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uee 미리보기용 pdf

Page 1




일러두기 이 책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라이브러리파크 블랙박스 1에서 개최된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프로그램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한 자료집입니다. 본문에서의 부호는 작품명 〈 〉, 전시명 《 》, 도서명 『 』 등으로 구분하였으며, 강조와 구분은

‘ ’, 직접 인용 문구는 “ ”로 표기하였습니다.


Contents 송경원 11월 23일

김소영 11월 30일 정성일 12월 7일 신형철 1월 14일

――――― ――――― ――――― ―――――

6 72 102 164


6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송경원

11월 23일

11월 23일, 송경원

7


송경원 송경원은 2009년 씨네21 영화평론상을 수상하며 영화평론가로 데뷔했고 2012년 동국대 영상대학원 영화이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총무간사로 활동했으며 2011년부터 부산일보 영화상, 부천국제영화제, 서울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등의 여러 영화제의 심사위원을 맡았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인디다큐페스티발 프로그래머로 활동 중이다.

8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 사회자 저희가 고지를 해서 다 아시겠지만 씨네21의 송경원

기자님을 모셨습니다.저희 그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같은 경우는 아시아의 실험영화와 비디오아트가 이제

16년도 하반기에 필름 앤 비디오 아카이브라고 이제 통합이 되어서 약간 이제 실험영화와 비디오아트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그 두 장르를 약간 좀 연결을 시켜줄 수 있는 대중 프로그램들이 마련이 되면 좋겠다라는 이제 말씀들이 있으셔서 그렇게 이제 기획 되면서 이제 첫 대중 프로그램으로 이제 기획된 게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입니다. 그래서 이제 아시는 분은 이제 뭐 내용을 아시겠지만 그 변사 같은 경우는 예전에 이제 영화, 그 무성영화 시절에 음성 사운드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계속 이제 그 변사 역할을 해주시는 분들이 영화에 대한 해설과 그 내용들을 막 재밌게 얘기를 해주셨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이제 다들 변사 분들이 이제 없어지시고 이제 그 시절이 많이 지나갔기 때문에 약간 이제 좀 아쉬워하시는 분들도 있어서 이제 이번 기회에 변사라는 단어를 차용을 해서 프로그램 제목으로 넣어봤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 이 송경원 기자님 비롯해서 초청자 분들이 이제 자신들이 가장 이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영화들이 있으세요. 다들 이제 가지고 계시겠지만. 그래서 이제 특별히 그 전문가 분들이 자신들이 특히나 영화를 좋아하는, 어떤 영화들을 좋아하는지 이제 여러분이랑 공유도 하고 그 좋아하는 이유들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도 해주시고요. 간략하게 이제 내용들도 섞어가면서

이야기를 재밌게 해주실 예정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제 여기 블랙박스 공간이 굉장히 아담하고 좀 가족적인 분위기잖아요. 평소에는 굉장히 썰렁한 공간인데요. 오늘 같은 날만큼은 조금 이제 편안하게, 그 약간 북클럽 같은 분위기처럼 이제 송경원 기자님이 이야기를 해주시다가

11월 23일, 송경원

9


약간 궁금한 부분이 있으시다 거나 아니면 내가 좀 내용을 보태고 싶다거나 아니면 내 경험이나 내 사연도 조금 같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럴 경우는 이제 자연스럽게 같이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즐기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송경원 기자 네. 소개 받은 씨네21 송경원 기자라고 합니다. 이제 이런 콘셉트의

강의는 좀 처음이고요. 여기저기 강의를 좀 해봐도 이런, 이런 구성, 이런 콘셉트의 강의는 또 처음이라서 어떻게 진행해야 될지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이, 제가 듣기로는 이 프로그램이 매주 수요일 날 진행되는 것으로 네 분, 저를 포함해서 네 분이 강의를 할 건데 아마 매주 수요일 찾아오시게 되면 오늘 제가 하는 게 제일 대중적인,

대중적이고 쉬운 클래식 영화들이 될 거 같아요. 일단은 처음 이제 제안 받았을 때는 정말 단순하게 내 인생의 영화 정도로 뭐 좀 내가 재밌게 본 영화들 소개하면 좋겠다. 이런 정도의 콘셉트로, 콘셉트로 생각하고 이제 영화를 골랐는데 나중에 이제 좀 지나고 보니까 어느새 영화수집광, 이렇게 되어있더라고요. 제목이. 아마

수집광이라고 이름 붙일 만큼 좀 특이한, 희소성이 있는 영화들은 아니에요. 오히려 오늘 강의 들으실 때는 그냥 제, 씨네21 기자의 어떤 인생에 관한 영화들? 뭐 그냥 순서대로 쭉 진행한다고

들어주시면 될 거 같고요. 마이크가 없으니까 뭐 좀 그냥 다,

들리시죠? 제가 목소리가 좀 큰 편이 아니어서. 여기 앉아서 그럼

진행을 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영화기자로서, 혹은 영화 글 쓰는 사람으로서 질문 받을 때 제일 난감한 것 중에 하나가 재밌게 본 영화가 뭐냐?,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 거든요. 좋아하는 영화는 매번 바뀌는 것 같아요. 매번 바뀌어요. 매해 바뀌고 그

기분에 따라 좀 바뀌죠. 뭐 어떨 때는 좀, 우울할 때는 신나는 영화

보고 싶고 요즘 같은 시국에는 좀 우울한, 아니면 뭐 어떤 영화라고

해야 될까요? 내부자들처럼 되게 사회고발적인 영화는 의외로 별로 보기 싫어요. 잘 안 보게 되더라고요. 그때 상황에 따라 매번

바뀌어서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 라는 질문에 대해서 뭔가 딱 단언을

10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내릴 수는 없는데 그냥 인생에서 스쳐가면서 내가 어떻게 영화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됐고 어떻게 영화라는 걸 좀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지에 영향을 미친 영화들을 생각해보면 몇 편이 있는 거 같아요. 오히려 예를 들면 중학교 때 봤던 어떤 영화들 같은 경우는 사실 좀 머리가 굵고 나서, 아니면 그 영화에 대한 어떤

정보들을 다 알고 나서 보면 되게 형편없는 영화인 경우도 있는데 오히려 그때 봤던 어떤 영화적인 기억이 훨씬 더 강렬하게 남는 경우도 있고요. 영화기자로서, 아니면 영화 글 쓰는 사람으로서 제가 갖고 있는 큰 질문, 제일 큰 질문을 딱 하나만 꼽자면 영화가 뭔가? 거든요. 그런데 되게 쉬운데 어려운 질문이죠. 좀 추상적인

질문이기도 하고. 삶이 뭐냐? 아니면 뭐 행복이 뭐냐, 와 똑같은

그런 거죠. 그런데 그 개념을 찾아나가는 게 되게 중요한 작업인 것

같긴 해요. 지금 사전적으로 보면 영화, 영화라고 제가 말을 했을 때 여러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 다 있으시죠? 각자 생각하는 영화의 개념이 다 있어요. 그런데 그게 겹치는 부분도 있고 안

겹치는 부분도 있죠. 제가 나름대로 지금 갖고 있는 영화의 개념

중에 가장 큰 중요한 부분은 극장이란 공간이거든요. 극장에서 본 게 소위 말하는 영화적인 체험인 것 같아요. 지금 여기서도 영화가, 영상들이 나오고 있지만 요즘은 영상 구해보기는 되게 쉬운 시절이잖아요. 집에서도 볼 수 있고. 그런데 집에서 혼자서 이 영상들을 봤을 때 기분이랑 내가 처음에 극장가서 이 영화를 처음 만났을 때 기분은 좀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중, 고등학교 때 내가 첫 영화를 본 게 뭐지라는 생각을 먼저 떠올렸거든요. 내 인생의

영화가 뭘까, 라는 생각을 했을 때. 그때 제일 처음에 봤던 영화는 이거였어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라는 영화인데 혹시 이 영화

아시는 분? 보신 분? 아, 그래도 조금 제법 많이 보셨네요. 사실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는 보면 거의 없을 거예요. 이 영화가 무슨 영화였는지. 실제로 이제 실화소설을 바탕으로 한

멜로드라마이고요. 되게 뭐랄까? 지고지순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멜로드라마거든요. 또 잘 아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배우랑 이 메릴 스트립이라는 배우가 나와 주연한 영화고 동명의

11월 23일, 송경원

11


실화소설이 있는 영화예요. 그런데 저는 이 영화를 언제 봤냐면 중학교 1학년 때 봤거든요. 그런데 중학교 1학년 때, 제가 아까

처음에 시작할 때 제가 영화수집광이라고 할 수 없다, 라고 한 건 뭐냐면 영화를 좀 저도 대학교까지도 전 많이 본 편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나는 영화 좀 많이 보는 사람이야, 라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이제 전문적으로 진짜 영화를 보고 나니 영화수집광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사람들에 비하니까 정말 그냥 보편적인 수준으로 보는 정도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대학 들어가기 전까지는 영화라는 거에 대해서 크게 관심도 없었고 좀 무지한 상황이었는데 중학교 1학년 때 이 영화를 처음 보게 된 이유는 이게 사실 중학교 1학년 때 못 보거든요. 아마 당시 기억으로써 이게 15세 관람가인가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중학생 때 막 그 특활활동 같은 거를 장려하는 정책들이 생겨서 강제적으로 이제 그룹핑을 해서 뭐 운동을 하게 한다든지 뭐 책을 보게 한다든지 아니면 뭐 어떤 특정 스포츠를 하게 한다든지 뭐 이런 그룹들이 생겼거든요. 그때 할 수 있는 제일, 제일 무난하고 좋은 게 이제 영화 보는, 그러니까 *** 아니면 영화부죠.

1달에 1번 정도 이제 학생들 거의 한 100명 정도 됐던 거 같아요. 100명, 150명 정도 됐던 거 같은데 그때 단체로 영화 관람을 무조건 하게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봐도 좀 웃긴 건데 그때 아마 그 이렇게 담당하시는 선생님이 되게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이셨나 봐요.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그 여자 선생님이 그래서 처음으로 이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남학생, 남자 중학생

150명을 데리고 극장가서 본 첫 영화가 이거였어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아무 것도 기억 못하겠죠? 지금도 기억나는 것 중에 하나가 여기 작은 극장, 당시는 이제 멀티플렉스나 이런 것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되게 작은 극장에서 남학생들을 봐라, 라고 하고 이제 교사들은 인솔을 안 하고 이제 밖에 있으니까. 다 영화 극장에서 한 10분, 20분 보다가 못 견디는 거예요.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영화도 조용하고. 게다가 되게 중년, 중년에 찾아오는 사랑 이야기이거든요. 그래서 아마 그때 제 당시 기억에는 극장 끝까지 남아있던 사람은 한 10명이 안 됐던 것 같고 대부분은 중간에 12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나가서 그 동시상영 극장 같은 데 보면 비디오를 틀어줘요. 매점 같은 데서. 그 비디오 틀어주는 데서 다 성룡 영화들을 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어쨌든 그때 극장에 남아있던 10명 중에

1명이었는데 그때 그 사실 제대로 이해를 하고 본 건 아니죠. 이게 무슨 소리지? 그냥 재밌네? 라고 생각하는 정도로 봤던 거 같아요. 보신 분들도 많으니까 이 영화의 약간의 스토리 라인을 말씀드리면 중년의 여성이, 그 사진작가예요. 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사진작가로 나오는데 National Geographic 사진작가, 표지

사진 찍어주는 사람이죠.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이고 이 여성은 이탈리아계 여성으로 나오거든요. 그래서 고향을 떠나와서

이제 이 시골마을에서 살고 있는 거예요. 굉장히 외롭고 뭔가 결핍을

느끼고 있는 상태인 거죠. 그런 와중에 전 세계를 자유롭게 여행하고 있는 이 남성을 보고 뭔가 끌리게 되는 거죠. 이 두 사람이 서로

끌리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 이게 한 100분 정도 시간 중에 한 70분 동안 계속 우리는 끌리고 있어, 라는 걸 반복해요. 뭔가 되게 사소한 이러한 뭐 지점에서. 중학생 남자아이들이 이해하기는 힘들죠.

중년의 사랑. 그런데 이 영화가 뭐 인생영화로 꼽으라고 하면 그러면 정말 좋다. 이건 인생의 영화니까 추천해라고 드러내면서 보는 게 아니라 그냥 제 기억에 굉장히 강렬하게 남아있는 장면이 있어서 아마 이 영화를 계속 떠올리는 것 같아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극장이라는 공간, 저한테는 어쨌든 우뢰매 같은 아동영화 이후에 처음으로 극장이라는 공간을 체험하게 된 영화였거든요. 그래서 지금 다시 꺼내보면 그 느낌이 안 나겠지만 그때 되게 어두운 극장에서 밖에는 성룡 영화가 틀어지고 있고 한 10명 정도 남아있는 되게 특이한 취향을 갖고 있는 남학생들이랑 봤을 때 딱 한 장면이 굉장히 인상 깊게 남아있었어요. 그래서 이 영화를 늘 뭔가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 라고 하면 이야기를 하는데 이 장면이거든요. 거의 마지막 장면이에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영화 자체는 되게 좀

차분하고 조용하게 흘러가는 영화기 때문에 격렬한 감정 고백, 뭐 이런 것들을 드러내는 건 하나도 없고 정말 사소한 몸짓, 눈빛, 뭐

끌림, 되게 모호하게 설명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을 계속 반복하고

11월 23일, 송경원

13


있는 거죠. 그 말은 뭐냐, 라고 하면 사건을 위주로 따라 가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면 지루해요. 이 정서를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한테 되게 지루할 수밖에 없는 영화인데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아, 저건 정말 절박하구나. 애절하구나, 라고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에요. 이게 뭐냐면 거의 제일 마지막 장면인데 이 남자가 이제 결국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으니까, 여기서

확인했다는 거는 뭐 보통 드라마처럼 육체적인 관계를 가졌다거나 고백을 했다거나 이런 게 아니에요. 그냥 이미 말을 안 해도 알고

있는 거죠. 이 상태에서 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메릴 스트립에게

나랑 같이 떠나자, 라고 제안을 해요. 그런데 메릴 스트립은 어쨌든 자기가 떠나고 난 뒤에 남을 가족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는 거죠. 자기가 이 남자를 분명히 사랑하긴 하지만. 그래서 거절을 해요.

거절을 하고 이제 남편과 함께 장을 보러 가는 길인가? 어디를 가고 있는 길인데 비가 굉장히 많이 오고 이 제목처럼 이 시골을 벗어나려면 다리가 하나뿐이에요. 그 다리 앞에 이 남자가 서있는

거예요. 되게 비가 많이 오는데. 그리고 남편은 모르죠. 이 남자가 비 맞고 저렇게 여자를 기다리면서 서있는 장면을 이 메릴 스트립이 이 자동차 백미러로 보거든요. 그 백미러로 보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굉장히 한, 길게, take로 치면 1분 이상 되는, 이런 상황을 봤을 때

되게 긴 Long take scene이 펼쳐져요. 그런데 별 설명도 없고. 이

장면이 굉장히 정말 인상 깊게 남았었어요. 저한테. 그래서 이 cut을 계속 설명해주는 거죠. ***(00:14:15)에서 이 여자가 백미러를

통해서 그 남자를 보고 있고 이때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굉장히 *** 있는 상태라 딱 봐도 멋있어, 훤칠해, 라는 느낌은 아니거든요.

머리도 되게 많이 빠져있고. 그런 상태에서 비를 홀딱 맞고 있으니까 좀 궁상맞아 보여요. 오히려. 그런데 그 모습이 되게 어떻게 보면 로맨틱한 거죠. 그때 이제 메릴 스트립이 여기 차 손잡이를 잡고

있으면서 굉장히 망설이고 고민하는 순간이 나와요. 이 순간, 이 망설이는 순간과 결국은 안 나가죠. 결국은 안 따라 나가고 그냥 가정을 지키는 쪽으로 끝나고 약간 뒤에 스토리를 좀 더 설명해드린다면 남편이 죽고 이제 이 여자가 거의 죽을 때 다 돼서

14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이제 그 남자 곁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하고 자식들이 이제 이 어머니의 편지를 보고, 일기를 보고 이제 결국 그 소원을 들어주는 그걸로 끝나요. 양쪽 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강렬한 어떤 순간들, 진실한 감정들을 설명을 하는 거죠. 그런데 어쨌든 그 감정을 안 따라 가고 그냥 딱 스쳐지나갈 때의 순간, 이 순간이 굉장히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거 같아요. 그래서 일단 이 영화를 먼저 가져와 봤고 어떤 영화들을 어떻게 기억하냐는 문제는 단순히 영화에 대한 완성도? 뭐 장면의 어떤 울림? 이런 것만으로 되는 건 아닌 거 같고 앞서 제가 짧게 말씀드린 것처럼 여러분이 어떤 감정 상태에서 어떤 순간에 어떤 환경에서 이 영화를 보냐에 따라서 되게 중요하거든요. 약간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영화기자들이 흔히

별점을 매기잖아요? 별점을 매길 때 너무 정확하지 않은 것도 있는 게 굉장히 일이 많고 피곤한 상태에서 극장까지 억지로 찾아갔는데 영화가 엉망이야. 이러면 별점이 낮아져요. 그러니까 이 컨디션도 영향을 미치거든요. 그런 것처럼 아까 그 영화는 그 한 장면,

극장에서 봤던 그 환경의 한 잔명으로 저한테 되게 기억에 남아있고 지금 이후에 보여드릴 10편의 영화도 그냥 영화를 기억하는 방식에 관한 문제가 있는 거 같아요. 여러분이 어떻게 영화를 기억하느냐, 라고 하면 모두 다 그러신 건 아니겠지만 대부분 영화관, 극장을

빠져나왔을 때 극장에서 봤던 모든 장면들을 다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죠. 특정 순간, 어떤 느낌만 갖고 나올 수도 있고 이야기를

나중에 재구성 해보면 다 다른 영화 본 것처럼 다 다른 이야기해요.

그런데 각자 꽂히는 장면들, 기억에 남는 장면들, 아니면 어떤 연기, 어떤 음악 같은 게 있죠. 우리가 영화를 보는 걸 만약에 음식을 먹는 걸로 비유한다고 하면 아마 그럴 것 같아요. 생선의 살을 발라먹는 거죠. 살이 아마 이 장면들, 음악들, 배우들 연기 ***(00:17:15) 우리가 흔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야기하는 서사, 이야기, 뭐

메시지, 이런 것들은 뼈대죠. 생선뼈에 가까워요. 그런데 사실 뼈를

다 씹어 먹는 사람은 없거든요. 그거는 이야기를 고정시켜주는 어떤 도구에 가깝고 오히려 여러분이 즐기고 감상하는 기억하시는 것들은 그런 순간순간의 어떤 화면들인 것 같아요. 그게 영화의 힘인

11월 23일, 송경원

15


것 같고요. 그런데 어떤 순간에 어떤 화면과 어떻게 접속돼서

여러분의 이야기가 되는지는 사람마다 다 다르죠. 어떤 타이밍에

*** 지금 초반에 제가 한 3편 정도 이렇게 짧게 설명 드리려고 하는 영화들은 주로 제 개인적인 경험과 관련된 영화들이에요. 첫 번째,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같은 경우는 굉장히 좀 성숙한 멜로드라마인데 중학교 1학년 때 이 영화를 접했던 게 저한테

어떻게 보면 되게 큰 축복이자 ***(00:18:12)이죠. 감수성을 약간 좌우하는 시기에 그런 영화들을 제가 좀 많이 봤던 거 같아요.

그래서 뭐 또래 친구들보다 약간 여성스럽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던 것 같고 그렇습니다. 두 번째로 이야기해보고 싶은 영화는 브레이브하트라는 영화인데 혹시 보신 분? 아, 이 영화가 의외로 그렇게 많이 없네요. 훨씬 대중적이고 좀 당대, 지금으로 치면

블록버스터 영화이죠. 지금 여기에 꼽은 영화들 중에는 아까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나 뭐 저기, 이 브레이브하트 *** 이건 그냥 이야기를 좀 들어가기 위해서 좀 짧게 설명을 드린 영화들이라서.

브레이브하트 같은 경우도 당시에 제가 봤던 영화 중에 굉장히 강한 인상, 아마 제가 봤던 첫 번째 블록버스터에 가까운 영화였던 것 같고요. 역사 실화, 지금 우리 좀 유행하고 있는 영화들? 뭐

밀정이라든지 아니면 작년에, 재작년인가요? 그 명량이라든지 역사 실화, 실존 역사를 바탕으로 해서 재구성한 영화들에 가까운, Epic 장르인 거죠. 굉장히 큰 방대한 전투신이 나오고. 그런데 나중에

이제 지나고 나서 제가 좀 영화에 대해서 알고 공부를 하고 나서 나중에 이 영화에 대한 평가를 들었을 때는 굉장히 당황했어요. 왜냐면 당대 나왔을 때도 그렇고 실제 평론가들 사이에서나 뭐 이렇게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안 좋은 영화 중에 한 편이거든요. 역사를 되게 굉장히 많이 왜곡하기도 했고 이 멜 깁슨이라는 배우, 혹은 감독으로서의 멜 깁슨?

제작자로서의 멜 깁슨이 늘 듣는 비판 중에 하나인데 굉장히 좀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풀어나가긴 해요. 확실하게. 예를 들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같은 영화도 사실 스토리 라인은 단순한 우리가 정말 잘 알고 있는 예수님의 그 마지막, 그 또 다른 신자의 그

16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Sequence를 그냥 영화로 한 건데 그거를 지나치게 잔혹하게 하고 지나치게 자세히 묘사했다는 걸로 선정성으로 되게 좀 이렇게 비판을 많이 받았었고 혹은 뭐 아포칼립스 같은 경우도

***(00:20:27) 어떤 *** 너무 지나치게 잔혹하게 묘사를 한다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지금 브레이브하트도 지금 보면 되게 그냥, 되게 평범해 보이는 역사에 가까운데 당시에 이 영화 나왔을 때 이 영화의 표현 수위나 아니면 전투 장면이나 뭐 멜로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나 이런 것들이 굉장히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다, 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렇기 때문에 대중영화로써의

파급력은 훨씬 더 크죠. 이 브레이브하트는 스코틀랜드의 독립 영웅, 윌리엄 월리스라는 사람에 관한 일대기를 다루고 있는데 이런 영화 같은 경우는 어쨌든 드라마, 멜로드라마를 넣어야 되기 때문에 뭐 약간의 그 역사에 변형을 가하죠. 이 드라마에서 가장 큰 변형은

뭐냐면 이 윌리엄 월리스라는 사람이 독립운동을 하게 된 계기, 그 중간에 일어난 로맨스인데 이 사람이 독립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자기 아내를 뺏겨서 그래요. 당시에 이제 잉글랜드 귀족들이 초야권이라는 걸 발동을 하는데 뭐냐면 거의 이 식민지에 살고 있는 스코틀랜드 주민들은 결혼을 하면 신부의 첫날밤을 영주에게 바쳐야 돼라는 그런 제도가 있었다고 하네요. 그 제도를 발동을 해서 이 윌리엄 월리스의 첫사랑을 데려가서, 결혼한 아내를 데려가서

강간을 하고 아내가 결국 그 과정에서 이제 죽고 그래서 그거에 대한 복수를 시작하는 거예요. 이 사람은. 복수를 하는 와중에 잉글랜드의 여왕은 또 이 윌리엄 월리스를 사랑하게 되고 이상한 삼각관계들이 벌어지는 거죠. 그런데 이게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하고 힘 있는 축인데 사실은 그게 가짜거든요. 실제로는 윌리엄 월리스 같은 경우는 집안 자체가 되게 귀족 집안이기도 했고 친잉글랜드파 출신의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고요. 초야권이라는 건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이후에 이제 생긴

제도였다고 하고 그리고 이 소피 마르소가 이사벨라 여왕으로 나오는데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우시지만 이때는 거의 미모의 절정을 달리는 시기의 배우죠. 소피 마르소가 이 윌리엄 월리스랑

11월 23일, 송경원

17


사랑을 나누는 이사벨라 여왕으로 나오는데 실제로, 실제 기록대로 하면 이 윌리엄 월리스가 활동, 독립운동을 할 때 이사벨라 여왕의 나이는 한 9살 정도예요. 그러니까 맞지 않는 거죠. 그런데 그런 로맨스라는 요소, 드라마에서 굉장히 강력하기 때문에 이

드라마에서 굉장히 강력한 축으로 작동을 하고 일부러 이렇게 좀 자극성? 혹은 설득력을 위해서 끼워 넣은 거죠. 그래서 이렇게

나중에 알고 나서는 되게 환상이 깨지는 측면이 많아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제가 가장 충격 받았던, 아니면 계속 안 잊히는 장면

중에 하나는 이 윌리엄 월리스의 마지막 최후를 그리는 장면이에요. 중간에 인물의 동력, 뭐 독립운동을 하게 된 원인, 이유, 이런 것 전부 다 뭔가 로맨스와 사랑으로 포장을 했지만 어쨌든 이 스코틀랜드의 독립운동을 이끌려고 했던 이유는 자유권, 자유

시민으로 살고 싶다는 거예요. 정말 마지막에 갑자기 자유를 막

울부짖기 시작해요. 마지막에 이렇게 고문당하는 장면인데 이 그

동료의 배신으로 잉글랜드군에 잡혀서 이제 고문을 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이제 고문을 당하는 장면에서 어차피 사형은 사형이에요. 무조건 사형을 받는데 조금 더 편안하게 죽을 수 있으니 왕한테 자비를 바래라라고 해서 자비라는 한마디를 하면 그냥 단칼에 죽여줄게라고 하면서 계속 고문을 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영화에서도 고문 장면이 꽤 길게 나와요. 긴 고문을 하면서 제일 마지막에 이 남자가 내뱉고 이제 떠나게 되는 말이 자유라는 말을 하고 떠나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 이 장면도 굉장히 감동이 있긴 하지만 저는 약간 재미있었던 게, 이게 꽤 오래 기억에 남았던

이유가 영어 그대로 하면 Mercy라고 이야기해라라고 하다가

마지막에 Freedom이라고 외치고 죽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게 자막으로 하면 자비라고 이야기를 하라고 하고 그다음에 자유라고 외치는 거잖아요. 그게 약간 라임이 그게 훨씬 맞는? 그리고 저는 그 자막과 원어의 차이가 되게 오히려 이 영화에서는 좀 인상 깊게 남았어요. 자비, 자비 하다가 자유로 바뀌는 그 순간이. 되게 이상한 부분에 꽂힌 거죠. 여하튼 이 영화도 저한테는 이 한 장면이 크게

기억에 남아요. 사실 되게 많은 오류와 혹은 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18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연출과 비평적으로 접근한다고 하면 발굴해서 오랫동안 기억될만한 영화는 아닐 수도 있지만 저한테는 굉장히 오래 기억에 남는 영화였던 거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쇼생크 탈출인데 지금 좀

이야기해드리는 건 약간 제 영화적인 체험에 관한 거예요. 첫 번째는 영화관이라는 거에 대한 체험이었었고 두 번째는 이 자막, 번역된 영화들에 대한 어떤 약간 이상한 체험을 했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사실은 이거는, 이 영화 쇼생크 탈출 같은 경우는 지금도 여러분 보는 영화 중에 한 편인데 어쨌든 저희는 영화를 평가해서 ***(00:26:13)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짧게 좀 다른 이야기를 드리면 영화평론가랑 영화기자의 가장 큰 차이는 아마 질문을 누구한테 하는가, 인 것 같아요. 영화기자 같은 경우는

영화를 보고 들었던, 들 수 있는 의문들? 저 장면 어떻게 찍었지? 이 장면의 의미가 뭐지? 하는 것을 배우나 감독들이나 제작자들에게 질문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영화평론가 같은 경우는 그 질문을

자기한테 하는 거거든요. 내가 들었던, 나는 이게 왜 재미있지? 저

장면 왜 거슬리지? 라는 질문을 자기한테 해서 이야기하고 설득을

시키면 좋고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설득 안 돼도 상관없어요.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고 이야기하는 거거든요. 네. 어쨌든. 그러다 보니까 영화기자 같은 경우는, 아, 네. 감사합니다. 소리가 ***(00:27:08) 아, 네. 좀 작게 이야기해도 되겠네요. 제가 사실 목소리가 되게 큰 편이 아니라서 ***습니다. 어쨌든, 네. 영화 평가를 할 때

영화기자들이 별점 매길 때 기준은 취향도 반영이 돼요. 그런데

기본적으로는 완성도예요. 기계적인 완성도가 얼마나 되는지. 혹은 이야기가 얼마나 정교한지. 소위 말해서 말이 되는지가 중요하죠.

그런 측면에서 따지면 쇼생크 탈출은 아마 제가 본, 제일 첫 번째로 본 제일 완벽에 가까운 영화인 것 같아요. 좋은 영화, 혹은 뭐 잘 만든 영화, 올바른 영화, 단어가 다르니까. 좋다, 잘 만들었다,

올바르다, 단어가 다르니까 그런 기준이 다 다를 거예요. 어쨌든

좋은 영화라는 기준을 놓고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저는 2번 이상 볼

수 있는 영화들인 것 같아요. 이게 잘 만든 영화랑 겹칠 때도 있고 안 겹칠 때도 있지만 제일 못 만든 영화는 뭐냐면 하나를 이야기할 때

11월 23일, 송경원

19


하나만 표현을 하는 거예요. 나는 널 싫어해, 라는 감정을 표현할 때 뭐 대사를 한다든지 아니면 두 인물의 어떤 상황을 보여준다든지 하나만 이야기를 하는 거죠. 예를 들면 지금 딱 떠오른 영화가 왕의 남자 같은 영화인데 왕의 남자가 뭐 되게 훌륭한 영화라는 게 아니라 이 영화는 최소한 되게 다중적인 영화예요. 텍스트에 ***다고 하죠. 뭐 그냥 단순한 역사물로 보시면 역사물로 볼 수도 있고 당대의 어떤 정치적인 생각을 보려면 볼 수도 있고 아니면 이준기 씨가 뜬 것처럼 약간 브로맨스 같은 그런 *** 것들로 이걸 연결 해볼 수도 있고. 자기가 읽고자 하는 바에 따라서 다르게 읽힐 수 있는 층이 있는 영화들이에요. 그래서 그런 영화들 같은 경우는 그 장면이 그 장면만 지시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2번 봤을 때, 3번 봤을 때 뭔가 다른

개성들이 반응하는 거죠. 다른 느낌들을 받을 수 있고. 여러 번 봤을 때 좋은 영화가 저는 잘 만든 영화고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쇼생크 탈출 같은 경우는 아마 제 기억에는 제가 가장 많이 본 영화인 것 같아요. 가장 여러 번 봤던 영화고. 이미 대사부터 장면까지 모든 걸 다 외울

정도인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다시 보면 또 다른 느낌이 나는. 영화를 보고 어떤 느낌이 난다는 거는 이렇게 단순하게 그 영화랑 나만의 관계는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아까 극장 이야기도 했고 어떤 시점에 보느냐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말씀드린 것처럼, 이를테면 제가

이걸 고등학교 때쯤에 봤는데 이 영화를 봤을 때 어떤 드는 느낌, 지금 만약에 케이블에서 틀어줘서 다시 그냥 봤을 때 느낌은 그때 고등학교 때 봤던 느낌이랑은 다르겠죠. 그런데 고등학교 때 봤을 때 들었던 느낌들이 또 생각이 나요. 그걸 계기로 해서. 그래서 특정

계기, 뭐 그다음에 장면이 돼도 괜찮고 전체 스토리가 돼도 괜찮고 특정 어떤 되게 자극요소들도 자기의 개인적인 체험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 그런 영화들이 아마 여러분 추억과 관련된 영화들인 것 같고. 쇼생크 탈출은 그런 의미에서는 되게 다양한 요소들로

짚어나갈 수 있는, 다양한 결들을 넣을 수 있는 폭이 넓은 영화였던 것 같아요.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정말 잘 만들었어요. 잘 만들었고 되게 대중적이에요. 사실, 이야기 자체는. 대중적이고, 여기서

20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대중적이라 함은 뭐 좀 이렇게 비하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소위 말하는 감정을 굉장히 효과적으로 이끌어낸다는 거죠.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기승전결, 뭐 이런 비디오아트나 대안영화들에서는 그걸 깨부수려고 하는 건데 반대로 이야기하면 그 공식들을

100년? 아니면 뭐 몇 십 년 동안 쌓여왔던 국가적인 그런 편견에

맞춘 공식이라는 거거든요. 그만큼 힘이 있는 공식이라는 거죠.

증명이 된 공식들인 거고요. 모든 걸 다 그렇게 했을 때 재미없다는

거지만. 어차피 그 공식에 거의 완벽한 균형점이 있는 영화들을 보면 누가 봐도 재미있어요. 그런데 이 영화 같은 경우는 거의 그런

균형점을 찾는 영화 중에 1편이고 할리우드 시나리오들 공식들 보면 요즘에는 또 안 그렇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시나리오

***(00:31:23) 같은 걸 보면 어느 정도까지 이게 정교하게 공식적으로 가냐, 라고 하면 몇 신에 한 번 웃음이 나와야 되고 몇 신에 한 번 *** 바뀌어야 되고 Trickster라고 해서 몇 신에 한 번 상황을 변화시켜주는 뜬금없는 캐릭터가 나와야 되고 몇 신에 한 번 전체 상황을 한번 말로, 혹은 대사든 문자든 한번 설명해줘야 되고

뭐 그런 것들이 그냥 수치화되어 있거든요. 수치화되어 있을 정도로 좀 어떻게 보면 찍어내는 영화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 수치화시킬 수 있는 기준은 이렇게 잘 만든 영화가 1편 나와야 돼요. 그걸 기준으로 관객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고 하는 거거든요. 되게 잘 만든

영화이고 정교한 이야기이고 이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던 영화인데 뭐 ***(00:32:08)이나 명대사 이런 것들도 굉장히

많지만 뭐 다들 이야기하는 이 장면으로 아마 기억을 할 거예요.

마지막에 이 탈출을 해서, 이 팀 로빈슨이 탈출을 해서 이 자유의 순간을 만끽하는 이 장면이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도록 기획이 된 영화예요. 물론 저도 이 영화의 이 순간을 보고 되게 해방감 같은 걸 느꼈죠. 왜냐면 이때까지 그 교도소에서

핍박 받았던, 혹은 억울하게 이렇게 죄를 갖고 살아왔던 걸 한 방에 해결해주는 장면, 이거 소위 말하는 카타르시스라는 게 당연히

나오는 장면인데 개인적으로는 저는 이 영화에서 제일 꽂혔던 장면, 혹은 계속 기억에 남는 장면은 지금 이 장면이거든요. 이게 어떤

11월 23일, 송경원

21


장면이냐면 처음으로 이제 팀 로빈슨이 은행원이었다가 억울하게 이제 옥살이를 하고 있는 거니까 적응을 못하잖아요. 계속 배척을

당해요. 왕따를 당하다가 처음으로 이제 자기 의견을 표출하고 뭔가 이 집단에서 끼기 시작하는 장면이거든요. 이 교도소 죄수들을 이제 강제 노동을 시키는 거죠. 이 교도소장이. 무임금으로. 그 이제 임금을 착취를 하는 건데 어쨌든 이 빌딩인가 건물 옥상에 페인트칠을 하는 거예요. 저는 이걸 경험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굉장히 힘든 작업으로 나와요. 여기서는. 왜냐면 한낮 땡볕에 이

되게 화학약품 냄새를 맡으면서 쉬지도 못하고 이 일을 하는 거니까. 그런데 아침에 재소자들이랑 노동을 하는 와중에 이 옆에 간수가 막 그런 회계 관련된 업무로 고민하는 이야기를 듣는 거죠. 그래서 옆에 가서 조언을 해요. 이 팀 로빈슨이. 이 조언을 하는 게 목숨 걸고

하는 거거든요. 이 앞에 나온 장면들을 보면 조금만 뭔가 거슬리거나 아니면 원칙에 어긋나도 정말 호되게 두드려 패고 독방에 집어넣고 이렇게 하는 분위기기 때문에 이때 되게 용기를 내서 조언을 하고 그렇게 하면 됩니다, 라고 얘기를 해주죠. 그러니까 간수가 이제 못 들었던 이야기, 자기한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고마운

거예요. 그래서 네가 원하는 거 뭐든지 하나 해줄게라고 해서 이 팀 로빈슨이 원하는 거를 이야기하는데 앞에 스토리를 정리를 해서 보면 뭔가 개인적인 보호를 요청을 하거나 방을 바꾸어달라거나 뭐 이런 걸 할 것 같거든요. 그런데 뜬금없이 이 일을 할 때 맥주를

1병씩 동료들에게 달라고 해요. 그런데 이때 동료라고 하는 대사도 저는 되게 와 닿았고. 왜냐면 자기를 계속 괴롭히는 사람들이었거든요. 동료들한테 맥주를 1잔씩 주십시오, 라고 해서 지금 이 장면은 뭐냐면 저 구석에서 이제 맥주를 동료들이 먹고 있고 자기는 그걸 먹는 걸 보고 있는 거예요. 되게 흐뭇하게. 그런데 이 표정이 잘 안 잊혔어요. 이게 어떤 느낌이었냐면 나중에 이제 팀

로빈슨이 직접 그 이야기를 하지만, 영화 중간에 그 이야기를 직접

하기도 하는데 되게 자유인이 된 거 같은 느낌인 거죠. 내 집 옥상에 페인트칠을 하고 친구들이랑 같이 일하고 친구들한테 술 1잔 쏘는 거 같은 느낌. 그런데 사실 전혀 그런 게 아닌 거죠. 재소자이고

22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감옥에 갇혀있고 이 일이 끝나면 다시 감옥으로 들어가서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되는데 이 한 순간 그런 느낌을 주는 일을 내가 했다는 거에 되게 만족을 하는 거예요. 이 장면이 저한테는

개인적으로 되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는 이유가 뭐랄까? 뭐에

대해서 어떤 ***(00:35:45) 어떻게 봐주고 하는지에 대한 문제? 사실은 팀 로빈슨이 처한, 이 재소자가 처한 상황은 아무 것도

바뀌는 게 없어요. 그 뒤에는 점점 안 좋아지죠. 안 좋아지는 게

뻔한데도 불구하고 이 한 순간 내가 되게 작은 내 자유, 내 능력으로 다른 사람한테 뭔가를 해줬다는 거에 되게 뿌듯한, 혹은 자유의지

같은 걸 느끼는 거예요. 처해있는 상황과 별개로 어떤 순간에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는 정말 자기 선택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이 영화를 보면서. 이 장면에서. 그래서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되게

뭔가, 왜 예전에 유병재 씨 맞죠? 코미디언. 네가 더 힘든 걸 안다고 내가 덜 힘든 거 아니다. 뭐 그런 인터넷 명언 같은 걸 했었잖아요? 그 말이 확 꽂히기도 했는데 또 반대로 이야기하면 내가 더 힘들긴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구나인 거거든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은 사실 되게

진부하죠. 뭐 착하게 살아라, 와 똑같은 맥락으로 하나마나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 영화, 특정 영화들을 보는 이유는 그런 것

같아요. 그런 진부하고 뻔하고 하나마나한 이야기들이 나한테 와서

꽂히는 순간이 있어요. 그게 갑자기 이해되는 순간. 그런데 저한테는 적어도 이 장면이 그런 장면에 하나였던 것 같아요. 아, 이렇게 내 마음 먹기에 따라서 지금 이 상황이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구나,

라는 걸 저한테는 개인적으로 되게 와 닿게 해줬어요.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어요. 그런데 꼭 이 영화가 아니라도 어떤 영화에서

어떤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정말 본인의 경험? 혹은 선택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앞에 3개는 그냥 이렇게 이야기를 좀 들어가는 거였고 본격적으로 제가 좀 이야기, 이 영화들을 한번 추천이랄 건 없지만 봐도 여러분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드는 영화들을 좀 몇 편을 가져왔는데 우선은 귀를 기울이면이라는 영화는요. 혹시 보신 분? 거의 없으시네요. 지브리

11월 23일, 송경원

23


애니메이션 아시죠? 지브리스튜디오 애니메이션이고 우리 흔히

지브리라고 하면 미야자키 하야오를 떠올리잖아요. 심지어 미야자키 하야오는 지금 은퇴를 하셨는데 얼마 전에 다시 복귀하신다고 또 발표를 했어요. 재밌는 건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감독이 은퇴를 하고 복귀 선언을, 은퇴 번복을 하고 복귀 선언을 한 게 이번이 다섯 번째예요. 계속 복귀 선언을 하는 거예요. 이분은 아마 90년대

중반부터 은퇴한다, 라고 하셨거든요. 지금 나이가 굉장히 많으신 것도 있지만 어쨌든 후대에 뭔가 물려주고 자기는 회사에서 물러나고 싶다는 말을 누차 했어요. 누차 했는데 복귀하고 만든 게 원령공주, 뭐 복귀하고 만든 게 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일본

박스오피스에 가장 기록될만한 영화들을 계속 만들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강제로 복귀한 거거든요. 본인이 계속 영화를 만들고 싶은 것도 있겠지만. 뒤를 받쳐줄 후대? 혹은 후계자가 없어서 늘 나오고 있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미야자키 하야오 후계자가 누구냐? 라는 이야기로 계속, 지금 일본 애니메이션은 후대가 없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거든요. 그런데 아마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감독의 첫 번째 후계자로 거론된 사람이 이 영화의 감독일 거예요. 이 귀를 기울이면은 콘도 요시후미라는 일본 감독이 만들었는데 이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고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사실 그래서 이 지브리스튜디오의 후계가 갑자기 끊긴 거기도 한데 저는 저 개인적으로는 지브리스튜디오에서 만든 영화 중에 가장 제가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하고 미야자키 하야오라고 하는 상징되는 지브리스튜디오의 어떤 스타일들이 있죠? 꼭 작가가 아니어도 주제들. 혹은 뭐 예를 들면 뭐 원령공주를 대표, 원령공주나 천공의 섬 라퓨타 같은 애니메이션들을 예로 들면 자연친화적이고 생태주의적이고 그리고 뭐 일본 고대? 일본

고대라고 하면 약간 그럴 수도 있지만 어쨌든 문명을 버린 사회로 돌아가자. 그리고 약간 어린이들의 동심 쪽에도 분위기가 맞춰져있는데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같은데 어른들도 볼 수 있는 이유는 그 ***(00:40:10) 있는 메시지가 되게 생태주의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거든요. *** 생태주의, 이런 것들이 미야자키

24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하야오를 이야기할 때 늘 나오는 코드 중에 하나예요. 반대로

이야기하면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다 약간 그런 식이죠.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한. 그런데 이 귀를 기울이면은 굳이 장르로 따지면 약간 성장담? 성장영화에 가깝고 어떻게 보면 되게 심심한

이야기예요. 이야기의 전체 스토리는 중학생 여학생이 자기 진로

고민을 하는 거거든요. 나중에 내가 뭘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아직

못 정하고 고민을 하다가 뭐 이 앞에 자전거 타고 있는 남학생, 지금 여기도 영상 나오죠? 이 첫 번째 위에 있는 이 영상이에요. 이 남학생은 학교를 안 다니고, 학교를 안 다니고 바이올린

장인이거든요. 그 바이올린 제작하는 집단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인 거예요. 그래서 이 여학생이 볼 때는 되게 신기한 거죠. 이 학교도 안 다니고 불안한데 바이올린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걸 만들고 있는 학생이래라고 하니까 되게 신기한 거예요. 이 여자 중학생이 여름방학 동안 그 바이올린 공방을 왔다 갔다 하는 이야기예요. 이야기 스토리 라인은. 그게 다예요. 그리고 왔다 갔다 하면서 이제 원래는 책을 좋아하는 여학생인데 내가 얼마만큼 책을 좋아해서 이걸 파서 어떤 걸 할 수 있을까 ***(00:41:34) 아마 우리가 진로고민할 때도, 저 같은 경우도 그랬는데 그 정도인

거예요. 되게 정확하게 나는 이거이거 해야지가 아니고 좋아하는 걸 조금씩 좁혀나가는 거거든요. 이를테면 나는 수학보다는 국어가 좋아. 뭐 국어 중에 읽는 것보다는 쓰는 게 좋아. 뭐 쓰는 것중에 소설을 창작하는 것보다는 평론하는 게 좋아. 뭐 이런 식으로

좁혀나가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 여학생은 그냥 내가 책을 읽는 게 좋아의 단계에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여름방학에 도서관을 이렇게 다니는 와중에 도서관 다니는 길에, 길 중간에 있는 이 바이올린

공방을 알게 되고 바이올린 공방을 이 남학생도 알게 되면서 계속 다니고 그러다가 이제 나도 뭔가를 해봐야겠다. 자기 고민을 하면서 중학생 때부터 정해놓고 가는 아이를 보고 자극을 받아서 뭔가 해봐야 되겠다라고 해서 여름방학 동안 소설 1권을 완성하자라고 해서 소설을 쓰는 이야기거든요. 그래서 중간중간에 이 영화에 판타지적인 화면이 나오는 거는 그 자기 소설 속에 이야기를

11월 23일, 송경원

25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해줘요. 나중에 실제로 이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이 소설을 그대로 영화로 만든 게 고양이의 보은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있어요. 거기 나오는 이 이야기가 이 소녀가 쓴 이야기, 고양이왕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서 이렇게 만든 건데 지금 이 장면이 사실 지금 나오는, 마침 이 장면이 나오고 있는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 중에 하나거든요. 이 영화가 제 인생 영화 중에 1편이 된 이유는 물론 뭐 완성도, 주제적인 측면, 아까 말씀드린 콘도 요시후미라는 감독의 지브리에서의 위치, 다양한 측면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지금 이

공방을 찾아가는 골목길을 찾아가는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최근에 그 너의 이름은이라는 일본에서 크게 히트를 친 애니메이션이 있는데 그런 식의 일본 애니메이션들의 어떤 경향, 가장 중요한 경향 중에 하나는 이 골목길? 혹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 동네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탁월하거든요. 보통 애니메이션을 우리가 그린다고 하면 상상의 세계를 그리니까 뭐 이런 배경이나 사이트는 그냥 가볍게 그릴 것 같잖아요. 있음직한 동네를 그릴 것 같은데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특징 중에 하나는 무조건 있는 곳을 그려야 해요. 그러니까 실제로 있는 모델들을 가장 정밀하게 묘사를 하는 방식이거든요. 그런데 있는 곳을 그림으로 그렸을 때 드는 되게

색다른 느낌. 내가 알고 있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저걸 그림으로

그렸을 때는 전혀 다른 곳을 모험하고 있는 느낌이거든요. 그런데 이 중학생 여자아이가 내가 맨날 다니던, 도서관을 다니던 길이 아니라 뭔가 다른 옆길로 한번 가보는, 그게 저는 제가 기억하는 가장 큰 모험 중에 하나였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 저는 맨날 다니던

등산로길에서 약간 루트를 바꿔서 옆쪽 동네로 한번 집으로 왔을 때 완전 생경한 느낌. 뭔가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 그게 말

그대로 다른 세계? 판타지 세계? 혹은 내가 가지 못한 길을 통해서 보여주는 색다른 모험? 가장 큰 일상에서 할 수 있는 모험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 영화는 그 과정을 보여줘요. 실제로 이 소녀가 내가 안 가본 길을 사실 저 고양이 따라 간 거거든요.

고양이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가다 보니까 공방이 나오는 거예요.

26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그런데 그 길을 걸어가는 방식이 어떻게 보면 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닮기도 하고 실제로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경험, 할 수 있는 것 같은 모험에 가까운 느낌이 드는 거예요. 전혀 못 봤던

이웃집 골목길을 봤을 때 드는 생경한 느낌. 익숙하지만 완전 새로운 느낌들을 이 영화는 주고 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그런 과정들을

되게 잘 묘사하고 있고 그런 좀 떨림? 낯섬과 떨림의 느낌이 중학생, 여중학생, 자기 인생의 즐거움을 아직 못 정한 여중학생의 진로를

결정하는 과정이랑 겹쳐져서 되게 좀 풍성한 느낌을 자아내는 거죠. 이런 특정 영화에 어떻게 감정이입 하는가는 각자의 어떤 경험,

인생의 경험에 따라서 루트가 다른 거예요. 저는 제가 중학교 때쯤에 이 영화를 애니메이션을 봤었고 사실 중, 고등학교 때쯤에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불법이었거든요. 국내에서 상영을 못하는, 정식으로 수입이 안 되는 단계였어요. 그래서 불법적인 통로, 제 고향은

부산인데 부산에서는 약간 그런 게 있었어요. 일본 애니메이션, 뭐 거의, 거의 당일 수급인데 비디오 떠서 그 배를 타고 갖고 와서

보수동 책방골목이라고 있어요. 보수동에 그런 비디오를 불법적으로 운영하는 곳이 있었어요. 거기서 이제 사서 본 거죠. 약간 그런

뭐랄까? 카드캡터 체리? 아니면 에반게리온? 굉장히 소년물에

가까운 걸 주로 보다가 이걸 보고 약간 충격을 받았죠. 내 이야기

같기도 하고. 어른들이 보여준 내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되게 뭔가 인상 깊었던 작품 중에 하나였던 것 같아요. 이 작품은 어린 시절 추억? 그냥 단순히 우리가 말로 할 때 어린 시절 추억이랑 내가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어린 시절 추억이 다 다를 텐데 되게 구체적인 어떤 인상적 느낌들을 준다는 한 번쯤 보셔도 좋을 것 같고요. 뭐 지금 이 화면에 띄워놓은 것처럼 뭐 골목길, 다 아는 골목길, 아니면 익숙하지만 이 대사가 아마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제가 느끼는 ***(00:47:10) 거죠. 늘 다니던 동네에 늘 다니던 길인데 이런 길이 있을 줄 몰랐어. 그게 어쩌면 조금 확대 해석하자면 인생에서의 어떤 길인 것 같기도 해요. 우리가 늘 이

루트로 가야 된다. 이게 안전한 루트다. 이게 맞는 길이다라고 학습 받아온 길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약간만 용기내서 옆으로 가보면

11월 23일, 송경원

27


전혀 다른 것들이 있는 거죠. 내가 몰랐던. 그런데 그런 거를 알려면 옆으로 한번 가봐야 된다는 것, 뭔가 다른 걸 해봐야 되고. 그게 이 영화에서 가장 주는 큰 교훈인 것 같고 그게 가능한, 옆으로 한번 갔다가 이 길이 아니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게 아마 학창시절, 혹은 뭐 이런 성장 과정에 있는 시절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짧게 그냥 노래를 틀어드리려고

하는데. 이게 주제곡이에요. 지금 이 이런 화면들이 이제 소녀의

상상속에서 벌어지는 소설 이야기인 거죠. 애니메이션으로도 굉장히 영리한 게 이런 일상적인 이야기들 위에 그것만 깔아주면 재미없잖아요. 그 위에 이제 판타지적인 장면은 이 소녀의 상상력을 통한 소설로 구현하고 있는 거예요. 이것 정지 좀. ***(00:49:34) 방금 그걸 약간 들려드린 이유가 아까 처음에 어떤 영화는 장면,

화면으로 기억을 만들었는데 이 귀를 기울이며 같은 경우에 저는 음악으로 기억이 나는 것 같아요. 저 컨트리 로드라는 음악이 사실

원래 있는 외국의 팝송이죠? 미국 팝송을 그대로 이제 옮겨왔는데 일본어로 발음했을 때 특유의 발음이 있잖아요. 그 방금 들으신 것처럼. 일본인들이 하는 영어 발음에 이 노래 가사가 사실 이

영화의 주제에 거의 부합하는 이야기들이거든요. 가보지 않은 길로 한번 가보자. 이런 가사인데 그 노래가 이 영화를 기억하게 해주는, 저 같은 경우에는 약간 촉매? 매개 역할을 하는 거예요. 저 노래를 들으면 영화에서 봤던 특정 장면들이 막 뮤직비디오처럼 생각이 나요. 노래로 기억되는 영화 중에 하나인 영화, 이 노래를 잠깐

들려드렸고요. 어떤 영화들은 그렇게 해서 기억이 되는 거 같고 어쨌든 여기까지는 제 정말 개인적인 체험과 관련된 영화들을 조금 이야기를 해드렸고 이제 그렇게 영화를 보다가, 그렇게 나한테 좀 더 와닿거나 꽂힌 영화들을 주로 보다가 이제 조금 머리가 굵어져서 뭔가 의미가 있는 영화들을 찾아보기 시작을 하죠. 그렇게 했을 때 제일 처음 제가 받았던, 충격을 받은 영화가 이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이라는 영화인데 처음으로 국제영화제에서 본 영화예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봤는데 제 기억에 아마 이게 1회인가 2회인가 정확히, 하여튼 1, 2회 중에 하나였던 것 같아요. 1, 2회 중에

28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하나에 이 영화제라는 곳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서 이제 영화를 봤는데 영화제가 여러분 가보신 분들 알겠지만 이런 대중상업영화들보다는 좀 소개가 덜 되고 다양성, 지금 우리로 치면 다양성영화라고 하는 예술영화들 위주로 상영이 되잖아요. 그중에

1편이겠죠. 이 바흐만 고바디라는 이란 감독님의 영화고요. 사실

이란영화가 국내에 이렇게 알려지기 시작한 게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어요. 혹시 이란영화 한번, 아랍영화라고 생각한 영화 중에

1편이라도 보신 분? 본 거 있으신 분? 뭐 어떤 영화를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제목. ― 청중 2 그 케이티1453이란 영화를 본 적 있습니다. ― 송경원 기자 케이티?

― 청중 2 예.

― 송경원 기자 아, 저는 못 본 영화입니다. (웃음) 어디, 어디 영화였어요? ― 청중 2

오스만 투르크가 그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고 유럽이 이제 근대로 들어가는 영화인데요. 우리가 그 아랍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바꾸어주는데, 새롭게 바꾸어주는 게 아니라 아랍에 대한 인식을 좀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그런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 송경원 기자 네. 지금 이 영화도 아마 그런 영화들 중에 1편일 거예요. 우리가 영화제라는 거의 존재의 의미 중에 가장 큰 거는 물론 상업적으로 이야기하면 영화제는 할리우드랑 다른 마켓 중에 하나예요. 할리우드 영화랑 다른 영화들을 우리끼리 한번 융통해보자라는 마켓의 의미가 가장 큰데 그 마켓을 유지하기 위해서 해야 되는 가장 큰 ***(00:53:07) 뭐냐면 다른 영화들을 보는 거거든요.

