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2013 Interbrand Brand Letter
It’s the economy, stupid!
brand
Vol. 23
Editor's Letter
Politics X Brand 2012년. 전세계가 선거로, 정치로 시끄러웠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례없이 치열한 경쟁 끝에 새로운 대통령이 결정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선거가 끝난 지 제법 지난 지금까지도 당선과 낙선의 원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누군가는 당선의 원인을 ‘원칙과 신뢰’라는 뚜렷한 브랜드가 있었기 때문이고, 낙선자는 유권자들의 기억 속에 각인시킬 만한 뚜렷한 브랜드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브랜드와 정치. 무슨 연관이 있을까. 사람들이 정치를 이야기할 때 브랜드를 생각하기나 할까? 2013년 2월 21일 (목) 13 : 30 - 16 : 00 문의 interbrandkorea@interbrand.com / 02.515.9150
우리는 지금 정치와 브랜드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후보자의 퍼스널 브랜딩. 정당의 브랜드 이미지, 선거에서의 브랜드 슬로건과 칼라. 브랜드 포지셔닝과 전략적 접근 방법. 어쩌면 브랜드 없이 정치를 설명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정치의 중요성을 느끼고,
Best Korea Brands 2013 Launching 2013년 2월 21일. 인터브랜드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0개의 브랜드를 선정, 발표합니다. 국내 최초로 발표하는 Best Korea Brands에 대한 많은 분들의 관심 바랍니다. 문의) interbrandkorea@interbrand.com
정치에 신경 쓰는 순간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구성 하는 수많은 결정들이 정치 때문이라는 것을, 그래서 정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느끼게 된다. 우리가 어떤 제품을 선택할 때 가격 때문에, 편리함 때문에, 디자인 때문에, 서비스 때문에, 추천 때문이라고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브랜드가 그 이유인 것처럼.... 결국, 정치도 브랜드가 아닐까.
Interbrand 컨설턴트들이 분석한 심도 깊은 브랜드 보고서
Interbrand Brand Letter VOL.23
Brand Report
Branding the Candidates
Jeremy Villano / Strategy Director, Interbrand New York Forest Young / Design Director, Interbrand New York
4년 전, 백악관에 입성하기 위해 오바마 캠프가 디지털 플랫폼을 완벽하게
했던 그의 신뢰성과 브랜드를 차례로 약화시켰다. 지속적인 변화의 풍토
활용했을 때, 사람들이 브랜드와 기술 쪽에 몸담고 있는 우리들에게까지
에서 벌인 그의 선거운동 행태는, 우리가 정치 뿐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경외심을 품었던 사실을 기억하는가?
디지털을 통해 브랜드 플랫폼을 관리하고 운용하는 것을 폭넓게 이해 하는데 도움을 준다.
과장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적어도 이것만큼은 사실이다. 당시에는 새로웠던 디지털 플랫폼 활용이 선명하고 생생했었다고 말한다면 지금
Beyond the speed of politics
그것들은 누렇게 바래진 신문지처럼 퇴색되었다는 것. 마치 오바마 후보가 그런 것처럼. 능수능란했던 도전자는 국가적 도구들을 마음껏 행사하는 백발의 대통령으로 변해버렸다. 명확하게 말하자면,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가 신기술에 해박한 후보라고 생각했었던 우리들의 인식이 변해
오바마의 대선 무대 등장은 애초부터 디지털 친화적인 해프닝과 다름없
버린 것은 그가 디지털 혁명이 우리의 삶을 아주 빠르게, 크게 변화시킬
었다. 그의 팀은 인터넷을 기금 모금터로 탈바꿈시켰고, 온라인에서만 5억
것에 대해 단순한 언급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달러 이상이 모금되면서 상대진영을 경악시켰다. 그러나 돈은 스토리의 일부에 불과했다. 이 선거운동에서 그들은 1,300만 개 이상의 이메일
트위터가 막 태동하기 시작하던 2008년, 아이패드는 단지 ‘그런 게 출시
주소를 수집했고, 이에 따라 문자 메시지를 통해 유권자 100만 명과 즉각
된다카더라’ 라는 정도의 루머에 불과했고,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여전히
접촉할 수 있었다. 게다가 '마이 버락 오바마 닷컴(mybarackobama.
극소수의 특권층일 뿐이었다. 4년 후, 오바마가 재집권을 준비할 즈음
com)' 이라는 소셜 네트워크는 유권자 200만 명의 프로필 저장소나 다름
트위터는 국지적 봉기와 지구촌 담론에 역동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고,
없었다. 페이스북에서는 540만 명 이상이 선거 당일 자신들의 페이지에
아이패드의 세 번째 모델이 출시되었으며, 아이패드와 스마트폰은 모든
'투표완료(I Voted)' 버튼을 추가하고 다른 사용자들에게도 똑같이 하도록
이들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요컨대 올해 선거는 변형된 디지털 운동장,
독려하면서 참여율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 선거 운동의 디지털 전략은
즉 오바마 캠프가 더 이상 손쉽게 장악할 수 없는 장소에서 펼쳐진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투표자들이 디지털 플랫폼의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직접
이는 채널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메시지의 문제이기도 했다. 현직 대통령
바꾸는 것에서부터 바이러스처럼 번져나간 가수 윌. 아이. 엠이 제작한 연설과
의 재출마는 개혁을 부르짖는 도전자, 즉 과거의 자신을 뛰어넘어 백악관
노래의 매시업(mashup: 두 노래를 합쳐서 만든 음악. 특히 한 노래의
으로 진입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여정이었다. 2012년 대선은 스타일과
음악과 다른 노래의 목소리를 합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촉진시키면서
본질,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다른 스토리와 핵심적인 변화들을 요구했다.
정치브랜딩을 새로운 영역으로 정착시켰다. 오바마 캠프의 기술 미디어
오바마 캠프가 수행한 대선운동 초반 중 일부는 우리에게 상당히 의미
통신위원장으로 활동했던 줄리어스 제나카우스키는 “기술 덕택에 우리는
있게 다가왔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의외로 비현실적이어서, 한때 견고
플랫폼을 구축한 후 사람들이 그에 호응하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다”고
Storming the digital gates: the inside/outside conundrum
워싱턴 포스트와의 회견에서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상징적인 가치도 있다. 대통령 책임제에 개인적인 스타일조차 문제가 되는 미국에서, 오바마의 기술에 대한 능숙함은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매버릭 (maverick: 개성 강한 독불장군)으로서의 입지도 무력화시켰다. 매케인이 인터넷을 직접 사용하는 일이 많지 않다고 고백했을 당시, 오바마의 바지 뒷주머니에 꽂혀있던 블랙베리는 오바마야말로 당대의 진정한 매버릭 임을 유권자들에게 시사하기에 충분했다.
오바마가 최고의 격려자(Inspirer-in-Chief)에서 냉철한(때로는 2008년 대선 당시, 오바마가 수많은 유권자들로부터 기금을 모으는 데
좌절감을 안겨주는) 세계 지도자로 변모하는 동안 디지털 영역은 어떻게
인터넷을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뿐만
변했을까? 두말할 나위 없이 그의 대통령 임기 중에 디지털 기술은 일상
아니라 오바마는 전쟁에 지쳐 새로운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던 미국에게
생활의 주류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것은 더 이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자신을 소개하기 위해 인터넷을 적극 활용했다. 기술친화적인 젊은
새로운 선택적인 수단이 아니며, 플랫폼들은 지속적으로 성장하였다.
청중들은 오바마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소셜 네트워크는
디지털 전략은 이제 시장에서의 성공에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인식되어
오바마의 “그래, 우리는 할 수 있어(Yes, we can)”라는 주문을 감성적인
후보들은 물론 기업들도 뉴노멀(new normal: 시대변화에 따라 새롭게
구호로 변화시켜 온라인 선거운동에 참여한 개인과 단체들의 힘을 북돋
부각되는 기준)을 완전히 익히며 선두자리를 놓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웠다. 이렇게 실제로 디지털 기술은 기존의 메시지를 격상시켰을 뿐만
디지털 사용자에 대한 통계 자료들은 매체가 진화하고 확장됨에 따라
아니라 선거운동 전략을 형성하고 규정하기도 했다. 그것은 인터넷에
더욱 폭넓게 성장하고 있다. 이제 웹 기반의 선거운동 헌금이나 쌍방향
내재하고 있던 민주주의와 참여, 그리고 상호작용의 잠재력을 반영한
선거운동 애플리케이션에 대해 참신하다거나 후보의 진보적 성향을
일종의 스토리텔링 공생체(Storytelling symbiosis)였다.
상징한다고 느끼는 유권자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으며, 평범한 기술에 대한 지식을 과장하는 후보는 시대에 뒤떨어진 인물로 낙인 찍히게
소셜 네트워크는 메시지를 크게 파급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 기부금을 납부
될 것이다.
하고, 유권자 등록을 하게 했으며, 집집마다 찾아 다니며 청원서를 돌리고 기금을 모금하도록 고무시켰다. 컴퓨터 시스템으로 연결된 자원봉사자
지난 선거운동 이후, 디지털 영역에 대한 기대는 변화했다. 오바마가 부상
군단은 주로 디지털 플랫폼을 거쳐 바이러스처럼 전파된 수사적, 비유적
하면서 사용자들이 생성하는 콘텐츠들은 대부분 어떠한 보상도 원하
스토리 텔링에 감화를 받아 미국 전역의 전장(戰場)에 포진했다. 이는
지 않았다. 그러나 사용자들은 점차 자신들의 창작물이 허락 또는 보상
2007년, 모두의 예상을 깨고 오바마를 백악관으로 깜짝 입성시켜 큰
없이 누군가에 의해 활용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로 그 스토리였다.
또한 디지털 지형은 점차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 중심으로 변해가고
오바마 대통령 웹사이트 (출처 : 마이버락오바마 닷컴 www.mybarackobam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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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d Report
PLAY 오바마 홍보 영상 The road we've traveled 오바마 대통령은 선거 운동의 일환으로 한편의 영화같은 홍보 동영상을 유투브에 게재했다. (출처 : 마이버락오바마 닷컴)
있는데, 올해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Intstagram: 사진 공유 어플리
말하는 스토리도, 디지털 플랫폼을 어떻게 해야 가장 잘 활용하는 것인
케이션)을 인수한 것이 한 예다. 이에 따라 디지털은 너무 비싸서 다른
가에 대한 대답도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곳— 예를 들면 후보의 이력을 자세히 설명하는 텍스트들로 가득 찬 한물간 웹사이트—에서는 펼쳐놓을 수 없는 상세 정보를 얻기 위해
오바마의 2012년도 선거운동은 포부보다는 업적에 더 중점을 두었다.
찾아가는 매체라는 개념이 됐다. 선거전략은 이제 디지털화 되었을 때
물론 대통령 재선 운동은 속성상 풀뿌리로부터의 노력은 아니며, 오바마의
기존의 형식으로 만들어졌는가, 아니면 비주얼을 적절히 활용하였
전술은 그 현실을 반영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디지털 기술이 유권자의
는가에 달려있다.
충성심을 축적하고, 기념물을 제공하며, 광범위한 지지를 표현하거나 선거운동 테마를 임의로 개인화하는데 적극적으로 활용되지는 않았다.
What's the story?
이번 스토리는 단순히 그가 이룬 일에 관한 것이었다. 영상 미디어의 사용은 오바마 자신의 현 위치를 말하고 있는데, 톰 행크스가 구연한 '우리가 걸어온 길(The Road We've Traveled)' 이라는 선거용 동영상은 두 가지
당대의 지배적인 기술이 무엇이던 간에, 문제가 되는
핵심 변화를 담고 있다. 오바마 집권 1기를 역경을 딛고
것은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만은 아니다. 메시지 자체도
일어난 승리로 규정한 이 동영상은 대선 광고에서 오랫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역사적
동안 채택되어 왔던 영화적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으며,
의미가 있는 선거운동을 살펴보면 매체와 메시지가
일상의 목소리나 포퓰리즘적 테마는 포함하고 있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공황 당시, 프랭클린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유투브를 광고
루즈벨트는 라디오 방송에 통달해 난로가에 모여 앉
전용 플랫폼으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오바마 캠프는
은 국가적 가족의 이미지를 마법처럼 창조해냈다. 외모가 텔레비전에 잘
동영상을 주요 네트워크를 보유한 방송사에 팔지 않았고, '우리가
맞았던 케네디는 1960년 미국 가정의 거실 브라운관에 멋지게 나타
걸어온 길' 을 대중들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별도의 초청 행사도 하지
났으며, 오바마는 2008년 소셜 네트워크에 잠재되어있던 대중 동원력을
않았다. 이를 통해 그들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더 집중했고, 1차
행사했다. 이들은 매체, 메시지, 메신저의 수렴으로 정치적 스토리텔링의
전달 플랫폼을 이용하는 디지털 선거캠프에 대한 믿음을 다시 보여
극치를 이룬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스토리는 우리 삶 속의 개별화, 혼돈,
주었다. 또한, 이는 브랜드에 대한 진실, 즉 현재로서는 유투브, 또는
무질서들을 목적의식이 부여된 강력한 이야기로 체계화한다. 다시 말해,
그와 비슷한 디지털 매체들이 그들의 스토리를 말하기에 전적으로
당사자에 대해 늘어놓는 것은 결코 변화에 대해 말하는 것만큼 흥미
적합한 수단임을 입증했다. 오바마와 같은 아웃사이더 브랜드가
롭지 않으며, 특히 어려운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한편, 변화한 것은
내부로 들어온 것이다.
