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 October 건강한 교회성장의 노하우가 한눈에 보이는 목회종합전문지
COLUMN
FRONTIER POWER INTERVIEW
COVER STORY
015 016 017
희망을 여는 창
020
‘하나님 손잡고 걸어갈 때 모든 것이 가능하다’
최복이 대표이사(본죽)
종교개혁 500주년을 마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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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목회자 여러분에게
<동행>
조용기 원로목사(교회성장연구소 명예총재)
이영훈 목사(본지 발행인)
이요셉 작가(LoveNphoto.com)
Sola Scriptura 오직 말씀으로 로마 가톨릭교회와 한국 교회 우리의 개혁
배덕만 교수(기독연구원 느헤이먀) 김영한 박사(기독학술원장)
안재경 목사(온생명교회)
하나님 나라 복음을 구현하는 교회 아직도 미완성인 종교개혁
이종필 목사(세상의빛교회)
김승진 교수(침례신학대학교)
077
<성경에서 발견하는 절기 이야기 Ⅸ>
NEW FACE NEW VISION
079
NEW FACE NEW VISION | 황유석 목사(수원은혜교회)
‘함께 울고, 함께 아파하는 교회’
PEOPLE
090
스페셜 인터뷰 | 이상호 PD(SBS)
‘손해 보고 사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098
스페셜 리포트 | 최귀석 목사(행복으로가는교회)
‘제34차 교회성장 심리치유목회 프로전도 무료세미나’
101
글로벌 리포트 | 안순철 선교사(러시아)
‘러시아 선교, 지난 20년을 돌아보며’
류모세 대표(열린다성경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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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STRY 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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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으로 보는 세상 | 양승훈 원장(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원장 겸 교수)
‘죽음, 영원으로 들어가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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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넥스트 스텝 | 김도일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
‘자녀들로 하여금 인생을 즐기게 하라’
124
크리스천 인문학 | 크리스 조 교수(백석예술대학교)
‘행복의 중심, 휴식’
131
희년의 관점으로 성경 꿰뚫어보기 | 장진광 목사(파스코 한인장로교회)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138
쪽지 인터뷰 | 최주호 목사(은성교회), 김철민 목사(반석교회)
‘종교개혁’
142
사랑나눔, 느헤미야 프로젝트 | 안기홍 전도사(믿음교회)
‘내 아들, 내 사랑하는 자야 - 한 시골 목회자의 간증 - ’
152
초대교회, 믿음의 발자국 | 전인수 교수(KC대학교 교회사)
‘기독론 확립 이야기’
163
현대인의 마음치유 | 변상규 소장(변상규 대상관계연구소)
‘당신들 안에 메시아가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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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통일 | 박종화 원로목사(경동교회)
‘독일통일의 감격을 한반도에서도 맛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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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을 마주하며 인터뷰 배덕만 교수(기독연구원 느헤미야) | 정리 최상현 기자
Sola Scriptura 오직 말씀으로
종교개혁 500주년의 의미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때문에 교계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행사와 포럼, 학회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500주년을 기념하겠다는 것 은 그때 당시의 정신을 잊지 않겠다는 노력이자 각오이 다. 한편, 한국 교회는 개신교가 500년의 전통을 가진
종교라는 자부심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도 느끼고 있다. 종교개혁은 부패한 교회를 반성하며 진리를 되찾고 회복하려는 노력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종 교개혁의 유산을 제대로 간직하고 있었느냐는 질문을 던져볼 때, 떳떳하지 않음을 체감하고 있다. 130년 전, 한반도에 상륙한 복음과 그 복음 위에 세 워진 교회는 세계를 경악하게 할 만큼 찬란한 성장을 이룩했다. “한국 교회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며 ‘개혁의 후예가 아닌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는 현실은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다.” 기독교 언론과 23개 교단이 선정한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구호는 ‘나부 터’이다. 그 뜻은 각 그리스도인들이 종교개혁의 후예로서 본질을 지켜내고 자신의 모습을 반성해보자는 의미이다. 종교 개혁가들도 ‘이신칭의’(以信 稱義)라는 진리를 깨달은 후 자신의 모습 속에서 본질에서 벗어난 미신과 타락한 관행이 팽배한 것을 발견했다. 개혁의 대상에서 ‘나’는 빠질 수 없다. 하지만 문제의 근원적인 부분을 놓쳐버리고 개혁을 ‘개인의 도덕적 각성’으 로 환원시켜버리면 실제적인 문제를 간과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때문에 한국 교회의 타락상들을 구조적인 측면과 사회적 측면, 정치 경제적 측면에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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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서 함께 살펴보고 개혁을 외쳐야 한다. “루터와 칼빈, 츠빙글리의 노력과 그들이 던진 질문을 되새겨 보며 2017 년을 의미 있게 맞이하려면 ‘그저 과거에 일어난 일을 기념하는 잔치가 아 니라 한국 교회가 개혁을 단행하는 해’로 맞이해야 한다.” 남의 이야기는 의미가 없다. 루터가 비판했던 부패한 가톨릭교회의 자리 에 한국 교회를 등치 시켜놓고 우리를 향한 종교 개혁가들의 외침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상관 관계
