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교육농축제
교육 農∝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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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교육농축제 배움의 자리와 모양, 삶터로서의 농촌 교육農∝村
자료집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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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제2회 교육농축제 개요 8/5~8/9 교육농축제 일정 안내사항 마을 그림 지도 교육농축제 현장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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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1. 농부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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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자라는뜰 텃골작은농장 행복농장 협동조합 젊은협업농장 읽을거리1 ‘장애인 마을 준비를 위한 작은 그림’ / 홍순명 읽을거리2 ‘땅 없는 그들, 어느 날 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이유는?’ / 우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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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2. 마을의 한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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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3. 생각하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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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전공부 생태농업과 갓골목공실 그물코출판사 생각실천창작소 풀무학교생활협동조합 햇살배움터교육네트워크 ㅋㅋ만화방 홍동밝맑도서관 홍성우리마을의료생협 원예조합가꿈 논배미 홍성씨앗도서관
읽을거리1 ‘풀무학원 개교를 맞이하면서’ / 이찬갑 읽을거리2 ‘전환기의 교육 기획하기’ / 박복선
Session4. 꿈꾸는 여름밤
8/5 자투리극장 공동체상영 사티쉬 쿠마르의 <지금 여기에 있는 미래> 8/6 농촌형팟캐스트 공개방송 <조대성의 farm므파탈> ep.4 20대는 그런 것이 아니다 *농촌편* 8/7 정민철의 토크콘서트 <농촌과 농업, 지역과 교육, 村스러움을 위하여> 8/8 네트워크파티 읽을거리 ‘촌스러움을 위하여’ / 정민철
비상연락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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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교육농축제 배움의 자리와 모양, 삶터로서의 농촌
교육農∝村 일시: 2015년 8월 5일(수) ~ 9일(일) 장소: 충남 홍성군 장곡면*홍동면 일대 모집: 농촌에서의 삶과 배움, 교육의 생 태적 전환에 관심있는 모두 문의: 교육농협동조합 edunongcoop@gmail.com http://cafe.naver.com/edunongcoop
010-3131-1909(신소희)
‘좋은 삶’에 대한 지향으로 한 달에 한 번, 꾸준히 만나 흙을 일구고 씨앗을 심 기 시작한 지 벌써 4년째입니다. 여전히 ‘교육농’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답할 순 없지만 따로 또 같이, 삶터 둘레에서 생 명을 기르고 나눠 먹는 기쁨을 알게 되었 고 여전히 ‘교육의 생태적 전환’을 대화 하고자 노력합니다. 느슨하지만 계속하 여 함께 농사짓고 있습니다. 이 만남과 경험이 어떻게 지금 여기, 우리 삶터로 확장될 수 있을까요? 지난 1월에는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 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첫 번째 교육농축 제를 열었습니다. 각자 현장에서 그동안 농사지으며 길어낸 배움을 다소 설렘에 들뜬 언어로 나누었습니다. 여름, 두 번째 교육농축제는 홍성에서 열 립니다. ‘더불어 사는 평민’을 길러내고 자 했던 지역과 학교, 농촌의 일상과 생 각을 자연스럽게 만나며 ‘교육농’이 학교 와 텃밭을 넘어 구체적인 삶의 자리와 모 양으로 어떻게 확장될 수 있을지 함께 궁 리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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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게스트하우스 L밝맑도서관 C생각실천창작소
8/5 wed
8/6 thur
8/7 fri
8/8 sat
G
농장체험
07:00~12:00
Session2. 마을의 한낮
07:30~12:00
07:00~12:00
젊은협업농장
08:00~09:00
젊은협업농장
젊은협업농장
텃골작은농장
09:00~11:00
꿈이자라는뜰
07:00~12:00
07:00~12:00
08:00~12:00
텃골작은농장
행복농장
행복농장
08:00~12:00
08:00~12:00
08:00~12:00
풀무학교탐방
마을단체인터뷰
교육농워크숍
14:00~15:00
14:00~15:00
원예조합가꿈 원예식생조사
그물코출판사
풀무학교 전공부 생태농업과
홍동밝맑도서관
15:30~16:30
생각실천창작소
풀무농업 고등기술학교 (고등부)
14:00~16:30
또 만나요!
07:30~12:00
꿈이자라는뜰
Session1. 농부의 아침
8/9 sun
15:30~16:30
갓골목공실
아침식사
교육농축제 갈무리 소감 나누기
논배미 논생태교육체험 홍성씨앗도서관 여름채종워크숍
풀무학교생협 햇살배움터교육네 트워크(ㅋㅋ만화방) 홍성우리마을의료 생협
G 반갑습니다! Session3. 생각하는 오후 17:00~18:30
16:00~17:00
교육농축제 가이드
19:00~20:00
풀무학교의 역사와 지향, 그리고 내일 박완
(풀무학교 이사장)
L
교육의 생태적 전환, 마을학교 박복선
(前성미산학교장)
L 이찬갑,주옥로의 처음생각과 오늘의 교육 홍순명
(밝맑도서관장)
교육농이야기 박형일
(교육농연구소)
L Session4. 꿈꾸는 여름밤 20:00~22:00
자투리극장 공동체상영
사티쉬쿠마르의 <지금 여기에 있는 미래>
C
조대성의 farm므파탈 공개방송
C
정민철의 토크콘서트
농촌과 농업, 지역과 교육에 대 ep4. 20대는 그런 것이 아니다 한 자유분방 질 의응답 농촌편
G 네트워크파티 함께 만드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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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제2회 교육농축제
information & Etiquette
참여안내 &
갓골게스트하우스
홍동면 운월리 368-12 (광금남로 654-5) 010-6231-8574
봄여름가을겨울 내내 정원이 무척 아름다운 갓 골게스트하우스가 교육농축제 참가자 숙소입 니다. 밝맑도서관과 생각실천창작소에서 고작 30m, 걸어서 1분 밖에 걸리지 않아요. 1층 거 실과 사랑방은 전체 모임 공간 겸 남자 숙소로, 2층은 아이들방과 여자숙소로 사용할 예정입 니다. 2층 방 세 개는 모두 복층 구조로 화장 실이 딸려 있습니다.
세션 변경 제2회 교육농축제 <교육農∝村>은 모든 세션
소리통
에 자율적으로 선택 참여할 수 있습니다. 세션
010-3131-1909(신소희)
이 진행되는 동안 마을을 슬렁슬렁 둘러보셔도
교육농축제 참여, 진행에 관한 문의는 모
내셔도 좋습니다.
두 010-3131-1909, edunongcoop@ gmail.com으로 해주시면 됩니다. 만약 통 화가 되지 않으면 문자나 카톡으로 내용을 남 겨주세요. 확인하는 대로 바로 답변 드리겠습 니다.
우물터 홍동밝맑도서관 회랑
홍동면 운월리 368-21 (광금남로 658-7) 041-634-2333
교육농축제 중 잠시 쉬어가는 우물터는 밝맑도
좋고 도서관이나 만화방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 다만 신청하실 때 선택한 시간에 불참하게 되 거나 선택 활동을 변경하고 싶으실 때는 교육 농축제 우물터(밝맑도서관 회랑)로 오시거나 010-3131-1909로 전화하여 변경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프로그램 당 적정인원을 맞 춰 진행 준비를 하기 때문에 되도록 정확한 인 원 파악을 할 수 있도록 협조바랍니다. 또한 자유마당/본마당 외에 부분 참여 신청할 수 있으며 참가비는 세션당 2만원입니다. 숙박 비와 식비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서관 회랑입니다. 처음 도착해서 등록하실 때,
개인컵 사용
다음 일정이 궁금할 때, 길을 묻고 싶을 때, 선
제2회 교육농축제 기간 중 일회용품 사용을 줄
택한 세션을 변경하고 싶을 때, 버스 시간이 궁
이기 위해 개인컵을 지참해주시길 바랍니다.
금할 때, 한숨 돌리며 책을 읽거나 가벼운 대화
갓골게스트하우스, 밝맑도서관, 풀무학교 생
를 나누고 싶을 때, 주변에서 차 한 잔 하거나
협 등에서 정수기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오
조용히 쉴만한 곳을 안내 받고 싶을 때는 밝맑
전 농장에서 일을 할 때에도 개인컵을 가져가
도서관으로 오세요.
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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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하기
이동
교육농축제가 진행되는 홍동면과 장곡면은 주
이동은 기본적으로 도보와 버스, 자전거로 하실 수 있어요. 오전 농장 이동은 버스를 타거나 농장에서 태워주시고요. 오후엔 대 부분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에 마을 단 체들이 있어서 산책 삼아 걸어 다니시기 좋아요. 버스 이동이 필요한 곳은 다음 단 체 안내에 버스 시간표와 약도를 안내해드 릴께요. 자전거 대여는 역시 교육농축제 우물터에 문의해 주세요!
민들이 일상을 사는 조용한 마을이에요. 기꺼 이 일상을 내어 준 마을 분들과 진심으로 대화 하고 정성으로 일하면 좋겠어요. 마을길과 공공장소에서 목소리는 살짝 낮춰서 이야기하고, 눈이 마주치면 밝은 얼굴로 인사 해요! :)
오전 농장체험에 참여하실 때는 한낮 햇볕이 뜨겁습니다. 오전 농작업을 하실 때는 썬크림과 모자, 손수건을 챙기세요. 밭일 을 하다보면 풀에 베일 수도 있으니 얇은 긴팔, 긴바지를 입으시면 좋아요.
*우물터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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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단체
1. 꿈이자라는뜰 홍동면 광금남로 699번길 66-7 2.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홍동면 광금남로 699번길 22-33 3. 햇살배움터교육네트워크 ㅋㅋ만화방 홍동면 홍장북로 6 4. 홍성우리마을의료생협 홍동면 홍동길 194 5. 논배미 홍동면 문당길 142 6. 홍동밝맑도서관/그물코출판사 홍동면 광금남로 658-7 7. 생각실천창작소 홍동면 광금남로 658-8 8. 원예조합 가꿈 홍동면 광금남로 658-8 9. 풀무학교생협 홍동면 광금남로 658-8(7, 8, 9 건물은 다름) 10. 갓골게스트하우스 홍동면 광금남로 654-5 11. 홍성씨앗도서관 홍동면 광금남로 636-19 12. 풀무 전공부 생태농업과 홍동면 광금남로 636-2 13. 갓골목공실 홍동면 광금남로 636-19 14. 협동조합젊은협업농장 장곡면 홍장남로 101-46 행복농장 장곡면 도산리 219 텃골작은농장 장곡면 대현리 302-1 기타
a. 홍동중학교 b. 홍동우체국 c. 삼국지(중국집) d. 모두랑식당/행복나누기식당 e. 21세기마트 f. 동네마실방 뜰 g. 농협/하나로마트 로컬푸드매장 h. 홍동보건지소 i. 홍동장곡파출소 j. 홍동면사무소 k. 갓골어린이집 l. 홍동초등학교 m. 마을활력소 n. 홍성한우 홍동점 o. 문당리 환경농업교육관 ▲ 버스정류장
Festival Map
Session 1.
농부의 아침 지역의 농부들과 함께 흠뻑 땀 흘리며 일하기 농사의 즐거움 맛보기 농업의 현실 알기
8/6, 8/7, 8/8 07:0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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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자라는뜰 텃골작은농장 행복농장 협동조합 젊은협업농장 13
Session1. 농부의 아침 발달장애 청소년을 위해 온마을이 함께 만들어가는 농촌형 배움터와 일터
꿈이자라는뜰
홍동면 광금남로 699번길 66-7 www.greencarefarm.com 페이스북 /greencarefarm 트위터 @greencarefarm
2009년 가을에 시작한 꿈이자라는뜰은 발 달장애 청소년들이 농사일을 통해 건강한 일꾼으로 성장하고, 마을살이를 통해 건강 한 주민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일을 합니다. 이를 위해 마을에서 장애와 농업을 연결하 는 다양한 실험들을 하고 있습니다. 초중고 등학교 특수교사와 마을 주민교사가 협력해 배움터를 운영하고, 마을 일터와 함께 인턴 십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5년부터는 꿈이자라는뜰 농장을 일터 로 만드는 실험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마을이라는 든든 한 울타리 안에서 배우고, 익히고, 관게 맺 고, 자기 자리를 찾아, 제 몫의 일을 하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꿈꾸고 있 습니다. 이 꿈이 잘 자라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따뜻한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아울 러 텃밭일지와 블로그, 공부모임 등을 통해 부족하나마 저희가 쌓고 있는 경험을 지속 적으로 함께 나누겠습니다.
약 1km 도보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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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1. 농부의 아침 동물복지 실현 지역 유기농산물 자가사료를 먹인 자연양계유정란 생산
텃골작은농장
장곡면 대현리 302-1 freebarn.blog.me
텃골작은농장은 약 70평의 축사에서 800 마리의 닭을 키우고 있습니다. 암닭과 수탉 이 함께 뛰어 놀 수 있는 평사형 축사입니 다. 현재 규모에서 더 많은 닭을 사육할 수 있지만 닭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하여 사육두수를 적게 키우고 있습니다. ( 무항생제 산란계 기준 0.11m2/마리) 텃골작은농장 닭들은 기본적으로 항생제, 성장촉진제, 착색제 등이 들어있지 않은 무 항생제배합사료를 먹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농장에서 직접 만드는 자가사료를 첨가해서 먹입니다. 자가사료에는 유기농으로 생산되 는 쌀의 청치, 등겨(쌀겨)와 지역 방앗간에 서 참기름, 들기름을 짜고 나오는 건더기인 깻묵, 단백질 공급을 위해서 멸치나 새우 등 을 분쇄해서 가루로 만들어 먹입니다. 그리 고 계란 껍질을 두껍게 하고 칼슘을 공급하 는 굴껍질도 같이 넣습니다. 이외에도 야생 초와 지역에서 생산되는 신선한 친환경채소 들을 먹이고 있습니다. 가축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안전하 고 건강한 축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더 노력 하겠습니다.
약 10km 차량 15분 농장차량 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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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1. 농부의 아침 정신장애인과 함께하는 마음이 건강한 농장 토마토, 원예, 허브 재배
행복농장
장곡면 도산리 219 happycarefarm@gmail.com 페이스북 /happycarefarm
행복농장은 행복을 기다리기보다 행복을 향 해 농장 안에서 식물을 가꾸면서 행복을 함 께 가꾸어가는 농장입니다. 행복농장에서는 정신장애인과 희망찬 변화 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지역사회에서 정신 장애인이 주민으로서 주체가 되어 친환경 농업을 실천하여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 를 생산하고, 지역주민과 함께 더불어 잘사 는 마음이 건강한 농촌 공동체를 만드는 장 소입니다. 농업 체험과 다양한 농업기술 교육 : 충청남도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와 연계, 정신장애인 직업재활 훈련 비롯 다양한 교 육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정신장애인 고용 : 행복농장을 함께 가꿀 지역 내 정신장애 인을 고용하여 지역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 는 기반을 제공하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 공헌사업 : 마을주민의 정신건강을 위한 다양한 정 보를 제공하고 각종 마을 공동 행사에 참여 하고 지원합니다.
약 7km 차량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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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1. 농부의 아침 젊은 농부가 모인다! 배운다! 나눈다!
젊은협업농장
장곡면 홍장남로 101번길 46 collabofarm@gmail.com collabo-farm.com
토지와 자본, 기술이 없는 젊은이들이 농 업을 실천하기 위해 젊은협업농장을 만들 었습니다. 시설하우스에서 유기농쌈채소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토지는 토재재단이, 조 합원이 시설과 기계를, 생산활동에 참여하 는 사람들에게 수익을 나누는 협동조합 구 조입니다. 이는 농업 그 자체를 농업 본래 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지혜로운 협업의 방 식입니다. 젊은협업농장은 청년들이 농촌의 삶을 경 험하고 농업을 배워 스스로 독립할 수 있도 록 허브역할을 하는 교육농장입니다. 농촌 의 공동체성을 지켜나가며 지역 속에서 교 류하고 유통하고 농사를 배웁니다. 우리에 게 협업은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더불어 살 아가는 농촌의 삶입니다. 장곡이라는 지역 을 터전 삼아 자신의 재능을 농촌에 맞게 창 의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갖습니다. 우리의 삶과 이야기를 연결합니다. 새로운 젊은 농민과 지역을 협업으로 연결시킨 플 랫폼이자 인간과 자연이 유기적으로 순환하 는 작은 터전입니다. 땅과 노동, 사람의 힘 을 믿습니다. 잘 자란 생명들의 가치를 봅니 다. 진심을 지켜냅니다.
