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 November 건강한 교회성장의 노하우가 한눈에 보이는 목회종합전문지
COLUMN
FRONTIER POWER INTERVIEW
COVER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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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여는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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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에 일어난 기적’
미래목회모델 2부 ‘차세대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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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목회자 여러분에게
<동행>
이영훈 목사(본지 발행인)
배경락 목사(서북교회)
이수훈 목사(당진동일교회)
미래 기독교교육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다음 세대를 위한 교회교육 새 판 짜기 미래 교회교육, 어떻게 변할 것인가?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
이정기 교수(백석대학교, 기독교교육학회장) 박상진 교수(장신대학교,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
김은호 목사(오륜교회)
박광수 소장(기독교미래교육연구소, 빛과소금교회)
072
스페셜 인터뷰 | 이만수 전감독(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
‘주님이 내어주신 길, 저는 따라만 갑니다’
081
2017 목회 매뉴얼 | 둔산제일감리교회
‘영혼 구원 역사의 생생한 현장, “셀 배가 축제”’
086
글로벌 리포트 | 권오혁 선교사(태국)
‘태국 선교의 새로운 창, 문화선교와 전략’
096
행복한 목회현장 속으로 | 유승표 목사(태백에덴교회)
‘내가 아닌 우리, 혼자가 아닌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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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기 원로목사(교회성장연구소 명예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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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STRY 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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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이슈 1 | 김기석 교수(성공회대 신학과)
‘기독교 신앙과 과학의 대화Ⅳ-폴킹혼의 과학과 신앙에 관한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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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이슈 2 | 편집부
‘2017 이스라엘 목회자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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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직 목회 | 김승호 교수(영남신학대학교)
‘이중직 목회 그 소명을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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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촉진하는 선교적 리더십 | 이상훈 교수(Fuller Theological Seminary 겸임교수)
‘선교적 리더십의 원동력 : 섬김의 리더십’
140
윤영훈의 팝폴로지 | 윤영훈 교수(성결대학교 신학부)
‘손석희 저널리즘과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150
더 넥스트 스텝 | 김도일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
‘꿈너머 꿈을 꾸는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드는 목적’
158
현대인의 마음치유 | 고병인 소장(고병인가족상담연구소)
‘사별의 슬픔과 애도 상담’
170
크리스천 인문학 | 이광희 목사(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 전임목사)
‘우리가 우리가 바라는 이상향 -조선인의 유토피아, 서신혜,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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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에 일어난 기적” 이수훈 목사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소그룹학을 연구한 이수훈 목사는 당진동일교회를 개척하여 담임목 사로 섬기고 있다. 한국소그룹연구원, 교회전략연구소를 통해 작은 교회와 개척 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시내산기독학교를 세워 차세 대를 양육하는 일에 전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꿈꾸는 교회 춤추는 하나님』, 『강한 바보가 되라』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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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ntier Power Interview 진행_ 김형근 본부장 | 취재_ 이하늘 편집장, 최상현 기자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로 한국 사회는 큰 어려움을 경험했다. 사람들 은 삭막해져갔고, 도심에서는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을 몰랐다. 많은 군중들 속에 묻혀버린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소중함을 잃어버린 것이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소중한데, 이것은 뭔가 잘못되었다.’ 이수훈 목사는 도시를 떠났다. 한 사람, 한 영혼에 집중할 수 있는 현장을 찾 아 충남 당진으로 내려간 그는 교회를 개척하고 하루에 백 명의 사람들을 찾 아 다니며 전도하기 시작했다. 한명 한명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심방 하며 울고 웃었다. 그때 전도한 사람들이 교회의 기둥이 되어 이 목사와 함께 지역 사회를 섬기고 있다. 그리고 지금, 당진동일교회는 5천 명의 성도가 함께하는 교회로 성장하여 지 역사회를 넘어 한국 교계와 다음 세대를 섬기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_편집부
목사님께서 저술하신 책 ‘꿈꾸는 교회, 춤추는 하나님’을 보 면서 참 많은 감동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불가능 한 일들과 사역에 몸을 내던질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과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 있습 니다. 교회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만 하면서 달려 나간다면 교회로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 며, 주님의 생명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 하나님의 역사 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 역사는 오직 믿음으로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 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자꾸 이 부분을 놓쳐버립니다. 하나님이 온전히 하시 는 일을 누리는 것은 교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자 축복입니다. 사람이 볼 때 ‘안 된다!’하는 일이 교회에서는 가능하게 될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 십니다. 바로 그 일을 보기 위해 저는 이 열악한 곳에 개척을 한 것입니다. 쉬운 길도 많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산 속에 교회가 세워지고 그곳에 양들이 몰려온다면 그야말로 하나님이 하신 일 아닙니까? 저는 하나님이 살 아 역사하시는 현장에 있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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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현실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었고 처참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진실하게 기도할 수밖에 없었고, 매일 100명의 영혼을 만나야겠다는 다짐을 했죠. 하루도 빠짐없이 100명의 사람을 만나 며 뛰어다니고 쫓아다니다 보니 열매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바울 사도나 예 수님이 지금 이곳에 오신다면 그런 일을 하시지 않을까요? 지난 몇 년간 기 존에 있는 성도들을 돌보느라 현장에 나갈 수가 없었고, 그러자 제 마음에 부담이 쌓여갔습니다. 지금 61세인데 내년에는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여 잃 어버린 영혼을 찾아다니고자 합니다. 남은 시간을 온전히 복음 전파를 위 해 헌신하고 싶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하 루에 100명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 1시까 지 뛰어다녀야 가능한 일이었죠. 잠깐 자고 일어나 새벽기도를 드리고 바로 길을 나서야 했습니다. 그렇게 4년이 지나자, 85평의 예배당에 발 디딜 틈도 없이 교인들로 꽉 차버렸어요.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참 행복 한 시절이었어요. 다가올 미래 사회에 대비하여 교회는 무엇을 준비하고 힘을 기울여야 할까요?
