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민포럼 1회 - 노예인가, 시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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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 녹색시민의 시민됨을 위하여』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 일시 : 2015년 6월 23일 5시 ○ 사회 : 최종덕 (녹색사회연구소 소장, 상지대 교수) ○ 발제 : 박영신(연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녹색교육센터 이사장) ○ 토론 : 박영선(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 토론 : 양흥모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노예로 살면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생각하

[최종덕]

게 됩니다. 나 자신부터 시민의 상을 찾아야

실천을 위한 앎을 이야기하는 자리여야

겠다 생각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6회에 걸쳐서 이야기를 하는 데, 지식을 공유하는 학술대회가 아닙니다. 그

[박영신]

래서 단순한 지식의 측면에서 시민을 접근하

노예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노예

는 게 아니라 살아나가는데 진정한 삶의 가치

이 글은 탐욕으로 시작합니다. 여러분도 인간

가 뭘까, 그 가치가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관이 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생각

낫게 할 수 있는 게 무얼까 하는 실천적인 자

하는 인간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탐욕스럽게

리가 되어야 합니다. 첫 번째 자리로 박영신

움직이는 인간입니다. 이 탐욕을 어떻게 해야

이사장님을 모셨습니다. 박영신 선생님은 한

할 것인가, 어떻게 제재해야 할까요. 그런데

국 사회학계의 큰 스승이시고 개인적으로 제

인간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모든 것

가 대학시절부터 현상과 인식이라는 잡지를

을 맡겨두면 알아서 잘한다는 생각을 지지하

봐 왔기 때문에, 현상과 인식으로 기억합니다.

지 않습니다. 인간은 더럽기 이를데 없는, 문

대학에도 계셨지만 제도권 교육이 아닌 ‘작은

제를 많이 안고 있습니다. 그럼 어떤 방식으

대학’ 운동을 하셨고 녹색연합 상임대표도 맡

로든 제재해야 하는데 총칼은 부적절하다고

으시고 지금은 교육센터 이사장으로 계십니

다 생각할 겁니다. 절제를 하고 다스려야 하

다. 같이 토론을 하시는 박영선 선생은 경희

는데 그걸 규범이라 할 수 있고 가치라 할 수

대 후마니타스칼라지에서 강의하고 사회학 전

있고, 개개인의 사사로운 세계를 넘어서는 공

공, 시민교육 전공으로 하시고 양흥모 선생은

공의 가치라고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

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

렇게 시작하려 합니다. 그런 다음에 탐욕을

습니다.

통해 시민을 알아보고 싶은데 시민에 앞서서,

시민 개념은 학술적으로는 굉장히 다양합니

시민과 대비될 수 있는 삶의 형태가 무엇이

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이야기 할 것은 개념

있을까, 인류역사에. 그래서 노예를 들여다보

적인 접근보다는 우리의 마음, 생각, 삶의 활

게 되었습니다.

동을 진짜로 부추겨서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앎’을 위한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거대한 문명 뒤에는 항상 노

제목에서도 보듯이 시민으로 사는 것은 노예

예가 있었습니다. 노예가 짐을 날라줬다, 벽돌

처럼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순간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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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을 날라줬다 같은. 고대 이집트의 대단한 문

아닌가.

화유산을 누가 만들었겠습니까, 노예의 힘을 빌어서 이룰 수 있었습니다. 홍수가 많이 졌

제도, 가치, 그리고 행위자

다는데 어떻게 처리했겠습니까? 노예의 힘을

옛날 희랍시대에 노예라는 것은 공공에 관심

빌었습니다. 위대한 문명 뒤에 있는 놓치기

이 없는 사람들. 하라는 대로 일만 하고, 고대

쉬운 노예가 있는데, 이 노예를 고대 시대 노

그리스 도시 국가에서 사사롭게 자기 것만 챙

예로만 한정하면 더 이상 그 말을 쓸 필요가

기려는 사람은 공공에 대한 관심이 없고 비좁

없습니다. 과연 그렇게 노예를 이해해야 될까.

게 사는 사람들. 그들을 바보 같고 천치 같은

노예는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인데 마

인생이라 했습니다. 공공의 삶을 의미있게 생

지못해 일하는 사람인데 과연 몇 천 년 전에

각했죠. 영국 계몽주의 철학자 존로크의 노예

만 있었는가, 지금은 없는 것인가 생각하게

선에 대한 비유가 있습니다. 노예선에 타고

되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먹고사는 것이 제

있는 노예들이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비좁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것 이상 무엇이

은가. 보이는 것은 바다의 한 부분, 들리는 소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이런 식으로 생각한

리는 채찍질만 있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다면 지금 우리가 노예의 삶을 살고 있는 것

지 모르는, 그 시대엔 노예선이 그랬지만, 오

이 아닌지 성찰하게 되죠. 여러분 흔히 친구

늘날 이 체제 속에서 살아가는 것도 바로 그

를 만났을 때 돈이 있으면 자유롭고 돈이 없

런 것과 다르지 않은 것 아닌가. 이 세상이

으면 노예같이 산다, 이런 이야기를 숱하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이 체제 속에서 먹

들어오고 있습니다. 위대한 사상가도, 철학자,

고 살기 위해

사회과학자도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을 그렇게 사는 것이 올바르다고 우리에게 강

그런데 다시 보면 한편의 사람에겐 좀 가혹하

제도 가하고 설득도 하고 아름다운 말로 착실

게 들리지 모르겠지만 자본가는 자유롭고 노

하다고 이야기해주고 그렇지만 공공의 문제를

동계급은 노예처럼 사는가 질문해 보면 두 쪽

외면하고 자신의 문제만 사는 게 비좁은 인생

다 먹고사는데 급급해서 살고 있지 않은가.

을 살아가는 노예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재산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수입이 많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서 시민에 대한 생각으

적음과 관계없이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고

로 옮겨갔습니다. 길거리에 나가 데모도 많이

있지 않은가. 그것 때문에 이웃하고도 자기

하고 시청 앞에도 가기도 하지만 우리가 왜

자식과도 대화 못하고 친구도 제대로 사귀지

이런 일을 하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 녹연합의

못하고. 대화를 한다고 해도 무슨 대화겠습니

운동하는 활동가들이라면, 운동가라면 정말

까?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것인가, 어떻

자기대로 가치와 철학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게 하면 월급을 많이 받을 것인가 그런 이야

늘 생각했습니다. 제 이야기가 늘 옳은 건 아

기만 하면서, 그렇게 경제논리를 강조하면서,

니니까 설득력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말하자면 경제주의로 이 세상을 보려고 하는

현수막만 들고 가면 다 되는 것인가, 활동가

이 자체를 저는 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들이 제대로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우리

이렇게 보면 모두가 노예인데, 똑같이 돈 생

나름 사상가고 우리 나름 녹색 철학자가 되어

각하며 하루, 일주일, 365일, 평생을 그렇게

야 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과 이어집니다. 세

사는데 큰 차이가 있는가? 똑같이 이런 상황

상이 이런 생각 하나로 바뀌진 않을 것입니

속에서 산다면

모두가 노예 아닌가, 체제 안

다. 그래서 제가 사회운동을 바라보면서, 사회

에서 자유스럽지 않게 모두가 노예가 아닌가

운동은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는데 사회운

생각하며 이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 속

동의 방향, 상징, 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녹색

에서 모두가 인간다움을 잃고 살게 되는 것

의 가치가 있어야겠지요. 그러나 녹색 가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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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속품으로 살아가는 것, 세상


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음에 안 든다, 너는 왜 괴상하냐, 너는 왜 별 나냐 하는 말에 주눅 들지 않습니다. 당당한 것이지요. 소수지만요. 여러 보기도 들었는데 희랍신화에 익숙한 사 람들은 카산드라를 들 어봤을

텐데

파국을

알려주는 자가 카산드 라입니다. 저는 이 시 민을 이야기하면서, 시 민의 개념을 격상시키 고 싶습니다. 카산드라 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시민이라고 생

가지고 세상이 바뀌겠습니까, 운동이 되겠습

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식의 역할이라 할

니까. 이 가치를 이 세상에 어떻게 적용할 것

텐데,

인지에 대한 연구도 필요한데 그것을 저는 지

사회에 파국이 온다, 후쿠시마 저리 가

는 파국을

식이라 말하겠습니다. 전문지식. 지식이 있어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시민이라

고 생각합니다. 파국을 예기하는 게 쉽지 않

야겠지요. 그걸 운동가가 다 할 수 없습니다.

습니다.

