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AJU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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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June Issu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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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aju

Art magazine 2010 June Issue1

COVER Photography Styling Object artist Model

Kim, Suck Jun Kim, Hye mi Hong, Min Chul Pig

Editor’s Letter

또 하나의 잡지가 나왔다. ‘오마주’가 나오게 된 것은 우연의 일치가 크다. 한 잡지사에서 에디터 일을 그만 두고 휴식기를 가진지 이주도 되지 않아 잡지를 만들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많은 고민을 했지만 저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모든 잡지가 그러하겠지만 한달이라는 기간내에 홀로 모든것을 진행하려니 어려움이 따랐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사방에서 터져나왔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보상없이 도와준 많은 이들 때문이다. 정말 감사드린다. 첫발짝을 내민다. 아직 부족한 것이 많지만 무궁무진하게 발전할 것을 약속하며 첫 인사를 드린다.

Publisher

최정민 Choi, Jung min (cavernclub83@naver.com)

Editor In Chief

김혜미 Kim, Hye mi (mingkee5056@nate.com)

Editor

소선아 So, Sun - A (brownsoul@naver.com)

Art director

홍승현 Hong, Seung Hyun (eso21309@naver.com) 작석영 Jang, Seok Young (just_taste@naver.com)

Photographer

도은경 Do, Eun kyung (eunkyungdo@nate.com)

Advertising

김종실 Kim, Jong Sil (mattas2000@naver.com)

등록번호 강남라00446 발행일 2010년 2010.06.02

Hommage

ADDRESS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북 6길 18 (신사동 540번지)명호빌딩 B1 TEL. 02-517-5521 인쇄처 금석문화 인쇄인 (김순팔)

Copyright © 2010 오마주가 모든 권리를 소유합니다. 동의 없이 이 책에 실린 기사와 사진, 그림 등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04 meme

Hez /

(아티스트 인터뷰/artist interview)

30 safari

(여행 이야기/

pictorial)

정송운 / illust artist wacky / grafiti artist 락김 / tatooist Nom / photo grapher

tour story)

54 newage (화보/

street artist

Novo / tatooist ab-jay / vintage buyer Novo + Jin-A Wedding A reborn pig for hommaage Boy Modern Napoleon times

78 lyrisist (사진/

photo)

Ambiguous 박미진 /

photo grapher

김석준 /

photo grapher

김성수 /

photo grap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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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e

meme : 유전자처럼 개체의 기억에 저장되거나 다른 개체의 기억 으로 복제될 수 있는 비유전적 문화요소를 뜻한다.

예술을 한다는 이들은 꿈, 희망, 좌절, 애환 속에 살면서 현실감있는 세상과는 점점 멀어져 가는지도 모른다. 기법이나 작법을 익히기 위해서,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향하기 위해서, 그런 단계를 무시하고 즐거움과 그것이 가져다주는 무언가를 위해서 일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서나 그렇듯, 그 과정과 결과는 평등할 수 없다. 어느 날, 서초동에 있는 큰 예술기관에 전시를 보러 갔다.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나는 그곳에 걸려있는 몇몇 작품들과 더불어 그 옆에 적혀있는 가격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그림들 앞에 서서 “오, 이거 싸다.” 라고 말하던 명품백을 든 아주머니들은 더욱 더 이해되지 않았다. 유명한 곳에서 전시하기에 백만원이하의 작품은 사들이는 것이 좋다는 것. 그것을 받아들이고 격노하는 데는 매우 주관적인 견해가 섞인다. 나는 금칠한 법당이나 메가처치 같은 곳에서 떵떵거리는 스님과 목사같은 예술가들이 줄어들었으면 하고 바란다. ‘삶에는 빈부가 분명히 존재하고 귀함과 천함이 갈라져 있다’가 예술을 하고 보는 이들 안에서는 아니 었으면 좋겠다. 구약 성경에 보면 인간은 하느님에게 선택을 받아 창조된 만물의 영장으로 모든 생물을 다스릴 수 있는 존재 이다. 눈에 힘을 풀고,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법칙이 냉엄하게 지배하는 세계에서 점점 멀어지길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이 의견을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무지막지한 강요의 분위기로 받아들이지 않길 바라며 여기 4명의 젊고 재밌는 작가들을 소개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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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fiti artist > 헤즈

2006년 2nd hands 전시를 기획했고 스트릿아트의 다양성을 보여주었다. 최근에는 설치에 빠져 쿤스트할레에서 전시를 열었으며 건축회사를 다니면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HEZ 항상 책을 들고 다닌다. 아트를 하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하는 기본소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 는가.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지하철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책을 읽는 시간이 늘어갔다. 내 주변인 중,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공부를 전혀 안 한다. 손기술과 감각만 익힌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서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아는 사람은 그것이 자기 미래가 된다. 예체능이라고 기술만 사용하는 건 아니다. 스스로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 한다.

그렇다면 지금 가방안에 있는 책은 무엇인가. 한길아트에서 나온 ‘개념미술’ 이다. 여자친구가 오늘 빌려주었다. 아직 읽지 않아서 내용을 말하지는 못하겠다. ‘헤즈오빠 흥분되요’라는 스탠실로 많은 이들이 기억한다. 큰 고민 없이 쉽게 다가간 것이라 회사와 그림을 병행하기 힘들겠다.

고 했는데, 그렇다면 대중들을 위해 쉽게 즐길수 있는 예술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림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것은 지금 하고 있는 생활때문에 어렵다. 많이 나가서 미래를 보는

그것은 뜻이 있다. 그래피티를 받아주지 않는 현실에 대해 말한 것이다. 그 벽은 나에게 흥분

편이다. 스트릿 아트는 할 것이다. 자기 매너리즘에 빠져 그림만 그리고 싶지는 않다. 다르게

된다고 말을 하고 그 말을 들은 나는 벽에 그림을 그려주는 것이다. 그 스탠실에 대해서는 많

접근을 많이 하고 끝까지 계속 갈 것이다. 스트릿 아트를 매체적, 개념적으로 변형할 것이다.

은 이야기를 들었다. 설명이 없어도 그림을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 더 좋다고 말이다. 물

물론 예술만을 하기엔 현실에서 부딪히는 것들이 많을 것이다.

론 의견은 분분하다. 작가의 마인드에 있는 사람들은 광고적인 효과를 낸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쿤스트할레에서 전시하고 있는 내용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퇴근을 하고 지친 몸으로

나도 질문에 대한 생각은 많지만 일단은 만들어 놓고 맞추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발상자체

방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옷장 안의 옷들이 무너져 내렸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마치

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데 보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준다던지 작품 그대로를

그 옷장이 나처럼 느껴졌다. 덕지덕지 붙어 있는 스티커와 옷들은 내가 습득하고 쌓아온 그림

보여주기도 하지만 끼워 맞추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과 같았고, 그 가운데 정장 한벌은 지금의 내 모습 같았다. 옷장 안에 있는 목없는 양복이 무너져내린 그 많은 옷들을 깔아보고 있었다. 그 우연적인 일을 작업으로 옮겼는데, 거기엔

티셔츠 브랜드 태그나이트(tag knight)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옷 장 밑에 하얀색 두건과 고글을 쓰고 숨어있는 얼굴이 더해져 있다. 그것은 과거 밑에 숨어

전부 다 재미다. 무모했다. 사전조사 하나없이 무일푼으로 시작했다. 그래서 망했다. 광고도 안

있는 나의 미래이다. 미래이자 의지다. 언젠가 다시 일어설 것을 말한다.

하고 소규모로 우리끼리 한 것이다. 돈을 벌고 싶다면 크게 해야한다. 크게 하려면 둘이서는 할 수 없을 뿐더러 현실적으로 하기 힘들다.

듣고보니 슬프다. 현실과 타협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100% 타협했다.

스트릿아트의 인스턴트성에 대한 작업을 했었다. 열심히 작업한 그림이 다른 그림으로 다시 덮혀질 걸 알면서도 왜 그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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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릿 아트 2nd hands 전시를 해왔다. 어떤류의 전시이며, 기획 할 때의 마음은.

습성인 것 같다. 하다보니 작품이 중요한 줄 전혀 모른다. 아니, 중요하지 않다는 것 보다는 생

세컨핸즈는 진지하기보다 놀자판이다. 전시와 파티를 함께 하는데, 특별한 기획을 넘어서

각을 못하는 것 같다. 그냥 그리고 덮고 그리고 덮고. 압구정 굴다리에 가보면 그림이 몇 겹인

재미로 하는 것이다. 다른 전시들과는 분야가 틀리다. 같이 놀라면 맞춰줘야 한다. 앞으로의

지 모르겠다. 불특정 다수들이 보기를 원하니 계속 한다. 어차피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작업

진행 여부는 모르지만 한다면 논현동에 있는 쿤스트할레에서 하고 싶다. 파티와 전시를

하는 사람이니까 다른분야와는 개념자체가 다르다. 그리고 그것도 그래피티 문화 중 하나다.

한 장소에서 할 수 있다는 점에 반했다.

누군가의 그림 위에 그리려면 그 사람보다 더 잘 그리는 사람이 그려야 한다. 힙합의 대결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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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연결되서 나온 것이다. 남이 평가하지 않더라도 자기 스스로 평가해서 이길 수 있으면

지금 하고 있는 작업 (위의 그림)에 대해 설명을 한다면. 그냥 머리에 있는 것이

그리는 것이다. 그래피티도 그런 면을 보면 굉장히 매력있다.

표현된 것뿐이다. 세컨핸즈 때, 많은 이들이 한 태깅을 집안에 펼쳐 놓았다. 밖에 낙서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들이 집안에 있으니 이상했다.

그래피티라 하면 안 좋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변화를 위해 하고자 하는 일이 있는가.

얘네는 원래 있어야 할곳이 길이다. 그래서 길로 내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맞다. 불법이자 낙서라고 생각한다. 그래피티가 발전하려면 오히려 더 낙서가 되고 파괴가

대신 그대로이기보다는 다시 밖에 나갔을 때,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혀를

되어야 한다. 대중문화로 봤을 때는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피티는 파괴의 증거물이다.

