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YMCA-국민일보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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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고명진 목사의

YMCA

YMCA, 100

쁂쁀쁁쁄년 쁃월 쁁쁃일 목요일

륽륾륿릀븡쁲쁤쁗쁕 공동 기획 대한쁲쁤쁗쁕연합회삒현 한국쁲연맹삓 주최로 쁁쁉쁅쁃년 쁁쁁월 열린 쁲쁤쁗쁕지도자강습회에 해외 및 국내 쁲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삚 오른쪽 작은 사진은 쁲쁤쁗쁕야구단 소 속 한국인 청년들과 외국인 선교사들삚 한국쁲쁤쁗쁕 제공

인생은 만남의 존재요 헤어짐은 실존이다삚 나의 생각이나 의지와 상관 없이 주어지는 만남이 있는가 하면 내가 원하고 결심해 만나는 만남도 있다삚 부모 형제 친척 등 태어날 때 환경과의 만남은 내 계획이나 생각 과 전혀 상관없는 만남이다삚 친구 배우자 학교 직업이나 일터를 만나는 것은 나의 의지나 생각삙 계획을 갖고 정할 수 있고 얼마든지 변수가 있 을 수 있다삚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며 그 만남에 어떤 반응을 보이며 어떻게 대처하고 유지하느냐가 삶의 의미와 행·불행을 결정한다삚 만나지 말아야 할 만남 때문에 비운의 생을 마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한번의 만남이 계기가 돼 일생을 의미 있고 복되게 살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거룩하게 장식한 사람들도 있다삚 지존파로 악명이 높았던 한 폭력배는 사형언도를 받던 법정의 최후 진술에서삙 힘들고 어렵던 어린 시절 결손가정에 살며 미술시간 준비물 없이 학교에 갔을 때삙 “없으면 훔쳐서라도 가져오라”고 말했던 초등학 교 교사와의 비운의 만남을 한탄하며 이야기했다고 한다삚 청소년 시절 잘못된 친구를 만난 것이 화근이 되어 일생을 감옥에서 보내거나 젊은 날에 삶을 저버린 경우도 있다삚

선교사 쁅인방 ‘쁲운동’ 씨앗 뿌리다

만남 반대로 여리고의 길목에서 구걸하던 맹인 바디메오는 앞을 보지 못 하는 모습으로 부모를 만났고 캄캄한 세상을 살게 됐다삚 그러나 다윗의 자손 예수를 만남으로 시력도 회복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됐다삚 부모가 버리고 의사도 포기한 앤 설리번은 보스턴의 한 정신병원 독 방에서 실의와 좌절과 포기와 낙망으로 죽지 못해 살아가는 처절한 삶 을 지탱하다 은퇴한 노 간호사 로라를 만났다삚 성실하고 끈질긴 로라가 전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새사람이 됐고삙 훗날 앨라배마주 터스캄비아 의 어린소녀 헬렌 켈러의 가정교사가 됐다삚 앤 설리반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사라는 칭호를 얻었으며삙 인류 역사상 최고의 희망 전도사로 불리우는 헬렌 켈러를 만들었다삚 헬렌은 앤을 만났기 때문에삙 앤은 로 라를 만났기 때문에 역사에 찬란히 빛나는 인물이 됐다고들 한다삚 틀린 말은 아니다삚 그러나 그들 모두는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이요삙 하나님 의 사랑을 가졌던 자들이다삚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마태 등은 모두 당대의 천대 받든 직 업에 종사하던 자들이었다삚 하지만 나사렛 예수를 만나 인생의 대 역전을 이루고 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사도가 되고 제자가 됐다삚 만남을 소재로 하는 이러한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 그 수를 헤아 리기 어렵다삚 일생을 살아가며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존재 인 우리들이 반드시 만나야 할 그 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실패한 인 생이 아닐는지삚 삎수원중앙침례교회삏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의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 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삒누가복음 쁁쁉삖 쁄쁁∼쁄쁂삓 “쁕삆 쁻쁸 쁴삃삃삅삂쁴쁶쁻쁸쁷 쁡쁸삅삈삆쁴쁿쁸삀 쁴삁쁷 삆쁴삊 삇쁻쁸 쁶쁼삇삌삙 쁻쁸 삊쁸삃삇 삂삉쁸삅 쁼삇 쁴삁쁷 삆쁴쁼쁷삙 쁟쁹 삌삂삈삙 쁸삉쁸삁 삌삂삈삙 쁻쁴쁷 삂삁쁿삌 쁾삁삂삊삁 삂삁 삇쁻쁼삆 쁷쁴삌 삊쁻쁴삇 삊삂삈쁿쁷 쁵삅쁼삁쁺 삌삂삈 삃쁸쁴쁶쁸븘븘쁵삈삇 삁삂삊 쁼삇 쁼삆 쁻쁼쁷쁷쁸삁 쁹삅삂삀 삌삂삈삅 쁸삌쁸삆삚”삒쁣삈쁾쁸 쁁쁉삖쁄쁁∼쁄쁂삓