디지털의 위치만이 아니었다. 오바마는 재출마를 선언하면서 자신이
The authenticity principle
2012년, 오바마는 누가 자신의 지지자인지 알고 있었다. 부분적으로는, 그는 전에 한번 끌어 모았던 지지자들의 열기를 다시 일으킬 디지털 도구가 필요했다. 그 결과 그의 선거운동 재원 상당량이 화려함은 덜 하지만 잠재가능성은 더 큰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 대규모 자료를 토대로 새로운 정보를 찾아내는 것)에 투입되었다. 뉴욕타임즈는 시카고
오바마의 디지털 전략들이 백악관 입성에 지대한 공헌을 했는데도 왜
의 대형 사무실 안에서 분석학 및 행태 전문가들이 열성적인 지지자들을
다른 대선 후보들은 그러한 방법들을 모방하지 않았을까? 워싱턴
분발시키고 중립적인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지난 선거에서 수집한
포스트는 오바마의 공화당 경쟁자들이 “인터넷 시대의 잠재력을 단지
정보를 샅샅이 훑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금 덜 수용했을 뿐”이라고 지난 4월 언급한 바 있다. 물론 오바마의 디지털 전략 각본을 베끼지 못하는 것이 선거일의 패배를 의미하는
고도의 타깃 메시지 전달은 지난 선거 이후 대세가 됐고, 오바마 팀은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고객들과 흔히 말하는 신뢰성의 원칙에
이를 적극 수용했다. 선거 캠프는 '오바마'에서부터 '워렌 버핏'에 이르기
있다. 매체의 사용이 시간, 필요성, 후보와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까지 다양한 구글 검색어 옆의 광고 공간을 구매했다. 타깃 디지털
성공한 기업인의 경력으로 정치에 투신한 미트 롬니는 상의하달식의
광고와 과도한 분석은 오바마의 활기찬 선거운동 스타일에 비추어
전형적인 회의실 방식을 구현해왔다. 따라서 롬니 후보가 디지털을
볼 때 다소 지겨운 행태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유투브에 대한 믿음과
다이나믹하고 혁신적으로 사용한다고 해도 그의 전반적인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광고가 백악관의 향배를 좌우한다는 선거 캠프의
어울리지 않는다.
굳건한 믿음은 디지털 언저리에서 서성대는 브랜드들에게 결국 디지털을 활용하도록 동기를 부여 할 것이다. 이러한 수많은 변화 속에서 기금
지금까지 롬니 캠프는 기초를 세우는 데에 전력투구해 왔다. 그들이
모금은 여전히 중요한 숙제였다. 오바마와 그의 도전자 미트 롬니는 양측
가장 주목할 만하게 사용자 생성 콘텐츠를 활용했던 '미트와 함께
모두 기부금을 신속하고 쉽게 거둬들이고자 스마트폰을 활용했지만,
(I’m With Mitt)'라는 무료 사진공유 앱은 지난 5월 처참한 역효과를
모바일 기기의 수용을 진보적이거나 상징적인 것으로 표현해서는
낳았다. 대형 서체로 나라 이름을 'Amercia'로 잘못 표기해 비평가들
안된다는 것을 정치인과 브랜드 모두 상기해야 했다. 많은 브랜드들
에게 빌미를 제공했고, 롬니가 디테일에 취약할 것이라는 인상을 심어준
에게서 보아왔듯이 이제 디지털 기술은 일반 고객(또는 유권자)이 나아가야
것이다. (혹자는 그 앱의 '저장' 아이콘이 1980년대 초의 플로피 디스크식
할 길에도 깊숙이 연계되어 있다.
기술이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오바마는 자신이 소용
1 핀터레스트에 등장한 버락 오바마 2 'America'를 'Amercia'로 잘못 표기해 수많은 패러디물을 낳은 'I'm with Mitt' 1
2
사진 공유 어플리케이션 (출처: www.mittromne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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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d Report
돌이의 중심에 있음을 알았다. 예를 들어 위에 언급한 디지털 광고들
흔들거나 아기에게 입맞춤을 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가까이 다가가게
중 일부는 좋은 위치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도자에게는 효과적이지
할 수는 있다. 디지털이 성장함에 따라 유권자들은 후보들에게 즉각적인
못했다. 미셸 오바마는 개인용 이메일을 통해 그녀는 '오바마를 옹호
반응을 원하고, 그들이 자신들의 세상에 들어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하는 데' 유권자들이 필요하다고 선언했다. 이는 오바마의 2008년 출마가
결국 2011년, 디지털로 시작된 ‘아랍의 봄’은 신세대들이 지도자의
마치 가족간의 일인 것처럼 느끼게 한 서민성 및 디지털 친밀성과도
신뢰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명확하게 보여줬다.
무관하고, 오바마 팀이 이야기하는 신뢰성이 결여됨과 동시에 음정이 맞지 않고 사전에 계산된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언젠가 우리는 차기 대통령은 자신의 인스타그램 사진 앱을 활용하고,
선거 운동이 민첩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입증됐다. 오바마 팀은
개인적인 관찰 내용을 솔직하게 트위터에 올려야 하며, 대선후보들을
웹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소셜 플랫폼인 핀터레스트
디지털 세계의 아바타를 통해 만나게 되지는 않을까? 마침내는 후보가
(Pinterest)에 등장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롬니는 패러디를 제외
내세운 공약들의 결과를 우리의 지역사회에 적용된 디지털 오버레이를
하고는 여전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신뢰성의 원칙은 여기서
통해 해부하게 되지는 않을까? 지금, 이 모든 것들은 오바마가 취임할 때
그에게 빠져나갈 방법을 다소 줄 수도 있었는데, 그것이 '오바마'라는
보다 실현 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 보인다. 다음 변화가 무엇이던 간에,
브랜드에는 잘 어울렸지만 롬니에게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이 제공하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영속적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후보들은 유권자들이 있는 디지털 공간이면
선거운동의 현실에 적합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앞으로 대선을
어디든 등장해야 할 필요성과 자신의 브랜드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데
몇 번만 더 거치면, 우리는 트위터와 아이패드, 그리고 스마트폰을 사용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며 자란 후보를 선출하게 될 것이다. 향후 매 4년마다, 얼마나 많은 혁신 들이 우리의 생활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겠는가?
The road we’re traveling 아이러니하게도 디지털은 우리를 개인적 상호작용이 표를 얻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과거로 되돌릴지도 모른다. 디지털에서 정치인이 손을
다양한 이슈를 Interbrand의 브랜드 통찰력을 통해 해석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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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d Insight
정치도 브랜딩이다
Eunice Min / Verbal Branding Director, Interbrand Korea
박근혜 브랜드 스토리의 힘 가장 최근에 치러진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승리했다. 무엇이 박근혜 후보를 승리로 이끌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은 브랜드 스토리가 성패를 좌우했다고 할 수 있겠다. 지난 대선들을 돌이켜 보아도, 강력한 브랜드 스토리가 있는 후보들이 당선되었다. 민주화의 (출처: www.atcampus.in)
상징 김대중 대통령, 성공한 기업인 이명박 대통령 등이 그 예이다.
노태우 전대통령의 ‘보통 사람’ 은 우리 국민이 최초로 경험한 정치인
박근혜 후보는 그 어느 후보보다도 막강한 브랜드 스토리를 지녔다.
브랜드이다. 실제로 노태우 전대통령이 ‘보통 사람’ 이었는지 아닌지는
부모님을 비극적으로 여의고 하루 아침에 고아가 된 대통령의 딸, 그 딸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는 그렇게 자신을 브랜딩 했고 그 결과
고난을 겪으며 성장해서 스스로 대통령에 도전한다는 스토리….
13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는 사실이다. ‘브랜드’ 또는 ‘브랜딩’ 이라
이 전형적인 스토리는 마케터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하면, 상업적 목적을 가진 기업/서비스/상품을 그 대상으로 생각하기
베일에 덮여 있던 것을 우연히 발견한 것도 아니다. 우리 나라 50대
쉽다. 그러나 브랜딩을 ‘고객의 마음 속에 해당 브랜드에 대한 의도된
이후 세대들이 함께 겪었고 나누었던 스토리이다. 그에 비해 문재인 후보는
인식을 심어 사랑을 받게 하는 전략적 행위’ 라고 정의한다면 그 대상은
우리에게 알려진 스토리가 비교적 적었다. 그의 진실하고 깨끗한
훨씬 넓어진다. 이 글에서는 국내외 정치인들의 사례를 통해 정치와
이미지는 존중하지만, 이를 뛰어 넘어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데는 실패
브랜딩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했다. 즉 ‘러브마크’ 가 되기에는 감정을 이입할 포인트가 너무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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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 후보로 양자 구도를 이루었던 박근혜, 문재인의 대선 포스터와 슬로건
또 다른 관점에서, 19대 대선에는 흥미로운 브랜드 전략이 존재했다. 지금
비교적 명쾌하다. 박근혜 후보는 문재인 후보에 비해 신선한 이미지가
까지의 대선은 후보자와 그 후보자가 속한 당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약했는데, ‘첫 여성 대통령’ 이라는 메시지를 활용해서 이를 어느 정도
대결이었다. 그러나 19대 대선의 두 유력 후보에게는 당사자 외에, 투표의
상쇄시켰다. 이에 반해, 문재인 후보의 대표 메시지 ‘사람이 먼저다’ 는
향방을 가르는 또 하나의 특별한 기준이 존재했다. 박근혜 후보는 박정희
지나치게 세련되고 다듬어진 감이 없지 않다. 정치인에게 ‘customer'와
대통령의 딸이고,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파트너이다.
'consumer’ 는 전 국민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들어도 바로 이해할 수
유권자들은, 후보자와 해당 당에 대한 호불호 외에 두 후보자들의 정신적
있는 직관적인 메시지가 효과적이다. ‘사람이 먼저다’ 라는 메시지에 담긴
후원자들까지 선택 기준으로 고려했다. 이는 브랜드의 세계에서 너무도
의미가 무엇인지, 모든 국민이 똑같이 이해할 수 있었을까? 또 한가지
익숙하게 보아오던 전략, 즉 보증 브랜드 전략이다. 보증 브랜드 전략이
아쉬운 점은 차별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KB금융그룹의 대표 슬로건은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기본적인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로 그 보
‘국민을 먼저 생각합니다’ 이고 두산그룹은 ‘사람이 미래다’ 라고 얘기
증 브랜드가 새로운 제품에 신뢰감을 주어야 하며, 둘째로 새로운 제품 또
하고 있다. 차별성이 약하다는 것은 마음에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
한 경쟁적 우위를 가져야 한다. 두 후보의 보증 브랜드는 각각 장점도
에서는, 쉽고 강한 메시지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
많고 단점도 많았다.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보증 브랜드는 누군가에게는 표를 주어야 할 이유가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표를 주지 말아야 할 이유가
새누리당 아이덴티티의 변경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보증 브랜드 역시 마찬가지이다. 두 보증 브랜드 중 어느 브랜드가 더 강했는지는 이번 대선의 결과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 당선인이 되기에 앞서 한나라당은 변화의 의지로 브랜드 메시지의 관점에서도 문재인 후보는 아쉬움이 남는다. 후보의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꿨다. 당간의 이합집산이 아닌, 온전히 아이덴티티의
아이덴티티를 언어적으로 규정하는 대표 메시지는 매우 중요하다.