중세 말기의 유럽 사회는 그들이 봉착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대 그리 스, 로마의 문학과 철학을 연구하고 재현시키려 했다. 우리는 그 일을 ‘문예 부흥’이라고 하며 르네상스의 시작으로 본다. 르네상스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나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는 기독교 신자였지만 초기 르네상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낙관적 인간론’ 을 복원시키려 했다. 당시 중세 사회는 ‘신 중심의 사회’였으며 인간에 대한 가치는 상대적으로 부정적이었다. 르네상스는 신(神) 중심 체제를 부수고 해체하려 했다기보다는 지금까지 간과했던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복 원하려 시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학자들은 고대 언어를 학습하여 옛 철학 과 문학, 종교를 연구했는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그 운동이 알프스를 넘어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으로 북상하면서 ‘기독교 인문주의’로 변모했 다. 그 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이 각 나라별로 나타나는데 대표적으로 에라스 무스(Desiderius Erasmus)와 데시데리우스(Desiderius)가 있다. 그들로부터 고대에 대한 관심과 기독교 신앙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만나게 되는데, 이때 나타난 중요한 변화는 바로 ‘성경에 대한 관심’이다. 일반 인문학자들 이 고대 문헌들과 호머, 키케로에 관심을 가졌다면 기독교 인문학자들은 성 경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성경을 원어로 읽기 위해 그리스 어와 히브리어, 라틴어를 공부했으며 전 세계에 퍼져있는 성경 사본을 수집 하였다. 그 과정에서 세 가지 언어(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에 정통한 성 교회성장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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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을 마주하며
서학 교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에라스무스의 희랍어 신약성서 가 출간된다. “원전을 읽다 보니 가톨릭교회가 사용하는 라틴어 성경 속에서 수많은 오 류와 오역을 발견하게 되었고, 오류에서 파생된 교리들이 상당 부분 존재한 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시내산에서 내려오는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는 내용을 ‘뿔이 났다’고 오역한 부분이 있는데, 당시 그려진 성화 작품을 보면 ‘뿔이 난 모세’가 그려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마태복음 3장 2절에 ‘메타노 에이테’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그 뜻을 ‘고해’라고 오역하여 이로부터 가톨릭 교회의 고해성사 신학이 발전했다. 하지만 사실 그 단어는 ‘정신을 차리다’ 라는 뜻이다. 개혁가들은 잘못된 성경번역으로 인해 엉뚱한 신학이 만들어 지는 현실을 바로잡으려 했다. 그들은 원어에 입각한 바른 번역에 힘을 쏟 았고 이러한 노력은 가톨릭 교리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되었다. 루터(Martin Luther), 칼빈(John Calvin), 츠빙글리(Ulrich Zwingli)도 이러한 비판의 영향 을 받았다. 그들 역시 헬라어의 대가들이었는데 원어로 성경말씀을 연구하 며 개혁운동을 펼쳐나갔다. “르네상스와 휴머니즘이 종교개혁에 끼친 영향은 바로 ‘성경의 재발견, Sola Scriptura’였던 것이다.” 종교개혁의 전개과정과 그 정신
종교개혁은 신학자들이 주도했다. 개혁가들은 모두 신학을 연구한 학자 들이었는데 이점이 중요하다. 그들은 지역 교회를 담임하는 현장의 목회자 들이 아니었다. 루터가 씨름한 문제 또한 목회 현장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구원론과 관련된 ‘신학적 문제’였다. 그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는 교리를 로마서를 연구하며 찾아내었다. “종교개혁은 ‘기독교의 진정한 진리, 구원이 무엇이냐’는 답을 찾으려는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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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노력에서 시작했다.” 르네상스시대의 인문주의자와 종교 개혁자들이 비슷하면서도 달랐던 부 분이 바로 이것이다. 고대 라틴, 그리스 사람들의 윤리학과 철학은 ‘인간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다룬 것이었고, 에라스무스도 교리보다는 온전한 지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모범적 인간을 구현하는 것에 관심이 컸다. 하지만 루터, 칼빈, 츠빙글리는 ‘구원의 교리를 정확하게 확립하는 것’을 더 욱 중요시했다. 우리는 종교개혁이 ‘참 진리가 무엇이냐는 지적인 관심’에 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가 세워지는데 있어서 가장 중 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성경에 근거한 정확한 교리를 확립하는 것이기 때문 이다. 정확한 진리와 원칙을 세우지 않은 상태에서 세운 교회는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다. 중세 가톨릭교회는 미신과 말씀이 뒤섞여 원래의 것과는 상관없는 ‘오도된 신학’으로 성경을 이해하고 있었다. 종교 개혁자들은 구 원과 진리의 정확한 개념에 근거한 공동체를 세우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 다. 예수 그리스도를 담아낸 성경 속에서 진리를 찾아내는 것과 교회와 세 상을 원래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가톨릭교 회가 중요시 하는 ‘성인들과 성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아가자고 외친 그들의 메시지는 매우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곧 두 가지 문제가 발생 한다. “사회적으로 종교개혁운동이 확산되면서 정치권력이 개입하기 시작했 다.” 교황과 대주교, 각 나라의 왕들이 개입하면서 종교개혁은 정치권력 문제 로 전개된다. 순수하게 성경적 교회를 세우고자 했던 개혁자들의 의도와 달리 정치, 경제, 군사적 요소가 끼어들면서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사태 가 흘러간 것이다. 그 결과 종교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은 30년간 이어졌고, 1648년에 이르러서야 타협안이 마련됐다. 표면적으로는 기독교의 이름으 로, 종교개혁의 이름으로 투쟁했지만, 사실 같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끼리 벌인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다. 이는 종교 개혁자들 조차 생각지 못한 일이었 교회성장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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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을 마주하며
다. 토론과 논쟁으로 해결해보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결국 무력을 동원하면 서 초창기의 의도와 벗어난 결과를 맞이했다. “두 번째 문제는 이신칭의와 관계없는 신학적 논쟁들을 벌이면서 교회가 분열된 것이다.” 교회 정치와 조직, 그리고 성만찬 교리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면서 루터와 츠빙글리가 결별한다. 1529년에는 칼빈도 다른 입장을 가지면서 루터파와 개혁파로 갈라섰다. 그 외에도 다양한 주제로 교리논쟁이 발생하면서 가톨 릭교회와 격돌한지 얼마 되지 않아 서로 분열하기 시작했다. 힘을 합치고 마음을 합해도 어려운 형편에 신학적 입장 차이로 인해 자중지란에 빠졌다. 현대인들에게 종교개혁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루터, 칼빈, 츠빙글리로 대변되는 종교 개혁자들은 시의회 군주들의 힘을 끌어안고 운동을 이어갔다. 당시는 국가와 교회가 하나 된, 정교일치 사회 였다. 국가는 교회를 세금으로 후원했고, 교황과 황제가 동등한 권력을 지 녔다. 가톨릭교회와 루터파의 1차 전쟁 후 1555년에 두 진영은 협약을 맺으 며 전쟁은 일단락 마무리되었다. 협상내용은 각 지역의 영주가 따르는 교회 를 그 지역의 종교로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만약 해당 도시국가의 영주가 따르는 종교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사를 가거나 박해를 받아 야 했다. 