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민포럼 6회 기록

Page 1

『녹색시민포럼 - 녹색시민의 시민됨을 위하여』

제6회 온전한 녹색시민을 위하여 ○ 일시 : 2015년 7월 28일 5시 ○ 사회 : 최종덕 (녹색사회연구소 소장, 상지대 교수) ○ 발제 : 양세진 (소셜이노베이션 그룹 대표) ○ 토론 : 유종반 (생태교육센터 이랑 이사장) ○ 토론 : 유경희 (녹색연합 상임대표)

사회┃최종덕 (녹색사회연구소 소장) 그동안 녹색시민포럼을 해 오며 우리가 녹색시민이라는 것을 깨달아 가는 작은 발걸음이 되었다 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추상적인 이야기, 이념적인 이야기가 거론되어 왔었는데 오늘은 어느 정 도 구체적이고 도표적인 이야기, 정리된 방향으로 녹색시민에 대해서 토론이 될 것 같습니다. 발제┃양세진 (소셜이노베이션 대표) 마지막 세션은 발제문에 대한 토론 형식 보다는 언급하신 것처럼 그동안의 고민을 실천적으로 풀어낼 수 있도록 세 사람이 같이 실천적 대안을 이야기하는 자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 다. 제목이 녹색시민다운 삶을 생성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했는데 이 제목의 의도는 철학적인 캐 물음에 머물지 않고 실천적 과제를 고민해 보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녹색시민다운 삶을 사는 힘, 누구는 그렇게 살고 누구는 살지 못할까가 녹색시민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삶의 힘의 유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럼 삶의 힘을 생성하기 위한 방법은 뭐냐? 이 고민을 두 가지로 제안 드립니다. 삶의 힘을 생성하기 위한 전략 두 가지 중 하나는 캐물음 입니다. 묻는다는 것, 왜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계속 해 나가는 것 자체가 생 성전략이라는 것 하나. 또 하나는 녹색연합이 만나는 회원, 시민과의 관계맺음에서 시민들의 조 건이 다양한데 조건에 맞는 관계맺음이 정밀하게 필요하다는 것 두 가지로 나눠 정리해보았습니 다. 녹색시민다운 삶을 살게 하는 ‘삶의 힘’ 우리의 관심은 녹색시민다운 삶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을 넘어서 실천적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녹 색시민의 가치요소를 추출해내는 것을 넘어 일면적, 다면적으로가 아니라 전면적으로 내면화해 서 실천적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발제하신 분들 토론자 참여자들의 이야기 중에서 녹색시민다운 삶, 생태가치를 추려낸 것들을 보면 생명존중, 녹색전환, 생태주의, 생태감수성, 유 기적 순환, 차이와 다양성, 공생, 생명살림, 공공성, 연대성 등등이 있습니다. 모두 좋은 가치들 입니다. 이런 가치들이 녹색시민다운 삶, 생태적인 삶을 사는데 필요한 가치들로 소개할 수 있 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녹색시민다운 삶을 산다는 게 무엇인지는 이 가치를 충분히 안다고

제6회 온전한 녹색시민을 위하여┃1


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고민은 앎을, 삶의 실천의 힘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가입니다. 따 라서 우리의 고민은 어떻게 우리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전면적으로 내면화 된 삶의 힘 으로 생성할 것 인가입니다. 저는 삶의 힘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요. 제가 서울시 사회적 경제 자문위원을 하고 있는데 수 많은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우리 사회가 그렇게 바뀌고 있는가, 사회적 경제 생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건 사회적 기업의 수, 그 일을 하는 활동가 수의 부족이 아 니라 사회적 경제가 이루려는 삶의 힘을 가진 주체의 부재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힘이라는 말은 단순히 마음의 힘, 내면의 힘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내는 힘, 고통을 받더라도 희생당하더라도 견디는 힘입니다. 어떤 조건과 상황 속에서도, 고통 속에서도 그렇게 사는 힘의 상태입니다. 녹 색시민다운 삶이 뭔지 알지만, 그거 아는데 녹색만 생각 하면 됩니까, 경제도 생각 해야죠 하면 서 그렇게 못 사는 것이 우리가 직면한 고민인데 다른 건 다 걷어내고 녹색시민다운 삶을 살아 낼 수 있는 ‘삶의 힘의 부재’다 라고 봅니다. 녹색시민다운 삶을 온전히 실천적으로 살아가기 힘 들게 하는 조건과 상황들이 많습니다. 우리를 압도하고 좌절케 하는 거대한 권력이 작용하기도 하구요. 이주 전 국정원 직원의 자살이후 사태를 보며 저는 좌절하고 분노를 넘어 이렇게 죽는 구나 싶을 정도로 들었습니다. 들뢰즈와 가따리가 쓴 앙티오디오푸스에서 정신질환에 걸리는 게 가족,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 때문에 생긴다 했는데요. 정신분열을 떠올릴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 영향을 받는다 해서 자신을 노예로 내맡기는 것은 삶의 힘의 부재 입니다. 국정원, 대통령 이 모양이니까 나는 대충 이대로 살래 하는 것은 그건 결국 핑계를 대

녹색시민포럼 ‘녹색시민의 시민됨을 위하여’


