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안녕
Vol. 29
안산온마음센터 힐링아트북
하늘에서 내리쬐는 빛처럼 또는 햇살처럼
속절없이 흘러만 가는 시간에 어둠과 같은
빛나는 아이들은 우리에게 내려와 주었다.
망각을 당연시하지 않고 저항하는 것.
반짝이는 아이들을 탐을 내고만 외로웠던 밤하늘은 아이들을 데려가
지성을 가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이 되었다.
불편하다고 덮고 마음 아프다고 덮으면
현재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한
해결되는 사건은 없다.
가족들의 걸음은 마치 어둠 속을 걷는
시간이 지날수록 흔적과 기억이 사라져
듯하다.
진실 또한 같이 사라질 뿐이다.
그러나 어둠을 밝혀주는 별인 아이들이
전시를 통해 우리 곁에서 어둠을 밝혀주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 여전히 힘을 잃지
아이들을 또 한번 기억하고 기록하는
않고 우리는 앞으로 굳건히 나아간다.
전시이다.
세월호 참사 기억프로젝트8.0 ‘빛처럼내려와’ 전시회 팜플렛 발췌
CONTENTS 04
2014년 4월 16일 어느 여행길
06
고통의 곁
08
그날을 쓰다(부제, 한 사람)
12
차마 알지 못했던 이야기
14
온마음 직원 인터뷰_두 번째 이야기
l 우리 잊지 말아요, 04.16 114*84cm, 2018 남해정 작가/ 4.16 기억전시관 소장작품
2014년 4월 16일 어느 여행길 2022년 4월 16일 4시 16분, 안산시 전역에 사이렌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저마다의 설렘을
남들의 불행을 저울질하며 이정도면 되었다 판가름하는 것이 얼마나 안일하고 오만한 행동인지.
8년 전 그날, 누군가는 생계를 위한 일터로, 누군가는 잊지 못할 추억을 위해. 또 누군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란리본은 어디서든 눈에 띄고, 가족들은 노래와 연극, 바느질과 목공예,
품었던 476명을 304명의 희생자와 172명의 생존자로 나눈 세월호참사를 추모하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기 위해 가던 중이었겠지요.
그 큰 배에 승선하던 순간에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내가 사라지거나, 사랑하는 이들을 하염없이 그리워만 하게 될 줄을요. 여행은 준비하는 순간부터 설렘만 가득해도 부족하니까요.
어쩌면 세상이 그렇게 해야만 살아갈 수 있게끔 너무도 팍팍해 진 것은 아닌지 서글퍼집니다. 심지어는 다른 참사의 피해자들을 돕는 봉사활동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세월호참사 8주기. 모든 것이 빨리 잊히는 세상에서 이들을 기억하며 사는 건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이제는 문득 마주하는 참사에 대한 내 생각을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당신의 여행은 무탈하기를 바랍니다.
떠난 자는 말이 없고, 살아남은 자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자책합니다.
‘내가 좀 더 힘이 셋 더 라면, 조금만 더 꽉 잡았더라면 어땠을까. 함께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어떤 날은 꿈도 꿉니다. 내가 손을 놓친 아이가 되어 나를 바라보는 꿈. 얼굴만 알던 같은 반 아이였지만 그 날 이후로는 그 얼굴을 얼마나 되뇌었는지 모릅니다.
꿈은 뭐였을까, 뭘 좋아하던 아이였을까 하고요. - SBS 16.02.28방영 [졸업 - 학교를 떠날 수 없는 아이들]
이런 와중에 누군가는 보상과 처우를
운운하며 비교 하고, 또 누군가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다툼의 소재를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어쩌다 이렇게 되어야만 했을까요.
05
고통의 곁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는 그 곁을 지키는 사람과, 새로이 곁을 내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고통을 겪는 이에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고통의 곁에 또 다른 곁이 있을 때 우리는 기약 없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채정호교수님께서 2015년부터 진행해 오신 세월호참사 피해자 코흐트 연구에서는 세월호참사
피해자들이 심리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어려움도 겪고 있음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우울과 불안 수치도 높지만,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게 나타났고, 난소낭종과 대장용종 등의 질환이
있기도 했습니다. 연구 결과에서 수치상으로 아픔의 증거가 드러났지만, 가족들은 아직도 본인들의
-포럼 내용 중에서
고통이 세월호참사로 인한 것임을 스스로 입증해야만 합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대구 코로나사태 때 봉사활동을 다녀오신 홍영미님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제가 대구로 내려가겠다고 하니 주변에서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 왜 내려가서
봉사를 하느냐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받은
4월 월례포럼
일종의 혜택에(국민여러분들의 관심과 응원에)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홍영미님
다시보기
뿐만 아니라 다른 세월호참사 가족들 또한 봉사동아리를 만들어 안산시 일대의 정화활동을 하고, 동해산불 피해지역에 가서 구호활동을 돕고 있습니다.