약 7km 차량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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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1. 농부의 아침 <꿈이 자라는 뜰>이 추천하는 읽을거리
장애인 마을 준비를 위한 작은 그림 홍순명
2009. 11
지난 10월 20일 저녁 7시에 갓골 홍순명 집에서 중요한 모임을 했습니다. 지역 장애인들의 생활과 자립을 위한 큰 그림을 그려보자는 것은 장애인 학부모들에게는 당장 초, 중, 고, 전 공부를 나오고 나서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고 지역으로도 장애인들을 방치하는 것은 인간적 인 사회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늘 숙제가 되어왔습니다. 지역에서는 홍동초등학교 홍동중학교 풀무학교 고등부와 전공부 하늘공동체 홍성특수교 육 지원센터 장애인 부모회 갓골생태농업연구소 등 여러 단체와 그 밖에 지역주민이 이 문 제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작은 그림이 그려지게 되었 습니다. 홍동초등학교의 홍화숙 선생과 홍동중학교의 박신자 선생, 그리고 실무운영을 전공부 최 문철 씨가 맡아, 홍동초등학교, 풀무고등부, 하늘공동체에 실습지를 만들고 지역 주민교사 와 함께 프로그렘을 운영할 방침을 세웠습니다. 장애인 학생이 여러 학교에 다니고 장소도 흩어져있어 모임이나 서류 비치를 위해 사무실을 두기로 했는데 지금 방인성 선생 식구가 살고 있는, 풀무학교 입구의 지역교육관 2층에 사무실을 단장하여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실무 책임인 최문철 씨는, 장기적이고 큰 틀의 사업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면서 프 린트물을 준비해가지고 왔습니다. 1. 농업활동을 바탕으로 장애인의 전인적인 성장과 직업 자립 * 채소, 화훼, 축산, 주곡 등의 유기재배 농업활동을 바탕으로 한다. * 자연과 벗하는 노동을 통해 정서적인 안정과 고른 신체 발달,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 한다. * 직업 활동에 필요한 기본적인 기능과 태도를 체득하여 자립적인 삶의 발판을 마련한다. * 채소, 과수, 화훼, 축산, 주곡 등의 생산물을 직접 이용하거나 가공, 판매하여 경제적인 자립을 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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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돕고 배우며 어울려 살아가는 마을 * 장애학생에게 적합하고 지역사회에 적용 가능한 맞춤형 진로를 탐색하고 개척한다. * 사업운영, 직업교육, 일자리 창출, 생산물 유통등의 전분야에서 지역사회와 함께 할 수 있는 그물망을 만든다. * 일방적인 교육과 지원방식이 아닌, 마을 구성원 전체와 상호 부조하고 서로 배워가는 방식을 만든다. * 장애인과 운영 조직이 개인의 인간성과 지역의 공동체성을 북돋우는 촉매역할을 감당 하도록 한다. 훌륭한 목적입니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함께 집에서 통근하면서 지역에 있는 농장에 서 유기농업을 하는 것은 건강하고 지역을 돕는 일이고, 그렇게 번 돈을 통장에 넣어 자립 에 보탬이 됩니다. 문철 씨의 이 계획은 잠깐 생각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오래 생각하고 평 소 이 일에 구체적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내용입니다. “시골 오기 전부터 관심 이 있었어요. 우선 귀농하여 자리를 잡고 서서히 생각하려 했는데, 이렇게 빨리 실현에 다가 설 줄은 몰랐어요.”문철 씨 의 말에는 진정이 어리고, 듣는 이의 감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야기 도중에 나도 인사말 비슷이 이야기 하였습니다. ‘도시와 농촌이 고루 존중하고 살 지 않으면 그 사회에 평화가 없다. 평화가 없으면 도시도 괴롭다. 치유도 휴식도 없다. 마찬 가지로 지역사회도 장애인을 방치하면 사람들이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돈만 아는 눈먼 사 회가 된다. 우리는 장애인에게 빛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거꾸로 장애인이 세상의 빛 이 되어야 한다(Let these children be the light of the World)라고 말한 이가 있다. 일본 의 이도가가즈오(糸賀一雄 1914-1968)라는 이다. 교도대학 철학과를 나오고 초등학교 대 용교원을 하는 동안 만난 친구들과 뜻이 맞아, 자신도 부인도 아픈 몸으로 온갖 어려움을 기 독교 신앙으로 극복해가며, 지적장애아등의 교육과 치료를 하는 오미학원(近江學園)을 창 설하여 일본 장애자 복지의 기초를 놓았다. 54세 때 직원연수 강의 중 쓸어져 다음 날 세상 을 떠났다. 장애인의 인간 존엄을 존중해야 한다, 도움보다 자립을 하도록 해야 한다, 장애 인이 살 수 있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장애인들이‘수용’ 되지 않고 집에서 다니면서 지역 내 농장에서 비장애인과 같이 유기농산물을 생산, 가공하 고 식당이나 생협에서 유통해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시설이다.’ 여러 가지 토론도 나왔습니다. 첫째 사업의 모양을 아떻게 할 것인가? 또 조직은 어떤 형태 가 적합한가? 학교인가? 협동조합인가? 사회적 기업인가? 농장인가? 사회복지법인인가? 이 모두를 포괄하는가? 이 문제는 금평리 홍성풀무생협이 협동조합이지만 영농법인의 하가 를 받았고, 또 풀무학교생협이 사회적 기업이면서 협동조합이고 영농법인의 형식을 갖듯이 두고 연구를 하되 어디까지나 공익성을 위주로 해야 하나, 나는 직원 인건비등 전액 경제 자 립이 어려우므로 협동적인 농장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으로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직 구성에 대한 의견도 나왔습니다. 이것은 상식적인 사회 통례가 있을 것입니다. 사업 과 실무를 진행하는 실무진과,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자문 그룹, 사업지원과 지원봉사를 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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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협력 그룹으로 구분하면 좋을 것입니다. 실무진이 중심으로 움직이지만 방계 조직으로 홍동초중학교, 풀무고등부, 전공부, 홍성여성농업인센터, 풀무유기영농조합법인, 갓골유기 영농조합법인(풀무학교생협), 하늘공동체, 홍성특수교육지원센터, 장애인부모회, 갓골생태 농업연구소, 갓골목공소, 지역주민교사(김시용, 최정선, 이소영, 이은우, 김수진 등)이 참여 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조직을 움직이려면 예산이 있어야 합니다. 우선 지역 교육관 2층의 재단장과 고등부와 전 공부에 지을 온실 비용은 이번에 홍동초등학교에서 지원받은 전원학교 예산중 농지 임대료 를 환원 받아 건축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모임이 의미 있기 위해서는 여러 관련 단체들이 일 정액 출자도 필요할 것 같고 내년 운영에 대비하여 사회적 기업 신청도 고려하기로 하였습 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학부모가 공동출자하거나 도시근교 개발지역에서 토지보상을 받 은 이로 귀농을 희망하는 이가 이 사업에 참여하면 좋을 것이지만 그것은 차근차근 우리 할 일을 하면서 실현을 바라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가 끝 무렵이 되어 지금 단계에서는 전원학교 장애인 프로그램 사무실이고 실무자 는 실무 간사라고 부르면 되지만 다음에 큰 그림에 들어갈 농장 이름은 무엇으로 부르면 되 나 그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름이란 간단한 것 같아도 사업의 성격이 들어나고 다른데 서 쓰지 않고 부르기도 좋아야 하기 때문에 이리저리 생각을 해야 합니다. 느티나무 책방이 생기고 나서 사방에 느티나무 자가 들어가서 너무 흔하게 되어버리게 된 일도 있습니다. 문 철씨가 든 예안은 디딤돌, 무지개, 정다운 꿈꾸는 농장/협동농장/학교 등 다양하였습니다. 다 좋지만 그런 이름들이 여기저기서 나도는 게 걸립니다. 모임을 마치고 다음날 문득 ‘열 손가락’농장 사업이라 부르면 어떨까 생각이 났습니다. 열 손가락 열 손가락은 서로 크기와 모양이 다르다. 엄지, 검지, 가운데, 약손, 새끼 손가락 열 손가락은 제각기 하는 일이 다르다. 크기와 모양, 일이 달라도 엄마가 보기에 열 손가락은 다 물어도 안 아플 만큼 이쁘다. 열 손가락 중의 하나가 아프면 전부 아프다. 열 손가락은 짝으로 치면 다섯 쌍이지만 열 손가락은 서로 도와 하나같이 움직인다. 움직일 땐 누군 일하고 누군 놀지 않는다. 열 손가락은 일하고 쓰고 그리고 만들고 그 보람으로 먹을거리를 집고 즐길 수 있다. 열 손가락은 오므리지만 또 손을 모두 펴서 다른 사람 손을 꼬옥 잡아 언 체온을 녹인다. 열 손가락은 마음 아픈 사람을 어루만져준다. 열 손가락 바닥에는 희미한 못 자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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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이 끝났을 때 정민철 선생이 뜻밖의 제안을 했습니다. “자, 이젠 끝났으니 기도 안 합니 까?” 평소 돌발적인 말이나 행동을 잘하는 정선생이라 모두 웃고 있는데 정선생은 정말 눈 을 감고 있었습니다. 일어서는 사람도 있고 예상치 않던 일이라 머뭇거리다 말았지만 그때 이렇게 기도를 할 걸 그랬습니다. “주님, 이것은 당신의 사업입니다. 지극히 작은 사람에게 한 것은 당신에게 한 것이라고 하셨으니까요. 당신의 일을 모두 기쁘게 돕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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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1. 농부의 아침 <젊은협업농장>이 추천하는 읽을거리
땅 없는 그들, 어느날 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비결은? 우미숙
2014. 11. 21 「살림이야기」
흔히 친환경 유기농업의 기본방향은 ‘소농 규모의 가족농’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농촌 의 60~70대 농부들은 잠자고 밥 먹는 것 빼고 하루 18시간을 농사일에 꼬박 쓴다. 젊은 사 람들이 따라갈 수 없는 노동강도로, 젊은 부부나 결혼하지 않은 젊은이라면 농업노동자를 고용하지 않고는 농사지을 수 없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농업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 가? 과연 가족농이 대안이 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에 협동조합 농장을 답으로 내놓은 이들 이 있다.
비닐하우스에서 유기농법으로 쌈채소 기르는 협업농장 충남 홍성 장곡면에 자리 잡은 ‘젊은협업농장’의 비닐하우스 안에는 상추·치커리·샐러리 등 싱싱한 초록빛깔 채소들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다. 세 사람이 주문받은 채소를 포장하여 상 자에 담고 있는데, 이들이 19살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농장의 생산조합 원들이다. 비닐하우스는 모두 9개 동(약 5290㎡, 1600평)으로, 오전 6시부터 일을 시작해 오후 3~4시 에 끝낸다. 비닐하우스 재배는 계절을 타지 않아 365일 생산 작업을 하다 보니 농한기가 없 다. 여기서 유기농법으로 생산된 쌈채소와 샐러드채소들은 70%를 홍성유기농영농조합에 공급하고 나머지는 지역 학교급식센터, 로컬푸드 매장, 지역장터, 식당 및 꾸러미로 나간다. 젊은협업농장은 땅도 없고 돈도 부족하지만 지역에서 농사짓는 사람들과 함께 농업인으로 인정받고, 색다른 방식으로 농작물을 기르고 공급하는 일을 제대로 하려고 지난해 5월 협동 조합으로 등록했다. 소비자는 없이 생산에 직접 참여하는 조합원 8명과 협업농장 방식을 지 원하는 조합원 20여 명으로 구성된 다중이해관계자협동조합이다. 이사회는 농장 밖의 사람 으로 박완 이사장(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이사장)을 비롯해 마을 이장과 지역 영농조합 대 표 등 3명, 농장 안 사람 2명으로 구성됐다. 구체적인 실무를 점검하고 논의하기보다는 전체 적인 방향을 함께 검토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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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풀무학교)환경농업전공부 정민철 교수(현 젊은협업농장 생 산조합원이자 이사)와 두 제자가 시작한 협업농장의 첫 이름은 ‘세 남자가 사랑한 쌈채소’ 였다. 홍성유기농영농조합의 비닐하우스 한 동을 빌려 농장을 시작했는데, 처음 정민철 교 수와 함께했던 두 제자는 현재 독립하여 새로운 협업농장을 만들고 있으며 새로운 젊은 농 업인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이렇게 젊은 협업농장이 운영돼 온 게 벌써 3년째. 협동조 합으로 선 1년을 갓 넘긴 새내기지만 협동조합 농장의 실험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셈이다.
젊은이들이 농촌에서 먹고살 수 있을까? 첫 협업농장은 한국 농업 현실과 풀무학교 학생의 진로를 고민하며 시작됐다. 앞으로 젊은 이가 농촌에서 생업을 찾고자 한다면 정말 잘 먹고 살 수 있을지, 그들을 맞이해 줄 농업 현 실은 갖춰져 있는지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풀무학교 사정도 그리 밝지 않았다. 2000년도 전에 입학한 학생들은 대부분 농촌에 적을 둔 경우가 많아, 졸업하면 집으로 돌아가서 부 모 뒤를 이어 농사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들어오는 학생들은 농업과 관계없는 경 우가 더 많았다. 그들이 농업 관련 교육을 받은 후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풀무학교가 풀 어야 할 과제였다. 2001년 풀무학교에 환경농업전공부(전공부, 2년제 초급대학 과정)가 만들어진 것도 그런 상황을 타개할 목적에서였다. 전공부를 세우고 학생들을 가르쳐 온 정민철 이사는 그때를 회고하며 “좀 더 가르치면 될 것 같았다. 고등학교 수준으로는 아직 부족하니까. 하지만 조 금 더 가르쳐 봤자 마찬가지였다”면서, 아무리 깊이 있는 농업교육을 한다 해도 현장과 멀 어지기만 할 뿐 오히려 가르치는 행위만 남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아 보였다고 말했다. “사례가 필요했다. 젊은 사람들이 자본은 없고 농업 의지는 있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건 가”라고 고민하며, 교육 현장이 반드시 학교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단다.
4명이 하루 18시간 할 일을 8명이 10시간씩 협동조합 농장이 가능하려면 365일 일정하게 일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매월 수익을 나누 고 농사를 꾸준히 해 나갈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들은 논농사나 밭농사 대신 비닐하우 스 재배를 원칙으로 한다. 비닐하우스 재배는 농사를 처음 시작하기에 비용이나 힘이 가장 적게 드는 장점도 있다. 젊은협업농장 규모만큼 농사지으려면 논농사는 약 3만3000㎡(1만 평)를 지어야 하는데, 8 명이 그 넓은 논을 경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반면 비닐하우스 9개 동에 농사짓는 것 은 현재 농촌의 나이 많은 농부와 비교하면 노동강도는 1/2, 노동시간은 2/3밖에 되지 않는 다. 나이 많은 농부처럼 하루 18시간씩 일한다면 적정 인원은 4명이지만, 젊은협업농장 사 람들은 하루 10시간씩 8명이 일하는 것으로 정했다. 생산조합원의 월 수익은 80만 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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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일하는 시간과 강도가 안정되면 오전만 일하고 100만 원을 받는 것이 목표다. 농장에서 일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3개월은 점심만 제공하고 무보수로 일하게 한다. 더 하겠다면 1년간 일할 수 있으나 수익을 나누지는 않고, 지역 차원의 지원금으로 임금을 충 당한다. 농사를 하고 싶다고 함부로 시작할 일도 아니고 얼마나 오래 잘할 수 있을지 장담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만일 1년이 지나도 계속 농장에 남고 싶다면 앞선 사람들을 독립하게 하는 방법을 택한다. 농장을 일정 규모로 유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협업농장의 목적이 규모를 키우고 수익을 더 내는 게 아니라 지역에 이 같은 농장을 30여 개 더 만들어 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젊은협업농장은 생산조합원 8명만의 것이 아니다. 지원조합원 20여 명이 농장을 함께 운영 하는데 포장 디자인, 포스터·홈페이지 제작과 관리, 사진 촬영, 팟캐스트 녹음 등을 한다. 직 접 농사짓지는 않지만 농장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가장 알맞은 역할을 해내며, 모두 자 원 활동이다. “농업을 살리는 일에 농사꾼만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젊은협업농장 사람 들은 한마음이 되어 농장을 꾸린다.
농장과 지역이 학교가 된다 생산조합원들은 농사에 대한 열의만큼 배우는 욕심도 많은 편이다. 20대 안팎의 생산조합 원은 상추를 따면서 팟캐스트로 영어나 역사 공부를 한다. 농장 창립을 함께했던 조대성씨 의 팟캐스트가 인기인데, 농업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젊은 농업인에게 온라 인 공부방 역할을 한다. 하루 생산일과가 끝나는 오후에는 농사 외에 다른 일을 한다. 화요일 저녁에는 홍성 홍동 면에서 열리는 농업 관련 세미나에 참여하고, 합창단이나 관현악 동아리 활동을 하기도 한 다. 매주 목요일은 농장 자체세미나를 여는 날로 생산작업을 하지 않는다. “청년들이 여기 서 농사와 함께 인문학도 배워 성장한다면, 농사를 비롯한 다양한 진로를 선택할 수 있을 것 이다.” 학교라는 틀이 아니어도 농장과 지역이 학교가 되어 교육하는 것이 젊은협업농장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다. 농장의 젊은 생산조합원들은 농장에서 하는 일과 지역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활동이 즐겁기 만 하다. 365일 생산 일정도 스스로 짜고 공부도 열심히 한다. 그러나 그들은 다양한 공부 와 지역활동이 삶의 충전소 역할을 하지만,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농업 생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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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업이 지속하려면 토지 소유와 경영 분리해야” [인터뷰] 젊은협업농장 만든 정민철 이사
우미숙 : 젊은협업농장이 협동조합의 옷을 입고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보고자 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10년을 내다보고 간다 하더라도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 고민할 수밖에 없 겠다. 정민철 : ‘농지’와 ‘자본’이라는 생산기반이 없는 젊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겠다고 농촌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는데, 농촌은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협업농장의 실험도 이 제 막 시작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에서 홍성 친환경 유기농업과 협동운동의 발판을 마련하 는 데 정신적 기둥 역할을 해온 홍순명 선생은 “토지의 소유권과 경영을 분리하는 것이 필 요하다”며 ‘토지은행’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우미숙 : 지금도 사람들은 귀농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자신이 농사지을 땅부터 알아보지 않 는가? 친환경 유기농업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농업 생산에 젊은 사람들이 투입되어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려면, 개인 땅을 사서 농사짓는 방식으로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토지 소유 와 경영의 분리라고 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모양을 상상할 수 있나? 정민철 : 땅은 제3의 기관이 소유하는 것이 맞다. 협동조합이 출자하여 땅을 소유하면, 조합 의 힘만 세져 문제가 발생한다. 땅 소유권은 제3의 기관이, 시설 소유권은 협동조합이 갖고 생산 운영권은 생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갖는다. 시설 소유와 운영에 관해서는 협동조합 이사회가 통제하는 방향이 될 것이다.
우미숙 : 이 같은 고민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정민철 : 협업농장의 앞날을 걱정하다가 나온 생각이다. 현재 농장의 비닐하우스를 10년 임 대계약했는데, 별일 없이 계속 이어진다면 문제가 없지만 땅주인과 관계가 나빠지거나 주인 이 다른 용도로 사용하겠다고 나선다면 10년간 가꿔 온 유기농지와 생산 노하우를 한 번에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이 고민은 협업농장만이 아니라 한국 농촌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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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 2.
마을의 한낮 마을에서 일하고 배우는 사람들 만나서 대화하기
8/6, 8/7, 8/8 14:00~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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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풀무학교탐방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전공부 생태농업과
8/7 마을단체 인터뷰 갓골목공실 그물코출판사 생각실천창작소 풀무학교 생활협동조합 햇살배움터교육네트워크 ㅋㅋ만화방 홍동밝맑도서관 홍성우리마을의료생협
8/8 교육농워크숍 원예조합 가꿈 논배미 홍성씨앗도서관 27
Session2. 마을의 한낮 하나님, 이웃, 자연과 더불어 사는 평민을 기르는 작은학교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홍동면 광금남로 699번길 22-33 www.poolmoo.or.kr 041-633-3021
풀무학교는 성서에 바탕을 둔 깊이 있는 인 생관과 학문과 실제 능력에서 균형 잡힌 인 격으로 하나님과 이웃, 지역과 세계, 자연 과 모든 생명과 함께 더불어 사는 평민(교 훈)을 기르고자 합니다. 1958년 4월 23일 에 학생 18명과 교사 2명이 수업을 시작하 였습니다. 풀무학교는 머리(학문), 가슴(신앙), 손(노 작)을 고르게 발전시키는 전인교육을 지향 합니다. 이를 위해 인문과목과 농업계열 전 문과목을 균형있게 편성하고 있습니다. 전 교생이 3년간 생활관 생활을 하면서 한 사 람 한사람 독립적이면서 조화롭고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배웁니다. 학 생자치활동과 전교회의, 동아리 활동이 활 발합니다. 옛날 대장간에서 바람을 내어 숯불을 빨갛 게 피워 녹슨 쇠, 무딘 쇠를 달군 뒤 정성껏 모루에 쳐서 호미나 낫 같은 쓸모 있는 농기 구를 만드는 기구인 풀무처럼, 모두가 학교 생활 속에서 정성껏 훈련을 받아 한 사람 한 사람 정직하고 쓸모 있는 평민으로 태어나 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풀무식구 모두는 노 력하고 있습니다.
약 1km 도보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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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2. 마을의 한낮 마을 속의 학교, 학교 속의 마을 마을과 더불어 사는 풀뿌리 지역대학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전공부 생태농업과
홍동면 광금남로 636-2 www.poolmoo.net 041-631-6604
풀무학교 전공부는 시장경제와 경쟁에 대체 할 세계관인 다양성, 상호의존, 개체 속 전 체, 순환, 조화, 자발적이라는 생태의 보편 법칙 실현에 농업이 가장 핵심 위치에 있다 고 생각합니다. 또한 소농이 지역의 다양성 을 살려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고 함께 나 누며, 모든 이해 당사자의 참여로 농민의 주 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평화 사회 실현에 중 심축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러한 믿음을 가진, 농업과 농촌을 일으킬 농 민을 기르고자 오랜 준비 끝에 새 세기가 시 작하는 2001년에 개교하였습니다. 전공부는 대도시 집중, 노동 경시, 과도한 경쟁, 엘리트 양성의 교육이 아니라 농촌교 육, 민중교육, 정신교육, 실력교육과 더불어 학생 개개인의 인격과 그들이 지닌 다양하 고 고유한 개성을 존중하는 인격교육, 일과 배움과 생활을 통해 개인의 머리, 가슴, 손 을 고루 실현시키는 전인교육, 학교 자체가 자립하는 농사 마을 교육, 지역 속에 뿌리 를 내리는 공동체 교육을 교육의 본질로 추 구하는, 울타리 없는 풀뿌리 주민지역대학, 마을과 더불어 사는 대안대학이 되고자 합니다.
