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abo-farm AUG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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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식 논과 화신저수지의 저녁놀, 장곡면 지정리 2015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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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택기 홍곡마을 민택기사진관 3


PROLOGUE

앞으로 나타날 수많은 해강산들을 위해 정민철 jmchul@gmail.com

드디어 말도 많고 일도 많던 해강산프로젝트가 끝났습니다. 배움을 지속해야 할 청년들이 가능한 폭넓게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협업

각합니다. 앞으로 나타날 수많은 해강산들을 위해 농촌 지역에서 무엇을 준비하고, 어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와 이를 직접 실천에 옮길 정도로 지역민들의 두 청년에 대한 애정으로

필요하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또 한 단체의 강화보다 작은 단체의 분화와 연대가

농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너무 소수의 꼰대들에게 둘러싸여, 농업 분야만 접하고

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한 아이가 자라기 위해 마을 전체가

시작한 프로젝트가 무려 열 달 만에 마무리되었습니다.

중요하고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입장, 다양한 재능과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

순리필름의 제안으로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농장 주변 청장년 그룹들이 기꺼이 자기

어야 마을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시간과 마음을 내어주었습니다. 물론 ‘농장 꼰대들의 접근 금지’, ‘농장일과 무관한 여

펀딩, 출자, 후원 등 돈을 모은다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특히 농촌과 농업 부분에서가 고

의 내용으로 인해 멘토 그룹 내에서 격한 논쟁도 있었고, 2부 여행에서는 준비의 느슨

특히 펀딩은 이번에 처음 진행해보면서 과정상 문제와 의미전달의 한계로 여러 오해도

격적인 감정적 갈등이 시작되었고, 3부 발표회는 여행을 정리하는 과정이 늦어짐에 따

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을

에게 돈을 모은다, 청년들이 겸손을 모르고 농촌에서 농업을 하는 것만으로도 무슨 대

출자금과 펀딩은 수고에 대한 위로나 칭찬도 아니고, 개인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배당

행 시간과 자금 확보’라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1부 글쓰기 과정에서는 청년들이 쓴 글

민입니다. 젊은협업농장의 출자금, 해강산프로젝트의 여행 경비 펀딩이 그러했습니다.

함과 시기, 기간 등의 문제로 농장과 충돌이 있었습니다. 여행 기간 중에는 해강산의 본

발생하였습니다. 해강산군도 사람들의 펀딩으로 간 여행으로 인한 압박감놀면 안 되고 뭔

라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청년들이 놀러 가는데 지역 사람들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단한 일을 하는 것 마냥 착각하고 있고, 농장은 그것을 사주하며 너무 요란을 떤다는 날 카로운 비판도 받았습니다.

느꼈고 결론적으로 놀았지만 돌아와서도 펀딩에 대해 무엇인가 보답

이 없으니 이익을 바람도 아닐 뿐더러 어쩌면 그 과정과 일을 통해 향후 내가 도움을 받 지 않을까 하는 보험의 차원도 아닐 겁니다. 출자의 형태로 시작한 활동들은 얼마 되지

오로지 두 명의 지역 청년을 위해 박완, 배지현, 신소희, 박영임, 김정민우, 민택기, 홍

도 않는 그 출자금이 사업 중단의 욕구를 극복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는 말도 들었

다. 정영환, 김성근, 강경욱 등 농장 사람들은 그들이 빠진 공백을 한 달 이상 묵묵히 메

중요한 동아줄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기영, 박형일 등이 해강산프로젝트에 직접 결합하여 논의하고 각 과정을 진행하였습니

습니다. 어렵더라도 활동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그 일이 지역의 일로 자리매김하는데

워주고, 밤늦게까지 전시회 준비를 도왔습니다. 루시, 이기상, 정인순, 조한옥 등은 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출자와 펀딩이 공공기금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젊은협업농장의 출

표회 준비 과정에서 여러 지원을, 이영남, 장유리, 풀무 고등부 이한유는 전시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등 해강산 두 명을 둘러싸고 이십여 명의 사람들이 애를 썼습니다. 그리 고 또 다른 수십여 명이 여행 경비를 모아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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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노력은 단지 두 사람만을 위한 일이 아님을 해강과 강산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

자금은 향후 새롭게 만들어질 다양한 협동조합 농장이나 지역 단체들에게 출자의 형식 으로 그 이상 되돌려 줄 것입니다. 또 개인에 대한 펀딩 역시 자기 삶의 과정 중에서 받 은 것 이상으로 사회에 되돌려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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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기금이 은행과 같은 형태로 필요한신청한 곳에 자원이 배분되고 다시 그 곳으로 되

돌아오는 방식이라면 농촌 지역에서의 공공기금은 지역 사람이나 단체에 출자금, 펀드

의 형태로 모아지고 이들이 다시 지역의 다른 사람, 단체에게 혹은 다른 지역으로까지 나눠지고 순환되는 형태입니다. 지역 전체에 구름처럼 떠돌다 비와 같이 뿌려지고 다시 그것이 구름이 되는 순환, 크라우드crowd 펀딩이 아니라 클라우드cloud 펀딩이 되는 거 죠. 농촌에서는 그 자원이 어디에서 누구에게 언제 왜 필요한지 서로 훤히 알고 있고, 또 알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지역성과 대면성을 가질 수 없는 도시의 방식한 곳으로 모 여지고 신청을 받아 심사를 하고 뿌려지는을

굳이 따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농사를 처음 배울 때 누구에게서 무엇을 보았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처음 배울 때 본

것이 그 이후 모든 것의 표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지역의 일들이 생기고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청년들이 자기 삶의 모양과 방식을 상상하고 만들어 가는 중요한 배움을 얻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앞으로도 오누이친환경마을협동조합, 행복농장, 사진전시회 등 지역에서 일어나는 많 은 일들에 대해 계속해서 공공기금을 확대해 갈 예정입니다. 준비하고 계시기 바랍니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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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2 COVER STORY

계단식 논과 화신저수지의 저녁놀 / 민택기

4 PROLOGUE

앞으로 나타날 수많은 해강산들을 위해 / 정민철

10 DAILY LOG

2015년 8월 젊은협업농장 하루하루

16 FEATURE STORY Ⅰ

청년농부 해강과 강산, 해강산프로젝트

17 해강산프로젝트 5문 5답 / 구해강 글, 손형민 정리 20 해강산프로젝트에 대한 단편적인 생각들 / 구해강 23 나에게 해강산프로젝트란... / 김강산 26 농부여행 발표회 / 이영남

38 FEATURE STORY Ⅱ

언론이 보는 젊은협업농장

38~45 젊은협업농장 이해하기; 경향신문 보도를 중심으로 / 김성근

39 “우린 취업이 아니라 ‘취농’이죠” 2015년 8월 10일 경향신문 보도 / 권순재 44 협동조합 젊은협업농장 2015년 상반기 언론 보도 목록 / 김성근 정리 46 젊은 땀에서 농촌의 새로운 미래를 보다 / 박형욱

50 A DAY @ COLLABO-FARM

젊은협업농장의 하루 <경욱 편> / 강경욱

54 BICYCLE RIDING

시끌시끌바이시끌 8월 라이딩 / 김강산

58 ABOUT FARMING

지금 농장 총채벌레와 사투 중 / 정영환

62 COLLABO-FARM STORY

장곡지역과 젊은협업농장2 / 정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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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2015년 8월 젊은협업농장 하루하루 1

sat

무더위로 인해 작물이 자라지 않아 수확할 것이 없음. 일이 없으니 몇

사람은 청포대해수욕장에 놀러갔

2

sun

다 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3*4 m*tu

6

thur

더 이상 농장일이 없음. 청년들은 정동희 조합원 집에 가서 하우스 보 수 공사 아르바이트를 함.

역시 수확은 없음. 수원 ‘행복한우 리동네의원’ 청소년들 행복농장과 보리밭에서 체험활동을 함. 농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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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wed

육농축제 시작. 6, 7, 8일 오전 농 장 실습.

장곡지역협력위원회가 열리다. 장

wed

thur

3농혁신대학 친환경농업활성화과

정 ‘지역조직화’를 주제로 협업농

15 sat

장 사례 발표. 농장 사람들 모두 참

음. 아직 생각만 하고 있는 지역조

들이 대규모로 참가하여 농촌에서

동 수준이 아닌 농장에서 대학생 대

고려대 농활대 학생들 지역을 둘러 보고 서울로 출발. 농업과 농촌에

대해 나중에라도 기억할 수 있는 좋 은 인연, 기회가 되었으면 함.

가했으나 잠자고 온천하고 밥만 먹

팟캐스트 팜므파탈 녹음. 지역 청년

시작. 기존 단기 체험이나 봉사활

에서 농활에 접근함.

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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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사회학과 학생 15명 농활

상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차원

하기 위해 우선 몇 곳을 견학하기

향을 준다는 이야기를 듣다.

교육농협동조합에서 진행하는 교

시 파종.

12

곡면 면단위 차원 발전계획을 수립

마음을 다친 청소년들에게 좋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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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심어도 싹이 나지 않아 다

직화라는 주제에 대해 발표를 요청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의 일과 사랑

받아 난감. 의미부여와 계획만 이야

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으나 며칠 콩

기 됨. 토론회가 주제에 집중하지

밭에서 일한다고 지친 사회자의 정

못하는 한계.

신없음으로 인하여 청년들의 일에

대해서만 이야기가 된 듯. 처음으로 공개방송으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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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연속적인 폭염특보. 저녁 늦게 까지 해강산프로젝트 3부 발표를 위한

준비 작업에 성근, 경욱 등이 함께

참여. 여행에서 발표까지 시간차가 커서 몇 달 전 여행을 2~3번 반복해 서 머릿속으로 다니고 있다고 민작

가가 말하다.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전시와 연결이 될지 궁금.

10

10

mon

교육농축제에 참가했던 고등학교

16

sun

3학년 상현군이 남아서 농장 일에 참가.

경향신문에 젊은협업농장 기사가 올라오다. 순간적으로 Daum 메인

에 올라왔다 사라지는 동안 많은 댓 글이 달려 흥미진진하게 읽음.

18 tue

쌈채소 어린잎에서 잎 끝이 타들어 가는 현상이 나타나 전체적으로 칼

17

mon

강산군 문당리 정농회 모임 참가. 경욱, 성근 운전 연습 시작.

슘제를 살포하다.

해강산 프로젝트 발표 준비로 새벽 까지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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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대전 공감만세를 통해 아프리카 지

역 다양한 나라에서 모인 사람들이 협업농장 견학. 안내한 영환군 즐 거운 시간을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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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thur

해강산 프로젝트 발표회. 해강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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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다고 하고, 3부 발표회 멘토

sun

로 참가한 민작가는 만감이 교차한 듯. 발표 후 조촐하게 가지려던 저

최근 산촌자본주의 등 지역 만들기

오누이권역 센터 건물 내부 인테리

로 사회 발전 방향의 대전환이 일어

어를 위한 논의를 시작하다. 공간은

학과, 현재 대전대학교 지역협력연구원 객 원교수도

동행. 2011년 북해도를 방

문했던 심재원씨가 저녁 대접. 정영환군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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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군 주최 마을대학에 어쩔 수 없 이 참가하다.정민철, 신소희

홍성유기농영농조합법인 창립 10 주년 기념행사에 참석. 협업농장

환대를 받는 사람과 다시 우리 지역

청년들이 뒷정리를 하다.