지금 길에 나가서 “예수 믿으세요! 좋은 일이 생깁니다. 복을 받습니다!” 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들을까요? 이제는 세상에 좋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교회 가서 얻을 것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점점 복음 전파가 힘들어지고 있 는 현실입니다. 사람은 필요에 따라 움직입니다. 세상에서 필요한 것을 대 부분 제공하고, 또한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데 왜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헌 금 생활, 봉사 생활을 하려 하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답답해질 수밖에 없죠. 개인적으로 한 가지 리서치를 해보았습니다. ‘모태 신앙을 가진 사람이 30 대 후반이 되면 몇 퍼센트나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까?’ 그 결과 100명중에 9 명만 교회에 남고 나머지는 다 떠나버린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서 90%가 교회를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에 자발적 으로 찾아올 확률은 거의 없는 이때에 교회는 어디에 서야 할까요? 고령화 사회가 되어서 60대 이상의 교인이 예배당을 가득 메우고, 초저출산 현상이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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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겹치면서 주일학교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해서 출산운동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사찰의 승려나 가 톨릭 신부가 아이를 낳겠습니까? 교회만이 출산의 축복을 가지고 있습니 다. 출애굽기에 보면 바로가 가장 무서워한 것이 바로 ‘출산’이었습니다. 하 나님이 주신 최고의 특권과 축복이죠. 국가에서 막연하게 돈 몇 푼 주면서 아이를 낳으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출산을 하지 않습니다. 아예 판을 바꾸어 야 합니다. 아이를 낳고 싶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웃집 아이가 너무 멋지 고 예쁘게 자라면 ‘나도 저런 아이 낳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속해서 그 런 생각이 들도록 유도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주일 아침 9시 예배를 가족예배로 드리면서 매주 5-6세의 아이 두 명을 앞에 나오게 하여 자기 비전을 선포하게 합니다. 그 모습이 너무 예쁘고 좋으니까 중년여성들 도 아이를 낳기 시작했고 현재 당진동일교회 성도들은 평균 3명의 아이를 출산하고 있습니다. 이제 5명을 향해 가고 있어요. 이러한 출산장려 운동과 함께 교회는 베이비 케어 센터를 계획 중에 있습 니다. 산모가 조리원에서 나올 때 아이를 맡기고 직장에 나갈 수 있도록 교 회가 맡아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이를 위해 시설이 완벽하게 준비되어야 하 는데 가장 먼저 위생과 정서적인 부분을 완비하고, 가정처럼 편안한 시스템 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중년 성도들이 아이들을 돌보게 하고 수고비는 교회에서 드리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직장여성들도 부담 없이 자녀를 출산 할 수 있어요. 아이가 자라서 네 살이 되면 얼마나 큰 기쁨과 에너지를 선사 해주는지 모릅니다. 그 행복함 때문에 둘째를 또 낳아요. 이러한 일은 국가 의 어떤 시스템도 하지 못합니다. 관공서도 못합니다. 오직 교회만 할 수 있 어요. 교회는 전국 곳곳에 있으며, 교회에는 성숙한 인력들이 있습니다. 이 만한 시설과 준비된 사람들이 전국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이를 잘 돌보고 양육하면 젊은 엄마들이 교회로 들어옵니다. 오늘 확인한 저희 교회 등록 성도 연령대를 보면 9세까지의 아이들이 27%, 30대 23%, 40대 11%입니다. 어린이와 30대가 등록 성도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 까? 아직 베이비 케어 센터는 시작하지 못했지만 ‘서로 돌봄’사역을 이미 하 교회성장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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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아이를 맡겨둘 수 있는 사역 시스템이 있기 때 문에 젊은 세대가 교회를 찾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방식으로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를 해나갈 수 있습니다. 다가올 미래에는 교육 패러다임이 어떻게 바뀔 것이라고 보십니까?
우리나라는 고졸자와 대졸자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습니다. 이렇게 학 력이 높은 국가에서 자녀의 폭력으로 부모가 목숨을 잃는 일이 다수 발생 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오래전부터 영특한 소수의 인재들이 권력을 가졌고 나머지 사람들은 민초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소수의 ‘머리’가 되 기 위해 줄을 서야 했고 그것이 오늘날의 ‘입시제도’입니다. 인성과 사람됨 의 교육은 사라지고 입시위주로 교육을 받다보니 다음 세대가 사람다운 사 람으로 자라나지 못합니다. 공부만 많이 시켜놓으니 법조계에서, 재계에 서, 정치권에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어도 그 힘을 올바른 일에 사용하 지 못하고 오히려 악용하는 일이 많은 것이죠. 정직한 사람, 된 사람을 보기 가 힘든 시대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돌아보십시오. 주일학교에서 믿음이 바 로 세워지고, 신앙으로 아름답게 양육 받은 예수님의 작품이 나오고 있습니 까? 이제는 교회학교가 사람을 제대로 만들고 세우는 인재양성센터가 되어 야 합니다. 당진동일교회에서는 초등학생들이 방과 후에 교회에 와서 즐겁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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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놀고 저녁을 먹은 후 집으로 돌아갑니다. 교회에 오면 영어로 토론도 하 고 음악도 배우며 유익한 시간을 보냅니다.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1학년부 터 6학년까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서로 친밀한 관계를 맺어갑니다. 그 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바른 인성이 길러지고, 학교 선생님들도 동일교회 아 이들은 참 온순하고 배려심이 많다며 칭찬해요. 성경적 바탕에서 사람을 길 러내는 것보다 효과적인 인성교육은 없습니다. 성경적 가치관을 일상생활 속에 녹여낼 수 있게 교육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가 서도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시내산 중고등학교를 세워 인재양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우리 교회만을 위한, 우리 지역만을 위한 교회학교 가 아닌 국가에 기여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센터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그 세계관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으로 길러내는 것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신앙을 막연하게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준비시키 실 때 어떻게 인도하셨나요? 매우 전략적이고 정확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 니다. 이제 교회도 어린 아이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아이에게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길을 가르치며 체계적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이 같은 양육에는 멘토 교육이 참 유익합니다. 교사와 부모가 아이의 마음을 잘 읽어내면서 멘토링 이 이루어지는 것은 교회만이 할 수 있는 교육입니다. 시내산학교에서는 선생과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어울립니다. 학교, 가정, 교회가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학부모들이 돌아가 며 아이들의 식탁을 준비하고 함께 삼겹살 파티도 합니다. 