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교회성장 2017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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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 September 건강한 교회성장의 노하우가 한눈에 보이는 목회종합전문지

COLUMN

FRONTIER POWER INTERVIEW

COVER STORY

015 016 017

희망을 여는 창

020

‘성경적 양육으로 다음 세대를 부흥시키다’

한국 교회 이단과 그 대책

036 041 050 058 PEOPLE

사랑하는 목회자 여러분에게

<동행>

이영훈 목사(본지 발행인)

배경락 목사(서북교회)

이단상담소협회장 진용식 목사 인터뷰 한국 교회 이단 분석

주요 이단 대처 방법

이성화 목사(서문교회)

진용식 목사(이단상담소협회장)

박형택 목사(한국기독교이단상담연구소장)

이단과 사이비의 12가지 특징

편집부

편집부

069

스페셜 인터뷰 | 이형로 목사(만리현교회)

‘가정과 하나 되는 교회, 부모와 동역자 되는 교육’

078

2017 목회 매뉴얼 | 이형로 목사(만리현교회)

‘부부의 재정관리’

088

글로벌 리포트 | 김성윤, 임정산 선교사(코트디부아르)

‘상아 해안 Ivory Coast에서 띄우는 기도 편지’

098

행복한 목회현장 속으로 | 장동근 목사(오병이어교회)

‘기독문화의 부흥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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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기 원로목사(교회성장연구소 명예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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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STRY 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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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이슈 1 | 윤용 목사(말씀의빛교회)

‘이중직 목회현장 속에서 ‘목회자다움’을 지키는 법’

116

교계 이슈 2 | 김기석 교수(성공회대 신학과)

‘기독교 신앙과 과학의 대화Ⅱ-갈등과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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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촉진하는 선교적 리더십 | 이상훈 교수(Fuller Theological Seminary 겸임교수)

‘리더 배양의 토양을 구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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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와 문화선교 | 백광훈 원장(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와 지역공동체’

144

윤영훈의 팝폴로지 | 윤영훈 교수(성결대학교 신학부)

‘문화 속 새로운 가족의 풍경’

150

더 넥스트 스텝 | 김도일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

‘4차 산업혁명의 도전과 마을교육공동체 만들기 세미나 -제주편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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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3040 | 교회성장연구소

‘한국 교회 3040 미래 사역에 대한 연구(Ⅸ)’

164

현대인의 마음치유 | 고병인 소장(고병인가족상담연구소)

‘목회자 자녀의 두 가지 삶, 두 가지 정체감’

176

크리스천 인문학 | 이광희 목사(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 전임목사)

‘어른과의 만남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 -시모어 번스타인·앤드루 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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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양육으로 다음 세대를 부흥시키다” 이성화 목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연세대학교 신학원을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트리니티대학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성화 목사는 일본 오사카 신학교 교수를 역임하였고 서문교회 당회장, 서울남노회 증경노회장, CBS 기독교방송국 전문강사, 경찰기독신문 상임회장, 총회 이만교회운동본부 본부장, 총회세계선교회(GMS) 메콩개발지구 위원장, 월간목회 이사, 부천 보람마을 아동센터 설립자, CH 청 소년 수련원 원장, 기독신문 이사, 서문 선교원 원장으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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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ntier Power Interview 진행_ 김형근 본부장 | 취재_ 최상현 기자

불신자 가정에서 태어난 이성화 목사는 어릴 때 결핵으로 폐가 망가져 10알이 넘는 약과 주사로 연명해야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 진학을 위해 1년 간 독학을 했는데 10m도 걸어가지 못할 정도로 체력이 약했다. 조금만 걸어 도 기침과 함께 각혈을 했고 몸무게는 51kg을 넘지 못했다. 집 근처에는 교회 하나가 있었는데 이 목사는 새벽 4시만 되면 들리는 종소리 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는 더 이상 참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항의를 하려 고 교회로 향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목사님이 크게 반가 워하시면서“우리 교회에 젊은 청년이 왔다”며 환영한 것이다. 예배당에는 연 세가 많으신 분들 40여 명이 앉아 계셨고 청년이라고는 이성화 목사 한명 밖 에 없었다. 웃는 낯에 침 뱉지 못한다고, 이 목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기 도회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있다가 돌아와야 했다. 이 목사는‘지금은 작전상 후퇴하지만 다음에는 꼭 이야기하겠다!’ 고 다짐한 후 주일에 다시 찾아갔다. 하지만 어김없이 목사님은“귀한 청년이 또 찾아왔다”며“이 청년은 지난 수 요일에도 찾아왔었다”고 칭찬하며 반겼다. 이 목사는 또 다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작전상 후퇴’ 를 감행했다. 교회에서 열린 부흥회에 참석한 이 목사는 아무 이유도 없이 눈물이 쏟아지는 현상을 체험했다. 또한“새벽기도를 40일만 지키면 하나님을 만날 것”이라고 말한 부흥사의 선포에 마음이 동한 그는‘정말 하나님이 계실까? 40일 동안 기도하면 정말 만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새벽기도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성화 목사는 입영통지서를 받고 공군에 입대하였다. 하지만 곧 건강이 악화되어 마산통합병원에 입원했는데 그때 주님을 만났다. “주님을 만나고 난 후, 저는 비로소 제 삶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예수를 위해 살자!’ 는 다짐을 굳혔죠. 무엇을 하면서 사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살 것이냐를 고민하던 중 목회의 길을 걷기로 서원하였습니다.” 신학대학원 2학년이 되던 해 서문교회를 개척한 이성화 목사는 35년간 주님이 맡기신 영혼들을 양육하며 지역사회와 다음 세대를 섬기는 일에 전심전력하고 있다. _편집부