약 500m 도보 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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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2. 마을의 한낮 작은 마을에 사는 아이들과 농부들의 즐거운 나무공작소
갓골목공실
홍동면 광금남로 636-19 mokgong.tistory.com
갓골목공실은 2007년 겨울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나무, 창작, 놀이라는 주제로 함 께 하길 바라는 마음과 내손으로 가구를 만 들고, 내손으로 아이 장난감을 만들고, 그 네를 만들고, 그렇게 스스로 창작하고 만들 며 하나가 될 수 있는 공간을 바라며 전공부 뒷마당 층층나무 아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동안 지역 농민들의 집수리, 아이들 목공 교실, 어른들 사랑방 구실을 하며 지역 목 공실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지역의 초, 중, 고등학교, 전공부 목공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갓골목공소는 누구에게나 친근한 나무를 매 개로, 서로 어울리고 재미난 놀이를 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지역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약 300m 도보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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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2. 마을의 한낮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를 잇는 작은 점
그물코출판사
홍동면 광금남로 658-7 network7@naver.com cafe.naver.com/gmulko 041-631-3914
세계는 커다란 선언들로 이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작은 실천들을 고민하 고 실천하면서 주변과 협동하는 땀 한 방울 들이 모여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물 코출판사는 이 땀을 책을 통해서 흘려 보고자 설립되었습니다. 2002년,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더불어 사 는 삶의 가치와 방식을 책으로 고민하면서 첫 책 『녹색 시민 구보 씨의 하루』와 『지구를 살 리는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을 펴냈습니 다. 2004년 여름엔 충남 홍성군 홍동면 갓 골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문화의 뿌리는 시 골 마을에 있다’는 홍순명 선생님의 생각을 받아 느티나무헌책방을 무인으로 운영하고, 2011년에 문을 연 홍동밝맑도서관 일도 곁 에서 도우면서 책을 통해 지역의 문화를 가꾸 는 데 작으나마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지역에 기반을 둔 출판의 새로운 길을 걸어 온 지 10년이 지났습니다.앞으로도 책을 통 해 사람들이 서로 협동하며 더불어 사는 삶 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애쓰겠습니다. 사람 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함께하는 세계를 꿈 꾸는 많은 분들과 만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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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2. 마을의 한낮 지역에 있는 젊은 농부의 개별적 성장을 돕는 인큐베이팅 플랫폼
생각실천창작소
홍동면 광금남로 658-8 creativeactioncenter@gmail.com
생각실천창작소는 생각이 자유롭게 펼쳐질 수 있는 실험적인 공간, 프로젝트를 통하 여 창의적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민 하는 프로세스를 즐길 수 있는 공간, 창의 적 발상과 프로세스에 따라 변형 가능한 공 간입니다. 지역 학교의 재학생 및 지역에 남기를 희망 하는 젊은 귀농귀촌인들의 생각 실천을 위 한 장소를 지원합니다. 생각과 실천을 위한 프로그램을 지원합니다. 실천과정을 통하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지역에서 찾을 수 있는 시도가 되게 합니다. 지역과 함께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듭니다. 자기목적적 프로젝트를 통해 창작소 인턴스 텝, 레지던시 활동가, 스토리메이킹 프로젝 트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2015년 8월 현재 풀무 고등부, 밝맑도서 관, 그물코출판사와 함께 농촌인문학하우스 을 꾸리고, <젊은농부 마을사진작가 아카데 미>를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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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2. 마을의 한낮 믿음직한 먹을거리를 이웃 ‘식구’들과 나눈다
풀무학교 생활협동조합
홍동면 광금남로 658-8 070-4607-7300 foodlink0@naver.com blog.naver.com/foodlink0 페이스북/gotgolpoolmoo
풀무학교생협은 학교와 마을에서 정직하고 건강하게 농사지은 통밀로 빵을 굽고, 한 번 쓰고 버려지는 기름을 모아 되돌림 비누를 만들고, 마을의 친환경 농산물과 가공품을 파는 갓골작은가게를 운영합니다. 수입농산 물의 급증, 먹을거리에 불안을 느끼는 소비 자들의 꽉 막힌 방에 창을 내는 일입니다. 하늘의 은혜를 감사하며 세상엔 돈보다, 경 쟁보다 귀한 것이 있다고 믿고 자연을 돌보 며 서로 부비고 사는 것입니다. 구석구석 지 역의 조각땅을 살려 알뜰히 가꾼 안전하고 신선한 먹을거리를 도시에 조공처럼 바치는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주인으로 도시 이 웃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풀무학교생협 갓골 작은가게가 하는 것입니다. 2015년에는 지역의 학교 어린이, 청소년들 과 햇살제빵교실을 운영합니다. 풀무학교생협의 활동으로 나오는 돈은 모두 지역에서 순환되며, 지역과 어우르는 학교 에 힘을 실어주는데 쓰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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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2. 마을의 한낮 교사와 학부모, 지역주민이 함께 만드는 지역교육네트워크, 추억이 차곡차곡 쌓이는 공간
햇살배움터교육네트워크
ㅋㅋ만화방
홍동면 홍장북로 6(21세기마트 2층) onmaul.tistory.com 페이스북/kkmanhwa
햇살배움터교육네트워크는 홍동*장곡 지역 의 배움터와 일터가 힘을 모아 아동*청소년 을 지원하는 교육네트워크입니다. 학교 밖, 마을 안 다양한 일터와 함께 온 마을 배움터 를 만들어가며 홍동*장곡 지역에 학생 수가 줄어드는 작은 학교의 학생들을 위한 방과 후교실을 지원합니다. 돌봄이 필요한 학생 들을 학교와 지역에서 찾고, 정기적인 만남 을 통해 개별적인 지원을 합니다. 더불어 아 이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줄 마을교사, 학부모를 돕습니다. ㅋㅋ만화방은 마땅히 여가 시간을 보낼만한 공간이 부족한 아이들을 위해 삼성꿈장학재 단의 지원과 지역주민들의 자발적 도움으로 2014년 8월, 완성된 공간입니다. 친구들 과 모여서 놀 공간이 없어 읍내까지 버스를 타고 나가거나 흔한 편의점 하나 없어 비오 는 날이면 다리 밑에서 라면을 먹던 아이들 이 ㅋㅋ만화방에 모입니다. 청소년들이 지역 안에서 진로를 찾고, 뿌리 를 내리고 살 수 있도록 학교와 지역이 함께 아이들 교육을 책임지는 것이 햇살배움터교 육네트워크의 목표입니다.
약 300m 도보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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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2. 마을의 한낮 책과 고향, 글로 벗들이 만나고 벗들이 만나 마을을 이룬다
홍동밝맑도서관
홍동면 광금남로 658-7 hongdongbook@naver.com cafe.naver.com/hongdonglibrary 041-634-2333
홍동밝맑도서관은 풀무학교 개교 50주년 기념 사업으로 풀무학교와 지역 주민들이 뜻과 힘을 모아 2011년 10월 22일 문을 열었습니다. ‘책으로 벗들이 만나고 벗들이 사랑을 이룬 다(以文會友 以友輔仁)’는 말처럼 어린이부 터 어른까지 자유롭게 드나들며 책 읽는 마 을을 가꾸고, 역사와 생활, 일의 문화가 있 는 고향을 만들어 갑니다. 홍동 지역은 유기농업의 선구적 역할을 하 였고, 2014년에 한국 최초로 유기농업 특 구 지정이 되었습니다. 홍동밝맑도서관은 그 특성에 따라 책을 손에 든 생각하는 농 민이 생명의 바탕인 흙을 가꾸고 분열과 대 립이 아닌 평화 세상을 위해 지역 공동체의 연장으로 동북아시아 공동체를 위해 6.15 남북공동선언과 평화헌법 9조 지지 구역임 을 밝힙니다. 홍동밝맑도서관은 가입한 회원들을 중심으 로 12명의 선출 이사와 감사, 사무국 그리 고 자원활동가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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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2. 마을의 한낮 돌봄과 순환이 이루어지는 건강공동체
홍성우리마을 의료생협
홍동면 홍동길 194 hoonoon.tistory.com 페이스북/hsmedcoop
홍성우리마을의료생협은 이웃과 마을이 함 께 서로의 건강을 돌보는 ‘건강공동체’입니 다. <창립선언문> 충남 홍성의 작은 면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는 우리들은 일찍부터 협동의 방식으로 지속가능한 농업을 고민하였고, 아이들을 올바르게 교육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농촌 고령화와 공동화는 건강하고 지속가능 한 지역사회의 큰 걸림돌이다. 전문가, 자본 중심의 기존 의료체계로는 이 를 해결할 수 없다. 건강한 삶은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이 주 체가 되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홍성우리마을의료생협은 하나, 우리 지역 주민의 삶을 존중하며, 더 불어 사는 마을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합 니다. 하나, 질병의 치료를 넘어 몸, 마음, 관계의 평안을 돕겠습니다. 하나, 아픈 곳이 몸의 중심인 것처럼, 돌봄 이 필요한 사람을 우선하겠습니다.
약 2km 도보 30분 자전거 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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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2. 마을의 한낮 마을을 아름답게 가꾸는
원예조합가꿈
홍동면 광금남로 658-8 cafe.naver.com/growinggardens
원예조합가꿈은 마을을 아름답게 가꾸고 아 름다운 마을을 가꾸기 위해 원예교육을 하 는 곳입니다. 2015년에는 풀무생태농업전공과정의 원예 수업, 풀무고등기술학교의 전문교과과정, 홍동중학교의 생태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 다. 식물에 대해 이해하고 지역의 산과 정원 을 탐방하며 관찰을 자연과 숲을 보는 눈, 생명에 대한 감성을 키우고자 합니다. 또한 타지역 도시농업전문가, 텃밭지도사 과정의 사람들에게 정원디자인과 식물관찰, 자생식 물 분류 등을 강의합니다. 비정기적으로 지역의 행복농장, 씨앗도서 관, 꿈뜰과 함께 꽃과 채소모종을 판매하 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풀무학교생협 앞 마을 정원의 화 단을 다시 설계하고 암석원을 조성할 계획 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정원사교육과정 (Garden School)을 개설할 예정입니다. 마을정원이 좀 더 풍성한 꽃과 열매(교육정 원, 모델정원, 만남과 휴식의 정원)을 맺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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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2. 마을의 한낮 논과 밭에서 배우고 뛰어노는 미래, 논밭생태교육단체
논배미
홍동면 문당길 142 문당환경농업교육관 맞은편 전시관 2층 cafe.daum.net/nonbaeme 페이스북 /nonbaeme
논배미는 논두렁으로 둘러싸인 논 하나의 구역을 의미하기도 하고 ‘논’에서 ‘배’우고 뛰어노는 ‘미’래를 위한 시간이라는 뜻도 담 고 있습니다. 논밭생태교육단체 논배미는 지역의 아이들 과 논밭에서 다양한 생명이 함께 살아가는 것을 느끼고 배우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하고 있습니다. 논은 그저 쌀을 거둬들이는 장소가 아니라 다양한 생명이 함께 살아가 는 공간이라는 것을 생태적으로 경험하며 학생들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며 만나고 있 습니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느니 혼자 일하는 것이 편하다고 하는 현대사회에서 논과 텃밭에서 이루어지는 공동 작업은 사회성과 관계성을 발달 시킨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또한 학생들이 활동을 통해 직접 보 고 만지고 느끼고 교감하면서 생태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의 장이 되기도 하지요. 올해 논배미는 과제 중 하나인 지속가능한 프로그램 개발과 기록화 하는 과정에 집중 하고 있습니다.
약 3.5km 도보 50분 자전거 15분 버스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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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2. 마을의 한낮 마을을 아름답게 가꾸는
홍성씨앗도서관
홍성씨앗도서관은 지역의 씨앗을 수집하고 지키 는 작은 씨앗보급소이자 씨앗기록소입니다. 씨앗 도서관은 말 그대로 씨앗을 빌려드리는 공간입니 다. 그리고 씨앗을 빌려 농사를 지은 사람이 조금 이라도 다시 씨앗을 되갚을 수 있도록 합니다. 농 사의 첫 힘이 되는 씨앗을 나누며 농부의 손에서 손으로 이어지는 씨앗 받는 농사를 함께 합니다. 지역 고유의 살아있는 씨앗을 지키고, 다시 씨앗이 땅으로 돌아가 심어질 수 있도록 순환농(農)의 중 간 역할이 되길 바랍니다. 현재 홍성씨앗도서관은
홍동면 광금남로 636-19, 2층 hsseedlib@gmail.com hs-seed.com 페이스북 /hsseedlib
충남 홍성군 홍동면 운월리에서 사무국과 채종포 100평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함께 공부하고 채종해볼 씨앗은 토마토, 오 이, 가지, 호박, 옥수수입니다. 여름철에는 언제 내 릴지 모르는 장맛비와 습한 날씨 때문에 씨앗을 채 종하기 쉽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때로는 채종해놓 은 씨앗이 썩어버리기도 하고 곰팡이가 생겨버리 기도 합니다. 그만큼 씨앗을 채종하는 일은 부지런 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지요. 건강하고 튼튼한 씨앗을 받으려면 밭에서 갈무리하는 것도 중요하 지만, 이후에 잘 보관하고 관리하는 것도 중요합니 다! 채종 워크숍을 통해서 씨앗 이야기, 씨앗 채종 법, 씨앗 보관법들을 함께 나누고, 농사를 짓는 일 상 속에서 씨앗 받는 농사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약 400m 도보 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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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 3.
생각하는 오후 교육농, 삶으로의 전환, 함께 살아가기 위한 교육 생각 듣고 나누기
8/6, 8/7, 8/8 17:00~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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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풀무학교의 역사와 지향, 그리고 내일 박완 / 풀무학교 이사장
8/7 교육의 생태적 전환, 마을학교 박복선 / 前성미산학교장
8/8 이찬갑, 주옥로의 처음 생각 홍순명 / 밝맑도서관 관장 41
Session3. 생각하는 오후 읽을 거리1
풀무학원 개교를 맞이하면서 이찬갑
1958. 4. 23. 풀무학교를 여는 날
아까 이 개교식을 사회하시는 선생님은, 이 학교를 심히 사랑하시는 의미에서, 이 개교식이야 말로 성황을 이루어야 할 것인데 그렇지 못한 것을 지극히 유감으로 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자꾸만 그렇게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오늘 이 자리가 빈 약하다 못해 처참한 지경일수록 도리어 의미가 있다면 의미가 있어질 것만 같습니다. 또 그래야 할 것만 같습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지금 이 나라는 가난하다 못해 거지꼴이 다 되었습니다. 남에게 구걸하지 않 으면 살 수 없는 것이 거지임에 틀림이 없다면, 지금 우리 나라는 무엇으로 보나 이름 좋은 원조 에 의한 구제품 없이는 단 한시라도 설 수 없으니, 거지라면 이에서 더한 거지가 어디 있을 것이 란 말입니까? 그런데 또 세상에 제일 꼴사납고 불쌍한 것은 자기가 거지이면서도 거지인 줄조차 모르고, 그저 남이 잘 먹고 잘 입으며 놀고 행세하는 것만이 부러워 그 흉내만을 내며 따라가려 는 것에서 더한 것이 어디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인간 중에서 제일 어지럽고 하잘 나위 없는 것 은 제 처지 제 분수를 모르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제 이 나라 서울을 가보면 알 것입니다. 그 노는 모양이 얼마나 참혹한 지 알 것입니다. 무 슨 정신이 있다면야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유럽의 스위스는 시계의 나라로 유명한 줄만 알았는 데, 나일론 생산으로도 세계 제일이랍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이 손수 생산하는 그 나일론조 차 -그것이 실용적이라는 말도 못 들어본 바보들인지- 그대로 사치품만 같아서 입을 수 없다고 모조리 수출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너무나 놀랍고 기막힌 일은 그 나일론이 그대로 다른 데도 아 닌 홍콩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미국 뉴욕에서 입고 다니던 양복이 서울 명동거 리에선 무색해지더라니 이건 또 무슨 일이며, 영국에서는 양복 저고리 팔꿈치에 가죽을 댔더라는 데 우리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조롱거리가 될 터이니 이건 또 어찌된 셈입니까. 심지어 영국에서 사진기 같은 건 거의 무용의 사치품만 아니라, 유해무익으로 취급하는 듯, 자기 나라 사람은 사 지 못하고 하고 외국인에게만 팔게 하느라고 엄청난 차이로 값을 따로 매겨 판다는데, 그것도 우 리 나라로만 직수입되는 귀물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 나라 사람은 그것 하나 걸치고 나서지
이찬갑 지음, 『풀무학교를 열며』, 그물코, 2010 그물코 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풀무학원 개교를 맞이하면서’ 전문을 옮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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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으면 체면이 안 서는 듯, 너도 나도 걸치고 나서니 이런 미련한 일이 어디 있을 거란 말입니까. 글쎄, 덴마크도 덴마크려니와 네덜란드는 자전거 나라로 유명하다는 말은 너무 많이 들어오거니 와, 자유중국 대만만 해도 자동차는 거의 없으나 다름없고 역시 자전거 나라더랍니다. 대북시청 의 이야기로 기억합니다만, 그 시청에서 일보는 시장부터 사환까지 전부 자전거 통근이더랍니다. 한국의 문인단체가 갔을 때 태우려고 준비한 자동차도 영업용 자동차를 세내 온 것이더랍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정부를 수립하자마자 삼십여 대의 최신형 자동차를 수입하여 말썽이 된 것 입니다. 어쩌자고 저리도 서울의 거리를, 그야말로 기름 한 방울 안 나고 자동차 한 대 못 만드는 나라에서 자동차가 난리난 것처럼 미쳐난 것처럼 야단입니까. 이러고서야 과연 우리의 장래가 어 떠할 것입니까. 여기에 무슨 생산이나 수지 여부가 문제가 된다고 할 것입니까. 참으로 이리도 가난하다 못해 거지꼴이니, 이에 큰 각오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그 앞길이 환하게 내다보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야 새 로운 세계가 열리고 피안의 세계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 그럴 가망이나 있어 보이는 것입니까. 이다지도 내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내 분수가 무엇인지를 알기는커녕 알아보 려고 생각조차 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그저 세상은 이런 것이거니, 이것이 사람 사는 전부이거니, 이것이야말로 문명국의 지향이거니, 이래야 문화인의 생활이거니 하고 있습니다. 정치의 최고위부터 현대적 도시화, 그것의 미화만을 강조하고 추진하기까지 하고 있으니, 도시 로 도시로, 서울로 서울로만 쓸려 들어가는 판국이 아닙니까. 이런 천지라 여기에 반성이니 각 오니 함은 말 할 나위 없고, 도리어 좋은 세월 만났노라고 먹자판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 다. 그래서 원간 모든 것의 목정이에 앉아 언제 어떻게 먹어버리는지 앙큼앙큼 통째로 삼켜버리 고 마는 악착스런 탐관오리*모리간상의 도둑떼 무리만 늘어갑니다. 그 밑에서 앞길이 꽉 막히어 헤매이는 많은 청년의 무리들도 할 일은 없고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가므로 모두들 그만 눈이 벌 개 덤비며 이 모퉁이에서도 쑤군쑤군, 저 구석에서도 쑤군쑤군합니다. 그래서 이루 셀 수 없는 서울의 이 다방에서도 우굴우굴, 저 다방에서도 우굴우굴하지 않습니까. 또한 당구장에도, 영화 관에도, 댄스홀에도, 기원에도 그저 사람들이 우굴우굴하여, 서울은 마치 불한당이 뒤끓는 도둑 의 굴이 되지 않았습니까. 지금 이 시간에도 서울역에 가보면 매일같이 승해가는 소매치기*깡패 가 무섭게 덤비는 험악상을 단박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한갓 표면적 현상일 뿐, 실로 도둑 의 소굴과 같습니다. 이제는 남의 흉내만이 아니라 독특한 한국식의 기막힌 현상까지 빚어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서울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의 도시에도, 심지어 농촌에도 만연해서 이 민족은 송두리째 공중에 들떠 가려는 것이 아닌가 싶어집니다. 그러나 늘 하는 말의 하나지만, 이것은 사실 우리로는 흉내이고, 원래는 서구를 원천지로 한 세 계적인 큰 조류의 현상인 것입니다. 지금 서구문명의 몰락을 말하며 그 물질문명에 대하여 크게 경고하는 이들도 일어나는 모양이긴 하지만, 과연 하늘과 꽉 막힌 현대는 이른바 과학적 유물론 이 아니면 다시금 타락적 유물론만의 폭죽의 시대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세계는 온통 여름날 장 마통에 연달은 폭우의 홍수로 둑이든 언덕이든 있는대로 쾅쾅 무너뜨리고 쓸어내며 붉은 물결 지 어 왕왕 흘러가듯, 구정물 문화의 큰 조류 지으며 정신이니 도덕이니 있는 대로 쾅쾅 무너뜨리고 쓸어내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이런 현대를 맞이한 온 인류는 그 흐린 물결에 휩쓸리어 이제야 모든 얽힌 줄에서 벗어난 참 해방된 인간의 본 세상을 만난 듯, 그저 좋아라, 행복이니 실용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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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고깃덩이들 그대로 드러내놓고 먹고 마시며 꿈지럭거리면서 두둥실 떠내려가는 것입니다. 