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2017 Korean Language Arts The 5 Edition (G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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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 Pacific International School

2016-2017 I know what it is to be in need, and I know what it is to have plenty. I have learned the secret of being content in any and every situation, whether well fed or hungry, whether living in plenty or in want. 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 Philippians 4: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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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UME 5 OF THE APIS KOREAN LANGUAGE ARTS PROGRAM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WAS PUBLISHED BY THE KOREAN LANGUAGE ART CLASS WITH THE HELP OF MANY STUDENTS, TEACHERS, AND STAFF MEMBERS IN SEOUL, SOUTH KOREA, IN THE YEAR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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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ic Achievement Award and Dedication to the APIS Community as Artist for the APIS Korean Magazine Cover Contest – Top Prize

그림 - Grade 9 권애나 Frankle Anna 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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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IS KOREAN Department The Second and the third Korean Hangeul Proclamation Day Event

그림 2014-2015 한글날 무궁화 그리기

그림 2015-2016 한글날 책갈피 만들기

책갈피 그림 - Grade 7 루이자 Luiza Cureau 삶 속에서 감명 받은 문장을 골라 손글씨로 책갈피 만들기(Korean and English)집중력과 사고력이 저하되는 스마트 시대의 부작용을 줄이 기 위해 손글쓰기 문화를 장려하는 활동입니다. 한글날을 경축하는 의미 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깊이 있는 사고와 아날로그적 감성을 경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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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Artistic Achievement Award and Dedication to the APIS Community as Artist for the APIS Korean Magazine Cover Contest – Top Prize / 권애나 • 3 2015-2016 한글날 책갈피 만들기 / 루이자 • 4

시작하는 글 Principal of Middle School / Mrs. Jillian Iwanuk • 12 학생 대표 인사말 / 정강인 • 13

7학년 즐거운 상상 / 김도아 • 16 사계절 / 이지우 • 17 내가 만난 자연 / 김제인 • 18 시간 / 곽승화 • 19 봄, 여름, 가을, 겨울 / 고유진 • 20 사계절 / 구은서 • 22 달 만한 피자 / 강기윤 • 23 안녕하세요, 저는 이스라예요 / 이스라 • 24 사랑하는 어머니께 / 제이슨 • 25 어머니 / 오예찬 • 26 사랑하는 부모님께 / 서주원 • 27 용 / 김현진 • 28 ‘NBA 2k16’, 여러분도 해 보실래요? / 이서진 • 29 말이 전해준 자신감 / 박세현 • 30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 / 박주은 • 32 그 사람 / 구민석 • 34 쓸데없는 걱정 / 최세연 • 35 주고받는 감동 / 김양현 •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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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말 한마디 / 박상준 • 39 엄마, 미안 / 김유진 • 40 오해 / 이건희 • 42 너와 나를 이어주는 부축 / 이네오 • 44 ‘괜찮아’의 의미 / 손준호 • 46 격려의 힘 / 이 윤 • 48 위로와 동감의 효과 / 김재은 • 51 서로 돕고 사는 세상 / 유민서 • 53 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이서진 • 55 너를 태운 기차는 / 김남이 • 57

8학년 보이지 않는 다리 / 김호제 • 61 우정 / 권진희 • 62 함께 나누는 슬픔 / 김혜린 • 63 책갈피 / 김애린 • 65 영화는 영화일까? / 김태준 • 67 우리 학교 최고! / 왕지원 • 69 전자책? 종이책! / 박주혜 • 71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송재민 • 73 통일, 왜 해야 하는가 / 조나단 • 75 음악,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열쇠 / 정지원 • 78 지구를 지켜내야 합니다 / 정재희 • 81 게임을 좀더 자유롭게 하고 싶어요 /곽리안 • 83 자판기 설치를 부탁드립니다! / 김선우 • 85 ‘귀향, Spirits' Homecoming, 2015’ / 오수진 • 87 마음으로 울다 / 김규리 • 90 동주, The Portrait of Poet / 정소피 • 93 윤동주, 부끄러움으로 살다 간, 詩人 / 정강인 • 95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초콜릿 / 김재인 •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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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너의 선택이다 / 박혜진 • 102 안녕하세요, 저는 킴벌리입니다 / 킴벌리 호 • 105 저희 삼촌을 소개합니다 / 김관희 • 106 우리 누나를 소개합니다 / 고우근 • 107 내가 좋아하는 것들 / 최현무 • 109 저를 소개합니다 / 김정민 • 111 의자를 설명합니다 / 오주영 • 113

9학년 나의 색/ 권애나 • 116 너만을 기다리며 / 김수아 • 118 봄 / 홍성재 • 119 인권침해가 사라져야 하는 이유 / 이나현 • 120 사이버, 그 양날의 검 / 이재우 • 122 개성 있는 삶의 중요성 / 박정연 • 124 아동학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김상인 • 126 필요 악(惡) / 오승민 • 128 바람직한 삶의 방향이란 / 채민기 • 130 인성교육의 중요성 / 오형근 • 132 행복한 사회가 되는 비결 / 서윤영 • 133 누구나 가고 싶은 곳, 학교 / 박주현 • 136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 이지용 • 138 벌레가 된 사람들 / 박준하 • 140 내가 하는 말, 나 자신을 만든다 / 이승원 • 142 보기 좋은 떡이 과연 먹기도 좋을까 / 김윤지 • 144 숟가락들이 사는 나라 / 하대호 • 146 김영란법에 대한 소고 / 이진균 • 148 악플의 문제점과 그에 담긴 세태 / 강재원 • 150 말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 배지원 • 152 입으로 전하는 폭력, 귀로 듣는 상처 / 윤병우 •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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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 황수윤 • 157 미국과 캐나다 / 장재원 • 159 5 Guys / 오예준 • 160 ‘우아한 거짓말’을 읽고 / 이채윤 • 161 꼴찌들의 인생 / 최현욱 • 163 배추와 재석이 / 김건 • 165 진정한 행복 / 이관미 • 168

10학년 Bonjour! / Victoria, Tornare • 172 일본의 힘, 그리고 미래 / Sarina Suwa • 176 Salut! Je M’appelle Charlotte / Charlotte, Morin • 180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 / 김선주 • 185 조금은 아쉬운 성장 소설 / 김주성 • 188 지금의 나를 만든 소중한 사람들 / 박서정 • 190 나의 지난 15년 / 서희원 • 194 새로 부임하신 선생님들과의 인터뷰 / 김하령, 조민수 • 197 삐삐, 행방불명되다 / 서대원, 이수빈 • 199 현대인의 삶과 정보 통신 기술 / 정예준 • 201 정보 통신 사회, 그 득과 실 / 이규현 • 204 위정자의 역할 / 구동수 • 206 아버지의 손편지 / 유승민 • 208 점심 후의 꿀맛 / 노성헌 • 210 15번 테이블 탕짜면 단 하나 / 윤수빈 • 213 아구찜 / 이진성 • 215 일요일 밤의 간식 / 강응준 • 218 꿈 / 장영재 • 221 지혜의 선물 / 정현욱 • 223 서프라이즈 / 후지모토 미유 • 225 여행 / 김형준 •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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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것에 대한 허상 / 박지훈 • 230 코끼리와 하마 / 정지훈 • 232 깜짝 선물 / 정민기 • 234 내 얼굴 / 김혜민 • 237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 남윤준 • 239 스기시타노조미(N을 위하여)의 인생 / 오주현 • 241 토끼전 패러디 / 권진아, 이수빈, 김혜민 • 245 벗 하나 있었으면 / 박세은 • 249 발 / 윤지민 • 252 철수와 영희의 이별/ 김도현 • 255 슬퍼할 수 없는 것/ 최사라 • 258 만남 / 김규한 • 260 모녀 (妙女) - 스무 살 안팎의 처녀 / 양혜연 • 263 일탈, 오늘 밤은 삐딱하게 / 정다은 • 266

2015-2016 백일장 수상작 고등어 / 구재모 • 270 늘 그렇듯 / 오승민 • 277 크리스마스이브의 선물 / 박혜정 • 278 엄마 찾기 / 조하은 • 281 나의 하루 / 설정환 • 283 천둥 / 김선우 • 285 그녀의 ‘어머니’ / 서수민 • 286 심해 도시 / 윤수빈 • 291 괜찮아 / 이소형 • 293 어머니 / 박정연 • 295 기도 / 정강인 • 297 모녀 / 임나연 • 298 거북이 엄마 / 유유진 • 301 우리 엄마는 / 최진이 •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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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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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Reader, You hold in your hands the hard work of our APIS students. They have worked tirelessly for months, going through the writing process, revising, and editing their work to share their very best with you. As someone who was raised in a monolingual home, I can’t begin to describe how amazing it is to me to see students at APIS communicating

in

at

least

two

languages.

What

an

opportunity! I hope that, someday, the students realize what a wonderful gift it is to be able to communicate in more than one language. This magazine reflects the dream of authors, young and

old,

of

having

their

work

published.

Read

it.

Immerse yourself in the stories. Enjoy the works of art and writing before you and remember to compliment the artist or writer when you get a chance. That positive feedback means so much to these budding artists and authors!

Sincerely, Jillian Iwanuk Middle School Principal Asia Pacific International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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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oughout my two weeks in Hawaii, I felt as if I was going through an extraordinary experience. It allowed me to bond with new students and gave me the opportunity to visit many places to extend my learning beyond the classroom. To start out with, I bonded with students that I never knew before, both within our grade level and outside our grade level. Before I went to Hawaii, I didn’t expect to get close to many students outside of my grade level. I thought that we would spend most of our time with our own grade. However, I was given the opportunity to participate in activities with 6th and 7th graders, and I had roommates that were in 6th and 7th grade. During free time we played together, and at night, we would talk about what had happened during the day. The connection that we created as a middle school will help us support each other throughout the year. Another essential part of my experience in Hawaii was the field trips that we went on to farms, gardens, fish ponds, and polluted oceans. The 8th grade topic of study for the NPCA was sustainability, or the quality of not being harmful to the environment. Within that topic, we touched on agriculture and environmental pollution. In Seoul, I was able to learn about different systems and styles of agriculture and their benefits. I was also able to learn about pollution through writing and online sources. In Hawaii, we not only discussed these topics in class, but we also had the chance to visit farms that used different systems that were more beneficial to the environment. Our visit to a fish pond also helped us to under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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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ys we

can

keep the environment

healthy. To

me

personally, the fact that we were able to visit an extensive eco-friendly farm during the agriculture unit was unlike my experience in Seoul. I

shared

relaxing

moments

with

my

friends

in

beaches and shopping malls. When we went to beaches and shopping malls after a long day of working, it was wonderful because I was able to spend valuable time with my good friends. I would like to show gratitude for the school for providing me with the opportunity to go to Hawaii and my friends for allowing me to enjoy my time there. My time in Hawaii was very meaningful and delightful for I learned different things both academically and socially. I hope that this book and the writing pieces inside this book will be read with delight and joy like my experience

in

Hawaii.

I

sincerely

hope

that

we

will

continue to produce meaningful pieces in the future. Lastly, I would like to thank the Korean Department Faculty for collecting our writing pieces and organizing them.

Sincerely, Middle School SRC President Bryan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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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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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즐거운 상상 Grade 7 김도아 Jeremy Kim 나는 야구가 좋아 불처럼 타오르는 빠른 공을 치는 그 기분이란! 나는 먹는 게 좋아 햄버거, 피자를 먹고 천국에 가 있는 그 기분이란! 나는 게임이 좋아 모든 것을 바쳐 게임에만 몰두하는 그 기분이란! 오늘도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즐거운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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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사계절 Grade 7 이지우 Grace Lee 아기 꽃들이 소곤소곤 피어나고 기분 나쁜 찐득함이 스믈스믈 밀려오고 빨강 노랑 나뭇잎 비 오듯 떨어지고 소나기처럼 하얀 눈 펑펑 쏟아지는 이것이 우리의 삶 나의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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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내가 만난 자연 Grade 7 김제인 Jei Moon

나의 순조로운 뮤지컬, 나무들이 바람이랑 신나게 춤을 춘다 나뭇가지들이 살랑살랑 리듬을 춘다 온 나무들이 무대를 꽉 채워준다 나의 부드러운 노래, 새들이 아름다운 하모니의 날개를 펼친다 다른 색들의 음성들이 울려 퍼진다 향긋한 무대를 만들어 준다 와~ 나의 자연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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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시간 Grade 7 곽승화 Eunice Kwak 시간은 나의 기분에 따라 다르다 행복할 때면 늑대가 쫓아오는 것처럼 빨리 지나가고 아쉽게 보내는 시간은 갑자기 없어진 용돈처럼 아쉽다 내가 안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면 시간은 길을 건너가는 할머니처럼 느리다 갈수록 더욱더 느려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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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봄, 여름, 가을, 겨울 Grade 7 고유진 Eu Jean Ko

봄, 봄, 봄 봄이 좋다 강아지풀이 살랑살랑 아카시아가 활짝 바람이 솔솔솔 마을에 봄이 찾아 왔다 여름, 여름, 여름 여름이 좋다 햇볕이 쨍쨍쨍 나무는 열매를 맺고 무당벌레는 춤을 춘다 마을에 여름이 찾아 왔다 가을, 가을, 가을 가을이 좋다 빨강, 주황, 노랑, 가을은 색다르다 마을에 여름이 찾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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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겨울, 겨울 겨울이 좋다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본다 와! 눈이다! 톡톡톡 따뜻한 겨울이 찾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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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사계절 Grade 7 구은서 Sarah Koo

봄은 굉장히 짧다 아침에 일어나기 전에 말하는 ‘오 분만 더요’의 오 분처럼, 눈만 감았다 뜨면 십 분이 훌쩍 지난 것처럼, 봄은 하루 사이에 사라진다 여름은 무지 덥다 온 세상에 전기장판을 켜 놓은 것처럼, 온 세상이 불에 휩싸인 것처럼 무지 더워서 녹아내릴 것만 같다 가을은 굉장히 맑다 하늘과 푸른 바다가 뒤집힌 것처럼, 푸른 수채화 물감을 물에 풀어 하늘에 쏟은 것처럼, 하늘이 무지 맑고 푸르다 겨울은 무지 무지 춥다 에어컨이 세상을 지배한 것처럼, 얼음이 모든 것을 새로 지은 것처럼, 겨울은 굉장히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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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달 만한 피자

Grade 7 강기윤 Matthew Kang

진짜로 큰 피자, 달 만큼 큰 피자를 만들어 빨간 토마토소스는 강을 이루고 피자는 너무 커서 던질 수도 없어 치즈를 한가득 채우고 고추, 피망하고 완두콩 그리고 버섯, 토마토하고 소시지 올리브도 가게에서 잔뜩 사와야 해 다 만드는 데 2년이나 걸려서 나는 기다릴 수가 없어 내 피자는 달 만한 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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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

안녕하세요, 저는 이스라입니다.

Grade 7 이스라 Isra Mohammed Eldei A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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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문>

사랑하는 어머니께

Grade 7 제이슨 Jason Mis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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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문>

어머니 Grade 7 오예찬 David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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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문>

사랑하는 부모님께 Grade 7 서주원 Justin Suh

어머니, 아버지, 안녕하세요? 큰 아들 주원이에요. 제가 부모님께 편지를 드리는 이유는 지금 까지 매일 매일 어머니, 아버지께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을 느끼지 만 편지로 다시 한 번 더 말씀 드리고 싶어서 입니다. 감사할 것 들이 사실 너무 많지만, 지금 다니는 이 학교를 저와 제 동생에게 선택할 수 있게 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특별히 저를 낳아주시고, 이렇게 멋지게 키워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일 하실 때 어려 울 때가 많으실 텐데,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 사시는 것이 아니라 저희들을 위해 늘 수고를 아끼지 않으시니 감사합니다. 어머니, 아버지, 제가 이렇게 많이 성장했습니다. 가끔씩 슬프고 힘들 때도 솔직 히 있지만 저희를 위해 희생하시는 부모님 생각을 하면 저는 슬퍼 할 자격이 없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기쁘게 공부를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아버지께 효도를 많 이 해드리겠습니다. 공부할 때, 힘이 들 때, 그리고 지쳐서 포기하 고 싶을 때, 저는 어머니 아버지께서 저희에게 주신 사랑을 생각 하면서 열심히 살겠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2016년 10월 30일 어머니 아버지의 큰 아들, 주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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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용 Grade 7 김현진 Hyun J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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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NBA 2k16’, 여러분도 해 보실래요? Grade 7 이서진 Matthew Lee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에 대하여 잠시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주로 금요일 오후에 형과 함께 ‘NBA 2k16’라는 게임을 합니다. 이 게임이 주는 매력은 멋진 화면과 ‘마이 커리어’라는 게임에서의 진행 상황입니다. 이 게임을 할 때,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어 른이 되어서 농구 경기를 하면 어떻게 운동 경기를 하는 지를 자 세히 지켜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실제로 경기 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게임을 많이 안 하고 싶으면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리고 이 게임을 하게 될 때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시작할 때, 가장 초보 선수를 세우게 됩니다. 하지만 게임에서 이 기게 되면 게임 머니를 주는데, 이 게임머니를 많이 받게 되면, 훌륭한 선수를 직접 살 수 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게임 모 드는 ‘마이 팀’입니다. 제가 이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이 게임머니를 많이 받으면 ‘제임스 하든’이나 ‘마이클 조던’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이 게임을 한 번 시도해 보시면 어떨까요? 기회가 된 다면 이 게임을 여러분과 함께 해 보고 싶습니다. 이것이 제가 이 게임을 여러분에게 추천하는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제 이야기를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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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말이 전해준 자신감 Grade 7 박세현 Sean Park 말 한 마디는 중요하다. 누군가의 한 마디 때문에 생각이 바뀔 수도 있고, 기분이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있다. 그만큼 ‘말’은 중요하다. 2년 전, 5학년 때부터 내 주변 친구들의 키가 커지기 시작했다. 다들 하루가 다르게 키가 커져서 나도 곧 크지 않을까 기대했지 만, 내 키는 자라지 않았다. 친구들은 키가 작은 나를 놀리기 시 작했다. 그래서 나는 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놀림 받는 것 도 싫었고 키가 작아서 못 하는 일이 많아지는 것도 싫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나에게 다가와서 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키 때문에 내가 속상해 하는 것을 보며 키가 작다고 할 수 있는 게 적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솔직히 그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었지만 내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 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정말 그럴까? 내 키가 작아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을까?’ 시간이 흐르면서 그때 친구의 말이 옳았다는 생각에 확신이 생 겼다. 키가 작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적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 키가 작아도 농구도 할 수 있고, 스노우쿨링 같은 스포츠는 키랑 전혀 상관이 없다. 그 사실을 깨달은 이후, 나는 행복해졌고 더 활동적인 사람이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키가 큰 사람들이 농구를 잘 한다고 생각 하고, 다리가 긴 사람들이 달리기가 빠르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 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잘하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농구도, 달리기도 키와는 상관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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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임을 깨달은 것이다. 환경과 외모와 상관없이 모든 것을 즐기면서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이라는 것을 알려준 친구의 한 마디가 오늘도 고맙 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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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 Grade 7 박주은 Sunny Pak 슬픔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질문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도 다양할 것이다.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가족의 사랑 속에 서, 음악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로, 또는 맛있는 음식으로 극 복하는 사람 등 여러 가지 경우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나를 부 축하고 위로해 주는 격려의 말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1년 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나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 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고, 내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흘러 나 왔다. 사람들이 “괜찮아, 주은아.” “이제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야.” 라고 위로를 해 주었지만 조금도 도움이 안 되었다. 나는 겉으로 는 “네.” 라고 대답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 말들을 무시했다. 그리고 계속 슬픔에 잠긴 채 언니와 함께 멍하니 할아버지 영정 사진을 바라보 았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오고 갔다. 시간도 꽤 지났지만 우울하고 슬 픈 기운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 가족들은 울다 손님맞이 하다를 반복했다. 그 와중에 큰삼촌을 보게 되었는데 큰삼촌은 울지 않고 있었다. 엄마와 작은삼촌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했으나 큰삼촌의 얼굴에는 우울하고 슬픈 기운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밥을 다 먹 고 큰삼촌 옆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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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좋은 곳에 가셨을 거야. 계속 슬픈 생각을 하지 말고 이 렇게 생각해 봐. 그러면 하나도 안 슬퍼.” 큰삼촌은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고 가셨다. 그 후 한참이 더 지 나고 나는 깨달았다. 그 전까지 무시해 왔던 나를 위로해 주는 말 들, 삼촌이 나를 일으켜 세우려고 하신 격려의 말들, 그때는 몰랐 지만 그런 말들이 나에게 실제로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를 말이 다. 물론 그 말들이 나를 슬픔에서 단번에 건져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말들이 쌓이고 쌓여서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다. 나에게 슬픔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들의 격려 와 위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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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그 사람 Grade 7 구민석 Min Seok Koo 때는 2015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중계동에 있는 사거리에 있는 버스정류장 앞에서 나는 그만 버스를 놓치고 말았 다. 눈앞에서 놓친 버스에 기분이 나빠진 나는 멍하니 앞을 보고 있었다. 건너편에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학생이 눈에 띄었다. 그 학생은 다리를 다쳤는지, 원래 불편한지 목발을 짚고 있었는데 길 을 가다가 넘어진 상태였고, 그 학생을 도와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잠시 후 40대 남성이 그 학생에게 가까이 가서 그를 일으 켜 세워 준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 가게의 손님들은 그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가게 안을 구경하고 있었고, 건너편에는 나와 나처럼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아저씨는 어디 론가 사라졌고 몇 분 후 다시 나타났다. 그는 학생의 짐을 정리해 준 후, 슈퍼에서 사온 듯한 음료수를 학생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 들은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내가 있는 곳에서는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 아저씨가 그 학생에게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뭔가 위로하는 말 을 한 것 같다. 내가 타야할 버스가 곧 도착한다는 전광판의 메시지를 보며 나 는 버스를 탈 준비를 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다. 그리고 그 학생과 아저씨도 각자 집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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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쓸데없는 걱정 Grade 7 최세연 Sunny Choi 며칠 전 카니발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일 년에 한 번, 신나는 카니발 행사를 연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친구들이 랑 밖에 나가서 재미있는 것이 뭐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여러 가 지가 많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나의 눈을 제일 먼저 튀어나오 게 한 것은 독도사랑 문바운스였다. 나는 친구들을 모아서 같이 문바운스에 가자고 했다. 아이들은 내 의견에 모두 동의했고 우리 는 농구골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바운스에 도착해서 보니 그 곳 은 다섯 개의 티켓을 내야지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조금 비싸 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문바운스에서 놀고 싶었기에 티켓을 내고 들어갔다. 나는 친구들이랑 같이 맨 꼭대기로 올라갔다. 우리가 재 미있게 놀고 있는데 다른 애들이 우리를 떨어뜨리려고 벽을 마구 흔들었다. 나는 양말이 미끄러워서 굴러 떨어졌는데 목이 꺾여서 얼굴로 넘어졌다. 넘어지는 순간 목이 엄청나게 아팠다. 겨우겨우 일어나자 친구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면서 물었다. “너 안경테가 왜 그래?” 그제야 나는 내 안경테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안경을 벗고 찬찬히 살펴보니 안경테에 금이 가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앗, 엄마한테 죽었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다른 안경이면 괜찮았을 테지만 이 안경은 좀 달랐다. 이번 여름방학 때 겨우겨우 어렵게 맞췄던 안경이어서 다시 구하는 것이 쉽지 않 을 것 같았고 엄마가 화내실 것도 너무너무 걱정이 되었다. 엄마 께 어떻게 말씀 드려야 할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카니발 일정이 끝나자마자 나는 엄마께 카톡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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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는

엄마가

이렇게 반응할지 꿈에 도

생각하지

엄마가

엄청

못했다. 화내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 히려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셨다. 내가 엄마 라도 그럴 것이다. 딸 이 문바운스에서 넘어 졌다는데 안경테 때문 에 화부터 내지는 않 을 것이다. 그런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계속 걱정이 되었는데 엄마가 다친 것을 먼 저 걱정해주시는 말을 들으면서 이 걱정들이 얼마나 쓸데없는 걱정 이었는지를 알 수 있 었다. 다시 한 번 엄마 의 사랑을 느낄 수 있 었고 다시 마음 편안하게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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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주고받는 감동 Grade 7 김양현 Karen Kim “나와 우리의 팬이어서 고맙습니다. 나도 그대의 팬입니다. 그대 가 오롯이 견디는 외로움과 싸움과 삶을 묵묵히 응원하는 팬입니 다.” 이 말은 한국의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의 랩퍼 ‘랩몬 남준’이 팬 들 앞에서 한 말이다. 남준의 이 말은 내 마음 속에 깊이 박혔다. 물론 남준이 나와의 일대일 대화에서 이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팬 전체를 대상으로 한 말이기 때문에 나는 나에게 한 말 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그런지 이 말이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한국의 성공한 아이돌 그룹의 인기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나 도 방탄소년단을 매우 좋아하지만 인기 많은 그룹의 멤버가 저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이 말은 나에게 힘이 되었고, 감동이 되었 다. 나는 지금까진 나만 그들을 좋아하고 따라다니는 것인 줄 알 았는데 그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도 나의 팬이라고 해주니 너무 좋았다. 나 혼자 마음을 준 것이 아니라 방탄소년단도 우리 팬들 에 대한 마음이 있으니 우리는 서로 마음을 주고받고 있는 것이었 다. 나 같은 팬들은 이런 남준의 말에 다 같이 감동을 받고 좋아 했을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당연히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좋아하는 마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들을 이후 나는 ‘주고받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시작 했다. 내가 받기만 하는, 또는 내가 주기만 하는 그런 관계가 나 에게 있나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가 어떤 호의나 호감 을 받았다면 나도 그런 행동이나 마음을 보여야겠다는 생각을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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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받은 만큼 줘야 한다는 ‘give and take’의 개인주의적인 마음 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선의의 행동과 말이 지속적으로 교환되도 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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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엄마의 말 한 마디 Grade 7 박상준 Lucas Park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란 엄청난 자신감과 안도를 주는 단어인 거 같다. 그리고 사람들이 힘들 때 다른 사람들이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주면 기분이 나아지는 거 같다. 내 생각엔 위로와 격려의 말이 사람들에게 자신감과 안도를 주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나를 믿어준다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인 것 같다. 나도 위로와 격려를 받고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꽤 친한 친구와 다투어서 선생님에게 불려 갔다.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고 나서 들어가려고 했는데 친구 민석이가 내 잠바를 가져가면서 내 폰을 떨어뜨려서 액정이 깨졌다. 그때 민석이랑 다투게 되었고 그 래서 마음이 안 좋았다. 화가 난 상태인데 민석이가 나에게 사과 도 하지 않아서 짜증이 폭발했다. 그래서 민석이를 밀고 약간의 몸싸움을 시작했다. 마침 우리가 싸우던 곳 바로 옆에 Mr. Milligan이 계셨고 우리는 결국 Mr.Murphy께 불려갔다. 우리는 Mr. Murphy께 혼이 났고 디텐션도 받았다. 곧 우리의 싸움은 집 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처음에 엄마가 그 소식을 들으시고 나서 나를 혼내셨다. 내가 잘못했으니 혼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런데 엄마가 다음에는 절대 그렇게 하지 말라고, 그리고 이제 괜 찮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엄청나게 안심이 되었다. 많이 혼날까봐 두근두근 두려웠던 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을 보면서 ‘위로와 격려’의 한 마디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면 그 말을 해 준 것이 다른 사람이 아닌 엄마라서 더욱더 안심이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경험을 통해서 사람들의 말 하나 하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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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엄마, 미안 Grade 7 김유진 Eugene Kim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아주 오래전 일은 아닌 것 같다. 중 학교 때라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보통 때처럼 학 교에 등교해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늘 그랬듯이 학교를 마치고 축 구를 하러 갔다. 나는 평상시처럼 3시간 동안 축구를 했다. 축구 가 끝난 후 친구들이랑 30분 정도 논 후에 집에 가려고 버스를 탔다. 엄마가 기다리고 계시지 않을까 잠깐 생각했지만 엄마는 보 이지 않았고 그래서 그냥 버스를 탔다고 전화를 걸 생각이었다. 그러나 폰은 배터리가 다 죽어 있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냥 엄마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버스를 탔다. 집에 도착하니 엄 마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너, 어디야?” “집이야?” “너 왜 집에 있어?” “엄마가 안 와서... 그냥 혼자 왔어.” “지금이 여섯 시인데!” “알았어, 이따가 다시 얘기 해.” 엄마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그냥 집에 가면 어떡해?” 나는 아까가 여섯 시인 줄 알았고, 엄마가 안 보이기에, 그냥 집에 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엄마랑 계속 실랑이를 했다. 결국 엄 마의 분노에 나는 밀렸고 알았다고, 잘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 는 괜찮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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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 진심은 그냥 상황을 넘기고 싶었다. 빨리 죄송하다고 엄마한테 말하고 좋게 넘어가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엄마가 나에 게 괜찮다고 너무도 쉽게 말씀하셨을 때 ‘어?’하면서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뭔가 찜찜한 마음을 가지고 샤워를 하러 갔다. 샤워를 다 한 후 엄마한테 가서 대충 아무 말이나 하면서 말을 걸어보았다. 엄마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와 다름없이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조심스레 엄마한테 물어보았다. “엄마, 엄마 아까 일 진짜 괜찮아?” “응, 괜찮아.” 그제야 진짜로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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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오해 Grade 7 이건희 David Lee 오늘의 학교는 이상했다. 왜냐하면 오전 수업이 없고 하와이 NPCA 소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점심시간 전까지 계속 하와이 NPCA 소개를 들었다. 나랑 유진이는 둘 다 하와이를 갈 예정이라서 3교시까지 계속 같이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갑자기 유진이보고 잠깐 다른 곳 으로 가서 무엇인가를 하라고 하셨다. 유진이는 자리를 옮기면서 가방을 두고 갔다. 나랑 민석이의 눈이 ‘반짝’ 빛났다. 우리는 뭔가 장난을 치고 싶 었다. 민석이와 나는 유진이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핸드폰, 천 원짜리 한 장, 다시 생각해도 무서운 엉망진창 잡동사 니가 들어있었다. 비타민 씨와 비닐봉지도 쓰레기처럼 들어있었다. 나는 핸드폰도 꺼내고, 천 원도 꺼내서 민석이랑 유진이에게 보여 주었다. 유진이가 민석이랑 나에게 욕을 하기 시작했다. 유진이가 욕을 하자 우리는 천 원이랑 핸드폰을 다시 가방 안에 넣어주었 다. 유진이는 가방을 가지고 다시 자리를 옮겼다. 천 원짜리가 바 닥에 떨어진 것도 모른 채. 점심시간이 되었다. 유진이가 나에게 오더니 나 혼자 가방 뒤졌 으니까 천 원을 다시 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께 이르겠다고 했다. 나는 내가 가방을 뒤진 건 맞지만 다시 도로 다 넣어놨고, 천 원은 가져간 적이 없다고 했지만 유진이는 나를 믿지 않았다. 천 원이 없어져서 거의 울 것 같아 보였던 유진이는 결국 선생 님께 모든 사실을 말씀드렸다. 민석이와 나는 선생님께 가서 어떻 게 된 일인지 다 설명을 해야 했다. 우리의 설명을 들으신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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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민석이와 내가 가방을 뒤지다가 일어난 일이니까 우리가 오백 원씩 모아서 유진이에게 주든지, 유진이의 용서를 받든지 해서 해 결을 하라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다른 사람 물건을 허락도 없이 뒤지는 행동은 법을 어기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유진이 의 가방 안에 있을 수도 있으니 같이 찾아보자고 하시며 유진이의 가방을 가지고 오라고 하셨다. 우리는 유진이 가방을 가지고 왔고 안에 있는 물건을 다 꺼내보 았다. 그 안에는 5cm 정도 되는 종이 무더기가 구겨진 채 있었고 아까 우리가 보았던 잡동사니들이 있었다. 그때 우리 옆을 지나가 시던 교장선생님께서 그 가방을 보시더니 유진이에게 가방 안을 정리한 적이 있냐고 물어보셨는데 유진이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같이 한 번 정리해 보자고 하셨다. 진짜 웃겼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7교시가 되었다. 세현이가 유진이에게 오더 니 유진이의 천 원이 자기한테 있다고 했다. 아까 바닥에 떨어진 것을 자기가 주웠는데 누구 건지 몰라서 못 찾아 주었다고 유진이 것 같다고 하였다. 사건의 진상이 모두 밝혀지자 유진이는 나랑 민석이를 의심한 것을 매우 미안해했다. 사실 우리가 가방을 뒤진 것은 여전히 잘 못한 것인데 말이다. 유진이는 민석이와 나에게 사과의 의미로 오 백 원을 주었다. 우리는 그 오백 원으로 껌을 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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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너와 나를 이어주는 부축 Grade 7 이네오 Neo Lee “현진아, 포기하지 마. 내가 너랑 같이 뛰어줄게.” “고마워. 내가 더 노력할게!” 올해 처음 사귄 내 친구 현진이는 나처럼 천식이 있다. 그래서 현진이가 뛰기 힘들어 할 때 같이 뛰어 주고 도움이 되어줬다. 나 도 겪어 봤던 천식이라서 현진이가 어떤 느낌이 들지, 또 얼마나 힘들지 짐작이 갔다. 그걸 생각을 하면 나는 현진이를 더 돕고 싶 어진다. 그래서 축구 연습이 있는 날에는 현진이와 같이 운동장을 뛰어 준다. 그럼 기분이 한층 더 좋아져서 더 활기차게 친구들과 다 같이 뛸 수 있다. 현진이도 우리가 모두 다 같이 운동장을 뛸 때면 분명 기분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진이는 원래 말이 많지 않다.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다. 반 면에 우리 학년 친구들은 엄청 시끌벅적하다. 우리 학년 친구들과 현진이는 성격이 너무 달라서 그런지 쉽게 친해질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현진이의 그런 조용한 성격이 좋았다. 현진이는 책을 엄청 좋아해서 현진이와 책을 읽기도 하고 내가 잘 못하는 책을 잘 읽는 모습을 칭찬하며 격려하기도 한다. 같이 뛰어주고, 같이 울어주고, 같이 뛰어준다. 나는 그게 친구라고 생각 한다. 왜냐하 면 친구와 친구는 서로 기댈 수 있게 해줘야 되기 때문이다. 부축의 말, 이 말은 서로, 같이 버팀목이 되라는 뜻인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부축의 말을 현진이에게 해 주었다. 나의 기분은 정 말 날아갈 거 같았고, 엄청 좋았다. 착한 일을 하면 원래 이런 기 분일까? 현진이가 다음에도 힘들어 할 때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 라고 약속한다. 일석이조 아닌가? 기분도 좋고, 친구도 사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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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축의 말을 친구들에게 한 번, 두 번, 세 번 하다보면 친구도 도움을 받겠지만, 나 자신 또한 이득 보는 게 많아진다. 만약 다 이아몬드가 100미터 앞에 떨어져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다이 아몬드가 나에게 오길 기다리지 말고, 내가 그 다이아몬드에게로 걸어가면 다이아몬드는 점점 가까워지고 내 것이 될 수 있다. 친 구도 마찬가지이다. 친구가 나에게 다가오기를, 나를 도와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다가가서 친구와 같이 걸어가면 힘듦과 외로움을 없앨 수 있다. 부축의 말, 친구와 친구 사이의 약속이 우리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다. 현진이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이것은 엄청 중요하다. 나의 친구 현진에 게, 또 다른 친구들에게도 매일 부축의 행동과 부축의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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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괜찮아’의 의미 Grade 7 손준호 Shigeyuki Miura

‘괜찮아’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괜찮아?’ 축구를 하다가 종종 일어나는 몸싸움 속에서 하게 되는 말이다. 나는 축구를 하다가 반칙을 하면 바로 ‘괜찮아?’라고 묻고 다시 경기를 진행한다. 상대 선수에게 발을 채이거나 상대가 발을 걸었 을 때 ‘괜찮아?’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감독님께도 많이 듣는 말 이다. 내가 슛을 했는데 빗나가거나 골대를 맞힐 때 감독님은 어 김없이 ‘괜찮아, 잘 하고 있어.’라고 말씀하신다. 누구에게 했는지, 누구에게 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시험을 망쳤을 때 나 자신에게 ‘괜찮아, 점수 비중 높은 시험이 아니야. 다음에 잘 하면 될 거야’라고 되뇌기도 한다. 마치 나 자 신에게 주문을 걸듯이 말할 수도 있다. 평생 내가 해보지 못한 일 을 하려고 시작할 때에도 ‘괜찮아, 잘 할 수 있어’라며 나 자신을 다독거릴 수도 있다. 괜찮다는 말을 듣기 전과 후는 무엇이 달라질까? 사실 나에게는 그렇게 많이 달라지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괜찮다는 말을 들어서 좋을 때도 있고 별로 안 좋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축구에서 상대 선수가 반칙을 한 후라면, 그것도 우리 편 골대 앞이라면 프리킥 이나 페널티킥을 얻을 수 있어서 좋을 것이다. 원치 않는 부상을 입고 벤치에 앉아 친구들이 뛰는 거나 보고 있어야 할 수도 있지 만 말이다. 물론 반대로 내가 상대에게 반칙을 한다면 그건 안 좋 은 일이겠지만 그래도 경기는 계속 진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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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망쳤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학교에서 시험 망치는 건 사 실 나에게 밥 먹듯이 있는 일이고, 나 스스로에게 ‘괜찮아’라는 낯 짝 간지러운 말을 하기는 싫다. 하지만 그 ‘괜찮아’라는 말에서 용 기를 얻을 수는 있을 것이고, 더 열심히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이런 말을 하면서 얻게 되는 이익이 분명히 있긴 한 것 같다. 운동을 하다보면 다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괜 찮냐고, 괜찮다고 이야기하면서 부상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 덜 가 질 수도 있고, 반칙이나 태클에 대처하는 방법을 깨닫는 노하우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경기 중 모르는 아이와 충돌했을 때 괜찮냐는 말을 하면서 서로 관계를 쌓아 가는 좋은 타이밍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괜찮아?’라는 말을 들었던 경험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거 의 내가 다쳤을 때, 절망했을 때, 안 좋은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등 부정적인 상황에서였던 것 같다. 앞으로 ‘괜찮아?’라는 말을 듣 기보다는 많이 하고 다니고 싶다. 내가 들을 때는 낯간지러워서 싫지만, 다른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용서를 해줄 수 있는 건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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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격려의 힘 Grade 7 이윤 Yoon Milling 우리는 매일 말을 하고 듣는다. 남을 격려하는 말도 하고, 누군 가를 비난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칭찬하는 말도 하고 무언가를 설명하는 말도 한다. 말로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말을 할 때에는 늘 조심해야 한다. 인터넷 채팅 방에서 사람들이 한 사람을 지속적으로 왕따를 시키다가 결 국 피해자가 자살을 했다는 충격적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 기 사는 폭력적인 말이 그만큼 무섭다는 것을 보여주다. 이와는 반대 로 힘든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선플을 다는 사람들도 있다. ‘가 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처럼 말을 남에게 할 때는 그 말이 전하는 힘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언제나 용기를 북돋아주고 격려를 하는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에게 가족은 그런 사람이다. 올해 7월의 일이다. 학교에서 농구캠프를 하던 중 갑자기 심한 두통이 나고 어지러웠다. 처음에 는 가벼운 감기인 줄 알고 감기약을 먹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처음 갔던 병원에서 자세한 검사가 필요하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고, 그래서 순천향대학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병원에 가는 길은 너무 힘들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팠고, 힘들어서 걸을 수조 차 없었다. 부모님께서는 괜찮을 거라고, 조금만 참아보자고 말씀 하시며 나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셨다. 의사 선생님을 기다리는 몇 분이 몇 시간같이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뇌수막염이 의심된다고 당장 입원하라고 하셨다. 곧바로 입원 절 차를 밟고 휠체어를 타고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다. 검사를 받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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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순간이 몹시 무서웠고 두려웠지만 그 때마다 옆에서 괜찮을 거라고, 조금만 참자고 격려해주던 부모님 말씀이 위로가 되었다. 특히 등에 바늘을 꽂는 뇌척수액 검사를 하러 갈 때는 몸을 움직 일 수도 없을 정도로 무서웠지만 검사를 하시던 의사 선생님께서 내가 잘 하고 있고 참을 수 있다고 용기를 주셨다. 5분 이상 등에 들어가던 주사를 겨우 다 맞고, 검사실에서 나오 는 순간 나에게 무엇보다도 안도감을 주었던 것은 바로 부모님의 모습이었다. 그 후 6시간 내내 움직이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었 다. 그 6시간은 아픈 것을 넘어서 끔찍했다. 피 뽑는 주사를 맞을 때도 그랬다. 주사가 아픈 것은 아니었지만, 100ml 정도 되는 뽑 힌 피의 양이 소름 돋았다. 가장 길고 끔찍한 6시간을 내가 무사 히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 덕분이었다. 부모님께서는 계속 괜찮을 거라고 지금 아주 잘 하고 있다고 칭찬과 격려를 해 주셨 다. 잠도 못 주무시고 피곤하셨을 텐데도 내가 잘 견디고 있어서 자랑스럽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부모님 앞에서 더욱 의젓한 모습 을 보이려고 노력하고 참으며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병원에서 3일 밤을 보내는 동안, 어머니는 주무시지 않고 계속 내 상태를 보시며 괜찮냐고 물어보셨다. 다행히 내 병은 세균성이 아니라 바이러스성 뇌수막염이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그 차이를 설명해주시고 앞으로 상태와 주의사항을 말씀해 주셨다. 힘들지만 잘 견디어 아주 의젓해 보인다는 말씀을 듣자 왠지 더 나아진 것 같고 덜 아픈 것 같았다. 잘하고 있다는 격려의 말이 고통을 줄여 준 것 같았다. 4일 만에 퇴원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며, 주사와 약 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격려와 사랑이 내가 병과 싸울 수 있게 용 기를 주고 고통을 줄여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은 입원생활을 통해 나는 말이 직접 몸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은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몸에 변화를 준다.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특히 말이 주는 용기와 힘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비록 가족이 아닐지라도 내가 누군가에게 진심에서 우러난 격려와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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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말을 건넨다면 긍정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그 말이 또 다른 사람에게 이어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한 순간이 아니라 끊임없 이 지속적으로 좋은 말을 전해야 한다. 그래서 격려의 말을 받고 싶다고 생각하기 전에 남에게 먼저 베풀어야 한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스스로에게 격려의 말을 전하고 있 다. 쉽게 긴장하면 더 힘들어진다고, 집중을 해야지 이 임무를 완 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일부터 주위 친구들에게도 격려의 말 을 전하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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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위로와 동감의 효과 Grade 7 김재은 Jeslyn Kim 때는 2년 전, 내가 APIS로 전학 오기 전의 일이였다. 그때는 친 구들과 참 많이도 놀았던 것 같다. 점심 시간에도 놀고, 쉬는 시 간에도 놀고, 그렇게 놀면서 친구들 사이에서 싸운 적도 있었고, 서로 욕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노는 게 늘 그렇듯 그런 것 때 문에 문제가 생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조금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 일의 중심에는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우리랑 아주 친 하지는 않고 가끔 놀기만 했던 아이다. 그 아이는 친구가 별로 없 어서 우리랑 늘 놀고 싶어 했지만 우리는 그 아이 성격이 조금 이 상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피하던 차였다. 그러던 중 그 아이와 우리는 오해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던 그 아이는 우리들이 자기 욕을 했다는 소문 을 퍼뜨렸다. 그 아이는 아마 자기랑 잘 놀아주지 않는 우리에게 짜증이 나서 그랬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아이의 말을 믿었고 이 사실은 선생님께도 알려지게 되었다. 그 아이와 선생님과 이야기 하는 동안 교무실에서는 울음소리가 들렸고 그 뒤 우리는 선생님 께 불려 갔다. 우리는 그 아이를 욕하고 왕따를 시켰다고 혼이 났 다. 그 아이가 밖에서 울고 있어서 선생님들은 우리의 말을 듣지 도 않고 그 아이에게 사과를 하고 해결을 하라고 하셨다. 우리는 차례로 한 명씩 불려 나갔고 곧 한 명씩 꾸중과 잔소리를 듣고 왔 다. 그 아이는 우리들 중 누가 제일 괴롭혔는지 얘기를 했다고 하 는데 내 생각에는 제일 인기가 많았거나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들 을 더 괴롭혔다고 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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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는 나에게 다른 친구들은 몰라도 네가 그 아이를 왕 따 시키는 것을 계속 보고만 있고 왕따와 욕에 앞장설 수가 있냐 고 마구 뭐라고 하셨다. 나는 당연히 그런 적이 없었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은 선생님 말씀을 그냥 듣고만 있었지만 나는 내 억울 함을 다 이야기하고 나왔다. 나는 너무 억울해서 거의 울 지경이 었다. 다른 친구들은 울고 나왔지만, 혼나기는 내가 제일 많이 혼 난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슬픈 것 보다는 억울한 마음이 더 컸다. 우리 모두 그랬다. 우리가 그 아이에게 불만이 있긴 했지만 절대 왕따를 시 킨 적은 없었다. 그렇게 끝났으면 다행이었겠지만 우리가 왕따를 더 퍼뜨리려고 했다는 말도 안 되는 헛소문 때문에 선생님께 다시 불려갔다. 나쁜 짓을 한 것은 그 아이인데 우리만 더 혼나는 것이 너무 화가 났다. 나는 결국 울음이 나왔고 몇몇 내 친구들도 울음 을 터뜨렸다. 우린 모든 꾸중을 듣고 나서 밖을 나왔다. 나는 계 속 울고만 있었다. 친구들은 나를 위로해 주었고 내가 억울한 점을 말하자 친구들 도 나에게 얘기를 하며 기분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친구들은 자신 들도 억울하지만 이렇게 울고만 있는 건 더 억울해 지는 것 같다 고, 마음을 강하게 먹자고 이야기했다. 친구들은 내 기분을 공감해 주고 내가 자신들보다 많이 혼난 것을 알고 더 위로를 해주고 어 떻게 해결할지를 의논하였다. 다행히 우리들에게 쏟아졌던 의혹은 풀렸고 그 아이의 잘못이 모두 밝혀졌다. 모든 것이 괜찮아 졌지만 그 아이는 눈치도 없는 지 사과도 없었다. 물론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친구들 이 나에게 해준 위로와 동감으로 내 마음이 진정되고 잘 풀릴 수 있었다. 비록 일이 아주 잘 끝나진 못했지만 그래서 기분이 아주 나쁘진 않았다. 친구들과 함께 다 같이 자신을 위로하고 친구를 위로했기 때문에 내 마음이 괜찮을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위로의 말들은 항상 사람들을 더 나아질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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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서로 돕고 사는 세상 Grade 7 유민서 Katlynn Ryu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많은 일을 겪게 된다. 늘 도움을 줄 수 있는 처지에 있다가도, 어느 날 한순간에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 지가 되기도 한다. 세상은 사람들이 더불어 살며, 서로 도움을 받 고, 도와주며 사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지치고 힘들어 할 때 위로가 되어 주는 말을 하면 실제로 큰 위로가 된다. 그 때문 에 ‘괜찮아’라는 말은, 굉장히 오묘한 말인 것 같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희망의 말, 용기를 북돋워 주는 말, 용서의 말, 격려의 말, 나눔의 말, 부축의 말 등의 좋은 뜻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 다. 학교시험을 위해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성적이 기 대에 미치지 못 했을 때 나는 크게 좌절했다. 하지만, ‘괜찮아’라 는 엄마의 한 마디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쉽게 할 수 있는 작은 말 한 마디지만 그 말이 상대방에게는 엄청나게 큰 힘이 될 수 있다. ‘괜찮아’라는 말을 듣기 전에 나는 무기력하고 기분이 많 이 안 좋았지만, ‘괜찮아’라는 말을 듣고 난 후부터, 기분이 좋아 졌다. 내 경험을 통해, 나도 내가 힘들었을 때 도움을 받았던 것 처럼, 다른 사람에게 ‘괜찮아’라는 말로 꼭 격려해 주고 싶다. 서연이랑 다툼이 있었던 날, 나는 화가 아주 많이 난 상태였고, 서연이도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그날은 서연이 때문에 하루 종 일 기분이 안 좋아서 빨리 집에 가려고 운동장을 터벅터벅 걸어가 고 있었다. 그때 서연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서연이는 먼저 나한테 말을 하며 내 옆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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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서연이가 말한 ‘괜찮아'라는 단어는 용서의 말, 걱정의 말이었 다. “괜찮아. 너도 괜찮아?” 나도 서연이에게 물었고, 대화를 통해 우리는 다시 잘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우정 역시 깨지지 않고 잘 지킬 수 있었다. 나는 미술과 체육을 다른 과목들에 비해서 잘하지 못한다. 나는 아무리 열심히 그려도 뭔가 이상하고 부족해 보인다.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들은 슥슥 대충 그리는 것 같아 보이는데, 엄청난 그 림을 그리곤 한다. 체육 시간에 오래달리기 시험을 볼 때도 그렇 다. 나는 25번 정도만 왔다 갔다 해도 너무 지친다. 또 나는 아주 뻣뻣해서 체육 시간에 유연성 시험을 볼 때 너무 힘이 든다. 특히 2주에 한 번은 미술 수업을 갔다가 바로 체육 수업을 가는데 그런 날은 너무 정신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힘들어진다. 미술 수업과 체육 수업이 연달아 있어 힘들어 하고 있던 어느 날 선생 님께서 나에게 하셨던 말이 있다. “할 수 있어! 넌 할 수 있어! 지금 잘 하고 있어.” 선생님께서 용기를 북돋아 주실 때, 너무 위로가 되고 힘이 되 었다. 나는 많은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용기와 용서, 배려를 하 는 법을 배우고, 내가 힘이 들 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다. ‘괜찮아’ 또는 ‘너는 할 수 있어’라는 말은 힘든 사람들에게 큰 도 움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 나의 경험들을 통해, 나는 다른 사람들 이 힘들어하거나, 좌절하거나, 슬퍼할 때, 나는 꼭 가서 ‘괜찮아’ 또는 ‘너는 할 수 있어’라는 말을 해서 용기를 북돋아 주고 싶다. 나의 작은 말 한 마디를 통해 그 사람들이 희망을 찾았으면 좋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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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소설>