목사님께서는 다음 세대 양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계십니다. 서문교회에 서는 어떠한 교육 사역이 진행되고 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다음 세대를 섬기는 사역은 전도만큼 중요한 교회의 필수 사역입니다. 어 교회성장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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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 때 신앙으로 양육 받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후일에 고생하지 않 습니다. 잠시 길을 벗어나 세상 속에서 방황하다가도 반드시 돌아오기 때문 이죠. 교회를 개척한 후 3, 4년이 지나고 보니 안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은 모두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던 분들이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바 람이 있다면 우리 교회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꾼들 이 되었을 때 ‘나는 서문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는 고백을 듣는 것입니 다. 그래서 매일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주님께서 이 영혼들을 친히 양육시 키시고 사용하여주옵소서”라고 간구합니다. 제가 참 안타까워하는 것 중에 하나가 부모님은 교회에 다니는데 자녀가 믿지 않는 경우입니다. 최소한 부모가 교회에 출석하면 자녀들도 신앙생활 을 할 수 있도록 어릴 때부터 신앙교육을 잘 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아이들이 교회에서 참 사랑으로 양육 받고 신앙으로 훈련받으면 성장하 면서 주위에 좋은 영향력을 많이 끼칠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신앙 안에 서 자랄 때 그 삶 자체가 전도가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 러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음 세대를 섬기는 교육자들에게 “예수님 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라”고 늘 강조합니다. 주 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면 언제 교회를 떠날 지 모르기 때문이죠. 서문교회는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난 다음 세대 아이들이 어려운 삶의 환경을 체 험하면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필리핀 단기 수련회를 보냈습니다. 많은 예 산이 들어가는 수련회이지만 아이들이 이런 기회 를 통해 주님을 만날 수 있다면 그보다 기쁜 일이 없기 때문이죠. 한국 교회도 언제 유럽 교회처럼 몰락할지 모릅 니다. 저는 유럽에 있는 교회를 둘러본 후 한 달 반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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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한 끝에 한 가지 결론을 얻었습니다. “부모가 변화되어야 한다.” 최근 한국 교회 성도들을 살펴보니 부모들부터가 주일에 대한 개념이 잡 혀있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주일을 성수하는 사람들도 찾기 힘들고, 오전예 배만 드리고 놀러 가버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그들의 자녀 들은 부모의 신앙생활을 고스란히 배우게 됩니다. 때문에 저희는 주일 학 교를 사수하기 위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도입하였습니다. 변화의 주체를 ‘부모’가 아닌 ‘아이들로부터’라는 역발상적 시도를 감행한 것이죠. 모든 포 커스를 아이들에게 맞추고 다음 세대 양육에 역량을 집중하자 변화가 일어 나기 시작했습니다. “자녀가 변화되자 부모들이 교회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신앙교육과 가정교육이 중학생 때까지만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서구에는 ‘Four-fourteen’이라는 말이 있는데 4세-14세까지의 교육이 매우 교회성장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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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최소한 중학교 3학년까지는 교육을 끝내야 한다 는 거죠. 고등학생이 되면 쉽지 않습니다. 저는 국내의 교육자료와 정보를 분석하던 중에 어와나(Awana) 프로그램을 발견하였고 저를 비롯하여 모든 교사들이 어와나 프로그램을 배웠습니다. 어와나는 생각보다 빨리 교회에 뿌리를 내렸고 토요일에 많은 아이들이 교회에 출입하게 되자 부모님들도 자연스럽게 교회로 발걸음하게 되었죠. 저는 핵심 교육 연령기간을 더 낮추 어 0-3세로 포커스를 맞추었습니다. 4-14세가 아니라 0-3세부터 교육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아기학교를 시작했습니다. 서문교회에서 운영하는 아기학교는 지역에 좋은 소문이 나면서 교인보다 지역 주민들이 더 많이 찾는다고 들었습니다. 아기학교는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합니다.

아기학교에는 교역자가 투입되지 않고 평신도 영아부 교사들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교사들은 모두 아기 엄마들이고 이 교육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열 정을 가진 사람만 교사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아기학교를 운영하 면서 참 감사했던 것은 아이들이 신앙으로 양육되자 부모들이 변화되기 시 작한 것입니다. 때문에 서문교회는 자연스럽게 젊은 부부가 많은 교회가 되 었습니다. 교회가 젊어지는 것은 참 기쁜 일입니다. 아이들을 신앙으로 지 도하자 젊은 부부들에게도 그 영향력이 미치게 되고 결국 지역사회에서 중 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로 세워지게 됩니다. “새가족들의 상당수는 아기학교와 관계를 맺으면서 등록한 분들입니다. 아기학교가 전도의 통로가 되기 시작한 것이죠.” 한편, 저희는 아이를 정으로 키우지 않습니다. 분명한 교육 방침을 가지고 양육합니다. 귀엽다고 막 키울 것이 아니라 교육으로 양육해야 문제가 생기 지 않습니다. 그러한 신념을 가지고 교육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다 보니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네 자녀 를 때리며 키우라’는 성경의 메시지를 ‘정이 아닌 교육으로 키우라’는 뜻으 로 해석했습니다. 외부에서 저희 교회 아이들을 보면 놀랍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아이들이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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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공간에 꽉 차있는데도 예배가 자연스럽게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그 많은 아이들이 예배를 받아들이고 또한 자연스럽게 드릴 수 있는 것은 분명한 교 육방침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현재 부천생명의전화 이사장으로 섬기며, 성문화센터, 심리상담센 터를 시에서 위탁받아 운영 중인데 앞으로 청소년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 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많은 경우에 시스템적 결함에서 비롯됩니다. 아이는 어머니의 품에서 자라야 합니다. 때문에 국가가 양육 지원을 할 때 아이와 부모가 충분히 함께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 합니다. 아이를 다른 곳에 위탁하거나 맡기면 정서적으로 불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청소년 문제의 원인은 0-3세 사이에 엄마와의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못한 것에 기인합니다. 아이를 떼어놓고 맞벌이로 직장생활을 해 야 하는 현실, 어떻게 이 부분을 해결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 교회도 함께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혁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동참하기를 소망합니다. 근래에는 주일 저녁예배를 오후 낮 시간대로 옮기거나, 아예 모이지 않는 교회 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문교회는 여전히 저녁 7시 30분, 주일 저녁예배를 지키고 있는데요. 저녁 예배를 고수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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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 교회가 균형을 잃어버린 이유 중에 하나가 ‘예배’에 있다고 봅 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저녁예배를 드리지 않고 오전, 오후 예배로 교회 사 역을 마무리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오후 예배조차 없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저는 새벽강단 1, 2부를 10년 동안 지켰는데 그 이유는 새벽에 가장 깨끗하 고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부족함과 잘못이 선명하 게 보이고 사심이 없습니다. 저는 그래서 새벽기도 시간을 참 중요하게 생 각합니다. 하루의 가장 앞 시간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다는 것은 소중한 가치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주일을 온전히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주일 전체가 주일(主日)’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은 오후예배를 드리는 이유가 ‘유대인에 의하면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시간 까지를 안식일로 지키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밤이 아닌 오후에 드 리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유대인들의 전통이고 우리의 정서는 그렇 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의 기준은 ‘주 일에 대한 개념’입니다. 저녁예배는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오전예배, 혹은 오후예배 후에 교회 문을 닫아버리면 주일 오후에 놀러가려는 생각을 심어 주고 주일학교의 오후 프로그램도 사라져 버립니다. 삶의 질서가 더 망가질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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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이죠. 때문에 여전히 저녁예배를 오후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 니다. 우리는 세상 문화 중심이 아니라 성경을 중심으로 사는 그리스도인들 입니다. 그리고 이 성경 말씀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위 한 말씀입니다. 주일을 지키고 사는 것 또한 우리를 위한 것임을 저는 확신 합니다. 목사님의 설교 준비 노하우와 건강 및 시간 관리 방법이 궁금합니다.

