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러운 일 상상캠프 2016. 6 + 7
1 상상캠프
2 촌스러운 일
3_ 자료집 차례 4_ 촌스러운 일 상상캠프 초대
6_ 1차. 캠프로의 초대 <그대가 따라가는 한 가닥 실> 8_ 피정 참가자 후기 12_ 삶의 전환을 꿈꾸는 청년에게 / 꽃반지
16_ 2차. 밑그림 그리기 <시골에서의 일과 직업 상상하기> / 조아신 26_ 소셜픽션워크숍 36_ <젊은 기획자에게> / 윤후영
48_ 3차.오감&교감 <촌스러운 일 상상캠프> 49_ 7/2~3 캠프 일정표 50_ 꿈은 이루어진다. / 박효신 53_ 예산 슬로시티 대흥 소개 54_ 농촌 마을만들기와 청년 / 구자인 64_ 청년의 일과 삶 @ 농촌 / 언컨퍼런스 68_ 앞으로 농촌에 올 수많은 청년들에게 / 정민철 74_ 청년, 농촌과 접속하기 / 이창신
78_ 4차 정리와 상상 80_ 안내, 연락처, 긴급연락망 등
3 상상캠프
촌스러운 일 상상캠프 2016. 6 + 7
나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고자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들.... ‘지금 이대로 잘 살아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나와 나를 닮은 또 다른 나인 벗들을 만나 우리의 일과 삶을 돌아봅니다. ‘농촌’이라는 친숙하면서도 조금은 낯선 곳에서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촌스러운 상상, 예술적인 상상력으로 우리의 일과 삶, 그리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와 마을을 새롭게 그려봅니다. 잠시 멈춰 서서 한 호흡 가다듬고 홀로 또 같이 공존하는 가운데 우리의 삶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 넣어줄 ‘촌스러운 일 상상캠프’에 움직이는 청년! 당신을 초대합니다.
4 촌스러운 일
1차. 캠프로의 초대 <그대가 따라가는 한 가닥 실> '나'로부터의 초대, 마음 비추기 피정 / 교육센터 마음의 씨앗 6/18(토) 오전 10시~오후 6시 서울 노틀담교육관
2차. 밑그림 그리기 <시골에서의 일과 직업> 소셜픽션 워크숍 / 조아신 지리산이음,문화공간 토닥 <젊은 기획자에게> / 윤후영 홍성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 6/19(일) 오후 2시~7시 서울 정독도서관
3차 오감&교감 <촌스러운 일 상상캠프> 도시청년 농업농촌캠프 7월 2일(토) ~ 3일(일) 1박 2일 충남 홍성*예산 일대
4차 정리와 상상 캠프 평가 및 도농 네트워크 모임 7월 중, 서울
주최 / 충남농업기술원 주관 / 삼선재단 * 협동조합 젊은협업농장 5 상상캠프
1차. 캠프로의 초대
그대가 따라가는 한 가닥 실 '나'로부터의 초대, 마음 비추기 피정
2016년 6월 18일 토요일 10시 ~ 18시 서울 노틀담교육관 진행 : 교육센터 마음의 씨앗
6 촌스러운 일
네가 따라가는 한 가닥 실이 있다. 변화하는 것들 사이를 지나는 실. 하지만 그 실은 변화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네가 따라가는 것이 무엇인지 의아해 한다. 그럼 넌 그 실마리에 대해 설명을 해야겠지. 다른 이들이 보기는 어려운 그것을. . . 그러나 너의 실마리를 놓칠 수는 없다. * 윌리엄 스태포드
‘촌스러운 일 상상캠프’의 첫순서는 도시에서 살아온 마음의 풍경을 돌아보며 시골에서의 삶을 상상해보는 ‘마음비추기 1일피정’입니다. 빡빡하고 답답한 이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여유있고도 보람되게 사는 게 과연 가능할까? 이번 1일피정은 자신에게 이런 질문, 또는 이와 비슷한 질문을 해본 청년여러분이 조용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자신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차분히 존중하며 들어보는 하루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돌아봄과 동시에 다른 이들의 진솔한 목소리의 울림을 경청함으로 이미 내 안에 있던 힘, 또는 내 삶의 실마리를 다시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삶에서 정작 중요한 자신의 진실된 모습은 접어두고 사회 혹은 타인이 요구하는 모습을 살다가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소진하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 자신에게 묻게 되는 것 같아요. 짧은 시간이지만 이 하루피정에서 자신에게 마음껏 묻고 답해보고, 함께하는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내 마음에 비추어보는 공간이 참여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열리기를 바라며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7 상상캠프
마음 비추기 초대 피정 <그대가 따라가는 한 가닥 실> 참가자 후기1.
피정 내용 중에 자신에게 도움이 된 것은 무엇입니까?
*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자신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 사람들의 자기를 이곳으로 이끌고, 말하게 하는 진지, 절실한 힘을 엿볼 수 있었다. 모른 척, 혹은 원하지 않는다는 방패-마음나누기, 준비가 덜되어 있구나 하는 깨달음 아닌 깨달음. 나도 변화를 바라고 있다는 점. * 내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자기 성찰의 질문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선에서의 답을 잘 들어주는 다른 분들. 그와 같이 나 역시 잘 들어주는 훈련. 다른 사람이 얘기할 때 다른 생각에 빠지는 나를 발견하였다. 들음으로서, 말함으로서 배우는 것. 또한 장소의 고요 함... 항상 불안한 내 마음에 잠깐이나마 안식을 주었다. 평화로운 침묵의 힘! * 자아성찰에 대한 계기가 많이 없었는데 대화로 부드럽게 풀어나갈 수 있었던 점이 너무 좋 았습니다. 특히 성찰에 대한 질문이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해줘서 스스로에게 필요했던 답 에 많이 다가섰습니다. * 침묵의 순간들, 스스로를 마주할 수 있었던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 *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어떠한 결정을 할 때 강요나 강압에 의해서가 아닌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 오랜만의 피정,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에서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서 기뻤습니 다. 행사 주최측을 떠나 “참여자”로 있을 수 있어서(다행히!) 감사했네요. 최근의 복닥이던 마음 의 불안과 두려움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 다시 한 번 저를 되돌아보고 감사함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선물(그림)도 받고 오랜만에 온 전히 타인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라 더 좋았던 것 같아요. 귀농에 대한 막연한 생각 전에 저를 바라보고 준비(마음)를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나의 내면과 바깥을 연결해서 보게 되었다. 일상에서 발견하게 되는 긴장감이 위협적이지 않 음을 알게 되었고 생명력(에너지)으로 느껴진다. * 여러 가지 나눠주신 시들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따로 시간을 내어서 오랫동안 깊이 스스로를 살펴보는 것이 쉽지 않은데 피정을 통해 천천히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 세션을 열 때마다 나누었던 시들. 그 속의 단어와 문장들. 일어선다. 흐른다. 흘러넘치는 지 성. 역설. 열린 마음과 가슴. 8 촌스러운 일
* 혼자서 내면을 집중 들여다보기. 주제를 받고 집중해서 들여다보니 혼자 했을 때와는 다른 느낌.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초대에 응해준 친구들이 나누어준 이야기를 통해 나를 돌아보 고 생각을 정리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스스로 알지 못했던 면을 둘, 셋 나누기를 통해 발견. 감사하다. * 나 자신과의 대화, 본질 찾기 * 내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고, 그것을 남에게 표현해보는 것. 사실 그런 생각에 대한 연습이 없는 상황에서 너무 어려움을 느낌. * 전반적으로 요즘 하는 고민에 대한 내용이라 좋았습니다. 완전해진다는 건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했고, 혼자, 3명, 전체가 나눔을 가지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자신을 아는 것은 자신을 드러 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시의 내용처럼, 온전히 나를 말하고 온전히 상대방을 듣는 시간이 었습니다. * 안전한 공간을 형성하는 신뢰서클의 주춧돌, 초, 설거지 방법, 여닫는 시 * 다 너무 좋았습니다. 피정을 처음 참석해 보는데... 공간, 일정, 내용 모두 좋았습니다. 처음 에는 너무 긴 시간이라고 생각했으나 걱정과 다르게 긴 시간의 흐름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고, 자유로운 참여 유도도 참 좋았습니다. * 분리된 삶은 자신의 삶을 제자리에 맴돌게 한다. 나아가려면 감춰진 부분을 드러내야 한다.
9 상상캠프
마음 비추기 초대 피정 <그대가 따라가는 한 가닥 실> 참가자 후기2.
오늘 당신이 일상으로 가져가고 싶은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 안전하고 허용적인 분위기. 사람들과의 진실한 관계를 위해 나 스스로가 그런 환경이 되어 보는 것 * 활짝, 마음 여는 준비 * 내 자신에 대한 믿음, 확신 = 용기 * 오늘 얻는 용기, 믿음 다 가져가고 싶네요. * 오늘 스스로에게 묻고 던졌던 순간의 감정과 느낌 * 서두르지 않고 생각하기.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기 * ‘두려움’이 나쁜 것이 아니다. ‘두려워하는 나’도 나쁘지 않다. 괜찮다. * 뒤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가는 마음(?) * 가벼움 속에서 낯섦과 새로움을 발견하는 즐거움 * 스스로에게 진실한 나 * 안과 밖이 다르지 않음을. 진실을 말하기 * 침묵, 여백의 공간, 비움. 수녀회의 마당에 있는 살구나무, 흔들리는 나뭇잎. 새소리, 자유로 운 살랑 바람, 하트모양의 회양목을 마음의 카메라로 찰칵. * 용기 그리고 믿음 * 생각 나누기 방법 *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실마리만 놓치지 않으면 되는 거구나, 생각했습니다. * 자신을 아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 오늘 같은 평온함 * 가슴속에 굳어진 무언가를 부드럽게 할 수 있는 용기
10 촌스러운 일
우리가 서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동시에 자신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고립과 외로움으로부터 치유된다.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나, 자신을 아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열린 마음과 가슴으로 듣는 신뢰할 만한 누군가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하는 것을 스스로 들으면서 비로소 우리 자신이 어던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 Keen & Valley-Fox 11 상상캠프
1차. 캠프로의 초대 <그대가 따라가는 한 가닥 실>
삶의 전환을 꿈꾸는 청년에게 이은주 (꽃반지) * 교육센터 마음의씨앗의 젊은 진행자인 ‘꽃잔디’가 자신의 경험을 성찰하 며 피정 커뮤니티의 동료들에게 전했던 글과, 청년피정 프로그램에 동료청 년들을 초대하기 위해 쓴 글을 본인의 동의를 얻어 싣습니다.
진심에 다가서는 법 3년 넘게 일한 정든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첫 직장인 터라 배운 것도 많았고, 그 출판사에서 좀만 더 일하면 제 손으로 만들고 싶은 책도 많이 기획해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제 마음 의 키는 직장에 들어가기 전보다 훌쩍 커 있으며, 제 몸엔 내면과 외면의 삶이 좀 더 통합되어 단 단한 살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제 어깨에는 이제 넓은 사회를 향해 뻗어나갈 수 있는 날개가 생 겼습니다. 3년간 제 안에 묵직해진 배움의 덩어리는 무게를 잴 수 없을 만큼 무거웠지만 떠나는 마음은 놀랍도록 가벼웠습니다. 그만큼 그곳에 양질의 ‘거름’이 될 만한 저의 것을 많이 내려두 고 왔습니다. 그들과 저는 각자가 서로에게 남긴 무게에 진심으로 고마워했고, 곧 그들은 저를 따뜻이 감싸 안더니 훨훨 날려 보내주었습니다. 저는 이제 뼈가 단단해진 저의 날개로 비행을 시작합니다. 3년간 저를 최선을 다해 가르쳐주신 사장님은 제가 앞으로 세상을 향해 비행할 날개를 여러 방 면으로 단단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출판인으로서도 그렇고 사회인으로서도 당당히 날 수 있 는 날개를 말입니다. 그 작은 날개로 그간 유리 뚜껑 아래서만 비행했습니다. 이제 더 멀리 날기 위해 사용할 에너지를 많이 비축했으며, 쌓아 둔 연료를 조금씩 쓰면서 동시에 보충해 가는 여 정이 저를 기다렸습니다. 저의 날개와 에너지를 만들어준 그가 옆에서 이제 뚜껑을 열어줄 테니 저더러 날아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왠지 날아갈 날개가 제게 맞지 않았습니다. 출판인으로서 만들어진 날개로는 제대로 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아갈 수는 있었지만, 반쪽 날개 로만 날 것 같았습니다. 온 몸을 죽 뻗어 시원시원하게 비행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지 금이라도 날개를 바꾸고 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나 쉽사리 결정하진 못했습니다. 바로 저의 날개를 만들어준 소중한 존재의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유리 뚜껑을 열고 나가기 전에 그 날개를 버린다면, 그가 크게 상처받고 괴로워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12 촌스러운 일
그렇지만 과감히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와 내가 속한 세상의 전체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이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분명하게 살폈고, 무엇보다 그를 신뢰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분 명 제가 좀 더 온몸으로 앞을 향해 죽죽 뻗어 나가는 모습을 바랄 것입니다. 밝고 자신 있어 하는 날갯짓을 보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래서 잠시라도 주춤거리면 지금처럼 줄곧 날개를 잘못 만든 자신을 탓할 게 분명했습니다. 그건 제가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그를 위해서라도 제가 힘차게 훨훨 날아갈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려면 제게 맞는 날개가 필요했습니다. 다행히 그는 제 선 택을 겸허히 받아들여주었습니다. 그가 만들어준 에너지는 제가 원하는 바로 그 날개를 달아야 만 충분히 사용될 것이라 생각해주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유리 뚜껑을 같이 열었습니다. 뜨거운 두 손을 맞잡은 채로. 이것으로만 봐도 제가 ‘마음 비추기 피정’을 통해 삶의 어떠한 지혜를 얻었는지 알 수 있습니 다. 내 자신이 어떤 영혼의 소유자이고 무엇을 어떻게 할 때가 가장 본성에 가까운지를 성찰하 였으며, 내 영혼이 마음속에서 말하고 있는 이야기를 분명히 듣는 연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남을 향한 나쁜 감정이 실은 자신의 것을 투사하면서 비춰진 것이라는 점을 알아가면서 자기감 정을 발견하고 다스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런 제 자신의 진심과 정직은 나와 관계 맺는 이들 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들에게서도 자기 진심을 끌어내려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내 안에 평화가 숨 쉬고, 그 평화 안에서 만나는 나의 내면의 이야기를 토대로 성찰하여 그것 을 정직하게 밖으로 드러내는 사람이란 점을 나와 관계하는 이들이 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 자신들도 자연히 제가 지닌 그 흐름에 동참하게 되었으면 합니다. 주변에 좋은 영향을 주는 존재이고 싶습니다. 그들 또한 자기 내면의 교사를 만날 수 있길 바라고, 그렇 게 진심과 진심이 만나는 관계가 되길 바랍니다. 더욱이 그 진심들은 상대를 아프게만 하는 모 습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그러면서 내 진심은 과연 상대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잠시 멈추어 생각 해보는 시간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요 몇 달 항상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무얼 해도 만족스럽고 어떤 모임에 가서 어떤 사람을 만나 더라도 충만해지는 기쁜 감정이 참 좋았습니다. 얼마 전 엄마에게 “엄마, 세상은 참 살아볼 만한 것 같아. 사는 게 정말 재미있어요.”라고 말씀드렸더니 곧바로 그러시더군요. “그건 네가 삶의 축이 되어서 그래. 너를 죽 지켜보니까 알겠어. 네 자신이 인생의 축이라서 그런 거야.” 라고요. 이러한 흐름이 자신을 위한 것으로부터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한 것으로까지 발전되도록 고 민해보고 싶습니다. 공동체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 우리는 공동의 최선을 위해서 그러한 흐름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인가. 우리 공동체의 ‘축’은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 까. 공동체를 위한 개인들의 마음과 진심들이 하나로 모여질 때, 합의되는 과정은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먼저 ‘마음 비추기 피정’을 함께하는 신뢰 서클이 지니는 ‘주춧돌’을 항상 되새기고 그것 이 좀 더 마음 깊은 곳에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깨어 있고 싶습니다. 자연을 보고 나누며, 서로가 내면의 교사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에 꾸준히 동참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지금 제 마음자리가 하 는 이야기입니다. 13 상상캠프