풀었다. ‘아 예쁘다’라는 말이 나오게끔 말이다. 역발상으로 해서 스트릿아

우리는 파괴하는 공간에서 살고 있다. 그것은 파괴되어지는 상황의 증거라고 볼 수 있다.

트는 파괴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예술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파괴하고 뒤엎는 단계까지는 가지 못했다.

계속 대중들을 위해서 그들에게 쉽게 읽혀지기 위해서 설명하고 설명하게 되는 것 같다. 명확한 결말을 내려고 한다. 캠페인 적인 결말을 생각하고

그럼 다른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에게 권유하면 되지 않는가. 전부 다 하길 바라는 것은 아니

작업하는 게 아닌데, 그것을 고쳐야 할지 가져가야할지.

다. 클래식과 모던처럼 전통을 지켜야 할 사람이 있는 것이고 더 진화된 사람이 있는 것이다. 비율이 적절히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전통적인 것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닌데, 같이 공감하기 위해서는 발전해야 한다. 스트릿아트를 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대화가 통하고 계속 영감을 줄만한 사람을 찾고 있다. 요즘에는 파인아트나 실험전시를 하는 사람과의 대화가 더 재밌다.

혹시 스트릿아트를 화보에 오브제로 사용할 생각은 없는가. 일반적인 배경은 싫다. 비쥬얼 보다는 개념을 지향하기 때문에 서포트 하는 건 안 좋아한다. 꼴라보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개념에 따라 어떤작품은 다른작품과 안 맞을 수 있다. 오브제 를 창조하는 것은 아직 기술이 없어서 안 될 것 같다. 오히려 좀 더 현대적이고 테크니컬한 작업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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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Me In 타이틀 그대로 ‘Let Me In’ 이라는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이다. 평범한 한 소년이 사회적으로 용납 되 지않는 뱀파이어소녀와의 매개체로서 루빅큐브 를 이용한다. 나와 스트릿아트와의 관계성을 루빅 큐브로 엮어낸것이며, 관계성 유지를 위해 헝클어 진 큐브를 맞추어 나간다.

Facade 양복정장 차림이 평상복이 된 어느 날, 옷장 안에 빈틈없이 들어차 있던 옷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해프닝은 다양성을 흩어지게 하였지만, 비주류문 화의 동경으로 시작되었던 스티커 콜렉션은 나를 보호하며 뽐내고 있다. 제도권의 자리 잡음으로 kitch 했던 공간을 내어주었지만, Facade 안에 숨어 기회 를 옅보고 있다. 미학과 철학의 꿈을 꾸었지만 사회적 매뉴얼을 펼친 나는 여전히 'Hez'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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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et is Inside 작업실의 ‘실’ 개념에서 작업하는 일반미술에 비해, 스트릿아트로서의 길거리 는 그 어디보다 넓은 작업실이자 캔버스이다. 우리는 길거리로 들어간다.

For the Short of Money ‘Demian Hurst’ 의 작품 ‘For the Love of God’의 패러디작업이 다. 원 작품은 현재 생존작가 중 가장 높은 가격의 미술품이다. 이에 반해 스트릿아트는 어느 누구의 소유도 아니며, 모두의 즐길거리가 되어지는 미술임을 증명하고 있다.

hez370@netian.com www.hez37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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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ject artist > 정송운

학생이지만 미대 졸업생으로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다. 일러스트 작업외에 영상작업도 활발히 하고 있다.

Jung Songwoon 요즘은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그럼 평소에 친구에게도 집착하는가.

작업을 열심히 하고자 모임을 만들었다. 그 중에 한분이 한예종에 다녀서 대부분 그 곳에

개인의 한명에 대한 집착이라기 보다는 애매모호하고 추상적으로 누군가에게 관심받고

모여 작업한다. 그리고 홍대에 있는 문지 문화원에서 미디어아트 수업을 듣는데, 수업이

싶다. 아트를 할 때, 발휘하는 힘은 사랑받고 싶은 욕망 아닐까. 나를 표현하며 나를 봐달라

끝나면 학생들끼리 합동작업을 한다. 졸업학년이다보니 기술적인 작업을 많이 하고 있다.

는 것 같다. 본능적으로 배설해야 한다는 욕구처럼 말이다.

무얼하던 항상 개인적인 것부터 시작한다. 내 목소리를 드러내는 것이 가장 좋다. 어쩌면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성격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작업에 컬러풀 한 것이 많다. 평소의 모습에는 영향을 안 미치는 편인가. 색이 많이 들어가는 것은 서울에 살아서 그렇지 않을까. 그런데 옷은 모두 검은색이다. 겉모

작업에는 어떤 의미를 두는가.

습에 신경쓰지 않는 편이라서, 그냥 눈에 보이는 옷을 입는 편이다. 패션에 관심은 있는데

미미라는 인형을 두고 내 자아를 투영시켜서 마음껏 여행을 다닌다. 라면에도 빠지고, 흐느

투자를 하지는 않는다.

적 거리는 다리도 갖는다. 양쪽 페이지를 두고 미미의 모습과 내 모습을 비교하는 것은 욕망 이 크기 때문 아닐까.

졸업 후의 계획은.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데 아직 한가지를 정하지는 않았다. 이것저것 다 하고 있다. 평면작업

아티스트로서, 기본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는가.

보다는 설치나 영상을 큰 규모로 해보고 싶다. 예술을 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분야를 정하고

훌륭한 사람들의 지혜를 듣고, 경험하고,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사람 만나는

싶지는 않다. 영상, 웹, 그래픽디자인, 센서작업, 출판물까지 보이는 것은 다 하고 있다. 그것

걸 좋아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책을 읽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다. ‘내가 얼마나 잘 하는

이 나의 단점이자 장점인 것 같다. 표현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그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가’ 보다 ‘얼마나 진지하고 솔직하게 작업 하는지’ 를 생각 한다. 내가 만든 영상이 허접할

있다면 모두 담고 싶다.

수도 있겠지만 작품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화려하고 잘 만든 것의 과잉시대이다. 누가 더 새롭고 먼저 했는지가보다 나를 어떤 모습으로 표현해야 하는가를 생각한다.

2010년의 중간시점이다. 이천십년 안의 계획은. 영어를 잘 했으면 좋겠다. 작업에 있어서는 설치를 해보고 싶다. 내 안에 있었던 프레임을

인형 미미를 가지고 작업하는데, 미미와 작가 둘 다 벗고 있다.

밖으로 내보내고 싶다. 표현의 스케일을 벗어나 성장하고 싶다. 그리고 미적인 욕구를 충족

알몸에 집착한다. 작업들을 보면 항상 중간에 벗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 나를 드러내는

시키기 위해 아름다운 작업을 하고 싶다.

형태이다. 옷 벗을 때의 거부감은 없다. 오히려 작업할 때, 옷이 들어가면 내가 아닌 옷에 집중되는 것 같다. 알몸은 그런 이유다. 미미를 벗긴 것은 미미가 필요한 것이기에 그 자체를 보여주고 싶다. 나는 그 하나의 대상만이 필요할 뿐이다.

닮고 싶은 대상이 있는가. Bjork(비욕). 내 작업물 중에 Bjork을 시각화 시킨 것이 있다. 그녀의 인생과 뮤직비디오를 그래픽으로 표현했다. 유명한 감독과 꼴라보를 해서 많은 작품을 만들고 다채로운 작업을 많이 하는 그녀야말로 진정한 아티스트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설치하시는 양해규씨를 존경한다. 누구라고 정하지 않더라도 예술하는 사람들은 예민하고 감수성도 풍부하기에 그런 그들에게 연민이 간다. 우울함이 창조의 근원이라 하지 않는가.

우울한 편인가보다. 밖에 있으면 안 그런데 혼자 있으면 심하다. 그래서 항상 누가 옆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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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미미에 투영시킨다. 꽃밭에서 맨몸으로 뒹굴기도 하고 도시 전체 를 밟고 다니기도 한다. 작업 안에서의 이미지와 색감을 중요시 여긴 다. 평소 나에게 없는 많은 색감을 작업에 넣고 있다. 작업은 내 욕망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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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vid_sty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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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fiti artist / tatooist > 와키

중학교 시절부터 그래피티를 시작했다.고등학교 졸업 후, 힙합브랜드 디자이 너로 스카우트 되어 활동했다. 그 후,프리랜서로 일하다가 2006년부터 타투 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Wacky 중학생이었던 시절, 그래피티를 시작했다고 했다. 어떻게 알게 되었으며 어디서 작업을 진

배신할지라도 그림은 날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행하였는가. 외국영화를 보다가 뒷골목에 항상 등장하는 낙서를 봤다. 당시 어린 나로서는 왠지 모를

타투를 시작했기 때문에 타투도안이 많다. 그 외의 그림은 안그리는 편인가.

동경이 싹텄다. 그래피티라는 용어도 모르고 무작정 시작했다. 큰 어려움은 없었다. 천원

가리지 않고 그린다. 타투도안이 생각나면 타투도안을 그리고 그래피티도안이 생각나면

짜리 락카를 구매해서 벽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만만한 옥상으로 올라가 이것저것 그렸

그래피티도안을 그린다. 그 외에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아이디어 스케치나 낙서를

다. 엄청난 성취감에 두근거렸고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그 당시에는 대한민국에서 나만이

가리지 않고 그려낸다.

그래피티라는 작업을 하는 줄 알았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손발이 오그라든다. 그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그에 비해 아직 두곽을 드러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자신만이 그래피티를 하는 줄 알았다면 홍대에 나왔을 때 큰 충격을 받았을 것 같다. 그로

현실적인 괴리와 한국 아티스트로서 바라는 점이 있는가.

서 실력이 더 늘었는가.

