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KU MONTHLY SPORTS MAGAZINE
2010.NOV.VOL.20
고대저널
광저우 아시안게임 고려대 출전선수 총정리
고재욱
관동대 축구감독
정기 유도 고연전 밀착 취재 전통양생법을 통한 건강 되찾기
여대생의 마라톤 체험기 바둑 동아리 고대바둑사랑
야구를 통해 보는 세상
InsidePitch
고려대 축구의 과거와 현재
홍명보 박희성
나이스샷! 지난 10월에 벌어진 제 53회 한국오픈 골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우리학교 노승열(사체 10)이 호쾌한 샷을 날리고 있다. 이 대회에서 노승열은 4라운드에서 컨디션 난조를 보이며 아쉽게 4위를 차지했다. 사진 박인철
2 SPORTS KU
MONTHLY SPORTS MAGAZINE 1
EDITOR’S COLUMN
SPORTS KU November 2010
고려대와 국가대표
Editor In Chief 편집장 김세호 (영어영문학과 06) ㅣ kimseho@korea.ac.kr
고려대학교는 그동안 스포츠 분야에서 걸출한 인재를 배출해왔습니다. 5개부
운동선수뿐만 아니라 개인종목에서도 훌륭한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도 훌륭한 성적을 내며 대한민국을 빛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세계 속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며 고대인의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제 2010년이면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시작됩니다. SPORTS KU에서는 고대인들이
Editorial Director 취재부장 이혜진 (보건행정학과 08) ㅣ adsldd@korea.ac.kr
Editor 취재기자 박영미 (사회학과 05) ㅣ bbadda09@korea.ac.kr
어떻게 하면 아시아인의 축제인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을지 고민했고,
이희재 (가정교육과 07) ㅣ hee7296@hanmail.net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우리학교 출신 선수들과 재학생들을 취재해 봤습니다.
손기석 (중어중문학과 06) ㅣ navy1354@korea.ac.kr
커버스토리로는 한국 축구의 아이콘이자 고대 축구를 대표하는 홍명보 감독과 유일하게
이건희 (언론학부 08) ㅣ lghjazzzz@naver.com
축구대표팀에 대학생으로 선발된 박희성 선수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또한 재학생으로서
최윤진 (체육교육과 08) ㅣ bobos101@hanmail.net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럭비의 김현수 선수와 바둑의 조혜연 선수를 RISING STAR에서
송지현 (국어교육과 08) ㅣmarsh1004jh@hanmail.net
만나봤습니다.
백수진 (불어불문학과 08) ㅣsj412@naver.com
이윤빈 (사회학과 07) ㅣ bluehn75@korea.ac.kr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대표. 국가대표라는 이름은 그들에게 나라를 대표한다는
큰 자부심과 명예를 가져다주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반드시 좋은 성적을 내야한다는
김소연 (노어노문학과 08) ㅣ aesso@korea.ac.kr 이승하 (노어노문학과 08) ㅣcahira@korea.ac.kr
부담감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만듭니다. 이로 인해 몇몇 선수들은 본 경기
박노준 (체육교육과 10) ㅣ pnjune@naver.com
에서 제 실력을 못 보여주기도 합니다. 물론 승패도 중요하고 금메달의 영광도 중요합니다.
권민수 (정경학부 10) ㅣ kms1990227@naver.com
하지만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이 승패를 떠나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최윤진 (물리치료학과 10) ㅣ setialy@naver.com
대한민국 선수단이 결과 자체보다는 경기를 보면서 눈물 흘릴 수 있는 감동을 모든 아시아인 들에게 선사했으면 합니다. 광저우에서 제2의 ‘우생순’을 만나 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편집장 김세호
박상조 (사회체육학과 05)ㅣ park7845@gmail.com 민슬기 (사회학과 06)ㅣtoheaven05@nate.com 이영규 (심리학과 06)ㅣearvin32@naver.com
Photographer 사진기자 이정민 (기계공학부 04) ㅣ zentic@naver.com 박인철 (기계공학부 07) ㅣ angel216@nate.com 김원범 (영어영문학과 05) ㅣ kim758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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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008년 4월 1일 발행 SPORTS KU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5가 고려대학교 전화 010-2278-5374
이 책의 저작권은 SPORTS KU에게 있으며 무단 복제와 전재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기사 및 사진 등 이 출판물의 모든 내용을 무단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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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SPORTS MAGAZINE 3
November 2010
CONTENTS 016 COVER STORY 고려대 축구의 과거와 현재 홍명보, 박희성
2002년 6월, 한반도를 붉게 물들였던 ‘4강 신화’의 그날로부터 무려 8년이 지났다. 오랜 시간이 지났건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떨려오곤 한다. 그 환희의 6월, 선수 홍명보는 노란 주장 완장을 팔에 차고 최후방의 중심에 굳건히 서있었다. 1990년 처음 태극마크를 단 뒤 무려 12년 동안 꾸준히 대표 팀에 선발되며 전후방에서 맹활약한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2002년을 끝으로 태극 마크를 자진 반납한 그는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거쳐 올림픽 대표팀 감독, 그리고 아시안 게임 감독의 자리에 서있다. 아시안 게임을 한 달 앞두고 있던 10월의 어느 날, 파주 국가대표 트레이닝 센터에서 선수가 아닌 감독 홍명보를 만났다.
이것이 바로 국가대표 감독의 슛이다! 지난 달 23일 파주 NFC에서 제 8회 한국 대학 OB 축구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는 우리학교와 연세대를 비롯해 경희대, 중앙대 등 총 7개 대학의 OB들이 참여했다.
표지모델 홍명보 / 표지촬영 이희재
이 날 홍명보(체교 87)는 우리학교 대표로 뛰며 현역시절 못지않은 몸놀림을 보여줬다. 사진 이윤빈
RISING STAR 012 바둑 국가대표 조혜연 014 럭비 국가대표 김현수
KU STARS 024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고려대 출신(재학)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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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SPORTS MAGAZINE 5
November 2010
CONTENTS
自進勤勞班 創立 目的
社會 先覺者的 知性을 자부하는 大學生의 본분과 사명을 명심하고 각기 專攻分野를 誠實히 修學하는 한편 韓國社會의 總體的 力量이 個個人의 主體的인 創意와 忍耐와 勞力을 가진 “勤勞”에 의하여서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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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END STORY
INSIDE KU
고재욱 관동대 축구감독
정기 유도 고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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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CLASSROOM
‘클레이 사격’ 이진우, 다시 꿈을 향해 쏘다.
전통양생법 수업에서 배워본 선도를 통한 건강 되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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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S IN
LETTER
대학 스포츠의 성공적인 발전을 꿈꾼다
한국 대학 스포츠 총장 협의회
야구선수 김민과 그의 형이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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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TH&LIFE
CCP
CAN YOU FEEL MY HEARTBEAT? 여대생의 마라톤 체험기
체육멘토링, 첫발을 내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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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W
CLUB 신의 한수를 꿈꾼다 ‘고대바둑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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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진 發展되는 것 임을 自覺하고 大學의 知識이 근로로 實踐되어 國家 社會에 기여하기를 지향하는
자진 진근 근로 로 반 자 반 다시 새롭게 새롭게 시작합니다 시작합니다 다시
高大 學生 課外活動으로서 特히 學生그룹 간의 경쟁과 自律的 運營을 권장하고 團體意識 및 能力을 조성코져 한다. 發起人: 지섭, 유진홍, 장영백
50주년을맞이해 맞이해2011년 2011년재창단을 재창반을 위한 50주년을 위한 회원을 모집합니다. 준비위원회를 모집합니다. 1.1.봉사 봉사활동 봉사프로젝트 프로젝트기획 기획&&정기 정기봉사활동 2.2.사회 각 분야에 진출한 수백명의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한 수백명의 자진근로반 선배님들과의 만남
자진근로반 선배님들과의 만남
모집인원 :00명 00명 모집인원: 모집기간 :2010년 2010년 11월 11월 26일(금)까지 모집기간: 26일(금)까지 지원형식 :이름, 이름,학과, 학과, 학번, 지원동기를 지원형식: 지원동기를 써서보내주세요. 보내주세요. 써서 지원방법 :kuvolunteer@naver.com kuvolunteer@naver.com 지원방법: (e-mail로만 (e-mail로만 받습니다) 받습니다) 26 11월 인성면접이 있을 예정입니다. 11월12일 26일간단한 간단한 인성면접이 있을 예정입니다.
문의 김이연(사학과 07) 010-4458-4885 문의 김이연(사학과 07) 010-4458-4885 김세호(영문과 06) 010-2278-5374 김세호(영문과 06) 010-2278-5374 민슬기(사회학과 06) 010-6483-1883 민슬기(사회학과 06) 010-6483-1883
고연전에 제안한다 제 3부 우리 밖의 고연전
54 BOOK 인사이드 피치 (Inside Pi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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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BASEBALL
GOLF
고려대 야구부, 전국체전 8강 마지막으로 시즌 마감
노승열 ‘코오롱 제53회 한국오픈 골프선수권대회’에서 4위 차지하며 아쉬움 남겨
우리학교 야구부는 지난 10월 10일 마산구장에서 열린 제9회
지난 10월 7일부터 10일까지 열린 ‘제53회 한국오픈 골프선수권대회’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8강전에서 홈팀 경남 국군체육부대(상무)
에서 노승열(사체 10)이 4위를 차지했다. 노승열은 300야드를 넘나드는
를 상대로 7회 콜드 패를 당하며 2010 시즌을 최종 마감했다.
드라이브를 앞세워 3라운드까지 9언더파 204타를 기록하며 2위 김비
전국체전은 각 학교의 이름이 아닌 지역의 이름을 걸고 출전하는
오(20, 넥슨)에 5타 차 선두를 지키며 우승에 청신호를 밝혔다. 하지만
대회로, 우리학교는 올 해 세 번의 4강 진출을 기록하여 서울지역
4라운드에서 컨디션 난조를 보이며 8오버파를 기록해 최종합계 1언더
대표로 출전자격을 얻었다. 8일 첫 경기에서 경북지역 대표 영남대
파 283타로 양용은(38), 최호성(37), 김비오에 이어 4위에 올랐다. 이날
를 만난 우리학교는 윤명준(체교 08)을 선발로 내놓았다. 이 날 윤
노승열은 양용은에게 10타 차이로 앞선 상황에서 역전 당하며 큰 아쉬
24일간의 긴 휴식을 뒤로하고 대학농구리그 후반기 승수 사냥에 나선
명준은 7이닝 동안 무려 14개의 삼진을 잡으며 위력을 과시했다.
움을 남겼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아쉽게 무너진 노승열은 10월 28일부
우리학교는 22일 상명대와 27일 중앙대와의 경기에서 1승1패를 기록
거의 5이닝 동안 수비수들을 세워만 둔 셈이다. 영남대 투수 이성
터 말레이시아 셀랑고르에서 열리는 ‘CIMB 아시아 퍼시픽 클래식’에
했다. 상명대와의 원정경기에서 27득점 12리바운드로 맹활약한 유성호
민도 5회까지 우리학교 타선을 3안타로 꽁꽁 묶어 영행진이 계속
출전할 예정이다.
(체교 07)의 분전에 힘입어 88-79로 승리하며 기세를 올린 우리학교는
BASKETBALL
대학농구리그, 8강 플레이오프 진출은 안개속으로
됐다. 그러나 우리학교는 6회초 황정립(체교 08)의 1타점 적시타에
대학최강 중앙대를 홈으로 불러들여 잘 싸웠지만 91-103로 아쉽게
이은 문상철(체교 10, 3B)의 3점 홈런으로 승기를 잡았다. 8회부터
패했다. 3주일이 넘는 기간 동안 약점으로 지적되어 온 수비를 가다듬
마운드에 오른 임치영(사체 08)이 솔로 홈런을 포함 2점을 내주었
는데 주력한 우리학교는 연습경기를 통해 실전 감각을 끌어 올렸음에도
지만 4-2로 경기는 마무리되었다. 10일 우리학교가 두 번째로 만
불구하고, 최하위 상명대에게 의외로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학교
난 상대는 프로 선수들이 대거 포함된 상무였다. 매해 가장 강력한
는 상명대와의 경기에서 제 모습을 찾지 못하며 중앙대와의 경기를
우승후보로 꼽히는 상무는 대학팀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우리학
앞두고 불안감을 비췄다. 하지만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위해 국가
교의 선발 문승원(사체 08)은 5실점하며 2회 만에 강판되고 임치영이 구원 등판했지만 거의 매 이닝 점수를 내주며 4회 0-6까지
대표 팀으로 차출된 중앙대 오세근의 빈자리를 김태홍(체교 07)과 노승준
점수가 벌어졌다. 결국 7회 2-9로 콜드 패를 당했다.(7회 7점차 이상 콜드게임) 이 날 상무는 무려 31안타의 맹타를 휘둘렀다.
(체교 08)이 잘 공략해 대등한 싸움을 이끌었으나 아쉽게 분패했다.
우리학교는 상무의 선발투수 임준혁을 상대로 5이닝 동안 7안타를 2볼넷을 뽑아냈지만 집중타가 터지지 않으면서 좀처럼 분위기
우리학교는 27일 현재 8승 10패로 전체 순위 8위를 기록 중이다.
를 가져오지 못했다. 주자가 나가면 반드시 득점하는 상무의 짜임새 있는 타격과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이번 대회 우승은 예상대 로 상무가 차지했다. 강호 상무를 너무 일찍 만난 탓에 양승호(사회 79) 감독의 마지막 경기도 빨리 찾아왔다. 양 감독은 지난 21일 롯데 자이언츠의 새 사령탑으로 임명되어 22일 취임식을 가졌다. 시즌을 마친 우리학교는 새로 선임될 감독을 기다리며 겨울 훈련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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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무리, U리그 왕중왕전에서 아쉬움을 남기다
ICEHOCKEY
아이스하키부, 골리 부족으로 인해 시즌 주요 대회 불참 우리학교 아이스하키부는 10월 28일부터 11월 28일까지 열리는 ‘제30회 유한철배 전국 대학부 아이스하키대회’, ‘제65회 전국종합 아이스하키 선수 권대회’, ‘2010 코리아 아이스하키리그’ 등 3개 대회에 불참한다. 팀내 유일
우리학교 축구부가 2010 U리그 왕중왕전 32강에서 성균관에 1 - 3으로 패하며 16강
한 골리 강태우(체교 07)의 오른쪽 허벅지 근육파열로 인해 대회에 투입할
진출에 실패했다. 출발은 좋았다. 전반 초반 유상희(체교 08)와 박정훈(체교 07)이 활발한
골리가 없기 때문이다. 빅터 리 감독에 따르면 우리학교는 내년 입학 예정인
움직임으로 공격을 주도했다. 최종 수비라인을 하프라인 아래까지 내리며 압박했다.
신입생 골리를 포함하여 대회에 참가하기 원했고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전반 중반에 접어들면서 성균관대의 위협적인 역습이 있었지만 골키퍼의 선방으로 위기
한양대, 경희대 측의 동의를 얻었지만 연세대 측의 거부로 대회 참여가 성사
를 잘 넘겼다. 문전에서 많은 기회를 잡았지만 골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결정력의 부족은
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3개 대회가 연달아 열리기 때문에 한 번에 엔트리를
곧 패배로 이어졌다. 후반 초반 들어 찾아온 위기에 우리학교 선수들은 우왕좌왕했다.
제출해야 하는 협회 규정상 우리학교는 3개 대회 모두 출전할 수 없게됐다.
후반 시작과 함께 성균관대 김상필이 폭풍 같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우리학교를 침몰
이에 따라 국내 대회에 참여하지 않는 팀에서 국가대표를 차출할 수 없는
시켰다. 최성근(사체 10)이 얻은 패널티킥을 유준수(체교 07)가 성공시키며 한 골을 만회
규정 때문에 우리학교 선수들의 국제대회 참가도 불가능하다. 현재 선수단
했지만 분위기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경기는 1-3. 성균관대의 승리로 돌아갔고,
은 좋은 분위기에서 꾸준히 훈련하고 있으며 12월에 일본대학과
우리학교는 아쉬움을 남긴 채 짐을 쌌다.
함께하는 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MONTHLY SPORTS MAGAZINE 9
NEWS
우승을 향한 거인의 심장을 뛰게 하라
우리학교 야구부 양승호 감독 롯데 자이언츠 새 감독으로 선임
풀어주었다. 여기서 구단과 양 감독 모두 내년 시즌은 꼭 ‘우승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지난 21일, 롯데는 팀의 새 사령탑으로 양승호 감독(사회 79)을 선임했다는 깜짝 뉴스를 발표했다. 그리고 22일 잠실 롯데호텔에서 양 감독의 취임식 겸 기자회견을 열어 세간의 궁금증을 굳은 의지를 보여주었다. 2007년부터 4년간 우리학교 야구부의 감독으로서 덕장이라는 평가를 들었던 양 감독은 이제 피도 눈물도 없는 험난한 프로 감독의 길에 들어섰다. 앞으로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지, 취임 기자회견장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윤빈 권민수 기자 / 사진 이윤빈
수비가 부족하다고 했는데 훈련량을 늘리겠다는 소리 인가. 그리고 윤학길 코치와 호흡을 맞춰본 적 있나 수비는 연습밖에 없다. 공격력은 기복이 있을 수 있지만. 수비는 연습을 하면 좋아진다. 수비연습을 많이 시키겠다. 윤학길 코치와는 대학교 때 고연전도 해봤고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 준플레이오프 롯데의 경기 운영은 어땠나
10 SPORTS KU
롯데 감독을 맡게 됐다
플레이오프와 정규시즌은 다르다. 적재적소에 투수
우선 롯데 구단에서 불러주셔서 감사드린다. 전임
교체를 해야 하는데 그런 점이 아쉬웠다. 멘탈적인
감독이 준플레이오프에 3번 올라갔다. 하지만 제가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투수들에게
선임된건 우승을 하라는 뜻 아니겠나. 무조건 우승을
믿음을 갖고 적재적소에 투입했다면, 2승 3패와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갑작스럽게 선임 연락을 받은 것인가
우승의 걸림돌은 어느 팀인가
11시 반쯤에 조성옥 스카우트 팀장이 연락이 왔다.
SK와 두산이다. 계속 우승한다고 말을 했는데, 플레
그 후 1시 30분쯤 단장님을 만나 구단 사무실에서
이오프 3번 올라간 팀 감독을 자르고 나를 부른 것은
바로 계약을 했다.
우승하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감독제의를 받았을 때 기분은 어땠나
롯데는 공격적 성향이 강했다, 양승호 감독이 추구
손이 떨리고 발이 떨렸다. 롯데 팬들이 야구에 대해
하는 스타일은 무엇인가
잘 알고 열정적이기 때문에, 집에서 잠실까지 어떻게
로이스터는 훌륭한 감독이다. 하지만 밖에서 느낀 점
갔는지도 기억이 안난다.