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패러디

Grade 7 이서진 Angela Lee 어느 날 한 마을에 마이클이라는 한 청년이 살았습니다. 그 청 년은 알프스를 오르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이클은 늘 열 심히 산을 오르는 연습을 했습니다. 피나는 연습 끝에 마이클에게 알프스를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왔 습니다. 마이클은 자기의 친구 윌리엄과 함께 산을 오르기로 했습 니다. 드디어 알프스를 오르는 날이 왔습니다. 마이클은 장비를 챙기 고 윌리엄과 같이 알프스 입구에서 만나, 길을 안내해주는 현지인 을 만난 후 등반할 준비를 했습니다. 이제 드디어 마이클이 그토 록 원하던 알프스를 등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힘들게 6시간 동안 등반을 해서 578m지점에 올랐을 때, 이미 마이클과 윌리엄은 둘 다 지쳐있었습니다. 그래서 안전한 곳에 몸 을 매달고 이야기를 하면서 저녁을 먹기로 했습니다. 저녁은 달랑 통조림 옥수수였습니다. 식량은 통조림 옥수수 외에도 많이 남았 지만,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살아 남으려면 아껴야 했기 때문 입니다. 다시 날이 밝았습니다. 새로운 날이 시작됐습니다. 둘은 기쁜 마음으로 줄을 풀고 다시 등반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둘은 지난 밤에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잠이 들게 되면 자칫 잘못하다 정신을 못 차리게 될 수 있고 그대로 얼어 죽을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눈으로 세수를 한 다음에 정신을 차 렸습니다. 그날도 그들은 열심히 산을 올랐습니다. 둘은 위기에 처한 상황 들이 있었지만 침착하게 잘 헤쳐 나갔습니다. 어느덧 다시 해가 지고 저녁이 되서 둘은 오순도순 어제 남겨둔 통조림 옥수수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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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주위를 살펴 보니까 현지인들이 설치해 놓 은 텐트가 있었습니다. 그 텐트에 가서 잠을 청하기로 했습니다. 오랜만에 푹 잘 수 있어서 그들은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9시간의 달콤한 수면을 취한 후,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해가 금방 밝아지면서 또 알프스에서의 힘찬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날은 날씨가 안 좋아서 앞도 안 보일 정도였지만, 둘은 열심히 등반을 해서 1500미터 지점까지 도착하는 게 오늘의 목표였습니 다. 마이클은 가족이 많이 보고 싶었지만 자기의 꿈을 절대로 포 기할 수 없다는 마음 다짐을 다시 했습니다. 그렇게 8시간이 지나 니까 1543미터 지점을 올라 기록을 깼습니다. 그들은 기록을 깨게 되어 매우 행복했습니다. 다시 하늘이 어두워졌습니다. 둘은 앉아서 새로운 참치캔을 먹 으면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졸음이 몰려왔지만, 둘은 아주 씩씩 하게 참았습니다. 윌리엄은 마이클을 위해서 잠을 자지 않도록 눈 을 계속 몸에 뿌려 주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에서 ‘우루루쾅쾅’하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작은 눈 덩어리들이 떨어졌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마이클과 윌리엄은 위 를 쳐다보니 눈사태가 난 것이 보였습니다. 둘은 빨리 피할 준비 를 했습니다. 둘은 알프스에서 등산을 하면 위험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자기한테 이런 위험이 닥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습 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죽음을 예측하고 선택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눈사태는 점점 더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습 니다. 마이클과 윌리엄은 최대한 눈사태와 멀리있는 벽에 딱 붙어 서 자기 몸과 돌을 밧줄로 묶고 있었습니다. 눈사태는 더 가까워 지고 있었고 더 이상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윌리엄은 아직 몸을 벽에 꽉 못 묶었습니다. 이제는 늦었습니다. 눈사태의 소리가 더 커지면서 윌리엄은 눈 과 같이 휩쓸려 내려가서 실종됐고, 마이클은 그가 몸을 묶어놨던 돌과 함께 떠내려 갔습니다. 이 이야기가 전하려고 하는 주제는 아무도 자신의 죽음은 예측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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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이용해 소설 쓰기>

너를 태운 기차는 Grade 7 김남이 Namee Kim

너를 태운 기차는 이해인 보고 싶은 친구야 내가 있는 곳으로 너를 싣고 오는 기차는 멀리서 보기만 해도 반가움과 설레임에 가슴이 콩콩 뛴다 길고 긴 웃음으로 기차가 달려온다 나에게서 먼 곳으로 너를 다시 데려가는 기차는 멀리서 보기만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길고 긴 울음으로 달려간다 가만히 생각만 해도 그리움에 눈물 글썽이게 되는 보고 싶은 친구야

“흑, 흑, 흑, 흑!” 서연이가 예진이의 손을 잡으며 흐느꼈다. 둘은 방과 후에 운동 장 구석에서 손잡고 서있었다. “미안해, 서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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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이도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위로했다. “안 가면 안 돼? 꼭 부모님 따라가야 돼?” 서연이가 어떻게든 예진이가 떠나지 않게 졸랐다. 예진이가 오늘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서연이에게 다음 주 에 미국으로 이민 간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단짝 친 구였던 그들은 예진이가 이민 간다는 소식을 듣고 둘이서 울고 있 는 거였다. 서연이는 온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가장 친했던, 가장 믿 었던,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간다니… 서연이가 계속 울자, 예진이 가 학교 벤치로 데려가 앉혔다. 예진이는 서연이가 이렇게 나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리 마음을 바로 잡고 서연이에 게 말한 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진이도 흘러나오는 눈물을 못 참았다. “미안,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예진이가 말했다. 일주일이 지났다. “이제 정말 안녕…” 예진이가 공항에서 서연이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안녕.” 서연이가 울먹거리며 말했다 “꼭 편지 보내!!! 항상 연락하고!!” “그래...어른이 되서 다시 만나자!!” 예진도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둘은 마지막으로 손을 흔 들고 헤어졌다. 20년이 지났다. 어젯밤, 예진이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예진이는 서연이에게 30 분전 한국에 도착했다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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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제야 왔어.” 서연이가 울며 말했다. “내가 20년 전 떠날 때 분명히 말했지? 어른이 되서 다시 만나 지고.” 예진이가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오후 2시에 ㅇㅇ기차역에서 만나자.” 그 다음 날, 20년 만에 만날 친구를 생각하며 서연이는 집을 나 섰다. 기차역에 10분 쯤 일찍 도착한 서연이는 옛날 생각을 하며 빙그레 웃었다. 10분 뒤, 예진이를 태운 기차가 도착했다. 서연이 는 반가움과 그리움에 가슴이 쿵쿵 뛰었다. 기차 문이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조금 뒤 예진이가 나오고 서연이는 예진이에게 있는 힘껏 달려갔다. “예진아!!!!! 너무 보고 싶었어. 우와~ 너 진짜 많이 컸다!” 서연이가 소리치듯 말했다. 어렸을 땐 서연이가 한참 더 키가 컸는데 미국에 갔다 온 사이에 예진이가 엄청 커서 이제 서연이가 올려다 봐야 했다. “그러게.” 예진이가 웃으며 대답 했다. 하지만 미국에 오래 있어서인지, 한국어 억양이 미국인처럼 조금 바뀌었다. 그 둘은 하루 종일 돌 아다니며 이러저런 이야기들을 했다. 나흘 후, 예진이가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서연이가 예진이를 배웅하러 기차역까지 차로 태워다 줬다. “잘 가…” 서연이가 아쉽다는 듯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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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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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보이지 않는 다리 Grade 8 김호제 Marcus Kim

달빛마저 차갑고 아름다운 밤에 점퍼를 입고 거리를 거닐다 여기저기 반짝이는 별들에 이끌려 차디찬 육교를 올라갔다 눈웃음 짓는 별들 아래 딱딱한 도로 위에 육교를 거닐다 저기저기 눈뜬 장님이 안쓰러 검은 색안경과 길쭉한 지팡이 가는 손 부들거리며 우왕좌왕 거닐다 따뜻한 손길이 팔에 닿자 보이지 않는 낯선이와 함께 달빛마저 차갑고 아름다운 밤에 장님과 함께 길을 거닐다 저기저기 지붕 아래 장님을 두고 따뜻한 육교를 다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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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우정 Grade 8 권진희 Jin Hee Kwon 친해질 마음이 없으면 혼자 있는 걸 선택해도 괜찮아 뭐가 중요해? 뭐가 필요해? 주변에 있는 것들을 한 번만 더 바라봐 나에게 너는 과연 어떤 존재인 걸까 항상 옆에 있을 사람이 너? 모든 것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너? 우정, 도대체 그게 뭔데? 친해지려는 마음만 들면 눈 깜빡할 사이에 생기는 것이 친구야 몰랐다면 기억해둬 없었다면 다시 갖기를 바라 그건 바로 믿음, 너에 대한 신뢰 간절하게 그러나 소중하게 그때를 위해, 너를 위해 천천히, 그리고 조금 더 신중하게 그건 바로 사랑, 너에 대한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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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함께 나누는 슬픔 Grade 8 김혜린 Helen Kim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 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 한국에 온 지 이 년째 되는 어느 날이었다. 미국에서 친하게 지 내던 친구들도 많이 보고 싶고, 뒷마당에 자주 올라가던 나무까지 도 너무도 그리웠던 나는 마음이 우울해져서 괜히 혼자 있고 싶어 지던 때가 많이 있었다. 그날도 그렇게 혼자 있고 싶어서 학교 도서관 한 쪽 구석에서 조용히 책을 읽으며 숙제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물이 흘러서 울게 되었다. 내 마음은 마치 추운 겨울에 집을 잃어버린 강아지가 밖에서 떨고 있는 것 같았고,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옆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 잠겨 더 슬프게 울게 되었다. 그 때, 같은 반 미손이가 지나가다가 우연히 나를 보게 되었다. 미손이는 나에게 “헬렌, 왜 울어?” 라고 물어봤다. 나는 “힘들어서…”라고 대답했다. “뭐가 힘든데?”라고 묻는 미손이의 질문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고, 눈물은 마치 빗물처럼 주룩주룩 더 많이 흘렀다. 나는 생 각나는 대로 내가 왜 힘들어 하는지 그리고 누가 보고 싶고, 어디 에 가고 싶은지에 대해서 솔직히 말하게 되었다. 미손이는 나를 바라보며 침착하게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러더니 미손이는 나의 어깨에 손을 얹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도 러시아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많이 보고 싶어.” 미손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와 함께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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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우리는 같이 울면서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것을 느꼈다. 미손이의 따뜻한 마음과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배려는 추웠던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포근한 이불과도 같이 내 아픈 마 음을 따뜻하게 덮어주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미손이와 나는 둘도 없이 친한 친구가 되어, 집에도 놀러가고,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자신의 마 음처럼 헤아려 주는 친한 사이가 되었다. 지금은 러시아로 떠난 미손이의 빈자리가 허전하지만, 여전히 내 마음 안에는 미손이의 따뜻함이 남아 나를 감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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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책갈피 Grade 8 김애린 Irene Kim 학교를 가면 하루하루가 똑같게 느껴졌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버스를 타고, 똑같은 순서에 똑같은 과목. 정해진 틀 안에 사는 것 같았다. 마치 기계처럼. 정확히 3월 20일, 언제나처럼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이 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나는 현관문을 열었다. 열자마자 나에게 뛰어온 자그마한 강아지. 처음 보는 애였다. 그간 우리 집은 어머 니의 반대 때문에 강아지를 못 키웠었다. 그런데 지금 집에 있는 이 강아지는 도대체 누구지? “엄마 얘 뭐야?” 나는 강아지를 안으며 거실로 걸어갔다. “아빠가 사오신거란다.” 한숨을 내쉬며 엄마는, “엄마는 앞으로 얘 안 만질 거고, 똥도 안 치워줄 거고, 밥도, 아무 것도 안 해 줄 거니까 너희들이 다 알아서 돌봐야해.” 겨우 두 달 밖에 안 된 강아지, 내 손 안에 들어올 만큼 작았던 검은색과 갈색이 섞인 강아지. 우리는 그 강아지에게 ‘모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거실로도 나오지 못하더니, 모카는 어느새 점점 우리 집의 말썽쟁이가 되어갔다. 대소변도 잘 못 가려, 우리 집은 온통 모카의 화장실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미워할 수 없는 우리 가족의 막내였다. 모카를 만난 이후에 나는 점점 나를 포함하여 우리 가족이 변하 는걸 느꼈다. 우리 가족은 모카를 통해서 훨씬 더 가까워져갔고 훨씬 더 행복해져 가는 것 같았다. 모카를 통해 나는 하루가 매일 매일 달라졌고, 내 자신도 달라졌다. 학교에서 돌아올 때 모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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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며 발걸음이 빨라졌고,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 각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항상 사랑받는 막내로 자라던 내가, 어느새 강아지를 돌봐줘야 하는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된 듯 싶었다. 처음에는 미국 대학으로 곧 가게 될 오빠들을 대신할 이유로 샀 었던 모카, 하지만 오빠들이 떠나고 얼마 안 지난 뒤 할 수 없이 모카는 다시 돌아 가야했다. 오빠들이 남기고 간 그 큰 허전함은 모카마저 채울 수 없었다. 학교에서 늦게 들어오는 나와, 그런 나 보다도 더 늦게 집에 돌아오시는 아빠, 그리고 개를 무서워하는 엄마 때문에 모카에게 최선을 다 해주지 못 해 미안했다. 그 미안 함에 우리는 모카를 좀 더 좋은 곳으로 보내고 싶었다. 비록 1년 밖에 키우지 못했지만, 모카와 함께 했던 그 짧은 시 간은 내 인생의 ‘책갈피’를 꽂아놓은 중요한 페이지와 같았다. 영 원히 기억하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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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영화는 영화일까? Grade 8 김태준 Edward Kim 오랜만에 영화 한 편을 보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배우인 차*원 씨가 출연해서 더욱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김봉두라고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선생님이 있었다. 그러나 성실하지도 정직하지도 않아 강원도 산골에 있는 허름한 학교로 쫓겨나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학생이 다섯 명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다 평범해 보였다. 아이들은 새로운 선생님이 온다고 해 서 매우 기뻐하고 환호했다. 그러나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선생님 은 아무렇지도 않게 첫날부터 자습을 시킨다. 반 학기 쯤 지나게 됐을 때, 학비를 거두는 날이 왔다. 각자 이름이 쓰여 있는 흰 봉 투를

선생님에게 건네는데, 한 아이는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하고

누런 봉투를 손에 꽉 쥐고 선생님한테 건넨다. 별로 대수롭지 않 게 여겼던 선생님은 돈이 생겼다며 하루 종일 싱글벙글 웃으며 수 업을 진행하였다. 그 다음 날,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계신 선생님의 아버지가 돌아 가셨다. 장례식에서 외롭게 절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학생들과 부 모님들께서 찾아와서 같이 절을 해주고, 함께 눈물을 흘려주었다. 그래서일까, 그날부터 선생님은 조금 더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접 근하며, 신중하고, 친해지고, 또 재미있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 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매일같이 친구들과 놀던 아이 하나가 더 이상 그렇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이상한 기운을 느낀 선생님은 어느 날 방과 후에 아이를 몰래 따라간다. 아이는 외딴 오두막집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1시간, 2시간이 흘러도 아이는 오두막에서 나올 생각을 안 했다. 선생님은 오두막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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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속에는 장작더미가 수두룩했고, 아이는 그 옆에 쭈그리 고 앉아서 라면으로 허겁지겁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선생님은 그 런 아이를 보고는 마구 혼을 내기 시작한다. “네 이놈! 어디서 이런 나쁜 짓을 배웠어? 너, 어머니 어디 계 셔?!” 아이는 불안한 표정으로 앞장을 선다. 잠시 후 아이의 집에 도 착한다. ‘똑똑똑’ “어머님... 저 김** 담임인데요...” 갑자기 문이 덜컹 열린다. 노망이 나신 아이의 어머니는 무당이 왔다며 계속 소리만 친다. 마음이 수그러든 선생님은 아이한테 진 지한 말투로 묻는다. “아, 아버지는 어디 계시니?” 그러자, 아이는 큰소리로 울면서 말한다. “저...아부지 없어요!” 과연 영화는 영화일까? 선생님도 학생도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 는 이 사회도 어쩌면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가 생각하는 가장 평범하고 가장 바르며, 가장 이상적이라고 하는 것도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 낸 환상이고, 바람일 수 있다는 생각 을 해 본다. 그리고 내 삶은 얼마나 영화 같은지 내 일상을 영화 로 재현한다면 과연 얼마나 재미와 감동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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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 TALK>

우리 학교 최고! Grade 8 왕지원 Jina Wang 안녕하세요, 저는 아시아 퍼시픽 국제 외국인 학교 (APIS) 8학 년에 재학 중인 왕지원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여러분과 발표의 시 간을 갖게 되서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APIS 학교에 관한 저의 개인적인 의견과 생각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APIS는 정말 좋은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운동장도 넓 고, 교복도 예쁘고, 무엇보다도 선생님들께서 학생들을 사랑으로 지도해 주시고, 급식도 맛있습니다. 그리고 방과후 수업도 다양합 니다. 개인적으로 교복 입는 것을 좋아하는데, APIS에 교복이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게다가 계절에 맞게 다양한 옷을 준비해 놓았습 니다. 여름에는 시원한 반팔 블라우스, 봄과 가을에는 카디건, 겨 울에는 따뜻한 구스 다운 재킷, 체육복도 신축성이 많고 쾌적하기 때문에 학교생활이 더욱 편안하고 즐겁습니다. 그래서 뭘 입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게다가 모두 똑같은 옷을 입으니까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APIS는 교육환경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운동장도 크고 초록 잔디가 넓게 펼쳐져 있어, 학생들이 운동도 마음껏 할 수 있고, 답답한 마음도 시원하게 만듭니다. 그곳에는 관람석도 있어서 운 동하다가 지치면 앉아서 쉴 수도 있고, 친구들도 큰소리로 응원할 수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나 추운 겨울에는 넓은 실내 체육관 이 준비되어 있어, 그곳에서 운동할 수도 있고, 공연도 할 수 있 습니다. 또한 선생님들께서는 학생들을 사랑으로 지도해 주십니다. 선생 님들은 모두 다 친절합니다. 고민이 있거나 잘 모르겠다는 학생들 한테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십니다. 언제나 최대한 열심히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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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가르쳐 주십니다. 게다가, 급식도 맛이 있고 카페테리아도 쾌적합니다. 급식이 좋 은 이유는 항상 두 가지 메뉴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식 과 외국음식을 선택할 수 있어서 학생들이 다양한 메뉴를 맛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다른 나라 음식을 맛보는 날도 있습니다. 그 러면 학생들이 더욱 다채로운 음식을 맛 볼 수도 있고, 각국의 음 식 문화를 알 수도 있습니다. APIS는 방과 후 수업도 다양합니다. 음악도 있고, 운동도 있습 니다. 음악 수업에는 오케스트라와 밴드가 있어서, 다양한 악기와 음악을 접할 수 있습니다. 운동에는 축구, 배구, 농구 등이 있습니 다. 이러한 활동은 우리의 지친 마음을 한결 편안하게 해 주고,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줍니다. 친구들과 더욱 돈독해 지고, 하나가 되는 좋은 시간이자 기회인 것입니다. 이밖에도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위에서 말씀드린 여러 가지 이 유 때문에 저는 APIS가 더욱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APIS 에서 행복한 학교생활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지금까지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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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 TALK>

전자책? 종이책! Grade 8 박주혜 Sally Pak 여러분들은 종이책이 좋습니까, 아니면 전자책이 좋습니까? 종 이책과 전자책은 둘 다 장점이 많기 때문에, 둘 다 좋아하는 사람 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자책을 읽다 보면 종이책으로 돌아가고 싶 을 때가 많고, 그래서 사람들이 전자책을 많이 본다고 해도 종이 책은 살아 남을 것입니다. 종이책은 단점이 있습니다. 종이책은 종이를 많이 쓰게 됩니다. 종이를 많이 쓴다는 뜻은 나무를 많이 베고, 그것으로 인해 자연 은 파괴됩니다. 자연이 파괴되면, 세상의 많은 것들이 불편해지고 나빠집니다. 종이책들은 또 종이로 되어 있기 때문에 무겁습니다. 종이책은 책을 읽을 때도 불편합니다. 왜냐하면, 종이를 넘길 때마 다, 팔을 움직여서 팔이 아프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사람들이 잘 생각하지 못하는 전자책의 단점도 많습니 다. 전자책도 자연을 파괴합니다. 전자책은 충전을 해야 해서 전기 를 많이 씁니다. 전자책도 무겁습니다. 가방에 전자책 하나만 빼도 무게가 많이 줄어듭니다. 또, 요즘 사람들은 직장과 학교에서 컴퓨 터와 핸드폰 등의 전자 제품을 많이 사용합니다. 집에 돌아와서 전자제품으로 또 책을 보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책을 읽는 시간을 따로 주는데 우리는 대부분 전 자책으로 읽습니다. 하지만 전자 제품이기 때문이 인터넷에 연결 할 수도 있고 해서 책을 안 읽고 다른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종이책을 읽는 것이 전자책을 읽는 것보다 더 좋다고 생각 합니다. 과학적으로 종이책으로 책을 읽는게 기억력을 더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과학자들은 똑같은 미스터리 책을 전 자책과 종이책으로 읽는 사람들을 비교 했습니다. 종이책으로 읽 은 사람들이 전자책으로 읽은 사람들에 비해 그 미스터리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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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내용에 관한 기억을 더 잘했습니다. 또 다른 과학적인 사실은 전자책은 건강에 안 좋을 수도 있습니 다. 전자책은 다른 전자 제품 같이 잠을 자기 전에 사용 하면, 잠 이 잘 안 오고, 아침에 덜 깨어있을 수 있습니다. 전자책이 있으면, 사람들이 책을 훔쳐갈 확률이 큽니다. 전자책 들은 종이책보다 비싸고 기능이 더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가져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일반적인 종이책을 안 가져 갑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책보다 전자 제품을 더 중요하고 좋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종이책을 사면, 그 책의 작가도 도와줄 수 있습니다. 전자책의 책들은 종이책보다 몇배 더 쌉니다. 그러고 보니, 그 작가도 돈을 더 적게 받습니다. 전자책은 물론 장점이 많습니다. 전자책은 싸고,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종이책은 옛날 전통도 지킬 수 있으며,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장점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더 많이 사서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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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 TALK>

잊어서는 안 됩니다 Grade 8 송재민 Jack Song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오늘 ‘세월호’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해 보려 합니다. 만약 당시 세월호에 탄 사람들에게 밖으로 나오라는 지시를 하였다면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세월호 사건은 세월이 지나도 잊히면 안 될 중요한 사건입니다. 제대로 된 지시를 내렸더라면, 희생자가 줄 수 있었고 사건의 규 모가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겁니다. 배 안에 승객들만 희생자가 아닙니다. 실종된 사람들을 찾으려고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다를 수 색하시던 몇 몇 해경들의 몸에 이상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사고 이후의 트라우마로 직업을 그만두게 된 해경들도 꽤 있었습니다. 잘못된 지시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희 생을 당하지 않은 사람들도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였습니다. 자신 은 살았지만, 친구나 가족이 죽어서 정신적으로도 충격을 입은 것 이었습니다. 더욱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세월호의 선장이 승객들을 두고 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선장이 있는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 까? 물론 배를 운전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승객들의 안전을 끝 까지 책임지고 사고가 나더라도 지시를 내리고 피해를 최소한으로 해야 되는 사람이 선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월호의 선장 은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판단을 내렸습니다. 만약 세월호의 선장이 끝까지 자신의 승객들을 살리려 하고 제대로 된 지시를 내 렸다면 영웅이 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탑승자 476명 중에 죽거나 실종된 사람이 304명입니다. 현명하지 않은 판단이 탑승객 절반 이상을 죽였습니다. 선장이 자기 자신, 1명을 살리려다 304 명의 승객을 죽인 꼴입니다. 세월호 사건에 이런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종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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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 친구나 가족을 언제 찾아 줄 거냐고 재촉을 하고, 정부는 지금 세월호가 생각보다 훼손이 심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훼손이 너무 심해 지금 잠수부가 들어가 서 수색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발언을 하였습니다. 당신의 아이가 실종 되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답답하고 얼마나 보 고 싶을까요? 한국의 정부도 이런 면을 고려해 수색을 빨리 실행 해야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이 해하며 서로를 믿을 수 있게끔 상황을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습니 다. 제 생각에 현명한 선택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을 것 같 습니다. 사람의 목숨은 오로지 단 한 개입니다. 돈으로 주고도 못 사는 것이 목숨입니다. 하지만 현명하지 않은 판단으로 많은 생명 을 잃었습니다. 물론 실종된 9명의 사람들도 사망하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실종자를 뺀다면, 295명의 사람이 죽었습니다. 자신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고 무심코 떠넘기면 안 됩니다. 이런 일은 언제든지 다시 일어 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 날수록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은 점점 잊혀 갑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은 더욱 더 잊으면 안 될 사건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 서 사망자를 추모해 주는 행사 같은 것도 열고 이 사건을 계기로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우리나라가 더욱 발전됐으면 좋겠 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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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 TALK>

통일 Grade 8 조나단 Nathan Cho APIS 학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저는 ‘통일’이란 주제로 여러분들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대한민국 국민들 가운데 삼분의 이가 넘 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통일을 반대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남 한이 전체 통일 비용을 부담해야 된다는 막연한 부담과 책임감 때 문이었습니다. 통일비용이란 남과 북의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사용되는 돈인데, 이 금액이 자그마치 약 4000조원이나 예상된다 고 하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반면에 우리가 통일이 된다면 북 한에 있는 지하자원으로 인하여 얻을 수 있는 예상 이익금은 약 4 경 4000조원이니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은 통일을 해야 합니다. 그 첫 번째 이유를 말하자면 바로 민족사적 당위성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은 수많은 외부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외세에 굴복하지 않으며 반 만 년의 역사를 지켜왔습니다. 저는 그럴 수 있었던 가 장 큰 이유가 ‘대동단결(大同團結)’의 민족정신이라고 봅니다. 예 를 들자면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에 앞장 서셨던 정인보 선생 님, 신채호 선생님, 박은식 선생님께서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얼’, ‘낭가’, ‘혼’이라며 각자 다르게 강조하셨지만 현재 남북으로 분단 된 대한민국은 대동단결의 정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습니 다. 올 해는 분단 67주년입니다 여전히 외세에 간섭을 받으며 우 리 민족이 버텨내는 점은 때로는 수치스럽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 는 하나가 되어 더욱 뭉쳐야 할 때가 바로 이 순간이라 생각합니 다. 두 번째 우리가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인도주의적인 차원 때 문입니다. 현재 우리주변에 과거의 아픈 역사적 경험을 갖고 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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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들이 생존해 계십니다. 전쟁 상이군인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분단으로 통곡 하시는 분 들이 계시니 그들은 바로 북한에 가족을 두고 헤어져 살아오신 이 산가족입니다. 1988년도부터 현재까지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하신 분들이 무려 130,000명이나 되는데 이미 별세 하신 분들은 무려 64,000분이나 된다고 합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성장과 미래를 여 는 단추를 통일이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통일을 위한 첫 단추 를 바로 이산가족 상봉이라 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경제적인 것 때문입니다. 이민 1세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민 1세대들은 외국에서 성공하고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고국에는 그들의 어렸 을 적 추억과 소중한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그들의 젊은 시절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민 2세대 3세대들은 우리나라를 보며 비웃고 조롱하며 돌아오지 않습니다. 일자리와 삶의 보장이 안전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등을 돌리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 입 니다. 하지만 통일을 하게 된다면 땅은 9만 9천 제곱킬로미터에서 22만 4천 제곱킬로미터로 국토가 확대되고 인구는 5천만에서 8천 5백만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로 인하 여 겪게 되는 걱정을 통일을 하게 되면 해결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지하자원을 둘 러보자면 금 매장은 남한의 16.5배 많고, 은 매장량 역시도 남한 에 비해 4배 많습니다. 그리고 주요광물들은 남한의 보유량보다 49배 더 많습니다. 그리고 조사에 의하면 희토류 매장량이 전 세 계 2위라고 합니다. 여기서 주의 깊게 보고 가야 할 것은 희토류 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중국은 이 희토류로 인하여 중국경제 에 엄청난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겁니다. 그 증거는 바로 센카쿠 열 도 사건입니다. 센카쿠 열도는 중국과 일본 두 강대국들 사이에서 현재까지도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섬입니다. 2010년 9월 7일 중국의 한 어선 이 조업을 하다가 일본해경들의 의해 끌려갔습니다. 이것을 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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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부는 일본에게 즉시 전 희토류 매출을 전면 중지한다고 선 언합니다. 이 말을 들은 일본 정부는 중국 어부를 잡은 지 3일 만 에 풀어주었고 이 사건은 희토류가 특히 일본에게는 얼마나 소중 한 자원인지를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통일이 우리나라에게 또 다른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은 관광자원과 역사관광지 개발이 있습니다. 북한에 있는 평양과 개 성 등 대도시들을 역사적인 관광지로 만들 수만 있다면 우리나라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통일만 된다면 지금의 영국과 비 슷한 수준으로 인구는 5천만에서 8천만으로 늘고, 영토는 9만 9천 제곱킬로미터에서 22만 2천 제곱킬로미터로 확장되어 통일 이후 에 G8이상의 선진국으로 급부상 할 수 있는 기회라고 봅니다. 더불어, 통일은 우리 남한이 주도하는 통일이여야 합니다. 1970 년대 이전에는 북한이 우리와 통일을 하려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이때 통일을 했다면 우리나라는 이미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을 것 입니다. 1970년대 이후 남한은 경제적으로 고속 성장을 하게 되 고, 역으로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북한에게 평화통일을 권하지만 북한은 이에 전혀 반응하지 않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자 통일을 막는 큰 장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지만,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져 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 길이자, 우리가 해야 할 의무이고 책임입니다. 지금까지 저의 긴 이야기를 들어주신 여러분들께 감 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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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 TALK>

음악,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열쇠 Grade 8 정지원 Alina Chong 여러분, 음악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많은 사람들이 음악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음악으로 인해 그들의 생각이 점점 바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젠 가는 이 사회가 음악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올바르게 해결할 수 있 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음악가들 중에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자신의 가사 안에 담 아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대표적으로 ‘밥 딜런(Bob Dylan)’이라는 미국의 대중음악 가수가 있습니다. 시인이자 작사 작곡을 하는 유 명한 가수입니다. 그는 인종차별과 전쟁금지 그리고 여러 가지 우 리가 겪고 있는 차별을 막기 위해 한 평생을 노래했습니다. 사실 그의 이름은 딜런 토마스(Dylan Thomas)라는 시인의 이 름에서 따왔는데, 밥 딜런은 토마스 딜런의 시가 너무 좋아서 그 의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밥 딜런은 그의 음악 세계 안에 시적인 요소를 많이 넣게 되고, 그의 노래를 들어보면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갖게 됩니다. ‘위험한 아이들(Dangerous Mind)’이라는 영화에서도 밥 딜런의 노래를 통해 문제아들의 삶을 해결해 주는 장면이 나올 정도입니다. 2004년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에서 밥 딜런과 관련된 책을 그 해의 가장 좋은 책으로 선정했고, 2008년에는 퓰리처상 (Pulitzer Prize)을 받았으며, 2012년에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께서 그에게 자유의 메달을 수여했다. 2016년에는 대중가수가 노벨 문 학상(Nobel Prize of Literature)까지 받게 되는 유례없던 일이 일어난 일은 무엇일까요? 아마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노랫말로 전했기 때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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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니다. 요즘은 미국에서 트럼프 이슈로 심각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제가 있는데, 우리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음악이 하나의 의미 있는 해결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 한국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된 최순실 사건 때문에 사 회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크게 발생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촛 불집회로 모이고, 주말마다 시위를 합니다. 이런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요? 한국에서는 특히 돈과 교육, 직업 등이 연 결되어 대다수가 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시달립니다. 잘 살아야 한 다는 압박 때문에 자살률도 높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누군가는 노래를 통해 전달하고 있음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미국에 밥 딜런이 있다면, 한국에는 방탄 소년단이 있습니다. 그들은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공부에 대한 압박 등 우리 사회의 교육 문제를 노래 안에서 설명합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사 회에서 무조건 1등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주고 있어서 학원도 많 이 보내고 1등이 아니면 서로 무시하는 사회에서 얼마나 학생들과 청소년들이 아파하고 있는지 그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음악으로 잘 표현해 주었습니다. 저는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삶에서 무엇이 가장 힘드냐고 물어봤 습니다. 모두 공부에 대해 많은 부담을 갖고 있었습니다. 부모님들 은 자녀들에게 너무나 많은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긴장감 을 더욱 느끼고, 부모님이 자신에게 거는 기대감이 높기 때문에 시험을 잘 못 보거나 성적이 낮으면 집에 가면 혼날 것에 대한 두 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예전에 ‘솔리드’라는 그룹에서 활동했었습니다. 한국에 처음으로 R&B라는 장르를

도입했고, 그것이 지금의 한국

케이팝 시장을 열게 된 계기였습니다. 아버지는 현재 한국에서 작 곡가로 일하면서 ‘아시아틱스(Aziatix)’라는 그룹을 만드셨고 아이 툰즈(iTunes)에 처음으로 음원을 수록하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어 릴 때는 잘 몰랐지만, 점점 아버지의 음악 세계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계기가 많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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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버지께서 음악의 길을 걷고 계신 것처럼 저도 음악으로 이 세상을 더 올바르고 아름답게 춤추고 노래하는

바꾸고 싶습니다. 사실 여태껏

가수만 되고 싶었지 정작 가수가 되어서 어떻게

여러 가지 우리들의 문제들을 해결할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New Pacific Century Project를 통해 저는 제가 사 회를 바꿀 수 있는 음악을 만들거나 그러한 가사를 직접 써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음악은 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아버지처럼 한국과 미국 사회에 새로운 것을 도입하거나 역사에 남을 만한 새로운 것을 열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사회적인 문제들을 직접 나서서 말하지 않습니다. 가 수들은 자신들의 노래에서 돌려서 말하지만 저는 제 음악 안에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강하게 전달하고 싶습니다. 차별, 억압, 경쟁, 그리고 서열 등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들 을 바꿔야 한다고 노래 안에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음악은 사람들의 생각과 기분 성격까지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노래 한 곡으로 자신에 대한 생각, 성격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문화까지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 니다. 한국과 중국은 사실 그렇게 친하지 않았으나 ‘케이팝 (K-Pop)’ 하나로 금세 친해졌습니다. 음악으로 개인과 개인이 연 결되는 것처럼 나라와 나라도 서로 좋은 길을 열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그 안에 제가 당당히 서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물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음악이 사회 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우리 안에 놓여 진 사회적 문제를 어떻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이 질문들 을 잠시 생각하면서 음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하여 여러 분들도 저와 함께 생각하고 참여해 주셨으면 합니다. 언젠가 제가 음악을 통해 여러분들에게 다가가게 될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 습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그러한 문제들이 점점 사라져서 우리 모두가 살기 좋은 사회로 조금씩 발전해 가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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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 TALK>

지구를 지켜내야 합니다 Grade 8 정재희 Ryan Jaehee Chung 저는 우리가 살고 있는 별, 지구의 기후변화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여러 수업시간에 배웠듯이 지구의 기후변 화는 매우 심각한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기후변화는 계속 지구에 게 안 좋은 피해들을 많이 주고 있습니다. 남극, 북극에 있는 얼 음이 녹아 그곳에 서식하고 있는 동물들이 죽어가고 있고, 또한 남극 북극에 있는 얼음이 녹아서 바닷물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물 이 계속 증가하게 되면 우리가 살 수 있는 땅이 많이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가뭄이 생기고, 그에 따라 여기저기에는 홍수도 많이 일어나기 도 합니다. 가뭄은 날씨가 너무 더워서 땅이 말라 비가 통과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져 빗물이 위로 차오르는 현상입니다. 과학기술 은 더 발전하지만 이에 따른 기후변화가 더 빨리 진행되고 있습니 다. 자동차, 공장 등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들은 점점 많아지 고, 이들은 알게 모르게 지구에게 해를 입힙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많은 나라들은 지구 기후변화에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기에게 이익이 가는 것들만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뒤늦게 야 사람들은 지구가 비로소 위험해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몇몇 나라들은 아직 신경조차 쓰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기후변화를 신 경 쓰지 않고 당장의 이익을 생각해 보면 좋을 수는 있습니다. 하 지만 그렇게 우리의 무관심이 지속된다면 지구의 미래는 분명 어 두워질 것입니다. 미국이나 중국 등 많이 개발 된 곳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상대 적으로 더 높습니다. 왜냐면 공장이나 자동차 등 이산화탄소를 배 출하는 수단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받는 태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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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공장이나 자동차에서 나오는 매연들에 의해서 지구로 통과 하지 못하게 됩니다. 원래 보통 햇빛은 지구 지면을 튕겨서 다시 우주로 나가야 되는데 대기권에 이산화탄소가 있으면 햇빛이 우주 로 나가는 것을 막습니다. 만약에 햇빛이 우주로 다시 나가지 못 할 때에는 우리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지게 됩니다. 이 문제를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해결 방안은 사 실 많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평상시에 쓰는 전기 사용을 줄이 거나 아니면 차로 이동하는 것 대신 걷거나, 자전거 등을 타는 것 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이 되는 제품 등은 우리가 살면서 자제하고 될 수 있는 한 쓰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지구를 지키는 작은 행동, 당장 오늘부터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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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의문>

게임을 자유롭게 하고 싶어요 Grade 8 곽리안 Rian Kwak 학교의 여러 가지 일들을 위해 애쓰시는 선생님들, 안녕하십니 까? 저는 아시아 퍼시픽 국제 외국인 학교 8학년 곽리안입니다. 저는 게임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게임은 저의 스트레스를 풀 어주는 유일한 낙입니다. 게임을 하면 소통하기 위해 채팅이 필요 해서 타자 연습도 많이 됩니다. 그러나 제가 학교생활을 하면서 갖게 된 불만은 학교 안에서 자 유가 많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학교에 있는 문제점은 점심시간 때 놀 수 있는 종류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여자 애들 같은 경 우면 책을 읽거나, 친구들이랑 말을 하거나, 숙제를 하겠지만 저 같은 남자 애들은 다릅니다. 우리 남자 애들은 운동도 좋아하겠지 만 이 시대의 평범한 남학생들은 게임을 많이 합니다. 우리 나이 에 맞는 게임은 피파나 FPS 같은 게임들인데 현재 학교가 접속 할 수 있는 사이트를 막아놔서 그런 게임들을 전혀 못합니다. 저 희 안전을 생각하셔서 잔인함이 우려 되는 게임들은 막아 놓은 것 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피파 같은 축구 게임은 왜 막아 놨 는지를 모르겠습니다. 그 게임에서는 잔인함이란 게 전혀 없는데 말입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를 풉니다. 음악을 듣거나, 운동 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등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생활을 통해 스트레스 받는 학생들의 그 해소 방식이 게임이라고 할 때 그들은 스트레스를 전혀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스트레스 를 못 푸는 것 자체가 그들한테는 더한 스트레스일겁니다. 그렇다 면 왜 학교 갔다 와서는 못하느냐는 의문도 드실 겁니다. 왜냐하 면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되면 공부해야 될 것도 많고 그로 인해 학원도 많이 다녀야 되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밤을 새면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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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게임도 못하게 되는 겁니다. 지금 게임 사이트를 못 들어가게 하고 있는 제한 시스템을 풀어 주십시오. 무리한 부탁일 수는 있으나 저는 학생들을 적어도 편안 한 일상을 보냈으면 해서 이 제안을 하게 된 겁니다. 만약에 선생 님들이 걱정하시고 있는 학생들한테 건강이나 환경에 안 좋다면, 그때 선생님들이 그 학생하고 그 학생의 부모님을 불러서 상담을 해서 주의를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다음은 숙제나 과제를 적게 내주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대부분 게임을 하는 것은 학교생활을 통해 받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입니다. 학교가 그들한테 주는 스트레스 중의 하나는 숙제나 과제 인 것 같습니다. 숙제나 과제들은 학교를 갔다 온 학생들에게 시 간을 빼앗는 그런 것입니다. 만약에 숙제나 과제가 줄어들면 학교 를 갔다 온 학생들에게는 게임을 할 시간을 부여 할 수 있습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숙제나 과제는 부담이 커서 결국에는 학생들에게 스트레스가 될 테지만, 만약에 숙제나 과제의 분량을 줄이면 그들 한테는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하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꼭 숙제나 과제가 아니어도 됩니다. 시험이라든가 발표 같은 것도 줄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시험 아 니면 발표 같은 것들이 학생들에게 부담을 제일로 많이 줘서 입니 다. 결론적으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학생들에게 주는 부담을 자 제해 주셨으면 하는 겁니다. 이제까지 제 건의문을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학생 들의 편안한 생활을 위해 게임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건의합 니다. 우리 학생의 편안하고 재밌는 학교생활을 위해 제 건의 내 용을 검토해 주시고, 꼭 수용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16년 9월 30일 8학년 곽리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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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의문>

자판기 설치를 부탁드립니다! Grade 8 김선우 Sun Kim 안녕하세요, APIS 8학년에 재학 중인 김선우입니다.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학교의 자판기, 매점 등 학생들을 위한 편 의시설이 없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필요한 정수기, 학교 교복점이 사실상 전부입니다. 우리 중학생들은 편의점조차도 갈 수 없습니 다. 최근

편의점을 못 가는 이유도 학교 측에서 전혀 말해주지

않고, 학생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학교가 강제로 막습니다. 우 리 입장에서는 이것이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 합니다. 자판기라 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거의 모든 학교들은 자판기가 두 세 대 이상씩 있습니다. 저는 우리 학교도 학생들을 위한 편의 시설 이 당연히 있어야 된다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쉬는 시간 5분 동안 학생들이 정수기 또는 식수대에 잔뜩 몰려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다리는 사람들도 불편을 느끼고 마시는 사람들 또한 부담을 느낍니다. 쉬는 시간 동안 학생들은 허겁지겁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십니다. 그러는 도중 몇몇 학생들은 목이 마 른 채로 다시 다른 교실로 안타깝게 돌아갑니다. 그 이유는 휴식 시간에 있는 엄청난 양의 줄 때문입니다. 게다가 많은 학생들의 입 주위가 닿게 되는 정수기가 과연 청결함이 유지 될까요? 아무 리 정수기가 계속 점검을 받아도, 많은 수의 학생들이 사용하는 만큼 정수기가 깨끗하지 않을 것입니다. 학생들을 위해서 학교 측 에서는 당연히 깨끗하고 원만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모든 사항들을 종합하여, 자판기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그리 좋지 않는 탄산음료를 많이 마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판기가 없다고 해서 꼭 학생들이 건강한 음료를 마시는 것은 아닙니다. 학생들 개개인의 습관이 중요하게 작용 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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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자판기 도입이나 편의점 이용이 그 원인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 학교 내에 자판기 도입이 시급하다고 생각 합니다. 제 의견 이 꼭 학교 당국의 의사결정에 반영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 합니다. 2016년 10월 10일 아시아 퍼시픽 국제 외국인 학교 8학년 김선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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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문>

귀향, Spirits' Homecoming, 2015 Grade 8 오수진 Clara Oh ‘귀향’의 제작기간은 10여년이 걸렸고, 시민들의 기부금으로 만 들어진 영화라는 것은 사전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귀향을 보기 전에 난 “과거는 단지 과거일 뿐인데 왜 꼭 이런 역사 영화를 봐 야 할까?” 라는 의문과 함께 단지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나라를 빼 앗긴 아픈 역사가 담긴 이야기인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영화를 보 면서 나는 어느덧 일본의 만행에 짓밟혀지고 있는 그 시대의 순간 으로 이동해 있었고, 동시에 그들과 같은 아픔과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독립운동을 하셨던 위인전을 보거나, 부모님으로부터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에 대해 어렴풋이 들었던 적은 있었으나, 그것 만으로는 사실 그 시대의 고통과 아픔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했었 던 것 같다. 하지만 영화의 생생함은 우리에게 있어서 아프지만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의 현장을 나에게 가슴 깊이 뼈저리 게 새겨주었다. 일제 강점기의 죄 없는 수많은 소녀들이 일본군에게 붙잡혀서 부모님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아무 이유도, 설명도 없이 왜 자신이 끌려가는지도 모르는 소녀들이였다. 부모님들은 “곧 돌아 올 거야, 정신만 바짝 차리고 있어.” 짧고 굵은 안심 한마디로 자 식들을 전쟁터로 보냈다. 소녀들은 도착지도 모른 채 트럭에 실려 이리저리로 이동을 했다. 낯선 땅에서는 일본군에 의해 처참하게 당했다. 매일 매일의 삶을 가까스로 이어내는 소녀들은 자신들이 언제 살해당할까라는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소녀들은 방에 감금당 하고 멈추지 않는 폭행에 시달렸다. 이런 힘들고 지옥 같은 상황 에도 소녀들은 집에 꼭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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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 떨면서도 자신의 몸을 헤아리지 않고 타인을 구하려 하 는 애처로운 모습과 서로를 향한 위로가 너무나 찡했다. 남 같았 던 사이가 좁혀지고 낯선 땅에서 의지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소 녀들에게는 육체적인 고통뿐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고통이 더 심했 다. 감정은 가뭄 때문에 메마른 땅처럼 점점 굳어져 갔고 너덜너 덜해져만 갔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공포감과 분노가 교차했다. 우리는 한국인이므로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 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은 왜일까? 단순히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살았는지가 궁금해서일까? 그것만으로는 이유가 충분치 않다고 본 다. 우리 조상들이 이룩해낸 훌륭한 업적들을 본받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역사에 있어서 다시 떠 올리고 싶지는 않고, 부끄러운 부분에 대해서도 확실히 인식하고 왜 그런 상황이 오게 되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래야 다시 그러한 치욕을 겪지 않을 것 아닌가. 과거는 단순히 지 나간 기억으로만 여기기엔 너무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실수를 통해서 오늘의 교훈을 배우고, 과거의 아픔을 통해 서 나라의 소중함을 느끼고, 또한 과거의 위인들의 행동과 가르침 을 통해서 오늘날의 나아갈 방향을 배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 다. 나는 오늘 영화를 보면서 역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본 것 같 다. 뿌리가 없는 나무는 어떻게 될까? 뿌리가 없으면 땅에서 물과 영양분을 흡수하지 못 하게 되고, 결국 그 나무는 시들어서 죽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나라, 이 조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과 거의 역사로부터 교훈과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 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발전이 없을 것이고, 과거의 아픔을 또 겪을 수도 있는 것 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서 역사란 나무의 뿌리와 같은 아주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밑바탕이다. 나무에 현재 아무리 잎이 많이 달리고, 열매가 많이 달린다고 해도 뿌리에 병이 생기면 그 나무 는 오래가지 못 한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이다. 나는 앞으로 단순히 위인전만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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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의 역사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관심을 갖고 책을 읽을 것이며, 이러한 역사 영화도 관심을 갖고 꼭 봐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 리고 단순히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왜 그런 일 이 벌어졌으며, 우리 조상들이 만약 그 순간에 다른 결정이나 행 동을 했으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를 생각하며 본다면 더욱 흥미도 있을 것이고 나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치욕적인 역사에 대해서 단순히 아픔만 느끼고, 되새김만 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상황이 오게 된 원인에 대해서도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반성하여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더 중요 하다. 이러한 노력이 나에게도 튼튼한 뿌리를 만들어주는 영양분 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지금 우리나라 땅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평소에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가고 있지만, 이번에 본 ‘귀 향’ 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우리 조국이 있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 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던 주인공 정민은 결국 타국에서 숨을 거둔다. 다시는 이 땅 에 조국을 그리워하며, 또 정든 집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랐지 만 갈 수 없었던 ‘정민' 이와 같은 피해자가 생겨서는 안 될 것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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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문>