내가 간디가 되고 함석헌이 되고 환경사회학 자, 환경경제학자가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사

나치 정권에서 8년 동안 수용소에 갇혀 있던

람들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계속 대화의

마르틴 뉘믈러가 남긴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

문을 열어두고 전문가들과 끊임없이 대화할

기 이웃이 공산당이라고 잡혀갈 때 자기는 공

수 있어야 하지요. 행위자에 운동가의 특징이

산당이 아니니 침묵하고 있었고 노조원이라고

있습니다. 행위자가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잡아갔을 때도 자기는 노조원이 아니니까, 유

지요. 이 세 가지 요인들이 합쳐져 사회를 변

대인이 잡혀갈 때도 유대인이 아니니까 침묵

화시킬 수 있다. 우리가 바꾸려고 하는 체제

했습니다. 마침내 자신을 잡으러 왔을 때 자

도 마찬가지입니다. 체제의 가치가 있고 체제

신을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를 위해 일하는 전문가, 유지하기 위해 이랗

는 이야기 모두 알 겁니다. 노예가 이런 것이

는 공무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운동을 하

아닌가. 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좁

는 사람도 이런 가치와 상징, 지식과 연결지

은 공간 속에서 사는 것처럼. 조그만 창밖으

어 생각해야 합니다.

로 보는 비좁은 바다, 전망이 없는 바다만을 보고 사는 것. 먹고 사는데 바쁘기 때문에, 연

파국을 이야기하는 카산드라가 되어야

명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 내가 바쁘기 때문

운동가는 체제의 눈으로 보면 맘에 들지 않는

에 자신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다른 일들

말썽꾸러기죠. 그러나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

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카산드라의 말

은 체제에 질문을 던지지 않고, 체제 속에서

이 들리지 않죠. 사사로운 공간에 갇혀 사는

조용하게 묵묵히 따라가는 것은 노예라고 생

것입니다.

각하기 때문에, 체제가 자기에 대해 너는 마

이런 생각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했습니다.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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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기로 들고 싶은 사람은 외솔 최현배입니다.

까. 조금만 노력하면 상류층으로 간다, 조그만

우리가 지금 한글을 쓰는데, 우리가 어떻게

노력하면 강북에 사는데 강남으로 간다 기대

한글을 이렇게 자유롭게 쓰게 되었는지 잘 질

하면서 삽니다. 강북은 노예고 강남은 자유인

문하지 않지요. 한글을 위해서 죽은 사람들도

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똑같은, 아니면 더 심

있고, 한글 때문에 감옥에서 해방을 맞은 사

한 노예일 수 있습니다. 저는 핵없는 세상 등

람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최현배

에 관여하면서 우리나라 헌법에는 4대 의무,

입니다. 최현배는 한글만 이야기한 것이 아니

권리를 이야기하는데 헌법 만드는 사람이 저

라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지금

항의 의무를 넣지 않을 걸 말하고 싶습니다

말로 하면 시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다. 노예 반란이 싫기 때문에, 시민의 저항 의

자기 일신, 자기 일가만 사는 사람이 수두룩

무를 넣지 않습니다. 시민 저항의무 이것이

하다. 그런 것을 허물고 굶주린 동포를 볼 수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있는 눈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라고 외솔 최현배가 말했습니다. 그런 물음을 던지지 않

이 시대의 슬픔, 후쿠시마나 세월호가 있습니

고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 노예입니다. 노예가

다. 세월호 때문에 이룩한 것이 무엇입니까?

누구에게 질문합니까? 상전에게, 노예 우두머

제가 외국에서 청문회를 본 적이 있는데, 여

리이게? 하라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든 야든 진실이 무엇인가를 위해서 논쟁하고 있었습니다. 진실이 무엇인가가 여야와 관계

시민엔겐 저항의 의무가 있다

없이 핵심입니다. 시민교육의 장이었습니다.

시민은 노예의 삶과 다릅니다. 체제에 빌붙어

그런데 우리나라는 특검이든 특별조사위든여

살지 않습니다. 아무리 어리석다 하더라도 시

야가 갈라져 정치화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자

민은 목숨을 걸고 체제에 질문을 던집니다.

기들은 관계없는데 마치 언론이나 국민이 정

어렵지요. 시민은 너무 어렵습니다. 어려운 일

치화하는 것처럼 호도합니다만 패를 만들어

이지요. 강제수용소에 끌려가는 것을 생각하

하나는 변호하고 하나는 공격하며 정치화하는

지 않고 나는 시민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좀

것은 그들입니다.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 얼마

건방진 시민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반정부,

나 슬픈 시대에 사는 것입니까, 또 먹고 사는

이게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런데 쉽다는 것이

문제에만 매달려 있는데 이것은 여야가 따로

무엇입니까? 쉬워서 가만히 있어도 시민으로

없습니다. 예전에는 박정희 정권에 대해 군사

굴러가게 되는 것은 없다. 우리나라도 그렇지

독재라 했는데, 이제는 그런 이야기가 사라졌

만 서양에서 시민사회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습니다. 여야가 모두 먹고 사는 데에 파묻혀

숱한 어려움과 고비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이

박정희는 우리를 먹여 살려준 이라고 칭송하

기고 시민사회를 만든 것입니다. 그걸 이기고

는데 의견일치를 보고 있습니다. 놀랄 일이

모든 사람이 병원을 가는 사회복지가 이뤄진

아닙니다. 지난 50년 가까이 먹고 사는 것 이

것입니다. 어진 대통령이 있어서 우리를 보살

상의 중요한 문제는 없다고 교과서를 통해,

펴 준 것이 아니라 투쟁의 결과입니다. 노예

부모를 통해, 새마을운동을 통해, 친구를 통해

의 삶은 투쟁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직장에서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 논리로 세상

체제에 빌붙어 살면서도 자기가 노예라고 생

을 바라보게 됩니다. 다른 논리가 없습니다.

각하지 않죠. 그래서 노예 해방은 아무도 생

경제 이외 더 넓은, 깊은, 더 높은 문제가 있

각하지 않습니다. 노예라는 신분이 예전과는

을텐데 그런 것들을 보지 못하게 우리를 짓눌

달리 불분명해졌기 때문에 노예해방을 위해

러 놨습니다. 노예의 함 속에 우리를 들어가

일하는 선구자도 없고, 노예반란도 없습니다.

살게 만들었습니다. 먹고 사는 것 문제 이외

자기는 노예가 아닌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니

에 잣대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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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인권 모두 먹고


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사는 것 이후의 문제로 얼마나 사치스러운가

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4년이면 할 수 있

로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었는데 이걸 더 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고민

그것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운 문제입

이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실존적 경험

니다.

을 갖고 있다 보니, 선생님의 발표문이 막 야 단을 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선생님 발표

시민으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문에 대한 제 객관적인 견해라기보다는 노예

쉬우면 오천만 동포가 모두 시민이 되었습니

삶을 자발적으로는 아니지만 선택할 수밖에

다. 어려운 일이지요. 경제논리의 낱말로 한다

없는 사람의 변명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

면 공짜가 없습니다.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다.

아니라 굉장한 생각과 굉장한 대화, 굉장한 협력이 필요합니다. 혼자 할 수 없죠. 그래서

저는 삶에서 경제부분만 중요하다는 것에 동

녹색연합, 이런 포럼 등이 있는 것입니다.

의하지 않고 먹고 사는 문제만 힘쓴다면 인간 다움이 줄어든다는 것, 인간답게 살지 못한다

[최종덕]

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시민적 덕성, 시민적

시민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 혼자되는 것도

실천 등을 지금 행하는 데 있어서 사회경제적

아니다. 시민은 그냥 시민이 아니라 오히려

조건을 헤아리지 못한 채 시민적 가치, 시민

저항 의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

의 삶을 목숨을 걸고 지키는 것, 고결한 것,

니다. 그래서 저게 맞을까 하는 질문과 의심

저항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한편

을 갖는 것이 중요한 의미인 것 같습니다. 우

에서 우려가 됩니다.

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박영신 선생님의 말씀

예전에 88만원 세대라는 책이 나오고 했을

을 질문 없이 받아들이면 노예입니다. 질문이

때 제가 만났던 학생들은 왜 우리한테 짱돌을

중요합니다. 질문했다가 전체 흐름과 맞지 않

들라고 하는 거지라고 불평하는 걸 많이 봤습

으면 어쩔까 라는 자신에 대한 의심은 필요

니다. 저는 짱돌을 들라는 메시지에 충분히

없습니다.