지금 사상적 두 큰 이데올로기의 대두는 또한 다른 한편 그 유물적, 타락적 두 세계가 대두하여 서로 걸고 트는 듯, 결국 하나의 무서운 멸망의 구렁으로 쓸려들어가는 광경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들, 사람으로서야 아무리 긴긴 장마통의 엄청난 큰 홍수의 통쾌스런 세계라 한들, 그런 흐 린 물의 세계가 원판의 세계로 보이어 생명없는 큰 나무더미 등 온갖 잡것 떠내가듯 그저 흐르는 대로 떠내려 갈 수야 있겠습니까. 생명 있는 산 것이면, 그렇습니다. 아무리 잔 고기라도 반드시 거슬러 올라가 자꾸만 솟아나는 원 샘의 맑은 세계를 찾아 이르고야 말 것입니다. 이 때의 이 민 족은, 더구나 남달리 꼭 절반의 허리에 그 두 큰 물줄기가 대두하기도 했거니, 불행이라고만 하 기보다는 남다른 사명이지는 아니할 것입니까? 저런 것까지 깊이 꿰뚫어 보며 능히 근본적 시 시비비를 캐고 또 캐어, 깊고 더 깊은 구극의 새로운 원리를 붙잡아 세계 만방에 크게 외쳐야 할 것을 외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제 정신조차 차릴 줄 모르는 우리는 오히려 역사적으로 고질화된 사대사상만이 더욱 본 색발로를 하니 어찌된 일입니까. 갈리운 채 제 멋대로 매춘부인양 영접하며 그들을 따라 잘도 떠 내려가며 다시금 틈바구니에 끼어 있습니다. 갖가지 혼란과 치욕과 비참과 추태로 누구보다 앞 장 서서 함몰되어 버리려는 것은 아닙니까. 이에는 역시 동서로 갈리웠다는 독일에 비해 생각하 면 더욱 우리의 일이 얼마나 기막힌 현상인지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교육기관이란 학교들은 어떠합니까. 모두 그 걸음 그 상태뿐이라기보다도, 요새 신 교육에서 말하는 정말 지역사회에 맞게 하노라는 교육이어서인지, 그것이 소위 발전적 교육기관 인 것도 같습니다. 과연 교육이란 그 민족 그 나라의 소망으로 지중하다 해서인지, 그렇게 해야 그 교육의 사명을 다할 것이어서인지, 세계의 평균 개인소득이 적기로 밑으로 셋째가 된다는 우 리 나라에서도 하류에 속하는 우리 일반 백성의 생활과는 관계가 있을 순 없는 양, 턱도 없는 굉 장한 건물, 훌륭한 시설만을 위주로 삼습니다. 더구나 학생들의 옷차림과 소지품도 그렇게만 강 요를 합니다. 그러니 모두 거꾸로 되는 판이라, 자연 국민학교보다 중학교, 중학교보다 고등학교, 더구나 고등 학교보다 대학교는 더 성해집니다. 그런 것만의 추진으로 인간교육이란 간데없고 시험준비부터 시키며 엉뚱한 데 목표를 두고 맹활동을 일삼는 것입니다. 그 유력자 활동객들은 어떻게 하든 흔 한 원조를 받아다가 그런 건물에 간판부터 내걸고 학생도 될 수만 있으면 남보다 돈 잘낼 수 있는 층을 모집하여 일류니 이류니 하며 하나의 왕국을 만들어 이사장*교장 하고 들어앉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현대풍의 사치와 향락이 문화인 양, 그것을 보다 더 헤엄치지 못해 게걸대는 전형적인 남녀의 현대아들을 선생으로 앞잡이 삼아 교육합네 하고 이름 좋은 사친회*후원회를 만들어 탐 관오리*모리간상 이상이 나라 이 민족의 고갱이부터 짓밟아 멸하는 죄악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 민족 한 나라 백년대계의 교육행정을 맡았다는 역대의 문교부장관들은 어찌하였습니 까. 초대 장관은 현대의 학교에 호국단이라는 깡패 제작의 직통기관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호국 단 간부들의 무시무시한 무지의 행동 -인권의 존중이야 어떻게 바랄 수 있으련만 우정 등 인간 미 같은 것조차 흔적마저도 없애려 드는 악마의 화신같은 행동- 들은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 해질 지경입니다. 뒤이어 들어선 2대 장관은 현대의 학교 최고 기관인 호화판 대학을 한 걸음 더 내쳐 각 도에 배당 건립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나 긴급했는지 세계적 최대 비극을 이루던 1.4후퇴 때 도망질쳐 부산 구석에 있으면서까지 마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엔 1년에 수 만 명씩이나 다방을 순례하는 끔찍끔찍한 군상을 낳게 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 고 3대 장관도 평범치가 않았습니다. 한때 그렇게도 쓸어나오던 상이군인을 직업 알선하는 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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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격했던가, 전쟁의 최전선의 일선이란 시산혈해의 곳이 교육기관에도 최전선의 일선인 인간의 어린싹 국민학교와 무슨 통함이나 있는 듯, 거기의 선생으로 맞이한다고 큰 소리를 쳤던 것입니 다. 또 그 뒤를 따른 4대 장관은 더욱 장했던 듯합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 문화의 근본 기초의 하 나로 일정 때 압박 밑에서도 굴하는 일 없이 순사하면서까지 유일하게 정리의 기이한 해산을 보 게 된 우리 말과 글을 파괴시키는 착수부터 하며 달려들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모두들 건국 초에도 비상시대라서인지 비상한 인물만이 선택받아 등장하곤 하였던 것입 니다. 여기에 무슨 학문 문제, 문화 창조 문제가 있다고 할 것입니까. 이제 정말 이런 속이니, 그 리도 지향한다고들 하는 민주교육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또한 그 속에서 조성되어지는 정도가 옛 날의 입신양명, 영달출세에 멈춰지고 말아질 것입니까. 이리 뱃속에서 이리 새끼가 나올 것밖에 무엇이 있습니까. 어미보다 더 우수한 놈이 나왔으면 소원성취가 된 것 아닙니까. 이제는 막달이 된 지도 오랜 모양 해산의 최고조기에 오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학교치고 가장 교육효 과가 나타날 고등학교의 일류 학교일수록 동창인 친구를 찔러 죽인다 혹은 패거리를 지어 때려 죽인다 하는 너무도 엄청난 죄악의 살인 사건까지 연달아 터져나오는 것 아닙니까. 경향 각지의 모든 학교에서 학생깡패의 사태는 자꾸만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작년 1년간 소위 ‘불량학생’으로 적발 검거된 자가 28,994명, 이들이 저지른 범죄 건수가 24,771건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뿐아니라 금년 들어서 이 악성적 경향 은 더욱 우심하여 1월부터 2월 말까지 2개월 동안 3,939명에 3,386건에 달하고 있다 합니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일반이 간혹 추측하듯이 이들은 세칭 ‘가짜 학생’이 아니라 90%까지는 정 식으로 학적을 가진 정규학생이라고 합니다. 자행하는 죄목은 절도*사기에서부터 폭행*협박*공 갈*강도*살인 등 극악무도한 범죄에 이르기까지 무소부지의 행악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합 니다. 그러면 그런 밸 속에서 그런 질부터 달라진 변덕스러운 것이 나올 줄을 그렇게도 몰랐다는 말입니까. 하기는 법망에 걸린 것만이 이러니 그밖에는 얼마나 더 있을 것인지 모릅니다. 그보다도 전체의 경향을 생각할 때 아무리 무감각하고 철면피한 사회라기로 무심할 수야 있겠습 니까. 사람이란 양심이 있어서 이로써 힘쓰는 바 있으면 인성*신성이 되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 면 그것은 용서없이 수성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어느 새 독일의 것을 다 연구하고, 미국의 것을 배웠다는 말입니까. 독일의 관념적 교육은 청산하고 미국의 경험적 신교육을 실천해야 하느 니 하며, 무어든 세월이 흘러가는대로 다 하고서야 무슨 여한이 있다는 말입니까. 또 그렇게 걱정 이 되겠거든 그만 놀라 통곡해 돌아설 것이어늘, 고치려 들기는커녕 상하의 어느 층에서나 여전 히 나라를 망치고 민족을 멸하는 일에만 경쟁삼아 배바빠하면서 무슨 염려라는 말입니까. 아무리 도의가 땅에 떨어졌다고 부르짖어도, 아무리 교육제도가 틀렸다고 개혁을 하여도 모두 부질없는 소음일 뿐, 오히려 객관적 사실은 이를 비웃으며 저 될대로 더 험상스리만 되고야 말 것입니다. 이 나라, 이 사회, 이 교육, 이 사조 이대로는 아니 됩니다. ‘반공반일교육’이라 하지만, 북쪽의 저런 불덩어리를 떠 이고도, 남쪽의 이런 화덩어리를 밟고도, 이렇게도 정신이 못 차려지는 것입 니까. 6.25동란까지 지나고도 아무런 일도 없었는 듯, 무엇으로나 몇 배씩 더 심해가는 것이 아 닙니까. 게다가 견딜 수 없어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은 도리어 사갈시하려 드는 이 판국이니 무엇 을 더불어 논의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무슨 경고인들 필요할 것입니까. 그처럼 이북더러 소련 을 조국이라 한다 하고 그 주구라 하며, 민족을 살상하는 역도의 무리라 욕하지만, 이젠 무엇으 로 보나 사대사상도 민족 반역도 정도가 넘는 것만 같습니다. 사회나 당파보다 더한 신판이 속출 하는 이때, 특히 이조시대만 지적해 말할 것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도 한두 가지로 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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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몰라도 온통 이 지경인 데야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란 말입니까. 여기에 무슨 인간이나 교육 이상이 문제된다고 할 것입니까. 이제는 기성의 모든 것과는 형식에서가 아니라 질에서부터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출발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고층건물의 네온사인 밑에서 갖은 사치와 향락을 H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뚜드리며 노는, 아스팔트 깔고 자동차 달리는 숨막히는 현대문명의 총아, 구정물 문화의 도시에서가 아닙니다. 무한 생명의 원천인 광명의 햇볕 드리우고, 별나라마저 반짝거려주는 저 푸른 하늘을 떠이고, 무한 조화의 본바닥이라고 온갖 새싹이 피어나는 누른 땅덩이를 디디고 선 자연의 농촌에서 인간의 새로운 출발을 지어가게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따라 어느 유력자의 힘으로나 원조를 받아서 하는 그런 권력 의존, 물질 의존의 학교가 아 닙니다. 그리고 지금 교장 문제도 생겼고, 또 학교 규칙 문제도 생기겠지만, 실로 그런 교장이 들 어앉는다든지 무슨 규칙을 만들어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무두(無頭)로, 오직 생명 의 진리만이 주인공이 되는 학교여야 합니다. 모두들 그 생명의 약동에서 튀어나는 하나의 통일 된 진리에서 무슨 규칙도 있을 수 없이 이루어져 나가는 학교가 아니면 아니 됩니다. 그래서 정 신적인 생명의 자리에서 이 백성의 양심의 그 깊은 데까지 파고 헤치어 들어가 맨 속의 것에서 부터 깨우쳐 가는 새로운 정신의 교육이 아니면 아니 됩니다. 우리의 역사 이래 가져 보지 못했 던 참된 마음, 새로운 마음을 지어가는 새로운 출발이 아니면 아니될 것입니다. 여기에 이 학교 의 출현의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니 여기에는 고독과 처참한 수고와 피땀이 없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원래 교육이란 어디까지든지 인간의 정신적인 새로운 마음의 해산의 수고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더구나 가 난하고 눈물겨운 이 백성의 우리가 하도 모순된 엉클어진 문제들을 해결해 가야 하는 것에서도 그렇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정신적인 혼란만이 아니라 실제에 있어 뒤엉키우기 끝없는 현실이니 이 일을 어찌할 것입니까. 18세기 말 인류 교육의 시조 페스탈로찌가 새로운 교육을 시작할 때 당시 스위스의 모든 것 가 운데 교육 상태는 가장 참혹했던 모양입니다. 우선 국민교육기관인 촌락학교의 수는 총 360교 이었더랍니다. 거기에 교실은 130교만이 있었고, 그것도 낮고 좁고 어둡고 그러니 악취마저 내 뿜는 하잘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합니다. 그 나머지는 교사의 집에서 공부하게 되는 형편인데, 그러자니 자연 집안 식구가 일하는 방에서 같이 공부하지 않으면 아니될 지경이기도 하였답니다. 선생의 봉급은 모든 봉급자 중에서 가장 하급이었고, 그래서 선생은 틈틈이 다른 일을 해서 벌지 않으면 아니될 형편이기도 했답니다. 수업도 부형들의 의견에 따라 아이들을 마음대로 입학 퇴 학을 하였으며, 교재는 기독교 경전인 성경, 기독교 문답 등 역시 제 원대로 택하여 큰 소리로 읽 기, 외우기, 또 쓰기 위주로 가르쳤으며, 산수도 별로 하지 않는 공부였답니다. 이런 형편이니 선 생의 자격 정도로 짐작케 될 것입니다. 그 가운데는 혹시 교회의 장로급도 없지 않았으나, 농부 중에서 남에게 예속되었던 이도 있었고, 공장에서 일하던 이들이 하게도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 서 그 때의 문교부장관은 무엇보다 교사 양성기관인 사범학교 설립에 무진 애를 썼으나 정부의 몰이해로 성과를 얻을 수 없는 지경이기도 하였답니다. 말하자면 요새 말하게 되는 그런 훌륭한 학교가 아니라 옛날 한문 서당식 학교가 거기에도 그대로 행해졌는가 봅니다. 20세기 후반 세기적 역사의 큰 변환가에 들어선 대한민국 교육 상태는 저에 비하여 어떠합니 까. 그리고 굉장히 범람해가는 대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중*고등학교도 앞으로는 폐합의 노고 를 하게 되었다 하거니와, 이상하게도 가장 뒤떨어졌던 국민학교까지도 이제는 의무교육이 거의 100%에 달해간다 하며, 여기에도 굉장한 교실을 완비해 가는 모양이니 더 말할 것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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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봉급은 이 나라 어느 봉급자보다도 가장 상급이래서 모두 학교에 취직하려 드는 터입니 다. 수업은 모든 제도가 형식에서일망정 정비되어 어느 문명국에도지지 않는다고 호언할 정도가 아닙니까. 또한 교사의 자격은 보통 대학 출신이며, 그러한 자격자는 이루 다 셀 수 없을 지경이 고, 교사를 전문으로 양성하는 사범 대학 출신만 해도 너무 많아 각 도에 배당된 잉여수가 3,4 백 명씩이나 된다 합니다. 그러니 그때의 스위스와는 정 반대의 지경으로, 천지의 차인 양 다르 지 않습니까. 이런 형편에 무엇이 부족하며 흠할 수 있을 것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속에서 다시 오늘 이와 같은 출발이 있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것은 이 무 슨 비극의 일입니까. 그런데 이 홍동에는 스위스의 그 때를 상징이나 하듯 아직도 옛날 한문 서 당이 독특하게 수십 곳이나 된다고 하니 이는 실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연 우리 의 비극의 감정이나마 좀 덜어주려는 것일까요. 혹은 무엇을 보이어 주려는 것일까요. 이제 우리 는 이 나라의 저 모든 부족할 것도 흠할 것도 없는 교육기관을 흘깃거림 없이 새 출발을 하지 않 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실제에 있어서는 저렇게도 수두룩하니 우거진 잡풀 속에서 싸우며 헤쳐 나가지 아니 하면 아니 되는 눈물의 수고의 일이 있게 되었습니다. 생각하면 종교에 교회당이 없어야 한다는 것과 같이 교육에 학교마저 없어지는 것이 인간의 이상 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교육엔 학교가 있어 거기에 교실도 있고, 운동장도 있고, 뒷동산도 있고, 앞 유원지도 있고, 그리고 또 그 속에 도서관도 실험실도 그리고 소농장도 소공장도 모두 필요함도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 학교라 하면 그저 그렇게 확장해야 하고 유력자의 세계 여야 하고 그래서 건축부터 간판부터 문제이어야 하지만, 이제 새로이 세워지는 학교는 그래서는 아니 된다는 말입니다. 그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참된 정신적인 인간교육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미 서로 말이 있었던 관계이겠지만 교육 이념과 구상을 좀 적어 보내라는 연락이 홍동으로부 터 있었습니다. 동시에 홍동에서 추진한다는 기성회의 상황을 써 보내왔습니다. 처음엔 그럴 듯 하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만, 어쩐 일인지 차츰 들리는 말에 처음과 달라지는 것 같아 괴로웠습 니다. 그러던 중 다시 직접 와서 소식을 전해 주시는 말에 홍동의 유력자 여러분이 중심이 되어 추진하다던 기성회가 깨졌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퍽 실례가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말은 기쁜 새 소식인양 들었습니다. 그제서야 진정 새로운 일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소식 전해 주신 분에 게 이제는 되었으니 기운을 내서 해보자고 하였습니다. 동네 아이들 모아다가 밝은 하늘 맑은 대 기 속의 뒷동산 잔디밭 깨끗한 무늬 좋은 풀방석 위에서 시작하자고 했습니다. 6.25사변 1.4후퇴 때 임시 수도 부산에서는 사람이 오고가는 길가에서도 가르친 일이 있습니 다. 그것은 무슨 사변, 무슨 후퇴이어서 그렇게 되었던 것이라고 할까요. 차라리 그것은 우리 미 족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다행히도 제자리의 장점을 찾는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너 무나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이 민족의 모습대로 시작해야 그것이 참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 으면 그것은 거짓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소박스러운 참의 시작, 거기에서 새로운 싹이 터날 것 입니다. 이렇게 하는 데서야 저기 저쪽에서 물결쳐 오는 정신적인 새로운 소식이 생생한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소식을 전하는 이는 그래도 웬만한 설비와 고등공민학교의 허가라도 있어야 아이들이 올 것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촌 아이들조차도 보잘 것 없다고 하여 오지 않을새 오히려 더욱 의미 있는 일일지도 모를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 마침내 오늘 이 날이 닥쳐오고야 말았습니다. 60명 정도의 학생은 물론, 근 100명이라도 될 것이라던 학생은 다 어디로 가고, 우리에게 주어 진 이 백성의 아들딸들은 이 18명뿐일까요. 이렇게도 힘들게 주어진 귀여운 18명, 이 백성의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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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이 될 어린이들, 이들을 참 새로운 고갱이인양 이처럼 가운데 앉히고 감격 깊이 개교하는 날이 왔습니다. 당연히 물러나야 할 것이 물러나자, 그와는 다른 뜻에서 몇 분이 있는 힘과 노력을 기 울이었고, 이에 순수하신 마을 여러분이 또 호응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비록 창고를 헐 어다가 보름도 못되어 지었을망정 정성이 어리운 새로운 이 집에서, 또 비록 국민학교 아이들마 저 흉보는 것이나마 이런 새로운 걸상에 걸터 앉아서 개교하는 날이 왔습니다. 여기에 다시 그처 럼 요란스러운 순서에 의하여 거행되곤 하는 저 많은 식에 명예로이 차명하는 것에서가 아니라, 남달리 간곡한 기대로 와주신 몇 분의 주목까지도 받고 있는 개교가 아닙니까. 이런 가운데서 진행되는 이 개교식은 너무 뜻밖이요, 놀라운 광경입니다. 이제는 시작되었습니 다. 출발하였습니다. 이 새로운 학교는 우선 이 마을, 이 홍동의 것이 되지 않아서는 아니됩니다. 결단코 어느 권력자의 힘이나 원조물자의 덕으로 떠들고 야단하며 되는 것이어서는 아니됩니다. 그것은 상호부조리의 원리나 설비 충실의 건전성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학교란 이 마을 이 민족 의 생리의 지체 중 하나인 눈으로 자라나야 하는 것이고, 다시금 이 가난한 민족을 떠이고 더 일 층 신고하는 일꾼을 기르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다시는 처음부터 큰소리치며 중학 기성회라는 간판으로 내리씌워 버리는 그런 강압적인 것이어서는 아니됩니다. 그렇게 해서야 되고 유지되어 가는 것은 애초부터 없어서 무방한 것입니 다. 없애버려야 합니다. 그런 것과는 그 본질부터 다른 하나의 자유스러운 학원으로 되지 않아서 는 아니됩니다. 새로운 뜻이 계신 몇 분이 정성스리 시작하는 것으로 이 동산의 고요한 곳에 눈 이 떠나는 하나의 새싹이 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백성 상한 얼굴의 소유자인 이 마을, 이 홍동의 가장 기본층인 이들을 비롯한 모두 가 이것은 너무나 당연스러운 내 아들과 딸을 길러내는, 내 고장과 이 민족을 살리는, 이상의 새 나라를 이루는 것으로 알게 되지 않으면 아니됩니다. 곧 이 학교를 우리 모두의 새로운 소망의 것으로 알아, 다만 지지한다거나 후원해서가 아니라, 자기 아기를 젖 먹이며 업어 기르듯 온 마 음 온 힘을 다하여 떠받치는 것이 되지 않아서는 아니됩니다. 글쎄, 이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어느 권력자의 힘이나 원조물자 덕으로 하는 것이 우리 가난한 살림에 보다 더 합리적인 것 같고, 무슨 간판을 앞세우고 자격부터 얻게 함이 이 하잘 나위 없는 백성에게 더 없는 향상의 기쁜 소식같이 들리게 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글쎄 또 누구를 믿으 려 한다는 말입니까. 그저 미국이 다 하여 줄 줄로 알겠다는 말입니까. 언제까지고 우리의 대적 이기도 한 반민주적인 상층계급을 받들고 노예상태로 있겠다는 말이며, 이 민족을 망친 사대사상 의 결식근성을 그대로 지닌 거지로 지내겠다는 말입니까. 내 일을 내가 아니하고 누가 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입니까. 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거란 말입니까. 그렇게만 해서 지금껏 잘 되어 왔 습니까. 그 이익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렇게만 해서 언제 어떻게 이 민족으로 하여금 자기 각성, 자기 성장을 할 수 있게 할 것입니까. 결국 모든 문제의 해결은 이 민족이 자기 각성, 자기 성장을 함에 있는 것입니다. 무슨 재단운 동*승격운동이란 말입니까. 도대체 사람의 일을 어떻게 터전으로 삼을 것이며, 사람에게 무슨 자 격 딱지를 붙인다는 말입니까. 우선 그런 것은 일단 무시하고 초월하지 않아서는 아니됩니다. 그 것은 사실 기초도 향상도 아닙니다. 뿐아니라 그래서는 가장 자기 것이 되어야 할 기본층의 것 이 아니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의미하고 또 지금 이 민족에게 해독을 주는 또 하나의 저 많은 학교의 하나가 되고 말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교육에서는 금년에 7천여 명의 대학 출신이 라 하지만, 그런 아무 쓸모도 없는 무지한 불한당 떼무리를 길러내는 그런 것밖에 아무것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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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되는 것입니다. 이 학교는, 돈이 있어야 하고 권력이 있어야 된다는 세상에 정신 뿐이러야 하고 정신만이어야 한다는 증거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간판을 얻고 출세를 해야 한다는 세상에 그런 것처럼 우습고 어리석은 놀음은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비록 가난해서 하잘 것 없으나, 이 말을 이 홍동 전체의 사람이 제 생리의 것으로 알아 제 정성껏 제 자식을 알뜰히 길러 공적인 하나의 사람이 되게 하는, 그런 정신적이 존재로 자라며 커감이 있게 하지 않아서는 아니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정은 실지로 저의 본고향 어떤 한 학교를 통해서 잘 보아왔습니다. 