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 가는 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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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 가는 길

6과. 타인의 유익을 생각하는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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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유익을 생각하는 배려

Section 1 배려 Section 2 배려와 평화 Section 3 나로부터 시작하는 배려와 평화


핵심 요약 (Abstract)

사람은 생존을 위해 각자의 욕구를 충족하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타인의 유익을 생 각하고 배려한다. 배려는 개인의 건강과 사회적 성공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배려를 통한 따뜻 한 존중과 유대는 인류 사회를 지속가능한 협력 공동체로 만들어 준다. 배려는 사랑과 평화를 위한 기본적인 가치이다. 배려를 실천할 때는 무엇보다 상대가 배려받았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 다. 왜냐하면 배려의 일차 목적은 상대방의 편의와 유익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배려는 자칫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하거나, 상처를 줄 수 있다. 반대로 상대의 입장 을 고려한 배려는 상호 신뢰와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하고, 조직 내 평화 문화가 자리 잡게 해준다. 이기심과 불신을 이기고, 배려하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그 자체로 평화이다.


배려심은 어떤 대학 학위보다 여러분의 자녀를 더 많이 성장시킬 것입니다. Being considerate of others will take your children further in life than any college degree. ㅡ 매리언 라이트 에델만 (미국 아동 권리 운동가, 1939~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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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려

01 SECTION

Section 1

배려 # 배려란 무엇이며, 왜 필요할까?

1. 배려란 무엇인가? 1)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배려 배려란 타인을 도와주거나 보살피려는 태도를 말한다. 길을 비켜 주는 것,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것 같은 행동은 사소 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가 담겨있다. 배 려는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없는 배려는 거만한 태도로 비춰지기도 하며, 부적절한 오해 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는 감정이입이 필요하다. 우리 뇌의 ‘거 울 뉴런(mirror neuron)’은 감정이입을 자연스럽게 도와준다. 거울 뉴런은 다른 사람을 관찰하거나 책을 읽는 간접 경험만으로도 다른 사람의 일을 마치 내가 직접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누 군가 넘어졌을 때 그 아픔이 예상되어 같이 얼굴을 찡그리고, 누군 가 울면 그 슬픔이 느껴져 같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거울 뉴런 때문 이다. 미국 워싱턴 대학의 ‘학습 및 뇌과학 연구소(Institute 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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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rning & Brain Sciences)’는 실험을 통해 생후 19개월 아기도 타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1) 아기 앞에서 낯선 어른이 음식을 먹고 싶어 손을 뻗지만 닿지 않는 상황을 연출했다. 아기는 음식을 집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음식은 누가 먹었을까? 아기들은 음식을 집어 어른에게 주었다. 아기들은 대개 배고픈 시간 인 간식 시간이나 식사 시간에도 어른을 도와주었다. 이타심과 배려 에 대한 학습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아기들이 본능적으로 배려 하는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거울 뉴런 덕분이다. 이같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상대방의 감정을 자신에게 이입하여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배려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1) 타인의 유익을 생각하는 배려 배려는 타인의 편의와 유익을 추구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배려를 실천하는 데는 공감 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공감 능력을 가지 고 있더라도, 의도적으로 공감 능력을 발휘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 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에 대한 사랑과 이타심이 본바탕이 되어야 타 인의 편의를 우선하는 배려를 실천할 수 있다. 또 사람은 자신의 처 지나 감정에 따라 타인의 입장을 생각할 만큼 충분한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가 있다. 이때는 배려를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와 습관이 있 어야,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하고 배려를 실천할 수 있다. 기분이 좋 지 않더라도 쓰레기를 함부로 길가에 버리지 않는 것, 여러 사람이 있는 실내에서 습관적으로 목소리를 줄이는 것 등이 그러한 예다.

인터넷의 핵심 기술인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을 개발한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는 1989년 ‘유럽 핵연구소(Conseil Européenne pour la Recherche Nucléaire, CERN)’ 내에서 자 료를 원활히 공유하기 위해 이 기술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 기술 이 세계사에 획을 그으며, 새 시대의 지평을 열 기술이 될 거라고 짐 작했다. 특허권을 등록하면 명예와 부는 보장된 것이었다. 하지만 1991년 버너스 리는 특허권을 포기하고 월드와이드웹 기술을 전면 공개했다. “웹의 목표는 인류에게 봉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1 https://www.washington. edu/news/2020/02/04/ altruistic-babies-studyshows-infants-are-willingto-give-up-food-help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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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려