는 것이고 그 참담한 권력과 힘 앞에서 그걸 극복해 낼 수 없는 삶의 힘의 부재입니다. 아닌 것 을 아니다 라고 진실을 말하는 용기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용기다’라는 그 개념을 알아서가 아 니라 그런 용기를 낼 수 있는 삶의 힘이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1981년 8월 14일 김복순 할 머니가 고백합니다. 일본군의 성노예였다는 것, 그 진실을 말하는 용기 때문에 세상이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는 물리적 조건으로 보면 모두 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 진정 마을살이의 온전한 주체로 살아가는 분들은 얼마나 될까요? 행정 주소지가 마을에 산다고 해서 마을살이를 하는 것이 아니 듯, 녹색시민다운 삶의 가치들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살아낼 수 있는 ‘삶의 힘’ 이 부재하다면 우리는 결국 그 삶을 선택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결국 녹색시민다운 삶이 결여되어 있고, 결핍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는, 정치권력, 자본주 의, 보수화된 우리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의 위기는 결국 ‘삶의 힘’의 부재라고 할 수 있 을 것입니다. 녹색시민다운 삶의 본질을 본질적으로 사유하는 길 그럼 다시 되물어서 그럼, 녹색시민다운 삶을 실천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힘은 어떻게 생 성하는가? 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길은 있다 생각합니다. 길은 ‘본질의 길’입니다. 본질의 길 위 에서 본질을 묻는 것입니다. 여섯 번의 포럼이 그런 길입니다. 녹색연합이 녹색순례를 하시는데 그때 주제 중 하나가 ‘길 위에서 길을 묻다’였습니다. 그 주제가 제 삶의 화두이기도 한데요. 녹 색시민다운 삶을 생성시킬 수 있는 방법은 녹색시민다운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캐묻는 캐물음의 길 위에서 그것을 시도하고 실천하고 도전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녹색시민다운 삶 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이 인간다운 삶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저도 녹색시민포럼에 참여하면서 제 삶을 물으면서 지평의 변화가 있는데 시민다운 삶과 녹색시민다운 삶의 관계를 생각해 볼 때 그동안 시민다운 삶이 좀 더 중심적인 토대고 녹색이 보태졌다면 지금은 녹색시 민다운 삶이 좀 더 본질적인 삶이다라는 것으로 좀 바뀌었습니다. 녹색시민다운 삶이 바로 본질 적인 삶이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본질의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6회에 걸쳐 포럼을 통해 본질의 길을 물어왔던 것입니다. 문제는 본질을 길 을 묻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다른 길이 아닌, 바로 본질의 길 위에서 서 있어야 한다는 것입 니다. 그럼 이때의 본질의 길은 또 무엇인가요? 그것은 생태적 삶으로서 ‘녹색시민다운 삶의 본질을 본질적으로 사유하는 길’입니다. 녹색시민다 운 삶을 아는데 저는 바빠서 그냥 이렇게 살래요 하는 것은 본질이 무엇인지 본질적으로 사유 하지 않기 때문에 힘이 안 나오는 것이지요. 녹색시민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힘을 생성 시키기 위해서는 녹색시민다운 삶의 본질적인 가치들을 본질적으로 사유해야 할 것입니다. 본질 을 본질적으로 사유할 때 거기에서 삶을 이겨낼 수 있는 실천의 힘이 생성될 수 있다고 생각합 니다. 결국 우리의 문제는 녹색시민다운 삶의 가치 요소들을 도출하고 정리해내고, 그것을 교육 커리로 만들어가는 문제가 아니라, 그걸 해야 하지만 그걸 넘어서서 정말 그러한 삶의 가치들이 내 삶에 얼마나 진정성 있게, 내가 그렇게 살지 않으면 인간으로 사는 게 아니다 라고 생각하게

제6회 온전한 녹색시민을 위하여┃3


끔 받아들여지고, 내 자신을 본래적이고 본질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본질적인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캐물음을 어떻게 가질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기회를 주고, 경험을 할 수 있도 록 과정과 흐름을 디자인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 내가 이런 삶을 선택하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캐물음에 대한 시간, 과정이어야 하는 것이지요. 녹색시민다운 삶의 매트릭스 그런 캐물음들이 경험되는 토대 위에서 생각해 본 게 발제문에 있는 매트릭스입니다. 어느 날 컴퓨터 프로그램하는 후배에게 물어봤습니다.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이 없는데 내가 좀 새로운 걸 만들기 위해 쉽게 배울 수 있는 언어가 없냐고 물으니 그러지 말고 있는 프로그램 개발자가 만든 걸 잘 활용해서 쓰라고 합니다. 삶의 힘을 이야기할 때 주체의 성격에 따라 삶의 힘이 다 르다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프로그램 개발자라면 개발자에게 요구되는 삶의 힘은 컴퓨터 언어, 그런데 우리가 유저라면 필요에 따라 잘 사용하면 되고 미술가에게 요구되는 삶의 힘은, 대상의 본질을 담아내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지만 관람객은 그 의미를 알고 감동하면 됩니다. 가수라면 시간의 유행을 넘어 감동을 줄 수 있는 노래를 부르는 능력이 요구되지만 관객인 저 에겐 그 노래를 듣고 감정이입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게 삶의 힘입니다. 노래를 들을 수 있 으면 되지 작곡 작사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녹색교육, 녹색삶을 이야기하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 주체로서 시민에게 요구되는 삶의 힘이 모두에게 동일한 것인가, 활동가처럼 다 살아야 녹색시민인가 할 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죠. 그래서 이런 메트릭스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행합일 (제대로 알면 행할 수밖에 없다)

1 녹색시민다운 삶을 살거나, 귀농/대안 공동체를 추구 (‘우리만 아니면 돼’ 라고 생각할 수 있음)

2 녹색시민다운 삶이 나의 진정성 있는 삶이다 (참여하지 않는 삶은 인간다운 삶이 아니다며 진정성의 닦달을 함)

앎과 행함은 다르다. (알지만, 잘 안된다)

3 녹색시민다운 삶은 자신의 일상을 잘 살아가는 것 (녹색연합에 회비도 내고, 가끔 프로그 램에도 참여하지만, 골치 아프고 무거 운 것을 싫어함)

4 제도적 변화, 정당정치를 통해 녹색시 민다운 삶을 추구 (시민 개개인의 의식과 삶을 변화시키 기에는 한계가 있음)

사회가 최악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사회가 더 좋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실천이 안 되는 것은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그룹이 있고, 몰라도 욕구와 욕망, 필요가 있으면 선택하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y축은 그렇게 구분했고 녹색시민다운 삶을 고민하는 게 우리 사회를 좋아지게 하는 대안이고 열망이기 때문에 고민하는