변화만을 위해 당명을 변경한다는 것은 ‘브랜드의 힘’ 을 논할 수 있는
박근혜 후보의 대표 메시지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 이었다. 그 의미가
좋은 사례이다. 정치뿐 아니라 비즈니스에 있어서도 명칭을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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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d Insight
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익숙한 것을 선호
내부 구성원의 충분한 합의를 이끌어내고, 결과물이 갖는 의미를 외부인
하며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을 지적하는 것을 훨씬 더 잘한다. 그렇기
들에게 정확하게 커뮤니케이션 해야 한다. 새누리당의 새로운 아이덴
때문에 새누리당도 새로운 당명과 로고가 발표 되었을 때, 엄청난 조롱과
티티 발표는 이 모든 과정에 조금씩의 부족함이 보였다고 할 수 있지만,
비난을 받아야 했다. 새누리당은 새로운 로고가 그릇, 미소, 귀를 상징한
결과적으로는 박근혜 당선인과 함께 정권 유지에 성공했다.
다고 발표했지만 이 로고는 무수한 패러디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었다.
민주통합당은 전통적으로 초록색을 대표컬러로 활용해왔다. 2012
또한 새누리당은 새로운 대표 컬러로 빨간색을 선택했는데, 이는 매우
년에 새롭게 변경된 민주통합당의 로고는 초록과 노랑이 혼합되어 있다.
의외로 평가할 수 있다. 빨간색은 진보와 혁신을 대표하는 컬러이다.
두 색깔이 섞여 있는 것은, 민주통합당의 현재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특히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레드 콤플렉스가 존재한다. 새누리당은
준다. 민주통합당의 로고는 언뜻보면 초록색이 메인 컬러이고 노란색이
‘열정’ 의 의미로서 빨간색을 선택했다고 밝혔지만, 그보다는 변화의
보조 컬러로 보여진다. 그러나 19대 대선에서 민주통합당은 노란색을
의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보여진다. 확실히
중심으로 커뮤니케이션 하였다. 이는 문재인 후보의 정치적 배경을
빨간색은 차갑고 보수적인 한나라당의 이미지를 친근하고 산뜻하게
반영하는 것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일관성을 주지 못했다. 박근혜
바꿔주는데 어느정도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색채
후보가 명도 및 채도가 높은 빨간색을 활용해서 인상적인 마케팅을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파란색은 ‘신뢰’ 와 ‘안전’ 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펼칠 때, 문재인 후보는 초록색 넥타이를 매고 노란 목도리를 나누어
‘불행’ 과 ‘슬픔’ 을 상징하는 컬러이다. 반대로 빨간색은 ‘사랑’ 과 ‘기쁨’ 을
주었다. 수많은 브랜딩 요소 중 가장 임팩트를 주는 것은 ‘컬러’ 이다.
상징하는 컬러이다. 새로운 명칭과 디자인을 만드는 것은 전략적
컬러의 혼동은 아이덴티티의 혼동으로 이어진다.
방향성과 뛰어난 크리에이티브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더불어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아이덴티티의 변화
(출처: 박근혜 당선인 공식 웹사이트 www.park2013.com)
(출처: 민주통합당 www.minjook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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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명쾌한 아이덴티티, 유연한 커뮤니케이션
2008년 대선 캠페인에서 오바마는 ‘Yes, we can’ 을 시작으로 ‘Vote for change’, ‘Change we can believe in’, ‘Our time for change’, ‘Stand for change’ 등 많은 슬로건을 활용했다. 이 슬로건들은 모두 ‘Change’ 라는 아이덴티티를 중심으로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오바마는 또한 자신을 대표하는 Personal Logo를 만들어 본인
변화와 유연성이 인정받는 지금, 젊고 스마트하고 가정적인 오바마의
스스로를 브랜드화 했다. 현대 정치인의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
이미지는 그 자체로서 훌륭한 브랜드이다. 오바마는 변화와 유연성이라
주는 오바마의 Personal Logo는 ‘Obama’ 의 첫 철자인 ‘O’ 에서
는 시대의 바램을 언어 및 시각적으로 잘 보여주었다. 2008년 대선에서
출발한 아이디어라고 한다. 이 ‘O’ 에는 ‘The sun rising over the
그는 ‘Hope and Change’ 를 통해 왜 자신이 선택 받아야 하는지를 분명
horizon evoked a new sense of hope’ 라는 의미가 덧붙여졌다.
하게 알려주었고, 2012년 ‘Forward’ 에서는 연임 되어야 하는 정당성을
오바마가 내세우고자 했던 아이덴티티, 메시지, 그리고 로고 디자인이
말해주었다. 성공한 브랜드들이 가지는 공통점 중 하나는 명쾌한 아이덴
서로 일관성을 갖고 잘 어울린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로고는 50개
티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결코 난해하거나 중의적이지 않다. BMW의
주에 따라, 그리고 12개의 타겟 그룹에 따라 서로 다른 버전이 존재
‘Joy’ , 스타벅스의 ‘the 3rd place’ 가 그 예이다. 브랜드를 개발하는
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팀에서는 이 디자인을 고객 맞춤 디자인이라고
사람의 입장에서는 알리고 싶은 것, 강조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설명했다. 변화와 유연성이 시대의 화두인만큼, 현재와 미래 브랜드
그래서 심플하고 명쾌한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개발되지 못하고, 결국
디자인의 가장 큰 화두 역시 ‘유연한(Flexible) 브랜드 디자인’ 이다.
여러 가지 메시지가 뒤섞인 에지 없는 브랜드가 되고 만다. 심플하고
즉 기본적인 포맷을 유지하되 채널이나 상황에 따라 조금씩의 변화를
명쾌한 아이덴티티를 지니되, 실제로 이 아이덴티티를 커뮤니케이션
보여주는 디자인이다. 타겟 구성의 다양성과 디지털 매체의 발전이
하는 과정은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 과거와 달리 다양한 소통의 채널이
브랜드 디자인에서도 큰 흐름을 바꾸고 있다. 이 ‘유연성(Flexibility)’ 의
존재하는 지금은 명쾌한 아이덴티티와 유연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
개념은 디자인뿐 아니라 모든 브랜드 요소에서 중요하게 부각되고
더욱 높아지고 있다. 오바마의 아이덴티티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실행은 유연하되 아이덴티티는
되었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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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타벅스의 광고 이미지(출처:starbuckspassion.tumblr.com) 2 BMW의 광고 이미지(출처:www.bm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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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exible identity of Obama(2008) 오바마는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활용하여 12가지의 타겟을 위한 각각의 로고를 제작했다. (출처 : 마이버락오바마 닷컴 www.mybarackobam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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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기능적 vs 감성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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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이회창 후보의 능력치를 객관적으로 분석한다면 결코 노무현 후보 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회장 후보는 비교우위를 통한 기능 적인 접근에 주력했고, 결국 고객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했다. 고객이 특정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와 고객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동일시할 때 그 브랜드를 구매하게 되고 나아가 충성심을 갖게 된다고 한다. 능력은 뛰어나지만 차가운 느낌의 이회창 후보보다는, 인간적이고 따뜻한 노무현 후보의 아이덴티티에 자신을 동일시 하는 사람이 더 많았을 것이다. 노무현 후보와 열린우리당은 대표컬러로 노란색을 선택했다. 노란색은 가볍고 친근한 이미지를 전달하는 컬러이다. 서민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를 추구했던 노무현 후보의 이미지를 매우 잘 대표하는 컬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정치에서의 본격적인 컬러 마케팅은 노무현 후보의 노란색이 그 시작이었다.
(출처: www.olpost.com)
지금까지 브랜드의 관점에서 정치와 선거, 그리고 정치인과 정당의 명확한 아이덴티티도 감동적인 스토리도 모두 브랜딩의 성패를 좌우
모습을 살펴 보았다. 자신만의 브랜드를 갖고자 하는 정치인들이 브랜
하는 키 포인트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고객에게
딩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유의할 것을 당부하며,
접근하느냐 역시 그 브랜드의 성패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글을 맺는다.
우리는 16대 대선에 이러한 관점을 적용해보고자 한다. 관여도가 높은 제품이나 서비스는 기능적인 접근(funcional approach)을, 관여도가 낮은 경우는 감성적(emotional approach)인 접근을 하라는 것은 초급 마케팅 개론에서도 접할 수 있는 이론이다. 그러나 더 이상 이러한 주장을 옳다고 하기는 힘들 것 같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기능적인 접근보다는 감성적인 접근의 힘이 더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능적인 우수함이 감성적인 호소보다 훨씬 더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하는 B2B(Business
How to build a personal brand
to Business) 분야에서마저 감성적 브랜딩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01. 자신만의 확실한 아이덴티티를 개발하고 공감을 이끌 수 있는 스토리로 승부하라.
정치적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치에서 대통령 선거보다 더 관여도가
02. 감성적으로 접근하라. 두꺼운 공약집을 일일이 분석하는 사람은 매우 소수이다.
높은 국민들의 참여 활동은 없다. 이러한 중요성을 가진 활동에서
03.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명쾌한 메시지를 전달하라. 타겟의 수준을 너무 높이 잡지 말아라.
노무현 후보는 감성적인 접근으로 지난 16대 대선의 승리를 거머쥐었다. 노무현 후보는 ‘인간적인 정치인’ 이라는 감성 브랜드를 구축하는데
04.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간과하면 안 된다. 사람 들을 집중시키는 힘은 시각에서 나온다.
집중했으며, 이에 따른 모든 브랜드 실행 전략 역시 일관성 있는 아이덴 티티를 유지했다. 이회창 후보가 노무현 후보와의 비교우위를 강조
05.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라. 선거는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고 한다. 부정적인 미래를 선택할 사람은 없다.
하고자 노력할 때, 노무현 후보는 밝고 긍정적인 광고/스피치/포스터로 고객(유권자)의 감성을 공략했다. 15대 대선에서 이미 한번 패한 경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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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brand 외부 전문필진의 시각으로 보는 브랜드 칼럼
Interbrand Brand Letter VOL.23
Brand Column
바보야, 문제는 브랜드야
Ki Ju Shin / Editor, Esquire Korea
아버지 부시는 자신이 어째서 클린턴한테 졌는지
레이건 브랜드를 통해 아버지 부시와 공화당의 네오콘 실력자들은
도무지 납득이 안 갔다. 아버지 부시는 사실상 레이건 행정부 시절부터
미국 유권자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심지어 레이건은 스타워즈라
실세 부통령이었다. 1980년 집권한 레이건 행정부는 집단 지도 체제로
고 하는 황당무계한 군사 전략까지도 실행시켰다. 소련과의 군비 경쟁을
유명했다. 레이거노믹스는 공급을 중시하는 경제학의 대명사다.
확대시킨 스타워즈 계획은 사실상 소비에트의 붕괴를 가져왔다. 레이건
지금까지도 공화당 경제 정책의 근간이다. 정작 레이건 대통령은
브랜드를 미국인들이 신뢰하지 않았다면 추진하는게 불가능했을 계획
레이거노믹스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레이건 행정부의 초대 재무
이었다. 물론 그런 기획을 입안하고 추진한 건 레이건이 아니었다.
장관을 지냈고 레이건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역임한
부통령과 내각이었다. 1988년 레이건 대통령이 연임
도널드 리건은 나중에 이렇게 고백했을 정도였다.
하고 물러난 뒤 아버지 부시가 대통령직을 승계한 건
“레이건 대통령은 재임 중 경제철학이나 재정금융
당연한 수순이었다. 실질적으론 아버지 부시 행정
정책에 관해 단 한 번도 일대일로 토론한 적이 없었
부 3기에 해당됐다. 그런데 아버지 부시는 1992년
습니다.” 그런 어려운 역할은 사실상 조지 허버트 워커
대선에서 아칸소 출신의 신출내기 주지사 빌 클린턴
부시 부통령이 맡았다. 아버지 부시는 CIA 국장 출신의
한테 일격을 당했다. 사실상 소련을 붕괴시키고 미국을
정보통이었다. 그런데도 레이건 행정부는 레이건이 없으면 안 됐다. 레이건은 하나의 거대한 브랜드였다. 잘 생긴 고전 영화 배우이며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스타 정치인 이며 강한 미국과 안정된 정치력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미국인들은 1970년대를 얼룩지게 했던 베트남 전의 상처를 기억하고 있었다. 카터 대통령은 지나치게 서민적이었고 지나치게 나약했다. 미국인들은 강한 미국을 원했고, 그에 걸맞는 강하고 노련한 대통령을 원했다. 사실 레이건은 노련하지도 강하지도 지적이지도 않았지만 분명 노련하고 강하고 지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다. 유권자들은 그렇게 믿었다. 그게 바로 레이건의 브랜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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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the economy, stupid - Bill Clinton
유일 강대국으로 키워낸 아버지 부시가 연임에 실패하는 수모를 당했다.
초프를 상대로 쿠바 봉쇄를 성공시키고 달나라로 인간을 쏘아 보내는
아버지 부시는 도무지 납득이 안 갔다.