11월 23일, 송경원

29


우리가 할리우드 영화 말고 다른 영화들을 보자라고. 이때 다른

영화들이라고 하면 할리우드 영화가 Global cinema라고 하면, 그러니까 할리우드 영화는 특정 나라의 관객을 상징하는 영화들이 아니에요. 어느 나라, 어느 사람들이 봐도 비슷한 느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영화가 목표인 거죠. 그런데 이런 National

cinema라고 하는 영화들. 그러니까 자국의 어떤 정서들을

이야기하는 영화들은 사실은 자국민들이 아니면 완벽하게 이해하기 힘든 정서들을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영화들은

또 그런 특성 때문에 외국에 이렇게 자주 소개되기는 힘들죠. 그

역할을 하는 게 소위 말하는 영화제들인데 우리, 우리 입장에서는 되게 기분 나쁜 이야기인데 서양의 서구영화 산업자들 같은 경우는 발굴을 한다고 해요. 아시아영화의 발굴. 뭐 일본영화의 발굴.

이게 순서대로 가는 거죠. 일본, 60년대 일본영화에 대한 발굴이

있었으면 70년, 80년대쯤에는 지금 중국의 ***(00:54:07) 감독, 장이머우 감독이나 이런 영화들에 대한 발굴을 하고. 그러니까 그걸 순서대로 하는 거예요. 지금, 지금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갔지만

어쨌든 아피찻퐁 같은 태국영화에 대한 발굴. 혹은 잠시 아주 정말 번개처럼 스쳐지나갔지만 한국영화에 대한 발굴도 있었고. 그런

과정들을 쭉 하는데 90년대에 주목받았던 영화 중에 하나가 이제 이란영화들이고 이 계기로 해서 이란영화들이 전 세계에 소개되기 시작해요. 그 영화 중에 1편인데 이 쿠르드족에 관한 영화거든요.

우리로 치면 아마 이게 가장 비슷한 영화가 엄마 없는 하늘 아래? 뭐 이런 영화들일 거예요. 그냥 이 영화 보면 누구나 슬퍼요. 엄청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영화예요. 너무 답답해요. 너무 그 상황이 안 돼서. 물론 그렇게 신파로 흘러가는 영화는 아니에요. 영화

전반 정서의 분위기는 오히려 좀 밝은 측면을 갖는 영화고. 이 쿠르드족의 실상을 보여주는 영화인데 이 쿠르드족 마을에 있는 어떤 소년, 그리고 소년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불치병도 아니고 되게 좀 간단한 병인데 수술을 받아야 되는데 수술 못 받게 되는 형이 있고 그 형을 수술 받게 하기 위해서 온 가족이 뭐라도 다 하거든요. 그래서 누나 같은 경우는 도시에 팔려가기도 하고,

30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강제로 시집을 가는 거예요. 수술 시켜준다는 조건으로. 그런데 늘

그렇지만 비극은 계속 되죠. 이 수술을 시켜준다는 조건으로 갔는데 수술을 안 시켜주고. 여기 있는 쿠르드족 ***(00:55:40)들은

이 강제로 이주돼있는 상태기 때문에 뭘 할 수가 없어요. 직업을 가지거나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없기 때문에 마을에 있는 폐품들을 주어서 팔거나 아니면 불법적인 일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소년이 선택한 일은 뭐냐면 이란으로, 이란에서 이라크로 밀입,

그 밀수, 밀수하는 거에 짐꾼 같은 역할을 해요. 그런데 밀수니까 위험하잖아요. 굉장히 높은 산맥을 넘어가거든요. 한겨울에.

그런데 그게 어느 정도로 위험한 일이냐면 이 제목이 왜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이냐면 그 말들이 얼어 죽는 거예요. 멈추면.

그래서 말들에게 술을 먹여요. 그 말들이 거기 안 들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안 얼어 죽게 하려고 말들을 술을 먹여서 전부 말들이 다

취해있는 상태로 산을 넘어가는 거거든요. 그런 밀수를 하는 소년에 관한 이야기인데 영화 자체는 되게 열린 결말로 가요. 영화는 뭐

결국 이라크의 국경을 넘어가는 것까지 보여주거든요. 넘어가서 밀수에 성공했는지 수술이 잘 됐는지 뭐 소년이 안정적으로 정착을 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런데 넘어가기까지 과정을 보여주는 거거든요. 제가 이 영화에 약간 충격을 받았던 것 중에 하나는, 아, 저게 진짜 저렇구나, 라는 실상을 보여주는 시간도 있지만

너무 해맑은 거예요. 이 나오는 아이들이나 연기하는 것들이나

상황이. 물론 일부러 영화적인 장치로 그렇게 그린 걸 수도 있는데 바흐만 고바디의 다른 작품들을 좀 보시면 뭔가 이렇게 극적인 장치를 꾸미는 감독은 아니거든요. 이란영화의 경향 중에 하나는

좀 Realism에 가깝다고 해야 되나요? 있는 그대로 다큐멘터리로 보여주려고 하는 상황에 가까워요. 실제로 이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이라는 영화도 실화를 바탕으로 하기도 했고. ***(00:57:31) 그런데 어쨌든 여기 나오는 아역들이 그 상황에 대한 태도, 표정,

이것도 어떻게 보면 문화적인 편견일 수도 있는데 우리가 이란이나 뭐 아니면 이집트, 아, 이집트가 아니고 아랍권에 있는 그 사진들? 아이들 사진보면 너무 그 처해있는 상황과 다르게 밝다는 느낌을

11월 23일, 송경원

31


받거든요. 눈은 정말 크고 표정에 뭔가 구김살이 없는 것 같고. 그 비극적인 상황에 처해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쨌든 나는 어떻게 될까? 우리는 어떻게 하지? 이런 큰 고민을 안 해요. 그냥 당장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겠다는 걸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건데 그 살아야겠다는 게 우리가 흔히 생각하면 밥이나 빵이나 이런 느낌일 것 같죠? 그런데 그게 아닌 거죠. 뭔가 지금 순간순간의 어떤 즐거움이나 기쁨이나 아니면 내가 지금 나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이 소녀, 동생의 뭐 어떤 웃음이나 뭐 그런 것들을 계속 끄집어내려고

소년이 부단히도 노력을 해요. 소년의 표정도 그렇고. 그런 장면들, 정서가 되게 저는 약간 충격을 받았어요. 아, 저렇게 접근할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죠. 그렇게 해서 약간 이란영화에 관심을 갖게 돼서 그다음에 본 게 이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영화인데 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라는 감독님의 영화예요. 혹시

이 영화 보신 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라는 감독 이름 들어보신

분? 얼마 전에 돌아가셨죠? 아마 올해 돌아가셨고 아마 이게 약간 그냥 수사적인 측면이 아니라 20세기 후반? 21세기 초반에 가장

중요한 Cineaste 중에 1명이세요. 영화 팬들이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Cineaste 중에 1명으로 기록하고 있고 아마 조금 관심 있으신 분은 이 사람의 경력들을 찾아보셔도 영화 공부하는데 굉장히 도움이 되실 거예요. 영화, 이건 너무 벗어난 이야기라서 좀 길게 이야기하기는 좀 그런데 영화사의 사조를 극단적으로 2개만 나누자고 하면 사실주의, 소위 말하면 Realism이랑 표현주의인

거죠. 그런데 표현주의는 뭐냐, 라고 하면 제목 그대로예요. 뭔가를 표현하는 거죠. 뭔가를 표현하는 게 중요해요. 표현주의의 사조의

끝에 있는 거는 할리우드 영화들. 뭐냐, 라고 하면 우리가 영화를 볼 때 흔히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본다는, 어떤 이야기를 보기 위해서 영화를 보는 거예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잘 전달하는 게 중요한 영화들이에요. 그래서 어떤 식으로 표현을 하든, 그게

CG든, 뭐 연극이든, 다큐멘터리든 뭐 상관없이 어떤 식이든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식들을 연구하는 영화들이 흔히 표현주의예요. 그리고 사실주의는 뭐냐, 라고 하면 약간 사진이

32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갖고 있는 속성에 주목을 하는 건데 지금은 다 사실은 무너진 상태이긴 하죠. 왜냐면 CG로 없는 것들을 만들어내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데 어쨌든 영화가 처음에 나왔을 때는 이 필름, 사진은 거짓말을 안 한다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그대로 있는 걸 찍었다.

이를테면 60년대에 뭐 어떤 뭔가를 찍었으면 그거는 연기든 뭐든

60년대의 그 순간에 그 자리에 그게 있었다는 증거인 거예요. 그런 측면에서의 Realism이거든요. 사진적 존재의 어떤 Realism? 그 자리에 그게 있다. 이거는 거짓말 아니다. 진실을 전달하는 거랑 조금 다른 측면에서, 약간 물리적인 측면에서 이야기를 드리는 건데 어쨌든 그런 Realism을 계승하는 감독들이 있어요. 그중에 1명이에요. 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라는 감독이. 그래서 이 영화의 스토리도 굉장히 단순해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예술영화라고 불리는 영화들의 스토리는 다 단순할 수밖에 없어요. 왜냐면 스토리를 전달하려고 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 스토리 위에 어떻게 표현하는가의 전달하려고 하는 건데 어쨌든 이 이야기는 이 제목 그대로 내 친구의 집을 찾아가는 거예요. 내 친구의 집을 몰라요. 이 이야기의 시작은 교실에서 이제 수업 받고 있던 학생들이 이제 맨 처음에 오프닝에 나오는데 지금 여기, 아, 아니, 아니. 저기

***(01:01:46) 아, 저기 있네. ― 사회자

지금 가장 왼쪽에 위에 있는 모니터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고요. 좀 전에 말씀하셨던 그 바흐만 고바디의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그 왼쪽에서 두 번째 맨 아래 모니터를 보시면 됩니다.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 송경원 기자 저 아래에 있는 게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이고요. 제일 왼쪽에 있는

게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 뭐 이거는 단편적으로 다 그렇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이란영화의 경향 중에 하나는 클로즈업이 별로 없어요. 우리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영화들의 특징 중에

하나는 클로즈업, 혹은 이 Bust shot이라고 하죠. 허리까지

잘라서 얼굴이나 표정들, 감정들을 묘사하는 걸 주로 보여주는

11월 23일, 송경원

33


것들인데 이 이란영화들은 지금 보시면 알겠지만 거의 대부분 Full

shot이에요. Full shot이나 Long shot. 좀 길게 잡고. 이렇게 Full shot, Long shot, Long take, 이렇게 가는 것들의 특징은 뭐냐라고 하면 최대한 조작 안 하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는 거예요. 실제로 이렇다다는 걸, 그런 느낌을

주고 싶어 하는 거죠. 물론 다큐멘터리가 아니니까 실제로 그런

건 아니지만. 어쨌든 여기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영화는 그래서 그 교실에서 이제 학생들에게 굉장히, 아, 선생님에게 학생들이 굉장히 혼나는 장면에서 시작해요. 굉장히 무서운

선생님인 거예요. 그래서 숙제를 1번만 더 안 해오면 너희는 그냥 퇴학이야, 라고 하시거든요. 그런데 이것도 약간 뒤에 현상이나

맥락이 나오는데 이 학생들 같은 경우는 학교를 다니는 게 되게 축복이에요. 한 집에 학교를 한두 명 보내는 상황인 거죠. 그러니까 학교에서 쫓겨나는 거는 정말 내 인생이 끝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선생님이 너 숙제 더 이상 안 해오면 퇴학이야, 라는 협박을 해요. 그러고 나서 이제 친구가, 주인공이 집에 오고

나니까 친구의 공책을 내가 갖고 와 버린 거예요. 옆에 있는 짝꿍의

공책을 갖고 왔어요. 그런데 학용품도 없고 필기구도 없는 상황에서 공책이 없으면 숙제를 못해 가잖아요. 그러니까 친구에게 공책을 전달하기 위해서 친구 집을 찾아가는 이야기예요. 그런데 친구의 집이 어느 동네인지는 아는데 집이 어디인지는 모르고 친구의 이름만 알아요. 그 이름만 갖고 물어물어 찾아가는 이야기예요. 그런데 그 우리로 치면 철수 정도인 거죠. 그 동네에 철수가

너무 많아. 물어물어 이제 찾아가는 이야기예요. 제목 그대로의 영화인데 그러면 이 영화에서 중요한 핵심, 서사는 뭘까요?

친구 집을 찾아갔다는 거는 그냥 아까 말씀드린 뼈대에 가깝죠?

Plot예요. 그냥. 여기서 중요한 건 찾아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 혹은 보여주는 것들이거든요. 우리 한국소설로 치면 예전에 천변풍경 같은 소설에 가깝다고 보시면 되죠. 그 찾아가는 길에 보이는 이란사회의 풍경들, 모습들, 사람들 사는 모습들이나 사람들의 반응들, 뭐 이런 것들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인 거예요. 34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그래서 사실은 되게 Realism적인 영화죠. 지금 보는, 지금 저 빨간 옷 입은 소년이 그 주인공이거든요. 이 영화의 특징 중에

하나는 전부 비전공 배우예요. 그러니까 연기자가 아니에요. 다.

실제 애들을 데려가서 이렇게 시킨 거예요. 영화를 중간 중간 보다 보면 애들이 막 카메라도 쳐다보고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니까 나한테 뭘 해달라고 막 갈구하는 표정으로 카메라를 쳐다보거든요. 그런 거까지 다 포함해서 찍은 영화들이에요. 그래서 사실 굉장히 정교한 연출이 들어가 있는 거임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

혹은 훔쳐본다는 느낌이 조금 드는 영화예요. 여기서 이야기하는

Realism이 뭔지를 조금 약간 설명해드리기 위해서 영상을 좀 짧게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거 좀, 잠시만요. 제가 ***(01:05:48) 지금 이게 이 영화의 오프닝이거든요. 수업 마치고 이제 나오는 거예요. 저 파란색 옷을 입은 친구한테 찾아가야 되는 거예요. 빨간색 옷 입은 친구가. 지금 이게 한 1분 정도 되는 거죠? Scene으로 치면 2 Scene이고 Take로 치면 2 Take를 한 거예요. 아, 1 Scene에 2 Take를 한 거예요. 대충 어떤 느낌의 영화인지 ***(01:07:39) 알겠죠? 이 느낌이 기본적으로 약간 다큐에 가깝게, 그냥 있는 걸 그대로 자연스럽게 전달한다는 느낌이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이게 얼마만큼 정교하게 연출돼있는 건지를 조금 설명을 드리면 여기서 연출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미장센이랑은 조금 틀릴 수도 있어요. 개념이. 그런데 어떻게

보면 되게 클래식한 미장센인 거죠. 미장센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화면을 만든다는 거거든요. 화면에 뭘 넣고 뭘 뺄 거다는 걸 그냥

*** 미장센인 거예요. 이 지금 화면에서의 미장센, 가장 중요한 미장센은 뭐냐, 라고 하면 저기 가운데 있는 트랙터죠. 트랙터를 중심으로 아이들이 이렇게 트랙터를 중심으로 노는 거예요. 여기서 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라는 감독의 연출은 이걸 아이들한테 미리 연기 지시를 하지 않아요. 그냥 저기 트랙터 있으니까 가서 놀아,

라고 하고 그것만 지정해주는 거예요. 아이들은 트랙터를 중심으로 뭔가를 하죠. 이 트랙터가 왜 중요하냐 그러면 화면 전체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기 때문이에요. 여기서의 주인공들은 아이들이겠지만

11월 23일, 송경원

35


어쩌면 이 트랙터가 이 화면 전체의 중심이 되고 있는 거죠. 거기서 이제 주인공 소년이 나오네요. 따라 움직이죠? 화면, 당연히 이것, 이런 시도들이 사실 기본적인 영화 연출이거든요. 인물에 따라서 카메라가 움직인다, 라고 하면 우리는 그렇게 받아들이죠. 아, 저

아이가 주인공이구나. 저 아이를 따라 가야 되는구나. 가다가 여기서 멈췄어요. 이게 지금 보시면 알겠지만 Cutting이 안 되어있어요.

Long take죠. 사실 그냥 일반적인 드라마에서는 중간에 Cutting 당할 수 있는 장면인데 안 자르고 일부러 Long take로 갔어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이 화면은 Cutting이 되어있는 거예요. 어떻게 되어있는 거냐, 라고 하면 미장센으로 Cutting을 시킨 거예요. 첫 번째 화면은 아까 트랙터였죠? 두 번째 화면은 이 화면을, 두 번째 화면을 만들어주는 중심은 양쪽의 기둥이에요. 양쪽의 기둥을 이렇게 박아놓고 이 사이를 찍었기 때문에 이게 하나의 그림, 액자로 보시면 돼요. 두 번째 그림이 되는 거죠. 달라진 그림이에요. 그 말은 뭐냐면 이 액자 사이에 멈추어 서도록 아이들한테 지시를 한 거죠. 동선을 짜고 카메라를 세팅한 다음에 너 여기, 아이들한테 연기 지시하는 거는 그거예요. 여기서 너 좀 놀다 가. ***(01:09:57) 되게 디테일한 지시를 한 건 아니죠. 그런데 감독의 머릿속에는 되게 디테일한 그림들이 들어가 있는 거죠. 두 번째 그림이 되는 거죠. 이 두 번째 그림의 효과는 그냥 자연스러운 놀이? 등굣길에? 뭐 그런 거겠죠. 그래서 당나귀랑 좀 놀다가 장난 좀 치다가. 위에서 갑자기 닭이 떨어지고. 닭은 분명히 여기 누군가 스태프가 집어던진 거죠. 저쪽으로. 이렇게 약간 동작, 우연한 순간들을 연출하기 위해서 집어던진 거예요. 이 앞 친구를 보면 계속 카메라를 쳐다보죠? 조금씩. 그리고 이제 뛰어가는 장면들 하고 여기가 ***(01:10:41) 크게 넘어져요. 이쯤에 한번 넘어져, 라고 했겠죠. 조금 디테일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여기 떨어져있는 필기구들은 원래 떨어져있어요. 저 자리에. 떨어트린 게 아니라. 세팅이 되어 있는 거죠. 주워오라는 거. 지금 계속 쳐다보죠? 그리고 이렇게 우물가에 다가가죠? 이 우물가라는 자리의 세팅은, 중심은 저 말이죠. 하얀색 말이 보이는 세팅. 3장의 여러분은 회화를 보신 거예요. 이 장면으로. 36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Cutting을 안 하고 Long take로 가는 거죠. 이 Cutting 안 하고 Long take로 가는 게 이 장면이 감독님의 연출의 스타일인데 결국 보여주고 싶어 하는 거는 뭐냐면 회화에서 우리가 멈춰진 화면을 볼 때 중심이 되는 인물들을 보지만 사실 그림에서 가장, 그림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뭐냐면 그림은 멈추어놓고 그림을 볼 수 있어요. 시간을 두고 뒤에 있는 그림을 내가 적극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영화는 따라 가야 되죠. 영화는 시간의 예술이기 때문에 스토리를 따라 가야 돼요. 그런데 이 영화 같은 경우는 최대한 그걸 안 하려고 하는 거예요. 최대한 좀 느리게

가고 멈추어서 가고 멈춘 장면 장면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은 이 영화 스토리를 따라 가다 보면 이 인물들, 이 두 꼬마,

실제적으로는 저 빨간 꼬마죠. 빨간 꼬마가 집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되지만 눈에 보이는 건 저 뒤에 있는 말, 뒤에 널어놓은 옷, 뭐

말려놓은 옷들. 할아버지. 뭐 이런 것들이 보이는 거예요. 계속 보다 보면. 그런 것들을 보여주려고 하는 영화인 거죠. 어쨌든. 지금 이, 아까 제가 처음 말씀드린 것처럼 잘 만든 영화와 못 만든 영화의 차이 중에 하나는 이 장면이 하나만 기능을 하냐, 2개의 기능을 하냐의 문제인데 이 장면 같은 경우는 지금 제가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뒷배경들을 보여주게 하는 전초적인 거죠. 나는 지금부터 이 스타일로 갈 거야라고 설명을 해주고 있는 건데 두 번째는 이 서사가 계속 반복된다는 거예요. 이 빨간 옷 꼬마가 파란 옷 꼬마를

챙겨준다. 이 아이는 계속 뭔가 실수를 할 거고 나는 계속 저 꼬마를

Care 해준다는 이 단순한 서사가 이제 90분, 100분 동안 계속 반복되는 거죠. 스토리로 치면 이 서사를 전달하는 게 목적인 거고 그런데 서사 이외의 이제 표현들, 뒤에 있는 표현들을 보면 이런 것들을 봐야 영화가 전달하려고 하는 것, ***(01:13:03) 하는 것들이 좀 더 보인다는 거죠. 아, 이거는 방금 설명을 드렸으니까 그냥 짧게 넘어갈게요. 한 3 Cut 정도로 나눌 수 있는 거예요. 영화평론가라는 사람들이 하는 거는 저런 짓을 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이 그냥 자연스럽게 스쳐지나갈 수 있는 장면들을 Cut을 나눠서 이게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지, 뭐가 다른지를 좀 설명을 11월 23일, 송경원

37


해보려고 하는 거죠. 그래서 이란영화들을 제가 뽑아온 거는

지금 이란영화를 보셔도 좋고 혹은 태국, 필리핀, 아피찻퐁, ***

우리가 CGV에서 볼 수 없는 이런 감독들의 영화들을 찾아보는 이유가 뭐냐면 그 나라의 뭔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

나라의, 그 사람들만 표현할 수 있는 것. 물론 자국민처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해요. 그런데 완전 새로운 시각의 접근이 가능한 거죠.

아피찻퐁 같은 경우를 약간 예로 들면 아피찻퐁이 되게 좋은 ***

중에 하나가 뭐냐면 기존에 Narrative 형식, 제가 계속 말씀드리는 할리우드가 만들어놓은 형식, 혹은 뭐 영화제? 우리가 흔히 3대

영화제라고 하는 그 영화제들이 만들어놓은 형식들이 있겠죠. 그

형식이랑 전혀 다른 생뚱맞은 연출법을 갖고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이 아이는 뭐냐, 라고 된 거죠. 그런데 아피찻퐁의 연출의 기반은 약간 비디오아트에 가깝거든요. 설치미술, 전시예술에 가까워요. 그 맥락에서 보면 아피찻퐁이라는 작가는 되게 쉬운 작가예요.

그런데 이 우리가 알고 있는 Narrative 형식에서 놓고 이 영화를 보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를 파고들다 보면 다른 시각들, 다른 접근들이

열린다는 거죠. 그 다양한 영화들의 가치는 그런 데 있는 거 같아요. 예를 들면 우리가 그냥 아시아영화, 뭐 중국영화, 일본영화, 뭐

이렇게 이야기는 하지만, 그리고 발굴됐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늘 있어왔던 거잖아요. 한국영화는 한국영화 100년 동안 지금

만들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어느 순간 와서 막 너희 되게 새롭다. 발굴. 이렇게 하는 거거든요. 약간 예를 들어드리면 일본영화

60년대에 되게 전 세계적으로 유행을 할 때, 영화제에서도 유행을 할 때 다다미Shot이라는 거가 유행을 했어요. ***(01:15:36) Shot인데 뭐냐면 다다미의 높이에서 본다는 거죠. 정말 단순해요. 다다미Shot이 뭐냐면 이 전체 화면이 있으면 눈, 사람 눈이 여기 있다는 거예요. 앉아서. 그러니까 이만큼이 비죠? 위에가. 이게 이상한 거예요. 이전에 서부영화의 Standard한 형식은 Bust shot이기 때문에 눈높이가 이 3분의 2 지점쯤에 있어요. 이게 되게 자연스럽고 위가 그렇게 비면 이상하다. 이쯤에 눈이 있어야 38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된다라고 했는데 일본영화들 보니까 다 눈이 여기 있어요. 이만큼 비어있는 거예요. 뭐지라고 해서 그 Shot을 다다미Shot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거든요. 저 위에 열린 공간이 되게 *** 유도를 하게 한다. 이를테면 뭐 화면이 이만큼 비어서 여백의 미가 있고 그

뒤에 있는 *** 보여주는 장식품, 뭐 이런 것들이 일본의 정원을

꾸미는 거와 비슷한 양식이다. 저게 일본식의 미장센이다. 막 이런 해석들을 쏟아내기 시작하죠. 그런데 사실 다다미Shot이 뭐냐면 그냥 일본인들 눈높이예요. 걔네는 좌식생활을 하니까 그냥 그

눈높이가 자연스럽게 보이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일본 관객들이 누구도, 아, 저 위에 있는 여백이라고 생각 안 하죠. 그냥 드라마

따라 가는 거예요. 그런데 서구인들이 볼 때는 그게 되게 참신한

형식적 기법인 거예요. 마찬가지로 이란영화들, 우리가 볼 때는 되게 참신하거나 새롭거나, 어? 다르다라고 느낄 거를 자국민들은 되게 자연스러운 거거든요. 그런데 그 다른 형식들, 나라마다 다르게 될

수밖에 없는 형식들에 대해서 탐구하는 것? 그게 아마 영화제, 혹은 뭐 이런 영화평론가들이 하는 일인 것 같고 그런 것들 찾아 나아가는 재미를 제 개인적으로 좀 느낀 것 같아요. 영화제에서. 완전 다르네? 완전 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는데? 나중에 이야기를 좀

파고들어보면 걔네는 되게 당연한 문법들인 것들을 하나씩 알게 된 거죠. ― 사회자 예. 참고로 그 말씀하셨던 태국의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 같은 경우는 저희 필름 앤 비디오 아카이브에서 다 수집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궁금하신 분들은, 여기는 이제 나와 있지 않지만 저쪽에 비디오 파트에서 언제든지 관람을 하실 수가 있습니다. 송경원 기자 네. 한번 찾아보십시오. 이게 맥락을 알고 접근하면 정말, 정말

쉬운 영화들이에요. 모르고 접근하면 이게 뭐야? 싶은 영화들이고. 오히려 그런 재미가 있는 거죠. 그 간극을 발견하는 것. 그래서

또 그냥 제 개인 경험사에 돌아가서 이야기를 해드리면 처음에는

11월 23일, 송경원

39


그런 재미있는 영화들? 혹은 나한테 어떤 간극을 주는 영화들? 기억으로 남는 영화들을 주로 이제 보다가 이런 영화들을 보고 나서 질문을 좀 하기 시작했어요. 그게 약간 어떻게 보면 지금 이쪽 길로 빠지게 된 계기인 건데 좀 다르게 볼 수 있겠구나. 이 영화는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뭐가 다르지? 라는 걸 질문하다가 그런 영화들을 좀 찾아보거나 공부를 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하다가 지금까지 흘러온 거예요. 그래서 그런 관점이 생기고 난 뒤에

저에게 이제 뭔가, 뭐랄까요? 질문을 던진 영화들에 대해서 좀 설명을 해드리려고 하는데 일단 제일 처음에 설명해드릴 영화는 데어 윌 비 블러드라는 영화인데 혹시 보신 분? 제목은 들어보신

분? 아, 그런가요? 제가 정말 정말 대중적인 리스트를 뽑아왔다고 생각했는데도 그렇지도 않군요. 아까 제가 계속 할리우드 영화를

말씀드렸죠? 할리우드 영화랑 미국영화는 달라요. 할리우드 영화는

Global target으로 한 영화들인 거고 누구나 보면 이해할 수 있는 영화들이에요. 대표적인 예로 들면 디즈니 영화들이겠죠. 미국영화는 아까 이란영화들, 일본영화들, 태국영화들, 미국인들만 이해하는 정서나 문법들? 혹은 미국에서만 만들었을 때 가치가 있는 영화들이기도 해요. 이건 미국인이 이야기하고 미국인이 이야기하고 미국인인 걸 ***(01:19:44)를 해야 의미가 있는 영화들이에요. 이런 영화들이 전형적인 National cinema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아카데미나 이런 데서는 뭐 어쨌든 주목을 받은 영화죠. 이 다니엘 데이 루이스라는 배우가 나온 영화고 미국

서부개척시대 초창기에 석유 발굴에 관한 이야기예요. 그래서

지금 현대 그 미국이라는 국가가 이루고 있는 것들. 돈, 땅, 석유,

종교. 이 4가지 결합된 이야기예요. 석유를 발굴하는 사람이 낯선 땅에 가서 이제 석유를 발굴하고 거기에 우리로 치면 되게 이상한 기독교 목사인 거죠. 막 미신에 가까운 기독교 목사가 끌고 들어오고 거기에 이제 이권 다툼이 일어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에요. 영화에 대한 스토리는 제가 정확하게 설명은 안 드릴게요. 이

영화도 되게 직관적인 면이 있어요. 그냥 보면 보는 대로 이해해야 되는 영화고 스토리가 그렇게, Plot이 복잡하지는 않기 때문에

40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쭉 따라 가게 되는 영화예요. 그런데 다루고 있는 묘소들, 그리고 그 묘소를 어떻게 찍느냐를 좀 알 수 있는 영화인 거죠. 이 폴

토마스 앤더슨이란 감독은 미국, 사실 편수는 얼마 안 돼요. 편수도 많지는 않고 제일 최근에 만든 영화가 마스터 같은 영화였는데 미국에서도 되게 인정받는 작가주의 감독 중에 1명이고 지금은

이런 ***(01:21:07)이 별로 상관, 큰 의미는 없지만 이 감독들이 나올 때만 해도 약간 정형화된 그런 게 있었어요. 뭐냐, 라고 하면 한 1억 불 이상 들어간 영화들, 제작비가 한 1억 불 가까이 된

영화들은 블록버스터예요. 1억 불 정도의 자본이 투입됐다고 하는 거는 누가 와도 자기 마음대로 못해요. 감독 마음대로 못 찍어요. 이거는 많은 이권이 개입돼있는 영화기 때문에 *** 하고 감독이

편집권을 다 갖고 있는 경우는 물론 없어요. 철저하게 그 시스템화 된 공식 하에 집어넣어서 나오는 약간 공산품에 가까운 영화들인 거죠. 그리고 한 100만 달러, 1,000만 달러 이하의 영화들. 그

할리우드 비용은 우리로 치면 되게 큰 규모거든요. 그런데 할리우드

***에서는 1,000만 달러 이하는 약간 실험영화***에 가까워요. 중, 저예산 영화인 거죠. 저예산 영화에 가깝죠. 그런 영화들 같은 경우는 감독의 대상을 좀 자유롭게 해줘요. 네 마음대로 만들어 봐, 라고 해요. 지금은 무너졌어요. 지금은 무너졌는데 이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약간 어떤 시스템이었냐면

1,000만 달러 이하의 그룹들이 자유롭게 기회를 얻고 그중에 재능을 보이는 감독들이 몇 명이 다음 단계에 올라가는, 그게 중, 저예산 그룹들, 한 3,000만 달러에서 5,000만 달러 사이. 이때쯤 이 그룹에 있는 감독들 영화들은 흥행성보다는 작품성을 더 위주로 하고 아카데미 시상식이나 아니면 칸, 베를린, 베니스, 이런 영화제들을 공략하는 영화들이에요. 이때까지만 해도 재량권이

부여된, 감독 마음대로 찍을 수 있는, 어느 정도는. 그리고 여기서도 검증된 사람 중에 올라가서 1억 불 이상의 블록버스터에 그 맡는 거죠. 연출을 맡는 건데 대표적으로 이 단계를 밟고 올라간 사람 중에 하나가 크리스토퍼 놀란 같은 감독들이 다크나이트 같은 영화들이 완전 대박이 나면서 이제 그 그룹으로 진입을 한 거죠.

11월 23일, 송경원

41


놀란 정도, 놀란이나 우리가 이름 알 수 있는 감독들, 놀란이나

스필버그 정도 되는 감독들의 경우는 자기가 편집권을 갖고 있어요. 최후 편집권을. 그런데 대부분의 할리우드 감독들 중에 블록버스터 만드는 감독들은 편집을 자기가 못해요. 자기 마음대로 영화를

못 찍는 거죠. 그게 싫으니까 그 그룹까지 안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폴 토머스 앤더슨이라는 감독이고 작년에 되게 크게 히트 쳤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뭐 이런 걸 만든, 혹은 블랙 스완을 만든 대런 아로노프스키?

이런 감독들 같은 경우가 이름도 어느 정도 명성도 있고 작품성도 있는데 블록버스터는 맡지 않는 이런 감독들이 주로 어떻게 보면

National cinema에 가까운 영화들을 찍어요. 미국 사회가 뭔지를 알고 싶으면 이 영화를 보시면 약간 뿌리? 미국의 종교? 미국인들이 믿고 있는 것들이 뭔지를 좀 알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해요. 뭐 여기 영화 홍보 이야기하는 것처럼 약간 대서사시에 가까운 영화죠. 이 시기부터 약간 저는 좀 특이한 형식들을 추구하는 영화나 아니면 National cinema라고 볼 수 있는 영화들을 좀 찾기

시작을 했는데 그중에 사실 이 영화는 National cinema에 딱

적합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감독 중에 1명이고 또 작년, 이게 정확히 작년인지 재작년인지 기억이 안 나는데.

그 해에 봤던 영화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 중에 1편입니다. 보이후드라는 영화예요. 혹시 이 영화 보신 분? 아, 이 영화는

보신 분들이 있네요. 이 영화는 형식적으로 되게 특이해요. 영화

제작기간을 다 따지면 한 15년? 거의 20년 가까이 찍은 거예요.

○ ― 사회자 저희 지금 가장 왼쪽에 가운데 있는 작품입니다. 송경원 기자 아, 네. 저기 있는, 가운데 있는 작품. 영화를 그냥 보면 이게 되게

그렇게 특별한가? 싶어요. 그냥 그냥 평범한 성장담 같아 보여요. 이 영화가 어떻게 찍었냐면 이 리처드 링클레이터라는 감독이 대표적이라고 할까요? 대중적으로 제일 잘 알려진 영화는 비포 시리즈거든요.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 이

42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시리즈예요. 그 영화도 되게 특이한 게 똑같은 배우들을 데리고

7년마다 찍은 거거든요. 약간 시간에 대해서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감독이에요. 결국 영화도 어떻게 보면 시간의 예술인데 뭐냐, 라고 하면 90분이든 100분이든 한정된 시간. 요새는 2시간이나 가요. ***(01:25:48) 2시간 안에 그 100년을 담을 수도 있고 2시간을 담을 수도 있고 뭐 이틀을 담을 수도 있고 이렇게 일정 시간, Narrative 시간이라고 하는 일정 시간을 2시간 안에 어떻게 압축시킬 것인가의 문제거든요. 영화 연출은 결국. 그러니까 뭘 빼고 뭘 넣을 것인가의 문제예요. 되게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그런데 이 보이후드 같은 경우는 12년 동안 1년에 15분씩 그 어떤 소년, 그게 한 9살 정도 되는 소년이에요. 9살 정도 되는 소년이 이제 성인이 될 때까지의 12년을 매년 15분씩 찍은 거예요. 그러니까 15분을 찍었다는 게 아니고 영화 상영시간으로 치면 15분 분량이 나오게 찍었어요. 그러니까 매년 같은 팀들이 모여서 1달 정도를 촬영을 한 거예요. 1달, 2주 쪼개서. 사실상 이거는 거의 불가능한 프로젝트거든요. 왜냐면 영화라는 게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찍다가 제작사가 없어질 수도 있고 배우가, 뭐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배우가 사망할 수도 있는데. 그 스태프들을 데리고 한번 찍어보자라고 해서 시작을 했을 거예요. 결국 12년 만에, 뭐 제작기간, 그 기획까지 다 하면 거의 20년이죠. 12년 만에 완성이 됐어. 그래서 사실 이런 식으로 진행된 프로젝트가 아마 유일하고 지금 기획되고 있는 프로젝트가 없기 때문에 아마 당분간은 거의 유일한 프로젝트일 거예요. 그런데 이게 어떤 가치를 지니느냐, 라고 하면 뭐 다양한 영화적인 가치는 부여할 수 있겠죠. 그냥 단순하게만 봐도 그냥 한 소년의 성장담이 그대로 그냥 성장담으로 보이는. 이 어떻게 보면 1 대 1 구도? 제가 계속

말씀드리는 뭔가 reality한 느낌을 줘요. 걔가 진짜, 배우가 자라요. 얼굴이. 지금 이 배우거든요. 매년 사진 1장씩만 찍어도 어른이 되어간다는 게 보여요. 사실 영화 속에 나오는 연출, 뭐 상황,

드라마는 짜여진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기획되어있기 때문에 물론 이야기가 처음에 기획했던 스토리랑 많이 달라졌다고

11월 23일, 송경원

43


해요. 그런데 이 프로젝트 자체가 영화가 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 거죠. 영화가 시간을 압축한 예술이라고 하면 시간을 어떻게

압축시킬 수 있는지. 스토리 자체가 어떻게 보면 되게 진부한 성장담일 수도 있는데 이 중간 중간에 나오는 엄마나 소년의 고민이나 소년의 고민에 답하는 어른들의 방식이나 이런 것들이 사실 스토리대로 따라 가지 않거든요. 중간에 뭐 다른 연출들이 되게 많기 때문에. 그 진심들? 이게 진심이라는 단어로 표현해도 좋을지

잘 모르겠는데, 아, 저거 거짓말 아니다, 라는 느낌들이 연기에서도 그렇고 표정에서도 그렇고 상황에서도 그렇고 보여요. 이렇게 보다 보면 이게 내가 영화를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누군가의 어떤 성장기록을 보고 있는 건지 되게 헷갈리기도 해요. 실제로 영화의 연출의 그런 특이한 부분은 1년에 15분씩 찍었다고 그랬잖아요.

정확하게 1년에 15분 분량씩 찍은 거거든요. 그러면 이 아이가 어느 순간에 얼굴 바뀌고 바뀌고 하면, 장면 바뀌거나 뭐 Sequence가

바뀔 때 표시를 해줄 법도 하잖아요. 이건 다음 해에 찍은 거고 장소 바뀌면 다음 해에 찍은 거고. 그런데 그 이음매가 없어요. 그러니까 이 아이가 분명히 얼굴은 바뀌고 있는데 어느 순간에 어떻게 바뀌는지 잘 안 보여요. 영화를 볼 때는. 되게 자연스럽게

이어지거든요. 그런데 그게 어떻게 보면 영화가 시간을 압축시키는 방식이기도 하고 이 긴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기도 하죠. 뭐 여러

가지로 되게 인상 깊은, 이 프로젝트만 봐도 인상 깊은 영화인데 감독의 어떤 성향? 감독이 늘 추구해왔던 어떤 시간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철학? 이런 거랑 결부시키면 좀 더 파고들 여지가 있는

영화이긴 하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비포 시리즈 같은 경우는 그런 식으로 치면 14년 동안 찍은 거거든요. 21년 동안 찍은 거예요.

7년에 1편씩 찍은 거니까. 실제로 배우들이 7년 뒤에 얼굴이 좀 늙어있는 상태에서 만나고 또 7년 뒤에 더 늙어있는 상태에서 만나고. 물론 그 시리즈는 이제 끝나긴 했지만 그런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감독이긴 하죠. 뭐 저는 개인적으로는 국내에 이름이 덜 알려진 거에 비해서 가장 좀 주목해야 되는 감독이라고 생각해요. 캐나다 감독이고요. 캐나다에서 실제로 자기 프로덕션 제작을 직접 44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하는 감독이기 때문에 이런, 이런 기획들이 가능한 거죠. 뭐 이렇게 연출***(01:30:17)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찍고 싶은 대로 *** 만드는 감독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고 관심 있으시면 리처드 링클레이터라는 감독의 다른 작품들도 한번 찾아보시면 재미있을 거예요. 제가 추천 드리는 작품은 보이후드인데 좀 더 보고 싶다, 라고 하면 뭐 비포 시리즈도 되게 유명하기는 하지만 버니라는 작품이 있어요. 우리 잘 아는 잭 블랙이라는 코미디 배우가 나오는 그 작품을 한번 꼭 보십시오. 그 잭 블랙이라는 코믹 말고 어떤

연기를 얼마만큼 더 잘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고 실제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인데 우리 그 코미디라는 게 사실 가장 지역적인 요소거든요. 미국 코미디는 우리가 잘 이해 못해요. 우리 코미디는 또 다른 나라가면 이렇게 보편적으로 터지지는 않죠.

그런데 이거를 어떻게 보면 약간 캐나다, 혹은 영미권, 영미권의 코미디에 가까운데 또 그 국가의 어떤 특색이나 정서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코미디들을 보여줘요. 뭐가 웃기다는 거지? 싶은 것들이 엄청 많아요. 그런데 그 지점들이 우리랑 다른 어떤 문화권의

정서들을 확인할 수 있는, 어떻게 보면 균열 같은 거죠. 그 영화 한번 꼭 추천 드리니까 한번 보시면 더 좋고.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에서

가장 와 닿는, 꽂힌 장면 중에 하나는 이거예요. 보이후드를 보시면 제가 이 영화, 보이후드를 꼭 추천 드리는 이유 중에 하나는 아까

제가 앞에 계속 이야기했던 뭐에 어떻게 내가 반응하고 접촉할지 모른다는 것. 전형적인 Narrative 영화, 뭐 디즈니 영화를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잘 정돈된 뭐 할리우드 영화 같은 경우는 정확하게 이쯤에 감동받아, 라고 하기 때문에 거의 그 지점에

감동받아요. 그게 당연한 거고. 그런데 뭐 이렇게 좀 열려있는 영화들이나 다른 형식으로 접근한 영화들 같은 경우는 어디에 어느 장면에 어떻게 내가 반응할지 모르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 제가 반응한 장면은 이거였어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나 영화기자들이나 평론가들한테 다 물어봤는데 다 틀려요. 나는 어느 장면이 제일 좋았어. 다 달랐어요. 이렇게 제일 좋았던

장면이 다르다, 라고 하는 영화도 드물거든요. 그런데 그만큼 어떻게

11월 23일, 송경원

45


보면 다양한 결들을 보여주는 거죠. 우리가 알고 있는 기승전결이 아니라. 어느 순간에 어떻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어떤 영화들,

순간들을 보여준 영화인데 저는 이게 제일 와 닿았어요. 보이후드 전체 이야기는 아빠랑 엄마는 이혼한 상태이고 이 소년은 엄마랑 같이 살고 있고 1년에 한번 가끔씩 아빠는 보러 오고 있고 아빠는 되게 자유분방한 이제 삶을 살고 있는, 음악 한다면서 막 이렇게 약간 건달처럼 살고 있는 분이고 엄마는 대학교수가 되려고 막 무던히도 노력을 하다가, 싱글 맘으로 살아야 되니까 이것저것 다 하다가 결국은 대학교수 자리까지 올라가서 대학교수도 되고 애도 잘 휼륭하게 키워내고 한 엄마예요. 그래서 이제 거의 마지막 순간인데 이 아들이 이제 대학을 합격하고 엄마 품을 떠나게 되는 거죠. 엄마 품을 떠나게 되니까 혼자 살기엔 집이 너무 크잖아요. 그래서 이제 엄마도 집을 줄이고 아들 대학 등록금이나 아니면

***(01:33:25) 생활금을 보태줘야 되기 때문에. 늘 같이 살던 가족의 집을 떠나서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해요. 이사를 하고 이제 엄마도 그 사이에 재혼도 하고 뭐 이런저런 경험을 겪긴 하지만 결국은 이 타이밍에는 재혼한 남자와도 이제 이혼을 했고 이제 아들을 떠나보내야 되는 장면이에요. 그래서 되게 좁아진 집에서

아들이 멀리 이제 유학, 유학이라고 해야 되나요? 멀리 이제 학교를 가야 되는 순간에 마지막에 그 짐정리하면서 하는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어떻게 보면 되게 진부한 감정이기도 해요. 멀리 떠나보내는 아들에 대한 섭섭함? 아쉬움? 같은 거예요. 뭐 이제 완전히 이별은 아니지만. 매일 같이 살던 사람이 이제

어른이 돼서 나가는 거니까. 거기에 대해서 너무 복받쳐 오르는

감정이 있는 거죠. 물론 지금 이 설명은 제가 되게 그냥 보편적인 레벨에서 설명하는 거고 이 감정이 뭔지는 정확히 지정을 할 수 없어요. 여러분이 보고 그냥 판단하셔야 되는 감정인 거고 실제로 배우가 어떻게 연기했는지, 어떤 감정을 전달하고 싶었는지는 잘 몰라요. 되게 모호하게 그냥 복받친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어쨌든 이 순간에 이 여자, 이 엄마가 이 대사를

꺼내거든요. 왜 그러냐? 왜 이렇게 우냐? 슬퍼하냐? 난 계속 올

46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건데, 라고 하면 이 엄마가 이 대사를 해요. 그냥, 그냥 나는 뭔가 더 있을 줄 알았다고. 네가 어른이, 이 뒤에 무슨 말이 붙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네가 어른이 됐을 때, 내가 좀 더 늙었을 때, 자식들이 다 컸을 때, 내가 지금 이 나이가 됐을 때 뭔가 나는 내 인생에서 더

있을 줄 알았어. 그게 극도의 허무함인 거죠. 그런데 사실 이 엄마의 상황을 보면 그렇게 막 낙담할 정도로 나락에 떨어진 이런 상황이 아니거든요. 자기 일 성취했고 대학교수 일도 하고 뭐 연애도 많이 해봤고 결혼 생활도 충분히 해봤고. 그런데 그 순간에 이 엄마가 아들을 떠나보낼 때 느끼는 감정. 그걸 이렇게 표현했을 때 이

생각을 저도 뭐로 표현해야 될지 잘 모르겠더라요. 그런데, 아, 되게 복받친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내가 어느 순간 어느 지점에, 이 인생에서 이 지점을 밟았을 때 뭐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허무함이라는 감정을 그냥 제가 느끼기에는 가장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장면이 아닌가? 이 아줌마가, 이 엄마가 이제 이러고 나서

우는데 한참을 우는 장면을 보여줘요. 그런데 저는 그 연출도 굉장히 와 닿았던 게 그러면 그때 우리는 생각하면 당연히 아들이 위로해주거나 뭐 다독이거나 괜찮아, 이런 말을 건네야 될 거

같잖아요. 아무런 조치가 없어요. 그냥 한동안 어쩔 줄 모르는

상태로 그걸 봐요. 그런데 어쩔 줄 모르는 상태로 그걸 본다는 게 이 영화 전체의 어떤 연출이기도 하고, 뭐랄까요? 영화는 2시간

남짓에 뭔가 이야기를 완성해야 된다는 그런 거가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너무 쉽게 결론을 내주거든요. ***(01:36:31)까지

해주고. 이래야 해. 정답을 내주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이 영화는 그걸 안 하는 게 가장 큰 미덕인 거 같아요. 삶이 이렇게 가는 거야.

아니면 지금 이렇게 허무한 순간에 어떻게 해야 돼, 라고, 네가 이런 감정을 느껴야 돼, 라고 정확히 지시해주지 않고 그리고 이 감정을 느꼈을 때 네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게 좋아, 라는 것도 설명해주지

않죠. 그냥 가요. 사실은 그게 가장 정답에 가까운 거기도 하거든요. 그런 것들을 좀 보여주는, 기존에 봤던 이런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입장에서의 어떤 접근들이 있는 영화라서 저는 굉장히 인상 깊었던 영화고 그 해의 영화이기도 해요. 그리고 이제 괴물로 넘어와서.

11월 23일, 송경원

47


제가 쭉 이제 National cinema라고 하는 자국민들만 이해할 수 있는 정서의 어떤 영화들을 계속 보여드렸는데 한국영화 중에

90년대 이후에 나온 영화 중에 가장 National cinema에 가까운 영화는 저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라고 생각해요. 괴물을 포함해서 이런 플란다스의 개나 아니면 살인의 추억이나 이런 영화들이 다 그런 영화에 가깝죠. 단순히 영화를 잘 만든다, 뭐 스토리가 재미있다를 떠나서 봉준호 감독 영화는 굳이 약간 비유하면 바닥에 땅을 파고 있는 이야기들? 한국인들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정서들이나 순간들이 굉장히 많이 녹아있는 영화. 뭐 이게 어디 가서 이런 이야기는 하지 마시고. 제가 했다고. 굳이 비교를 하면 우리

흔히 박봉김 막 이렇게 이야기하잖아요.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박봉김이란 이야기하면 김지운 감독님이 엄청 화내세요. 자기가 제일 연장자인데 왜 제일 마지막에 이야기 하냐고. 어쨌든 그 세

감독님을 비교한다고 하면 박찬욱 감독님 영화나 김지운 감독님 영화는, 김지운 감독 영화는 장르적으로 되게 Stylish하거든요.

박찬욱 감독님 영화는 영화를 위한 영화에 가까운, 굳이 한국이라는 배경이나 설정이 필요 없을 것 같은. 정말 영화를 잘 만들고 뛰어난 미장센들이 꽉꽉 채워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게 한국적이냐,

라고 하면 잘 모르겠어요. 김기덕 감독의 영화도 비슷한 의미에서 한국적이냐, 라고 하면 잘 모르겠어요. Oriental, 뭐 흔히 이야기하는 약간 안 좋은 의미에서 Orientalism이라고

***(01:38:47) 우리가 실제로 봄여름가을겨울을 볼 때, 아, ***해라는 생각 안 하잖아요. 되게 이상해라는 생각을 하죠. 그 호수에 떠있는 절. 이런 것처럼. 그런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박찬욱 감독, 김지운 감독, 봉준호 감독 다 영화 잘 만드시지만 한국감독이라고 하면 저는 제일 먼저 떠오르는 2000년도 후반에 감독 중에는 봉준호 감독님이거든요. 장르는 *** 좀 짧게 보면, 잠시 이거 먼저 하고 *** 좀 볼게요. 괴물, 살인의 추억 *** 괴물의 가장 특이한 점은 괴물이 제목처럼 장르영화잖아요. 기본적으로 장르영화예요. 괴물, 괴수가 나오는 영화예요. 그런데 괴수가 나오는 영화 중에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영화예요. 이런 영화가 없는 거죠. 48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왜냐하면 기존에 괴수의 장르적인 ***에는 *** 괴물이 안 나와요.

괴물이 제일 마지막에 나와요. 제일 마지막에 나와야 되고 어두워야 되고 정체가 정확하게 드러나면 안 돼요. 왜냐, 라고 하면 영화에 그냥 이런 관객에게 주는 효과, 그냥 기능적인 효과로 딱 2개를

한다고 하면 Shock, 아니면 Suspense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지점에 어떻게 놀라게 하냐? 하나. 그리고 놀라기 전까지 어떻게

긴장감을 유지하냐? 하나예요. 그 2가지로 움직인다고 보셔도 돼요. 공포영화든 드라마든 다 마찬가지예요. Suspense를 유지하다가

Shock를 주고. 그리고 또 Suspense를 유지하고. 이게 그냥 기능적인 기법이에요. 그런 차원에서 괴수영화에 괴수가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이유는 Suspense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래요. 괴수의 정체가 다 나오면 재미없잖아요. 귀신도 안 보이는 게 ***(01:40:33) 무서운 거예요. 그런데 지금 이 괴물에서는 거의 오프닝에 가까운 장면이에요. 환한 대낮에 사람들 다 있는데 괴물이 되게 바보 같이 굴러 떨어지는 것까지 보여주면서 나와요. 괴수영화를 잘 아는 입장에서 보면 이 영화 되게 이상한 거죠. 거꾸로 찍은 거예요. 그런데 이걸 괴수영화의 관점이 아니라 약간 자국, National cinema의 관점으로 접근을 하면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할 거 같아요. 이거는 사실 제 해석은 아니고 허문영 영화평론가의 해석인데 저는 되게 굉장히 봤던 괴물에 관한 글 중에 가장 설득이 됐던 글이 뭐냐, 라고 하면 괴물에 대해서 되게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지만 어쨌든 괴물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뭐냐면 이 Shot이라고 허문영 평론가는

말씀하시거든요. 이 Shot가 뭐냐면 그냥 한강변에 괴물이 날뛰고

있는 거를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본 Shot예요. 기능적으로 보면 이 역할은 뭐냐? 그냥 설정Shot이죠. 이 지금 상황이 어떻게 흘러간다는 걸 전체 그림을 한번 보여주는 거예요. 설정Shot는

그냥 말 그대로 설정을 따라 가는 Shot이에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 설정Shot를 버스를 타고 가는 사람이 이런 시각으로 해서 봤냐, 라고 이거 하나만 물고 늘어지고 이제 해석을 하는 글이었는데 결론은 뭐냐, 라고 하면 괴물로 상징되는 어떤, 뭐 이를테면 부조리?

11월 23일, 송경원

49


문제는 우리가 다 알고 있다는 거예요. 모든 사람이 파악하고 있다는 거죠. 뭐가 문제고 뭐가 잘못됐고 목격자도 엄청 많은데다가 다 알고 있는 문제고. 그런데 이 괴물영화가 마지막 괴물이 이러고 안

사라져요. 괴물을 만드는 ***(01:42:17) 안 사라지죠. 괴물을 죽였다고 하지만 제일 마지막 장면을 보면 송강호는 계속 불안해하죠. 송강호가 그 총을 집에 두고 그 구해낸 소년과 같이 밥을 먹으면서 뭔가 다음 괴물이 나올 거 같은 되게 불안한 정서로 끝나요. 그게 뭐냐, 라고 하면 아무 것도 해결된 상태가 없는 거죠.