그것을 만들고 있습니다. 나중에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지금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을 창조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The goal of the Web is to serve humanity. We build it now so that those who come to it later will be able to create things that we cannot ourselves imagine.)” 버너스 리는 모든 사람이 자유롭 고 평등하게 인터넷을 사용해서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랬 다. 자신의 이익보다 인류 전체의 편의와 유익을 배려한 것이다. 그 결과 월드와이드웹 기술은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 이상으로 지 식과 정보의 확산에 크게 기여했고, 인류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2. 배려의 효과 1) 개인적 효과 이타적 배려 행위는 ‘헬퍼스하이(Helper's High)’를 촉진한다. 헬 퍼스하이란 남을 도와주는 행위만으로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혈압 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떨어져, 기분이 좋아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2006년, 미국 ‘국립 신경질환 뇌졸중 연구소(U.S. National Institute of Neurological Disorders and Stroke)’의 연구2)에 따 르면, 아무런 조건 없이 남을 돕는 이타적 행위는 뇌의 중변연계 (mesolimbic system)를 활성화해 도파민(dopamine) 분비를 촉진 한다. 미국의 내과 의사 앨런 룩스(Allan Luks)가 실시한 조사에서 는 일주일에 8시간 이상 남을 돕는 사람 3,000명 중 95% 이상이 이 헬퍼스하이를 느꼈다고 대답했다.3)

1998년, 하버드 의대 연구팀에서는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발표했 다. 사람의 침에는 면역항체가 있는데, 연구팀은 하버드대생 132명 의 항체 수치를 확인한 후, 사랑과 배려를 실천한 테레사 수녀의 다큐멘터리를 보여주었다. 다큐멘터리 시청 후 학생들의 면역항체 수치를 측정한 결과는 놀랍게도 50%나 면역항체가 증가했다. 선한

2 Human fronto–mesolimbic networks guide decisions about charitable donation, 2006 3 Allan Luks and Peggy Payne, The Healing Power of Doing Good (1992),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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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을 보거나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면역력이 높아지는 이 반응을 ‘마더 테레사 효과(The Mother Teresa Effect)’라고 부른다.4)

배려심이 많고 대인관계가 좋은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할 확률 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높은 편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스티 븐 캐플란(Steven Neil Kaplan)이 <저널 오브 파이낸스(The Journal of Finance)>에 발표한 자료5)를 살펴보면, 2,603개의 기업 경영진을 30개 평가 항목으로 분석한 결과, 대인관계 능력이 좋은 사람이 주로 CEO로 채용되었다. 이사회가 CEO를 채용함에 있어 서, 다른 능력보다 대인관계 능력에 지나치게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고 이 자료는 주장하고 있다. 물론 다양한 능력이 균형 있게 평가되 어야 하지만, 조직의 특성상 유대감과 신뢰 등이 업무의 효율에 미 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대인관계 능력은 어느 조직에서나 핵심적인 평가 요소임이 틀림없다. 배려는 대인관계를 원만하게 함으로써 개인이 사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게 해준다.

2) 사회적 효과 “이기적인 집단은 이타적인 집단을 이길 수 없다. (Altruistic groups beat selfish groups.)” 데이비드 윌슨(David Sloan Wilson) 과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은 <사회 생물학의 이론적 토 대 재고(Rethinking the theoretical foundation of sociobiology)> 에서 이같이 주장했다.6) 최대의 효율을 내는 이기주의자가 모이더 라도 이타적인 집단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배려는 개개인이 안 정된 환경 속에서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준다. 배려와 이타심이 없으면 각자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경쟁적인 집단이 되기 쉽다. 서로 에 대한 불신과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메마른 분위기 속에서는 개인의 잠재력을 끌어내기 어렵다. 결국, 배려가 없는 집단은 파편 화되어 이타적인 집단을 이길 수 없게 된다.

유엔 자문기관인 ‘지속가능발전 해법네트워크(Sustainable Dev elopment Solutions Network, SDSN)’는 매년 전 세계 158개 국

4 https://lifelabs. psychologies.co.uk/ posts/874-the-mothertheresa-effect 5 Steven N. Kaplan, Are CEOs Different, The Journal of Finance, Volume76, Issue4, August 2021, P1773-1811 6 https://www.journals. uchicago.edu/doi/ pdf/10.1086/522809


1.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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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의 행복도를 조사해 <세계행복 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 를 발간한다. 이 조사에서 매년 북유럽 국가가 10위 이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어서, 2020년에는 <북유럽 국가가 특히 더 행복한 이유 에 관한 보고서(The Nordic Exceptionalism: What Explains Why the Nordic Countries are Constantly Among the Happiest in the World)>7)를 추가로 발간했다. 북유럽 국가의 높 은 행복 지수는 많은 복지비 지출 때문일까? 연구 결과 GDP 대비 복지비 지출 규모는 행복 지수와 크게 연관이 없었다. 답은 국민의 입장을 배려한 국가 정책의 세심함에 있었다. 고소득자는 높은 세율 을 감수하면서까지 사회 구성원 모두에 대한 복지와 기본권 보장을 지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북유럽 국가는 타인에 대한 신뢰와 사회 응집력(Trust in other people and social cohesion)이 높았다. 이 보고서가 주는 시사점은 국민의 행복은 경제적 풍요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배려하는 문화는 국민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이처럼 배려는 조직의 경쟁력을 높일 뿐만 아니 라, 구성원의 행복에도 영향을 미친다.