에 방문한 사람을 환대하는 사람이

22 sat

스즈끼 교수 일행 홍동과 풀무학교 장유리, 박형일 안내, 강 안내,

젊은협업농장구해

행복농장, 생미식당, 심재

원 농가를 둘러보다. 저녁에는 대

성군이 4년 전 북해도 방문 때 사진

을 모아 발표하고 협업농장 청년들 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간담회를 가지다. 북해도 지역과의 청년 교 류, 청년들의 일본 진학 등 다양한 제안을 주고받다.

다르다 보니 항상 경제적 어려움이 발생. 이번에는 홍순명, 박완, 심재 원, 김명희씨 등이 모두 역할을 나

소식지 평가 및 계획을 위한 회의.

병원에 다녀옴.

겪는 딜레마. 교류 지역을 방문하여

하고 바람.

파』 책 출간 소식.

뒷다리 마비 증상이 나타남. 가축

지역에서 국제 교류를 하면서 매번

로운 모델이 될, 공간이 되었으면

이종태 조합원 방문. 들녘에서 『양

효리 모기에 의한 기생충 감염으로

대전으로 출발.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농촌의 새

우치다 교수훗카이카쿠인대학 지역경제

정영환, 홍성농업

시간이 소비됨.

었다. 스즈끼 교수 일행은 강의 후

이 아니라 농업과 농촌을 생각하는

수 있게 지원해주었었다. 제자인

전심포지움에 참가.

행사가 많아 일정 확인하는 데만 긴

다른 모습들을 보고 여러 생각이 들

곡면의 주민들이, 또 지역 사람들만

해도로 초대하여 여러 곳을 돌아볼

wed

가 되었다. 하나의 사건에 대응하는

람들이, 오누이 권역만이 아니라 장

고, 2011년 홍동 청년들 9명을 북

26

도 몇 가지 제안을 하여 많은 참고

년들만이 아니라 지역의 다양한 사

조사·연구하여 일본에서 발표하였

행사가 많은 주간. 홍성유기농업발 기술센터

홍성의 지역 만들기 과정에 대해서

사람들이 일을 만들어 가게 됨. 청

즈끼 교수는 2010년 홍동 지역을

tue

나고 있는 일본의 현실을 설명했다.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공간에 모인

fri

다. 농장 사람들 모두 참여. 후쿠시

실적 적용이라는 주제로 시작하여

다출혈.

스즈끼 교수삿포로국제대학 방문. 스

집회에서 스즈끼 교수 특강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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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사태 이후 재생가능 에너지의 현

녁 식사자리의 정보가 노출되어 과

21

풀무학교 강당에서 열리는 무교회

27

thur

오누이친환경마을협동조합의 수익 을 위한 오색미 포장지 개발에 대

누고 경비를 부담하여 진행.

한 논의.

로렐라 살포. 작물이 여전히 자라지

식에 참가하다.

홍성의료생협 우리마을의원 개소

홍성농업기술센터에서 가져온 클 않아 여러 방법을 적용해 주는 중.

28 fri

충남친환경농업인연합회 전진대회 참가.정영환

3, 6번동 밭 만들기. 상추의 생육부 진으로 수확을 제대로 해 보지도 못 하고 밭을 새로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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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sat

2학기 풀무 고등부 창의적재량활동 수업 시작.

정다운농장에서 일하는 이충희군 이 전어를 가지고 와서 행복농장에 서 회식이 벌어지다.

30 sun

복잡한 일정으로 계속 미뤄졌던 바

이시끌 라이딩. 장곡 협업농장에서 출발하여 청양의 지천구곡을 거쳐 부여를 찍고 되돌아오는 일정으로 진행. 전공부 학생 2명을 포함하여

11명이 참가. 부여까지 이장님 내 외가 오셔서 점심을 사주시다. 점

심 후 청년들은 자전거로 금강을 따라 군산까지 가서 기차로 돌아 오는 코스로 변경하여 진행. 중년 들은 왔던 길을 되돌아오려고 했지 만 중간에 모두 트럭에 의존. 가까

이 있지만 가보지 못한 곳이 많은 듯 하다.

31

mon

또 어쩔 수 없이 마을대학에 참가하 다.정민철,

신소희

지역 만들기의 장

기적인 구상을 논의하는 자리임에

도 이를 직접 진행할 적임자들이 참 석하지 않아 걱정. 큰 그림을 논의 하고 각자 맡은 영역에서 일하자는 목적으로 만든 프로그램임에도 공 유가 부족한 듯.

갑작스럽게 청년들이 질문하고 답

하는 방식의 강의가 이루어지다.

더 갑작스럽게 주형로, 이기상, 김 지현 등이 참가하는 회식자리가 이 루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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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여행 과정은 어떠했는가? A. 지난 3월, 17박 18일로 태국 방콕에서 캄보디아 프놈펜까지 약 700km 정도의 거리를 자전거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 첫날 태국 수도인 방콕 구경을 하고 이튿날부터 자전거를 탔 는데, 이틀 예상한 거리를 하루에 주파한 이후 처음 계획했던 것과 는 완전히 바뀌고 말았죠. 자전거 타는 날이 줄었지만 미리 준비되 지 않았던 여유 시간인지라 계획적으로 사용하지를 못해 도착지인 프놈펜에 6일을 머물었습니다.

Q. 여행 후 소감은? A. 소감은 별 다를 게 없습니다. 그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왔다’ 이 한마디에 여러 의미를 담고 싶네요. 다른 나라, 다른 문화, 다른 기 후, 다른 사람들, 하지만 모두 같은 하늘아래 사는 사람들, 그리고 나는, 나는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나의 감정, 생각, 관계, 이 것들은 나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거창하진 않지만 그저 약간의 고 민과 짐을 내려놓고 자신감이랄까 젊음의 패기와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Q. 앞으로 포부는? A. 저희는 앞으로도 이 지역에서 계속 배워갈 것이고 살아갈 것입 니다. 그것이 1년이 될지 5년이 될지 평생이 될지는 모릅니다. 그 래도 이곳에서 배운 것들, 살아왔던 시간이 어디 가지는 않을 것이 라 생각합니다. 안 그런가요? 조만간 군대에 가겠지만, 그리고 저 는 게으르고 쉽게 나태해지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너희들이 미래의 주인공이다’라는 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잘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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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유기농영농조합 소식지 제3호(2015. 07. 20) ‘청년 농부 해강과 강산, 해강산 프로젝트를 하다” 구해강 글, 손형민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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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강산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라며 이 야기를 시작하긴 참 진부할 것이다. 자주

해강산프로젝트에 대한

했던 이야기이기도 하고 지금의 내가 이

야기 할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런 말 대신

단편적인 생각들

나는 ‘해강산프로젝트를 거쳐가며’ 라고 글을 시작하고 싶다. 해강산프로젝트 이

전의 나와 이후의 나를 바라보면서 해강

구해강

산프로젝트가 나에게 커다란 의미나 전

toragu@hanmail.net

환점, 배움과 깨달음을 주었는지 하는 거

“해강산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의 밑 바닥을 보고 나의 단점과 장점을 보았다.

창한 말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러운 흐름 과 경험으로 나를 채워가는 과정이었음

‘내가 이런 놈이었구나’를 많이 느꼈다.

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렇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으면서

작년 이맘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

여전히 고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있고 많 이 나아진 부분도 있다. 그래도 계단을 밟아 올라가듯 조금씩 나아져 가고 있지 않을까.”

까. 일기장을 펼쳐 찾아보니 작년 6월부

터 일기가 없다. 이맘때 방통대 중간고

사 공부를 했던가? 농장일이 많았던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비단 이 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작년 전체가 거의 이 런 식이다. 내가 무엇을 했고 어떤 생각

을 했으며 무엇을 배웠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이 별로 없다. 대학은 방송통신대학 으로 대신하고 젊은협업농장에서 농사를

배우며 공부한다는 선택을 한 나는 어쩌 면 거기에서 만족한 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것만으로도 나에게는 벅찬 일이었는지

도. 그럴 리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지만. 분명 여러 공부와 배움들이 있었건만 그것들 은 천천히 체득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기

억 속에서는 잊히고 말거나 정리되지 않 은 내 방처럼 어지럽게 있어 어디에 무엇 이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말았

다. 해강산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의 나 는 대략 그런 모습이었다. 20

사진

순리필름

해강산프로젝트에서 내가 가장 의미 있

었다고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1부 글쓰기다. 어렵고 힘든 적도 있었지만 그

건 아마 그만큼 내가 글쓰기를 어려워하 게 되었다는 말일 것이다. 학교에서는 그래 도 글쓰기반도 했었는데...

1부 글쓰기를 통해

일상을 기록하고 나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이 없었다면 이후의 여행 과 발표, 그리고 지금의 나는 생각을 정

리하길 여전히 어려워하고 기록으로 남 긴 것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

이라고 정리와 기록을 잘하는 것은 아니 지만 조금씩 하고 있다.

해강산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생각했던 것은 안 해본 경험하기였다. ‘잘해보자’ 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지금까 지와는 다른, 내가 그동안 해보지 못한 경험들을 할 수 있고, 하고 싶다는 마음

에서 오는 긴장과 흥분이었다고 기억한 다. 결과적으로 분명히 새로운 경험을 하

였다. 그 과정에서 힘들고 짜증나기도 하 고, 하기 싫어질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내가 예상하였던 종류의 새로움지식, 육체 적 경험 등이

아니라 인간관계에 대한 갈등

을 포함한 아주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

대처를 경험하였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 도 동남아를 자전거로 여행한다는 진귀 한 경험까지 하였었지. 그러한 경험을 하 면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수동적으

로 받는 입장에서 능동적으로 찾아가려 는 입장으로 바뀌려 한 것 같다. 다른 농

장을, 농업을 경험해보고 싶어 약 한 달

간 지역 농가에 돌아다니기도 했고 얼마 21


전 부터는 기타와 사진,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다. 내년에는 일본 삿포로에 가고

싶어져서 일본어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군대 때문에

안절부절 했었는데 급한 마음을 버리고 지금의 일상에 집중하게 되었다.

해강산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의 밑바 닥을 보고 나의 단점과 장점을 보았다. ‘내가 이런 놈이었구나’를 많이 느꼈다.

그렇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으면서 여전히 고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있고 많 이 나아진 부분도 있다. 그래도 계단을

밟아 올라가듯 조금씩 나아져 가고 있지 않을까.

사실 해강산프로젝트가 끝나고 시간이 꽤 나 흘렀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정리가 안

나에게

해강산프로젝트는...

된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할지 참 어렵다.

