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018 the 6th edition (g9 g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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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 Pacific International School

2017-2018 I know what it is to be in need, and I kno w what it is to have plenty. I have learned the secret of being content in any and every situation, whether well fed or hungry, whether living in plenty or in want. 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 Philippians 4: 12-13


VOLUME 6 OF THE APIS KOREAN LANGUAGE ARTS PROGRAM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WAS PUBLISHED BY THE KOREAN LANGUAGE ART CLASS WITH TH E HELP OF MANY STUDENTS, T EACHERS, AND STAFF MEMBERS IN SEOUL. SOUTH KOREA, IN THE YEAR 2017


2017-2018 Artistic Achievement Award and Dedication to the APIS Community as Artist for the Korean Magazine Cover Design Contest

Grade 9 Eric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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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2018 Artistic Achievement Award and Dedication to the APIS Community as Artist for the Korean Magazine Cover Design Contest

Grade 10 Anna Fran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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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광고 포스터 Grade 9 송재민 Jack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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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Cover Design Contest / G9 박은세 • 1 Cover Design Contest / G9 권애나 • 2 공익광고 포스터 / G9 송재민 • 3

시작하는 글 학생대표 인사말 / G12 최진이 • 10 내 마음 속 살아있는 대한민국 / Class of 2015 오승주 • 14

2017-2018 APIS Korean Language Arts Program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너무 당연하지만, 부끄러운 말 / G9 권예지 • 22 소중한 선물 / G9 권진희 • 23 나의 오우가 (五友歌) / G9 김정민 • 24 흔한 일상 / G9 이정진 • 25 씨앗 / G9 김덕호 • 27 봄에게 기회를 / G9 박은세 • 29 다가오는 봄 / G9 김동준 • 31 풀 / G9 곽리안 • 33 봄 / G9 정재희 • 35 호랑이 / G9 정강인 • 37 너만을 기다리며 / G10 김수아 • 39 일단 살아간다 / G10 장재원 • 40 아름다운 할머니, 왜 이렇게 빨리 가셨어요? / G10 조성우 • 41 내가 크면 나중에 / G10 이현지 • 42 비 오는 날 / G10 김윤지 •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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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 G10 박정연 • 45 꽃 / G10 이관미 • 46 나의 0.2mm 샤프 / G9 윤지나 • 48 나의 특별한 삶 / G9 왕지원 • 50 지갑과의 인연에서 얻은 교훈 / G9 박상우 • 53 생명을 살리는 절약 / G9 송재민 • 55 살기 좋은 지구를, 위하여 / G9 김규리 • 57 도리만천하( 桃李滿天下) / G10 임 해 • 59 나의 DS 이야기 / G10 김상인 • 60 자랑스러운 나 / G10 박준하 • 61 나는 인생이 지겹다 / G10 최현욱 • 63 나의 A+ 인생 / G10 홍성재 • 65 김건, 그는 누구인가 / G10 김 건 • 67 꿈의 부재는 별의 존재 이유다 / G10 오형근 • 69 회색의 나, 빨간색의 나 / G10 심서린 • 71 분홍 자전거 / G10 배지원 • 73 거울에 보이는 나 / G10 김조셉 • 75 나의 소중한 추억 / G10 이나현 • 78 나의 펜싱일기 / G10 윤병우 • 81 재필이에게 쓰는 편지 / G10 이재우 • 85 나를 되돌아보며 / G10 이성준 • 88 고등학생 황수윤 / G10 황수윤 • 90 버드나무 밑에서 / G10 이지용 • 96 자연 단상 / G10 오승민 • 99 모두를 생각하며 / G10 이채윤 • 102 주인공에게 쓰는 편지 / G10 권애나 • 104 ‘ 친구의 벽’을 읽고 / G10 황연준 • 106 사람들의 여행이야기 / G10 강재원 • 110 인터넷에 관하여 / G10 서윤영 • 112 힙합이란 무엇인가 / G10 이진균 •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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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문학은 이렇게 감상하는 거야 / G9 김재인 • 118 나사 빠진 시계추 / G9 오수진 • 125 경찰관 / G9 김호제 • 133 심청전 패러디 / G10 하대호 • 138

2016-2017 백일장 수상작 그래도 한 가지 / 김재민 • 144 붉은 인동꽃 / 조하은 • 149 그러므로 저는 지구온난화 문제에 주목하여 자연친화적 기술 개발에 투자하여야 한다고 발의합니다 / 윤수빈 • 153 한 마디의 거리 / 김애린 • 155 상봉 / 김수아 • 156 나만 몰랐던 이야기 / 신유진 • 158 용서를 강요하는 시대 / 유민서 • 160 용서 / 김윤진 • 162 싸움의 결말 / 강재원 • 166 삐에로 / 정예준 • 168 눈이 다시 녹고 / 정승현 • 169 나에 대한 용서 / 최린 • 172 나도 완벽하지 않기에 / 최창용 • 180 미워할 수 없는 당신 / 정영덕 • 183 용서 / 후지모토 미유 •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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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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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신선한 페인트 냄새를 기억한다 . 나는 11년 전 APIS가 처음 설립되었을 때부터 학교와 함께 한 창립 멤버 중 하나이다. 그때 부터 학교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 지금의 초록색 축구장은 모래로 가득했고 , 체육관이 생기기 전에는 지금의 지하 밴드룸에서 체육을 배 웠었다 . 트로피도 , 사진도 하나 없던 복도는 하얀색과 초록색 페인트 만 칠해져 있었다 . 상으로 꽉 채워지기 만을 기다리는 벽처럼 , 크게 성장할 준비를 하고 있는 학생들처럼 , APIS는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 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텅 빈 캔버스였다. 오래된 역사가 있는 학교의 좋은 점은 이미 형성된 문화와 전통 이 마치 올림픽 성화의 횃불이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듯 위에서 아래로 자연스럽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 그러나 나에게는 역사를 새롭게 만들 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 APIS 에서는 우리들이 직접 그 횃불 을 만들어야 했다. 이 도전은 지금의 나를 형성했고 그렇게 APIS에서 보낸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학생회 (SRC)의 일원으로서 나는 APIS 에 더욱 더 의미있는 영향 을 미칠 수 있었다 . SRC 멤버들과 함께 나는 학생들을 위한 즐거운 이벤트들을 만들며 학교의 고유한 정신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 우리들만의 전통을 만들 어낸다는 것은 모든 학생의 노력을 필요로 했다 . 처음에는 SRC 가 준 비한 10개의 아이디어 중 1개도 성공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수많은 시 행착오 끝에 우리는 조금씩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기 시작했다. SRC가 성장하면서 나 또한 성장했다. 우리는 학교의 마스코트를 직접 제작해 보기도 했고, 카니발 때 선생님들께 파이를 던지며 웃을 수 있는 연례 행사도 만들었다 . 항상 참석자가 부족했던 프롬의 출석률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 농구 게임의 열기를 더하기 위해 조금은 어색 하지만 마스코트 복장으로 춤을 추기도 했고, 학생들의 목소리에 항상 귀기울여주고 힘을 실어주는 학교 덕분에 교복 정책도 바꿀 수 있었 다. 이 모든 것은 APIS 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내 학창 시절이 의미있을 수 있도록 함께 해 주신 선생님 , 후 배, 선배 , 그리고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APIS는 나에게 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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륭한 교육을 제공해 준 학교이자 나의 두 번째 집이다. 2017-2018 전교회장으로서, 그리고 APIS의 시니어로서 마지막 까지 내가 받았던 사랑에 대해 모두에게 보답하고 싶다 . 또 , 우리 사 랑하는 농구, 축구 팀 멤버들에게 정말 고맙다. 함께 피와 땀 , 눈물을 흘려줘서 고맙고 , 졸업하고 나서도 함께 만나서 지금처럼 운동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오케스트라 멤버들도 화합에 대해 가르쳐줘서 고맙 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에게 여러 가지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특히 올 해도 멋진 한국어 문집을 발간해 주시는 한국어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자기 가방만했던 꼬마 아이가 이제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여고 생으로 성장하였고 , APIS 또한 함께 성장하였다 . 앞으로도 이 곳 APIS에서 수많은 인재들이 많은 것을 배우고 함께 성장해 가기를 기 대한다.

아시아퍼시픽국제외국인학교 고등학교 학생회장 12 학년 최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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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still remember the overpowering smell of fresh paint. I was one of the first class of students to walk t hrough the doors of APIS, eleven years ago. A lot has changed since then. In the beginning, the soccer field had no grass. The band practiced in a basement, which also served as o ur gym. The hallways had no pictures or trophies, just a thick coat of white and green paint. Much like it s walls, much like its students, APIS was a blank canvas, full of potential. Although it would have been nice to attend a school with a longstanding culture and traditio n, where school spirit is passed down like a torch from class to class, I am grateful for my time at APIS. At APIS, we had to make our o wn torches out of what we had. It was a challenge that shaped me. Student Council was a chance to influence APIS in a more meaningful way. With my teammates, I wo rked to make events mo re affo rdable and fun, creating school spirit out of a vacuum. Of course, creating our own traditions was not easy. For every ten ideas we tried, only one would stick. Amid the many failures, though, we started to achieve some modest victories. Ho w many students get the chance to create their own mascot or a yearly event where pies are auctio ned off to be t hrown at popular teachers' faces? ‘Prompo sals’ increased prom attendance. A neon green hawk cost ume that we sometimes had to wear and our awk ward but effective dance

moves

energized

our

basketball

cro wds.

We

also

changed rules, like our uniform policy, and succeeded: skirt s are no longer mandatory fo r girls. Things may not have been this dynamic at a 100-year-old instit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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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sincerely

graduated

thank

my

upperclassmen,

and

teachers, fellow

underclassmen,

Class

of

2018

for

making my time at APIS meaningful. Beyond giving me an outstanding education, APIS served as a second home to me. As t he 2017-2018 Student Council President, I wish to repay the love and kindness I received from o ur APIS community by making this school year anot her awesome o ne to be remembered. I also want to t hank my basketball, soccer, and orchestra teammates for the intimate bonds we built through our tears and sweat. The sports and music department of APIS has truly imbued me with the spirit of teamwork and harmony. Last but not least, I want to thank our foreign language and Korean teachers for giving me the oppo rtunity to gain a greater insight into diverse culture. I especially express my gratitude to the t hree wo nderful Korean teachers for publishing yet anot her great collection of our Korean literary work created by our student s. As the girl who was barely bigger than her backpack matured into a young woman, APIS grew as well. And with no doubt, I am certain that APIS will continue to progress to help foster global leaders for t he years to come.

Jinny Choi High School President Asia Pacific International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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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umni Special> 2017년 자원병역이행자 군생활 체험수기 공모전 최우수상작

내 마음 속 살아있는 대한민국 대한민국 수도군단 작전참모처 작전계획과 상병 Class of 2015 오승주 Brian Oh “너는 도대체 군대 왜 왔냐?” 입영을 한 그날부터 일병 4 호봉이 된 지금까지 거의 한달에 한 번 꼴로 선후임들과 심지어는 간부님들께 수도 없이 듣고 있는 말이 다 .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글쎄 ,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사실 왜 군대에 오기로 결정을 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21 살 여름 다시 수험생이 되어 어학병 시험준비를 한 것도 , 잘 다니고 있던 학교에 휴학계를 내고 한국에 다시 들어온 것도, 안 가는 게 좋 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조언에도 굳이 입영신청을 한 것은 딱히 이유라 고 할 것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병역이행이란 대한민국 군민으로서 나를 키워준 나라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말을 하기에 나는 아직 철이 덜 들었고 , 이런 말을 내 입으로 한다는 것조차도 나에겐 아직 낯 부끄러운 일이다. 영주권 을 취득하기까지 남들보다 고생을 덜 했고, 또 매우 최근에 취득한 것 이기 때문에 나는 미국인이라기보다는 미국에서 산 경험이 조금 있는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대한민국의 젊은 남자라면 누구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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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을 해 봤을 것이다 . 청소년기 , 아니면 유소년기부터 어떻게든 군대에 오는 것을 피하려고 온갖 방법을 구상 해 봤다는 걸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다 알것이다. 내가 그런 마 음을 갖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왜 나는 주변 친구들처럼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는지 부모님께 어리석은 원망을 했었다 . 그러나 , 정작 우연치 않게 나에게 선택권이 주어지니 나는 입영을 택했다. 후회해 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나는 입영한 날부 터 매일매일 후회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 근무가 고된 작전병 업무와 작전 상황 근무를 한 달에 열 번씩 하다 보니 잠시 바람 쐬러 나갈 때 떠오르는 해를 보며 울 뻔 한 적도 있다. 동전의 양면이 있듯이 기 분이 안 좋을 때도 있었다면 기분이 좋은 적도 있었다. 입영을 하고 많은 일이 있었지만 제일 뿌듯했던 기억을 꼽으라 면 선임들과 같이 범계역 주변으로 외출을 나갔을 때의 일이다 . 식사 후 횡단보도를 건너려 하던 우리에게 어느 노인분이 말을 걸었다. “군인 아저씨, 우리 손자가 할 말이 있대요.” 그 할머님 뒤를 보니 예닐곱 살 먹은 듯한 꼬마 아이가 서 있었 다. 그 아이는 내 손을 잡더니 “ 삼촌 , 나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 다.” 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 귀여운 꼬마를 보자 나의 어릴 적 모습이 생각 났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남양주 보 건소 관사에서 살던 때였다 . 그곳에서 아버지는 공중보건의로 병역을 이행하셨으며 근무가 끝나자 예비군 육군 대위로 편성되셨다 . 그 후 , 우리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가 근무하시던 병원과 가까운 서울시 노원 구 공릉동으로 이사를 갔다 . 우리집 20km 이내엔 육군사관학교가 있 었고 ,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군인을 대하는 게 익숙했다. 생도들과 간 부들 , 그곳에서 근무했던 병사들과 대위 군복을 입으시고 예비군 훈련 에 참가하시는 아버지를 통해 ‘ 군대'는 당연히 가야 하는 곳' 이라는 인 식이 나의 머릿속에 들어가 있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내가 그곳에 살던 시절에 임관을 하신 분은 벌써 대위, 소령급 간부가 되셨거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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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전역을 하신지 오래일 것 같다. 유치원 시절 위문편지를 썼던 군인 아저씨들이 어느새 형들이 되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내 친구들이 어느 새 군인이 되어 있었다 . 나에게 군대란 이렇게 먼 미래가 아닌 바로 코앞에 다가온 인생의 위기이자 기회였다. 어학병 시험을 위해서 여름 내내 준비를 한 후 국방어학원이 있 는 장호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나는 내 자신에게 ‘ 이렇게까지 해서 군 대를 가야하나?’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그때도 명확한 답을 내리진 못 했다. 아마도 나는 군대에 대한 나의 본능적인 이끌림에 대한 답을 찾 으러 이곳에 왔는지도 모르겠다 . 내가 좋아하던 콜라 , 휴대폰 그리고 옷가지까지 다 빼앗기고 나서야 나는 모든 것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 내 것이라고는 양말 한 짝도 용납되지 않던 훈련소에 서 일상의 소중함을 배웠고 , 지휘 통제실에서 뜬 눈으로 지낸 밤들은 내가 인생에서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해답을 내리는 시간이 되었다. 난생 처음 내 필요에 의해 공부를 시작하고 일 기를 쓰기 시작했다. 부대 내에서 나는 많은 것들을 갈망하였지만 그 중 가장 원하고 그리워한 것은 바로 ‘ 창작의 기쁨’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영상 제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입영 전까지도 TV영화학을 전공하고 인 디 뮤지션들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며 나의 꿈을 좇고 있었다. 음악을 만드는 것이 취미였으며 원래 입영을 한다면 정훈병이 되고 싶었다. 허나 대학 선배들의 권유로 영어를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어학병에 도전을 하게 되었지만 기대와는 달리 나는 영상도 , 영어도 작업할 기회가 흔치 않은 작전병이 되었다 . 처음에는 좌절과 절망에 빠져 업무 인수를 받고 하루하루를 우울하게 보냈다. 그러나 지금 생 각해 보니 이런 제한들이 나의 꿈을 더욱 키워 주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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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 한두 줄로 시작한 글들이 소설로, 또 영화 시나리오로 커 나가고 있었다 . 창작에 대한 갈증은 첫 휴가를 나갔을 때도 작업실에 앉아서 밤새 녹음을 하게 만들었다. 군대에서 얻는 건 사람밖에 없다고 누군가 나에게 말해 준 적이 있다 . 나에게 이 말은 추상적인 명언들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선임들이 전역을 하던 날이면 짧은 기간동 안 그들과 너무나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시간이 빨 리 지나가길 바랐지만 그들이 떠나는 것은 처음에는 너무나 슬펐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끝맺음이 있다는 옛 말도 있듯이 이런 지 나간 시간들은 나에게 왜 군필자들이 군대에 대한 추억을 끊임없이 늘 어놓게 되는지 알게 해 주었다. 원래도 미래 걱정이 많은 나였지만 시 간이 날 때마다 아까운 시간을 쪼개 윤곽이 뚜렷한 인생 설계를 시작 했고 나보다 먼저 인생을 경험한 영관급 간부님들과 근무를 하고 이야 기를 나누며 앞으로 나의 20년은 어떨지 상상을 해 보았다. 이런 기회 가 흔하지 않다는 건 친구들의 군 생활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충 알 수 있었다 . 그렇기에 나는 간부님들을 단순히 상관으로 보지 않고 인생 선배 또는 스승님처럼 모실 수 있었다. 그 결과 간부님들 사이에서 나는 업무 상 실수가 많아도 같이 근무하기에 재미있는 병사가 되었고 몇몇 분들은 내가 전투복을 입고 있지 않아도 마주치면 내 경례를 받아주고 웃으면서 안부를 물어 주셨 다. 정말 신기하게도 군대에 대해 알아가는 기쁨이 나에게 너무나도 크다. 군 구조에 대해 인트라넷을 통해 배우고 , 각 사단 및 군단 , 사 령부들의 위치 , 역사, 기능과 부대 마크에 대해 배우는 것도 나의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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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중 하나가 되었으며 심지어 휴가를 나가서도 인터넷을 통해 군대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거나 정보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내가 생각해도 말 이 안 되는 일인 것 같은데 이런 군대에 대한 나의 애증 관계는 내가 살아가는 동안 계속 될 것 같다. 군단장님의 연혁을 보다 문득 32 사단장으로 근무하셨다는 걸 읽 고 32 사단의 홈페이지에 홀린 듯이 이끌려 역대 지휘관들을 찾아 보 았다 . 그곳에서 나는 뜻밖의 반가운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버지 의 이모부이자 27대 사단장이었던 분을 사진으로 볼 수 있었다 . 근무 를 마치고 생활관으로 돌아가 나는 할머님께 전화를 드렸고 근무 취침 도 포기하고 그 분이 어떤 분인지 여쭈어 보았다. 자신의 근무병과 운 전병을 ‘아들 '이라 부르셨다던 이모할아버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군대에 온 이유 중 하나를 알 수 있었다. 할머니 손에서 자란 나는 무 엇보다도 정에 약한 사람이었다. ‘정' 이라는 개념은 내가 유학을 하면 서 느끼지 못한 것들 중 하나였다. 나는 그것에 이끌려 군에 온 것일 수도 있다. 본인의 병사에게 불이익이 생기면 누구보다 병사를 챙기고 대신 싸워주셨던 전 지휘 통제반장님은 군대란 조직의 진정한 멋을 느 끼게 해 주셨다. 영주권 연장 관련 문제로 많은 고민을 하고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고되고 힘든 근무의 고충을 진심으로 이해해 주시고 많 은 도움을 주셨던 본부대장님은 내가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 버티 게 해준 원동력이 되었다. 난 내 자신이 멋지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서 ‘ 남자다움' 과 ‘멋짐' 에 대한 동경이 크다 . 훈련소에서부터 만난 모든 군인 개개인이 멋있 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 이상쯤은 있다. 훈련소에서 나에게 군 생활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 해 주었던 선임 , 많은 도움이 필요할 때 내 곁에서 하나하나 가르쳐 주었던 내 맞선임까지 내 군생활의 기초를 다져준 선임들이 있었기에 나는 군 생활을 잘 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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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믿고 좋아하기 어려운 내 자신을 따라와 주는 후임들도 있 기에 하루하루가 보람차다 . 내가 쓴 글을 읽고 나니 마치 군 생활이 끝난 사람인 것 같지만 사실 내가 여태껏 지내온 것에 비해 앞으로 남 은 군생활은 멀고도 험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내가 왜 군대에 오기로 한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명쾌하게 못 내린 것 같다. 다만 , 이 짧은 기간 동안 내가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지, 또 그 기간동안 어떤 것을 얻었는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이제 대충은 실마리를 잡기 시작했으니 더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으며 나는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입영한 날부터 전역하는 그날까 지의 시간에 대한 보상이나 해답을 바라고 있지도 , 기대하고 있지도 않다. 그저 떠내려가듯이 나아가다 언젠가는 내가 나라에 희생하고 있 는 이 청춘이 보람됨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을 것이 다. 내가 지키고 있는 이 나라에는 과거의 나,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 의 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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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2018 APIS Korean Language Arts Program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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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당연하지만, 부끄러운 말 Grade 9 권예지 Joy Kwon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말이다 빈말로 말할 때에는 쉽게 나오지만, 진심을 담았을 때에는 부끄러운 말이다 자주 쓰지만, 계속 아끼게 되는 말이다 입 안에서 떠돌아다니지만, 속으로는 잘만 생각하지만, 결코 내뱉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머릿속에서 말할까 말까 몇 번을 고민하지만, 용기를 낼까 말까 내적갈등을 하지만, 결국에는 말하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한다 너무 당연하지만 부끄러운 말, 고맙습니다 , 미안합니다 ,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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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선물 Grade 9 권진희 Jin Hee Kwon 용서는 소중한 선물 용서는 굉장한 능력 용서는 깨진 관계를 고칠 수 있고 용서하는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들어 주고 용서는 하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의 미움 , 분노 , 그리고 미안함을 사그라들게 해 주어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화가 식는데 걸리는 시간 상처가 아무는데 걸리는 시간 내 아픔과 슬픔이 사그라드는데 걸리는 시간 때로는 기다림이 필요한 시간 이미 일어난 과거의 일은 바꿀 수 없듯 이미 지나갔고, 엎질러져 버린 일 이젠 손을 내밀어서 바로 잡아야 한다 시작해야 한다 용서가 우리에게 행복을 데려오진 않지만 용서는 행복의 첫 걸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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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우가(五友歌) - 윤선도 ‘오우가’ 패러디

Grade 9 김정민 Brian Kim 내 친구 도대체 몇인가 세어보니 다이아와 책 있고 연필, 컴퓨터, 게임 있네 두어라 , 이 다섯 친구에 더해서 무엇 하리 여기저기 미네랄 잘도 부서지네 내 친구 다이아는 부서지지 않는다네 단단하고 강직한 것 다이아뿐이더라 언제나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책 신기하고 좋은 얘기 많이 들어 있다네 공부하고 싶을 때 책이 날 도와주네 매일매일 끄적끄적 사용하는 내 연필 좋은 얘기 쓰고 싶을 때 나를 늘 도와주네 힘들고 괴로울 때 맘의 위안 된다네 세계의 여기저기 보여주는 컴퓨터 자리에 앉아서도 어디든지 볼 수 있네 궁금한 게 많을 때 나에게 알려주네 내 인생을 신나게 만들어 주는 게임 경쟁 속에서 재미를 찾게 하네 스트레스 괴로울 때 내 인생 새롭게 하네 다섯 친구 덕분에 내 인생 행복하네 다이아와 책, 연필 , 컴퓨터와 게임으로 한 평생을 행복하게 다 같이 지내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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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일상 Grade 9 이정진 Jinny Lee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가족들은 학원 끝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는 엄마가 해준 저녁밥을 먹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 같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 과일을 먹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라디오는 가끔씩 찾아오는 대화의 빈 공간을 채워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마법같이 똑같은 일상에 녹아든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바보 같은 농담을 하나 둘 주고받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박한 얘기를 나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낌없이 주는 부모님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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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다름없이 자신과 함께 해주는 가족에게 고마워한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어쩌면 여느 때와 다르게 나는 감사함을 느낀다 평범한 하루를 채워주는 가족이라는 존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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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Grade 9 김덕호 Daniel Kim 나는 아스팔트 아래 있는 씨앗 두드려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 빨리 피고 싶지만 손잡이 없는 문은 열리지 않는다 봄, 여름 , 가을, 그리고 겨울이 지나도 끊임없이 두드린다 두드리고 두드린다 그제서야 열리는 한 조각 빛 드디어, 나에게도 봄이 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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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d I am a seed under asphalt I am knocking However the door was closed Wanted to bloom But door without handle wasn’t opening Spring, Summer, Fall, and Winter past Endlessly knocking Knocking and K nocking Finally a piece of light Spring is finally here for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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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게 기회를 Grade 9 박은세 Eric Park 가을은 꽃을 피워보고 여름은 눈을 내려 보아라 겨울은 따뜻함을 어디다 감췄니? 봄은 수확의 시기가 되어 보는 게 좋겠구나 기다리면 될 것을 왜 이렇게 성격이 급할까 모든 계절은 때가 되면 빛이 나는 법인데 언젠간 차분히 기다림을 가지고 자연스런 너를 받아들일 날이 오기를 지금은 눈앞에 있는 봄에게 기회를 줘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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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hance to Spring Bloom the flowers Autumn, make it snow Summer Where did yo u hide your warmth Winter? You should be the time of harvesting, Spring Why is it that everyo ne is in such a hurry without patience? Every season will shine when it’s time comes Hoping the day will come Where your natural self will get accepted Why not give Spring a chance? The one that is lying in fro nt of our f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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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봄 Grade 9 김동준 Tom Kim 저기 어딘가에서 봄이 느긋이 걸어온다 모두가 기다리는 봄이 온다 지난 세월 모두 잊고 봄만을 바라본다 한 번만 더 일어서면 봄이 온다 사람들을 따뜻하게 껴안아 볼을 맞대며 봄을 맞이한다 우리의 불타오르는 마음과 함께 꺾인 다리 딛고 일어선다 하나가 되어 그리움을 덮는다 마침내 우리는 봄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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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ing is coming There comes spring from somewhere The spring that everyone expects to come Forget all t he past years and look only at t he spring If we stand up once, spring will come People are hugging each other warmly Loving and celebrating spring Let’s stand up with our burning heart Become one and cover the longing Finally we are celebrating sp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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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Grade 9 곽리안 Rian Kwak 뿌리에서 겨우 버티는 풀 서서히 힘을 잃어서 그 푸른색이 이제는 힘없는 선홍빛 핏빛으로 변한 풀 아무리 애를 써도 뿌리 저 끝에서 떨어질 운명인 풀 분하고 억울한 풀 그러나 풀의 죽음은 새로운 생명의 시작 그 작은 씨앗이 품은 우주의 가능성 풀은 미소를 짓고 마음 편히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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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f Barely holding on the branch Slowly losing his strength The bright green colour Is no losing its brightness Even tho ugh he tries He was destined to fall The leaf suffers unfairness However one’s end Is a start of a new life Seeing infinite possibility From the seed With a smile The leaf died peacefu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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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Grade 9 정재희 Ryan Chung 봄이 오는 순간 꽃의 불타오르는 기운이 살아난다 그 아름다운 꽃은 뭣도 모르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며 시린 날이 오는지도 모르고 다른 꽃들처럼 설쳐대다 추운 겨울이 오는 순간 꽃의 기운은 무엇처럼 시들어 아름다웠던 꽃은 춥고 강한 바람에 견디지 못하고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지친다 시린 날이 오더라도 꽃은 무엇보다 더 꿋꿋하다 아무리 강한 바람이 불어도 너무나도 힘들어도 꽃은 끝까지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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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ing As soon as the spring comes The flower shines more t han often Beautiful flower knows nothing about it The flower mo ves by the pattern The flower doesn’t kno w t hat it will be cold The flower shows off As soon as the winter comes Flower got darker and darker Beautiful flower Cannot stand still because of the wind Flower gets tired than others Even tho ugh it is cold Flower is strong enough Even the wind blo ws Even tho ugh t he flower is tired Flower stays st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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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Grade 9 정강인 Bryan Jung 눈 덮인 언덕 아래 고개를 들고 언 땅을 밀어 올릴 때 닭이 울어 흐느끼는 호랑이 저 멀리서 들리는 새끼 호랑이의 신음 끝없는 바다 건너 느껴지는 몸부림 저 산 뒤에 널려있을 어미의 피눈물 천리 밖에서도 콧등을 찌르는 피비린내 한 발짝 움직이려 하자 다리를 꼭꼭 묶은 쇠사슬 가죽 겹겹이 따라 내려오는 절규 숨 쉬지도 못하고 천천히 죽을 날만을 기다리지만 저 멀리 누군가 들을 것을 믿고 호랑이는 마지막까지 깊은 포효를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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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er Under t he valley co vered in snow Breaking t hrough the snow, is a life Even before the chicken wakes up Alone, a tiger solemnly mourns A dist ant sound of a baby tiger wailing An endless struggle to break free The blood of t he mother beyond the mountain The sickening smell attacks my no se A chain that prevents it from mo ving A blood rolling down the leg of the tiger A breath trapped inside Awaiting for the clock to run out Still hoping it will be heard The tiger let s o ut on last ro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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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을 기다리며 Grade 10 김수아 Joshua Kim 나는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너 네가 오기만을 기대하는 나 그래도 너는 내 곁으로 오지 않는다 추운 겨울이 지나가면 꽁꽁 얼은 내 마음도 언젠가는 녹겠지 때가 되면 나도 내 새로운 삶도 꽁꽁 얼은 내 마음도 언젠가는 녹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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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살아간다 Grade 10 장재원 Justin Jang 단순하게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순한 삶은 평화가 조금이라도 보인다는 것이다 선과 악은 늘 싸우지만 진실은 둘 다 사람의 행동이라는 것이다 선택만 다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날짜가 있다 늙으면서 뇌 기능도 준다 이렇게 글 쓰는 것도 힘들어질 것이다 그러면 점점 싸움의 진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단순한 인생이 보인다는 것이 사람의 고통이라는 것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다 우리 자신 안에 있는 평화를 믿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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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할머니, 왜 이렇게 빨리 가셨어요? Grade 10 조성우 Louis Cho 아주 대단한 우리 할머니 아기였을 때 기저귀 갈아 주시고 나와 많이 놀아주시고 아주 대단한 우리 할머니 뱀같이 긴 기차 장난감을 많이 사 주시고 국도 많이 끓여 주시고 아주 대단한 우리 할머니 경의중앙선 전철을 많이 태워 주시고 항상 종착역까지 함께 타시고 과일도 많이 사오고 아주 대단한 우리 할머니 시원한 메밀국수 4인분 시켜 주시고 나에게 3인분 주시고 할머니는 1인분만 드시고 아주 대단한 우리 할머니 나에게 일본어도 가르쳐 주시고 한국어 공부도 가르쳐 주시고 심지어 영어도 조금 하시고 아주 대단한 우리 할머니 키 크고 무궁화 꽃처럼 아름다운 할머니 사랑하는 할머니를 더 이상 보지 못하네 하늘 무너지듯 내 마음도 무너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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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크면 나중에 Grade 10 이현지 Irene Lee 내가 크면 나중에 엄마한테 안 울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5살 때 내가 크면 나중에 아빠한테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했습니다 9살 때 내가 크면 나중에 엄마한테 학원에 아무 말 없이 가겠다고 했습니다 12 살 때 내가 크면 나중에 동생한테 과자 안 뺏어 먹겠다고 했습니다 13 살 때 내가 크면 나중에 부모님한테 주말에만 놀고 공부하겠다고 했습니다 15 살 때 내가 크면 나중에 가족들에게 돈 많이 벌어서 호강시켜 준다고 했습니다 17 살 때 나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오늘도 합니다 가족들은 지킬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믿어 줍니다 이번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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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Grade 10 김윤지 Ella Kim 부슬부슬 내리는 빗소리 너로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좋다 평소 같은 날에는 쳐다보지도 않을 우산을 챙기고 나가는 것조차도 좋다 톡톡톡 내려온 물방울들이 신발로 , 얇은 양말 속 자리 찾는 그런 느낌마저 좋다 오후 수업, 음악을 들으며 보는 창문 밖 햇살 가득 들어오는 바깥 풍경보다, 까무룩 올라오는 구름 안개와 얽힌 풍경이 보기 좋다 쉬는 시간 복도를 뛰어다니던 아이들 솔솔 잠 오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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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던 시멘트 색깔도 맑고 새롭게 만드는 너 나는 비 오는 날 네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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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Grade 10 박정연 Clara Park 한결같이 그분을 바라본다 그분은 매일 나를 따스하게 바라본다 나의 모든 것을 그는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 날 그분이 오시지 않았다 나의 의미, 힘이 없어졌다 하루 종일 어두컴컴한 하늘을 등지고 그분이 떠나가신 산 뒤꼍을 바라본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그분은 오시질 않았다 거친 비를 감당하는 나의 몸은 지친다 쓰러져가는 나의 몸 치밀어오는 나의 화 당신은 나를 두고 왜 떠났을까 나는 너밖에 없었는데 쏟아지는 비 길어지는 장마 나의 뿌리는 하늘로 솟구친다 이렇게 가는 걸까 마침내 그분이 오셨다 뿌리마저 땅에 널부러져도 나는 어김없이 그분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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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Grade 10 이관미 Li Guan-Mei Timson 죽지 않는 꽃이 심겨 있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람에 움직입니다 그들은 관심을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울었습니다 꽃은 매년 늘어납니다 그래서 지금은 더 많은 꽃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 꽃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꽃은 화난 잡초로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파괴했습니다 그들이 받아야만 했던 관심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잡초는 마을에 갔습니다 하지만 마을은 그들을 무시했습니다 한 소녀가 잡초를 집어 들었습니다 잡초는 그 소녀를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것은 꽃으로 바뀌었습니다 소녀가 너무 놀라 친구들에게 꽃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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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er Undying flowers that were planted Were not recognized Even tho ugh t hey lived Forever They swayed in the moonlight Trying to capture attentio n But were never successful And sobbed The morphed every year Making more and more flowers But still Were not recognized They changed to a angry weed Eating all in it’s path Because from the lack of attention They were suppose to have They met with a village That ignored them Until one day A girl picked up the weed The weed looked up It changed into a flower The girl gasped And showed the flowers to her 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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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0.2mm 샤프 Grade 9 윤지나 Jeana Yoon 지금부터 제가 사용하고 있는 0.2mm 샤프에 대해서 이야기하 겠습니다. 저는 중1때까지 0.3mm 샤프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0.5mm는 너무 두껍고 0.2mm는 너무 얇아서 저한테는 0.3mm이 딱 맞았습니 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단짝친구에게 생일선물로 0.2mm 샤프를 받 았습니다 . 일본에서는 선물을 받았을 때 그 물건을 기쁘게 사용하는 것이 예의라서 저는 0.2mm 샤프를 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샤프 를 쓰기 시작하자마자 샤프심이 바로 부러져서 짜증이 났습니다. 하지 만 쓰면 쓸수록 0.2mm가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일본어를 쓸 때 글자가 많이 작아집니다. 그래서 0.2mm 샤프를 쓰면 글자가 뭉개지지 않고 예쁘게 쓸 수 있어서 좋습니다. 두 꺼운 샤프심으로 한자를

