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my best 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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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에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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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하늘과 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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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황수영 23세 함경북도 무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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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향 2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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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강서구


0정금 23세 함경남도 흥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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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설경 2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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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군포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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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하늘 이야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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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다 윤세정+양수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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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편이냐고 묻지 말아요 되게 따분한 질문이에요 고은초+박수향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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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피-스 명난희+문혜숙, 한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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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가이드 박태식, 성의석+문설경, 조엘라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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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서울에 산다 양빛나라+하태일, 차혜주

끝.

고향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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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시작의 두 번째.

‘분단’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현실이지만, 현실 같지 않은 시대를 보내고

있다. 개인과 국제적 이슈들은 어느덧 우리를 갈라진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로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분단’이 현재의 관심에서 밀려나 있다고 해도 여전히 ‘북한’이나 ‘탈북’ 같은 소재는 우리의 관심사이다. 그렇기에 북한을 이탈한 사람의 이야기는 흥미로운 주제가 되어 이들의 존재는 피상적 대상으로 포장된다. 탈북 과정과 북한 정치, 식량난 그리고 남한 사회와의 비교는 우리 마음을 착잡하게도 뜨겁게도 만드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이렇듯 ‘서울’을 함께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이들의 존재는 ‘사람’ 이전에 호기심과 경계의 ‘대상’이 되고 만다. 현재 서울에 사는 사람 중 북한을 고향으로 둔 사람은 약 7천여 명이다. 경기권까지 포함하면 약 1만 5천 명의 북한이탈주민이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들은 이 도시에서 낯설다. 지난 2012년 11월, 고향이 북한인 청소년들의 서울 이야기를 담은 독립출판 <우리는 서울에 산다>가 출판되고 1년이 흘렀다. 1년 동안 약 160만 명의 인구가 타지역에서 서울로 전입되었다. 그중 북한이탈주민은 약 1,000명이다(통계청, 통일부). <우리는 서울에 산다>는 그동안 ‘대상’으로 여겨졌던 탈북자들을, 여기 서울에 함께 사는 ‘우리’로서 새롭게 접근해 보려는 시도였다. 우리가 사는 도시 ‘서울’을 대상으로 그들의 시각과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담고자 했다. <우리는 서울에 산다>의 두 번째 이야기인 <우리는 서울에 산다 - 친구에게>는 탈북 청소년들의 친구에 관한

이야기다. 떠날 수밖에 없던 고향이지만 거기에는 떠나고 싶지 않던 친구가 있다. 추억을 쌓으며 함께 자란 그 ‘친구’는 이제 만날 수도 대화를 나눌 수도 없다. 세계 어느 곳에 있는 친구라도 만날 수 있다는 온라인 SNS에는 정작 가장 만나고 싶은 친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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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 마음먹고 선택한 헤어짐 뒤로 이들 내면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본다. 바쁜 생활 속 얼굴이 가물가물해진 친구를 그리며 새로운 서울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이 프로젝트는 상상해 본다. 언젠가 통일이 되어 만날 친구에게 소개할 서울을, 다시 함께 거닐 고향의 풍경을. <우리는 서울에 산다 - 친구에게>는 디자인 워크숍과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 워크로 이루어졌다. 특별히 탈북 청소년들과 아티스트들의 콜라보레이션 워크는 ‘친구’라는 대상적 주제와 더불어 ‘서울’이라는 공간을 주제로, 다섯 분야에 걸쳐 진행되었다. 각 팀마다

주제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방법으로 깊이 있는 합력 작업 끝에 의미있는 결과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일러스트레이터 윤세정과 양수련, 글작가 고은초와 박수향, 그림작과 명난희와 문혜숙+한의, 사진작가 박태식+성의석과 문설경+조엘라, 싱어송라이터 양빛나라와 하태일+차혜주가 4개월간 진행한 콜라보레이션 워크는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시도한 적 없는 아티스트와 탈북청소년의 협력 작업이란 점에서 더욱 가치 있다. <우리는 서울에 산다 - 친구에게>는 서울시 관악구 신사동에

위치한 탈북다문화대안학교 우리들학교에서 진행되었고 푸르덴셜사회공헌재단의 탈북청소년 성장지원사업의 지원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으로 매듭지을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이 이야기는 더욱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다.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다시 한 번 이 책은 당신과 대화하기를 원한다. 같은 도시와 국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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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좋아하는. 청계천 집 찜질방 남산타워 치킨집 편의점 모텔 클럽 백화점 동대문 쇼핑몰 불가마 찜질방 한강 경복궁 남산타워 롯데월드 명동 동대문 홍대 이대 한강 조용한 커피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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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보고 싶다


하고 싶고 보여주고픈 마음만이 가득했다. 그렇게 윤세정 작가과 수련 양은 이들의 편지와 일기를 바탕으로 그림과 글로 채워진 그림책을 만들어 간다. 작업이 진행되던 중 수련 양은 특별히 마지막 장면에

그녀는 북한 사람일까 남한 사람일까.