아폴로 계획을 실행할 수 있었던 건 미국인들이 케네디의 브랜드에 매료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직 선거 과정에서 브랜드 전략이
부시한테는 브랜드가 없었고 클린턴한테는 있었기 때문이었다. 빌 클린턴
적극적으로 활용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케네디는 암살 당하면서 미국
과 민주당은 1992년 대선에서 프레이밍 브랜드 전략을 적극 활용했다.
정치에서 불멸의 브랜드로 남게 됐다.
클린턴 후보는 유권자들한테 외쳤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아버지 부시는 걸프전에서 승리하면서 대선 결과를 낙관하고 있었다. 그런데
케네디가 주장했던 수많은 가치들이 고스란히 브랜드로 승화됐다. 모든
클린턴은 선거의 프레임을 바꿔버렸다. 전쟁이나 정치가 아니라 경제가
정치인들이 케네디 브랜드를 탐낼 수 밖에 없었다. 정작 어느 누구도
쟁점이 됐다. 클린턴은 경제를 살릴 대통령이란 브랜드를 만들었다.
케네디의 브랜드를 손에 넣진 못했다. 암살당한 지 반세기 가까이
반면에 아버지 부시한텐 레이건의 브랜드도 없었다. 잘 생기고 노련한
지났는데도 여전히 미국인들이 케네디를 추앙하는 이유다. 공화당
노신사 대통령이 아니라 안경 끼고 날카롭고 무미건조한 부시 대통령의
측에선 케네디의 브랜드는 악몽에 가까웠다. 케네디 덕분에 민주당은
브랜드론 젊고 패기만만한데다가 경제를 살리겠다고 나선 주지사를
늘 진보적이고 젊은 브랜드 이미지를 갖게 됐기 때문이었다. 케네디
이길 수가 없었다. 아버지 부시는 퇴임하는 순간까지도 클린턴을 미워
반대파는 케네디가 영부인 재클린을 두고 마를린 먼로와 불륜을 저질
했다고 전해진다. 자신이 12년 동안 세운 업적에도 불구하고 연임에
렀단 사실을 반의도적으로 퍼뜨렸다.
실패한 대통령이 됐다는 불명예 탓이었다.
그런데도 케네디의 브랜드는 훼손 되기는 커녕 전설이 돼 갔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브랜드 전략이 정치의 최전선에서 본격적
사실 케네디 브랜드의 대항마
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이전에도 정치인과 브랜드는 밀접
로 공화당이 개발한 브랜드가
했다. 최초로 스스로를 브랜드화해서 성공한 대통령은 케네디였다.
바로 레이건 브랜드였다.
케네디는 미디어를 선거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스스로를 하나의
JOHN.F. KENNEDY
상징으로 만들었다. 아름다운 퍼스트 레이디의 존재가 또 하나의 브랜드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도 케네디부터였다. 케네디는 미국의 왕실 같은 브랜드를 얻었다. 젊고 새롭고 변화하는 케네디의 브랜드는 케네디 대통령한텐 무엇보다도 강력한 정치적 무기였다. 케네디가 후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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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양당이 서로 브랜드 전략 전쟁을 벌이다가 결국 브랜드 경쟁이
양당의 선거 전략가들이 프레이밍과 포지셔닝으로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선거의 국면을 가르게 된 시기가 바로 1992년 대선이었던 셈이다.
벌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유권자들은 프레이밍 전략과 포지셔닝 전략
에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다. 어느 쪽이 더 많은 유권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프레임을 만들고 먼저 유리한 포지션을 확보하느냐가 승부처다. 1992년 미국 대선은 그 중에서도 전환적 프레이밍 전략이 돋보인 경우
현대 정치에서 브랜드 전략은 선거 승패의 분수령이 된 지 오래다.
였다. 빌 클린턴은 기존 정치의 틀을 바꿔버리면서 국면을 전환시켰다. 한국 정치 역시 이미 브랜드 전쟁으로 접어든지 오래다. 2007년 한국 대선은 여러 모로 브랜드 전쟁이었다. 당시 집권 민주당이 내세운
선거에서 가장 효과적인 브랜드 전략은 프레이밍(Framing)이다.
프레이밍 전략은 진실과 거짓 구도였다. 이명박 후보의 BBK 의혹을
프레이밍은 구도를 뜻한다. 상품 광고에선 흔히 가격 단위 프레이밍
파헤치면서 진실과 거짓 공방을 거듭했다. 그 과정에서 진실한 정동영
전략이 주로 활용된다. 하루 1달러면 캄보디아 난민을 도와줄 수 있다는
후보와 거짓말쟁이 이명박 후보라는 브랜드 프레임을 만들었다. 여기에
광고와 한달에 30달러면 캄보디아 난민을 도와줄 수 있다는 광고가 있다면
맞선 이명박 후보의 전략은 경제 프레이밍이었다. 이명박 후보는 현대
소비자들이 먼저 움직이는 쪽은 전자다. 바로 PAD(pennies-a-day)전략
그룹 출신의 샐리리맨 신화로 유명했다. 경제를 안다고 자부해도 될 만큼
이다. 일 단위 가격 프레이밍 전략이다.
강한 브랜드를 갖고 있었다. 경제에 덧붙인 브랜드가 탈정치였다.
프레이밍은 시장을 재편하려는 경쟁 브랜드가 도모하는 전술이다. 스마트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는 다양한 정치 실험을 거듭했다. 참여 정부는
폰과 피처폰 경쟁에서도 프레이밍 전략이 활용됐다. 피처폰 시장은
대통령의 탈권위화를 추구했다. 대통령이 직접 검사들과 TV 앞에서
디자인 경쟁으로 흐르고 있었다. 누가 더 작고 세련된 휴대폰을 만드느냐가
토론을 벌일 정도였다. 정작 유권자들은 이런 정치 실험에 식상해져
관건이었다. 한땐 모토로라가 선두에 섰었다. 애플은 휴대폰의 경쟁
있었다. 과정보다 결과로 얘기하는 일꾼형 대통령을 원했다. 이명박
프레임을 디자인에서 OS와 애플리케이션으로 바꿔버렸다. 디자인은
후보는 CEO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적극 활용했다. 결과로 얘기하는
그저 네모반듯했다. 순식간에 시장을 재편해버렸다. 프레이밍 전략에
CEO 대통령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2007년 대선은 분명 여러 모로
따라붙는 전략이 브랜드 포지셔닝 전략이다. 프레이밍으로 구도를
이명박 후보의 브랜드 전략이 압도적이었다. 2007년 한국 대선은
바꿨다면 포지셔닝으로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해야 한다. 정치
경제를 주제로 한 전환적 프레이밍 전략이 먹혔단 점에서 1992년 미국
전략가들은 늘 프레이밍과 포지셔닝을 고민한다. 현대 선거는 사실상
대선과 닮은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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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2012년 대선은 좀 달랐다. 이제까지 수십년 동안 한국 정치를
이제 유권자들은 시장에서 물건을 사듯이 후보에게 투표를 한다. 정치
지배해온 구도가 총출동했기 때문이었다. 기본은 보수 대 진보였다.
행위와 소비 행위가 점점 더 유사해지고 있단 얘기다. 물건을 살 땐 요모
우파 대 좌파였다.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에서 독재 대 반독재의 구도까지
조모 따져보고 고르는 듯 하지만 실제론 물건의 브랜드 이미지에 좌우
나왔다. 그만큼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상징하는 가치들이 많아서
되는 경우가 많다. 제품의 수많은 특질들을 다 따져보고 구매한다는 건
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박근혜 후보의 브랜드가 때 아닌 독재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치와 선거도 마찬가지다. 정책은 갈수록 복잡하고
대 반독재 프레임을 불러왔다.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라고 하는
난해해지고 있다. 결국 중요한 건 그 정책을 상징하는 정치인의 브랜
문재인 후보의 브랜드는 보수 대 진보의 프레임을 강화시켰다. 그런데
드다. 해당 브랜드의 스키마에 호감을 가진 유권자라면 어떤 정책이든
승패를 가른 건 브랜드 프레이밍이 아니었다.
지지할 공산이 크다. 케네디 브랜드나 레이건 브랜드의 힘은 거기에서 나왔다. 변화라는 스키마를 자기 브랜드로 독점한 오바마 대통령 역시
브랜드 포지셔닝이었다. 어차피 프레임은 진보 대 보수로 고착화된
성공적인 브랜드 정치인이다. 한국 정치에서도 박정희나 노무현이라고
상태였다. 승부처는 프레임 안에서 어느 쪽이 먼저 유리한 위치를 차지
하는 강력한 브랜드가 존재한다. 결국 이런 얘기다.
하느냐였다. 경제 민주화가 한 예였다. 악화된 양극화와 불안해진 서민
“바보야, 문제는 브랜드야.”
경제 탓에 양쪽 모두 변화를 추구할 수 밖에 없었다. 변화의 방향을 선점하는 쪽이 담론을 이끌 수 있었다. 박근혜 후보 쪽이 빨랐다. 박근혜 후보는 보수의 스키마가 지닌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경제 민주화 공약을 좀 더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말하자면 브랜드 조정 과정을 통해 보수 라고 하는 브랜드 이미지에 서브타이핑 브랜드를 만든 셈이다. 스키마란 소비자들이 브랜드에 기대하는 가치를 말한다. 서브 타이핑 포지셔닝 이란 보수 안의 진보처럼 기존 브랜드와는 다른 또 다른 이미지를 구축하는 전략이다. 이 전략이 새로운 젊은 유권자들까지 끌어들였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진보측이 보수가 변화를 부정한다고 공격할 빌미를 사전에 차단했단 사실이다. 분명 박근혜 당선인의 대선 승리 요인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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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계각층 전문가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일상을, 그들의 인생을 만나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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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세상에 한국을 외치다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자대학교 교수 Harry Woo / Consulting Manager, Interbrand Korea
처음에는 정치인을 떠올렸다. ‘브랜드와 정치’ 라는 주제로 누가 적합할까 생각해보니, 너무나 자연스럽게 정치인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정치를 정치인만 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시각을 조금만 넓게 하면, 글로벌로 눈을 돌리면 외교가, 문화가, 예술이, 스포츠가 정치였다. 조셉 나이(Joseph S.Nye)가 사용한 ‘소프트 파워’(Soft Power)의 개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요즘의 정치는, 앞으로의 정치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떠올린 사람이 바로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교수.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도대체 왜 할까'라는 의문은 그의 따뜻하면서 열정적인, 친절하면서 설득력 넘치는 목소리로 풀려버렸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대한민국의 브랜드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싸이 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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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던 국가
어렸을 때부터 한국 홍보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제가 대학생이었던 90년대 초 중반은
홍보활동을 혼자서 시작하셨습니다.
글로벌 이라는 단어가 대두되던 시절이에요. 당시 우리나라를 대표하던 기업들의 홍보의 주된 컨셉이
생명환경과학대학원 박사 과정까지
‘세계화’, ‘초일류’ 였던 시절이었지만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발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직접 해외에
수료한 후 관련 분야진출이 아닌
나가서 도대체 어떻게 세상이 돌아가는지 몸으로 직접 확인을 해보고 오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국가 홍보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무작정 출국했어요. 미국에 도착 했는데 ‘넌 참 오리지널 토종처럼 생겼구나. 중국인이니? 일본인이야?’
계기는 무엇인가요?
등의 질문만 들었죠. 어린 나이에 충격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UN에 약 200여개 소속 국가 중 경제 수준 11위 대국이다' 라며 선생님들은 늘 ‘대’자를 강조하시곤 했거든요. 그래서 ‘From Korea’라고 하면 많이 알아 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정말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왔고 배워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계기로부터 우리나라에 대한 이미지를 알리는 일이 정말 시급하다는 걸 깨달았던 거에요. 그래서 작은 일부터 시작하게 됐습니다. 방학 때마다 배낭여행을 갔는데, 처음에는 남대문 시장에서 태극기 뱃지를 100개 구입해서 출국을 했어요. 그 때 당시 배낭여행객들이 다른 나라, 도시에 여행을 가면 그 나라의 국기 뱃지를 가방에 다는 게 유행이었거든요. 자기가 많이 돌아다녔다는 과시욕도 있었을 테고. 그런 유행에 맞춰서 나도 나가서 그들에게 뱃지를 달아주자고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작은 일부터 시작했던 것이 제 인생을 바꾸게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죠.