그냥 이 괴물이라는 현상만 제거된 그런 상태에서 영화가 끝나요. 왜 이렇게 끝나냐? 왜 이렇게 불안하게 찝찝하게 끝날 수밖에 없냐, 라고 하면 우리가 뭔가 문제가 있는 거에 대해 상황을 바라보는 인식이 딱 이거라는 거죠. 하필이면 왜 버스 안에서 봤냐, 라고 하면 우리가 모든 문제가 다 알고 있는데, 뭐가 문제인지도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 건지도, 목격자가 그렇게 많은데 이 괴물 영화 보면 되게 특이한 게 뭐냐면 아무도 괴물에 대해서 심각하게 반응하지 않아요. 목격자들은. 목격자 아예 안 나오죠. 이 유일하게 송강호,

딸을 납치당한 사람, 당사자들 가족만 반응을 해요. 그 사람들만 이 괴물을 찾으려고, 딸을 구하려고 발버둥 치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방관자들의 시선이거든요. 그런데 이게 한국사회의 어떤 병리적인

집단 의지이라는 거죠. 이런 시선이. 왜냐? 되게 안전한 곳에서 나는

괴물을 본 거예요. TV 화면 보듯이. 괴물의 정체도 알고 저게 사람을 습격하는 장면도 봤는데 이 버스를 타고 간 사람이 집에 도착해서, 아, 그러면 괴물 빨리 없애야 돼, 정부 왜 안 없애주지라고

생각할까라고 하면 영화에서는 그걸 보여주지도 않고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는 거죠. 그냥 문제는 있지만 문제가 있는데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를 한다는 거예요. 물론

시스템적으로 너무 멀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런 시선 자체가 영화 전반에 다 깔려있다는 거죠. 괴물에 가장 비현실적인

측면인 거예요. 이 가족말고 나머지 한강변에 사는 사람들, 뭐 일반 시민들은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아요. 괴물이 이렇게 실체를

드러내는데도 불구하고. 되게, 어떻게 보면 되게 비현실적인데

50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반대로 이야기해서 한국적인 현실에서는 되게 현실적일 수도 있죠. 현실적인 반응처럼 보이기도 해요. 그게 외국관객이 볼 때랑

한국관객이 볼 때 괴물의 어떤 큰 차이? 다르게 받아들이는 차이인 것 같아요. 이런 맥락까지 접근을 해서 보면 괴물이 되게

사실적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죠. 그런데 해외의 어떤 관객도 이

영화가 사실적이라고 받아들이지는 않아요. 장르영화라고 생각을 하죠. 장르 측면에서 보면 되게 이상한 영화인 거예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장면을 보고 조금 하나 이야기해드리면, 영상 2개를 좀 한꺼번에 볼게요. 이거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라는 영화예요.

저기서 제일 마지막 끝에 보이는 영화죠. 첩보물이고요. 2000년대,

2010년? 9년 정도에 나온 영화고 나왔을 때 되게 평론가들이나 이런 사람들한테 좀 각광과 호응을 받았던 영화 중에 하나예요. 실제 이야기는 되게 진부한데 이 스타일이 되게, 소위 말하는 클래식한 영화 중에 하나거든요. 전체 서사는 이중첩자를 찾아내는 이야기인데요. 서커스라고 불리는 영국의 첩보기관에서 이중첩자가 발견이 돼서 이제 이중첩자가 누군지 찾아내는 이야기거든요. 그래서 이 게리 올드만 같은 오래된 첩보요원이 ***(01:45:57) 이중첩자를 찾아내는 거죠. 이 장면 같은 경우는 거의 마지막에 이중첩자를 심문하는 장면이에요. 괴물과 비교하면 *** 되게 보편적인 장면을 어떻게 다르게 연출할 수 있는가를 한번 보여드리려고 이 장면을 갖고 왔습니다. 이 지금 이건 이제

Flashback 하는 장면이고 아까 그 첩자, 이중첩자로 의심받는 사람을 심문하기 위해서 이 영화에서는 공항, 활주로로 데려가거든요. 보통 심문을 하려면 저렇게 답답하고 폐쇄적인 곳에 가서 이렇게 압박을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완전 탁 트인 곳에 갔어요. 그런데 지금 이 화면을 보시면 되게 탁 트였단 느낌이 안 들잖아요. 그리고 되게 계속 불안하게 쳐다보죠. 이 비행기를. 이 화면만 보면 비행기가 이 사람을 지금 금방 덥칠 것같아요. 이게 되게 영화적인 화면이죠? 실제 화면이 이렇냐? 우리 사람 눈으로 보면 지금 이 장면이 이렇게 되어있을 거냐라고 하면 전혀 아니죠. 저 비행기가 엄청 멀리 있는 거예요. 엄청 멀리서 지금 오고 있고 11월 23일, 송경원

51


여기서 그냥 서는 거죠. 그리고 이 사람이 이 비행기를 지금 이렇게 불안하게 쳐다볼 필요가 없어요. 사실. 그냥 비행기가 오고 있네? 정도의 불안함이겠죠. 그런데 이 영화에서 이 화면이 되게

불안해보이는 이유는 아까 보시면 뒤에 화면이 다 날라갔죠? 그게 렌즈 초점을 엄청 낮춘 거거든요. 심도를 엄청 낮추면 뒤에가 다 날라가고 이 인물들만 포커스가 맞춰져요. 그런 렌즈를 썼을 때

효과가 뭐냐라고 하면 뒤에 있는 화면들이 되게 가깝게 보여요.

당겨와서 그래요. 그리고 아까 그 화면에서는 당겨가지고 보이는

효과를 되게 1차적으로 활용해서 압박감, 불안감 같은 걸 주는 거죠. 이 사람이 있는 공간은 활주로인데 *** 보시면 활주로가 아니고

되게 갇혀있는 벽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그게 이런 클로즈업

렌즈를 쓸 때, 심도가 낮은 렌즈를 쓸 때 되게 1차적인 기능이에요.

이거는 압박감이라는 요소를 주기 위해서 그 연출을 한 거죠. 그런데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서도 똑같은 렌즈를 써서 비슷한 효과가 나타내는 장면을 연출하는데 이 화면을 보면 특이한 게 있죠. 이

송강호가 이제 나오기 시작하네요. 그러니까 딸을 기다리는, 지금 이 화면에서 보면 뒤에가 되게 가깝게 보이죠? 이게 렌즈의 심도를

낮춰서, 낮춰놔서 그런 거고 뒤에는 엄청 먼 거거든요. 사실. 그런데 지금 이 화면 크기로만 보면, 이제 걸어오는 고아성이 딸인데 되게 가깝게 바로 앞에 있는 거 같은 느낌을 주죠? 그리고 이제 딸한테

향해 달려가는데 실제로 달려가는 걸 보니까 한참 가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심지어 넘어지죠. 이게 뭐냐? 이 장면을 왜 이렇게

연출했을까라고 하면 괴물을 다 본 사람은 이야기할 수 있어요. 이 지금 이 장면에서 보여주는 연출이 사실 이 영화 전체 전반의 연출이에요. 뭐냐면 딸은 되게 굉장히 가깝게 있는 것 같은 거예요. 이 송강호랑 가족에게. 심리적으로는. 바로 옆에 있는 것 같아요.

달려가려고 하는데 심지어는 엄청 멀고, 사실은 엄청 멀고 심지어는 실패하죠. 딸과 만나는 걸. 이게 영화 전체의 스토리 서사는 그냥 딱 이 장면이라고 보시면 되는 거죠. 이게 감독이 사실은 의도한

장면이기도 해요. 그리고 처음 볼 때 이게, 아, 이게 이런 압축적인 장면이구나라고 이해를 하면 그 사람은 무당이죠. 무당. 그럴 수

52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없죠. 영화를 다시 보고 스토리를 다 안 다음에 이걸 보면, 아, 이

장면이 이런 의도였겠구나라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해요. 이게 아까 제가 잠깐 말씀드린 좀 좋은 영화, 여러 가지 연출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도록 이 ***(01:50:05) 심어놓은 영화이기도 하죠. 그리고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랑 비교하면 되게 1차적으로 썼던 그 심리적인 압박이랑 주로 1차적으로 썼던 거에 비교해서 전체 서사에 어떤 Narrative 순서를 녹여낸 거기 때문에 사실 더 좀 어떤 결이 있다고 해야 하나? 뭐 그런 식의 연출을 시도하기도

했고요. 시간이 거의 다 돼서 좀 짧게 짧게 넘어갈게요. 아까 괴물

이야기하면서 제가 이 쉰들러 리스트랑 사울의 아들 ***을 좀 짧게

갖고 온 이유는 그냥 실화, 사실, 혹은 그 사회의 당대의 어떤 어떻게 보여줄 거냐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는 영화라서 그래요. 이 영화들은 제가 여기 꼽진 않았는데 한번 기회 되시면 비교해서 보셔도 좋을 거예요. 쉰들러 리스트랑 사울의 아들 2편. 이건 역사를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에 대해서 한번 비교해보시면 좋은 영화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그냥 단언하면 저는 사울의 아들은 되게 안 좋은 영화,

안 좋다기보다는 저한테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영화라고 봐요. 저는. 비판할 거리가 되게 많은 영화예요. 그런데 굳이 비교를 하면 앞에 있던 쉰들러 리스트 같은 경우는 그런 비판까지 나아가지도 못하는 영화인 거고. 그래서 2편을 놓고 한번 실화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서, 실화를 어떻게 영화로 바꿀 것인지. 혹은 제가 몇

번 중간에 말씀드린 Realism이라는 게 뭔지를 좀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들인 거 같아요. 원래는 좀 설명을 더 하고 이쪽으로 넘어가야 되는데 좀 짧게 설명을 해드리면 Realism이라고 하는 것도 되게 여러 가지 종류가 있죠. 할리우드 영화에서 추구하는 거는 소위

말하는 이 지각적 Realism이거든요. 다른 말로 하면 Reality예요. 사실을 전달하는 게 아니고 사실적으로 보이는 걸 전달하는 거죠. 그게 되게 중요해요. 그리고 그게 영화의 역사 전체를 놓고 보면

굉장히 중요한 분기, 혹은 사건인 것 같아요. ***(01:52:19)라는 거. 이제 뭐가 사실이고 뭐가 Reality인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이

이른 거죠.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그래가지고 흘러간다는 겁니다.

11월 23일, 송경원

53


그래서 대표적으로 이제 CG에 관한 영화를 몇 편을 좀 소개를 해드리려고 하는데 이 영화들을 제가 폄하하는 건 아니고 이런 영화들의 경향이 있다는 걸 좀 아시고 영화를 접근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서 뽑아왔고요. 쥬라기 공원 같은 경우는 영화 역사에서 되게 획기적인 사건을 하나 만든거죠. 쥬라기 공원,

터미네이터, 혹은 어비스라는 영화가 있어요. 그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초창기에 만든 영화인데 이게 CG를 처음으로 쓴 영화 중에

1편이거든요. 그런 영화들 보면 특징이 뭐냐? 쥬라기 공원을 보기 전에는 우리는 아무도 공룡을 상상 안 했어요. 못했죠. 대충 이렇게 생겼을 거야라는 정도인 거죠. 그런데 쥬라기 공원에서 되게 정확한 모습으로 공룡의 모습을 보여주고 공룡의 울음소리를 재현하고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만약에 예를 들어서 여러분이 그 다음에 공룡에 관한 꿈을 꾼다고 하면, 아이들이 공룡에 관한 꿈을 꾼다고 하면 다 쥬라기 공원 식으로 꿈을 꿀 거예요. 이미지를 직접 본다는 거는

그만큼 파워가 센 거거든요. 그래 이 이미지로 고착이 되는 거죠. 공룡이라는 게. 그런데 우리는 공룡을 한 번도 못 봤는데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어떻게 우는지도 모르는데 왜 저게 공룡이다. 혹은 저렇게 공룡이 있다고 믿을 수 있는 건가? 그게 아까 이야기해드린

지각적 Realism이라는 거거든요. 쥬라기 공원 나오는 공룡의 모든

요소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 법칙을 따라요. 알고 있는 요소들의 조합인 거예요. 도마뱀의 피부, 뭐 그다음에 이 정도 무게가 있는 게 움직이면 이 정도 울림이 있을 거고 떨림, 뭐 덩치, 그 정도 덩치가

움직일 때 어떤 주변의 움직임 같은 것. 뭐 그런 것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정보인 거예요. 공룡은 못 봤지만. 그래서 그게 저기에

아무 것도 없지만 저 화면에서는 진짜 아무 것도 없는 거지만 저기에 있다고 느끼게 하는 거죠. 그 가장 고정적인 연출 중에 하나가 쥬라기 공원의 명장면 중에 하나인 티라노사우루스가 처음 들어올 때, 그 차에서 티라노사우루스가 발을 이렇게 움직이면 유리잔이

움직이잖아요. 그 긴장감. 그게 사실은 되게 사실적인 느낌을 주는 거죠. 쥬라기 공원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CG를 통해서

공룡이라는 상상력을 구체화시킨 이 사건 때문에 이후에 CG가

54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거의 어떤 증명이 됐어요. 그다음부터는 우리가

그려보지도 못한 것들을 다 CG로 찍고 있죠. 사실 실질적으로 지금 나오는 영화들은 제가 계속 말씀드린 필름? 아니면 사진적인

Realism? 이런 것들 다 무시하는 영화들이죠. 이게 영화인지 애니메이션인지 그 경계가 되게 모호해요. 예를 들면 아바타 같은 영화. 아바타는 뭐 일단 평론가들한테 물어보면 100이면 100 이 영화를 보고 되게 멋진 이야기고 멋진 스토리고 ***(01:55:28) 본 사람은 하나도 없을 거예요. 왜냐면 기본적으로 이 아바타가 나온 서사는 예전에 케빈 코스트너가 나왔던 늑대와 춤을? ***(01:55:39)주의 *** 불리는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 가고 있잖아요. 이게 스토리 Plot이 다 똑같아요. 완전히 거의 베낀 것처럼. 그런데 그게 제임스 카메론이 못해서 그러냐라고 하면 그게 아니라 그냥 그 이야기가 이 기술을 보여주기에 가장 적합한 *** 이야기기 때문에 그래요. 일부러 쉽고 편안하고 익숙한 이야기를 보여준 거죠. 이거를 그냥 단순하게 이 외계생물, 외계인들을 인디언 원주민, 아파치족으로 바꾸면 그냥 다 아는 이야기예요. 아파치족 그 밑에 금광이 묻혀있고 그래서 아파치족 금광을 차지하기 위해서

*** 중에 한 명이 그 인디언 여인과 사랑에 빠지고, 첩자고 원래. 그런데 진짜 인디언과의 계약을 이행하게 돼서 그 아파치족과 함께 금광을 차지하려는 ***를 물리치는 뭐 이 정도의 이야기인 거죠. 그런데 그거를 이 외계인이라는 상상력을 덧붙이고 외계인 행성이라는 상상력을 덧붙이고 거기에 3D라는 기술을 더하니까

이게 완전 새로운 영화가 된 거죠. 쥬라기 공원이 CG에 대한 완전 새로운 길들을 열어버렸다고 하면 이 아바타는 3D에 대한 완전 새로운 길을 열었거든요. 그런데 조금 벗어난 이야기긴 하지만

사실은 3D는 사기죠. 사기예요. 이게 어떤 측면에서 생기냐면 영화 역사에서 영화산업적으로 볼 때 뭔가 위기가 찾아오면, 산업적으로

영화가 미움을 받는 시기가 오면 이렇게 새로운 기술을 꺼내거든요. 예를 들면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간 이유가 뭐냐라고 한다고 하면 그 시대에 다른 ***쇼가 되게 흥행했기 때문이에요. 영화 말고 사람들이 다른 걸 보기 시작하니까 유성영화를 꺼낸

11월 23일, 송경원

55


거예요. 그 기술은 이전에 한참 전에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꺼낸

거죠. 컬러로 넘어갈 때도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60년대, 70년대 대비, 50년대, 60년대에서는 와이드스크린이라고 큰 극장의

화면들이 나오는데 그것도 마찬가지예요. 그전까지 극장가면 4 대

3 화면이었어요. 그런데 TV가 나오면서 TV가 4 대 3 화면이니까

우리는 TV에서 못 보여주는 걸 보여주겠습니다라고 하고 큰 화면,

와이드스크린 화면을 만든거죠. 만들고 나서 이제 연출들이 생기는 거예요. 결국 와이드스크린에 맞춰진 연출들이 생기는 거고 3D도 마찬가지고요. 3D도 그런 측면이에요. 위기, 극장산업이 위기를 겪을 때, 아, 이게 되게 효과적인 포맷이 되겠다라고 해서 3D

극장들을 깔고, 왜냐면 3D가 왜 선택을 받았냐면 이게 상대적으로 변환이 엄청 쉽거든요. 2D를 찍어갖고 3D로 바꾸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실제로 3D라는 기술은 80년대 전반에 나왔고요.

90년대에 미국 자동차극장, 공포영화를 중심으로 해서 엄청나게 유행을 했던, 유행했다가 없어졌어요. 기술이고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쉬운 기술인데 먹힐 수도 있겠다라고 해서 이제 부활을 시킨 거죠. 부활 시킬 때 잘 만든 게 1편 있어야 되잖아요. 모델이 1편 있어야 되기 때문에 엄청난 자본이 투입돼서 이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사람이 만들고 실제로 엄청난 흥행을 했죠. 그런데 그 이후에 여러분이 3D 영화 한번 되게 재밌어라고 기억나는 영화 있냐고 한번 생각해보세요. 사실 산업적으로 3D 영화가 별로 효용가치가 없거든요. 그런데 어쨌든 이 흐름을 바꾼다는

측면에서는 3D 영화의 어떤 되게 기준, 첫 번째 기준으로 제시한 영화가 아바타인 거예요. 그거랑 조금 다른 차원에서의 가능성을

제시한 게 라이프 오브 파이. 왜냐면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기술에

따른 무언가를 하고 싶어요. 감독들은. 창작자들은. 이거 뭐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있는 거죠. 그래서 이것저것 많이 해보죠. 그중에 괜찮은 게 있으면 그 길로 가는 거예요.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영화의 역사? 아니, 모든 분야의 역사는 약간 그런 식으로 올라가는 거 같아요. 10명 중에 1명이 성공을 하는 거예요. 10명

중에 9명은 뭔가 시도했다가 실패해요. 그리고 1명이 성공해서 뭔가

56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새로운 영역이나 뭐 새로운 ***(01:59:46) 만들면 또 그걸 모델로 해서 달라붙어서 그만큼 넓어지는 거고 그렇게 조금씩조금씩 그렇게 영토을 넓혀나가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 말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10명 중에 9명이 실패할 수 있게, 10명이 도전할 수

있게 뭐 이렇게 지원이나 아니면 제도가 마련이 돼야 된다는 거죠.

그냥 개인적인 여비로 해라라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이 산업이 그걸

받쳐줘야 된다는 거예요. 어쨌든 그런 다양한 3D에 대한 시도 중에 저는 아바타보다 훨씬 잘 만든 영화 중에 1편이 이 라이프 오브

파이라는 영화라고 생각을 하는데 라이프 오브 파이 혹시 보신 분. 이건 좀 많이 보셨네.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는지는 따로 말씀 안

드릴게요. 뭐 시간도 많이 좋지 않고. 이안 감독이라는 감독의 가장 큰 특징을 이야기하자면 뭐랄까요? 완전히 앞서나가는 창작자? 예술가라고 하기에는 조금 못해요. 완전 새로운 걸 만드시지는

않아요. 그런데 어떤 장르의 어떤 기술에 어떤 데 갖다 놓아도 이 사람만큼 잘 소화하고 정확히 이야기하는 사람 별로 없어요.

이를테면 브로크 백 마운틴 같은 영화는 사실 미국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요소인데도 불구하고 중국계 감독이 가서 브로크 백 마운틴이라는 영화를 만들어요. 지금 정확히 제목이 생각이 안 나는데 그 예전에 60년대 히피랑 콘서트에 관한 영화도 1편

만들었었거든요. 그 영화도 마찬가지고. 아니면 초창기에 미국 건너가서 만들었던 아이스 스톰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그런 영화 같은 경우는 미국 중산층 가정에 되게, 비슷한 영화를 예를 들면

아메리칸 뷰티 같이 허영과 미성 같은 걸 엄청 잘 보여준 영화예요. 그걸 중국인이 만들어낸 거예요. 그 정서를 어떻게 이해하고. 그

장르에서의 최대치를 뽑아주는 감독 중에 1명이 이 이안 감독일

거예요. 그런데 이 3D라는 장르를 갖고 왔을 때 이 사람이 보여주는 어떤 연출적인 측면 같은 게 굉장히 좀 놀라웠던 거죠. 제가 중간에 아까, 제가 생각하는 영화의 가장 큰 기준 중에 하나가 극장에서 보는 거라고 말씀드렸는데 이 영화도 사실 뭐 집에서도, 요새는

TV에서도 3D를 볼 수 있지만 극장에서 3D로 보지 않으면 크게 의미없는 영화 중에 하나예요. 왜냐면 단순히 놀랍다는 수준이 11월 23일, 송경원

57


아니라 이렇게 지금 3D 영화는 딱 3개로 나누면 Shock를 주는 공포영화들, 놀라게 하는 거. 튀어나오고 활강하고 하는 것. 그게

가장 기본적인 기법들. 두 번째는 아바타가 보여준 방식. 아바타는 뭐냐면 기존에 3D 영화는 앞에 돌출시키는 거거든요. 툭

튀어나오게 하는 거거든요. 아바타는 거꾸로 왔어요. 뒤로 들어가게

하는 것. 그래서 되게 공간감이 있는. 저기에 이 면이 있긴 하지만 이

안쪽에 이만큼 공간에 있는 것 같은. 저 안쪽에 방이 더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공간감을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찍으려면 돈이 엄청

많이 들어요. 그래서 아바타 이후에 그런 3D가 안 나온 이유 중에 하나는 단순해요. 못해서 그런 게 아니고 돈이 없어서 그래요.

그만큼 제작비를 투자하기가 힘들어서. 그게 두 번째 3D 방식이고 세 번째 3D 방식이 아마 제가 생각할 때는 이 라이프 오브 파이가

보여준 방식인데 이 라이프 오브 파이의 3D는 되게 사실적이지는 않아요. 아바타처럼 진짜 있는 것 같은 그런 가상현실에 가까운

느낌을 주지는 않아요. 대신에 ***(02:02:55)를 한 3개 정도?

3개, 4개를 나눴어요. 그러니까 전경, 중경, 후경이 있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완전 연극이에요. 연극의 막을 한 3개 정도 나눈 것처럼 나누어놓고 그 각 막에 해당하는 동물, 뭐 장면, 인물들을 배치를 시킨 거죠. 그렇게 되게 상징화된 어떤 연출들을 하거든요. 이를테면 호랑이가 제일 뒤에 있을 때, 혹은 낙타가 제일 앞에 있을 때, 뭐 오랑우탄이 중간에 있을 때. 이게 왜 중간에 있어야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의 의미 부여가 다 되어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되게 정교한, 뭐랄까요? 잘 꾸며진 이런 그 연극? 이야기로 치면 연극에 가까운 어떤 형식들을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 이 영화는 그냥 3D를 다루는 또 다른 방식들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되게 의미가 있고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영화를 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이야기가 뭔지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는 영화거든요. 주위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죠. 되게 잔혹하게 살아남은 소년이죠. 소년의, 혼자서 배에서 살아남은 소년의 성장, 성장담이라고 하나요? 고행담.

***(02:04:05)처럼. 그 어머니를 죽인 주방장인 거죠? 아니,

주방장이 아니고 어머니를 죽인 그 선원을 자기가 죽이고 자기가

58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호랑이처럼 잔인해져서 살아남는 이야기. 실제 우리가 실제라고 믿어지는 이야기. 하나. 그리고 지금 이 영화 보시는 것처럼

호랑이랑 같이 이렇게 같은 배에서 살아남은 되게 영화 같은 이야기. 두 이야기를 들려주고 마지막에 질문을 하죠. 둘 다 증명할 수 없고

둘 다 해피엔딩은 아니야. 둘 중에 뭐가 더 마음에 드니라고 질문을

하는 거예요. 그게 우리가 영화를 대할 때, 이야기를 대할 때의 어떤 심정이나 방식 *** 뭐가 맞냐의 문제가 아니고 어떤 이야기가 더

마음이 드냐의 문제예요. 제가 그 장면을 보면서 들었던 대사 중에 하나는 지금 신비한 동물사전 하잖아요? 해리포터 시리즈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신비한 동물사전 하는데 그 해리포터 시리즈의 제일 마지막에 저는 약간 그 해리포터 시리즈의 팬이라서 그 제일 마지막에 덤블도어 교수가 그 이야기를 해요. 해리가 약간

환상에 가까운 공간에서 막 둘이 이야기를 나눌 때 교수님한테, 그 덤블도어 교수한테 지금 이 이야기가 진짜인가요? 아니면 내

머릿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예요? 라고 물어보는데 덤블도어 교수가 그렇게 대답을 하거든요. 당연히 네 머릿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지. 그런데 그게 사실이 아니, 그러니까 네 머릿속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해서 그게 현실이 아니니? 라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러니까 상상한다는 거, 내가 머릿속에 그려본다는 게 그냥 상상이고 현실과 다르다라고 할 수 있냐라는 거거든요.

이야기도 마찬가지거든요. 그냥 이야기는 이야기인데 이야기는

가짜라고 할 수 있냐의 문제인 거예요. 그게 조금 확장하면 영화,

영화는 사실 영화잖아요. 현실이 아니에요. 영화는 그냥 영화니까

영화로만 봐야 돼까지만 이야기할 수 있는. 다양한 질문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런데 이 라이프 오브 파이는 가장 기술의

최첨단에서 그런 질문들을 이야기적으로도 그런 식으로 반영하는 거죠. 마지막으로 정글북. 지금 저기 나오고 있는, 정글북 혹시 영화 보신 분. 아, 아마 정글북이 좀 어떻게 보면 슬프지만 산업적으로는 미래영화일 거예요. 한동안은. 지금 저 영화에 나오는 소년 빼고는 다 CG거든요. Full CG예요. 그러니까 이게 우리가 거의 사실 지금 보고 있는 영상, 여러분이 미국드라마, 영화들, 보고 있는

11월 23일, 송경원

59


영화들 거의 대부분 다 CG라고 보면 돼요. 그런데 CG를 어느 정도 썼냐의 문제인데 조금 다르지만 미국이나 할리우드 영화에서

CG를 쓰는 이유는 CG가 더 사실적이라서 쓰는 게 아니에요. 그게 훨씬 싸거든요. 세트를 만드는 것보다. 경제적이라서 CG를 쓰는 거예요. 물론 우리나라하고는 상황이 틀려요. 기본 액수 단위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테면 CG를 쓰면 ***(02:07:09) 100억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100억부터 시작하면 블록버스터고. 그런데 미국에서는 100억부터 시작하면 되게 싼 거예요. 그러니까 경제적인 이유로 CG를 쓰는 건데 이 정글북에서 보여준 CG 같은 경우는 그거랑 또 약간 상황이 틀린 거죠. 저 소년 빼고는 정글, 저 나오는 곰, 뱀, 전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다 CG예요. 그리고 실제로는 세트에서 연기를 시키는 건데 저 CG를 구축하기 위해서 이를테면 이미 애니메이션을 다 그려놓은 거죠. 소년 빼고는 다 애니메이션을 다 완성을 시켜놓은 거예요. 그렇게 하고 스튜디오로 데려와서 소년은 연기를 시키고 그다음에 Digital actor에 해당하는 저 배우들, 표범들, 호랑이, 뭐 이런 그 Texture들을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조종할 수 있어요. 연기를 시킬 수 있는 거예요. 사실 실질적인 Digital actor예요. 완성을 다 시켜놓고 소년을 갖다 놓은 게 아니라 ***(02:08:04)를 만들어놓고 소년을 갖다 놓고 거기에 그 디지털로 계산된 배우들을 갖다놓고 연기를 시키는 거예요. 사실. 그러니까 완전 다른 방식의

CG 접근인 거죠. 그런데 이걸 보는데, 우리가 이 극장에서 이걸 보는데 물론 정글북 이야기 자체는 되게 참신하지는 않아요. 우리가 많이 봤던 이야기고 그냥 익숙한 디즈니 드라마예요. 그런데 이걸 볼 때, 아, 저게 되게 CG가 잘 만들었네라는 생각을 할까요? 아니면 저 장면들을 어떻게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을 할까요? 그런 생각 안 해요. 그냥 봐요. 그러니까 이미 우리한테는 저 CG의 저 수준이 되게 익숙한 레벨이 된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는 가능하겠지만 지금 저 정글북 정도만 돼도 인물, 그러니까 사람 빼고는 전부 그냥 그림으로 만들어도 이게 영화가 아니고, 아, 애니메이션이 아니고 그림이 아니고 영화야라고 소개될 수 있는 상황이죠. 저걸 보고서 60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누가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는 사람 없죠. 그런데, 아, 저게 과연 영화일까요? 애니메이션일까요? 모르겠는 거예요. 왜냐면

실질적으로 저건 다 그린 거거든요. 찍은 게 아니에요. 찍은 게

없어요. 그런데 애니메이션이라고는 못하죠. 우리가 알고 있는

애니메이션 개념이랑 좀 다른 거거든요. 이런 영화들 같은 경우는

전통적인 방식의 어떤 개념이나 접근이 아무 소용 없는 거죠. 그런데 실질적으로 저런 영화들이 이제 흥행을 한단 말이죠. 그리고

***(02:09:23) 익숙하게 우리한테 이렇게 학습이 돼요. 그게 한 10년만 지나도, 그러니까 결국 영화도 뭐냐면 학습이거든요. 많이 보고 익숙해지면 그게 대세예요. 디즈니가 지금 저 프로젝트를 계속 실험하다가 좀 여러 번 실패하고 지금 처음으로 성공한 게, 저 실사화를 처음 성공한 게 정글북인데, 성공이라 함은 흥행을 했다는 거예요.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데 이게 어떤 상징적인 의미가 있냐면 할리우드는 늘 소재 고갈에 시달려요. 다음에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데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그렇게 샘솟듯이 많이 나오지 않죠. 그래서 뭔가 계속 원작을 찾아요. 그 중에 찾은 것 중에 하나가 지금 많이 나오는 슈퍼히어로 코믹스 같은 거죠. 슈퍼히어로물을

원작으로, 소재로 삼은 가장 큰 이유가 뭐냐면 그 세계를 만들 수

있거든요. 방대하게. 1편 흥행하면 지금 유니버스라고 하는 것처럼, 마블의, 마블 유니버스라고 하는 것처럼 그다음 속편, 또 연결된

속편, 프리퀄, 뭐 스핀오프, 계속 만들 수 있어요. 그러니까 안정된 속편이 가능하다는 거죠. 흥행할 수 있는. 그걸 늘, 그런 이야기를 찾고 있는데 디즈니는 옛날 거를 살릴 수 있으니 그럴 필요가 없어요. 이야기가 다 나와 있거든요. 이미 쌓아놓은 그 *** 이야기가 엄청 많아요. 이 캐릭터들이. 그런데 그거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차에 CG로 이렇게 만들었는데 되더라는 거죠. 사람들이 재밌게 받아들이더라는 거죠. 그래서 실제로 디즈니가

지금 차후에 만들고 있는 프로젝트들은 다 실사화 프로젝트예요. 이제 계속 나올 거예요. 뭐 신데렐라, 미녀와 야수, 알라딘,

인어공주, 다 실사로 나와요. 저런 식으로. 그 영화들은 다 배우들

빼고는 그린 거죠. 그런데 그게 아마 익숙해지실 거예요. 계속 보다

11월 23일, 송경원

61


보면. 지금, 지금도 이미 낯설지 않죠? 그리고 이상하지 않아요.

90년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Full CG 영화는 되게 이상했어요. 흔히 이야기하는 ***(02:11:30) 사람을 보게 되면 되게 낯설게 보여요. 가짜 같고. 그래서 되게 애니메이션도 아니고 영화도 아니고 기괴한 것들로 받아들여지는데 이미 그 단계를 다 극복한 거예요. 그래서 이제는 한동안은, 뭐 물론 그렇지 않은 영화들도 계속 존재를 하겠지만 메인 스트리밍 중에 하나로는 저런

CG 영화들이 나올 거예요. 제가 그냥 쭉 이번 시간에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해서 National cinema, 영화에 대한 질문들을 하다가 결국 도착한 곳은 정글북인데 그게 지금 제가 영화기자? 혹은 영화평론가로서 갖고 있는 가장 큰 질문이 아마 제일 처음에 드렸던 영화가 뭐지? 영화가 뭘까에 대한 질문을 지금은 계속

수정해야 되는 과정인 거죠. 60년대, 90년대까지만 해도 어쨌든 영화는 Realism, 필름으로 찍은 거예요. 그 여러분 이름 한번

들어보셨을 앙드레 바쟁이라는 사람이 이야기했던 Realism, 그 사람이 쓴 책의 제목이 영화란 무엇인가거든요. 그 책의 결론이

영화는 Realism이에요. 그런데 이제는 전면수정이 필요한 단계인 거죠. 그래서 저는 어쨌든 저한테 있어서 영화는 재미있는

도구이기도 하고 뭐 어떻게 보면 밥벌이기도 하고 혹은 나한테 어떤 감정이나 감정을 주는 매체이기도 한데 지금 현재는 질문을 주는 대상인 거죠. 그런데 그런 차원에서 보면 이런 영화들, 뭐 지금

최근작, 가장 최근작을 예로 들면 신비한 동물사전 같은 영화들을

보면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아니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뭔가? 네. 그냥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여러분도 약간 그런 식의 어떤, 뭐랄까요? 틀 같은 걸 한번 만들어보셨으면 좋을 것 같아요. 재밌는 영화들, 나한테 소개 안 된 영화들만 하는 것도 사실은 죽을 때까지 다 못해요. 만약 논리적으로 봐서. 뭐 단순하게 예를 들면 국내에서 생산되는 한국영화가 1년에 한

200편 남짓, 해외영화가 수입된 것까지 합치면 한 600편 정도 돼요. 극장에서 틀어지는 것만. 국내에서만. 전 세계적으로 영화 만들어지는 것들을 생각하면 몇 만 편 단위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62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사실 죽을 때까지 아프리카영화 1편 못 보고 죽기도 하잖아요. 그러니까 이미 나와 있는 텍스트들만 갖고 뭔가를 찾아내고 발굴하고 이야기하는 것만 해도 사실 죽을 때까지 다 못해요. 사실 다 볼 필요도 없죠. 그런데 어떤 걸 보냐는 한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나한테 어떤 질문을 할 수 있는 영화들? 나한테 뭘 남기는 영화들을 보냐는 거는 사실은 좀 적극적인 이 발걸음?

찾아보는 수고가 필요해요. 너무 많기 때문에. 조금 마지막으로 제가 그냥 마무리하는 발언을 좀 드리고 싶은 것 중에 하나는 그거예요. 지금 어쨌든 여기 계신 분들은 뭐 꼭 영화만이 아니라 뭐 다른 문화적인 분야에도 다 관심이 있어서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는 분들이신데 지금 한국영화산업에서 ***(02:14:43) 가장 문제 중에 하나는 영화를 찾아보지 않아요.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세계에서 제일 많이 보는, 세계에서 영화를 제일 많이 보는 나라가 우리나라예요. 작년 기준으로 해서 1년에 4.4회거든요. 그런데

미국이 우리가 그렇게 할리우드 그렇게 하는 미국이 3.9회밖에 안 돼요. 그러니까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1인당 영화 소비 횟수가

제일 많아요. 그런데 우리의 소비패턴은 영화를 찾아본다기보다는

멀티플렉스를 가는 거죠. 그러니까 사실은 볼 게 없어서 영화를 보는 거예요. 어떤 측면에서 보면. 그냥 볼 거 없으니까 쇼핑몰,

멀티플렉스를 갔는데 가서 보니까 영화를 상영하고 있고 그 중에 시간이 맞고 그냥 제일 적당해보이고 제일 유명한 것들을 찾아보는 게 보통의 소비패턴이에요. 그러니까 그게 절대적으로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그런 영화들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 소비패턴이 되는데 영화 자체의 어떤 건강함? 다양함이 지켜지냐라고 하면

그렇지는 않죠. 그런데 오히려 적극적으로 영화 찾아보는 관객층은 거의 수치를 나타낼 수가 없지만 확실히 줄어들고 있는 추세예요. 어떻게 보면. 단순하게 비교하면 시네마테크든, 뭐 지금 이런 거 봐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역의 예술영화 상영관들을 예전에 찾아다니는 ***(02:15:59)이라고 보여지는 사람들이 90년대

초반, 중반, 혹은 후반, 2000년대 초반에 비교했을 때에 비하면

확실히 줄었어요. 좀 나쁘게 이야기하면 그때 보던 사람들이 지금도

11월 23일, 송경원

63


보고 그리고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되게 드물어요.

그러니까 사실은 영화를 찾아보는 계층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거죠. 영화 찾아보는 계층이 줄어들고 있는 이유가 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그중에 하나가 이런 거라고 봐요.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 혹은 내가 어떤 기준을 세워놓고 영화에 이렇게

접근해야지라는 질문을 사실 잘 하지는 않죠. 어쨌든 영화는

여가생활의 일환이기 때문에. 그리고 가장 대중적인 여가생활 중에 하나기 때문에. 그런데 어떤 측면에서는 지금 이런 미술관이나

아니면 뭐 전시관 찾아보는 것처럼 영화도 좀 찾아서 발품을 팔고 그 영화를 보려고 특정 극장에 갈 필요가 있다고 봐요. 좀 고리타분한 이야기지만 저는 어쨌든 아직까지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극장에서 보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영화는 영화를 만나는 거긴 하지만 내가 어느 시기에 어느 나이에 어떤 극장에서 만나는가도 되게 중요해요. 앞에 이야기를 한 세네 편

영화같은 경우는 저는 아직도 그 극장에서 봤던 화면 질감, 느낌, 같이 봤던 그 사람들? 그때 그날의 분위기, 뭐 ***(02:17:22)

이야기하면 그날의 어떤, 보고 나왔을 때 날씨 같은 것까지 포함해서 내가 그 영화를 봤다는 느낌이거든요. 여러분도 각자의 어떤

리스트들? 각자의 영화들을 좀 많이 만날 수 있으면, 보는 게

아니라. 특정 영화를 만날 수 있으면 좋을 거 같고. 네. 여기까지 해서 제가 준비한 이야기들은 거의 다 마쳤는데 짧게 질의 응답을 하나요? ― 사회자 네. 그 기자님께 질문이셔도 좋고요. 본인들이 가장 이제 기억에 남는 영화라든가 같이 이 공간에서 이렇게 공유하고 싶은 영화 이야기가 있으시면 자유롭게, 자유롭지만 간단하게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송경원 기자 제가 중간에 드렸던 질문도 좋고 아니면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도 좋으니까요. 뭐 질문이 있으시면. 예.

***(02:18:20) 완벽했나요?

64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 청중 3

예. 저는 그 평론가, 영화평론가들끼리 서로 영화를 보는 관점이 다 다르잖아요. 그래서, 그런데 뭐 서로 존중을 하기는 하겠지만 이건 저 사람이 몰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평론가들의 세계에서 서로를 대하는 어떤 방식이나 태도가 어떤지 궁금해요. 송경원 기자 일단은 영화평론가들의 세계라는 게 그렇게 딱히 존재하지는 않고요. 왜냐면 그렇게 자주 교류를 하거나 서로 만날 수 있거나 하는 접촉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물론 이렇게 뵙는 분들도

있지만. 일단은 존중, 존중? 존중이라는 이야기는 좀 이상하고

그냥 어떻게 보면 되게 고집 있는 사람들인 거예요. 그냥 n분의 1의 관점인 거죠. 내가 제일 맞고 다른 건 좀 다 틀려라고 하는 사람은 좀 이상한 사람인 거고 대부분 평론가들은 나는 이렇게 생각해. 그리고 너는 어떻게 생각해? 라고 질문을 받고 싶어 해요. 내가

A라는 질문, A라는, 뭐 이를테면 괴물은 나는 어떻게 봤어 했는데 아무 반응이 없으면 소위 말해서 ***(02:19:35)처럼 그 글은 실패에 가까운 거죠. 그걸 보고 누구는 넌 잘못 봤어. 틀렸어. 혹은 누구는, 아, 그거 괜찮은 것 같은데 이렇게 보면 어떨까라고 좀 다른 반응들이 나와야지 오히려 좋아해요. 그런 반응들이 있기를 원하기도 하고. 그리고 좀 가능하면 평론가라는 직업 자체 존재의 이유기도 한데 정답에 가까운 해석을 안 하려고 하죠. 누구나 봐서, 누가 봐도 누가 할 수 있는 이야기. 누구나 봐도 누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가능하면 안 하려고 해요. 그다음 단계의 또 다른 이야기. 그런데 그거 맞아. 그런데 이렇게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하는 포인트를 좀 잡아내려고 하는 강박들이 있어요. 그게 너무 심하면 뭐랄까요? 좀, 좀 *** 좀 뒤틀린 글들이 나오기도 하고 주장에 앞선 글들이 나오기도 하고. 그런데 오히려 그렇게 좀 너무 과격하게 앞서 나가는 해석이나 질문들을 하는 사람들이 더 주목을 받는 거 같아요. 어쨌든 그게 맞고 틀리고 논리적인 과정을 구축하는

11월 23일, 송경원

65


거는 조금 차후의 문제고 어떻게 이걸 다르게 볼 수 있냐라는 거에 좀 집착하는 게 많은 것 같고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이거 맞습니다. 이런 게 맞습니다, 라는 걸 인정하려고 하는 분위기는

아닌 거 같아요. 그냥 내 생각을 얼마만큼 정밀하게 잘, 좀 다르게 비교할 수 있는가에 집중하는 그런 분위기? 그리고 그런 걸

인정받았을 때가 가장 뿌듯하죠. 오히려 반론이나, 제일 원하는 건 그거예요. 사실은 지금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지면으로 나오는 영화***(02:21:13) 같은 경우는 사실상 좀 많이 힘이 떨어진

상태예요. 그렇기 때문에 반응이 딱히 없어요. 그리고 좁은 커뮤니티 안에서만 돌고 있는 반응 정도기 때문에 내가 뭔가 이야기했는데 반론이 나오고 그거에 대한 재반론이 나오고 그게 사실 평론이라는 전체 틀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원하는 형태인 거죠. 그런데

그렇게까지 되려면 처음에 던지는 질문이 참신해야 되기 때문에. 요즘은 뭐 화력도 많이 떨어지고 그래요. 그렇습니다. 답변이 되셨나요?

― 청중 3 예.

― 사회자 또 뭐 다른 질문하실 거 있으실까요? ― 청중 3

그러면 제가 하나 더. 그러면 평론가, 그러니까 창작자가, 감독이 영화를 만들면 평론가는

만들어진 것에 대해서 평가를 하는 건데 만드는 사람은 실무적인 입장이 있기 때문에 어떤 자기가 아는 걸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많고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결론에 대해서 불만을,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 사람이 많을 텐데 그래도 평론가들은 냉정하게 보려는 게 기본 태도잖아요. 그러면,

그리고 만드는 사람과 그걸 평가, 평가는 아니지만 비평하는 사람의 관계에도 뭔가, 그런 관계의 어떤 게 있을 것 같은데.

66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 송경원 기자 네. 정말 Case by case인데 평론가들의 성향, 개인적인 성향, 뭐 위치 이런 거에 따라서 다른데 말씀하신 것처럼 산업적인 거에서 출발하시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그런 걸 되게 잘 이해하는 사람도 있고 전혀 모르는 사람도 있어요. 어떻게 돌아가는지, 현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전혀 모르는, 메커니즘을 아예 모르는 상태에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데 이쪽 입장도 이해하니까 낫고

이쪽이 이해 못하니까 너는 잘못했어, 라고 하지는 않아요. 그냥 평론가라고 두루뭉술하게 묶기는 했지만 사실 전부 각자 입장에서 내가 아는 만큼 이야기를 하는 거거든요. 그게 어느만큼 호소력이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하고. 실제로 어떤 평론가 같은 경우는 내가 현장을 잘 알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이렇게 찍었어야 되는데 이렇게 못 찍는 거를 설명을 들어야 돼, 라고 생각을 해서 감독에게 직접 이야기를 하고 왜 그렇게 안 찍었습니까? 직접 질문하고 그걸 자기 글에 반영하기도 하고 하는 평론가들이 있어요. 제가 알기는

좀 약간 기자 출신의 평론가들, 감독들이랑 되게 친하고 감독에게 너 왜 이렇게 찍었어? 라고 직접 이야기하기도 해요. 그렇게 하는 평론가들도 있고 혹은 평론가가 개인적으로 창작하는 사람이랑 친해지면 글에 대해서 냉정할 수 없다, 라고 생각을 해서 욕할 때

욕해야 ***(02:23:50)라는 생각, 감독 대신 변명해줄 수도 있다, 라는 생각에 아예 그런 교류를 끊고 사시는 분도 있어요. 정말

글로만 이야기하는. 아무도 그 사람의 정체를 모르는. 그런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그거는 각자의 태도나 선택의 문제인 거죠. 그리고 그런 다양한 입장에서 쓰는 글들이 많아져야 영화에 대한 다각도의 분석이 이루어지는, 약간 제 개인적인 견해지만 그런 것 같아요. 영화를 본다는 게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그냥 눈앞에 사과가 있으면 사과를 보는 거잖아요. 그런데 사과, 어쨌든 사람의 시선은

1차원적이라서 사과를 이쪽 면밖에 못 봐요.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그런데 옆에서 보면, 옆에 서있는 사람이 사과를 나는 못 봤던 사과 여기 반점도 있어. 옆에 있던 사람은 약간 노란색도 있는데? 이렇게 다른 입장이나 위치에서 봐주는 다양한 시선이 필요한 거? 11월 23일, 송경원

67


그래서 반론이든 뭐든 좀 관점이 많아지는 게 중요한 거고 사실은 한 사람은 딱 한 관점에서밖에 못 보죠. 내가 어떤 관점을 취할

것인가는 본인의 성향인 거죠. 기자에서 출발하는 사람도 있고

제작현장에 있다 온 사람도 있고. 뭐 저 같은 경우는 사실 국문학과 출신이기도 하고 영화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해서 영화를 좀 알아야겠다 싶어서 이제 영화를 공부하기 시작한 사람이라 또 제가 말하는 입장도 다르고요. 각자의 어떤 판단 ***(02:25:08)인 거 같아요. 다 똑같은 이야기하면 사실 평론을 할 필요는 없는 거죠.

또 다른 점이 있으신가요? 그냥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오늘 제가 짧게라도 이렇게 이런 영화들이 있다고 이야기해드린 영화들 중에 여러분이 나중에 1편이라도 보고, 아, 이 영화도 좀 괜찮다, 라는 게 1편이라도 있으면 저는 만족할 것 같아요. 이게 다 괜찮다는

게 아니라 그냥 제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원래 국문과 출신이라 영화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 가까웠거든요. 대학교 때까지 되게 큰 착각을 했어요. 나는 영화 되게 많이 봤어, 라고 하고 영화 전공을 하시는 분들이랑 대학원에서 영화과를 나왔는데 막상 가보니까 정말 뭐랄까요? 무지랭이더라고요. 아무 것도 모르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봐야 되는 뭐 클래식 영화라든지 뭐 이런 것들을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였어요. 그래서 되게 막막하잖아요. 너무 뒤쳐진 것 같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고. 그런데 그때 제가

했던 가장, 지금도 그게 맞다고 생각하고 효과적인 Mapping은 뭐냐면 그냥 1번부터, 이를테면 세계영화사 뭐 100선이 있다고

하면 1번부터 100편까지 보는 거예요. 보면 1번부터 100편까지

내 마음에 들 수는 없어요. 세계영화사 100선 이렇게 고르는 거의

가치는 100개가 다 성격이 다른 것들을 골라놓은 거예요. 보다 보면 나한테 맞는 게 있고 재미없는 게 있거든요. 그러면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하나 발견되면 그 감독이 만든 다른 걸 한번 보고. 그 배우가 나온 다른 영화 한번 보고. 그 장르의 다른 영화 한번

보고. 그렇게 세네 편이 가지 쳐서 나오면 이 영화, 이 장르가 나한테 정말 잘 맞아, 라고 하는 것들이 발견되기도 하고 아니면, 아, 이건 아닌 것 같아, 라고 하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해서 조금씩 가지나

68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Mapping을 쳐나가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사실 여러분의 취향은 사실 이미 완성돼있거든요. 이미 이때까지 여러분이 보신 영화, 자기 경험이 여러분의 취향이에요. 어떤 게 나한테 더 맞고 안 맞고를 확인하려면 일단은 기본적인 것들을 봐줄 필요가 있는 거죠. 그래서 아마 이 10편? 8편 남짓한 영화들 중에 여러분에게 몇 편이나 잘 맞을지 모르겠지만 한 번쯤 시간 되시면 확인을 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중에 잘 맞는 게 있으면 정말 다행인 거고 잘 안 맞는 게 있다고 하면 제가 오늘 말씀드린 몇 가지 질문들을 한 번씩, 이게 왜, 이를테면 왜 나한테 잘 안 맞을까? 이게 왜 재미없지? 그때 그놈은 이게 좀 괜찮다고 했는데 왜 나는 이게 재미없었을까, 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해주셨으면 좋을 것 같고요. 그러면 비슷한 영화들? 또 다른 영화들을 좀 찾아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길 거고 그게 이제 아까 마지막에 말씀드렸던 발품을 파는, 영화를 볼 때 발품을 팔면서 보는 작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 사회자 저희가 그 영화평론 이야기도 하셨는데 평론가,

저희 아시겠지만 20년 전만 하더라도 정말

평론가 전성시대가 있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이제 지면과 다양한 이제 그 잡지에서 영화평들을 이제 접할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요즘 같은 경우는 이제 영화잡지도 많이 없어졌고 이제 뭐 여기저기에서 이제 인터넷 등에서 이제 영화평론들이 있기는 하지만 정말 이제 저희가 듣고 싶어 하는, 아니면 읽고 싶어 하는 그런 영화평을 제대로 이제 볼 수 있는 기회들은 참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그런데 그나마 이제 뭐 항상 이제 그 주변에서 어떻게든 이제 찾아서 볼 수 있는, 종이를 넘겨서 찾아볼 수 있는 그

영화잡지라는 게 사실 이제 유일하게 이제 씨네21 정도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그런데 이제 씨네21 같은 경우도 이제 보통 이제 다들 자주 보시기는

11월 23일, 송경원

69


하시더라도 글을 통해서 이제 보고 특정 이제 영화에 대한 글을 보기 때문에 이제 이번처럼 이제 가까운 곳에서 직접 이제 기자님이 오셔가지고 여러 영화들을 한꺼번에 이제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는 기회들을 참 드문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이제 영화를 이제 전공하는 사람이나 영화를 이제 좋아하는 사람들은 또 역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그런 영화를 막 이제 풀어내는 거는 정말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큼 또 재미있는 시간이거든요. 그래서 이제 기자님도 그렇고 여기 이제 와주시는 이제 관객 분들도 그렇고 이 시간이 굉장히 유익하고 이제 또 재미있는 시간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 송경원 기자

***(02:29:40) 요약해주셔서 감사하고요. 어쨌든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되게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뭐 좀 두서없이 이것저것 이야기하기는 했는데 작은 바람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 영화들 중에 1편이라도 여러분께 재미있는 영화가 있으면 좋겠고 좀

많이 찾아보시고 그리고 이후에 이제 이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영화수집광이 1달 동안 수요일마다 있다고 하니까요. 아마 오늘 제가 말씀드린 영화들이 정말 정말 보편적인 영화라는 걸 아시게 될 거예요. 뒤에 있는 강의도 좀 많이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상 끝)

70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11월 30일, 김소영

79


80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김소영

11월 30일

11월 30일, 김소영

81


김소영 김소영은 <파국의 지도, 2014>,

<근대의 원초경,2010>, <한국 영화 최고의 십경>등의 저서가 있으며, 영화 감독명 ‘김정’으로 <고려 아리랑:천산의 디바>를 포함하는 망명 삼부작 및 극 영화 <경>등을 연출하였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교수 및 트랜스 아시아 영상문화연구소 소장을 재직 중이다.

82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 김소영 안녕하세요. 김지하 선생님이 굉장히 자세하게 소개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저도 참여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해 본 수업 중에 가장 뭐랄까, 영화적인 환경에서 전시와 상영을

향연하면서 제가 여러분께 설명할 수 있게 되어 황홀합니다. 우선은 제가 소개할 영화들을 말씀드리면서 집중적으로 봐야할 화면들을 보면서 진행을 하겠습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릴 부분은 ‘망명 중의 영화, 망명하고 있는 영화, 영화의 망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의미에서 제가 망명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하나는 그 영화를 구성하는 initial sound와 motion-움직임. 이런 것들이 일종의 그 외부로 하나둘씩 계속 변모하고 변화하는 것들을 먼저 말씀을 드리고요. 또 하나는 망명한 감독들의 영화, 또 영화 자체가 또 망명의 선택을 이사한 미지의 상태를 보여주는 영화, 이제는

형식적으로 영화의 어떤 망명의 상태 그리고 지금 21세기는 또 이주의 시대라고 하는데요, 19세기에 이어서. 이주의 시대에

끝없이 이동하는, 이동해야만 하는 그런 그 세계 속에서 감독들이 이제 이런 세계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그래서 ‘이미지 싸움들,

세계의 경계’ 제게 그 뭐랄까. 영화 광, cinephile이 여러분, 이게 이제 선물하는 그런 그 영화들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자면 굉장히 다양하기도 하고 이것과 이것이 어떻게 만나는가, 이제 그런 생각이 드실 텐데, 맨 나중에는 말이 좀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India

Song', 그래서 고려 사람까지 여기에 맨, 저한테 가장 가까운 모니터를 먼저 상영할게요. 아, 두 번째가 두 번째 아래 있는 것이 'India Song'입니다. 그렇게 해서, Bruce Baillie부터 시작을 할 텐데요. Bruce Baillie 영화는 제가 'Castro Street'을 선택을 했고요. 그러면 이게 'Castro Street'입니다. 미국의 실험영화, 독립영화의 대표적인 작품 중에 하나고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Castro street에서 실제로 street 촬영을 한 것이고요. 'Castro Street'은 어떻게 알고 계세요? 혹시 'Castro Street'의 영상을 얻고 있는지, 여기서 gay parade가 있고 또 castro 극장이 있어요. 풍부함의 주가 전통을 가진, 그래서 11월 30일, 김소영

83


여기 보면 'Castro Street' 하고도, castro 극장, 거기에 이제 풍부함과 문학이 나타내는데요. Bruce Baillie는 실험영화에

익숙하신 분들도 레스탄 브루크 지나, Bruce Conner와 paul

shirts 이런 사람들과 함께 미국의 유명한 독립 영화, 실험영화를 만든 사람이고 작품으로는 'Quick Billy', '다코다 시인을 위한 인사', 'Parsifal', 'Castro Street', 'Rosaline Romance' 이런 것들이 있고요. 31년생이고 샌프란시스코의 이 'Castro Street'이 샌프란시스코에서 Canyon Cinema에서 일을 했고 또 61년에는 시네마 대학들을 창립을 했습니다. 그래서 마이딜렌이라고 미국의 굉장히 유명한 그 독립영화의 데모라고 할 수 있는 그 마이딜렌상을 받았고요. 조금 더 일찍 활동됐던 이, 여러분이 보시는 'Castro Street'은 지금 왼쪽에, 저쪽에서

보시는 왼쪽에 두 번째 맨 위쪽, 그게 'Castro Street'입니다.