남과 북으로 나뉘어진 땅덩어리 위에서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꿈과 인생이

옷 입혀지고 재단되어버린 아이들.

자연스럽게 이어져 두 친구가 만나게 되는 여운을 가지고 끝맺는다. 이어지는 다른 팀들의 작업을 통해 수련 양과 숙 양이 함께 서울 구경을 하는 것처럼 보여지길 상상해 본다.

대화들이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 수련 양은 이것저것

배우고 여행하고 먹고 즐기는 서울 생활이 생동감 넘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서울에 온 지 반년이 갓 지난 수련이에게

서울은 친절했다. 서울에서 수년간 지내 온 탈북 청소년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사람이 도구로 사용되는 모순. 행복이

아니었다.

느끼는 도시의 차가움과 고독함은 아직 수련이의 것이

보여줬으면 했다. 그림의 마지막 장면은 책의 다음 페이지로

일러스트레이터 윤세정은 참여 학생 양수련과의 만남과

은숙이와 자신이 만나서 함께 서울을 구경하는 모습을

이 좋은 꿈의 도시를, 그 자유와 풍요로움을 친구와 함께

북에서 남으로 넘어 온 소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의 수련 양은 자유롭고 풍요롭다. 북한에서의 삶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대적 행복감에 젖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해 서울의 수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던가.

친한 친구 숙 양은 4년간의 군 생활을 하며 만났던 친구다.

북한의 소녀들은 4년간 군 생활을 하고, 두각을 나타내는

소녀들은 장교가 된다. 후에 당원이 되어 평양에 사는

것은 마치 남한의 소녀들이 명문대 타이틀과 안정된 직장,

노른자위의 땅에서 풍족하게 살아가는 것을

꿈꾸는 것만큼의 보편적인 꿈이다.

수련과 숙. 남한 사람, 북한 사람이라는 구분이 아니라 단지 멀리 떨어져 다른 꿈을 품고 살아가는, 어쩌면 똑같은 모습의 친구. ‘사람’에 집중하며 페이지를 넘긴다.

상상으로 쓴 통일일기엔 그래서인지 북한을 향한 그리움과

애잔함보다 서울에서의 자유와 꿈, 행복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북한에 있는 친구인 장교 숙이에게 가상으로 쓴 편지와

아닌 성공한 삶을 위해,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만 소모되어 버리는 인생이라는 점에서 북한과 서울이 꼭 닮았다는

밝은 수련 양에게도 두고 온 친구가 있다. 수련 양의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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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이와 숙이는 북한 군대에서 훈련생으로 만났다. 힘든 훈련 기간 동안 둘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현재 수련이는 탈북하여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고 숙이는 평양에서 장교가 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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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라는 건 큰 힘이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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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친구랑 같이 가보고 싶은. 사우나 동대문 쇼핑센터 호프집에서 치맥 남산 볼링 거리 걷기 신도림역 롯데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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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편이냐고 묻지 말아요. 되게 따분한 질문이에요.”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물었고, 수향 양은 지난 3년간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탈북하고 브로커 비용을

생활에 회의를 느꼈던 작가와 모든 것이 새로운 박수향 양의

만남은 활자와 활자가 함께하는 여백과 같은 느낌이었다.

“나오고 보니까 생각했던 것만큼 그렇게 좋진 않아요. 그렇다고 갇힌 생각을 하고 싶진 않아요.” 지난 3년간 수향 양은 그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독였을 것이다. 이젠 돌아갈 수도 없는데. 밝고, 즐겁게, 행복하게 살아야지, 라고 말이다. 북한에 있던 정다운 친구와

부담을 느껴 했고, 자신이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스스로 명확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은초 작가는 수향 양에게

당장 무엇을 쓰게 하는 대신, 최대한 여러 각도에서의 질문을

던지며 수향 양 안에 내재된 이야기들을 이끌어내는 데

집중했다.

부질없는 것이다. 북한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 되었다. 통일이 되지 않는 한 말이다.

긍정적인 언어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는 활기차서 좋고, 차로 꽉 막힌 도로는 차가 아예

박수향 양과 세 번의 만남, 일곱 통의 메일, 그리고 여러 번의 전화 통화를 통해 나눴던 대화를 문장으로 다듬은 결과물이다.

내심 걱정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다 문득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이웃집 언니

이야기를 들려주는 수향 양의 눈에 처음으로 북한에 대한

그리움이 비쳤다. 그러면서 수향 양에게 닫힌 어둠의

이 글은 박수향 양이 쓴 글을 뼈대로, 고은초 작가가

한복판에서 주눅 들어 있지는 않을까, 작가가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식이었다. 칼날 같은 자본주의의

세상이 있다. 수향 양에게 어디에서가 더 행복하냐는 질문은

프로젝트 초반, 박수향 양이 말하는 서울, 그리고 한국은

이웃은 여기에 없다. 대신 서울에는 북한에 없던 새로운

박수향 양은 작가와의 대화중에 문득 이런 말을 했다.