Q 교수님의 활동은 한글, 비빔밥
맞습니다. 저희는 우리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독도 뿐 아니라 동북공정, 아리랑,
으로 대표되는 한국 문화를 홍보하는
고구려에 대한 부분들에 대해 늘 다루고 있습니다. 아주 민감하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이 역사
것. 그리고 독도, 위안부, 동해 등 상대
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제가 한참 외국에 나가던 시절과 동 시간대에 서양인들의 동양, 오리
적으로 민감한 역사와 관련된 것에
엔탈에 대한 호기심이 상승하고 있을 때였거든요. 서양인들이 관심을 갖고 있으니 저도 자연스레 동북
초점을 맞추는 것 같은데 각 활동의
아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서로의 역사 정립이 되어있지 않아 함께 뭔가 만들어낼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방향성은 무엇인가요?
않았던 거죠. 우리가 제작한 모든 광고에는 ‘21세기 동북아의 역사번영과 발전을 위해 한중일은 함께 힘을 합쳐나가야 된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앞 문장만 보고 일본 우익들은 욱해서 난리를 치기도 하지만, 역사에 대한 정립이 되었을 때 미래가 있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역사에 관련된 컨텐츠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홍보를 하게 됐죠. 역사만 가지고 니꺼다, 내꺼다 싸우는 모양새만 보이기 보다는 문화를 통해 그런 부분들을 함께 엮어 나가야죠. 그 자체로도 해결할 수 있는 부분들도 있겠지만, 우리가 일본 우익을 싫어하는 거지 일본 문화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들도 마찬가지거든요. 그래서 한국 문화 를 알려서 일본인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갖고, 관광을 오고 싶도록 하는 겁니다. 중국, 일본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에 무언가를 알려주면 그들도 세계의 일부이기에 자연스럽게 홍보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거죠.
서경덕 교수가 월 스트리트 저널에 게재한 독도 광고 및 관련 영상 (출처: www.forthenextgenerat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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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brand Brand Letter VOL.23
Interview
아리랑 광고 프로젝트 중국이 아리랑을 중국 무형유산으로 등재하자,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등재를 앞두고 서경덕 교수는 2012년 11월 전 국민이 참여하는 아리랑 광고 프로젝트를 기획하였다. 이를 통해 네티즌의 성금으로 월 스트리트 저널에 아리랑 광고를 게재하는데 성공하였고, 결국 2012년 12월 7일에 아리랑이 만장일치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광고 속 '아리랑' 글씨는 이외수 작가가 기부하였다.
Q 지금까지 진행된 여러 프로젝트
각각의 프로젝트마다 추억과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지만, 처음으로 뉴욕 타임즈에 독도 광고를 했던 때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애착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석사 과정 중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아뒀던 자비를 다 털어서 너무나 어렵게
가는 프로젝트는 어떤 것이 있나요?
광고를 냈었는데. 그 쪽에서 제 신분을 의심하더라고요. 왜 자비로 광고를 하느냐는 거죠. 그들 생각 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정말 개인적으로 광고를 내고 싶으면 차라리 네 애인 구하는 광고를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니까요. 그 정도로 설득하기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Q 교수님이 진행하시는 활동들을
한국 문화 알리기입니다. 결국 문제는 그들이 한국 문화를 잘 모른다는 거죠. Korea라는 단어와 브랜드, 중국과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
일본 사이에 있는 나라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브랜드 안에 있는 컨텐츠들이 소개가 많이 안 되어있다는
지는 무엇인가요?
거에요. 그렇기에 ‘한국’이 아니라 ‘한국의 문화’를 알리려는 겁니다. 더 나아가서, 동북아의 더 큰 파워를 위해선 한중일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이런 파워를 위해서 역사의 정립 뿐 아니라 우리 문화를 세계인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그들이 다운타운에서 술 한잔 마시고 어깨동무하면서 아리랑 한 소절 부를 수 있을 만큼 한국 문화를 전파하고 싶습니다. 제가 죽을 날 까지 안 될 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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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광고를 보는 현지인들, 미디어들의
주제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무한도전 팀과 비빔밥 영상광고를 타임스퀘어의 메인 위치에 올렸는데
반응은 어떤가요? 항상 긍정적일
그 전광판 회사 사장이 직접 연락이 왔어요. 대박이 났다면서. 뭐가 그렇게 대박이냐고 했더니 다른 전
거라고 생각이 되지는 않습니다만..
광판 회사에서 연락이 온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대체 어디서 만든 거냐’고 연락이 왔다는 거에요. ‘The Taste of Korea’ 카피를 보니까 한국 관련된 광고인데 그런 것들을 어떻게 하게 됐냐. 그들도 여러 가지 보이지 않는 경쟁 속에서 영업을 뛰어야 하니까 궁금했던 거겠죠. 그런 연락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이슈가 되었다고 받아들여도 되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광고효과가 어느 정도 되는지 리서치를 알아 보려 했었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그만뒀었거든요. 그 비용으로 광고를 한번 더 하는 게 낫지. 빌보드 광고를 했을 때는 일본 정부가 난리가 났었어요. 빌보드 회사의 뉴욕지부 사장뿐만 아니라 빌보드 회장님 까지 보고가 되었다고 하니까요. 항의 문서에 일본 내 특파원까지 와서 뉴욕 중심부에 와서 취재를 다 해가지. 세계의 가장 중심지인 뉴욕에다 광고 했기 때문에 이슈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저희가 상징성 있는 장소를 효과적으로 활용 했던 것 같아요. 또 감히 빌리 브란트 총리가 무릎 꿇은 사진을 가지고 홍보를 했으니. 그 사진에 대한 저작권을 다 받았냐? 실은 그렇지도 않아요. 그런 프로세스를 다 거치게 되면 시간만 너무 지나가게 된다는 거죠. 위안부 할머니들께서 올해도 몇 분이나 돌아가셨는데. 정말 시간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함께하는 국제변호사 친구에게 알아서 책임지라고 말했어요. 그 외에도 비하인드 스토리가 정말 많습니다.
Q 뉴욕 타임즈나 타임스퀘어 빌보드와
일본 정부, 중국 정부가 늘 태클을 걸지만 막상 매체사들은 그걸 싫어하지 않아요. 자신들의 매체가 실은
같은 매체사에서 컨텐츠의 강도가
광고가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니까요. 자기네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는 거잖아요. 그들이 실은 광고가
높아 부담을 갖지는 않던가요?
AP통신으로 알려지니 자신들에 대한 브랜드가 올라가는 거에요. 그러니 그들이 거절 한 적은 단 한번도
아무래도 그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없죠. 우리가 그들을 슬슬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상황인 거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니까요.
역사이기도 하고 국가 간의 분쟁이
저에 대한, 학교에 대한 광고를 해야 한다면 마음이 편할 거에요. 이건 단어 하나, 오자 하나에도 신경을
항상 걸려있는 상황이기도 한데요.
써야 해요. 모두가 혈안이 되어 보고 있고, 하는 일들마다 이슈가 되니까요. 부담스러운 부분들도 없지 않지만, 하다 보니 제 나름대로 매뉴얼이 생겼어요. 홍콩에서 월 스트리트 저널 아시아 지사장이 서울에 넘어오는데 저를 만나보고 싶어 했어요. 더 물량을 많이 쏟는 삼성, 엘지도 물론 만나겠지만 저희의 활동이 자신의 브랜드에 도움이 됐기 때문에 그런 거겠죠.
1 뉴욕타임즈에 게재된 비빔밥 영상광고 2 위안부 포스터.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에서 사죄함으로써 유럽 평화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포스터에는 2012년,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여전히 일본의 진심 어린 사죄를 기다리고 있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출처: me2day.net/seokyoungduk www.forthenextgenerat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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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brand Brand Letter VOL.23
Interview
Q 많은 활동에 김장훈 씨가 빠지지
‘맨발의 기봉이’와 ‘식객’을 성공시켰던 규모 있는 영화사인 지오 엔터테인먼트 대표와 개인적으로
않습니다. 김장훈씨와의 만남은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눈 것이 시초였습니다. 독도 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문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그 외에도
콘텐츠를 통해 자연스럽게 홍보해야 한다. 그러면 독도에 대해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해 보는 건
박찬호, 송혜교, 강익중 등 우리나라를
어떻겠냐. 그래서 권위 있는 상을 받거나 하면 세계인에게 이슈가 되지 않겠냐는 말이 나오면서 기획을
대표하는 유명인들을 지속적으로
하게 된 거죠. 다큐멘터리 영화는 내레이션이 중요한데, 누가 있을까 생각하다 사회에 좋은 일들을
참여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많이 하고 있던 김장훈씨가 생각났습니다. 소속사에 연락을 드렸더니 기획사 대표님이 하시는 말씀이 전부터 장훈씨가 나를 되게 만나고 싶어했다는 거에요. 저에게 후원을 희망하고 있었던 차에 연락을 받게 됐으니 만나자마자 의기투합을 하게 된 거죠. 이야기를 하는데 저에 대해서 정말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때부터 많은 프로젝트를 함께 해왔죠.
Q 결코 쉽지 않은 상황에서 ‘미친
처음에 아주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정말 빡셌죠.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역시 예산문제였습니다. 지금은
실행력’ 을 유지하고 지속하는 힘은
기업, 유명인사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지만, 그때는 이백 여 군데 중에 한군데 될까 말까 했던 시절이었
무엇인가요? 지금은 일련의 활동
거든요. 그래도 ‘언젠가는 되겠지’ 하고 늘 긍정적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초반에는 사실 가족의 도움이
들에 대한 과정이나 결과가 어느정도
컸습니다. 부모님께 ‘이런 것들을 해보고 싶은데 힘이 드니 어느 정도 비용을 부탁한다’고 말씀 드리면
선순환 구조로 접어든 것 같지만,
‘얘가 이 정도로 이야기할 정도면 정말 힘든가 보다’ 하면서 도와주셨고, 그 도움을 통해 뭔가를 만들어
예전에는 힘들었던 시기가 있으셨을
낼 수 있었습니다. 저한테 누나랑 매형들이 많거든요. 집집마다 돌면서 지원을 구했죠. 그러다 보니
텐데요.
초반에 가족들의 힘이 굉장히 컸어요. 그게 없었으면 베이스가 깔릴 수가 없었죠. 점차적으로 일의 규모가 커지고 크리에이티브한 일들을 계속 진행하면서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대중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 했죠. 이제는 기업이 후원했을 때 서로 win-win 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만들어진 상황입니다. 기업의 모 홍보실장도 신문에 광고를 하나 내는 것 보다 서 교수와 함께 좋은 일을 해서 사회면 기사로 나가는 게 오히려 더 좋은 이미지가 된다고 웃으며 말해요. 기업에게는 이윤창출이 가장 우선시 되는 부분이긴 하지만, 이제는 이윤을 창출한 만큼 사회에 환원하는 부분도 그 못지않게 아주 중요하니까요.
1 독도 다큐멘터리 '미안하다 독도야'의 포스터(2008) 2 다수의 한국 알리기 프로젝트를 함께한 서경덕 교수(좌)와 가수 김장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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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처음 시작하셨을 때와 지금과는
정말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 자체도 나름대로 많이 끌어올리려 노력했고. 광고, 홍보
많은 변화가 있을 텐데요, 다음 프로
뿐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어요. 레바논 내전도 갔다 왔고 세계 분쟁지역에 다
젝트로는 어떤 것을 준비하고 계신
다녀왔어요. 우리가 파병 나가있는 상황이기도 하니까요. 물론 우리가 총, 칼로도 지켜줄 수 있는 부분도
가요?
있겠지만, 지역 시민 분들에게 우리 문화로써 그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 않겠나 생각했습니다. 많은 분들과 의기투합해서 미술을 통해 치유를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해오고 있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광고들이 이슈가 되었지만 광고에 한정되어서 일을 하고 있지는 않아요. 왜 구글과 같은 인터넷 매체를 사용해서 광고를 하지 않냐는 질문을 하실 때도 더러 있습니다만, 저는 세계적인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정확히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들이 읽는 매체는 월 스트리트, 뉴욕 타임즈 같은 매체입니다. 그러니 일본 정부에서 부담을 가지게 될 수 밖에 없었다고 보고, 타임스퀘어는 두말할 나위 없이 세계적인 관광지이니 모든 일반인들에게 알릴 수 있는 매체인 거고요. 그래서 두 가지를 같이 하고 있어요. SNS매체도 있죠. 트위터로 ‘이 광고가 뉴욕 타임즈에 올라간 광고입니다’ 라고 RT를 부탁했을 때와 단순히 유투브 용으로 제작했을 때와는 천지차이거든요. 저의 트위터 팔로워 중에 외국인, 유학생 들이 꽤 있어요. 무한 RT를 하다 보면 멀리 멕시코 시티에서 영상 잘 보았다고 멘션도 오곤 해요. 이렇게 타겟층을 나누어서 작업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입니다.
