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정치경영연구소 제1회 대안담론 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제1회 대안담론 포럼 자료집
일시_ 2010년 6월 11일 14:00~17:30 장소_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1관 한림홀
포럼 일정 등
록
13:40~14:00
인사말씀
14:00~14:10
■ 이영선 한림국제대학원대 총장 ■ 김종인 고문 (전 청와대 경제수석) ■ 최태욱 소장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제 1회 대안담론 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사회: 박순성 동국대 교수
제 1세션“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
14:10~15:10
■ 발제: 이근식 고문 (서울시립대 교수) ■ 토론: 원희룡 의원 김종걸 한양대 교수 정석구 한겨레 논설위원 휴식 15:10~15:20
제 2세션“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민주주의”
15:20~16:20
■ 발제: 최장집 고문 (고려대 명예교수) ■ 토론: 천정배 의원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휴식 16:20~16:30
제 3세션“한국형 합의제 조정시장경제와 합의제 민주주의” 16:30~17:30 ■ 발제: 최태욱 소장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 토론: 심상정 전 의원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전민용 건치신문 대표
1
목 차
■ 포럼 일정 1 ■ 목차 3 ■ 제1 세션 ·발제문: 이근식“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 5 ·토론문: 원희룡
32
김종걸
35
정석구
40
■ 제 2세션 ·발제문: 최장집“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에서 자유주의에 대한 하나의 성찰” 43 ·토론문: 유종일
65
이대근
68
■ 제 3세션 ·발제문: 최태욱“한국형 조정시장경제와 합의제민주주의: 진보적 자유주의 구현 을 위한 제도적 해법” 70 ·토론문: 박상훈
92
전민용
94
3
제1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1) 이근식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진보적(상생적) 자유주의가 현재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나라의 이념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시대정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보와 보수 양쪽의 좋은 내용을 모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다음과 같은 생각들이 주장될 것이다. 자유롭고 평등한 근대 시민사회를 건설한 중소 브루주아지의 건강한 시민정신이 자유주의이다. 자유주의는 모든 인간은 지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불완전하다는 정확한 인간관에 기초하고 있다. 만인평등과 인권 존중, 개인의 사회적 자유, 사상과 표현의 자유 및 관용과 같은 근대 시민사회의 기본적인 원리가 자유주의의 기본내용이다. 자유주의 는 보수적 이념인 경제적 자유주의와 진보적 이념인 정치적 자유주의로 구분될 수 있다. 평등은 본 원적 평등, 사회적 평등 및 경제적 평등의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본원적 평등은 자유의 정당 성이 도출되는 근거이며, 사회적 평등은 자유와 같은 내용이다. 진보가 사회발전의 핵심 내용이다. 오직 경제적 평등만이 자본주의사회에서 자유와 갈등한다. 자유주의는 개인주의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간에 이해상충이 존재하는 사회적 갈등문제에 대해서는 해결의 방향조차 제시하지 못하 는 한계를 갖고 있다. 이러한 평등과 상생에 관한 내용을 보완한 자유주의인 진보적(상생적) 자유주 의가 이념대립을 극복하고 우리나라 발전을 위한 길잡이가 될 수 있으며 이를 실현시킨 성숙한 복 지국가가 우리의 나아갈 방향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시장의 실패와 정부의 실패라는 말 대신에 자본주의의 실패와 국가의 실패라는 말 을 주로 쓰고자 한다. 시장의 실패와 정부의 실패가 모두 경제부문에 국한된 것인데 비하여 자본주 의의 실패와 국가의 실패는 여기에 정치, 사회, 문화와 같은 비경제부문에서 발생하는 병폐를 합한 것이다. 즉 자본주의의 실패란 시장의 실패(불공정 분배, 불황과 실업, 독과점화, 환경파괴, 공공재 의 공급부족)에 비경제부문에서 나타나는 자본주의의 폐해들(이기주의와 배금주의의 만연으로 인한 인간성의 황폐화와 윤리의 타락, 약소국 침탈과 국가 간 전쟁의 유인 증대 등)을 더한 것을 말한다. 국가의 실패는 정부의 실패(경제부문에서 발생하는 정부의 무능과 부패)에 국가에 의한 자유의 억 압과 인권 유린과 전쟁 도발과 같은 비경제부문에서의 정부의 잘못을 합한 것을 말한다2). 1) 이 글은 내가 쓴 『상생적 자유주의 : 자유, 평등, 상생과 사회발전』(돌베개, 2009)를 부분적으로 발췌하 여 수정/보완한 것이다. 2)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의 성공과 국가의 성공이란 말도 성립할 것이다. 자본주의의 성공이란 시장의 성공 (생산의 효율성의 향상과 빈곤의 완화 등)에 비경제부문에서 발휘한 자본주의의 공헌(자유의 와 민주주의 와 근대 문화의 발전의 물질적 토대 제공 등)을 합한 것을 말하며, 국가의 성공이란 정부의 성공(시장의 실패의 치유)에 비경제부문에서 나타난 국가의 공헌(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확립을 통한 개인 자유의 확
5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1.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자유란 억압이나 속박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자유의 구체적 의미는 다양 하게 해석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자유주의가 주장하는 자유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첫째, 자유는 집단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이다. 자유는 개인에 대해서만 사용되며, 국가, 민족, 계 급, 회사와 같은 단체나 조직에 대해서는 사용하지 않는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자유는 어디까 지나 개인에게 적용되는 말이며 집단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둘째로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는 사회적 자유(social liberty)이다. 사회적 자유란 사상과 출 판, 취업, 결사, 정치참여, 종교선택과 같이 개인의 사회생활에 필요한 자유를 말한다. 이와 달리 개 인적인 무지, 탐욕, 미신, 강박관념, 나쁜 습관이나 친구와 같이 특정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로 부터의 자유를 개별적 자유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개별적 자유는 개인이 개별적으로 해결하여 야 할 문제이므로 사회문제라고 볼 수 없다. 개인의 사회적 자유를 주로 제한하는 것은, 정치권력, 종교권력, 언론권력과 같이 모두 사회적 권력이다. 따라서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는 사회적 권 력의 부당한 침해로부터의 자유라고 볼 수 있다. 밀(John Stuart Mill)의 말을 빌리면, 자유란 “의 지의 자유가 아니라 시민적(civil) 혹은 사회적 자유이다. 바꾸어 말하여 사회가 개인에게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본질과 그 권력행사의 한계의 문제”이다(Mill, 『자유론』, p. 237). 셋째로,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는 협의의 자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권과 재산권을 모두 포함하는 인권(human rights) 전체이다. 자유는 협의의 자유와 광의의 자유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협의의 자유란 개인의 사회생활에서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말한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 행 동과 직업선택의 자유 등이 이에 해당한다. 광의의 자유란, 자유만이 아니라, 개인의 생명과 신체, 재산의 보장을 모두 포함한 개인 기본권 전체를 말한다. 자유주의자들이 구체제의 강압정치에 대항 하여 투쟁할 때에 기치로 내건 자유도 이러한 광의의 자유였다. 그러나 협의의 자유는 실질적으로 광의의 자유와 동일하다. 생명과 인신과 재산에 대한 권력의 침해는 협의의 자유의 박탈을 초래하 기 때문이다. 이런 개인의 사회적 자유를 가장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보는 사회사상을 자유주의(liberalism)라 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간단히 말하기에는 자유주의의 의미가 매우 풍부하고 복잡하여 혼란과 논쟁이 그치지 않아 왔다. 그 기본이유는 자유주의 자체가 시대, 사회와 집단에 따라서 각 기 달리 사용되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혼란을 피하고 자유주의의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 하기 위해 자유주의가 등장하고 발전해온 역사적 과정을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른 사회이 념과 마찬가지로 자유주의도 사람의 머리 속에서 관념적으로 발전되어 온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 사 속에서 형성되어 왔다.
대와 사회적 차별의 철폐 등)을 합한 것을 말한다.
6
제1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
자유주의는 르네상스, 종교개혁 및 시민혁명이라는 근대 서양의 구체적인 역사의 전개 속에서 형성되어 왔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이런 사회적 변화의 주도세력이었던 부르주아(중소상공인)들을 탄생시킴으로써 자유주의가 발전할 사회경제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르네상스에서는 인본주의, 개인주의, 현세주의 그리고 이성에 대한 자각, 이성을 이용한 과학의 발견, 합리적 사고방식이라는 자유주의의 요소들이 생성되었다. 종교개혁을 통해서는 종교와 사상 및 양심의 자유, 관용 그리고 자본주의적 윤리라는 자유주의 요소가 형성되었다. 절대군주제를 무 너뜨린 시민혁명에서는 폭정에 대한 저항권, 사유재산권을 포함한 개인의 기본권 사상 그리고 개인 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라는 자유주의의 사회제도가 생성⋅발전하였다. 이 렇게 보면 자유주의는 인본주의, 현세주의, 개인주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종교와 사상의 자 유, 관용, 자본주의 윤리, 폭정에 대한 저항권, 사유재산 및 인권의 존중 등을 모두 포함하는 사상 이며 이는 근대서양의 사고방식 전체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이를 광의의 자유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자유주의를 이런 광의의 자유주의로 해석하여 르네상스에서 자유주의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 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범위가 너무 넓어서 자유주의를 다른 서양 근대 사상과 구 분하기 힘들게 한다. 예를 들어 현세주의나 과학적 사고방식 등은 분명 자유주의의 기반이 되는 요 소이긴 하지만 비단 자유주의만의 요소라기보다는 모든 합리적인 사고방식에 공통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주의도 이런 사고방식을 주장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서양 근대사상 들과 차별되는 사상으로서의 자유주의인 협의의 자유주의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통상의 자유주의는 광의의 자유주의가 아니라 협의의 자유주의를 말하며 이제부터 이 글에서도 자 유주의를 협의의 자유주의와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마르크스와 같은 사회주의자나, 헤겔과 같은 국가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을 제외하고, 베이컨 (Francis Bacon), 홉스(Thomas Hobbes), 로크(John Locke), 흄(David Hume), 스미스(Adam Smith), 밀, 몽테스큐(C. L. Montesquieu), 볼테르(François M. A. Voltaire), 칸트(Immanuel Kant), 베버(Max Weber) 등 근대 서양의 대표적 사상가들 대부분을 자유주의자로 볼 수 있다. 이 처럼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주장이나 이론을 모두 담을 수 있는 자유주의를 정의하기란 거의 불가 능하다. 이런 곤란을 피하기 위해 자유주의를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하여 보자. 근대 서양사회는 자본주의경제와 함께 발전하여 왔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서양사회를 여러 면에 서 본질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생활단위가 중세 봉건사회의 장원이라는 공동체에서 자본주의의 개 인 사업으로 변함에 따라서,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도 중세의 공동체주의에서 개인주의로 바뀌게 되었다. 또한 중세의 지주귀족계급이 점차 힘을 잃어간 반면, 평민인 중소상공인(부르주 아3))이라는 새로운 계층이 부를 축적하여 새로운 사회주도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 부르주아 계급이 서양 근대사회발전의 주역인 시민계급4)이다. 3) 부르주아(bougeois)는 중소상공인을, 부르주아지(bourgeoisie)는 중소상공인계급을 말한다. 4) 시민(citizen)을 이념형으로 파악하면, 사회의 주인의식을 가지고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회구성원이며,
7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서양에서 대략 15세기에서 18세기까지는 근대국민국가 건설 단계(nation building stage)였다. 이 시기에 천년의 중세 시대에 수많은 제후국으로 분할되어 있던 땅들을 통일하고 근대국가를 건 설한 것이 절대군주였다. 이들은 안으로는 국토와 제도들을 통일하여 근대국가를 건설하고 밖으로 는 외국과 영토전쟁을 계속하였다. 이 시기 유럽국가들의 부국강병책 내지 경제적 민족주의의 경제 정책을 중상주의(mercantilism)라고 부른다. 부르주아들은 근대국민국가의 건설단계에서는 절대군주를 지지하고 협력하였다. 절대군주들에 의한 영토, 시장과 제도의 통일은 지방영주들의 수탈과 복잡한 규제를 벗어나게 해 줌으로써 부르 주아들에게 유리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절대군주들도 기존 귀족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부 르주아들의 협력이 필요하여 부르주아 출신들을 관료로 등용하였으며, 귀족이나 교회로부터 뺏은 토지를 부르주아들에게 판매하였다. 이와 같이, 절대군주제의 형성은 절대군주와 부르주아의 연합 세력이 기존의 지방 귀족세력을 축출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통일된 근대국민국가가 건설된 다음에는 부르주아들이 절대군주가 지배하는 구체제에 대 하여 점차 반항하게 되었다. 절대군주제하에서 왕을 정점으로 하여 귀족과 평민을 차별하는 신분질 서가 공고하여졌다. 이러한 차별적인 신분질서에 기초한 절대군주제가 자유주의자들이 저항한 구체 제(ancient regime)였다. 구체제는 귀족들에게는 세금을 면제하는 등 각종의 특혜를 허용한 반면에 부르주아들을 비롯한 평민들에게는 조세와 병역을 부담시키고 이들의 생명, 신체와 재산을 자의로 강탈하기도 하였다. 또한 구체제의 중상주의는 각종의 경제규제로 중소상공인(부르주아)들의 이익을 침해하였다. 이 때문에 평민이었던 부르주아들은 구체제를 무너뜨리는 시민혁명과정에서 앞장 서는 주도세력이 되었다. 근대 서양에서 절대군주제의 구체제를 타도한 시민혁명의 주도세력이 부르주아지이고 시민혁명 을 이끈 이들의 사회사상이 바로 자유주의이다. 자유주의란 16세기 후반부터 18세기말까지 서양의 시민혁명 과정에서 형성된 근대적 사회사상으로서, 모든 개인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신념에서, 비 인간적이며 차별적이었던 절대군주제와 전통적 신분사회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축으 로 하는 근대서양의 평등한 시민사회를 건설한 주역이었던 부르주아의 건강한 시민정신이다. 부르주아들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들을 수탈하는 신분 차별을 반대하였 고, 절대군주의 횡포를 막기 위하여 헌법과 법으로 국가권력을 명확히 제한하는 입헌주의 내지 법 치주의를 주장하였으며, 나아가서는 자신들이 직접 국정에 참여하기 위하여 민주주의를 주장하였으 며, 자신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위하여 정부의 경제규제를 철폐하는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하였다. 과거 중세시대의 공동체 생활과 달리 이들의 생업은 각 개인이 자기책임 하에서 독립적으로 운영하 는 개인사업이기 때문에 공동체보다 개인의 권리와 책임을 우선시하는 개인주의를 주장하였으며, 개인의 생명과 재산, 자유 등 자신들의 모든 정당한 사회적 권리를 자유(liberty 혹은 freedom)라 는 한 마디로 요약하였다. 자유주의가 주장하는 자유는 자유만이 아니라, 생명과 재산의 권리를 모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압제에 대항하여 투쟁하며 자신이 바라는 사회의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 여 자신의 사회적 의무를 수행하는 계층으로 이해할 수 있다.
8
제1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
두 포함하는 개인의 기본인권 전체이다5). 서양의 시민혁명과정에서 생장한 이상과 같은 원래의 근대시민정신을 고전적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라고 부른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16세기에서 19세기 전반까지 구미에서 민주주의, 법치 주의, 자유시장경제와 같은 근대적 사회질서를 건설하는 데에 이념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이런 점 에서 자유주의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현대의 후진국 내지 중진국이 근대적인 사회질서를 건설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고방식이다. 전근대적 사회를 탈피하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및 자유 시장경제라는 근대적 사회질서를 건설하는 것이 오늘날 이들 국가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2. 자유주의의 인간관 : 인간의 불완전성 인간 본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사회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모든 사회 현 상은 결국 구체적인 인간의 개인적⋅집단적인 행동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는 이론은 사상누각과 같아 잘못된 해답을 제시하기 쉽다. 자유주의는 이 점에서 튼튼한 기초를 갖고 있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것이 자유주의의 인간관이자 자유주의의 모든 주장의 기초이다. 우리 인간은 이성과 양심을 갖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밀과 하이에크가 정확하게 지적한 바와 같이 인간 은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존재이다(Mill, 『자유론』, 258쪽; Hayek, LLL1, 11-14쪽). 인간의 불완전함은 인식과 도덕(윤리)의 양면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인간은 정보와 정보처리능력 이 부족하여 인식에서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또한 인간은 도덕적으로도 불완전하여 자신의 욕심 을 채우기 위하여 다른 사람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기 쉽다. "우리는 양심이라는 내부의 불편부당한 판사를 갖고 있으나 이 판사는 이기적 욕망이라는 폭력과 불의에 의해 부패할 위험에 자주 처하므 로, 우리는 종종 사실과 크게 다른 보고서를 제출하는 유혹에 빠져 든다."(Smith, 『도덕감정론』, 141쪽 각주). 이처럼 인간이 인식과 윤리의 양면에서 불완전한 것을 인간의 이중적 불완전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이중적 불완전성이 자유주의의 모든 중요한 주장들의 기초이다. 자유주의가 강조 하는 사상과 비판의 자유가 필요한 것은, 누구나 과오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서이며, 정부권한의 제한, 계획경제에 대한 반대, 법치주의의 주장 등 자유주의의 주요 주장들도 모 두 인간의 불완전함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결론들이다. 정치권력자들도 불완전한 인간이므로 정 부권력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며, 경제계획을 수립하는 정부의 관료들도 인식능력이 부족 한 인간이므로 이들이 작성한 경제계획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며, 누구든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에게 부당한 피해를 줄 수 있으므로 이를 막기 위해 공정한 법질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5) 영국 고전적 자유주의의 대표였던 로크는 생명(life)과 자유(liberty)와 재산(estates)을 합하여 소유물 (property)라고 이름하고 이의 보호가 사회(국가)의 목적이라고 보았다. Locke, 『통치론』, §85, §123.
9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3. 자유주의의 기본 원리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서양의 시민혁명과정에서 형성된 다음과 같은 고전적 자유주의의 중요 한 기본 원리들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서 다소 변형되었지만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생 각된다.6)
1) 만인평등 모든 사람은 사회적으로 평등하다는 만인평등의 사상이 자유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생각이다. 자 유의 정당성도 여기서 도출된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므로 아무도 타인의 자유를 억압할 권리가 없 기 때문이다. 만인평등의 내용을 좀 더 살펴보자. 첫째로, 사회적 평등은 인격과 인권에서의 평등을 말한다. 모든 사람은 존엄성과 인권과 인격에 서 완전히 평등하다. 모든 개인은 신분, 인종, 성, 종교, 재산 등에 상관없이 모두 동일하게 사회적 으로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어떤 사람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그 목적이 아무리 숭고하더 라도,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자유주의 이전의 전근대사회에서는 국가, 민족, 가문 혹은 종교나 이 념을 위해서, 개인이 희생되는 것을 당연시하였다. 자유주의의 만인평등은 이를 단호히 반대한다. 근대윤리의 정수인 인본주의(humanism)는 이러한 자유주의의 평등한 인간관에서 도출된 윤리라 고 볼 수 있다. 모든 인격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말이 이를 잘 요약한다7). 이 는 개인 인권의 절대성을 인정하는 개인주의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실질적으로 둘 다 같은 내용 이기 때문이다. 인본주의는 인간을 하나님의 종으로 파악하던 2천년 가까운 기독교 인간관으로부터 해방되어 인간이 스스로 독자적 가치를 지닌 존재로 자신을 자각한 표현이다. 둘째로 자유주의는 법 앞의 평등을 주장한다. 신분이나 재산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근대 법치주의의 기본사상은 자유주의의 평등사상의 한 표현이다. 법의 차별이라는 전 근대적 제도를 청산한 것이 자유주의이다. 셋째로 자유주의의 평등은 기회균등을 의미한다. 교육, 직업, 공직출마 등 모든 사회활동에 참 여할 수 있는 기회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개방되어야 함을 말한다. 구체제의 신분사회에서 평민이라는 이유로 왕과 귀족들에게 차별을 받았던 부르주아들은, 이런 6) 자유주의의 기본원리를 최초로 명확히 정리한 사람은 영국철학자 로크(John Locke; 1632∼1704)이다. 자연적 자유, 만인 평등, 개인의 기본권(생명, 자유, 재산에 대한), 합의에 의한 정부(사회계약론), 정부권 한의 제한과 권력분리, 종교적 관용, 법치주의, 정부에 대한 사회의 우위, 혁명권 인정, 정당방위의 원칙 등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거의 모든 원칙이 그의 『통치론』(The Second Treatise of Government, 1690)에 나와 있다. 7) 칸트는 이성이 없는 존재는 수단으로 쓰이는 물건에 불과하여 이성적 존재자만이 인격이며, 이성적 존재 자로서의 인격(Menschlichkeit)은 목적 자체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여기서의 이성은 논리적 사고능력인 순수이성이 아니라 윤리의식인 실천이성을 말한다고 생각된다. 칸트는 윤리의식은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에 의하여 스스로 선택하는 것으로 보았다. Kant, 최재희 역, pp. 222-39.
10
제1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
차별을 철폐하기 위하여 만인평등의 자유주의를 내걸고 왕과 귀족에 대항하여 싸워 승리하였으며, 그 결과 만인평등의 사상이 국가가 등장한 이래 역사상 처음으로 현실에서 실천되었다. 모든 인간 이 인간으로서 동등하게 대접받기 시작한 것은 자유주의가 현실에서 실현되기 시작한 이후부터, 즉 서양의 경우에는 이삼백년 전에 불과하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겨우 60여 년 전의 일에 불과하다. 그 이전 인류가 국가를 이루어 살아 온 수천 년의 긴 세월 동안 신분, 인종, 성, 종교 등의 여러 가 지 기준을 내세운 인간차별이 당연시되어 왔다. 이런 오랜 편견과 악습을 타파하고 만인평등의 사 회를 최초로 실현한 것이 근대서양에서 시작된 자유주의이다. 백 년 전의 조선이나 불과 육십 여 년 전의 일제시대에 우리나라에서 천민이나 혹은 여자라는 이유로 얼마나 심한 차별을 받았던가를 생각하면 만인평등의 자유주의사상이 사회발전을 위해 얼마나 힘찬 생명력을 갖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서양과 동양이 다른 것이 아니고, 근대와 전근대가 다른 것이며, 근대를 전근대로부터 구분 짓 는 핵심은 바로 만인평등이라는 자유주의정신이라고 볼 수 있다. 서양에서도 자유주의가 확립되기 전에는 동양과 똑같이 개인주의도, 평등사상도 없었고, 동양과 똑같이 사회적 차별이 심하였고 이 를 없애기 위하여 일어난 것이 시민혁명이었다. 자유주의의 만인평등사상은 인류역사상 아마도 가 장 중요한 사상이자 근대성의 핵심이라고 생각된다.
2) 자유와 인권의 존중 앞서 본 바와 같이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는 사회생활에서의 자유선택권을 의미하는 협의의 자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권과 재산권을 모두 포함하는 인권(human rights) 전체이다. 모든 개인은 자유로우며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동등한 인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근대의 자유와 인권사상은 만인평등으로부터 도출되는 당연한 생각이다. 인권이란 개념이 등장한 것은 자유주의 덕분이다. 모든 개인은 신분, 재산, 종교, 인종, 성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 인간으로서 그 누구에게도 침범 받을 수 없는 인권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보급되고 사회적으로 실현된 것은 자유주의 덕분 이다.
3) 개인주의 개인주의는 자유주의의 기본입장이다. 개인주의는 구체적 인간인 개인만이 궁극적인 가치를 갖 고 있고, 국가, 조직(단체, 집단), 계급, 이념 등 그 이외 모든 것들은 자체로서의 가치는 없고 오직 개인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수단으로서만 가치를 갖는다고 본다. 자유주의는 개인보다 집단을 앞세 우는 전체주의 혹은 집단주의를 반대한다. 집단이 중요한 것은 집단 자체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집 단에 속한 사람들이 소중하기 때문이요, 사람들이 소중한 것은 구체적인 개인 한 명 한 명이 소중 하기 때문이다.
11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개인주의는 자기사랑(self-love)을 당연한 것으로 본다. 자유주의가 개인의 자기중심적인 사고방 식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인간 역사에서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이다. 그 이전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심이 장려되었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는 비난받아 왔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세월 동안 인류는 항상 공동체를 이루어 공동으로 생산하고 소비하 면서 살아 왔기 때문이다. 공동체생활에서 공동체를 위협하는 개인주의는 비난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전통적 윤리관은 자본주의사회와 부합되지 못한다. 자본주의경제에서 상공업자들은 자기 책임 으로 혼자 힘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공동체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주 의는 자본주의경제에서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책임 하에서 개인기업을 운영하며 독립적으로 살아가 는 중소상공인들의 생활관을 반영한 것이다. 이처럼 경제가 중세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로 변함에 따라서 공동체중심의 윤리에서 개인중심의 윤리로 변화한 것은, 경제가 변하면 윤리, 정치, 문화 등 비경제적 부문들도 따라 변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전형적인 예이다.
개인주의는 흔히 이기주의와 혼용되어 비난받기도 하지만 개인주의는 이기주의(egoism)와 다르 다. 이기주의는 타인에게 부당한 피해를 입히는 것에 개의치 않고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무분별 한 탐욕인 반면에, 개인주의는 타인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만 자신의 이익을 추구 하는 것이다. 로크는 다른 사람의 생명, 자유, 재산을 존중하는 것이 자연법임을 주장하였고(Locke, 『통치론』, §6), 스미스는 자기중심적 생활이 당연함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탐욕은 반드시 공정 한 법에 의하여 제한되어야 함을 역설하였고(이근식 2006.3, pp. 77-82), 밀은 타인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자유를 허용하여야 함을 자유주의의 첫째 원칙으로 강조하였다 (Mill, 『자유론』, p. 247). 고전적 자유주의를 자유방임주의라고도 부르는데, 이 말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자유주의가 아 무런 규칙도 없이 무제한 자유를 허용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다. 공정한 규칙(법)은 자유주의 의 필수조건이다. 공정한 규칙이 없는 약육강식의 무법천지에서는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 다.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는 무제한의 자유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공정한 규칙 내에서의 자유이다. 스미스의 말처럼 우리의 양심은 종종 우리의 탐욕 앞에서 무력하므로, 다 른 사람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지 않도록 강제하는 공정한 규칙(법)이 사회유지에 필수적이다(Smith, 『도덕감정론』, 340쪽). 로크가 말한 바와 같이, “법이 없으면 자유도 없다”(Locke, 이극찬 역, 71 쪽). 오위켄(Walter Eucken)으로 대표되는, 2차대전 이후 서독의 질서자유주의(order liberalism8)만 이 아니라, 모든 자유주의가 질서자유주의이다. 법의 공정한 내용과 공정한 집행을 의미하는 법치 주의는, 자유주의의 원리이자 이의 실현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8) 서독의 질서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이근식, 『서독의 질서자유주의 : 오위켄과 뢰프케』참조.
12
제1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
4) 독립심과 자기책임 자유주의는, 국가나 타인이 개인생활을 간섭하는 것도 반대하지만, 동시에 국가나 타인의 지원 도 바라지 않고, 각자 자기 책임 하에 독립하여 살아가야 한다고 본다. 개인주의에서 보면 자신의 행동의 결과를,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신이 홀로 감당하는 것이 당연하다. 자신의 노 력의 결과는 자신이 향유한다는 이 원칙에서 자유주의자들은 사유재산제도가 정당하다고 보았다. 사유재산은 자신의 노력과 자신의 재산으로부터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9). 이런 독립과 자립의 태도 는 자본주의사회에서 각자 자기 노력과 자기 책임으로 독립적으로 사업하여 살아가는 부르주아의 개인주의적 생활방식을 반영한다. 독립과 자립의 원칙은 이웃에 대한 배려를 소홀히 하게 하여 인간소외를 낳는다는 폐단이 있지 만, 근대시민사회의 발전을 낳는 초석이 되었다. 경제적 자립심은 개인들로 하여금 타인이나 국가 의 지원을 바라지 않고 자립적으로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도록 만들어 자본주의경제를 발전시켰으 며, 정치적으로 그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겠다는 정치적 독립정신은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현재 우리사회에 크게 결여된 것 중의 하나가 자립심인 것 같다. 예술협회장, 협동조합이사장, 학교장, 노동자, 농민, 식당주인, 화물차주인 등 모두가 국가의 지원을 당연한 듯이 당당하게 요구 한다. 언론과 지식인들도 무슨 문제만 생기면 정부는 무엇하고 있느냐고 정부를 비난하고, 정부도 자신들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정부지원을 요구하는 것 은, 다른 국민들이 낸 세금을 자신에게 대가 없이 달라는 것이므로, 정부에게 지원해달라는 것은 다른 국민들의 돈을 자기에게 그냥 달라고 하는 것과 같다. 아무도 다른 사람에게 돈을 그냥 달라 고 당당하게 요구할 권리가 없다.
5) 사상과 비판의 자유 생각에서 행동이 나오기 때문에 생각의 자유는 가장 중요하며 기본적인 자유이다. 자유 중에서 가장 먼저 투쟁의 대상이 된 것은 종교개혁과 그 이후의 종교전쟁에서 나타난 신앙의 자유였다. 인 간의 신앙 나아가서 양심은 어떤 권력도 강제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신교도들은 가톨릭 권력과 투 쟁하여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쟁취하였고 이는 사상의 자유로 확대되었다. 생각은 발표될 때에 비로소 사회적 의의를 가지므로, 생각의 자유는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포함 한다. 언론과 출판의 자유는 토론(비판)의 자유를 포함하는데, 자유주의자들은 비판의 자유를 매우 중시하였다. 비판의 자유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인간의 불완전함을 예방하고 시정하는 거의 유 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고 자신의 잘 못을 스스로 깨닫기는 매우 힘들기 때문에 인간의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 서로 간에 자유로운 비판 은 반드시 필요하다. 권력자의 횡포를 제어하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론, 주장 등)을 바로 잡는 것 9) 이 논리로 현실의 사유재산 전체를 정당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현실에는 약탈과 사기와 같은 불법적 방법이나, 상속과 투기와 같이 비생산적인 방법으로 얻은 것이 많기 때문이다.
13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도 모두 자유로운 비판이다. 권력자에 대한 비판이 사회발전에 특히 중요하다. 권력자들도 모두 이기적이고 불완전한 인간 이기 때문에 비판이 없으면 권력의 부패는 필연적이다. 사회의 번영과 발전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 체제가 민주주의이냐의 여부이기보다, 권력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의 유무라고 생각된다. 상소라는 비판제도가 실제로 제 기능을 발휘하였던 조선초기에는 경제와 문화가 모두 융성하였던 반면에, 공 개적 비판이 압살되었던 조선 중기이후에는 권력이 부패하여 망국의 길을 걷게 되었다. 소련과 동 구 사회주의국가들이 패망한 주 요인도 비판의 자유가 없어서 권력이 부패하였던 것이 아닌가 생각 된다. 비판의 자유가 없으면, 정치체제에 상관없이, 권력이 부패하여 사회가 쇠망한다는 것은 동서 고금의 진리일 것이다. 비판은 과오의 시정과 예방이란 소극적 기능만이 아니라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적극적인 기능도 수행한다. 개인, 집단, 사회, 학문 등 모든 발전은 기존현실에 대한 비판(문제점의 발견과 지적)으로 부터 시작된다. 근대서양에서 과학이 역사상 유례가 없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주된 이유 도 공개토론회나 학술잡지와 같은 공개 토론과 비판의 장이 제도적으로 정착되었다는 것이라고 생 각된다.
6) 관용 비판의 자유는 관용(tolerance)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관용이 있어야 자유로운 비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마다 종교나 가 치관이 다르므로 자기와 다른 종교나 가치관을 인정하는 관용은 평화로운 사회를 위한 필수조건이 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란 공자의 말씀도 관용과 동일한 뜻일 것이다. 하이에크가 말한 바와 같이, 위대한 사회에서는 개인들의 목표가 서로 상이함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상이하기 때문에 구성원들은 서로 이익을 얻으면서 함께 살아 갈 수 있다(Hayek, LLL2, 110쪽). 롤즈(John Rawls)도 다양한 가치관을 인정하는 관용을 그의 정치적 자유주의의 핵심으로 삼았다(Rawls, 장동진 역). 관용의 다른 표현이 다원주의(pluralism)이다. 관용이 실현되기 위해서 는 관용의 정신을 인정하여 타인의 가치관과의 병존을 인정하는 다원주의를 인정할 때에만 관용의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 왈쩌(Michael Walzer)의 말대로, 자유주의사회는 민주주의와 함께 관용의 정신을 인정하는 집단으로만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Walzer, 1990, 16쪽). 열린 마음이 있을 때에만 건설적 비판과 관용이 가능하다(Mill,『자유론』, pp,262). 열린 마음 이란 자신의 생각도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말, 특히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말 을 경청하는 자세를 말한다. 요즘 인터넷 댓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욕지거리 로 비방하는 것은 증오만 낳고 자신의 인성도 황폐하게 만들 뿐이다.
14
제1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
4.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 자유주의에 관한 가장 큰 혼란은 자유주의가 진보적 사상인가 아니면 반동적 사상인가에 관한 것이다. 이 혼란은 자유주의를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로 구분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자유주의는 윤리적 자유주의, 정치적 자유주의 및 경제적 자유주의의 셋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세 가지의 자유주의 중에서 먼저 윤리적 자유주의는 자율성(자유의지)과 개인성을 가장 중시하는 가치 관 내지 인생관을 말한다. 롤즈가 포괄적 자유주의(comprehensive liberalism)라고 부른 것이 이에 해당한다. 롤즈는 칸트와 밀이 이에 속한다고 보았다(Rawls, 장동진 역, 37쪽, 78쪽). 그러나 가치 관은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할 문제이므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 적 자유주의의 둘뿐이다. 이 둘을 보자. 원래 자유주의는 근대 유럽에서 르네상스, 종교전쟁 및 시민혁명의 과정을 통하여 부르주아들에 의하여 생성되고 발전되었다. 이들은 만인의 사회적 평등, 종교와 사상과 언론의 자유, 집회와 결사 의 자유, 사유재산권을 포함한 인권의 보장 그리고 관용을 주장하였고, 이런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 주의와 법치주의를 주장하였다. 이런 내용은 모두 정치적 자유로 포괄할 수 있으므로 이런 주장을 정치적 자유주의(political liberalism10))라고 부를 수 있다. 시민혁명의 성공으로 정치적 자유를 쟁취한 부르주아들은 한 걸음 나아가서 경제활동에서의 자 유도 주장하게 되었다. 시민혁명이 성공하기 이전 대략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서구에서 나타났던 중상주의 경제정책은 정부의 비호를 받는 대상공인들에게는 유리하였으나 그렇지 못한 중소상공인 들에게는 불리하였다. 그리하여 중소상공인들은 정부의 경제규제를 철폐하여 누구나 자유롭게 장사 할 수 있는 자유방임의 경제를 원하게 되었다. 경제활동의 자유를 주장하는 이런 주장을 경제적 자 유주의(economic liberalism)라고 부를 수 있다. 경제적 자유주의의 경제정책을 자유방임주의 (laissez-faire doctrine)라고 부른다. 정부는 법질서만 확립하고 경제는 기본적으로 민간의 자유에 맡기라는 경제정책이 자유방임주의이다. 여기서 기본적이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자유방임주의자들 도 필수적인 공공복지제도와 공공시설의 건설, 의무교육과 같은 경제에서의 최소한의 정부역할은 인정하기 때문이다11). 즉, 자유방임주의란 시장의 실패를 경시하고 경제에서 정부는 최소한의 역할 만 담당하고 가능한 한 경제는 민간에게 맡기라는 주장이다. 시민혁명이 성공한 이후 중소상공인들 이 정치의 주도권을 잡음에 따라 중상주의가 몰락하고 경제적 자유주의가 실시되었다. 서양에서 19 세기는 경제적 자유주의의 전성시대였다. 10) 롤즈도 정치적 자유주의란 말을 사용하였는데 롤즈는 다양한 가치관을 인정하는 관용을 핵심적 주장으 로 삼는 것을 정치적 자유주의라고 불렀으므로 여기서 말하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다른 의미이다. Rawls, 장동진 역, 1997. 11) 자유방임주의의 시조인 애덤 스미스도 도로와 항만과 같은 필수적인 공공시설의 건설, 서민자녀들을 위 한 기초교육, 예금자 보호를 위한 은행 감독의 역할은 정부가 담당하여야 한다고 보았으며, 현대의 자유 방임주의자들인 하이에크, 프리드먼(Milton Friedman), 부캐넌(James Buchanan)은 모두 이에 더하여 필 수적인 최소한의 공공복지제도의 필요성을 인정하였다.