선생님은 아이들 의 멘토가 되어 함께 여행하고 대화를 나눕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이 모, 삼촌이 되어주는 것이죠. 이러한 따듯한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이 교육 받다보니 주말이 되어도 집에 가려하지를 않습니다. 학교가 좋다는 겁니다. (웃음) 공부가 좋고, 선생님이 좋고,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좋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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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께서는 오늘날 한국 교회의 성령운동과 소그룹 운영이 어떻게 이어져 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우리나라에 ‘기도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기도꾼이 사라지고 있어요. 남 아있는 기도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60대 이상입니다. 기도하는 젊은 세대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20년 전만 해도 틈만 나면 산에 올라가 기도했던 기억 이 납니다. 이제 사람들은 기도원이 아닌 해외여행지와 골프장을 찾아갑니 다. 하나님을 목말라하지 않고 영적인 갈급함을 잃어버렸어요. 이것이 한 국 교회의 위기입니다. 이제 누가 금식하며 주님께 매달립니까? 큰 위기가 오지 않으면 열정적으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육신의 사람은 하나님을 영으 로 예배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소멸되고 있으며 설교 강단에도 윤 리적, 지식적 설교가 팽배해져가고 있어요.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함께 귀 신이 떠나가고 병든 자가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데 그런 교회를 찾 아보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성령을 회복해야 합니다. 성령이 없이는 복음을 증거 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할 수 없어요. 내 안에 계신 주님이 하 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소그룹은 기본적으로 잃어버린 가족을 회복하는 사역입니다. 옛날에는 힘들면 고모, 이모, 삼촌이 있었기 때문에 거기 가서 기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입니다. 함께 쉴 수 있는 가족이 없어요. 그 고독함 때문 에 자살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이죠. 힘들고 어려워도 어디다 가 풀 곳이 없습니다. 부부도 서로 맞지 않고,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생각을 강하게 품고 있어요. 소그룹 사역은 고립된 영혼들로 하여금 영적인 가족 이 되게 합니다. 그 가운데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며 서로의 언니 동생, 이모 와 고모가 되어주는 것이죠. 당진동일교회 소그룹에는 품앗이 기도가 있는 데 서로의 고민과 어려움을 위해 기도해주는 사역입니다. 그러면 강한 유대 감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그 사람의 기도를 진심으로 품는다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을 품는 것과 같기 때문이죠. 때문에 로테이션 시기가 되면 난리가 납니다. 너무 강하게 뭉쳐 있다 보니 헤어지기 싫은 겁니다. 하지만 소그룹 의 생명력은 2년 반이기 때문에 반드시 새로운 물이 들어와야 합니다. 그러 지 않으면 서로가 너무 익숙해져서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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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교회 뿐만 아니라 도시에도 많은 미자립 교회가 있습니다. 개척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성도가 늘지 않고 여전히 힘겨운 목회를 이어가시는 목회자가 많은데 그들을 위한 제언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단 한명의 성도도 없는 맨바닥 개척을 4번 해보았습니다.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압니다. 월세를 내야 할 날은 다가오고 전기세를 낼 돈도 없고 당장 내일 먹을거리도 없는 생활을 7년 동안 했어요. 시골에 와서는 비닐하우스를 치고 교회를 섬겼는데 부탄가스 값 700원도 없는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내가 정말로 주님의 종이라면 왜 양을 보내 주시지 않는걸까?’ 참 많은 눈물을 흘리는 시간이었습니다. 몇 명의 성도가 왔다가 가면서 하 는 온갖 말들, ‘이래서 싫다, 저래서 싫다’는 반응은 맥이 빠지게 했습니다. 앞이 캄캄했어요. 그런 과정에서 저의 약함을 발견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누구를 만나든지 ‘많이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주고, 안아주자’는 결 심을 했습니다. 작은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큰 교회는 절대로 하지 못하는 사역이 있어요. 대형교회 목사님은 전도를 위해 사람들을 만나면서 함께 삼 겹살을 구워먹고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합니다. 하지만 작은 교회 교회성장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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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는 가능합니다. 전도 대상자 가정을 만날 때 삼겹살 한 근과 쌈장을 들고 가서 나눠먹으며 세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몇 번 그러 다 보니 그분이 먼저 고기 한 근을 사놓고 저를 부르더군요. 이렇게 맺어진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전도가 이루어지고 그 사람을 중심으로 연결된 사 람들과 이어지게 됩니다. 친구 한 명 데려와서 같이 고기를 구워먹고, 또 다 른 친구를 불러와서 친교 하다 보면 전도의 문이 열립니다. 당진동일교회 성도들의 거주 지역 분포도를 보면 차량으로 최대 세 시간 거리에 있는 성도들도 매주 출석하고 있습니다. 여섯 시간을 도로에서 보내 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왜 당진까지 찾아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관계’때문 입니다. 삼겹살 한 근을 가지고 긴 대화를 나누며 맺어진 그 관계가 너무나 도 끈끈하기 때문에 이사를 가서도 계속해서 찾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5천 명의 성도를 누가 끌고 가겠습니까?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 니다. 처음 만났을 당시에는 배움도, 신앙도 약했던 그들이 저희 가족이 되 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이 공동체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습니다. 작은 교회일 수록 한 사람에게 집중하십시오. 그가 감동받고 은혜를 받으 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반드시 누군가를 데려옵니다. 건너 건너서 데려 오다 보면 그 모임이 구역이 됩니다. 저희 성도 분포가 서산, 예산, 홍성을 넘어 하남시까지 뻗어있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 이어졌기 때문에 서로가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장면을 꿈꾸지 마십시오. 지금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에게 집중하십시오. 그 한 사람 옆에 반드시 또 다른 사람이 있습니 다. 제가 이렇게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여러 번 해보았기 때문입니다. 건물 이 없어도, 한 사람만 제대로 만난다면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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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ntier Power Interview