설교준비를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본문 배경’을 먼저 살 피는 일입니다. 말씀이 기록될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면 말씀의 본 래 의미와 뜻을 더 깊게 깨달을 수 있게 때문이죠. 어떤 상황과 맥락 속에서 나온 말씀인지 묵상하다 보면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비유는 더욱 그러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비유 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시대적 배경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설교 를 준비할 때는 적절한 ‘여유로움’이 필요합니다. 충분한 설교 준비 시간을 확보한 후에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창세기부터 쭉 진행하는 강해설교도 좋지만 저는 매주 우 리 성도들이 들어야 할 메시지가 무엇인지 살피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말씀 연구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에 깊이 빠져들면 ‘어! 이런 말씀이 있었네? 이런 뜻이 있었네?’하면서 주님이 깨닫 게 하시는 귀한 보물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메시지를 전할 때 역 동성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말씀을 충분히 연구할 수 있는 ‘여 유로움’을 확보하는 데 실패합니다. 목회자는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여 유로움을 가질 수 있어야 하는데 저도 그것이 참 어려웠습니다. 4-50대 시 절에는 조금이라도 젊을 때 더 달려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모든 체력을 사 역에 쏟아 부었습니다. 40일 금식과 산 기도를 하면서 제 인생의 황금기를 철저히 하나님께 드렸죠. 지금은 교회뿐만 아니라 교계의 여러 기관을 책임 져야 하다 보니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한편, 저는 건강관리를 위해 1주일에 4-5회, 6km를 달렸습니다. 결핵으로 망가진 폐를 주님이 치유해주셨기 때문에 예전처럼 숨이 차지 않았고 시간 교회성장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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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흐를수록 앞에 달려 나가던 사람과의 거리를 좁혀나갈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가지고 계신 목회비전과 계획은 무엇인지요?

제 목회비전은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교단 총회에서 개척 교회본부장으로 4년간 섬겼는데 100여 명의 목회자를 교육시키면서 한 가 지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목회에 성공하기 위한 ‘방법’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말씀과, 기도, 전 도’에 충실한 것 외에는 어떤 방법이나 기술도 없습니다. 지금도 목회자가 기본적인 것에 충실하다면 얼마든지 교회가 성장할 수 있습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2천 년 전과 오늘날을 비교해 볼 때, 둘 중 언제가 더 전도하기 어려웠을까 요? 제자들이 전도하던 시대는, 예수님을 이단으로 보던 때였습니다. 사도 행전에도 보면 유대인 지도자들의 핍박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베드로를 붙잡아 때리며 계속 예수를 전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까지 했지만 베드로는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전도하기 좋은 환경입니까? 목회자가 쉬지 않고 기도하고 전 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목회는 반드시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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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으셨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교회부터 본질을 회복하고 초대 교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오직 기도하고 전도하는 곳입니다. 또 한 가지 비전이 있다면 서문교회에서 자라나고 있는 다음 세대가 이 나 라와 지역을 섬기는 인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 주일학교 교 육에 최선을 다하고, 또한 저희 교육 사역을 통해 믿지 않는 부모들도 많이 전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를 위해 아기학교 컨퍼런스를 계획 중인데 다음 세대 사역을 통해 한국 교회 주일학교를 다시 세우고 부흥시키고자 하 는 비전을 품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의 건강한 목회와 성장을 위해 힘쓰고 계시는 목회자 및 사역자들을 위한 제언을 부탁드립니다.

