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시행 이후 몇 년 간 비만인 구 수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관련 법과 다양한 프로그램 등으로 일본 정부는 국가가 비대해 지 는 것 만큼은 효과적으로 막은 듯 보인다. 덕분에 일본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비만율을 유지해 오고 있다. ‘개인의 선택과 사적인 영역을 사회가 침범할 수 있는가’라는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비만인구 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일본 사회 전반에 더 큰 불안을 야기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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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â&#x20AC;&#x2022; 79 Interview
2018
02
74
SEYRAN ATES Alessandra Bonanomi Staff Reporter
A New, Feminist, LGBT Supporter, Face of Islam Everything started on September 11th, 2001: four coordinated terrorist attacks by the Islamic terrorist group al-Qaeda killed 2,996 people and injured over 6,000 others. It was a moment Western countries realized they were not untouchable. Then came the war in Iraq (2003-2011) and Afghanistan (2001-present), the death of Osama Bin Laden (2011), and the birth of ISIS (2004-2006). According to Europol (European Union Agency for Law Enforcement Cooperation), Islam-attributed terror attacks in the European Union increased starting in 2014. In fact, it is said that more than 15 terror attacks took place in Europe. In 2016, a total of 142 failed, foiled, and completed attacks were reported by eight EU Member States. More than half (76) of them were reported by the United Kingdom alone. France reported 23 attacks, Italy 17, Spain 10, Greece 6, Germany 5, Belgium 4, and the Netherlands, 1 attack. In 2016, 142 victims died in these terrorist attacks and 379 were injured in the EU. France and the UK were hit the hardest by terrorists. On March 2017, in London, hundreds of Muslims condemned the Westminster bridge terror attack. Using the hashtag #notinmyname, families, students, and mosque leaders joined the demonstration to keep their distance away from Muslim extremism. Apart from this group of people, Muslims from all over the world have tried to condemn all previous terror attacks. And besides these words of condemnation, there is one rising voice: Seyran Ateş, a Turkish-born lawyer and human rights campaigner, who pursues one of the most revolutionary concepts related to the Islam world. “They are not just terrorists: they are Islamic terrorists,” she once declared. Ateş’ idea is based on the logical argument that there is a problem inside Islam because members of Isis, Boko Haram, and Al Qaeda kill in the name of Islam. Seyran Ateş is also the founder of a liberal mosque in Berlin that allows both men and women to pray side by side. The Ibn Rushd-Goethe mosque first opened its doors in Berlin’s Moabit district in 2017. Housed in the side-building of a Protestant church, the mosque is open to Sunni, Shia, Alevi, Sufi and other interpretations of Islam. From the very outset, Seyran Ateş rejected visitors wearing the burqa or the niqab. Her philisophy is that “there is no Islamic requirement [to cover one’s head]. There is no theological argument even in the most conservative interpretation of the Qur’an. [...] In Germany, more and more women are veiled. You see children of four or five wearing headscarves. Women in North Africa are fighting not to wear the hijab while western women are fighting to wear it. I’m on the side of women worldwide who don’t want to be veiled,” she said in an interview with The Guardian. As a Turk of part-Kurdish descent, Seyran Ateş arrived with her parents in the West Berlin neighborhood of Wedding in the late 1960s when she was 6. She then was educated and became a lawyer focused on women’s rights. In our time of debate regarding gender equality and instability caused by Islamic terrorism, she is is a breath of fresh air—far from being rhetorical, Seyran Ateş portrays concrete hope for her community and it may just be that her voice will give power to bring about change in the Muslim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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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are some of your upcoming projects?
the problem is what it represents and what the women, who
I have currently 4 different projects that I have been working on
wear headscarves, want to represent with it. Most of the women
and that will be my priority in 2018. First, I have been investing
that I have spoken say they wear it because they want to hide
a lot of time and energy into expanding and developing the
their hair from men since it could arouse them—this is exactly a
mosque—to integrate more networking and begin cooperating
concept of society that I disagree with. The headscarf and the
with partners. At the same time, I have also been supporting
veiling usually represent a society that has a clearly restrictive
the European Citizens Initiative, “Stop Extremisms”. For this
view of how men and women are to behave. It stands for a
campaign, we must collect 1 million signatures in Europe so that
society in which the genders are separated and interaction is cut
the European Commission would be obligated to act upon the
to a minimum. This is not the society that I want to live in so I’m
request and on behalf of the campaigners, propose measures to
politically fighting against it. I fight against the political idea, not
counter extremism in Europe. Besides these two projects, I am
the cloth.
a board member of a refugee shelter situated in Berlin and am a lawyer working for that cause. As you can see, I’m sure that 2018 will keep me just as busy as 2017.
Would a woman who is well-educated and who considers herself a feminist choose to wear a burqa? Nothing is impossible under the sun, but it would be a very
You are known to have a strong opinion about headscarves. Can you explain this? For me, the problem is not the headscarf itself. What bec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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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nge idea of feminism that she represents.
Ludovic-Mohamed Zahed, an imam based in France,
celebrates same-sex marriage. What do you think about this? Would you take the same stance at your own mosque in Berlin?
as a lawyer and all the muslims who are now expressing their gratefulness for the mosque I opened continue to movtivate me to keep going.
Ludovic-Mohamed Zahed is a good friend of mine and he has been to our mosque several times. He has also wedded couples in our mosque. So, yes, of course we do the same at our mosque. That is what we stand for.
You are under special protection since you began to receive death threats. How do you handle this situation? Have you ever regretted something you did? I have never regretted anything as I am a very grateful person.
In the graphic novel, Persepolis, the Iranian writer escaped to France and was unable to attend her grandmother’s funeral when she passed away. The last sentence of the book is, “Freedom always has a price”. What was the highest price you had to pay thus far in your life for being free to express and communicate your thoughts?
I am also very grateful for the police protection that Germany is offering me. Without that, my work would be impossible. There are many people in the Arabic world who think and believe like I do, but would be killed for saying those things publicly. I also work to be the voice for those individuals.
I have been shot once and almost died. The near-death
The year of the dog is approaching. What is your biggest wish for 2018?
experience has taught me that my activism is treading on
My biggest hope is that more liberal mosques would be
many people’s toes. But all the women that I was able to help
established in Eur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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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주의 이슬람단체의 테러가 최근 몇 년 사이 유럽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2016년에만 총 142차례의 테러 시도가 적발됐으며, 영국은 2017년 한해 동안 수 차례 벌어진 대형 테러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유럽조차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의 위협으로 신음하는 가운데, 독일 베를린에 서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가 있다. 터키 소수민족 쿠르드 족 출신의 변호사이자 인권운동가인 세이란 아테스다. 세이란 아테스는 보 수적인 이슬람이 느끼기에 도발적일 수도 있는 선언을 한 적이 있다. “테러를 자행하는 이들은 단순한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그들은 ‘이슬람’ 테러 리스트다.” 그녀는 ISIS, 보코하람, 알 카에다 등의 테러단체가 이슬람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는 현실은 이슬람 내부의 문제에서 기인한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2017년 7월 세이란 아테스는 독일 베를린에 ‘자유주의 모스크’를 세웠다. 이 사원에서 남성과 여성은 나란히 착석할 수 있다. 또한 수니, 시아, 알 레비, 수피 등 각기 다른 종파의 사람들도 이 곳에선 한 마음으로 기도 드린다. 기존의 모스크들과 비교했을 때 매우 파격적이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녀는 이 곳을 방문하는 무슬림 여성이 부르카나 히잡을 쓰지 말 것을 요구했다. 아테스는 이에 대해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 사원은 사람의 얼굴을 가리는 이슬람의 규율을 따르지 않는다. 이슬람 경전 꾸란의 해석도 이 곳에선 통용되진 않는다. 나는 얼굴을 가리지 않길 원하는 전세계 모든 여성의 편에 설 것이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매거진 N>은 이슬람의 혁명을 이끌고 있는 세이란 아테스와의 인터뷰를 전한다.
현재 어떤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가.
크에서 여러 커플들의 결혼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2018년엔 4가지 일에 집중할 계획이다. 가장 많은
개인적인 친분을 차치하고 답하자면, 우리도 당연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고 있는 것은 모스크의 개
히 동성애를 지지한다. 우리 모스크는 이름 그대로
발과 확장이다.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파트너들과의
자유를 상징한다.
다양한 협업을 진행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 럽시민사회가 벌이고 있는 ‘극단주의를 멈춰라’ 캠
이란 작가 마르잔 사트라피의 자전적인 이야
페인도 내가 집중하는 일 중 하나다. 우리는 유럽에
기를 그린 작품 ‘페르세폴리스’에서 주인공은
서 100만명의 서명을 모아 유럽연합 집행기관에 제
프랑스로 탈출했지만, 할머니의 장례식엔 참
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석할 수 없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자유
제재를 가하는 조치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를 얻기 위해선 그에 따른 대가를 지불한다”
이와 별개로 나는 베를린에 있는 한 피난캠프의 이
라는 문장이 있다. 당신이 ‘생각을 표현할 자
사회 일원이자 변호사라는 직함을 달고 있다. 두 활
유’를 누리기 위해서 치러야 했던 가장 큰 대
동도 나의 주요한 업무들이다. 2017년도 그랬지만 2018년에도 매우 바쁠 것 같다.