2. 배려를 막는 장애물 1) 급변하는 사회와 피로해진 개인 21세기의 급변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타인을 배려할 여유를 가 지기란 쉽지 않다. VUCA(변동성(Volatility),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라는 용어는 급변하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잘 표현한다. 현재 대부분 국가는 인터넷, 개인 용 컴퓨터, 스마트폰 등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정보 혁명 곧 3차 산업 혁명이 진행 중이다. 그리고 이미 몇몇 국가는 인공지능, 로봇 공학, 빅 데이터 등을 기반으로 하는 4차 산업 혁명의 시작 단계에 이르렀다. 이렇게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현대인은 끊임없 는 불안함과 긴장감을 가지게 되었고, 타인을 배려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돌봐야 한다는 욕구가 커졌다.

7 https://happiness-report. s3.amazonaws.com/2020/ WHR20_Ch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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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가족의 형태와 인간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가정보다 직장 또는 온라인상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가족 간 소통은 줄어들었고, 정서적 친밀감을 줄 수 있는 친구나 이 웃과의 교류도 줄어들었다. 또 정서적 안정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부족해졌다. 사회의 빠른 변화 속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개인은 쉴 새 없이 자기 계발에 몰두하게 되었다. 또 경제적 성 공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 분위기는 사회 구성원 간의 경쟁을 부추 기고, 돈이 행복의 척도라는 그릇된 인식도 만들었다.

피로에 지친 일부 사람은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을 겪기도 한다. 번아웃 증후군이란 스트레스가 축적되어 생기는 감정 적 탈진 상태를 의미한다. 번아웃에 시달리면 타인을 냉담하게 대하 게 되고,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도 부족해진다. 그러한 냉담한 반 응을 접한 사람도 또 감정적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번아웃 증후군 의 부정적 영향은 연쇄적으로 확산되기 쉽다. 이렇게 정서적으로 불 안정한 상태에 놓인 개인은 타인에 대한 배려심을 가지기 어렵다.

2) 이기주의 개인의 개성과 권리를 존중하는 개인주의는 인권과 자유를 보장 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근대의 산물이다. 하지만 ‘나만 잘살면 된다.’라는 이기주의가 개인주의의 취지를 왜곡시키고 있다. 개인의 성공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타인에게 호의를 표현하고 배려할 필 요성을 못 느끼게 된 것이다. 특히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현상은 개인의 고립과 불행을 초래하고 사회의 파편화를 가속한다. 아직도 사회 곳곳에는 주변의 무관심 속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는 사람 들이 있는데, 이는 타인을 경쟁 상대로만 여기는 각박한 사회 분위 기 속에서 타인에게 관심을 주는 노력조차 아까워하기 때문이다.

개인적 이기주의는 때때로 ‘집단 이기주의’로 발전하기도 한다. NIMBY(Not In My Back Yard)라는 단어로 자주 표현되는 집단 이 기주의는 배려의 매우 큰 장애물이다. 왜냐하면, 배려의 범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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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려

개인적 차원 이상으로 확장하지 못하도록 한정하기 때문이다. 배려 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집단 간, 국가 간, 종교 간에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기업의 노사 갈등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려면, 노동자와 경영자 사이에 배려와 양보가 필수적이다. 만약 한 쪽 집단이 상대 방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다면 회사는 어떻게 될까? 양쪽 집단 모 두 손해를 입고, 회사의 운영은 어려워질 것이다. 집단 이기주의와 배려의 부재로 인한 갈등은 간혹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닫게 되어 분 쟁과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If you want to go fast, go alone. If you want to go far, go together.)”는 아프 리카 속담처럼, 인류는 배려와 협업을 통해 생존하고 사회를 형성해 왔다. 개인과 집단의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배려의 문화가 정착될 때 사회는 비로소 평화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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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큰 사람은 무엇보다도 예의 바르고, 사려 깊고, 관대합니다. 특정 상황에서 특정 사람들에게만 아니라, 항상 모두에게 그러합니다. Really big people are, above everything else, courteous, considerate and generous - not just to some people in some circumstances - but to everyone all the time. ㅡ 토마스 존 왓슨 (미국 기업인, 1874~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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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려와 평화