Q 교수님에게 대한민국이란 무엇
그저 우리나라에요. 어렸을 때 남달리 애국심이 많았고 국가관이 달랐다기보다는 이 일을 하다 보니 자연
인가요?
스럽게, ‘내 일이 나뿐 아니라 나라에도 도움이 되는 거라면 정말 중요한 일이구나’ 라는 것을 깨달은 거죠. 내가 하는 일이 세계인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고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한 거지, 결코 애국 마케팅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었어요. 기자들이 애국마케팅을 하고 있다는 말도 종종 쓰긴 했지만 반박하지는 않았습니다. 굳이 ‘아닙니다’라고 나서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외부 강연도 더러 다니는데, 젊은 친구들이 물어보면 이렇게 얘기해주곤 해요. 너희의 꿈이 우리나라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인들과 함께 놀 수 있는 꿈들이다. 네 스스로를 위해서 열심히 하다 보면 그게 곧 국가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 맞다. 그러니 내 일이 국가에도 어떻게 이로울 수 있는지 조금 더 고민을 해봐라. 그 사고가 한 단계 넘어서면 세계에도 이로울 수 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되어야지. 애국심을 통해 어떻게 해보자는 논리는 어폐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d Han in d Han
Breaking down the walls! @from_mexico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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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brand Brand Letter VOL.23
Interview
Q 국가 브랜딩의 특징, 유의할 점은
국가 브랜딩은 객관적이고 정정당당 해야 해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죠. 이제는 어느 나라,
무엇인가요?
어느 도시에 가더라도 전광판에는 어떤 광고가 나오는지, 추세가 어떤지, 다른 나라의 이미지 광고가 어떤지 보게 됩니다. 어떤 방식으로 알리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좋은 모습만 잘 포장해서 전달해야 하는 것이 답은 아니거든요. 국가 이미지는 국가가 잘해서, 민간이 잘해서, 기업이 잘해서만 되는 것은 아닙 니다. 이 삼박자가 잘 어우려져야 하는 거죠. 워싱턴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 한국관이 개설이 되었다고 하길래 그 곳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해서 방문을 했었어요. 프로모션을 할 수 있는 것들은 해주 겠다고 이야기 하니까 그 쪽에서 굉장히 의아해 하더라구요. 전 한국관에 전시물이 많으니 이에 관한 영문 홍보책자를 만들어 보자고 했죠. 가져갈 사람은 가져가고, 가져가면 누군가가 다시 읽을 것이라고 이야 기하니 돈이 많이 들지 않겠냐고 하더라구요. 돈은 마련해오겠다고 했더니 반신반의 하는 눈치 였어요. 결국 기업에서 후원을 받아 책자를 만들었더니 그 쪽에서 연락이 와서는 그 책을 가지고 북 세미나를 개최하겠대요. 웬 소리냐고 했더니 너네 나라는 정말 신기하대요. 정부에서 만든 시설에 너 같은 민간인이 찾아와서 기업을 끌어들여 어떻게 이렇게 프로모션을 할 수 있냐는 거죠. 북 세미나에 지역 언론사까지 다 불러들여 여러 차례 보도가 됐습니다. 이 일은 기업, 국가, 시민 삼 자가 힘을 모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또한, 우리가 국가에 대한 수치적인 순위까지는 알 필요가 없지만 외국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객관화가 필요해요. ‘해외 사람들은 우리를 좋게 바라보고 있겠지’라는 생각보다는,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아야 할 때입니다.
Q 향후 내세울 수 있는 우리나라의
‘스파클링 코리아’, ‘다이나믹 코리아’ 등의 국가브랜드를 만들어 놓고 이제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서 쓰지
장점이나 특징, 차별화 포인트로는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이 것과 관련해서 어떤 단어를 사용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정체성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제가 쓴 소리를 한 적이 있어요. 국가를 기업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2012년은 정말 선거의 해였는데, 젊은 층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것은 나라와 정부는 다른 개념이라는 거에요. 정부는 언제나 바뀔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대로에요. 우리나라에 대한 브랜드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것이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늘 변하지 않는 우리의 정체성을 파악 하는 부분이 가장 중요합니다.
스밋소니언 박물관 한국 전시관 : 1846년 영국인 과학자 제임스 스미손(James Smithson)의 기부금으로 설립된 미국의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에 국가단위의 독립 전시실이 들어서는 것은 한국 전시관이 처음으로, 3년 간의 준비끝에 국제교류 재단의 지원과 민속박물관의 자문을 거쳐 개관되었으며 1백20년 전 부터 수집한 한국관련 유물을 4천여 점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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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국 홍보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선배님들, 어른들은 늘 ‘경덕아 너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한다’ 는 조언을 해주시곤 했어요.
갖고 계십니다. 퍼스널 브랜딩이
삶의 노하우를 가르쳐 준 거죠. 그것도 정말 중요해요. 근데 요즘에는 ‘Know How’ 보다는, ‘Know
대세인 요즘,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who’가 더중요합니다. 누구를 만나서, 누구와 함께 어떤 일을 벌리느냐가 중요하다는 거에요. 얼마 전에
갖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이
연예부 기자가 연락이 왔어요. ‘선생님, 연예인 마케팅도 정말 잘하세요.’ 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있겠지만, 제가 먼저 연락한 적은 단 한번도 없어요. 꼭 연예인, 유명인사와 함께 해야 하는 것은 아니 거든요. 종합적인 브랜드 가치를 올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에요. 브랜드 컨설팅 회사라고 해서 브랜드 전문가만 모여서 회의를 하는 것과 음악, 미술, 스포츠 관련 전문가가 모여서 나오는 아이디어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서 함께 무언가를 이루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많은 주변 사람들을 활용하는 것이 자신만의 브랜드를 가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인터뷰나 강의에서 늘 ‘글로벌
창의적으로 생각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으로 두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로, 정말 많이 돌아 다녔어요.
에티켓, 창의적인 사고, 미친 실행력’
세계 각 나라의 대표 유명 미술관을 가보니 한국어 서비스가 없더군요. 그럼 내가 한번 만들어 봐야겠다
을 강조하십니다. 이 중에서 창의적인
싶었죠. 뉴욕타임즈와 월 스트리트 건물을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늘 타임스퀘어를 지나가게 돼요. 자주
사고를 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무엇이
지나다 보니 타임스퀘어에 영상광고를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거지, 처음부터 그곳에 영상광고를
있을까요?
올리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어요. ‘야~ 여기에 광고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 후 딱 3년 뒤에 광고를 하게 됐어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조건 해외를 많이 다녀야 한다는 것은 아니 에요. 탁상공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발로 뛰면서 현장에서 얻는 아이디어가 제일 많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거죠. 두 번째로 기본적으로 신문을 하루 대여섯 개 봐요. 포털 쪽에서 보면 누구나 원하는 부분만 보게 돼서 시야가 좁아질 수 밖에 없어요. 신문을 보게 되면 헤드라인이라도 한 번씩은 읽게 되잖아요. 처음에는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같은 기사가 중복되기도 하고 속도가 붙으면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아요. 요즘은 아침에 반신욕 하면서 한 세 개 보고, 이동하면서 다른 신문들과 경제지를 읽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는 거죠. 800원이라는 저렴한 비용으로 전 세계의 다양한 소식을 접할 수 있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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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brand Brand Letter VOL.23
Interview
Q 10년 뒤, 교수님께서는 무엇을
올 해 드디어 30자를 떼네요. 10년 후에는 일을 더욱 재미있게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저 혼자 일을 진행
하고 계실 것 같으신가요?
했던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세계인들이 모이는 곳에서 시작을 해봐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본사를 뉴욕에 만들어 보는 생각도 해 봤어요. 10년 뒤에는 다른 나라 브랜드들도 한번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한국에 대한 브랜딩을 지금 보다 더욱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되면 제 3세계에서 저에게 의뢰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국가브랜드 전문가라기 보다는 세계인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그런 사람이 한 번 되어보고 싶네요.
Q 기업에서 브랜딩과 마케팅, 커뮤
기업 간에 브랜드에 대한 가치를 높이려는 경쟁이 치열하죠. 하지만 기업의 제품과 기술만이 브랜드 가치를
니케이션을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올리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에 환원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아니라 브랜드를 알리고자 하는 나라에 직접 방문하고, 그들의 사회에 깊숙이 들어가서 진정으로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사회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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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brand와 파트너사가 함께 만드는 생생한 브랜드 개발 스토리
Interbrand Brand Letter VOL.23
Case Study
인터브랜드의 첫 번째 재능기부
- 아름다운 커피 이퀄 탄생 스토리 Interview: 아름다운 커피 김진환 처장, 박봉우리 간사, 김선화 디자이너,
인터브랜드 디자인 디렉터 황유진 이사, 박선아 디자이너
Harry Woo / Consulting Manager, Interbrand Korea
아름다운커피 협업의 시작은 사회 공헌 활동이고, 재능기부를 위한 것이었지만, 기존의 프로젝트와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해야할 일은 명확했고, 기대수준은 높았고, 우리가 투입하는 노력의 양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아름다운 커피 간사님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하신 협약식에 참석하고, 패키지 디자인 개발을 위한 미팅을 갖고, 유통 매장에 깔려 있는 제품을 보면서 어쩌면 프로젝트 그 이상의 무엇이 아닐까 생각했다. 언제나 감사하다고, 언제나 행복하다고 이야기 해 주시는 아름다운커피의 간사님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를 함께 나눴다. 공정무역을 의미하는 ‘이퀄’이라는 이름처럼, 우리 모두 행복했고, 우리 모두 자랑스러웠다. 인터브랜드와 아름다운커피 모두 브랜드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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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커피의 브랜드 스토리
Q. 이퀄 런칭 후 2개월이 지났습니다. 실제 시장 반응은 어떤가요?
아우르기보다는 조금은 근시안적인 디자인이 나왔기 때문에 저희가
박봉우리 간사: 아무래도 제품이 전시장에 파급적으로 깔리려면 유통의
원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던 부분도 있었어요. 이제까지는 제안 주신
힘이 있어야 하기에 유통MD들의 반응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것에 거의 동의하는 식으로 진행했었다면. 이퀄 제품부터는 소비자와
기존 제품들은 공정무역 제품이다 보니 완성도면에서 경쟁제품에 비해
우리가 원하는 것, 시장이 원하는 것을 많이 반영하고자 했어요. 그런
만들다 만 듯하다는 피드백이 많았거든요. 지금은 오히려 경쟁력있다는
면에서 인터브랜드가 정말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셨어요. 보통 1차 시안,
평가를 해주시곤 합니다. 일반적으로 저희 내부적으로 신랄한 비평들이
2차 시안에서는 조금 의아한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인터브랜드와 함께
많아 신제품이 자리잡기 쉽지 않은데, 이퀄을 출시하자마자 120개의
하면서는 1차 시안을 보여주실 때부터 우리가 생각한 대로 펼쳐지고
아름다운 가게 매장에서 유통하고 있는 제품 중 매출 1위를 달리고 있다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해요. 내부적으로 ‘우선 깔리기만 하면 되는 제품이다’라는 자신감이 황유진 이사: 아름다운 커피쪽에서 워낙 원하는 방향을 명확히 주셨기
있을 정도에요.
때문에 작업이 수월했어요. 아이디어 구상단계에서부터 협약식을 김진환 처장: 두레생협 MD분이 경우에는 타 유통채널에 있는 이퀄
비롯한 모든 협업과정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아메리카노를 보고 예쁘다며 긍정적으로 문의를 주셔서 입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2013년에 출시 예정인 이퀄 초콜릿에도 그 기대감이 그대로
Q. 패키지에 중점적으로 반영하고자 한 점은 어떤 것들이 있으셨나요?
이어져서, 언제 출시되냐며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고 기대도 하고 계시는
박봉우리 간사: 아름다운 커피에게 이퀄은 터닝포인트가 되는 중요한
상황입니다.
제품이었어요. 이전까지의 제품들이 공정무역과 윤리적인 소비를 강조 했다면, 이퀄부터는 좀 더 시장성에 초점을 맞추어 ‘제품으로 먼저 다가간
Q. 인터브랜드와 함께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후에 공정무역을 알리자’는 자세로 임했어요. 이런 우리의 마음을 인터
김선화 디자이너: 최근의 트렌드 때문인지, 나름의 인지도와 영향력이
브랜드가 잘 헤아려 주신 것 같아요.