가는 무엇이었나. 총격을 당해 거의 죽을 뻔한 적이 있다. 생사를 넘 나들면서 느낀 것은 나의 활동을 많은 사람들이 불
무슬림 여성의 스카프 착용에 대해 매우 강경
편해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내가 도
한 태도를 보여왔다.
움을 줬던 많은 여성들과 내가 지은 모스크를 방문
내가 문제로 삼는 것은 단순히 스카프가 아니다. 스
하는 이들이 내게 고마움을 표한다. 내가 계속 나
카프로 여성을 규제하는 사회다. 그동안 만나온 여
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성들 대다수는 남성을 자극할 지 모르는 머리를 가 리기 위해 스카프를 착용했다고 말했다. 여성이 스
큰 사고를 당한 이후 특별 경호대상이 됐다.
카프를 두르는 사회는 남성과 여성의 행동에 제약
당신이 했던 일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나.
을 두는 사회를 상징한다. 또한 그 사회에선 남녀간
내가 한 그 어떠한 행동에도 후회한 적이 없다. 오
의 소통도 최소한으로 제한돼 있다. 분명히 말할 수
히려 감사한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사고 후 독일
있다. 내가 바라지 않는 사회다. 나는 단순히 의상과
측에서 먼저 경호를 제안해줬다. 덕분에 활동을 이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사회가 가하는 제
어갈 수 있었다. 아랍권에는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
약과 맞서 싸우고 있다.
들이 많다고 믿는다. 이들은 다만 의사를 표현할 자 유를 누리지 못할 뿐이다.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대
프랑스의 이슬람 성직자 루도빅-모하메드 자
변하기 위해 존재한다.
헤드가 동성애를 지지해 논란의 중심에 선 적 이 있다. 베를린 자유주의 모스크는 이에 대
2018년이 막 시작됐다. 올 한해 당신의 가장
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나.
큰 바람은 무엇인가.
루도빅-모하메드 자헤드와는 친한 사이다. 그는 우
다른 것 없다. 더 많은 자유주의 모스크들을 유럽에
리 모스크를 종종 찾아오곤 한다. 또한 우리 모스
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78
“단순히 스카프가 문제는 아니다. 스카프로 여성을 규정하는 사회가 문제다. 그동안 만나온 여 성들 대다수는 남성을 자극할 지 모르는 머리를 가리기 위해 스카프를 착용했다고 말했다. 여성 이 스카프를 두르는 사회는 남성과 여성의 행동에 제약을 두는 사회를 상징한다. 또한 그 사회 에선 남녀간의 소통도 최소한으로 제한돼 있다.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내가 바라지 않는 사회다. 나는 단순히 의상과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사회가 가하는 제약과 맞서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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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 103 Culture 104 ― 105 Books
2018
02
Hi,POP
å±&#x2022;
ROY LICHTENSTEIN ANDY WARHOL ROBERT RAUSCHENBERG KEITH HARING ROBERT INDIANA
m conte mporary 2017.12.15.~2018.04.15.
Weekday 11:00AM-8:00PM Weekend 10:00AM-7:00PM Every last Wed 11:00AM-9:00PM
Public Holidays, Every second, fourth Mon Closed
82
Art Obsession Alessandra Bonanomi Staff Reporter
Inside the exhibition The M Contemporary Art Center in Seoul
in 1949. Warhol went on to become an
is hosting Hi,POP, an exhibition expressing
illustrator for Glamour magazine, which
the pop art movement. The exhibition is,
placed him as a leading figure in the
until April 15th, 2018, featuring 157 works
1950s Pop Art movement. Warhol’s aesthetic was a unique convergence of fine art mediums such as photography and drawing with highly commercialized components revolving around household brand and celebrity names. Garnering international attention for his unique productions, Warhol’s artworks introduced a fascinating new form of artistic expression. In 1961, Warhol unveiled the concept of Pop Art and showcased a collection of paintings that focused on mass-produced commercial goods. In 1962, he exhibited his iconic paintings of Campbell’s soup cans. He went on to showcase works depicting hamburgers and Coca Cola bottles, alongside portraits of quirky
of famous pop artists such as Robert
celebrities such as Mick Jagger, Elizabeth
Rauschenberg, Roy Lichtenstein, Keith
Taylor, and Marilyn Monroe. He employed
Haring, Robert Indiana, and Andy Warhol.
several mediums to create his works,
“In the future, everyone will be world-
including photography, silk screening,
famous for 15 minutes,” Andy Warhol
and printmaking. In 1964, Warhol opened
once said. Born Andrew Warhola (1928 –
his own art studio called “The Factory”,
1987), he was an American artist, director
where he worked and liaised with the
and producer who was a leading figure
elite of his society. On June 3, 1968,
in the visual art movement known as Pop
radical feminist Valerie Solanas shot Andy
Art.
Warhol, severly injuring him. However, the
In 1942, Warhol enrolled at Schenley High
attack did not stop his artistic endeavors.
School, and after graduating in 1945, he
In his later years, Warhol founded
studied Commercial Art at the Carnegie
Interview Magazine and wrote several
Institute of Technology. He earned a
books, including The Philosophy of Andy
Bachelor of Fine Arts in Pictorial Design
Warh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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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Indiana, one of the preeminent figures in American art since the 1960s, is the second big name of this exhibition. Born in 1928, he has played a central role in the development of assemblage art, hard-edge painting, and Pop art. Indiana created a highly original body of work that explores American identity, personal history, and the power of abstraction and language, establishing an important legacy that resonates in the work of many contemporary artists who make the written word a central element of their oeuvre. Although acknowledged as a leader of Pop, Indiana distinguished himself from his “Pop peers” by addressing important social and political issues and incorporating profound historical and literary references to his works. Indiana’s best-known image is the word LOVE, all in upper-case letters, arranged in a square with a tilted letter “O”. The iconography first appeared in a series of poems originally written in 1958, in which Indiana stacked LO and VE on top of one another. The red, green, and blue image was then created for a Christmas card for the Museum of Modern Art in 1964. It was put on an eight-cent U.S. Postal Service postage stamp in 1973, the first of the regular series of “love stamps”. In 2008, Indiana created an image similar to his iconic LOVE but this time, showcasing the word “HOPE”, and donated all proceeds from the sale of reproductions of his image to Democrat Barack Obama’s presidential campaign, raising a net profit of $1,000,000. The Obama campaign sold T-shirts, pins, bumper stickers, posters, pins and other items adorned with HOPE. Editions of the sculpture have been released and sold internationally and the artist himself has called HOPE “Love’s close relative”. For Valentine’s Day 2011, Indiana created a similar variation on LOVE for Google,
84
which was displayed in place of the
had turned to prints on silk, cotton, and
search engine site’s normal logo.
cheesecloth, as well as constructions of
At Hi,POP exhibition, there is also a space
cloth, paper, and bamboo in an Oriental
for a dadaist: born Milton Rauschenberg
manner.
in Texas (1925), Robert Rauschenberg
The pop art movement was also a
was an American painter and graphic
stage for graffiti art. The art of graffiti is
artist. Rauschenberg’s first paintings
represented by Keith Haring (1958-1990),
in the early 1950s comprised a series
an American graphic artist and designer.
of all-white and all-black surfaces
With fellow artists Kenny Scharf and
underlaid with wrinkled newspaper. In
Jean-Michel Basquiat, Haring immersed
subsequent works, he began to explore
himself in the punk clubs and street art
the possibilities of making art from such
scene of New York. In 1981, he began
objects as Coca-Cola bottles and traffic
drawing graffiti in the subways of New
cones, calling them “combine” paintings.
York. These would eventually grow to be
He then experimented with the use of
in the thousands with his lively images
newspaper and magazine photographs
and “cheeky outlawed” images.
in the 1950s, devising a process using
Haring began making large outdoor
a solvent to transfer images directly to
murals,executing them in Rio de Janeiro,
canvas.