써 본 경험은 많지 않아 긴 호흡으로 문장을 쓰는 것에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글을

일해야 했던 지난 3년간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갚기 위해, 그리고 가족들을 데리고 나오기 위해 외롭게

세 번째 만남 이후 고은초 작가는 수향 양에게 가장 쓰고

도시를 살아오면서의 이야기들을 글에 담았다. 오랜 서울

박수향 양은 글 팀을 지원한 학생답게, 사람들에게 자신의

시간이었던 일기장 속의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글 작가 고은초와 참여 학생 박수향은 탈북하고 지금까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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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나는 두만강을 넘었다. 산속에서 14시간을 숨죽여 있었고, 연길에서 3일을 머물렀다. 다시 버스를 타고 단동까지 이동한 뒤, 그곳에서 인천행 배를 탔다. 단동에서 배를 탄 지 16시간, 그리고 집을 떠난 지 열하루 만에 나는 인천항에 도착했다. 그렇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을 등지고 새로운 세상 안으로 들어선 때, 내 나이 열여덟 살. 그리고 남겨진 1,200만 원의 브로커 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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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의 나라로

나는 국경과 인접한 함경북도 무산에서 살았다. 부모님은 장사를 하셨고, 집은 여유로운 편이었다. 오빠는 평양의 명문대학으로 손꼽히는 김책공업종합대학을 다녔다. 나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이후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무렵, 한국의 이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당시 우리는 중국폰을 구입해서 한국과 통화가 가능했고, 먼저 탈북하여 한국에 살고 계시던 이모와 간간이 통화를 하곤 했다. 이모는 한국으로 오라고 했다.

특별히 부족한 것은 없는 생활이었기에 우리 가족은 한국으로 넘어가지 않기로 했다. 처음에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단짝 친구와 함께 몰래 보던 한국드라마에서의 삶이 조금씩 멋있어 보이기 시작했다. 넓은 2층집과, 화려한 패션, 거리에 가득한 자동차. 나는 잘살고 싶었다. 이모와의 비밀 통화 끝에 나는 가족들 몰래 북한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이모가 브로커를 보내기로 했다. 북한 쪽 브로커는 나를 두만강까지 데려다 주고 떠났다. 새벽 세 시, 두만강을 건넌 나는 산 속으로 숨어들었다. 중국 쪽 브로커가 날 데리러 올 때까지 공안에게 들키지 않고 숨어있어야 했다. 그런데 날이 밝으면 오겠다던 브로커가, 오후 세 시가 넘었는데도 오지 않았다. 이대로 잡히면 죽게 될 것이다. 나는 불안에 떨었다. 떠나온 것을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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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야 해….’ 해가 저물고 주변이 어두워지면,

이곳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리라 결심했다. 그렇게 산속에 숨어 어두워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오후 다섯 시쯤 차 한 대가 조용히 멈춰서더니 나를 찾았다. 브로커가 왔다.

나를 태운 차는 화룡에 잠깐 들렀다가, 연길로 이동했고, 나는 세 번째 브로커에게 넘겨졌다. 연길에서는 사흘을 머물렀고, 인천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단동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단동에서 배를 탄 지 16시간 만에, 마침내 인천항에 도착했다. 내 고향 무산을 떠나온 지 열하루 만이었다.

한국은 과연 북한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배에서 내리는 내 눈앞에 신세계가 펼쳐졌다. 감히 내딛을 수 없을 만큼 반짝반짝 빛나는 바닥, 으리으리한 건물들,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예쁜 언니들과 노랑 염색머리에 선글라스 차림으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 드라마에서 보던 그 풍경이다! 내가 정말로 한국에 왔구나. 나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국정원 사람들에게 이끌려 조사를 받으러 가는 와중에도, 이 황홀한 세계에서 살아갈 앞으로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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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새로웠던 그 날 이후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국정원 조사를 받는 2개월간 바깥세상으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고, 그 이후로도 탈북자 정착교육시설인 하나원에 입소하여 3개월을 더 보내야 했다. 한국에 도착한 지 5개월 만에 사회에 첫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미처 몰랐던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내가 한국으로 넘어오기 위해 지불된 거리비용 1,200만 원. 이모는 브로커 비용에 대해서는 말을 한 적이 없었고, 나는 태국이나 라오스를 거치지 않고 쉽게 한국으로 온 대가로 일반적인 브로커 비용보다 훨씬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1,200만 원의 빚이 내 앞으로 남겨졌다. 얼마나 큰돈인지 감이 오지 않는 금액이었다.

나는 빚을 갚기 위해 편의점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나원에서 나온 지 닷새 만이었다. 나는 매일 지하철을 타고 을지로 3가에 있는 편의점으로 출근을 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후 두 시부터 밤 열 시까지. 물건 정리와 카운터 판매. 고단한 하루가 지나가고 이모네 집에 들어오면 밤 11시가 되었다. 매일이 똑같았다.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도록 같은 날들이었다.