동감하면서도 짱돌을 들어야한다는 것과 더불 어 짱돌을 들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주도

[박영선]

면밀하게 조사하고 세심하게 밝혀주는 것이

자발적인 노예가 있을까

진짜 시민됨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 아닌가.

녹색연합의 이런 자리에 오게 되면 텀블러만

선생님의 발표 자체가 먹고사는 것 신경 쓰지

봐도 난 텀블러 안 갖고 왔는데 하며 이질감

말고 시민의 삶을 살라는 건 아니지만 현실

을 느낍니다. 평소에 낯선 곳에서 많이 배우

안에서 노예의 삶조차도 감당하지 못하는 환

고 그게 자극이 되고 실천의 계기를 주기 때

경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아는 지인은

문에 많은 것을 얻겠지 하는 바람으로 앉아

8천원짜리 치킨을 파는데, 그 8천원짜리 닭을

있습니다. 박영신 선생님께서 발제문에서 제

못 팔까봐 선거날 문을 못 닫는 사람입니다.

가 의문을 갖고 있는 것 위주로 발표해 주셨

저는 그 사람에게 왜 먹고 사는데 연연하냐고

습니다. 시민의 내용을 격상시키고 싶다에 당

비난할 수만은 없습니다. 이번 메르스 문제에

연히 동의하지만, 목숨까지 걸어야한다는 것

있어서도 병원의 비정규직 외주 노동자의 고

에 부담을 갖습니다. 대학 졸업할 때 이제 고

통이 눈에 들어 오더라구요. 그들에게 아무리

문당하지 않겠구나 특히 여성으로서 성고문을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더라도 시민적 윤리

당하지 않겠구나 생각하며 안도감을 느꼈습니

를 모른 척하면 되겠어 라고만 말할 수 없습

다. 저는 학생 운동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3

니다. 한편에선 시민적 가치, 시민적 삶이라는

학년 때 또 다른 운동들을 하는 선배들을 보

지향에 대해선 강조되어야 하지만 또 다른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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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편에선 그런 메시지를 강조하는 것이 놓치는

많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평생교육에서도 시

상황, 현실에 대해서도 봐야 하지 않나 하는

민참여라는 것이 있어 자발적 영역에 대한 교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 강조하셨던

육이 확보되어 있습니다. 그러데 녹색시민교

시민됨의 가치, 실천, 행위자로서의 역할을 좀

육이라는 것이 태동하면 시민사회는 하나의

하려면 사회경제적 조건이나 정치적 환경을

통합성을 지닌 전인적인, 인간다운 사람이 되

구축해야 한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분적인 시민으로 양

생각합니다.

성되지 않을까라는 고민도 들기도 합니다. 특 히 민주화 이후에 제도적 환경이 바뀌어서 그

이런 관점은 시민이라는 개념이

태동했을 때

렇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시민들과 숲해설

부터 발생했던 것 같습니다. 태어난 신분이

교육 만들었더니 숲해설가 교육이 산림청 인

노예여서, 태어난 신분이 시민이었던 것이지

증이 되면서 자원활동가들이 유급 숲해설사가

요.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가 유죄가 있다고

되는 걸 봤습니다. 또 하나의 녹색교육이라는

입증하기 위해 모였던 시민계급들은 노동하지

것이 분절적이고 분화된, 시민사회가 봉착하

않았습니다. 그건 자기가 결단한 거, 공적시민

는 문제와 맞닿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으로서 자기가 형성한 게 아니라

태동한 것

많이 인용되는 국제교육성취도평가협회의

이지요. 근대 이후에 있어 투표권이 제한되고

내용을 보면 융합을 많이 이야기합니다.

개방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단순히 현대에

또한 참여적이며, 쌍방향적이고, 생활과

시민됨을 알지 못한 채 노예적 삶, 혹은 선생

관계되고, 권위주의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님께서 말하는 노예됨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실행되어야 한다 등을 담고 있습니다. 이

과연 자발적인 것이냐, 그렇지 않다는 생각도

렇게 시민교육의 내용은 점차 확장되고 있는

듭니다.

데 이를 전달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협소해지 고 있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녹색시민교육, 또하나의 분절적, 분화된 형태

환경그룹

이 진행하는 교육들이, 업그레이드되면서 포

라면 우려

용적인 부분으로 확장된다면 지지하는데,

녹색시민이라는 이야길 들었는데 저는 시민교

하나의 영역을 만드는 것으로 국한된다면 신

육 강의 전담 교수라서 시민교육의 여러 현안

중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나 강의 등을 보는데 이미 생태적 감수성이 라고 하는 중요한 내용들은 상징적 표현을 하

저에 대한 성찰을 주는 발제문을 읽으며 곰곰

자면 시민권을 얻은 개념입니다. 시민 앞에

이 생각했을 때 무엇이 강조되어야 할까 생각

붙은 레떼르, 녹색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

했을 때 일상과 관계입니다. 작은 것이 아름

는가. 제가 활동했던 사회운동 공간에선 민주

다울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포괄하기도 하다

시민이라는 말을 많이 썼는데 민주시민은 무

고 생각합니다. 기후협약 하나에 정치권력 전

엇인가. 학생들과 또 사회에서 교육할 때 여

체가 어떻게 움직이는 지 알 수 있다는 점에

기 언급되었던 가치들 공감, 연대, 비판적 사

서, 일상이라는 것이 권력 자체이기 때문에

고력, 등 무수한 덕목과 가치들과 함께 생태

시민교육의 중요한 소재와 재료가 될 것이라

적인 부분, 환경 부분이 이미 굉장히 중요한

고 확신합니다.

덕목과 실천적 영역으로 들어와 있는데 이것

두 번째는 관계입니다. 인간은 버텨내기 힘듭

을 따로 강조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니다. 지적인 정보들을 획득하는 것, 실천의

고민이 들구요. 이는 제도화와 연관이 있는데

근거들을 찾아내는 것, 행위자가 담보해야 하

요. 환경교육 뿐만 아니라 법, 경제, 생활 소

는 것 세 가지를 말씀하셨는데 이런 것들이

비자 등 자기 영역을 강조하는 시민교육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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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관계에서 충만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배

는 것이 녹색운동에서, 시민을 이야기할 때도

우고 실천하는 것들 모두가 관계에서 충만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지고 넓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또 녹색, 환경이

지난 주에 유럽에 트램 관련 연수를 다녀왔습

라고 하는 가치가 공교육이나 제도에서 실현

니다. 지역에서 교통 관련 운동을 하고 있는

될 때 조금 더 부드럽게 접근되는 이점을 활

데 아직까지 한국에서 교통수단으로 트랩을

용해 많이 확산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러

도입한 적이 없습니다. 유럽에선 대중적인 교

려면 초중등학교에 도입되는 자유학기제나 인

통수단인데, 한국은 대부분 자가용, 지하철 같

성교육 시스템, 혁신 학교 등을 멀리 있다 생

은 것이 주 교통수단입니다. 대전에서는 지하

각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좋겠습니

철이 공공교통수으로 건설 운영이나 대전시

다. 오는 시민만을 받을 것이 아니라, 확산성

재정이나 규모에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전

을 가지려면 제도 속으로 들어가 모델을 만들

에 적합한 것이 따로 필요하다 판단했고 그게

고, 시민에 의해 점점 퍼져 녹색시민이, 노예

트랩(노면 전차)입니다. 80년대 학번 선배들

의 삶이 아니라 시민의 삶을 사는 이들이 늘

이 학습을 할 때, 앞으로 노동자들이 모두 벤

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츠를 타는 것이 꿈이라고 농담처럼 했는데 대 전 시민 전체가 벤츠를 탈 수 있ㅅ브니다. 벤

[최종덕]

츠 굴절버스를 대중교통수단으로 도입해서 운

사회경제적 조건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하셨

행하면 자가용을 억제하고 대전 시민이 벤츠

습니다. 저항 주체로서 시민과 사회경제적 조

를 타는 것이 됩니다. 대전 시민 60%가 자

건을 고려하는 시민 두 가지가 상충하는 것은

가용을 사용하는데 2~30%로 낮추고 기존의

아니라고 봅니다. 박영신 선생님이 말씀 안하

만원 버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대전

셨지만 원고에는 공동체 개념이 많이 나옵니

의 도시환경, 기후변화, 에너지 문제에 중요합

다. 이 개념이 사회경제적 조건을 같이 개선

니다.

해보자라, 왜냐하면 혼자 안 되거든요. 8천원

진보, 특히 환경운동 진영은 세련되지 못한,

치킨집 사장도 왜 가게를 못 비우나, 이런 상

가치중심을 원칙적으로 많이 이야기 합니다.