Berlin, Melbourne, Chicago, Atlanta, and
At around1962, he borrowed from Andy
elsewhere, often assisted by scores of
Warhol the silk-screen stencil technique
children. He was socially conscious, and
for applying photographic images to large
his murals often reflected his position
expanses of canvas, unifying the images
on social issues. He sought to raise
compositionally with broad strokes of
awareness of AIDS and fought against the
paint reminiscent of abstract expressionist
proliferation of illegal drugs. Haring died
brushwork. By the 1970s, however, he
of AIDS complications at age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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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fth and last artist of whose works are exhibited is Roy Lichtenstein. Born in 1923, he was an American painter. At the start of his artistic career, Lichtenstein painted themes from the American West in a variety of modern art styles. His interest in the comic-strip cartoon as an art theme probably began with a painting of Mickey Mouse and Donald Duck. In the style of comic strips, Lichtenstein used words to express sound effects. He developed a detached, massproduced effect by outlining areas of primary color with thick black lines and by using a technique that simulated benday screening. Through his comprehensive studies of Picasso, Mondrian and Matisse’s representative works, Lichtenstein repeatedly found himself emphasizing the significance of the flat plane through linear composition and thick outlines. After the 1960s, Lichtenstein’s works began to include still-life and landscapes, and they were a dramatic departure from his earlier style in his varied usage of brushstrokes as well as in subject matter. At the end of the day, Hi,POP is an exhibition that tries to describe the vastness of the pop art movement, highlighting the different shapes that it took. For such a purpose, there is no better way than covering artists that are “Pop masters”: Robert Rauschenberg, Roy Lichtenstein, Keith Haring, Robert Indiana, and Andy Warh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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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POP-거리로 나온 미술, 팝아트展’(Hi, Pop)이 2018년 4월 15일까지 M컨템포러리 아 트센터(르 메르디앙 서울)에서 열린다. 이 전시회는 로버트 라우센버그, 로이 리히텐슈타 인, 키스 해링, 로버트 인디애나, 앤디 워홀 등 유명 팝아티스트들의 작품 157점을 공개했 다. <매거진 N>은 이들 5인의 팝아트 아티스트를 소개한다. 앤디 워홀은 1962년 캠벨 수프 통조림을 공개하며 팝아트를 대중에 알렸다. 믹 재거, 엘리 자베스 테일러, 마릴린 먼로 등 당대의 스타들을 그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초상화들도 워홀의 명성을 더욱 높아지게 만들었다. 워홀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사진, 실크 스크린, 판화기법들을 구체화했으며, 1964년에는 ‘팩토리’ 스튜디오도 열었다. 이 공간에 서 워홀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다수의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시대를 대표하는 아티스트 로 칭송 받던 그는 1968년 6월 3일 급진적인 페미니스트 작가 발레리 솔라니스에게 총격 을 당해 중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또 한번의 생을 부여 받은 워홀은 말년 에 ‘앤디 워홀의 철학’을 출판해 그의 유산을 후대에 남겼다. 로버트 인디아나는 언어를 추상적인 도형으로 표현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드러냈다. 인디 아나의 대표작은 ‘LOVE’를 형상화한 조각미술품이다. ‘LOVE’는 1964년 뉴욕현대미술관 에 전시되며 유명세를 얻게 됐다. 또한 1973년엔 8센트짜리 우표의 삽화로 들어갔는데, 이는 ‘러브 우표’ 시리즈의 시초가 됐다. 인디아나는 2008년 그의 상징인 LOVE와 유사한 이미지의 작품 ‘HOPE’를 선보였다. 사회, 정치 문제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냈던 그는 이 작 품으로 얻은 모든 수익을 당시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에 기부했다. 오 바마 캠페인도 ‘HOPE’가 새겨진 티셔츠와 핀, 차량용 스티커, 포스터 등을 제작했는데, 이 제품들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인디아나가 전하는 ‘희망’ 이 세상에 울려 퍼진 것이다. 로버트 라우센버그가 1950년대 초반 내놓은 첫 작품은 구겨진 신문이었다. 그는 코카콜 라병과 바리케이트를 한 작품 안에 녹여내면서 새로운 예술양식의 가능성을 엿봤다. 라 우센버그는 더 나아가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 기법을 차용했으며, 이미지를 보다 돋보 이게 표현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강구했다. 1970년대 들어서는 실크와 천, 무명 등에 그림 을 그리며 동양의 소재에 작품을 표현하는가 하면 이후에는 석판인쇄 기법까지 동원했 다. 라우센버그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이를 실현해낸 혁신가였다. 키스 해링도 팝아트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동료인 케니 샤프, 장 미쉘 바 스키아와 함께 펑크 클럽, 뉴욕 스트리트 아트씬을 주목했다. 해링은 1981년 뉴욕 지하철 에 그래피티를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 그래피티는 불법이었지만 해링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뉴욕의 지하철에 차곡차곡 쌓이던 해링의 그래피티는 어느덧 수천 에 이르렀고, 그는 무대를 넓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독일 베를린, 호주 멜버른 등 세 계로 진출했다. 그러나 천재의 삶은 그리 길지 못했다. 그는 31살의 이른 나이에 에이즈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미국의 대중문화인 만화를 회화에 도입한 아티스트다. 미키 마우스 와 도널드 덕을 그린 작품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는 4컷 짜리 만화에 말풍선을 넣은 작품들을 주로 선보였다. 얇지만 선명한 검은 테두리와 여백을 메운 점들도 리히텐 슈타인 작품들의 특징이다. 이 점들은 기계가 대량인쇄하는 과정에서 생긴 점들로, 팝아 트가 창시됐던 시대의 배경인 대량생산과도 맞닿아 있다. 1960년대 들어 리히텐슈타인은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피카소, 몬드리안, 마티스의 작품들을 연구하면서 기존과는 전혀 다른 정물화와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전보다 더 다양한 주제를 다뤘고, 진일보한 기술도 선보였다. 당시 저평가받던 만화를 예술로 승화시킨 이가 리히텐슈타인 이었다.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무엇이 예술인가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았기에 더욱 진 화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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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 tastes 글 이주형
여전히 추운 겨울이다. 날이 추우니 모든 것이 얼어붙는다. 굳어버린 몸과 마음을 녹여줄 편하고 따뜻한 음악을 하는 두 팀을 소개한다.
대학교 수행과제 만들다 데뷔한 벨 앤 세바스찬 영국은 어느 순간 멋있는 나라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옷, 영화, 패션까지 웬만한 멋있는 것들은 영국에서 주 로 나온다. 그런데 영국의 북쪽에 위치해 있는 이웃나 라 스코틀랜드도 이에 뒤지지 않는 멋진 것들을 창조 하는 나라다.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 영화 트레인 스포팅(Trainspotting)은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를 배경 으로 제작됐고,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누린 브릿팝 밴 드 트래비스(Travis)도 이 곳에서 나왔다. 빼놓을 수 없 는 이름이 하나 더 있다. 밴드 벨 앤 세바스찬(Belle & Sebastian)이다. 밴드를 만든 장본인 스튜어트 머독(Stuart Murdoch-보 컬, 어쿠스틱 기타)은 1990년대 초반 영국의 락밴드 펠 트(Felt)를 동경해 밴드를 결성할 꿈을 품고 영국 런던 으로 떠났다. 하지만 그만의 아이돌을 찾지 못한 채 스 코틀랜드 글래스고로 돌아오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1996년 1월, 글래스고의 한 카페에서 벨 앤 세바스찬 (Belle & Sebastian)의 역사는 시작됐다. 스튜어트 머독 (Stuart Murdoch-보컬, 어쿠스틱 기타)이 스튜어트 데 이비드(Stuart David-베이스, 아코디언)와 만나 밴드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한 것이다. 대학에서 뮤직 비즈니스 를 전공했던 이들은 같은 학교의 멤버들을 하나 둘씩 모았고, 이윽고 7명의 멤버가 모인 밴드가 결성됐다. 결성 초기 벨 앤 세바스찬은 대학 전공의 수행과제(!)였 던 싱글음원들을 학교 레이블인 일렉트릭 허니(Electric Honey)를 통해 발표했다. 싱글들의 호평에 크게 고무 된 이들은 정규앨범을 내도 성공할 수 있겠다는 자신 감을 얻었다. 이들은 1996년 5월 정규 데뷔앨범 ‘Tiger Milk’를 1,000장 한정, 그것도 LP(바이닐)로만 발매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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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지금은 전설이 된 이 음반은 400파운드(약 60만
12월과 2018년 1월 두 차례에 걸쳐 발표한 EP ‘How to
원)에 거래되고 있다. 벨 앤 세바스찬은 같은 해 2집 ‘If
Solve Our Human’을 통해 지금도 따뜻한 음악을 만들
You’re Feeling Sinister’을 내놨는데, 이는 벨 앤 세바스
고 있음을 입증했다.
찬의 수많은 앨범 중에서도 명반으로 손꼽힌다. 이들은 데뷔 이후 초기 2년 간 어떠한 공식석상에도 모습을 노
안경 낀 너드? 스칸디나비아 품은 얼렌드 오여
출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입소문을 타고 더욱 큰 인기
최근 몇 년 한국에선 ‘북유럽 감성’이라는 단어가 크게
를 누렸다. 이후 발매된 1998년 ‘The Boy with the Arab
유행했다. 음악, 패션, 영화, 디자인, 식당, 카페까지 이
Strap’과 2003년 ‘Dear Catastrophe Waitress’ 등의 음
단어만 들어가도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여길 정도
반도 밴드의 디스코그라피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의 가장 훌륭한 마케팅 수단이었다. 이번엔 북유럽 감
벨 앤 세바스찬은 브릿팝이 득세하던 그 시절 그레이트
성의 진짜배기를 소개한다.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대표
브리튼 섬의 스코틀랜드에서 데뷔했지만, 주류를 따르
하는 싱어송라이터 얼렌드 오여(Erlend Øye)다.