마음으로 울다 Grade 8 김규리 Joan Kim 귀향(歸鄕)은 ‘고향으로 돌아간다.’라는 뜻이다 이 영화도 집으 로 돌아가고 싶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소녀들의 이야기를 바탕 으로 하였다. 이 영화를 보게 된 동기는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영 화감상문을 과제로 내주셨기 때문이다. 사실 과제 때문이 아니었 어도 이 영화를 보러갈 참이었다. 그전부터 일본군 위안부에 관심 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접하게 된 것은 사회 과외 시간이었다. 나는 일본 군인들이 저지른 잔인한 만행을 듣고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얘기를 들었을 땐 실감이 잘 나 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든 생각은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잔인할 수가 있지?’ 이었다. 난 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다. 아마도 일본이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권을 잔인하게 침해한 것에 대 한 분노와 당시의 소녀들이 너무 불쌍해서 울었던 것 같다. 영화 에서처럼 강자가 자신의 힘을 이용해 약자 위에 서려고 하는 것은 굉장히 비겁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사회에도 이런 문제가 일어 난다. 그 당시에는 서양 문화를 더 빨리 습득한 일본이 총 같이 강력한 무기들로 우리나라 사람들을 제압했고, 우리나라를 약자의 자리로 전락시켰다. 주인공인 정민이는 가족과 평화롭게 살던 도중 일본 군인들한테 아무 이유 없이 끌려가게 된다. 그렇게 끌려가던 기차 안에서 정 민은 영희를 만난다. 하지만 그녀들이 끌려간 곳은 감옥이라고 해 도 과언이 아닌, 사실상 감옥 보다 더 잔인한 그런 곳이었다. 일 본군의 부대 안의 작은 방들이 많던 그곳은 단지 일본 군인들의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곳이었다. 작은 방 안에 갇힌 소녀들은 일본 군인들의 성노예가 되고 만다. 군인들은 그녀들에게 구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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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등을 저지른다. 하지만 모든 군인들이 다 그렇지는 않았다. 어떤 군인은 정민이 자신의 여동생을 많이 닮았다는 이유로 정민 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그리고 그의 도움으로 정민은 몇몇의 언 니들과 탈출을 계획한다. 탈출하던 도중 한명이 잡히고 나머지는 몰래 다시 부대 안으로 조용히 돌아온다. 탈출을 계획했던 소녀들 은 결국 벌을 받게 된다. 영화는 과거의 일을 보여주는 동시에 현재도 넘나든다. 현재에 는 은경이라는 소녀가 있다. 그녀에게는 귀신이 보이기도 하고 귀 신들이 그녀의 몸에 씌이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었던 정민은 죽어서 귀신이 되고 은경의 몸에 들어가 할머니 가 된 영희와 다시 만나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일본군인들 중에서도 높은 지위에 있는 군인이 몇 명의 소녀들이 도망친 것을 알고 소 녀들 모두를 모아 벌을 주던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영화가 끝나 고도 계속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소녀들 을 모두 알몸으로 세워놓은 후, 그 군인은 말했다. “너희들은 인 간이 아니다, 오직 우리를 섬기기 위한 종일뿐이다.” 나는 이 장 면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사람의 인권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을 도대체 어떻게 봤기에 왜 우리나라 소녀들이 그런 취급을 받아야 했는지 나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다. 어떻 게 이렇게 잔인할 수가, 정말 계속 일본을 욕하고 싶었다. 내가 또 충격을 받은 장면은 군인들이 아무나 조금만 잘못을 해 도 총을 쏘고 태워 죽이는 부분이었다. 정민과 탈출 시도를 하다 가 잡힌 언니, 어렸을 때 사고로 군인인 오빠를 잃어 군인만 보면 오빠라고 좋아서 따라다니는 소녀, 등등 군인들의 마음에 들지 않 았던 사람들은 따로 끌려가서 총을 뒤통수에 맞고 바로 죽는다. 그리고는 그 시체들을 쌓아놓고, 기름을 부어 불태워버린다. 이 장 면에서 또 다시 얼마나 당시 일본군이 생명을 중요하게 생각 하지 않았다는 걸 너무나도 잘 느꼈다. 아직 살아있는 채로 사람을 그 냥 쌓아놓고 그 위에 기름을 막 붇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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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중 가장 감동적이고도 슬픈 장면은 정민이 죽을 때였다. 간신히 도망쳐 나온 정민과 영희는 걷고 있다가 한 일본 군인에게 잡히고 만다. 그 군인은 절뚝거리면서 칼로 그녀들을 위협했다. 하 지만 그녀들은 오히려 그를 다치게 했다. 그를 무찔렀다고 생각하 고 그녀들은 더 도망치려 하자 죽을힘을 다해 일어서 그 군인은 총을 들었다. 그것을 본 정민은 “잘 가 언니야”하고 흐뭇한 미소 를 띤 채 총에 맞을 뻔한 영희를 안아 구해준다. 여전히 웃고 있 던 정민은 결국 부모님을 만나지 못하고 죽는다. 이 장면이 슬펐 던 이유는 자신의 목숨을 희생할 만큼 영희를 생각하는 마음이 깊 었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서로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던 성 노예였을 때의 생활, 소녀들끼리 남겨졌을 때 나누던 사소한 얘기들 등 함께 견뎌왔던 시간들이 그녀들에겐 그들의 목숨보다도 소중했던 것이었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쓸쓸했다. 고향을 떠나 먼 곳에 와서 노예처럼 살아야 했던 소녀들의 이야기. 하지만 서로가 있었기에 그녀들도 힘을 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교훈은 역사의 중요성과 역사를 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영화로 인해 우리나라 사람 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잊힌 역사를 다시 새기고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당시 일본이 우리나라 에게 한 만행들 일본이 지금 인정하지 않는 일들이 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인생을 망친 일본은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사과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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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문>

동주, The Portrait of a Poet Grade 8 정쏘피 Sophie, Calzada 이 영화는 시인 윤동주와 가장 가까웠던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일생을 그린 영화이다. 처음에는 이 영화를 보기가 너무나도 싫었다. 포스터로 봤을 때 남자 둘의 따분한 우정 얘기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엔 엄마의 성 화에 못 이겨 수연이와 함께 아침 8시부터 cgv 영화관에 갔다. 솔 직히 그때 까지만 해도 그냥 수연이 얼굴 본다는 생각으로 갔다. 잠이 덜 깨어 초반에는 집중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흐르자 흑백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마음이 영화에 빠져들고 있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송몽규라는 인물을 전혀 몰랐다. 송몽규는 독립 운동가였고, 윤동주의 사촌이자, 친구, 라이벌이였 다. 나는 처음 송몽규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시대적 아픔을 시로 표현하는 윤동주에게 너의 시로 인해서 세상이 바뀔 거 같냐 고 타박할 때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송몽규는 윤 동주가 시를 쓸 때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거라고 너의 시로 인해 서 세상이 바귈거 같냐고 타박했다. 나는 이 장면에서 송몽규가 정말 싫었다.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방법으로 표현하는 게 자신의 인생인데 왜 자꾸 뭐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윤동주의 말처럼 물론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는 것이 세상이지만 누군가는 시를 읽고 마음이 움직여서 그걸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사람에게 조금씩 알려져 나가 사람들의 마음이 바꿔서 조금의 차이를 불러 올 수 있는 게 세상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였다. 송몽규는 나라 가 처한 답답한 상황,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함에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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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에게 화를 내었던 거라 생각한다. 둘은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되고 거기서 송몽규는 다시 독립운 동을 하고 그리고 윤동주는 시인으로 자신의 꿈을 확정하기 시작 한다. 윤동주는 조선이 일본에게 침략 당했다는 되었다는 이유만 으로 창씨개명을 하였고 머리를 삭발 당했다. 너무나도 화가 나고 경악스러운 순간이었다. 송몽규의 독립운동을 하면서 윤동주를 보호해주려는 것도 처음 엔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왜 영화 초반에 송몽규의 마음을 확 실히 알아차리지 못했던 사실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서로 조금 다른 방법으로 그 상황에서 독립운동을 했었던 것이었다. 학교에서 윤동주에 대해 배웠을 때는 윤동주가 이렇게 힘들고 슬픈 인생을 살아왔다는 게 내가 상상했던 바와는 너무나도 달랐 다. 그냥 너무 아름다운 시를 어려운 시대에 골방에서 쓰는 것을 상상 했고 아주 잠시 일본 형무소에서 지낸 줄로만 알았다. 평생 일본군에 의해 피해와 고통을 받아오셨는데 그 사실을 알지 못했 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죄송한 마음밖에 없었다. 영화를 마친 후에 도 약간의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학교에서 짧게나마 윤동주의 시를 배우며 외웠는데 책에서 알지 못했던 윤동주의 아픈 삶이 영화 안에 너무 상세하게 담겨있었고, 내가 알지 못했던 수많은 윤동주의 시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힘 든 시간 속에서도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시로 자유롭게 표현한 윤 동주가 너무 멋있었다. 그 이야기를 알지 못하는 내가 약간 한심 하고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 나 라를 잃은 슬픔, 나랏말을 쓰지 못하는 슬픔, 자신이름 조차 개명 해야 하는 아픔 등을 시인 윤동주를 통해서 다시 한 번 더 알게 되었다. 영화 동주는 시인 윤동주와 그의 절친 송몽규가 살아있을 당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어떠한 일을 하였 었는지 상당히 잘 묘사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도 우리가 몰랐던 사 실을 알려주는 좋은 영화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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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문>

윤동주, 부끄러움으로 살다 간, 詩人 Grade 8 정강인 Bryan, Jung 영화 ‘동주’에서는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등장인물 두 명이 나 옵니다. 그분들의 이름은 윤동주와 송몽규입니다. 작은 불씨가 피 일락 말락 하면, 송몽규는 제일 먼저 가서 물을 뿌릴 사람인 반 면, 윤동주는 뒤에서 그 불씨를 어떻게 끌지 고민 하는 사람입니 다. 송몽규는 어떤 일에도 자기 자신의 뜻을 뚜렷하게 드러낼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무엇이든지 확신이 차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송몽규는 동내 사람들에게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켜 일본으로부터 독립 하자고 말합니다. 그 이후에도 독립의 기회가 보였다 하면 , 광복군과 함께해서라도 열심히 싸웠 던 사람이 송몽규입니다. 윤동주는 끊임없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삶을 만들 수 있을까 하고 고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잘못을 인정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고, 언제나 자기를 돌아보면서 더 잘살아보려고 애썼습니다. 윤동주는 송몽규 보다는 더 내성적이었습니다. 윤동주 는 시를 쓰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윤동 주는 자기가 놓인 상황을 시로 표현 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느끼기 시작합니다. 이 영화에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중심으로 종교, 선택 같은 개념이 주위를 돕니다. 윤동주는 끝까지 자기 자신이 부끄럽고 부끄러운 삶을 살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열심히 자기가 좋아 하는 일을 끝까지 한 인물이었습니다. 윤동주에게서 시란 자기의 고민과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윤동주의 ‘자화상’ 에서도,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 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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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 리워집니다….’라고 합니다. 영화에서는 이 장면을 자기 친구 송몽 규가 같이 고향으로 가자고 할 때 윤동주가 거절을 하고 나서 송 몽규가 붙잡힌 장면을 보여 줍니다. 영화에서는 비록 이 ‘사나이’ 가 송몽규인지는 몰라도 제 생각은 이 ‘사나이’는 윤동주의 다양한 고민들, 즉 선택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윤동주는 고민을 합니다. 과 연 자기도 몽규처럼 나가서 싸워야 하나, 계속 시를 써야 하나. 저희 교회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많은 선택의 기회가 온다고. 하지만 우리는 모든 기회를 다 선택하면 안 된다고. 우리에게는 목표가 있어서 그렇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는 나쁜 선택을 해서는 안 됩니다. 윤동주는 이것을 알고 이 자신 과의 갈등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자신이 사랑하는 시를 쓰면서 자신의 감정 표현 할 수 있었습니다. 윤동주의 시에서는 반복적으로 부끄러움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 다. 윤동주는 살면서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윤동주 의 ‘서시’ 에서도, ‘죽는 날 까지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러 움이 없기를…’ 윤동주는 크리스찬이었습니다. 윤동주가 자신에게 부끄러움 없이 살고 싶다는 말도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살 고 싶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이러한 말이 나옵니다, ‘부끄러운 것을 아는 것은 부끄럽지 않은 일이지만, 부끄러운 것을 모르는 것이야 말로 부끄러운 것이라고.’ 윤동주는 참으로 지혜로 운 사람이었습니다. 윤동주는 언제나 부끄러운 것이 뭔지 알고 언 제나 부끄러워하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합니다. 언제 나 부끄러워 한다는 것은 자기가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다 죄인이라고 합니다. 윤동주가 부끄러워하고 부끄러운 부분을 개선하려고 하는 것이 다른 말로는 우리는 다 죄 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고치려 노력하는 것과 같습니다. 윤동주는 죽기 전까지도 자기는 조국을 위해서 싸우지 못했다고 종이에 서명을 못합니다. 서명 못한 이유는 오직 자기가 그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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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조국을 위해 더 노력을 해야 했는데 자기 생 각에는 자기는 시만 쓰고 열심히 독립운동을 못해서 부끄럽고 안 타까워서 서명을 안 합니다. 자기 자신을 끝까지 부끄러워하는 윤 동주를 보면서 얼마나 내적 선택의 갈등이 심했는지 알 수 있습니 다. 영화 ‘동주’는 윤동주의 갈등, 감정을 시로 표현한 아주 재미 있고 유익한 영화였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가 처한 여러 가지 역사적 상황과 힘든 고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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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초콜릿 Grade 8 김재인 Charissa Juun, Kim 모든 사람들은 가끔씩 안 좋은 날을 보내기 마련이다. 잘못을 하거나 마음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냥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일이 다. 운이 안 좋든가, 몸이 안 좋거나, 힘든 일이 일어나는 등, 때 론 웃기 힘들 때가 꼭 한 두 번씩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날들 을 보내게 될 때, 우리를 위로 해주고 웃게 해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 게 중요하다. 그런 사람들이 곁에 있으면, 어둡고 힘든 날도 금방 이겨낼 수 있다. 2016년 3월 17일은 나한테 전혀 좋은 날이 아니었다. 아침부터 컨디션이 살짝 안 좋았다. 등굣길에 그날은 차가 갑자기 튀어나와 서 깜짝 놀라고, 길 건널 때는 넘어졌다. 전날 밤에는 숙제가 엄 청 많아 잠을 많이 못 자서 버스에서 조금 쉬려고 했는데, 배가 아파서 자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피곤해도 그냥 창밖 을 보면서 갔다. 마침 그날따라 비가 오고 있었고, 창밖을 바라보 던 나는 배가 아픈 것을 잊기 위해 깊은 생각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는 그 당시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 고 있었다.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와 또 여러 가지 다른 걱정거리 가 많았다. 기분이 너무 안 좋아서 그런지, 특히 그 하루 동안 힘 든 일들만 계속 생각날 뿐, 공부에 별로 집중이 안 됐다. 나는 배가 점점 더 아프기 시작했다. 8교시가 되서는 허리를 피 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나는 참다 참다 견딜 수가 없어서 선생님 한테 허락을 받고 양호실로 갔다. 너무 아팠지만, 내가 갔을 때는 양호실 선생님이 자리에 안 계셨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이 양호 실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기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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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3분쯤 기다렸는지, 밑에서 누군가 계단 위로 걸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양호실 선생님인가 하고 고개를 들었다. 그런 데 양호실 선생님이 아니라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선생님 이 올라오고 계셨다. 나는 최대한 허리를 펴고 인사를 하면서 걸 어갔다. 아주 안 좋은 날을 보내고 있는데 뜻밖의 선물을 받는 기 분이었다. Ms. Shinners는 나한테 괜찮냐고 물어봤다. 나는 배가 너무 아프다고 대답했다. 나는 물론 지금 바쁘니까 그냥

빨리 나

으라고 하고 가실 줄 알았다. 그 예쁜 얼굴로 웃어주는 게 나한테 는 이미 충분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앞으로 와서 하는 말이 믿기 지 않았다. “내가 초콜릿 줄까?” 선생님은 따뜻하게 웃으면서 물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잠시 동안 대답을 못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손으로 따라오라고 했다. 나는 약간 놀라있는 채로 선생 님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교실에 들어갈 때마다 기분이 항상 좋아지고, 추억이 떠오른다. 그 교실은 바로 이 학교에 처음 와서 보냈던 5학년 교실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학교가 좋지만, 당 시 5학년은 너무 재밌었다. 나는 배가 아팠지만 허리를 최대한 핀 채로 걸어갔다. 선생님은 커다란 상자를 꺼내고, 거기에서 금방 초 콜릿을 꺼냈다. 근데 그것도 그냥 아무거나 꺼내서 준 게 아니다. “와, 이것 좀 봐! 뭐가 있는지 봐봐!” 선생님은 핑크색으로 포장 된 작은 키세스 초콜릿을 내밀고 있었다. 핑크색은 선생님과 내가 모두 제일 좋아하는 색깔이다. “우와, 핑크색이네!” 아무거나 줘도 괜찮은데 특별히 핑크색으로 골라서 주신 것에 감동받아 웃으면서 받았다. 나는 선생님의 기분 까지 어둡게 만들기는 싫었지만, 나는 그 선생님을 믿어서 내가 힘들어하는 일들을 몇 가지 털어냈다. 선생님은 바쁘셨을 텐데도 내 얘기를 다 들어주셨다. 나는 선생님께 포옹을 한번 하고, 좋은 하루 보내라고 말하고서는 나갔다. 나는 초콜릿을 꼬옥 잡고 다시 양호실로 갔다. 나는 핫백을 채우러 사무실로 갔는데, 그때 배가 너무 아파서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참으려고 노력했지만 너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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팠다. 침대에 잠깐 누워있었기 때문에 8교시를 놓치고 다음 종이 울리고 나서야 버스로 갔다. 나는 울음을 멈추려 노력하면서 초콜 릿을 조심히 뜯었다. 나는 초콜릿을 먹으면서 좀 전에 있었던 일 을 생각하니 다시 울음이 나기 시작했다. 너무 창피했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초콜릿을 먹고 나서 배도 기분도 많 이 좋아졌다. 나는 집에 도착해서 약을 먹고 조금 쉬었다. 나는 선생님한테 고맙다는 말을 반드시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 래서 나는 선생님에게 고맙다고 이메일을 써서 보냈다. 그 이메일 도 내가 얼마큼 고마웠는지 충분하지 않았다. 그 다음 날, 나는 선생님의 답장을 보고 또 감동을 받았다. 그 답장에는 이렇게 쓰 여 있다. ‘우리는 모두 한 번씩은 안 좋은 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그 런 날들은 작지만 초콜릿처럼 작은 것들에 감사하고, 좋은 날들에 대해 고마워 하게 된다. 모든 사람들은 좋은 날에는 웃기가 쉽지 만, 안 좋은 날에도 웃을 것을 찾는 것은 아주 특별한 사람만 가 능하다. 그게 어제 네가 한 것이다. :) 오늘은 더 좋은 날을 보냈 으면 한다!’ 나는 그 말에 깊은 공감을 했다. 하지만 나를 그날 웃게 만들어 준 Ms. Shinners 덕분이었다. 사람들은 “되게 작은 건데…”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냥 초콜릿 하나 준건데…” 라고 생각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선생님은 바쁜 일을 잠시 내려놓고 나를 위해서 시간을 내주고, 나를 생각해서 초콜릿을 핑크색으로 포장 돼 있는 걸로 골라서 주셨다. 다를 사람들은 몰라도, 나의 마음과 눈에는 무척 큰 뜻이 보인다. 나는 다음 날에 우리 반이 작은 여행을 갔다 오는 바람에 선생 님께 가서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나누지 못해서 아쉬웠다. 그 런데 그날 아침에 내 친구 진희가 선생님이 나를 찾고 계셨다고 말해줬다. 나는 내일 꼭 봐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또 다음 날, 나 는 7교시가 끝나고 나서야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선생님은 나 한테 괜찮으냐고 다시 한 번 물어봤다. 나는 이틀이 지났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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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을 해주시는 것에 또 감동을 받아서 울 뻔했다. 그런데 나는 이를 꽉 물고 선생님에게 포옹을 했다. 그러고 나서는 선생님은 언제나 필요한 게 있으면 꼭 찾아오라고 말해 주셨다. 나는 고개 를 끄덕이며 너무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선생님이 걸어가는 뒷모 습을 잠깐 보다가 갔다. 이틀이 지났는데도 끝까지 나를 위로해 주고 나를 걱정해주신 선생님은 나한테 큰 감동을 주셨고, 나는 그때의 고마움을 아직까지도 충분히 표현하지 못했다. 인생이라는 길은 거칠고, 때로는 안 좋은 날을 보내는 게 당연 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누군가가 상대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무언 가를 해주는 것은 참 따뜻한 행동이라고 느낀다. 나는 그날 인생 의 어두운 터널을 잠시 지나가고 있었는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선생님 덕분에 나는 금방 웃음꽃을 되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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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인생은 너의 선택이다 Grade 8 박혜진 Jeany Haejin Park 어느새 세월이 한참을 지났다. 나는 벌써 골프를 4년째 치고 있 다. 나는 한 번도 꿈을 바꾼 적도, 제대로 된 꿈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골프에 대한 사랑, 관심이 항 상 컸다. 나는 골프가 가장 자신이 있었다. 항상 화가 날 때마다 골프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골프는 나의 오랜 친구이자 나의 오랜 꿈이었다. 푸른 잔디 위에서, 나만의 공간에서 골프를 즐기는 것이 나의 인생이었다. 그런데 정말 골프가 나의 인생일까? 정말 나의 꿈일까? 나는 거의 지난 5년 동안 골프선수가 꿈이자, 장래희망이었다. 나는 항상 먼 해외로 나가, 나 홀로 골프 전지훈련을 많이 다니곤 했다. 그리고 이번엔, 나의 5번째 태국 전지훈련이었다. 나는 태국 에 도착하자마자, 골프 필드의 푸른 잔디부터 확인을 하였다. 왠지 모르게 푸른 잔디를 보면,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는 빨리 라운딩을 돌고 싶었다. 빨리 잔디 위에서 날고 싶었다. 다음 날 새벽, 나는 서둘러 골프채들을 정리하고 스코어 카드도 준비 했다. 하지만 기분이 좋았으나, 불안했다. 코치님 눈치를 많 이 봐왔기 때문에 항상 골프를 칠 때마다, 두려웠고 떨렸다. 그래 서 항상 결과가 좋진 않았다. 점수는 잘 받는데, 나는 다른 사람 들에 대한 부담감이 점점 커져만 갔다. 항상 스코어를 깰 때마다, 나는 다음번에 그 스코어를 깨야 된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나 는 스코어 카드가 제일 무서웠다. 점수를 적을 때마다 두려웠다. 그래서 골프를 재밌게 친다는 것보단,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고, 항상 예민하고 두려웠다. 골프선수가 되려면 엄격하게 코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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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받는 건 당연했다. 나도 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의 기 대와 압박감 때문에, 골프를 잘 칠 수가 없었다. 예상대로, 그날의 스코어는 높았다. 골프는 낮은 점수가 제일 높다는 뜻이고, 높은 점수가 제일 낮은 점수다. 예상대로 나는 나 의 최고점수를 깨질 못했다. 나는 우울하고 슬펐다.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너무 아까웠다. 라운딩을 다 돌자마자, 나는 골프 연습을 했다. 오늘도 역시 골프 코치님은 엄격 하셨다. 하지만 골프 선수 가 되려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컨디션은 나빴다. 골프공들은 다 이상한대로 흘러가 버렸고, 나는 코치님한테 혼만 많이 났다. 너무 엉망진창이여서, 어마 무시한 벌을 받아야만 했다. 나는 600개의 공을 다 쳐야했 고, 플랭크 30분, 앉았다 일어났다 125개를 해야 했다. 나는 벌을 수행할 때마다, 눈물이 나올까 말까했다. 하지만 나는 다 이겨냈 다. 그냥 꾹 참았다. 눈물이 났지만, 나는 애써 웃었다. 나는 숙소로 빨리 돌아갔다. 나의 룸메이트이자 골프 친구는 쉬 지도 않고 나를 기다려줬다. 나는 고마웠다. 같은 5학년이었는데, 마치 엄마 같은 친구였다. 나는 애써 웃으면서 바로 화장실로 뛰 어갔다. 나는 온 몸이 아팠다. 일단 아픈 곳을 잘 살펴보았다. 예 상대로 멍들이 장난 아니게 많았다. 나는 거울에 비춰지는 나를 봤다. 그러곤 생각을 했다. “나의 꿈은 진짜 골프일까? 내가 진짜 로 골프를 선택한 것일까? 나의 부모님의 꿈인가 나의 꿈인가?” 내가 원하는 건 그냥 자유롭게 골프를 치는 것이다. 이렇게 혼난 건 처음이었다. 나는 서서히 눈물이 났다. 가족들이 보고 싶었다. 따뜻한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게 다였다.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컸다. 엄격한 코칭을 받는 건 당연하다고 알고 있었다. 골프는 어 렵고 힘들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무척이 나 아팠다. 나는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쾅!” 친구가 화장실 문을 활짝 열었다. 울음소리가 너무 컸나 보다. 친구는 나랑 같이 나란히 앉았다. 나는 애써 울음을 숨기려 했다. 친구는 나를 쳐다보았다. 아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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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곤 말을 했다. “괜찮아, 울어도 돼. 굳이 너의 마음을 숨기 려 하지 않아도 돼. 슬픈 웃음 짓지 말고, 차라리 울어.” 그 말을 들은 나는 다시 눈물이 났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는 처음이 었다. 나는 항상 나의 모습을 숨기려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하지만 나의 모습을 알아주는 사람은 이 친구가 처음이었다. 내 친구는 가족 대신 따뜻한 말을 건네주고, 챙겨주었다. 나는 그런 친구가 고마웠다. 하지만 “골프는 정말 내 꿈일까?”이 생각으로 내 머릿속은 가득했다. 2년이 지났다. 코치님은, 나의 골프 실력이 완벽하다고 하였다. 나는 악착같이 매일 골프를 해왔던 결과, 나는 이렇게 발전을 많 이 한 것이다. 하지만 “골프는 정말 즐거운 것일까? 나의 꿈이 맞 나?” 나는 고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만두어야 할까. 아님 계속 해야 하나. 하지만 그만두기에는, 지금까지 내가 했던 골프 실력이 아까웠다. 나는 책 한권을 읽던 도중, “인생은 한번 뿐이다. 너의 인생은 너의 선택이고, 마지막 찬스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기운을 냈 다. 나는 골프를 잠시 오랫동안 쉬기로 했다. 다시 할지 안 할지 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쿨 하게 그만두고 싶었 다. 만약에 골프를 다시 시작하면, 나는 자유롭게 골프를 치는 게 소원이다. 스코어 걱정도 안하고, 다른 사람들 눈치도 안보고. 나 도 나만 생각하고 골프를 쳤으면 좋겠다. 나도 나만의 다른 인생 을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골프가 아닌. 1년 후에 난 다시 골프를 시작하려고 한다. 이번엔 즐겁게, 자유롭게. 하지만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내가 다시 골프를 사랑하게 될지도 말이다. 내 미래의 나 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를 기대하며, 나는 오늘도 필드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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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기> 안녕하세요, 저는 킴벌리입니다 Grade 8 킴벌리 호 Kimberly 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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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기> 저희 삼촌을 소개합니다 Grade 8 김관희 Joseph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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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기>

우리 누나를 소개합니다

Grade 8 고우근 Wookeun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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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기> 내가 좋아하는 것들 Grade 8 최현무 John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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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기> 저를 소개합니다 Grade 8 김정민 Bria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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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문> 의자를 설명합니다 Grade 8 오주영 Harrison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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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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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나의 색 Grade 9 권애나 Frankle Anna Kwon

세상은 모두 색투성이, 빨강부터 보라까지 온통 색투성이 눈이 부시도록 엉망진창 어지럽고 밝고 어두운 색투성이 밤하늘의 별빛처럼 다채로운 우리 모두들 누군가의 시선을 이끌려고 뽐내는 색색들 하지만, 나에겐 색깔이 없었지 다채롭지도 못했지 눈에 띄지도 못했던 그저 심심한 무색 그러면 어때, 차라리 무색이 좋다 저리 뽐내고 눈 아픈 것보다는 낫지 무색이면 어떤가, 나도 언젠가는 눈 아픈 색에 물들어 버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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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노란색, 왜 그 색에는 계속 이끌리는걸까 왜 그 색만은 눈이 아프지 않은 걸까 어째서일까 시간이 지나간다 사람들은 더욱 더 무언가에 물들어가고 나도 점점 물들어간다 가족의 평온한 노란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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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너만을 기다리며 Grade 9 김수아 Joshua Kim

나는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기다려도 안 오는 너 너가 오기만을 기대하는 나 그래도 너는 내 곁으로 안 온다 추운 겨울이 지나갈지라도 꽁꽁 얼은 내 마음은 언젠가는 녹을지라도 때가 되면 새로운 삶도 나도, 꽁꽁 얼은 내 마음도마침내, 녹을 것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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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봄 Grade 9 홍성재 Sung Jae Hong

나를 도와주러 오는 너 따뜻하게 나에게 마중 나오는 너 천천히 오는 대신 나를 위해 오랫동안 빛을 비춰주는 너 나를 절망에서 깨워준 너의 따뜻한 빛 나에게 포기를 잊게 해준 너 희망과 빛 시작부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고 온 너, 바로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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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인권침해가 사라져야하는 이유 Grade 9 이나현 1948년 12월 10일, UN에 속한 나라들은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 는 세계 인권 선언을 하였다. 헌법에서의 인권이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의미한다. 하지만, 사 회에서 몇몇의 사람들은 자신의 인권을 존중받지 못하고 오히려 침해를 당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다양한 인권침해를 당하는 사 람들이 셀 수도 없이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여성, 장애인 그 리고 불특정 다수의 종교인들이다. 여성의 인권침해는 아직도 세계 각국에서 자행되고 있다. 대표적 인 예로는 최근에 나이지리아에서 ‘보코하람’이라는 테러단체가 여 학생들을 대거 납치하여 감금시키고 매매하는 등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다. 또한, 중동 어느 특정 지역에서는 여자만 히잡을 쓰게 하고 운전 및 투표의 권한도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여성뿐만 아닌 종교에 따른 인권침해도 있다. 종교적인 이유로 여자들의 생명까지도 빼앗는 여성할례는 그 대표적인 예다. 특정 지역의 종교와도 관련이 될 수도 있지만 아무리 종교적인 이유라 하더라도, 인간을 강제적으로 해하고 위협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 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또한, 북한은 주체사상으로 인하여 통치자의 발언이 법이 되는 사회로서 고문과 처형이 보편화 되어 있다. 이뿐만 아니라 장애인 들이 인권침해를 당하는 경우도 있는데,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감 금 하는 것은 장애인들의 자유를 빼앗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 헌 법 제 10조에도 엄연히 어긋난다. 인권 침해를 없애기 위한 노력들에는 다양한 일들이 있다.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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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나의 삶에 대해 반성 할 시간을 갖고, 가 정교육을 제대로 하게 된다면 인권침해에 대한 사고가 개선될 것 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캠페인을 벌여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또한 인권 침해 개선에 대한 팸플릿 자료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배 부하면 인권 침해 개선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잘 알게 될 것이다. 국가들은 또한 서로 교류하며 인권침해를 행하는 나라들을 제재하 거나 공동으로 협력하여 그러한 행위를 스스로 멈추도록 해야 한 다. 인권 침해 개선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세상에 있는 모 든 사람들이 자유를 누리고 행복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 권침해는 마땅히 개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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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사이버, 그 양날의 검 Grade 9 이재우 Jae Woon Lee 사이버 상에서는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원하는 지식과 재미까지 얻을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폭력이 자행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네트워크상에서 벌어지는 ‘거짓유포’ 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헛소문을 퍼뜨리는 행동은 사실이 아닌 내용을 사실로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 피해를 입힌다. 헛소문의 피해자는 자살까지도 감행할 수 있는 무서운 결과를 낳 기도 한다. 헛소문과 허위사실유포의 원인은 대략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최근 심리상담센터에서 밝힌 자료를 보면, 장난삼아 하는 경우와 타인을 공격하여 왕따를 만들거나 따돌리기 위해라고 한다. 당사 자는 재미로 했다지만, 피해자는 고통스럽고 슬플 것이다. 특히 사 이버 공간에서는 닉네임을 바꾸거나 표기를 원하지 않으면 이름을 없앨 수 있기 때문에 원인 제공자가 누구인지 밝혀내기 힘들다. 계속 따돌림을 당하다 보면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정신적, 심리적 피해가 무지막지하다. 이처럼 전문 지식을 찾고, 다른 사람들과 편 하게 소통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 하더라도, 인터넷을 잘못 사용하여 타인이 피해를 입을 경우, 돌이킬 수 없는 큰 폭력으로 붉어질 수 있다. 헛소문 유포를 금지하는 포스터를 만들어서 캠페인을 실행 할 수 있다. 헛소문이 발생했을 시 어떤 처벌을 내려야 하는지 국가 도 적극 개입해야 한다. 또는 학교에서나 가정에서 올바른 교육을 실행해 헛소문 때문에 일어나는 학교폭력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헛소문을 만들어 다른 사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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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바른 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남을 비방하려는 마음가짐을 버리고 항상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우 리 사회가 훨씬 건강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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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개성 있는 삶의 중요성 Grade 9 박정연 Clara Park 때로는 사회가 정한 규칙과 요구 사항에 따라야 하는 것은 우리 의 의무이자 사회생활에서 갖추어야 할 책임 중 하나이다. 예를 들어, 법을 지킨다든가 주어진 노동을 하는 것은 힘이 드는 일이 지만, 사회생활을 할 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사회에서 요구하는 바와는 다르게 살기를 원하고 보통 사람과 다른 독특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들은 주인공이 되기 힘들어 보 인다. 최근 뉴데일리 신문에 기재된 기사에 의하면 아이들의 개성 과 특성, 혹은 자기만의 재능에 따라 맞춤 교육을 하는 것이 지금 의 교육 시스템이 갖고 있는 문제점의 해결 방안이라고 한다. 만 약 개성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가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미래에는 더욱 더 개성을 가진 사람들을 존중 하지 않는 태도를 넘어서서 차별과 비난이 가중될 것이다 현재의 교육 시스템은 주어진 과제들을 개인이 우수하게 해결만 하면 성공적인 평가를 받지만 만약 그렇지 못하면 실패라고 생각 한다. 하지만 개성에 따라 하게 되면 우수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학생들이 너무 많다. 주어진 과목에 학생들을 억지로 떠밀면 당연 히 우수하지 못한 학생들이 많을 것이다. 또한 학생들 사이에 공 부를 못하거나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면 왕따를 당한다. 어린 나이부터 자기와 다른 사람들은 인정을 안 하는 것을 벌써 알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미래, 아이들을 어린 나이부터 이러한 교육 시스템에 밀어 넣는다면 개성은 물론이고 사회의 변화를 막 게 된다. 어려서부터 주어진 길만 걷기 때문에 혼자가 만드는 길 은 전혀 걷지 않게 된다. 지금 사회는 나와 다른 길을 걷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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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비판하고, 그들을 ‘실패자’라고 한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면 똑같은 길만 걷게 된다. 개성들이 각기 다른 반찬들 을 상 위에 올려 훌륭한 밥상으로 만든다는 걸 사회는 모르는 것 같다. 이러한 문제들을 바꿀 수 있는 열쇠는 우리들 안에 있다. 교육 의 힘으로 개성을 중시하게 된다면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충분히 존중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자기가 원하는 길을 지원 하고 자기보다 다른 이들의 길을 더욱 존중 할 수 있는 생각을 넣 어줘야 한다. 모두가 다 똑같은 길을 가지 않아도 되며 걷지 못해 도 괜찮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이럴수록 비판과 무시가 아니라, 존경을 할 것이다. 개성을 존중하고, 나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 우리는 더욱 행복하고, 보다 나은 사회에서 살게 될 것이다. 개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문화가 조성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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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아동학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Grade 9 김상인 Jacob Kim 날마다 뉴스에는 심각한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그 중에서도 특 별히 어른이 아이를 폭행하는 아동학대 문제가 자주 등장한다. 어 른과 아이는 신체적 차이가 아주 많이 나기 때문에 어른들은 그 것을 이점으로 쓴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사이 말 못하는 괴로움 에 몸부림치고 있다 일반 시청자가 폭력 상황을 봤을 때, 때리는 사람이 정신 나간 것으로 보지만, 모든 사람들은 자기만의 의견이 있다고 생각한다. 희생자와 범죄자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그 이유들을 모두 들어 봐야 한다고 본다. 대체로 어른이 아이를 때리는 이유는 아이가 말을 안 듣거나 큰 잘못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이를 때리 면 그 결과는 아이는 상처만 받고 자기가 왜 맞아야 하는지 이유 를 찾기가 힘들다. 어른에게 맞고 배우는 것도 없으면 어른들은 아이를 때릴 이유가 전혀 없다. 아무리 아이가 큰 잘못을 저질러 도 어른이 그 아이를 때리는 것 자체가 더 큰 죄이다. 다른 나라들은 몰라도, 한국은 특별히 이런 사건이 많이 있다. 미국의 경우는 부모가 아이를 살짝만 때려도 경찰에 신고 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어른이 아이를 때리는 것이 아주 평범한 일이 라 신고를 해도 처벌받기 어렵다. 국가마다 다른 법이 있겠지만 어른들에게만 맞추어진 그 법들 때문에 어떤 아이들은 심각한 상 처를 받고 있다. 겨우 성적이 낮게 나오거나 거짓말을 했다고 해 서 때릴 필요는 없다. 때리는 경우에는 믿을 만한 사람에게 상황 을 알리고 치료를 받는 게 좋다. 한국에는 아동학대에 대한 아주 엄격한 법이 없으니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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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때려서 마음에 상처를 받고 반대로 나갈 수 있는 가능성도 있으 니 아이를 혼내는 상황일 때는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낫다. 예를 들어, 아이가 숙제를 안 해서 성적이 잘 안 나온다면 이럴 때는 그 이유를 찾아내고 아이에게 차근차근 이야기하며 조건을 만들거 나 도움을 주는 것이 좋다. 아이의 버릇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많으니 반드시 폭력으로 해결하지 말아야 한다. 매일 이런 마음 아픈 사건이 발생하지만 조금씩 어른들이 아이 입장을 생각하여 교육 방법을 바꿔보면 미래의 우리 아이들은 더 안전한 환경에게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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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필요 악(惡) Grade 9 오승민 Andy Oh 인간의 생명보다 돈과 물질의 가치가 더 높게 평가 받는 경향이 있다. 일명 현대 사회의 ‘물질만능주의’다. 물론 이는 절대적으로 잘못된 사상이지만, 마냥 비판만 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 이다. 만약 모든 사람들을 존재 자체에 의미를 두고 모두를 평등 하게 바라보게 된다면, 남들보다 더 노력해서 부자가 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똑같이 바라보게 되는 문제가 초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평등은 그 사람의 노력과 재능을 인정해주 고 그에 따른 보상을 남들보다 더 보태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사람으로 태어나서, 남들과 똑같게 바라봐 주길 원한다면, 그 것은 역차별이다. 하지만, 돈과 물질을 가진 사람이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 에 비해 더 높은 대우를 받는 것은 가능해도 돈과 물질이 인간보 다 높게 평가 받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 자체에 질문을 던지는 것 과 다를 바 없다. 만약 물질을 인간보다 높게 평가되는 사상이 계 속해서 이어진다면, 선조들이 그리도 없애고 싶어 했던, 그리고 오 늘날의 사람들이 그리도 비판하는 노예 제도가 다시 부활하는 것 과 마찬가지다. 누구는 돈이 많은 집에서 태어나고, 누구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는 현대판 신분 제도라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른바, 요즘 회자되고 있는 ‘금수저'처럼 돈 많은 집에서 태어났다 는 것만으로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누군가를 짓밟고 무시할 수 있는 권력을 부여하는 것 또한 ‘물질만능주의’ 아닌가 싶다. 하지만 과거와 비교했을 때, 현재는 상대적으로 평등하다. 출신 이 어떻든지, 돈만 번다면 남부럽지 않은 생활과 대접을 받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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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사회가 되었다. 예전의 신분 제도와 비교했을 때 현대 사회 는 매우 유연하고 사람들에게 누구나 기회를 준다. 따라서 마냥 비판만 할 수 없는 것이, 돈이 생기면 누구나 존경 받을 수 있다 는 생각이 심화 된 것이 바로 오늘날의 ‘물질만능주의’가 아닐까 한다. 돈을 많이 벌어서 남을 무시 할 수 있는 권력을 부여 받는 듯한 이 사상은 분명 잘못 되었지만, 다른 한쪽에서 본다면, 누구든지 돈을 번다면, 남에게 무시 안당하고 살게 해 주는 것도 어찌 보면 인간이 누리고 싶은 간절한 본능일 수도 있다. 비록 물질이 세상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생각은 절대 옳지 않겠지만 물질이 우리 삶의 제반을 어느 정도는 해결해 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때 문에 모두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고 경쟁하는 것이 아닐까. 아 무리 불편하고 잔인한 사실이라 해도, 이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목적의식을 가지고 어찌 보면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만 하 는 ‘필요악(必要惡)’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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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바람직한 삶의 방향이란 Grade 9 채민기 Minki Chae 바람직하게 사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고, 배려하 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소중한 가치에 눈 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들보다 한발 앞서서 오로지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나 눔과 봉사의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 리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 우리보다 약하고, 형편이 어려 운 사람들을 돕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다른 나라에 가서 봉사 할 수도 있지만, 당장 내 주변에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없는지 살펴

봐야 합

니다. 배려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고 그 사람에게 실 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다른 사 람과 함께 살아가므로 서로를 배려할 때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가든 누군가를 배려해야 합니 다.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에 물을 마실 때 누구에게든 양보하는 것도 배려이고 친구의 필요를 돕는 것도 배려라고 할 수 있습니 다. 지하철에서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서 계시면 일어나서 자리를 내어 드리는 것도 배려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들고 계 신 할머니 아니면 할아버지가 있으면 대신 들어 드리는 것도 배려 입니다. 바람직하게 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 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이기도 합 니다. 우리가 가진 행동, 방식, 언어 등을 통해, 우리보다 나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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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어르신들을 존중해야 되고, 우리보다 더 나이가 어린 학생들 도 존중해야 합니다. 서로 다른 세대를 살아가면서 다른 생각과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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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인성교육의 중요성 Grade 9 오형근 Christopher Oh 최근 경기북부지역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이 과제를 안 해 혼났 다는 이유로 해당 교사를 여러 번 주먹으로 내리 친 패륜적인 사 건이 일어났다. 이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아이들은 어른을 존중 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학생들은 선생님에 대한 뒷담도 거리낌 없이 하며 대체로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 또한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기 때문 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행동도 서슴없이 하게 된다. 이기적인 행동과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 때문에 많은 사람 들이 심적, 물적으로 다치고 있다. 집단의 이기적인 태도로 인한 왕따는 당하는 사람들에게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마음에 상처를 입힌다. 심할 경우 육체적인 상처까지도 주고 또는 자살까지 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는 누구든 자존감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우리 모두가 인성교육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부모님이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반복적으로 인성 교 육을 더 엄격하게 해야 된다. 그리고 만약 애들이 어떤 잘못을 저 지르면