황을 한편으론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수용할

일반 시민이 솔깃할 수 있는 손에 잡힐 수 있

수 있지만, 한편으론 다른 치킨집도 다 문닫

는 것 바로 저것이다, 라고 할 정책들을 잘

고 같이 투표하러 가는 환경도 만들 수 있다

만들어내고 있는지, 저는 녹색시민이라면 가

는 것이지요.

치는 당연히 옳고, 나아가 실행 가능한 능력 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깍합니다. 능력있는 녹

[양흥모]

색시민으로서 이런 숙제들을 어떻게 풀 것인

가치의 문제가 아닌 구체적인 실행의 문제

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발제문을 통해 우리가 그동안 생각할 시간 없 이 수없이 써왔던 ‘시민’이라는 말에 대해 다

지역의 6월 항쟁 28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저

시 한 번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탐욕에

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도 갠지스강

대한 본질적인 얘기들을 해주셨는데요. 예전

하구 보라마라 섬 이야기를 했는데 이 섬은

에 노예 기반으로 했던 시민의 탐욕을 지금은

방글라데시와 인도가 독도처럼 영유권 싸움을

노예 대신 에너지가 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하고 있는 섬입니다. 수십년 동안 영토분쟁을

유지를 위해 노예가 하던 일을, 에너지가 하

했던 섬인데 기후변화로 해수면 상승으로 인

고 있습니다. 에너지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한

해 이 섬이 가라앉을 위기가 닥치자 섬 주민

인식, 새로운 변화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이 인도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정치적,

얼마나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을 하

현실적인 과제들이

7

기후변화 문제 앞에서 무


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색해지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노동이

어린이마을 도서관이나 로컬푸드 생산자 조직

나 남북관계 등의 문제가 있지만 전지구적인

이나 소비자들과 하고 있는데요. 이 과정에서

환경문제도 우리 생존이나 적응, 대안을 위해

운동이 생활, 지역 이런 것들에 기반하지 않

서 시급하게 검토해야 할 문제입니다. 6월 항

고서는 실제 지역 주민들에게 공감 받을 수

쟁의 현대의 중요한 과제들을, 환경문제도 추

있는 운동, 정책들을 개발하기가 어렵다는 것

상적인 문제가 아니라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

을 더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지금

라 지금부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 했

과제들이 구체적으로 생기고 있는데, 우리 녹

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런 문제에 대해 공

색연합이 지역에 녹색시민을 위한 어떤 장소

감하지 않는 분위기 더라구요. 여전히 남북관

가 되어야 할 것인가. 전업활동가가 일하는

계와 노동에서 이야기하는 시급 만원 등에 대

사무실이 아니라 고민을 시민들과 소통하고

해서만 중요하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아직

시민들이 녹색연합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어떤

소통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새삼 느낍니다.

기회와 경험을 가질 수 있는 것을 어떻게 만 들 것인가. 저희가 우스개 소리로 시민은 녹

녹색시민은 어떻게 다른가

색연합 회원인 시민과 아닌 시민 둘로 나뉜다

저는 녹색연합의 강령과 가치 때문에 녹색연

고 말하는데, 사실 우스개 소리가 아니라 활

합에 들어왔습니다. 저를 꽂히게 한 것은 녹

동가로서 중요한 게 녹색연합 회원이 일반 시

색대동세상이라는 개념이었는데, 당시 대학가

민과는 어떠한 차별성이 있고, 녹색회원은 어

에서 축제가 대동제였고, 대동세상이 어찌보

떻게 거듭나야 하는지, 우리는 그들과 무엇을

면 한국식 민주사회를 지향하는 말이었다 생

할 것인지. 녹색연합이라는 조직이 녹색시민

각합니다. 저희는 그 앞에 녹색을 붙여 녹색

을 위해 어떤 역할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

대동세상이라고 창립때부터 사용한 것이지요.

을 계속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지역의 선생님들 통해서 묵자사상도 공부했는데, 공자와 묵가가 세상을 양분하던

[최종덕]

중국고대사회에서 묵가가 지향하는 이상사회

시민이라는 개념을 조금 좁혀 주민운동, 실질

가 안생생인데 이를 한국식으로 하면 녹색대

적으로 깨어있는 삶을 구현하는 운동들이 중

동세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역사에선

요하다. 에너지자립운동, 마을운동 등. 우리

정여립이 처음으로 대동세상이라고 말했는데

녹색연합과 같은 시민단체가 일반 시민이나

대동세상은 평등평화세상인데, 나아가 녹색대

주민에게 줄 수 있는 소통과 연대의 의미가

동세상은 모든 뭇생명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

무엇인지가를 이야기했습니다. 형식에 얽매이

루는 것이라고 배우고 고민해 왔습니다. 그런

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중요

고민들을 하면서 지구적 관점에 더해 주민운

할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인간의 본질, 감정

동이 녹색시민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인 본성, 탐욕부터 시작했는데 이를 부정할

특히 땅, 그리고 정주의식에 기반한 운동이

수는 없습니다. 본질적인 문제지요. 본질적인

되지 않으면 뿌리 없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

문제부터 실천의 문제까지 관련된 모든 이야

다. 최근 지역에서 에너지자립운동, 로컬푸드

기를 자유롭게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운동이나 지역의 교통 운동을 하면서 지역의 정주의식,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마을 운동,

[윤기돈]

이런 것에 기반한 환경운동, 녹색운동의 새로

(녹색연합 에너지기후팀)

운 방법들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몇 가지 걸리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오

래서 저희는 지역 풀뿌리 단체들과 연대라고

늘날 어떤 것이 선, 악이다, 어느 것이 욕망이

하기는 그렇지만, 같이 운동 하고 있습니다.

고 어느 것이 탐욕이라고 규정짓는 것이 어디

8


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까지 가능할까? 탐욕의 선은 어디까지인가.

추구하는 태어난 사람 정도가 아주 낮은 수준

예를 들면 저는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공장

의 단계라면 그 다음 네이션, 글로벌 마지막

식 축산을 바라보면 그럼 채식이 선이 되는가

이 지구입니다. 이런 것은 너무나 익숙하고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채식이 옳다가 아니라

시민의 학술적 개념이 아니라 많은 실천적 영

어디까지, 탐욕이란 어디까지, 적정한 선은 어

역에서 생태적 감수성, 녹색, 지구, 동물 다

디까지인가. 또 하나는 개인의 권리가 확장되

생각하는 부분들이, 포용적 내용들이 들어와

고 개인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을 더 이상 용

있습니다.

납하지 않는 사회입니다. 그렇다면 공공성을 확대하고 증진하기 위해서 개인의 수용은 어

[양흥모]

디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가. 개인의 권리가

자가용 중심 교통 정책에서 대도시 같은 경우

확장되면 공공성은 저절로 확장되는 건가. 그

자전거만으로는 대안이 될 수 없어 트램이나

건 마치 시장이 모든 역할을 할 테니 시장에

버스 같은 공공 교통의 획기전인 시스템이 필

맡기자는 것에 다름 아니어서 개인의 권리와

요합니다. 채식도 모든 시민들에게 채식을 이

공공성이 충돌하는 지점이 있을 때 이 지점을

야기하기 어려운데 로컬푸드나 제철음식 같은

시민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이야기할 것인가

걸로 많은 과제와 의미를 풍부하게 할 수 있

이야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영선 선생

습니다. 탐욕 문제에 대해 다양한 시민들의

님께서 녹색시민이 분절적이지 않나 했는데

욕구를 이해하고 이런 것을 녹색연합답게 어

녹색시민은 협소한 것이 아니라 확장성, 포용

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과제화할 것인가가 중

성의 녹색 시민입니다. 자연을 대상이 아닌

요하다, 인간의 탐욕이라고 하면 그렇지만 욕

존재로 바라보는 녹색가치 속에서 지금 사실

심과 욕구는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하지 않나

시민을 소득과 지위에 따라 차별을 둔다면 자

생각합니다. 우리는 현실 운동을 하는 운동

연을 하나의 존재로 바라보면 이런 가치가 시

단체이기기 때문에 시민의 여러 가지 욕구와

민들에게 어떻게 안착되어 오히려 사람들 사

조건, 환경 들을 보고 녹색연합다운 방법 모

이의 차별을 어떻게 감소시킬 것인가까지 확

색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대하면서 이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양흥 모 선생은 능력을 이야기 했는데, 우리는 시

[배보람]

민이라는 가치 속에서 능력, 효율 보다는 서

(녹색연합 정책팀)

로의 빈틈을 어떻게 메꿀 것인가를 더 이야기

발표를 보면서 시민은 멘탈이 굉장히 강한 존

되어야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들은 시민교육,

재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연극 배

시민운동에서 어떻게 이야기해야 되나 고민하

우가 죽은 지 5일 만에 발견되는 기사가 나왔

고 있습니다.