은 롯데 선수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이 있었
롯데 팬들 사이에서 적임자가 아니라는 논란이 있다
던 것 같았다. 처음부터 잘 할 수 없겠지만 선을 굵게
롯데 팬들은 야구를 사랑하고 야구에 대해 알고 계신
기초를 튼튼히 하며 스몰야구를 할 것이다.
다. 비율을 봤을 때 1대9 정도로 반대하시는 것 같다.
롯데는 인기구단이다. 우승을 위해 뛴다고 했는데,
팬들에게 성적으로 보여드려 찬성과 반대를 9대1로
부담이 클듯하다. 부담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바꾸겠다.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는
롯데 선수들에 대한 인상은
나에게 행운이다. 우승의 전력을 가지고 있는 팀이다.
알다시피 롯데의 선수구성은 굉장히 좋다. 하지만
감독 경력이 없다고 하는데 어느 감독이나 경력 없이
투수력과 수비가 약하다. 선수들 자질이 충분하기
시작한다. 내게는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롯데라는
때문에 가을 마무리 훈련과 봄 캠프 때 그런 점들을
팀은 자질을 충분히 갖췄기 때문에 내년부터 우승할
보안한다면 내년에 우승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씀드린다. MONTHLY SPORTS MAGAZINE 11
RISING STAR
우리학교 광저우 아시안 게임 출전선수 ① 대한한국 최초의 바둑 금메달을 꿈꾸다
꿈꾸는 소녀, 바둑을 만나다.
바둑 국가대표 八단
바둑돌을 잡은 건 엄마의 권유였다. 6살
조혜연
소녀 조혜연은 밖에서 뛰어 노는 또래와 달리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그런 혜연을 건강을 걱정했고 외부활동을 위해 바둑을 배울 것을 권했다. 그렇게 그녀 는 바둑을 만났다. 처음 바둑을 접한 1년간, 그녀의 실력은 또래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냥 다른 친구들처럼 바둑의 기본을 조금
99년 제1회 흥창배에서 준우승으로 프로
‘영문 블로그’에서 찾았다. ‘Full of Surprise’
알아가는 정도였다. 그녀가 학교에 들어갈
첫 타이틀을 차지한 이후, 여자 바둑계에서
라는 이름의 영문 블로그를 통해 바둑을 알
바둑이 이번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새롭게
무렵 그녀의 어머니는 바둑이 아닌 산수공부
조혜연은 빼놓을 수 없는 강자 중 한 명으로
리기 시작하였고, 얼마 되지 않아 세계 곳곳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남녀단체전과 혼성
를 하길 원했고, 어머니의 뜻대로 그녀는
떠올랐다. 2003년 여류 프로국수전에서
에서 하루 1000여 명의 바둑팬이 그녀의
바둑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운명이었을까,
여자바둑의 일인자인 루이 九단을 누르고
블로그를 다녀갔다. 그 후로도 그녀는 한글
바둑을 그만 둔지 며칠이 지난 아침, 잠에서
국수(國手)의 자리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과 영어로 되어있는 창작 사활집(묘수풀이
깬 혜연은 어머니께 말했다. “엄마, 나 매일
04년 여류명인전 우승과 05년 여류국수전
가 담긴 책) “HYE YEON’S CREATIVE LIFE
바둑판 위에 바둑을 두는 꿈을 꿔요. 바둑
우승에 차지하며 조혜연의 시대를 열었다.
DEATH”을 출간 하는 등 바둑보급을 위해
아시아를 대표하는 ‘브레인 스포츠’
페어로 3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으며 한국과 중국이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뽑힌다. 현재 최초의 바둑 금메달을 위해 땀 흘리고 있는 바둑 대표선수 중에는 우리학교 ’조혜연’
외도를 꿈꾼 팔방미인(八方美人)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젊은 층을 위해
여자 이창호를 넘어, 국수(國手) 조혜연으로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여자바둑계는
궁극적으로는 이야기가 있는 동화나 소설 형
솜털도 채 사라지지 않은 앳된 얼굴이었다.
조혜연과 루이 나이웨이 九단의 양분이라
식을 빌어 책을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2년의 시간 동안 그녀의 실력은
할 만큼, 조혜연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괄목상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몰라보게
하지만 그녀는 2004년 새로운 결심을
기사(棋士)에서 선수(選手)로
늘었다. 그녀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놓는
한다. 바로 ‘고려대입학’이다. 바둑에 전념
조혜연 8단은 지난 9월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 수, 한 수는 그녀의 손끝을 보는 어른들의
하기 위해 많은 프로기사들이 학업을 포기
한국기원 대국실에서 막을 내린 광저우
감탄을 자아냈다. 11살 때 이미 아마추어에
하기 때문에, 이는 바둑계에서 파격적 행보
아시안게임 여자국가대표 2차 선발전에서
서는 그녀의 적수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아마
이자 ‘외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세간의 우려
7승3패로 국가대표 승선을 확정지었다.
대회 그랜드슬램을 이루었고, 동시에 그녀
와 달리 진학 후에도 그녀의 바둑에 대한
프로기사(棋士)에서 국가대표 선수(選手)로
뒤에는 여성 최연소우승이라는 이름이 따라
열정은 계속됐다. 시간이 될 때마다 본교의
거듭난 것이다. 이번 대회 그녀의 목표는
붙었다. 결국 그녀는 97년 4월 여류입단대회
바둑동아리 ‘고대바둑사랑’에서 학생들을
금메달 2개로 바둑 부문 종합우승에 기여하
에서 수많은 경쟁자들을 누르고, 12살
지도하곤 했다. ‘고대바둑사랑‘의 권순탁
는 것이다. 꿈에서도 바둑을 두던 소녀는
(만11년 10개월)의 나이로 프로기사 자리에
(보건행정 08)씨는 그녀에 대해 묻자 “최고
이제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바둑 최초의
올랐다. 이는 당대 최고기사인 조훈현,
의 여류기사일 뿐 만 아니라 동아리에 애정
금메달을 꿈꾸고 있다. “아시안 게임 사정상
이창호(만11세)에 이은 세 번째 기록이었다.
을 가지고 지도해 주시는 자상한 누나”라고
인터뷰를 못해서 아쉽지만 금메달을 따고
‘조혜연’ 이란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했다. 그녀는 또한 바둑보급을 위해 자신의
돌아와 꼭 SPORTS KU를 통해 인사하고
바둑계는 이를 “여자 ‘이창호’의 탄생”으로
전공인 영문학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고
싶다” 는 그녀의 바람이 현실로 이루어지길
표현하며 천재소녀의 입단을 반겼다.
민했다. 그녀는 그 고민의 해답을
기대해본다.
(영문 06) 8단이 있다. 세계무대에서 선보일 최고의 한 수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조혜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권민수 기자
12 SPORTS KU
노력하고 있다. 조혜연 기사는 자신의 최종
배우러 다시 갈래요.”
MONTHLY SPORTS MAGAZINE 13
RISING STAR
국가대표만 4년 째
“10, 20년 만에 나올까 말까한 선수”
“가장 화려한 순간은 앞으로가 될 것”
VS “성실함 빼면 시체”
김현수의 과거를 들여다보면 화려하기 그지없다.
축구를 좋아하던 그는 중학교 1학년 당시, 럭비부
7인제 럭비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남들은 한 번도 하기 힘들다는 국가대표를 2007
감독님께 발이 빠르다는 이유로 럭비를 권유받았
정식으로 채택되었다. 럭비 선수로서 그에게는
년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매해
다. 진로문제를 고민하다 중학교 3학년 때 럭비를
매우 기분 좋은 뉴스다. 단기적인 목표는 아시안
꼬박꼬박 해내고 있다. 이쯤 되면 국가대표팀에서
시작했기에 이렇게 일찍 국가대표까지 될 줄 몰랐
게임 금메달, 그 다음 목표는 럭비가 정식 종목이
는 ‘모셔가는’ 선수라고 봐도 될 듯하다.
다. “상무로 가서 국가대표 기회가 오면 도전해
되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까지 뛰는 것이라고
김현수가 처음 국가대표로 나선 2007 아시아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일찍 뽑힐 줄은 몰랐죠.
한다. 이제는 국제대회에 매년 참여하다 보니
청소년 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우승을 차지했다.
실력을 인정해주시고 불러주셔서 감사할 따름이
시큰둥해진 부모님의 모습에 맨 처음 같이 기뻐해
국가대표로는 첫 대회이고 청소년 대표는 이 때
에요”라고 말하는 김현수의 얼굴은 약간 상기되어
주시던 부모님의 반응이 그립다는 그. 그렇지만
한 번이 마지막 기회이기에 최선을 다했지만
보였다.
최근 아시안 게임 엔트리에 들었다는 소식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개인 성적은 좋지 않았다.
탄탄대로만 달려온 것 같은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부모님이 많이 자랑스워하시는 걸 보면 자신도
이에 반해 2008년 칠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럭
우리학교 김용회(경제, 99) 코치는 김현수가 처음
흐뭇하다고 한다.
비선수권대회(IRB Junior World Rugby Trophy)에
부터 잘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배재고등학교
“김현수에게 국가대표란?”이라는 질문을 던지자,
서 김현수는 그야말로 ‘날았다.’ 본인 스스로도 가
재학 당시 감독으로 있었던 김 코치는 “사실 현수
“저에게 국가대표는 개인적으로는 제 자신이 발전
장 기억에 남는 국제 대회이며 우리학교는 1부 리
가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딱히 눈에 띄는 선수는
할 수 있는 발판이에요. 형님들과 합숙을 하면서
그에 있는 대학 중 가장 많은 7명의 선수를 보냈
아니었다. 그런데 3학년 때부터 급성장하기 시작
항상 많은 것을 배워갑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던 대회였다. 지금도 어리긴 하지만 “젊으니까 패
했다”고 말했다. 김 코치는 김현수의 가장 큰 장점
대표하는 선수로서 항상 자부심을 느끼고 세계적
기도 있고 자신감도 최고”였던 2008년. 김현수는
중 하나를 ‘기복이 없는 것’으로 뽑았다. 보통 선수
으로 한국 럭비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이 대회에서 득점 4위, 총 트라이 횟수 1위를 기록
생활을 하다보면 한번쯤 다치기도 하고 슬럼프도
생각하구요. 또 평생을 살아가면서 국가대표를
했다. 한국은 8팀 중 6위로 대회를 마쳤지만 김현
찾아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김현수는 이제껏 다친
하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라는 멋진 대답이 돌아
수는 외신으로부터 ‘영향력 있는’(influential), ‘매우
적도, 성적에 슬럼프가 찾아온 적도 없다. 김 코치
왔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니 이렇게 밋밋
자신감 넘치는’(remarkably assertive) 선수라는
는 “꾸준히 잘할 수 있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한 인생이 있나’ 싶었다. 뭔가 위기도 있고, 슬럼프
평가를 받기도 했다.
아니다. 그런 면에서 대단한 선수라고 할 수 있다”
도 있어야 재밌을 텐데, 맨날 전교 1등만 한 모범
2009년에는 동아시아대회 럭비 7인제에 참가해
며 김현수를 치켜세웠다.
생의 이야기를 듣는 듯 했다. 그렇지만 김 감독과
서 동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메달을 받느냐
우리학교 김성남(체교, 94) 감독은 김현수를 ‘찬스
김 코치가 혀를 내둘렀던 김현수의 성실함을 알고
마느냐 결정되는 중국과의 3, 4위 결정전에서
에 강한 선수’라고 표현하며 “시야가 굉장히 넓어
들어보면, 남들이 질투할 만한 그의 성적 뒤에는
중국 선수의 실수로 이길 수 있었다. 경기가
찬스를 잘 본다. 이건 특히 트라이 시에 유리하게
남들의 배로 뛰어다니는 땀방울이 있다는 걸 깨닫
끝나기 바로 직전, 두 점 차로 한국이 이기고
작용하는데 그래서 현수가 득점을 많이 하게 되는
게 된다. 청소년 대표부터 아시안 게임 대표까지
있었고 중국 선수가 골라인 바깥에 공을 찍으면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김현수는 감독의 색깔에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어 보이는 그. 아직 창창한
중국의 득점으로 경기가 끝나는데 안 찍고 있었던
맞춰 플레이할 수 있는 선수로, 이번 아시안 게임
데도 불구하고 서서히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말
것. 그것을 놓칠 리 없던 김현수는 그 선수를 밀쳐
에서도 국가대표 감독이 원하는 방향의 경기를
하기에 질문을 던졌다.
냈고 그 후 바로 노사이드가 선언돼 동메달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라고 말했다.
“아직 아시안 게임이 시작하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지켜낼 수 있었다. “상대 선수가 점수 계산을 잘못
“김현수가 어떤 선수냐”고 물었을 때 두 사람의
국가대표 했던 시기 중 가장 화려했던 때는 언제
한 것 같았어요. 제가 막고 나서 곧바로 경기가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단어는 바로 “성실함”이었
인가요?”
끝나니까 기분이 정말 좋더라구요”라며 당시
다. 기술적인 장점이 나열될 것으로 예상했던 기자
향해가는 시점에서 제 16회 광저우 아시안 게임은
기분을 말한 김현수는 “대회가 끝나고 열린 파티
“가장 화려한 순간이요? 당연히 앞으로죠!”
를 한 방 먹인 김현수의 면모였다. 특히 김 감독은
올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국제대회이다. 한해 동안
에서 만나면 약올려주려고도 했는데 안 보였어요.
“김현수는 10, 2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선수”
그 선수 이름은 모르지만 잊을 수 없습니다.
라며 “고려대가 앞으로 또 김현수 같은 선수를 데
꼭 찾아주세요”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려오려면 10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
2010년은 그에게 잊지 못 할 해가 될 것이다.
다. 그렇지만 이렇게 뛰어난 재능을 가진 김현수를
대학생 선수로는 유일하게 2010 IRB WSS 홍콩
만든 것은 원래 주어진 능력이 아닌 “궂은일도 마
7인제 국가대표로 발탁됐기 때문이다. “굉장한
기대가 된다는 김현수(체교 07). 2010 IRB WSS 홍콩
다하지 않는 성실함”이라고 말했다. 김 코치도 “찾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그는 “대학생으로 혼자
아보면 좋은 체격조건을 가진 선수는 많다. 하지만
7인제 럭비 선수권 대회 국가대표로는 유일하게
갔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고려대 대표로도 간 것
현수가 그 좋은 조건을 가지고 고3때 발전할 수
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잘
있었던 것도 성실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김현수
하려고 했습니다”라며 겸손하게 말했다. 가장
의 노력을 입이 닳도록 칭찬했다.
우리학교 광저우 아시안 게임 출전선수 ②
‘천재’라는 말보다는 ‘노력’이라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선수,
김현수
김연아(체교 09)가 금빛 연기를 펼쳤던 벤쿠버
동계 올림픽을 시작으로 올해는 유독 굵직굵직한 스포츠 이벤트가 많았다. 이제 2010년의 마지막을
풍성한 볼거리에 즐거웠을 스포츠팬들. 그러나 여기, 누구보다도 이 대회를 기다리는 선수가 있다. 매년 꾸준하게 국가대표를 해왔지만, 그 어느 때보다 더
대학생 신분으로 참가했던 김현수는 아시안 게임 예비엔트리에 포함되어 연세대의 제갈빈(스포츠레저
막내이기 때문에 빨래도 도맡아 하고 심부름도
08) 선수와 더불어 유일한 대학생으로 한국을 대표
많이 했다는 그는 “그래도 (박)완용(체교, 06)이
해서 뛸 예정이다.
형이 가장 많이 챙겨줬어요. 물론 심부름도 가장 많이 시켰죠”라며 웃었다.
이윤빈 기자 / 사진 성현준 14 SPORTS KU
MONTHLY SPORTS MAGAZINE 15
COVER STORY
“웃어~” 홍명보 사단의 홍명보감독, 서정원, 김봉수 코치. SPORTS KU의 파주 트레이닝 센터(NFC) 방문을 기념해 한 자리에 모여 사진 촬영을 함께 했다. 평소 ‘무표정’으로 유명한 홍명보 감독이 두 코치를 양 쪽에 끼고 “웃어~”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사진 이희재
16 SPORTS KU
MONTHLY SPORTS MAGAZINE 17
2002년 6월, 온 한반도를 붉게 물들였던 ‘4강 신화’의 그날로부터 무려 8년이 지났다. 오랜 시간이 지났건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떨려오곤 한다.
고려대 축구의 과거와 현재
그 환희의 6월, 선수 홍명보는 노란 주장 완장을 팔에
홍명보 그리고 박희성
차고 최후방의 중심에 굳건히 서있었다. 1990년 처음 태극마크를 단 뒤 무려 12년 동안 꾸준히 대표 팀에 선발되며 전후방에서 맹활약한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2002년을 끝으로 태극 마크를 자진 반납한 그는,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거쳐 올림픽 대표팀 감독, 그리고 아시안 게임 감독의 자리에 서있다. 아시안 게임을 한 달 앞두고 있던 10월의 어느 날, 파주 국가대표 트레이닝 센터에서 선수가 아닌 감독 홍명보를 만났다.
홍명보의 네 번의 아시안게임 이희재 기자 / 사진 이희재
유일한 대학생 국가 대표, 1990년 베이징 대회
일본만은 이겨야 한다, 1994년 히로시마 대회
홍명보가 처음 아시안 게임과의 연을 맺은 것은 지금으로
그로부터 4년이 흐른 뒤인 1994년, 홍명보는 또 다시
부터 20년 전인 1990년 가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 11회 아시안
월드컵 대표로 선발 되어 미국 땅을 밟는다. 1994년 미국 월드컵
게임에 출전하면서부터이다. 같은 해 2월, 대학교 4학년 진학을 앞두
당시 우리나라의 성적은 3전 2무 1패. 강호 스페인을 상대로 승점을
고 있던 그는 처음으로 태극 마크를 달고 그라운드를 밟았다. 지금과
따내고 독일 전에서 무려 두 골을 기록하는 등 한국 축구의 발전
달리 젊은 선수들의 프로 진출이 활발해지기 전이라 당시 스물 두살
가능성을 보여준 의미 있는 대회였다. 특히 홍명보는 수비수임에도
이던 홍명보가 대표 팀에서는 가장 막내이자 유일한 대학생이었다.
불구하고 미국 전과 독일 전에서 각각 한 골씩을 기록하면서 일약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대표로 선발된
스타덤에 오른다. 그는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1994년
그는 중앙 수비수로서 예선 전 경기를 풀타임 소화했지만 아쉽게도
아시아축구연맹 선정 아시아를 빛낸 선수로 뽑히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전패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귀국했다. 생애 첫 월드컵의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그 해 가을에 베이징에서, 그는 A매치 첫
득점을 기록했다.
월드컵에서 선전한데다 숙적 일본에서 열리는 아시안 게임인 만큼
선수들의 각오는 남달랐다. 홍명보 역시 그 어떤 게임보다 일본과의
A매치 데뷔골을 기록했을 때의 기분에 대해 묻자 그는
같은 해 가을, 일본의 히로시마에서 아시안 게임이 열렸다.