이것이 이제 스탠퍼드 대학에 archiving 됐고요. 소장이 됐고요, 해서 그 김재하 선생님, 그거를 제가 조금, ***(00:07:35)

'Castro Street' 이것들을 조금,***(00:07:40) private 하는데, 'Castro Street'을 조금 보실게요. (영상 시청 중) 네, 그래서 이 Bruce Baillie의 'Castro Street'이 아주 clean, 명백하게 영화의 이제 궤도에서 영화의 기원으로 돌아가서 의미에 대해, 역에 도착하는 기차, 그것을 확인시키면서 그것은 동시대와 해서 'Castro Street'과 미국의 이주와 이동, Asia Pacific,

South Pacific의 기원들이 보이고, 60년대 미국의 말하자면

대학문화의 본산이었던 샌프란시스코의 'Castro Street', 이런 여러 개의 의미의 층들을 만들고 있고요. 동시에 여러분이 보시면

Lumière의, 역에 도착하는 기차 같은 것들을 굉장히 명백하게 물질성이나 대상이 있는 거지요. 기차가 그의 말미에 도착하고

그곳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고 또 여기서는 뭔가 그런 이미지나 사운드들을 가리고, masking 한다고 하죠. 이게 16mm 카메라

84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masking 하는, 그 masking 하고 이제 그래서 그걸 가리고 잘 보이다가 보이지 않고 또 보이지 않는데 살짝 보이고 숫자나 그 텍스트가 잠깐 보이고 글자가 잠깐 보이고 그러다가 다시 보이지 않고, 그래서 이제 Bruce Baillie 같은 경우는 자신의 영화를 어떻게 설명을 하냐 하면 그 당시에 말하면 뭐 선불교라든지 이런 것들이 그 port culture, 개항문화 속에서 중요한 어떤 사유의 길들여졌잖아요? 사유를 보여주는 일이었는데 그래서 자신의 이미지가 자신의 영화 작업이 ephemeral, 그러니까 굉장히

사라지는 것 같은, 그렇게 표현을 해 본다면 이미지는 보여지기 위해서 존재하기도 하지만 사라지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래서 사라지고 나타나고 또 나타나고 사라지는 ephemeral. 이런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어떤 그런 용어 비슷하게 설명을 하고 있어요. 그렇고, 그래서 이게 보면 굉장히 물질적이고 계산의 가시성과

그것을 masking을 통해서 이 카메라 안에서 이미지를 가리고

동그랗게 만들고 단줌도, 단줌도 가리기도 하면서 이런 물질성을

비가시성으로 향하게 하는 추상성을 띠게 하는, 그 안에서 어떤 것이 출연하는 거죠. 이것이 아까 말씀드린 제가 어떤 영화의 망명, 망명 중의 영화라고 했을 때 영화라는 것, 시네마라는 것 자체가 사실

어떤 망명하는 이미지, 망명하는 사운드, 사라지는 이미지 이러니까 이미지의 사라짐. 이러한 것들을 표현하는 데 Bruce Baillie가

'Castro Street'에서 잘 보여주고 있고요. 이 속에서, 그러니까 어떤 대상, 그것이 어떤 비가시적인 것으로 추상하는 과정에서 어떤 것이 출연한 그것이 관객들에게 보는 우리들에게 무엇인가 출연한 것이죠. 그 반쯤은 추상적이고 반쯤은 Bruce Baillie적인 기호적인 그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할 때 그것이 영화적인 어떤 출연인거죠. 그것이 우리의 것이고, 그리고 그것이

굉장히 스네틸적인 영화적인 풍만이라는 거죠. 무엇인가가 우리의 지력 속에서 우리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다른 이미지가 생성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Bruce Baillie는 아까 말해서 자신의 이미지는 사라지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게 굉장히 순간적인 것이다. 이런

것과 더불어서 이런 masking 기법, 그래서 이제 영화 프레임이

11월 30일, 김소영

85


있는데 그 프레임에서 여러 가지 프레임을 다시 masking을 통해서 하고 그래서 이제 영화가 보여주는 것 자체가 영화의 굉장히 어떤

fugitive 한 잠결, 말하자면 도망가고 바래고 어떠한 그런 기호가 끊임없이 망명 중인 그야말로 움직이는 그런 것들을 잘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추상영화나 실험영화에서 굉장히 많이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일단은 이것으로 영화라는 것이 이미지나 사운드와 모션과 텍스트와 비텍스트적인 기호들, 이런 것들이 영화의 프레임 안에 굉장히 촘촘히 혹은 성이게 나타나는데 이것을 우리가 영화의 어떤 망명성이라고 하고요. 그다음에 조금 다른 영화로 들어가서 불문학을 하시거나 세계문학, 여성문학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Marguerite Duras가 굉장히 큰 이름이고

저명한 작가인데 'India Song'으로 가볼게요. 'India Song'은 조금 전에 저희가 Bruce Baillie를 가지고 영화의 소리, 이미지

그것의 어떤 도망가는 바래지면서 사라지는 그러면서 또 조금 있다 또다시 나타나는 것들을 이야기했다고 한다면 'India Song'은 여전히 그런 이미지와 사운드의 영화적 성격을 가지고 프레임을 채우지만 이 영화에서 굉장히 명백하게 이제 제국과 식민의 기억,

또 여성성에 대한 문제가 있어요. 그리고 그 Marguerite Duras,

'India Song'이라는 것은 자신이 책을 쓰고 연출을 했지만 가장 많이 알려진 Marguerite Duras 원작의 영화는 연인, The Lover라는 거죠. 여기서 제가 'India Song'이 이 부분에서 프레임 되고 있는데요. 제가 조금 전에 Bruce Baillie를 보여드린 것처럼 보여드릴게요. 영어 자막이 있습니다. (영상 시청 중) ― 사회자 네, 잠깐 멈추고 이게 좀, 아 됐군요.

(영상 시청 중)

86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 김소영 네, 그래서 영화사를 저희가 방문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제가 이제 여러분하고 같이 걷고 있는 길은 그 망명의 영화,

영화의 망명, 망명 중의 영화. 이 주제로 말씀드리고 있고 아까

말씀드린 Lumiere 같은 경우도 말하자면 영화의 기원의 기차역에 도착하는, 기차를 찍고 또 한편으로는 많은 촬영가들을 세계

각국으로 내보냈죠. 그래서 세계 각국의 풍경, 중국, 인도, 이집트 이런 곳의 풍경을 담아서 프랑스하고 미국이나 영국에 배급을 했었는데 그 Marguerite Duras가 인도차이나에서 살았어요.

살았고 Duras의 작품 세계, 글도 쓰고 영화도 있고 굉장히 중요한 원체험이 인도차이나 식민지인들 차원에서 프랑스인으로 사는 거, 근데 어머니가 교사였어요. 교사였는데 굉장히 가난했고 그

가난 속에서 자란 거죠. 하지만 백인 여성으로. 해서 그 체험이 이 연인, The Love에 가장 많이 담겨 있는데요. 그래서 이때 어떤

망명의 영화라는 것은 제도기였던 프랑스에서 살았던 제국의 여성, 소녀였지만 굉장히 계급, 계층적으로 굉장히 가난했던 그 여성이

영화를 통해서 그곳의 예년의 시절을 다시 방문하는, 이제 그런 것이 어떻게 보면 망명의 영화의 중요한 장이라고도 볼 수가 있을 텐데요. 여러분, 연인은 다 보셨죠. 많이 보셨죠. 그래서 Jean-Jacques

Annaud가 만들었고 원체험은 이제는 Marguerite Duras로

추정되는 소녀가 자신의 소녀 시절의 이야기를 회억하는 것으로 영화를 시작하는데요. 그 14년에 인도차이나에서 출생했고 96년에 사망을 했어요. 그래서 그는 저는 이제 가끔 삶을 생각을 할 때는

그 삶의 마지막을 생각할 때 그 Duras가 한 이야기를 가끔 생각을 해요. 프랑스, 불문학을 하신 분들은 저보다 더 많이 아시겠지만

Duras가 나중에 뭐라 그러냐면 ‘c'est tout’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그 죽으면서, 죽음의 문턱에서. ‘이게 다야?’뭐 이런 거. 그 ‘c'est tout’, ‘그게 다야?’이거를 종종 생각하는데 제가 파일을 하나 보여드릴게요. 찾았어요. 자신의 인도차이나에서의 유년 시절을 기억하는 것인데요.

11월 30일, 김소영

87


(영상 시청 중) ‘연인’의 첫 장면이죠. 모든 곳에 강이 있었고, 메콩 강에, 내 15살에 있었고, 리무진에는 남자가 타고 있었는데 백인은 아니었고 나를 보고 있었고 사람들이 나를 보는 듯 했다. 태어난 곳이 없고 너무 먼 곳에 있다고, 과거 안에 현재가 있다. 이 장소는 과거에 익숙한 것이고, 하나의 중심도 길도 선도 없는, 내 삶에 이렇게 세세한 빛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때는 가치 있고, 이제는 숨겨진 부분에 대해서도, 어떤 젊음에 대해서, 내가 묻은 것들, ***(00:38:13) 그녀의 집안은 백인 집안이었고 부유와는 거리가 멀었어요. 이런 사실을 그와 ***(00:38:32) 알고 있었는데 삶의 방향은 비교적 이렇게 짧은 시간에, 6살에서 18살까지 생산적이었어요. 어머니가 남편을 여의고 내가 네 살인가 다섯 살 때인데. 여섯 살 때 ***(00:39:07) 어머니의 손에 자랐고, 너무 가난했어요. 처음에는 거의 두려움에 살았어요. 바로 망명 속에, 망명 상태에서 살 수 있기 때문이죠. 인도차이나에서. 이게 굉장히 그 재미있는 건데요. 저도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거예요. 어떤 영화에 대해서 자신의 작업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자기, 그러니까 'The Lover'라는 '연인'이라는 아마, '연인'이라는 작품이 그 시대를 남겨진 사진에 대한 자기의 comment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많이 돼요. 그렇게 여기까지인데요. 저희가 그 영화의 영화라는 게 어떤 것이냐고 했을 때 이 Duras한테는 그 자신이 남겨진 몇 장의 사진에 대한 언급이 연인이라는 책이고 그 책은 영화로 만든 것을 상상해 보면 이 표지가 자신의 유년의 사진으로 되어있어요. 그래서 그게 어릴, 저도 이 책을, Duras을 봤을 때 항상 여성작가의 얼굴이 각인돼

있는 그리고 인도차이나에서 성장을 했기 때문에 그 제국과 식민의 기억이라는 것이 사실은 굉장히 폭력적이면서 도착적이고 이런 것이죠. 그 Lover라는 것도 그런 이야기고, 조금 전에 이야기한

'India Song'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표지도 있더라고요. 아까 리무진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백인이 아닌 남성, 굉장히 부자인 은행, 은행에서 일하는 사람, 이 사람의 얼굴인 것처럼 88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보이는 사진이 이렇게 표시로 했을 때 했는데, 대부분 이 표지죠. 그래서 Duras가 그러니까 어렸을 때 굉장히 아주 감각적으로

관능적으로 예뻤고 아까 말한 ‘c'est tout’, ‘삶이 이게 다야?’뭐 이러면서 죽었을 때, 죽을 무렵의 얼굴인데요. 그래서 Duras를

보면 지금 저희가 지배를 받고 있는 그 망명이라는 것이 exile에

있죠. 어머니가 망명 속에, 망명의 삶을 사셨기 때문에 자기가 그

‘10년 정도 사는데 굉장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거, 그것이 이제 원체험인거죠, Duras의. 그리고 이 원체험이 일어났던 것은 영화의 시기라는 것이 19세기 말부터 1960년대까지 이제 제국주의 시대죠. 프랑스나 영국이나 영화사에서 그 굉장히 중요한 부분들이 이 제국의 경험, 제국에 남아있던 Duras는 제국의 굉장히 가난한 여성이고 백인 여성이고, 그런 경험, 이런 것들을 다루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제 Duras가 이야기를 할 때 글쓰기가, Duras는 특히 정말 écritur라고 불어로 이야기하는 거, 그게 글쓰기면서 영화 만들기이고 이제 글이 다 되죠. 영어로는 Writing 하고 Film Making. 한국말로도 우리가 글 쓰는 거하고 영화제작을 따로 띄어서 이야기를 하는데 Duras나 그 당시의 떼께그룹이라고 필리소렙이나 이런 사람들한테 글쓰기라는 것은 영화적인 작업으로도 갈 수 있고 정말 책으로도 갈 수 있고 이런 거죠.

Duras가 굉장히 그런 사람이었고요. 그랬을 때 어머니, 어머니가 자신을 길렀고 그 속에서 내재된 유년의 경험들이 또 정치적인 문제로, 정치와 개인사와 식민 제국사까지 같이 어울려서 굉장히

복잡한 동학을 Duras에게서 이제 만들어낸 거죠. 제가 Duras를 여기까지 좀 소개를 하고요.

Chantal Akerman으로 넘어갈 건데요. Chantal Akerman을 제가 요즘 우리 학교 영상이론과에서 가르치고 있는데 여학생들한테 들은 불만이 몇 개가 있어요. 저는 세계영화사를 가르치기는 하는데 세계영화사랑 이론영화사의 감독은 다 남성 감독들만 나오고 심지어 1학년 학생들의 이야기는 Chantal

Akerman도 안 나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1학년 여학생들의 11월 30일, 김소영

89


어떤 눈으로도 생각으로도 Chantal Akerman는 굉장히 중요한 감독인데 이런 영화제, 세계영화사에도 등장하지 않는다.’그렇게

하고 Chantal Akerman는 Chantal Akerman이 영화 간극이 되기도 하는 순간, 영화와 사랑에 빠진 순간, serenity 된 순간.

굉장히 유명하죠. 굉장히 명백하게 딱 하나의 에피소드예요. 다른

사람처럼 이거 보고 저거 보고 이런 게 아니라, 벨기에 출신이에요. 자기가 별로 보고 싶지 않았는데 자기 친구가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해 가지고 그 친구가 표를 사서 자기가 억지로 보러 갔다는 거예요.

근데 보자마자, 이 영화를 보자마자 ‘아, 정말 믿을 수가 없고 영화가 이런 에피소드가 있구나.’ 그게 Jean-Luc Godar의 ‘Pierrot

le fou'예요. ‘미치광이 삐에로’, 그래서 nouvelle vague, 그 영화를 보고 벨기에는 이제 파리랑 가깝지만 프랑스하고 flemish, 이런 것들을 쓰죠? 그거를 쓰지만 파리는 아닌 거죠. 그런데 정말 프랑스의 nouvelle vague의 Jean-Luc Godar의 ‘삐에로 미치광이’를 보고 손을 뻗친 거예요. 그전에 이제 Chantal Akerman은 학교도 굉장히 가기 싫어하고 그래서 영화 학교를 가봐야겠다. 자기가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을 했으니까, ‘삐에로 미치광이’를 보고 정말 결연을 맺은 거죠? 영화와. 그런데 갔는데 영화 학교에서도 너무 영화 학교도 너무 재미가 없고, 그래서 거의 독학으로 영화를 시작했고 작년에 자살이라고 추정되는 죽음을 맞아서 우리가 굉장히 다 애도를 하고 있는데 그 Chantal

Akerman은, 이제 Marguerite Duras은 사실은 제가 과문 해설일지 모르지만 이 어머니하고의 굉장히 긴밀한 유대, 그러니까 어머니의 그림자 속에서 자신의 글을 쓴 이야기는 Chantal Akerman이 어머니 이야기만큼은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Chantal Akerman 같은 경우는 이 어머니가 Auschwitz에서, Auschwitz의 생존자예요. 그래서 어머니와 Chantal Akerman의 영화세계가 굉장히 긴밀하게 연결됐고 또 영화에서도 이제 어머니에 보내는 편지라든지 어머니가 보내는 편지라든지 이런 것들이 많이 나타나고 Chantal Akerman는

죽을 때도 파트너가 여성이었어요. 그래서 어머니, 또 여성 파트너,

90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또 자신의 영화들이 굉장한 어떤 여성들의 세계를 탐사하고 그런 영화들인데 여러분이 영화의 장르에서 가장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그 장르가 멜로드라마잖아요? 그렇죠? 멜로드라마이고 멜로드라마가 가장 생명이 긴데 영화에서 장르로는, 지금은

이제 액션영화가 그렇다고 하지만 영화사 전체로는 보면 여전히 멜로드라마인데 그 멜로드라마가 사실은 이제 어머니의 관계,

어머니 그 maternal한 멜로가 모성적인 그런 것이라고 하죠.

그래서 미국의 이제 멜로드라마 가장 유명한 거 ‘Stella Dallas'라 그러면 이제 ‘Stella Dallas’도 어머니하고 딸의 이야기고,

그래서 영화라는 것이 시네마라는 것이 한 역사적으로 제가 조금 전에 설명을 드렸듯이 어떤 제국과 식민의 그 역사 속에서 그 포옹력과 그 생생한 도착적인 성애와 그런 것의 쾌락과 고통을 갖고 있는 부분이 있고 그것이 어떤 CINEMA IN EXILE이고요. 또 한편으로 영화라는 것이 멜로드라마, 그러니까 19세기에

이제 멜로드라마는 장르로서 연극이었고 특히 무대에서 굉장히

spectacle하시고 마치 지금 액션영화처럼 멜로드라마가 station화가 됐고요. 그다음에 연극에서 영화로 멜로드라마가 중요하게 옮겨갔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자면 멜로드라마에서 딸과 어머니의 관계 또한 모성, 그 딸의 마음, 어머니의 마음, 눈물, 말할 수 없는 것, 통한. 그러니까 이게 멜로드라마가 완전히 막장드라마로 가서 멜로드라마의 한 전성기까지의 정말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로 하는, 지금 이제 막장드라마나 멜로드라마는 모든 것을 말로 하잖아요. 말로 하고 뭐, 치고받아서 그 멜로드라마의

원래의 pathos, 어떤 그런 것을 끌어내기가 힘든데 어쨌든 제 말의 요지는 영화에서 시네마에서 영화, 멜로드라마가 굉장히 중요한

장르가 되면서 그 모성애나 딸의 이야기, 어머니의 딸의 이야기가 굉장히 중요한 거고 Chantal Akerman의 경우는 어머니가 그

Holocaust의 생존자이기 때문에 또 Chantal Akerman는 벨기에를 떠나서 파리로, 파리에서 주로 이제 뉴욕에서 많이 살았죠. 그래서 'News From Home'이라고 Chantal Akerman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뉴욕에서 어머니가 계속 보내는 11월 30일, 김소영

91


편지를 Chantal Akerman이 읽는 거죠. 그 'News From

Home'이라는 영화로 유명한데 이게 그래서 중요한 모티브예요. 그리고 Chantal Akerman은 그야말로 ‘Pierrot le fou'가 Jetherean-Jacque의 nouvelle vague 의 굉장히 대표작 중에 하나라고 한다면 'Jeanne Dielman'이라는 손주의 아방가르드 영화를 만들었죠. 제가 2000년도에 전주국제영화제 초대됐었어요. 그때 회고전을 했었는데 그때 Chantal Akerman, 퍼샤오치엔, Sokurov인데, Sokurov는 어디서 보이냐면요. 저 ’Stroy‘라는 영화가 차이콥스키 이후에 Sokurov가 러시아를 대표하는 감독 중에 하나인데 이 Sokurov예요. 그 아시아, 지금 이제 영화가 더 많이 알려졌고, 2000년대보다는. 세 사람에 관한 회고전을 했었고 그때 이제 정상희 선생님하고 제가 공동 프로그래머였는데 그때

Chantal Akerman할 때는 한국의 이 아방가르드 역할이나 실험영화가 더 알려졌을 때가 이 'Jeanne Dielman'을 딱 그러니까는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 한 평범한 가정주부가 성 매매를 하다가 그 남자를 죽인다. 이게 이제 스토리 라인으로는 굉장히 자극적이지요. 그렇죠? 이게 아무 일도 아니잖아요. 그냥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음식 하고 그러니까 정말 여성의 일상, 그런데 그 일상에서 성매매가 일어나고 돈을 벌기 위해서 그다음에 어떤 살인까지 일어나는 그런 이야기가, 형식적으로는 여성의 일상을 굉장히 세밀하게, 그러니까 그전까지의 영화는 멜로드라마라고 하더라도 사실 여자가 집에서 부엌을 중심으로 완전히 노동을 하거나 이런 것들은 세세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성의 일상의 노동을 굉장히 실험적으로, 여기서 실험적이라는

말은 여기서 뭔가를 정말 정성을 들여서 이 영화로서 보면 Jeanne

Dielman이 만들고 있는 음식의 레시피를 알 수 있고 그것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그래서 실제로 이게 블루 레인지가 DVD가 나왔을 때는요. Critivity가 했어요. criterial에서 나온 거 같은데 그 DVD 이벤트가 있었어요. 이 영화에 나온 레시피를 보내면 그 블루 레인지 DVD를 준다는, 그러니까 그 정도로, 어쨌든 그 여성의 일상의 노동을 굉장히 정교하게 카메라가 친밀하게

92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하지만 친밀하면서도 관찰하는 듯이 다루는 방법 자체가 굉장히

sensation할, 굉장히 이제 화제가 될 만한 영화예요. 그런데 이제 전주에서 지난주에 광주에 있고 전주영화제에서 2000년도에 제가 들어가서 가만히 듣고 있으니까 여학생들이 이제 바글바글 이러는 거예요. 이런 실험영화를 처음 본 거예요.‘얘, 얘.’이러더니,

‘지금쯤 살인이 일어났어야 되는데 왜 안 일어나고 있는 거니?’이제 이러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제가 웃었는데 그래서 이걸 뒤집어서 생각을 해 보면 어떤 사건도 나지 않는 여성의 일상을 굉장히 정교하게 그리는 것 자체가 여성 영화의 탄생인 거죠. 그런

'Jeanne Dielman'을 만들어서 단번에, 그러니까 어떻게 보자면 예술, 영화, 아방가르드 영화의 주목받는 여성 감독으로 부상했고요. 작품들이 ‘마을을 폭파해라’가 1968년이고 ‘유의하는 여자, 결혼한 여자’그리고 ‘Hotel Monterey’가 이제 72년, 그리고 짤막한 단편들도 많이 만들었어요. 그리고 조금 전에 말씀드린 'Jeanne Dielman'이 75년. 그러니까 그전까지는 화제가 되고 이러다가, 그러니까 68년에 쏘피마 빌, ‘마을을 폭파해라’도 사실 굉장히 화제가 된 작품인데 75년, 한 7년 정도 작품을 하고 75년 'Jeanne Dielman'으로 'Jeanne Dielman'그리고 그 여자가 살고 있는 Brussel에 주소가 있는 거죠. Castro street처럼. 그래서 이 잠깐 이야기했는데 장소성들이 굉장히 중요해요. 여기 감독들이 이미지와 사운드를 굉장히 형식화하고 실험을 하지만 그 장소성을 굉장히 그 감독들의 영화에서 중요한 요소로 보는데 이게 1976년에 ‘News

From Home' 이게 뉴욕에서 아까 말씀드린 어머니, 떨어져 있으면서 어머니의 편지를 받고 한 것이고요. 그리고 ‘Les rendezvous d'Anna’78년 이게 이제 Holocaust를 경험한 그 사람의, 어머니에 관한 픽션영화예요. 그리고 2015년에 ‘No Home Movie’라고 보면 ‘News From Home'이라는 76년의 영화하고 쌍을 이루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실 무렵에 다큐멘터리를 만든 거예요. 네. 그래서 제가 Chantal Akerman의 ‘News From

Home'의 거의 마지막 장면인데요, 끝에가,

11월 30일, 김소영

93


(영상 시청 중) 제가 마이크를 끄고 이야기할게요. 이 ‘News From Home'같은 경우는 제가 지금 주제하고 있는 망명을 다룬 영화들, 다룬

영화들을 한 범주로는 악센트가 있는 영화, 그러니까 영어를

쓰는데 Chantal Akerman도 불어식으로 영어를 쓰고 이런 미국의 영어가 네이티브가 아닌 사람, 원주민 영어가 아닌

사람들이 망명의 상태에서 만든 영화들을 악센티트 시네마라고 해요. 악센트가 있는 영화. 그러니까 누가 영어할 때 ‘아, 너 악센트 있구나.’라고 할 때 그거를 폄하적인 language가 아니라 오히려

격상시켜서 악센트가 있는 영화라고 부르는데 그 영화의 대표적인 영화예요. 그런 악센트가 있는 영화들이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편지, 서간체를 많이 사용해서 서간을 읽는다든지 이렇게 하는데 여기서도 마지막 장면은 그게 없는데 계속 어머니한테서 그 Chantal Akerman이 도착한 뒤 계속 읽게 돼요. 그래서

이게 디아스포라 영화, 악센티드 시네마, 혹은 망명 영화의 굉장히 대표적인 shot이에요. 이 뉴욕을 떠나는 것이기도 한데 이제

그때 실제로 떠난 건 아니에요. 이런 마음의 풍경이죠. 정적이죠.

뉴욕의 ferry를 타고 뉴욕을 바라보면서 떠나는 것 같은, 이 장면.

이게 이제 CINEMA IN EXILE의 굉장히 대표적인 이미지예요. 그러니까 외부인의 시선으로 경계인의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보고 마벤 라글리스라고 Chantal Akerman하고 계속 작업을 했던

여성 촬영감독이 있어요. 그 사람이 이걸 찍은 건데 두 사람이 아까 말씀드린 여성의 일상의 미학을 카메라로 담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미학적인 실험들을 해요. 끝려가도 보면 뉴욕이라는 도시를 최대한 관광객의 시선이 아닌 시선으로 그리고 내부자도 외부자도 아닌 경계인의 시선과 시점으로 도시를 다루어요. 명장면 중에

하나예요. 네, 그래서 이게 명장면이라고 그럴 때 약간 맨 처음에

여러분 보여드릴 때 Bruce Baillie의 'Castro Street'도 그렇고 이 'News from Home'도 그렇고 사실 Castro street에 가면 그런 거리를 그렇게 찍을 수 있지 않겠느냐.’ ‘혹은 뉴욕

94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빌딩 찍은 걸 어디서 본 것 같다.’ 그런데 무엇이 다른가 하면요, 리듬이 달라요. 그러니까 'Castro Street'에 가면 그 당시의 산업사회의 사람들이 기차에서 일하는 하역노동자나 기차가 달리는 어떤 그 속도, 그것과 조금 달라요. 그리고 이것도 분명히 뭐 Staten Island나 이런 데 회계에서 이런 데 찍은 영화를

여러분이 보셨을 텐데 그 리듬이 조금 달라요. 그게 바로 어떤

경계인이, 이제 우리가 출연컨대 갖고 있는 어떤 리듬이고 그게

굉장히 산업적인 영화, 또 관광객이 찍은 영화들이 리듬과 달라요.

그래서 제가 어떤 CINEMA IN EXILE라고 그럴 때 영화의 어떤

이미지나 사운드에서 그 망명, 그 경계에 느낌이라는 것은 이미지와 사운드가 굉장히 가시성과 비가시성을 동요하면서 마치 이미지와 사운드가 도망가는 것처럼 추적당하는 것처럼 망명하는 그런 것이 있을 수 있고요. 또 하나는 그 리듬이 어떤 사람의 노동이나 배가

지금, 움직이는, 배가 떠날 때 그 리듬이 일정하게 이 영화에서는

nostalgia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 nostalgia가 망명한 그런 nostalgia가 아니라 굉장히 어떤 경각심이 있는 무언가 깨어있는 그런 리듬들이 조금씩 달라요. 그래서 아까 Castro Street'을 볼 때도 왜 그런 느낌을 받으셨을 거예요. 많이 본 그런 어떤 산업사회, 혹은 도시의 기차의 그런 이미지이고 그런 것인데 그 리듬이 빛의 어떤, 어떻게 보면 좀 치유적이라고 할까, 치유적이라는 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리듬이기도 한데 그것을 어떤, 그야말로 예술적으로 치환시킨 그런 것들이 사실은 굉장히 핵심이에요. 이 영화도 그런 리듬을 갖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고요. 자, 그래서 이 Chantal

Akerman이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으면서 찍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자기가 자살인지 질병인지 죽었는데 우리가 굉장히

많이 슬퍼하고 있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찍은 다큐멘터리가 ‘No

Home Movie'예요.

(영상 시청 중) 어머니, 그 ‘No Home Movie'를 그러니까 Chantal

11월 30일, 김소영

95


Akerman이, 어머니의 마지막 다큐멘터리고 또 Chantal Akerman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그 다큐멘터리에서 Chantal Akerman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돌아가시고 나니 무엇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무엇을 이야기해야 될지 모르겠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리고 나서 죽음을 맞았는데 이 영화의 이제 어떤 계보를 말씀을 드리면서 Bruce Baillie와 그 Bruce Baillie가 영화적으로 인용하고 병행하고 있는 Lumiere와 그걸 이야기하면서

영화라는 것이 사라지는, Bruce Baillie는 자기 영화 자체가 굉장히 ephemeral한, 굉장히 짧고 유한하고 사라지는 그런

것을 영화를 다루는데 그것이 이제 흘러흘러 어떤 죽음이 되는 것이고 그 여성 작가에게서는 그것이 어떤 근원의 Chantal

Akerman이나 Marguerite Duras의 어머니가 있고 Chantal Akerman만에게는 Holocaust을 겪은 어머니, 그러니까 그것은 Chantal Akerman은 자기 다큐멘터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해요. 어머니가 Holocaust의 생존자인 것을 자기들이 아는데 어머니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자기가 어렸을 때. 그렇지만 어머니가 그런 경험을 갖고, 끔찍한 경험을 갖고 있는 걸 알기 때문에 한 번도 no라고 한 적이 없다는 거예요. 단 한 번도. 단 한 번도. 그래서 이것을 요즘 저희가 Post Memery라고 해 가지고 어떤 것을 기억하는 한 시대가 있고, 그러니까 Chantal Akerman은 어머니는 Holocaust의 기억 속에서 그 트라우마 속에서 계속 사는 거죠. 살고 그 Post Memery라는 것은 Chantal Akerman이 그전 세대의 기억인데 마치 그것이 자기에게 마치 전수된 양 그 Post Memery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고 Duras 같은 경우는 인도차이나에서 굉장히 가난한 백인 여성으로 사는 것이, 사는 것에 대한 기억이 자신의 영화나 문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이었는데 또 그 안에 항상 피곤한 모습을 하던, 하고 있던 어머니, 어머니의 모습이 있는 거죠. 그래서 이것이 굉장히 개인적인 것이면서 이제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것이라는 것은 제가 이제 말씀을 계속 드렸었고요. 조금 제는

96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분위기를 바꿔서, 확 바꿔가지고요. 디아스포라 부분이 있는데 조금 여러분에게 익숙한 지금 아시아 여기 문화의 전당 밑에 전시실을 보니까 나가면서 보세요. 굉장히 귀한 archive 자료가 있는데요. 정추 선생의 archive 자료가 밖에 있어요. 있는데 정추 감독이 제가 지금 만들고 있는 다큐멘터리의 숨어있는 주인공이기도 해요. 그것은 조금 있다 말씀을 드리고 제가 지금 소개하려는

다큐멘터리는 ‘고려 사람’이라는 다큐멘터리예요. 그래서 한번 일단 보시고 지금까지 제가 조금 오늘 날씨에 맞는 조금 비에 가까운 이야기를 했다면 지금 이거는 그것을 확 뒤집는 그 CINEMA IN

EXILE의 망명의 영화 디아스포라의 영화예요. 이거는 전체를 다 봐야 여러분이 감이 다 오실 것 같아서 전체를 다 보는데 한 25분 정도 돼요. (영상 시청 중) 고려인들의 그 삶이 강제적이라는 이야기예요. 한 차에 실려서 블라디보스토크 근처에서 카자흐스탄까지 한 달 넘게 시간이 걸렸어요. 러시아인 이야기예요. 맨 마지막에 보여드릴게요. 제게 처음부에 보여드린 망명의 영화들은 이제 일생에서 만들어지고

Bruce Baillie의 것을 제외하고는 프랑스 여성작가들의 것이었는데 이 제국과 집단 트라우마와 이런 Auschwitz, 이런 사적이고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경험이 융합되어있는, 그리고 그것을 여성 작가가 작품으로 풀어내는 것이었고요. 이것은 고려인 감독 Son Lavrenti이고 이 사람은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났어요. 그래서 고려 2세인데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에서 시나리오를 전공하고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돌아와서 영화 시나리오도 쓰고 영화도 만들었는데 제가 몇 년 전부터 ‘망명 3부작’라고 해가지고

고려인들의 망명사, 당대사 이런 것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어요. 그래서 김재하 큐레이터가 저한테 변사가 된 영화광,

이 프로그램을 이야기했을 때 처음엔 제가, 지금 보시는 그런

영화들을 제가 영화광으로서 굉장히 좋아하는 거예요. 그런데 막상

11월 30일, 김소영

97


이 강의를 준비하면서 보니까 제가 앞에 말씀드렸던 대로 하나의 어떤 도망가는 추격당하는 그런 사라지는 그리고 다시 나타나는,

출연하는 그런 사운드, 이미지와 모션을 다룬 영화의 어떤 망명성, 영화의 메시지 자체의 망명성하고 그다음에 망명을 다루는, 실제

망명을 다루는 영화 두 개로 대개 좀 간추려지더라고요. 제 관심이 지금 이제 망명 3부작이고 그 Chantal Akerman의 죽음이나

또 그것뿐만 아니라 저도 이제 어머니를 올해 6월에 여의고 그래서 다른 결론을 가기가 힘들어서 이런 이야기를 했고 이 작품은 Son

Lavrenti 감독이 만들었는데 여러분은 사실 이것이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하는 그 수행성에 조금 익숙해지셨을 텐데, 그래서 이제 젊은 세대 중에는, 제가 이걸 가지고 세미나를 한 적이 있는데 영상자료원에서, 그럼 ‘비정상회담하고 뭐가 다르냐,’ 뭐 혹은 ‘미수다하고 뭐가 다르냐,’라고 질문을 한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무엇이 다르냐면요. 배열이나 지리적인 소재가 완전히 달라요.

그러니까 우리가 보통 한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은 이주자이거나 아니면 소위 이제 expat이라고 하는 1세대의 비즈니스로 한국에

온 그런 사람들, 그래서 보통 그 사람들이 구사하는 영어나 불어나

독일어나 혹은 동남아어나, 동남아시아어나 이런 군이 있죠. 그런데 이거는 이 다큐멘터리의 언어 군은 러시아, 카자흐, kurdish어,

고려말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배열이 완전히 다르고 이 역사적 배경은 어떻게 되느냐하면 한국에서는 고려인들의 이주사는

1937년에 스탈린이 강제 길을 가게 했고 엄청나게 고생을 했다. 이것만 알려져 있어요. 이게 집단이주사고 강제이주사고 그다음에 굉장한 어떤 집단 트라우마가 있는 거죠.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것은 그 이주 이후에 사실, 굉장히 다른 일이 일어난 걸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이들의 이주사는 아까 Chantal Akerman이 어머니를 통해서 다루는 Holocaust하고는 유사하지만 스탈린의 이야기는 어떤 집단, 학살, 이주, 강제이주, 유사하지만 그 뒤에는 무언가 이 사람들이 다 이거를 고려말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여기가 오시터베예요. 오시터베가 아주 시골마을인데 거기로 강제이주를 당한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에 없던 농작물,

98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농사를 지은 거죠. 농사를 지어가지고 그 당시에 sovkhoz라는 집단농장의 노력영웅들이 되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고려인들이 지도자인 거예요. 그러니까 고려인들도 그렇고 고려인들이

스탈린에 의해서 강제 이주당한 소수민족, 소수민족 그룹 중에

첫 번째예요. 그다음에는 뭐 Polish, 폴란드 유태인들, 그다음에

할머니, kurdish, 체첸, 독일인들, 이런 사람들이 다 강제이주를

당했어요. 그러니까 이리로 오기도 하고 시베리아 북쪽으로 가기도 하고 끝으로 가기도 했는데 그러면서 어떤 일이 벌어졌냐면 이 고려인들의 노력영웅인 sovkhoz, 집단농장에 와서 고려말들을

다 배운 거예요. 같이 유치원도 다니고, 그래서 거기에는 고려말을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이게 어떻게 보자면 제가 명명하기를 일종의 하층민의 cosmopolitan이죠. 굉장히

다른 민족에 대해서 열려있고 그래서 실제로 체첸이 러시아군에 대항해서 엄청난 대항을 하는 걸로 유명하잖아요. 교회에 폭탄을 떨어뜨려서 민간인도 많이 죽고. 그런 체첸한테 세계에서 유일한

친구가 있데요, 고려인들. 그래서 80년대 보면 그 체첸의 부수상이 부총리가 고려인이에요. 그 정도로 우리한테 전혀 모르는, 아까 제 강의의 제목이 ‘세계의 경계’거든요. 망명의 영화, 영화를

구성하는 이미지엔 사운드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세계의 경계를 다르게 변경하는 거, 세계 경계를 바꾸는 걸 그것도 이제 포함이

되어있는데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가 이 Son Lavrenti의

‘고려 사람’이에요. 그래서 Son Lavrenti은 조금 감동적인 것이 무엇이냐면은 다리를 잘 못 쓰세요. 약간 장애가 있으시고 상당히 힘들게 있었는데 굉장히 고려인 중에서도 아주 작으세요, 체구가. 그래가지고 이 분이 만든 다큐 중에 ‘기타 등등’이라는 게 있어요. et cetera, 기타 질문, 기타 질문이라는 게 있는데 그게 무엇이냐면 Soviet Union, 소련연방에서도 이제 소수민족이 차별을 받지 않았다고 하지만 어디 면적을 가면 사람이 작고 장애가 있고 고려인이라고 하니까 그냥 떨어지는 거예요. 떨어지는데 그때 항상

Son Lavrenti 감독이 ‘나한테 기타 질문을 해달라.’그러니까 소수인을 위한 기타질문을 항상 해달라고 해가지고 소련

11월 30일, 김소영

99


오페라단에도 들어갔고, 그래갖고 이만한 사과상자를 놓고,

할리우드 배우처럼, 그 위에 올라서서 같이 러시아 사람들 하고 오페라를 부르고 또 모스코우 국립영화학교에서도 떨어질 뻔했는데

‘나한테 기타 질문을 조금 해달라.’기타 등등의 자기의 장애와 소수민족 애환을 이야기할 수 있는 질문을 해달라. 그래가지고 그런 분인데 그래서 이 분이 유라시아의 굉장히 많은 소수민족들이 있는데 소련식의 사회주의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많은 소수민족들을, 그야말로 설원에서 시베리아에서 동물들과 자연의 순환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다 소비에트 영토에 데려와서 이 사람들을 alcoholism과 실업과 이런 시기에 시달리게

하는데 미국의 역사와 상당히 유사한데요. 이러한 소수민족들을

찾아다니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어요. 그래서 미국에서 볼 때는 유라시아의 소수민족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 내부에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가 정말 없는 거예요.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가서

만들고, 이런 거 말고 Son Lavrenti 감독이 굉장히 드물게도 이러한 유라시아의 소수민족들을 만들어서 ‘바벨의 땅’이라는 것도 바벨족의 그런 이야기이고, 그래서 굉장히 디아스포라 고려인을,

밖에 나가면 정추 감독 같은 경우는 탈북 고려인이고요. 고려인을, 고려이주노동자를 신자유주의 시대에 맞아서 이분들의 굉장히 풍요로운 이런 역사의 변이, 이런 변곡점들을 잘 모르는데 Son

Lavrenti 감독은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거죠. 그래서 제가 이제 전에 영화평론이나 영화에 대한 글만을 쓸 때는 사실 영화로서 계속 만들기는 했는데 지금은 조금 더 영화를 만드는 걸 많이 하고 영화 평은 덜 쓰는데 처음에는 전 한참 영화평을 쓸 때는 이런 자리가 있으면 지금 쭉 보여드리는 ‘차이닝의 하류’, ‘소크류패스토’, 저쪽 왼쪽부터 말씀드리고 있습니다.‘왕가의 화해하는 연하’ 그리고

Bruce Baillie의 'Castro Street' 그리고 Hóu Xiàoxián의 ‘호남호녀’, 그리고 예시카 하우스너의 ‘Lourdes’, 이 예시카 하우스너의 ‘Lourdes’를 뽑은 거는 이제 Chantal Akerman, Marguerite Duras와 같은 맥락이에요. 그래서 이 여성 감독의 비극적인 여성성, 그런 거를 최근에 여성영화를 보여드리면서 100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선정을 했던 거고요. 그리고 ‘Pursed'라는 이거는 웨스턴,

일종의 스릴러와 스릴느와르와 많이 겹쳐져있는 것인데 Raoul

Walsh거이고요. 그야말로, 저 영화야말로 굉장히 케말적으로 제가 아까 말한 하나의 어떤 도망, 어떤 추적, 도망, 사라지는 것, 죽음에 다가가는 것, 그런 것들로 다시 볼 수 있는 사실, 그 장르, 웨스턴장르이기도 해요. 그리고 그 밑에가 'India Song’이고요. 여기가 이제 ‘고려 사람’인데 이런, 제가 전에 평론가에 주력을 할 때에는 작품 하나하나를 가지고 이야기를 했을 텐데 지금은 제가 ‘망명 3부작’의 마지막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렇게

가기가 어렵더라고요. 어렵고, Son Lavrenti이 고려사람인데

굉장히 중요한 영화고 거기에 대한 저의 영화적인 comment를 그 보여드리면서 이제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맞더라고요. 지금

제 작품이 망명 3부작이 첫 번째가 ‘눈의 마음, 슬픔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이에요. 그래서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달은 차고 기운다.’이런 한국 미술사를 돌아보는 전시를 과천에서 하고 있어요. 제 거를 전시 상영하고 있는 그림이고요. 그래서 이 ‘눈의 마음: AFTERLIFE'를 이 전시를 하기 위해서 다른 편집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 전시상영을 하고 있는데 이게 저의 망명의 영화예요. 망명의 영화이고, 지금 여기에는 안 나와있지만 ‘눈의 마음’맨

처음에 조금 전에 ‘고려 사람’인 Son Lavrenti 감독이 자신의

영화적인 삶과 삶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것은 지금 여기에 안 들어 있는데 일단 조금 보여드릴게요. 아, 그리고

이게 맨 마지막에 Victor Choi라고 아시는지 모르겠는데요. 키노,

Victor Choi가 여러분이 본 ‘고려 사람’이 오슈터베츠에서 촬영을, 오슈터베츠가 카자흐스탄에 있어요. 그래서 고려인이 강제 이주당한 카자흐스탄하고 우주베키스탄이고 그 카자흐스탄 출신이에요. Son Lavrenti하고 조금 멀리 느껴지실 거고 Victor Choi를 아시는 분은 왜냐하면 키노라는 록그룹의 ‘혈액형’을 그 누구죠? 윤도현 밴드가 노래를 부르기도 했어요. ‘혈액형’이라는 한국말로 개사를 해서. 그래서 Son Lavrenti 감독하고 사실 Victor Choi가 같은 카자 고려인들이에요. 그렇게 문학하시는 분은 아실 텐데 Anatoly 11월 30일, 김소영

101


Kim, 세계적인 러시아 작가 있잖아요. Anatoly Kim은 러시아말이 굉장히 하여튼 어렵고 교묘하고 정교한데 러시아의 지금 가장 러시아어를 잘 사용하는 잘 쓰는, 가장 아름다운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두 명의 작가가 있다고 해요. 그중에 하나가 Anatoly

Kim이에요. 그래서 고려인들이 이 예술적인 성취도 굉장한데 문학, 음악 또 영화, 이런 데서. 그래서 Son Lavrenti 감독 말고 몇 명의 고려인 영화감독들이 있어요. 그래서 내년쯤에 제가 공개를 다 하려고 해요. 그러니까 제가 지금 이 프로그램은 영화 수집과 영화광, 변사 이런 주제가 되고 있죠. 수집할 부분. 그래서 제가 영화 수집을 하고 있어요. 하고 있는데 잘 알려진 DVD로 구할 수 있는 영화뿐만 아니라 조금 전의 ‘고려 사람’이라든지 ‘고려 사람’은 인천에 있는 이민사박물관 거기서 맨 처음에 소개한 걸 저희가 번역을 했고 그 이외의 Son Lavrenti 감독의 영화를 거의 다 찾았어요. 한 13편 정도가 되고요. 그것을 내년에 공개를 하려고 하고 그분들 말고도 몇 사람이 더 있어요. 더 있고 이 ‘눈의 마음’마지막에 나오는 것이 Victor Choi의 노래예요. 그런데 Victor Choi의 ‘혈액형’은 많이 알려져 있는데 이 노래는 그렇게 많이 알려진 노래는 아닌데 굉장히 좋아요. Victor Choi가 가장 고려인이라고 생각하는 노래인데 한번 들어보세요. (영상 시청 중) Anatoly Kim 책이고요. 번역이 돼서 나와 있거든요. 그 ‘눈의 마음’이 Son Lavrenti과 영화의 맨 앞에 보면 최송인 감독이 나오는데 눈사태가 나는 거 있잖아요? 폭발이 일어나는 거, 그거를 촬영한 것은 양원식 감독이라고 이 양원식, 최송인 감독이 제가 만드는 눈, 그 ‘망명 3부작’의 그 편, ‘Good Bye My Love and K'의 주인공들이에요. 그래서 밖에 있는 정추 선생님도 그 그룹 중에 밖에, archive가 있는 정추 archive가 있는 그 그룹 중에 하나인데 이 그룹이 무엇인가 하면 1952년 53년에 한국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때 북한에서 이미 전쟁영웅들이에요. 맨 102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처음에 나오는 최송인 감독 같은 경우는 그 만주 의용군 산정대 출신인데 북한에 가서 ‘내 고향’이라는 북한의 최초의 영화의 배우로 출연을 해요. 그러면서 평양의 배우학교에 다니고 그랬는데 그래서 군인으로 북한군으로 싸우다가 무슨 공로를 세우냐면은 영화 기자재들을 영화 기자재들이 파기당할 뻔했는데 그걸 다 소달구지에 싣고 무사히 영화 기자재를 지하에 숨기는 공훈을 세워요. 그래서 이제 그런 전쟁영웅들의 젊지만, 그러한 사람들을 북한에서 이제 모스크바로 다 유학을 보낸 거예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원하지 않았는데 다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에 가게 된 거예요. 그래서 감독도 하고 촬영도 하고 시나리오도 하고

이렇게 됐는데 최송인 감독은 카자흐스탄의 공훈감독이 돼요. 카사흐스탄에서 고려인들을 다룬 영화보다는 카자흐스탄의 소수민족들, 그러니까 소련연방의 소수민족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공훈감독이 되고 그 눈사태가 나는 걸 찍은 거는 양원식 감독이고 양원식 감독은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에서 촬영을 전공을 했어요. 그래서 굉장히 위험한 것들을 촬영을 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그만두고 고려 신문의 집필을 지내신,

촬영은 굉장히 잘 하시는데 그거는 조금 그런 것 같아요. 어쨌든, 양원식 감독, 최송인 감독 그리고 세 번째 나온 게 잘 기억이 안

나겠지만 김정훈 감독은 촬영감독이에요. 촬영감독이고 그다음에 나오는 재미는 옥수수밭에서 왜 그 사라졌다가 ‘개봉’이라는 굉장히 유명한 독립운동가의 자손이세요. 아들이신데 그 분도 사업자세요.

그래서 이제 저희가 망명, 세계의 경계, 여기서 시작을 해서 Bruce

Baillie가 이제 이미지, 사운드, 세계, 이미지, 사운드를 어떤 방식으로 실험을 하는 것을 봤고요. 그런 것을 봤고 거기서 이제, 전에 쭉 와서 새로운 어떤 세계라 그럴까, 우리가 알게 모르게

한국근현대사라는 것은 일본과 미국의 영향 하에 근대사의 대작이 만들어졌고 지금 박근혜 사태도 사실 미국과 일본의 근현대사의 파편으로도 볼 수 있는데 그 고려인들의 어떤 삶과 역사가 특별하게 어떤 매력을 느끼는 것은 정말 다른 세계를 살았던 사람들이고 고려인들 중에서 물론 지금 상해의열단이라든지 이런 것처럼

11월 30일, 김소영

103


홍범전 장군, 또 아까 계보훈 선생님은 사업자이기도 하면서

독립운동가이기도 해요. 그런 독립운동가들의 어떤 장소기도 하지만 또 하나는 그러니까 미국과 일본에 의해서 조각된 한국근현대사는 전혀 다른, 그러니까 소련연방에서 소수민족으로 또 카자흐스탄,

중앙아시아가 굉장히 다문화권이거든요? 그러니까 우주베키스탄은 지금은 독재국가로 완전히 전락해서 처참하지만 우주베키스탄도 사시켄트같은 경우는 예전에 실크로드의 중심지이고 그 사시켄트가 아니라 우주벡이, 구하라라든지 그런 곳이 있고 카시켄트는 80년

대 정말 소련의 일종의 Cosmopolitan, Metropolice인거예요. 굉장히 당라적인 열기로 가득 찼었고 카자흐스탄도 그래요.