고 작년 봄에는 30대 젊은 여성활동가가 자 살을 했습니다. 진보정당운동을 하던 활동가

[박영선]

인데. 저는 그런 부분에서 박영선 선생님이

녹색시민이라는 개념이 포용성을 갖고 지향한

말씀하신 시민의 가치와 정치경제적 상황에

다는 것에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현실에서 이

대한 고려가 되야 한다는 부분에 설득이 되면

미 지구 전체를 대상화하지 않고 본질적인 시

서 또 한편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분이

민의 실현으로 보는 것은 생소하지 않습니다.

설명한 시민은 멘탈이 강한 존재라는 겁니다.

제가 책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 책에선

저는 오히려 멘탈이 불안해서 그 여성 활동가

정체성 같은 걸로 인간을 넘어 시민을 1.0버

가 죽은 날 제가 취했던 태도는 저처럼 활동

전부터 6.0버전 까지 말하는데 마지막 그림이

하는 다른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

초록별, 지구입니다. 공공을 무시한 채 사익을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내 친구가 자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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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불안감이 저에겐 늘 존

다. 그만큼 사회가 바뀌는 것입니다. 사회가

재했습니다. 그 여성은 여기서 말하는 시민의

바뀌기 때문에 옛날의 방식으로 바뀐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물질적으로 어려웠지

서 사는 것은 어긋장이 납니다. 살아갈 방법

만 태도와 방향은 시민의 삶이었습니다. 저는

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낯선 사회가

시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런 부분들이 빠

돼서. 탐욕에 대해 말한 뒤르케임은 변화가

져있다고 생각합니다. 계급적인 부분일 수도

일어나는 사회, 과거의 것이 깨지고 새로운

있고 사회 경제 체제 문제일수도 있는데 이

것이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안이 생긴다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질

했습니다. 이 사회 자체가 불안하고 나의 삶

수밖에 없는 어떤 불안감, 존재 자체에 대한,

도 불안합니다. 불안한 가운데 안정을 가져오

시민이고 노예고 상관없이 삶 자체가 끝날 수

는 것은, 안정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보수

있다는 불안감을 다들 안고 사는데 거기에 대

진영의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정을 가져

한 설명 없이, 거기에 대한 이야기 없이 이렇

오려면 우리 개인이 이 사회라는 결속체 속에

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지금 시대에서? 하는

잘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야기했듯

고민이 듭니다. 저처럼 멘탈이 약하면서 저항

이 과거의 것이 깨지고 새로운 것은 들어오지

하는 삶을 사려는 사람들, 좀 더 나은 삶을

않은 유동적인 사회에서 개인이 기대고 싶은

만드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시민성

것이 있으면 좋겠는데 기대고 싶은 것도 잘

이라는 것을 이야기할 때 이런 부분도 함께

떠오르지도 않고 기댈 곳도 없어 굉장히 불안

이야기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한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가

세상에

능성이 자기만 생각해 하는 것이죠. 사회가 [박영신]

불안하고 연결될 때도 없으니 나 혼자 챙겨야

제가 다 대답하긴 어렵습니다. 함께 고민하는

겠다는 것, 이것을 이기주의라고 이야기합니

거죠. 시민이라 하면 이 세상에서 저항하고

다. 전부가 자기 것을 챙긴다고 했을 때 공동

투쟁해야 한다, 고분고분하게 살지 않는다, 그

체, 사회, 결속력 이런 것이 점점 없어지고 사

정도의 품위가 있어야 시민이라는 것입니다.

회는 점점 더 불안해지게 됩니다. 또 하나 동

깃발 든다고 다 시민은 아닙니다. 품위 있게

전의 다른 면이라 할 수 있는데 규범이 없는

사는 건 세상 굴러가는 방식으로 세상에 자기

상태,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당한 삶이고 어떻

를 던져서 타의에 의해 살아가지 않겠다, 자

게 사는 것이 모범적이고 인정받는 것인지도

기가 비록 약한 것 같지만 싸우다가 죽는다

깨지고 없습니다. 무규범상태. 남녀관계도 규

하는 거죠. 이렇게 말하면 강한 것처럼 되는

범이 없습니다. 규범이 없는 사회니까 자기

데 저항하고 투쟁하다 맞서다 살다 죽어야지,

마음대로 살고 불안정하기도 한 것입니다.

노예처럼 비굴하게 살다 죽는 것은 얼마나 부 끄러운가요. 맞서서 살아야 하는데 지금 얘기

그러니까 저항하며 산다는 것, 질문하며 산다

가 나왔듯이 우리 삶이 굉장히 불안하다. 거

는 것은 이렇게 아무렇게나 자기 혼자 사는

기에 대한 논의를 하자면 그렇다면 왜 불안한

것이 과연 옳은 삶인가 질문을 던지는 사람

가. 왜 불안하게 되었나 여러분도 여러 가지

사람끼리 만나고 일을 꾸려나가는 것입니다.

생각할 수 있고 사회학에서도 여러 가지로 이

우리라도 이렇게 살자, 운동을 하자고. 그것이

야기하겠지요. 제 나름대로 좀 더 말하면 이

운동이 되고 공동체가 될 것이고 대안운동을

사회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급변하지 않으면

일구는 일꾼이 되고 할 것입니다. 이게 정답

불안감이 적고 안정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급

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19세기 후반에 자

하게 바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대학 다닐

살 연구를 한 뒤르케임은, 그 당시 유럽이 얼

때와 지금 대학생들의 생각이 아주 다를 겁니

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겠습니까? 자살도 많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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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지요. 우리 주변에도 그렇고 자살이 어디 기

라 바깥 사회의 능력과 비슷한 기준이지요.

댈 곳이 없을 때 자기 엄마와도, 남자친구와

근육도 있어야 하고 술도 잘 마시고 그렇게

도, 아버지와도 이야기할 수 없는 고립된, 누

마시면서 나자빠지지 않아야 하는 아주 강건

구하고도 이야기할 수 없는 개인만 먹고살면

한 사람만 녹색연합에 들어오는 것 아닌가.

된다는 흩어져 사는. 인생은 무엇이다고 뚜렷

그래서 저는 장애인 등 사회약자가 있어야 한

한 답이 주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어려

다고 말했습니다. 몇 이라도 장애인도 같이

움이 있을 때 이야기할 곳도 기댈 곳도 없어

일해야 한다고 해서 활동가 중에 장애인이 들

서 자살로 이어지는 것이라 했습니다. 여러분

어왔습니다. 녹색연합이 밖에서는 운동조직이

세대는 인터넷에서 네트웤이 잘된다고 이야기

지만 녹색연합 자체가 하나의 모범된 공동체

할지 모르겠지만 진정 깊은 수준에서 삶과 삶

가 될 수 없을까? 사회 약자를 보듬고, 목숨

이 만나는 연대성, 결속력, 솔리데리티, 이런

끊고 싶은 마지막 단계에서 함께 울 수 있고

것이 된다면 거기에 규범도 있고 삶의 의미도

기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어려운 점이 있 을 때 혼자 목숨을 끊을 가능성이 줄어들 것

[이승훈]

이고 서로 기대고 서로 도움이 되고, 이게 사

(숙명여대 교양학부)

회고 공동체입니다.