먼저 한국 교회의 새벽기도가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매일 3시 15 분에 눈을 뜨는데 그보다 평화로운 시간이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젊을 때 최선을 다해 사역에 매진하고 본질에 충실하면 반드시 열매를 거둘 것입니 다. 한편, 한국 사회에서 교회의 이미지가 많이 추락하여 전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역자들이 많습니다. 매스컴이 교회의 선행은 알리지 않고 나쁜 일만 집중적으로 보도하다 보니 정말 귀하고 아름다운 사역을 하고 있는 수 많은 교회가 함께 매도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 도 한결같이 선한 사역에 힘써 왔습니다. 교회가 한국을 여기까지 끌고 왔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눅들지 말고 담대하게 사역하며 ‘기도와 찬 송, 말씀과 전도’에 최선을 다하기 원합니다. 방법을 찾아다니거나 세상 환 경을 탓하지 말고 오직 본질에 집중합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아십니다. 목회자의 형편, 교회의 형편을 아십니 다. 우리가 오직 본질에 매달린다면 그 안에 모든 에너지와 힘, 답과 능력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비본질로 본질을 채우려 들면 어떤 사역 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본질에 충실한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교회성장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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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교회의 양육/훈련 프로그램> 1. 알파코스 알파는 교회에 출석하지 않은 비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을 전달할 수 있는 매우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 법이다. 또한 알파코스를 통해 기독교인들의 기본 적인 신앙을 다시 정리하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알파코스 10주과정 (10주 과정 가운데 한번은 성령수양회에 참석한다) Step1 다과와 식사 Step2 즐거운 찬양 Step3 토크 Step4 조별 나눔 2. DNA 성장반 15주 일정으로 진행되는 성장반은 구원의 견고함과 복음의 이유를 정확하게 이해해 교회 일원으로 확고한 소속감을 갖게 한다. DNA 성장반 과정 1) 안경: 성경에 대한 바른 시각을 갖게 한다. 2) 경험: 하나님을 경험하게 한다. (기도응답) 3) 변화: 삶의 가치가 바뀌고 실제 생활의 변화를 맛보게 한다. 4) 균형: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배우고 정상적이고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5) 교회: 교회공동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사역을 효과적으로 하게 된다. 6) 양육: 제자훈련의 전 단계로서 기본적인 양육이 이루어진다. 7) 동역: 목회의 철학을 구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8) 이상: 행복한 교회의 이상이 실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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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내행복교실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 하기 위해서’ 결혼하는 것이다. 열심히 사랑의 기술을 배워서 사랑하다 보면 자기 세계 갇혀서 살던 남편도 사랑으로 변화 된다. 사랑의 징검다리 6주과정 1) 돕는 배필의 일곱 가지 선언 2) 남편 바로 보기 3) 쓴 마음의 치유 4) 도우미를 찾아서 5) 관계건축가 아내 6) 꿈이 있는 가정 꾸미기 4. 아기학교 기간 : 상 하반기 8주간, 매주 목요일(상반기 4월, 하반기 9월 시작) 교육비 : 4만원(8주) 대상 : 12개월-48개월 아기와 보호자(종교 무관) 장소 : 서문교회 교육관 3층 영아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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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이

진리

성경적으로 설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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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위한 성경이해】

진리란 무엇인가?·김성규

16

【성경과 설교현장】

(삼하 19:1-8)·이우제

30

정직하게 살아야 (잠 12:17)·권성수

56

생명의 길 (요 14:6)·김영걸

64

진짜라는 표시 (사 4:1-7)·김정민

76

우리를 망하게 하는 유혹들 (출 32:1-6)·박동찬

90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행 28:30-31)·이영훈

진실 말하기를 통해 진리가 살아 숨 쉬게 하되

102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 14:5-9)·조용기 114 【교회학교】

삶을 변화시키는 진리 (갈 2:16)·박진수

123 【국외설교】

야 고보는 바울과 모순되는가? (약 2:14-26; 롬 3:27-4:5) (Does James Contradict Paul?)·존 파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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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RCH GROW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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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삶의 현장

141 이달의 유머예화·김진배 146 목회자가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한재욱 153 이달의 설교예화·편집부 163 신앙에세이·배경락 167 이종필목사의 킹덤 프리칭 14-1·이종필 179 이종필목사의 킹덤 프리칭 14-2 (요일 4:9-21)·이종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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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위한 성경이해

김성규_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일까? 예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찾아 헤맸으나 진리는 베일 속에 몸을 감춘 채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란 무엇인지 알아보자. _편집자 주

진리란 진리가 무엇일까? 진리를 아는 것이 가능할까?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진리의 본질』(1930)에서 진리의 문제에 대한 고민을 늘어놓는다. 하이데거는 진리가 “그것이 참된 사안이든 참된 명제이든 일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경우에 진리는 ‘한 사안과 이 사안에 관해 앞서 의도된 것 사이의 일 치’이거나 참된 진술의 경우에서와 같이 ‘진술 속에서 의도된 것과 사안과의 일 치’를 의미하게 된다. 일치의 이러한 이중적 성격은 진리 개념에서 ‘인식에로의 사안의 동화’나 ‘사안에로의 인식의 동화’라고 설명된다. 이를 쉽게 설명하면 진 리는 어떤 존재를 그냥 막연하게 믿는 것이 아니라 존재와 일치하는 어떤 속성과 관계된다. 가령 예수님을 믿는 것이 진리라면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 일치하는 것이 진리라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진리의 반대는 비진리가 아니라 이단이라 는 논리가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하이데거는 ‘어떤 것에로 방향을 둠’(Sichrichten nach)에 대해 말하고, 그렇게 ‘정확성’(Richtigkeit, 올바름)을 진리로 규정한다. 이 것은 한 철학자의 생각이지만 어느 정도 고려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요한복음 18장 37-38절에서 빌라도와 예수님의 진리 논쟁을 살펴보자.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 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 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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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더라…”

빌라도는 주님이 하신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다. 주님은 당신이 왕이 아니라는 말씀은 절대 하지 않으신다. ‘왕은 맞는데, 네가 생각하는 그런 왕은 아니다’라고 하시자, 빌라도는 ‘그러면 왕이 아니냐’라고 한 것이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 니라.” 주님은 그렇다고 대답하셨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이루는 방식은 그들처럼 무력 과 권력이 아니라, 진리를 통해서이다.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 선한 증거 로 증거하셨다고 말했다. 무슨 선한 일을 하셨다는 말인가? 주님은 빌라도 앞에 서 당신이 하실 말씀을 다 하셨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증거이다. 당신의 나라에 관한 진리를 말씀하신 것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요 18:38)