<당진동일교회 교육 프로그램> 1. 패밀리 처치 패밀리 처치(Family Church)는 가족 공동체 교회를 의미한다. 교회를 통해 무너진 가 족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 패밀리 처치의 중심 사상이다. 패밀리 처치는 아파트 단지별, 살고 있는 지역별로 모여서 나눔을 한다. 부모와 자녀, 이웃이 함께 어울려 떡 을 떼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교제하는 것이다. 또한 학교 및 지역에 예수님의 사랑을 전 한다. 1) 주일 패밀리 처치 ● 가족 예배 : 주일 오전 9시가 되면 가족 공동체 예배를 드린다. 3대가 어우러져 예배 를 드린다. 나는 아이들을 배려하지 않고 설교한다. 처음엔 아이들을 위해 배려했는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어른들에게 맞춰 설교했다. 2년이 지나면서는 아이들도 그런 줄 알 고 잘 앉아 있다. 아이들이 설교를 알아듣는지 궁금하여 예배가 끝난 뒤 물어본 적이 있는데 설교 내용을 다 알고 있었다. ● 소그룹 활동 : 오전 9시 가족 예배가 끝나면 지역별로 흩어져서 아이들끼리 소그룹 활동을 한다(오전 10시~11시 20분). 그날 주신 말씀을 고백하고 나누는 것이다. 2) 토요 패밀리 처치 가족, 사회가 붕괴되고 있다. 그러나 일으킬 수 있는 길이 있다. 그 길은 교회이다. 그 래서 시작한 것이 토요 패밀리 처치이다. 이기적이고 삭막한 사회와 붕괴되는 가정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주일 예배만으로 부족했다. ● 운영방향 : 토요 패밀리 처치는 모이기로 약속된 가정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그 가 정의 자녀가 그날의 리더가 되게 한다. 아이들이 모이면 학생 리더가 성경을 나누고 게 임하는 3시간가량의 프로그램을 주관한다. 패밀리 처치는 마을 단위로 모인다. 그러 다보니 다른 지역에 사는 또래(같은 학년)끼리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은 학년별로 모여 말씀을 나누고 요리를 하거나 등산을 하는 등 유대 관계를 맺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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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더십 훈련 : 우리 교회 학교에서는 항상 리더십 훈련을 한다. 멘토 교육을 따로 하 면서 모든 교육 과정에 소그룹을 활용하여 모두가 리더의 경험을 갖도록 교육하고 있다. 2. 살렘어린이집 어려서부터 아이들을 성경 말씀으로 키우기 위해 월요일 오전에는 2시간 동안 예배를 드린다. 살렘어린이집에서는 질문하고 발표하며 기도하는 아이들로 교육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리더십 훈련을 하기 위해 7세가 되면 스피치(Speech)를 가르친다. 공원과 터미널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향해 스피치를 하게 한다. 또한 매주 9시 가족 예배 후 에 두 아이가 각각 5분씩 스피치를 한다. 어른도 떨리는 단 위에 올라 1,000명 가까운 회중 앞에서 스피치를 하게 하여 담대함을 훈련하는 것이다. 3. VCA VCA(Visionary Christian Academy)는 “세상을 이기는 어린이, 믿음의 자녀가 되자”는 목표 아래 세운 방과 후 초등 교육기관이다. 학교 공부를 중심으로 교육하기보다 인격 훈련, 신앙 훈련, 음악 훈련, 영어 훈련을 한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은 학교 정규 수업 이 끝나면 학교에서 교회 버스를 타고 교회로 들어온다. 매일 엄마들이 당번을 정하여 간식을 나누어주고 교회에서는 저녁 식사를 제공한다.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부모님을 기다렸다가 예배까지 드리고 집에 간다. 어린이 특별 새벽 기도회를 할 때는 부모님도 필히 참석해야 하기 때문에 교회에서 자더라도 새벽기도회에 참석한다. ● 사고능력 : 어떤 주제를 정하면 신문, 잡지, 사전, 자연 등에서 답을 찾아와 토론하고 발표하게 한다. 끊임없이 질문을 만들어 씨름하게 하기 위함이다. ● 사회성 : 아이들은 단체 줄넘기를 하더라도 어린 아이가 있으면 형이나 누나가 자발 적으로 업고 뛴다. 조금 지나면 다리의 충격으로 바닥에 주저앉을지라도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고 기뻐서 웃는다. 약한 아이를 도왔다는 성취감이 있기 때문이다. 4. JCC English Camp JCC English Camp는 당진 동일교회 예수촌 공동체(Jesus Country Community)가 운 영하는 성경 영어 캠프이다. 여름방학이 되면 영국 런던과 웨일스, 미국에서 20~30명 의 원어민 교사가 들어온다. 적어도 두 달간 홈스테이지를 하며 아이들과 함께 예배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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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ntier Power Interview
활과 영어 생활을 하게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영어 캠프를 통해 자연스럽게 외국인과 인간관계를 맺게 된다. 아이들은 영어 캠프 기간에 외국인과 어울려 토론식 나눔을 한 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영어를 공부로 느끼지 않고 언어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영어 캠 프는 국제 교류의 문까지 열어주고 있다. 아이들은 영국, 미국 등 명문대 출신의 원어 민 선생님들과 친구가 되어 캠프가 끝난 후에도 SNS를 통해 교류하며 관계를 지속하 고 있다. 5. 시내산기도학교 시내산기독학교는 참 교육을 갈망하던 부모들의 주도 아래 대안적 기독교교육의 가치 를 실현하기 위해 2013년 3월 1일 개교한 중ㆍ고등 대안학교이다. 시내산기독학교에는 두 유형의 아이들이 입학을 하는데 공부를 아주 잘하거나 아니면 공부에 흥미 없는 아 이들이다. 그 이유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수준별 교육을 시키기 때문이다. 시내산 기독학교에는 중간시험과 기말시험이 없다. 그리고 2년이 지났을 때 검정고시를 보게 한다. 또한 매일 점심시간에 선생님들은 시내산기독학교 아이들과 식탁 교제를 한다. 같이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즐겁게 나누고 또한 아이들에게 공부의 중요성 을 권면하기 위함이다. 아이들은 영어와 수학을 기본으로 공부한다. 그리고 중국어와 불어를 가르친다. 책은 못 읽어도 말은 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시내산기독학교는 4년 안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능 과정을 마스터하여 미국이나 영국의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 또한 학사 과정을 짧은 기간 동안 마치고 해외 연수를 체험 하거나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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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원하는 책
하근수 지음│148*210│값 12,000원
인사는 부흥이다! 인사를 통해 전도의 포문이 열린다! 환하게 웃으며 먼저 하는 인사를 통해 일어나는 수많은 간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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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이
달
의
설
교
다음 세대
성경적으로 설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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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위한 성경이해】
차세대 교육·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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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설교현장】
(대상 4:9-10)·이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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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서 자라게 하라 (삼상 2:21, 26)·김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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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시민의 삶을 사는 자녀 (마 19:13-15; 엡 6:4)·김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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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녀를 위해 울게 하소서! (누 23:27-29)·이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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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부모가 한 일 (출 2:1-10)·장창수