이처럼 종교문제가 국가 차원의 문제와 함께 다루어졌다. 한편, 현 대 우리는 문화적으로 ‘포스트모던’ 사회에 살고 있으며, 정치적으로는 정교 분리 사회 속에 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양심에 따라 종교를 선택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당시 유럽은 타종교가 없는 단일 종교를 가진 사회 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종교다원 사회이고, 합법적으로 종교의 공 존이 가능하며, 국가가 개인의 신앙에 개입할 수 없다. 중세시대에는 태어 나는 즉시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가톨릭교회 신자이거나 루터파 교회 의 신자가 되었다. “지금은 자신의 개성과 판단에 근거하여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시대가 되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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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었다. 포스트모던 사회란, 획일된 법과 정신이 시대를 지배하는 사회가 아 니라 각자가 자신의 개성과 판단에 근거하여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존 중되고 보장되는 사회를 일컫는 말이다.” 전통적 관습을 따르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오늘 날에는 그러한 차이를 두고 지적하거나 바로잡을 수 없다. 우리는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시대와 완전히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오히려 초대 교회의 시점과 더 가깝다. 초대교회는 로마제국 속의 온갖 종교들 사이에서 모진 박해를 받았고,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기독교의 입장을 세워가야 했 다. 때문에 그들은 세상 사람들과 압도적으로 비교되는 차원의 삶을 살았으 며 이러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들이 믿던 로마의 주 류종교를 포기하고 자발적으로 주님을 영접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의 모 습은 어떠한가? 종교적 문제로 국가가 벌을 주거나 아무런 제제도 가하지 않지만 교회를 다니는 것이 ‘부족한 사람’인 것처럼 취급받고 있다. 또한 개 신교 이외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종교들이 여럿 있기 때문에 개혁은 둘 째 치고 당장 생존을 염려해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 “이제는 ‘본래의 정신’, 즉 오직 성경, 오직 은총, 오직 그리스도를 외쳤던 목소리를 다시 붙잡는 것이 중요하다.” ‘오직 성경, 은혜, 믿음!’ 오늘날에도 유효한 메시지인가?
중세 교회에서는 미사와 유물숭배, 성인숭배, 성지순례, 고행과 금식을 중 시했고 그것이 기독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성물 이나 성인이 아니라 ‘주님’이 중요하고, 나의 고행이 아니라 ‘은혜’로 구원 을 얻는 것임을 깨달았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과연 한국 개신교는 오 직 성경과 그리스도, 믿음에 집중하고 있는가? 아니면 중세 말기의 타락한 가톨릭교회처럼 예전(미사)과 기복주의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유물숭배와 성인숭배는 기복주의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성스러운 물건이나 성인의 힘 을 빌어서 개인의 욕구를 채우고 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성경의 본질과 그리스도의 가르침, 제자도, 은혜보다는 내가 교회성장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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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초자연적인 은혜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교회에서의 봉사, 헌금, 선행으로 복을 받으려는 의도를 가진 신자들이 많다. 성경 말씀에 집중하기보다 복을 받으려는 욕구 가 교회를 지배하면서 그리스도는 우리가 따라가야 할 대상이 아니라 ‘복을 주시는 대상’으로 전락해버렸다. “한국 교회의 부패, 성적 스캔들, 재정 문제, 건축 비리, 이 모든 것은 ‘탐 욕’에서 비롯된다. 그곳에는 성경이 없다. 이러한 문제는 중세 말기에 베드 로 성당을 짓기 위해 면죄부를 팔던 가톨릭교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그래서 루터가 선포한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믿음으로’라는 메 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교회의 실천방안
각 지역 교회는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많은 일을 감당하고 있다. 하지만 교회가 왜 존재하는지, 기독교가 무엇이며 성경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와 복음이란 무엇인지 분명하게 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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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치고 있는지 돌아보고 그것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성경을 가르치는 운동이 필요하다.” 한국 교회는 세 가지 위기에 처해 있는데 그것은 ‘목회자의 스캔들이나 분 쟁과 갈등으로 교회가 무너지는 것, 교회를 향한 사회적인 반감, 그리고 이 단 문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이단 문제인데, 이단이 출현하는 이 유는 ‘기성 교회의 부패, 그리고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문제’ 때문이 다. 교회가 성경을 가르치는데 약하고 교인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 기 때문에 말씀보다 은사에 집중하거나 이단 교리에 쉽게 노출된다. 때문에 교회는 먼저 성경으로 돌아가야 하고 말씀을 회복해야 한다. 종교개혁 이전 에는 예배의 ‘예전’을 중시했다. 그래서 종교 개혁가들은 예전보다 말씀을 우선해야 한다며 성찬식을 1년에 4차례로 줄이고 성찬대가 있던 자리를 설 교단으로 바꾸었다. 그래서 ‘설교’가 예배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 다음 세기에는 경건주의자들이 예배시간 외에 성경공부 소그룹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오늘날 구역모임의 시초가 된다. “이제 모든 관심을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으로 돌려야 한다. 교회를 개 혁하는 것은 반드시 말씀으로만 가능하다. 예배시간에는 성경을 제대로 드 러내는 시간이 되어야 하고 기복신앙을 알리는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신학자와 목회자의 책무
종교개혁은 신학자가 시작했다. 그들이 성서를 연구하여 깨달은 진리를 교계와 사회에 외치는 것으로 개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신학자들 의 위상과 영향력은 어떠한가? 신학자들이 학문의 상아탑과 교권의 통제 아 래 갇혀 있다. 그들은 본질을 추구하는 공부를 해야 하며, 성서를 연구하여 도출한 메시지가 세상으로 흘러넘치게 해야 한다. 한국 교회를 향해 개혁을 외치는 최전선에 신학자들이 서있어야 한다. 현장에 있는 목회자들에게 맡 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목회자들은 현실 속에서 씨름하고 있기 때문에 개혁을 부르짖기 어렵다. 교회성장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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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을 마주하며