일단 경력이 경력인만큼 그림이 많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림이 너무 좋다. 모든 것을

또 다른 태거들을 접하게 된 장소는 홍대가 아니였다. 인터넷의 활성화와 더불어 인터넷

벽에 옮기지 못하더라도 창작욕구를 막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그림들이 쌓여있

까페 동호회가 활성화된 시점에 그래피티를 검색했다. 당시 그리 많은 수는 아니였지만

다. 굳이 벽에 옮기지 않더라도 그림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그림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래피티를 하고 있었다. 까페와 싸이트까지 운영되고 있었다. 당시

양에 비해 실질적인 mural(벽에그린그림)이나 타투작업물이 적은게 사실이다. 이것은

나 혼자 그래피티를 하는 줄 알았기에 충격이 있긴 했다. 하지만 매우 반갑고 설레이는

현실이 쉽사리 나아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두곽을 드러낸 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

마음이 앞섰다. 시간이 지남과 동시에 사이트와 까페들은 점점 늘어났고 교류가 활발해지

다. 어렸을 때에는 누구나 아는 유명아티스트가 되겠다는 동심 어린 목표가 있었다. 덕분

기 시작했다. 그 시기에 더욱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실력은 혼자 할 때에 비해 급격히

에 내손을 통해 미친듯이 생각들을 쏟아져 나오고 그것이 주위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

상승세를 탔다.

기 시작했다. 관중이라 해봤자 그냥 벽을 지나는 불특정다수, 주변친구, 까페(동호회)회원 이었을 것이다. 주변 친구들에게는 그림을 많이 보여 주었지만 동호회나 인터넷을 통한

아직 대중들에게 그래피티는 불쾌하게 느껴진다. 그런 점을 보완해서 작업해야 한다고 생

공개는 매우 꺼려했었다. 보여준 그림들이 그들의 본모습을 찾기 이전에 단순히 롤모델로

각하지 않는가.

작용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치 배추생산자가 된 기분이었다. 부지런히 농사를

불특정 다수가 대중이다. 모두의 입맛을 맞출 수는 없다고 본다. 모두가 좋아할 수 있는

지어도 적절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고 누군가 배추와 김치를 먹어도 배추생산자의

그래피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종교에서 신은 전지전능한 숭배의 대상이지만

이름을 알기란 쉽지 않는 느낌인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래피티가 상업화 되고 많은 벽화

모두가 종교를 믿는 것이 아닌것처럼. 불쾌감이란 것은 이 장르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업체등이 생겨나면서 타인의 그림을 베껴 그리는 일들이 잦아지고 주위에서 돈벌이에

그래피티의 특성상 사회적으로 밉상의 여지가 충분하다. 대상, 장소, 환경에 따라 적절한

치중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피티가 어떠한 문화로서 자리 잡기 이전에 단순

타협이 가능하지만 그래피티는 특정 인물에 구미를 맞추는 맞춤형가구가 아니라고 생각

히 상업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싫었다. 물론 돈벌이의 유혹을 쉽게 떨쳐 버리기 힘들

한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다들 굶주린 상태라면 조금만 참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피티가 문화로서의 가치로 인식되고 탄탄한 나무로 뿌리 내린다면 무성한 열매들이 열릴 것이다.

특별한 작업이라기 보다는 생활이 작업인 것 같다. 어디에 있던 항상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재미 때문인가. 삶에 대한 압력 때문인가. 호기심에서 시작된 그림이 날 미치게 만들었다. 이젠 삶의 바탕이자 일상이고 나를 대변하 는 움직임 이기도하다. 생명체들이 사랑을 나누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처럼 난 그림 을 사랑하고 수북한 블랙북이 그 결과물이다. 그림 덕분에 힘들 때도 있지만 내가 그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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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연의 색을 찾고 다양성에 대한 미를 추구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티스트가 사업적수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정말 사랑하는 여인이 그림을 그리지 말라고 한다면,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좋아서 하는 것들이 돈벌이로 전락해

그림을 그리지 않고 일만 할 수 있는가.

버리는 것은 싫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서 쾌적한 환경을 제공

현재 조강지처는 그림이라고 할 만큼 그림이 곧 나이자

받으려면 자신 작품의 가치를 높여야만 한다. 이를 해결할 나름의 실마리를 찾은 것이 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일이다. 내가 그림을 배신해도 그림은 이런 날 끝까지

투다. 열정, 재능 그리고 사업적수완까지 겸비한다면 생활의 만족도를 최적화할 수 있다

지켜줘 왔다. 정말 사랑하는 이를 위해 내가 가장 아끼는 무언가를

고 생각한다.

포기해본 적은 있다. 하지만 연인은 그리 오래가지 않더라.

누군가 1억을 후원해준다면 무슨 작업을 하고 싶은가.

개그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항상 밝다.

투어를 떠나고 싶다. 그동안 보고 싶었던 타투와 그래피티아티스트들을

우울한 작업은 하지 않는 편인가. 주변에서 재미있는 친구로 인식되어 있다.

만나면서 합동작업을 하고 싶다. 그동안 금전덕분에 가로막혀있던 응어리를

우울한 작업, 밝은 작업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일상과 감정은

결과물로 쏟아낼 것이다. 한국에서 해왔던 그래피티 전시파티도 각 나라에서 진행하고

그림에 묻어나기 마련이다. 의도하지 않아도 즐거우면 즐거운 작업이 나오고

싶다. 더 나아가 여행에서 느낀 많은 에너지를 다른 사람에게

우울하면 저절로 우울한 작업이 나온다.

보여줄 수 있도록 투어에 대한 상영회도 열고 우리가 알지 못했던 더 재미있고 재능있는 아티스트친구들을 한국에 초대해 그동안 다소 가라앉아 있던

이천십 년의 반이 지나가고 있다. 계획하고 있는 것이 있는가.

그래피티의 에너지에 불을 당겨보고 싶다.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계획 할 시간이 많이 주어졌다. 많이 정리 된 상태이다. 앞으로는 이뤄나가기만 하면된다. 아직은 공개할 수 없는 프로젝 트와 브랜드를 준비하고 있는것. 그 외, 맞물려 발생하는 것들을 충실히 한다면 이번년도 도 금새 지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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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서 많이 봤음직한 그래피티를 캔버스에 담았다. Storm1이라는 두번 째 명을 가지고 작업했다. 이는 2nd hands에서 전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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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쌓인 공책들이 보여주듯 항상 그림을 그린다. 가끔 십 년 전의 공책을 보면 우습지만 그것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나거나 잠이 안올때는 텅빈 굴다리나 심심한 외벽에

작업을 위해 스케치하고 컬러링한 것들이다. ‘내 보물 1호’다.

그래피티를 채워넣는다. 많은 이들은 낙서라고 생각하겠지 만 자신의 메세지를 담아 남이 못 알아보게 써넣는 것이 그 래피티의 묘미다.

http://blog.naver.com/wacky1

캐릭터와 폰트들은 모두 내 머리에서 나온다. 그래피티를 하다보니 시원하고 강력한 이미지가 많다. 이 그림은 2001, 2006년도에 그린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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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ustrater/ tatooist

어린시적부터 그림을 그려왔다. 목적없이 그림이 좋아 그렸고 지금은 타투가 좋아 타투를 하고 있다.

> 락김

현재, 홍대에서 샵을 운영하고 있으며 동화책을 준비하고 있 다. 내년쯤에는 한국을 떠나 그림만 그릴 예정이다.

rockim 조만간 티셔츠도 만들 것이라고 하였는데, 시간이 흐르면

몇달 전, 가게를 차린다고 했는데 얼마 안되어 바로 오픈을

가는 작업들을 했는데 너무 집요하고 민감해지는 것 같아

하였다. 정말 축하하고 번창했으면 좋겠다.

서 단순화 하려고 노력중이다. 하지만 단순하고 간결하게

서 하고 싶은 일들은 바로 하는 편인가. 티셔츠에 들어갈

수년 전부터 피어싱을 하는 친구 플라스카와 계획했던 일

표현하는 것이 내게는 더 어려운 것 같다. 섬세한 작업을 하

그림들은 새로 작업을 해야한다. 투자자없이 하다보니 조

이다. 꿈이었기에 여러가지 상황은 안좋았지만 무리하게 추

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게 버릇이랄까. 나도 모르게 복잡

금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경제적인 것만 해결이 된다면 바로

진했다. 피어싱을 하는 플라스카는 나와 가장 오래된 친구

해지는 버릇말이다.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작업들은 기

들어갈 수 있게 준비 중이다. 나는 꿈이 많다. 즉, 욕심이 많

이다. 둘 다 예민한 성격에 예민한 작업을 해서 가게 이름을

본 한달은 잡고 하는 것 같다. 하루안에 집중할 시간이 얼

다. 그 욕심을 채우기에는 난 너무 게으르고 인류멸망은 가

“예민한 가게”로 지었다. 컨셉이나 디자인은 내가 담당해

마 되지 않는 것도 있지만 말이다.

까이 와있다. 많이 게으르고 마음만 급해서 밀린 것 투성이 다. 제발 부지런해졌으면 좋겠다.

서 사공없이 신속하게 진행했다. 아직 가게는 미완성이지만 계획대로 오픈하게 되었다. 가게는 일반 바디아트샵에서 검

얇은 선을 쓰는 이유는 무엇이며, 어떤 재료를 사용하는가.

정색이나 붉은색의 강하고 냉소적인 냄새를 탈피하려고 많

얇은 선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얇게 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기본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 신경썼다. 부담없고 귀엽고 깨끗한가게, 편안한 가게로

재료는 먹, 금분, 동양화, 마카, 아크릴, 펜, 색연필, 연필이

것은 무엇인가. 이나라, 이사회에 대해 배워야 할 것 같다.

계속 만들어 갈 예정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자면, 피어

보통 많이 쓰는 재료이다.

난 너무 나만 알고 너무 고집스럽게 달려왔다. 세상에 너무 등지고 살아왔다.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세상에 한

싱하는 플라스카는 피어싱(pierce)과 아직 한국에선 낯선 마이크로 더멀(micro dermal), 3D 임플란트(implant)등의

그림을 그리다가 타투를 하게 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시작

작업을 연구해서 추진 할 것이다. 난 타투작업과 창작작업

하게 된 것인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다른 창작자들과 마

그리고 전시도 계속 해야 한다. 그림을 넣어서 티셔츠를 제

찬가지로 광대다. 사람들에게 감동과 교훈을 줘야 한다. 아

작해서 판매할 예정인데, 내 그림 외에 다른 아티스트들의

무리 자본주의라고 해도 순수미술, 순수 창작을 하는 사람

티셔츠도 같이 판매할 것이다.

들에게 돈을 쓴다는 것 자체가 낯선 것이 사실이다. 꼭 필요

몫 남기고 가고 싶다.