일 끝나고 집에 들어오면 하루가 허무하고 외로웠다. 잘살고 싶어서 가족들 다 떠나 홀로 한국에 왔지만 혼자서 살아가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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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힘든 현실이었다. 후회도 많이 하고 울기도 많이 했다. 내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져갔다. 내가 진짜 행복해서 웃어본 적이 언제이지? 손가락으로 꼽아보아도 몇 번 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 와서는 다들 바쁘게 사느라고 한집에 사는 이모 얼굴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힘들고 외로울 때면 고향 생각, 이웃 생각이 많이 났다. 한국에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지내는 건 정말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북한과는 너무나도 다른 이웃 관계다. 북한에서는 이웃들과 정말 살갑게 지낸다. 우린 특히 옆집과 정이 각별했다. 엄마가 일을 나가시고 혼자 있기 싫을 때면 항상 옆집에 가서 같이 밥을 먹었다. 내 집처럼 편하게 드나들었고, 명절이나 생일에는 함께 모여 시끌벅적 웃고 떠들며 보내곤 했다. 특히 4살 차이가 나는 옆집 막내 언니와 친했는데, 언니와는 화장실도 같이 가고, 심부름도 같이 다녔다. 둘이 하도 붙어 다녀서 어른들이 ‘언니가 남자였으면 둘이 결혼시키는 건데’, 하고 우스갯소리를 던질 정도였다. 그때는 마냥 행복했는데…. 가끔 고향에서의 기억을 더듬어 보노라면 가고 싶고, 보고 싶고, 그리워서 눈물이 흐르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추억으로밖에 간직할 수 없고, 그 작은 추억마저도 너무도 정신없이 지내는 한국생활에 어느새 하나 둘씩 잊혀져갔다. 잊지 않으려고 가끔 추억을 보듬어 보는 것도 잠시,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돈을 벌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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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보고 깜짝 놀란. 에버랜드 클럽 수족관 박물관 거리의 풍경 서울역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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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년간 닫혀 있었다

나는 꽤 오랫동안 말을 하는 것에 움츠러들었다. 낯선 문화, 외래어, 어색한 내 말.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두려웠다. 편의점에서 일을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한 손님이 급히 들어오며 밴드를 찾은 적이 있었다. “아가씨, 밴드가 어디 있어요?”

밴드, 밴드… 그게 뭘까…?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들키고 싶지 않았다. “……없어요.”

손님은 편의점에 밴드가 없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갸웃거리며 두리번거리더니 바로 내 “여기 있네요?”

서- 울 - 피 - 스

앞에 있는 물건을 집어 들며 말했다.

순간 나는 얼굴이 빨개졌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죄송하다는 말만 계속했다. 그 손님은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더니 나갔다. 그런 일을 반복해가며 나는 낯선 물건들의 이름을 익혔고, 그 이름은 절대로 잊지 않았다. 하루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옆 포장마차에서 붕어빵을 팔고 있었다. 항상 지나다니면서 봐왔지만 그 맛을 알지 못했다. 꼭 먹어보고 싶은 생각에 따끈한 붕어빵 몇 개를 사서 품에 꼭 껴안고 집으로 뛰어왔다. 예전부터 붕어빵 맛이 정말 궁금했었다. ‘붕어가 들어가 있으니 비리겠지? 안 비리게 하는 기술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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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는 한의, 문혜숙은 문혜숙으로서 작업했다. 우리가

노량진 등을 여행하며 낯선 ‘친구’를 만났다.

많아 복잡’했지만, 친구가 되어 함께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어렵지만 즐거운’ 작업이 었다. 우리의 서울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 중이다.

탈북을 하고 오랜 중국 생활을 해서 북한에 대한 선명한

기억이 없고, 한의 군은 태어난 곳이 중국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향과 지난 친구에 대한 기억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작업의 방식은 마치 친구와 약속을 잡아 만나듯, 그 날에

이들에게 ‘서울’은 곧 ‘친구’인 것이다.

새로운 친구가 이들에게 ‘친구’가 되었다. 의미하는 바,

느낀 서울을 표현했다. 서울은 ‘덥고’, 때론 ‘너무 사람이

이 팀의 특별한 점은 문혜숙 양의 경우 아주 어릴 적에

보여줄 수 있는 정직한 선을 드러내기로 했다. 각자가

대한 고민은 어느 지역, 어느 시대, 어느 문화 속에 살든 다르지 않았다. 이를 기반으로 명난희는 그냥 명난희,

많이 찾는다는 청계천을 시작으로 이태원, 홍대입구, 한강,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에

살아가는 동시대의 사람 모두가 친구다’라는 주제로 서울을

여행하듯 ‘친구’를 만났다. 서울을 관광하는 사람들이 가장

시작으로, 서울 사람으로서 서울을 보는 것, 그리고

그림 작가 명난희와 참여 학생 문혜숙, 한의는 ‘서울을

우리는 모두 서울에 사는 ‘서울 사람’이라는 생각을

서울은 평화롭지만 묘한 긴장을 자아내기도 한다.