8강전을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꼽았다. 그는 “전반전을 20분 정도
“아시안 게임 출전 자체로도 영광스러웠는데 골 까지 넣어서 기뻤
뛰었는데 부상으로 중간에 나오게 되었다. 끝까지 뛸 수는 없었지만
던 기억이 난다.”고 답했다. 비록 준결승에서 이란에 패하며 아쉽게
결국 일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경기라 더욱 기억에 남는다.”라며
동메달에 머물렀지만 조별 예선에서 싱가포르와 파키스탄을 모두
당시를 회상했다. 8강에서 일본에 승리를 거두며 준결승에 진출했지만
7대0으로 격파하는 등 한국 축구의 저력을 보여준 대회였다. 홍명보
결국 4강전과 3,4위 전에서 내리 패하며 우리나라는 4위에 머물며
는 “그 당시에는 내가 가장 나이가 어려서 빨래를 도맡아서 했던
아쉽게도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기억이 있다. 타지에서 다른 종목 선수들과 얘기하고 만났던 것이 즐거웠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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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가 바라본 대학축구의 현재와 미래 이혜진 기자 / 사진 이희재
지난 해 가을, 이집트에서 열린 U-20 월드컵에 출전한 홍명보
사단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말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역대 최 약체의 대표팀’이라고 말하곤 했다. 한두 명의 선수를 제외하고는 무명 의 대학 선수들로 대표팀을 구성했던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그 우려 는 오래 가지 않았다. 홍명보 감독의 지도력 아래에서 조직력을 바탕 으로 똘똘 뭉친 어린 선수들은 18년만의 8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 냈다. 이것은 프로 선수가 아닌 대학 선수들도 세계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정확히 1년이 지난 지금, 홍명보가 소집한 23세 이하의 아시안 게임 대표팀은 지난해와
이제는 선수가 아닌 수장으로
비교해 아마추어의 향기가 많이 사라졌다. 우리학교의 박희성을 제외한 전원이 프로 선수로 구성된 것. 대학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에 앞서, 대표팀 구성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나눠 보았다.
선수로서 참가한 두 번의 아시안 게임에서 모
선수 시절, 대표팀 주장을 맡기도 했었던 홍명
두 결승 진출에 실패했던 홍명보. 2006년 핌 베어백 감독
보지만 역시 수장으로서 젊고 어린 선수들을 이끈다는 것
을 보좌하며 코치로서 참가한 도하 대회에서는 아쉽게 4
은 쉽지 않은 일이다.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았지만 이제는
위에 머물렀다. 그리고 드디어 2010년, 그가 처음 선수로
선수들에게 가벼운 장난을 칠정도로 친밀하다. 그는 “어
서 출전 했던 90년 아시안 게임 이후 꼭 20년 만에 그는
린 선수들인 만큼 심리적인 부분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
다시 한 번 중국 땅을 밟는다. 선수도 아닌, 코치도 아닌,
다”며 어린 태극 전사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감독으
23명의 어린 태극 전사들을 이끄는 감독으로서. 86년 이
로서 첫발을 내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그지만 대표 팀을
후 한 번도 아시안 게임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한 우리
이끄는 그의 철학은 분명하다. 홍명보는 “그 무엇보다 선
대표팀으로서는 24년 만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이 간절할
수와 코칭스태프의 신뢰관계가 중요하다. 서로 신뢰하면
수밖에 없다. 아시안 게임 대표팀의 수장인 홍명보 역시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이겨낼 수 있다.”며 서로간의 커뮤
금메달을 목표로 중국 땅을 바라보고 있다.
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술적인 것도 중요하지 만 무엇보다 ‘감정’을 중요시하는 홍명보의 리더십이 분명
하지만 여름에 있었던 월드컵이나 빡빡한 리그
히 드러나는 한마디였다.
일정 때문에 아시안 게임을 준비할 만한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최종명단에 이름을 올린 선수
들 중 대부분이 21세 이하의 젊은 선수들이라 경험 면에서
한 번. 이제 생애 네 번째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홍명보.
도 부족하다. 수장인 홍명보 감독이 올림픽 대표팀 감독도
지난 세 번의 아시안 게임에서 모두 결승 진출에 실패했
겸하고 있기에 2012년을 내다보고 대표팀을 구성했기 때
던 만큼 광저우를 향하는 그의 각오는 남다르다. 그 어떤
문이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은 “지난 해 U-20 월드컵처럼
한마디보다 활짝 웃는 그의 모습에서, 광저우 대회에 대한
재미있고 빠른 축구를 보여주고 싶다.”며 당찬 포부를 밝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홍명보호는 이제 막 밑그림을
혔다.
그렸을 뿐이다. “우리는 미래를 바라보는 팀”이라는 홍명
선수로서 두 번, 코치로서 한 번, 감독으로서
홍명보와 함께 아시안 게임 대표 팀을 이끄는
보의 말처럼, 앞으로의 수많은 대회와 훈련들을 통해 그들
코칭 스텝 중에는 서정원과 김봉수가 포함되어 있다. 재학
은 조금씩 그 그림에 아름다운 색깔을 입혀갈 것이다. 그
시절 함께 뛰기도 했던 그들은 이제 감독과 코치로서 다시
첫 단추를 끼우는 아시안게임에서, 홍명보호가 어떤 축구
만나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홍명보
를 보여줄 것인가 기대해 보아도 좋을 듯하다.
는 “오랜 시간을 함께 했기 때문에 서로를 가장 잘 안다. 축구의 기능적 측면에서도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코치 로서의 경험은 없었지만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 았다. 개인이 갖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 했다.”며 두 사람에 대한 아낌없는 신뢰를 숨기지 않았다.
Q. 2009년 청소년 월드컵 당시 대학 선수들 위주로 팀을 구성했는데, 특별히 그런 결정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A. 그 당시 내가 봤을 때는 프로와 대학 무대를 통틀어 그 연령대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들이었다. 대학교 1,2학년 위주의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 프로에서 바로 뛰기에는 무리가 있는 나이들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지금 프로에 진출에 잘 뛰고 있다. Q. 이번 대표팀은 지난해 U-20 대표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프로 선수 위주로 구성되었다. A. 아시안게임은 권위 있는 대회이고 강팀이 출전하기 때문에 대학 선수 위주 로만 가는 것을 좀 무리가 있었다. 큰 무대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필요했다. 홍명보는 대학 축구와 인연이 많다. 20여 년 전 그 역시 ‘고려대학교’ 를 대표해서 뛰는 학생 선수였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초고교급 스타’로 불리던 많은 선, 후배 동기 선수들의 그늘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우리학교와 인연을 맺으며 최고의 선수로 성장해 나갔다. 대학 4학년이었 던 1990년, 그는 대학 선수로서는 유일하게 이탈리아 월드컵과 베이징 아시안게임을 경험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23세 이하의 어린 선수 들의 감독이 된 홍명보가 대학 축구 무대를 다시 찾아왔다. 그는 현재 여러 대학의 경기를 관전하며 잠재력을 가진 선수들을 선발하기 위해 많은 노력 을 기울이고 있다. Q. 20여 년 전 학생 선수로서 대학축구를 직접 경험했고, 현재는 지도자의 입장으로 대학축구를 바라보고 있다. 대학축구에 대한 기억과, 현재의 대학축구에 대한 느낌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A. 내가 대학생일 당시에는 대학축구에 대해 열기가 굉장히 컸다. 그러나 지금은 대학축구가 많이 침체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2년 전 U리그 라는 제도가 탄생했다. 이를 통해 선수들이 프로 진출 이전에 리그 경험과 경기력을 쌓고 있는 것이 긍정적이라 생각한다. 내가 대학생일 때 보다 열기는 조금 떨어졌지만 시스템적인 측면에서는 지금이 더 좋은것 같다.
20 SPORTS KU
Q. 그 당시와 비교해 대학 축구의 수준은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A. 예전에는 고교 졸업 이후 대학 진학이 당연시 되었지만, 지금은 잘 하는 선수들이 고교 졸업 후 바로 프로에 가는 것을 선호한다. 사실 수준 자체 를 따지고 보면 큰 차이는 없지만 ‘스타의 부재’ 때문에 축구 팬들의 입장 에서 수준이 낮아졌다고 느끼는 것 같다. 또한 그것이 대학 축구의 열기 가 떨어진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Q. U리그가 출범 3년차를 맞았다. U리그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A. U리그를 통해 시즌 중 꾸준히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선수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경기 자체가 대학교 캠퍼스에서 홈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열려 학생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요소가 존재 한다. 학생들이 U리그에 관심을 갖고 많이 찾아와서 모교를 응원했으 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Q. 마지막으로 대학축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묻고 싶다. A. 대학 축구 전체와 선수 개인 측면에서 이야기 하고 싶다. 대학 축구 그 자체가 많은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말할 수 있는 것이 ‘해외 교류’이다. 그리고 선수들이 대학 생활을 하며 자기 미래에 대한 준비 를 하고, 프로에 가기 전 교양적인 면도 쌓았으면 좋겠다. 대학 스포츠를 다루는 언론으로써 가장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를 홍명보 감독의 입을 통해 직접 전해들은 감회는 남달랐다. 대학 축구의 과거를 겪었고, 또한 현재를 함께 하고 있는 홍 감독의 시선은 역시나 정확했다. 그가 후배들에 대해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만큼, 이 땅의 모든 잠재력을 지닌 대학 선수들이 한걸음 더 성장할 수 있기를 이 지면을 통해서 바래본다.
MONTHLY SPORTS MAGAZINE 21
Q.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아기 호랑이, 맹수 소굴에 홀로 들어가다
A. 출국날짜는 잘 모르겠어요. 훈련은 학교로 공문이 와요.
그러면 저는 공문을 보고 언제 훈련을 하는지 알게 돼요.
그런데 같이 모여서 훈련한 시간이 적어요. 몇 달 전에 한번
모인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처음 소집되는 거에요.
감독 홍명보가 보는 선수 박희성
최윤진 기자 / 사진 김원범 박인철 Q. 홍명보 사단(홍명보, 서정원, 김태영, 김봉수)은 청소년 대표
90년 아시안 게임에 참가한 유일한 아마추어 선수가
있었다. 그로부터 20년의 시간이 흘러 2010년 아시안 게임에
부터 아시안 게임까지 손발을 함께 맞춰왔다. 아시안 게임을
지나 올림픽, 더 길게는 2014년 월드컵까지 ‘미래’를 내다
대학 선수 중 유일하게 박희성을 선발한
보고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박희성이 본 홍명보
이유는 무엇인가.
사단에 대한 느낌은 어떠한가?
같은 포지션의 다른 선수와 경쟁에서 이겼다.
A. 일단 분위기가 좋고 재밌어요. 그리고 편하고요. 아마도 코칭
작년 U-20 월드컵 대회를 거치면서 기량이
많이 늘었고, 그 과정에서 본인이 하고자
스테프랑 선수들 사이가 좋아서 그런 것 같아요.
하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유일한 아마추어 선수가 나왔다. 전자는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홍명보, 후자는 우리학교 2학년인 박희성이다. 프로 선수들
Q. 박희성이 보는 선배 홍명보는 어떤 사람인가 A. 학교 선후배 사이라기보다 선수와 감독사이가 맞는 것 같아요.
박희성의 어떤 장점이 그를 꾸준히 대표팀에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카리스마만 있으신 것 같은데
기용되게 하는 것인가.
홍쌤(박희성은 홍명보 감독을 홍쌤이라 부른다)은 다정하세요.
활동량이 많고 볼 키핑 능력이 좋다. 센터포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을 받으며 광저우 필드를 누빌 대학 선수,
그러면서 카리스마도 있으신 분이죠. 평소 훈련하다가 장난도
워드 포지션에 위치해 상대 수비와 몸싸움을
박희성의 아시안 게임과 대학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많이 치세요. 주로 말장난을 많이 치세요.
잘 할 수 있다.
가운데 단 한 명의 아마추어 선수로 남아있던 그들은 이제 감독과 선수로 만나 2010 아시안 게임을 준비한다. 올해 많은
유일한 대학 선수로 참가하는 광저우 아시안 게임
Q. 홍명보 감독이 박희성선수를 부르는 별명은.
홍명보가 부르는 박희성의 별명이 있다고
A. 말 안할래요(웃음). 홍쌤한테 직접 여쭤보세요.
들었다. 무엇인가.
선수들은 앙리라고 부르는데 왜 그렇게
(홍명보는 박희성을 못난이라고 부른다)
부르는지 모르겠다. 가끔 못난이라고 부른다.
Q. 홍명보호 출범 이후 이리고 시절부터 꾸준히 홍 감독의 부름
을 받아왔다. 이번에도 당연히 선발될 것이라 예상했는가.
Q. 와일드 카드인 박주영과 김정우와는 친한가.
A. 조금 기대는 했는데 워낙 잘하는 선수가 많고 청소년월드컵
A. 파주에서 처음 봤어요. 그런데 두 분 다 운동은 아직 한 번도
앞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나갈 박희성에게
때와는 달리 23세 이하로 구성된 팀이라(박희성은 현재
안 했어요. 김정우 선배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박주영 선배는
해주고 싶은 충고가 있다면.
20살) 실제로 뽑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생각보다 (키가) ‘작다’란 느낌이 들었어요.
더 높은 레벨에 가서 경험을 쌓는 다면 본인 에게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지금 뛰는 선수
Q. 대학 선수로써는 유일하게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자신의
Q. 대표팀에서 특별히 친한 선수는.
들보다 더 높은 경기력을 가진 선수들과
A. 다 친해요. 고3때부터 봐온 사람들이니까요.
경기를 하면 실력이 향상될 것이다.
어떤 장점이 대표팀 선발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는가.
A. 대표팀의 다른 선수들 보다 제가 스크린 플레이 (상대 선수를
그래도 제일 친한 선수는 (조)영철이 형이에요.
등진 상태에서 하는 플레이)나 포스트 플레이(긴 패스를 받아
2선의 동료 선수들에게 볼을 안전하게 전달해주는 플레이)를
Q. U-20 청소년 대표 때와 지금의 박희성은 무엇이 달라지고 변했나.
잘하는 스타일이라서 그 부분을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A. 청소년 대표 때에 비해서 자신감이 많이 붙었어요. 청소년 대표
때는 국제대회에 대한 경험도 부족해서 자신감이 많이 없었거
Q. 홍명보 감독이 본인에게 가장 크게 요구하는 스타일이 무엇인가.
든요. 그리고 체력과 스피드가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그런 부분
A. 제가 원톱이니까 그 역할을 잘 해줘야 다른 동료 선수들이
들을 많이 보완하려고 노력했어요.
움직이는데 편하거든요. 그래서 적극적인 몸싸움과 공중 볼 경합을 강조하세요. 그리고 공간을 만들어 주고 많이 움직이라고 하셨고요.
Q. 그 동안 참가했던 대회보다는 보다 더 국민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이 점에 대한 부담감은 없는가.
A. 전 대회(청소년 대표)보다 대회의 무대가 커진 것에 대한 부담
은 없어요. 단지 다른 선수들은 프로에서 뛰고 저만 아마추어
선수라서 국민들이 저를 보고 의아해 할 것 같아요. ‘쟤는 뭔데
뽑힌 거지’ 이런 생각을 하시지 않을까 그런 점이 부담스러워요.
박희성이 생각하는 대학축구 Q. 잦은 부상과 대표팀 차출 등으로 인해 U리그에서 뛰는 모습을
Q. 대학 축구를 2년동안 겪어 보았다. 선배의 입장에서 후배들에게
많이 볼 수 없었다. 고려대 소속 선수로써 팀에 많은 보탬이 되고
‘대학 축구’를 반드시 경험해 보라고 추천해 주고 싶은가.
싶었을 텐데, 이에 대해 아쉬운 점은 없는지.
그렇다면, 혹은 그게 아니라면 무슨 이유에서인가.
A. 팀에 도움이 못돼서 많이 미안하죠. 대신 벤치에서 응원
A. 자신이 프로 가서 잘할 준비가 돼있다면 프로로 바로 가는 것도
좋다고 봐요. 선수라고 해서 평생 동안 축구만 하는 건 아니잖
열심히 했어요.
Q. U리그가 출범 3년째를 맞았다. 대학 축구는 양적으로나 질적
아요. 은퇴 후에 공부할 기회가 있기도 하고 교사라는 직업을
으로 분명히 변화하고 있다. 박희성이 겪어 본 대학 축구,
할 수 있다는 게 대학선수가 됐을 때의 장점인 것 같아요.
리그제에 대해 듣고 싶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자면 저는 과제도 잘해가고 빠짐없이
수업을 나가고 있어요.(웃음)
A. 개인적으로 리그제는 좋아하지 않아요. 경기가 길어서 외박을
못나가거든요. 그렇지만 리그제는 경기가 일정하게 있잖아요.
그래서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해요.
Q. 대학 선수가 많았던 지난 U-20 월드컵에 비해 이번 올림픽 대표팀 Q.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의 본인의 목표와 팀의 목표는. A. 금메달이요. 저희 팀 목표는 당연히 금메달을 따는 거죠.
제 개인적인 목표는 골을 많이 넣는 거에요. 공격수니까요.
에는 대학 선수가 본인을 제외하고는 한 명도 없다. 이것이 대학
선수들과 프로 선수들 간의 수준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A. 네. 대학 선수들과 프로 선수들 간에 차이가 확연히 나요.
22 SPORTS KU
정신력, 기술 등 모든 면에서요.
항상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는 홍명보 감독을 인터뷰 내 내 홍쌤이라 불렀던 박희성. 홍명보 감독을 부르는 그의 호 칭에서 두 사람의 깊은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박희성에 대한 홍명보의 깊은 신뢰가 아시안게임에서 빛을 발하기를 기대해 본다. MONTHLY SPORTS MAGAZINE 23
KU STARS
별이 빛나는 광저우
16TH ASIAN GAMES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고려대 출신(재학) 국가대표는 누구?
FOOTBALL
BASEBALL
감독 홍명보 (체교87) 코치 서정원 (경영88) 김정우 (광주상무, 체교01) 박주영 (AS모나코, 체교04) 박희성 (체교09)
정근우 (SK 와이번스, 체교01)
<경기일정> C조
대한민국, 팔레스타인, 요르단, 북한
<경기일정> B조
대한민국, 대만, 홍콩, 파키스탄
2010.11.08(월) 16:00
아시안게임 조별리그 vs 북한
2010.11.13(토) 19:00
아시안게임 조별예선 vs 대만
2010.11.10(수) 16:00
아시안게임 조별리그 vs 요르단
2010.11.14(일) 19:00
아시안게임 조별예선 vs 홍콩
2010.11.13(토) 16:00
아시안게임 조별리그 vs 팔레스타인
2010.11.15(월)/16(화)
16강전
2010.11.16(화) 13:00
아시안게임 조별예선 vs 파키스탄
2010.11.19(금)
8강전
2010.11.18(목)
준결승전
2010.11.23(화)
준결승전
2010.11.19(금)
3/4위전, 결승전
2010.11.25(목)
3/4위전, 결승전
이번호 COVER STORY에서도 만난 홍명보 감독과 서정원
지난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야구는 동메달에
코치가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 대표팀에는 지난 남아공
그쳤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월드컵에서 멋진 활약을 보여준 김정우와 박주영이 와일드
9전전승의 신화를 쓰며 따낸 금메달, 지난 해 WBC에서의
카드로 선택되었다. 2002년 처음 도입된 와일드 카드로
준우승이 이를 반증한다. 프로야구 역시 시즌 최다
많은 선배 선수들이 후배들을 이끌고 아시안게임 무대에
관중 기록을 갈아 치우며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섰지만 결과적으로 큰 성공을 가져오진 못했었다.
