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가들이 모여,
씀
2호
거리 2020. 04
인터뷰 아이와의 거리, 시간으로 좁혀요 육아 휴직한 아빠, 이승훈 씨
여행 하루코스로 다녀오는 시간여행 군산 근대화 거리
에세이 그들은 어느 거리에나 있었다
미술 인상주의 작품에 담긴 파리의 거리
그림책, 그리고 영화 리뷰 그림책《괜찮을 거야》 <완벽한 타인>, <우리들>
축제, 음식, 음악 거리에서 즐기는 축제 한마당 국민대표 길거리 음식 - 떡볶이 바람이 불어오면 생각나는 아테네 리시우Lisiou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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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가들이 모여,
씀 Publisher 박보라 Editor 정은영, 오수진, 정 은, 장성훈
코로나19로 어린이와 함께 지내며 글을 쓰느라 나름의 고충이 있었어요. 조금 더 집
정은영
중했으면 더 좋은 글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고요. (과연?) 혼자라면 하지 못했을 일이죠. 함께라는 것만으로 의지가 되었던 동기들과 매 시간 깨우침을 주신 박보라 작가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매거진 기획을 처음 해보게 됐는데, 저에게는 정말 뜻깊고 즐거운 시간이었어 요. 동기들의 반짝반짝한 아이디어를 들으며 즐거웠고, 이 기획이 완성될 수 있 도록 이끌어주신 박보라 작가님을 보며 많은 걸 배웠어요. 감사합니다. 처음 매
오수진
거진의 주제를 정할때만 해도 막막했는데 이렇게 완성되고나니 무척 뿌듯해요.
사회적 거리 두기의 일환으로 집에서 글을 썼어요. 밖은 점점 봄이 오는데 안 에만 있으려니 갑갑했는데, 마침 ‘거리’가 주제라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어 요. 거리에 나가지 못한 ‘거리’기사라 아쉬움이 남지만 저에겐 봄바람 같은 웹 진 기획이었어요. 함께한 동료들과 선생님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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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
글, 사진 정은영
아이와의 거리, 시간으로 좁혀요 육아 휴직한 아빠, 이승훈 씨
두 살 아이와 스물네시간 살 비비며 보낸 한 해가 일생의 가장 특별한 경험이라는 이승훈 씨(47세). 그는 자신의 회사에서의 첫 번째 남성 육아휴직 사례자이다. 봄기운이 완연한 한낮. 노천카페에서 그 를 만나 근황을 물었다.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재택근무 중인데 일곱 살 아이와 함께 직장으로 출 근하는 기분입니다.” 곤란한 표정과는 달리 그의 웃음에는 여유가 느껴졌다.
육아라는 새로운 세계 휴직을 결정하기까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회사 생활에 지쳐있던 그에게 아내의 육아휴직 권유는 오 히려 반가웠다. 아이와 보내는 평화로운 일상에 대한 기대로 시작한 육아 1년 차 아빠. 그 1년은 과연 어떠했을까. 육아휴직을 한 계기가 있었나요? 육아휴직 중이었던 아내의 복직 시기가 되었는데 아이를 맡길 만한 곳을 찾지 못했어요. 여러 가지 상 황이 복잡했죠. 때마침 저는, 회사 생활에 슬럼프가 찾아온 시기였어요. 일에 대한 회의가 들면서 직업 을 바꿔야 하나 고민이 깊었죠. 어려운 상황을 잠시 피해 보고자 한 선택이었어요. 무엇보다, 근처에 본 가가 있어서 믿는 구석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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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직 후, 일상은 기대와 같았나요? 처음엔 주말이 계속되는 느낌이고 좋았어요. 그런데 마냥 좋구나 싶은 건 딱 일주일이더라고요. 일주 일 정도 지나니까 혼란스러웠어요. 아이와 함께 있다보니 뭔가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불가능한 거 예요. 24시간이 내 것이 아닌 거죠. “내 시간은 어디로 갔지?” 라며 당황하기 시작했요. 육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신 거네요. 아이가 예민해서 자주 울었는데 이유를 모르겠는 거예요. 유모차를 끌고 동네를 하염없이 걷다보면 나 아질까 싶어 하루종일 나가있기도 했어요. 밤에는 제 배 위에 누워야만 잠에 들더군요.
아버지와 나, 그리고 내 아이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와의 관계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았다. 감사함과 서운함이 교차하고, 그러는 사이 서로 다름에 대해 받아들이게 되었다 육아를 하며 부모님을 많이 이해하게 되셨나요?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아요. “아~ 이렇게 힘들게 나를 키우셨겠구나. 감사하다.” 하는 마음 이 컸죠. 그냥 어떤 순간에 와 닿더라고요. 하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감정도 찾아왔어요. “그때 나한 테 왜 그랬을까?” 하는. 그런 감정은 주로 아버지를 향했어요. 저를 강하게 키우려는 나름의 방식 때문 에 많이 힘들었거든요. 내 아이를 키우면서 “이렇게 작고 약한 아이에게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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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된 거군요. 부모님이 내게 가진 감정이 무엇일지 이해하게 되기도 하고, 내게 잘못했던 점들이 명확하게 인식되 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우리가 얼마나 다른 사람들인지 또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깊이 생각하는 계기 가 되었어요. 부모와 자식 사이를 좀 더 객관화해서 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아버지와의 관계가 아이와 관계 맺기에 영향을 주었겠네요. 내 어린 시절 중요한 순간들에 아버지는 늘 안 계셨어요. 일하러 갔거나 산에 갔거나 했죠. 내가 이룬 성취에 대해 인정받지도, 함께 나누지도 못했어요. 아버지와는 다른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어떤 아 빠가 되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친구라고 말할 거예요. 친구 같은 아빠 말고 그냥 친구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고 무언가를 함께 하고 싶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사랑의 깊이는 시간과 비례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힘든 속에서도 빛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자 주, 그리고 더 많이 바라볼수록 말이다. 