녹색시민포럼 ‘녹색시민의 시민됨을 위하여’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회의주의자나 비관주의자는 아니지만 녹색시민다운 삶을 살지만 이 사회는 이미 악해졌고 더 악해지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것뿐이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게 X축입니다. 사회를 바라보는 전망이 다른 거죠. 옳고 그름 차원이 아니라 현재 실존하는 시 민들의 행태를 프레임으로 나눠 매트릭스로 만들어보았습니다. 1 메트릭스는 앎이 철저해야 실천이 나온다, 그런데 이 사회는 이미 신자유주의, 권력, 자본주의 로 나빠져서 회복불가능하기 때문에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막아야 해 그것은 내 삶을, 내 공동 체를 잘 살면 돼, 귀농하고 공동체 꾸리면서. 우리가 녹색삶을 사는게 더 나빠지지 않게 막는거 야. 이 분들에게 우리가 녹색시민다운 삶을 이야기할 때 이 사회의 변화, 대안을 제시한다면 받 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다른 패러다임을 갖는 거죠. 3 매트릭스는 사회를 최악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막아야 하지만 앎과 행함은 다르다고 생각 합니다. 녹색시민다운 삶이 뭔지 알라지만 바빠서 안되고 그렇게 산다고 사회가 바뀌겠어 하는 분들. 녹색시민다운 삶을 전면적으로 사는 것은 골치 아파 하지만 회원은 되고 후원은 할 수 있 는 분들입니다. 이 분들에게 과도하게 녹색시민다운 앎을 철저하게 가지라고 닦달하면 도망치게 됩니다. 2 매트릭스는 사회가 더 좋아지도록 해야 하고 대안적인 사회가 가능하다 믿는 사람들이지요. 생태적 삶, 생태적 사회, 생태순환사회는 경제적으로 이득이 없더라도, 동계올림픽 안 해도 가리 왕산이 보존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녹색시민다운 삶이, 생태사회가 곧 내 삶의 일부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그런데 이들의 오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닦달하게 되는 거죠. 참여하지 않는 삶은 인간다운 삶이 아니라고 말하기 쉽습니다. 4 사분면의 사람들은 시민 하나하나를 바꿔선 안 되고 당을 만들고 제도를 바꾸고 법을 바꿔야 한다고 고민하는 사람들이죠. 이들에게 일상의 실천, 녹색 삶을 이야기하는 건 거리가 있습니다. 제 핵심은 녹색시민다운 삶을 실천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힘을 생성 시켜야 하는데 본질적으로 캐묻는 과정을 가지되, 교육의 과정에서 디테일한 관계맺음의 방법과 전략은 시민들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가야 한다는 고민을 하는 것이고 내가 1,2,3,4 중에 어디에 위치하는지 모른다는 게 문제이기 때문에 녹색시민을 교육할 때 처음엔 사람들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분별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최종덕 감사합니다. 아주 명쾌합니다. 요약하자면 그냥 묻는 것이 아니라, 캐물어야 된다. 뭘 위 해서? 삶의 힘을 위해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삶의 힘이 본질이라는 어려운 이야기 를 썼지만, 생존이다. 녹색의 가치를 자기화해야 한다, 알면 뭐햐냐 내 몸으로 알아야 하는 거 아니냐 하면서 삶의 매트릭스를 재미있게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을 잘 활용하면 좋겠습니다. 지정토론 Ⅰ 유종반 (생태교육연구센터 이랑) 저는 현장에서 교육을 하는 사람으로서 고민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양 선생님의 발제문에도 나왔지만 저를 포함해서 왜 우리는 실천이 안 될까? 고민합니다. 교육을 하면서도 실천이 안 되

제6회 온전한 녹색시민을 위하여┃5


는 이 교육을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계속 고민하며 갈등합니다. 여섯 번의 이야기를 들으 면서 여러 좋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런 것들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실천하도록 만들어 주는 내용일까 고민해 봤습니다. 저는 시민과 녹색시민에 대한 이야길 했는데요. 개념에 대한 내용은 다양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 니다. 우리가 나름대로 그동안 이야기했던 것을 교조화, 교리화 된 개념이 아니라 다양하고 열 린 녹색시민에 대한 이야기로 담아냈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시민에 대한, 나름대로 이런 것들이 시민이라 했는데, 시민에 대한 우리의 정의가 옛날로 하면 군자와 같은 좀 숭고한 자리 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시민이 그런 방향성을 갖고 100이라 하면 100을 가진 사람이 시민이 아니라 그 방향을 향해 출발한 하나의 발자국을 가진 사람도 시민으로 말하고 만나면

이야기

를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민은 인간 상호간의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살아보자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녹색시민이 라면 인간의 범위를 넘어서 자연의 수많은 다른 생명까지 존중하고 배려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 람을 말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시민보다는 녹색시민이 더 근본이고 바탕이지 않을까 생 각합니다. 대부분 우리의 이야기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 존중하고 배려하는 관계 만 생각하다보니까 녹색연합이나 교육기관들이 다른 생명과의 조화로운 삶의 이야기가 부족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시민보다 녹색시민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녹색시민은 생태적으로 사는 사람들 일텐데 그걸 쉽게 말하진 못하지만 두 가지로 말해보고 싶 습니다. 자연 안에서 사는 삶의 모습을 보면 자기답게 사는 것, 산양은 산양대로, 소나무는 소나 무대로 자기 타고난 그 모습을 잃지 않고 사는 게 생명의 참모습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 은 남 따라 살려 하고 흉내내려하며 자기다움을 잃어버립니다. 그럼 왜 자기다움을 왜 잃어버릴 까? 이것이 우리가 고민할 것입니다. 또 하나 생명이 살아가는 모습 중 하나는 서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지만 조화롭게 살아간다는 겁니다. 오케스트라라라고 비유하는데 서로 다른 악기로 자기 소리를 내지만 불협화음, 소음이 아니라 하모니를 이뤄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게 자연의 생명들이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나무는 나무대로 곤충은 곤충대로 자기 식대로 살아가지만 서로 상충되지 않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 저는 생명살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걸 다양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양하지만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은 연대, 공공성 이라고도 표현 할 수 있습니다. 얼마만큼 자기답게, 다양하게 사느냐, 또 얼마만큼 다른 생명들 과 조화롭게 사는가, 이게 생태사회, 녹색사회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그럴까 왜 다양성을 헤치고 자기 답게 살지 못하고 다른 생명을 존중하고 배려하지 못하는 가.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간단히 말하 면 그 이유는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 자본주의죠. 자본주의가 다양성, 연대, 공공성, 조화를 해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어떻게 자본주의를 극복할까, 어떻게 내가 돈 에서 자유로운, 돈의 노예가 되지 않는가. 저는 생명이 생명답게 살아가고 시민이 시민답게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힘이 돈에서 자유로움이 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활동, 교육도 회원들에게 시민들에게 나는 돈에서 이만큼 자

녹색시민포럼 ‘녹색시민의 시민됨을 위하여’