쓰면 글자가 뭉개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0.2mm 샤프를 사용하니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원래 샤프는 샤프심을 촉 밖으로 조금 꺼내서 써야 하기 때문에 부러지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 그런데 요즘에는 샤프심을 촉 밖으로 굳이 꺼내지 않아도 글씨를 잘 쓸 수 있게 만들어진 샤프가 있어서 부 러질 일도 거의 없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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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는 다른 사람에 비해서 손이 작습니다 . 0.2mm 샤프 는 샤프 자체가 가늘고 손으로 잡는 부분도 얇아서 잡고 쓰기가 편합 니다. 처음에는 사용하기 불편했지만 지금은 0.2mm 샤프가 제일 마 음에 듭니다 . 앞으로 0.1mm 샤프가 나온다고 해도 저는 계속 0.2 mm 샤프를 사용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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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특별한 삶 Grade 9 왕지원 Jina Wang 나 , 왕지원은 아시아 퍼시픽 국제 외국인 학교에 다니는 16살 , 9학년 소녀이다 .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16살 여자아이지만 나는 다른 사람과 구별된 나만의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부터 내가 생각하는 나의 특별함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다. 왕지원 , 난 내 이름이 맘에 든다 . 특히 내 성 (姓 )이 마음에 든 다. 처음에는 어감이 좀 웃겨서 애들이 놀렸지만, 이제는 우리도 조금 성숙해져서 그런지 더 이상 놀리지 않는다 . 그리고 특이한 어감을 가 진 내 성이 나를 더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같다. 내 이니셜 J.W. 도 마 음에 든다. 나중에 내가 회사를 차린다면 J.W. 로 멋있게 이름을 짓고 싶다. 나는 우리 부모님의 딸이라는 것이 좋다 . 우리 아빠는 내가 쉬 는 날마다 여행을 데리고 가신다. 나를 위해 항상 여행 장소들을 예약 하시고 , 많은 경험을 얻게 하신다 . 우리 엄마는 항상 내가 힘들고 슬 플 때는 위로해 주시고 , 행복하거나 즐거울 때는 같이 즐거워해 주신 다.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언제나 큰 힘이 되어 주신다. 나는 3개 국어를 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여러 나라의 사람 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 언어는 새로운 사람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게 해 주는 좋은 도구이다. 앞으로 더 많은 언어를 배워서 더 많은 나라 를 편리하고 즐겁게 여행하고 싶다 . 나는 새로운 언어 배우기를 좋아 하는 내가 좋다. 물론 나 스스로 마음에 든다고 여기는 부분도 있지만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있고 그로 인해 겪고 있는 어려움도 있다 . 나는 새로운 사람과 사귀는 것을 두려워해서 ,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말이 좀 어눌 해지고 , 몸이 경직된다. 속으로는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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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자꾸만 잘못 나온다. 그래서 말해놓고 후회할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실수할까봐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 이러 한 두려움을 없애고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서 친하게 지내 고 싶다. 나는 고등학생이다. 지금부터의 성적이 대학 갈 때 반영이 된다 고 한다. 그동안은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지만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공 부해서 성적을 올리고 싶다 . 성적이 좋으면 내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 갈 수 있을 것이고, 내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면 내가 원하는 직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노력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서 살고 싶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나은 성적이 필요하다. 나는 눈이 나쁘다. 그래서 멀리 있는 글씨를 볼 때 눈을 가늘게 뜬다 . 안경을 써야 하는데 , 나는 안경을 쓰는 게 불편하다 . 요즘에는 노트북이나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는 일이 잦은데 그 래서 시력이 더욱 나빠지는 것 같다. 앞으로는 게임 하는 시간을 줄이 고 눈을 아껴야겠다. 나의 첫 번째 장래희 망은 의사이다. 아픈 사람들 을 고치고 치료해 주고 싶 다. 요즘 환경오염 때문에 더욱 병이 많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많은 사람들 이 이런저런 혹은 여러 가지 많은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모두 아프지 않고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치료받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절한 의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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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 번째 장래희망은 봉사자다 . TV를 통해 굶주리고 아픈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나는 그 사람들을 돕고 싶다. 더 이상 못 먹고 굶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들을 치료해 주고 보살펴 주고 싶다. 나는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이고 , 나 자신까지도 행복해질 수 있는 중요한 가치인지를 잘 안다. 나는 남을 도우며 더불 어 행복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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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과의 인연에서 얻은 교훈 Grade 9 박상우 Benjamin Park 저는 어렸을 때부터 물건에 대한 애착이 유달리 강했습니다. 하 지만 , 한 가지 물건에만 집착하고 잘 바꾸지 않았습니다. 지갑도 그런 물건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6살 때부터 13 살 때까 지 오직 하나의 지갑만 사용했습니다. 8년 동안 지폐, 잔돈, 교통카드, 그리고 동전을 대충 그 오래된 지갑에다가 집어넣고 제가 가는 모든 곳에 들고 다녔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지갑은 낡아져 헐어 갔습 니다 . 그러다가 결국 지갑에 구멍이 숭숭 뚫리게 되었고 동전들이 하 나 둘씩 빠져나와 잃어버리는 일이 생기곤 했습니다. 이것을 보신 어 머니께서는 지갑을 버리라고 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지 갑을 제 품에서 떼어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끝날 것 같지 않던 제 지갑과의 인연은 허무하게도 한 순간에 끝이 났습니다. 2014 년 어느 날, 학원에서 평소처럼 가방에 지 갑을 넣고 점심을 먹으러 나갔습니다. 하지만 돈이 모자라 다시 돌아 와 지갑을 찾았습니다. 이상하게도 분명히 가방에 넣어 두었던 지갑이 그 사이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 이렇게 저와 추억을 같이 나누었던 지 갑은 갑자기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새로운 지갑을 사지 않았습니다 . 지갑 안에 넣 어야 할 동전이며 지폐며 카드들을 아무렇게나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 고 다녔습니다. 이것을 보신 아버지께서는 제 14살 생일 선물로 새로 운 지갑을 사주셨습니다 . 선물을 좋아하던 저는 아빠가 생일 선물로 주신 박스를 보며 큰 기대를 했고 , 즐거운 마음으로 포장을 풀었습니 다 . 포장을 뜯자 제 눈앞에 나타난 것은 윤기가 좔좔 흐르는 새 가죽 지갑이었습니다 . 100% 가죽 태그는 제 눈을 곧장 사로잡았습니다. 그 러나 그런 고급스러운 지갑을 처음 갖게 된 것이라서 그 지갑을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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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이 저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이전 지갑과는 달리 막 다 루지도 못했고, 더러워질까봐 매일같이 닦았으며, 누가 가져가거나 잃 어버리지 않게 아예 지갑 전용 고리를 제 몸에 착용하고 다녔습니다. 처음 갖게 되는 고급 지갑은 매우 낯설었습니다. 가죽이 뻣뻣해 서 잘 접히지도 않았고 지갑 크기도 커서 주머니에도 안 들어갔습니 다 . 그러다 보니 옛날 지갑이 그리워졌습니다 . 낯선 물건을 잘 들고 다니지 않던 저는 어느새 새로운 지갑을 거의 들고 다니지 않게 되었 습니다 . 지갑은 제 책상구석에서 먼지를 먹으며 잊혀진 채 몇 달 동안 처박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엄마가 대청소를 하시다가 그 지갑을 찾았습니 다. 저는 선물로 받은 멀쩡한 지갑을 쓰지 않는다고 야단을 맞았고 그 날 이후로 그 지갑과 친해지기로 결심했습니다 . 학교 , 학원 , 어딘가를 갈 때마다 옛날 지갑을 가지고 다녔던 것처럼 매일같이 가지고 다녔습 니다 . 처음에는 낯설었던 지갑이 날이 갈수록 저와 한 몸이 된 것 같 아졌습니다. 처음에는 이 지갑과 친해질 거라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시간을 같이 나눌수록 정이 들었습니다 . 하지만 늘 새것 같을 줄로만 알았던 지갑도 결국에는 옛지갑처럼 낡아져 갔습니다 . 그 순간 , 저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 처음에는 쑥스럽고 낯설었던 사람이나 물건도 시간이 흐 르면 친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지갑과의 인연을 통해 처음 접하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느긋하게 관계 형성을 위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제 이 지갑도 많이 낡아서 저와 지갑의 인연이 거의 끝나가지만 제 태도는 180 도 바뀌었습니다. 이제 어떤 지갑을 만나도 낯가리지 않고 친하게 지낼 거라고 다짐했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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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살리는 절약 Grade 9 송재민 Jack Song 2주 동안 하와이에 다녀오면서 ,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우리 스스로가 어떻게 망치고 있는지를 배웠 습니다 . 우리가 너무 환경에 무관심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에 더 신경을 썼으면, 지금보다 더 나은 지구에서 살 수 있지 않 을까 싶습니다 . 플라스틱 가방이나 , 필요 없는 것들은 애초에 거부하 거나 , 재활용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수많은 농장과 지구를 보호하는 곳들을 방문하면서, 이 사람들 은 이렇게 노력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력을 안함으로 인하여 우 리의 환경개선 방향이 무산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희가 하와이에 가 있는 동안 8학년들은 일회용 접시를 안 쓰고 , 계속 사용 할 수 있는 접시를 썼습니다. 이렇게 하면 뭐가 달라지고 왜 이런 것을 하는지 몰 랐지만 , 나중에 알고 보니 하와이에 있는 동안 대략 500개의 일회용 접시를 절약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플라스틱 절약은 다른 것을 절약하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 플라 스틱은 더 작아지기만 하고 사라지진 않습니다 . 그래서 저희가 한 행 동이 얼마나 지구에 도움이 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 바다에 사 는 동물들이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하고 먹기도 하고, 새들도 해변에 버려져 있는 플라스틱을 먹기도 합니다 . 모든 새들의 내장 안에 최소 한 플라스틱 한 개 이상은 들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 우리 가 쓰는 플라스틱은 우리에게만 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지구에서 같 이 공존하며 사는 생명들에게도 치명적인 해를 입히고 있습니다. 이것 을 방지하려고 사람들이 환경을 보호하고 절약을 해도 똑같은 사람들 만 계속해서 행동한다면 발전은 전혀 없을 겁니다. 지구는 더욱 더 나 빠지거나 그 상황이 계속 지속될 것이라고 이번 하와이 프로그램을 통 해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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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에 가기 전에는 플라스틱도 다른 물건처럼 재활용하면 문 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하지만 플라스틱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비로소 하와이에 가서 배웠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 하는 플라스틱이 얼마나 많이 지구에 손해를 입힐 수 있는지도 배우고 동물들에게도 어떻게 치명적인 해를 입히는지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저희는 바다에 가서 수많은 양의 플라스틱을 정리하고 치워 냈 습니다 . 하지만 그렇게나 많이 청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 해변에는 아직도 플라스틱이 많이 남아 있어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 하와이에 서 어떻게 하면 플라스틱을 좀 더 쓰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배 우고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적인 물건들이 왜 나쁜지도 배움으로써 이 제는 플라스틱 사용을 최대한 거부하고 절약하는 것이 제 삶의 한 방 향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 갈 곳을 깨끗하게 가꾸며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활동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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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좋은 지구를, 위하여 Grade 9 김규리 Joan Kim 이번 NPCA 하와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배우고 느낀 점이 아주 많았습니다 . 우선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좋 았습니다 . 낯선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거기서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체 험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 배우는 환경과 , 같이 있는 사람들이 평소와 는 다르기 때문에 이번 하와이에서의 경험은 서울 캠퍼스에서 공부하 는 것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 물론 더 좋은 점도 있고 , 더 나쁜 점도 있었습니다. 하와이에서 8학년 학생들에게 주어진 주제는 ‘Sustainability’, 즉 환경을 보호하고 파괴하지 않은 채 우리가 사용하는 자원을 얼마나 오래 쓸 수 있는지에 대한 지속가능성이었습니다 . 환경을 파괴하거나 침해하지 않고 , 과소비하지 않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 인간이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버리고 , 불필요한 소비를 많이 하는지도 배우고 , 스스 로 반성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고, 해결하 지 않더라도, 어떻게 하면 자원에 대한 소비량을 줄일 수 있나도 배웠 습니다. 바닷가에 가서 직접 마이크로플라스틱을 줍는 경험을 통해서, 자연 속에서 얼마나 쓰레기가 많은지, 어떻게 우리의 바다가 더러워지 는지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모래사장에서 플라스틱을 찾지 않는 일이 더 힘들 정도로 많은 양의 쓰레기가 바닷가에 널려 있었습 니다 . 그런 경험들을 통해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만약 한국에서 이러한 주제를 동일하게 배웠다 하더라도 , 직접 쓰레기를 치우는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문제의 심각성을 알기 어려웠을 것이고 , 우리에게 크게 와 닿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 또한 , 밭이나 농장 같은 곳으로 견학을 많이 갔었습니다 . 채소들이 어떻게 자라는지도 배우고 학교 안에 있는 밭에서 우리 8학년들도 우리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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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농작물을 심고 또한 그들이 조금씩 자라나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도시인 서울에서 밭에 대해 같은 내용을 배웠을 때에는 불가능한 일들 을 하와이에서는 생생하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느낀 점도 많았습니다. 인간의 자원 소비량이 얼마나 엄청나게 많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에 얼마나 많은 양의 쓰 레기가 버려지고 있는지도 새삼 느꼈습니다. 인간이 먹는 소고기의 양 도 점점 늘어서 소를 키우는 곳이 급격히 늘어나고 그게 어떻게 지구 에 영향을 끼치는지를 생각해보니 소고기를 덜 먹어야겠다는 것도 느 꼈습니다 . 우리 , 개개인들이 소비하는 소고기량을 조금씩이라도 줄인 다면 지구는 좀 더 깨끗해 질 겁니다. 사람들이 너무 가까운 미래에만 신경쓰다보니 ,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먼 미래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후손들이 살 세상인 지구를 망치고 있는 겁니다 . 이렇게 인간이 점점 과소비를 하 게 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 NPCA에서의 아쉬운 점은, 너무 짧은 시간에 농사 를 지었기에 농작물들이 완전히 자라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 다 . 하지만 그러한 경험을 통해서 서울에서 하지 못할 경험들을 체험 한 것만큼은 정말 좋았습니다 . 또 2주라는 짧다면 짧은 , 그리고 길다 면 긴 시간동안 거기에 있는 선생님들과 많이 친해지고 그 선생님들에 대해 알게 될 수 있었는데 금방 떠나게 되어 아쉽습니다. 다른 곳에서 는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할 수 있었던 이번 NPCA 활동은 저에게 무 척 뜻 깊은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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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만천하(桃李滿天下) Grade 10 임 해 Richard Lin ‘도리만천하 (桃李滿天下 )’란 천하에 복숭아와 자두가 가득하다는 말로 우수한 제자들이 세상 곳곳에 퍼져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APIS 에 와서 영어도 배우고 좋은 선생님도 많이 만났습니다. 이 말의 뜻처 럼 APIS 의 많은 졸업생들이 전 세계에서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게 되 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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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DS 이야기 Grade 10 김상인 Jacob Kim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김상인입니다 . 오늘은 제 닌텐도 DS 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초등학교 1 학년 때쯤 저는 친구가 별로 없었습니다 . 하지만 당 시 어린 저는 파워레인저를 좋아해서 친구들에게 파워레인저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 그런데 나머지 남자아이들은 DS 라는 것에 대해 이야 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과 어울리기가 조금 어색했 고 , DS 가 없는 것이 창피했습니다 . 그래서 저는 아버지께 말씀드렸습 니다. “아빠, 제 생일 선물로 DS 를 사 주세요.” 그 주 주말, 아버지는 저를 위해 바로 DS 를 사오셨습니다. 저는 참 신났습니다 . 지금 제가 가진 물건과 비교를 하자면 아이폰만큼 소 중한 물건이었습니다. DS 덕분에 저는 기뻤고, 친구들도 생겼고, 안경 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게임을 많이 한 것은 아니었는데 제 눈 은 쉽게 망가졌습니다. 미국으로 이사 간 후, 저는 한국에서 사귄 친구들을 다 잃고 다 시 다른 친구를 사귀어야 했습니다 . 영어를 전혀 몰랐던 저는 DS를 가지고 많이 놀았습니다 . 그러던 어느 날 새 학교의 저희 학년에도 DS 를 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렇게 친구를 많이 만났 습니다 . DS 가 저를 위해 같이 놀 친구를 준비해 둔 것 같았습니다. DS 는 늘 저를 행복하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DS 게 임을 합니다. 제 눈을 망쳐버린 물건이지만 저는 여전히 DS를 아낍니 다 . 제 DS 는 아직도 깨끗하고 고장도 나지 않았습니다 . 그 후로 저는 새로운 DS 도 하나 더 샀지만 가끔 옛날 것도 씁니다. 이번 여름에 일 본에 갔을 때에도 새로운 DS 게임을 샀습니다. 요즘 시대에 DS 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을 할 수는 없지만 DS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제 좋은 친구입니다 . DS는 늘 제 지루함을 해결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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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나 Grade 10 박준하 Junha Park 나는 APIS를 다니고 있는 박준하라는 학생이다 . 나는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몇 가지 특징들이 있다. 첫 번째로 나는 내 키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 나는 한국 사람 의 평균 키보다 크다. 서울 연합뉴스 김지연 기자의 말에 따르면 한국 남자의 평균 키는 174.9cm라고 하는데 현재 내 키는 178cm 라서 기 분이 좋다 . 왜냐하면 한국 평균 키보다 크기 때문이다 . 키가 크면 특 히 농구를 할 때 슛을 성공할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골대에 가까워지 기 때문이다. 키가 커서 바지를 살 때 따로 바지 길이를 안 줄여도 돼 서 좋다. 요즘 키가 더 커서 아빠의 양복바지를 학교 행사 때 입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또 키가 크면 좋은 점은 높은 곳에 있는 물건들 을 의자 없이 올리거나 내릴 수가 있어서 엄마를 언제든지 도와 드릴 수 있다. 최근에 시계를 달아 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셨다. 또 엄마께서 그릇을 정리 하실 때 높은 선반에 있는 그릇을 내려 드렸더니 나를 키 울 만 하다고 하셨다 . 단점은 자꾸자꾸 시키셔서 좀 피곤하다는 것이 다 . 하지만 키가 더 컸으면 좋겠다. 우리 아빠만큼 크고 싶다 . 요즘엔 남자가 키가 커야 인기도 좋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내 발이 크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내 발은 커서 몸을 더 단단히 받쳐주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서 있을 때 잘 넘어지지도 않 는 것 같고 뛸 때 발이 커서 발이 삘 확률이 낮다. 또 축구할 때 공을 더 잘 받아 찰 수 있는 것 같다 . 단점은 발이 커서 신발 사이즈가 흔 하지 않아 멋진 신발을 살 수 없다는 것이다 . 작년에 축구화를 사러 갔을 때 ‘ 슈퍼플라이’ 라는 제품을 사고 싶었다. 그런데 그 신발은 발목 에 양말이 붙어 있어서 나에겐 그 신발을 신는 것이 너무 버거웠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발목 부분이 너무 작아 신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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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 내 특징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바로 성격이다 . 나는 좀 무뚝뚝하고 직선적이라 처음 만나는 사람이 좋은 이미지를 갖 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 하지만 계속 지켜보면 볼수록 나의 진면목을 깨달아 마음에 들어 할 것 같다 . 거짓 없고 , 가식적이지도 않고 그냥 내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다 보니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 리고 나는 친구들한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이다. 예를 들어 친구가 다치면 먼저 가서 도와주고 싶고, 다친 친구를 보면 마음이 아 프다 . 그래서 마음이 좀 약한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그리고 가끔씩 웃길 때도 있다. 내가 말을 하면 최소한 두 명 이상은 웃는 것 같다. 이런 나의 성격 중에도 고치고 싶은 부분이 있다. 사람들에게 조금 더 상냥하게 대하고 웃으면서 말하고 싶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잘 되지 는 않지만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저절로 그런 행동이 나올 날이 올 것이다. 나의 자랑스러운 특징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하고 적으니 좋은 점과 고쳐야 될 점을 같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 발전적인 시간이 되 었다 . 이렇게 나 자신에 대해 더 생각하고 성장시키는 기회를 자주 만 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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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생이 지겹다 Grade 10 최현욱 Matthew Choi 나는 지금 내 인생이 매우 만족스럽지 않다 . 요즘은 특히 인생 이 매우 지겹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별로 하고 싶은 것이 없다. 얼 마 전까지 내 특기가 공부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도대체 공부를 왜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부가 싫어지고 있다. 공부뿐만이 아니다 . 최근까지 즐겁게 해 오던 게임이나 농구도 이제 슬슬 지겨워 지고 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내 인생의 목적은 무엇일까?’, ‘과연 나는 내 미래를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 그 중에서도 ‘공부를 왜 하나 ?’라는 생각이 제일 자주 든다 . 하 , 한숨이 나온다. 나는 원래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슬럼프에 빠졌을 때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이 슬럼프를 극복하는 것이 힘든 것 같다. 지금까지는 공부를 하느라 친구들과 많이 놀지 못했고, 학교에서도 늘 조금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았다. 가족들은 늘 나에게 ‘공부는 미래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라고 말을 하지만 그 말이 온전하게 이해되지 않 는다. 내가 외동아들이라는 점이 나의 이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 나는 혼자라 가족들의 사랑을 다 가져서 좋긴 하다 . 그러나 같 이 놀고 이야기할 형이나 동생이 없으니 더 외로울 때가 많다. 시험을 망치면 형제가 있는 친구들보다 부모님의 관심이 집중되기 때문에 더 혼나기도 하고, 나에게 쏠린 부모님의 ‘공부’하라는 소리는 나를 우울 하게 만들기도 한다. ‘왜 나만 이런 인생을 사는가?’, ‘ 왜 세상은 나에게 이렇게 바라 는 게 많나?’, ‘나는 언제 자유로운 느낌을 가질까?’ 라는 생각을 하다 가 갑자기 이것이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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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내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해야 하는 공부를 하고 재미있어 보이는 게임을 하며 살아왔을 뿐이었다 . 하지만 이런 고민들이 나를 더욱 단 단하게 만들고, 내 미래를 다지게 하는 거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 실하게는 아니지만 느낄 수 있었다 . 물론 내가 이런 생각으로 엄청나 게 성장을 했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고민들을 더 치열하게, 심각하게 해 보는 것이 내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돌이 켜보니 나는 시간이 많은 사람인가보다 . 이런 고민을 아낌없이 할 수 도 있고 말이다. 아름답고 귀중한 내 십대를 그렇게 열심히 고민하며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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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A+ 인생 Grade 10 홍성재 Jay Ho ng 요즘 드는 생각인데 나는 내가 너무 마음에 든다 . 자랑은 아니 지만 나는 나의 모든 모습, 머리부터 발끝까지 너무나 만족스럽다. 내 이름은 홍성재 . 흔하지 않은 이름이다 . 이름 ‘성재 ’ 는 많을 수도 있지만 , 홍 씨는 그렇게 많지 않다 . 우리 한국어 반에서 김 씨 , 이 씨, 박 씨, 최 씨… 는 많다. 하지만 우리 반에서 나 혼자 홍 씨이 다 . 나는 남들과 같은 성 씨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너무 좋다 . 게다가 홍진영 , 홍수아 , 홍 씨 성을 가진 유명한 연예인들이 있다는 사실도 좋다. 나는 내 특이한 성격도 마음에 든다 . 내 성격을 말하자면 살짝 부끄럽지만 , 나는 4 차원이고 매우 엉뚱하다. 옛날부터 나는 다른 사람 과 얘기할 때 엉뚱한 소리만 했었고, 행동이 아주 예측불가이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4 차원이라고 놀리지만 , 나의 4차원이 하나의 매력이라 서 좋다고 생각한다. 겉으로 보면 나는 말랐고, 키도 작고, 발 사이즈만 큰 사람으로 보인다 . 하지만 나는 그것이 싫지 않다 . 오히려 나는 내가 마른 것이 좋다 . 하나의 사실을 말하자면 , 마른 사람은 성인병에 걸릴 확률이 낮 다고 한다 . 비만으로 인해 걸린 성인병으로 고생하는 것보다 마른 것 이 훨씬 나은 것 같다. 사실 키 이야기를 하면 나는 조금 작아진다 . 우리 가족의 평균 키는 163cm이다 . 물론 내 키는 우리 가족의 평균보다는 크지만 절대 적으로 볼 때 큰 키는 아니다 . 나는 어릴 때부터 키가 작았다 . 우리 가족의 키를 볼 때 내 키는 더 이상 클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을 오랫 동안 해 왔다. 친구들은 나보다 다들 키가 커서 친구 옆에 있으면 더 작아 보이는 경향이 있었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 하지만 인터넷 조사에서 내 키가 한국 평균키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 그때부터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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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을 얻었고 내가 키가 작다는 생각을 지워 버렸다. 마지막으로는 내 삶의 공간들이 좋다. 한국을 떠난 내 삶은 초 등학교 3 학년부터 시작되었다 . 초등학교 3 학년 때부터 해외에서 4년 동안 살면서 영어와 스페인어를 배웠다 . 이것으로 인해 나는 많은 나 라의 문화를 배울 수 있었다 . 한국에서 못했던 운동들인 축구 , 배구 , 그리고 미식축구도 해 보았다 . 특히 축구는 한국에 있을 때는 싫어하 던 운동이었는데 부모님이 해보라고 하셔서 다시 도전해 보았더니 재 미있고 즐거웠다 . 부모님 덕분에 인생이 즐거워졌고 , 나는 미국에서 돌아온 후에 운동으로 인해 한국 생활에도 더 잘 적응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매우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다. 앞으 로의 삶도 계속 만족스러울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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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건, 그는 누구인가 Grade 10 김 건 Danny Kim 내 이름은 김건, 2001년 9월 5 일생이다 . 9월 5 일은 내 생일이 기도 하지만 여러 유명인들의 생일이기도 하다. 1980 년 9월 5일엔 가 수 정기고가, 1990년엔 피겨스케이터 김연아가 태어났다. 2001년생이 라 뱀띠이기도 하다. 뱀띠 중엔 가수 싸이, 수영 선수 박태환, 그리고 야구 선수 김선빈이 있다. 내가 태어난 곳은 서울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목동에서 태어났 다. 비록 지금은 월계동에 살고 목동을 떠난 지 10년이라는 세월이 지 났지만 목동 7단지에 살았던 것, 다니던 학교 이름도 다 기억난다. 그 것이 제일 오래된 기억인 것 같다 . 1학년은 서정초등학교에 다니다가 2학년 1학기에는 목운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 2학년 선생님 성함은 모르지만 1학년 선생님 성함은 확실히 기억나는데 어찌 보면 1학년 선생님이 제일 특별한 선생님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다 . 그때 친구들 이랑은 한 명을 제외하고는 연락을 안 한다 . 아니 아예 못한다 . 내가 기억하는 초등학교 친구는 세 명이다. 그 중 한 명은 매년 만나지만 , 나머지 두 명은 아예 생사를 모른다. 나는 나 자신을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처음 본 사람이라도 말만 통하면 쉽게 다가가고 쉽게 친해질 수 있다. 그건 내 장점이다. 그리고 야구 이야기를 빼 놓을 수가 없다 . 야구는 나의 일부라 고 할 수 있다 . 원래 응원하던 팀은 넥센이었지만 야구를 처음 보던 시기에 넥센이 너무 못해서 마음이 식었고 , 기아 타이거즈가 새롭게 나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처음에는 선수 이름도 모르고 응원가도 몰랐 다 . 하지만 지금은 선수 이름도 많이 알고 응원가도 많이 안다 .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응원가는 ‘풀카운트송 ’, ‘ 기아 열광송 ’, ‘기아를 응원하 라’, ‘라인업송 ’과 ‘최강 Kia Tigers’이다 . 선수 응원가는 최형우 ,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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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 , 서동욱 , 안치홍, 이범호 , 김주찬 등장곡, 버나디나의 응원가를 제 일 좋아한다 . 제일 좋아하는 선수는 김호령과 안치홍이다 . 지금 나에 겐 기아는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주는 팀이다. 그리고 한화 이글스에는 ‘나는 행복합니다 ’라는 응원가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응원가를 기아 를 응원하는 나의 노래라고 생각한다 . 기아 때문에 나는 행복해졌다 .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는 항상 기아를 응원할 것이다. 나는 야구를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도 한다 . 현재 던질 수 있는 구종은 포심 패스트볼이랑 써클 체인지업이다. 포심 패스트볼 은 직선으로 가는 공이고 , 써클 체인지업은 우완투수가 던질 때 우타 자의 몸 쪽으로 살짝 휘는 공이다 . 그리고 요즘은 스플리터와 스크류 볼을 던지려고 연습 중이다. 구속은 18 미터보다 훨씬 더 짧은 거리에 서 재 봤을 때 평균 76kph 이 나왔고 최고는 78kph 이 나왔다 . 교회 친구들이 다니는 서울고 야구부에 있는 학생들은 154kph씩 던지는데 참 신기하다. 그런데 구속보다 더 시급한 나의 문제는 엉망인 제구이 다. 그래도 좋아지려고 노력은 한다. 나는 의료와 관련된 공부를 하고 싶다 . 왜냐하면 공부를 마치 고 ,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 구단에서 선수들의 치료와 재활을 도우며 일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열심 히 공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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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부재는 별의 존재 이유다 Grade 10 오형근 Francesco Oh 안녕 . 나 형근이야. 나는 애석하게도 꿈이 없어. 사실 꿈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한 번도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잘 하는 것을 찾지 못했지. 내가 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고 지내왔다는 게 무척 후회돼. 내가 왜 이때까지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는지 모르겠지 만 말이야. 나는 맨날 공부하고, 그 다음에 꿈을 가지려고 생각 했어. 어느 정도 공부를 해서 성적이 좋게 나오면 그만큼 내가 정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만 가졌지. 하지만 지 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 잘 하는 것에 집중을 못 했고 , 내가 원하는 것을 못 찾았는데, 그리고 꿈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데 말이야. 여전히 , 내가 잘하는 것을 모르겠고 내가 원하는 것도 모르겠어. 그래 서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고, 뭐가 되고 싶은지 뚜렷한 목표도 없어. 나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 할 수만 있다면 , 공부보다 는 내가 원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싶어. 지금은 내가 원하는 것은 없 지만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게 나올 거라고 믿거든. 그래서 나는 옛날 에 꿈에 대한 생각을 안 했던 게 물론 후회가 많이 되지만, 내가 못한 것만큼 더 노력을 하면 다시 내가 꿈을 찾을 수 있다고 믿어. 지금까 지는 내가 공부를 해야 돼서 , 숙제를 해야 돼서 했지만 , 언젠가는 이 게 달라질 거라고 믿어. 내가 아무리 꿈에 대한 생각을 못했어도 꿈을 좇지 않고 꿈에 다가가려고 하면 생각이 달라져. 친구들은 꿈이 있어 서 나도 있어야 된다가 아니라, 친구가 꿈이 있어도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고 믿어야 돼. 꿈이 없는 게 아니라, 아직 꿈을 못 찾은 거지. 꿈이 없는게 잘못은 아니잖아 . 꿈을 억지로 가지려 하 지 말고 꿈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시도해야 된다고 생각해. 꿈 에 다가가려고 하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것이 나타날 걸 믿어.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는 별들처럼 우리도 꿈이 없는 어둠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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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이 언제나 조그맣게 빛나고 있다고 믿어. 우리가 방향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에 있기 때문에, 별들 은 더욱 찬란한 법이야 . 그리고 언젠가 어둠이 지나가면 별들보다 더 욱 크고 , 별들보다 더욱 더 빛나는 태양이 나오겠지 . 어둠을 품고 있 는 별들이 언젠가는 밝은 곳을 선도하는 크고 붉은 태양이 될 수 있다 고 생각해 . 지금은 우리가 어둠 속에 있는 이름 모를 별일지 몰라도 , 우리는 언젠가는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됐을 때 밝게 떠오르는 태양으로 다시 꿈을 펼쳐갈 수 있을 거야 . 여태껏 꿈이 없었다는 것을 인정해 .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꿈을 향해 한 걸음 더 바짝 다가간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 이러한 상황을 최대한 솔직하게 인정하면 부정적인 생각은 더 이상 들지 않을 거야 . 이제는 과거와 현재에 꿈이 없었다는 것에 대해 슬퍼하지 말고 , 미래에 내가 어떻게 살 건지를 먼저 생각하면 돼 . 그러면 언젠가는 우리가 원했던 것을 찾고 태양처럼 밝게 빛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속상해 하지마, 형근아. 넌 지금 별 이고 , 미래의 밝은 태양이니까. 2016 년 겨울 형근이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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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의 나 , 빨간색의 나 Grade 10 심서린 Serena Shim 나는 회색이다. 순수함을 의미하는 흰색이 아닌 색이 바래고 시 간이 지나 때가 낀 듯 안개 ‘같은’ 회색. 지금은 그런 회색이지만 아직 은 길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것 뿐, 나는 나만의 색을 찾아가 고 있다. 심서린 , 17살 , 여자 . 이게 나다 . 흔히 중 2병이라 부르는 중학교 시절을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된지도 1 년이 넘었다. 아직까지는 괜찮지 만 앞으로 지옥 같은 대학준비만 내 고등학생 생활에서 파도처럼 넘실 거린다 . 엄마 , 아빠 , 그리고 두 명의 남동생들이 있는 흔하디 흔한 대 한민국 가정의 맏딸로 평범하게 동생들과 싸우고, 때리며 생활한다 . 공부는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 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하기 싫다는 마음이 항상 앞서지만 나는 그래도 내가 나름대로의 책임감이 있어 노 력한다고 자부한다. 운동을 좋아하고 뜨개질 , 청소 , 머리하기 등 손으 로 하는 것은 대체로 모두 다 잘 한다. 나는 카멜레온처럼 변화무쌍하 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바다가 모래를 적시듯 잔잔하며 , 때로는 거친 , 그런 사람이다. 딱히 무언가를 뛰어나게 잘하지도 , 뛰어나게 못하지도 않는다 . 평범한 사람. 나는 내가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외모, 공부, 관계 등 나 는 모두 내가 평범한 축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 세상에는 평범함을 싫 어하고 특별한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 반면에 나는 평 범한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안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 자체가 마음에 든다 . 물론 그렇다고 모든 것이 행복하다는 것은 아니다 . 하지만 나는 내가 진심으로 사귄 친구들이 있고 , 가끔은 싸우지만 서로 아껴주는 가족이 있고 ,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들이 있고 , 따뜻하게 잘 수 있는 집이 있다. 나는 눈이 있고 , 두 팔과 두 손이 있고 , 두 다리와 두 발 이 모두 있는 ‘ 정상인 ’ 이다. 장애인이 10억 명이 넘는 세상에서 , 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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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원해도 상황과 여건이 되지 않아 공부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몇 만 명이나 있는 이 세상에서, 그리고 몇 천 명의 고아가 살아가는 세상에 서 나는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고, 공부를 할 수 있고, 부모님이 계신 것이다 . 그래서 나는 내 인생 그 자체가 마음에 들며 감사하다. 지금 내 나이 대 모든 학생들에게 인생에서 무엇이 힘드냐고 묻 는다면 어떤 대답을 하게 될까? 인간관계, 대학, 다이어트. 더 나아가 서 돈이 될 수도 있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심오한 무엇이 될 수도 있다 . 그런데 나에게 직접적으로 지금 무엇이 힘드냐고 묻는다면 나는 현재 걱정이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오히려 나는 이 평화로운 일상이,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등교하고,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수다 떨며 점 심을 먹는 것이 너무나 즐거울 뿐이다. 인간관계 걱정도, 대학 걱정도, 다이어트 걱정마저도 모두 내려놓은 나는 현재 이 나날을 이어나가고 싶다. 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정열적인 빨간색이 되고 싶다 . 불타오르 는 열정과 강렬함을 나타내는 삶이기도 하지만 온도가 높아 따스한 삶 이기도 하다. 사관학교를 졸업해 명예로운 군인으로서의 삶이 내가 꿈 꾸는 삶이기도 하지만 ,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 그리고 이 시대를 사 는 한 사람으로서 , 그리고 여성으로서 당당하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 나는 따뜻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고 , 분명 그렇 게 따뜻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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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자전거 Grade 10 배지원 Jiwo n Bae 우리 인생에서 경험이라는 것은 중요하기도 하고 소중하기도 하 다. 삶을 살아가면서 경험이 많은 것은 중요하다. 좋고 나쁨을 떠나서 우리에게 경험을 한다는 것은 실패와 성공의 지름길이다. 실패를 하더 라도 그것은 또 우리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는 성공에 조금씩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 나에게도 인생에 필요하고 중요한 경험들이 있다 . 그 중 가장 인상 깊고 기억에 남는 경험은 내 분홍색 두발 자전거에 관한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자전거는 소중하다. 왜냐하면 나는 자전거로 인해 마음 가짐과 가치관이 변하였기 때문이다. 때는