“객관적인 자리에서 평가할 수 있는 사람들은 신학자들이며 그들이 문제 의 해법과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한편, 현대 사회 속에서 교회를 섬기고 있는 목회자들은 성경을 말하지만 성경에만 의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주님만 바라보지만 주님만 바 라볼 수는 없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세상의 영향력과 힘, 구조, 역 학관계 속에서 진리를 향한 방향을 뚜렷하게 제시할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일반적인 종교집단이나 2차적인 사회집단으로 머물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는 성도의 공동체 로 세워가는 목회자들의 책임은 무겁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내가 왜 목 회를 하는지, 교회가 어디로 가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포기해서는 안 된 다. 한 지역 교회의 목회자가 한국 교회 전체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내 게 맡겨진 교회만이라도’ 진리에 다가갈 수 있도록, 종교 개혁자가 꿈꾸었 던 방향으로 다가서도록 성도들을 계몽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루터와 칼빈을 다시 읽고 반성하며, 교회를 정직하 게 들여다보자. 종교 개혁가들이 꿈꾸었던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된 교회로 다시 회복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2017년이 되기를 기도한다.
배덕만 교수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을 졸업하고 Yale Divinity School(S.T.M)과 Drew University(M. Phil., Ph. D.)에서 학위를 받은 배덕만 교수는 서울 신학대학교, 숭실대학교, 한세대학교 등에서 강의 했고,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의 겸임교수, 건신대학원대학교의 역사신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현재 기독연구원 느 헤미야의 교수로 재직 중이며 백향나무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저서로는 『FM기도』, 『미 국기독교우파의 정치운동』, 『한국개신교근본주의』, 『세상을 바꾸는 도전』, 『성령을 받으 라』, 『소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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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이
달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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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개혁
성경적으로 설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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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위한 성경이해】
개혁의 의미·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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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설교현장】
지속적인 자기 개혁(갱신)을 통한 삶의 길
- 상품 인생에서 작품 인생으로·이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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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성령님을 찾아라!·김병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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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대를 본받지 않으려면·김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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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하라·임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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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롭다 함을 얻은 자의 세 가지 특권·피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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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이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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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우리가 죽게 된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조용기
110 【교회학교】
여호와 앞으로·장혜경
116 【국외설교】
나의 목회 사역이 설교 사역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존 파이퍼 (How My Pastoral Ministry Shapes My Pulpit 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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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RCH GROW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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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삶의 현장
142 목회자가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한재욱 148 이달의 설교예화·편집부 157 이달의 유머예화·김진배 162 신앙에세이·배경락 166 이종필목사의 킹덤 프리칭 3-1·이종필 173 이종필목사의 킹덤 프리칭 3-2·이종필
CHURCH GROWTH 맑은물가 20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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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성령님을 찾아라! 히브리서 13장 5절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 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 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김병삼 목사_ 만나교회
설교 한눈에 보기 1. 성령님을 잃어버리는 이유! • 성령님을 잃어버리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는 죄다. • 우리의 발걸음이 성령님보다 빨리 앞서나갈 때 성령님을 잃어버리게 된다.