그러니까 뉴욕타임즈같은 데서 사람들이 비웃음을 많이 받았는데 뉴욕타임스의 기자도 카자흐스탄과 키리히스탄이 다른 나라인지 모르고 키리히스탄 이렇게 두 개의 이름으로 짬뽕을 해 가지고 기사를 쓰는 등 비웃음이 되기도 했는데 이 카자흐스탄이나 이

Almaty도 굉장히 현대적인 도시로 엄청나게 부자예요. 그래서 사실은 커다란 백화점이 텅텅 빈 채로 엄청난 고가의 브랜드 제품을 팔고 그러는데 석유 강국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것보다도 이것이 실크로드, 지금 중국이 누리고 있는 일대일로 진행하는 곳이 고대 실크로드이기도 하고 이 중앙아시아라는 게 포스트 사회주의권인 거죠. 포스트 사회주의권이고 유목문화와 정주문화권이 만나는 엄청나게 역동적인 문화 생성의 장이었어요. 장이었고 또 제가 굉장히 감탄한 것은 이 카자흐스탄에서 키르기스스탄까지 천산이 쫙 있는데 이게 엄청난 에코벨트예요. 그래서 중국에서는 중국학을 전공하거나 글로벌스톡이라는 사람들은 여기를 ‘Trance

Ecosystem'이라고 부르더라고요? ‘과Ecosystem’그러니까

대성공 우리가 아마존정글만 아는데 여기가 엄청난 에코벨트예요. 그래서 촬영을 다니다 보면 마을에 들어서잖아요? 그러면 천산이

길게 보이고 이시콜로스라고 바다만큼 곳곳에 쫙 흘러요. 흐르고 그 마을마다 나와서 벌꿀을 파는 거예요. 벌꿀을 파는데 그냥 벌꿀이 아니고 뒤에 이 벌꿀들이 어느 꽃채에서 나왔는지 꽃 그림들이 쫙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문명이 지금 이제 사실 다시

104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좋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잘 살게 된다거나 이런 기대를 하지 말자.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보기에 이 중앙아시아하고 이 유라시아 이 지역은 엄청난 에코벨트면서 아까 말씀드린 정주문명과 유목민이 만나는 다문화의 장소이기도 하고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고려인들이 사실은 그 새로운 세계, 새롭지는 않지만 우리한테는 새로운 이 세계의 어떤 문화번역자로서 우리를 안내하기 때문에 저는 굉장히 이 고려인들을 통해서, 사실 저는 맨 처음에 시작할 때는 안산의 고려인 노동자, 우주벡에서 온, 알렉스라는 카시켄트라는 조금만 식당을 하는, 거기서부터 이주노동자 문제부터 시작을 했다가 키르기스스탄으로 가고 중앙아시아, 러시아로 가게 됐는데요. 그래서 이 아까 제가 어떤

영화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떤 exile에 간 상태, 그러니까 exile에 담는 Lumiere가 전 세계로 촬영감독들을 보내서 그것을 담아왔고 그래서 영화의 계보를 이쪽으로 exile로 어떤 망명, 이걸로 갈

수 있다는 점을 말씀을 드렸고 이게 지금 처음에 어떤 고려 사람, 그리고 고려인의 역사를 저의 audio visual, comment죠. 그 다큐멘터리, 지금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하고 있고 다른

작품들이 되게 좋더라고요. 한번 들릴 기회가 있으시면 가보시고요. 이 두 번째가 이제 고려 아리랑 천산의 계보인데요. 이게 정말

수집광이 돼버린 영화광의 어떤 상황이에요. 왜냐하면 카자흐스탄

film archive하고 굉장히 많은 개인 소장가들을 만나면서 조금 전에 말씀드린 Son Lavrenti 감독의 영화들도 거의 다 입수를 할 수 있었고 또 양원식 감독, 촬영감독, 그리고 최, 그 아 갑자기, 최송인 감독 그렇게 다 할 수 있었고 또 하나는 이 고려극장의 공연 팁들, 그런 것들을 다 수집을 할 수가 있었어요. 그래서 여기 보시면 이 분이 고려극장의 두 번째 디바였던 Bang Tamara는 선생님이고 러시아와 고려인 혼혈이에요. 아버지가 고려인이고 어머니가 러시아인이었는데 이 분이 70년대, 이 분의 공연

모습이 담긴 그런 것도 다 구할 수가 있었고요. 그래서 아마 제가 여러분한테 은밀하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게 영화광이 이제 되면 영화에 대해서 물론 쓰고 싶기도 하고 그다음에 collection을

11월 30일, 김소영

105


하는데 그 너무 알려진, 그러니까 아까 제1세대의 영화들,

제2세대의 영화들, 할리우드 영화, 작가 영화라고도 부르지만 그런 영화들에 대한 굉장히 비판적이고 새로운 해석을 하는 작품으로 굉장히 중요해요. 자기의 어떤 영화광의, 그 foundation을 하는 작업인데 굉장히 어떤 우발성의 연결들을 수집광으로서 만들 수가 있어요. 제가 제 자랑은 물론 아니고 러시아나 중앙아시아에서 이런 많은 자료들을 지난 한 3~4년간 계속 모을 수가 있었고 일부는

이제 여러분하고 공유는 하는 거고요. 그러면서 대만영상센터에

가가지고 ‘저 하늘에도 슬픔을’을 찾았어요. 그러니까 제 영화광의

역사상, 영화광은 아니고 영화 수집광의 이제 작은 개인사에서 가장 어떻게 보면 놀라운 사건이었죠. ‘저 하늘에도 슬픔을’은 너무나 어렸을 때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또 김세형 감독도 굉장히 좋아했고 이런 영화광과 수집이 다른 일이 아니라는 거, 영화에

대한 해석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제가, 자랑하니까 바로 나가시네. 저희가 네시 반까지 하는 걸로 되어있고요. 조금 이야기를 이제

정리를 하고 여러분의 질문이나 이야기를 들을 시간인데요. 이런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보기에 이제 영화라는 것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면 영화를 돌려볼 수도 있고 영화로 유명해질 수도 있고 그런데 그 영화라는 것이 일종의 도망자 같은 그런 이미지와 사운드를 fugitive하다는 건 도망자이고 덧없고 바래기 쉬운 이런

이미지와 사운드를 세계사의 어떤 망명의 장면들, 이산의 처사들이 밝는, 그래서 이제 영화라는 것이 이 세계, 그러니까 UN은 지금 시리아 사태를 보거나 거의 기능을 못하고 있고요. 영화라는

것이 세계에 어떤 무정부, 혹은 정부, 영화라는 정부의 출연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영화를 세계 무정부, 정부의 출연이 바로 이제

어떤 망명의 영화, 망명을 다루는 영화, 영화라는 이미지, 사운드의 망명성. 도망가는 그 잡을 수 없는 사라지는 그런 것들을 잡기

위해서. 지금 아마도 우리 세계는 많이 망해가는 것 같아요. 많이 망해가는 것 같고 우리가 알고 있는 근대문명도 이제 망해 가는 것 같은데 영화라는 것은 어떤 그런 세계의 무정부, 그 영화라는 정부의 출연이 아니겠는가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마 제 세대에

106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그 생각일까, 뭐 Chantal Akerman의 생각일까 그런 생각을 이것을 준비하면서 해봤고요. 우선 김재하 큐레이터가 굉장히

좋은 프로그램을 마련해 주어서 저도 사실 영화 평론을 할 때와 영화이론을 할 때에는 할 수 없었던 그런 생각들을 조금 해봤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고맙고요. 좋은 프로그램인 것 같아요. 이야기는 저는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이제 여러분이 장시간 앉아계셨는데 저도 두 시간이라고 제가 잘못 생각하고 와서 두 시간 반이어서 조금 여러분도 길게 느껴지셨을 수 있을 것 같고요. 해서 어떤 Bruce

Baillie부터 Chantal Akerman, Marguerite Duras 그리고 Son Lavrenti 또 저기 지금 상영하고 있는 브라운 작품 중에서, 그러니까 제가 이 작품 중에서 굳이 설명을 드리자면 그 찬인양을 하기도 그렇고, 그 찬인양도 말레이시아 화교거든요. 대만에 와서

영화를 찍으면서, 그러니까 대만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타이베이와 대만의 다른 세계들을 본 셈인데 그리고 이 소크라펜즈스 스톰’같은 경우는 사라져가는 세계, 그러니까 러시아의 19세기, chair,

19세기 말, chair의 박물관을 지키는 박물관 지기, 지기의 이야기고 사라져가는 것, 그런 거고요. ‘화양연화’도 그런 거고 제가 쭉 말씀드린 ‘Lourdes ’는 조금 달라요. ‘Lourdes ’는 제가 아까 말씀드린 여성영화, Chantal Akerman나 Marguerite Duras가 다루는 여성성, 여성의 sexuality, 여성의 비극, 뭐 이런 부분들과 연결이 돼 있고요.‘Pursed', 추적자. Raoul Walsh 그것은 이 fugitive, 어떤 도망, 영화관서 도망가고 사라지고 하는 것이 장르영화로 나타났다고 볼 수가 있을 것 같아요. Bruce Baillie의 영화는 유튜브에 있고요. 대부분의 유사영화들이, ‘Lourdes ’는 없을 것 같아요. 유튜브에 있으니까요. 그 Bruce Baillie의 다른 영화들도 좋고 말씀드린 Bruce Baillie와 그 당시 나란히 활동했던 Paul Sharits나 스타그 라티즈나 이런 또 그전에 ‘마이딜렌’, 이런 영화들도 이 기회를 통해서 다른 영화세계로 들어가는 좀 길잡이로 삼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네, 그래서 Bruce Baillie 영화를 볼 때마다 계속 이게 돌아오는 그런 기안하는 그런 영화들이고요. 네, masking으로 지금 디아이나 이런 것 같도 11월 30일, 김소영

107


아닌데 masking 기법으로 기가 막힌 영화를 만든 것 같아요. 그러면 여러분이 이야기 좀 하실까요? ― 사회자 네, 지금까지 이제 김소영 교수님께서 영화의 탄생을

또 디아스포라, 이주 망명과 엮어서 여성영화를, 또

여성영화라고 하면은 영화사에서 또 망명된 장르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렇게 엮어가지고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면 지금 이제 내용들에서 약간 조금 보태고 싶다거나 질문이 있으시다면 자유롭게 말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혹시 궁금하신 거 있으실까요? ― 김소영 되게 부러워요. 당신, 제가 이태까지 본 시네마 텍스트적으로는

최고인 것 같아요. 예, 정말. ― 사회자

그럼 제가 앞에 잠깐 시간이 없어가지고 바로 진행하느냐고 말씀을 못 드렸는데 어떻게 보면 김소영 교수님이 저희 주제에서 가장 적합한 분이실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방금 전에 ‘눈의 마음’이라든가 ‘고려 아리랑’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김소영 교수님의 감독으로서 연출하신 작품들이거든요. 그리고 열째 이제 한예종에서

트랜스:아시아영상연구소라고 해가지고 여러 아시아 작품들을 이제 또 수집을 총괄기획을 하고 계시고 계속 연구를 꾸준히 해오셨고 그리고 저희와의 인연이 있는 것이 저의 금번 이제 Film and Video Archive에 수집 감독님으로서 김소영 감독님이 솔직히 영화관에서 뵙기는 참 힘들잖아요. 작품이 워낙 어렵고 난해해서. 그래서, ― 김소영 교수 기대하지 않아요, 재미있는 거는. ― 사회자

(웃음) 그래서 영화제 같은 데서는 심심치 않게 만날 수가 있는데 사실 이제 대중, 영화가 멀티플렉스에서는 108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만나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금방 Film and Video 저희 Archive에서 김소영 감독님의 네이버를 보시면, 찾으시면 이제 filmography가 쭉 나오거든요. 그 filmography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을 이제 수집을 했어요. 그래서 이제 블랙박스 1 옆에 2 공간이 있는데 블랙박스 2에서 저희 archive 수집 감독님들의 collection들을 계속 분기별로 상영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내년 초에는

김소영 감독님의 작품들이 블랙박스 옆에서 계속 상영을 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오늘 같은 경우는 교수님이 애장하고

있는, 교수님이 좋아하시는 작품들, collection을 소개를 했지만 이제 또 이번에 같이 참여를 하시면서 김소영 교수님이 궁금하시다 하시는 분들은 내년 초에 블랙박스

2에서 감독님의 작품을 만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제 날씨가 궂은 날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같이 참여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또 다음 주, 다다음 주까지 이어서 정성일 선생님, 신영철 선생님의 변사, 진행이 있겠습니다. 그러면 또 계속해서 만나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상 끝)

11월 30일, 김소영

109


110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12월 7일, 정성일

119


120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정성일

12월 7일

12월 7일, 정성일

121


정성일 정성일은 영화잡지 키노와 로드쇼의 편집장을 했고, 2009년 <카페느와르>로 첫 영화를 연출하였으며 베니스영화제를 비롯해서 14개 영화제에 초대받았다. 2016년 두번째 영화 <천당의 밤과 안개>를 만들었고 로테르담영화제를 비롯하여 5개 영화제에 초대받았다. 이 영화는 내년 봄에 개봉할 예정이다. 임권택 감독의 20년에 걸친 두번의 인터뷰 기록집인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 <김기덕 야생 혹은 속죄양>, 두 권의 영화평론집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와 <필사의 탐독> 등의 저서가 있으며, 현재 세번째 영화를 편집하고 있으며 세번째 임권택 인터뷰 집을 정리하고 있다.

122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 사회자 예, 그러면 저희가 이제 시작을 해도 될 것 같은데요.

먼저 저희가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이라고 11월

23일부터 12월 14일까지 매주 수요일마다 총 4번 진행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같은 경우는 정성일 선생님을 모시고 변사 정성일 선생님이 직접 변사가 돼주시는 건데요. 그러니까 저희 주제에 맞게 영화

수집 그다음에 아카이브, 그다음에 그 영화를 좋아하는 시네필에 관한 것들을 엮어서 또 변사가 되셔서 설명을 해주실 예정입니다. 정성일 선생님 같으면 다들 이제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면 다들 들어보셨을 이름일 것 같은데요. 저 같은 경우도 중학교 때 처음 이제 선생님

이름을 접하고 특히 이제 키노라는 잡지가 있었었지요. 그래서 시네필들한테는 이제 뭐 지금도 이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중요한 잡지였고 제가 이제 그것을 보면서 예술영화가 무엇인지 그다음에 그 다양한 영화들에 대해서 접할 수 있는 정말 너무 큰 경험을 얻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편집장님이셨던 정성일 선생님이 계셨고 그리고 이제 지금 이런 노력을 이제 거듭하면서 여기 전공 같은 데서도 실험영화, 예술영화 그런 이제 각종 다양한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그런 기회들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제 이야기보다는 정성일 선생님이 워낙 이제 또 말씀을 잘해주시고 다들 이제 여기 오신 분들은 저번에 오신 분들하고는 이제 다르게 또 정성일 선생님을 직접 보고 싶어서 찾아오신 분들이 많으시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바로 정성일 선생님을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정성일 안녕하십니까? 정성일입니다. 마이크 사용하지 않고 그냥

이야기해도 상관없겠지요? 아시아문화전당에는 제가 작년 가을에 짜이밍양과 ***(00:16:41) 위해서 *** 진행하기 위해서 이

장소에 온 이후 한 1년 만에 다시 찾아뵌 것 같습니다. 그때는 모든

12월 7일, 정성일

123


공간이 오픈을 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오늘 와보니까 제가 처음 보는 공간 만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이야기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저의 아주 그 사사로운 이야기를 한편으로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분과 함께 10편의 영화를 감상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 속에서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 머무는가? 아카이브, 아카이빙이라는 멋진 단어를 써주셨는데 아마 제가 여러분과 오늘 함께 이야기하려는 것은 기억속의 장면이 머무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그 10편의 영화를 어떤 영화를 볼까를 고민했습니다. 저는 항상 그 베스트10을 뽑을 때 어떤 고려도 안 하고 어떤 균형도 맞추지 않고 그저 그냥 그 순간에 자기가 떠오르는 제목들을 1분 안에 완성하는 것이 진정한 베스트10이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 영화광들의 베스트10은 시시각각 변덕을 부리기

마련이며 항상 다르게 뽑을 것이며 그러므로 이 10편이 명백히

2016년 12월 7일의 저의 베스트10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목록이 2017년 12월 7일에도 저의 베스트10이라고는 믿지 말아주십시오. 원래 영화광들이란 이토록 변덕스럽고 또 그 종잡을 수 없는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이야기하기 마련입니다. 여기 오면서 보니까 ‘변사가 된 영화광’ 이라는 단어 앞에 ‘film buff’라는 말을 쓰셨는데 그런 표현은 쓰기도 합니다. ‘film buff’라는 말도 쓰지만 통매적으로는 그 시네필이라는 단어를 더 자주 쓰기도 할 정도 용어는 뭐 아무래도 상관이 없습니다. 오늘은 하여튼 여러분과 함께 저의 사사로운 영화 10편을 여러분과 함께 보면서 그 영화로부터 떠오르는 이야기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한편으로 여러분과 정식화시켜나가는 과정을 진행해보고 싶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매우 특별하게 저를 바라보지 마시고 이 영화 10편중에 여러분이 마음에 드는 아무 화면이나 선택하신 다음에 영화 별로 제가 설명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냥 가장 마음에 드는 화면을 하나 선택하셔서 그 화면을 바라보시면서 저의 이야기가 코멘터리인듯 인양 그래서 라이브 코멘터리를 듣는 것 같은 기분으로 봐주신다면 훨씬 더 흥미로운 자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 10편의

124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영화는 동시에 시작할 것이며 하지만 영화의 생명인 상영시간에 따라서 각자 다른 시간에 끝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순서대로 끝나지 않더라도 일부러 차례로 꺼지면 재미가 없으니까 랜덤으로 배치를 부탁드렸고 랜덤으로 배치를 빌어서 아마 그 누군가 바라보던 영화는 먼저 끝나게 될 것이고 누군가 바라보는 영화는 계속 제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외롭게 제가 이 자리를 떠나간 다음에도 여전히 상영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영화들과 함께 이 영화들의 생명과 함께 시작했지만 그러나 제가 떠나간 다음에도 이 자리에 영화의 생명은 끝나지 않고 계속 머물러 있을 것이며 그 생명과 함께 여러분이 어떤 그 생명의 잔향을 느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맨 먼저 보게 되시는 이

화면의 영화는 이만희 감독이 1969년에 연출한 것으로 알려진

휴일이라는 작품입니다. 1969년에 만들었다고 알려진 까닭은 이

영화가 한국에서 상영개봉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처음 상영된 해가 2005년도입니다. 심지어 2005년도에 이 영화가 상영될 때까지 2004년도까지 이만희 감독께서는

1975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필모그래피가 남아있고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 중에 한 사람이고 한국 영화인들끼리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발견되었으면 하는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거북선이고 다른 하나는 남해 앞바다의 석유이고 마지막 하나가 이만희 감독의 만추다. 그러한 이야기 하고 이 이만희 감독의 만추라는 영화는 영화 개봉 이후 한국영화 사석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라져버린 까닭은 그 당시에는 이

영화를 홍콩에 수출하면서 원판 매각 프린트로 수출한 것입니다.

사라진 것입니다, 영화가. 그래서 풍문에 듣자하니 이 영화의 원본 프린트가 어쩌면 영화광이었었던 김정일 평양 시네마 떼끄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있고 심지어 북한에 납북인지 월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잠시 체류했었던 신상옥 감독 말씀에 의하면 평양 시네마 떼끄에 있는 것을 본인이 확인하셨다고 하나 평양 시네마 떼끄에서는 아무 답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정말 있다면 그 영화는 굉장히 잘 보관되어 있을

12월 7일, 정성일

125


것입니다. 그것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파리 시네마 떼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파리 시네마 떼끄 사람들이 평양 시네마 떼끄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전문가들이지요. 평양 시네마 떼끄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시네마 떼끄 중의 하나랍니다.

온도조절이라든가 프린트 보관상태라든가 이런 지점에서 굉장히 보관이 잘된 시네마 떼끄라는 게 이런 이야기를 오늘 했다고 해서 설마 제가 종북 좌파로 불리지는 않겠습니다만 그래서 이 만추이라는 영화에 대한 그냥 이야기는 제 나이 또래의 영화비평가들에게는 풍문으로 들려올 따름입니다. 왜냐하면

만추라는 영화가 개봉된 해는 1966년이었고 그해 되는 제가 고작해야 국등학교 2학년이었었기 때문에 저는 그 영화를 볼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2004년도에 영상자료원에서

쌓여져있는 필름깡통을 막 정리를 하다가 아무 레벨이 안 붙어 있는 깡통을 하나 발견했답니다. 열어 본거예요. “이것 뭐야?

이것?”그리고 영사기에 걸었는데 갑자기 감독 이만희 휴일

필모그래피에도 없어, 이게 어떻게 된 것인가 해서 막 알아봤더니 이 영화가 너무 암울해서 당시 박정희 정권의 문화부에서 이 영화를 폐기처분화가 됐다는 거예요. 개봉이 안 됐다가 폐기처분해라. 하지만 누군가 이 프린트 하나를 영화 당시의 영화진흥공단에서 납본을 했고 납본을 한 그 영화가 긴 세월을 거쳐 20세기에서

21세기를 건너와 방금 프린트를 뽑은 듯이 이 좋은 화질로 우리 세기에 넘겨준 작품이었습니다. 모두가 다 흥분된 마음으로 이만희의 새 영화가 발견된 것과 같지요. 그리고 다들 마음속으로 그랬어요. 이만희 감독님의 새 영화를 본다는 흥분은 있지만 영화가 뭐 역시 이만희 감독님의 최고 걸작은 만추일 것이고 휴일이라는 한편의 새로운 영화를 우리는 보게 될 거야라고 가벼운 마음으로 봤던 이 영화는 걸작이었습니다. 저한테는 이 영화가 그의 최고

걸작이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영화 사상 최고 걸작 10편을 뽑는다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이 영화를 뽑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 10개의 이 화면을 보느라 약간 여러분이 산만할 수도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 영화가 한참 흘러가다가 이 영화의 내용은 어느 휴일 날 가난한 두

126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연인이 여인은 임신을 한 상태이고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갈팡질팡하고 있고 남자는 여기에 대해서 해결을 아무런 방법 없이 무책임하게 그 둘은 그저 휴일 날 커피 마실 돈도 없어서 서울시내 거리를 배회하고 서울시내 거리를 배회하는 연인들이 갈 곳이라고는 아마 그때에는 남산밖에 없었던 모양입니다. 남산에 쓸쓸이 올라가 있었을 때에 남산에서 기적 같은 장면이 하나 나옵니다. 아마도 그것은 한국영화 사상 가장 훌륭한 장면의 하나일

것입니다. 쓸쓸하게 이 남자가 마치 세상 끝에 와있는 것처럼 남산의 한 끝에 올라가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그러나 그 장면은 명백히 ***(00:26:51)의

19세기 그림의 어떤 하나의 화폭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회화적으로 찍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당시에는 디지트가 아니라 필름이었었기 때문에 기다려서 찍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의 필름 값은 영화 제작비에서 너무나 큰 포션을 차지하고 있었고 제작비가 너무 낮았기 때문에 그래서 오직 우연일 수밖에 없게도 그런데 갑자기 세상을 날려버린 어떤 한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화면전체를 휩쓸고 지나가는 그 순간을 기적처럼 담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이만희 감독은 이 영화에 결정적인 순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여러분은 이 영화를 보는 감원을 느낄 수 있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온 영화 그리고

이 21세기가 1969년 서울 남산 한 끝자락을 불고 지나갔던 바람을 우리에게 선물처럼 남겨줬었을 때 그 영화의 기억이 어떻게 우리들에게 옮겨져 왔는가를 여러분께서는 보시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보시게 될 영화는 1934년에 완성한 장 르누아르 감독의

‘물에서 건진 부뒤씨’라는 작품입니다. 장 르누아르 감독의

대표작이라면 영화사 책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망설이지 않고 영화사상 최고 걸작 중의 한편 비평가들이 영화사상 top10 뽑을 때 항상 손에 꼽는 게임의 규칙이나 혹은 커다란 환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좀 더 장 르누아르 감독의 전문적인 영화비평가 영화학자들이라면 전후에 만든 ‘프렌치캉캉’이나 ‘엘레나와 그의

12월 7일, 정성일

127


남자들’같은 작품을 선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프랑스

***(00:28:51) 영화감독들은 이 장 르누아르가 인상주의파

화가와 호기스트 르누아르의 둘째 아들이라는 것을 과시하기라도 하듯이 전원에서의 파티라는 영화를 거의 정말 인상주의 화가처럼 찍었습니다. 그 영화야말로 장 르누아르의 진정한 걸작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물에서 건진 부뒤씨’를 볼 때 마다 심지어 장 르누아르의 가장 아름다운 영화일 뿐만 아니라 프랑스 영화의 발명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 영화

속에서 미셸 시몽 이라는 거의 괴인에 가까운 연기자가 등장합니다. 이 영화는 길거리 부랑자인 부뒤씨가 한 그 중산층 부르주아의 호기심을 끌어서 그 집에 들어와 마치 교양 있는 교육을 받는 것 같았지만 그러나 그 집을 쑥밭으로 만들고 떠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2개의 시코르스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하나는 이 영화가

발명한 것인데요. 잘 안 보여서 저를 피해서 막 보시는 것 같은데 아, 예 왔다 갔다 하겠습니다. 그 영화 중간에 마치 실내에서 찍은 게 분명한 드라마 장면으로써 영화에서 이 중산층 부르주아 사내가 바깥을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장 르누아르는 맞은편에 망원경으로 보이는 장면을 찍으면서 그냥 길거리에 들고 카메라를 들고 나왔습니다. 이 방법은 장 르누아르의 시대로부터 약 30년 뒤에 이탈리아 ***(00:30:33) 부르는 루세리나 ***

무방비도시나 자전거도둑에서 시도했었던 길거리 영화의 시초를 불러일으킨 작품들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전혀 통제하지 않고 통제할 수가 없겠지요. 왜? 파리에서 가장 소란스러운 다리를 배경으로 찍었으면 그냥 그것을 자연스럽게 내보려고 미셸 시몽을 길거리로 내보낸 다음 이 미셸 시몽으로 하여금 드라마에 연기를 시키면서 사람들이 오고가는 속에서의 당시 이 내가 지시했었던 연기의 동선 안에서 즉흥적으로 연기하면서 영화가 세상과 만날 때의 그 Improvisation 이런 것 즉흥성이라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는지를 보자는 듯이 진행합니다. 믿을 수 없이 그 디지틀 리스톨레이션이 훌륭하군요. 제가 본 중에 가장 훌륭한 화면중의 하나입니다. 이 장면에 즉흥성의 방법론은 수많은

128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감독들한테 영향을 주었고 그 방법에 영향을 받은 한국감독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감독이 물론 홍상수입니다. 이를 테면

홍상수는 홍상수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이런 것입니다. 게인 날

유준상, 김민희를 만난다. 고 일단 가정해 봅시다. 그 장면을 찍으러 딱 나갔는데 갑자기 그날 날씨가 좀 변덕스러워서 막 비가 내리면 대부분의 감독들은 날 샜다. 오늘 촬영취소다. 그런데 홍상수 감독은 너무 좋아서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이 비는 선물이요, 비속에

나가서 이 대사를 한 번 읽어. 그러니까 이 비를 맞으면서 내가 준 대사의 느낌을 한 번 너의 몸으로 견뎌봐 라는 것이 말하자면 이 즉흥성 연기의 시작입니다. 그런 다음 이 한편으로는 드라마와 한편으로는 즉흥성 속에서 진행되는 이 영화가 마지막 순간 우리는 물에 이 영화는 부뒤가 물에 두 번 빠집니다. 좀 전에 이야기한

장면에서 한 번 빠지고 두 번째는 자발적으로 빠집니다. 그런데 이 부뒤가 마치 물결위에 떠가듯이 떠내려가는 이 시점 순간으로 이 영화가 마무리 지어 집니다. 그 시점이 장면이 나오는 순간에는 부디 저를 보지마시고 꼭 이 화면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보실

작품은 D.W. 그리피스 모든 영화사 책에서 영화사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 영화 장편 첫 번째 장편영화로 이름 지어진 1915년에 만든 국민창생이라는 영화 ***(00:33:28)이라는 영화를

여러분이 한번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 감독이 만든 4시간짜리 인톨러런스라는 대작은 지금 보아도 어떤 규모의 블록버스터 영화보다도 훨씬 더 큰 규모의 영화이기도 하며 또한 4개의 시간이 결국에는 하나의 엔딩을 향해서 달려가는 교차편집으로도 유명하다고 영화사 책에 쓰여 있습니다. 두 편의 공통점은 한 없이 지루하다. 그러니까 이 두 편의 영화는 영화사 책에서 유명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보는 것이지 이 두 편의 영화가 좋다는 사람은 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두 편의 영화에 질린

사람들이 그리피스영화를 다시는 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제 의무적으로 봐야 되는 영화 됐고 그다음에 그리피스는 됐고 이것은 장을 넘기고 싶어 하지요. 하지만 그리피스의 진정한 이 사람의 그 이 위대함은 멜로드라마에 있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영화사에서

12월 7일, 정성일

129


영화사의 아버지라는 표현보다 멜로드라마의 아버지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실 것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대학교 1학년 때 책에서만

보다가 비디오라는 물건이 지구상에 등장하기 전 1978년에 미국 그 문화원에서 1주일에 한 번씩 영화를 상영했었습니다. 그때 이 영화를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이 영화에 대한 어떤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리피스라는 이름만 알고

있었지요, 영화사측에서. 영화의 내용은 거의 악마 같은 아버지

밑에서 권투선수입니다. 밑에서 자라는 어린 딸 이 어린 딸이 그곳에 있었던 한 중국인과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딸을 그 중국인에게 내줄 생각이 없습니다. 이 아버지는 그냥 틈만 나면

권투선수인 아버지는 딸을 때리는 것이 취미입니다. 권투선수가 때린다고 생각해보세요, 권투 글로브도 안 끼고. 그러고 나서는

아버지는 뭐가 불만인데? 왜 이렇게 표정이 나빠? 그러면 이 여자는 이 딸은 가련하게도 그 아버지 앞에서 웃는 표정을 지어야 됩니다. 억지로 짓는 이 웃는 표정 앞에서 저는 그 영어단어에서 하트브레이크라는 표현이 있지요? 심장이 쪼개지는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그런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것을 망설이지 않고 그리피스는 클로즈업으로 보여줍니다. 클로즈업의 이 위대한 기능. 이때 이

연기를 한 사람은 영화사에서 가장 가련한 연기를 가장 위대하게 한 기쉬입니다. 이 기쉬의 얼굴표정을 보니까 저는 망설이지 않고

누군가 저에게 영화 음막 위의 당신의 연인이 누구입니까? 그러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위대한 귀시라고 이야기합니다. 위대한 기쉬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로 가장 슬픈 표정으로 등장할 때 이 영화가 무석영화이지만 그래서 여러분이 그냥 자막만으로도 이 영화를 충분히 쫓아갈 수 있겠지만 그 클로즈업 나올 때는 제가 하는 말은 잠시 잊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말하자면 그 순간들을 놓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볼 이 영화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만든 오명이라는 작품입니다. 히치콕 영화의 최고 걸작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망설이지 않고 현기증이라는 꼭 이야기합니다. 혹은 누군가는 사이코를 이야기할 것이고 아무래도 역시 히치콕은 이창이야 라고 이야기할지 모르겠습니다. 또 누군가는 가장 기괴한

130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영화로써 새를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히치콕이 가장 즐길만한 영화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일 것입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전망차에 이방인은 영화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이 기괴한 장면들로 인해서 열렬한 팬들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혹은 마치 영화 전체를 하나의 한편의 테이크로 찍은 것 같은 10개의

테이크를 한편의 롱테이크지요. 트릭을 사용을 지금 로프도 묻힐

수는 없을 것입니다. 두 편의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사내라는 작품도 놓칠 수 없습니다. 서로 히치콕 영화를 이야기할 때 마다 히치콕의

가장 위대한 영화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그 사람의 취향에 따라서 갈리곤 합니다. 저는 망설이지 않고 이 오명이 처음 보았을 때도

지금도 가장 저에게는 매혹적인 영화입니다. 이야기는 2차 세계대전 직후 그 아버지가 나치 부역자였었던 한 여자가 있습니다. 이

여자에게 FBI요원이 접근합니다. 그러면서 이 여자에게 당신이 마지막으로 당신이 나치 잔당이지만 자기 정체를 숨기고 있는 한 남자에게 접근하여 그와 결혼해서 그 집에서 정보를 빼내서 우리에게 넘겨줘요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여자는 잉그릿드버그만이 연기하는 그 여자는 이 제안을 받아드립니다. 이때 이 남자가 한 가지 계산하지 않았던 것은 이 여자가 그 제안을 받아드린 것은 자신이 정말 아버지의 죄책감과 애국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남자랑 한눈에 사랑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희생을

각오하고 그 남자의 제안을 받아드리고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됩니다. 그래서 그 집에 들어가서 이제 그 나치 잔당들의 비밀을 넘겨주기 시작합니다. 히치콕의 이제 게임은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들어와서 결혼을 했는데 문제는 이 남자도 정말 잉그릿드버그만와 사랑을 시작합니다. 그는 하지만 이 남자는 이 사랑에 눈이 멀어서 이 여자의 잉그릿드버그만의 거짓말을 알지 못합니다. 이것을 의심하기 시작하는 것은 결혼한 이 남자의 어머니입니다.

시어머니가 눈치를 챈 것이지요. 그러면서 눈여겨보던 이 어머니와 어머니는 그 자기아들이자 잉그릿드버그만의 남편에게 이것을 알리고 그런 다음 이 여자를 여기서 잉그릿드버그만을 그냥 살해하면 문제가 되니까 조금씩 조금씩 독약을 먹이기 시작합니다.

12월 7일, 정성일

131


갈수록 힘이 없어지지요. 그래서 거의 죽어가게 될 이 지경에 즈음해서야 비로소 잉그릿드버그만은 자기가 독약에 결국 이 집에서 죽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 사실을 이 집에 보낸 이 사내 이 FBI 남자가 알게 됩니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 이 집을 방문합니다. 그가 FBI요원이라는 사실을 자신들이 알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자신들이 나치 잔당들이라는 것을 알리는 꼴이 되기 때문에 이 남자가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소개한 대로 마치 잉그릿드버그만의 사촌인 것처럼 받아드리지만 동시에 이 남편은 즉시 알아챕니다, 이 남자가 사랑 때문에 찾아온 것을. 이 복잡한 감정들, 그리고 복잡한 관계들. 이 속에서 이 남자는 긴 계단을

따라서 부축한 잉그릿드버그만을 옆에 기댄 잉그릿드버그만을 데리고 이 나치잔당의 소굴에서 빠져나가는 기나긴 장면에서 끝납니다. 영화는 여러분이 보시면서 이 집에서 몇 차례이고 계단을 보게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몇 차례 보았던 이 계단이 마지막

씨코스에 와서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내내 이 계단을 빠져나가는데 왜 이렇게 오랜시간이 걸려? 빨리 나갔으면 좋겠는데 막 답답해서 죽을 것만 같아집니다. 히치콕의 놀라운 점 몇 차례 계단을

보여주었고 여러분도 아마 몇 차례 계단을 보게될 것입니다. 이

계단이 나올 때 마다 주의깊에 봐주십시오. 마지막 계단이 나왔었을 때 이전에 이 세트장에서의 계단은 치우고 1.5배의 계단을 갖다

놓습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물리적으로 그 계단을 빠져나가는데 시간이 더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 영화 유물론자

히치콕은 심리전의 대가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 히치콕이 영화 속에서 이 우아한 심리극이자 스파이드라마이자 한편으로는 계략들이 난무하는 이 정숙의 관계를 여러분께서 주의깊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이 다섯 번째 화면에 나온 영화는 장 비고가 만든 단 한편의 장편영화 라딸랑트입니다. 장 비고는 이 영화를

만들기 전에 이 영화보다 훨씬 더 유명한 준편영화 품행제로라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한 학교에

관한 이야기. 그러니까 이 학교에서 아이들이 마지막 순간에 폭동을 일으키는 이야기로 끝나는 말하자면 무정부주의자였던 장 비고의

132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생각을 가장 실질적으로 표현한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장 비고는 이 영화를 만들고나서 개봉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품행제로라는 영화는 1933년에 만들어졌고 이 영화는 그 당시에 무정부주의는 매우 위험한 것으로 몰렸었기 때문에 프랑스 정부에서는 이 영화의 공개를 허락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재능을 눈여겨본 영화제작자는 그 장 비고에게 아 이건 방타 빠른데…… 아 죄송합니다. 아랫것이 먼저 틀어졌어야 되는

거군요. 죄송합니다, 순서를 제가 헷갈렸네요. 이것을 먼저…… 예, 이것은 계속 상영해도 됩니다. 이 영화 틀어주세요. 죄송합니다,

위아래를 좀 바꿔서. 라딸랑트입니다. 그래서 장 비고에게 당신이 정치적인 영화를 찍지만 않는다면 당신에게 투자할 용의가 있다. 라딸랑트라는 영화를 찍게 됩니다. 이 라딸랑트는 그 파리의 샌느강에서 그 사람들을 날라주고 화물들을 옮겨주는 배의 이름입니다. 젊은 그 남자와 젊은 여자가 결혼을 한 것으로 이

영화의 첫장면이 시작을 합니다. 하지만 젊은 여자는 호기심이 많고 젊은 남자는 이 아름다운 아내가 혹시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은 아닌지 불안에 휩싸입니다. 그 과정 속에 아내는 이 배를 잠시 떠나게 되고 이 남자는 미친듯이 이 아내를 찾아서 거리를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꿈결같이 이 샌느 강변 물속에 어쩌면 자기 아내가 자살했을지도 모른다는 악몽속에서 물속에서 물을 헤치며 날아오듯이 다가오는 아내의 어떤 환상의 순간을 바라보게 됩니다. 망설이지 않고 라딸랑트는 영화사상 가장 시적인 영화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이 한편의 영화를 만들고나서 장 비고는 폐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만든 단 한편의 영화를 만든 천재적인 감독 요절이라는 말이 더 없이 어울리는 감독. 그래서 프랑스영화사에는 그 해에 가장 독창적인 영화를 만든 감독에게 주는 상이름 장 비고상이라 하여 그 상을 지금도 수상하고 있습니다. 장 비고상에 관한 크리드 장 비고

70년 페이스북도 있고 트위터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서 그게 프랑스 영화의 가장 독창적인 영화들에 관한 정보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관심 있으시다면 그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활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실수로 잘못한 이 영화는

12월 7일, 정성일

133


방덩빠크 영어제목으로는 랜더브 아웃사이더즈 라고 되어진 영화입니다. 제목은 서로 다른 셈이지요. 랜더브 아웃사이더즈는 그 말하자면 국외자들, 국외자 무리들 이런 뜻일 것이고 방덩빠크

이러면 따로 또 같이 라는 뜻입니다. 서로 다른 뜻이기는 하지만 이 두 남자는 한 여자를 만납니다. 그리고 이 3명은 파리시내를 쏘다니고 있습니다. 장 뤽 고다르가 만든 1964년도의 영화.

고다르는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신 것처럼 1959년도에 루벨란도 영화들의 감독들 중에 1명으로 등단화했습니다. 1959년

루벨란도가 처음 등장했었을 때 최고의 스타는 고다르가 아니라 처음부터 트뤼포였었을 것입니다. 트뤼포는 400번의 구타라는 영화로 극장가를 휩쓸다시피 했고 그 해 깐느영화제에 가서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네 멋대로 해라가 흥미로운 영화이기는 했었지만 오늘날 영화사의 미학자들이 평가한 것만큼 대접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고다르는 밀고 나왔습니다. 밀고

나가면서 새로운 영화모듈을 거의 발명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는 쉬지않고 영화를 찍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자신이 한편으로는

다큐멘터리의 영향 아래 놓여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드라마의 영향을 찍으면서 그 둘 사이를 화해시키려고 또 한편으로는 서로 충돌시키려고 했습니다. 영화속의 미학 안에 그래프트 브이트의 수혜효과로써 사극효과를 끌어들이기도 했어요. 또 한편으로는

영화사에서 고전영화들에게 끊임없이 오마주를 바치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의 장면 중에는 2개의 놀라운 부분이 나옵니다. 하나는

루브르박물관을 달려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달려가는 장면은 훗날 베르토부치의 베르나도 베르토부치의 몽상가들에서 다시 한 번 오마주를 바치기도 하지만 영화 중간에 그런 말이 나옵니다. 미국에서 온 남자가 40초만에 루브르박물관 ***(00:49:13)

우리는 더 빨리 그 기록을 갱신해볼 참이다. 그리고 달려갑니다. 아마 루브르박물관에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달려가는게 불가능합니다. 미술관에서 달리는 게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달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 공간을 마치 질서를 일순간에 무너뜨리려 하듯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라도

134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하듯이 고다르는 자신들의 주인공을 ***(00:49:41) 두 번째 놀라운 장면은 그는 이 영화 속에서 뮤지컬이라는 오마주를 바치기로 합니다. 자기가 존경해 맞이하는 감독 스탠돈의 덴드리거블 오마주하면서 이 두 남자와 한 여자 고다르가 사랑했던 여자가 고다르가 함께 살았던 여자 안나까리나 중심으로 해서 영화 중간에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춤을 추는 장면에서도 한편으로는 단지 뮤지컬적인 방법 댄싱하는 장면뿐만 아니라 종족 음악을 단속시키고 다시 음악을 연속시키고 하면서 그는 만일 브리트가 뮤지컬을 연출했다면 어떻게 찍었을까를 영화에서 재현으로 실제 보여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은 훗날 할 하틀리 감독의 심플맨에서 다시 존경을 바치듯이 오마주의 심정으로 재현되었으며 부끄럽긴 합니다만 저도 한번 흉내를 내보기는 했습니다만 잘 되진 않았습니다. 역시 고다르가 위대하구나 이런 생각을 다시 한 번 확인을 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그다음 이 자리에는 제가 작년에 이 자리 아시아문화의전당에 온 것을 한편으로 기억하기 위해서 그리고 제가 이 감독을 영화를 보면서 어떤 받았던 쇼크를 다시 한 번 끌어올려보기 위해서 이 아핏차퐁 위라세타군의 두 번째 영화 친애하는 당신을 선택했습니다. 이 친애하는 당신은 2002년도 칸영화제에 주목할만한 시선에

개막작으로 상영되었습니다. 그게 깐영화제에서 이 감독은 내내 화제였었지만 이 감독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다들 태국에서 온 그 감독이라고만 불렀지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이 발음을 하는 것만으로도 한동안 자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이 감독이 그렇게 빨리 황금종려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00:51:56) 이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든 후 6년 후에 그 황금종려상을 받게

됩니다. 태국에서 온 이 감독은 이제까지 만났었던 어떤 감독과도

달리 21세기 영화를 일순간에 발명하기라도 하듯이 완전히 새로운 영화적인 논리와 종종 시적인 점핑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어떤 순간들 그리고 태국이라는 나라가 갖고 있는 문화적 환경 그 환경이 만들어낸 독특한 맥락들. 그 맥락들이 단지 로컬리즘, 지역주의에

12월 7일, 정성일

135


빠지지 않고 그 안에서 보편적인 영화 미학의 감흥에도 일순간에 도약시키는 어떤 순간들을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00:52:47) 저를 놀라게 만들었고 저희 동료들로 하여금 찬사를 바치게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많은 영화감독들이 아핏차퐁이라는 이 감독이 나타난 순간 그들에게는 저주의 이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감독의 영화와 함께 21세기를 살게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말하자면 이것은 환영의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이 병원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영화가 느닷없이 이렇게

시작하니까 마치 필름 사고라고 난 듯한 느낌이 듭니다. 깐느에서 볼 때도 그랬고 부산영화제에서 할 때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한참 쭉 진행이 됩니다. 그러다가 1시간 10분쯤 되면 영화에서

갑자기 자막이 막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많은 관객들이 영화 끝났는 줄 알고 막 나갔습니다. 그 문앞에서는 영화가 아직 안 끝났어요

하고 막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이 나섰고요. 영화 중간에 갑자기 영화 제목, 감독, 주연 이런 게 막 계속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시치미 뚝 떼고 다시 시작하듯이 영화가 계속 이어집니다. 그러면서 우리들로 하여금 둘로 잘라진 영화에 새로운 전통을 보여줍니다. 둘로 잘라진 영화의 첫시작을 알린 것은 알프레드 히치콕이 만들었었던 사이코라는 영화였었습니다. 사이코는 주인공인줄 알고 한참 쫓아갔었던 여자가 갑자기 영화시작 1시간 54분만에 욕실에 들어가더니 칼로 막 찔려서 갑자기 확 죽어버린 다음 이제부터는 귀신이 돼서 나온거야? 물론 히치콕은 귀신을 찍은 적이 없습니다. 그냥 그 배우는 말하자면 ***(00:54:31) 영화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영화가 다시 시작합니다. 이 둘로 잘라진 영화의 전통 *** 수없이 많은 영화들에서 반복되었습니다. 이 방법을 완전히

미로처럼 만든 두편의 영화 하나의 끝 하나의 시작 하나의 끝이라는

***(00:54:51) 그리고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그이듬해에 칠하는 방식을 저희들이 와서 이제 새로운 시작은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그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여덟 번째 영화는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1999년에 완성한 해상화라는 작품입니다.

136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상하이의 꽃이라는 작품입니다. 제가 그 약간 사사롭게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제가 처음 그 허우 샤오시엔 영화를 보게된 것은

198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정확한 날은 기억나지 않지만 런던에 유학을 갔다온 제 친구가 몇 개의 비디오를 카피를 해왔습니다. 비디오 카피를 해주면서 그 당시에는 대만영화에 대해서 아무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만은 그냥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는

영화국가였었습니다. 말하자면 홍콩영화 관심이었었지요, 그때에는. 그런데 그때 영화를 건네주면서 역시 그 발음하기 힘들어서 허우 샤오시엔이라는 감독의 그 동년왕사와 펑쿠이에서 온 소녀이라는 그 두편의 비디오를 보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했습니다. 잘은 모르겠는데 뭔가 영화가 있는 것 같아. 그 친구도 잘 설명을

못했습니다. 그 영화를 건네 받고 한동안 와~ 대만영화까지

봐야되나? 라는 생각을 쌓아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잠이오지 않던 어느날 밤 비디오 데끄해놓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맨 처음에는 거의 특징 없이 진행되었었기 때문에 좀 죄송한 표현이지만 이불에 처 누워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30분정도 되었었을 때 뭔가 내가 이걸 잘못보고 있는거야 하면서 이 영화의 리듬과 이 영화가 인물과 만들어내는 거리에 대해서 완전히 집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영화가 끝날때쯤 뭐에 홀린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끝나자마자 즉시 그 영화를 다시

보기시작했습니다. 이 감독이 정말 궁금해졌습니다, 두편의 영화를 보니까. 그 다음에 이 감독의 영화를 보는 것이 저의 소망이

되었습니다. 이 소망이 된 저는 제가 이제까지 본 모든 영화중에서

가장 비싼 값의 영화값을 치루고 영화를 봤습니다. 그 영화가 동동의 여름방학이라는 대만제목 영화제목으로는 할아버지 집에서의 여름이라는 그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동경에서 상영한다는 소식을 영화잡지를 만드는 제가 보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무조건

봐야된다. 그래서 잡지를 마감하고 토요일 날 오전에 마감하고 바로 그때 김포공항으로 달려가서 티켓을 끊어서 동경에 도착해서 그 영화 한편을 딱 보고 완전히 충만한 마음으로 나와서 심야극장 가서 이유없이 엉뚱한 영화들을 때려본 다음 다음날 첫회를 한 번 더 보고

12월 7일, 정성일

137


그리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그때 그 영화 한편에 쓴 돈 물경 60만 원 하지만 아깝지 않았습니다. 이 감독이 1989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습니다. 그 영화가

비정성시라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 영화는 생각보다 빨리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보고 싶었기 때문에 본 날짜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그해 12월 달 12월 둘째 주 화요일 오후 4시 40분 그해에 남태영화제에 임권택 감독님의 회부전이 있었기 때문에 임권택 감독님과 함께 임권택 감독님을 소개하는 영화 한국의 영화 평론가로 쫓아갈 수 있었고 그해 남태영화제에 비정성시의 상영이 있었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그 영화만은 무조건 봐야겠다 싶어서 온갖 핑계를 내고 무리들과 헤어져 그 영화를 봤습니다. 2시간

40분짜리 영화를 봤을 때 완전히 이 영화는 걸작이라는 사실에

완전히 승복하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와서 갑자기

너무 슬퍼졌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40을 막 넘어가고 있었고 이 나이에 이 걸작을 뛰어넘는 다른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그냥 허우 샤오시엔의 최고 걸작일뿐만 아니라 영화사상 걸작을 찍었단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정말 걸작을 너무 젊은 나이에 찍고 나면 그다음에는 내려가는 길만 남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사람의 이후에 영화들은 계속 실망시킬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쌓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만큼 비정성시는 굉장한

영화였었습니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3년 후에 희몽인생이라는

영화로 깐느영화제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때 영화잡지를 만들고

있었고 깐느에 갈 기회가 있었으며 희몽인생을 깐느에서 봤습니다. 물론 걸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슬픔이 확인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무언가 영화는 거의 완전했는데 어떤 ***(01:00:41)이

느껴졌습니다. 말하자면 비정성시에서 이제 내려오고 있구나 라는 느낌을 받으면서 쓸쓸한 마음으로 그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저녁거리에 깐느를 걸어가면서 깐느에 있는 기억이 어제 일만 같습니다. 영화에 관한 기억 모든 영화에 관한 기억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물론 여전히 허우

138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샤오시엔은 저의 관심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다음에 지금

호남호녀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완전히 실패작이었습니다. 완전히 실패작이었는데 이상한 실패작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영화가

무엇인가를 하다가 실패를 한 게 아니라 감독 자신이 뭔가 영화를 때려부셨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실패작을 본적이 없습니다. 감독 자신이 자기 영화를 때려 부순 것 같은

실패작 이 사람은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그리고 나서 1년 있다가 남국재견이라는 영화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영화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완전히 다른 허우 샤오시엔 영화가 개봉을 한 것입니다. 자기 영화를 때려부시고 완전히 새롭게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최고의 경지에 올라온 사람이 정말 긴 시간에 걸쳐 최고의 경지에 올라왔던 사람이 그것을 다 때려부시고 갑자기 영화를 새로 시작한다고 걸작을 찍은 것입니다, 완전히 다른 걸작. 그때 인터뷰를 읽었습니다. 저만 그것을 느꼈던 것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시네마에서 허우 샤오시엔을 초빙을 했습니다. 당신에게 이 영화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허우

샤오시엔은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저의 두 번째 데뷔작입니다. 두 번째 데뷔작이라는 호기 이 새롭게 시작하는 이 감독은 이제 어떻게 나갈 것인가? 멈춰져있었던 같던 허우 샤오시엔의 카메라는 계속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마치 중력을 잃은 카메라인 것처럼 공기속으로 떠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해상화가

등장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길게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장면은 한 컷트입니다. 2시간 이 영화는 1시간 54분동안 23컷트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굉장히 긴 롱테이크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이야기는 19세기의 상하이에 있는 어느 사창가

이야기입니다. 고급 사창가 이야기입니다. 이 사창가 안에 카메라가

들어오고 나면 영화는 단 한번도 바깥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영화는

계속 이 안에서 공기처럼 떠돌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19세기 청나라 말기의 이 사창가를 찾아왔던 고급사창가에 찾아와서 고급기녀들을 찾고 있는 이 귀족들의 이 부자 귀족들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난잡한 장면은 단 한 컷트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계속

12월 7일, 정성일

139


술상에서 술상에서 술상으로 이어지고 신뢰로만 계속 이어지는 이 장면 이 영화의 장면들속에서 마치 그냥 빛이란 존재하지 않고 햇빛이 나오는 장면은 딱 한 컷트 나옵니다. 계속 어둠속에

촛불만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영화는 하지만 유심히 봐야 됩니다. 왜냐하면 긴 쇼트가 하나 끝나고 나서 다음 쇼트로 넘어가게 될 때 이 쇼트에서 이 쇼트가 넘어갈 때 어떤 경우에는 일주일의 간격이 있지만 어떤 때는 두달 세달로 건너 띄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시간은 때로 압축되기도 하고 시간은 때로 점핑해버리기도 합니다. 영화 거의 끝날 때 쯤 그야말로 이 영화는

그래서 이 긴 쇼트동안 이 긴 시간에 지루함을 견디는 대신 이 장면 안에 있는 인물들을 우리에게 꼼꼼히 보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속에서 장면이 넘어갔었을 때에 순간의 차례로 진행됐었던 이 영화의 마지막 순간이 왔었을 때 처음에 술좌석에서 남아있던 사람들의 상당수는 모두 사라집니다. 계속 빠져나가고 계속 새로운

사람들 등장합니다. 그 과정속에서 귀족들은 다 사라지고 부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러니까 봉건귀족의 청나라 시대는

끝나가고 있고 근대중국이 막 시작하고 있는 상업적인 말하자면 자본주의 근대 중국이 시작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들도 이들도 다 이 사창가에서 시간을 보내며 헛되이 돈과 시간을 물쓰듯이 쓰면서 썩어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뭐가 기다리고

있겠습니까? 중국 본토에서 아마도 공산주의라고 불리우는

말하자면 인민군들의 시대가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마지막에 이 거의 부패하는 썩어가는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사창가의 ***(01:05:41) 화면의 아름다움 속에는 중국 혁명이

기다리고 있는 장면들이 마무리 지어질 것입니다. 이 영화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이 만든 1949년에 만춘이라는 작품입니다. 저는

오즈 야스지로라는 감독을 첫 장면이 이게 아닌데? 첫 장면부터 봤으면 좋겠는데요. 첫장면은 무조건 봐야 되는데…… 잠깐

기다리지요, 뭐. 저도 약간 잠깐 숨을 좀 돌리고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코멘트리도 가끔 쉬어가면서…… 천천히 하세요. 잠깐

화장실 다녀오실 분들은 얼른…… 제가 이야기를 하고 있겠습니다.

140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하지만 첫장면부터 보여주십시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은 사실 저는 그 일본영화를 늦게 접한 세대입니다. 왜냐하면 비디오라는 그 기계가 도착하기 전까지 한국에서는 일본영화를 보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긴시간 동안 일제강점화 식민지의 경험이 있는 한국은 남한은 일본영화의 수입을 김대중 정부 시기까지 금지하였었고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지요. 1980년대 들어서서 비디오라는 기계를 경유하여 불법으로 카피된 영화들이 들어오면서 일본영화를 보기 시작한 세대입니다. 물론 맨 먼저 본 것은

***(01:08:09) 였었습니다. 영화사 책에 쓰여져있었던 오즈의 영화가 매우 보고싶었습니다. 그 오즈의 영화를 처음 보았었을 때에는 저는 이 사람이 위대함을 알 수 없었습니다. 영화는 너무 평범했고 한편으로는 이야기도 그냥 일본의 일상생활을 이야기하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보다 더 앞이 나올 것입니다. 필름샷이라고 하는 앞 장면이 있어요. 그래서 이 사람의 오즈의 영화를 서너편 보고나서 흥미를 잃었습니다. 그런 다음 제가 집중적으로 봤었던 것은

***(01:09:01)의 영화였었습니다. 좀 더 나이를 먹고난 다음 완전히 그 제 방구석에 있었던 오즈의 영화 바로 이 만춘이라는 영화는 그날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시 꺼내들어서 보기시작했습니다.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이 사람 영화에 완전히 빠져들기 시작해서 보기시작했습니다. 마치 그 영화를 처음 보기라도 한다는 듯이

영화를 보기시작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그 영화가 만들어내는 시적인 감흥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을 알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아니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더 솔직하게 고백한다면 저는 아직도 우주의 위대함을 정확하게 설명할 언어를 갖고 있지않습니다. 하지만 만일 모든 영화중에서 당신이 단 한편의 영화만 선택하라고 강요 받는다면 저는 영화는 결국 만춘이었다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영화는 그날 이후 제가 100번도 넘게 봤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모든 장면을 그야말로 보지 않고 그냥 흘러가는 동안 제가 여러분 앞에 서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말고 그렇게 설명한 것 말고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어떠한 시적인 감흥을

12월 7일, 정성일

141


설명하는 것은 여전히 지금도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저는 만춘을 보고난 다음 긴시간 동안 계획을 세워서

교토에 여행을 갔습니다. 그 여행의 목표는 딱 한 가지였었습니다. 이 영화 중간에 아버지가 딸과 함께 딸이 시집가기 전 교토로 여행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장소를 제가 가서 내 눈으로 그

장소에 앉아서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이 영화속에 나오는 교토의 그 장소에 그 장면 이를테면 영화에서 등장하는 초수사이에 올라가서 그 바라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쪽에는 아버지가 있고 저쪽에는 딸이 있고 여고생들이 수학여행 가는 것을 막 지나간 몇개의 쇼트들 저는 구태여 영화속에 장면들을 떠올리면서 그 아버지가 서 있던 그 장소 그리고 그 딸이 서있던 그 자리에 가서 서보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지나가고 있는 장소를 찍었던 카메라의 자리에 서보기까지 했습니다. 유네스코에도 올라와있는 이 세계문화

유적지는 잘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그 장소에 가서 서봤지만 그러나 저는 정확하게 그 감흥을 그 비밀을 알지못했습니다. 아직도 저는 만춘의 비밀을 찾기 위해서 그것을 찾아 여행하고 있는 남자면 기억의 여행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이상할 정도로 처음 시작하는 장면이참 어렵군요. 역시 걸작은 그래도 기다려야 볼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일깨운 순간이기도 합니다. 만춘에서

여러분께서는 이 영화의 첫 번째 장면의 이 상황을 한번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그냥 풍경의 일석트 쇼트와 같은 장면들이 연달아 몇장면이 보여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영화

이론가들은 이 장면을 일컫어서 이 장면을 로엘버치라는 사람이 필로우샷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필로우라는 단어 pillow은 물론 침대라는 단어이지만 그러나 침대 쇼트라는 뜻이 아니라 이 필로우라는 단어를 쓴 까닭은 일본시 화가 라고 부르는 것에서 마구라 라고 부르는 것의 그 마구라의 침사 이 침대할 때 침자에다가 숫자를 쓰기 때문에 그앞글자를 따서 필로우를 들고 온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구태여 한국식으로 변형을 해야 된다면 마구라 쇼트라고 부르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즉 이 쇼트를 필로우 쇼트라고 부르는 까닭은 뭔가 이것은 일본문화 안에서의 일본어로

142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수립되어있는 식구의 어떤 리듬을 만들어내는 쇼트라는 뜻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런 다음 이 필로우 쇼트에 대해서 영화 이론가들

영화 미약자들이 수없이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달려들었습니다.