바야흐로

10 년 전 내가 6살, 처 음으로 두발 자전거를 접했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 나는 세발자 전거를 타다가 6살 때 처음으로

옆의

보조

바퀴들을

걷어

내고

자전거를

타기

두발

시작했다 . 핑크색에 레 이스가 달린 예쁘장한 자전거였지만 예상대로 옆으로 많이 쓰러지고 넘어졌다 . 처음에는 중심을 잡기가 정말 어렵고 무서웠다 . 앞 손잡이 의 방향이 제일 어려웠다 . 아빠는 나에게 ‘ 오른쪽으로 자전거가 기울 면 손잡이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 자전거가 왼쪽으로 기울면 손잡이를 왼쪽으로 돌려’ 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뜻인지 몰랐었다. 나는 중심을 잡기 위해 학교에 갔다 와서, 학원가기 전 매일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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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전거 타는 연습을 했다. 하지만 매일 연습해도 무서움은 떨쳐 낼 수 없었다 . 처음에는 그냥 포기할까도 생각해 보았다 . 두발 자전거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 매일같이 노는 시간을 포기하고 무서운 자전 거를 타야 하는 것이 6살이었던 나에게는 고문 같은 시간이었다. 그때 당시 우리 반에서 두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애는 고작 2명밖에 없었 다. 게다가 그 친구들은 심지어 키도 크고 운동을 잘 하는 남자아이들 이었다 . 나에게 희망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 하지만 1주일동안 꾸준히 타다보니까 재미가 붙었다 . 학교에 가서도 자전거가 또 타고 싶었고 빨리 집에 가서 조금이라도 더 타고 싶은 마음이 점차 생기기 시작했 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실력을 늘려나갔다. 하지만 나는 또 다른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몇 달 뒤 나는 자 전거를 빠른 속도로 타다가 길가 시멘트 바닥에 넘어졌다 . 나에게 또 다시 처음의 그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 그 두려움은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 자전거를 잘 타다가 갑자기 멈추고 방향 전환을 못하기도 하면서 나의 자전거 두려움은 좀처럼 쉽게 떨쳐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비록 다른 애들보다 느리고 더디게 배웠지만, 그리고 두 려움은 지속되었지만 끝내 나는 지금 자전거 타기에 성공했고 언제 그 랬냐는 듯이 자전거를 자유롭게 다루면서 재미까지 느낀다. 그 안에는 노력이 있었고 , 끈기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있었다 . 어린 아이였지 만, 여러 번의 실수와 두려움이 있었지만 나의 열정은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 무서웠다 . 그리고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내 안의 두려움을 이 겨내고 드디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었다. 이 마음으로 지금의 나에게 당면한 어려움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싶다 . 그러면서 성장이 있고 , 그러면서 내 안에 더욱 강한 자신감으로 오늘도 하루를 잘 극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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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에 보이는 나 Grade 10 김조셉 Joseph Kim 내 이름은 김조셉이다. 캐나다에서 태어났고 올해 서른 살이 되 는 누나와 어머니랑 살다가 지금은 어머니랑만 살고 있다. 지금은 10 학년이고 현재는 APIS 에 다니고 있다 . 농구하는 것과 친구들하고 미 치도록 노는 걸 즐거워한다. 공부는 그럭저럭하고 대학에 가서 공학을 전공하고 졸업한 다음 공학변호사가 되고 싶다 . 이런 건 누구나 그냥 나를 보면 알 수 있는 겉으로 보이는 사실들이다. 하지만 나는 거울을 볼 때 나 자신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 깊이 생각할 때가 있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스스로 나 자신을 살펴볼 때 나는 남을 챙기려 는 마음, 지독한 인내심, 능숙한 영어실력 등을 갖춘 사람이라는 생각 을 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나는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남이 더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가졌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께서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하 는 마음을 가지라고 자식 교육을 잘 하신 것 같다. 지금도 마찬가지이 다 . 남이 어려운 모습을 보기가 싫고, 친구가 공부를 힘들어 하면 최 선을 다해서 도와주려고 한다 . 항상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의견에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 한다. 농구를 할 때도 내가 확실히 더 잘 할 것 같 고 , 슛을 하면 내가 넣을 확률이 더 높을 것 같을 때가 있다 . 하지만 나는 보통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남한테 패스하거나 기회를 만들어주려 고 하는 편이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 남이 잘 되고 , 다른 사람이 나 때문에 행복할 때 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조금은 이 기적일 수도 있지만, 내가 남을 잘 도울 때, 그 사람도 똑같이 남한테 잘해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가끔씩 많은 사람들이 서 로를 챙겨주고, ‘ 나만 이득을 취해야지 , 나만 잘되면 돼 ’ 라는 생각을 멈춘다면 ,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 지 궁금하다. 내가 학교생활을 하면서 기른 훌륭한 열매는 바로 나의 지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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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심이다 . 시험 전 날 , 반드시 만점을 맞으려고 새벽 3 시까지 공부 를 한다. 숙제에 있는 문제 하나를 모를 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어떻게든 풀려고 한다 . 이런 인내심과 악착같은 성격 때문에 다른 애 들이 다 실패한 과학 시험에서 104 점을 받은 적도 있다 . 내 삶에서 인내심을 가장 많이 길렀던 시간들은 APIS 에 오기 전 온라인 홈스쿨 을 했던 2년간이다. 선생님도 안 계시고, 모르는 게 있으면 인터넷 검 색으로 알아내려고 했던 그 시기 , 매일매일 똑같이 전자 교과서를 보 고 온라인 시험을 보는, 빠져 나올 수 없는 아주 영원한 쳇바퀴 같은 시간이었다 . 가끔은 너무 지겨워서 그냥 ‘에라이 , 모르겠다 .’ 하고 공 부를 때려치웠다가 많이 밀려서 수많은 밤을 새면서 밀린 공부를 다 해야 했던 적도 있었다. 말로 묘사할 수 없을 정도로 지옥 같은 고통 이었다 .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나았을 것이라는 끔찍한 생각 까지 들었다. 정말 많은 땀과 눈물과 가슴 아픔으로 홈스쿨을 마쳤다.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학교에 갈 생각을 하며 죽기 살기로 공부했다. 이걸 2년 동안이나 했다. 정말 죽었다 살아도 다시는 못할 것 같은 일 이 바로 온라인 홈스쿨이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서 아주 철 같은 의지와 인내심이 나온 것 같다. 꼭 공부만이 아니라, 화날 때나 내 뜻 대로 안 되는 일이 있을 때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참을 수 있는 능력 이 길러진 것 같다 . 인내심 없이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다 . 어떻게 보 면 , 이런 경험은 꼭 나를 위한 훈련이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 다. 마지막으로, 내가 영어에 능숙하다는 것에 참 감사하다 . 요즘은 세계 공용어가 영어 아닌가? 영어를 잘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축복이다 . 다른 한국 학생들은 나를 보고 ‘넌 영어를 잘 할 수 있어서 좋겠다 . 너무 부럽다.’ 라는 말을 자주 한다. 대부분 한국 학생들은 영 어를 학교에서, 학원에서, 아니면 과외로 공부를 한다. 당연히 영어라 는 과목이 이러한 학생들에게 아주 어려우니까 그런 말이 나오는 게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하지만 영어는 그냥 학교 시험에서 만 점 받고 학원에서 단어를 외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 앞서 언급했듯이 영어는 세계 공용어이다 . 대부분의 나라에서 영어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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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있다. 영어를 할 줄 알면, 여러 사람들과 이야 기를 나눌 수 있고, 이런 걸 통해서 여러 가지의 생각과 의견을 들을 수 있다. 예를 들어서 하나의 주제를 다룰 때, 한국 사람과 미국 사람 이 그 주제에 대해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문화와 자기 정치적 성향이 나 경험 등을 통해 사람들은 다양한 생각을 한다. 영어를 통해 이러한 여러 가지 생각을 들을 때 우리의 생각도 넓어 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를 통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인정하고 존중하게 된다 . 그래 서 나는 영어를 능숙하게 할 수 있다는 게 참 큰 복이라고 생각이 든 다. 자기의 장점을 자주 생각하는 건 참 좋은 습관인 것 같다. 특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우리 대한민국의 바쁜 사회에서 잠깐 모든 것을 멈추고 자신을 찬찬히 돌아보며 자기의 장점을 찾는 시간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오는 것 같다. 그러한 점에서 오늘부터라도 하루하루 자기의 장점을 살펴보려고 노력하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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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중한 추억 Grade 10 이나현 Nahyun Lee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 지금까지의 삶 중에 잊지 못할 때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아주 특별하고 평생 간직하고 싶은 순간 이 있다 . 지금으로부터 4, 5년 전의 나는 12 살 , 초등학생이었고 남들 과 그저 다름이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 갑작스럽게 아빠가 가나에 있는 대사관에 발령을 받으셔서 예고도 없이 한국을 떠나게 되 었다 . 보통 친구들은 해외로 유학을 간다고 하면 , 미국이나 유럽과 같 은 선진국으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 하지만 나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 예상조차 할 수 없었던 가나라는 아프리카로 가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한국을 떠난다는 것을 전해 듣고 친구 , 친척들 그리고 선생 님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가나는 우리나라의 가장 반 대편에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거리가 아주 멀었고 문화와 사람 들의 모습도 많이 달랐다 . 날씨와 음식 역시 모두 나에게는 너무나 새로웠다 . 내가 살던 지역에선 동 양인들을 많이 찾아볼 수 없었고 또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병원이나 의료시설이 좋지 않아 항상 다치 는 것을 조심했어야 했다 . 나는 국제학교에 처음 다니기 시작했었 을 때도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고 생활하는 것이 불편하기만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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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만 생각하였지만 사실 그런 것은 찾아 볼 수 없었다 . 물론 모든 순간들이 힘들고 불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같이 학교생활을 하는 것은 정말 무엇보다 즐거웠다. 하지만 적응되지 않고 여전히 낯선 환경에서 자신감을 잃고 한국으로 돌아가 고 싶은 마음만 더 커졌었다. 앞으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어떻 게 몇 년 이상을 버티어야 하는지 많은 시간 동안 생각해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뿌듯하고 기쁜 때가 있었다 . 어느 날 현지의 고아원, ‘Beacon House Orphanage’ 라는 곳에 봉사를 가게 되었다 . 아이들은 신발이 없는 채 맨발로 우리를 반기러 온 것이 아직 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비바람이 불면 무너질 것 같은 아주 작고 약한 건물에서 무려 20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 이런 아이들의 생활환경을 보니 하루하루가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 다. 우리는 학교에서 모은 물품을 고아원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돈을 기부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같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 자신과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 오니 어색함이 맴돌았다. 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받아 주고 나누는 그런 마음이 너무 따뜻한 것을 느꼈다. 이런 면에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고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볼 수 있는 기회 였다. 이런

생활을

하면서 나는 너그러 운 마음을 갖고 사람 들을 대하라는 말이 떠올랐다 . 현지인들은

아프리카 당연히

처음 보는 인종이고 처음 접하는 문화이 다 보니 우리를 외계 인 보듯이 행동할 수 도 있었다고 생각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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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 물론 나도 새로운 땅에 막 살게 되어서 많은 곤란한 상황과 일들 을 겪어야 했지만, 아프리카에서 살면서 이렇게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이해해주는 따뜻한 마음을 품게 되어 행복했다. 내가 생활하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고 또 불평 , 불만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 나는 이런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고 오히려 이런 기회가 내 삶에 주어 져서 너무 기뻤다 . 상대를 사랑하고 나를 희생하여 상대방이 주었던 아픔을 이해하는 것이 나의 가장 뜻 깊고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나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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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펜싱 일기 Grade 10 윤병우 Philip Yoon 2017년 10 월 12일 , 목요일 Day 1 아침 11:30, LAX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안으로 들어간 나는 연 습 전에 배를 미리 채우기 위해 타코벨 세트 메뉴 3 개를 시켜 먹었다. 이내 만족감이 들었다. 사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들 중 하나는 비행기 타는 것이다 . 비행기 특유의 냄새 , 좁은 좌석에서 목적지까지 지루하 게 가야하는 불편함, 그리고 맛없는 기내식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비행기 타는 시간이 지옥처럼 느껴졌다. 그렇다 , 흡사 지옥이었다 . 배가 고파도 음식은 전혀 먹지 못했고 , 다리에서는 쥐가 났고 , 비행기가 오르고 내리는 과정이 너무나 어지러웠다 . 결국 나는 14시간동안 전혀 자지도 못했고 , 한국시간으로는 새벽 한 시에 겨우 미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 나는 외삼촌을 만나 폐암으로 투병 중이 신 외할머니를 뵈러 갔다. 시합을 명목으로 간 미국이지만 외삼촌, 외 할머니 , 그리고 외할아버지를 만나 너무나 반가웠다. 외할머니는 폐암 4기이시다 . 2008년 때부터다 . 하지만 그때부터 이렇게 9년 동안이나 더 사신 것은 진짜 하나님이 주신 기적으로 느껴진다 . 사람의 인생이 끝나는 시간을 직면하게 되면 슬플 수밖에 없다 . 뿐만 아니라 할아버 지는 Altamira‘s Disease가 있다. 이 때문에 외할아버지는 했던 말씀 을 다시 하고서는 또 잊고, 다시 하시고를 반복하신다. 솔직히 오늘 전체적인 가족들 분위기가 기쁘게 보이기는 했건마 는, 속으로는 모두가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 었다 . 정말 외할머니에게 삶의 시간이 별로 안 남으셨다면 부디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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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 소중하고 의미 있게 되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부디 우리 모두의 하루하루가 감사할 수 있는 순간들이 되었으면 한다. 2017년 10 월 13일 , 금요일 Day 2 오늘은 다행히 아주 잘 자고 일어났다. 아침으론 햇반과 참치를 먹었다 . 막상 오후 12:50분까지는 딱히 할 것이 없었던 나는 펜싱 후 배들이랑 몸도 풀 겸 농구를 하러 갔다 . 위치도 시설도 제일 마음에 드는 아나헤임 힐튼 호텔에 묵었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나는 그 어느 곳 도 한국, 내 나라, 내 집과 비교할 수 없다. 집이 제일 좋고 편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오락방송 ‘ 삼시세끼 ’ 프로그램을 보았다 . 그 순간부터 정말 한국 음식이 먹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 어 쨌든 나는 12시 50 분이 되었을 때 후배들, 형들, 그리고 선생님들이랑 대회장으로 가서 우리 클럽의 사브르 종목에 출전하는 형들을 응원하 러 갔다. 한 형은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다른 형은 그래도 본선에서 한 번 이겼다. 모든 경기가 다 끝난 후 나는 내일의 대회를 생각하며 다 시 호텔로 돌아가 곤한 잠을 잤다. 2017년 10 월 14일 , 토요일 Day 3 새벽 4시이다. 어제 낮잠도 안 잤는데 새벽에 일어났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긴장돼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 나는 미국에 와서 뛰게 된 대회가 2개 있다 . 하나는 Division 2이고 다른 하나는 K adate 이다 . Division 2는 거의 모든 연령의 사람들이 나올 수 있다. 그리고 Kadate는 아마 만 13세부터 15세까지 나올 수 있는 경기이다. 둘 중 에서 Kadate가 더 어려운데 오늘 그 대회를 뛰게 되었다 . 침대에 누 워 있는데도 심장이 사정없이 뛰었다. 솔직히 미국에서 그럴싸하게 점 수가 잘 나온 대회가 하나도 없었다 . 그건 왠지 내가 심하게 긴장을 하고 또 그만큼 자신감 없이 경기에 임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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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시합을 충분히 즐기자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 고 말았다. 기가 꺾였고, 금세 자신감을 잃고 말았다. 정말 스포츠 경 기에서는 정신력이 실력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매 경기 때마다 느낀다. 좋은 실력을 갖추고 있을지라도 나는 나도 모르게 자신감을 잃고 멘붕 이 오면 진짜 내 실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슬프게도 전패를 해서 예선 탈락을 했다.