마땅한 처벌이 있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은 더

욱 더 나쁜 짓을 해도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계속 그 같은 일 을 반복적으로 저지를 수도 있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이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해야 된다.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세심한 관심을 갖고, 또한 학교에서 솔직하게 문제점을 이야기 해야만 한다. 학교에서는 학생의 성적 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학생이 어떻게 올바른 삶을 살지를 늘 주 목하고, 바른 길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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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행복한 사회가 되는 비결 Grade 9 서윤영 Joan Suh 요즘 우리들의 삶은 삭막하다. 아무리 어려워도 서로 나눠주고 빌려주기 바빴던 옛날과는 다르게 요즘은 아는 사이가 아닌 이상 인사도 하지 않고 자기 가족만 챙기기 바쁘다. 언제부터 이런 삶 으로 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이렇게 삭막하게 변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끊임없는 욕심과 지칠 줄 모르는 욕망 때문이 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 채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욕심을 내면서 자신만 잘 되면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모두들 살아가는 것 이다. 이렇듯 자신만 생각하는 삶은 양귀자 씨의 ‘원미동 사람들’을 봐도 알 수 있다. 쌀과 연탄만 팔던 김포 쌀 상회가 김포 슈퍼로 바뀌고 가게를 확장하면서 좋은 성과를 내자 형제 슈퍼도 안 팔던 쌀과 연탄을 따라 팔아 서로 경쟁을 하게 되는데, 옆에 싱싱 청과 물이라는 가게가 또 새롭게 문을 열자 서로 언제 싸웠냐는 듯 김 포슈퍼와 형제슈퍼는 동맹관계을 맺고 싱싱 청과물을 몰아내버린 다. 얼마 후 싱싱청과물이 나간 자리에 시내네 가게와 비슷한 전 파상이 들어온다는 얘기가 들리자 또 다른 경쟁이 예상되면서 이 야기가 끝나는데, 이렇게 서로 돕지는 않은 채 경쟁만 하는 삶을 바꾸려면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할까? 바로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쟁을 하면서 무엇인가를 하면 승부욕 같은 마음이 생겨 더욱 발전하고,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일부만 적용될 뿐 맞지 않다. 예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핸드폰 회사, 애플과 삼성을 들 수 있다. 애플과 삼성은 수많은 핸드폰 회사들 을 밟고 일어서 최고가 된 핸드폰 회사들이다. 이 두 회사는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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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버전과 종류의 핸드폰들을 출시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요즘 들어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삼성이 새로운 핸드폰을 출시 하면 애플도 새로운 기능들을 추가하여 출시하는 식으로 경쟁을 하면서 앞 다투어 핸드폰을 서둘러 출시하다가 제대로 된 검사를 받지 못하여 배터리 폭발과 같은 안전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삼성 의 ‘노트 7’의 폭발사고로 다시 수거하고 바꿔주는 리콜제도가 진 행되면서 ‘아이폰7’이 앞으로 당겨져 출시되었으나 ‘아이폰7’도 마 찬가지로 폭발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두 회사는 한편으로 서로 경쟁을 하면서 인정을 받고 좋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었지만 업계 최고가 되고자 하는 욕심이 지나쳐 사용자들의 목숨까지 위 협하는 위험한 회사가 된 것이다. 만약 이 두 회사가 서로의 기능 을 조금씩 보완하고 서로 상생했더라면 두 회사 모두 안전사고 없 이 사람들에게 선택의 범위를 넓히는데, 끊임없이 인정받고 사랑 받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서로 도우면서 더불어 사는 방법은 쉽다. 자기 안의 이기심과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버리는 것 이다. 또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질문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그 사람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고 생각하 는데 이러한 생각은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삶을 망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 더 자신 있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무언가 어려워하는 사람이 보이면 먼저 다가가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삶 을 만들어야 한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삶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데 이 렇게 서로 협력하고 돕는 삶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확실히 알게 해 주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천국과 지옥에서의 식사 방법이다. 천국 과 지옥에서는 식사시간이 되면 두 곳 똑같이 먹음직스러운 음식 들이 수없이 많이 나오는데 음식을 먹을 때 꼭 젓가락만을 이용해 서 먹어야 하는 규칙이 있다. 하지만 이 젓가락은 너무 길어 자기 혼자서는 도저히 밥을 먹을 수 없는데 이 규칙으로 천국과 지옥에 서의 식사는 차이를 보인다. 지옥에서는 그 긴 젓가락으로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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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밥을 먹으려고 안간힘을 쓰다 결국 매일 밥을 먹지 못해 모 두 굶어 죽었지만 천국에서는 서로 긴 젓가락으로 상대방에게 먹 여줌으로써 소외되는 사람 없이 모두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는 이 야기다. 혼자만의 이익만 생각하고 욕심을 부릴 때와 서로 돕고 협력하는 것에는 이렇게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경쟁만 하던 사회에서 서로 더불어 사는 사회로 바 뀌어야 할 때가 왔다. 자신의 무한한 욕심과 헛된 욕망을 조금이 라도 버리고 서로 도와주는 사회가 된다면 우리 사회는 경쟁하며 살았던 때보다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고 풍요롭고 행복한 사 회,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회 또한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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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누구나 가고 싶은 곳, 학교 Grade 9 박주현 Jasmin Park 학교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폭력이 벌어진다면 미래의 우리 사회에 서는 어떤 결과가 있을지 걱정이다. 왜냐하면 학교 폭력으로 인해 학 생들이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일까 지도 자주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온라인 폭력과 오프라인 폭력 이다. 문자, 카카오톡 등 사이버 상에서 어떤 특정인을 욕하거나, 뒷 담화하고 따돌리거나 비하하는 행위를 사이버 폭력이라고 한다. 이와 는 달리 실제로 어떤 특정인에게 직접적인 폭력과 욕설을 가하는 것 도 큰 문제다. 가정에서 교육을 잘 시키면 이런 폭력이 일어나기 힘들다고 생각하 는데, 누군가를 괴롭히며 스트레스 해소와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실 가정 안에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폭력이 계속 진행된다면 피해자는 학교를 도저히 다닐 수 없는 것이다. 학교에 가는 것이 무섭고 힘들어지며 결국 전 학 아니면 추후에 자살로도 이어질 수 있다. 학교 폭력을 해결해야 한다며 학교에서는 특별교육까지 하고 있지 만 대부분은 피해 받은 학생들을 좀 더 챙겨주고 걱정해 주는 것이 전부다. 이 방법은 학교폭력의 궁극적인 해결 방법이 아니다. 대부분 학교들은 학교폭력이 발생 되면 가해자에게 퇴학과 정학, 그리고 강 제 전학을 권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학교폭력을 근본적으 로 막을 수 없다. 오로지 가정에서부터 고쳐야 한다. 부모가 먼저 나 서서 자신의 자녀를 잘 가르치고, 남을 배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어렸을 때부터 알려 주어야 한다. 그리고 학교 폭력이 발생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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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서 원활한 의료시설을 만들고 지원해서 피해자가 적절한 상담 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래서 누구나 가고 싶은 학교, 무서운 곳이 아닌 즐거운 학교를 만들 어야 한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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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Grade 9 이지용 Erik Lee 작가 오정희 씨의 ‘소음 공해’ 라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과거 저 지른 후회스러운 내 자신의 행동들을 돌아보게 해준다. 앞으로 다 른 사람들에게 무작정 화를 내기 보다는, 서로 다른 입장을 인정 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면서, 또 내가 다른 사람들이 처한 상황 속 에 있었다면 어땠을 지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 올바르다 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결코 이기적이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이해, 또는 배려하며 살아야한다고 느꼈으나 한편으로 올바르게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생각한다. 남을 항상 배려만 한다고 해서 과연 바르게 사는 것일까? 남을 배려하며 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선의를 베풀었을 때 나에게 득이 아니라 항상 해롭고 행복하지 않다면 과연 그것이 바르게 사 는 것일까? 나는 절대 아니라고 본다. 바람직하게 산다는 것은 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 그리고 즐겁게 사는 마음가짐과 태도 등이 몹시 중요한 요소이다. 작가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일용할 양식’이라는 소설 속에서 는 장사꾼들의 치열한 경쟁이 보이는데, 일명 ‘트렌드’를 따라가며 다른 장사꾼이 무언가를 팔아 성공한다면 똑같은 물건을 서로 경 쟁적으로 판다. 서로 배려하며 장사하기 보다는 남의 아이디어를 빼앗으며 조금이라도 내가 남보다 더 팔고, 다른 장사꾼들을 굴복 시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경험상 이 과정은 전혀 편하지 않고, 오히려 엄청난 불쾌감을 낳게 되며, 누군가를 따라한다는 경 계선을 넘어 자칫 개인의 정체성까지도 잃을 수 있다. 배려를 해서 바람직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배려를 해서 서로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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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하고, 그 행복을 나누며 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지, 계속 배려 만 하고 본인은 정작 행복하지 않는다면 그 삶은 더 이상 바람직 하지 않은 것이다. 남을 배려하고 그 안에서 기쁨과 감사를 느끼 며 더불어 이웃과 어울리며, 개개인이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바람 직한 삶이고, 그것이 우리가 삶을 최선을 다 해 살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자 바람직한 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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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벌레가 된 사람들 Grade 9 박준하 Junha Park 사회가 발전하고 세상이 변하면서 말 또한 변하고 있다. 세상이 변하는 만큼 새롭게 생기는 단어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새롭게 만 들어진 신조어에는 좋은 뜻을 가진 단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 쁜 뜻을 가진 신조어도 많이 있다. 특히 인터넷이나 SNS에는 사 람들을 자극하는 여러 가지 불쾌한 신조어가 많이 만들어지고, 사 용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단어에 ‘-충(蟲)’이라는 말을 많이 붙여 사용한 다. ‘-충’은 사람을 설명하는 접미사로 쓰이는데 그 사람을 묘사할 수 있는 단어를 붙여서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설명을 많이 하는 사람은 ‘설명충’이 되고, 학교에서 급식을 먹는 우리 학생들은 어 른들에게 ‘급식충’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불쾌한 신조어를 물어보았는데 ‘-충’이 당당하 게 1위를 차지했다. 왜 멀쩡한 단어에 ‘벌레’라는 의미의 ‘-충’을 붙여 대상에 혐오 를 나타내는 것일까? 이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충’을 붙여서 사 용되는 단어의 예시를 몇 가지 더 들어보기로 하자. ‘맘충’은 자기 의 아이만 아는 몰지각한 엄마들을 말하고 ‘일베충’은 극단적인 성 격을 가진 인터넷 사이트 ‘일간 베스트’의 회원들을 말한다. ‘한남 충’은 여자를 혐오하는 한국 남자로 처음에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 단어들은 점점 사용이 확대되었고 일부 사람들은 엄마들을 모두 ‘맘충’으로, 조금만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일베충’으로 모든 한국 남자를 ‘한남충’으로 부르기도 한다. 사회에 대한 불만, 학업의 불만, 나라에 관한 불만 등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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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좋은 눈으로 보지 않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다보니 우리가 사용 하는 말에 ‘-충’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게 되고 이런 말들을 사용하 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요즘 사람들은 불 편, 불만, 고민이 많다. 텔레비전만 틀면 나오는 나라에 대한 불편 한 생각, 공부를 해도 직장을 잡을 수 없는 고민, 직장에 다녀도 계속 되는 스트레스, 공부를 하는 나는 공부를 해도 점수가 잘 안 와서 불만 등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충’이라는 단어를 만 들어 낸 것 같다. 내가 불만이 많으니 내 불만을 어떻게든 표출해 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다른 사람을 깎아 내리는 용어를 만든 것 이다. 말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행동을 지배한다. 나쁜 생각은 자 기를 더욱 괴롭히고 힘들게 만들기 때문에 좋은 생각을 가지는 것 이 나도 좋고, 너도 좋고, 모두에게 좋은 일인 것 같다. ‘-충’이라 는 단어를 사용해 다른 사람을 나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단어를 사용할 때에 우리의 삶이 더욱 긍정적으로 변화될 것이라 믿는다. ‘-충’이라는 단어가 하루 빨리 우리의 삶 속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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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내가 하는 말, 나 자신을 만든다 Grade 9 이승원 Justine Lee ‘혐오’란, 싫어하고 미워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하 지만 우리 생활 속에서 사용되는 ‘혐오’라는 말을 생각해 보면 단 순히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혐오’는 원어 적으로 ‘역겹고 구역질 날 정도로 미워하다’라는 뜻을 가진다고 하 는데 요즘 세상을 보면 사람들이 서로를 혐오하는 것을 자연스럽 게 받아들이며 사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대상에 대한 혐오스러움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학생 들은 서로에게 패드립('패륜적 드립'의 줄임말로 부모님이나 조상 과 같은 윗사람을 욕하거나 개그 소재로 삼아 놀릴 때 쓰는 말이 다.)을 사용하여 서로를 조롱하고 단어에 ‘-충’을 붙여서 사람을 비하하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런 말을 보통 인터넷에서 배우고 사용한다. 페이스 북이나 유튜브에서 영상을 보고, 글을 읽으면서 이러한 부정적이 고 혐오의 요소가 가득 담긴 신조어를 배운다. 사람들은 이런 말 이 나쁘다는 것을 알지만 사용을 멈추지 않는다. 왜냐하면 극단적 이고 자극적인 말을 해야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기 때 문이다. 즉, 실제로 그렇게 싫어하는 대상이 아니지만 관심을 위 해, 더 큰 자극을 위해 그 대상을 향해 혐오스러운 말을 사용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이런 나쁜 말을 왜 사용하냐고 물어보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말을 한다. 내가 써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나 올 만큼 나쁜 말을 많이 쓰는 것이다. 머릿속으로는 이런 습관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말버릇이라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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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데 그렇게 노력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 사회는 실제로 서로를 싫어하는 것일까? 아니면 말로만 서 로를 싫어하는 것일까? 사실 나는 어느 쪽이든 그것이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싫어하든, 말로만 싫어하는 것 이든 우리가 말의 사용을 다듬고 혐오가 담긴 말, 지나치게 자극 적인 말의 사용을 삼간다면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극혐문화는 점차 옅어져 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을 하기 전에 생각을 먼저 해야 한다. 그렇게 정제된 생각을 통해 예쁜 말을 사용해야 한다.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계속 연습을 하고 습관을 들이면 어느새 혐오보다는 ‘같이’와 ‘나눔’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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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보기 좋은 떡이 과연 먹기도 좋을까 Grade 9 김윤지 Ella Kim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는 한국 속담이 있다. 겉모습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속담이다. 이렇게 겉모습을 중요하다고 생각하 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겉모습을 여러 가치 중에 가장 중 요한 가치로 보는 사고방식을 ‘외모지상주의’라고 한다. 한국은 세 계에서 ‘외모지상주의’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 사회로 유명하다. 그 만큼 많은 한국인들은 살아가는 데 있어 외모를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로 본다. 왜 한국은 유독 외모를 중시하는 걸까? 한국 사 회가 다른 나라에 비해 특히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가 된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을까? 인터넷과 텔레비전 등 여러 가지 매체에서 한국 사회가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웹툰, 티비 방송, 광고 등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드러나는 자료는 수도 없이 많다. 인기 웹툰 ‘외모지상주의’나 ‘내 ID는 강남미인’에는 한국인들의 외모에 집착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드라마 의 주인공들은 예쁘고 잘 생긴 사람뿐이고 연기자, 아이돌 가수들 중에는 성형 수술을 한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왜 사람들은 예쁘고 잘생긴 연예인들을 좋아할까? 평범하게 생 긴 우리는 왜 얼굴에 손을 대고 싶어 할까? 이 모두 ‘외모지상주 의’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지 못하고 힘들어한다. 미디어에서 나오는 끊임없는 ‘외모지상주의’ 메시지로 인해 지친 사람들의 마음은 일상생활에서 실질적인 차별 을 경험하며 황폐해진다. 아르바이트나 취직에 있어서도 외모가 큰 요인을 작용한다.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모로 인해 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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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을 받았다는 에피소드는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외모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외모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과 외모를 성격과 능력 앞에 두는 것에는 분 명한 차이가 있다. 외모에 대한 관심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있다. 하지만 외모에 대한 관심은 취미에 대한 관심, 미래에 대한 관심 처럼 여러 관심사 중 하나일 뿐이다. 한국에서는 외모에 대한 관 심이 지나쳐 청소년기 성형도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 초등학교에 서도 화장을 하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심각한 외모지상주의는 외모에 대한 차별로 이어진다. 예쁜 것이 좋은 것이다. 한국 사회는 미(美)가 곧 선(善)이고 경쟁 력이 되는 사회인 것이다. 다른 사회에서는 외모에 대한 차별을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바꿔야 할 것이라고 인식하지만 한국에 서는 그것을 당연한 일로 보는 시선이 흔하다. 외모지상주의에 눌 린 사람들은 자신감을 잃게 되고 더 나은 외모에 집착하게 된다. 내가 느끼는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청소년들이 느끼는 좌절감이 다. 이제 성장하고 있는 우리들이 더 예쁜, 잘생긴 외모에 집착을 하며 화장과 성형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면 우리 사회는 더욱더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어른들과 미디어가 외모를 중시하면 중시할수록 청소년들에게도 그런 생각이 그대로 전해질 수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가 이러한 현실에 대해 지적하고, 개선을 독려하여 사람을 겉만 보고 결정하 는 생각의 고리를 끊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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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숟가락들이 사는 나라 Grade 9 하대호 Dae Ho Ha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에는 우리의 삶이 담겨 있다. ‘인간이 자 원이다’, ‘품절남과 품절녀’, ‘비싼 몸값’, ‘금수저’ 등의 말은 모든 것을 물질적으로 파악하고 경제적 논리로 보는 우리의 가치관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이 중에서도 최근 대한민국을 강타한 단어는 ‘금수저’인 것 같 다. ‘금수저’라는 단어는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의 차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람들은 재벌 2세 등과 같이 노력을 안 하 지 않아도 부모로부터 많은 돈을 물려받아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을 ‘금수저’라고 부르며 돈과 인맥을 과시하는 것을 비판하 고 스스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금수저’는 부모의 재력과 능력으로 인해 아무런 노력과 고생을 하지 않음에도 풍족함을 즐길 수 있는 자녀들을 지칭한다. '금수저 '에도 계급이 있는데 대기업 임원(CEO)급 집안의 자식들을 '금수 저'로 부르고, 부동산 불로소득만으로 부유하게 사는 집이나 일반 적인 중견 기업 사장 자식들을 ‘은수저’로 부른다. 하지만 이들을 통칭하여 ‘금수저’로 부르기도 한다. 김의환(가명·28)씨는 삼 년째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벌써 두 번이나 낙방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김 씨는 '금수저'이기 때문이다. 김 씨의 아버지는 한 중소기업 대표이자 또 다른 기업의 고문이다. 김 씨 집안의 연소득은 20억 원이 넘는 다. 김 씨를 비롯한 김 씨의 삼남매 모두 돈 걱정은 해본 적이 없 다. 각각 본인 명의 주식도 10억 원씩 보유하고 있다. 보통 사람 들이 행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 공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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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중해야 하는데, 그에 따른 기회비용은 만만치 않다. 숙식을 비롯 해 학원비 등 한 달에도 백만 원 이상이 필요하다. 이러한 기회비 용을 투자하며 준비하는 시험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합격을 위해 죽기 살기로 노력을 한다. 하지만 김 씨는 아버지 재산만 믿고 시 간을 투자해 공부에 열중하지 않는다. 또한 김 씨는 돈 걱정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과연 김 씨의 미래는 행정고시 합격일까? 아버지의 인맥을 이용한 회사 취업일까? ‘금수저’라는 말이 쓰이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다. 앞 에서도 설명했듯이 지금 사회에서는 ‘금수저’뿐만 아니라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심지어 ‘다이아몬드 수저’까지 생기고 있다. 이 러한 단어는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기도 한다. 사회적 지위는 옛날 조선시대 이전의 역사에서만 보던 것인 줄 알았는데 지금도 여전 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은 동일한 인 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지위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있 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그 어떤 것보다도 ‘돈’에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부 자들을 보면 상대적 박탈감을 더 쉽게 느낀다. 물론 일부 ‘금수저’ 들이 행하는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태도는 근절되어야 할 것이지만, 우리의 관심을 돌리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세상에는 ‘돈’말고도 가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돈’보다 ‘경험’, ‘가족’, ‘사랑’, ‘사람’ 등에 대한 가치가 높아질 때 우리는 더 행복한 삶 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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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김영란법에 대한 소고 Grade 9 이진균 Jin Lee 현대 사회에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공무 원, 언론인, 교사 등이 이런 사람들이다. 공무원은 한 나라가 돌아 가기 위해 꼭 필요한 존재이다. 경찰관, 소방관, 주민센터, 구청 또는 시청 등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 등이 모두다 공무원이 다. 또한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세상의 사건들을 알려주는 언론인 도 매우 중요하다. 그들의 말과 글로 인해 사람들은 잘못된 정보 를 중요한 정보로 오인하기도 하고, 필요한 정보를 유용하게 사용 하기도 한다. 교사 역시 자라나는 다음 세대들을 교육하는 데 없 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를 위해 일하는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도 부정 부패는 있다. 영화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돈을 받고 거래하는 장면 들이 종종 보인다. 하지만 만약에 이것이 실제, 우리가 사는 사회 에서 일어나고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믿기는 힘들지만 이런 일들이 영화에서만 보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뉴스를 틀면 사람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보도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쇼핑백에 돈을, 여행가방에 수표를, 이런 여러 가지 방법 을 사용해 돈이 오고 가는 장면은 생각보다 자주 나온다. 부정부패란, 사회 구성원이 권한과 영향력을 부당하게 사용하여 사회 질서에 반하는 사적 이익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사람 들이 우리 사회에 많아지면 이 사회는 여러 사람들에게 공정하지 못한 사회가 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을 막으려고 생긴 법이 바로 김영란 법, 즉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다. 사람들은 이 법에 대한 의문이 많을 것이다. 과연 이것이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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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좋은 법인지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이 법을 쉽게 요약하면 ‘3만원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법에 적용되는 공직자,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과 이들의 배우자에게 경조사비는 10만 원 이하, 선물은 5만 원 이하, 1인당 식사비는 3만 원 이하로 제공해야 하 는 법이다. 하지만 이 경우 역시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을 때만 해당이 된다. 직무 관련성이 있다면 모든 것이 금지된다. 예 를 들어서 학교 선생님에게는 학부모나 학생이 커피 한 잔을 대접 할 수도 없다. 정치도 마찬가지지만 사실 법이라는 것이 실제로 시행해 보지 않고 외부에서 말하기는 애매하다. 앞으로 이 법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지켜봐야 판단할 수 있는 문제인 것 같다. 이 법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이 법에 찬성하는 사람 들도 있을 것이다. 이 법이 마법처럼 부정부패를 완전히 막을 수 는 없겠지만 그래도 상당 부분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기에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리가 앞으로 지켜봐야 할 문제인 것이다. 이 법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 또, 우 리에게, 그리고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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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악플의 문제점과 그에 담긴 세태 Grade 9 강재원 Jenny Kang ‘악플’이란, 인터넷 상에서 상대방이 올린 글에 대한 비방이나 험담을 하는 악의적인 댓글을 말한다. 인터넷은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편리한 공간이고 더 좋은 의견을 위해 다른 사람의 의견 을 비판 하는 것도 필요할 수는 있다. 하지만 상대방의 의견을 제 대로 들으려는 생각 없이 일방적으로 상처 주는 말을 퍼붓는 악플 은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보여준다. 악플을 통해 사실이 아 닌 내용이 무차별적으로 널리 퍼져 나가기도 하고, 특정인에 대한 악의적인 비난이 집단적으로 쏟아져 그 사람을 매장시키거나 자살 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악플러는 익명 또는 가명 을 사용하여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숨어서 무책임한 공격을 한다 는 것이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반대하고 자기 이야 기를 듣게 하기 위해서 없는 말을 만들거나 터무니없이 과장된 말 을 퍼뜨리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이렇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말이나 과장된 말을 쉽게 사실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해서 괴담이 생기고 사실과 거짓의 구별은 점점 더 어려워 진다. 집단이 특정 인물을 비난할 때 비난하는 사람들은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인터넷에서 특정 인물에 대한 비판의 글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그 글에 동참하면서 상처를 주는 말을 인터넷에 올릴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공격을 받은 피해자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절망에 빠지거나 심지어 자살을 시도 할 수도 있다. 집단적인 악 플에 시달린 연예인이 자살을 한 사건은 그것의 심각성을 보여 준 다. 연예인뿐만이 아니라 인터넷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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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인터넷의 익명성이다. 실명을 사용 한다면 그렇게 거칠고 무책임한 말을 함부로 쓰지 못 할 것이다. 말하자면 숨어서 돌을 던지는 것이고, 그것은 비겁한 일이다. 떳떳 하게 자기 이름을 밝히며 의견을 낸다면 그것은 건전한 비판이 될 수 있다. 악플은 괴담을 많이 만들어 사실과 거짓이 구별되지 않게 한다. 이것은 어느 것이 진실인지 확인하기 어려운 사회의 어두운 일면 을 드러낸다. 피해자를 자살까지 이르게 하는 집단적 악플은 또 다른 집단 따돌림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낳는다. 자신의 정체를 숨 긴 채 쏟아 붓는 무책임한 악플은 정직하지 못한 비겁한 오늘날 세태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악플이 가지고 오는 여러 가지 부정적 문제점에 대해 알아 보았다. 악플의 심각성이 눈에 보이지 않는가? 이 글을 보는 당신! 오늘부터 인터넷에 댓글을 남기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자신의 글이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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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말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Grade 9 배지원 Jiwon Bae 말의 힘은 대단하다. 한 사람의 말이 다른 사람에게는 보석 같 은 말이 될 수도 있고, 친구 사이를 끊을 수도 있다. 우리는 매일 대화를 나누면서 살아간다. 이 대화에는 우리의 성격과 기분, 가치 관까지 담겨있다. 한 사람의 첫 말투가 그 사람의 첫 인상이 되기 도 한다. 사람들은 이따금 생각보다 말이 먼저 나올 때가 있다. 그래서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이럴 때 오해가 생기기 도 한다. 이렇게 말은 우리에게 작은 오해가 생기게 할 수도 있지 만,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나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다. 나는 지금 9학년을 앞둔 학생이다. 내 친구들과 나는 이제 좋아 하는 걸 찾고 꿈을 찾는 일을 시작해야 할 나이이다. 이럴 때 가 장 필요한 일은 공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을 찾고 그것을 발전시키는 노력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런 것을 할 시간은 없다. 부모님들은 이런 것을 할 시간에 공부를 하라고 하신다. 하지만 그런 시간 없이 하루아침에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찾기는 어렵다. 혹시 칭찬을 받아본 적 있는가? “너 이런 것에 소질이 있구나.” “정말 잘한다.” 이런 식의 칭찬을 받을 때 우리는 그 과목, 또는 그 특기를 더 소중히 하고 잘 가꿀 수 있다. 작년 여름 기말고사 1주일 전이였다. 나는 과학이라는 과목이 정말 좋았다. 하지만 처음에는 과학이 다른 애들보다 많이 뒤쳐져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내가 잘 못할 때마다 말씀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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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잘하고 있어. 열심히 연습하고 수업 잘 들으면 잘 할 거야. 기죽지 마.” 이 한 마디가 나에게 정말 큰 힘이 되었다. 선생님께서 옆에서 칭찬과 격려를 해주셔서 나는 더 열심히 공부를 한 것 같다. 물론 기말고사 성적도 잘 나왔다. 이렇게 우리가 좋아하는 과목이나 특 기 등을 찾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칭찬과 격려가 필요하기도 하다. 말이 언제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대화 를 하면서 오해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말이 오고 가면서 우리 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갈 때도 있다. 며칠 전 아주 작은 오해로 친구와 싸우게 되었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니지만 내 작은 말 한 마디가 다른 친구에게는 큰 상처였던 것이다. 그날 체육시간에는 구기대회로 전 학년이 피구시합을 했 다. 체육 수업이 끝나고 복도를 지나가는데 우리 반 앞에 서있던 친구가 나에게 “너희 반 오늘 경기 너무 잘하더라.” 라고 말했다. 그 친구의 억양이 살짝 장난치는 말투로 들려서 나 도 살짝 장난을 쳤다. 장난기가 섞인 말투로 “너도 너무 잘하더라.” 라고 말했다. 다음 날 갑자기 그 친구가 나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 거 아닐 거라고 생각해서 나도 같이 무시를 했다. 그 날 저녁 그 친구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나는 “나 왜 무시하는 거야? 내가 뭘 잘못했어?” 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나는 네가 저번에 나한테 했던 말이 너무 상처였어.” 라고 친구가 말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오해를 풀고 다시 화해를 했지만 그 사건의 여운을 길게 남았다. 나는 전혀 그런 의도 없이 말한 것이었는데 듣는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매일 일상 속에서 나누는 대화는 이렇게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 향을 줄 수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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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는 다른 사람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대화를 더욱 신중히 해야 한다. 장난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다 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는 말은 하면 안 된다. 이렇게 말의 힘은 강력하다.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지킬 때 말로 인한 상처는 줄어 들고, 말로 인한 격려의 힘은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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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입으로 전하는 폭력, 귀로 듣는 상처 Grade 9 윤병우 Philip Yoon 말이란 우리가 쓰는 단어들입니다. 우리가 쓰는 단어들은 그 쓰 임에 따라 긍정적인 효과를 내기도 하고, 부정적인 효과를 내기도 합니다. 저희 부모님은 항상 저에게 말은 강력한 것이라고 하십니 다. 몸은 다쳐도 치유될 수 있지만, 부정적인 말은 듣는 사람에게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실 수로라도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 말로 인해 부정적인 경험을 해 보았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키 번호가 1번이였습니다. 그 당시 제 키 는 아주 작았고, 그로 인한 놀림도 많이 당했습니다. 심지어 저보 다 어린 애들한테도 놀림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때 들은 말들 때 문에 너무나 화났고, 너무나 슬펐습니다. 저는 복수를 하고 싶었지 만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알았기에, 복수를 하지 않는 현명한 선 택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렇게 놀림 받은 것은 5학년 때까지 입니다. 제가 APIS로 전학을 오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 고 덕분에 더 이상 그런 놀림을 받지 않게 되었는데, 그 점이 저 는 참 감사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놀림을 받은 후 깨달은 것은 말 은 깊은 상처를 남긴다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키 때문에 당 한 놀림 때문에, 키에 대한 말에 예민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7학 년 때까지 키에 대한 농담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머릿속으로 심한 짜증을 내곤 했습니다. 말은 실수라도 잘못하면 오해가 일어나서 싸움도 일어날 수 있 고 친구도 없어질 수 있습니다. 7학년 때 저는 아주 힘들었습니 다. 그때 제 친구들과 저는 서로 오해를 많이 했습니다. 저는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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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들에게 진심이 담긴 칭찬도 많이 했고, 더 좋은 친구가 되기 위 해 농담도 하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오해가 생겨서 싸움이 일어났 습니다. 제 생각엔 제 친구들이 제가 말한 것들을 칭찬으로 받아 들이지 않고 놀린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렇게 생각하는 것도 오해일 수도 있죠. 저는 친구들과 좋은 우정 을 맺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실수로 잘못 말한 것으로 싸우기도 했고, 농담 때문에 싸운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것이 너무 짜증나서 혼자 몇 주 동안 도서관에서 있기도 했습니다. 물론 말 을 조심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듣는 사람도 조심해서 들어야 합니 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라고. 제 생각엔 그 말이 정말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보고 싶은 것만 보이듯이 듣고 싶은 것만 들리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말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욕을 안 하고, 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고운 말을 하면, 다른 사람이 볼 때 그 사 람은 고운 사람이 되는 것이고, 악한 말과 욕을 하면 그 사람이 악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말의 힘은 엄청난 것입니다. 말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 지도 알 수 있고, 희망도 줄 수 있고, 그리고 깊은 마음의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말은 우리가 가진 최고의 무기이기도 하고, 최악 의 무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생각을 한다 면, 또 우리가 생각부터 고운 생각만을 한다면, 말로 인한 상처들 은 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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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어떤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Grade 9 황수윤 Sooyoon Hwang 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전달한다. 질문과 대답, 설명과 그에 따른 이해, 감정의 전달 등이 그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우 리는 많은 것을 하지 못할 것이다.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사 회 생활, 공동체 내에서의 의견 나누기, 연설, 캠페인 등을 하지 못 한다는 것을 뜻하고, 그로 인해 오해가 쌓이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누군가의 정성이 들어간 한 마디는 누군가에게 행복일 것이고, 무심코 던진 한 마디는 상처가 될 수 있다. 이처럼 말은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 다. 인터넷에서 누군가의 연설이나 주장을 듣고 사람들은 다르게 이 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토크쇼에서 농담을 했는데 누군가는 웃기다고 생각할 수 있고, 다른 누군가는 별로 재미없는 썰렁한 농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농담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말의 힘은 엄청난 것이다. 들리는 소리는 같아도 누군가의 머릿속에서는 다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어떤 말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긴다. 모두들 한 번씩은 부모님 께서 꾸중을 하셔서 기분이 상한 적이 있을 것이다. 분명 어머니,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싫어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게 아니고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꾸중이었을 것이지만 우리는 그 말을 듣고 자존심 에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이와는 다르게 누군가는 일부러 상처를 주려고 하는 욕도 있다. 욕은 듣는 사람도 몹시 불쾌해지지만, 말하는 사람한테도 영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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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 EBS에서 학생 몇 명을 모아서 욕을 하는 음성녹음을 들려 주는 테스트를 하였다. 처음 수위가 낮은 욕들이 나왔을 때 학생 들은 웃었지만, 슬슬 수위가 높아졌더니 표정들이 싹 바뀌었다. 또 욕을 많이 하는 학생과 욕을 적게 하는 학생의 신경계 기능을 비 교했는데, 욕을 많이 쓰는 학생들의 신경계 기능이 욕을 적게 쓰 는 학생의 신경계 기능에 비해 낮게 나왔다. 즉, 욕을 많이 하면 할수록 그 욕이 자연스러워져서 욕에 대한 반응이 무뎌지는 것이 다. 그들은 감정을 더 무디게 느끼고 자극적인 것에 대한 반응 속 도도 낮다. 욕은 우리의 뇌를 망가뜨릴 수 있는 일이고 그렇기 때 문에 우리가 하고, 듣는 말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 말이 우리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누군 가의 칭찬은 그 말을 들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하루 종일 긍정적인 태도로 생활할 수 있게 도와준다. 또, 누군가의 위로는 기분을 풀어줄 것이다. 나도 물론 그런 경험이 있다. 축구 경기에 서 실책을 하여 자책을 했을 때 팀원들이 위로를 통해 기분이 많 이 나아졌다. 물론 그중에서도 실망을 하여 몇 마디를 했었던 친 구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연설에서도 말의 중요성과 힘을 볼 수 있다. 미국 역사를 살펴 보면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링컨, 존 F. 케네디 등의 연설이 수많 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처 럼 좋은 연설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고, 생각 방식을 바 꿀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한 가지 사실을 확실하게 알려준다. 말은 힘이 있고, 그 힘을 어떻게 쓰느냐에 대한 판단은 사람들에게 쥐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말에 대한 조심성을 길러야 한다고 계속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내가 무심코 한 말이 누군가에 게는 큰 상처를 안겨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큰 깨달음을 준 명언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치려 한다. ‘Words can inspire and destroy. Choose yours well.(말은 누군가를 감명시킬 수 있고, 파괴시킬 수도 있다. 잘 고르기를 바 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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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미국과 캐나다 Grade 9 장재원 Justin Jang 한국과 캐나다의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사용하는 언어의 차 이도 크지만, 저는 무엇보다 자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캐나다에서 사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친구들, 사람과 자연입니다. 한국은 공기에 습기가 많고 맑지 않아서 답답한 느낌이 듭니다. 캐나다는 공 기가 맑고, 시원하고 숨쉬기가 편합니다. 캐나다에 있을 때는 마음이 편하고 좋습니다. 이것은 나라의 크기의 차이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캐나다 는 나라가 넓기 때문에 갈 데가 많습니다. 조금만 운전해도 시애틀에 갈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에 가는 데 걸리는 시간과 시애틀에 가는 시간은 비슷합니다. 한국은 캐나다보다 살기에 더 편리한 곳입니다. 한국에는 다양한 실력을 키워줄 수 있는 학원이 많이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도 많고 대부분의 음식이 입맛에 맞습니다. 한국은 모든 게 얻기 더 쉽고, 싸 기 때문에 생활하는 데 훨씬 더 편리합니다. 예를 들면 택배로 물건 을 부치면 한국은 늦게 와도 일주일 안에 옵니다. 그런데 캐나다는 가장 일찍 와도 한 달 반은 걸립니다. 한국은 이렇게 경제 시설이 훨 씬 더 잘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은 비록 나라가 좁지만 놀러 다닐 데가 많이 있습니다. 한국은 휴게소 같은 곳과 놀러 갈 수 있는 곳도 멋지게 꾸며 놓았습니다. 한국에서 사는 것과 캐나다에서 사는 것, 둘 모두 장단점이 있습니 다. 저는 한국에서 사는 현재에 감사하고 있지만 가끔은 캐나다처럼 조용하고 자연을 구경할 수 있는 여행이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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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5 Guys Grade 9 오예준 Daniel Oh 미국에는 햄버거 집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 는 햄버거 집은 ‘5 Guys’입니다. 처음 햄버거 집에 들어갈 때의 느낌 이 좋습니다. 다섯 명이 일하는 이 곳은 마치 식당이 아닌 것처럼 보 입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재미있게 손님을 반겨주기 때문입니다. 햄버거도 한국의 햄버거와는 조금 다릅니다. 크기도 크고 건강에 안 좋은 느낌도 많이 듭니다. 크기가 커서 깔끔하지 않고 편하게 먹 을 수 없습니다. 저는 햄버거 집에 가족과 같이 오고, 친구들과도 같 이 옵니다. 햄버거가 나오는 동안 땅콩을 먹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친구들이나 식구들과 이야기하면서 땅콩을 먹어요. 게임 이야 기, 학교 이야기, 교회 얘기와 친구 이야기를 하며 햄버거를 만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문한 것이 모두 만들어지면 직원이 한 명 나와서 큰 목소리로 우 리 번호를 외칩니다. 햄버거를 받아오면서 케첩을 챙기고, 음료수도 골라서 따라 옵니다. 종이봉투를 막 열었을 때의 냄새가 정말 좋습니 다. 식당 냄새보다도 종이봉투에서 나오는 햄버거 냄새가 정말 강해 서 배고프지 않아도 냄새를 맡으면 배가 고파집니다. 자기 햄버거를 받아 온 다음에 은박지를 풀어봅니다. 입보다 커다란 햄버거입니다. 햄버거 안에는 큰 패티가 두 개 있고, 그 사이에 치즈, 토마토, 구운 버섯과 양파, 피클, 상추, 베이컨, 케첩과 마요네즈가 있습니다. 입을 크게 벌리고 한 입 크게 베어 먹습니다. 입가에 기름이 흘러 내리는 중에 친구들과 이야기합니다. 감자튀김도 굉장합니다. 햄버거 를 다 먹은 다음에 감자튀김을 나눕니다. 작은 크기의 감자튀김을 시 켜도 굉장히 많이 줍니다. 저는 ‘Guy 5’ 덕분에 친구들과 더 친해졌습니다. 가끔 그 곳이 그 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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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우아한 거짓말’을 읽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자살 하지 말고 삶을 끝까지 살아라 Grade 9 이채윤 Lucy Lee 자살? 요즘 많은 학생들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학 생들은 학교 공부 때문에 자살하는 사건이 있고, 또 다른 학생들 은 학교폭력, 또는 ‘왕따'에 시달리고 있어 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 다. 실제로 뉴스에도 자주 나오는 기사가 바로 학교폭력 당하던 피해학생의 자살이다. 영화로도 나온 김려령 작가의 소설 ‘우아한 거짓말’을 보면 주 인공 천지가 어느 날 갑자기 자살을 한다. 천지의 엄마와 언니는 어느 순간 자살해 버린 천지가 이해가 안 갔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느 날 우연히 언니 만지는 동생 천지의 친구들을 만나 게 된다. 그리고 천지의 죽음과 관련된, 가족 중 아무도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고, 천지와 절친이었던 화연이 관련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천지와 만지의 엄마가 우연히 빨간색 털실을 찾게 된다. 그때부터 언니 만지는 동생의 유서를 찾기 시작한다. 만약에 동생, 또는 딸이 자살로 죽었다면 나는 슬퍼서 제대로 살 지도 못 할 것 같다. 하지만 동생을 그리워하는 만지의 모습이 너 무 감동적이었다. 나는 화연이가 절친이었던 천지를 왜 왕따를 시켰는지 이해가 안 갔다. 나라면 아무리 친구와 크게 싸웠어도 일부러 괴롭히거나 왕따를 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화연이는 천지를 왕따 시킬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화연이는 친구였던 천지를 왕따 시킴으로써 다른 친구들을 사귀고 천지를 이상한 아이로 몰아갔다. 또, 화연이는 천 지에 대한 있지도 않은 이상한 소문도 내고 다녔다. 예를 들면, 화연이의 생일파티 때 다른 아이들은 다 2시에 오게 하고 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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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에 오게 했다. 그리고 화연은 천지의 아빠가 자살로 돌아가셨 다고 아이들한테 얘기했다. 하지만 사실은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화연이 그렇게 얘기하고 다니니 모든 아이들은 천지의 아빠가 자 살로 돌아가신 줄 알았었다. 나는 화연이가 왜 그렇게 행동한 건 지 전혀 이해가 안 간다. 마지막에 만지가 지하철을 타고 화연이와 집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 꿨던 꿈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만지가 꾼 꿈은 바로 천지가 자살하려고 하는 순간 엄마와 만지가 집안을 들어와 천지를 말리 고 가족의 품에 따뜻하게 안기는 꿈이었다. 이 장면은 만지가 동 생 천지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었던 장면이 어서 굉장히 인상 깊고 감동 받았었다.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책의 주제는 무슨 일이 있어 도 삶을 끝까지 살라는 것 같다. 어느 순간 자살해 버린 동생, 또 는 사랑하는 딸을 다신 볼 수 없는 곳으로 보내고 마음고생이 많 았을 것이다. 중간 중간에 천지의 엄마가 천지 학교를 가보면서 천지 또래 아이들을 보며 천지처럼 되지 말라는 말을 하고, 또 화 연이가 학교에서 힘들어할 때 만지는 화연에게 천지처럼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지켜주겠다는 말을 했다. ‘우아한 거짓말’은 아무리 힘들어도 삶을 끝까지 살고, 항상 곁에는 따듯한 가족의 품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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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꼴찌들이 떴다’를 읽고

꼴찌들의 인생 Grade 9 최현욱 Matthew Choi ‘꼴찌들이 떴다’는 실업계 고등학교 3학년 어느 반에 있는 꼴찌 들의 이야기이다. 재웅, 기준, 호철, 성민이는 늘 학교를 떠나고 싶어 한다. 어느 날 원주에 있는 한 기업에서 실습을 할 기회가 생긴 그들은 자세한 설명도 듣지 못하고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그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결국 이들은 원주에서 진행되는 송전탑 설치 작업에 동원이 되는데 이로 인해 그들의 인생을 매우 복잡해진다. 처음에 이 책은 매우 암울하고 매우 험한 책이라고 생각 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 험한 책인지 재미있는 책인지 말하기가 애 매해졌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주인공들은 삼겹살을 먹으며 행복한 식사 시간을 보내는데 바로 그 다음 날, 이들은 회사에서 욕설을 듣고 험한 일을 당하고 분위기가 계속 바뀐다. 이 책에는 욕이 많이 나온다. 처음에는 그것에 조금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욕들은 그 욕을 배우라고 있 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들의 암울함을 글로 표현하기 위해서 있는 거라는 걸 깨달았다. 중간 중간에 나오는 책의 내용은 삶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준 다. 마을 사람들이 공사를 반대하며 데모하는 광경을 본 아이들은 처음에는 그들을 무시하지만, 나중에는 마을 사람과 같이 공사를 반대하게 된다. 왜냐하면 공사가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 고, 공사 진행이 불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공사를 진행하려는 공사 책임자들 에게 반발하여 아이들은 회장님에게 가서 모든 사실을 밝힌다.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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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님은 아이들의 말을 듣고 사태를 바로잡으려고 관련자들을 처벌 하지만 책임자 중 한 명인 양 대리는 회장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처벌받지 않는다. 공사는 해결이 되었지만 뭔가 찝찝함으로 남는 부분이다.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내용들도 매우 암울하고 어둡 다. 작업인 중 한 명인 염 씨는 불만을 토로했다는 이유로 책임자 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아이들이 다달이 받아야 하는 월급을 받지 못하기도 한다. 회사에서 나온 월급을 공사 책임자들은 아이들에 게 주지 않고 자기 통장에 넣어서 아이들의 불만은 더 심해진다. 거기다가 아이들이 더덕 도둑으로 몰리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어 려운 사건들을 겪게 된다. 하지만 그 사이에 꼴찌들은 마을에 있는 고등학교 여학생과 친 구가 되기도 하고, 마을 근처에 살고 있는 스님 육범 대사와 알게 되어 자기 자신에 대해 여러 이야기도 나누게 된다. 이 책은 매우 재밌지만 중간 중간에 아이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면서 조금 암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결국 공사 현장이 잘 정리되고, 꼴찌들도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는 과정을 잘 보여 준 것 같다. 나는 이 책에 별 열 개중의 여덟 개를 줄 것 같다. 왜냐하면 매우 표현을 잘 되어 있었고, 이야기 전개가 이해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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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이용해 소설 쓰기>

배추와 재석이 Grade 9 김건 Denny Kim

배추의 마음 나희덕 배추에게도 마음이 있나보다 씨앗뿌리고 농약 없이 키우려니 하도 자라지 않아 가을이 되어도 헛일일 것 같더니 여름내 밭둑 지나며 잊지 않았던 말 ㅡ나는 너희로 하여 기쁠 것 같아 ㅡ 잘 자라 기쁠 것 같아 늦가을 배추포기 묶어 주며 보니 그래도 튼실하게 자라 속이 꽤 찼다 ㅡ혹시 배추벌레 한마리 이 속에 갇혀 나오지 못하면 어떡하지? 꼭 동여매지도 못하는 사람 마음이나 배추벌레에게 반 넘어 먹히고도 속은 점점 순결한 잎으로 차오르는 배추의 마음이 뭐가 다를까? 배추 풀물이 사람 소매에도 들었나 보다.

그날도 재석이는 학교에서 혼나고 있었다. 학교가 끝난 후 재석 이는 다른 날과 다름없이 산에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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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석이는 자기에게 공부보다는 산이 더 맞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이였다. 학교에서는 늘 선생님께 시험을 잘 못 봤다고 혼나고, 숙제 제대로 안한다고 혼났다. 재석이는 그럴 때마다 산에 가서 뛰어 놀고 싶었다. 하지만 재석이가 산을 가는 또다른 이유가 있 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재석이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산에 많이 왔었다. 그래서 그런지 재석이는 산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재석이는 맨날 산에 올 라가 엄마, 아빠를 생각하면서 뛰어 놀았다. 재석이의 성적은 날이 갈수록 떨어져만 갔고, 공부는 해도 해도 늘지 않는 것 같았다. 재석이는 학교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학교 에 등교하는 마지막 날, 방과 후 집에 돌아오며 재석이는 자기가 뭘 해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고작 고등학교 1학년 인 청소년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고1은 회사에도 못 들어가고 어른들이 하는 힘든 일도 못한다. 고민을 하던 재석이의 눈에 배추밭이 보였다. 재석이는 배추 농사를 짓기로 결정했다. 비 록, 공부는 못하지만 농사는 잘 지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재석이는 자기가 할 것이 생겨서 신이 났다. 재석이는 집으로 뛰 어 들어가 앞으로 농사를 어떻게 지을 지 생각을 했다. 재석이는 배추 농사를 시작했다. 배추 농사를 위해 배추씨와 땅 을 얻었다. 그리고는 배추에 농약을 뿌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초여 름 재석이는 밭에 씨를 심고, 물을 주면서 배추에 대해 하루 종일 생각했다. 하지만 배추 농사는 재석이의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재석이는 배추 농사가 왜 잘되지 않는지 알아내기 위해 배추들 을 하나하나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배추들을 살피던 중, 배추벌레 가 배추를 갉아 먹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배추 속 벌레들은 배추밭 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재석이는 배추를 죽이기 싫었다. 배추벌 레도 죽이기 싫었다. 왜냐하면 배추벌레도 생명이었기 때문이다. 배추벌레를 죽이기 싫어 농약도 못 뿌리고 있었다. 배추 농사를 이어나가기 위해 재석이는 곰곰이 생각했다. 다음 날, 재석이는 배추밭에 가서 배추들을 뽑기 시작했다.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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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는 배추의 반을 배추벌레에게 주고, 반은 자기가 팔기로 결정 했다. ‘배추벌레가 반을 먹을 정도로 맛있는 배추’라는 광고 문구 로 광고를 하자 재석이의 배추는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고 재석 이는 배추 농사를 지으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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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진정한 행복 Grade 9 이관미 Li Guan-mei Timp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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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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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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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duction>

Bonjour! Grade 10 빅토리아 Victoria, Tornare Bonjour! Je m’appelle Victoria et je suis arrivée cette année à APIS. Je viens de Suisse et je parle français. Je n’ai pas de frères et soeurs mais je suis venue en Corée du Sud avec ma meilleure amie. Elle s’appelle Charlotte et vient aussi de Suisse, mais elle a déjà vécu deux ans en Corée du Sud avant cette année là. En dehors de l’école, je fais de la natation, je rencontre mes amis et je passe comme tout adolescent, beaucoup de temps sur internet. En Suisse j’ai un chat et elle est trop mignonne. J’aime jouer avec elle, parce qu’elle adore ça et ça me permet

de

faire une pause avant de continuer mes

devoirs. Elle me manque et chaque fois que je vois un autre chat dans la rue, je pense à elle. Mes amis et ma famille me manque aussi, parce que je suis venue en Corée du Sud avec la famille de Charlotte. J’ai commencé les cours de coréen cette année, donc je ne sais que lire et conjuguer les phrases au présent. Je suis très satisfaite de ces cours qui m’entraîne dans un monde que je ne connais pas. Par rapport aux écoles suisse, APIS a une manière d’enseigner les matières de façon très ludique, ce qui est beaucoup plus amusant. Les professeurs utilise des activités. Avec ces activités, les élèves peuvent réaliser ce que les professeurs disent 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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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a leur permet comprendre les différents cours. A l’école mes matières préférées sont la biologie et les math. Plus tard, j’aimerais beaucoup devenir médecin, plus précisément chirurgien. J’aimerais me dire que je peux sauver des vies et aider les gens. Je crois que j’empatise souvent et que j’ai facilement pitié des gens. Alors, je pense que ça m’aiderait de pouvoir me dire que je peux faire quelque chose pour eux et de les aider. Cette année je veux m’éclater en Corée, parce que cette année ne compte pas dans mon cursus scolaire. Donc quand je rentrerais en Suisse, je devrais encore faire trois ans au collège avant l’université. J’aimerais aussi découvrir un nouveau pays et une nouvelle culture pour

agrandir mes

connaissances

et

développer mon

ouverture d’esprit. Hi! My name is Victoria, I come from Switzerland and I talk french. I arrived this year at APIS. I have no siblings, but I came in South Korea with my best friend. My best friend name is Charlotte, she also came from Switzerland, but she already lived two years in South Korea before this year. Outside of the school, I swim, I meet my friend and I spend a lot of time on internet. In Switzerland, I have a cat and she is too sweet. I like to play with her, because she loves that and I also can make a break before I start my homework. I miss her and when I see another cat in the street, I think at her. My friends and my family also miss me, because I’m in South Korea with Charlotte’s family. I started Korean lesson this year, so I can just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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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make sentence in present tense. I’m really happy with these lesson, because I discover a new language and a new culture. Compared at the Swiss’s school, APIS has a playful

way

to

teach,

that

is

funnier.