지 않았다. 또한 자본주의에 영합하지 않은 채 그들만
1975년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태어난 얼렌드 오여는 영
의 길을 걸었다. 주축인 머독이 자신의 밴드를 ‘추한 자
국의 락밴드 더 스미스(The Smiths)의 음악을 들으며
본주의가 낳은 산물’이라 표현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
자라왔다. 고등학교 시절이던 1990년대 초반, 친구들과
이는 벨 앤 세바스찬을 크게 얼터너티브/인디락((Alter-
함께 ‘노르웨이의 숲’을 뜻하는 밴드 스코그(Skog)를 결
native/Indie Rock)이라 규정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좀
성해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이 밴드의 이름 역시 영국
더 세밀하게 분류하면 이들의 음악을 어쿠스틱 기타 등
의 밴드 더 큐어(The Cure)의 곡 ‘A Forest’에서 영감을
에 기반한 포크로 보는 이들도 있고, 클래식의 요소를
받았다. 성인이 된 오여는 1996년 영국 런던으로 넘어
락 음악과 결합시킨 챔버팝의 시류로 엮는 이들도 있다.
가 피치퍼즈라는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 그는
2015년 작 ‘Girls In Peacetime Want To Dance’에선 그
영국에서 활동하는 동안에도 스코그에서 함께했던 친
동안 다루지 않았던 유로 댄스-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의
구 아이릭 글람벡 뵈(Eirik Glambek Boe)와 꾸준히 교
하위 장르-를 시도한 적도 있다. 시대의 흐름을 따르기
류했고, 이는 2인조 어쿠스틱밴드 킹스 오브 컨비니언
보단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 벨 앤 세바스
스(Kings of Convenience)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찬만의 음악관을 구축해 온 셈이다.
2001년 정규 데뷔앨범 ‘Quiet Is the New Loud’를 발매
그렇다고 벨 앤 세바스찬이 언제나 평탄한 길만 걸어
한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는 이 앨범 한 장 만으로 사이
온 것은 아니다. 커리어 중간 중간 평단과 팬들의 혹평
먼 & 가펑클(Simon & Garfunkel)과 벨 앤 세바스찬의
을 받은 음반들도 분명 존재하고, 세월이 흐를수록 세
계보를 잇는 포크밴드로 자리잡았다. 조용하고 섬세한
간의 관심도 줄어들어 ‘한물간 밴드 아니냐’는 소리를
포크송을 들고 세상에 나온 얼렌드 오여는 이 지점에서
들은 적도 있다. 그러나 이 밴드는 가장 최근인 2017년
모험을 감행한다. 데뷔작을 낸 지 불과 반년 만에 ‘Qui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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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the New Loud’의 리믹스 앨범 ‘Versus’를 출시한 것이다.
아쉽게도 오여는 최근 활동이 뜸하다. 음식이 맛있다는 이유
그것도 일렉트로니카(전자음악)에 기반해서. 데뷔작과는 다
로(!) 이탈리아로 이주한 그는 2014년 발표한 솔로 앨범 ‘Le-
른 장르였지만,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따뜻한 감성만은 그
gao’ 이후 별다른 결과물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금의 오여
대로 유지하며 호평을 받았다.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 1집 발매
를 있게 한 밴드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는 데뷔작 ‘Quiet Is the
이후 일렉트로니카에 부쩍 관심을 보인 그는 노르웨이 일렉
New Loud’ 만으로 간간히 투어를 돌고 있다. 더 화이티스트
트로니카 밴드 로익솝(Royksopp)과 협업했으며, 2003년 일
보이 얼라이브도 2014년을 끝으로 더 이상 무대에 오르는 일
렉트로닉 음악 위에 그만의 잔잔한 감성을 더한 첫 솔로 앨범
은 없다고 공언했다. 다만 오여는 그의 음악적 근간이 된 노르
‘Unrest’을 발표하기도 했다.
웨이의 베르겐 씬과는 교류를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오여는 2004년 발매한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두번째 정규앨범 ‘Riot on an Empty Street’에선 밴드 초창기 선보였
유행을 타지 않으며 언제 들어도 좋은 음악을 칭하는 클래식
던 어쿠스틱 기타 위주의 음악을 선보였다. 노르웨이 출신의
이란 말이 있다. 벨 앤 세바스찬과 얼렌드 오여의 음악은 그 반
이 밴드는 여기에 피아노, 트럼펫, 첼로 등 다양한 악기를 더
열에 올라섰다. 따뜻하고 편안한 음악을 좋아한다면 이들에게
해 보다 풍성하고 따뜻한 사운드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5년
플레이리스트 한 켠 정도 내주는 것은 어떨까.
의 공백을 깬 2009년,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는 세번째 정규앨 범 ‘Declaration of Dependence’을 발표했다. 피오르드의 조 용하고 평온한 해안이 그려지는 선율을 통해 그들의 음악적 정체성을 확고하게 정립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정규 앨범은 이것으로 끝이다. 물론 오여의 커리 어는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가 전부는 아니다. 얼렌드 오여는 일렉트로닉에도 관심을 보였고, 이는 그가 밴 드 더 화이티스트 보이 얼라이브(The Whitest Boy Alive)를 결 성하는 계기가 됐다. 2003년 독일 베를린에서 결성된 이들은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일렉트로닉 댄스를 지향했다. 2006년 얼렌드 오여가 운영했던 레이블 버블스(Bubbles)를 통해 밴드 데뷔 앨범 ‘Dreams’를 발매했고, 2009년까지 총 3 장의 앨범을 발매했다. 더 화이티스트 보이 얼라이브가 활동 하던 시기는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활동기간과도 겹치는데 오여는 두 밴드를 오가며 각각의 색을 담은 음악을 만들어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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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rather dance with you than talk with you, so why don't we just move into the other room. There's space for us to shake, and 'hey, I like this tune'. Even if I could hear what you said, I doubt my reply would be interesting for you to hear. Because I haven't read a single book all year, and the only film I saw, I didn't like it at all. I'd rather dance than talk with you. I'd rather dance than talk with you. I'd rather dance than talk with you. The music's too loud and the noise from the crowd increases the chance of misinterpretation. So let your hips do the talking. I'll make you laugh by acting like the guy who sings, and you'll make me smile by really Getting into the swing. Getting into the swing. Getting into the swing. Getting into the swing. Getting into the swing. Getting into the swing. Getting into the swing. Getting into the swing. I'd rather dance than talk with you. I'd rather dance than talk with you. I'd rather dance than talk with you. I'd rather dance than talk with you. I'd rather dance than talk with you. I'd rather dance than talk with you.
I'd Rather Dance With You Lyrics by Kings Of Conven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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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ok like looking 글 김보배 이주형
지퍼, 가죽, 파괴, 무질서. ‘99%의 사람들이 관심 갖지 않거나 싫어하는 1%의 문화’는 바조우의 99%를 차지했고, 그는 99%IS-를 만들었다. 펑크록 컬처를 바탕으로 한 99%IS-는 2012년 도쿄컬렉션에서 첫 선을 보 였다. 이 브랜드는 첫 컬렉션부터 레이디 가가, 크리스 브라운, 저스틴 비 버 등 세계적인 스타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99%IS-는 최근 몇 년간 매 킨토시, 죠지 콕스, 캠퍼 등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들과 협업해 왔으며, 10 Corso Como, Dover Streer Market, I.T. 등 각국을 대표하는 편집매장에 도 입점했다. 디자이너 *바조우가 선보인 99%IS-는 어떻게 펑크룩을 대표 하는 브랜드로 사랑 받게 됐을까? 99%IS-의 상징이 된 오리지널 스터드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결과 물로, 바조우의 섬세한 손길이 묻어나 있다. 자유로운 제작을 지향하는 99%IS-는 가죽자켓에 불을 붙이는 등 ‘99%의 다수’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펑크룩을 탄생시킨다. 스터드, 지퍼, 가죽 등 펑크를 상징하는 소재들을 수작업으로 제작해 의상 하나 하나에 입히는 99%IS-. 디자이 너의 장인정신과 펑크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없었으면 세상의 빛을 볼 수 없었다. 바조우의 99%IS-는 그랜드 하얏트 주차장에서 2017 S/S 컬렉션 ‘Against Great Truth’를 선보이며 한국에서도 성공적인 데뷔를 마쳤다. 최근 분더 샵 청담점에서 열린 2018 S/S 컬렉션 ‘MAKE THE FUTURE NOW’에선 독창적인 스타일을 유지하는 동시에 아웃도어의 소재와 디자인을 적용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무대에 오른 모델들도 슈즈 디자이너 이선율의 지원 을 받아 제작된 ‘슈즈 레인커버’를 신고 물에 흥건히 젖은 런웨이를 걸으면 서, 컬렉션의 배경인 ‘비가 온 새벽의 도시’ 이미지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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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조우 (BAJOWOO) 본명 박종우. 1984년 서울 출생. 2003년 서울 ESMOD 입학 후 록밴드 의상 및 아 트워크 제작, 공연 기획 등 펑크록에 관심. 2008년 일본으로 유학, 2012년 도쿄 컬렉 션에서 99%IS-런칭. 2014, 2015 삼성패션 디자인펀드(SFDF) 2회 연속 수상. * 캠퍼투게더 캠퍼와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만든 콜라 보레이션 컬렉션. 2017년 3월 29일~5월 7 일, 10꼬르소꼬모 청담점 9주년을 기념해 99%IS-와 캠퍼가 협업한 세 번째 캠퍼투게 더를 개최. 이 프로젝트에서 99%IS-는 펑 크룩과 펑크 인 브리튼 사진 백여 점, 캠퍼 X 99%IS- 콜라보레이션 슈즈 컬렉션을 전 시. 10꼬르소꼬모와 협업한 의류와 모자 등 한정판 캡슐 컬렉션도 함께 소개.