2017년 10 월 15일 , 일요일 Day 4 오늘은 Divisio n 2이다. 오늘은 어제보다는 좀 더 쉬운 대회이 기 때문에 나는 오늘 더 열심히 경기에 임하기로 마음을 잡았다. 오늘 게임을 뛸 때 이렇게 생각했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뛰자라 고 말이다 . 오늘은 그래도 2 승을 했다 . 본선에서 바로 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만족한다 . 본선에서는 내가 다른 클럽에 있는 코치님과 붙고 만 거다. 일단 그 분은 키가 한 2미터쯤 됐고 , 팔과 다리가 엄청나게 길었다 . 고등학생인 나는 그분의 맞상대도 안 되었다. 결국 15대 4로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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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이번 대회 에 와서 배운 것이 있다. 일단 나는 내 정신력을 진짜 강철 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미국에 와서 가족들을 만나며 속 깊은 감정을 느꼈 고 , 어려운 경기들에 임하며 눈물을

엄청나게

흘리게

것들 , 그리고 이러한 기회를 주시고 여러 마음들을 경험하 게 하신 하나님을 만났다 . 미 국에서의 경기 경험을 통해서 나에게 분명 새로운 길을 인 도해주신 그리고 앞으로도 인도해 주실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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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필이에게 쓰는 편지 Grade 10 이재우 Jaewoo Lee 재필이에게 지금도 병상에 누워 마른하늘을 보고 있을 재필아, 안녕? 이런 저런 일들과 핑계로 자주 찾아가 보지 못해서 정말 미안 해. 너도 나처럼 부상을 자주 당하지만 운동을 좋아하고 마음이 잘 맞 아서 다른 사람들은 형제라고 부를 정도로 우린 서로 비슷한 점들이 참 많은 것 같아 . 다친 곳은 좀 어떠니 ? 약 꼬박꼬박 챙겨먹고 빨리 낫도록 하자.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을 거야. 부상을 당하면 얼마나 고통스러 운지 , 그리고 억울하기도 하고 멀쩡한 상대방이 얄미울 정도로 부럽고 말이야 . 일단 다치면 몸의 인대와 뼈가 더더욱 쇠약해질 텐데, 그리고 일반 사람들도 부상을 당하면 긍정적인 마음보다는 부정적인 마음이 더 강할 텐데, 지금 너는 어떻겠니? 하지만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으나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나 보호대를 하고 있는 기간은 같다고 생각해 . 그래서 나는 너에 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고 말이야. 네 가 부상을 당한 것은 순전히 운이 나빠서일 수도 있어. 그렇지만 단순 히 운으로만은 생각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단다. 부상을 당하는 게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야 . 나처럼 사계절 내 내 운동하는 친구들은 부상을 당하기 일쑤이기 때문이야. 휴식을 취해 야 할 때도 있고 , 그래야 더 강해질 수도 있어 . 예를 들어 지금 서울 삼성썬더스에서 뛰고 있는 문태영 선수를 봐봐. 모비스 시절에 부상을 많이 당해서 팀의 연승을 끊기는 했지만 ,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더욱 더 강력해진 포워드가 되었어 . 지금의 문태영 선수는 한국어를 잘 못 하지만 , 썬더스의 캡틴을 맡고 있고 , KBL 리그에서 가장 강력하고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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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십 있는 포워드로 묘사되기도 해. 이처럼 부상을 당하면 휴식을 취 하고 , 복귀를 위해 더욱더 강력해져서 다음부터는 부상을 당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스스로 조심성도 키울 수 있어. 마치 위험 한 행동을 하다가 불미스러운 일을 당해서 다음부터는 주의하자는 생 각이 비례해서 더 커지는 것처럼. 세상의 이치는 항상 그래 . 쉬어가는 시간도 있어야지 . ‘느림의 미학 ’이라는 말도 있잖아. 다른 사람보다는 약간 늦을 수 있어도, 부상 을 당함으로써 잠시 쉬어가는 것도 휴식이 되고 , 긍정적인 생각으로 가지게 된 휴식은 너를 더욱 더 강하게 만들 수 있어. 우리 자연을 예 로 들어보자. 하루는 24 시간이야 . 낮과 밤이 매일 반복되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밤보다 햇빛이 있는 밝은 낮을 좋아할 거야 . 밤에는 어둠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새벽이 오듯이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그리고 개구리를 생각해봐. 개구리는 좀 더 멀리 뛰기 위해서 실수를 해도 주저 앉지 않아 . 넘어지는 과정 을 통해서 더 멀리 뛸 수 있지. 마치 문태영 선수가 부상을 통해 더욱 더 강 인해질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야. 방금 말했듯이 부상 을

회복하는

잠깐 로

시간

쉬어간다는 그

기간을

동안 생각으

즐기면서

생활했으면 좋겠어 . 그 시 간 동안 다른 프로 선수 들의 동영상을 보거나 네 가 활동했던 경기 기록들 과 영상들을 보면서 배우 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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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주로 농구나 배구, 또 다른 운동에서 타임아웃은 감독님이나 코치 님이 선수들에게 지시함으로써 경기를 좀 더 쉽고 빠르게 풀어 가. 그 리고 더 중요한 것은 상대의 흐름을 끊음으로써 , 팀의 기력을 상승시 킬 수도 있어. 아까도 말했지만 그 부상 기간 동안 상대를 부러워하지 말고 평소에 하지 못한 점들을 배우면서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그 시 간을 잘 보내기 바란다. 네가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 더욱 더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 경 기에서 선전하고, 다음에도 같이 팀으로서 형제 같은 플레이를 보여줬 으면 한다. 재필아 힘내렴, 항상 고마워! 2016년 12 월 1 일 재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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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되돌아보며 Grade 10 이성준 Seo ng Jun Lee 이 글을 쓰면서 느낀 것은 최근 이렇게 나에 대해 깊고 오래 생 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였다. 과거를 돌아보니 나는 지금껏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을 쓰면서 내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 들을 다시 차분히 정리해 적어 나갈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심경 변화가 큰 상태인 것 같다. 그 이유는 지금껏 내가 살아가던 환경이 크게 바뀐 두 번째 순간이기 때문이다 . 살아가던 환경이 바뀐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힘든 요소 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나는 적응을 하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 고 시간이 걸릴 것이다 . 하지만 그 시간이 힘들다 . 친구들도 그립고 새로운 공부를 해야 하는 것도 두렵다. 힘들었던 순간은 내가 13살 때 싱가포르로 혼자 유학을 갔을 때이다 . 그 때를 되돌아보면 어렸었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막연히 낙천적으로 즐겁게 친구들과 지냈던 것 같다 . 그리고 다시 한 국으로 오게 되었다. 새 학교로 오면서 약간의 걱정과 두려움,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에 대한 기대가 생겼다 . 또한 학기 중간에 들어왔기 때문에 학과 공부에 대한 걱정이 크다. 하지만 친구들은 활기차고, 선 생님들은 친절하고 많은 신경을 써주신다. 그래서 너무 다행이고 용기 도 생긴다. 그리고 요즘 가장 흥미를 느끼는 것은 책을 읽는 것이다 . 예전 과는 달리 책 읽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 그 이유는 바로 ‘히가시노 게 이고 (ひがしの けいご )’라는 작가 때문이다 . 그는 일본 작가인데 주로 미스터리 소설을 쓴다 . 내가 이 작가에게 빠진 계기는 우연히 서점에 가서 인기 시리즈 코너에 있던 그의 히트작 ‘나미야의 잡화점’을 발견 한 것이었다 . ‘나미야의 잡화점 ’은 인기가 가장 많긴 하지만 나한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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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다른 책들이 더 재밌었다 . 두 번째로 읽은 책은 ‘ 가면산장의 살 인사건 ’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작가 특 유의 스릴있는 분위기와 반전 때문이다. 마치 내가 그 상황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 버렸 다. 그 책을 읽은 뒤로 책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하 였다 . 그리고 가장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은 ‘용의자 X 의 헌신’ 이라는 책이다 . 이 책도 추리물이다 . 이 작가의 책들을 읽고 나서 , 가끔 나도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목표로 하고 있는 꿈은 작가와는 거리가 조금 멀 다 . 내 꿈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거지만 , 직업적으로는 꽤 많이 변했다. 내 어릴 적 꿈은 과학자였다. 그때는 그저 무엇을 만 들고 실험한다는 것이 멋지게 느껴졌다 . 하지만 중학교 때에는 조금 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생각하면서 건축가라 는 꿈이 생겼다 . 나는 그 당시에 건물이나 조형물에 관심이 많았다 . 나는 내가 원하는 건물을 디자인 하고 싶었다. 항상 멋있고 아름다운 건물이나 가구를 보면 저걸 디자인 한 사람이 너무 대단하고 나도 해 보고 싶다고 느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새로운 관심사가 생겼다. 바 로 컴퓨터다. 싱가포르에서도 공부를 조금 했었지만 꽤 재밌는 분야라 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지금 목표는 컴퓨터 공학을 공부해서 프로 그래머가 되는 것이다 . 요즘에는 그런 프로그램 개발로 인하여 여러 사업들도 생겼다 . 대표적으로 페이스북 같은 SN S와 요즘 뜨고 있는 Uber, Netflix, Airbnb이다. 나도 이러한 새로운 분야를 공부해서 사 람들한테 많은 도움을 주고 더욱 재미있고 쉽게 어디에서나 정보를 접 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좀 쑥스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지만 생 각보다 마음이 많이 부자가 된 느낌이다. 혼란스러웠던 생각도 조금이 나마 정리되고 나에 대해서 이해한 느낌이 든다 . 또한 내 마음에 텅 비어있던 부분이 채워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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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황수윤 Grade 10 황수윤 Sooyoon H wang 2001년 6 월 2일, 스트롱 병원, 로체스터 , 뉴욕 . 나는 미국에서 태어 났다 . 엄마 아빠는 당시 미국에서 공 부하고 계셨고 기억나는 건 우리 집 정원에서 모두가 다 같이 공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 캘리포니아는 따뜻한 곳이었다 . 그리고 리버사이드는 햇살 이 굉장히 나른해서인지 항시 기분 좋은 잠이 왔었다. 2004년 6월 2 일, 나의 네 번째 생일 , 우리 가족은 디즈니랜드에 갔 다. 디즈니랜드에서 뭘 했었는지는 기 억이 잘 안 나지만, 저녁에 불꽃놀이를 보면서 행복해 했었다. 2006년 , 8 월 , 나는 부모님의 본국, 한국에 왔다. 나는 신반포 중앙 유치원에 입학하여 나의 첫 한국인 친구들과 어울려 지냈다 . 유 치원에 대한 기억들은 사실 별로 없다. 그저 엄마 아빠와 자주 집에서 쉬고 놀고 장구 치는 것을 배운 것밖에는 막상 떠올려도 기억이 잘 나 지 않는다. 2008년 3월 2 일, 나는 반원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 아버지께서 는 나에게 단정한 외투를 사주시고는 학교에 잘 갔다 오라고 하셨다. 어머니께서는 나를 학교 정문까지 데려다 주셨고 좋은 하루를 보내라 고 말씀하셨다. 2013년 초여름, 6 학년과 5학년 때 담임선생님들께서 나에게 추 천서를 써주셨다. 바로 현재 내가 재학하고 있는 외국인 학교(APIS)로 갈 때 도움이 되길 바랐던 추천서들이었다 . 나는 곧 8월 16일 , AP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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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으로 전입해서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을 많이 겪게 되었다 . 축구부에서 골키퍼로 뛰는 것부터 역사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타서 미 국에 간다는 걸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2013년 APIS에 처음 오게 된 나는 지용이와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Oh! yo u’re in o ur grade?” 에릭이라는 영어 이름을 가진 지용이는 첫인상이 매우 좋았다. 그는 굉장히 놀란 듯이 나에게 물어봤다. 또래보다 큰 나의 체격 탓에 아마도 동급생이 아닌 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점심시간 혹은 쉬는 시간마다 나는 형근이와 축구를 하러 나갔 다. 당시에 다른 애들은 도서실에서 게임에 몰입해서 나랑 형근이밖에 는 축구를 즐기는 아이들은 별로 없었던 기억이 난다. 6학년 때 난 처음으로 배구 경기를 뛰어봤다 . 딱히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굉장히 재밌었던 경험이었다. Athletic Banquet에서 난 배 구 부문 MVP상을 받게 되었다 . 그리고 나는 배구에 점차 흥미를 더 욱 더 갖기 시작하였다. 다음 해에 성재를 만났다 . 성재는 친절하고 사려 깊은 친구다 . 우린 9 교시가 없어서 첫 날엔 같이 수학 숙제를 , 그 후부터는 축구를 하며 금세 친해졌다. 축구, 배구, 농 구 등 운동경기란 경기는 모두 같이 하였고 , N ational History Day를 통해 친구들끼리 미국에 가서 대회 를 치러보는 짜릿한 경험을 해보기 도 했다. 7학년 At hletic Banquet에서 는 축구와 배구 부분에서 MVP상을 또 받게 되었다. ‘우수한 성적’을 학 기

내내

유지하였기

때문에

Student Athlete of the Year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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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타며 트로피까지 받게 되어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 초 등학교 시절엔 축구부에 들어갈 생각조차 못했던, 운동을 했지만 팀에 서 뛸 용기와 패기가 없던 나에겐 꿈과 같고 신기한 일들이 벌어진 셈 이다. 하지만 8 학년이 되어서는 무릎이 많이 상하여 다음 해에 들어갈 Varsity팀에서는 몸을 어떻게 다루고 시합을 준비해야 되는지 배우게 되었다 . 8 학년 겨울방학 직전 , 우리 학교 주니어 Varsity 농구팀에서 인원이 부족하여 Murphy 선생님께서 나에게 한 번 뛰어보지 않겠냐 고 제안을 하셨다. 나는 당연히 좋다고 하였고, 개학 후 1월 13일, 홈 경기를 뛰게 되었다. 하지만 개학 몇 주 전 나는 농구 연습을 하다 무 릎에 무리가 가서 인대가 늘어나 회복 중이었다 . 당시 마음도 급했고 경기에서 뛰는 게 우선 순위였던 나는 무릎의 통증들을 무시하고 연습 과 경기에 집중하였다. 경기 당일 나는 교체 투입되었지만 8 분 후 무릎의 통증은 심해 지기만 하였고 결국 코트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 후 아마 약 한 달 동안은 제대로 운동을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 하지만 다행히 내가 축구 다음으로 가장 즐겼던 배구 시즌이 시작되었을 시기에는 건강을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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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즈음엔 건강했지만 결국 무릎 관리를 안 한 대가가 치러졌 다. 배구 경기 며칠 전, 같은 부위의 인대를 다시 다친 것이다. 중학생 들을 위한 한 학교에서 개최하는 다른 KAIAC 학교들과 경쟁하는 경 기들인 잼보리에서 처음으로 빠져, 배구 3년 연속 MVP상을 탈 수 있 었던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리기도 하였다. 정말 속상했지만 다행히 꾹 참고 나는 곧 회복했다. 어린 나이 16살부터 무릎의 시큰시큰함을 느 끼며 ‘ 오늘은 제발 무리하지 말고, 조심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는 게 참 아이러니했지만 덕분에 매사에 조심성을 기르기도 하였다. 그래 서인지 나의 세 번째 Athletic Banquet 에서 역시 운이 좋아 축구와 농구 MVP, 그리고 배구 리더십상을 타며 또 다시 Student Athlete of the Year 트로피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는 8 학년 여름, 나는 나의 첫 공식 졸업장을 받았다. 초 등학교 6학년 2학기 시작하는 시기에 APIS에 입학해버렸으니 졸업을 못했기 때문이다 . 그렇게 나는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었고 형들의 기대를 받으며 Freshman이 되었다 . 9학년이 되자 난 당연히 고등부 선발을 목표로 삼고 매일을 성재와 연습하며 버텨왔다 . 배구 시즌 중 엔 성재와 Setter-hitter짝이 되어 막내 듀오로써 시즌을 즐겼다. Varsity 배구팀의 선발선수로서 난 고등학교 전체 앞에서 진행 하는 pep rally경기도 뛰어보는 경험을 했고, 그 기회를 정말 감사히 여긴다 . 덕분에 아직 막내였지만 졸업반 형들과도 친해졌고 고등학교 학생들 앞에서 신나는 경기도 하고 환호성을 받을 수 있었다. 정말 감 사히 여긴다. 배구시즌에 이어 곧바로 난 농구 시즌을 맞이하였다. 처음엔 너 무 지쳐 농구를 포기할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코치였던 머피 선생님께 서는 나를 꼭 데리고 오겠다는 눈빛으로 매일 아침 나에게 압박을 주 셔서 입단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 , 감사하게도 13명의 varsity 농구팀 구성원 중 한 명이 되었다 . 우리 학교 역사상 Varsity 팀에 12번째로 붙은 9학년이라니, 정말 영광이다. 연습이 끝나는 저녁에는 내 다리의 존재감조차 느껴지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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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로 정말

열심히 뛰었고 ,

13 경기 중 10경기는 교체투입 으로, 2 경기는 선발로 꾸준히 출전을 하였다 . 농구팀에는 배 구팀이나 축구팀만큼 또래 애들 이 없거니와 졸업반 형들만 9명 이 있어 내가 원하는 만큼 마음 대로 못했지만 그럼으로써 더 많은 경험들을 하고 좋은 조언 들을 많이 들은 것 같다. 배구시즌과 똑같이 나는 쉴 새 없이 농구 tournament 가 끝난 바로 다음 주 , 축구팀 입단 테스트에 임했다 . 축구팀에는 우리 학년 아이들이 많아 훨씬 더 마음이 편했지만 동시에 정말 어리고 미숙한 팀임을 알았기 때문에 걱 정 반 , 기대 반으로 첫 경기를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 총 10경기 중 나는 9 경기를 골키퍼로서 선발되었고 한 경기는 특이하게 수비수로 교체 투입되었다 . 나는 아직도 그 춥고 얼어붙을 듯한 한겨울의 날씨 를 잊지 못하지만 그것이 추억이 되어 친구들과 종종 얘기한다 . 아직 9학년에다가 미숙하고 어린 팀의 골키퍼를 쉽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 , 역시나 쉽지 않았다 . 10경기 중 오직 한 경기를 제외한 모든 경기는 실점을 하였고 우리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2무 8패의 뼈 저린 기록을 안고 시즌의 끝을 맞이하였다 . 축구 시즌이 끝나고 남는 운동 종목이 없어 무언가 허전하였지만 그만큼 성적에 신경 쓸 수 있 었고 친구들과도 휴식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루해 하지는 않았 다. 2017년 , 5월 31 일 , 운동부 시상식 , athletic banquet에서 나는 9학년으로 대상 중 하나, Scholar At hlete 상을 타고 배구 , 농구 , 축 구, 3종목 모두 하나씩 상을 받았다 . 나는 이 날 다음 년도에도 우수 한 성적을 거두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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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그렇게 2017년 , 8월 21일, 나는 내 생에 있어 두 번째 배구시 즌을 맞이한다. 여름방학 동안 성재와 투 선생님(Ms. Tu)과 함께 연습 을 하였고 탄력이 전보다 한결 좋아진걸 느낀 나는 큰 기대를 안고 시 즌을 시작하였다. 9월 9 일, 우리학교에서 열린 2017년도 첫 경기다. 2 년 만에 우 리 학교 Varsity 배구팀이 승리를 거둔 날이다. 2년 전 엄청난 수의 졸업반 형들이 빠지며 공백을 채우지 못한 우리학교는 슬프게도 2년 동안 한 번도 우승을 거둔 적이 없었다 . 이날 전까지는 말이다 . 시즌 첫 경기를 GSIS(경기 수원 외국인 학교)를 상대로 승리한 후 기분 좋 게 다음 경기에 집중하는 우리 팀이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자랑스 럽고 대견했다. 10월 23일 , 우리 학교에서 열린 2017년도 마지막 정규시즌 경 기를 우승으로 마치며 3승 7패라는 그냥 봐서는 별 것 아니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엄청난 성적을 거두며 DSS(Dwight Seoul School)를 상대하며 경기를 끝냈다. 벌써 배구 시즌이 단 5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지만 여태까지 친구들, 팀 동료들과 겪은 시련들과 성취한 기록들을 생각해보면 정말 고생을 많이 한 두달이었다. 27 일 금요일과 28 일 토요일에 치를 tournament를 준비하며 이렇게 자서전을 끝낸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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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 밑에서 Grade 10 이지용 Eric Lee 하늘거리는 버드나무 밑에 앉아 너에 대한 고마움을 편지로 쓴 다. 이 곳은 정녕 아름다운 정원이지만,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것은 단 언컨대 내 머리 위에서 춤을 추는 이 버드나무일 것이다 . 버드나무의 축 늘어진 잎사귀를 보면 몇 백 년간의 고단함과 여러 차례의 시련이 나의 마음에 고스란히 새겨진다. 오랜 시간으로 다져진 버드나무의 너 그러운 마음은 마치 나의 피로감과 부담감을 공감하고 위로하듯 나를 웃으며 반겨 주었고 , 그의 품은 나의 마음속의 공백을 서서히 채워주 었다. 불과 몇분 전 나는 이 버드나무를 만났고 , 멀리서도 이 버드나 무는 삶의 고단함을 숨기지 않는다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 아니면 그럴 힘마저 없어 숨길 수 없었던 것인가? 버드나무는 이미 외관으로 도 수많은 흉터가 있었다 . 잘린 가지 , 흐릿해진 잎사귀의 색깔 , 또 나 무를 힘없이 받쳐주는 기둥. 내 위에 있는 버드나무는 이미 사람의 손 을 타 더 이상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혼자 설 수 없는 그런 나무였다. 그야말로 비참하였다. 외관상 이미 무너진 버드나무의 마음은 어떨까?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나무로서의 존재감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우 울증에라도 걸린 듯 무너져 내릴 것이다. 나는 요즘 내 자신을 돌아볼 시간도 없이 피곤하다 . 남의 사연 이나 한가하게 들어줄 수 없었던 나머지 금세 자리를 털고 일어서려고 했던 찰나 , 버드나무는 춤을 추었다 . 바람이 만들어내는 음악에 장단 이라도 맞추듯, 부드럽게, 때론 격렬히 자신의 개성을 추구하였다. 나 는 버드나무를 혼란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분명히 그 안에 투영되 어 있는 내 자신을 보았다. 더 이상 지금의 내가 아닌 과거의 나를 보 았다 . 내 앞에선 한 단어가 아른거렸지만 그 단어는 내 입속에서 도무 지 나오려고, 나에게 그 단어가 뭔지 알려주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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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고 돌아 선 순간, 바람이 거세 게 불어왔다. 나의 모 자가 날아갔다 . 하지 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 내 귀에 다시 뚜렷한 음이 들리기 시작하였다 . 나는 그 자리에 내려앉아 탄 식하였다 . 내가 지배 해야 할 인생에서 나 는 내 인생에 도리어 휘둘리고 있었다 . 기둥에 의존하며 생명을 이어 가는 이 버드나무처럼 나는 더 이상 나의 정체를 찾지 못했고 다른 사 람들에게 의존하며 살아왔다 . 그 전엔 어땠는가 , 뭐가 달랐는가 . 아 , ‘음악 ’. 그 단어가 그토록 생각이 안 나고 있었던 것이다 . 나는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맞추느라 허둥지둥 어쩌지도 못하며 달리기만 하였 고, 그러한 나머지 나의 ‘삶의 쉼터’, ‘음악’을 내 손 안에서 놔버릴 뻔 했다. 나에게 음악이란 너무나도 편한 친구였다. 나를 절대 놓지 않고 배신하지 않으며, 내 인생에서 마지막 숨이 다할 때까지 함께 갈 친구 였다 . 그러나 그 친구를 버린 건 나였다. 힘이 들어 그랬다는 것은 변 명에 불과하다. 금세 미안해진다. 이어폰을 양쪽 귀에다 끼고 , 음악을 들을 때는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 . 절대 벗어 날 수 없을 것 같은 일상 속에서 나는 불과 몇 초 안에 다른 세계로 향하였고 , 잠시나마 쉴 수 있었다 . 그래서 내가 음악을 몇 시간을 해도 지치지 않았나보다. 음악을 듣든, 연주를 하든, 악보를 쓰든 음악에 관련된 것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가 되었다. 남이 뭐라 하든 나는 음악 옆에 앉아 그 시간을 소중 히 여기고 일분일초까지도 신중해졌다. 나는 일어섰다 . 버드나무 밑으로 내려가 아까 말한 이 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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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 내려갔다 . 나는 더 이 상 이 나무를 혼란스럽게 쳐다보지 않았으며 , 고마 움에 가득 찬 마음으로 내 진심을 전했다 . 나는 당신이 음악을 좋아한다 고 알고 , 믿고 있다 . 당 신이 진정 음악을 좋아하 고 사랑한다면 내 곁에서 춤을 추는 버드나무를 보 러 이 정원에 왔으면 좋 겠다 . 당신은 이 버드나 무와 얘기를 하는 순간 음악에 대한 생각과 자신 의 과거를 돌아보게 될 것이다 . 마지막으로 당신 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당신에게 음악이란 무엇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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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단상 Grade 10 오승민 Andy Oh 당신에게 우리가 산을 오르는 진정한 의미는 힘겹게 올라선 정상에서 바 라보는 아름다운 풍경이나 낯선 경치는 아닐 겁니다 . 산을 오르는 과 정 그 자체와 오르면서 쌓이는 소소한 추억들로써 이미 그 의미는 충 분합니다 . 산을 오르면서 보게 되는 가장 아름다운 광경은 정상에서 바라보는 장관일수도 있으나 , 그 풍경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 또한 산을 오르면서 들인 노력이 합하여, 아름다워 보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정상에 우뚝 서서 보는 겨우 몇 분 간의 경치 때문에 산을 오른다고 착각합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산을 오르는 순간을 즐길 생각을 전혀 못합니다 . 당신 또한 마찬가지겠지요 . 단순히 위를 보거 나 자신이 갈 곳을 바라보면서 현재 당신의 주위를 둘러볼 생각 없이 끝도 없이 위를 향해서만 걷습니다. 산을 오르는 시간들이 정상에 서 기 위한 과정, 혹은 힘들기만한 과정이라 착각합니다. 정상에 오르는 깊은 의미는 단지 산의 최정점이어서가 전혀 아 닙니다 . 노력과 경험의 마지막 순간이고 , 힘겨운 과정의 결과를 즐긴 다는 점에서 정상에 서는 것에 대한 의미는 더욱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현재 산을 오르는 중이어도 , 주위를 둘러보면서 가야 등산을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 현재를 즐기면서 가야 정상에 섰을 때, 더 큰 기쁨이 따라 올 것입니다. 산을 오를 때 힘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 하지만 힘이 들 때 한 번 주위의 풍경 또한 바라보면서 가세요. 당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보는 풍경은 전에도 못 봤을 풍경이고 , 앞으로도 똑같은 풍경은 없을 것이란 걸 깨달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주위를 둘러보면 서 가세요. 그저 산을 오를 때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목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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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간다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힘이 부족해서 중간에 도로 내려왔다고 좌절하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 당신이 올라갈 때까지 들인 노력과 경험이 중요한 것이지 중도에 내려갔다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 물론 남들이 모두 다 정상에 도달했을 때 자신만이 그러한 풍경을 못 보는 것은 물론 아 쉽습니다 . 하지만 다음에 다시 그 산을 오를 기회가 생긴다면, 남들보 다 더 쉽게 , 그리고 그 산의 매력을 느끼며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 설사 다시는 산에 오를 기회가 안 주어져도 괜찮습니다 . 자신이 애초 에 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하다가 실패하는 것에 슬퍼할 필요는 없습니 다 . 애초에 할 수 없는 걸 , 실패할 걸 알면서도 노력과 정성을 들여 시도를 했다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남들보다 더 빨리 , 혹은 남들과는 다른 , 더 높은 산의 정상에 올랐다고 산을 오르지 못한 여타의 사람들을 무시하지도 말아야 합니 다 . 더 높은 산을 올랐다거나 남들이 오르는 산을 더 빠르게 오른 것 이 심심한 자랑거리는 될 수 있을지언정 남을 무시할 수 있는 권력을 거머쥐는 것은 아닙니다 . 산에 오르는 것이 특별한 이유는 산을 오르 는 과정이나 정상에서 보는 경치일 수는 있으나 또 다른 이유는 다른 사람들 또한 그 산을 오르기를 간절히 원해서일 것입니다 . 그러니 아 무도 그 산에 오르길 원하지 않는다면 , 당신이 그 산을 올랐다는 건 더 이상 아무런 특별한 자랑거리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특별 해지는 건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목표를 이루지 못한 사람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비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산이 특별한 까닭은 산 안에 무수하게 많은 나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 나무가 없다면 산 또한 심심하게 생긴 언덕일 뿐입니다 . 도시를 특별하게 만들고 밤 속의 야경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한 개 의 큰 건물 때문이 아니라 도시 안에 존재하는 모든 건물들이 함께 불 을 켜고 밤을 환하게 비추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하나의 큰 나무가 되 지는 못하여도, 도심 속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건물이 아니어도, 그 건물들을 특별하게 만들고 산의 풍경을 아름답게 만드는 구성원이 란 자부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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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입구에서부터 서서히 올라가 정상을 찍고 다시 서서히 내 려오는 구조입니다 . 산에 따라 다르지만 산은 절대로 출발점 없이 갑 작스럽게 곧장 일자로 올라가서 일자로 내려오는 구조가 아닙니다. 산 이 높은 이유는 아래에서 지탱해주는 나무들과 흙이 있기 때문입니다. 산의 아래쪽에 위치한 나무와 흙이 없어진다면, 그 산은 높은 산이 된 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메마른 땅에 홀로 서있는 나무는 절대 아름 다워 보일 수 없습니다 . 아무리 크고 아름다운 건물일지라도 사막 속 에 황량하게 홀로 있다면 아무도 찾지 않을 것입니다 . 따라서 앞으로 당신이 올라야 할 산을 마주 하게 된다면, 단순히 등산이라는 힘든 과 정이라 생각 말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느껴지는 흙, 바람, 그리고 숲의 소리를 느끼고 생각하며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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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생각하며 ‘원미동 사람들-일용할 양식’과 ‘소음공해’를 읽고

Grade 10 이채윤 Lucy Lee 바람직한 삶의 태도는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중심적인 생각만 가지고 삶을 살지 않는 것이다 . 다른 사 람의 사정을 먼저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며 살아간다면 이 사회 는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훨씬 풍요롭고 행복해질 것이 분명 하다. ‘원미동 사람들 - 일용할 양식 ’ 은 한 동네에서 벌어진 세 슈퍼 들 간의 경쟁에 대한 양귀자 씨의 소설이다 . 김포 쌀 상회가 가게를 ‘김포 슈퍼 ’로 이름을 바꾸고, 가게를 확장한 이후부터 ‘형제 슈퍼 ’와 가격 경쟁을 계속한다. 하지만 새로 들어온 ‘싱싱청과물’에 맞서기 위 해 김포슈퍼와 형제슈퍼가 연합을 하여 싱싱청과물을 쫓아내게 되었 다 . 김포슈퍼와 형제슈퍼 두 가게 모두 먹고 살기 위해 가게를 했지 만 , 자신의 슈퍼가 단지 남의 슈퍼보다 잘 되기 위해 남의 사정은 아 랑곳하지 않는다는 현대인들의 이기적인 성향을 여실히 표현했다. 또, 새로운 가게가 들어오자 그 가게가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하 고 경쟁 가게였던 김포슈퍼와 형제슈퍼가 함께 연합을 하여 그 가게를 쫓아낸 사람들의 단합된 이기심도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는 남보다 자 신만을 생각하여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의 인성과 생활을 생생히 표현해냈다 .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이기적인 사람들로 꽉 차 있다. 다 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 이해하며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지 않고 오로지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만 살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기 때문 에 씁쓸한 공감을 이뤄냈다. 한편 오정희 씨의 소설 ‘소음공해’에서는 우리나라 사회의 문제 점을 콕 짚어서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 우리 사회의 문제점인 세대 간 층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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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을 언급한 이 소설의 주인공은 위층과의 층간소음 갈등이 있다 . 여 러 번 경비실에 인터폰으로 연결하여 항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위층 에서 나는 소리는 끊임없이 지속됐다 . 화가 머리끝까지 난 주인공은 직접 위층과 통화해 소동을 벌이고 서로 소리를 지르며 싸웠다 . 하지 만 시간이 지나자 주인공은 침착하게 위층과의 갈등을 없애기 위해 조 금이라도 소리를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슬리퍼를 챙겨 위층으로 올라 갔다 . 주인공이 위층으로 올라가 벨을 누르자 10분쯤 뒤에 문이 열렸 다. 열린 문 안에서는 휠체어를 타고 앉아있는 한 여자가 나와 당황한 주인공은 급히 손에 들고 있던 슬리퍼를 뒤로 숨기고 , 결국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난다.

