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28
마음안녕
안산온마음센터 힐링아트북
01
250명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눈물과 한숨 그리고 미안함을 한 땀 한 땀 함께 쏟아 부어 가슴으로 만들었습니다. 세월호참사 피해자학생 250명 모두를 한 작품에 담고자 이 작품을 기획하였습니다. 먼저, 세월호참사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을 가운데에 넣고, 리본 안에는 12개의 별자리를 주변부에는 12개의 탄생화를 넣었습니다. 이로써 우리 250명의 학생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작품에 담길 수 있었습니다. 4.16공방의 엄마들이 약 두 달의 시간동안 바늘에 손이 찔리면서도 아픈 줄 모르고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밤낮없는 진상규명 활동으로 부족한 시간 속에서도 엄마들이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며 정성껏 만든 퀼트 작품을 가지고 여러분 곁으로 다가가고자 합니다. (4.16공방 엄마들의 퀼트 작품 이야기, ‘퀼트로 이야기를 잇다’ 발췌)
CONTENTS 04
4.16공방 기획전시회
06
국제심포지엄
08
모두 함께 떠나는 ‘진실여행’
12
치유와 희망을 노래하는 월례포럼
14
온마음 직원 인터뷰
l 늘 너희들과 함께, 175*175, 퀼트 4.16공방 공동작품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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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공방 기획전시회
‘저희가 작품을 통해서 우리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그리움을 손으로 잇다
좋겠습니다.’
또 이 세대를 살아갈 다음 세대를 위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알아가셨으면 - 김웅기 엄마, 작가 윤옥희
우리 아이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 줬으면 하는 마음, 우리 엄마들이 참사 이후에 어떻게 지내 왔는지 알려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7년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 해온 사람들과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담기로 했습니다. 전시를 보러 오신 모든 분께 저희의 진심이 닿기를 바랍니다. - 좋은날, 4.16공방 드림
‘여러분이 함께해 주신다면 저는 떨리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함께해 주신 여러분들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이 전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진실 규명을 위해서 7년이란 시간을 보냈지만 또 아주 오랜 시간을 또 함께 할지 모르겠어요. 7년의 시간, 또 7년 우리 함께 동행해 주세요. 여러분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 장애진 엄마, 작가 김순덕
16명의 엄마들이 기획부터 제작, 설치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한 4.16공방 기획전시회 ‘그리움을 손으로 잇다’가 12월 2일부터 5일까지 서울 강남 마롱197에서 진행되었습니다.
4.16공방은 세월호 가족들이 지치거나 힘들 때 모여 아이들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하고, 실컷 울기
도 하면서 서로 아픔을 나누던 공간입니다. 참사 직후 잠시라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다가 같이 모여 바느질을 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4.16공방 기획전시회 작품 더보기 ▶
아픔을 견디기 위해 뜨개질을 하고, 천을 잇고, 매듭을 지었습니다. 그렇게 7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전문가가 되어 못 만드는 것 없이 잘 만들기도 하고 지역사회에 나가 재능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과 소통해왔던 4.16공방 엄마들이 이번에는 전시기획자이자 작가 가 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하였습니다. 지금부터 16명의 작가들이 하고 싶은 말과 그 메시지가 담긴 작품들을 함께 만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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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심포지엄
Tedeschi 교수가 제시한 외상 후 성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5가지 방법은 이렇습니다.
재난 피해자의 경험과 외상(트라우마) 후 성장
첫째, 외상이 나와 계속적으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수용하라.
둘째, 건설적인 사고, 즉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려는 사고체계를 갖추어라. 셋째,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재건하고, 연대로 발전시켜라.
‘생존자의 관점에서 외상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외상경험이후, 변화와 변혁(급격하게 바꾸어 아주 달라지게 함)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Richard G. Tedeschi
Boulder Crest Institute(외상 후 성장 연구소)의 명예의장
넷째,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에 따라 실행하면서 전진하라.