김강산

코끼리를 만지며 그 때 그 때 눈, 코, 입, 귀,

gel372666@gmail.com

꼬리, 다리만 이야기하고 전체 모습을 이야

기 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지금도 하나의 글을 만들지 못하고 단편적인 글들을 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해강산프로젝트를 전시까지 마무리하고 글을 쓰자니 굉장히 막막하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리가 안 되고, 복잡한 생각들이 마구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래

서 지금 해강산프로젝트에 대한 마무리 글이기보다는 전시회의 주제가 ‘721km의 단상’이였다면 이 글은 지금 내가 해강산프로젝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상들을 적어볼 생각이다.

첫 번째로 해강산프로젝트가 지역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이 되었다. 나는 작년 7월에 협업농장에 오게 됐다. 해강이형처럼 풀무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고, 그저 대학 가

기 전에 3개월 정도 있고 싶다 하고 갑자기 들어오게 돼서 지역에 알고 있는 곳도, 아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 작년은 농장에서 일을 많이 하다 보니 농장과 밀접한 단

체나 사람들이 아닌 이상 잘 알지 못했고, 농장에 1년 동안 있으면서도 이야기만 듣

고 안 가본 곳도 많았다. 그런데 해강산프로젝트 자체를 농장 안에서만 진행하지 말자는 생각이 있어서 2부 여행은 지역에서 펀딩을 받기로 했다. 또 3부 전시 준비 를 하면서도 지역 사람들을 만나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두 번째로 조금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해강산프로젝트에 대해서, 특히 크라우드 펀 딩에 대해서 스스로 이해를 잘 못하고 있었다. 펀딩이라는 방식도 잘 몰랐고, 왜 우

리가 여행 가는데 지역 분들에게 펀딩을 받아야 하는지에 그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

다. 오히려 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이해할 수 있었다. 먼저 알았더라면 더 잘할 수 있 었을 텐데 라는 생각도 든다.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내가 무언가를 할 때,

그 당시엔 몰랐던 것들을 시간이 지나면서 더 잘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여행을 다

녀와서 4개월 동안 정말 아무 것도 안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기간이 길긴 했어도 필요했던 시간이었지 싶다. 아마 그때 시간이 지나며 여유를 가지고 생각하지 않았 다면 발표회를 할 때도 힘들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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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나는 요즘 가끔 방탕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나는 보 기와는 다르게, 안 그렇게 보이려고 하지만, 매우 소심하고 내성적이다. 그래서 주 변 사람들 눈치나 분위기를 보고 의식을 많이 한다. 해강산프로젝트 과정에서 펀

딩도 그렇고, 지역에서 처음 있는 사례다 보니 주변의 관심도 많이 받고,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대부분이 좋은 이야기지만 많이 듣다 보면 은근한 부담감과 잘해야

“먼저 알았더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 데 라는 생각도 든다. 조금 다른 이야기 일 수 있지만 내가 무언가를 할 때, 그 당 시엔 몰랐던 것들을 시간이 지나면서 더 잘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여행을 다녀

한다는 압박도 생기기 마련이었다.

와서 4개월 동안 정말 아무 것도 안 했지

또 초, 중반까지만 해도 해강이형과 나는 비교를 많이 당했다. 대놓고 하진 않지

만 지금은 오히려 그 기간이 길긴 했어도

만 다들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말도 이때는 너무 거슬렸다. 나중에는 형보다 잘 해

필요했던 시간이었지 싶다.

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스스로 비교하기도 했다. 해강이형과 관계가 틀어

진 이유도 여기서 시작된 것 같다. 비교가 시작되니 프로젝트를 같이 해도 동료보 다 경쟁자로서의 의식이 더 강했다. 심지어 알면서도 신경을 끄지 못하고, 변하지

도 못하고, 오히려 안으로 숨으려고 하는 내 모습이 찌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 무튼 주변의 눈치와 잘해야 한다는 압박, 비교로부터 시작된 은근한 열등감을 통

해 내 성격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요즈음은 이런 압박과 의식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방탕하게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가끔 한다. 미친 듯이 술 마시고 클럽 다 니고 하는 방탕이 아닌 주변에 민폐를 조금 끼칠 수도 있지만 눈치 보지 않고 즐기 며 살고 싶다.

앞으로 해강산프로젝트는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우리가 너무 망쳐놔서 다음에 또

한다고 하면 욕부터 먹지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괜한 걱정일 수도 있지만 마음 한 편에는 다음 해강산프로젝트가 진행되는데 내가 걸림돌이 되는 게 아니기 만을 바

란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해강산프로젝트를 어떻게 생각하게 될 지도 궁금하다. 까먹진 않을 것 같고 어떻게 기억될까. 나에게 무슨 영향이 있을까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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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순리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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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행 실내가 어두워 생활하기 어려우면 촛불을 켜거나 밖으로 창을 내야 한다. 칠흑같이

이런 정의에 따르면 우리가 말하는 묻지마 관광에는 마땅한 번역어가 없을 것 같

창을 내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기에 우리는 대체로 촛불을 켠다. 이

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 이에 비해 ‘투어’라는 말은 일상적으로 부담 없이 쓰이

도해야 한다. 밖으로 창을 내면, 낮에는 창으로 햇살이 들어오고 바람도 선선하게

는 일상적 맥락의 여행을 다녀왔을 것 같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도 투어만으로는

록 비용이 들긴 하지만 밝음이 비교되지 않는다.

“반면 여행자traveler는 여행 일정이 더 유연하고 더 선택적으로 움직인다. 여행

어두운 밤에는 촛불 하나만 켜도 훤하다. 촛불을 켜는 것이 손쉬울 뿐더러 비용도

다. 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묻지마 관광의 그 독특함을 표현할 수 있는 외국어를 찾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벽을 뚫어 밖으로 창을 내는 것도 시

는데 이 말은 일정한 장소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말과 어울린다. 해강산도 투어라

불어온다. 달이 뜨는 밤이면 달빛도 들어온다. 촛불 하나에 의지하는 것보다는 비

펀드까지 조성해서 요란하게 다녀온 해강산 여행을 다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여행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일상의 꽉 막힌 벽을 뚫어 밖으로 창을 내는 여행이 필

travel이란

요하다. 특히나 활동량이 많은 젊은 사람들에게는 여행은 생필품이다.

때로는 ‘극심한 고통’이라 해석하기도 하는 불어 트라바유travail와 관계가 있다.”

해강산처럼 젊은 사람들에게 묻지마 관광을 다녀왔느냐고 묻는다면 상당히 불쾌하

일하면서 여행한 낭만이나 현지에서 임금노동을 했던 이주노동자가 아니라면 여행

이야기를 하면서. 물론 묻지마 관광을 다녀왔는지를 확인해서 문책하려는 의도는

다. 그러나 여행 도중에 겪게 되는 심적 고통은 오래 간다. 혼자 떠났다면 혼자서,

은 그들이 생각하는 여행이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무 고통이 없는 여행을 함축한다. 그러나 여행이란 삶의 고통에 대면하기 위해 떠

게 생각하겠지. 관광이 아니라 이것은 여행이라 말하면서 그 차이점에 대해 낱낱이

자에게 극심한 고통은 심적 고통일 것 같다. 육체적 고통은 지나고 나면 금세 잊는

아니므로 후자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당연히 크다. 그러면서도 역시 궁금해지는 것

둘이나 셋이 떠났다면 그 사이에서 갈등이 증폭된다. 묻지마 관광은 다 잊은 채 아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1년 내내 학수고대하며 기다렸다가 휴가를 떠 난다. 대저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직장과 여행지는 전혀 별개의 공간이고 서

나는 여행을 의미한다. 결국 여행하면서 겪은 고통을 어떻게 이해하고 정리하느냐 하는 것이 그가 어떤 종류의 여행자임을 말해주지 않을까?

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그들은 농사를 짓지 않는 것이다. 이제 입추가 지나 선선한

“여행에는 위험도 존재한다. 위난peril이라는 단어는 라틴어로 ‘여행을 나서면 생

의 노동을 견딜 수 없다는 도시의 강박적 광풍도 잦아들고 있다.

작별farewell을 고할 때면 페어fare라는 단어가 고대 영어에서는 두려움fear과 관련

바람이 불어온다. 더위가 물러가고 있다. 더불어 휴가를 떠나지 않고서는 고된 1년 해강산도 그랬던 것일까, 도시습성이 잔재로 남은 여행을 다녀왔을까? 아닐 것이다. 해강산은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패기에 찬 젊은 농부답게 뭔가를 농

사짓는 여행을 다녀왔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들이 돈을 모아 여비에 보탰 을 리가 없고, 전시회를 연다며 요란법석을 떨지도 않았을 것이다.

“글쎄요, 우리는 작물만 재배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도 경작한답니다. 세상이 먹는

작물을 재배하는 것도 물론 우리가 하는 일이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경작하 는 것도 우리가 할 일이랍니다.”

패기에 찬 젊은 농부답게 이런 포부로 여행을 다녀왔을 것이다.

“불어 ‘향하다’turn를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관광객tourist은 일정한 장소로 여행

을 떠나는 사람들로 정의된다. 일반적으로 여행 일정에 따르는 관광여행은 만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여유가 있어서 즐거움을 위해 여행할 수 있다.” 로버트 고든, <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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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는 보통 오랜 기간 심하게 육체적으로 하는 노동work을 뜻하면서

기는 위험’을 뜻하는 페리쿨룸periculum에서 유래한다. 여행을 떠나며 누군가에게 이 있다는 것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이국에 나가는 것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여행이 특별한 매력을 갖는 게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다. 여행은 모험이다. 그래서 여행자는 순간적인 판단을 내릴 줄 알아야 하고, 예상치 못한 것에 대처하 고 위험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모험을 떠나지 않는 젊음은 젊음이 아니다. 세상을 달관한 것처럼 애늙은이로 나이 를 먹어서는 안 된다. 여행을 떠나야 한다. 다만, 뒤에 남겨진 자들을 조금은 생각

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식들이야 무정하게 떠나지만 부모는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비단 부모만이 아니다. 뒤에 남겨진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해강산 은 뒤에 남겨져서 묵묵히 농사를 짓던 동료들에게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고는 즐겁게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뒤에 남겨진 자들은 농사를 지으면서도 여행자의 안 위를 걱정했을 것이다.

여행자(밖으로 창을 낸 자, 갈등하면서 길을 걸은 자, 모험을 떠난 자)에게 이제 남 은 것은 복잡한 상념을 위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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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농부여행 홍동-장곡지역은 국내 최대의 생태농업지역이다. 그렇지만 1970년대까지도 이 지

경륜이 있는 사람은 경륜을, 애송이는 순수한 직감을 이야기하라는 뜻은 아닐까?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광대한 변화가 생겼다. 지난했던 농사여정을 이야기하기보다

러나 경륜이 있는 사람은 회고로만 말할 수 있는 직감을 애송이는 과거가 아닌 현재

린다는 뜻으로 바다가 육지로 변하는 것처럼, 세상변화가 광대함을 이르는 말의

는 것은 경륜 때문이 아니라 나이 좀 먹었다는 사람들이 잊고 사는 순수한 직감 때

역은 여느 지역처럼 관행농사를 지었다. 그 후, 유기농을 짓는 농가가 아주 느리게

애송이가 열 가지를 이야기하면 여덟아홉 개는 대개 아는 사실일 확률이 높다. 그

는 한 낯선 농부의 여행을 말하는 것이 좋겠다. 동해양진東海揚塵, 동해에서 티끌이 날

로 말할 수 있다. 다 안다고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애송이에게 귀를 기울여야 하

의 여행이었다.