Teachers

use

activities or games. With these activities, students can realise what the teachers are explaining and understand the different lesson. At school, my favorites lesson are biology and math. Later, I want to be a doctor, particularly a surgeon. I would like to say to myself that I can save life and help people. I think that I’m empath and I also pity on people easily. So, I believe that if I can help them and do something for them, it will help me. This year, I want to have fun in Korea, because this year doesn’t count in my schooling. So, when I will back in Switzerland I have to make three others years in High School before the college. I also want to discover a new country and a new culture for grow my knowledge and develop my open mind. 안녕하세요, 저는 빅토리아예요. 불어로 말 할 수 있어요. 저는 올해 스위스에서 한국에 오게 되었어요. 저는 형제는 없지만, 아시 아 퍼시픽 국제 외국인 학교로 가장 친한 친구 샤롯데와 함께 전 학 오게 되었어요. 샤롯데는 한국에서 이 년 동안 살았던 경험이 있다고 해요. 학교 밖에서는 저는 수영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인 터넷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요. 스위스에서 저는 귀여운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어요. 숙제를 하 기 전에 고양이와 함께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시간들을 참 좋아했어요. 거리에서 다른 고양이를 볼 때면, 스위스에 있는 제 고양이가 너무나 그리워요. 저는 지금 샤롯데의 가족들과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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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있기 때문에 제 친구들과 가족들은 저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어 요. 올 해 저는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한 문장 겨우 읽고 쓸 수 있지만,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고 한국어 공부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어요. 스위스 학교에 비해서 여 기 APIS는 배우는 것도 가르쳐 주시는 방식도 너무나 재미있어요. 선생님들도 활동과 게임을 많이 활용해 주셔서 학생들이 스스로 깨닫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참 좋아요. 학교에서 저는 생물과 수학 공부를 가장 좋아해요. 저는 나중에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 그들을 도와 줄 수 있는 의사선생님, 특별히 외과 의사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제가 사람들을 도울 수 있고,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저를 돕는 길이라 믿어요. 올 해, 저는 한국에서 재밌고 신나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왜냐 하면 휴학의 기간이라 다시 스위스에 가면, 대학으로 가기 전 삼 년 동안 더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새로운 문화를 배우고, 새로운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저는 올 해 더욱 노력할 생각이에 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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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duction> 일본의 힘, 그리고 미래 Grade 10 사리나 Sarina Suwa 今から約5年前、2011年3月11日午後2時46分、日本に大きな地震 が発生しました。東日本大震災です。マグニチュード9、最大震度 7という異例の大きさの揺れが震源地東北だけではなく、関東、中 部と、大規模な範囲にわたって日本を襲いました。私もその時日本 にいたのでその被害者の一人ですが、あの時の恐怖は今でも忘れら れません。 そしてこの震災で最も人々の命を奪い、生活に大きな影響を与えた のは津波でした。地震に伴って発生した大きな津波は町を襲い、ほ んの一瞬でほとんど跡形もなく町を消し去りました。人々は家や学 校を失い、長い避難生活を余儀なくされました。家だけではなく、 家族や友達を失った方がたも大勢いました。津波の影響で道路が使 えず、食料も不足している状態が続きました。震災から5年経った 今でも、仮設住宅で生活されている方はたくさんいます。 しかし、そんな辛くて苦しい状況の中でも、東北の方達は少しでも 前に進もうと懸命に復興活動をしています。「被災地だから負けた くない」「少しでも早く元の町や生活を取り戻したい」という気持ち が人々を強くしています。少しでもみんなに元気になってもらおう と活動している方々もたくさんいます。 私は実際に津波を経験したり、家族や友達を失ったりしてはいませ ん。しかし地震直後、学校から家にかえりテレビで津波の映像を見 て言葉を失いました。テレビを通して見ているだけでも大きな衝撃 でした。今、自分の身にいつ何が降りかかるかわからないんだと強 く実感しました。そして私は、もうこのようなことは二度と繰り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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されてはいけないと思いす。そのためにも、今、私にできることは 人々に震災を知ってもらい、いざその時が来たらどう対処すべきか 一人でも多くの人に知ってもらうことだと思います。 このような東北の方々の強い意志、私たちの小さな行動の積み重ね が、これからの被災地の復興の鍵になるのではないかと私は思いま す。 About five years ago, at 2:46 pm on March 11, 2011, a large earthquake in Japan occurred. It was the Great East

Japan

Earthquake.

On

the

Richter

scale,

the

earthquake had the magnitude of seven with the nine being the highest intensity. With the Tohoku as the epicenter, it spread to the Kanto area, Chubu area, and over wide range of Japan. At that time,

I was also a victim of the earthquake.

Fear of that time can not forgot even until now. And the earthquake

took

many

lives.

Large

tsunami

was

be

forgotten generated after the earthquake hit the town, leaving the town with almost no trace in such a short time. People lost their homes and schools. It forced the people of the town to long evacuation life. Not only the house, there were many who lost family and friends. Roads were cut off under the influence of the tsunami. There was food shortage. 5 years after the earthquake, many people still are living in temporary housing. However, since that painful incident,

Tohoku

people

have

been

trying

to

make

improvements even if it is little. "I do not want to be down because the affected areas. I want to regain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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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 town and life quickly.”

Also, a lot of people are

trying to help others to become a little healthier. In my opinion, such act of compassion and kindness is the key to the future of reconstruction. I didn't experience the tsunami and lost family or friends. However, immediately after the earthquake, when I

went

back

home

from

school

and

watched

what

happened in Japan, I lost my words. It was too big of a shock to me to watch the aftermath on TV. And also, I think it must not happen ever again. To that end, what I can do now is to learn more about how to save and help people in case it were to happen again. 약 오 년 전, 2011년 3월 11일 오후 두 시 사십육 분, 일본에 거대한 지진이 발생했다. 일본 ‘관동대지진’이였다. 진도 9가 가장 큰데, 이 지진은 진도 7이었다. 동북, 관동, 중부 지역을 넘어 일 본 전역에 걸쳐 비정상적인 크기의 지진이었다. 그 당시, 나 역시 도 지진의 피해를 입었다. 지금까지도 그 때의 두려움은 잊을 수 가 없다. 그리고 이 지진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숨을 잃었다. 지진이 도시를 강타 한 후 대형 쓰나미는 한 순간에 마을을 휩쓸고 가버 렸다. 사람들은 집과 학교를 잃었다. 그리고 긴 피난 생활을 하게 되 었다. 뿐만 아니라 집, 가족과 친구 모두를

잃었다. 쓰나미로 인

해 도로를 사용할 수도 없었다. 먹을 음식도 없었다. 오 년이 지 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임시 주거지에 살고 있다. 하지 만, 그 고통스러운 사건 이후, 조금이라도 회복하기 위해 많은 사 람들이 노력하고 있다. 마을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 다시 마을을 회복하려는 사람들, 조금이라도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기를 돕는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는 많다. 이렇게 서로 돕는 정신이 미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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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회복될 수 있는 열쇠라고 나는 생각한다. 저는 쓰나미를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닙니다. 친구나 가족을 잃은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지진을 경험한 뒤에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 와 텔레비전을 보고 일본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보게 되었습 니다. 할 말을 잃은 저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더 이상 이러한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다시 이러 한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사람들을 살리고 구할 수 있는지를 알 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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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duction> Salut ! Je M’appelle Charlotte. Grade 10 샤롯데 Charlotte, Morin Salut ! Je M’appelle Charlotte. J’ai 16 ans. Lorsque j’avais 6 ans, j’ai vécu deux ans en Corée. Je ne me rappelle pas de tout, mais j’ai gardé des bons souvenirs. Par exemple, je me rappelle du parc à côté de ma maison. C’est là où j’allais jouer tous les jours après l’école. Je me rappelle du restaurant où j’allais manger tous les mercredis avec ma mère et quelques amis. Je me rappelle aussi des marchés avec des longues rues où pleins de personnes et les vendeurs criaient quelque chose en coréen que je ne comprenais pas. Je suis rentrée en Suisse à l’âge de me 8 ans. Puis je suis revenue à Séoul il y a quatres mois avec ma meilleure amie. Je la connais depuis que j’ai deux ans et nous sommes devenues très proches. La culture en Corée est très différente de celle de Suisse. C’est vraiment intéressant d’apprendre à connaître une nouvelle culture. Par exemple, nous avons un ami en Corée qui travaille dans un restaurant. De temps en temps, nous allons lui rendre visite et passons la soirée avec lui. Dans ma culture, il est très poli de finir notre assiette lorsque quelqu’un cuisine pour nous. Mais ici, quand nous finissons notre assiette, cela signifie que nous avons encore faim et que nous voudrions encore m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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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 coup, pour être polis, nous finissions notre assiette, et pour être poli, notre ami nous servait à nouveau tout le temps jusqu’à que l’on se rende compte du problème. Ici, je fais du Taekwondo. Je trouve ça sympa mais je ne suis pas très forte. Je me suis fais quelques amis, mais ils ne parlent pas anglais. Du coup on parle avec nos bras et en faisant des gestes. Dans ma nouvelle école, j’ai découvert une nouvelle manière d’enseigner et d’apprendre. C’est plus amusant et interactif que dans mon école en Suisse qui enseigne de manière moins interactive. De plus, nous ne faisons pas nos cours avec un ordinateur même si nos profs sont très sympas. J’aime beaucoup la Corée, mais il y a certaines choses de la Suisse qui me manquent. Par exemple, ma famille, mes amis, mon école et aussi mon chat qui est resté en Suisse. L’équitation est ma passion J’allais très souvent faire des ballades en forêt et dans la campagne avec mes amis. Mais ici, je n’ai pas trouvé d’endroit pour monter. Ce qui me rend très triste. J'espère que cette année sera très enrichissante et que je vais apprendre beaucoup de choses. Mes objectifs cette

année

incroyable,

seront me

faire

de de

profiter

de

bons

amis,

cette avoir

expérience de

bons

souvenirs et avoir plus d'expérience pour mon avenir. Hello ! My name is Charlotte. I am 16 years old. When I was five years old, do

not

I lived two years in Korea. I

remember everything, but

I have very

good

181


memories. For example, I remember the park next to my house. It’s where I went each day playing after school. I remember

the

restaurant

where

I

was

eating

each

wednesday with my mother and some frieds. I remember the markets with long pathways, a lot of people and the seller who were shouting something in korean that I didn’t understood. I came back to Swiss at seven years old, and then I arrived in Seoul four months ago again, with my best friend. Her name is Victoria. I know her since I was two years old and we are very close. The

culture

in

korea

is

very

different

from

Switzerland. It's very interesting to learn about a new culture. For example, we have a friend in korea who work in a restaurant. Sometimes, we go eat inside and pass the evening with him. In my culture, it’s very polite to finish our plate when someone cook for us. But here, when we finish our plate, it means that we are hungry and we want more. So to be polite we finished our plate, and to be polite, our friend always gave us more food until we realize the problem. Here I am doing Taekwondo. I find it great fun although I'm not very good. I met some friend, but they don’t speak english, so we communicate with our arms and gesture. In my new school, I discovered a new way of teaching and learning ; It’s more fun and interactive than our school in Switzerland. In my Swiss school, we don’t use

computers

and

it’s

teachers are very k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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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s

interactive

even

if

the


I love Korea but there are some things that I miss from Switzerland. For example, my family, my friends, my school and also my cat who stayed in Switzerland. Horse riding is my passion. I used to go very often to ride and go on walks in the countryside with my friends. But here I didn’t find a place to ride. So it makes me a little bit sad. I hope this year will be very rewarding and I will learn many things. My objectives this year is to enjoy this amazing experience, make some good friends, have good memories and have more experiment for my future.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샤롯데예요. 저는 열여섯 살이에요. 제가 다섯 살이었을 때, 저는 한국에서 이 년 동안 살았어요. 모든 것 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저는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들을 갖고 있어요. 예를 들어, 집 옆에 있는 공원은 제가 방과 후에 거의 매 일 놀았던 곳이에요. 그리고 매주 수요일마다 음식을 먹으러 갔던 식당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고, 소리치며 물건을 팔던 상인들이 모여 있던 시장을 기억해요, 그것 역시도 제겐 소중한 추억이에요. 저는 일곱 살 때, 다시 스위스로 갔다가, 제가 열여섯 살이 된 올 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삼 개월 전에 다시 서울로 왔어요. 그 친구의 이름은 빅토리아인데, 제가 두 살 때부터 우리 는 서로 친했고, 지금까지도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한국의 문화는 스위스와 많이 달라요. 새로운 문화를 배우는 것 은 참 재미있어요. 한국에서 저는 태권도를 배우는데, 잘 하지는 못하지만 태권도는 정말 재밌어요. 그리고 새로운 학교에서 저는 새로운 방법으로 공부하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스위스에서 공부 할 때보다 훨씬 더 재밌어요. 저는 한국을 좋아하지만 여전히 스위스가 그리워요. 가족들, 친 구들, 예전의 학교들과 고양이 등 아직도 스위스에 있을 친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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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보고 싶어요. 그 중에서도 스위스에서 타던 말들, 친구들과 함께 교외에 나가서 종종 승마를 하면서 즐겁게 지내던 때가 너무 나 그리워요. 저는 올해 새로운 학교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고 기대하 고 있어요. 올 해 저는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싶고, 미래를 위해 더 많은 경험들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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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감상문> ‘키싱 마이 라이프’를 읽고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

Grade 10 김선주 Grace Kim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주어진 삶에 감사하는 내용을 담은 책 같다는 생각을 했다. 책 표지의 여자와 뒤로 펼쳐진 모래밭이 자 연스럽게 조화를 이룬 가운데 ‘키싱 마이 라이프’라는 제목만으로 도 누군가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 다. 이 책은 몸에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하는 사춘기 십대들이 사 랑과 성에 대해 느끼는 미묘한 감정을 그리고 있다. 이 책에서 내가 꼽은 명대사는 “어제 처음 본 란에게서 위로를 받다니, 어쩜 우린 마음이 서로 통할지도 모른다. 란과 난, 낯선 곳에서 살아가니깐.”이다. 이 대사가 내게 인상 깊었던 까닭은 이 러하다. 주인공은 심각한 상황에 빠지게 되는데, 이 때 란이라는 이웃 주민을 통해 위로를 얻는다. 이 대사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 는 모든 일들은 누구에게나 낯선 것이라는 걸 일깨워준다. 나 역 시 어른이든, 아이든 누구나 살면서 낯선 일을 겪게 된다는 사실 에 동의한다. 물론 긍정적으로 보자면 그것을 낯선 것이 아닌 새 로운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 세상이 이렇게 낯선 일로 채 워져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낯설 음을 혼자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느낀다는 사 실만으로도 그 고통과 시련은 조금이나마 풀릴 수 있다고 본다. 이 책은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게 되는 주인공이 겪는 여러 가 지 어려움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 이옥수는 독자로 하여금 쉽게 공감 할 수 있도록 사춘기 청 소년이라면 한 번쯤 느껴 보았을 만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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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나 또한 주인공과 비슷한 경험이 있지는 않지만 주인공이 느 끼는 감정들을 비슷하게나마 느껴본 적이 있다. 예를 들면 주인공 이 엄마에게 느끼는 감정이나 갖고 있는 불만들이 완벽하게 나와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 다. 나는 개인적으로 많은 것들을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부모님과 공유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알리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 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것들은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 드리기 싫어서 감추는 것들이 있고, 어떠한 것들은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는 한다. 나는 무엇보다 혼자 있고 싶어 하고, 동갑내기 친 구들을 찾게 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깊은 공감대를 형성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주인공의 많은 부분을 깊이 이해하게 되면서 나는 이 책의 저자 역시 아마 주인공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거나 주변에서 이런 일을 목격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만큼 이 책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감정이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이런 심각한 일을 경험하지 않은 독자 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저자는 이 모든 일을 겪은 인 물들의 마음을 실제로 상세하게 아는 것만 같다. 나는 책을 읽으 며 이 책의 저자 역시 부모님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것은 아닐 까, 특히나 술 취한 아버지와 소통을 하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 을 통해 이야기의 긴장감을 더욱 더 고조시키는 부분에서 저자가 혹시 이러한 비슷한 환경 속에서 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이 책은 어렸을 때의 실수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불러오는가에 대해서도 썼지만,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부모님께 모든 사실을 고 백하는 게 훨씬 더 현명한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 같다. 십대는 너무나 아름답고 어찌 보면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성숙해가는 몸에 대한 책 임감을 잃게 된다면 그 행복한 시간마저도 포기해야만 한다. 이 책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청소년 독자들 에게 책임감과 또한 부모님과의 소통의 중요성을 가르쳐주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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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 책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와 교훈들을 살펴보았을 때, 나 역시 글쓴이의 생각에 동의하지만, 어떤 부분은 현실을 많이 과장하지 않았나 싶다. 주인공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환경들이 지나치게 부 정적으로만 묘사되어서 정작 주인공이 겪고 있던 일들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 배경은 이야기를 더욱 더 생생하게 전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과장된 점 때문에 오히려 전개에 집중하지 못하게 방 해하고 있는 것이 아쉽다. 책을 읽기 전, 나는 십대들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겪고 있 기 때문에 그 나름의 성숙함과 깊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 어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은 후에 어 쩌면 십대는 아기보다도 더 생각이 어리고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십대들 누구나 마음속으로 많은 생각을 할 순 있 지만, 그걸 역이용하여 나쁜 곳에 쓰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걸 깊이 느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하든 부모님은 언제나 내 편 에 서 있어 주시는 분들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뉴스를 보면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거나 아기를 낳은 여자 아이 들에 대해서 종종 나온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아주 불안 정한 삶을 살고 있었다. 아이의 아빠가 되어야 할 남자 또한 어리 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없을 뿐더러 무엇보다 정신 적으로 아기를 키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사회는 점점 더 험 악해지고 위험해지고 있다. 그리고 십대들의 스트레스와 이로 인 한 반항은 더욱 거세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을 성적 욕구로 대체하거나 호기심 때문에 스스로를 자제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보면, 한심하다기 보단 불쌍하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가지 면에서 청소년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이 책, <키싱 마이 라이프>를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청소 년들에게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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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감상문> ‘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졌다’를 읽고

조금은 아쉬운 성장 소설 Grade 10 김주성 Justin Kim 나는 이번 학기에 <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졌다>라는 책을 읽었 다. 이 책은 ‘황재석’이라는 고등학생이 폭력 서클에서 겪는 갈등 과 새로운 삶에 대한 열망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 재석이가 갈등을 통해서 성숙해져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래서 인지 같은 고등학생인 주인공이 겪어가는 경험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점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생각할수록 이 책의 문제점들이 먼저 떠오르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는 작가가 ‘부라퀴 할아버지’와 ‘보담이’를 통해 너무 성급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교훈을 주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야기 의 흐름상 보담이가 등장한 시기가 적절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 라, 보담이가 등장한 이유도 사실 분명하지 않았다. 보담이란 고등 학생이 갑자기 부라퀴 할아버지의 차에서 내려 자신을 손녀라고 소개한 장면 자체가 자연스럽지 못했다. 또한 보담이가 재석이에 게 폭력 써클을 떠나겠다는 생각을 심어주기에는 너무 빠른 시기 에 재석이가 결정을 내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또한 재석이가 자 신의 어머니를 위해서 폭력 써클을 떠나려는 것인지, 아니면 갑자 기 나타난 부라퀴의 손녀, 보담이를 위해 떠나려는 것인지도 혼란 스러웠다. 보담이와 재석이가 문자를 주고받는 과정 가운데 재석이가 변화 하는 모습을 보면 재석이가 소녀 보담이의 말을 너무 쉽게 받아 들이고 빠른 변화를 보여준다는 것이 굉장히 갑작스럽다. 자칫하 면 이 책을 읽는 청소년들이 청소년 문제에 대해 단순히 사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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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또한 재석이의 가난이 갑작스럽게 부라퀴 할아버지를 통해 해결 된다는 점도 불편하게 느껴졌다. 동화 속의 주인공처럼 갑작스럽 게 나타난 한 왕자님을 통해 나의 문제를 풀어간다. 이것은 현실 적인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동화 아닌가. 책의 대사 중에 부라퀴를 보고 “저런 사람도 열심히 사는데 나 는..” 이라고 하는 재석이의 대사가 있다. 이 말의 뜻은 반신불구 가 된 할아버지를 비하 하는 말이 아닌가. 좋은 환경에 있는 사람 을 만나면 내가 저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걸 찾아 우월감을 얻는 것, 이것은 교훈을 전해줘야 하는 책이 담아야 할 내용은 아 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비교적 다른 책들에 비해 읽는 것은 수월했다. 왜냐하 면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전개가 지루한 부분들을 덮어준다는 느낌 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뻔한 방식으로 교훈을 준다 는 것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졌다. 만약 교훈을 말이 아닌 재석이 와 친구들이 사건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보여주었다면 한층 더 자 연스러운 전개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책의 빠른 마무리가 책의 마지막을 흐려 놓은 점도 아쉽 다. 이 소설은 재석이가 써클을 나가기 위해 사람들에게 맞고, 민 성이와 담배를 끊자고 결심한 뒤 즐겁게 웃으며 끝이 난다. 아무 리 후속작이 준비되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등장인물 모두가 어 떤 상황에 있는지에 대해서라도 마무리 짓고 끝내야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들이 재미있게 읽으며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임에 도 불구하고, 몇 가지 점들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책, <까칠한 재 석이가 사라졌다>는 조금은 아쉬운 성장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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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지금의 나를 만든 소중한 사람들 Grade 10 박서정 Seojung Park 2000년 4월 21일에 태어난 나는 박서정이라는 이름을 받아 16 년 동안 그 이름으로 살고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오빠가 나에게 특별한 책임감을 가지고 행 동했던 것을 기억한다. 엄마가 말씀하시기를, 365일 줄곧 울보였 던 오빠가 내가 태어난 이후로는 거의 운적이 없다고 했다. 또 유 모차를 싫어해서 항 상 엄마 품에 안겼던 오빠는 내가 태어난 이후로는 같이 유모 차를 타기 시작했다 고 한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오빠의 책 임감 있는 행동보다 오빠의 장난기 있는 모습을 더 빨리 알아 챘다. 어렸을 때부터 오빠의 장난기는 남달랐는데, 심심할 때마다 오빠가 나를 놀려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하루는 엄마랑 오빠 랑 같이 셋이서 개운산 운동장을 갔는데, 나를 놀리고 도망치는 오빠를 잡으려고 뒤따라가다가 넘어졌던 일이 생각난다. 그 때 나 는 크게 울음을 터뜨렸고, 놀라 뛰어오셨다가 크게 다치지 않은 것을 확인하신 엄마도 장난기가 발동해 뚝 안 그치면 사진 찍는다 고 해서 더 크게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다. 그 사진 은 현재 안방 옷장에 있는 파란색 앨범 속에 잘 간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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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섯 살 때 다니던 유치원이 있었는데, 오빠가 유치원을 졸업하자, 엄마는 내게 유치원을 옮길 것을 권하셨다. 아직까지 그 이유는 잘 모르지만, 그 당시 나는 일곱 살 때부터 편식을 허용하 지 않는 유치원을 안 다녀도 되는 것에 감사했다. 유치원을 졸업하고 나서, 나는 매원 초등학교라는 곳에 다니기 시작하였고, 다른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던 오빠도 나의 학교로 옮 겨왔다. 그 시절 오빠와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단짝이자 서로를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그런 사이였다. 오빠가 많이 짓 궂어서 날 많이 놀리고 이 상한 별명도 많이 지어주기 도 했지만, 나는 그런 오빠 를 많이 따랐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된지 얼마 안 돼서 오빠는 친구와 함께 외국에 나갔 고, 집에는 나와 엄마, 아 빠만이 남겨졌다. 혼자 샤 워하기 무서워할 때면 화장 실 앞에서 말 걸어주고, 밤 에 혼자 못 자는 내 옆에서 자 주던 오빠가 없으니 허 전했었다. 일주일에 딱 한 번 오빠한테 전화가 왔었는데 나는 그 때마다 엄마한테 전화를 바 꿔달라고 졸랐다. 혹시나 오빠가 나를 잊은 건 아닌지 그런 무서 운 생각에 몸을 떨었던 기억이 난다. 3학년이 되던 해 겨울, 엄마는 나에게도 외국에 나가고 싶냐고 물으셨다. 그 당시 나는 엄마의 잔소리를 안 들을 생각에 바로 그 러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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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나간 나는 기숙사에서 오빠와 함께 지내게 되었고, 고등 학생들과 대학생들로 가득 찬 그 곳에서 힘겹게 영어를 배우기 시 작했다. 그 당시 나랑 같이 외국에 나간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의 이름은 세원이었다. 세원이와 오빠, 오빠의 친구이자 세원이의 친오빠인 원일이 오빠는 CIS라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4학년 중 순에 CIS에 들어간 나는 적응을 잘 하지 못하였고, 엄마 전화가 올 때면 엄마가 해준 밥이 먹고 싶다며 울었다. 4학년이 끝나고 나는 학교를 옮겼다. 그리고 5학년이 되던 해 세원이와 원일이 오 빠는 기숙사를 떠나 부모님들과 같이 살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이것을 적고 있는 지금도 그들은 CIS에 있을 것이다. 나는 6학년이 되어서 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한국에 오게 되었 다. 한국에 돌아오는 것이 낯설고 싫었지만, 엄마는 그것이 내게 더 도움이 되는 선택이라고 판단하셨다. 한국에서의 나는 어색하고 이상했다. 한국에 아는 사람이라곤, 엄마 친구의 아들과 딸들 뿐이었기 때문에 낯설었고 외로웠다. 그 런 나를 엄마는 집 근처, 2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특공무술 도 장에 보내셨다. 처음에는 오빠와 나, 단 둘이서 3시부 수업을 들 었다. 처음으로 특공무술을 기초부터 배우며, 재미있었지만 그래도 뭔가가 허전한 기분을 느꼈었다. 8월이 되자 나는 APIS라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 연스럽게 특공무술은 9시부로 옮겨졌다. 그 당시는 숙제와 과제가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에 도장에서 사범님과 핸드스프링을 연습 하고 밤늦은 11시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나는 점점 학교 과제와 성적에 매달리기 시작하였고, 9시 부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생각해 5시부로 옮겼다. 5시부에서 나는 현재 가장 친한 친구인 김재욱이라는 아이를 만 났다. 토깽이라고도 불리는 재욱이는 나보다 한 살 많은 ‘오빠’이 다. 그러나 작은 착오로 지금은 “야, 김재욱!” 이라고 부르며 지내 고 있다. 현재 재욱이는 나에게 조언과 충고를 많이 해주는 둘도 없는 친구이다. 2년 동안 서로에게 많이 의지하고, 미래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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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감을 나눌 수 있었던 세상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 중 한 명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7시부로 옮기면서 내가 가장 아끼는 친구이자 동생인 박 정훈을 만났다. 박정훈은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말빨도 엄청나 고 논리적이어서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말싸움에 이겨본 적이 없 다. 내가 딴 짓하고 있을 때면 귀신처럼 알아내서 “누나 숙제 안 하고 있지? 누나 자려면 숙제 얼른 하삼.”하고 카톡을 보내주는 그런 아이다. 내가 고민이 있거나 냉정하게 판단해줄 사람이 필요 하면 찾는 아이기도 한다. 그리고 내게 위로해 줄 일이 있어도, 일단 내가 잘못한 점을 꼬집어낸 다음에 위로해 준다. 여러 면으 로 나보다 성숙하고 어른스러우며 항상 나에게 나이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아이다. 또 나는 그곳에서 성민이라는 친구도 만났다. 가끔은 나한테 인 사도 안 하고, 말을 걸어도 대답도 안 하지만, 내가 도장에서 조 금이라도 우울하거나 피곤한 모습을 보이면 말없이 옆에 앉아 애 들이 가까이 와서 장난을 치거나 놀아달라고 할 때 내가 거절을 못할까봐 나대신 거절해주는 그런 친구이다. 성민이는 지금까지 내게 힘과 위로가 되는, 내가 가장 아끼는 한 살 어린 동생이다. 이렇게 좋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한국에서의 내 생활은 한층 더 재밌고 즐거워졌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의 압박감이 나를 더 힘들게 하고 있다. 고등학생이 된지 이제 겨우 네 달도 안 된 내겐 앞으로 남은 3년 8개월이라는 시간은 길고 또 멀게 느껴진 다. 10학년, 그리고 11학년과 앞으로 있을 시험들이 나의 미래와 내 인생을 결정할 것이라는 생각에 무섭고 두렵지만, 앞으로도 지 금처럼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아직까지 내겐 확실한 꿈이나 가지고 싶은 직업도 없지만, 어떻 게 살고 싶은지는 분명히 알고 있다. 나는 나중에 커서, 지금의 나에게 미안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또한 지금 까지 길러주신 부모님이 기대하시는 것보다 더 자랑스러운 모습이 되어 효도하는 게 나의 목표이자, 나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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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나의 지난 15년 Grade 10 서희원 Heewon Seo 나 서희원은 2001년 1월 2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태어났을 때 부터 어른들은 항상 나를 보며 엄마, 아빠와 똑같이 생겼다고 말 을 했다. 눈썹이 진해서 인상이 좋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나는 네 살 때 영어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영어 유치원에 다녔지만 수업은 다 한국말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영어를 많이 배 우지 못했다. 하지만 영어 유치원에 다니면서도 혼자 한글을 깨우 치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다. 항상 부모님께 내 이름은 어떻게 쓰 는지, 책에 나오는 단어들이 무엇인지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다섯 살 때는 괌으로 영어를 배우러 유학을 갔다. 괌에서도 영 어 유치원에 다녔지만 한국 유치원과는 달랐다. 모든 수업을 영어 로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유치원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 지 못해서 많이 힘들었다. 매일 울며 엄마한테 유치원 가기 싫다 고 떼를 썼다. 하지만 엄마는 계속 다니다 보면 익숙해진다고,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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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만 참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응원을 해 주셨다. 몇 주를 더 다니 자, 나는 조금씩 영어를 알아듣기 시작했다. 영어를 어느 정도 알아듣기 시작했을 때 미국 캘리포니아로 유 학을 갔다. 그때는 내가 여섯 살 때였고, 나는 1학년에 입학했다. 처음에는 영어를 많이 알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조금 힘들었지 만 금세 적응을 했다. 학교를 다니는 것이 점점 재밌어졌다. 매일 서로의 집에 놀러가고 숙제도 같이하면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생겼다. 그렇게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영어도 점점 늘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하지만 3학년을 마치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 게 되면서 학교도 옮겨야만 했다. 제일 친한 친구와 떨어지기 싫 어서 전학 안 가겠다고 떼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다른 학교로 전학 갔다. 걱정과는 달리, 나는 새로운 학교에서도 빨리 적응을 했다. 새 로운 친구들을 사귀며 즐거웠다. 하지만 4학년 2학기 중간에 난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한국을 그리워하긴 했지만 새로운 학교에 이미 적응했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던 터라 한국으로 돌아오기가 싫었다. 한국어를 다 까먹어서 한국에 가면 놀림을 당하지는 않을 까 무서웠던 것도 이유였다. 한국에 들어와서는 4학년을 마저 마치기 위해 외국인학교에 입 학했다. 새로운 학교에서는 적응을 잘 못했다. 다른 아이들은 한국 어를 유창하게 잘 했지만 나는 한국어를 알아듣기만 하고 말은 할 줄 몰라 놀림도 당하고 많이 힘들었다. 한국어를 해보려고 노력을 해 보아도 발음이 이상하다고 놀림을 당해서 많이 서러웠다. 미국 으로 돌아가고 싶었고, 옛날 친구들도 보고 싶었다. 서러움을 참고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했다. 집에서도 발음을 연습하고 엄마와도 한국어로 대화하려고 했다. 그렇게 애쓰다 보니 어느새 4학년이 끝났다. 4학년을 마치고 나는 다른 외국인 학교로 전학가게 되었다. 그 외국인 학교에서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6학년을 다녔다. 5학년 때는 중학생이 되고 싶어서 공부도 열심히 했다. 하지만 막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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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되니 숙제도 훨씬 많아지고 공부도 어려워져서 힘들었다. 하지만 어려운 것들은 선생님들께 여쭤보면서 공부를 하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그 학교에서 5학년과 6학년을 마친 나는 현재 다 니고 있는 APIS로 전학을 오게 되었다. 이 학교에서 나는 나의 소중한 친구 한 명을 만났다. 7학년 때 처음 만난 그 친구는 지금까지도 가장 친한 친구이다. 우리는 서 로의 집이 가까웠기 때문에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같은 학교 버스를 타서 매일 집에 같이 갔다. 이 친구는 현재 나 와 같은 학교에 다니진 않지만, 아직도 아주 친하게 지내고 있다.

그동안의 시간을 돌아보니, 나의 인생은 행복한 일만 가득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게는 앞으로 살아갈 날이 아직 더 많이 남아있기에 이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며 열심히 공부해서 나의 꿈인 의사가 되고 싶다. 언젠간 많은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 는 멋진 의사가 되어 있을 내 모습을 그리며 이 자서전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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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문>

2016 APIS, 새로 부임하신 선생님들과의 인터뷰 Grade 10 김하령 Eunice Kim 조민수 Harry Joh

새로 부임하신 미술 선생님, Mrs. Sgrignoli, “학생들의 가능성 최대로 이끌어내고 싶어”

생님으로 다가가고

싶으며,

학생들이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존재로 느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저는 학생들의 가능성을 최대로 이끌어내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라고 덧붙여 말 씀하셨다. Mrs. Sgrignoli가 APIS 학 생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분명 하다.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 하는 것,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발상과

Mrs. Sgrignoli께 인터뷰 가능여부를 여쭈어 보

방식으로 주어진 문제에 반응

았을 때, 흔쾌히 수락하시며, 장문의 정성들인 인

하고, 삶을 헤쳐 나가는 모습

터뷰 답변들을 보내 주셨다.

을 보였으면 한다고 하셨다.

작년의 Ms. Pendleton의 뒤를 이어 올해부터 미

비록 이전에 근무하셨던 공

술 수업을 맡게 되신 Mrs.Sgrignoli께서는 화학 선

립학교의 환경과 많은 것이

생님이신 Mr. Tu 선생님과 Science, Technology,

달라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

Engineering, Art, Math (Steam 스팀)(과학, 기술,

으셨지만, 자신의 미술 선생

공학, 미술, 수학)수업을 가르치시고, 미술 및 AP

님이라는 직업이 너무나도 만

미술 수업을 가르치고 계신다.

족스럽고, APIS 학생들과 함

Mrs. Sgrignoli는 APIS에 오시기 전, 워싱턴 D.C 에 위치한 한 공립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셨 다고 한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다정한 크리스찬 선

께 하는 것이 즐겁다고 하신 다. 조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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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문>

역사 선생님, Mr.Gassner

“책임감있고 독창적이며, 열정적인 학생들로 자라나길” Mr.

Gassner는

작년의

Mr.Kraton의 뒤를 이어서 APIS에 역사 선생님으로 부임하셨다. 현재 10학년 학생들에게 미국 역사와 AP 미국 역사를 가르치고 계신다. 앞서 러시아, 멕시코 등 여러 나라 에서 역사를 가르시고 올해 처음으 로 한국에서 가르치게 되셨다. 매우 바쁜 시간에 연락을 드렸음 에도 불구하고 Gassner 선생님은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 주셨다. 우선 선생님께 선생님이라는 직 업이 자신과 잘 맞는지, 그리고 이 일을 할 때 보람 있는 점과 힘든 점이 무엇인지 여쭈어 보았다. 선생 님께서는 “조금 진부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가르치는 일 이 세상에서 제일 보람있는 일이라 고 생각합니다. 특히 수업을 의무적 으로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게 될 만큼 학생들이 공부에 몰두하게 되는 그런 순간을 매우 소중히 여 깁니다. 하지만 가르친다는 것은 한 편으로는 매우 어려운 일이기도 합 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더 많은 투자를 할수록 감정을 조절하지 못 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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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학교에 갈 때마다 하 루하루가 제게 주는 특별한 도전을 환영합니다.” 라고 하셨다. Mr. Gassner가 학생들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단 하나 뿐이다. 바로 학생들이 책임감 있고, 독 창적이며 열정적인 어른으로 자라가는 것. 선생 님은 현재 APIS 학생들에 대해 “제 학생들의 수업 태도와 수업에서 이루어내는 성취를 보면 이들이 저의 이런 바람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는 희망을 줍니다.”라고 칭찬해 주셨다. 앞으로 Mr. Gassner는 학생들이 자신의 주변 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이 미래에 겪을, 예측할 수 없 는 도전에도 준비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선 생님이 되고 싶다고 하신다. 또한 항상 모든 학 생들이 존중 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수업 분 위기를 조성하도록 노력한다고 덧붙여 주셨다. 김하령 기자


<기사문>

삐삐, 행방불명되다 삐삐의 흥망성쇠, 그 이유를 분석한다

Grade 10 서대원 Daniel Suh 이수빈 Claire Lee 90년대를 추억하는 물건 중에

하고 싶을 때 그 사람의 삐삐 번

사람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물건

호로 전화해서 음성 메시지를 남

은 삐삐일 것이다. 2016년, 지

기거나, 자신의 전화번호를 입력

금 우리 세대에서는 스마트 폰

해 상대에게 알린다. 삐삐로 호

등 새로운 기능을 가진 물건들

출을 받은 사람은 삐삐에 남겨진

이 나와 많이 인기가 떨어졌지

번호를 통해 음성을 남긴 것인

만, 한때 삐삐는 그 시대에서

지, 번호를 남긴 것인지 확인한

제일가는 핫한 물건이었다.

다. 번호를 남긴 것이면 근처 전

삐삐는 무선으로 사람을 호출

화기를 이용해 그 번호로 전화

하는 기계로, 휴대전화가 없던

를 한다. 음성 메시지가 온 것

시절에 누군가를 부를 수 있는

이면 역시 근처 전화기를 이용

휴대용 장치이다. 누군가를 호출

해 음성 메시지를 들을 수 있 다. 삐삐만 있으면 밖에서도 누군 가가 나와 연락을 하고 싶어 한 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에 그 시대 사람들은 삐삐를 좋아했 다. 삐삐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는 일부 특수 계층과 바쁜 샐러리 맨들만이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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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

을 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자 삐삐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

비록 삐삐의 간편함에 모든 사

다. 가수 신해철 씨가 속해 있

람들이 반했지만, 그 이후로 나온

던 락밴드 넥스트 노래 ‘도시인’

무선 전화기 때문에 삐삐는 점점

에 나오는 ‘한 손엔 휴대전화,

사라지기 시작했다. 1994년에 나

허리엔 삐삐 차고’라는 가사처

온 무선 전화기는 핸드폰이라고

럼 삐삐는 바쁜 도시인의 상징

불리기 시작했고, 전화까지 가능

물이 되었다. 신부가 결혼 선물

한 그 기계의 기술에 삐삐는 묻

로 삐삐를 신랑에게 주어 퇴근

히기 시작 했다.

후 귀가를 독려하는 신혼부부가

하려면 다른 전화기에 의지해야

늘어나기도 했었다. 이 때문에

했지만, 핸드폰은 그 자체가 전화

삐삐는 ‘고삐’ 혹은 ‘족쇄’라는

기이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게

별명을 얻기도 했다. 요즘 우리

된 것이다. 비록 삐삐는 휴대폰

는 ‘카톡해’ 라는 말을 하며 서

때문에 없어졌지만, 지금 우리가

로 연락을 하겠다는 의사를 전

사용하는 핸드폰은 삐삐가 없었

한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사용

으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삐삐로 연락을

하는 ‘카톡해’라는 말처럼, 90년 대에는 ‘삐삐쳐’라는 말로 연락

200

서대원 · 이수빈 기자


<칼럼>

현대인의 삶과 정보 통신 기술 Grade 10 정예준 John Cheng 현 사회의 정보 전달은 주로 네트워크, 즉 인터넷을 통해 이루 어진다. 이는 현대 사회가 정보 통신 사회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 여준다. 정보 통신 사회의 이 ‘정보 통신’이란, 컴퓨터와 전기 통 신 네트워크에 의한 정보의 교환, 생산, 가공, 혹은 유통 등을 칭 한다. 또 이는 전기 통신을 통해 효율적으로 정보 통신, 처리량을 늘리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통해 현 사회의 사람들은 막대한 양 의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그 정보들을 활용하여 정보 통신 기 술을 발전시키기도 한다. 2000년대 이후 급속도로 활용되기 시작한 정보 통신은 사회에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많은 해를 끼치기도 한다. 그 예로 인 터넷을 사용하여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산업 발전, 교육, 판매 등 여러 가지가 가능해졌지만, 이러한 인터넷을 통하여 범죄 집단이 형성될 수 있으며 현재 많은 논쟁을 일으키는 단체 자살 등의 사 회적으로 부적절한 집단 또한 만들어 질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또한 무분별하게 범람하는 정보의 양 속에서 자신에 관련된 정보, 즉 자신의 사생활과 관련되어 있는 중요한 정보를 지킬 수 없는 경우도 심각한 위험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인터넷, 즉 정보 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1300억 원 가량의 경제 효과의 발전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 다. 또한 이 언론은 대한민국이 현재 세계의 정보 통신 기술 발전 혹은 기술 공유에 있어서 큰 기여를 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라고 발표했다. 현재 미래 창조 과학 기술부에서는 현재 개발도상국인 약 46개국의 정보 취약 계층의 정보 격차를 우려하여 약 43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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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접근 센터를 건설하겠다고 밝힌 바가 있다. 이 기술들은 정 보 공유의 번거로움을 줄이고 정보 공유의 편의성을 늘려줄 것이 다. 정보 통신 기술은 현대 사회인들의 업무나 학생들의 교육의 영 역까지 그 범위를 넓힌 바가 있다. 회사 내의 모든 정보들 또한 별도의 데이터베이스, 즉 정보 통신 기술을 사용하는 하나의 창고 에 보관한다. 2016년에 공개된 삼성의 정보 처리 방침에 의하면, 사원들의 개인 정보, 혹은 사내의 정보는 앞서 언급한 데이터베이 스를 통해 보관한다고 전해진다. 정보 통신 기술의 영역은 이미 현대 사회인들의 생각보다 더한, 상상을 초월한 영역까지 발을 들 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할 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하다. 급격한 정보 통신 발달로 인해 누리는 장점 이면에는 통신 발전 으로 인한 악영향에 대한 사건들도 많이 존재한다. 집단 자살의 계획, 자제력이 부족한 청소년들의 인터넷 중독, 개인 정보 유출, 사이버 폭력 등이 그 예이다. 한 보도에 따르면, 인터넷을 통해 개인 정보 유출 등의 사고 등 이 사회인들의 평판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온다고 한다. 인터넷 내 의 월등히 많은 사용자 수를 자랑하는 ‘페이스북’ 등의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개인 정보가 유출되는 것은 일상다반사이지만, 이 는 인터넷의 과다한 사용, 무분별한 자기 공유 때문에 발생한 사 고임이 방송 통신 위원회의 의견이었다. 사이버 폭력 또한 현재 많은 시민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 다. 사이버 폭력이란, 인터넷의 익명성, 즉 자신의 정보가 알려지 지 않은 점을 이용하여 타인에게 폭언, 혹은 유언비어 등을 퍼뜨 리는 행위를 의미한다. 흔히 10대들 사이에서, 넓게는 20대에서 30대의 시민들에게까지 사이버 폭력의 발생률은 높아지고 있으며, 피해자의 고소에 의한 피의자의 법적 처벌을 받고 마무리 되는 경 우가 있는 반면, 정신적 손상이 심한 피해자의 자살까지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사이버 폭력은 많은 악영향을 미친다는 보도 들 또한 다수 존재하며, 인터넷의 익명성이 문제라는 등의 의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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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이루고 있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현재 정보 통신 기술은 많은 허점 들이 존재하지만 동시에 많은 이익 또한 있다고 본다. 실제로 현 재 많은 사람들이 정보 통신 기술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 제 이러한 기술들은 현 사회에 필수 불가결의 요소로 자리잡게 되 었다. 정보 통신 기술의 이미 우리의 삶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기술에 수반되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지만 통신 예절과 관련 법규를 잘 지키면서 이용한다면 이 기술의 해보다는 득이 훨씬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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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보 통신 사회, 그 득(得)과 실(失) Grade 10 이규현 Gyu Hyun Lee 정보 통신 사회(information communication society)는 사람 들이 인터넷을 사용해서 사회를 만들어가는 곳을 말한다. 예를 들 어, 사람들이랑 소통을 하고 싶을 때는 우리는 ‘카카오톡’이나 ‘페 이스북’을 이용하는데 이런 사회를 정보 통신 사회라고 말한다. 정보 통신 사회의 긍정적인 측면은 인터넷을 통해 많은 사람들 에게 편안함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첫째, 정보 통신 사회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 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소통을 할 때 사용하는 방법은 직접 얼굴 을 맞대고 대화하는 방법 한 가지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글로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전화로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 다. 현대 사회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 어느 곳에 있는 사람 과도 소통을 할 수 있다. 둘째, 정보 통신 사회는 금전 거래를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사 고 싶은 물건이 있을 때 직접 나가서 사는 것보다는, G마켓 등의 인터넷 쇼핑몰로 간단하게 주문하는 것이 편리하다. 또한 인터넷 뱅킹을 통해 돈을 받을 수도 있고, 돈을 보낼 수도 있게 되었다. 나는 이것이 아주 큰 장점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들에게 는 귀찮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뱅킹은 그러한 귀찮음을 해 소해 주었다. 또한 인터넷 뱅킹은 집에서 인터넷으로 통장 거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돈을 가지고 이동하다가 겪을 수 있는 사고를 방지할 수 있어 더욱 안전하게 금전 거래를 할 수 있다. 또 다른 긍정적 측면은 정보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다. 과거 사람들은 자료를 찾기 위해 도서관을 뒤지고 다녔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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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학교에서 프로젝트나 에세이 과제가 나오 면 자료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진다. 신문 기사에서부터 논문, 책까지 인터넷에 거의 모든 자료가 있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몇 분 만에 대량의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 통신의 여러 편리함 뒤에는 그의 부정적 측 면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긍정적 측면이 더 많다고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부정적 측면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나는 부정적 측면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첫째, 인터넷을 통해 사생활 침해를 당할 수 있다. 우리는 유튜 브에 우리의 동영상을 올리기도 하고 페이스북 같은 SNS에 우리 의 사진을 올리기도 한다. 카카오톡에도 우리의 정보는 고스란히 담겨있다. 유튜브나 페이스북, 카카오톡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앱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그 과정에서 내 정보가 해 킹이나 스토킹 등을 통해 나도 모르게 유출될 수도 있는 것이다. 둘째, 인터넷 중독으로 인한 사회 문제 또한 심각하다. 인터넷 을 시간 제한 없이 많이 하다 보면 인터넷에 서서히 중독되게 되 고 무슨 일을 하든지 인터넷 생각이 나게 된다. 이는 아직 정서가 완전하게 발달하지 않은 청소년의 경우 더 심해진다. 또한 인터넷 게임의 경우, 지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욕을 쓰게 되고, 스트레스 를 받게 된다. 중요한 점은, 이런 점이 계속 반복되다 보면 사람 의 성격도 점차 폭력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터넷을 이용한 언어폭력이나 사기 범죄 등도 인 터넷의 폐해로 들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우리가 누리고 있는 정보 통신 사회는 사람들 과의 소통과 편안한 삶을 도와준다. 그러나 그 이면에 존재하는 부정적 측면을 잘 생각하면서 현명하게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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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문>