“끊임없이 평가받고 비교당하는 삶에 익숙해져버린 우리들에게 진정한 ‘자아’ ‘내면의 교사’를 발견하고 만날 수 있는 안전하고 살아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유치원 때부터 끊임없이 비교당하는 삶의 자리에서 살아 온 우리나라 청년들. 사회 초년생의 80%에 이르는 이들이 이직 준비를 하면서 직장에 다닌다고 합니다. 항상 자기 인생이 만족스럽 지 않고 불안하며, 아직 펼치지 못한 자기 꿈과 손에 잡히지 않는 무얼지 모를 이상적인 미래를 위해서 끊임없이 준비하고 또 준비하는 우리들. 과거는 후회일 뿐이고 현재는 항상 미래를 위해 유보해놓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은 직장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기 선택을 자기 손으로 할 수 있게 된 때에야 하게 됩니다. 오직 대학 진학만을 위해 유아와 청소년기 모두를 유예했으며, 대학생이 되어도 취업을 위해 또 20대 청춘을 유보하였습니다. 막상 어른이 되고 직장인이 되니 편안하고 안정적일 것 같던 자기 삶이 온통 혼란스럽고 내 앞에 놓인 사회가 너무 크고 복잡하기만 합니다. 이제야 자기 시 간이 생겨서 하고 싶은 것도 맘껏 하며 인생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린 배운 적도 경험한 적도 없으며, 그런 생각과 행위 자체만으로 너무 쉽게 철없고 방황하는 ‘애’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끊임없이 ‘관리’하고 ‘컨트롤’해야만 이 넓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 우 리는 매일 내 안에 있는 열등감과 불안함, 나약함, 그리고 외로움과 마주합니다. 우리는 자신감, 자아 존중, 안전하고 즐거운 나의 인생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나 자신과 대 화하고 싶습니다. 몇 년 전부터 ’아픈 청춘‘을 위한 여러 멘토 프로그램이나 책들, 컨텐츠 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 지요. 청년들을 모아놓는 여러 사업들도 많아졌고요. 작년부터 참여연대 시민참여팀에서 청춘 들만 모여서 이야기하고 공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오고 있는데, 모여도 여전히 우리 암담한 현실을 재확인하고 다시금 무기력을 공유하며 또 한 번 자기 스펙에 대한 열의와 욕심을 발견하 는 것으로 자리가 끝난다고 하네요. 자신만 아프고 고립돼 있는 것이 아니라며 모인 것 자체로 굉장한 위안을 받지만, 모임의 끝자락에는 왠지 모를 씁쓸함과 공허함이 남는다고 들었습니다. 20-30대 청년들이 비어 있는 우리 안의 ‘자아’를 만나고, 무엇보다 우리 안의 ‘내면의 교사’를 만나는 작업이 필요할 줄로 생각됩니다. 저 자신이 내면의 교사를 만나면서 제 인생의 중심을 굳게 지키면서도 유연해지는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마음비추기]는 10대 들과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아직 젊고 어려서(‘요즘 애들’이라서) 자신에
14 촌스러운 일
--대해서도 그렇고 대화하는 법, 삶을 사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자아가 존중받 아본 경험이 드물고, 정말 자기 진심을 말하며 대화해본 적이 드물고,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항상 밖에서 들어오는 ‘좋은 것’ ‘해야만 하는 것’에만 매몰돼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세대 를 망라하고 똑같은 문법에 함께 신음해 온 것 같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패턴이 동일했습니다. 한국에서 [마음비추기]가 모든 세대를 만나고 우리 삶의 새로운 문법을 같이 나누었으면 좋겠 습니다. *
<교육센터 마음의 씨앗>은 일과 삶에서 진실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함께 돌보고, 온전함을 회복함으로써 삶의 터전에서 긍정적인 변화의 씨앗이 되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교육 단체이다. <교육센터 마음의 씨앗>의 주요프로그램인 ‘마음비추기 피정’은, 미국의 교육실천가인 파 커 파머의 ‘가르칠 수 있는 용기 피정(Courage to Teach Retreat)'의 자매프로그램으로, 계절에 따른 주제에 자신을 비추어보며 신뢰서클을 형성하는 사계절피정(가을, 겨울, 봄, 여름 4회)이다. 그 외에 초대피정, 교사신뢰서클, 청년피정 등도 진행한다. http://blog.naver.com/innerteacher
15 상상캠프
2차. 밑그림 그리기
시골에서의 일과 직업 상상하기
- 소셜픽션워크숍
2016년 6월 19일 일요일 14시 ~ 17시 서울 정독도서관 진행 : 조아신 지리산 이음, 지리산문화공간 토닥 기획자
‘본격적인 캠핑을 위해 터를 잡고 내가 가져온 장비들을 세팅하면서 캠핑의 밑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다른 캠핑족들도 슬렁슬렁 살펴보고 우리의 캠핑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 다양한 상상력을 총동원 해 봅니다. 지리산권 주민들의 자발적 커뮤니티 활동과 사회경제적 실험 등 농업 이외의 시골에서의 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사례 소개 시골에서의 일과 삶을 주제로 한 소셜픽션 워크숍 '10년 후 시골에 있는 나의 하루'
16 촌스러운 일
1. 지리산 산내면의 사례 저는 오늘 지리산 커뮤니티 사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참가신청서를 보니 시골에 내려가서 살겠다고 할 때, 가장 걱정은 일인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을 할지, 뭘 해서 먹고 살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제가 살고 있는 곳이 전국에서 귀촌자들이 많은 지역으로 꼽히는 곳이라서, 사례를 설명해드리면 감이 좀 오지 않을까 싶네요. 저는 5개 시군이 감싸고 있는 지리산 자락에 살고 있습니다. 남원시, 하동군, 구례군, 함양군, 산청군이 지리산을 공유하고 있죠. 저는 경상남도 함양과 이웃한 남원시 산내면에 살고 있어요. 산내면은 남원시에 속해 있지만 ‘시민’이라기보단 ‘면민’이라는 생각이죠. 서울에서 10년 정도 살다 지리산에 간지 14년이 됐습니다. 지리산 산내면은 지리산의 북부, 뱀사골 계곡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지리산 둘레길이 처음 시 작된 곳이고, 천년고찰 실상사의 마을 속에 있는 곳이죠. 산내면에는 97년 IMF 터지면서 1차 귀 농귀촌붐이 일었어요.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4-50대들 중, 시골에 가서 살려고 하는 욕 구가 있는 사람들이었죠. 그 당시 실상사가 절이 가지고 있는 땅을 내놓고 유기농업을 통해서 땅을 되살리자는 취지로 ‘실상사귀농학교’라는 2달 짜리 숙박형 귀농학교를 열었습니다. 두 달 동안 실상사 옆에 머물면서 집짓는 것이나 생태농업으로 농사짓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었는데, 1 년에 두 기수씩 15년 여 운영을 했어요. 1박2일이나 일주일 정도 시골에서 지내보는 프로그램이면, 시골생활에 대해 어떨까 궁금하고 내가 살 수 있을까 간을 보는 거지만, 2달동안 숙식하면서 하겠다는 사람은 귀농의지가 강한 사 람들이죠. 어디로 정착할까 고민하는 와중에 두 달간 적응도 됐고 마을 주민과 친해지고 풍광도 좋은 산내에 한 명씩 정착해서 살기 시작한 게 귀농인들이 모이게 된 출발점이었죠. 그런 분들 이 점점 늘어나면서 처녀총각들이 결혼해서 가족도 꾸리게 되고, 그런 사람이 100명쯤 됐을 때 가 제가 이사를 간 시점이었죠. 그 때가 2003년 즈음으로, 제 아이들이 3살, 5살이었죠. 다른 시골마을에 살고 있다가 이사를 갔는데, 당시 제가 살고 있는 마을엔 아이가 한 명도 없었어요. 저도 심심했구요. 다들 할머니 할 아버지였죠. 젊은 사람이 있는 곳을 찾다보니 이 마을이 눈에 들어온 것이죠. 100명 정도 귀농 귀촌인들이 있으니까 아이들도 태어나서 막 어린이집을 만들려는 단계에 있었죠. 사람들이 300명, 400명쯤으로 늘게 되니까 다른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기존 살고있는 사람들의 지인들인 40, 50대죠. 친구집에 가끔 놀러가잖아요. 나도 가고 싶은데 아는 사람들 있 는 곳에 가는 게 편하니까 땅, 집 알아봐주고. 지금은 귀농귀촌한 사람들이 400~500명쯤 됩니 다. 3년 전 마을에서 조사한 결과는 40대 인구비중이 가장 많고 50대, 70대, 10대, 30대. 순입니 다. 3~40 대가 꽤 많이 있으니까 산내면이 고향인데 도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도 생겼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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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산내에 오기 전에 고향의 부모님 옆 동네 빈집을 빌려서 1년 정도 살았는데, 쉽지 않았어 요. 부모님도 불편해하시구요. 서울로 공부시켰는데 다시 내려온 건, 동네 어른들 생각하시기엔 몸이 아프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사업 실패하거나의 경우만 생각하시는 거죠. 저는 재택 근무 를 해서 인터넷으로 작업하고 하니까 항상 집에 있잖아요. 어르신들은 이해를 못하시는 거죠. 무 슨 일 하냐고 하면 컴퓨터 인터넷 공익활동 캠페인 설명할 수 없으니까. ‘컴퓨터 관련 일 합니다’ 하면 할머니 할아버지들는 컴퓨터 장사하시는 줄 알고 ^^. 그런 불편함이 있는데, 산내는 인식이 바뀐 거지요. 지역에 젊은 사람들 많으니까 다시 돌아와도 실패했다는 느낌이 안들고, 그러다보 니 원래 산내가 고향인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도 괜찮아진 거죠. 처음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할 때의 가장 큰 필요, 보통 마을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 도모 를 하기 시작할 때 첫번째 하는 되는 일이 보육과 교육이에요.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혼자 문 제를 해결하기 힘들죠. 어떻게 아이들을 같이 키워볼까 하는 고민에 보육과 고민에 시작됩니다. 산내에서도 가장 먼저 시작한 게 어린이집, 방과후 학교학교 고민입니다. 그 다음은 먹을거리죠. 아무리 시골이지만 자기가 농사지은 것만 먹고 살 수 없으니까, 친환경유기농매장 같은 걸 시작 하고 그런 흐름들이 어느 정도 지나고, 어느 정도 욕구가 충족되면 문화적 욕구를 보게 되죠. 시 골에서 가장 부족한게 문화적 자원이잖아요.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300~400명 정도 되다보니 까. 서당모임, 명상모임, 판소리 모임, 축구, 탁구 등등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동아리가 3년 전 조 사로 40개 정도됩니다. 문화적 욕구를 스스로 해결하는 거죠. 산내면에선 저녁 2~3 동아리 활동 하면 일주일이 바쁘게 돌아갑니다. 저는 18년 정도 비영리단체, 재단 등에서 일했습니다. 살기는 시골에 살고, 일은 서울에서 했 죠. 그러다보니 한동안 서울서 일 하다가 와서 쉬는 곳이 동네였죠. 내려갈 때도 그저 ‘이사 간 다.’ 정도의 생각으로 아무런 준비 없이 내려갔죠. 동네 형님들이랑 술 먹는 것 좋아하고, 하숙 집 같은 느낌이었죠. 이 지역에서 뭘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그러다가, 30대까지 그렇게 살았는데 40대가 됐을 때도 그렇게 살아야 되나 하는 생각이 한편으로 들었어요. 마을에 살면서도 허전함 같은 게 있었고. 도시에 오랫동안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합정이든 마포 건 내가 사는 마을이 진짜 살고 있는 마을인가 커뮤니티가 있나. 저는 계속 겉도는 느낌이 있었 습니다. 40대가 되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더라도 마을에서 하는 일 비중을 30%라도 늘 려야 겠다. 그리고 천천히 7대 3, 5대 5… 이렇게 비중을 바꿔나가야겠다 생각했죠. 그러면서 처음 한 일이 ‘지리산문화공간 토닥’이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고 시작한 것입니다. 2012년 시작해서 벌써 4년쯤 되었네요. 시골엔 사람들이 만나서 얘기하려고 해도 마땅한 장소 가 없어요. 호프집이나 소주집 같은 술집은 있지만, 시골 술집은 만나서 얘기하는 게 쉽지 않아 요. 손님들이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죠. 누구 아빠, 누구 엄마, 만나면 반갑잖아요. 앉으 면 같이 먹게 되고. 섞여서 술 먹다가 둘이 할 얘기 못하게 되고, 끝까지 앉은 사람이 계산하게 되고. 여성들의 경우에는 어린 아이들을 집에서 보면 편하니까 공부모임이든 수다모임이든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모임을 해요. 그러다 아이들이 학교 가고 여유 있으면 집에서 하고 싶지 않죠. 누 가 내려주는 커피 마시고 싶지. 그런 욕구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공간이 달라 지면 사람들이 만나는 방식이나 이야기의 내용이 달라지기도 하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도 18 촌스러운 일
했죠. 제가 다음세대재단에서 일하면서, 제주도에서 3년 정도 살았는데 사무실을 일반적이지 않고 자유롭게 구성했는데, 공간이 달라지니까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지더라구요. 그래서 시골이긴 하지만 전통찻집 말고 도시스러운 분위기 카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 고, 몇 사람을 꼬셔서 그런 일을 했어요. 제가 잘 가던 허름한 호프집이 장사가 안되서 문을 닫 게 되었는데, 두 사람이 돈을 모아서 인수하고 인테리어, 자산 구입은 기부 출자 후원 등을 받아 서 인터넷 펀드로 1000만원, 지역에서 1000만원 모으고, 도시 친구 선배들 삥뜯어서 1000만원 모아서 2012년 10월 20일 마을카페 토닥을 오픈했습니다. 그냥 차만 파는 카페가 아니라 강연 도 하고, 모임도 하고, 공연도 하기 위한 카페였어요. 3년 동안 도시 인기 뮤지션 불러서 공연도 많이 하고, 매주 화요일마다 쉬지 않고 영화를 보고 있어요. 한 명이 오든 20명이 오든. 피아노 치는 동네 애들하고 음악회를 하기도 하고, 강좌를 진행하기도 하고요. 산내에는 중학생 50명, 초등학생이 100명 쯤 되요. 토닥은 중학교 초등학교 사이에 있고 모든 사람들이 거쳐가지 않으 면 안되는 중심지에 있어요. 학교 끝나고 간식을 먹고 가기도 하고, 중학생들은 토닥 옆에 작은 컨테이너 가서 수학 과외 받고, 토닥 다락방에서 영어 과외 받고 하지요. 동네에 보습학원이 없 으니까 도시서 강사 하던 사람이 애들 과외를 해주죠. 의외로 시골에는 식당도 술집도 항시적으로 문을 여는 공간이 많지 않아요. 토닥은 월요일 빼 놓고 아침 10시에서 밤 9시까지 항상 열지요. 토닥은 카페지만, 택배 맡기는 곳이고, 다른 이에게 전할 물건을 맡기는 곳이기도 하고, 아이들 이 엄마아빠가 집에 없을 때 있는 곳이기도 하죠. 토닥에서 일하는 세 분은 동네 이모이고, 누구 누구 엄마니까요. 토닥에는 책들이 많은데 다 만화책으로만 구성을 했어요. 서울의 북카페에 가 보면 인문과학서적들 좋은 책들 많지만 잘 안읽게 되지요. 그래서 그런 책들 빼고 만화책만으로 채우니까 사람들이 편하게 와서, 만화책도 보고 하지요. * 2012년 10월 20일 마을카페 토닥 오픈
•* 토닥을 매개로 지리산과 여행객을 이어주는 게스트하우스 3년째 운영 * 활동가들을 위한 쉼터와 워크숍을 위한 공간 * 토닥회원, 지리산에살래펀드 회원, 시민단체 상근활동가에게는 하루 숙박비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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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문화공간 토닥’의 첫 번째 사업이 마을카페였다면, 두 번째는 게스트하우스 운영이었 습니다.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친구, 지인, 아는 사람들 민박 소개시켜주는 게 귀찮아서 시작한 일이죠. 집이 마침 하나 나왔길래 게스트하우스 운영할까? 해서 시작했죠. 그렇지만, 그냥 말고 컨셉을 가지자 해서 ‘공익활동가들의 쉼터 공간’이라는 컨셉을 잡았죠. 회원들한테는 하루 만원 의 숙박비만 받고, 일년에 몇 번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이에요. ‘지리산 문화공간 토닥’은 비영리단체입니다. 수익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카페를 통해서도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해서도 수익이 조금씩 나오고, 강연이나 공연도 하고 후원회원도 있습니 다. 동네 마을 주민이 50명 정도, 서울에서도 45명, 동네 사람들한테는 토닥카페에서 매월 두 잔 씩 무료음료를 제공하죠. 회원들에게 3000만원의 기부, 후원, 출자를 받을 때 약속을 했어요. 상 업카페가 아니라 마을카페로써 정체성 유지해나가겠다. 수익이 나면 지역 어르신, 청소년들 위 해 쓰겠다. 둘째 해부터 연간 200만원의 수익이 발생했습니다. 산내에서는 어르신들 반찬해주 는 모임에 50만원, 독거노인 장작패서 날라주고 쌓아주는 남자들 봉사모임에도 50만원, 산내중 학교 애들 도시 여행 50만원 등의 후원을 했습니다. 도시 기준에서는 작은 금액이지만, 산내의 작은 봉사모임에서 쓰는 돈이 연간 백몇십만 원이니 작은 돈이 아니죠. * 2014년부터 카페, 게스트하우스 등 운영수익 일부를 적립하여 청소년과 어르신을 위한 기금 적립 - 지역사회에 환원
* <지리산 이음>은 지리산 둘레 3개도(전북, 전남, 경남), 5개 시군 (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 21개 읍면, 120여 개 마을의 다양 한 공동체활동을 지원하고 사람과 마을, 마을과 마을, 마을과 세계 를 연결하는 지리산 공동체를 위한 공간 및 문화적 기반을 구축하 고 지원한다. * 우선사업으로 커뮤니티 조사 시작
* 시골살이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에 무엇이 있고, 어떤 자세와 경 험, 기술이 필요한 지 두루두루 살펴볼 수 있는 <지리산 시골살이 학교> * 시골에 사는 것이 특별한 삶이거나 도시를 탈출하는 부정적인 선 택이 아니라 우리가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 중 하나라 는 것을 인식하고 시골살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준다.