78
어머니의 기도 (삼상 1:9-11, 17-18)·이영훈
92
독수리 새끼같이 (신 32:11-12)·조용기
다음 세대를 위한 살아 있는 족보로
104 【교회학교】
다음 세대를 위하여! (신 6:4-9)·황다니엘
110 【국외설교】 당신의 삶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누 13:1-5) (Don’t Waste Your Life)·존 파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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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삶의 현장
130 목회자가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한재욱 138 이달의 설교예화·편집부 149 신앙에세이·배경락 152 이종필목사의 킹덤 프리칭 16-1·이종필 166 이종필목사의 킹덤 프리칭 16-2 (시 39:1-8)·이종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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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위한 성경이해
김성규_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차세대 교육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교육열이 높은 나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을 통해 과연 우리 가 기대하는 열매를 맺고 있을까? 오늘날 전반적인 교육의 문제는 무엇이며 앞으로 차세대 교육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까? 성경적 가르침을 통해 대안을 찾아보자. _편집자 주
교육의 의미 차세대 교육은 우선 교육에 대한 바른 이해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교육이란 무엇일까? ‘교육’이라는 낱말의 뜻을 고찰해 보면 그 의미가 더욱 선명해진다. 교육의 교(敎)는 본받음(效), 가르침(訓), 알림(告), 훈계(訓戒), 학문(學), 도덕 (道德), 종교(宗敎) 등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는 한자로서, ‘방향을 제시하고 그 곳으로 이끈다’는 뜻과 ‘모범을 보이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를 가 지고 있다. 육(育)은 기름(養), 낳음(生), 자람(成) 등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육 성한다’, ‘올바르게 자라남’ 등을 의미한다. 이것은 인간이 내면적으로 지니고 있 는 천성, 곧 타고난 소질과 성품을 보호, 육성하는 과정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 고 나아가 교육을 받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성장하는 힘’, ‘발육하 는 힘’을 전제로 하여, 그 자발성과 창조성을 충분히 조장시켜 자립을 키워주는 것을 의미한다. 구미에서도 교육을 Education(영어), ducation(프랑스어), Erriehung(독일어), Paidagogen(그리스어) 등이라 하는 바, 모두 그 뜻은 ‘끌어낸다’(引出)’, ‘이끌어 낸다’(導出)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어의 Education과 프랑스어의 ducation 은 라틴어 Educare에서 유래한 것으로, ‘e’의 ‘밖으로’와 ‘ducare’의 ‘끌어낸다’가 합쳐진 합성어이다. 교육의 어원으로부터 그 의미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기 가 쉽지 않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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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칸트(Immanuel Kant)는 “인간은 교육에 의해서 비로소 인간이 될 수 있 다”(Man canonly become man by education)라고 말했다. 생물학적 존재로서 의 인간이 인간다운 인간이 되도록 하는 작용, 그것이 교육이라는 말이다. 온전 한 인간은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칸트가 말하는 온전한 인간이란 지성과 도덕성을 갖춘 인간을 의미한다. 페스탈로치(Johann Heinrich Pestalozzi)에 의하면, 교육의 목적은 머리와 가슴과 손발이 조화된 인간, 즉 지ㆍ덕ㆍ체가 조화된 인간을 기르는 데 있다. 그는 궁극적으로 자연 상태의 인간 을 높은 수준의 도덕적 단계로 끌어올리고자 했다. 헤르바르트(Herbart)는 다면 적 흥미를 바탕으로 지성(사고력)을 연마하여 “견고한 도덕적 품성을 도야”하는 것을 교육의 목적이라고 했다.
동양으로 눈을 돌려보면 대학(大學)에서도 수기(修己)의 과정으로 격물치지 (格物致知)와 성의정심(誠意正心)을 강조했다. 즉, 지성의 연마와 도덕성의 함 양을 교육의 본질로 보았다. 이상에서 교육의 어원과 그 의미를 정리하면, 교육 은 무엇을 밖으로 이끌어내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 양상은 이원화되어 있다. 즉 인간의 지적인 면과 정적인 면을 동시에 고려하여 그 균형성을 찾는 데서 교육 의 의미가 있다. 헤르바르트 역시 도덕성이란 지적 미적 정서적 의지적 신체-감 각적 차원에서 이해를 주장하였는데 이는 올바른 시각이다. 사람됨의 중요한 척 도인 덕성은 지·정·의·체를 모두 포함한다고 볼 때 지식교육과 인성교육은 본 래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이며 하나로 통합되어야 비로소 인성교육도 지식교육도 온전해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교육에 대한 세속의 이해는 놀라울 정도 로 성경과 큰 차이가 없다. 문제는 인성교육과 지식교육의 표준적 원리가 무엇 인가? 하는 것이다. 지성을 연마하여 도덕적 품성을 함양하는 교육의 이상적 모 델이 제시되었지만 인간의 지성은 죄로, 도덕성은 부패하였기에 지성과 도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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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간 스스로의 교육에 의하여 얼마만큼 회복될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이 에 로마서 3장 23절에서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확증한다. 실제로 성경이 그려내는 인간관은 비관론 그 자체다.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 (시 116:11). “…사람의 마음에 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 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막 7:21-22). “만물보다 거짓되 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렘 17:9)
한국의 교육문제 우리나라의 교육문제는 그 범위가 너무 광대하고 길어서 일일이 언급할 수 가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교육문제의 본질을 아는 것이 필요 하며, 이는 교회가 어떻게 방향을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서 중요하다. 2003년 한국갤럽이 5월 6-9일까지 4일간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210명에게 우 리나라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지 물은 결과 ‘사교육위주/학원/과외문 제’가 36%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는 ‘경쟁/입시위주교육’ 16%, ‘입시제도/ 정책일관성부족’ 11%, ‘학교폭력/왕따문제 8%. ‘공교육 부실/교내 질서문제’ 8% 순으로 응답됐다. 조사에서 드러난 문제 그 자체로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진단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 같은 경쟁의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선 경 쟁이 학습에 대한 동기를 촉발시키는 요인의 하나로 교육상의 방편으로 이용될 수 있다면야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각 학습자들이 자신의 학업효과를 최대화하 기 위하여 경쟁하는 것은 오히려 권장할 것이다. 그러나 학교교육이 사회적 지 위 획득의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면 이는 인성교육의 부재로 이어져 참혹한 결 과를 맞을 수밖에 없다. 