Asia » Japan
Zippers, leather, destruction, and disorder. “That 1% of culture that 99% either hate or pay no attention to” makes up 99% of Bajowoo—the maker of punk brand 99%IS-. Based on underground punk-rock culture, 99%IS- made its debut in the 2012 Tokyo Collection and since its introduction, the brand has captivated audiences in its collaborations with world stars such as Lady Gaga, Chris Brown, and Justin Bieber. Recently, 99%IS- also worked on joint projects with global brands Mackintosh, George Cox, and Camper, not to mention the brand’s entrance to the internationally renowned fashion editing stores 10 Corso Como, Dover Streer Market, and I.T. The original studs that are the trademark of 99%IS- were first borne through much research and the weathering of Bajowoo’s hands in hours of trial-and-error. Finally, it is his genuine leather jackets that speak of freedom in creation that newly express the world of punk-rock.
CAMPER X 99%IS- “Our Nation” EXHIBITION (At 10CORSOCOMO CHEONG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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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to go 글 김보배 이주형
http://instagram.com/cafe.idaho
OPEN Weekday : 2pm-10pm Fri : 2pm-11pm Sat : 1pm-11pm Sun : 1pm-10pm Wed : Day Off ADDRESS 2F. 338-79, Mangwon-dong, Mapo-gu, Seoul TEL +82 70 8871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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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AHO.
아이다호.
The ending credits of the film My Own Private Idaho(1991) read, “have a nice day”. IDAHO in Mangwon, Seoul—named after the movie and a space created by Kran (Kang Kyeong-hoon), member of electronic band Hidden Plastic, and Artist Fantastic Rin Rin (Oh Sae-ae)—boasts a mix of café and pub, offering visitors quality coffee, wine, and delicious food. To a corner one can see customized eco-bags, postcards, and mugs created by IDAHO with the help of a designer. At another end, the various works of artists are displayed as a small exhibit. And in its unconventional way of “free entrance” and “paid exit”, IDAHO hosts its concerts returning all profits to the artists themselves. There are also several workrooms available for guests towards the back of its exhibition displays; they include a diverse selection of cultural lectures for any interested in exploring their own artistry. At the end of the workshops, people are able to leave with their handmade creations. The unusual harmony of IDAHO’s painted colors on the walls, sofas, and even on the handmade tables, together with the neon “have a nice day” make for a truly novel experience. Of course, the space remains the playground of Kang Kyeong-hoon and Oh Sae-ae’s dreams, but now it is also a place many enjoy as a personal hideout; their own Idaho. Near the end of the film, River Phoenix in My Own Private Idaho says, “I’m a connoisseur of roads. I’ve been tasting roads my whole life.” Likewise, IDAHO in Mangwon presents to its guests a chance to taste all that they want in their unique IDAHO-day.
“have a nice day” 영화 ‘My Own Private Idaho(1991)’의 엔딩크레딧이다. 서울 망원동의 ‘IDAHO’(아이다호). 동명의 영화에 영감을 받아 일렉트로닉 밴드 ‘히든플라스틱’ 의 크랜(강경훈)과 비주얼 아티스트 판타스틱 린린(오세애)이 만든 공간이다. 카페와 펍을 기반 으로 한 이 곳은 커피와 술, 음식을 갖추고 있다. 아이다호의 한 켠엔 디자이너와 아이다호가 직접 제작한 에코백, 엽서, 머그잔 등을 판매하는 마켓이, 별도의 공간에선 여러 아티스트들의 전시회가 열린다. 아이다호는 ‘무료입장 유료퇴장’ 이라는 특이한 방식의 공연도 열어 그 수익금을 아티스트에 전달한다. 아이다호는 전시공간 뒤 편에서 다양한 문화강좌를 여는 워크룸도 운영한다. 이 클래스는 누 구나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으며, 강연이 끝날 즈음엔 저마다의 결과물을 성취해 가는 수업을 지향한다. 인테리어 역시 아이다호를 돋보이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직접 제작한 테이블, 형형 색색의 페인트가 뿌려진 벽면과 소파, ‘have a nice day’가 새겨진 네온사인은 묘한 조화를 이 룬다. 애초 아이다호는 강경훈과 오세애의 취향이 담긴 작업실 겸 놀이터였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아지트-복합문화공간-가 됐다. 영화 말미에서 주인공 리버 피닉스는 “세상의 모든 길을 맛볼거야”라고 말한다. 이 말처럼 아 이다호는 이 곳을 찾는 누구에게나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맛볼 수 있는 ‘멋진 하루’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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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p the asian food 글 이주형
양고기 요리는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는 대중음식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중국식 양꼬치나 일본식 징 기스칸 등은 이제 특별한 날에만 먹는 별미로 보기 어렵다. 그러나 양고기는 동아시아권에서만 향유 하는 음식은 아니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에서 이름을 따온 사마르칸트(SAMARKAND)는 중앙아시아식 양고기 요리를 선보인다. 서울 동대문에서 영업을 시작한 사마르칸트는 현재 여러 곳에 분점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 곳을 방문하기 전에 유념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된 양꼬치 나 징기스칸을 기대하지 말 것. 우즈베키스탄 현지인이 운영하는 사마르칸트는 중앙아시아에서 하 던 방식 그대로 음식을 만들고 내놓는다. 둘째, 세련된 분위기는 기대하지 말 것. 깔끔하고 세련된 식당들의 인테리어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중앙아시아의 분위기가 물씬 난다. 서울 동대문의 사마르칸트 본점. 입구부터 낯선 말이 적혀있는 간판과 배너가 세워져 있다. 식당에 들어서면 중앙아시아의 이국적인 인테리어가 한 눈에 들어온다. 현지인이 운영하고, 또한 이주민들 이 많은 곳에 위치해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고 한다. 테이블 한 켠에는 잘게 썬 빵 조각들이 있는데, 다른 식당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기본 반찬에 해당한다. 메뉴판을 보고 막상 음 식을 주문하려 해도 생소한 음식들이 대다수 일 것이다. 사마르칸트를 처음 방문한다면 에피타이저 에 해당하는 빵 속에 고기(쌈싸)와 양고기꼬치(샤슬릭) 등을 맛보길 권한다. 앞서 밝혔듯, 평소 맛보던 양꼬치나 징기스칸을 기대하고 사마르칸트를 찾은 사람들은 다소 실망할 수 있다. 이들에겐 양고기에서 풍겨오는 진한 냄새가 곤욕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색다른 맛을 느껴 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곳은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 중앙아시아는 높고 험한 산맥, 드넓은 평원, 사막으로 둘러 쌓여 있다. 지리적인 특성으로 인해 지 역 주민들은 오랜 세월 유목생활을 해오며 양, 염소, 말 등을 길러왔다. 이 지역의 음식들이 양고기 를 비롯한 육류가 주를 이루는 이유다. 중앙아시아 양고기 요리는 상대적으로 냄새가 덜 나는 어린 양을(Lamb)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향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중앙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우즈베키 스탄은 양고기를 메인으로 한 바비큐, 꼬치, 볶음밥, 스프 등 다양한 요리가 발달해 있다. 유목민의 전통은 사라져 가고 있지만 이들의 음식 문화는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다.
OPEN 11am-11pm ADDRESS 서울 중구 마른내로 159-21
TEL +82 2 2279 7780 +82 10 8860 5778 빵 속에 고기 : 3,000원 양고기꼬치 : 5,000원 당근샐러드 :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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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르칸트의 메인 요리인 양고기꼬치(샤슬릭). 두툼 하고 큼지막한 양고기가 쇠꼬챙이에 끼워 나온다. 단 누차 말했듯 향이 강할 수 있다. 소고기꼬치를 함께 주문해서 먹거나 러시아 맥주를 곁들여 먹으면 부담 이 덜 하다.