진리가 무엇이냐(What is the truth)? 주님이 진리에 대해서 말씀하시니, 빌라 도가 이 유명한 한 마디를 던졌다. 이는 당시 집권자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이 다. 빌라도는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예수님으로부터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 고 했다. 대화를 하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속에 사람을 미워한다거나 죽 이려 한다거나 하는 어떤 악한 것도 없음을 알았다. 주님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 은 나라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니, 이런 종교철학 이야기 때문에 사형을 언도하 고 죽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기서 진리를 잠시 생각해보자. 예수 님이 말씀하신 진리는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이해로서 생각된다. 예수님이 설 명하신 “진리에 속한 자가 진리를 듣는다”는 의미는 귀가 있어서 그냥 들린다는 뜻이 아니라 진리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 자는 그 말씀을 이해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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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다. 진리는 신이 존재한다는 막연한 종교심이 아니라 신이 내린 가르침과 뜻에 일치 하는 태도로서 규정된다. 그러므로 신에 대한 신앙심과 가르침이 일치되도록 노 력하지 않으면 진리는 무속으로 흐르거나 철학의 사상으로 그칠 위험이 따른다. 이를 기독교적 시각에서 교리적으로 판단하면 우상이 되거나 이단의 이중적 위험 성을 안게 된다. 인간의 역사는 오랜 시간 동안 이 같은 오류를 잘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예부터 진리를 찾고자 노력해왔으나 진리는 베일 속에 몸을 감춘 채 실체를 드러내려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수많은 현대인들이 진리를 찾아 헤 맸으나 해답을 얻지 못한 채 지금까지 종교적 구도 같은 행렬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진리에 대한 동서양의 태도는 두 가지 흐름 안에서 독특하게 그려진다. 서양철학(Philosophy)은 이성을 통해 객관적이며 분석적으로 접근하지만, 사상 은 주관적 추론이나 감성적인 직관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헤겔(Hegel)은 일찍 이 서양에서는 철학이 발달한 반면, 동양에서는 철학보다는 사상이 발달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아울러 철학은 후일 학문으로 발전했으나, 사상은 객관성의 결 여로 학문화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헤겔의 지적이 타당하다면 동양에서 종교 에 대한 직관적 접근은 논리성과 객관성보다는 감성에 의존한 오류의 가능성이 높을 잠재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서양의 경우 이성의 한계도 극명하 게 노출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는 그리스 로마신화에 잘 반영되어 있다. 신의 부 엌에서 프로메테우스(Prometheus)가 불을 훔쳐다 주어서 인간에게 지혜가 생 겼다. 불은 진리이자 곧 완전한 지혜를 뜻한다. 서구 근대의 계몽주의에서 계몽 (啓蒙)을 ‘Enlighten’이라고 한다. 즉, 불로 밝혔다는 뜻이다. 이처럼 무지를 밝 히는 횃불이 곧 진리이다. 그러나 계몽이라는 언어 자체가 이성의 한계를 여전 히 노출하며 무엇으로 계몽할 것인가에 대하여 침묵할 수밖에 없다. 계몽의 주 체가 철학이나 윤리 혹은 덕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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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에서 진리 진리에 가장 가깝게 상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에메트’이다. 구약성경에 서 에메트는 26회 나오는데, 70인역본에서 85회 알레데이아로 번역되었다. 한 편 영역본에서 때로는 ‘진리’로, 때로는 ‘신실성’으로 번역한다. 뿐만 아니라 대 부분의 구약성경 학자들은 통계로부터 ‘진리’란 의미상 ‘불변성’(Stability), ‘확 고부동’(Firmness), 혹은 ‘확실성’(Reliability)이란 개념을 시사해주는 ‘신실성’ (Faithfulness)으로 이해한다. 여기서 우리는 진리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인 정의 를 얻는다. 진리는 막연하게 외형적 형태를 강조하는 존재 개념이라기보다는 내 적 형태로서 질적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령 우리가 무엇에 신실하다는 것을 ‘신실성’이라고 가정한다면 신실성은 확실히 질적 속성을 강조한다. 우리 가 하나님을 믿는 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한다면 진실은 하나님의 내적 속성 즉, 그분의 거룩함, 의로움, 사랑, 가르침 등에 신실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냉 정하게 판단해서 진리는 진리 그 자체를 지칭하기보다는 ‘진리에 이르는 길’이라 고 할 수 있다. 즉, 진리에 이르는 방법론이다. 이것은 우리 자신을 잘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그러나 진리에 이르는 방법들은 너무나 다양해서 진리에 서부터 오히려 멀어지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 도만이 진리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에 예프센(Jepsen)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요약해서 말한다면, 히브리어 에메트는 신뢰할만한 것으로 입증되어야 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영어로 이 개념을 전달하는 데에는 ‘Reliability’(확실성) 가 가장 포괄적인 단어일 것이다.…에메트는 다른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것 이다.” 예프센은 이것을 인간의 진리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에 적용시키는 것으 로 말을 맺고 있다. 진리의 하나님으로서 “여호와는…그의 말씀과 사역 안에서 우리가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이시다.”(TDOT I 313) 하나님만이 진리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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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 마귀도 진리를 주장하기 때문에 진리를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진리에 이 르는 방법이 옳아야 하며, 이를 분별할 수 있는 확고한 이성적 판단 즉,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진리가 진리에 이르는 유 일한 방법이라는 측면에서 믿음이 필요하다. 이것이 진리에 대한 고민이 곧바로 믿음에 대한 고민으로 연결되는 이유다. 실제로 구약성경에서 진리와 믿음이 동 의어로 사용된다. 에메트의 이 같은 의미가 법정적 상황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뜻을 전달한다. 신명기 22장 19-20절에서 “이스라엘 처녀에게 누명을 씌움으로 말미암아 그에게서 은 일백 세겔을 벌금으로 받아 여자의 아버지에게 주고 그 여자는 그 남자가 평생에 버릴 수 없는 아내가 되게 하려니와 그 일이 참되어(에 메트/ 알레데이아)…”라는 표현에서 앞의 경우와 같이 “그 일이 비방거리에 근 거하지 않고 확실한 사실들, 곧 진실에 근거한다면”이란 의미로 읽는다. 즉, 진 리는 사실에 접근하는 방법이나 길, 혹은 사실상의 과정이나 인과의 진실을 묘 사한다. 이는 사사기 9장 16절의 “너희의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라 는 말에서 ‘에메트/알레데이아’는 의와 관련되며, 그들의 행위의 정당성을 따지 고 있는 것이다. 이는 창세기 24장 48절에서 보다 확고하게 나타난다.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데레크 에메트, 알레데이아)로 인도 하사 나의 주인의 동생의 딸을 그의 아들을 위하여 택하게 하셨으므로 내가 머리를 숙여 그 에게 경배하고 찬송하였나이다”

