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노트
봄바람이 분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붑니다. 얼굴을 어루만지는 따사로운 햇살과 봄 아지랑이가 훈훈하게 거리 를 채우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가슴에도 봄바람 이 일 것입니다. 4월의 봄바람은 달콤합니다. 여자의 마음이 들 뜨고 덩달아 남자의 마음도 따라 설렙니다. 봄 의 나른한 햇살을 받으며 사람들은 마음의 기지 개를 활짝 폅니다. 숨 한 번 크게 들이마셨을 뿐인데 상쾌하고 따 듯한 공기가 콧속에 들어오면 ‘그래, 진짜 봄이 왔구나…’를 느끼게 됩니다. 무엇보다 봄은 ‘따듯하다’는 말이 가장 빛을 발 하는 계절입니다. 누군가 내게 건네는 따듯한 눈짓 하나가 그리 정다울 수 없고 눈부신 오후 의 햇살이 한겨울 단단히 얼어있던 마음까지 녹 여주는 것 같습니다. 집 주변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노오란 개나리 가 그렇고 탐스러운 벚꽃이, 사랑하는 이와 맞 잡은 손이 그렇습니다. 그렇게 따듯할 수가 없 습니다. 참으로 따사로운 계절입니다. 사랑하기도, 사랑 을 나누기에도 좋은 이 계절을 마음껏 즐기시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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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철 호
CONTENTS April 2013 COVER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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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영 뮤지컬 음악감독의 감성 육아법 더 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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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노래하는 사람들, <살림꾼>
도예가 신경애 씨의 느리게 사는 법 가수 한대수, 딸 바보가 된 사연
대한민국 다문화 1호 국회의원 이자스민
30
영화, 육아를 만나다 지금은 부성애가 대세, <7번방의 선물>
24
더 맘 스토리 IQ210 김웅용이 전하는 행복의 조건 <내일로 기차로> 권다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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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동화작가 채인선, 초보 엄마에게 전하는 조언
52
LIVING & CULTURE 부부 싸움 왜 할까? 유형과 해법 여성 우울증 극복하기
44
내 아이 왕따 예방 교육법
42
46 70
서울, 그 곳의 풍경 <계동길>
화려함 속에 숨겨진 소박함, 다방이라는 이름의 공간
64
그 곳에 가면 산벚꽃 흐드러지게 핀 충남 금산 보곡산골
68
www.the-mo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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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장소영 뮤지컬 음악감독
장 소 영 뮤지컬 음악감독의
감성 육아법
뮤지컬 배우들이 최고의 작곡가로 손꼽는 장소 영 음악감독은 일과 가정을 아우르며 자신만의 무대를 완성해가고 있다. 최선을 다하는 엄마 의 삶이 육아의 비결이라는 장 감독을 햇살 좋 은 날에 만났다. 에디터 김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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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영 감독은 박칼린, 김문정 감독과 함께 국내 뮤지컬 음악을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여성 음악감독이다. <나는 가수다>의 자문위원으로 출연하여 대중 들에게 얼굴을 알리기도 했던 장 감독은 동시에 여러 작품을 무대에 올리며 쉴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 장 감독이 초등학교 5학년 딸을 성공적으로 키우는 육아법은 무엇일 까. 장 감독은 엄마들의 지나친 간섭과 강요가 자식을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육아의 부담을 내려놓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 당당한 엄마의 뒷 모습이야말로 성공적인 육아의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공연과 음악을 통해 아이의 창의력과 감성을 길러주는 것이 장 감독의 ‘감성 육아법’이다.
“사교육에 의지해서 아이의 자율성을 가두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아이가 흥미를 느끼는 환경에 자연스럽게 놓아두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공연무대를 주름잡는 우먼파워 작곡가와 음악감독의 역할을 동시에 해내는 장소영 감독은
“MBC에서 새로운 음악경연프로를 하는데 자문위원으로 출
<형제는 용감했다>, <라카지>, <웨딩>등 올해 하반기에만 7
연해줄 수 있겠느냐고 하더군요. 그런데 선뜩 승낙을 못 했어
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미남이시네요>, <쌍화
요. 프로그램 제목이 <7대 가수 쇼>였거든요. 왠지 좀 창피한
별곡> 등의 작품이 10월에 공연된다. 그뿐만 아니라, 장 감
생각도 들고 그랬죠(웃음). 결국은 제목이 <나는 가수다>로
독은 여수세계박람회의 음악감독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바뀌긴 했어요. <나는 가수다>는 매주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
“음악을 해오면서 올해가 가장 바쁜 해가 아닌가 싶어요. 일
고 그에 따라 저를 알아보시는 분도 많아지셨어요. 물론 요즘
하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같이 되어버렸네요(웃음). 의도한
은 알아보시는 분이 또 많이 줄었고 화장 안 하면 거의 못 알
것은 아니었는데 극장이나 회사의 상황에 변화가 생기면서
아보시기도 하고 그래요(웃음).”
공연이 몰리게 되었어요. 본래 계획은 4개월에 한 편 정도씩
무대 뒤에서 드러나지 않던 음악감독이 이제는 대중들의 관
하는 거였는데 말이죠. 그래도 10월부터는 못 가졌던 휴식
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장 감독의 뜻이 현실이 된 것이다. 특
의 시간을 가져보려고 해요.”
히 여성 음악감독들이 창작뮤지컬에서 큰 역할을 해내면서,
그렇다고 장 감독이 뮤지컬 음악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
비인기 공연문화였던 국내의 창작뮤지컬이 새로운 부흥기를
<태극기를 휘날리며>와 <김종욱 찾기> 등의 영화 음악을
맞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장 감독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
맡기도 했고 각종 드라마와 가수들의 음반에서 오케스트레
가 없다.
이션을 하는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장
“저는 아닌데, 박칼린 씨는 좀 그런 거 같아요(웃음). 언제부
감독이 정작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것은 MBC <나는 가수다
터 음악감독이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에 자문위원으로 출연하면서부터다.
박칼린 씨가 참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에요. 특히 여자 감
당시에 장 감독은 미모의 자문위원으로 화제를 모았다. 하
독이라는 측면이 대중들에게는 더 특별하게 생각된 거 같아
지만 실제 장 감독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는 성격
요. 이런 계기를 통해서 음악 감독이라는 직업도 알리고 실력
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인지도가 없는 국내 창작 뮤지컬을
있는 후배들도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종사자로서 이
알리기 위해서는 뮤지컬을 창작하는 이들이 언제까지나 무
야기를 하자면, 음악감독은 여자가 하기에 굉장히 매력 있는
대 뒤에 숨어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장 감독은
직업이랍니다(웃음).”
MBC로부터 새로운 프로그램의 출연제의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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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를이뤄가는 워킹맘 장 감독은 성악가 조수미와 발레리나 강수진 등을 배출한 선화
살아가야 하는 세상은 지식보다는 창의력이 필요한
예술학교에서 클래식을 전공하며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세상이잖아요.”
그리고 연세대 작곡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장 감독은 주입식 교육보다는 아이의 감성과 자립심
취득했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음악인의 길을 걸어온 셈이다.
을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 장 감독은 딸과 함께 공
“어려서부터 피아노 치는 걸 좋아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연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시간을 즐긴다. 그리고 문제
칭찬도 듣게 되고 음악에 관심을 두게 됐죠. 하지만 그때는 자의
를 풀어서 답을 찾아내야 하는 것보다는 자유롭게 감
반 타의 반으로 하는 정도였어요. 그러다 음악을 정말로 좋아하
정을 말할 수 있는 과제를 함께 하려고 노력한다.
게 된 것은 고등학교 이후부터였어요. 화성학이라는 수업을 처
“딸이 4살 때부터 공연을 데리고 다녔어요. 그러다 보
음으로 받는데 세상이 열리는 거 같더군요. ‘피아노를 악보대로
니 자연스럽게 창의성과 감성이 발달하는 거 같아요.
치지 않아도 되는구나’, ‘내 마음대로도 칠 수 있는 거구나’라는
그림을 그리더라도 도화지를 무대의 공간처럼 생각
걸 깨닫게 되었죠. 그러고 나니 음악 하는 게 너무 행복한 거예
하고 무대 밖의 소품이나 무대장치까지 함께 생각해
요. 그 이후로 음악을 정말로 좋아하게 되었어요.”
요. 그리고 일기를 쓰더라도 시나리오의 형태로 쓰더
음악을 인생의 가장 큰 부분으로 받아들인 장 감독이었지만, 뮤
라고요. 무엇을 억지로 주입하기보다는 아이가 흥미
지컬 감독이 되기까지 10여 년이라는 긴 무명의 시간이 필요했
를 느끼는 환경에 자연스럽게 놓아두는 것이 좋은 교
다. 그 시간 동안 장 감독은 음악과 관련된 일이라면 물불을 가
육이라고 생각해요. 강요와 부담보다는 재미와 흥미
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그러다 2004년 가을, <하드락카페>의
를 느껴야 잘할 수 있거든요.” M
음악을 맡으면서 처음 뮤지컬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길을 가려 할 때, 장 감독은 이미 가 정을 등에 업고 있었다. 하지만 장 감독은 자신의 꿈과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도 산후조리원에서 대학교로 출 강을 다닐 정도로 장 감독은 열정적이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 는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무척 어려웠지요(웃음).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일부에서는 저를 슈퍼맘처럼 봐주시기도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어요. 아이도 시어머니께서 많이 봐주 셨고, 남편도 많이 이해해줬어요. 그렇다고 갈등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어요. 남편과의 갈등 때문에 3개월간 일을 쉬기도 했 었어요. 그런데 제가 집 안에서 너무 우울해하니까, 차라리 나가 서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일을 해오고 있는데, 요즘은 남편도 제가 일하는 걸 좋아하는 거 같아 요. 지인들한테 초대권 나눠주는 걸 즐기는 거 같고요(웃음).”
자립심을 키워주는 감성육아법 장소영 감독의 딸 수진이는 올해로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다. 장 감독은 바쁜 일정에 쫓겨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 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래도 수진이는 엄마의 당당한 뒷모습을 보고자라서 그런지 또래 아이답지 않은 자립심과 창의성이 있 다고 한다. 아이의 창의력을 길러주는 장 감독의 교육법은 무엇 일까. “교육을 안 하는 게 교육법이라면 교육법이에요(웃음). 사교육 에 의지해서 아이의 자율성을 가두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 에요. 어릴 때 너무 많은 걸 주입하려 하면 창의력이나 상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비게이션에만 의지하다 보면 길 치를 벗어나기가 어렵듯이 강요하기보다는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앞으로 우리의 아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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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봄을 알리는 개나리 ‘활짝’ 개나리 노란빛은 봄을 알리는 색깔이다. 개나리는 저 홀로 피지 않고 다른 봄꽃과 어우러져 멋진 장관을 연출한다. 우리네 인생도 함께 울고 웃어주는 동료와 가족, 친구가 있기에 더욱 빛나는 것이 아닐까. M 글 곽철호
‘THE MOM’은 여러분의 안부와 동정을 나누는 공 간을 마련코자 합니다.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 있었던 보람 있는 순간, 모 두에게 알리고 싶은 가슴 훈훈한 이야기,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예쁜 아기 모습을 자랑하고 싶 다면 언제든지 편집실로 보내주세요. 채택된 분께 는 소정의 사은품을 보내드립니다. THE MOM 편집실 TEL. 1599-3576 FAX. 0303-0799-1577 E-mail. imom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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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맘 인터뷰
♪ 엄마를 노래하는 사람들, 살림꾼 ♪
겉모습과 내면이 다른 사람도 있 다. 겉은 우락부락해도 속은 진국 인 사람이 있고 반대로 겉과 속이 일치하는 사람도 있다. 외면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그 속이 완연히 일치하는 것 같은 사람. 솔직히 말 하면 나는 후자에게 더 끌린다. 첫인상에서부터 풍겨지는 따스함 이 내면까지 가득히 자리한 사람 들, 밴드와 그림 작가, 글 작가, 시 인이 함께 하는 다원 예술팀 살림 꾼을 만났다. 살리는 일이라는 뜻 의 살림을 이야기하며 근본적으로 나를 살게 만들어 준 엄마에 대해 그들은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 어 한다. 어머니에 관한 다양한 주 제로 공연을 하고 관객과 만나는 사람들, 살림꾼. 엄마라는 가슴 먹 먹해지는 존재를 탐구하는 그들이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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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8명이 모여서 만나는 살림꾼의 시작
#2. 살림꾼, 첫 공연의 시작
아직 꽃샘추위가 만연한 초봄의 저녁, 그들을 만났다. 총 여덟 명
그렇다면 그들의 첫 공연은 어땠을까. 공연이라는
이라는 살림꾼 멤버 중에서 밴드의 김영준, 글 작가 겸 그림 작가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들의 표정은 왠지 모르게 밝
장혜윤, 그림 작가 윤나리. 이렇게 세 명과 함께한 자리. 인터뷰가
고 편안해보였다.
익숙지 않아 다소 어색한 기운이 맴돌았지만, 그것도 잠시. 긴장 감이 풀리고 대화의 물꼬가 트이면서 살림꾼이 만들어지기까지 의 과정을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엔 하늘소년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했어요. 앨범을 내고서 오피스커피라는 카페에서 공연을 했죠. 그 때 카페 사장님을 알 게 되었어요. 사장님께서 카페공간을 통해 인문학콘서트 같은 문 화적 일들을 해보고 싶어 하셨어요. 그게 제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맞았거든요. 그래서 함께 해보자고 결심을 하게 되었고 그 때 필 요한 사람들을 알음알음 만나게 된 거에요.” 자연스럽게 함께 모이게 되었다는 그들의 말은 마치 그 만남이 운명적이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노랫말을 만드는 데 도움 을 얻고자 듣게 된 오철수 시인의 강의에서 많은 것을 느꼈고, 또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이 맞아 각자의 분야인 시, 음악, 글, 그림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이게 된 것이다. 일반 보통의 프로젝트 팀 과는 색다른 그들은 작업 방식도 독특했다. “일단 한 달에 한번 세미나를 해요. 오철수 시인께서 엄마에 관한 8가지 주제로 나눠 시를 모아서 편집해오시죠. 그리고 저희가 주 제에 따라 시에 대한 것들을 함께 공부하구요. 이후에 그 시에 영 감을 받아 밴드는 작사와 작곡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시를 더 쉽 게 이야기로 풀어내고 또 영상과 포스터에 쓰일 그림을 그리죠.” 살림꾼이 나아갈 방향의 큰 틀을 제시하는 오철수 시인은 이 프 로젝트의 파급 효과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엄마라는 주 제가 가진 시는 보는 사람들이 한정적인 데 반해 공연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 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글이나 그림, 시 특정 한 가지가 도드라지기 보다는 다 같이 조화 롭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처음엔 너무 많이 긴장됐죠. 다들 이런 식의 공연은 처음이니까요. 모든 게 갖추어진 상태가 아니어서 걱정이 많이 되었어요. 공연하는 순간까지 떨었던 것 같아요.”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했던 영준 씨와 달리 혜윤, 나 리 씨에게 공연을 만드는 일은 처음이었다. 떨리는 것도 당연지사. 오랫동안 준비했던 그들에게 첫 공 연의 순간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시간이며 공연을 보러 온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다 고맙게 느껴지기 만 했다. “사실 첫 공연은 저희를 아는 분들이 주로 오셨어 요. 하지만 이후 공연은 점점 다양한 분들이 오기 시 작했어요. 지인들에게 시작해서 퍼져 나갔죠(웃음). 요즘은 가족 단위로 오시기도 하세요. 아이 어머니, 학생들, 동네 주민들, 참 부녀 회장님도 오셨어요. 다 른 어머니 분들을 데리고 오셨더라구요.” 공연을 찾는 관객층도 그들만큼이나 다양했다. 아 이를 둔 엄마, 그리고 배가 불룩한 임산부, 그의 남 편, 어린 학생, 혼자 온 중년의 남성까지. 그 관객들 은 그들의 공연을 통해서 어떤 것들을 느꼈을지 문 득 궁금해졌다. “한 어머니께서는 3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 다고 하셨대요. 임신 중인 한 여성분은 너무나 따뜻 한 공연이었고 태교에도 좋을 것 같다고 해주셨죠. 그래서 저희도 그런 것들을 듣고 공연을 더 잘 해야 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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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에 관한 주제로 진행하고 있는 살림꾼 공연의 주 관객층은 여성이다. 하지만 만국공통으로 공감할 수 있 는 엄마라는 이야기이기에 여러 사람들이 공연을 더 찾 고 있었다. “한 중년의 남자 관객분이 매회 공연을 찾아주세요. 굉 장히 집중하면서 노래를 들으시더라구요. 본인의 어머 니 혹은 부인을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 모습이 참 인 상적이었어요.” 이러한 공감은 직접 공연을 준비하는 살림꾼 프로젝트 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날은 앨범 작업을 위 한 기금 마련을 위해 텀블벅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그들 에게 갑자기 20만원이 입금되기도 했다. 바로 키보드를 치는 멤버의 어머니께서 보내오신 돈이었다. 프로젝트를 계속 하기 위해서는 운영비가 지속적으로 필요한데 그들은 공연비로 수익을 남기기가 힘들다고 한다. 관객들을 위해서 공연비를 높게 책정하지 않고,
#3. 우리 엄마, 나의 엄마 살림꾼 프로젝트의 공연의 주제는 엄마다. 그래서 아이와 함 께 찾는 관객들도 꽤 있는 편이다. 엄마의 엄마에 대한 이야 기를 아이에게 간접적으로 해 줄 수 있는 공연.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남다르고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그것도 카페의 음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했다.
“지난 공연에 한 아이가 공연 중에 울음을 터뜨렸어요. 그런
단지 그들이 그렇게 하길 원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데 그게 하나도 안 어색한 거예요. 어머니들도 조용히 하라고
공연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다그치는 분위기도 전혀 아니구요. 자연스레 아이를 어르면
“영백이란 친구는 아이를 3명 양육하고 있거든요. 아무 래도 아이들을 키우고 지금 살림꾼 활동을 함께 하다 보 니 쉽진 않은 것 같아요. 멤버 중에 가장 힘들었을 거예
서 공연을 함께 즐겨 주시거든요. 그런 부분이 신기하기도 하 면서 참 좋았어요.” 아이가 울어도 어색하지 않은 유일한 공연. 참 멋지다. 한 아
요. 세 명이서 보통 한 달에 일곱 곡 정도를 쓰고 편곡을
이는 밴드 멤버인 아빠의 노랫말을 조곤조곤 따라 부르기도
하거든요.”
하면서 공연장을 더 포근하고 아늑하게 만들기도 한단다. 가사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살림꾼의 노래들. 그 중에서 그들이 좋아하는 곡이 무엇일까. “황금열쇠라는 제목의 노래를 좋아해요. 하나의 문이 닫히 면 도 하나의 새로운 문이 열리고, 어제의 슬픔은 새롭게 열 리는 창이 되지. 이런 노랫말인데요. 삶에서 겪는 고통들이 살아가는 데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내용이 어렵지 않게 전해져서 좋아요.” 공연을 본 멤버 본인의 어머니의 반응도 궁금했다. 엄마와 함께 나눌 수 있는 공연을 만들어 가는 그들의 어머니는 이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키보드멤버의 어머님은 살림꾼 프로젝트 내용을 아시고 다 른 분들에게 아들이 하는 일을 무시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으 셨대요. 아무래도 이전에 공연을 준비할 때는 못 미더워하셨 는데 저희가 하는 일을 알고 난 이후에는 열렬하게 지지하게 되신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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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꾼 프로젝트의 일은 그들의 주위 사람들과 관객 뿐
“작년에 제가 어머니에게 신장 이식을 해드렸어요. 어머
아니라 그들 자신도 바꾸어 놓았다. 나의 엄마에 대해 더
니가 수술하시면서 생각했어요. 엄마의 인생을 찾았으면
이해하는 자세를 가지게 된 것이다. 엄마를 대하는 퉁명
하구요. 이제 회복하시면, 어머니가 하실 수 있는 걸 도우
스러운 자식의 모습에서 조금씩 바꾸어나가려는 노력을
려고 해요. 가끔 엄마가 그런 말씀을 하시잖아요. 내가 뭐
서서히 하게 되었다는 대답이 마치 내 일인 것처럼 뿌듯
하고 살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엄마
하게 느껴졌다.
도 한 여자로, 한 인간으로 인생을 살아가셨으면 하죠.”
“이전보다는 그래도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을 귀찮다고
연못에 던진 돌멩이가 만들어내는 동그라미는 잔잔하
생각하지는 않죠. 생각의 전환이 많이 된 것 같아요. 그래
면서도 천천히, 그리고 서서히 퍼져 나간다. 살림꾼의
도 오랫동안 어머니를 대하는 방식이 고정되어 잇다 보니
‘엄마를 만나다’ 프로젝트가 바로 그 돌멩이가 되었으면
쉽게 바뀌진 않구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웃음).
좋겠다. 엄마라는 존재를 당연시 여기고, 그 소중함을 잃
엄마라는 존재는 희생이라는 단어가 뒤따른다. 그 희생 을 어렸을 때는 당연시 하다가도 이후엔 그런 엄마가 답
어버린 사람들에게 톡 하고 마음을 울리는 작은 돌멩이 말이다. M
답하게 느껴지기가 쉽다. 하지만 엄마는 하나의 생을 책
에디터 전은영
임지고 길러낸다. 그 책임감으로 아직까지 살아가신다. 그것이 참 대단하고 경이롭다고 멤버들은 입을 모아 전 했다.
외롭고 쓸쓸할 때 가만히 귀 기울여 봐, 네 마음에 화 나고 우울할 때 가만히 귀 기울여 봐, 네 마음에 엄마가 열 달 동안 뱃속 너에게 들려주신 황금 말씀 엄마가 열 달 동안 뱃속 너에게 들려주신 초록 말씀 이 세상에 살려고 왔으니 무조건 건강해라 아이야 네 몸으로 꽃피우고 네 마음으로 사랑해라 아이야 무조건 건강하라! 꽃피우고 사랑하라! 아름답게 만들라! 나누고 춤을 춰라! -엄마의 사상을 노래하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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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맘 인터뷰
도예가 신경애 씨의
느리게 살기 20
도예가 신경애 씨는 전원생활을 통해 삶과 예술의 참의미 를 배워가고 있다. 흙과 피부를 맞대고 불과 함께 춤을 추 며 살아가는 도예가의 인생을 시간이 정지한 슬로시티, 녹 동마을에서 담아냈다.