위정자의 역할 Grade 10 구동수 Daniel Koo 21세기 현재, 한국의 위정자는 누구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질문에 대해 공무원, 국회의원, 장관, 총리, 대통령 등 여러 답변 을 내놓을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 현재 위에서 말한 그 위정자 들의 역할은 무엇일까? 전통 시장에 가서 상인들 손 한번 잡아주는 일? 무료 급식소에 가서 김치와 점심을 만들어 나누어 주고, 노인정과 고아원에 가서 사진 몇 장 찍는 일? 평소에는 나타나지도 않던 버스 정류장과 지 하철역에 가서 잘 타지도 않던 대중교통을 타는 일? 반만 년의 한 국 역사에서 누가 진정한 위정자이고, 위정자의 참된 역할은 무엇 인지에 대한 질문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고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지금까지도 계속되어 왔다. SBS ‘뿌리깊은 나무’라는 드라마에서 조선 시대의 왕 세종과 정 도전의 손자인 정기준이 훈민정음 창제를 놓고 토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대화를 통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볼 수 있 다. 세종은 한글 창제의 이유로 백성들이 스스로 알 권리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에 비해 정기준은 백성은 무지몽매하기 때문 에 올바른 지도자가 이끌어줘야 된다고 했다. 그리고 세종의 행동 에 대해 백성을 직접 이끌어주기가 귀찮아서 백성에게 책임을 전 가시키고 자기 자신은 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지도자는 책임을 지고 백성을 사랑하며 보살 펴야하는 존재라고 했다. 또한 정치는 책임에 무지하고 책임질 능 력이 백성들은 정치에 참여하면 안 된다고 했다. 정기준은 위정자의 역할은 역병이 나면 힘이 닿든, 닿지 않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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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 한 명의 백성을 찾아가 약을 먹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고 파악했다. 그런 반면에 세종은 사대부는 언제든 부패 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왕과 신하, 그리고 백성이 서로를 감시 해야 된다고 했다. 21세기 위정자의 역할은 정치적 결정을 내리고 그 사안이 이루 어질 수 있도록 일하며, 또한 그 결정에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생 각한다. 그런데 결정만 하고 책임은 아래 사람들에게 떠넘기는 무 책임한 위정자들도 있다. 위정자는 먼저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끊임없이 국민들의 생각을 조사하여 정책 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때로 그 결정이 잘못된다면 정기준 말대로 자신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 나야 한다. 예를 들어 도서관을 더 만들자는 정책을 대통령이 결 정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도서관에 관한 예산 관리부터 주변 주민 들과의 협상을 하면까지 그 사안이 이루어 질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위정자의 역할이다. 그런데 도서관이 완성된 후에 그 도서관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다던가, 도서관을 지을 때 그 예산이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위정자가 해야 할 몫이다. 21세기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정치가 생겼기 때문에 위정자의 역할을 무엇 하나로 정의 하긴 어렵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과의 소통, 국론 통합, 그리고 자신의 정책에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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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버지의 손편지 Grade 10 유승민 Andrew Yoo 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단지 딱 2%가 부족했을 뿐이었다. 1%는 바로 아버지께서 나에게 아버지의 마음 을 전할 수 있는 선물이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주시는 것이었고, 다른 1%는 아버지와 둘이서 같이 보내는 시간이었다. 나는 작년 생일 선물에 가장 고맙고 소중하고 인상 깊은, 그리 고 평생 아끼고 싶은 생일 선물을 받았다. 그 선물은 바로 손편지 였다. 나에게 그 손편지는 보통 손편지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것 은 바로 우리 아버지가 직접 쓰신, 내 생일에 나에게 직접 주신 손편지였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나에게 그 손편지를 주셨을 때 그 걸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나에게 지난 15년 동안 손편지를 한 번도 주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편지를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손편지를 마음을 담아 읽었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 첫째 아들 장남 승민아, 아빠의 첫째 아들 로 태어나줘서 정말 고맙다. 요새 학교 생활과 학교 적응이 좀 힘 들지. 그래도 이렇게 공부 열심히 하는 너의 노력하는 모습을 보 니 정말 기쁘다. 언제 어디서나 무슨 도움이 필요할 때 아빠랑 엄 마가 항상 너의 곁에 있을 거야. 사랑하는 우리 아들 승민이 항상 기죽지 말고 화이팅! 그리고 오늘 열다섯 번째 생일 정말 축하해. 사랑하는 아빠가 아버지의 손편지를 읽으면서 눈물이 날 뻔 했다. 그리고 그 자 리에서 아버지를 껴안았다. 나는 정말 큰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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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나에게 손편지를 주신 내 열다섯 번째 생일 이후, 아 버지와 나의 관계에는 조금의 변화가 생겼다. 매주 주말, 아버지와 나는 우리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 러가기도 하고, 박물관이나 광화문에 놀러가기도 했다. 그리고 아 버지와 나 단둘이서 점심이나 저녁에 외식을 하기도 한다. 아버지 의 손편지로 인해 우리 부자 사이가 더 돈독해 진 것 같아서 기분 이 참 좋다. 오늘은 나도 아버지께 손편지를 써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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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점심 후의 꿀맛 Grade 10 노성헌 Leo Rho 점심시간이 끝나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12시. 나는 시계를 보며 필통과 교과서를 가방에 넣고 교실 밖으로 세 차게 뛰어나갈 준비를 한다. 나 말고 다른 친구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가방을 싸고 나갈 준비를 한다. 3,2,1, “안녕히 계세요!”라는 말과 함께 종이 울린다. 마치 막 출발 신호를 들은 말들처럼, 누 구도 가릴 것 없이 계단을 경주하듯 내려간다. 교장 선생님과 선생님들의 뛰지 말라는 경고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전쟁 시작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넓게 펼쳐진 흙바닥 운동장 을 보며 무조건 떡볶이 집을 향해 달려간다. 교문을 나오며 위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향한다. 한 계단, 두 계단, 세 계단, 무의식적 으로 계단을 세며 올라간다. 정상에 도착하면 몇몇 아이들이 앞에 서 대기를 하고 있다. 아직 많은 아이들이 모이기 전이라 다행이 라고 생각하며 지갑을 꺼내면서 떡볶이 집 앞으로 달려간다. 엄마 가 아침에 준비물을 사고 잔돈을 남겨오라고 했다. 하지만 난 ‘뭐 천 원 쯤이야’ 하면서 마음의 죄책감은 가볍게 무시하고 줄을 선 다. 내 친구들조차 뒤에 남겨둔 채 줄을 섰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느리게 온건 걔네 탓이니까. 몇 분 뒤, 아이들이 떡볶이 집 앞으로 우르르 몰려드는 모습을 보며 나는 우스꽝스러운 듯 비웃었다. 하나 둘 씩 줄어드는 줄을 보며 ‘아, 빨리 내 차례가 왔으면 좋겠다’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을 견뎌낸다. 부글부글 마치 용암처럼 끓는 그 빨간 국물은 매우 탐 스럽게 보였으며, 동시에 뜨겁고 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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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 속에서 조용히 잠겨있는 떡볶이 떡들은 서서히 빨간색으로 물들여진다. 어떤 오뎅들은 떡볶이를 감싸고 있고, 어떤 오뎅들은 떡과 함께 국물 속에서 빨간색으로 물들여진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떡볶이와 오뎅 국물의 조합은 말 할 것 없이 환상이다. 그러니 잊지 말고 꼭 챙겨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아주머니께서 물 으셨다. “뭐 줄까?” 내 앞에 있는 아이는 “컵 떡볶이 하나랑 슬러쉬 주세요.” 라고 대답한다. 그 대답을 듣고 나는, ‘아 슬러쉬도 나쁘지 않은데.’ 라 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비록 더운 여름이라 할지라도 나는 떡볶 이와 오뎅 국물의 조합이 더 탐이 났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주체 없이 아줌마의 그 한 마디를 듣고 바로 대답했다. “컵 떡볶이 하나 주세요. 아, 그리고 오뎅 국물 가져가도 돼 요?” 아줌마는 흔쾌히 허락해 주시며 떡볶이를 중간 사이즈의 컵 에 담아 주신다. 나는 그 순간이 가장 좋았다. 그 뜨거움이 나의 손에 닿는 그 순간이. 드디어 나는 떡볶이를 입 안에 넣어 음미하 며 여유롭게 나온다. 돈이 남은 것을 확인한 나는 이번엔 문방구로 향한다. 당시의 나에게 있어 문방구는 놀이방이었고, 동시에 온갖 불량 식품을 사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하나에 100원씩 하던 불량 식품은 아무리 먹어도 절대 질리지 않았다. 물론 친구들과 너무 많이 먹어 어머 니께 혼이 났었지만 몰래 먹으면 그만이다. 불량 식품은 물량이 많았기 때문에 비교적 여유롭게 고를 수도 있다. 다만 불량 식품 은 널리고 널려 한 줄로 길게 나열해 있었기 때문에 고르는 데에 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랜 시간이 걸려 고르고 난 뒤엔 기분이 정말 좋다. 나는 아폴로를 제일 좋아했다. 이제 내가 누렸던 어린 시절의 즐거움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학원에 다니느라 바쁘고 나처럼 10 분, 아니면 5분 정도의 군것질을 즐길 시간 여유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물가도 많이 올라 컵 떡볶이가 500원인 곳을 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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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 찾기 어려운 데다가 100원짜리 불량 식품은 이제 아예 없어진 것 같다. 추억의 불량 식품들이 새롭게 출시되었지만 예전의 그 맛은 나지 않는다. 게다가 건강에 안 좋다는 이유로 시중에서 그 모습을 찾아보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음식에 대한 특정한 추억은 오래도록 간직되는 것 같다. 비록 많은 시간이 지났어도 그것이 서서히 사라져 버리는 것을 느낄 때 면 슬퍼진다. 떡볶이, 그리고 불량 식품과 함께 했던 나의 소중한 추억, 앞으로도 계속 마음에 담아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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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15번 테이블 탕짜면 단 하나! Grade 10 윤수빈 Joyce Yoon 집 앞에서 110B 버스를 타서 용산 보건소에서 내린다. 용산 보 건소에서 발이 타는 듯한 뜨거움을 느끼며 길을 건너서 400번 버 스로 갈아타면 용산 역까지 간다. 거기서 조금 더 걷다 보면 아이 파크몰 입구를 지나 이마트로 들어간다. 에어컨이 빵빵하다. 서울 오후 기온이 38도를 넘어가고 매일같이 폭염주의보 문자가 와서 아무도 재난정보를 신경 쓰지 않게 되어버린 불타는 2016년 8월, 이틀에 한 번씩 버스를 타고 용산 이마트에 간 이유가 있다. 용산 이마트 지하 2층에는 푸드 코트가 있고 맞은편 구석에 프 리파라 게임기가 두 대 설치되어 있다. (주: 프리파라란? 프리파라 (일본어: プリパラ)는 다카라토미에서 출시한 아케이드 게임이다.위키백과) 여름 방학의 막바지, 나는 남은 여름을 최고로 의미 있게 보내 기 위해 이 한 몸 불살라 등교하듯이 열두 시까지 이마트에 출석 해 푸드 코트에서 혼자 점심을 처리하고 프리파라에 몰두하는 스 케줄을 감행했다. 그 전에는 매일 오후 서너 시쯤 되어야 일어났 으니 열두 시까지 이마트에 간다고 하는 것은 내게는 큰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평일 열두 시, 이마트의 가장 멋진 점은 프리파라에 대 기줄이 없다는 것이다. 두 기기 다 비어있을 때도 있어서 매우 쾌 적하다. 느긋하게 푸드 코트에서 점심을 먹고 플레이한다 해도 손 해 보지 않는다. 용산 이마트 푸드 코트는 푸드 코트답게 다양한 메뉴가 있다. 가장 효율적인 가게는 버거킹이다. 오천 원 선에서 모든 것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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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할 수 있으며 햄버거와 감자튀김, 콜라만 있으면 멋진 한 끼 식 사가 되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는 불고기 버거다. 처음에는 세트로 구매했지만 혼자 먹기에 양이 조금 많아서 나중 에는 단품으로 사게 되었다. 불고기가 달고 맛있다. 하지만 용산 이마트 푸드 코트 최고의 메뉴를 꼽자면 단연 중국 집이다. 짜장면과 탕수육 세트 - 즉 탕짜면이 단돈 칠천 원. 음식 의 질이 낮은 것도 아니다. 맛있다. 조리 시간은 좀 걸리는 편이 지만 주문한 뒤 프리파라 기기에 동전을 넣고 게임을 구동시킨 뒤 로딩 시간에 달려가서 식판을 받아오는 식으로 시간을 절약한다. 식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게임을 마저 하고 나서 식사를 하는 데 그 사이에 음식이 다소 식어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느긋하 게 식사를 하고, 두 판 정도 더 게임을 하고 집에 간다. 집에 갈 때는 지하철을 타고 간다. 배차 간격 15분인 경의중앙선이 용산역 에서 집까지 바로 가기 때문이다. 칠천 원짜리 탕짜면 세트와 버거킹 불고기 버거 단품이 상징하 는 바. 400번 버스와 서강대역 앞 횡단보도와 용산 이마트와 푸드 코트와 프리파라. 그런 것들은 내게 여름방학 그 자체의 형상이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가을 학기가 돌아오는 내년에는 11학년이니 바빠서 용산에 못 갈지도 모른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여름이 돌 아오기는 한다는 것이다. 용산에 못 가면 나는 집에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맞으며 탕짜면을 시켜먹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닌텐도 3DS 이식판 프리파라를 할지도 모른다. 그 때가 되면 지 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도 여럿 멀어져 있을 것이다. 트위터 타임 라인 저편으로, 카톡방 밖으로, 혹은 한국을 떠나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이국으로 뜨는 이들도 있겠지.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여름이나, 프리파라의 음악이나, 버거킹이나 중국집의 메뉴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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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구찜 Grade 10 이진성 Joseph Yi 나는 생선요리를 굉장히 좋아한다. 가자미나 굴비 같은 흰 살 생선, 고등어나 꽁치, 참치와 같은 등 푸른 생선 뿐 아니라, 대다 수의 사람들이 먹기 힘들어하는 삭힌 홍어도 즐겨 먹는 편이다. 하지만 이 많은 생선들 중 나를 아프게 하는 생선 요리가 한 가지 있다. 끝맛이 비려서도 아니고 뼈를 바르기 곤란해서도 아니다. 그 생선 요리에 담긴 어렸을 적 나의 아련한 추억이 지금도 내 눈을 촉촉하게 젖게 할 뿐이다. 아구찜이라는 요리는 우리 작은고모 생 각을 안 할 수 없게 만드는, 나에겐 가장 맛있고도 먹기 힘든 요 리이다. 사실 나는 우리 작은고모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우리 가족 은 2005년 영국으로 이주하고 나서 거의 매년 한국을 방문하곤 했다. 그런데 한국에 올 때마다 창원에 살고 계시던 고모와 친가 집 보다는 인천에 있는 외가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다보니, 고모댁을 방문하는 것은 나에게 남의 집, 즉 낯선 공간에 가는 것 과도 같은 의미였다. 친척 형들과는 나이 차이가 열 살도 넘게 났 고,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친가집 식구들에게는 말로 설명하지 못 할 거리감이 느껴지곤 했다. 항상 예의를 갖추고 친척들을 대했지 만 사랑과 같은 감정이 드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라 느껴졌 다. 2009년의 여름이었을 것이다. 우리 집 네 식구는 어김없이 인천 행 비행기에 올랐고, 외가집에서 머물다 고모댁에 들리기 위해 KTX를 타고 부산으로 갔다. 부산에서 만난 큰고모와 함께 창원에 있는 작은고모 댁을 가게 됐는데, 열 살 남짓한 나에게 부산과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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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은 그저 친척들을 만나는 따분한 곳이었다. 작은고모네 집은 그 다지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소박한 빌라였다. 당시엔 영국에서 그런 집을 본적이 없었기에 건물 구조 자체가 마냥 신기했지만 지 금 생각해보면 우리 동네에 있는 벽돌 빌라들과 크게 다를 것 없 는 곳이었다. 오랜만에 뵙는 고모네 식구들이었고 너무나도 낯설 었지만 작은고모의 수척하고 야윈 몸은 나에게 충격과 동시에 아 픔을 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런 작은고모의 모습은 상상 도 할수 없었다. 고모는 유방암으로 투병하시는 중이었다. 몸 상태 가 몹시 안 좋으셨고 항암치료를 받으시느라 머리카락도 거의 다 빠지신 상태였다. 모든 상황이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어린 내 눈에 도 고모가 그저 살이 빠지신 걸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 리석고 어렸던 나는 가족들의 안부조차 묻지 못하는 놈이었다. 그 저 무언가 잘못되었구나, 어딘가 많이 아프신가보다는 정도로만 생각을 했다. 그날 저녁 고모는 배고픈 나와 내 누나를 위해 아구 찜을 시켜주셨다. 그 전에는 아구찜을 먹어본 기억이 없다. 있었다 하더라도 그날 먹었던 그 아구찜 만큼 나에게 강한 여운을 남기는 아구 요리는 없었을 것이다. 아구찜은 너무나도 맛있었다. 매운 요 리를 워낙 좋아하는 나에게 아구의 쫄깃쫄깃한 식감과 아삭거리는 매콤한 콩나물은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음식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고모는 계속 나에게 많이 먹으라고 하셨다. 오랜만에 보는 조카가 당신이 시키신 음식을 잘 먹으니 뿌듯하셨던 것 같다. 고 모가 마냥 좋았다. 낯설었지만 친근감이 느껴졌고 의지할 수 있는 분 같았다. 독실한 크리스찬인 고모께서 해주셨던 몇 마디의 말씀 은 나에게 신앙적 믿음도 갖게 해주셨다. 하지만 나는 이제 고모를 천국에서 뵈어야 한다. 다음해 2월 14일, 아빠는 급히 비행기표를 끊어 한국으로 가셨 다. 고모는 긴 투병 생활 끝에 끝내 돌아가셨다. 그 병의 심각성 을 나는 전혀 몰랐다. 고모가 병을 앓고 계셔도 전 해에 뵈었던 발랄하시고 행복하신 것만 같던 고모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쉽사리 믿기지 않았다. 아빠가 슬프신 만큼 슬퍼할 수 없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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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멀게만 느껴졌던 친척과의 이별이 나를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이제 화기애애했던 분위기 속에서 먹은 아귀찜은 다시 먹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창원에서 먹었던 아구찜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 는 아구찜에서 하루아침에 나에게 가장 슬픈 음식이 되어버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에 하나가 나를 가장 아프게 할 수 있 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학교 갔다 오는 길에 강북 08번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앞에 아 구찜을 하는 집이 있다. 나는 여기 동네로 이사 온 것이 감사하 다. 한 번이라도 더 작은고모 생각을 하고 창원에서 먹었던 아구 찜을 그리워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아직도 나는 가끔 그날로 돌아가 아구찜을 즐겁게 먹는 상상을 하곤 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들이었다는 것을 누 구보다도 더 잘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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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일요일 밤의 간식 Grade 10 강응준 Aaron Kang 어느덧 해가 저물어 버린 한 겨울 어느 일요일 저녁, 교회가 끝 나고, 사람들은 계단을 내려와 자기들의 갈 곳을 향해 간다. 초등 학교에 다니던 시절 나는 엄마 손을 꼭 잡고 교회를 나섰다. 밖에 나와 하늘을 바라보니 벌써 날은 어두워졌다. 횡단보도에 서서 잠 이 솔솔 오기 시작 하는 몸을 이끌고, 길을 건너려고 발을 내딛는 순간, 달콤한 냄새가 내 코를 스쳤다. 나는 고개를 돌렸고, 그 거 리 끝에 작은 호떡 트럭이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저녁 시간이 다가오자, 배가 너무 고픈 나는 음식의 냄새에 이끌리는 한 마리의 파리 같이 그 호떡 트럭으로 향했다. 뒤에 서 있던 엄 마는 하는 수 없이 나를 따라오셨고, 우리는 같이 호떡 아저씨에 게 다가갔다. 저녁거리를 사러 마트에 갈 계획이었던 엄마는 호떡 을 먹으려는 나를 말리셨다. 가까이 가서 보니 이 호떡은 다른 호떡들과는 무언가가 달랐다. 여느 호떡들처럼 달궈진 기름에 굽는 것이 아니라, 붕어빵 같이 철틀 안에 반죽을 넣고, 뚜껑을 닫고 돌려가며 호떡을 구워내는 것이었다. 윤기 나고 쫀득쫀득하게 기름에 구워낸 호떡을 좋아했 던 나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한 번 먹어보자 는 생각에 아저씨에게 물었다. “호떡 하나에 얼마예요?” 아저씨는 친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500원이요.” 가격도 생각보다 엄청 저렴했고, 배도 고팠기에, 아저씨께 호떡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신 아저씨는 반죽을 철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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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넣어서 돌돌 돌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소한 냄새가 올라왔다. 그리고 마침내 틀을 열었을 때의 냄새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고개를 돌리게 할 만큼 강했다. 호떡은 먹음직스럽게 부 풀어 있었고, 호떡이라기보다는 과자 공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 것이 끝이 아니었다. 아저씨는 갑자기 무언가 들어있는 소스 통을 들고 오시더니, 그 ‘공’에 구멍을 냈다. 그리고 소스 통을 눌러 공 안에 소스를 넣더니, 그 ‘공’을 또 다시 돌리기 시작하셨다. 그리 고 마침내 나에게 그 호떡을 건네주셨다. 부풀어 있는 호떡을 부푼 마음으로 받아들고, 나와 엄마는 횡단 보도를 건넜다. 드디어 차에 타고 난 후 호떡을 먹어보려 했다. 호떡은 아직도 방금 덥힌 손난로처럼 따스했다. 호떡을 입으로 가 져가니, 달콤하고도 고소한 냄새가 코를 강타했고, 그 동시에 내 이빨은 바삭한 호떡피를 베어 물었다. 쫀득쫀득 하다기 보다는 과 자에 가까운 바삭한 느낌이었다. 구멍 사이로는 꿀의 달달한 향기 가 터져 나왔고, 그 향기는 내 입을 뒤덮었다. 이제 보니, 아까 그 소스통에 들어 있었던 것은 달콤한 꿀이었다. 정신을 놓고 그렇게 계속 호떡을 베어 물다보니, 벌써 내 눈 앞에는 꿀이 조금 묻어있 는 호떡 종이 두 장 밖에 놓여있지 않았다. 아쉬움이 물새는 천장 아래 놓은 바구니처럼 내 마음을 가득 채워 갈 때쯤에는 이미 차 는 출발해 버린 후였다. 나는 애꿎은 종이를 구기면서 애써 아쉬 운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는 않았다. 나는 그 다음 주일, 엄마를 따라 다시 한 번 교회에 가보았지 만, 그 트럭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 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교회에서는 더 멀어졌다. 그와 함 께 호떡을 다시 먹을 수 있는 기회도 더 적어졌다. 나는 그 후로 부터 그 날 그 호떡의 맛을 다시 찾아보려고 애를 썼다. 비슷하게 생긴 틀을 이용해도 보고, 그 아저씨가 썼을 것 같은 재료도 한 번 추측을 해봐서 반죽도 만들어 보았다. 하지만, 내 입 속으로 들어온 것은 그 바삭하고 달달한 호떡이 아니라, 길에서 흔히 만 날 수 있던 평범한 호떡이었다. 나에게 최고의 호떡이었던 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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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도 예전처럼 입에 달라붙지 않았다. 나는 거기서 그냥 멈추었다. 더 이상 그 맛을 찾으려고 애 쓰지 않았다. 그 맛을 찾으려고 시간을 낭비하고, 아쉬움에 젖어있는 것 보다는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고 느꼈다. ‘되돌릴 수 없는 지나간 것들을 찾아 헤매느라 마음고생 하는 것보다는, 그 날, 그 음식을 마주친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는 것은 내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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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꿈 Grade 10 장영재 YJ Jang 나는 항상 꿈이 바뀌었었다. 어릴 때 내 꿈은 축구선수였고, 조 금 커서는 호텔지배인, 경영인 등이 되고 싶었다. 축구를 열심히 했을 때도 있었고, 호텔 지배인이 되고 싶어서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했던 적도 있었으나 길게 가지는 못 했다. 내가 중학교 때부터 항상 바뀌지 않고 꾸준히 해왔던 것은 작곡 하나였다. 처음 작곡을 시작 했을 때는 매우 어려웠다. 또 이런 것은 직업이나 꿈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애초에 작곡가라는 꿈은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취 미로 하더라도 4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그만두지 않고 꾸준히 해왔 다. 한국 중학교 3학년을 다니고 있을 무렵, 나는 내 미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작곡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 서 공연도 해보고, 작업도 같이 해 보며, 조용히 활동을 시작하였 다. 처음에는 비판도 많이 받고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꾸준히 하였다. 추운 겨울에도, 더운 여름 날에도 홍대에서 친구들과 함께 공연을 했다. 정말 힘들었다. 하지 만 이런 공연을 하고 싶어도 못하던 때도 많았다. 노래가 별로라 는 것이 이유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더 좋은 노래를 만들어보 자’, ‘사람들이 좋아할만 한 것을 만들어보자’라고 생각하며 계속 작업을 해왔다. 계속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끊임 없이 노력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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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렇게 지낸 지 벌써 2년이 되었다. 처음 시작과 비교하면 모든 것이 다 매우 잘 되어 가고 있다. 대회에 나가서 상도 받고, 꽤 유명한 분들과 작업도 해보고 작업해 달라는 연락도 받곤 한다. 공연도 버스킹이 아닌 아트홀 또는 공연장에서 하게 되었다. 또 음원도 내는 계획도 생겼다. 4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해온 결과인 것 같다. 이것이 나의 최종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계속 더 열심히 할 것이다. 4년 동안 깨달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어떤 것을 좋아하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언젠가 누구에게든 기회가 온다 는 사실이다. 내가 그렇게 음악 쪽으로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작업과 공연을 해온 사람으로서, 요즘 음악을 좋아하 고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 면 언젠가 사람들이 알아준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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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지혜의 선물 Grade 10 정현욱 Jakin Jeong 나는 살면서 많은 선물을 받았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등을 이 유로 해서 남들에게 받은 선물이 많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받 은 선물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선물은 내 자신에게서 받은 선물 이다. 나는 내 자신에게 경험을 통해서 ‘교훈’이라는 선물을 종종 받곤 한다. 물질적인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좋지만 그때 한 순간 뿐이다. 물질적인 것은 잠시 동안 있지만, 정신적인 것은 오래 가 는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살지는 않았지만 살면서 얻은 교훈이 많 은 것 같다. 특히 실수를 통해서 얻은 교훈이 많다. 이 교훈들이 내가 내 자신에게 준 선물들이며, 이 선물들은 나에게 아주 중요 하고 가치 있는 선물들이다. 나는 교훈을 인생의 선물이라고 표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한 번의 큰 실수를 통해서 교훈을 얻은 적이 있다. 어느 날, 집 에서 인터넷이 잘 안 되던 날이 있었다. 인터넷이 심하게 느려서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그리고 인터넷이 느린 이유도 정확히 몰 라서 답답했다. 라우터 리셋을 몇 번이나 했지만 인터넷이 여전히 느렸다. 더구나 늦은 밤이라서 피곤하고 졸린 상태였기에 많이 예 민해져 있었다. 나는 쓸데없는 화를 내고 침착하게 행동하지 못했 다. 인터넷 속도로 나는 불필요한 엄청난 양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는 스트레스를 조절하려고 시도하기는커녕 계속 화를 내며 내 상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침착하게 인내심을 가지고 다음 날까지 기다렸다면 그렇게 많은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을 텐데, 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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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일어났더니 인터넷이 아무렇지도 않게 본래의 속도로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에 인터넷이 그 정도로 느려졌던 적은 거의 없었고, 가끔 인터넷이 느려질 때 면 라우터 리셋으로 바로 고쳐졌다. 나는 그날 많이 후회했다. 내가 대체 왜 이런 작은 일 갖고 난 리를 쳤을까? 그냥 다음 날까지 기다렸다면 해결 될 것을 왜 굳이 그렇게 스트레스 받았을까? 그래서 이 경험을 통해 나는 교훈 하 나를 얻었다. 인내심은 중요하고 인내심을 가지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것이다. 이제 나는 나쁜 일이 생겨도 대부분은 침착하게 해결책을 찾고 인내심을 가지고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교훈 이 내가 내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나에게 삶의 지혜를 알려 주는 값진 이 선물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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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서프라이즈! Grade 10 후지모토 미유 Miyu Fujimoto ‘선물’이라는 말은 사람을 기쁘게 한다. 큰 것, 작은 것, 형태가 있는 것, 없는 것 등 선물의 종류는 다양하다. 선물을 주는 사람, 보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만큼 두근거리게 하는 것이 바로 선물이 다. ‘어떤 선물을 할까?’, ‘이 선물을 과연 좋아할까?’ 선물을 선택 때부터 그 사람의 웃는 모습을 상상한다. 나는 이 순간을 가장 좋 아하다. 이 이야기는 나랑 내 친구가 함께 준비한 생일 선물의 이야기 다. 처음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내 친구였다. 그 친구가 우리 모 두에게 다음 주에 한 친구의 생일이 있으니까 뭔가 같이 하자고 말했다. 우리 모두 그 의견에 찬성했다. 그래서 생일인 친구가 없 을 때 모여서 작전 회의를 했다. “무엇을 할까?” “무엇을 우리 힘으로 할 수 있을까?” 그러다 결정한 것은 케이크와 메시지를 준비해서 주는 것이었 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재미가 없으니까 우리는 서프라이즈를 하기로 했다. 먼저, 그 친구에게 주는 메시지에 선생님께서 쓰신 메시지를 넣 고 싶었다. 그러려면 그 친구한테 수업을 듣고 있는 선생님 여덟 명의 이름을 가르쳐 달라고 해야 했는데 그때 어떻게 하면 그 친 구가 의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선생님 명단을 넘겨받을 수 있을 까 고민하며 너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것이 이 이벤트를 준비하 며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다행히도 그 친구는 아무런 눈치를 채지 못했고, 쉽게 명단을 받을 수 있었다. 선생님 명단을 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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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시 우리는 선생님들께 가서 메시지를 써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 런데 자리에 안 계시는 선생님이 많아서 이틀 동안 작업을 해야 했다. 생일인 친구 몰래 선생님들이 있는 곳에 가서 메시지를 받 는 일도 스릴있고 재미있었다. 그렇게 모은 메시지들을 그림을 잘 그리는 언니에게 전달했다. 거기에는 물론 선생님들의 메시지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의 메시지도 같이 있었다. 언니는 모두의 메시 지를 한 종이에 모아서 너무 귀엽게 변신시켜 주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나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 친구는 나보다 수업이 늦게 끝나기 때문에 나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케이크를 사러갔다. 친구에게 들키지 않게 케이크 를 냉장고에 넣었다. 그 다음에 약속 시간보다 조금 더 빨리 우리가 만나기로 한 식 당에 갔다. 나중에 도착한 그 친구는 자기 생일을 맞아 다른 아이 들에게 한 턱 낼 수 있어 기쁜 듯 보였다. 식사가 끝난 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서 나는 그 친구에게 책을 빌려달라고 말했다. 그 친구는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고 책을 가지러 집에 들어갔다. 그때 우리는 케이크와 메시지를 준비했다.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긴장 되는 순간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서프라이즈는 대성공이었 다. 그 친구도 우리가 해 준 서프라이즈를 보고 놀라워하면 즐거 워했다. 성공적인 결과가 나와서 너무너무 기뻤다. 나는 이런 것을 준비한 것이 처음이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짧 은 기간에 많은 것들을 준비해서 친구를 행복하게 할 수 있었는데 우리가 더 오랜 기간을 준비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에 또 서프라이즈를 계획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만약에 다음이 있다면 그때는 더 잘 준비해서 퀄리티 높은, 고품 질의 서프라이즈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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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여행 Grade 10 김형준 Jason Kim 어떤 모습에 대한 설명은, 그것이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일 때, 더욱 감정에 휘둘리게 된다. 그 예로 즐거울 때는 흐릿하게 보이 는 것들이 자조적인 감정일 때는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그만큼 어떤 것에 대한 정해진 모습은 없다. 하지만 진짜 모습이라는 것 은 그러한 관점의 불분명에도 불구하고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생각 한다. 왜냐하면 ‘모습’에 대한 해석은 불확실하지만, 대상의 ‘모습’ 은 그 사실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럼 나 자신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나의 진짜 모습을 찾 기 전에 ‘나’ 자신에 대한 관점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내가 다른 누군가와 다르게 식별이 된다면, 분명히 나의 진짜 모습도 남들과 다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다’, ‘감정이 있다’, ‘호불호가 있다’와 같은 문장으로 설명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 무엇이 나를 다른 사람과 다르게 만들어줄까? 아마도 나의 경험과 기억, 그리 고 그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99년도에 태어나, 지금에 비하면 조그마한 집에서 부모님 과 함께 살았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방이동에서 살았다. 이것이 나름 중요한 기억이라면 기억이지만, 사실 어머니가 말씀해 주시 지 않았더라면, 내 기억의 시작점은 항상 보스턴이었을지도 모른 다. 회사에 다니시던 30대 중반쯤의 아버지는 항상 늦으셨다. 정 확히 말하자면 늦으셨다고 한다. 거의 매일 같이 퇴근 후에는 집 에서 조촐한 저녁을 드신 후 도서관으로 향하셨고, 자연히 어릴 적의 나와는 멀어지셨다. 하지만 그 덕분에 아버지께서는 미국으 로 유학을 하실 수 있으셨고, 우리 세 가족은 미국으로 이사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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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미국에서의 첫 번째 기억은 처음 유치원 간 날에 영어를 못해 부끄러워했던 내 모습이다. 마지막 기억은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같이 놀면서 사진 찍었던 것이다. 나는 미국에서 많은 것을 경험 하였다. 오히려 지금보다도 더 사회성이 좋았고, 고집도 셌다. 덕 분에 장난이나 농담 같은 것도 좋아했고, 고집 때문에 선생님들께 혼난 후 사탕을 받았던 기억도 있다. 난 그곳에 적응을 잘 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아버지는 대학원 과정을 마무리하셨고,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실 한국의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좋았던 기억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대부분의 내 한국에서의 추억이라 할 만한 것들은 모두 친 구들과 야구를 하거나 아님 짜장면을 먹는 기억이었고, 단체 생활 을 이해 못해서 선생님들께 혼난 기억일 것이다. 2년 반, 3년을 미국에서 살아온 나는 한국어를 못했다. 동부 미국의 보스턴의 친 했던 한국인은 부모님 두 분과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여자애뿐이었 다 당연히 나의 한국어는 한국어라 할 수 없을 만큼 영어와 섞여 있었고, 선생님들이나 친구들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와 똑같이 적응을 하면 되었겠지만, 나는 도무지 적 응을 하기 싫었고, 할 수도 없었다. 성격도 자연히 변해갔다. 고집 도 한 풀 꺾였고 장난도 덜 치게 됐다. 하지만 점점 내 것에 대한 욕심이 생겨났고, 친구들과도 자주 싸웠다. 덕분에 나의 한국어도 늘었다. 그렇게 대충 초등학교 3학년까지 조금은 이른 사춘기를 지냈고, 나머지 5년은 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마인드로 살았다. 지금 보면 꽤 후회가 된다. 어차피 나와 1, 2년 지낼 사 람들 때문에 내 성격이 변한 것도 아쉽고, 무슨 덕을 보려고 남들 과는 다른 차별점이 될 수도 있었을 사고방식을 타협 아닌 타협을 해서 바꿨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다시 미국, 정확히는 캐나다 로 갈 기회를 얻었다. 처음 캐나다 유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지쳐있었다. 부모님께서 일방적으로 공부하라고 닦달하시던 분들은 아니셨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지칠 거리가 없었지만, 학교 친구들과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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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가 문제였던 것 같다. 물론 내가 학교 폭력의 대상이었다거나, 아님 친구들 사이에서 무리에 끼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친구들 의 행동이나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 혼자 끙끙 앓았던 경 험이 많다. 그래서 나는 더 ‘한국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고, 점점 피곤과 함께 한국 사회에 적응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캐나 다 유학 이야기를 듣기 전에. 다시 외국 생활을 해서 지금과는 다 른, 좀 더 편안한 친구 관계를 가질 수 있을까를 상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캐나다에서 내가 경험한 것은 오히려 더 치열한 한국식 태도였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지쳐가는 것도 똑같았다. 사춘기가 온 나는 점점 내 마음을 겉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다행 히도 폭력적인 방향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폭력적인 표현보다도 내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동이었다. 내 관심은 점점 음악으 로만 향하였고, 자연히 숙제에 대한 나의 책임감은 줄어들었다. 그 와 동시에, 성적과 학교 환경이 문제가 되어 나의 유학지는 미국 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나는 거기서도 똑같은 경험을 하였다. 여유 도 없이, 또 이유도 없이 친구들은 항상 달리기만 했다. 하지만 나는 내 태생적인 게으름 때문인지, 아니면 어렸을 때의 미국 생 활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걸으려고만 했다. 다행히도 성적은 그 전보다 향상되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친구들과 만나면 항상 숙제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나는 대충들은 정보들을 해석하 여 숙제를 메꿨다. 하지만, 이런 생활에도 지친 나는 한국으로 돌 아겠다는 결정을 하게 되었고, 이렇게 APIS에 다니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 하나하나가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나는 어떻 게 보면 굉장히 소심하고 표현을 잘 안하는 성격이지만, 또 동시 에 굉장히 놀기 좋아하고 적극적인 모습도 가지고 있다. 이중적인 태도 위에서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고민한 경험도 또래에 비하 면 많고, 또래에 비해서 책임을 지는 경험들도 많이 하였다. 그래 서 그런지 솔직히 딱 꼬집어서 나의 진짜 모습에 대한 의견은 말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러한 여러 가지 경험들을 토대로 나의 여 러 가지 모습이 만들어 졌고, 앞으로도 만들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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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것에 대한 허상 Grade 10 박지훈 Joshua Park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 어린 시절, 그때 나는 받고 싶었던 장난감이 하나 있었다. 학교에서 처음 본 장난감이었는데 공기압 을 써서 위로 쏠 수 있었고, 진짜 신기해 보였다. 알고 보니 그 장난감의 주인은 선생님이셨다. 나는 그걸 갖고 싶었고 부모님을 조르기 시작하였다.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크리스마스에 사주신다 고 하셨다.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에 나는 정말 흥분했다.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지만 그 장난감은 한국에 없어서 인터넷으로 주문 해야 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날에 받지 못하고 2주 후에 받았 다. 그 장난감이 온 날, 나는 매우 기뻤다. 그 장난감을 가지고 놀 기 전에 조립을 해야 했는데 혼자서 해 보았다. 하지만 그때 내가 힘이 약하고 요령이 없어서 그랬는지 그 장난감을 조립하려고 거 의 밤을 샜다. 밤을 새워서 짜증이 많이 났다. 그리고 다음 날, 장 난감으로 공기를 쏘려고 했는데 조절이 어려웠다. 그러나 금방 적 응을 할 수 있었고, 그 후 2주 동안 나는 장난감과 재밌게 놀았 다. 하지만 곧 그 장난감이 지겨워졌다. 아버지가 이걸 사면 곧 지겨워질 거라고 경고하셨었는데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장난감이 쏠 때마다 내 팔 힘이 공기압보다 약해서 손이 아팠고, 조준이 어 려워서 지겨워졌다. 그러다 보니 그냥 재미가 없어져서 그 장난감 을 구석에 나뒀다. 그 이후로 나는 장난감을 사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갖고 싶 은 물건들은 결국 다 자기한테 쓸모가 없어지고 후회가 많이 되므 로 갖고 있는 물건들을 잘 쓰고 다른 사람들 부러워하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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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은 다 이렇다. 다들 신상품이나 명품을 갖고 싶어 하지만 사실은 그런 것은 다 필요 없다. 자기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다 무시한다. 갖고 싶어 하던 물건 갖기 전까지는 그 물건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직접 받으면 곧 실망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갖고 있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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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코끼리와 하마 Grade 10 정지훈 Jihun Jeong 선물, 선물은 무엇인가? 선물은 한 명의 존재가 다른 한 존재에 게 자기 감정을 물건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나도 선물을 받아본 적이 있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가장 기 억에 남는 선물을 받았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날씨는 아주 추웠다. 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제일 갖고 싶었던 것은 강아 지였다. 그때는 강아지 키우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도 질투가 났 다. 강아지가 너무 귀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이브에 부모님께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자고 졸랐다. 부모님께서는 크리 스마스니까 생각을 해보겠다고 하셨다. 나는 엄청 들떠있는 상태 로 침대에 누웠다. 다음 날 아침, 엄청 일찍 일어나서 거실로 뛰어갔다. 거실에 있 는 크리스마스트리 밑에는 무엇인가 선물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런 데 그것은 강아지가 아닌 무슨 벌레였다. 내 아홉 살 인생에서 그 만큼 실망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나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벌레를 들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벌레를 자세히 보니까 장수풍뎅이였다. 수컷, 암컷 한 마리씩 있었다. 나는 그 벌레들을 너무나도 싫어했 다. 귀여운 강아지를 대신해서 이 징그러운 장수풍뎅이를 키워야 됐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동안 나는 그 벌레들을 만지지도 않았다. 한 일주일이 지나서야 그 벌레들이 귀엽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 는 수컷을 이름을 ‘코끼리’라고 짓고, 암컷을 이름을 ‘하마’라고 지 었다. 나는 학교에서 오자마자 코끼리와 하마한테 음식을 먹였다. 코끼리와 하마를 키우다 보니 강아지보다 장수풍뎅이를 훨씬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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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게 되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장수풍뎅이들을 찾았는데 어디 갔는지 없었다. 엄마한테 물어보니까 그날 아침에 죽었다고 하였다. 엄마 와 나는 코끼리와 하마를 우리 아파트 단지 앞에 묻었다. 나는 그 날부터 코끼리와 하마를 묻은 곳을 지나면 기도를 했다. 이제 벌레 소리만 들으면, 나의 장수풍뎅이들 생각이 난다. 이 게 내가 받은 선물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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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깜짝 선물 Grade 10 정민기 Mingi Jeong 나는 어렸을 때 강아지를 제일 키우고 싶었다. 병아리도 키워보 고, 토끼도 키워보고, 별의 별 동물들을 다 키워봤지만 날 만족시 켜 주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난 외동이어서 동생을 대신해 줄 누 군가가 필요했다. 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 누군가가 누가 될 수 있을지. 심사숙고 끝에 생각해 낸 것은 강아지였다. 하지만 내가 부모님께 강아지를 사달라고 하면 안 된다고 하실 것이 뻔했다. 어떡해야 좋을까. 내가 시험을 잘 보면 사 주실까, 아님 내가 심부름을 잘 하면 사 주실까, 아님 무엇을 해야 강아지 를 얻을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그러나 내가 뭔 짓을 해도 부모 님은 절대 허락 해 주시지 않을 것 같았다. ‘하, 어쩌면 좋을까?’ 동생을 대신 할 수 있는 무언가는 찾았지만 그 무언가를 얻기 위 한 부모님의 마음은 얻지 못했다. 어느덧 그해 내 생일이 다가왔다. 난 부모님께서 강아지를 생일 선물로 사주실까 기대는 했지만 역시 기대는 기대로 끝났다. 또 한 번의 기회는 사라지고 이제 남은 건 크리스마스 선물뿐이었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마치 우주 속에 혼자 남아 누군가 가 나를 위해 찾아오길 기다리는 마음과도 같았다. ‘크리스마스, 언제 오나?’ 어느덧 더운 여름이 가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 을 지나, 눈이 내리고 차가운 겨울이 왔다. 그리고 앞으로 크리스 마스까지 열흘. 어느 때보다도 가슴이 두근두근거리고 떨렸다. 크 리스마스이브, 난 선뜻 잠에 들지 못했다. 과연 부모님이 내일 강 아지를 사 주실까? 큰 기대 속에 잠겨 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크리스마스 아침, 눈을 떠보니 눈 앞에 웬 커다란 박스 하나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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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에 놓여 있는걸 보았다. “웬 박스지?” 난 아무런 궁금증이 없이 다시 누웠는데 그러다 갑자기 박스에 서 웬 긁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그 박스로 발 길을 옮겼다. 아니 이게 웬일이야? 박스 안에는 강아지가 들어있 다. 강아지가 있다. 내가 그토록 바라고 바랐던 강아지가, 그 강아 지가 박스 안에 들어있는 것이다. 난 한달음에 엄마에게 달려가 있는 힘껏 안았다. 내 힘이 다 빠질 때까지. 그날 이후 나의 하루는 강아지와 늘 함께였다. 밤에 산책도 나 가고, 같이 놀기도 하고, 또 산책하고 들어오면 내가 직접 샤워를 시켜주기도 했다. 모든 것이 다 좋았다. 강아지가 생겨서 나는 혼 자 있을 때처럼 삶이 따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내 강아지는 아직 갓 태어난 아기였기 때문에 사료를 물에 불려 서 줘야 했다. 하지만 문제는 사료를 주고 나서였다. 먹이를 먹고 나서 배변을 집안 아무데나 한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강아지를 혼내며 훈련을 시켰지만, 작은 강아지에게 크게 소리를 질러서 혼 낸다는 것이 마음에 썩 내키지가 않았다. 그 후로 강아지의 일정 한 장소에서 배변을 하는 능력은 점점 없어졌고 결국엔 우리 안에 강아지를 넣기로 했다. 빼달라고 울고불고 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안타까워 보였다. 훈련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나 때문에 저 강아 지가 슬퍼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가다가 패드 위에 배변 을 누면 그때마다 간식을 주고 칭찬을 해줬는데 그때뿐이었다. 한 2년을 그렇게 강아지를 키우다가 나와 부모님은 더 이상 그 강아지를 키울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부모님이 강아지를 분양 시키시려고 아는 지인 분께 부탁을 했다. 강아지를 분양한다는 게 뭔가 되게 슬펐다. 과연 얘가 새 주인을 만나면 지금처럼 행복하 게 살 수 있을지, 배변은 잘 가릴지 등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 었다. 고심 끝에 난 강아지를 분양하기로 마음먹었고 분양하기 전 마지막 날 거의 대부분을 강아지와 보냈다. 분양 당일 새 주인이 우리 집에 오고 내가 강아지를 건네주었는데 무엇 때문인지 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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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핑 돌았다. 강아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거실에 앉아 있는데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지더니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강아지가 없는 그 시간이 너무 고요했고 이제 다시 혼자 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강아지가 새 주인을 만나 지 금보다 더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어느새 내 마음 한 구석 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은 내 곁에 같이 있진 않지만 그 당시 나에게 있어 없어선 안 되었던 존재, 내 강아지. 그런 그 강아지가 지금은 매우 그립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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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내 얼굴 Grade 10 김혜민 Janice Kim 나는 아기 때 정말 예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크면서 어쩔 수 없이 못생겨졌다. 무조건 사람은 어렸을 때처럼 똑같이 아름답게 클 수는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크면서 사람은 사춘기를 겪고, 스트레스를 받고, 많은 일들을 당하면서 못생겨질 수밖에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언니랑 많이 싸웠기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 다음부터 나는 쭉 못생겨진 것 같다. 몇 년 지난 후, 나는 컸지만, 여전히 못생겼었다. 중학교를 다니 기 시작했는데, 나는 안경을 끼고, 앞머리를 이상하게 자르고, 교 정기도 끼고, 옷도 이상하게 입고 다녔다. 예를 들면, 농구 바지에 다가 겨울 부츠를 신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랬는 지 모르겠다. 6학년이 내가 미국에 사는 마지막 해였지만 나는 그 렇게 못생긴 상태로 지냈다. 다른 친구들은 그때쯤 예쁘게 변화를 시작했지만, 나는 바뀌지가 않았다. 나는 내가 그랬던 것이 너무 이해가 안 가고 후회가 된다. 하지만 내가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과거로 돌아가서 나를 바꿀 수 있다 면 나는 지금 당장 돌아가 나를 바꿀 것이다. 7학년 때 나는 한국으로 이사를 왔다. 한국에 와서 조금 나아지 기는 했지만, 나는 또 다른 이상한 시도들을 하고 다녔다. 머리스 타일을 더 예쁘게 바꿨지만, 앞머리 때문에 머리핀을 꽂기 시작했 고,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어색했다. 나는 처음 APIS 에 와서 친구를 많이 못 사귀었다. 왜냐하면 나는 한국어도 잘 못 했고, 성격도 학교 애들이랑 많이 달랐기 때문에 서로가 잘 안 맞 았었다. 물론 수련회를 다녀온 후에 애들이랑 친해지기는 했지만 내 이상한 외모는 여전히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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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회가 끝난 2주 후, 나는 변신을 했다. 머리핀을 빼고, 렌즈 를 끼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상당히 예뻐졌다. 그 다음부터 사 람들은 나에게 말도 더 많이 걸고 나는 좀 더 행복했기 때문에 더 예뻐졌었다. 하지만 그 같은 해 GCP를 다녀오며 나는 스트레스를 무척 많이 받았었다. 7학년 때 모든 여자들은 사춘기였고, 드라마가 많았기 때문에, 나는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 GCP가 끝나고 나서도 드 라마가 계속 되었기 때문에 나는 다시 피곤해지고 못생겨졌다. 이제 나는 9학년이다. 드디어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 히 못생겼다. 공부할 것도 많고, 드라마도 아직 있고, 나는 인생이 너무 피곤하다. 잠도 많이 못 자서 다크 서클 같은 것들이 생겼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못생겼다. 인생은 나쁜 시기와 좋은 시기가 둘 다 찾아온다. 그리고 이 두 시기 다 사람의 외모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는 사 람이 예뻐지고 싶으면 먼저 진심으로 행복해져야 된다고 생각한 다. 빨리 내가 행복해져서 다시 예뻐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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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Grade 10 남윤준 Joshua Nahm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무엇일까? 아마도 돈, 지식, 집, 사랑 등 여러 가지 것들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 중에서도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부모님 이다. 그 이유는 부모님이 있으면 기본적인 다른 것들은 보통 같 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즉,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는 부모님은 꼭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세 상이 될 수 있다. 부모님께서 자녀에게 바라는 것은 곧 세상이 각 자에게 바라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내 주변 대부분의 아이들처럼 부모님을 잘 만나서 질 높은 학습 환경에서 공부를 할 수 있고, 의식주에 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냥 오는 것은 아니다. 이 모든 지원은 부 모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또 나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실 수 있다. 내가 보기에 아마도 부모님은 내가 완벽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 같다. 완벽한 사람이란, 모든 걸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돈 많고, 똑똑하고, 운동 잘하고, 성격 좋고, 아까 말했던 요소들은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이야 말 로 완벽한 사람이다. 부모님은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물론 그것은 내가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기대를 ‘완벽’하게 만족 시켜 드릴 수 없다. 세상은 내가 만능이길 바란다. 모든 것을 잘하는 어른이 되는 것, 그것이 나의 부모님이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나는 그 바람을 충족시킬 수 없다. 내가 재능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원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내 자신이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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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자유로웠으면 한다. 부모님은 나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많은 것들을 시키신다.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라고 항상 학원에 보내시 고, 집에서 게임은 금지시키고, 그리고 통금까지 정하셨다. 나를 위해 많은 것들을 투자하는 것은 고맙지만 나는 조금은 자 유로운 삶을 살기 원한다. 나는 최소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조 금씩 하면서 살기 원한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은 그렇게 크 고 위험한 것들이 아니다. 하지만 단순한 것들도 아니다. 내가 원 하는 것은 적당한 양의 공부, 적당한 시간의 휴식과 게임, 그리고 압박 속에서의 자유로움, 이런 것들이다. 세상이 원하는 나, 그리고 내가 원하는 나. 이 둘은 다소 차이 가 있긴 하지만 둘 다 나를 위한 것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세상 이 원하는 나는, 내가 어른이 되어 좋은 인생을 살게 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나는, 세상이 원하는 나보다 좋은 인생을 살게 해주 지는 아마 않겠지만, 심리적으로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해 줄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으로 살고 싶다. 물론 세상이 원하는 나는 내가 살아가기에 부족함을 주진 않겠지만, 인생은 원래 즐겁게 사는 것이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알고, 내가 잘되기를 바라시는 마음은 알지만 내 가 진짜로 행복해지는 것이 무엇인지는 내가 결정하고 싶다. 나는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기로 정했다. 그래야 진 정한 나를 찾고 살아 갈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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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분석>