15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16세기에서 19세기 전반까지의 고전적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 적 자유주의를 합한 것이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빈부격차와 불황과 같은 시장의 실패가 분 명히 인식되면서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지지는 약화되거나 비판받게 되었으며, 사회적 자유주의, 질서자유주의, 복지국가 자유주의처럼 고전적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여러 자유주의가 등장하였다12). 정치적 자유주의는 모든 자유주의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다수의 횡포나 의회의 타락과 같은 민 주주의의 심각한 문제점이 지적되지만 정치적 자유주의의 기본원리와 질서들에 대해서는 어느 자유 주의자도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특히 만인평등이라는 정치적 자유주의의 기본 관점은 항상 역사를 진보시키는 힘찬 생명력을 갖고 있다. 19세기 이후 구미에서 성, 재산, 인종, 종교 등 에 의한 모든 사회적·정치적 차별들이 철폐되어 온 것은 모두 만인평등이라는 정치적 자유주의의 기본원리가 실천되어 온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현실적으로 최선의 정치제도라는 데 에 별로 이견이 없다. 이처럼 정치적 자유주의는 진보성과 보편타당성을 모두 갖고 있다. 반면에 경제적 자유주의는 19세기 후반 이래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자본주의경제 가 자본주의의 실패라는 구조적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의 반동성에 대한 비판도 모 두 정치적 자유주의가 아니라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경제적 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실 패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의 개입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자유주의의 이러한 한계 때문에 정치적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경제적 자유주의 에 대해서는 찬성과 반대의 두 가지 입장으로 나누어진다. 정부보다 시장을 상대적으로 더 신뢰하 는 사람들은 경제적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데에 비하여, 시장보다 정부를 상대적으로 더 신뢰하는 사람들은 경제적 자유주의를 반대하고 정부의 적극적 경제개입을 지지한다. 이처럼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자들의 입장이 둘로 나누어지게 된 것은 19세기 말에 영국에서 사회적 자유주의(social liberalism)가 등장하면서부터이다. 이 시기에 자유의 주된 적(敵) 이 이제는 정치권력이 아니라 빈곤이라는 생각이 공감을 얻으면서 정부가 적극적인 재분배정책을 통해 빈곤을 해결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회적 자유주의가 영국에서 등장하였다13). 부유한 부르 주아지들의 입장을 대변하였던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빈곤은 전적으로 개인이 해결하여야 할 문제 라고 생각하였다. 가난의 원인은 개인의 무능과 나태이므로 빈곤은 개인적 문제이지 사회적 문제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이 보기에 자유의 주된 적은 빈곤이 아니라 왕과 그 부하 들이었다. 이런 생각에서 이들은 시민혁명을 일으켜 민주주의를 쟁취하였다. 영국에서 시민혁명이 성공한 이후 민주주의가 확립됨에 따라서 정치권력자들에 의한 억압과 횡포는 대부분 사라졌고 정 부는 오히려 국민복지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반면에 자본주의 경제가 발 전함에 따라서 경제 전체는 크게 발전하였으나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져서 국민 대다수를 점하는 노 동자들은 비참한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사회변화를 배경으로 자유의 주된 적은 빈 곤이며 이는 정부를 통하여 해결할 수 있다는 사회적 자유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들은 빈곤의
12) 사회적 자유주의, 질서자유주의 및 복지국가 자유주의 등 자본주의 경제정책의 변화에 관해서는 이근식 (2005)의 3장 참조. 13) 사회적 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이근식(2005.11)의 154-8쪽을 참조하라.
16
제1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
해소는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보았다. 사회적 자유주의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영미에서 널리 공감을 얻었으며 그 결과로 자유주 의는 진보적 자유주의(progressive liberalism)란 말과 혼용되고 나아가서 진보주의란 말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게 되었다. 오늘날 영어에서 liberalism이란 말이 자유주의와 진보주의의 두 가지 의미로 혼용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자유주의의 관점을 더욱 확대하여 빈곤만이 아니라 불황과 실업, 독과점과 환경파괴와 같은 시장의 실패 전반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 의 경제개입을 대폭 확대한 것이 2차대전 이후의 구미의 복지국가이다. 이런 경제를 수정자본주의 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진보적 자유주의에 반대하고 고전적 자유주의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는 자유지상주의 (libertarianism)가 2차대전 이후 영미를 중심으로 구미에 등장하였다. 이 사상은 개인의 자유를 최 우선시하여 정부의 적극적 경제개입을 반대하고 다시 고전적 자유주의의 작은 정부와 자유방임주의 경제정책으로 복귀할 것을 주장한다. 자유지상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처럼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 적 자유주의 둘을 모두 지지한다. 자유지상주의는 현대에 부활한 고전적 자유주의이다. 이들은 진 보적 자유주의와 구분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자유지상주의라고 불렀다. 하이에크, 프리드먼 (Milton Friedman), 부캐넌(James Buchanan) 등 현대의 신자유주의자들이 자유지상주의자들이다. 반면에 2차대전 이후 주류경제학자인 케인지안들은 개입주의자 내지 복지국가론자들이다. 이처럼 현대의 자유주의는 진보적 자유주의와 자유지상주의의 두 가지 자유주의로 나뉘어 있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주의를 지지하면서도 경제적 자유주의를 비판하여 정부의 적극적 경 제개입을 인정하는 입장으로 구미복지국가의 기초가 되는 생각이다. 반면에 자유지상주의는 정치적 자유주의만이 아니라 경제적 자유주의도 지지하여 정부의 적극적 경제개입을 반대하고 개인의 자유 와 사유재산을 엄격히 보호할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자유지상주의자들도 필수적인 공공복지제도와 최소한의 정부규제는 인정하므로, 정부의 경제개입을 전면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정부의 적극적 경제개입을 반대한다고 말할 수 있다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을 분류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으므로, 자유주의자이냐 아니냐의 기준은 경제 적 자유주의가 아니라 정치적 자유주의를 지지하느냐를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밀이나 롤즈, 드워킨(Ronald Dworkin) 등 경제적 자유주의를 반대하더라도 정치적 자유주의를 지 지하는 사람은 모두 자유주의자라 해야 할 것이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우리가 수용하여야 하지만 분명한 시장의 실패를 외면하고 시장을 과대평가하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곤 란하다.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회정의에 관한 자명한 으뜸 공리는 자유라기보다 만인평등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실패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현실의 자본주의국가들은 모두 상당한 정도로 경제 에 개입하고 있다. 이로 인해 현대의 모든 자본주의국가들은 자본주의 요소가 더 많지만 정부부문 이라는 사회주의부문14)도 일부 존재하는 혼합경제(mixed economy)이다. 반면에 정치적 자유주의
14)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정부부문이 사회주의경제부문이다. 정부부문은 공동소유, 계획경제, 공동생산, 공동소비라는 사회주의적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17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가 주장하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모든 자유민주주의국가들에서 그대로 채택되고 있다.
5. 자유방임주의와 개입주의의 교대 자본주의가 등장한 이래 구미의 역사에서 뚜렷이 나타나는 현상은 자유방임주의와 개입주의라는 서로 상반되는 정책기조가 교대로 등장하여 왔다는 것이다. 대략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는 전형적 인 개입주의인 중상주의가, 19세기에는 자유방임주의가, 20세기에 와서 1970년대까지는 다시 개입 주의인 신중상주의가, 1980년대부터는 또다시 자유방임주의인 신자유주의가 지배적 조류가 되었다. 자유방임주의는 시장의 효율성을 살리고 정부의 실패를 줄인다는 장점을, 개입주의는 정부의 성 공을 살리면서 시장의 실패를 치유한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자유방임주의는 자본주의의 실 패라는 폐해를, 개입주의는 국가의 실패라는 폐단을 갖고 있으므로 개입주의와 자유방임주의 그 어 느 것도 완전한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하나의 정책이 상당 기간 지속되면 그로 인한 폐해와 불만 이 누적되어 이를 해소하기 위해 그 반대의 정책이 등장하는 역사가 되풀이되어 온 셈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신자유주의도 영원할 수 없음을 예상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방임주의 하에서는 실업의 확대와 빈부 격차의 확대, 이로 인한 중산층의 몰락과 불만의 축적, 환경파괴, 약 소국의 침탈과 같은 자본주의의 실패가 확대되고, 이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누적되면 다시 개입주 의가 복귀하게 될 것이다. 21세기 들어와서 중남미에서 중도좌파들이 대거 집권하고 재작년의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과 일본 민주당의 압승은 이미 이러한 전환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경제와 정치 모든 부분에서 대자본의 힘이 막강하지만 민주주의 덕분에 정치에서는 사람의 머릿수가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의 실패가 한계를 넘으면 고통 을 겪는 다수 민중의 힘이 선거라는 평화적 과정이거나 아니면 폭력적 방법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몰아내고 대시 개입주의를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2차대전 이후의 복지국가시절의 경험을 통 해 정부와 국가의 실패를 경험했으므로 앞으로 등장할 개입주의는 국가의 실패를 예방할 수 있도록 과거보다 합리적인 성숙한 모습으로 다시 등장할 것이다. 특히 정부의 투명성을 높이는 언론의 자 유는 더욱 중요해 질 것이다. 인터넷의 보급은 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6. 자유와 평등의 관계 자유와 평등은 양립할 수 없다고 대개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의미의 평등이냐에 따라서 평등은 자 유와 조화하기도 하고 갈등하기도 한다. 평등을 본원적 평등, 사회적 평등 및 경제적 평등의 세 가 지로 나누어 봄으로써 이를 분명히 알 수 있다. 본원적 평등은 자유의 근거이며 사회적 평등은 자
18
제1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
유와 같이 가며, 경제적 평등만이 자유와 갈등관계에 있다. 본원적 평등이란 모든 개인은 인격, 가치, 존엄성, 권리에서 완전히 동등하다는 말이다. 앞에서 본 자유주의의 핵심 내용인 만인평등 사상이 바로 본원적 평등이다. 본원적 평등은 두 가지 의미에서 본원적이다. 첫째, 본원적 평등은 그 자체로 자명하여 이의 타 당성을 위한 다른 논증이 필요가 없으며, 둘째로 자유와 상생 등 다른 사회적 정의의 타당성이 본 원적 평등으로부터 도출된다. 사회정의란 사회문제에 관한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기준이라고 볼 수 있다. 만인평등은 사회정 의와 관련된 명제 중에서 유일하게 자명한 명제라고 생각된다. 사회정의에 관한 모든 주장들이 그 자체로 자명하다고 보기 힘들며 그것의 타당성을 증명하기 위한 논증이 필요하다. 반면에 만인평등 의 명제는 그 자체로 자명하여 이의 타당성을 정당화하기 위한 어떤 논증도 필요 없으며, 사회정의 에 관한 다른 명제들이 도출되는 근거가 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자유로운 것은 모두가 평등하여 그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며, 불의란 강자가 약자를 핍박하는 것과 같이 만인평등에 어긋나는 것이며, 정의는 만인평등과 부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 원적 평등은 ‘사회정의에 관한 으뜸 공리’(the sovereign axiom of social justice)라고 부를 수 있 을 것이다. 이 명제는 근대 문명의 기반이며, 이 명제를 부정함은 근대 문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사회적 평등(social equality)은 본원적 평등이 현실 사회에서 실현된 것을 말한다. 만인이 법 앞에서 평등한 법적 평등, 모든 사람이 동등한 참정권을 갖는 정치적 평등, 그리고 그 어떤 것을 이유로도 일상생활에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협의의 사회적 평등이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사 회적 평등은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법(제도)으로 명시된 사회적 평등이다. 근대법들 은 모두 이 만인평등을 명시적으로 표현한 조문들을 갖고 있다15). 둘째 형태는 우리의 의식 속에 확립되어 있는 만인평등의식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므로 사람을 차별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대 부분 인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의식 덕분에 우리는 사람을 차별하는 행동을 스스로 삼가한다. 의식 은 법의 강제가 없는 곳에서도 실천된다는 점에서 의식에 확립되어 있는 만인평등이 더욱 강력하 다. 끝으로 경제적 평등(economic equality)은 부와 소득의 평등한 분배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기회 균등과 결과로서의 분배 평등의 두 가지가 포함된다. 기회균등이란 부와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경제 활동의 출발선상에서의 평등을 의미하며, 결과로서의 평등분배란 경제활동의 결과로 얻어진 부와 소득의 평등분배를 말한다. 이상의 세 가지 평등 중에서 자유와 갈등관계에 있는 것은 경제적 평등뿐이며, 나머지 두 가지 평등은 자유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에 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본원적 평등은 자유의 당위성
15) 예컨대 우리나라 헌법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1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 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언 명하고 있다.
19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이 도출되는 근거이다. 만인이 원래 평등하므로 아무도 다른 사람의 자유를 억압할 수 없기 때문이 다. 본원적 평등인 만인평등을 기본원리로 하는 자유주의의 보급 덕분에 모든 사람은 원래 평등하 므로 아무도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을 수 없다는 생각이 상식이 되었다. 법적·정치적·협의의 사회적 평등을 포함하는 사회적 평등은 본원적 평등이 사회적으로 실현된 것이므로 자유를 현실적으로 실현한 것이다. 만인평등을 법으로 규정한 법적 평등은 개인의 자유를 법으로 보장하며, 모두에게 동등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부여하는 정치적 평등은 모든 사람에게 금 력, 권력, 교육 등과 상관없이 정치적 결정에 동등한 권리로 참여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들의 자유를 지킬 수 있도록 한다.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사회적 관행인 협 의의 사회적 평등 역시 개인들이 인종, 신분, 교육, 성, 재산 등을 이유로 자유를 침해받는 일이 없 도록 한다. 경제적 평등16)은 본원적 평등이나 사회적 평등과 달리 자유와 충돌한다. 자본주의경제에서 특 히 그러하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개인의 자유는 보장되지만 분배는 심히 불평등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분배평등은 기회균등이라는 의미와 결과로서의 소득의 평등분배라는 의미의 두 가지 내용을 갖고 있는데, 이 두 가지 내용이 어느 하나도 자본주의경제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본주의에서의 소득은 근로소득(임금)과 재산소득(이자, 이윤, 임대료, 특허료 등)의 두 가 지가 있다. 근로소득은 타고난 재능과 교육에 의하여, 재산소득은 물려받은 상속재산에 의하여 크 게 영향 받는다. 즉, 자본주의경제에서 소득분배에서의 기회균등은 재능, 교육 및 상속재산의 세 가 지에 있어서의 기회균등을 말한다. 이 셋이 모두 자본주의경제에서 전연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는다. 어느 사회에서나 원래 재능의 분배는 불평등하기 마련이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 상속재산은 부모들 의 재산에 의해 거의 결정되며 교육기회도 부모들의 재산에 크게 영향 받는다. 결과로서의 분배평 등도 자본주의경제에서는 분배와 거리가 멀다. 소수의 부자들이 사치와 허영에 큰 돈을 탕진하는 한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가난 때문에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더러 이런 분배가 정의에 부합한 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지만, 인간이 윤리적 존재임을 인정한다면, 그 누구도 이런 극심한 빈부격차를 공정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극심한 빈부격차를 시정하기 위한 정부의 재분배정책은 부자 들의 재산처분권의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 자유와 평등분배의 갈등은 주로 이를 말한다고 생각된다.
7. 상생의 원리 모든 개인은 개인성(개체성)과 더불어 사회성이라는 또 하나의 측면을 갖고 있다.
개인성
(individuality)이란 세상의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독립된 개체로서의 개인의 존재를 말한다. 나의 생명과 육체, 인격, 감정은 그 누구와도 나의 가족과도 독립된 것이며, 그 누구도 대신해 줄
16) 경제적 평등, 분배의 평등, 평등한 분배, 공정분배, 분배의 형평성, 분배정의 등을 모두 혼용된다.
20
제1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
수 없는 오직 나 혼자 만의 것이다. 나 자신을 먼저 앞세우는 개인주의는 개인의 개체성을 중시한 입장이다. 동시에 모든 인간은 사회성(sociality)을 갖고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도 모든 개인은 사 회의 일원으로서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사회가 있기 때문에 나의 생활이 가능하며 또한 내가 살아가는 보람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개인주의는 인간의 사회성을 경시한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1) 공동의 갈등문제 개인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들어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문제를 공동의 문제17)(공동의 사회 문제)라고 부르자. 경제학에서 사회적 선택(집단적 선택 혹은 공공선택)의 문제라고 부르는 것이 이 것이다. 사회질서의 유지, 공공시설의 건설, 공공교육 공급, 계급갈등 완화, 최소한의 사회보장 등의 문제가 이에 해당한다. 자본주의의 실패에 대처하는 것도 공동의 문제이다.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한 이후 그동안 자본주의의 실패를 어느 정도 완화하여 오던 정부의 기능이 신자유주의의 여파 로 축소됨으로써 자본주의의 실패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세계적으로 더욱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 다. 공동의 문제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개인 간에 이해상충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자 유주의로 해결이 가능한 경우이고, 둘은 개인들 간에 이해상충이 발생하여 자유주의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이다. 공동의 문제라도 이의 해결이 모든 구성원들에게 이익이 된다면 개인 간에 이해상 충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므로 개인주의에 입각한 자유주의로서도 이의 해결이 가능하다. 질서의 유 지(국방, 사법, 치안), 필수적인 공공시설의 건설, 불황의 해결 등의 문제가 그러하다. 이런 문제의 해결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득이 되므로 모두가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개인주의 관점에 서더라 도 이의 해결에 전원 합의하는 것이 적어도 원칙적 차원에서는 가능할 것이다18). 그러나 구성원 간에 이해 상충이 발생하는 경우에 자유주의는 현실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원칙적 차원에서도 해 결방향을 전연 제시하지 못한다. 빈부격차, 독과점, 환경훼손, 인간소외, 약소국 침탈, 전쟁 등의 문 제들이 이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이처럼 개인 간에 이해상충이 존재하여 자유주의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공동의 갈등문제라고 부르자.
2) 상생의 원리 개인 간에 이해상충이 발생하는 공동의 갈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주의가 아닌 다른 원 리 내지 관점이 필요하다. 상생의 원리가 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사회성은 공생(共 生)이라는 인간생활의 성격에서 나온다. 공간적으로 나는 우주의 허공에서 나 홀로 사는 것이 아 17) 종교의 선택과 같은 개인적으로 결정하는 문제도 사회적 문제이므로 이런 개인적인 사회적 문제와 구별 하기 위하여 공동의 문제라고 부르기로 한다. 18) 현실에서 이의 실행을 위한 경비의 분담이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21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니라, 가족, 친지, 국민, 나아가서 모든 인류 및 동식물들을 비롯한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시간적으로도 나는 나의 선조와 후손과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 자연 및 나 의 지식은 나의 선조들이 내게 물려준 유산이며, 후세의 사람들은 우리가 남긴 것들을 물려받아 살 아간다.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나는 무수한 다른 존재들과 함께 공생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사회에서도 나는 협업과 분업이라는 공생의 망으로 연결된 덕분에 생존 이 가능하다. 비단 경제적으로 만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 나아 가서 전 세계 사람들과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다. 미국 대통령선거는 나의 일상생활에 나도 모르는 사 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방송에서 나오는 그리스 가수의 노래는 나에게 감동을 전달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삶의 기쁨과 보람을 얻는 것도 공생 덕분이다. 자신 말고 그 어떤 사람이나 존재도 없는 세상에서 혼자 산다면 우리는 아무 기쁨과 보람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돈, 명예와 권세도 혼자만 사는 세상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돈, 명예, 권세를 잊고 소박한 삶에서 낙 을 찾을 수도 있지만, 이것도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과 동식물이 있기 때문 이다. 사람이 삶의 보람과 낙을 찾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힘은 바로 다른 존재에 대하여 느끼는 정(혹은 사랑)일 것이다. 상생(相生)의 원리란 공생하는 모든 존재들이 함께 서로 존중하고 아끼면서 돕고 사는 것을 말 한다고 볼 수 있다19). 내가 나에게 절대적으로 소중한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존재도 자신에게 절 대적으로 소중하며 다른 존재가 있음으로 비로소 나의 존재가 가능하므로 나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 도 존중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생의 원리에서 우리는 공동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개인성(개체성)과 사회성(공동체성)의 두 가지 측면을 갖고 있는데, 이 중 개인성의 원리를 자유라고 한다면, 사회성의 원리를 상생이라고 하겠다. 이 상생의 원리는 자유주의의 관용의 원리와 공동체주의의 관점을 더 적극적으로 확대한 것이다.
3) 상생의 갈등과 적대적 갈등 어느 사회에서든 사람 간에 이해관계, 가치관, 취향 등의 차이가 존재하고 이로 인해 갈등이 존 재하기 마련이다. 차이는 갈등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풍요와 다양함의 원천이기도 하다. 모 든 사람과 집단 간에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다양한 식물, 동물, 인간과 자연이 존재하는 덕분에 우리의 세상과 삶이 풍요롭고 아름다울 수 있 다. 모든 사람의 취향과 적성이 똑같다면 인간의 생존도 힘들 것이다. 모두 똑같은 직업만 택하려 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갈등은 파괴와 고통을 초래하기도 하지만 생명의 유지와 발전에 필수적이다. 갈등과 상생은 동 19) 원래 상생이란, 공자가 정리한 『서경』(書經)에 나오는 오행설(五行說)이 가리키는 현상, 즉, 쇠는 물을, 물은 나무를, 나무는 불을, 불은 흙을, 흙은 다시 쇠를 낳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서 상극(相剋)의 반대되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요즘 통용되는 의미로 사용한다. 영어에 상생이란 말이 없는 것 같다. 구태여 번역하 자면, 우습기는 하지만, happy together가 될 것 같다.
22
제1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
전의 양면과 같다. 일찍이 밀은, “모든 인간사에 있어서, 서로 생명력을 갖기 위해, 그리고 그들의 고유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서로 갈등하는 영향력(conflicting influences)이 필요하다..”고 말 하였다. “만일 배타적으로 하나의 목표만 추구한다면 하나는 과다하게 되고 다른 것은 부족하게 될 뿐만 아니라, 원래 배타적으로 추구하던 목적도 부패하거나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Mill,『대의정 부론』, p. 292). 이 말은 일반적인 경우로 확대될 수 있다. 갈등관계에 있는 것들은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줄 뿐만 아니라, 갈등과 모순에서 발생하는 긴장관계를 통하여 양쪽 모두 타락과 안일에 빠지지 않 고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고 발전할 수 있다. 남성과 여성, 이기심과 이타심, 자유와 평등,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자유방임주의와 개입주의, 진보와 보수, 자본가와 노동자, 청년과 노인, 지역 간 대립 등이 모두 그러하다. 만일 남성이 없다면 여성이 존재할 수 없을 것이며, 이기심과 이타심 어느 하나만 존재하는 사회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며, 평등에 대한 고려 없는 자유만의 추구는 자 유를 타락시킬 것이며, 자유 없는 평등은 생의 의미를 소멸시킬 것이다. 정부라는 사회주의부문이 전연 없는 순수한 자본주의경제는 자본주의의 실패로 인하여 운영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며, 시장경 제가 전연 없는 백퍼센트의 사회주의경제는 효율성의 하락과 개인 자유의 부재로 끔찍한 사회가 될 것이다. 개입주의와 자유방임주의의 어느 한 가지 정책만으로 운영될 수 있는 시장경제도 이 세상 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좌익(left-wing)이냐 우익(right-wing)이냐라는 질문을 받고, 잭 슨(Jesse Jackson)목사20)는 “새는 양쪽 날개로 날아갑니다.”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상생의 원리란 갈등관계를 양합게임(win-win game)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여 주면서 또한 상호간의 긴장을 통하여 생명력을 유지케하고 서로 발전을 촉진시키는 갈등을 상생의 갈등(friendly conflict)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상생의 관점에서 파악하면 많은 사회적 갈등을 상생의 갈등관계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상생의 원리란 사회갈등들을 상생의 갈등으로 파악하고 실천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갈등을 상 생의 갈등으로 승화시킬 때, 갈등은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갈등이나 모순이 없다면, 아무런 변화 도, 따라서 발전도 없을 것이다. 자유와 상생도 상생적 갈등의 관계에 있다. 상생 없는 자유는 소외와 갈등에 함몰될 것이고, 자 유 없는 상생은 개인의 매몰을 초래할 것이다. 적대적 갈등(hostile conflict)의 경우도 많다. 상대방을 상생의 대상이 아니라 타도의 대상으로 보고 상대편이 가진 것을 빼앗으려고 공격하는 갈등이 적대적 갈등일 것이다. 이념 간, 노사 간, 세 대 간과 지역 간 갈등이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적대적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적대적 갈등의 원인은 영합게임(zero-sum game)과 집단이기주의(group egoism)의 둘일 것이다. 특히 수치심을 잊게 하는 집단이기주의는 인간의 미약한 양심을 마비시키는 가장 강력한 마약이다. 집단행동은 사 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사적인 이익을 주장하면서도 정의를 위해 투쟁한다는 착각에 빠져 들게 한 다. 집단이기주의의 최면에 빠져서 공익으로 둔갑한 사익을 외치는 소리로 세상이 시끄럽다. 20) 1941년생, 미국의 저명한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후계자.
23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8. 진보의 의미 평등의 확대가 진보(사회발전)의 핵심이라고 생각된다. 본원적 평등을 의미하는 만인평등 사상은 그 이전에는 없던 근대의 산물이며 근대성의 핵심이다. 만인평등을 현실적으로 보급하고 그것을 사 회적으로 실현한 것이 자유주의의 가장 큰 기여라고 생각된다. 자유주의의 보급으로 전근대 사회에 존재하였던 각종의 차별과 억압이 적어도 잘못이라는 것이 사회적 공감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으며, 현실적으로도 각종 사회적 차별이 크게 축소되었다는 점에서 근대 사회가 전근대 사회에 비하여 분 명히 발전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자유주의는 역사발전의 힘찬 추진력이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평등에는 본원적 평등, 사회적 평등과 경제적 분배의 평등의 세 가지가 있다. 이 세 가지 중에서 본원적 평등은 원칙의 문제이므로 현실에서 평등을 확대한다 함은 주로 사회적 평등과 경제적 분배의 평등을 확대한다는 의미로서, 현실에서의 사회적 경제적 분배의 차별을 축소 함을 뜻한다. 아직 현실에는 재산, 학력, 직위, 능력, 외모, 가문 등에 따른 차별들이 많이 남아 있 다. 이들을 축소하는 것이 사회적 평등의 확대일 것이다. 반면에 경제적 분배의 평등의 구체적 내용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수천년을 내려오는 논란거리 이다21). 이상적으로는 드워킨이 말한 바와 같이 자신의 선택으로 인한 분배의 차별은 인정하고 재 능과 같은 운으로 인한 차별이 없는 분배가 평등분배일 것이다(Dworkin, 염수균역, 136-209쪽), 그러나 이를 현실에서 완전히 달성할 수는 없으므로 현실적으로는 절대빈곤의 퇴치(기본재의 충족), 비생산적 소득(불법소득과 투기이득)의 추방, 기회균등의 제공이 분배정책의 목표가 될 것 같다. 본원적 평등은 자유의 정당성이 도출되는 근거이고, 본원적 평등이 사회적으로 실현된 사회적 평등이 실현된 것에 비례하여 자유가 확대되므로 평등은 자유와 표리의 관계에 있음은 앞서 본 바 와 같다. 뿐만 아니라 평등의 확대는 상생의 확대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 생명 및 모든 존재도 자 신과 똑같이 소중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 상생의 원리인데 이는 곧 모든 존재의 평등함을 인정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등의 확대는 자유와 상생의 확대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9. 재벌의 위험 국가권력이나 빈곤 말고 자유의 중요한 또 하나의 위협은 대자본(재벌)이다. 고전적 자유주의자 나 사회적 자유주의자들과 달리 이를 강조한 것이 2차대전 이후 서독의 질서자유주의를 제시하였 던 오위켄(Walter Eucken)이다22). 오위켄은 19세기의 자유방임주의가 결과적으로 독점자본을 낳 았고 독점자본이라는 사권력이 국가라는 공권력과 더불어 현대 사회에서 자유를 억압하는 주된 적 21) 이에 관해서는 이근식의 『상생적 자유주의: 자유, 평등, 상생과 사회발전』의 2장 참조 22) 서독의 질서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이근식의 『서독의 질서자유주의 : 오위켄과 뢰프케』(기파랑, 2007.5) 를 보라.
24
제1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
이므로 물가안정과 더불어 독점의 금지가 정부의 주된 두 가지 임무의 하나라고 강조하였다. 오위 켄은 국가도 독점자본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보았다(Eucken, 황신준역). 강자만이 다른 사람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 민주화 이전에는 국가권력이 강자였지만 민주화 이후의 현대 사회에서는 국가권력보다 오히려 대자본이 자유에 대한 더 큰 위험인 것 같다. 하이 에크를 비롯한 신자유주의자들은 국가권력의 횡포에 대해서는 매우 예민하지만 대자본의 위험은 간 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독점규제의 완화를 주장함으로써 오히려 대자본에 우호적이다. 실 제로 지난 30년간의 신자유주의 시대에 독과점화는 더욱 강화되었고 모든 면에서 대자본의 힘은 더욱 증대하였다. 재벌 내에서 총수와 직원은 마치 황제와 신하와 같아서 언론의 자유가 없고 총수의 귀에 거슬리 는 소리를 아무도 할 수 없으며 총수가 저지른 죄가 문제가 되면 부하가 대신 감옥에 간다. 법도, 자유도, 인권도 없는 것 같다. 조폭과 똑같다. 문자 그대로 돈이 으뜸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돈만 있으면 원 하는 거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으므로 배금주의가 판을 친다. 돈과 자신 밖에 모르는 천민자본주 의가 자본주의의 본연의 모습이다. 요즘 우리나라가 이의 전형이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판사, 검사, 경찰, 언론인, 교수, 예술가, 노조 지도자, 모두가 돈 앞에 사족을 못 쓴다. 이 때문에 정계, 관계, 법조계, 언론계, 학계, 노동계, 예술계 모두가 재벌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경우가 많 다.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소위 민주국가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대자본에 의하여 부패되어 실질적으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라고 말하기 힘든 정도이다. 삼성사건의 처리에서 분명히 들어난 것처럼 재벌 앞에서 법 앞의 평등이란 민주국가의 원칙은 실종되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 예방기능을 담당하는 언론과 마지막 처리를 담당하는 검찰 과 법원인데 이 모두가 재벌 앞에서 힘을 못 쓰고 있으며, 민간정권이 들어선 이후 보수정권은 물 론이고 소위 진보적 정권의 대통령도 재벌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법만으로는 재벌의 횡포를 막을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에 법이 없어서 재벌이 불법과 횡포를 막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 막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공정한 언론과 엄정한 법의 집행일 것 이다. 그러나 언론과 법조계도 재벌 앞에서 무력하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식 내지 사회분위 기 일 것이다. 국민들의 의식 전반이 높아져서 재벌의 편을 드는 언론인, 검사와 판사가 창피하여 낯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되어야 비로소 재벌의 횡포가 사라질 것이다.
10. 진보적 자유주의 지금까지의 논의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 인간의 이중적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만인평등, 자유와 인권, 개인주의, 독립심과 자기책임, 사상 과 비판의 자유, 관용을 기본원리로 하는 정치적 자유주의를 그대로 수용한다.
25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고 개인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자유로운 자본주의경제를 기본으로 삼지만 자유방임의 시장경제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분배, 불황과 실업, 독과점화, 환경훼손, 이기주의와 배금주의로 인한 윤리의식의 소멸, 재벌의 지배 등의 자본주의의 실패를 치유하기 위한 적절한 정부의 역할을 인정한다. • 자본주의의 실패만이 아니라 국가의 실패도 존재함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한다. • 인간소외, 윤리 타락, 노사갈등, 환경파괴와 같은 공동의 갈등문제를 상생의 원리로 해결한다. • 사회적 평등과 경제적 분배의 평등의 확대를 지향한다. • 자유와 평등을 훼손하는 재벌의 불법과 횡포를 예방한다.