도자기 공방 ‘홍로요’를 찾아, 시간도 쉬었다 간다는 상주시 이안면의 녹봉마을로 차를 몰았다. 녹동마을에서 기자를 가장 먼저 맞아 준 것은 넓게 펼쳐진 연밭이었다. 그리고 그 연밭 너머로 도자기 가마가 모습을 드러낸다. 도예가 신경애 씨의 안내를 받아 홍로요의 실내로 들어서니 널찍한 창을 통해 녹동마을의 또 다른 전경이 펼쳐진다. ‘홍로요’는 자 연의 정취와 연꽃향이 어울려지는 공방이다. “홍로요는 사자성어 ‘홍로점설’에서 따온 말이에요. 뜨거운 불길 위에 눈 한 점을 뿌리면 순식간에 녹아 사라지듯, 작업 중에 생기는 근심과 난관도 가마 불꽃에 녹여버리라고 스님께서 지어주셨어요. 그리고 불 교에서는 붉은 화로를 뜻하는 홍로가 열반을 뜻하는 말이래요. 스님들 이 도를 닦아서 열반에 이르듯, 제가 하는 도예도 열반에 이르는 과정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어요.”
전원생활의 즐거움 도예가 신경애 씨는 2001년부터 문경시에서 활동해 왔다. 그러다 작년 에 남편의 고향 상주시 이안면 녹동마을에 새로운 터를 마련했다. 슬로 시티로 지정된 녹동마을에는 총 31가구가 살고 있는데, 2/3 정도의 가
흙에 삶을 담다
구가 귀농의 꿈을 안고 녹동마을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슬로시티는
신경애 씨는 문경 도자기축제 입상을 비롯
공해 없는 자연 속에서 전통문화와 자연을 보호하면서 느림의 미학을
한 각종 공모전에서 수차례 입상한 경력이
추구하는 옛 농경시대로 돌아가자는 국제운동의 일환이다.
있고 경상북도 관광기념품 공예분야 심사
“슬로시티라고 하면 오래되고 낡은 모습만을 떠올리시는 분들도 계신 데, 우리 마을의 슬로시티는 현대적 감각과 전원의 풍경이 함께 어울려 있는 곳이에요. 집들은 편의성을 고려한 양옥집들이지만 마당에서는 텃밭을 일구고 자연이 가져다주는 여유로움을 즐겨요. 그래서 저는 슬 로시티의 참의미가 마음에서 찾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마을 분들 을 봐도 큰 욕심과 걱정 없이 사시는 분들이 많아요. 내면의 행복을 찾 게 하는 게 슬로시티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요.”
위원을 역임한 뒤 현재 경상북도에 기념품 을 납품하고 있다. 이러한 신 씨가 운영하 는 홍로요는 2012년부터 상주시의 도자기 체험장으로 지정받아 10명의 수강생이 10 주간의 교육을 받고 있다. 신 씨는 흙과 나 무를 이용한 옛날 방식 그대로 가마에 불을 지펴 도자기를 굽는다. 가마는 지인의 도움 을 받아 직접 만들었고 집과 공방 역시 건
신 씨는 슬로시티에서 즐기는 전원생활을 통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
축가인 남편의 도움을 받아 신 씨가 직접
지하고 있다. 그리고 식생활도 많이 바뀌었다. 연밭에서 연잎을 따와 연
디자인했다.
잎밥을 짓고 텃밭에서 키운 채소로 반찬을 대신한다.
“요즘은 LPG가스나 전기등을 이용해서 도
“전원에서 사는 게 좋아요. 서울에서 잠깐 직장생활을 한 적도 있는데,
자기를 굽기도 하지만, 저는 전통적인 방식
그때는 항상 머리와 눈이 아팠어요. 그런데 전원에서 사니까 그런 통증
이 좋아요. 장작 가마를 사용하는 것이 내가
들이 사라졌어요. 매일 아침 지하철역을 뛰어다녀야 하는 수고로움도
원하는 그릇의 무게나 분위기를 잘 살려주
덜었죠(웃음).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서 행복
거든요. 그리고 불과 함께 작업한다는 경이
해요. 제가 만든 그릇들이 밥상에 올라서 제 역할을 할 때 보람을 느끼
로움을 마음껏 느낄 수 있죠. 도자기를 빚고
고, 내가 만든 작품을 누군가가 예쁘다고 봐줄 때 기쁨을 느끼죠.”
나면 그 이후 작업은 불에게 맡기는 거예요. 가스 가마나 전기 가마는 불 조절이 장작 가마보다 쉬워요. 그에 비해 장작 가마는 불 조절을 해도 내 마음대로 안 될 때가 많죠. 그런 부분에서 전통적인 방식의 매력이 있 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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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를 다시 시작한 것은 아내이자 엄마로 살아가면서도 나 자신을 찾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기 때문이에요. 도예가로서 살아가다 도예가로서 마지막을 맞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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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한 신 씨는 결혼과 함께 도 예를 잠시 잊고 살았다. 그러다 다시 도예를 시작한 것은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였다.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 신 씨의 작품세계는 더욱 풍성해졌다. 신 씨의 도자기는 미적인 아름다움에 실용성까지 겸 비하게 되었다. “다시 도예를 시작한 것은 그만한 간절함이 있었 기 때문이에요.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로 살아가면 서도 나 자신을 찾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어요. 그래
밤인데도 하늘이 파랗다. 별도 초롱이 예쁘고, 굴뚝을 힘차게 밀어 제친 가마 연기는 연신 용이 되어 이 산, 저 산, 이 골, 저 골 유람이다. 언제 보아도 불은 춤을 춘다. 그 투명한 속살을 보이며, 물길처럼 긴 한삼자락을 무념으로, 무상으로, 열반에 이른 무당이 되어, 사발 속으로, 찻잔 속으로, 용이 삼켜버린 저 달 속으로, 어울렁 덩실 잘도 춘다.
서 내가 잘하고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역 시 도예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를 낳고 다시 도예를 시작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 음이 있어요. 엄마의 역할을 온전히 다하지 못한 거 같아서요.” 신 씨는 도자기를 빚으며 인생을 배운다. 물레질을 하며 삶의 중심을 생각하고 가마에 도자기를 구우 며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우연과 운명 의 교차점을 본다. 그렇게 도예가로 살아가다 언젠 가는 가마의 불꽃에 자신의 육체를 내어줘도 좋겠 다는 삶의 처연함을 떠올린다. 그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삶인 것을. 흙을 빚다 조용히 낙하하는 저녁노을을 응시하며 문뜩 떠오르는 생
가마 속, 내가 익어가는 밤 소쩍새 소리 청아한 밤 늦도록 찾지 못한 님을 부르며 노래하는 논 개구리의 가엾은 이 밤 가마 속 내가 다시 익는 밤 열 시간도 훌 넘게 장작을 던진 지친 내 어깨너머로 저만치 저 산 저만치 아침노을이 용과 함께 장관을 이룬다.
각을 작업 노트에 옮겨 적는다. “인생의 목표는 도예가로서 살다가 도예가로서 마
- 도예가 신경애의 작업 노트 中에서
지막을 맞는 거예요. 도예가는 정년퇴직이라는 것 이 없으니까 제가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할 수 있 죠. 도예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제가 흙을 마음 대로 다룰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세월이 갈수록 그 것이 오만이었다는 것을 배우고 있어요. 이제는 반 대로 흙이 나를 만지도록 두는 것이 더 편해졌어요. 그렇게 흙과 피부를 맞대고, 불과 춤추면서 살고 싶 어요.” M 에디터 김수석 사진 양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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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육아를 만나다
부성애가 떠오르는 시대
7번방의
선물 ‘모성적 부성애’ 의 선물 지적장애를 가진 아빠와 7세 딸 사이의 애틋함을 그린 영화 <7 대한민국은 지금 아빠들의 ‘딸바보’ 열풍이 한창이다. 2012년의 키워드가 ‘힐링’이었다 면, 2013년 상반기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키 워드는 ‘부성애’라 할만하다. 천만 관객을 돌 파한 영화 <7번방의 선물>을 통해 부성애의 참의미를 살펴보았다.
번방의 선물>이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부족하기만 한 아빠 의 헌신적인 사랑은 마음을 다잡고 봐도 어쩔 수 없이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게 한다. 이 영화의 무엇이 이토록 우리의 마음을 뭉 클하게 만드는가. 이는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두려움으로 부터 시작한다. 힘 있는 자들이 지배하는 부정한 세상 속에서 부 모는 누구나 약자일 수밖에 없다. 때로는 감옥에 갇힌 죄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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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 었다” 되 을 습 가 모 한 시대 버지의 요 아 필 인 가 ’ 장적 부성애 적 “가부 성 ‘모
무능력한 자신의 모습에 한없이 좌절하기도 한다. 또한, 자신
라마 <내 딸 서영이>도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아빠! 어디
이 사라진 후 혼자 남게 될 자식들의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
가?>에서 아빠들이 보여주는 ‘모성애’적인 역할은 시청자들
온다. 7번방이라는 감옥에 갇힌 지적장애 아버지가 보여주는
로 하여금 아빠와 자녀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있다.
모습에서 부모들은 자신의 밑바닥에 자리 잡은 본질적인 근
아이들 못지않게 허술해서 더욱 친근해 보이는 것도 아빠들
심을 보게 된다. 특히 부모의 희생이 당연시되는 한국 사회의
만의 매력이다.
분위기는 이러한 부모의 마음을 더욱 부추긴다. 영화는 부모
그리고 <내 딸 서영이>의 아빠는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아빠
로 살아가는 이들이 느끼는 무기력함으로부터 시작한다.
고유의 권위를 벗고 조금씩 가족에게 다가간다. 이러한 대중
그렇기에 절망적인 상황을 이겨나가는 부족한 아빠의 모습
매체의 영향 속에서 ‘워킹대디’라는 말과 함께, 친구(Friend)
은 감동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전까지 한국사회에서 부
와 아빠(Daddy)의 합성어인 ‘프렌디(Frendy)’란 말까지 등
성애란 감정표현에 서툰 가부장적인 모습으로 대변됐다. 그
장했다. 일하는 여성들이 늘면서 아빠들이 육아에 손 놓고 있
러나 <7번방의 선물>은 지적장애 아버지라는 설정을 가져와,
을 수만은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부성애의 고정관념을 뒤집는 동시에 절절한 부성애를 직접 적으로 보여준다.
이와 함께 아빠의 육아 참여도가 높을수록 유아의 자아존 중감과 사회성, 도덕성이 크게 높아진다는 ‘아빠효과(the
실제, 영화 속의 지적장애 아버지인 용구는 항상 아이와 함
effects of father)’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졌다. 실제로 ‘아빠
께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며 스킨십으로 소통한다. 이는 본래
의 육아 참여가 아이들의 사회성을 키운다’는 연구결과가 교
의 부성애가 지닌 틀을 넘어 ‘모성적 부성애’의 모습을 보여
육자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으면서, ‘아빠육아’의 바람이 불고
준다. 이러한 ‘모성적 부성애’가 결국 관객들의 마음을 무너
있다. 엄마와는 다른 아빠의 역할을 통해 아이의 사회적 경험
뜨리고 말았다.
이 풍부해지고 대인관계도 좋아진다는 것이다.
부성애가 해답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아빠와 오
실제 신체를 이용한 놀이를 많이 해주는 아빠를 둔 아이는
이러한 ‘모성적 부성애’는 사회 전반적으로 크게 떠오르고
랜 시간을 보낸 아이들이 활동성도 뛰어나고 사람을 대할 때
있다. 다섯 아빠와 아이들이 함께 오지로 여행을 떠나는 예
생기는 여러 갈등도 잘 이겨낸다는 것이다. 이제 ‘모성적 부
능프로 <아빠! 어디가?>가 대세고, 애틋한 부성애를 그린 드
성애’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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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부모교육전문가, 임영주 교수가 알려주는 아 빠육아 비법 5가지! 첫째, 기저귀 갈 때도 수다를 떨어라. 미국 노스캐 롤라이나 주립대 린 버논 피건스 박사의 연구 결과에
또한, 유아기에 아빠와 시간을 많이 보낸 아이가 그렇지 못한 아이 에 비해 학교 성적이 우수했고, 성장 후에도 범죄자가 될 확률과 가 능성이 눈에 띄게 적었다고 한다. 아이는 어릴 적 아빠와 함께한 시 간을 평생 가슴에 담고 살아간다는 것을 기억하자.
따르면 “3세 미만의 아이는 엄마보다 아빠의 말을 많
넷째, 아이와 함께 목욕하라. 센트럴 런던 대학 심리학 연구팀에
이 들어야 문장 구성력 등의 언어발달 능력이 빠르
서 100쌍의 부모가 낳은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14년 동안 조사한
며, 특히 어휘 면에서는 아빠가 어떤 말을 쓰느냐에
결과에 따르면, 아빠가 신생아를 목욕시키는 것이 아이의 사회성
아이가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밝혔다.
발달에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 연구결과에서 신생아
그러므로 자녀에게 바른말 고운 말을 가르치고 언
때 아빠가 목욕을 시키지 않은 아이들 중 상당수가 친한 친구가 없
어능력을 향상시키려면 영유아기 때부터 아빠가 아
고, 다른 아이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까 불안감을 느낀다는 대
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또한, 3세 이후
답을 하였다.
에는 자기 전에 아빠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
또한, 이들 중 30%가 ‘심각한 교우 관계상의 문제’를 겪은 것으로
아이의 언어능력 발달에 큰 도움이 된다. 책 읽어주
나타났다. 그에 반해 아빠와 함께 일주일에 3~4회 목욕을 한 아이
기는 아빠와 아이의 유대감을 돈독하게 하고, 가정의
들은 이런 문제를 경험한 수치가 3%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는 아
분위기까지 화목해지는 효과가 있다.
빠와의 신체 접촉과 따듯한 목욕물이 결합할 때 아이의 체내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아이들의 사회성 발달에 긍정
둘째, 온몸으로 놀아줘라. 아빠만이 잘할 수 있는 것 이 바로 ‘아이와 온몸으로 놀아 주기’이다. 신체를 이
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으로 나타났다.
용한 놀이를 많이 해주는 아빠를 둔 아이는 친구들
마지막으로 권위 있는 아빠가 되라. 권위 있는 아빠가 되라는 것은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아빠와 오
‘권위적인 아빠’가 되어 아이들 위에 군림하라는 뜻이 아니다. 아빠
랜 시간을 보낸 아이들이 활동성도 뛰어나고 사람을
가 아이의 롤모델이 되어 줘야 한다는 뜻이다. 생활 속에서 바른 언
대할 때 생기는 여러 갈등도 잘 이겨낸다는 것이다.
어와 행동,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빠가 되어야 한다. 아이
그러니 아이가 놀아달라고 할 때 최대한 많이 놀아
가 자라나며 힘들고 지칠 때 굳건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는 존재
줘라. 놀이를 통해 배우고 놀이를 통해 자라는 것이
가 바로 아빠다. 그러므로 아빠는 항상 언어를 엄선해서 사용하려
유아기 교육의 핵심이다. 온몸으로 실컷 놀게 하면,
는 의지를 가져야 하며 행동의 일관성을 보여줘야 한다.
자위행위를 하는 아이의 증상까지도 호전시킬 수 있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의 역할도 중요하다. 아이 앞에서 남편의 잘
다고 한다.
못을 들추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빠를 큰 산처럼 든 든하게 여기는 아이의 ‘믿음’을 깨고, 아이가 의지할 수 있는 버팀
셋째, 아이에게 멋진 추억을 선물하라. 영국 뉴캐 슬 대학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어린 시절 아빠와 독 서, 여행 등의 가치 있는 시간을 많이 보낸 이들은 그 렇지 않은 이들보다 지능지수가 높고 사회적인 신분 상승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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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 뺏는 것이나 다름없다. M 에디터 김수석
더 맘 스토리
IQ210 김웅용이 전하는
행복의 조건 기네스북에 ‘최고의 천재’로 이름을 올리며 세계를 놀라게 했던 김웅용. 그는 가장이 되어 두 아이와 아 내와 함께 평범함 삶을 살고 있다. ‘평범한 속에 행 복이 숨어 있다’고 말하는 김웅용이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
“내가 만약 천재로 태어났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우리 아이가 천재라면 얼마나 좋을까?” 등 누구나 한 번쯤 생각 해봤을 법한 상상이다. 사람들에게 ‘천재’는 선망의 대상이 고, 뭐든지 할 수 있는 능력자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정말 천재가 되면 행복할 수 있는 걸까. 그리고 우리가 상상하는 천재는 진짜 천재인 걸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충청북도 청주로 차를 몰았다. 그곳에는 IQ210의 세계 최고 천재라 불리는 김웅용이 살고 있다. 김웅용이 근무하는 충북개발공사는 두 개의 커다란 컨테 이너 건물로 구성되어있다. 그곳에서 그는 처장이라는 직 함으로 일하고 있다. 김 처장의 일과는 정신없이 바쁘다. 인 터뷰 중에도 그를 찾는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온다. 인터뷰 하랴, 일하랴 김 처장은 정신이 없을 법도 한데, 신바람을 내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처리해 나간다. 그리고 그는 물어보지 않아도 자신의 회사 소개부터 한다. 그의 말에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넘쳐난다. 잘 이해 를 못 하는 기자를 위해 종이를 꺼내 도표까지 그려가며 이 해하기 쉽게 다시 설명해 준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토록 설레고 행복하게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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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조건 김웅용의 IQ는 210이다. 괴테(IQ 190), 아인슈타인(IQ 180)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그나마도 IQ 테스트에서 만 점을 받아 측량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한 문제를 더 풀게 해 서 주어진 수치다. 그 이상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세계의 보물이라고 불리던 그였지만, 그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저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특별한 사람이 아니에요. 저 는 그저 제 일과 가정을 사랑하는 중년의 가장일 뿐이에요. 저에 대해 왜곡된 시선을 바로 잡고 그릇된 화젯거리를 만 들지 않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천재는 모든 걸 다 잘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 리고 누구나 천재성을 가지고 있어요. 다만 그것을 발견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김웅용은 한 살 때 천자문을 떼고 세 살에 미적분을 풀었 다. 그리고 다섯 살 때 영어, 독일어, 프랑스, 일본어 등 4개 국어를 구사했다. 그런 김웅용은 1974년에 8살의 나이로
그 일을 해나가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나사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김웅용은 숫자로 가득한 우주 공간에서 고독이라는 블랙홀에 빠져 허우적대야 했다. 그 의 천재성은 주어진 수식을 기계적으로 계산해내는 데 있 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것을 떠올리고 창조해낼 수 있는 천 재였다. 하지만 수년에 걸친 무의미한 과제들은 그를 숨 막 히게 하였다.
“대중들은 천재라는 개념을 다르게 생각하고 있더라고 요. 천재를 뭐든지 다 잘하는 사람으로 이해하고 계세요. 저 같은 경우는 음악이나 미술을 잘 못해요. 그런데 사람
“제가 나사의 원장이었다면 하고 싶은 걸 했겠지요. 하지만
들은 ‘무슨 천재가 음악도 못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
저는 나사에 있는 수천 개의 부서 중 하나를 맡고 있었을 뿐
고 제가 시험을 봐서 하나를 틀리면, ‘천재가 틀렸어? 천
이었어요. 그저 시키는 대로 할 뿐이지, 제가 뭘 하고 있는
재가 그것도 몰라?’라고 말씀하셨죠. 그런데 천재는 뭐
지도 몰랐어요. 그건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잖아요. 그곳
든지 다 잘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스포츠로 치면 김연아
에 더 있었으면 죽었을지도 몰라요. 남들은 왜 그 좋은 곳을
선수가 리듬체조도 잘하고 수영도 잘해야 한다는 거와
나왔느냐고 했지만, 저는 살기 위해서 탈출한 거예요.”
마찬가지죠. 그래도 스포츠에는 그런 천재의 개념을 대
나사에 입사한 지 4년 만에 김웅용은 한국으로 돌아온다.
입하시는 분이 거의 없는데, 유독 공부는 모든 과목을 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서 제대로 정착할 수 없었다. 그는 정규
잘해야 천재라고 생각하시더군요. 그런 생각이 사회 전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기 때문에, 검정고시에 필요한 기
반에 걸쳐 만연해 있어요. 대학생들이 말하는 학점관리
초 지식을 배우지 못했다. 그리고 대학에서 수업을 들었지
라는 것도 비슷한 이치죠. 대학에서는 95점 이상이면 A
만, 졸업장을 가지지 못했다. 언론은 그를 ‘실패한 천재’라
플러스를 줄 수 있어요. 그 결과 대부분의 과목을 굉장히
부르며 화젯거리로 몰고 갔다. 그 가운데서 김웅용은 평범
잘해도 어느 한 과목에서 94점을 받으면, 모두 95점을
한 속의 행복을 꿈꾸게 된다.
받은 학생보다 못한 학생이 되죠. 그러다 보니 자신이 재 능이 있는 분야에 매진하고 싶어도, 취업 등을 걱정해서 모든 과목을 고루 잘하는 것을 선택해버려요. 결국, 서열 화가 문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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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를 넘어 지성인으로 김웅용은 한 살 때 할아버지에게 붓글씨 배우던 기억을 한 다고 한다. 그리고 두 살 때 취재진이 그를 강제로 끌고 가 려다 넘어져서 다쳤던 것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의 머릿속에 저장된 기억들은 사실상 평범한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는 범주와 내용을 넘는다. 하지만 그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에는 그 나이에 걸맞은 추억들이 부족하다. 그게 그를 가끔 공허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아이들에게만 큼은 소중한 추억을 많이 심어주려 노력한다.
행복의 조건 김웅용은 충북개발공사의 처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 다. 처장은 3년마다 바뀌는 사장과 이사직을 제외하고 직 원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직급이다. 그에게는 일을 조
“제가 아들만 둘인데, 큰 아이는 중학교 2학년이고, 작은 아
정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리고 창의력을 발휘
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에요. 큰 아이는 축구를 잘하고, 작
해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추진할 수도 있다.