또 하나의 별미 당근샐러드(마르코프 빠 카레이스 키). 따로 먹으면 신 맛이 강하지만 고기에 곁들여 먹 으면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해줄 수 있다. 이 음식엔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한 조선인(고려인)들이 김 치를 그리워하며 만들었다는 슬픈 사연도 담겨 있다.
사마르칸트는 양고기요리 외에도 소고기, 닭고기 등 의 육류를 취급하며 밥, 면, 스프 등 다양한 요리도 내놓는다. 중앙아시아의 맛에 익숙해진 후, 갖가지 식재료로 만들어진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것도 또다 른 즐거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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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 » Seoul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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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완자 꼬치 쯔쿠네
① KUSHIMURA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3길 13 02-333-2650 ?
Personality in Crevices and Corners Seo Eui-mi Staff Reporter
She’s bubbly and energetic; she’s twenty-five. But it’s scary opening up a new chapter in your life. Change calls for courage, especially when you’re young and things are unsure. Still, Lee Young Jae has always been sure of her love for books and writing. She used to look at her grandfather, who would spend hours at his desk writing away, with a sense of awe and respect for the words he set to paper. And writing has become her determination at a time when nothing is certain. Having just finished her final semester at university, Young Jae has a lot more free-time, but she also knows that she now has to begin preparing for the job market. Finding a decent job in Korea is often associated with the words, Baek-su (Korean for “unemployed person” but with a negative connotation) and Hell Joseon (a new phrase meaning “Korea is close to hell and is a hopeless society”)—just about the worst descriptions for one fresh out of college. The level of competition in the market is disconcertingly high and some take months to find their desired occupation. That same uncertainty was written on the faces of four of her friends as they gathered to hear Young Jae’s proposal. She wanted to self-publish a book; with the combined works of the five of them. And that was it. Over a course of 10 months, the group gathered regularly to share their own writing: some were essays, some poems, and others, memories. By December 2017, the book was finally introduced to the public with the title, lost and found—implying the five friends were yet lost and unsure of where to go, but would very soon find their future. “It was a dream of mine to publish my own writing, but I knew I couldn’t do it alone. So, I invited four close friends who also seemed interested. Half of it was because I selfishly wanted to see them more...” (laughs). Now, lost and found will soon enter its second round of printing with the help of Tumblbug crowdfunding and an encouraging community of supporters. In the process, Young Jae
Often, we live without allowing ourselves the time and room to
discovered the value of sincere encouragement and interest; the
take it easy, see the world, be ourselves.
preciousness of even one supportive message. Maybe, it wasn’t about bbali bbali (Korean for “quickly, quickly”) or getting the best-
But as Young Jae writes applications for editing positions at
paying job in the least amount of time. “Sometimes, we can take
publishing companies, she takes a deep breath remembering
one step at a time, doing things we enjoy, building our careers.
her favorite Snoopy quote, “Learn from yesterday, live for today,
At least, that’s how I hope to live.”
look to tomorrow, rest this afternoon” -Charles M. Schul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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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Lee Young Jae Age 25 Nationality Korean
Occupation Undecided Interests Meeting friends, taking walks and watching movies alone
“People have always said I’m like Snoopy. My Dad first called me that as a nickname, and somehow, it stuck. I love Snoopy: his adventurous side, and the way he energizes the people around him with his bright pers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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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누피가 좋아. 어렸을 때 나와 닮았다고 해서 아버지가 붙여 준 별명인데 만 화 속 스누피라는 캐릭터는 항상 밝고 모험심도 강해서 되게 닮고 싶었어. 나 도 주변 사람들에게 늘 밝고 좋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이영재. 그녀는 밝고 명랑하다. 하지만 ‘스물다섯’이라는 나이는 특히 한국사 회가 말하는 ‘반오십’은 불안하다. 대학을 갓 졸업한 ‘취준생’인 이영재는 그러 나 현재의 여유를 만끽하려고 한다. 그녀는 충분히 휴식도 취하고, 친한 친구 들을 만나 마음껏 즐기면서 취업준비도 차근차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가 늘 확신을 가져왔던 것은 글쓰기. 어렸을 적 할아버지가 책상에 앉아 글 쓰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글 쓰는 것이 좋아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 는 꿈을 키워왔다고 한다. 글을 쓸수록 그녀의 열정도 커져만 갔다. 자신의 글을 책으로 만드는 것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혼자 하기에는 버 거워 글쓰기를 좋아하는 다섯 명의 친구들과 함께 책을 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출판 모임을 주도한 그녀가 웃으며 말한다. “무엇보다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다 좋아하는 친구들이어서 ‘이 일을 계기로 더 자주 볼 수 있겠구나’라는 기대도 가지고 (모임을) 시작하게 됐다.” 모임의 이름은 로스트 앤 파운드. ‘길을 잃었지만, 서서히 찾을 것이다!’라는 당시 24 살이었던 친구들의 바람이자 목표가 담겨 있다. 로스트 앤 파운드의 첫번째 작품인 <돌아보니 우리는>은 텀블벅 크라우드펀 딩 시스템으로 2번째 인쇄에 들어갔다.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그녀는 주변인 들이 보내온 격려의 메시지에 더할 나위 없이 큰 힘을 얻었다. 꿈에 그리던 일 을 하면서 깨달은 것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빨리빨리’에 익숙해졌지만, 늘 그 럴 필요는 없다는 것. 그녀는 좋아하는 작가이자 스누피의 원작자인 찰스 슐 츠의 말을 항상 간직하고 있다. “어제로부터 배우며, 오늘을 위해 산다. 내일을 기대하며, 지금은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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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00/5 Colani Collection by Kusch+Co 쿠쉬소파.
1969년 독일의 루이지 꼴라니가 디자인한 소파다. 영국의 공상과학 드라마 <U.F.O> (1970~1973년)의 소품으로도 사용됐다. W 200 cm D 95 cm H 74 cm W 46 kg의 쿠쉬 소파는 40여년간 글로벌 인테리어 디자인의 상징적인 존재로 여겨져 왔다. 자연을 통해 영감을 얻고, 자연의 형태를 산업디자인으로 고스란히 담아내는 루이지 꼴라니는 자그마 한 안경부터 항공기에 이르기까지 산업 분야 전반에 걸쳐 바이오 디자인의 정수를 선보 여 왔다. 루이지 꼴라니의 작품들은 아시아 최초의 전시 ‘자연을 디자인하다. 루이지 꼴라 니 특별전’(~2018년 3월 25일, 서울 DDP 디자인 전시관)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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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 에바디가 겪은 고통과 핍박의 기록 서의미 기자
“나는 잃을 것을 모두 잃었다. 그럼에도 나의 고향, 나의 나라를 위해 끊임없이 일할 수 있어 신께 감 사 드린다.” 이란 최초의 여성 판사, 이슬람권 최초의 여성 노벨평화상 수상자, 이란 아동인권후원협회 창립 회 장. 이란 출신 변호사 시린 에바디를 뒤따르는 타이틀이다. 1947년 이란에서 태어나 테헤란대학 법 과대학을 졸업한 에바디. 그녀는 원래 정치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나라의 법과 윤리를 바 꿔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인권변호사로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돕는 것이 전부였다. 그녀는 꾸란에 기반한 국법에 의해 고통 받는 이들을 변호해 왔기에, 정부로부터 억울한 누명을 쓴 정치범들은 종종 그녀에 도움을 청하곤 했다. 어느 순간 에바디는 진정한 인권을 누리기 위해선 법 이 반드시 바뀌어야만 하는 것을 깨닫고, 이란을 휘어잡은 보수 무슬림 집단과 맞서게 된다. 회고록 <우리가 자유를 얻을 때까지>는 노벨상 수상 이후 그녀가 겪은 고통과 핍박의 기록이다. 2003년, 그녀는 수십년간 주도한 인권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된다. 하지만 모국에서는 그녀가 세계적인 상을 받은 것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아무리 큰 영광이라 할지 라도 노벨상은 서구의 상, 즉 미국의 것에 불과했다. 상을 받은 에바디는 국가의 적과 호흡을 맞춘 반 역자 신세가 됐다. 그 후 정부는 에바디를 의심했고, 그녀가 일하던 법률사무소에까지 수시로 감시원을 보내 일거수일 투족을 파악했다. 정작 에바디 본인은 죄를 지은 것이 없다고 생각해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녀가 변호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란의 이슬람 근본주의 정부로부터 피해를 받은 자들이었다. 그들을 보호하는 과정에서 에바디는 사회취약계층의 아픔을 대중에게 알렸고, 당시 이란 집권층의 권력남 용과 부패를 밝히는 목소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란 정부의 탄압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했다. 당국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가장 사랑하는 가족까지 약점 삼아 그녀를 협박했다. 비극이 비극을 낳아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지점까지 이르렀다. 지금은 영국에서 망명자 신세로 살고 있지만, 에바디는 여전히 고국을 잊지 못 한다. 그녀의 영향력을 통해 이란 여성인권을 비롯한 모든 시민의 인권을 위해 힘쓰고 있다. <우리가 자유를 얻을 때까지>의 끝맺음이다. “이것 하나만은 꼭 알았으면 한다. 정부가 노벨수상자를 이런 식으로 대하는데, 평범한 시민에게는 무엇을 못 하겠는가…”