하지는 않지만 매일 매순간 접하는 것임에도 말이다. 순수 그림은 독학했는가.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전문교

한 투자를 하고 돈을 내고 즐기는 것 자체가 인색하다고 해

육을 받은 적은 없다. 미대를 가려고 했으나, 입시 교육이

야할까. 이런 생각들이 어렸을 때부터 들었다. 그러면서 아

날 미치게 했다. 너무 답답했고 피해를 받는 느낌이어서 미

티스트라는 말 자체가 참 쑥스러웠다. 그 경계가 많이 애매

대진학은 멈췄다. 그 후, 꾸준히 그리면서 내 색깔을 찾아왔

해졌고 순수는 사라진지 오래니까. 비지니스를 잘하는 작

다. 아직도 방황중이고 미숙하지만 자연을 계속 마주하면

가가 아니라면 순수 작가로는 마음 편히 작업할 수 없는 시

서 더 배우고 다른 작가들과 교류하며 배워나갈 것이다.

대다. 그렇기에 순수 작업을 하려면 다른 수단이 필요했다. 난 운이 좋게도 타투나 피어싱 문화를 일찍 접했고 천직이

그렇다면 자신의 작업에 불안함을 느낄 때가 있지는 않는

라고 받아들였다. 그것들은 그림으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일

가. 문득 불안하기도 하다. 그런데 금방 잊어버린다.

이었다. 그리고 그 어떤 그림보다 잘 돌아 다니는 점도 좋았 다. 타투에 있어 첫 출발의 모든 작업이 창작은 아니었지만

락김의 그림은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매우 섬세해

지금은 모두 내 디자인을 쓰고 있다. 지금의 일에 만족하고

서 공을 많이 들였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번 작업을 시작

마음 편히 창작작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

하면 대략 어느정도 걸리는가. 예전 작업물들은 손이 많이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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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에 대해 자기 나름의 견해가 있는가.

않도록 신경쓰고 있다. 내가 보고 싶은 그림, 내사람들이

이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사는 것처럼 살아왔고

보고 싶은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우울을 소통시키기 보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그게 나를 위해서 다른

는 밝은 기운을 공감하는 작업을 많이 하고 싶다. 내려가면

사람들에 대한 예의인 것 같다. 지구의 모든 인류

까마득하게 내려가 버리기에 아픔이 오는것은 어쩔 수 없

가 실패했듯이 이번 인류도 실패로 달려가고 있다.

지만 굳이 그 부분을 자극해서 더 확장시키고 싶지는 않다.

어떠한 평화가 자리잡더라도 한쪽에서는 전쟁이고 누 군가 평화롭기 위해서는 한쪽에서는 아프기 마련이니까.

우울함과 즐거움 중, 어느 쪽을 즐기는 편인가.

이것 또한 자연의 이치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밖에

고개만 돌리면 우울해지지만 우울 보다는 외로움을 즐

없다. 그래도 소규모로 변화해 가고 하나씩 잡혀가는게

기는 편이다. 즐거움과 행복은 하루에 잠깐 이라도 온다

보이면 참 반갑다. 난 사회 봉사자도 반정부주의도 무정부

면 감사하다.

주의도 아니고 히피도 아니고 그 어느것에도 속하고 싶지 는 않다. 그냥 바라보는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다. 내가 방치

앞으로 이루고 싶은게 있다면.

하는 인연들에 대해서는 죄송하게 생각한다. 모두 고집스

재미나고 상큼한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 처음엔 혼자 작업

러우니까 잘 되길 기도한다. 나도 움직일테니 다들 움직였

을 해오다가 지금은 여러명과 함께 그림책을 준비 중이다.

으면 좋겠다.

유명세도 깔끔한 이력도 없지만 감각있는 친구들로 이루어 져 있다.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환영이다. 단, 소

컴플렉스가 있다면 무엇인가. 그리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

통 할 준비가 되어 있고 끝까지 달릴 수 있는 사람이 필요

하는 것이 있는가.

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그림책과 일러스트집, 문양집

신체적인 컴플렉스는 무수히 많지만 지금은 모두 인정

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패션 디자인 공부를

했다. 정신적으로는 생각이 너무 많고 복잡하지만

하고 싶다. 옷에 욕심이 많은데 여태껏 누리지 못하고 살아

기억력이 나쁘다. 극복하기 위해 야한 이야기를 많이

온 것 같다. 사람들에게 입히고 싶고 화려하지 않은 의상실

하고 가벼운 사람으로 보이려고 노력한다. 어렵고 복잡

도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피라미드를 짓고 싶다. 피라미드

하게 보여서 불편함이나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만만하

의 안에서 좋은 에너지를 받으면서 작업도 하고 음악도 듣

게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편했으면 좋겠다는

고 춤도 추고 사랑을 나누고 싶다. 구체적으로 그 피라미드

것이다. 그리고 음악이 치유에 큰 도움이 된다.

를 짓고, 지킬 수 있을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내가 먼저 지을꺼다 피라미드.

락김의 겉모습과 그림은 매우 잘 어울리면서도 어울리지 않는다. 동양적인 느낌은 어울리지만 작품에 컬러가 많이 없다. 이유가 있는가. 내 모습도 그림도 계속 변하는 중이다. 나와 어울릴 때도 있고 어울리지 않을 때도 있다. 인류 멸망이 오기 전까지 는 멈춰야 할텐데 말이다. 예전부터 부족적(tribal), 전통적 (traditionaly), 동양적인(oriental) 것들을 좋아해서 채도 떨 어진 느낌의 무채색을 많이 썼다. 그런데 소통이 안되고 어려워 하는 것 같아서 좀 더 단순화 시켜 직접적으로 다가가고 있다.

그림을 보여주면서 너무 우울한데 괜찮냐는 말을 했다. 그 그림을 그렸을 당시의 느낌을 반영했는가. 그렇다면, 지금은 그런 그림이 나오지 않을 감정상태인가. 그림은 만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 환경에 직접적인 영 향을 받는다. 그 때의 심리상태 가 많이 묻어나는 것 같다. ‘우울’이라는 것은 나의 단골손님이다. 이제는 담담하지만 그래도 오래 지속되는건 너무 두렵다. 더 이상 그렇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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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stalion tree.2010 / brush pen.marker

lotus’s sing.2010 / brush pen.marker


rasta time.2010 / brush pen.m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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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design, tattoo - rockim

삐에로의 구두.초 / design - 심정(단청예술가) tattoo - rockim

연꽃이 바람에 흔들리며 구름을 쏟아내고 파도를 뿜어낸다. / design, tattoo - roc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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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삐 / design, tattoo - rockim

나무,그리고 가족이름 / design, tattoo - rockim

누구의 해골일까요 / design, tattoo - rockim

Shall we dance / picture(in Kingston Rudieska album) tattoo - rockim

club.cyworld.com/sensitiveshop dirtyfashion@hotmail.com www.mooo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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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fari

safari : 사파리란 스와힐리어로 ‘작은 여행’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아티스트들에게 한국에서 계속 예술을 하고 싶은지 물어본다면 모두 ‘아니오.’ 라고 대답할 것 같다. 모두들 유학을 갔다오거나 아예 떠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대체 대한 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과 그 곳 아티스트들의 삶은 어떨까. 닥친현실 때문에 외국에 대한 엄청난 환상을 지닌것은 아닐까. 그래서 세명의 아티스트들에 게 청을 했다. 도보로 세계를 돌아다니는 nom이 본 인도, 프로젝트 전시를 위해 노보가 간 프랑스, 유학생활을 하며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만나는 ab-jay가 본 시카고. 여기 조금이 나마 궁금중을 풀기 위해 그들의 시선을 따라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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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s indo 서른을 갓 넘은 그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나라를 도보로 여행한다. 무섭지 않느냐는 물음에 생각하지 않고 떠난다는 대답이 그를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게 했다. 매일 같이 떠나고 싶다 울부짖지만 막상 이런 저런 핑계로 떠나지 못하는 나에게 그와의 첫 만남은 그저 동경 투성이었다. 나와 같은 이들이 또 있다면 nom의 시선을 통해 인도 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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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된다는 건 언제나 즐겁다. 하지만 마음을 여는 것은 어렵고 두려운 일이었으며 마음을 열고나서는 실망들도 존재했다. 작은 마음의 변화를 잊지 않기로 한다. - nom -

‘가장 좋았던 나라가 어디야?’ 여행을 많이 다니는 내가 제일 많이 받는 질문중 하나다. 카메라 사야 되는데 어떤걸 사야돼?와 거의 비슷할 만큼 듣게 된다. 많이 듣는 질문이라서 대답도 바로 나온다. 그리고 대답을 하기 위한 추임새와 타이밍도 이제는 제대로 알고 있다. 몇번이나 인도를 다녀왔지만 여전히 그립고 말을 하기가 점점 조심스러워 져 가는 그런 곳이 되어간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져있고 그 수없이 많은 사람들은 무질서로 밖에 보이질 않는 그들만의 법칙 속에서 살아간다. 인도라는 토양 속에서는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물고기들도 모두 크게 자라난 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런 천혜의 환경 속에서 그들은 가난하기만한 삶을 살아 간다. 그곳에서 나는 끈적끈적해진 손바닥이 즐거워진다. 그리고는 마살라향이 이끄는 곳으로 흐느적흐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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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송아지들. 힌두교는 송아지를 성스러운 동물로 여기기 때문에 소가 무엇을 하든 그저 내버려둔다. 소 얘기는 좀 있다 더 하기로 하자. 다시 도로로 돌아온다. 처음에는 인도에서 엄청나게 울려 대는 경적소리에 짜증이 머리끝까지 나곤 했다. 도대체 싸이클릭샤는 인도에서도 가장 하층민들이 가지는 직업

왜 이렇게 울려대는 걸까. 그리고 저렇게까지 애절하게

중 하나다. (좀 더 오래전에는 핸드릭샤를 더 많이 사용

울려대는 쉰 목소리의 경적소리를 듣고도 아무렇지도

했을 테지만 큰 도시들이 아닌 작은 도시에는 여전히

않게 자기 길을 가는 운전자 보행자 송아지들을 보면서,

싸이클릭샤가 인도를 대표할법한 운송수단이자 하나의

도무지 인도라는 나라를 이해 할 수 없었다.