진리는 ‘바른 길’ 즉, 제시되는 많은 길들 중에 확실히 성공하는 길이다. 마찬 가지로 이사야 59장 13-15절에서도 진실에 대한 유사한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여호와를 배반하고 속였으며 우리 하나님을 따르는 데에서 돌이켜 포학과 패역을 말하며 거짓말을 마음에 잉태하여 낳으니 정의가 뒤로 물리침이 되고 공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나타나지 못하는도다 성실이 없어지므로 악을 떠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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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 탈취를 당하는도다 여호와께서 이를 살피시고 그 정의가 없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 시고”

진실이 부족하다는 불평은 13절 상반절에 ‘배반하는 것’에 관한 언급이 있기 때문에, 언뜻 보기에 이스라엘의 불신실성에 대한 언급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 나 좀 더 세밀하게 검토해 보면, 불평의 참된 원인은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분명 해진다. 예레미야도 “그들은 각기 이웃을 속이며 진실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 혀 로 거짓말하기를 가르친다”고 불평하였다(렘 9:5). 스가랴도 같은 맥락에서 진 리에 대한 같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너희는 각기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을 말 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을 베풀고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고 말 한다. 이 구절은 특별히 에메트/ 알레데이아의 개념에 있는 평결(Judical finding) 과 재판의 기준 사이의 관계를 나타낸다. 시편의 세 구절들에서 진리는, 많은 학 자들이 오로지 헬라 문헌에서만 발견된다고 주장하는 거의 그런 의미에서, 은폐 (Concealment)와 대조하여 나온다. 시편 43장 3절에서 기자는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라고 기도한다. 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계실 것을 바라 는 기도가 아니라 ‘간사한 자’(1절)의 유혹적인 말에 직면하여 하나님께서 그에 게 사건의 진상을 보여주기를 원하는 기도이다. 그러므로 그는 진리와 빛을 필 요로 한다. 진리란 그를 어둠에서부터 벗어나게 하여 사건들이 있었던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시편 45장 4절에서 왕은 진리의 옹호자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염두에 둔 것은 왕의 확실성이라기보다는 오히 려 의심스럽고, 부정하고, 공정치 못하거나 거짓된 것은 무엇이든지 기꺼이 다 드러낼 그의 마음 자세이다. 왕은 고통당하는 자들의 고통의 원인을 공공연하게 드러냄으로써 그들을 옹호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가 에메트가 사용된 여러 가지 측면들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매 우 많은 문맥들에서 진리가 단순히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 을 분명히 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말씀으로만 아니라 행위로 자기의 진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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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내시며, 이 진리는 사실상 그의 백성의 체험 속에서 입증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도 진리에 대한 존중을 추상적인 이론으로가 아니라 그들의 이웃에 대한, 그리고 그들의 구두상의 상업적 거래에 대한 일상적인 증언으로 나타낸다. 시편 119장 142절에서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고 표현한다. 이것은 단순한 실존적 인 진리 이상으로서 하나님의 율법은 신자들에게 사건의 진상을 보여줄 등이요 빛이다. 여기에서 그는 사실상 그와 관련될 때의 사건의 진상을 염두에 두고 있 는 것이다. 이러한 진리는 신뢰할 만하며 또한 확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통 찰이 오로지 신학적 기초 위에서만 도달되는 것이 아니다. 확실히 신자는 하나 님의 언약의 신실성(에메트, 헤세드, 에무나)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그에게 의지 할 것이다. 그러나 에메트의 이런 특별한 용법이 이 단어의 모든 용례들의 배후 에 있는 것은 아니다. 히브리인들은 다른 사람들도 인정했던 논리적 진리, 곧 참 된 말은 그것이 실제와 일치하기 때문에 믿을만하다는 점, 그리고 진리의 하나님 에게 있어서나 진실한 사람에게 있어서 언행이 일치한다는 점을 인정하였다(참 조. 수 24:14; 시 145:18). 이는 진리는 방법론이며, 그런 의미에서 진리에 이르는 방법과 목적의 일치를 더 강조한다. 진리를 말과 행동의 일치로 보는 구약의 개 념이 신약성경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신약에서 진리 ‘진리’와 ‘참된’을 뜻하는 단어들이 바울서신과 요한문서에서 매우 중요시된다 할지라도, 공관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알레데이아’, ‘알레데스’ 그리고 ‘알레도 스’는 상대적으로 드물게 나온다. 이런 용어들이 예수님 자신의 입에서 나온 경 우는 누가복음 4:25, 9:27, 12:44, 21:3뿐이다. 처음 두 용례에서 “내가 참으로 너 희에게 이르노니”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어형들은 엄숙한 언 명의 도입구로 이용되며, 아마도 이 어형들은 그 외의 구절들에서 예수님이 하 신 말씀으로 나오는 독특한 아멘(Amen) 문구를 누가가 헬라어로 번역한 어형이 다. 예레미야스(J. Jeremias)는 아멘(Amen) 문구가 예수님이 자기의 말씀을 강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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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하고 자기 권세를 나타내고 자기 메시지의 확실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하 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에서, 진리는 그의 말씀 중 많은 경우에 우선, 혹은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말과 행동 혹은 말과 실제 사이의 모순을 공 격하는 데 놓인다. “바리새인들이…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너희가 박하와 회향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요한 바…버렸도다”(마 23:2-3, 23:23-24).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 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눅 11:46; 참조. 마 23:4). 이런 태도는 기만적인 것이기 때문에 진실하지 못한 것이며 말과 행동의 모순에 기초한 것이다. 긍정 적인 면에서, 예수님 자신의 말씀은 언제나 그의 행동 및 현실과 일치한다. 그는 버림받은 사람에게 은총을 선포하며, 따라서 그는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 한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시는 말씀에서 메시아이시며, 따라서 권능의 사역으로 이 나라의 도래를 증명하는 행위에서도 메시아이시다. 예수님 의 성실하신 삶은 십자가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여기서도 진리에 대한 의미를 잠시 짚고 지나가자. 예수님 자신이 진리라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이 진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삶을 통하여 제대로 보여주고 해석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요 한복음 6장 38절에서 예수님 자신의 말씀을 보자.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 이니라”