유롭게

살아가고

있어

하는 삶의 모습을 실천 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실천적인 이야기를

녹색교육에서

풀어내야 한다고 생각합 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서는 최교수님이 지난번 에 애니미즘을 이야기하 셨는데, 저는 오히려 지 금은 인간의 어떤 지식 과 이성을 조금은 무시 하고 내려놓고,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 모든 것을 알고 해석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좀 내 려놓고 다른 이야기로 하면 풀과 곤충, 나무조차도 우리와 동등한 뭔가를 갖고 있다는 생각, 모 든 자연 안에 있는 생명 개개는 우리와 동등한, 물론 차원이 다르고 표현의 방식이 다르지만 이 성과 영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그들과 진정한 교감을 통해 돈으로 얻을 수 없는 무한한 삶의 기쁨과 인간적인 표현으로 하면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돈을 극복하고 돈에서 자유로우려면 돈에서 얻지 못하는 더 큰 기쁨을 얻어야 하는데 그 방법이 자 연의 생명을 나와 동등한 인격자로 대하고 교류로 나눌 때 돈에서 얻지 못하는 무한한 힘을 얻 을 수 있다 생각합니다. 박그림 선생님 같은 분도 그렇게 살고 있다 생각합니다. 돈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원수도 되고, 노예도 되고 극복도 할 수 있는데, 원수다 나 쁘다 말하면 설득력이 없고 돈이 적어도 돈 가진 사람 이상의 다양하고 풍부한,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를 어떻게 우리가 만들어내고 실제적으로 보여줄까가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생각을 내려놓지 않으면 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길이 없 지 않을까, 우리가 실천을 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삶을 그렇게 바꿔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 듭니다. 지정토론 Ⅰ 유경희(녹색연합 상임대표) 시민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대중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스스로 시 민이라고 생각할까 생각했습니다. 여성이 시민으로 인정받기 어려웠던 역사가 있는데 여성이 시 민으로 인정받는 틀, 참정권 같은 게 생긴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시민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되었고 시민성을 이루는 요소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 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을 봐도 학교를 졸업하고 교직에 3년 있다가 십년을 전업주부로 있다 가 92년부터 여성운동하게 되었습니다. 가족이라는 틀 속에 있다가 민우회 활동하면서 내가 가 족을 넘어선 사회구성원이구나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시민이라는 정체성은 내가 누구인지 알아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엄마이고 아내인 가족 관계라는 틀로 생각 했는데, 운동을 만나면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라는 사람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어떨 때

제6회 온전한 녹색시민을 위하여┃7


는 엄마로, 딸로, 며느리로, 각각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었다, 개인이 굉장히 다중적인 인물 이었다, 다중성의 가면을 쓰고 사는데 그런 가면은 시민성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생각을 하게 됩 니다. 내가 사는 세상은 어떤 곳인가 하는 질문하게 되는 경계를 찾는 것도 어렵습니다. 나아가 선택 하고 판단해서 참여하게 되는 것은 일반 대중들에겐 어려운 과정입니다. 잘 사는 것이 뭘까 고 민하는데, 유종반 선생님도 말씀하셨지만 경제적 풍요로움이 다가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잘 사 는 것에 대한 질문에 깔려 있는 게 그건데 그러나 그 틀을 벗어나는 것이 어렵습니다. 경제적인 게 다가 아니라 하지만 과연 그럴까 혼란스러운 지점이 있습니다. 뭔가 꿈꾸는 것은 아닌 것 같 습니다. 지금 여기가 더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누군가로부터 강요받지 않고 나로 부터 행복한 것, 지금 여기서 잘 사는 것에 대한 답을 찾아가야 합니다. 자기 결정권이 보장되 고 내 삶의 근원적인 가치는 뭔가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뭘 하려면 자기의 현재를 넘어서서 하려는 의지, 발심이 있어야 하는데, 희생을 강 요하거나 내가 희생했다는 것이 위안이 되지 않은 사회라서 그걸 위안삼지 않을 자유 같은 것 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성을 이루는 첫 요소가 시민권이라면 두 번째는 공동체성. 너무 많이 이야기 나왔는데 저의 경험을 보더라도 개인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어제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자, 혼자가 아니라 함께 만들자가 공동체성입니다. 인정을 받 기 위한 참여가 아니라 참여의 과정을 즐기는 참여가 공동체성에 깔려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가족중심주의 넘어서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상담도 열심히 하고 강의도 본질적인 이야기를 하시던 분이, 본인이 아들을 결혼시킬 때 단박에 시어머니가 되더라는 것입 니다. 앎과 실천이 분리되는 것이죠. 시어머니가 되면서 결혼제도에 편입되면서 뭔가 기대하고 그러는 모습을 보면서 혼란스러운 거죠. 가족은 너무나 견고합니다. 그걸 나쁘게만 볼 수 없지 만, 다양한 가족이든 가족을 넘어선 타인이든 연대이든 이런 걸 좀 생각해야 합니다. 가족중심 을 넘어서는 것, 연결되지만 공동체는 소통이 되는 것, 일과 분배, 물질적인 것 뿐만 아니라 서 로 주고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또하나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평등에 대한 감수성입니다. 제가 여성이 시민권 갖기 어렵다 고 말했고 평등을 이야기할 때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여전히 쉽지 않고 많이 빠져있는데요. 평등의 감수성에서 물론 자연도 중요하지만 여성성도 중요합니다. 자본이야기도 했지만 계급문제는 어려운 문제인데요. 부모의 계급이 자녀에게까지 이어지는 사 회에서 계급을 넘어서서 뭔가를 요구할 수 있을까, 우리는 함께 한다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한 회 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범위까지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계급평등은 중요합니다. 또한 세대 평등도 중요합니다. 세대가 견고한데 나이도 있지만 나이와 상관없니 견고한 부분도 있습 니. 다양한 생명에 대한 감수성, 다양성에 대한 중요성 등이 있구요. 결국 지금보다 나은 세상, 지속가능한 세상을 고민하는 주체가 시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인간중심을 넘어서서 생태주의, 생태감수성을 키우는 사회로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 현실

녹색시민포럼 ‘녹색시민의 시민됨을 위하여’


에선 갑갑한

문제들이

많은데요, 설악산, 가리 왕산, 4대강 등 녹색연 합이 갖고 있는 사안도 많지요. 이것은 생태적 인식을 갖게 되면서 사 고의 틀을 넓혀가야하는 것입니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밍르 하는 주체 를 키워가는 방법을 고 민해야 할 때입니다. 사실 녹색가치의 중요성 에 대해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인지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실천하려면 알아야 하는데 정말 제대로 알고 있을까, 저 역시. 개발, 공부, 학습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여성운동에서도 지구적으 로 생각하고 지역에서 실천하라고 이야기했고 부엌에서 세계가 보인다 했고 작게 작게 천천히 이야기하며 일상의 운동을 이야기했는데 이게 시민성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어려울까? 첫 번째는 가족중심주의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뭔 소리야 하는 되물음도 경험했고, 하는 것마다 이상한 운동을 하냐는 이야기도 듣는데. 탄탄한 가족의 틀을 벗어나야 다른 이슈에 관심 가질 수 있습니다. 관습적인체계를 유지하는 체계가 이런 관심을 갖는 걸 가 로막습니다. 또 활동가들이 소진되어 있고 피로감과 소진, 박탈감에 시달리는 것도 이야기 나왔 는데요. 국정원 이야기도 했지만 요즘 신나는 일 없다고 생각한 지 꽤 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에서 녹색시민 이야기하는 것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당면한 문제로 살아내는 것도 힘든 상황 이니 당연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다른 세상이라는 피드백을 듣게 됩니다. 또 녹 색시민성을 얼마나 알려내려고 했을까? 개별 대중들은 여전히 잘 모른다 생각합니다. 정보의 한 계가 있는 거죠. 그래서 쉽게 다다갈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합니다. 말랑말랑한 언어면서도 살갑게 다가갈 수 있는 언어를 만이어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과의 녹색실천을 위해서 일단 많이 만나야 합니다. 여성, 청소년, 어린이 등등 다양한 타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활 동을 말해주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녹색연합이 하는 활동을 페이스북에서 좋아요 누르기도 벅찬 데, 이런 걸 일상에서 SNS가 아니어도 볼 수 있도록. 내가 하는 일이 하고 싶어서 하는 운동이 라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무엇보다 활동하는 사람들이 채워지고 즐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즐 겁진 않더라도 뿌듯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보고 할 만하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만나야 하냐면 일상을 함께 해야 합니다. 녹색연합 홈페이지를 보면 회원들과 같이 만나 밥먹고 뭔가를 만드는 일들이 올라오는데 이렇게 일상에서 옆에서 함께하는 모습을 자꾸 보여줘 야 합니다. 후원이든 교육이든 집회든 다양한 장에서 참여의 기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6회 온전한 녹색시민을 위하여┃9