직업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처음 인도에 도착했을 때 사 이 클릭샤를 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 앞에 근사하

처음 도착했던 곳이 수도인 델리인 걸 생각해보면, 우리

게 생긴 인도남자가 굉장히 너저분한 옷을 입고 다 떨어져

나라 서울 한복판에서 저 상황이 벌어진다면 과연 어땠

가는 샌달을 밟아 나를 어딘가로 옮겨주는 모습은 뭔가

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어떤 운전자가 저런 식으로

세계평화에 어긋나는 기분이었다. 마치 내가 아잔타시

경적을 울려대며 운전을 했다면 아마도 한 시간도 못 돼

듯이 울려대는 경적소리는 앞차에게는 고마운 소리가

절의 부잣집 자식이나 된것같은 느낌을 갖게 해주었다.

서 경찰이 달려와 잡아갔을 게 뻔하다. 그런 생각을 마구

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재미있다고 하기도 어려운 그런

허우대는 멀쩡하더라도 보통의 인도인들은 나이에 비해

해가며 경적소리에 온갖 불만을 털 때 즈음 나는 차 뒤

상황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인도에서 택시를 탈일은 많

서 힘도 약하고 말 그대로 비실비실한 편이다. 그런사람

에 ‘HORN PLZ’라는 글귀를 보게 된다.

지 않지만 오토릭샤를 타게 되면, 끊임없이 목쉰 경적소

만한 깜냥은 내게 없었다. 하지만 몇차례 인도를 찾으면

이건 도대체 뭘까. 호텔직원에게 사진까지 들이밀며 물었

미러를 만들어 냈을 텐데..’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

서 많이 변했다. 그들이 나에게 바가지를 씌우는것에 두려

다. 인도에는 타타스모라는 거대한 자동차기업이 있다.

만 지금에 와서는 달콤한 마살라 향과 먼지 가득한 하늘,

워하지도 않게 되었고 지나가다 만나게 되는 짜이 장수

인도의 물가가 아무리 저렴하고 인건비가 싼 나라라고

귀 가득 들리는 경적소리들이 내가 지금 인도에 있다는

꼬마에게 1루피를 주고 릭샤왈라와 짜이 한잔을 나눠 먹을

해도 공산품의 가격까지 저렴할 수는 없는 법이다. 공산

걸 알려주는 사인이 되었으니 불만은 없다.

줄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마더테레사 수녀님이

품이 가지게 되는 최소한의 재료비는

계시던 캘커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핸드릭샤는 좌불안

어찌되었든 소비자가격에 고스란히

석이다. 이러쿵저러쿵해도 좁쌀만한 소갈머리 어딜 가겠

들어오게 되니 말이다. 그래서 옵션을

는가.

최대한으로 빼내서 인도 국민들이 살

리를 들어야 한다. ‘우리나라였다면 아주 저렴한 사이드

뒤에서 카메라 들고 앉아 다리꼬고 느긋하게 바람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인 가격대의 자동차를 만 릭샤왈라들에게 릭샤는 그들의 모든것이다. 릭샤 위에

들어 낸 곳이 바로 타타스모다.

서 잠을자고 릭샤 위에서 밥을 먹고 릭샤 위에서 먹기위 한 돈을 번다. 그리고 인도 어딘가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

사정이 이렇고 보니 에어컨이나 라디

기 위한 돈을 모으게 해주는 것도 릭샤다. 비틀즈의 방문

오는 물론이고 사이드미러 까지도 옵션

이후 엄청나게 늘어난 인도여행자들 덕분에 인도엔 신흥

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이렇게나 더운

부자들이 꽤 많다. 게 중엔 눈치 빠르고 수완이 좋아

나라에서 에어컨이 없는 것도 죽겠는

금세 돈을 모은, 여러가지로 불편하게 바라볼 수 밖에

데 라디오야 그렇다 치고 사이드미러

없는 인도인들도 많이 있지만 보통의 그들은 꽤나 성실

까지 옵션이라니 보통의 상식으로는

하게 가족을 부양한다.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 가 이것이 인도다. 그래서 사이드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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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도로는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다. 여기저기에서

없는 자동차들은 뒤차가 있는지 없는지

울리는 목쉰 경적소리. 그리고 차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따위를 알 수 없게 되었고 뒤차가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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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들은 잘생겼다. 그리고 예쁘다. 헐리웃영화의 어딘가 즈음에서 언뜻 얼굴이라도 보았을 법한 이들이

인도의 여자들은 예쁘다. 나이가 들수록 그 아름다움이 빠르게 사라지기는 하지만 여전히

인도에선 거지다. 우즈베키스탄에 가면 김태희가 밭 매고 있다는 말과는 좀 다른 의미이지만, 확실히 인도

그들은 아름답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여행자들은 그들에게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돈을

인들은 잘생겼다.

버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동네아이들이 졸졸 따라오면서 ‘one roopy’를 외치는 것은 귀엽

이 사진은 2005년에 ‘이 nom의 인도전’ 포스터에 썼던 사진이다. 나에게 인도를 다시 기억시켜주는

다. 하지만 심하면 예외가 되는 법이다. 푸시카르에서 만난 잘 차려입은 모습의 소녀는 카메

사진 중 하나다. 첫 번째 개인전이었기에 혼자 편집하고, 사진 뽑아내고, 액자 만들고 하면서 준비한 전시

라를 든 내 앞에 다가와 포즈를 취했다. 하지만 곧 사진을 찍는 내 눈에는 셔터 숫자를 세고 있

회였다. 결과는 참패였다. 덕분에 아직 이 사진으로 만든 엽서가 꽤 남아있다. 단돈 천원에 모셨는데 말이

는 치밀함이 보였다. 녀석이 외치는 20루피는 나를 슬프게 했다. 나는 즉석에서 흥정을 한다.

다. 인도인에게는 가트가 있다. 작은 호수도시 푸시카르는 3대 히피의 성지이기도 하고 가트의 도시이기

비싸다. 게다가 나에게 필요한 사진은 한 장뿐이다. 나에게 정말 중요한건 사진 한 장뿐이니

도 하다. 가트라는 건, 물과 맞닿은 계단을 말한다. 보통은 사원과 연결이 되어있지만 호숫가에 자리 잡은

그렇게 비싸게 못 주겠다. 물론 그녀에게 경외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정당한 노동

도시들을 보면 집 뒷마당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나는 그들의 피부촉감에 대해

을 했고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나에게 요구했을 뿐이다. 그러나 뻔뻔할 만치 당당한 비용

생각하게 된다. 손바닥이 끈적끈적해지는 느낌. 결코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끈적끈적함이다. 나는

을 치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 끈적거림을 사랑한다.

끈적끈적한 손바닥에 관련된 에피소드. 인도인들이 대변 후에 왼손으로 일처리를 하는 것은 많이들 알고 있다. 그래서 인도 화장실에는 1L가 조금 안 될 것 같은 사이즈의 물통이 놓여있다. 뒤처리를 하고 그 물로 손을 씻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손바닥 이 꽤 건조한 그들과는 달리 내 손은 끈적끈적하다. 그래서 나는 뒤처리 후에 아무리 손을 씻어도 깨끗 해지지 않는 것만 같은 느낌이 남는다. 결국 화장실에 갈 때마다 비누를 들고 가게 만들지만 그래도 상관 없다. 나는 여전히 그 끈적끈적함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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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는 정말 귀찮고 나쁘다. 전혀 사랑스럽지 않다. 인도의 수없이 많은 신들

여행 중 들었던 하누만의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전쟁이 있던 중이었다. 하누만은 자신의 병사들이 부상당한 모습을

중에 나는 하누만을 굉장히 좋아 한다. 서유기 속 손오공의 모티브였던 만큼

보고 아파한다. 그래서 주변의 사두를 찾아가 병사들의 부상을 치료할 수 있는 약초를 묻는다. “끽끽~ 우끽끽”이라고

그는 원숭이다.

하진 않았겠지만 그의 모습을 보면 왠지 그랬을 것도 같다. 사두는 약초의 모습을 설명해주고 그것이 있는 산의 위치 도 알려준다. 하누만은 구름을 타고 그 산으로 당장에 날아가 약초를 뒤적여보지만 그에겐 풀이나 약초나 다 비슷해 보일뿐이다. 결국 하누만은 그 산을 통째로 따서 전장으로 돌아왔고, 사두는 그 약초로 병사들을 치료했다고 한다. 하누만은 신이지만 약초는 구분할 줄 모른다. 인도의 신은 다 이런 식이다. 물론 자신의 성기를 끌어안고 한 달 동안 춤을 춰서 근방 모든 여자들을 다 임신시켰다는 시바는 좀 다르지만 말이다. 그리스 로마신화의 신들도 제우스를 제외 한다면 그들은 무엇인가가 결여되어있다. 그 결여됨은 그 신의 아이덴티티를 만든다. 제우스가 바람둥이인 것도 왠지 비슷하다. 언제나 듣게 되고 생각하게 되는 식상한 이야기지만, 여전히 어디에나 있는 신들의 비슷함이라고 할까. 그리 고 그것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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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원숭이로 돌아오자. 어느 나라에서든 원숭이는 나를 귀찮게 하는 정말 싫은 녀석이다. 세렝게티 에서 만난 블루멍키나 인도에서의 원숭이 모두 나의 소중한 과자를 탐했다. 그래도 세렝게티의 블루 멍키는 fire egg가 푸른색이라 볼거리라도 제공해주었다.

살아오면서 이런 매콤한 매력을 가진 녀석은 처음 봤다. 나는 블루멍키라고 불리는 이유를 나는 몇 장의 사진을 찍으면서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를 뒤로하고 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면서, 정말 시원하게 한참을 웃어댔다. 세렝게티에서 보았던 녀석들 중에 네가 최고다!

그러나 방 앞에 이런 녀석이 기웃거리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좀 많이 달라진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셈이다.