삶의 모양과 기억들이 찰랑거리며 차지하는 이 공간,

각자가 보고 느끼는 서울은 모두 다른 기억으로 남는다. 다른

산다는 것 말고는 서로에 대해 무엇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

했다. 서울 사람들. 서울을 공유하는 사람들. 같은 지역에

고민하기도 하면서 그 날의 낯선, 혹은 친구 ‘서울’을 드로잉

찾아 가고 평가하기도 했다. 차를 마시며 서로의 삶을

가장 당기는 곳으로 정하고 수다를 떨고 장소를 걷고, 맛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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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명한 사람이고 싶다.

서울로 아까 그 친구를 데리고 온다면 같이 클럽에 가고 싶다.

서울을 그리는 것은 재밌었다.

나는 명난희 쌤이랑 서울을 돌아다닐 때 더위를 느꼈다.

나에게 그 친구의 의미는 형제이다. 서울은 지금 나에게 그냥 서울이다.

그 친구는 공부 잘하는 사람이다. 그 친구와 나는 주로 운동을 한다.

지금 만나지는 않지만 예전에 친했던 나의 친구는 구진호다.

나는 쿨한 사람이다.

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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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강원도 시골 해남 수락산 북한산 시골 똥냄새 북한산 거리의 풍경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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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불필요한 가이드


서울을 사진에 담았다. 서울에 익숙한 사람이 있고 낯선 사람이 있다. 익숙한 사람이

양은 사진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위해 만났다.

이들은 결과물을 내기에 앞서 ‘친구’가 되는 일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들의 친구에게 소개할 그 날에 그들도 그럴 것이다.

찾기보다, 익숙한 데서 낯선 것, 낯선 데서 익숙한 것을

찾기로 했다. 각각 장소를 제안하고, 서로에게 익숙한 곳과

이슬람사원이나 절에는 들어가기 싫어요”, “이태원엔

바뀌었다. “트렌스젠더가 뭐예요?”, “저는 기독교인이라

했던 대화들이 어느덧 솔직한 표현을 담은 이야기들로

많이 한 일은 사진 찍기가 아닌 대화였다. 처음에는 겉돌기만

낯선 곳을 선택해 무작정 걸음을 옮겼다. 함께 걸으며 가장

소개하는 서울일지라도 낯선 자가 바라보는 대상은 결국 자신에게 보이는 것만, 보고 싶었던 것만 보게 된다. 언젠가

어느 정도 익숙했다. 우리는 서울의 낯선 모습만을

대로의 서울, 보고 싶은 대로의 서울이 있다. 익숙한 자가

참여한 두 친구는 남한 생활 1-2년 차로, 서울이란 도시에

말하는 서울이 곧 정답은 아니다. 낯선 사람에게도 보이는

자신이 서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에게 서울이란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이들은 낯설면서도 익숙한

사진작가 박태식과 성의석, 참여 학생 문설경 양과 조엘라

스스로 서울을 해석해 나갔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러나 설경 양과 엘라 양은 이 이야기에 공감하기보다,

이야기나 이색적인 부분을 설명하고자 했다.

작가들은 때로 가이드가 되어, 서울 사람에게 익숙한 서울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여자를 보면 부러워요” 같은 대화를 주고 받으며 이들은

팥빙수가 맛있고 옷은 정말 촌스러워요”, “얼굴이 갸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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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아트선재센터 ‘Real DM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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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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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마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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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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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경마장 정말 좋았죠~ 경마장은 풍경이 정말 좋았어요. 높은 건물도 없고 주변에 산도 보여서 좋았어요. 구름 멋지지 않아요? 도박하는 곳이라길래 무섭기도 하고 떨리기도 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굉장히 편안하고 재밌었어요. 돈도 땄는데 딴 돈으로 경마장 안에 있는 냉면집에서 냉면을 사먹었어요. 살다살다 그렇게 맛 없는 냉면은 처음 먹어 봤어요. 결국 채해서는 며칠 고생했죠. 사실 그때 배가 엄청 고팠거든요. 그래서 뭐든 먹으면 다 맛있을 줄 알았는데 정말 맛이 없었어요. 물어보니 그런 곳에서 먹는 음식은 대부분 맛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왜 경마장에 가고 싶었냐면요.

무엇보다 말을 보고 싶었어요. 북한에서 자주, 아니 몇 번 봤는데 여기 와서는 한 번도 못 봤어요. 사실 도박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기보단 말을 보기도, 타기도 하고 싶었죠. 근데 막상 타려니 무서웠어요. 떨어져 죽으면 어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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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들이 5층까지 가득 찼어요. 아저씨들이 정말 진지하게 도박에 임하더라구요. 저는 도박이라는 것도 생소한데 이 분들은 목숨 걸고 하시는 것 같아요. 옆에 빵 보이죠?(하하) 옆에 사람들도 도시락 먹으며 시간을 아껴가며 도박하고 있어요. 이런 건 재미로 할 게 아니에요. 돈이 왔다갔다 하는데. 왜 이런 걸 재미로 해요? 이 사진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이 사람만 보이지만 사실 이 사람을 찍으려고 한 건 아니에요. 이 주변 사람들이 보였어요. 한 사람은 긴장한 듯 보고 있고 한 사람은 신문 보며 계산하고 있고요. 각자 너무 진지하게 행동하고 있는 모습이 재밌었어요. 마지막에 찍은 이 사진은 사실 특이해서 찍었다기보다는 위에 있는 모래를 보니 고향 생각이 나더라고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느낌이 그렇게 와닿았어요. 제가 바닷가에서 살았거든요. 모래가 많은 곳에 살았죠. 그냥 고향 생각이 나 찍었어요. 이렇게 이유 없이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모습들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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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으로 오고 나서 절에는 처음 가봤어요. 스님이라고 부르나요? 정말 신기했어요. 숨도 안쉬고 불경을 외우시던데... 뭐라고 하시는 거에요? 마하하하 하하아아...