있는 아름다운 커피때문인지 재능기부를 하겠다는 분들은 많았지만, 찔러보기 식이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저희 쪽에서 디자인 회사나
황유진 이사: 공정 무역 거래 제품은 왠지 매력이 떨어지지만, 불쌍한
브랜드 컨설팅업체에 연락을 드리곤 했어요. 저희 쪽에서 포트폴리오를
이들에게 베풀기 위한 제품이라는 느낌이 있어요. 하지만 아름다운
보고 제안을 드렸기 때문에 비교적 좋은 결과물은 나왔지만, 워낙 하고자
커피에서 제시해주신 ‘이퀄’이라는 이름은 그들과 우리가 동등한 입장이
하는 방향성들이 확실하셔서 ‘아름다운 커피’라는 브랜드의 전체를
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고, 그러한 부분들을 패키지를 통해 좀 더 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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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brand Brand Letter VOL.23
Case Study
이퀄을 개발한 아름다운 커피 개발팀과 재능기부로 도움을 준 인터브랜더 (좌측 상단부터 인터브랜드 황유진 이사, 김진환 처장, 박봉우리 간사, 인터브랜드 박선아 디자이너, 김선화 디자이너)
것들을 배웠던 것 같아요.
되고 시크하게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공정 무역 거래도 알리면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면서도 브랜드 네임이 갖고 있는
황유진 이사: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을 통해 ‘이렇게 하면
의미를 잘 전달해보자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했던 것 같아요.
안 되겠구나’,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 기대하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박선아 디자이너: 커피라는 특성에 맞춰 세련되고 이국적인 느낌을
하는 것들을 현장에서 느끼기도 해야 한다고 봐요. 사실 훈련의 하나
주는데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아름다운 커피에서 주신 방향성과
이기도 했는데 너무 피드백을 잘 주셔서 잔잔한 훈련이 됐죠(웃음).
목표 안에서 최대한 예쁘게 만들어 보자는 마음으로 디자인했던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비유를 하자면, 공부 잘하는 친구는 보통 못생겼을
Q. 인터브랜드와 함께하면서 아쉬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거라는 인식이 있는데 요즘 친구들은 얄밉게도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김선화 디자이너: 진짜로 없었어요. 제가 입사하기 전부터 협업을 진행
잘 하잖아요. 그런 제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해왔던 회사들을 만났을 때는 재능기부의 형태임에도 재능을 펼쳐 보이는 것에 대해 꺼려하시는 부분들이 없지 않았어요. 디자인 해 주신
Q. 현실적으로 디자이너가 클라이언트 미팅을 자주 못 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대로 나온 것 역시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이기도 했지만, 재능기부
이번 프로젝트는 기획에서부터 디자인 과정까지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가
해주신 분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차원에서 조심스럽게 다가갔던
다 함께 미팅을 했습니다.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어떠셨나요?.
부분이 있었던 게 사실이었죠. 저희가 먼저 재능기부 제안을 부탁 드린
박선아 디자이너: 처음으로 진짜 현장에 와 있는 느낌이었어요. 제
경우가 많아서, 시장성에 대해 말씀드리면 언짢아 하시는 경우가 더러
디자인에 대해 솔직한 피드백이 오가기 때문에 긴장도 했지만, 많은
있었습니다. 인터브랜드와 이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그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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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했는데, 인터브랜드 자체적으로 패키지
개런티를 지불하고 제품에다 공정무역 심볼을 붙이는 구조인데, 국내의
안에 재미요소로 작은 장치를 설치하는 등 시장성과 실험성을 적절히
공정무역 단체들은 개런티를 지불하게 되면 유럽시장 공정무역 발전에
믹스해 주셨어요. 물론 공정무역과 유기농이란 컨셉도 충실하게 반영
쓰여지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고 있어요.
하였구요. 그래서 굉장히 원만하게 진행이 되었던 것 같아요. 황유진 이사: 국내를 위해서 만들 수는 없는 건가요? Q. 박봉우리 간사님은 5개월 전부터 지금까지 이번 프로젝트의 담당으 로써 인터브랜드와의 협업을 진행하셨는데,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박봉우리 간사: 한국에서 통용되는 FLO인증이라는 것이 있어요. 생산자로
박봉우리 간사: 입사한지 일년 여 만에 제 이름을 걸고 한 첫 프로젝트
부터 시작되는 인증인데, 자체적으로 인증을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였어요. 재능기부의 형태이기 때문에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었는데, 생각
조금 어렵죠.
한 것보다 훨씬 잘 됐던 것 같아요. 우리가 제품을 판매하는 사회적 기업 이다 보니 유통 쪽으로도 많은 협업이 있어요. 기존에 해왔던 협업같은
김진환 처장: 대형 제조사들이 공정무역 제품 생산을 확대하겠다고 하면
경우에는 원하는 기대치에 비해 항상 2% 부족한 듯한 느낌이 있었는데,
인증과정은 분명 필요하죠. 하지만 현재로써는 공정무역 인증 체계를
인터브랜드와 함께 하면서는 그런 느낌을 갖지 못했어요. 요즘은
만든다 해도 공정무역 제품이 시중에 많지 않아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이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보다 CSV(Creating Shared
거의 불가능해요. 국내의 경우에는 시민단체 쪽에서만 공정무역 운동을
Value)라고 하잖아요. 앞으로는 협업을 구할 때 앞으로 CSV로 진행해
하고 있으니 아직까지 개척단계에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야겠다는 나름의 생각을 했어요. 황유진 이사: 그렇군요. 외국 제품들은 예쁘던 안 예쁘던 눈에 공정무역 황유진 이사: 저희 쪽에서도 굉장히 행복한 프로젝트에요. 요즘 클라이언트
인증 로고가 바로 보이기 때문에 바로 공정무역 제품임을 알 수 있는데,
분들 만날 때면 이퀄 제품을 드리면서 제품 홍보도 할 겸, 저희 자랑도
국내 제품은 그렇지 않아 늘 아쉽더라구요.
하곤 해요. 득이 훨씬 많았던 프로젝트였죠. 정말 많이 팔렸으면 좋겠어요. Q. 이퀄이 아름다운 커피에게 터닝포인트 제품이라고 이야기 하셨는데, Q. CSR관련 브랜딩은 일반 기업의 브랜딩과 다르게 접근해야 할 것
내부적으로 전략을 바꾸게 된 이유나 계기가 있으셨나요?
같은데 어떠셨는지요?
박봉우리 간사: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들어와서 굉장히 고민이 많았
황유진 이사: 저희 인터브랜드는 CSR브랜딩을 CC(Corporate
어요. 저는 기업출신이라 비즈니스에 초점을 맞추는 편인데, 아름다운
Citizenship)라고 명명하면서 전략을 수립해요.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
커피 사람들은 굉장히 순수하고, 저는 비교적 그런 부분에 있어서 민감
에서는 그걸 깨보고 싶었어요. 공정무역 제품만이 가져야 할 브랜드
하지 못했거든요. 커피믹스 이전 제품의 경우 20개에 6000원 정도로 동종
속성이 분명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방법적으로 어떻게 그것을
제품들과 경쟁이 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기획에서부터 잘못된 부분들
세련되게, 시크하게 표현하느냐가 디자이너가 고민해야 할 부분인 것
이 많다는 생각에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정말 시장에서
같아요. 정말 예쁘면서도 착하기까지 한, 그런 것 말이에요. 공정무역의
경쟁력이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요구를 해서 제품 개발
제품이라는 것을 공통되게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 심볼이나 마크가
때부터 그 부분에 초점을 맞췄어요. 다른 분들께서 동의해 주셨기에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모든 공정무역 제품에 공통으로
이퀄이 나올 수 있었어요. 결과가 잘 나와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이미
사용할 수 있고 소비자도 한 눈에 알아보기 쉬운 것으로. 패키지 자체
안녕일지도 몰라요(웃음).
에서 공정무역을 너무 알리지 않더라도, 마크를 통해서 알릴 수 있다면 김진환 처장: 공정무역 브랜드 특성상, 사회적 기업 특성상 이전 제품들은
디자인이 훨씬 자유로워 질 것 같다고 생각했죠.
고객들의 선의에 호소하는 제품들이 많았어요. 다른 회사에서 만들면 박봉우리 간사: 독일에 이니셔티브라는 단체가 있어요. 이니셔티브에
더 잘 만들 수 있고, 그렇다고 특이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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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을 한다는 것만 알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굉장히 좋은 재료, 유기농
있다(Brands have the power to change the world)’라는 미션을 가지고
재료를 사용한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패키지에 유기농에 대한 표현도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어요. 저희 서울 오피스에서도 늘
잘 하지 못했어요. 그러던 차에 박봉우리 간사님이 굉장히 좋은 제의를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려고 했는데 실질적으로 그게 업무의 연장이
해주셨던 거죠. 저는 지금 배우고 있는 과정이에요.
되다 보니 처음에는 망설였어요. 기존 업무가 바빠 팀원들이 여유가 없어 사실 그 전에 비슷한 이슈가 있었을 때는 거절한 적도 있었구요.
Q. 그렇다면 이번 계기가 아름다운 커피의 전체적인 운영 방향성을
그래서 차라리 업무에서 벗어나 ‘refresh’할 수 있는 재능기부를 찾아
바꿨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요?
보자는 생각으로 미뤄왔었는데 이번에 아름다운 커피 프로젝트에 대해
박봉우리 간사: 이번 프로젝트는 단기적이긴 했지만 2013년부터의
들었을 때 ‘이렇게 좋은 일을 하고 있는 회사에 재능기부를 하면 재미
라인업에 영향을 끼칠 것 같아요. 이퀄 라인은 이퀄 라인 대로, 선물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품 자체도 매력적이었구요. 더불어
라인은 현장에서 생산자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생산자를 돕는 수익성을
관계자님들을 처음 뵈었을 때 저희를 믿어주시는 게 눈에 보이더라구요.
추구하는 동시에 공정무역 제품이라는 특성을 살려서 계속 진행할
‘우리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겠구나’,’정말 의미있는 작업이 되겠구나’ 라는
예정입니다. 이퀄 프로젝트를 통해 내부에서도 공정무역 제품도 시장
생각을 했었던 것 같고, 전적으로 믿고 신뢰해주시니까 더욱 재미있게
에서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인지를 한 상황이고, 이번 달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실험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였지만, 이퀄을
출시하는 초콜릿 제품도 성공시켜서 계속 뻗어나가려고 해요. 잘 되기
진행하면서 서로 코드가 맞는다는 것을 느꼈어요. 사실 디자인 작업을
만을 바라고 있어요.
제안했을 때 바로 그대로 제품화되어 출시되는 경우가 많지 않거든요. 기업들이 여러가지 상황들을 고려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보통
황유진 이사: 아름다운 커피에서도 방향성의 변화에 대해 고민하고
다른 브랜드와의 관계나 내부사정 때문에 안타깝지만 대부분 처음에
있었고, 인터브랜드도 CSR에 대해 중요성을 체감하고 있던 시기에
의도한 디자인과는 다르게 출시되는 경우가 허다해요. 하지만 이번
만나게 됐어요. 정말 시기적으로, 타이밍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프로젝트의 경우 디자이너의 디자인 그대로, 이렇게 빨리 출시되는 게 너무 기뻤어요. 보람도 많이 느껴졌고. 정말 좋은 사례였어요.
Q. 사실상 인터브랜드의 첫 번째 재능기부였습니다. 바쁜 일정임에도 사회공헌 활동을 시작하신 계기가 있나요?
박선아 디자이너: 저는 이퀄 커피 제품과 초콜릿, 두 가지 제품에 대한
황유진 이사: 저희 인터브랜드는 ‘브랜드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디자인 작업을 모두 경험 해봤어요. 이퀄 커피를 거치고 나서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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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디자인이 그대로 나올 수 있고, 제품화도 빨리 될 수 있구나’ 하는
Q. 아름다운 커피에게 인터브랜드란?
생각에 의욕이 더욱 생기더라고요. 재미도 느꼈고요. 저에게는 정말
김진환 처장: 삼국 통일을 꿈꿨던 유비가 제갈량을 만난 듯한 느낌이었
의미 있었던 작업이었어요.
습니다. 앞으로 수어지교의 교류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공정 무역 운동을 하지만 결국에는 제품으로 소비자와 만나게 되는데, 제품의
Q. 이퀄 제품의 확장은 어디까지 생각하고 계신가요?
얼굴인 패키지 디자인에 대한 브랜드 컨설팅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 다.
박봉우리 간사: 사실 지금 구상 중에 있어요. 우선적으로는 초콜릿부터
김선화 디자이너: 타이밍이 잘 맞았다고 했는데, 정말 톱니바퀴가 딱딱
핫초코까지. 더불어 기존 제품의 리뉴얼도 생각하고 있어요. 개인적
맞물려 돌아가는 느낌이었어요. 인터브랜드는 저희가 잃어버렸던 나사
으로는 허브티 시장이 요즘 뜬다고 해서 관심을 갖고 있어요. 공정무역
였던 것 같아요.