스기시타노조미(N을 위하여)의 인생 Grade 10 오주현 Ju Hyun Oh <N을 위하여>는 한 살인사건으로부터 모든 게 시작된다. 동경 의 초고층 호화 맨션에 사는 회사원 노구치와 그의 아내 나오코가 살해되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 있던 네 명의 젊은이로부 터 상황을 들은 후 범인 니시자키를 체포한다. 그의 자백으로부터 유죄가 확정되고 징역 10년이 선고된다. 그리고 10년 후, 이 사건 판결의 의혹을 품은 전 경찰관 다카노는 사건의 전말을 쫓기 시작 한다. 그 경찰관의 조사로 인해 10년 후, 당시 현장에 있던 네 사 람의 고백을 통해 알려진 것과 전혀 다른 진실이 들어난다. 각자 이니셜 N을 가진 인물들이 어떻게 만나, 누굴 사랑하고, 어떤 죄 를 저질렀는지 현재와 과거를 교차시키면서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가는 이야기이다. 스기시타 노조미는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던 목 격자 중 한 명이며, 힘든 과거와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그 후 이 사건이 그녀의 인격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스기시타, 안도, 나루세, 나오코, 노구치, 니시자키. 이 6명은 이 름이나 성에 영어 이니셜 N이 들어가며 10년 전 한 사건에 연루 된 인물들이다. 그리고 이 6명은 그때 모두 저마다의 N을 위하여 사건에 휘말렸던 것이다. 누군가는 누군가를 죽였고, 누군가는 또 누군가를 위해 살인죄를 뒤집어썼고, 또 다른 누군가는 또 다른 N 을 위해 다른 N을 감싸주었다. 그리고 어떤 N은 또 어떤 N의 사 랑을 의심했고, 해서는 안 될 질투를 했다. 어느 작은 섬에 살고 있는 여고생 스기시타. 작은 섬이었지만 그녀는 그 곳에서 지방 유지의 딸로 남 부러울 것 없는 풍족한 집 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는 외도 끝에 젊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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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집에 데려오고, 어머니와 남동생과 함께 스기시타는 그야말로 무일푼으로 쫓겨난다. 밥을 얻기 위해 아버지의 외도녀에게 무릎 을 꿇고 구걸을 하거나, 대학 진학을 걱정해야 하는 극도의 궁핍 한 상황이 된다. 그 상황을 더욱 가혹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어머니의 정신 착란 증상. 아버지의 외도와 쫓겨났다는 사실에 심리적으로 불안해진 어머니는 그날 이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쳐가기 시작하며 스기시타를 향한 집착도 날로 심해져 간다.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 가 힘든 스기시타는 같은 반 동급생 나루세에게 심리적 동질감과 첫사랑의 설렘을 느끼게 된다. 나루세는 섬의 큰 식당인 ‘잔물결’ 사장의 아들인데 섬의 인구가 줄어들고 불황으로 인해 잔물결도 상황이 좋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잔물결에 대형 화재가 일어난다. 방화로 추정 되는 그 불은 나루세가 집을 비운 사이에 일어났고, 집 안에는 나 루세의 아버지가 있었으나 다행히 같은 마을 경찰의 부인이 집 안 에 달려 들어가 아버지를 구출해낸다. 그 시각 불에 타는 집을 넋 을 놓고 바라보는 나루세에게 어느 틈엔가 스기시타가 뛰어 다가 오고, 경찰이 사정 청취를 위해 나루세를 차에 태울 때 스기시타 는 나루세에게 걱정 말라는 귓속말을 한다. 그 장면을 본 경찰은 그때부터 10년이 넘게 잔물결의 방화범이 나루세이며, 스기시타는 죄를 발설하지 않은 공범이라고 여기며 살아가게 된다. 그 경찰이 그렇게 긴 시간 그들을 의심하고 사건을 못 잊게 되는 이유는 잔 물결에 뛰어 들어가서 나루세의 아버지를 구한 대신 사건의 영향 으로 목소리를 잃게 된 사람이 바로 자신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잔물결 사건 방화범의 공소 시효가 얼마 남지 않게 되어 그 경찰은 2014년인 현재, 나루세와 스기시타를 찾게 된다. 그는 10년 전, 그러니까 두 사람이 섬을 떠나 성인이 된 후, 도쿄 에서 살인 사건 현장에 함께 있었음을 알게 되고 본격적으로 두 사람의 그간의 행적을 조사하게 된다. 성인이 된 스기시타는 들장미 하우스라는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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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집 같은 곳에 기거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비슷한 또래의 안도, 니시자키를 만나게 된다. 같은 학교 동년배의 안도, 소설가 지망생 인 니시자키. 이 세 사람은 곧 사이좋게 어울리게 되는데 들장미 하우스의 철거 소식이 들리게 되고, 철거를 막기 위해 건설회사 중역에 접근하여 정보를 빼내자는 ‘N 작전’을 시작하게 된다. 여기서 처음 나오게 되는 N. 마침내 그 중역 부부와도 가까워지 고, 다행히 들장미 하우스도 보전되게 되는데 나오코, 노구치 부부 의 숨은 진실을 세 사람은 알게 된다. 나오코는 노구치에게 가정 폭력을 당하고 있던 것이다. 나오코를 사랑하게 된 니시자키. 그는 나오코를 노구치에게서 구출해 내기 위해 또 다른 N 작전을 실행하게 된다. 일명 ‘N 작 전 2’ 이것을 실행하기 위해서 스기시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스기시타는 망설이게 된다. 그 즈음 스기시타와 재회하게 된 나루세. 스기시타에게 사랑의 의미는 죄의 공유였다. 그녀에게 사랑은 함께 죄를 공유하는 것이 다. 스기시타는 잔물결에 불을 지른 범인이 나루세인지 알고 있었 고, 나루세의 범죄를 묵인해 주는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그렇게 스무 살에 각자 섬을 떠났던 두 사람은 성인이 되어 스기시타는 직장인, 나루세는 대학을 중단하고 요리사가 되어 재회한 것이다. 니시자키는 두 사람에게 나오코를 구출해 내는 작전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하고, 두 사람은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여 2004년 크리스 마스이브에 ‘N 작전 2’ 나오코 작전이 실행된다. 스기시타는 노구 치와 장기를 두며 노구치를 잡아두기로 했고, 그 사이에 니시자키 는 꽃 배달원으로 변장해서 집 안에 들어가 나오코를 구출하고, 그가 나오코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갈 때까지 나루세는 자신의 레 스토랑 출장원으로 그 집에 도착하여 파티 준비를 한다. 이 완벽해 보이는 작전은 마지막에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 니시 자키와 우연히 로비에서 마주친 안도는 ‘N 작전 2’를 눈치 채게 되고, 평소 스기시타가 좋아하는 상대가 ‘죄를 공유’한 나루세임을 질투한 안도는 밖에서 문을 잠그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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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들이 모여 하나의 큰 사건을 만들고 모두는 공범이 된다. 이 들의 결론 역시 너무 현실적이고 아무것도 없어서 슬프고 허무하 다. 다만, 이유 없는 삶은 없듯이 그 모든 것이 너무나 이해되고 공감되어 그 여운이 아주 짙게 남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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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소설>

토끼전 패러디 Grade 10 권진아 Jina Kwon 이수빈 Claire Lee 김혜민 Janice Kim 권진아 어떤 바다에 어마어마한 궁전이 하나 있었다. 궁전의 금과 보석 으로 꾸민 벽 안에는 한 용왕이 살았다. 부지런하게 용왕을 위해 일하는 하인들도 있었고, 용왕의 보안을 위해 24시간 궁전을 지키 는 군사도 있었다. 매일 용왕은 교실 한 개 크기만큼의 음식을 차 려 놓으라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거의 1분 1초 못 쉬게 일을 시 켰다. 용왕이 명령을 내려서 많은 동물이 열심히, 있는 노력을 짜 내면서 일했지만 용왕이 원하는 음식과 고기만큼 차리지 못했다. 조금씩 용왕은 만족하지 않았고 자주 화를 내기도 했다. 용왕은 하인과 군사들을 더 빨리 일하게 했고 용왕이 배고프면 하인, 요 리사, 군사 등을 먹이로 죽이기도 했다. 어느 날, 한 하인이 용왕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용왕님, 요즘 용왕님을 위해 더 노력을 하지만 그 노력에도 모 든 일과 음식 준비를 끝낼 수가 없습니다. 하인과 군사들이 병에 걸리기도 하고 아파 움직이지도 못 합니다.” “그럼 하인과 군사의 수가 모자르다는 소리인가? 아니면 재료? 아니면 그냥 먹이?”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재료, 일꾼과 먹이가 모자랍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게 말입니다.” “맛있고 다양한 음식과 고기가 더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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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과 군사가 더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럼, 네가 가져올 수 있겠느냐?” “네…?” “내가 3일을 줄 테니, 바깥 세상에 가서 어떻게든지 가져오렴.” “네, 용왕님, 감사합니다.” 그 하인이 대답하며 뒤돌아 걸어가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용왕 이 말을 이었다. “잠깐만, 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네.” “네?” “허허허, 내 머리가 참 좋군. 이렇게 해보렴. 바깥세상에 가서 용왕에게 모든 가족의 첫 아이가 필요하다고 알려. 궁궐과 용왕이 사는 곳을 구경시켜주고 용왕을 위해서 잠깐 일한다고, 영광이라 고 생각하라고 말하렴. 이러면 아이의 부모도 안심이 될 것이다. 이제 이해했을 테니 얼른 모두를 데려오너라.” “네. 그러겠습니다.” 하인은 빨리 다른 군사들한테 말을 전해주러 갔다. 하인은 몇몇 군사들와 같이 바깥 세상으로 나섰다. 한 마을을 찾아가 마을의 제일 높은 곳으로 가서 다 같이 용왕의 명령을 크 게 외쳤다 “용왕이 가족의 첫 아이를 원하신다! 용왕이 구경도 시켜주고, 용 왕을 위해 일하는 것이니 영광으로 생각하면 되겠네!” 또한 그들은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명령을 써 붙였고 집집마다 들러서 첫 아이를 마구 빼앗아 갔다. 이수빈 어느 마을, 군사들은 아이를 빼앗기는 부모의 마음을 달래고 있 었다. “아, 괜찮아요, 우리가 잘 돌볼게요. 걱정마세요.” “우리 아이는 괜찮겠죠?” “괜찮을 거예요. 약속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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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이 아이를 궁궐로 데려가자마자, 군사들은 아이를 체포해 춥고 어두운 방에 가뒀다. 밤이 되자, 아이를 끌고 용왕 앞에 데리고 가서, 살고 싶으면 궁궐에서 평생 일해야 된다고 했 다. 아이는 울며 부모님에게 돌아가게 해달라고 빌었지만, 용왕의 욕심은 하늘을 닿을 만큼 컸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아이는 매일 열심히 궁궐을 청소하면서 부모님을 그 리워하는 마음을 달랬다. 그 궁궐에는 그 아이와 똑같은 경험을 한 많은 아이들이 있어서 아이는 외로움과 서러움을 다른 아이들 과 나누며 공감하고, 공감 받을 수도 있었다. “너만 그런 거 아니니까 괜찮아. 우리도 다 겪은 거야.” 한 아이가 말했다. “괜찮을 거야, 언젠간 우리는 탈출할 수 있을 거야,” 다른 아이들도 말했다. 하지만 용왕은 아이들의 부모님을 계속 속일 수 있게, 한 달에 한 번씩 아이들을 잘 돌봐주고 있다는 사진을 찍어서 부모님에게 보냈다.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님은, 아이들이 잘 지내는 사진을 보 고 용왕이 친절하고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용왕이 가끔씩 아이들 을 위해서 돈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을 때도, 필요한 것보다 더 보 낸 적은 있었지만, 더 적게 보내지는 않을 만큼 용왕과 나라를 믿 었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가고 2년이 지나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고 생각했는지, 아이들은 서서히 궁궐을 탈출할 계획을 꾸미기 시 작했다. “처음에 탈출을 생각했을 땐 무서운 용왕 얼굴이 생각났는데, 이젠 엄마, 아빠 생각이 나. 나 집에 가고 싶어. 우리 다 같이 가 자,” 한 아이가 말했다. “내일 용왕이 잔치를 연다고 했어.” 어떤 아이가 속삭였다. “그럼 그때 탈출하는 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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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게 좋겠다.” 제일 큰 아이가 말했다. 김혜민 “그럼 우리 6시 반에 여기서 만나는 거지?” 다섯 아이가 동시에 “응!” 이라고 외쳤다. 그날 밤, 용왕님의 파티는 시끄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 시간, 미리 정한 자리에 모여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나, 둘, 셋, 하면 제일 빨리, 제일 멀리 뛸 수 있는 만큼 뛰 는 거다! 준비됐니?” 제일 큰 아이가 외쳤다. “으응!” “하나!” “둘!” “셋!” 아이들 모두 다 함성을 외치며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용왕의 군사들이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두 아이는 정문을 지나가지 못 해 후문을 통해 도망갔고, 남은 세 아이는 정문을 무사히 빠져나 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뛰기만 했다. 큰 용기를 내서 도망간 다섯 아이들은 각자 엄마와 아빠에게 빨 리 뛰어가 궁에서 당한 일들을 모두 다 이야기했다. 가족들은 분 노에 가득 차 용왕을 법적으로 고소했다. 하지만, 용왕은 너무나 힘이 세서 감옥에 가둘 수 없었다. 그러나 용왕에 대한 나쁜 이야 기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널리 퍼졌기 때문에 온 세상 부모님들은 용왕이 매년 하는 초대에 절대 응하지 않았다. 몇 년 후, 한때 사 람들이 파라다이스로 생각했던 바다 속 용왕의 나라는 무너졌다. 용왕은 약해지기만 했고, 이이들은 모두 다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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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벗 하나 있었으면

Grade 10 박세은 Seeun Park 벗 하나 있었으면 도종환 마음 울적할 때 저녁 강물같은 벗 하나 있었으면 날이 저무는데 마음 산그리메처럼 어두워 올 때 내 그림자를 안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 같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울리지 않는 악기처럼 마음이 비어 있을 때 낮은 소리로 내게 오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 노래가 되어 들에 가득 번지는 벗 하나 있었으면... 오늘도 어제처럼 고개를 다 못 넘고 지쳐 있는데 달빛으로 다가와 등을 쓰다듬어주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라면 칠흑 속에서도 다시 먼 길 갈 수 있는 벗 하나 있었으면...

하늘이 어두워지고 남아있던 빛마저 사라져 깜깜하고 스산한 가 을밤이었다. 나는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고, 구 름 낀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한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너 무 추운 날씨 탓에 어깨가 절로 움츠려졌다. 조금이라도 빨리 비 를 피하기 위해 마음이 급해졌다. 서둘러 집을 향하여 허겁지겁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집에 돌아가도 반겨줄 사람은 아무도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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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오직 불 꺼진 텅 빈 집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문득 이 생각이 떠오르니 갑자기 집에 가기 싫어졌다. 저 멀리에 조그마한 카페 불빛이 보였다. 그 곳으로 얼른 뛰어 갔다. 나는 사람이 많은 이 곳에서 잠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카페에 들어서자 이미 여러 사람들이 비를 피하기 위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커피 한 잔을 주문하기 위 해 서둘러 줄을 섰다. 이 커피 한 잔이 외로운 내 마음을 조금이 라도 위로해주길 바라면서 주문한 커피가 나오길 기다렸다. 밖에서 들려오는 빗줄기 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거세 졌다. 카페 유리창 사이로 비치는 가로등 불빛은 내리는 비 때문 이었을까, 노란 불빛이 희미하게 번져 보였다. 비 오는 어두운 밤 길을 달리고 있는 자동차 바퀴에선 빗물과 섞인 흙탕물 튀는 소리 가 났고, 떨어지는 빗방울은 카페 천장과 땅을 두들기는 소리를 냈다. 드디어 주문한 커피를 받아 들었다. 앉을 자리를 찾아서 카 페 안을 둘러보았다. 학교 과제를 하기 위해 함께 온 학생들, 행 복해 보이는 커플, 다정해 보이는 할머니와 손녀도 있었다. 대부분 의 사람들은 누군가와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는 듯 보였 다. 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혼자인 내가 따로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없는 듯 했다. 자리를 찾아 겨우 앉은 테이블에는 이미 의 자가 하나 없었다. 여러 사람이 한 곳에 둘러앉느라 모자란 의자 를 빌려간 모양이었다. 이 공간에서 오직 나만이 혼자였다. 허전함 과 쓸쓸함이 몰려왔다. 외롭고 허전한 마음에 나는 일어나서 커피 한 잔을 더 주문했 다. 점원은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신가요?”라고 물었다. 나는 고 개를 저으며 새로 나온 커피를 받아 들고 말없이 자리로 돌아갔 다. 그리고는 테이블 반대 편 빈자리에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그 잔에서는 따뜻한 연기가 올라왔고 유리는 안개가 덮인 듯 하얗게 번져갔다. 내 앞에 놓여 있는 커피 잔, 그리고 아직 손대지 않은 다른 커피 잔 하나. 나는 반대편에 있는 컵을 돌려보았다. 그러나 빈자리 뒤의 벽만이 컵에 비추어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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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예전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항상 나와 모든 것을 함께했던 단짝 친구, 모든 순간에 내 편이 되어 주었던 친구, 내 생각을 잘 이해하고 들어줬던 친구,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던 친구, 얼굴만 봐도 웃게 되었던 친구, 말없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 복을 느끼게 해준 친구, 가을에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함께 웃을 수 있었던 친구, 나는 헤어진 그 친구가 그리웠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이 혼자 기운 없이 축 쳐져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언제쯤 진정한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까, 나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단 한 명의 친구라도 있었으면...... 생각에 잠겨있던 내게 주룩주룩 내리는 빗줄기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이 걸어 들어왔다. 그는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나에게 다가왔 다.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옛 친구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친구를 바라보았다. 오랫동안의 헤어짐이 느껴지지 않고 다시 만 나도 거리감을 느낄 수 없는 만남이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라는 깨 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 친구는 비어있던 공간에 의자 하나를 끌 고 와 내 앞에 앉았다. 나는 아직 손대지 않은 커피 잔을 그 친구 앞에 놓았다. 그 커피 잔 속을 들여다보니 그리운 친구의 실루엣 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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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발 Grade 10 윤지민 Jamie Yoon

발 이성복 이렇게 발 뻗으면 닿을 수도 있어요 당신은 늘 거기 계시니까요 한번 발 뻗어보고 다시는 안 그러리라 마음 먹습니다 당신이 놀라실 테니까요 그러나 내가 발 뻗어보지 않으면 당신은 또 얼마나 서운해 하실까요 하루에도 몇 번씩 발 뻗어보려다 그만두곤 합니다

축 늘어진 커튼 사이로 희미하게 불빛이 드리운다. 새벽을 알리 는 적적한 까마귀의 울음소리에 간밤에 뜬 눈으로 지새우느라 뻑 뻑해진 눈가를 비빈다. 발밑에 아무렇게나 나뒹굴던 안약을 집어 들어 눈에 한 두 방울 성의 없이 떨어뜨리곤, 몸에 붙어있던 과자 부스러기를 떨구어 낸다.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몇 번 빗질한 뒤 침대에 가만히 앉아있으니, 소름끼치는 적막함에 생명이 깨어 나는 작은 소리가 들린다. 매일 아침 듣는 소리지만 언제나 그렇 듯 낯선 어색함에 몸을 부르르 떤다. 바짓단이 다 뜯겨진 바지를 질질 끌며 거실로 나와 소파에 기대앉아 책상에 놓인 잡동사니들 틈에서 볼펜이 끼워진 붉은 색의 작은 공책을 집어 든다. 빽빽이 채워진 종이들을 한 장, 두 장 넘기다 새하얀 빈 장이 나오면 그 제서야 손을 멈추곤 익숙하게 적어 내린다. ‘아침 6:34-’

거실의 한 쪽 벽면을 완전히 차지하는 창문의 구석에 앉아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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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겨우 우겨넣을 정도의 크기로 커튼에 틈을 만든다. 그래도 오 늘은 어제보다 한 뼘이나 더 열었어. 내 자신이 이리 대견할 수가 없다. 한번 웃어보려다 이내 창가에 비친 내 모습과 눈이 마주친 다. 더럽다. 순식간에 몰려오는 불쾌감에 창문을 당장이라도 부숴 버리고 싶은 충동이 몸을 휩싼다. 안 돼. 그러지마. 나의 그녀가 두려워 할 거야. 간신히 충동을 억누르고 있을 때 너덜너덜해진 옷소매 밑으로 손목시계가 삐- 하고 알람을 울린다. 6시 34분인가 보다. 펜의 뚜 껑을 열어 공책을 또 한 번 집어든다. 나의 그녀는 일어나는 게 힘이든 지 알람은 6시 30분에 맞추는 듯 했으나 커튼은 항상 6시 34분에 걷혔다. 오늘도 그녀는 한 손으론 머리를 쓸어 넘기며, 다 른 한 손으론 커튼을 걷었다. 그리곤 몸을 이리저리 뒤틀며 하룻 밤 사이에 뻐근해진 몸을 풀어주었다. 그리곤 다신 털썩 침대에 주저앉아 잠시 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 이내 잠을 깨려는 듯 고개 를 도리도리 저으며 일어선다. 나는 서둘러서 그런 그녀의 모든 행동을 부들거리는 손으로 공책에 옮겨 적는다. 삐- 또 한 번의 알람이 울린다. 6시 42분인가 보다. 그녀가 방을 나서는 순간까지 기록한 뒤, 나는 미련 투성이인 눈길로 그녀의 빈 방을 한 번 훑 는다. ‘아침 7:25’

그녀가 예쁘게 차려입고 집을 나서는 시간이다. 매일 그녀를 지 켜본 결과 그녀는 아마 글을 쓰는 사람인 것 같다. 이렇게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올 때면 바로 편한 옷차림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질 끈 묶은 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그 모습도 어쩜 그리 예쁜지. 이럴 때가 아 니다, 한시가 급하다는 걸 왜 또 몰랐을까. 다급하게 뛰어나가 계 단을 구르듯 내려가며 늘어난 소매를 끌어올려 시계를 보니 어느 덧 7시 25분에 가까워지고 있다. 마지막 속력을 내어 드디어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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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 단지를 뛰쳐나가면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자꾸 쳐다본다. 무섭다. 더러운 시선이 엉켜붙는다. 내 몸을 탈피하고 싶을 정도로 불쾌하다.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이대로 주저앉을까. 하지만 나의 그녀는 분명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를 못 본다면 그녀는 얼마 나 허전해 할 것인가. 힘겹게 한 발, 한 발 질질 끌듯이 쓰레기 소각장으로 향한다. 나의 그녀는 나올 때 항상 입에 빵을 물고 그 쓰레기를 버리고 가기 때문이다. 마음씨도 얼마나 예쁜가. 소각장으로 뛰어간다. 그녀가 떠나기 전에 도착해야한다. 아… 이상하다. 뭔가 잘못 됐는데… 오늘 내가 뭘 다르게 한 거지, 어디서부터 뭐가 어떻게 엉켜 버 린 거지? 왜 혼자 있어야 할 나의 그녀가 해사하게 웃으며 옆집 남자와 함께 있는 거지? 왜지? 온 힘을 다해서 얼굴 근육들이 뻐근할 만큼 웃어보였던 내 웃음 이 초라해진다. 한 짝만 질질 끌고 온 슬리퍼와 그 단정하게 차려 입은 남자의 옷차림과의 차이가 내 눈에도 보여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겠다. 비참하다. 창피하다. 여태까지 최선을 다했던 내 노력들이 나를 잠식해온다. 도망치 듯 뛰어서 집으로 들어온다. 숨을 몰아쉬며 기어가듯 땅에 놓인 붉은 공책을 쥐어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아야한다, 나의 그녀는 날 사랑한다. 이럴 수는 없다. 아니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나 혼자 그녀를 향해 뻗어왔던 것일지도 모 르다. 이제껏 쏟아 부은 나의 시간들이 이제야 돌아오는 것 같아. 어지럽다, 눈앞이 자꾸 흐려지고. 세상이 돌고… 그리고 그렇게 나는 원래 내가 있어야 할 곳, 그곳으로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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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철수와 영희의 이별 Grade 10 김도현 Henry Kim

찬밥 안도현 가을이 되면 찬밥은 쓸쓸하다 찬밥을 먹는 사람도 쓸쓸하다 이 세상에서 나는 찬밥이었다 사랑하는 이여 낙엽이 지는 날 그대의 저녁 밥상 위에 나는 김 나는 뜨끈한 국밥이 되고 싶다

철수는 하교하는 도중 지하철역 안에서 낯익은 얼굴을 보았다. 그 얼굴을 보니 저절로 눈이 초롱초롱해지고 볼이 살짝 빨개지며 미소를 띠게 되었다. “영희야!” 철수는 멀리서 그 얼굴의 이름을 불렀다. 시끌벅적한 환승객들 때문인지, 알고도 무시하는 것인지 영희는 미동이 없었다. “영희야!” 철수는 더 크게 불렀다. 두 번이나 불러도 영희는 대 답은 커녕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영희야!” 영희가 드디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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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야.” “영희야, 너 왜 그래?” “날 왜 불러?” 영희가 이어 날카롭게 말했다. “나는 이제 네가 싫어.” “뭐?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철수는 놀라서 물었다. “네가 나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는데?” 철수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너한테 갖고 싶다던 백도 사줬잖아! 내가 얼마나 힘들게 아르바이트 해서 사 준건지 알고도 하는 소리야?” “뭘 그깟 거 가지고! 다시는 내 눈에 띄지 마.” 철수는 어이가 없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영희는 그런 철 수의 얼굴을 돌아보지 않고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왜 영희는 그렇게 싸늘하게 변해버린 걸까?” 철수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토사구팽 (兎死狗烹), 토끼 사냥 후 개를 잡아먹는다. 영희가 ‘사냥꾼’이고 ‘가방’이 토끼였다면 철수는 영희한테 쓸모없어진 한 마리의 ‘개’일 뿐이었다. 철수는 쓸쓸히 지하철역에서 나와 집으로 향했다. 평소와 달리 종로의 길거리는 오늘따라 너무도 조용했다. 건물에서 빛 하나도 비치지 않아 어두컴컴한 길에도 차가 몇 대 밖에 보이지 않았다. 시월의 바람은 오늘따라 매섭게 추웠다. 거센 바람 때문에 떨어진 낙엽은 철수의 길을 표시라도 해주듯 앞길을 장식했다. 철수는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불 하나 켜져 있지 않은 집은 평소와 달리 너무나 조용했다. 철수는 안방에 들어가 봤다. 아무도 없다. 닫혀 있는 화장실의 문을 두드려본다. 대답이 없었다. 대신 냉장고에 쪽지가 하나 붙어있었다. 철수야, 생일인데 너무나 미안하다. 엄마는 오늘도 어쩔 수 없이 야근 하느라 늦을 거야. 미역국은 냄비에 있으니까 알아서 데워먹어. 엄마가 출 근하기 전에 밥을 안치려고 했는데, 못하고 나왔어. 찬밥밖에 없는데 어쩌 지? 생일은 가족이랑 보내야 하는데 아버지도 야근하시고 계시니… 너무 미안하다. 생일 축하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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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는 한숨을 쉬었다. 어쩌면 눈물이 났을 수도 있다. 체념을 한 듯 철수는 미역국과 찬밥을 데우기 위해 전자레인지를 켰다. “어? 뭐야!” 전자레인지를 켠지 30초 뒤, 철수의 집은 어두움에 빠졌다. 어 쩔 수 없이 철수는 데우고 있던 밥을 꺼내어 그대로 한 술 뜨기 시작했다. 겉쪽에 있던 밥은 따뜻했지만 안쪽에 있는 밥은 냉장고 에서 갓 꺼낸 듯 차가웠다. “빨리 먹어, 식기 전에,”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했 다. 그 날 엄마는 철수가 좋아하는 돼지 국밥을 만들어 주셨었다. 김이 모락모락 날 정도로 뜨거운 국밥이었다. “엄마, 저 지금 바빠요!” 철수는 예전에 따뜻한 음식을 먹는 것을 싫어했었다. 하지만 애 초에 차가워진 음식을 먹으려니까 거부감이 심해졌다. 진밥이 되 어버린 밥처럼 심하게 퍽퍽해 목에 걸려 잘 넘어가지 않았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철수는 영희한테 해준 게 별로 없었다. 가방 하나 사줬을 뿐이지 그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철수는 마음 속으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함께 볼 영화표도 구매하고 놀이동 산도 알아봤다. 미안한 마음에 철수는 영희한테 문자를 보냈다. 영희야, 내가 생각이 짧았어. 앞으로는 정말 잘해주고 싶으니까 한 번 만 용서해줘, 우리 다시 같이 시간을 보내자. 영화도 보고 놀이동산에도 가자. 정말 미안해. 이제 우리 화해하자.

철수는 영희에게 문자를 보내고 나서 쓸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어느새 오늘이 내일이 되어버렸다. 철 수는 하염없이 영희의 문자를 기다렸다. 따뜻한 밥은 식은 밥이 될 수 있지만 식은 밥은 그냥 따뜻해지지는 않는다. 전자레인지는 고장이 난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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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슬퍼할 수 없는 것 Grade 10 최사라 Sarah Choi

슬퍼할 수 없는 것 이성복 지금 바라보는 먼 산에 눈이 쌓여 있다는 것 지금 바라보는 먼 산에 가지 못하리라는 것 굳이 못 갈 것도 없지만 끝내 못 가리라는 것 나 없이 눈은 녹고 나 없이 봄은 오리라는 것 슬퍼할 수 없는 것, 슬퍼할 수조차 없는 것

일에 지친 날이면, 그 허구한 날들에 나는 내가 항상 그리던 산 을 찾아본다. 언젠가는 타리라, 언젠가는 저 꼭대기에 점을 찍고 오리라 했던 내 젊은 날의 꿈을 떠올린다. 추운 겨울날 혼자 사무 실에 앉아, 지금쯤이면 하얗게 눈이 쌓였을 산을 생각하면 공허하 다. 몸은 난방으로 따뜻한 방 안에 있지만, 마음만큼은 칼바람이 부는 산 정상에 있다. 만약에 그러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 내 몸도 지금 산 정상에 앉아 있을까. 그 때 함께 산을 탔던 동료들 과 옷을 단단히 껴입고 차가운 얼굴을 가리며 소리를 지르고 있을 까. 마음을 굳게 먹으면 굳이 못 갈 이유도 없지만, 난 내가 끝내 못 가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날, 꿈과 현실의 갈림길에서 현실을 택했을 때, 흔히 하는 사람들의 표현처럼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기분은, 내 가슴 어디에 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아파할 시간,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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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세상이 너무 빨리 지나가 차마 슬퍼 할 시간도 없었고, 결국엔 내가 내린 결정이라 슬퍼할 수조차 없 었다. 여러 명의 동생들과 나의 손길이 절실한 가족들, 또 건강하 시지만 꿈을 취하는 순간 너무나도 쉽게 자식을 부인하실 부모님. 누가 봐도 ‘당연한’ 선택이었기에,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은 그 누 구도 없었다. 그저 머릿속에선 잘한 결정이라고, 모두를 위해선 구 름 위 보단 횡단보도 위를 걷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질릴 정도 로 되새길 뿐. 내가 원하는 꿈을 이뤄내었다면 나의 인생은 어찌 달라졌을까 돌이켜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 중에 나와 같은 결정을 내린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각자의 먼 산을 바라보며, 후회하지는 않 지만 가슴 속에서는 비통해 할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 한편은 때 때로 시리고 아려올 것이다.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저 산 을 오르고 내리는 것을 보며, 그 많은 발자국 중 하나가 본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기에. 그게 꿈이었든, 현실이었 든 누군가는 끝내 본인이 바라보던 먼 산을 타게 될 수도 있을 것 이다. 환갑이 넘어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하신 나의 삼촌처럼.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젊은 시절의 내가 가보지도 못한 채, 히 말라야를 바라만 보고 있을 현재의 나를 상상도 못했던 것처럼 말 이다. 오늘 밤 나는 또다시 사무실의 불을 끄고, 문을 잠그고 나의 가 족이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향한다. 비록 마음은 텅 비었어도 난 나의 꿈을 다시 생각할 여유가 없고, 물론 기회도 없다. 후회하기 엔 내 주머니 속은 책임져야 할 것들로 꽉 채워져 있다. 나 없이 도 눈은 녹고, 나 없이도 산에 봄은 또 오리라는 것을 알지만, 난 슬퍼할 수 없다. 난 다시 내가 택한 길을 터벅터벅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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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만남 Grade 10 김규한 Chris Kim

만남 이성복 내 마음은 골짜기 깊어 그늘져 어두운 골짜기마다 새들과 짐승들이 몸을 숨겼습니다 그 동안 나는 밝은 곳만 찾아왔지요 더 이상 밝은 곳을 찾지 않았을 때 내 마음은 갑자기 밝아졌습니다 온갖 새소리, 짐승 우짖는 소리 들려 나는 잠을 깼습니다 당신은 언제 이곳에 들 어오셨습니까

잠에서 깨어 일어나 보니 이곳은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사람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도 없었다. 태양은 매우 밝았고, 내 마음은 다시 활기차졌다. 아름다운 새들이 모여 지저귀고 있었다. 발밑으 로는 모래와 바닷물이 있었고, 손에는 소금 알갱이들이 묻어 있었 다. 신기하게도 누워있던 모래사장 뒷편에 기와로 만든 문이 있었 다. 호기심에 다가가 문을 열어보았다. 열자마자 내 마음은 어두운 문 안처럼 어두워졌다. 들어가기 싫었지만 나도 모르게 그 문 안 으로 들어갔다. 들어간 순간 나는 추락하고 있었다. 온통 주변이 까맣고 아무것도 없었다. 내 마음은 다시 밝은 곳을 찾기 시작했 다. 그리고 다시 잠이 들었다. 어두움 속에 있어 마치 잠에 깊이 빠진 것만 같았지만 실제로 자는 것 같지 않았다. 다시 일어나보니 나는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었다. 저녁이라 해 가 거의 다 졌고, 노을 진 하늘은 분홍빛이었다. 지난번처럼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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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어두웠다. 이 놀이터에는 누군가 있는 것 같았다. 그네를 타고 있던 내 귀에 사람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짐승 한 마리가 보였다. 그 짐승은 나를 보는 순간 도망쳤다. 나는 곧바로 짐승을 뒤쫓았다. 짐승을 쫓으면서 내 마음 은 갑자기 밝아지기 시작했다. 새 소리와 짐승 소리도 더 가까이 들리기 시작했다. 숨이 가빠오면서 나는 짐승을 놓치고 말았다. 멈 추어 선 곳에 또 다른 문이 있었다. 이번에는 나무문이었다. 문을 열어보니 하얀색 빛이 보였다. 나는 들어가기가 두려웠다. 하지만 두려움이 내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이 싫어서 문 안으로 그냥 들어갔다. 아까처럼 몸이 붕 떠있지는 않았고 발이 하얀 공 간에 닿았다. 등을 돌렸더니 문이 없어졌다. 앞으로 갈까, 뒤로 갈 까 고민을 하는데 자주 듣던 새 소리가 오른쪽에서 들려왔다. 그 래서 나는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걷는 동안 내 마음이 계속 밝아 지기 시작했다. 나는 신이 나서 뛰기 시작했다. 체력이 떨어졌는데 도 나는 계속 뛰고 있었다. 순간 나는 무언가와 부딪쳤다. 고개를 들어보니 까만 벽돌 벽이었다. 틈사이로 무엇이 있나 보려고 했는 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제 와서 벽을 넘을 수도 없고, 돌아서 갈 수도 없었다. 그래 서 나는 벽을 부수기로 결정했다. 벽을 한번 쳤다. 금이 갔다. 다 시 한 번 쳤다. 금이 더 커졌다. 벽을 계속 쳤더니 때린 부분이 무너졌다.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또 하얀 공간이었다. 손을 한 번 내밀었더니 갑자기 누가 내 손을 잡아 당겼다. 그 손을 잡고 벽을 넘었는데 갑자기 추워졌고 눈보라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었 다. 긴팔 옷을 입지 않은 나는 살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잡아당 기는 미궁의 물체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긴 시간이 흐 른 후 눈보라가 멈췄다. 하지만 차가운 바람은 아직도 불고 있었 다. 내 마음은 아직 차가웠다. 자세히 보니 안개가 끼어있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안개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멀리 보니 누군가 있었다. 분명히 나를 눈 보라 속으로 끌고 간 사람이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 보려고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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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데 그 사람이 벌써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는 검은 옷을 입고, 모자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의 눈을 보기 위해 몸을 기울인 순 간, 그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은 순간 내 마음은 완전히 밝 아졌다. 이제 드디어 그를 만났다. 당신은 언제 이곳에 들어오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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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모녀 (妙女) - 스무 살 안팎의 처녀 Grade 10 양혜연 Yang Ann Lee

나의 옛날 이야기 - 조덕배 노래 쓸쓸하던 그 골목을 당신은 기억하십니까 지금도 난 기억합니다 사랑한단 말 못하고 애태우던 그 날들을 당신은 알고 있었습니까 철 없었던 지난 날의 아름답던 그 밤들을 아직도 난 사랑합니다 철없던 사람아, 그대는 나의 모든 것을 앗으려 하나, 무정한 사람아 수줍어서 말 못했나, 내가 싫어 말 안했나 지금도 난 알 수 없어요 이 노래를 듣는다면 나에게로 와주오 그대여, 난 기다립니다 무정한 사람아 이 밤도 나의 모든 것을 앗으려 하나, 철없던 사람아 오늘 밤도, 내일 밤도 그리고 그 다음 밤도 영원히 난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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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마치 벚꽃처럼 어여뻤던, 사랑에 빠질 찰나에 아쉽게 스쳐 지나간 나의 옛날 이야기를 조심스레 나누려 한다. 지금은 한 가정의 엄마이고, 한 남편의 아내이고, 아이들의 할머니지만, 나는 아직도 잠들기 전 눈을 감으면 그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며 깊은 꿈을 꾼다. 우리는 어쩌면 인연이 아니었던 건지, 운명이 아니었던 건지, 아니면 초라한 내 자신이 너와의 헤어짐을 부정하고 싶어 인연이 란 단어와 운명이란 단어를 엮어 나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내 려는 건지, 아직도 나는 너를 그리워하며 기다리고 있다. 짧지만 뜨거웠던, 그 짧았던 봄 날, 우리는 많은 행복을 누렸고 많은 추억을 쌓았지. 너를 향한 나의 3년의 홑사랑을 통해,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은 나날이 더 커져만 갔고, 그럴수록 너에게 사랑 한단 말 전하지 못해, 하루하루 애태우고 있었어. 그런 나를 마침 내 하늘이 도와주시기라도 하신 걸까, 어느 봄 날, 바람결에 꽃이 떨어지던 그 밤, 너는 나에게 달려와 좋아한다고 속삭여주었지. 너 의 고백은 어설프고 어리숙했지만, 너의 그런 모습마저 너무나 좋 았기에, 그때는 어린 마음에 이대로 삶을 마감하여도 여한 없이 떠나갈 수 있다고 너에게 말했었지. 나는 아직도 그런 날들이 마 치 어제의 일들처럼, 너와 방금 인사하고 집에 들어와 설레었던 기분이, 하염없이 뛰던 심장 소리가 생각난다. 하지만 너는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었기에, 나보다 중요하고 우 선인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런 너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애초에 그런 네게 사랑을 품은거니 그럴 때마다 아쉬움을 숨기고 너를 보 내줘야만 했지. 너를 기다리는 한순간, 한순간은 내게 고문이나 마 찬가지였음을 너는 알았을까. 불안함에 아무것도 못하며 너만을 기다리고, 소식 없는 너를 기다리며 다치진 않았을까 걱정했던 시 간들을. 너는 군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참 여리고 정이 많다는 것을 나 만은 알고 있었기에, 혹여 다른 이를 해치고 혼자 자책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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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을까, 네 자신을 원망하고 있지 않을까 걱정이 차올라 잠들 수 없는 나날들을 버텼지. 그런 나에게, 오랜만에 들려온 너의 소식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너만을 기다리던 나에게 너의 벗이 전해온 소식은 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이도 감정을 추스리지 못한 게 보였지 만, 다른 이를 위로해주거나 배려해줄 만큼, 나는 지혜롭지 못하였 다. 너를 해친 사람을 원망하기보다, 너를 원망하기보다, 나를 원 망하는 마음이 더 커졌고, 나의 마음은 갈수록 상하였다. 너를 떠나보낸 후 새벽 그림자에는 촉촉하게 서린 수증기만 둥 둥 떠다니는 듯하고, 너와 나눈 추억들이란 영화로 마음은 고요해 진다. 이렇게 너를 그리워하는 나날을 보내다가, 난 네가 너무 보 고 싶으면 정해지지 않은 장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당신과 있던 곳을 지나고 지나, 그곳에 도착했을 땐 다리에 힘이 풀려 쓰 러져 누워 있다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는 힘 다해 일어나 당신 생각을 또, 했다. 울음을 삼키려 목에 힘을 주었더니 뒷목이 아파오고, 눈물을 숨기려 하늘을 보았더니 새빨간 햇빛에 눈이 부시다. 계속해서 아픔을 주는 당신께, 보고 싶다는 말밖엔 남아있지 않 다는 사실이, 명제가, 그리고 확신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혀온다. 왜 너의 곁에서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더 많이 고백해주지 않았 을까.. 이제라도 당신은 알아주길 바라요. 싫어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좋아하고, 수줍어서 말 못한 수많은 나의 고백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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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일탈, 오늘 밤은 삐딱하게 Grade 10 정다은 Iris Jeong

영원한 건 절대 없어 결국에 넌 변했지 이유도 없어, 진심이 없어 사랑 같은 소리 따윈 집어치워 오늘 밤은 삐딱하게 - G-DRAGON의 노래 <삐딱하게> 中에서