2. 잃어버린 성령님을 찾아라! • 성령님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감지할 때 해결책이 있다. • 잃어버린 성령님을 찾는다는 것은 우리 곁에 계신 성령님께 순종하라 는 말이다.
3. 성령님을 찾았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 성령님을 찾았다는 말은 성령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 성령님께 민감하게 될 때 성령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형성된다.
핵심 메시지 성령님을 근심하게 했던 일을 돌이켜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자.
청중의 적용 포인트 ‘잃어버린 성령님을 찾기 위해 돌이켜야 할 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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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목회와 신학』에 실렸던 고전적인 예화입니다. 잃어버린 성령님 혹
어린 시절부터 시골에서 자연의 소리와 함께 살아온 한 인디언이 미국인 친구를 따라 뉴욕을 여행하던 중에 갑자기 들려오는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달의 설교 | 개혁
은 우리가 성령님과 동행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죠.
그리고 “친구, 들어봐. 귀뚜라미 소리야”라고 말했다. 미국인 친구는 뉴욕의 표징이 라 할 수 있는 택시의 빵빵거리는 소리, 오고가는 사람들의 많은 소음에도 불구하 고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난다며 가던 길을 멈추는 인디언 친구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인디언 친구는 미국인 친구를 데리고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따라 빌딩이 즐비한 근처를 찾았다. 놀라운 일을 발견했다. 뉴욕 한복판에 하늘 높이 치솟은 걸 물 사이로 약간의 풀이 자라고 있고 그곳에서 귀뚜라미가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인 친구가 “너의 귀는 정말 대단하구나”라고 하자, 인디언 친구는 “그 렇지 않아”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인디언 친구는 호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 길 한복판에 떨어뜨렸 다. ‘땡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멀리 떨어져 길을 걷 던 사람들도 혹시 자신들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동전이 아닌가 싶어 모두 뒤돌아보 는 것이었다. 인디언 친구는 “사람이란 자신의 관심에 따라 들리는 소리가 달라. 관 심만 있으면 미세한 소리도 들을 수 있어”라고 말했다. 그의 고백은 하나님의 음성 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큰 메시지를 던져준다. 자신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는가 에 따라서 들리는 소리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_ 류응렬 교수(『목회와 신학』, 2006년 5월호)
성령님을 잃어버리는 이유! 히브리서 13장 5절 말씀이 아주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과 더불어 ‘돈’을 사랑하지 말라는 권면의 말씀입 니다. ‘돈’이 단순히 물질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겠죠. 우리 속에 있는 욕망은 늘 하나님과 대척점에 서있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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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결코 벗어날 수는 없지만, 우리가 특별한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릴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 말씀을 보세요.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겠다는 약속과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 시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오신 성령님을 우리가 소멸할 수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데살로니가전서 5장 20-22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연속됩니다.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우리의 의지에 삶이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우리 속 에 성령님이 역사하도록 할 수도 있고, 그 불을 끌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Ⅰ-1). 우리가 범사에 좋은 것을 취하고 행할 수도 있고, 악한 일을 할 수도 있다는 말입 니다. 은유적이지만 이런 생각을 해봅시다. ‘불’은 언제 꺼질까요? 간단합니다. 연료가 공급되지 않을 때입니다. 또한 활활 타고 있는 불에 물을 끼얹으면 꺼집니다. 그렇다면 우리 속에 성령이 소멸됐다면 이 둘 중에 하나가 아닐까요? 연료를 차단하는 가장 강력한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입니다(Ⅰ -2). 하나님 아래에서 죄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이들이 하나님을 벗어날 때마다 악행을 저지르고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아주 흥미롭습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지 않 을 때 죄를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사기 21장 25절에 보면 악행을 반복했던 이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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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라엘 백성의 패턴이 나와 있습니다.
여기에서 ‘왕’이라는 것은 단순히 세상의 권력을 가진 주관자를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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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주관하는 주인이 없으므로 자신들의 뜻대로 행하였다 는 것입니다. 이 사사시대를 가리켜 우리는 ‘암흑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하나 님의 뜻이 보이지 않으므로 죄악이 넘쳐났던 시대입니다. 이제 우리는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인간들이 자기의 소견에 옳 은 대로 행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 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없이 행하는 일들은 자연스럽게 육신의 정 욕에 흐를 수밖에 없는 것이죠.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성령님의 임재를 의식하지 못한 채 계 속해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R. T. 켄달(R. T. Kendall)의 책 『성령을 소멸치 않는 삶』에 보면 한 성공회 목사가 방송에서 한 이야기가 나옵 니다. “성령께서 교회에서 완전히 떠나신다 해도, 오늘날 교회들이 하고 있는 일 의 90%는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의 진의가 무엇일까요? 성령님이 계시지 않아도 교회가 존재하고 일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 이 아니라, 지금 교회에서 하고 있는 일의 대부분이 성령님과 관계없이 이루 어지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켄달이 그의 책에서 예로 들었던 삼손의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그가 들릴라 의 꾐에 빠져 머리카락을 자르고 성령님께서 떠나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모르고 있다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혀 수치를 당하고 맙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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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님이 함께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른 채 한참을 걸어갑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성령님과 동행하지 않는다는 것이 성령님을 모른다거 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의 발 걸음이 성령님보다 빨리 앞서나가는 것이죠. 그래서 때로는 우리의 열심으로 인 해 성령님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는 것이죠. 정말 위험한 것은 성령님과 동행하 다가 어느 순간 성령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에게 찾 아오는 감정이 ‘허무함’이고, 이 허무함을 채우기 위해 쉽게 죄의 유혹에 굴복하 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통계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께 쓰임 받던 사역자들의 75%가 성적인 유 혹에 굴복하여 기름부음을 잃고 사역을 하다 망하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오늘부터 심각하게 나누어야 할 이야기입니다. ‘나의 삶에 성령님이 계시는가?’ ‘내가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것, 아니 믿음을 고백했다는 일회적인 사건을 가 지고 성령님이 함께 하신다는 착각을 하며 사는 것은 아닌가?’ ‘삼손이 여자의 꾐에 빠져 수치를 당했지만 마지막에 다시 쓰임을 받은 것처 럼, 예수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매 다시 돌아가 예 수님을 만났던 것처럼, 우리가 다시 돌아가야 할 자리는 어디인가?’