* 칭간준비호 2014년 4월 10일 타블로이드판 4면, 1,000부 발행 * 창간호 2014년 5월 9일, 현재까지 37호 발행 (3년) * 1달에 한 번, 2,000부 발행 (매월 10일) * 타블로이드판 8면 발행 20 촌스러운 일
세 번째 토닥이 한 일은 ‘지리산 이음’이라는 단체를 만든 것입니다. 지리산을 공유하는 다섯 개 시군에 토닥과 같은 일을 하고 싶어하는 곳들과 어떻게 하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하 고, 지원할 수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만들어졌고, 지리산 둘레 3개도, 5개 시군, 120여개 마을의 공동체활동을 지원합니다. 지리산권 커뮤니티 조사사업을 시작으로 아름다운재단의 인큐베이 터 사업에 선정되어 지원도 받았습니다. ‘지리산 이음’에서는 지리산 시골살이학교를 진행합니다. 기존의 귀농귀촌프로그램은 40~50 대 남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대부분이고, 청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별로 없어요. 시골살이학 교는 45세 미만만 참여할 수 있는 8박 9일의 프로그램입니다. 참가자 대부분은 30대 초중반 여 성들이에요. 처음에는 8박 9일로, 지금은 제가 힘들어서 6박 7일로 줄여서 하고 있지요. 지금까 지 4기가 진행되었고, 올 여름에 1~4기학교 학생들과 같이 심화학교를 한 다음에 내년부터 어 떻게 하면 프로그램 더 잘해볼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리산 마을신문 워크숍도 열었습니다. 전국 마을신문 관계자들 100명을 모아서 진행했죠. 그 외에도, 납세자 워크숍, 적정기술워크숍, 사회경제워크숍, 여행 워크숍 등을 했어요. 워크숍의 주제를 정할 때는, 마을에서 여러 명이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어 하거나 경험하고 싶어하는 것을 찾고, 함께 의미부여를 할 수 있는 그런 게 뭘까 싶은 것들을 찾죠. 지리산이음포럼을 작년에 처음 열었습니다. 지리산 이음은 지리산 터를 잡고 있는 단체이긴 하 지만 지리산만을 위한 단체를 지향하지는 않아요. 서울에 사무실을 둔 단체가 전국을 상대로 사 업을 펼치듯이, 지리산에서도 전국을 상대하지 못할 건 없다고 생각했죠. 지향점을 지리산의 이 슈와 전국의 이슈를 만나게 해주는 통로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1년에 한 번만이라도 100명 정도 모여서 2박 3일동안 토론하고 대화하는 자리를 갖는 것인데, 포럼 둘째 날에 지리산 어쿠 스틱 음악회를 열고 인디가수 10명정도 초대해서 공연도 했죠. 축제의 장인 겁니다. 올해도 10 월에 청년을 주제로 하는 포럼을 20개 정도의 세션으로 열 계획입니다. 도시는 인터넷 소통을 많이 하지만, 시골에서는 여전히 안쓰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정보 통로 로서 종이가 갖고 있는 힘이 크죠. 그래서 산내마을신문을 만들었습니다. 2000부 정도 발행하 는데, 마을에는 집집마다 배달을 합니다. 18개 마을마다 젊은 사람을 지정해서 집집마다 배달을 하는데, 마을별로 한 30분쯤 걸릴까? 순수한 노력봉사죠. 초등학교 주변 마을은 초등학생들이 배달을 맡습니다. 할머니들하고 아이들이 신문 통해서 만나기도 하지요. 지금까지 창간준비호 포함해서 39호까지 나왔어요. 저는 신문의 편집디자인을 맡고 있습니다. 보통 마을신문들은 디자인을 외주로 맡기거나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는데, 이런 경우 자원봉 사자가 바쁘거나 하면 강제할 수 없고, 외주를 맡기면 돈이 들죠. 산내마을신문은 창간준비호를 전문디자이너에게 맡겨서 샘플을 받아서, 그 뒤로는 제가 조금씩 변형해 가면서 편집합니다. 신 문 만드는 일은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다들 불안해하죠. 자기한테 어떤 책임이 주어질까봐, 편 집장을 맡길까봐. 신문 만들다가 그만두고 싶으면 어떻게 하지? 하면서요. 우리는 언제든지 그 만둘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만듭니다. 너무 책임감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고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고 생각하면서 시작했고, 처음에 편집장도 사다리로 뽑았어요. 돌아가면서 한 회씩 해보고, 계속 할만하면 하고 아니면 말자고 했죠. 사다리 타서 제1호 편집장을 뽑았는데, 알고 봤더니 국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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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교지 편집장 출신이더라구요. 주변 말도 크게 신경 안쓰는 스타일이었구요. 두 번째 신문 내 기 전에 편집장을 제외한 5명이 만나서 계속 편집장으로 밀자고 작당을 해서 36호까지 편집장 을 하고 있었는데, 최근 3개월만 쉬겠다고 해서 운영진들이 그렇게 하라고 했죠. 그 다음엔 ‘지리산 살래편드’입니다. 산내 농부/창작자들의 모임이죠. 시골에 오면 농업을 생 각하죠. 어떻게든 내 농사를 짓고 싶어해요. 나 먹을 만큼 짓는 사람도 있고, 조금 더 크게해서 대단한 돈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수입을 올리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농사로 수익을 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소농의 경우에 남의 땅을 빌려서 하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그런 사 람들 15명이 모였습니다. 농사짓는 사람, 도자기 만드는 사람, 목기 깎는 사람이 모여서 어떻게 같이 이문제를 해결해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나온 아이디어가 펀드였어요. 구례에서 처음 시작된 ‘맨땅에 펀드’를 보고 벤치마킹한 거죠. 일년에 33만원 낼 사람을 모아서, 이 농부들이 생산하고 창작자들이 만든 물품을 1년에 5번 보냅니다. 보내주는 시기와 물품은 농부들이 결정 하구요. 꾸러미가 아니라 ‘펀드’라서, 농사가 잘되면 많이 보내주고, 안되면 적게 보내죠. 도시의 소시민과 농촌의 소농이 연결되는 건데, 130여명의 사람들이 참여했어요. 사실 돈은 얼 마 안됩니다. 그걸 15명의 소농이 나누니까요. 한 명에게는 200~300만원의 소득이죠. 실제 소 농들이 일 년 농사지어서 이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많게는 1000만원이고, 대부분 300~400만 원을 벌죠. 그런데 펀드라는 건 안정적이잖아요. 내가 지은 농산물을 누구에게 주면 되니까. 유 통 걱정 없이요. 그 전에는 감자 100박스 나오면 100박스를 각자 팔아야 했으니까요. 유기농 농 사를 짓지만 유기농 인증을 받지 못한 사람도 많아요. 유기농인증이라는게 땅을 기준으로 하는 거라, 땅 주인이 땅을 돌려달라 하면 소용이 없어집니다. 보통 귀농한 사람은 도시의 지인들에게 농산물을 팔죠. 가격 높게 책정해도 사주거든요. 그게 5~10년 되면 서로 민망해지죠. 그런데, 펀드를 통해 이런 걱정 없이 농사를 짓게 된 겁니다. 사실 농사는 혼자 조용히 하는 일이 대부분 입니다. 공동농업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외롭죠. 펀드를 통해서 농사정보도 교환하고, 마을에 서 같이 고민할 사람이 생긴 것이니까 외롭지 않아서 좋다고 합니다. 올해는 5월 초에 첫번째 배당을 했습니다. 물품은 된장, 오미자효소, 표고버섯 말린 것, 쌀 그 리고 뭔가 지리산만의 것을 넣자고 해서, 배당하는 날 아침에 6시에 1000m이상 되는 삼봉산에 서 나는 개발딱주라는 나물을 8명이 배낭 메고 캐와서 물품으로 넣었죠. 다음 배당은 감자를 중 심으로 한 몇 가지 구성품들이 될 것 같아요. 또, ‘살래청춘식당 마지’가 있습니다. 산내의 귀농자들 중 20년 이상 산 사람들의 아이들이 10 대 ~20대 중반이 되었죠. 일부는 서울의 직장, 대학에 가기도 했지만, 20대 초반 친구들이 몇몇 이 산내를 떠나지 않고 정착해서 살아보고 싶어했어요. 그래서 커뮤니티 밥집을 기반으로 청년 들의 성장과 자립 모색해보자는 생각으로 작은 밥집을 열었어요. 할머니가 하시던 식당인데, 허 리가 아프셔서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는 곳이 임대가 나왔는데, 임대료는 15만원이었죠. 토끼탕, 보신탕, 된장찌개를 팔던 식당이, 청년들이 만든 토마토 스파게티, 두유덮밥, 가지버섯탕수덮밥 을 파는 식당으로 바뀌었죠. 밥집을 하고 있지만 청년 오픈테이블, 청년 교류사업들을 하고 있 고. 최근에는 게스트하우스 해볼까 고민하고 있기도 하죠. 이 사업 시작하는데도 동네에서 돈도 모았고, 소셜펀딩을 통해서 700만원 정도를 모으고,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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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선재단 등의 지원을 받기도 했죠. 저는 제3자 입장의 기획안을 써서 후원과정을 돕기도 했습 니다. 우리 마을 청년들이 뭘 하려고 한다 후원을 부탁한다고 쓴 것이 제3자 입장의 기획안이죠. 자기가 자기사업 후원해달라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걸 이야기 해주는 사람이 필요하죠. 40 ~ 50대 중반 귀농자들이 벌인 일로, 매주 수요일의 지리산 탐험대 소모임이 있었습니다. 옛날 지도를 보고 비법정 길을 다니는 모임이죠. 그 외에 숲체험모임, 치유 프로그램 교육 그룹 이 있었어요. 그 3자가 모여서 여행사를 만들어보자고 해서, 작년에 만든 것이 여행협동조합입 니다. 여가활동. 동아리 활동이 일이 될 것 같았고, 내 재능을 살려서 마을 안내를 해주고, 숲이 야기를 해주고. 안내 비용을 받으면 어떨까 하는 소박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동네에서 3000만원의 출자금을 모아서 하고 있는데 쉽진 않습니다. 여행와서 그냥 산에만 다니는 게 아니 라, 산행중에 계곡 옆에 둘러 앉아서 동네의 판소리 잘하는 젊은 친구를 불러서 춘향가 한 소절 을 듣는다거나 하는, 컨셉이 다른 여행을 기획하는 거죠. 그 외에도, 산내에 혼자 살고 있는 여성, 할머니 집에 뭐 고장나면 고쳐주는 마을청년들의 자발 적집수리봉사모임인 두꺼비도 있구요. 도시는 돈 주고 맡기면 되지만 시골은 맡길 곳도 없고 애 매하거든요. 이 모임은, 매월 첫 번째 일요일에만 이 일을 합니다. 수리 자재비만 받고, 나머지는 자기들끼리 회비내서 하고 있죠. 산내가 고향인 사람들도 있고, 귀농인들도 있구요. ‘게미’라는 독거 어르신들 위한 반찬 지원 모임도 있습니다. 역시 한 달에 한 번씩 반찬을 해서 어르신들게 가져다드리죠. 농한기에 어르신들을 위한 공연을 하는 ‘산내놀이단’도 있습니다. 요즘에도 시골 마을엔 약장수들이 옵니다. 회관 을 빌려서 공연도 하면서 물건을 파는데, 한 달 동안 하면 할머 니들이 150명씩 오지요. 이 사람들은 주로 중국산 수의 같은 것을 파는데, 공연을 보니 저 정도 면 우리도 하겠다 싶더라구요. 풍물패, 판소리, 연극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겨울철에 5차례 공 연을 했는데, 초등학교 강당을 빌려서 어르신들을 차로 모시고 오고, 또 데려다 드리죠. 트로트 공연, 춘향전도 하구요. 작년엔 흥부전, 올해는 심청전을 했습니다. 돈도 꽤 들죠. 우리도 약장수 들처럼 휴지나 비누같은 선물도 드리거든요. 후원도 받고 배우와 스텝들이 10만원씩 내기도 하 죠. 흔히 바깥에서 보면 귀농귀촌자, 원주민 갈등을 걱정하는데, 마을 속에 들어와서 살면 큰 갈등 은 없어요. 목소리 큰 사람 몇 명의 완력이 있는 거죠. 느티나무 매장이라는 로컬푸드 유기농 매 장, 재활용 가게인 나눔꽃, 살림꽃, 슬로푸드 음식 교육장인 동네부엌 …. 마을에서 했던 일들이 있습니다. 제가 관여했던 일들도 있구요. 23 상상캠프
2. (시골에서) 커뮤니티 활동의 경험과 교훈 시골에서의 일과 직업 시골에서는 커뮤니티 활동이긴 하지만, 일이기도 하고, 직업이기도 하 지요. 시골에 직장은 별로 없습니다. 안정된 직장이라면 농협, 면사무소, 초등학교 정도일까요? 하지만 일은 많습니다. 이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 죠. 여행사를 하는 사람이, 또 다른 어떤 일, 어떤 일...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냐고 물으면 한 가지 직업으로, 한 마디로 설명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겠지만, 시골에는 그 런 게 없어요. 아침엔 뭘 하고, 본래 직업은 뭐지만, 마을에서 다른 어떤 일을 하고 있고 하는 식 이죠. 나중에 시골에서 산다고 하면 안정된 직장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뭐고, 그 일을 사람들 에게 어떻게 설명하게 될까를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오전에는 무슨 일을 하고 오후에는 무슨 일을 하고 주말에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죠. 직업(일)이 3~4개는 되는 거죠.
커뮤니티는 흥할 때도 있고, 망할 때도 있다 아마 시골에서 처음부터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 고 커뮤니티 활동을 했을 뿐인데 어느 순간 일이 될 겁니다. 커뮤니티는 흥할 때도 있고 망할 때 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안될 때를 못견뎌 하지요.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 5명이 즐겁게 산 에 다니다가, 2년 정도 되니까 20명으로 늘어나서 매주 일요일마다 산에 가다가, 3~4년 되니 10명 미만으로만 모임에 나온다고 하면 고민이 시작됩니다. 20명이었던 회원이 10명 밖에 안오 는 거지? 하구요. 자꾸 총회를 열고, 왜 회원들이 안나오나 따져 묻기도 하고, 그러면서 운영진 은 더 일 하기 싫어지고,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회원들은 더 모임에 나오기 싫어지죠. 왜 산악회 를 시작했을가? 이걸 잃어버린거죠. 어느 순간 산악회 자체가 목적이 되버립니다. 우리가 하는 활동을 보면 3년 정도 하면 재미가 없어지거든요. 재미없는 시기가 있어요. 재미없다는 걸 옳지 않은 걸로 보고 억지로 끌어올리면 무리하게 됩니다.
불확실성은 당연하다 / 완벽한 기획안이란 없다 시골에서 사람들하고 하는 일은 다 불확실성 이 전제되죠. 도시에서 카페를 만든다고 하면 A부터 Z까지 계획을 세워서 가는 것이 가능하지 만, 시골에서는 익명이 아닌 면대면 사업이기 때문에 누구와 같이 하고 그 날 누구와 결합하는 지에 따라 일이 달라집니다. 프로세스 매뉴얼은 도움이 안될 때가 많아요. 카페 토닥을 만들 때 동네 후원, 출자를 받으러 다녔어요, 누구는 10만원, 누구는 100만원 하는 식으로요. 동네에서 꽤 여유 있는 누구를 찾아가서 이런 일을 해보려고 하는데 도와달라고 했죠. 마침 가지고 있던 기획안을 집에 두고 가서, 그냥 맥주집에 앉아서 말로 설명을 했는데, 이분이 다른 데처럼 기획 안 들고 오지 않아서 좋았다며 후원을 하셨어요. 문서를 들이밀 때에는 이미 다 정리가 되어 있 어서 자기가 끼어들 여지가 없고, 같이 하고 싶은 마음도 안들었다면서 말이죠. 사람들하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너무 기획안이나 프로세스를 정교하게 잘 짜서 하기보다 그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까 집중하면 다음 일은 또 이루어집니다. 완벽한 기획안이란 없어요. 웹서비스 기획자들도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더군요. 아고라를 만들었던 기획자가 처음 기획할 때, 아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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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사람들이 이렇게 사용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몰랐다고 하더라구요. 중요한 것은 피드백을 어떻게 잘 반영하고 개선해나갈까에 집중하는 것이지 내가 생각한 완벽한 서비스를 만 들어놓으려 하면 실패한다는 것이죠. 이용 서비스는 마을 커뮤니티나 사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완벽한 기획안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계속되는 시도는 실패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계속되는 시도, 작은 실험들, 작은 성공들을 맛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egg drop project나 대학 도자기 수업의 사례를 통해 볼 수 있습 니다. 아주 많은 준비를 해서 한 번 하는 것보다, 작은 시도들을 계속 하는 게 필요합니다. 높은 데서 달걀을 떨어뜨리는 실험인 egg drop project를 공대학생들이 했다고 해요. 한 팀에게는 4시 간 동안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한 번 시도하도록 하고, 다른 한 팀에게는 너무 생각하지 말고 그 때 그때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계속 시도해 보라고 했을 때, 늘 더 좋은 결과는 후자에서 나왔 다고 합니다. 비슷한 예로, 도자기수업에서 A그룹에게는 질 좋은 도자기를 제출하게 해서 평가 하고, B그룹에게는 제출한 도자기의 양으로 평가한다고 하고, 두 그룹을 비교할 때 가장 좋은 도 자기는 늘 B그룹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반복되는 실험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 준 사례이죠. 마을 에서의 일도 작은 실험이 중요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해서 시도를 하지 않아서 실패하는 거지요. 산내마을신문팀은 창간준비호를 내보고 결정하자며 시작했고, 창간준비호를 내고 나서는 3호 까지는 내보자고 했지요. 이렇게 신문을 한회한회 내다 보니까 되더라 했던거죠. 이런 게 필요 하지 않을까요?
‘준비-조준-발사’ or ‘준비-발사-조준’ 이전에는 화살을 준비하고 잘 조준해서 발사하는 것으 로 생각했죠. 최근의 경영학 트렌드나 조직이론은 준비하고 발사한 후 다시 조준하는 것을 이야 기합니다. 발사를 해 보면 과녁과의 차이가 바로 보이잖아요. 어느 정도 벌어졌네. 그래서 다시 준비해서 발사하고, 차이를 확인하고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거죠.
흩어져 있는 것들을 연결하기 오늘 수많은 여러 가지 일들을 소개해 드렸는데, 각자 일을 하다 보면 전체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토닥일도 하고, 이음 일도 하고, 마을 신문도 하지만, 누군가는 또 자기 일만 하기도 합니다. 마을의 이 일과 저 일을 결합시키면 시너지가 날 때가 있습니다. 어 느 순간에는 각각의 일들을 연결시키는 일이 중요할 때가 있지요. 마을에서의 일을 생각할 때 직 접 생산하고 제조하고 실험하는 일들도 중요한데, 그런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켜주고 전체를 묶 어주는 일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또, 시골 마을뿐만 아니라 시골 누구와 도시의 누군가를 연결시 키는 것도 필요하하지요. 지리산 이음은 그런 일들을 하려고 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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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셜픽션워크숍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은 앞으로 30~40년은 더 일을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지금 여러분이 생 각하고 있는 직업과 직장, 일이라는 개념은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농사짓기는 계속 남아있겠지만 농사 짓는 방식, 유통, 소비 등은 모두 다 바뀌겠지요. 지금 뜨고 있는 직업, 앞으 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직업이 10~20년 후면 쓸모 없어지거나 사라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 다면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소셜 픽션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질문을 이원재씨(현 희망제작 소장)가 던졌습니다. 200년 전 공상과학소설에 나왔던 과학적 상상력이 지금 현재의 삶에서 실 제가 된 것이 많습니다. 공상과학의 상상력과 과학계의 순환 작용이 있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사 회 변화를 위한 상상력을 소셜 픽션을 통해 구현해 보자는 이야기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2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 있는 곳에서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을 바 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한 다음, 거꾸로 기획해가는 방법이죠. 소셜픽션은 후자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국내에서는 실제로 '어린이대공원'을 주제로 한 소셜픽션컨퍼런스를 열었습니다. '앞으로 어린이대공원은 어떤 모습이여야 할까?'를 주제로 심리학자, 사회학자, 아 동청소년전문가, 어린이, 학부모, 유치원교사, 환경운동가 등 다양한 직업군의 100여 명이 모 여 어린이대공원의 40년 후의 미래를 상상해보고 그것을 꼴라쥬로 작업했습니다. 이렇게 만들 어진 밑그림을 서울 시장이나 어린이대공원장 등 정책 입안자들이 함께 보고 새로운 컨셉의 어 린이대공원 모습을 구상해 보는 것입니다. 지금 현실의 조건을 규정하는 예산이나 제도, 행정 규제 등을 넘어서는 자유롭고도 무한한 상 상력을 통해 정치가들은 문제해결의 새로운 실마리와 단서를 얻는 것입니다. 그러고 난 후에 지 금 조건이나 예산 안에서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일들을 체크해 보는 것이죠.
공상과학소설이 결국 과학을 움직였다. 먼저 상상해야 변화가 일어난다. 그렇다면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소셜픽션 Social Fiction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 무함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창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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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작업을 위해서는 질문이 필요합니다. 10년 뒤에 000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특정한 시 공간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 10년 뒤 초등학교 6학년 교실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 10년 뒤 지리산 산내면 청년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까? . 20년 뒤 지하철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소셜픽션 워크샵 1] 개인 작업 . . . .
시간 _ 10년 후 장소 _ 면 단위의 한 작은 시골마을 인구수 _ 청년 / 전체 계절 _ 완연한 봄, 더운 여름, 수확철 등등
하루, 일주일 동안 이곳에서의 삶을 상상해보고 글과 그림 등으로 자유롭게 표현해봅시다. 면 단 위의 인구수는? 전체 인구 중의 청년은 몇 명일지, 10대는 몇 명, 20대는 몇 명 일지. 그 다음에 하루 일과를 써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떤 풍경을 보았는지. 아침엔 어떤 일을 했고, 점심은 어떻게 먹고, 오후는 어떻게 보냈고, 저녁은 어떻게 했는지, 남는 시간은 뭘 했는지 등을 써 봅니 다. 틀을 무시해도 좋다.