개인은 자기가 살기 위해 잊음을 선택할 수 있지만, 공동체는 살아가기 위해 기억을 선택해야 한다. (슬이는 돌아올거래_김하은 외 7인, 문학동네, 2020)
이 모든 활동의 목적은 바로 함께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사회적 재난과 참사가 나를 피해갔을
뿐이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재난현장에서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곁을 내어줄 수 있는 ‘그냥 사람’이 필요할 뿐입니다.
비록 끝나지 않은 이 고통이 재난과 참사로 인한 것임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지만, 힘들 때 곁을
내어준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다른 고통을 겪는 누군가의 곁이 되어주기 위해 오늘도 나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언젠가 그들을 마주했을 때 따뜻한 한마디 건네 보면 어떨까요?
혹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땐 그저 “괜찮니?”하고 물으며 손을 잡아주는 것으로도
지난 4월, 안산온마음센터에서는 세월호참사 8주기를 맞이하여 정신건강의학과 채정호교수님과
충분하겠습니다.
진행하였습니다.
“괜찮니?”
단원고 2-8 이재욱학생 어머니 홍영미님과 함께 ‘아픔의 증거와 고통의 곁’을 주제로 포럼을
06
‘그냥 사람’으로서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서 물어봐 주세요.
07
그날을 쓰다 부제, 한 사람 삶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지만 한 사람이 중요하다. 세월호 유가족이 내내 강조하듯이, 해경이든 선원이든, 한 사람만 선내로 들어가서, 가만 있지 말고 빨리 다 나오라고 했다면, 304명이나 목숨을 잃진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 살아서 탈출했을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아침엔 그 한 사람이 없었다. - 김탁환 장편소설 ‘거짓말이다’ 중에서
4.16기억저장소 구술증언팀이 펴낸 총 100권의 <4.16구술증언록: 그날을 말하다> 구술집에 담긴 세월호참사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시금 붓글씨로 써낸 ‘그날을 쓰다’ 손글씨전의 작품을 옮겨봅니다.
우리 엄마 고생한다고 지가 커서 다 해준다고 속삭였어요. 맨날 귀에다 왕다이아반지 끼워준다고 그랬어요. 진짜로 그랬어요. 그 생각이 떠오르더라구요, 바닷가에 혼자 앉아있는데.
제 2의 세월호참사가 또 일어날 수 있겠구나. 왜 구조를 안했고, 아무것도 안했는지, 아이들이 그 일을 겪었어야 했는지, 그걸 우리는 밝혀주고 싶은 거예요.
- 다혜엄마 김인숙
- 경빈엄마 전인숙 08
느닷없이 이 녀석이 확 껴안는 거야, 그러면서 아빠 사랑해요 이러더라고. 나도 그냥 의미 없이 그래 나도 사랑해 그랬지. 그게 마지막이야 마지막.
- 호성아빠 신창식
하루는 핸드폰 음악을 틀어놓고 나오는 거에요, 형아는 그 때 핸드폰이 폴더였고, 지는 스마트폰이었던 거야. 그런데 형아가 노래를 들은걸 자꾸 검색했대요. 지 핸드폰으로. 하루는 보니까 형아가 검색한 노래가 나오더래. 그걸 핸드폰으로 틀어주고 나오는 거예요. 형아 들으라고. 형아가 좋아 하는 곡들이니까 형아가 들으라고. 09
- 준우엄마 장순복
도언아 엄마가 너를 위해서 10년 후에 전원주택을 지어 줄게, 너만을 위한거야. 오빠도 아니고 너만을 위한거야. 여기는 너만 와서 살 수 있고 그리고 네가 결혼해서 네 자식들이 살 수 있는 집을 엄마가 만들어줄게. 앞에 개울이 흐르고 뒤에 산이 있고. 그랬더니 도언이가 하는 말이 그 냇가에서 엄마랑 발 담그고 물장구치고 고기도 잡고 우리 좋아하는 채소 길러서 엄마아빠랑 고기도 구워먹고 하자 그러더라구요. - 도언엄마 이지성
얼마나 엄마 찾으면서 그랬을 텐데 나 편하자고 내 새끼를 안 볼 수는 없었어요.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 상준엄마 강지은
- 윤희아빠 진광영
2014년 4월 16일 아침, 수많은 방관자만이 존재했을 뿐 단 한
사람이 없었기에 벌어진 세월호참사. 그날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음에 만났을 때 엄마가 이유는 말해주마. 엄마는 똑똑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처럼 뭐가 뭔지는 모르지만, 내가 다음에 죽어서 너를 만나러 갔을 때 왜 그랬는지는 시원하게 말해줄 수 있지 않겠냐.