함께 보낸 시간에 큰 의미를 두는 것 같아요. 아내가 휴직을 권유하며 한 말이 있어요. “아이의 첫 순간을 목격하는 기쁨을 느껴봐” 아내의 말이 무슨 말인지 곧 알게 됐죠. 아이가 처음 일어서서 한 발짝 뗀 날, 처음 아빠라고 부르던 날이 생생해요. 제 눈을 보며 “빠빠”라고 했던 날을 떠올리면 울컥해져요. 돌이 갓 지난 아이가 걸음 마를 하다 뛰어다닐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매일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죠. 아빠의 육아휴직, 추천하시나요? 아이와의 거리 좁히기, 부모로 성장하기만 생각하면 망설임 없이 꼭 해보라고 하겠어요. 그런데 아직 은 개인의 결심만으로 힘든 점이 있어요. 안정된 회사여야 가능한 일이고요. 국가 차원의 지원이 잘 되어서 민간 기업에서도 휴직을 장려하는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제 경우 복직한 후 일에 대한 책임과 애정이 더 강해졌어요. 휴직 전보다 평가를 더 잘 받고 있죠. 휴직 후 돌아와서 더 많은 성과 를 내는 사례들이 많을 거예요. 저희처럼 부부가 번갈아 휴직하면 서로의 경력 단절도 예방되고 긍정 적인 측면이 많아요. 아이와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지금처럼 레고로 이것저것 같이 만들고, 보드게임도 하고, 야구 보러 같이 가고 가끔 여행도 가고 그 런 것들이죠. 그냥 일상을 늘 함께하고 싶어요. 무엇도 시간을 이기지는 못하리라 생각해요. 아이와 보낸 시간이 쌓일수록 애정의 농도 또한 짙어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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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정 은
하루코스로 다녀오는 시간여행 군산 근대화 거리
날씨가 따뜻해지며 해가 떠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낯선 곳으로 떠 나고 싶지만 1박이 부담된다면 길어진 낮 시간을 이용해 친구와 당일치 기 여행을 다녀오면 어떨까. 전북 군산의 근대화 거리는 중앙거리를 중 심으로 볼 것이 모여 있어 하루 안에 도보 여행이 가능하다. 일제 강점 기에 지어진 가옥과 거리의 모습이 그 시대에 온 듯한 기분을 불러일으 키는 군산 근대화 거리. 군산역까지 이어지는 장항선 기차를 타고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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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거리 새만금과 금강하구가 있는 군산은 일제 강점기에 일 본의 쌀 수탈 요충지로 쓰였다. 군산항을 기점으로 쌀뿐 아니라 군사물자도 실어 날랐다. 해방 전까지 일본 상인의 경제 중심지로 거주민의 절반 가까이 가 일본인이었다고 한다. 당시 지어진 일본 가옥, 은 행건물, 사찰 등이 구 시가지에 남아 있어 과거와 현 재가 공존하는 독특한 모습의 군산 근대화 거리가 생겨났다. 이곳이 하나 둘 사람들에게 알려지며 군산시는 적극 적으로 근대화 거리를 관광지로 활성화 하였다. 또 한 <타짜>, <8월의 크리스마스>, <검은 집> 등 많 은 영화의 촬영지로 각광받으며 영화를 촬영한 가게 나 집이 관광객의 발길을 끌기도 한다. 서울 용산역에서 ITX를 타면 군산역까지 약 3시간 10분이 소요된다. 당일 코스로 간다면 아침 일찍 기 차를 타 오전 중 군산에 도착할 수 있도록 계획해야 군산 근대화 거리를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군산역 은 시내와 다소 떨어져 있어 관광지까지 약 5km의 거리를 버스나 택시로 이동해야 한다(택시로 약 15 분 소요).
일제 강점기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다 드디어 도착한 군산 근대화 거리. 단층 혹은 2층의 나지막한 건물이 관광 안내소 기점으로 거리 양옆 에 늘어서 있다. 곳곳에 남아있는 일본식 목조 건물 이 최근 지어진 건물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풍긴 다. 청바지가 아닌 당시 유행하던 긴 치마를 입고, 서울을 경성이라 불러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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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거리 여행은 근대역사박물관에서 시작하는 것 이 좋다. 군산의 역사적 배경과 일제 강점기 당시 생 활상을 볼 수 있으며, 1층 안내 데스크에서 여행 지 도도 받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 입장권은 군 산 관광지 여러 곳에서 사용 가능한 통합권으로 살 수도 있고 박물관만 입장 가능한 별도 티켓으로 살 수도 있으니 자신의 여행 계획에 맞춰 구매하면 된 다.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이루어진 근대역사박물 관에는 해양물류관, 독립영웅관, 기획전시실 등 여 러 관이 있지만 그 중 근대생활관에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모인다. 근대생활관은 1930년대 군산의 생활 상을 재현한 곳으로 고무신 상점, 양조장, 쌀 지게 체 험장, 소학교 교실 등 당시 일반 서민의 삶을 체험할 수 있다. 생활관에 준비된 옛날 교복 복장을 하고 친 구들과 사진을 찍으면 마치 시대극 주인공처럼 보인 다. 근대역사박물관을 나와 바로 옆의 근대미술관으로 향한다. 근대미술관은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구 일 본 제18은행 건물을 보수·복원하여 개장한 건물이 다. 구 일본 제18은행은 나가사키에 본사를 두고 있 는 일본은행으로 18번째로 은행 설립허가를 받았기 에 이렇게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현재는 전라북도 출신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문화공간으로 활용 되고 있다. 본관 외에도 당시 일본 은행이 수탈한 재 물을 쌓아놓던 금고동과 독립 운동가였던 안중근 의 사 기념관이 있으니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며 모두 둘 러보자. 미술관을 나오니 어느 새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이 른 시각부터 이동해 출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 식당 으로 이동한다. 군산은 유명한 중국집이 많다. 문화 재로 지정된 빈해원, 영화 <타짜>에도 나온 국제반 점, 물짜장으로 유명한 복성루 등 입맛 따라 개성 따 라 고르면 된다. 지역 주민에 따르면 바다가 가까운 군산 특성상 갓 잡아온 싱싱한 해산물을 넣어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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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만들기에 짬뽕 국물 하나도 격이 다르다고. 같이 간 친구와 짬뽕 하나 짜장면 하나를 사이좋게 나눠먹 어 본다.