잃어버린 성령님을 찾아라! 우리가 성령님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감지하는 순간 의외로 쉬운 해결책이 있 습니다. 심각한 것은 잃어버린 성령님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은 자신과 함께 예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 순간, 예수님을 잃어버린 장소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성전 안 에 계신 아들 예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물어야 할 중요한 물음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무슨 일 때문에 성령님을 우리의 삶에서 떨구어 놓게 되었는 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는 무엇으로 합리화하며 성령님과 동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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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한다고 생각했는지를 직시해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공식적으로 드 지만 의식적인 위선은 아니었는지…. 이런 상상을 해보세요. 우리가 주님과 함께 했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면, 그분이 하시는 일이 무엇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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렸던 예배와 매일 묵상하던 성경구절로 인해 성령님과 함께 한다고 믿고 있었
고, 나와 함께 했던 순간이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요? 어쩌면 지금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하고 있는 일과 무지하게 열심을 내고 있는 일들 이 주님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점검하게 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흔히, 그리 고 너무 쉽게 말하는 “주님을 위해!”라는 말의 진의를 구별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 우리가 지나친 염려로 인해 자유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우리 중에 누구도 성령을 근심시키기를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성령 님을 근심시키지 않기 위해 잠시라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없이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 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오류가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식사를 할 때 도, 신문을 볼 때도, 친구를 만날 때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려 하지요. 혹 비싼 음식을 먹을 때도, 여가 시간을 즐길 때도,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지 않을 까 하는 염려로 인해 자유함을 잃어버리는 것이죠. 이런 부분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 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 5:1)
성령을 근심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다시 무거운 멍에를 메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실수하지 않기를 원하시지만 실 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완전하기를 원하 시는 분이 아니라, 완전을 향해 점점 성장해 가기를 원하십니다. 성령님은 우 리가 근심하고 절제하여 웃음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 니라, 성령님과 함께 기뻐하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친구를 만나거나 여가 시간을 금지하는 분이 아니라, 좋은 관계와 회복을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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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늘 하는 말이지만 우리가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심초사하기보다는, 자 유함 가운데 인도하심을 따라가려고 노력하면 삶의 밸런스를 맞추게 될 것이라 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삶의 한 가운데서 성령님이 우리와 동행하시 는지를 점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주목해 보겠습니다.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 13:5)
‘그’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아 니하리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버리거나 떠나시는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의 문제는 무엇인가요? 우리를 떠나지 않는 성령님을 우리가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과 동행하지만 성령님의 뜻을 잘못 이해하거나 우리가 이해하 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성령님과 동행하게 되면 그 뜻을 찾아가 게 됩니다(Ⅱ-1).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으로 인해 어떤 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중요한 예가 사도행전 16장에 나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 성령님과 동행하며 많은 기적을 경험 한 사람입니다. 아마도 신약에 나오는 인물 중에 가장 강력하게 성령님께 붙잡 힌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그의 마음에 소원이 생겼습니다. 이제 아시아로 넘어 가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열정입니다. 그의 신앙과 열정에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막으셨습니다. ‘막으심’이란 그가 행동하지 않으면 경험할 수 없는 사건이죠. 그래서 성령님께서 원치 않으신다는 확신 가운데 ‘비두니아’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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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가기로 결심합니다. 물론 그가 하는 일에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
않을 때 그가 순종하여 움직이지 않았고, 아직 분명하게 성령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여전히 성령님과 동행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 밤에 환상을 보게 됩니다. 아시아가 아닌 유럽의 마게도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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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서도 성령님의 허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님께서 허락하지
이 나타나 도와달라고 손짓하는 것이었습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 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행 16:9)
그때서야 사도 바울은 왜 성령님께서 자신의 길을 막으셨는지를 알게 되었 고, 성령님께서 이끄시는 길이 어딘지도 확신하게 됩니다. 흥미롭죠? 성령님과 동행할 때 성령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을 알게 되고, 성령님과 동행 할 때 성령님이 원하시는 것도 알게 된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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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첫 번째 세워진 교회가 유럽의 관문인 빌립보교회입니다. 잃어버린 성령님을 찾는다는 것은 우리가 찾을 수 없는 곳에 성령님이 계시다 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계신 성령님께 신실하게 순종하라는 말입니다(Ⅱ-2).