[소셜픽션 워크샵 2] 팀 작업 . 가상의 인물, 이름, 나이, 성, 결혼을 결정해보세요. . 집은 어떻게 꾸밀까? 집은 어떤 모습일까? 거기에 마을이 들어가면 좋겠죠. 내 집을 중심으로 마을이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 주 직업이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 다음으로는 놀고 즐기는 놀이문화 요소는 어떤 모습일까. . 마지막으로는 먹을 거리 문제, 의식주. 이 네 가지 요소를 구성해서 같이 팀 별로 모여서 그림과 글과 같이 섞어서 그려봅니다. 각자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눴잖아요. 그 중에 가장 좋은 것을 취합해도 좋고, 특정한 가상의 인물이지 만 다 자기라고 생각하시고, 10년 후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어떤 일과 어떤 놀이 문화를 갖추면 좋을 지 25분 정도 얘기해 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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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픽션워크숍 발표1 가상의 인물 : '오혜진'
여자 오혜진씨 38살, 남편은 송중기, 딸은 송혜교, 아들은 송해 집은 마을에서 멀지 않은 숲 속에 기와집을 지었고, 거기에 태양열을 이용한 전기를 받을 수 있 게 했다. 2026년, 스마트한 시대다. 뒤에는 농장, 자연과 어울어진 정원이 있다. 먹을거리는 주로 먹고 싶은 것을 적었다. 아침에는 농장에서 갓 나온 계란, 토마토, 선식으로 간 식은 꽃차랑 화전, 화덕빵, 점심은 토마토 파스타, 꼭 남편이 요리해야 한다. 간식은 물만두, 저 녁에는 정원에서 마을 사람들이랑 모여서 돼지 바비큐를 먹으며 음악회를 연다. 다문화 시대이 니만큼 외국인도 초대해서 외국 음식을 만들기도 한다. 직업은 꽃을 좋아해서 꽃차를 만들면서 꽃이나 식물 이용한 발효식품을 판매하고 강의도 한다. 정원에서는 음악회, 스몰웨딩, 모임 등을 한다. 꽃은 화분으로 만들어서 판매하기도 한다. 외국 인이든 온 손님들을 위한 에어비앤비 체험도 하고, 우리집이 아니더라도 마을의 여러 집에서 공 동문화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놀이 문화는 댄스 좋아하는 분들, 악기 좋아하는 분들이 있어서 그런 동아리 활동을 하고, 그밖 에도 축하공연, 외국인 회화모임 등 여러 다양한 사람들의 장기를 이용해서 놀이문화를 만들어 간다. 이 마을의 이름은 명랑마을이다. 각자의 자급자족 공동체이다. 안성에 잠깐 있었던 경험을 떠올 려보면 각 나라별 축제가 있엇는데, 2026년이면 여러 나라 마을 사람들, 각 지방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다문화 마을을 이룰 것이고, 그래서 나라별 축제나 각 지방 사람들의 교류가 많아질 것이다. 어쩌면 이 때는 도시 사람들이 부족하고 반대로 농촌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그럴수도 있을 것 같다. 희망사항이다. * 28 촌스러운 일
소셜픽션워크숍 발표2 가상의 인물 : '오필매'
오필매. 미혼 이 청년은 작은 나무집을 짓는 목수이다. 이 친구가 직접 지은 작은 나무집(10평 이내)에서 살아 가고 있다. 이 마을은 양봉을 중심으로 하는 마을로, 꿀을 이용한 가공식품을 만들어 낸다. 이 마을에는 작은 카페가 있는데, 그 공간에서 남자들이 좋아하는 안주들, 여자들이 좋아하는 브 런치, 아이들 간식, 건강한 꿀을 이용한 먹을거리를 만들고 파는 등의 공동작업을 한다. 벌꿀사 업을 하는 협업농장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6시간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 놀이문화로는 주직업이 목수이기 때문에 집을 짓고 남는 자투리 나무로 악기, 팽이, 숟가락 등을 만드는 놀이문화거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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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픽션워크숍 발표3 가상의 인물 : '철수'
철수라는 남자 43세, 1인 가구, 미혼이다. 미혼인 이유는, 이 마을의 특징은 자급자족 마을 공동 체인데, 철수란 사람은 조금 더 진취적이어서 공동체 리더를 맡으면서 마을 모델 기반으로 다른 마을, 지역에 확산시키려는 큰 그림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결혼을 하지 못한 상태다. 이 마을은 각 집마다 집과 키우고 싶은 작물을 토대로 이동식 주택,&축사를 단기간에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것들이 조립건축이다. 야외문화시설, 교육시설, 공작소, 공간들이 필요할 때 고정 되어서 존재하는 것보다 조립건축의 기술이 중요해질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철수가 하는 일은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 농촌에서 가장 중요한 게 일과 관련된 공동작업, 밭, 농사할 공간들, 임대하는 것들, 공간에 대한 관리 등인데, 이러한 공동관리를 하려면 마을 자 체적 고민도 필요하지만 조직화된 틀로서 진행해야 할 것 같아서 단체와 함께 협력하는 사람이 다. 이런 걸 토대로 어떻게 일을 공동작업을 하고 지원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 교육하고 지원하 는 사람이 철수의 중요한 일이다. 다시 말하면 철수는 단순하게 마을의 중심축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필요한 펀딩도 도와주고 조직하는 역할을 한다. 구체적으로 철수가 도 와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정교하게 생각해봤다. - 공작소 만들기 : 마을 주민들의 만들고자 하는 욕심들을 충족시켜줄 공간을 만든다. - 둘레길 만들기 : 마을의 경관이나 마을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둘레길을 만들어본다. - 문화 : 마을 사람들끼리 야외에서 모여서 공연하고 영화보는 정기적인 야외 문화를 만든다. 여기까지 브레인스토밍 하듯 아이디어를 모아 보았다. 공동체 안에서 중요한 놀이가 무엇일까?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중요한데, 십년 후다 보니까 팟 캐스트 같은 온라인 매체를 통한 모의매체가 좋을 것 같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거나 소소 한 이야기들을 담으면서 만들어내는 과정이나 보는 과정 역시 놀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여기까지가 귀농한 청년 중심의 이야기라면, 원주민과의 관계는 어떻게 만들까? 하는 이야기도 나누어 보았다. 전통시장문화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았는데, 전통시장을 시장으로서만 기능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철수가 만들었을 문화 소모임이나 단체를 활용해서 공연이나 여러 가지 문화요소를 첨가하면 시장이라는 곳이 사람들이 모이고 축제 은 기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 는 생각이다. 실질적으로는 식당을 하나 만드는데 일종의 품평식당으로 일을 하는 농업인 입장 에서 자기 물품을 가까운 관계에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평가 받고 외부 사람들의 수요를 반영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일에 도움이 되는 플랫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철수는 이러한 것을 만들어서 언론에도 소개하고, 브랜드화 하고, 다른 활동가들과 소통해나가서 모델 확장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30 촌스러운 일
소셜픽션워크숍 발표4 가상의 인물 : '한수정'
한수정, 37세, 결혼 후 3살 연상의 남자. 아이가 2명.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생각한 마을에는 주위에 엄청나게 많은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다. 사과나무, 배나무, 포도나무, 그리고 가지각색의 유실수들이 있다. 집은 나무집이고, 여기는 엄청 큰 밭이 있다. 채소와 먹을거리들이 생산되어 마을 사람들이 먹고 팔기도 한다. 옷 만드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어서, 양을 많이 길러서 그 실로 옷을 만들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옷을 마을 사람들이 입고 수출하기도 한다. 또 음악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악기를 즐기고 아이들한테 가르쳐 준다. 악기와 카페가 있고, 동물들이 많다. 토끼, 닭, 오리들은 풀어놓고 키우고, 말은 타고 다니면서 이동 수단인 ‘말택시’ 로 이용한다. 이 마을 자체에서 의식주를 해결하기 때문에 따로 일을 해서 돈 벌거나 할 필요가 없다. 한수정씨는 마을 라디오를 하고 있다. 사람들의 활기를 북돋아주고, 남편은 텃밭 김매기와 옷 수 출, 농산물 수출 등을 담당하고 있으며 마을 펀딩을 통해 예술인마을 탐방을 홍보하는 일도 한 다.
31 상상캠프
소셜픽션워크숍 발표5 가상의 인물 : '치어리더'
우리 마을은 마을의 자생적인 측면들을 강조하고자 했다. 여성 40세, 기혼, 남편 1명, 육아에 지칠까봐 딸 1명을 두었다. 우리 집은 빈집을 고치자고 해서 빈집을 잘 고쳐서 산다. 주위에 나무도 많이 심고 연못과 놀이 터도 만들었다. 리어카도 있다. 이 여성의 직업은 마을 치어리더이다. 비슷한 마을들의 공동체 생활 등을 연결하는 중간 지원자 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남편의 직업은 텃밭도 가꾸고 꾸러미 사업도 하고 그래서 일이 많아 아 주 힘들어하고 있다. 이러한 집을 짓고 옆에는 양봉장을 둔다. 벌도 키우고, 꿀도 따고, 과수원에 있는 살구나무 등을 통해서 수제 잼이나 청을 만드는 사업을 한다. 마을 주민들끼리 모여서 같이 놀 수 있는 사업을 한다. 50여 가구 사는 마을로 집들도 있고, 중요한 것은 자생적인 마을이라는 것이다. 마을 곳곳에 숨 어있는 모임터, 술집, 도서관, 학교, 목공소, 카페, 옷 만드는 곳, 한의원과 보건소. 2층엔 마을회 관이 있는데 모든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지낸다. 위치는 배산임수라 앞에는 강도 있고, 로컬푸드 직매장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팀원 네 명의 바람이 들어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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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들이 현실적이네요.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나는 카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10년 전에 했어요. 막연하게 생각하고 얘기했죠. 술 먹을 때마다 얘기 던져보고. 그러다 어느 시기가 되면 카페를 해야 되는 문화나 분위기가 형성되는 시기가 오더라고요. 또 한 가지는 비영리단체에서 사람들이 주5일, 주4일 근무하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을 막연하게 생각해보고 있는데 주 4일 근무, 하루 6시간 노동을 하고 적정임금을 받게 하는 구조를 만들어보 자고 막연하게 하다보니까 어느정도 현실화 되고 있어요. 지금은 시골의 술 문화를 바꿔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부어라 마셔라하는 문화가 아닌 새로운 문화로 말이죠. 지금 토닥을 같이 운영하고 있는 남자친구가 있는데 50이 되면 같이 술집 을 차리자고 장난식으로 얘기하고 있어요. 그런데 정말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뭐냐면 상상한다는게 그냥 상상이 아니라 꼭 지금 되지 않아도 좋은데, 어느 순간 이 되면 그 조건과 가치를 아는 어떤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생각보다 빨리 이루어지게 되요. 그 러기 전에 그냥 마을에 쑥 들어가서 일을 벌이면 안 됩니다. 그냥 살아야 하는 시기가 필요해요. 일을 본격적으로 벌이기 전에 10년 정도. 그렇게 그냥 놀듯이 그냥 어울리며 살았습니다. 너무 가자마자 일을 벌이고 주민들 조직화하겠다는 느낌을 주는 것보다 그냥 1~2년은 살아보고 간도 보고 살펴보고 할 수 있을 지 가늠도 해보고 이런 시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보면 시골 내려가는 것에 대해서 너무 머릿속으로만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가보고 아니면 다시 돌아오면 어떨까. 이 정도 생각하고 시작해보는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실패할 확률, 좌절감 등에 대해 조금은 편하게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
33 상상캠프
34 촌스러운 일
종자로 쓰려는 것은 그 해의 결실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만을 골라 매달아진다. 수백 수천의 옥수수 알들은 단지 한 톨의 씨앗에서 비롯되었다. 씨앗이 할 일은 단 두 가지다. 자신을 팔아넘기지 않고 지켜내는 것. 자신의 대지에 파묻혀 썩어 내리는 것. 희망 또한 마찬가지다. 헛된 희망에 자신을 팔아넘기지 않는 것. 진정한 자신을 찾아 뿌리를 내리는 것. 그대, 씨앗만은 팔지 마라. - 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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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밑그림 그리기
젊은 기획자에게 2016년 6월 19일 일요일 17시 ~ 19시 서울 정독도서관 진행 : 윤후영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 학예사
화가의 꿈을 꾸던 한 청년이 중년의 나이에 어쩌다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의 주인공이 되었는지... 지극히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그의 시선을 따라 예술적 상상력으로 마을을 바라봅니다. 고암의 시간과 시선을 따라 마을을 바라보고, 자원을 발견하고, 생태문화예술마을의 밑그림을 그리기까지. 자기의 일과 삶을 그려보고픈 젊은 기획자들이 그의 삶을 따라가며 영감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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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모인 이 공간 밖에서는 주말이라 번잡하게 자기 위로 삼아 여행들을 하고 신나게 놀 고 있는데, 이 공간에서 여러분들의 꿈과 인생 설계를 하시는 모습이 아름답고 감동적이었어요. 이미 축복하고 싶습니다. 저는 충남 홍성이라는 곳에서 태어났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까지 다녔습니다. 미술을 하고 싶어서 미술부 활동을 했는데 대학을 가려면 학원을 다녀야 했습니다. 저희 때도 수십 만 원을 내야 했었는데 부모님께 이야기했더니 지금까지 배웠으면 됐지 그걸 한두 달 더해서 학교 에 붙고 안 붙고 하면 그건 아니지 않느냐 하셔서 못 갔어요. 식음을 전폐하고, 모든 걸 다 포기 했었죠. 동료가 대전에 있는 대학에 원서를 낸다고 하길래 내 것도 가져와 보라고 해고 그냥 냈 는데 됐어요. 그렇게 해서 미술대학을 다니긴 했는데 무엇인가가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그렇게 적응을 못하고 군대를 빨리 신청해서 다녀왔어요. 복학생이 되어 다부지게 마음을 었어요. 그런데도 이상하게 배우는 게 마음에 안 들었어요. 가르침이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지만 그 과정에서 미술을 상당히 사랑했던 건 맞는 것 같아요. 어떤 여자를 사귀거나 결혼을 거나 일반적 사회 관념에 어울리는 걸 꿈을 못 꿨어요. 그래서 연애를 절대 안 하겠다 했는데 국에는 3학년 2학기 때 쯤 일까요. 동양화하는 여학생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죠.