자신의 기준과 관점만으로 다른 사람들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되고 구체적인 사정을 모르면 너무 함부로 다가가지 말라는 두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는 이 짧은 글에서는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정확히 나타내준다. 조금씩만 더 서로를 이해해주고 함께 공감해주며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우리사회의 모습이다 . 하지만 지 금은 이해, 공감, 도움 따위는 ‘나만 잘되면 돼’ 라는 자기중심적인 생 각과 이기심을 이기지 못해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 ‘나 살기도 바쁜 데 왜 남을 도와줘야 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조금씩, 천천히 우 리 사회를 바꾸면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 일상생활에서도 타 인을 먼저 이해해주고 , 공감해준다면 우리 사회는 자기중심적인 생각 과 극단적인 이기심 없이 서로를 이해와 공감으로 감싸주는 따뜻한 사 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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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에게 쓰는 편지 - 전광용의 ‘꺼삐딴 리’를 읽고서-

Grade 10 권애나 Anna Frankl 이인국 박사님께, 정말 실망했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어요. 물론 이유는 알 것 같아요 . 하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다친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나요 ? 제 가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어요. 저를 도와준다고 이 익을 보지도 않겠죠. 하지만 박사님께서는 돈이 매우 많고, 도움이 필 요한 가난한 사람들 몇 명 도와준다고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지 않나 요? 가난하다고 제 머리가 나쁜 건 아니에요. 병실에 들어온 순간부터 박사님이 저를 불쾌한 눈빛으로 보고 계시고 있더라구요. 그 정도쯤이 야 바로 알아챌 수 있었어요. 그 후로부터는 간호사들이 어떤 핑계를 대서든 저를 쫓아내려 했죠 . 이인국 박사님이 시키신 일이죠? 여기에 있어봤자 치료는 못 받을 것 같아 결국에는 그냥 나오게 되었어요. 그 리고 저는 그 후로 이인국 박사님을 매 우

원망하게

되었

죠. 박사 님께서 소련군에게

잡혀갔

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얼마나 속이 후 련했는지 , 박사님께 서는

아마

영원히

모르실 거예요 . 뭐 , 알 수도 있겠죠 .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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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를 성공적으로 따돌렸을 때 이런 기분이 드나요 ? 아마 그러시겠죠 .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얼마 후에 확인해 보니 박사님은 가석방이 되셨더라고요 . 의사라는 지위를 거기서도 휘두르고 다니고 계셨나요 ? 이인국 박사님의 성격을 보아 아마도 그랬을 것 같네요 . 이인국 박사 님께서 출감하신 뒤로도 박사님을 계속 보아 왔어요. 가난하거나 권력 이 없는, 박사님의 기준으로 보아서 미흡한 사람들은 아직도 치료해주 지 않으시더군요. 그러면서도 외국 사람들은 묻지도 않고 친절한 태도 로 도우시고 . 박사님 , 그래서 박사님 같은 사람들을 매국노라고 부르 는 거예요. 나라를 팔아먹은 한심한 인간들. 그러니 앞으로는 제발 저희 같은 사람들도 치료해주고 도와주세 요 . 저희는 박사님과 같은 조선 사람이에요 . 정녕 돈과 권력이 없다 해도 저희를 돕는 것은 박사님의 인간적인 도리에요 . 제가 소문으로 들은 바로는 박사님께서는 아들과 딸을 해외로 보낸 것으로 알고 있는 데 , 이제는 자식들마저 다른 나라 사람들로 바꾸려고 하시는 건가요 ? 제가 무례하였다면 정말 죄송한데 , 제가 딱 한 가지만 더 말할게요 . 제발 이제서라도 마음을 되돌리고 저희를 받아주세요 . 물론 , 박사님 쪽에 그렇게 큰 이익은 돌아오지 않겠죠 . 저희 같은 사람들을 치료해 주시면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나 우리나라의 권력자들이 이 병원에 들 어오는 일이 드물어질 수도 있겠죠 . 하지만 양심적으로 , 박사님의 도 움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에요, 저희들을 버리지 말아 주세요. 조선인 , 아무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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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벽’을 읽고 Grade 10 황연준 Yunjune H wang

과연 우리는 편견과 마음의 벽 없이 사람들을 대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좁게는 성향의 차이, 넓게는 사람들 간 에 발생할 수 있는 정치적 , 종교적 갈등이 없는지 살펴보고 , 이로 인 해 생긴 갈등의 유무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소설 ‘마음의 벽 ’은 등장인물인 두 소년의 개인적 문제가 아닌 각 나라 간에 얽혀 있는 갈등과 이로 인해 파생된 벽을 허물어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친구의 벽의 작가인 ’샤론 E. 맥케이‘ 는 캐나다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 현재는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각 나라의 독특한 문화를 몸소 체험하고 그곳의 여러 학교에 방문하는 등 적극적인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 그는 주로 청소년과 관련된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책을 썼으며 그 중 하나인 ’친구의 벽‘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정 치적 문제와 그 사이에 낀 두 청소년의 갈등과 그 복잡한 심경이 허물 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야기는 다리를 다친 이스라엘 소년 샘과, 눈을 다친 팔레스타 인 소년 유수프가 같은 병실에서 함께 지내며 생활하는 것부터 시작한 다. 둘은 어쩔 수 없이 나라 간의

종교와 정치적 문제로 인해 마음의

벽이 강하게 생긴 상태였다 . 그러나 함께 지내면서 샘과 유수프는 서 로를 조금씩이나마 의지하였고 , 함께 병원 밖으로 나가면서부터 둘의 관계가 급변한다. 주위에 아는 사람도 없이 샘과 유수푸는 이사위랴를 통과하려 하였고, 이 과정에서 아랍 사람들에게 위협을 받으며 서로에 게 기대고, 충고를 하기까지 한다 . 결국 샘과 유수푸는 기나긴 여정 끝에 서로의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털어놓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단계 까지 가며 마음의 벽을 완전히 허물게 되었다. 둘은 이사위야에서 폭력배들을 만나며 여러 고비를 겪기도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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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 낯설고 공포스러웠던 곳에서, 둘은 서로를 도와주며 최대한 상황 을 타개해 보려 하였다. 극단적인 환경 속에서, 샘과 유수푸는 서로에 대한 마음의 벽보다는, 생존하려는 욕망과 도움의 손길이 더욱 시급했 기 때문에, 벽을 허물기 시작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면 책 속이 아닌 현실 사회에서의 마음의 벽은 어떻게 할 것인가 . 물론 현 사회에서도 샘과 유수프처럼 마음의 벽을 두고 사는 사람들은 다수 존재한다 . 가령 일제강점기에서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 해결 , 독도 영토 분쟁 등으로 갈등이 진행 중인 한국과 일본을

예로

들 수 있다. 두 나라의 정치적 문제로 인해 생긴 벽은 서로를 비난하 는 상황까지 만들었다. 그렇다면 한국인과 일본인은 샘과 유수프처럼 , 이 마음의 벽을 허물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서 나는 회의적인 입 장이다 . 일반적으로 , 한국인과 일본인들은 서로에게 크게 의지 할 필 요가 없다 . 그들은 소설 안의 샘과 유수프처럼 한 병실을 같이 쓰는 사람이 아닌 , 각자의 나라와 사회에서 사는 일반적인 시민일 뿐이다 . 그들은 서로에게 의지할 필요도 , 그럴 기회도 적으며 같은 입장을 가 지고 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널려 있다. 또한 전세계적으로 보이지 않는 냉대 속에 살고 있는 무슬림 사 람들은 , 극단적인 행동을 한 소수로 인해 무슬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차별을 받는다 . 사람들은 무슬림인이라면 일단 피하고 본다 . 종교가 있든 없든 , 혹은 기독교이든 아니든 우리는 믿는 대상이 다르면 마음 의 벽을 쌓은 채 어느정도 거리를 두면서 사는 것을 상식으로 알고 있 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벽을 허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과만 어울린다. 이 사회는 샘과 유수 프가 처환 환경처럼 극단적이지 않아서일까. 굳이 마음의 벽을 허무는 대신 , 벽을 더 굳건하게 만들고 자연스럽게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는 소통을 하지 않는다. 나 또한 마음의 벽을 경험한 적이 있다 .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 나와 같은 날에 중국에서 온 친구와 친하게 지낸 적이 있다. 우 리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고,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며 미국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 하지만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사드 배치와 중국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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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반대 입장 표명 등등의 사건 이후 나와 그 중국인 친구 사이에는 정치적 문제로 서서히 벽이 자리잡았다 . 우리들은 사실 각자 좋은 친 구들이 생긴 뒤였고, 마음의 벽을 허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 서로 에 대한 관계를 끊었다. 나 또한 나와 그 중국인 친구가 샘과 유수프 처럼 적대국의 병동에서 다친 상태로 함께 사는 상황이었으면 생존을 위한 필요성을 느끼고 그 친구와 벽을 허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미 국에서의 삶은 유수프와 샘의 상황처럼 극단적이지 않았다. 나에겐 한 국인 가족과 나만의 친구가 있었고, 작은 병실이 아닌 내 방과 내 집, 내가 다니는 학교가 있었다. 책을 읽고 느낀 개인적인 평가는 , ‘ 과연 이 책이 마음의 벽을 허물어 주는 방법을 제대로 제시하고 있나’ 라는 의문이었다. 물론 작 가가 책을 쓴 의도는 좋았다. 작가는 마음의 벽을 가진 두 소년이 벽 을 허물어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주었다 . 하지만 책에서 나타난 방법과 상황과 같이 , 현 사회에 생긴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은 너무 힘들다고 본다 . 샘과 유수프와 부상을 당한 소년이면서 , 적대국의 병 원에서 있고, 적국의 소년과 함께 둘이서만 살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 다. 결국 작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책의 배경 속에서 일어난 일을 통해 현 사회에 사는 청소년들과 사람들에게 일반화시켜 적용시키면서 , 마 음의 벽을 허물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은 너무나 허황된 이야기라고 생 각한다 . 특히나 많은 경우에 마음의 벽은 개인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 보다는 정치적, 종교적인 문제와 입장의 차이에 의해 생긴다. 이를 개 인과 개인에게 미루어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기댈 사람이 없는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허황된 이야기를 일반화시키는 것으로밖에 들리 지 않는다. 벽을 허물 수 있다는 사실과 그것을 보여주는 책으로서, 이 책 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고

사람을 객관적으로 볼 필요성과, 편견을

떨치는 것이 좋다는 교훈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판적 으로 볼 부분도 분명히 있다. 작가가 만든 배경과 달리 현 사회는 샘 과 유수프처럼 힘든 상황에 처한

나약한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각자 자기와 맞는 사람이 있고 , 자기와 마음의 벽이 없는 사람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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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있다. 샘과 유수프와 달리 서로 마음의 벽을 허물 필요성을 느 끼지 못하는 사람 또한 충분히 있다. 작가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 책 ‘친구의 벽 ’은 너무 낙관적이고 마음의 벽을 허물 방법을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 만 , 이 책을 읽은 뒤로는 , 최소한 사람을 객관적으로 볼 필요성과 편 견을 가지지 말아야 된다고 느끼게 되었다 . 결국 나는 작가의 의도에 완전히 따를 수는 없지만, 마음의 벽을 허물 시도와 편견 없는 객관적 인 시선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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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여행이야기 Grade 10 강재원 Jenny Kang 올해 추석 명절 때 다수의 사람들이 외국으로 여행을 많이 나갔 다 . 그 이유는 약 10 일의 휴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 오늘날 , 사람들은 여행을 많이 다닌다 .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한 다 . 하지만 여행을 다니면 피곤한데도 왜 사람들은 여행을 많이 다니 는지 궁금하다. 여행을 가면 많은 단점이 있다. 첫 번째, 사람들은 여행을 갔을 때 많이 돌아다닌다. 꼭 걷는 것이 아니라도 많은 장소들을 돌아다니 면 피곤하다 . 두 번째, 자동차 , 기차 , 버스 , 비행기 등을 타야하는 시 간이 길다. 멀리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가게 되면 몇 시간씩 앉아 있어 야 하는데 앉아만 있으니까 다리가 저리게 된다 . 세 번째 , 여행을 가 면 식비가 많이 나온다 . 여행을 갔으니까 맛있는 것을 먹는데 , 좋은 것을 먹으려고 하니까 식비가 부담이 될 때가 많다 . 네 번째 , 관광지 에서는 바가지 요금이 심하다 . 따라서 여행지에서 사람들이 스트레스 를 받게 된다. 다섯 번째, 여자들은 여행갈 때 옷과 화장품을 많이 가 져가거나 많이 가져가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많이 가져갔을 경우에는 짐이 많아지고 없으면 패션이 이상하다고 생각 할 수가 있다. 여섯 번 째 , 해외로 여행을 갈 경우에 언어가 달라서 말이 통하지 않을 때도 많다 . 모든 세계가 영어를 중심으로 쓴다고 해도 사람마다 발음이 달 라서 뭐라고 말하는지 잘 못 알아들을 경우가 많이 있다. 소통이 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 일곱 번째, 많은 경우에 여행 중에 집 이 가장 편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사람들이 여행을 갔다가 온 소감을 자기 느낌대로 말하지만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즐거웠다고 말하고 , 청 소년은 즐거웠다고 말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데 , 어른들은 주로 여행가는 것보다는 집에서 지내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신다. 이렇듯 여행의 단점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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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이유가 있다. 첫째, 반복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익숙한 곳이 아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 누구나 평상시에 반복적인 일상으로 지낸 다. 하지만 여행을 가면 평상시보다 늦게 일어날 수가 있고 다른 풍경 을 보게 되어 새로운 경험을 할 수가 있다. 둘째 , 해야 될 일을 잠시 중단하게 된다 . 여행을 간다는 것은 하던 일을 중단하고 며칠 쉬면서 재미있는 날들을 보내고 오는 것이다. 셋째, 여행을 갔을 때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오니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되기도 한다 . 그래서 여행은 다음 일상생활에 활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 은 여행을 좋아한다 . 넷째 , 여행에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 를 나눌 수 있다. 친구들 또는 가족들이랑 여행을 갔을 때 사회생활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를 공유하는 시간을 만들 수가 있다 . 다섯 째 , 여 행계획을 짤 때 가슴이 뛰고 기대감이 상승한다 . 여행을 가기 전부터 좋은 것을 상상한다. 그것이 여행을 갔을 때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어주기도 한다. 어린아이들은 여행 내내 지치지 않고 지루하지 않고 신나게 여 긴다 . 그래도 집이 편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주로 어른이다. 일상에 묶 여 있으면 그것은 바로 다 자란 어른인 것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모 험심이 많이 없다는 것이고, 그래서 집이 제일 편한 것이다. 어린이에 게는 새로운 것이 불편하지 않다 . 어른들에게는 여행 자체가 짐일 수 있다 . 그래서 씁쓸하게도 집이 제일 편한 곳이 되는 것이다. 여행을 갈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아직 어린아이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고 아직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가는 것은 아직 모험심과 호기심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 행을 통해 다시 한 번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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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관하여 Grade 10 서윤영 Joan Suh ‘정보고속도로 ’ 라고도 불리는 인터넷은 요즘 우리 생활에서 정 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사람들의 행동을 봐도 알 수 있 는데 , 인터넷이 없던 전과는 달리 요즘 사람들은 모든 정보를 인터넷 으로 얻으려 하고 그에 대한 정확성의 여부는 제대로 판단하고 있지 않다. 물론 인터넷의 좋은 점들도 굉장히 많다. 쉽고 빠르게 사람들이 원하는 정보를 전해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단시간에 소통을 하게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사람들이 계속 인터넷에만 의지하게 만드 는 것 같다. 모든 정보를 책과 자료들로 얻어야 했던 옛날과는 다르게 검색만 하면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인터넷의 시스템은 사람들을 더 무능력하게 만들고 있다 . 흡사 모두 정확한 것처럼 보이는 인터넷 의 정보들은 사람들이 그 진위를 판단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고 인터넷 의 너무나 많은 정보들은 사람들의 정작 필요한 정보를 구별하는 능력 조차 망치고 있다 . 이처럼 인터넷의 쉽고 빠르다는 장점이 마냥 좋은 영향력만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정보를 구별하고 사용할 때 중요한 것은 속도와 양이 아닌 질과 방향 , 그리고 정확성인 것 같다 . 정보의 양이 너무 많다면 그것의 정확성을 따져 필요한 정보를 구별하기 어려울 것 이고 이는 결국 사람들이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선택하게 만들 것이 다 . 또한 , 인터넷의 빠른 속도는 사람들이 알맞은 정보를 찾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빠른 속도로 정보를 제시하는 것의 좋은 점 이 있긴 하겠지만 그것의 정확성이나 질의 여부는 사람들을 계속 헷갈 리게 할 것이다. 이처럼 , 인터넷의 빠른 속도와 많은 양의 정보는 사 람들이 편리하게 정보 자체를 찾을 수 있게는 해주지만 사람들이 정확 하고 알맞은 정보를 찾는 데에는 도움을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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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정확성이나 질의 여부와는 다르게 또 하나 중요하게 여 겨지는 것이 있다. 항상 인권 침해로 이어져 여러 가지 문제들을 일으 키는 인터넷상에서의 표현의 자유이다. 요즘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 터넷에 자유롭게 글을 게시할 수 있으며 자신의 이야기들을 타인과 공 유할 수 있는데 이는 개인적인 표현의 자유를 지켜주기도 하지만 한편 으로는 침해하기도 한다 . 누군가의 정보나 글들이 사람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는 반면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고 자유를 침해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기사를 보아도 알 수 있는데, 몰카와 같 은 인권침해 영상들, 도박 , 음란물 등 유해 콘텐츠 유통과 사이버 폭 력과 명예 훼손, 왜곡된 윤리 의식 등으로 오프라인에서의 불법행위보 다 온라인상에서 더 큰 피해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 이처럼 누군가 에겐 재미로 올린 동영상이 자신의 자유를 빼앗아가고 자신을 속박시 키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끝으로 , 요즘 ‘인터넷 중독 ’ 이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봤을 것이 다 . 인터넷 사용 시간을 조절하지 못하고 필요 이상으로 인터넷을 이 용하는 행동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것이 10년 뒤에도 인터넷 ‘중독’ 이 라 불릴까? 인터넷의 발전하는 기능들은 사람들을 더욱 더 유혹할 것 이고 이는 결국 사람들의 인터넷 사용을 더 지지할 것이다. 이처럼 우 리가 중독으로 의심하던 인터넷 사용시간은 결국 평범한 이용시간이 될 것이고 인터넷 이용은 우리의 삶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사람들이 무수한 능력을 가진 인터넷에 의지하며 살아야하는 시대가 된 이상, 사람들은 가장 효과적이고 알맞은 정보 선택, 모두가 안심하는 사이버 환경 조성, 적정 수준의 사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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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이란 무엇인가 Grade 10 이진균 Jin Lee 힙합은 대략 1974년 미국 뉴욕시 브롱스가에서 탄생했다 . 당시 시대적 가난과 불행을 연속적으로 겪었던 흑인들은 음악으로 자신들의 생각과 울분을 드러냈다. 당시 백인들은 자신들과 피부색이 다른 흑인 들을 노골적으로 차별했고 계속되는 불평등에 맞서 이에 저항하는 폭 력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 수백 명의 흑인들이 시위 도중 죽어나갔 고 이러한 분과 억울함을 치유하는 방법은 그들에게 음악과 운동밖에 없었다. 뉴욕 브롱스의 게토에서 시작된 힙합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생 긴 음악 장르라고 볼 수 있다. 1972년 8월 11일 펑크와 디제잉 스크 래치 (밝은 분위기의 디스코 댄스 음악과 턴테이블 바이닐을 긁는 기 법 )를 곁들인 음악은 아티스트 디제이 쿨허크 (Dj Kool Herc)가 탄생 시켰다고 볼 수 있다. Dj Kool Herc의 비트에 랩을 더한 아티스트는 코크 라 락(coke la ro ck)이었다 . 이렇게 쉽게 탄생한 초기의 힙합은 특유의 펑키 (Funky - 흑인 들 특유의 리듬과 연주 )한 색깔 덕분에 주로 파티 음악에 쓰였다 . 그 후엔 디스코(disco) 풍의 곡들에는 랩 (rap)이 들어갔지만 그 중에서도 The Sugarhill Gang 의 Sugarhill Gang 앨범에 실린 ‘R apper’s Delight’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랩의 메시지 도 변해갔다 . 초창기에는 즐겁고 행복한 가사들로 가득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가사에 의미를 담는 래퍼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회의 문제점들을 비판하는 의미 있는 메시지를 담은 랩은 컨셔스 랩 (Conscious Rap)이라고 한다 . Grandmaster Flash & T he Furious Five라는 아티스트들이 ‘The Message’ 라는 곡을 1982년 발매했다 . 이 곡은 최초로 발매된 컨셔스 랩 곡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시기에 힙합은 더 이상 브롱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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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흑인 사회에서는 무수한 힙합 곡들이 쏟아 져 나왔고 80 년대 초반으로 넘어가면 우리는 이때를 뉴스쿨 힙합 (New-school Hip Hop)이라고 본다 . 1983년도 이전의 힙합 곡들은 다 올드스쿨 힙합이라고 한다 . 80년대 초반, 올드 스쿨과 뉴 스쿨 사 이의 힙합이 탄생했다 . 런 -디엠씨 (Run -D.M.C) 라는 그룹이 올드한 펑크 사운드와 새로운 랩의 흐름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 주로 컨셔스 랩을 다루며 대중적인 곡을 만든 이 그룹은 힙합이 대중화 되는데 중 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힙합의 황금기인 80년대 중반부터 90 년대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더 새로운 스타일의 힙합이 탄생했다. 모든 래퍼들은 자신만의 새로운 흐름을 찾고 있었으며 자신만의 개성을 띄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힙합 은 서부와 동부로 갈라져 있었고 갱문화도 이 시기 때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극단적이고 거친 랩이 반영된 갱스터 힙합이 탄생한 것이다. Schooly. D, Ice T, N.W.A가 그 중심에 서 있다. N.W.A 라는 그룹 은 거의 80년대와 초기 90년대의 힙합을 장악했다 . 욕으로 가득했던 곡들이지만 흑인들의 인권 문제를 곡에 담았다 . 그 당시에 엄청난 아 티스트들이 발굴됐다 . 그 중심엔 비기와 투팍이 있었다 . 하지만 당시 N.W.A, Ice Cube, Snoop Dogg, Dr. Dre, 2Pac (N.W.A 아이스큐 브, 스눕독, 닥터드레, 투팍)같은 아티스트들 덕분에 서부 힙합이 대중 적이었고 그 덕분에 동부와 서부는 많은 다툼을 겪었다. 그 때문에 힙 합은 전설적인 아티스트 투팍 (2Pac)과 비기 (Notorious B.I.G)를 잃었 다. 90년대 중반으로 들어가면서 동부권이 힙합의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다 . 그 중에 유명한 아티스트 비기 (Notorious B.I.G)가 1994년에 데뷔를 했다. 나스(Nas)와 몹딥 (Mobb Deep)이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 였으며 우탱클랜 (Wu-Tang Clan)이 당시 인기를 끌었다 . 서부에서도 끊임없이 자기들만의 사운드 지펑크휘슬(G-Funk) 를 선보였다 . 하지만 90 년대 후반을 장식한 사건은 이전에도 언급한 동부와 서부의 갈등이 었다 . 당시 최고의 인기를 선보인 전설적인 아티스트 투팍(2Pac)과 비 기 (Noto rio us B.I.G)를 잃은 사건으로 90 년대 중반은 막을 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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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후반과 2000 년대 초반도 독특한 음악을 선보였다 . 아틀 란타의 트랩이 탄생한 것이다 . 90년대 후반까지는 모든 힙합 음악이 붐뱁 (실제 드럼 기반으로 되어 있든 비트)으로 구성 되어 있었다. 하지 만 2000 년대 초반에서는 트랩이라는 가상 악기 소리로 드럼의 하이햇 (hi-hat cymbals) 이 쪼개지는 소리로 구성된 힙합 장르가 탄생한 것 이다 . 요즘에도 흔히 들리는 트랩은 지금까지도 모든 장르의 음악에 들어가 있다. 그 중엔 K-pop과 edm도 포함되어 있다 . 트랩이 유행하 는 동시에 붐뱁 아티스트들도 만만치 않았다 . N.W.A의 닥터드레 (Dr. Dre) 는 90 년대 후반에 다들 알만한 유명한 래퍼 에미넴을 발굴했고 스눕독 (Snoop Dogg) 도 Dr. Dre 만큼 잘나갔다 . 제이지 (Jay -Z)와 나스 (Nas)도 있었으며 힙합은 엄청나게 커진 것이다. 힙합에도 여러 장르가 존재한다. 전에 언급한 붐뱁과 트랩이 기 본적으로 있으며 컨셔스 랩 , 재즈힙합 , 레게톤 , 뉴잭스윙 , 올드스쿨 , 뉴스쿨 , 퓨처베이스 등등이 있다 . 힙합의 세부장르 덕분에 힙합은 여 러 나라에서도 인기를 끌었고 현재 음악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개인적으로 힙합을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 힙합 안에는 인 문학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힙합을 좋아한다 . 뿐만 아 니라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리듬과 독특하고 거칠고 자연스러운 로파이 사운드 (Lofi Sound) 때문에 힙합을 좋아한다 . 특히 래퍼 나스 (Nas) 와 재즈힙합 프로듀서 누자베스 (N ujabes)를 좋아하는데, Nas는 미국 동부의 대표적인 래퍼로 독특하고 참신한 라임 (Rhyme)을 선보였다 . 그의 메시지와 톡톡 튀는 플로우 때문인지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래퍼 중 한 명이 되었다. Nujabes는

일본에서

태어난

재즈힙합

프로듀서

DJ다.

Nujabes는 로파이 재즈힙합의 창시자 중 한 명이다 . 새로운 장르를 만들 정도의 독특한 프로듀싱 능력을 가진 Nujabes는 조용하고 편안 한 재즈힙합 곡을 만든다 . 필자가 왜 좋아하는지는 말로 설명이 불가 능해서 직접 들어보기를 권한다 . 말 그대로 아무 Nujabes 곡이나 들 어보면 알 것이다. 힙합은 정확하고 확고한 답이 없다 . 하지만 힙합은 우리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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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함께 했으며 앞으로도 발전할 ‘문화’ 중 하나이다. 힙합은 음악 뿐만 아니라 패션이나 예술과도 같은 문화적 맥락에서 많은 스트릿 컬 쳐 (Street Culture)를 만들었으며 앞으로도 좀 더 긍정적이고 대중에 게 사랑받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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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 문학은 이렇게 감상하는 거야 ‘가장 아름다운 하늘 ’을 읽고

Grade 9 김재인 Charissa Kim 나는 색 (色) 만큼 간단하면서 매력 있는 매개체는 이 세상에 없 다고 생각한다 . 그리고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는 색만큼 다양한 것도 없다. 나는 항상 아침에 일어나면 내 주위에 있는 것들에 서 시작해, 밖에 나가 활동하는 모든 상황 속에서 눈에 보이는 다양한 색깔들이 나를 반겨주는 게 참 상쾌하다고 느낀다. 거리의 자동차 , 우리가 매일 쓰는 물건 그리고 자연 , 그 중에 서 나무도 시간이 지나면서 잎 색깔이 변한다. 나는 이렇게 거의 모든 것이 다 똑같은 색깔이 아니라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이 너무 아름 답다고 생각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일이나 공부, 다른 사소한 것들 에 너무 바빠 작지만 아름다운 것을 그냥 놓치면서 지나간다. 내가 볼 때는 , 아무리 바빠도 인생의 작은 것들의 매력을 인정하는 것도 참 중 요하다고 느낀다. 색깔처럼 말이다. 그런데 나는 요즘 걱정거리와 고민이 많아지면서 사소한 매력에 대해 조금씩 잊어버리는 일이 잦아짐을 문득 알게 되었다. 모든 걸 내 려놓고 잠시 밖에 나가 앉아있고 싶었다 . 그래서 나는 집에서 가까운 공원으로 갔다 . 처음에는 사람이 왜 한 명도 없는가 했지만, 시간을 보니 아주 이른 새벽에 왔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잠시 집에 다시 갈 생각을 하다가 여기까지 왔으면 그냥 몇 분 정도는 머물러 있어야겠다 는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주변을 걸어갔다. 한 10분 정도 걷다가 풀이 있는 넓은 공간에 살짝 누웠다. 나는 부드러운 풀에 손을 대면서 새파란 하늘을 쳐다봤다 . 계속 누워 있다 보니 재밌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그저 하늘만 그려본 사람은 있을까? 애들이 크레파스 로 거칠게 그린 거 말고, 정말 크고 두꺼운 종이에다가 물감으로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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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그린 사람이 있을까?’ 한참 고민을 하다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하늘을 그린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서 , 내가 한 번 그려보면 좋겠다는 생각 이었다. 나는 얼른 집으로 달려가서 내가 찾을 수 있었던 제일 큰 종이 와 가장 좋은 물감을 가지고 다시 원래 누웠던 자리로 달려갔다. 빨간 색을 먼저 들고 종이에다가 천천히 옆으로 칠했다 . 다음에는 주황색 , 그 다음에는 노란색, 핑크색… 어느새 마치 해가 질 때의 하늘을 그린 것 같았다. 나는 만족하고 이번엔 파란색을 들고 밝고 붉은 하늘 밑에 새벽하늘을 칠하기 시작했다. 파란색하고 보라색, 또는 초록색하고 노 란색도 같이 섞어 넣었다 . 나는 다시 일어나서 종이를 봤다 . 진한 하 늘과 날을 밝히는 새벽하늘. 그렇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검정색과 갈색을 꺼내고 두 하늘 곁에다가 섞어 넣었다 . 나는 왜 이런 색깔을 같이 쓰는지 전혀 생각조차 안하고 그냥 이 그림을 완성하면 얼마나 아름다울지만 생각 하면서 계속 칠했다 . 한참 칠하고 나서 나는 다시 일어나 내 그림을 봤다 . 잠깐 동안 웃었지만 , 금방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그림을 오랫동안 봤다. 분명히 뭔가가 모자라게 느껴졌 다. 눈을 감고 집중했다. ‘옳지 ! 회색이 빠졌구나!” 얼른 물감에 다시 손을 댔다 . 그런데 그제야 회색이 아예 없다 는 걸 알게 됐다. ‘어쩔 수 없네. 있는 물감을 가지고 회색을 만들어야 되는데, 어 떻게 하는 거지? 사람들이 오기 전에 끝내야 되는데… ’ 나는 한숨을 깊이 쉬고 빨간색을 들었다. 나는 물감이 들어있는 통 안에다가 빨간색을 조금 칠했다. 빨간색은 회색이랑 전혀 비슷하지 는 않지만 , 모든 걸 다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음 색깔을 보라색으 로 골라서 빨간색 위에다 칠했다 . 아주 이상한 색깔이 나왔다. 그 위 에다가 노란색을 칠했다 . 색깔이 더 이상해졌다 . 나는 아직 해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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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게 많으니 포기하지 말라는 혼잣말을 되뇌며 주황색을 칠했다. 잠 시 고민하다가 갈색을 위에다가 칠했다. 아까보다 더 희한한 색이 나오자 , 초록색을 덧칠했다 . 한숨을 내쉬고 검정색을 칠했다 . 그리고 그 위에다가 핑크색을 조금 칠했다 . 검정색만 보이자 , 핑크색을 엄청 많이 칠했다 . 우스꽝스러운 색깔이 나오자 , 나는 파란색을 더 많이 칠했다 . 그냥 색깔이 아닌 괴물 같은 물질이 돼 버렸다. 나는 거의 두 시간 동안 이런 과정을 반복했다. 다 양한 색깔을 같이 섞어보면서, 어떤 색깔은 다른 것보다 더 많이 칠해 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색깔을 한꺼번에 칠해보기도 했다.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걸 보고 포기할 마음이 생길 듯 말듯 했다 . 나는 이왕 시작한 것을 끝내기 위해서 다시 색깔을 골라봤다 . 처음에 했던 것처럼 빨간색을 다시 칠했다 . 아주 조심히 생각한 끝에 파란색을 더했다 . 보라색이 나왔다 . 나는 큰맘 먹고 위에다가 노란색 을 아주 조금 칠했다 . 색깔은 또 약간 이상해졌다 . 나는 입술을 깨물 고 노란색을 조금 더 칠했다. 뭔가가 변하고 있었다. 이번엔 노란색을 더 칠했다. 그제야 세상이 나를 안아주는 것 같았다 . 색깔이 조금씩 회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입이 눈까지 닿는 듯 나는 노란색을 계속 섞 고 또 섞었다. 계속 노란색을 칠하다보니까 어느새 단단한 회색이 나 왔다 . 나는 회색을 내 하늘 그림 위에다가 마음껏 칠했다 . 눈에는 눈 물이 나왔지만 입 꼬리를 내릴 수가 없었다. 나는 회색을 마음껏 칠하 고 나서 그림을 완성했다. 그림을 다 그려서 막 기뻐하는데 공원에 걸어가던 어떤 한 아주 머니가 나의 그림을 보고서는 물었다. “뭘 그린 거니?” “하늘이요.” “하늘이라니? 저게 어떻게 하늘이니?” “한 번만 자세히 봐주세요.” “붉은 하늘과 새벽하늘은 보이는구나 . 그런데 검정색하고 갈색, 그리고 회색은 도대체 왜 섞었니?”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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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색깔을 집어넣어서 그림을 망쳤잖니.” “아니요. 이런 색깔을 넣어서 가장 예쁘고 아름다운 그림을 완 성 할 수 있었어요. 다른 색보다 조금 더 어둡고 사실 화려하지는 않 지만 , 같이 쓰니까 밝은 색깔만 쓰는 것보다 더 예쁜 그림이 됐잖아 요.”