한 사람 한 사람의 자기 고민, 자기 결정에 대해 감수성을 갖고 바라봐야 합니다. 작은 변화가 굉장히 소중하고 참여와 경험을 통해 성취모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은 녹색세상으로 지속가능한 비젼을 제시하는 것인데 제시하되 일상에서 쉽게 가깝게 갈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또, 실망하지 않기. 해봐도 소용없더라, 들인 공에 비해 결과가 없더라 하면 실망하게 되는데 실망하지 않기를 말하고 싶습니다. 활동에서도 지속가능한 플랜을 짜는 것이 필요합니다. 온전한 활동가, 활동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전체토론> 박그림 Ⅰ녹색연합 공동대표 제가 설악산 케이블카반대운동을 하는데,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그 자리에 가보면 느끼는 것 때 문에 합니다. 케이블카를 기획하고 개발하려는 사람들이 rm 노선에 올라서서 자연의 경이로움 dop 빠져봤다면 느껴보면 그런 계획을 세울 수 있을까? 50센치 이상 깍여나간 대청봉에 손을 대 보았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자연에 대한 폭력적인 계획이 난무하는 것은 결국 돈 입니다.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돈을 끊임없이 추구하다보니까, 사회가 삭막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람들이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면서, 벗어났기 때문이라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자연에 자주 들면 사람들의 영혼이 지금보다 맑아지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그것이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될 것이다 생각합니다. 오늘도 신림동에서 일인시위를 하면서 출근시간 사람들이 끊임없이 지하도 로 들어가는 모습이 갑자기 너무나 생소하면서 삶이 매몰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 시간 정도 일인시위를 하고 오느데 삶이 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계속 간직하려는 것이 뭔가, 일인시위 하면서 본 건데 노점에서 옥수수 팔고 핫도그 파는 분의 간판에 찰옥수수 두 개 천원, 네 개 이천 원, 정말 맛있어요 이렇게 써있습니다다. 정말 당연한 이야길 이상하게 보는구나 두 개 천원이면 네 개 이천원 당연한 이야기인데 그 당연한 걸 뒤집어 엎을려니 이상 하게 돌아가는구나. 설악산 들어간 지 20년 인데 15년 동안 케이블카 문제로 싸웠습니다. 케이 블카를 시작으로 강원도에 엄청난 계획이 발표되었다. 있을 수 없는 일들인데 우리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순간 그들은 그걸 실천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녹색시민으로 거듭나야지 가능합니다. 데모당에서 신문을 나눠 주는데 한 쪽짜리인데 받는 사람들이 거의 없더라구요. 거의 무감각하 고 무관심한 사람들이 세상을 침체하게 만든다 생각합니다. 케이블카에 대해선 저는 가결될 것 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와 이티엔에서 인터뷰 왔는데 가결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에 저는 가결된다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에 답할 수 없다 했고 또 물어도 만약은 없다고 말해서 인터뷰가 결국 깨지고 말았습 니다. 제가 설악산 지킴이, 산양지킴이라는 말을 가끔 듣는데, 그것처럼 제가 부담스럽고 부끄러 운 말이 없습니다. 내가 설악산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설악산 어머니가 나를 지키는 것이다. 지 치고 힘들 때 설악산에 들면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을 수 있도록 보듬어주고 다독여주는 것이 그 분입니다. 내가 어떻게 설악산을 지키고 산양을 지키겠습니까. 그것은 커다란 오만입니다. 여러

녹색시민포럼 ‘녹색시민의 시민됨을 위하여’


분이 걱정 안하셔도 설악산 어머니 덕분에 잘 살 것입니다. 다만 대청봉에서 바라본 산과 생명 의 소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미치기를, 땅에 손을 대면 일어나지 못할 때가 가끔 있는데, 피가 묻어날 것 같은 느낌입니다. 답답하죠. 케이블카 문제가 잘 해결되어서 이 치마를 벗을 수 있으 면 좋겠습니다. 윤기돈 Ⅰ 녹색연합 활동가 시민의 힘, 시민으로 사는 힘이 본질의 길에서 본질을 캐묻는 것이다, 삶의 힘이 될 것이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사람들이 자연에 드는 본질을 묻고 있는가, 묻지 않기 때문에 케이블카를 만 들고 설악산 정상에 이백 명이 묵을 수 있는 산장을 짓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연에 드는 본질 은 풍광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외감을 느끼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이 신을 접할 수 있는 경 우가 없으니 자연을 통해 그 경외감을 갖는 거죠. 과학의 본질을 캐묻는 자들이 신을 믿는다고 도 말합니다. 인간다움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캐묻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 한계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인간다움의 본질을 캐묻는 과정에서 우리가 쌓아온 역사와 문명을 부정하지 않으면 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속에서 지금 우리가 부딪히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답이 있다고 믿습 니다. 녹색운동은 물질문명, 과학문명을 부정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고, 그러한 모습 이 녹색운동에서 간혹 비춰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물질문명, 과학문명을 부정하지 않습 니다. 물질문명이 갖는 한계, 과학문명의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지금까지 물질문명을 만들어온 본질, 과학문명을 만들어온 본질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캐물어야지,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유종반 저는 한편으론 인간이 갖고 있는 과학문명을 철저히 부정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무 시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런 여지가 지금의 상황을 계속 만들어낸다는 것이죠. 석기시대로 돌아 갈 수는 없지만, 이제는 석기시대를 생각해야 하고 과거에 미신, 큰 나무에 빌고 하던 마음, 문 화로 돌아가지 않으면 인류에게 희망이 있을까 생각하면서, 그런 의미에서 더욱 강하게 인간의 과학, 기술, 이런 것을 부정하고 싶습니다. 박영신 현대문명에 대한 자성, 비판, 넘어서는 것 다 동의하는데, 제 질문은 나무나 바위 앞에서 무엇을 빕니까? 옛날 몇 천년 몇 백년 전 사람들이 나무나 바위 앞에서 무엇을 빌었는지, 그걸 우리도 또 빌어야 하는건가요? 유종반 뭘 빌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빈다는 것은 우리는 자연을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도 구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들도 우리처럼 아프고, 소통하고, 우리와 동등하게 나무도 한 살이라도 더 많으면 어른이다, 어른으로 대접해야 한다는 마음인 거죠. 박영신 유경희 선생님은 평등하자고 했는데, 유종반 선생은 나이 먹었다고 존중하자고 하는데, 유경희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유경희 노인정책 자문회의에 갔더니, 노인들만 있더군요. 왜 노인 정책을 고민하는데 노인만 있