문이다. 순수한 직감의 안목으로 여덟아홉 가지를 다시 보면 새로운 면이 보일 것이

씨앗은 한 농부

“선생을 처음 대한 것은, 1975년 가을, 하늘이 푸른 9월에 풀무학원을 찾아주셨을

다. 선배로 불리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순수한 직감이 잘 자라도록 돕는 것이다.

때다. 선생은 방문지마다 과거 식민통치의 죄를 사죄했다. 농약성분으로 기형원숭

주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받는 사람 역시 중요하다. 고다니 선생이 주었다는 사실 하

말 것을 당부했다. 고다니 준이치 선생이 그때 강조하셨던 유기농업으로, 한국유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이 교직되어야 비로소 동해양진을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가 속출하면서 시들시들 죽어가는 사례를 들며 한국이 부디 일본의 전철을 밟지

나 만으로는 변화를 말할 수는 없다. 여행자가 주는 것을 지역민이 받았기 때문에

기농업 역사의 첫 장이 열린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홍순명, <농부의 길>, 2006, 그

해강산이라는 애송이들이 던져준 것을 받는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물코, 역자 후기 중에서

제가 여기에 오기 전에 책을 좀 읽었는데요, 세상에 이런 끔찍한 일이 있더라고요,

당신들은 이런 전철을 밟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일본에서 온 농부여행자는 이렇게 접근하지 않았다. 그이는 자기 농사경험을 이국의 여행지에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해강산은 아직 20대 초반이고 농사경험도 일천하다. 한평생 농사를 지은 사람도 어 려운 것을 갓 농부가 된 애송이가 무슨 농사경험을 말할 수 있을까? 고다니 준이치 와 애송이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물론 그런 면이 있긴 있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닐

것 같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고다니 준이치라는 위대한 농부가 자란 토양을 살펴 보면 다른 면을 볼 수 있다. 고다니 선생은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나는 17살에 내 일생을 어디에 바칠까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결론은 간

단했습니다. 나는 농촌에 태어나, 농가의 장남으로 자란 사람입니다. 그러니 어떻

게 해서든지 내가 태어나고 내 뼈를 묻을 이 마을을 한평생에 걸려, 조금이라도 살 기 좋은 훌륭한 마을로 만들자. 내 한 평생을 여기에 바치자. 어린 마음이지만 이렇 게 굳은 결심을 하고 20년 동안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것은 17살의 직감이 이어진 것입니다. 순수한 청년의 마음에 비치는 직감만큼 정확한 것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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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바심 정말이지 해강산이 이번 여행을 어떻게 말할지, 어떤 사진을 펼칠지 궁금하다. 글만

해강산도 고수들의 정석대로 하고 있는 듯하다. 전화벨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무의

책에서 보는 사진과 갤러리에서 보는 사진은 동일한 사진이어도 다르게 보인다. 여

울렸으니까 라고 답한다면, 받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굳이 전화를 받은 이유

이 아니라 글과 사진이 동시입장하는 특별한 형식이라는 점에서 더욱 궁금해진다. 행책에서 읽는 문자와 갤러리에서 듣는 음성은 동일한 정보라도 파장이 다르다. 이 런 점 때문에 해강산 여행기를 전시회 형식으로 만나는 것은 아닐까?

얼마 전 풀무학교 생협 정원을 걷다 한 농부를 만났다. 나비가 바람을 타고 있었고

해는 서산으로 지고 있었다. 꽃밭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농부는 바쁜 사진 찍기를 잠시 멈추고는 이런 말을 들려줬다.

“여기 꽃들은 말이죠, 지금 사진을 찍어야 가장 아름답습니다. 지금 시간의 빛이 꽃 들과 가장 잘 어울리기 때문이죠. 아셨나요?”

금시초문이었다. 빵을 먹으러 수시로 드나들면서 텃밭정원의 아름다움에 매번 감 탄하기는 했어도 시간대별 아름다움은 보지 못했었다. 사진 찍는 농부의 얘기인즉

슨, 아침에 피어난 꽃은 저녁에 빛난다는 것, 빛과 사물이 서로 궁합이 맞을 때 사 진이 세상에 나온다는 것이었다.

여행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침나절에 여행한 것을 저녁나절에 전시하는 것이야 말로 찰떡궁합이라 생각한다. 그러기에 세상에 뭔가를 내보낼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과 여행, 기록과 예술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는 고수들은 이러니저러니 하면서 조언을 해준다.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여행 중에 사진을 찍는 것은 좋으나 그 때 그 때 SNS에 올리지 말라. 여행 중에는 여행지에 집중하라.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있었던 일을 다 기록하겠다고 설레발을

치지 마라. 그 대신 없어질 것들이 저절로 없어질 때까지 유유자적해라. 어느 정도

식 중에 전화를 받는다. 그럴 때 왜 받는 것이죠? 라고 물어본다면 그거야 전화벨이

는 무엇인지요 라고 다시 한 번 불어봐야 한다. 누구나 걸려오는 모든 전화를 다 받

는 것은 아니기에 두 번째 물음부터 전화보다는 다른 것을 말하게 된다. 해강산이 ‘ 방콕에서 프놈펜까지 자전거 여행의 기록’ 전시회를 지금 여는 이유가 궁금하기만 하다. 여행지에서 돌아온 후 얼마의 시간이 흐른 지금 전시회를 여니 가서 묻고 싶 다. 어떻게 지금이죠? 전시회를 택한 이유는 무엇이죠?

사진에는 이야기가 감춰져 있을 것이다. 이야기의 묘미는 갈등과 반전이다. 방콕

의 풍경은 아름다웠어요. 프놈펜도 참 아름다웠어요. 이런 얘기를 하겠다고 초대장 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행이라는 말이 입에서 발화된 시점부터 방금 전 오

프닝 리셉션이 시작되는 순간까지 갈등과 회의의 연속이지 않았을까? 전시회이니 만큼 사진들의 아름다운 배열도 볼 수 있으며 사진에 담겨져 있을 이야기도 찬찬 히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바심은 타작의 순 우리말이다. 이 말을 논에서 꺼내 일상으로 가져가기 위해 확장

해보면 다음과 같다. 벼 베기를 하면서 논을 떠나는 순간부터 사람 입으로 들어오 는 순간까지의 과정까지 아무리 풍년이 들어도 적절한 시기에 벼 베기를 하지 않으

면 얼마 지나지 않아 벼는 모두 썩어버릴 것이다. 타작을 해서 알갱이로 만들어도 정미소를 지나지 않으면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쌀로 탈바꿈할 수 없다. 쌀이 아무리 많아도 물을 만나 밥으로 탈바꿈해서 인간의 입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굳이 이런 재해석을 통해 일상으로 데려가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작도 중요하지 만 바심도 그에 못지않기 때문이라 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떠올라야 할 것이 떠오를 때 여행을 기록하라. 구체적인 시점은 사정

여행지에서 보낸 시간이 경작의 시간이었다면 여행에서 돌아와 전시회에서 동네

한 것은 혼자 먹지 말고 사람들과 나눠 먹어라.”

면 썩어 없어져 버리겠지만 전시회에서 사람들과 나누면 세상에 이로운 것으로 탈

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나의 굵직한 줄거리가 형성될 때가 그 때이다. 그리고 기록

사람들과 나누는 시간은 바심의 시간이다. 여행에서 겪은 것들을 흉중에 그대로 두 바꿈한다. 여행을 다녀온 자는 여행을 바심해야 한다. 전시처럼 여행을 바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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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애송이를 내세워 해강산이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100% 완성품을 가지고 왔을 것 같지는 않다. 애송

“나는 앞서 돌보는 사람과 유아 사이에서 일어나는 친숙함과 접촉이 유아가 살아

을 것이다. 씨앗을 키우는 것은 선배의 몫이다.

이 친숙함과 의존성은 그들의 생존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조앤 에릭슨, <감각의

이가 무슨 그리 대단한 선물을 가져왔을까마는, 그래도 해강산은 씨앗을 가지고 왔 (1) 이번에 해강산프로젝트는 크라우딩 펀딩으로 경비를 마련했다. 농지를 마련하

나가는 데 중요한 것들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역으로 아이를 돌보는 사람에게도 매혹>, 121쪽

기 위해 펀드를 조성한다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농부를 위한 여행펀드를 조성한다

아이를 위해서 아이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나를 위해서 아이를 돌본다는 것.

딩해서 10~20대가 장기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면 좋겠다. 여행을 다

후의 삶은 사회에서 자리를 잡는 시기이니 열심히 일하자.” 이런 마음으로 평소에

네 사람들을 초청하는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다. 젊은 농부들이 밖으로 창을 내는 여

배와 연결되어 후배를 돌봐야 생존할 수 있다. 지역의 미래는 밝다. 여행을 다녀오

는 말은 이번에 처음 들었다. 앞으로는 돈뿐만 아니라 국내외 네트워크도 같이 펀

엄마와 아이는 함께 큰다는 것. 후배와 선배 사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30대 이

녀와서는 출판이든 전시회든 다큐 상영회이든 폼 나게 바심하는 자리를 마련해 동

는 정신없이 살다가 잠시 짬이 날 때 후배를 돌보라는 뜻은 아닌 것 같다. 선배는 후

행을 다녀올수록 지역에서도 밖을 내다보는 창을 더 많이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고 전시회를 열기까지 이미 돌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강산프로젝트에 펀딩을 해

(2) 이번에 해강산프로젝트는 전시회 형식으로 바심했다. 전시회는 참 좋은 향연 형식이다. 물론 전시회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은 해강산을 아끼는 선배

준 사람들, 전시회를 준비해준 사람들, 초대장을 받아들고 와서는 사진을 보며 감 탄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돌봄의 사슬을 엮고 있다.