인격이 부족한 사람에게 권력이란 위험한 것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후자에 가까워서 교육이 사회문제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콜린스(R. Collins)는 학교제도가 신분제도의 대치물로서 지위 경쟁의 수단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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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제도화될 경우 학교의 지위 분배 기능의 비대화는 교육경쟁을 강화시킨다고 우려한 바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플라톤(Platon)이 “한 나라가 얼마만큼 번영 할 수 있느냐는 얼마나 좋은 교육으로 얼마나 제대로 된 사람을 양성할 수 있는 가에 달려 있다”(『국가론』)고 한 명언을 잘 기억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교육 의 현실 문제는 뒤로하고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하여 간단하게 다루고자 한 다. 위에서 언급한 한국교육의 문제는 현상의 문제라기보다는 교육철학 문제라 는 인식이 선행되어야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교육문제와 관련하여 주위에서 흔 히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지식 위주의 교육 때문에 인성교육에 실패했다”는 것 이다. 당연한 것처럼 통용되는 이 말은 세 가지 오류를 담고 있다. 첫 번째 오류는 지식 위주의 교육이 문제라는 인식이다. 지식 위주가 문제라 기보다는 창의성 없는 지식 위주가 문제다. 두 번째 오류는 지식교육과 인성교 육은 별개의 것이라는 생각이며, 세 번째 오류는 지식교육은 문제가 없으나 오 직 인성교육만 문제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인성교육 역시 사회적 경험이 누락된 인성교육이 문제다. 이참에 예수님의 교육을 잠시 살펴보자. 마가복음 7장 28-29절을 보면 “예수 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고 적고 있다. 권 세 있는 가르침이 암시되어 있지만 그중 한 예가 있다. 또한 누가복음 20장 1절 이하를 보면 성전을 정화시킨 예수님에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과 장로들이 찾 아와서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세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 리에게 말하라”고 따졌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직접 대답을 하지 아 니하시고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 서냐 사람에게로서냐”하고 반문하였다. 예수님의 이 질문은 따지러 온 사람들 의 입을 막기에 충분했고 청중의 가슴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창의적인 예수님의 지성이 반짝이는 순간이다. 마태복음 23장 3절을 보면 지적 감성에 대한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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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외식(外飾)하는 자들이라고 엄히 꾸짖으시면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하였다.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지식교육과 인성교육은 본래 분 리될 수 없는 하나이며 참된 인간교육은 지식교육과 인성교육의 조화를 통해서 만 가능하다는 것이 환기된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교육하기 위 하여 인성교육으로서 선지자 제도를, 지성적교육을 위하여 제사장 제도를 동시 에 양 날개로 세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대 사회적 관계 를 끊임없이 감시하였으며, 제사장들은 올바른 제사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성찰하였다. 만일 인성교육과 지식교육이 별개의 것이고 지식교육을 포기해야 만 인간교육이 가능한 것이 사실이라면, 참된 인간교육은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현실적으로 성공과 출세를 보장해주는 것은 인간교육이 아니라 지식교 육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교육의 진정한 목표는 여호와 하나 님을 아는 것이며,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는 것만이 유일하다는 것을 인 지하는 것이다. 잠언 1장 7-9절은 교육의 목표가 궁극적으로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 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
아비와 어미의 지성과 감성이 먼저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강조된다.
구약 구약시대를 비롯하여 원시사회의 교육은 실제적이고 실용적이었으며, 교육은 곧 삶의 과정이었다. 어른을 도와서 일용품을 만드는 일과 고기잡이, 사냥, 농사, 바느질 등의 생산 활동과 맹수나 외적의 침입에 대항하여 싸우는 일 등이 삶의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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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교육활동이었으며 그것은 모방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유 병려에 의하면 원시사회의 교육은 양육(養育)과 호위(護衛)로 요약될 수 있으 며 대체로 3단계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첫 단계는 유희와 모방에 의한 자연지식 의 습득이며, 다음은 훈련의 단계로 주로 생산 훈련, 신체 및 군사 훈련, 도덕 훈 련 등이며, 세 번째 단계는 성년식으로 그 형식은 다양하지만 고대 사회의 공통 된 교육 형태로 행해졌다. 이러한 형식의 교육은 문자생활이 도입되기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며, 이 시기의 교육에서는 앎과 삶, 인식과 실천이 분리되 지 않았다. 이것은 구약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 신명기 6장 4-5절을 보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 말씀은 가르침과 배움의 대강령이다. 즉, 가르침과 배움의 궁극적 목적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이어지는 구절 6-9절 에 잘 명시되어 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 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 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과 동일시되어 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친다는 이중 의미를 지 닌다. 그러나 히브리어 ‘배운다’는 단어의 의미는 지적이이며 감성적인 요소를 동시에 포함한다. ‘배우다’는 히브리어로 ‘라마드’이며, ‘새로운 것을 경험하여 알 게 된다’는 말인데, ‘안다’는 것은 ‘닮는다’는 말로 ‘표현하여 나타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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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배워 안다는 말은, 하나님을 닮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하나님 의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리고 ‘가르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리메이 드’인데 배운다는 말과 뿌리가 같은 단어이다. 히브리어에서 ‘가르치다’는 ‘배우 고 배우고 배운다’는 의미로 계속하여 배운다는 말이다. 더 많이 배운다는 말은 배우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가르친다는 말은 학생들에게 보 여준다는 의미로, 보여주어서 따라오게 하는 것이 ‘가르치다’의 의미이다. 여기 에는 심지어 선생님을 포함하여 누구도 예외가 없다. 선생님 또는 학자를 뜻하 는 히브리어는 ‘탈미드 하함’이다. 여기서 탈미드는 ‘학생’, 하함은 ‘현명한’을 뜻 한다. 즉 ‘현명한 학생’이다. 끊임없이 연구하는 학생이 학자이며 선생님이라는 놀라운 의미를 가르치는 말이다. 그러므로 유대교 교육의 대원칙은 가르치는 사 람과 배우는 사람의 구별이 없다. 특히 하나님 역시 가르치는 자로 나타나기도 한다. 시편 25:4-5을 보자.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 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가르치는 분으로 노래한다. 그래서 그 의 백성들에게 주의 도를 보이시고, 주의 길을 가르치시며, 주의 진리로 지도하고 교훈하신다. 시편 34편 11절에 의하면, 무엇보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자녀로 삼아 그의 말을 경청하게 하고, 나아가 그를 경외하는 법을 가르치신다.