이 녀석의 별명은 eveil monkey. 단순히 피부병이 있는 녀석이긴 하지만 내 방에서 몇 번

사막을 도는 내내 그는 굉장히 성실한 사내였다. 내가 타고 다니던 낙타 킁킁이의 낙타

이나 먹을 것을 훔쳐간 이후로는 늘 저런 식으로 내 방 창문 아래에 대기 하고 있다. 그의

몰이꾼이었는데, 보통 인도 낙타몰이꾼들이 손님 뒤에 함께 앉아서 가기도하는 것에 비해

뒤에 다소곳한 척 앉아 있지만 더한 행동을 하는 녀석의 와이프는 더 얄밉다. 내가 악마원

그는 언제나 사막을 자신의 다리로 걸어 다니는 사내였다. 가끔씩 나에게 노래 한곡을

숭이를 무서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느낌으로 날 관망하니 말이다.

불러주었다. 나는 그 답례로 2루피를 주곤 했다. 노래실력이 굉장히 뛰어나지는 않았다.

참으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바라나시의 내 숙소 앞에 저리 떡하니 버티고 있는, 인간으

어쩌면 그 노래 자체가 썩 좋은 노래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가 부르는 노래

로 치면 왠지 창자까지 꺼내서 줄넘기 할 것 같은 녀석이다. 싸워도 내가 질 것 같다. 인도

가 좋았고, 그가 끌어주는 축농증 낙타 킁킁이가 퍽 좋았다.

는 원숭이가 참 많다. 그러니 신이 나왔을 것이다.. 원숭이 옆을 지나는 건 어릴 적 동네 사나운 개 옆을 지나는 것만큼이나 긴장되고 불편하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종류의 일이 다. 이럴 때 생기는 끈적끈적함은 좋아 할 수가 없다.

인도의 그리운 것들에게 순위를 매기자면, 4위나 5위쯤에서 짜이와 100합을 겨뤄야 할 것 이 바로 호텔 엘레나다. 저 방은 내가 바라나시를 찾을 때마다 묵는 굉장한 명당이다. 지금 은 보수 되어서 예전 모습이 없어졌다. 원래는 성이었던 것을 개조해서 호텔을 만들어 둔 것 인데 저곳은 마하라자와 마하리니(왕과 왕비)가 묵곤 했던 방이다. 지금은 개보수가 진행되 어서 꽤 비싸졌다고 한다. 갈 때마다 ‘올드프랜드 올드프라이스’를 외치던 유진이 아직 있 다면 옛날 가격으로 방을 빌려줄지도 모르겠다. 푸시카르에서 서쪽으로 좀 더 가면 자이살메르라는 곳이 있다. 인도에서 좀 더 라고 하면 차로 하루는 꼬박 이동을 해야 하지만 말이다. 자이살메르는 사막을 가지고 있는 도시다. 사진에 있는 사내는 그 사막에 여행을 왔던 미국 여자와 인도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다. 엄마는 아이를 버리고 미국으로 돌아가 버렸고, 결국 버려지게 되었다. 왠지 너무 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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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raysoda.com/nom blog.naver.com/nomi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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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o+ing novo는 타투에서 연계될 수 있는 화보작업, 전시, 오브제작업등을 하고 있다. 그런 그가 올해초, 프랑스에서 전시를 열었다. 프랑스에서 우연히 알게 된 모건 과의 만남으로 노보가 첫번째 전시를 프랑스에서 하였고, 모건이 7월부터 8월 까지 한국에서 전시를 연다. 글로벌적인 활동을 해나가는 그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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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o’는 작가 이름이기도 하지만 이번 프랑스 전시의 타이틀이기도 하다. 거기에 ing를 붙여 순수한 진행형을 만들고자 했다. 전시장 한쪽 벽에 테이핑 작업으로 종이비행기와 종이배 를 새겼다. 그리고 그 옆에 내 메세지를 쓰기 시작했다. 다른 벽에는 ‘novo family’라는 작업을 새기고 하나씩 작업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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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덧, 종이비행기는 노보의 상징물이 되었다. 종이 비행기는 희망을 상징하며 종이배는 용기를 상징 한다. 두 가지 중, 종이비행기 작업이 월등히 많았다. 사람들 은 용기보다는 희망을 더 원했던것 같다. 2010년부터는 종이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희망 과 용기를 원하는 수가 같아지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커져 프랑스 전시에서 그 작업을 실행해 보았다.

‘마이스페이스 몽키’란 전시 공간은 내가 처음 프랑스에 도착 했을 때, 모르는 길을 찾아 다니며 우연히 발견한 곳이다. 밖에서 보이는 전시장 벽에 한글이 보였고 자연스럽게 공간으 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모간과 첫 만남이 시작 되었다. 꼭 이 곳에서 전시하겠다는 나와의 약속이 이루어진 공간이 기도 하다. 전시 오픈 날은 항상 떨리고 긴장 된다. 그날도 역시 모르는 사람과 인사하며 내 작업을 소개했다. 당연한 말이겠 지만 그 날 찾아준 모든 분들께 너무 감사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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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익숙했던 길을 피해 처음 가는 길만을 걸었다. 많은 골목과 건물 사이를 지나면서 저 길을 돌면 어떤 모습이 있을까하는 궁금증에 발길을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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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여행횟수가 늘어날수록 쉴 수 있는 숙소 와 만족을 줄 수 있는 음식에 비중을 높인 다. 풍족한 먹거리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 은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전시가 끝난 후, 이어진 여행 속에서 내가 기억하 고 있는 공기의 기억이 나를 여유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옛날 생각도 떠올리며 그 간 한국에서 찾을 수 없던 휴식을 만끽하였다. 여행은 많은 생각을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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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EDOM, 2010, Mapping August Exhibition, Luxembourg 프랑스-네덜란드, 전시 프로젝트 Discomobiles, 2009 (전시 설치 이미지) 전시 프로젝트 Discomobiles, MEET - MEAT, 비디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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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gan FORTEMS

시작 되었다. 올해 2월을 시작으로 타투이스트 NOVO의 전시가 프랑스 my monkey

프랑스 남부 몽플리에 출신이다. 지금은 프랑스 동쪽의 낭시 (nancy) 에 거주 하고 있다.

에서 있었고, 프랑스 첫번째 교환작가인 morgan 은 돌아오는 7월부터 8월까지 인천 아트

모건 포템 (Morgan FORTEMS)의 다양한 활동력 덕분에 그를 한가지 직업군으로

플랫폼에 입주할 계획이다. 입주 기간 동안, 프로젝트 연구 및 기획 또 작가로서의 작업

부를 때는 순간 망설이게 된다. 그래픽 디자이너, 갤러리스트, 전시 기획자.. 이럴때

및 공동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STRANGE AIR IN THE NIGHT 팀은 올해 9월을 시작으

‘아티스트’라는 단어가 적합할 듯하다. 현재는 그래픽 디자인과 현대예술을 다루는 갤러리

로 ‘silence night’라는 이름으로 프랑스에서의 세개의 전시기획을 진행 중이다. 로렌

my monkey의 디렉터이며, 그래픽 디자인 팀인 (프랑스-벨기에) Please let me design

지방의 세개의 대표적인 도시인 nancy-metz-thionville 에서 올 9월부터 이어지는 이번

(PLMD)의 대표 디자이너이다. 공동 기획자로 참여한 한국-프랑스 전시기획 팀 Strange

전시들은 국내외 많은 작가들의 참여와 도시의 지원으로 준비가 한참이다.

Air in the Night 의 인천 아트플랫폼 입주로 올 7월 그를 만날수 있게 된다. 의대를 졸업하

공식 웹페이지 www.strangeair.org

고 건축을 하고 싶어, 건축 학교를 입학하게 되었다. 석사학위 최우수 졸업 후에도 ‘참여 미술’에 대한 수업에 참가하고, 학교 생활 중에서도 워크샵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 보스턴

Morgan FORTEMS은 2002년에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데, 여행이 아닌 장기간 체류

에서 6개월 동안 머물기도 하였다. 학업 과정에서 부터 지금까지 좀더 많은 사람과 소통

는 올 7월이 처음이다. 올 여름 한국에서의 프로젝트명과 같이 ‘이방인-STRANGER’로

할 수 있는 예술적 접근성에 관하여 집중하였다. 현재도 많은 워크샵과 강의를 통해 학생

서의 생활이 벌써부터 긴장되고 설레 인다고 한다. 개인 작업 및 많은 만남과 흥미로운

및 작가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일을 계속 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주로 인간의 내면적인

일들이 투성이인 이곳, ‘한국’에서의 생활을 기대하며 프랑스에 소개된 한국 소설을 틈틈

모습과 사회의 범주 안에서 드러나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의 시점으로 작업을 풀어

히 읽고 웹서핑을 즐기고 있다.

간다. 설치, 사진, 웹, 프로그램, 설치, 소리, 비디오 등 다양한 표현의 방식으로 전개된다. My monkey 프랑스 남부지역인 몽플리에 에서 대학을 마치고, 동쪽지역인 nancy로 오게 되면서, morgan은 연고지가 없었다고 한다. 친구 두명을 알게 되고 공동 작업실로 시작한 my monkey는 2003년에 대안공간의 성격의 작은 갤러리로 자리잡게 되었다. 어느덧 8년의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nancy 및 프랑스 동쪽지역 및 인근 유럽국가와 왕성한 교류와 활동을 하는 ‘영향력 있는 대안공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상업화랑이 아닌, 젊은 예술 의 교차점과 통로가 되고자, 영역, 나이에 제한을 두지 않고 많은 작가들에게 전시기회를 주며 ‘그래픽 디자인’및 예술에서의 소통의 장을 만들고자 한다. 지역의 지원과 성원으로 더욱더 많은 프로그램을 유치할 수 있게 되었고 다양한 국적의 젊은 디자이너 및 아티스 트들의 작업과 기획 전시가 소개되었다. STRANGE AIR IN THE NIGHT STRANGE AIR IN THE NIGHT 는 한국-프랑스 양국에서 진행되는 전시 기획 프로젝트 이다. 참여작가이며 공동기획자이기도 한 그는, 웹사이트를 매개체로 단순z한 교류전이 아닌, 예술적 정보와 소통의 장을 만들고, 양국의 문화권에 대한 이해와 교류를 돕고자

novoi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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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agavo 내일은 또 다른 오늘일 뿐 인생여정 에세이 한 미국 대학의 교수가 여행을 하려는 젊은 이들에게 한 말이 있다. “가보고 싶은 여행지는 굳이 돈을 들이지 않아도, 도서관에서 모두 가 볼 수 있다” 요즘 젊은이 (필자도 젊은 이의 나이에 해당하지만)들과 많은 여행객들은 가보고 싶은 여행지를 위해 얼마의 돈을 모아 실제로 그곳에 가서 즐기고는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여행사나 여행잡지가 제공하는 카테고리를 절대 벗어나지 못한다. 누군가 또 말하지 않았는가. 진정한 여행을 하려면 여행사나 잡지가 조명하는 곳만을 피해서 가라고! 초라해 보이고 환영받지 못한 하니의 궤변으로 끝날 수 있지만, 글에 흐름에 맡겨 보려한다. 비난 받을 수 있더라도, 환영 받지 못하더라도, 눈을 만족하지 못하 더라도, 삶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며 나를 이겨 가며 진짜 나를 찾는 아웃사이더 아닌 베거본더 스토리 이제 시작이다! 혹자가 이야기 하지 않았던가 진정한 미는 보는 이의 눈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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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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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l Artist, Jojo.