가 전시회를 마련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 같다. 이번처럼 자기 분야에서 일가

이번에는 후배도 돌봄의 사슬에 참여했다. 그림을 그려준 풀무학교 고등부의 이한

많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경작은 애송이들이 직접 수행해야 하지만 바심은 선배가

순수한 직감이 빛난다. 물론 사물과 만나는 저녁 빛은 펀딩, 전시회, 잔치에 참여한

자기인생을 바심하는 전시회가 많아지면 좋겠다. 비단 이국 여행같은 특별한 사건

는 영광은 이한유에게 돌아가야 한다. *

견이 있는 선배가 아직은 어리바리한 애송이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 바심하는 일이

유는 돌봄의 사슬에서 특별한 존재이다. 후배인데도 돌봄의 사슬에 참여한 10대의

도와줘야 한다. 나아가 이번처럼 이국여행을 경작하고 바심하는 것처럼, 누구나가

동네사람들, 그리고 화룡점정이 되는 이한유로 구성되겠지만 저녁 빛의 가장 빛나

이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 소소한 일상이나 살면서 겪은 일들을 나누는 향연이 많아지면 좋겠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느냐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정리 해서 나누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선배가 씨앗을 키우는 일은 후배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선배 자신을 위한 것이다. 생애주기론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성인기를 돌봄의 시기로 본다. 생애주기에 대한 사회심리학 이론을 만든 사람으로 에릭 에릭슨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조앤 에릭슨

도 함께 만들었다. 두 사람은 부부였다. 생애주기론을 만든 조앤 에릭슨은 돌봄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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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민준

사진 정영환

사진 민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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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STORY Ⅱ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젊은협업농장을 보며

2015년 8월 10일 경향신문 12면 보도

젊은협업농장 이해하기

“우린 귀농이 아니라 ‘취농’이죠”

8월 10일 경향신문 보도 “우린 귀농이 아니라 ‘취농’이죠” 기사와 댓글을 중심으로 글/정리 김성근 jjangga1322@hanmail.net

지난 8월 9일, 나는 풀무학교 풍물동아리 ‘한마당’ 여름 연수를 돕기 위해 상 주에 있었다. 여럿이 모여 야식을 준비하던 중 젊은협업농장이하 협업농장 카톡방에 알림

이 떴다. 카톡방에 뜬 링크를 타고 들어가니 아니, 상추 모종을 심으며 얼굴을 쳐들고 웃고 있는 내 사진이 떡하니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경향신문 기사였다. 경향신문에 서 협업농장을 전화로 취재한다는 소리는 얼핏 들은 것 같지만 기사에 내 사진이 실린 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어 많이 당황했다. 놀랍게도 그 기사는 순간적으로 포털

사이트 다음Daum 톱뉴스에 올랐고 순식간에 댓글이 150개 가까이 달렸다. 댓글에 대 한 답글도 많았다.

기사가 올라온 날 바로 그 댓글들을 봤을 때는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화가 치밀었다. 기

사 전면에 내 사진이 있었기에 다른 사람보다 감정이 더 격했을지도 모르겠다. 소속감 을 가지고 있는 협업농장 이야기가, 게다가 내 얼굴까지 실린 채로 인터넷에서 크던 작 던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니 무척이나 생소했다. 단순한 화가 아닌 처음 느껴보는 감 정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감정을 옆에 있던 후배들에게 전하기 위해 기사와 댓

글을 보여주었더니 후배들은 뉴스에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감탄하고 나의 반응을 ‘연예

인병’이라고 놀려대기 시작했다. 요즘도 후배들은 내가 몇 마디만 해도 ‘연예인병’ 걸 렸다고 놀리곤 한다.

기사를 읽고 난 뒤 혼란스러웠던 감정을 정리하여 표현하고 기사에서 핵심을 잘못 잡았 다고 생각한 부분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몸이 게을러 그때 느꼈던 감정 이 사라지고 한참이 지난 뒤 글을 쓰게 되었다. 글을 쓰기 위해 다시 기사와 댓글을 읽

어보았지만 그때의 감정은 없었다. 게으르지 않았다면 내 감정에 대한 이야기는 더 생 생했을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감정에 치우친 ‘나’에 대해서만 글을 쓰게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 글도 좋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리는 농장을

보며 농장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는 것도 보다 폭 넓은 글이 되어 좋을 것 같다. 물론 게으름과 아쉬움에 대한 핑계이기도 하다. 38

홍성 ‘젊은협업농장’ 눈길 / 농부 선택한 2030 청년들 농사일 나누고 기술 공유 / 3년 만에 연매출 1억 원 9일 오전 충남 홍성군 장곡면 도산리 ‘젊은협업농장’. 귀농한 젊은 농부들이 모여 채소를 재배하는 곳이다. 마을회관 맞은편에 위치한 비닐하우스에 들어 서자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정영환씨(33·젊은협업농장 매니저) 등 젊은 농부 3명이 담소를 나누며 적상 추를 심고 있었다. 고령의 농부가 대부분인 여느 농촌 풍경과는 다른 모습 이었다. 정 매니저는 “농촌생활이 체력적으로 힘들고 도시생활에 비해 불편한 점도 많다”면서도 “자연의 변화에 맞춰 사는 농촌의 삶에서 돈으로 살 수 없 는 만족감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도시 취업 대신 ‘취농’을 택한 귀농인이다. 정 매니저는 서울의 한 대 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2012년 말 귀농했다. 그는 귀농인들이 젊은협업농 장을 통해 농사기술 부족 등으로 귀농·귀촌 초기에 겪는 시행착오를 줄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뒤 이곳에 정착했다.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젊은협업 농장은 홍성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교사였던 정민철씨(48)가 2012년 제자인 조대성씨(39), 유성환씨(30)와 함께 만들었다. 농부가 되고 싶은 젊은이에게 농업기술 등을 알려줘 농촌에서의 홀로서기를 돕자는 취지였다. 젊은 농부들 을 통해 고령화된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의도도 담겨 있다. 이들은 당시 비닐하우스 1개 동을 빌려 ‘세 남자가 사랑한 쌈채소’라는 농장 을 만들었다. 이 농장은 2013년 젊은협업농장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43명이 조합에 가입돼 있고, 이 중 7명이 실제 농사일에 참여하는 생산조합원 으로 활동한다. 생산조합원은 20대 4명, 30대 2명 등 거의가 젊은 농부들이 다. 1개 동에서 시작한 비닐하우스는 지난해 8개 동(4600여㎡)으로 늘었고, 연매출은 1억원을 기록했다. 이곳에서는 단순히 농사일을 함께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농사일은 오전 5시 에 시작해 오후 1시 정도에 마친다. 나머지 시간은 새로운 농사기술을 공부 하거나 농촌 발전의 밑거름이 될 자기계발 등에 투자한다. 정 매니저는 “하루 농사 51%, 교육 49%로 나눠 오후에는 자신들이 원하는 공부를 하고 있다” 며 “젊은이들의 귀농이 함께 잘사는 농촌을 만드는 토양이 돼야 한다는 조 합원들의 판단 때문”이라고 말 했다. 권순재 기자 sjkw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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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젊은협업농장’ 눈길 농부 선택한 2030 청년들 농사일 나누고 기술 공유 3년 만에 연매출 1억 원

“우린 귀농이 아니라 ‘취농’이죠” 저런 말을 누가 했을까? 확실한 건 농장 사

람들 중에 ‘취농’이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은 없다. 일단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협업농장은 개인 사업이 아닌 협동조합이라는 사실이다. 현재 협업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농장에 취업한 직원이 아니라 농장의 조합원이다. 고용주가 채용한 고용인이 아니라 조합의 주인인 조합원의 일원으로 일을 한다. 취직을 해서 연봉을 올리고 개인 복지를 누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농장에서 나의 위치가 직원이 아니라 조합원이라고 강조했지만 그렇다고 조 합원이 ‘취농’을 대신할 수 있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취농 말고도 귀농, 귀촌,

귀향, 창직 등 농촌으로 이주해서 무언가를 새롭게 해보려는 사람들을 일컫 는 말이 많다. 사람마다 농촌에 들어오는 목적과 방향이 조금씩 다 달라서일 것이다. 그러나 농촌에 온 목적 중 농農적인 가치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별다

른 구분 없이 모두 ‘초보농부’라는 이름을 가지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

각에 동의한다. 아직 사회를 경험하지 못한 20대 초반은 물론이고 많은 경험 이 있는 사람들도 농촌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들어왔을 때는 배워야 할 것들 이 많다. 생각보다 농촌과 도시의 차이는 크다. 농사 기술이나 일의 내용뿐 만 아니라 농촌의 생활과 문화를 이해해야 농촌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갈 수 있다. 농촌에 와서 도시에서 습득한 사고의 틀이나 잣대를 고 집하면 단순하게 개인이 농촌에 적응하기 어렵다. 또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

면 농촌 또한 도시의 아류로 전락하게 되고 만다. 농촌은 쌀을 만드는 공장 이 될 지도 모른다. 따라서 나는 ‘취농’한 것이 아니라 농촌과 농업을 배우러 온 ‘초보농부’이다.

기사 첫 머리에 큰 글씨로 쓰여 있던 말이다. 모두 사실이다. 보통 기사의 전

문leads에는 그 기사의 핵심 내용을 보여준다. 그러니 3년 만에 연매출 1억 원이 왜 저기 쓰여 있는지 모르겠다. 3년 동안 농장을 꾸려간 결과가 연매출

1억이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우스 여덟 동에서 7명이 일해서 순수익

도 아닌 연매출이 1억 원이라고 하면 대충 계산해 보아도 개인이 가져가는 수입을 가늠해볼 수 있다. 댓글에도 연매출 1억이라는 내용을 가지고 꼬투리 를 잡는 말이 절반이 넘었다.

농장은 생산을 하는 곳이고 1차적으로 수익이 발생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윤

발생이 농장을 운영하는 목적의 전부는 아니다. 땅이나 자본 등 농사 기반을 갖춘 사람들은 농사지으며 바로 이윤을 낼 수도 있지만, 특히 나처럼 아무런 자원이 없는 사람은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렇다고 생산에 대한 노력을 덜 하자는 것은 아니다.

대신 생산과 더불어 사회적인 목적을 가지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새

로운 형태의 농장을 만드는 것이다. 한편 이런 농장들이 생김으로 인해서 농 촌에서는 부족했던 사회적인 기능들을 회복해나갈 수 있다.

협업농장은 농사지을 기반이 없는 사람들이 모였고, 농업, 농촌 교육이라는

사회적인 미션을 가졌다. 농장에 참여하는 생산조합원의 연령은 매년 변화 했다. 교육의 내용과 형식은 그 시기에 따라서 변화했다. 형태는 조금씩 달라 도 협업농장 교육의 목적은 새로운 사회적 농장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역에서 사회적인 역할을 가진 농장이 많아지면 농업, 농촌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연매출 1억 원도 지금의 협업농장의 위치를 보 여주는 중요한 사실이지만 협업농장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설명 없이 연매출 만으로는 협업농장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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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0일 경향신문 기사 “우린 취업이 아니라 ‘취농’이죠” 다음Daum 댓글들 (추천순)

‘개병신들, 취업도 못하고 삽질하러 가서 얼마나 버티려고 지랄들이야.’ 충

격적이고 안타까운 댓글이었다. ‘집구석에 처박혀 노는 거 보다 낫지.’ 그나

마 긍정적인 댓글 중 하나였다. 맞는 말이지만 뒹굴 거리는 것의 대안으로 협 업농장에서 일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답도 아니다. 하 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매일 상추를 따면서 얻게 되는 새로운 앎들이 있고 그

앎들을 따라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아직 확신할 수 있는 옳은 답 이 없어 매번 휘청 인다. 처음 창업 후 협업농장에서 일하길 선택했을 때 이 곳 생활이 좋아서 왔지 농장이 새롭다고 생각하진 않았었다. 협업농장에 대

해서 잘 모르면서 판단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가까이 있었다고 생 각한 나도 잘 몰랐는데 기사 한 번 읽고 좋다 나쁘다를 판단해버리는 저들의

말에 의문이 든다. 잘잘못을 떠지는 것은 아니다.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서 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매스컴의 역할 중 하 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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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젊은협업농장 2015년 상반기 언론 보도* 목록 젊은협업농장, 같이 일하는 소통의 농업, 친환경 농법의 미래를 제시하다.