<우리가 자유를 얻을 때까지> 시린 에바디Ι랜덤하우스Ι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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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and Tea Seo Eui-mi Staff Reporter
“I have lost more than I ever thought possible, but I nevertheless thank God that even from exile I can still work to build my country.” Shirin Ebadi was only ever interested in human rights. It was her delight to sit with the most vulnerable in society and comfort them with words and tea—something she liked to call “tea therapy”. Political abuse and corruption were not priorities, that is, until she realized that true humanity could only be won through the politics of the day. In her haunting memoir, Until We Are Free, former Iranian judge and lawyer Shirin Ebadi recounts her dedication to not only women’s rights in Iran, but also to the nation’s search for peace. After having won the Nobel Peace Prize in 2003 for her human rights activism, many had thought Ebadi’s career as a lawyer would only be met with more success, if not ease. However, her international title was not met with the same honor and respect by many high-ranking officials in her own country. Iran’s conservative ruling factions, many supported by the Supreme Leader, considered Ebadi’s title proof that she was cavorting with secular Western influences and would only threaten Iran’s strict religious status quo. Her work to provide support to those in need—often women, children, and political dissidents—was seen as a direct challenge to the ruling theocracy. In response, authorities resorted to the base tactics of extortion and bullying to get Ebadi to hush up about blatant atrocities committed against innocent citizens. Her job was not to change the law. Indeed, Ebadi believed that Koranic principles were not discriminatory to minorities when properly applied to the law. But when national councils said men could have up to four wives and that a married woman cannot travel without the written permission of her husband—all under the name of Islam, Ebadi made her opinions known and pushed for legal changes. It turned out there was a price that came with change. Life after her Nobel prize was marked by immense tragedy, betrayal by loved ones, and difficulties at every corner. Iran’s most powerful stripped Ebadi bare until she had almost nothing left, save her life. Now, she lives in exile in the UK, unable to return to her beloved homeland. Her words are laced with a particular sadness as she gives in detail memories of trauma and disbelief. Despite this, Ebadi makes it clear that she did not write for herself or simply to wallow in self-pity. Each page resonates with her reminder in one of her final statements, “What you can take away from my personal story is this: if a government can behave in this way with a Nobel Peace laureate…you can imagine what it does to ordinary Iranians.” As Shirin Ebadi continues to be the voice for future generations in Iran, calling them out onto the streets in their fight for justice, it seems that her words and tea did much more than she could have ever imagined. <Until We Are Free> By Shirin EbadiΙRandom HouseΙ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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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불청객 독감, 원인과 예방책
박명윤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아시아엔> 보건영양 담당 논설위원
1918~1919년 사이에 크게 유행한 스페인독감(Spanish flu)으로 전 세계에서 5000만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은 적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사망자수보다 3배나 많은 숫자다. 흑사병(黑死病, Plague)이라고도 불리는 페스트(Paste)가 14세기 유럽 전역을 휩쓸었을 때보다도 훨씬 많은 사망자 가 발생해 지금까지도 인류 최악의 재앙으로 불린다. 독감예방 접종문화는 스페인독감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스페인독감이 처음 보고된 것은 1918년 초여름이다. 당시 프랑스에 주둔하던 미국 병영에서 독감환자가 나타나기 시 작하여 8월 첫 사망자가 나왔다. 이때부터 급속하게 번지면서 치명적인 독감으로 발전하였다. 곧이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미군들이 귀환하면서 미국에까지 확산되어 총 5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1919년 봄에는 영국에서 15만명이 사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오년(戊午年, 1918년) 독감이라고 부르며, 14만명이 희생되었다. 스페인독감 환자들은 감기에 걸린 듯한 증상을 보이다가 폐렴으로 발전하는가 싶더니 피부에서 산소가 빠져나가면서 보랏빛으로 변해 사망했다. 스페인이 독감 병원체의 발원지는 아니지만, 제1차 세계대전 연합국은 이를 ‘스페인독감’으로 불렀다. 스페인이 참전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시 보도 검열이 이뤄지지 않아 스페인의 언론에서 독감 사태가 깊이 있게 다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올겨울 지구촌 전체가 독감(毒感, influenza)으로 끙끙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유럽, 북미, 동아시 아 지역을 위시하여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까지 독감(인플루엔자)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1918년 발생하 여 5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독감’과 1968년 발생하여 100만명이 숨진 ‘홍콩독감’이 유행한 지 각각 100년과 50 년이 되는 해여서 독감 확산을 심상치 않게 보는 시각이 있다. 미국 미네소타대 감염병연구센터 마이클 오스터홈 소장은 스페인독감이 창궐한 100년 전에 비해 인류와 가축, 가금 류 숫자가 4배나 늘었고, 지구촌 곳곳을 쉽게 이동할 수 있으므로 독감이 퍼질 위험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올해 전 세계에 독감환자가 급증한 주요 원인으로 예년과 다른 독감 바이러스 패턴이 꼽히고 있다. 또한 미국 질병관 리센터(CDC)는 이번 겨울 인플루엔자 백신 예방효과가 10% 수준에 그칠 것이고 전망했다. 예년 평균이 45~50%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는 백신 효과를 거의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가 올해 유행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예 측에 실패한 것이 원인이다. 홍역, B형간염 등은 1~3번 예방접종으로 효과가 평생 지속되지만 독감을 예방하려면 매년 백신을 맞아야 한다. 독감 바이러스는 변이가 잘 되는 RNA형 바이러스에 속하기 때문이다. RNA형에 속하는 독감 바이러스는 유전자 변형이 계속 일어나 종류만 200개가 넘으며, 매년 유행하는 독감 바이러스도 조금씩 달라 백신에 들어있는 항원도 매년 바뀐다. 독감 예방 효과는 건강한 사람도 1년 정도만 유지된다. 올해는 다른 유형보다 변종(變種) 출현 가능성이 높은 A형 중 ‘H3N2’ 독감이 이례적인 강세를 보이고 있다. ‘H3N2’ 독감은 지난해 7월 호주에서 집단 발병한 뒤 최근에는 영국과 북미 지역에서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는 지난 연말과 성 탄절을 맞아 가족친지 방문 또는 휴가를 보내려고 호주와 영국, 미국, 캐나다 사이를 오간 비행기 승객 등을 통해 전염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한국에선 2017년 11월 19~25일 외래환자 1000명당 독감 의심 환자가 7.7명으로 집계됐다. 유행 기준인 6.6명을 넘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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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유행주의보’도 발령됐다. 그 1주전인 12~18일에는 1000명당 6.3명이었는데 급속도로 늘어난 것이다. 인플루엔자 유행주의보 발령 시기는 2010년(10월 10일)이후 가장 빠른 셈이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의 바이러스 유형 분석 결과에 따르면 A형이 43.9%, B형이 56.1%로 나타났다. 