영화와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어본다 맛있게 점심을 먹은 후,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였던 초원사진 관으로 향한다. 사진관으로 향하는 길에 근대화 거리의 개성 넘치는 작은 가게들을 구경해보자. 쫀드기·어포·페인트사탕 등 80-90년대 불량식품 을 파는 문방구, 손뜨개 제품이나 아기자기한 수공예 제품을 파는 소품 가 게, 커피 하나·프림 하나·설탕 둘의 옛날 식 커피를 파는 다방 등 친구와 함께 추억을 떠올리며 가게를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초원 사진관에 도착 한다. 실제 초원 사진관은 영화 촬영이 끝난 뒤 철거되었으나 군산시가 다시 복 원해 관광객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복원된 사진관은 영화 속 그대로 의 모습이라 마치 남자주인공이었던 한석규가 예의 그 착한 말투로 “어 서 오세요”라며 손님을 맞을 것만 같다. 초원 사진관 앞에서 영화 주인공 이 된 듯 사진을 한 장 찍어본다. 안으로 들어가면 영화 속 사진기, 선풍 기, 의자 등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사진관 밖에는 주차단속요원이었던 여주인공 심은하가 타고 다니던 단속차량이 세워져 있다. <8월의 크리스 마스>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여행을 떠나기 전 영화를 꼭 한번 보고 가 길 추천한다. 다음으로 향할 곳은 신흥동 일본식 가옥이다. 일제 강점기 때 유명한 포모 상이었던 일본인 히로쓰가 지은 2층 목조 건물로 당시 큰 부를 축적한 히 로쓰는 일본에서 직접 들여온 자재로 집을 지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건물 이 잘 보존되고 있어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의 촬영이 여기에서 이루어졌다. 작은 연못과 석탑, 석등, 가지를 친 나무 등 일본식 정원이 잘 꾸며져 있어 마치 잠시 일본에 온 것 같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당시 조선 에서 부를 축적한 일본 상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신흥동 일본식 가옥에서 약 10분을 걸으면 우리나라 유일의 일본식 사찰 동국사가 나온다. 우리나라 사찰은 보통 화려한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 금 강문이 있고 정중앙에 대웅전이 나타나는데 반해 일본식 사찰 동국사는 입구에 들어가면 바로 대웅전이 나온다. 대웅전 건축에 일본산 나무가 사 용되었으며 지붕 기와도 일본에서 직접 구워왔다고 한다. 이국적인 절의 모습 탓에 드라마 <감격시대-투신의 탄생>나 <빠스켓볼>의 촬영지로 활 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동국사를 방문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찰 안에 군산 평화의 소녀상이 있기 때문 아닐까. 일본인이 지은 일본 식 사찰 안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이라니, 그 역사적 의미를 가슴 깊이 새 기게 된다. 동국사 입구의 관광 안내소에는 해설사가 상주하고 있어 군산 과 동국사의 역사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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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 돌아가는 기차 마지막으로 지친 다리를 쉬기 위해 미즈커피로 향한다. 1930년대 일본 무역회사로 사용되던 건물 을 현재 카페로 바꿔 운영 중이다. 목재로 만든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일제 시대를 다룬 드라 마 속에 있는 기분이다. 2층에는 일본 전통 다다미 방이 있다. 계단을 오르는 불편만 감수한다면 다다미 방에서 커피를 마셔볼 수 있다. 군산역으로 가기 전, 잠시 빵집 이성당에 들린다. 1920년대 일본인이 지은 화과자점으로 해방 이 후 한국인이 이성당으로 상호명을 변경하고 빵을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중 하나로 단팥빵과 야채빵이 유명하다. 두 가지 빵을 사려는 사람들로 가게 앞에 대 기 줄이 늘 길다. 빵을 사서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저녁으로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올라오는 기차는 서해금빛열차를 타보자. 서해금빛열차는 한국철도공사가 만든 관광열차로 기차 칸에 한옥식 온돌마루와 온천 족욕시설이 있다. 용산역에서 출발, 군산을 포함한 서해 근방의 관광 지를 거쳐 익산까지 총 12개의 역을 지나간다. 인기가 많아 예매가 치열하다. 예매에 성공한다면 돌아오는 기차는 내 집 안방같이 따뜻한 온돌방에서 두 다리 쭉 뻗고 편히 올 수 있다. 미리 사 놓은 이성당 빵을 먹으며 창밖을 바라보자. 어스름 해가 지는 창밖 풍경이 아름답다. 서해 금빛열차의 온돌 칸은 외부와 차단된 방 형태라, 여행에서 느낀 기분을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 눠보자. 하루코스라 아쉬움이 다소 남지만 무엇보다 알차게 보낸 시간이다. 빠르게 달리는 기차는 1930년대 일제 강점기로 떠났던 시간여행에서 서서히 현재로 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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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근대역사박물관 전북 군산시 해망로 240 09:00 – 21:00(1월 1일, 첫째/셋째 월요일 휴관) 063-454-7870 근대미술관 전북 군산시 해망로 230 장기18은행 매일 09:00 - 18:00(1월 1일 휴무)
“곳곳에 남아있는 일본식 목조 건물이 최근 지어진 건물과 확연히 다른 분위 기를 풍긴다. 청바지가 아닌, 당시 유행
전화번호 063-446-9812 초원사진관 전북 군산시 구영2길 12-1 09:00-21:30(첫째, 셋째 월요일) 063-446-5114
하던 긴 치마를 입고 서울
신흥동 일본식 가옥
을 경성이라 불러야 할 것
전북 군산시 구영1길 17 히로쓰 가옥
같은 기분이다."
10:00-17:00 063-454-3923 미즈커피 전북 군산시 해망로 232 평일 10:00-21:00, 토 09:30-22:00, 일 09:30-21:00 063-445-1930 이성당 전북 군산시 중앙로 177 08:00-22:00(매월 1회 휴무, 매장에 문의) 063-445-2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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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느 거리에나 있었다 글 오수진
❊ 고된 노동을 하면서 낮은 임금을 받았다. 열악한 근무 환경이라도 개선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묵묵부답. 참고 버텼지 만 그 대가는 죽음으로 돌아왔다. 마치 아는 사람의 부고를 전해들은 듯, 노동자들이 당한 비극은 나를 충격에 빠트렸 다. 오늘도 밖에서 보았고, 어제는 우리집으로 택배를 가져다 준 사람들. 아까 통과했던 지하철 안전문을 그가 손봤을지 도 모를 일이었다. 이렇게 가까이 어느 거리에나 그들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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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평 휴게실, 창 하나만 있었어도 2019년, 폭염 경보가 내려진 어느 날. 서울대학교에서 일하는 60대 청소노동자는 새벽 청소를 마치고 휴게실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휴게실은 지하층 계단 아래를 막아 만든 임시 공간이었 다. 1평짜리 협소한 그 곳은 좁기도 무척 좁지만 창 하나 없이 선풍기와 환풍기만 있는 곳. 이전 부터 휴게실을 옮겨주거나 에어컨을 설치해달라고 요구했지만 학교는 아무 답이 없었다. 그 차 가운 무관심은 결국 화를 불렀다. 그날 60대 청소노동자는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서울대학교에는 ‘인권센터’와 ‘다양성위원회’라는 곳이 있다. 다양한 사회 구성원과 차별 없이 소 통하고 그들을 배려하자는 취지를 담은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청소노 동자에 대한 인권은 무시한 걸까. 나는 이런 실천 없는 말뿐인 탁상공론이 몹시 거북하게 느껴진 다. 서울대시설환경분회장은 “청소하는 분들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죽음 을 방치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며 청소노동자의 인권을 모른 체하여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학교를 질타했다. 이 인터뷰를 보고 언젠가 읽었던 김애란 작가의 단편 소설 『하루의 축』이 생각났다. 인천공항에 서 화장실 청소를 하는 인물 ‘기옥’의 하루를 따라가는 이야기이다. 내가 보기에 그의 하루는 고 단함과 상처투성이인데 기옥은 익숙하다는 듯 덤덤하게 여러 상황을 넘긴다. 그런데 소설 후반 부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고객이 버리고 간 마카롱을 먹으며 ‘아유 달어’하고 몸서리를 치다 이 내 울먹이는 표정으로 “왜 이렇게 단가… 이렇게 달콤해도 되는 건가….” 라고 말하는. 바로 다 음 장에서는 ‘승객들은 이따금 기옥 씨가 거기 있는 줄 모르거나, 있어도 없는 사람처럼 여겼다. 마치 많은 이들이 재떨이와 재떨이 청소부를, 승강기와 승강기 청소부를 동격으로 대하듯’ 이라 는 구절이 나온다. 서울대시설환경분회장의 ‘청소노동자를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말’과 소설 속 ‘승강기와 승강기 청소부를 동격으로 대하듯’은 동의어 같다. 마카롱을 먹으면 누구나 느끼는 달콤함. 그날 눈감은 60대 청소노동자와 기옥도 그 달콤함을 느낄 줄 안다. 우린 모두 같은 사람이니까.