은 아이는 춤을 잘 춰요. 작은 아이가 ‘인피니트’라는 그룹 을 좋아하는데 텔레비전에 나오는 거 하고 똑같이 춤을 춰 서 깜짝 놀랐어요. 두 아이 모두 학교에서 임원도 하고 친구 들과도 잘 어울려서 좋아요. 그런 아이들한테 제가 해주는 건 아이들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거뿐이 에요. 저는 아이들과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인데, 지금까지 한 10개국 정도는 다닌 거 같아요. 그리고 큰 아이의 경우는 초 등학교 5학년 때 이탈리아에 사는 고모한테 혼자 보내기도 했어요. 이탈리아에 가기 위해서는 중간에 비행기를 갈아 타야 하는데, 혼자서도 잘 찾아가더라고요.” 김웅용은 그의 전공인 토목공학에서 100여 편이 넘는 논 문을 발표했다. 그 결과 미국 인명연구소의 ‘21세기 위대한 지성’에 선정되었고, 미국 마퀴스 세계인명사전에도 이름 을 올렸다. 그리고 영국 케임브리지 국제인명센터가 선정 한 ‘21세기 우수과학자’에도 선정되었다. 사람들은 김웅용 이 ‘세계 최고의 천재’로 기네스북에 올랐던 것은 기억하지 만, 그가 세계 3대 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것은 알지 못한 다. 전자는 그의 타고남이요, 후자는 그의 노력의 결과다. 어 느 것이 더 값진 것인지는 독자의 판단에 달려있다.
“저는 2006년에 충북개발공사가 처음 생길 때부터 함께 했어요. 회사의 규정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개 발 사업에 동참했죠. 이곳에서는 제가 뜻하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어요. 그게 행복한 거예요. 나사에서 일할 때는 느 껴보지 못한 즐거움이죠. 저는 교각을 세우고 아파트를 짓 고 산업단지를 조성해요. 필요한 자금을 구하러 다니고 얻 을 수 있는 이윤을 계산합니다. 제가 일하고 노력하는 만큼 의 성과도 뒤따라요. 제가 상상하는 대로 세상이 바뀌는데 왜 신 나지 않겠어요.” 김 처장은 그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리고 사랑 하는 아내와 두 아들을 둔 가장이 되어 평범하고 행복한 생 활을 영위하고 있다. 카드연체가 걱정되어 카드를 만들지 않고, 아내가 주는 용돈을 쪼개 쓰며, 최근 구입한 스마트 폰의 기능을 익히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리고 아들의 바람을 지켜주기 위해 술과 담배를 끊으려 노력한다. 우리 에게는 지긋지긋할 수 있는 일상들이 김웅용에게는 소중 한 행복이다. 삶이 달라 행복이 나뉘지 않는다. 생각이 달 라서 행복이 나뉜다. “누구나 천재성을 가지고 있어요. 다만 그것을 발견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죠. 그리고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꼭 물리나 수학에서 어떤 큰 성과를 이뤄내야 하는 것 은 아니잖아요. 제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옳은 삶이라고 생각 해요. 지금 저는 굉장히 행복해요.” M 에디터 김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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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맘 스토리
콘 이 아 공 성 의 성 여 이주 회의원 국 호 1 화 문 대한민국 다 이자스민 다문화 가정 서 굴절된 로 으 성 여 도전할 생 녀는 이주 해 정치권에 지난해, 그 위 기 잡 로 례대표 국회 식을 바 새누리당 비 에 대한 인 국 결 고 오직 남편 다. 그리 어린 나이에 각을 내비쳤 세 8 1 . 다 변신했 이자스민 의 을 시작한 의원으로서 삶 의 서 끌 에 고 한국 변화를 이 만을 바라보 대한민국의 , 서 . 로 다 마 봤 살펴 이의 엄 요즘의 삶을 원이 두 아 는 있 고 가 서 살아 정치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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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언론을 통해 새누리당에서 이자스민 의원을 비례 대표 영입 대상으로 거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당 시 그녀가 일하고 있던 서울시청 글로벌 센터는 이를 확인 하는 문의전화가 폭주했었다. 심지어 120다산 콜센터를 통 해서도 연락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영화 ‘완득이’ 출연 이후 생긴 유명세에 안 그래도 불편함 이 적지 않았는데, 이자스민 의원에게는 꽤나 곤란스러웠 던 시기였다. 사실 그녀의 정치권 영입설은 당시가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 2010년 한나라당 서울시의회 비례대표 영 입 대상으로 거론 된 적도 있었다. 그러한 정치권의 관심은 아마도 결혼 이주 여성으로서 그 녀가 가진 상징성 때문인 듯했다. 어찌됐든 그녀는 자천타 천으로 지난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15번을 공 천 받아 국회의원이 됐다. 결혼 이주여성으로서 최초의 국 회입성이다. 그간의 일들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정도지만 사실 그 과정은 그녀에게 녹록치 않았다. 총선 당시 외국 출신의 그녀에게 쏟아진 온갖 유언비어와 악의적 공격은 꽤나 거셌다. 그녀를 한국으로 이끈 남편조
조금 더 나은 사회가 된다면… 그녀가 한국인으로 살아온 시간이 18년을 훌쩍 넘었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던 탓에 유창하게 쏟아지는 한국말 솜씨 에 잠시 당황스러움이 느껴졌다. 오히려 유창하다는 말조 차도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딸내미’라든지, ‘시댁식구’와 같은 단어에서 영락없는 한국 아줌마의 포스가 감지된다. 얼마 전까지 그녀는 고등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을 키우 며 자신의 일에 매진하는 한국의 보통 워킹맘이었다. 그녀의 인생에 변화가 찾아 온 것은 영화 <완득이> 출연 이 후다. 얼굴이 알려지며 많은 변화가 찾아왔지만 그 중에서 장점이라면 두 아이들이 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는 것 이다.
차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두 사람의 만남과정과 그녀의 학
“영화가 개봉 된 후에 아들이 저한테 ‘엄마 덕 보고 있다’고
력에 대해서도 근거 없는 공격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불구
하더라고요. 아마 학교에서 단체관람을 한 것 같은데, 여학
하고 그녀는 묵묵히 그런 공격을 이겨냈다. 아니, 오히려 거
생들이 와서 함께 사진찍자고 한다며 좋아하더라고요(웃
셀수록 오기가 생겼다.
음). 딸내미는 아직 초등학생이라 친구들이 잘 모르지만, 간
다문화 가정 출신이란 ‘구별’을 받는 두 아이의 엄마로서
혹 어쩌다 영화를 본 아이가 <완득이> 이야기를 하면 은근
사람들의 뇌리에 뿌리박힌 잘못된 고정관념을 바로잡아야
히 나서서 ‘거기 나오는 필리핀 사람이 우리 엄마야’라며 자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제 그녀는 명실상부한 대한민
랑한다고 하고요(웃음). 요즘 아이들은 연예계를 동경하니
국 국민의 대표로서 국회에 섰다. 그리고 아동과 여성, 국제
까 아무래도 더 그런가봐요.”
결혼으로 탄생한 다문화 가정을 위한 법안을 연이어 발의 하고 있다. 들러리도 아니고, 거수기 노릇도 아니다. 이주여 성으로서 자신과 그 자녀들이 경험한 부조리와 고정관념을 하나씩 뜯어고치기 위한 행보였다.
그녀에게는 유난히 ‘1호’라는 말이 자주 따라 붙었다. 국회 에 입성하기 전까지 외국인 공무원 1호로 서울시 글로벌 센 터에서 일하며 다문화 가정을 위한 사업에 힘을 보탰다. 이 주 여성들이 중심이 된 ‘물방울 나눔회’ 사무총장으로서도 활동 역시 그녀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다. 그러던 중 영화 출연이 이어지고 얼굴이 알려지며 성공한 이주 여성의 아 이콘이 된 이자스민 의원. 하지만 그녀는 거기에 안주하지 않았다. 바로 정치인으로서의 변신이다. 그러나 처음 정치권의 영입 제의를 받고는 신중한 고민을 거듭했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새로운 인물을 찾는 것이었지 만 단순히 보여주기식 인물이 되기는 싫었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고심을 거듭한 끝에 선택한 정치입문이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된 이민자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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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이제 수만 명의 이민자들이 살아가고 있는 다문 화 사회라고 생각해요. 제가 활동을 해 온 것도 그 때문이고요. 또 저는 엄마잖아요. 이제까지 제가 한 일들은 모두 아이들을 위해 시작한 것들이에요. 언젠가 TV에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 이 왕따가 될 수 있다’거나, 성인이 됐을 때 (사회문제가 되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걸 봤어요. 아이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시한폭탄이다’, ‘시한폭탄이다’ 하면 커서 뭐가 되겠어 요. 정말 시한폭탄밖에 안 돼요. 그리고 미디어를 보면 이주여 성은 모두 어렵고 한국에 와서 도망가고, 돈 벌러 온 사람들로 비쳐지더군요. 애들도 그걸 보고 제게 ‘엄마도 돈 벌러 왔냐’, ‘위장결혼은 뭐냐’고 물었어요. 그런 편견은 아이들에게 너무 나 좋지 않은 영향이거든요. 사실, 저 역시 사회 활동을 하기 전 에 한 10년 동안을 집에만 있었어요. 저만 숨어서 있으면 아이 들은 문제없겠다 싶었죠. 그러다 아들의 학교에 배식당번으로 가게 되면서 생각을 고쳐먹었어요.” 주저하며 배식을 돕기 위해 아들의 학교에 갔을 당시를 떠올 리며 미소를 짓는 이자스민 의원. 이유는 이렇다. 학교에 온 그
사랑이 뭐 길래
녀를 보고 아들의 친구들은 남다른 호기심을 보였다. 이주 여
그녀는 필리핀에서 부족함 없는 가정 출신이다. 더구나 의
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무서워서, 아들이 혹 왕따가 되지 않을
대 입학을 앞두고 있던 재원이었다. 게다가 눈에 띄는 미모
까 하는 걱정에 당황했다는 그녀. 그러나 아들은 그녀의 걱정
까지 갖췄으니, 요즘 표현으로 한다면 영락없는 ‘엄친딸’이
과 달리 자랑스럽게 “야, 우리 엄마야, 엄마 영어 하는 것 좀 보
었다.
여줘”라며 당당 태도를 보였다. “필리핀에서도 한국과 같이 자녀에 대한 기대가 커요. 특히 “아들 학교에서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 한국으로 이주한 많은
저는 맏딸이라 부모님은 제가 잘돼야 동생들을 이끌 수 있
다문화 가정 엄마들이 똑같은 고민을 한다는 것도 알게 됐죠.
다고 생각하셨죠.”
‘내 아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나’ 그런 개인적인 생각에 서 이런저런 일들을 하게 된 것이고요. 처음 정치권의 제의를
그런 그녀가 집안을 발칵 뒤집으며 돌연 한국행을 선언했
받았을 때 제 대답은 ‘이 사회가 0.001%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던 이유는 뭘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사랑’ 때문이었다.
더 나은 세상이 된다면 하겠다’ 였어요.”
그녀의 집에서 운영하고 있던 가게에 음료수를 사러 들어 왔던 남편이 그녀를 보자마자 한눈에 반해버린 것. 큐피트 의 화살을 제대로(?) 맞아버린 남편에게 12살의 나이차이 나 국적은 상관이 없었다. 외항선원으로 2박 3일의 체류 기 간 동안 그녀가 있는 가게를 수시로 들락거리며 구애를 하 던 남편은 한국으로 떠난 이후에도 일주일에 한 번꼴로 편 지를 보내왔다. 그러다 선원 계약이 끝나고 부터는 2주 간격으로 필리핀을 방문해 끈질긴 구애를 펼쳤다. 급기야는 커다란 가방을 가 지고 와서는 ‘결혼할 때까지 여기 있겠다’며 불법 체류자가 되도 상관없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남자에게 안 넘어 갈 여자는 없었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은 또 있었 다. 바로 그녀 부모님의 반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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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다 한국에서의 삶은 한동안 평탄했다. 아들과 딸이 태어났고
“제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크지 않아요. 보통 아이들과 같이 경쟁하고, 부딪히고, 깨지기도 하면서 동등하게 커갔으면 해요. 미래는 다문화 가정 아이라서 혜택을 받거나 불리한 세상이
남편의 사랑은 처음과 변함이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불행 이 닥친 것은 2010년 즈음이었다. 가족 모두가 물놀이를 갔다가 물에 빠진 딸을 구한 남편은 끝내 물 밖으로 나오 지 못했다. “아이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죽어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였어요. 제가 사는 이유가 남편이었다는 것을 그때 깨 달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건 아이들 때문이에요. 아이들이 남편 역할을 대신해주더 라고요. 아들은 ‘엄마 지금까지만 울고 내일부터 원래대로 돌아가자, 내가 있으니까 걱정 마’라고 하더군요. 한 달 가 까이 방에 누워만 있다가 어느 날 일어나 보니 아이들이
안됐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에요”
개학을 했다며 스스로 준비하고 있더라고요. ‘왜 엄마 안 깨웠어’하니까 알아서 할 수 있다며 쉬라고 하더군요. 그 때부터 다시 정신을 차렸죠.” 마음을 추스르고 나니 딸이 겪을 아픔도 걱정이 됐다. 남
“엄마는 무릎 꿇고 눈물 흘리며 호소하는 남편의 마음을 받 아줬어요. 그 뒤로 엄마는 ‘이런 남자가 없을 것’이라며 많이 편을 들어줬어요. 하지만 아빠는 끝내 반대하셨어요. 결혼 식에는 오셨지만 끝내 결혼을 동의하는 라이선스에는 서명 을 하지 않으셨죠.” 결혼 후 그녀와 남편은 사실 필리핀에서 신혼생활을 할 생 각이었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 필리핀과 달리 입맛 좋게 밥 을 먹는 남편을 보고 ‘이 사람은 여기에 있어야 하는구나’라 는 생각을 했다고. 결국 그녀는 그렇게 한국에서 살기로 결 심했다. 그러나 한국 생활이 결코 만만치는 않았다. 일단은 언어의 장벽을 극복해야 했고, 시할머니까지 3대가 함께 사 는 대가족의 맏며느리 역할을 해야 했다. 그녀는 ‘쉽지 않았 지만 필리핀 사람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로 이겨냈다’며 웃음 짓는다.
편이 남긴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어떻게 생활을 해 나가야 하는지도 막막했다. 하지만 아빠가 세상을 떠나서 생활이 변한다면 딸아이의 죄책감이 더 클 것 같다는 생각에 ‘죽 어라’ 노력했다는 그녀. 강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친정인 필리핀에서 돌아오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자신도 아이들도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 됐기 때 문이다. “엄마가 아는 사람은 남편뿐이었는데 남편이 세상을 떠나 니 걱정이 되시는 게 당연했죠. 돌아오라는 엄마에게 ‘나 는 여기 만 18살에 와서 반평생을 살았다. 여기서 어른이 됐고 엄마가 됐고 사회인이 됐다’고 말했어요. 제가 알고 있는 세상, 알고 있는 사회가 한국이잖아요. 대신 남편하 고 약속한 게 있어요. 애들이 크고 나면 필리핀에서 집 지 어서 살자고 했는데…. 아마 제가 은퇴를 하게 되면 그렇 게 되겠죠. 엄마는 요즘 제가 바쁜 것을 더 걱정을 하세요.
“한국 사람들은 맏며느리가 힘들다고 생각하더군요. 그건
‘애들은 네가 돌본다고 하지만 너는 누가 돌보니’라고 하
아마 ‘모신다’와 ‘함께 산다’의 차이인거 같아요. 필리핀에
시면서요.”
서 저는 가족과 함께 산다는 것 외에 모신다는 개념이 없었 기 때문에 그저 같이 산다는 것에 부담이 없었어요. ‘Live Together’였죠. 그런데 시할머니까지 같이 산다고 하면 사 람들이 ‘무슨 고생이냐’ 그래요(웃음). 그런 우려처럼 실제 로 시댁 식구들과 제 생각을 공유하는 데는 몇 년이 걸리긴 했어요.”
사랑과 행복을 좇아 한국행을 택했던 이자스민 의원의 꿈은 정치가 아니었다. 그러나 우여곡절의 삶은 그녀를 정 치의 길로 이끌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후회 없이 일 하는 것”이라며 웃는 이자스민 의원. 정치인 이전에 엄마 로서, 여성으로서 앞으로도 이어질 그녀의 행보를 응원하 며 자라나는 세대들이 살아갈 보다 나은 세상을 기대해 본다. M 에디터 황정호 사진 양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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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맘 스토리
아직 꿈꾸는 스무 살처럼 여행 작가 권다현
자갈밭을 스쳐 철길을 지나갈 때의 덜컹거리는 소음, 바깥 창밖 프레임으 로 보이는 시골의 소담스런 집들과 산의 풍경이 만들어내는 멋진 조합. 세상 의 바쁨을 던져버리고 떠나는 기차 여행은 도착 전의 시간마저도 운치가 있다. 하지만 편리하고 빠른 여행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에게 기차 여행은 그저 먼 이 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차 여행을 선보이기 위해 철도공사는 2007년에 여름과 겨울철, 7일간의 무제한 이용이 가능한 <내일로 티켓>을 출시했고, 아직까지 많은 사람 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려 하면, 막상 어디로 가고 어느 역에 내려야할 지 고민이 되는 것이 다반사이다.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 전국의 기차 노선을 누비고 다닌 사 람이 있다. 바로 내일로 여행자들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 <내일로 기차로>의 저자 권다 현 씨다. <내일로 기차로>의 이미지가 강해서 작가님이 20대 초중반 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있 는 워킹맘이시더라구요. 그렇다면 <내일로 기차로>는 언제 출간하시게 된 건가요? 하하, 감사합니다. 사실 자주 겪는 일이긴 해요. <내일로 기차로> 때문에 대학생 친구들을 만날 일이 많은데 어 떤 친구는 “그렇게 매일 여행을 다니시면 연애는 언제 하세요?”라며 제 미래(?)를 걱정해주기도 하고 저보다 나이 어린 편집자가 미팅 내내 말을 살짝 놓기도 하고. 그런데 전 오히려 기분 좋던걸요? 책 덕분에 조금이나마 어리게 살 고 있는 거 같아서. <내일로 기차로>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지 일 년이 조금 지났을 때 출간됐어요. 저한테는 여행 작 가로서 첫 데뷔작이기도 했고요. <내일로 기차로>는 내일로 여행자에게 필독서로 자리 잡았는데요. 첫 번째 책이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됐는지가 궁금합니다. 여행 작가는 늘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꿈이었어요. 그런데 우연히 알게 된 선배 작가님이 “이런 좋은 아이템이 하나 있는데 해보지 않겠느냐” 제안하셨죠. 그게 바로 <내일로 기차로>였어요. 그분도 블로그에 쓴 글만 보고 제가 20대 초중반일 거라고 생각하셨대요.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행 작가라는 꿈을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다, 제가 좋아하는 기차여행을 테마로 한 여행 책이었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죠. 당장 사표를 내고 취재를 시작했어요. 내일로 여행지 모든 곳을 다니기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기차여행이 테마이다 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해 그 모든 곳을 다녀야 해서 시간적인 한계가 가장 큰 어려움이었죠. 책의 출간 일이 6월 21일인데 제가 출판사와 첫 미팅을 한 게 2월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실제 취재기간은 세 달이 채 안 되었어요. 그 짧 은 기간 동안 전국의 모든 기차노선을 누비느라 늘 시간이 부족했어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취재를 하고 잠자는 시간을 쪼 개어 원고를 썼죠. 발목에 무리가 와서 안정을 취해야 함에도 보호대를 하고 또 이곳저곳을 뛰어다녀야 했어요. 살이 너무 빠 져서 중학교 시절 몸무게로 돌아갔을 정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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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기차 여행은 몇 살 때 도전하시게 되었나요? 열다섯, 그러니까 중학교 2학년 때였을 거예요. 당시 취미가 잡지책에 실린 서울 관련 정보들을 스크랩하는 거였는데, 아마도 서울이란 대도시에서의 삶을 무척 동경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여행정보들을 모으다가 문득 “지금이라고 못할 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부모님을 졸라서 드디어 첫 서울여행 기회를 얻게 되었 죠. 그렇게 혼자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던 게 제 기억 속의 첫 기차여행이었 던 거 같아요. 첫 여행의 기억은 어떻게 남아 있는 지 궁금한데요? 기차 플랫폼까지 배웅을 나오신 부모님께 씩씩하게 손을 흔들었지 만 막상 기차가 덜컹, 움직이기 시작하니 조금 겁이 나더라고요. 사 춘기 소녀의 치기로 시작한 나 홀로 여행이었지만 막상 지금부터 모든 걸 혼자 결정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쿵쿵 소리가 날 만큼 뛰었죠. 그냥 여기서 포기할까도 생각했어 요. 그런데 강릉역에서 출발한 기차가 푸른 동해를 끼고 달 릴 무렵 조금씩 마음이 안정되더라고요. 아침 햇살에 반 짝이는 바다가 정말 예뻐 보였거든요. 그 풍경에 취해 두려움을 잊을 수 있었어요. 서울에 도착해서도 마 음속으로 ‘넌 잘 해낼 거야, 잘 하고 있어’라며 끊 임없이 내 자신을 격려하고 응원했어요. 그렇게 성공적으로 나 홀로 서울여행을 마치고선 자 신감이 충만해졌죠. 그 다음부턴 용돈을 모 아 툭하면 혼자 서울로 떠났어요. 스물일곱에 영국으로 떠나셨다고 들 었는데 큰 결정을 하신 계기는 무 엇이었나요? 대학졸업과 함께 시작한 직 장생활이 3년차에 접어드 니 슬슬 매너리즘에 빠지 게 되더라고요. 무모할 만큼 열정과 항상 열 심히 하던 제가 어 느새 ‘적당히, 적 당히’ 이러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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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면서 만난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으세요? 어학원에서 만난 선생님 한 분이 참 기억에 많이 남아요. 송별 회에서 선생님께 앞으로 어떤 일을 하실 거냐고 물었더니 “글 쎄, 영어학원도 운영해 보고 싶고 홈쇼핑 쇼호스트도 해보고 싶고 여행가가 되보고 싶기도 해. 사실 무엇이든 해볼 수 있지. 난 이제 겨우 마흔살인 걸”이라고 하시더군요. 그 대답이 저한 텐 큰 충격이었어요. 20대가 저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내리막길을 걷는 것처럼 좌절하고 있었는데 마흔 살의 저 선생 님은 스무 살처럼 꿈을 꾸고 있구나! 그 때부터 제 나이를 긍정 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 같아요.