이상과 같은 생각을 진보적 자유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개인자유와 관용이라는 보수주의의 덕목과 함께 평등과 진보라는 진보주의의 덕목을 모두 갖고 있으므로 보수 주의와 진보주의를 상생의 원리로 화합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진보적 자유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 성숙한 복지국가가 필요할 것 이다. • 궁극적으로 모든 사회적·경제적 차별의 철폐를 지향한다. • 기본적으로 자본주의경제를 인정하여 개인의 자유와 생산의 효율성을 도모한다. • 자본주의의 실패를 치유하기 위해 정부가 경제에 개입한다. 구체적으로는 재분배정책, 독과점의 규제, 불황과 실업 대책, 환경보호 정책 등을 적절한 수준에서 시행한다. • 국가의 실패와 재벌의 횡포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와 재벌의 투명성을 높이고, 언론, 검찰과 법원 의 엄정한 공정성과 독립성을 확보한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정부의 개입이 가미된 자본주의인 수정자본주의를 지지한 다. 과거에는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결합한 사회민주주의(민주사회주의)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쏘련 등 동구 사회주의국가들이 1990년대 초에 몰락한 것에서 알 수 있 는 것처럼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와 사회주의라는 경제체제는 양립하기 힘든 것으로 보인다. 민주 주의에 반드시 필요한 정치적 자유가 사회주의경제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밀이 130년 전에 이미 예측한 대로 사회주의경제에서는 국가의 생산관리을 위해 노동의 국가관리가 불가피하므로 개 인 자유가 상실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을 관리하는 것은 개인을 관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Mill, 『사회주의론』, 130쪽) 복지국가는 순진한 복지국가와 성숙한 복지국가의 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순진한이란 말은 국가를 과신하여 국가의 실패를 예방하는 조치가 미흡하다는 뜻이고, 성숙한이란 국가의 실패를 예 방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는 뜻이다. 순진한 복지국가란 19세기말에서 1980년대 초까지의 복지 국가를 말한다. 이 기간에 순진한 수정자본주의자들(복지국가론자들)은 정부는 마치 하나님같이 전 지전능하고 공평무사하다는 순진한 생각에서 국가의 실패를 예방하기 위한 충분한 조처를 충분히
26
제1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
마련함이 없이 정부의 규모를 계속 증대시켰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하나님 같은 정부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정부의 힘을 행사하는 정치인들과 관료들이며 이들도 보통 사람과 똑같이 지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불완전한 개인일 뿐이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부여된 권한을 악용하여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며 이로 인해 국가의 실패는 필연적으 로 발생하게 된다. 오랜 기간 동안 간과되어 왔던 이처럼 자명한 사실을 지적한 것이 신자유주의자 들의 최대 업적이라고 생각된다. 2008년 말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과 일본 민주당의 총선 압승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그간 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 특히 중산층의 불만이 누적되어 다시 개입주의 경제정책을 지지하는 수정자본주의(복지국가론)가 주류로 부활하게 될 것이 예측된다. 그러나 이미 신자유주의 자들의 호된 비판을 받았기 때문에 앞으로는 과거의 순진한 복지국가와 달리 국가의 실패에 주의를 기울여 이를 예방하기 위한 충분한 장치를 마련한 성숙한 복지국가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 사회에서 대자본은 자유와 평등에 대하여 국가보다도 큰 위협이라고 생각된다. 민주주의의 발달로 선진국에서는 국가의 위협은 점차 감소되어 가고 있지만 대자본의 위협은 별로 감소하고 있 지 않은 것 같다.우리나라도 그러하다. 삼성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정권보다 재벌의 힘이 더 강하고 오래 가는 것 같다. 정계, 관계, 검찰, 법원, 언론계, 심지어 학계까지 대자본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것 같다. 국가의 실패만이 아니라 재벌의 횡포를 예방하는 것이 앞으로 우리나라의 진보적 자 유주의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고 생각된다.
11. 결어 잘 전달하지 못했지만 이 글에서 내가 주장하고자 하였던 것을 요약해 보자. [자유주의의 정의와 기본 주장] • 자유주의의 역사적 성격 : 자유주의는 근대 서양에서 신분사회에 기초하였던 절대군주제를 무너 뜨리고 민주주의를 건설한 시민혁명을 주도하였던 중소부르주아지들의 사회사상이다. • 자유주의의 인간관 : 자유주의는 모든 사람은 인식과 윤리의 양면에서 불완전하다는 정확한 인간 관 위에 서 있다. • 자유주의의 주요 주장 : 만인평등, 자유와 인권의 존중, 개인주의, 독립심과 자립심, 사상과 비판 의 자유, 관용이다. • 만인평등의 생명력 : 자유주의의 만인평등 사상은 역사발전을 추진한 힘찬 생명력을 갖고 있다. 신분, 재산, 성, 인종 등의 차이를 이유로 사람을 차별이라는 오래된 악습을 철폐하고 현실에서 자유와 평등이 전반적으로 실현된 것은 자유주의의 만인평등 사상이 보급된 덕분이다.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 • 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자유방임의 자본주의경제를 지지하는 경제적 자유주의의 둘로 구분할 수 있다.
27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 정치적 자유주의는 만인평등을 지지하므로 보편적인 진보성을 갖고 있다. 반면에 자본주의에서 불공정 분배를 용인하여 정부의 재분배정책을 반대하는 경제적 자유주의는 보수•반동적 성격을 갖고 있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우리가 그대로 수용하여야 하지만 경제적 자유주의는 비판적으로 취사선택하여 수용하여야 한다. •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고전적 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모두 포함하 였으나 빈부격차의 확대(풍요속의 빈곤)라는 자본주의의 병폐가 분명히 인식됨에 따라서 19세기 말부터 정부에 의한 적극적 재분배정책을 지지하는 사회적 자유주의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현 대에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보수적 자유주의(자유지상주의)와 이를 반대하는 진보적 자 유주의의 두 가지 자유주의가 있다. • 경제적 자유주의를 지지하는가에 상관없이 정치적 자유주의를 지지는 사람은 모두 자유주의자로 분류하여야 옳을 것이다. 논란이 없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자유방임주의와 개입주의의 역사적 교대] • 자유방임주의 경제정책은 자본주의의 실패라는 폐단을 누적시키고, 개입주의 경제정책은 국가의 실패라는 폐해를 누적시키기 때문에 이 두 정책 모두가 불완전하다. • 자본주의 경제정책은 개입주의와 자유방임주의를 교대하여 왔다. 이는 한 정책이 오래 지속되면 그 정책의 폐해인 자본주의의 실패나 국가의 실패가 쌓이고 이로 인해 국민들의 불만이 누적되 면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그 반대의 정책이 등장하곤 하였기 때문이다. •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는 중상주의라는 개입주의가, 19세기에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자유방임주 의가, 2차대전이후 1970년대까지는 복지국가의 개입주의가,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는 신자유주 의라는 부활한 자유방임주의가, 최근에는 다시 개입주의가 부활하고 있다. [자유와 평등] • 세 가지 평등 : 평등은 본원적 평등, 사회적 평등, 경제적 평등의 셋으로 나눌 수 있다. 본원적 평등이란 모든 사람은 인격, 존엄성, 인권에서 완전히 평등하다는 만인평등의 생각을 말한다. 본 원적 평등이 사회에서 실현된 것이 사회적 평등이다. 모두가 동등한 참정권을 갖는 정치적 평등, 공정한 법의 내용과 집행을 의미하는 법적 평등, 그리고 어떤 이유로도 일상생활에서 사람을 차 별하지 않는 협의의 사회적 평등이 사회적 평등이다. 경제적 평등은 소득 획득의 기회균등과 결 과로서의 부와 소득의 평등 분배의 둘을 의미한다. • 사회정의에 관한 으뜸 공리: 만인평등이라는 본원적 평등은 사회정의에 관한 으뜸 공리라고 부를 수 있다. 그 자체로 자명하여 그 타당성을 증명하기 위한 논증이 필요 없으며 이로부터 다른 사 회정의가 도출되며, 사회정의에 관한 궁극적 판단기준이기 때문이다. • 자유와 상생의 정당성이 도출 : 만인평등의 본원적 평등으로부터 자유와 상생의 정당성이 도출된 다. 모두가 평등하기 때문에 아무도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으며, 서로 존중하면서 상 생하여야 한다.
28
제1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
• 사회적 평등의 확대는 자유의 확대의 동일성 : 사회적 평등의 확대는 자유의 확대와 같다. 신분, 인종, 성, 재산 등에 의한 사회적 차별이 철폐될수록 자유가 증대하기 때문이다. • 경제적 분배의 구체적 내용은 아직 논란이 분분하지만, 절대빈곤의 퇴치, 소득획득에서의 기회균 등 및 기여도에 따른 차등분배의 셋을 정책목표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 경제적 평등와 자유간의 충돌 : 자본주의에서 경제적 평등은 자유와 충돌한다. 정부에 의한 재분 배정책은 개인의 재산처분권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의 한계와 상생의 원리] • 공동의 갈등문제와 자유주의의 한계 : 사회구성원들이 함께 공동으로 대처하여야 하는 공동의 문 제 중에서 구성원 간에 이해 상충이 발생하는 공동의 갈등문제는 개인주의에 입각한 자유주의로 는 해결할 수 없으므로 자유주의가 아닌 다른 원리가 필요하다. 상생의 원리가 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상생의 원리 : 공생하는 모든 존재들이 함께 서로 평등하게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면서 함께 돕고 사는 것이 상생이다. • 상생적 갈등과 적대적 갈등 : 상생적 갈등은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여 주면서 상호간의 긴장을 통하여 노력하게 함으로써 생명력을 유지하게 하는 갈등이며, 적대적 갈등은 상대방을 상생의 대상이 아니라 타도의 대상으로 보고 상대편이 가진 것을 빼앗으려고 공격하는 갈등을 말한다. 상생적 갈등은 모두를 발전시키고 적대적 갈등은 모두의 퇴보와 파멸을 초래한다. • 진보와 보수, 근로자와 사용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개입주의와 방임주의간의 갈등 등을 모두 상생의 갈등으로 파악하여 해결할 수 있다. [재벌의 위험] 원래 자유의 주된 적은 국가권력인데, 민주주의의 발달 덕분에 국가권력의 위험은 감소하고 있는데 반해, 현대자본주의사회에서 재벌의 위험은 오히려 증대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그러하다. [사회주의의 한계] •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경제를 결합한 민주사회주의가 많은 사람들의 이상이었다. • 사회주의의 문제 : 그러나 동구사회주의국가의 경험에서 알 수 있었던 것처럼, 사회주의경제는 생 산성이 낮을 뿐만 아니라 계획경제를 위한 노동력의 관리가 필수적이고 그러 인해 민주주의와 양립하기 힘들다. 따라서 수정자본주의가 불가피한 것 같다. [진보적 자유주의] • 진보의 의미 : 평등의 확대가 진보이다. 사회적 평등과 경제적 평등이 확대될수록 자유와 상생도 확대된다. • 진보적(상생적) 자유주의 : 사회적 평등과 경제적 분배의 평등의 확대를 위해 노력하며 이를 위해 정치적 자유주의를 수용하고, 자본주의경제를 기본으로 인정하지만 자본주의의 실패를 치유하기 위한 적절한 정부의 역할을 인정하며, 공동의 갈등문제를 상생의 원리로 해결하며, 아울러 국가 의 실패를 예방하고 재벌의 횡포를 방지하여야 한다.
29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순진한 복지국가와 성숙한 복지국가] • 진보적 자유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한 성숙한 복지국가는, 모든 사회적•경제적 차별의 철폐를 지향 한다. 자본주의경제를 기본으로 하지만 자본주의의 실패를 시정하기 위하여 적절한 수준의 공공 복지제도, 독과점 규제, 환경보호 정책, 불황과 실업에 대한 대책 등을 시행하며, 동시에 국가의 실패와 재벌의 횡포를 막기 위한 충분한 장치를 마련한다. 복지국가 앞에 합리적이란 말을 붙인 것은, 국가의 실패에 대한 주의가 부족하였던 신자유주의 이전의 순진한 복지국가와 달리 신자 유주의의 비판을 받아들여 국가를 과신하지 않고 국가의 실패를 예방하기 위한 충분한 장치를 마련하며 아울러 재벌의 횡포에 대한 대비도 강화한다는 의미이다.
내가 자유주의를 좋아하는 것은 수 천년간 내려오던 수 많은 사회적 차별을 자유주의가 역사상 처음 철폐하고 만인평등의 사회를 실현하였기 때문이다. 불과 60년전과 비교하여 보아도 우리사회 에서 사회적 차별은 많이 사라졌다. 이는 거의 전적으로 자유주의의 만인평등 사상이 보급된 덕분 이다. 만인평등 사상은 앞으로도 계속 역사발전의 가장 힘찬 추진력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유주의가 진보주의자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다. 진보주의자들은 자유보다 평등 을 중시한다고 하지만 이 글에서 본 바와 같이 자유주의가 만인평등을 기본원칙으로 삼고 있으며 만인평등에서 자유가 도출되므로 자유의 확대와 평등의 확대는 사실상 동일한 내용이며, 기본적으 로 자유주의자와 평등주의자는 같은 입장이다. 롤즈나 드워킨처럼 현대의 대표적 자유주의자들 중 에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자(egalitarian liberalist)가 많다. 이들을 진보적 자유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진보적 자유주의를 통하여 자유주의와 진보주의가 힘을 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 라에는 자유주의를 자유방임의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경제적 자유주의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 러나 경제적 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실패라는 엄연히 실재하는 사실을 외면하는 편견이다. 반면 진 보적 자유주의는 좌우의 이념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합리적 사상이라고 생각된다. 현대의 자유주의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재벌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재벌의 힘은 무소 불위에 가까운 것 같다. 청와대, 국회, 언론사, 검찰, 법원, 학계 등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기관들이 재벌의 영향력 아래 있고 재벌들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우롱하고 있다. 법이 없어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검찰과 법원이 현행법만 엄격히 재벌총수에게 집행하여도 재벌들의 횡포는 아마 거의 사라질 것이다. 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반 국민들의 의식수준(태도)과 사회분위 기일 것이다. 재벌총수의 불법을 옹호한 사람은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세상이 되어야 우리나라에 진정한 자유주의가 확립될 것이다. 법과 제도의 개선만으로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 수 없다. 국민들 대다수의 태도와 사회분 위기가 바뀌어야 세상이 변한다. 이를 위해서는 뢰프케(Wilhelm Röpke)의 말대로 학자, 판사와 언 론인이 현대의 승려계급으로서 세속의 권력을 엄정하게 비판하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일부터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Röpke, 118-9쪽).
30
제1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
참고문헌 이근식,『상생적 자유주의 : 자유, 평등, 상생과 사회발전』, 돌베개, 2009.3.23. ,『신자유주의 : 하이에크, 프리드먼, 뷰캐넌』, 기파랑, 2009.3.30. ,『서독의 질서자유주의 : 오위켄과 뢰프케』, 기파랑, 2007. 5. ,『존 스튜아트 밀의 진보적 자유주의』, 기파랑, 2006. 7. ,『아담 스미스의 고전적 자유주의』, 기파랑, 2006. 3. ,『자유와 상생』, 기파랑, 2005. 11. Dworkin, Ronald, Sovereign Virtu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0.; 염수균 역, 『자유주의적 평등』, 한길사, 2005, pp.136-209. Eucken, Walter, Grundsätze der Wirtschaftspolitik. Herausgegeben von Edith Eucken und K. Paul Hensel, A. Francke A. G. Verlag, Bern; J. C. B. Mohr (Paul Siebeck), Tubingen, 1952 ; 안병직⋅황신준 역, 『경제정책의 원리』, 민음사, 1996. Hayek, Friedrich, Law, Legislation, and Liberty: A New Statement of the Liberal Principles of Justice and Political Econom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vol.1, Rules and Order. 1973.(LLL1) vol.2, The Mirage of Social Justice. 1976.(LLL2) vol.3, The Political Order of a Free People. 1979.(LLL3) Hobhouse, Leonard T.(1911), Liberalism, Introduction by Alan P. Grims, Oxford University Press, 1971, 초판 1911, 최재희 역, 『자유주의』, 삼성미술문화재단, 삼성문화문고 46, 1974. Kant, Immanuel, Kritik der practischen Vernuft, 1788; 칸트 저, 최재희 역, 『실천이성 비판』, 박영사, 1992. Locke, John, The Second Treatise of Government; an Essay Concerning the True Original, Extent and End of Civil Government, 최초 출판 1690, The Liberal Arts Press, New York, 1952, 로크/J.S.밀, 이극찬 역, 『통치론/자유론』, 삼성출판사, 1990, pp. 27-209. Mill, John Stuart(『자유론』), On Liberty, 1859. 이극찬 역,『자유론』, 1990, 삼성출판사. (『사회주의론』), On Socialism, with an introduction by Lewis S. Feuer, Prometheus Books, 1987(초판은 밀의 사후 1879 발행). Rawls, J., Political Liberalism,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3, 장동진 역,『정치적 자유주 의』, 동명사, 1999. Röpke, Wilhelm, Civitas Humana; Grundfragen der Gesellschafts und Wirtschaftsreform, Eugen Retsch Verlag, Erlenbach-Zurich, Switzerland, 1944 ;Cyril Spencer Fox역, Civitas Humana; A Human Order of Society, William Hodge and Company, 1948. Smith, Adam(도덕감정론),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D.D.Raphael and A.L.Macfie(eds.), The Glasgow Edition of The Works and Correspondence of Adam Smith. vol.Ⅰ. Oxford University Press, 1976. Walzer, Michael, "The communitarian critique of liberalism", Political Theory, Feb. 1990, pp. 6-23.
31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제1세션 토론문]
이근식,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 원희룡 (한나라당 국회의원)
□ 대안담론으로서 진보적 자유주의의 필요성 1. - 이근식 교수의 발제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음. 우선 앞부분은 자유주의의 개념을 정 리하고 있음. 자유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보수와 진보의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에 현실에서 애매한 이념적 어휘로 사용되곤 하는데, 이근식 교수는 자유주의가 등장한 이후의 역사적 과정들을 추적함 으로써 자유주의를 둘러싼 개념적 혼란을 명쾌하게 정리해주고 있음.
2. - 이러한 개념정리를 바탕으로 진보적 자유주의가 자유주의라는 큰 틀 속에서 어떠한 이념적 위치 를 갖고 있는지, 그 개념적 뿌리는 무엇인지를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있음. - 발제문은 상당부분 이러한 개념과 관련된 논쟁과 쟁점을 정리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데, 이는 앞 으로 진보적 자유주의와 관련된 논의가 진행됨에 있어서 핵심적인 개념적 틀을 제시해 줄 것으로 기대됨.
3. - 한국에서 보수와 진보를 말하는 것은 사실 매우 조심스러움. 양자 모두 서로를 너무 쉽게 일방적 으로 규정해버리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임. - 하지만 이념의 스펙트럼 속에서 그 양자 어딘가에 보다 합리적이고 서로의 장점을 취합할 수 있 는 지점이 있을텐데, 진보적 자유주의가 그러한 중도적 입장을 합리적으로 엮어낼 수 있는 이념이 라 생각함.
4. - 특히 일반적으로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보수 30%, 진보 20%, 나머지 50%가 자신을 중도로 표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중도를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이념이나 정당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 이러 한 맥락 속에서 진보적 자유주의에 대한 논의가 앞으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보다 활발하게 진 행되어야 할 것임.
32
제1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
- 실제로 이명박 정부가 ‘중도실용’ 노선을 언급했을 때, 그 실질적 결과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으 나, 당시 시민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음. 이는 그만큼 시민들이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갈등에 지쳐있으며, 그 사이 어딘가에서 방황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판단됨. - 결국 이러한 중도층을 흡수할 수 있는 이념적 방향을 ‘누가’,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앞으로 한국 정치에서 관건이 될 것이라 생각함.
□ 자본에 포획된 국가 문제 해결의 연결고리 모색 필요 - 발제문의 뒷부분에서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대자본, 즉 재벌이 국가를 포 획하는 것이라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의 공정한 집행, 그리고 일반 시민들의 의식수 준과 사회분위기가 이러한 문화를 허락지 않도록 성숙해야 함을 강조함. - 큰 틀에서는 동의하나 시민들의 의식수준과 사회분위기, 혹은 정책이나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 많 은 언론, 학자, 정치인들이 이미 자본에 포획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이러한 연결고리들을 끊을 수 있을 것인가하는 의문이 생김. - 우리나라와 비슷한 처지에 있다가 개혁에 성공한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음. 물론 나라마다 각자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차이가 있겠지만, 그러한 개혁에 성공한 국가들에서는 ‘누가’ 개혁의 주최가 되었는지, 그 개혁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할 것임.
□ 법․제도 개혁의 중요성 - 국민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함. 따라서 그 과정으로서의 법과 제 도의 개선을 좀 더 진지하게 다뤄야 함. - 검찰, 정치, 언론이 재벌의 영향력으로부터 보다 자유롭고 공익을 우선시 할 수 있는 제도의 모 색이 필요함. 현재의 문제는 개인의 양심 문제와 더불어 자본의 압력에 취약한 구조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기 때문임.
□ 깨끗한 정치인과 정당의 역할이 보다 중시돼야 - 특히 재벌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깨끗한 정치인 혹은 정당의 역할을 좀 더 중요하게 다뤄 야 할 필요가 있음. 결국 개혁은 법과 제도를 만들어내는 정치인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임. - 따라서 개혁적 생각을 품고 있는 정치인과 정당이 좀 더 정치적인 힘을 확보할 수 제도를 모색 하고 이를 시민사회가 지지할 수 있는 구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함.
33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 현실 정치․경제에서 진보적 자유주의의 실현 가능성
- 마지막으로 실제로 다른 선진국에서 이러한 진보적 자유주의와 가까운 이념을 갖고 정당으로는 어떤 정당들이 있는지.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러한 정당이 등장하기 위한 정치․경제 제도적 조건은 어떤 것이 있을지. - 예컨대 대표적인 진보적 자유주의자인 J.S. 밀의 경우, 정치제도 측면에서는 비례대표제의 도입 을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음. 최근 개헌논의가 언급되고 있는 시점에서 진보적 자유주의 철학에 걸 맞은 정치제도 관련 논의도 본격화될 필요가 있다고 봄.
34
제1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
[제1세션 토론문]
이근식교수 발제문(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토론문 김종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1. 발제문의 요약과 평가 이근식 교수 발제문의 핵심은 논문의 결론부분에 아주 잘 나타나있다고 보인다. “이 글에서 주장하는 진보적 자유주의는, 사회적 평등과 경제적 분배의 평등의 확대를 사회발전 의 목표로 하며, 이를 위해 정치적 자유주의를 수용하고, 자본주의경제를 기본으로 인정하지만 자 본주의의 실패를 치유하기 위한 적절한 정부의 역할을 인정하며, 공동의 갈등문제를 상생의 원리로 해결하며, 아울러 국가의 실패를 예방하고 재벌의 횡포를 방지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말한다.”(30 쪽). 이글의 최대 공적은 그 동안 다양한 시대 그리고 정치적 집단에 의해 사용되어 오던 ‘자유주의’, ‘자유’, ‘평등’이라는 단어를 개념적으로 깔끔히 정리한데 있다. 자유주의=친미반북주의, 혹은 경제 적 자유지상주의, 평등=사회주의 혹은 친북좌파 등으로 자의적, 정략적으로 사용되어 지는 한국사 회에 있어서, 이러한 용어와 개념의 정리는 앞으로의 논의를 위해 필수적인 작업이다. 첫째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개념적으로 구분하며, 자유주의의 요체는 바로 ‘정치적 자유주의’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 점이다. 이러한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애초부터 구분시키는 것에 의해 현대의 일부 보수우파의 ‘전유물’로 전화된 자유주의를 진보파들에 게 새롭게 ‘복원’시키고 있는데 그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 필자는 적어도 만인의 사회적 평등, 사상과 결사의 자유, 인권의 보장, 그리고 이러한 자유를 보 장하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라는 정치적 자유주의는 각종의 사회적․정치적 차별들을 철폐시켜 간 “진보성과 보편타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다(16쪽). 반면에 경제적 자유주의는 자유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어왔으며, 크게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확대하려는 주장(18세기 고전적 자 유주의, 현대의 자유지상주의)과 그것을 제한하려는 주장(19세기의 사회적 자유주의, 현대의 케인스 주의적 복지국가)으로 나누어진다고 정리한다(17쪽). 여기서 자유주의를 그 외의 사조(사회주의 등) 와 구분하는 기준은 바로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경제적 자유주의가 아니라, 바로 ‘진보성과 보편성’을
35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가진 정치적 자유주의에 있다고 판단한다. 둘째는 자유와 평등간의 관계, 그리고 그 속에서 진보의 의미를 명확히 한 것도 중요한 초점이 다. 필자는 평등을 ①본원적 평등, ②사회적 평등, ③경제적 평등의 3가지로 나누고, 본원적 그리고 사회적 평등의 사고체계는 바로 근대민주주의의 기초라고 보고 있다. 여기서도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것은 ‘경제적 평등’과 관련된 것인데, 필자는 자본주의의 진행과 함께 경제적 평등이 크게 위협받는 상황 속에서는 사회적 평등만이 아니라 경제적 평등도 더욱 확대시켜 가는 것이 바로 ‘진보(사회발 전)의 핵심’(24쪽)이라고 말하고 있다. 셋째로 ‘시장의 실패(혹은 자본주의의 실패)’를 인정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정부의 적절한 개 입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현대권력에 있어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힘을 더하고 있는 대자본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물론 정부개입과정에서 나타나는 ‘정부의 실패(국가의 실패)’ 위험성도 충분히 인정한다. 그러나 적어도 필자의 인식체계 속에서는, 그러한 문제는 충분히 해결 가능한 과제이다. ‘정부의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정부가 마치 “하나님 같이 전지전능하고 공평무사하다는 순진 한 사고”에 있는 것이다. 이에 필자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하나님 같은 정부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정부의 힘을 행사하는 정치인들과 관료들이며 이들 도 보통 사람과 똑같이 지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불완전한 개인일 뿐”이고 지적한다(27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개입이 성공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의 불완전성’(9쪽)을 인정한 상태에 서, 사상과 비판의 자유(130쪽) 그리고 관용의 정신(14쪽)을 통해서 ‘불완전성’을 ‘완전’에 가깝게 시정시켜 가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면에서 J,S,Mill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인간이성과 사회진보에 대한 확신, 개혁에서의 점진주의 등의 사고체계가 필자의 논리의 기조를 형성하고 있다 고 보인다. 그렇다면 이상과 같은 진보적 자유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체계는 어떻게 구축시켜야 하는가? 본고에서는 그것을 1980년대까지의 ‘순진한 복지국가’와의 대비 속에서 ‘합리적 복지국가’라고 정 리하고 있다. “합리적 복지국가는 자본주의를 기본으로 하지만 자본주의의 실패를 시정하기 위하여 적절한 수 준의 공공복지제도, 독과점 규제, 환경보호 정책, 불황과 실업에 대한 대책 등을 시행하며, 동시에 국가의 실패와 재벌의 횡포를 막기 위한 충분한 장치를 마련하며 모든 사회적 경제적 차별의 철폐 를 지향한다. 복지국가 앞에 합리적이란 말을 붙인 것은, 국가의 실패에 대한 고려가 없던 신자유
36
제1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
주의 이전의 순진한 복지국가와 달리 신자유주의의 비판을 받아들여 국가를 과신하지 않고 국가의 실패를 예방하기 위한 충분한 장치를 마련하였다는 의미이다”(30쪽).
2. 합리적 복지국가 형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필자의 담론을 이어받아 더욱 구체화시켜야 할 것은 바로 한국에서 합리적 복지국가를 구축하기 위한 정책체계를 구상하는 것이다. 초점은 ①특권을 배제하고 시장을 제대로 작동시기 위한 방안, ②실질적인 경제사회적 평등을 확대시키기 위한 방안, ③정부(국가)의 실패를 교정하기 위한 방안, 이 3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1) 건전한 시장육성을 통한 경제성장 먼저 시장을 시장답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주지하듯이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질서가 경제의 진보와 효율을 가져온다. 하지만 재벌에 의해서 완전히 장악된 한국경제는 건전한 시장이 작동되지 못하게 한다.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을 조장하며(총액출자제한의 해제), 금융과 언론까지 재벌의 손 에 장악하게 하는 것(금산분리완화, 신문방송법 개정)은 건전한 시장경제의 형성을 저해한다. 국민 경제 전체가 재벌의 ‘볼모’가 되고, 재벌의 파산이 국민경제의 파탄으로 직결되어 갈 위험성이 무척 높다. 그리고 그것은 국민경제의 공정성과 효율성 측면에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현 정부 성립이후 완화된 재벌규제완화(출자총액제한 해제, 지주회사 기준완화, 금산분리 완화 등)의 정책들을 원래대로 되돌아 놓으며, 재벌대기업의 우월자적 지위의 남용을 막기 위한 공 정거래법의 대대적인 손질,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위강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 한편 현행법의 틀 안에서도 재벌에 대한 ‘견제’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 하다. 그러나 한국의 사법부는 재벌대기업에 대한 ‘배려’가 너무 많은 나머지 법실행의 형평성이 크 게 저해되고 있다. 재벌의 불공정거래, 재벌내부의 권력승계를 위한 불법행위(삼성의 에버랜드사건 등)에 대해 철저한 실형위주의 법집행만 이루어져도 재벌의 불법행위는 상당히 근절될 수 있다. 한 국경제는 경제학자가 고민하면 될 뿐 사법부가 고민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2) 복지가 경쟁력이라는 인식의 전환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복지는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 구성원들의 안정감을 확보하고 자신을 더욱 개발시켜 가도록 하는 지식사회 경쟁력의 중요한 수단이다. 혹자는 ‘복지병’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우리는 복지국가를 제대로 만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 정 부가 지출하는 복지예산 규모는 GDP대비 6.9%로서 OECD 평균인 20.6%(2006년)에 비해 턱없이
37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낮다. 또 다른 혹자는 복지예산을 걱정한다. 걱정되면 당연히 세금을 걷어야 할 것이다. 애초부터 한국의 국민부담율(세금과 사회보험비의 GDP비율)은 26.8%로서 OECD 평균인 35.9%(2006년)에 한참 못 미친다. 일부 식자층은 증세를 하면 경제적 활력이 줄어든다고 제법 전문지식을 동원한다. 그리고 경제 를 살리기 위해서 감세를 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론이든 사례든 증명된 바가 없다. 지금까지의 경제학적 지식의 결과는 감세의 경제성장효과란 이론상의 결과물이 아니라 각국이 직면 하는 실질적, 경험적 사실에 입각한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1990년대 혹은 2000년대에 벌어 진 일본과 미국의 감세정책은 경제적 효과로서 발현되었다고 평가하기 어려웠다. 혹자는 한발 더 나아가 경제통합 이후 유럽 각국에서 벌어졌던 감세경쟁도 이야기한다. 그러나 정작 그 규모도 크지 않을뿐더러 대상도 주로 법인세감세에 한정되는 경향이 강했다. 법인세, 소득 세, 상속세, 양도세 모두 다 대대적으로 감세하는 경우를 적어도 지난 20년간 본 토론자는 본 적이 없다. 더구나 감세 속에서도 복지국가 유럽의 기본틀이 흔들린 것도 아니었다. 재정건전성과 복지 국가와 경제성장이라는 3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버린 스웨덴의 사례도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가능성’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정 책을 바꾸어가는 것이다. 복지를 단순한 시혜라고 생각한다면 한국경제의 미래 속에 양극화는 시정 되지 않으며 진정한 선진경제 달성도 요원해진다.
3) 경제사회적 공공성의 중시 다음으로 그 어떠한 정책도 한국의 경제사회적 공공성을 손상시켜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세계화, 자유시장화 등의 담론들이 마치 그것이 천동설처럼 교조화되어 논의된다면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이 땅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이며 잘 사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또한 그것과 세계화․자유시장화가 논리적 친화력을 가진 경우에 논의되는 방식이 적합하다. 만약에 세계화가 한 국사회경제체제의 ‘공공성’과 대립할 경우에 있어서는 그 과정이 관리되어야함은 당연하다.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시장(국가)실패’의 가능성과 그 해결법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차원에서 논 의할 필요가 있다. 단지 여기서 문제시해야 할 것은 시장의 영역을 확대시켜 가야 한다는 사고방식, 또한 그것이 국내적․국제적으로 유일한 경제운영방식이 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염려이다. 특히 한 사회의 ‘공공성’을 생각하는 데 있어서 금융시스템의 안정, 환경(농업)의 보호, 의료시스템의 유지는 필수적이다. 안정된 금융시스템의 유지는 자본주의경제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공공재적 성격을 가진다. 이 것은 1997년의 동아시아금융위기, 그리고 현재의 글로벌 금융위기 하에서 각국이 막대한 국민세금 을 투여해서 금융시스템을 안정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면 그 중요성을 금방 알 수 있다. 국민의 환경적, 생명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농업을 일정정도 보호하는 것도 필수적이 다. 단순한 산업으로서의 농업만을 생각한다면 한국의 농업은 이미 사양산업이다. 그러나 만약 농 업을 농촌 및 농민과 연계된, 하나의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환경적 실체로 생각한다면 농업의 의
38
제1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
미는 달라진다. 국민들에게 안정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특히 의약품에 대한 특허권을 어 디까지 인정할 것인가는 상당히 민감한 부분이다. 신약의 특허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복제약 시판 을 금지시키는 것(특허-허가연계)은 오바마의 미국 민주당, 그리고 유럽의회에서도 개정(미국) 또는 불인정(유럽)하는 경향이 강하다. 의약품협상에서의 허가-특허연계 조항은 한미 FTA의 대표적 독 소 조항이기도 하다. 이상과 같이 생각해보면 단순한 개방론에서 벗어나 한국사회의 공공성의 기반 을 더욱 공고히 하는 방향에서의 개방이라는 차원으로 논의와 정책을 수정시켜 가는 자세가 필요하 다.
4) 민주적 정책생태계의 구축 견제와 균형의 민주주의가 바로 사회발전의 가장 큰 기반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야만 한다. 경제성장에 한정해서 말할지라도, 경제성장이란 것이 단순한 양적인 성장만을 의미하지는 않는 다. 결과로서 나타나게 되는 성장은 바로 사회 전체 시스템의 정비의 결과이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자들은 인적자원, 자본 그리고 기술의 요인들은 생산함수의 형태로 나타내고 있다. 노동과 자본 그리고 기술을 결합시키면 당연히 생산활동이 이루어지고 그리고 이들 세 요소 의 성장이 바로 경제성장이라는 단순한 논리는 경제성장과정이 가지는 복잡한 과정을 단순화시켜 버린 것에 불과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정된 돈과 사람 그리고 기술을 조직화하는 사회적 능력인 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적 능력을 우리는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부른다. 사회자본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구성원 간의 ‘신뢰형성’에 있다. 그러나 현정부는 사회적 신뢰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정책의 투명성, 민주성, 정직성에 심각한 기능장애를 보여 왔다. 금 산분리완화, 감세, 환율정책, 4대강개발 등 민감한 정책사항에 대해서 제대로 된 공청회도 열리지 않았으며, 단지 자신의 논리에 대한 일방적 선전만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거짓말’의 징후 또한 농후했다. 2008년 6월 통렬히 반성했다는 대통령의 담화 가 귓전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촛불시위에 대한 강경진압으로 선회했으며, 국민적 저항을 모면하 기 위해서, 공기업 민영화는 공기업 선진화로, 한반도 대운하는 4대강 개발로 무늬만 바꾸어 가는 형국이었다. 정책의 신뢰성을 확보하려면 정치가 정책에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권화되고 보수화된 관료집단의 정책입안 및 정책실시 과정을 정치의 힘에 의해서 제어해야 한다. 또한 정치와 관료를 NGO 육성을 통해 견제하려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지식인 집단의 정책역량을 끌어들이기 위해 과감한 국책연구기관의 개혁도 필요할지도 모른다. 연구예산의 상당부분을 독점하고 있는 이들이 정권의 단순한 ‘마우스 탱크’로 전락되어 가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볼 수가 있었다. 어쩌면 예산의 상당 부분을 기업연구소, 학회까지 포함한 민간의 독립적 연구기관에 이양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안 이다. 비판적 시민사회 단체와의 의견소통도 귀중히 여겨야 한다. 시민사회 단체는 우리의 민주화 과정에서 생성된 귀중한 정책생산의 자산임을 명심해야 한다.