02 SECTION

Section 2

배려와 평화 # 배려와 평화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1. 평화의 초석, 배려 1) 2,500만 명을 구한 배려 1892년, 미국 캘리포니아 스탠포드 대학교의 한 남학생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힘겹게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9살에 부모님을 여의고, 삼촌 집에서 자란 이 청년은 늘 학비와 기숙사비를 어떻게 마련할지 고민이었다. 때마침 미국에서 연주회를 열고 있는 명성이 높은 폴란 드 피아니스트의 다음 행선지가 캘리포니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청년은 이 피아니스트를 초청해 연주회를 열고 수익을 창출하기로 마음먹었다. 청년은 피아니스트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고, 허름한 대학교 강당에서 간신히 연주회를 열 수 있었다. 그러나 좌 석은 반도 차지 않았다. 연주회 수익은 고작 피아니스트의 출연료인 $2,000에도 미치지 못하는 $1,600였다. 연주회가 끝나고 청년은 나머지 $400도 가능한 한 빨리 갚겠다는 각서를 써야만 했다. 학비 를 마련하기는커녕 빚을 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피아니스트 가 출연료로 받은 $1,600를 청년에게 돌려주었다. 열정 있는 학생 에게 주는 장학금이었던 셈이다. 청년은 피아니스트의 배려에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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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피아니스트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9년에 폴란드의 초 대 총리가 되었다. 하지만 폴란드는 전쟁 후유증으로 극심한 식량난 을 겪고 있었다. 기아로 인한 사망자만 하루에도 수백 명에 달했다. 다른 유럽 국가에 식량 지원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매 일같이 폭동이 일어났고, 해결책은 없는 막막한 상황에서 총리는 사 퇴를 결심했다.

그런데 갑자기 미국 구호국(American Relief Administration, ARA)에서 식량 200만 톤을 폴란드에 보내주었다. 폴란드 국민 2,500만 명이 1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덕분에 폴란드는 식 량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총리는 크게 감사하면서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미국에 원조를 요청한 적이 없었기 때 문이다. 총리는 미국 구호국장을 직접 찾아가서 감사를 전했다. 이 때 구호국장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기억 못 하시겠지만, 총 리님은 제가 대학 시절 힘들었을 때 저를 도와주신 적이 있습니다.” 당시 미국 구호국장이 바로 27년 전 캘리포니아 연주회에서 빚을 졌 던 그 학생이었다. 피아니스트의 작은 배려가 한 청년의 마음속에 27년 동안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 일은 폴란드의 초대 수상인 파데 레프스키(Ignacy Jan Paderewski)와 당시 미국구호 국장이자 후에 제31대 대통령이 된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의 실화이다.

2) 모두를 생각한 유니버설 디자인 1979년, 26세의 여성 디자이너 패트리샤 무어(Patricia Moore) 는 80세 노인 분장을 해 화제가 되었다. 주름진 얼굴, 뿌연 안경, 굽 은 허리, 다리에 철제 보조기와 특수 제작한 안경까지 착용하고 돌 아다녔다. 그런데 이 이벤트는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았다. 무어는 1982년까지 무려 3년 동안 정기적으로 노인 분장을 하고 116개의 도시를 순회했다. 노인 분장을 한 이유는 3년 뒤 그녀가 내놓은 작 품을 통해 밝혀졌다. 패트리샤 무어는 노인과 몸이 불편한 사람을 위한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였다. 물이 끓으면 소리가 나는 주전자, 타고 내리기 쉬운 저상버스, 손잡이를 고무로 만든 냄비, 바퀴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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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려와 평화

린 여행용 가방 등은 모두 그녀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제품이다. 무 어는 할머니로 지낸 3년 동안 단순히 설문조사로는 알 수 없었던 노 인의 심리적, 신체적 특징을 이해하고, 일상의 크고 작은 불편을 직 접 체험했다. 이렇게 국적, 성별, 나이, 장애의 유무 등에 상관없이 누구나 편하게 쓸 수 있도록 배려한 디자인을 ‘유니버설 디자인 (universal design)’이라고 부른다. 획기적이고 편리한 디자인을 구 상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무어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유니버 설 디자인의 원동력은 공감입니다. 한 가지 규격으로 모두에게 맞출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Universal design is driven by empathy, an understanding that one size doesn’t fill all.)”

유니버설 디자인은 일상생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아이들이 잡을 수 있도록 낮게 설치된 손잡이,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계단 없 는 출입문, 픽토그램(pictogram), 점자 등도 배려의 정신이 담겨있 는 유니버설 디자인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다문화, 고령화를 특징 으로 하는 현대 사회에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노약자, 장애인, 외 국인 등에 대한 차별과 소외는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되며, 때로는 폭력과 분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공감과 배려를 바탕으로 하는 유니버설 디자인은 차별과 소외를 극복하고 사회 통 합을 주도하는 평화 문화의 대표적인 예시라 할 수 있다.