라고 하던데, 끊임없이 말씀하시더라고요. 복식호흡을 연습하셨나봐요. 노래도 잘 부르실 것 같아요. 그리고 처음엔 절에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기독교인이니까. 내키진 않았던 건 사실이에요. 근데 막상 들어가 보니 특별한 건 없었어요. ‘아 이런 곳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무섭거나 그렇진 않았어요. 티비에서 많이 봤잖아요. 그리고 이 나라 종교가 엄청 많잖아요. 저는 기독교를 믿으니까 맘 속으로 ‘이곳은 종교가 왜 이렇게 많아...’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불교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직접 이렇게 와서 보니 믿는 사람들이 기독교보다 더 많이 있는 것 같았어요. 북한에는 절이 없어요. 아, 평양에는 있다. 그런데 이렇게 모임을 하진 않고요, 예전엔 중들도 있었다는데 지금은 중들 다 없앴다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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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선재에서 열린 ‘real DMZʼ 전시는 정말 신기했어요. 남한에서 느껴보는 북한의 모습 그대로였어요. 예전 생각도 나고 옛 추억이 생생해지기도 했어요. 그리고 마음이 좀 짠하기도 했어요. 다시 한 번 북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요. 대부분 한국 작가들일 텐데 북한을 제대로 알고 담았더라고요. 많이 비슷했어요. 약 85% 정도? 조금 다른 것도 있었는데. 북한 학교에서 수업할 때 여성 선생님은 특별한 날이 아닌 이상 저고리 옷을 입고 있지 않아요. 다들 정장의 평상복을 입으세요. 그렇다고 반바지는 입지 않으세요. 치마는 무릎까지 오는 치마를 입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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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 되었으면. 내일 2020년 5월 1년 뒤 가을이 지날 무렵 2020년 가을 2015년 8월 14일 2020년 3월 14일, 봄 2017년 10월 12일 오늘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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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그렇게 우리는 서울에 산다


슌, 정혜란, 김수연, 곽원일 님께 특별히 감사 드린다. 그렇게 싱어송라이터 양빛나라와 하태일 군, 차혜주 양의 노래 <우리는 서울에 산다>는 완성되었다. 이 책에는

멜로디와 가사를 써 한 곡의 노래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양빛나라는 노래의 멜로디와 곡을 만들고

두 학생은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가사를 썼다.

또 오른쪽 페이지에 첨부한 QR코드를 인식하면 링크되는 사이트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다.

현실 적응과 앞으로의 삶이 중요했다. 차혜주 양은 서울에

온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아서인지 고향에 있는 그리움과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둘의 가사에 하나의 이야기가

글을 썼다. 이 두 가지 느낌을 하나의 노랫말로 만드는

차혜주 양은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묻어있는 감성적인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느껴지는 현실적인 글을 쓴 반면

뿐만 아니라 이 한 곡이 만들어지기까지 특별한 음악인들의

있어서 서로에게 신선한 기억이 되었다.

들어가기까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 곡을 함께 완성할 수

자기 목소리를 녹음하는 데 부담을 많이 느꼈다. 녹음실에

이러한 프로세스가 낯선 아이들은(누구나 그렇겠지만)

노래 후반부 후렴에는 아이들의 목소리도 함께 담았다.

나니 멜로디를 붙이는 과정은 오히려 쉽게 진행됐다.

전개되는 듯한 자연스러운 흐름이 있었다. 내용을 다듬고

이 책의 마지막은 이 곡을 들으며 함께 나누었으면 한다.

라디오 방송국에서 청취 및 구입할 수 있다.

하태일 군은 남성적이면서 비전이 뚜렷했고 그리움보다는

애잔함이 남아 있었다. 하태일 군은 어서 이곳에 적응하고

<우리는 서울에 산다> 곡은 각종 음원 사이트와

처음 하태일 군과 차혜주 양의 가사의 느낌은 많이 달랐다.

이 곡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가사를 담았다.

도움으로 풍성한 소리를 담을 수 있었다.