2월 10일

월간 친환경

2월 20일

싱싱농수산 라디오

4월 2일

신협중앙회 블로그

4월 10일

충남방송 제6회 홍성 젊은협업농장과 로컬푸드 현장탐방일촌일색

5월 6일

충남도청

7월 21일

성서한국

8월 10일

경향신문

8월 15일

MBC 다큐프라임 농업, 새로운 미래를 꿈꾸다

8월 28일

대전MBC 시사플러스

8월 27일 9월 8일

충남도청

10월 1일

MBN 협동프로젝트 新부자수업

협동조합 젊은협업농장

기간 안에 수차례 매스컴에 올랐다. 그만큼 사람들을 가진다는 뜻이다.

협업농장이 농사 규모나 시설, 기술이 특별하게 뛰어나지 않고, 유기농 업에 대해서도 특별한 재주가 있지도 않다. 다만 조금 특이한 점은 농사 짓는 20대가 비교적 많다는 것이다. 언론에서도 농촌에 20대가 모여 농

사를 짓는다니 그 연유를 궁금해 한다. 협업농장에 20대가 모이기 시작

한 것은 작년부터이고 올해 봄에는 20대가 4명이나 되었다. 나도 그 중 한 명이다.

젊은 사람들이 모여 교육+농업을 동시에 이루는 곳! 협동조합 젊은협업농장

농장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농장에 대해 잘 모를 때도 언론 취재는

계속 있었다. 농장 사람들이 인터뷰하는 것을 들으며 농장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새 내게도 마이크가 오기 시작했다. 처음 한두 번은 농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정리해 말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

3농혁신 광고영상 촬영

데 취재가 계속 되고 짧은 기간에 생각을 반복해서 말하다보니 직접 경

8월호 소식지 인터뷰

게 되었다. 또 취재가 몰려와서 이래도 되나 싶게 농장 일에 방해가 될

“우린 귀농이 아니라 ‘취농’이죠”

관심 갖길 바라고, 서로를 잘 알기 위해서는 대단한 것은 없지만 내가 있

험하고 행동한 것보다 말과 생각이 더 많아져 언론 취재 요청을 싫어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사람들이 농촌과 농업에 대해

청춘, 별의 노래를 부르다 3농혁신 홍보 영상 촬영

는 곳, 농장을 알리는 일을 마다하지 않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요즘 큰 이슈 중 하나가 청년 문제라고 한다. 협업농장에도 ‘청년’을 키 워드로 취재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 사실 젊다는 것 밖에 가진 게 없는

나에게 지금은 농업과 농촌이라는 큰 연결고리를 만드는 과정이다. 지 금까지는 학교에서 배움을 지속해왔지만 이제는 농촌에서도 배움이 가 능하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 주변 3, 40대 초보농부는 자신이 가지고 있 던 재능과 경험을 ‘농’과 연결시킨다. 그런 모습이 멋져 보였다. 나도 농

촌에서 농업을 통해 경험과 능력을 쌓아 가면 좋겠다. 협업농장을 온전

행복촌, 풀무골의 기적

히 이해하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그나마 언론 보도를 통해 협업농 장을 다시 돌아볼 수 있어 좋았다. 언론을 통해 매번 다른 사람들의 생각

을 듣는다. 때론 살다보면 즐기지 않아도 취재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하 *보도 대중 전달 매체를 통하여 일반 사람들에게 새로운 소식을 알림 또는 그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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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의 2015년 상반기 언론 보도 목록에서 보다시피 협업농장은 짧은

지만 다른 사람의 ‘광팬’이 되지도, 동생들이 말하는 ‘연예인병’에 걸리 지도 않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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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협업농장 취재기

젊은 땀에서 농촌의 새로운 미래를 보다. 박형욱

와일드넷 (주)에코21 lobopark@daum.net

홍성군 장곡면 젊은협업농장을 찾은

태건축 협동조합 얼뚝, 자연재배협동조

8부작 중 2부의 촬영을 위해서였다. 이 프

반찬가게, 홍성한우클러스터사업단 홍성

리들에게 진정한 ‘부자’의 의미가 무엇인

푸드 직매장, 팟캐스트 farm므파탈, 우

8부작은 제 1부 ‘원주 신화를 찾아서’, 제

수히 많은 새로운 싹과 꽃이 피어날 수 있

은 거인, 세상을 바꾸다’, 제 4, 5부 ‘하빠

프로그램이다.

것은 MBN 협동 프로젝트 ‘신新부자수업’

합, 동네마실방 뜰, 논배미학교, 할머니

로젝트는 물질과 자본을 좇는 현대의 우

한우 홍동점, 홍성신문, 홍동농협과 로컬

지를 되묻기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리동네의원, 그리고 젊은협업농장 등 무

2부 ‘행복촌, 풀무골의 기적’, 제 3부 ‘작

었던, 홍곡의 과거와 현재를 재조명하는

와 춤을’, 제 6, 7부 ‘해바라기, 마을을 살 리다’, 제 8부 ‘100년의 협동조합, 미래를 말하다’로 구성되어 있다.

를 들었을 때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다.

벌써 많은 협동조합을 촬영했고 더군다

이 중 제 2부 ‘행복촌, 풀무골의 기적’은

나 유기농업에 관한 내용은 다른 조합 등

기농업, 협동이라는 특징으로 요약될 수

도 불구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합에

고, 그 바탕과 배경이 될 수 있는 풀무학교

취재를 했다. 조금은 차이가 있었지만 예

홍성군 홍동면과 장곡면 일대의 교육, 유

과 비슷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

있는, 지역 사람들의 현재 모습을 조명하

서 실무를 담당하는 정영환 선생을 만나

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성공 신화’의 포맷

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풀무학교라는 튼 튼한 뿌리가 있었기에 풀무신협, 풀무생 협을 비롯한 풀무학교 생태농업전공부와 생활협동조합, 지역센터 마을활력소, 밝

맑도서관, 그물코출판사, 느티나무헌책 방, 갓골어린이집, 문당환경농업마을, 생 46

처음 작가를 통해 젊은협업농장 이야기

며칠 후, 동 틀 무렵, 도산리2구 마을회 관 앞 젊은협업농장 비닐하우스를 찾아

갔다. 그리고는 첫모습부터 반해버리고 말았다. 이 곳 홍곡에서 다른 농촌에서는

잘 볼 수 없는 30, 40대 젊은 사람들은 익

히 보아왔지만 10대를 갓 넘어 막 20대로

들어선 청년들이 흘리는 굵은 땀방울은 아름답다 못해 감동적이었다. 정말 거짓 말 하나 보태지 않고 협업농장 청년들의 모습들을 처음 보는 순간 가슴에서 울컥 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퇴비 포대를 나르는 강경욱씨, 어설프지

만 열심히 경운기를 모는 김성근씨와 옆 에서 일일이 조언을 아끼지 않는 김강산

씨, 조용하고 부드럽게 이들을 이끄는 정 영환 선생과 신소희 선생, 수많은 쌈채소 잎들을 따면서도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 는 구해강씨. 뜨거운 여름, 아직 햇살이

본격적으로 비추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더운 열기가 가득한 비닐하우스에서 비 오듯 땀을 쏟는 젊은 농부들의 모습은 정 말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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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어지는 인터뷰가 더 가관이었

다시 찾은 젊은협업농장. 일찍이 전화통

해강산프로젝트. 갓골 풀무학교 생협 앞

이 프로젝트를 보며 50여 년 전 풀무와 꼭

학하며, 직업을 선택하는 대다수 젊은이

양으로 무뚝뚝하게 맞았다. 하지만 이야

가 하나보다’ 정도였다. 하지만 이 프로

은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해 애

다. 부모에 이끌려 학원을 가고 대학을 진

들은 서른 줄에 접어들었어도 자신의 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 그런

데 이들은 자신들의 꿈과 목표를 인생이 라는 도화지에 확신에 찬 필치로 꽉꽉 눌

러 그려놓았던 터였다. 게다가 젊은이들

에게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을사람들 이 수십만 원씩 출자를 하고, 도산리2구 이장님은 선뜻 땅을 내놓으셨다니……. 이 홍곡이라는 곳은 참으로 묘한 곳이다. 보통 며칠 취재를 하고 또 한참 촬영을 하 다보면 그 대상의 성격이 파악되고, 프로 그램의 큰 줄기가 그려진다. 그런데 묘하 게도 이 곳 홍곡, 이 사람들은 알면 알수

록 새롭고 흥미로운 내용들이 계속 나오 기에 윤곽 잡기조차 힘들었다.

화만 했던 정민철 선생은 예의 경상도 억

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퉁명스런 말투 속 에 숨은 따뜻함이 묻어났다. 그가 십 수

년 이상 그려왔을 꿈이 ‘참, 아름답다’라

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풀무학 교의 50여 년 역사와 정신마냥 홍곡의 땅

에 단단히 뿌리 내리고 있기에 허황되지 않은 현실의 계획으로 다가왔다.

에 붙은 포스터를 처음 봤을 때는 ‘또 뭔 젝트의 배경과 의미를 알고는 정말 대단

한 마을 사람들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 다. 땀 흘려 마을에서 일하는 20대 젊은 이들이 세계를 돌아보고 견문을 넓힐 수

있도록 여행경비를 마을 사람들이 십시 일반 모아주었다는 배경을 듣고 보니 대

단하다는 생각을 넘어 열혈 청춘들에게, 미래에 출자를 하는 ‘무서운’ 사람들이라 는 생각까지 들었다.

누군가는 프로젝트의 기획과 발표를 돕

고, 누군가는 음식들을 준비하며, 마을잔

치처럼 프로젝트 발표회장인 생각실천창 작소를 가득 메운 마을 사람들. 아마도 그

들은 젊은 시절 자신들이 꿈꿔왔던 막연 한 꿈들을 ‘해강산프로젝트’를 통해 풀어 놨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꿈들은 제 2,

제 3의 ‘해강산프로젝트’가 되어 홍곡을

가득 채우고 넘쳐나 이웃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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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한 농촌, 젊

쓴 밝맑과 샛별 선생, 그리고 몸과 마음으 로 그 뜻에 동참한 많은 마을 사람들. 누 구 하나 으스대며 앞에 나서려하지 않는

마음 씀씀이까지 반세기 전의 모습과 닮 아 있었다.

땅에서 땀 흘린 대로 거두는 기쁨을 알고, 마을 곳곳이 배움터이고, 누구나가 선생 과 제자가 되며,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 되 더불어 협동하는 삶을 이제는 대물림 하고, 이를 좇아 마을로 들어온 사람들. 어

느 분의 말씀처럼 홍곡에 들어오면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홍곡의 일원이 되어 그 삶을 몸소 실천한다는 말이 맞는

가 보다. 그리고 이제 새로이 이 ‘위대한 평민’, ‘더불어 사는 평민’에 기꺼이 동참 하고자 하는 옹골찬 젊은협업농장 식구들 의 굵은 땀방울에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 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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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COLLABO FARM

젊은협업농장의 하루 <경욱 편篇> 강경욱 kbor3311@naver.com

6:14am “으아아아~ 가자!!” 며칠 동안 예비군훈련을 갔다가 대접을 받

고 와서 그런지 사람이 나태해졌다. 늦게 일 어났다. 다같이 늦는 바람에 같이 나갔다. 사실 최근 아침에는 급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7:00am

11:00am

정쌤 차를 타고 농장에 도착했다. 자연스럽

회의를 마치고 다시 수확을 하다가 납품해

시나 했는데 역시나 성근이도 늦는구나ㅋ

장으로 넘어왔다.