그냥 평범한 밤이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나는 내 방에서 공부 를 하고 있었고, 엄마는 저녁을 준비하고 계셨다. 늘 반복되었던 일상이었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뭔가가 다르다는 걸. 대략 한 시간 후에 누군가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고, 아버 지께서 “나 왔다.” 하시는 소리에 방에서 나갔다. 아버지께 “안녕 히 다녀오셨어요?” 인사를 한 후, 식탁에 앉아서 저녁을 기다리는 데, 어머니의 살기 띤 눈빛이 보였다. 그 무서운 눈빛은 아버지를 향해 있었다. 아버지는 옷을 갈아입고 나오셨고, 식탁에 앉아 나와 함께 저녁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저 녁이 다 차려진 후에도 이 침묵은 사라지지 않았다. 저녁을 다 먹고, 나는 방으로 들어갔고, 어머니와 아버지도 방 으로 들어가셨다. 몇 분 뒤, 부모님이 언성을 높이시는 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졌고, 덕분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 지 다 들을 수 있었다. 곧이어 어머니의 눈물이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고, 몇 분 후 현관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가 났다.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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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갔는지 궁금했던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방에서 확인을 하러 나 왔다. 부모님 방에서는 어머니께서 바닥에 앉아 서글프게 울고 계 셨고, 현관에 놓여있던 아버지의 구두가 없어졌다. 부모님께서 이전에도 종종 싸우시기는 하셨지만, 이번 싸움은 뭔가 많은 걸 바꾸게 할 것이라는 것을 나는 느끼고 있었다. 침대 에 누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던 나는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거실로 나가보니, 모든 것이 꿈이길 바랐지 만 이것들이 꿈 일리 없다는 걸 깨달았다. 차려져있는 아침을 먹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조심스럽게 이야기 를 시작하셨다. 그동안 어머니와 아버지 둘 다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셨고, 나한테는 정말 미안하지만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럼 이혼을 하시는 것이냐고 물어봤고, 그 질문에 어머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순간 너무 어이가 없고 허무했던 나는 웃음이 나왔다. “마음대로 하세요, 두 분 다! 어차피 제 의견은 애초에 궁금하 지도 않으셨잖아요!” 어머니께 이렇게 소리치곤 방에 들어갔다. 너무 슬프고 힘든데 도 이상하게 울음은 나오지 않았다. 몇 시간 동안 멍하니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부모님께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 해봤 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바로 집밖으로 나왔고, 내가 아는 친구들 중 최대한 공부를 멀리하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얼마 후 나 는 친구들과 만났고, 그 친구들이 평소에 놀면서 하는 것들을 같 이 했다. 그렇게 흥청망청 시간을 보내다가, 하루가 저물어 갈 때 쯤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전화를 무시하고 휴대폰 전원 을 바로 꺼 버렸다. 난생 처음 내가 살면서 가장 삐딱해 질 수 있 는 그런 행동들을 하면서 집에 돌아가는 것을 회피했다. 나를 둘 러싼 모든 현실로부터 도망가고만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어머니가 너무 걱정되기 시작했다. 어머니께서 내 걱정하시느라 잠도 못 주무시고 아무것도 못하고 계실까봐. 집 앞 계단에서 한참을 서성이고 망설이다가, 현관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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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갔다. 현관문 앞에는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처음 보는 아저씨 두 명이 서 계셨다. 두 아저씨는 자신들 이 경찰이라고 소개했다. 경찰 아저씨들은 내가 무사한 것을 보고, 몇 가지 질문과 충고를 하시고는 집을 떠나셨다. 그 날 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나는 한참을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의 마음을 한 번도 헤아리지 못 한 것 같다고 나한테 사과를 하셨다. 그리고 난 후 이혼은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고 최대한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가도록 해 볼 테니, 다시는 나보고 집을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셨다. 다시는 집을 나가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고,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못자서 너무 피곤했지만, 그날 잠 자리는 얼굴에 웃음을 띤 채로 잠이 들 수 있었다. 난생처음 삐딱 했던 나의 하루는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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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016 APIS 제 6회 한국어 백일장 ‘Mother,

어머니,

母’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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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소설)]

고등어 Grade 12 구재모 Louis Koo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 자갈치 시장의 입구로 들어서자 비릿한 바다의 짠 내와 차가운 얼음 기운이 코 끝에 맴돈다. 언제나와 같이 만선인 배로 가득 들 어찬 자갈치 시장에는 손님을 모으려는 장사치들과 저녁 반찬거리 를 찾으려는 아주머니들로 북적거렸다. 구름 몇 점 떠다니는 초봄 날씨에 꽃샘추위가 아직 가지 않았음에도 장터는 들어찬 사람들로 소란스러웠다. 개중에, 썬캡을 푹 눌러쓰고 오른손에 검은 비닐봉 투와 살 물건 목록을 쥐고 여러 상점을 기웃거리는 꽃무늬 옷은 분명 한 가정의 어머니의 것이었다. 그녀의 등은 아치 모양으로 굽었고, 얼굴의 주름은 그녀의 세월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거, 아저씨요, 오른쪽에 고등어 한 마리 얼마요?” 찰팍찰팍, 바지가 젖는 건 신경 쓰지 않는지 시장 바닥에 고인 물을 억세게 헤쳐 나가며, 썬캡의 주인은 장사치에게 물었다. 등 푸른 생선이 오늘따라 팔리지 않던 터라, 상인은 다가온 손님이 매우 반가운 눈치였다. “아, 요놈은 몸이 튼실해 갖고 조금 비쌉니다예. 한 가족은 거 뜬히 잡수실 수 있을겁니더. 오천 원만 주이소.” 노모의 눈에도 꽤나 싱싱한 생선이었던지라 평소보다 높게 부르 는 가격에도 불만을 갖지 않았다. 말없이 지갑을 뒤지기 시작하자 긍정이라고 받아들인 상인 역시 익숙하게 얼음을 퍼서 생선과 함 께 비닐봉투에 담기 시작했다. 푹, 푹, 거세게 퍼 담은 얼음은 고 기를 비닐봉투 안에 파묻어 버렸다. “그, 예전에 같이 일하던 사내는 어디로 갔는교? 어디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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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나?” 포장을 기다리며 손끝을 꼼지락거리다 그 마저 지루해졌던지 노모 는 상인에게 말을 넌지시 건넸다. 봉투에 얼음은 이미 넘치는데도 상인은 억지로 꾹꾹 눌러 담았다. “군대 갔습니다. 그, 어딥니까, 북한놈들 맨 앞에 거 어디, 아 그 지오핀가 거기로 지가 스스로 갔다 아입니꺼?” “지가 자진해서 간기가?” 포장을 끝내고 의자에 걸터앉은 상인이 말했다. “뭐, 그렇지예. 고집이 워낙 쎈 놈이라 갖고 이 애비가 아이고, 사고라도 당하면 우짤기고 하고 말려도 뭐 본채 만 채 하덥디 다. 잘 살아있긴 하다만서도 그래도 걱정되는 게 아비 마음 아 니겠습니꺼?” 이미 상인의 시선은 자갈치 시장의 좁은 하늘 너머를 보고 있었 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그리움이었다. 적어도 노모가 보기엔 그 랬다. 왜냐면 그녀도 그랬으니까. 상인은 그녀에게 그녀의 아들도 군인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답을 하지 않았고, 상인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는 고등어의 값을 치르고는 발걸음을 땠다. 그녀의 아들 또한 군으로 복무했었다. 그녀의 아들은 어릴 적 아버지를 여의고부터 계속된 불우한 환경 탓인지 동네에서 자주 문제를 일으키다 결국 고등학교를 자퇴하였다. 그 스스로도 그가 잘못 살고 있는 건 알던 지 대학도 검정고시로 간신히 들어갔으 나, 방황과 연속되는 결석으로 성적은 바닥을 치고, 질 나쁜 친구 들과 어울리다 결국 학사경고를 받고 말았다. 자신에 대한 한심함, 분노, 짜증, 온갖 부정적인 감정에 쌓여 노모의 마음은 생각지도 않은 채 도망치듯 군대로 가버렸다. 군대로 가면 무엇이라도 달라 질 줄 알았다. 2년간 수직 사회의 불합리함을 겪고 오면 사람이 뭐라도 바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행동을 뼈저리게 후회했어야 한다. 그는 어 느 날, 해군으로 복무하던 중 서해에서 북한 잠수정과의 교전 중 그만 전사하고 말았기에. 어뢰에 직격탄을 맞은 그가 탄 고속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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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노모의 마음처럼, 차디 찬 깊은 바다로 가라앉았다. 나라는 그를 ‘영웅’이라 추켜세웠고, 국민들은 그를 진정한 군인이라 찬양 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 아들의 죽음은 단순한 ‘개죽음’일 뿐이었다. 노모는 받은 생선을 들고 버스를 탔다. 손잡이를 잡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군인 청년이 마치 자기 아들 같아, 다시 보았지만 아니 었다. 아들도 저렇게 차만 타면 졸았는데. 끼익- 하고 버스가 멈 춰서고, 노모는 버스에서 발을 떼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골목 길을 지나고, 언덕을 넘어 도착한 작지만 그녀의 일생이 담긴 집. 하지만 아들이 저 세상으로 간 후, 온기마저 사라지고 이젠 색채 마저 잃어버리고 아픈 추억 조각들만 남은 곳. 노모는 부엌에 들어가 고등어를 굽기 시작했다. 두런두런 말소 리가 텔레비전에서 들려온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세상에 오 직 그녀 혼자만 남겨진 기분이라, 억지로라도 텔레비전을 틀어놓 아야 했다. 하지만 텔레비전이 보여주는 여러 사람들과 그들 가족 의 희로애락은 그녀를 더욱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고등어가 기름 에 튀겨지는 소리와 텔레비전의 말소리. 하지만 어떠한 듣기 좋은 소리라 할지라도 그녀에겐 아들의 목소리가 없는 이상 단지 소음 일 뿐이었다. 밥상 위에 놓인 것은 쌀밥과 김치, 말라붙은 나물, 그리고 고등 어. 고등어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젓가락으로 한 점 떼어 입에 넣 었다. 그의 아들은 어릴 적부터 고등어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다른 생선은 입에도 대지 않았지만 고등어는 유독 좋아했던 아들. 노모 의 볼에서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녀의 볼에서 눈물을 닦아줄 사람은 집에 더 이상 없었다. 그녀는 고등어가 그날따라 짜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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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kerel Come, See, Buy! Through the entrance of Jagalchi market, brackish scent of oceanside and chilling air from mountains of ice cubes flowed and lingered on one’s nose. As always, packed with ships loaded with fish, Jagalchi market was crowded with merchants seeking for customers and middle-aged women looking for something to be on their dinner table. Market was full of people, even though cool winds sweeping through the market clearly showed the spring was yet to come. Out of those many, clothes with cheap flower decorations and a visor worn by an old woman were evident signs that she was a mother of someone. She passed by seafood stores with a half-filled black vinyl bag hanging on side of her arm. Her back was seriously bent, and her wrinkled forehead proved her years of harsh living. "My, a good sir, how much does that fish on the side cost?" Splashing through puddles of water as though she never cared about wearing a soaked pair of pants, the old woman asked the merchant. Mackerel, the fish the woman was asking about, recently lacked customer seeking it, and the merchant, therefore, seemed eager to help her buying it. "That one's quite overgrown in size, 'nuff for a family or two. Jest' pay me five bucks for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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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 it was surely more expensive in price than usual, the mackerel for sure seemed decent in quality to the woman too, so she decided to satisfy with it. She digged through her purse, and the merchant started to fill a black vinyl with ice cubes. Ice cubes slowly buried the mackerel until it could be seen no more. "Oh, uh the man - the man who was working with you here - where did he go? Somewhere far, I expect?" The old woman curiously inspected her fingers while she was waiting.

Failing

to

entertain

herself, she

blurted

out

another question to the merchant. The bag was already full of

ice

cubes, but

that

was

no

reason

for the

merchant to stop from shoving in some more. "He went to serve the army. Where was it, the place where they fight North Korea, the GOP? He went there." The old women faced the merchant with a questioning look. "Did he volunteered for it?" Already finished with packaging, the merchant sat on his plastic chair and answered. "Well, yeah. He becomes pigheaded when it comes to his own life decisions, and even his father - myself - could do nothing to convince him not to. He is definitely alive with no lost body parts, but fathers are always worried of their sons." His eyes, overflowing with regret and nostalgia, stared out to a narrow opening on the ceiling of Jagalchi market. At least that's what the old woman could see from him. The merchant asked the woman if she had any child out on a mili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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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vice.

She

gave

him

no

reply,

and

the


merchant, too, returned no more questions. The old woman paid for her mackerel and went on. Her son did serve in the military as well. Her son lost his father when he was young, and therefore their family was always short on their finance. Discontented and angered with his life, he quitted his high school after causing series of troubles in the town. Regretting his choice, he did get accepted to a local college, but it took not a long time for him to be placed in an academic probation with failing grades. Anger, frustration, and hatred filled his heart. Furious at his own foolishness, he ran off to the navy without even realizing how his mother would've felt. He hoped two years of service could change him as a person somehow. He believed such a rigid and strict military environment could turn him into a new man. But he should have reconsidered his choice before acting - he was killed in action when he was out in a battle against a North Korean submarine. Struck by a torpedo, the ship the son was on board sank to the cold ocean floor, like his mother’s broken heart. To the nation, his death was a heroic sacrifice; and to the general public, his death was a loss of a truly devoted soldier. To his mother, however, his death was meaningless - it only brought her a loss of her beloved son. The old woman, now holding a black vinyl bag with ice cubes and a mackerel, stepped on to a bus to her home. A drowsing serviceman, firmly holding on to his handle, seemed like her son. Her son, too, always dozed off when he was on a bus. The bus stopped; the woman stepp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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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 Over the hills and through the narrow passageways between houses, she came before her house. Her house her house was small but overflowing with memories of her and

her

son.

Such

warm

and

soothing

memories,

however, lost their colors and were now nothing but a painful recollection. She placed her mackerel in a pan and fried it with oil. Sound of people talking and laughing with cheers flowed from the television. She had to leave the TV on, though there was no one to watch it. She had to have some sound floating in the air somehow - without it, she felt like she was left in the world all alone, isolated from people and society. What television reflected on its screen, however, - groups of people overjoyed with their families - only made her even more miserable. Sounds of the TV and frying mackerel soon filled the living room and the kitchen, singing in harmony. It was a cacophony to the woman, who only could hear sounds that lost the voice of her son. On the table laid a bowl of cooked rice, salted cabbage, dried up herbs, and the fried mackerel. The woman stared into the mackerel, and placed a piece in her mouth. Her son especially liked mackerels. Though he hated other fish, for some reason he loved a fried mackerel as a side dish. One, two. Drops of tears rolled down her cheeks, but there was no one to wipe the tears for her. The mackerel tasted saltier than us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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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 운문 (시)]

늘 그렇듯 Grade 9 오승민 Andy Oh

나는 학교에 갑니다 늘 그렇듯, 잘 갔다 오라고 문자를 하십니다 나는 봤음에도, 답을 안 합니다 나는 놀러 갑니다 늘 그렇듯, 잘 다녀오라고 문자를 하십니다 나는 또 봤음에도, 또 답을 안 합니다 어머니가 출근하십니다 늘 그렇듯, 나는 잠들어 인사조차 못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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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 산문(수필)]

크리스마스이브의 선물

Grade 12 박혜정 Claire Park ‘엄마’라는 존재에는 무게감이 있다. 엄마가 되는 일은 어렵고, 그 과정 또한 쉽지 않을 것을 안다. 새로운 존재와의 직면, 그리 고 그 인생을 송두리째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라도 엄마 라는 역할이 때로는 적잖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산부인과 의사 인 우리 엄마가 말씀하시던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은 누군가의 탄 생이며, 그 순간 같이 축복할 가족이 있다는 것이라며 나에게 어 릴 적부터 말씀하시곤 하셨다. 하지만 부모님의 사랑을 원 없이 받고 자란 나에게는 엄마의 사랑이 간섭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고, 가끔은 지나치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중요성을 느끼게 된 계기는 나의 생물학적 엄마를 통해서가 아닌, 아이러니하게도 ‘엄마’가 없는 아이들을 만 나고 나서부터였다. 작년 겨울부터 나는 영유아들 수십 명이 모여 있는 고아원으로 봉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대학 입시 준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나는, 절실히 봉사를 하고 싶어서 고아원을 찾았다기 보다는 미안 하지만 현실적인 이해관계로 대학 지원서에 봉사기록을 하나라도 더 적기 위해 찾아간 마음이 컸다. 딱 일주일만 참고 봉사를 하자 는 마음으로 고아원의 문을 여는 순간, 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 렸다. 방 안에 들어가 보니 한 살도 채 안된 아기들이 예닐곱 명 이나 있었고, 적지 않은 수의 자원 봉사자분들도 꽤 있었다. 그때 까지 한 번도 갓난아이를 만져보거나, 안아본 적도 없던 나는 자 지러지게 우는 아이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다른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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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 오기까지 아이 곁을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당황하던 나에게 한 봉사자 분께서 다가와 아이를 제대로 안아주는 법과 달 래는 법, 기저귀를 가는 것부터 분유는 어디에서 어떻게 탈 수 있 는 지까지 일일이 다 설명해 주셨다. 이른바, 나의 봉사활동의 시 작이었다. 예상대로 갓난아기들을 돌봐주고 달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처 음에 아기를 안았을 때 지나치게 조심스럽게 안아서인지, 아기와 나, 둘 다 모두 불편해 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절대 익숙해지 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힘들고 고된 고아원에서의 봉사활동에 나 는 서서히 익숙해져갔다. 모든 아이들을 조금씩 알아가고 수많은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는 데에는 시간이 다소 걸렸지만, 한 명 한 명씩 친해지는 그 얄궂은 기분에 나도 모르게 그 다음 봉사활동 날이 기대되고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비록 다른 봉사자 분들처럼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분유를 타는 데에는 능숙하지 못했지만, 아 이를 달래고 놀아주는 것만큼은 있는 힘껏 최선을 다 했고, 내가 갈 때마다 아이들도 곧잘 웃어주고 나를 잘 따라주었다. 아이들과 친해지려는 나의 진심이 아이들에게도 통했는지, 봉사활동을 시작 한지 나흘이 지나고서 부터는 아이들이 먼저 나를 반겨주고 나에 게 안기려 했다. 봉사활동을 감행하기 전까지만 해도 고아원에는 어둡고 낯가림 이 심한 아이들만 있을 거라는 나의 고정관념이 있었지만, 나는 그게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이 곳의 아 이들은 사람을 너무나 좋아했고, 애교도 많고, 말도 잘 듣고, 밥도 잘 먹고, 예상 외로 자주 울지도 않았다. 고아원은 대체로 아이들 덕분에 항상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아이들과 친해지면 친해질수 록 점점 이렇게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버리게 된 그들의 부 모들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러다가 고아원의 책임자이셨던 한 수 녀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이들의 대부분이 일명 ‘베이비 박스’(babybox)에 버려져 고아원으로 넘겨진 다는 것과 이 아이들 을 내버린 부모들은 ‘리틀부부’(미성년자 부부) 혹은 경제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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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부모들이란 것을 수녀님과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이야기들이었지만, 실제로 들어보고 또 그 아이들 과 직접 만나보고 친해진 후에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음 한 켠이 어두워지고 아이들이 너무나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수녀님과 의 대화를 이어나가던 중, 다온이라는 한 남자아이가 수녀님에게 ‘엄마, 엄마’라며 해맑게 달려올 때 나는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오 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고서 시선을 다른 아이들에게 향하려 애썼 다. 다온이가 수녀님을 부른 ‘엄마’라는 말은 그 어떤 말보다 나에 게 큰 교훈을 주었다. 비록 수녀님을 비롯하여 고아원을 찾아주는 봉사자분들이 그 아이들의 진정한 엄마는 아니지만, 이 아이들에 겐 나를 포함한 다른 봉사자분들이 엄마와 같은 존재란 것을 느끼 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아이들을 무턱대고

동정하기

보다는 책임감을 갖고 돌보고 사랑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마치 그들의 ‘진짜 엄마’가 된 것 마냥 계속 지지해주고 아 껴주며 ‘진짜 가족’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크리스마스이브를 끝으로 나의 일주일 봉사활동은 마무리 되었 다. 그렇지만 원래 계획대로라면 일주일 만에 끝났을 고아원에서 의 봉사를 나는 아직도 꾸준히 하고 있다. 비록 몸은 고단하고 힘 들지만,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서 알 수 없는 에너지를 받고, 책에서는 배우지 못할 많은 것들을 얻어 간다. 크 리스마스이브에 화려하게 차려 입고 콧노래를 부르며 놀러 나간다 던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이번 봉사 활동 경험은 나에게 그 어떤 선물보다 더 뜻 깊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었다. 하루하루 ‘엄마’ 없이도 삶을 이뤄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벌써 그들의 ‘엄마’가 된 기분이고 앞으로도 쭉 봉사활동을 해가며 그들의 성장 과 나의 성장을 동시에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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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 운문(시)]

엄마 찾기 Grade 12 조하은 Chrystal Cho

엄마는, 우리 엄마는 입을 여노라면 말문이 탁 막히는 나 목에 무엇이 걸린 듯 코가 시큰해지고 하나의 꿈처럼 아련해지는 마음에 맺힌 울음 삼키고 떨리는 목소리 애써 가다듬고 ‘우리 엄마는…’ 미처 맺지 못한 말들 또다시 허공의 파동처럼 파스스 사라진다 우아하면서 개구지고 활기 있다가도 불쌍하고 변함없이 떠오르는 해처럼 믿음직하면서도 계절따라 지는 꽃처럼 사라질 것 같은 그런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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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나의 미숙한 말들로는 그리지 못하는 ‘우리 엄마는’ 닳지 않고 마르지 않는 ‘엄마를, 우리 엄마를’ 부르고 또 불러보다 보면 알려나 내 마음을 알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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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 운문(시)]

나의 하루 Grade 12 설정환 Jeonghwan Sul

이른 아침 몸을 일으켜 밤새 차가워진 바닥에 발을 딛자 팔이 저려 등이 굽어 기지개라도 천천히 켜본다 가족의 하루를 책임지려 해보지만 눈이 어두워, 정신이 없어 참아내려고 해보지만 저 두터운 이불 속에 숨고만 싶다 정신을 차려 아침의 시작을 알린다 어둔 방의 빛을 밝히고 모두의 눈을 뜨게 한다 바라만 봐도 안쓰러운 남편의 표정 “어서!” 라는 말 뒤에 들려오는 아이의 투정 나조차 이렇게 힘든데 몸을 일으켜 집 밖을 나가는 게 얼마나 더 힘들까 나의 힘듦은 잊은 채 아이에게 “힘들지?” 라고 한번 더 다독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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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모두가 떠난 후에 현관문에서 우두커니 이쯤이면 그리워지는 모두의 떠나는 뒷모습 언제나 그랬듯 물밀듯 밀려오는 공허함 아무도 없이 텅 빈 듯한, 그런 고요한 집 그 누구도 말조차 걸어주지 않을 듯한 그런 쓸쓸한 나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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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 운문(시)]

천둥 Grade 8 김선우 Sun Kim

입 대고 우유를 마실 때마다 ‘쿵’ 하고 내리치는 천둥 번개보다 날카로운 목소리 제우스보다 엄한 목소리로, “알지?” 몰래 일어난 새벽, 게임을 할 때마다 ‘쿵’ 하고 내리치는 천둥 번개보다 빠른 눈빛, 천둥보다 무서운 눈빛으로,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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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 산문(소설)]

그녀의 ‘어머니’ Grade 11 서수민 Michelle Suh 나는 아마도 그녀의 어머니를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 지만 그녀의 어머니보다는 그녀를 더 사랑했고, 그래서 그녀의 어 머니는 항상 나의 적(敵)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행복하게 하는 것보다 불행하게 만드는 것에 소질이 있었고, 나의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의 곁에선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것만 같아 보였다. 그녀의 고통을 직면하면서부터 난 점점 더 그녀의 어머니를 미워 하게 되었고, 그녀의 어머니 역시 이런 감정을 갖고 있는 나를 곱 게 보지는 않는 듯 했다. “제발, 나한테는 그래도 상관없으니까, 내 딸한테는 그러지 말 라고!” 때때로 ‘그녀의 어머니’, 그러니까 ‘나의 할머니’는 나에게 손찌 검을 했고, 나의 자존감과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말 또한 서슴없 이 내뱉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러려니 하게 되었지만, 경상도 사 투리 특유의 공격적이고 직선적인 말투에 더해진 욕설들은 어린 내 자존감에 이런 저런 상처를 입히고도 남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인지 그녀, 즉 ‘나의 어머니’에게라도 투정을 부리고 ‘그녀의 어머 니’에 대한 내 오래된 증오로 습관이 되어 버린 짜증을 뱉어내는 것이 꽤나 정당하다고 생각 했었다. 하지만 어느덧 내가 자라, 점점 더 많은 상황들을 이해하게 되 었을 때엔… 이미 늦어버린 그 때엔 그녀가 나보다 더 오랜 세월 을 ‘그녀의 어머니’에게 지속적으로 상처 입어 왔음을 알게 되었 다. 그리고 자신의 고통이 나에게 되물림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 었을 때 그녀가 받았을 적잖은 충격과 또 다른 입장으로서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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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깨닫게 되었다. “엄마, 제발! 제발 내가 하지 말라고 하는 건 좀 하지 마! 엄마 는 왜 항상 남에겐 친절하고, 착하고, 베풀면서 엄마 친딸한테 는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는데? 내 오십 년 인생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날 위해서 생각하고, 날 위해서 행동해 봐, 제 발!” “뭐라고? 내가 니 핵교 졸업 때까지 밥멕이고 재워주고 키워줬 더니, 뭐라꼬? 은혜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년! 내 지금까지 뭔 짓 해서 니를 키웠냈는지 니년이 알기나 아나?” “누가 그렇게 키워 달랬어? 우리 한번 누가 더 많이, 뭘 해줬 는지 따져볼까? 난 지금까지 그냥 컸지, 엄마가 키워주지 않았 어! 알아?” “조용히 해, 이년아!” “엄마 수술했을 때,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이게 다 나 때문이라고, 나 때문에 엄마 인생이 망한 거라고 눈 시뻘개져 서 쳐다보면서! 누가 그렇게 나 낳으랬어? 누가 미혼모로 엄마 혼자 애 낳아서 키우라고 했냐고. 나 이렇게 키울 거였으면, 그냥 낳지도 말지! 대학도 내 돈으로 다녔어. 매일 밤새워 공 부하고, 과외하고, 다 내가 벌어서 다녔다고! 방세는 누가 냈는 데? 나 어릴 때 엄마라는 사람이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 죄다 기억해. 좁은 단칸방에 가둬놓고 대걸레로 소리지르면서 피해 다니는 애한테 어떻게 매질을 했는지, 뭐라고 욕을 했는지 다 기억한다고! 당신이 그러고도 엄마야? 그러고도 인간이냐고! 그리고 윤희한테는 어떻게 했어. 똑같이 때리고, 욕하고! 당신 이 뭔데 내 딸한테 그래?나는 당신 딸이니까 가만히 당해줬지 만, 윤희한테는 손 대지마! 알았어?” 어느 순간부터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의 다툼은 나에게 일상이 되어갔고, 혹여 둘의 몸싸움 도중 누구 하나라도 다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을 제외하고는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 평범의 범주에 다 달았다. 둘의 불화에 무감각해지고, 그녀 역시 그녀의 어머니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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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후 나는 더욱 더 무신경한 채로 그녀에게 그녀의 어머니에 대하여 당연히 안 좋게 말하기 시 작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자면 내가 그 당시 깨닫지 못했던 사실은 꽤나 간단하고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나 의 할머니는 ‘어머니’였으며, 절대로 뿌리칠 수도, 벗어날 수도, 부 정할 수도 없는 질긴 인연이자 존재였고,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 그 근원을 알고 보면 할머니도 사랑했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는 지금까지의 내 인생보다 훨씬 더 긴 세월 을 함께 해왔던 끈적한 관계의 사람들이었다는 것. 나는 이 낯설 지만 당연한 사실들을 훨씬 이전에 깨달았어야 했다. “어데 가나?” “...응, 나갔다 올게.” “친구 만나러 가는 기가?” “어!” “쪼매만 기다려 봐라.” 나는 아마 할머니 역시도 나를 사랑했다고 생각하곤 한다. 단지 그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어떻게 ‘그녀에게’, 그리고 ‘나에 게’ 전달해야 할 지 배우지 못한 무지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고. 그렇게 생각하곤 한다. 할머니의 쌈짓돈은 항상 툴툴거리는 어린 손녀를 위해 풀렸으니까. “할매가 니한테 줄 수 있는 게 요 돈밖에 더 있겠나.” 하지만 할머니의 말은 항상 무책임했다. 나에게 괜한 욕설을 퍼 붓고, 화풀이를 하고, 사이가 안 좋아진 후에는 나에게 얼마의 돈 을 쥐어주며 권력이 비권력에게 향하는 부당한 화해를 청하곤 했 다. 내가 원한 화해는 아니었지만, 우리는 항상 그렇게 씁쓸하게 상황을 모른 척 넘어가곤 했다. 아마 나 역시도, 이런 할머니를 어떻게 사랑해 드려야 할지 모르는 그런 무지의 사람이었기 때문 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어설픈 친절보다, 그녀의 날선 욕설과 폭 력이 나에겐 훨씬 더 진하게 다가왔으니까. 나에게 남은 것은 추 억보단 상처가 많았으니까. 아마 그래서 그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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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어! 엄마가 그랬지? 우리 따로 살자 고. 나도 좋아. 우리 따로 살아!” 계속된 싸움과 다툼은 그녀에게 커다란 스트레스로 다가왔고,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스트레스는 몸의 질병으로 이어졌고, 그녀가 우울증을 앓던 때에 의사가 말했듯이, 그녀의 스 트레스 대부분은 그녀의 어머니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으니까. 할 머니와 싸우고 난 후면 엄마는 숨을 헐떡이며 쓰러질 듯 보였고, 충혈된 눈 가득 고인 눈물은 나까지 숨죽여 흐느껴 울게 만들었 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녀가 그런 결정을 하게 된 데에는 내가 가장 컸다고 한다. 대학에 가고 시집을 가게 되면 더 이상 그녀와 한 집에 살게 되지 않을 텐데. 그렇다면 그녀와 함께 있는 지금을 행복하게 보내야 될 텐데. 결국 그녀 역시 그녀의 어머니 보다 나를 더 사랑한 모양이었다. 내가 그러했듯이. “언제 오나 했는데, 이제 왔구나.” 확실히, 다른 집에 살게 되자 그녀와 나 모두 심적으로 안정을 찾았고, 좀 더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었다. 욕설과 폭행은, 확실 히 사람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병들게 하니까. “자주자주 좀 놀러 와라. 강아지도 좀 보고. 얼굴 까먹겠다.” 같이 있는 시간이 줄어들자, 욕설과 폭행의 시간은 줄어들 수밖 에 없었다. 서로에 대한 감정, 그것이 증오이건, 사랑이건, 애증이 건, 그러한 것들을 보여줄 시간조차도 부족했으니 말이다. 어쩌면 이제 나도,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도, 서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 갈 준비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갈 준비. 아마도 이제는 서로 그럴 수 있다고, 배워갈 수 있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 할머 니의 집을 찾아가는 횟수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어 명절 때에도 찾 아가지 않는 상황이 되었고, 내가 받은 상처와 고통은 할머니의 존재 자체와 함께 내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 갔다. 대학에 가고 난 후, 할머니의 대한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을 뿐 더러 엄마에게 물어 볼 수 없었으며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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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엄마는 언제나 그래왔듯 다시 할머니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 었을 것이고, 할머니는 그런 엄마에게 상처를 입혔을 것이며, 둘의 다툼은 다시 시작되었을 것이다. 때문에 난 더더욱 할머니의 대한 얘기를 회피했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대 학을 졸업할 때 즈음, 한국에서 온 연락에는 할머니의 부고에 대 한 소식도 담겨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아무런 감정도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 어떠한 감정도 나에게 밀려오지 않았다. 단지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한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 한 구석 어딘가에서 찡한 아픔이 밀려왔다는 것. 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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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 산문(소설)]

심해 도시 Grade 10 윤수빈 Joyce Yoon 모선(母船)은 부서져도 녹슬어도 장엄하다. 한때 마른 땅은 바다의 바닥이었다. 메구미는 한때 심해였던 공 간에 선다. 물 한 방울 없는 땅에 발자국이 찍혔다. 수백 수천 척 의 배들은 폭격을 맞아 가라앉고 바다는 말라붙었다. 그리고 메구 미 앞의 거대한 기물이 모선의 유해다. 꼭 이 배가 모선이었다는 것은 그 크기와 위엄으로 미루어 알 수 있는 점이다. 그 정도 크 기의 배는 모선일 수밖에 없다. 아무튼 메구미는 그렇게 믿었다. 무너진 모선 아래에 서면 햇빛을 피할 수 있었다. 최근 태양은 바 다가 말라버릴 정도로 아주 강했다. 메구미는 누구나 그렇듯 집이 없었기 때문에 죽은 모선 아래에서 해를 피했다. 본래 모선이란 거느릴 배가 있어야지만 모선이 될 수 있는 것이 다. 그러나 다른 배들은 모두 폭격을 맞은 즉시 혹은 바다에 가라 앉은 뒤 곧 산산이 조각나 사라졌다. 그렇지 않은 배는 사람들이 가져가서 쓸 만한 재료를 재활용하거나 전시하거나 팔아넘기거나 했다. 오직 모선이었던 배는 그 크기와 비례하는 무게가 너무나 대단해 아무도 손댈 수 없었기에 가라앉은 자리에 마모된 모습으 로 우뚝 서 있었다. 다른 배는 한 척도 남아있지 않기에 원래대로 라면 모선은 더 이상 모선이라고 불릴 수 없으나 모선은 이미 모 선이었다. 가족도, 근본도 없는 메구미가 햇빛을 피하러 모선 아래 에 숨기 때문이다. 배는 메구미의 어머니가 되었다. 배는 다시 모 선(母船)이 되었다. 메구미는 세상에 홀로 존재했다. 못생기고 미소 짓는 방법도 고 개 숙이는 방법도 모르는, 무엇 하나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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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는 미움 받기에 알맞은 존재였다. 능력이 없는 자는 사랑스러워 야 하고, 사랑스럽지 못한 자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 법이었다. 아이를 입양하 는 사람은 아주 적었고 말 없고 왜소한, 가능성조차 보이지 않는 메구미는 자연스레 축복받은 소수에 들지 못했다. 메구미는 인간 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런 메구미의 태도에 응답하듯 인간도 메구 미를 좋아하지 않았다. 시내에 나간 메구미에게 어른들은 빵을 주 지 않았고 아이들은 돌멩이를 던졌다. 모선은 그런 모든 것과 무관하게 메구미를 품어주었다. 무심한 존재였다. 꼭 메구미처럼 무심한. 메구미의 기계 같은 심장과 모선 의 부서져서 멈춰진 엔진은 닮아있었다. 메구미는 아무런 생각도 마음도 없이 조용히 모선이 만드는 그늘 아래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고 있으면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달이 저물고, 다시 해가 떴 다. 12월의 해는 마른 바닥에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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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 운문(시)]

괜찮아 Grade 11 이소형 Jenna Lee

엄마는 김밥을 만든다 손을 떨며 칼을 떨어뜨린다 당근 채를 썰다 피를 본다 엄마는 나에게 걱정 말라며 웃는다 ‘괜찮아-’ 엄마는 날 위해 된장찌개를 만든다 간을 보다 혀를 데이고 냄비를 열다 손을 데인다 엄마는 맛있게만 먹는 날 향해 웃는다 ‘괜찮아-’ 엄마는 오늘도 내 방을 청소한다 피곤한 몸을 세워 빨래를 갠다 내가 내버린 냉소를 줍고 내가 내던진 내 삶의 무게를 받으며 웃는다 ‘난-, 괜찮아’ 엄마는 장을 보러 간다 가족을 생각하며 새우깡을 산다 무거운 짐을 들고 지하철을 탄다 당신에게 기댄 사람들 생각에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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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난 괜찮아’

엄마는 아프다 마음이 아프고 몸도 계속 아프다고 한다 나의 걱정스런 눈빛에도 결국 웃는다 ‘너만 괜찮으면-, 엄마는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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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 운문(시)]

어머니 Grade 9 박정연 Clara Park 두 살 가와사끼병 진단받아 입원하게 된 나 낮이든 밤이든 돌보시는 그 분 어머니 다섯 살 길 가에 넘어져 울고 있는 나 괜찮다며 다독이며 두 발로 다시 설 수 있게 하시는 그 분 어머니 아홉 살 미국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두려워 떠는 나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그 분 어머니 열두 살 한국으로 돌아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했던 나 뒤에서 격려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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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봐주신 그 분 어머니 열다섯 살이 된 오늘까지도 나의 지도자, 나의 선생님, 나의 지원군, 영원한 사랑을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어머니 그 위대한 세 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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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 운문(시)]

기도 Grade 8 정강인 Bryan Jung

나는 보네 사랑의 증오, 행복의 절망 분장한 악마가 떠드는 희망 방안에 앉아 눈을 감는 나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나이기에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는다 칠흑 같은 암흑을 지나 갈 때에도 빈 방에 홀로 갇혀 헤매는 순간에도 날 버티게 하는 힘 못 다한 말 기도가 되어 이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매일 이 자리에 서는 것 엄마 그리스도 앞에서 오늘도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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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 산문(수필)]

모녀 Grade 12 임나연 Cathy Lim 엄마와 친해지게 된 것은 몇 년 전이 되어서였다. 물론 그 전에 도 엄마를 아끼고, 존중하고, 사랑한 것은 맞지만, 엄마와 나는 ‘모녀’라는 관계에서 서로 지정된 삶을 살고 있는 데에 그쳤었다는 어딘가 찝찝한 느낌은 끊임없이 나의 생각의 꼬리를 물고 따라다 녔다.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조금 더 자라, 이 뽑기가 무서워 치과가 떠나가라 고함치며 울었던 시절, 그리고 ‘창파유치원’이라 적힌 노 란 가방을 메고 뒤뚱뒤뚱 유치원을 향하던 그 날까지도, 어린 나 이 때문인지 아니면 놀기 바빠 그랬는지, 엄마가 나의 어린 인생 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는지 도통 정의내릴 수 없었다. 한국에 돌아오기 전, 텍사스에서는 공부하는 아빠를 뒤로하고 내 세상의 전부는 그저 엄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었지만, 잠깐의 시 간 동안 한국에 머물렀을 때는 우리 모녀와의 추억은 무척이나 희 미하다. 그나마 자욱한 연기에 묻혀 흐릿하게 남아있는 기억 중에서도, 유일하게 온전히 남아 있는 기억은 한국에 돌아와 외할머니 댁에 서 지낼 때였다. 아빠는 미국에 남아 대학원 공부에 열중하고 있 었고, 엄마는 한국에 돌아와서 직장에 다녔다. 나는 매일같이 6시 만 되면 “엄마 데리러 가자!” 라는 외침에 달려 나가 외삼촌 등에 업혀 엄마에게 향했다. 내 하루의 전부는 우리 외할머니와 할아버 지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중 대부분은 엄마의 부재 속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에는 ‘엄마’라는 존재는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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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의미, 그리고 여러 모양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말이 꽤 나 서툴렀기에, 사실 그저 초록색 손잡이의 주걱에 불과했겠지만 엄마와의 ‘받아쓰기’시간은 공포였다. 엄마의 꾸중에 집안이 떠나 가라 울어대며 연필을 꾹 쥐고 받아쓰기 공부를 했었다. 엄마는 워킹맘이었다. 직장에서 하루종일 지치고 힘들었을 텐데도 주말만 되면 내 손을 잡고 나에게 서울 시내 곳곳을 지하철을 타고 미술 관과 음악회를 보여줬다. 그 순간들이 있어서인지 엄마는 어린 나 에게 두려운 존재인 동시에 그 누구보다도 멋진 여장부로 보였다. 하지만 커갈수록 엄마는 내 인생에서 복잡하고 모호한 역할을 지 닌 듯 느껴졌다. 여느 엄마들처럼 우리 엄마 역시도 마찬가지로 잔소리와 나무 람, 그리고 나에 대한 지지는 모두 엄마에게서였다. 하지만 나는 비교적 다른 아이들에 비해 더 거세게 저항을 했던 것 같다. 엄마 는 이해심이 부족하고,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 단정지을 때가 많 으며 누구 때문인지도 모를 ‘욱’하는 성질 때문에 나는 속상했다. 골을 냈으며 다른 엄마들과 비교해 끊임없이 재어보았다. 그런 와 중에도, 엄마는 여전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리저리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길 잃은 나를 다시 제자리로 오게 해주었다. 싸울 때 는 열이 난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가쁜 숨을 푹푹 내쉬며 서로 의 방문을 쾅 닫고 화가 나있다가도, 금세 다시금 그저 그런 모녀 사이의 관계를 왔다 갔다 하는 우리는 모녀다. 하지만 엄마가 내 친구라고 느껴지게 되고, 내가 엄마를 진심으 로 존경하게 되었을 때는 불과 몇 년 전이었다. 어떤 사건이 계기 가 되었거나 어떤 사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정말 ‘별 것도 아닌’ 작고 사소한 행동, 이를테면 아빠의 교과서적인 훈계와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공부라는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던 나에게 ‘우리 머리 좀 식히러 산책이나 갈래?’라는 엄마의 말 한 마디는 학교, 성적, 예민한 친구들과의 관계 등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지칠 대로 지쳤던 나에게 별 감흥이 없었다. 그 이후에도 냉랭하고 진한 애정표현 없는 우리 경상도 모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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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는 별다른 변화 따위는 없었지만, 그 작은 제스처들이 이내 쌓 이고 쌓여, 어느 샌가 나는 우리 엄마가 어린아이를 마냥 품어주 어야 하는 희생적인 이미지로서가 아닌 한 독립된 인격체로 바라 볼 수 있게 되었다. 아빠와 이런저런 일들로 다투었을 때, 무뚝뚝 한 아빠의 이해가 부족해 서운해 하던 엄마도 여자였고, 누군가로 부터 사랑받는 딸이었다. 직장에서 여러 가지 사건 사고들에, 그토 록 단단하고 강철 같던 엄마도 지쳐 넘어질 때도 있었다. 꼭 나처 럼. 내가 조금 더 성숙해져서 였는지, 아니면 우리 모녀가 십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서였는지는 나도, 엄마 도 알 수는 없지만, 우리 모녀는 드디어 조금씩 조용한 침묵 속에 서 좀 더 이해심 깊고, 조금 더 가까운 모녀 관계를 싹 틔워 나가 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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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 산문(수필)]

거북이 엄마 Grade 11 유유진 Sophie Yoo 코끼리는 새끼를 낳는 순간부터 새끼와 함께 한다 강아지는 새끼를 낳는 순간부터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새는 알을 낳는 순간부터 품에 품고 산다 늑대는 새끼를 낳는 순간부터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곁에 있는다 거북이 어미는 알을 낳고 묻는다 그리고 그 거북이 어미는 한 번 돌아보지도 않은 채 바다로 향한 다 우리 엄마는 그 거북이 엄마이다 어린 나의 두 눈에 비친 우리 엄마의 모습은 항상 ‘무서운 사 람’이었다. 그 당시 엄마는 일찍 시작한 사회생활 때문에 바빴고 나는 자연스럽게 할머니의 손에서 컸다. 그때는 엄마와 시간을 많 이 못 보냈을 뿐만 아니라 엄마랑 시간을 보낼 때 조금만 잘못을 해도 눈물 핑 돌 정도로 매섭게 혼쭐이 났고, 그 여린 마음에 상 처를 받기도 했다. 또 엄마보다는 할머니와 더 오랜 시간을 보냈 기 때문에 초등학생까지만 해도 엄마는 낯선 사람이라고 느낄 정 도로 애정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 그시기에 끄적였던 일기 장을 들춰보면 엄마를 싫어한 내 마음이 비춰져서 마음 한 켠이 시려왔던 경험이 있다. 나는 봤다. 우리 엄마는 거북이 엄마처럼 나를 한 번 돌아보지 도 않은 채 바다로 향했다. 아니 그렇게 보았다고 생각했었다. 지 금은 누가 “그럼 엄마와 사이가 안 좋니?” 라고 물어본다면, 난 한번에 “아니요, 저와 제 엄마는 각별한 사이예요!” 라고 말할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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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있다. 현재 엄마는 나에게 친구 같은 존재이고, 또 내가 연 극의 주인공이라면 우리 엄마는 커튼 뒤에서 나를 위해 바삐 움직 이는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스태프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중학교를 들어갈 때까지는 엄마에 대한 이 마음이 처음과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고 몇 번 엄마와 깊은 얘기를 하 면서, 그 당시 우리 엄마가 무슨 일을 홀로 겪어내고 있었는지를, 자신이 너무 예민해서 그렇게 심하게 혼낸 것을 아프게 반성해 왔 는지, 내가 어렸을 때 다른 엄마들처럼 흔히 말하는 ‘엄마 역할’을 못해준 것에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는지도 알게 되었다. 요즘도 가 끔 엄마가 어릴 때 나를 많이 못 챙겨준 것에 대해서 미안해하시 는 것이 느껴진다. 그럴 때 난 항상 말한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엄마는 내가 아는 가장 강한 사람이 고, 나는 엄마가 정말 자랑스러워.”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과연 그 거북이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알들을 두고 바다로 가는 것이 쉬웠을까? 마음이 아프지 않았을까? 정말 단 한 번의 머뭇거림도 없이, 단숨 에

뒤돌아보며 망설이지 않았을까? 답은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그러한 선택을 해야 할 이유가 있었고, 난 그 과정에 서 엄마가 느꼈을 슬픔과 체념해야 했던 현실을 이해한다. 그리고 그 여느 엄마와 다르게, 엄마는 자신 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해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안다. 우리 엄마는 거북이 엄마다. 또 우리 엄마는 항상 말한다. 사랑한다고. 또 내가 전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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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 산문(수필)]

우리 엄마는 Grade 11 최진이 Jinny Choi 우리 엄마는 사실 강하지도 엄격하지도 옳지도 않다. 어렸을 때 에는 엄마가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엄마는 강하다. 엄마는 엄 격하다. 엄마는 옳다.’ 같이 슬픈 영화를 볼 때를 제외하고는 여간해서 엄마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아주 뜨거운 냄비를 아무렇지 않게 맨손으로 잡으셨고, 내가 감기에 걸렸으면 감기에 옮든 말든 상관 없이 나를 보살펴주셨다. 길을 가다가 무섭게 생긴 아저씨가 담배 를 피며 노려봐도 아랑곳하지 않으셨고, 아주 깊은 밤이어도 엄마 와 함께라면 나도 덩달아 무섭지 않았다. 내가 한창 사춘기 때 반항심이 들어 엄마에게 대들려고 했을 때 엄마는 네가 힘으로 나를 이길 수 있겠냐며 팔씨름을 한 적이 있 는데 나는 완패를 했었다. 엄마는 힘도 세셨다. 내가 숙제도 안하고 놀고 있으면 잔소리를 하셨다. 꼭 내가 잠 깐 페이스 북을 켤 때면 어떻게 알았는지 방문을 벌컥 열며 빨리 끄라고 하시며 혼내셨다. 공부해라. 넌 커서 뭐가 될 거냐. 숙제 해라. 시간 낭비 하지 말아라. 이러지 마. 저러지 마. 그러지도 마. 엄마는 엄격했다. 엄마 말만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겼다. 언제든지 문제가 생기면 엄마한테 나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봤다. 엄마 는 항상 답이 있었다. 내가 생각한 답보다 더 지혜로운 답을 제시 해 주셨고 내가 모르는 그 어떤 것도 엄마는 알았다. 엄마가 하라 는 것을 하지 않았을 때에는 항상 그에 따른 벌이 있었다. 엄마는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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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엄마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고등 학생이 되고부터 내가 엄마보다 키도 훨씬 커지고부터, 나도 엄마 도 나이를 더 먹으면서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보이 기 시작했다. 작년에 처음으로 엄마가 우는 것을 봤다. 슬픈 영화 를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같이 교회에서 기도를 하다가 우시는 엄마를 보며 마음이 뭉클하기도 했지만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토 록 강한 엄마가 눈물을 흘리시다니. 하루는 매실차를 마시려고 엄마가 냉장고에서 매실원액을 꺼내 셨는데 뚜껑이 꽉 닫혀있었는지 뚜껑을 따지 못하셨다. 아무리 힘 을 써도 뚜껑이 열리지 않자 나는 엄마에게 내가 따주겠다고 했 다. 나는 너무나도 쉽게 뚜껑을 열었다. 요즘 들어 내가 공부하기 싫다고 큰 소리 치며 방문을 쾅 하고 닫으면 엄마는 조용히 나를 건들지 않으신다. 언제나처럼 엄마는 나를 혼내시겠지 생각했지만 엄마는 나에게 더 이상 무엇을 강요 하지 않는다. 가끔 모르는 문제가 생기면 엄마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엄마도 모르겠다고 하실 때가 생겼다. 항상 옳지도 않다. 요즘은 내가 더 답을 잘 찾는다. 엄마는 생각보다 나와 다르지 않다. 생각보다 연약한 여자이고 생각보다 작다. 나를 지켜주시지만 언젠간 내가 지켜줘야 하는 존 재가 될 것 같다. 엄마는 생각보다 엄마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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