다섯째, 사명감을 갖고, 이에 맞는 일관적 삶의 태도를 구축하라. 그가 제시한 방법들은 ‘미래지향적’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외상은 계속 나와 함께할 수 있기 때문에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하지만, 외상 자체에 빠져들어 걱정하기 보다는 앞으로의 나의 인생을 새롭게 그려 나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는 지금 어떻게 하고 싶지?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을 싫어했지?’ 와 같은 내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보고 소중한 나를 위해 좋은 책, 밝은 노래, 좋은사람들로 마음을 채우면서 말이에요. 그러다보면 나도 외상 후 성장하지 않을까요?
안산온마음센터에서는 2년 만의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하여, 국내 및 해외 전문가들과 함께 ‘재난
피해자의 경험과 외상 후 성장’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국제심포지엄의 핵
심 연자이자 Boulder Crest Institute(외상 후 성장 연구소)의 명예의장 Tedeschi 교수는 우리가
흔히 트라우마 라고 부르는 외상을 겪는 사람도 긍정적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외상은 사람이 적응하고, 세상을 이해하고, 문제적 상황에 직면할 수 있도록 합니다. 따라서 외상 상황은 개인적인 변화에 있어서 매우 뜻깊은 전환점이 됩니다.’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재난을 겪고 나면 작은 일에도 쉽게 놀라고 불안해지며,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믿음이 저하됩니다. 결국에는 외출 자체를 꺼리게 되고, 다니던 직장 을 잃게 되면서 생계의 위협을 겪게 됩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나의 상태를 직면하고, 외상 반응에 적응하며, 외상을 삶의 전환점 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06
국제심포지엄 다시보기 ▶ 07
모두 함께 떠나는 ‘진실여행’ 시민과 함께 노란리본 만들기
노란리본을 가방에 달고 등교하는 학생들, 달리는 자동차 뒷 창문에 붙어있는 노란리본 스티커, 반듯한 옷깃에 노란리본 뱃지를 다신 어르신
이처럼 우리 삶의 곳곳에서 노란리본을 만날 때면 세월호 가족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작은 노란리본이지만 저희에게는 어떻게 그렇게 잘 보이는지 몰라요’ ‘문득문득 마주칠 때마다 큰 위로가 되고, 정말 고맙습니다.’
‘다시금 힘을 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노란리본이 갖는 의미가 ‘기억’을 넘어서,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나와 나의 가족 그리고 우리 ‘모두를 지키는 길’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 시작을 함께 해보시면 어떨까요?
모두가 함께하는 진실여행은 그동안 개별로 진행해왔던 세월호 가족들의 합창단, 극단, 공방,
북콘서트 등의 활동을 한데 모아 시민들에게 ‘직접 찾아가서’ 진행한 캠페인입니다. 세월호 가족
들은 10월부터 12월까지 3달간 대구와 의정부, 수원, 군포, 제주도 등 전국 각지를 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여러 활동 중 가장 참석자 수가 많았던 것은 ‘시민과 함께 노란리본 만들기’ 이었는데요, 단순히 노란리본 만들기를 넘어서 세월호 가족과 시민들의 마음을 리본처럼 연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구에서 정말 오랜만에 개최된 안심마을축제에 참여한 마을 주민들이 함께했고, 의정부에서는
진상규명이 되어지길 바랄게요 #기억할게요 #노란리본의기적 #진실여행
친환경과 유기농을 지향하는 시민단체 아이쿱 의정부지부에서가 함께해주셨습니다. 어린아이
부터 어르신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노란리본 만들기를 함께하면서 서로에게 귀 기울이고, 대화를 나누면서 따뜻한 노란 빛깔을 마음속에 품었습니다.
무사생환을 바랄 때 사용되어 왔던 인식리본인 노란리본은 2014년 4월 16일 이후 세월호참사의 상징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노란리본의 의미를 긴 시간 지켜올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이분들 덕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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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함께 떠나는 ‘진실여행’ 다큐 <당신의 사월>와 함께하는 이야기마당
2014년 4월 16일. 여느 때와 다름없었을 수요일 아침 9시.