경수 : 아 … 이제는 머리가 아프네… 민석 : 머리가 ? 왜 ? 경수 : 숙제가 징그럽게 많은데 지금 이거 하나에 거의 한 시간동안 시 달리고 있어… 민석 : 음 … 숙제가 뭐야? 경수 : 국어야 . ‘가장 아름다운 하늘 ' 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 이 글을 읽고 네 가지 방법으로 다시 분석해 보는 거야. 작품에 대한 전 체적인 느낌이나 생각 , 작품 자체에 주목하는 해석 , 작품 밖의 요소와 관련 짓는 해석 , 그리고 두 해석을 아우르는 감상 태도 가 다 들어가야 돼 . 처음엔 쉬운 줄 알았는데 막상 하려고보니 까 생각보다 더 어려워… 근데 글 자체는 이해했어. 민석 : 우리 솔직히 엄청 친하긴 하지만 학교는 같이 안 다녀서 잘은 모를 수도 있는데 같이 한 번 해보자. 경수 : 정말 ? 고마워 ! 교회 끝나고 내가 맛있는 막창집에 데리고 갈게. 민석 : 와 ! 좋아좋아 . 그럼 우리 작품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이나 생각에 대해 먼저 써보자. 경수 : 그래 . 음 … 일단 내가 읽었을 때는 뭐든지 마음과 시선을 조금 바꾸면 완전히 다른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어. 그리고 내가 예전에 주사랑 공동체라고 어느 목사님이신 분께서 버려진 장애인 아이들을 키우는 곳에 가봤던 적이 떠오르네. 많 은 사람들은 딱 눈에 보이는 걸 보고 가잖아. 근데 그런 아이들 이 우리랑 같이 성장하면 더 좋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민석 : 우와 , 멋있다 경수야. 그래, 그렇게 써봐 . 나도 그게 너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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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걸려 . 미국에 있는 학교 중에서 장애인 아이들이랑 같이 놀 고 공부하게 해주는 학교도 많아. 우리나라는 그게 너무 없어서 문제야 . 나는 이 글을 읽지는 않았지만 네가 얘기한 걸 들어 보 니까 책이 갑자기 생각나네 . 때론 우리가 책의 표지를 보고 금 세 판단을 하잖아. 근데 그런 거는 신경을 좀 덜 쓰고 이런 저 런 책도 많이 읽다보면 우리 지혜도 자라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 점도 넓어지잖아. 경수 : 맞아 . 네가 방금 한 말도 같이 집어넣을게. 그럼 이제 작품 자체 에 주목하는 해석으로 넘어가볼까? 민석 : 그래 . 경수 : 우선 이 글을 읽고 어떤 이미지나 은유, 또는 상징적 의미를 찾 아내는 것이 내재적 해석인데 , 이런 면에서 이 글을 어떻게 접 근하면 좋을까? 민석 : 나 이거 한 번 빨리 읽어봐도 돼? 경수 : 응 , 물론 . 민석 : 음 ...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 색의 매력에 대해 많이 쓰여 있는 것 같네. 끝에서도 우리가 잘 안 쓰는 색도 매력이 있다는 얘기 를 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맞나? 경수 : 어 , 이제 좀 감이 온다. 맞아, 이 글의 작가는 색의 매력을 처음 부터 끝까지 강조하고 있어 . 그리고 … 더 깊게 들어가 보면 색 이 비유적인 의미를 분명히 갖고 있을 거야. 우리가 좀 전에 나 눈 얘기가 이 글에서 작가가 드러내는 색깔론과 무언가 연결이 되는 것 같지 않아? 민석 : 맞아 . 글의 주인공이 회색 하나 때문에 두 시간 동안 만들려고 시도했잖아. 회색이 없어서 작품을 끝내지 않고 ,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삼키고 끝까지 만들려고 노력했잖아 . 우리 사회에는 그 런 게 잘 보여? 내가 생각하기에는 잘 안 보이는 게 아니라 거 의 안 보여. 장애인들의 시선도 존중해주고 정말 서로 알아주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노력조차 안하고 있잖아. 네가 아까 말한 목사님을 보고 우리가 다 배워야 돼. 근데 이 작가의 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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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이런 걸 깨달을 수 있네. 경수 : 그래 . 글의 구조가 잘 정리 된 것 같아. 처음에는 왜 색깔 얘기 를 계속 하나 싶다가 조금씩 그 의미가 밝혀지는 거야. 이거 다 써야 되겠다. 민석 : 좋아 . 그럼 다음으로 작품 밖의 요소와 관련 짓는 해석으로 고 고? 경수 : 응 . 이번엔 외재적 해석을 해보자. 민석 : 미안한데 외재적 해석은 뭐야? 내재적 해석하고 어떻게 달라? 경수 : 그러니까 … 이 글을 읽을 때 작가나 시대 상황, 또는 독자 같은 외부 요소에 기대는 해석이야 .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여러 생 각을 했는데, 단어들 사이에 작가의 마음이 보이더라.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사회가 조금씩 바뀌었으면 하는 희망이 들어있었 어 . 그리고 우리의 슬픈 현실이 오히려 너무 창피했어. 장애인 들을 분리하거나 막지 말고 같이 성장하다보면 얼마나 더 좋은 경험이 될지 우린 아직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 정도로 애도 안 쓴다는 게 마음에 많이 걸리더라 . 너 트럼프가 어느 장애인 리 포터 놀리는 동영상 봤어? 난 그거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 었어 . 이 작가도 아마 그거 보고 얼굴이 새빨개졌을 거야 . 이 동영상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된 건지는 몰라도 , 정말 그 추한 동영상 보고 사람들한테 이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한 뒤에 쓰게 된 걸지도 몰라. 민석 : 흠 , 좋은데 ! 나도 너랑 100% 동의해 . 작가는 이 문제를 글에서 낯설게 바라봤고, 독자의 눈에도 해석을 깊이 하다 보면 그 문 제가 너무 어렵지 않게 오잖아. 경수 : 이제 거의 다 끝났어 ! 마지막으로 두 해석을 아우르는 감상 태 도 ! 이제는 처음보다 어떻게 쓸지 훨씬 더 잘 알겠다 . 다양한 관점 덕분인지 이 글을 해석하는 게 더 풍부해진 것 같아. 글을 조심히 읽고 천천히 분석하고 작가, 또는 시대 상황도 같이 살 펴보면 해석을 더 깊게 할 수 있어. 와, 민석아, 이제 다 쓴 것 같다 . 같은 학교도 아닌데 도와줘서 고마워 ! 이따 예배 끝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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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자 금방 막창 먹으러 간다! 민석 : 별말씀을 ! 근데 우리 이러다가 예배 시간 늦겠다. 아, 그리고 나 이따가 혹시 사회 숙제 좀 도와 줄 수 있어? 경수 : 막창 먹고 너희 집 가서 같이 해보자! 아이고, 이젠 정말 예배드 리러 빨리 가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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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 빠진 시계추 Grade 9 오수진 Clara Oh 비몽사몽이다. 그래도 눈을 뜨자마자 어김없이 시계를 확인한다. 두 바늘들은 마치 서로 술래잡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 그만큼 시간 은 재빨리 흘러간다. 추격전에 쫓기듯 눈도 뜨지 못한 채 몸을 부지런히 움직인다. 엄마가 차려주신 따뜻한 밥 그릇 위에서 굴뚝 연기처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 한 끼 정도는 아무렇지 않다며 수저를 들지도 않은 채 신 발을 구겨 신고 현관문을 나선다. 매일 틀에 갇힌 듯한 똑같은 생활을 보낸다 . 오늘도 별다른 일이 없음을 예감한다 .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우물 안의 개구리들과 별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도전 과 낯선 것을 경험할 때의 타오르는 긴장감 없이 산지 오래다. 반복되 는 일상이 타임머신처럼 무한재생 된다 . 왠지 모르게 , 갈수록 주변과 거리를 두게 되며 경쟁과 무조건적인 성과만을 위주로 돌아가는 질서 를 생각한 채 하루하루를 가까스로 버틴다 . 겉으로는 한없이 밝은 미 소를 띠지만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상처는 숨기고 사는 우리들 . 그러 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자주 잃어버릴 때가 많다. 그래 서일까 , 하루하루에 우리가 더 무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동네를 나서자 상점들과 빌딩이 무수하게 늘어서 있는 도시의 길거리가 보인다. 평온히 길을 따라 걷다가도 눈앞에 펼쳐지는 수많은 사물들에 우린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뒤돌아보게 된다. 가을이 되어가 는 무렵 푸른색 나뭇잎이 어느덧 붉은색을 띌 때 아무렇지 않은 듯 무 심코 거리를 지나친다 . 새파란 새싹이 봉우리를 맺고 꽃이 피는 과정 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우리들 . 맑은 초록색을 띄는 잔디밭 위 바람을 따라 움직이는 강아지풀들은 따분하다는 듯 눈길 한 번을 안 주는 야 속한 우리들. 그러자 옆 차도에 한 번도 보지 못한 스포츠카 한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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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택을 뽐내며 빠른 속도로 질주한다 . 한 곳을 같이 바라보자고 약속 이나 한 듯이 모두는 그 차에 오감을 집중한다. ‘저 차는 수입 브랜드 신형 차량인가?,’ ‘엔진 소리가 되게 시원시원해… 고가 차량인가 봐.’ 그리고는 주차장에 있는 자신의 차를 떠올리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 ‘ 저 사람은 나보다 얼마나 잘났기에 저런 고가 차량을 구입한 걸까 .’ 발걸음을 멈추고 세상에서 제일 복잡한 문제를 솔로몬의 지혜 로 푸는 것처럼 깊은 생각에 빠진다. 바람에 물결치는 강아지풀들과 엄마의 따뜻한 한상차림 따위는 우리 삶에 있어서 당연하다고 여길 때가 많지 않나? 불과 몇 년 전의 순수한 어린 아이 때의 추억을 회상해보라 . 흰 우유처럼 순수했던 우 리는 사소한 과자 한 봉지 , 아빠의 슈퍼맨 놀이에 싱글벙글한 웃음과 ‘감사합니다 ’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우리였지 않나. 네가 변한건 지, 아니면 내가 변한건지 잘 모르겠다. 아님 사회가 바뀌어서 우리도 하는 수 없이 달라진걸 수도. 주변의 사소한 존재들의 이유와 그들만의 독특한 장점은 파악도 못한 채 더 많은 것들을 갈구하며 권력에 목말라 하는 모두 . 종이의 원료로 쓰이고 이산화탄소를 여과하여 산소를 지구에게 공급하는 나 무, 눈이 올 때나 비가 내릴 때 더욱 더 따뜻하고 소중함을 느끼는 집 과 미래를 스케치해 나가며 공부 할 수 있는 학교 , 그리고 누군가가 항시 내 생각을 하며 손수 준비한 따뜻한 밥 한 그릇. 어른들은 자라는 아이들에게 꿈은 크게 갖는 게 좋다고 늘 말해 왔다 . 하지만 사회는 우리를 너무 많은 부담으로 억누르고 있고 모두 에게 있어서 일상의 소중함과 감사함은 잃어버린지 오래다. 서로를 밟 고 더 높은 자리로 이동하며 치열한 몸부림을 치며 사는 사람들의 삶 은 여유도 없고, 어떻게 보면 목적도 분명치 않아서 망설이며 놓치는 기회들이 무수히 많다 .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의 확신도 없이 남 한테 등 떠밀려서, 혹은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나도 그래야겠지' 하며 만드는 결정들은 어리석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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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자라의 경주를 생각해보라. 경기 시작 전부터 토끼가 당 연히 이길 거라고 모두 주장을 했다. 토끼는 경주 초반부터 질세라 달 렸고 자라는 느릿느릿 원래 속도로 경주에 임했다 . 경주 내내 토끼는 앞장을 서는데도 불구하고 뒤에 오는 자라를 견제하는데 시간을 낭비 했다 . 반면 자라는 토끼한테의 관심보다는 자신의 목표 지점이 분명했 기에 경주를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던 거라고 믿는다 . 남을 경쟁상대 로 두는 것 보다는 내 자신을 경쟁자로 두고 달성하고픈 목적지가 분 명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달리기 경주를 할 때 어떤 자들은 풀려진 운동화 끈을 경기 도 중에 묶는다 . 다시 묶는 자들의 끈은 아주 쉽사리 풀리게끔 돼 있을 것이다 . 그 자들은 앞으로 스스럼없이 전진하는 자들로부터 뒤쳐질 것 이다. 앞장서는 자들은 처음부터 끈을 단단히, 풀릴 염려 없이 묶었을 것이 분명하다 . 남들의 편견과 비판에 갇혀 그 안에서 갑갑하고 따갑 게만 느껴지는 시선들을 의식하며 살기에 우리는 너무나 바쁘다. 남이 나의 자리를 낮추고 비하해도 자신을 끝까지 믿고 자존감을 높여야 한 다. 사실상 그 어느 누구도 우리의 가치를 낮출 수 없는 것이고, 많은 길들을 걸어가 보며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얼마나 빨리 길을 걷는 것보다는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법이다. 당신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한다. 정작 제일 중 요시 여겨야 하는 사람의 의견은 뒤로 한 채. 정작 자신도 설득 못한 사람이 어떻게 남의 신뢰를 얻겠어? 한 숨 쉴 여유도 없이 다시 사회 와의 다툼을 시작해야하는 별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다. “쉬었다가 빛나도 괜찮아요 . 조금 뒤쳐지면 어때요 . 저 어두운 하늘에서 늘 빛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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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면 교수: 안녕하세요. 강의에서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정말 기쁩 니다. 그럼 , 발제를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요즘 우 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 예로 작가 오수진 님의 글, ‘ 나사 빠진 시계추'를 천천히 해석 하면서 오늘의 토론을 진행해보려 합니다 . 학생 여러분 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인생과 연관 지어보아도 되고요, 글쓴이가 의도하는 메시지가 뭔지 정확히 살펴보는 시간 을 가져봅시다. 오세훈 학생 : 저는 제목부터가 인상적이라고 생각했어요 . 나사 빠진 시계추는 고장 난 시계를 상징하는 것 같아요 . 뭐든지 한 가지 부분이 고장 나면 오작동이 일어나고 못 쓰게 되잖아요? 즉 사라진 시계추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려는 것 같아요 . 그런데 너무 사소한 나머지 아무도 고치려 하지 않는 그런 문제점이요. 김준면 교수: 그럼 오수진 작가가 알리고 싶었던 메시지는 뭐라고 생 각하나요? 어떤 작은 습관들, 혹 문제점들이 우리 사회, 그리고 사람들을 망치고 있는 걸까요? 오세훈 학생 :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시계라는 상징체를 중점적으로 두고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나사 빠진 시계의 추' 때문 에 뭔가에 조급히 쫓기고 있다는 강한 느낌이 들었어요. 마치 집에서 10분 늦게 나와서 영어 학원 버스를 놓칠 까봐 조마조마했던 그런 기분처럼요. 그 뿐만 아니라 남 들과의 치열한 경쟁 때문에 끼니를 거르기 일쑤인 안타 까운 요즘 학생들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어요. 박찬열 학생 : 세훈이 말에 동의해요 . 덧붙이자면 오수진 작가는 시간 에 쫓기는 사회가 결국엔 거대한 시계의 추를 망가트렸 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어요 . 마치 모두가 한 곳에 초 점을 맞추어서 여유롭게 즐기는 일상의 퍼즐 조각을 잃 어버린 것처럼요 .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학원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있어야 하고 , 그 시절에만 즐기고 체험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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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여러 가지의 좋은 기회들은 매번 놓치게 되는 것 같아요. 한숨도 못 돌린 채 숙제에 코 박고 다음 날 밀 려오는 시험 준비에 또 바쁘고요. 에휴... 변백현 학생 : 저도 한 때 엄마 때문에 다양한 학원에서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 그때 저는 제가 즐거워서 하게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 단지 모두가 하니까 , 엄마가 명령하니 까 자율적인 의지 없이 따랐던 기억이 떠올라요 . 저는 그 당시 느꼈죠. 아무리 지식이 풍부하고 유식해도 자신 이 즐길만한 진로를 못 찾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요. 제 주변 친구들은 다들 명확한 꿈을 찾는데 나는 막 연히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정확한 까닭도 모 르겠고… 정말 힘들더라고요... 김준면 교수: 백현 학생만이 느낀 게 아니에요. 선생님도 한 때 뭘 해 야 하는지 몰라서 머리가 복잡했고, 공부의 목적을 이해 하지 못했던 적이 대부분이에요 . 다수의 대한민국 청소 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자신한테 적합한 직업을 못 찾아서 부유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부분에서 오수 진 작가는 토끼와 자라의 경주라는 비유를 잘 활용한 것 같은데요. 남을 견제하는 게 다가 아닌, 내 자신을 이기 고 내 목표점이 명확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다고 우리 모두에게 말하는 것 같네요. 박찬열 학생 : 작가는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본 해석을 글에서 이용한 것 같아요 . 또한 ,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가 되는 우리가 아니라, 매일 매일 색다른 도전을 실행하는 우리가 되자 는 해석도 가능하겠네요. 이런 건 작가의 배경, 혹은 가 치관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어요 교수님. 작가의 경험 과 영감들을 글에서 활용하여 더 풍부한 의미들을 일으 켜 낸 것 같아요. 오세훈 학생: 동의합니다. 작가가 체험한 경험이 글 안에 포함되지 않 으면 독자들에게 메시지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을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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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합니다. 이유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게 되고 , 요 즘 시대 분위기에 걸맞지 않게 쓰면 자연스러운 흐름이 깨지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 작가는 독자들에게 아무 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준면 교수: 모두들 귀한 생각들 감사합니다. 작품의 뜻과 중요성 등 을 정확히 짚고 넘어간 것 같고요. 자, 이제 ‘여유'를 중 심적으로 생각해봅시다 . 지금 여러분들은 일상에서 편한 혜택들과 여유를 누리고 있는 것 같습니까 ? 만약 아니 라면, 무엇이 우리에게서 여유를 빼앗아 가는 걸까요? 학원이라는 게 없고 단지 학교에서만으로도 충분히 배웠던 시절이 있 습니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널린 게 사교육 학원들입니 다. 학생들은 방학이라는 게 아예 없다는 듯이 여러 빌 딩을 들락날락 하지 않습니까? 변백현 학생: 하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은 이 글은 청소년들에게만 해 당되는 메시지가 아니라, 매일 바쁘게 달려가는 대한민 국 국민들 모두에게 전하는 것 같아요 . 남녀노소 , 모두 경쟁과 압박감에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는 것 같아요. 흔히들 말하는 ‘1 등만 관심 받는 사회 ' 이런 사회는 얼 음장처럼 차갑게만 느껴지고 나머지 다수를 외면하고 있 는 것만 같아요. 한끗 차이로 2등으로 순위가 밀리게 되 면 그 한 사람의 그간 피나는 노력은 인정받지 못하고 쉽게 잊혀지고요. 경쟁의 강도가 너무 세다 보니까 한눈 팔면 바닥치기 십상이고요… 오세훈 학생: 저는 그래서인지 오수진 작가의 마무리 부분이 인상적이 었습니다. “쉬었다가 빛나도 괜찮아요 . 조금 뒤쳐지면 어때요. 저 어두운 하늘에서 늘 빛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어요.” 매번 남들을 만족시키려 과도하게 노력할 필요 없다는 말이 정말 큰 위로가 된 것 같아요. 김준면 교수 : 대단합니다 여러분들. 오수진 작가는 잃어버린 여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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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서만 글을 쓴 게 아니라 , 다른 관점으로도 연결을 시켰어요. 글의 구조를 살펴보면 짧은 이야기들을 포함 해서 더 큰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사회 는 비싸고 값이 더 많이 나가는 것들에만 치중하고 사소 한 것들의 가치는 너무 당연하게 여길 때가 대부분이라 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 예를 들어 차도에 값비싼 포르 쉐, 반대쪽은 그냥 평범한 차가 지나간다고 칩시다 . 어 떤 차에 사람들은 더 집중합니까? 박찬열 학생 : 당연히 포르쉐죠 . 저도 포르쉐에 전부터 관심이 있었거 든요. 김준면 교수: 솔직한 답변 감사합니다 찬열 학생 . 솔직히 모두들 비싸 고 남들보다 더 좋은 물건을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건 당연한 겁니다 . 그러나 , 사회는 갈수록 그런 것들에 만 집중하고 치중하는 것 같아요 . 오수진 작가는 그런 이유들 때문에도 국민들이 여유를 잃어가고 있다고 제시 를 했었습니다. 변백현 학생 : 이 글을 읽고 나서 느낀 점이 많았어요 . 따뜻하고 포근 한 집, 그리고 공부할 수 있는 학교도 당연시 여겼던 적 이 많았죠 . 세상에 많은 아이들은 이런 것들도 없이 살 아가는데 말이죠 … 자신들의 위쪽만을 중시할게 아니라, 자신의 아래쪽 사람들을 끊임없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고 생각했어요. 두 가지 문제점들이 다른 요소라고 생각 할 수 있겠지만, 매듭을 지을 수 있었어요. 대한민국 국 민들에게 조금의 여유가 주어진다면 한 관점만 보는 좁 은 시야의 폭을 넓히고 다방면에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고 생각했거든요. 오세훈 학생 : 마지막으로 , 작가 오수진 님은 특히 아직 날개를 활짝 펴지 못한 청춘들에게 꼭 만족한 결과를 얻는 것이 다가 아니라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 같아요 . 늦었구나 라고 생각할 때가 제일 이를 때라는 말들 종종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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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아직 늦지 않았으니 우리 모두 날개를 펼 수 있다 는 희망의 메시지가 무엇보다 많이 와 닿았어요. 아쉬운 결과, 최악의 결과 , 나쁘지 않은 결과 , 또 만족한 결과 . 이런 모든 결과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접해보는 것이 성공된 삶이라고 꾸준히 강조하고 있고요. 박찬열 학생: 그렇죠. 남을 반드시 만족시킬 필요도 없고 뚜렷하고 꼭 달성하고픈 무언가가 있는지라는 의문을 우리 모두에게 던지며 끝나는 것 같아요. 김준면 교수 : 아주 멋진 토론이었네요 . 문학을 다양한 각도로 감상하 는 방법을 배워 본 귀한 시간이 된 것 같네요. 이 글을 읽고 나서 모두들 오수진 작가로부터 좋은 영향들을 받 았다고 믿어요 . 대한민국 청춘들 모두 힘내요 ! 이상으로 오수진 작가의 작품 ‘나사 빠진 시계추 ’에 대한 문학토 론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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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 Grade 9 김호제 Marcus Kim 약 석 달 전, 체포된 범죄자 한 명이 경멸스러운 미소를 띤 채 재판소 밖으로 유유히 걸어 나간다. 정확히는 지난 20xx년 1월 19일, 종로 술집에서 이십 대 여성이 변사체로 발견된 후 , 긴급전화를 받은 우리 수사팀은 차를 타고 급히 사건 현장으로 출발했다. 도착한 지 1시간 내에 주변 목격자들의 증언을 받아 적고, 사건 발생 3시간 만에 유력한 용의자를 잡았다. 외모, 옷차림, 걸음걸이, 그 리고 현장에서 발견된 혈흔도 용의자의 것으로 추정된다는 사건 감식 단의 보고와 정확히 들어맞았고 , 피해자의 피가 묻은 짧은 부엌칼 손 잡이에 선명하게 각인된 지문도 그의 것과 같았다. 이틀 후 , 드디어 재판이 시작됐다. 살인범을 잡은 우리는 정의 가 구현되길 기대하고 있었다. 피해자 측은 쉴 새 없이 증거를 내놓으 며 피의자를 몰아세웠지만, 상대의 실력 좋은 변호인은 범죄를 정당화 시켰고 , 급기야 물타기까지 시도했다. 두 달 간의 심의재판 동안 치열 한 토론이 계속됐고 , 결국 피의자는 어처구니없게도 무죄를 선고받았 다. 그러나 , 우리는 재판 관람 도중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피해자의 몸은 사건 당시 밧줄에 묶인 채 여러 차례 찔렸고, 의도적으 로 가해자가 피해자의 목을 조른 흔적도 보이는데 , 이것이 ‘정당방위 ’ 라는 것이다 . 게다가 현장에는 없었던 피해자의 무기와 지문 , 살해된 여성이 먼저 폭력적인 행동을 유발하여 어쩔 수 없이 죽일 수밖에 없 었다는 것이다. 이 어이없는 사태를 어떻게든 수습하기 위해 관련 증거물 등을 찾으러 증거자료실도 가봤지만, 애석하게도 전부 자리에 없었다. 가해 자 측에서 의도적인 비리를 저질렀음을 직감한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수사에 나서보려 했지만 , 누군지 알 수 없는 윗선의 개입으로 저지당 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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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우리 수사팀은 급기야 ‘ 무능한 경찰 ’이라는 낙인이 찍 혔고 , 주변의 압박과 입막음을 버티지 못한 막내 순경은 결국 사표를 제출했다. 한국의 범죄수사와 범죄자 처벌은 항상 이런 식이다. 자본주의적 체계의 주된 힘인 ‘돈' 이 법조차 바꾼다. 그로 인해 매년 피해자들이 속출해 나오지만, 나와 같은 일개 경위는 조직의 톱 니바퀴로서 지정된 방향으로 무기력하게 굴러 갈 수밖에 없다. 승진시 험을 모두 한 번에 붙어 꽤 빠른 속도로 승진을 한 나는 8년 만에 순 경에서 경위가 된 말 그대로, 엘리트 경찰이었다. 그렇기에 일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이 있었고 ,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할 수 있게 매사에 노력해 왔다. 그러나 이따금 나는 직업을 바꾸고 싶을 때도 있다 . 선량한 사 람들을 지키기 위해 , 범죄를 막기 위해 지원한 경찰이 오히려 사회적 강자의 비리를 편 들어 주고 약자들을 제압하는 역할인 것만 같은 느 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온갖 욕이란 욕은 우리 경찰들이 듣는다. 정말 일리가 있는 시민들의 합법적 시위를 강제로