‘대한민국 대표 2루수’ 정근우는 고려대 출신들을 대표해
이번 김정우와 박주영 카드는, 공격과 미드필드진을 보강해
이 대회에 유일하게 출전한다. 2006 아시안게임, 2008 베이징
선수 795명을 파견한다. 평소에도 자주 접할 수 있는 야구,
그동안 메달과는 거리가 멀었던 아시안게임에서 크게 한 건을
올림픽, 2009 WBC에 출전하며 풍부한 국제 대회 경험을 쌓은
농구, 축구 등의 인기종목을 비롯하여 조금은 생소한 카바디
해보고자 하는 홍 감독의 뜻이 담겨있다. 많은 경험과 검증된
그에게 장점인 기동력과 근성, 파워를 앞에서 세계 무대에서
(인도에서 시작된 스포츠. 술래잡기와 격투기, 피구를 혼합한
실력을 통해 후배들을 이끌 수 있는 것 또한 그들에게 기대
대한민국의 기똥찬 한방!을 보여주리라 기대를 걸어본다.
형태), 우슈(중국의 국기로 불리는 전통 무술) 등 다양한 종목에
하는 바다. 이번 엔트리 대부분은 21세 이하의 선수들, 2012
서 펼쳐지는 국가간 대항인 이번 아시아경기대회. 우리나라를
년 런던 올림픽에 나설 수 있는 선수들을 차출한 것으로 보인
2010년 11월 12일부터 27일까지 중국 광저우에서 개최되는 제16회 광저우아시아경기대회에 우리나라는 41개 종목에 (전체 42개 종목 중 ‘크리켓’ 불참) 임원 218명과
대표하는 많은 선수들 중 유독 마음이 가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고려대학교 출신 혹은 재학 중인 선수들이다. 박영미 기자
다. 다른 대회 때 보다 선수들의 평균 연령이 낮아진 탓에 와일드 카드의 역할은 더욱 막중하다. 청소년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인 우리학교 박희성 또한 대학생으로 유일하게 이번 아시안게임에 나서게 되었다.
24 SPORTS KU
MONTHLY SPORTS MAGAZINE 25
RUGBY 전종만(KEPCO, 체교 94) 홍준기(체교 03) 이정민(체교 05) 김현수(체교 07)
<경기일정> B조
대한민국, 중국, 스리랑카, 인도
2010.11.22(월) 09:00
아시안게임 조별예선 vs 인도
2010.11.22(월) 12:09
아시안게임 조별예선 vs 스리랑카
2010.11.22(월) 15:18
아시안게임 조별예선 vs 중국
2010.11.23(화) 10:37
준준결승전
2010.11.23(화) 13:46
준결승
2010.11.23(화) 19:11
결승
BADUK
BASKETBALL
이규섭(삼성 썬더스, 신방 96)
조혜연 (영문 06) 감독 임달식(신한은행 에스버드, 무역 83)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남녀 7인제 럭비경기만 열리게
대한민국, 우즈베키스탄, 요르단, 중국,
되었다. 일반적으로 럭비라면 15인제를 말하지만 한 경기를
예선 A조(홍콩, 북한, 쿠웨이트) 1위,
뛰면 그 이상의 휴식이 필요하고 또 많은 선수가 필요한
예선 C조(사우디아라비아, 필리핀) 1위
2010.11.20(토)~22(일) 혼성 페어
15인제 대신, 전·후반 7분씩 경기가 열리는 7인제가 채택된 것이다. 지난 2006년 대회부터 15인제가 빠지게 되었다.
2010.11.16(화) 19:15 본선라운드
vs 우즈베키스탄
우리나라는 7인제 럭비에서 일본과 함께 양강구도를 이루고
2010.11.17(수) 21:30 본선라운드
vs 요르단
있다. 1998년과 2002년 아시안게임에서 우리나라는 7인제,
2010.11.19(금) 21:30 본선라운드
vs A조 1위
2010.11.21(일) 19:15 본선라운드
vs 중국
2010.11.22(월) 21:30 본선라운드
vs C조 1위
에는 아쉽게 일본에 져 은메달에 그쳤다.
<경기일정> A조 대한민국, 중국, 태국, 인도
<경기일정>
<경기일정> 본선라운드 E조
15인제 모두 일본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지난 2006년
BASKETBALL (W)
남 2명, 여 2명(2개조)
2010.11.18(목) 19:15
본선라운드 vs 태국
2010.11.23(화)~26(금) 남자 단체전 주전 5명+예비 1명
2010.11.20(토) 19:15
본선라운드 vs 인도
2010.11.23(화)~26(금) 여자 단체전 주전 5명+예비 1명
2010.11.22(월) 14:15
본선라운드 vs 중국
*조혜연 선수 출전
럭비 대표팀에는 든든한 맏형 전종만 선수가 중심에 있다.
바둑은 올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이
94년 히로시마 대회 이후 16년 만에 아시안게임 정상에
주장인 그는 우리학교 럭비부 김성남 감독과 체교과 94학번
되었다. 조용히... 그렇지만 강력한 아시안게임 금메달 후보
재도전하는 여자농구 대표팀의 선봉에는 임달식 감독이 있다.
동기로, 지금까지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베테랑 중 베테랑이
프로농구 10년차. 승부처에서 큰 힘을 발휘하는 자가
종목 중 하나인 바둑은 2009년 2월 대한체육회 정가맹 단체
임 감독은 지난 10월 체코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다. 또한 우리학교 럭비부의 전성기를 이끌던 홍준기,
바로 베테랑이라고 하던가. 강한 근성과 집중력, 그리고
에 소속되면서 진정한 ‘스포츠’로서 발돋움했다. 이미 세계
팀을 8위로 이끌며 아시아 나라 가운데 가장 선전하는 모습을
일본리그에서 뛴 경험이 있는 이정민과 현재 재학중인 김현수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로 팀을 위해 유용한 역할을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창호 9단,
보였다. 하지만 최근 팀의 간판선수 정선민 등이 부상으로
역시 대표팀의 막내로 합류했다. 경험이 많은 전종만 선수가
해주길 기대해 본다. ‘이규섭이 터지면 승리한다’는
이세돌 9단은 와일드카드로 이번 대회에 참가한다.
제외되는 등 어려운 여건에 처했다. 이런 대표팀을 이끄는
어린 선수들을 이끌고 지난 대회 일본에게 빼앗긴 금메달을
말은 이미 농구계에서 유명하다. 비록 예상치 못한 기복
조훈현, 이창호에 이어 역대 최연소 입단기록 3위인 조혜연.
임달식 감독은 비록 부담은 있지만 얼마 전 정규리그 통산 100
다시 찾아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으로 우리를 불안케 하기도 하지만 큰 대회이니만큼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재학중인 그녀는 각종 국내 대회
승을 달성하는 등의 노련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팀을 추스르는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히는 대한민국 럭비의 중심에 있는
후배들과 함께 명승부, 명장면을 만들어 나갈 수
에서 우승을 휩쓸며 한국 여자바둑을 이끌고 있다. 조혜연은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지난 2006년 대회에서 아시안게임 출전
고려대학교 선배님, 후배님, 파이팅!
있으리라 기대한다.
후배들을 이끌고 여자 단체전에 출전한다.
최초로 노메달에 그친 것에 대한 명예 회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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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SPORTS MAGAZINE 27
LEGEND STORY
짧지만 강렬하게 길고도 완벽하게
고재욱
득점왕을 수상하기도 했으니 그의 공격적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강한 전력은 고연전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1971년, 1972년에 학원사태로 정기전이 무산되었으나 고재욱 이 1학년이었던 1970년에는 3-0승리, 4학년이었던 1973년에는 2-1로 승리했다. 3-0으로 이겼을 때는 난리가 났었지. 동대문 운동장 응원단상 에 총장님이 올라오셔서 춤도 추시고. 그 날 막걸리도 엄청 마셨었지. 나는 2학년 때부터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됐는데 합숙훈련과 해외원정이 많아서 대학생활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어. 하지만 1학년 때 고연전 승리는 정말 잊을 수가 없지.
고려대, 첫눈에 반한 운명적 만남
국가대표, 자랑스럽고도 무거운 책임감
축구를 시작한 것도 고려대에 입학한 것도 운명이었다. 거부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육군사관학교 축구선수로 활동할 만큼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했기에 더 열심히 노력했다. 충렬초
축구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1970년대 축구가 전폭적인 지원을
5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고재욱은 중동고에 입학해서 두각을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 시기 고재욱은 5년간 국가대표 선수로
나타내기 시작했고 청소년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아시아 청소년
뛰었는데 1972년에는 메르데카컵과 아시안컵에 출전했다.
축구대회에도 참여했다.
아시안컵 1, 2회 대회에서 우승했던 한국은 3회 대회에서 3위로 점차 하락세를 보였으며 고재욱이 국가대표로 뽑히기 전인
나는 4남 3녀 중 막내야. 막둥이지. 일찍 돌아가셔서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큰 형에 대해 말하자면 축구선수를 했었어. 나도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좋아하긴 했지만 큰 형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아. 그렇게 축구를 하다 서울의 중동고에 입학하게 되었지. 통영에서만 살다가 서울에 올라오니 모든 것이 새로웠어. 당시 중동고는 안국동에 있었고 기숙사는 미아삼거리에 있었는데
1968년 4회 대회와 국가대표에서 은퇴한 후 1976년 6회 대회에 서 본선 진출 실패라는 참담한 성적을 기록했다. 고재욱이 유일 하게 뛰었던 1972년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으니 우연치 고는 기막히다. 아시아의 맹주로서 준우승도 부족할 수있겠으나 그 시기 본선진출에서 번번히 고배를 마셨던 대표팀에는 큰 성취 였다.
어느 날 우연히 고려대에 연습경기를 하러 갔었어. 처음에는
1970년대 5년간 국가대표로 활동하고 25세
그 곳이 고려대인지도 몰랐지. 정문을 들어가는데 ‘아! 여기구나.
우리나라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처녀 출전한 이후 1986년
무조건 고려대에 진학해야지’라고 생각했어.
멕시코 월드컵까지 32년간 월드컵과 인연이 없었다. 그 기간 중
이른 나이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짧은 선수생활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1974년 서독 월드컵 최종예선이었다. 호주
이었으나 굵고 강렬했기에 많은 팬들에게 잊혀질
당시 고려대는 체육학과가 없었기 때문에 체육특기생 선수를
와 홈&어웨이로 최종예선을 치러 한 팀만 월드컵에 진출하는
수가 없었다. 부상이라는 큰 시련으로 현역을
스카우트할 수 없었다. 1969년에 이공계 체육학과가 설립되었고
상황이었는데 1차전 호주원정경기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떠나서도 축구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던 청년은
1970년에 스카우트가 시작되면서 유망한 선수들을 선발할 수
이어진 2차전 홈경기에서 2-0으로 이기고 있다 두 골을 내리
있었다. 고재욱도 70학번으로 고려대에 입학했다. 고재욱보다 1살
내줘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두 경기 모두 무승부였기 때문에
많은 1950년생 축구선수들도 고려대에 진학하기 위해 1년을
3차전은 제 3국 홍콩에서 열렸다. 3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기다렸다가 1970년에 함께 입학했다. 1971년과 1974년 전국축구
우리나라는 0-1로 패하며 월드컵 진출을 다음으로 미룰 수 밖에
선수권대회(現 FA컵)에서 고려대는 우승을 차지했다.
없었다.
지도자의 길을 택했다. 무너져가던 중동고 축구부를 부활시키고 K-LEAGUE에서 두 차례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으니 이른 은퇴의 아쉬움 을 달랠 수 있을 만큼 지도자로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이번 호 LEGEND의 주인공은 고재욱
국내 최고권위 대회에서 많은 실업팀을 제치고 우승한 고려대에 는 황금세대가 있었다. 남대식, 이차만, 차범근 등 수많은 스타들
20년 만에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지. 2차전
(체육 70), 관동대 축구부 감독과 대학축구연맹
이 있었고 그 중 고재욱도 빼놓을 수 없는 스타플레이어였다.
서울에서 2-0으로 이기고 있을 때만 해도 월드컵에 나갈 수 있
부회장을 맡고 있는 영원한 축구인이다.
고재욱은 국가대표 시절에는 미드필더로 뛰었지만 고려대 재학
겠다고 생각했는데 허무하게 비기고 홍콩에서 지는 바람에 결
중에는 중앙공격수로 뛰었다. 큰 키는 아니지만 발군의 스피드로
국 월드컵 본선에 실패했지. 서울 경기에서 내가 골도 기록했는
높은 득점력을 발휘했다. 1971년 전국축구선수권 우승 당시
데 너무 아쉬웠어.
민슬기 기자 / 사진 이희재 이윤빈 28 SPORTS KU
MONTHLY SPORTS MAGAZINE 29
지도자, 아쉬운 은퇴와 축구에 대한 끝없는 열정
다른 구단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FC서울’은 운영흐름이 좋아. 뭔가 사람을 끌어 당기는 매력이 있어. 그래서 오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 1996년 ‘울산현대’ 첫 우승했을 때 울산 시민들이 환호했 던 일도 아주 기억에 남아. 두 팀 다 나름의 매력이 있는좋은팀들이지.
고재욱은 고려대를 졸업하고 1974년 충의단(現 상무)에 입대했다. 국가대표를 거치며 탄탄대로의 선수생활을 해나가고 있던 시기였 다. 그러던 중에 왼쪽 무릎을 크게 다쳤다. 경기 중에 다친 무릎은 수 술을 하고 재활을 해도 좋아지지 않았다. 의료 기술도 발달하지 않 았던 때라 지금까지도 큰 상처를 무릎에 간직하고 있다. 너무나 순
“
인화(人和)만큼 중요한 것은 없어. 고려대 운동부 후배들도 ‘고려대’라는 이름을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것은
고재욱 감독은 프로통산 148승을 올리며 역대 4위에 올라있다. 2000
맞지만 더 이상 자만하면 안돼.
년 이후 프로축구를 떠난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기록이다. 이런 고재
그만큼 전국적으로 대학 스포츠가
욱 감독이 축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인화(人和)’이다. 선 수라면 당연히 실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인간적인 면을 가장 중요
평준화됐거든. 앞으로 인성과 실력을
았다. 의가사(依家事) 제대 이후에 축구를 하기 위해 다시 몸을 만들
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더욱 혹독하게 대할 수 밖에 없었다.
모두 갖춰서 훌륭한 선수들이
었지만 예전의 기량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국민은행에서 한 시
나는 선수들이 운동장에서나 실제 생활에서나 인화(人和)를 가장 중
되어주길 바랄 뿐이야.
즌을 더 뛴 뒤 원하지 않는 은퇴를 선택해야만 했다.
요하게 생각해. 게으른 것을 싫어하지. 선수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조롭고 탄탄했던 선수생활이었기에 부상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
”
도 두 번은 눈감아 주지만 세 번째에는 절대 용서를 하지 않아. 나한테 무릎을 크게 다치고 마음 고생이 심했어. 선수 생활을 하고 싶어서 몸을 다시 만들었는데 워낙 큰 부상이었던지 예전 같은 기량이 돌아
찍히면 헤어나오기 힘들다고 선수들이 열심히 했었어. 요즘에도 정해 성, 김종부 등 옛날 제자들을 만나면 아직도 내가 무섭다고 해(웃음).
오지 않았고. 운동장에서도 또 다칠까 두려움이 앞섰지. 그 때의 심
이 울었지. 그때까지 선수 생활을 너무 화려하게 했기 때문에 은퇴한
대학축구, 축구 인생의 마지막 황혼기
다는 것이 더욱 슬펐던 것 같아.
고재욱 감독은 2001년부터 지금까지 관동대 축구부의 감독을 맡고
정은 이루 말할 수 없어. 나름대로 높은 위치까지 올라갔는데. 젊은 나이에, 선수 생활을 한창 할 나이에 일찍 은퇴한다는 것 때문에 많
있다. 한국대학축구연맹의 부회장이라는 직함도 갖고 있다. 유병진 명 고재욱은 은퇴 후 2~3년 동안 많은 방황을 했다. 그 시기에 고재욱
지대 총장과의 인연과 의리로 프로축구를 떠나 대학축구 발전에 힘
을 다시 일으켜 준 것은 가족의 힘이었다. 곁에서 지켜준 아내 덕분에
쓰고 있는 것이다. 고재욱 감독이 부임할 당시 관동대 축구부는 해체
시련을 이기고 다시 축구의 길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고재욱은 명문의
된 상태였는데 그는 직접 신문에 선수 모집 광고를 내고, 선수를 선발
빛을 잃어가던 중동고 축구부 감독에 부임하면서 지도자의 첫발을
하고, 교내에 경기장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는 대학축구
내디뎠다. 6~7년째 전국 4강에 들지 못하던 중동고는 고재욱 감독
연맹 부회장으로서 대학축구의 발전을 위해 지금도 계속 고민하고 있
부임 이후 전국 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 의 지도력은 K-LEAGUE에서도 빛났다. 럭키금성 황소(現 FC서울)에 서 10년간 코치와 감독으로 재임하면서 1990년 서울 연고지팀 첫 우 승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지금까지도 ‘FC서울’을 가장 오랫동안 맡은
다.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만들기 위해 U-LEAGUE의 시스템을 구축했 고 더 많은 재학생들이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홈&어웨이 방식을 채택하는데 힘을 썼다.
감독으로 남아있다. 1995년 울산현대로 옮기고 나서 만들어낸 울산
U-LEAGUE는 1년 내내 경기가 있기 때문에 선수들이 부상을 당할
현대의 정규리그 첫 우승은 김호 감독과 차범근 감독도 해내지 못한
위험이 크긴 해. 하지만 이건 시작 단계에서 겪어야 할 성장통 같은
구단 창단 이후 최고의 경사였다.