아, 이 사람이야 말로 진정 특이gkek.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나이지만 이 사람은 정말 너무 쉬우면서도 어려운사람이었다. 이름은 JO-JO 인도 계 흑인인데 인형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친구였다. 그냥 가려다가, 그에 대해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말을 걸었다. 작품세계 역시 너무나 특이했는 데, 자신의 인생 멘토였던 선생님을 모델 삼아 인형 을 만들어 그가 입었던 옷을 입히거나, 본인의 친구 들을 모델 삼기도 했다. 또는 많은 사람들의 배꼽만 을 모아서 큰 그림을 만들기도 했다. 뉴욕을 소개하는 여행 에세이 중에서, 남자로서 게이 들에게 인기가 있는 스타일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촬영을 하는 중, 이 친구는 내게 Beautiful 이라고 했다. 굉장히 기분이 이상하고 불편했지만 그 책의 내용이 생각나면서 좋은 의미로 받아 들였다. 물론 나는 Straight 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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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소개해 준 작품이다. 실제로 인형의 모델들이 되는 이들은 JOJO의 주변 사람들이 다. JOJO에게 영향을 줬던 사람들을 모티브로 작업을 한다. 이 인형의 모델은 오늘의 아티스트

매 작품을 할때마다 모델들의 이미지가 될 수 있는 사진이나

JOJO가 되기까지 많은 도움과 조언을 줬던 인생의 멘토라고 했다. 작품 활동이 아니더라도 그의

초상화를 함께 두고 작업하고, 그 후에도 이렇게 함께 걸어

인생관과 더불어 인생살이의 눈을 떠주게 해준 사람이다. 실제로 이 인형이 입고 있는 옷은 선생님

논다고 한다. JoJo멘토의 초상화다.

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자마자 찾아가서 얻어온 유품이라고 한다. 실제 사이즈냐고 물어보니, 살짝 작은 사이즈의 선생님이라고 했다. 다른 것들과 달리 사진이 함께 걸려있길래 누구냐고 물었다. 그와 사귀었던 옛 남자친구란다. 내 눈에는 그가 안톤 오노와 너무 닮아 보였다. 작업실을 둘러보며, 순수한 인터뷰로서 그에 관한 질문들을 개인적인 관점에서 어떤 문화적 개념이나 매너에 기초하지 않고 물었 다. "혹시, 결혼할 생각은 없는가?" (사실 동성상대를 염두하여 한 말 은 아니었다) 그러자, 그는 그의 손을 내 어깨에 얹으면서 "왜, 나한테 관심있어?" 라고 말했다. 나는 그 순간 이 아담한 공간에서 도망치 고 싶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대처했다. '워오, 난 여자가 좋아!' 그냥, I'm straight하면 될 것을 굳이 강조하면서 여자를 언급했지 만, 서로 웃으면서 분명 농담이었을 것임을 나 혼자 생각하면서 계속 작품 관찰을 계속했다.

또 다른 JoJo의 이웃모델인데, 색다 른 스토리는 없었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 신체의 특징을 잘 알아 모델삼은 것을 보면, 나체 를 본 것은 맞다.

JoJo의 이웃이다. 바로 옆집에 살았던 옛 이웃이라고 한다. 나체를 모델로 삼았는데, 이 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 당당하게 물어봤다. "아, 그럼 정말 하체 까지 보여달라고 부탁한 건가?" JoJo: 그가 샤워를 마치고 수건 걸치고 나오길래 잠깐 볼수 있냐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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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 같았던 좁은 복도를 몇 걸음 천천 히 걸으며 지나오고 나니, 커텐같은 장식 이 쳐저 있는 곳이 보였는데, 그곳이 주 생활공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도 작품이냐고 물어봤더니, 커텐이 아니라 인도여성들이 전통적으로 입는 복장이란다. JOJO는 어머니의 영향으 로 이것들만 보면 디자인이나 색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바로 산다고 한다. 이 때, 그의 배경도 함께 알게 되었다. 안그래도 좁은 복도 같은 공간 (마치 조롱박 같이 생겼 다 좁은 긴 복도끝에 둥그런 공간)에 큰 인형이 천장 가까이 걸려 있었다. 무슨 놀이동산 '유령의 집'을 연상

그의 아버지는 흑인이고 어머니는 인도 계미국인이었다. 그래서 더 작품과 내면 의 다양함을 갖게 된 것 같다.

atomicbombjay.blogspot.com

케 했다.

이 광경을 보자마자 나는 그에게 물었다. '여기서 사는 거 맞죠?' 저녁에 이것들을 보고 산다고 상상하니 빨리 지나치게 되더라. 그래도 아트니까. 그는 인형예술가이기 이전에 수집가였다. 수집가보다는 매니 아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 다. 내게는 살짝 섬뜩할 정도로 많은 것들을 모아 놓은 그였다.

이 DAMON이라는 동네에서는 젊은이들이 이동시에 항상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그러던 중, 자전거를 작품에 쓰라며 준 이가 있었 는데,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의미에서 그의 전신을 아주 natural하 게 실오라기 하나없이 함께 비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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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age

newage : 기존의 사회, 문화, 종교에서 더이상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여 영적 공허를 느낀 사람들이 이를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이것이 뉴에이지라는 이름으로 전개된 운동이다.

우리는 해가 떠있는 낮 동안에 세모, 네모, 동그라미의 모형으로 이리저리 분장을 해나간다. 그렇게 우리는 변한다. 그것은 인간뿐만이 아니다. 창조가 내미는 손을 기다리는 것들이 있다. 한 때, 백화점 써치라이트를 한몸에 받던 검은 구두가 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지금의 구두는 자신 위에 쌓인 먼지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다. 우리는 명예퇴직 당한 그 검은 구두에게 윤기를 얹어주고 새로운 삶을 주려한다. 하지만 구두는 헬륨풍선보다 가벼운 변화를 기다리지는 않는다. 쉼없이 일정한 틀에서 변신해나 가는 성형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여러 아티스트들을 모아 우리 주변에서 죽어가는 여러재료들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부여했다. 그것들을 단순한 작품사진으로 머무는것은 아쉬웠다. 그래서 아티 스트들의 정신을 담아 만든 오브제로 컨셉을 잡고 화보 하나하나에 담았다. 갤러리에서 작품을 보는 느낌으로 페이지를 천천히 넘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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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ald Novo+Jin-A Wedding 노보, 진아 화보이야기 24살에 결혼한 그들. 동갑내기 부부의 긴 여정을 거치고 20대의 마지 막 선에서 웨딩사진을 촬영했다. 평범한 부부와는 다른 그들 삶처럼 웨딩사진 역시 확연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새롭게 시작하는 노보 와 진아의 결혼을 축하하며 페이지를 넘겨보자.

사진 위영주 메이크업 홍민철 스타일링 벨앤누보 모델 노보 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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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eborn pig for hommaage 창간호를 기념할만한 화보를 생각하는 중이었다. 갑자기 떠오른 것 은 돼지머리였다. 얼마 후, 에디터는 메이크업아티스트 홍민철에게 집주소를 물어봤다. 그리고는 멋진오브제로 만들어달라는 부탁과 함께 집으로 돼지머리를 보냈다. 무리한 요구임이 분명했지만 그는 기대하라는 답변을 주었다. 촬영당일, 도착한 돼지머리는 기대이상 이었다. 죽은 머리었던 그것은 사람의 손을 거쳐 작품이 되었다. ‘오마주에 복을 가져다 줄 재탄생된 돼지머리를 만나보자.

사진 김석준 오브제 홍민철 에디터 김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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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석준 메이크업 박슬기 오브제 이석영 모델 현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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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Sexual

사진 박미진 메이크업 박정진 스타일링 김혜미 모델 이재환 최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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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우리들은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개성을 드러내며 산다. 남자는 여자보다 더 길게 머리를 기르고 여자는 머리를 싹둑 자른다. 어느날, 우연히 나폴레옹시대의 사진을 보았다. 그들의 규율같은 복장은 감옥같이 느껴졌다. 남과 여의 뚜렷한 복장차이는 개성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 그들의 성별을 바꿔봄으로서 그 시대에 펼치지 못했을 누군가의 마음을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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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bi gu ous

사진 박미진 메이크업 박슬기 모델 정용 스타일링 김혜미

타투와 메이크업의 만남, 한번쯤 해보고 싶었던 장르 이다. “Home-made tattoo”는 일반적인 타투머신 이 아닌 집에서 직접 펜과 모터를 이용해 머신을 만들 어 프리핸드로 작은 그림을 몸에 새기는 방식이다. 타투의 완성도나 퀄리티면에서는 많이 떨어지지만 단순함 속에 묻어 나오는 타투의 느낌은 일반적인 타투머신으로 흉내낼 수 없는 무언가 있다. 이런 복잡 하지 않은 자유롭고 장난스러운 문신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언젠가 새로운 것을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릴 때, 누군가 말해줬다. 누군가를 흉내내고 재해 석 하는 것도 해볼만한 작업이며, 그 속에 새로운 즐거움이 있다고. 낸 골딘은 10대때부터 좋아한 사진작가이다. 메이크업 을 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그녀의 작업물을 보면서 그 사진 속의 여장남자들의 어색하고 난잡한 메이크업 이 가장 눈에 들어왔었다. 서툼, 미완성, 어색함. 지금의 나와 매우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동갑내기 타투이스트 친구와 그것을 모티브로 하여 작업했다. 그가 할 수 있는 타투와 내가 할 수 있는 메이크업으로 그 시대, 그녀의 사진 속 인물들을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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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ricist

lyricist : 서정시인이라는 뜻이다.