그 학교는 그렇게도 정성스럽고 정신적인 학교이었습니다. 사상이 뒤끓는 애국자의 소굴이었으며, 하나의 생명의 산 덩어리였으며, 그 촌의 것의 민족의 것이었습니다. 그랬건만 3.1운동 뒤 남의 흉내따 라 튼튼한 토대를 만든다고 재단법인을 만들고, 어디로 올라가는지 승격한다고 굉장히 떠들더 니만, 결국 그 학교는 정신이고 사상이고 다 달아나 버렸습니다. 무슨 정성도 아무 특색도 없어 진 그때 시절 하나의 소위 학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돈 가지고 하는 학교, 상급학교에 가기 위해 모여드는 그런 무리를 길러내는 기관의 하나가 되고 말았습니다. 돈이 많아지고 큰 간판이 붙여 지더니, 이에 따라 자연 그 촌 가운데의 가난한 사람도 물론 다닐 수 없어졌거니와, 아무 특색도 없는 어디든 있는 하나의 소위 학교가 되었는지라, 누가 뜻있게 찾아올 사람이 있겠습니까. 과 연 그때 이 땅의 13오에서 매년 거의 오지 않던 도가 없이 오곤 하던 그들도 그만 발이 끊기고 말았던 것입니다. 잘 된다, 올라간다 하는 데서 결국 그 촌을 떠나고 이 민족을 떠난 것을 보여 준 표징인 것입니다. 그 학교는 위대했습니다. 특히 그 학교의 설립자 되시는 이로부터 역대 두 분의 교장 선생님을 중심한 그 학교의 존재는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한때에 그런 과오를 범했던 간에, 또 는 그 뒤가 어떻게 흐리어지고 말았던 간에, 그 모든 것을 탓할 것 없이, 이 민족에게 그 학교의 교육적 위치는 절대할 것입니다. 혹시 배일 증오감, 민족 우월감으로 보아 이 땅의 어느 곳보다 강렬했다는 것으로 유명하달는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것은 너무 피상적으로만 보는 것입니다. 좀 더 다른 것으로 보지 않아서는 아니됩니다. 어디까지든지 이 민족의 참된 각성의 피끓는 깨우 침, 제 나라 열망하는 불붙는 이상의 부르짖음, 그것은 확실히 이 민족에게 하나의 기초공사를 하였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절실한 점에서 현대문화를 수입하는 개화시대에 다만 하나의 민족적 감정의 불등에서 일어났던 많은 학교와는 달리함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 자아의식의 새 로운 각성, 새 출발의 열망의 약동, 얼마나 살아 있고 우렁찬 것이었더란 말입니까. 그것은 이 민 족을 향하여 외치는 외침, 이 나라를 불러일으키는 부르짖음이 아니었겠습니까. 그것은 이 민족, 이 날의 기초를 닦는 역사적인 일이 되지 아니할 것입니까. 교육은 참된 깨우침을 불러일으키는 부르짖음의 것이 되지 않아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좀더 근 본적인 참된 자리에서 새로운 정신적인 깨우침, 좀더 근본적인 깊은 의미에서 새로운 세계 발견 의 부르짖음이 아니면 아니 될 것입니다. 참말 참된 자리에서 깨우침, 불 붙는 이상에서 부르짖 음이 되지 않아서는 아니될 것입니다.그래서 마치 속으로 끔찍스리도 곪고 또 돌곪은 병처를 알 아 큰 수술을 함에, 썩어나는 부분 하나 남김없이 모두 비어내고 긁어내어, 맨 속 깊이 제 생살 찾아 새 살이 돋아나게 하듯 해야할 것입니다. 너무도 못된 것에 짓밟히고 또 뒤싸이어 캄캄 세 상이 된 거기까지 용서없이 파헤치고 들어가 깨우쳐서, 눈 티나는 제 양심 다시 찾게 하며, 참 마 음 새 마음부터 지어가게 하는 것이 아니면 아니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마치 새로운 건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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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려 할 때 표면에 덮인 온갖 잡것 다 섞인 썩은 흙을 파헤칠 뿐 아니라, 속에 있던 온갖 흙마저 모두 파내어 그 맨 밑에 깔린 근본 토대인 반석까지 들어가 그 반석을 기초 삼고 쌓아 올리듯 하 지 아니하면 아니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처럼 비참히 파묻혀 버린 맨손 깊이 양심이 힘차게 되살아나는 것에서 지어지는 참 마음, 새 마음으로 생명의 세계 발견하며 용솟음쳐 솟아남 있게, 영원을 향하여 불 붙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이게 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좋은 씨가 떨어 져서 싹터 날 수 있는 옥토 같은 참된 마음, 광명의 불이 커져 불 붙어날 수 있는 좋은 심지 같은 새로운 마음을 지어가게 하는 것이 참된 교육이라고 해야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참말 앞으로는 이 교육이 본격적이게 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새 교육의 사명은 여기에 있습 니다. 혹시 그런 교육학 교육론이 어디 있느냐고 할는지 모르겠으나, 그러면 지금 이 민족의 끝 없이 암흑해진 이 양심, 그릇되고 더러워진 이 맘성에 무슨 말이 통하며 무슨 생각이 날 수 있겠 습니까. 진정한 의미에서 그렇게 함만이 비로소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하며, 또 이 인간이 제 사 명을 다할 수 있게 할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참으로 교육은 이러함에서 인간이 진정한 의미 의 참된 생명으로 자라며 영원을 향해 날개 치는 인간으로 지향케 할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교 육이념 속에서라야 위대한 사상의 산출도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많이들 심리학이니 교육법 이니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며 요렇게 해야 한다 조렇게 해야 한다 하는 따위로는 도저히 이룩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것들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금 이로 인하여 인 생으로 하여금 의미 있게도 하며, 또 ‘도의는 당에 떨어졌다’는 것도 다시 건질 수 있어, 인생 본 연에 빛나는 정열의 사람, 이상에 불타는 인간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여기에는 제 역사와 제 말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저가 역사를 배우는 가운데 자기 방성의 절실, 인간의 그릇됨에 대한 통한을 절절이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인간의 뿌 리, 오랜 동안 누적해 온 민족적인 갖가지 죄악상을 역사적으로 시시콜콜 들추며 파헤쳐 보는 것 이어서, 그 깊이 파묻힌 민족적 양심, 상한 마음의 자리에까지 들어가지 않고는 마지 않는 것입니 다. 물론 역사는 하나의 사회과학이어서 사회의 진전을 연구하는 학문적인 것이어야 할 것은 말 할 것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창조주에 대한 반역적 인간 사실의 추구임에는 더욱 틀림이 없어 서, 적어도 인간의 죄악성마저 송두리째 드러내며 근본 수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육에 있 어서도 옛날의 교육 방식으로 인간의 개인 수양에 겉만 번지르하게 하는 수신과목 같은 것이나, 현대 교육방식으로 공동의 사회생활에 질서유지하기 위한 공민과목 같은 것에 비할 바가 아닙니 다. 그리하여 아무리 하여도 되지 않으니 지금은 또 다시 직접 도덕이라는 이름을 붙인 과목까 지 생겼지만, 무엇을 어떻게 한들, 인간의 밑바닥까지 들추어 그 맨 밑에서 새로운 것이 솟아남 을 보고야 말려는 인간 사실 그대로 놓고 보는 역사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다시 제 말 곧 제 소리, 제 정기, 제 기운, 옛적 조상 적부터 그들이 자기대로 사노랄 때 에 무언지 서로 통하느라고 터져 나오기 비롯하여 이루어 온 제 심정, 제 개성과 제 생명을 발휘 하는데 가장 청신하고 고귀하고 독특한 자리를 점령하는 그런 민족의 제 말이 있지 아니합니까. 그것은 그렇게도 입에 익고 가슴 속 깊이에서 터져 나오는 그 제 소리의 말이기만 합니까. 또한 귀에 익고 가슴 속 깊이의 심정에 배잦아진 제 소리의 말이 아닙니까. 그 제 소리의 말이 어디선 지 쟁쟁히 들려올 때에 얼마나 반가워 귀를 기울이며 심장마저 뛰게 되는 것이던가요. 정말 과 거에 그리도 천대받고 말살케까지 될 뻔하던 우리 말이 일단 새로워져 나타날 때,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아롱져 샛별 같이 아름다운 말로 우리 입에서 튀어나올 때, 이 제 소리, 이 제 말소리는 얼마나 고귀한 인간 생명의, 우리 개성의 최고 표현으로 다시 더없이 반가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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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가슴 속 깊이에서부터 반가워, 아무리 혼수상태에 깊이 들었던 잠에서라도 화닥닥 깨어나며 눈물겹게 끌어안아 맞이함 있게 될 것입니다. 남의 목청을 흉내낸들 무슨 힘이 나며, 결국 우습 게만 보이고 말 것이 아닙니까. “제 말에 제 느끼고, 제 소리에 제 깨는 말씀”이라고 하시며 무언 지 깊이 느끼시는 선생님이 계시지만, 우리도 역시 귀를 기울이게 하여줌이 있지 않습니까. 참말 그처럼 제 역사를 제 말로 외침은 새로운 교육, 정신교육에는 절대한 것입니다. 여기서 벌써 일찍부터 하여 왔다는 덴마크의 교육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래의 기록 은 하도 읽은 지 오래고 다시 참고할 길도 없어 인용어 등 모든 것이 틀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렇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덴마크가 그렇게 잠이 들고 혼미하여 있을 때, 황폐의 강산 에 정신없이 쓰러져 있을 때, 교회의 승정 그룬투비히는 교회의 직을 버리고, 크리스찬이기 전에 인간이 되고, 인간이 되기 전에 덴마크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또 제 역사와 제 말이 아니면 그 민족을 깨우칠 수 없다고 크게 외치며, 덴마크의 역사와 말을 중심한 새로운 교육으 로 덴마크 사람들을 다시 불러일으킬 것을 제창하였습니다. 이에 호응케 된 열정가 크리스텐 콜 드를 통해 생생히 싹이 트게 된 그것은 과연 큰 산 운동으로 덴마크를 불러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이 덴마크의 소리를 우리는 크게 경청해야 할 일인 줄로 압니다. 그들은 농촌 운동가가 아닙니다. 민족을 깨우친 아들들입니다. 그들이 행한 인간적인 민족교육 이 지금의 농촌 낙원 덴마크를 이루어 놓았다면 더욱 흥미가 있지 않습니까. 지금 덴마크라면 농 촌의 낙원을 생각하고, 농촌의 낙원이라면 그들 농민생활을 연상하며, 흔히들 그들의 소농*중농* 대농 등 생활 상태를 보고 오며 또 협동조합도 보고 와서 우리도 그 같이 하자 하지만, 결코 그렇 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뿌리없는 나무가 어디 있습니까. 된 원인을 모르고 어떻게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인지 의문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덴마크에 관한 몇몇 서적이 없지 않고, 일본에도 덴마크에 관한 서적이 많이 있지만, 흔히 그렇게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덴마크의 교육 연구 권위자인 독일의 홀만 씨는 그 모든 것과 달리 정신적 교육의 핵심을 쥐고 확실히 그리고 힘차게 말한 것을 볼 수 있음을 크게 다행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그가 쓴 책에서 역사는 산 이야기, 산 전설, 산 역사라 하고, 말은 산 말, 생기 있는 말, 약동하는 말이라고 생명기 있는 주옥 같은 서 술들이 되어 있습니다. 마치 푸른 물 속에서 산 고기가 번쩍번쩍 뛰어나듯 하는가 하면, 구슬꿰 미 꿰듯 하여 있는 광경을 보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기에 역사에서는 대하가 저 멀리서 발원하여 굽이굽이 흘러오는 산 광경을 장쾌히 바라보는 것과 같다고도 했거니와, 말에서는 책에 쓰여 있 는 글과는 다른 산 생명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인생으로 가장 생각이 왕성하고 번뇌가 있고 무언지 끊임없는 동경심을 갖고 자꾸만 추구하게 되는 나이의 열여덟 살 이상의 청년들을 불러놓고 그런 산 역사를 산 말로 힘차게 말하 며, 그들의 정신을 불러일으키고 혼을 불어넣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과연 덴마크 국민고 등학교에서 겨울 농한기 4~5개월만을 지내고 나면 그만 사람이 일변한답니다. 빛나는 이상이 생기고 산 사람이 되니 우울로 검은 구름이 끼었던 얼굴에 빛이 나고 희망이 가득 찬 웃음의 얼 굴로 변한답니다. 그러하니 각각 제 고향에 그들 활동의 눈부신 새로운 역사 창조의 전개가 있게 된 것 아닙니까. 그 학교는 그처럼 정신교육, 제 역사와 제 말을 중심한 정신교육이어서, 농업학 이나 비료학 등의 과목이 없답니다. 실은 그런 과목의 존치 문제로 맹렬한 논란이 있던 중, 그런 것을 넣는 것은 국민고등학교의 이단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렇도록 정신교육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서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우선 덴마크는 덴마크요, 우리로서 역사적인 개성을 달리함에서 그렇기도 하려니와, 다시 시대도 다르니 거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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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더 일층 나아간 것이 아니면 아니 된다는 점에서도 그러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덴마크의 그것 이 다만 농촌운동만이 아니라, 보다 깊은 의미의 민족문제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한층 더 들어간 것이어서, 자연의 본래 의미를 찾는 새 우주관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 본래 의 의미를 찾는 새 인생관 문제로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듣건대 저들은 무엇보다도 북구민족이 본래는 훌륭했다는 것으로 많은 신화 등 역사사실을 고취함이 있다고 하 거니와, 또한 수업시간 전후 등 흔히 노래를 힘차게 많이 부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노래를 하 게 된 동기는, 역사 시간엔가 선생이 어떤 전쟁 영웅 이야기를 하자 그 애국적인 피끓는 영웅 말 에 너무 흥분에 넘치어 듣다 못하던 어떤 청년의 입에서 그만 우렁찬 노래가 터져 나오고야 말게 되었다 합니다. 그러니 열중했던 전 좌중도 어쩔 줄 모르고 모두들 합하여 함성을 울리며 그 노 래를 불렀다 합니다. 그야말로 읽은 지도 오래어 사실과는 몹시 틀릴지도 모르겠지만 기억에 남 는 대로는 이처럼 하여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크리스찬의 교육 태도라 지만 그 교육 자체도 어떤 것인지 짐작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니 본래 그 정도의 것으로 이렇게까지 근본이 잘못된 인간에 대해서 어떻게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기에 그래도 낙원이라 하며 귀염성스리 살아간다 하면서도 우리 나라에서는 소 위 생이별이라고 천하에 못할 것같이 아는 이혼뿐만도 아닌 일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많게 된다 는 결과가 생기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또 하나의 천박한 현세주의로 역시 인간교육에 낙제 한 것입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나아간 시대이기도 하려니와 세계의 두 큰 주의의 물줄기가 대두하여 소용돌이치며 세기적 대변환을 이루려는 최절정기에 있습니다. 이 마루턱에 올라앉은 우리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참말 인생의 깊은 밑까지 더듬지 않고는 못 견딜 우 리가 아닙니까. 그리하여 저들이 그때부터 탐구했다는, 우리들은 왜 존재하는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마침내 현재의 이것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하며 영원에까지 그렇습니다. 그 영원의 세계 발견까지 가지 않고는 못 견디어 하는 인생이 되게 해 야 할 것입니다. 인간교육의 최선의 일은 인간으로 하여금 영원의 문을 두드리는 자리까지 이르 게 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 새로운 발견을 위해 이 민족은 오늘까지 기적적으로 보존케 되어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온 인류가 썩어 망하는 세상에서 전연 다른 새 외침을 부르짖는 사명이 있지는 아니할 것인가 합니 다. 여기에 하나의 큰 열쇠가 있습니다. 덴마크에는 그때 그 교육의 주인공 그룬트비하가 있는 반 면에 절대의 신앙자인 키에르케고르 같은 이가 있어서 맹렬한 반대의 싸움을 하였다고 합니다. 너무나도 맹렬한 싸움이었던 모양이니, 그것은 덴마크를 놓고 아니 인간을 놓고 한 싸움이 아니 었겠습니까. 우리는 이 같은 소식도 다시 들으면서 더 아나간 깊은 의미의 인간적 입장에서 하는 민족교육*인간교육이 아니면 아니될 것입니다. 참으로 덴마크가 그렇게 빛나는 자랑스러운 역사 를 가지어서 그 정도의 인간 사명을 하게 되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비참하고 치욕스러운 역사를 가짐은 그 깊이의 인간 사명을 하라시는 것을 사실로 보여주시는 것은 아닙니까. 그러면 이제 앞으로의 새로운 교육의 실제적 실천은 어떻게 해야 할 것입니까. 그것은 우선 민 족의 역사를 통하여, 이 비참한 현실을 통하여 날마다 드리우는 우리에 대한 하늘의 새로운 소식 의 그 말을 생생한 그대로 외쳐 전하는 것이라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한 선생은 마치 이 땅 의 여읜 부모가 가냘픈 어린 자식들을 다시금 귀엽고 또 소망을 두고 등에 없고 품에 안아 기르 듯이 백성의 아들딸들과 함께 날마다의 생활을 살아가면서 같이 공부하며 일도 해가는(협의도 하 며 나아가는) 이것이 지금 신교육이라 하는 생활교육이 아니겠습니까. 옛날 과거를 보아오던 시 절부터 그야말로 받아 외우기만 하면 되는 주입식 공부로 시험치는 성적을 따라 교육 결과의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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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을 짓는 그런 구교육이 아니라, 같이 살며 하는 새로운 생활교육으로 산 교육을 해야 할 것입 니다. 그리하여 사람은 물론 다 같음도 사실임에 틀림없지만 그러나 또 달라서 천차만별의 인간 제대로의 개성을 가짐도 틀림없는 사실이니, 그 각각의 개성이 제각기 눈이 트며 자라나 형성됨 이 있게 해야 할 것입니다. 특수하게 투철한 아이는 그러니만큼 그 중한 것을 기르기에 두려움의 수고가 있어야겠지만, 미약하고 희미한 아이는 그러니만큼 또한 그 귀한 것을 찾아 기르기에 더 욱 두려움의 수고가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상 구극에 가서는 특수와 미약이 어디 있겠습니 까. 그 모든 것이 다 합해야 비로소 하나의 조화를 이룰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가운데서 소위 신교육과는 도리어 정반대의 결과가 될는지 모르나 어디까지든지 이 백성 의 아들딸들로 하여금 겉문제보다 속문제, 물질문제보다 정신문제를 깨우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외면의 것에 구속된 물질의 노예가 아니라, 진실의 여부, 정의의 여하가 인간문제 해결의 열쇠가 된다는 것을 알고, 진실을 하모하고 정의를 갈망하는 위대한 정신과 사상의 사람으로 제 개성의 그 모든 일들을 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그처럼 인간의 깊은 제 양심 을 찾고 새 마음을 지어 가게 하는 그런 정신적 깨우침의 일이 있어야 할 것이 해야 하지 않겠습 니까. 그래서 가면 갈수록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간의 그릇됨과 허 무함을 갈수록 일며 근본적 새로움과 참스러운 영원의 문을 두드리는 자이게 해야 하지 않겠습 니까. 이 일이 어찌 진실을 떠나고 정의를 떠나서 될 수 있을 것입니까. 그러니 또한 이러려면 여기에 인간의 기본인 일상의 보통생활이 얼마나 진실의 것이고 의미 있 는 것이며 정의의 것이고 고귀한 것인가부터 알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참말이지 이 인간의 보통생활인 ‘부지런히 일하며 부지런히 공부함’이 어찌 다만 먹고 마시기 위한 일, 입신양명의 공 부뿐일 것이겠습니까. 피안의 저 건너를 향하여 ‘헤쳐감의 표징인’ 일이요, ‘찾아감의 표징인’ 공 부일 것입니다. 이 눈물겨운 일상의 보통생활자의 주인공 민중 속에 뛰어들며, 우선 순수한 그 하나로 살아가는 자이게 해야 할 것입니다. 학교에 와서는 선생님에게 배우고, 집에 가서는 부모 님 밑에서 되새기며, 그 정신의 생애가 어떤 것인지 아는 그런 건전한 인간부터 되게 해야 할 것 입니다. 그래서 이 민족이 우리 일상생활에서부터 정신적인 것을 보게 되며 새로워지기 비롯해 야 할 것입니다. 시대도 새로워지니 이젠 일에서부터 재래의 관념에서 떠나 새로운 의식에서 하 는 것이어야 할 줄 압니다. 사람이 생명을 타고남이 벌써 움직이기 위하여 난 것이 아닙니까. 그 리하여 인간이 움직임에서 하는 곧 인간의 ‘삶’의 비롯에서 하는 일이 아니면 아니 될 줄 압니다. 한 가지 일, 두 가지 일을 하여 갈수록 사람은 새로운 의식, 새로운 경지에 들어서게 되는 게 아 닌가 합니다. 공부한다는 것도 물론 그런 새로운 의식에서 하는 것이 아니면 아니될 것입니다. 사람이란 결국 깨닫는 것이 있어야 하는 이상, 어떻게 공부하는 것을 국민학교*중학교*고등학 교*대학교*대학원의 탈놀음을 하여 그런 간판으로 사람의 값을 정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 런 암매의 낡은 관념에서 벗어나 하나하나의 진리를 깨달아 가는 것에서, 빛의 새 세계를 엿보게 됨에서 하는 것이 아니면 아니 될 것입니다. 한 문화, 두 문화의 이룸에서 아니라, 자꾸만 새 세 계, 더 일층의 새 세계를 향해서 ‘찾아감의 표징인’ 것에서의 공부가 진정한 공부가 아니겠습니 까. 한 가지 공부, 두 가지 공부를 하여 갈수록 새로운 의식, 새로운 경지에 들어서게 됨이 아닙 니까. 그리고 ‘일만 하는 건 짐승, 생각만 하는 건 도깨비, 지금 이 나라엔 짐승이 아니면 도깨비 뿐이요, 인간은 없다’고 하신 선생님도 계시지만, 과연 근로가 없는 교육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 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그것은 또한 마치 밥 먹고 옷 입듯 하는 것과 같아서 ‘우리 삶의 터전 을 삼음’일 수는 없을 것이겠습니까. 씨앗이 흙에서야 싹터나듯 이런 인간의 기본 보통생활에서 깨달아 자라야 그것이 진짜 놀라운 참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이런 의미에서 ‘부지런히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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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부지런히 공부함’의 일상생활을 통하여 민중 속에 뛰어들며 순수한 그 하나로 살아가는 자 들이 생기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처럼 처참히도 상한 얼굴의 소유자이기도 한 이 백성과 같이 울고 웃으며 살 줄 알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서 짊어지는 사명의 짐을 둘 러메고 그 많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가게 해야 할 것입니다. 단지 웅변이나 학설 따위만은 아니 됩니다. 그 모든 짐 있는대로 모두 내 짐으로 알고 민중 속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이런 새로운 교육, 새로운 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누가 이 민족의 피땀의 어려운 짐을 지고 앞장서 줄 것입니까. 이 민중의 이같이도 참혹무쌍한 짐을 제 짐인 양 즐거이 져 줄 자가 있다는 것입니까. 그러나 또한 이 짐만도 아닌 것 입니다. 소위 상류층이라 할까 한 그 짐은 어찌할 것입니다. 