그림 2-1 저상 버스

그림 2-2 비상구 픽토그램

그림 2-3 소리나는 주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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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배려의 올림픽, 패럴림픽 장애인 올림픽으로도 불리는 패럴림픽은 신체적 장애가 있는 선 수가 참여하는 국제 스포츠 대회이다. 패럴림픽(Paralympic)은 본 래 ‘paraplegic(하반신마비)’과 ‘Olympic(올림픽)’ 두 단어의 합성 어이지만, 현재는 그리스어 전치사 ‘para(함께, 나란히)’로 대치해 ‘올림픽과 나란히 열리는 대회’, ‘누구든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하는 대회’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패럴림픽은 1948년에 영국 의사 루 트비히 구트만(Ludiwg Guttmann)이 전쟁 부상병 스포츠 대회를 열면서 시작되었다.

1899년,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 루트비히 구트만은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다. “어차피 죽을 운명입니 다.” 전쟁에서 척추를 다친 군인은 가망이 없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병상에 방치된 채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을 기 다려야만 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구트만은 의사 생활을 시작 했다. 이후 구트만은 1939년에 나치의 박해로 독일을 떠나 영국에 정착했다. 영국 정부는 구트만에게 스토크맨더빌 병원 내에 ‘국립 척추부상센터(The National Spinal Injuries Centre at Stoke Mandeville Hospital)’를 설립해 달라고 요청했고, 구트만은 여기 에서 척추 손상 환자를 본격적으로 돌보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부분 제2차 세계대전 부상병이었다. 척추 손상은 불치병이 아님에도, 환 자들은 병상에 누워 하염없이 천장을 바라보다가 우울증에 빠지고, 삶의 의지를 잃어갔다. 이런 환자들의 육신과 정신을 한꺼번에 일으 켜 세우기 위해 구트만이 생각해낸 방법은 바로 스포츠였다.

1948년 7월 28일, 스토크맨더빌 병원에서 처음으로 척추 환자 양 궁 대회가 열렸다. ‘스토크맨더빌 게임(Stoke Mandeville Games)’ 으로 명명된 이 장애인 스포츠 행사는 규모가 계속 성장했고, 1960년 로마 대회부터는 부상병뿐 아니라 모든 장애인을 포함하는 국제 대회로 발전했다. 1960년 이후로 스토크맨더빌 게임은 올림픽 과 같은 년도에 같은 국가에서 열렸고, 1964년 도쿄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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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려와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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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럴림픽이라는 공식 명칭을 사용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로 현재까지는 올림픽과 같은 도시, 같은 경기장에서 패럴림픽을 개최 하고 있다.

패럴림픽은 한 의사의 작은 배려에서 시작했다. 환자를 침대에서 일으켜 세우고, 삶의 즐거움을 되찾아주려는 작은 배려가 이제는 세 계인의 육체와 정신까지 일으키고 있다. 또 장애인뿐 아니라 모든 이에게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패럴림픽은 올림픽과 더불어 지구촌의 화합을 도모 하는 평화의 축제가 되었다.

그림 2-4 패럴림픽 상징 아지토스(Agitos)8)

8 아지토스(Agitos)는 라틴어로 ‘나를 움직인다’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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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려의 부재와 평화의 위기 1) 배려의 부재와 범죄의 시작 1989년, 대한민국에서 한 범죄자가 절도, 강도치사 혐의로 무기 징역을 선고받았다. 심지어 탈옥까지 하고 무려 2년 6개월이나 도 피 생활을 하며 추가 범죄를 저지르고 다녔다. 전국은 불안과 공포 로 얼어붙었다. 그런데 다시 붙잡힌 이 범죄자의 입에서 뜻밖의 고 백이 나왔다. “나 같은 놈이 태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내가 초등 학교 때 선생님이 ‘너 착한 놈이다.’ 하고 머리 한 번만 쓰다듬어 주 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5학년 때 선생님이 ‘이 새끼 야, 돈 안 가져왔는데 뭐 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 하고 소리쳤는데 그때부터 마음속에 악마가 생겼다.” 물론 이런 사연이 절대로 범죄 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만약 이 범죄자가 어렸을 때 보다 많 은 관심과 배려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2000년에 위 범죄자는 옥중에서 서신으로 자기 생각을 밝혔다.9) “그저 많은 죄를 지은 범죄자이고 죽어 마땅한 죄인일 뿐입니다. (중략) 제가 만난 재소자들 중에 90%가 부모의 따뜻한 정을 받지 못 했거나 아니면 가정폭력 또는 무관심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런 상태 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오면서 마음의 상처가 깊어지고 사춘기 때 비 로소 행동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범죄를 줄이는 방법은 다 른 게 없습니다. 교도소를 아무리 많이 짓고 경찰력을 아무리 많이 늘려도 현 상태에선 절대 범죄가 줄어들 수 없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것만 있으면 됩니다. 가정이 화목하고 자녀들에게 좀 더 사 랑과 관심을 가진다면 범죄는 자연히 줄어들게 됩니다.”