먹 하 하 결
예술가들은 그런 기질들이 있죠. 죽어도 책임을 지려고 하는 게 있어요. 좀 전에 오랜만에 덕 수궁미술관에 다녀왔네요. 이중섭 전시를 하고 있어요. 신화가 되어 있는 이중섭의 그림을 그렇 게 한 번에 본 적이 없어요. 전시장을 돌면서는 너무 짧더라고요. 이중섭 전시를 보면 오로지 가 족, 자기 부인에 대한 사랑, 자식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죠. 혼자 그 전시장을 돈다면 한 달 동안 은 푹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상당히 울컥하고 나도 그림을 그리 고 싶은 마음이 생기죠. 그러나 저는 그러한 명예욕에, 이상적인 그림의 세계에 도달하고 싶어 서 화가가 되고 싶었으나 화가가 되지 못한, 실패한, 꿈이 이뤄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 당시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10년 20년 면벽수련은 기본이었어요. 물론 저는 그런 각오는 이 미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하니까 힘들었어요. 아내가 학원을 차려 서 대학원 비용을 내 주었는데. 그 공간을 이만큼 잘라서 잠자리, 살림 공간, 제 작업실을 만들 었지요. 그 작은 공간 안에서 저는 온통 자기 그림의 이미지하고만 상대를 하는 거에요. 그 곳에 서 테라핀에 유황물감, 난로 피고 하면 휘발성에 중독이 되서 눈이 빨개지고 몽롱해지고. 그런 열악한 공간에서 작업을 계속 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술의 힘을 빌어 그동안 그린 그림들을 다 태워버렸어요. 인생이 다 끝난 것 마냥 그랬죠. 그러다가 서울에서도 전시를 했어요. 모든 욕망을 거기에 투자했지요. 경제력이 없으니까 홍 성에 계신 부모님(지금 82세)께 위탁하고. 돈을 빌려 작은 사업(퓨전 레스토랑 같은)을 동업으 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마침 그 때가 IMF가 터진 1997년이었죠. 사업은 안 되고, 같이 동업한 친구가 변했죠. 개인전 한 번 더 하려고 딱 3년만 일하고 그 돈으로 전시회를 하려고 했는데 그 렇게 된 거죠. 친구가 떨어져나가고 그 사이를 집사람이 메꿨어요. 그 때부터 돈이 벌리더라고 요. 그리고 딱 3년 되는 때에 그 사업을 넘기게 되었고, 어딘가에 지원해보라는 스승의 이야기가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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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롯데백화점 생기면서 롯데화랑 큐레이터. 기획자를 모집하게 되었죠. 저는 그냥 혼자 맨 땅에 헤딩하듯 했는데 제 안에 뭐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에너지가 있게 운영을 했어요. 그것이 소문이 나고 나름의 역할을 하게 됐죠. 그리고 나서 대전시립미술관에서 학예사를 뽑는데 고민 하다가 지원을 했죠. 상업 시스템의 갤러리에선 한계가 있었어요. 시립미술관에서는 이런 한계를 넘어설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 곳에는 또다른 한계가 있었 어요. 너무 정치적이고, 정략적이고, 비순수한 어떤 것. 결국 나중에 정치적인 충돌이 생기면서 지난 번 레스토랑 그만뒀을 때처럼 아무 대책 없이 끝나게 되었죠. 그리고 나서 10개월 동안, 운동하고 맑게 지내면 지낼수록 대상에 대한 증오가 사라지고 모든 게 내 탓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러니까 다 용서되고 그 사람들 볼 수 있더라고요. 10개월 만에 치유가 된 거에요. 그리고 나서 그 때부터 비정규직, 야인으로 돌아갔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었어요. 오로지 예술의 세계, 그림이 소중했죠. 예술하는 사람들은 그 이미지를 계속 쫓아 요. 허공에서 찾다가 그게 구체적으로 보여야 하거든요. 뇌에 그것이 박혀 있단 말이죠. 그러다 광주에 있는 쇠락한 대형 시장 안에서 대인예술시장이 첫 번째 열릴 때 기획팀장으로 일하며 고생을 했죠. 그리고 나서 다시 대전으로 와요. 또 할 일이 없죠. 또 결단을 합니다. 전셋 집을 빼서 원도심에 헌집 하나를 세를 얻어 비영리예술매개공간인 Space See를 만들게 되죠. 이 ‘씨’자를 만들고는 “됐다!” 했습니다. 제가 쫓던 이미지를 구제회 한 거죠. 1년 간 공간 리모델링하고 프로그램 돌리고 운영하는데 1억 가까이 들었어요. 저는 3천만원만 갖고 했단 말이죠. 제가 움직이니까 3배의 생산성이 생긴 거죠. 제가 3천만원 안 쓰면 6천만원 이 안 만들어졌을 것이죠. 1년 간 했는데 책이 한 권 나오고, 10번의 전시기획을 한 책이 한 권 나왔습니다. 1년을 하고나서 지금 제가 근무하고 있는 이응노의 집(고암 이응노 생가기념관)에 누가 또 추천을 하는 거에요. 이걸 10년간 하기로 해서 주춧돌을 놓고 용마루 얹고 집을 지어놓 고 달려가려고 하는데 여기 지원해보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여기 벌여놓은 게 너무 많아서 도 저히 그럴 수 없다고 했더니만 와이프 그만 고생시키라고 주변에서 그럽니다. 그래서 취직해서 월급 받아 그 돈을 가지고 스페이스 씨에 투여 해야겠다하고 수락했습니다. 그런게 여기 개관시 키려고 어마어마하게 힘든데 스페이스 씨까지 일이 잘 안 되고. 5년간 유지시키려고 별짓을 다 하다가, 공공 공간으로 만들려고 하다가 5년 만에 결자해지 했습니다. 그곳 전세금을 빼서 빌려 준 사람에게 돌려주고, 5년 동안 고스란히 쓰고서 엄청난 빚을 진 사람이 된 거죠. 여기서 환원 시켜서 기능과 역할을 역사적으로 남겨야 하는데 5년 만에 접는 제 심정은 어마어마한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이응노 생가기념관에서 또다시 모든 걸 다 걸다시피 했어요. 램수면에서도 계속 업무가 돌아가 요. 그렇게 3년 지내니까 뇌가 없어져요. 체력이 바닥나고 커피로 버티면서 면역체계고 뭐고 건 강이 안 좋아졌어요. 그렇지만 다 걸면 무엇인가가 되요. 이중섭 전시를 보면서 세상에 역사가 되는 것이 있고 오늘 우리처럼 꿈꾸는 사람들이 있고, 질 량들이 똑같다고 봐요.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거든요. 역사 속에 신화화 된다고 해서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없는 것이 아닌 거죠. 다 연결되어 있고 똑같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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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나부터 인정하면 우리는 존재가 되어요. 무엇인가를 위계로 비교하고 이것과 저것으로만 세상을 판단하면 내가 안 보이는데. 그렇지 않다는 말씀이지요. 고암 이응노(1904~1989년)라는 사람은 어릴 때부터 20대까지는 아주 기초적인 사군자부터 시작해서 전통문인화를 섭렵하고 30대에 일본으로 가서 일본의 문화혁명(메이지유신) 이후에 영국 프랑스로부터 문물을 받아들이고 개혁을 한 문화를 접하게 됩니다. 이응노는 전통적인 문 인화만 보다가 일본인들이 서양미술을 차용한 기법을 배우는 거죠. 그리고 정치경제문화적으로 현실 사생을 더 가열차게 해요. 관념적 산수화에 머물지 않고 현대화 하는 작업에 있어서. 50년 대 이후에 세계가 추상주의 미술을 하고 있을 때 그것에 대한 호흡을 해요. 늘 실험하고 개혁하 는 성품으로 결국엔 유럽으로 가서 파리에서 동양인으로서 한국인으로서의 세계미술에 접촉하 며, 자신의 미술을 서구 세계미술에 대입시켰어요. 그리고 동양의 지필묵 감수성으로 추상적인 작품을 내놓고 소통에 성공하게 돼죠. 2차 대전 이후 세계는 불합리가 지배하고 합리성이 실패 했다고 보고, 어떤 비정형의 세계관들이 더 설득력이 있었을 때에요. 추상하고 때려부수고 급진 적이고 이런 것들이 세계 문화를 지배했을 때라 이응노의 언어가 소통이 된 것이죠. 그 때 무지 하게 잘 나갈 때 한국에서 중앙정보부에서 간첩으로 잡혀서 들어가요. 2년 반 옥고를 치루고 77 년 백건우 이정희 납치사건 때 간첩으로 낙인찍혀요. 한국 미술계에서 셔터가 내려져요. 이후 고 암, 이응노라는 사람을 거론만 해도 서슬퍼런 공안이 들이닥치면서 왕래도 못하고 끝나버려요. 그러다가 10년이 지나면서 다시 천천히 등장합니다. 결국 한국에서 큰 전시를 하면서 돌아가셔 요. 북한에 가서 전시를 했고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으며 마지막에는 군상이라는 작업으로 화면 에 사람들만 잔뜩 그리는 작업을 하는데 80년대 이후. 광주 민주화운동 이후에 위대한 한 사람 이 아니라 익명의 여러 사람을 그리는 군상이라는 작업으로 대미를 장식합니다. 아까 여러분들이 소셜 픽션 워크샵에서 그린 그림들, 어찌 보면 희망, 꿈, 이상, 이미지, 소망 들은 그냥 그걸로 끝일까요? 저는 절대 그렇게 보지 않아요. 남들은 이상이라고 하는 것을, 현실 불가능한 것으로 어릴 때 꾸는 것처럼 그렇게 보면 너무 제한적이죠. 한 1/4정도는 생명이 있는 거고 3/4은 생명이 없는 것처럼 나머지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죽어도 살아있다고 봐요. 꿈은, 여 러분들이 그걸 기억하는 한 그건 현실이다 그런 얘기죠. 아까 여러분들이 마을을 그리셨죠. 저도 마을을 그려본 것이 있어요. 보통의 미술관들은 하드 웨어를 갖추고 작품을 수집하고 전시를 하죠. 그리고 도록을 출판하고, 연구하고 교육적으로 활 용합니다. 제도 미술관들이 하는 일들은 일정한 틀거리가 있어요. 시스템이 필요하죠. 원래 큐레 이터는 지역에 가서 이와 관련된 일을 하는 거에요. 하지만 저는 이런 일반적이고 제도적인 부 분 외에 다른 활동들을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고암 이응노 (1904~1989) 고암 이응노는 1904년 충청남도에서 태어나 자신의 무대를 세계로 넓혀갔던 한 국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장르와 소재를 넘나드는 끊임없는 실험으로 한국 회화의 독창성과 정체성을 찾아 예술혼을 불태웠던 그는 전통성과 현대성을 함께 갖춘 현대 한국화단의 진정한 증 인이자 거목이라 할 수 있다. 동양의 전통 위에 서양의 새로운 방식을 조화롭게 접목한 독창적인 창작세계를 구 축했을 뿐만 아니라 체제와 타협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와 사회의식, 그리고 항상 새로움으로 향해있는 열린 사고는 이 시대 작가들의 귀감이다. 글*사진 : 이응노미술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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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이상적으로 어떤 시골, 나의 구체적인 꿈이 전개될 수 있는 환경, 생태 조건 등을 그 리시겠지만 그것이 현실화되려면 좀 더 자세히 봐야 하고 충돌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해요.
시골이라고 하든 뉴욕이라고 하든 어디든 벨벳을 깔아놓은 곳은 없습니다. 내 가 살아내야지, 내가 살아내면서 만들어가는 것이지요. 지금의 나라는 것을 재 조직해야지 지금의 내가 그대로 밟고 가서 그 현장에 그대로 등장하는 게 아니 죠. 우리가 무언가를 이상적으로 그릴 때 그것이 계속 변화한다는 것을 인정해 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는 모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해요. 시골이라는 것, 농촌이 라는 것을 말이죠. 그 대상을 내가 이상적으로 세팅해 놓고 내가 등장한다는 건 공상, 망상이죠. 정확하게 알아야 할 것은 내가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변해서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해서 세상이 변한다는 것 말입니다. 나 를 다시 관찰하고 변화시키는 성찰이 없으면 충돌이 일어나지 않고 거짓된 망상 에 시달리는 삶이 될 수 있다, ‘결국엔 나와의 일이다’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 지역 홍성에 와서 한 것은 이런 그림을 그린 거에요. 홍성이란 곳이 이랬어요. 미술관 을 하려고 했더니 대도시에 있는 미술관과 다르게 산이 하나 있었고요. 산이 또 하나 있었어요. 이건 흙이 많은 산, 하나는 바위 산. 이 사이에 이응노 기념관이 있었지요. 조건이 어땠냐면, 환경이 쓰레기 매립장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그래서 동네 살던 사람을 다 이 주시켰어요. 기념관은 럭셔리한 노출콘크리트로 안도다다오 일본 건축가를 흉내 낸 양평이고 헤이리고 어디고 있는 멋진 건물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어마어마하게 멋을 낸 건물이었지요. 한쪽은 흙다짐을 하고, 노출콘크리트에 나무결을 그대로 찍어낸 그런 건물이었어요. 엄청난 내 공에 의한 건축작품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기념관이 들어선 데가 원마을은 다 폐가가 된 거에요. 전설의 고향처럼 여기선 쓰레l 태우는 냄새가 나고 그랬죠. 제가 이 산에 올라가서 여기를 계속 내려다봤네요. 시골은 8시만 되 면 저녁 먹고 다 주무세요. 밤에 이런 산 말고 어디 갈 데가 없어요. 이응노 기념관은 이런 현실을 고민하는 미술관인거죠. 여기서 쓰레기 태우면 다이옥신이 나오 고, 홍성이란 곳은 소돼지를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이 키우는 곳이라 미술관에 파리가 엄청 많아 요. 적응이 안돼요. 시골인데도 파리 때문에 차 문을 못 내리고 똥냄새 때문에 차 문을 못 내리는 데 여러분은 적응을 하시겠어요. 이 산에 쓰레기 소각은 중단을 하기로 했는데 매립은 계속 해요. 반영구적으로 가는거죠. 일단 홍성군 정책개발을 하려면 아이디어 수집을 해요. 그래서 “고암홍천예술마을화 합시다!” 했어 요. 뭔가를 냈어요. 와보래요. 조금 더 애기를 했어요. 자문위원회를 만들더라고요. 동네 원 마을 이름이 홍천마을이거든요. 고암예술마을로 뭔가 재생하고 뭐하면 예술마을 할 수 있다는 이 의 제가 살아나더라고요. 그림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려야 겠더라고요. 용역을 주기로 했죠. 상상 을 구체화하려면 여러 사람이 볼 수 있게 내 말을 만들어야 하잖아요. 그럼 작문, 논리가 필요해 요. 논리를 개발해야 하잖아요. 문체관광부에서 컨설팅 공모에서 50% 국비 지원, 홍성군 50% 지원으로 공주대산학협력단이랑 컨소시엄해서 됐어요. 1년 동안 논리개발을 하는 거에요.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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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 사진출처 : 홍성군청
상상을 했죠. 여기는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 헌집은 레지던시하고, 여기는 빈집을 활용한 레지던 시 하면 됩니다. 회관 안 쓰고 있는데 이렇게 공방으로 하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이죠. 아까 여러분들이 그림 그린 것을 정리해서 책으로 담은 거에요. 그렇게 컨설팅 보고서가 나오 죠. 그걸 가지고 주민들 설명회하고 반상회에 가지고 가서 설명하는 거죠. 연구원들은 여기에 목 숨 거는 사람들이 아니죠. 그네들은 선수니까. 100여페이지 만들어서 반상회에 가서 “이렇게 하 면 이 마을이 좋아져요.” 합니다. 무슨 회충약 파는 아저씨들도 뭔가 선물 주면서 하거든요. 그 런데 보고서를 들고 할아버지 고스톱 치는데 가서 예술마을 하면 좋아요~ 하며 1년을 지냈어요. 예술마을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은 제 이미지에 있어요. 퍼즐이 저한테는 있죠. 어떻게 되든 완성할 수 있는데 현실에서는 아무 것도 안 보여요. 한 조각, 한 조각씩 어디서부터 무엇을 하든 나는 맞출 수 있으니까 기회가 되는 것부터 하죠. 반상회 가서 계속 이야기하고, 청소하시는 아 주머니한테 이야기하고. 우리가 대화하는 것은 파장이 있어요. 뇌든, 마음이든 세트로 움직여요. 기도에요. 주문이죠. 우 리가 계속 반복해서 대화하면 되요. 내가 꾸는 꿈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또 그 이야기야~” 라고 해도 설득력 있게 계속 하는 거에요. 시골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계속 시골에 살려고 하지 않아 요. 모든 것이 다 되어 있는 곳에 가서 살려고 해요. 우리한텐 상상력이 고갈되는 거죠. 내가 살 고 있는 여기, 나의 지금을 만들려고 하는 상상력이 작동되지 않고 여기는 못보고 저기만 좋은 것이 있다고 믿죠. 우리 문화가 매스컴을 통해 눈과 오감각은 계속 비교하며 나를 설정하고 있는데 20년, 30년, 40년이 지나도 계속 그렇게 우리가 만들어지는 거죠. 그래서 나한테 무엇인가 변화가 안 일어나 면 볼 수 없는 거죠. 시골이 피상적이 되는 거죠. 정말은 책상 위에서 되는 것이 아니죠. 이렇게 해 나가면 적어도 스케치는 나와요. 그러면 내가 죽어도 누군가는, 같이 본 사람들은 꿈이 전이 가 되는 거에요. 저 혼자 막 떠들었는데 어느 날 비슷하게 누군가 동조자가 나타난다는 거죠. 이 그림에 있는 것처럼 기념관은 저 A에요. 오메가는 1은 쓰레기 매립장 Z1, 2는 이주한 마을. 이 중앙이 텅 빈 마을이에요. 이주민들에게 인센티브가 엄청나게 지급되고 새로운 이주민과의 갈등 이 생기고, 이 지역 인구가 160가구 이상이 되고 저기에만 머무는 사람, 등록된 사람들이 400여 명이나 되는 상황입니다. 41 상상캠프
보통 마을 사업을 하려고해도 생산연령이 높다보니 일을 못해요. 농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식민지 시대 같아요. 할 수 있는 자원이 안보여요. 예술적인 독립군처럼 의지와 상상력과 열정 으로 무장되지 않으면 다 운동을 포기하죠. 식민지 시대, 세계 자본주의 시대에 독립운동처럼 해야 되기 때문에 주체적인 내 삶을 고민하는 거거든요. 세계 자본주의 시대로부터 어떻게 독립 하고 자유롭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강렬하게 추구하지 않으면 그냥 사 는 거에요. 뜨거운 물 속의 개구리처럼. 제도적으로 하는 것 말고. 문화계에 소통하는 그 사람들하고만 소통하는 특별한 기념관, 미술 관의 역할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 있는 400여명의 할아버지, 10여명의 초등학생, 청년 중장년을 어떻게 만나고 상대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는 것이죠. 고암이 현실의 미술, 사생을 했듯이 미술관 운영에 있어서 지역의 현실, 그 사람들을 어떻게 상대할까 하면 할 일이 너무 많은 거에요. 미술은 상당히 균질된 장르거든요. 그래서 그 꿈을 이 루어나가는데 한 게 뭐냐면. 이 사람들하고 무엇인가를 소통하려면 저분들을 인정하는 걸 해야 해요. 내가 이 학생과 연애를 하려면 알아야 하잖아요. 인정해야 하잖아요. 아 이 사람이 이대로 존재하는 구나. 아름답고 예쁘고 고운 피부를 갖고 있고 정신은 마인드는 어떤 걸 지향하고 음 식은 이런 걸 좋아하고 질병은 뭐가 있구나. 그렇게 알아가면서 나도 알리고 하면서 제 3의 영 역으로 이동하잖아요. 미술관이 제도적인 것만 계속하면 관심이 없죠. 평생에 농사짓거나 돈 버 는 일만 하셨는데 미술이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겠냐구요. 내가 변해서 뭔가를 해야 되는 거 죠. 그 분들을 관찰하고 진정으로 상대해야죠. 대상화하면 안 되고 내가 시간이 지나면 저렇게 될 사람이기 때문에. 부모님을 보니 이 마을 전체 노인분들이 똑같이 보이더라고요. 마을 분들은 우리가 하려는 프로그램이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외부에서 자극이 갈 때 잘 못하면 앗!하는 순간 끝나죠. 정서적으로 모르는 게 많죠. 상당한 경험들이 필요한 거죠. 그래 서 고민을 하면서 가는 거죠.
홍천마을엔 별도 많고. 지역에서 소통하려면 특히 언어를 잘 만들어야 해요. 말이 영혼이거든요. ‘홍천마을엔 별도 많 고’는 고암 이응노만 별이 아니라는 거죠. 태양만 별인가요. 그 수많은 별들. 밤하늘에 은하수 같은 많은 별들 때문에 밤하늘이 아름다운 것이죠. 우리가 다 있기 때문에 사회가 아름다운 거 지요. ‘별도 많고’ 라는 건 고암도 있고, 아까 살고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고, 그렇게 400명을 전 시할 수 없으니까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오신 열 쌍의 부부를 선정해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했 어요. 기념관에서 고암작품만 한 게 아니라 이 쌍, 저 쌍들의 인생 60년사, 80년사를 끄집어 낸 거에요. “당신들의 삶은 소중하고 충분한 존재가치가 있습니다. 아름답고 훌륭했습니다.”하고 호명하고 불러드려야 하는 거죠. 앨범을 재구성하고 그 분들의 삶의 신조들을 가훈처럼 써달라 고 해서 촬영하고 필름으로 만들고 고암처럼 약력을 넣고, 고암의 작품처럼 이분들한테는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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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품을 끄집어 내는 거죠. 누구는 리어카, 누구는 방망이 다듬이, 누구는 사진기를 이렇게 열 쌍을 다 했어요. 어떤 분은 고암의 작품을 소장한 분도 있었어요. 여기 보이는 사진처럼 마을 주 민들이 개관식 날 다 오신 거죠. 이게 신뢰, 관계형성 뭐 그런거죠. 이것이 학예사가 하는 전시 기획 중에 이런 코드로 만들어 내는 것들이 약간 하이브리드하지만 이 맥락에서는 적확했던 거 죠. 이장님도 부녀회장님도 마을 어르신도 “나 저기서 전시했어.”하며 자부심을 가지고 그래서 미술관에서 다른 행사를 할 때도 오시라고 초대할 수 있는 거죠. 예술은 일반인들한테 힘들어요. 전시에 참여하신 분들도 쑥쓰럽고 했단 말이에요. 그래도 그 다음에 뭘 한다고 하면 계속 오시는 거죠. 미술관 문턱이 없어졌어요. 공연하면 다 오세요. 이 전시로 인해서 성큼 다가간 거죠. 안 그러고 예술마을 한다고 하면서 사업비 몇 십억씩 가져다 했다가 그분들의 욕망, 인식을 바꿀 수 없어요. 우리가 특히 베이비붐세대가 잘못 살았어요. 자 식들 세대한테 면목이 없어요. 우리 윗세대들은 쌀밥 먹는 목적 하나로 살았는데 우리는 욕망, 컴플렉스가 많아요. 민주화투쟁을 했다는 자부심은 있죠. 하지만 산업화를 하면서 경쟁에 뭐에 이런 게 너무 많아요. 지금 한국 사회는 예술이고 뭐고 품위를 잃어버렸어요. 품격이 없는, 얼마 나 고통스러운 사회가 됐습니까. 그렇게 하면서 또 하나를 그린 게 논리화하기 위한 보고서입니다. 상상을 구체적으로 현실화 하기 위해서 무엇인가 수단방법이 필요하잖아요. 문화예술마을조성사업 공모사업을 신청해서 됐어요. 한 해에 2억씩 3년 동안 6억을 쓸 수 있는 돈인데 주민들한테 의식교육, 소프트웨어 프 로그램을 하기로 했어요. 예술마을이라고 함은 어떤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고 그 프로그램을 작 동할 수 있는 하드웨어가 있어야 해요. 저 혼자 꿈꾸고 하면 안 되요. 주민들하고 같이 가려고 3 년 동안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어요. 못 쓰는 회관에다가 공간 만들고 구 회관, 오래전 창고 같 이 1년에 한번 쓸까 말까 한 곳을 공간을 만들고 도서관을 만드는 이런 프로그램들을 설계 했어 요. 북카페 공간회의, 거버넌스 회의 반상회를 하고 선진지 견학을 하고 주민 다큐멘터리도 하 고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 미디어 교육, 사진교육도 하고 도자기 공방, 목수 양성과정 등 대도 시에 얼마든지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하고 있습니다.
