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의 역사 II <1> 수공적 복제와 기술적 복제: 역사적 변화과정 •
예술작품은 원칙적으로 언제나 복사가 가능하였다. 초기의 복제에는 숙련된 솜 씨가 필요했지만 판화기술과 같은 복제술의 발전은 역사적으로 점차 강도 더해 가며 진행되었다. 결국 사진술이라는 기술복제가 등장하면서 전래적 예술작품 전체를 복제의 대상으로 만들었고, 이러한 영향을 통해 전통적 예술에 깊은 변화 를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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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각이 등장함으로써 비로소 처음으로 판화가 기술적으로 복제 가능하게 되었 다. 인쇄술 발달로 인쇄를 통해 문자의 복제가 가능하기까지는 오랫동안 판화가 지배하였다. 인쇄를 통한 문자의 복제 가능성은 문학에 엄청난 변화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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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동안에는 목각이외에도 동판과 에칭이 생겨났고 19세기 초에는 석판이 등 장하였다. 석판인쇄의 등장과 함께 복제기술은 원칙적으로 하나의 새로운 단계 에 접어들게 되었다. 간편하고 대량생산 가능한 석판인쇄술을 통해 판화는 일상 생활을 그림을 통해 담을 수 있게 되었고 이때부터 판화는 인쇄술과 보조를 같 이하기 시작하였다
석판인쇄
*수공적 복제 – 도제, 명작 위조, 그리스의 청동제품, 테라코타, 주화 *기술적 복제 – 사진, 영화 •
▶ 1900년을 즈음하여 기술복제는 이미 일정한 수준에 이르러 전래적인 예술작 품 전체를 복제의 대상으로 만들었고, 이러한 영향을 통해 예술에 깊은 변화를 끼 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예술적 처리과정 속에서도 그 자체의 독자적 위 치를 차지하는 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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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터 벤야민은 복제의 두 가지 상이한 표현양상-예술작품의 복제와 영화예술이 전통적 형태의 예술에 각각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살피는 것에서 시사점을 얻고자 한다. .
<2> 현존성,진품성,아우라: 전통의 청산-기술복제로 아우라 소멸 • ▶ 아무리 완벽한 복제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한가지 요소(원작 Original의 진품성이라는 개념)가 빠져있는데 그것은 시간과 공간에 서 예술작품이 갖는 유일무이한 현존성, 즉 복제품이 가질 수 없는 일회적 현존성이다. • ▶ 일반적으로 진품성은 손으로 만든 복제에 대해서는 그 권위를 백 퍼센트 유지할 수 있으나 기술적 복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완전한 권 위를 유지하지 못한다. 손상을 입는 것은 작품의 진품성, 즉 일회적 현존성인데, 결국 사물의 권위가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 ▶ 즉 기술복제시대에서는 진품성이 결국 위축되고 소멸된다는 것 을 벤야민은 말하는 것인데 기술적 복제가 원작에 대해 수공적 복 제(위조품)의 경우보다 더 큰 독자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 진품성 • 벤야민은 “어떤 사물의 진품성이란 그 사물의 물질적 지속성과 함께 그 사물의 역사적 증언가치 전체를 포함하여 그 사물에서 원천으로 부터 전수될 수 있는 모든 것의 총괄개념이다”라고 정의한다. • ▶ 사물의 역사적인 증언가치는 사물의 물질적 지속성에 바탕을 두 고 있기 때문에 복제를 통해서 진품성을 벗어나게 되면 역사적 증언 가치 역시 흔들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그 사물의 권위까지 흔들리 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질적 지속성이 사라지면, 역사적 증언적 가치까지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 원작이 가지는 사물의 권위이다.
• 기술복제 시대의 진품성과 아우라 • ▶ 현대의 대중은 복제를 통해 모든 사물의 일회적 성격을 극복하려 는 요구를 가진다. 즉 신비스러운 분위기보다는 복제를 통해서라도 사물을 공간적으로 가까이 소유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 ▶ 벤야민은 복제기술에 빠져있는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현존성을 갖는 Aura라는 개념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요약해서 말한다. 즉 기 술적 복제시대에 위축되고 있는것은 예술작품의 Aura이며, 복제기 술은 일회적 산물을 대량 제조된 산물로 대치시킨다.(그러나 복제품 의 대량생산과 현재화는 결국 전통적인 것을 동요하게 한다) • ▶ 이러한 전통의 동요는 인류가 처한 위기며 변혁인데, 이 변혁은 오늘날 대중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영화는 이 대중운동의 가장 강력한 매개체이다. 영화는 전통적 가치의 해체를 가져왔으며 전통 의 해체라는 것은 탈신화화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즉 전통에서 작용하던 힘들(지배자, 위인, 거장, 천재등)은 영화로 복제되면서 신 화적 마력을 잃게 되었다. • 영화를 통한 전통의 해체는 단순히 없애 버리는 의미가 아니라 배타 성을 해방하여 만인의 향유와 이용의 대상이 되었다는 뜻이다.