싱어송라이터 양빛나라와 참여 학생 하태일, 차혜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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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xed by Flying Pig at Flying Pig Studio mastered by 도정회 at SOUND MAX

recorded at NALO MUSIC Recording Studio (vocal, chorus) by 슌(SHOON) Ampia Ent.(drum, bass) by 김승호 Flying Pig Studio (piano) by Flying Pig 곽원일 작업실(string, pad) by 곽원일

musicians vocal, piano, pad by 양빛나라 string by 곽원일 bass by 정혜란 drums by 김수연 chorus by 슌(SHOON) special chorus by 하태일 차혜주 이재영 chorus arrangement by 슌(SHOON)

credit lyric by 하태일 차혜주 produce, compose, arrangement by 양빛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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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 하태일 차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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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 양빛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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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서로의 소중함을 몰랐던 우리 인사도 없이 서로의 길로 헤어졌지만 없으면 인생이 심심해지는 너와 나는 친구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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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불빛이 밝아질수록 너의 모습은 자꾸 희미해지지만 그래도 우리는 친구이기에 서로를 기억하며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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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다 꾸지람 듣던 어린 시절 뛰어놀던 그곳이 그리워질 때면 다시 만날 그 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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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에 있지만 같은 하늘, 별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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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말 같은 서울에 사는가

추천의 글1

현영석 독립잡지 <록셔리 > 편집장

서울의 한 다세대 주택, 까치발을 세운 맨발로 짬뽕 그릇을 내놓고 있다. 아래층에서 시작해 건물 안을 꽉 채우고 있는 벨소리로 현관 밖은 이미 소란스러웠다. “택배입니다.” “이거 두 개인가요?”, “네”, “감사합니다”, “저기 죄송한데 203호는 맨날 아무도 안 계신데”, “제가 203호는 전혀

모르는데요”. 계단 통로를 타고 위층까지 울린 대화 내용은 맨발로 서 있는 돌바닥 만큼이나 차갑게 느껴졌다. ‘한국에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지내는 건 정말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는 책 속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웃을 생각하기엔 참으로 고독하고도 난해한 도시, 우리는 별 하나 보이지 않는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사는 것이 분명한 듯했다. <우리는 서울에 산다>의 첫 번째 이야기를 펼치기 전 내심 걱정이

앞섰던 기억이 있다. 그들이 가지고 내려온 소망들이 도시의 분주함 속에서 길을 잃지는 않았을까, 같은 도시를 살아가는 동료로서 미안하고 답답한 마음을 느끼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책 장을 넘기며 찾아온 이야기는 다시 한 번 그들에 대한 나의 무지를 확인시켜주었다. 그동안 무엇을 보고 어떤 상상을 해왔던 걸까. 그들이 사는 모습과 고민 또한 내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더 멋지고 씩씩하게 저마다의 생활을 가꾸고 있어 짐작에서 나온 얄팍한 감상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먹을거리를 주제로 서울을 기록한 사진들은 어찌나 내 마음과 똑같던지, 말이 잘 통하는 친구를 만난 것처럼 사진을 향해 악수라도 건네고픈 심정이 되어 물었다. “그 왜 하트 모양으로 밥 볶아준 데 있잖아, 자주 간다는 단골집. 그거 어디에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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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울에 산다 - 친구에게>는 보고 싶은 친구에 대한 기록이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우서산 친구들이 제법 가깝게 느껴진 모양이다. 한동안 숨겨왔을 친구들의 이야기에 금세 눈알이 시큰해졌다. 꾹꾹 참아왔을 그리움들이 노래가 되어 가슴에 차곡히 내려 앉았다. 층층이 내려 앉은 노랫말들에 얼굴 위 표정은 바쁘게 움직였다.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애틋함으로. 협업을 통한 과정을 지켜보며 뭉클한 기운이 계속되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괜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볼 수 없기에 추억할 수밖에 없는 친구들, 당장은 만날 수 없기에 오늘 없는 기억과 바람을 불러냈지만 쓸쓸하진 않았다. ‘세 번의 만남, 일곱 통의 메일, 그리고 여러 번의 전화를 통해’ 묻어 두었던 외로움을 들어줄 친구가 곁에 있었다. 상처를 대면하며 스스로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에 나 역시 있는 힘껏 응원을 보태게 되었다. 이렇게 우정으로 빚은 시간들이 묶여 또 한 권의 멋진 소통의 기록이 되었다. 지난 4개월의 기록을 덮으며 말하고 싶어졌다. “둘 다 응원해도 괜찮아.”

위로와 용기의 말보단 함께 축구가 보고 싶어졌고, 별 하나 없는 까만 밤하늘 아래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싶어졌다. 그렇게 서울에 살고 싶어졌다. 그렇게 같이 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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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같은가, 정말 다른가.