뭔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이것이었나, 생각해볼 시간도 필요했고 요. 그러던 중 꽤 오랫동안 사귀던 남자친구가 결혼 이야기를
여행하면 모두가 좋아하는 공통의 관심사인데, 좋아하는 이 유는 다 다른 것 같아요. 작가님이 여행을 좋아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꺼냈어요. 덜컥 겁이 나더군요. 너무 어렸거든요. 결혼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여행하면 일상탈출 같은 ‘떠남’에 의미를 두잖
내 존재감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말
아요? 그런데 전 그렇게 떠날 수 있는 ‘일상’이 있어야 비로소
도 안 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었어요.
여행이 행복한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그토록 사랑했던 영국이
때마침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붓기 시작한 적금통장이 만기가
지만 막상 그곳에서 밥 벌어 먹고 사는 한국인 친구들은 또 다
되었고, 뭔가 홀린 사람처럼 어느 날 갑자기 충동적으로 영국
른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기 마련이거든요. ‘진정으로 뭔가를
행 비행기를 끊어버렸어요.
발견하는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이다’란 프루스트의 말처럼, 여행은 일상으로 잘 돌아가기
영국이라는 타지에서의 생활과 또, 그 곳에 머물면서 들었던 생각도 궁금합니다.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일상을 긍정하게 만드는 여행의 힘 을 그래서 전 참 좋아해요.
런던 같은 대도시보다는 여행 책에 잘 나오지 않는 소도시들 을 기차로 여행하며 의외로 소박하고 다정한 영국의 진짜 모습 을 제대로 만났죠. 특히 오래된 가구나 물건에 대한 영국 사람
혼자 떠나는 여행을 두려워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혹시 그 러한 분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으신 것이 있다면요?
들의 애정이 인상 깊었어요. 우리는 무조건 새 물건, 새로운 기
연애가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이라면 여행은 나 자신을 이해하
술에 열광하는데 그들은 물건 하나에도 역사와 추억을 덧입히
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혼자 떠나는 여행만큼 나 자신에게 집
고 그것의 가치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죠. 그래서 저도
중할 수 있는 기회도 없죠. 무언가 혼자 결정하고 선택하는 건 자
아직까지 2001년에 산 카메라를 가지고 있어요. 아마 그 때 영
신감을 키우는 데도 큰 도움이 돼요. 사실 저도 누군가에게 길을
국 사람들에게서 받은 영향인 것 같아요.
물어보는 걸 참 조심스러워 했던 성격인데 지금은 거리낌이 없 거든요. 나 홀로 여행에선 그게 생존의 문제니까요. 또 혼자 여
여행을 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한번은 친구들과 함께 스코틀랜드로 여행을 떠났는데 얼마나 많이 걸었는지 발에 온통 물집이 잡혔어요. 물집이 터지고 쓰 려서 더 이상 걷기가 어려울 정도였죠. 그런데 한국인 오빠 하 나가 얼른 양말을 벗어보라고 하더니 실과 바늘을 꺼내 물집마 다 찔러 넣더라고요. 그렇게 하면 물집이 실을 타고 자연스럽 게 증발하면서 흉도지지 않고 아문다는 거예요. 알고 보니 군 대에서 행군할 때 자주 쓰이는 방법이래요. “군대 경험이 유용 할 때도 있구나”라며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나요. 덕분에 물집은 잘 아물었지만 실이 잔뜩 꽂힌 발로 또 돌아다니느라 사람들이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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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하면서 만나는 인연들도 참 소중해요. 친구와 함께였다면 절 대 이어지지 않았을 인연이잖아요. 여행할 때 구체적으로 계획파이신가요, 아님 즉흥파이신가 요? 전 계획파와 즉흥파의 중간쯤이에요. 대중교통으로 여행하는 걸 좋아하다보니 최소한의 이동경로와 교통수단 정도는 미리 알아두는 편이죠. 그래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 만 그 나머지에 대해선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편이에요. 전 그 걸 ‘감동의 몫’이라고 이야기해요. 너무 완벽한 계획은 여행지 에서 내가 직접 느껴봐야 할 감동까지 미리 재단해버려요. 요
즘 블로그가 활성화되어 있어서 사전에 여행지 사진이나 정
많은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기도 해요. 사실 전 여행을 떠나면
보를 지나치게 많이 보게 되는데요. 전 그렇게 하지 말라고
카메라로 뭔가를 찍어 남기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어요. 기
권하고 싶어요. 그렇게 많은 사진과 후기들을 보고 떠나는
껏해야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나 그 순간의 제 모습 정도? 그
여행은 무미건조한해지고 말거든요.
런데 이게 일이 되고 보니 살짝 의무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 네요. 또 여행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영역이다 보니 제가 어떤
태교 여행지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국내 여행지와 그 이유 가 궁금합니다.
여행지를 추천한다는 게 늘 조심스러워요. 제겐 좋았지만 누 군가에겐 오히려 실망스러운 기억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즐
요즘 한창 봄꽃 소식이 만발하니 이 무렵에 가기 좋은 곳으
거운 여행길에 늘 이런 고민들을 달고 걸어야 한다는 건 여행
로 청산도를 추천하고 싶네요.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답게
작가로서의 숙명이겠죠. 지금은 그마저도 즐기려고 항상 노
느릿느릿 걸으며 아름다운 풍경도 보고 아기와 대화를 나누
력해요.
기에도 참 좋거든요. 특히 4월엔 섬 전체가 유채꽃으로 뒤덮 싱한 제철 재료들로 차려내는 슬로푸드도 엄마의 입맛을 돋
앞으로 출간예정인 책이나 작업해보고 싶은 테마가 있으 신가요?
워줄 거예요. 또 일 년 후에 편지가 도착하는 ‘느린 우체통’에
올 상반기에 가족여행을 테마로 한 책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곧 만나게 될 아기를 위한 엽서를 띄워보는 것도 뜻 깊은 추
이 책이 잘 된다면 더 이상 <내일로 기차로>의 20대 이미지
억이 될 거예요.
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저와 같은 세대의 여행
여 푸른 바다와 어우러진 절경을 자랑하죠. 현지에서 난 싱
을 고민하는 것도 제 역할이지 않을까 싶어요. 아직은 아이가 출산 후 엄마와 가족들이 함께 떠나면 좋을 국내 여행 코 스와 이유도 듣고 싶습니다.
어리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다양한 여행법을 공유할 수 있는 책도 작업해보고 싶어요.
출산 후 모유수유 등으로 한창 피로감을 느낄 엄마에겐 제 대로 된 힐링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전남 신안에 위치 한 증도는 아름다운 해변과 붉은 낙조, 도시에서는 보기 어
여행 작가가 되고 싶은 독자들에게 본인의 팁을 알려 드 린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려운 염전풍경을 만날 수 있어 더욱 특별하죠. 이국적인 풍
여행 작가란 막연한 꿈을 꾸기 보다는 ‘어떤’ 여행작가가 되
경의 우전해수욕장에서 남편과 함께 산책도 즐겨보고 천일
고 싶은지 본인만의 강력한 테마를 고민하는 게 먼저인 것 같
염을 이용한 맛깔스런 음식도 먹으며 휴식을 즐겨보면 어떨
아요. 그저 한 두 권의 가이드북을 낼 수 있는 기회는 많지만,
까요?
제대로 이 길을 걸어가려면 본인만의 전문영역이 있어야 하
여행작가하면 모든 사람들이 동경하는데 남모를 고충이 있을 것 같아요. 어떠신가요?
거든요. 또 자신만의 테마를 정했다면 그것과 관련한 취재자
여행 작가처럼 겉으로 보기에 멋있는 직업도 없는 것 같아
다면 언제든 기회는 찾아오기 마련이니까요. M
요. 하지만 일종의 휴식이자 취미인 여행이 일이 된다는 건
료를 잘 모아두는 것도 큰 자산이 될 거에요. 준비만 되어 있
에디터 전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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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맘 인터뷰
“아이에게 자유롭고 밝은 삶을 선물하는 엄마가 되고 싶어요”
임신부 김은정 씨 아이를 잉태한 임신부의 아름다 움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다 고 누군가가 말했다. 내가 만난 그녀가 그랬다. 한 아이의 엄마 가 된다는 기쁨과 설렘에 한껏 들뜬 임신 6개월의 김은정 씨는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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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고 밝은 삶을 선물하고 싶어 ‘영어태교다, 조기교육이다’며 뱃속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 하지만 은정 씨는 고개를 절래절래 젓는다. “공부, 물론 잘하 면 좋지만 아이가 그저 자유롭고 밝게 자랐으면 좋겠어요.“
부부에게 찾아온 선물 8월이면 그녀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 결혼 1년만의 일이
그녀와 남편은 이런 면에서 생각이 같다. 공부를 잘하는 것 보다 아이가 스스로 이루고 싶은 꿈과 목표를 정하고 그것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다. 아이를 갖고자 마음먹고 운 좋게도 곧바로 부부의 결실 을 맺게 되어 무척이나 감사하다는 그녀.
“인생을 너무 책상 앞에서만 보내게 하고 싶지 않아요. 자신
“남편과 저 이렇게 둘이 살다가 우리 사이에 가족이 생긴다
아닐까요.”
이 좋아하는 걸 하면서 밝고 행복한 삶을 산다면 그게 제일 고 하니 뭔가 좀 더 끈끈한 가족애 같은 게 느껴졌어요.” 아직 모르는 것이 훨씬 많지만 책도 보고 선배 엄마들의 이 임신 5개월에 접어든 지난 달 부터는 태동이 느껴지면서 생
야기를 들으며 아이가 건강하고 책임감 있게 성장할 수 있도
명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고 음식도 더욱 조심하게 되었다고.
록 도와주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그저 편한 마음만 유지하면 건강하게 태어나는 건줄 알았 는데 의사선생님께서 뱃속 건강이 평생을 좌지우지 할 수 있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것
다고 하셨어요. 그 말을 들으니 이전보다 많은 것들을 조심
“결혼했을 때는 몰랐어요. 아니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도 못
하게 되요. 은정 씨는 요즘 길을 가는 아이를 보거나 텔레비
느꼈어요. 그런데 출산일이 4개월 앞으로 다가오니 이제서
전 속 아이들을 볼 때마다 흐뭇해지고 아이를 가진 친구들과
야 알겠더라고요.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일이 얼마나 대
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자신을 보면서 새삼 생명의 위대함과
단한일인지를요.”
신비로움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임신하고 ‘엄마가 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
임신, 내 인생의 마지막 휴가
각을 하면서 엄마라는 이름이 위대하게 느껴졌다는 그녀. 어 릴 때 친정엄마가 해주신 것들이 새록새록 생각나면서 새삼
출판사 에디터로 8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다가 얼마 전 임
스럽게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숭고한 사랑을 다시 생각하게
신을 하고 지금은 전업주부가 되었다는 은정 씨.
되었다.
“사실 이렇게 집에만 있었던 적은 처음인지라 매일 똑같은
“저는 한 아이를 임신하고도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두 자매
일상이 지겹기도 하고 때론 답답하기까지 했어요. 왠지 나만
를 낳아 이렇게 반듯하게 키워주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한없
뒤쳐지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들었고요”
이 작아짐을 느껴요. ”
친구들이나 남편과의 대화에서 간혹 말을 잘 못 알아듣거나
출산 후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다시 일터로 돌아가 워킹
낯선 소식을 접할 때면 불안감이 밀려왔다. 아이를 낳으면
맘의 길을 걷고 싶다는 그녀. 일하는 엄마가 되면 행여나 아
더욱 심해질 것 같아 미래가 걱정되기도 수차례.
이에게 온전히 관심을 쏟지 못할까봐 고민하는 그녀지만 그
이런 자신의 모습을 떨쳐버리고자 그녀는 요즘 여러 가지 자격증에 도전하며 그동안 잠시 놓아두었던 영어공부도 다
녀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엄마’라는 자리는 끊임없이 노력 하고 또 반성하며 완성되는 자리라는 것을.
시 시작했다. “몰두할 일을 찾은 덕분에 불안감과 우울감을 서서히 극복
인터뷰 내내 앞으로 태어날 아이에 대한 기대로 얼굴에 미
할 수 있었어요. 요즘은 그냥 지금 이 순간들을 내 인생의 마
소가 떠나지 않던 은정 씨. 그 속에서 새 생명을 잉태한 엄마
지막 휴가라고 생각하며 즐기고 있죠. 그동안 바빠서 못 만
에게만 느껴지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났던 친구들도 만나고, 남편에게 맛있는 요리도 만들어주면
밝은 그녀의 웃음을 닮은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길 기원하며,
서 살아요. 그리고 사실 이건 얌전히 집안에 앉아 뜨개질을
‘여자 김은정’이 아닌 ‘엄마 김은정’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M
하거나 클래식을 듣는 것이 체질에 맞지 않는 저만의 태교법 이기도 하답니다.”
에디터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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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내 아이
경제교육 바로 하기 하루에도 수십 개씩 새로운 물건들 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더 좋고 예 쁜 것을 자식에게 주고 싶어 한다. 세상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아이들은 배고픔, 부족함이란 것을 잘 모르고 지낸다. 하지만 아이를 독립적으로 건강하 게 키우기 위해서는 충분함과 결핍 사이에서 줄다리기가 필요하다. 제 대로 된 경제 교육은 이후 자녀가 성인이 되었을 때의 저축, 소비 습 관을 결정짓는 주요한 열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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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마트, 시장가기 자녀와 함께 쇼핑을 하는 것은 대부분의 가정
적당한 일과 노동 이후에 보상해주기
에서 일반적이다. 함께 아이와 장을 보기 위해 마트나 시장에 가는 풍경은 어느 집에서나 자연
부모가 아이에게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 하
스럽다. 그런데 보통 일반적 장보기에서는 일반
나가 공부를 하면, 용돈을 준다, 밥을 먹으면
적으로 부모가 물건을 살 때 아이가 동행하는
용돈을 준다와 같은 약속을 하는 것이다. 본
것에 그친다. 그리고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거
인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 돈을 주는 것은 경
나 사고 싶어 하는 것을 같이 사줌으로써 부모
제 교육에 바람직하지 않다. 이것이 지속되
와 아이의 쇼핑은 끝이 난다.
면 모든 일에 돈을 받아야 한다고 오해하기
하지만, 물건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이것이 왜
쉽기 때문이다.
필요한지, 그리고 다양한 제품들 중에서 이 제
가령 혼자 스스로 신발장 정리를 하는 등 부
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설명해
모의 청소를 도와줬을 때처럼 아이가 자발적
주는 것이 필요하다. 유아기인 3,4살 무렵 이러
으로 돕거나 보탬이 되는 일을 했을 때 용돈
한 내용을 알려주면 아이에게 올바른 경제관념
을 주는 것이 경제관념과 교육에 더 효과적
을 심어줄 수 있다.
이다. 특히 집에서 하는 홈 아르바이트를 정 하고 그것을 아이가 행했을 때 금전적 보상 을 해주는 것이 좋다. 이 때 중요한 것은 홈 아르바이트의 금액이 용돈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홈 아르바이트 금액이 용돈보다 크다면 자녀는 용돈의 소중함을 잊고 돈을 받기 위한 일거 리 찾기에 몰두해 큰 것을 놓치게 되기 쉽다.
벼룩시장에판매자로참가하기 성장기에는 보통 소비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 어 돈의 소중함을 잘 모르기가 쉽다. 그래서 부모가 용돈을 주었을 때 아이들은 때로 즉흥 적으로 돈을 쓰는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돈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는 방법이 바로 아이 와 함께 벼룩시장에 참가하는 것이다.
학용품 구매는 아이에게 맡기기 학용품을 부모가 사주지 않으면 누가 사주 느냐고 다소 황당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 본인에게 필요한 학용품을 부모가 대신 사 주는 것은 아이에게 중요한 소비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학용품을 구입 할 금액을 포함해 아이에게 용돈을 주어야
이 때 벼룩시장에서 아이에게 판매자의 권한 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직접 돈을 버는 기회 를 얻음으로써 아이는 생산자로서의 마인드 를 접하게 되며 돈의 돌아가는 흐름과 그 가 치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재미있는 일 종의 놀이 겸 교육으로써 벼룩시장에 아이와 함께 참여해보자. M 에디터 전은영
한다. 그래야 아이는 물건을 직접 비교해서 구입하 는 합리적 소비의 첫 걸음을 시작하게 된다.
자녀 경제교육에 도움이 되는 사이트
가령 아이가 눈앞의 유혹에 빠져 학용품이 아
한국은행 경제교육 www.bokeducation.or.kr 대한상공회의소 청소년 경제교육 www.hi.korcham.net 하나은행 어린이 경제세상 <하나시티> www.hanacity.com 청소년 금융교육 협의회 www.fq.or.kr
닌 다른 데 쓰더라도 흔들리지 말자. 본인이 직접 소비의 중요성을 깨닫고 몸소 경험하는 중요한 교육의 장이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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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부부싸움
왜 할까?
사랑해서 결혼 할 땐 언제고 오늘도 피터져라 싸우는 우리부부.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말하 지만 그 칼에 부부들은 치유할 수 없 는 상처를 입기도 한다. 대체 우리부 부는 왜 이렇게 싸우는 걸까? 부부싸움의 이유부터 부부 싸움 잘 하는 법까지. 더 맘에서 공개하는 부 부싸움의 모든 것.
에디터 김혜원 도움말 해맑은 봄 심리발달센터 www.sun-sp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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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의 이유 많은 부부들이 의견이 맞지 않고, 성격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부부싸움을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서로 다르게 태어나,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다. 따라서 서로의 가치관과 성격은 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결국 부 부싸움은 다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부부싸움이 없는 것을 행복의 지표로 삼을 수는 없다. 부부싸움이 너무 없는 부부의 경우 한쪽이 일방적으로 참 고만 있거나 또는 서로에게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부부싸움을 통해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하고 맞춰 나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면, 오히려 부부싸움은 부부에게 때로는 필요한 것이 될 수도 있다. 관건은 부부싸움을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기술에 있다.
부부싸움의 유형 인신 공격형 이 유형의 부부는 문제의 원인을 모두 상대방에게 돌린다. 그 러다가 과거, 외모, 성격 등 현재의 문제와는 아무 연관이 없는 내용 까지 언급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각자의 가정환경, 부모님 문제로까 지 확산되기도 한다. 이 유형은 정말 대판싸움까지 가는 경우가 많
부부 싸움 잘 하는 법
다. 이혼으로 직접 연결되는 유형 중 하나이다.
부부싸움 그 자체는 피할 수 없다. 오히려
불만누적형
부부싸움을 서로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자양분
이 유형은 표면적으로 부부싸움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으로 삼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예를 들어, 부부싸
수 있다. 화가 났을 때 바로 표현하지 않고 안으로 차곡차곡 쌓아두
움이 잦은 부부는 부부싸움의 횟수를 줄여가는 것,
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번 다툼이 생기면 그 때부터 그동안 쌓였던
서로의 불만사항을 피드백해 개선해 나가는 것, 문
모든 것들을 다 표출한다.
제의 해결책을 찾는 것 등 함께 변화할 수 있는 방법
그러다 보면 10년 전의 이야기 까지도 다 들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
을 만들어 간다면, 부부 갈등 자체를 유연하고 효과
하기도 한다. 이 싸움은 오래 가기는 하지만 한번 터지고 나면 그동
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안 쌓였던 불만이 어느 정도는 해소가 되기 때문에 한참동안은 조용
1. 현재 부부싸움을 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잊지
해지는 유형이다.
말아야 한다.
문제회피형
부부는 부부싸움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해결책과
부부싸움이 일어날 것 같으면 한 쪽이 그 상황을 무조건 회피해 버
목적의식을 분명히 해 놓고 싸워야 한다. 그렇지 않
리는 경우이다. 이야기를 하다가 방으로 들어가 버리거나 잠을 자는
으면 생산적인 결론은 얻지도 못한 채 무의미한 시
척 또는 TV를 보는 척을 함으로써 이야기가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
간으로 감정만 상하고 끝나 버릴 수 있다.
도록 만들어 버린다. 이런 유형의 경우 배우자의 화가 사그라들었을
2.인신공격은 절대 금물이다.
때 대화를 시도해 서로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좋다. M
“내가 왜 이 사람과 결혼을 했지?” “돈도 못벌어 오 면서!” 등과 같이 상대방의 허물 또는 약점을 들춰 내는 말은 꺼내지 않는 것이 좋다. 부부싸움을 야기 한 그 주제에 대해서만 대화를 하도록 노력하자. 3. 싸움이 끝나고 충분한 시간을 갖은 뒤에는 서로 사과를 하자. 자신이 조금이라도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자존심은 뒤로 하고 사과부터 하자. 오히려 사과를 빨리 하는 편이 자존심을 챙기는 데 더 편하다. 그리고 사과를 할 때는 확실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안하긴 한데 나만 잘못했냐’ 식의 사과 보다는 ‘내가 잘못했어. 다 음부턴 그러지 않도록 노력할게’ 라고 진심어린 사 과를 건네는 것이 좋다.