막아야 할 때면 속이 터질 것만

같고 , 부정한 일을 억지로 시킬 때는 멘탈이 부서지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같은 수사팀 후배들과는 정부가 경찰의 정신보건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토론 아닌 토론도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되돌려 받는 것은 무엇인가 ? 별의별 생고 생은 다 하고 나서는 비난과 원한밖에 들리는 게 없다. 시민들은 범죄 에 대한 경찰의 판단을 요구하지만, 실질적으로 우리는 그저 꼭두각시 일 뿐이다. 공적 권리와 판단은 간부층들이 하고, 우리는 몸으로 때운 다는 것이다 . 물론 그들이 전부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 분명 시 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시는 분들도 많다 . 그러나 개인의 사유재산과 정치적 위치를 개선하고자 하는 파렴치한 자들로 인해 원치 않는 싸움을 하고 , 뜻하지 않은 사람을 보호해야만 하는 우리는 매일 밤 눈물과 피로로 밤을 지새운다. 이러한 사태를 바 라보며 나는 내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 ‘정의가 결국 이기는 걸 까, 아니면 이기면 그것이 정의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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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 은욱아 , 이번 독후감으로 김호제 작가의 ‘경찰관 ’을 읽으 려 하는데, 도무지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어. 좀 도와줄래? 은욱 : 그러지 뭐. 자, 어느 부분이 어려운데? 유리 : 작품을 여러 가지 관점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 그 중 내부적인 관점으로 글의 문체와 수사법, 또는 이야기의 구조에 대해 쓸 거 야 . 독자의 입장에서도 그리고 작가의 시점에서도 바라보면 좋겠 지 ? 마지막으로는 작품 안에 반영된 시대적 배경도 부각시켜 보 려 해. 은욱 : 음 , 그렇다면 , 글 자체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내부적 관점부터 한 번 시작해 보자. 우선, 김호제 작가의 글은 짧은 소설이고, 경 찰관이 이 사회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내용인데... 유리 : 아 ! 이렇게 쓰면 되겠네. 작가 김호제가 쓴 단편소설 ‘경찰관 '은 한국 사회의 비합리적인 체계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경찰의 불 만을 토로한 글이다. 이 글은 전체적으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여 있으며 , 사건에 대한 예시로 시작해서 주인공이 자신의 직 업에 대한 불만을 사회적 불만으로 연결하여 표출한다. 어때? 은욱 : 좋아 . 그렇다면 이제 작가의 시점을 살펴보자 . 표현론적 관점은 작가의 경험이나 세계관 혹은 창작 동기 등을 조사해야하니 일단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검색해 보는 것이 좋겠네. 유리 : 그래 , 그러자 . 은욱 : 찾았다 ! 여기 제시된 글을 읽어보니 작가 김호제는 학창 시절에 한국 자본주의의 문제를 심도 있게 토론한 적이 있어. 한국의 정 치적 비합리성과 부도덕함에 관심이 많았나봐 . 또 ‘돈 ’이 얼마나 사회를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논제를 눈여겨봤네. 유리 : 그러고 보니 이 글도 경찰과 한국의 자본주의 체계를 연관시킨 거였지 ? 그렇다면 이렇게 써야겠네 . 당시 비교적 중요한 사회적 이슈였던 자본주의의 비합리성은 김호제 작가의 큰 관심사였다. 약자와 강자의 관점에서 각각 다르게 보이는 자본 중심적 사회를 비판하고자 이 글을 계획하였고 , 결국 시민과 정치인 사이에서 곤욕을 겪는 경찰들을 모티브로 단편소설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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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욱 : 말 되네. 마치 작가가 직접 알려준 것 같아. 이제 뭐가 남았지? 유리 : 수용론과 반영론이지 . 반영론부터 해야 독후감이 깔끔하겠는데 ? 내 개인적인 생각을 결론으로 끝내면 간단하잖아. 은욱 : 네가 정하는거지, 뭐. 반영론을 쓰려면 우선, 2017 년, 당시 작가 가 글을 썼을 때를 조사해야 돼. 그러니 다시 한 번 인터넷에 들 어가 보자. 유리 : 알겠어 . 은욱 : 아 … 그때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있었을 때 … 시민들이 대통령 탄핵하고 별의별 시위가 있었을 때지 . 한국 경찰들이 물대포로 무고한 시민들 진압하고, 대학생 시위에서는 학생들 강제 구속할 때 그 일 말이야. 유리 : 나도 그 사건 기억나 . 그래도 명색이 한국 최초의 여자 대통령 이었는데 , 그렇게 답답하게 결말이 날지 누가 알았겠어. 은욱 : 그럼 최순실 사건과 이 글을 서로 이어 보고 싶다면, 이렇게 써. 작가가 이 글을 계획했을 당시, 한국에서는 일명 ‘최순실 게이트’ 로 불리며 대통령 탄핵까지 이른 사건이 있었다 . 정치인들의 비 리를 기반으로 한 이 사건은 경찰력을 사용해 시위를 진압하는 경우도 있었고 , 그들을 보호하는데 시민들의 세금까지 사용했다 . 비리와 범죄를 둘러싼 ‘최순실 게이트 ’ 사건은 작가가 글을 쓰는 데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유리 : 드디어 수용론이 남았네. 여기부턴 어떻게 해야 될지 알겠어. 은욱 : 그럼 나는 이만 가볼게. 어차피 점심시간 다 끝나니까 . 하지만 한 마디만 할게 . 많은 범죄 영화들과 비슷한 이야기인 것 같지 만 , 더욱 창의적인 방법으로 경찰들의 심리나 마음을 표현한 게 대단한 것 같아 . 또한 , 이 글은 정말 우리 사회에서 생각해 볼 문제점을 던져 준 것 같아. 유리 : 그래 . 도와줘서 고마워! 은욱 : 응 , 너 나한테 빚진 거다? 유리 :아, 알겠어 ! 언제 떡볶이 한 번 쏠게 . 자 , 어디까지 썼더라 ? 아 맞다 , 수용론적 관점 . 내 경험과 비교할 수 있으니까 … 내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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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대비시켜 볼까 ? 이 글을 읽음으로써 한국 사회가 언제나 평화롭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 작가는 경찰과 체제 사이의 정치적인 틈을 감성적으로 표현하였고 , 경찰이 자신의 무력함을 설명할 때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했다 . 이 글은 ‘검 사외전 ’과 같은 범죄영화를 연상시켰고 , 그만큼 독자와의 공감을 잘 표현해낸 것 같다. 아, 드디어 다 썼다 . 그런데 아직 수학 숙 제가 남아있구나… 그래, 나중에 하지, 뭐. 인생 뭐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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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전 패러디 Grade 10 하대호 Dae Ho Ha 옛날 어느 한 마을에 새어머니를 모시며 사는 여자가 있었습니 다. 그의 이름은 바로 콩쥐입니다. 콩쥐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찍 돌 아가셔서 콩쥐는 우여곡절 끝에 새어머니와 살아야 했습니다 . 콩쥐의 새어머니는 동네에서 제일 사악한 어머니로 소문이 자자했고 콩쥐를 노예처럼 부렸습니다. 맨날 콩쥐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일하고 밤늦게 까지 일 하면서 하루 종일 그렇게 일만 하였습니다. “콩쥐야- 얼른 와서 그릇 좀 닦거라!” “예, 어머니!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얼른 뛰어오지 못하겠느냐!” “네, 네, 갑니다~!” 어느 날은 “콩쥐야! 이게 뭐니? 왜 내 옷이 이렇게 되었지?” “ 예…? 이건 제가 한 게 아닌데요...” “ 네가 아니면 누가 했겠니 ? 당장 가서 다시 빨아 오도록 해! 뭐야 이게 하얀 옷이 검은 옷이 됐어, 내 아주 그냥 저걸, 쯧쯧쯧!!!” 콩쥐는 자기 자신한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안 한 건데… 왜 맨날 내가 혼나는 거지?” 콩쥐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노예처럼 옷을 빨게 되었습니다. 콩쥐는 새어머니의 구박을 받으면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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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지 못하면서 노예처럼 살았습니다 . 콩쥐가 사는 이유는 딱 한 가지 였습니다 . 그게 바로 옆집 할머니의 아들 . 옆집 할머니의 아들은 동네 최고 훈남이라고 소문이 나면서 콩쥐는 맨날 1초라도 그 총각을 볼 수 있도록 담을 넘을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 나는 옆집 총각과 말 한 마디도 못 하겠지 ?” “아, 내 인생, 이런 내 못난 인생 누가 나 좀 구해주소서!” 어느 날 새벽 콩쥐는 산 정상으로 스트레칭을 하러 올라갔습니 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바 로 신이 내린 선녀! 선녀는 콩쥐가 얼마나 힘든 삶을 사는지 알고 콩 쥐에게 예쁜 꽃과 자신을 꾸밀 수 있는 화장품을 선물했습니다. “오, 콩쥐~ 난 널 하늘에서 보면서 얼마나 서러웠는지 몰랐다.” “선...선녀님!!! 전설로만 계신 줄 알았던 선녀님을 실제로 봐서 정말 영광이네요” ( 흑흑흑흑) “오, 나의 콩쥐야 ~ 이걸 받거라 . 이것은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비단으로 만든 예쁜 한복이다. 이 꽃은 하늘에 있는 장미인데 이 땅의 꽃들과는 비교도 못 하지.” “선녀님,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 야 할지…” “에이, 안 그래도 된다~ 너는 아주 착한 아이며 충실하고 장래 가 밝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거라~” “예!” 콩쥐는 선녀에게 받은 예쁜 옷과 꽃을 받고서는 자기 자신을 꾸 몄습니다 먼저 콩쥐는 새어머니가 알아채지 못하게, 숨어서 새벽에 일 어나 자기 자신을 예쁘게 치장했습니다. “우와!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한복과 꽃을 만져 보다니!” “얼른 입어보고 새어머니 일어나시기 전에 다시 옛날 옷으로 갈 아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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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며칠 뒤... 어느 한가한 날 콩쥐는 새어머니가 낮잠을 자는 걸 알게 되었습 니다 . 이때였습니다 , 콩쥐는 선녀한테 받은 예쁜 옷을 입고 꽃을 머리 에 꽂고 밖을 향해 나갔습니다. 콩쥐가 향한 방향은 바로 옆집이었습 니다 . 옆집 할머니께서 칠순 잔치를 하기 때문에 동네에 있는 모든 사 람이 모여 축하를 하였습니다. 당연히 못된 새어머니는 잔치에 초대받 지 못하였습니다. “호호호~” “다들 오셨군요~” “마음껏 즐기다가 가세요~” 이 축제 분위기에서 콩쥐를 강하게 주목하는 사람이 있었습니 다. 바로 할머니의 아들이었습니다 . 아들 은 콩쥐에게 반한 듯이 계속 쳐다보면서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 허허… 저 사람이 바로 할머니 아 들인가?” “ 너무 잘 생겼다… ” 운이 좋은 콩쥐는 총각이 자신을 쳐 다보는 것을 알게 되었고 콩쥐는 바로 쑥 스러운 표정으로 왜 쳐다보냐고 물어보았 습니다. 그날 이후 총각과 콩쥐는 예쁘게 사귀게 되면서 결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 콩쥐 새어머니는 당연히 싫어하였지만 , 총각은 돈 , 비단 , 음식을 주며 새 어머니의 마음을 흔들어놓았습니다. 역시 총각 마음씨 와 외모는 어디서든 통하는 모양입니다. 특히 돈과, 비단 또 임금님이 먹는 진귀한 음식들이 새어머니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 분명합니다. 못 된 새어머니는 돈밖에 보이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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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호~ 아이고 우리 콩쥐 서방님 오셨구려~” “아 예~ 장모님,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몇 개월 후 할머니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며 총각은 전 재산 을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 콩쥐와 총각은 그 돈으로 마음껏 살지 않고 이웃들과 힘든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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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017 APIS 제 7회 한국어 백일장 ‘용서 ’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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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수필 )]

그래도, 한 가지 Grade 12 김재민 Jenny Kim 2008 년 봄, 초등학교 3학년, 영어와 외국 문화에 대해 잘 모른 채 나는 홀로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남아 있는 친구들과 가족들을 뒤 로 하고 , 조금 더 넓은 곳에서의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얻고자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다. 인천 공항으로 향하던 중 , 4월의 신선한 바 람이 불어왔다 . 마치 잘 다녀오라고 배웅 나온 우리 엄마마냥 포근하 고 따스한 기분을 느꼈다. 얼마나 걸렸을까 , 공항에 도착했을 때 부모님은 내게 마지막인 듯한 말을 건네셨다 . 학업을 제외한 삶에 대한 ‘한 가지 ’를 배워오라 고 . 학업보다 값진,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그 누구도 가르쳐 줄 수 없는 무언가를 마음속에 담아 오라고 말씀하셨다 . ‘ 삶 ’이란 무거운 주제와는 거리가 너무 먼 만큼 어렸던 나는 들뜬 마음만을 가득 끌어 안은 채 미국,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4시간을 비행 하고 처음으로 본 것은 영어로 가득했던 간판들. 부모님 품과 같은 조 국을 떠나 타국에 왔다는 것을 그때서야 확실히 실감했던 것 같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학교 첫 날 . 난 모두가 나를 반갑게 반겨줄 줄 알았고 , 스스럼없이 모두와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 그 것이 내가 느낄 행복이고 삶의 배움이라 크게 믿었기 때문에 하염없이 설레었다 . 그러나 내 바람과는 달리 , 친구들의 반응은 한 겨울의 매서 운 바람처럼 싸늘했다. 당시 영어를 잘 못했던 나지만 , 그 문장 만큼 은 알아 들을 수 있었다. “She smells like Kimchi.” 내게서 김치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 설마하는 의아한 마음 반 그 리고 긴장한 마음 반으로 난 홀로 교실로 향하였다. 당시만 해도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 날이 갈수록 나를 향한 인종차별이 심해질 것 이라는 것을. 지우개 가루를 잔뜩 모아 수업시간에 던지기도 했고,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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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책을 찢어놓는 날도 있었고, 내가 들어가자마자 밖에서 화장실 문을 잠가 놓는 날도 자자했다. 더 심한 날에는, 사물함에 넣어두었던 점심 도시락마저 변기통에 버리고선 통만 던지듯 돌려준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 그들의 보복이 두려워 선생님께도 말할 수 없었고 , 큰 상처를 안겨드릴 것 같아 매일 저녁 부모님께 걸려오는 영상통화 너머 로는 잘 지낸다고 활짝 웃어드렸다. 마음 놓고 기대어 펑펑 울 수 있 는 친구 한 명조차 없었다. 나는 혼자였다. 다음 날 아침, 복도를 지나 가던 중, 백인 남학생 무리들이 나를 향해 소리쳤다. “Hey, Asian smell.” 참다 참다 한 마디 하려던 찰나, 나는 그 친구들 뒤에 서 계셨던 교장 선생님이 보였다 . 교장 선생님께선 그 친구들을 용납하지 못할 듯이 쳐다보시고는, 나를 포함해 모두에게 교무실로 따라오라 하셨다. 몇 분간의 정적은 나를 상당히 긴장하게 만들었다 . 하지만 , 선생님은 나를 향해 아무 질문도 하지 않으셨다 . 그리고 내가 보는 앞에서 그 친구들을 혼내지도 않으셨다. 아무 말 없이 나를 꼭 끌어안아 주셨다. 그제야 몇 달간 참았던 눈물이 봇물 터지듯이 터져나왔다 . 얼마나 울 었을까 . 조금 진정이 되었을 무렵, 선생님은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원 한다면 그 친구들을 재판소로 넘길 수 있다고 설명해 주셨다. 여지껏 당한 것을 생각해 보면 곧장 재판소로 보내고 싶었고, 모두가 보는 앞 에서 그들이 충분한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나는 ‘괜찮다 ’고 대답했다. 그 친구들이 재판소로 넘어가면 평생 기록에 남 을 것이고, 일자리를 구할 때도 그 기록이 그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 고 생각했다. 분명 그 친구들의 잘못이긴 하지만 그로 인해 그들의 인 생이 완전히 망가지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그저, 철없던 어린 시절 의 실수고 이번을 계기로 잘못을 뉘우치면 되는 것이다. 훗날, 자녀들 에게는 절대 그러지 말라고 가르쳐 줄 수 있는 부모님들이 되었으면 했던 바람이 있었던 것 같다. 교장 선생님은 내 의견을 존중해 주셨고 , 내가 교무실에서 나가 있는 동안 , 따끔하게 꾸중을 들었는지 그 친구들은 내게 울면서 미안 하다고 사과했다. 물론 난 평생 이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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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잘 안다 . 하지만 한편으론 홀가분하기도 하였다 . 그런 심한 일을 겪고도 어떻게 용서를 할 수 있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물었 다 . 이는 어머니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머니께서는 항상 , ‘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라.’ 등의 성경 말씀을 자주 들려 주셨다 . 많은 사람들이 그 친구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비난하고 욕할 때 , 나는 참된 사랑과 용서로 벌을 주고 싶었다 . 따뜻한 마음이지만 그것이 더 무거운 죄책감을 쉽게 씻어 낼 수 없을 거란 것이 나의 벌 이다. 2014 년, 그렇게 7년간의 긴 유학기간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 왔을 때, “ 그래서 , 삶에 대해 배운 게 있니?” 라고 물어보셨던 아빠의 질문에, “ 조금의 성장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삶에 대해서는 잘 모 르겠어요 . 라고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엄마는 연이어 내게 말씀해 주셨다. “잘 배웠다, 제니 , 삶이 어렵고 ,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고 깨달았다는 것이 가장 큰 삶의 배움이다.” 그로부터 9 년이 지난 오늘날, 나는 웃으면서 그때의 일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와 비슷한 일들을 겪 게 되겠지만, 원석이 깎이고 깎여 다이아몬드가 되듯이 나도 그런 사 람이 될 수 있게끔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피하지만은 않을 것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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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hough we all have painful memories within us, pain is one way to learn new things, by growing mentally and physically. This epiphany hit

me

when I

experienced an

unfo rgettable period of racism and bullying. At that time, I was in agony, but this memory has developed me into an even stronger person today. During 2008, I came to t he U nited States as a third grader with no knowledge of the English language. I played only wit h Korean friends; I had believing everything was completely fine, until these friends moved back to Korea. A few mo nths after their departure, I noticed that t hings started to go wrong. Ever since I was little, playing different sports made me many friends. The word “lo ner” never seemed to fit my character. Ho wever, o ne day, in the middle of 7t h grade, I coincidently heard someone say “Asian’s smell” while I was passing them in the hallway. I turned around to see who it was, and saw that it was a group of my clo se American friends. If I had not heard them say that, or if I were a little less attached to them, I would not have been as hurt with betrayal. But at that moment, tears rolled down my cheek s. As soon as school ended, I ran home crying. While I was running, all I co uld do was blame myself for being Asian. T he next day, everyone seemed to know about what had

happened. All

of my classmates

who

said, “Asian’s

smell,” apologized, but I did not know if they did so because of the rumor or because of their true sympathy. I believed that t hey learned they could not say words that consisted of racist references ever again, even as a joke. I imagined ho w they wo uld laugh at me when I w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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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 of earshot. T hey probably thought of me as a pathetic girl. Right after the incident, I was able to get back on t rack because I worked hard to make everything normal. I thought if I did everything better than my classmates, they would not be condescending even though they would probably still t alk behind me. I

kept pushing myself to achieve

my goals.

Consequently, my grades started to surmount theirs, and luckily, I made many other new friends, who would never turn on me. At that time, I struggled a lot and thought, “Why do I have to go through t his hard time and become a loner in this fo reign country, which is not even my hometown?� I hated all t hem, who looked down on me, but as I grew up a little, I could understand that it was one of the tough ways to learn and grow stronger. I co uld not blame anyo ne else, for I was not the only who was going through the obstacles in life. Do not let yourself do wn because of other people’s negativity. I can now smile even though this memory comes to my mind again. As mentioned above, there are a lot of people who have hardships and feel like they cannot get out of the dilemmas. Each one of us around the world goes through t he hard time in different ways. But, we always have to remember t hat we are all diamo nds, which eventually shine bright after being burned and broken. Think po sitively all the experiences that yo u went through and stay st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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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 운문 ( 시 )]

붉은 인동꽃 Class of 2016 조하은 Crystal Cho 숨이 턱턱 막힐 때까지 참아왔었습니다 흉부 근처 어디께에서 자리잡은 쇳덩이를 미움으로 하얗게 하얗게 달구어 왔었습니다 용서는 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내가 잘 키워놓은 열기에 물을 붓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사과 받지 못하고 하는 용서는 쇳덩이를 차갑게 식히는 것처럼 허무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당신과의 추억과 당신이 쏟은 사랑과 그리고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이 끈질기게 나를 붙잡았기에 나는 내 앞에 서 있는 작은 아이에게 먼저 다가가 묵직한 덩어리를 내려놓습니다 그렇게 무슨 연유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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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마법을 부려 당신이 그토록 사랑스러워 보이고 당신의 헌신이 눈부시고 나와 당신이 보낸 시간이 눈물겹습니다 모성애의 꽃말을 가진 꽃은 무수히 많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담은 꽃은 오직 한 송이 있더군요 당신은 그렇게 귀한 나의 붉은 인동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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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d Honeysuckle

I held back until I was choking. And somewhere around my chest, I held a heavy stone, Heating it white as ever Thought forgiveness was mere self-justificatio n for lo sers. Thought of it as pouring cold water o n my. Forgiveness before apology, I thought, would only leave me in vain Yet, You and I, the memories, Your affection Then, My love for you Caught me by the hand I, now, Meet the eyes of the small child in front, Reach out my hand, and set my stone down That moment, for whatever reaso n, called Time to do some trick and let me be Dazzled by adoration, Blinded by your sacrifice, and Become heartrending by the time we spent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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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are many flowers for maternal affectio n. But, A single flower t hat holds the love of f ather, That is yo u, My Red red Honeysuck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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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 산문 (소설 )]

그러므로 저는 지구온난화 문제에 주목하여 자연친화적 기술 개발에 투자하여야 한다고 발의합니다 Grade 11 윤수빈 Joyce Yoon

1. 일주일 전 b는 여자 친구에게 차였다. 예상 못 했던 일이었다. 2. 그저께 땅이 갈라졌다. 그다지 예상 못 할 일은 아니었다. 나무를 벤 자리에 동식물이 자취를 감추고 마른 땅에 비도 내리지 않았으니 땅이 갈라지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비가 오지 않는 것을 뉴스에서는 이상기후라고 불렀지만 과연 이상한 일인가. 지구를 마르게 한 범인은 누구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b는 보도를 걸었다 . 걸음마다 운동화 바닥에 찌는 아스팔트가 붙었다 가 떨어졌다가를 반복했다. b는 별난 사람이었다 . 22 세기가 다가오는 시대에 못생긴 나무 와 끈적거리는 꽃과 녹아가는 빙하에 흥미를 가진 사람이 흔치 않았 다. b는 2000년대를 살아본 적은 없었지만 ( 그는 2071 년 4월 14일생 이므로 ) 2006 년에도 2096년과 마찬가지로 환경주의자는 희한한 종족 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2006 년도에도 식물과 바다에는 입이 없었다 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환경주의자란 입이 없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종족이다. 느긋한 템포로 걷던 b는 보도블록 사이에 낀 풀 한 포기를 보 고 멈추어섰다 . 어딘가에서 바람에 실려 온 씨앗이 정확히 여기에 뿌 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씩씩하게 자라났다는 생각을 하면 모든 식물 은 기적적이다. 녹색을 바라보는 b의 눈매가 애정으로 수그러졌다. 그 는 가방에서 3분의 1정도의 물이 남아있는 물병을 꺼내어 뚜껑을 열 었다 . 아직 이름을 알 수 없는 새싹에 물을 주고 나자 남은 물은 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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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5분의 1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래도 b는 뿌듯했다. 해가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 태양은 참 빨갛다 . 어째서 그림책 의 해님은 노란색으로 그려지는지 , 어째서 뱀의 혀는 붉게 그려지는 지. b는 시계를 곁눈질하고 슬슬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 마지막으로 조금만 더 앉아 있다가 돌아가자고 생각하고 b는 벤치에 털썩 앉았다 . 해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문득 철새가 날아올랐 다. 할아버지는 인류가 점점 새를 닮아간다고 했었다. 마스크를 낀 모 습이 꼭 부리를 가진 새 같다고. 철새의 검은 실루엣이 태양을 배경으 로 V 자를 그리는 것을 감상하며 b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새들처럼 자신도 어딘가로 떠나게 될까. 그러나 용서받지 못한 죄는 꺾인 날개와도 같은 것이다. b는 자 신이 영영 어디로도 날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해가 져도 어둡지는 않다. 그러나 거리가 아무리 환해도 하늘까 지 밝아지지는 않는 법이다 . 거리가 환할수록 보이지 않는 것이 별이 다. B는 먹빛 하늘을 올려다보며 걸었다. 책에서 본 푸르름을 먹빛에 겹쳐 그려보며…… 땅을 딛으려고 하던 발이 훅 떨어졌다. 갈라진 땅이었다. 지구 속으로 먹혀 들어가며 b는 멋없는 비명을 질렀다. 기구 한 장면이었다 . 추락하며 환경주의자가 떠올린 것은 지구가 아닌 사람의 얼굴이었다 . 사람과 지구를 모두 기만했다는 것을 깨달은 환경주의자가 종말했다. 이튿날에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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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 운문 (시 )]

한 마디의 거리 Grade 9 Irene Kim 김애린 그때 용기를 내어 먼저 너의 손을 잡았더라면 우리는 지금 쯤 손을 마주 잡으며 학교 문을 열고 함께 들어가는 사이가 되었겠지 그때 내 말을 잠시 멈추고 너에 말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면 우리는 지금 쯤 비밀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겠지 그때 내 감정에 이끌리지 않고 너에게 먼저 웃어주었더라면 우리는 지금 쯤 행복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겠지 그때 그깟 자존심 세우지 않고 너에게 그 한 마디만 건넸더라면 그 한마디만 해주었더라면 나는 이렇게 후회 하고 있지 않았겠지 내가 이 모든 걸 했더라면 지금이라도 할 수 있더라면 그 한 마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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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 운문 (시 )]

상봉(相逢) Grade 10 김수아 Joshua Kim 해가 떠도 기다린다 달이 저물어도 기다린다 일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일 년처럼 비 온 뒤 먹구름 뿌리치고 달려 나온 해 혼자 울고 있던 내 눈물 닦아준 그의 하얀 손수건 긴 밤을 붉혀주는 달 나에게 먼저 다가와 건넨 악수 그로 인해 끝난 전쟁 걷어지는 철조망 사라지는 과녁 일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일 년처럼 기다렸던 얼싸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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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union

I will wait ‘till the sun rises I will also wait ‘till the moon falls Wait a year like a day A day like a year Like t he sun that escapes from the grasp of the dark clouds After a rain The white handkerchief that wipes my tears And it’s like the red moon that lights Up the long dark night Came first and gave me a handshake War ended Barbed wire disappearing(dissolving) Disappearing target A year is like a day A day is like a year Waited for Emb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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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 운문 (시 )]

나만 몰랐던 이야기 Grade 12 신유진 Claire Shin 새벽같이 일어나 소리 없이 자리를 비우고 매일 시장에 같은 곳에 조금은 축축하고 좁은 곳에 도라지와 콩나물을 파셨다 고운 옷 한 번도 걸치지 못하였던 고기 가득한 국 한 번 못 드시던 할머니 항상 건강하시던 할머니가 지칠 줄 모르시던 할머니가 오늘따라 더욱 작아 보이셨다 걱정 때문에 학교 종이 울리자마자 시끌벅적한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저기 시장 구석에 할머니를 보았다 도라지는 그대로 있었다 콩나물도 그대로 있었다 “할머니, 사람들이 밉지 않아?” “왜 미울까?” 나를 보며 웃으셨다 할머니 얼굴에 새겨진 주름도 같이 웃었다 “다 괘안타” 사람들이 눈길 하나도 주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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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말투로 할머니를 대해도 괜찮다고 하셨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왜 괜찮은지 할머니는 오래 전 부터 알고 계셨다 가슴 속에 원망을 안고 살면 가시가 돋고 결국에는 그 가시가 자신을 찌르게 될 거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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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 산문 (소설 )]

용서를 강요하는 시대 Grade 8 유민서 Katlynn Ryu 우리에게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갈등이 일어난다 . 사소하게는 친구와의 다툼에서 교통사고나 환경재난에 이르기까지 많은 상황이 우 리를 기다린다. 이런 일들이 닥쳤을 경우 종종 우리는 성의 없는 용서 를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남학생들이 처음 전학 온 학생의 얼굴에 고의적으로 공을 맞춘다. 그것을 우연히 보게 된 선생님이 달려오시고 공을 얻어 맞은 학생은 얼굴을 감싼 채 공을 맞춘 친구들을 바라본다 . 선생님은 말씀하신다 . “ 친구한테 ‘ 미안해’라고 해야지.” 공을 일부러 맞춘 남자 아이들은 성의 없이 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미안’ 하고 만다. 선생 님은 다시 공을 맞은 학생에게 “친구가 ‘미안해’라고 했으니 너도 ‘괜 찮아 ’라고 해야지” 하신다. 공을 맞은 친구는 다른 아이들이 고의로 공을 맞춘 것을 알고 있고, 또 아직 얼굴도 쓰라리고 해서 ‘괜찮다’라 는 말이 나오지 않지만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무기력하게 ‘괜찮아 ’라 고 말한다. 그 전학생이 용서를 한 이유는 그 상황에서 괜찮다고 하지 않 으면 그 학생은 선생님이나 다른 친구들에게 속 좁고, 옹졸하고 이해 심이 없는 학생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진정한 용서는 친구들 의 진심어린 사과와 따뜻한 말이다 . 또한 피해 학생이 상대의 실수를 이해하고 , 상대의 입장에서 나도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해야지만 진정한 용서인데 사람들이 기대하는 용서는 이와는 사뭇 다르다. 사람 들은 용서를 하지 않으면 착한 사람이 아니고 옹졸하고 이해심 없는 사람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때때로 사람들의 기준에 맞 는 착한 사람의 틀에 맞추어 용서를 강요받는다. 우리는 마음으로는 진심으로 용서하고 싶지 않으나 그냥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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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 너는 착하니까 , 너는 종교를 가지고 있으 니까 , 너는 어른이니까, 어리니까, 남자니까 등등 수많은 이유들로 용 서하라고 , 화해하라고 강요받는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같은 경우에 도 마찬가지이다 . 그들은 죄를 저질렀고 ,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 음에도 결국은 차기 대통령들은 그들을 용서하고 관용을 베풀어 결국 죄를 지은 대통령들을 사면했다 . 이런 일들이 진정한 사과와 용서인 가 ? 이것이 모든 국민들의 뜻과 마음이었을까 ? 혹시 정의롭고 포용력 이 있는 관대한 대통령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들 때문에 차기대통령들은 그들을 사면한 것이 아니었을까? 위안부 할머니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할머니들이 바라는 것 은 진정한 사과와 참회의 눈물이다. 하지만 일본은 몇 푼의 보상금을 내걸고 단지 과거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 사과조차도 없었다 . 우리 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오래 전 일이고 보상금을 받기로 했으니 , 우리나라와 일본의 외교를 생각해서 이제 그만 용서하라고 할 머니들에게 요구해야만 하는가? 이제 그만 용서하라고 강요하는 사람 들도 있다. 진정한 용서는 피해자들만이 할 수 있다 . 우리는 그것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죄를 지은 사람들은 성의 없이 용서를 구하고, 우리는 영혼 없 는 용서를 베풀며 살아왔다 . 내가 진정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용서를 베푸는 것은 옳은 일일까? 이런 일을 해결하기는 쉽 지 않다 . 하지만 진정성 있는 사과와 참회의 눈물만이 피해자들의 용 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빨리 용서하라 하고 강요하기보다는 조용히 기다려야한다 . 그 피해자들에게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것만이 용서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생기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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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 산문 (수필 )]