것이야. 선수들이 꾸준히 시합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더 높은 경기력
1951년 12월 20일생
을 끌어 올릴 수 있을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재학생들도 많은 응원
충렬초 - 통영중 - 중동고 - 고려대
을 해줘야 해. 우리가 홈&어웨이로 경기를 치르는 것도 재학생들에
1971 - 1975
게 경기를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거든. 아직 교내에 경기장이 없는 몇 몇의 학교가 있는데 이 점을 빨리 보완해서 모두가 더 즐길 수 있는 U-LEAGUE를 만들고 싶어. 자신의 제자들이 훌륭한 지도자가 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의 축구 인생은 훌륭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앞으로 경기장에서 고재 욱 감독을 얼마나 더 볼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는 어디에 있든 축구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30 SPORTS KU
고재욱
전설과 전설의 이야기 국가대표
1975 - 1976
국민은행
1979 - 1983
중동고 감독
1984 - 1987
럭키금성 황소 코치
1988
럭키금성 황소 감독대행
1989 - 1993
럭키금성 황소 감독
1995 - 2000
울산 현대 호랑이 감독
2001 ~
관동대 감독,
한국대학축구연맹 부회장
1 축구역사상 최고의 플레이어로 꼽히는 ‘축구황제’ 펠레가
우리나라 팀과 경기를 가졌던 적이 있다. 1972년 펠레의 소속팀 산토 스와 한국 국가대표팀의 경기가 동대문 운동장에서 벌어졌다. 1970 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펠레의 인기는 전 세계적으로 절정에 달해 있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펠레의 경기를 보기 위해 동대문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동대문 운동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경기장 주변은 혼잡스러웠다.
축구협회에서 산토스와 경기에서 한 골을 넣을 때마다 50만원 씩 주겠다고 한거야. 결과적으로 우리는 2-3으로 졌지만 100만 원이라는 큰 돈을 받았지(웃음).
2 2002년, 한·일 월드컵 붐을 조성하기 위해 MBC에서는
「비바 꼬레아 2002 월드컵」을 제작했다. 국내 스포츠방송 사상 처 음으로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접목한 프로그램이다. ‘도전은 시 작되다’, ‘상처뿐인 영광’, ‘드디어 세계무대로’, ‘월드컵 코리아에서’ 등 4편으로 구성된 이 영상은 한국 축구의 월드컵 도전기를 사실 적이면서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2부 ‘상처뿐인 영광’ 편에서
코너킥 같은 상황에서는 위치 선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선
는 월드컵 처녀 출전 후 32년간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했던 굴곡의
수들끼리 등을 맞대면서 자리를 잡으려는 훈련을 많이 해. 그 때 펠
역사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바로 고재욱 감독이 선수생활을 했던
레랑 자리 싸움을 하기 위해서 등을 지는데 정말 바위 같더군. 꿈쩍
그 시기의 일들이다. 이회택, 박이천 등 또 다른 전설들이 나오는
도 안 하더라니까. 당시에 경기를 뛰어도 특별한 수당은 없었는데
이 프로그램을 추천한다.
MONTHLY SPORTS MAGAZINE 31
SPECIAL REPORT
다시 꿈을 향해 쏘다 클레이 사격 이진우
국내대학 최초로 시행된 ‘학생선수 선발제도’란 체육특기자 로 입학하지 않더라도 운동부 선수가 될 수 있는 제도이다. 엘리트 체육이 가진 문제점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 하려는 움직임에서 시작되었고 까다로운 지원자격 속에 드디어 첫 선발자가 나왔다.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종목인 ‘클레이 사격’의 이진우(사체 09) 선수이다. 지난 학기까지 일반학생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생활을 하였지만, 지금은 체육특기생의 신분으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오전에 수업을 몰아서 듣고 오후에는 훈련을 하는 등 다시 꿈을 이어나갈 수 있게 배려해준 학교에 감사하다는 이진우 선수를 SPORTS KU에서 만나보았다.
박상조 기자 / 사진 김세호 성현준
32 SPORTS KU
MONTHLY SPORTS MAGAZINE 33
생각처럼 쉽지 않았던 학업과 운동의 병행
특기생으로 전환, 두 마리 토끼를 잡다
아마추어선수의 표본이고 싶다
스포츠 외교관이 되는 것이 목표
의욕은 앞섰지만 주중에 일반학생들처럼 학교
사격을 잠시 포기하겠다고 생각했던 그에게
지금 대학스포츠는 아마추어도, 프로도 아닌
학업에 대한 열정이 상당한 그에게 앞으로
생활을 하고 주말에만 운동을 하면서 성적을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반학생에서
위치에 서있다. 대학생 선수들이 프로에 모두
목표에 대해 묻자 “스포츠와 영어를 접목해서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국체대에 다니
특기생으로 전환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
진출할 수 잇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학업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았어요. 그래
는 친구들은 거의 매일 사격만 해요. 연습량을
다. 어려운 자격조건이지만 지난해 전국대회
중요하다. 하지만 이 둘을 병행하는 선수를
서 생각한 목표가 스포츠 외교관이 되는 것
2위 입상의 경력이 그를 특기생으로 전환
찾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외국의 경우 학생들
입니다. IOC 선수위원인 문대성 전 국가대표
의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운동을 계속 할 수
태권도 선수가 제 롤모델 입니다.”라고 당차게
없는데 선수들은 이 제도에 대해 불만보다는
이야기 했다. 5년간의 영국생활로영어에 상당
만족감을 나타내고 있다. 하버드대는 아마
한 강점을 지니고 있었고 아직도 꾸준히 영어
추어리즘이 철저하고 공부를 하면서 운동을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
따라갈 수가 없죠. 저는 주말에 몰아서 운동을 해야 했기 때문에 더욱 힘든 상황이었어요.” 그러나 목표한 바가 있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 것이다.
노력했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작년에 참가 한 전국대회에서는 2위에 입상하는 기염을
은빛 총성을 듣고 총을 잡다
선택의 순간, 고려대에 입학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관심 있게 봤던
대한민국 고3학생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사람이라면 사격의 진종오 선수를 기억 할
이진우 역시 대학 선택에 고민을 하게 되었다.
토해냈다. 그러자 학업과 운동 모두 다 이룰
생각했어요. 저 같은 상황에 있는 학생들이
하지만 역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만 44명이
면서 국가대표가 되어 학교를 빛내고 국제
수 있겠다는 희망과 자신감도 생기기 시작했
많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대학스포츠에 대한
나 된다. 여기에 대해 그는 “학생선수 선발
대회 출전으로 인맥을 쌓아 스포츠 외교 분야
다. 학교생활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냐는 질문
좋은 대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
제도의 목적이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만드는
에서 일을 하는 것이 장기적인 계획이라고 한
엔 “1학년 때에는 교양위주의 수업이라 학교
습니다.”
것이고, 첫 선발자이기 때문에 책임감을 가지
다. 그래서 사격을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자
고 있습니다. 학업도 충실히 하고 앞으로 국가
운명처럼 평생 같이 가야 할 동반자적 관계로
그리고 그는 규칙적인 수업시간표와 오후
대표가 되어 세계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설명하였다. 스포츠교류를 통해 국가 간의 관
훈련으로 좋은 성적 또한 낼 수 있을 것이라며
것이 사격선수로서 목표가 될 수도 있지만,
계개선을 이룩한 대표적인 사례인 미국과
잔뜩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고등학교 때보다
대학생 아마추어선수로서 표본이고 싶기
중국의 ‘핑퐁외교’를 이야기하면서 그의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와 운동을 병행 할 수
때문입니다.”라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앞으로
스포츠 외교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사격을 계속 이어나갈
대학스포츠가 학생선수제도처럼 변해야 된다
있었다. 인터뷰 내내 자기주관과 목표의식이
수 있어서 좋은 부분 또한 있겠지만 다른 한
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범사례가 되도록
뚜렷함을 보면서 가까운 미래에 월드컵과
편으로 학업적인 부분에서 얻을 수 있는 부분
열심히 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올림픽 유치를 위해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수업을 따라가면서 운동하기엔 큰 무리는 없 었다.”라고 답했다. 문제는 올해 2학년이 되어
것이다. 단 한발의 실수로 은메달에 그쳐야
그러나 같이 운동하던 친구들과는 다른 고민
전공과목을 수강하면서 생기기 시작했다.
했던 아쉬웠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이었다. ‘고려대, 사격, 학업’ 이 세가지 모두를
1학년 때 교양위주의 수업과 운동은 어느
중학교 2학년이었던 이진우는 TV를 통해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기
정도 병행이 가능했지만 전공수업을 듣게
지켜보면서 순간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때문이다. 고려대는 부모님의 학교였다. 교육
되면서 운동을 못하는 일이 자주 생기게 되었
학과 85학번 동기였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다고 한다. 여러 가지 과제들과 발표준비 등,
“다른 스포츠와 다르게 정신적인 부분이
영향으로 고대문화를 어린 시절부터 느끼고
학교수업만 따라가기에도 정신이 없었다.
상당히 강해야하는 운동으로 보였어요. 한발
자랐다. 특히 아버지는 고대신문 편집장까지
이런 여건 속에서 무언가 하나를 포기해야
의 실수로 메달의 색이 바뀌는 것을 보고
지내고 학교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되는 상황에 이르렀고 심각하게 고민을 하게
자기와의 싸움이 중요한 운동이라 생각했죠.
정기전이 있는 날은 항상 부모님과 함께 응원
되었다. 그리고 그는 “결국 꿈을 위해 학업을
그래서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을 하면서 보았고, 어린 시절이었지만 고대만 의 문화가 가슴 깊이 남아 꼭 가야만 하는
“처음에 이야기를 듣고 정말 좋은 제도라고
선택해야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이 운동을 평생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미래에 하고자
있는 이진우 선수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은 더 안 좋아 진 것이 아니냐는 질문엔 “사실 일반학생 때 동기들과 듣던 수업 분위기랑 많 이 다른 것은 사실이에요. 특기생들만 듣는 수 업이다 보니 수업의 질 또한 조금 낮은 부분이 사실이구요. 그러나 그런 부분들은 제가 하기
처음에는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총기를
학교였다. 그러나 사격으로는 고려대에 특기
다뤄야한다는 위험한 부분도 있었고 계속
생으로 입학 할 수가 없었다. 우리학교의 체육
학업을 열심히 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고
특기자 전형은 대부분 5개부 종목에 치중되어
한다. 그는 학업과 운동, 둘 다 잘할 자신이
있어 개인종목으로 입학하는 건 쉽지 않은 일
그리고 특기생의 수업커리큘럼에 대해 앞으로
있었고 성적이 떨어지면 그만두겠다는 약속
이였다. 사격을 계속 하기 위해서는 특기생으
변화 됐으면 하는 점도 이야기 하였다. 5개부
으로 부모님을 계속 설득했다. 결국 자식
로 입학을 해야 하는데 가능한 대학들은 한국
운동부를 제외한 개인종목 선수들은
이기는 부모 없다는 옛말처럼 운동을 시작
체대나 건국대 정도였다. 그러나 꿈을 이루기
시간이 더 있고 훈련계획도 개인이 조정 가능
하게 됐고 권총사격에서 클레이사격으로 전향
위해 학업 또한 중요한 가치로 생각했기 때문
하기 때문에 지금의 짜여 진 시간표에서 교양
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전국대회에 입상
에 특기생이 아닌 일반학생으로 고려대의
과목이나 더 듣고 싶은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하는 등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문을 두드렸다. 고등학교 때부터 힘들었지만
학생선수로 활약할 수 있도록 이번 학기에 신설한 제도다. 조건은
하는 방법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3학년 때에는 중,고연맹회장기 전국학생사격
학업과 운동을 병행해 왔고 고려대만은 절대
‘국가대표 상비군 이상’ 이고 체육위원회 위원장과 상임위원, 교무처장,
고 한다.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키우는 것이
대회에서 한국주니어신기록을 세울 정도로
포기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수능을 통한 일반학
체육교육과 학과장 등 9명으로 구성된 ‘일반 학생선수 자격심사위원회’
촉망받는 선수가 되었다.
생으로의 입학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
목적이라면 공부를 할 수 있는 방법 또한 마련
가 지원자들을 상대로 서류 및 면접평가를 통해 합격자를 선발하며,
해 줘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교양 수업을
총장이 최종 승인한다. ‘국가대표 상비군 이상’이라는 지원 자격조건으로
통해 일반학생들과 교류도 해보고 싶고 의욕
인해 개인종목에서 선발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야구나 축구,
이 있는 학생들은 학업 또한 열심히 할 수 있
농구 등 단체종목에서는 선발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게 조금 더 커리큘럼 부분에 신경을 써주셨으
우리학교는 더 많은 일반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향후 제도를
면 하는 생각이다.
수정하고 보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격연맹에서 특기생으로 입학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학교 대표선수로 등록할 수 있도록 배려 해주어 대회출전이 가능하다는 점도 고려대를 선택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훈련은 틈나는 시간 과 주말에 몰아서 한다는 생각으로 사격 역시
하는 일을 이루기 위해선 사격을 잠시 접어둘 생각을 했습니다.”라고 이야기 했다.
나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열심히 공부하 고 제가 더 능동적으로 해야죠.”라고 답했다.
학생선수 선발제도란? 우리학교 체육위원회가 2010학년도 2학기부터 일반 학부생들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어나가기로 결심했다. 34 SPORTS KU
MONTHLY SPORTS MAGAZINE 35
본 협의회에서는 공부하는 운동부 문화의 정착, 글로벌 체육
SPORTS IN
인재 육성, 선진국형 대학스포츠 시스템 구축, 스포츠 건전 문화의 창조,
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 엄현희 사무국장 인터뷰
대학 스포츠에 대한 올바른 인식 제고를 통해 ‘대학 스포츠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통해 정신적, 육체적, 사회적으로 건전한 리더십을 함양한 인재를 발굴해 국가 전체의 이미지 를 높이는 데 기여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현재 본 협의회에서 하고 있는 일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뉜다. 대학 스포츠의 선진화 방안을 위한 각종 세미나 및 연구를 진행하는 한편, 대학 스포츠의 실제적인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 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오는 12월 1일에 열릴 예정인 대학 스포츠
Q. 대학스포츠를 다루는 웹진을 기획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떻게 진행할 예정인가. A. 올해 구축되는 홈페이지를 바탕으로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학교별로 대학생 명예기자를 선발해 운영 할 계획이다. 각 학교가 가지고 있는 고유성을 존중하는 한편, 공통적인 컨텐츠
지도자 워크숍에는 실제로 일선에서 선수들을 지도하는 감독, 코치등을
로 묶였을 때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초청해 ‘대학 스포츠의 발전 방향’을 주제로 토론을 진행한다고 한다.
있도록 확대발전 시키고 싶다.
각 대학의 체육행정가들을 포함해 전국 67개 대학 260여명의 지도자가 참석하게 되는 꽤 큰 규모의 워크숍이다. 이 워크숍은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참가자들의 질의응답을 받아 지속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1년에 2회 이상 진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전무하다시피 한 대학스포츠의 데이터 베이스 구축에도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안으로 홈페이지를 완성해 내년부터는
대학 스포츠의 성공적인 발전을 꿈꾼다.
한국 대학 스포츠 총장 협의회
창립 과정은 지난해 11월에 합의된 대학 농구리그의 도입
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농구대회를 홈&어웨이 방식의 리그제로 도입함으로써 선수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재학생의 경기 관람여건을
으로는 스포츠 발전에 필요한 정책을 정부에 건의하고 우수 한 선수를 양성해 대한민국 스포츠의 선진화를 추구하는 것 을 목적으로 한다.
이혜진 민슬기 기자 / 사진 민슬기 사진제공 : 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
Q. 대학스포츠 발전을 위해 초,중,고등학교의 체육활동과의 연계 방안은 없는가.
하에 웹진을 만들어 대학스포츠의 애호가와 연구자들에게 보다 많은
A. 초중고등학교 없이 대학은 존재할 수 없다. 반드시 연계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초중고
정보를 제공한다고 한다. 이렇게 장기적으로 구축된 데이터베이스와
학생들이 대학을 종착역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대학 스포츠 정상화가 먼저 이뤄지면
정보를 오프라인상으로도 축적해 인쇄 형태의 매거진을 내는 것도 구상
초중고 스포츠의 정상화도 자연스레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올해 5월 4일
하고 있는 상태다. 뿐만 아니라 현재 대한축구협회와 대한체육회에서
교과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17년에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학생들부터 체육 최저
진행하고 있는 인터넷 중계 시스템도 갖출 예정이고 학생 선수를 위한
학력제를 도입한다고 한다. 이러한 교과부의 시각을 본 협의회에서 존중하고 있고,
온라인 교육 시스템도 마련할 계획이다.
교과부와 협의회의 MOU가 체결되어 앞으로 지속적으로 연계되었으면 좋겠다. Q. SPORTS KU와의 만남을 먼저 제안했다. 우리의 어떤 부분을 보고 이번 만남을
A. 간단한 얘기에서 출발했다. 대한체육회 등록 선수는 2만 4천명 정도 되는데 그 중
이 구성되었다. 지난 2월 19일에는 고려대, 명지대, 연세대, 중앙대 등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발전 방안은 내년부터
대학 선수가 만 4천명 정도 된다. 대학 선수가 엘리트 선수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시작할 계획이다. 이를 위한 국내 세미나를 진행하는 한편, 본 협의회에
대학스포츠를 다루는 매체가 하나도 없었다. 대학 스포츠 기록에 대한 통계 자료가 없는
서 모델로 삼고 있는 NCAA(전미 대학스포츠협회)의 관계자를 초청해
것도 마찬가지다. 대학스포츠가 프로에 가려져 기존 매체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데, 뉴스
국제 학술대회도 진행한다고 한다.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의 통합적인
의 수요층들은 신선한 것을 원한다. 올 해 서울대 축구부가 U리그에서 처음으로 1승을
발전을 위해 본 협의회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은 ‘리그제’라고 한다.
하지 않았나. 이렇게 재미있는 뉴스거리를 다루지 못한 다는 것이 마음 아팠다. 그 와중에
토너먼트보다 경기 수가 많고 지속적인 경기 진행이 가능해 선수들의
SPORTS KU를 보게 되었고 아마추어리즘을 알리고 있다는 자체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경기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장점 이외에도 리그가 갖고 있는 ‘홈 앤드
대학 스포츠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무척 기쁘다.
소위원회’를 만들었으며 준비위원회를 중심으로 3개월간의 세미나를
현재 연세대 김한중 총장을 회장으로 하고 있으며 부회장에
본 협의회에서는 엘리트 체육 뿐만 아니라 일반 학생들이
는 유명진(명지대), 박범훈(중앙대), 김종량(한양대) 총장, 감사에는 김재
어웨이’ 방식에서 해답을 찾았다. 지금은 선수들의 부모, 친구만이 경기
홍(서라벌대), 김종욱(한체대) 총장의 이름이 올라 있다. 이기수(고려대),
장을 찾지만 리그제가 계속되고 ‘홈 구장’의 개념이 자리를 잡는다면 보다
김진규(건국대) 총장 등 11개 대학 총장이 이사를 맡고 있으며 위성식
지역 밀착적인 발전이 가능하다는 전망을 갖고 있다.