부부싸움은 부부 관계에서 나타나는 자연 스러운 현상이다. 사람은 서로 다르게 태어 났기 때문에 충돌하는 것은 당연한 법.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는 속담처럼 부부 싸움 도 서로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만드는 발판 이 된다. 하지만 부부 싸움을 할 땐 반드시‘서로가 다름’ 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 다. 그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문제를 해 결할 수 있는‘올바른’ 부부싸움이 진행된다 면 언젠간 부부싸움이 없이도 서로를 이해 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부로 성장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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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여성 우울증
복 극
하기
여성은 남성보다 우울증 대처에 취약한 편이다. 더구나 여성은 임신과 출산, 양육, 폐경 등의 생물학적 변화와 직장이라는 환경적인 요소를 모두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일하는 여성은 여성, 엄마, 아내라는 1인 3역을 감당해 내면서 때론 괴 로움과 회의감, 공허함에 부딪힌다. 행여 전업주부라고 하더라도 여성이 느끼는 육 아와 살림에 대한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으로 심각하다. 사회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엄마보다 육아에 대한 책임감이 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더 극 심한 스트레스를 부르게 되고 여성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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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이 아이에게 끼치는 영향 우울증을 경험한 환자의 60%가 자살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고, 그 중 10%는 실제 자살을 시도했다는 결과가 있다. 이렇듯 우울 증은 생명과도 직결이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신경을 써서 해결해 야 한다. 더불어 엄마의 우울증은 아이에게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엄마의 우울증으로 인해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존재는 아이라는 것이다. 자녀가 아동기일 때, 엄마가 우울증을 겪게 되면 자녀의 인지와 사회성 발달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극단적으로는 자폐적인 성향으 로까지 이어진다. 그 뿐 아니라 청소년기의 자녀인 경우 반항장 애, 비행, 신체장애 등의 이상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엄마의 우울 증은 아이에게 마치 담배의 간접흡연과 같다. 우울증이 단순히 엄마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우울증 극복 방법 1. 완벽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것 매일 육아 책이나 육아정보에 얽매이거나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물질로 보상해주며 자신을 힘들게 만들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러한 행동은 아이에게 부담 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2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것 엄마라면 누구나 아이를 양육해야하는 책임이 따른다. 하지만 때 로는 육아에서 벗어나 1-2시간 정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스 트레스를 해소하자. 육아와 살림에 지친 스스로를 재충전 할 수
□
우울증 증상 리스트
□항상 나른하고 몸이 피곤하다. □주변의 소음에 짜증나고 마음이 쓰인다. □마음이 슬퍼지고 우울감에 빠져드는 일이 수시로 생긴다.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다. □잠을 자고 일어나도 나른하고 피로하다. □목이 뻐근하고 어깨도 아프다. □토론이나 회의에 집중할 수가 없다. □수시로 두통이 찾아온다. □깊은 잠을 들지 못하고 잠이 자주 깬다. □실수로 다치는 경우가 잦아진다. □밥맛이 없거나 때론 폭식을 하기도 한다. □영화,tv 등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힘들어 질 때도 있다.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고 매사에 귀찮아진다. □인생이 무의미하고 재미도 없다고 느껴진다. □목구멍에 뭔가 걸린 듯 한 느낌이 지속적으로 든다.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은 필수적이다. 3. 도움을 요청할 것 우울증은 자신의 감정을 자꾸만 내부로 억압하기 때문에 나타나
※ 다음과 같은 증상이 10개 이상이 3주 이상 지속이 되었다면 우울증이라고 볼 수 있다.
는 현상이다. 이럴 때에는 외부로 그 감정을 표출 해야만 한다. 육 아와 관련하여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라. 남편이 가장 큰 협력자가 될 것이고,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당신 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혼자 모든 짐을 다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4. 상담이나 치료를 받을 것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이다. 그만큼 쉽게 걸릴 수 있는 병인 것 이다. 또한 관심을 갖는다면 금방 회복할 수 있는 병이기도 하다. 상담사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상태 가 급격히 호전 될 수 있다. 간혹 우울증이 매우 심각한 경우도 있는데 , 이럴 땐 무엇보다 본 인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약물과 치료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 라 스스로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전문가의 도움에 응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우울증으로부터 해방감을 맛볼 수 있을 것 이다. M 에디터 김혜원 도움말 해맑은 봄 심리발달센터 www.sun-sp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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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내
방 예 따 왕 이 아
최근 뉴스에서 아이들의 스트레 스, 학교 폭력, 왕따, 자살 등의 소식을 자주 접한다.특히 ‘왕따’ 로 인한 아이들의 정신적 우울증 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 되고 있다. 내 아이를 왕따로부터 지킬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공개한다. 아이의 건강한 학교생활을 도와 주고 싶은 부모라면 이 페이지를 놓치지 말 것.
교육법
2. 커져만 가는 부담감 대한민국 부모들은 자식을 마치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희생과 기대도 크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부모의 높은 기대에 부담감과 압박을 느낀다.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봐 겪게 되는 중압감에 스스로를 친구
왜 왕따를
당할까?
1. 아이들의 외로움 아이들은 가장 먼저 부모와의 관계에서 사회성을 배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맞벌이 부부나 한 부모가정 등이 늘 어감에 따라 아이와 부모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게 된 다. 때문에 아이들은 외로움을 느끼고 상호 의사소통의 문제 를 겪는다. 이렇게 가정에서 소통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아이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도 교감능력과 상호 의사소통 능력을 발휘하 지 못해 고립된 아이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왕따를 당하거나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 있더 라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부모가 있다면 아이의 상황과 아이의 고민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명 심하자.
들이나 주변사람들과 비교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아이는 열등감을 느껴 또래 친구들을 모두 경쟁상대로 생각하고 그들과 원활한 관계를 맺을 수 없 게 되는 것이다. ‘자식 농사만큼은 마음대로 안된다’ 라는 옛말이 있다. 양육 은 조급함 보다는 기다림이 필요한 일이다.
3.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 요즘 아이들은 심각한 학업경쟁과 수면부족 등으로 많은 스 트레스를 끌어안고 있다. 그리고 청소년들이 이런 스트레스 를 풀 수 있는 방법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로 인해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이나 불건전한 행동 그리고 왕따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분출한다. 심리적 갈등을 겪으면 서 자신에게 쌓인 스트레스를 타인을 괴롭힘으로써 풀려고 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과도하게 쌓였다는 생 각이 들 땐 심리 상담을 통해 마음을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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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
예방 교육법
1. 공감력 심어주기 어릴 때부터 다양한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 며 자란 아이의 경우 입학 후에도 활발한 의사 소통이 가능하며 무엇보다 대인관계를 어려워 하지 않는다. 부모는 아이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아이의 말에 공감하며 공감력을 심어주어야 한다. 공 감력이 있는 아이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자신 의 감정처럼 느끼고 상대방이 처해 있는 상황 을 이해하기 때문에 왕따의 가해자가 되지 않 는다.
tip 공감력 키워주는 교육법 아이의 공감력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예·체 능 교육을 활발하게 시켜야 한다. 예·체능 교 육은 아이들이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활동 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스트레스 해소에도 큰 도움을 주며 감정이해와 공감력 성장에도 효 과적이다.
2. 함께 봉사활동하기 어릴 때부터 아이와 함께 봉사활동을 하며 나
왕따와 괴롭힘의 징후 체크리스트 □물건을 잃어버렸다면서 다시 사달라고 하는 일이 자주 있다.
□용돈을 평소보다 많이 쓰고 자꾸 돈을 달라고 한다. □옷이 찢어지거나 구겨지고 단추가 떨어져 있다. □외출하기 싫어하고 집에만 있으려 한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늦어진다. □학교 급식을 먹지 않으려고 한다. □구토, 두통, 설사 등 몸이 자주 아프다고 한다. □성적이 급격히 떨어진다. □얼굴이 어둡고 평소보다 기운이 없다. □온종일 멍하게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져 있다. ※ 체크리스트 중 자신의 아이가 5개 이상 해당된다면 왕따와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눔을 실천한다면 아이는 소외된 이웃을 배려 하는 마음씨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친구 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 할 줄 아는 아이로 성장 해 왕따를 당하거나 왕따의 가해자가 될 위험이 적다.
3. 화가 났을 때에도 평정심을 유지하기 밝고 건강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화가 났 을 때 평정심을 유지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 야 한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다. 부모가 화내 는 모습을 자주 본 아이는 결국 그 모습을 닮게 된다. 폭력성이 짙은 부모에게 양육 받은 아이의 경 우 마찬가지로 폭력성을 지녔을 확률이 높다. 화가 났을 때에도 현실적인 벌칙을 정하고 감 정을 앞세우기보다는 이성적으로 아이를 훈육 하는 것이 좋다. M 에디터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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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맘 인터뷰
음악에 올인 했던 삶, 이제는 딸과 아내를 위해 산다 딸 바보 한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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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한국 최고의 로큰롤 싱어송라이 터로 손꼽히는 가수 한대수. 한국 음악 계에서 그처럼 역동적인 삶을 산 사람 을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환갑의 나 이에 첫아이를 얻었으니 앞으로의 삶 또한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없다. ‘삶은 고통’이라 말하면서도 한바탕 크게 웃 어넘기는 그에게서 인생의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딸 바보로 살아가는 요즘 일 상과 아티스트 한대수를 형성한 지난 삶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봤다.
롤 싱어송라이터 한국 최고의 로큰 가수 한대수
“자본주의에 대해 처음으로 깨달았어. 그래, 화폐 말이야. 돈이 완전히 물이구나. 나 혼자 살 때 는 돈이 필요 없었거든. 난 물질적으로 필요한 게 없는 사람이었어요. 나가면 오히려 서로 오라 고 난리들이었지(웃음). 그럼 단물(술)도 한잔하고, 길가다 5천 원짜리 국밥하나 얻어먹는 건 일도 아니었단 말이야. 그러다 앨범 만들고 공연하고, 가끔 책도 쓰고 하다보면 돈 주더라고. 그 럼 돈인가 보다 하고 살았는데…. 애가 생기니까 모든 것이 돈인 거야.” 첫 인사를 하자마자 대뜸 새롭게 바뀐 돈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에게 남다른 책임감이 느껴진다. 사실 최근 몇 년 사이 그의 삶은 꽤나 규칙적으로 바뀌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시기 를 말하자면 환갑에 얻은 딸 양호가 태어나기 이전과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거리낄게 없고 자유 로웠던 보헤미안의 삶은 그때부터 착실하게(?) 돌변할 수밖에 없었다. 생전 쳐다보지도 않았던 분유가 그렇게 비싼지 환갑이 넘어서야 알게 됐다. 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그 돈이면 단물(술) 을 밤새도록 먹을 수 있는 정도’였다. 그나마도 양호가 자라며 어린이집에 가다보니 돈은 끝없 이 필요한 것이 됐다. 머리를 한 대 세게 맞는 심정이었지만 아버지니까 어쩔 수 없다. “내가 굶고 어려움을 겪는 건 큰 문제가 아니야. 그런데 애는 기회를 줘야 할 거 아니야. 그러기 위해서는 고정적으로 화폐가 필요한 거고. 그래서 이제는 정기적으로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거 야(그는 방송인 손 숙과 함께 매일 오전 라디오 ‘행복의 나라로’를 진행하고 있다). 물론 굉장히 피곤하지. 보통 때는 세수도 일주일에 한번만 하면 되는데 이젠 매일같이 샤워를 해야 하니… 미치겠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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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명의 세시봉 멤버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태어나서 얼마 안 돼 서울 공대에 재학하 고 있던 부친은 핵물리학 분야의 최고봉인 미국 코넬대로 유학을 떠 났다. 수소 폭탄을 발명한 에드워드 텔러 박사가 선발한 학생이었던 부친은 7년이 지난 후 돌연 실종되고 만다. 가족이 백방으로 찾았지 만 흔적조차 사라졌다. 결국 10년 만에 부친을 찾아낸 것은 FBI였다. 가족을 알아보긴 했어도 한국말을 잊은 부친을 보고 어머니는 충격 을 받았고 어린 아들의 곁을 떠났다. 그 후 그는 조부모의 손에서 미국 과 한국을 오가며 자랐다. 초등학교 입학은 한국에서 했고 졸업은 미 국에서 했다. 또 중학교는 미국에서 입학하고 한국에서 졸업했다. 고 등학교는 또 그 반대였다. 대학과 전문학교는 미국에서 다녔다. 한국인도 아니었고 미국인도 아니었던 유년기의 굴곡은 그의 정체성 을 흔들고도 남음이었다. 그런 그에게 1968년은 인생의 전환을 맞이 하는 시기였다. 한국으로 돌아왔고 세시봉의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가족으로 얻은 행복 그가 한국에 다시 정착했을 때 많은 변화가 있었 다. 꽤 오래전에 첫 결혼을 이혼으로 마감했고 스 물두 살 차이의 러시아 출신 아내 옥사나와 다시 결혼을 했다. 6년 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딸을 얻었다. 생에 처음으로 아버지라는 이름이 따라 붙었다. 딸을 위해 어떨 수 없이 ‘화폐’를 벌어야 했다지 만 요즘 그의 일상은 꽤나 즐거워 보인다. 다양한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고, 후배 가수들과 교류도 심심치 않게 이어진다. 그 와중에 딸 양호
“일곱 살 때 어머니와 헤어졌거든. 사실 7살 때 어머니가 가장 필요할
를 ‘양호하게 키우기 위해’ 함께 시간을 보내는
때잖아, 굉장히 가슴 아픈 거지. 어머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때
것은 여느 아버지 못지않다. 그러나 삶의 이면을
내가 뉴욕에서 생활했어요. 그때 미국이 뒤집어지던 때였지, 히피문
뒤집어 보면 역시 고통이 존재한다.
화, 반체제운동…. 지금 월 스트리트 시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 시
한때 뉴욕에서 10만 달러 연봉의 잘 나가던 커
기에 뉴욕 한복판 이스트빌리지에서 살았으니, 사업가인 큰 외삼촌이
리어우먼이었던 아내 옥사나는 중증 알코올중
와보고는 기가 막혔겠지(웃음). 그때가 사진공부 하고 있을 때였는데
독으로 치료를 받은 바 있다. 환갑이 넘은 나이
어머니한테 외삼촌이 내 이야기를 한거야. 그래서 어머니가 눈물의
에 아내와 어린 딸을 뒷바라지 하는 것 여간 힘
편지를 써서 제발 한국으로 오라고 하시더라고. 그때가 18세였으니
에 부치는 일이 아니다. 그런 그에게 위안을 주
어머니랑 헤어진 지 벌써 11년이 지난거야. 어머니는 항상 그리움이
는 것은 역시 음악이다. “음악은 한 평생 고통스
거든. 그래서 온 거야 어머니 때문에….”
러웠던 내 인생의 일기장”이라고 이야기하는 그 는 다시 웃음을 터트린다.
암울하던 유신 시대와 상관없이 그의 음악은 자유로움 가득한 로큰 롤 그 자체였다. 세시봉을 무대로 활동하며 한편으로 한국디자인포장 센터에서 공무원으로도 일했다. 한국인으로서 3년 3개월을 해군으로 도 복무했다. 제대한 뒤에는 코리아헤럴드 기자로 일하며 1집 ‘멀고 먼 길’을 발표했고 그 이듬해 문제작이 된 2집 ‘고무신’을 연이어 세상 에 내놨다. 그간의 경험이 음악적으로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곧 체제전복적인 음악이라는 딱지가 붙여진다. “만약에 군대에 안 갔으면 음악이 좀 더 착해졌겠지. 3년 동안 얻어맞 으면서 인류애가 사라져버렸어. 인간이 이렇게 나쁜 동물이구나 싶 었지. 고무신도 문제였지만 자기들(문화공보부)이 1집도 자꾸 들어 보니 이상하거든. 생각지도 못한 음악이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반응 을 보이는 것도 심상치 않았나봐. 결국 전부 방송 금지, 음반 판매 금 지…. 조국에서 인정 못 받고 다른 나라로 떠난다는 게 매우 섭섭했고 마음이 텅 비더라고.” 당시 결혼까지 했던 그였지만 암울했던 상황에서 7년 만에 다시 미 국행을 택했다. 이후 한동안 그의 소식은 드문드문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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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인생의 문제점은 침대 매트리스와 같다고 했잖아. 위에 누워있으면 편안할 것이고 밑에 깔리면 죽을 것같이 괴로울 것이다. 위에 누 워있어야지 뭐, 그러니 웃을 수밖에 없는 거고… 어느 집이나 문제점은 있다고. 그 문제점을 웃으 면서 해결해야지, 안 그러면 방법이 없잖아. 물론 음악이 없었다면 내 속은 터졌을 거야(웃음).” 자신의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하는데 그만큼 익 숙한 사람이 또 있을까. 오래 전 이혼을 했을 때 도, 뉴욕의 홈리스를 보면서, 알코올중독에 빠진 아내를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는 곡을 써내려갔다. 이렇듯 자신의 삶과 스쳐지나가는 인간 군상을 로큰롤로 표현하는 그의 눈에 한국의 현재 모습 은 어떻게 비춰질까.
“한국 젊은이들이 고뇌하는 것은 전 세계 젊은이들과 똑같아. 수준이 그렇게 돼 버렸어. 서울은 국제도시가 됐으니까. 문제는 고차원으로 교육을 받았는데 거기에 적합한 직장이 없는 거야. 우리 때는 무조건 일하고 밥만 먹으면 바랄 게 없었어. 지금은 어찌 보면 지적인 부분에서 똑같은 ‘물 좀 주소’야. 아직도 목말라 있어. 꽉 찼는데 그걸 해소해 줄 수 있는 직장, 인간관계에서 만족을 얻 지 못하니 더 고독해질 수밖에 없지, 난 요즘 젊은이들이 고독하다고 봐.”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음악은 보통의 대중음악과 다르다. 그 스스로도 자신의 음악을 ‘대중음악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평론가 중에는 ‘전위적’이라고 하는 이들도 이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후배 가수들에게 손꼽히고 재해석되기도 한다. 어찌됐건 그 생명력 하나만큼은 꽤나 질 긴 것 같다. “나는 음악을 할 때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아. 무조건 좋은 음악이 떠오르면 만드는 거지. 대중이 좋아할지 여부는 나중에 문제지 난 상관없어. 발표 하고 나면 그 뿐이지. 60년대 뉴욕에 가서 백인, 흑인들한테 젓가락질 하는 ‘칭총’이 라 불리며 얼마나 왕따를 당했는데, 그러다 한국에 오니 유신체제였지. 머리 길다고 뭐라고 하고…. 어디에도 소속 돼 있지 않은 상태가 된 거야. 그래서 음 악이 나오는 거지. 그런 상태를 젊은 세대가 공감하는 것 같아.”
환갑 넘은 아버지의 바람 딸 양호에 대한 그의 사랑은 평생 아이 없이 살아 온 사람이라는 것이 믿겨지 지 않을 정도로 애틋하다. 그 스스로도 자신이 그렇게 부정(父情)이 많은 사람 인지 몰랐다. “전처는 아이를 싫어했어. 나는 그렇지 않았지만 아내가 싫어했으니 나도 싫 다고 했지. 내가 살아오며 고통스러웠으니 그 고통을 누구한테 다시 받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런데 양호의 탄생은 순전히 옥사나의 작전(?) 덕분이었어. 30대 후반에 접어든 옥사나는 아기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 을 직감했던 거지. 아이를 낳고 나니 욕심이 생기네(웃음). 양호만큼은 나 같 은 인생을 살지 않도록 해야겠다 싶어. 물질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엄마, 아빠 가 항상 옆에 있어주는 것만큼은 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부모에게 사랑 받지 못했던 그였지만, 부모 이상의 사랑을 조부모로부터 받았 던 기억은 지금 그에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방향을 일러주고 있다. 철부지 였던 양호의 나이도 이제 여섯 살이 됐다. 그는 언젠가부터 “딸의 10대 때까지 만 살아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 지난 2011년 그가 발표한 포토에 세이집 ‘뚜껑열린 한 대수’에는 그런 아버지로서 딸에게 전하는 일과 교육, 돈 과 시간의 사용법, 결혼,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조언을 담담하게 풀어놨다. 아 버지로서 언제까지 함께할 수 없지만 딸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아 놓았다. “더 살고 싶지, 일단 목표는 10대까지고…, 이브몽땅이라는 가수는 63세에 첫 아이를 낳고 67세에 죽었어. 아이가 지금 양호 만할 때지. 슬픈 거야…. 나는 그래도 10대가 될 때까지 살면 이브 몽땅 보다 낫지. 나는 양호한 거라니까(웃 음). 양호가 평범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물론 엄마, 아빠를 닮으면 창의성 있는 일을 하겠지만, 완벽한 아티스트의 삶은 아니었으면 좋겠어. 그런데 지금 도 어린 녀석이 내 말을 완전히 무시하거든. 틀림없이 자기 마음대로 할 거야. 그저 그 길이 창의적이면서도 양호했으면 좋겠어.” M 에디터 황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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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맘 스토리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어린 시절에 이미 다 배 웠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태어나 자라며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올바른 삶을 사는 방법은 사실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다만 여기에 이기심과 욕심, 편견 등이 깃들며 변 질되는 것이 문제다. 이렇듯 암울한 현실에서 풍 부한 감성을 담은 채인선 작가의 동화는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긍정과 희망의 씨앗이 되고 있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세요” 동화작가 채인선, 초보 엄마에게 전하는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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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4월의 봄은 그렇듯 땅위의 모
어요. 강아지들은 그렇게 한바탕 뛰어 놀고 나서 눈빛
든 것들에게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특히나 봄
이 초롱초롱해진 채로 다가왔어요. 그걸 보니 뭔가 살
날의 햇볕처럼 따스한 마음을 지닌 아기의 탄생을 고
아있다는, 생명이 느껴지며 뭉클하더군요. 한편으로
대하는 예비 엄마에게 평생 기억 될 시기가 아닐까.
강아지들과 달리 현실에서 우리 아이들은 보이지 않
채인선은 그러한 엄마와 아이들을 위해 다양한 작품
는 끈에 매여 사육당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
으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하는 동화작가이다.
에 앞서 처음 동물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은 동물심리
동물의 행동에서 살펴보는 삶의 지혜를 비롯해, 아이
학자가 쓴 『동물도 말을 한다』는 책을 통해서였어
의 눈높이로 접근하는 세상의 모습들은 그이의 작품
요. 그 책을 읽으며 제가 키우는 강아지, 깜돌이와 해
속 반영 된 다양한 소재였다. 그런 그이는 최근 그 영
리한테 ‘우리 말하고 지내자’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죠
역을 넓혀 예비 엄마 아빠와 뱃속의 아기 사이에 교감
(웃음). 그러다 보니 어느 날부터는 강아지 얼굴이 사
을 유도하는 동화 <세상 모든 것들이 너를 기다리고
람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같은 언어로는 이야기 못하
있어>을 발간하기도 했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는데 익숙한 작가 지만 그 시도만큼은 늘 새롭다. 봄기운처럼 따스한 작 가의 미소와 마주하며 그간 책을 통해 그이가 말하고 자 했던 소박한 생각들을 직접 들어봤다.
동물에서 찾은 삶의 방식 1996년 창비에서 주관한 제1회 ‘좋은어린이책원고
지만, 뭔가 말을 하고 내가 알아듣고 있는 듯한, 마음 이 통하는 것을 느꼈죠.” 작가가 동물의 이야기를 통해 말 하고자 한 것은 ‘생 명은 각자 자기 나름의 목적이 있다’는 생각이다. 이 제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물을 인간화해서 바라 보는 시각에만 익숙해져 왔던 것이 사실. 그러한 시각 에 근본적인 잘못이 있음을 지적하는 작가는 자라나 는 아이들에게 인간의 기준으로 아름답고 추한 것을
공모’를 통해 시작된 동화작가의 삶도 어느새 17년이
구별하는 것은 잘못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훌쩍 넘는다. 엄마로서 채인선 작가는 자신의 아이들
작가는 그러한 존중을 바탕으로 동물을 대할 때 그것
을 키우며 보고 느끼고 고민한 생각의 결정을 수많은
은 결국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약자와 다른 생명에
동화로 세상에 뿌려왔다. 여러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
대한 배려로 연결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한 작가의
이지만, 그녀의 책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부모
남다른 생각과 철학은 많은 작품 속에 녹아들며 부모
에 의해 길들여지는 아이’가 아닌 ‘스스로 자신의 삶
와 아이들에게 기존과 조금 다른 삶의 교훈을 전하고
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아이’가 등장한다는 것
있다.