39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제1세션 토론문]
제1세션(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 토론 요지(초안) 정석구(한겨레 논설위원)
1. 대안 담론 논의의 전제 조건 - 대안 담론이 현실에서 힘을 얻으려면 현재의 이념 지형을 면밀히 분석하는 것이 필수. 이런 분 석을 한 뒤 왜 지금 같은 지형-극단적인 이념 대립-이 조성되었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대안 모색 가능. - 본 발제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한 충분한 진단 없이 진보적 자유주의를 우리나라의 이념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시대정신이라고 규정. 이렇게 할 경우 과연 현실에서 얼마나 설득력을 갖고 대안 담론으로 부각될지 의문. 진보와 보수 양쪽에 좋은 내용을 모두 담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이념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시대정신이라고 했으나 이런 이유로 과연 양쪽에서 모두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느 시대나 가장 이상적인 이념이나 이데올로기가 그 사회의 주류 이념으로 작동하지 않 은 게 아닌가. - 기본적으로 이념 대립은 왜 생기는가. 서로가 지향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 지향점을 왜 다른가. 서로가 추구하는 집단의 이익이 다르기 때문. 이런 상황에서 서로에게 좋은 내용이 있을 수 있는가. 어느 한쪽에 좋으면 어느 한쪽에 나쁜 것. 제로섬 사회가 돼 가고 있다. - 왜 그럴까. 멀리는 근대성의 결핍(서구와의 역사적 경험 차이), 남북 간 이념 대립 등이 있고, 가까이는 담론 부재의 이명박 정권 때문. 개발지상주의만 득세할 뿐 우리나라가 어떤 사회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 자체가 실종된 현실에서 대안 담론 모색은 지난한 과제. - 이런 상황에서 진보적 자유주의가 아무리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어도 현실적인 힘을 갖기는 역 부족. 우선 담론 시장 부활을 위한 전제 조건부터 충족시켜야 하는 것은 아닌지. - 그 방법은 무엇일까.
2. 정치적 자유주의는 현실에서도 진보적인가 - 외견상 정치적 자유주의는 보편타당성을 지닌 것으로 보임. 만인의 사회적 평등, 종교와 사상과 언론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인권 보장, 권력에 대한 비판 등은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가치들 임.
40
제1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
- 그러나 이런 가치들이 실제로 구현되는 양상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은 게 현실. 민주주의라 는 제도 속에서 국민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와 방식은 대단히 제한적. 법치주의도 사회적 약자들의 이익을 보호하기보다는 기득권 세력, 또는 국가의 이해와 질서 유지에 더 기여하는 경우 많음. - 이런 측면들에 대한 적절한 지적과 비판 없이 정치적 자유주의를 절대 선으로 간주할 경우 외 양상 정치적 자유주의를 지향한다는 자체만으로 그 사회가 진보성을 갖는다고 평가될 수 있음. 외 양과 실상을 구별해서 봐야 하지 않을지.
3. 한국 자본주의의 문제들 - 진보적 자유주의가 한국 자본주의에 어떤 의미가 갖는지를 보려면 우선 한국 자본주의의 실상 에 대한 분석이 있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진단이 부족한 게 아닌지. -문맥상 발제자는 자본주의의 실패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한국 자본주의가 시장의 실패(불공정한 분배, 불황과 실업, 독과점 심 화, 환경 파괴 등)와 자본주의의 폐해(이기주의와 배금주의의 만연으로 인한 인간성의 황폐화와 윤 리의 타락)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 - 그렇다면 이런 한국 자본주의의 실패를 진보적 자유주의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 직면하게 됨. - 최근 가장 크게 대두되는 문제가 소득불평등 심화로 인한 빈부 격차 문제. 이 문제 해결에 대해 진보적 자유주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뚜렷한 해답이 없는 것 아닌가. 진보적 자유주 의 원리 중 하나인 상생의 원리를 통해 이를 해결한다고 하지만 과연 가능할까. - 한국 자본주의의 더 본질적인 문제는 대자본이 모든 사회적 자원을 싹쓸이 하고 있다는 것. 그 것은 경제적 자원뿐 아니라 정치 사회적 자원까지 모두 자본의 영향력 아래 빨아들이고 있음. 이는 단순히 경제적인 측면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 이 문 제에 진보적 자유주의는 어떤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가.
4. 재벌 견제 어떻게 할 것인가 - 자유의 가장 큰 위협 요소 중 하나인 대자본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 공 정한 언론과 엄정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이마저도 기대 난망.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 국민 의식 고양 등을 통해 언론계와 법조계 견제해야 한다는데 현실적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 것인지는 회의적. 다수의 국민들이 언론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이 언론을 깨우치는 데는 많은 한계가 있음. 이를 위해서는 언소주 운동 등 보다 적극적인 언론운동 필요. 법조계에 대
41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해서도 국민들이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은 제한적. 법조계가 재벌의 영향력을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서는 법조계 내부 시스템 개선 등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음. - 학자, 판사, 언론인들이 현대의 승려계급으로서 세속의 권력을 엄정하게 비판하는 일부터 수행 해야 한다는 지적에는 공감. 하지만 학자나 언론인들이 이런 역할을 할 경우 사회적으로 외면 받고 매장되는 불이익 받는 게 현실. 소수는 이런 희생 감수하겠지만 재벌 견제할 수 있을 정도로 세력 화하기는 역부족. - 결국 재벌을 견제하는 힘은 민주적인 권력일 수밖에 없음. 현재도 재벌을 결제할 수 있는 정부 권한은 막강함. 단지 친재벌 등 권력과 재벌이 한 몸이 됨으로써 이런 기제가 작동하지 못하고 있 음. 재벌 견제 가능한 민주정부 탄생만이 재벌 독점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대안 아닌가. 실제로 검찰이나 공정위 금감원 국세청 등 재벌 통제할 수 있는 부처 몇 개만 제대로 관리해도 재 벌 횡포는 상당 부분 제어할 수 있음.
5. 상생을 통한 갈등 해소 가능한가. - 동일한 갈등을 상생적 갈등으로 파악하면 모두를 발전시킬 수 있고, 반대로 적대적 갈등으로 파 악하면 둘 다 파멸과 퇴보. 공동의 갈등 문제를 상생의 원리로 해결하는 진보적 자유주의를 채택하 면 된다고 하지만 이는 동어 반복. 사회적 갈등을 상생의 갈등으로 승화시킬 때 갈등은 발전의 원 동력이 된다고 했는데, 갈등의 당사자 중 누가 이런 역할을 할 것인가.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대부 분의 사회적 갈등이 상생적 갈등이 아닌 적대적 갈등. 이유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나. - 공동의 갈등이 적대적 갈등으로 가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경쟁 위주의 승자 독식을 권장하는 분위기 때문. 이는 경제적으로는 빈부 격차 심화로 나타나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파괴로 나타 남. 하지만 이는 이길 가능성이 높은 사회적 강자들이 당연히 선택하게 되는 길. 우선은 자신만이 더 많은 것을 얻게 되는 기회를 누가 포기하겠는가. - 이는 자신의 노력의 결과는 자신이 향유한다는 자유주의 원리에 기인하는 측면도 있음. 결국 그 것이 진보적 자유주의든 보수적 자유주의건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한 사회적 갈등을 상생적 갈등으 로 승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게 아닌가. 이는 한국 자본주의의 최대 문제 중 하나인 소득 불평등 으로 인한 빈부 격차의 심화를 해결하는 데 진보적 자유주의가 큰 역할을 하지 못 할 수 있다는 걸 의미. - 그럼 갈등을 상생적 갈등으로 만드는 현실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42
제2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민주주의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에서 자유주의에 대한 하나의 성찰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1. 들어가는 말 1)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에서 자유주의는 낡은 이념이거나 설 자리가 없는 것처럼 생각된다. 이념 적으로 보수/진보 또는 좌/우로 구분될 수 있는 사회세력들이 자유주의를 이해하는 관점은 극히 상 이하다. 보수파들이 실제로 자유주의를 실천했느냐 아니냐는 그만두고라도, 그들에게 자유주의는 체제를 수호하는 공식적인 이념이자 정치언어, 슬로건으로서 민주주의보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수용된 바 있다. 반대로 진보파들에게 자유주의는 냉전반공주의 이외의 다른 말이 아니거나 보수적 인 부르조아지의 이념이라는 이유에서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어왔다. 민주화 이후에도 자유주의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거나 간헐적으로만 나타날 뿐이다. 그러한 경우에도 “접두사 자유주의”를 통해 자유주의의 의미를 좀 더 분명히 하거나 어떤 진보적인 내용을 가미하기를 바란다. 예컨대, 진보적 자유주의, 사회적 자유주의, 공동체적 자유주의, 급진적 자유주의 등이 그것이다.
2) 흥미로운 점은, 최근 대의제민주주의를 비판하는 진보적인 지식인들 사이에서 대의제민주주의의 대안으로 직접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자유주의 그 자체보다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주의 내 지는 공화주의, 즉 고대 그리스에서의 자유주의에 대해 큰 관심을 갖는 경향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보수파는
물론
개혁파까지
넓게
수용하는
자유주의
이후의
자유주의,
즉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 이 이념은 19세기 이후 영국에서 나타난 "new liberalism"과는 다른 것)에 대한 관심 역시 크다. 그러나 정작 자유주의 그 자체에 대한 관심과 논의는 드물다. 한국에서 정치적 이 념이나 가치는 언제나 중요한 논의, 논쟁의 주제이다. 민족주의, 보수주의, 냉전반공주의, 마르크시 즘, 사회주의, 사민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 환경이념, 나아가 최근에는 공화주의에 대한 논 의까지 활발하다. 물론 자유주의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에 대한 논의는 다른 이념 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자유주의가 세계의 주요 이념 가운데 하나일 뿐 아니라, 냉전시기 분 단국가건설이래 국가의 공식이념으로 수용돼 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이상한 현상이다.
3) 만약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에서 자유주의가 일정하게 수용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먼저 오고 그다음 자유주의가 이를 뒤따르는 양상이 될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한국의 경험은 역사적 전개의
43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계기에 있어 자유주의가 자리잡은 이후 민주화가 이루어진 서구사회와는 역순이 되는 사례가 된다. 오늘의 시점에서 볼 때, 자유주의는 하나의 빈 공간처럼 느껴진다. 완전히 빈 것이 아니라 무언가 채워져 있다 하더라도 아주 빈약한 상태이다. 그것은―철학, 정치, 경제 어느 측면에서든―한국사회 의 이념적 지형에서 다른 곳들이 모두 채워진 뒤에도 빈 상태로 남아있는 공간이다. 이 빈 공간에 자유주의가 자리잡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 그러한가? 본 발표문은 이 문제를 검토 해 보고자 한다.
2. 자유주의가 수용된 역사적 환경: 그 취약성의 기원 1) 해방 후 민족문제를 둘러싼 극심한 이념적 갈등이라는 환경 하에서 분단국가가 건설됐을 때, 그 제도건설을 뒷받침하는 공식이념으로 자유민주주의가 수용되었다. 민주주의가 이념이라기보다 정치 체제로서 보편성을 가지고 수용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민주주의의 수식어가 되는 자유주의는 사 실상 냉전반공주의를 의미하면서 이념적 갈등의 중심적 요소로서 자기 위상을 갖게 되었다. 한국사 회에서 이념갈등이 분단을 가져왔던 것만큼 냉전 하 한국에서의 자유주의는 곧 급진적인 냉전자유 주의를 의미했고 그렇게 실천되었다. 이것은 한국사회가 자유주의를 수용하는데 있어 커다란 비극 이었다.
2) 보수파들은 실제로 자유주의의 가치와 이념을 수용하고 실천하기보다 이를 반공주의와 동일한 것으로 이해했고, 그에 반하는 진보파들은 그것이 사실상 냉전반공주의를 의미했기 때문에 이를 배 척하고 비판하였다. 그 후 국가중심적 산업화와 경제발전의 과정에서 성장한 기업엘리트들은 국가 로부터 자율성을 갖는 시민사회, 자율적 시장경제, 자유주의의 이념과 가치를 수용할 유인을 갖지 못했다. 국가주의, 관치경제, 국가의 전면적 지원 하에 성장한 국가의존적인 기업가집단의 윤리와 가치는 자유주의와 상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벌을 중심으로 한 기업엘리트들은 서구의 “정복 적 부르조아지”와는 거리가 멀다. 재벌로 대표되는 한국의 기업엘리트들은 경제성장과 국가의 부를 증진시켰다 하더라도 사회에서 헤게모니(도덕적 리더십)을 가질 수는 없었다. 그들로서는 정치적, 경제적 자유의 대변자로서 혁명적 가치를 주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3) 해방 후 최초의 진보파들은 냉전과 분단에 반대하며 민족주의를 가장 강력한 정치적 이상이자 규범, 가치로 수용했다. 급진파들은 혁명적 민족주의를 자기 이념으로 수용했다. 그들은 자유민주주 의가 민족분단을 정당화하는 구실에 불과하다며 이를 부정했다. 그들은 자유주의를 미국이 지원하 는 권위주의체제의 지도부를 정당화하는 이념적 기제로 이해했다. 그들에게 민족주의는 냉전반공주 의에 대항하여 민족통일을 이루려는 노력과 “진정한 민주주의”체제의 건설은 사실상 동일한 것이 었다. 이 전통은 80년대 민주화 이후 민주화운동의 중심세력들이 민족주의를 민중주의의 중심요소
44
제2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민주주의
로 수용함으로써 그대로 유지되었다. 독일정치와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혹자는 戰前 독 일자유주의의 허약함을 지적하며 이를 “지식인에 의한 자유주의”라고 말하곤 한다. 한국에서는 지 식인에 의한 자유주의조차 뿌리내릴 기회가 없었다.
4) 이 과정에서 한국사회의 좌우구분에 있어 흥미로운 패러독스가 나타났다. 보수/진보 양자는 다 른 이유로 공히 자유주의를 부정했다. 보수파들은 자유주의를 슬로건, 구호로 말하면서도 이를 냉 전반공주의와 동일시하며 실제로 이를 실천하지 않았다면, 진보파들은 자유주의를 친미적 부르조아 이념으로 경멸했다. 그러는 동안 이들 양자는 국가주의, 발전주의, 경제적 민족주의 등 민족주의적 이고 집단(합)주의적인 반자유주의의 경향성을 공유하게 되었다. 냉전의 극성기 정부당국은 민족주 의를 체제부정적 급진이념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냉전의 극성기를 지나면서 산업화 이후 좌/우 모 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민족주의를 수용하게 되었다. 이데올로기적, 담론적 환경이 완전히 변화한 것이다. 양자 모두는 민족주의로 수렴되었는데, 그 결과는 국가중심적 산업화와 경제성장/발전으로 나타났다. 민족주의는 국가중심성, 경제적 민족주의로 귀결되고, 방법과 접근은 다르지만 좌우 모두 통일을 추구한다. 민중운동이 마르크시즘의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지만, “만다린 문화”라 말할 수 있는 지식인엘리트주의는 민중운동 지도부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다. 그들은 해방적 상상력을 찾았지만, 사실상 민족국가, 자본주의적 성장정책이라는 동일한 이념적 기반 내에서 움직여왔다.
5) 이러한 이념적 태도 내지 정향이 자유주의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타날 수 없는 것은 당연하 다. 80년대 한국의 민주화는 자유주의에 의해 뒷받침되지도 않았고 그것을 동반하지도 않았다. 그 리고 이후 민주정부들은 경제발전이라는 집단적 목표를 추구했다. 즉 한국의 민주주의는 자유주의 를 우회해서 진행되었던 것이다. 개인의 윤리적 가치와 사회적 구조에 있어서는, 한편으로 전통적, 위계적, 집단주의적 윤리와 가치가 상존하고, 다른 한편으로 신자유주의, 경제발전, 후기산업화사회 의 특성으로서 전통적 사회관계의 급속한 해체에 따른 개인주의화와 파편화가 공존하는 혼란 또는 아노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3. 한국 현실의 맥락에서 어떤 자유주의를 의미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 나?: 이론적 측면에서 1) 오늘날 다수의 정치철학자들은 자유주의가 일정한 이념적 범위와 독트린을 갖는 하나의 이념이 자 가치라는데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현대 자유주의와 비교할 때 거의 다른 이 념이나 마찬가지다. 자유주의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던 최소국가의 원리 자체도 오늘날 자유주의이 론을 대변하는 롤스의 정의론에서 보듯 복지국가주의에 그 중심적 지위를 내주게 되었다. 자유주의
45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는 19세기 산업화와 자본주의 발전, 20세기에 들어 민주주의 발전과 충돌하면서 크게 변화했다. 이론적으로 자유주의는 국가불개입 자유주의(libertarianism), 공리주의(utilitarianism)적 요소와 접 합되었다. 그것이 하나의 정치이념으로 보편화되었던 만큼 다양화와 다변화도 뒤따랐다. 이러한 변 화는 이념 자체가 갖는 자기비판을 허용하는 유연함과 개방성의 결과라 할 수 있다. 혹자는 자유주 의와 사회주의간의 대조를 무의미하고 오도된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고전적 자유주의와 현대적 자 유주의는 거의 다른 이론, 이념이나 마찬가지로 서로 간에 갈등적이며 거의 다른 이론이라 할 만큼 달라져 있기도 하다. 이런 까닭에 어떤 자유주의를 말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다. 접두사 자유주의를 말하게 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여기에서 자유주의를 논하는 관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고전적 자유주의에 초점을 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의 한 국 정치현실, 특히 민주주의 실천과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요소들에 초점을 두고 논의 하는 것이다.
2) 민주주의는 정치적 평등을 중심원리로 하며 인민 스스로의 광범한 정치참여를 통해 인민 스스 로가 통치를 구현하는 정치체제이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실제로 어떤 정치, 어떤 정책과 제도를 가 지고, 어떻게 운영되고 실천되며, 그 결과로 한 사회가 어떤 모습을 갖느냐 하는 것은 광범하게 열 려있는 문제이다. 민주주의의 제도와 내용, 이를테면 헌법/법체제,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 사회의 구성 원리, 정책의 성격, 경제/시장을 운영하는 방법, 정치행위자가 갖는 도덕적, 윤리적 규범과 가 치, 개인의 도덕적 위상, 정치에 대한 판단 등은 민주주의 체제를 통해 결정되기도 하지만, 그것의 실제 내용과 성격, 방향은 민주주의만으로 규정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서 자유주의와 같 은 민주주의의 원리와는 상이한 정치이념, 사상이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이런 방식으로 민주주의 와 자유주의가 접맥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여러 위협적인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영역에서 일정하게 안정화되어있다. 그러나 그것은 앞에서 말한 내용들의 관점에 서 볼 때, 민주화 이전 구체제의 많은 것들을 그대로 답습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 결과 정치를 이해하고 운영하는 방법으로부터, 국가-사회관계, 사회의 구조, 개인의 정치적, 도덕적 가치관, 행 동양식들, 경제운영의 원리 등은 구체제와 높은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3) 다른 한편, 정치적 수준에서 7, 80년대 민주화운동은 강력한 민중주의에 의해 주도되었다. 민중 이데올로기는 에토스, 열정, 유토피아적 성격 강하게 갖는다. 민중주의는 전통적인 공동체적 에토 스, 낭만적인 혁명적 민족주의의 전통, 사회변화에 대한 총체적 비전을 중심으로 하는 급진적 변혁 이념을 흡수하면서 정서적 급진주의를 발전시켜왔다. 이들이 민주화운동을 통해 민주주의를 가져오 는데 앞장섰음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를 운영하고 민주주의의 제도적 실천을 통해 긍 정적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있어서는 효과적이지 못했다. 특히 자율적 결사체와 정당의 조직화, 정 책형성과 집행능력, 정부운영 능력에 있어 부족한 점들이 많았다.
46
제2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민주주의
4) 이러한 문제는 지금 우리가 왜 자유주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가 하는 문제의 배경을 이룬 다. 우리는 지금 자유주의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나,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에 정합적일 수 있 고, 구체제의 사회관계와 구성원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자유주의의 요소들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들 을 검토하는 작업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본 발표자는 네 가지 문제영역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 ① 로크의 자연권 사상의 중심을 이루는 자유와 평등사상, ② 몽테스큐와 토 크빌로 대표되는 권력의 견제와 제한을 중심으로 하는 권력분립과 사회구성의 원리, ③ 냉정한 현 실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정치에 대한 태도와 인식, ④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에 대한 관 계가 그것이다.
1) 보편적인 인권사상 1)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다. 이것은 자연법사상으로부터 도출되는 선험적(apriori), 철학적 명제이다. 철학자들은 자유와 평등이 자연적으로 인간에 내재하는 본성이라는 점에서 “내재 적 자유주의”(immanent liberalism)를 말하기도 한다. 이 사상은 미국 독립선언, 프랑스 인권선언, UN 보편적인 인권선언 등 모든 인권선언의 철학적 기초이다. 한국 헌법의 2장, “국민의 권리와 의 무” 조항들은 이들 원리에서 도출된다. 로크에 따르면, 인간 존재의 진정한 의미는 시민사회가 아 니라 인간이 완벽하게 자유롭고 평등한 자연상태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인간의 자연적 자유와 평등을 확대하는 것 이외에 다른 어떤 목적도 갖지 않는 인위적 창작물에 불과하다. 이것은 역사적 실제나 사실에 기초한 주장이 아니라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로워야 한다는 이성의 명령에 바탕한 것이다. 이러한 이성적 가정은 권력이 위계적으로 인간위에 군림한다는 전통적인 권력관에 대한 顚倒의 뜻을 담고 있다. 이것은 혁명적 사회구성원리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공동체 내에서 완성되며 거기에서 최고의 가치를 획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개인 이전에 사회, 구 성부분에 우선하는 전체로서의 국가/공동체를 말한다.
2) 홉스, 로크와 같은 자유주의철학자들에게 인간은 사회로부터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개인으로 존 재하며 자유와 평등은 개개인에게 내재된 것이다. 이성과 도덕적 자율성을 갖는 개인에게 인간을 위한 최고의 선을 획득할 수 있는 능력과 권리를 부여한다. 즉 개인주의는 자연권사상에 기초한 자 유주의 이전에 지배적이었던 위계적 사회관계에 대한 거부를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개인주의는 자유주의 사상에서 중심적인 위상을 갖는다. 이러한 논리적 근거위에서 시민사회 또는 정부의 조직 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제도에 불과하다. 자유주의의 철학적 전제로서 자연법교리, 즉 보편적 이며 가정적인 인간 본성개념에 기초해서 (국가)권력에 대한 제한의 논리/명제가 도출된다. 로크가 “정부에 대한 두 개의 논설”에서 명증하게 제시하듯이, 자유주의철학의 핵심은 사회구성의 기초로 서 개인주의에 입각하여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이론이다. 벌린의 개념을 빌리면 “소극적 자유”가 자 유주의의 출발점이다. 국가권력에 대한 견제의 이론은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에서는 시민들이 민주
47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주의를 이해할 때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문제이다. 현대 민주주의는 국가권력 하에서 실천되지 않 으면 안 되기 때문에 국가권력을 견제하는 문제는 자유주의에서 그것의 핵심사상으로 부상하였다. 국가권력에 대해 견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전체주의적 경향으로 빠질 수 있다.
2) 권력분립과 사회구성의 새로운 원리를 통한 국가권력에 대한 견제 1) 이 문제영역은 프랑스자유주의 철학자들의 이론적 기여이며, 영국과 프랑스의 정치적 조건의 차 이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영국에서는 왕과 지방귀족간의 권력분점으로 중앙권력이 느슨 한 것이 특징이라면, 프랑스에서는 강력하게 중앙집중화된 절대왕정체제가 그 특징이다. 몽테스큐, 왕정복고시기 교리학파(Doctrinaires), 토크빌과 같은 프랑스 자유주의자들은 反절대왕정체제 이론 으로서 로크의 그것보다 훨씬 더 역사적이고, 덜 선험적인 주장을 발전시켰다. 몽테스큐의 관점에 서 그가 처한 정치적 상황은 강력하게 중앙집중화된 왕정체제이며 그것은 제거불능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중요한 것은 강력한 왕정이 견제되지 않는 전제정으로 치닫지 않도록 하기 위해 법에 의 한 권력제한의 방법을 찾는데 있다. 이것은 왕의 주권과 인민의 주권이 대면하면서 일정한 균형 상 태를 조성하려는 것을 의미하며, 권력과 자유간의 갈등을 문제의 핵심으로 한다. 로크처럼 권리로 부터 시작해서 자유를 끌어내는 논리가 아니라, 반대로 자유를 위협하는 권력으로부터 출발하는 발 상의 역순은 흥미있는 대조를 구성한다. 몽테스큐는 권력의 기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결 과/효과에 대해 말한다.
2) 몽테스큐는 권력을 권리로부터 창출되는 기원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그 목적으로 부터 분리해서 권력을 사물로서 말한 최초의 이론가이다. 그의 중심적 관심사는 권력의 속성으로서 의 권력남용이다. 그는 권력에 대한 욕구가 인간의 본성 속에 내재돼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개인이 사회적, 정치적 제도를 통해 일정하게 특정의 권력을 갖게 될 때만, 권력은 남용되고 위험 하게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권력남용을 제어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틀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는 “법의 정신”에서 “권력의 남용을 막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권력은 권력으 로 견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중심테마를 통해 유명한 3권분립의 원리를 제시한다(“법의 정 신”, BK 11, ch. 6). (원래 삼권분립은 미국헌법에서 나타나는 입법, 행정, 사법이 아니라, 당시 영 국헌정구조를 모델로, 입법, 대외적 문제를 다루는 행정, 시민권과 관련된 행정을 의미). 기본적으 로 입법/집행부, 두 부서간의 권력분립이 그가 말한 것이다. 인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입법부를 옹호 했던 로크와는 달리, 몽테스큐는 자유를 위협하는 것은 입법부라고 생각한다. 대표의 정당성을 갖 는 입법부는 자연스럽게 권력을 확대하려는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미국헌법을 쓸 때 매디슨의 제도디자인도 정확히 몽테스큐를 따랐다(The Federalist Papers No. 47, No. 51). 흔히 왕정-귀족정-민주정 각각의 장점을 결합한 “혼합정체/헌법” (mixed constitution)을 발전시켰 던 공화주의적 정부형태에서 삼권분립의 이론적 기초를 찾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법과 제도
48
제2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민주주의
에 의한 권력제한은 이를 효과적이게 하는 사회적 힘의 관계를 반영하는 구조와 사회의 가치 및 풍습에 의해 뒷받침될 때 효과를 갖는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나 폴리비우스같은 이론가들의 혼 합 정부/헌법 이론에서 정부의 서로 다른 부서들은 특정의 사회세력을 대표해야 그것이 기대한 효 과를 갖는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근대에 와서 이 내용이 없어져 버렸지만, 권력분립이 작 동하기 위해 사회적 힘의 균형을 창출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므로 엄격한 의미에서 균 형과 견제는 권력분립과 다른 의미이다.
3) 몽테스큐의 계승자인 교리학파와 토크빌은 새로운 문제의식과 더불어 국가권력과 권위의 문제 에 접근한다. 그것은 자율적인 지방권력과 개인권리를 위협하는 국가권력 집중화의 구조적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들은 정치의 중앙집중화와 사회적 원자화를 동일한 과정의 다른 측면으 로 이해한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자율적 결사체, 행위자들의 상호 연결된 집합체(corps
intermediares)가 제시된다. 국가와 개인 사이에 위치하는 이들 자율적인 중간집단들이 국가권력의 집중을 제어하고 중앙권력(권위)에 대응하여 행위할 때, 그들은 사회와 개인에 자유를 가져오는 핵 심적 행위자 내지는 메커니즘으로 기능하게 된다. 따라서 강력한 왕정 하에서 소극적 자유는 해결 방법이 아니다. 구조를 개혁하여 자유의 공간을 적극적으로 만드는 것이 해결책이다. 여기에서 정 치의 도덕적 역할이 발견된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중간집단의 조직과 활동, 그에 대한 참여는 적극적 시민으로서의 덕성을 함양하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시민사회의 확대와 강 화이다. 그러나 정치의 도덕적 역할을 말하는 것과 정치를 도덕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동일한 것이 라고 오해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前者는 중간집단에 대한 참여를 통해 정치의 효능을 경험하고 습 득하는 것인 반면, 後者는 정치를 도덕화해서 이해하고 그 행위자로서 시민이 도덕적 시민, 적극적 시민이 될 것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랑스 자유주의자들의 관점에서 자유로운 "풍습/행동 양식/가치"(moeurs)는 중간집단의 정치적 역할에 있어 핵심적 의미를 갖는다. 자유의 풍습은 시민 적 자유가 정치적 참여/자유와 접합되면서 개인의 가치정향에서 자유를 중시하는 습관을 만들고 그 러한 방향의 태도변화를 가져온다. 중간집단을 매개로 한 개인들의 정치참여는 정치적 효능을 경험 하게 하고, 이러한 것이 확대되면서 사회관계 전체가 이런 방식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것이 또한 정치적 권리 확대에 기여하게 됨은 물론이다. 시민은 정부운영과 작동의 수동적 방관자가 아니라, 정부의 모든 수준에서 정치에 참여하는 권리를 행사하고, 그 효능을 감지하게 되는 것이다. 같은 논리의 반대 방향에서 강력한 집행부의 발전이 시민적 자유를 위협하게 됨은 물론이다. 중간집단을 매개로 한 지방적 자유의 발전은 국가로부터 개인의 독립성을 강화한다. 요컨대 프랑스 자유주의자 들은 제한정부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에 최대한 참여하며 권력의 배분과 이를 통한 권력 의 하향분산을 실현하고, 권력의 중앙 집중을 제한하는 문제에 이론적 초점을 두었다.
4) 프랑스 철학자들은 자유에 관해 사회학적 접근을 개척했다. 정치제도와 사회구조를 구분하고 정 치문화, 풍습, 행동양식의 변화를 관찰했다. 법, 헌법의 분석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생각해서 그들
49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은 풍습, 사회적 가치변화에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눈여겨볼 점은 그들은 보수주의저작에서 많 은 것을 배웠다는 점이다. 그들은 보수파들의 규범적 가치는 부정했지만, 사회질서의 문제, 사회적 권위가 어떻게 창출되는가의 문제를 보기 위해 보통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권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느냐 하는 문제에 큰 관심을 가졌다. 당시 보수파들은 그리스 민주주의, 로마공화정 시기의 고전 정치이론을 바탕으로 민주주의는 무정부상태와 전제정을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자유주의자들은 그 들이 어떻게 문제를 보는가 하는 점을 잘 탐구해서 그들 자신의 이론을 만드는 소재로 삼았다. 예 컨대 자유주의자들은 권위에 대해 개념을 정리할 경우에도, 그것이 단지 위계적 사회를 만들어낸다 는 측면만 보지 않고, 어떤 종류의 권위가 보다 더 큰 사회적 평등과 정합적일 수 있느냐 하는 문 제로 접근했다. 그들이 정치조직이 작용하는 기반으로서 경제적, 사회적 구조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보수주의이론에서 배운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은 그러한 문제의식을 통해 구조를 어떻게 변 화시키는 것이 정치변화의 가능성을 열수 있는가 하는 자신의 문제를 찾았다. 이점에서 재산권 분 할 (장자상속권 개혁), 교육확대, 사회이동의 확대 등은 봉건적 신분체제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핵심적 개혁사안들이다. 요컨대, 자유주의자들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 정치적 선택의 실제성을 강조 했다. 이렇게 해서 프랑스 자유주의이론가들은 정치혁명과 구분되는 사회혁명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3) 정치를 이해하는 방법으로서 자유주의의 현실주의적 정치관 1) 자유주의가 관여되는 도덕철학 내지 정치철학의 성격은 두 가지 흐름으로 대변된다. 하나는 무 엇이 본질적이고 내재적으로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를 추구하는 이론이다. 도덕적인 급진파들은 거 의 숙명적으로 이를 추구했다. 다른 하나는 정치철학을 실천이성의 부분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 것은 실제 현실에서 사용하는 지적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 현실 행위에서 좋은 결과나 좋은 도덕적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에 일차적인 관심을 갖는 지적 능력을 말한다. 이 방향에서 실천이성은 나쁜 결과나 상황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가치 기준의 조율을 허용하는 개방적 자세의 중요성 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러한 방향을 공유하는 철학자들은 이와 같은 개방적 자세를 정치적으로 진 지한 것의 징표로 여긴다. 위에서 말한 두 경향성 간의 논쟁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된 것이다. 존 던, 레이몽 고이스, 퀜틴 스키너같은 철학자들의 관점은 後者의 자 유주의 흐름을 대표한다. 前者는 올바른 도덕이론과 그에 입각해 도덕을 바로 세우는 것이 좋은 사 회를 만드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유토피아적 전통에 있는 철학자로서 도덕이론에 헌신하는 존 롤스 같은 현대 자유주의철학자가 대표적이다. 後者는 위에서 말한 개방성을 허용하는 정치에 선행 하여 “윤리학 먼저”의 경향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현실세계의 부정적인 측면을 비판하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의 지적 전통은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몽테스큐, 토크빌, 현대에 와서는 베버와 같은 이론가들에 의해 대표 된다. 이 전통에서 정치철학은 기본적으로 현실주의적이고, 정치는 행위와 그 행위를 둘러싼 맥락
50
제2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민주주의
을 중심으로 한 것이다. 또한 정치현상, 정치행위란 역사적으로 위치 지어진 것이기 때문에 정치철 학에 있어 영속적인 문제들, 규범적인 이론에 관심을 갖기보다 정치를 현실 속에서 가능한 것을 만 들어 낼 수 있는 기술 또는 기예로 이해한다. 본 강연자 역시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이 後者의 흐름 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 플라톤 이래 많은 이상주의적 정치철학자들은 인간의 선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 나, 그리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공동체는 어떤 내용과 모습을 가져야 하나라는 문제를 둘러싸고 그 해답을 구하고자 노력하고 투쟁해왔다. 이 문제의 해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미 아리스토텔레 스는 그의 윤리학에서 정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로서 실천적 지혜(phronesis)를 강조한 바 있 다. 그러나 실천적, 현실주의적 자유주의의 흐름은 실천이성이 정치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선이 무엇인가를 정의하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이성적 가이드로서 그것은 일관되고 체계적인 이론을 구축할 만큼 충분한 기초를 제공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실천이성은 포착하기가 무척 어렵거니와 다른 사회나 정치적 조건에 적용하기는 더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는 이성에 따라 정치행위를 하고 판단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정치란 굉장한 위험이 따 르는 인간행위로 이해된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정치관은 실제로 인간의 선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무 엇인가에 대해 안다는 문제는 필연적으로 불확실하거나 모호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현실정치 는 민주주의 하에서 선거를 통해 창출되는 권위와 비민주적인 현대의 국가권력이 결합하는데서 발 생한다. 이 문제는 벌써 정치가 할 수 있는 한계, 또는 정치를 통해 이룰 수 있는 이상을 근본적으 로 제약한다. 현대정치의 조건에서 헤겔의 이론 또는 어떤 가부장적, 권위주의적 국가관에서 보듯 이 선거를 통해 우연히 국가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시민에 대해 국가가 어떤 도덕적, 교육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아니면 민주주의의 주체인 인민(demos)들이 현대의 국가권력을 일 관되게 행사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어느 것이든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순진한 생각이거나, 넌센스에 가까울 것이다. 경제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시장이 효율적으로 잘 작동해서 생산과 분배가 객관적으로 입증가능한 공공선을 창출할 수 있을까? 이를 실현하기 위해 도구적으로 어떤 합리적,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 집행한다면 상정된 공공선을 실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바보 같은 생각일 것이다.