홍천마을엔 별도 많고 홍성이 낳은 유명예술가 고암과 무명의 홍천마을사람들을 함께 기념하는 특별전시 사진출처 :충남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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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홍성 읍내에서 젊은 은행원이 헌집을 사서 들어왔어요. 고치더니 목공소를 하 는 거에요. 제 머릿속의 퍼즐에는 예술마을이 되려면 무슨 요소 무슨 요소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 고 그 중에 목공소도 있었죠. 그런데 제가 기획도 안했는데 자동으로 되는 거에요. 너무 반갑고, 이렇게 우연스러운 일이 벌어져요. 그래서 목수양성과정을 이 사람이 하는 거에요. 하모니카 잘 부는 할아버지가 계사고, 마을에 민들레, 엉겅퀴 효소 만드는 젊은 부부가 있어서 이 분들이 강 사를 하시는 거죠. 마을 자원 발굴, 이런 프로그램 등을 쭉 한 거에요. 1년 프로그램 가동하고 11 월 즈음에 마을 잔치를 했죠. 기념관에서 또 다른 기획 프로그램을 해서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키는 거죠. 자꾸 동네를 뭔가 활력 있게 기획을 해나가고 움직이게 만드는 거죠. 이렇게 해서 올해도 계속 가고 있는데요. 모 든 게 생각처럼 되는 건 아니에요. 애로가 당연히 있어요. 안 된 것도 많고요. 명함 같은 것도 주 민들이 농사짓는다고 내 명함이 뭐가 필요하냐고 그래요. 그냥 저하고 교환하기 위해서 만드세 요 하죠. 한 사람씩 자기 얼굴을 만화가가 그려주고 만드는 거에요. 손자한테 주더라도 자기 존 재를 기억하게 만드는 거죠. 자존감 말이죠. 이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거버넌스에요. 거버넌스도 유행어가 되어 버 렸는데 이런 사업을 하려면 신청서를 만들 때 어느 정도 주민들과 이야기가 됐어야 가능해요. 물 론 잘 안돼요. 처음부터도. 그래서 되게 많은 에너지가 필요해요. 모이자 모이자 얘기 하자 하자 해도 잘 안돼요. 거버넌스를 만들어도 욕망이나 상상력이 다른데 가 있는데 제가 자꾸 모이자고 하면 짜증내죠. 그럴 정도가 아니게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죠. 5년 정도. 이장님에게 5년, 반상회 할머니 할아버지들한테 시도한 것도 5년이 됐고 청소 아주머니에게도 5년이 됐어요. 미술관 본래 업무만 해도 힘이 드는데, 뭐가 체력이 반쪽난 상태죠. 그래서 데미지가 많이 있는 데 그 걸 다시 살려내는 방법을 취해야 돼요. 여러분들이 어떤 꿈과 이상을 실천할 때 제일 조심 할 게 자기 몸덩이, 마음덩이를 살피는 겁니다. 마음과 몸. 그 건사를 잘 하시며 길게 가야 언어 가 탄생해요. 길게 가야 해요. 제가 이 지역에서 한 마디만 하고 거대한 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기 면 고함만 지르고 만 거에요. 무책임한 거죠. 그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몸마음 건강관리를 잘 하 셔야 이상과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거버넌스가 중요하다고 말씀 드렸는데 지역 예술가, 행정가, 주민 리더의 삼위일체. 그 거버넌 스가 사업이 끝나도 건강하게 살아내야 상상을 이어간다고 생각하거든요. 대화가 끊어지면 이 미지가 안 그려져요. 계속 연애를 해야 뭐가 만들어져요. 결혼도 가능해지고 자식도 낳고, 그 다 음에도 그 자식과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내고 그러는 거죠.그러기 위한 최소한의 조직이 거버넌 스라는 거죠. 이게 좀 되게 힘들어요. 한 예로 도서관을 만들었거든요. 못쓰는 회관을 마을 도서 관을 만들어놨어요. 별의 별 공간이라고. 저도 집에 있는 책을 다 옮겨놨어요. 지역 신문사 기자, 군수, 부군수에게 50권씩 내게 했는데, 기증문화로 이게 막 돌아가야 하는데, 지속성을 가지려면 무엇인가 공급해야 하는데 제가 무엇인가 추동하지 않으면 한계가 있어요. 저 혼자 하는데 한계 가 있는 거죠. 그래서 동료를 확장해나가는 것이 중요해요. 제가 작가가 못됐다고 했죠. 하지만 전시를 했어요. 고암 예술마을 신문이에요. 마을 신문을 만 들어서 한 달에 한 번씩 나와요. 제가 꾸는 꿈을 또 다른 작품처럼 현실화 하는 거죠. 제가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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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식당 아저씨 광고 만들고 제 전시하는 걸 또 그려서 내고 기사처럼 해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서 전시를 했어요. 그리고 그 회관에 분필로 슬쩍슬쩍 가미를 하면서 공간을 발굴하고 현 실화 되어 도자기 공방이 되고 2층은 도서관이 되었죠. 예술마을에 대한 상상은 여러분이 하는 것과 똑같아요. 지금 지점에서 제가 가는 것과 유사합 니다. 그 꿈을 잃지 마시고 꾸면 좋겠어요. 저도 처음엔 아프더라고요. 제 고장, 고향인데 아팠어 요. 오염되는 것. 물 오염되고 공기 오염되고 문화 소외되고 가능성이 너무 없다는 것에 말이죠. 처음엔 내가 유배왔구나 싶었어요. 고암이 감옥에 왔을 때처럼 내가 무엇인가 너무나 결핍된 공 간에 와 있고 되게 외로웠어요. 이야기 할 사람이 없었어요. 부모님 하고 밥 먹는 거 말고. 꿈이 다르고 관점이 다르고 취미가 다르고, 유배 와 있고 감옥에 와 있고 이런 단어만 있더라고 요. 그런데 조금만 상상하면,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 할 일이 많은 거에요. 지금도 너무나 할 일이 많은데 오버하면 건강을 잃으니까 야근 안하려고 하고 조금이라도 운동하려고 하고 그러는 거 죠. 제 욕망이 작품에 대한 그 이카루스가 지향하고 날아가려고 하듯이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생산 하고자 하는 그런 게 강한가봐요. 팔자인가요. 계속 생산해서 그것으로 이루고 싶은 게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왜 그런가 했더니 작품에 몰두를 못하니까 현실에서 작품하고 싶은 가봐요. 카페도 만들고 싶고 비영리공간 만들고 싶고, 왜냐면 내가 있는 데서 내가 행복하고 싶으니까. 내가 서 울 가야하고 파리 가야하고 싫어요. 자존심이 상해요. 내가 행복해야 한다는 거죠. 법륜스님도 그러던데요. “나부터 행복하겠습니다.” 지역의 결핍을 채우고 싶어하는 욕망으로 바뀌는 것 같 아요.
누구에게나 욕망이 있고, 그 욕망이 현실화되는 딜레마가 있죠. 소비하고 싶은 그 문 화가 지금 여기 있으면 좋겠지만 ‘아니야, 그거 니가 해야 해. 다른 사람 할 사람 없어.’ 하는 어떤 내적인 딜레마나 갈등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한 작가를 전시하기 위해서 그 분을 조사하고 파악하고 하잖아요. 그 분 작업실을 갔다가 어떻게 기획 아이템을 받고 줄거리를 짜서 올 때 우울증을 앓죠. 내가 저 자리에 있어야 하고 나 를 기획해주면 좋겠는데. 이 갈등이 10년 걸리더라고요. 그 분 전시를 할 때 제 전시하는 것처럼 최대한 제가 그 사람이 되서 하는 거에요. 잘 절제하면서 최대한. 그 작가 지점과 내 지점이 비슷 한 걸 알잖아요. 그 뒤에 어떻게 연습했냐면. 내가 제도적인 갤러리와 미술관 전시를 하면서, 유 명해지고 역사에 남는 것만이 작가가 아니라 또 다른 결, 내가 살 수 있는 것조차 예술 할 수 없 을까하는 생각을 했죠. 일종의 공공예술, 공공미술로 확장되는 거죠. 그러면서 조금 더 그 욕망 으로부터 자유로워졌어요. 이중섭처럼 신화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은 없어요. 작품으로만 미학 적 완성도가 높은 품격으로 나타나는 것은 너무 특수해요. 우리 생활하고는 층위가 벌어지더라
생활과 생활 사이, 일상에서 예술성을 발 견하면서 무형의 영역으로 가치를 생각하죠. 증명하는 건 완성품이지만 멈추지 않고 지향해야 하더라고요. * 고요. 기화됐다. 좀 더 현실로 내려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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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객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정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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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오감&교감
촌스러운 일 상상캠프 2016년 7월 2일(토) ~ 7월 3일(일), 1박 2일 충남 홍성군 * 예산군 일대
이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오감이 만족하는, 교감이 가득한 촌스러운 일 상상 캠프 속으로 떠나 봅니다. 지역에서 주민들과 더불어 일을 만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 모습을 만나며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일의 내용과 방식들을 알아봅니다. 나의 일과 삶, 농촌 활동에 대해 가져 왔던 질문들, 고민을 풀어 나누며 농촌과 청년의 접점을 찾는 시간을 갖습니다. 다양한 만남을 통해 농촌 지역 활동과 연결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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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토)
시간 06:00 07:00 08:00
서울 집결 서울 > 예산
7/3(일) 농장 마실 @협동조합 젊은협업농장 협동조합 행복농장
아침
09:00 10:00
캠프 열기
청년의 농업 @오누이권역센터 강의 : 정민철
@충남농업기술원
11:00
점심
12:00
점심
13:00
농촌, 마을의 현실
이동
농촌의 발견 @예산 대흥 슬로시티 강의 : 박효신 / 탐방
이동
마을 만들기와 청년 @오누이권역센터 강의 및 토의 : 구자인
저녁
청년의 일과 삶 @농촌 @오누이권역센터 언컨퍼런스
이동
14:00
@한솔기권역센터 강의 및 토의 : 황선영 / 탐방
15:00
청년, 농촌과 접속하기 @한솔기권역센터 강의 및 토의 : 이창신
16:00 캠프 갈무리 17:00
@한솔기권역센터
18:00
저녁 식사
19:00 20:00 21:00 22:00
네트워크 파티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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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 홍성 > 서울
3차. 오감&교감 <촌스러운 일 상상캠프>
꿈은 이루어진다. 박효신
http://blog.naver.com/hyoshin4858 35년 간 한국일보 기자, 여성신문사 편집부장, 한국광고주협회 상무이사 등의 번듯한 명함을 가지고 서울에서 그야말로 뼈 빠지게 일하며 살아왔다. 어느 날, 마음 속에서 ‘50대부터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물음이 들려왔고 한참을 고민 하다가 흙으로, 자연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이왕 농촌에 가서 살기로 한 것, 제대로 살아 보자는 생각에서 15년 동안 꾸준히 농촌 생활을 준비했다. 마침내 2007년 에 고향인 예산군 대흥면 향교마을로 귀농해 풀각시로서의 새롱누 삶을 시작했다. 3년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바람과 흙 에게서 귀중한 삶의 지혜를 배웠고, 2007년에는 그 지혜와 생생한 시골살이 체험을 정리해 『바람이 흙이 가르쳐 주 네』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시골살이는 십수 년째에 접어든 지금은 자타가 공인하는 어엿한 농사꾼이 되어, 손수 가꾼 푸성귀와 옥수수, 과일 등을 일용하며 자연스럽고 소박한 참살이(well-being)을 실천하고 있다. 농사를 짓는 틈틈이 예산대흥슬로시티협의회 사무 국장으로 일하면서 도시 사람들에게 농촌의 싱그러움과 느린 삶의 미학, 제대로 된 귀농 비법 등을 알리는 데도 적극 동 참하고 있다. 아래 글은 저자의 동의를 얻어『풀각시 박효신의 봄여름가을겨울』(2014, 문예춘추사)에서 발췌했다.
꿈은 이루어진다. 나를 만나러 오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전공을 살려서 일하고 싶은데 엉뚱한 것을 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좌절하고 낙담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 간극에서 오는 회의와 갈등, 충분히 이해가 간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원하는 일도 아닐뿐더러 아까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다 때려치우고 오로지 하 고 싶은 일에만 도전하고 온 정력과 시간을 쏟아붓고 싶은데 경제적 여건이 따라 주지 않으니 일 에 대한 흥미와 열정 없이 싫은 일 하면서 시간만 죽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꿈을 이루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꿈을 향해 직선으로 달려가는 방법도 있지만 멀리 돌아 가는 방법도 있다. 도전은 포기하지 말되, 그것이 뜻대로 안 된다고 해서 주저앉거나 절망할 필 요는 없다. 하고 싶은 일이나 꿈에 이르는 길이 딱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니까. 살아오면서 나는 한 가지 믿음을 갖게 됐다. ‘꿈은 꼭 이룰 수 있다!’는 믿음.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꿈을 설계하지만 실제로 자기 설계도대로 인생을 완성해 나가는 사람 은 드문 것 같다. 사느라 바빠 내게 꿈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거나 접어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꼭 이루겠다는 갈망을 품고 그 꿈을 놓치 않고 산다면, 시기가 문제이지 언젠가는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20대 후반에 나는 ‘인생의 말년은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손에 흙 묻히며 살다 마감하고 싶다’ 라는 생각을 최초로 했다. 도시 생활은 아무래도 죄지을 일이 많아, 어떡하면 죄를 덜 짓고 살까 50 촌스러운 일
를 생각하다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때 나는 빈손이었으면서도, 30년 후의 나의 삶과 모습에 대 한 그림만큼은 확실하게 그렸다. 그렇게 최초로 설계도를 그린 지 20년이 되었을 때, ‘나는 때가 되었다’ 판단하고 작업에 들어갔다. 아파트 평수를 늘려 가려던 계획을 포기하니 그 돈으로 시 골에 1,000평의 땅과 집을 살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시골 가서 살아야지’하는 꿈을 꾸고는 있지만 막상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지는 못한다. 절대로 못한다. 그러나 나는 20년 동안 계획해 온 일이라 주저함이 없었다. 꿈꾸는 자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용기’와 ‘무모함’ 그리고 또 한 가지 ‘기다림’이다. 젊은 여성들에게 꿈으로 그려진 인생의 설계도를 하나 갖고 있으라고 권하고 싶다. 그 꿈을 이 루는데 20년이 걸릴지 30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내 경우에는 그 꿈을 한 번도 접어 본 적이 없 었고, 중요한 것은 꿈이 있어 20년 동안 늘 행복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꼭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야만 성취감을 느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생계를 유지하는 ‘돈 버는 수단’과 ‘하고 싶은 것’이 일치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 요새는 각종 동호회가 있고 취미 생활하는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건축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실내 건축과 관련된 마니아가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 언젠가는 내 가 꿈꾸던 실내 건축에 대한 책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그렇게 불가능하지가 않다. 읽은 책 중에 보통 아줌마가 쓴 『한옥 짓는 이야기』, 어떤 신부님이 쓴 『손수 우리 집 짓는 이야 기』란 책은 일반인의 훌륭한 건축한 개론으로 기억에 남는다. 20대. 무엇이든지 꿈꿀 수 있고, 그 꿈을 틀림없이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무한대인 나이다. ‘자신에 대한 회의’에 빠져 있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나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 무엇이든 열심히 하길.... 꿈을 이루기 위한 밑천이자 과정이니까. *
귀농을 생각하신다고요? 언젠가 귀농을 생각하고 있다는 40대 여성이 찾아왔다. 그는 이미 한 번 귀농을 했다가 실패하 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귀농의 꿈을 버리지 못하여 재차 도전해 보기 로 했다는 것이다. “이번에 또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요. 풀각시 님은 도대체 어떻게 사시기에 그렇게 행복한 시골 살이를 하시는지 직접 보고 싶고 또 조언을 들으러 왔어요.” 그의 이야기를 죽 들어보니 귀농에서 실패할 수 있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는 외로움을 선택한 사람이었다. 간섭받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어 했다. 집터를 잡을 때도 다른 집들과 아예 뚝 떨어진 외진 곳을 선택하였고 자기 생활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 동네 사람들과는 일절 접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내성적인 성격에 자기 방어 성향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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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대는 그냥 도시에 사는 게 낫겠다. 성격이나 인생관을 바꾸면 몰라도. 시골에서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돼. 그게 싫으면 많이 힘들어져.” 물론 시골에서도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서 살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살면 재미가 없다. 그리고 참 힘들다. 정신적으로도 문제가 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리적인 측면에 서다. 때로는 과한 관심이 귀찮을 수도 있지만 사실 얻는 것이 더 많다. 도시와 같이 의료나 문 화 시설들이 가까이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 멀리 떨어져 사는 아들보다 맹리 보는 이웃이 내게 더 큰 도움이 된다. 실제로 이웃의 도움으로 생명을 건지는 일도 많다. 다만 누구나 다 시골 생 활이 적합한 것은 아니다. 시골의 참맛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는 건데 그걸 천성적으로 싫어 하는 사람이라면 시골인들 재미가 없을 것이다. 귀농해서 성공하려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아 울러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온 동네가 붉게 물들었다. 고추 수확의 계절, 마을은 붉은 주단을 깔아 놓은 듯하다. 조금만 판 판한 곳이면 으레 말리는 고추가 차지하고 있고 밭에서도 고추 따기가 한창이다. 30도를 웃도 는 살인적인 더위 속에서 고추 따는 일은 정말 힘들다. 몇 시간씩 쭈그리고 앉아 고추밭 고랑을 훑어가려면 갑자기 하늘이 빙그르르 도는 듯 현기증이 나고 다리엔 쥐가 나고 온몸은 땀범벅이 된다. “새 집에 손님이 많이 왔나베.” 밭 가운데 새로 들어선 집 마당에 파라솔이 펴지고 주인장 따라 집 구경을 온 도시 손님들의 웃음소리가 들녘으로 퍼진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오는 사람은 두 종류다. 하나는 땀을 흘리고 농사를 지으며 진정한 농민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 다른 하나는 좋은 공기 마시고 좋은 경치 보며 쉬는 곳으로 농촌을 선택한 사람. 어느 지자체에서는 농촌 살리기의 한 방안으로 ‘5도 2농’을 적극 권장하면서 도시 사람들에게 ‘1주일에 단 이틀만이라도 이곳에 와서 살아 주세요!’ 사정하고 있지만 난 5도2농을 좋아하지 않는다. 5일은 비어 있고 이틀만 불이 켜지는 집, 그 이틀도 몸만 그곳에 있을 뿐, 도시의 정서 와 문화를 차에 싣고 왔다가 다시 차에 싣고 떠나 버린다. 그런 종류의 귀농이 과연 농촌에 어 떤 도움이 줄 수 있다는 건지. 농촌의 진정한 맛은 아직도 살아 움직이는 공동체 정신이다. 이웃 간의 끈끈한 정과 서로 미 워하고 사랑하고 싸우고 걱정하고 대소사 같이 나누는....... 시골에 내려오는 사람들은 우선 겸손해졌으면 좋겠다. 자연에 대해 그리고 그곳에 오래 살아 그 자연의 일부가 된 사람들에 대해. 이른 새벽부터 나와 고추밭에서 비 오듯 땀 흘리고 있는 명희 엄니가 사이사이 허리 펴면서 새 집 베란다에 쳐진 파라솔 아래 수고 있는 사람들을 물끄 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 나는 정말 슬퍼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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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오감&교감 <촌스러운 일 상상캠프>
주민이 행복해지는 마을가꾸기
-슬로시티 대흥의 사례
슬로시티 대흥
http://www.slowcitydh.com 예산 대흥은 다양한 어종과 수생 식물이 사는 예당호수가 마을을 가로지르고, 뒤로는 옛 백제 성터가 남아있는 봉수산 이 늘 푸름을 간직한 곳으로, 아름다운 자연으로 둘러싸여 있는 고장입니다. 또한 600년 전통의 옛 향고와 조선 태종 때 지어진 대흥 동헌, 조선 왕족 태실, 대원군 척화비 등 다양한 유산을 보존하고 있으며, 조선 세종 때 실존 인물이었던 이순, 이성만 형제의 의좋은 형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고장입니다. 또한 백제 부흥운동의 거점지역으로 삼 국시대부터 조선을 거쳐 근세에 이르는 역사물이 마을 안에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풍요로운 자연생태를 보존하고 고유 한 전통문화를 계승하며, 활발한 지역민의 커뮤니티 활동으로 2009년 에산 대흥이 슬로시티로 인증을 받았습니다. 생 태적으로 우수하고 전통 문화와 예술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예산 대흥은 신안 증도, 완도 청산, 장흥 유치, 담양 창평, 하동 악양에 이어 우리 나라의 여섯 번째 슬로시티로 지정되었습니다.