어른들의 산타는 떠났다 작년 12월 ‘슈가맨’이라는 프로그램에 90년대 가수 태사자가 출연했다. 18년만의 긴 공백을 깨 고 나왔는데, 이날 멤버 김형준의 말이 화제였다. 택배기사로 일하고 있다는 그는 이 일을 ‘어른 들의 산타’라고 표현했다. 모두가 기다리고 반가워하니 산타가 맞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런데 얼마 전, 새벽 배송 중 쓰러져 유명을 달리한 어느 산타의 비보가 전해졌다. 김씨는 올해 2월 쿠팡에 비정규직 노동자로 입사했다. 마침 그가 일을 시작한 때는 코로나19 로 택배 물량이 50% 가까이 늘어난 상황. 이전에는 하루 최대 물량이 250개 정도였는데, 코로나 19 이후에는 300개가 보통이 되고, 400~500개까지 배정받을 날도 있었다고. 오랜 경력자가 맡아도 불가능할 거 같은 이 물량은 김씨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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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생전에 가족에게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가서 너무 비인간적이고 힘들다”라고 말 했 다. 저 한 문장의 말로도 그가 얼마나 지옥 같은 작업 현장에서 고생했을지 가늠할 수 있다. 하필 일한 구역은 노동조합 소속 쿠팡맨이 없어서, 휴게시간이 잘 지켜지지도 않았다고 한다. 조찬호 쿠팡지부 조직부장은 "쿠팡맨 퇴사율이 75%다. 1년 미만 퇴사자는 96%다. 이 수치만 갖고도 근무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쿠팡’의 어두 운 이면을 드러내는 말이었다. 김씨의 죽음으로 인터넷 누리꾼들 사이에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에서 무거운 쌀, 생수, 애완동물 사료를 주문하는 경우는 어떤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 다. 김씨 또한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를 오르내리던 중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죽음에 이르렀다. 자신을 택배 기사라고 한 누리꾼은 ‘쌀 20kg에 생수 1.5리터 36개, 세제 등 무거운 건 다 있다. 청와대 청원에 살려달라고 글도 올렸는데, 결국 일이 터졌다’라며 씁쓸한 심정의 글을 남겼다. 고된 노동에 비례해 월급은 적고 고용 안정도 없다. 심지어 쿠팡은 몇 년 째 월급이 동결된 상태 이다. 택배 기사를 희생시켜 이루는 고객만족을 이제라도 멈춰야함이 분명한데 불안하다. 이 구 조, 과연 바뀔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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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이 버리고 간 마카롱을 먹으며 ‘아유 달어’하고 몸서리를 치다 이내 울먹이는 표정으로 “왜 이렇게 단가… 이렇게 달콤해도 되는 건가….” 라고 말하는… 천천히 먹어 모든 죽음은 슬프지만, 아직 꽃망울도 피우지 못한 어린 사람의 죽음은 더 가엽다. 한 번씩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고가 있는데, 2016년 5월 구의역 안전문을 수리하다 숨진 김군의 일이 다. 열아홉 번째 생일 하루 전날, 끼니를 챙길 여유도 없이 일하던 중 지하철에 치어 그는 허망 하게 떠났다. 김군이 다닌 회사는 서울메트로의 외주업체였다. 이곳은 서울지하철 1~4호선의 97개 역에 있는 모든 안전문을 관리했다. 인력이 부족해서 강도 높은 노동을 해야 했고, 임금도 낮았다. 10명이 입사하면 반년도 안 되서 절반이 관두는 곳. 하지만 김군은 공기업 정규직이 될 수 있 다는 희망을 품고 8개월째 재직 중이었다. 그날도 쉴 새 없이 일이 밀려들어왔다. 달랑 6명이서 9시간 동안 지하철역 49개의 안전문을 관리해야 했다. 김군은 자신이 맡은 4개 역의 점검을 마치고 사업소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구 의역 안전문 장애 현장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 작업은 2명이 함께 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인력 탓에 지키기 어려웠다. 지하철 배차간격은 3~6분이다. 안전문 장 애를 이 짧은 시간 안에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김군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다 문제가 되는 94지점의 장애물감지센서 청소를 하던 중 김군은 지하철과 충돌하고 말았다. 떠난 김군이 남긴 가방에서는 드라이버, 스패너 같은 공구와 함께 포장을 뜯지 않은 컵라면, 나무젓가락과 숟가락이 나왔다. 밥 먹을 시간이 없어 시간이 나면 끼니로 때우려고 가방 속에 넣어 뒀던 것이다. 이 안타까운 사고가 방송에 보도되고, 많은 사람들은 슬퍼하며 사고가 날 수 밖에 없었던 불합리한 근무환경에 분노했다. 사고발생 후 매년 5월이 되면 구의역 9-4지점에는 시민들의 추모가 이어진다. 어느 시민이 놓 고 간 샌드위치 위에는 ‘천천히 먹어’라고 써진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많은 추모 글이 주르르 붙어있지만 ‘천천히 먹어’라는 이 말이 김군의 당시 상황을 가장 잘 말해주는 거 같아 마음을 울렸다. 가슴 아픈 사고가 일어나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반성의 말들이 나 온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흘러도 비슷한 사고는 또 일어난다. 그들로 인해 쾌적하고 편안 한 안전을 누리지만 정작 그들에게는 안전 장치 하나를 해주지 않았다. 어느 거리에나 있는 그 들이 편안한 곳에서 쉬고, 휴게시간을 갖고 일하며, 천천히 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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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작품에 담긴 파리의 거리
글 정 은
사람들은 거리를 걸으며 여러 생각을 한다. 많은 철학자, 작가, 예술가가 길을 주제로 혹은 길 위에서 영감 을 얻었다.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나는 걸으면서 나의 가장 풍요로운 생각들을 얻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 다. 여행지의 유명한 거리부터 시골의 작은 길까지, 화가 역시 거리나 길을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 특 히 빛이 주는 다양한 색채를 중시하던 인상주의 작가들은 거리 풍경을 통해 자신들의 특징을 잘 드러내었 다. 파리에서 활동한 인상파 화가 3인이 그린 거리 풍경 작품을 통해 파리 거리의 다양한 모습을 만나보자.