(고려대), 조광민(연세대) 체육위원장 등 5개 대학 체육위원장과 모창배 (대학농구연맹), 변석화(대학축구연맹) 회장 등 총 7명이 집행위원회로 있다. 현재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에는 48개 대학이 가입되어 있는 상태이며 협의회에 가입할 수 있는 조건(단체 종목을 보유한 전국의 2~4년제 대학)을 갖춘 대학이 전국에 110여 개로 추정되어 있는 만큼 앞으로 가입하지 않은 대학의 활발한 참여가 예상된다.
36 SPORTS KU
위한 예산을 확보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고 싶다
참여할 수 있는 대학 스포츠의 생활화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허가를 받고 7월 26일 법인등기를 완료했다.
고 대학스포츠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한다. 궁극적
운영하게 된다. 이 때 많은 재정이 투입되는데, 이런 홍보활동을 통해 홈 경기 진행을
사항을 논의했고 올해 1월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 설립방안 연구팀
의단체이다. 학생선수들을 대학생 본연의 열정을 통해 정신
에서 대학 간 상호 협력을 통해 대학스포츠의 본질을 회복하
축으로 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축구, 농구리그 같은 경우 홈팀에서 홈 경기를
거쳐 6월 8일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7월 16일에 문화체육관광부의
로 육성하는 것이 본 협의회의 목적이다. 또한 스포츠 분야
에 대한 홍보를 해 볼 예정이다. 대학스포츠의 이미지 자체를 홍보하는 것을 하나의
이후 ‘대학스포츠 선진화 방안 연구 및 세미나 개최’를 통해 전반적인
발전과 진흥을 도모하기 위해 운동부가 있는 대학의 총장 협
적, 육체적, 사회적인 전인격적 리더십을 갖춘 스포츠 인재
A.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가칭 ‘대학스포츠통합마케팅발전방안’ 구상을 해서 대학스포츠
웹진을 만들 계획이다. 대학스포츠에 대한 연재물이 필요하다는 판단
높인 11개 대학의 합의가 본 협의회의 밑바탕이 되었다.
체육위원장들로 구성된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 창립 발기 준비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KUSF)는 대학스포츠의 건전한
Q. 홍보나 마케팅 측면에서 준비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가.
제안하게 되었는가.
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 심볼 소개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의
이처럼 본 협의회에서는 최대한 현실에 맞는 수단과 방법을
통해 대학 스포츠 본질 회복을 실현하고자 한다. 그동안 대학 스포츠 활성화를 위한 수 많은 연구들과 노력이 있었지만, 발전 방안의 구체적인 실현을 위해 실제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본 협의회가 최초에 가깝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본 협의회의 노력을 통해 프로스포츠 출범 이후
영문약칭인 KUSF중 핵심어인 US를 활용한 심볼이다. 대학 교육의 밑바탕 위에 정신적, 육체적, 사회적인 가치가 조화된 젊은 스포츠 인재의 열정이 뜨겁게 타올라 미래를 밝히는 전향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을 형상화했다.
몰락에 가까웠던 대학 스포츠가 다시금 부활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MONTHLY SPORTS MAGAZINE 37
HEALTH & LIFE
L E E F U O Y CAN ? T A E B T R A E H MY L 10K 체험기 U O E S N U R E EW 여대생의 2010 NIK
‘여자들이 이걸 어떻게 해?’ 라고 스스로 위안 삼으며 418 마라톤을 포기해본 경험이 있는가?, 20대의 넘치는 패기와 에너지를 중도와 과도에 묶어두고 있지는 않은가? 올해가 가기 전에 무언가를 이뤄낸 자신을 만나고 싶다면, 나약함이라는 틀 안에 속박해온 ‘몸뚱이’에 과감히 석방을 선고하고 싶다면, 여러분에게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 싶다. 바로 마라톤! ‘뛰어나보고 얘기하는 건가..’ 하고 의심하는 수백만의 눈초리에 당당히 맞서, 지난 10월 24일 나이키 휴먼레이스(We Run Seoul 10K)를 직접 뛰어보았다. 지금, 그 생생한 체험기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김소연 기자 / 사진 성현준
38 SPORTS KU
MONTHLY SPORTS MAGAZINE 39
Decision
Let’s RUN
학점 때문에 눈물을 머금을지라도, 먹다가 죽는 한이 있어도, MT부터 술자리까지 학교 행사는 뭐든지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새내기시절, 418마라톤도 결코 놓칠 수 없는
1~4km
행사 중 하나였다. 중간고사의 압박이 있었지만, 끝내고 밤새 공부하면 충분하다는 몹쓸
땅! 몸 상태에 맞춰 호흡, 보폭, 속도를 정하고, 레이스 끝까지 유지할 페이스를 조절하는
자신감은 신입생이기에 가능한 용기였을 것이다. 그 때, 악을 써가며 완주를 해낸 성취감이
중요한 구간이다. 봇물 터지듯 뛰어나가는 러너들 속에서 달리다 보면, 1-2km는 거뜬히
매년 2-3번 마라톤을 참여해야만 하는 강인한 나를 만들어 냈고, 올해로 나이키 휴먼
달릴 수 있다. 4km쯤 뛰면 급수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입가심을 하거나 목을 축이는 정도가
레이스 3번째 질주를 시작하게 되었다.
적당하다. 용기 안의 물을 다 마셔버리면 몸 속에서 물이 출렁거려 속도를 내기 힘들어진다.
5~8km 벌써 반이나?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조금씩 호흡이 가빠지고, 힘이 부쳐온다.
Warm Up
1km가 왜 이렇게 먼지.. 그래도 이를 꽉 물고, 턱을 당기고 팔을 앞뒤로 힘차게 흔든다. 7km쯤 뛰었을 때, 고비가 찾아오게 되는데, 힘들다고 걷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다시 또 뛰기는 쉽지 않다. 이제 3km 밖에 남지 않았는가. 힘차게 달리는 다른 러너들을 보며, 내 자신을 다시 한번 채찍질해본다. 달리자.
Diet
9~10km
평소 음식은 매일 세끼 골고루 섭취하며 식단 조절
드디어 도착. 하늘이 노래지고 다리 힘이 풀릴지언정, 해냈다는 성취감은 이루
을 하고, 대회 당일 점심은 고구마 1개와 바나나로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스트레칭으로 긴장된 근육을 풀어
대체했다. 경기 직전에 음식물을 섭취하거나 과식하 면 위에 부담이 되고, 몸이 무거워져 달리기 힘들기
주고, 충분히 수분 보충을 해야 한다. 완주 후 칩을 반납하지 않으면 정확한 기록을 알 수 없으니 잊지 말 것.
때문이다. 이때 물도 함께 마시는데, 음식물이나 수 분이 체내에 흡수되는 시간을 고려하여 2-3시간 전 에 섭취했다.
Exercise
Festival
아무리 강철 체력이라도 훈련은 필수. 대회 한 달 전부
나이키에서는 매년 레이스 후 콘서트를 여는데, 올해는 45RPM과 힙합계의 살아있는
터 운동량과 운동 시간, 휴식시간까지 꼼꼼히 계획했다. 한 시간은 집 주변 학교 운동장에서 뛰기와 걷기를 각각 25분, 5분씩 반복하며 감각을 익히고, 헬스장에서 자전거를 타며 기초 체력을 길렀다. 런닝머신을 이용 하지 않은 이유는 기계의 힘을 빌려 달리기 때문. 달릴 때는 딱딱한 아스팔트보다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역사 DJ DOC가 무대를 장식했다. 2만원으로 공연도 즐기고, 쌓였던 스트레스도 풀 수 있으니 집으로 향하는 전철에 내 몸을 맡기기는 너무 아깝다. 리듬에 온몸을 맡기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 그저 즐길 뿐이다. Shake it, sha-shake it, Yo!
After Running 대망의 마라톤 마무리는 필시 맥주와 함께. 한껏 상기된 온몸에 퍼지는 시원한 맥주의 맛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하다. 거기에 시원한
흙 바닥이 좋다. 또한 트레이닝하며 자신의 호흡법을
강바람과 한강 야경이 장단을 맞추니 여기가 바로 지상낙원. 나는 오늘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습- 후우- 후우-’ 이렇게.
맥주의 신세계를 발견했다. 캬~
D-Day 출발하기 전 기록 측정을 위한 칩과 대회 일정을
40 SPORTS KU
Enjoy
Record
체크했다. 옷은 가벼우면서 통풍이 잘되고 편한
기록은 1시간 5분 29초.
복장이 좋고, 신발은 러닝화가 좋다. 만약 컨버스화
시간 이내에 들어오겠다던 다짐과는 달리, 기록 단축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를 선택했다면, 1시간 내내 발바닥을 헤집고 다니는
경기 후 집에 돌아와서 때 이른 동면모드로 돌입해야 했지만, 젊음이라는 이름으로
밑창과 동행해야 하는 고난의 레이스를 맛보게
내 청춘의 하루를 채웠다는 생각만으로도 스스로 대견스럽고 뿌듯하다. 앞으로 나의
될 것이다. 한 가지 빼놓지 말아야 할 사항은 바로
목표는 내 나이 스물다섯이 되기 전에 풀 코스를 뛰어보는 것과 외국에 나가 해외 마라톤을
스트레칭.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몸에 시동을
뛰어보는 것. 더 멋지게 펼쳐질 후일을 기약하며, 나는 달리고 또 달릴 것이다.
걸어준다. 이제 준비됐다.
마라톤. 대한민국의 젊은 대학생이라면 한번 도전해 볼만하지 않은가.
MONTHLY SPORTS MAGAZINE 41
흑과 백의 어지러운 배열이 복잡하기만 해
신의 한 수를 꿈꾼다
CLUB
고대바둑사랑
보이는 나무 판을 두고 들리지 않는 대화가 진행 중이다. 한 시간여의 깊은 정적을 깨고 승자는 입가에 옅은 웃음을 띤다. 하지만 이내 분위기는 정리되고 두 기사는 계속 해서 복기를 한다. 패자는 말한다. “아, 여기서는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바둑을 알지 못해 판세를 읽을 수는 없었 지만, 경기 내내 이어진 긴장감 만큼은 여느 스포츠 못지않았던 한 판을 고려대학교 바둑 동아리 ‘고대바둑사랑’ 에서 지켜봤다. 이영규 기자 / 사진 성현준
42 SPORTS KU
바둑? 어렵지 않아요
우리는 성적으로 말 한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신의 한 수
59학번 선배의 노익장
1967년 창설된 ‘기호회’의 뒤를 이어 올해로
고대바둑사랑은 매 학기 서울대, 연세대, 명지
조용한 실내에서 바둑판을 두고 마주앉아 상
고대바둑사랑에서는 두 달에 한 번씩 양재동
44년 째 고려대학교 바둑동아리의 맥을 이어
대 네 학교와 교류전을 갖고 일 년에 한 번 일
대방의 수를 내다보는 바둑에는 격렬한 신체
에 위치한 기원에서 고대바둑사랑의 전신인
온 ‘고대바둑사랑’은 현재 63명의 회원들로 구
본의 와세다 대학과 정기전을 갖는다. 실력은
활동 대신 두뇌 활동이 필요하다. 상대방과의
기호회 선배들과 함께 바둑을 두는 행사를
성된 고려대학교에서 바둑을 사랑하는 사람들
바둑학과에 속한 연구생들이 주를 이루는 명
심리전에서 승리하는 것이 곧 흑백 전쟁에서
갖는다. 모임에 나오시는 선배들 중에서는
의 모임이다. 바둑 동아리 취재를 위해 열심히
지대가 가장 앞서지만 나머지 세 학교는 비슷
승리하는 길이다. 2010년 5월부터 한국 기원
59학번이 가장 높은 학번의 선배라고 한다.
인터넷과 관련 서적을 뒤져 보았지만 오목만
하다고 한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바둑에 대한
의 대학 바둑 보급계획에 따라 우리학교로 파
선후배간의 끈끈한 정이 고려대학교의 자랑
알고, 바둑은 몰랐던 기자에게 생소한 바둑 용
인기가 줄어들면서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견되어서 부원들을 지도하고 있는 진동규
이라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높은 학번의 선배
어는 다소 어려웠다. 오랜만의 신입부원 같아
겪고 있지만 한 번 들어오게 되면 고대바둑사
(프로 5단) 사범은 바둑의 묘미를 이렇게
가 직접 후배들을 보러 오는 경우는 상당히
보였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기자에게 고대바
랑의 다양한 대외 활동에 재미를 느끼는 부원
표현했다. “우리는 바둑 두는 것을 수담(手談)
드문 일이다. 대부분의 선배들이 높은 기력을
둑사랑 회원들은 무한한 친절을 베풀며 어려
들이 많다고 한다. 바둑에 관한 것이라고는 인
이라고 하지요. 실제 대화를 하지 않아도 판세
자랑하지만 시합은 비슷한 급수의 상대와
운 바둑 이야기를 쉽게 풀어줬다. 기자처럼 바
기 만화 ‘고스트 바둑 왕’ 밖에 모르던 신입부
에 따라 상대방의 눈빛만 봐도 상대가 무슨
이루어진다. 할아버지뻘 되는 선배와 함께
둑을 두어 본 적이 없는 18급으로 바둑을 시작
원도 고학번 선배들의 집중 훈련 끝에 매 학기
말을 하는지 알 수 있답니다. 여기서 밀리게
바둑을 두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해서 현재 아마 2단 자격을 획득한 권순탁(보
있는 교류전과 바둑 연맹에서 주최하는 대회
되면 한 수를 놓치는데 이게 곧 패배로 직결
바둑의 매력을 한층 더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건행정 08) 동아리 부회장은 “한해 신입부원을
에 참여하면서 실력을 키워가고 있다. 교내 활
되는 일이 많아요. 다른 스포츠들처럼 바둑도
또한 좁은 바둑판에서 벗어나 사회경험이
모집 할 때 5~10명 정도의 신입부원들이 지
동에만 그치는 다른 동아리와는 차별화된 교
흔히 인생에 비유를 하는데 바둑 한 판에는
풍부한 선배님들에게 실제 인생 경험도
원하는데, 지원자들이 가장 망설이시는 부분
외 활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2007년부터
한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할 수
들을 수 있는 것도 고대바둑사랑의 장점이다.
이 기력에 대한 걱정이다. 바둑을 접해 본 적
시작되어 올해로 3회째(2009년은 신종 플루
있어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실수를 되돌릴 수
이 없는 일반인들에게 바둑은 머리를 많이 써
로 취소)를 맞이한 와세다 대학과의 교류전에
없는 것처럼 한 수를 소중하게 다루어야 하고,
야 하는 어려운 스포츠로 인식 되어있다. 이렇
서는 한일 양국의 대학생들이 승부를 떠나 바
위기가 찾아오더라도 슬기롭게 극복해 낸다면
기 때문에 초보자들은 동아리 방 문을 두드리
둑을 매개로 같이 교류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곧 기회는 다시 옵니다. 자신이 만족할 만한
기 망설이지만 점점 바둑의 묘미를 알게 되면
매우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수준에 오르기까지는 무한한 인내가 필요하지
어느 순간 자리에 누워서도 바둑판을 떠올리
만 궤도에 오르기만 하면 누구도 맛보지 못한
게 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하며
달콤함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복기 (復棋) 바둑은 상대방과 함께 호흡하며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임과 동시에 자신과의 싸움이다. 바둑알을 손에 쥐고 고심하는 만큼 스스로를 키울 수 있다.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경기가 끝난 후에도 복기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다. 현재보다 더 커 보고 싶은 자들이여 고대바둑사랑으로 오라.
바둑을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고 재미있는 스
고대바둑사랑에서는 언제나 초보 학우들의 도전을 환영합니다.
포츠’로 소개했다.
지원문의 회장 홍지미 010-5207-0524
MONTHLY SPORTS MAGAZINE 43
INSIDE KU
지난 10월 8일 우리학교 민주광장에는 시합용 매트가
그 뒤를 이어 소매 들어 업어치기로 한판을 따낸 정민철
이겼으면 합니다” 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남학우가 대다수
경문고 예체능 교사를 겸임하며 매주 목요일마다 유도부
“자타공영(自他共榮), 나와 다른 사람이 모두 함께
으랏차차 한판 승!
널찍하게 깔렸다. 이윽고 흰색과 푸른색의 도복을 갖춰
선수를 비롯해 총 세 명의 선수들이 한판 승의 쾌거를
인 동아리 내에서 겪는 어려움은 없는지 궁금했다. “지금은
를 지도하러 오는 이정원 코치는 승리를 자축하며 함박
정기 고·연 유도 시무대회
입은 선수들이 그 위에 일렬로 늘어섰다. 흔히 ‘유도 고·연
이뤘다.
교환학생으로 온 친구까지 합해 여 부원이 모두 둘인데, 올
웃음을 머금었다. “순수 아마추어의 자세로 들어온 다음
2010
전’이라고도 불리는 정기 고·연 유도 시무대회가 열린 것
경기내내 흥미롭게 지켜보았던 김창식 심판은 “아마추어
해 말 유코가 일본으로 가면 정말 저 혼자 홍일점이 돼요.
아주 기본적인 낙법부터 배우는 동아리입니다. 입부한
번영을 누린다는 말이에요.
이다. 신촌에서 안암까지 원정을 온 연세대 선수들은 유독
동아리 간의 대회인데도 사용되는 기술이 다양하고, 선수
제발 여학우가 늘었으면 좋겠어요.”
다음에야 처음부터 하나하나 다 배워나간 친구들인데
그리고 정력선용(精力善用). 바른 힘을 선한 곳에 쓴다는 뜻이지요.
비장한 표정이었다. 파스 냄새가 진동을 하는 우리학교
들의 자세와 힘도 상당히 좋아 놀랐습니다. 무엇보다
본부석에 앉아 경기를 찬찬히 관전하던 고려대 유도부
참 대단하지요. 대학 유도회 대회, 서울시 대학 동아리
깔끔한 한판 승이었다. 반론을 제기할 수 없을 만큼 깨끗했던 승부에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일제히 탄성을 올렸다. 우리학교의 영원한 라이벌 연세대와의 정기 유도 시무대회. 가을을 알리는 바람처럼 시원하고 통쾌한 승리였다. 꾸준한 훈련이 일궈낸 값진 성과였기에 더욱 의미가 컸다.
선수 측에서도 긴장의 기색이 역력했다. 시범 경기가
이렇게 두 학교가 정기적으로 대회를 개최해 적극적인
교우회장 김기동 씨(경영, 71)는 감회에 젖은 얼굴이었다.
대회 단체전에서도 늘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어요.
시작되자 좀처럼 쉽게 볼 수 없는 공개 유도 경기에 호기심
교류를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네요” 라며 소감을 밝혔다.
경기의 주최자이기에 앞서 우리학교 선수들의 선배로서
조직력도 훌륭하고요”라며 우리 선수들에 대한 자랑을
을 느낀 학우들이 점점 몰려들었다. 이어 양 학교에서 각각
여학우 선수도 눈에 띄었다. 도복 속에 흰 티셔츠까지
느끼는 바를 물었다. “몇 년 째 계속 되어오는 경기지.