아이는 부모, 선생님,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의 말과 행동을 따라 하며 자신의 인격을 형성해 나간다. 그러나 배려 없이 뱉은 말과 행동은 아이의 마음에 상처로 남는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아이는 인격에 손상을 입고,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에 지장이 생기며, 급기야 는 범죄로 이어지게 된다. 이렇게 마음의 상처가 악화되기 전에,

9 https://www. peoplepower21.org/ Magazine/710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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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려와 평화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2) 배려의 부재와 아동 문제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ILO)의 2018년 보고서10)에 따르면 5~14세까지 약 1억 5,200만 명의 아동 이 노동 현장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 어린이의 약 1/10을 차지한다. 코발트는 핸드폰, 노트북, 전기 자동차 등에 들어가는 배 터리의 원료인데, 문제는 아직도 많은 아프리카 코발트 광산에서 아 동이 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 BBC 방송국의 보도에 따르면 코 발트 광산 붕괴로 산 채로 매장되거나 부상당한 경우도 있다.11)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현재 미국 법원에서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다수의 기업이 배터리 제조 과정 중에 아동 노동의 실태를 알고도 묵 인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더 심각한 상황은 아동이 군인으로도 복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8년까지 전 세계 46개국에서 아동 군인의 존재가 확인되었다.12) 아동은 군대 생활 중 죽거나 다칠 위험이 매우 크다. 윤리, 도덕의식 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군 생활을 시작한 아동은 무차별 살상 테 러에 동원되기도 한다. 설사 건강하게 일상생활로 복귀하더라도, 군 10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Ending child labour by 2025: A review of policies and programmes (2018), https://www.ilo.org/ wcmsp5/groups/public/--ed_norm/---ipec/ documents/publication/ wcms_653987.pdf 11 https://www.bbc. com/news/worldafrica-50812616

그림 2-5 소년병

12 Child Soldiers International, Child Soldiers World Index (2018), childsoldiersworldindex. org


평화로 가는 길

대에서 경험한 살인 등의 영향으로 폭력적인 성향을 가지게 될 확률 이 높다. 이렇게 아동 군 복무는 이번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의 평화까지 위협하고 있다.

위와 같은 문제의 발단은 아동에 대한 사회적 배려의 부재에 있다. 아동 시기는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없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려우며, 어른으로부터 지도와 보호를 받아야 하는 때이다. 아동에 게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안정된 가정환경과 사회 제 도 그리고 무엇보다 충분한 교육이 필요하다. 아동에 대한 사회적 배려는 국가의 발전에도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아이들이 바로 다 음 세대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핀란드, 한국 등 아동 교육과 아동 권리 증진에 힘쓴 대부분 국가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1989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아동권리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UNCRC)’은 총 54개 조항으로 구성 되어 있으며, 아동을 단순히 보호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규 정하고 있다. 아동의 생명권, 교육권 등 각종 기본권을 보장하는 이 협약이 모든 국가에서 잘 지켜진다면 각종 아동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그리고 아동에 대한 배려는 다음 세대의 번영과 평 화에도 이바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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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평화로 가는 길


다른 사람들을 한결같이 배려하는 습관은 여러분에게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The habit of being uniformly considerate toward others will bring to you increased happiness. ㅡ 그렌빌 클라이저 (캐나다 작가, 1868~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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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로부터 시작하는 배려와 평화

03 SECTION

Section 3

나로부터 시작하는 배려와 평화 # 배려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1. 경서를 통해 배우는 배려의 실천 원리 1)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라

언제나 자비로운 마음에 머무르면, 비록 악한 사람이 욕하더라도 바위처럼 고요히 흔들리지 않는다. If you always stay in a merciful heart, you will not be shaken as still as a rock, even if an evil man curses you. ㅡ 불교 <아함경>

불교에서 말하는 무재칠시(無財七施)는 재물이 없어도 남에게 베 풀 수 있는 일곱 가지를 말한다. 부드러운 눈빛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 자비로운 미소로 사람을 대하는 것, 공손한 말투로 사람을 대하 는 것, 내 몸을 수고롭게 하여 남을 돕는 것, 착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 잠자리가 없는 사람 에게 방을 내어주는 것이다. 가진 게 많다고 배려심이 큰 것은 아니 다. 배려는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실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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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 가는 길

2) 타인의 처지를 먼저 이해해라

무릇 사람을 부림에 있어 먼저 굶주리고 추울 것을 생각해야 한다. 즉, 남의 처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凡使奴僕 先念飢寒 ㅡ 유교 <명심보감>

중국 제나라의 ‘관중’과 ‘포숙’은 친구 사이였다. 둘이 함께 장사하 다가 관중이 더 많은 이익을 챙겨가면, 포숙은 관중의 집이 어려워 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이해했다. 관중이 시험에 세 번이나 낙방하 자, 포숙은 때를 잘못 만난 관중의 재능이 아깝다고 탄식했다. 관중 이 전쟁에서 세 번이나 도망치자, 포숙은 관중에게 늙은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라고 이해했다. 포숙은 관중의 처지를 이해하고, 관중 의 인품을 믿었다. 훗날 관중은 “세상에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포 숙뿐이다.”라고 말했다. 동아시아에서는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신 뢰하는 사이를 두고 ‘관포지교(管鮑之交)’라고 말한다.