“너희 자녀들아 와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 배우는 지적 노력이 중요한 이유는 정적 요인 때문이다. 지적 노력의 근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데 있다. 전통적인 이스 라엘의 신앙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다는 고백에 근거한다. 그러나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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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억할 것은 정적인 요구라고 할 때 마음을 언급하는데 히브리어 마음에 해당하는 단어는 지적 요구와 정적인 요구가 결합된 언어라는 것이다. 히브리어 ‘마음’(레브)은 인간의 사유의 자리다. 마음은 겉으로 표현되는 말 즉 말하는 기 관들, 예를 들어 입이나 혀와 대별되는 인체의 기관으로서 인간 내면의 깊은 세 계를 표현해 준다. 구약성경에서 내면의 성찰과 관련하여 항상 ‘마음’ 혹은 ‘심 장’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실제로 잠언 14장 33절에서 마음을 ‘이해/이성’으로 번 역하기도 한다.
“지혜는 명철한 자의 마음에 머물거니와 미련한 자의 속에 있는 것은 나타나느니라”
나아가 마음은 내면의 성찰의 자리로 이해되었다. 고대 이스라엘인은 물론 이 집트인들까지도 심장 속에서 사고가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마음은 어떤 일의 계 획을 생각할 뿐 아니라, 지혜나 명철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는 장이다. 시편 49:3 에서는 “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은 명철을 묵상할 것이다”고 한다. 정리하면, 구약에서도 교육은 지성과 감성이 구별되지 않는다. 즉 지식교육과 인성교육 즉 앎과 삶은 한 몸으로서 기능한다. 그러나 구약은 앎과 삶의 결여가 문제가 아니라 불균형성의 문제가 심각했다. 앎이 지식으로만 흘러 교만에 이르 거나, 삶의 경험에만 의존하여 독단으로 갔다. 전자는 지식층에게 치명적이며, 후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났다.
신약 신약의 교육에 관하여 마태복음 4장 23절을 참조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예수님의 사역 을 소개하고 있다. 23절을 근거로 해서, 예수님의 사역을 세 가지로 구분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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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위한 성경이해
첫째는 “가르치시고”라고 제시하는데, 세 가지의 사역 중에서 첫 번째로 나타 나는 사역이며, 예수님의 공생애 중에서 제일 많이 실천하신 사역이다. 제자들 을 선발하시고 훈련하시고, 세상으로 파송하시고, 사역을 위임하시는 모든 과 정이다. 여기서 ‘가르친다’는 말씀을 구약적 배경에서 이해해야 한다면, 가르침 의 이론적 측면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가령 세례 요한이 예수님이 진정한 메 시아인지를 알고 싶어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라”고 명령하신 후에 보내셨다. 확실히 예수님의 가르 침은 보고 듣는 것 즉, 보고 깨달음에서 탁월함이 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론 에 대한 실천적 가르침이 아니라 실천적 가르침의 이론적 깨달음이라는 독특함 이 있다. 마태복음 13장 3-4절은 이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 서 뿌릴 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씨를 뿌린다는 말씀에서 예수님 자신이 길에 다니며 가르치신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길에 다니시며 가르친 것이 무엇일까? 사실 길에 다니시며 가르친 것은 언어라기보다는 행동이었다. 예수님은 행동을 먼저 보이시며 의미를 가르쳤다. 예수님은 전형적으로 지식인에게 결정적 약점으로 작용하는 사회성 부족이 전 혀 없다. 오히려 반대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회에서 처절한 경험을 바탕으로 가르침을 주었고 이에 그 가르침은 쉬웠고 부인할 수 없는 공감대를 무리들과 공유할 수 있었다. 세례 요한의 예를 들어보자. 세례 요한은 광야의 예언자이며 금욕적이고 그의 설교는 심판과 회개의 불같은 외침이었으나 예수의 사역이 점 차로 독자성의 것으로 그 특징이 집약된 바에 의하면, 그는 광야보다는 도시의 설교자였으며, 번잡한 노상과 항구와, 선창가와 호반과 포도원과, 들꽃이 있는 길과, 밀밭사이와, 동네 어귀와 회당 안에서 그리고 성전의 구내에서 드러내 놓 고 교훈과 비유의 설교를 행하였다. 예수님은 구태여 금욕주의적 생활을 최선이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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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말씀하지 않았고 서민이나 불법자들과도 쉽게 식탁을 함께 하였으며 포도 주를 물리치지 않았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 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눅 7:34)
예수님을 비판하는 원수들이 지어 낸 말이면서 또한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에게로 옮겨 온 안드레, 빌립, 베드로, 그리고 나다나엘 등이 또한 같은 모 습을 보았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에게서 거룩하신 하나 님의 아들이심을 보았다는 사실적 근거가 중요하다(요 1:14). 제자들은 비로소, 풍요와 아름다움과 넉넉한 마음씨와 그리고 사람들의 웃음 속에 함께 웃음이 있 는 그러한 구약의 하나님의 형상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 다. 드디어 제자들의 안목에 확연한 변화가 목격 되었다. 위대한 광야의 설교자 세례 요한의 이미지가 빛을 잃어가며 그와 함께 새로운 삶의 길을 약속하는 새 로운 시대가 열려가고 있었다(요 1:16이하, 3:29이하; 막 2:9; 눅 4:19). 특히 마가 복음 2장 10절에 나오는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고 하시며 지붕에서 구멍을 뚫고 내려온 중풍환자를 치유한 예수님의 사역에 관한 기록에서 지극히 초기부터 명백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세례 요한과의 대비적 차이는 요한이 회개의 설교자였는데 반하여 예 수님은 이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를 보이신 인자였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요한은 의의 선지자로서 불의에 대항하다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어쩌면 예 수님은 세례 요한을 풀어줌으로써 제대로 실력을 보여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를 잡은 셈이다. 심지어 세례 요한을 따르던 모든 세력을 일거에 자신에게로 규 합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외면했다. 하지만 예수님 이 세례 요한을 외면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인간적으로 자존심 상할 수도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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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였지만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고 예수님 스스로 세례 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위대했으며, 구약의 엘리야에 비교되는 최고의 선지자라고 치켜세웠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님이 그 능력으로 세례 요한 한 사람쯤 빼내지 못하겠는가! 예수님인들 왜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힌 사건으로 가슴 아프지 않 았겠는가! 마음만 먹는다면 세례 요한을 감옥으로부터 출옥시키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개인적이며 사사로운 일을 위하여 능력을 전혀 과시하 지 않았다. 예수님은 행동으로서 이론적인 가르침만을 주는 당대와는 다른 방 식의 랍비로서 살았다. 따라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있어 행동을 통한 지적인 가 르침은 누구나가 이해하기 쉽도록 배려한 이상적 가르침을 남겼다. 