편집 디자인 후기

이재영 6699press. 그래픽디자이너

선. 색. 중간. 하늘. 구름. 부호. 두만강. 손글씨. 남과 북. 지리적 방위. 왼쪽과 오른쪽. 과연 같은가, 정말 다른가.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나를 꾸준히 괴롭혔던 질문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괴로웠던 시간은 탈북자를 대상으로 한 다큐멘터리와 책들을 보고 나서였다. 프로젝트에 더 몰입하고자 본 것이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하고픈 말과 달리, 탈북자에 대한 자극적이고 이질적인 표현에 생각이 어지러웠다. 물론 전혀 도움이 안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왜 이들이 하는 이야기는 보통의 언어가 아닌, 마치 유토피아에서 디스토피아를 바라보는 듯한 언어로 표현되어야 했던 걸까. 그렇게 <우리는 서울에 산다-친구에게>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같은 도시를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프로젝트 동안, 아티스트가 된 참여 학생들은 저마다 발견한 서울의 조각들을 즐겁게 나눴다. 그중 가장 많이 나눈 이야기는 바로 하늘에 대한 감상이었다. 나는 이들이 말하는 서울과 고향의 하늘을 책의 시작과 끝에 담았다. 책에서 확인할 수 있듯 아이들이 보는 두 하늘의 색은 같다. 또 평행한 구조로 나란히 있다. 그리고 지리적으로, 현실적으로 구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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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친구’에 대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두 하늘의 모습을 빌려 책 속

페이지에 풀어내려 했다. 그것은 곧 ‘우리는 하나’라는 다분히 계몽적인 주장을 억지로 강요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이라는 겉모양이 같을 뿐 각각의 내면은 분명 같을 수 없다. 저마다의 이야기, 저마다의 이성, 저마다의 감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사람으로서의 이야기가 가진 흔적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나타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우리는 서울에 산다 - 친구에게>는 5개 팀(그림, 글, 사진, 노래,

일러스트레이션)의 신진 예술가와 탈북 청소년의 협업이 만든 결과물로서 ‘친구’와 ‘서울’을 직·간접적으로 다루었다. 다른 방식과 결과를 하나의 목소리로 엮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앞서 보셨겠지만 각 팀마다 주어진 주제를 다양하게 재해석했다. 흔히 ‘친구’와 ‘서울’이 가지는 일차적이고 예상 가능한 범주의 의미를 뛰어넘어, 참여자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친구’와 ‘서울’의 가치를 확장시켰다. 나는 책을 이끄는 하나의 스토리텔링을 노래 팀의 가사에서 영감을 얻어 가사가 책 전체를 이끌어 가도록 유도했다. 책의 도입에 ‘다른 곳에 있지만 / 같은 하늘 별과 꿈’이라는 가사를 위쪽과 아래쪽(북과 남)에 배치하였다. 이어지는 페이지는 지리적 방위가 가지는 의미를 구분한다. 서울에 사는 한 소녀의 바람처럼 언젠가 평양에 사는 친구를 서울에서 다시 만나 함께 이 도시를 거닐며 소개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글과 그림, 사진 팀의 순서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페이지는 다시 노래 팀의 가사와 서울의 하늘 색을 만난다. 자연스럽게 편지가 오버랩되며 책은 천천히 덮힌다. 이들은 서울의 하늘에선 별이 보이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별이 보이지 않는 낯선 이 도시에서 이들의 이야기가 반짝이며 수놓아지기를 바란다. 페이지 위를 떠다니는 작은 활자처럼, 하늘 위에 작은 불빛이 되어 멀지만 가깝길 바라는 소원의 항구에 입항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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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서울에 산다


우리들학교 서울시 관악구 신사동에 위치한 탈북다문화청소년 대안학교 우리들학교는 2010년, 3명의 전·현직 교사들을 중심으로 열다섯 명의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이 함께 당시 24살의 탈북 청년 한 명을 가르치면서 시작되었다. 현재 우리들학교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탈북 청소년 및 청년들이 공부하고 있다. 우리들학교에 재직 중인 전·현직 교사들과 전문인 자원봉사 교사들의 교육 기부와 재능 기부를 통해 대한민국의 다음 세대인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의 학생들은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탈북과정에서 학업 시기를 놓친 탈북 청소년들에게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고자 설립된 대안학교로서 북한 탈북과정에서 지친 심리적, 신체적 치유를 통해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게 하도록 함을 목표로 운영되고 있다. www.wooridulschool.org t.02-6015-6245 f.070-7500-9919


제작 지원

기획 6699press

디렉터 이재영 이 책은 푸르덴셜사회공헌재단의

진행 및 행정

탈북청소년 성장지원사업의

이재영

이정하

일환으로 제작되었으며, 수익금 전액은 우리들학교

참여 작가

학생들이 정하는 복지시설에

고은초

명난희

기부됩니다.

박태식

성의석

양빛나라 윤세정 사업시행기관 우리들학교

우리들학교 참여 학생 문설경

문혜숙

방체혁

박수향

양수련

조엘라

차혜주

하태일

한의 북 디자인 이재영 교정 교열 유영란 도움 현영석

박혜미

이시몬 인쇄 신일인쇄 출판 편집 6699press

초판 1쇄 펴냄 ⓒ6699press

인천시 남동구 구월로 192 6699press.tumblr.com 6699press@gmail.com ISBN 978-89-969771-2-4

값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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