3)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배려를 실천하라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Do not forget to show hospitality to strangers, for by so doing some people have shown hospitality to angels without knowing it. ㅡ 기독교 <성경>

구약 성경에는 소돔 성에 사는 롯 가족의 이야기가 나온다. 롯은 우연히 찾아온 두 명의 손님을 정성껏 대접했는데, 알고 보니 이 두 사람은 신이 보낸 사자였다. 후에 소돔 성이 심판받을 때 롯과 그의 가족은 심판을 피해 무사히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 이처럼 종교


3. 나로부터 시작하는 배려와 평화

경서가 전하는 메시지의 공통점은,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나도 그만큼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2. 배려는 실천해야 의미가 있다 성경에 보면, 강도를 만나서 거의 죽게 된 한 유대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유대교 랍비와 또 다른 유대인은 쓰러진 사람을 돕지 않고 지나가지만, 유대인에게 천대받던 사마리아인은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 상처를 치료해주고 주막으로 데려가 돌봐준다. 여기서 유래한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단어는 통상 ‘선행을 실천하는 사람’이라 는 의미로 사용된다.

1978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 교수이자 사회 심리학자인 존 달리 (John M. Darley)는 대니얼 뱃슨(Daniel Bateson)과 함께 신학생 을 상대로 한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신학생 중 절반에게는 선한 사 마리아인 이야기를 설교 주제로 주었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자유 주 제를 주었다. 그리고 이들이 설교하러 가는 길 한쪽에 강도에게 습 격당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각본대로 쓰러져 있는 연기를 했다. 과연 선한 사마리아인 설교를 준비한 신학생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 룹에 비해 쓰러진 사람을 더 많이 도왔을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설교 주제와는 무관하게 설교 때까지 남은 시간이 많았던 신학생은 63%가 쓰러진 사람을 도왔고, 설교 시간에 이미 늦었다고 알려준 신 학생은 10%만이 도움을 주었다. 자신이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설교하러 가면서도 정작 자신이 바쁠 때는 눈앞에 쓰러진 사람을 도 울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배려는 지식으로 아는 것보다 실천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감사나 용서는 타인을 위한 일이기에 앞서 자 기 자신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마음속으로만 감사하고 용서하는 것 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배려는 타인의 편의와 유익을 구하는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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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 가는 길

이기 때문에 마음속으로만 배려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누군가가 나에게 배려해주었다고 말하는데, 나는 배려를 받았다고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가정해보자. 마음으로만 한 배려는 이와 같다. 선 한 사마리아인은 마음으로 배려하는 사람이 아닌 행동으로 배려하 는 사람이다.

3. 배려를 실천하는 기버(giver)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 와튼 스쿨의 조직 심리학 교수인 애덤 그랜 트(Adam Grant)는 그의 저서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에 서 선호하는 호혜 원칙에 따라 사람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을 ‘기버(giver)’,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을 ‘테이커(taker)’, 주는 것과 받는 것에 균 형을 이루도록 애쓰는 유형을 ‘매쳐(matcher)’라고 이름 붙였다. 세 유형이 사회에서 경제적, 직업적 성공을 거둘 확률은 어떻게 될까? 엔지니어, 영업 사원, 의사 등 다양한 직업군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성공 사다리의 맨 아래에는 기버가 가장 많았다. 하지만 놀랍게 도 성공 사다리의 꼭대기에 가장 많은 유형도 기버였다. 그럼 성공 한 기버와 실패한 기버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성공한 기버는 타인 의 이익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시에 자기의 이익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고, 실패한 기버는 타인의 이익에 비해 자신의 이익을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미국 제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성 공한 기버의 좋은 예시다. 링컨이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 했을 때 매트슨(Joel Matteson)과 트럼블(Lyman Trumbull)이라 는 두 경쟁자가 있었다. 사전 여론 조사에서 매트슨은 44%, 링컨은 38%, 트럼블은 9%의 지지율이 나왔다. 선거는 가까워져 오고, 링컨 은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여기서 링컨은 전형적인 기버의 모습을 보인다. 링컨은 스스로 후보에서 사퇴하고, 자신과 같은 정책을 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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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로부터 시작하는 배려와 평화