제6회 온전한 녹색시민을 위하여┃11


냐, 여러 세대가 같이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러나서 어른에 대한 존경은 당연한 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나이 많은 사람이 맞지 않은 주장을 해도 존경할 수는 없습니다. 노 인도 같은 선상에서 소통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박영신 저도 노인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이천년 들어서자마자 대한노인회만 있어야 되나 해서 노인시민연대를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대담도 하고 인터뷰도 했는데 노인들 만나서 그 때 든 생각이 노인이라고 해서 왜 존경을 받아야하냐는 겁니다. 질문하는 건데, 노인이 오래 살았기 때문에, 경험이 많기 때문에 존중해야 한다, 만약 그런 수준에서 사람을 보기 시작하면 정치를 많이 해봤기 때문에 존경해야 하고, 청와대에 가 있기 때문에 존경해야 하고, 지식이 많기 때문 에 존경해야 합니다. 그런 선상에서 평등이 뭘까, 노인된 사람으로서 각 층에 그 나름으로 가치 가 있다, 자연은 나무든 풀이든 돌멩이든 각각 그 다움이 있듯이, 노인이라는 사람은 노인대로, 아이들은 아이대로 값어치 있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서 노인에게 경청해야 하나? 아이에게 경청 해야 하나? 저는 아이에게 경청하고 싶습니다. 아이를 우리 사회 교육제도, 사회의 압력 속에서 길러야 하나. 노인이라는 타고났다는 그 조건 때문에 존중한다는 것을 극복하고 싶습니다. 교육 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더 경청할 게 있다 하는 생각에서도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급진 의 생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유경희 선생님 말처럼 이렇게 해선 가족의 체제에서도 못 벗어 나고, 돈 가진 사람 존중하기 시작하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될까, 좀 무례한 것처럼, 무리한 것으 로 보이더라도 그런 것을 부수는 것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 같은 생태적이지 않은가, 급진 적인생각이지요. 노인이라고, 남자라고, 권력을 가졌다고, 왜? 국회의원은 왜 운전기사가 있어야 하나, 그 사람은 바쁘기 때문에, 그럼 모든 사람은 나름으로 바쁜데 하는 이런 생각을 해 봅니 다. 이렇게 말하면 그거 재미없다, 하기 어렵다 하는데 그래도 이런 걸 캐물어야 하지 않나. 노 인도 우리 사회에서 노인을 대접하는 것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하고, 어린아이도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업수이 여기는 것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동의하지 않겠지만요. 박그림 시간에 대한 저의 느낌을 이야기 드리고 싶은데요. 쇼뵈동굴이 프랑스에서 발견되었을 때 그 안에서 말같은 야생동물의 무리가 그려진 동굴벽화를 찾았지요. 탄소연대를 보면 3만5천 여 전에 그려진 그림.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 당시엔 미술학원이 없었는데, 그 아래 그림은 측정결과 5천년 뒤에 그려진 그림이었습니다. 5천년 시간의 간격은 뭔가, 그 연속성과 지속성은 뭔가, 그걸 통해 제가 본 것은 나이가 들었다는 것과 어린 것의 차이는 뭔가, 짧은 순간에 지구 에서 사는데 서로 아래 위를 굳이 따져야 하나 그걸 보며 생각했습니다. 곰의 조상을 모시고 제 사를 지낸 흔적이 있는데 그 당시의 사람들이 빌었던 것은 뭔가, 그들이 꿈꾸는 행복은 뭔가, 가족들이 늘상 나눴던 이야기는 뭔가, 저는 이게 너무나 궁금합니다. 며칠 전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 4천광 년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우리 는 겨우 태양계 벗어난 정도인데 4천광 년 뒤라는 것은 우주에선 너무나 좁습니다. 우주와 지구 와 같은 행성이 수없이 많을 수 있는데, 인간 없는 지구라는 걸 보면 만년 뒤에는 문명의 그림 은 지구에 하나도 남지 않더라. 다시 자연으로 생명으로 돌아가더라는 거죠. 지구상에도 그동안 우리가 모르지만 고등생명체들이 살았다가 사라진 횟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을 수도 있다, 45억년

녹색시민포럼 ‘녹색시민의 시민됨을 위하여’


역사 안에. 말씀하시는 걸 들으면서 삶과 시간을 생각하게 됩니다.