이를 관찰한 제자들의 목격담이 히브리서 10장 7-9절 말씀에 남아 있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이는 다 율법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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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는 것이라)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 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진리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일치되는 삶에서 그 의미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는 예수님 자신이 이미 천명한 것이며 이를 관찰한 제자들의 눈에도 동의가 된 것이다. 이것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진리나 확실성에 대한 개념과 특별한 관 계를 가지고 있으며, 강조점이 말씀과 행위의 일치에 있을 때는 언제나 진리의 이런 국면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요한은 특히 예수님의 기독론적 주장의 문맥 에서 이런 일치가 예수님의 말씀들의 진실성을 나타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 여주었다. 공관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알레데이아’나 ‘알레데스’의 다른 용례들 은 ‘거짓말’, ‘은폐’, 혹은 ‘속임수’와 반대되는 ‘진리’라는 의미를 지니거나 아니면 ‘정직’이나 ‘성실’의 의미로 나온다. 마태복음 22장 15절 이하(막 12:14)에서 바리 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은 질문을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하여 함정에 빠지게 하려 고 다음과 같은 말로 질문을 시작한다.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여기에서 요점은 예수님이 그 말을 함으로써 얻어질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 에 진리를 감추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그는 자기 견해를 피력하는데 정직한 사 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와 똑같은 의미가 마가복음 5장 33절에도 나오는데, 예 수님을 만진 혈루증 앓는 여인은 무리들의 부정적 시선을 개의치 않고 ‘모든 사 실’을 고하였다. 즉,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 이것은 사도행전 26장 25절의 언 명과 일치한다.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하 나이다.” 이 말들은 환상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사실에 기초한 것이다. 바울 역 시 진리에 대한 이해를 남긴다. 알레데이아에 대한 바울의 가장 두드러진 용법 중의 하나는 그가 복음 그 자체를 특징짓기 위해 ‘그 진리’라는 어구를 사용한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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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점이다. 비록 이것이 목회서신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할지라도, 이런 의미는 이미 갈라디아서에 나오고 있으며 데살로니가후서에도 나온다. 갈라디 아서 2장 4-5절은 다음과 같다.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 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유대주의자들과의 논쟁에서 문제가 된 것은 완전히 문자 그대로 ‘복음 의 진리’라고 선언하였다. 바울의 판단에 따르면, 복음을 더럽히도록 유혹하는 것은 곧 진리를 더럽히도록 유혹하는 것이요, 그 반대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 이다. 유혹에 굴복한다는 것은 그 자신의 성실의 의미에서나 구원사에서의 현재 있는 그대로의 실제 상황이라는 의미에서도 진리를 부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갈 라디아서 5장 7절의 ‘진리’라는 말은 복음 그 자체와 동의어가 되었다. “누가 너 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

진리의 의미 이상 신구약 성경에 나타나는 진리의 의미를 모두 상세하게 다룰 수는 없었지 만 대체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진리에 관한 학설은 다양하게 이야기될 수 있 다. 성경은 진리가 단순히 삼위 하나님 그 자신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삼위 하 나님이 지닌 질적 인격에 일치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 질적 인격은 성경이라 는 경전으로, 예언과 역사의 일치로, 진리의 계시를 통한 무지의 폭로, 삼위 하 나님의 인격에 일치하는 삶과 사상 등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진리’ 를 ‘지성과 사물의 일치’로 규정한 하이데거의 생각은 어느 정도 인정된다. 다시 말해 ‘진리는 사물과 지성의 일치다’(Veritas est adaequatio rei et intellectus)라는 세속의 생각은 성경과 그렇게 멀어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 없는 진리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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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위한 성경이해

한 일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남는다. 그런데 이러한 ‘일치’로서의 진리관 은 이중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일치라는 것은 ‘사태와 그 사태에 대 해 미리 생각하고 있는 것’과의 일치, 그리고 ‘진술에서 생각하고 있던 것과 사 태’와의 일치이다. 그래서 이러한 진리에 대한 전통적인 학설은 ‘진리란 사태가 인식에 상응하는’ 것, 그리고 동시에 ‘진리란 인식이 사태에 상응하는’ 것으로 말 해질 수 있다. 그런데 하이데거에 따르면, 이러한 진리의 이중적인 성격 중 전자 는 후자를 기반으로 해서 성립하고, 이 전자와 후자는 ‘…로 자신을 올바르게 향 함’(Sichrichten nach…)이라는 정향성(Richtigkeit, 올바름)을 그 본질로 가지고 있다. 신자로서 이 의미를 곱씹어 본다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진리란 예수 님의 삶과 가르침에 대한 일치 안에서 진리의 본질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요한 복음 17장 17-19절에 나오는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 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 내었고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라는 단언에서도 정확하게 적용될 수 있다. 이 문맥 은 세상과 대조되는 것으로서의 신자들의 공동체의 독특성에서 진리를 생각하 게 한다. 이 공동체에서 진리는 거룩한 질적 속성에서 결정된다. 공동체가 진리 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질적 속성이 공동체를 결정한다. 왜냐하면 공동체가 하나님께 속해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공동체 가 존재하고 성화되기 위해서 의존하고 있는 바로 그 말씀은 이 공동체를 세상 으로 보내는 위탁의 말씀이기도 하다(18절). 이러한 면에서 볼 때, 하나님께로부 터 나온 이 말씀은 타당하며, 유효하며, 결코 거짓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재와 일치한다. 엄격히 말해서 이 말씀이 하나님 자신이 계시하시는 말씀과 일치하기 때문에, 이 말씀은 진리가 된다. 이렇게 해서 공동체의 성화는 보증되고 그 위탁 도 정당한 것으로 인정된다. 진리에 대한 결론적인 의미를 정리하자. 진리란 공동체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질적 속성에서 결정된다. 다시 말해 우리 자신이 복음주의 공동체에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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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고 진리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가르침과 인격적 속성에 일치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서 진리가 결정된다. 하나님의 인격과 가르침 안에 있다면 진리 에 속한 것이며 그 반대가 된다면 진리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복음주의 혹은 개 혁주의에 속한 교단에 속해 있다고 진리에 속한 것이라는 낙관은 위험하다. 이 단 역시 이단이라는 공동체에 속해서 이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가르침에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이단이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진실하신 분’(계 3:7)이라 는 것을 기억하자.