늘어놓는 그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이 기본 정신들을 항상
7명의 선수를 뽑아 승부를 겨루는 메인 경기가 펼쳐졌다.
단정히 받쳐입은 신사랑 선수(노문 08)는 시범 경기까지
이기고 지는 승부보다도 함께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 실력
이번 경기의 수훈 선수를 뽑아보라는 질문에는 “모든 선수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유도의
결과는 4:3. 우리학교의 승리였다.
참가했던 엄연한 유도부의 일원이다. 그녀는 “얼마 전
을 겨루어 본다는 친선 교류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고.
가 다 잘해 주었지만, 꼭 한 명만 꼽자면 우리 주장 권순정
진짜 핵심이 아닐까 합니다.”
한양대와의 교류 시합에서 남자 선수를 이겼어요. 기분도
특히 연대 유도부 선수들은 원래 운동을 하던 사체과 친구
(기공 06)을 칭찬하고 싶네요” 라고 답했다.
이승하 기자 / 사진 김세호
(사회 06)는 허벅다리로 절반, 안뒷축 되치기로 절반을
좋았고 그 덕에 기대도 많이 했는데, 긴장해서인지 정작
들인 반면, 우리 후배들은 순수 아마추어 동아리거든. 그런
현재 대학원에 재학 중인 박종화 씨(법학 91)는
성공시켜 한판을 따냈다. 첫 승으로 기선을 제압한 셈이다.
오늘은 좋은 성과를 보이지 못했네요. 다음에는 꼭
와중에 이겼다는 게 선배 입장에선 참 기특하고 또 기쁘지.”
마지막으로 유도의 정신 두 가지를 살짝 귀띔해 주었다.
44 SPORTS KU
메인 경기의 첫 번째 시합에서 승리를 거둔 백종운 선수
이기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MONTHLY SPORTS MAGAZINE 45
CLASS ROOM
무병장수,
양생법(養生法) [명사]병에 걸리지 않도록 건강관리를 잘하여 오래 살기를 꾀하는 방법
꿈이 아니다
체조가 끝난 후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됐다.
수업을 진행하시는 강대옥 교수(서울대 전자공학
학우(법학과 06)는 “고시공부를 하며 장시간 책상에
64학번)는 “오늘부터 3주간 평형공(平衡功) 수업을
앉아있다 보니 근육통도 생겼고 스트레스도 많이
진행할 예정이라 나무의 기를 받기 위해 밖으로
받았었다. 그런데 양생법 수업을 들으며 정신을
나왔다”고 말했다. 이날 진행된 평형공은 나무로부
집중할 수 있었고 수업 전후에 하는 스트레칭(도인
터 기를 받는 방법을 수련하는 것으로 자연의 기를
체조를 지칭)을 통해 근육통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우리 몸으로 받아들이고 순환시켜 다시 내뱉는 과정을 익히는 방법이었다.
전통양생법 수업에서 배워본 선도(仙道)를 통한 건강 되찾기
손기석 기자 / 사진 민슬기
다리를 어깨넓이 정도로 벌린 후, 나무를 마주한 채
나무로부터 1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눈을 감고 주변의 기를 느끼는 것이 평형공 수련의 예비 단계였다. 이 과정에서 다리를 떼면 우리 몸과 나무 주변을 흐르는 기가 흐트러지기 때문에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진시황처럼 불로
장생(不老長生)을 꿈꿨다. 속세의 부귀영화를 영원토록 누리고자 하는 그들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과학기술의 발달로 기대수명이 100세를 바라보고있는 지금도 불로장생은 여전히 전설에나 나오는 허무맹랑 한 말일 뿐이다. 복잡하고 혼란한 현대 사회에서 불로 장생은 아닐지라도 무병장수(無病長壽) 한다면 이 역시 충분히 값어치 있는 것이 아닐까? 무병장수를 위한
발을 떼지 말고 자세를 항상 바르게 하는 것이 중요 하다고 설명하셨다. 이후 미간 바로 위에 있는 마음 의 눈으로 나무를 바라보며 주위를 기를 느끼며 몸속의 기를 나무를 향해 뿜어내는 과정을 반복한 다. 이때 숨을 내쉬며 기를 뿜어내고, 뿜어낸 기가 앞에 선 나무를 타고 땅 속으로 흘러 들어가 발을 그리며 호흡을 진행한다.
평형공1식
기가 교감하는 것을 느낀 후 본격적인 평형공 수련 에 돌입했다. 평형공 1식은 팔과 다리를 어깨넓이
질병의 예방에 중점을 두고 연구한 것이 양생법이다.
만큼 벌린 채 손을 앞으로 뻗고, 서서히 기마자세를
인간의 생활을 자연 순환의 이치에 맞게, 자세를 바르게
취하며 기를 내뿜고, 일어서며 나무에 흐르는 기를
교정하고, 마음을 바르게 가다듬고, 올바른 방법으로
몸속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호흡하며, 자연 속 정기를 흡수하는 것이 건강법이며
보기엔 쉬워보였지만 허벅지엔 잔뜩 힘이 들어갔다.
양생법이다. 교내에는 이런 양생법 수업을 개설하여
천천히 주저앉았다가 일어선다는 게 말처럼 쉽지
학생들에게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건강을 유지할 수
가 않았다. 그러면서 또 호흡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있는 길을 알려주고 있다. SPORTS KU는 전통양생법
니... 교수는 “바른 자세로 이 수련을 반복하면 계단
수업을 참관하며 학생들에게 필요한 생활 속 양생법을
을 300번 이상 오르내린 것과 같은 운동량이 된다”
배워왔다.
고 말했다.
생활 속 양생법 자연환기법(自然換氣法) 일상생활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양생법을 소개한다. 자연환기법은 걸어가며 자연의 기를 느끼는 방법으로 세 발짝을 걸으며 숨을 내쉬고, 다시 세 발짝을 걸으며 숨을 들이쉰다. 잡념 없이 호흡에 유의하며 걷는다. 호흡은 폐호흡이 아닌 모공호흡을 실시한다. 온몸을 통해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는 기분을 느낀다. 처음엔 3걸음씩 호(숨을 내쉼), 흡(숨을 들이쉼) 과정을 반복하다가 이 과정이 익숙해 지면 6걸음, 12걸음, 24걸음으로 걸음 수를 차츰 늘린다.
5분간 호흡을 가다듬으며 나무와 내 몸의
질병의 치료에 중점을 두고 연구한 것이 한의학이라면
갑작스런 한파에 기온이 뚝 떨어졌던 지난 10월
학생들과의 짧은 인터뷰 후에는 교수에게
수업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서울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대기업 임원으로 근무하다가 은퇴 후 금산학회를 통해 양생법을 익힌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등산을 하다 넘어져서 다친 몸을 기 수련을 통해 회복한 후, 본격적으로 양생법 연구를 시작한지는 이제 4년째 라고 말했다. “오늘 배운 평형공은 자연의 기를 몸에 저장해서 생기를 얻는 방법”이라며, “요즘
평형공3식-2
학생들이 취업이다 공부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양생법 수업을 통해 건강을 회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어느덧 2시간여가 지나 수업을 마칠 시간이
되었다. 학우들은 “일주일에 한번뿐인 짧은 수련이
허준의 동의보감과 중국의 의학서 황제내경을
평형공3식-1
통해 다시 몸속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머릿속으로
첫걸음이 바로 양생법이다.
맞은편에서 사범님과 함께 수련 중이던 이슬아
지만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체조를 하고 호흡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진다는 점이 보람차다”고 말했다. 평형공3식-3
한 번의 수업으로 양생법 수업 전반을 알긴 어려웠 지만 매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 이 스트레스를 풀기에 적합한 수업이라고 생각됐다.
평형공 수련 동작
수업을 마치고 체육관을 내려오며 수업시간에 배운 생활 속 양생법을 실천해보고자 마음먹었다. 팍팍 한 삶속에서 자연과 교감하는 시간을 갖고 잡념을
수련 중 주의사항 몸을 내리면서 숨을 내쉬고, 올라오면서 숨을 들이쉰다.
없애며 호흡을 가다듬는 것, 이것이 무병장수의 첫걸음이 아닐까.
평형공 1식을 24번의 호흡(한 주기가 됨)과
함께 마무리하고 평형공 2식에 들어간 학우들을 만
26일, 기자는 화정체육관을 찾았다. 체육관 오른편 잔디
나보았다. 눈을 감고 유난히 수련에 몰입하고 있던
밭에서는 전통양생법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10여명
한종선 학우(물리치료학과 07)는 “수강 신청을 하다
남짓한 학생들과 교수님, 그리고 흰 도복을 입은 사범이
가 흥미가 생겨서 신청하게 됐다. 한번쯤 들어보면
수업에 앞서 도인체조를 통해 몸을 풀고 있었다. 다소
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리치료학
쌀쌀했던 날씨였지만 체조를 위해 외투를 벗고 학생들
과의 특성상 학과 전공에서 배우는 내용이 양생법
옆에 나란히 섰다. 곧이어 교수와 사범의 구령소리에
수업내용과 상반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어
맞춰 체조를 시작했다. 만만하게만 봤던 체조 동작이
느 하나가 맞고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건강을
쉽지가 않았다. 중간고사를 치르며 굳어진 몸은 마음처
유지하는데 있어 다양한 관점이 존재할 수 있고, 그
럼 움직여지지 않았고 이마엔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혔
과정에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나가는 것이
다. 15분간의 체조를 마치자 온몸에서 열기가 올라왔다.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46 SPORTS KU
MONTHLY SPORTS MAGAZINE 47
LETTER
兄友弟恭 형우제공
이보다 더 우애로울 수 없다
To. 형에게.
To. 내 동생 민이에게
안녕 형!!! 살다 보니 내가 형에게 편지도 다 써보고, 정말
새삼스럽네. 평소에 운동하느라 펜도 잘 안 잡는 내가 편지를 쓰려고
지났구나. 한 살 터울로 어렸을 적부터 줄곧 나를 잘 따르던 네가 벌써
하지만 내가 이렇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형에게 직접 하지 못했던
서림초등학교에서 야구를 함께 시작해 지금 고려대학교에 같이 있기
펜을 잡으니 손이 다 떨려.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될 지도 모르겠고.
성인이 되고 지금은 대학교 3학년, 졸업까지는 1년이 남았구나. 광주
말들을 글로서 전달하고 싶어서야.
까지 넌 언제나 형과 함께였었지. 같은 초ㆍ중ㆍ고 에 심지어 같은 고려대
우리 초등학교 때부터 항상 같은 학교에서 야구를 해왔잖아.
심지어 같은 대학교까지 오게 되었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항상
야구를 할 때에 옆에서 형의 조언은 나에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 을 만큼 소중한 가치가 있었어. 특히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형이 나에
게 해 준 조언은 나에게 큰 힘이 되었고, 슬럼프를 극복 할 수 있는 유 일한 탈출구와 같았어. 형이 야구를 그만두고 군대 를 갔다 오는 동안 난 슬럼프로 인해 고민도 많이 했
었고, 반대로 잘 될 때는 이제 나 혼자서도 야구를 할 수 있다는 자립심이 생겨서 뿌듯하기도 했어. 형, 이제 나도 졸업까지는 1년 밖에 남지 않았는
데, 남은 1년을 어떻게 해야 성공적으로 마치고 훌 륭한 프로야구선수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곤 해. 형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를 SPORTS KU에서 받아보았다. 정리 송지현 / 사진 박인철 김원범
야무진 성격으로 남에게 지기 싫어하며 어렸을 적부터 항상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너잖아. 그러던 네가 대학교 와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비교적 작년에는 잘 하였지만 올해 들어 연이은 슬럼프로 인해 마음고생 하는 너를 보니 나 또한 마음이 편치는 않구나. 이제 너에게 아마추어 신분으로 야구를 할 수 있는 기간은 1년밖에 남지 않았구나. 이 마지막 1년이 네가 지금까지 해온 야구선수로서의 인생이 지속 될 수 있느냐, 아니냐가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돼. 어느 누구보다 네가 가장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란다. 프로팀에 지명을 받고 많은 계약금을 받는 것
형도 보았듯이 우리와 같은 중학교에
럽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형과 같이 야구를 했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었
던 것 같아. 항상 형에게 의지하며 야구를 하다가 지금은 나 혼자 야구 를 하게 되니 어색하기도 해. 아마도 앞으로 형과 야구를 같이 할 수 있
는 기회는 없겠지? 없더라도 내가 남은 대학생활 1년을 성공적으로 마
이 전부가 아닌, 설령 좋은 결과를 거두지 못하더라도 후회 없는 야구를 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너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어.
형도 프로야구선수의 꿈을 가지고 야구를 시작하여 야구 명문
고려대학교에 입학까지 하였지만, 정작 야구선수로서의 활동은 못하고 있기에 아쉬움이 많단다. 그러기에 형이 이루지 못한 꿈까지 안고 너의 꿈을 실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항상 형에게 타격자세에 대해 물어봤었지? 형 생각에도 너의 슬럼프의 원인은 무너진 타격자세 에 있다고 봐. 무너진 타격자세를 고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던 너를 진지하게 도와주지 못하고 간과해버려서 미안해. 앞으로는 형이 너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도와줄게. 그리고 형이 항상 지지하고 후원자로서의 역할을 다할테니, 너도 형을 믿고 의지하며 여러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어쩌면 2011년은 너의 인생에 있어
쳐 프로팀에 지명 받아 형의 몫까지 열심히 하도록 할게. 우리 가족을
가장 중요한 시기일 수도 있는데, 항상 너와 내가 단합한다면 어떠한
할게. 그리고 형도 항상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
한결같으면서 인격을 갖춘 모범적인 훌륭한 선수가 되길 바란다.
위해, 또 내 자신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으로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도록
일이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항상 초심을 잃지 않고 늘
면 좋겠어. 그럼 우리 서로 힘내도록 하자!
내 동생 민아. 넌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어. 파이팅 하는 거야!!!
From. 형을 사랑하는 동생 민이가. 48 SPORTS KU
스포츠를 시작하게 된 건 어쩌면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고 생각해.
리적으로 안정이 될 만한 여러 조언들 말이야.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니 동생으로서 형이 대견스
활동하다 현재 학생으로 재학중인 형 김경민씨가
어렸을 적부터 상당히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너에게 야구라는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1년간 야구에만 집중하고 노력하여 내년 여름에
존중해. 어렵게 내린 선택이기도 하고 또 매사에
야구부 김민(체교 08)선수와 우리학교 야구선수로
에 형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싶어. 타격자세나 심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서. 그래도 난 형의 선택을
친한 친구가 되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형과 동생,
가장 중요한 지금 이 시점에 여러 조언들을 해주고 싶구나.
부모님에 뒤지지 않고 남부럽지 않게 혼신을 다해 뒷바라지를 해주신
하는 생각이 들어. 어쩌면 우리도 성범이 형제처럼
때로는 선배와 후배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 누구보다
지만, 난 너의 형으로서, 야구를 함께 했던 선배로서 너의 야구인생에
는 위안이 되지 않아. 그러니 지금 이 중요한 시기
스컴에 나오는 걸 보면 ‘형도 야구를 계속 했었으면’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 시절까지 함께 야구를 하며
안다고 자부할 수 있어. 비록 난 여러 사정으로 인해 야구를 그만 두었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우리 형제 야구한다고 어느
서 야구를 했던 연세대 나성용ㆍ나성범 형제가 매
두 형제. 비록 지금은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학교까지, 그러기에 어느 누구보다 아니 부모님보다 더 너에 대해 잘
이 틈틈이 여러 조언들을 해주지만 그 정도의 말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꿈을 꾸었던
내 동생 민아, 우리가 서울에 온지 어느덧 7년 이라는 세월이
From. 든든한 지원자 형이 ^^*
MONTHLY SPORTS MAGAZINE 49
Let’s play CCP
학생선수, 제대로 놀아보자 체육멘토링 프로그램이란?
대세는 야구다! 일본에 가서 보고 온 것은 플레그 럭비였다. 운동 중간에
체육멘토링 프로그램은 학부생이 스스로 주제를 선정하여 연구를 할 수 있도록 고려대학교 교수학
체육멘토링, 첫발을 내딛다
피드백을 주기 쉽다는 것과 모두가 처음 접한다는 플레그
습개발원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CCP를
럭비의 장점을 생각해 처음 우리 프로그램의 종목으로 선정
통해 진행중이다. 체육멘토링이란 멘토인 스포츠
국내 최초! 지금껏 운동선수가 멘토가 된 사례는 없었다!!
되었다. 그러나 플레그 럭비는 럭비부 학생들의 고급 기술을
드디어 23일 우리학교 체육생활관에서 우리학교
선수들에게는 책임감 고취와 운동에 대한 긍정적
알려주기에 너무 쉽다는 단점과 과연 멘티 학생들이 럭비를
야구부 학생들이 처음으로 체육멘토가 됐다.
배우러 우리 프로그램에 참여할 것인가의 문제 때문에 다른
8주간 중학생들에게 티볼(T-Ball)을 가르치며
종목을 찾아보았다. 2학기 운동부 학생들의 대회 일정과
체육 멘토링을 할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자.
아이들이 매력적으로 느낄 만한 스포츠를 고려해 후보로
동반자 제공의 효과를 만들어 상호간의 긍정적
오른 축구와 야구. 축구는 2학기 운동부의 일정으로 인해
여가문화 확립을 위해 기획됐다.
최윤진 기자/ 사진 이희재
인식 부여의 효과를, Mentee인 청소년에게는 건전한 스포츠 활동을 통한 자존감 형성과 생활의
제외됐고 시즌이 거의 끝난 야구가 최종 선발 됐다. 최근 야구에 대한 인기가 높은 반면 청소년들이 야구를 접할 공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 선정이유에 덧붙여졌다. 야구부 선수들에게 멘토가 되어 달라고 부탁하는 과정은 어렵지 않았다. 지금은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신 양승호 감독 님이 우리 프로그램의 취지를 듣고 ‘그렇다면 주장과 이야기 해보라’며 시원스런 답을 주셨고, 차기 주장인 김상호(체교 08)선수도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난관이 발생했다. 바로 토요일에 프로그램이 진행된다는 것. 운동선수에게 주말은 평일 훈련의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황금 같은 시간이다. 그런 시간에 아이들을 가르치라니. 난색을 표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어려움을 들은 체육 멘토링 프로그램의 지도교수님은 야구부 학생들과
마지막 난관, 그리고 시작
식사를 함께하며 학생들을 설득했다. 이 프로그램을 실행 시키려는 우리의 간곡함을 하늘이 들어주셨는지 야구부 선수 12명이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미뤄질 수 없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학교에 공문을 보냈다. 며칠 후 세 학교에서 프로그램에 참가할 학생들 명단을 보내왔다. 총 39명이었다. 처음 우리가 예상한 야구부
D-Day는 16일. 하지만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학생 한 명당 멘티 학생 2명의 계획을 넘어서는 큰 숫자였다. 오리엔테이션 하루 전, 멘티가 될 학생들에게 연락을 했다.