고운 싱그러움들이 찰나에 순간에 맺힌다. 드넓은 그것들은 우리의 삶과도 같다. 비좁고 불편한 사진기에 갇혔다가 이내 더 넓은 세상으 로 자신을 뽑낸다. 뻗어나간다. 금새라도 승화 할 것 같은 진실들, 한 낱 뇌세포에 불안전하게 정착되 어 있을 그것에 물에 적신 붓으로 말랑말랑한 색을 묻힌다. 꽃에 가려 보이지 않던 입새들. 살기에 바빠 미쳐 보지 못했던 그것들을 세명의 작가를 통해 보려한 다. 패션사진을 찍는 그들이 이미지로 쓴 시를 감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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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진 I 박 미 진

전공이 사진이 아니다.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고등학생 때 친구와

윗통을 벗은 소년시리즈를 찍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해 달라.

부산 범일동에 있던 고물상에서 삼만원짜리 카메라를 구입했었는데 그게

내가 여자라서 그런지 여자보다 남자를 찍는게 더 좋더라. 더군다나 미성

계기가 된 것 같다. 그 전에도 컴팩트디카를 가지고 있었지만 필름사진

숙해보이는 소년들. 그들의 자유롭고 장난끼 넘치는 표정들이 좋다. 여자

만의 빛을 담아내는 고유의 색에 매력을 느꼈다.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

가 갖는 소년들에 대한 판타지를 보여주고 싶다.

며 학교모습을 담았었다. 그 땐 단순히 취미였다. 어릴적부터 그림을 그려왔기에 미대를 제외하고 다른 전공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미대에 진학해서는 교양수업에 있던 사진

어떤 사진작가에게 영감을 받는가. 동경하는 대상이 있다면. 너무 멋진

이 더 끌리더라. 전공수업을 듣기보다는 사진을 찍으러 더 많이 돌아

사진들이 많아서 딱히 동경하는 대상은 없다. Wolfgang Tillmans,

다녔던 것 같다.

Mark Bothwick의 초기사진등에서 영향 받는다.

디지털 카메라 사진보다 필름사진이 좋다고 했다. 넘어야 할 장애물이

앞으로 어떤 사진을 찍을 계획인가. 이걸 대답하면 앞으로 이 대답에 맞게

라고 생각하는가. 이건 개인의 취향 문제인 것 같다. 어떤 사진은 디지털

사진을 찍어야 할 것 같다. 아직까지는 ‘모르겠다’라고 말하겠다. 그냥 내가

로 찍은 게 더 마음에 드는 것도 있다. 하지만 난 꼭 디지털카메라를 손에

보고 싶고 내 눈에 보이는, 내가 느끼는 것들을 그대로 보여줄 것이다.

쥐면 망가지더라. 또 모아두는 걸 좋아하는데 디지털데이터보단 필름들

꾸밈없고 자유롭고 젊고 재밌는 사진을 찍고 싶다. 그리고 사진을 계속 찍으

을 직접 만지면서 정리하고 모아두는 것이 좋다. 컴퓨터는 많이 하긴 하지

면서 변해가는 나에 대해 계속해서 탐구하고 알아갈 것이다.

만 컴퓨터를 기계상으로 잘 다루지 못해서 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가진 필름카메라가 dslr보다 가볍다. 이런 단순한 이유로 필름카메라가 좋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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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을 상상하는 북극곰씨 아무도 없는 메신저 창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듯 홀로 노란불 밝히는 밤. 노크처럼 북극곰씨의 이름이 반짝 켜진다. - 산다는 게 이렇게나 윤기가 없을 수도 있구나. 북극곰씨는 얼마 전 이십 대를 함께 걸어온 그녀와 이별했다. 그녀를 떠나보내며 그는 자신의 청춘도 한 움큼 뜯어냈을 것이다. - 이불 안으로 들어가는 게 겁난다. 나의 냄새와, 살비듬과, 떨어진 머리카락들, 지난 밤 꿈과, 잠들기 전 떠올렸던 그녀를 고스란히 품고 있을 거 아냐. 북극곰씨의 두 평짜리 방은 과거와 현재와 비현실이 뒤섞여 숨 막히는 열기로 가 득 차 있겠지. 겨울 내내 외출을 하지 않았던 그는 방 안에 곰팡이처럼 피어나는 기억에 파묻혀서 어느새 자신도 시퍼렇게 멍이 들고 있다는 걸 알기나 할까. 말이 없는 내게 북극곰씨가 사진 파일을 전송한다. 플래시 때문에 가지런히 모은 두 발이 너무도 창백해 흠칫 놀라다 무언가를 발견한다. 열개의 까만 발톱 위에 꿈틀거리 는 선들. 자세히 들여다보니 생채기처럼 그녀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 왜? - 발톱이 자라면서 내가 그녀를 생각하는 시간들도 조금씩 밀려나가지 않을까해 서. 지금쯤이면 밖에 꽃이 피었을까? - 춥잖아. - 추워도 벌써 사월인데. - 이틀 전에 슈퍼를 갔었지. 벚나무 가지가 텅 비었더라구. 텅. 텅. 텅. 네 머릿속같이. 머그잔에 커피를 가득 담고 휘휘 저으며 책상 앞으로 돌아오니 북극곰씨는 어느 새 자리를 떠났다. 좀 더 다정하게 곧 꽃이 필거야, 라고 말해주길 기다렸던 것일 까. 시간은 계속 흐르고, 그러다 보면 다 괜찮아질 거라는 엉성한 위로라도 필요 했던 것일까. 하지만 어차피 지금은 밤이다. 교훈도, 위안도, 더 큰 슬픔도, 근사한 일도 영화처럼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나라는 사람은 흐린 날씨가 오히려 견딜만 하다. 만개한 꽃들은 봄의 울음 같아서 환한 바깥을 똑바로 쳐다보는 일이 두렵 다. 밤낮도 구분 없이 뜨거운 울음으로 가득한 계절.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화분들로 가득한 고향집을 찾아가면 사방이 온통 푸르러 주눅이 들곤 했다. 건강 하고 밝은 기운들. 집안 곳곳 스미는 들큼한 향. 꽃이 아니더라도 뿌리를 내리고 사는 모든 식물들에게선 생명의 향기가 배어나온다. 그저 삶을 버틴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나와는 다른 시간이 흐르는 새로운 차원의 공간이라는 이질감. 숨겨 두었던 창문을 더듬거려본다. ‘밤’이라는 이름의 어두운 시간을 어쩌면 북극곰씨는 희망이라는 간절함으로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풀어지고 풀어진 마음이 너무 길어서 그 끝을 볼 때까지만 견디자고 생각하면서. 꽃이 질 때까지 는 어떻게든 버텨 보자 했던 나처럼. 계절의 끝을 기다리던 나처럼. 간절했던 건 결국 완전한 절망이 아닌, 희망이었던 나처럼. 후회는 적당히 매듭지을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니까. 왠지 북극곰씨의 손에 캔맥주가 들려 있을 것만 같다. 그를 찾아가 볼까, 잠깐 생각한다. 저 낡은 창문을 밀면 이틀 전에는 지하철로 두 정거 장 쯤 전에, 어제는 옆 동네 쯤에, 오늘 밤이면 우리 집 근처를 서성이고 있을지 모를 봄을 마주칠지도 모른다. 봄은 짧아, 북극곰씨. 봄이 피었다 지는 동안만, 우리 마음껏 풀어져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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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진 I 김 석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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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남자는 무뚝뚝하고 재미없다라는 옛말이 있다. 부산남자라서

개인작업사진들의 대부분이 홀로 있는 외로운 사진들이다. 어떤 심리를

좋은점과 나쁜점은. 바다사나이는 무뚝뚝하면서 맡은 일은 누구보다

반영한 것인가. 내 나이 열일곱살에 부모님께서는 나와 친구들을 단절

열정적이더라. 이래도 재미가 필요한가? 나쁜점이라면 이 때문에 자존

시킨 뒤, 검정고시 준비를 위해 절에 보냈었다. 절에 간 이유는 특별해

심이 쎈편이라는 것.

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내성적인 나는 법당을 벗어나 근처 저수지에서 큰소리로 노래

어린친구들의 작업을 위해 도움의 손을 잡아주셨다. 댓가없이 그대로

를 부르고 춤을 췄다. 그리고 이내 깊은 생각에 빠졌다. 특별한 삶을

도움을 주기란 쉽지 않다. 그들과의 작업으로 인해 얻는 것이 있다고 생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까. 답은 희미했지만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각하는가. 물론이다. 나 또한 그렇게 성장해 왔고, 그들 역시 재미난

자신의 모습을 넘어 새로운 기류를 만들어내고 싶다.

아이디어로 내 피를 끓게 만들었다. 이렇게 새로운 팀이 생기면서 내 감수성은 더 발전하였다.

서정적인 개인작업과 강렬한 화보작업이 큰 차이를 보인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어느 쪽의 작업이 자신과 더 맞다고 생각하는가. 내 꿈속의

자신의 비주얼과 작업물이 닮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나는

악몽은 비주얼의 끝을 보여주고, 깨어있는 나는 회상하기를 좋아한다.

매일 꿈을 꾼다. 내 작품 대부분은 꿈속에서 파생된다. ‘요즘 꿈속의

화려한 패션사진, 생각하는 사진. 모두 내 모습이다.

장면은 참으로 러블리하다. 지구가 멸망했다. 남은 것은 사진기와 자신뿐이다. 그 때도 사진을 찍을 것인가. 왠만한 동네 폐허 속 풍경은 관심없다. 멸망하면 꽃단장한 나와 황폐해진 도시풍경을 기록하고, 메모리카드를 타임캡슐에 넣어 땅속에 묻어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언젠간 내 이름이 사진사에 기록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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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진 I 김 성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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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W W. I L M O S T R E E T. CO M

FASHION MEETS ART&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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