이것이 바로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등장한 길가의 의미다. 둘째는 말씀으로서, “천국복음을 선포하시고”라고 제시하는데, 예수님의 가 르침은 사회적 실천을 통한 천국복음의 선포로써 보다 이해가 쉽고 명확했다. 셋째는 치유목회로서,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했는데, 이 역시 예수님에 대한 신뢰가 최고조 상태에서 믿음이 파고들기 용이하였다. 이 에 마태를 제자로 삼으시기 위해 예수님은 그를 보시고 “나를 좇으라”(눅 5:27) 고 명령하셨으며 마태는 그대로 순종함으로써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지적이며 정직한 인성의 결과로 맺어진 것이었다. 이를 히브리서 5장 7-9절은 잘 정리하고 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 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 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 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차세대 교육 차세대 교육은 어떤 새로운 교육이 대안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현재 지성교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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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과 인성교육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창의성 없는 지 성교육과 경험의 예술성이 결여된 인성교육이 문제였다. 예수님 역시 세상에 오 셨을 때에도 창의성 없는 종교 지도자들의 율법주의,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취 약한 인성의 백성들이 문제시되었다. 이것은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마 음으로부터 흐르는 감동의 찬양과 눈물 없이 쌓은 논문과 학위만으로 강단을 채 우고 있는 지도자들이 가득한 선지학교, 말씀의 조용하고 깊은 소리를 도외시하 고 하늘 찌르듯 함성만 가득한 교회 현실에서 지성과 감성이 조화롭게 균형을 갖춘 교육은 어렵다. 차세대 교육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깊은 영성과 인격의 발판 위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다. 원래 우리나라 전통의 교육은 방법론적으로 매우 성경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삼국시대에 유학과 더불어 문자가 도입되어 형식교육, 즉 학교교육이 시작되면 서부터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고구려에 태학(太學)과 경당(扃堂)이 설립되 어 유교의 핵심 경전인 5경(經)과 3사(史)가 핵심교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조선 시대에 와서는 주자(朱子)에 의하여 주석이 가해지고 정선된 4서(書)3경(經)이 중심 교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약간의 변화가 있었지만 개 화기에 서구의 근대적 교과가 도입되기까지 약 1,500년 동안 유교는 우리의 전 통사회를 지배한 정치이념이며, 윤리규범인 동시에 교육의 핵심 내용이었다. 유 교적 텍스트의 내용은 크게 세 영역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첫째, 현실생활의 행위규범 혹은 통치의 원리를 규정한 교과(논어 대학 맹자 중용 예기), 둘째, 윤리적 삶과 덕치의 모범 사례를 기록한 역사서(서경 춘추 사 기 한서 후한서), 그리고 우주와 자연의 원리 및 시와 음악에 관한 교과(시경 역 경)이다. 이와 같은 교과의 지식은 거의 절대적 권위를 지닌 성현의 말씀이며 하 늘의 이치이므로 그 자체의 진위(眞僞)를 논하거나 타당성에 대한 검증을 요구 하지 않는다. 오직 그것을 열심히 암송하고 참 뜻을 해석하고 실천하여 인격의 일부로 내면화하는 것이 학습의 과정이며 목적이었다. 마치 유대교육과 흡사 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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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점이 많다. 다시 말하자면 교육에 있어 학습자 자신의 인격적 태도 함양이 우 선이었고, 다음으로 지적인 학문 탐구였다. 이런 점은 고대로부터 서양의 핵심 교육과정이 되었던 7자유교과(Seven Liberal Arts), 즉 4과(산수 기하 음악 천문 학)와 3학(문법 수사학 논리학)에 비추어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이들 교과는 내 용보다는 그 자체의 논리적 구조와 합리성 및 관찰과 실험에 의한 검증을 중요 시하는 합리적 경험적 지식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나 로마인들이 중요 시한 변론술은 사실 여부를 떠나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타인을 설 득하는 기술로 인식되었다. 그런 점에서 서양의 전통적 교과는 자연적 대상에 대한 탐구나 논리적 사고와 수사(修辭)의 기술을 훈련하기 위한 도구로 인식된 데 비하여 유교적 전통의 교과는 텍스트 자체가 교육의 목적이자 생활 규범으로 인식되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교육의 출발은 철저하게 겸비된 인성과 창의적 지성의 조 화에 있었다. 우리는 그냥 단순하게 인성과 지성의 조화라고 단정하면 안 된다. 예수님의 인격을 닮는 인성과 예수님의 창의적 지성을 성육화하는 조화다. 이는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서 요약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본문을 통하여 우리는 차세대 교육의 궁극적 요구를 찾아야 한다. 우선은 예 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해야하지만 보다 심오한 의미가 있다. 즉,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 스스로 무엇을 보여준 후에 이해를 촉구한다는 점이 전제된다. 그렇다면 해석은 예수님이 어떻게 가서 어떤 행동을 통하여 어떻게 제자를 삼았는지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이 가신 곳은 모두 종교 지도자들이 설치한 함정으로 가득 찬 곳이어서 죽음을 각오한 공간이었다. 무엇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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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보여주는 일 역시 모두 내려오는 잘못된 전통들을 바로 잡는 사역이어서 마 찬가지로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자를 삼는 일도 먼저 목숨을 각오하고 모 범을 보이는 일이었기 때문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님은 철저하고 완벽하게 경험적 인성과 창의적 지성을 조합하며 균형을 잡았다. 그러나 경험적 인성과 창의적 지성조차도 자신의 영광을 가리는데 소진하였다 는 점에서 위대성이 있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 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일 2:27)
연세대학교 신학과 졸업(B.A.)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Div.) 프랑스 파리 및 몽벨리에 신학대학교 졸업(Th.M.) 벨기에 국립 브뤼셀 개신교 신학대학교 졸업(Th.D.)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사)한국불어권선교회 한불성경편집위원 장위제일교회 협동목사
김성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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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회개는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 『예수님을 그리는 기술』, 『이야기로 읽는 말씀』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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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희 지음│130*188│값 10,000원
진정한 사랑은 말이 아닌 행동이며 이론이 아닌 실천, 변론 아닌 변호입니다. 사랑은 명사가 아닌 동사입니다.
사랑이 없는 허울뿐인 지식과 신앙, 사명에 빠진 이 시대를 향한 깊은 울림! 교회성장연구소 www.pastormall.net www.facebook.com/pastor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