3) 현실주의적 자유주의철학이 오늘의 정치현실을 어떻게 볼 수 있고, 어떻게 보는 것이 바람직한 가 하는 문제, 즉 그러한 정치철학의 성격에 대해 존 던의 말을 살펴보자. “(그것은) 철학적 폭발이나 정서에 자극을 가져올 능력이라는 측면에서 심각하게 결여되고 있는 철학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인간자유와 도덕적 광휘를 향한 현기증 나는 파열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집단적 생활이 항상적으로 노출되는 여러 형태의 혼란스러운 위험에 대한 보 다 냉정하고 절망적인 감정에 기초하고 있다. 그것은 방어적이고, 불안한, 그러나 확신에 차고 공격 적으로 밀어붙이는 자유주의는 아니다. …… 인간의 사회적 협력은 도덕적으로나 실천적으로 필수
51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불가결한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회복할 수 없이 문제덩어리라는 점을 인정하는 기초 위에서 정치 생활에서 가장 중심적인 덕을 주도면밀하면서도 완강하고 용감하게 개발되어야할 덕으로서, 그러나 강요되어야할 권리로서가 아닌 정치생활의 중심적 덕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관용과 언론 자유 의 권리에 대한 믿기 어려울 만큼 장대한 형이상학적 거창함보다 성향적인 관용의 덕과 자유로운 탐구의 지(식)적 장점들을 확인한다. …… 이렇게 이해된 자유주의는 실천적 지혜를 정치의 중심 가치로 삼기 때문에, 특정사회, 특정시점에서 정치적 실천은 사회주의가 될 수도 있고, 보수주의가 될 수도 있다” (Dunn, 1985: 168-9). 실천적 지혜와 사회학적으로 민감한 자유주의는 정치적 실 천의 영역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데 창조적일 수 있고, 권력이 실제로 작동하는 상황에서 광 범위한 적응력을 가질 수 있다.
4) 자유주의철학에 위에서 말한 냉정한 현실주의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에 덧붙여, 갈등이라는 구체 적인 문제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인간의 선을 함양하고 좋은 사회를 형성하 는 요건으로서 정치에 있어 갈등의 역할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관점을 말한다. 철학적 으로 갈등을 이해하는 방법은, 무엇보다 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를 통해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칸트 에서 강조되는 바, 그는 개인의 자율성을 인간의 가장 중요한 존재이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온정 주의 (paternalism)에 대한 비판의 맥락에서 이해되는 갈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자유주의의 관점 에서 국가는 목적 그 자체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복리를 증진하는 수단이고, 그것이 국가의 목적 이라고 이해된다. 그러나 국가/정부는 개인들의 다른 의사/이익/가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방해/반 대 받지 않고 복리를 추구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국가가 주도하는 획일성을 한편으로 하고, 개인의 자유와 다양함을 다른 한편으로 할 때, 兩者의 대응에서 갈등이 발생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유주 의 사상의 중요한 요소의 하나는 갈등은 긍정적이고 생산적이라는 관점이다. 전통적인 유기체적, 공동체주의적 사회관은 조화와 통합을 최우선의 가치로 설정하고, 강제력이 사용될 경우에도 그것 은 사회적 합일, 통합을 가져오기 때문에 좋은 것이라 상정한다. 부분은 규제되고 규율된 틀을 통 해 전체에 종속돼야 하고, 갈등은 분열, 혼란, 사회해체의 요소로 규탄된다. 자유주의철학은 개인과 집단 간의 대립은 인간의 기술적, 도덕적 발전의 필수적인 조건으로서 유익한 것이라는 관점을 그 중심에 포괄한다. 진보는 다양한 의사/의견과 이익들 간의 충돌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고, 여기에 서 갈등은 필수적이다.
5) 이와 같이 개인 인격성의 구현과 사회발전에 갈등의 긍정적 역할을 강조하는 관점이 철학적이 라고 한다면,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허시만의 갈등에 대한 관점은 훨씬 더 사회경제제적이고 정치 적이다. 허시만의 저서 “열정과 이익”은 자본주의 초기발전과정과 병행했던 근대화시기, 어떻게 초 기 자유주의철학자들이 갈등의 원리를 사용하여 근대적 사회질서를 창출할 수 있었는가를 보여준 다. 그 핵심은 하나의 열정이 다른 열정을 통해 견제, 제어되는 원리이다. 이 원리는 명예와 영광을 추구하고자 하는 전근대적 열정이 자본주의 상업사회의 이익을 추구하는 다른 종류의 열정에 의해
52
제2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민주주의
견제되는 것을 거시사회변화를 통해 보여준다. 열정을 이익과 대립시키고, 이익을 이익에 대립시킨 것이다. 이것은 갈등의 원리가 어떻게 거시적 사회질서를 만드는데 기여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지 만, 동시에 보다 구체적 차원에서 사회적 갈등이 민주주의와 시장질서가 대응하고 공존하면서 어떻 게 사회질서를 유지하는가 하는 문제를 보여줄 수도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 하에서 정치가 자본주 의시장경제에 기초하면서도 어떻게 시장경제를 다룰 수 있는가 하는 점과 아울러, 이를 통해 어떻 게 사회구성원들의 이익과 복리가 증진될 수 있는가 하는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즉 갈등의 사용을 통해 어떻게 민주주의와 정당을 매개로하는 이익갈등이 사회적 조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다.
4) 자유주의와 자율적 시장경제간의 관계는 무엇인가? 1) 자유주의는 그 역사적 전개과정에서 나라마다 상이한 정치이념이나 실천 또는 운동과 접맥되었 고, 이는 정치적 실천이나 대중적으로 수용되고 이해되는 내용들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산업혁 명과 연계된 사회주의이념, 그 뒤에 나타나는 민주주의와 충돌하면서 자유주의이념에는 여러 가지 변화가 발생했다. 먼저 자유주의는 산업혁명 이후 나타나는 자율적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한 경제적 자유주의와 대면하였다. 그리고 오늘의 현대적 조건에서 신자유주의와 접맥되기도 했다. 이점과 관 련하여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포괄하는가? 그리하 여 경제적 자유주의는 자유주의의 핵심적 내용을 구성하는가? 나아가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의 연 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는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본 발표자의 관점은 자유주의는 시장자율성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적 자유주의, 그리고 20세기 후반에 나타난 신자유주의와 구분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서구의 산업발전은 자유경쟁, 국가의 시장불개입, 영국 맨체스터학파(19세기 전반기 反곡물법운동과 관련되어 나타난 자유방임주의)의 교리에 힘입은 바 컸다. 그러나 양자의 결합은 우연의 일치이고, 따라서 자유주의와 국가의 시장불개입, 시장자유주의 (libertarianism)는 엄연히 다른 이념이다. 로크, 블랙스톤, 몽테스큐, 매디슨, 꽁스탕 등 대표적인 자유주의자들은 자율적 시장 경제이론가들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자유주의는 법의 지배, 입헌국가, 정치적 자유를 의미했으며 이 들이 자유 개념의 핵심을 구성했다. 그들은 경제적인 자유무역원리를 지지하지 않았다. 우리가 보 통 자유주의라고 말할 때, 어떤 때는 정치적 자유의 맥락에서, 다른 때는 시장자유의 맥락에서 서 로 다른 두 이념과 원리를 자유주의라는 말 속에 섞어 혼동하여 사용한다. 정치학자 사르토리의 말 대로 그것은 “매우 불행한 결합”이 아닐 수 없다. 자유주의철학자 존 그레이가 말하듯이 신자유주 의를 자유주의의 맥락에서 말하는 것만큼 자유주의를 오도하는 일은 없다. 그럼에도 위의 문제들은 자유주의를 이해하는데 있어 커다란 오해의 원천이 되어왔다.
2) 이론적으로 이러한 오해를 더욱 가중시키고 진보파들 사이에서 자유주의를 부정적으로 이해하 게 만들었던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 로크에 관한 해석, 즉 로크이론의 핵심을 “소유
53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적 개인주의”(possessive individualism)라고 해석한 유명한 “맥퍼슨 테제”의 영향을 언급할 수 있 겠다. 그 테제는 로크의 자유주의에 관한 마르크시즘적 해석으로 논리는 무척 간단하다. 즉 재산소 유에 기초한 그리하여 재산소유에 강박적이고 자본주의적 정향을 갖는 소유적 개인주의가 모든 인 간들의 관계를 경쟁적이고 침탈적인 것으로 만드는 소유적 시장사회를 창출하는데 중심변수라는 것이다. 이 테제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뒤따랐는데, 여러 정치철학자과 이론가들은 자본주의 흥 기를 17세기 정치사상을 해석하는 지배적인 틀로서 제시하는 문제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회의적이 다(Tully, 1993: 127). 자유주의가 소유적 시장사회에 기초했다거나 또는 자본주의적 경제유형의 상부구조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엇보다 사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거니와(Sartori, 1987: 378), 로크 의 이론을 곡해한 것이다 (Dunn, 1969: 262-7).
4. 자유주의를 한국의 정치현실로 가져오는 문제: 정치적 실천의 관점에 서 그것의 의미는 무엇이고, 무엇에 기여할 수 있나? 1) 한국사회의 맥락에서 생각할 때, 자유주의의 위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화 이후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조건이 형성됐다는 점이다. 자유주의가 민주화에 기초가 되지못하고, 민주 화가 자유주의를 정치현실로 불러올 필요를 느끼게 됐다는 말이다. 건국 이후 자유민주주의는 국가 건설의 존재이유로 나타났지만, 민주주의가 정치적 실천을 통해 보편적인 이념으로 자리잡은데 반 해, 자유주의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자유주의의 중심적 가치들이 상당정도 민주주 의의 가치와 이념 속으로 포괄되는 동안에도 자유주의가 정치적 이념으로서 중심적인 위상을 가졌 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유주의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한 민주화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過負荷하는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민주화가 자유주의적 계기를 가져왔느냐 하는 것 또 한, 그렇지 못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민주화과정에서 독재권력을 타도하는 정치적 목표를 넘어, 인 간의 자유와 평등의 구현으로서 자유주의적 가치와 원리가 미친 영향을 말하기는 어렵다. 민주화과 정에서 자유주의적 가치가 얼마나 큰 열정과 감동, 울림과 강력함을 가져왔나? 별로 그렇지 못했다 고 봐야 할 것이다. 왜 그러한가? 한국에서의 민주화는 정치체제를 민주화하는 정치적 투쟁의 성격 이 강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의 원리들은 민주주의 투쟁의 결과로 획득되기 이전에 이미 헌법 조 문을 통해 법적으로 명문화돼 있었다. 법의 실제가 아닌, 형식에서 정치체제가 실제로 민주주의냐 아니냐, 실제로 자유주의의 원리가 실천되고 있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와는 무관하게 한국은 처음부 터 민주주의였고 자유주의 국가였다. 따라서 실제의 자유주의를 보는 것이 필요하다. 앞에서 말했 던 네 가지 문제영역에서 이를 검토해보도록 하자.
54
제2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민주주의
1) 보편적인 인권사상 1) 자유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놓은 로크의 저작은, 명예혁명을 가져왔던 종교적 자유를 억압하는 왕정과 종교적 자유와 프로테스탄티즘을 대변한 의회세력간의 정치적 갈등의 맥락에서 씌어졌다. “정부에 대한 제2논설”의 요점은 기존 왕정의 정당성을 뒷받침했던 필머의 이론, 즉 인간의 태생적 자유를 부정하고 이를 방종으로 치부하면서 왕의 자연적/태생적 권력을 옹호한 주장을 비판하는 것 이다. 영국의 자유주의혁명은 20세기 후반 한국의 민주화혁명과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다. 인간의 태생적 자유를 기초로 한 로크의 보편적 자연권사상의 핵심내용 가운데 하나를 로크의 “정부에 관 한 제2논설”을 통해 살펴보자. “인간의 자연적 자유는, 지상의 어떤 상위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입 법적 의사나 권위 하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배를 위한 자연적 법만을 갖는다. 사회에서 인간의 자유는 다른 입법적 권력 하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공화국에서 동의에 의해 수립된다. 어 떤 의사/의지의 지배력이나 어떤 법의 제한 하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입법부에 부여된 신뢰에 따 라 그것이 제정한 법의 지배하에 놓인다”(Locke Ch.4, 22). 한국의 민주화는 헌법 조문으로 존재했던 정치적 자유를 포함하는 보편적인 인권들에 관해 법 의 실제적 효능을 크게 확대하는 계기를 가져왔다. 그러나 한국에서 기본권은 민주주의 실천에 의 존적이다. 서구의 보편적 자유주의의 이념과 가치는 시민 개개인과 사회 전체의 시민적 규범과 가 치로 널리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에 정치체제나 정권의 성격을 넘어서는 효능을 갖는다. 현재 한국 의 보수정부 하에서 민주주의 실천이 위축되면서 시민적 기본권들이 곧바로 위협되는 현상들은 이 를 잘 보여준다. 정부에 대한 정치적 반대를 차단하고 약화시킬 목적으로 기본권을 침해하는 정치 적, 법적 조치들이 일상적으로 널리 시행되는 경우를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수없이 많은 사례 가운데 최근의 한 사례를 들어보자. “불심검문개정안”(5월 27일 국회행정안전위 통과, 법제사법위 원회 계류 중)이 그것이다. 경찰이 아무나 범죄의 의심이 있는 사람을 영장 없이 불심검문할 수 있 는 권한을 강화한 것이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이다. 국가인권위는 이 개정안이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국회에 수정보완을 권고했다. 놀라운 것은 이 문제가 국회 안팎에서 정치적으 로, 사회적으로 별다른 비판과 문제제기 없이 국회 상임위를 어떻게 통과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 다. 냉전시기 권위주의 하에서 국가보안법은 사실상 헌법의 우위에 있었던 법이다. 탈냉전과 민주 화는 헌법의 위상을 높이고, 국가보안법의 지위를 헌법에 종속시키는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자유와 기본권은 서구의 왕정이나 귀족정 시기와 같이 여전히 권력에 의해 자의적으로 제한되는 것이 가능하다. 게다가 시민사회에서도 이러한 기본적 자유의 내용에 대 해 무관심할 때가 많다. 민주주의 하에서도 국가의 목표와 의사가 개개시민의 자유위에 군림하고 있기 때문에 시민의 자유는 항상적인 위협 하에 놓여있다. 여기에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간의 관계 를 생각해볼 수 있다.
55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2) 민주주의는 정치적 평등과 다수 지배의 원리에 의해 집합적 결정이 가능하고, 그것이 법으로 구 현된다. 그에 비해 자유주의는 모든 개인에 평등하게 인신, 양심과 종교, 안전, 재산소유 등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고, 그것은 실제로는 법적, 형식적 자유의 보장을 통해 구현되기 때문에, 정치적, 사 회경제적 조건에서 불평등을 상관하지 않는다. 그로 인하여 크든 적든, 다수결의 원리를 통해 침해 할 수 없는 독자적인 영역이 존재한다. 로버트 달이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인 매디슨민주주의는 자 유주의적 원리를 헌법으로 구현한 자유주의적 입헌주의의 모델사례로 민주주의를 제한한다고 말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점에서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에 비해 진보적이다. 이것은 한국에서도 그러하 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기반을 갖지 않는 한국적 조건에서 민주주의는 법적, 절차적 측면에서 개인 의 자유를 보장하는 기본권을 구현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실질적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왜냐하면 권 위주의적 방법으로 국가공(강)권력에 의한 개인자유의 침해는 그 대상이 기존의 지배적 권력에 대 한 비판자들이거나 사회적 소수자들이거나 사회경제적 약자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수파들에 비 해 진보파들이 민주주의의 원리와 가치를 구현하는데 더 열성적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 가 없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와 기본권을 수호함에 있어 자유주의 가치의 맥락에서 그렇게 하는지 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개인의 자유와 기본권은, 국가와 공동체의 틀 안에서, 그리고 한 사회 에 군림하는 지배적인 가치관과 합의, 또는 특정 집단 내에서의 지배적인 가치관과 행동양식보다 개인의 자율성과 기본권이 우선한다는 관념과 문화, 사회적 가치가 자리잡을 때 실현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할 때 진보파들이 얼마나 이러한 가치, 정치사회관을 수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 문이기 때문이다.
2) 국가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 중앙집중화에 대응하는 자율적 결사체와 지방으 로의 권력분산 1) 60년대 미국정치학자 그레고리 헨더슨은 한국의 정치를 위계적으로 중앙집중화된 권력의 정점 을 향하여, 공간적으로 서울로의 집중을 결과하는 “소용돌이의 정치”로 특징지은 바 있다. 그 이후 이 현상은 더욱 강화되어왔다. 6,70년대의 국가주도의 산업화는 산업과 경제엘리트의 구조를 집중 화시켰다. 민주화와 신자유주의의 도래는 이 구조를 완화시키지 못하고 더욱 강화시켜, 서울하고도 강남, 경제엘리트 중에서도 소수의 재벌, 문화․교육에 있어서도 소수의 대학으로 집중되는 구조를 강화시켰다. 이 초집중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토크빌의 이론을 빌어 말한다면, 분단국가의 건설과 정, 남북분단과 이념갈등이 가져온 가장 중요한 결과는 기존의 중간집단들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사 회변화와 발전에 따른 사회의 자율적 중간집단이 발전할 수 없게 된 것의 결과이다. 기존에 일정하 게 유지되었던 지방적 자원들과 자율성들은 국가건설, 전쟁, 산업화 등의 격변적 사회변화로 해체 되었다. 그리고 산업화가 동반한 생산자집단과 사회적 약자들의 조직들, 기존의 사회질서에 이견을 말할 수 있는 지적, 문화적 비주류엘리트들이 자율적 조직화를 통해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은 허용되 지 않았다. 가치와 이념의 다원화, 사회경제적, 교육문화적 자원들의 다원화가 허용되지 못하면서
56
제2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민주주의
모든 것은 하나의 지배적 가치, 이념, 정점을 향해 치닫는 일원적 사회구조가 형성되었다. 흥미있는 것은, 한국사회의 병폐로 지적되는 지역주의, 지역감정은 지역에 대한 충성, 지역의 자율성과 그에 바탕한 발전을 위한 지역의 열정이 충돌하면서 빚어지는 현상이 아니라, 지역의 지지기반을 배경으 로 한 정치엘리트들이 중앙의 권력과 그 자원을 어떻게 획득하거나 분점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로 부터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중앙을 향한 지역간 경쟁은 지역분권화, 권력과 사회경제적, 문화적 자 원의 지방분산을 가져올 수 없다. 서울로의 중앙집중은 정치적, 사회경제적, 문화적 엘리트들의 정 점을 향한 수렴현상이 결과한 공간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몽테스큐-토크빌의 이론은 봉건적 지방분권으로부터 중앙집중화한 절대주의체제로의 이행 하는 과정에서 지방의 귀족적 권력의 자율성이 해체되면서 중앙집중화를 가져오는 프랑스의 역사 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토크빌이 자율적 중간집단을 말할 때, 지방에서의 자율성과 근대 화에 의한 기능적 분화에 의한 자율적 집단의 형성, 두 가지를 모두 포괄한다. 한국사회에서는 봉 건적 지방분권의 경험을 갖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해방 후 국가건설과 산업화이후에도 지방분권화 의 경험을 갖지 않는다. 그럼으로 한국적 현실에서 분권화는 지역적 공간적 분권화를 곧바로 시도 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효과를 갖기 어렵다. 이점에 있어 중앙집중을 완화하는 기능적, 계층적 자 율적 집단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 있다. 자율적 집단의 발전이 집중화한 중앙권력을 그리하여 지역 적으로 집중화된 서울중심 권력을 완화하는 가져오게 될때, 그것이 지방분권화의 효과를 창출할 것 으로 기대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중앙집중화와 서울집중에 대한 해결책은 사회의 주요 영역과 수 준에서 이익, 가치, 열정을 달리하는 사회집단들이 자율적으로 결사체를 형성하여 사회관계와 가치 의 구조를 다원화하는데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자율적 결사체를 조직, 형성하고 민 주주의의 제도 안에서 이들이 자기의사를 대표하는 것을 가로막는 법적, 제도적 장치들을 제거하거 나 완화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동심원적 엘리트구조를 해체하여 다변화하는 방법을 말하 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강화를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중간집단의 형성 과 강화는 권력자원과 사회경제적 자원의 지방분권화를 가져오는 효과를 갖는다. 그것은 사회세력 간 견제와 균형의 사회적 기반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2) 두루 알다시피 한국의 헌법은 매디슨민주주의의 제도화라 할 3권 분립에 입각한 미국헌법을 모 델로 하여 만들어졌다. 자유주의 이념과 가치를 신봉했던 미국 헌법의 기초자들에게 인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의회권력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도디자인의 초점이었다. 그들은 의회를 견제하는 가장 강력한 제도적 장치로 곧 인민에 의해 직접 대표되지 않는 제3의 국가부서로서 사 법부를 두고, 자유주의의 기본권을 규정한 헌법에 대해 그 해석권을 부여했다. 자유주의를 통해 민 주주의의 과도함을 견제하는 방책 가운데 하나를 사법부에서 찾았던 것이다. (대통령과 집행부가 강력하게 성장한 것은 2차대전 후의 일이다). 매디슨헌법의 한국판은 거의 동일한 제도적 골격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치적 환경은 무척 상이하다.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의 최대 문제는 강력 한 대통령과 집행부를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에 있다. 한국의 민주화는 강력하게 중앙집중화된 권위
57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주의국가라는 조건에서 발생했다.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비대한 국가기구를 어떻게 견제하고, 어떻 게 시민에 책임지도록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가 곧 민주화의 급선무로 등장했다. 매디슨헌법이나 한국헌법은 동일하게 하나의 모순적 문제를 대면한다. 즉 한편으로 대표를 통해 인민주권을 실현하 는 정부를 건설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정부의 권력을 견제하고 제한함으로써 개개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다. 앞의 것이 적극적 자유를 실현하는 역할이라면, 뒤의 것은 소극적 자유를 실현하는 역할이다. 강력한 국가권력을 견제해야할 책임이 입법부와 사법부에 부여되어 있 음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사법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권위주의를 통해 성장한 사법 부의 법률공직자들은 대통령권력에 대해 허약하고 종속적인 성격이 강하다. 검찰의 법률공직자들은 민주적, 자유주의적 가치를 존중하기보다 거의 전적으로 권력집행자의 역할과 그들 조직의 이익유 지에 몰입한다. 사법부가 대통령에 대한 견제력을 갖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민주주의는 위협받는다 고 말할 수 있다.
3) 토크빌은 권력의 중앙집중화와 그로 인한 국가집행부권력의 강화를 제한하고 한 사회가 자유로 운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방편으로 사회적 가치, 풍습, 행동양식을 특징짓는 문화(moeurs)의 중요성 을 강조했다. 국가권력의 중앙집중화와 이를 시현하는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집행부권력의 강화 는 단지 권력관계가 만들어내는 구조적 현상만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문화적 양식과 깊이 관련 된 문제이기도 하다. 허약한 사회의 기초 위에 강력한 국가가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의 행동양식과 가치는 국가중심적이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국가는 처음부터 민족공동체의 제 도화로 인식되었다. 그것은 그 자체로 내재적으로 정당한 것이고, 국가목표를 성취하는 가장 강력 하고도 효율적인 정치공동체인 것이다. 한 사회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것도, 이를 최대의 효율성을 통해 집행하는 것도 이 목표달성을 위한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자원을 동원하는 것도 국 가이고, 국가의 집행부이고, 대통령이다. 이것은 국가와 시민사회간의 관계에서, 국가권력의 작동방 식에서 잠재적으로 권위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성격을 갖도록 하는 측면이다. 일이 되게 하는 것 도 국가의 행정기구와 그것과의 연계이고, 비판하고 불평하는 것도 국가를 향한 국가중심성이 특징 을 이룬다. 이러한 과정과 조건에서 개개시민들이 권위주의적, 온정주의적(paternalism) 가치관과 사고방식, 행동양식을 습득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시민들의 정치적 의식과 행동양식은 압도적으 로 국가와 개개시민들이 대면하는 영역에서 형성되고 발전한다. 여기서 자율적 결사체, 그것의 가 장 포괄적 정치조직으로서 정당의 역할이 왜 민주주의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적 가치를 습득하는데 있어서도 결정적으로 중요한가에 대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토크빌이 민주주의에서 결사체가 갖는 의미를 강조하는 중에서도 특히 정치적 결사체(곧 정당)의 역할에 주목했던 까닭은 그것이 다른 자 발적 결사체의 활동을 자극하는 효과를 갖는다는 판단 때문이었다(Lipset 2000: 49). 정당은 정치 를 경험하고 그 효능을 스스로 터득하는 정치교육의 場이다. 자율적, 자유주의적 인간은 이 장, 이 러한 공적 공간에서 발생한다. 좁게는 대통령, 넓게는 국가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에 대한 문제의식이 좌와 우를 막론하고 한국사회의 정치의식 속에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는지는
58
제2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민주주의
의문이다. 이는 한국사회가 “소극적 자유”의 가치를 얼마나 수용하고, 얼마나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문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 이 문제에 대한 고려를 회피하는 태도는 개혁의 열정이 강한 진보파들 사이에서 더 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3) 정치를 이해하는 방법으로서의 자유주의 1) 한국의 민주화는 강력한 권위주의적 국가권력에 저항했던 운동에 의한 민주화로 특징된다. 운동 이 수반했던 엄청난 열정과 민주주의에 대한 이상은 특정의 민주주의관을 발전시키는 모태가 되었 다. 구질서가 존중하고 실현하지 않았던 것은 민주주의만이 아니었고, 자유주의도 그러했다. 민주주 의를 추동했던 중심적인 사회세력들이 쟁취하고자 했던 것은 민주주의였고, 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데는 이렇다 할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그 결과 자유주의의 기반 없 는 민주주의가 나타났다고 말할 수 있겠다. 민주화운동을 이념적으로 주도했던 민중주의는 민주주 의와 (혁명적/급진적) 민족주의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민주주의관은 민주주의의 의 미를 현실에서 실현가능한 대의제민주주의의 범위를 훨씬 넘어, 이상주의적이고 추상적으로 이해하 는 경향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것은 이상적인 공동체는 진보적이고 올바른 이론과 그 기획에 의 해 일거에 성취될 수 있다고 믿는 진보적 엘리트들 사이에서 정서적 급진주의, 또는 급진적 정서주 의를 만들어 내는 배경이 되었다. 철학에 있어 정서주의(emotivism)는 어떤 실재성/현실성을 서술 하지 않고 또한 무엇이 진실이고 진실이 아닌지를 말하지 않는것을 중심적인 요소로 한다. 도덕적 진술은 단지 그것을 말하는 사람들의 감정/정서를 말하는 것일 뿐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이러한 정 서주의가 추상적 이념과 과도한 열정으로 덮씌워지면서 급진화한 특징을 가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 에 정서적 급진주의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급진주의가 수반하는 정치관은 현실에 천착 하는 사고와 행동양식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그 정치적 실천은 현실로부터 괴리되는 경향을 드러냈 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이러한 경향이 민주주의의 정치적 실천이나 과정과 쉽게 접합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우리가 자유주의의 냉정한 현실주의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이 지점에 있다. 자유주의 의 정신적 원천은 신의 명령에 따르고자 하는 도덕적 의무감을 개인생활의 중심에 놓는 신교, 특히 칼비니즘으로 부터 왔다. 여기서 매우 인상적인 것은 그들이 현실을 변화시키려 하든, 또는 수용하 려 하든 신의 명령에 복무한다는 격렬한 열정을 냉정한 열정으로 그 성격을 전환시킨 힘이다. 그것 은 어떻게 격렬한 도덕적 감성이 현실을 냉엄하게 다룰 수 있는 힘으로 전환되는가를 보여주는 사 례이다. 이것은 로크의 “정부에 대한 두 개의 논설”이나 베버의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한국에서 분출되는 정치적 열정은 이러한 냉정한 현실주의를 생 산해 내지 못했다.
2) 본 발표자는 여기에서 민주화 이후 최근 년에 들어와 보수주의적 관점에서 또는 보수주의적 운 동의 관점에서 자유주의를 신자유주의와 동일시하면서 자유주의를 속류화하거나 급진화하면서 실
59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제로는 자유주의로부터 일탈한 사례들에 대해 논의하지는 않겠다. 다만 진보적 운동이 변혁이론을 중심으로 어떻게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실천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만 언급하고자 한다. 최근 지 자체선거 이후 한 진보적 지식인 서클은, 변혁적 민주주의관을 어떻게 대중과 결합할 수 있는가하 는, “부르조아적 반자본주의, 지역생태주의, 제3세계민족주의, 글로벌케인즈주의, 사회운동노조주의, 사회주의”등 급진적 또는 진보적 이념을 광범하게 포괄하는 급진민주주의 프로젝트를 제시하였다 (경향, 6/5일자). “한국사회 변혁”을 지향하는 이러한 이념과 운동이 한국사회의 진보 전체를 말하 거나 대표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변혁적 이론과 운동전략이 민주주의관에 미 치는 커다란 영향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러한 운동전략과 방향이 한국사회의 일반대중, 소외계층들 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향상시키는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이렇게 추상화된 이념 은 전혀 현실에 기초하거나 현실을 대면하고 있지 못하다. 고도로 추상화된 급진이론은, 진보적 엘 리트들의 지적 프로그램일 수는 있어도 대중의 삶의 조건을 실제로 다루는 문제를 둘러싼 관심사 항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으로 그것은 대중과 결합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 이 지체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시민들이 먼저 대의제민주주의 자체의 한계에 부딪친 결과 때문에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그것은 대의제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제도들과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이상적 기준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은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조차 크게 제한되고 있는,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것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또한 변혁적 운동론에서는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내용에 있어서도 반자본주의 적 생산체제, 사회주의가 이념적 준거로서 진지하게 제시된다. 중요한 것은 반신자유주의, 그리고 총체적으로 오늘의 경제조건을 이상주의적으로 바꾸고자하는 변혁적 모토나 이론을 천명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먼저 모든 사회계층에 예외 없이 그러나 차등적으로 몰아닥친 그러나 그것이 현 실이 되어버린 신자유주의의 충격의 실상을 파악하는 것, 다음으로 경제와 시장에서 개혁할 수 있 는 범위가 무엇이고, 그로부터 어떤 대안이 가능한가를 발견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그러나 가장 중요한 과제로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정치를 통해 이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를 깊이 있게 사고하고, 체계적으로 탐구하는 일이다.
3) 위에서 말한 변혁적 사고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권력과 갈등을 중심으로 한 정치현상에 대한 이해가 부재하다는데 있다. 자유주의의 현실주의적 정치철학자들이 강조하는 것으로서의 실천이성 은 인과관계의 설정과 예측이 이성적으로 파악되기 어려운 정치현실을 다루는 문제에 대한 겸허함 과 권력을 사용하는 정치행위의 결과에 대한 책임의식의 중요성을 중심적 요소로 포괄하는 이성의 한 유형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적 정치조건, 정치문화에서 자유주의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 면 민주주의가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상념되는 이상과 목표가 과도하게 높게 설정돼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도한 열정을 차가운 열정으로 전화시켜, 현실 문제의 복합적 구조 속으 로 침투하고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예술을 창출하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다.
60
제2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민주주의
4) 또 하나 지적할 수 있는 문제는 이러한 변혁적 민주주의관이 정치와 시장경제에 대한 급진적이 고 총체적이고 도덕주의적 접근과 행동정향을 추동하고 있는 동안, 사적 이익, 사회적 균열, 정치적 갈등이 정치에 대해 갖는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부정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치관을 갖는 사람들은 공공선과 이익을 여러 다양한 특수이익과 사적이익들이 특정 시점에서 힘의 균형이 만들 어낸 구성적 산물이라고 이해하기보다, 이러한 이익갈등이나 균열로부터 자유로운 그에 초월하여 있는 어떤 개인이나 진보적 정당성을 갖는 집단이 부과한 사전에 결정된 어떤 것으로 이해한다. 사 회의 공공선은 특정시점에서 잠정적으로 정의되는 것이고, 정치의 갈등과 타협이 어떻게 만들어지 느냐에 따라 다른 내용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수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민주주의와 그 정치과정은, 이익에 기초한 정치갈등이 기반이고 출발점이며, 그런 이유에서 정당은 그 중심적 역 할을 담당하는 정치적 결사체이다. 본 발표자가 한국의 추상적이고 변혁적인 이론에 대해 비판적으 로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현실을 부정하고 새로운 도덕적 질서를 만드는 도덕적 사명을 선언하면 서 거기에 헌신하겠다는 정치경제에 대한 도덕적 접근과 운동의 급진성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것이 현실과의 관계 속에 설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4)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와의 관계 1) 한국사회에서 경제적 자유주의 내지 시장경제와 관련하여 자유주의가 이해되는 방식은, 자유주 의는 경제적 자유주의와 동일한 것이거나 다른 종류의 이념이라 하더라도 양자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압도적으로 강한 특징을 갖는다. 이 점은 자주 착시현상이랄까 자유 주의에 대한 오해를 불러오는 원인이 된다. 즉 보수주의자들이 자유주의자로 이해되는 동안, 진보 파들은 반자유주의자들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진보파들은 그들이 진보적일수록 넓게는 시장경제에 대해 좁게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이를 수용하지 않거나 이에 비판적이다. 앞에서 말했듯 이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 또는 신자유주의는 엄연히 다른 종류의 사상이고 이념이고 교리이 다. 이 관점에서 볼 때 한국사회의 보수파들은 경제적 자유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자일수는 있어도 자유주의자는 아니다. 동시에 진보파들은 경제적 자유주의나 신자유주의자는 아닐지 몰라도 자유주 의자일 수는 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현실에서 진보파들을 자유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2) 본 발표자가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앞에서 말한 이유 즉 자유주의와 경제 적 자유주의간의 관계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자유주의는 시장경제에 있어 넓은 가능의 공간을 열어놓는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역사적 선언들, 즉 미국독립선언, 프랑스인권선 언,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한국의 헌법을 포함하여 모든 자유민주주의의 헌법들은 인간의 평등을 선언한다. 그 원전으로서 로크의 “정부에 대한 제2논설”은 “모든 인간은 어떤 타자의 의지 또는 권 위에 종속됨이 없이 인간의 자연적 자유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말한다(Locke, 1993:
61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Ch. 6, 54, p.141). 그러나 이것은 논리이고 이론일 뿐이다. 만약 인간의 행위가 이론을 따라 그대 로 행해진다면 이상은 곧 현실이 되었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자연적 본성으로 인간이 갖는 평등 의 이념은 실제의 정치적 갈등에 선행했다는 사실이다. 즉 선언된 인간의 평등은 사회밖에 존재한 다 (Przeworski, 2009: 285). 그리고 그것은 또한 민주주의의 원리이자 이념이기도 하다. 인간 누 구나가 부정할 수 없는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논리는 구체적인 사회경제적 관계의 구조로 들어오는 순간, 즉 현실과 만나는 순간 그것의 실현에서 숫한 장애에 가로막힌다. 여기까지가 고전적 자유주 의의 이념이 말하는 것이다. 근대의 정치사를 볼 때, 이 자유주의의 역사적 전개는 두 방향으로 진 행되어왔다. 하나는, 이 선언을 곧바로 사회에서 실현하는 것으로, 그것은 루쏘, 마르크스의 이론과 실천에서 보듯 혁명에 의한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그것이 제시한 형식적, 규범적 원리를 인간의 지식과 교육의 확산, 사회경제적 발전, 정치적 실천을 배경으로한 민주주의의 방법으로 점진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현실주의적 자유주의의 이론과 정치관은 이 과정에 관한 것이고, 본 발표자도 이 경로를 중심으로 논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3) 자유주의의 힘은 그것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보편성을 갖는 원리와 가치를 함축하고, 인간 의 사회경제적 발전, 문명과 교육의 발전과 더불어 그 보편성을 확대시켜왔다는데 있다. 그러한 평 등의 이념은 전사회적으로 확장되고, 한 사회의 경계를 넘어 확장되어 왔다. 동시에 보편적 인권의 내용은 심화되어 왔다.