처음 우리의 오리엔테이션 날짜는 16일이었다. 중간고사
연락이 되지 않는 아이들이 전체의 1/3이었다. 39명의
기간을 앞두고 있다는 부담감과 프로그램이 완벽하게 준비
학생이 다 온다는 보장이 없는 가운데 전체 학생의 1/3이
되지 않아 ‘할 수 있을까’란 걱정과 불안함이 더 커졌다. 점차
연락이 닿지 않는 다는 것은 문제였다. 우리에게 빨간 불이
날짜는 다가오는데 우리학교 근처의 3개 중학교에 공문을
켜졌고 같은 학교 아이들끼리 서로 연락을 하기를 바라며
보내 멘티가 될 아이들을 구했다. 행정적 처리상 외부에서
아무런 대책 없이 다음날을 맞이해야했다. 다행히도 오리엔
공문이 와야만 학생 섭외가 가능한 가운데 우리가 보낸 공문
테이션 당일 날 30명의 아이들이 와주었다. 이제 시작이다.
은 도착하지 않았다는 연락이 계속 왔다. 결국 오리엔테이션 의 예상일이었던 16일은 일주일 미뤄 질 수밖에 없었다.
50 SPORTS KU
<다음호에 계속 됩니다>
MONTHLY SPORTS MAGAZINE 51
MTW
고연전에 제안한다 제 3부, 우리 밖의 고연전 이혜진 기자 / 사진 권일운
9월호와 10월호를 통해 고연전이 우리에게, 그리고 선수들에게 어떤 의미를
01. 우리 안의 고연전
갖는지 조명해 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외부인’들
02. 선수들의 고연전
이 고연전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다루게 되었다. 고연전의 화려했던 옛 영광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그나마 비판적 시각
03. 우리 밖의 고연전
으로 유지되던 고연전에 대한 관심이 이제는 그보다 더 무서운 ‘무관심’으로
04. 고연전에 제안한다
[
MORE THAN WORDS는 대학 스포츠의 현실을 SPORTS KU만의 다양하고 색다른 시각으로 풀어내는 칼럼 코너입니다.
]
<MORE THAN WORDS>에서는 2010년 제40회 정기고연전을 맞이하여 고연전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변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우리는 고연전이 누렸던 찬란했던 과거를
갖는다. 고연전이라는 현상안에 존재하고있는 우리와
되찾을 수 있을까.
그 밖에 존재하는 외부인들. 직접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입장에서 고연전을 다시 생각해보고 더불어 고연전이 어떻게 변화 해야할지를 제안한다.
사라진 옛 영광
고연전의 인기 하락은 프로스포츠의 출범으로 인한 대학스포츠의
비판보다 무서운 것은 무관심
사실 고연전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은 초창기 때 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쇠퇴와 그 맥을 같이 한다. 프로스포츠 출범 전, 대학 스포츠는 수많은 스타 선수들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덕분에 오히려 과거의 비판적인 여론이 반가울 정도다. 비판
의 양성소였다. 그러나 야구, 축구, 농구에 차례대로 프로리그가 생겼고 그에 따라
적인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은 고연전에 대한 어느 정도의 관심과 애정이 남아있다
스포츠에 대한 자본의 영향력이 심화되었다. 실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선수들이
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일 걱정해야 하는 부분은 사실 비판 보다는
대학교를 거치지 않고 프로로 직행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면서 고려대, 연세대로
‘무관심’이다. 과거 농구대잔치의 황금기 당시 고려대, 연세대 출신이 아님에도
대표되던 대학스포츠의 역할이 자연스레 사라지게 된 것이다. 볼거리가 사라진
고연전 농구 경기의 열렬한 팬이었던 김희정(30세, 여)씨는 “고연전이 언론에서
대학스포츠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것은 당연지사. 대학스포츠의 인기 하락은
너무 찬밥 신세가 되었다. TV에서 다뤄주지를 않으니 아는 선수들도 없고, 구미를
곧 고연전의 인기 하락을 뜻했다.
당길 만한 요소들도 없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들만의 축제 고연전
농구대잔치의 황금기가 지나고도 몇 년 정도 고연전에 대해 관심을 가
졌지만 더 이상 대학스포츠를 이전만큼 다뤄주지 않아 관심이 자연스레 사라졌다
한국을 이끌어갈 명문 사학의 축제로 온 국민에게 추앙을 받던 고연전
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고연전에 대한 무관심 정도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한양대 4
이 한순간에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인기 스타가 많고 재미있는 프로스포츠
년에 재학 중인 박하늘(24세, 여)씨는 고연전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오랜 시간
가 날이면 날마다 벌어지고 있는데, 사람들이 고연전에 관심을 둘 리가 만무했다.
고민을 하며 “사실 관심이 없어서 어떤 의견을 말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고연전에
그러면서 그 동안 찾아보기 힘들었던 비판적인 의견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어떤 종목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다”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취재 중 만나본 대다수
‘엘리트 의식’의 산물이니, ‘그들만의 축제’이니 하는 말은 고연전을 다루는 기사에
의 사람의 생각도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언제나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경기 자체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없으니 고연전 이 만들어내는 여러가지 부수적인 요소들이 언론의 관심거리가 된 것이다.
인식의 변화는 우리 손에 달렸다
화려했던 명성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았던 고연전의 어두운 부분들이
비로소 사람들의 눈에 띄기 시작했다. 지나친 성적 지상주의가 낳는 폐해, 그리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그들만의 뒤풀이 문화는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이슈가 되었다. 농구 경기장 난투극, 아이스하키 심판 선임 문제로 인한 경기 파행, 축구 심판 뇌물 수수 등 지나친 성적 지상주의가 불러온 부정적인 측면들이 많은 비판을 받았다. 특히 축구 심판 뇌물수수 사건의 경우 고연전이 끝나고 반 년이 지난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큰 논란거리가 되었다.
지나친 뒤풀이 문화도 언제나 ‘뜨거운 감자’였다. 고연전이 전 국민적
인 축제에서 양교만의 축제로 전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향수에 젖어 신촌과 안암동 일대를 점령하고 뒤풀이를 즐기는 학생들의 모습이 좋게 보일 리는 없었다. 2007년 10월 7일자 쿠키뉴스 ‘연고전, 올해도 그들만의 축제’라는 타이틀의 기사에 서는 “매년 되풀이되는 양교의 뒷풀이 문화도 비난의 화살을 피해갈 수 없었다.
52 SPORTS KU
어려웠던 시절, 우리 모두의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던 ‘대학 스포츠’.
영원할 것만 같던 제국은 과거의 화려한 발자취만 남긴 채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고연전의 영광을 추억하는 사람도 많을 터. 옥스퍼드-케임브리 지, 하버드-예일, 와세다-게이오로 대표되는 외국의 대항전과 마찬가지로 고려대 와 연세대, 연세대와 고려대 두 사학 명문의 맞대결은 그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미국의 대학 ‘더비 경기’에 열광하는 지도교수덕분에 고연전에 대해서도 긍정 적인 생각을 가진 김수현(24세, 여)씨는 “고연전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라이벌전 으로써 그 전통성을 유지하며 앞으로 쭉 이어져나갔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지역 주민과의 연계를 통해 고려대, 연세대 학생들이 아닌 일반 사람들의 참여 폭을 늘렸으면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각 포털과 커뮤니티 인터넷 게시판에는 양교 학생들이 주변 주민들을 전혀 배려
대학 스포츠의 파이 자체가 커지면 고연전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하지 않고 새벽 내내 북과 꽹과리를 울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밤잠을
타오를 것이 사실이겠지만, 그것은 지금의 현실에서 실현하기엔 너무나 이상적인
설쳤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부 학생들은 신촌 상가지역에서 일명
발언이다. 고연전이 전 국민의 축제에서 우리들만의 축제로 변모한 지금, 고연전이
‘기차놀이’를 하며 영업을 방해하기도 했다.” 라며 고연전을 비판했다. 지하철 기차
이대로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냐, 새로운 축제의 장으로 꽃 필 것이냐는 바로
놀이, 경기가 끝나고 난 후 치우지 않은 쓰레기, 그리고 뒤풀이 후 더럽혀진 거리
우리 손에 달렸다. 고연전이 과도기적 단계를 거치고 있음을 인식하고, 이제는
등과 같이 성숙하지 못한 모습이 문제가 된 것이다. ‘그 들’만이 즐기는 ‘그들만의
새로운 문화 축제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변화시켜야 한다.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축제’가 외부 사람들에게 고연전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을 심어주었다.
할 숙제에 대한 해답은 다음 호 기사에서 구체적으로 다뤄볼 예정이다.
MONTHLY SPORTS MAGAZINE 53
BOOK
야구를 통해 보는 세상
인사이드 피치 InsidePitch 신선경 기자
인사이드 피치(Inside Pitch)란 야구에서
물론이거니와, 우리에게 조금은 생소한, 덜 알려진 선수들
투수가 타자의 몸 쪽으로 공을 던지는
까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더구나 10년의 세월동안
것을 말한다. 그렇다. 이 책은 야구에
쓰인 칼럼이니 만큼, 야구팬이 된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은 낯선
관한 책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사람들의 이름을 자주 보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프로야구
이후 한국 야구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원년부터 현재 2010년까지 야구계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
그런 열기를 타고 방송, 도서 시장에
으며 어떤 선수가 어떠한 활약을 했는지 등을 알게 해주는
서는 야구에 관한 프로그램이나 책들
한국 야구의 지침서와 같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에만 국한
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이 책만큼
되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 일본의 야구도
오랜 시간 쓰인 야구 책이 또 있을까?
거론되어 있으며 그 이야기들과 관련시켜 한국의 야구를
단순한 인기에 편승하려는 여타의
다룬다. 한, 미, 일 야구를 통달할 수 있게 해주는 이 책이야
책들과는 달리 깊이를 가진 책이다.
말로 야구의 교과서라 내세울 수 있다.
국내 스포츠 칼럼 중 최장수 칼럼이자,
최다 칼럼이다. 중앙일보와 중앙선데 이에 2000년부터 2009년까지 고정칼
저자소개 이태일
이태일 저 / 미래를 소유한 사람들
된다. 저자는 야구만 잘하고 인기에만 연연하는 선수보다는 야구를 못해도, 책임감과 자신감이 있고 자신의 일에 열심히
배려하고, 먼저, 양보하고, 희생하라고 가르치는 스포츠이다.
인 선수들을 대단한 선수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저자가
이런 스포츠를 행하기 위해서는 문제점이 많은 야구 시스템
박찬호라는 선수를 1회초 선발투수로 내세운 것이 아닐까.
이나 선수, 감독, 구단들의 마음가짐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반짝 스타보다는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꾸준한 선수, 실패에
이 책을 읽으면 많은 야구계 사람들이 하는 말인 ‘야구는 인
좌절하고 마는 선수보다는 시련에 굴하지 않고 시련을 발판
생이다.’라는 말이 떠오를 것이다. 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삼아 다시 일어서는 선수. 저자의 단순한 야구관이라고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투수 한명과 아홉 명의
큰 제목들이 있다. 1회 초부터 9회 초까지 총 403개의 칼럼
하기에는 우리에게 던져주는 바가 많다. 또한 저자는 일관
타자가 꾸려나가는, ‘나보다는 우리’가 중요한, 야구처럼 말이
이다. 1회 초 선발 투수는 바로 국민 투수 박찬호. 한국인 최초
되게 야구계의 뒷얘기나 흐름에 얽힌 사연, 지적해야 할 부분
다. 또한 인사이드 피치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의 메이저리거로 1994년 LA다저스로 진출한 뒤, 지금 현재
을 이야기하며 야구의 깊고, 참된 묘미를 전달한다. 선수의
덕목은 원칙과 기본이다. 페어플레이 정신과 룰을 소중히
까지도 메이저리거로 생활하고 있다. 화려하게 보이는 메이저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비판을 하고 야구계에서 쉬쉬하던
여기고 서로 존중하는 마음, 그리고 원칙과 기본에 충실했을
리거지만 그에게도 시련은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가졌던 것을
뒷얘기도 끄집어낸다. 대표팀 감독을 서로 맡고 싶지 않아
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렇듯 저자가 중요하게
까. 시속 150~160km를 육박하여 타자를 윽박지르는 직구일까.
모두 잃은 그는 땀과 노력, 그의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다시
미루는 판국이나 자신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 대표팀 불참을
다루는 덕목은 야구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타자를 교묘하게 속여 헛스윙을 유도하는 변화구일까. 하지만
잃은 것을 찾아올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박찬호선수와 저자
하는 선수, 진지한 직업의식이 없는 야구기계일 뿐인 선수,
살아가는 실생활에서도 중요한 것이다. 단순한 야구이야기가
이런 공들도 제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가 나눈 이야기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책의 제목
노장 감독들이 사라지는 한국 프로 야구, 구단과 감독간의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이다. 인사이드 피치는 삐끗하
그렇다. 저자가 말하는 삐끗하지 않는 몸쪽공이란 정직하고
인 인사이드 피치로 정할 때에도 박찬호의 에피소드가 큰
마찰, 팀 정신의 부재 등 현재 한국 야구에서 고쳐야 할 점들
지 않은 직구가 대부분이여서 정직하고 날카롭다. 이처럼
날카로우며 원칙적인, ‘삐끗하지 않는’ 공이다. 이런 메시지를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회 초부터 다양한 선수들을
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그러면서 앞으로 어떤 식으로 한국
그는 우리에게 던지고 싶었던 것 아닐까.
야구를 통해 보는 세상의 깊숙한 안쪽(인사이드)을 정직하게
만날 수 있게 된다. 국내에 내로라하는 타자와 투수는
야구가 변해가야 하는지 그 길을 제시해준다. 야구는 서로
파고들자는 게 인사이드 피치가 전하는 바가 아닐까.
10년에 걸친 최장수 칼럼이자, 403개의 최다 칼럼으로 이루어 진 ‘인사이드 피치’. 이 방대한 양의 저자는 바로 이태일씨다.
럼으로 연재된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오늘의 시점에서 새롭게 정리하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제법 두꺼운 편의 책이지만 읽다보면 책의 두께를 잊어버리게
고려대학교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하고 KBO(한국야구위원회)에
되는 마력을 가진 책이다.
서 수습 기록원을 하다가 ‘야구보다 재미있는 야구전문지’ 주간
야구에 들어가 기자라는 이름을 걸고 펜을 잡기 시작했다. LA 다저스에 인턴십을 다녀와 중앙일보 체육부에서 일하다가 99년 야구전문기자가 되었다. 2000년부터 쓰기 시작한 야구 칼럼은 2010년에서야 끝을 맺었고 이렇게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태일의 삐끗하지 않는 몸쪽공. 이 책의 부제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혹은 던지고 싶은 삐끗하지 않는 몸쪽공은 어떤 것일
54 SPORTS KU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야구관을 알 수 있게
9개의 챕터로 나눠져 있는 이 책은 각 챕터를 묶는
MONTHLY SPORTS MAGAZINE 55
고려대학교 운동부 11월 경기 일정
SPORTS KU
제 91회 전국체육대회 야구
2010 축구 U리그 32강
2010 홈&어웨이 농구
10월 8일
9월 2일
문제가 참 쉽죠? 정답을 모두 찾으신 분은 직접 푼 문제를 핸드폰으로 찍어서 이름, 학과, 연락처와 함께 sportsku@naver.com으로 보내주세요.
VS 영남대
4-2 승
11월 5일
VS 성균관대
1-3패
VS 명지대(홈)
10월 10일 VS 국군체육부대
10월호 Quiz QUIZ
SCORE BOARD
고려대학교 운동부 10월 경기 결과
11월 15일
2-9패
VS 성균관대(원정)
2010 홈&어웨이 농구
정답자 중 추첨에 당첨된 분들께는 고려대학교 공식후원사인 에서 제공하는 헤드 트랜스로더 다운 제품을 드립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11월 25일 VS 조선대(원정)
10월 22일 VS 상명대
87-79승
10월 27일 VS 중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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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일 91-103 승
VS 연세대(원정)
<10월호 퀴즈 당첨자 명단> 강승리 영문 06 안이슬 미디어 08 강주희 지리교육 10 이상영 사회환경시스템 04
가로열쇠
세로열쇠
1. 얼마 전 고려대 야구부 감독에서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자리를 옮긴 사람은? 2. DJ DOC의 신보 타이틀곡이자 신촌골 모 대학의 응원가. 나 OO OOOO~ 3. SPORTS KU는 최초의 대학 OOO OO입니다 4.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결승전에서 9회 병살타를 친 쿠바의 4번타자 5. 체교 04학번 박주영의 현 소속팀 6. SPORTS KU는 태진 노래방 반주기보다는 이 회사 반주기를 좋아합니다. 7. 한랭한 공기가 유입되어 기온이 급격하게 내려가는 현상. 전국에 OO가 닥쳤습니다. 8. 2010년 아시안 게임 개최지 9. 지난 10월 8일 민주광장에서 고대 유도부와 연대 유도부 간에 OO OOO이 열렸습니다. 10. 최고의 선수에서 최고의 감독에 도전!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 감독님의 성함 11. 올해 아시안게임 럭비 국가대표로 선발된 체교 07학번 선수의 이름 12. 지난 10월호에 소개되었죠.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함박웃음을 짓고 있을 SK 단장님의 성함
1. 11월호에서 취재한, 선도를 통해 건강을 되찾으려는 수련방법. 전통 OOO 2. 고려대학교를 상징하는 동물 3. 일본어로 ‘굉장하다!’ 4. 지난 10월 SPORTS KU에서는 기사를 쓰는 취재기자와 사진을 찍는 OOOO를 뽑았습니다 5. 투수가 공을 던지고 타자가 공을 치는 구기종목 6. 롸잇 나우 7. 체교 87학번 홍명보 선배의 별명. 언제까지나 최고의 중앙 수비수여라~ 8. 테란 프로토스 OO 9. 2008년 막을 올린 대학팀간의 스포츠 리그. 현재 축구, 농구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10. 11월호에 소개된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 7인의 집행위원 중 한사람 입니다. 현 대학농구연맹 회장이기도 하죠. 11. 11월호에서 야구부 주전포수인 김민(체교 08) 에게 우애 넘치는 편지를 받은 형의 이름은 12.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롯데 자이언츠가 프리메라리가의 ‘엘 클라시코’ 더비에 버금가는 최고의 명경기를 펼친다 해서 생긴 신조어. O OOOO 더비 13. 시상식마다 아찔한 드레스를 입고 나와서 화제인 여배우. 드라마 욕망의 불꽃에서 서우의 언니 역으로 출연중 14. 바둑 국가대표로 선출된 영문과 06학번 학우의 이름 15. 현 관동대 축구부 감독과 대학축구연맹 부회장을 맡고 있는 체교 70학번 선배님의 성함 16. 사람의 복장뼈 아래 한가운데의 오목하게 들어간 곳. 급소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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