<3> 아우라의 붕괴와 전시가치-아우라 붕괴,해체,소멸:붕괴의 사회적 조건 • ▶ 벤야민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인류의 생존방식과 함께 지각방식도 변화 를 겪어왔다. 인간의 지각이 조직화되는 방법은 역사적으로 그 성격이 규 정되는데 그는 현대인에게 있어서 매체로부터 생긴 지각작용의 변화가 아 우라의 붕괴로 파악된다면, 이러한 붕괴가 일어나게 된 사회적 조건들이 무엇인지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 벤야민이 말하는 사회적 조건은 다음 두가지이다. • 첫째 조건은 “사물을 공간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자신 • 에게 보다 더 가깝게 끌어오려고 하는 것은 현대의 • 대중이 갖는 열렬한 욕구이다.” • 둘째 조건은 “현대의 대중은 복제를 통해 모든 사물의 • 일회성을 극복하려는 성향을 갖는다.”라는 말로 요약된 다. 그리고 이러한 욕망은 날로 커져간다는 것이다. • ▶ 일회성과 지속성이 전통적 회화를 특징짓는다면 • 일시성과 반복성이 복제품을 특징짓는다. 대상을 그것을 • 감싸고 있는 껍질로부터 떼어내는 일, 즉 • 아우라의 파괴는 현대의 지각작용이 갖는 특징이다.(분위기 파괴)
• 4. 아우라의 종교적 속성: 전시적 기능-정치적 기능 •▶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가치로서의 아우라는 종교적 의식 속에 깊이 배태되어 있다. 예술작품이 세속화된 후에도 이 종교적인 의식의 속성은 진품성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되 었다. •▶ 혁명적이라고 말하는 사진술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예술의 지위를 위협했다. 종교의식 적인 것에 그 근거를 두고 있던 예술의 사회적 기능의 자리에 정치에 근거를 둔 다른 사 회적 기능이 들어섰다. •▶ 원래 예술작품은 처음에는 주술적 의식(儀式), 다음에는 종교적 의식(儀式) 속에서 생 겨났다. 예술작품의 아우라적 존재방식은 그것의 의식(儀式)기능과 분리되지 않았었다. •▶<진품적인>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가치는 의식(儀式)에 바탕을 두었고, 이 의식 속에 서 그것의 최초의 사용가치가 근거해 있었다. 이러한 점은 미에 대한 숭배의 가장 세속화 된 형태에서도 세속화된 의식(儀式)으로서 알아볼 수 있다. •▶ 르네상스에서 형성되기 시작하여 300여 년 간 지속된 세속적 미에 대한 숭배가 그 본 래의 근거를 드러낸 것은 그것이 최초의 혁명적 복제수단인 사진술이 등장으로 위기를 맞 으면서부터이다
• 5. 의식(종교)가치와 전시가치: 전시가치의 도입으로 인한 수용자 변화 • ▶ 벤야민은 예술작품의 수용태도에서의 변화과정을 종교적 의식가 치와 전시가치로 설명한다. 예술작품이 종교의식의 모태에서 벗어날 수록 전시기회는 증가했고, 수용의 역사에서 의식가치가 전시가치에 의해 밀려나게 된다는 말이다. • ▶ 즉 여러 복제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예술품의 수용자들은 예술품 에 대해 주술적,제의적,미적가치에 대한 기능대신에 전시적 과학적 실용적 가치와 기능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새로운 기능을 가장 구체적으로 예증하고 있는 것이 바로 사진과 영 화이다.
• 6. 사진의 전시적 가치 • ▶ 사진의 등장으로 전시적 가치가 의식적 가치보다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런 단계는 순간적으로 나타난 표정이 살아있 는 분위기의 초상사진에서 사람이 없는 빈 거리의 액자사진으로 이 어지는 단계를 통해 알 수 있다. 이제 사진에는 신비로운 분위기보 다는 범행현장에서의 증거포착과 같은 시선만이 남게 되었다. 이것 이 사진의 정치적 의미이다. 이로서 불가피하게 사진제목이 중요하 게 등장하는데, 사진 제목은 그림의 제목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갖 게 된다. • ▶ 이러한 새로운 단계에 이정표를 새운 사람이 바로 아뜨제(Atget) 였다. 그에게 있어서는는 초창기 초상 사진술과 같은 묘한 분위기가 아니라 사진찍는 것이 역사적 사건의 증거물을 확보하기 위한것이 었고 이것은 사진의 드러나지 않는 정치적 의미가 되었다. 이것은 영화에 이르러서는 한층 더 분명해졌다.
아뜨제(Atget)
• 7. 사진과 영화의 초창기 논쟁:영원성의 가치 • ▶ 기술복제가 예술을 종교 의식적 토대에서 분리시키자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가식은 영원히 사라졌다. • 19세기에 사진과 회화의 예술적 가치를 두고 벌어진 논쟁은 20세기 영화의 초창기에도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진의 발명으로 인해 예술의 전체적 성격이 바뀌지 않았나 하는 물음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 ▶ 벤야민은 이것은 전래의 미학적 시각으로 새 매체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영화 초창기의 영화이론들은 영화에서 초자연적인 것, 제의적인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경탄 하였는데 이러한 면은 오늘날에도 반동적(反動的)인 작가와 예술가 들은 이와 같은 방향에서 영화의 의미를 찾으려 하는 것을 볼 수 있 다고 말하였다.
찰리 채플린의 개인 무비 카메라
• 8. 비평가로서의 관중:예술로서의 영화 • ▶ 무대 배우와 달리 영화배우는 공연 도중 관중에 맞출 수 없 기에 관중의 태도는 변화되기 시작했다. 즉 관중은 카메라의 태도, 비평가의 태도, 테스트하는 태도를 취하게 된 것이다. • ▶ 이러한 태도는 종교 의식적 가치가 드러날 수 있는 태도는 결코 아니다. 즉 종교의식가치를 감상하는 태도와는 전혀 다 르다는 것이다.
매체의 역사 II 마샬맥루한-미디어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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