빛에 따라 변하는 거리 풍경 <몽마르트 거리> 모네와 함께 인상주의 확립에 깊은 영향을 미 친 카미유 피사로(1830~1903). 그는 눈병으 로 야외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자 호텔이나 집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파리의 거리 풍경 을 그렸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몽마르트 거 리> 연작이다. 총 24점을 그렸으며 비 오는 날, 화창한 봄, 겨울 흐린 아침, 밤 풍경 등 시 간과 계절에 따른 몽마르트 거리의 다양한 모 습과 색채를 화폭에 담았다. <봄 풍경>이나 <겨울 아침>이 자연의 빛에 따라 변하는 몽마르트의 풍경을 담았다면, < 밤 풍경>은 건물과 가로등이 뿜어내는 불빛에 비친 또 다른 몽마르트 거리의 모습을 보여준 다. 비가 내린 듯 촉촉이 젖은 밤거리는 가로 등 불빛을 반사하며 몽마르트 거리 전체를 화 려하게 보이게 해준다. 자연의 빛으로 그린 낮 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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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젖은 파리와 파리지앵 <비 오는 날의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 파리 거리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은 이 그림은 귀스타브 카이보트(1848~1894)의 작품이다. 초창기 카이보트는 사실주의 작품을 그렸으나 마네를 비롯한 인상주의 화가들과 어울 리기 시작하며 후기로 갈수록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비가 내려 안개가 낀 희뿌연 공기와 구름이 잔뜩 깔린 회색빛 하늘, 비에 젖어 축축한 돌바닥. 비 가 추적추적 내리는 파리 거리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비가 오고 있음에도 우산을 쓴 채 바삐 오가는 파리 사람들의 일상이 그림을 통해 엿보인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카이보트는 가난했던 인상주의 화가들을 후원했다. 다수의 그림을 사줬 으며, 자식이 없었던 그는 훗날 오르세 미술관에 이 그림들을 모두 기증함으로서 오르세 미술관 을 인상주의 미술관의 대표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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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가 사랑한 파리의 거리, <본느 누벨 대로> 프랑스인과 스페인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에두아르드 레옹 코르테스(1882~1969)는 파리의 매력에 푹 빠져 평생 아름다운 파리의 모습을 화폭에 담으려 노력했다. 예술의 도시 파리의 매력 을 한껏 살린 서정적 그림으로 코르테스는 ‘파리의 회화 시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동일한 공간을 각각 다른 계절, 다른 각도에서 그려 파리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 개선문이 보 이는 파리의 대로를 그린 <본느 누벨 대로>. 밝은 상점의 불빛과 마차가 붐비는 거리의 모습이 당시 파리의 화려했던 분위기를 잘 느끼게 해준다. 또한 붉은 색의 불빛과 단풍 든 가로수의 모 습이 아름다운 색감을 보여준다. 코르테스는 몇 년 후 비슷한 장소에서 다시 본느 누벨 대로를 그렸다. 개선문이 보이는 각도를 보아 위치는 다소 바뀌었으나 그림을 그린 대로는 동일하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듯 대 로는 마차 대신 차로 붐비기 시작했으며 인도는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코르테스는 이 외에도 노트르담이나 퐁네프, 마들렌 성당 등 파리 곳곳을 그려 자신이 사랑한 도 시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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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서평 – 지금, 안부를 묻다 《괜찮을 거야》 시드니 스미스 글.그림
글 정은영
지난 1월 시드니 스미스의 신작 《괜찮을 거 야(Small in the City)》가 출간되었다. 시 드니 스미스는 캐나다의 그림책 작가로 국 내에는 《거리에 핀 꽃》 《바닷가 탄광 마을》 이 소개된 바 있다. 이번에 출간된 《괜찮을 거야》는 그가 글과 그림을 함께 한 첫 번째 책이다. 국내에 알려진 지 오래된 작가는 아 니지만 케이트 그린어웨이상, 보스턴 글로 브 혼북 명예상 등 그림책 분야의 주요 상 을 받으며 꾸준히 독자층을 확보해 가고 있 다. 그림책은 보통 스무 장 내외로 이루어지고, 이 안에서 완결성을 갖추어야 하므로 공간 의 절약 차원에서라도 작가는 앞표지부터 뒤표지까지 모든 면에 의미를 담게 된다. 시 드니 스미스의 책 《괜찮을 거야》는 버스에 앉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한 아이의 옆모습을 표지로 그 이야기를 시 작한다. 표지를 넘긴 첫 장인 면지는 흩뿌려 진 눈발로 가득 채워 ‘아이는 매서운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혼자 어디를 가고 있을 까?’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을 동시에 상 승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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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이제 버스에서 내려 어지러운 도시의 거리와 구석지고 좁은 골목, 눈 덮인 공원 등을 살피며 끊임없 이 메시지를 남긴다. 메시지의 뒤를 따라가다 보면 이내 알게 된다. 그것이 복잡한 도시에서 안전하게 지내 는 법을 알려주는 '누군가를 위한 안내서'임을. “저 아랫동네 생선 가게 주인들은 좋은 사람이야. 네가 달라고 하면 아마 생선도 좀 줄걸” “이 빈터는 쉬기 좋아 보일 거야. 하지만 가시덤불이 있어. 털이 덤불에 걸릴지도 몰라” 드디어 메시지가 닿아야 할 대상이 밝혀진다. 아이는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는 중인 것이다. 아마도 여러 차례 같은 곳을 돌아보는 중일 것이며 그러는 사이 위험한 곳은 물론 잠시 쉴 수 있는 곳, 음식 을 얻거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들을 발견했을 것이다. 길잃은 고양이의 처지를 실감할 때마다 아이는 절 망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을 추스르고 다독인다. 고양이에게 건넨 메시지는 곧 자신을 향한다. “하지만 나는 너를 알아. 너는 괜찮을 거야” 이 책의 글은 감정의 높낮이가 거의 없이 내내 같은 톤을 유지한다. 주인공의 덤덤한 목소리에서 슬픔에 잠 식되지 않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의연함이 전해진다. 감정의 파고는 그림이 대신한다. 어지러운 도심 한복판에서 흩날리기 시작한 눈은 시간이 흐르면서 한 치 앞을 구분할 수 없는 거센 눈보라로 바뀐다. 막막 한 심정의 아이가 끝내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듯하다. 그러나, 아이는 울고만 있지 않다. 작은 몸이 낼 수 있 는 모든 힘을 고양이를 위해 거리에 쏟고 마지막 남은 힘으로 어깨에 앉은 눈을 털어내며 아이는 그렇게 집 으로 돌아온다. 집 앞에 나와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 서로를 안으며 위로를 전하는 두 사람이다. 풍경은 집안 에서 새어 나온 불빛이 주변을 어루만져 따스하고 안온하다. 그림책에서 그림은 인물의 정서적 변화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데, 시드니 스미스는 풍경과 색채를 통해 섬세하게 이 부분을 전달한다. 《괜찮을 거야》의 초반 부 버스에서 내린 아이가 걷고 있는 도심을 나타 낸 장면이 있다. 장면을 16개의 프레임으로 작게 쪼개서 프레임 속의 풍경이 마치 카메라 앵글이 초점을 맞 출 대상을 찾지 못한 채 이리저리 비추는 것처럼 보인다. 등장인물의 두렵고 막막한 심경이 전해지는 이 화 면 연출 덕분에 이야기는 훨씬 드라마틱해진다. 《괜찮을 거야》의 그림이 갖는 드라마틱한 요소는 또 있다. 모든 페이지에 담긴 붉은색 신호가 그것이다. 이 신호는 안개 가득한 바다 한복판을 비추는 등대의 역할을 한다. 책장을 넘길 때 그림에 남겨진 붉은 신호를 기억하자. 당신은 이 책이 층층이 쌓아 올린 이야기의 무게를 기꺼이 끌어 안으며 다시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은 후 ‘주인공을 바라보고 있는 이 책의 그림은, 누구의 시점인가.’ 나는 질문하고 싶어졌다. 거리를 헤매는 아이의 뒤를 쫓아가는 듯한 시선은 누구의 것이며, 가까이 다가갔다 멈칫하는 시선은 또 누구의 것인 가. 어쩌면 우리가 안부를 궁금해야 할, 발견되기를 원하는 또 다른 작고 약한 존재는 아닐까. 어느 때보다 서로의 안부가 특별해지는 요즈음이다. 잘 지내는지, 별일은 없는지 묻자. 내가 도와줄 수 있다는 신호를 보 내며. 그와 나에게 말하고 싶다. “괜찮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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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글 오수진