쁪쁭

평화는 매일의 삶에 예수 그리스도를 초대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것 으로부터 시작됩니다삚 무엇을 해야 할까 염려하지 마십시오삚 지금 자족하며 사랑하는 일에 힘쓰십시오삚 이제는 “내 길이 어떤 길입니 까”라고 묻지 말고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사람들을 사랑하십시오삚 사 랑하게 되면 나의 삶삙 나의 길이 홀로 걸어가는 여정이 아니라 하나 님께서 함께하시는 여정임을 알 것입니다삚 그 안심 속에 평화가 있 습니다삚 삎종교국삏 릐오늘의 쁪쁭는 스마트폰 앱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나는 뉴욕쁲쁤쁗쁕 본부에 청원서를 발송하기 전에삙 어느 주일날 오후 몇 몇 청년들을 나의 집으로 오라고 청했 다삚 그때 나는 쁅명 또는 쁆명 정도의 청 년들만 모이더라도 큰 성공이라고 생 각했다삚 그러나 뜻밖에 그네들이 너무 많이 온다고 해서 그 계획을 포기하고 말았다삚 왜냐하면 그처럼 많은 청년들 을 수용할만한 응접실이 없었기 때문 이다삚 결국 쁁쁅쁀명의 청년들이 진정서 에 도장을 찍고 쁲쁤쁗쁕를 설립해 줄 것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삚 …”삒쁞삚 쁝삚 언더우드삓 한국쁲쁤쁗쁕의 시작은 쁁쁈쁉쁉년 쁲쁤쁗쁕 국제위원회에 언더우드와 아 펜젤러가 한국청년 쁁쁅쁀여명과 함께 벌인 청원운동으로부터 시작된다삚 이 들은 당시 한국교회에 참여하지 못했 던 상류·지식층의 청년들을 전도할 목 적으로 한국쁲의 설립을 요청했다삚 “무엇보다 청년회가 창설되면 교회 가 이때까지 포섭하지 못했던 청년들 을 많이 포섭할 수 있다삚… 쁲쁤쁗쁕를 창설하려면 정회원 즉 세례교인이 있 어야 할 것인데삙 정회원은 배재학당 학생 중에서 제일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삚 그리고 상류층 청년들이 많이 관심을 가지고 찾아올 것이다삚…”삒쁞삚 쁝삚 아펜젤러삓 당시 한국교회의 고민은 중국 선교 사였던 브로크만이 언더우드 선교사 에게 전한 이야기를 통해 엿볼 수 있 다삚 “기독교를 알고 싶어 했던 한 양반 이 몰래 평민으로 가장하고 교회 뒷문 으로 들어와 앉았는데삙 바로 옆줄에 자기 하인이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질겁하고 나갔다삚” 당시 교회가 상류 계층에 접근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 는지 나타내는 단적인 예다삚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한국 최초 의 교회인 새문안교회와 정동교회를 각각 설립삙 장로교 및 감리교를 뿌리

한국 쁲쁤쁗쁕를 만든 선교사들 봮 언더우드븡아펜젤러 주도한 쁲창설 ‘청원운동’이 뿌리 초대 간사 질레트삙 한국 최초 각국 대표자 회의 소집 독립운동가 쁁쁀쁅명 투옥사건 일제의 만행 폭로 유명 교회와 사회 연결 쁲지도자 배출 게일 목사도 큰 공로