자살 이야기는 너무 가슴 아픈데, 그만큼 우

그렇지 않으면, 체제, 복종, 명령에 따르기만

리 사회가 한 사람이 시민으로서 살기에 장애

하면 노예가 되고 돈벌이만 하게 되고 그러면

물이 거대하고 강고하다는 생각을 역으로 하

공동체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 아픔을 나눌

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할 수 있을까도 감히

수 없는 비정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녹색연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시민으로서 저항하며

합이 나눔의 공동체, 운동을 하면서도 운동공

사는 삶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게 하

동체를 만들어, 어려운 문제를 서로 나누고

는 몰아가는 체제의 문제나 탐욕과 공공선의

기대고 도움도 서로 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 개인의 권리와 공공선의 경계가 어딘가

런 걸 녹색연합에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는 것도 모든 것들이 다 연관되어 있다는

녹색연합도 사회약자에 대한 관심, 생태, 자원

생각을 합니다. 그런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순환 이런 것들을 강령으로 삼고 있는데, 사

시민으로서 살지 못하게 하는 체제가 얼마나

실 녹색연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능력있는, 강자 들만 들어옵니다. 체력도 좋아야하고, 술도 잘 마 셔야하고. 굉장히 강건해 야 합니다. 제가 녹색연 합 대표로 있을 때 기여 한 것이라면 우리가 사회 약자, 생태, 순환을 이야 기하는 여기에 능력있고 강자만 들어오면 되는가 라는 걸 제기한 것입니 다. 녹색연합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는 사람, 그것 도 강령에 맞는 게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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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강한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시민의 삶과 동

대립이 일어난다 생각합니다. 사회 전체를 보

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라는 것

면 상대적이고 구성되는 것이라 말했지만 지

입니다. 공과 사는 고정된 실체가 있다기보다

금 이 시대의 제가 일상생활을 할 때 이 문제

역사와 문화에 따라 다르게 규정되어 왔거든

는, 이 경계를 내가 어디로 설정할 것인지를

요. 예를 들면 벨라가 책에서 이런 결론을 이

두고 싸우는 것입니다. 사회 차원이 아니라

야기하는데 미국사회를 분석하면서 미국에 수

내 차원에서 보자면요. 선생님께서 글라스고

많은 자기중심적 세대가 있다 하는데 천성이

에 계실 때 주신 편지가 있는데 편지 중간에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이기적으로 생각하는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다고 써주신

미국의 문화가 있을 뿐 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글귀가 있습니다. 시같이 쓰셨는데 저는 그

탐욕이나 개인의 권리라는 것도 구성된 것이

글귀를 늘 외우고 공부하는 입장에서 평생 잊

라 생각됩니다.

지 않으려 합니다. 깊은 생각, 넓은 읽음, 자

제가 98년 대학원생시절 박영신 선생님께서

기다운 논평, 당당한 삶, 그리고 오직 앎을 바

당시 계셨던 스코틀랜드 글라스고 라는 도시

라볼 뿐, 다른 것들은 천하게 여기기. 제가 자

에 배낭여행을 갔습니다. 그 때 글라스고는

주 이 글귀를 자주 말합니다. 이걸 말하면 대

유네스코 세계의 아름다운 도시로 선정되어

부분 다 좋은데 왜 오직 앎을 바라보고 다른

도시 전체가 공사 중이었는데 외벽에 철근을

것은 천하게 여겨야 하냐고 질문을 많이 합니

대고 건물을 수리하고 있었습니다. 스코틀랜

다. 다른 것들도 귀하게 여기면서 앎을 바라

드는 자본주의 체제인데 저렇게 외벽에 철근

보면 안되냐고 농담반 진담반으로요. 제 개인

을 대며 19세기 20세기 초반에 지은 건물을

의 차원에서 보면 다른 것들을 천하게 여기지

수리를 하면서까지 사는 것보다 헐고 새로운

않는 순간 앎을 바라볼 수 없게 되거든요. 개

편리한 건물을 짓고 사는 것이 경제적으로 따

인 차원에서 이것은 심한 투쟁이고 싸움이다

져보면 비용이 덜 들지 않을까 하고 박영신

생각이 들고 이런 싸움을 포기하는 순간 다시

선생님께 질문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

노예의 삶으로 그냥 휩쓸려 가는 것이 아닐까

구하고 그 사회가 전통을 더 존중하고 지키는

생각합니다. 이건 사회와 어떻게 싸울 것인가

것이겠지요. 그 사람들은 권리의식이 없었겠

와는 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생각을 해 봤

는가. 분명이 있었겠죠. 그런데 그들이 생각하

습니다.

는 권리는 우리의 그것과 달랐던 것이죠. 공 공선과 사익도 대립되어 생각하지만 또 한편

[유현상]

으론 어떻게 환경문제가 공익이고 내가 돈 많

(상지대)

이 버는 것은 사익이라고만 규정할 수 있을까

제가 고등학교 때 교회를 다녔는데 공부 안하

요? 환경이 망가지면 내가 돈 버는 게 의미가

는 핑계로 대학을 안가겠다고 말하곤 했습니

없는데. 이는 정도의 문제고 결국 사회적으로

다. 그러다 12년동안 타의로 학교 다닌 게 좀

구성되는 문제입니다. 지금 이 사회가 그렇게

억울한 생각이 들어 공부를 시작해서 대학가

느껴지는 사회라면 좁고 천박한 수준의 이해

겠다고 교회에서 말했더니 신학대학 갈 거냐

관계에만 있고 박영신 선생님께선 그것에 싸

고 묻더군요. 그래서 미쳤냐고 말했습니다. 목

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신거라 생각합니다.

사가 되는 게 미친거냐 묻는 말에 그럼 미친 거지 아니냐고 대답했습니다. 신학, 목회라는

또 매사에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야 하는가를

게 마음도 없지만 도덕적 삶을 선택하면 내가

개인 차원에서 조금 생각해보면 내가 일상을

힘들거 같고 즐겁지 않고 즐거운 걸 두고 외

살아가며 사소한 문제에 직면할 때, 하나하나

면해야 되고 즐거움에 빠지만 죄책감을 가지

의 선택을 할 때 선생님이 말씀하신 수준의

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악 문제

12


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를 이야기하고 멘탈 이야기를 했는데 연결해

자연스럽게 자기와의 투쟁을 하도록, 투쟁한

보면. 도덕적 기준이 강요되는 삶을 선택하면

번 해볼까 유도를 해야 하는데 너무 무겁게

내가 많이 힘들 것이라고 생각. 그래서 죄책

다가가면 과도한 짐, 역효과가 생기지 않을까,

감 안 느끼고 즐겁게 살자고 생각했습니다.

확산을 어렵게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시민 1.0 버전에 6.0 버전이 있다 고 하셨는데 6.0 이상이면 목사 이상의 인물

[박영신]

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명색이 철학을 하

쉬워서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는데도 저는 주관적인 것을 많이 보는데 내

자기한테 편안하다고 생각해서 살고 있단 말

마음에 비추어봤을 때 6.0 되는 삶은 많은 사

이죠. 앞서 나치에 의해 8년 감옥 갇힌 사람

람들이 거부하지 않을까 생각 듭니다. 어릴

처럼 처음에는 쉽게 살았는데 결국 자기도

적에 주변 친구를 보면 아버지가 목사, 교사

잡혀가지 않습니까. 쉽게 산다는 것이 어떤

였던 친구들이 많이 힘들어 하더라구요. 그러

잣대로 쉽게 산다는 것인가. 누가 쉽다고 말

면서 그 길을 포기하더라구요. 목사 아버지

하는 것인가? 우리 문화는, 세계 문화도 그런

지겨워, 우리 아버지 선생님 아니었으면 훨씬

지 모르지만 쉽게, 가볍게 산다는 것이, 심각

자유로웠을거야 이야기를 합니다. 합리적이고

하게 살지 않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건강한 시민이 된다는 것이 높은 도덕적 요구

배우고 가르쳤습니다. 부모도 학교도 스스로

에 부합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쪽에서 보 면 어렵게 보일 수 있지만, 이걸 강조하는 사

(박영신 : 왜 그렇습니까?)

람, 이렇게 사는 것이 더 보람되고 의미 있고 내 적성에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쪽에서 보

힘드니까요. 저는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면 쉽다고 생각하고 저렇게 사는 사람들이 참

100m 달리기를 완주해 본 적이 없습니다.

추하게 보일 겁니다. 자기가 어떤 가치를 가

60미터 뛰면 숨차서 뛰기 싫다고 하면 선생

지고 사는 것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제가

님이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어려운 말도

기대고 있는 중요한 생각들이 대부분 서양학

아닌데. 저는 자본주의를 망친 주범 중에 하

자들의 이야기인데 설득력 있지만 때론 걸릴

나가 공리주의라고 생각하는데 공리주의 성공

때가 있습니다. 보기를 들면 아담 스미스의

요인은 인간의 탐욕을 인정해 버렸기 때문이

경우 우리는 국부론 밖에 모르는데 그 전에

라고 봅니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선이라

도덕감정론 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사람과 사

고 하는데, 선은 관심도 없으면서 탐욕을 인

람 사이에서 어떻게 소통하고 지내는가, 도덕

정하는 순간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에요. 전략

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스코틀랜드의 계몽주

적 차원에서 시민운동도 시민 되는 것이 어렵

의처럼 사람 사이에 잘 지낼 수 있다, 왜냐하

지 않다고 이야기를 해야 되지 않을까. 어렵

면 내가 이 속에서 나 혼자를 고집 못하고 여

다고 이야기하는 순간 나는 저기 끼면 안 돼,

러분의 느낌에 맞춰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

계속 회비내야 하고 모임 나가야 하고 중국집

니다. 여러분도 여기서 졸린다 해도 졸리는

에서 나무젓가락 주지 마세요 해야 한다고 하

시늉을 잘 못 할 것입니다. 이 압력 때문에.