한 갓 생각하면 관계도 없을 것 같은 지금 누구나 다 잘 말하는 저 북쪽 소련의 앞잡이라는 공산당의 짐은 어찌 할까 함도 있겠지만, 우선 이 땅의 중앙 서울서부터 각 곳에 저리도 정신 못 차려하며 갖은 못된 죄악을 밥 먹듯 하며 이 민족을 짓밟고 제 세상뿐인 양 날마다 허화의 춤만 추고 있는 무리들의 짐은 어찌할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생각하면 도무지 이 민족에게 무슨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역 사 이래로 아직도 제 정신 한번 들어보지 못한, 자아의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민족의 일이어니, 이렇지 않고 어떠하겠습니까. 언제 먹고 마시는 미몽에서 깨어나 보지 못했고, 한번 입신양명의 허무에서 헤어나 보지 못한 민족이어니, 이렇게도 먹고 마시는 것이 일이며, 서로 시기와 분쟁을 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게다가 가장 빛나야 할 삼국통일이라는 그때부터 도리어 사대사 상만이 중첩해 오는 역사이어니, 이 민족에 저리도 아첨과 간교와 모략과 중상과 작당과 살상만 으로 일삼을 것이 아니고 무엇일 것입니까. 여기서 어떻게 진실과 정의의 값을 알기를 바랄 수 있으며, 그런 진실성과 정의감의 사람을 볼 수 있을 것입니까. 참말 저 짐마저도 마다 아니하고 응당 져야 할 짐인 양 혼연히 지고(물론 때로 그런 예리한 의사의 진단과 수술 같은 책망과 싸움 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보다 역시 수고의 짐으로 지고). 실제 이 민중 속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 여 가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렇게 지고 가는 피땀의 수고의 사람, 크나큰 의미의 사람이 생겨나는 데서야 이 민족은 비로소 새로운 제 정신이 들고 회생의 새 기운이 돌며 인간의 양심을 다시 찾으며 새 마음 지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러는 데서야 이 백성의 새 싹은 터나고 새 소망의 길을 찾아들게 될 것입니다. 옳습 니다. 이러는 데서야 이 민족의 역사상 동양의 상상봉에 올라 위대한 역사를 지어 가려던 것이, 그만 중턱에서 중추가 부러져 거꾸러지며 굴러 떨어지기만 하는 역사뿐을 짓노라 여태까지 민족 적 인간적 본연의 정신조차 언제 한번 차릴 수 없어 갈수록 피투성이 흙투성이의 상태로 추악해 지기만 하고 멸망의 운명만이었던 것에서, 다시 새 길 찾아들며 회생의 새 숨길 돌리게 될 것입 니다. 지금은 굴러 떨어지다 못해 평지에도 멈출 길이 없이 또다시 난데 없는 밑도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한 무한정의 구렁텅이에마저 쓸어가들어가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이리도 이 민족의 고난의 역사, 상상도 못할 이 추태만상까지 더한 비극의 역사만이 자꾸만 더하여 가는 것이 아 닙니까. 그러나 이제 그처럼 피땀의 수고의 짐, 크나큰 의미의 짐 지고 가는 이 땅 이 민족의 귀 여운 아들딸들이 등장하여 나설 때, 이 땅이 민족의 새로운 소망의 기쁨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낙망할 것이 아닙니다. 이제라도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항상 기회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되는 것입니다. 산 제 정신만 들면, 뜨거운 정성만이 어리면 되는 것입니다. 이리도 우리의 역사는 오랜 동안 비절참절하였길래, 오히려 더욱 근본적인 새로운 정 신으로 참 마음을 지어가면 가장 근본적인 새로운 의미의 새 역사를 지어가게 될 것입니다. 세계 어느 누구에게서보다 영원의 싹이 틀 수 있는 영원의 새 나라 찾아가는 본격적인 인간의 새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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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어질 것입니다. 해산의 진통이 오랬으면 오랬을수록, 그 진통이 컸으면 컸을수록, 새 아이 의 출산의 그 환호성은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여기에 그 새로운 생명의 출산에 환 호성이 터져 나올 것입니다. 환호하는 찬송의 소리, 그 음악은 우렁차질 것입니다. 그때에는 지 금 같이 죽어가는 비명과도 같은 소리들은 일소하게 될 것입니다. ‘노자 노자’하는 수심가나 아리 랑 타령 같은 것이며, 더구나 아무 뜻도 기운도 없는 해이해지고 느려빠지기만 하는 유행가 같은 비참한 소리는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더럽고 주검의 나라 같은 이 상태 속에서 ‘으악’ 소리치며 이것을 뚫고 들추어 버리며 힘차게 솟아 외치는 소리가 나오게 될 것입니다. 전연 새로운 음악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렇게까지 정신적인 아무것도 있을 수 없이 그저 타락적 향락적인 에로라는 소위 황색 문학 천지가 아니라, 그것을 헤치고 새 싹 터나듯 하는 새로운 의미의 문학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야말로 어찌 보면 지금껏 인간에 없었던 새 문학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온 인류에게 새 정신 들게 할 위대한 문학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림으로도 소박하고 청초하고 정조있고 의기있는 그리고 불타는 이상으로 싸워 나아가는 씩씩하고 아름다운 이 백성의 아들과 딸의 화상을 그릴 자가 나올 것입니다. 다시금 이 땅덩이의 대지를 짚고 저 드높은 하늘을 떠인 영원의 빛의 새 세계에 나서는 새로운 인간상을 그려낼 자가 나올 것입니다. 옳습니다. 그런 새로운 정신의 수고 속에서 이 민족의 회색의 징조가 보일 것이며, 온 세계를 새롭게 할 일이 생길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이 민족의 모든 현상과는 뒤엎이어진 새로운 판국이 출현되며 세계를 향하여 덤벼들 일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고난의 역사는, 풀 무의 불꽃에 단련한 이 역사는, 이때 이 민족에게 주어진 새로운 교육의 터전일 것입니다. 아 무리 하여도 반만년 역사라 하지만, 이때까지는 핏줄기만이 문제이었다고 할 것입니다. 못할 말 도 같지만 어찌 보면 아직도 우리는 인간이면서도 채 인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 다. 여기서 무엇이 생기리라고 기대했다는 것부터가 잘못이었다는 것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제부터는 정신적 해산의 수고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크나큰 일이 우리의 가슴을 뚫고 들 어오니 벅차만지지 않을 것입니까. 이러한 교육이념에서 이룩된 이 땅의 새로운 교육은 절망 중 의 이 백성에게 과연 새 소망을 주게 하며 암흑 중의 이 인간에게 새 광명을 주는 것이고야 말 게 될 것입니다. 이제 지금껏 말한 것을 다시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지금까지는 현대문명의 총아인 도시를 중심 으로 한 그 도시교육*선발교육*물질교육*간판교육*출세교육에서 이 인간이 멸망하고 이 민족 이 썩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새 교육은 새로운 시대의 총아일 농촌을 중 심으로 한, 농촌교육으로, 민중교육으로, 정신교육으로, 실력교육으로, 인격교육으로, 이 민족을 소생시키고 이 인간을 새로 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이로써 말을 그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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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3. 생각하는 오후 읽을 거리2
전환기의 교육 기획하기 성미산학교의 ‘마을 만들기’ 사례
박복선
前 성미산학교장
생태 위기 시대의 교육 최근에 목도하는 지구적인 경제 위기와 생태 위기는 우리 삶이 벼랑 끝까지 내몰렸다는 것을 생 생하게 보여 준다. 브레이크가 없는 금융자본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경제 붕괴’라는 폭탄 을 돌리고 있다. 어느 나라도 고실업과 극심한 빈부 격차 문제를 해결할 뾰족한 방도를 가지고 있 지 않다. 숲은 사라지고 있고, 바다는 오염되고 있고, 대기는 혼탁해지고 있다. 피크 오일(peak oil), 기후 변화, 그리고 핵으로 인한 재난은 묵시록적 상상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징표다. 더 이상 지금과 같은 삶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하다. 근대를 넘어서는 기획이 나와야 할 때다. ‘전환’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그러나 근대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시도는 미미하다. 특히 위기의 정점에서 삶 을 가꾸어 가야 할 미래 세대를 키우는 학교에서는 ‘전환’이라는 문제의식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학교에서도 환경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가르친다. ‘환경’이란 교과를 선택할 수 있는 학교도 있고, 환경 동아리 는 많은 학교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생태 위기가 근대의 산물이라는 것과 생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두려운 일이다. 다행히 많은 대안학교에서는 최근에 ‘생태적 전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부국강 병의 수단이고, 사회적 지위의 배분 기관인 근대적 학교교육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에서 출발한 대안교육자들은 생태 위기와 사회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교육의 시대적 사명이라고 인식하고 있 으며,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 자체가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교육에서 ‘생태적 전환’을 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생태 위기’를 극복하는 것 이 시대적 이상이기 때문이다. 생태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는 꽤 오래전부터 있었지만(예컨대,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를 발표한 것이 1972년이었다) 위기는 격화되고 있다. 인제 정말 인 류의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대재앙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도래할 지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런 불확실성이 변화를 거부하거나 체념하게 만 드는 핑계가 된다. 거부와 체념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결국 교육의 힘을 빌려야 한다. 생태 위기 를 넘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은 이 시대 최고의 이상이다. 교육이 시대적 이상에 바탕 을 두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것이 ‘미래 세대’에 대한 우리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미래 세대는 그들의 의 환경을 보호하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 삶의 양식 자체를 전환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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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와는 무관하게 생태 위기를 해결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미래 세대에게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지경으로 망가진 지구를 남겨 주면 안 되며, 나아가 그들이 생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 력을 길러 주어야 한다. 스스로 자기 삶을 꾸려 갈 수 있는 자립 능력, 좋은 공동체와 마을을 만 들어 내는 능력,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능력, 자연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소박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능력이 그것이다. 이런 능력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들이 직접 생태적 전환이 라는 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그것이 진로를 설계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미래에는 어떤 일을 하든 생 태적 안목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대니얼 골먼에 의하면 월마트에서는 매장에서 판매하는 모 든 제품에 대해 환경 투명성과 영향성을 평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결코 생태 친화적이라고 보 기 어려운 거대 유통업체의 이런 조처는 비즈니스에서도 생태적 가치를 구현하지 않으면 안 되 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다. 대니얼 골먼, 이수경 옮김, 에코지능, 웅진지식하우스, 12쪽 나아가 미 래에 좋은 일은 생태적 전환을 하는 과정에서 생겨날 것이다. 대안적 에너지, 대안적 경제, 대안 적 돌봄 등이 그러한 예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태교육은 그 자체로 아주 좋은 교육이기 때문이다. 생태교육은 자연과 사람에 대 한 사랑에 기초하고 있다. 죽임이 아니라 살림을,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분리가 아니라 연결을 지향한다. 머리만 큰 사람이 아니라 건강한 감수성과 아름다운 몸을 가진 사람을 길러 낸다. 마을 과 공동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상상력과 관계 능력을 기른다. 자율과 자치의 문화를 만들어 낸 다. 우리가 흔히 교육의 목표로 생각하는 것(그러나 실제로 학교에서는 무시되는 것)은 모두 생 태교육의 핵심적인 내용들이다. 처음으로 다 같이 이랑과 고랑을 만들었을 때는 오전과 오후 활동을 모두 합쳐서 하루 종일 했는 데도 한 20평 정도밖에 완성하지 못했고, 그 다음 날에 몸이 엄청 쑤셨다. 하지만 지금은 2시간 만 에 20~30평을 다 완성할 수 있을 만큼 실력과 기술이 늘었다. 아무래도 이 일이 기초를 다지는 일 이라 힘든 면도 있지만 완성하면 제일 뿌듯한 작업이다. …… 농사에서 제일 귀찮고 힘든 작업이 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잡초 뽑기라고 할 것이다. 《풀들의 전략》을 공부하며 우리 주위에 있는 풀들은 이름 없는 잡초가 아니라 나름대로 생활 전략이 있는 풀들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바라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농사를 시작하고 우리가 심은 농작물 주 위에 풀이 나기 시작하자 《풀들의 전략》을 읽었을 때의 마음은 싹 사라지고 슬슬 ‘짜증 나는 잡초’ 로 변했다. …… 수확하는 것은 재미있었다. (우리가 그동안 땀 흘리며 키운 것들을 뽑는데, 힘들고 고단할 리가 없지.) 수확을 다 해서 한 무더기 쌓아 놓고 보니, 그 작던 새싹들이 이렇게까지 자라 난 걸 보니 너무 신기했다. 그리고 그게 우리의 밥상에 올라가서 음식이 되니 ‘우리가 키운 것’이라 는 생각에 뿌듯하고 정말 맛있었다. 농사일은 힘들고 고되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지금까지 내 가 의식하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곳에서 농사를 해 보니 내 입속으로 들어오는 게 정말 다 소중 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성미산학교 7학년 학생이 농사를 짓고 나서 쓴 글이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힘들어하고, 이런 것 을 왜 하느냐고 투덜대지만, 싹이 나고 자라는 것을 보면서부터는 놀랍게 변한다. 정성을 다해 가 꾼다. 수확만큼 아이들이 열렬한 반응을 보이고 기쁨을 표출하는 수업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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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발견 이런 흐름에서 최근 대안교육의 새로운 화두가 된 것이 ‘마을’이다. 처음에 입시 교육의 탈출구 를 마련하기 위해 시작된 대안교육은 진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마을을 고민하게 되었다. 마을 과 분리된 학교의 교육은 아주 빈약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어떤 학교는 학교 주변 에 마을을 만들었고, 어떤 학교는 마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기 위해 지역사회 사업을 벌이는가 하면 교사들도 마을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기도 한다. 처음부터 마을이나 공동체를 기반으로 만 들어진 학교도 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회자되는 것처럼 마을이 교육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은 널리 인정되고 있다. 근대에 학교가 교육을 독점하기 전까지 일과 놀이와 배움이 통 합적으로 행해지던 장소다. 아이들은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면서, 어른들을 따라 산이나 들을 쏘 다니면서 삶의 기술과 일을 하는 법을 배웠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마을이 바로 학교였다. 근대 화의 흐름 속에서 마을은 사라졌지만 교육학에서는 여전히 지역사회의 교육적 기능에 관심을 기 울이고 있다. 특히 가정과 세계의 ‘중간 세계’로서의 마을이 사람의 ‘점진적 성장’에 대단히 중요 하며, 오늘날 교육의 위기는 어느 정도 마을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윤재흥, ‘울타리’와 ‘우 리’의 교육인간학, 한국학술정보, 161-204쪽 참고은 음미할 만하다. 두뇌의 단순한 훈련에 머물고 마는 학교교육의 편협함을 벗어나기 위한 방안으로 지역사회의 자원을 활용하여 실제 생활에서 배우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주장김찬호, 사회를 보는 논리, 문학과지성사, 254-276쪽 참고.도 설득적이다. 실제 로 혁신학교 같은 곳에서는 학교의 담을 낮추고 지역사회와 다양하게 만나는 실험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안교육에서 말하는 마을은 그것 이상이다. 마을은 학습 공간이자 자원일 뿐만 아니라 생태적 전환의 기본 단위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생태적 전환이란 살림살이에 필요한 것들과 에 너지를 스스로 생산해 내면서, 서로 돕고 사는 마을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전환 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아주 다양한 수준과 형태를 보일 것이다. 당연 히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교육도 아주 다양할 것이다. ‘하트랜드 작은 학교’는 하나의 모범적 사 례가 될 것이다. 하트랜드 마을은 하나의 공동체, 번창하고 아름답고 전통이 살아 있는 좋은 영국 마을입니다. 지 금 이 마을에는 도자기 굽는 사람, 집 짓는 사람, 농사짓는 사람, 정원 돌보는 사람, 음악가, 미술가, 시인, 작가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마을에 있습니다. 우리가 학교를 시작할 때 나는 마을의 도공에 게 가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학교를 시작합니다. 정규 도자기 선생님을 모실 여유가 없습니다. 일 주일에 한 번 오셔서 우리 아이들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그 사람은 “네, 기쁘게 하지요. 날마다 도자기만 만드는 게 지루해졌습니다. 하루를 비워서 아이들을 가르치겠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 런 겁니다. 그 사람에게 하루 분의 돈을 주면 됩니다. 그저 푼돈이지요. 이런 식으로 농부와 집 짓 는 이, 목수 같은 마을 사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 사람들은 하루나 반나절 또는 필요한 시간만 큼 옵니다. 와서 실제로 필요한 것들을 가르칩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기들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 에 학교가 자기들의 학교라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선생님들 모두를 저마다 잘 압니다. 그저 정보 를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도공이 도자기를 만들고, 전시하고, 팔고, 도자기에 대해 장부를 정리하 는 예를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생생한 모범인지 상상해 보십시오! 선생님은 그저 교실에 와서 몇 가지를 가르치고는 자기 집으로 달아나 버리고 아무도 그 선생님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그 런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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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하트랜드의 작은 학교에서 우리는 마을 전체가 우리의 학교라고 말합니다. 학교 모임이 있 고 부엌이 있고 선생님들이 있는 그 건물만이 학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마을 전체가 학교, 우리 의 학교입니다. 그러니까 학교를 공동체의 중심에 두고 아이들과 어른들 사이에 그렇게 친밀한 관 계를 맺을 수 있으면, 그러면 당신은 심성교육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티쉬 쿠마르,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 보리, 23-24쪽
하트랜드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교사가 된다. 마을에 있는 도공의 작업장은 바로 교실이다. 아 이들은 여기서 도자기 만드는 법을 배울 뿐만 아니라, 도공이 그것을 전시하고 판매하고 장부를 정리하는 과정을 ‘통째로’ 배운다. 이런 활동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도공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이런 돌봄과 가르침의 경험이 그를 문화적으로 고양시키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마을 어른들 사 이에는 친밀하고 믿을 만한 관계가 형성되고, 이런 관계망에서 다양한 소통이 이루어진다. 마을 사람들은 아주 적은 돈을 받으면서도(혹은 돈을 받지 않고도) 아이들을 위해서 기꺼이 시간을 낸 다. 돈이 매개되지 않는 귀한 관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일하는 법, 관계 맺는 법 등 삶의 기본기 를 익히는 것이 하트랜드 학교 교육의 핵심이다. 마을은 단순히 학교가 활용하는 자원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내는 공동체다. 마을 자체 가 하나의 학교다. 이런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무엇보다 삶의 기술을 배우는 과정이다. 교 육에 대한 근본적인 전복 혹은 전환이 없다면, 성립할 수 없는 교육이다.