성령님을 찾았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성령님을 찾았다는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이제 성령님이 역사하신다!’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이 역사하신다는 증거는 무엇인가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 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성령이 원치 않는 일을 하면 성령이 근심하지만, 성령이 원하는 일을 하면 반 드시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Ⅲ-1). 성령의 열매는 구별되어 나타납니다. 성령 을 거스르면 육체의 열매를 맺습니다. 육체의 일이란 무엇입니까?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러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 5:19-21)
성령의 열매가 명확하듯이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육체의 열매 없이 애매모호 하지 않습니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일들입니다. 사실 우리가 성령님과 동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사 도 바울이 이렇게 책망하지 않습니까?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 느냐” (고전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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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양심이 있다면 성전에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별하
모르겠습니까? 우리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 자의적이고 고의적인 동기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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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못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에 놓아도 되는 것과 두지 말아야 하는 것을
우리는 흔히 ‘잘 몰랐다’, ‘나는 원치 않았다’라는 말을 듣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자신이 더 잘 압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은 명확한 결과로 드러납니다. 저는 가끔 그런 자랑을 하는 목사님을 봅니다. “나는 원하지 않는데, 우리 장로님들과 교인들이 원해서…”
수년 전에 제가 차를 살 때입니다. 목사에게 있어서 ‘무슨 차를 살까?’하는 것은 신앙적인 문제를 떠나서 이미지 관리에 참 중요합니다. 저는 만나교회 목사로서 청 빈이나 청부의 관점 그리고 신앙적 양심의 문제라기보다는 교인들이 용납할 수 있 는 수준이 무엇인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K7이라는 차를 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장로님들에게 차를 바꿀 때에 그 정도로 바꿔달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재무부장이었던 장로님은 자동차 관련 일을 하는 분이었고, 그분의 생각에 는 그 차보다는 제네시스라는 차가 훨씬 안전에 좋다고 권면을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고민을 하다가 교회에서 제네시스를 ‘의전용’이라는 이름으로 사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누가 무슨 차를 타냐고 물으면 꼭 그 스토리를 이야기합니다. 사실 저 는 K7을 타고 싶었으나 장로님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제네시스를 탑니다. 그런데 제 내면을 보면 그 말은 진실이 아닙니다. 장로님의 권유가 많이 작용을 했지만, 그 차를 타고 싶은 제 마음이 결정적으로 작용을 한 것이죠. 단지 저를 속이고 있을 뿐입니다. 저에게는 지금은 몸이 아파 차를 쓰지 못하시는 어머니에게 제가 사드린 차가 한 대 있습니다. ‘아반떼’죠. 가급적이면 가까운 곳을 다닐 때 제가 아반떼를 운전 하고 다닙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만나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제네시스를 타고 다니면 부담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제가 하는 말을 또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 다. 어떤 차를 타느냐가 저에게 신앙적 결단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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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제가 앞으로 살아가는 날 동안 어떤 차를 타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일의 결정에는 자신의 ‘의지’가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이 우리에게 삶의 이유와 선택을 묻듯이 성령님도 우리에게 물으실 것이라는 말입 니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명이 아닙니다. 단지 무엇을 결정 했든 둘 중에 하나라는 것이죠. 성령님의 생각이 우리 속에 있으므로 한 결정에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며, 육신의 정욕으로 인해 결정한 것에는 육체의 열매를 맺으리라는 것이죠.
우리는 너무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조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 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는 악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악이 아니어도 성령님 과 동행하지 못하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와 영적 싸움은 ‘악’과의 싸움만이 아니라, 육신의 생각과 성령의 생각 가운데서 갈등하고 고민하고 민감 해지는 것이죠. 성령님의 증거에 대하여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왔다(마 3:16)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흥미로운 것은 이 장면을 침례 요한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 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 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 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요 1:32-33)
마틴 로이드 존스(Martyn Lloyd Jones)는 ‘성령님은 걸어오셨다가 말을 타고 떠나신다’라는 청교도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그만큼 성령님은 민감하시며 작은 일에도 슬퍼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이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임하시면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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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함이 찾아옵니다. 자신감이 찾아옵니다.
무엇일까요? 켄달은 그의 책 『성령을 소멸치 않는 삶』에서 아주 흥미로운 구분을 하고 있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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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오랫동안 머무시지 못하는 이유가
우리가 흔히 비둘기를 두 가지 종류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만나 는 비둘기는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이를 주면 모이기도 하고, 사람이 와도 쉽게 도망가지 않습니다. 도심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죠. 이런 비둘기를 가리켜 ‘피존’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령님을 의미하는 비둘기는 피존과 는 달리 ‘터틀도브’라고 하는데 절대로 사람들이 많은 도시에는 날아오지 않습니 다. 레위기 12장 8절에도 제사에 쓰이는 비둘기를 산비둘기(도브)와 집비둘기(피존) 이 둘로 나누고 있는데, 이것은 마치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처럼 다른 것이죠. 그 런데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는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성경에서 성령이 ‘피존’같이 내려오셨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피존이 사람에게 내려 와서 머물렀다면 별로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사람을 별로 가리지 않기 때문이죠. 지금 우리 현실에서 환경을 오염시키는 주범으로 문제가 되고 있고, 쫓아내려고 전 략을 짜고 있는 비둘기는 피존입니다. 이놈들은 웬만큼 위협을 가한다고 도망가지 않습니다. 환경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아 오히려 얄밉기까지 할 정도입니다. 우리가 똑같이 비둘기로 알고 있지만 피존과 도브는 아주 다르다고 합니다. 또 한 피존이 서로 싸우는데 반해, 도브는 절대 싸우지 않고 조용하며 매우 순하다고 합니다. 피존은 소음에 별로 개의치 않는데 반해, 도브는 시끄러운 소리에 아주 민 감합니다. 피존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도브는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피존 은 자기 영역을 구분하여 구역을 주장하는데, 도브는 텃세를 부리지 않습니다. 피 존은 아주 강한 귀소본능이 있어 훈련이 가능하지만, 도브는 길들여지지 않습니다. 피존은 한 마리 이상과 짝을 짓지만, 도브는 평생 한 마리하고만 짝이 됩니다.