다시 보겠습니다. 결론은 굉장히 아름답고 굉장히 시적인데 이게 왜

아름다운지 설명을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논리적으로도 영화 안에서 서사구조 안에도 통합되지 않습니다. 그냥 마치 혼자

독자적으로 존재하는듯이 그냥 그 자리에 있을 뿐입니다. 말하자면 그렇게 시작한 이 영화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영화는 영화의 문법을 완전히 위반하면서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것은 영화의 문법을 그토록 폭력적으로 위반하면서도 그저 고요한 호수처럼 보이듯이 이 영화는 그 조용하게 어떤 기복도 없이 드라마의 기복도 없이 당연히 나이든 딸은 크면 시집을 가야하고 아버지는 혼자 남아서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것에 가혹함을 무정함을 오즈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끝까지 밀고 나간다는 이 영화의 마지막 순간에 떠나간 딸이 이제 그 딸이 아버지 때문에 시집을 못가겠다는 딸이 제가 시집 가면 아버지 혼자 남게 돼요. 하지만 그 딸이 그 아버지가 너 때문에 다른 여자랑 재혼을 못하잖니 라는 아버지 친구의 말에 완전히 오해를 하고 시집을 떠난 다음 집에 혼자 남겨졌을 때 그래서 딸의 그 혼례가 끝나고 나서 집에 돌아온 다음 이 영화는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혼례장면은 정작 찍지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집으로 돌아온 다음 집에서 혼자 남아

잠을 자다가 한밤 중에 문득 깨어납니다. 문득 깨어난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머리 맡에 놓여진 주전자에 물을 채워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말뜻은 이제 그렇게 살다가 죽을 것이란 뜻입니다. 하지만 이게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리듬이고

인간지사라는 것을 우주는 바로 그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삶의 리듬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 속에서 느껴주시기 바랍니다. 그냥

나가버리셔서 이 영화를 틀을 기회를 놓쳤거든요, 제가. 이 영화를 틀어달라고 해서 트실 수 있으세요? ― 사회자 예.

12월 7일, 정성일

143


― 정성일 가장 큰 화면으로 선택한 이 영화는 왕빙이라는 감독의 Tie Xi Qu 철서구라는 영화입니다. 이 철서구라는 영화를 가장 큰 화면으로

선택한 몇 가지 사사로운 이유를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그 사운드가 없어야…… 이 철서구라는 그 영화를 제가 본 것은

2003년도입니다. 저는 그해에 완전히 지쳐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몸담았었던 영화잡지 팀웍을 떠났고 그런 다음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 일은 아마 네이버로 검색해보시면 그 사연은 뜨겠지만 잘 떠나지 못했습니다. 관료들과의 문제 끝에 영화를 불화의 관계로 떠났습니다. 완전히 지쳤고 저한테 새로운 힘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뭔가 제가 재화를 하고 싶을 때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좋은 영화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영화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언제나 좋은 영화제라는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영화제 중에서 가장 훌륭한 영화제 중의 하나는 깐느는 소란스러울 따름이고 그것은 베를린은 지나치게 헐리우드 친산업적이고 베니스영화제는 뭔가 어떤 그 말하자면 깐느나 베를린에서 밀려난 영화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고전적인 영화제였습니다. 아마도 영화제 중에서 젊은 영화 새로운 영화를

가장 열정적으로 받아드리는 영화제는 노테르담일 것입니다. 만약 이 자리에 와계신들 분들 중에서 새로운 영화를 만나고 싶으시다면 노테르담 영화제를 권하고 싶습니다. 2003년도 노테르담 영화제에 갔습니다. 노테르담 영화제에 막 도착을 했는데 영화제에 도착하면 맨 먼저 하는 일은 영화제 사무국에 가서 영화제 카탈로그와 프로그램과 그 사은품 받아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기 위해서 막 가고 있는데 전주영화제에서 일을 할 때 만났었던 한 그 다른 영화제 프로그래머가 만나서 반갑게 저랑 인사를 했더니 첫마디가 Tie Xi

Qu을 봤냐? West of the Tracks을 봤냐라고 그래서 간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노테르담에 도착한지 2시간째다. 그러니까 이 친구가 그러는 것입니다. 너는 올해 그 영화만 보면 된다. 그래? 막 가고 있는데 사무국에 막 들어가고 있는데 전혀 다른 영화제의 프로그래머가 저를 만나서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인사를 144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하고 나서는 뒤에 약간 흥분한 기색으로 혹시 West of the

Tracks 봤냐? 도착한지 세 시간째다. 너는 올해 그 영화만 보면 된다. 돌아와서 영화제에서 제일 큰 기쁨이라면 시간표를 짜는 것이지요. 물론 맨 먼저 이 영화가 대체 어떤 영화야? 바로 제가 찾아보는 것이 먼저였었습니다. 제가 이 감독의 이름을 처음 들어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왜냐 하면 이 영화는 첫 번째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다음에 이제 시간표 짜려고 보니까 마침 다행이도 다음날 첫 회 상영이 있었습니다. 그 첫 회 상영으로 이 영화제목을 딱 써놓은 다음 다른 영화 제목들을 짜려면 이 영화가 그래도 도대체 상영시간이 얼마나 되는가를 찾아보면서 상영시간을 확인하는 순간 가만히 바라봤습니다. 내가 뭐를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서. 상영시간이 9시간 20분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그냥 그날 하루가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지만 다 보라고 그랬으니까 일단 보러가서 영화 개떡 같으면 남이 추천했지만 개떡 같을 수 있지요. 1시간 반에 싹 욕을 하고 나온다. 그래서 시간표에 딱

썼습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영화 딱 시작하고 첫 장면에 이것을 보는 순간 이것은 걸작의 시작인 걸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9시간 20분 내내 보고 나와서 딱 보고 나와 밥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커피 마시면서 이것은 됐다.

말하자면 친애하는 당신을 깐느영화제에서 봤었을 때에 21세기가 시작하는 느낌이었다면 이듬해 노트르담에서 2월 달에 추운 겨울날에 영화를 보고 나와서 21세기가 두 번째 시작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저한테 당신에게 21세기는 어떻게 시작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친애하는 당신과 왕빙의 철서구로 시작했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이 감독의 영화가 이 영화는 센양이라는 그 철강도시를 찍은 것이 이 영화의 이야기입니다. 센양은 앞에 잠깐 설명이 나온 것처럼 철강도시로 아마도 여러분이 고등학교 지리시간에 배우셨을 것입니다. 철강도시로 유명한 이 도시는 일제강점화 시절에 그

군수물자를 위해서 채굴되기 시작한 이후 1950년대에 모택동의 근대화 정책에 맞추어 집중적으로 철강도시로 성장하였습니다.

12월 7일, 정성일

145


그리고 나서 이 센양은 인구 3,500만 도시로 성장하게 됩니다.

중국에서 가장 큰 도시 중의 하나이지요. 그러나 지나치게 이 철강을 지나치게 채굴을 하다가 1990년대 말 거의 채굴이 바닥이 났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 채굴이 확인이 되자 중국다운 결정을 내립니다. 이제 더 이상 채굴이 안 되니 도시에서 이주해라.

3,500만 도시가 어느 날 갑자기 주변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여기 앉아 계신 분 중에서 젊으신 분들 중에서 아직 상하이를 여행하지 않으신 분들 중에서 훗날 상하이를 여행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65년 후에 지구상에서 상하이가 사라집니다. 무슨 말이야 하게 되겠지요? 상하이 사람한테 직접들은 말입니다.

상하이에서 상하이는 물이 굉장히 나쁩니다. 먹을 수가 없어요. 먹을 수가 없을 뿐더러 상하이 물로 샤워하면 약간 그 피부염 같은 것 생깁니다. 그러니까 이제 지하수도 다 끌어내서 해야 되는데 과도하게 지하수를 끌어내려서 상하이 전체가 가라앉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어봤어요. 베니스도 가라앉은 도시 중의

하나지요. 베니스는 가라앉지 않도록 정말 필사적으로 노력을 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너희들은 어떤 노력을 하느냐? 상대가 별말을 다 들어본다는 표정으로 대답합니다. 중국은 그런 것 없다. 전원

이주하게 될 것이다. 이미 결정이 났다. 지구상에서 가장 유서 깊은 도시 중의 하나 상하이가 지구에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똑같습니다. 이때 막 베이징 전용학원 촬영과를 졸업한 이 왕빙이라는 감독이 디브이 카메라 1대를 들고 센양을

찾아옵니다. 그런 다음 이 센양이라는 도시에서 사람들이 떠나가는 것을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시작 이 왕빙이라는 감독이 다큐에서 이제까지 다큐와 완전히 다른 점 중에 하나는 왕빙다큐는 관찰한다거나 그것을 기록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동반한다는 인식으로 영화를 찍어나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반려자로서의 다큐멘터리. 이것이 말은 쉽지만 그 친화성을 만들어내는 어떤 순간들을 종종 기적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 왕빙 감독의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완전히 승복한 점은 이 감독의 다음영화 궁금해졌습니다. 기다렸습니다.

146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다음영화는 생각보다 빨리 나왔습니다. 2년 후에 깐느영화제에 서프라이징 스크린으로 영화제를 시작할 때까지 영화가 상영된다는 소리 전혀 이야기 하지 않고 있다가 기습적으로 한편 영화를 상용 하였습니다. 그 영화의 제목이 펑밍이라는 영화입니다. 펑밍 중국

***(01:26:23) 좋은 소식은 상영시간이 짧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상영시간은 3시간 20분. 나쁜 소식 영화 전체가 여섯

쇼트입니다. 여섯 쇼트 화면이 그냥 6개가 계속 이어집니다. 영화는 펑밍이라는 한 할머니를 찾아가는데서 영화가 시작합니다. 왕빙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그 펑밍 할머니를 찾아가는 게 영화의 시작입니다. 이 펑밍 할머니는 문혁시절에 하방됩니다. 남편과 헤어져서 시골로 하방되는 여교사는 그러나 대부분 하방시절에 인간이 변하거나 아니면 거기에서 사람자체가 부서지거나 여러 가지 과정을 겪지만 그러나 펑밍 할머니는 성공적으로 그 러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는 말하자면 뼛속 깊은 모택동주의자였던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는 모택동이 죽고 강청을 비롯한

***(01:27:27) 다시 돌아오게 되는, 드디어 돌아왔습니다. 돌아왔었을 때 덩샤오핑이 정권을 잡게 되지요. 덩샤오핑은 흰고양이건 검은고양이건 쥐만 잡으면 된다고 자본주의 정책에 개방하게 됩니다. 이때 펑밍 할머니는 이땐 아줌마였지요.

***(01:27:45) 덩샤오핑의 *** 문제는 하방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이 할머니를 입을 틀어막을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고민했었던 중국 정부는 펑밍 할머니에게 통보합니다. 자 집도 주고 밥도 주고 우리가 다 제공하는데 대신 집 바깥으로 나오지 마라. 집에 ***(01:28:12). 하지만 집 안에서 계속 벽문을 쓰게 됩니다. 이후 계속 정권이 바뀌었지만 펑밍할머니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중국은 자본주의 개방정책을 중단하고 사회주의 중국으로 돌아갑니다. 이 할머니를 기록하고 밤새도록 할머니를 기록하는데 통상적인 영화로는 여러 가지 화면 기록자료들을 쓰겠지요.

아무것도 없이 이 할머니와 마주앉아서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찍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맨 처음에 한 1시간

견디기가 힘듭니다. 그냥 이야기를 시작하다 줄창찍고 있으니까.

12월 7일, 정성일

147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게 됩니다. 왕빙이 바라던 것은 이 할머니의

목소리 말이 아니라 정확한 기억이 말이 아니라 이 할머니의 표정,

이 할머니의 얼굴에 있는 주름살들, 상처들, 그 목소리가 갈라진 그 말하자면 목소리의 상처들 이것이 이 할머니의 이 여인의 이 중국여인의 연대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화면자료를 보고난 것보다도 말하자면 그사람의 얼굴 자체가 역사라는 것을 이 다큐멘터리에서 보게됩니다. 조금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이 왕빙감독의 영화 ***(01:29:34) 그다음

영화는 다시 *** 다시 한 번 도전하듯이 다음번에 찍은 영화는 원유 오일이라는 작품이었었습니다. 이 원유라는 작품은 중국에도 그

석유가 납니다. 석유가 나는데 문제는 질이 너무 나쁘고 두 번째는 이 석유를 채굴하는 지역이 고산지대여서 이 지역에 완전히 고원지대여서 가서 일을 하기가 굉장히 힘들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가서 일을 하는 노동자는 딱 둘 중의 하나입니다. 오직 돈이 목적이거나 아니면 무언가 거기 도망가 있어야 되는 이유가 있거나 그 노동자들이 가서 일하는 지역에 이 사람들의 이 노동자들의 사회주의 중국에서 일하는 버림받은 노동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찍으러 그 장소에 갑니다. 그 장소에 가서 영화를 찍다가 말하자면 높은 지역에 올라갔었을 때 두 종류의 사람이 있지요.

고산병에 걸리는 사람과 안 걸리는 사람. 고산병은 아무리 운동을 해도 걸릴 수 있고 전혀 운동하지 않은 사람도 아무 반응이 없을 수 있습니다. 고산병에 대해서 제가 의논할 일이 있어서 의사를 만나서 의논을 했습니다. 제가 되게 높은데 올라갈 예정인데요. 고산병에 걸릴지 알고 싶은데요. 의사의 이야기가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올라가보는 것 말고는 달리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 영화를 찍어서 거기에서 고산병이 걸리면 그리고 찍은 이 원유라는 영화의 상영시간은 15시간 20분이에요. 한번 해보자는 것이지요. 그런

다음 이 감독이 고산병 이후 영화작업이 매우 뜬해기입니다. 치료

받는 기간이 길어진 셈이지요. 그런데 이 감독이 고산병에 걸렸는데 다시 한 번 높은 산에 올라갑니다. 3,600미터 산위에 살고 있는 세 자매를 만나러 갑니다. 11살, 7살, 5살의 나이 세 여자아이. 이

148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여자아이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습니다. 물론 있겠지요. 그런데

어머니는 가출했고 아버지 혼자 기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돈을 벌러 자주 장에 이 산에서 내려와야 됐었고 그냥 정말 그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빈곤한 작은 동네 3,600미터 작은 동네입니다. 얼마만큼 아이들은 빈곤하게 살고 있냐하면 공기는 차고 불기는 거의 없는 이 움막같은 집으로 이루어진 동네에 살고 있어서 아이들은 머리를 감지못해 머리에 이가 득실거립니다. 머리에 손을 긁으면 손에 이가 잡히는 지경으로 이 세 아이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래서 이 아이들을 돌보게하려고 또 다른 유모를 구합니다. 그런데 이 유모와 아버지가 눈이 맞아서 아들을 낳고 그리고 아버지와 유모는 산에서 내려가고 산 위에서는 세 아이들만 살고 있습니다. 이 세 아이들 찍으러 고산병에 걸린 왕빙이 3,600미터 산 정상에 올라 영화를 찍습니다. 이 세자매 아이들의 이야기는

3시간 30분동안 진행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첫째 아이가 그래도 옆집에 이런 저런 일을 돌봐주면서 먹을 것을 얻어오고

거지나 다름없지요. 그러는 동안 두 어린 동생들은 놀러나갑니다.

놀러 나가봤자 근처에 산책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습니다. 풍경은 정말 아름답지요. 3,600미터나 되는 산 정상이니까요. 이때 이

막내의 유일한 취미는 지가 막 노래가사를 만들어서 말도 안되는 노래를 막 부르는 게 유일한 취미입니다. 혼자서 막 노래를

부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 어린애가 누워서 하늘을 막 바라보며 신나게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가사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아이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아이는 엄마가 있는 아이지요. 그 영화가 딱 끝납니다. 이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방법이 저는 정말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때 진행했었던 시네마 디차드 서울이라는 영화제 이 감독을 심사위원으로 불렀습니다.

심사위원으로 불렀고 이 감독에게 서울로 왔었을 때 제가 제안을 했습니다. 당신 영화 현장에 구경하고 싶습니다. 허락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큐멘터리 감독이고 그 스포츠를 찍고 있고 이 영화는 다 불법영화들이기 때문에 말하자면 그 공안의 감시의 대상이기도 하지요. 사실은 처음에 거절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잠깐

12월 7일, 정성일

149


생각하더니 상관없다, 와라. 그래서 그냥 가는 것은 별 의미가 없으니까 내가 당신 영화 한 대로 다큐멘터리를 찍어도 상관이 없겠냐? 상관없다. 대신 최소 인원만 와라. 그리고 우리도

최소인원으로 찍기 때문에 당신을 돌볼 수가 없을 수 있다. 그 점을 각오하고 와라. 그리고 그래서 제가 고산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의사를 만나러 갔었던 것인데 말인 즉슨 오기전에 고산병 체크를 하고 그다음 옷을 든든하게 입고 그리고 등산화를 잘 준비하고 와라. 제가 왜 그런 대답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래서 여러 가지 염려의 부탁을 듣자 제가 답했습니다. 군대에

갔다왔다, 걱정하지 마라. 지금 생각해도 그런 대답 왜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나서 이 감독을 쫓아서 윈난이라는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알다시피 윈난은 중국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성중의

하나이고 한자로는 구름운자에 남쪽 남자를 쓰지요. 그리고 이 민간

지역에 가서 맨 처음에는 왕빙 감독은 3,600미터 산 위에 올라가서 세자매에 관한 후일담을 찍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감독과

함께 윈난에 도착했었을 때 생각이 이 감독의 소재가 바꼈습니다. 도착하자 훈민공원에 도착하자 감독이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자오퉁으로 간다. 윈난으로 들어가면 윈난은 굉장히 아름다운

관광지이기도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관광을 많이 갑니다. 그런데 윈난으로 들어갈 때 훈민공원 들어가는 공원이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사방으로 흩어져있기 때문에 윈난이 딱 가운데 있어요. 우리는 자오퉁으로 간다. 자오퉁은 어디냐? 여기서 멀지는 않다. 그때 이 사람은 중국사람이라는 것을 제가 깜빡했습니다. 멀지

않다라는 말의 개념을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그의 차에 올라타고 밴에 탔는데 타고 출발을 했습니다. 시속 120을 밟고 그때부터

8시간 반을 갔습니다. 그래서 자오퉁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뭘 찍을 생각을 했냐? 정신병원을 찍는다. 한국정신병원도 들어가본적이 없는 제가 중국 정신병원을 처음 들어가봤습니다. 정신병원에 들어갔는데 들어간지 30분만에 쫓겨났습니다. 쫓겨난 까닭은 원장을 매수했는데 부원장을 매수 안 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감독이야 기다리면 되지만 아쉽게도 저는 이 감독은

150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왕빙은 거기 계속 있을 수 있지만 저는 비자가 만료될 수도 있기 때문에 어쩌면 아무것도 찍고 돌아갈 수 없다는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이 왕빙은 다큐멘터리 찍는 감독이 새로운 태도를 저한테 보여줬습니다. 왕빙은 그러면 우리는 세자매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그리고 거기있는 분한테 이야기했습니다.

당신은 계속 매수해라. 그래서 거기에서 다시 서쪽으로 이동을 해서 짜우자이라는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역시가깝다는 말은 했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기를 잘한 것은 바로 차를 타고 11시간 반 이동을 해서 다음주에 도착했습니다. 지금도 아찔한것은 제가 이

짜오자를 갔다온 후 정확하게 8개월 후에는 윈난에서 지진소식을 들었습니다. 기사를 봤는데 그 동네입니다. 그래서 동영상을

확인해봤더니 제가 머물렀던 호텔이 무너진 것을 보게 됐습니다.

8개월 후에 갔었으면 저는 이 자리에 있지 않고 고인의 명도에서 저를 만났을 것입니다. 짜오자에서 그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왕빙의 어떤 태도를 말하는 것은 말하자면 이 시대에서 20세기로 넘어온 영화를 거쳐서 21세기의 영화로 도착한 다음 제가 여러분한테 영화의 기억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영화의 현장에까지 다가간 이야기를 지금 하는 중입니다.

아버지하고 그런데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그 세자매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영화 속에서 봤던 사람을 실물로 딱 보니까 약간 느낌이 이상하긴 하더라고요. 그런 다음 오전내내 인터뷰를 했습니다.

오전내내 인터뷰 잘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헤어졌어요. 헤어졌는데 감독이 1시간 이러고 있더니 그 운전하던 친구가 프로듀서 역할을 같이 하는데 아무래도 이 새끼가 거짓말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세자매의 엄마를 만난다. 여기 중국이잖아요. 세자매의 엄마는 어디 있는지 모른데요, 찾아야 된데요. 여기서 어떻게 찾지 했는데

이틀만에 거기 있었는데 찾았다, 놀랍게도 찾았다. 어디있냐?

멍라이라는 곳에 있다. 멍라이는 또 어디 있느냐? 라오스 국경

근처에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다시 차를 타고 이틀반을 갔습니다. 아침 6시에 출발해서 밤 11시까지 정말 쉬지 않고 차를 타고

이틀반을 가서 멍라이에 도착했습니다. 아주 작은 소도시로부터

12월 7일, 정성일

151


다시 70키로를 더 안으로 들어가면 정글과 같은데 있는 도시에요. 저는 그런 풍경을 처음봤는데 북쪽끝에서 남쪽끝까지 내려 오면서 제가 본 이상한 풍경은 도착한게 크리스마스를 앞둔 겨울이었었습니다. 쭉 내려가는데 차를 타고 내려가면서 겨울로부터 여름으로 풍경이 바뀌는 것은 처음봤습니다. 심지어 풍경을 지나서 한국에는 보이차로 유명하지요? 그 보이지역을 통과를 했습니다. 보이차가 나오는 그 지역 도시도 가봤는데 생각보다 되게 작아요.

그러나 좋은 것은 아무 집이나 가도 그냥 공짜로 차를 그냥 마음대로 마시라고 해요. 그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것 사먹으면 된다는 것인데 거기를 지나갈 때부터 이제 야자수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처음 본 길거리 도로에 표지판을 봤습니다. 표지판에 코끼리가

그려져 있어요. 그래서 저 표지판은 뭐냐? 그랬더니 야생코끼리

조심하시오. 코끼리가 나타나면 우선 차를 세워야 된답니다. 아니면 코끼리 눈이 나쁘기 때문에 향해서 달려오기 시작하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빠른 속도랍니다. 하여튼 그래서 멍라이라는 지역까지

도착했습니다. 감독에게 물어봤습니다. 라오스국경은 여기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냐? 그랬더니 감독이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라오스에 있다. 나는 비자도 없는데 어쩌라고. 그리고 세자매

어머니와 인터뷰를 시작을 했습니다. 이 장면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렇게 긴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과정속에서 그

과정속에서 세자매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지요. 세자매 아버지가 거짓말한 것이 사실입니다. 남아선호 사상이 한국보다 훨씬 심각한

중국에서 딸 둘을 낳자 그때부터 남편이 패기 시작했답니다. 남편만 팬게 아니라 시아버지도 와서 패고 시동생들도 와서 패고 심지어 남편이 패다가 팔이 부러졌답니다. 팔이 부러지자 형이라는 작자가 와서 동생을 나무라면서 이야기했답니다. 네가 그렇게 때리니까

팔밖에 안 부러지지, 제대로 때려야지 때릴려면. 그래서 팔이 세 번 부러졌답니다. 그런 다음 낯선 어떤 도시에 자기를 버리고 딸 애들 셋만 데리고 도망쳐버렸다는 거예요. 그리고 산위에다가 그렇게

방치해둔 것이지요. 그 이야기를 쭉하다가 자기 딸 이야기를 듣더니 이 세자매 엄마가 당신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너무 마음이 아프다.

152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내가 만약 옆에 있었다면 비싼 옷은 못사주고 비싼 음식은 못해줬겠지만 그러나 깨끗한 옷을 입히고 그리고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줬을 텐데 그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 울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감독이 찍고 있었지요. 그런데 세자매 어머니가 울기 시작하자 대부분의 다큐멘터리 여러분 다큐멘터리 보셨을 때 이런 순간이 나오면 통상적으로 영화는 그러지요. 아싸 기다리는 순간이 왔어.

눈물을 찍으려고 환장 하듯이 찍기 시작하지요. 이거야 하고 심지어 클로즈업으로 들어가고 줌으로 땡겨서 보잖아요. 그런데 감독이

울기시작하자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카메라 끄더니 나가버렸습니다. 울면 카메라 딱 끄고 나가버렸습니다. 당황했죠. 제 경험으로 이런 순간들이 다큐멘터리 안 놓치는데 이것을 피해버리는 것을 보고 감독에게 물어봤습니다. 당신은 왜 그 장면을 찍지 않았습니까?

감독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세자매 어머니의 눈물을 착취할 권리가 없습니다. 뭔가 비밀을 안 것 같았습니다. 이 사람 영화의 비밀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까지 내가 봤었던 수많은 다큐멘터리들이 경멸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영화는 심지어 나이든 어떤 사람을 찍는 다큐멘터리들은 그 사람이 죽기만을 기다리는 영화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죽고나면 아싸 이러고 가족들 찍고 슬퍼

울고 그 사람 영정사진 찍고 좋아하는 영화도 있습니다. 정말 역겨운 태도지요. 그것은 정말 역겨운 태도지요. 말하자면 여러분께서는

말하자면 이 선택을 한 감독에 영화를 보고 계신 것입니다. 이렇게

10편의 영화가 여러분한테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미 짧은 상영시간을 가진 휴일은 끝났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느라 어쩌면 바람 부는 장면을 놓쳤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좋은 영화는 좋은 영화의 힘 그것은 두 번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께서는 저의 소개를 충분히 들으셨으니 반드시 휴일이라는 영화는 다시 한 번 보셔야 될 것입니다. 이 10편의 영화를

소개했으니 이제 이 10편의 영화를 둘러싼 기억을 아카이빙 한다는 것. 영화 속에서의 경험을 경험이라는 기억을 아카이빙 한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정식화시키는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눠보고자 합니다.

12월 7일, 정성일

153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니 꼭 영화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그 영화를 어떤 이 영화 중에 10편 중에 어떤 1편 혹은 100편 중에 1편 하여튼 어떤 영화 그 영화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영화를 갖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 영화를 사랑할 때 갖고 싶어 할 것입니다. 이때 영화를 갖는다라는 문제를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영화를 갖는 가장 단순한 방법

가장 1차적인 방법은 오늘날 그것에 가장 1차적인 방법은 그 영화의 디브이디를 소장하는 것일 것입니다. 혹은 누군가는 파일을

소장하기도 할 것입니다. 우스갯 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파일을 소장한다는 것 애써서 어떤 영화의 파일을 막 소장하려고 애를 쓸 때 그 파일을 소장하는 것은 그 영화 죽은 것입니다. 두 번 다시 안 보지요. 소장하는 것만으로 이미 만족해. 그리고 이미 본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이제 그다음에 바로 이런 이야기를 하지요. 나는 이 영화를 언제든지 볼 수 있어, 다만 지금

조금 바빠 내가. 라는 이유로 미뤄두지요. 그것은 계속 쌓아두지요. 그 편수가 10편, 100편, 심지어 1000편에 가까워 지기

시작하지요. 심지어 오늘날에 이런 일들 말하자면 여러분 토렌트를 조금만 뒤지면 정말 발전된 게 사이트앤사운드라는 영국 영화잡지가 있습니다. 이 잡지에는 10년에 한번씩 전 세계 영화

평론가들을 상대로 영화사상 탑텐을 뽑습니다. 그리고 2012년도에 영화사상 탑텐을 다시 한 번 뽑았고 1위에 현기증이 올라왔습니다. 그러면서 10위뿐만 아니라 100위까지 영화를 다 소개했습니다. 저를 깜짝 놀라게 한 것 8개월 후에 한국 토렌트 불법사이트에

누군가가 이 백편을 패케이징 시켜서 4만8,000원에 한글자막이 쓴 것과 함께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상영극 100편을 볼 것인가? 절대 안 본다에 제가 50원 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심지어 저도 그 영화를 그토록 애타게 찾다가 제 수중에 딱 들어오면 음 됐어,

나중에 보지뭐. 말하자면 그 영화를 소장하는 날은 그 영화가 자기

수중에서 죽는날이라고도 볼 것입니다. 즉 그러므로 저는 답문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디브이디를 소장한다는 것은 그것은 세계문학 전집을 소장하는 날부터 그 세계문학 전집 절대 안 읽지지요. 그냥

154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제목만 계속 바라볼 뿐이에요. 언젠가는 읽겠지라는 결심만 안고서 그 세월이 가다보면 이제 노안이 찾아오고 그런 다음 더 이상 책을 읽을 기력이 없는 날이 다가올 것입니다. 말하자면 영화를 하지만 물론 어떤영화를 보고 그 영화의 감흥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서 물론 그 영화를 디브이디를 써서 다시 보는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영화를 다시 본 분들을 대상으로 해서 두 번째 보는 분들을 향해서 이 질문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 영화를 사서 그

장면을 다시 볼 때 왜 그 감흥을 다시 맛보지 못하는 것일까?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 감흥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처음 내가 느꼈던 그 감흥을 왜 내가 두 번째 볼 때는 느껴보기 힘든 것일까? 영화의 장면은 여전히 거기에 남아있지만 감흥이라는 것은 장면은 반복하면 그 시간이 되면 그 감흥에 순간이 58분째

있었다면 58분 있었을 때 감흥의 장면은 물리적으로 반드시 다시 나타날 것입니다. 반드시 다시 출몰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감흥을

다시 못본다면 어떤 약속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감흥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그 시간속에 있는 시간속에 잠시 머물렀던 어떤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흥을 느꼈던 그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 시간을 말하자면 우리가 그 감흥을 생각한다는 것은 시간을 생각해보는 순간이라는 것을 여러분과 함께 나눠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어떤 훌륭한

장면이 있습니다. 어떤 훌륭한 장면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론가들은 이 장면을 달려들어 이 장면을 분석하려고 들 것입니다. 그래서

사지절단될 것입니다. 쇼트별로 나눠놓고 미장센느로 쪼개고 그리고 그 단위를 분석하고 그리고 동선을 꼼꼼히 따져보고 그것을 그대로 다시 한 번 카피하고 해낼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유명한 교훈이 있습니다. 많은 의사들이 쓰는 표현중에 하나 수술은 성공했는데

환자가 죽었어. 말하자면 수술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환자가 죽게 되었다면 그게 무슨 소용있냐는 것입니다. 종종 어떤 훌륭한

장면을 성공적으로 분석했었을 때 정작 빠져있는 것은 그 장면에서 우리가 느껴보았던 감흥이 들어가 있습니다. 혹은 비평가들이 그 장면에 달려듭니다. 이때 이 비평가들은 그 장면에 아름다움을

12월 7일, 정성일

155


설명하기 위해서 애를 쓸 것입니다. 독일군의 비평가에 발트베냐민이 괴테의 친화력 연구에서 했었던 그 유명한 말 이론가와 비평가가 가장 다른 점은 이론가들이 한 역할은 불에 관한 연구를 할 때 이론가들은 불이 붙는 그 재료와 불이 타버리고 난 다음 그 재가루를 연구하는데 맞춰져 있다면 비평가는 불타는 바로 그 순간에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 아름다움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명은

감흥이 아닙니다. 논리적으로 그 설명을 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것이 내가 느껴보았던 감흥이 아닐 수가 있습니다. 그

장면을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게 될 때 그 장면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게 될 때 심지어 그 장면을 똑같이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의 감흥을 느껴보았다는 사람은 동일한 장면에서 느껴보았다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 조차도 한 영화에서 조차 그가 감동받은 장면의 감흥이 종종 전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수없이 그런 경험을 저는 했습니다. 제 동료들과 어떤 영화를 보고 좋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 좋다는 이야기가 다른 것도 물론입니다. 뭐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장면에 대해서 그 장면에 감흥을 받았다고 이야기할 때에 완전히 우리는 동일한 감흥을 느꼈다는데 기뻐했지만 곧 그 감흥을 설명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 감흥이 전혀 달랐다는 것을 알고 서로 깜짝 놀라기 조차 합니다. 말하자면 우리에게 흥미로운 것은 이 장면의 감흥이 우리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그 순간 어떤 사람에게 그 장면이 흥미롭게 느껴지고 어떤 감흥을 주었었을 때 그 장면이 종종 분석할만한 대상이 전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누군가를 사로 잡을 때입니다. 여러분 종종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장면을 보고 그 장면이 너무 좋아. 그런데 그 장면으로부터 감흥을 받은 친구를 만나는게 너무 힘들어. 가장 친한

친구에게 조차 자기 애인에게 조차 같이 사는 사람에게 조차 똑같이 그래서 서로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이랑 똑 같은 영화를 보고 나서는 오 이 영화에 나오는 감흥 그 장면 너무 좋지않니? 했을 때 뭐가 좋아? 라는 반문을 수없이 받아 본 경험이

156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있으실 것입니다. 혹은 더 흥미로운 것은 제 동료들과 이야기할 때 이런 순간이 가장 긴장되고 가장 기쁘고 때로는 질투심에 사로 잡히게 되는 순간이지요. 같은 영화를 바로 옆자리에서 봤어요. 바로 옆자리에서 둘 다 그 영화를 처음 본거예요. 그리고 나서 바깥에

나와서 그 영화 이야기를 하게 되지요. 그때 나는 무심히 느꼈는데

내 동료가 그 어떤 장면을 지목을 하면서 그 장면이 정말 좋지 않냐? 라고 이야기할 때 나는 그냥 그 장면이 무심히 지나갔는데 그 장면이 너무 좋지 않냐고 그러면서 그 장면에 대해서 장광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그 장광설에 완전히 압도적일 뿐만 아니라 당장 그 영화를 내가 다시 보러가야되겠다라는 그 말하자면 긴급성에 사로잡히게 될 때 마음으로부터 불타는 질투심을 참을 수가 없지요. 왜? 그 장면에 대해서 나는 그 순간 장님이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 내가 장님이었어요. 말하자면 어떤 장면이 주는 감흥이라는 것은 정확하게 그런 것입니다. 말하자면 거기에서 누군가 거기에

매달리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집니다. 그러므로 영화를 보고난 다음 상대방이 어떤 장면을 이야기 하냐에 따라서 여러분이 영화 친구가 있으시다면 혹은 영화를 같이 보거나 혹은 이 말은 영화에서 소설로 바꾼다면 어떤 문장으로 바꿔도 상관없습니다. 해화로 바꾼다면 어떤 디테일로 바꿔도 상관

없습니다. 혹은 어떤 음악으로 이야기한다면 어떤 소절로 바꿔도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상대방이 어떤 장면을 이야기하느냐가 바로 그 사람이 그 영화에 대해서 느껴본 감정 이런 것 말해도 상관없습니다. 영화를 보고난 다음 그래서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반대로 너는 그 영화에서 어떤 장면을 좋아? 라고 이야기할 때 조심해서 대답하셔야 됩니다. 완전히 존경받거나

완전히 경멸 받을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그 영화에서 어떤 핵심적인 것을 상대방한테 빨리 끄집어내고 싶을 때 이를 테면 그 영화에 있어서 너는 그 영화를 어떻게 생각해? 하면 개념적인

표현으로 피해갈 수 있습니다. 수사로 피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넌 그 영화에서 어떤 장면이 좋아? 그것은 못피해갑니다. 그런데 그것을 딱 이야기하는 순간 상대방은 ‘아~ 그 장면을’‘음? 그

12월 7일, 정성일

157


장면을?’ 두 개의 반응은 하늘과 땅입니다. 앞이 되었었을 때는

경멸입니다. 후자가 됐었을 때는 갑자기 흥미로워지거나 불현듯

질투심에 사로 잡힐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물론 이 영화를 본 감흥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영화사 초기에서부터 테속해서 영화의 어떤 마법이라고 불러왔습니다. 말하자면 그 감흥이라는 것에 대해서 1960년대 이후 영화 이론이 확립되기 시작한

시기라고 후에 부르지요. 그때부터 이제 영화가 구조주의와 불장난을 벌리기 시작했고 기호학이 영화 안으로 밀고들어 왔으며 정신분석학의 용어들이 난무하기 시작했고 마르크스주의 특히 알티스에의 영향을 받은 개념들이 영화이론들과 뒤섞이기 시작했으며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가가 한데 결합한 다음 자신들의 방식으로 새롭게 개념화시킨 패밀리즘 이론이

***(01:59:20)를 전환점으로 하여 고전적인 질문을 시작하기 시작한 이 시기부터 서로 방식은 다르지만 영화에서 느껴본 감흥을 정식화시키면서 이것을 이데올로기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영화이론은 영화의 이 감흥을 이론에서 내쫓아버리기 위해 필사적이 됐습니다. 혹은 아카데미 안에서는 이것을 이데올로기라고 부른 다음 이것과 전투를 벌이는 것이 마치 영화의 객관화, 영화

이론의 정당화, 영화 이론의 정식화라고 생각했었던 모양입니다. 미성년자 없으시지요? 여기? 장소가 불편해서. 그러면서 여기에

영향받은 비평가들의 명제는 우리들에게 깨어나라 라고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비평가들은 부지와 이데올로기로부터 그 혹은 알티세이 영향을 받았던 이 비평가들은 이들로부터 국가정치가 만들어내는 이데올로기부터 깨어나라, 페미스 이론가들은 갑자기

이데올로기로부터 깨어나라 라고 명령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저희 입장은 혹은 저에게 동의하여 주신다면 혹은 영화에서 감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의 동료들은 이 명제에 맞받아치고 싶습니다.

왜그래야 되는데요? 깨어나라는 요구에 대해서 왜 그래야 되는데? 라고 맞받아치고 싶어집니다. 이 깨어나라는 감흥으로부터 깨어나라는 이 요구의 근본 가설중의 하나는 좀 복잡하게 이론화시켜서 여러분에게 설명할 수 있지만 그것은 매우 재미 없는

158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일이니까 그냥 단순하게 단순화시켜서 이야기하면 영화를 일종의 꿈의 작용과 같은 것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단지 꿈꾸는 것이 아닙니다. 차라리 저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꿈을 꾸는 것이며 우리가 현실을 완전하게 다 파악하는 방법이란 것은 없습니다. 그냥 각자의 방식으로 주관적으로 자기의 머릿속에서 자기가 경험하고 인지하고 있는 것을 약간 좀 더 정식화시키면 자기의 감각을 통하여 오성을 통해서 느껴본 것을 이성적으로 다시 재구성한 것을 머릿속에 맵핑시켜서 지도를 그려 만들어낸 주관적인 세계가 말하자면 하나의 세계인 것처럼 여길 때 그것은 각자의 세계에 대한 꿈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세상을 살아가는 쪽이 차라리 꿈을 꾸는 것이며 영화를 보는 쪽이 영화를 보는 쪽이 세계로부터 각성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와 세상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자기가 그 거리를 유지한다고 착각하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 착각하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정신분석학은 훨씬 더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신 정신분석 요즘 유행하고 있는 정신분석 이론의 근간을 이루는 자크라캉 이론은 안다고 가정된 주체라고 불렀습니다. 말하자면 이것에 대해서 우리가 세상과 만나는 거리를 유지하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이것에 대해서 반대로 영화는 내가 아무리 다가가도 내가아무리 다가가도 영화와 나 사이에 거리를 좁히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어떤 거리가 있습니다. 아무리 영화에 다가가도 영화와 나의 거리는 끝내 그 안에 내가 들어가 살 수 없는 불가능성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절대 명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영화를 보는 우리는 말하자면 영화를

보는 우리의 행위는 세계로부터 일정한 거리만큼 깨어난 거리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여러분이 받아드릴 수

있다면 저는 좀 더 밀고나가 보고싶어 집니다. 말하자면 여러분에게

4개의 태제를 제안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화를 잘 12월 7일, 정성일

159


본다는 것은 동시에 세계를 잘 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를 잘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러나 영화를 잘볼

수는 있습니다. 왜? 그것은 영화로부터 절대적으로 우리들의 일정한 거리만큼 반드시 물러나서 볼 수 밖에 없는 거리를 확보하게 만들어주는 예술이니까. 그런 다음 어떤 장면에 대해서 말한 것은 그

영화를 보는 그 사람의 방법에 감정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천천히 말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말을 음미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떤 장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그냥 감정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영화를 보는 그 사람의 구태여 그 영화 그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왜? 그것은 그 영화라는 개별의 세계이며 각자의 세계이며 그야말로 모나드로써의 세계이며

***(02:05:43)가 말했던 바로 그 각자의 창문인 것이며 그것은 그 사람 그 영화를 본 그 사람 개개인 한사람 한사람의 각자의 방법에 각자의 감정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며 동시에 세계를 보는 방법의 감정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방법의 감정이라는

것은 하나의 개념처럼 쓰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영화를 본다는 것은 그냥 단순히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방법의 감정에 대한 문제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환기시켜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누군가는 철학으로 훈련받은 누군가는 저에게 반문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지나치게

당신은 지금 데이비슈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군요. 당신은 지나치게 영향 받은 것 같아요. 너무 많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회의주의의 객관성에 대해서 영화가 안고 있는 어떤 절대적 거리를 말하자면 그로부터 이끌어내고 싶습니다. 어느 세 10편의 영화 중에

3개의 영화는 끝났습니다. 차례로 꺼져갈 것입니다. 3개의 촛불이 꺼졌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세계 안에 그사람이 세계 안에 그사람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 영화를 보는 방법의 감정을 느껴보는 것은 전적으로 그사람의 존재방식에 근거하여 마련지어진 것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말하자면 방법의 감정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의 지평에 기대어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약간 말투가

***(02:07:43) 했습니다만 그러나 그렇게 제가 그 개념을

160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엄밀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때 세계와 영화사이의

매개는 네 번째가 저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이때 세계와 영화 사이의 매개는 영화가 예술적방법이라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을 환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종합예술이라고 말합니다. 이때 이 말은 너무 자주 오해되어서 사용되었습니다.

영화가 종합예술이라고 말할 때 영화가 여러 개의 예술을 하나로 합친예술이라고 이해하고 있으면 완전히 잘못 배운것입니다. 그말

자체로 감춰진 사람이 그말이 무슨 말인지를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영화가 종합예술이라고 말한 것은 영화를 여러 다른 예술로 바라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는 뜻입니다. 문학으로 봐도 괜찮고 연극으로 봐도 괜찮고 음악으로 봐도 괜찮고 회화로 봐도 설명할 수 있는 그 측면이 있다는 뜻이지 이 모든 다른 예술들을 합쳐서 짬뽕으로 만들어놓은 우리는 영화가 짬뽕이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시켜드리고 싶습니다. 즉 말하자면 이때 영화라는 것은 그 말하자면 그런 서로 다른 여러 예술의 맨 마지막에 태어난 이 기계적으로 발명된

1895년 12월 28일 날 프랑스 파리에 카피시네가 ***(02:09:19)에서 *** 형제가 발표한 10편의 영화로부터 시작된 이 생일이 분명한 예술의 말하자면 가능성은 그 이전에 시작된 예술들이 바라볼 수 있는 그 모든 측면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만 종합예술이라는 것입니다. 종합예술의 측면을 갖고 있는 이 영화가 말하자면 예술적 방법이라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는 말을 위에 명제와 결합하면 이렇게 말할수도 있겠지요. 영화라는 것은 예술적 방법의 감흥을 느껴보는 하나의 말하자면 긴 이라는 것을 일깨워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18세기는 18세기를 우리가 복원하는 방법은 엄청난 양의 쾌감일 것입니다. 19세기를 복원하는 방법은

엄청난 양의 사진일 것입니다. 20세기를 복원하는 방법은 엄청난 양의 영화일 것입니다. 물론 우리 세기를 복원하는 방법은 엄청난 양의 동영상들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들에게 20세기는

무엇으로 남아있습니까? 영화로 남아있습니다. 영화가 즉 지구가 완전히 몰락한 다음 무언가 새로운 인류가 20세기를 복원하고자

한다면 전적으로 영화의 도움을 받아야 될 것입니다. 영화는 그런

12월 7일, 정성일

161


점에서 한편으로 기억의 저장고이자 보관소이며 그것에 대한 기록이라고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화는 영화를 기억속에 아카이브할 때 두 가지 원리가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그것은 세계에 대한 나의 경험과

영화의 지식사이에서 하나의 질서를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영화를 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영화를 본다는 것은 전적으로

영화를 볼 때 이 영화를 성립시키는 것은 나의 경험입니다. 나의

경험이 이 영화에 대한 이해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각자 갖고 있는 세계에 대한 경험의 차이가 이 영화에 대한 이해의 차이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동시에 영화가 주는 이제까지 알지못했던 지식이 있을 것입니다. 19세기 상하이에 대한 지식,

혹은 21세기 태국에 대한 지식, 혹은 1963년 파리에 대한 지식,

혹은 1946년 헐리우드 냉전기에 관한 지식, 혹은 1936년 파리에 대한 지식들이 있을 것입니다. 혹은 49년 일본에 관한 일본교토에 관한 지식, 혹은 21세기 20세기말에서 21세기를 넘어온 중국 센양에 관한 지식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그 사이에서 하나의

여러분은 질서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그것은 동시에 조금만 멀리

밀고 나간 것을 여러분이 받아들여주십시오. 그것은 동시에 두 가지

이미지 사이에 긴장 저는 이말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경험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이미지 사이에 긴장 안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라는 물질의 이미지와 우리들은 세계라는 물질 이미지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세계라는 물질의

이미지와 영화라는 이미지의 물질 저는 지금 말장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 말을 엄밀하게, 아니면 차라리 유연하게

***(02:13:35)이 이야기 했었던 그 표현에서 이 말을 빌려왔습니다. 세계라는 물질의 이미지와 영화라는 이미지의 물질사이에 간극에 놓여있는 그 긴장을 느껴보는 감흥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러므로 영화에서 우리가 느껴보는 감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우리는 다시 한 번 세계를 설명하는 것이 항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라는 미스테리한데서 세계를 설명할 수 없기

162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때문에 세계를 담는 말하자면 세계에 대한 실제적인 세계 액츄얼한 세계에 대한 잠재적인 버추얼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그 이미지를 담고 있는 그 영화를 그래서 설명하고 싶어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누구나 갑자기 다 영화를 설명하고 싶어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다 누구나 영화평론가 같은 태도를 취하지요. 그러나 정확하게는

그것은 영화평론가의 태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차라리 그것은 영화를 경유하여 세계를 설명해보고 싶은 욕망이라고 말해보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영화를 설명하고 싶어하는 것은 그것이 말하자면 작품으로서의 대상이된 영화를 비평하는 것과는 다른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영화를 보고나서 영화를 설명하고 싶어하는 것은 저는 비평에 대한 욕망이라기 보다는 차라리훨씬 더 큰욕망 훨씬 더 근원적인 욕망 그것은 세계를 설명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라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저는 영화를 볼 때 두가지 질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하는 이야기 그런데도 불구하고 종종 영화에 관해서 그저 영화를 보러다니는 ***(02:16:00) 관객, 그저 구경하러 다니는 관객들뿐만 아니라 영화에 대해서 프로페셔널한 글을 쓰는 비평가들조차도 종종 놓치게 되는 두 개의 질문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앞에 다른 이야기들은 잊어버릴지언정 여러분이 이 자리를 떠나면서 가슴에 품어주었으면 기대하는 두 개의 질문을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영화에서 중요한 질문 두 가지 첫 번째 질문은 무슨 영화를 보았냐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영화를 보면 되니까. 핵심은 말하자면 그 영화에서 그

영화 영화가 아니라 대문자 영화가 아니라 소문자 영화, 개별 영화,

각자의 영화, 개개인 영화, 그냥 영화 그 자체 그냥 이 영화 1편 1편 그 영화에서 그 영화를 어떻게 보았느냐가 무슨 영화를 보았느냐보다 백만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무슨 영화를 보았냐는

정말 하찮은 질문입니다, 정말 하찮은 질문. 그것은 그냥 보면 되는 것이지요. 두 번째 질문은 그 질문을 던진다음 무엇이 그 영화를

영화적으로 만드는가? 라는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두 번째 질문이 특별하게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영화를

12월 7일, 정성일

163


영화적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당신과 영화를 보는 당신과 영화사이의 거리이자 영화와 세계사이에 절대 좁힐 수 없는 거리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본다고 해서 그것이 즉각적으로 모두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직 여러분의 어떤 감흥을 느꼈었을 때 그 감흥이 그 감흥이란 세계를 예술적 방법으로 바라본 거리였었습니다. 예술적 방법으로 느껴본 그 감흥이 여러분과 만들어낸 그 거리 그것을 여러분이 확보할 때에만 비로소 그 확보한 때에만 비로소 영화와 세계사이에 긴장 나와 영화사이의 긴장을 창조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때 중요한 것은 그 간극사이에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희망의 전원 그것이 바로 여러분 자신 여러분자신이 발명해낸 여러분 자신이 창조해낸 천지창조로서의 하나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만 영화는 비로소 단지 세계를 영화 안에 끌어들이고 영화가 세계를 바라보고 그리고 세계를 바라본 영화를 내가 바라본삼각형으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그안에 새로운 세계를 이 삼각형 안에 여러분이 창조하고 발명함으로써 다소 따분한 표현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 표현이 너무나 멋지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거예요. 변증법적으로 통일시켜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 통일은 전적으로 여러분의 발명이고

여러분의 창조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감흥이 너무

소중하고 흥미로운 것입니다. 왜? 각자의 변증법적인 통일의 방식은 각자의 문제이고 각자의 발명이며 각자의 창조니까 우리가 똑같이 영화의 10편을 이 자리에서 봤지만 여러분은 완전히 다른 감흥을 각자 느낄 것입니다. 이 10편의 영화 속에서 가장 감흥을 느낀 영화가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전혀 다른 내용 영화를

이야기할 것이고 동일한 영화를 이야기하는 사람조차 다른 장면을

***(02:19:51)입니다. 바로 그순간 여러분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내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들은 한편의 영화를 보면서 사실 그 영화의 배경, 역사, 의도를 모두 알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종종 우리는 낯선영화와 마주하게 됩니다. 이를 테면 오늘 이 영화를 보시면서 태국영화를 처음 보시는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혹은 164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대만 영화에 관심이 없으셨던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대만영화감독이 중국 본토를 배경으로한 이 상하이 영화가 낯설수도 있습니다. 1949년에 동경이 여러분에게 익숙할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감동을 받게 됩니다. 감동을 받는 까닭은 우리가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당신이 영화를 보면서 하나에 그 거리를 통하여 창조적세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간극은 그 거리는 거기에 생겨난 틈은 그것이 만들어낸 여백은 온전하게 그 여백은 온전하게 여러분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철학자 자크데리다는 철학의 여백이라는 글에서 정확하게는 여백이라는 글에서 철학이 결국은 영문제목으로 번역하면서 만들어낸 제목이지요. 여백에서 책페이지에 문자로 쓰여진 글 옆에 있는 이 하얀 여백에 여러분이 그것을 메모하고 채워넣기 시작할 때 비로소 그 여백을 채워나가는 그 순간에 그 철학은 온전히 여러분의 것으로 만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말하자면 그 여백을 그 여백의 공간을 완전히 우리가 영화를 보는 여러분이 점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점유에는 어떤 전술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학습이 필요할수도 있을 것이며 혹은 여러분의 어떤 그 독창적인 생각을 요구하는 순간도 있을 것입니다. 즉 우리의 관심은 그러므로 우리가 그래서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어떤 장면에 감동을 받을 때 감흥을 받을 때 우리가 그 영화가 성공적이었는지 실패했는지는 우리의 관심거리가 될 이유가 없습니다. 종종 영화를

본 다음에 이 영화는 실패작인가? 성공작인가? 저는 영화를 보면서 왜 그게 관심이 돼야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쓸데 없는 짓은 정말 쓸데없는 짓은 완전히 저로서는 침을 뱉고 싶은 짓은 영화를 보고나서 별점 매기는 것입니다. 그것 완전히 쓸데없는 짓입니다. 오히려 잘 만든 성공작보다 따분한 성공작보다

흥미로운실패작이 훨씬 더 창조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그런 영화를 수없이 예를 들 수 있습니다. 따분한 성공작보다 흥미로운 실패작 말하자면 그속에서만 비로소 우리들은 도약하고 점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들은 말하자면 우리가 필사적으로 얻어낸 감흥의 힘을 빌려서 행여 그 감흥의 힘을 빌려서 그것을 통하여 그게

12월 7일, 정성일

165


걸작이라느니 하는 그것을 입증해내기 위한 알리바이로 낭비하거나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논리를 제공하는데 써버린다면 그것은 너무 아쉬운 일입니다. 그러면 그 감흥으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의 관심은 그 감흥의 힘으로 그 감흥을 끌어내어서 그영화가 무엇을 해낸 것일까?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낸

것일까? 그 영화에서 영화적인 그 무엇을 해낸 것일까? 말하자면 물론 그 무엇을 해냈는지에 대한 방법은 각 영화마다 서로 완전히 다른 기원을 갖고 있을 것이며 다른 출발점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우리가 한 가지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은 그 감흥의 기원의 일부가 여러분 각자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 감흥은

절대적으로 여러분에서 출발하는 것이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여러분을 촉발시킨 것이지 이 영화에 여러분이 끌려들어가 그 감흥을 느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철학이 인문학 이론이 힘겹게 쫓아낸 단어가 있습니다. 그게 주체라는 단어입니다. 저는

필사적으로 그것을 다시 복원시키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것을 여러분에게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오로지 주체의 힘으로 여러분의

주체를 재구성해내고 되찾아 오고 그것을 여러분이 복원시켜서 그 주체의 힘으로 감흥을 느껴 올 때 만일 우리가 저 작품에 대상에 매달리고 이끌려가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들의 주체 따위는

***(02:25:54) 해체되어서 산산조각 나서 따이라는 논리에 휘말리면 감흥이라는 것은 그냥 산산조각으로 증발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 주체를 되찾아 이 감흥은 오로지 여러분의 것으로 만들 때에 비로소 변증법적 긴장관계를 만들어 내어 그 안에서 여러분들의 세계를 창조해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기억이란 결국 어디에 머무는 것입니까? 기억은 주체의 장소에 머물 것입니다. 그것을 그 장소외로 우리들은 다시 질문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예술작품을 환대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 우리들은 그것들을 기꺼이 초청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방관하는 대신에 이 작품들에 방문하는 대신에 이 작품들을 여러분에게 초청하고 그것을 환대할 준비를 하자는 제안을 드리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기억의 아카이브를 여러분

166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각자의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지 않겠냐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이 과정을 통해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영화를 본다는 것은 단순하게 물적으로 디브이디를 여러분이 소장한다는 자본주의적인 소유관계로부터 벗어나와 여러분이 영화를 갖는다는 것은 영화적 체험을 갖는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영화적 체험이라는 것을 우리들의 의미에 중심에 끌어당기고 싶습니다. 어떤 장면에 매혹된다는 것은 영화에서의 특정한순간에 누군가는 걱정스럽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것은 특정한 순간을

페티시하게 만드는 거야 라고 말하고 싶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맞받아치고 싶습니다. 그것은 영화에서의 그 사람의 어떤 인상을 그 작품에서 느껴본 어떤 지각을 그것으로부터 가져보았던 어떤 감흥을 그래서 인상과 감흥이 서로 만나는 장소를 수정화시키는 거야. 크리스탈라이즈 시키는 거야, 하나로 결빙시키는 거야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말하자면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영화를

그것이 어떤 특정한 순간 특정한 디테일의 시간의 결빙화라고 말해도 괜찮다면 우리는 영화를 시간외로 되돌려보낼 수 있다고 말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약간 도약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영화에서 느껴본 감흥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영화는 시간이라는 이미지를 느껴보는 것이라고 말해도 괜찮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어떤 장면에 매혹될 때 그래서 누군가 끊임없이 반복하는 말 누군가에게는 그냥 평범하게 지나치지만 누군가에게는 얼어붙게 만들만큼 강력할 때 그것은 누군가 지나쳤지만 누군가는 제가 감동 받았잖아요, 제가 가서 서있어

보잖아요. 이런 순간에 크리스탈라이즈 될 때에 결빙될 때 그것은

누군가는 하지만 이제는 그냥 지나갈 수도 있겠지요. 이때 제가 이 장면에 결빙되었을 때에는 이 영화에서 보여진 것 이상을 거기서 제가 뭔가를 봤기 때문이겠지요. 아마 여러분이 어떤 장면에서

완전히 어떤 감흥을 느꼈었을 때 그 순간이 마치 ***(02:30:05) 마치 그냥 인쇄되듯이 여러분의 뇌에 멈춰섰었을 때 그것 그 영화에서 보여진 것 이상의 무언가를 본 것이라고 말해도 괜찮겠지요. 영화가 가장 마술적인 것은 이 장면의 우리가 살고 있는

12월 7일, 정성일

167


현실속에서는 그냥 막 스쳐지나가고 있는데 스쳐지나가면서 나타나고 있는데 영화에서 잘라내서 이 순간을 보여줄 때 잘라내서 이것을 보여줄 때 영화라는 거리를 이 디스턴스를 통과하면 이것을 통과해서 바라보게 되면 거기에 현실을 초과하는 그 무언가를 거기에서 우리가 발견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 그냥 봤다면 그냥

지나갔을 것입니다. 영화라는 것을 통과했을 때 그 거리를 유지하고 그것을 보게 되면 그것을 넘어서는 그것을 그것이 보여지는 것 이상의 그 무언가를 썸씽을 항상 보게됩니다. 어쩌면 그 무언가는 디스크렉티브 기술될 수는 없는 하지만 동시에 재현될 수 없는 이 똑같은 것들이 영화 현장에 가면 영화 현장에서 끊임없이 NG를

부르다가 어떤 장면에서 OK를 부를 때에 똑같은 연기를 계속하는 그 순간에 어떤 장면만 OK를 부를 때 그것만이 말하자면 어떤

게이트키핑을 통과해간다고 말할 때 거기에는 그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OK컷이겠지요. 그렇다면 NG컷과 OK컷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이 없겠지요. 즉 그 OK라고 부르는 것을 인정하게 될 때

거기에서 우리들은 재현될 수 없는 눈앞에 나타난 현전을 마주하게 되는 것 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즉 이런 것들을 우리가 마주치게 될 때 어떤 영화도 우리는 여러분에게 이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영화도 회화를 바라보듯이 감상할 수는

없습니다. 영화는 흘러가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흘러가지 않는 것은 이를테면 제가 여러분에게 이 장면을 설명하면서 의도적으로 어떤 영화들은 꺼져가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영화들은 계속 상영되고 있도록 내버려두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화가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을 느껴보도록 만들게 하기 위함입니다. 말하자면 이 회화는 멈춰서서 그것을 바라봅니다. 영화는 끊임없이 이미지가 흘러갑니다. 만일 그 어떤 장면을

멈춰세워 놓고 바라보게 되면 그것은 사진이지 영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진을 감상하는 것이지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반문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화의

시간은 어떻게 느껴가야 됩니까? 여러분께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영화는 결과를 경험하는 예술이 아닙니다. 다른 모든

168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예술은 결과를 경험하는 예술입니다. 문학은 소설로만 쓴 다음에 그 쓴 결과를 문장들을 읽지요. 혹은 우리들은 완성된 그림을 보게

되지요. 영화는 과정을 보는 예술입니다. 절대적으로 과정을 보는 예술입니다. 이때 제가 과정이라는 말을 했었을 때 이 과정은 단순하게 영화를 보는 시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그것은 영화를 보는 시간이기도 하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영화를 체험하는 것은 영화를 보는 동안 영화를 내 눈 앞에 펼쳐지는 영화는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항상 영화는 과정을 잘라서 연결시켜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영화를 찍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 장면은 영화를 찍는 과정이고 이것도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우리는 영화를 본다고

말했을 때 우리는 이 과정을 감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감상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즉 이 작업은

정확하게 어떤 작업과 일치하고 있습니까? 과정을 바라보는 예술 이것은 정확하게 인상주의 화가들을 자극하고 겹치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구태여 인상주의라는 말을 하는 까닭은 인상주의화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 때 정확하게 그때 영화가 태어났습니다.