연세대학교 신학과 졸업(B.A.)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Div.) 프랑스 파리 및 몽벨리에 신학대학교 졸업(Th.M.) 벨기에 국립 브뤼셀 개신교 신학대학교 졸업(Th.D.)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사)한국불어권선교회 한불성경편집위원 장위제일교회 협동목사

김성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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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회개는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 『예수님을 그리는 기술』, 『이야기로 읽는 말씀』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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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의 작성

이우제_백석대학교 교수

진실 말하기를 통해 진리가 살아 숨 쉬게 하되 사무엘하 19장 1-8절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 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이제 곧 일어나 나가 왕의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생략)”

I. 설교를 위한 착상 우리가 진리를 사수해야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진리가 올바르게 구현되지 않으면, 온갖 사이비 진리가 판을 치게 되기 때문이다. 진리를 상실하면, 거짓된 진리가 참된 진리로 둔갑하여 호령하게 될 것이다. 급기야는 사람들이 그 왜곡 된 진리를 따라 살아가게 되는 우를 범하고 말 것이다. 잘못된 진리가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 반칙이 진리로 통하는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다음은 필립 롱펠로 우 앤더슨(Philip Longfellow Anderson)이 지은 『디즈니 속의 복음』이라는 책(3132p)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몇 년 전, 한 뛰어난 화폐 위조자가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자신이 이십 달러짜 리 지폐를 완벽하게 위조하는 데 성공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만반의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곧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위조 기술에 대해 너무나 자신만만했기 때문에 자신이 위조한 지폐와 그 위조지폐의 원본이 되는 지폐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말해 보라고 요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이런 대답을 들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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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 어떤 차이도 발견할 수 없었는데, 바로 그게 문제였지. 당신은 딱 한 가지 실 수를 저질렀어. 당신이 위조한 지폐의 원본 지폐가 위조지폐였거든!”

위조지폐를 위조한 사람의 이야기는 우리가 왜 올바른 진리를 사수하고 살아 야 하는지를 역설적으로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진리에 붙들리지 못하면 위조지 폐를 위조하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 아닐까! 진리를 알아야 진리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이 모조품 진리에 속고 있다고 해도 교회만은 진리를 끝까지 붙들고 나아가 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진리가 살아 숨 쉬게 해야만 한다. 그 길 가운 데 하나가 바로 ‘진실 말하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특히 신앙 공동체 안에 소통의 벽이 생길 때, 진실을 말하는 것을 통하여 반드시 다시 진리가 사수되어야만 한 다. 오늘 우리가 선택한 본문은 공동체의 소통에 있어서 균열이 생길 때, 무엇보 다도 중요한 것이 원활한 소통을 위한 ‘진실 말하기’임을 잘 말해주고 있다. 압 살롬의 반란으로부터 승리한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극적으로 위기에서 살 아났음에도 불구하고, 축배를 들지 못한다. 다윗의 태도 때문이다. 다윗은 압살 롬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으로 기뻐하기보다 압살롬의 죽음으로 인해 슬픔에 빠 지게 된다. 그것도 과도한 슬픔의 자리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한다. 이것으로 인 하여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소통이 단절되고 만다. 다윗을 향한 섭섭 함이 극에 달하게 된다. 민심이 좋지 않다. 이때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여 쓴 소 리를 하며 다윗을 바로 잡는 사람이 바로 다윗의 군대 장관 요압이다. 그의 진실 말하기를 통하여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다시 소통이 이뤄지게 된다. 그러나 요압의 진실 말하기를 그저 칭송하는 것이 본문의 핵심 의도는 아니 다. 오히려 오늘 본문은 그의 진실말하기의 타당성만이 아니라 한계를 지적하려 는 것이 핵심적인 메시지이다. 요압의 진실 말하기는 잘못된 현실을 바로 잡기 위해 바른 말을 한 것이기에 후한 점수를 줄 수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의 진실 말하기가 다윗의 심령을 새롭게 하지는 못하고 있다. 오히려 다윗의 마음에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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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상처를 안겨주게 된다. 요동치는 민심과 요압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인 힘 앞 에 다윗이 움직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다윗이 회복되지는 않는다. 요 압식의 진실말하기가 한편으로는 소통을 가능케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소 통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요압의 진실 말하기를 보 면서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어떻게 진실 말하기를 통하여 참된 진 리를 사수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을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라.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할 때만이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 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 때 바른 진리가 사수되어지고, 그로 인하여 회복되어야 할 심령이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참된 것을 말하자가 첫 번째 교 훈이라면, 두 번째 교훈은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자가 될 것이다.

II. 설교문 설교 제목 : 서로 참된 것을 말하되… 설교 본문 : 사무엘하 19장 1-8절 서론 성경은 구원받은 주의 백성들은 ‘광야 교회’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이 광야 교회라고 하는 말은 주님의 백성들의 삶이 이미 ‘애굽’에서 나오긴 했 지만 아직은 온전한 ‘가나안’ 입성하지 않은 ‘중간 지역’에 속해 있다는 뜻입니 다. 이면에서 우리는 이 세상과 다음 세상의 그 중간기를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표현처럼, 교회 공동체는 이미 (Already)와 아직(Not yet)의 긴장 속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미’와 ‘아직’의 긴장 속에 있다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적용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바로 이 땅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교회 공동체는 여전히 온전하지 않은 갈지자의 걸음을 걸을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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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성장연구소 TEL 02)2036-7935 www.pastormall.net www.facebook.com/pastor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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