닿을 수 없는 거리 가깝고도 먼 당신
귀에 인이 박히게 들어 온 속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그럼에도 소 망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만은 내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여기 두 편의 영화가 있다. 자신의 예상을 빗나간 상대 때문에 속이 새까맣게 타버린 사람 들이 나오는. 그들은 ‘가깝고도 먼 당신’ 앞에서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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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을 알고 나면, 우린 먼 타인 -완벽한 타인 타인이란 말에 ‘완벽한’이 붙었다.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는 타인이라니. 제목부터 차갑기 그지 없다. 영화 『완벽한 타인』은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7명의 배우가 등장한다. 자칫하면 지루할 수 있는 단출한 조건인데 보는 내내 몰두하게 만든다. 섬세한 심리묘사와 흘러가는 상황이 노골적이 어서 공감, 수치심, 허무함 같은 여러 감정을 이끌어낸다. 휴대폰을 일러 “완전 인생의 블랙박스야”라고 말하는 예진(김지수)은 도발적인 게임을 제안한다.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오는 모든 연락을 공유하자는 것이다. 사각테이블에 앉은 3쌍의 부부, 1명 의 이혼남. 이 7명은 각기 다른 염려와 불안, 재미를 마음에 품고 게임에 응한다. 대수롭지 않게 시작한 게임은 초반부터 장난이 아니다.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남에게 알리기 싫은 치부, 누군가를 뒷담화 했던 것이 알려지는 낯 뜨거움. 괜스레 영화를 보는 내가 수치스러운 기분에 휩싸인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약과다. 시간이 지날수록 살얼음판이 된다. 남편의 입술이 그 립다는 남자의 메시지, 스스럼없이 연락하는 아내의 전 남자친구, 남편의 아이를 가졌다고 울부짖 는 여자의 목소리.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비극으로 치닫는다. 3쌍의 부부와 1명의 이혼남 모두 감 춰야했던 비밀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서로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낯선 사람이었네” 남편의 외도를 알고 분노한 수현(염정아)이 한 말이다. 이 대사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지 않을까. 15년 동안 한 이불을 덮고 산 부부 도, 40년 지기 친구사이도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체 지내온 거다. 비밀이 밝혀지 고 상대의 맨얼굴이 드러나고 나서야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볼 뿐. 영화는 마지막에 이런 자막을 흘려보낸다. ‘사람들은 누구나 세 개의 삶을 산다. 공적인 하나, 개인 적인 하나, 그리고 비밀의 하나.’ 상대를 더 알고 싶어 비밀을 파헤쳤으나 돌아오는 건 낯선 사람이 라니. 인생의 반쪽 혹은 소울메이트라 여겼던 사람이 순식간에 먼 사람이 되 버린 것이다. 엔딩크 레딧을 물끄러미 보며 나는 생각했다. ‘비밀은 영원히 비밀로 남겨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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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워질 수 없었던 우리 -우리들 한 아이의 표정을 집요하게 관찰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장소는 운동장이고 아이들은 피구를 하 기 위해 편을 가르는 중이다. 자기편으로 데리고 올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데 그때마다 이 아이의 눈빛은 기대에 찼다 실망하길 반복한다. 마지막까지 자기 이름이 불리지 않자 겸연쩍은 얼굴이 돼버린 아이. 이 영화의 주인공 ‘선’이다. 선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자신감은 없지만 모난 데 없는 성격인데 웬일인지 반에서 외톨이 다. 다른 친구들처럼 여럿이서 어울리고 싶지만 곁에 사람이 없다. 그런 선에게 방학식날 전학 온 ‘지아’는 구세주같다. 선과 지아는 여름방학 내내 붙어 다닌다. 매일 만나는 걸로 부족한지 지아는 며칠씩 선의 집에서 자고가기도 한다. 다음에 함께 바다에 가자는 약속을 하고, 각자 가족에게 받 은 상처도 털어놓으며 더 깊은 우정을 나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다. 방학이 끝나자 지아는 선을 피한다. 학교생활을 시작하며 지아는 선이 외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거리를 둔 다. 게다가 선을 은근히 무시하던 아이들과 친해진 지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11살 아이들의 날 카로운 감정싸움은 시작된다. 영화 『우리들』은 잊고 있었던 어린 날의 인간관계를 떠오르게 했다. 초등학생 시절, 친구가 인생 의 전부인 것처럼 우정에 집착하느라 울고 웃었다. 이시기에 잊지 못할 상처를 받은 사람은 훗날 어른이 되서도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하니, 아이들의 작은 사회는 실은 인생 전반을 지배하는 뿌리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윤가은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제일 풀리지 않는 삶의 미스터리 가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인 것 같아요. 어린 시절, 좋아하는 친구와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일련 의 과정들, 친구들 사이에서 겪었던 어려움. 어른이 되어 버린 지금까지도 그것은 끝나지 않은 채 무수히 반복되고 있거든요.”라고 한 인터뷰에서 말한 적 있다. 윤가은 감독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 에도 어린 시절 기억을 되짚어 그 날것의 인간관계를 미화하지 않고 그려냈다. 영화의 마지막은 처음과 비슷하다. 아이들은 다시 편을 가르고 자기편으로 데려올 사람의 이름 을 부른다. 선은 마지막에서 두 번째, 지아는 마지막까지 남겨지는 아이가 됐다. 혼자가 아닌 ‘우 리’가 되고 싶어 무던히도 노력하는 아이들. 하지만 노력만으로 사람 관계는 수월하게 흘러가지 않는 다는 듯, 선과 지아는 결국 ‘우리’가 되지 못한 체 영화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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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은 잠시 뒤로 미루고 마음먹고 즐기는 자리. 조금쯤 느슨해지고 약간의 과잉도 기분 좋게 받아들여지는 곳. 바로, 축제다. 어제의 평범했던 거리가 예술 공간으로 변신하고, 무심히 걷던 그 길은 화려한 행렬의 무대가 되는 도심 속 예술 축제를 소개한다.