슬로시티 대흥의 운동전략 * * * *
마을공동체 되살리기 : 관광객 눈높이가 아닌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초점 사람에 투자 : 휴먼웨어 > 소프트웨어 > 하드웨어 : 외관이 아닌 컨텐츠 강화로 차별화 있는 자원을 그대로 활용 : 인위적 요소 최소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 타 조직과의 win-win 전략
슬로시티 대흥 의좋은형제 마을 주민의 삶 * 주민으로서의 자부심 고양 : 마을의 브랜드가치 상승 * 나에서 우리로 공동체 의식 성숙 : 마을사업에 대한 신뢰도 * 스스로 서서 서로 돕는 마을로 발전 : 지속가능한 발전의 가능성 슬로시티 대흥에 대한 평가 * 슬로시티 운동 철학을 가장 올바르게 구현하고 있는 곳으로 평가 * 주민이 주도하는 마을만들기 성공 사례로 주목 : 매년 1,000여명 지자체 대표 방문 * 2013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 : 주민이 가꾸는 마을 모델, 아름다운 마을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 * 2014년 충남 행복한 마을 우수상 * 2015년 대한민국 행복마을만들기 콘테스트 은상 슬로시티 대흥의 성공요인 * 주민이 주인공이 되는 슬로시티 운동 * 관민의 파트너십 * 느린 걸음으로 단계별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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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오감&교감 <촌스러운 일 상상캠프>
농촌 마을만들기와 청년 - 귀향, 귀농, 귀촌을 꿈꾸는 청년 세대를 위한 조언 구자인
gujain@hotmail.com 1965년, 진주에서 출생하여 3살부터 부산에서 자랐다. 서울대학교 해양학과와 환경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한국도시연 구소에서 도시환경문제와 마을만들기를 조사·분석하고 민간의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였다. 1998년에 일본으로 유학, 만 6년 반 농촌마을의 역사와 구조에 대해 연구하여 농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전공은 농촌개발과 내발적 발전론이다. 2004년 12월에 계약직 공무원으로 진안군청에 채용되어 행정과 민간의 가교 역할을 하며 10년 넘게 찬찬히 한 걸음 한 걸음 진안군 마을과 마을, 사람들과 사람들을 연결해왔다. 현재는 충남연구원 농촌농업연구부 초빙책연구원으로 충남 마을만들기 지원시스템 구축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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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오감&교감 <촌스러운 일 상상캠프>
청년의 일과 삶@농촌 -마음과 손, 경험과 지혜를 모아 : 언컨퍼런스 언컨퍼런스 언컨퍼런스(Unconference)는 참석자 지향적인 회의방식의 하나이다. 현존의 컨퍼런스들은 비용이 많이 들고 참여자 발 언의 기회는 적고 스폰서의 입김에 노출될 우려는 큰 데다 상의하달(Top-down)식이라 판에 박히고 비효율적이라는 단 점이 있어 이를 극복해 보자하는 새로운 회의 기법이다. 언컨퍼런스의 전형은 '참석자들이 아젠다를 모임의 바로 초입에 창출한다' 라는 것이다. 어떤 화제에의 논의를 시발코자하는 그 누구라도 시간 및 공간을 얻을 권한을 갖는다. 단 한 명 의 발언자가 참석자들의 앞자리에서 발언하진 않고, 모든 이가 공공의 토의를 형성하며, 포맷에는 제한이 없다.
생각하기 * ‘촌스러운 일 상상캠프’를 통해 자신에 대해 새롭게 발견하게 된 것(두려움, 불안, 꿈꾸는 것, 성경, 힘들어하는 것)은 무엇인가? * ‘귀농’‘귀촌’‘시골이주’라는 이슈는 ‘현재의 나의 삶’과 어떤 지점에서 만나게 되었는가? 혹 은 어디에서 어떻게 연결되는가? ‘촌스러운 일 상상캠프‘에서 만난 이야기, 사람들을 통해 새롭 게 발견한 것은 무엇인가? * 내가 ‘일’을 대하는 방식과 관점, 경험을 ‘촌스러운 일 상상캠프’를 통해 들여다본다면? * ‘나’와 ‘나의 커뮤니티’ 는 어떤 관계에 있었나? ‘촌스러운 일 상상캠프‘에서 만난 이야기, 사람들을 통해 개인과 커뮤니티의 관계/상호작용을 지금까지와 다르게 상상해 본다면? * 도시에서 나는 어떤 문화를 어떤 방식으로 만나고 있는가? 시골에서 나의 일상의 문화는 어 떻게 다를 것이라고 짐작하는가?
대화하기 * 시골에서의 일 : 일을 하는 방식, 일이 만들어지는 방식, 만들고 싶은, 혹은 함께하고 싶은 일 * 이주청년들과 지역(마을)사회 : 이주청년들과 마을은 어떻게 만나는가? * 청년의 농업 : 토지와 자본, 기술과 경험이 없는 청년의 농창업은 어떻게 가능할까? * 사회의 시스템(행정을 포함한)과 청년이주자 : 행정의 지원을 어떻게 볼 것인가? 도시와 시 골에서 무엇이 다른가? * 일상의 문화 : 도시에서, 시골에서 문화를 만나고, 생산하고, 소비하고, 참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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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옥한 땅을 찬양하며 완두콩 빛깔 하늘 아래 그녀는 그녀의 일이 자라나는 것을 바라본다. 포도덩굴과 콩 줄기가 밭에서 생생하고 무성하게 자라나듯 충분히 천천한 속도로 자라고 있는 모습을. 그 생명을 적절히 잘 돌본다면 흙이 마르지 않게 부엽토를 덮어주고, 제때 물을 주고, 벌레를 없애주는 새들에게 새집과 겨울을 날 수 있게 먹이를 준다면, 햇볕이 내리쬘 때 해충의 애벌레들을 잡아준다면. 기도하는 손을 하고 있는 사마귀 그리고 무당벌레와 벌들이 찾아온다면 그럼 식물들이 잘 자라나지. 각자 타고난 속도에 따라. 연결은 천천히 이루어지고, 때론 땅속에서 이루어지지. 겉에서 일어나는 일만으론 알 수 없지. 나무의 절반은 발아래 땅 속에 퍼져 있거든. 굼벵이처럼 조용히 연결하는 거야. 굼벵이는 나팔을 불지 않지. 덩굴처럼 끈질기게 싸우는 거야. 덩굴이 나무를 쓰러뜨리기도 하거든. 딸기나 호박덩굴이 정원을 가득 채우는 것처럼 어두운 밤 말없이 자라나고 햇볕으로 당분을 만들어내듯이. 진짜 연결망을 엮는 거야. 진짜 연결고리를 만들어내고 진짜 집을 짓는 거지. 네가 견딜 수 있는 삶을 살아. 실제로 사랑하는 삶 말이야. 계속 연결하고 계속 서로 연결되게 해. 더 많은 걸 받아들여. 모르는 이들에게는 그저 덤불과 관목의 황무지로 보이지만 우린 그 안에 토끼들이 뛰어다니는 길과 은신처가 있다는 걸 알지. 너 자신을 좋아하는 것처럼 살아봐. 그럼 그렇게 될 거야. 밖으로 네 생명을 뻗고 계속 뻗어나가고, 계속 받아들여. 오랫동안 이렇게 사는 거야. 그럼 다른 시기가 오지. 모든 정원사는 알거든. 땅을 파고, 심고, 돌보고, 자라나는 긴 계절이 지나면 거두어들일 때가 온다는 것을. - 마지 피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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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오감&교감 <촌스러운 일 상상캠프>
앞으로 농촌에 올 수많은 청년들에게 정민철
jmchul@gmail.com 1967년 경주에서 태어나 올해 오십견으로 고생하는 중. 33세까지 대구에서 학교 다니는 것 말고 한 것이 없음. 박사과 정 중에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전공부를 만드는 일을 도와달라는 홍순명 선생님의 요청과 박완선생님의 제안 그리고 할일도 별로 없는 상황이어서 홍성으로 옴. 교사자격증이 없어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행정실 직원으로 일과 강의를 시 작했고, 전공부를 시작하고 또 10여년을 선생질하면서 보냄. 전공과 무관하게 강사를 못 구한 과목들을 강의함. 박사는 많이 배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지역 사람들의 관점을 받아들여 모르지만 필요로 하는 일을 하다보 니 안하는 것은 없지만 또 명확히 잘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림. 지역에 온 지 10년이 지나서 홍동이 농촌이고 도시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낄 정도로 감수성이 매우 무딤. 지역에서 만든 갓골생태연구소 운영을 떠밀려서 맡다보니 전공부를 졸업하는 청년들과 지역에서 요구하는, 필요로 하는 일들을 청년 들의 일, 창업과 연계하여 진행하였고 그러다보니 농촌에서 별 이상한 일도 한다는 말을 듣게 됨. 농촌에서 이런 일을 해 도 되는구나라는 상상력을 제공했다는 것으로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 2012년 전공부를 졸업하는 청년 2명과 함께 장곡에서 협동조합 젊은협업농장을 시작함. 이런 일이 필요하다는 제안은 많이 하지만 본인이 직접 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듣고 객기로 학교를 그만두고 또 배운 것과 무관한 농장을 만드는 일에 덜컥 참가함. 농장일을 시작하면서 얼굴 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들음. 전직의 특성을 버리지 못해 농장이 교육적 성격을 강하게 띄게되니 특색이 생기고 여러 관심을 받게됨. 이러한 관심을 젊은협업농장의 대단함이 아니라 한국 농업의 상상 력과 전망 없음을 재확인하는 것으로 생각이 들어 매우 안타까움. 홍동지역이 수 많은 청년들의 땀과 희생으로 그 기초 가 놓여졌으나, 이들의 모습이 잘 들어나지 않는 상황이 안타까워, 최소한 내가 목격한 것이라도 기록해야 할 것 같은 책 임감으로 덜컥 글을 수락했다가 후회를 많이 함.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주변에서 모두 꼰대, 독재라고 공식적으로 인 정하는 듯 함. 꿈이 없어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는 본인도 모름. 다음 글은 글쓴이와 출판사의 동의를 얻어『땅에서 삶을 짓다』(2016, 교육공동체벗) 중에서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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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으로 오고 싶다던 Z에게 청년들은 말한다. 농업을 하고 싶다고, 농촌에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음, 지금 시기에 귀한 생 각을 하는 청년이구나.’ 그들이 생각하는 농업과 농촌은 참 멋진 것 같다. 자기가 먹을 만큼만, 작은 규모에서 최소한의 노동으로, 이를 통해 자급을 하고 싶어 한다.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 남들이 어렵다고 하는 무슨 무슨 농법으로, 또 몸에 나쁜 화학물질(전자파 포함)은 일절 몸에 들 어오지 않게, 더군다나 나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서 자연의 품속에서 살고 싶다고 한다. 4시 간 노동하고 4시간 자기를 위해 살고, 도시의 찌든 삶을 벗어나 여유롭고 자유롭게, 그러면서도 주변 사람들과 더불어 도시와 다른 공동체적 삶을 살고 싶다고. 그런 농촌이 있으면 내가 제일 먼저 가고 싶다고 에둘러 답한다. 속으로는, ‘그럼 지금까지 반 평생 농업을 하고 있는 농민들은 일을 못해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노동하고 있는 건지, 아님 너 무 돈 욕심이 많아 먹고살기 힘들다고 하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아이디어가 없어 충분히 부가 가치를 못 만들어 내는 건지, 아님 배운 게 없어서 문화를 향유할지 모르거나 일만 해도 삶에 만 족하는 걸까’라는 질문이 입천장을 뱅뱅 돈다. 아마, 이 말을 뱉는 순간 ‘꼰대’라는 무지막지한 일반화로 도매급으로 넘어가겠지. (뭐, 이건 사실이지만.) 대화 상대 명단에서 아예 빠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면서, 그 생각에 더 기분이 나빠지면서, 그냥 입천장에서 맴돌던 말들이 밖으 로 빠져나오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건 관심이 많은 경우에 해당하고, 많은 경우는 다른 사람 연락처를 주면서 연락해 보라고 하고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역 농업단체는 말한다. 농사는 우리가 지을 테니까 농사지을 사람 말고 농업 실무자를 좀 보 내 달라고. 농민단체에서 농업, 농민의 관점을 가지고, 밤을 새워 일할 투지와 의지와 열정을 가 진, 더군다나 실무 능력까지 갖춘 ─ 하나 더 붙이자면 적은 임금으로도 오래 일할, 한마디로 하 면 자기 인생을 투신할 ─ 사무장, 회계 담당, 유통 담당, 도농 교류 담당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난 고등학교만 졸업해서도 이 정도 하는데, 더 배운 사람들은 더 잘하지 않겠나, 라는 말도 덧붙 인다. 요즘 청년들이 생각하는 삶은 우리와 또 다른 것도 있을 것이고 예전같이 서클을 통해 투 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교육이 아니라고 말하고, 좀 더 성장할 때까지 기다리고 지역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해 주면서 사람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원론적인 답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이렇게 대답하면 지금 의 농촌 현실, 지금의 농촌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기다리다가 농업, 농촌이 무너질 정도로 절박 하다는 말을 하니 답은 점점 궁해지고 받아 놓은 소주가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자꾸 사라진 다. 만약 당신의 자녀라면 앞에서 제안한 그러한 조건에서 일을 시킬 수 있겠냐는 말이 입에서 뱅글뱅글 돌지만, ‘농촌 일꾼이 아니라 도인같이 생활하려는 청년들만 들어오는 것 같다’는 뼈 아픈 말이 등장하면, 차마 내뱉지 못하고 소주와 함께 삼켜 버린다. 지역 농민은 말한다. 아니 도통 뭐한다고 집 마당의 풀도 깎지 않고, 바이오 무시긴가 태평양 무시긴가 하는 농법을 한다는데 논밭의 작물은 풀 속에서 찾아야 보이고, 개(고양이)만 안고 살 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도 않고 도통 뭐 먹고 살려고 하는지……. 쯧쯧 혀를 찬다. 돈 벌 수 있 는 작물을 알려 줘도 안 하고, 푼돈이라도 벌라고 동네 사람들 일 갈 때 같이 가자고 하면 바쁘다 고 하고, 동네 행사에 부르면 얼굴만 삐쭉 보이고 사라져 버리고, 찾아가도 집에도 잘 없고. 요즘 청년들이 좀 그런 면이 있지만 그냥 좀 두고 보시라고 변명해 보지만 청년들에 대한 어르신들의 69 상상캠프
불만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먹고살려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쉬지 않고 몸뚱이를 굴려야 하는 데, 그래서 자기 땅이라도 있고 돈이 솔솔 들어와야 농사짓는 재미도 있지 남의 땅 조금 얻어서 저렇게 해서 무슨 재미로 사는지, 그리고 이 청년들은 또 왜 이리 농사일을 일찍 마치는지 아직 해가 남아 있는데 가 보면 농장에 사람이 없다고 의아해하신다. 청년들이 공부도 해야 하고 문 화 활동도 해야 한다고 하면 앞에서는 이해하시는 척하지만 뒤돌아서며 ‘장정들이 잠도 안 자고 일해야지, 이 시골에서 무슨 개뼈다귀 같은 문화 활동을……’ 하는 혼잣말이 다 들린다. 그래도 농촌, 농업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많은 청년들이 들어오는 것이고 이들이 잘 성장할 수 있 고, 이들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곳이어야 농업이 지속 가능하고 농촌이 활력을 가질 수 있지 않 겠냐고 말하려고 고개를 들면, 굽은 허리와 갈라진 손등과 검게 그을리고 깊이 팬 이마의 주름 부터 보인다. 내 머릿속에서도 참 배부른 소리고 전직이었던 선생 같은 소리만 하고 있다는 생 각이 떠오른다. Z야, 우리는 아마 위의 세 가지 입장이 겹치는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을 듯하다. 어디에 장단을 맞추라고 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어렵지만 농촌에 올 때 생 각해야 할 무언가는 있을 듯하다. 어쩌면 농촌은 단순할지도 몰라. 더 복잡한 것은 농촌에 오려 는 청년들의 생각이 수십, 수백 가지라는 점이지. 다가올 미래에 돈을 벌 수 있는 블루 오션이 농 업이라고 생각하는 청년부터 생태적 삶이라는 새로운 삶의 형식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 농촌 이라고 생각하는 청년까지 농촌을 선택하는 이유는 너무 넓으니 뭐라고 꼭 집어 이야기하기가 참 어려운 상황인 듯하다. 최근 연구 보고서를 보면 현재와 미래를 모두 부정적으로 보는 청년들(20~30대)이 지속적으 로 증가(2013년 34%, 2015년 45%)하고 있고, 40~50대 역시 다수가 붕괴-새로운 시작을 미래 사회로 생각한다는 결과가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새로운 시작’을 위해 농촌을 선택하는 비 율이 점점 높아질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들이 말하는 새로운 시작은 소규모 공동체 활성화, 이웃과의 소통과 나눔, 환경 친화적 삶, 노후 등 성장주의를 중심에 두는 현 사회에 저항하면서 다양한 삶의 양식을 보존하고 사회의 경계인을 보호하는 사회라고 그 보고서에서는 말하고 있 다.(〈한국인의 미래 인식, 사회 분위기, 미래 적응력 조사〉, 과학기술정책연구원, 2015년) 나 는 지금 청년들이 참 똑똑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삶과 반대되는 삶을 살라고 수십 년을 교 육받고, 지금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존 기술을 배운 상황에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청년들의 보수화라는 말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농촌에 오려고 했을 때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 하나는 우리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른다는 것을, 우리는 그렇게 살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말 이야. 공동체, 환경 친화, 이웃과 소통, 지역이라는 소규모 커뮤니티, 농업 등 우리가 새로운 미 래와 연결시켜 떠올리는 단어와 이어지는 생활, 삶을 살아 본 적이 없다는 거지. 물론, 책을 통해 서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는 글에 공감을 하고 머리로 이해했을지는 몰라도 우리의 몸은 냉 철한 머리와 달리 붕괴되었으면 하는 사회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점을 인정했으면 한다. 머리 역 시 현실의 상황에서는 합리성, 논리성이라는 붕괴 사회의 접근 방식을,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하 고 익숙한 방식을 사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또한, 책에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결론은 있지 만 그것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과정, 특히 그 과정의 힘듦, 그 과정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 70 촌스러운 일
그래, 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20년을 배웠는데 뭐를 또 배우냐고? 말했지만 지금까지 배 운 것은 붕괴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현실이고, 배워야 할 것은 새로운 사회에 관한 것이겠지. 그 배움은 단지 도서관에 앉아서 책으로, 교실에서 강의를 들으면서 배우는 것이 아닐 듯하다.