이번 겨 울에는 이례적으로 A형과 B형 독감이 동시에 유행하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독감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고위험군 은 지금이라도 예방 접종을 받는 게 좋으며, 독감 의심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의료기관을 찾아 진료를 받아야 한다. 감기(感氣, cold)와 독감을 혼동할 수 있는데 사실은 전혀 다른 질환이다. 감기의 원인이 되는 호흡기 바이러스가 주로 활동하는 계절은 추운 겨울이므로 찬바람이 불면 감기환자가 많아진다. 감기를 유발하는 바이러스는 여러 가지 이지만 원인 바이러스별로 구분하지 않고 모두 ‘감기’라고 부른다. 반면 독감(毒感)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라는 독특 한 호흡기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한다. 독감은 오한, 고열, 근육통 등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기침, 가래, 인후통(咽喉痛) 등 감기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 나기도 하지만 정도가 더 심하다. 면역력이 약하거나 합병증으로 폐렴이 생길 경우에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 다. 또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공기 중으로 급속히 전파되므로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감기든 독감이든 걸리면 일단 활동을 줄이고 푹 쉬는 것이 좋다. 발열(發熱)로 인하여 체내 수분이 부족해질 수 있으므로 물을 충분히 섭취하여야 한다. 약물치료는 대증요법으로 열, 두통이 심할 때는 해열진통제, 기침이 심하면 기침약을 먹는 식으로 증상을 완화하는 효과만 있다. 독감 초기에 항(抗)바이러스제를 복용하면 앓는 기간을 줄일 수는 있다. 현재 독감 예방을 위한 ‘꿈의 백신’이 개발되고 있다. 기존 백신은 열쇠-자물쇠처럼 바이러스 표면 돌기의 머리에 맞는 항체를 생산해 바이러스를 억제했다. 그러나 머리를 구성하는 단백질은 변이가 자주 일어나 매년 새로운 백신을 개발해야 한다. 기존 백신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세계 제약업계가 바이러스 종류와 유전자 변이 여부와 관계없이 한 차례 접 종만으로 모든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는 범용백신(universal vaccine)을 개발하고 있다. 2023년께 범용백신이 본 격적으로 상용화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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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을 천재 물리학자로 이끈 ‘감지덕지’
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원불교 청운회 전 회장
감지덕지(感之德之)라는 말은 “과분하게 생각하고 아주 고맙게 여긴다”는 뜻이다. 아무리 힘든 일을 당해도 “이 정도면 얼 마나 다행이냐”고 감지덕지 한다면 그 은혜가 한이 없을 것이다. ‘천재적인 물리학자’ 수식어가 붙어다니는 영국의 스티븐 호킹(76)은 21살 때 루게릭병이라 불리는 근위축성 측색경화 증을 앓아 2년 시한부 삶 진단을 받았다. 그 후에는 설상가상으로 폐렴에 걸려 목소리까지 완전히 잃기도 했다. 한 기자가 “병마가 당신을 영원히 휠체어에 묶어 놓았는데, 운명이란 녀석이 너무 많은 것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다. 호킹은 이렇게 답했다. “제 손가락은 여전히 움직일 수 있고, 제 두뇌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평생 추구하고 싶은 꿈이 있고, 저를 사랑해주고 또 제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습니다.” 호킹은 힘겹게 다음 문장을 완성했다. “아, 그리고 저는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호킹이 가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그가 병마의 고통을 극복하고, 빅뱅과 블랙홀에 대한 그의 이론과 1000만부 이상 팔린 저서 <시간의 역사> 를 저술하는 원동력이 됐다. 얼마나 감지덕지한 일인가? 영어에서 감사를 뜻하는 ‘appreciate’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어떤 사건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감 격스러워 한다는 뜻이고, 또 하나는 가치가 오른다는 뜻이다. 우리가 좋은 물건에 감격스러워하면 그것의 가치는 올라간 다. 인생 역시 그런 것 아닌가? 아주 오래 전 제약회사 직원이었던 전용기란 분이 아침 조깅을 하러 나갔다가 차에 치어 두개골골절 등 14가지 합병 증세로 익산 원광대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간 부인 성원정씨의 놀라움은 표현할 길이 없 었다. 부인은 네 살 된 딸과 생후 45일밖에 안된 딸을 대전의 친정집에 맡기고 월 5만원의 사글세방을 병원 앞에 얻어 남 편의 간병을 시작했다. 전용기씨는 식물인간이었다. 부인은 하루 수십 차례씩 가래를 빼내고,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을 시키는 등 남편 수 발에 최선을 다했다. 고통의 날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무려 5년 11개월이었다. 주위에선 포기하라고 했고, 시댁식구들 도 발길이 뜸해지고 의사들도 합병증세 때문에 얼마 살지 못할 거라며 살아난다고 해도 식물인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 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가까운 사람들은 새 출발하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남편은 급성폐렴 등 합병으로 수많은 고비를 넘겼고, 부인도 4개월만에 쓰러져 입원하기도 했다. 성씨는 평소 배워둔 미용기술로 환자들의 머리를 깎아주고 한 달에 4만~5만 원을 받아 남편의 기저귀를 사거나 약값에 보탰다. 본래 부인은 종교를 믿지 않았다. 그러다가 남편이 사고로 쓰러지면서 병원법당을 다니기 시작했고, 날마다 병원법당 에 나가 남편을 살려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식물인간이라도 좋으니 제발 살아만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런데 남편이 4 년 11개월간의 길고 긴 식물인간의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참으로 감동적인 한편의 인간드라마 아닌가? 진리의 은혜는 순수하다. 은혜는 조건도 없다. 다만 은혜는 감동과 감격 과 감사가 넘칠 뿐이다. 마지막 이야기다. 쿠바의 산타아고 마을에 마리아라는 여교사가 있었다. 그녀는 매일 말을 타고 학교에 출퇴근을 했 다. 어떤 날 남루한 옷차림에 맨발로 학교를 향해 뛰어가는 소년을 보게 되었다. 차림새가 지저분하고 맨발로 뛰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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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 가난한 집 아이임에 틀림없었다. 그 소년이 누구인가를 알아보았더니 자기 학교 학생이었다. 늘 검은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 다. 다음 주 월요일 마리아 선생은 구두 한 켤레를 사서 그 학생에게 주었다. 그 다음해 그 학생은 학교를 떠났다. 세 월이 흐른 후 쿠바의 지도자 카스트로가 권좌에 오르게 되었고, 마리아 선생은 한 신문에 공산주의를 비방하는 글을 썼다는 죄목으로 경찰서에 연행되었다. 그 선생은 곧 바로 정보과장에게 넘겨졌다. 마리아 선생을 본 정보과장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마리아 선생님 아니세요?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옛날에 구 두 사주신 학생이 바로 접니다.” 그는 덥석 손을 잡았다. 구두 한 켤레와 작은 정성이 위기를 모면케 해준 것이다. 덕이라는 씨앗을 뿌리면 덕이라는 열매를 거둔다. 사랑이라는 종자를 뿌리면 사랑이라는 열매를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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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를 권하는 사회
박현찬 스토리로직 대표, 작가 ‘경청ʼ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ʼ
지금으로부터 380여 년 전, 1637년 2월의 어느 날 얀 반 고엔(Jan van Goyen)이라는 네덜란드의 화가는 일생일대의 비 극을 맞이한다. 주변에서 떼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아무리 무성해도 오직 풍경화에만 몰두하던 그가 마침내 자신의 전 재 산을 튤립에 투자했던 것이다. 튤립 한 뿌리 가격이 지금 돈으로 자그마치 1억 6천만 원 이상 계속 올라가고 있으니 더 이 상은 견딜 수가 없었던 듯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가 투자한 바로 다음날 튤립 시장의 거래가 일시 중단되면서 투자자 들의 투매가 시작되었다. 무한히 확장할 것만 같았던 튤립 거래는 이로써 광풍의 막을 내리게 되고, 단 한 번의 잘못된 투 자로 그의 인생도 종을 치고 말았다. 서서히 불어오던 가상화폐 바람이 지난 해 하반기부터 열풍으로 바뀌더니 정부의 규제가 본격화되면서 사회 전체의 이슈가 되어버렸다. 가격의 변동 폭은 더욱 심해지고 수백 억 시세차익의 성공사례부터 학비 탕진의 가슴 아픈 사연까지 연일 매체를 장식한다. 가상화폐 투자에 별 관심이 없던 나 같은 사람은 일단 가격의 급등세에 놀라고 투자자들의 숫자에 놀라고 거래 규모에 다시 한 번 놀란다. 뒤늦게나마 가상화폐 투자에 나서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안도하지만, 아 들 스마트폰에 가상화폐 거래앱이 깔린 것을 보고는 묻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한다. 가상화폐 논란을 겪으면서 우리는 투자와 투기에 대해서 자문을 하게 된다. 본인이 번 것은 투자고 남들이 떼돈을 벌 었다면 투기 혹은 도박이라고 쉽게 이야기하지만, 사실 내가 하는 거래 행위를 합리적인 투자인지 아니면 무리한 투기인 지를 냉정하게 판단하기는 어렵다. 경영학을 가르치는 친구와 이 문제를 토론한 적이 있다. 그는 월 임대료를 받기 위해 상가 점포를 매입했는데, 그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올라 큰 시세 차익을 올렸다면 그것은 투기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작은 아파트라도 시세 차익을 얻기 위해서 전세금을 끼고 은행의 융자금으로 매입을 했다면 수익의 여부에 상관없이 이 것은 투기라고 한다. 매입 당시에 임대수익이나 사용 수익을 고려하지 않고 단기간의 전매수익만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라 는 것이다. 상품이 가진 기본적인 가치(사용 가치)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단지 새로운 거래 가치(교환 가치)만을 목표로 할 때 투기가 발생한다. 투자와 투기를 가르는 핵심적인 기준은 사용가치를 창출하는지 여부다. 이렇게 정리를 해도 의문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가상화폐까지는 아니더라도 요즘 우리 주변에 펀드나 주식 투자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살펴보면 한국의 주식시장은 이미 단기수익을 노리는 투기적 성향의 자 본에 상당부분 잠식돼 있고, 투기성 자본은 기업의 장기적 비전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주식의 가격(교환가치)에만 관심 이 있고, 기업의 가치(본질가치 혹은 사용가치) 창출에는 진지한 관심을 두지 않는다. 투자와 고용을 창출하기보다는 단 기 시세차익을 올리고 빠지는 게 이들의 최대 목표다. 기업들도 주식시장의 이러한 요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은행들마저도 단기수익을 노리는 외국자본에 잠식되면서 기업대출의 비중을 줄여온 지 오래다. 그리하여 마침내 단기적 시세 차익의 추구는 전 사회의 공통 이념이 되었다. 아마도 가상화폐의 광풍은 그렇게 준비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 에서 우리가 하는 거래는 투자일까 아니면 투기일까. 과연 어느 누가 투기가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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