이 둘의 비교를 통해 성령님을 상징하는 것이 분명하지 않나요? 피존이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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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 성령님을 상징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지 않나요? 문제는 우리가 이 피존과 도브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혹 우리에게 임한 성령이 피존인데 도브인 것으로 착각하고 신앙생활을 할 수도 있다는 것입 니다. 우리가 흔히 성령의 임재를 이야기하면서 이 둘을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 닌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성령의 열매는 그렇게 쉽고 흔하게 우리에게 임하거나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마음을 빼앗겨 어지러워질 때 거하실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령님이 우리의 삶에 머무르시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실 교회와 우리 신앙이 능력을 상실한 것은 성령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오신 성령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성령님을 상징하는 ‘도브’가 민감하다는 것을 알 때, 우리의 신앙이 ‘민감성’을 잃어버리는 순간 성령님이 떠나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민감하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본래 ‘민감함’이라는 영어의 단어 ‘Sensitivity’는 ‘본질상 다치기 쉬운 성향’이라 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의 의미는 ‘다른 사람의 감정과 필요를 잘 아는 능력’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인격적이고 민감하다는 것 성령님의 감정을 상하게 할까 싶어 늘 조심하고 신경쓴다는 것입니다. 다시 생각한다면 우리의 신앙이 민감해야 하 는 것처럼 성령님은 우리의 상태에 대하여 민감하다는 것이죠. 이때, 우리는 ‘인격적’이라는 말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방적’이지 않고 인격적인 관계에서 성령님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가 민감함 에 대하여 훈련될 때, 점진적으로 성령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형성되어 가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격적 모순으로 인해 성령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깨지 면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이 ‘소멸’됩니다. 이제 우리가 ‘성령의 기름부음’을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됩니다. 단순히 뜨거움, 우리의 체험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성품 과 능력이 같이 나타나는 것입니다(Ⅲ-2). ‘도브’인 성령님이 머물 수 있는 성품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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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훈련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머물기 위해서는 늘
령님께서 거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속적인 성령의 기름부음을 원한다면, 우리의 목소리를 낮추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의지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께 맞추려고
이달의 설교 | 개혁
그분의 의향이 우리 속에서 존중되어야 합니다. 인격이 무시되면 인격이신 성
노력해야 합니다. 켄달의 고백이 참 의미가 있습니다. 그가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과의 만 남을 통해 성령님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성령님의 임재를 위해 기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민감하게 모든 일에 완벽을 기하기 위 해 노력했고, 더욱 기도하는 시간을 늘리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기도를 방해 하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노력에 대하 여 성령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오히려 성령님의 임재가 떠나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의 노력이 하나님을 기쁘시 게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동기가 무엇이었던 성령님을 근심하 게 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 아무리 우리가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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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면 오히려 성령님을 근심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 답니다. 잃어버린 성령님을 찾기를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우리가 그분에게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 그 분이 원하시는 일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 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를 버리지도 떠나지도 아 니하시겠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떠난 성령님, 우리가 성령님을 근심하게 했던 일, 우리가 성령을 무시 하고 살았던 일에서 돌아와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요?
김병삼 목사 감리교신학대학교 졸업 감리교신학대학교대학원 졸업(역사신학 전공) Garrett-Evangelical Theological Seminary(M. Div.) United Theological Seminary(Doctor of Missiology) 감리교신학대학교 겸임교수 KOSTA(Korean Students All Nations) 강사 CTS기독교TV 이사 (사)월드휴먼브리지 대표이사 미국 오하이오 UTS 신학교 이사 미국 시카고 Garrett 신학교 이사 SAM(Student Awakening Arise Movement) International 이사장 (現) 만나교회 담임목사 ■저서 『그래야 행복합니다』, 『기대와 달라도 행복합니다』, 『명품설교순례』, 『교회가 이 땅의 소망입니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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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노트
잃어버린 성령님을 찾아라! 히브리서 13장 5절
I. 성령님을 우리가 소멸할 수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살전 5:19)
1) 계속해서 우리 속에 성령님이 역사하도록 할 수도 있고, 그 ( )을 끌 수도 있 다는 말입니다. 2) 연료를 차단하는 가장 강력한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 )입니다. II. 잃어버린 성령님을 찾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고전 2:10)
1) 계속해서 성령님과 ( )하게 되면 그 뜻을 찾아가게 됩니다. 2) 우리 곁에 계신 성령님께 신실하게 ( )하는 것입니다. III. 성령님이 역사하신다는 증거는 무엇인가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1) 성령이 원하는 일을 하면 반드시 성령의 ( )를 맺습니다. 2) 성령님의 ( )과 능력이 같이 나타납니다.
소그룹 나눔 1. 오늘 말씀에 은혜 받고 결단한 것은 무엇입니까? 2. 성령님을 잃어버리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3. 잃어버린 성령님을 찾는 방법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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