출근길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날씨를 알리는 라디오 소리, 찌개 끓는 소리와 커피 내리는 냄새. 그날 그 시간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안산온마음센터에서는 모두가 함께 떠나는 진실여행의 일환으로 다큐멘터리 ‘당신의 사월’ 상영
및 간담회를 진행하였습니다. ‘당신의 사월’은 세월호참사가 일어난 사월과 그 이후에 일반시민들 은 무엇을 하고 있었고, 느꼈는지를 담고 있습니다.
참사 당일 아침, 라디오 소리가 점점 커지고 여기저기서 심상치 않은 소식이 들려옵니다. 뉴스를
찾아보고 놀란 당신은 지켜봐야만 하는 무기력함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수많은 기사와 오보에 피로감도 느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없는 것 같아
결국엔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7년이 지난 지금, 당신은 어떤가요, 왠지 모를 불편함이 남아있진 않으신가요? 우리가 세월호 가족들에 대한 비난에 침묵하는 이유는 무뎌진 것도 있겠지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일부 단체들처럼 비상식적 행동을 한 건 아니지만,
다른 사건과의 우위를 판단하며 지겹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기에 무언가 복잡 한 마음이 들었겠지요.
당신도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쳤을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가방과 가슴에 노란리본을 달고 추위 를 이겨내며 함께 걸었을 수도 있고, 화면을 보며 마음속으로 동참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때의 노란리본은 아직 잘 있나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다시금 큰 결심을 해야만 할 것 같지만 어쩌면, 그 때의 리본을 다시금 꺼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4월 16일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다가올 사월에는 당신이 조금은 평안해지기를 소망합니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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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와 희망을 노래하는 월례포럼 외상 후 성장_상처가 상처를 끌어안을 때
‘지금까지 나를 행복하게 해줄 거라 믿었던 모든 것들이 젤리의 다른 이름이었어요. 그 젤리들은 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었어요. 그제야 행복이 어떤 것인 줄 알게 됐어요.’
한동안 행복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어요. 불행이 서슬 퍼렇게 너무 선명하다 보니 행복도 어느 날
유리창을 깨고 안방으로 밀어닥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행복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었어요. 행복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죽거나 다치거나 아프지 않은 상태입니다. 오늘 아침에 현관문
을 열고 나간 가족들이 전부 무사히 돌아오는 그날 저녁, 같이 잠드는 밤 그런 날 하루하루가 행복한 상태였어요.
‘슬프지 않았던 모든 날들이 행복한 날들이었어요.’ ‘사회적 참사를 사전에 완벽히 예방하긴 힘들어요. 하지만, 사고가 난 뒤에는 피해자들과 유가족들 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요. 피해자와 유가족이 오랜시간 고통을 호소하고 애도를 표현 한다고 해도 여유 있는 시선으로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26년간 아팠고 지금도 아파요.’
안산온마음센터에서는 올해의 마지막 월례포럼의 강연자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생존자 ‘이선민’ 님(필명 산만언니)을 초청하였습니다. 재난의 피해자들이 만나 서로의 외상과 그 후 성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상처를 끌어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원고는 현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해 드리기 위해, 이선민님의 강연 중 하셨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보았습니다.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조금 기다려주고, 관심 가져주시고, 옆에서 계셔주셨으면 좋겠어요. 가족들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거는 ‘잊지 않았어요, 함께하고 있어요.’ 이거거든요. 저희는 이것만큼 감사한 일이 없는 거거든요.
2021년 12월 3일, ‘외상 후 성장_상처가 상처를 끌어안을 때’ 강연 중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건 기적이었어요. 그리고 그 일 때문에 지금까지도 불안장애로 약을 먹고
있어요. 1, 2초 사이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었고, 사고 후에는 생애 모든 일이 사소해 보였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이런 일은 왜 할까? 저축은 왜 하지? 대학은 왜 가나? 불안전한 세상에서 결혼, 아이라니?’ 사는 재미를 완벽히 잃어버렸어요.
행복을 알기 위해 해외여행, 명품 쇼핑, 운동 등 여러 가지를 시도해봤어요. 하지만 재밌지도 행복 하지도 않았습니다. 지속 가능한 행복감은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어느 겨울날 보일러가 꺼진 놀이방 구석에 아이 하나가 웅크리고 있었어요. ‘나: 아가, 이모가 젤리 줄게 올라가자. 아기: 아냐, 젤리 아냐.