인상주의가 파리에서 태어난 것처럼 영화도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떻겠습니까? 에드와르 마네가

그렸었던 그림을 영화처럼 설명하면 에드와르 마네의 그림은 모두

50미리 표준렌즈로 찍은 회화입니다. 드가는 드가가 이 앵글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대신에 경사각도로 확폭이 시작했었을 때 영화에서 마치 로우앵글, 하이앵글 혹은 영화에서 어떤 경사지어진 앵글들을 만들어낸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한셈입니다. 혹은 끌로드 모네가 똑같은 수요로 다른 시간 때에 그린 것으로 완전히 다른 수련이라고 주장했었을 때 그 수련들을 연달아 부쳐놓는다면 우리들은 영화에서의 쇼트의 변화라고 이야기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혹은 위대한 세잔이 사과 그림을 그려놓고 하나의 사과의 구도 안에서 전혀 다른 두 개의 퍼스티 펙트별로 놓고서 그 두 개의 퍼스펙티브가 한 화폭속에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제쳤었을 때 회사의 역사는 입체주의 시작이라고 말했지만

12월 7일, 정성일

169


영화는 그것을 순식간에 해냈습니다. 무엇으로?

***(02:36:42)으로. 말하자면 렌즈의 두 개의 효과로 두 구도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19세기 회화들이 했었던 것을 영화는 처음부터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혹은 그들은 같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인상주의 화가들이 궁극적으로 영화가 갖고 있었던 것 중에 갖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시간이었습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그 시간이 영화속에 이미지들을 운동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물론 제 이야기가 행여 영화가 회화보다 뛰어나다는 말을 하기 위함이라고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우리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영화를 통하여 우리들의 시각적인 체험안에 시간적 체험을 포함시킬 수 있는 어떤 점핑의 순간을 경험했고 그점핑의 순간이 영화에서의 영화적인 영화에서 영화적 체험이라고 부르는 것이 되었으며 그 영화적 체험을 통해서 감흥을 끌어냈고 그 감흥이 여러분들로 하여금 여러분의 세계에 대한 잠재적 세계를 끌어낼 수 있는 발명의 시간 창조적 시간을 제공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제 이야기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야기를 정리해보겠습니다. 시간이 지나가고 차례대로 영화가 끝나고 있습니다. 영화는 결국 경험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의문이 떠오르는 분이 있으실것입니다.

이때 곤란한 문제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영화가 영화의 토대가 영화의 어쩔수 없는 근거가 테크놀로지의 말하자면 근거한 예술이라는 것입니다. 사진의 발명 이후 시지각에 대한 과도한 특권이 19세기에서부터 주어졌었고 이때 인간의 감각은

테크놀로지를 느껴보는 대신 그것을 통과하여 이미지와 만난다는 어떤 시지각의 착각을 통해서 영화는 발전이 되어왔습니다.

끝났습니다 그런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제 이 방을 빼주십시오 라고 말하는 줄 알고. 말하자면 이 과정에서 어느 순간부터 극장이

현실을 초과하였고 과도하게 스펙터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광주에는 아이맥스 극장이 모두 몇 개나 되나요?

170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 청중 1

한 곳이요. ― 정성일 한 군데 있어요?

― 청중 1 예.

― 정성일 어느 자리에서인가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약간 경멸당한 것은 아닙니다만 특별하다고 생각한 게 21세기에 나타난 시네필 중에 좀 특이한 시네필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정식화시켜서 제가 이름 부르기를 아이맥스 시네필이라고 부르는데 이 사람들은 무슨 영화를 보는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이맥스 극장을 경험해보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들끼리 정보를

교환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제가 깜짝 놀란 것은 제가 지금 이번에 예를 들면 CGV 광주 CGV인가요? 아이맥스 극장이? ― 청중 1 예. ― 정성일 광주 CGV극장에서 스타워즈 로그원을 보신다던데 어느 자리가 최적화되어 있나요? 그러면 아, 예 역시 광주아이맥스는 G열

19번부터 24번까지는 최적화된 장소라서 그 좌석이 안 된다면 심지어 아이맥스 시네필들 사이에서는 성지순례까지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훌륭한 아이맥스 극장은 포항 CGV랍니다. 이 CGV가 최고인데 이 CGV가 만들어진 이후 포항 CGV가 최고로 하자 서울에 있는 아이맥스 시네필들이 단체로 그 포항 CGV를 오직 영화에 관계없어요. CGV를 경험하기 위해서 포항까지 가서 그 영화를 보고 옵니다. 보고 와서 감상합니다. 다 좋지만 역시 사운드는 약간의 문제가 좀 있는 것 같고 이쯤 되면 시네필인지 극장필인지 구분이 안 가는데 말하자면 어떤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스펙터클을 체험하는 것 자체를 이 말에 이제 테크놀로지의 체험을 영화적 체험과 맞바꾸는 새로운 시네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12월 7일, 정성일

171


아이맥스에 대해서는 호의를 갖고 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를 테면 크리스터퍼 논란은 ***(02:42:03)는 3D 영화는 안 찍지만 아이맥스 영화는 찍습니다. 봉준호는 앞으로도 3D영화는 찍을

생각은 없지만 아이맥스 영화는 찍어보고 싶어 합니다. 지금 찍고 있는 옥자라는 영화가 다음 주에 봉준호를 만나게 될 예정인데 무슨 일 때문에 하여튼 봉준호를 만나게 되는데 한 번 물어볼 생각인데 혹시 새로 만드는 영화가 아이맥스로 찍지 않았을까? 라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아이맥스 영화를 너무 찍고 싶어 했었으니까 그 사이즈에 대한 말하자면 어떤 매혹이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때부터

영화가 아니라 극장이라는 공간이 과도하게 페트시 되기 시작했고 이 공간의 페트시화가 현실을 초과하는 어떤 스펙터클을 만들어내는데 매달려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주로 SF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어서 이 이야기가 SF에 한정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SF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혹은 심지어 저는 이런 느낌이 있습니다. 아이맥스 영화는 어쩌면

영화가 극장으로부터 여러분의 손바닥으로 옮겨가고 있는 21세기 영화에서 극장문화에 대한 마지막 방어선이자 극장문화에 대한 어떤 향수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영화이론에서 가장 지금 심각하고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것 중에 하나는 무빙시네마라는 개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컴퓨터 화면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이제는 그냥 수시로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영화를 보기 시작합니다.

영화라는 것은 이제까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약속된 장소에 가서

약속된 시간에 영화를 봐야만 됐었습니다. 이것이 고전적인 영화의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극장에서 몇 회의 영화를 보는 몇 회의 무슨 영화를 보는 것이 영화의 고정된 약속이었지요. 그것을 먼저

깨기 시작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냥 집에서 영화를 보면 된다는 홈시어적인 개념이었었습니다. 컴퓨터의 개념이었지요. 하지만 그것은 그냥 집이라는 어떤 공간이라는 장소로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스마트폰으로 바뀌게 되자 이 장소의 개념도 풀려나와서 프리타일 자유로운 타임에 자유로운 장소에서 자기

172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의지로 자유롭게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영화가 옮겨갈 때 영화는 결국 한편으로 예술이라고 말했지만 영화는 결정은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자본입니다. 자본이 영화를 표준화시키고 나면 다른 영화들이 이 표준화에 쫓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매체의 특징입니다. 이때 만일 영화가 스마트폰에 표준화가 되면 영화

윤곽이 바뀔 것입니다. 왜요? 일단 화면이 작아. 그리고 하지만

사운드는 점점 더 좋아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스마트폰에서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운드는 포기하지 않죠. 이

영화가 사운드로 집중되겠지요. 우리는 영화에서 테크놀로지가

영화자체의 문법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첫 번째 경험은 언제 일어났습니까? 1927년 무선영화에서

토키영화로 옮겨왔었을 때 단지 영화의 사운드만 이미지에다가 사운드가 더해진 것이 아니라 사운드가 더해지는 순간 영화문법이 바뀌었습니다. 그런 다음 영화가 1.335사이즈에서 2.35사이즈

***(02:45:59) 늘어나는 순간 영화의 편집방법이 바뀌기 시작했지요. 또 영화가 흑백에서 칼라로 바뀌는 순간 영화에 있어서의 미장센느라고 불리우는 모든 문법체계가 바뀌게

되어있습니다. 말하자면 많은 그 영화 이론가들은 미학자들은 영화가 무빙시네마로 옮겨졌었을 때 픽스드한 시네마로부터 무빙시네마로 옮겨졌었을 때의 영화의 문법은 어떻게 바뀌고 바뀔 것인가 바뀌고 있는가가 지금 영화 미약자들의 어떤 핵심화두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때에는 여러분이 영화에 대한 체험 자체가 바뀔 것입니다. 영화에 대한 감흥도 바뀌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영화 감흥에 관한 저의 주장은 이 자리에 10년 후에 서게 되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

과정 속에서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이런 잃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보다 하지만 그 길로 가는 것은 영화의 매체에 관한 길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원래 우리 이야기로 돌아오고 싶습니다. 영화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통상적으로 영화 교과서에는 영화 입문서에는 영화 미학에 관한 책에는 그 두

12월 7일, 정성일

173


가지의 길을 하나의 길은 몽타주의 길이며 다른 하나의 길은 미장센느의 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좀 더 정식화된 책에는 하나의 길은 에이겐슈테인의 길이며 또 다른 길은 앙드레 과정의 길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제 생각에는 둘 다 따분한 표현입니다. 저는 말하자면 그것에 대해서 단순하게 한쪽은 편집영화의 길이며 또 한쪽은 미장센느 영화의 길이라는 식으로 도식화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이 생각을 좀 더 밀고 나가보고 싶습니다. 몽타주라는 말은 편집을 지속적으로 에디팅하는 것으로부터 개념적으로 도약시키도록 그 설계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몽타주의 길은 하나의 숏이 다른 숏을 만나면 그 둘 사이에서 새로운 썸씽 무엇이 영화를 보는 사람의 뇌 속에서 일어난다는 생각입니다. 즉 몽타주라는 것은 잘려나간 수많은 쇼트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조직적으로 설계해냈었을 때 여러분의 머릿속에서 그것이 잘게 쪼개져 나간 것들을 새롭게 조립하여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생각입니다. 에이겐슈테인이 몽타주고 나서 제기 했었지만 그러나 똑같은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습니다.

베냐민입니다. 베냐민이 한 이야기 중에서 이런 말이 있지요.

커스터레이션이라고 하는 것. 하늘의 별을 바라봅니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면 별은 흩뿌려져있지요. 그러나 흩뿌려져 있는 별이 질서를 찾는 것은 어느 순간 입니까? 우리들이 거기서 별자리로 시작할

때부터 입니다. 그러면 갑자기 흩뿌려져있는 별들이 질서를 일제히 갖기 시작합니다. 몽타주는 흩뿌려져있다고 생각했었던 그 쇼트들 사이에서 어떤 관계를 성립시키도록 뇌가 작동하게 되면 물리적으로 다 쪼개졌던 쇼트들인데 항상 그 사이에서 어떤 상상적인 보충을 통하여 연관관계를 만들어서 그 사이에 개념적으로 둘을 결합시키는 뇌의 작용은 여러분 머릿속에 그들 사이에 어떤 질서를 만들어내게 된다고 말했고 그것이 몽타주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개념을 밀고나가서 철학자 질 들뢰즈는 이야기하기를 말하자면 결국 영화라는 것은 브레인 뇌에 스크린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냥 벌어지는 것은 물질적 이미지이지만 이 물질적 이미지가 종합하고 그 사이에서 충돌이

174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벌어지고 그 사이에서 어떤 개념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우리들의 뇌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결국 영화가 있는 것은 화면이 아니라 나의 브레인 뇌라고 설명을 한 것입니다. 여기에 질문이

생겼습니다. 몽타주와 미장센느는 대립적인 생각이라고 교과서들이 쉽게 도식화시키지만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영화사적으로 여러분에게 약간 설명을 드리고 싶은 것은 둘은 대립적이라기보다는 미장센느에 관한 이야기를 한 앙드레바쟁이라는 사람은 에이겐슈테인 뒤에 온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앙드레바쟁은 에이딘겐슈테인 영화 봤고 몽타주 이론을 알고 있었고 그 이론 속에서 자기미장센느 이론을 출발시킨 사람입니다. 이렇게 질문이 시작된 것입니다. 자기 쪽에서 그것이 조직화되고 조직화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진 것은 알겠어요. 그런데 그게 쪼개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면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쇼트가 쪼개지지 않고 장면이 계속 길게 이어지면 보여주고 제가 상황을 이야기해도 잘 모를 테니까 그냥 이야기를 드리면 그 이나영씨를 보여주고 여기 김태희씨를 보여줬었을 때 여기서 보여주고 보여주는 대신 이것 그냥 계속 이어져서 보여주면 나눠서 보여주는 대신에 그냥 이어져서 보여주면 무슨 일이 생길 것인가? 앙드레바쟁은 말하자면 쇼트와 쇼트사이에서 그

단락으로부터 지속을 질문하여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 사람입니다. 질문 던진 것에 대해서 진짜 그것을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게 이탈리아 레오리즘 영화들이였었습니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우리들의 흥미로운 것은 이것을 지속시키는 순간 예술에 있어서 사실주의라고 부르는 것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립적 관계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문학에서 대표적인 것입니다. 한국문학비평사에서 백낙천 선생께서는 1980년대 초에

리얼리즘이냐 모더니즘이냐 라는 것으로 글을 쓰기도 했었고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라고 논쟁적인 책을 냄으로써 두 개의 문학적 전통이 어떻게 서로 다른 지를 선택 했는가에 관한 논쟁에 관한 말하자면 비평집도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책들이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대립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12월 7일, 정성일

175


영화에서는 영화에서 리얼리즘을 찍는 순간 모더니즘이 동시에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영화에서만 있는 이상한 현상입니다. 이 이야기로 갑자기 제가 도약하는 까닭은 영화적 체험에서 영화를 여러분이 고전영화에 관점으로 봤었던 영화들이 갑자기 모던시네마로 건너 띄는 순간에 이 영화 안에서 이른바 견자의 영화 구경한 사람의 영화 베냐민의 표현으로 따르면 산책자의 영화,

플란덴의 영화, 혹은 훨씬 그 이전에 모더니즘을 이야기하면서 그 거리를 걸어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는 사람들의 영화를 이야기했었던

19세기에 샤를보들레르의 말하자면 산책하는 딸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했었던 그 개념들을 영화에서 보여주었었던 이탈리아 레오리즘 영화들이 등장했었을 때 영화는 우리들의 영화적인 체험은 고전적 체험으로부터 모던한 체험으로 건너뛸 수 있었고 건너뛸 수 있는 그 결정적계기는 영화에서 몽타주에로부터 이 미장센느에로 옮겨오는 그 순간에 벌어졌다는 점을 환기시켜 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제가 좀 전에 그것을 쪼개지 않고 그 거리 우리가 그 안에 들어가 있지 않고 그 대상을 구경하듯이 관찰하듯이 지나가면서 보는 말하자면 견자의 영화라는 말을 썼습니다, 구경하는 사람. 그러나 구경하는 사람을 영화가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문학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수용했었던 작품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한 작품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02:55:00) 그 파리 시내를 마차를 타고 지나쳐 가면서 그 파리 시내를 마차의 창문사이를 바라보면서 그 수많은 풍경들에 관한 그 *** 막 써내려가기 시작할 때 명백하게 그것을 영화에서 이 기법으로 패닝이었으면 트레블링 쇼트였었습니다. 말하자면 19세기의 문학을 19세기의 회화를 우리는 한편으로 영화의 전략을 우리들은 영화로 다시 쓸 수 있습니다. 저는 다시 쓸 자신 있습니다. 다시 쓸 수 있을 때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19세기는 무엇의 시대였었습니까? 모던의

시대였었습니다. 이 모더니즘을 영화는 처음부터 품고 시작했었고 우리는 그것들을 영화적 체험으로 영화로 물질화되어져 있는 이 물질의 이미지를 통하여 다시 한 번 느껴보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176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지금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여러분하고 한 번 다시 한 번 실험해보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영화가 아카이빙 한다는 것 영화가 어떤 순간을 아카이빙 한다는 것 이때 여기까지 들은 여러분에게 이제 제가 한 가지 제안을 할 차례입니다. 알겠습니다. 디브이디를 사지 말라는 말씀도 알겠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그냥 소장해서 영화를 죽여 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 영화가 두 편 남았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이제 시집을 가는 그 장면입니다. 곧 아버지는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때 이 경험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영화를 경험하는 것에 대해서 디브이디를 소장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영화를 경험하기를 요구하십니까?

제 대답은 딱 한 가지입니다. 영화를 여러분이 경험하기 위해서 저는 영화에 관한 글을 쓰라고 요구하고 싶습니다. 디브이디를

소장하느니 저는 영화에 관한 글을 쓰기를 여러분에게 요구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의 영화적 경험을 글 쓰는 방법의 시선으로 글쓰기에 시선으로 다시 한 번 바라보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경험했던 형상을 내가 경험했던 형상을 답론의

시선으로 다시 한 번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영화는 답론이 아닙니다. 영화는 형상입니다. 형상을 답론으로 내가 옮겨놓을 때의 그 시선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음미해보자는 것입니다. 이때 여러분이 그냥 쓰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쓰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그냥 그것은 블로그에 약간 경멸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냥

블로그질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글을 써야됩니까? 라고 물어볼 것입니다. 물론 어떻게는 각자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하고 싶습니다. 글을 쓸 때 각자 영화적 글쓰기의 방법을

찾아야 됩니다, 영화적 글쓰기 방법. 이때 영화적 글쓰기의 방법이 무엇이냐라고 물어본다면 즉 글과 이미지는 좀 전에 설명한 것처럼 답론과 형상으로 완전히 다른 영역일 것입니다. 제가 한 이야기가 아니라 ***(02:58:39)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두 개의

세계가 어떻게 다른지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때 여러분이 영화적 글쓰기를 통해서 밀고나가야 될 것은 그 자기의 경험을 영화적 글쓰기를 통해서 기술하면서 조금만 더 밀고 나가면 거기서 조금만

12월 7일, 정성일

177


더 밀고 나가면 그 글쓰기 자체가 영화가 되는 때까지 그 경계까지 한번 밀고가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 글쓰기가 영화에 대해서 투명해지는 어떤 그 경계 그것은 각자가 느껴보는 순간이 서로 아마도 다를 것입니다. 이때 여러분이 조심해야 될 것은 제가 경멸하는 글쓰기 영화에 관한 글쓰기가 이제 가장 경멸하는 글쓰기 어떤 경우에도 여러분은 그 영화 앞에 서서 수사에 휘말리면 안 됩니다. 아름다운 글쓰기를 조심하십시오. 그것은 더 이상 영화에 관한 글이 아닙니다. 두 번째가 더 위험합니다. 개념에 휘둘리지

마십시오. 개념에 휘둘리는 순간부터 여러분은 그 영화를 개념에

복종시키고 그리고 그 개념 안에 영화를 위계질서화 시킬 것입니다. 혹은 심지어 더 나아가서 개념에 복종하는 영화만이 훌륭한 영화라고 믿기 시작할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영화의 훌륭함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영화 글쓰기는 어떤 의미에서 자기가 본 영화에 대한 인상주의적 자동 연상방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영화에 관한 글쓰기는 전적으로 자신의

자동연상에 자기 몸을 자기의 경험을 자기의감흥을 그렇지요. 감흥을 말하자면 방법의 감흥에 완전하게 자기 몸을 내맡기고 밀고 나가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영화에 관한 글쓰기는 기억에 대한 힘과 욕망입니다. 저는

***(03:00:54) 빌려서 여러분을 부추기고 싶습니다. 당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욕망을 포기하지마십시오. 영화에서 여러분이 느껴보았던 그 힘, 그 힘에 근간이 되었었던 그 욕망이 불러일으키는 자동연상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영화에 대한 평가는 그 영화가 걸작이냐 아니냐 영화가 좋은 영화냐? 나쁜영화냐?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하나도 중요하지않습니다. 영화적 글쓰기는 절대적으로 말하자면 여러분이 느껴보았던 그 신비로운 여러분을 끌어잡아당겼던 여러분을 멈춰세운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도 이미지가 흘러갔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여러분의 머릿속에 머물면서 마치 결빙된 것처럼 여러분의 머릿속에 멈추어선 그 장면의 마술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됩니다. 그리고 그 마술에 대해서 생각해본 글에

178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대해서 누군가가 공감하고 나도 같은 것을 느꼈어라고 말한다면 그래서 기꺼이 그것에 대해서 나는 당신에게 완전히 동의해라고 말한다면 그때 우정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영화를 통해서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

공동체를 영화를 공유하여 세상에 대해서 가질 수 있는 하나의 말하자면 우정의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차라리 장면의

공동체라고까지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장면에 그렇게

장면에 집착함으로써 우리는 세 가지 장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영화의 줄거리를 외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에서

줄거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재미있는 줄거리로 한다면 여러분 그 흥미로운 소설들을 ***(03:03:05) 영화는

재미있는 줄거리를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짧습니다. 2시간 밖에 안

되는 예술이 무슨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반전에 그렇게 매달리는 것입니다. 반전영화치고 좋은 영화 본 적 있으십니까? 반전 영화 중에 훌륭한 영화가 없습니다.

말하자면 여러분은 이 장면에 매달림으로써 우리는 줄거리에 대한 집착을 떨처버릴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영화에서 테마는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닙니다. 아니 이렇게 차라리 말하고 싶습니다. 테마가 훌륭할수록 영화가 후졌습니다. 영화는 테마가 훌륭할수록 그

영화는 ***(03:03:48) 시작할 것입니다. 즉 테마가 훌륭한 영화는 그냥 *** 한답니다. 우리들은 테마를 보기 위해서 영화를 보러간 것이 아닙니다. 장면의 ***(03:03:58) 우리는 뭘 떨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영화에서 메시지 따위에 신경쓸 겨를이 없습니다.

***가 했었던 유명한 말 영화를 보고난 다음 누군가가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 영화의 메시지는 뭡니까? ***(03:04:12)가 대답했습니다. 메시지는 우체국에 가서 찾으십시오. 영화는 메시지를 찾는 예술이 아니다. 사과를 깎는 이 장면에 무슨 메시지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그냥 사과를 깎는 장면입니다. 만일 메시지를 찾고 싶으면 텔레비전을 보시기 바랍니다. 텔레비전에 메시지가 넘쳐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일깨워드리겠습니다. 혹은 여러분에게 간절하게 말하겠습니다. 12월 7일, 정성일

179


우리는 영화에서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기글에 대해 두 가지 질문을 반복해서 해야 할 것입니다. 이 두 가지만 기억해주십시오. 거기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두 번째가 더 중요합니다. 그것이 정말 거기에 있습니까? 종종 영화에 관한 글을 쓰면서 자기글에 취해서 정작

영화의 글이 없는데 그게 있다고 주장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글을 쓰면서 거듭해서 자문해보셔야 됩니다. 그게 정말 거기에

있습니까? 글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아무리 훌륭한 개념이 거기에 들어있어도 종종 훌륭한 인문학자 혹은 훌륭한 다른 장르의 비평가들이 영화에 글을 쓸 때 영화비평가로써 그 글을 읽게 되어서 웃긴다는 생각이 들 때에는 그게 거기에 없을 때입니다. 그 글에서는 완전해 그러나 영화 앞에 그것을 가져오니까 너무 쉽게 그 글이 부숴져버렸듯 그 글은 그 개념에 속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다시 한 번 이야기합니다. 당신은 거기서 그것을 보았습니까?

그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흥미로워질 때 그 글을 읽고 싶어집니다. 말하자면 영화는 결국 여러분이 본 경험에 관한

것입니다. 그 경험을 경유하여 여러분에게 도착하는 감흥에 관한

것이며 그 감흥을 글을 통하여 여러분이 간직하기를 희망합니다.

이것이 기억에 아카이브에 관한 저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만춘의 마지막 자막이 올라오고 이 철서구는 지금도 계속 될뿐만 아니라 내일도 계속되고 모레도 상영될 것입니다. 저는 그 자리에 없겠지만 저를 기억해주신다면 이 자리에 오셔서 남은 이 철서구를 외롭게 혼자 상영되지 않도록 여러분이 지켜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사회자 예, 시간이 많이 지연됐는데요. 혹시 모처럼 오셨기 때문에

질문하고 싶으신 분? 메시지는 TV에서 뭐라고 하시는데 정성일 선생님께 뭐 말씀드리고 싶은 분이 있으실까요? 아무거나 질문하셔도 되고요. ― 정성일 억지로 질문하지는 마시고요. ― 사회자

180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매번 매 회마다 이제 변사 초청자 변사분들이 다양한 이제 형식으로 각자 이렇게 해주시거든요. 진행을 해주시는데 오늘 같은 경우는 정성일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본인도 이제 말씀하셨다시피 토크 퍼포먼스 형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2시간 반에서 이제 3시간가량 이제 진행해주셨는데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이렇게 줄기차게 이렇게 1분도 쉬지 않고 이렇게 말씀해주신 분은 아마

이제 처음이셨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아마 이제 철서구처럼

9시간 이제 주셔도 그대로 그 톤으로 이렇게 진행을

해주실 것 같을 정도로 너무 이렇게 말씀을 열정을 다해서 이렇게 해주신 것에 대해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특히 오늘 이제 관객분들 같은 경우에 노트를 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었거든요. 그 노트하시는 분들도 많았고 또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이렇게 좀 같이 이렇게 장소 자체를 이렇게 공유하는 기분으로 그다음에 이제 북서클 북클럽 같은 이제 그 기분으로 이렇게 가깝게 친근하게 이렇게 진행을 하는 것도 굉장히 새로운 경험이 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열정적으로 차분하게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성일 예, 감사합니다.

(이상 끝)

12월 7일, 정성일

181


182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12월 14일, 신형철

191


192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신형철

12월 14일

12월 14일, 신형철

193


신형철 신형철은 2005년부터 문학평론을

쓰기 시작했으며, '문학동네'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08년 첫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를 출간하였으며 <느낌의 공동체>, <정확한 사랑의 실험> 등의 저서가 있다.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194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 사회자 시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가 이제 ‘변사가 된

수집광’이라는 주제로 총 4회의 개최를 하고 있고요.

오늘이 이제 마지막 날이잖아요. 신형철 선생님께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시게 되면서 그 이전에 앞에 참여를 하셨던 세 분들이 영화전문가이시기도 하시기 때문에 부담을 많이 좀 느끼셨을 것 같아요. 그래서 내 시간에는 약간 조금 쉬어가는 시간으로 이렇게 마련을 해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이제 의도와는 달리 저희 프로그램의 마지막 변사가 되셔서 마무리를 해주실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제 신형철 선생님 같은 경우는 많은 분들이 잘 아실 것 같아요. 그래서 문학평론가로 워낙

유명하시고 글도 너무 좋은 글을 많이 발표를 하셨고 특히 영화에 대한 애정도 많이 가지고 계셔서 최근에 영화 관련 평론 비슷한 책도 발간을 하셨는데요. 그 기회를 빌어서 이제 저희 프로그램에도 함께 참여를 해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러면 신형철 선생님 바로 모시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신형철 안녕하세요. 신형철입니다. 반갑습니다.

날씨도 춥고 또 요즘 TV 틀면 재미있는 것 많이 하는데 청문회가 너무 재미있잖아요. 오다 보니까 또 큰 것이 하나 나왔대요.

보셨나요, 혹시? 최순실 씨의 목소리 그 음성파일을 공개를 해가지고 말하는 것을 처음 제대로 들어봤는데 아무튼 저도 그것이 궁금한데 지금 여기로 왔습니다. 다들 와주셔서 평소보다 더 제가 감사한 마음이 들고 소개해주신 김지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저는 처음에 연락을 받았을 때에는 당연히 사양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특히 이제 문화전당에서 하는 영화 관련 행사는 퀄리티를 잘 유지를 해야 되는데 제가 끼어가지고 괜히 겸손한 척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 앞에 맡으셨던 분들이 너무 훌륭하신 분들이라서 특히 정성일, 김소영 선생님

12월 14일, 신형철

195


같은 경우는 제가 20대 때부터 본받으실 글을 따라 읽었던 분들이기 때문에 같이 이름이 올라가는 자체가 민망한 상황인데 아까 말씀하신 대로 아마추어적인 시간도 한 번 정도는 있어야 된다. 저를 설득을 하시고 이름도 김지하 선생님이 셔가지고

무게감이 있으셔서 제가 차마 거절을 못하고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겠다고 해놓고도 리스트를 10편을 만들어서 먼저

보내야 하는데 또 고민이 되더라고요. 앞에 계신 분들은 얼마나

훌륭한 영화를 만드실까. 그런데 저는 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고를 수밖에 없지요. 영화사의 유명한 작품을 고른다든지 그럴 수는

없고 그렇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3, 4편 정도는 늘 누가 물어보면 말하는 영화를 갖고 있는데 8편에서 10편 정도 골라보려고

하니까 오래 생각을 해야 되겠더라고요. 이참에 한번 뽑아보자고 해서 10편을 뽑아봤습니다. 제목도 그냥 소박하게 ‘내 인생의

영화’이렇게 10편 골랐고 주제별로 2개씩 이렇게 묶여지더라고요, 해보니까. 그래서 2편씩 소개해드리면서 저는 영화를 전혀 안

보셨다고 전제하고 준비를 했기 때문에 영화의 중요한 장면들,

제가 좋아하는 장면들을 잘라왔어요. 그것을 여기서 이 화면으로 잠깐씩 보여드리고 그다음에 그 영화들에 대해서 혹시 제가 쓴 글이 있거나 있으면 찾아서 텍스트도 조금 소개를 해드리고 이런 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첫 번째 영화는, 두 영화는 보시다시피 레오 까락스 감독의 ‘나쁜 피’라는 영화고 오우삼 감독, 미국에서 존 우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고 계시지요. 요즘 젊은 세대 분들은 존 우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실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이 두 감독 영화입니다.

둘 다 80년대 영화고 제가 90년대 초반쯤에 중학생에서 고등학생 넘어가는 이 무렵쯤에 기억이 나는 영화인데 처음에는 8편을

고르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이 2편을 빼려고 잠깐 고민을 했는데

이것이 저의 10대 시절의 너무나 중요한 영화들이어서 이것을 빼는 것이 조금 무엇인가 제 자신을 배신하는 것 같기도 하고 특히 오우삼 감독의 ‘첩혈쌍웅’같은 이런 영화는 웬 주윤발, 이러실까 봐 아제 인증하는 것이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래가지고 빼려고 하다가 이것을 차마 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태어나서 가장 많이 본 영화가

196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이때는 이 영화기 때문에 이 영화 안 보신 분들도 많으시지요?

2편을 골랐는데 사실 거의 한 20년 가까이 한 번도 다시 본 적이 없는 영화들이에요. 그리고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볼까 했는데 결국 시간을 못 내서 못 봤습니다. 그래서 줄거리에 대해서는 대강 기억이 납니다만 별로 자세한 얘기를 해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지금 저한테 남아있는 이 영화들은 사실상 이미지에 가까운, 그리고 이런 것이 영화의 이미지구나, 라는 충격을 저한테 주었던 그런 영화들이기도 해서 제가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장면들을 한번 찾아서 그것만 잘라 왔습니다. 먼저 ‘나쁜 피’의 한 장면을

보여드릴게요. 이것이 이렇게 밖에 안 되더라고요. 이 ‘나쁜 피’라는

영화는 보신 분들이 있다면 아마 이 장면, 제가 무엇을 보여드리려고 하는지 이미 눈치를 채셨을 것입니다. 이것이 아마 근 미래를

배경으로 했던 영화가 아니었던가 싶은데 에이즈로 짐작되는 이상한 병이 유행을 해가지고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들끼리 섹스를 하면 걸리는 병, 이런 식으로 설정이 되어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병의 치료약을 구하기 위한 암투 이런 것이 펼쳐지는 영화인데 저 줄리엣 비노쉬는 악당의 연인이고 줄리엣 비노쉬에게 빠지면 안 되는데 빠지게 되는 이런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 시청) 화질이 별로 안 좋아서 조금 아쉽네요. 지금 여기 나오는 빨간색 화면도 그렇고 뒤에 가면 파란색이 나오고 원색들을 아주 독특하게 쓰고 그런 이미지가 일단 강렬할 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얼굴도 이때 제가 처음 그런 것을 경험했는데 특히 주인공인 드니 라방 같은 배우의 얼굴은 얼굴 자체가 어떤 이미지로 느껴질 정도로 되게 강렬했어요. 이때는 이 레오 까락스 감독이 젊은 천재

감독 이런 이미지였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자비에 돌란 정도쯤

되려나, 그랬는데 그때 ‘소년 소녀를 만나다’, ‘나쁜 피’, ‘퐁네프의 연인들’이렇게 3편이 필모그래피가 고작인 그런 감독이었어요.

그래서 그때 한국 관객들은 거꾸로 봤어요. ‘퐁네프의 연인들’을

12월 14일, 신형철

197


먼저 보고 그다음에 ‘나쁜 피’를 보고 맨 앞에 것은 맨 나중에 봤어요. 아무튼 지금도 영화에 대해서 제가 잘 모르지만 이때는 더 몰랐고 영화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각이 별로 없었는데 이런 것이 영화인가, 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던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 자체가 목적인 장르구나, 이런 것을 깨달았던 것 같고 당시에 영화평론가들은 누벨 이마주라는 일종의 사조 개념 같은 것을 쓰기도 했었어요. 새로운 이미지라는 뜻이지요. 누벨 이마주, 그래서 거기에 이 레오 까락스하고

‘디바’라는 영화를 만든 감독인데 이름이 생각이 안 납니다. ‘베티블루’ 그 영화를 만든 이런 분들을 아울러서 누벨 이마주 세대, 이렇게 부르기도 했었어요. 그리고 제가 음악을 이때는 영화보다 훨씬 더 좋아했었던 때고 음악을 할 생각을 하고 음대를 갈까, 이런 생각까지 했던 때였는데 음악을 워낙 좋아했던 때라서 이 영화에서 나온 음악들에 관심을 많이 가졌지요. 아까 처음에 잠깐 나왔던 그 샹송, 이것은 아무리 찾아도 어떤 노래인지 찾을 수가 없었어요. 지금처럼 빨리 찾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때 끝내 못 찾았었고 정말 한참 후에 갑자기 생각이 나가지고 인터넷에서 또 한 몇 시간을 헤매다가 겨우 찾아놓고 지금은 잊어버렸습니다.

그때만큼 간절했던 것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찾아서 이거였구나, 해놓고는 그냥 잊어버렸고 뒤에 나오는 노래가 더 유명하지요.

데이비드 보위의 modern love인데 그래서 modern love가 그러면서 드니 라방이 달리는 그 장면이 영화에서도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그리고 이 음악하고 영상이 합쳐지면 얼마나 괴력이

생기는가도 이 무렵에 깨달았던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안 사람인데 고스타프 페이너라는 미학자가 있는데 이 사람이 1800년대

후반에 활동했던 물리학자이기도 하고 이분이 미학 책에서 ‘미학의

6가지 원리’이런 것을 만들었어요. 그중에 하나가 미적 조력 혹은 고양의 원리라는 것입니다. 조력은 돕는다는 그 조력이고 고양은 끌어올리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혼자 있을 때는 그 정도로 강력하지 않은 어떤 미적 자극인데 이 미적 자극이 2개 이상 서로 힘을 합치면 각자를 산술적으로 합친 것보다 더 강한 미적 자극이

198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발생한다. 이런 원리예요. 그러니까 이 modern love를 따로

들어도 좋고 영화를, 소리를 끄고 이미지만 봐도 좋겠지만 이것을 같이 하면 또 다른 무엇인가 된다는 그 원리를 잘 보여주는 사례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이제 ‘첩혈쌍웅’이라는 영화인데

원래 저보다 조금 더 윗세대들의 별칭 중에 하나가 영웅본색 세대, 이런 말이 있지요. 80년대 후반에 20대를 보냈던 그런 분들이 이제 영웅본색 세대라고 자칭하는데 저는 형들, 누나들이 본

영화를 몇 년 뒤에 본 것이에요. 그런데 저도 영웅본색 세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야말로, 그래서 영웅본색을 골라도 되는데 저는 그 영화보다 더 이 영화를 더 좋아해요. ‘첩혈쌍웅’이라는 영화인데 그 줄거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주윤발이 킬러인데 살인청부를 하다가 실수로 bar에서 노래하는

어느 가수, 여성인데 그 가수의 눈을 멀게 해요. 총을 발사를 했는데 눈앞을 스치는 바람에 장님이 됩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그녀의 주변을 계속 맴도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실은 이번

일을 마지막으로 손을 씻겠다고 했는데 그녀의 수술비를 마련해야 해서 마지막 살인청부를 맡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킬러를 추적하는

형사, 그것이 바로 오른쪽에 있는 이수현이라는 배우인데 이 형사가 킬러를 추적하다 보니까 이 킬러가 참 매력 있는 남자라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브로맨스라고 하지요, 요즘에는. 서로 만난 적도

없는데 그런 감정이 점점 싹트는 것이에요. 그러다가 이제 마지막에 결국 마지막 살인청부로 받은 돈을 악당들이 빼앗으려고 하는 바람에 이 돈을 지키기 위해서 마지막 일전을 벌이는데, 성당에서. 거기에서는 형사까지 합세해가지고 주윤발을 같이 도우면서 오른쪽에 가방 들고 있잖아요, 오른쪽 밑에. 저것이 아마 돈 가방일 것이에요. 이것을 가지고 사랑하는 여자에게 이름이 제니인데

제니에게 가야 한다. 그래서 두 사람이 비 오듯 쏟아지는 총알, 이런 표현이 있잖아요. 정말 그 말 그대로 비 오는 총탄 사이를 뚫고 걸어 나가는 장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 중에 하나고 이 포스터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특히 저 포스터를 제가 좋아했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포스터라는 것도 구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12월 14일, 신형철

199


이 영화는 개봉을 한 뒤 한 한참 뒤였기 때문에 제가 봤을 때는.

그래서 이 포스터를 구하고 싶다, 그랬는데 그때는 또 뜬금없는

재개봉이라는 것을 했었어요. 소극장 이런 곳에서 몇 년 전 영화들, 그래가지고 어느 날 어느 소극장에서 이 영화를 재개봉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극장 앞에 포스터를 쫙 붙여놓은 것이에요. 제가

그것을 뜯어가지고 도망쳤어요. 그래서 너무 급하게 뜯다가 한쪽

끝이 이렇게 찢어졌어요. 그래서 그것, 가슴이 아픈데 그것을 들고 집으로 달려와가지고 그것을 테이프로 발라서 그때는 제방에 전부 영화 포스터를 붙여놨었거든요. 이 포스터를 붙여놓고 정말 그날의 기분은 몇 년 동안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졌던 날이었기 때문에 너무 행복했었습니다. 저 위에 있는 여성이 바로 가수. 홍콩 느와르, 이런 이름을 썼어요. 프랑스의 필름 가를 따서 홍콩 느와르.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얼마 전, 그때 이제 많이 나왔던 게임 영화들, 그 영화들 중에서 제가 볼 때는 군계일학일 뿐만 아니라 저는 감히 기적 같은 영화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이 영화는 정말 이상한

영화예요, 저한테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영화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보시면 권총에서는 무슨 기관총도 아닌데 총알이 끝도 없이 발사되고 주윤발이 아마도 합한 10발은 맞았을 것이에요. 그런데 마지막까지 죽지 않습니다. 이 하얀색 옷이 빨갛게 변할 정도까지

돼도 안 죽습니다. 말이 안 되는 영화지만 이 영화에는 아주 순수한 형태의 비장미라는 것이 있어요, 비극성.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의 가장 최후의 형태는 비극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렇게 멋있게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그때 어렴풋하게 생각한 것이 그것이었어요. 저는 그때부터 비극이라는 장르에 대한,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시작돼서 지금까지 내려오는 슬픈 이야기에 대한 집착 같은 것이 이때부터 생겼고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다 보면 늘 울었어요. 몇 번을 봐도, 되게 오랜만에 보는데 또

울지 모르겠습니다만 마지막 장면, 눈이 멀었단 말이지요. 그런데

주윤발이 마지막 총격전을 하다가 이수현 형사한테 얘기를 합니다.

혹시 내가 죽으면 빨리 내 눈을, 안구를 그녀에게 이식해라,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안타깝게도 하필이면 눈을 맞고 죽어서 정말 이럴

200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수가 있나, 그러면서 봤던.

(영화 시청)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 뒷부분은 잘랐습니다. 또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이 상태로, 마지막에 서로 기억하는데도 그것까지도 못 잡게 이렇게 어긋나게 하는 것을 보면서 참 지독하다는 생각을 옛날에도 했었고 이렇게 밀고 나가는 것이 비극인가, 이런 느낌을 그때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넘어갈까요? 이제 설명이 있구나. 그래서 이미지 영화라는 장르에도 이미지의 힘, 이런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앞에 것들은 놔두고 마지막에 세 번째, 제가 쓴 문장 중에 이미지란 이 미 지를

말장난하는 것입니다. 이미지니까 원래대로 놓은, 이렇게 되겠지요? 이미지를 이 미지로 바꾸는 This unknown, 이 미지. 이 미지로

바꾸는 공정의 재료이자 결과다. 이런 문장을 한번 만들어 봤는데 시든 영화든 이미지라고 하는 것은 물질이 있고 관념이 있을 때 이것이 양 끝에 있다면 중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미지다. 베르그송에서 그렇게 이미지를 넓게 확대를 하면서 이것이 무슨 이미지라는 것이 아주 옛날에 플라톤 같은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실제의 복사에 불과한 헛것이다. 이런 것이 아니고 이미지도 하나의 실제다.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해 줘야 되는 그 무엇이다. 이런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한 분이잖아요. 거기서 제가 끌고 와서 마지막 문장

같은 것도 한번 써본 것입니다. 그래서 아까 레오 까락스 영화 같은 것을 보면 이미 알고 있었던 어떤 것인데 영화 안에서 그야말로 이미지로 재탄생할 때 그때 이것이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어지고 신기한, 발견한 체험이 되고 거기서 미적인 것이 발생하고 이런 일들에 대한 생각들이 아마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했고요. 그다음에 아까 ‘첩혈쌍웅’같은 영화는 제가 비극성, 이런 말씀을 드렸는데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우리도 잘할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자기가 추구하는 어떤 가치를 위해서 목숨을 던지는 일이잖아요. 그것이 옛날 비극에서부터 지금까지

12월 14일, 신형철

201


비극적인 영웅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하는 일들이지요. 그때부터 그런 인물들에 대한 매혹, 이런 것이 저한테는 있었어요. 제가 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래서 사실은 이것이 10년, 십몇 년이 지난

뒤에 제가 낸 책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의 첫 번째 책이 ‘몰락의 에티카’라는 평론 책인데 거기에 이런 서문을 썼었습니다. 나는 늘 몰락한 자들에게 매료되곤 했다. 생의 어느 고개에서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은 참혹하게 아름다웠다. 그들은 그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한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시작되는 서문인데 저한테는 이런 인물들의 계보가 있고 그런 인물들이 저한테 문학적인 인물들,

문학적인 행위, 본질 같은 것인데 그 근원에는 주윤발이 있다는

그런 고백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다음에 넘어가면 이것은 다 20대 이후에 본 영화들인데 이 영화들은 이런 것이 영화구나, 라는

생각을 조금 더, 조금 다른 차원에서 하게 된 그런 영화들인데요.

‘화양연화’ 너무 잘 아시는 영화지요? 얼마 전에 BBC 인가, 어디에서인가 21세기 최고의 영화라고 뽑는데 100편을 뽑았는데 1위가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였고 3위인가 4위쯤에 이 영화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10대 시절을 오우삼과 함께 보냈다면 20대 전반기는 왕가위와 함께 보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제 또래들은 아마 다 그러실 것입니다. ‘중경산림’, ‘동사서독’, ‘타락천사’이런 영화들 봤고요. 그러다가 이제 ‘화양연화’라는 영화를 보면서 왕가위라는 이 감독의 재능에 대해서 조금 더 많이 놀라게 되는 계기가 됐었지요. 왜냐하면 저도 이때는 나이가 들었던 때였고, 그런데 이 영화는 신기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줄거리를 말해보라고 하면 할 말이 별로 없고 1, 2줄 얘기하면 끝나요. 그리고 디테일 한 것들이 서사적으로 어떤 디테일이 있는지는 몇 번을 봤는데도 전혀 기억이 안 납니다. 이 영화는 그러니까 소설로 바꾸면 단편소설이 겨우 나올까 말까 한 그런 내용에 불과한데 이것을 90분 정도의 영화로 만든 것이지요. 나머지 시간 동안 이 영화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냐, 이야기를

202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전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내면을 영상으로 계속 표현하고 있는 것이잖아요. 그것이 배우의 얼굴일 수도 있고 아까 말한 이미지일 수도 있고 멈춤과 움직임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일 텐데 저는 그 이전까지 인간의 내면을 표현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문학의 왕이다,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것은 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예술이 다 제각각의 1등이 있을 텐데

문학의 1등은 내면성의 행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문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한 인간이 어떤 내면을 지금 갖고 있는가를 문학은 아주 분석적이고 비유적으로 그것을 정교하게 설명을 하잖아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같은 것, 프로스트의 소설 같은 것들은 우리가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되는 묘사들이 있잖아요, 분석들은. 그런데 영화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냥 보여주기만 하고 덜 말하거나

덜 보여주는데 그러면서 그 뒤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이 힘이 대단한 것이구나, 이런 생각을 그때 많이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랑니’라는 영화는 조금 더 뒤에 본 영화인데 이것도 이제 문학과 영화의 차이, 이런 것에 대해서 저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영화 중에 하나입니다. 일단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을 하나 보여드리려고 하는데 이 영화 보신 분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 같아요. 흥행에 크게 성공 못한 영화입니다. 그런데 비판가들의

반응은 좋았었고요. 김정은 씨가 연기한 배역이 학원 선생님입니다. 그래서 고등학생들 가르치는 선생님인데 자기 학생 중에 어느 학생을 보니까 자기 옛날 첫사랑하고 이름도 똑같고 얼굴 생김새도 똑같은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 선생님도 혼란에 빠지고 이 소년에게 자꾸 끌립니다. 그래서 거의 연애 비슷한 관계가 시작이 되는데

그런데 이 소년한테는 또 이 소년을 좋아서 따라다니는 여학생이 있어요. 정유미인데 정유미는 왜 따라다니냐, 하면 남자친구가 사고로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친구의 쌍둥이가 이 소년인

것이에요, 이름만 다르고 생긴 것이 똑같아요. 그러니까 이 아이는 죽은 남자친구를 잊을 수가 없기 때문에 이 쌍둥이를 통해서 상처를 계속 어루만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소년을 놓고 두

여자가 대결을 하게 되는 국면이 되는 것이지요. 대결입니다. 그래서

12월 14일, 신형철

203


셋이 3자 대면을 해요. 그래가지고 소년한테 선택해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렇게 유치하지 않고 진지한 분위기에서 설득하려고 하는데 이 소년이 김정은을 선택해요. 그래서 그날 정유미는

보내버리고 이 소년과 김정은 씨가 이제 처음으로 관계를 갖는.

그런데 그러고 나서 이 김정은 씨한테는, 이 배역한테는 옛날에 그 첫사랑이 또 찾아와요, 아주 오랜만에. 그러니까 걔를 다시 한 번

만나보고 싶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이 소년하고 정말

닮았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에요. 그래서 그 남자를 만나기 전에 정유미는 양호실에서 엉엉 울면서 잠들고 김정은은 옛날 첫사랑을 만나기 위해서 화장을 하고 이런 과정에서 한 2, 3분 정도 되나? 아주 멋진 음악이 깔리면서 어떤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이 참 인상적입니다. 보여 드릴게요.