‘마을학교’라는 근본적인 실험 성미산마을 사람들은 마을 만들기가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1994년 마을에 처음으로 ‘우리 아이를 우리가 키운다’는 철학을 내세운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설립되었 다. 기존의 유치원 교육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부모들이 직접 출자하여 ‘대안 유치원’을 만든 것이다. 어린이집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몇 년마다 새로운 어린이집이 설립되었다. 그런데, 우리어린이집 조합원 다섯 가구가 이사를 가는 일이 생겼다. 어린이집을 졸업하는 아이들을 대 안학교에 보내기 위해 마을을 떠나게 된 것이다. 다들 서운하고 심란해하는데, 누군가 탄식하듯 이 말했단다. “우리 그냥 하나 만들면 안 돼?” 성미산학교의 설립 과정에 대해서는 [유창복, 우린 마을에서 논다, 또하나의문화, 125-158쪽] 참고
그렇게 해서 2004년 9월 성미산학교가 문을 열었다. 마을 사람들이 마을에 만들었으니 다 들 ‘마을학교’라고 했다. 그러나 ‘마을학교’의 구체적인 상에 대해서는 다소 막연한 생각들을 하 고 있었다. 그래서 성미산학교를 처음 만들 때 마을이 학교가 되는 그런 학교, 학교 안에 담긴 학생이 아니라 학교 담을 넘어 마을을 공부하는 학생, 교사도 학교에서 상근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마을 주민이, 학 부모가 교사가 되는 그런 학교를 꿈꾸었던 것이다. 앞의 책, 144쪽 이런 정도의 원칙만으로 운영하기에 학교는 너무 복잡하고 무거운 시스템이다. 더구나 골목에 서 노는 것도 위험한 대도시 안에서, 대부분의 부모가 일을 나가 낮 시간에는 비어 있는 마을에 서, 대안학교 경험도 없는 마을 사람들이 ‘마을학교’를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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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교육이나 마을에 대한 이해 없이 서울에 대안학교가 생겼다는 말만 듣고 아이를 입학시키겠 다고 온 부모들이 반이나 되었다. ‘마을이 학교에 해 준 것이 없는데 무슨 마을학교냐’라고 공공 연히 말하는 부모들도 있었고, ‘마을 사람들이 회의 하러 드나드는 곳이 마을학교냐’고 묻는 부 모들도 있었다. 마을에 대해서, 대안교육에 대해서, 마을학교에 대해서 다들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고, 대부분 은 그것이 대단히 래디컬한 기획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성미산학교 초대 교장이었던 조한 혜정이 스케치하듯 쓴 글에 담겨 있는 의미를 깊이 이해할 안목이 없었던 것이다. 최근 서울 도심에 심상찮은 일이 벌어졌다. 갓난아이를 공동으로 키우던 이웃들이 모여 작은 학 교를 만들었다. 학교 건물 주변에는 조그만 자전거들이 즐비하다. 학교 골목 어귀에는 ‘그늘나무’이 라는 녹색 간판의 유기농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고, 가게에 앉아 있으면 아이들이 지나가면서 인사 를 하고 간다. 간혹 속상한 일이 있거나 기분이 울적한 아이는 들어와서 어른들이 사 주는 아이스 크림을 얻어먹고 가기도 한다. 길 건너 큰길에는 ‘동네부엌’이라는 반찬 가게가 있고, 언제든 외상 이 가능한 단골 중국집이 있다. 그 옆집은 생맥주 집인데, 아이들이 잠들 만한 열 시가 넘으면 어른 들이 삼삼오오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며 하루의 피로를 풀기도 한다. 자동차 수리소인 ‘차 병원’에서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은 견습공이 되기도 하고, ‘꿈터’라는 택견 도장은 아이들이 어린 동생들을 가르치는 도제 학습장이자 함께 뒹굴며 만화를 보는 놀이방이기도 하다. 학교 수업 을 마친 후에도 아이들은 집에 가기 싫으면 학교에서 논다. 방과 후 교실에서 어른들이 요가를 하 거나 회의를 하면, 그 옆에서 빈둥거리며 귀동냥을 하기도 한다. 조한혜정, 앞의 책 전체적으로 마을의 일상적 삶을 가볍게 보여 주고 있지만,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어 보면 만만 치 않은 교육적 의미가 담겨 있다. 마을은 다양한 수준의 ‘비형식적 교육’이 풍부하게 이루어지는 공간인 것이다. 마을에는 믿을 만한 어른(‘삼촌’과 ‘이모’)이 많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관계 맺기 를 연습하게 된다. 세대를 넘는 소통이 이루어진다. 좁은 의미의 나(나와 가족)를 넘어 ‘우리’를 경험한다. 자기 삶의 기반이 되는 장소에 대한 감각이 생긴다. 도제식 학습이나 또래 교수 같은 다양한 학습이 가능하다. 일상적인 삶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알 수 있다. 아이들도 무언가 할 일 이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처럼 마을에서는 확실히 다양한 방식으로 배움이 일어난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교육으로 인 정되느냐다. 이런 교육이 인정되지 않는 곳에서 ‘마을학교’는 정말 ‘마을 사람들이 만든 학교’, ‘ 마을에 있는 학교’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교육을 진정한 교육으로 인 정하려면 교육을 보는 관점, 삶을 보는 관점의 근본적인 변화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마을학 교’에 대한 어이없는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삶을 보는 관점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 검토해야 할 것은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이런 다양한 교육이 지속적인 성장으로 이어지 느냐다. 확실히 마을에서는 빛나는 교육적 경험이 많이 일어난다. 그러나 마을에서, 더구나 인제 막 만들어지는 마을에서의 학습은 축적되지 않고 흘러가 버릴 가능성이 높다. 이런 반짝이는 경 험들이 의미 있는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정교하고 세심한 교육적 배려에 의해 지속적인 흐름으로 조직되어야 하고 어느 시점에서는 의미화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교육적 효과는 누적을 통해 발생한다. 결국 지혜로운 어른의 직접 개입 혹은 일련의 수업이나 프로젝트의 조직화, 공동체의 문화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 ‘마을 학교’가 필요하다면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마을학교’를 만드는 것은 대단히 근본적이고 혁신적인 실험이다. 그래서 늘 마을, 교육, 삶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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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을 캐야 하고, 늘 새로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토론과 합의가 필요하 고, 그것을 위해 엄청난 소통 비용을 들여야 한다. 그렇게 해도 시행착오를 피하기 어렵다. 또한 교육에서 생기는 의견 차이는 대개 이론적 논의로 해소되지 않는다. 실제로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여 주지 않으면 설득하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와 해결 9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성미산학교 식구들은 ‘마을학교’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 다. 물론 지금도 누군가 “마을학교가 뭐냐?”고 물었을 때, 자기 언어로 설명해 낼 수 있는 사람 이 많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아이들과 함께 마을에서 놀면서, 아이들과 함께 마을을 만들어 가면서, 아이들과 함께 마을에 대해 배우면서, 아이들과 함께 마을의 비전을 그리면서 ‘마을학교’ 가 무엇인지 감을 잡아 가고 있다. 1) 교육의 목적 : 학습의 방식에서 삶의 방식으로 넬 나딩스는 현재 교육 담론에서 ‘목적에 대한 논의’가 실종되었다고 한다. 예컨대, 인수분해를 가르치는 교사에게 왜 이것을 가르치냐고 물으면 다음 주제가 분수 덧셈이어서 인수분해를 못 하 면 공통분모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속적이고 성찰적인 목적 논의가 없다면 교육은 최고의 비전에서 멀어지고 빈약한 것으로 전락하고 말 것”넬 나딩스, 이지헌 외 옮김, 행복과 교육, 학이당, 132쪽 이라고 경고한다. 목적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없는 학교에서 이루어지 는 교육은 기능을 전수하는 것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에서는 목적에 대한 서술이 없다. 그러나 교육과정 맨 앞에는 교육목표 를 기술하고 있어, 이것이 사실상 교육의 목적 논의를 대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7차 중학 교 교육과정에서는 교육목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심신의 조화로운 발달을 추구하고, 자기 발견의 기회를 가진다. 학습과 생활에 필요한 기본 능력과 문제해결력을 기르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창의적으로 표현 하는 경험을 가진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기능을 익혀 적극적으로 진로를 탐색하는 과정을 가진다. 우리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지니고, 이를 발전시키려는 태도를 가진다. 자유 민주주의의 기본적 가치와 원리를 이해하고, 민주적인 생활방식을 익힌다. 물론 대부분의 교사, 부모, 학생은 이런 것이 있는 줄도 모르거나, 알아도 진지하게 참고하지 않는다. 이것들은 명목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실질적인 목표가 소위 명문대학에 입학하는 것 이라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대안학교에서 교육의 목적이나 목표는 자신의 철학을 드러내는 것이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가장 큰 기준이 된다. 성미산학교는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초기에 학교를 세우 려고 모인 사람들이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있었는지 어느 정도 드러내고 있지만 모호하다. 스스 로 선다는 것이 무엇인지, 서로를 살린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들은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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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지 해석이 필요하다. 설립 초기에는 스스로 선다는 것을 주체적 인식이나 자기주도적 학습의 맥락에서 이해했다. 서 로를 살린다는 것도 경쟁에서 벗어나 협력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정도로 이해했다. 지금은 삶 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편이다. 스스로 선다는 것은 삶에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 어야 한다(자립)는 의미로, 서로를 살린다는 것은 자립을 전제로 한 사람들이 호혜적 관계를 맺 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이 둘은 깊이 연결되어 있는데, 자립이 없으면 호혜적 관 계도 없고 호혜적 관계가 없으면 자립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을은 이러한 관계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 주는 형식적 틀이다. 시간이 가면 이 해석 역시 바뀔 것이다. 인식과 실천의 발전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정답이 있 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삶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성찰을 하는 것이, 늘 큰 질문을 던지고 좋은 답 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중지를 모아 찾아 낸 답은 비록 임시적이긴 하지 만 학교 식구들 모두가 공유하는 삶의 지표가 된다. 그렇게 학교는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비주류의 길을 걷는 것은 늘 불안과 회의를 품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동료가 있어야 한다. 마 음을 나눌 친구도 필요하고, 지지해 주는 부모도 필요하고, 길을 내 주는 교사도 필요하다. 그리 고 이들은 같은 길을 가는 동료가 된다. 성미산학교는 학생, 교사, 부모가 모두 동료가 되는 공 동체다. 2) 학부모의 성장 : 동원에서 참여로 성미산학교는 마을 사람들(주로 학부모)이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만들어 가는 학교다. 학교 운 영에 필요한 재정의 거의 전부를 부모가 부담할 뿐만 아니라, 학교의 운영과 교육활동에도 적극 적으로 참여한다. 설립위원회 이사회나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도서관위원회, 공 간위원회, 행사추진위원회 같은 위원회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설립 초기에 해야 할 일은 많고 일손은 없었기 때문에 부모들이 일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학부모의 참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그리고 참여의 방식도 의무적 동원에 가까운 것이었 다. 그러나 최근에 학교의 공식 기구들이 자리를 잡고 자발성을 강조하는 문화가 정착되면서 점 차 동원에서 자발적 참여로 무게중심이 바뀌고 있다.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관심이 있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설립 초기에 도서관위원회는 도서관 운영 자금을 모으기 위한 바자회를 하거나, 사서 채용 비용을 마련하는 일을 했는데, 지금은 ‘도서관 프로젝트’를 하는 아이들을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부모들은 ‘이책’이라는 동아리를 만들었다. 모여서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것이 주된 활동이지만, ‘책의 날’에 이벤트를 열기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읽을 책을 선정하기도 한다. ‘이책’이 동아리 모델이라면 ‘건성건성’은 위원회 모델이다. 건성건성은 성교육의 필요성을 느낀 부모들이 만든 동아리형 위원회로 성에 대해 공부하고, 교사들과 성교육 교육과정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학부모가 직접적으로 학습 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야외 활동을 할 때 교사 도우미로 참여하 기도 하고, ‘손끝 활동’ 같은 수업을 정기적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진로교육이나 프로젝트에서 특 강을 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개인 프로젝트를 하는 학생들의 멘토가 되기도 한다. 전에 수 업이나 프로젝트에 전혀 참여하려고 하지 않는 한 학생이 있었는데, 글쓰기를 하는 부모가 이 학 생과 ‘사진작품집’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하고 발간기념회를 열기도 했다, 언론 비평에 전문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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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견을 가진 부모는 방과 후에 아이들과 학교 신문을 만들기도 했다. 최근에는 부모와 학생들이 함께하는 동아리나 학습 모임이 몇 개 생겼다. 원예에 관심이 있는 부모가 발의를 해서 만든 원예반은 교사, 학생, 부모 수십 명이 참여하는 가장 크고 활발한 동아 리다. 이들 덕분에 학교가 아주 아름다워졌다. 이공계 출신 아빠들이 만든 과학 동아리도 생겼 고, 방과 후에 영어 책 읽어 주는 모임도 생겼다. 밴드를 하고 싶은데 동아리가 없어 방황하는 학 생들을 부모 밴드가 받아 줘 함께 공연을 한 적도 있었다. 생태교육이 심화되면서 인제는 부모가 정규 프로젝트에 참여해야 하는 경우도 생겼다. ‘식물 키우기’, ‘절전소 프로젝트(원전 1기 줄이기를 위한 전기 덜 쓰기)’, ‘농장학교의 모내기와 추수’ 같은 것은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해야 하는 프로젝트들이다. 최근에는 농장학교에 아이들을 보낸 부모들이 생태 공부 모임을 꾸리기도 하였다. 학교의 장기 프로젝트인 ‘전환마을 만들기’가 본격 적으로 추진되면 부모들이 아주 많은 것을 해야 할 것이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교사, 학생, 부모 는 자연스럽게 동료가 된다. 이러한 참여는 부모들이 자신을 교사에 대한 비평가가 아니라 동역자로 인식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아이들과 학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공동육아’의 의미를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한 다. 이런 맛을 본 부모들은 이미 큰 보상을 받았기 때문에 별도의 보상을 받을 필요가 없다. 그럼 에도 학교 일에 거의 참여를 안 하는 부모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는 흐름도 없지 않다. ‘무임승차 에 관대해지기’는 쉽지 않은가 보다. 3)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학습 : 관계의 학습 성미산마을은 잠재적 학습 자원이 대단히 풍부한 곳이다. 그래서 많은 교육 활동이 마을의 인 적 물적 자원을 활용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자원보다 소중한 것은 만남이다. 좋은 시설이 아니라 좋은 어른이 중요하다. 몇 년 전 중등 ‘몸 활동’ 선택 수업인 ‘배드민턴’은 성미산 배드민턴 클럽의 회장이신 할아버지 께서 담당하였다. 처음 수업을 부탁할 때만 해도 아이들과의 관계를 걱정하였으나 기우였음이 드 러났다. 노인에게서 무엇인가를 배우는 경험을 한 아이들이나 낯선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을 한 강사에게나 아주 좋은 만남이었다. 설립 초기부터 초등에서 체육 수업(신나게 뛰어라, 몸 활동) 을 담당해 온 분은 마을의 청소년문화공간 ‘꿈터’에서 오랫동안 택견을 가르쳐 온 ‘사부’인데, 특 히 활동적인 남자 아이들의 좋은 멘토가 되고 있다. 아이들은 이분을 좀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른 다. 가끔 거친 언행으로 교사들의 마음을 졸이기도 하지만, 학교의 얌전한 남자 교사들이 할 수 없는 소통을 하는 귀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마을의 특화 청소년 프로그램인 자전거 캠프 운 영자이기도 하고, 장차 ‘자전거 학교’를 만들 꿈을 가지고 있다.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헬멧을 쓰지 않고 자전거를 타다 사부에게 야단을 맞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나는 씩 웃으면서 지나가 고. 초등 저학년 음악 수업을 하시는 분은 전에 ‘노찾사’ 멤버였고 마을에 있는 ‘방과 후 학교’ 교 사로도 일을 한 경력이 있다. 활동적인 음악 시간을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수 업 분위기는 차분하다. 그러나 차분한 분위기에서 아이들의 속은 깊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가 몇 년 전에 만든 ‘마을 어린이 합창단’은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삼사십 명의 단원을 가진 마을의 대표적인 동아리가 되었다. 몇 년 전까지 방과 후나 방학 중에는 마을에 있는 여러 기관이나 단체 혹은 개인이 공동으로 기 획하고 운영하는 ‘마을 배움터’가 있었다. 마을의 모든 아이들에게 열려 있는 프로그램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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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의 80퍼센트가 성미산학교 학생들이었다. 일반 학교 방과 후 프로그램이 워낙 많기도 하 지만 문화적인 문턱도 있었을 것이다. 뭔가 그룹 역동성이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였다. 배움터 프 로그램의 강사 중에는 봉사하는 마음으로 참여하는 마을 분들도 있었지만, 문화센터 강사의 정체 성을 가지고 오는 분들도 있었다. 프로그램 중에도 청소년수련관이나 학원에서 하는 것과 차별성 이 없는 것들도 있었다. 그래서 는 ‘마을 배움터’ 프로그램이 사교육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다른 틀이 필요하겠다 싶어 ‘마을 배움터’는 일단 문을 닫았다. 마을이나 학교에서 바라는 ‘마을 배움터’는 일회성 프로그램이 아니라 작업장이나 동아리처럼 지속적인 관계와 그것을 통해 역동이 생기는 곳이다. ‘자전거 캠프’나 ‘마을 어린이 합창단’처럼 마을의 색깔이 잘 드러나는 것이면 좋겠다. 돈을 낼 수도 있겠지만 재능을 나눈다든가 공동의 프 로젝트를 하는 방식이라면 더 좋겠다. 그러나 마을의 작업장이나 동아리와 연결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전에 ‘마포스’라는 밴드가 있어 마을 축제 때 공연도 하고 아이들도 잠깐 함께 하기도 했으나 밴 드 자체가 활동을 중지했다. ‘무말랭이’라는 연극 동아리도 있지만, 정기공연이 코앞에 다가와야 연습을 하는 곳이어서 역시 아이들이 참여하기 어렵다. 마을 풍물패가 그래도 활발하게 움직이는 동아리인데, 어른들끼리 흥을 내는 곳이라 아이들이 결합하기 어렵다. 홍대 근처에 있는 작업장 과 연계를 해 본 적이 있는데 수업은 재미있게 진행이 되었으나 그 이상의 관계가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최근에는 집살림 프로젝트를 하는 아이들이 마을에 있는 목공방과 접속하여 프로젝트를 했는데, 전체적으로 좋은 평가가 나와서 이런 방식의 결합을 늘려 갈까 고민 중이다. 대단히 자원이 풍부한 마을이지만 막상 아이들이 참여할 만한 곳은 별로 없다. 일단 일터가 마 을 밖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낮에 아이들과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나마 다들 너무 바빠서 지속적으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을 위해 마음을 내려는 어 른은 많고, 어쩌다 한두 번이라면 휴가를 내서라도 시간을 내겠지만, 늘 그렇게는 할 수 없다. 작 업장에서도 워낙 먹고사는 데 바쁘다 보니, 아이들을 배려하기 어렵다. 어지간한 내공이 있는 아 이가 아니면 한두 번 가 보고 안 가려고 한다. 여가가 없는 사람들이 마을을 만든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노동 문제 해결 없이 마을 만들기는 아주 어렵다. 최근에는 학생 수가 늘어나면서 학교 내 동아리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고, 마을의 작업장이나 동아리에 대한 갈급함이 전과 같지는 않다. 아이들의 성장에 맞춰 무엇인가를 기획하는 학교의 절실함과 속도를 마을이 맞출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학교 가 먼저 만들고 그것을 마을과 공유하는 게 길이라고 생각한다. 마을에서 가장 많은 것을 가지 고 있는 곳이 학교니까. 4) 교육과정으로서의 ‘마을 만들기’ - 아이들을 마을 만들기의 주체로 ‘마을 학교’가 무엇인가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었는데, 최근 교사들이 깨달은 것은 ‘마을 만들 기 자체가 학교의 교육과정’이라는 것이다. 마을은 학교와 분리된 어떤 곳이 아니라, 우리가 만 들어 가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마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마을을 만 들어 가는 주체여야 한다. 성미산은 아이들의 놀이터이며, 운동장이며, 생태학습장이다. 성미산에는 아이들이 심은 나무 가 자라고 있으며, 아이들은 성미산을 아름답게 가꾸고 있다. 중등의 경우는 환경단체와 함께 성 미산 식생 조사를 하고, 성미산을 생태공원으로 만드는 상상을 해 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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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성미산 지키기 싸움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아이들은 다양한 수준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하였다. 