나: 이모가 뭐 줄까? 뭐 주면 올라갈래? 아기: (눈물이 맺힌 눈을 들어 올리며) 안아줘.’ 그때 그 아이를 안고 엄청 울었어요.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12
치유와 희망을 노래하는 월례포럼 다시보기 ▶ 13
온마음 직원 인터뷰
Q 일하면서 힘들었던 것이 있었다면 어떤 것일까요?
‘우리의 7년 이야기’
선생님 한 분이 격일로 번갈아가며 출근했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선별검사를 했었던 때와는
보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슬픔의 정도를 수치화 한 것을 본 적이 있는 데, 사람이 제일 견디기
A 14년도 안산합동분향소에 가족들을 위한 컨테이너가 있었고, 그 옆에 작은 텐트로 저와 다른
또 다른 울음소리를 계속해서 들었는데요, 자녀가 없지만 자녀를 잃은 슬픔에 대해 생각해 힘든 슬픔이 자녀의 사망이었습니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니 더욱 와닿았습니다.
Q 7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이 일을 지속해올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면요?
A 옛날부터 학교 다닐 때 힘들었던 친구들 옆에 있어줬었어요. 따돌림을 당하거나 외적인 분위기
로 놀림을 받는 사람이 있으면 지켜주고 싶은 심리가 있었습니다(그 친구들이 생일파티를
저도 긴 시간을 근무할지 몰랐지만, 정권이 교체되어도 세월호 가족들의 심리적/신체적
Q 성함과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안산온마음센터 근무 7년차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오OO입니다. Q 첫 직장으로 온마음센터를 선택하신 계기가 있으셨나요?
A 제가 다니던 교회에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4명이 있었는데요, 2014년 4월 16일 참사 당일에
전원구조 라는 오보를 보고는 안심했었습니다. 허나, 4일 후 일요일에 목사님께 학생들 중 3명
학생 때부터 안산에서 쭉 살아온 내가 안산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다가 경기도
이 연락이 안 된다는 소식을 듣고는 정말 머리가 띵했습니다. 남 일이 아니구나 싶었죠. 초등
하면 저 혼자 가기도 했어요). 이런 부분이 세월호가족들에게 투영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어려움이 여전히 진행 중이어 이직을 할 수 없었습니다.
Q 세월호참사를 겪은 우리 사회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요?
A 모두가 기억하고 있는 세월호 사건입니다. 사건이 발생하고 7년이 지나 세상은 변했으나 변하
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유가족분들은 힘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다양한 환경
라고 생각합니다. 따스함을 발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라며 이만 말을 줄입니다...
에서 다양한 사연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분들에게 언젠가는 따뜻한 봄바람이 마음에 깃들 것이
안산시 통합 재난심리지원단 자원봉사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봉사활동 중 센터가 개소 했고, 입사원서를 내어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운명 같기도 하네요.
Q 참사 초기부터 일을 해오셨는데 그 당시의 분위기와 어떤 일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일단 센터가 개소했다고 해서 모든 환경이 갖춰진 것이 아니었어요. 다른 기관의 프로그램실
에서 직원 40명이 컴퓨터 6대를 가지고 일을 했습니다. 다들 출근하면 분향소와 장례식장,
초과근무가 잦아 체력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책임감이 막중했고 직원들 간의 의리가 끈끈
참사 현장 등으로 출장을 갔다가 오후에 돌아와서 내용을 돌아가면서 입력했죠. 그러다 보니 했기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 당시 맡은 업무로는 안산에 있는 장례식장과 공공기관에 간이심리상담소를 설치하고 찾아 오신 분들의 심리선별검사를 진행했습니다. 제가 입사 전 했던 역할인 자원봉사자를 모집 및
관리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때는 매일매일 실적과 업무를 보고하고 관계부처회의가 있던 시절 이라 회의 준비와 자료정리도 많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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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당곡로33 프라움시티 2층 207
16 T. 031-411-1541 F. 031-411-1546 E. ansantraum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