(영화 시청) 한 2분 정도 되네요. 이 정유미의 이름도 인영이고 생각이 났어요. 그리고 김정은의 이름도 인영입니다. 여자 주인공 이름도 같아요. 그러니까 마치 이 정유미가 김정은의 옛날 모습이라고 해도 그럴듯해지는 그런 구조입니다. 그때 김정은의 첫사랑이 지금 얘가 좋아하는 그 소년이라고 하면 말이 된단 말이지요. 나중에 되게

아름답게 엉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되게 혼란스러워요. 무엇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데 현실과 환상을 그냥 슬쩍 연결해 버려가지고 어떤 끈 하나를 딱 슬쩍 묶었다고 해야 되나? 이래가지고 꼬여버리게 만드는 영화인데 제가 볼 때는 그것도 훌륭하고 그것도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다음에 이 장면이 참 인상적인 이유가 이 음악이 이 영화 전체에서 딱 한번 나와요, 이 장면에서. 영화 음악을 이재진 씨가 했는데 영화 음악을 많이 하신 분인데 영화가 다 좋거든요. 이 영화에서 특히 이 음악이

제일 좋아요. 그런데 이상하게 보통 반복해서 많이 쓰지만 딱 1번만 씁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장면은 어떤 장면이냐 하면 앞에서 3자

대면을 했던 장면이에요. 세 사람이 다 울어요. 그러니까 이들의

204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감정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엉뚱하게도 양호선생님이 정유미를 재우고 얼굴이 안 나오잖아요, 이 장면에서도. 그다음

장면에 참 무의미해 보이는 장면이 들어가 있지요. 양호선생님이 새로 산 신발을 꺼내서 신발을 신어보는 장면인데 곧 오늘 퇴근하고 데이트라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때 이제 신발을 벗은 정유미의 신발도 살짝 보이고 바람이 불어서 커튼이 흔들리고 이런 것을 보여주는데 이것이 참 무엇일까, 이상한 생각을 하면서

자꾸 보게 되고 이 장면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점점하게 됐어요. 그래서 나중에 제 딴에는 글을 한번 써봤는데 제가 낸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라는 책에 그 글이 실려 있고요. 이렇게 썼습니다. 요컨대 이 장면은 그 직전에 나온 울고 있는 열일곱 인영과 그 직후에 나올 화장을 하는 서른 살 인영을 잇는 일종의 접속사로 기능한다. 그렇다고 할 수 있는데 삭제된다 하더라도 서사가

무너지지 않을 장면이다. 그런데 앞선 20분 동안 자신의 가장 중요한 눈물을 흘려야 했던 세 사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게다가 얼굴조차 나오지 않은 한 여자의 욕망을 유심히 보여주는 이 장면은 이상하게 아름답다. 의미로 팽팽하게 충전돼 있지도 않고 불가결하지도 않은 이런 장면은 왜 단지 거기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아름다움 산출하는 것인가. 어떤 말과 행동이 장착할 수 있는 의미의 최대치가 100이라면 우리의 말과 행동 중에서 만약에 2,

30 정도의 의미를 갖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은 대체로 사려 깊게 이해받지 못하고 이내 흩어져 버린다. 어쩌면 그것들의 우리의 가장 중요한 진실이 담겨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런 것들을 놓치지 않을 때 영화는 그런 것들을 보여줄 수 있잖아요. 영화는 지상에서 흐르는 언어의 시간을 살아있는 상태 그대로 보존하는 놀라운 기술이 된다. 문학에서 시간의 의미는 그 시간을 살고 난

이후 되돌아볼 때 얻어지는 어떤 깨달음의 형태로 표현될 때가 많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영화에서 그것은 어떤 깨달음의 형태로 굳어지기 전에, 누군가가 되돌아보기 전에 그저 흐르고

있는 상태 그대로, 무의미가 아니라 미 의미의 형태로 보존된다.

이것 또한 영화적 마술의 본질인 것은 아닐까, 이런 식으로 풀이를

12월 14일, 신형철

205


해봤는데 아무도 보지 않았다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시간들,

그것들을 그냥 찍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울 수 있구나, 이런 생각으로 해봤습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로 묶은 두 영화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이지요. ‘토니 타키타니’라는 영화하고 그다음에 이것도 원작 소설이 퓰리처상을 받은 유명한 소설인데요. 스티븐 달드리 감독이 영화로 만든 ‘디 아워스’입니다. 이치카와 준 감독은

제가 사실 잘 모릅니다. 이 영화 때문에 알게 된 분이고 스티븐

달드리는 아마 많이들 아실 것이에요. ‘빌리엘리어트’그다음에

‘더 리더:책을 읽어주는 남자’그다음에 최근작 중에서는 이것은 제가 계속 못 외우는데 믿을 수 없이, 참을 수 없이 가깝고 믿을 수 없이 어쩌고 이런 것 있잖아요.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이런 것이 있는데 스티븐 달드리 감독은 제가 보기에는 문학작품을 영화로 만드는 것을 참 잘하는 것 같아요. 그중에서 특히 이 영화가 최고작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두 영화의 공통 주제로 말하라면 저는 고독이라고 말을 하고 싶은데 그 ‘토니 토키타니’를 먼저 말씀을 드리면 이름이 이상하지요? 토니 타키타니라고 하니까 일본 사람 이름 같지 않지요. 재즈를 좋아하는 아버지가 아들 이름을

마치 미국인처럼 지어놓은 것이에요. 이것이 주인공의 상징 같은

것입니다. 독특한 사람,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못하고 매우 고독하게 살아요. 60년대의 일본의 전공투 시대, 그때 대학생 시절을

보냈다고 설정이 되어 있는데 남들이 다 데모할 때 혼자 그림 그리고 이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한테 고독이 너무 익숙해요. 어느 날 어느 여성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자기가 얼마나 고독했던가를 깨달아요, 그전에 몰랐다가. 그래서 나이차가 많이 나는

사람이었는데 그녀를 설득해서 결혼을 합니다. 그래서 잠시나마

고독을 잊고 행복한 삶을 살다가 그녀에게는 쇼핑중독증이 있어요. 계속 무엇을 사들여야 돼요, 특히 옷을. 그래서 옷을 너무 많이

사니까 이 남편이 나는 당신을 정말 사랑하지만 이 옷들은 조금 쓸데없지 않을까, 이러면서 미안하지만 잘 생각해보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부인이 자기도 그러니까 옷을 사지 않고 버티다가 도저히 못 참고 사러 가요. 중독이니까 이것은 어쩔 수 없는

206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것이지요. 옷을 사놓고는 또 마음이 그래서 옷을 반품하러 차를

급히 돌리다가 사고가 나가지고 죽습니다. 너무나 허망하게 토니

타키타니는 다시 혼자가 되는 것이에요. 그때를 보여주는 장면인데 아내를 묻고 돌아온 날의 모습입니다.

(영화 시청) 아내가 죽은 것에 대해서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이것이 다예요. 아무런 대사도 없고 이 옷으로만 설명을 다 대체를 하는데 다시 고독해지는 사람이 이제는 옛날과 다른 사람이 이미 되어 버렸잖아요. 한 여자를 만났고 고독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다시 고독해지는 것이 예전보다 훨씬 힘든 일이 된 것이고 어떻게든지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고독이라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문학에서도 그렇고 어느 매체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인간의 감정 중에서 가장 엄살처럼 보이기 쉽고 표현하기 힘든 그런 감정이 고독이지 않을까 싶은데 그런 고독을 재현한 작품 중에서 저에게는 참 인상적인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을 되냐 하면 그러니까 당연히 적응이 안 되지요. 그런데 이제 옷 방에는 아내가 산 옷으로 가득해요. 거의 이것의 반 정도

되는 옷 방이 있는데 거기가 다 옷으로 차있습니다. 그런데 그 방을

열어보면 기가 막히는 것이지요. 부인은 죽었는데 이 옷들은 다 어쩔 것이냐, 옷들이 더 끔찍한 것이지요. 그래서 이 주인공이 특이한

짓을 하는데 자기 사무실에 비서를 채용하겠다고 공고를 냅니다. 공고를 어떻게 내냐 하면 아내의 신체조건을 그대로 써가지고 똑같은 신체 조건을 가진 사람만을 뽑겠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래서 어느 여성이 찾아옵니다. 미야자와 리에가 1인 2역을 해요.

얼굴도 똑같이 생긴 여성이지요. 다른 것 필요 없고 출근해서 전화만 받고 간단한 일만 한다. 단, 근무 중일 때 내 아내의 옷을 입고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요구 조건을 내 겁니다. 자칫 잘못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기 십상이지요. 그런데 그 사람 태도가 워낙

12월 14일, 신형철

207


사연이 있어 보이고 진지하니까 그 여자 주인공이 알겠다고 해요. 옷을 좀 봐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옷 방으로 보냅니다. 한번 입어보라고 그 장면인데.

(영화 시청) 이 영화의 특이한 기법 중에 하나가 이것이 소설을 읽는 것 같은 효과를 주려고 화면이 다 옆으로 이렇게 넘어가요, 다음 장면

바뀔 때. 그리고 아까 뜬금없이 이 여자가 말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끼셨지요. 이 영화 계속 소설에 나오는 그 문장들을, 내레이터가 말하는 문장들을 주인공이 중간에 끼어들어서 한마디씩 받아서 해요. 그런 식으로 소설과 영화와의 인물들 사이에 고리를 만드는 그런 기법이 있는데 처음에 보면 이상합니다. 그런데 보다 보면

일종의 규칙에 익숙해지게 되는데 신선한 기법이었던 것 같아요. 아무튼 이 장면이 참 여러 가지 의미를 품고 있는 그런 수수께끼 같은 장면인데 이 여성이 갑자기 눈물을 흘립니다. 그 이전에 어떤 여성인지를 보여주는데 가난하고 최근에 직장에서 잘려서 너무 다급한 상황이어서 이상한 채용공고를 보고도 갈 수밖에 없었던 그런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너무 많은 옷을 보니까 눈물이 났다고 표현을 하는데 그것이 설명이 다 되는 것은 아닌 것이지요. 아마

그것은 자기 자신도 100%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아닐까 싶은데

이상한 눈물 때문에 이 남자는 또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내일부터 출근하세요, 하고 보냈는데 바로 연락을 해서 아니요, 안 오셔도 될 것 같습니다. 오늘 몇 벌 가져가신 옷은 그냥 가지십시오. 이러고 문자를 보냅니다. 끝부분입니다. 이제 옷을 다 처분해버렸어요.

(영화 시청) 그러니까 왜 비서 채용을 그만두고 그것을 계기로 옷을 다 처분하고 죽은 아내로부터 그래도 벗어나려고 한 걸음 내디딜 수 있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이 사람 자신도 잘 몰라요. 그러니까 굳이

208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설명해보자면 저는 어떻게 생각하냐 하면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토니만 고독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아내도 쇼핑중독이라는 것이 이상한 사람들이나 걸리는 이상한 병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중독이라는 것의 원인 속에는 어떤 결핍이나 공허 같은 것이 있지 않겠어요? 그것을 어떻게든 메워보려고 무슨 구멍 같은 것을 필사적으로 막아보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내도 설명하기 힘든 어떤 공허에 시달렸던 사람이었던 것이고 토니는 알 것도 같고 이 옷 방에 들어와가지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터뜨려버리는 이 그녀도 내면에 큰 공허가 있었던 것이고 여기 이제 제가 설명을 안 드렸지만 아버지도 있어요. 토니 아버지도 매우 고독한 사람인데 이렇게 고독이라는 감정으로 인물들이 자기들도 모르게 연결이 쭉 됩니다. 그녀의 고독을 느끼면서 그녀의 고독과 나의 고독이 무엇인가 화학작용을 일으키면서 나만의 고독은 아니구나, 고독이 나만의 것은 아니구나, 이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닐까. 이렇게 짐작을 해보는데 해석이 매끄럽게 안 되더라도 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한 번 고독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반복해 생각해보게 되는, 그런 계기가 되는. 저는

이 영화를 자주 보는데 아까 미적 조력과 고양의 원리,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기 음악을, 류이치 사카모토가 음악을 맡았어요.

일본의 아주 유명한 뮤지션이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멜로디가 계속 반복이 되는데 그 음악의 제목이

solitude예요, 고독. 음악을 듣기 위해서 이 영화를 틀을 정도로 좋아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어떤 글을 썼냐 하면 아까 그 마지막 장면, 이미지. 토니 타키타니의 국내판 DVD 케이스에는 남녀 주인공이 각자 텅 빈 방에 앉아있는 모습이 있는데 이 이미지가 소설의 전후를 명쾌하게 압축해 놓았다. 영화의 전환이기도 하고, 고독이 공기와도 같은 것이라면 저 방은 지금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고독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그 빈방에 누워있는 모습 그 이미지로 저에게 이 영화가 요약이 됐는데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원래 무엇이 차 있다가 지금 빈 것이잖아요. 저 안에는 원래 지금 고독이 가득 차 있는 것이고 그것을 메워보려고

12월 14일, 신형철

209


그 자리에 옷을 사서 걸고 그곳에 아내도 들어오고 비서도 들어오고 나의 음악도 들어가고 이렇게 했는데 그것들이 다 빠져나간 자리는 고독만 오롯하게 남는 그런 이미지가 아닌가. 그래서

고독은 어쩌다가 밀려오는 것이 아니라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어쩌다가 밀려오는 것은 고독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가끔 밀려오는 것이고 요새 많이 쓰는 표현이 default, 기본 값. 기본 값이 고독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닌가. 사랑에는

증오라는 반대말이 있지만 고독에는 그 정도로 명확한 반대말이 없다. 공기처럼 늘 확실히 존재하는 어떤 것에는 반대말이 필요

없다는 것일까, 이런 질문도 한번 던져봤습니다. 그다음에 보여드릴 영화는, 이것까지만 하고 잠깐 쉴게요. 그다음에 보여드릴 영화는

‘디 아워스’인데 세 여성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신 분들

많으시지요? 이 10편 중에서 단 1편만 고르라고 한다면 저는 이

영화입니다. 저에게 이 영화가 1등이에요. 저에게는 문학과 음악과 영화가 이미지가 완벽하게 결합된 사례 중에 하나고 특히 저는 문학하는 사람이니까 이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저에게는 너무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말씀드리자면 고독인데 버지니아 울프가

일단 나와요. 버지니아 울프가 1941년에 자살을 하는데 자살하기

직전의 버지니아 울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때 버지니아 울프가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소설을 쓰던 때예요. Mrs 댈러웨이,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뒤에 1950년대를 살아가는 어느 여성을 또 보여줍니다. 줄리안 무어가 하는, 연기하는 배역인데 5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남들이 보기에 행복한 가정을 살아가고

있는 주부라고 할 수 있지요. 다른 직업을 갖고 있지 않고 아이를 양육하고 남편 뒷바라지를 하는 그런 여자로 설정이 되어있는데 그 여성의 내면, 그다음에 2000년대지요? 2000년대로 넘어와서 메릴 스트립이 연기를 하는 배역인데 양성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만났던 남자친구가 있고 지금 동거하는 여자

친구가 있는데 그 엑스 프렌드지요. 그 남자와 우정을 계속 나누고 있는데 이 남자가 에이즈에 걸렸어요. 그리고 유명한 작가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앞두고 문학상을 받았어요. 그래서 이제 그녀가

210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더 기뻐하면서 파티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재미있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소설에 다 이어져 있어요. 버지니아 울프는 작가고 그다음에 50년대의 줄리안 무어는

댈러웨이 부인을 읽으면서 소설 속의 인물과 자기를 동일시하면서 자신의 공허를 더욱 강하게 인지를 하고 그다음에 2000년대

인물은 별명이 댈러웨이예요. 댈러웨이 부인의 소설에서 첫 장면도 파티를 준비하는 장면이거든요. 이 배역이 파티를 준비하고 있기도 하고 또 그 에이즈에 걸린 남자친구가 그렇게 별명을 부르는 이유가 원작 소설에서 댈러웨이 부인이 무엇인가 자신의 삶의 진상으로부터 자꾸 도망치기 위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파티를 하고 이런 모습들이 있는데 네가 그렇다고 좀 따끔하게 얘기를 해주듯이 그렇게 별명을 붙인 것이에요. 세 사람의 모습을 가장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만 조금 골라봤는데요. 이 장면은 오프닝인데

버지니아 울프의 자살로부터 시작을 합니다. 시간적으로 뒤에

나오는 장면인데 먼저 보여주는 것이지요. 필립 글래스, 아주 유명한 음악가지요. 필립 글래스의 음악이 깔리면서 버지니아 울프의 실제 유서 내용이 그대로 지금 마음 속인 것이에요.

(영화 시청) 정말 좋은 오프닝 중에 하나지요. 그 버지니아 울프의 남편이 실제로 버지니아 울프를 위해서 되게 헌신적으로 노력했던 사람이에요.

지금 이 유서에서도 나옵니다만, 당신은 최고의 남자였다. 그렇지만 나는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결혼할 때 전제 조건

중에 하나가 성관계를 갖지 않는다. 자식도 낳지 않는다. 그래도

결혼하겠느냐, 하겠다. 나는 글을 쓰겠다. 괜찮냐. 얼마든지 써라,

도와주겠다. 남편이 출판사를 차립니다. 호가스 출판사라고 지금도

있지요. 그 출판사를 차려서 당대에 유명한 T.S.엘리엇 이런 사람들 책도 내고 그랬던 사람인데 남편이 문제여서 죽은 것이 아닌 것이지요. 영화에서 자세하게 나옵니다만 그다음에 메릴 스트립이 나오는 장면입니다.

12월 14일, 신형철

211


(영화 시청) 그다음에 줄리안 무어가 나오는 장면 볼게요. 남편의 생일날 아이랑 같이 케익 만들면서 남편을 기다렸어요. 그리고 이제 밤이 돼서 남편은 중요한 날이니까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하고.

(영화 시청) 여우주연상은 니콜 키드먼이 받았어요. 버지니아 울프 역할을 해서 그런데 제가 여우주연상을 주고 싶은 사람은 줄리안 무어입니다. 그리고 방금 이 장면에 저는 제일 인상적이었어요. 이것은 저도 남자니까 제가 이 기분을 다 안다고 말하는 것은 만용일 텐데 그야말로 남들이 보기에는 아메리칸드림의 상징 같은 스윗홈 판타지, 스윗홈의 전형인 집에 아내인 사람인데 아무에게도 얘기할

수가 없는 것이에요. 자신이 왜 그렇게 고통스러운지 자기도 설명을 못하겠고 남편이 다정하게 잘해줄수록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울수록 미치겠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살을 하려고 호텔에 들어가서 약도 먹고 하는데 결국 실패하고 그냥 돌아온 것이고 그날 밤인가,

그렇습니다. 결국 줄리안 무어는 아들이 계속 두려워해요, 엄마가 자기를 버릴까 봐. 그런데 아이를 떼어놓고 지금 임신한 상태인데 둘째를 낳고 어디로 간단 말도 없이 집을 떠납니다. 그 줄리안 무어의 아들이 아까 뛰어내린 그 작가예요. 그래서 그 작가가

죽고 나서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줄리안 무어가 오지요. 나이가 들어서옵니다. 그래서 얘기를 해요. 내가 아이를 버린 여자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이 남자는 엄마가 자기를 버린 것에 대한 상처 때문에 평생 거기에 시달렸던 사람이고 그것을 메릴 스트립은 다 알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줄리안 무어가 왔을 때 반갑게 맞을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같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줄리안 무어가 무엇이라고 하냐 하면 아주 심플하게 얘기를 해요.

무엇이라고 욕을 해도 상관없다. 그런데 나는 죽느냐, 사느냐 중에

212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사느냐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 집에 남아 있었으면 나는 죽었을

것이라는 것이에요. 더 좋은 것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집을 나왔다는 것이지요. 그만큼 주부로서의 삶이라는 것이 남들이야 주부 우울증, 이렇게 부르고 말겠지만 당사자에게는

너무나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얘기를 듣고 줄리안 무어가 잠들었는데 메릴 스트립이 가서 아주 다정하게 잠자리를 챙겨주면서 당신은 누군가에게도 용서받을 필요가 없다, 당신은 잘못한 것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듯이 이불을 덮어주는 장면이 있어요. 물론 이 영화에 나오는 그 인물들에는 눈여겨봐야 될 요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억압된 동성애가 우울의 원인일 수 있고 여러 가지 힌트들이 있어요. 그래서 인상적으로 들어가면

자세하게 얘기를 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럴 여유는 없고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토니 타키타니는 사람이 있다가 없어졌을 때 느끼게 되는 상처, 고독.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지금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에게는 다 주변에 사람이 있어요. 헌신적인 남편, 다정한 남편. 그런데 오히려 그 사람들 때문에 더 못 견디겠는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치지는 것이에요.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더 고독한 그런 상태, 그런 고독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주변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 안에 가닿을 수 없는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 참 산다는 것에 대한 어떤 막막한 심정이 드는 것이지요. 그런 것이 있고 그런 것이

참 중요한 것이다. 그런 것을 잘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제가 무엇이라고 표현했냐 하면 고독이라는 것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또 다른 자기와 함께 있는 것인데 아무리 설득을 해도 또 다른 자기가 내 말을 듣지 않을 때, 그때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이런 얘기를 한 적도 있고 그때 던지는 질문이 무엇이냐 하면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사는 것이지? 라는 질문이지 않겠어요? why지요,

why. 영화에서 why가 what gore로 풀어지기도 하잖아요. 왜 사냐, 라는 것은 무엇을 위해 사느냐는 질문인데 스스로 묻게 되는 것이지요. 너는 무엇을 위해 사는 것 같아? 라고 물었는데 그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사는 그것이라는 것이 나에게 없어, 라고 얘기를 12월 14일, 신형철

213


하니까 방법이 없는 것이지요. 삶의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그렇게 행복한 집인데 친절한 친구가 있는데 어쩌고 해도 바로 자기에게 그것이 없는 것이에요, 그런 상태. 그래서 이 영화를 옛날에 봤을

때는 이렇게 진지한 생각을 못하고 지나갔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지금보다 더 생각이 짧았던 것 같은데 조금 나이가 들어서 영화를 다시 봤는데 내가 오늘부터는 이 영화를 내 인생 영화로 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래서 이것저것 찾아본 얘기들 중에 이런 얘기도 있습니다. 하이데거의

말인데 고독이라는 것이 개개인 간의 그 속에서 비로소 처음으로 모든 사물에 본질적인 것에 가까이 이르게 되는. 즉, 세계의

가까이에 이르게 되는 그런 일이다. 이런 얘기를 했어요. 고독한

사람이 진짜 삶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있을 때는 진짜 삶을 안 볼 수 있는 그런 혜택을 누리는 것이지요, 삶의 진실을. 혼자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을 하이데거는 나쁘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이 진실로 들어가는 통로가 되는 것이니까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하이데거의 제자이고 연인이었다고도

알려져 있는 한나 아렌트라는 철학자가 있잖아요. 아렌트가 한 얘기 중에도 재미있는 얘기가 있는데 외로움은 고독이 아니다. 외로움과 고독을 나눴습니다. 고독은 solitude고 외로움은 loneliness.

내용도 다르다는 것이에요. 고독은 혼자 있기를 요구하지만 혼자 있을 때 가장 잘 드러나지만 외로움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가장 날카롭게 모습을 드러낸다. 외로운 사람은 그가 맺을 수도

없고 그를 향해 적개심을 노출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럴 때 느끼는 것이 외로움이다. 반대로 고독한 사람은 혼자이며 그래서 자기 자신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인간은 자신과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나는 고독 속에서는 나 자신과 함께 혼자 있으며, 말이 조금 이상한

말이지요? 나 자신과 함께 혼자 있으며 그러므로 한 사람 안에 두 사람, Two in one. 이렇게 되는 것이지요. 외로움 속에서 나는

Two in one이 아니라 just one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214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버림받은 혼자일 뿐이다. 고독은 철학적인 상태고 외로움은 아주

비참한 상태인 것이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보자면. 그런데 고독은 외로움이 될 수 있다, 바꿀 수 있다. 내가 혼자 있으면서 나 자신의

자아에게 버림받을 때 이런 일이 발생한다. Two in one이잖아요.

또 다른 나에게 내가 버림받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읽고 조금 놀란 것이 이 책을 예전에 읽지 못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옛날에

팟캐스트 진행할 때 고독이란 또 다른 나와 함께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멋대로 생각나는 대로 얘기를 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비슷한 말을 더 깊이 있게 이미 다했더라고요. 조금 쉬었다가 할까요? 아직은 1시간 정도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네, 조금 쉬겠습니다.

― 사회자 저희 한 5분정도 쉬고 37분에 시작하겠습니다.

(coffee break) ― 신형철 다들 들어오셨나요? 다음으로 영화를 묶는 주제는 사랑인데 빼놓을

수 없는 주제지요? ‘이터널 선샤인’이 이 주제에 묶일 만한 영화라는 것은 너무 잘 아실 테고 또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을 텐데 왼쪽에 있는 영화는 아마 거의 다 모르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나잇

스탠드’라는 옴니버스영화인데요. 3명의 감독이 30분 자리 단편을 묶은 것인데 민용근 감독이라고 학교에서는 제가 학생들에게 가끔 민용근 감독의 단편영화를 틀어주고 해서 학생들은 아마 알 텐데 작은 영화 주로 만드는 감독이고 첫 장편영화가 ‘혜화, 동’이라는

영화였습니다. 그 이후로는 아직 장편을 못 만들고 있는데 제가 이

민용근 감독을 어쩌다가 우연히 알게 됐어요. ‘혜화, 동’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만났습니다. 알고 보니까 저와 동갑이고 그래서 친구가

되는 것인데 친구니까 이제 영화도 봐야겠다고 생각을 한 것이지요. 그래서 처음 본 영화가 이 영화였어요. 그 친구가 작은 상영회 같은 것을 해가지고 그곳에서 보게 되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제가 조금

12월 14일, 신형철

215


충격을 받았습니다. 정말 멋있는 이야기다. 놀래가지고 ‘혜화, 동’도 그제서야 찾아보고 이 친구를 제가 친구로서 감독으로서 좋아하게 됐는데 이 ‘원나잇 스탠드’라는 제목 자체도 다시 보고 싶지 않게 돼있거니와 이 영화 안에 그런 좋은 영화가 있다는 것을 대부분 잘 모르세요. 단편으로 독립해서 피버라는 제목으로 영화제에서 틀기도 하고 한다고 하는데 이 영화만 따로 구하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이 옴니버스를 구입을 하셔야 볼 수 있고요. 그래서 제가 이 영화는 한번 보여드리면 어떨까 싶어서 준비를 해왔습니다. 30분

될까 말까 한 영화예요. 그래서 제가 조잘조잘 떠드는 것보다 영화를 틀어드리면 더 좋아하실 것 같으니까 이 영화를 한번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영상 시청) 여기 미성년자분은 안 계시지요? 아이 데리고 온 분 없으시지요?

20분쯤에 정사 장면이 있습니다. 미리 말씀드립니다. (영상 시청)

어떠셨나요? 복잡한 표정들이신 것 같은데. 초반부에 이 소년이

그 짝사랑하는 여자 집에 가서 엿듣고 쓰레기 훔쳐보고 범죄지요?

범죄. 당사자 입장에서는 끔찍한 일이고 그런 의미에서 그런 범죄를 안타깝게 보이게끔 미화했다고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 부분도 있고 그리고 이 소년은 미성년자인데 선글라스 낀 여자 입장에서는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진 것이니까 이것도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그런 부분들을 제가 이 이야기에서 다 지지하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니고 이 영화가 저에게는 어떤 논리 하나를 자꾸 전달하고 있다는 생각을 저는 했었어요. 그래서 이것이 무엇일까를 정의하고 싶었었고 그래서 오래 생각하다가 언젠가 ‘러스트 앤 본’이라는 영화를 보고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그 영화도 떠올리면서 그래서 두 영화를 가지고 무엇인가 글을 쓰다가 이 영화가 저에게

216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해준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그때서야 정리를 했어요, 한참 뒤에. 제가 무엇이라고 썼냐 하면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는데 책에 있는 문장이고 이것이 말이 그럴듯한데 도대체 무슨 말이냐, 물어보시는 분도 많고 인용도 많이 하시고 그래서 저에게는 각별한 문장들인데 욕망하고 사랑하고 다르다면 어떻게 다를까. 이런 생각을 저는

예전부터 했었습니다. 더 넓히면 본능이라는 것도 있고 프로이트 같은 사람이 말하는 충동이라는 것도 있고 그런데 이런 것들의 내적 논리가 다 다르다면 내적 논리를 다 알고 있다면 우리가 시행착오도 덜 할 수 있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더 이해할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예전부터 했었는데 그러면서 이 주제가 저에게는 공부 주제 중의 하나가 됐었어요. 그래서 일단 욕망과 사랑의 논리적 차이, 이런 것을 글로 써 본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욕망의 세계라면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지 않을까. 욕망의 세계에서는

있으므로, 네가 갖고 있는 것으로 나의 없음을 채우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여의치 않아지면 욕망은 이제 끝나는 것이지요. 나를 채워줄 다른 있음을 향해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것이 욕망이지

않을까. 그럼 사랑이라는 것은 없음끼리 만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없음과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격렬하지

않더라도 욕망은 뜨겁잖아요. 그래 너를 만나게 되어서 내가 이렇게 되는 것인데 이 경우는 그렇지 않더라도 고요하지만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을 수 있는데

없음이라는 것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없음과

없음이 만나면 서로를 떠날 필요가 없겠구나.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이 영화에서 이제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 이런 종류의 일이 아닐까. 더 이상의 설명을 안 해도 다들 이해하실 것이고 없음과 없음 사이에 교환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그래서 마지막에

선글라스를 소년이 가져가서 자기가 쓰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지요. 또는 그 교환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무엇이냐 하면 소년은 자신의 없음에 대해서 인정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장님, 시각장애자들이 하는 것처럼 선글라스를 끼고 지팡이를 짚고 걸을 수 있게 됐고

12월 14일, 신형철

217


여성의 경우에는 안경을 벗고 밖을 내다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여하튼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없음과 없음의 만남이라는 것이 만약에 사랑이라면 그 이후에 나오는 결론은 무엇이냐, 옛날에 플라톤 같은 사람은 반쪽끼리 만나면 합쳐지고 것이고 이것이 완전한 인간이 된다는 것을 얘기를 한 적 있잖아요. 저는 이렇게 결핍을 받고 있는 사람들끼리 만난다고 해서 각자가 완벽해진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고 그런데 그 변화는 그럼 무엇이냐, 완벽함하고 완전함하고 온전함이라는 것을

구별해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완전이라는 것은 영어로 말해서 perfect지요. 그런데 perfect한 인간이 어디 있겠으며 이런 결핍을 갖고 있는 인간들이 만난다고 해서 서로가

perfect해진다는 것은 너무 이상적인 얘기이고 온전해지는 것은 complete, 그러니까 내가 내 결핍 때문에 온전하지 않은 존재였는데 둘 다 그랬잖아요? 서로에게서 없음과 없음을 교환을 통해서 내 결핍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얻는 것 정도, 나와 나의 결핍 사이에 관계가 재설정되는 정도. 그것만 해도 정말 큰 변화일 것이고 그런 존재는 온전해졌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구에게나 결핍이 있고 중요한 것은 그 결핍을 어떻게 내가 껴안고 살아가느냐의 문제잖아요. 그렇게 서로 해주는 관계라면 그것은 사랑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한 적 있습니다. 이 영화가 저에게 계기가

됐었어요. 저에게는 뜻깊은 영화고 그다음에 ‘이터널 선샤인’은 내용 다 아실 것이고 아까 그 영화가 만나는 과정의 논리를 보여주는 이야기라면 ‘이터널 선샤인’은 헤어지는 이야기잖아요. 헤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이 되지요. 그래서 비교를 해보면

좋겠다 싶었는데 3가지 질문을 추려봤어요. 첫 번째 질문은 기억을 지우는 기술이 우리가 사랑의 상처를 이겨내는 일은 쉬워질까.

이것이 이 영화가 던진 첫 번째 질문인데 잘 안되지요? 그 과정이. 기계 작동 과정에서 엉망진창이 되지요. 그것이 왜 문제냐 하면

오작동을 일으키는 것이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점, 짐 캐리의 무의식 속에서 막 혼란이 발생하잖아요. 그렇지요? 그래서 이

작업을 중지시키려고 무의식이 발버둥을 치지요. 거기서부터 이제

218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문제가 벌어지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생각을 해보니까 지나간 기억들을 싹 지워달라고 해놓고 행복했던 기억들을 간직하려고 하는, 그러다 보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인데 그것을 나누는 것도 쉽지 않고 그것을 선별적으로 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느냐. 스스로 어떤 것이 기쁜 기억이고 어떤 것이 슬픈 기억이었는지 조차도 분명하게 말하기 힘든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지요. 아픈 기억이지만 거기에서 추억의 달콤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연인 관계

사이에서는. 그러니까 인간이 자신의 감정에 조차 속는 동물이기 때문에 나중에 이런 기술이 개발된다 하더라도 아픈 기억은 지우고 기쁜 기억은 남기자. 이런 것들이 말처럼 분명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기계는 정확하겠지만 인간은 늘 부정확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저는 했고요. 그다음에 두 번째 질문은 기억을 지우는데 성공하면 완전히 다른 사이 될 수 있을까.

아니지요. 이 영화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지요. 기억에서 다 지웠는데 그 사람을 만나니까 똑같은 일이 벌어지잖아요. 또

사랑에 빠지는 것이지요. 특정한 대상에 끌리도록 되어 있는 마음의 교육이라는 것이 있다. 경향이라는 한자어가 있잖아요. 경향이 기울어져 있다는 뜻이지요. 사람은 누구나 경향이라는 것이

있어가지고 특정한 사람 쪽에 이끌리기 마련이다. 이것을 이제

본능과 욕망과 충동의 과정, 그 논리에서 어떻게 설명을 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겠습니다만. 그러니까 요컨대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해명되지 않는 영역이 인간에게 있기 때문에 이 작업은 성공할 수가 없을 것이다. 세 번째 질문이 가장 중요한 질문인데 맨 마지막에

던지지요. 그래서 이 남녀가 한참 사랑을 하고 있는데 사실 너희들 두 번째야. 1번 했다가 실패하고 기억을 다 지웠는데 다시 만난 것이야, 라는 것을 알게 되지 않나요? 그래서 질문을 건네받는

것이지요. 그럼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될까?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 기억 삭제 장면에서 조엘이 뒤늦게 애원해도 삭제는 중단되지 않았는데 그 시술의 논리가 전부 아니면 전무였기 때문이다. 아픔은 제거하고 기쁨만 남길 수는 없다는 뜻이고 달리 말하면 아픔이 두려우면 기쁨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기계의 논리는 그렇지요.

12월 14일, 신형철

219


선택지는 둘이다. 아픔이 두려워 기쁨을 포기할 수도 있고 혹은 아픔을 각오하고 기쁨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니까 두 남녀가

마지막에 둘 선택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되는 것이지요. 전자를 택하는 사람들이 지혜로운 것인지는 몰라도 후자를 선택하는 이들이 나에게는 더 눈물 났다. 저는 최근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인생이라는 식탁에서 콩을 골라내듯이, 왜 이런 표현을 썼냐 하면 제가 어렸을 때 콩을 골라냈기 때문에 이런 표현 나온 것 같은데 아픔만 골라내면서 살 수가 없다. 사랑은 그 대상이 누구건 사랑에는 기쁨만이 아니라 아픔도 따르기 마련임을 안다. 그런

사람에게 사랑은 언제나 ‘이터널 선샤인’의 처음이 아니라 마지막 장면에서 시작된다. 두 번째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그 순간부터 시작이 되는 것이고 누구도 처음 사랑을 시작하는 경우는 잘 없잖아요. 이미 다 알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상은

다를 수 있더라도, 그런 의미에서 언제나 두 번째 사랑이 있다고

그러면 모든 사람은 그 사람이 그럴 때 오케이라고 답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어리석고 아름다운 대답이다. 다시 말해 인간적이다. 제가

이렇게 썼습니다. 예전에는 이렇게 생각 안 했는데 최근에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동의하실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다음에

마지막 이제 조합인데 ‘올드보이’는 제가 처음으로 영화에 대해서 글을 쓴 대상이 된 영화이기도 하고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각별한 영화입니다. 그리고 ‘밀양’이라는 영화는 최근에 더 각별해진

영화인데요. 두 영화를 묶는 주제는 거창하게 얘기하면 구원이 될

텐데 구원. 또 제가 최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예요. ‘올드보이’는 제가 글도 썼고 다들 잘 아시겠지만 그리스 비극의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랑 자게 된 운명의 장난으로 그렇게 된 그 남자의 이야기를 각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이 참조한 이야기지요. 여기에서는 반대가 돼서 아빠가 딸과 동침하게 되는 그런 근친상간 모티브가 있는데 오이디푸스 왕이 그렇듯이 그리스 비극의 일반적인 성격이기도 합니다만 신의 무자비한 장난이라고 할까요? 그것 때문에 인간이 파멸하는 그런 이야기, 그것이 비극이 우리에게 아직까지도 공포와 연민이라는 감정을

220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느끼게 하는 동력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아까 비극에 대한 제 소견을 말씀드렸는데 ‘올드보이’가 스타일을 뛰어나고 이런 것을 떠나서 한국 영화가 만들어낸 가장 인상적인 비극의 플롯 중에 하나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물론 그 안에 원본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는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 영화를 ‘밀양’과 생각하게 되었던 것은 그리스 비극의 세계하고 짝을 지을만한 것이, 그것이 이제 기독교의 세계잖아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이렇게 나누기도 하고 서양문화의 두 뿌리이기도 하고 그런 것인데 사실은 따지고 보면 문학에도 뿌리이기도 하지요, 그리스 비극과 성경이. 그런 의미에서 두 세계가 저에게는 늘 공부의 대상이고 관심의 핵심인데 ‘올드보이’가 이제 비극의 세계를 잘 보여주는 영화라면 헤브라이즘의 세계, 기독교의 세계, 그 세계의 깊이를 잘 보여주는 영화는 무엇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최근에 이제 재발견했다고 할까, 그런 영화입니다. 이 두 영화에서는 딱히 고를 장면이 없고요. 너무 잘 아실 테니까.

‘올드보이’에 관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약에서 잠깐 인용을 해봤는데요. 비극의 주인공은 악덕이나 악행 때문이 아니라 어떤 하마르티아 때문에 불행에 빠진다. 이런 문장이 있지요. 하마르티아라는 것은 화살이 과녁을 빗겨 나가는 일이다. 이렇게 단어의 뜻이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말을 어떤 의미로 썼는지는 조금 모호합니다. 그래서 논란이 있는데 그냥 단순판단 착오나 실수 같은 것인지 아니면 주인공의 도덕적 성격적 결함을 가리키는 말인지 이것이 조금 불분명해요. 그래서 학자마다 해석이 다른데 저는 그래도 전자로 봐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하튼 결함 때문에 생긴 비극이라고 하면 이유가 그래도 조금 있다고 논리가 성립이 되기 때문에 더 끔찍하다는 생각이 덜 들 수도 있다는 그런 의미에서. 그런데 또 거기서 멈추면 안 되는 것이 제가 둘째 단락 끝 문장에 썼는데 단순한 착오나 실수처럼 보이는 것이 아주 깊은 수준에서는 어떻게 성격적 결함과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것도 따져봐야 할 문제지요. 그래서 비극에는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이 있을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 그리스

12월 14일, 신형철

221


비극이 저에게 던지는 질문이고요. 그다음에 기독교의 세계가 저에게 던지는 질문 중에 중요한 것은 특히 욥기가 던지는 질문인데 많이들 아시겠습니다만 아무 이유 없이 끔찍한 불행을 겪는 인간의 이야기지요, 신과 악마의 내기 때문에. 저 욥이 아무 이유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신에게 신실한 신앙을 유지할 것이냐를 내기를 한 것이지요. 그래서 자식도 다 죽이고 끔찍한 고통을 겪게 하고 나중에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게 해서 온몸을 긁게 만들고 차라리 죽느니만 못한 상태로 만들어 버리고 그 상황에서 욥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를 지켜보는 이야기인데 친구들이 와가지고 욥을 위로한답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요. 그런데 그 이야기의

핵심은 네가 그래도 무엇인가 잘못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에요. 친구들의 말의 논리는 마치 요즘에도 존경하기 힘든 그런 목사님들이 가끔 어느 나라에 재앙이 일어나면 지진이 일어나고 이러면 벌받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시는 분들 있잖아요. 그런

논리의 연장인 것이지요. 그래서 친구들이 그렇게 얘기할 때 욥이

이제 분노를 터뜨리고 나는 신과 끝까지 싸우겠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이지요. 그때 신이 나에게 나타나서 담판을 지을 때까지 나는 신에 대한 저항을 계속하겠다, 그렇게 하는데 결국에는 신이

나타나지요. 그런데 욥기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거기서부터 본격적인 소송이 시작돼야 될 것 같은데 오히려 욥의 태도는 이제 다 해결됐다는 듯한 태도입니다. 그래서 신이 나타나서 너는 매우 불완전하고 무능력한 존재다. 즉, 인간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욥은 그것을 인정하고 다시 신 앞에 엎드리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이 나는데 신학적인 논리로는 얼마든지 다른 설명이 가능하겠습니다만 신앙을 갖고 있지 않는 저가 갖고 있는 논리로서는 이것은 납득이 안 되는 결과라는 것이지요. 제가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런 것입니다. 자신의 불행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견디느니 차라리 어떻게든 의미를 찾으려고 헤매는 것이 인간이다. 이를테면 세월호 사건 같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겠지요. 제가 다시 욥기를 열심히 읽게 된 것도 그 계기가 있는 것인데 내 아이가 어처구니없는 확률의 결과로 죽었다는 사실이

222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초래하는 숨 막히는 허무, 이것을 감당하기보다는 차라리 모든 일에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어떤 거대한 섭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 차라리 낫다. 신이 있어서 그 어떤 인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섭리에 의해서 내 아이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나마 차라리 낫다면 그러면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도저히 신이

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냐, 라고 항의할 만한 사건을 겪는 사람이 오히려 그 일을 계기로 신을 받아들이는 그런 역설적인 일이 벌어질 수 있겠다. 그렇다면 욥의 마지막 결말이 그런 것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이해를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끝은 신이 나타나고 다시 한 번 신을 재발견함으로써 끝맺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최근에 ‘곡성’이라는 영화를 다들 보셨겠습니다만 저는 ‘곡성’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제가 최근에 어디인가에 글을 썼는데 나홍진 감독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이를테면 이런 질문 때문이었다고 하지요.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들이 너무 무의미한, 이유 없는 고통들이 많다. 신이 존재한다는 이럴 수 있느냐, 이런 질문을 던지고 했다는 것인데

나홍진 감독은 기독교 신앙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영화를 만든 것인데 그 영화를 보시면 마지막에 곽도원하고 천우희가 1대 1로 대면하는 장면 있잖아요. 저는 그 장면이 보고 나서 생각할수록

고통스러운 장면이고 힘든 장면이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로버트 노직이라는 유명한 작곡자가 있는데 그분이 무슨 이야기를 하냐 하면 세상의 고통을 설명할 수 있는 논리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무신론자들은 그렇기 때문에 신이 없다고 주장을 하지요. 그런데 그것을 설명하는 논리들이 이제 기독교 신학에서 많이 나오잖아요. 그것을 변신론 혹은 신정론이라고

하지요. 그 논리 중에 여러 가지가 있는데 자기는 그 설명 중에 동의할 수 있는 설명은 이 설명을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해줬을 때 그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설명일 때 나는 이 설명을 받아들이겠다, 이런 말을 해요. 그들에게 더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는 설명이라면 그 설명은 틀렸다는, 저는 그 말에 감동을 받았어요.

그래서 만약에 내 옆에 있는 유가족에게 세상의 고통이라는 것이 왜

12월 14일, 신형철

223


있냐 하면요, 라고 설명을 해줄 수 있을 만한 설명이냐, 그 설명을 해줄 수 없다면 그 설명은 틀린 것이다. 이렇게 저도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곡성’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결국은 그 주인공의 가족이 다 죽은 것은 곽도원 때문인 것이지요. 그 이야기에서 이 고통과 불행의 이유가 무엇이냐,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악령의

과정이 되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런데 끝까지 설명할 수 없다는 논리로 가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잘못이 없고 아무런 원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장면을 통해서 결국은 내말을 들어, 라고 하는데 듣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왜?

인간이니까. 라이프니츠가 말하기를 세상에 3종류의 악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형상학적 악이다. 형상학적 악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인간의 불완전함이다. 그리고 인간의 불완전함으로부터 모든 악의 파생되어 나옵니다.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그 논리가 적용이 되는 장면입니다. 곽도원의 불완전함 때문에, 그래서 결국 죽은

것이란 논리가 돼 버리지 않나요? 다시 말하면 그 마을에 벌어진 수많은 죽음들이 주인공의 책임인 것은 아니지만 그의 가족이 죽은 것은 바로 그의 책임이 되어 버리는 그런 장면이라고 저는 생각을 해버렸어요. 그래서 저는 이 영화의 논리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재미있는 영화지요. 미친 연출력이지요. 그런데 이것이 답이에요? 그럼 애초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겠다고 만든 영화라고 했는데 이 영화가 그런 영화가 됐느냐? 아닌

것이에요. 노직의 원칙, 아까 제가 말씀드린. 그 원칙에 어긋나는

설명인 것이지요. 그래서 이 영화는 결국은 다시 그래, 믿어, 믿어야 돼. 불완전한 인간은 신을 받아들여야 돼, 라고 말하는 영화라고

느꼈어요. 욥기와 같은 논리인 것이지요. 그래서 다른 답은 없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제가 떠올린 영화가 ‘밀양’이었고 최근에 ‘밀양’을 다시 보게 된 것이었습니다. 욥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의 전도연도 신에게 저항을 하지요. 신의 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냐,

‘밀양’과 ‘곡성’은 비교해 보기 좋은 영화입니다. 둘 다 대한민국에 있는 어떤 지명이 영화의 제목으로 쓰여 졌고 물론 한자는 바뀌었습니다만 제목도 ‘곡성’은 통곡이라는 뜻으로 바꿨잖아요.

224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밀양’은 비밀스러운 햇살로 바꿨는데 ‘곡성’은 통곡과 함께 끝나고 ‘밀양’은 햇살과 함께 끝납니다. 영화가, 조금 더 재미있는 얘기를 해보자면 책임질 수 없지만 한국 현대사의 상처, 고통, 이런 것을 생각해보자면 ‘곡성’은 피해자의 도시, 피해자의 곳간이에요. ‘밀양’은 경상도입니다. 이청준의 원작 소설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 설정이에요, 전도연이 밀양에 가서 하필이면. 그 밀양에서 살고 있는 주민이 외지에서 온 전도연의 아이를 유괴해서 죽인다는 말이지요. ‘곡성’에서는 외지인이 악마고 ‘밀양’에서는 외지인이 피해자입니다. 이상하지요? 무엇인가 짝을 이상하게 이룹니다. 아무튼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신에게 저항하다가 결국 신을 받아들이잖아요. 욥과 같은 논리인 것이지요. 저는 이것을 어떻게 이름을 붙였냐면 체념적 구원,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그 신앙을 버리지요. 유괴범도 신의 용서를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이것이 뭐야,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독신의 행보를 시작하자, 이렇게 되는데 하늘을 보면서 저주를 퍼붓지요. 그러다가 이제 자해를 하고 결국 정신병원에 들어갔다가 치료를 받고 나오는데 그런데 이 영화에서 전도연이 죽지 않아도 됐던 유일한 이유는 스스로를 죽여야, 죽일 수도 있을 만한 상황에 처해 있는 인물인데 죽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원작에 없는 인물을 적용 안 되게 흔들었기 때문이잖아요, 다 아시겠습니다만. 송강호 역할 했던 종찬이라는 인물이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그녀 옆에 있어요. 마지막에 전도연이 스스로 머리를 자를 때 거울을 들고 있는 것이 송강호고 카메라를 이렇게 이동하면서 마지막 장면을 보여주는데 집이 엉망이 되었어요. 전도연이 집을 비워가지고 그래서 쓰레기가 뒹굴고 있는 그런 정원인데 거기에 햇살이 쫙 내려옵니다. 되게 상징적인 장면이지요. 현실은 그런 저항 같은 것입니다. 부조리하고 엉망이고 앞뒤가 안 맞고 고통과 슬픔이 넘치고 그런 곳인데 거기에 햇살이 있는 것이지요. 구원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 구원은 다시 신을 받아들임으로써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고 옆에 있는 한 사람 때문에 구원을 얻는 것이지요. 그래서 제가 ‘곡성’과 ‘밀양’을 비교하자면 전자는 신을 재발견하는 영화고 후자는 사랑이라고 하는 것의 힘을

12월 14일, 신형철

225


다시 한 번 발명해내는 영화다,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마무리로 제가 최근에, 올해 쓴 글의 문장인데 저는 무신론자니까 신 없이 종교적일 수 있는 방법을 무엇일까를 생각합니다. 저는

무신론자이지만 성경도 읽고 불경도 읽고 그러는데 일단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종교적인 사건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곁에 있겠다고 결심하는 그런 사건, 저에게는 종교적인 사건인 것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무신론자는 신이 없다는 증거를 손에 쥐고 환호하는 사람이 아니고 신이 없기 때문에 그 대신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곁에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 한 인간은 다른 한 인간을 향한 사랑을 발명해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진정한 무신론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밀양’이 바로 이 세상에 태어난

한 인간이 여러 사람에게는 못하더라도 1대 1로, 1대 1 전담 마크, 한 사람에게 만이라도 곁에 있어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신이 없는 세상을 버틸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가 아닐까, 무신론자에게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직은 어설픈 생각이지요. 저는 인간학적

신학이라고 할까, 이런 이상한 곳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데 생각이 깊어지면 나중에 그럴듯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같습니다. 10편의 영화를 2편씩 묶어서 소개를

해드렸습니다. 지루하지 않으셨는지 모르겠네요. 못 보신 영화가 있으면 가서 한 번 찾아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 사회자 네. 그러면 이제 시간이 많지 않은데요. 관객 분들 질문이나

아니면 같이 얘기하시고 싶으신 부분 있으실까요? ― 신형철 너무 길었나 봅니다. ― 사회자 저희가 이제 그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이 마지막

프로그램이잖아요. 저희 올해 필름 앤 비디오 안에 대중 프로그램, 또 마지막 프로그램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번에 4회를 다 오신 분들이 계시고 그다음에 매 회마다 또 관객분들이 새롭게 오시기도 하시는데 4번 다 오신 분

226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중에서 한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 청중 1

질문하겠습니다. 저 아까 첩혈쌍웅에 대해서

얘기를 하셨잖아요. 그런데 그 영화의 감성이 최근에 시사회에 영웅본색이 재개봉해서 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영화에서 이제 장국영이란 배우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 그 배우가 죽은 감성이 어느 정도 통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시사회에서 그 배우가 나오는 장면마다 웃음이 터지는 것이에요. 저 역시 웃었는데 이것이 조금 당황스럽더라고요. 그런데 저랑 같이 나란히 계시던 다른 분들이,

그 세대겠죠? 그 영화를 직접 본 세대들은 되게, 되게 그 시간 내내 진지하게 그 영화를 보시고 막 나중에 눈물을 훔치시더라고요. 사실 그 첩혈쌍웅이라는 영화를 보면서도 웃음이 터지거나 그러지는 않았는데 슬프시다고 하셨잖아요. 그 감성이 저한테는 약간 덜 오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것이 우리 세대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건조함인가? 다른 영화에 대해서는 어떤 비슷한 맥락의 느낌을 받을 때도 있거든요. 그래서 이 건조함에 대해서 혹시 세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조금 궁금해졌어요. ― 신형철 건조함이라고 생각하면 안 될 것 같고 그것은 글쎄요. 개인차라고 해버리면 간단해지는데 그것이 정말 세대적인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생각해보자면 조금 복잡한 얘기가 될 텐데. 그런데 세대로 설명을 하는 것은 조금 허황된 설명이 될 가능성이 높고 그 경우는 어떤 경우라고 볼 수 있냐 하면 그분이 영화를 본 시점이 중요할 것 같아요. 저도 이 영화를 10대 때 봤고 지금 이 영화를 봤으면 그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그러니까 어떤 이야기나 어떤 감성이 나와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시기라는 것이 다르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12월 14일, 신형철

227


좋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다 자기 세대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가 다 다를 수밖에 없는 그런 이유가 아닐까요. 저도 재개봉한다는 얘기는 알았는데 극장에 가지 않았었습니다. 저도 다시 봤어도 마찬가지로

그분과 똑같이 눈물을 흘렸을 것 같고 옆에서 웃는 관객들을 속으로 맹렬히 증오하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어쩔 수 없지요. ― 청중 1

저 자신도 너무 당황스러워서, ― 신형철 충분히 그럴 수 있지요.

― 청중 1

여쭤보고 싶었어요. ― 신형철 예. 혹시, ― 사회자 또 있으실까요? ― 신형철 그러면 여기서 마무리를, 왜냐하면 제가 아직 종강을 못해 가지고

5시에 학교에 강의가 있습니다. 행사 때문에 휴강을 하는 것은

조금 미안해서, 학생들에게. 지금 출발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다음 기회에 또 만나 뵙겠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이상 끝)

228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11월 23일, 송경원

237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2016. 11. 23. ~ 2016. 12. 31.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라이브러리파크 블랙박스 1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2016. 11. 23. ~ 2016. 12. 31. Black box 1, Library Park, Asia Culture Center Curated by Jiha Kim

기획 및 편집 김지하 도록 디자인

Catalogue Design

햇빛 스튜디오

햇빛 스튜디오

인쇄

Printed by

영은문화

영은문화

주최

Hosted by Asia Culture Center

국립아시아문화전당

Produced by Asia Culture Institute

주관 아시아문화원 발행일

2016년 12월 26일

Published on December 26 2016

아시아문화원

Published by Asia Culture Institute, 61485 38 Munhwajeondang-ro, Dong-gu, Gwangju, Republic of Korea

ISBN

ISBN

ⓒ아시아문화원, 2016

ⓒ 2016 Asia Culture Institute

발행처

61485 광주광역시 동구 문화전당로 38

이 책에 수록된 글과 사진의 저작권은 해당 저자, 소장 기관 및

아시아문화원에 있습니다.

238

All right reserved to the respective authors, owing institutions and Asia Culture Institute.

변사가 된 영화수집광 Film buff Telling on Film Stories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