용서 Class of 2016 김윤진 Christine Choe 생각해보면, 난 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갓난아기처럼, 태어나자마자 울음을 터트리고 싶었는지도 모른 다 . 하지만, 왜인지 난 항상 감정 표현에 서툴렀다 . 지금에 와서 소중 한 가족들을 원망하는 것도 참 웃긴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 내 머리가 조금 더 커서일까, 자꾸 예전 일들이 떠오르곤 한다. 때는 중학교 , 내가 8 학년이 되고나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 난 그때까지 공부에 대한 개념이 딱히 자리 잡혀 있지 않았고 , 여느 중학생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노는 것을 엄청 좋아하는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다 . 부모님께서는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노는 것에 딱히 불만 이 없으셨고 , 우리 가족은 다른 가족들과 다름없이 너무나 화목했다 . 서로를 누구보다 챙겨주며 사랑해주었다 . 하지만 , 성적이 나오는 날이 면 항상 우울했다. 아빠한테 무슨 말을 들을 지 두렵기도 했었다 . 평 소에는 너무 다정한 아빠였지만, 성적에 관해서는 민감했다. 9학년이 시작되기 전에 아빠는 나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 지금 의 성적이 곧 대학교에 들어갈 성적이니 바짝 공부해서 목표를 달성하 라고 말이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9학년 때 정신을 바짝 차 려서 나름 괜찮은 성적을 만들었다. 하지만 , 10 학년 때가 문제였다 . 내 마음이 쉴 곳이 없었다 .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어김없이 성적표를 받으러 학교로 가던 날, 난 두 려움에 떨었고, 예상한 듯이 욕을 먹었다. 태어나서 아빠가 그렇게 격 하게 말을 뱉은 적은 , 살면서 손에 꼽을 정도였다 . 하지만 , 성적표를 받은 날, 난 마음속으로 경악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알던 아빠가 맞 나 싶었다. 성적표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쓴 소리를 들었다 . 이 성적으로 대학은 갈 수 있겠냐면서, 한숨을 쉬는 아빠를 보고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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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우울함이 몰려 들었다. 내가 알던 나의 아빠는 이런 분이 아니었다 는 걸 내가 아는데, 왜 이렇게 성적에 민감하신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 다. 집에 돌아온 후, 아빠는 회사로 가시고 난 집에 틀어박혀 혼자 소 파를 끌어안고 서러움에 울었다. 시렸다 . ‘공부는 공부 ’고 , ‘가정사는 가정사다 ’라고 얘기하는 아빠가 원망스러웠고 , 당시 할머니가 편찮으 신 건 내 공부와는 별개라고 생각하는 아빠가 미웠다. 한창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한 10 학년 때, 난 아마 그때부터 아 빠를 서서히 멀리 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남들이 보기엔 사이좋은 부녀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난 친구들이나 어른들한테 그런 말 을 들으면 증오심만 커졌었다. 커질 대로 커져 그 생각이 나를 잡아먹 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 나의 머릿속에 자리 잡힌 아빠의 다정하신 모 습은 이제 더 이상 온데 간데 없었고, 날이 선 새로운 모습만이 각을 잡고 있었다. 아빠와의 다툼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성적을 지적 하지 않으시면, 어느 날은 나의 태도에 대해 지적 하기 시작했다. 방이 그게 뭐냐 게을러 터졌다 등등 처음엔 그 지적이 어쩌다 한 번, 어쩌다 두 번이었지만 , 날로 날로 늘어갔다 . 그리고 그 뒤로부터 , 난 아빠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 아빠와의 대화는 급격히 줄 어들었고 , 난 서서히 아무도 모르게 마음의 문을 살며시 닫고 있었다. 이해는 갔다. 할머니가 편찮으셨고, 아빠는 본인 어머니를 책임져야한 다는 막연한 부담감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 하지만 그건 그저 내가 아 빠를 이해해보려고 한 최선의 이유 혹은 수단이었고 , 그 이유들로 내 상처를 가리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깊게 생각하면 할수록 절벽 아 래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11 학년이 된 나는 급기야 저기 멀찌감치 떨어지고 말았다 . 할 머니가 돌아가셨다 . 편찮으셔서 자주 뵙지도 못했지만 , 그녀가 떠난 자리에 홀로 남은 날 생각하니 비참해졌다 . 난 심리적으로 너무나 고 통 받아야만 했다 . 그녀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갈 생각을 하 니 너무나 막막했다 . 아빠는 버팀목이 돼주지 못했고 , 난 길을 잃고 매일 밤을 홀로 눈물 속에 지내야만 했다. 그간의 감정들을 억지로 참 으려 하다 보니 내 마음은 곪고 말았다. 그렇게 무미건조한 11학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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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뒤, 12학년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성인이 된 나에게 아빠는 독립적이어야 한다며 사회를 경험하 라는 의미에서 시간을 많이 쥐어 주었다 . 성인이 된 나에게 자유란 , 너무나도 달콤한 것이었다. 내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내가 성인이라는 생색을 낼 수 있었고 그 시간들만큼은 나에게 꿈만 같았다 . 하지만 , 아무리 바깥을 경험하고, 돌아다니며 하하 호호 깔깔대며 웃어대도 내 마음 속 공허함은 떠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 곁에 있으면 행 복했지만 그러면서도 한 없이 외로웠다. 그리고 동시에 가족이 너무도 그리웠다 . 아빠의 잔소리가 없어서 살만 했지만 , 한편으론 그의 따뜻 하면서도 거친 말투가 듣고 싶어졌다. 한편으로는 왜인지 아빠에게 먼 저 다가가는 것 또한 내키지 않았다 . 살면서 한 번도 아빠한테 먼저 내 고민은 이거다 저거다 하며, 다른 아이들처럼 먼저 가서 얘기한 적 이 없었기에 아빠를 속으로 원망하고 용서하기를 수없이 반복했었다. 이런 고민들이 자꾸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기에 난 학교 보건 선생님을 찾아갔다 . 마음씨가 따뜻한 보건 선생님께서 날 반겨주셨고, 선생님은 나의 멘토이시기에 , 난 내 모든 고민을 털어놓았다 .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나는 그제야 아빠의 심리나 심정을 조금 이해하기 시작했다 . 선 생님께서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셨다. “크리스틴, 나 너희 아버님이랑 너랑 PTC(Parent Teacher Conference)에서 처음 봤잖아. 근데, 선생님이 딱 봤을 때 아버님 이 너 정말 많이 사랑하시는 것 같더라 . 크리스틴, 아버님도 아빠 가 처음이잖아. 어디 누가 딸은 이렇게 키우는 거예요 하고 알려줬 겠어 . 선생님이 너 보고 아빠를 이해하라고는 하지 않을게 . 너 나 이 때는 이해 못하는 게 당연해. 그러니 시간을 충분히 두고, 네가 상처 받았던 그 시간들 보다 더 길게 두고, 아빠랑 대화로 차근차 근 마음 속 응어리를 풀어나가 보렴.” 그 말을 들은 나는 순간 마음이 먹먹해지고 말았다. 맞다. 아 빠도 아빠가 처음이지. 내가 그걸 잊고 있었구나. 하지만, 내 마음 속 응어리는 너무나 딱딱해져버렸다. 한 번에 없어지지 않았다. 그 리고 난 이건 나와 아빠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너무나 쉽게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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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용서하기엔, 난 아직 너무나 어리고 부족했다. 그래서 마음으로 혼자 생각했다 . ‘천천히 하자 . 천천히 아빠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내가 완전히 아빠를 용서할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아빠한테 모 든 걸 털어놓자.’ 라고 말이다. 이제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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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 운문 (시 )]

싸움의 결말 Grade 10 강재원 Jenny Kang 나를 때리는 발길질 나를 부수는 손길질 나를 누르는 그의 모습 아픔과 고통이 자라나 분노와 복수심이 되고 미움으로 가득찼던 순간 마침내 몸을 뒤집어 내가 그의 위에 올라탔을 때 나의 주먹은 멈췄다 그의 고통은 나의 행복일 수 없음을 깨닫게 된 후 흐르는 눈물 내 아래에서 눈물 흘리는 그를 잔뜩 겁먹은 그를 조용히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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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sult of the Fight

He was kicking me, Hitting me, And pressing me. My pain grew, Turning to anger and revengef ul thoughts, And I was filled with hatred. When I finally flipped my body And put him under me, My fist stopped moving. Tears were running do wn from my eyes As I realized that His pain cannot be my happiness. I quietly hugged him, Who shut down his eyes tight, And who seemed to be full of f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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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 운문 (시 )]

삐에로 Grade 11 정예준 John Cheng

준비된 무대 위에서 푸념을 뱉으니 관객들이 나를 둘러싸고 나를 힘들게 했던 나를 화나게 했던 그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모두 환호와 박수를 보낸다 한 마디 한 마디 뱉을 때마다 끄덕이고 위로하고 호의를 보인다 그 위로와 환호로 내가 이제 그 일을 이해한다 하니 한 순간에 환호는 날카로운 창으로 바뀌어 나를 찌른다 무대에서 다리를 질질 끌며 내려가니 야유는 더 심해지고 내가 한낱 삐에로라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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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 운문 (시 )]

눈이 녹고 다시 Class of 2016 정승현 Jenna Chung 반년이라는 시간의 거리를 반나절의 여행으로 나는 걸었다 천천히 멀어지려 했지만 네 풍경에서 나는 찰나의 순간에 사라졌을까 우리에게는 아직 수많은 봄꽃들이 수많은 소나기가 수많은 낙엽들이 수많은 눈송이들과 남아있다고 날 보는 너는 수없이 되뇌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면 그런 것들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 없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네가 나를 기대하며 밤을 지새우듯이 이미 녹아버린 눈송이들 따윈 필요 없다고 이 세상의 남은 계절들은 전부 우리의 것들이라고 너를 보며 끝없이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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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 운문 (시 )]

And The Snow Melts It would have taken the earth six mo nths. It took me only 14 hours. Tell me, How long did it take for me To disappear from your pict ure? You try so hard to be ok ay When you tell me that There are flowers we will watch spring Snowflakes we will watch fall You bite your lips As you say that we have the eternity to ourselves But none of that matters if I can’t turn back the hands of time But maybe one day I could be like you, Spending co untless nights Drowning in thoughts of me Maybe one day I could let go of the past that I have been holding onto so tightly with my locked fingers, crinkled in my pal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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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tell you that altho ugh the flowers may wither and the sno w may melt away It wouldn’t matter as lo ng as you are there To watch them disappear with me I wish I could tell you that I wish I could believe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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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 산문 (소설 )]

나에 대한 용서 Grade 7 최린 Rin Choi 이젠 끝이야, 나는 할 거야… 나는 총을 들고 내 머리를 향해 갖다 댄다 . 나는 지금 자살할 거다. - 3, 2, 1… 나는 '빵 ' 하는 총소리와 함께 쓰러진다. 모든 게 없어진다. 몇 분, 몇 시간, 몇 개월이 지난 지도 모른 채 눈을 겨우 뜬다. 하얀 벽지에 복잡한 선들이 보였다. 여기는 병원 . 의사가 돌아오자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 의사가 곧 눈치를 챘는지 내 귀에 대고 말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이 내 얼굴을 스치며 흘러내렸다. 나는 벌떡 일어나 내 몸에 꽂혀 있는 주사바늘을 뺐다. 그러자 간호사가 들 어와서 앉으라고 말하였다 . 그러더니 내 머리에 감겼던 붕대를 풀어 주었다. “기적이야.” 간호사가 말했다. “뭐가요?” “총알이 살만 뚫고 갔어 . 뼈에는 하나도 손상이 없었어. 하나님 이 너에게 기회를 주신거야.” 나는 어이가 없었다. “뭐라고 … 무슨 하나님이야 . 있지도 않은 하나님 , 그래 , 참 기 적이다 , 기적 .” 이렇게 생각했지만 기회라, 정말 나에겐 기회가 있었던 건가? “삑- 삑삑 - 삑 - 삑삑 !” 하 .. 역시 꿈이었구나 . 나는 알람을 끄고 일어나서 죄수복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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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똑바로 입었다 . 나는 죄수였다 . 어떻게 죄수가 되었는지는 돌아보 고 싶지도 않았다. 오늘도 외롭고 원망스러운, 다른 날과 똑같은 일요 일이었다 . 죄수들은 감옥에 있는 교회에 갔다. 우린 모두 같은 색 플 라스틱 의자에 앉아 설교를 들었다. “아니, 이런 이상한 데는 왜 오는 거야, 짜증나게.. 참나.” 한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흘러가고 마지막 기도를 하는 시간이 되었다 . 우린 모두 눈을 감았다 . 눈을 감지 않고 있다 교도관들에게 혼나기는 싫었기 때문에 나도 눈을 감고 있었다. “내가 손을 내밀테니 , 너는 네 마음을 나에게 주렴 . 사랑은 존 재하지만 , 사랑을 찾고 자신의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것만이 행 복의 답이란다.” 나는 눈을 떴다. “누구의 목소리지 ?” 내가 물어봤다 . 다른 죄수들은 아무 일 없 다는 얼굴로 나를 다시 쳐다보았다 . 피아노 반주가 끝나자 우리는 모 두 다시 각자의 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화장실 앞에 주저앉았다. “용서 … 사랑… ”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기회 … 용서… 사랑… 기적...” 나는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했다 . 다시 밤이 오자 나는 침대에 누워 결심을 했다. “그래, 한 번 믿어 보는 거야, 한 번 해 보자.” 그 결심은 바로 하나님을 믿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매주 교회에 갔다 . 기도도 열심히 했다 . 얼어있던 내 마음이 점점 녹고 있었다 . 하 지만 무언가가 내 마음에 깊이 박혀 있어 빠져나가지 않고 있었다. 3개월 뒤, 일요일 , 나는 똑같이 교회에 갔다 . 설교도 듣고 기도 도 했다. “하나님, 제 마음이 이제 열렸지만 , 무언가가 , 어떤 무언가가 제 마음의 문을 닫으려고 해요 , 하나님 , 제가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 주세요.” 나는 이제는 드디어 사랑, 기적이 올 줄만 알았다. 하지만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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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행복, 그건 아직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세월이 더 흘러 나는 행복도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내 마음에 있는 , 무언가가 나의 행복을 막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다시 교회에 갔다. “하나님, 너무 감사해요. 저에게 기회라는 게 있다는 걸 알려 주셔서요 . 하지만 저는 아직도 무언가가 부족해요 . 이런 죄인이 행복 을 정말 느낄 수 있을까요? 이렇게 저는 못되고 이기적인데, 하나님은 저를 왜 용서해 주셨어요? 제가 용서받을 자격이 있나요? 그리고 나는 교회 의자에서 기도하다 잠이 들었다. “용서란, 사랑이 아니냐,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나도 너 를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란다 . 하지만 네가 죄 지은 것은 이유가 있지 않았냐, 사랑이 없어서 자살을 시도하고, 행복이 없어서 사람 들을 다치게 하지 않았니 . 기회라는 게 없는 줄 알고 도망가려고 하지 않았느냐 . 나는 너를 용서해줬다 . 그런데 제일 도움이 되는 약은 바로 네가 네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다 . 용서를 구하는 너의 위대함을 가지고 이제는 용서를 받는 용감한 사람이 되어라 . 이제 더 이상 이 고통을 놔 줘야 하지 않겠냐. 용서, 용기, 사랑, 기회는 삶을 주고, 또 삶을 받는 것이다.” “이젠 끝이야, 나는 할 거야.” 나는 총구를 내 머리에 갖다 댄다. 나는 지금 자살할 거다. - 3, 2, 1…… 나는 그만 총을 떨어뜨렸다. 그래, 이젠 용서 해야지. “나야, 미안해.” 그러자 눈물이 산처럼 쌓여 떨어진다. “괜 … 찮 … 아.” 눈물이 뚝, 고통도 뚝, 원망도 뚝 마음에 있었던 무언가도 없어졌다. “그래. 용서, 용서...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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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ive me It’s the end. There’s no t urning back. I’m going to do it. I hold the gun and bring it towards my head. I was going to Commit Suicide. “3,2,1… ” I hear the guns roar “BANG!” and simult aneo usly, I fall. Everything disappears. Not knowing ho w many minutes, ho urs, months have passed, I peek open my eyes. I am not surprised to see white walls, confusing and tremendously long lines in front of my eyes. This was the hospital. As I heard the curtains move, I quickly clo se my eyes, pretending that I have not yet woken up. But, being the tactf ul doctor he was, he notices that I was now awake, he comes closer to me and whispers in my ear, “It’s alright, It’s going to be alright. And with those words he left, leaving me time to ponder, and with those words, I feel a hot drop of water, roll down my face. I decided to leave, I didn’t want to be here anymore, it was weird getting attention, being in the middle of attention. I take o ut all the lines from my line and stand up but, I regret it right away. My head turns and a fierce headache comes to me. Just at that moment, the nurse comes in and tells me to sit down. I giver her a look and sit down not really knowing what she was going to do to me. She reaches out to wards me and then I suddenly predict she is going to harm me, so I close my eyes. I peek just a little bit, just a little and see that she is unravelling the big bandage on my head, stained with bl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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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a miracle.” She suddenly says. “What is?” “You. The bullet o nly went through the skin, it didn’t harm any of yo ur bo nes, us do cto rs and nurses, we have, never, ever seen a situation like this before. It’s a chance, from god, anot her chance, another opportunity.” “U h-huh yeah sure. What is she t alking about? God? Haha after an attempt on suicide? T he heck? No! There is not even such thing as god, yeah sure say anything you want, chance chance chance blah blah blah.” I think in my head. But, actually chance, another chance… Was there really another chance for me? “Beep-Beep. Beep-Beep. Beep-Beep!!!!!” Yes… of course. Another funny little useless dream in my useless life. I turn off the alarm and wear my Prison Uniform. Yes, I know I’m a sinner, I’m a horrible person. I don’t really want to talk about the details. Another great perfect Sunday in jail all alone, trashy food, cold weat her. We prisoners all headed towards the giant building with this cross. It was mandatory fo r prisoners to go, there was no choice.We all sat on these tiny plastic chairs, each o ne of us holding this book t hingy called “Holy Bible” “Why are we wasting o ur time to do this trashy stuff? Uh so frustrating.” I say in my head. A very lo w 1 hour passes, and it was o ur last time praying. We all closed o ur eyes. Wait, no we all had to clo se our eyes or else we wo uld have gotten a punishment. Trying to avoid any trouble I close my eyes too, praying t hat nobody would notice t hat I am actually not pra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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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I reach my arms out to you, will you reach yo ur heart to me? Love exists, but can only be seen by the seekers. Those who commit sin, and seek fo r forgiveness, seeking forgiveness in yourselves is the answer to happiness”I opened my eyes, “Who said t hat?!?!” I exclaimed. The others prisoners

stared

at

me

with

innocent

faces.

The

piano

instrumental finished and we were all told to go back to o ur rooms. I sat beside the bathroom, pondering. “Forgiveness...Love… ” “Chance...Opportunity… ..Love… ..Miracle..” T hrougho ut t he whole day, I only could t hink about tho se words. As night

fell, I jumped

on my bed and I

determined myself one thing, “Yes, I can do it, I’ll try believing, I’ll just try it.” And that promise to myself was to try believing. Trying to believe in God. After that, I determined myself to go

and

attend

Church every week, not forgetting to do my daily prayers. But, something deep inside my heart, that was there, that didn’t move. Something that was deep down, in the core of my heart. 3 mo nths later, I attended church like just any ot her Sunday. I listened to his sermon and prayed. “Dear God, I feel t hat my heart is now more open, more empathetic, but then there’s this something. Something inside that tries to close it.” I k now understood the pleasure of underst anding love, and having 2nd chances and miracles, but I felt that happiness and forgiveness needed more time. A few seemingly okay months passed

and

I also

understood what happiness was. T hing something, t hough, that weird thing, it was still down there, it had not moven, it was also trying to block my happiness. I could feel it.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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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 I went to the church again even though it was not a Sunday. “Dear, God I thank yo u very much. For giving me a 2nd chance and making me a miracle. But something is still missing God, but I do not understand what it is. Will a prisoner like me really understand what true happiness is? I’m really selfish and an idiot, why did you fo rgive me God? Do I deserve the forgiveness?” And I fell asleep wit h those last words, leaning against the plastic chair, alone, in the darkness. “Forgiveness, isn’t it love? If I had not lo ved you, I would have not forgiven you, but I, have sacrificed my o wn son, Jesus to forgive yo ur sins. But all the sins you have made, there were reasons. You had no love, so you tried to commit suicide, yo u had no happiness so you hurt people, you didn’t believe in second chances, so you tried to leave didn’t you? I forgave you, but the best antidote, is to forgive yourself. Asking for forgiveness comes from wisdom, but forgiving, takes courage. Don’t yo u think it is time for you to let go? Forgiveness, Courage, Lo ve, Miracle, belief, is all is takes. Forgive yourself, be the forgiver.” It’s the end. There’s no t urning back. I’m going to do it.. I hold the gun and bring it towards my head. I was going to Commit Suicide. “3,2,.......” I dropped the gun. Forgiveness. I had to do t hat. “Dear me. Forgive me” and as those words come out of my mouth, a volcano of tears erupts. “I-It’s O-Okay...I forgive m-me..” Tears, drop, drop drop. Sadness drops, and the thing

in

my

heart

drops.

“Yeah

Forgiving,

forgiving,

forgivene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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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 산문 (수필 )]

나도 완벽하지 않기에 Grade 12 최창용 Marty Choi 미국에서의 유학 시절 나는 기숙사에서 지냈다 . 대략 스무 명 가량의 한국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정다운 생활을 했었는데, 모두들 사이가 좋았고 이런저런 다툼 없이 오직 한국에 돌아 갈 수 있는 방학 만을 기다리던 무료한 삶이 계속되고 있었다. 어제 혹은 지난 주와 다를 것 없는 그저 그런 평범한 하루였지 만 , 그날 밤은 내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던 것을 아직도 잊을 수 없 다. 보통은 미국에서 쓸 사비를 부모님께 현금으로 받고는 했는데, 그 날 밤 감쪽같이 그 돈이 전부 사라진 것이었다. 백만 원이 넘는 적은 돈이 아닌지라 그냥 쉽게 넘어갈 수 없는 큰일이었다. 나는 곧바로 기숙사를 관리하던 선생님께 이 사실을 말씀드렸 고, 선생님께서는 찾을 수 있다며 나를 다독여 주셨지만, 당시 내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다 . 나는 내 돈을 훔쳐간 누군가를 원망하고 , 내 것을 간수 못한 나 스스로에게조차도 원망이 되었다. 하지만 사실 지금에서야 말을 꺼내지만, 내가 워낙 어렸던지라, 돈을 훔쳐간 그 누 군가를 훨씬 더 원망했던 것 같다. 몹시도 불안해하던 내 모습을 본 선생님께서는 기숙사에 있는 방을 모두 뒤져보자는 제안을 하셨다. 기숙사에 있는 사람 모두의 방 을 뒤지는 것에 대해 동의를 했지만 왠지 나는 그렇게 해도 못 찾을 것 같았기에 더욱 더 마음이 괴로웠다 . 예상대로 선생님들과 나는 수 차례 방을 뒤졌고 결국 돈은 나오지 않았다. 그 때였다 . 찾는 것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있을 무렵 , 한 친구 의 노트북에서 돈뭉치가 수상하게 포개져 있던 것을 발견했다. 나는 그 돈이 정확하게 나의 것이었던 것을 확신했고 그 친구를 향한 분노 가 끓어올랐다. 그 순간 그 친구는 밖에 나가 있었고 나는 그가 돌아 오기만을 벼르고 있을 때였다 . 선생님께서 내게 다가와 그에게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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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를 주고 , 그가 한 짓을 용서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내게 권했다 . 순간 나는 당황했고,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왜 그 아이를 용서해줘야 하지 , 기숙사측에서는 이런 일 이 일어나면 뭔가 불리해지기 때문인가...”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고, 선생님이 그런 이야기를 내게 꺼낸 의 도조차 납득이 가지 않았다 . 나는 내가 한 생각대로 선생님께 말씀드 리고 싶었지만 , 참고 선생님께서 권하신 대로 하겠다고 했다 . 그 후 , 나는 방으로 돌아가 차분히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문득 그 친구가 내 돈에 손을 댄 이유가 궁금했다. 그 친구는 나와 자주 게임을 했을 정 도로 사이가 가까웠고 그 친구가 쓰는 씀씀이나 그 친구가 얘기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 담으로 얘기하지만 나는 끝끝내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사건 이

후로 며칠이 지났고, 나는 그 친구를 보기가 점점 부담이 됐다. 그 친 구는 사과는 커녕 오히려 더 당당하게 지내기 시작했고, 점차 나는 그 친구의 행동을 늘 눈엣가시로 여겼다. 하루는 그 친구가 누가 돈을 가져갔는지 모르는 기숙사 애들을 모아 놓고 아무 죄 없는 다른 친구를 지목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 반 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는 그 친구를 향한 내 보이지 않는 분노는 계속 커지기 시작했다. 그 후로 어느 금요일 밤이었다. 기숙사에 있는 형, 친구들과 농 구를 하러 가기 전, 돈을 훔쳐간 그 친구와 나는 서로 크게 부딪혔는 데 , 꽤 사소한 일이었지만 나는 그 친구를 향한 감정이 너무나 많이 쌓여 있던 찰나 , 결국 큰 말싸움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 놀랍게도 그 친구는 뻔뻔하게 눈 하나 깜빡이지도 않은 채 내게 소리를 지르자 나 는 결국 참지 못하고 그 친구가 저질렀던 일들을 모두의 눈 앞에서 얘 기해 버리고 말았다. 그쯤 되서야 선생님들이 우리를 말리러 오셨지만 이미 그때는 모두가 그 친구에게 등을 돌린 후였다. 상황이 마무리되자 그 친구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내게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 나는 모두에게 이 일을 얘기하면 마음이 홀가분해질 줄 알았지만 막상 내 앞에서 누군가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을 보니 전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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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볍다거나 만족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전에 사과할 기회 가 많았을 때 하지 않고 이제 와서 사과를 하는 그 친구가 괘씸해 사 과를 받아주지 않았다. 후로 그 친구는 얼마 남지 않은 학기 동안 혼자 지내게 됐고, 나중에 방학이 된 후 , 그 친구의 모습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 . 그리고 지금에 와서야 그때 내가 그 친구를 용서하지 않은 것이 과연 옳은 일 이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 비싼 돈을 들여 온 유학을 포기하게 만들고 , 도둑이 되어 돌아온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가슴에 못을 박은 장본인이 된 느낌이었다 . 물론 그 친구가 마땅한 대가를 치렀고 내가 그 친구의 부모님 입장까지 생각하는 것은 너무 심한 오지랖이라 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여전히 나는 알 수 없는 부담감을 느 꼈다. 나도 무엇인가 잘못하지 않았나 하는 죄책감으로 시작된 그 여 운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았고 내가 그때 그 친구를 용서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가끔 머릿속에서 생각하고는 한다. 문득 기숙사 선생님께서 용 서를 권했던 것이 생각났고 그때가 되서야 나는 기숙사 선생님의 의도 가 납득이 갔다 . 오히려 지금 다시 그 친구를 만나게 된다면 도리어 용서를 안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다 . 나는 이 친구가 내 돈을 훔쳤다는 것에만 집중했지 누군가의 잘못을 덮어 주고 용서 하는 것이 얼마나 숭고하고 값진 것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 그 친구가 훔치려 했던 돈과는 비교도 안 되게 큰 가치를 지닌 채 말이다. 앞으로 누군가가 내게 잘못을 해서 사과를 한다면 나는 넉넉한 마음을 갖고 받아 줄 것이다 . 무조건 상대로부터 사과를 하라고 강요 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남을 용서함으로써 과거에 겪었던 안 좋은 일 , 혹은 나도 역시 마찬가지로 완벽하지 않은 모습으로 누군가를 정 죄했다는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결국은 내 스스로 더욱 떳떳해 질 수 있는 당당한 길을 걸어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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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 산문 (소설 )]

미워할 수 없는 당신 Grade 12 정영덕 Evan Chung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음주 운전자에게 치여 그렇게 가셨다. 가 해자는 그대로 도망갔다고 한다 . 의사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신고를 빨리 했더라면 목숨은 건지셨을 것이라고 한다. 그 후로 나는 방안에서 폐인이나 다름없을 삶을 보냈다 . 그냥 구석에 쭈그려 앉아서 하루하루를 그렇게 보냈다 . 배고프면 먹고 , 졸 리면 자고 , 잠에서 깨어나면 다시 어머니가 계시지 않은 현실을 부정 하면서 그리고는 이내 다시 받아들이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일주일, 아니 솔직히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어진지 오래, 어머니를 죽게 한 가해자를 잡았다 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한동안 공허했던 나의 마음은 허탈함으로 이어졌다 . 이럴 거면 뭐 하러 도망간 것인지 … 세상 어디에 살든지 내 눈 앞에 나타나지나 말지 .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 처벌을 받든 말든 나의 소중한 어머니는 이제 다시 돌아오시지 않는다. 그러니까 경찰이 재판에 유가족 신분으로 나에게 출석을 하란 다. 지금은 담담하다지만 막상 그를 보면 동물적인 분노를 주체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출석을 하라니 나가기는 해야겠 지 . 그렇게 유가족의 입장이 되어 재판에 참석을 하니 갑자기 눈물이 났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 재판이 막 시작될 무렵, 문득 어머니께서 살아 계실 때 나에게 해주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자신한테 무슨 짓을 하든 그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게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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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방법이란다. 상대가 싫다고 너도 똑같은 짓을 하면 그 사람이 랑 네가 뭐가 다르겠니?” 똑같이 해줘도 시원찮을 판에 미워하지 말라고? 나는 그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원했다. 그를 원망할 수밖에 없 었다 . 하지만 그럴수록 내 안의 분노와 슬픔만 더욱 커지고 전혀 마음 의 응어리들이 누그러지지는 않는다 . 나는 더 고통스워질 뿐이다 . 그 는 그렇게 감옥으로 들어가겠지만 나는 , 어머니를 잃고 홀로 된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 행복했던 나의 삶이 한 순간에 망가졌다 . 나는 과연 예전처럼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원 망하면 할수록 , 나의 마음은 끝없이 너덜너덜해지고 있었다 . 내 안의 평화를 되찾으려면 모든 것을 내려놔야 한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 다 . 힘들겠지만, 앞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된다고 . 그렇게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최대한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 하지만 아직도 완전히 내 마음 어딘가에 분노와 복수하고 싶은 마음 등은 내려놓지 못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마지막 한 가닥의 미련이 자꾸 나를 붙잡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재판은 시작되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들을 것도 없이 실형을 받을 것 같았다. 제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사람을 치고 도망갔으니 말이다. 하지만 변호인 의 변호를 듣다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나의 어머니를 죽게 한 그 역시도 한 가정의 아버지였다. 하지만 그의 결혼 생활은 그렇게 순 탄치 못했던 것 같다. 아들 하나가 오랜 방황 끝에 겨우 군대에 들어 갔으나 주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총기 자살을 하였고 내 어머니를 음주운전으로 치고 내뺀 그 전날에는 그의 아내로부터 이혼서류를 받 았다고 한다 . 그의 경제적 무능력과 심리적 불안 때문이었다 . 사랑하 는 아들을 잃고 나중에는 아내에게서까지 버림받은 그의 마음은 얼마 나 고통스러웠을까. 변호사의 변호가 끝나자 나는 그 사람, 한 가정의 아버지와 남 편이었던 사람을 더 이상 미워 할 수 없었다. 아니, 미워하기 싫었다. 물론 술을 마시고 운전한 것은 잘못한 짓이었지만 왜 그럴 수밖에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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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 . 나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었지만 이 사 람은 가족 전부를 송두리째 잃어버린 순간에 벌어진 비극이었다 . 그 슬픔을 나의 슬픔과 어찌 비교하리. 그의 축 처진 얼굴에 비춰진 눈물 은 더 이상 살 의지를 잃어버린 사람의 전부였다. 나보다 더한 절규를 하고 있는 당신, 누군가의 아버지와 남편인 당신 저는 당신을 ‘용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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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상 – 운문 (시 )]

용서(容恕) Grade 11 후지모토 미유 Miyu Fujimoto 용서란 “괜찮아” 라고 하는 것 용서란 받아들이는 것 용서란 상대를 생각하는 것 간단하게 보이지만 쉽지 않은 용서 이 한마디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용서에서 보이는 것이 있는데 용서에서 이어지는 마음이 있는데 말하는 것만으로도 달라진다 마음은 나중에 따라온다 용서란 행복의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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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す

許すって 大丈夫って言うこと 許すって 受 け 入れること 許すって 相手のことを 考えること 簡単 そうに見えるけど決して簡単 じゃない許 す この 一言 がなかなか出 てこない でも 許すことから見えてくるものってあると思う 許すことから 繋がる心 ってあると思う 言ってみるだけでも何かが変 わる 気持 ちはあとから 付 いてくる 許すって 幸 せへの第一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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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 Pacific International School 57 Wolgye-ro 45ga-gil, Nowon-gu Seoul 139-852, Korea W: www.apis.org T: +82-(0)2-907-2747 F: +82-(0)2-907-2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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