거리에서 즐기는 축제 한마당 글 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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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만드는 도심 축제 서울거리예술축제 서울거리예술축제는 2003년 ‘하이서울페스티벌’로 출발해 2016년부터 ‘서울거리예술축제’로 이 름을 바꾼 후 매년 가을 4~5일간 열린다. 축제 기간 서울광장을 중심으로 도심 일대에 대중성과 예 술성을 겸비한 수준 높은 거리공연이 무료로 시민들을 찾아간다. 다양한 국가의 거리예술가들이 펼 치는 비보잉, 서커스, 행위 예술 등 여러 장르의 공연은 서울의 거리를 예술로 물들이며 사람들을 불러 세운다. 서울거리예술축제의 특징은 다양한 참여형 예술 프로그램이 축제 기간 내내 이어진다 는 점이다. 2019년에는 시민들이 참여해 만든 초대형 옛 서울역과 평양역이 서울광장에 설치되기 도 했다. 올해도 거리 축제는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며 익숙한 거리의 이면을 발견하게도, 낯선 거 리를 친숙하게도 만들 것이다. ☞ 기간 : 9~10월 중, http://www.ssaf.or.kr/html_kor 퍼레이드에 의한 퍼레이드를 위한 원주다이내믹댄싱카니발 해마다 9월이 되면 강원도 원주 거리 곳곳은 다시 여름으로 돌아간 듯 뜨겁다. 퍼레이드형 축제인, 원주다이내믹댄싱카니발 덕분이다. 다양한 민속춤을 비롯해 마칭 밴드와 군악대, 치어리딩 등의 공 연이 120미터의 초대형 특설무대에서 펼쳐진다. 2019년 기준 국내 108개 팀, 해외 40개 팀이 참 가한 전국 최대 규모이자 유일한 퍼레이드 경연 축제다. 올해는 9월에 열릴 예정으로, 축제 기간 총 상금 2억 원을 두고 참가팀은 예선과 본선 경기를 치르게 된다. 원주다이내믹댄싱카니발은 춤과 음 악이 어우러진 화려한 행진 외에도 댄싱카니발의 축소판 댄스 경연 ‘프리댄싱페스타’와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공연 ‘프린지페스티벌’도 함께 진행된다. ☞ 기간 : 9월 8~13일, http://www.dynamicwonj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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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으로! 춤으로! - 천안흥타령춤축제 17년째 이어진 거대한 춤판. 올가을 천안에서는 가무를 즐기는 한국인의 정서 흥(興)을 춤으로 담 아내 신명 나는 축제의 장이 열린다. 17년을 이어온 만큼 프로그램 또한 다채롭다. ‘전국춤경연대 회’ ‘막춤대첩’은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국내외 우수 공연단이 참가하는 ‘국제 춤대회’ ‘코리아국제현대무용콩쿠르’는 규모 또한 국제적이다. 그 외에도 전국대학치어리딩 대회 와 도심 한복판을 지나는 대규모 댄스 퍼레이드가 계획되어 있다. 그야말로 춤에서 시작해서 춤으 로 끝나는 축제다. 2019년 123만 명의 관람객을 모은 천안흥타령춤축제는 ‘2019 대한민국 문화 경영대상’에서 지역축제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규모만큼 개막식의 볼거리도 화려하다. 작 년에 이어 올해도 외국 참가팀의 입장 퍼포먼스 및 국내외 유명 공연팀의 개막식 테마공연과 축하 음악회 등이 이어질 예정이다. ☞기간 : 9월 23~27일, http://www.cheonanfestival.com 축제의 거리에서는 나도 예술가 - 포항거리예술축제 5월 어린이날 연휴 포항에서는, 경북 유일의 거리예술축제가 한바탕 벌어진다. 포항의 도심 속 소 나무 숲 공간인 ‘송림 테마거리’와 ‘송도 해안도로’를 무대 삼아 예술가와 관람객이 하나 되어 즐기 는 거리예술 축제다. 거리예술의 대표 격인 마임, 거리극, 서커스와 현대무용 공연팀이 시민들을 찾아간다. 축제 첫해에는 공연프로그램만을 선보였지만, 작년부터는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만들 어가는 참여형 프로그램을 대폭 확대했다. 관람객이 공연에 참여하는 형태뿐 아니라, 자원활동가 송메이트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이 거리극의 공연자가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일상의 공간을 예술 공 간으로 변화시키는 거리예술의 의미를 살려 시민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축제로 발돋움한 것 이다. ☞ 기간 : 5월 5일 전후 3일간, https://phcf.or.kr 거리는 광장으로 이어진다 - 광주프린지페스티벌 2016년 처음 시작된 광주프린지페스티벌은 예술인과 시민이 자유롭게 만들어 가는 유쾌한 문화 난장 이다. 프린지 페스티벌은 4월에 시작해 10월까지 이어진다. 국내외 다양한 분야 예술가들이 5.18민주광장을 중심으로 8개 존에서 토요일마다 색다른 공연을 펼친다. 매주 토요일이면 무용이 나 성악 무대를 비롯해 댄스나 넘버블, 마임 등 다양한 분야의 시민예술가와 전문 예술가가 거리를 가득 채운다. 예술 공연뿐만 아니라 마켓존에서는 프린지예술마켓이 열려 수공예품과 다양한 먹 거리가 축제를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2020년 광주프린지페스티벌 주제는 ‘황홀한 변 신(Metamorphosis)’이다. 변신이란, 장소변신 사람변신 일상변신 경제변신 공연변신을 의미한 다. 올해로 다섯 번째 열리는 광주프린지페스티벌은 누구나 자유롭게 예술의 세계를 표현할 수 있 는 광장 문화를 형성하며, 광주를 대표할 축제로 발전했다. ☞ 기간 : 4~10월 매주 토요일, http://www.fringefestiv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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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정 은
국민대표 길거리 음식 - 떡볶이 어스름한 퇴근길, 지하철역에서 올라오면 매콤하고 짭조름한 향이 코를 자극한다. 조건반사처럼 입에 침이 절로 고인다. 익숙한 냄새 의 진원지는 바로 역 앞 포장마차. 한 솥 가득 끓인 어묵 국물에서 하 얀 김이 모락모락 난다. 유혹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포장마차에 나란히 서 있다. 그들이 먹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나라 대표 길거리 음식 중 하나인 떡볶이. 인기만큼 종류도 다양한 매콤달콤 떡볶이의 매력에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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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떡볶이 일반적인 떡볶이 조리방법이 소스와 물을 넣고 떡을 끓이는 방식이라 면, 기름 떡볶이는 물을 전혀 쓰지 않고 기름에 볶는 방식이다. 고춧가 루든 간장이든 원하는 소스를 만들어 떡과 버무려 놓았다 주문이 들어 오면 프라이팬에 기름을 붓고 달달 볶아서 나온다. 기름에 한 겹 코팅 된 맛과 고춧가루의 매콤한 맛이 묘하게 매력적이다.