이다. 그러한 작가의 관심은 지난해 동물로 확장됐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동물의 삶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발견한 것 이다. ‘동물에게 배워요’ 시리즈는 그런 작가가 심혈 을 기울여 이어가고 있는 작품이다. 160여 마리 동물 의 일생을 10가지 주제로 나눠 풀어낸 그림동화는 생 명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일생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을 통해 사람의 삶도 그와 다르지 않음을 이 야기하고 있다.
창작의 샘물이 된 아이들과의 대화 그이가 작가의 삶을 살기 이전에 모습들은 어떠했을 까. 세상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과 생각을 어린이의 눈높이로 풀어내는 작가의 작품을 보면 자연스레 궁 금해지는 부분이다. 그런 질문에 작가는 “처음부터 작가를 꿈꾸며 열심히 습작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고 고백한다. 다만, 작품 활동을 시작했을 당시가 엄 마로서도 육아에 신경을 썼던 시기와 겹쳐졌다는 것
“처음에는 아주 우연하게 시작 된 거예요. 어느 날 문
을 통해 작가의 작품이 경험에서 우러나온 산물임을
득 집 마당 풀밭에서 뛰어 노는 강아지 두 마리를 봤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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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작품이 남달랐던 것은 단지 아이들을 위한 동 화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엄마로서 세상을 살아 온 경험과 아이들을 위한 마음이 녹아들어가면서 이는 책 을 읽어주는 어른들에게도 특별한 교훈으로 다가갔다. 아이를 위한 책이지만 책 읽어주는 어른의 존재를 인식 하게 되면서 작가는 부모들에게 전하는 바람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어른들이 아이를 위해 책을 접하면서 아이의 존재를 새롭게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아이는 동물이 사육되는 것처럼 키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의 목 적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 그 목적대로 가지를 뻗을 수 있게 물을 주고 햇빛을 비춰 줘야한다는 것을 넌지 시 말하고 싶었던 거죠. 어떤 부모를 보면 아이를 마치 자신의 부속물처럼 생각하고 있거든요. 제 동화에 나오 는 아이는 모두 자주적으로 행동해요. 부모의 말을 거 역하지 않으면서도 독립적이고 자주적으로 자기 갈 길 을 찾아가죠.”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을 접한 부모들과도 종종 함께 하는 자리를 갖는다는 그이. 의미 있는 자리이긴 하지 만, 대화중에 발견하는 부모들의 고민에서 경쟁이 치 열해지는 요즘 사회의 세태를 실감할 때면 씁쓸한 미 소를 감출 수 없다. 사람으로 태어나 정작 중요한 가 치는 잃어가고 있는 시대, 작가는 더욱 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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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사실 아이들이 생기기 전까지 저는 교보문고
“요즘 대부분 부모의 바람은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는
에 아이들 책 코너가 있다는 것조차 몰랐어요(웃음).
것이에요. 대학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되지만 어쨌든 저
아이들은 자라면서 점차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는 요구
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도서관에다 아이를 부려
하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의 이야기 식으로 말하고 저도
놓고 집에 책을 많이 들여놓으면 그 걸로도 좋은 대학
그에 대한 대응을 이야기 식으로 하다 보니 하나의 스
에 갈 수 있다’고 말하죠. 어린 시절 동화책에 무슨 공부
토리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아이들에게 책을 사서 읽어
할 거리가 있을까 싶지만 동화책은 이야기만 있는 게
줄 때도 어려운 것은 고쳐서 쉽게 읽어주고 결말이 재
아니라 사람이 어떤 상황일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어
미없는 것은 다르게 바꿔서 말해주곤 했죠. 그때는 직
떤 식으로 친구를 만들고 또 어떨 때 잃을 수 있는지를
장을 다니면서 시어머니도 모셨기 때문에 집에 오면 굉
알려주죠. 그래서 부모들에게 책을 읽은 만큼 아이의
장히 피곤했어요. 그래서 책을 읽어주다가 자주 졸기도
인생이 보장된다고 이야기해요. 큰 부자는 못되더라도
했는데(웃음), 그럴 때면 아이들은 흔들어 깨우며 마저
기본은 한다고 하죠(웃음). 또 한 가지, 요즘 부모들은
읽어달라고 보챘어요. 그런데 겨우 아이들이 자러 가면
아이들을 언제고 네다섯 살 아이로 생각해요. 그 아이
그때부터는 이상하게 정신이 말똥해지더라고요. 그럴
가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되고 홀로 부모 없이 자신의 삶
때면 아이들과 했던 이야기를 정리하곤 했죠. 그렇게
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죠. 때가 되면 부
이야기꾼이 된 거예요.”
모를 떠나 독립을 시켜야 해요.”
아이를 위한 최고의 선물 어린 시절 도시로 올라와 유년기의 대부분을 보냈지만 작가는 기억 속 아련한 고향 강원도 함백의 추억을 그 대로 간직하고 있다. 감자와 옥수수 익는 냄새만 맡아도 흥분되는 심정이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작가에게 자연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요즘 아이들의 상황은 애처로울 수밖에 없다. “강원도 함백의 기억 중에는 집 앞에 큰 대추나무가 있 죠. 기억으로는 제가 이제까지 본 나무 중에서 가장 큰 나무였어요. 나중에 어머니께 물어보니 그때 그렇게 큰 나무가 없었다고 하시더군요(웃음). 누가 대추를 장대 로 딸 때 떨어지는 것을 맞아 울던 기억도 있었는데…. 하지만 역시 실제로 다시가 보니 정말 작은 대추나무가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를 TV와 컴 퓨터 앞에 방치하게 되는 것이다. 갓 태어났을 때부터 시작해 감성적으로 예민한 시기에는 특히 부모의 관 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인터뷰 말미에서 조차 호소에 가까운 강조를 하는 작가에게 간절함이 느껴진다. “제가 강하게 이야기하는 몇 가지 중 하나가 아이들
있더라고요. 제 첫 책인 <전봇대 아저씨>를 보면 ‘나의
을 TV와 컴퓨터 앞에 방치하는 거예요. 부모로서 절
어릴 적 대추나무에게 이 책을 드린다’고 쓰여 있어요
대 피해야 할 일 중 하나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만
(웃음). 단편적인 어린 시절의 기억이지만 잠재적으로
이 아니라 아이를 키워 본 부모로서 선배로서 하는
저에게 작용하는 것은 굉장히 컸거든요. 제가 결혼해서
말이에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감성
2~3년 아파트에서 살다가 용인으로 내려간 것도 그 때
이 예민하고 풍부한 어린 시절 버릇이나 정서적 경
문이에요. 아파트에서 살면서 확실히 난 서울 사람이 아
험, 두뇌활동 모두가 아이의 인생에 절대적으로 영향
니라는 걸 깨달은 거죠.” 어린 시절 자연의 추억이 없는 것은 대부분 요즘 아이 들의 공통점이 아닐까. 작가는 그래서 더욱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책을 읽던 기 억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유일한 추억이 된 다는 것. 그런 추억들이 그려내는 풍경은 아이의 평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을 미쳐요. 어렸을 때 TV 앞에만 있던 아이가 나중에 커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하지는 않거든요. 특히 요즘은 채널도 많고 예전에 아이들에게 TV를 보여줬던 것과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폐해가 많아요. 그래서 저는 차라리 TV를 치우는 게 낫다고 하죠. TV를 많이 보 는 아이는 순수한 이야기를 즐기기 힘들어져요. 이야 기를 TV를 통해 접하게 되면 책을 읽지 않아도 마치 이야기를 읽은 것 같은 느낌을 받거든요. 문장의 아름
“지금 아이들에게 저의 대추나무처럼 추억이 깃든 대상
다움이나 감성의 풍부함, 책을 읽는 과정에서 느끼는
이 없거든요. 그런데 책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다시
새로운 감정들을 못 느끼고 이야기에 빠져들지 못하
봤을 때 어린 시절의 풍경이 고스란히 떠오를 수 있게
게 되죠. 정말 중요한 문제에요.” M
해줘요. 어릴 때부터 엄마와 함께 읽은 책은 더욱 그렇 죠. 엄마가 읽어줄 때의 느낌, 함께 있던 추억이 더해져
에디터 황정호 사진제공 예스24
하나의 풍경이 만들어지거든요. 더구나 그림책은 어른 이 굳이 시간을 내어 아이를 위해 읽어주는 것이거든요. 아이에게는 절대 집중의 시간이죠. 부모와 아이가 서로 체온을 느끼며 낭독하는 것은 그냥 읽는 것과 틀려요. 목소리와 느낌이 귀로도 기억되는 거죠. 그래서 나중에 그 책은 아이에게 아주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다시 일깨 우는 대상이 되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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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맘 인터뷰
“사람의 마음을 사는 크리에이티브한 마케팅을 해야죠”
30-40대 창업자들은 고객의 니즈를 빠르게 읽어내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또한 뜨거운 열정과 의지가 있기 때문 에 성공창업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세대다. 하지만 어려운 경제 탓에 누구도 창업에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요즘, 당당하게 마케 팅 회사를 설립한 김근모 씨를 만났다. 서른의 끝자락에 창업시 장에 도전장을 내민 그의 네버엔딩스토리.
사람의 가치를 사랑하는 회사‘선영’ 올해 서른아홉인 김근모 씨는 지난 3월 선 영 크리에이티브라는 마케팅 회사를 설립 하고 창업 시장에 당당히 도전장을 던졌다. 그가 설립한 회사 선영의 모토는 창업부터 입소문까지다. 창업 단계에서는 사업계획, 투자계획 등에 대한 전문적 컨설팅을 제공 하고 창업 이후에는 좋은 제품과 서비스가 소비자에게 알려지도록 언론 홍보와 마케 팅 서비스를 돕는다. 조금만 홍보하면 매출을 두 세배 늘릴 수 있는 기업들을 위해 도움을 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회사를 차린 이유를 묻자 사람의 가치를 사랑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직원들의 가치를 높이 사고 자긍심을 가 질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단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 을 함께 버는 크리에이티브한 마케팅을 하 자라는 마음이 들어 회사를 차렸죠. 그리고 무엇보다 직원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회사 를 만들어 주고 싶어 창업을 결심하게 되 었어요. 마케팅 분야 자체가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근무 여건도 열악하고, 항상 ‘갑’의 눈치를 보는 수동적인 분위기가 팽 배한 것이 안타까웠거든요. 이런 시스템에 서는 부하 직원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하기 에 상사로써 너무 창피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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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창업을 하고 사장이 되어 가장 달라진 점은 책임감 의 차이다. “모든 오너들은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하지만, 사실 어떻 게 보면 직원은 직원일 뿐이잖아요. 사업을 하고 내 회사 를 차리니 거대한 책임감이 느껴지더라고요. 나를 위해
찾아오면 고객에게 스스로 포장지를 벗겨서 새집임을 직
일해 주는 직원들 월급도 챙겨줘야 하고 회사 성장도 고
접 체험해 보게 해주는 전략이었죠. 이 전략이 여성들에
민해야 하고, 아침 9시에 출근해 밤 10시까지 일해서 시
게 굉장히 효과적이었는데, 80% 정도는 계약을 성사시켰
간이 부족할 때가 많아요.” 직원일 때는 월급날과 휴무일을 가장 기다렸지만 반대 입장이 되니 월급날이 가장 두렵다는 그. 아직 창업 초기
습니다. 결국, 모두가 불가능하다던 오피스텔 분양 사업을 3달 만에 성공시켰고, 이것이 제 인생의 다음 항로를 마케 팅으로 결정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라 복지 제도가 열악한 편인데 그래도 직원들이 열심히 일해 줘서 늘 감사하단다. 처음에 사업을 시작할 때는 걱 정이 많았는데 지금은 직원들과 서로 용기를 북돋으며 성
창업, 준비된 상태에서 도전해야 그가 사업을 시작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잘 할
공을 향해 한걸음씩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수 있는데도 레퍼런스가 부족해서 참여 기회가 없다는 것
인생의 항로를 마케팅으로 결정하게 된 계기
계라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인지라 때로는
이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면 아직 검증이 필요한 단
사실 그는 처음부터 마케팅 업무에 커리어를 쌓은 것은
서운하고 아쉽다. 그래서 올해 목표는 기업의 수익보다는
아니었다. 10여 년간 특허 컨설팅 일을 했으니 어찌 보면
직원들의 업무 능력을 향상시키고, 철저한 고객 만족을
지금 하는 마케팅 일과는 전혀 무관한 일을 했던 셈이다.
통해 부족한 레퍼런스를 하나씩 보완해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마케팅이란 것이 소비자에게 상품이나 서비스를
그리고 직원을 늘려 회사의 인적 자원을 확충하고 마케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시장을 분석하고 그에 따라 다
팅 전 영역에 걸친 전문가 집단으로 회사와 직원 개개인
양한 활동을 접목시키는 일이다 보니 고도의 분석력과 통
이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이 그의 가장 큰 꿈이다.
찰력이 요구되는데 컨설팅 분야에서 했던 일들이 도움을
그는 많은 사람들은 큰돈이 있어야만 창업을 할 수 있다
주었다.
고 생각하지만 좋은 아이템을 잘 찾아보면 적은 비용으로 도 창업에 도전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전한다. 하지만
“마케팅은 4년 전쯤에 특허 컨설턴트를 그만두고, 지인의
오직 돈을 많이 벌어 보겠다는 목적으로 창업을 선택한다
요청으로 오피스텔 분양 사업에 참여하면서 관심을 갖게
면 큰 실수는 말을 덧붙인다.
되었습니다. 당시는 2007년 금융위기사태로 전국적으로 미분양 사태가 속출하던 때였죠. 게다가 인천 지역은 뒤
“창업은 쉽습니다. 하지만 성공하기는 어렵습니다. 회사
늦게 시작된 오피스텔 건축 붐이 일어 일시에 물량이 공
라는 울타리 안에서 바라보면 바깥은 평온하지만 막상 울
급되다보니 미분양 사태가 더욱 심각했었답니다. 아무리
타리를 벗어나면 정말 차가운 곳이 창업의 세계거든요.
분양가를 낮추고, 여기저기 플랜카드를 내걸어도, 시장 자
무작정 꿈만 갖고 창업하다가는 딱 얼어 죽기 좋아요. 자
체가 죽어있으니 보러오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신만의 경쟁력을 갈고닦아 준비된 상태에서 도전하라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온라인 홍보와 키워드 광
조언하고 싶습니다. 맡겨진 프로젝트를 혼자서도 완벽히
고를 시작했고 2주 만에 방문자가 250%나 증가했습니
해낼 수 있는 업무 능력과,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인맥 관계
다. 그 다음 문제는 찾아온 소비자를 계약시키는 일이었
를 먼저 구축한 후에 창업에 뛰어들어도 늦지 않는다는
습니다. 이것은 새집 전략으로 극복했답니다. 빌트인 가
얘기입니다.”
전제품의 포장지를 벗기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가 고객이
힘든 점도 많지만 응원해주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 요즘 하루하루 감사함을 느낀다는 근모 씨. 이름처럼 젊 은 열정으로 화사하게 빛나는 회사로 성장하기를 기대 해본다. M 에디터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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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맘 스토리
냉정한 엄마가 아이를 당당하게 키운다 이정숙·조승연 모자 인터뷰
“예전에는 부모가 공부하라고 독촉하고 고생하며 공부시키는 방법이 맞았어요. 그러나 변화를 시도 하지 않고 옛날 방식만 고집한 게 문제에요. 아이들 이 보는 세상은 달라져 있는데 부모가 강요하니 옳 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따라가면서 마음에 분노가 쌓이는 거죠” 이정숙 씨는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오래전 대학 을 졸업 후 KBS 공채 3기 아나운서로 입사해 20년 요즘 돈 없으면 공부도 못시킨다는 말이 정설처 럼 굳어지고 있다. 실제로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 의 학력을 좌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올바른 인간으로 키우기 위한 노력이 꼭 돈이 있 다고 수월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 가면서도 두 아들을 글로벌 인재로 키워낸 이정 숙 씨의 스토리는 그래서 더욱 의미 있는 메시지 를 던지고 있다.
간 근무를 했다. 요즘보다 훨씬 열악한 당시 상황에 서 두 아들을 키우며 성공적으로 직장생활을 해낸 셈이다. 더구나 미래를 결정하는 순간이면 보통의 엄마들과 다른 선택을 했다. 공부에 대한 갈증을 느 꼈을 때 그 즉시 회사를 그만두고 중학생 두 아들과 미국 유학길에 오른 것이다. 대개는 자녀가 우선이 지만 그녀의 경우는 자랑스러운 자녀로 키우기 이전 에 스스로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자기 철학이 있었다. 그런 그녀의 교육법 또한 독특 했다. 무엇이든 아이 스스로 원해서 하도록 내버려 둔다 는 ‘의도적 방치’가 그것. 때론 그런 교육법을 두고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엄마’라는 오해 섞인 시선도 있었지만 그녀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수년의 시 간이 흐른 후 결국 그녀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은 두 아들이 증명해 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랄까. 큰 아들은 미국 미시간대학교 건축과와 대학원을 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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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졸업하고 현재 뉴욕의 파킨스 이스트만 건축회사에
비결을 <냉정한 엄마가 아이를 당당하게 키운다>로, 아들
서 세계 주요 도시의 건축물을 디자인하고 있다.
은 그런 어머니를 통해 자라고 스스로 공부한 과정을 <그
둘째 아들은 이미 10년 전부터 유명세를 탔다. 뉴욕대학
물망 공부법>에 담았다. 시점은 다르지만 두 권의 책에는
2학년 무렵 <공부의 기술>이란 책을 출간하며 원조 공신
모두 서로의 이야기가 포함 돼 있다. 처음 아이디어는 아
으로 등극한 것. 이후 그는 뉴욕대학을 졸업 후 프랑스 소
들인 조승연 씨가 제안했다. 스물일곱 살의 나이에 늦깎
르본대학 문화어학원에서 외국인을 위한 프랑스 문학 대
이 입대를 해서 만난 어린 전우들을 보며 한국 교육에 문
학 준비 과정을 이수했다. 이어 프랑스 국립 미술사 고등
제점을 절실히 깨달은 탓이다. 어머니는 늘 그랬듯 그런
교육기관인 ‘에콜 뒤 루브르(Ecole du Louvre)’에 입학
아들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수렴했다.
해 미술사까지 섭렵했다. 재학 중에 이미 ‘앤드 스튜디오’ 를 설립해 <비즈니스의 탄생>을 비롯한 다수의 저서를 집 필했다.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추구하는 토털 인텔리로 서 군 복무 역시 빼놓지 않았다. 그는 현재 7개 국어를 구 사하는 글로벌 인재로 자신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세상에 전파하고 있다. 혹자는 그런 어머니와 아들의 삶을 두고
“우선 제 경우는 ‘굉장히 극성이었나 보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애들을 얼마나 극성맞게 키웠으면 그렇게 컸냐 는 거였죠. 사실은 정 반대였거든요. 사람들이 결과만 보 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게 되면서 이 책의 필요성을 깨 달았어요.”(이정숙)
‘운이 좋았다’거나 ‘타고난 재능’으로 일반화하는 경우도
“저는 어떻게 그렇게 영어를 잘 할 수 있냐는 질문을 제일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운이 좋고 타고난 재능이 있어도
많이 받았어요. 한국인들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는 영어니
평범함을 넘어서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다시 말
까요. 물론 한국에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많지만, 영어로
하자면, 결국 이들 모자의 삶 속에는 그들과는 또 다른 특
감성적인 공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거죠.
별한 무엇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영어로 시를 쓴다던지 소설을 읽고 감동한 내용을 외국인 들과 이야기한다는 것은 단순히 영어를 이해하는 것을 넘
좋은 엄마 & 성공한 아들의 비결
어 공감을 해야 가능하거든요. 프랑스어도 마찬가지였고 요. 그러면 저는 ‘어떻게 그렇게 안 될 수 있냐’고 되물어
어머니와 아들이 같은 시기에 각각의 다른 책을 출간했
요. 다른 나라의 언어를 공부 할 때 3~5년을 열심히 해서
다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가 아닐 수 없다. 바로 이정숙·
그 나라 말을 유창하게 못한다는 것은 공부에 큰 문제가
조승연 모자가 그렇다. 어머니는 성공적으로 자녀를 키운
있다는 뜻이죠.”(조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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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 서로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모자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세대차, 생각의 차이는 존재한다. 열린 마 음으로 아들을 대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어머니를 프랑스 어머니와 비교한다. 여자 친구를 사 귈 때 누구인지를 궁금해 하는 어머니를 두고 ‘잔소리 가 좀 많으시다’고 표현하는 아들. 자유분방함에 익숙 한 아들의 그런 태도는 어쩔 수 없이 약간의 서운함을 느끼게 하지만 그 조차도 입장을 바꿔 생각한다는 것이 이정숙 씨의 방식이다. “서운함이 간혹 있죠(웃음). 하지만 그 서운하다는 기 준 역시 자기중심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항상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합니다. 친정아버지 역시 저를 그 렇게 가르치셨고요. ‘내가 저 아이라면 어떨까’를 가장 먼저 고려해요. 결국 서운한 것도 내가 옹졸한 것임을 빨리 깨닫죠. 그래도 가끔 욱 할 때는 있어요. 방금 말한 것처럼 여자 친구가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는 것까지 화내는 건 좀 너무하잖아요(웃음). 하지만 ‘어떻게 엄 마한테 그렇게 말해’하지 않는 게 제 원칙이기 때문에 아들이 발끈하면 ‘어 그래 내가 잘못한 것 같네’하니까 오래 안가죠.” 장난스레 어머니를 흉보는 승연 씨지만 대외적으로는 친구들에게 어머니를 ‘내가 아는 세상에서 제일 엘레 강트한 여자’라고 자랑한다. 어머니에 대한 존경의 의 미를 담는 이 표현은 실제로 프랑스 아들들에게서 자주 언급되는 칭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정숙 씨는 아들 에게 칭찬을 듣는 어머니라는 말이다. “어렸을 때 형과 제가 하는 말이 ‘우리 집에는 아빠만
각을 했다. 어머니로서 때로는 냉정하리만치 독립적으로 아들 을 대했고 아들은 당연하다는 듯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 다. 어린 시절 이정숙 씨는 뒷바라지를 받으며 커온 친구보다 자신이 삶을 훨씬 유능하고 긍정적으로 산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방식을 그대로 아들들에게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 터 순탄하지는 않았다. 조승연 씨는 어린 시절 한때 학원폭력 에 시달리는 왕따시기를 경험하기도 했다. 과연 변화의 계기 는 무엇이었을까. “좋은 친구를 많이 만난 덕분이에요. 한국에서도 그렇고 사실 미국에서도 학원 폭력은 이어졌어요. 인종도 다르고 말도 잘 못 하는데 쭈뼛거리기까지 했으니…. 어느 나라나 아이들의 세계 는 잔인하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친구들이 다가왔어요. 한국인 이 흔치 않을 때였으니 호기심이 컸던 거죠. 그 친구들이 바로 유태인 집안 아이들이었어요.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어요. 그리고 먼저 그들의 삶의 방식을 벤치마킹했 죠. 아이비리그 대학생들이 입는 스웨터에 양복을 입고 가죽 커 버로 된 책을 가지고 다니고…. 공부를 하기 전에 사실 겉멋부터 배우고 나중에 속을 채운 셈이죠(웃음). ‘이 정도 폼을 잡고 살 려면 내공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정 도부터였던 것 같아요.” 한편, 이정숙 씨는 우리나라 교육에도 장점은 있다고 말한다. 못하는 아이들도 어떻게든 끌고 가르친다는 점이다. 미국 오바 마 대통령이 우리나라 교육을 부러워하는 점도 그것이다. 실제 로 미국의 경우 공부를 못하는 아이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방치하는 것이 현실이다. 고교를 졸업해도 자국어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오바마 대 통령이 부러워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하위권 학생들의 교육방식
둘’이라는 거였어요(웃음). 시골에서 사신 경험이 있는
에 국한 돼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정숙 씨가 이야기하는 우리
윗세대 분들은 낚시도 하시고 여행도 다니면서 멋지게
나라 교육의 한계는 바로 그것이었다.