T.H. 마샬의 시민권이론이 말하듯 시민적 권리에서 정치적 권리, 그리고
사회경제적 권리로 권리의 개념은 이 평등이념을 토대로 심화되어왔다. 또한 초기 고전적 자유주의 가 19세기에 들어와 어떻게 공리주의, 국가의 시장경제에 대한 적극적 개입을 주장하는 신자유주 의(19세기 영국의 뉴리베라리즘을 의미, 이것은 20세기 후반의 신자유주의와 다름), 롤스의 정의론 에서 보는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함축하며 변화해왔는가를 볼 수도 있다. 자유주의의 장점은 그 개방성과 자체교정 능력을 갖는 유연성으로 인해 현실의 사회경제적 변화와 만나면서 굉장한 현실 적응 능력을 실현하여 왔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이념은 한 사회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운 영함에 있어 그 정치적 환경이 어떠한가에 따라 신자유주의가 될 수도, 사회민주주의가 될 수도 있 다.
5. 결론 1) 오늘의 한국 정치현실에서 논의하는 자유주의는 그 이념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은 동시에 지나 치게 좁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지나치게 넓다는 의미는 그것이 현실정치의 이념적 지표로서 정당과 정치인들의 가치정향과 행동양식을 계도하고, 정책프로그램의 내용을 규정하고, 정당과 정 부의 정책을 만드는 이념과 비전으로서의 역할을 훨씬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찍이 로크가 대면했던 문제이기도 하다. 그의 정치철학에서 “정부에 대한 두 개의 논설”은 자연권에 의한 개인
62
제2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민주주의
의 자유와 평등사상을 통해 정당성을 갖지 않는 왕정에 대한 혁명권을 이론화한 것을 핵심으로 한 다. 그러나 정치적 권위와 정당성에 대한 그의 이론은 종교적 신앙과 儀式에 대한 국가의 억압적인 정책과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생각하는 문제를 둘러싼 판단으로부터 발전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종교적 자유에 대한 국가의 정책을 다루는 것이지만, 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하는 문제와 접맥된 것이었기 때문에 정치적이고, 정책적인 문제의 범위를 훨씬 넘어 가장 광범한 철학 적 문제영역을 포괄한다. 다른 한편 자유주의가 지나치게 좁은 이유는, 오늘의 한국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현실에서 발생하는 복합적인 문제들을 자유주의이념을 통해 또는 그것만으로 다루는 것이 해답이 될 수 있느냐 하는 점 때문이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오늘날 그것이 다른 이념이라 할 만큼 다른 내용과 이념들을 함축하면서 변화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그 발전 과정에서 자유주의의 원리 를 많이 흡수하면서 그 중심적인 가치들을 공유하기에 이르렀다. 말하자면 자유주의의 분명한 경계 를 설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유주의이념 외에도 현실정치에 필요한 실천적 이 념으로서 다른 이념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념이 실제로 현실정합적이 되려면 다수의 이념 들을 수용하는 유연한 태도, 이를 통한 이념의 복합적인 연결이 필요할 것이다. 본 발표자는 특정 의 이념이 한국의 정치와 정치인들을 위한 이념적 가이드로서 얼마나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이다. 한국사회에서 정치에 대한 이념적 접근이나 지향성은 한국인들의 정치 적 사고의 한 특징이라고 할만큼 강하게 나타나곤 한다. 그런 경향은 특정의 이념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다. 이념이 모든 것 혹은 많은 것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약한 현실주의, 강한 이상주의, 국가-관료주의적 사고의 결과일 수 있다. 자유주의 또한 이러한 역할을 부여받지 않으리 라는 보장은 없다.
2) 한국의 이데올로기적, 이념적 지형에서 자유주의는 진보와 보수 사이의 어느 지점에 위치 지을 수 있을까? 그것은 진보, 보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만약 진보가 어떤 천명 되고 언표화된 이념과 이론의 진보성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권력과 사회경제적 자원에 있어 약자, 소외자들의 권익을 증진하는데 더 큰 가치를 두고, 자신의 위치에서 실제로 그 렇게 행위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한국의 현실에서 자유주의는 진보의 이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3) 자유주의를 논의하는데 있어 다음의 세 가지 맥락이 중요하다. 첫째, 한국사회는 이데올로기갈 등이 심하고 좌우이념대립이 심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유주의는 어떤 위상과 역할을 가질 수 있 는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다. 둘째, 보다 중요하게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풍요롭게 하는 사회적 윤리적 가치의 이념적 자원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에 대한 고려이다. 셋째, 정치적 이 념은 비전, 가치, 정책방향을 통해, 여러 사회세력들 사이의 정치적 경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앞에서 본 발표자는 이런 맥락을 염두에 두면서 자유주의는 어떤 지위와 역할을 가질 수 있 는가에 대해 논의했다. 본 발표자의 관점에서는 위의 문제영역 모두에서 자유주의는 긍정적인 기여
63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를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자유주의를 논의하는 가운데서 본 발표자는 자유주의만이 중요한 이념이 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현존하는 정치이념들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이념으로서 한국 사회에 적극적으로 수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 어떤 이유로 그것을 거부할 수 있겠는 가?
■ 참고문헌 - 시간관계상 정리되지 못함. 세미나이후 원고수정 보완시 참고문헌과 각주는 추가될 예정.
64
제2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민주주의
[제2세션 토론문]
진보적 자유주의 소고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1. 보편적 이념으로서의 자유주의
□ 자유주의는 특정한 역사적 상황 가운데서 특정한 내용으로 구현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만인의 자유와 인권, 법 앞의 평등이라는 핵심적인 내용은 인류사를 통해서 보편적 이념의 지위를 획득 했다. ◦ 자유, 인권, 평등에 대한 요구는 권력의 압제에 대한 저항을 통해서 표출되고 발전되어 왔다. ◦ 공동체에 의한 속박과 편견에 대한 개인의 저항은 이에 비해 좀 더 더디고 불명확하게 표출되 고 있어서 도덕적으로 애매모호한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자 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공동체만이 도덕적 정당성을 지닌다.
2. 한국의 역사적 특수성: 왜 자유주의가 진보인가?
□ 강고한 집단주의 문화로 인해 개성과 인권 및 다원성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 ◦ 최근에는 점차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전통적으로 “짜장면 통일”이나 “모난 돌이 정 맞 는다”로 대표되는 순응주의(conformism) 문화가 강고하다. ◦ 성적 소수자나 다문화 가족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억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범죄 피의자나 학생 등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보호도 미흡하다. ◦ 정치적으로도 상대를 인정하고 타협하는 문화가 부족하다. 최근 심상정의 후보사퇴나 노회찬의 완주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이 한 사례다. ◦ 집단주의 문화는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의 형태로 표출되기도 한다. ‘붉은 악마’는 일종의 카니발 로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국가대표에 대한 뜨거운 열기와 K리그에 대한 싸늘함은 스포츠 영 역에 나타나는 국가주의가 한 원인이다. ◦ 거꾸로 강고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정서가 집단주의 문화를 온존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65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집중, 권력투쟁 중심 정치, 비타협적 정치문화 등 후진적인 정치문화가 만연해 있다. ◦ 제왕적 대통령, 중앙정부 권력집중, 수도권 집중 등의 다양한 권력집중 현상이 거의 완화되지 않고 있다. ◦ 정치세력이 다양한 이해관계와 이념을 대표하고 이를 절충해나가는 정치보다는 이념은 모호한 채로 권력투쟁에 올인하는 정치가 횡행하고 있다. ◦ 민주화가 자유주의에 선행하여 이루어짐으로 해서 자유주의적 가치관과 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것이 중요한 측면이겠으나, 자유화 이전의 민주화는 비서구 나라들의 민주화에 공통된 현상이 었다는 점에서 남북분단이나 역사적 전통 등 다른 요인도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국가주도의 산업화 과정에서 재벌 위주의 경제구조가 형성되었고, 관치경제적 경제운용이 만연 하고 있다. ◦ 재벌 위주의 경제구조는 자유시장경제의 핵심적 덕목인 공정한 경쟁을 해치고 경제력 집중을 야기하여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 관치경제는 시장 메커니즘을 왜곡하여 시장의 정의와 효율성을 저해한다. ◦ 이명박 정부에서 재벌구조와 관치경제가 강화되고 있다. ◦ 재벌개혁과 관치경제 청산으로 보다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쟁을 촉진하는 것은 꼭 자유방임주 의나 시장만능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불완전 정보 등 시장의 실패에 대응하기 위한 정 부규제 등 적절한 정부의 시장개입은 반드시 필요하다. ◦ 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기회의 평등이 매우 중요하고, 오늘날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 현상을 방치하면 안 된다.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경제사회정책이 수반되어야 한다.
3. 한국 진보의 이념: 민족주의, 사회주의, 진보적 자유주의
□ 일제시대 이래 한국에서의 진보는 민족주의 and/or 사회주의 성향을 나타냈다. 자유주의는 오히 려 냉전반공주의처럼 인식되어 보수적 이념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이는 역사적으로 그러만한 까 닭이 있었던 것이지만, 변화하는 현실에 맞추어 진보의 이념도 변해야 할 것이다.
□ 민족 분단의 현실은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래서 민족주의적 요소를 완전히 배격할 수는 없지만, 고도로 개방된 경제와 지역경제통합의 진전, 급격히 늘어나는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 체류자 등 을 고려할 때 민족주의를 뛰어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천안함 사건) ◦ 화해협력 정책의 기조 위에서 평화통일을 추구하되, 무엇을 위한 통일인가? 즉, 개인의 자유와 복리, 사회정의의 증진이라고 하는 근원적 가치를 중심에 놓고 접근해야 한다.
66
제2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민주주의
◦ 동아시아의 경제통합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마련과 문화적 교류증진에 힘써야 할 것이다.
□ 변혁의 이념으로 사회주의를 받아들임으로써 진보는 반시장의 이념적 특성을 띠었으나, 계획경 제의 비효율성이 입증된 이상 진보가 명확하게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기본으로 하는 시 장경제를 최선의 경제체제로 수용해야 한다. ◦ 단, 시장경제라고 해도 자유방임에 가까운 모델부터 사회민주주의 모델까지 여러 모델이 존재 한다. ◦ 한국이 어떤 특정한 모델을 추종한다기보다는 재벌문제, 관치문제, 비정규직 문제, 양극화 문제, 저출산 문제, 복지확대 문제, 노사갈등 문제 등 여러 당면 현안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한국 적 모델을 만들어 가야 한다. (스웨덴과 일본의 중간쯤?)
□ 이상의 논의에 입각해서 이제 한국의 진보는 (진보적) 자유주의를 본격적으로 고민할 때가 되었 다고 말하고 싶다. ◦ “만약 진보가 어떤 천명되고 언표화된 이념과 이론의 진보성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권력과 사회경제적 자원에 있어 약자, 소외자들의 권익을 증진하는데 더 큰 가치를 두 고, 자신의 위치에서 실제로 그렇게 행위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한국의 현실에서 자유주의는 진보의 이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 최장집
67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제2세션 토론문]
토론문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자유주의의 한국적 왜곡 - 한국인은 자유주의 보다 자유 민주주의라는 용어에 더 익숙하다. 반공 단체, 보수단체들의 이 념적 지향으로 표현되는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라기 보다는 반공 냉전주의, 시장주의, 친미주의, 안보 지상주의, 자유무역주의의 동의어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자유주의의 일부를 한국적 상황에 적용하고 특수화한 것이라기 보다는 자유주의 자체의 왜곡이자 배신이라고 판단된다. - 군사정권들은 자신의 체제를 정당화하려는 목적으로, 그리고 일정한 시민적 권리를 제약하는 것이 불가피하는 변명을 하기 위해 동원하는 이데올로기가 자유 민주주의였다. 물론 진보세력도 자 유주의 인식에 관한 한 반공주의자의 인식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의 자유주의는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볼 수 있으며, 그런 현상은 이 시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민주화와 자유주의의 역순 - 서구 이념의 역사적 진행 순서로 본다면 자유주의→ 민주주의가 되어야 하나 한국에서는 민주 주의→자유주의 순서로 바뀌었다. 민주주의를 절차적 제도화라고 한다면 자유주의는 그 내용을 채 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민주화 이후는 민주화 과정이 결여하고 있었던 자유주의화 과정 을 밟는 단계로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사실 자유주의화를 통해 민주주의의 질적 내용도 풍부해 질 수 밖에 없다. 말하자면 민주화 이후 23년은 한국에는 존재한 적이 없는 자유주의 전통을 만들 어 가는 과정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자유주의적이지 못한 한국의 보수 - 권위주의 체제에서 보육된 한국의 전통적 혹은 권위주의적 보수는 사실 자유주의에 기반하지 않았다. 독재, 부패, 반공으로 상징되는 보수는 자유주의와는 무관한 존재였다. 그 때문에 민주화 이후 보수는 존립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권위주의적 보수에 기반해서는 집권하기도 어려워졌기 때 문이다. - 이때 민주화의 세례를 받은 세대가 주도한 새로운 보수주의 운동이 이른바 뉴 라이트 운동이 다. 전향한 386 학생운동권 출신이 “자유주의연대”라는 단체를 결성하면서 확산된 이 운동은 자유 주의를 자기 조직의 사상적 기초로 삼는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보수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았던 시점이어서 이 운동은 보수 세력 사이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늦기는 했지만, 자유주의에 의해
68
제2세션 -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민주주의
권위주의 시대 보수의 혁신 가능성을 보여 줬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 했다. 자유를 반공 개념에서 해방시키면서 새로운 보수라는 이미지를 획득했으며, 결국 이명박 정부의 집권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 - 그러나 뉴 라이트의 자유주의 운동은 자유주의 이념의 확산 보다 보수정권의 집권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그 의의는 제한적이었다. 자유주의 연대가 제시하는 자유주의란 ▲ 자신과 다른 사상 을 악으로 규정하지 않음 ▲ 민주화 세력이 산업화 세력 인정하는 관용의 정신 ▲ 정부 간섭의 최 소화 ▲법치주의 ▲개인의 자유와 창의 ▲ 자유 시장 경제 ▲ 유토피아 반대 ▲ 작은 정부 및 규제 완화 ▲ 교육 평준화 반대 등이다. - 자유주의의 기본적 권리의 보장이란 점에서는 여전히 소극적임을 알 수 있다. 양심의 자유, 사 상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 권리를 중시하지도 않는다. 실제 활동에 있어서도 점 차 노무현 정권 비판 활동에 집중하면서 스스로 제시한 자유주의 개념으로부터도 멀어졌다. - 한나라당은 공동체 자유주의를 자기 이념으로 삼는다고 제시했지만, 역시 자유주의를 발견할 수 없다. 진보로서의 자유주의 - 진보 역시 상대인 보수와 경쟁하면서 닮아갔으며, 그 하나는 보수와 같이 자유주의적 가치를 오해하고 왜곡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진보도 자유주의를 토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보수를 자유주의화하는 것 뿐 아니라, 진보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도 진보를 자유 주의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한국적 맥락에서 자유주의를 잘 하는 것만으로도 일정한 사회 적 진보를 이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 이명박 정부를 둘러싼 논란도 사실은 자유주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를 심판하는 선거라는 6.2 지방선거에서 심판의 준거는 자유주의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표현 및 집 회의 자유(인터넷 통제, 교사 시국선언 징계, 서울광장 사용 불허), 언론의 자유(방송통제), 인권의 후퇴(미등록 이주 노동자 탄압, 국가인권위원회 조직과 기능 축소), 절차적 정당성 훼손( 공공기관 장에 대한 불법적 사퇴압력), 연예인 사회적 발언에 대한 보복. 공권력 사용의 정당성등이 그 것이 다. 말하자면, 이명박 정부의 반자유주의적, 혹은 비자유주의적 행태에 대한 자유주의적 요구의 분 출이라는 점에서 반MB의 대치선은 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다. - 반MB냐 반MB 대안이냐의 논쟁도 있지만, 두 개의 전선 모두 자유주의라는 공간을 통과하지 않고는 도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결국 MB를 얼마나 자유주의화 하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자유주의의 심화는 한국사회를 질적 제고할 것. 진보든 보수든 자기 기반을 강화하고 업그레이 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69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한국형 조정시장경제와 합의제민주주의: 진보적 자유주의 구현을 위한 제도적 해법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1. 들어가는 말 제1세션의 발제문에서 이근식 교수가 정리한 바와 같이, 진보적 자유주의는 만인평등 사상에 의 거하여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정치적 자유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가운데, 자유방임주의 정책을 기조로 하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비판하며 정부의 적극적 시장개입 필요성을 주장하는 자유 주의 이념이다. 개인의 자유를 해칠 수 있는 것은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빈곤, 실업, 대자본의 횡포, 공공재 부족 등과 같은 시장의 실패인바, 이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시민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서는 정부의 시장 개입이 필수라는 입장이다. 결국 정치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 혹은 정치적 평등과 사회적 평등이 보장될 때 각 개인은 진정한 자유를 평등하게 누릴 수 있다는 주장인 것이다. 본고에서는 이 진보적 자유주의를 구현할 수 있는 제도적 해법, 즉 정치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 보장에 유능한 정치 및 경제 제도가 무엇인지를 한국적 맥락에서 논의한다. 우선 정치적 자유는 사 회경제적 약자들을 포함한 모든 시민들이 정치적 결정과정에 동등하고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필요로 한다. 모든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동등한 참정권을 가져야 스스로 자신들의 자유 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1) ‘배제의 정치'(politics of exclusion)가 아닌 ‘포괄의 정치’(politics of inclusion)가 보다 더 잘 작동되는 민주주의 제도를 요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그러한 민주주의를 승자독식형 ‘다수제민주주의'(majoritarian democracy) 유형에 대비되는 권력공유형 ‘합의제민주주 의’ (consensus democracy) 유형이라고 규정한다.2) 그렇다면 본 연구의 목적 중 하나는 한국형 합의제민주주의 발전 방안을 논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사회적 자유는 정부나 시민사회의 적극적 시장개입이 인정되고 제도화된 자본주의 체제를 필요로 한다. 그래야 사회경제적 약자와 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시민들이 빈곤과 격차 그리고 실업 등의 공포로부터 보다 더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성장, 효율성, 경쟁의 가치 못지않게 분배, 형평성, 연대의 가치가 중시되는 자본주의 체제를 요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그러한 자본주의를 ‘자유시장경제'(liberal market economy)체제에 대비되는 ‘조정시장경제'(coordinated market 1) Robert Dahl, On Democracy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8), pp. 76-78 2) Arend Lijphart, Patterns of Democracy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9)
70
제3세션 - 한국형 조정시장경제와 합의제 민주주의
economy)체제라고 정의한다.3) 그렇다면 본 연구의 또 다른 목적은 한국형 조정시장경제 발전 방 안을 논하는 것이 된다. 진보적 자유주의 구현에 필요하다고 상정한 이 두 제도, 즉 조정시장경제와 합의제민주주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각각 2절과 3절에서 이루어진다. 미리 언급하거니와, 이러한 제도 유형 개념은 오직 순서척도(ordinal scale)에 의해 구분되는 것일 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자유시장경제와 조정 시장경제, 그리고 다수제민주주의와 합의제민주주의는 명목척도(nominal scale)에 의해 칼로 무를 베듯 명확히 구분될 수 있는 성질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좌파나 우파 혹은 진보나 보 수의 구분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오직 정도의 차이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이념 지형에서 좌파나 진보에 가까울수록 평등의 확대를 더 강조하듯이, 자본주의의 다양성을 나타내는 연속체선상에서는 조정시장경제에 가까운 지점일수록 분배친화성이 높은 자본주의이며, 민주주의 유형의 연속체선상 에서는 합의제에 가까울수록 포괄성 혹은 포용성이 높은 민주주의일 뿐이다. 결국 본고의 논의 주 제는 한국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각각 어떻게 조정시장경제와 합의제민주주의로 ‘전환’할 것인 가가 아니라, 어떻게 그 쪽으로 더 가깝게 ‘접근’ 혹은 발전시켜갈 것인가라고 할 것이다. 2절에서는 조정시장경제에 대한 일반적 설명에 이어 한국형 조정시장경제의 설계 방향에 관한 최소한의 원칙 몇 가지를 제시한다. 그리고 그러한 원칙들이 충족되는 자본주의로의 발전은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와 연결하여 풀어야할 과제임을 예비적으로 주장한다. 그 주장은 합의제민주주의를 논하는 3절에서 구체적으로 전개된다. 즉 한국형 조정시장경제는 합의제민주주의 하에서 보다 빠르 고 효과적으로 발전해갈 수 있는 것임을 밝힌다. 특히 여기서는 합의제민주주의로의 발전이 조정시 장경제의 발전보다 우선돼야함을 강조한다. 합의제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정치제도는 조정시장경제의 발전 정도와 큰 상관없이 도입될 수 있으나, 분배친화적인 민주적 조정시장경제로의 발전은 합의제 민주주의의 제도 요건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임을 설명한다. 마지막인 4절은 본고의 주장을 요 약하며 글을 맺는다.
2. 합의제 조정시장경제로의 발전이 필요하다. 1) 자본주의의 다양성 한때 ‘자본주의 수렴론’이 운위되던 때가 있었다. 1980년대 초 영국의 대처 총리와 미국의 레이 건 대통령과 같은 ‘신보수’세력들에 의해 부활하게 된 경제적 자유주의의 급진적 현대판인 신자유 주의가 전성기를 누리던 1990년대 초중반 무렵의 일이다.4)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진행됨에 따라 3) David Soskice, “Divergent Production Regimes: Coordinated and Uncoordinated Market Economies in Contemporary Capitalism," in Herbert Kitschelt, Peter Lange, Gary Marks, and John D. Stephens eds., Continuity and Change in Contemporary Capitalism,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
71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각국의 자본주의는 모두 (영미식) 자유시장경제체제로 수렴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수렴 론대로 되지 않았다. 서유럽의 경우,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된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영국을 제 외한 대다수 국가들의 자본주의체제는 (비록 과거에 비해 시장의 비중이 어느 정도 커진 것은 사실 이지만) 시장이 여전히 국가 및 사회적 영향력 하에 놓인 상태에서 각기 제 나름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다양성’(varieties of capitalism)은 건재했다는 것이다.5) 갈수로 거세지는 세계화의 경제통합 압력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다양성이 유지되는 이유를 가장 설득력 있게 설명해주는 변수는 각국별로 상이한 ‘생산레짐’(production regimes)이다. 생산 레짐이란 기업의 생산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상호 보강의 관계에 놓인 제도들의 조합”을 말 한다.6) 그 제도들에는 금융체계, 기업지배구조, 기업간관계, 노사관계, 상품생산체계, 숙련형성 및 고용체계 등이 포함된다. 각국의 생산레짐은 이 구성제도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발전해왔으며 어 떠한 국가-사회적 메커니즘에 의해 작동되는지에 따라 서로 다르다. 따라서 생산레짐으로 나타나는 자본주의의 성격은 나라마다 다른 것이 당연하다.7) 그런데 이 생산레짐은 쉽게 변하지 않는 속성 을 지닌다. 그것을 구성하는 각 제도들과 그들간의 조합은 각국의 독특한 역사 및 정치․사회․문화적 맥락성 속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8) 따라서 세계화의 압력에 직면할 때 각국은 (일차적으로 는) 자신의 생산레짐 특성에 맞추어 적절한 정책적 대응을 할 뿐이지 생산레짐 그 자체를 변화시키 려 하지는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컨대, 노조의 강력한 힘을 보장해주는 제도를 갖춘 자본주의국 가라면 무한경쟁의 세계화시대를 맞이해서도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채택 등으로 노동시장의 ‘유연 안정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노동자의 숙련 향상을 도모함으로써 생산성을 제고하려 하지, 노사관계 에 획기적인 제도적 변화를 일으켜 노동시장의 유연성만을 증대시킴으로써 그에 입각한 노동비용 절감을 꾀하지는 않는다. 결국 지속성을 지닌 각 생산레짐의 개별적 특성상 세계화 그 자체만으로 는 자본주의의 세계적 수렴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9) 생산레짐론에 기초한 자본주의의 다양성 논의에 따르면 1980년대와 1990년대 상황에서 세계 자본주의는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뉜다.(<표 1> 참조) 상기한 자유시장경제와 조정시장경제가 바로 4) 신보수세력(Neo-Conservatives)이 ‘보수’하고자 했던 것은 사회적 자유주의가 아닌 경제적 자유주의였 다. 5) 자본주의의 다양성 논의와 신자유주의의 위기 상황에 대한 이하 내용은 졸고, “신자유주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최태욱 편, 『신자유주의 대안론』 (파주: 창비, 2009)를 부분적으로 발췌하여 수정․보 완한 것임 6) Kathleen Thelen, How Institutions Evolv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 7) Peter A. Hall and David Soskice, “An Introduction to Varieties of Capitalism", Peter A. Hall and David Soskice eds., Varieties of Capitalism: The Institutional Foundations of Comparative Advantag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1) 8) 이는 비교적 가변적인 예컨대 정치적 맥락의 주요 부분에 의도적이며 인위적인 변화를 가함으로써 생산 레짐 혹은 자본주의의 유형을 바꾸어갈 수는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9) 물론 외부의 세계화 진행과 병행하여 내부적으로 (어떤 동인에 의해서든) 강력한 제도개혁의 정치경제가 일어날 경우, 그것이 생산레짐의 변화를 결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화 그 자체가 자동적으로 생산레 짐의 변화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72
제3세션 - 한국형 조정시장경제와 합의제 민주주의
그것인데, 영국,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은 전자에 속하며, 북유럽국가들과 독일 그리고 일본 등은 <표 1> 생산레짐의 구성 제도와 자본주의의 양대 유형 자유시장경제(자유시장경제) 대표적 예 금융체계 및 경제거버넌스 (기업지배구조와 기업간 관계) 노사관계
상품생산체계
숙련형성체계 및 고용체계
정부의 역할
조정시장경제(조정시장경제)
영국, 미국
북유럽, 독일, 일본
단기 자본시장 주식발행에 의한 자기 자본조달 (주주 가치 존중) 제한적인 기업간 조정 독점금지법 (기업의 독자성)
장기 투자자본 은행부채 중심의 자본조달 (이해관계자 가치 존중) 강한 기업연합조직 기업 간 연결망
분권적 협상 분쟁적 작업장 관계
조정된 협상 법정 노동 대표
저숙련 생산 대량생산 상품 수량적 유연화
고숙련 생산 고품질 특화 상품 유연적 전문화
일반교육 중심 단기고용 높은 이직과 기업 간 이동
직업훈련 중심 장기고용 낮은 이직과 기업 내 이동
작은 정부 시장에 대한 최소 개입 경제적 자유주의 성향
큰 정부 적극 개입 사민주의 혹은 사회적 자유주의 성향
* Bernhard Ebbinghaus and Philip Manow eds., Comparing Welfare Capitalism (London: Routledge, 2001) p. 6, Table 1.1을 보완한 것임
후자에 속하는 대표적 국가들이다.10) 안재흥의 지적대로, 칼 폴라니의 이론적 틀에서 보면, 조정시 장경제는 시장과 국가-사회관계가 ‘맞물려’(embedded) 있는 상태이며, 자유시장경제는 이 관계가 ‘풀려서’(disembedded) 시장이 자율적으로 기능하는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11) 따라서 조정시장경제에서는 노사관계나 숙련형성 및 고용체계 등 제반 생산레짐 요소의 작동에 대하여 국 가나 사회의 조정 혹은 개입이 상시적으로 일어나는 반면, 자유시장경제에서는 모든 생산관련 제도 의 작동이 기본적으로 기업에 의해 시장의 원리대로 이루어진다. 조정시장경제는 다시 국가주도 조정시장경제와 합의제 조정시장경제로 구분할 수 있다. 전후 10) David Soskice, “Divergent Production Regimes: Coordinated and Uncoordinated Market Economies in Contemporary Capitalism," Herbert Kitschelt, Peter Lange, Gary Marks, and John D. Stephens eds., Continuity and Change in Contemporary Capitalism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 11) 안재흥 “서구 자본주의의 다양성과 성장-복지 선순환의 정치경제”, 『한국형 조정시장경제체제의 모 색』 2008년 국회연구과제. 사실 자유시장경제에서는 시장이 국가-사회관계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하는 정 도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를 ‘시장화’하여 “사회관계가 경제체제에 맞물려” 돌아가도록 하는 지배적 힘을 갖는다. 이에 대해서는 Karl Polanyi. The Great Transformation (Boston: Beacon Press, 2001) chapter 5.
73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1980년대 초반까지의 일본과 민주화 이전의 한국경제가 전자의 전형으로 꼽힌다. 일본과 한국이 발전지향 국가였던 점에 착안하여 이 유형을 ‘발전주의형 조정시장경제’라고도 부른다. 협상형 혹은 합의제 조정시장경제의 모범사례는 독일과 북유럽 국가들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시장 의 조정이 주로 ‘노사정 3자협약의 정치경제’라 불리는 ‘사회적 합의주의’(social corporatism, 이하 ‘사회합의주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그 결과 복지주의가 발달한 까닭에 이 유형은 흔히 ‘유럽형 복지자본주의’ 혹은 ‘사회합의주의 모델’이라고 불린다. 한편, 합의제 조정시장경제의 정부는 견고한 노동권과 복지 규정 등을 확립함으로써 노조가 강력한 시장행위자로 행동할 수 있게 하며 자본 측 과의 협상과 교섭의 장에도 당당한 파트너로서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등 분명한 노동 중시 경향을 띤다. 이러한 사민주의적 정부 경향에 주목하는 이들은 이 유형을 ‘사민주의 모델’이라고도 부른다. 세계화의 진행이 이 합의제 조정시장경제에 일정한 변화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1990년대 이 후 그때까지의 ‘고전적’ 사회합의주의와는 다른 형태의 사회협약이 네덜란드, 아일랜드, 스페인, 포 르투갈, 이탈리아 등 유럽 도처에서 이루어졌다. ‘경쟁력을 위한 사회합의주의’(competitive corporatism, 이하 ‘경쟁력 사회합의주의’)라 불리는 새로운 사회합의주의가 부상한 것이다.12) 고 전적 사회합의주의에 따른 과거 사회협약의 주 의제가 분배였다면 경쟁력 합의주의는 생산성 향상 을 분배 못지않은 중요 의제로 다룬다. 즉 여기서는 세계화시대의 어려운 경제여건을 극복하기 위 해 노동시장의 유연성 증대와 사회복지 지출의 합리화 등을 통한 국제경쟁력의 제고를 목표로 하 는 한편,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등을 통한 고용증대, 불공정 해고의 제한, 그리고 적정한 분배 등을 동시에 도모한다. 분명한 것은 경쟁력 사회합의주의의 한 목표가 국가경쟁력 제고이지만, 그 달성 방식은 사회협약에 의한 사회적 보호와 시장기능의 활성화라는 점에서 그것은 여전히 합의제 조정 시장경제의 한 유형이라는 점이다. 결국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영국을 제외한 유럽의 거의 모든 선진국들은 세계화시대에도 각기 자신들 고유의 합의제 조정시장경제 체제를 발전시켜갔다. 미국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압력이 개발 도상국과 체제전환국들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나마 그들 나라에서의 신 자유주의 수용 결과도 별로 신통치 않은 것으로 판명됐다. 예컨대, 1980년대에 과감한 신자유주의 개혁을 단행한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국가들은 1990년대에 이르러 분배뿐 아니라 경제성장 면에서 도 오히려 과거보다 못한 성과를 냈다. 이는 1990년대 이후 중남미 각국에 연이어 좌파정부가 출 범하고, 그들 사이에 범지역 차원의 반(反)신자유주의 국가연합이 형성돼가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신자유주의 기조에 따라 급진적인 체제전환을 추진한 동유럽의 많은 국가들도 장기공황을 겪는 등 어려워진 사정은 비슷했다. 1990년대말 이후에는 신자유주의의 퇴조경향이 심지어 미국의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우방들 사 이에서도 관찰되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뉴질랜드의 변화였다. 1984년부터 1996년까지 “세계 역사
12) Martin Rhodes, “The Political Economy of Social Pacts: ‘Competitive Corporatism` and European Welfare Reform," Paul Pierson ed., The New Politics of the Welfare Stat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1)
74
제3세션 - 한국형 조정시장경제와 합의제 민주주의
상 가장 두드러진 자유화 사례”라고 평가될 정도로 매우 과감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던 뉴질 랜드는 2000년대에 들어 노동, 조세, 복지, 공공부문 등의 영역에서 (유럽형 조정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기대할 정도로) 신자유주의 노선과는 정반대되는 개혁정책들을 채택했다.13) 뉴질랜드 정도 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신자유주의의 본산인 영국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났다. 1998년 블레 어의 노동당정부는 과거 보수당정부의 신자유주의에 대항하여 소위 ‘사회투자국가’의 건설을 주창 했다. 사회투자국가론은 신자유주의에서 그 건너편 사민주의를 바라보며 그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제3의 길을 찾으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노선에서의 좌향 이탈인 셈인 것이다. 영국에 이어 캐나다와 호주의 중도좌파 정당들도 각각의 제3의 길을 채택했다.14) 2009년 오바마 정부의 출범 이후 미국마저도 이제 신자유주의 기조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을 분 명히 하고 있다. 미국 유권자들의 민주당과 진보적 자유주의자인 오바마에 대한 압도적 지지는 장 기간 레이건-부시 라인의 공화당 정부가 강력하게 몰아붙인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대한 불만과 반 감이 누적됐다 터진 한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그간의 신자유주의 정부가 초래하거나 방관한 실업 과 빈부격차의 확대, 중산층의 몰락, 복지체계나 사회안전망의 저급한 수준 등을 더 이상 참기 어 려웠던 것이다. 게다가 대통령선거 과정 중에 발생한 미국의 금융위기는 탈규제와 무규제 등 통제 받지 않는 자유방임시장의 위험성 혹은 ‘작은 정부’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드러내며 오바마에 대한 유권자들의 막판 지지 결집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러한 배경 하에 정권을 잡게 된 오바마의 민 주당 정부가 미국인들의 염원을 무시하면서까지 쇠퇴하는 신자유주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할 이유 는 별로 없을 듯하다. 의료보험 개혁을 완수해내자마자 다시 금융개혁에 매진하는 오바마 정부의 모습에서 신자유주의로의 회귀 조짐을 찾아내기는 어렵다. 그것은 오히려 미국의 자본주의에 조정 시장경제적 요소가 점증해가고 있는 과정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신자유주의의 영향력은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각지에서 위축돼가고 있다. 미국에서마저 새로운 형태의 정부개입주의가 자유방임주의의 지배적 위치를 위협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경제 적 자유주의와 자유시장경제체제의 패배이며, 사회적 자유주의와 조정시장경제체제의 승리를 의미 하는가? 한국에서의 변화 흐름은 어떠한가?