“한국에는 협동조합의 전통이 거의 없다. 자마니 교수의 얘기는 에밀리아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것은 시민 사회의 오 랜 전통이라는 것 아닌가? 짧은 시간에 에밀리아 로마냐와 같은 경제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2주 전에도 캐나다의 학자와 협동조합 활동가들이 다녀갔다. 매년 여름에 2주 동안의 협동조합 코스를 개설하 는데 이들은 매년 빠지지 않고 온다. 실제로 밴쿠버 등지에서는 여기서 배운 것이 현실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책 과 논문으로 알 수 없다. 필요한 것은 이 지역의 문화를 느끼고 체득하는 것이다. 밥도 같이 먹고, 같이 토론하면서 알 아 나가야 한다.” - '협동을 통한 평등한 사회, 꿈같은 세상은 가능하다 - 스테파노 자마니 볼로냐대학 경제학과 교수 인터뷰' 〈오마이뉴스〉, 2010년 12월 11일 이에 대한 기자의 생각이 아주 정확해. “이 인터뷰와 마찬가지로 단시간에 모든 걸 해결하는 묘약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문화라니……. 이건 더 절망적이다.” 그래, 이 생각이 필요할 듯하 다. 새로운 사회가 그렇게 쉽게 될 리는 없으니까 말이다. 절망적일 정도로 어려운 것이겠지. 그 절망을 어떻게 견뎌 낼 것인가가 그 과정에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농촌에 와서 지역의 문화를 느끼고 체득하고 밥도 같이 먹고 같이 토론하면 새로운 사회 에 대해 알 수 있냐고? 농촌이 그러한 새로운 사회이거나 준비가 된 곳이냐고? 앞에서 말했지만 아니지. 역시 아니지. 지금 살고 있는 곳보다 더 경쟁적이고, 더 각박하고, 더 경제적인 발전에 목을 매고, 더 바쁘고, 더 보수적이고……. ‘더 어쩌고’를 수십 가지는 더 말할 수 있다. 청년들의 착각 중에 하나가 농촌은 새로운 사회이고 그곳에 가면 내가 생각하는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 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도시에서 느낀 부조리를 농촌에서는 느끼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농촌에 서는 나를 더 이상 소비시키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거지. 아니야. ‘더 어쩌고’를 반복하자면, 농촌 은 도시보다 더 에너지를 많이 쓰고, 더 비생태적이고, 더 기름에 의존하고, 더 가꿀 여유가 없는 곳이지. 그런데 왜 농촌이냐고? 지난해에 나온 〈농촌으로 이주하는 청년층의 현실과 과제〉라 는 보고서를 보면 청년 귀농·귀촌의 네 가지 키워드 중 하나로 ‘틈’을 제안하고 있다.
‘경쟁에 치이고 친구도 경쟁자가 되는’ 도시의 구조 속에서 살던 청년들이 지역에 와서는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서 같이 협동해서 조합을 만든다든지 간담회를 연다든지’ 하면서 집단지성이 모여서 뭔가를 해결해 갔고, ‘자본이 나 돈이 아닌, 사람이나 아이들, 땅의 힘 같은 것들’을 모아서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 나가기 시작했다. 지역은 청 년들에게 도시에서와는 다른 탈자본화된 삶과 새로운 상상을 실현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틈이 되어 주고 있다. 이 러한 틈이 지속적으로 형성되고 확산될 수 있도록 시민 사회와 지역 사회가 함께 모색해야 할 것이다. - 〈농촌으로 이주하는 청년층의 현실과 과제〉, 희망제작소 외 공동연구, 삼선재단 펴냄, 2015년 난 틈이 아니고 ‘여백’이라고 표현하는데, 농촌은 그런 일을 시도해 볼 여백이 있다는 말이야. 하지만 그것은 여백에 불과해. 보통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는. 하지 만 이 여백이 청년들에게 무언가를 창조해 나갈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 여백은 아무도 없는 공간이 아니라 여백을 둘러싸고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우리가 농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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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를, 불편한 그 여백을 발견하기 전까지 이 공간을, 이곳을 온몸으로 살아온, 어쩌면 지켜 온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그들은 도시와는 다른 그들의 문화를, 그들 의 합리성을, 그리고 그들의 생활 방식을 터득하고 있을 거야. 같은 한국인데 도시와 왜 다르냐 고? 누군가는 농촌에 오는 것은 말만 통하지 국제 이민과 비슷할 정도로 생활 방식과 판단 근거 와 관계 구조가 다르다고도 말하는데, 농촌은 지역과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대 도시의 삶의 방식, 대도시의 합리성과는 다를 수밖에 없어. ‘그것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가 장 빠른 방법은 농업을 직접 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으로 자기 삶의 생존을 걸어 보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 ─ 물론, 그냥 자기 밥벌이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농민들과 엮여서 그 들의 방식으로 살아 보는 것 ─ 이고, 아니라면 농민단체, 지역 주민들과 깊은 교류를 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들의 생각과 판단을 존중하면서 그들이 판단하는 방식과 근원을 찾아가다 보면 어느덧 땅과 농업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이런 말을 할 거야. 내가 가 장 많이 듣는 말이지. ‘이렇게 살려고 농촌에 왔나?’ 이렇게 살려면 도시에선 더 많은 돈을 벌 수 도 있는데……. 맞아 나도 그렇게 말하니까. 하지만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사회를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경우에 그냥 소집단 또는 개인적 으로 자기가 그리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그냥 실천해 버리지. 그래, 농촌에서도 도시와 같이 혼 자, 익명성을 가지고, 사생활을 충분히 보장받으면서 살 수는 있을 거야. 또, 나의 삶의 지향점, 내가 추구하는 삶을 바로 실천해 버릴 수도 있을 거야. 혼자가 힘드니 종교, 정치, 사상적으로 유 사한 우리끼리 모여서 말이야. 그렇게 ‘우리’가 만들어지면 주변 모든 사람들은 바로 ‘너희’가 되 어 버려. 우리가 그렇게 살겠다는데 너희들에게 왜 참견을 받아야 하냐고 논리적이고 소위 합리 적인 이론을 펼 수 있어. 난 행복한 나의 삶을 살려고 왔을 뿐이라고 결론을 내릴 거야. 맞아. 그 말이 틀렸다는 게 아니야. 나도 ‘협동해야 하고, 서로를 배려해야 하고, 주위 사람을 존경해야 하 고, 참아야 하고’ 뭐 이런 느글거리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안 해도 되니 ‘우리’끼리만 그렇 게 하지는 말아 달라고 말하고 싶다. 이들은 혼자, 익명적으로, 우리끼리만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남의 공간에 비집고 들어온 이물질이 될 가능성이 높아. 차라리 혼자 조용히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 각한다. 앞에서 농업을 직접 해 보라고 말했지만 농업만 하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농촌이, 그리고 농업 이 살아남는 방법은 이것을 둘러싼 수많은 직능단체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농업이 외롭게 농산물만 생산하여 판매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어쩌면 농촌을 도시를 먹여 살리는 ‘식량 공 장’ 정도로 보는 것이다. 농촌 지역은 농촌 지역대로 자기의 완결성을 가지고 삶을 영위할 수 있 는 공간이고 한양보다 더 오래 지속된 곳이 대부분이다. 농업, 그리고 농업과 직접 연결되는 활 동만 남고 모두 떠나 버린, 수십 년 동안 필요성을 모두 잊어버렸을 수는 있지만(생존에 꼭 필요 한 것은 대부분 있지만) 그 생명력, 활력, 건강성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다시 복원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복원 과정이 단지 도시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었으면 한다. 농촌이 농 촌다우면서 그 직능이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내용을 어떻게 채우느 냐에 달려 있고, 그것이 바로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시작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사회라는 것은 기존에 없던 것을 하는 사회가 아니라 기존의 것이 새롭게 해석되고 내용에서 달라지는 것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에서 배우라는 말을 또 하고 싶다. 지역 사람들 속에서 배우면서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일과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 내가 가진 재주가 결합되는 지점 을 찾아내는 과정이 창업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72 촌스러운 일
그래, 농촌 지역에서는 너를 고용하여 월급을 주고 고용 조건을 협상할 고용주는 별로 없다. 취 업이라는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버리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지역이 공간을 열어 주고 너 스스로가 너를 고용하고 지역 사람들이 협력해 주는 방식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근로 조 건과 고용 조건을 우리나라 평균 ─ 그 평균값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 과 비교하지 말고 지역 사람들, 너를 지원해 준 지역 농민들과 비교했으면 한다. 나는 자기의 터전이 없는 글로벌 인재 가 아니라, 국가 단위의 산업 인재가 아니라, 지역 인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인재는 세계 어디를 가나 동일한 방식과 수준으로 일할 수 있겠지만, 지역 인재는 자기가 몸담은 지역 을 배우고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접근 방식과 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 각한다. 글로벌 인재보다 지역 인재가 훨씬 창의적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한 지역만 아는 지역 인재가 아니라 지역을 배우고 알아가는 것을 알고 있는 지역 인재 말이야. 지역 리더, 지역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때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사업의 내 용을 결정하는 것은 지역 어르신들이다. 어르신들이 우리를 위한 사업만을 벌인다면 우리 지역 은 어르신들을 위한 최적의 공간이 된다. 그렇게 되면 어르신들이 지내기 좋은 곳이 되고 그럼 또다시 어르신들만 들어오게 된다. 어르신들만 모여 사는 사회, 그것이 여러분이 바라는 농촌인 가? 사업 내용을 고민할 때 우리 지역에 이런 것이 있으면 나의 자식이나 손주에게 참 좋겠다고 판단되는 일을 했으면 한다. 그러면 자식이나 손주뻘 되는 사람들이 농촌으로 들어오지 않겠나? 그렇게 다양한 세대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좋은 농촌이 아니겠는가? 그 결정권은 바로 어르신들에게 있다.” 만들어진 새로운 사회에 들어가 개인의 삶을 누리는 것보다 아주 부족한 곳에서 새로운 사회 를 만들어 가기 위해 하나씩 쌓아 가는 것도 재미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것이 더 창의적인 활 동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을 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매우 힘들 거라는 말을 우선 해야 할 듯하다. 2016년 3월 장곡의 꼰대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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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오감&교감 <촌스러운 일 상상캠프>
청년, 농촌과 접속하기 이창신
cslee@krdf.or.k 1974년생 / 서울 촌놈 / 건대 농업경제학 석사 / 농협대학 최고농업경영자과정 조교 / 들로 산으로 강으로 전국을 돌다 / (재)지역재단 / 지역개발 컨설턴트 / 리더십교육 / (사)홍성지역협력네트워크 / 깨달음과 실천 / 농촌에 대한 이해
(사)홍성지역협력네트워크 * 목적 : 마을공동체의 활성화와 협동사회경제 시스템 구축을 위하여 마을과 다양한 민간단 체들의 연대와 협력 활동을 촉진하고 지원함 * 활동방향 :
* 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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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vs. 농촌 * 인구, 경제, 문화, 복지, 경관, 생태의 비교 * 도시 : 많은 인구가 모여 살며 일정 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 되는 곳 * 농촌 : 도시와 구별되는 사회지리적 공간으로 주로 농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거주하는 곳 지역 * 자연적 또는 사회적, 문화적 특성에 따라 일정하게 나눈 지리적 공간 * 도시지역, 농촌지역, 공업지역, 상업지역, 평야지역, 산간지역, 온대지역, 냉대지역 * 한국,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도산리, 오미마을 지역에 대한 강조 * 농촌의 변화 : 농업 ≠ 농촌 * 정책의 변화 : 농정의 방향 농업(업)에서 농업, 농촌(공간)으로 전환 사람 좀 구해줘 vs. 할 일 좀 찾아줘 * 구인 ≠ 구직 * 쓸 만한 사람이 없어 vs. 일할 만한 곳이 없어 지역적인 삶에 대한 이해 *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 삶의 가치 : 돈, 관계, 경쟁, 협동, 문화, 전통, 소비 등 * 생활 양식 : 합리적 양식과 전통적 양식 지역에서 살아가기, 무엇이 두려운가? * 경제적인 문제 : 평균적으로 도시보다 소득이 적다. 일할 거리도 절대적으로는 적다. * 그래도 살아간다 : 소비를 줄일 수 있다. 관계로 풀 수 있다.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지역에서 살아가기,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 * * *
매일 흙을 밟을 수 있다. 일정 부분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느리게 살 수 있다. 큰 경쟁 없이 공동체적 삶을 살 수 있다.
지역에서 살아가기! * * * * *
먹고 사는 문제,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다. 다만 함께 고민해 줄 수 있다. 낯선 곳으로의 이동(관계의 리셋) : 적극적인 관계 형성 젊을 때 시도하자. 나이들면 지역에서도 부담스럽다. 적극적인 마인드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대안적인 삶 : 자본주의 사상보다는 사회적 경제의 사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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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속한다는 것은 이 땅에 속한다는 것은 씨앗 한 톨이 움직이는 것을 아는 것이다 땅 속에 묻혔을 때 캄캄함 빛을 향해 나아가는 씨앗의 분투 빛으로 성장하는 고통 발아, 그리고 열매 맺는 것의 기쁨 누군가에게 먹이가 되어주는 사랑 자신의 씨앗을 주변에 뿌리고 계절이 썩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죽음의 신비 그리고 다시 태어남의 기적까지 - 존 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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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도농네트워크 모임
정리와 상상 2016년 7월 중 / 서울 희망자에 한 함
캠프를 마치고 각자 삶의 자리에 다시 돌아온 우리, 그 때 그 타오르는 불빛 아래서 꿈꾸었던 상상들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나와 나인 너를 다시 만나고 싶은 청년들을 위한 후속 커뮤니티 모임입니다. 모이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우리가 바라고 꿈꾸는 활동들로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문의 : 삼선재단 02)756-5669, sscare@sscar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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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여행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여 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 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 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할 지 더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가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 나짐 히크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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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통 캠프 기간 중 일정, 진행에 관한 문의는 010-3131-1909 혹은 010-5323-8766으로 전화주세요. 만약 통화가 되지 않으면 문자로 내용을 남겨주세요. 확인하는 대로 바로 답변 드리겠습니다. 인사하기 캠프가 진행되고 숙박을 하는 장곡면 도산리는 주민들이 일상을 사는 조용한 마을이에요. 기꺼이 일상을 내어 준 마을 분들과 진심으로 대화하고 정성으로 만나면 좋겠어요. 마을길과 공공장소에서 목소리는 살짝 낮춰서 이야기하고, 눈이 마주치면 밝은 얼굴로 인사해요! 이동, 시간 지키기 1박 2일을 알차게 보내려다보니 시간을 빠듯하게 쓰게 되었어요. 이동은 기본적으로 단체버스를 이용합니다. 모임 시간을 잘 지켜주세요. 숙소 오누이권역 예절교육관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홍장남로 101번길 32 (도산리 265) 숙소 한옥집 한 켠에는 원래 집 주인이신 할머니가 살고 계세요. 밤늦게 숙소에서는 특히 조용조용 다니고, 뒷정리를 깨끗이 부탁드려요. 주소 충남농업기술원 : 충남 예산군 신암면 추사로 167 (종경리 365) 예산 슬로시티대흥 : 충남 예산군 대흥면 중리길 49 (동서리 84-5) 오누이권역센터 : 충남 홍성군 장곡면 홍남동로 473번길 79-22 (도산리 253-2) 생미식당(1일차 저녁) : 충남 홍성군 장곡면 홍남동로 546 (도산리 산 32-1) 한솔기권역커뮤니티센터 : 충남 홍성군 홍북면 매죽헌길 423 (노은리 45-3) 긴급연락망 장곡치안센터 041-642-0112 장곡119지역대 041-642-5119 장곡보건지소 041-642-5035 홍성의료원 응급실 041-630-6119, 6129 주최/주관 충남농업기술원 041)635-6212 seodc1@korea.kr http://www.cnnongup.net 삼선재단 02)756-5669 sscare@sscare.or.kr http://sscare.or.kr 협동조합 젊은협업농장 010-3131-1909 collabofarm@gmail.com http://collabo-farm.com 80 촌스러운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