유경희 박그림 선생님의 말씀처럼 저도 몸이 아프면 짧게 살다 가는데 왜 이리 복잡하게 사느냐 이런 생각, 옛날 어머니 살아질 적의 나무가 그때도 지금도 미래도 지켜볼 텐데, 지금은 스쳐가 는 짧은 순간이다는 생각을 합니다. 또 박영신 선생님의 말씀이 급진이라 이야기되는 것이 우리 의 현실입니다. 평등이 당연한 건데, 노인이거나 어린아이거나 개인으로서 존중이 있어야 하는 데 위치나 지위, 나이, 힘보다는 그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외부적인 잣대로 보는 게 아니라 어린 아이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존중받아야 하는 것은 노인의 경험이, 가치가 우리에게 미 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기 때문에 존중되어야 하지, 세대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민우회 에선 별칭문화를 썼는데 대표님이라 안하고 저는 그냥 생기라고 불리는데 그게 평등이라고 생각 합니다. 평등은 그 사람이 가진 자원, 외모 모든 것을 떠나서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는 것이라 고 생각합니다. 최종덕 독일에 녹색당 생길 때 거기에도 나이로 논란이 많았습니다. 29살 여자가 당수가 되었는 데 논쟁이 많았습니다. 그런 변화가 녹색정신을 만드는 것이지 정책이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 아 니라 생각합니다. 내부에서 그런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지난 번에 이야기 했는데, 실무자 한 사 람, 한 사람이 모두 대표와 같은 게 녹색조직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유현상Ⅰ상지대학교 강사 맨 처음 녹색시민이라는 명칭 자체에 뭔가 설명하기 힘든 충돌지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 늘 그 의문이 좀 풀렸는데요. 의식, 신념, 가치의 차원에서는 근대 이후를 지향하는 평등, 주체, 자유 같은 개념을 사용하는데 양세진 선생의 발제문에서 말한 ‘본질’은 곧 자연인데 이는 근대 이전입니다. 의식적으로는 근대 이후를 보면서, 실제 물질문명을 근대 이전을 바라보고 있습니 다. 박영신 선생님의 말씀은 뭔가 급진적인 것을 해야 한다, 양세진 선생님은 온 몸을 던져서 자기화하라 하는데 저는 적절히, 적당히를 좋아합니다. 전통적으로 당연시했던 덕목들에 대한 근본적인, 전면적인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오히려 합니다. 이승훈 선생은 느림을 이야기했고 러 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썼는데 게을러야 소비도 하지 않고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어 렸을 때부터 들어온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해라 하는 말에 대한 반성이 근원적으로 이뤄져야 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우리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면 녹색시민이 못 됩니다. 증권맨이 증권 일에 최선을 가지면 녹색시민 못되는 거죠. 여유가 있고 적절함과 적당함이 있어야 고개 한번 돌려볼 시간을 가지는 것. 자연에 대한 경외도 갖는 것입니다. 근대적으로 내려온 모든 덕목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거죠. 윤기돈 부동산업자의 본질은 좋은 집을 얻어주는 것이 듯 본질의 의미를 계속 찾아야 합니다. 게으름의 본질은 뭘까? 그건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거지 무조건 게을러 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실하라는 것이 단순히 죽을 때까지 일하라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전통적으로 내려

제6회 온전한 녹색시민을 위하여┃13


온 지혜도 본질을 다시 물어야 하겠지요. 성서에서도 계속 질문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해석합 니다, 의미는 뭘까 계속 물어야 하는거죠. 과학의 본질은 돈 많은 사람들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 과학의 본질은 뭘까 계속 캐물어야 한다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서 어떤 것을 제외 하는 순간, 편하긴 하지만 그러나 소통되진 못합니다. 그 관계에서의 본질을 계속 캐물어야 합 니다. 유현상 본질을 캐물어야 할 때 저는 뭘 캐물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본질을 자연으 로 바꾸면 여기서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이 뭔가로 이해가 됩니다. 본질은 국면마다 다르기 때문 에, 본질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한다는 것은, 보편적인 기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건데, 그 게 없으면 공허해집니다. 지난 번에 욕망이라는 말을 쉽게 표현해보자 했듯이 본질을 쉽게 일상 의 표현으로 말해보자면, 모든 상황에서 비교적 잘 적용할 수 있는 말로 표현해보자면 자연스러 움이라고 봅니다. 양세진 저희 아파트 단지에 벚꽃이 아름답게 피었는데 그날 밤에 소나기가 내려 벛꽃이 다 떨어 졌습니다. 그래도 남아있는 벚꽃이 있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일종의 생명의 경이로움, 엄청난 폭 우 속에서도 남아있는 번꽃의 힘은 뭔가, 작고 미약한 생명의 힘. 그런 면에서 성실하라, 최선을 다해라 같은 패턴화 된 단어가 갖는 부작용이 있지만 그 작은 벚꽃이 갖고 있는 힘은 성실이나 죽고 살기는 아니지만 어떤 뭔가의 힘입니다. 삶의 힘을 이야기하는 거지 최선이나 성실 같은 패턴화된 단어는 아닙니다. 저도 변한 게 시민성 중심의 사고를 하다 녹색시민성이 보다 본질적 이다는 삶의 토대를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작고 미약한 생명의 힘을 보면서 녹색시민다운 삶은 우리가 안에 삶의 힘을 어떻게 가질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윤상훈 질문이 있는데요. 저는 본능적으로 행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해서 행동으로 이끌 어내 것인가 하는 고민이 즉각적으로 드는데, 유종반 대표님께 질문하자면

사람들이 정말 그렇

게 생각을 바꿀 수 있는지, 돈이 문제의 중심이라 했는데 어떤 행동을 통해 어떻게 전세를 역전 시킬 수 있는지. 팁을 주실 수 있습니까 유종반 팁은 이미 있습니다. 대다수 부모들이 아이들을 키울 때 아이를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 장 다녀서 돈 많이 벌라 가르칩니다. 그런데 그것 말고도 다양하게 살아가는 방법이 많습니다. 프레드릭이라는 그림동화책에서 쥐들이 열심히 양식을 모아 겨울에 먹을 때 프레드릭이라는 쥐 는 양식 대신 햇살을 모으고 이야기를 모아 나눕니다. 이런 다양한 삶의 고민을 하면 됩니다. 최종덕 1%가 99%를 고치기는 너무 힘들지 않습니까? 유종반 그래도 저는 희망이 있다 생각합니다. 저 역시 99%는 안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럼 나는 뭐하나? 안되더라도 저는 0%라도 희망을 가져야 내가 살고 운동하는 의미가 있지, 아니면 살 의미가 없다 생각합니다.

녹색시민포럼 ‘녹색시민의 시민됨을 위하여’


박영신 최근에 ‘인권의 발명’이라고 린 헌트라는 미국의 역사학자가 쓴 책을 보게 되었는데 사람 을 바꿀 수 있나, 생각을 바꿀 수 있나 하는 이런 문제와 연관해 생각해 볼만해 여러분과 나누 고 싶은 책입니다. 그 사람은 미국의 헌법과 미국의 독립선언, 프랑스 대혁명때의 인간과 시민 의 권리 선언이 인권에 대한 중요한 모범이라 말합니다. 물론 그 전에 여러 소설을 통해서 인권 에 대한 가슴 아픔을 공유하며 사람들이 바뀝니다. 한 여성이 귀족이나 남자에 의해서 처참하게 살아가는 소설을 독자들이 읽으면서 아, 어떻게 이럴 수 있나 하면서 생각이 바뀌기보다 동감의 가능성으로 옮겨가는 거죠. 프랑스 대혁명 때 나온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인데 이 선언은 인권 에 관한 가장 일반화된 선언입니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 선언은 당시 99%의 가톨릭교도에 게만 적용된 게 아니라 소수자인 10만~20만 명의 개신교 교도와 4만 명의 유대인에게도 확대 적용되도록 했다는 겁니다. 1%의 사람들인 유대인, 개신교도들에 대해 똑같은 권리를 인정해 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후 여성도 인권을 갖는다는 생각으로도 바뀌구요. 제가 최근에 셀마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셀마는 미국의 한 동네에서 마틴루터킹이 행진을 하는 이야기인데 그 영화에서도 여러 가지 이야기할 거리가 나오지만 오랫동안 흑인 인권문제를 99%, 100% 가까이의 사람들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미국 독립당시 제퍼슨 같은 사 람도 흑인 인권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소수자들이 주장도 하고 그것 때 문에 죽기도 하고 감옥에도 가고 소설도 쓰면서 이런 과정을 밟으며 1950년대에 대법원의 판결 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마틴 루터킹같은 사람이 인권 운동을 벌이게 됩니다. 백인들도 그런 데에 관심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행진의 삼분의 일이 백인들입니다. 이렇듯 사람들의 생각 을 바꾸는 것은 굉장히 어렵지만 바꿀 가능성이 있고 바꾼 역사의 보기가 꽤 많습니다.