면서 그걸 감내하는 것이 훌륭한 시민이라는

이 분위기에서 서로 배워가는 것인데 시민의

것을 알고 있지만. 부담 없는 시민 되기가 필

품격도 여기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만

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의 성공요인은

으로 다 되느냐? 그럼 다수로 가야하는 것이

구원받기 쉬워서, 대승블교도 나무아미타불만

지요.

하면 해탈한다고 말해서인데 시민운동도 전술 적 차원에서 쉽게 접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사람은 인간에게는 불편부당한 관찰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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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개인 속에 다 있다고 말합니다. 내가 상대방

불교 안에 있었을 것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

하고만 관계 갖는 것이 아니라 자신 속에 불

다. 쉽다고 하는 것이 뭔지 질문할 수 있어야

편부당한 관찰자가 있어서 그것이 나에게 정

하는데 질문할 수 있는 자본을 별로 갖고 있

당한가 아닌가, 상대방이 나에게 말하는 것이

지 않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정당한가 아닌가를 가르쳐 준다고 합니다. 제 가 철학전공은 아니지만 읽은 자료에 의하면

[배영근]

칸트는 서양사람, 기독교 전통이니까 하나님

(녹색법률센터)

이 나 안에 있다, 신이 내 안에 있다 말했는

시민과 공익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저

데 그건 불편부당한 관찰자 비슷한 것을 말하

처럼 비영리로 활동하는 변호사가 지금 한

는 것이지요. 그게 양심이라면 양심일 것입니

50여명 정도 있습니다. 스스로를 공익변호사

다. 제가 지금 서양철학을 이야기하지 않습니

라고 이야기하는데 저는 과연 공익이 뭘까.

까? 그래서 우리, 대한민국, 조선 사람에게는

시민이 공익을 위해서 일하는 것인가. 그러면

양심이라는 것이 뭔가? 우리의 불편부당한 관

그때 말하는

찰자는 무슨 이야기 하냐를 법학하거나 철학

사들은 장애인, 여성 등 대체로 사회적 약자

하는 사람에게도 제가 많이 물어보았습니다.

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데, 그럼 공익이라는

서양 사람들이 학문 속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것이 사회적 약자를 지원 하는 것과 같은 말

그런 철저함이 우리 안에 얼마나 있는지는 의

인가, 그렇진 않거든요 그러면 공익이 너무

문입니다. 양심이라는 것이 있는지, 불편부당

협소해집니다. 그러면 공익이 무엇인가 아직

한 객관의 잣대라는 것이 우리 개체에게 얼마

답을 못 찾고 있는데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공익은 무엇인가 주로공익변호

나 들어있는지, 박근혜 대통령 에게는 얼마나 들어 있고 세월호 유가족에게는 얼마나 들어

[박영신]

가 있고. 세월호가 교통사고라고 말하는 여당

공익이 우리와 익숙하겠지요. 그게 공리주의

의원에게는 얼만큼 있는가, 칸트가 말하는 하

와 많이 연결될 수도 있겠습니다. 영어로 하

나님이 개인들에게 얼마나 들어가서 작용하는

면 인터레스트겠지요. 저는 그것보다는 공공

지, 우리나라 사람에겐 제가 자신이 없습니다.

선에 더 치우쳐 있습니다. 이익을 챙기지 못

우리에게 그런 전통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우

하더라도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선한가. 무엇

리에겐 유교나 불교 전통이 있어야 하는데 이

이 착한가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시민과 공

위대한 종교를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말들었

익을 직결하는 변호사들이 많이 있는지, 정치

습니까? 유교에서 양심이라든지 인이라든지

학, 경제학, 행정학을 하는 이들이 공익을 더

하는 것을 약화시킨 권력자들이 무슨 짓을 했

말 하는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질문하는 자리

는지 질문하고 싶습니다. 불교, 위대한 종교이

에서 공익보다는 무엇이 공공선인지, 선함인

죠. 그런데

왜 우리는 불교가 호국불교로 된

지를 이야기합니다. 히틀러도 공익을 이야기

것을 예찬만 하는지, 부처님이 고려를 구원하

하면서 유대인들을 학살했지요. 공익이 무엇

기 위해 이 세상에 온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인가. 강자들이 만든 공익을 말하는 것인가.

권력자들이 종교를 멋대로 요리했기 때문에

공익을 위해 몇몇이 희생되어도 되는 것인가.

칸트나 아담스미스가 말하는 요인들은 죽어버

이런 문제 때문에 공공선이 무엇인가, 의로움

리지 않았나, 우리 안에 날카로운 판단의 잣

이 무엇인가 이런 데 기울어질 수 없나 생각

대를 얼마나 갖고 있는가. 좋은 게 좋다는 게

합니다.

주종이라면 이 체제 속에선 시험 쳐서 고시 통과해 출세 사닥다리 올라가는 것이 다인데

[윤상훈]

그걸 넘어서는 잣대가 있는지, 잣대가 유교나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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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실천의 영역에서 어떤 사람들과 같이 할 것인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의 고민이자 물음인데,

가가 항상 고민입니다. 오늘 들은 이야기들이

시민에게 너 잘하고 있어 또는 잘못하고 있어

단어 선택에서 조금 무겁게 다가오는 것은 사

이렇게만 이야기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는 거

실입니다. 내용은 그렇지 않은데, 단어가 저항

지요? 치킨집 사장이나 메르스 상황에서 일하

의 의무, 생명을 걸고 등 처럼요. 저라면 다른

는 병원 비정규직, 그들의 딱한 상황을 알지

삶이 가능하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시

만 혹독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래도 노예는

민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인 차원에

노예다라는 입장으로 쓴 겁니다. 예전 체코슬

선 어느 순간에 시민이 됐다가 노예가 됐다가

로바키아에서 탈공산화된 이후 처음 대통령이

왔다갔다 하지만, 흔들리면서 시민으로의 지

된 바츨라프 하벨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성

극작가였습니다. 공산 치하에서 극작을 하고

미산에 유기농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는데 이

공연을 하는 것은 당의 허락이 필요했습니다.

걸 만든 사람들은 어쨌든 자본주의 체제에 대

그래서 극본 대신 정치 논서를 많이 썼는데

한 거부감이 있었고 새로운 삶이 가능하다고

그것이 우리에겐 많은 관심거리였습니다. 그

믿으며 동네에 사랑방 같은 공간을 만든 것입

중의 하나를 저는 많인 이야기합니다. 체코는

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생명을 걸고 저항

공산국가였으니까 당에서 하라는 것을 다 따

의 의무로 가게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

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게 문 앞에 어떤 현

니다. 다른 삶이 가능하다고 사는 사람들은

수막을 붙이라고 하면 모두가 따라서 붙여야

충분히 시민이다 말할 수 있습니다. 공동주택

했는데 그 내용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을 만들고 협동조합을 만들고 하는 모습도 마

는 것이었다 합니다. 체코의 모든 가게가 이

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느 정도 가면

걸 붙인 걸 보고 하벨이 분석을 했는데 그 가

관성화되어 먼저 만든 사람들의 이니셔티브가

게 관리인이 실제 이 내용을 믿을까, 아무도

생기면서 권력화가 되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

안 믿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죠. 당에서 하라

럼 협동조합을 하고 공동주택을 만들어도 노

고 하니까 그냥 현수막을 건 것에 불과한 거

예가 되는 것이지요. 시민이었다 노예였다가

죠. 걸어놓는다고 해서 만국의 노동자가 볼

하면서 흔들리면서 새로운 삶에 대한 이야기

일도 없고, 단결할 일도 아니다. 하벨은 이것

를 하고 그 삶을 실천으로 바뀔 때는 또 시민

은 거짓된 삶이라고 생각하고 진리 안에서의

이 되는 시민이라는 지향을 가고 있는 존재가

삶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아닐까, 고귀한 모습으로 시민의 지위를 격상

우리에겐 무거운 말이죠. 기분좋게 살자 이런

시키기보다는 시민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게 아니라 진리 안에서 살자고 하니까. 이 사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공