기억해주니까 제일 위안이 돼요. 그냥 눈앞에서 계속 죽어가는 거를 기다려야 했고 아무것도 내가 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때 그게 가장 힘든 것 같아요. 내가 뭔가를 할 수 없을 때가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잊혀 진다는 게 제일 두렵고.
- 휘범엄마 신점자
- 성호엄마 엄소영 10
하고 얼마나 바랐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기에 더욱이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왜 구하지 않았는지, 왜 추모 활동이 정치적 중립에 방해가 되는지 말입니다.
나에게 ‘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면..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11
‘그날을 쓰다’ 보러 가기
차마 알지 못했던 이야기 약간 쿵 소리가 나면서 갑자기 배가 기울었어요. 배가 확 기울다 보니까 배 한쪽이 붕 떠서 선생님 한 분이 배 밖으로 떨어지시는 것을 봤고, 저는 머리를 다쳐서 그 때 기억이 잠깐 없고, 눈을 뜨니까 선생님은 안 계셨고, 일반인 분 중 한명이
세월호참사에서 살아 돌아온 이후 ‘누군가를 구하는 일’을 하기 위해 응급구조사로 일하고 있는 생존 학생이 친구들을 생각하며 쓴 편지의 일부를 옮겨봅니다.
가만히 있으면 다 죽는다며 저희를 밟고 바다로 뛰어내리셨어요. 얼마나 큰 사고인지 그 때는 인지를 못하고 있었어요. 왜냐면 그 상황에 저는 휴대폰이 되고 있었어서 어선에 있을 때 휴대폰으로 전원구조라는 뉴스를 봤거든요. 그 기사를 보고 나서 지금은 희생자가 된 친구인데 저한테 카톡이 왔었어요.
의 편지’ 中 기 기억식, ‘약속 세월호참사 8주
안녕 얘들아, 꽃을 보면 너무 아름다워 바라보다가도 너희 생각이나.
‘OO아 너 어디야?’ ‘나 배’ ‘나도 배인데?’ ‘ 아니 나 나가는 배야, 너도 곧 나올 거야
나는 너희에게 고 마웠던 일이 많았는데.. 그때 표현을 다하지 못 해서 그게 맘 에 걸려 항상 고마웠어.. 내가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는데.. 나 잘해내고 있는 것 같아?
전원구조라는데?’ 이러고 그 친구랑 연락이 끊겼어요.
근데 그 오보를 제가 먼저 확인하지 않았으면, 그 때 친구한테 그냥 빨리 나오라고 했으면
면 나왔더라 . 께 함 해 희가 생각을 만약 너 는 하 의 한 어른 습일까 나 성숙 어떤 모 어 . 벗 모습을 궁금하다 청 엄 학생의 ? 지 쩔 되어있겠 거는 어 모습이 그리운 도 나 . 지 매년이 보고 싶어 . . 많이 네 없 수가 여러 사람의 죽음을 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지 않은 죽음은 접할 때 단 한 번도 슬프 죽은 환자의 없더라, 표현은 안했지만 때 부모님들의 모습이 보호자가 우는 모습을 볼 . 얼마나 슬플까.. 겹쳐 보여. 많이 힘들더라
혹시 나오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하면서 제가 뭐 하나라도 바꿀 수 있었던 게 있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고 누구 탓을 해야 할지 몰라서
저를 많이 자책했던 것 같아요. - MBC 21.04.16방영 [열여덟의 기억, 스물다섯의 약속]
부모님들 많이 지치고 힘들 거야 꿈에 나와서 한 번 껴안아주고 가 고생하셨다고… 그리고 내 꿈에도 나와서 잘하고 있다고 인사 한 번 해주고가 많이 보고 싶어….
‘전원구조’. 이 오보는 두 학생뿐만 아니라, 그 날 그 뉴스를 접한 다수의 사람들에게 평생의
죄책감을 갖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2014년 4월 16일로부터 8년하고도 더 긴 세월이 지났습니다.
꽃다운 열여덟에 돌아올 수 없는 긴 여행을 떠난 아이들도 있고, 몸은 어엿한 스물여섯 성인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 때에 멈추어 있는 청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동생 혹은 형, 언니를 떠나보낸 형제자매들도 있습니다.