일부에서 아이들을 동원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아이들도 자신들의 삶과 관련된 일을 결정하는 데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아이들은 성미산을 지킬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성미산 지키기를 통하여 공적 세계에 입문하기도 하 고, 부모와 교사 등 믿을 만한 어른들이 공공선을 위해 열심히 싸우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눈에 보이지 않던 자본의 힘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학습을 어디에서 할 수 있을까? ‘밥살림’ 반 아이들은 ‘할머니의 밥상’ 프로젝트를 했다. 자기들끼리 음식을 만들어 먹는 데서 나 아가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처음에 자기들이 먹고 싶은 것을 요리하던 아이들은 당 뇨를 앓으시는 할머니를 만나면서는 그분이 드실 수 있는, 그분을 위한 요리를 하게 되었다. 대 단한 생각의 전환이다. 정성스럽게 한 음식을 맛있게 드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소통과 돌봄의 기 쁨을 느꼈다. ‘밥’이 소통과 돌봄의 매개가 된다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아이들은 방학 때도 계속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고 하여 교사는 여름휴가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활동들이 바로 돌봄과 소통이 있는 마을 만들기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식 으로 참여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성미산학교의 핵심적인 교육과정이다. 마을 만 들기에 참여하면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세상을 만나고, 참여와 변화를 경험하고, 자신들의 삶 을 스스로 재구성해 보고, 대안적 삶에 대한 감을 익힌다. 마을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학교가 아 니라면 하기 어려운 소중한 학습이다. 5) 마을과 함께 만들어 가는 기업 - 서로에게 단골이 되기 2008년 학교에서 이루어진 프로젝트 중에서 뜻 깊은 성과를 낸 것이 ‘미니샵 프로젝트’다. 이 것은 장애 학생들을 위한 전환교육의 일환으로 기획된 프로젝트다. 졸업을 앞둔 장애 학생들이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몇 가지 기술을 제대로 익혀 마을에 작은 가게라도 차린다면 마을이 이 아이들을 책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혹은 희망으로 시작한 일이다. 졸업 을 앞둔 아이들에게 적절한 것이 무엇일까 고심하다, 요리와 공예를 해 보기로 했다. 1학기에는 매주 수요일에 화채를 만들어 팔았고, 2학기에는 쿠키, 와플 등 먹거리와 비즈공예품을 만들어 판매하였다. 특히 쿠키가 호평을 받으면서 마을 카페 ‘작은나무’와 학부모가 운영하는 유명 커피 숍에 납품을 하게 되었다. 이에 힘을 얻어 장차 사회적 기업으로 진화해 가려는 꿈을 갖게 되었 다. 프로젝트를 제대로 하기 위해 2009년에는 학교에 ‘미니샵’ 카페를 만들었고, 이 카페는 곧 학교 식구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 되었다. 카페는 수다를 떠는 사랑방이면서, ‘외로운 영혼’ 들의 안식처이면서, 중등 아이들이 알바를 하는 일터고, 쿠키와 케이크, 밀랍초를 만드는 작업장 이고, 전환교육의 모델을 만드는 실험학교다. 미니샵 사업은 2009년 2월에 노동부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일자리 지 원을 받게 되었다. 미니샵은 부모들과 마을 청년들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공간이 되었다. 카페 기 능을 살리기 위해 별도로 작업장을 냈다. 미니샵은 곧 학교 안팎의 장애 청소년들이 인턴십을 잘 할 수 있는 명소가 되었다. 많은 대안학교에서 단기 장기 인턴십 신청을 해 오더니, 일반 학교에 다니는 학생까지 오게 되었다. 정부의 지원이 끝나는 시점에 미니샵 2기를 준비하면서 장애 아이를 둔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모임을 만들었다. 마을에서 자립하는 방안을 모색하던 중 유명 카페를 경영하는 부모의 제안으로 더치커피를 생산하는 공방을 운영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출자자를 모아 2011년에 협동조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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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었다. 미니샵에서 일하던 두 졸업생은 정식 직원이 되었다. 처음 구상과는 좀 다르게 되었지 만 일단 장애 청소년이 마을에서 자립하는 실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학교가 사회적 기 업을 경영하려고 했던 것은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학교의 재정에도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기업이 있기 때문에 교육이 대단히 풍부해진다는 사실이다. 특히 마을에서 자립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대안적 진로를 설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런 기획이 가능했던 것은 마을에서 자란 아이들이 만든 샵을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든 살려 갈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불편해도, 조금 비싸도 마을 사람들이 기꺼이 단골이 될 거 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장이 아니라 마을이기 때문에 이런 꿈을 꿀 수 있었던 것이다. 6) 마을을 ‘생태’의 눈으로 보다 - ‘전환 마을’ 만들기 ‘마을 만들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이때의 마을은 ‘생태 마을’이어야 한다는 생각 에 이르게 되었다. ‘마을 만들기’가 ‘생태주의’를 만난 것이다. ‘생태’가 없는 ‘마을’이나 ‘마을’이 빠진 ‘생태’는 공허하다. 게다가 아이들을 만나는 경험이 축적되면서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은 ‘ 생태교육’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지게 되었다. 아이들은 극심한 생태 위기 시대를 살아갈 것 이고, 그들에게 생태적 능력을 갖추는 것은 생존의 문제이다. 앞으로 모든 ‘좋은 일’은 생태 영역 에서 나올 것이므로, 생태교육은 가장 좋은 진로교육이기도 하다. 물론 생태교육 자체가 아이들 의 전인적 성장에도 아주 좋은 것이라는 판단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학교 교육과정 전반을 생태주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12년 과정의 대강은 어느 정도 정해졌다. 초등 저학년에서는 주로 ‘자연놀이’, ‘동물 식물 기르기’를 통하여 생태적 감수성을 기른다. 초등 고학년에서는 ‘살 림 프로젝트(밥살림, 집살림, 옷살림)’를 하면서 살림살이를 제대로 해내는 능력과 삶을 생태적 으로 재구성해 내는 감을 기른다. 중등 7학년에서는 1년 동안 ‘농장학교’ 프로젝트를 한다. 농촌에서 공동체적 생활을 하면서 농 사를 지어 보는 것이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생 태적 삶을 ‘진하게’ 살아 보는 것이다. 자연의 리듬을 느끼는 것,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안에서 겸손하게 살아가는 태도를 익히는 것, ‘순환’에 대해 아는 것, 협동의 중요성을 깨닫 는 것, 어디서나 마을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기르는 것, 살림살이를 직접 해 보는 것 등이 농장학 교 프로젝트를 하면서 배우는 것들이다. 농장학교 프로젝트가 자리를 잡으면 학교가 농장을 경영 하면서 농장을 중심으로 한 마을을 만들어 성미산마을과 연계하는 데까지 나아가 보려고 한다. 8학년과 9학년에서는 ‘전환’이라는 키 워드를 가지고 ‘전환 마을 만들기’‘전환 마을(transition town)’은 화석 에너지에서 자연 에너지로 에너지 전환을 한 마을이다.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대안 에너지를 개발 해야 하면서 동시에 에너지 소비량을 줄여야 한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마을의 자립도가 높아야 하고, 지 역 경제가 활성화되어야 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야 한다. 영국의 토트네스가 모범적인 전환 마을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서는 《TRANSITION IN ACTION》,《THE TRANSITION HANDBOOK》, 《THE TRANSITION COMPANION》을 참고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대안 경제, 대안 에너지, 그린 디자인 등 다양한 프로 젝트를 하면서 생태주의의 주요한 개념을 익히고, 생태적 지혜를 길러 가고 있다. 2014년부터 는 학교가 중심이 되어 본격적으로 ‘전환 마을’ 만들기를 하려고 한다. 장기적으로 보아서 전환 마을 만들기는 우리 아이들의 진로 설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성미산학교 졸업생 중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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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 전환의 과정에서 생기는 일 혹은 전환 마을에서 필요한 일을 하면서 살아갈 사람들이 많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고등 과정에서는 ‘도시 생태학’, ‘생태철학’, ‘커뮤니티 비즈니스’, ‘인턴십’ 등의 프로젝트를 통 해 생태주의 안에서 자기 삶을 설계하고 진로를 모색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국내외 마을이나 공동체를 연구하면서 그것을 통해 마을을 깊이 이해하는 공부도 하고 있다. ‘비욘드 네팔’이라는 엔지오를 통하여 근대의 물결이 아직 미치지 않은 네팔의 오지 마을에서 공동체를 깊이 경험하 는 학습과 국제 연대의 감을 기르는 학습을 하기도 한다. 이후에는 마을 안에서 대안적 일을 하면서 먹고사는 모델을 만드는 일과 대안적 진로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 마을에서 후지무라가 제안한 ‘3만엔 비즈니스’ 3만엔 비즈니스 에 대해서는 [후지무라 야스유키, 김유익 옮김, 적게 일하고 더 행복하기, 북센스] 참고를 실험하거나, 풀무전공 부 과정 같은 대안적 고등교육기관에 입학하거나, 적정기술 장인에게 사숙하거나, 생태적 전환 과 관련된 공부를 하기 위해 국내외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포스트 중등 과정’이 필요한지를 고민하고 있다. 대안적 진로를 만들어 내는 일은 물론 쉽지 않다. 아직 우리 사회는 전환의 필요성을 많이 느 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을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행복한 상상을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힘은 각성된 부모들이다. 생태적 전환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부모들이 점점 늘고 있는데, 이들이야말로 교사와 학생의 든든한 동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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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 4.
꿈꾸는 여름밤 즐겁게 만나기 자유롭게 이야기하기 함께 꿈꾸기
8/6, 8/7, 8/8 20:0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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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자투리극장 공동체상영 사티쉬 쿠마르의 <지금 여기에 있는 미래> @밝맑도서관 1층 아고라방
8/6 농촌형 팟캐스트 공개방송 <조대성의 farm므파탈> ep4. 20대는 그런 것이 아니다. 농촌편 @생각실천창작소
8/7 정민철의 토크콘서트 <농촌과 농업, 지역과 교육, 村스러움을 위하여> @생각실천창작소
8/8 네트워크파티 @갓골게스트하우스 69
Session4. 꿈꾸는 여름밤 자투리극장 공동체상영
사티쉬쿠마르의 지금 여기에 있는 미래
사티쉬 쿠마르 Satish Kumar
인도출신의 세계적인 평화운동가이자 녹색 운동가, 교육가로 ‘녹색운동의 성자’로 불린 다. 또한 어린이를 위한 ‘작은학교’와 성인 을 위한 ‘슈마허 대학’을 설립하여 세계적으 로 인정받는 대안학교로 만듬. 저서 <끝없 는 여정>,<그대가 있어 내가 있다>,<부처와 테러리스트> 등
감독/ 쓰지신이치 일시 : 2015/08/05(수) 저녁 8:00 장소 : 밝맑도서관 1층 아고라방 감독 : 쓰지 신이치 러닝타임 : 60분 제작 : 나무늘보클럽 ‘쓰지 신이치’ 배급 : (유)씨네에그 blog.naver.com/cinegg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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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라이프’ 운동을 이끌고 있는 환경운동 가. NGO 나무늘보클럽 운영위원, <슬로라 이프>, <행복의 경제학>, <life is peace>, <자연농이라는 행복> 등 다큐제작
자투리극장 프로젝트 자투리 극장은 영화를 매개체로 삼아 공간 과 사람을 연결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또한 멀티플렉스에서는 보기 힘든 좋은 영 화를 발굴하여 이웃과 친구와 함께 하고자 합니다! 경쟁보다는 연대를 추구하는 공동체와 함께 더욱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보고자 <지금 여 기에 있는 미래>의 자투리극장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Session4. 꿈꾸는 여름밤 농촌형팟캐스트 공개방송
조대성의 farm므파탈
ep4.20대는 그런 것이 아니다! 농촌편
일시 : 2015/08/06(목) 저녁 8:00 장소 : 생각실천창작소
농부가 진행하는 농촌의, 농촌을 위한, 농촌 에 의한 팟캐스트 방송! 무편집 무NG 방송 의 유사 라이브 방송! 스튜디오를 떠나 농 촌 곳곳-하우스,마을회관, 축사,논 등-에 서 이루어지는 공간초월 방송! 농촌,농사, 사람,세상의 이슈를 자유롭게 다루는 무형 식 방송! 조대성의 farm므파탈 이번 회 주제는 장곡*홍동 지역에 사는 젊은 청년들의 일과 사랑! <20대는 그런 것이 아 니다! 농촌편> 입니다. 농촌에서 20대로 살아간다는 것, 우리 지 역의 청년들은 어떤 일을 하며 무엇을 배우 고, 누구와 무엇을 하고 노는가?! 농촌 청 년들의 일과 사랑, 관계, 문화, 놀이 등등에 대한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팟빵’을 통해 듣기 : http://www.podbbang.com/podbbang/ch/8232 ‘팟빵(모바일)’을 통해 듣기 : http://m. podbbang.com/ch/8232 ‘아이튠즈’을 통해 듣기 : https:// itunes.apple.com/kr/podcast/ jodaeseong-ui-farmmeupatal/ id1003190087?m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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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4. 꿈꾸는 여름밤 정민철의 토크콘서트
농업과 농촌, 지역과 교육 <村스러움을 위하여>
협동조합 젊은협업농장 이사, 前풀무학교 교사셨던 정민철 선생님과 대화하는 시간입 니다. 농촌과 농업, 지역과 교육에 관한 생 각과 고민 거리들을 툭 터놓고 이야기해보 아요. 며칠 간 둘러보았던 장곡*홍동 지역 활동과 교육에 대한 질문도 환영합니다. 토 크콘서트는 질의응답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일시 : 2015/08/07(금) 저녁 8:00 장소 : 생각실천창작소
4박 5일 동안 만났던 분들을 초대하고 모여 서 자유롭게 떠들고 함께 살고 싶은 삶의 모 습에 대해 마음껏 꿈꾸는 시간을 가집니다.
Session4. 꿈꾸는 여름밤
네트워크파티
혹시 네트워크파티 때 꼭 하고 싶은 이야기 나 나누고 싶은 재주, 함께 하고 싶은 활동 이 있으신 분들은 말씀해 주세요. 무대를 마 련해드립니다! :)
일시 : 2015/08/08(금) 저녁 8:00 장소 : 갓골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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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4. 꿈꾸는 여름밤 읽을 거리
村스러움을 위하여 정민철
젊은협업농장
촌(村)스럽다는 말은 “어울린 맛과 세련됨이 없이 엉성하고 어수룩한 데가 있다.”는 의미로 사 용됩니다. 촌(村)이라는 것은 “도시에서 떨어진 자연적으로 형성된 마을”을 말하는데, 어촌, 산 촌 등 다양한 촌 중에서 농(農)이 주요활동인 농촌은 “세련미 없음과 엉성, 어수룩함”과 더불어 “힘은 들고 가난한”의 의미까지 더해진 듯 합니다. 도시의 번쩍임과 화려함이 발전의 상징이었던 시기에 도시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그리고 도시를 유지하기 위한 농산물 저가정책으로 만 들어진 시대적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농촌이라고 말할때 떠올리는 것은 농업과 자연입니다. 농업이 없이 자연적 경치만 좋 은 곳에서 또는 자연이 없는 LED 식물공장, AB방조지구와 같이 더 넓은 논만 보이는 곳을 보 고 농촌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농촌이 농촌일 수 있는 기본적인 사항은 농업과 자연이 함 께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친환경농업, 유기농업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것만으로 농촌을 규정하는 것은 도시의 입장에서 바라본 것입니다. 도시를 중심으로 볼때 농촌 은 도시에 농산물을 공급하기 위해 농(農)을 업(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즉, 농민들이 모여 있 는 도시 외곽 공간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농업을 산업으로 보면서 규격화된 농산물, 공장과 같은 농장을 지향하면서 고령화되고,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농민들로 인해 농업은 경쟁력을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성공적 농민으로 도시에서 배운 지식으로 농업을 산업화하여 경쟁력을 가져 억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는 기사를 종종 봅니다. 그러한 기사와 이를 위한 교육을 받고 제 2의 인생, 제 2의 직업으로 농 사를 선택하려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작년 귀농, 귀촌인구가 3만가구를 넘었습니다. 그 중 귀농(농사를 짓기 위한) 은 10,220가 구, 귀촌(농촌 생활을 위한) 은 21,501가구입니다. 특이한 점은 40대 이하가 34.5%이고, 50 대도 40%여서 전체의 74.5%를 차지하는 등 젊은 사람들의 농촌 회귀현상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농촌의 고령화가 매우 심각한 상황(장곡은 39.5%)에서 젊은 사람들이 농촌으로 돌아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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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정상진 대표의 표현대로 혈액형이 다른데 수혈하는 것과 같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혈액형이 다르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이 고려하지 못하는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촌(村) 이라는 것입니다. 도시는 촌이라는 것이 당연히 없습니다. 촌이 없는 곳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지 역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농촌이라는 것은 농업과 자연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정한 공간(지역)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간다는 것은 그곳에 문화와 역사와 전통이 있 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개인적인 필요성에 의해 쉽게 이주하는 도시와 달리 농촌은 땅을 기반으로 하기 때 문에 정착적 성격이 더욱 강하여 문화와 역사가 더욱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농업의 경제성만이 강조되면서 촌으로서의 성격은 심각하게 파괴되었습니다. 농업생산성 향상을 위한 사업만이 아니라 마을종합개발사업, 녹색관광 등 농촌을 향한 사업들 역시 촌으로서의 농 촌을 강화하기보다는 농촌의 경제성 향상이라는 부분이 집중 강조됨으로써 촌의 다양성마저 헤 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촌을 발전시킨다는 것은 농업을 기반으로 하여 교육, 문화, 예술, 복지 등 촌의 사람들이 살아 가면서 필요로 하는 다양한 일들이 그 지역의 문화, 역사와 어울리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 가 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파괴된 그러한 것들을 단지 전통방식으로 복원하 는 것이 아니라(농촌은 민속촌이 아닙니다.) 새롭게 만들어 가야합니다.반대로 농업과 분리된 촌 은 아류 도시에 불과해지고 이전 문화와 역사에 기초하지 않으면 그 많은 촌의 다양성은 소실될 것이며 촌을 오랫동안 지탱해온 사람들과 분리되었을 때는 촌의 공동체성은 사라지게 됩니다. 농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농업활동을 기초로 다른 문화와 전통을 가진 촌으로 들어간다는 것 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그 촌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존중해야 하며, 농촌의 기본인 농업과 강 하게 연계되어야 합니다. 농촌은 자기의 발전을 위해 젊은 사람들의 유입을 적극적으로 환영하면 서, 이들에게 농을 알려주고, 촌을 배울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러한 결합에 의해 농촌의 지속가 능성은 높아지게 되고 이들과 함께 농촌의 문화를 새롭게 등장시켜야 합니다. 2년전부터 장곡에는 협동조합젊은협업농장, 협동조합청촌, 정신건강증진센터의 행복농장, 텃 골작은농장 등 젊은 귀농자들이 모여 농업생산을 공동으로 하는 농장들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혼자 땅을 사고, 농기계를 구입할 수 있는 여력이 없는 젊은 사람들이 함께 농업 생산을 하기 위 해 협동조합 농장을 만들어 농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또, 이들은 모두 홍성유기농영농조합의 단체조합원으로 참가하면서 지역 사람들을 만나 촌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장곡면의 면장님, 이장님 등의 지원과 관심 속에서 열심히 배움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농업이라는 직업을 통해 자기의 생활을 찾아가기도 하겠지만, 장곡이라는 촌의 주민으 로 촌의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해석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가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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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이러한 활동이 활발해지면 촌이라는 곳은 많은 젊은이들이 자기의 재능을 풀어 놓을 수 있는 공 간이 되며, 자기의 전문성을 농업과 농촌이라는 주제 연결시킴으로써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갈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이는 도시에서는 불가능한 즉, 촌에서는 여백이 있는 공간에서 가 능한 것이기 때문에 촌스럽다는 말은 앞으로 다른 의미로 사용될 것입니다.
촌(村)스럽다는 말은
농업을 기반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가는 창의성이 열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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