굉장히

어렵지만요.

제6회 온전한 녹색시민을 위하여┃15


박정운Ⅰ 녹색사회연구소 사무국장 바뀐 모습들이 사라들에게 주는 에너지가 있고 그래서 사람들이 변화하는 그런 과정이 있습니 다. 그런데 저는 변화에 대한 무관심이 계속 확장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 나의 문제로 와 닿지 않는 이 괴리감을 어떻게 좁혀나갈까. 가치에 대한 것, 본질에 관한 것들이 행위로 드러나고 보여 지고 이행되는 부분들이 있고, 이걸 공유하 고 드러나에 해야 하는데 지금 막혀 있는 지점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무엇이 나를 지속가능 하게 이끌고 있는가. 삶의 힘이라는 부분이 개인적으로도 동력이 떨어졌고 왜 확장되지 않고 힘 이 들까. 변화의 무관심이 나에게도 스며들지 않나 하는 상태입니다. 이런 것이 다수의 시민들 에게 확장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걸 어떻게 뛰어넘을까 고민이 있습니다. 이게 일상의 관계 맺기를 통해서 극복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합니다. 윤기돈 지난번 최종덕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는데 씨앗의 힘은 발아하는 것이 아니라, 발아하는 조건을 갖추는 것에 있다 했습니다. 왜 못 믿느냐고 말하고 싶습니다. 변화에 대한 무관심이라 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변화 할려고 노력하고 다만 지금은 동원되는 것보다 내재하는 것이 더 우선이다라고 믿고 있습니다. 변화에 대한 무관심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렇게 보일 것입니다. 그 래서 저는 그렇게 보지 않으려 합니다. 내가 매일 시위에 나가지 않지만 그 힘을 계속 갖고 가 려고 하는 것처럼 시민들도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여전히 우리가 정말 녹색다움의 본질을 제대로 찾고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 습니다. 생각의 자유, 사상의 자유가 있다고 말하지만 간혹 우리는 어떤 생각은 근원부터 잘라 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핵산업계의 연구는 그 맹아부터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 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의 가치와 다르다 하더라도 연구와 생각은 자유롭게 진 행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녹색다움이라 생각합니다. 생각의 자유에서 어떤 것은 가능하 고 어떤 것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순간 우리는 녹색다움을 잃고 우리가 극복하려는 것과 동일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는 녹색다움이 이뤄질 수 없습니다. 유종반 제가 물질적인 것만 말한 것은 아닙니다. 캐물어야 한다는 것, 캐묻고 생각하면서 자기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을 돈은 못하게 합니다. 자기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도 자기 말이 아니라 돈 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마치 자기 말처럼 하고 있지만 돈의 말을 대변하는 것이 99%다고 생각 합니다. 곤충은 더듬이가 있어서 잘 삽니다. 그런데 인간은 더듬이가 잘라졌습니다. 잘못된 교육 에 의해서인데 돈이 그렇게 한 겁니다. 돈이라는 것 자체가 내 생각조차도 지배하고 있어서 내 생각인지 돈의 생각인지 모르고 나 자신의 생각조차 지배하고 있습니다. 캐묻는 것도 내 생각인 지, 남의 생각이 내 생각인지를 보면 그 배후에 돈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유현상 돈 말고도 사고의 관성도 있습니다. 제가 4대강 1-1공구에 사는데 거기 3만평 되는 수 양버들을 베더니 다시 나무를 심더라구요. 그게 다였습니다. 자연습지를 걷어내고 콘크리트 수 로를 만들었습니다. 지천이 다 마르죠. 그 공사 당시 마을 아주머니랑 이야길 하는데 여기 오래

녹색시민포럼 ‘녹색시민의 시민됨을 위하여’


사신 노인 분들이 4대강 사업 덕에 이제 홍수는 안 난다고 하길래 그럼 그전엔 홍수가 났냐고 물었는데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게 뭡니까? 사람들은 믿고 싶은 거 믿습니다. 칭찬하고 싶은 걸 말도 안되는 현상에 대해 어차피 안 났던 홍수를 이제 홍수가 안 나서 다행이라며 칭찬합니다. 돈과 무관하게 우리 생각을 멈추게 하는 것들이죠. 최종덕 더듬이를 회복하자고 모였는데 여전히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실천적인 대안은 뭔가 하는 답은 안 나왔습니다. 보여줄 수 있는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건 여전히 해야 한 다고 생각하구요. 마지막 발언을 듣겠습니다. 양세진 윤상훈 처장의 고민에 대한 답이 아니라 그 또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습 니다. 우리가 모여 여기 논의하는 것이 실천이 아니면 실천이 어디에 있냐고 묻고 싶습니다. 우 리의 한계는 한번에 동시에 전체를 바꾸는 착각에 빠져있는데 핵폭탄을 터뜨리지 않는 한 그렇 게 일시에 바뀌지 않습니다. 당신의 말대로 될려면 오천만 국민의 생각이 한 번에 바뀌면 될 것 이라 하면 하지 말자는 겁니다. 어떻게 세상을 바꾸느냐고 하는데 하나하나가 길 위에 있는 것 이고 실천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게 실천이 아니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과정이 아니면 실천과 변화는 어디에 있느냐 묻고 싶습니다. 또 다른 욕망과 욕심이 우리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 우리를 안주시키면 안 되지만 저도 사실 자괴감이 들고 정신분열이 난다는 게 이런 거 구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생각하면 아무것도 없지만 내가 이 자리에 와서 이렇게 이야기 나눈 게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위대한 실천이고 위대한 변 화의 과정이다 생각하면 삶의 힘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6회 온전한 녹색시민을 위하여┃17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