2) 한국형 조정시장경제 상기한대로, 박정희 정권 이후 민주화 이전의 한국경제는 국가주도 조정시장경제로 분류됐다. 13) Frederic Sautet, “Why have Kiwis not becom Tigers?: Reforms, Entrepreneurship, and Economic Performance in New Zealand," The Independent Review, Vol. 10, No. 4, 2006. 뉴질랜드의 이런 변 화는 상당부분 (1996년의 총선에서부터 적용된) 독일식 비례대표제의 도입 덕분인 것으로 보인다. 비례대 표제의 도입으로 이념 및 정책을 중시하는 소정당의 국회 진입 또는 유력 정당화가 수월해졌고, 그들 정 당의 부상으로 인해 연립정부의 구성을 통한 합의제 민주주의가 가동되어 친노동 및 친복지 정책 등의 채택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14) R. Lister, “The Third Way's Social Investment State." in J. Lewis and R. Surrender, eds., Welfare State Change: Towards a Third Wa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4)
75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국가 관료기구에 의한 전략적 계획과 조정이 시장경제에 상시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체제였던 것이 다. 그랬던 한국경제는 점차 자유시장경제적 성격으로 변해갔다. 세계화를 유난히 강조했던 김영삼 정부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신자유주의적 요소의 도입은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를 거쳐 조심 스럽기는 했으나 점진적으로 줄곧 확대돼갔다. 현 이명박정부는 역대 정부의 그 조심성마저도 버린 채, 그리고 미국도 변해가는 상황에서 ‘역주행’을 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감수하며, 노골적인 신자유 주의 노선을 취하고 있다.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과거 국가주도 조정시장경제로 분류되던 한국의 자본주의 유형은 이제 ‘국가주도 신자유주의’로 변해가고 있는 형국이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한국에서는 예의 그 자본주의 수렴론의 전망이 적중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의 일반적 흐름과는 전 혀 다른 것이다. 이러한 한국에서는 양극화의 심화와 빈곤층 및 비정규직의 증대 등 신자유주의 확대에 따른 사 회경제적 폐해가 이미 사회통합의 위기를 우려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와있다. 이 극도의 경 제적 자유주의 편향 상황 하에서 재벌 등 대자본의 전 방위적 영향력은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비 대해지고 있으며, 일반시민들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사회적 자유는 거의 무방비 상태로 위협에 노출돼있다. 맘몬(Mammon)이 주인이 된 천민자본주의 국가에서 일반시민의 사회적 자유와 권리는 갈수록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이 지속되도록 방치해둘 수는 없다. 이제는 신자유주의의 대 안으로 삼을 새로운 분배친화적 자본주의 모델을 마련할 때이다. 그러나 한국이 과연 어떠한 자본주의 모델을 어떻게 채택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는 아직 그 리 깊숙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15) 매우 중요한 과제이니만큼 이 연구에는 앞으로 더 많은 인력과 시간이 투자되어 현실적 대안이 구체적으로 나오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도 (작 금의 신자유주의 위기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다면) 한국에 합당한 자본주의 혹은 시장경제 모델을 설계함에 있어 최소한의 원칙들에 대해서는 시민사회의 합의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아래에서 는 그 예를 몇 가지 열거함으로써 향후의 연구 방향을 나름대로 제안해보고자 한다.16) 첫째, 위에서 소개한 자본주의의 양대 유형론에 따르자면 한국 자본주의의 유형은 조정시장경제 체제여야 한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지구촌 전체가 신자유주의나 미국식 자유시장경제체제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때이니만큼 이에 대한 합의는 어렵지 않게 이루어질 것이다. 둘째, 한국형 시장경제는 무엇보다 격차문제 해결에 유능한 체제여야 한다. 상기한대로 생산레 짐은 정치나 사회 제도는 물론 역사와 문화 변수 등과도 맞물려 발전하는 것이다. 한국은 공동체 지향의 역사와 문화전통이 강한 사회이다. 게다가 격차 용인 정도가 높을 수 없는 인구밀도와 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 성장동력의 약화 원인 중 하나인 내수 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저소득층 의 소비 진작을 촉진할 격차 해소에 주력해야한다. 이 모든 조건들이 한국에 합당한 자본주의는 자 유시장경제가 아닌 조정시장경제이며, 그것도 특히 격차문제의 관리와 조정에 뛰어난 조정시장경제 15) 신자유주의의 대안 모델 연구에 대해서는 최태욱 편, 『신자유주의 대안론』 (파주: 창비, 2009) 참조 16) 이하 내용은 졸고 “동아시아 시장경제체제의 ‘서울컨센서스’ 모색,” 손열 편, 『서울컨센서스』 (서울: 지식마당, 근간)의 관련 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76
제3세션 - 한국형 조정시장경제와 합의제 민주주의
여야 함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셋째, 한국의 기존 생산레짐 여건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는 시장경제 체제로 설계돼야 한다. 이 것은 또한 신 성장동력의 확보 문제와도 연결된 논의이다. 생산레짐이란 쉽게 바뀌는 게 아니며, 따라서 대안 체제로의 이행은 기존의 것을 토대로 하여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좋다. 그렇다면 한국의 현 생산레짐을 면밀히 분석하는 작업이 급선무이다. 예컨대, 상품생산체계와 연관된 한국의 산업구조를 일별해보자. 비교적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한국의 산업구조는 금융 등의 서비스산업과 일부 첨단산업에서만 우위를 보이는 영미형보다는, 전통 제조업과 IT등의 첨단제조업 분야에서 고 른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스웨덴, 핀란드, 아일랜드,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 북유럽의 강소국 유 형에 가깝다는 사실이다.17) 세계 시장에서 아직 국제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 상품은 일반 기 술이 아니라 기업 또는 산업에 특화된 기술을 요구하는 (독일, 일본, 스웨덴 등과 같은 조정시장경 제 국가들에서 생산되고 있는) 중화학 공업이나 IT 산업 제품들이라는 사실도 이를 입증한다.18) 말하자면 한국은 조정시장경제 상품생산체계의 전형인 고숙련 생산체계 하의 ‘고품질 특화 상 품’(diversified quality product, DQP) 생산이 중심이 되는 경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산레짐 요소들 간의 상보관계를 고려할 때) 거기에 합당한 고용체계나 노사관계가 무엇일지는 자명하다. 기업 입장에서 볼지라도 단기보다는 장기 고용체계가 그리고 분쟁적이기보다는 협력적 노사관계가 기업 또는 산업의 특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노동의 안정적 확보에 적합하다. 이 같은 장기고용체 계나 협력적 노사관계가 조정시장경제의 전형에 속하는 생산레짐 요소들임은 물론이다. 이러한 생산레짐 성격을 띤 한국 경제가 노동시장의 유연성 극대화를 강조하는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수렴될 것을 기대하거나 압박하는 것은 무리다. 또한 금융체계 및 기업지배구조 측면에서도 고용과 해고의 유연화를 포함한 기업 및 산업 구조조정의 일상화를 요구하는 자유시장경제식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로의 이행 압력 역시 무리가 아닐 수 없다. 이 점에서는 (물론 관료적 조정 기제 대신 민주적 조정 기제로 대치해야 하겠지만) 국가주도 조정시장경제 시절의 안 정적인 은행 중심 자본조달 체계가 더 바람직하다. 주주자본주의로의 이행은 한국의 기업들로 하여 금 주주의 단기적 이익 극대화에 집착하게 하고, 따라서 장기적 투자와 기업특화기술의 개발에는 그만큼 무심해지도록 할 것이다. 고용체계도 장기보다는 비정규직의 증대 등을 통한 단기 위주의 것으로, 그리고 노사관계 역시 협력적이기보다는 분쟁적 관계로 (지금보다 더 빠르게) 전환될 것이 다. 이렇게 된다면 기왕 한국기업들이 그나마 누려오던 DQP 산업에서의 국제경쟁력마저 상당한 도 전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의 경쟁력을 유지 또는 제고시키고자 한다면 자유시장경제 체제로의 이행보다는 오히려 조 정시장경제체제를 공고히 하고 (필요하다면) 그 위에 혁신친화적인 자유시장경제적 장점을 부분적 으로 추가시켜가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19) 그렇다면 장기고용체계와 협력적 노사관계 틀의 확립은 17) 양재진. 2006. “한국의 대안적 발전모델의 설정과 민주적 국가자율성 및 국가능력의 복원을 위하여,” 『국가전략』 12권 2호, pp. 128-129. 18) 안재흥. 2006. “정책레짐, 고용 및 실업의 정치, 그리고 노사정 관계: 서유럽 강소국의 경험과 한국의 진로,” 『한국형 사회협약의 모색과 복지국가』. 수원: 경기개발연구원.
77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물론 기업지배구조도 ‘이해관계자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의 성격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발전시켜감이 바람직하다. 고용의 안정과 확대, 기술투자의 증대,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기업지 배구조의 강화 등은 기술집약적 상품의 국제경쟁력 우위를 지속시켜주는 요인이 될 것이다.20) 결 국 한국에 적합한 자본주의 유형은 장기투자자본체계, 이해관계자존중체계, 고숙련생산체계, 협력과 조정의 노사관계, 장기고용체계 등의 조정시장경제적 생산레짐 요소들이 어우러지는 자본주의여야 하리라는 것이다. 넷째, 세계화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는 조정시장경제 체제여야 한다. 세계화에 따른 경제통합의 심화 및 확산 과정에서 산업 및 기업의 구조조정은 끊임없이 진행되기 마련이다. 혁신이 용이하지 않은 경제는 세계화 시대를 살아남기 어렵다. 그렇다면 예컨대 장기고용체계를 중시한다할지라도 그것이 어느 특정 기업 혹은 산업에서의 ‘종신고용’ 보장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곤란하다. 끊임없는 혁신을 위해서는 (자유시장경제체제에서와 같은 정도는 물론 아니겠지만) 노동시장의 유연성 증대 는 불가피한 일이다. 문제는 그 필요한 정도의 유연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조정시장경제 체제의 다 른 요구들을 어떻게 만족시켜갈 것인가에 있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영국이나 미국 등의 자유시장경제 국가들은 서비스산업 등과 같이 기술이나 경영 혁신 혹은 신속한 구조조정이 관건인 첨단산업이나 신산업 분야에서는 조정시장경 제 국가들보다 우월한 경향을 명백하게 보인다.21) 이는 단기고용체계, 분권적 노사관계, 그리고 단 기 자본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체계 등과 상보관계에 있는 주주자본주의의 장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장점은 일반적으로 상당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동반한다. 상시적 구조조정 환경은 양극화나 고용 불안의 문제 등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위에서 여러 변수를 염두에 두고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에 적합한 시장경제체제는 조정시장경제인 것이 분명하 다. 한국에서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발전시켜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이 ‘혁신 경제’ 의 요청을 무시할 수는 없다. 사회경제적 비용을 최소화하면서도 혁신 친화적일 수 있는 조정시장 경제 체제 구축이 절실한 까닭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flexicurity)이란 개념은 매우 유익한 시사점을 제 시한다. 상기했듯 한국도 노동시장의 유연성 증대 필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급격히 변화하는 세 계화 시대의 개방경제 환경 하에서 혁신을 위해서는 대내 조직의 유연화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 러나 이때 유연화 과정에서 발생하기 마련인 (높은 실직이나 이직 그리고 그에 따른 각종) 개인적 손실이나 불안에 대한 사회적 분담 혹은 ‘사회화’ 기제를 잘 마련해 놓을 경우 거기서는 단순한 유 연성이 아니라 유연안정성이 증대될 수 있다. 말하자면 유연성이 안정성의 기초 위에서 증대된다는 것이다. 이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active labor market policy, ALMP)과 공적 평생교육제도의 19) 이 점에서 한국형 시장경제체제가 조정시장경제에 기초하여 자유시장경제적 요소를 일부 수용하는 일종 의 혼합형 체제로 가야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20) 안재흥(2008) 21) Soskice(1999, 113-114)
78
제3세션 - 한국형 조정시장경제와 합의제 민주주의
도입, 그리고 사회안전망의 강화 등을 통해 이룰 수 있는 일이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예컨대 생산성이 낮은 어느 기업이나 사양산업의 노동자가 실직할 경우 그를 생산성이 높은 기업이나 산 업으로 이동케 함을 목적으로 실직 기간 중 한편으로는 생계비 등 실업 관련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직업재훈련이나 업무재배치 훈련 등을 받도록 하는 정책이다.22) ALMP를 시행하 고 있는 나라들의 경우는 대부분 튼실한 사회안전망과 복지체제를 함께 갖추고 있는 까닭에 실직 자가 새 직장을 얻기까지 직업훈련을 받는 기간 동안에도 교육, 의료, 주거 비용 등으로 인해 큰 고통을 받지 않는다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체계를 갖추어간다면 기업 차원에서는 유연성이 그리고 노동자 개인이나 사회전체 차원에서는 안정성이 동시에 증대될 수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 확보 방안이 시사하는 바는 세계화 시대가 요구하는 혁신 친화적 조정 시장경제 체제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결국 복지자본주의를 지향해야한다는 점이다. 이는 위의 두 번 째 원칙과 맥을 같이하는 결론이기도 하다. 잘 갖추어진 사회안전망과 복지체계가 개방경제 하의 산업 및 기업 구조조정을 순조롭게 한다는 것은 이미 이론과 경험에 의해 공히 증명된 사실이 다.23) 그러한 제도와 정책이 경제통합이나 시장개방에 따른 구조조정의 부작용을 내부적으로 해결 할 수 있는 사회통합 기제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의 시장경제체제는 복지주의 조정시장 경제체제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합의제 조정시장경제여야 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면, 한국에 적합한 시장경제체제 는 ① 자유시장경제가 아닌 조정시장경제, ② 격차문제 해결에 유능한 조정시장경제, ③ DQP 생산 체계에 부합하는 즉 장기고용체계, 협력적 노사관계, 이해관계자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조정시 장경제, 그리고 ④ 복지주의 조정시장경제를 지향함을 원칙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원칙 들을 관통하고 있는 핵심 가치는 ‘사회공동체와 연대’라는 점에 주목해야한다. ①번 원칙에서의 조 정시장경제의 정의 그 자체가 시장의 (사회적) 조정을 의미한다는 점, ②번 원칙은 공동체 구성원 들 간의 격차 해소를 강조한다는 점, ③번 원칙은 장기 신뢰관계에 기반한 상생적 이해관계자자본 주의를 선호한다는 점, 그리고 ④번은 사회통합형 혁신 경제를 위한 사회복지의 중요성을 부각한다 는 점 등이 모두 그것을 말해준다. 사회공동체와 연대의 가치가 존중되고 보장되는 자본주의야말로 모든 시민들의 사회적 자유를 중시하는 (진보적 자유주의 정신에 부합하는) 자본주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자본주의의 실현은 시장이 사회적 영향력 하에 놓여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즉 시장이 사회 구성원들 간의 협의나 합의에 의해 조율되고 조정될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이때 분배와 생산성 간 혹은 형평성과 효율성 간의 균형점, 그리고 복지의 양과 질의 적정선 등은 해당 사회의 구성원들 스스로 22) Henry Milner, Sweden: Social Democracy in Practice, (Oxford University Press 1993) 23) Peter Katzenstein, Small States in World Markets: Industrial Policy in Europe.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85); Dani Rodrik, “Sense and Nonsense in the Globalization Debate," Foreign Policy 107, Summer 1997; Geoffrey Garrett, Partisan Politics in The Global Econom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 Rieger Elmar and Stphen Leibfried, Limits to Globalization: Welfare States and the World Economy. Cambridge: Policy Press 2003.
79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가 직접 협의하여 결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다만 모든 구성원들의 참여는 현실적으로 불가 능하므로 한국적 상황에서 작동 가능한 사회적 협의나 합의 방식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가장 보편적 해법은 유럽의 합의제 조정시장경제 국가들처럼 사회합의주의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사실 합의제 조정시장경제의 핵심 기제는 사회합의주의이다. 이는 주요 이익집단들을 사회경제 정책의 수립과 집행과정에 참여케 함으로써 (정당 혹은 정치엘리트들만의 타협에 의한 것이었으면 상당히 컸을) 사회적 불만과 저항을 최소화하는 가운데 시장 조정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매우 훌 륭한 사회경제 거버넌스이다. 그러나, 아래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서유럽을 풍미했던 고전적 사회 합의주의 방식을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다. 네덜란드,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이 경쟁력 사회합의주의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거버넌스를 구축했듯이, 한국도 자기 지형에 들어맞는 자기 고유의 새로운 사회합의주의를 만들어내면 된다. 즉 사회협약의 의제와 수준, 참여 집단의 범 위, 운영 형태 등을 모두 한국의 고유 사정에 맞추어 정해가면 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한국형 사회합의주의를 창안해야 하며, 또 창안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 구체적 방식이 무엇이든 간에 한국형 사회합의주의를 제도화하여 그것을 근간으로 하는 합 의제 조정시장경제를 발전시켜가겠다고 한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참여 집단들 간의 동등한 파 트너십이 보장돼야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사회적 협의나 합의의 장은 지속되지 못한다. 예컨대, 만약 사회적 합의 과정이나 이후 그 합의내용에 관하여 벌어지는 정치적 결정과정에서 노 동의 의견이 무시되기 일쑤라면 노동은 더 이상 그러한 거버넌스 운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고, 따 라서 사회합의주의는 작동을 멈추게 될 것이다. 여기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는 노동이나 중소상공인 등과 같은 사회경제적 약자 집단들을 ‘특별’ 지원함으로써 그들이 자본이나 대기업 등 의 강자 집단과 동등한 파트너십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을 수행해야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부를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겠는가? 한국형 합의제 조정시장경제의 발전 문제는 결국 ‘어떤 민주주의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3. 합의제민주주의로의 발전이 더 급하다. 1) 다수제민주주의와 합의제민주주의의 5대 특성 레이파트(Lijphart 1999)의 분류법에 의하면, 대의제 민주주의는 그 제도 디자인의 내용에 따라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뉘어 발전해왔다. 모두에 소개한 다수제민주주의와 합의제민주주의가 그것이 다. 제도 디자이너들의 의도에 따라 양 민주주의의 성격과 결과가 서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음은 물 론이다. 이는 자본주의가 그렇듯 민주주의에도 다양성이 존재하며, 따라서 어떠한 민주주의를 어떻 게 발전시켜갈 것인지는 운명이 아닌 선택의 문제임을 시사한다. 다수제민주주의와 합의제민주주의의 전형 혹은 이념형은 다음과 같은 5대 특성을 통해 명확히
80
제3세션 - 한국형 조정시장경제와 합의제 민주주의
식별할 수 있다.24) 첫째는 선거제도에서 나타나는 특성이다. 다수제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다수대표 제 혹은 다수결형 선거제도를 통해 의회를 구성한다. 예컨대, 그 전형인 소선거구 일위대표제의 경 우 지역구 득표율 1위에 오른 후보만이 그 지역의 다수를 대표하여 의회에 진출한다. 2위 이하의 후보들은 자신들의 득표율이 아무리 1위의 그것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할지라도 누구도 의회의 대표자격을 얻지 못한다. 따라서 2위 이하의 후보들에게 던져진 표는 모두 사표(死票)로 처리될 뿐 이다. 여기서는 각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 간에 ‘비례성’(proportionality)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이와는 달리 합의제민주주의에서는 비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를 채택한다. 유권자들은 기본적 으로 개별 후보가 아닌 정당에 대하여 투표한다. 각 정당의 득표율이 산출되면 그것에 비례하여 의 석을 나누는 것이다. 여기서는 1등 혹은 다수세력 대표에게 던진 표만이 의미가 있고 그 외의 모든 소수세력 대표들에게 던진 표는 사표가 되는 ‘소수 무시’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크든 작든 모 든 정당이 각자 지지 받은 만큼의 대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특성은 정당체계에서 나타나는 바, 이것은 선거제도와 깊게 연계돼있다. 소위 뒤베르제 의 법칙으로 널리 알려져 있듯,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는 양당제를 그리고 비례대표제는 다당제의 발 전을 유도하는 경향이 강하다. 소선거구 일위대표제에서는 선거경쟁이 거듭될수록 결국 지역구 1등 을 많이 배출할 수 있는 거대 정당 둘만이 각각 좌-우 혹은 진보-보수 진영 등의 대표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반면, 비례대표제에서는 등수 혹은 승패에 관계없이 자신들이 획득한 지지율만큼의 의석을 배정받으므로 다양한 사회 세력을 대표하는 여러 정당들이 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 수제민주주의와 합의제민주주의의 전형적 정당체계가 각각 양당제와 다당제라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특성이다. 세 번째 특성인 행정부의 구성 차이도 선거제도 및 정당체계와 연관돼있다. 소선거구 일위대표 제로 양당제를 유지하고 있는 영국과 같은 다수제민주주의 국가의 전형적인 행정부 형태는 단일다 수당정부이다. 선거경쟁이 주로 거대 정당 둘 사이에서 벌어질 경우 어느 한 당이 의회의 다수당이 되는 것은 통상적인 일이다. 따라서 의원내각제라면 의례히 그 다수당이 단독으로 행정부를 구성한 다. 대통령제가 반드시 다수제민주주의의 권력구조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행정부 구성 측면에서 그것은 다수제적 성격을 띤다.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항상 단독으로 행정 부를 꾸미기 때문이다. 한편, 대륙 유럽 국가들의 경우에서 보듯, 합의제민주주의의 행정부는 전형 적으로 연립정부이다. 셋 이상의 유력 정당들이 비례대표제로 의석을 나누는 환경에서 어느 한 정 당이 총의석의 과반을 차지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따라서 단일 정당에 의한 행정부 구성은 드문 경우이고 다양한 사회집단을 대변하는 여러 정당들 간의 연립정부 형성이 통상적이 되는 것 이다. 24) 레이파트는 각 민주주의 유형의 10가지 특성을 제시하며, 그 중 다섯은 ‘집행부-정당 차원 '(executives-parties dimension)이고 다른 다섯은 ‘연방제-단방제 차원'(federal-unitary dimension)이라 고 하였다. 본고에서는 집행부-정당 차원에 속하는 특성을 ‘5대 특성’으로 규정하고, 오직 그 다섯 변수만 에 의해 합의제와 다수제 민주주의를 유형화하기로 한다.
81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네 번째 특성은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힘의 분배 양상이다. 이것 역시 선거제도 및 정당체계 그 리고 행정부 구성 방식과 밀접히 관련돼있다. 다수제민주주의의 행정부는 권력 혹은 영향력 행사 측면에서 입법부에 대하여 압도적 우위에 있다. 영국의 예를 보자.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로 공고화 된 양당제 하에서 의회는 통상 단일 다수당이 장악하기 마련이며 행정부는 그 다수당이 홀로 구성 한다. 여기서 그 행정부의 수반인 수상 혹은 총리는 바로 의회 다수당의 최고 지도자이므로 사실상 그는 입법부까지 자신의 영향력 하에 둘 수 있다. 명백한 행정부 우위제인 것이다. 그러나 비례대 표제와 다당제 그리고 연립내각을 특성으로 하는 (대륙)유럽식 합의제민주주의에서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어느 한 정당도 독립적으로 안정적인 행정부를 형성하기 어려운 제도 조건 하에서 오직 연 립형태로 스스로를 지탱해야하는 행정부는 항시적으로 의회 구성원인 각 정당들의 선호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합의제민주주의의 행정부가 입법부에 대하여 힘의 우위를 주장할 수 없고 항상 힘의 균형을 도모해야하는 이유이다. 마지막인 다섯 번째 특성은 이익집단대표체계에서 드러난다. 다수제민주주의에서는 개별 이익집 단들이 각기 다원주의적으로 활동한다. 서로가 독립하여 흩어져있는 상태에서 이들은 분쟁적이거나 심지어는 적대적인 경쟁 구도를 형성한다. 한편, 합의제민주주의에서는 주요 이익집단들이 사회합 의주의적인 체계를 구성하여 그 체계 내에서 상호 협력적으로 경쟁한다. 예컨대, 전국의 노동자들 과 사용자들이 각각 자신들의 중앙집중적이며 독점적인 대표 체계를 갖추어 정부의 중재 하에 서 로 정기적으로 만나 사회협약을 새로 맺거나 개정해가는 방식이다. 이 다섯 번째 특성은 앞서 말한 네 가지의 정치제도적 특성들, 즉 선거제도, 정당체계, 행정부 형태, 그리고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권력관계 등과 인과관계적인 제도적 연계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친화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가령 사회합의주의는 통상 합의제민주주의와 ‘같이 간 다’고
하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합의제민주주의의
정치제도
성격을
나타내는
협의주의
(consociationalism)가 이 사회합의주의와 동일한 구조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협의주의 는 다당제와 연립정부(더 정확히는 단일다수당정부가 아닌 정부) 형태가 정상상태인 국가에서 정당 간의 연합정치 방식으로 운영되는 민주주의를 지칭한다.25) 연합정치 성공의 핵심 변수는 포괄성과 포용성이므로 협의주의는 상이한 세력들 간에 협상과 타협의 정치가 수월하게 작동될 수 있는 구 조를 띠고 있다. 이 같은 구조적 특성이 경제 거버넌스 영역에서 재현된 것이 바로 사회합의주의라 할 수 있다.26) 즉 양자 공히 정치적 혹은 사회경제적으로 다양한 이해를 갖는 여러 세력들을 하나 25) 다당제를 촉진하는 선거제도가 비례대표제임을 감안하면 협의주의를 이루는 핵심 제도는 비례대표제, 다당제, 연립정부라고 할 수 있는바, 그것은 결국 합의제민주주의의 정치제도 요소와 동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합의제민주주의의 5대 특성은 정치제도 측면에서의 협의주의와 사회경제제도 측면에서의 사회합의주의가 결합하여 나타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26) Frans van Waarden, “Dutch Consociationalism and Corporatism: A Case of Institutional Persistence," Acta Politica vol. 37, no. 2 (2002), p. 50. 협의주의와 사회합의주의 간의 ‘개념적’ 친화 성에 대해서는 Gerhard Lembruch, “Consociational Democracy, Class Conflict and the New Corporatism," in P. Schmitter and Gerhard Lembruch eds,, Trends toward Corporatist Intermediation (London: Sage, 1979); Ilja Scholten ed., Poltical Stability and Neo-Corporatism: Corporatist Integration and Societal Cleavages in Western Europe (London: Sage, 1987) 등을 참조.
82
제3세션 - 한국형 조정시장경제와 합의제 민주주의
의 시스템으로 통합시켜 그들 간의 협의 혹은 합의를 통해 정치 혹은 사회경제적 결정을 내리게 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양자 간에는 구조개념 측면에서만 친화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경우 양 제도의 주요 행위 자들은 현실에서 상호 밀접한 연대 관계를 맺고 있다. 전국 단위의 노동조합이 노동당이나 사민당 의 안정적 지지기반을 이루는 것이 그 대표적 예이다. 협의주의를 공동 운영하는 여러 정당들이 각 자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특정 이익집단의 전국 조직화를 도와 그들과 ‘후원자-고 객(patron-client)’ 관계라는 특수 관계를 맺기도 하고, 사회합의주의에 참여하는 여러 이익집단들 이 각각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이익 증대를 위해 특정 정당의 창당 혹은 지지층 확대 및 영향력 증 대를 돕기도 함으로써 사회합의주의와 협의주의가 서로 맞물려 발전해가는 것이다. 협의주의와 사회합의주의 간의 높은 상관관계는 실증적으로도 이미 여러 연구에서 증명된 바 있다.27) 협의주의 수준이 높은 민주주의일수록 거기서의 사회합의주의 발전 정도도 높다는 것이다. 결국 엄밀히 말해 ‘같이 가는’ 것은 사회합의주의와 협의주의인 것이다. 그런데 협의주의가 합의제 민주주의의 핵심을 구성함에 따라 협의주의의 ‘내장 요소’(integral part)인 사회합의주의가 합의제 민주주의와 같이 가게 되는 것이다. 이상 다수제민주주의와 합의제민주주의의 5대 특성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물론 이 특성을 이념 형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민주국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거의 모든 민주국가들은 다수제와 합의제의 원형을 양 극단으로 하는 연속선상의 어느 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중간 지점으로 부터 전형적인 다수제나 전형적인 합의제의 어느 한 쪽에 가까이 갈수록 해당 국가의 민주주의는 다수제적 혹은 합의제적 성격이 강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한 기준으로 볼 때 현재 지구 상에는 합의제적 민주주의 국가가 훨씬 많다. 특히 선진국들의 경우 합의제민주주의는 확실한 대세 를 이루고 있다. 영국이나 프랑스 등 소수의 예외를 제외한 거의 모든 유럽 선진국들은 합의제민주 주의 국가로 분류된다. 한편, 위에서 본대로 민주주의의 유형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정치제도 는 선거제도인데, 경제선진국들의 모임인 OECD 30개 회원국 중 다수제민주주의의 전형적 선거제 도인 다수대표제를 택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 영국, 캐나다 등 대여섯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합의제민주주의의 전형인 비례대표제 혹은 비례성이 상당히 보장되는 혼합형 선거제도를 택하고 있다. 이 사실은 선진국 민주주의의 표준이 합의제민주주의임을 확인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합의제민주주의의 포괄성과 조정시장경제 촉진 효과 이 글의 서두에서 정치적 자유는 (그 개념 그대로) ‘포괄의 정치’가 발달된 곳에서 더 잘 지켜지
27) Arend Lijphart and Markus M. Crepaz, “Corporatism and Consensus Democracy in Eighteen Countries: Conceptual and Empirical Linkages," British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vol. 21 (1991); Markus M. Crepaz and Arend Lijphart, “Linking and Integrating Corporatism and Consensus Democracy: Theory, Concepts and Evidence," British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vol. 25, no. 2 (1995); Lijphart(1999, 182-183).
83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는 것이라고 하였다. 위에서 본 유형에 따르자면, 원칙적으로 다수제민주주의는 배제의 정치, 합의 제민주주의는 포괄의 정치를 바탕으로 하여 돌아간다.28) 다수제형 민주정부가 오직 다수(the majority of the people)의 이익과 선호에 응답하는 정부라면, 합의제형 민주정부는 소수파들이 포 함된 최대다수(as many people as possible)에 대해 책임을 지는 정부이다.29) 두 민주주의의 성 격을 다시 요약해보자. 승자독식 모델인 다수제민주주의에서는 선거에서 승리한 정치세력이 정치권 력을 독차지한다. 그들은 자신들만으로 정부를 구성하고 패자나 저항 혹은 거부 세력에 대한 배려 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결국 정권교체기마다 정치과정에서의 배제 세력은 양산되고, 따라서 이들과 정부 간 그리고 입장이 다른 이익집단들 간의 적대적 대립과 갈등은 상시적 문제로 존재한 다. 포괄의 정치가 작동되지 않는 것이다. 반면, 승자독식이 제도적으로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려운, 그리하여 정치세력 상호간의 의존과 협력이 필수적인 합의제 민주주의에서는 정치권력이 분산되며 따라서 정치과정은 양보와 타협에 의해 진행된다. 여기서는 약자나 소수자 그리고 저항 혹은 거부세력에 대한 포용이 일상의 정치문 화로 자리 잡게 된다. 합의제민주주의의 본질이 포괄의 정치에 있다고 할 때, 그것을 작동케 하는 핵심 기제는 비례대표제라 할 수 있다. 선거제도의 높은 비례성 덕분에 약자와 소수자를 포함한 다 양한 사회세력들을 대변하는 다수의 정책 및 이념 정당들이 의회에 진출할 수 있으며, 이는 대부분 의 경우 다당제 하의 연립정부 형태로 이어지곤 한다. 한편, 이 제도 패키지, 즉 비례대표제, 다당 제, 연립정부 등에 의해 가동되는 협의주의 정치가 사회합의주의 거버넌스와 같이 간다는 것은 상 기한 대로이다. 결국 합의제민주주의는 비례대표제를 시작으로 하여 상호 맞물려 있는 포괄성 혹은 포용성 높은 정치제도 및 그것들과 친화성을 유지하는 사회경제 제도로 이루어진 민주주의체제인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자유는 다수제민주주의에서 보다는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 포괄의 정치 가 제도화돼있는 이 합의제민주주의에서 더욱 잘 보장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 할 것이다.30) 28) Markus M. Crepaz and Vicki Birchfield, “Global Economics, Local Politics: Lijphart's Theory of Consensus Democracy and the Politics of Inclusion," Markus Crepaz et al. eds., Democracy and Institutions: The Life Work of Arend Lijphart (Ann Arbor: The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2000) 29) Arend Lijphart, Democracies: Patterns of Majoritarian and Consensus Governments in Twenty-One Countries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84), p. 4. 30) 레이파트가 정리한 이 합의제민주주의라는 용어대신 ‘협상민주주의’(negotiation democracy), ‘협의민주 주의’(consociational democracy), ‘비례민주주의(proportional democracy), ‘분권민주주의 '(power-sharing democracy), ‘포괄민주주의’(inclusive democracy) 등 다른 무엇을 써도 좋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러 정당들 간의 협상과 타협을 본질로 하는 포괄의 정치가 작동되는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특성이다. John Huber and G. Bingham Powell, “Congruence between Citizens and Policymakers in Two Visions of Liberal Democracy," World Politics vol. 46 (1994); Klaus Armingeon, “The effects of negotiation democracy: A comparative analysis," European Journal of Political Research vol. 41 (2002); Arend Lijphard, “Negotiation democracy versus consensus democracy: Parallel conclusions and recommendations," European Journal of Poltical Research vol. 41 (2002); Arend Lijphard, “The Wave of Power-Sharing Democracy," in Andrew Reynolds ed., The Architecture of Democracy: Constitutional Design, Conflict Management, and Democrac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2) 등 참조.