사시거든요. 그런데 요즘 아버지 세대는 여가가 있어도 뭘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게 현실이죠. 그런 면에서 저는 어쩌면 남자로서 역할모델이 두 분이었다고 할 수 있 어요. 아버지는 오두막에서 막걸리 한잔 놓고 농사짓는 분과 격의 없이 이야기하시는 분이고, 어머니는 차가운 프로페셔널의 세계에서 어떻게 커리어를 관리하는지 와 세련된 남자의 기준을 가르쳐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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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는 세상을 살아가며 매번 보통의 경우와 다른 선택과 생
“빌게이츠와 같은 인재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방식으로는 불가능해요. 능력별 수업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 이 있는데, 사람마다 능력이 다른 것이 현실인 만큼 교육의 수준 도 달라야한다고 생각해요. 다 같이 가자는 것은 공산주의와 비 슷합니다. 잘하는 사람을 끌어내리고 못하는 사람을 끌어올려 중간을 만드는 거죠. 결국 그런 방식이 선진국이 되는데 우리나 라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거예요.”
부모만 바뀌면 된다 일부에서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의 문제를 시스템의 문제라고 도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의견은 다르다. 역시 문제는 부모다. 특히 조승연 씨는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인들이 모이는 곳에는 ‘족집게 과외’가 존재하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아버지들은 사회 생활을 하며 학벌이 성공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눈앞의 결과, 시험 점수와 학교레벨 같은 것에 부모가
만 상대적으로 사회생활 비중이 적은 어머니들의 경우 좋은 학
흔들릴수록 아이들은 좌표를 잡기가 어려워집니다. 세
벌과 성공을 동일선상에 놓는 오류를 범한다는 것이다. 아들의
상은 엄청나게 빨리 변하는데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듣던 이정숙 씨는 이를 부모가 아이를 망치는 상황이
거죠. 예전에 공장을 짓고 있는데 농토를 지켜야한다는
라고 규정했다.
사람들이 있었잖아요. 그것과 다를 바가 없는 거예요. 자녀가 앞으로 나아갈 자질이 있음에도 뒤로 끌어들이
“저 만큼 자녀를 키워놓고 보면 부모 노릇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는 역할을 부모가 하는 거죠. 잘못을 생각하지 못한다
가 가려지죠. 예전에 자녀교육에 극성이었던 지인들을 보면 교
면 그것이야 말로 돈 들여 아이를 망치는 겁니다.” M
육에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더군요.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몰 랐지만, 결국은 제가 옳았다는 것이 입증 된 셈이죠. 아들과 같
에디터 황정호
이 책을 출간한 것도 그것을 독자들이 검증하길 바라는 마음에 서였어요.” 그런 어머니를 보며 조승연 씨는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이야기 했다. 바로 토털인텔리의 삶이다. 토털 인텔리란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창안한 개념으로 배우는 고통 없이, 배우는 줄 도 모른 채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엄청난 양의 공부를 하며 아름 다운 예술품처럼 살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프랑스에선 여전히 이런 인재를 기르는 엘리트 교육이 지속되고 있다. “토털 인텔리로서 시각과 안목을 가지면 돈은 문제가 아니에요. 제 목표는 경쟁을 하지 않는 거예요.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각과 의견, 안목은 나만의 것이기 때문에 또 다른 사람이 아무리 공부 를 많이 했다 해도 상관없죠. 항상 독점이 되는 거예요. 그게 인 생의 목표에요. 나보다 뛰어난 사람은 있을 지라도 나와 같은 사 람은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공부하고 살아왔죠.” 그는 최근 토털 인텔리로서의 삶 의 방식과 목표 설정 비법을 담 은 페이스북(www.facebook.com/ totalintelli)을 운영하고 있다. 유스트 림에서는 영어단어를 인문학으로 풀 어가는 인터넷 방송(www.ustream. com/channel/originvoca)을 시작했 다. 자신이 공부하고 배운 가치를 많 은 이들과 공유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 런 아들을 보며 이정숙 씨는 다시 한 번 우리나라 부모들에게 진심어린 조 언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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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고소한 VS 달콤한 빵들의 유혹 상수동 빵골목을 가다
프랑스빵을 전문으로 하는 베이커리를 뜻하는 프렌치 블랑제리인 퍼블리크는 건강하고 정직한 빵을 만든다는 신조로 다양한 빵을 선보이고 있다. 그래서 원재료에 특히 신경을 쓴다. 프랑스에 서 정통 밀가루, 호밀을 공수해서 빵을 굽는다. 가게 이름처럼 더 대중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다 가가기 위해 빵을 만들어낸다는 이곳은 식사용 빵이 특히 맛있다. 무화과와 견과류 등의 토핑이 듬뿍 들어간 쫄깃한 깡빠뉴부터 고소한 풍미의 치즈바게트까지. 한 끼 식사로도 손색없는 빵들 이 많다. 처음 보는 여러 가지의 프랑스빵들을 보면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이 때 친절하게도 손님들을 위한 시식의 시간이 주어지는데 큼직한 빵 덩어리를 슬라이스해 손님에게 권한다. 든든한 사장님의 인심과 친절한 서비스까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식사용 발효빵들 외 에도 타르트와 에클레어와 같은 디저트 종류도 함께 판매하고 있어 가게 내부의 카페에서 음료 와 함께 즐기기에도 손색이 없다.
tip 1인 고객을 위해 커다란 빵은 슬라이스 해서 판매하니 알아두자. 빵을 포장해가서 먹는 경우, 일반 빵은 오일을 두르지 않은 팬에 데워 서 먹으면 더 맛있다. 그리고 버터가 들어간 크로와상류는 렌지에 20 초 돌리면 더 깊은 빵맛을 느낄 수 있으니 참고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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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QUE (퍼블리크) 홍대를 대표하는 건강한 프랑스식 베이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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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서울시 마포구 상수동 311-1 전화 02 333 6919 영업시간 10am~9:30pm 일요일 휴무 가격대 올리브치아바타 3800원 레몬타르트 4800원 치즈바게트 3000원 위치 상수역 1번출구에서 직진 후 동천홍에서 좌측 진입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잘 알려진 상수동, 그 작은 골목골목마다 각각의 개성이 담긴 빵들이 가득하다. 쫄깃하면서도 맛있는 건강 빵부터, 입안의 모든 감각을 깨우는 달콤한 디저트 컵케익까지. 건강빵을 만드는 프렌치블랑제리 퍼블리크와 뉴욕의 정통 컵케익 맛을 재현 한 디저트 클럽 치카리셔스. 두 곳에 다녀왔다.
에디터 전은영
디저트 마니아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고 있는 그 곳, 치카리셔스 컵케익은 이름부터 독특하 다. 쉐프인 Chika의 이름과 맛있다인 delicoius의 합성어로 재미있는 가게 이름이 탄생했다고 한 다. 실제 이곳은 뉴욕의 이스트 빌리지에서 디저트 가게로 사랑받고 있는 곳이다. 뉴욕 현지에서 치카리셔스 컵케익 맛에 반해 직접 레시피와 교육을 전수받고 올 초, 주인장이 한국에 가게를 오 픈했다. 문을 연 지 6개월이 채 되기도 전에 이미 이곳은 빵순이들 사이에서 핫플레이스로 떠오 르고 있다. 적당히 달콤한 버터크림은 입안을 휘감으며 퍼지는데 여성들의 식사 후 디저트로 부 담 없는 양이다. 시중의 컵케익들이 지나치게 달고 빵 부분이 퍽퍽하게 느껴져 질리는데 반해, 이곳은 그렇지 않 다. 부드럽고 촉촉한 빵의 시트와 여러 종류의 토핑된 크림이 어우러져 입안에서 팡파레가 터지 는 것처럼 황홀하다. 게다가 앙증맞은 사이즈로 미니 컵케익도 선보이고 있어 좀 더 여러 가지 컵케익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어 좋다. 메뉴 또한 기존의 컵케익보다 참신하다. 레드벨벳, 당근, 바닐라빈, 메이어레몬, 스트로베리필드 등 10가지가 넘는 형형색색의 컵케익은 그야말로 먹기 가 아까운 예술작품과도 같다. 특히 악마의 잼이라는 누텔라가 든 컵케익은 초코 맛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강력 추천한다. 컵케익 시트 속에 누텔라잼이 그득해 몸 속 당분을 가득 채워주기에 충 분하다. M tip 미니 사이즈의 컵케익은 6, 12개 단위로 포장, 레귤러는 4,6,12 단위로 테이크아웃이 가능해 간단하게 선물용으로도 좋다. 가게의 블로그로 주문 예약이 가능하니 참고하자.
주소 서울시 마포구 상수동 313-3 전화 02 324 8412 영업시간 10am~11pm 매주 월요일 휴무 가격대 레귤러사이즈 컵케익 3800원 미니사이즈 1500원 바닐라푸딩 4500원 위치 홍대 주차장 끝 골목 초입 진입 후 훌리오 맞은 편 골목 인근
cup c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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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sert Club ChikaLicious (디저트 클럽 치카리셔스)
뉴욕의 맛을 그대로! 신상 디저트 컵케이크 전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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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화려함 속에 숨겨진 소박함,
다방 이라는 이름의 공간 여러 가지 차 또는 음료수를 파는 장소를 뜻하는 다방.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다방은 근대기를 거쳐 다소 이국적인 서양식 문화일지라도 현재의 다방들은 한국 적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곳이다. 다방. 나직이 부르면 입안에서 맴도는 울림이 멋진 그 곳들은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해 마니아들의 입 소문을 타고 있다. 에디터 전은영
몽마르뜨 언덕 위 은하수다방 지난여름, 대한민국은 십센치로 후끈 달아 올 라있었다. 길거리는 아메리카노에서 시작해 은하수 다방으로 끝나고 사람들은 그들의 멜 로디를 흥얼거리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설마, 사랑을 만난다는 은하수 다방이 실제로 존재 할 줄이야. 열혈 팬들에 의해 밝혀진 이 공간 은, 실제로 십센치가 와서 곡도 만들고 커피도 즐기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때 묻은 듯 한 낡은 원목 탁자와 의자, 오밀조 밀 모여 있는 도자기 인형들. 그리고 약간 어둡 다 싶은 내부는 키치하면서도 빈티지한 느낌 을 살린다. 게다가 귀퉁이에 자리한 엘피판까
상수
지 더해 복고적인 분위기도 한층 더해져 마치 과거로 불시착한 타임머신을 타고 있는 착각 까지 든다. 하지만 BGM으로 계속 흘러나오는 십센치의 음악은 역시 하는 안도의 마음과 함 께 우리가 21세기를 살고 있는 인간임을 느끼 게 하니까.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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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이 담긴 커피 잔을 보 는 것도 은하수 다방의 묘 미! 가사에 나오는 홍차와 냉커피도 실제로 존재한다 는 사실!
계동
다방 음료와 밥, 술까지 모든 것을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종합 선물세트 같은 곳이 바로 계동 다방이다. 시크해 보이는 외관 으로는 값비싼 고급 커피와 차만 취급할 것 같지만, 속을 들 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김치볶음밥, 달래 간장 밥과 같은 한 식 식사 메뉴부터 부산 금정 토종막걸리에 육전까지, 어떻게 보면 공통점 없어 보이는 순 토종 한국 음식을 파는 곳이다. 계동의 다방은 인테리어 또한 특별하다. 한쪽이 창으로 되어 있는 테라스에서 보이는 고즈넉한 계동의 한옥들은 그림처 럼 멋스럽다. 특히 재일교포인 주인장이 로스팅하는 커피 맛 도 일품이라고 하니, 다방의 정석에 맞게 커피를 마셔보는 것 도 추천한다. 따로 금연석과 흡연석의 구분이 없으니, 호불호가 확실한 공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참고.
학림 다방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학림이라는 벗겨진 궁서체의 간판은 이곳이 얼마나 역사가 오래된 곳인지를 짐작케 한다. 엘피음악과 오래된 쇼파로 풍겨지는 전형적인 옛날 다방의 모습은 지금의 젊은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신선함으로 다가 온다. 1956년부터 역사가 시작된 학림다방은 한때 서울대 문과생 의 아지트이기도 했으며 쎄시봉에 가기 전, 잠깐 커피를 마시 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방문하는 연령 또한 젊은 층 이 외에도 중장년층까지 다양하다. 그 역사만큼 커피 맛도 숙성
대학로
되어, 계속 찾아오는 손님이 꽤 있을 정도다. 요즘 달달하고 귀여움이 넘치는 카페가 부담스러웠던 남성들, 이곳을 방문 해보는 건 어떨지.
사장님이 일본에서 직접 배워왔다는 크림치즈 케이크가 숨겨진 인기 메뉴!
별다방미스리 별다방은 스타벅스라고 자연스레 머릿속에 연상된다면 당신은 아 직 별다방미스리를 방문한 적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이름부터 친 근한 별다방미스리는 대놓고 80년대의 복고적인 느낌을 내세운 다. 입구에서부터 반기는 촌스러운 별다방미스리라는 캐릭터는 이 곳의 상징이자 마스코트이다.
혜화
실내로 들어가면 뽑기부터 시작해 불량식품 등 익숙한 옛날 물건 들이 가득해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친구들과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별다방미스리가 2호점까 지 내게 된 이유는 메뉴들의 독특함과 맛에 있다. 새콤하고 시원한 맛의 냉오미자차와 미숫가루처럼 고소하면서도 따뜻한 오곡라떼는 일반 카페와 차별화된 메뉴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게다가 흔들어 먹는 양은 양은도시락도 저렴한 가격에
운이 좋다면 당신은 뽑기에 당첨되어 공짜 불량식품을 득템하게 될 수도!
즐길 수 있으니, 밥과 식사를 한 번에 해결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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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한 부모 가정 지원혜택, 높고도 높아라 나홀로 엄마, 나홀로 아빠 그리 고 그들이 양육해야 하는 아이 들의 가정에 지금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에디터 김혜원
저소득 한부모 가정에 지원 관련 정보들
1 한부모 가정 지원신청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곳
* 진단서에는 반드시 위의 예에서처럼 근로불가능 또는 근 로어려움, 질병분류번호, 치료기간이 명시되어 있어야함.
- 여성가족부 홈페이지 www.withmom.mogef.go.kr
- 재산증명서류
- 한국한부모가정 지원센터 홈페이지
세입자의 경우, 확정일자가 날인된 전월세계약서 1통
www.hanbumocenter.org
무료 임차자의 경우, 무료임대확인서 무료임대인이
- 보건복지부 운영 민원실 국번 없이 129
세입자인 경우, 확정일자 날인된 절월세 계약서 필요
- 주민등록소재지 관할 읍 면 사무소의 사회복지센터
자동차 소유자, 차량가약이 가입된 보험증권1통
‘한부모담당과’에서 연중 신청 가능
채무자, 은행 부채 잔액증명서, 공증된 사채증명서 상가건물 소유자, 부동산등기부등본, 매매계약서
2 한부모 가정 지원 신청 시 필요한 서류 - 소득증명서류 일일고용자일 경우 소득확인신고서 1통 노점, 행상을 포함하는 자영업자일 경우 소득금액증명원1
상가건물 임대자, 확정일자 날인된 임대차계약서 - 재산증명 공동구비서류 금융자산신고서-가족모두의 은행통장 필요
통 1년 이상 상시고용자일 경우 근로소득 원천징수 영수증
- 기타 필수 서류
1통 일시적, 장기적으로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근로
통장사본, 신분증, 사본, 주민등록 등본
무능력자, 일시적인 근로 무능력자인 경우 일반 진단서 1통
이혼이나 사별내용이 기재되어 있는 혼인관계증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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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혼자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아무리 흉내를 내본들 스물일곱 결혼도 안 해본 나는 절대 알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부에서 한 부모 가정을 위해 각종 정책을 내놓고 있다고 하지 만, 과연 그 실상은 어떨까? 취재를 위해 가장 먼저 주민 센터로 향했다. 그곳에 들어가 분리되어 마련된 사회복지과로 찾아갔다. “아이가 몇 이에요?” 처음 주어진 질문이었다. 사실 말은 안하지만 ‘아직 젊은데 이혼은 왜 해가지고’ 라는 눈치가 오갔다. 이래저래 관련서류를 묻자, 성의 없이 복사만 돌린다. 그 때 나와 함께 동사무소 를 찾은 익명의 여성분과 간단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그녀는 두 명의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는 싱 글맘이었다. “전업주부로만 살던 내가 어느 날 이혼녀가 되고 아이 두 명과 덩그러니 남겨졌어요. 절망이었죠. 살 아보겠다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긴 했는데.......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뼈저리게 공감가더라고요. 사실 이혼녀에, 특별한 전문지식 없이 받을 수 있는 급여는 100만원 내외인 경우가 많아요. 아이들을 봐야 하니 밤늦게 까지 일할 수도 없고. 그래서 매일 마이너스고 아이 키우는 일이 점점 버거워져요. 내 명 의로 된 부채가 60%가 넘는 집, 덜덜거리는 경차를 포함해도 한 부모 지원이 간당간당하다니. 불법이 긴 하지만 눈치 보면서 회사에 사정이야기를 했고 4대 보험 신고를 기본급 최저로 해서 냈어요. 부채 까지 재산으로 간주를 해서 보험료를 산정하다 보니 보험료가 10여만 원이 넘어 결국 한 부모 혜택은 꿈도 못 꿨었거든요. 설령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해도 커가는 아이들을 양육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 돈 없이도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있어도 도움 되지 않는 비현실적 정책들. 돈 많은 부모가 경쟁력인 이 사회에서 그들을 위해 조금이나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정책이 나오기를 기다려 본다. M
사회복지서비스 및 급여 제공 신청서 재학증명서-초, 중, 고등학생 자녀
3 지원 대상 및 처리기한 지원 대상-세대주인 모 또는 부와 그에 의하여 양육되는 만 18세 미만의 자녀로 이루어진 가정, 처리기한- 신청일로부터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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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처리절차 신청서류 제출 및 초기상담(동 주민 센터) → 서류 접수 및 조사(주민생활지원과) → 보장결정, 통지, 급여지원 (가정복지과) → 관리(동 주민 센터, 주민생활지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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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내용
아동양육비 : 만 12세 미만의 아동으로 1인당5만원/월
선정기준
자녀 학비 등 보조금 비원
가구규모
소득 인정액
2인
1,224,856
교통비(중고생) : 86400원(연4회)
3인
1,584,535
학용품비(중고생) : 10500원(연4회)
4인
1,944,215
복지자금 대여(최저생계비 150%이하 및 서민 주거 지원
5인
2,303,895
(임대아파트, 전세임대 등)
6인
2,663,575
학비(고등학생) :수업료 연4회, 신입생인 경우 입학금 연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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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산벚꽃 흐드러진 비단같은 산골 충남 금산 보곡산골
벚꽃도 ‘삶터’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진해, 하동을 수놓
보곡산골은 국내 최대의 산벚꽃 자생 군락지중 하나로
는 벚꽃들이 풍성하고 화려하다면, 산골에 피어나는 산
600만㎡의 산자락에 산꽃들이 피어난다. 산골의 주연은
벚꽃은 수줍은 듯 소담스럽다. 4월의 중턱을 넘어서면
벚꽃이지만 조팝나무, 진달래, 생강나무 등도 뜻 깊은 조
충남 금산군 군북면 보곡산골에는 산벚꽃이 흐드러지게
연이 된다. 보곡산골에서 남쪽 고개를 넘어서면 조팝나
핀다. 깊은 오지마을에서 꽃망울을 터뜨려 사람들의 손
무의 군락지와도 연결된다. 산골이라 기온이 4~5도 낮
때가 덜 탄 산벚꽃은 요란하지 않은 아늑한 풍경이다.
은 탓에 꽃들이 피어나는 시기 역시 타 지역보다 한 템
군북면 보곡산골은 산이 수려한 금산의 서대산 끝자락 에 위치한 외딴 마을이다. 충남의 최고봉인 서대산(약
야 이곳에서는 꽃 잔치가 수줍게 소식을 전한다.