생산자들이 제작하는 물건들은 주얼리부터 와인, 바나나까지 굉장히 다양하거든요. 제품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박봉우리 간사: 저희가 시민단체이면서도 기업의 모습을 하고 있는 박쥐
다양하게 시도해보고 싶어요. 매장에 이것저것 많이 판매를 하면 보는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요. 그런 부분에서 인터브랜드는 아마추어 같았던
사람들도 구경하는 맛이 나지 않을까요.
저희에게 프로의 옷을 입혀주셨어요.
황유진 이사: 나중에 이퀄제품만 파는 전용 매장이 생기는 거 아닌지,
Q. 인터브랜드에게 아름다운 커피란?
기대되면서 조금 걱정이 되네요. 앞으로 많은 작업을 함께 해야할 것
박선아 디자이너: 서로의 존재에 있어 좋은 친구에요.
같은데, 각오해야겠어요(웃음). 사실 이 프로젝트를 하기 전에는 부끄 럽게도 아름다운 가게를 가본 적도 없었어요. 재능기부를 시작하면서
황유진 이사: 저희 인터브랜드가 이야기 하는 '세상을 바꾸는 브랜드' 를
관심을 갖고, 물건도 사보고 하니까 정말 착한 마음이 생기더라구요.
실현하는 좋은 기회를 준 감사한 곳이죠. 아울러 살면서 좋은 일을 할 수
우리에게 작은 변화가 생겨서 기분이 좋아요.
있는 기회였어요. 저의 부족했던 삶을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었던 기회 였던 것 같아요.
박봉우리 간사: 저희가 드릴 수 있는 유일한 리워드는 그런 ‘뿌듯함’ 인 것 같아요.
아름다운 커피와 만나는 법 아름다운 커피는 공정무역(Fair Trade)을 통해 빈곤을 심화시키고 있는 현재의 무역을 빈곤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바꾸고자 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인터브랜드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커피 '이퀄'은 아름다운 커피 쇼핑몰(www.beautifulcoffee.com)에서 구입 할 수 있다. 두번째 프로젝트 '초콜렛'은 1월 말부터 구입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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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지의 브랜드, 디자인과 트렌드 관련 뉴스
마이크로소프트의 야심작 Windows Store, 애플과 구글의 아성을 넘어설 수 있을까?
MS office Surface (출처: http://windows.microsoft.com)
마이크로소프트가 로고 변경을 하며 야심차게 출시한 윈도우 8의 반응이 굉장히 뜨겁다. 터치스크린 PC를 기반으로 하여 성장세가 더딜 것이란 예상을 깨고 만족스러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마이크로 소프트는 앱시장이 보편화 된 흐름에 맞추어 윈도우 버전의 앱스토어인 윈도우 스토어를 출시한 바 있는데, 이 성장세 역시 주목할 만 하다. 출시 60여일 만에 총 어플리케이션의 수가 3만 5000개를 넘어선 것이다. 애플의 앱스토어가 1년에 6만 5천개, 구글 플레이가 2만 개를 돌파했던 것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빠른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The Next Web’, ‘Electronista’ 등의 복수 IT 전문지들도 이에 발 맞추어 일제히 윈도우 스토어의 총 어플리케이션 숫자가 3만 5000개가 넘었다고 보도했다. 이는 하루 평균 415개의 어플리케이션이 업데이트 된 결과이며 발매 된지 시일이 꽤 경과한 11월에도 하루 평균 362개의 등록 속도를 보여주었다. 10월 30일 1만 여 개를 돌파한 어플리케이션의 숫자는 11월 14일 1만 6000여개, 11월 22일 2만 여 개로 급성장했다. 지금과 같은 성장세를 유지한다면 올 2월 초순 경 5만 여 개 돌파가 확실시 된다. 마이크로소프트 측은 2014년 초까지 10만 개의 어플리케이션이 등록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강력한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스마트폰 생태계를 주름 잡던 블랙베리의 아성은 애플의 아이폰 앞에 스러지듯 무너졌다. 애플은 전체 스마트폰 생태계를 하드웨어 중심이 아닌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전환했고,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까지 이에 동참함으로써 본격적인 어플리케이션 시대의 서막이 올랐음을 느낄 수 있다. 아직은 스마트폰과 같이 터치스크린 기반으로 한 PC가 시장에 본격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Surface를 필두로 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들이 얼마만큼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주목해 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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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wide Brand Hot News
애스턴 마틴, 100주년 기념 로고 발표
영국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 애스턴 마틴이 브랜드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념 로고를 발표했다. 그들이 가진 영욕의 100년 역사는 퍽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비교적 이른 시대부터 앞선 기술력을 통해 자동차를 생산해내기 시작했으나 세계 전쟁으로 인해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던 애스턴 마틴은 1980년대 초반 극심한 적자로 인해 브랜드 소멸 위기까지 다다랐다. 이후 지속된 매각 덕분에 극적으로 살아남았음에도 불안의 바다에 표류하던 007의 슈퍼카는 쿠웨이트에 인수되었던 시절을 지나 지난 해 이탈리아 사모펀드 ‘인베스트인터스트리알’이 37.5%에 달하는 애스턴 마틴의 지분을 확보함으로써 다시금 안정적인 재정상태를 확보하게 되었다. 애스턴 마틴은 이번 100주년을 이런 매각의 역사와 브랜드 침체기 에서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터닝포인트로 삼기 위해 새 로고 발표 및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는 등 브랜드의 회생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작년 단 4,200대만을 판매한 이 럭셔리 브랜드는 영국의 미스터리한 첩보원 제임스 본드를 통해 그 명성을 유지해오고 있었다. 007의 최신작 ‘Skyfall’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 본드의 슈퍼카는 새로운 팬덤과 부흥을 맞이하기 위해 이 기념로고를 해당 로고캠페인과 함께 홍보 웹 페이지와 함께 공개했다. 이에 더해 CEO의 친절한 설명을 담은 영상을 유투브를 통해 홍보하며 좀 더 쉽고 친화적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고자 노력하였다. LuxuryDaily.com에 따르면 ‘본 기념로고는 앵무조개 형상의 애스턴 마틴 로고로 향하는 나선형의 100년 역사를 상징하는 점들이 포인트’라고 설명 하고 있다. 007의 슈퍼카, 혹은 그저 그런 호화 자동차라고 치부될 수 있었던 애스턴 마틴이 전하고자 하는 바가 이번 100주년을 맞아 대중들에게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도 좋을 듯 싶다.
1 에스턴 마틴이 발표한 100 주년 기념 로고 2 영화 '007 Skyfall'에 등장한 에스턴 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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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럴 밀스의 2013년 New Brand Mantra :
Improve yourself through better snacking 만약 혁신과 변화를 생명유지장치로 비유한다면 미국의 식품기업 제너럴 밀스의 생명유지장치는 회사의 건강을 위해 더 열심히 작동해야 할 것 같다. 2013년은 제너럴 밀스에게는 조금 더 힘든 한 해가 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가는 식품 시장과 경쟁사들의 새로운 제품들의 개발은 이번 년도에도 끊임없이 제너럴 밀스를 괴롭힐 것이다. 점점 더 높아져가는 웰빙에 대한 관심 덕분에 이번 해 역시 좀 더 건강한 제품을 출시하려는 식품 업계의 노력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제너럴 밀스의 CEO 켄 포엘(Ken Powell)과 월 스트리스 애널리스트(Wall Street Analysts)의 컨퍼런스 콜에 따르면 제너럴 밀스는 총 매출의 4~5% 정도를 새로운 제품으로 채울 것이라고 밝히며, “우리는 이러한 신제품 런칭이 고객들을 새로운 세그먼트로 진입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라 믿으며 앞으로도 제품 수를 증가시켜 나갈 것이다.” 라고 말했다. 제너럴 밀스의 새로운 제품은 단순한 초콜릿 바나 땅콩 버터만이 아닌, 섬유질이나 단백질을 좀 더 담은 제품이 될 예정이다. 이와 상통할 수 있도록 그들이 2013년 새롭게 제정한 브랜드 만트라(Mantra: 카피의 일종으로서 기업의 가치를 대변하는 짧은 글귀)인 ‘Better-for-you-snacking’ 은 그들이 나아가고자 하는 길을 좀 더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기회 속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엿보는 제너럴 밀스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스낵을 단순한 스낵이 아닌 에너지 섭취 식품, 나아가 단백질이나 탄수화물, 곡물을 섭취하기 위한 식품으로 보고 있다.” 고 말한다. 이에 제너럴 밀스는 Better-for-you 라는 카테고리에 새로운 세 가지 제품을 등장시킬 예정이다. 2013년 한 해 동안 미국 내에서 쏟아질 이러한 제품의 숫자는 작년보다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 시장에서 역시 유기농 제품을 필두로 에너지 드링크에 이르기까지 단순한 식품군에 머무는 것이 아닌 좀 더 새로움과 건강을 담은 식품이 출시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의 바람은 약해지기 보다는 더 세차게 불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변화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제너럴 밀스의 시리얼 제품군(출처: www.generalmil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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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brand에서 성공적으로 수행한 파트너사의 프로젝트
삼양 제넥스 어바웃 미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채담 제품명 개발
삼양 제넥스가 새롭게 선보이는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 브랜드
건강기능식품과 화장품의 통합
‘설화수’의 메이크업 라인 ‘채담’의
솔루션 브랜드 어바웃 미 브랜드
신제품, 컨실러와 컴팩트 2종에
개발 프로젝트. 국내 최초로 삼양
대한 영문 제품명 개발 프로젝트.
제넥스가 선보이는 이 제품은
기존의 제품과 다른 특징을 가진
‘IN&OUT의 통합 프로그램’ 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제품 용기를 명확하게 표현하면서
기대하고 있다. 건강과 아름다움이라는 컨셉을 기본으로 브랜드 로고의
이해 용이성이 높은 이름을 개발
하단부에는 몸의 근간이 되는 무게감 있는 다크브라운을, 상단에는
하는 것이 주요 관건이었다. 글로벌
어바웃 미를 대표하는 블루를 활용, 건강과 아름다움을 중심으로 하는
오피스와의 협업을 통해 컴팩트와 컨실러에 동일하게 ‘Perfecting’
어바웃 미의 정체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을 사용하기로 결정, 컨실러에는 용기 특성을 반영하여 ‘Duo’라는
인터브랜드 파리오피스와의 협업을 통해 로고, 패키지 개발에서
이름을 병기하여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후 파운데이션까지
부터 매장디자인까지 진행하였다.
추가로 출시, 커버력이 높은 제품 라인으로 ‘채담 퍼펙팅’ 을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롯데케미칼 사명 변경 및 CI개발
Anchor 패키지 디자인
롯데케미칼로 사명을 변경하고 호남석유화학의 새로운 CI 개발 프로젝트.
뉴질랜드의 프리미엄 유제품 브랜드인 앵커의 중국시장 내 패키지 개발을
롯데그룹 브랜드 활용으로 비즈니스 전개 및 새로운 기업 이미지를 구축
위한 상하이 오피스와의 협업 프로젝트. 중국의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모습
하기 위해 새로운 사명과 CI를 개발하고자 하였다. 케미칼이라는 산업
으로의 성공적인 전환을 통해 점유율을 높여가려는 목표를 두고 진행
자체가 친환경을 추구하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공해산업으로 오해
되었다. 원산지인 뉴질랜드와 어울리는 이미지인 자연과 관계된 요소를
받는 점을 감안하여 좀 더 자연 친화적인 기업이미지를 드러낼 수 있는
적극 활용하여 타 경쟁제품보다 고급스러운 느낌으로의 차별성을 높여
비주얼이 제안되었다. 롯데그룹 고유의 로고와 주 산업인 케미칼의 조화,
가는데 중점을 두었다.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자연과 소에 대한 일러스트와
그리고 오른편에 친환경을 상징하는 요소를 적용한 결과물로서 새로운
실사 이미지를 적극 노출함과 동시에 앵커의 기존 로고색상과 패키지의
기업의 출범과 더불어 친환경 이미지를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하였다.
파란 톤을 적절히 활용, 브랜드 정체성은 지키고 타 제품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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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brand Brand Letter
Publisher 문지훈 Jihun Moon
Vol.23 PoliticsXBrand
Editor in Chief 우승우 Harry 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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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Editors Jeremy Villano Forest Young 민은정 Eunice Min 신기주 Ki Ju Shin Contributor 도현구 Daniel Do Daniel.Do@interbrand.com
Editorial Design 정수연 Suyeon Jung
Suyeon.Jung@interbrand.com
Print 웨스턴커뮤니케이션 Western Commun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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