한국쁲 설립에 기여한 외국인 선교사들삚 왼쪽부터 언더우드·아펜젤러·질레트·헐 버트·게일 선교사

내린 선교사들이다삚 연희전문학교와 배재학당을 세운 교육가인 동시에 생 활인 기독운동체로서 한국쁲운동의 씨앗을 뿌린 주인공들이기도 하다삚 그러나 눈여겨볼 것은 한국쁲운동 은 선교사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수용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삚 언더우드가 언급한 것처럼 당시 개화 지식인 청년 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요청됐다삚 청년들이 쁲설립 청원운동에 적극 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삚 쁁쁈쁉쁉년은 전년도 쁁쁂월 독립협회가 해산된 이후 모든 민간단체의 설립과 활동이 일절 금지됐던 시기다삚 개화 지식인 청년들은 기독교 국제 운동 단체인 쁲를 통해 민회삒民會삓 운 동을 만들어가고자 했다삚 이는 곧 쁁쁉쁀쁁년 배재학당쁲로부터 한국쁲가 시작되는 배경이 된다삚 결국 쁉개 학생 쁲와 시삒市삓 청년회인 황성기독교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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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회 쁁곳이 연합해 쁁쁉쁁쁄년 조선기독 교청년회연합회삒지금의 한국쁲전국 연맹삓가 창립됐다삚 한국 최초의 민간 운동의 출발이기도 하다삚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의 요청으로 쁁쁉쁀쁁년 한국쁲의 초대간사로 질레트 삒쁧삚 쁣삚 쁝쁼쁿쁿쁸삇삇삓가 파송된다삚 질레트는 영·독·일·중·러 등 각국 대표자들과 각 교파 선교사들을 초청삙 한국 역사 상 최초의 ‘각국 대표자 회의’를 소집 했다삚 이때 선출된 위원장이 헐버트 삒쁞삚 쁖삚 쁞쁴쁿쁵쁸삅삇삓였다삚 헐버트와 질레트는 쁲회관을 짓기 위해 기금을 모금하고삙 쁲헌장 초안 을 작성하는 등 황성기독교청년회 창립삒쁁쁉쁀쁃년 쁁쁀월 쁂쁈일삓에 크게 기 여했다삚 초대 총무로 취임한 질레트 는 성서연구반을 조직하고 야구삙 농 구 같은 스포츠를 보급하는 등 쁲를 통해 근대 시민을 육성하기 위한 다

양한 노력을 했다삚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공헌은 ‘쁁쁀쁅인 사건’에서 찾아볼 수 있다삚 이 사건은 쁁쁉쁁쁁년 일본총독부가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데라우치 마사타케 총독의 암살미수사건을 조 작삙 기독교인을 포함한 쁁쁀쁅인의 독립 운동가를 감옥에 가둔 사건이다삚 이 들 가운데 주범으로 몰린 윤치호 황 성기독교청년회 부회장이 있었다삚 질 레트는 이 사실을 영국 에든버러에 본부를 둔 국제선교협의회에 용감하 게 폭로했다삚 총독부가 이 사실을 알 게 되면서 질레트와 쁲를 향한 탄압 은 거세졌다삚 결국 질레트는 쁲를 지 키고자 자진 사표를 냈고 이후 입국 이 금지됐다삚 게일삒쁡삚 쁬삚 쁝쁴쁿쁸삓 목사 역시 한국 쁲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삚 황성기 독교청년회 창설 때 이사로 참여한 뒤 회장까지 지낸 그는 한국 역사와 문화 에 깊은 사랑을 지닌 인물이었다삚 게 일 목사의 가장 큰 공헌은 교회와 사 회를 연결하는 쁲지도자를 배출하고삙 한국 교회와 쁲간의 협력 관계를 증진 시켰다는 것이다삚 쁁쁉쁀쁄년삙 연동교회 담임 목사였던 게 일 목사는 출옥한 이상재삙 김정식삙 유성 준삙 이원긍 등 독립협회 지도자들을 교 인으로 맞아들이는 한편 쁲회원으로 끌 어들였다삚 그는 한국교회의 평신도 운 동을 육성하고 기성교회로 하여금 교회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 속으로 향하게 만든 선교사로 평가받고 있다삚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삙 질레트와 헐 버트삙 게일 등 초기 선교사 쁅인방은 한 국쁲의 씨앗을 뿌렸다삚 그들의 헌신은 윤치호삙 이상재삙 신흥우삙 김정식삙 조만 식삙 전덕기삙 김규식삙 남궁억삙 이승훈삙 이 승만 등 한국쁲운동 지도자들에 의해 뿌리를 내리게 된다삚 이윤희 사무국장 삎한국쁲쁤쁗쁕 생명평화센터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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