903.7m)은 추부와 군북을 경계 짓고 금산과 옥천을 가
보곡산골로 향하는 열두 굽이 비들목재에서부터 봄꽃
르는 울타리의 성격이 짙다. 보곡산골은 서대산 아래 보
향기는 완연하다. 마을에 닿기 전 보곡산골을 알리는 아
광리, 상곡리, 산안리 등 3개 오지마을에서 한 글자씩 따
담한 이정표가 길손을 반긴다. 굽이치는 꽃길을 따라 접
서 명명된 이름이다. 3월초까지 얼음이 얼고 고랭지 농
어들면 보곡산골의 중심마을인 산안리(자진뱅이마을)
업이 성한 마을은 4월이면 그 색을 바꾼다. 동네를 에워
가 모습을 드러낸다.
싼 산자락에 산벚꽃이 피어나며 희고 붉은 꽃세상이 열 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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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 늦다. 만개한 꽃에 대한 아쉬움에 한 숨 지을 무렵에
해마다 4월 중순이면 열리는 보곡산골 산꽃축제의 주무 대는 산안리 일대다. 마을 뒤 산자락을 따라 비포장 임도 가 조성돼 있고 그 길을 걷는데 서너시간이 소요된다. 길 중간 중간에는 ‘봄처녀 정자’, ‘보이네요 정자’ 등이 방문 객들의 오붓한 그늘이 된다. 힘든 다리를 쉬게할 벤치도 곳곳에 준비돼 있고 삼백년 세월을 간직한 기품 있는 소 나무도 눈길을 끈다. 임도에 접어들면 고요한 꽃천국에 발을 딛는 기분이다. 산벚꽃은 왕벚꽃만큼 크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묵묵히 초록 안에서 제 빛깔을 낸다. 아스팔트와 어우러진 벚꽃이 아니라 짙은 황토와 녹음과 함께한 꽃들이라 더욱 싱그럽 다. 요란한 벚꽃마을에서 흔히 겪게 되는 노점상들의 호객 행위가 없는 것도 반갑다. 간식을 싸 들고 정자에 앉아 산 골 정취에 어우러지면 청량한 공기와 상큼한 꽃향기가 가 슴에 와 닿는다. 보곡산골에서 벗어나 남쪽으로 금강을 따라 달리면 이번 에는 굽이치는 물줄기가 길벗이 된다. 금강 물줄기는 부리 면 수통리로 이어진다. 수통리는 어죽과 적벽강으로 유명 한 곳이다. 전라북도 장수에서 발원한 금강은 이곳 수통리
선야봉으로 뻗은 등산길과 청정계곡은 봄이 오면 오붓함
에 다다르면 웅장한 기암이 절벽을 이루며 붉은 빛을 띤
을 더한다. 곳곳에 삼림욕을 할수 있는 산책로가 조성됐으
다. 이 절벽으로 이뤄진 산이 적벽이고 그 아래에 흐르는
며 깔끔하게 하루를 묵어 갈수 있는 숲속의 집도 고즈넉
금강이 적벽강이다. 길이 막힌 바위절벽 너머는 옛날부터
하다. 숲속의 집 바로 앞에는 냇물이 흐르는 평화로운 풍
약초꾼들만 찾아들던 곳이다. ‘약초 고을’ 금산에서도 귀
경이다.
한 약초들은 이곳에서 많이 나왔다. 수통리 아래 도파마
금산 산림문화타운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금산 생
을은 드라마 대장금의 촬영지로도 유명한데, 장금이가 수
태숲으로 숲체험과 생태학습이 함께 어우러진 공간으로
라간에서 밀려난 뒤 약초재배를 하며 의녀의 꿈을 키우던
꾸며져 있다. 생태숲 학습관에서는 금산 숲의 아름다움
곳으로 촬영세트장이 아직도 보존돼 있다.
을 입체영화로 만나 볼 수 있으며 금산의 식생에 대한 흥
금산의 깊은 산속에서 휴식을 취하려면 남이면으로 향한
‘만져보는 숲’, 금산의 다양한 약용식물을 모아놓은 ‘약
미 넘치는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직접 몸으로 느껴보는 다. 금산은 전체 면적의 71%가 임야로 구성된 땅. 특히 금
이 되는 숲’ 등 다양한 테마 숲들을 거니는 것도 색다른
산산림문화타운이 위치한 남이면 건천리 일대는 원시림
체험이다.
에 가까운 숲이 잘 보존돼 있다. 금산산림문화타운은 남이 자연휴양림, 금산생태숲, 느티골 삼림욕장이 위치한 생태
금산은 인삼의 고장이다. 여행자들의 마지막 종착점이자
종합휴양단지로 하룻밤 쉬어가며 금산의 깊은 숲을 감상
반드시 거쳐 가는 곳이 금산읍내 금산인삼약령시장이다.
하기에 적소인 곳이다.
금산읍 중도리 일대에는 1600 여개의 약초, 인삼 가게들 이 어울려 거대한 상권을 이루고 있다. 전국 인삼의 80% 가 이곳에서 거래되며 시장에서 팔리는 약재만 500여종 이나 된다. 금산 주민들이 직접 생산한 인삼과 약초가 매 매되는 시장에서는 진품 금산 인삼 뿐 아니라 이곳 주민 들의 넉넉한 인심과도 만날 수 있다. M 정리 편집실 자료제공 금산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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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그곳의 풍경
주민들이 사는 그 곳, 계동 길을 가다 계동. 두 글자로 멈추는 동의 이름이 왠지 낯설면서도 정겹게 들린 다. 만화 둘리에 나오는 희동이 처럼 왠지 모르게 귀엽게 느껴지는 동네 계동. 이름만큼이나 포근하고 따스한 그 길을 흐린 오후에 찾 았다. 이 글은 오후 두 시부터 네 시까지의 짧은 기록이다. 70
아뿔싸. 어제까지만 해도 쨍하던 날이 꾸물꾸물해지더니 회색 구름으로 하 늘이 뒤덮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은 이럴 때 백퍼센트 해당된다. 물론 꾸역꾸역 날을 미룬 나의 게으름 반, 그리고 일기예보를 찾아보지 않은 무계 획성 반이 이루어 낸 탓이리라. 하지만 모두가 날 좋은 날 떠나지만은 않기에 오늘의 계동 산책은 그래도 의미가 있었다.
형 서점에 가려져 소규모 서점과 책방이 문을 닫고 있는 지금, 문화당 서점은 아직까지는 굳건하다. 동네 아이들의 참고서를 책임지는 서점이 없어지지 않고 오랫동안 지켜 주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일 것이다. 아직까지 계동이 사람 사는 냄새가 풍겨져 나오는 것은 아이들의 웃음소리 때문은 아닐까. 길의 끝에 자리한 중
계 는 동네이다. 북촌이 외국 관광객들에게 필수 코스로 대두되면서,
동은 서쪽으로는 가회동과 재동, 북쪽으로는 삼청동과 맞닿아 있
계동 길도 심심치 않게 외국인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계 동 길은 삼청동과 북촌 한옥마을에 비해 덜 알려진 동네이다. 원래 서울 의 다른 동네처럼 조용히 주민들이 살고 있던 동네였는데, 그 정취와 분 위기에 반해 몇몇의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공방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서 서히 음식점과 카페가 생겨나 지금의 아기자기한 계동 길을 만들었다. 그래서 계동 길은 주민들이 풍겨내는 사람 냄새와 예술가들이 뿜어내는 키치한 느낌이 모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계동 길의 시작은 안국역 3번 출구에서 나와 만나는 북촌문화센터이다.
앙 고등학교와 옆 골목에 위치한 재동초등학교는 계동 길 의 활력을 더해주는 건물이다. 별일 없이 즐겁게 터지는 아이들의 폭소와 재잘거리는 말소리, 그리고 학교의 종소 리가 어우러져 길의 생기를 더해가는 것만 같다. 새로 생긴 음식점, 공방들, 카페도 참 좋지만 고즈넉한 풍 경의 오랜 한옥들과 슈퍼, 목욕탕, 서점들이 더 정겹고 푸 근하다. 소담스럽게 떡집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아주머 니들의 풍경에서 오랜만에 사람냄새를 물씬 맡을 수 있는 이 곳, 바로 계동길이다. M 글 전은영
이곳은 원래 일제 강점기에 재무관을 지낸 민형기의 자택을 복원한 가옥 으로 서울시가 매입해 개·보수했다. 그리고 2002년 문을 연 이후로 무 료로 개방하고 있어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받고 있는 곳이다. 평일 낮이라 문화센터 안은 한산했다. 중국인 모녀로 보이는 가족과 나, 그리고 사진가 셋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생경한 한 옥의 모습이 그들에게는 어떻게 보였을까. 외국에서 그 나라의 건축물을 보고 "와" 하고 탄성을 내지르던 그 이국적인 느낌을 그들도 받았을지 사 뭇 궁금해졌다. 하지만 어린 딸에게 한옥은 크게 재미있는 대상이 아니 었나보다. 대충 돌아보다가 막다른 곳으로 나가려던 작은 꼬마 여자아 이는 엄마에게 된통 혼이 나고 있었다. 어릴 때 유적지, 박물관,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을 지겨워하는 것은 만국 사람들의 공통적 특징인가보다. 나와 쭉 뻗어있는 길을 따라가면 계동길이 나온다. 북 촌문화센터를 하나로 나 있는 길 양 옆에는 외지인들을 위한 카페와 음식점, 그 리고 주민들을 위한 철물점과 슈퍼로 나누어져 있다. 그 중에서도 강하 게 본인의 영역을 지키고 있는 곳이 바로 대구 참기름집이다. 길에 들어 서자마자 톡 쏘는 고소한 향을 내뿜고 있기에 다시한번 쳐다볼 수밖에 없는 곳이다. 1975년부터 지금의 주인 할아버지께서 맡아 왔다는 이 가 게는 55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낡은 나무빛깔의 미닫이문에서 찾을 수 있는 오래된 풍경은 지켜보기만 해도 흐뭇해진다. 젊은 사람들보다 훨씬 나이를 먹은 참기름 집은 계동 길의 대표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인 셈이다. 계동 길은 그 역사만큼 오래된 가게들이 많다. 계동의 대중목욕탕인 중 앙탕과 오랜 문화당 서점도 이러한 가게들이다. 자습서와 참고서를 주로 파는 문화당 서점은 궁서체의 페인트 문패에서부터 위엄이 느껴진다.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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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임신 중 비만은 중년의 비만으로 이어진다 임신 중 비만은 단순히 미용적인 문제만이 아닌 여성의 평생건강과 연결된다. 우리나라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정상체중의 임산 부가 15년 후 당뇨병이 발병한 경우는 40% 정도인데 반 해 과체중의 임산부는 15년 후 70% 정도가 당뇨병이 발 병되어 거의 2배에 가까운 발병률이 나타났다고 한다. 미국에서 발표된 ‘임신 중 비만과 10년 후 체중과의 연 관성’을 연구한 논문에 따르면 출산 후 3개월에 임신 전의 체중으로 돌아간 사람은 10년 후 평균 2.4Kg의 체중이 증가한 반면 체중관리에 소홀해 체중이 4.1Kg
임신 말기(39주~40주)의 태아와 태반 그리고 양수를 합
증가한 사람은 10년 후 평균 8.4Kg이 증가한 것으로
한 무게가 5Kg 미만이며 산모의 혈액량, 자궁과 유선의
보고되었다.
확대, 그리고 지방증가 등으로 인한 무게가 나머지를 차 지하므로 전체 체중 증가는 임신 전 보다 10~12Kg 정도
임신과 출산은 매우 신성하고 특별한 일이지만 대가가 따른다.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우리나라 여성들 중 80%
가 적정수준이다. 또한 임신 전 비만했던 임산부일 경우 10Kg 미만으로 증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상이 임신 후 비만에 시달린다고 한다. 이는 임신을 하
임산부의 지나친 체중증가는 임신 중독, 임신성 당뇨 등
면 고열량, 고영양 음식을 많이 섭취해야 한다는 우리나
을 유발할 수 있다. 임신 중 당뇨는 기형아 출산, 난산, 지
라의 산모문화로 발생되는 임신 중 비만과 잘못된 산후
방간, 임신중독증 등의 발생 원인이 되어 산모는 물론 태
조리 문화로 인해 출산 후 살을 빼야 하는 기간에 움직임
아도 위험하게 된다.
없이 고열량 음식을 섭취하는데 주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인체는 생리적조절점이 있어 체중을 유지하게 된다. 출
임산부가 섭취하는 음식물의 영양성분 중 80%가 임산
산 후 3개월 까지는 생리적체중조절점이 고정되지 않아
부 자신에게 필요한데 사용되고 20%만이 태아에게 영
살이 빠지기 쉬운 기간이다. 여성 비만의 열쇠, 황금의 시
향을 준다고 한다.
기가 바로 산후 3개월인 것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산모
임산부 2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임산부
비만’이 ‘중년 비만’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의 체중 1Kg 증가 시 제왕절개 율은 4% 증가하며 아기
임신 중 과 출산 후 비만을 예방하려면 고단백 저칼로리
의 건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임산부가
식품을 섭취하고 칼슘과 철분이 많이 함유된 유제품과 과
비만할 경우 체중의 압력으로 골반이 벌어지지 않는 현
일, 간 요리 등을 매일 섭취하며 비타민B₁ 을 파괴하는 빵,
상이 나타나며 분만 시에 태아가 나오는 길인 산도에도
과자, 초콜릿 등의 단 음식은 제한한다.
지방이 쌓이게 되면서 산도가 좁아져 자연분만이 어려 워지는 것이다.
모유수유 시 산모의 체온이 상승해 대사양이 증가해 에 너지 소비량이 많아져 산모의 체중감소에 큰 효과가 나타 난다.
노블스토리 송도점 윤계선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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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컨설팅
부터 준비해야 자녀 교육비 플랜,‘요람’ 첫째. 사교육비 부담, 시기에 따른 전략을 세우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교육비는 유치원 때 높다가 초등학교 때 감소하며 영국의 한 심리학자에 따르면 은행에 2억 원
중·고등학교 입학과 함께 최고조에 달합니다. 하지만 이기간 동안
정도 예금을 해서 이자를 받을 때의 뿌듯한 마
의 교육비는 평소의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통해 해결해야 합니다. 왜
음과 돈은 없더라도 자녀가 공부 잘해서 학교
냐하면, 별도의 목돈이 필요한 시기는 대학입학, 유학, 대학원 진학이
에서 상장을 받아왔을 때 부모가 느끼는 기쁜
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정도를 비교하면 엔돌핀이 분비되는 정
둘째. 여유가 있을 때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도가 서로 비슷하다고 합니다. 자녀 잘 키우고
자녀가 성장함에 따라 때로는 수입을 모조리 자녀 교육비에 투여해
꿈나무에 교육투자를 잘 하는 것도 재테크라는
도 모자란 시기가 생깁니다. 이러한 적자가 계속되면 자칫 가계수지
의미인데 사교육비를 포함해 천정부지로 치솟
균형이 급격히 깨질 수도 있으므로 미리 준비한 교육비는 이때 유용
는 대학등록금을 감안하면 녹록치 않다는 것이
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현실입니다. 한 설문조사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단계까지의 교육을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가정 형편 이라고 답한 학생이 무려 54%에 달한 것을 보 면 자녀 교육비는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스트 레스이자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면 교육자금 마련에 대
셋째. 예산을 세우고 기준을 정하는 것입니다. 주변의 친구들과 같은 과외를 받고 학원에 보내겠다는 식의 계획은 자칫 가정 경제에 무리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교육비 예산을 세우고 정해진 범위 내에서 가장 효과적인 교육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 의 방법입니다. 넷째. 장기적으로 효과적인 금융상품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한 계획을 미리 세워놓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
매월 일정하게 지출하는 교육비도 있지만 대학 등록금과 같이 일시
니다. 오랜 시간동안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하
에 목돈이 들어가는 교육비가 더욱 부담이 큽니다. 이러한 교육비는
는 교육비는 목적자금 가운데 가장 우선해서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막상 닥쳤을 때 대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재무 설계 항목인 것입
장기적으로 미리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자녀 교육비
니다. 이제는 단순히 교육비를 모은다는 생각
는 필요시기에 따라 장기적인 금융상품들로 미리 준비하는 것이 적
보다는 밑그림을 그린 후 자녀의 미래를 함께
합합니다.
준비해 나가는 전략을 세워야 할 때입니다. 자녀가 어떠한 교육을 받느냐는 부모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우리 아 이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빚쟁이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는 부모들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한국GA Holdings 김은정 재무컨설팅 팀장 문의 010-2316-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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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M’ 은 삶의 질 향상과 복지사회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증가하고 있는 시대에 임산부와 영·유아를 둔 부모 및 관련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국산모관리회에서 발행하는 육아교양지입니다. 매월 30일 전국의 배본처에서 THE MOM을 만나보세요.
산후조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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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 제일병원조리원(속초) / 제일병원조리원(신관) / 제일병원조리원(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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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존 노원점 / 해운대점 / 대전점 / 울산점 / 광명점 / 상동점 / 성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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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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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매)
점 / 청계천점 / 묵동점 / 금정점 / 문현점 / 사상점 / 연제점 / 부평점 / 검단점 / 연수점 / 동인천점 / 월배점 / 반야월점 / 대전터미널점 / 둔산
오케타니 모유육아 상담실
점 / 광산점 / 상무점 / 울산점 / 광명소하점 / 도농점 / 진접점 / 남양주 점 / 부천점 / 분당점 / 성남점 / 서수원점 / 고잔점 / 안성점 / 양주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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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점 / 흥덕점 / 수지점 / 파주운정점 / 포천점 / 하남점 / 동탄점 /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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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이동점 / 순천점 / 여수점 / 군산점 / 익산점 / 제주점 / 서산점 / 아
대전탄방본점 / 둔산점 / 테크노점 / 서대전점 / 관저점 / 천안점 / 청주점 / 율량
산점 / 펜타포트점 / 천안점 / 제천점 / 충주점
점 / 해운대점 / 덕천점 / 수성점 / 구미점 / 서구점 / 북구점 / 신제주점 / 제주점
♥ 배본처는 계속해서 확보되고 있습니다.
2001아울렛 천호점 / 구로점 / 중계점 / 해운대점 / 부평점 / 광명철산점 / 분당점 / 수원점 / 안산점
AK플라자 구로본점 / 분당점 / 수원점 / 평택점
NC백화점 강서점 / 송파점 / 불광점 / 부산대점 / 해운대점 / 야탑점 / 평촌점 / 순천점
정기구독 안내 정기구독료 1년 20,000원 결제방법 무통장입금 국민은행 226401-04-252367 예금주 한국산모관리회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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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백화점 일산점
정기구독 신청방법 전화 1599-3576 발행처 (주)한국산모관리회 발행인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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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3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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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안산 라 00010 이 책에 실린 모든 자료는 발행인의 사전 허가 없이 무단으로 복사·전재·변형되어 사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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藥이 되는 식품 절세미인 클레오파트라, 양귀비가 매일 반쪽씩 먹었다는
석류는 타닌 성분이 많아 수렴작용이 강하기 때문에 오래
석류. 석류에는 1㎏당 17㎎의 천연 식물성 에스트로겐이
된 설사, 이질, 탈항, 냉대하 등의 증상에 효험이 있다. 석류
함유돼 있는데 이는 인체의 여성호르몬과 구조가 매우 흡
를 달인 즙은 구취를 없애며 편도선염과 인후가 붓고 목이
사하다. 천연 식물성 에스트로겐의 공급은 콜라겐 결합조
쉰 것을 낫게 한다. 그뿐 아니라 오미자 물에 석류알과 잣과
직의 양을 늘려 여성의 생리기능에 도움을 줄뿐 아니라 탄
꿀을 넣어 마시는 석류화채는 여름음료 가운데 백미인데
력을 잃어가는 피부의 노화를 지연시킨다. 따라서 20~30
석류알의 강력한 수렴작용은 여름에 땀을 많이 흘려 지칠
대에는 피부 미용에 도움을 주고, 여성호르몬이 감소하는
때 기운을 보충해준다.
40~50대에는 폐경기 증상은 물론, 심혈관 질환, 골다공증 을 예방할 수 있다. 이렇듯 여성에게 석류는 젊어지게 하는 신비한 과일인 것이다.
석류를 먹을 때는 새콤한 과즙만 빨아먹지 말고 씨까지 먹 어야 한다. 석류 껍질과 씨에 들어있는 ‘타닌’과 ‘펙틴질’ 성 분은 에너지 대사를 도와 피로를 빠르게 씻어주고, 동맥경
석류는 붉은 주머니 속에 루비처럼 반짝이는 촘촘한 알갱
화를 예방해주며, 두피의 혈액순환을 개선해 탈모 예방에
이로 인해 부귀와 다산의 상징으로 통했다. 시집가는 딸의
도움을 준다. 또한 나쁜 콜레스테롤(ldl)은 낮춰주는 반면
혼수품에 석류를 수놓았던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성
좋은 콜레스테롤(hdl)은 높여준다고 알려져 있다. M
경에도 석류는 올리브나무, 포도나무, 무화과와 더불어 풍
정리 편집실 참고도서 몸에 좋은 색깔음식 50
요와 번영을 의미하는 신성한 과일로 등장한다. 석류는 맛 이 시어 임산부들이 좋아하는데 석류를 많이 먹으면 아들 을 낳는다는 속설도 있다. 석류는 먼 옛날부터 단순한 과일을 넘어 귀중한 약재이자 요리 재료로서 우리의 삶을 풍족하게 해주고 있다. 꽃, 나무 껍질, 뿌리, 씨앗 등이 모두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므로 어느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석류나무의 아름다운 붉은 꽃은 고대에 염색용으로 사용 했고 코피가 날 때는 꽃을 가루 내어 콧속에 불어넣어서 지 혈을 했다. 생각만 해도 입 안에 침이 도는 새콤달콤한 석류 열매는 당분, 구연산, 비타민 C가 풍부해서 옛날 실크로드 를 오가는 여행객들이 배고픔과 갈증을 견디기 위해 가지 고 다니며 먹었다고 한다.
의 보석 명 생 는 키 여성을 지
‘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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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 활용법 석류주 큰 석류 5개를 쪼개어 병에 넣고 설탕 100g과 소주 1 ℓ를 부어 1~3개월 정도 익히면 된다. 구충이나 만성 설사에 효과가 있으며 씨까지 함께 술로 만들어지므 로 여성 피부미용에 좋고 강장제로도 효능이 있다. 석류 드레싱 석류알을 믹서에 간 다음 거즈로 짜내 씨를 거른다. 레몬주스, 식초, 다진 양파, 다진 피망, 올리브오일, 꿀, 소금, 후추 등을 함께 섞어 야채 위에 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