람이 미국 상원의원 앞에서 이런 말을 하니까

간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녹색운동

잘 못 알아듣더라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 대

의 한 가운데에 깃발을 꽂고 가는 분도 있겠

통령은 잘 알아들을지 모르겠습니다. 진리 앞

지만 또 한편으론 동네에서 사소하게 아이스

에서의 삶을 살려면 현수막이 무의미하니까

크림 가게를 만드는 것도 충분히 같이 해야

걸지 않겠다, 나는 거부하겠다고 하는 게 진

할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리 안의 삶이지만 그렇게 살면 바로 붙들려 갈겁니다. 그래서 제안한 것이 붙들려 갈 각

[박영신]

오도 해야 하지만 혼자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윤 처장의 이야기는 시민을 좁게 해석하지 말

함께 현수막을 걸지 않는 운동을 벌인다면 공

고 스펙트럼을 다양화하자는 생각이죠. 그것

산 체제 자체가 삐걱거리지 않을까라고 했다

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글에서

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 드릴 것은 스펙

제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시민을 격상시키려

트럼을 넓혀가는 것도 가능한데 시민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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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위치를 격상시켜서 뻗어나가게 해서 하벨이

서울시 인생이모작지원센터에서 아마 나이든

이야기하는 진리 안의 삶과 같이, 그럼 희생

사람을 구한 것 같은데 어떻게 잘 늙어갈 것

을 당할 수 있다 그래서 힘을 합해야 한다는

인가? 라는 강의를 요청받았습니다. 인생에

것입니다. 치킨집 사장, 제 글의 논지를 보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체제에 맞춰 사는

노예지요. 먹고 살아야 하니까 혼자 하지만

것이 잘 늙어가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다른 치킨집과 같이 공동으로 뭔가를 찾아내

맞서서 사는 것인데 맞서 살 때 자기 존재가

면 그건 시민의 창의성이겠지요. 녹색연합 운

더 뚜렷해지지 않을까. 큰 흐름에 자기 존재

동가들이 찾아야겠지요. 필요하지만 서로 협

를 던져서 사는 것보다 맞설 때 그것이 더 의

력이 필요합니다. 같이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미 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그게 부담스럽다

찾아보는 것들이 필요합니다.

하더라도. 윤기돈 선생의 질문에 대답이 아니 라 함께 생각해보려는 것이 모든 것에 맞서는

[최종덕]

것이 맞추는 것보다 멋있다 여기지 않나 하는

개인적인 단호함보다는 함께 나눠가지면 구체

것입니다. 모든 것에 대해 질문하고 맞서서

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사는 것이 멋진 삶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물

오늘 멘탈의 강약에 대한 이야기, 욕심과 양

론 죽기 위해서 그렇게 살진 않습니다. 맞서

심, 탐욕과 공공이 선명히 구분되는가, 타고난

서 살다 살다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다보니 죽

노예, 시민이 있는게 아니라 나는 노예지만

게도 되고 고문도 당합니다. 처음부터 각오가

시민이 되고자 하는 지향이 더 중요하다는 말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살다 살다보니 감옥에

들이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격상을 지향으로

들어가 몇 년을 지내기도 하고, 그러나 그게

바꿨다는 걸로 생각합니다. 저도 세월호, 천암

허무한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그

함에 관한 가짜를 그거 가짜라고 알고 있지만

렇게 못하더라도 그렇게 사는 삶이 의미있는

그거 가짜라고 말하지 못하지요. 용기가 떨어

삶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 이야

지는거죠, 그런데 이 사람 저 사람이 다 가짜

기를 마칩니다.

라고 말하면 묻어서 용기내서 할 수 있지 않 나 싶습니다. 유현상 선생이 보통 사람은 모

[육경숙]

두 쉬운 삶을 살려고 하는데, 그런 사람에게

(녹색교육센터 소장)

왜 이렇게 쉽게 사냐고 비난하는 것도 어렵다

저항, 투쟁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사실 단

는 현실을 지적하셨고 그런 점에서 강한 도덕

어만 살짝 바꾸면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

주의 기준보다 이승훈 선생님이 설명한 문화

니다. 질문하는 힘입니다. 제가 교육 쪽에 있

와 역사에 대한 상대적인 부분이 설정된다고

어서 모든 것이 교육으로 연결되는데

말씀하셨듯이 우리 사회도 그런 원칙을 현실

문을 하는 사람은 있는데 같은 질문을 하는

에 적용하려다보니 헷갈리는 것도 많이 있는

사람이 모여서 집합운동을 하지는 않는가, 같

것 같습니다. 윤 선생이 질문하신 두 가지에

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나누고 표현하는 것

대한 것은 답변이 안 되었는데 그것은 인생

이 없는가. 질문하는 것이 어려서부터 그렇지

전체에 걸쳐 답변하는 문제입니다. 욕망과 절

못한 환경에서 자란 것도 있고, 받아들이고

제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가 말이죠. 저도 잘

순응하는 것이 미덕인 사회에서 자란 것도 있

못했지만 가만히 보면 예수나 부처도 확실히

지요. 질문 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

답변하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을 표현하는 경험이나 훈련이 부족하다. 박영

왜 질

선 선생이 교육이 분절돼서 일어나고 있다고 [박영신]

했는데 얼마전 민주교육과 인성교육이 왜 배

답변이 아니라 한 말씀 드리자면 최근에 제가

치되는가 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다녀왔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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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제1회 노예의 삶, 시민의 삶

성교육 법제화가 이야기되는데 전에는 민주교

지라는 생각하며 나는 그냥 참는다 정도의 괴

육을 이야기했지만 지금은 예를 갖추고 배려

리감을 어떻게 줄일까를 이야기 해야겠다 생

하는 인성교육 이야기가 나오고 이것이 서로

각했습니다.

배치된다고 말합니다. 그동안 환경교육이 생 태 감수성 교육, 환경 가치, 환경 문제 이해에

[최종덕]

대한 교육에 머물렀는데, 지금은 이 교육들을

카산드라가 되고 싶어도 표현하는 연습을 해

기반으로 합리성에 대한 교육이 이뤄줘야 하

야 한다. 이게 앞으로 교육센터에서 할 일인

지 않나 생각합니다.

것 같습니다. 녹색시민포럼 첫 번째, 노예와

감수성을 바탕으로 참여하고 연대하고 소통하

시민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분

는 부분으로 나가지 않으면 감수성만으로는

명한 답이 있는데 그걸 몸으로 사는 게 쉽지

한계가 있습니다다. 후쿠시마 문제가 터졌을

않지만 그렇게 사는 것도 살만하다는 것이 주

때 왜 우리는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같이 모

된 이야기였습니다. 가장 최근에 상근자로 들

여 이야기 나누고 다른 방향으로 전환할 수

어온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무리하겠습니

있는 동력을 갖지 못했을까. 교육에 있어서

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 다. 일반인들이 운동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할

[황일수]

때 답답하고 어렵고 딱딱한 사람으로 보는 측

(녹색연합 정책팀)

면이 있는데 또 우리는 다른 삶을 이야기하고

저는 아직은 그냥 일반 시민인 것 같습니다.

있지만 우리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가. 경제

최근에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는데, 처음 리조

논리로 치닿는 사회를 이야기하면서 우리 안

트에서 묵으면서 이게 바로 노예인가, 돈의

에서 대안적인 삶을 갖고 있는가, 다른 삶을

노예인가 싶었습니다. 왜 한국사람들은 외국

살고 있는가를 녹색연합 안에서 같이 이야기

에서 보면 창피할까 라는 생각도 들었고. 리

해봐야 합니다. 환경운동을 하겠다는 이들이

조트에서 묵으며 내가 활동가인데 이런 곳에

똑같은 사회경제적 논리로 아웃되고 있습니

있어도 되나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 금전적인 문제 등 똑같은 가치를 두고 살

활동하면서도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 무시할

아갈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지나.

수는 없을 것입니다. 대다수 시민들이 노예적

왜 시민이 못 될까에 대한 고민은 , 내가 자

삶이라도 경제적 측면에서 그걸 즐긴다면 그

연의 일부다라고는 생각하지만 사회구성원의

안에서 시민성을 잘 발현하도록 하는 것이 활

일부라고 생각되는 것이 살아가면서 연결망이

동가들의 몫이 아닐까. 삶에 대해 저항할 수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 되지 않는다. 공공

있도록 질문을 던지고 길을 만드는 것이 필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가 알아서 해주겠

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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