쳐온 트럼블에게 표를 몰아주었다. 무리하게 욕심부리는 것보다, 자 신과 같은 정책을 주장하는 사람이 당선되는 것이 일리노이주 전체 에 이익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선거에서 트럼블이 51% 득표율 로 당선되었다. 4년 후 링컨은 다시 한번 상원의원에 도전했다. 하지만 정치판에서 기버로 행동하는 링컨에 대한 평판은 좋지 못했 고, 당선될 확률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이 전 당선 자인 트럼블이 링컨의 강력한 지지자로 등장했고, 트럼블의 지지자 가 링컨을 도와서 결국 링컨이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링컨은 이후 대통령이 되어서도 자신의 경쟁자였던 사람들로 내각을 구성할 정 도로 자신의 눈앞의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기버의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었다. “우리 내각에는 가장 강한 사람이 필요 합니다. 나에겐 우리나라가 그들의 능력을 활용할 기회를 빼앗을 권 리가 없습니다. (We needed the strongest men of the party in the cabinet. Then I had no right to deprive the country of their services.)” 링컨의 이 말은 전형적인 기버의 사고방식을 보여 준다.

소통과 협업이 강조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기버가 직업적으로 성 공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회사에서도 팀 단 위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CEO에게도 리더쉽 못지않게 소통 능력 이 중요하게 요구되고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기버의 역할 은 점점 강조되고 있다. 기버는 단순히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기버는 배려를 실천함으로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사회의 핵심 구성원이다. 우리 사회 에 기버가 많아질수록 따뜻한 배려의 문화를 바탕으로 평화는 점점 확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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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 가는 길

4. 배려할 때 주의점 배려는 상대방의 요구를 파악하고 필요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섣불리 행한 배려는 더 큰 상 처를 줄 수 있다. 놀랍게도 나치에 의해 발전한 이론인 우생학 (Eugenics)도 배려를 앞세웠다. 장애인이나 유전질환자의 삶은 고 통스럽기 때문에 태어나지 않게 도와주는 것이 배려라고 주장한 것 이다. 이런 당당한 명분을 가지고 수십만 명의 생명을 단번에 앗아 갔다. 상대방의 의사를 배제한 배려가 얼마나 참혹할 수 있는지 극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장애인은 이런 고충을 자주 겪는다. 타인의 배려 속에서 자신을 열등하게 바라보고 동정심과 연민으로 대하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장애인 안전과 보호라는 명목 아래 당사자의 의견은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배려가 아니라 도리어 자기 결정권과 자유 침해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동의 없이 휠체어를 밀어주는 행동 이다. 휠체어는 그 사람의 신체 일부나 다름없기 때문에 물어보지 않고 손을 대는 것 자체가 큰 실례이다. 상대방에게 도움이 필요한 지 먼저 물어보고 확인해야 하며, 휠체어를 직접 밀어주기보다 문을 활짝 여는 등 공간을 확보해주는 것이 효과적인 배려이다. 장애에 관련된 용어도 정신지체(Mental Retardation)같이 열등성을 내포 하는 용어는 지적장애(Intellectual Disability)같은 가치 중립적인 용어로 수정하고 있다.

배려를 실천하는 데는 이런 세심함이 필요하다. 배려의 근본 목적 이 타인의 편의와 유익이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이런 실수를 줄여나 갈 수 있다. 적절한 배려를 통해 사회를 점점 따뜻하게 만들면, 평화 문화는 뿌리 깊게 정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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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로부터 시작하는 배려와 평화

결론

서로 다른 생각과 성향을 가진 사람이 공동체를 이루어 살기 위해서는 배려가 필요하다. 배려가 없는 각박한 사회는 파편화되고 결국은 와해된다. 배려는 타인과 조화롭게 지내기 위 한 수단으로,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의 편의와 유익을 추구하는 행위이다. 배려 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도 함께 증진되며, 사회적 이익까지 발생 한다. 물론 급격한 사회 변화와 이기주의 풍토 속에서 배려를 실천하기 어려울 때도 있지만, 배려의 필요성과 효과를 이해한다면 극복할 수 있다.

위 본문에서 배려의 실천이 평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확 인했다. 폴란드 초대 총리의 예시처럼 일상 속 작은 배려가 극적인 사회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반대로 배려의 부재로 인한 한 사람의 마음의 상처가 사회적 범죄와 폭력으로 이어지 기도 한다. 특히 아동에 대한 배려는 다음 세대의 발전, 평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측면에 서 더욱 중요하다.

특별히 배려는 마음을 행동으로 표현해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상대 방이 원치 않는 잘못된 배려는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거만한 태도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 조 심해야 한다. 배려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세심하게 실천해서, 따뜻함이 넘치는 평화의 세계를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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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91898-00-2 ISBN 979-11-974584-9-1 (세트) Copyright

2021 Heavenly Culture, World Peace, Restoration of Light. All rights reserved.

이 책은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무단복제를 금지하며, 이 책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저작권자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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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0

9 791191

898057

ISBN 979-11-91898-05-7 ISBN 979-11-974584-9-1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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