84
제3세션 - 한국형 조정시장경제와 합의제 민주주의
사실 그것은 정치적 자유만이 아니다. 빈곤이나 소외 또는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포함하는 사회 적 시민의 자유 역시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 합의제민주주의가 더욱 안정적으로 지켜줄 수 있다. 포괄의 정치가 작동되는 곳에서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선호와 이익이 동등하고 효과적인 참여 보 장에 의해 정치과정에 제대로 투입되기 때문이다. 사회정책이나 경제정책 등이 사회경제적 강자들 의 이익에 편향되어 수립되거나 집행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이것이 합의제민주주의에 가까울 수록 조세나 복지정책 등을 통한 정부의 재분배 수행능력이 높게 나타나는 이유이다.31) 다수제 민 주국가들보다 합의제 민주국가들에서의 빈부격차가 덜하고, 복지수준이 더 높으며, 약자나 소수자 배려가 더 철저하다는 것,32) 그리하여 합의제민주주의가 다수제민주주의보다 사회통합과 정치안정 측면에서 뛰어나다는 점은 실증 연구에 의해서도 증명되고 있다.33) 이는 결국 합의제민주주의에서 분배친화적 자본주의가 발전할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정치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 수호에 유능한 합의제민주주의의 이 포괄성은 (자유시장경 제 보다 분배친화적인) 조정시장경제와의 친화성으로도 이어진다. 유럽의 합의제 조정시장경제 국 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비례대표제, 구조화된 온건다당제, 그리고 연립내각제를 유지하고 있다.34) 합의제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들인 이 포괄성 높은 정치제도들이 정치과정에서 노동 등 사회경제적 약자집단들의 효과적 이익집약을 가능케 함으로써 분배의 정의가 왜곡됨을 방지하는 것이다. 정치 제도의 시장조정 효과가 정당체계를 중심으로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한편, 이 정치제도들은 상기한대로 사회합의주의형 이익집단대표체계와 친화성을 유지함으로써 사회합의주의적 방식을 통한 합의제민주주의의 분배친화적 시장조정 능력을 배가시키기도 한다.35) 협의주의 정치제도의 시장조정 효과가 사회합의주의의 발전을 통해 간접적으로 나타나는 경우에 해당한다. 합의제민주주의가 조정시장경제와 제도적 친화성을 유지하게 되는 핵심 연결 고리가 바 로 이 지점이다. 앞서 설명한대로, 사회합의주의는 합의제 조정시장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경제 거 버넌스이다. 따라서 합의제민주주의의 정치제도들이 갖고 있는 이 사회합의주의와의 친화성은 합의 제민주주의 그 자체와 조정시장경제 간의 친화성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즉 합의제민주주의와 조정시장경제의 교집합에 해당하는 사회합의주의가 양 체제를 친화성의 관계로 이어준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양 체제 간에는 친화성을 넘는 일정한 인과성이 존재할 수도 있다. 포괄성을 특징으 로 하는 합의제민주주의가 합의제 조정시장경제의 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합의제민 31) Markus M. Crepaz, “Global, Constitutional, and Partisan Determinants of Redistribution in Fifteen OECD Countries," Comparative Politics vol. 34, no. 2 (2002) 32) Lijphart(1999, ch. 16); 선학태, 『민주주의와 상생정치』 (서울: 다산출판사, 2005), pp. 402-408 33) Armingeon(2002) 34) Duane Swank, Global Capital, Political Institutions, and Policy Change in Developed Welfare Stat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2. 35) 사회합의주의가 발달할수록 소득 불평등 정도가 줄고 사회경제적 형평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증명한 실증 연구에는 Crepaz(2002); Daniel J. Minnch, “Corporatism and income inequality in the global economy: A panel study of 17 OECD countries," European Journal of Poltical Research vol. 42 (2003) 등이 있다.
85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주주의가 합의제 조정시장경제의 발전에 보다 유리한 제도 조건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관계를 사회합의주의의 작동 조건을 중심에 놓고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위에서 합의제 조정시장경제 의 근간인 사회협약체제의 성공적 운영을 위해서는 참여 집단들 간의 동등한 파트너십을 보장해주 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였는데, 그러한 정부의 역할은 바로 합의제민주주의에서 기대하기 용이한 것이다. 예컨대, 그 정부는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동에 힘을 실어주어 노사관계가 동등한 파트너십을 전제로 하여 건설적이고 평화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유력한 친(親)노동 정당이 있어 그 정당이 노동의 편에 서서 정부의 정책결정에 상시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어야한다. 중소상공인이나 농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들 그룹 역시 (그들이 만약 사회협약체제의 파트너로서 참여할 필요가 있는 것이라면) 각각 자신들의 정치적 대리인을 확 보하고 있어야한다. 말하자면, 합의제 조정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주요 사회경제 집 단들의 선호와 이익을 정치적으로 대리할 수 있는 이념 혹은 정책 정당들이 포진해있는 소위 ‘구조 화된’ 다정당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36) 이것이 합의제민주주의의 전형적 정당체계임은 앞서 지 적한 대로이다. 그렇다고 고전적 사회합의주의의 경우에서와 같이 사민당의 장기집권과 같은 정도의 강력한 정 당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현 정치경제 지형에서 고전적 사회합의주의의 발전을 기대하기란 어차피 어려운 일이다. 그것의 작동 요건은 사민당 등 친노동 정당의 집권 외에도 사용 자단체와 노동조합이 중앙집중적이며 독점적인 대표체계를 갖춰야한다는 등의 무척 까다로운 것들 이기 때문이다.37) 한국에서 기대 가능한 사회합의주의 형태는 상기한 경쟁력 사회합의주의 정도일 것이다. ‘공급중심(supply-side) 사회합의주의’라고도 불리는 이 새로운 사회합의주의는 예의 그 고 전적 조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네덜란드,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의 나라들에서 등장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현상으로 평가됐다.38) 이제 고전적 사회합의주의의 그 엄격한 정치 및 사회경제적 제도 요건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이다.39) 36) 이념이나 정책중심 정당들이 포진되어 있고 이들 정당들이 상당한 정체성과 영속성을 유지하고 있을 경 우, 그 나라의 정당구도는 잘 ‘구조화’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정준표, “정당, 선거제도와 권력구조,” 국제평화전략연구 엮음,『한국의 권력구조 논쟁』(서울: 풀빛, 1997), p.140. 한편, 사회경제적 균열을 제 대로 대표하는 구조화된 정당체계가 사회협약체제 성공의 주요 조건이 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Kerstin Hamann and John Kelly, “Party Politics and the Reemergence of Social Pacts in Western Europe," Comparative Political Studies vol. 40, no. 8 (2007) 참조 37) Philipe Schmitter, “Corporatism is Dead! Long Live Corporatism! Reflections on Andrew Shonfield's Modern Capitalism." Government and Opposition, 24 (1989); David Cameron, “Social Democracy, Corporatism, Labour Quiescence, and the Representation of Economic Interest in Advanced Capitalist Society" in John H. Goldthorpe ed. Order and Conflict in Contemporary Capitalism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4); P. Lange and G. Garret, “The Politics of Growth." Journal of Politics vol. 47 (1985). 38) F. Traxler, "From Demand-Side to Supply-Side Corporatism? Austrian Labour Relations and Public Policy." in C. Crouch and F. Traxler eds., Organized Industrial Relations in Europe: What Future? (Aldershot: Avebury, 1995); Rhode 2001. 39) 양재진, “노동시장유연화와 한국복지국가의 선택: 노동시장과 복지제도의 비정합성 극복을 위하여,”
86
제3세션 - 한국형 조정시장경제와 합의제 민주주의
더구나 고전적 사회합의주의와 달리 이 새로운 사회합의주의는 분배만이 아니라 생산성 향상, 노동 시장의 유연안정성, 복지제도의 합리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등을 통한 고용증대 방안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는 의제선택의 유연화, 기업연합과 노조연합뿐 아니라 실직자, 비정규직, 자영업자, 농민 단체 등 다양한 사회집단들을 포괄하는 참여주체의 다변화, 그리고 거시적(중앙) 수준에서만 이 아닌 중위적(산업, 광역지역) 혹은 미시적(기업, 기초지역) 수준으로까지 내려가는 조정과 협약 수준의 세밀화 등을 이룬 것이기에 세계화 시대에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고자 하는 한국 경제에게는 더 없이 적합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의제와 참여주체, 그리고 협 약수준 및 운영 형태 등의 모든 면에서 유연하고 다차원적인, 따라서 한국 나름의 고유 모델을 창 안하기가 용이한 이 새롭고 매력적인 유형의 사회합의주의도 그것을 가동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제 도 조건은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40)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구조화된 다정당체계인 것이다. 정책과 이념 중심으로 구조화된 다당제가 비례대표제와 제도적 인과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상기한 대로이다. 또한 그러한 정당체제는 통상 연립내각제 형태의 권력구조와 연결된다는 사실도 그러하다. 결국 새롭게 창안되는 사회합의주의일지라도 그것이 ‘포괄의 정치경제’라는 사회합의주의 의 기본 원리에 의해 작동되는 것인 이상 합의제민주주의의 포괄성 높은 정치제도들을 필요로 한 다는 것이다. 실제로 네덜란드,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새로운 유형의 유연한 사 회합의주의가 등장한 상기 나라들도 모두가 이 정도의 정치제도 조건은 갖춘 합의제민주주의 국가 들임을 잊지 말아야한다. 한국이 신자유주의의 대안체제로서 한국형 합의제 조정시장경제를 구축해가고자 한다면 한국은 그 보다 앞서 혹은 적어도 그 일과 병행하여 한국형 합의제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 울여야한다. 신자유주의의 대안 모델 작성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합의제 민주주의의 형성에 필요한 정치제도들을 갖추는 일이란 것이다. 그 시작은 비례성을 획기적으로 높 일 수 있는 선거제도의 개혁이여야 한다. 전술했듯, 선거제도야 말로 정당체계, 행정부 형태, 그리 고 권력구조 등을 결정하는 민주주의 핵심 제도이기 때문이다.
5. 나가는 말 진보적 자유주의가 지향하는 바가 시민들 모두가 평등하게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공동체 건설이 『한국정치학회보』 37권 3호 (2003); 이선. “서구선진국의 조합주의의 정책적 시사점,” 『법학논총』 통 권 16호 (2006); 임상훈, “사회협약 안정화 과정 비교연구: 한국, 이탈리아, 아일랜드 사례를 중심으로,” 『노동정책연구』 6권 2호 (2006); Hugh Compston, "Policy Concertation in Western Europe: A Configurational Approach", in Stefan Berger and Hugh Compston eds., Policy Concertation and Social Partnership in Western Europe: Lessons for 21st Century (Berghahn Books, 2002) 40) 최태욱, “한국형 조정시장경제체제 구축의 정치제도 조건: 합의제 민주주의 국가의 형성,” 『2008년도 국회연구용역과제』 (서울: 코리아연구원, 2008), pp. 125-131
87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라고 할 때, 거기서 특히 강조되는 자유는 정치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이다. 그렇다면 모든 시민의 정치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를 평등하게 보장하는 방향으로의 자본주의 및 민주주의 발전이 곧 진 보적 자유주의 이념의 구현 과정이라 할 것이다. 본고에서 필자는 합의제 조정시장경제체제와 합의 제민주주의체제로의 발전이 한국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나아갈 방향이라고 주장했다. 두 체제는 공히 ‘포괄의 정치경제’(political economy of inclusion)에 의해 작동되는바, 바로 그 공통의 특성 이 약자와 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시민들에게 정치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 이라는 게 핵심 논거다. 사회합의주의라는 커다란 교집합이 존재할 정도로 두 체제의 친화성은 매우 높다. 만약 합의제 조정시장경제가 먼저 발전해간다면 합의제민주주의의 진전이 그 뒤를 따를 가능성은 상당하다. 분 배친화적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높은 수준의 사회적 자유가 (즉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완화가) 정치 적 자유의 신장으로 (즉 동등하고 효과적인 정치 참여 기회의 확장으로) 이어질 것이며, 그것은 종 국에 포괄민주주의의 발전을 촉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 역의 관계가 더 현실적 임을 강조한다. 즉 정치적 자유 보장에 유능한 포괄민주주의의 등장이 사회적 자유의 창출 환경을 개선함으로써 분배친화적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이어져가는 순서가 더 타당하다는 것이다. 요컨대, 합의제민주주의의 발전으로 합의제 조정시장경제를 유인해내자는 것이다. 사실, 거의 모든 경우, 경 제가 정치를 이끌기 보다는 정치가 경제를 규정한다.41) 합의제민주주의는 그 자체 상당한 수준의 분배친화성을 내포하고 있다. 로버트 다알이나 최장집 교수 등이 강조하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기준에 (다수제민주주의에 비해) 충실할 수 있는 민주주의 유형이기 때문이다.42) 최장집 교수의 정확한 지적대로, 오늘날 한국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수많은 이들의 사회적 시민권을 훼손할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은, 그리하여 민주화 이후에도 소위 ‘실 질적 민주주의’는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는 까닭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절차적 민 주주의의 기준에 크게 미흡하기 때문이다. 작금의 한국 상황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즉 집합적 결정은 다수 혹은 최대다수의 선호에 따른다는 것이 관철되지 않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다. 그 원칙대로라면 어떻게 다수인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이익이 소수에 불과한 강자들의 이익에 번번이 압도당하겠는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수행에 필요한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된다면, “즉 효과적인 정치 참여가 이루어지고, 투표의 평등이 실현되며, 계몽된 이해가 가능하고, 투표자들이 의제를 최종적으로 통제할 수 있으며,” 참여의 포괄 성이 보장된다면, 민주주의의 원칙은 제대로 지켜질 것이고 따라서 사회경제적 불평등 상황은 개선 될 수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는 절차적 민주주의’라고 하는 주장의 요체다.43) 모든 시민의 동등하 41) 폴 크루그먼, 예상한 역, 『미래를 말하다』 (서울: 현대경제연구원, 2008) 42)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최장집, “민주주의를 둘러싼 오해에 대한 정리: 절차적 민주주의의 재조 명,” 최장집․박찬표․박상훈 저 『어떤 민주주의인가』 (서울: 후마니타스, 2007); Dahl(1998, 35-43) 43) 최장집(2007, 100-101)
88
제3세션 - 한국형 조정시장경제와 합의제 민주주의
고 효과적인 정치 참여를 가능케 하는 절차가 갖춰질 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합 의제민주주의가 동등하고 효과적인 정치 참여를 더 잘 보장해줄 수 있는 민주주의 유형임은 위에 서 본 대로이다. 한국의 절차적 민주주의의 심화와 그에 따른 사회적 자유의 증진은 합의제민주주 의 하에서 더 크게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합의제민주주의는 사회합의주의의 발전을 매개로 하여 분배친화적 자본주의 유형에 해 당하는 합의제 조정시장경제를 촉진하는 효과까지 발할 수 있다. 사회합의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합 의제 조정시장경제는 그 기반을 튼실하게 지탱해줄 수 있는 구조화된 다정당체계를 필요로 하는바, 그것은 합의제민주주의의 정치제도 패키지가 제공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기했듯, 합의제 조정 시장경제의 원활한 작동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경제적 약자집단들을 정치과정에서 효 과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이념 혹은 정책 정당들의 (유력 정당으로서의) 상존이다. 그것은 다양한 정당들의 의회 진출을 용이하게 해주는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와 그 다수의 정당들로 하여금 안정 적인 정책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연정형 권력구조 하에서 지속될 수 있는 정치 환경 이다. 결국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 구조화된 다정당체계, 그리고 연정형 권력구조 등으로 구성되는 합의제민주주의의 정치제도 패키지가 합의제 조정시장경제의 발전을 돕는다는 것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논의가 있었지만, 최근에 다시 권력구조 개편과 선거제도 개혁문제가 국가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참에 권력구조는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 등 연정형으로 전환되고, 선거제도는 비례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방향으로 개혁된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합의제적 성격은 분명 강화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을 합의제 조정시장경제에 가까운 것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 정치제도의 개혁을 통하여 보통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 를 증진시키기를 꿈꾸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라면 앞으로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최근의 이 권력구조 개편 및 선거제도 개혁 논의에 적극 참여할만하다. 이와 관련하여 반드시 유의해야할 점 하나를 지적하며 본고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연정형 권력 구조가 합의제민주주의의 핵심 요소 중의 하나라는 이유 때문에 그것으로의 전환을 무조건 찬성해 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정당의 구조화가 안 된 상태에서의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의 도입 은 무익한 정도를 넘어 자칫 권력구조의 개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역정당 중심의 한국 정 당구도는 계속 다정당체계를 유지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 예상된다.44) 그러므로 기존 조건 하에서의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에서의) 책임내각제의 도입은 결국 비구조화된 다당제와 내각제를 결합시킨다는 것인데, 거기에는 여러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 같은 정치구도에서는 군소 지역정당(들)일지라도 지역 지지기반을 잘 관리하여 필요최소한의 의원 수만 확보할 수 있다면 심지어 연립정부에도 참여할 수 있다. 그리되면 (지역) 44) 장의관, “선거제도의 쟁점, 사례 및 제도화의 방향,” 국제평화전략연구원 엮음, 『한국의 권력구조 논쟁 II』 (서울: 풀빛. 2000), p.129; 안순철(2001), pp.6-7.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는 양대정당체계를 낳는다는 뒤베르제의 법칙을 깨고 한국에서는 유신정권기간 등과 같은 특수상황 하를 제외하고는 줄곧 다정당체계 가 유지되어 왔는데 이는 한국정치의 특수 변수인 지역할거주의와 인물중심주의의 영향력이 컸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89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명망가나 소지역 중심의 지역할거주의는 오히려 더욱 창궐하게 될 것이다. 지역정당들 혹은 그 보 스들 간의 정권 나눠먹기 양상이 만연되면서 권력구조는 결국 정치엘리트들 간의 ‘과두체제’로 개 악돼갈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국민의 뜻과는 상관없는 불안정한 연립정부의 구성과 (중심 이념이 나 정책이 부재한 상태에서의) 잦은 정권교체 등으로 인해 정부의 효율성과 수행능력은 크게 저하 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는 또한 내각제의 장점인 타협과 합의의 정치가 정책과 이념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 인물이나 지역이익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까닭에 노동이나 중소상공인 등과 같은 사회 경제적 집단들의 이익이 정책과정에 체계적으로 반영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정당 및 정치가 들은 정책기조나 이념에 근거한 신념보다는 정치적 보스의 사적 필요성이나 “지역 이기주의적 요 구에 타협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45) 결국 보수와 진보 등의 복수 정당이 있어 이들이 여러 계층과 계급 그리고 사회집단들이 표출한 다양한 이익을 적절히 집약하여 대의정치과정에 반영한 다는, 그리하여 사회통합을 유지한다는 정당정치 본연의 기능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적 정치 상황에서는 내각제로의 전환보다는 선거제도의 개혁이 우선돼야한다. 비 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의 도입이 정당의 구조화를 견인할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선거제도를 먼저 개혁한 후에 권력구조를 전환한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합의제민주주의를 위한 제도 개혁 작업 을 수행해 가야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권력구조의 개편은 개헌을 요구하는 지난한 과제이지만 선거 제도의 개혁은 법률 개정만으로도 이룰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사회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헌을 무리하게 시도하기 보다는 당장은 선거제도의 개혁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 이 현실적으로도 합당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비례대표제의 도입 등으로 정당의 구조화 작업이 진행되어 이념과 정책을 기반으로 하는 (온건) 다당제가 구축되면 권력구조의 개편 작업은 그때에 이르러 정당 간 합의에 의해 자연스레 진행될 것이다. 그렇게 추정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다당제와 대통령제의 결합은 여소야대라고 하는 제 도 간의 부조화 문제를 발생시킨다. 그것은 정당의 구조화 여부와는 관계없이 일어나는 문제이다. 비구조화된 다정당체계 국가인 한국에서는 그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록 부작용이 심하긴 했어도) 노태우 정부 때는 3당 합당,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타당 의원 영입, 김대중 정부 당시에는 ‘DJP공조’라는 일종의 정당연합, 그리고 노무현 정부 하에서는 ‘대연정’ 등과 미봉책을 실제로 활용 하거나 시도하곤 했다. 그런데 선거제도의 개혁으로 정당의 구조화가 이루어지면 과거의 그러한 미 봉책마저도 사용하기 어려워진다. 이념 및 정책적 차이가 뚜렷한 정당들 간에는 의원들의 당적 이 동도 매우 어려운 일일뿐더러 (나눠가지기도 힘든 대권을 놓고) 합당, 연합, 연정 등과 같은 엘리트 주도의 정계개편이 (비구조화된 정당들 사이에서처럼) 쉽게 합의될 리도 없기 때문이다. 여소야대 로 인한 정부의 정책수행과 국정운영의 어려움은 지금보다 더해지리라는 것이다.46) 45) 정준표(1997), p.159. 46) 이 같은 상황에 대해서는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가 이미 많은 예를 제공하고 있다. 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는 이들 남미국가에서는 이념 지향적이고 당 규율이 강한 정당들이 발전되었으며, 이들에 의해 구성된 의회가 대통령과의 견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말하자면 구조화된 다당제와 대통령제가 결합되어
90
제3세션 - 한국형 조정시장경제와 합의제 민주주의
결국 이 심각해진 제도 간의 부조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제를 의원내각제나 책임 내각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정당들 간에 형성될 것이다. 어느 정당이 대통령을 배출하든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구조화된 온건다당제는 대통령제보다는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와 결합할 때 정부의 수행능력 제고와 정치사회적 안정에 보다 유리한 제도가 된 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경험적 혹은 이론적으로 증명된 바 있다.47) 유럽의 합의제 민주주의 국가들이 예외 없이 이러한 제도 결합을 택하고 있는 이유도 이러한 맥락에서일 것이다. 결국 최근에 다시 시작된 정치개혁 논의에는 ‘선(先)선거제도 개혁, 후(後)권력구조 전환’의 원칙 을 갖고 임하여야 할 것이다. 그 원칙에 입각하여 합의제민주주의로의 발전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다만,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전환을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로의 개혁과 한 패키지로 동 시에 추진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수용할 만한 개혁방안이 될 것이다.
있는 것이다. 혹자는 남미국가들에서의 이 결합을 최악의 결합으로 평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러한 결합구 조 하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행정부와 의회간의 풀기 어려운 교착 상태, 그리고 그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 과 사회경제적 비효율성의 만연 때문이다. Joe Foweraker, “Review Article: Institutional Design, Party Systems and Governability: Differentiating the Presidential Regimes of Latin America,"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vol.28 (1998) 참조. 47) 대표적 연구에는 Scott Mainwaring, “Presidentialism in Latin America: A review Essay,” Latin American Research Review, vol.25, no.1 (1989); Juan Linz, “The Perils of Presidentialism,” Journal of Democracy, vol.1, no.1 (1990); Juan Linz, “대통령제와 내각제: 과연 다른 것인가?,” 린쯔․ 바렌주엘라 저, 신명순․조정관 공역, 『내각제와 대통령제』 (서울: 나남출판, 1995); Arturo Valenzuel, “Latin America : Presidentialism in Crisis," Journal of Democracy, vol.4, no.4 (1993); Alfred Stepan and Cindy Skach, “대통령제와 내각제: 비교적 시각,” 린쯔․바렌주엘라 저, 신명순․조정관 공역, 『내각제와 대통령제』 (서울: 나남출판, 1995) 등이 있다.
91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제3세션 토론문 ]
토론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1. - 이 발표문의 주제는 한국의 정치체제, 경제 체제에 대한 개혁의 방향과 내용, 이행전략을 다루 고 있다.
2. - 개혁을 안내하는 철학 : 정치적 자유와 평등 그리고 사회적 자유와 평등을 진작시키는 진보적 자유주의 - 개혁의 방향과 내용 : 현재의 정치경제 체제(다수제 민주주의 + 자유시장경제)를 합의제민주주의 = 조정시장경제의 짝 으로 바꾸는 것 - 이행론 1) 先 정치체제 개혁 -> 後 경제체제 개혁 이고, 다시 정치체제 개혁은 1) 先 선거제도 개혁 -> 後 권력구조 전환 / 혹은 2)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전환과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로의 개혁을 패키지로 동시 추진하는 방안을 제시
3. - 정치의 우선성에 대한 필자의 의견에는 동의 - 민주주의의 두 패턴, 시장경제의 두 유형 사이의 우월성을 판단하는 문제 : 장점을 서로 달리 갖고 있기에 규범적이고 주관적 선호에 크게 영향 받는 측면 - 제도 중심 접근의 문제 : 행위자에 대한 제도의 사전구속적 효과 등 학술 연구의 영역에서 다룰 문제들 제외 - 본 토론에서는 선거제도와 정치체제의 문제에 대해서만 논의
4. - 일단 권력구조나 개혁보다는 선거제도와 정당체제 중심의 접근 : 동의
92
제3세션 - 한국형 조정시장경제와 합의제 민주주의
- 문제는 정당체제를 개혁하는 방법론으로서 선거제도의 제도 효과 평가 : 토론자의 입장은 온건한 제도주의자로서 비례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선거제도 개혁 찬성 그러한 선거제도 개혁의 결과 설령 대통령제와 “잘 안 맞는 결합(A difficult combination)” 효과 나타나더라도 그 상황에서 추가적 교정해 가자는 실험주의적 접근 내지 단계적 접근 동의 그러나 정당체제 재편에 대한 선거제도의 제도 효과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 - 사르토리의 견해에 귀 기울일 필요 : 선거제도의 효과성 중시 + 외생정당론 정부형태보다 선거제도의 중요성 강조, 그러나 동시에 제도의 점진적 효과로 인해 “대중정당체제로 변화한 나라의 예는 내가 아는 한 하나도 없다. 덜 구조화된 정당체제로부터 구조화된 정당체제로의 변화에는 언제나 외부로부터의 충격과 영향이 있 었기 때문” - 결국 선거제도를 바꿀 것이냐 정당을 바꿀 것이냐 : 당연히 결합해야, 하지만 병행적 실천의 초점에서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문제 경시되지는 않아야 한다는 입장 - 참여의 위기, 하층 배제의 정치를 특징으로 하는 지금의 정당체제를 바꿀 수 있는 외생적 충격 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 어떤 정당이 필요한지에 대한 토론도 광범하게 조직될 필요 있어.
93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제3세션 토론문]
‘한국형 합의제 조정시장경제와 합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토론 전민용 (건치신문 대표)
최근들어 보편적 복지국가, 진보적 자유주의, 사민주의 등 다양한 거대담론들이 활발하게 논의 되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보다 쉬운 용어와 평이한 서술로 시민 차원의 토론으로 확산되는 것도 필요하다. 발제자의 주장인 한국형 합의제 조정시장경제와 합의제 민주주의를 진보주의와 자유주의의 결 합이라는 관점에서 우리사회의 주요 대안으로 100% 공감하고 있다는 것과 대부분의 내용이 잘 정 리되어 있어 특별히 이견을 제시하기 어렵다는 것을 전제로 비판적인 토론을 전개하겠다.
발제자의 설명 방식대로 조정시장경제와 자유시장경제로 구별하는 것이 현재의 세계경제현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영국과 미국을 포함하여 이미 세계적으로 자유시장경제를 추 구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굳이 구분해서 조정시장경제가 우수하다는 것을 강조하려한다면 조정시 장경제와 시장만능경제라는 용어가 조금 더 정확할 것 같다. 시장만능주의를 벗어나 공정하고 자유 로운 시장이 되도록 조정하는 것이 조정시장경제의 핵심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장만능이냐 아니냐의 구별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신자유주의가 전개되고 작동되어 온 구체적 현상과 양극화, 승자독식, 무한경쟁 등 나타난 부작용들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그 대안 을 모색하는 것이다. 시장만능주의는 80년대 전후로 부시와 대처에 의해 공세적으로 추진된 초기 신자유주의의 특징이다. 현재까지 신자유주의의 교본이라고 할 만한 워싱턴컨센서스는 클린턴 정부 시절 케인즈주의 성향이 강한 민주당의 국제경제연구소에서 만든 것이다. 대자본과 보수주의의 강 력한 공세에 대해 위기에 빠진 케인즈주의의 자기 변신이라고도 볼 수 있다. 케인즈주의를 일종의 조정시장경제라고 볼 때 신자유주의를 자유시장이나 시장만능의 측면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협소한 시각이고 여러 형태로 나타난 신자유주의를 조정시장경제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이 대안 모색 에 더 필요할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계속 변신해 왔고 노동, 복지, 통화, 금융, 무역, 성장, 환경정책 등에서 나라마다 다양한 형태로 조정되어 나타났다. 또한 유럽과 영미가 다른 길을 걸었다기보다 시작은 영미가 먼 저였지만 영미형 신자유주의와 유럽형 신자유주의가 각국의 고유한 정치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수준과 정도의 차이를 가지고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합의형 조정시장경제’라는 이름으 로 대안적인 경제체제를 구상한다면 이미 파산선고를 받은 영미형 신자유주의는 물론이고 현존하 는 유럽형 경제체제를 따라가는 것만으로 될 수도 없다. 또한 언제까지 생산력주의라는 기조를 유
94
제3세션 - 한국형 조정시장경제와 합의제 민주주의
지할 수 있을지도 검토해야 한다. 발제자가 지적한대로 우리나라의 기존 생산레짐 등 구체적인 조 건과 상황에 맞게 길을 찾아가야 한다. 요약하면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고 승자에게는 적절한 수준의 보상을 하고 패자라 할지라도 치 명상 없이 다시 공정한 경쟁에 복귀할 수 있는 체계일 것이다. 물론 발제자의 제안대로 북유럽이 나 독일의 사례는 좋은 참고가 될 만하지만 북유럽형의 경우에도 노령화와 재정 문제 등은 아직도 해결이 불확실한 문제이다. 또한 경제의 세계화가 급속히 진전된 지금 일국 차원의 경제 체제 구상 만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나 새로운 국제 통화체계와 무역체계 등 확 대된 논의가 필요한 이유이다. 이런 점에서도 냉전적 적대적 대북관계는 당장의 현실경제에도 어려 움을 주지만 장기적 거시적 구상에 치명적인 태도이며 정치적 무능일 뿐이다.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 이후 각국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한계를 깨닫고 다양한 대안을 모색 중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민영화, 규제 완화, 감세,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노동 유연성 강화, 노조 약화정책, 대북적대정책, 사회복지시장화 등 시장만능주의정책을 거의 답습하고 특징적으로 4대강 사업등 국가경제적으로 보아도 해악만 큰 토건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이 기조를 바꾸지 않고는 ‘합 의형 조정시장경제’로의 길과는 계속 멀어질 뿐이다. 그런데 합의형 조정시장경제로 가려면 진보진 영 뿐 아니라 보수진영과도 말 그대로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현 정부 등 보수진영은 물론이고 국 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도 시장만능주의가 확대되어온 상황에서 어떻게 설득해서 합의의 가능성 을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하다. 특히 대기업과 보수진영을 설득할 방법은 무엇인가?
발제자가 제기한 우리나라에 적합한 합의형 조정시장경제가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라는 것에 대 해서 동의한다. 발제자가 제시한 몇가지 원칙 역시 잘 정리했다고 본다. 또한 우리나라 정치가 대 결과 배제의 정치가 아니라 합의형으로 가야한다는 것도 동의한다. 다만 사회합의주의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합의할 주체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묻고 싶 다. 우리나라는 낮은 노동자 조직율, 약화되고 있는 농민 조직, 조직화되기 어려운 비정규직의 급속 한 증가, 실직자나 취업준비자의 증가, 광범위한 자영업자, 열악한 시민사회조직 등 사회적 합의를 실질적으로 담당해 나갈 수 있는 주체의 형성이 미약하다. 그리고 이들을 대변하고 있는 형태의 정 당 조직조차 거의 없는 실정이다. 가장 대표적인 기업인 삼성은 아직도 전근대적인 무노조주의를 고수하고 있다(발제자는 삼성같 은 IT산업은 협력적 노사관계가 기업 입장에서 유리하다고 했지만). 대기업은 강하고 상대적으로 노조나 중소기업은 매우 취약하다. 그동안 대부분의 정부는 노조 약화정책을 취해왔고, 현 정부 들 어서는 아예 노골적으로 노조적대정책을 펴고 있다. 공론의 형성 과정에 필수적인 언론의 지형 역시 매우 열악하고 심지어 영향력 있는 언론이 편 파적이어서 건전한 공론의 형성을 거꾸로 가로막고 있기 까지 하다. 인터넷이나 트위터 등의 새로 운 매체가 정보와 의견의 유통과 공론의 형성에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으나 의견이 수렴되기보다
95
제1회 대안담론포럼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
양극단화 현상이 나타나는 등의 부작용도 같이 나타나고 있다.
합의주의라는 것은 목표로 하는 합의의 결과에 대한 어떤 상을 미리 가지고 있는 것도 필요하 고 그 결과도 중요하지만 합의의 경로와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가 더 중요하다. 우리 사회가 사회합의주의를 실현해나갈 준비가 되어있는지 어떻게 만들어 갈수 있는지 그 방안에 대해 더 깊은 논의와 실천이 필수적이다.
제도로서의 합의제 민주주의에 대해 공론화하고 설득력을 가지려면 이 제도가 이론적으로 좋다 는 설명만으로 부족하고 우리사회의 구체적인 문제의 해결(예를들면 지역주의, 정당 개혁, 소수정당 등)과 연계하여 설명해야 한다. 또한 제도 변화를 결정해 나갈 가장 중요한 집단인 정치권이 합의 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우리나라 정당들은 소수를 빼면 계급이나 계층에 기반하지 않고 인물이나 지역에 기반을 두고 발전해 왔다. 이런 조건에서 합의제 민주주의를 실현 할 수 있을까? 국민의 건전한 상식을 대변하는 합의제 민주주의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우리사회는 그동안 다수제 민주주의조차 제대로 작동된 적이 없다. 다수제 민주주의든 합의제 민주주의든 그 근간이 되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제대로 확립되지 못하고 있는 원인이 무엇인지 그 해결 방안은 무엇인지가 먼저 논의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의제 민주주의를 대안적인 해결책으로 제시하더라도 지금 당장은 현재의 제도인 다수제 민주 주의라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예컨대 필리버스터링 제도 도입 등)을 제시하고 다수 제 민주주의를 정착 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제대로 운영된다면 발제자의 판단처럼 다수제 민주주의를 승자독식 모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것을
제도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을까?
현 제도하에서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야 5당은 불완전 하지만 정책연합과 선거연합을 이루어 상 당한 성과를 만들어냈다. 여러 지역에서 지방공동정부 운영에 대한 논의와 실현에 착수하고 있다. 이에 대항하는 보수대연합이나 민주대연합, 진보대연합, 복지연합 등 다양한 연합 방안들이 나오고 있다. 이후 총선과 대선에서도 이런 기조가 유지되어 공동정부를 만들어 낸다면 제도로서는 아니지 만 내용상으로는 합의형 정치가 가능한 것으로 볼 수는 없을까?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상황에 비추어 볼 때 합의제민주주의는 구체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내용과 수준에서 너무 동떨어져있는 이상적인 논의는 아닌지? 현 정부 들어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 합의주의에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는 표현의 자유가 침해 당하고 있다. 미네르바 사건, 집회시위자 기소, 피디수첩 기소, 노조 전임자 대폭 축소, 전교조 마녀사냥 등 가시적인 방법과 물밑작업을 통해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할 비판적 시민사회, 노동조
96
제3세션 - 한국형 조정시장경제와 합의제 민주주의
합, 학계, 연구소, 국민 등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고 있다. 대북적대정책 역시 강화되고 있다. 각종 사건에서 드러나듯 검찰, 경찰, 국세청, 국정원 등 권력기구가 통치에 활용되고 있다. 방송사 장악 과 미디어법 등을 통해 편향적인 보수적 언론권력이 공고화되고 있다. 합의제 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갈 사회적 조건 형성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 황에서 합의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주체들이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가 묻고 싶다. 우선은 정부가 이번 지방선거의 패배 결과를 받아들여 국정 기조를 바꾸기를 고대한다.
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