게 애들이 있는 곳에 가서 생채를 딴다. 혹 ㅋㅋ 4번동에서 생채를 수확하고 보니 샐러 리 발주가 있는 걸 확인했다.

“아~ 샐러리를 먼저 수확해야 늦게 나와도 티 가 안나고, 수확도 많이 한 것 같은데!”

야 할 적상추와 로메인을 수확하러 행복농 “와~ 모기가 엄청 많네!” 모기가 많은데도 나한테 달려들지 않았다. 나디아라는 분이 모기를 몰고 다니신다고 했다. 덕분에 신기하게도 나는 한 방도 물 리지 않았다.

6:30am 8:30am

“으어......”

“모스퀴토! 코크러취!” 영어 선생님이 오셔서 그런지 우리들 관심

예비군 간다고 농장에 자전거를 두고 와서

수확을 하고 소희쌤이 가져오신 치킨을 뜯

이 갑자기 영어로 넘어갔다. 모기가 많다보

짝 당황스러웠지만 난 솔직했다. 늦은 건 늦

되었다.

르겠지만 바퀴벌레까지 나오게 되었다. 우

걸어서 출근하고 있는데 정쌤을 만났다. 살 은 거니까... 요즘 출근 시간이 늦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정쌤의 출근 시간이 빨라지신 것 같아 살짝 부담스럽다.ㅋㅋㅋ

으면서 1번동에서 자연스럽게 회의가 시작

논은 잘 나오지도 않고, 축사는 자본이 필요 하고 허가도 받아야 해서 시작하기 어렵고,

하우스 농사가 돈 없고 땅 없는 사람이 집약 적으로 하기 좋은 농사라고 들었다.

회의가 점점 길어지니 해강이 정신이 이상

니 영어로 모기가 뭔지 궁금해졌고 왠지 모 리는 영어 선생님을 졸지에 네이버 단어장 으로 이용해 버렸다.ㅋㅋㅋ

수확을 하다가 이번 팜므파탈 주제였던 꼰

대 얘기를 했다. 거의 정쌤과 소희쌤이 말씀 하셨지만 뭔가 재미있다.

해 지는 것 같다. 전선으로 목을 감는다. ‘이제 영어를 배울 수 있는건가’

인천에서 나디아라는 분이 농장을 방문했

다. 팟캐스트 경박한 영어강의실을 진행하 셨다고 한다. 말도 재밌게 잘하시고 나디아

에게 영어를 배우면 왠지 재미있게 배울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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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pm

5:00pm

점심을 먹으러 생미식당에 갔더니 고려대

집에 들어와서 씻으면서 강산이에게 볼링치

학교에서 농활답사차 견학을 왔다. 8명이

고 싶다고 말해서 인순누나랑 같이 볼링 치

나... 고대생들과 영환이형, 성그니가 밥상

을 먹고 있었는데 나와 강산이는 당당하게 “여기 제육쌈밥 2개요”라고 했다.ㅋㅋㅋㅋ

러 가기로 했다. 성공!

2:00pm

밥을 기다리고 있는데 영환이형이 나한테

점심을 먹고 농장에 오자마자 옥수수를 수

대생들이 나를 쳐다보고 웃는 것 같았다. 영

나온 것 같기도 하다. 수확하는데 이장님도

들었다.

할아버지 세 분도 보고 가시면서 한 마디씩

장에 도착했다. 몇 주 만에 쳐서 그런지 내

자루는 수확시기를 놓쳐서 많이 단단해진

약 84점이 나왔다. 그래도 몇 번 치면서 감

야겠고 남은 한 자루는 쪄먹어야겠다. 내가

맞춰지는 것 같았다 백점을 넘기면서 1등을

이 들었다. 아직 하나도 잘 못하는 상황에서

았다. 스페어 처리와 2스트라이크를 연속으

오후에 뭐 할 거냐고 물어봤다.같이 있던 고

확했다. 관리를 안 한 거에 비해서 나름 잘

환이형이 무슨 얘기를 했을 것 같은 의심이

보고 가시고, 사모님도 보고 가시고, 마을

롯데리아에서 저녁으로 햄버거를 먹고 볼링

하면서 가셨다.ㅠㅠ 두 자루가 나왔는데 한

손의 영점이 틀어진 것 같았다. Round 1.

바람에 말려서 나중에 밥에 넣어 먹든가 해

을 잡아갔다. Round 2. 손의 영점이 점점

나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 한 것 같다는 생각

했다. 볼링비가 굳었다. Round 3. 감을 잡

욕심을 많이 부렸던 것 같다. 하...

로 잡으면서 최고점이 127점으로 1등을 했

3:00pm 옥수수 수확을 다하고 강산이가 보험 아저

씨가 오시는데 같이 있어달라고 해서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어 버렸

다. 강산이가 보험에 가입하고 자전거와 보 드에 대한 얘기를 했다. 지난 겨울 보드를

타다가 너무 많이 넘어져서 포기했던 기억 이 떠오르면서 꼬리뼈가 아픈 느낌이었다.

8:00pm

다 강산이가 지치면서 점수가 떨어지고 인 순누나가 감을 잡아갔다 그리고 또 볼링비

가 굳었다. Final Round 인순누나가 완전 감을 잡았다. 나를 바짝 쫒아온다. 강산이

는 지쳐서 완전 떨어져 버렸지만 나는 인순

누나의 추격으로 바짝 긴장 할 수밖에 없었 다. (사실 옆 자리 여자 두 분이 들어와서 치

시는데 무심한 듯 공을 툭툭 굴리는데 너무 잘 쳐서 기가 죽었다.ㄷㄷㄷ) 힘들었지만 1 등을 지켰다. 또 볼링비가 굳었다.

2시간 동안 볼링을 치면서 4천원을 썼다. 참

좋은 스포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 주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동아리를 만들어 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12:30am 집에 들어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졸리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오늘 하루 동안 많을 일을 한 것 같다. 언젠가 어디서 본 글에서 사람은 하루의 10%정도 밖에 기억하지 못 한다고 하는데 오늘 나는 50%정도 한 것 같 다. 이제 잠을 참을 수가 없다. 내일 바이시 끌 질주를 위해서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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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은 유난히 농장에 일이 많아 8월 라이딩을 계속 뒤로 미루다가 불가피하게 1박 2

일이 아닌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남당리, 해미, 서산 쪽은 작년 바이시끌을 하면서 가봤 던 곳이다. 다른 곳을 찾다 보니 아래로 내려가게 됐다. 아침 7시에 협업농장에서 출발

해서 부여 구드래조각공원을 찍고 왕복 약 100km 정도를 달리는 일정이었다. 부여는

내가 두 살때부터 8년 정도 어린 시절을 살았던 곳이라 기억은 많지 않아도 이름만 들어

도 반갑고 정겨운 곳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가족들과 나가서 놀던 구드래공원이 생 각나서 기억을 더듬으며 들뜬 마음으로 계획을 잡았다.

아침 7시가 되니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와있던 사람은 전공부 학생 2명 이었다. 협업농장에는 한 번 밖에 안 와봤는데도 용케 잘 찾아왔다. 해강산프로젝트 발 표회 준비 중에 만나게 돼서 이번 바이시끌도 같이 가게 된 것이다. 전공부 학생들을 만

나보고 싶어 했던 나를 비롯해 협업농장 20대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한 명은 내가 시골집에서 지낼 때 한 달 정도 같이 살기도 했던 ‘이진용’이라는 친구다. 나이도 동갑이고 다시 만나게 돼서 반가웠다. 그리고 ‘이신웅’이라는 형은 24살인데 자 전거 타는 것도 좋아해서 말도 잘 통했고 자전거도 아주 좋은 걸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성근, 해강이형, 나, 신소희쌤, 정민철쌤, 배지현쌤, 정인순 누나, 농장에서 시 자전거팀 구해강 김강산 김성근 배지현 신소희 이기상 이신웅 이진용 임상현 정경원 정민철 정인순 자동차팀 루시 민택기 이충희 임응철(이장님) 김수정(사모님)

김강산 gel3726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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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거를 타신 이기상 아저씨, 돌아올 때 인순 누나와 바통 터치한 경원이 형 까지, 총 12 명이 자전거를 같이 탔다. 또 민택기 작가님이 청양 가는 길 사진을 찍어주시고, 이장 님과 사모님은 부여까지 오셔서 점심을 사주셨다. 루시이모와 충희쌤도 차를 타고 같

BICYCLE RIDING

시끌시끌 바이시끌 8월 라이딩 후기

도 때도 없이 오는 애로 통하는 고등학생 상현이, 같이 출발은 못 했지만 중간부터 자

이해 주셨다.

나는 처음부터 자전거를 잘 못타는 인순 누나와 뒤에서 출발했다. 다른 사람들과 많이

8월 30일(일) 총 130km

젊은협업농장 출발 ∨ 청양군 ∨ 지천구곡 ∨ 부여 구드래조각공원 ∨ 금강 자전거길 ∨ 군산역 ∨ 기차이동 광천역 ∨ 장곡면

차이나는 게 우려스러워 출발하고 나서 30분 동안 계속 뒤에서 잔소리를 하니 누나도 짜증나서 그럴 거면 먼저 가라고 화를 내 길래 또 그럴 수는 없고 입 다물고 탔다. 처음

에는 오르막도 같이 걸어 올라갔지만 나중에는 먼저 가서 누나를 기다리고를 반복했다.

청양에서 칠갑산을 넘어가는 코스라서 가파른 오르막이 있었지만 그만큼 경치는 정말 좋았다. 산을 달리다 보니 생각만큼 덥지도 않았다.

부여에 도착하니 12시 반쯤이었다. 누나가 과연 점심 먹을 때까지 부여에 도착할 수 있 을지 걱정했었는데 적당한 시간에 도착한 것 같아 기분이 뿌듯했다. 구드래 공원까지

자전거를 타고 들어가니 기억이 날 듯 말 듯 했다. 결국 제대로 알아본 곳은 구드래 공 원과 그 앞에 유스호스텔 정도였다. 어릴 때 있었던 조각들이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 걸

보고 너무 신기했다. 특히 공룡 알 같이 생긴 조각이 여러 군데 흩어져 있는데 나는 그 조각을 가장 좋아했었다. 낮에 열을 받아 그 돌을 껴안으면 따뜻해서 돌 위에서 잘 앉아 있었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그 돌이 너무 작아보였다. 아무래도 내가 큰 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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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늦게 도착해서 공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다. 밥 먹고 30분 정

도 쉬니 출발하자고 했다. 내가 없을 때 이야기를 나눠보니 왔던 산을 다시 넘어가

기에는 너무 힘들 것 같아 군산으로 가서 기차를 타고 돌아오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는 팀과 군산으로 가는 팀으로 나눠졌다. 나와 해강이형, 성

근이, 상현이, 진용이까지 5명이 군산으로 가고 다른 분들은 다시 돌아갔다. 나중 에 들으니 다 완주한 분도 있고 중간에 그만둔 분도 있다고 했다.