국물 떡볶이 고추장 양념을 졸이지 않고 소스 국물이 흥건한 채로 먹는 떡볶이다. 주문하면 접시가 아닌 국그릇 같은 사발에 담겨 나온다. 마치 국을 떠 먹듯 숟가락으로 고추장 국물에 둥둥 떠 있는 떡볶이를 건져 먹으면 된 다. 이때 포인트는 국물과 떡을 동시에 먹는 것이다. 비교적 일반 떡볶 이보다 덜 매우면서도 쫄깃한 떡에 칼칼한 국물까지 마실 수 있어 일거 양득이다.
짜장 떡볶이 고추장 대신 짜장 소스를 활용하여 조리한다. 100% 짜장 소스만 넣 을 수도 있지만, 개인의 취향에 따라 짜장과 고추장 비율을 조절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이 많다. 짜장 특유의 달콤 짭짤한 맛과 춘장의 향이 특 색 있어 짜장 떡볶이만 좋아하는 마니아층도 있다. 맵지 않아 어린아이 가 있는 집에서 환영하는 조리법이다.
크림 떡볶이 일명 까르보나라 떡볶이. 한 유명 분식 체인에서 메뉴로 내놓으며 유명 해졌다. 스파게티 소스의 한 종류인 크림소스를 넣어 조리한 떡볶이 다. 시판 크림소스를 활용해도 되고 본인이 직접 크림소스를 만들어 조 리해도 된다. 크림소스의 고소한 풍미가 있으며 취향에 따라 매운 고추 를 넣어 얼큰한 크림소스 떡볶이로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카레 떡볶이 카레는 밥과 먹는 게 가장 대중적이지만, 카레 우동이나 카레라면, 카 레 고로케처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만능 소스다. 카레 소스만 넣 기도 하고, 고추장 떡볶이에 카레 가루를 섞어 먹기도 한다. 매콤하고 칼칼한 카레 특유의 향이 떡볶이에도 역시 잘 어울린다. 평소와 다른 떡볶이 요리, 혹은 평소와 다른 카레 요리를 먹어보고 싶다면 바로 시 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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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어오면 생각나는 아테네 리시우Lisiou 거리 글 장성훈
언젠가 잠시 아테네에 머물렀을 때, 나를 아름다운 거리로 데려다 준 노래가 있다. 바로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의 노래를 들으며 우연히 들린 거리는 잊히 지 않는 추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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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10시간. 이번 여행의 목적지인 산토리니행 비행기 를 저녁에 바로 타야 했으므로 시간이 없었다. 새벽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여 아테네의 상 징 아크로폴리스에서 도시 전경을 감상하고,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서 신화 속 신들이 사 용했을법한 유물도 구경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식당과 카페가 느긋하게 앉아 커피 한잔 마시고 가라고 유혹했지만 아직 일정이 빡빡하게 남은 탓에 발걸 음을 재촉했다. 제우스 신전에 도착했다. 한때는 105개의 기둥으로 세워진 가장 웅장한 신전이었지만 지 금은 15개의 기둥밖에 남아 있지 않았고, 그것마저도 대부분 쓰러져 있었다. '제우스'라는 이름에서 가진 기대감 때문일까, 허탈한 마음으로 다음 목적지인 바람의 탑으로 향했다. 길을 찾으려고 구글 지도를 보려던 순간, 이어폰에서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흘러나왔다. ‘햇살이 눈부신 곳 그곳으로 가네. 바람에 내 몸 맡기고 그곳으로 가네’ 노래 가사처럼 마침 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오고 있었다. 지도를 보며 바람의 탑을 찾는 대신 나 는 발이 닿는 대로 자유롭게 걸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내 발이 닿은 곳은 리시우 거리였다. 사람 3-4명 정도가 다닐만한 좁고 꼬불꼬불 한 거리. 양옆으로 서 있는 베이지 빛 아담한 건물의 벽과 지붕은 형형색색 꽃과 나무로 뒤 덮여 동화 속에 나올듯한 아름다운 길이었다. 수없이 많은 볼거리를 가진 아테네에서 크 게 유명하지 않은 거리임에도, 나처럼 우연히 들린 방문객의 발길을 붙잡았고, 리시우 거 리 곳곳은 관광객의 감탄사와 카메라 셔터 소리로 가득 찼다. 나도 잠시나마 여유를 즐기 며 거리를 천천히 둘러봤다. 리시우 거리 중 하나인 미시클레우스 거리는 언덕을 오르는 수없이 많은 계단을 따라 식당과 카페가 끝없이 이어져 또 다른 장관을 만들어냈다. 여행에서 느끼는 가장 큰 기쁨은 의외성이라고 했던가. 의외의 장소에서 큰 기쁨을 만난 나의 아테네 여행 일정은 여기서 끝이 났다. 친절한 종업원이 맞이하는 식당에 들어가 계 단 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멋진 해산물 요리와 와인과, 맥주를 즐기며 공항 출발 직전까 지 앉아 있었다. 아테네의 따스한 햇살, 살랑거리는 바람, 친절한 사람, 맛있는 음식이 주 는 여유를 즐겼다. 바람의 탑과 다른 유적지를 보지 못한 아쉬움은 조금도 없었다. 아직도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노래가 들려오면 아테네의 리시우 거리가 떠오른 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햇살이 눈부신 곳. 그곳에 다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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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힘겨웠던 날들, 우리는 조용히 글을 쓰면서 보냈습니다. 우리가 마스크를 벗어도 되는 날을 기다립니다. 우리 글이 마스크를 벗고 빛이 나는 날도 기다립니다. 다음 호도 기대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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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영, 오수진, 정 은, 장성훈, 박보라 20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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