과연 우리 어른들은, 어른으로서 이 아이들을 위한 책무를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12
8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해나가야 할 일은 많습니다. 그 몫은 우리 어른들의 것이니 아이들은 스스로의 인생을 더 나답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13
Q
온마음 직원 인터뷰 - 두 번째 이야기
일을 시작할 때에는 ‘내가 열심히 해서 이분들에게 도움을 줘야지’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존의 정신건강
매뉴얼 즉, 정신장애나 중독, 자살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틀로는 이분들을 보듬을 순 없다고
‘나와 온마음의 8년’ Q
느꼈거든요. 이분들은 사회적 재난으로 인해 자녀를 잃어 비탄에 빠져있는 분들이고, 그 고통은 감히 이세상의 어떤 슬픔과도 비교할 수 없으니까요. 그 순간부터 이분들의 삶은 근본적으로
그리고 송두리째 바뀐 거나 마찬가지인데, ‘치유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라’ 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성함과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무식한 소리이지 않을까요.
또, 이분들을 치료하고 변화시키려고 했던 시도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안산온마음센터 근무 8년차
이분들에게 치료는 정말 죽을 만큼 힘들 때 그 잠깐의 도움을 받기 위한 수단이었어요. 애초에
정신건강임상심리사 김00입니다.
Q
이런 분들에게 단계적 치료나, 의료적 기준을 들이밀며 온마음센터가 전문성이 없다고 말하는 분들을 보면 간혹, 헛웃음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특이한 이력이 있으시다고요?
지금은 세월호가족들의 일상과 삶을 총체적으로 받아들여서 ‘함께 걸어간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분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서라도 새로운 전망으로 재난심리지원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와 수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본래 학부 전공이 수학이고, 졸업 후에 수학학원 강사를 했어요. 하지만 학원은 학교가 끝난
후 시작 되잖아요. 저녁시간에 아이들을 돌볼 수 없어서 고민이 되었고 또 나이가 들어서도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일을 찾고도 싶었어요. 그러던 차에 2000년도 초반에 심리학 붐이 일었고, 상담
쪽으로 관심이 있었던 터라 심리학과 대학원을 들어갔어요. 졸업 후, 정신건강전문요원 수련을 이수하여 정신건강임상심리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Q
출퇴근을 하고 있거든요. 이를 가능케 한 가장 큰 이유는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8년 동안 약
온마음센터에 입사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250가정의 가족구성 원 전체와 입체적으로 함께하면서 만나온 거잖아요. 이건 제 개인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재난심리지원 영역이나 학계에도 보기 드문 경험이자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하루가 쌓여 여기까지 왔네요.
하다가, 직원 채용 공고에 지원했습니다. 직전 회 차 소식지에서 인터뷰를 한 오00선생님과 같이
면접을 봤어요. 그 때 급박한 상황이라 다음날부터 출근해달라고 해서 오00선생님은 일요일부터 출근했고, 저는 월요일부터 출근 했습니다. 그 분과 저는 입사일 하루 차이 동기랍니다.
8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이 일을 지속해올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면요? 제가 이렇게 오래 근무할 수 있을지 몰랐어요. 집이 서울이라, 지금도 왕복 4시간 걸리는
세월호참사 직후 서울시재난심리지원단의 재난심리전문가로 파견되어 유가족 만나는 활동을
Q
일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이나 변한 가치관이 있으신가요?
Q
세월호참사를 겪은 우리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참사 초기부터 일을 해오셨는데 그 당시의 분위기와 어떤 일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자녀를 잃는다는 것은 정말 상상할 수 없는 힘든 아픔이자 절망적인 고통 입니다. 몇 초만 생각 해봐도 알 수 있는
저는 매일 임시천막으로 만들어진 분향소로 출퇴근을 했습니다. 커다란 크기의 하얀 천막이
일인데, 그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주는 분위기는 삭막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해서 외부인은 말을 붙이기도 어려웠습니다. 저 또한
세월호유가족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처음부터 환영받은 건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니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 때 제가
말할 때 매우 안타깝습니다.
유가족인 줄 알았다는 분도 있으셨고, 모르는 부모님을 가리키며 “저 부모님은 몇 반이냐?”고
오히려 제게 물어보시기도 하셨습니다. 제 딸들은 저를 극강의 E(외향형)라고 말해요. 낯가림이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깊은 고통을
없는 편이라 사람들을 처음 만날 때 긴장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 편인데요. 참사 초기에 일을 할
겪는 분들에게 아무 말이나 안 했으면
때 그런 장점이 잘 발휘된 것 같습니다.
14
좋겠습니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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