군산까지 금강을 따라갔다. 4대강 사업으로 자전거도로는 잘 닦여있었다. 근데 정 말 길만 잘 만들어져 있었다. 경치는 둘째 치고 녹조 현상 때문에 악취가 심한 구간

도 있었다. 중간중간 자전거 휴게소도 있어서 쉬기도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 들도 꽤 많이 달리고 있었다. 중년층들이 많이 타고 계시고, 국토 종주하는 사람도

보았다. 반대쪽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보면 꼭 인사를 한 번씩 한다. 힘들어서

인사를 잘 안 해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웃으면서 인사해주시는 분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 더 잘 달리게 된다.

군산까지 한 25km 남기고 진용이 자전거 뒷바퀴 타이어가 터졌다. 수리 공구는 챙 겨왔는데 하필 자전거도 mtb에 바퀴도 두꺼운 거라 튜브 가져온 것도 소용이 없다.

광천에 도착하지 밤이 되었다. 진용이에게도 잘 들어갔다는 문자도 오고 다들 안전

하게 사고 없이 도착한 것 같아 다행이었다. 마지막으로 광천에서 햄버거를 먹고 집 으로 들어왔다. 집에 오니 시간은 8시 반쯤 돼 있었고 온종일 한 130km 정도 라이 딩을 한 것 같다.

이번 바이시끌을 가면서 다시 한 번 느낀 점이지만 여행의 묘미는 ‘예상하지 못한 변수’에 있는 것 같다. 평소 내가 달리는 속도대로라면 주변을 둘러보지 못했을 텐

데 인순 누나와 같이 가면서 천천히 여유롭게 주변의 경치도 느낄 수 있었다. 부여

에 도착하고 나니 군산으로 가자고 하는 의견이 나와서 팀을 나눠서 가고, 군산으 로 가다가 펑크가 나서 또 팀이 나뉘기도 하였다. 기차 타고 광천으로 와서 집까지 또 야간 라이딩 할 줄은 달리기 직전까지도 몰랐다. 가끔 이런 변수가 생겼으면 하 는 마음에 루트를 안 보고 달리기도 하고, 일정을 자세히 안 알아볼 때도 있다. 나

중에 여행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도 결국에는 예상하지 못한 변수에서 나오는

에피소드가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한다. 나중에 누구랑 가장 많이 이번 여행에 관 해서 이야기를 많이 할지 궁금하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은 못 잊을만한 여행 이 될 것 같다. *

펑크 패치는 까먹고 안 가져 오고 타이어도 일체형이라 어찌할 수가 없었다. 우선 정샘이 데리러 오신다고 하고 진용이와 다리에 쥐가 나서 더는 못 가겠다는 상현이

만 남고 3명은 기차 시간도 있어서 다시 출발했다. 걱정됐지만 5명이 같이 있으면

오히려 히치하이킹도 힘들어서 내릴 결정이었다. 중간에 문자를 보니 정샘을 만나 서 잘 가고 있다고 해서 안심했다.

문제는 우리였는데 80km를 넘기니 정말 캄보디아 생각이 났다. 왜 군산까지 간다 고 했을까 생각도 들었지만 오랜만에 많이 달리고 날씨가 시원해지니 신나서 달렸

다. 금강 하굿둑에 도착하니 놀이공원이 있었지만 차마 놀이기구를 탈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해강이형도 저거 타면 자기는 아마 죽을 거라며 못 타겠다고 했다. 군산역

도착해서는 택시랑 사고 날 뻔했다. 갓길에 주차했다가 갑자기 도로로 나오는데 한 10cm 차이로 박진 않았지만 아찔했다. 택시기사님들은 운전을 너무 험하게 하는

것 같아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원래 타려고 했던 기차는 놓쳤지만 조금 더 기 다린 후 다음 기차를 타고 광천으로 왔다. 원래는 자전거를 기차에 실으면 안 된다 고 한다. 그래도 다행히 쫓겨나진 않고 혼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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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FARMING

농장은 지금 총채벌레와 사투중 정영환thinkingfarmer@gmail.com

요즈음 젊은협업농장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바로 총채벌레입니다. 총채벌레

는 육안으로 찾아보기 힘든 만큼 아주 작은 벌레입니다. 1~2mm 정도가 다 큰 성

총채벌레의 피해를 입은 생채 잎

충의 크기이며, 색깔은 유백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화합니다. 주로 땅속 또는 잎 안 쪽이나 뒷면에 붙어있고. 날개는 없지만 번식력이 왕성하여 개체수가 늘어나는 것 을 쉽게 놓치게 됩니다.

총채벌레는 잎을 갉아서 흡즙하는데 그 피해 부위가 황백색으로 변하며 기형을 유

발합니다. 처음에는 이러한 현상을 연작피해가 아닌가 의심했었죠. 잎에 피해가 생 길 경우, 은색의 자국과 작고 검은 반점이 형성하며, 개체 수 증가가 빠른 만큼 단 며칠 만에 번지게 됩니다. 총채벌레는 2주 만에 한 세대가 완성됩니다. 알에서 깨

어나는데 4일, 약충으로 4일을 보내고, 4일동안 번데기 생활을 마치고 성충이 됩니

다. 그리고 다시 알을 낳습니다. 한 마리의 암컷이 20~170개 정도의 알을 낳는다고 하니 농가입장에서는 정말 답이 없는 벌레입니다. 여기에 생명력까지 강합니다. 이 벌레는 월동을 하는데 성충은 땅속에서는 먹지도 않고 수명을 유지하고, 알 상태에 는 부화를 하지 않습니다. 일정 온도20~30도가 되면 작물에 붙어 급증한다고 하니,

시설하우스는 이들에게 좋은 환경조건이 됩니다. 더욱이 저희 농장의 총채벌레는 꽃노랑총채벌레(노란색)이니 분간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협업농장 8동 모두 피해를 받았으며 최근에는 3개동을 뽑아내고 갈아엎었습니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총채벌레 피해를 미리 알았어도 방제는 굉장히 어려웠 을 겁니다. 총채벌레에 효과를 나타내는 친환경자재는 비싸기도 하고 효과도 미비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각광받는 ‘자연을 닮는 사람들’에서 소개하는 자닮오일과 자닮유황, 독초액도 3일 간격으로 뿌렸지만 총채는 다시 발생했습니다. 친환경자

재는 보통 500ml가 3~5만원이라 하우스 8동에 고압으로 3일 간격으로 뿌린다면 몇 십만 원의 자재비를 지출해야 합니다. 이쯤 하면 협업농장 초기에 일하셨던 분

이나 도와주셨던 분들이라면 민달팽이 피해를 추억하실지도 모르겠네요. 두 시기 를 모두 겪은 저는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무섭냐고 묻는다면 총채벌레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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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달팽이는 야행성으로 조금만 부지런하게 움직여 늦은 저녁에 방제를 하면 개체 수를 줄일 수 있지만, 총채벌레는 낮에도 활동하며 잎 뒷면과 안쪽을 먹기 때문에

옆면시비를 해도 효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민달팽이는 총채벌레에 비해 미 식가입니다. 특히 배추과를 가장 좋아하며 그 다음으로 생채, 상추, 적근대 순으로 예상범위가 있지만, 총채벌레는 4대 주작물인 청상추, 적상추, 생채, 로메인에 큰

피해를 주며 인해전술을 구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민달팽이는 총채벌레에 비해 작

물의 생장에는 큰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민달팽이로 피해 입은 작물은 방제만 잘 하면 추대 전까지 수확할 수 있지만, 총채벌레는 그렇지 않습니다. 잎 자체가 작아 지거나 오그라지며 변형되는 기형현상이 빈번하게 일어나며 회복이 어렵습니다.

총채벌레 피해는 그야말로 심각했습니다. 물량이 잘 나오지 않는 한여름을 겨냥해

작기를 맞춰 심은 청상추, 적상추, 생채, 로메인, 적로메인 등은 어린 모종 상태부터

끈끈이 트랩을 설치한 4번동 생채

몸살을 앓았으며, 이로 인한 방제작업과 친환경자재비, 물량조절의 실패와 거래처 와의 마찰과 오해 등으로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올해 7~8월 생산 량은 작년에 70%도 못 미치는 수준이 되고 말았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농장의 대

표작물인 청상추와 적상추는 현재 수확할 수 있는 것이 없으며 추석이후에나 수확 이 가능하니 답답할 뿐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다시 소를 넣는다는 생각으로 여러 방법을 찾아 헤맸 습니다. 먼저 홍성농업기술센터에 의뢰를 했습니다. 저희가 생각한 것은 천적농법 이었는데 담당자의 말로는 천적의 개체수가 충분히 증가해야 효과를 보기 때문에

단시일 안에 효과보기가 어려우며 현재 우리실정에는 맞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농장에 왜 총채벌레가 기승할까에 대한 물음은 생산관리에 미숙함과도 연결됩니

총채벌레 이후 다른 해충으로 고생할 경우 방제하면 그 천적들도 피해를 본다고 하

경에 잘 걸리는 병입니다. 겨울철 온도 때문에 환기를 자주 못해줘서 생긴 병인데,

며 노란색 끈끈이를 주었는데 총채벌레가 노란색을 좋아한다는 점을 이용한 것입

가뭄이 굉장히 심했습니다. 총채벌레는 고온건조한 환경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총

체적인 개체수를 줄이기에 부족했습니다. 또한 같은 방제약제를 쓰지 않고 다른 약

다. 지난 겨울엔 상추 노균병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일종의 곰팡이병으로 다습한 환

더군요. 그 담당자는 완전 박멸은 어렵고 개체 수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하

이 병을 막고자 봄철에도 물을 적게 주어 건조한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올해 봄엔

니다. 실제로 트랩을 설치한 곳이 피해를 덜 받는 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지만, 전

채벌레가 급속도로 번져나갔고 지금까지 고생하게 된 배경입니다.

제를 번갈아가며 주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점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농사를 너무 못한다고 자책하고 있을 때 전국적으로 총채벌레 피해가 심각

현실적으로 우리가 대처할 방법은

하다는 이야기 를 들었습니다. 다른 영농조합이나 체인점에 납품하던 농장들도 다 갈아엎어서 쌈채소를 구할 수 있는지 문의하는 전화도 많았습니다.

1. 건조한 하우스에 물을 자주 줄 것(2~3일 간격으로)

2. 피해 입은 잎 잔해를 자주 청소해서 2차 오염을 막을 것

3. 친환경자재와 자닮 유황을 번갈아 3~5일 간격으로 방제할 것

정도로 생각됩니다.

예전에 농사는 3년 정도면 다 배울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총채벌레 피해 이 후 농사가 점점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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