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 January 건강한 교회성장의 노하우가 한눈에 보이는 목회종합전문지
COLUMN
FRONTIER POWER INTERVIEW
COVER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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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여는 창 이영훈 목사(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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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을 나누고 삶을 나누어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라!’ 장순흥 총장(한동대학교)
괜찮아, 너니까 부르는 거야 : 죄사함과 구원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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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기일전(心機一轉)의 때 김호성 소장(교회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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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구원 이해의 특징과 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 고려해야 할 특징들
유태화 교수(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040
타종교와 개신교의 대중적 구원관 비교를 통해 본 성서적 구원의 총체성
김대옥 목사(한동대학교 법률대학원 교목)
052 057 065 75
사랑하는 목회자 여러분에게 조용기 원로목사(교회성장연구소 명예총재)
가나안 성도(교회 안나가는 성도)의 통계적 접근 지용근 대표((주) 지앤컴퍼니) 생명을 살리는 교회 곽주환 목사(베다니교회) 삶으로 보여주는 구원의 참된 의미 손병세 목사(The행복한교회)
071
쪽지 인터뷰 | 김기식, 전경수 목사, 김준영 전도사
‘새해의 다짐’
074
NEW FACE NEW VISION | 조성민 목사(상도제일교회)
‘우문현답,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086
스페셜 인터뷰 1 | 김서택 목사(대구동부교회)
‘극한의 상황에서 말씀을 체험한 설교자’
094
스페셜 인터뷰 2 | 안희묵 목사(꿈의교회)
‘교회, 다시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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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 교회성장연구소
‘건강한 교회 세우기 컨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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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포트 | 심경보 선교사(태국)
‘태국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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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STRY 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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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넥스트 스텝 | 김도일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
‘미래세대를 살리기 기독교교육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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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으로 보는 세상 | 양승훈 원장(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원장 겸 교수)
‘기독교 세계관과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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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마음치유 | 변상규 소장(변상규 대상관계연구소)
‘목회자의 탈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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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의 관점으로 성경 꿰뚫어보기 | 장진광 목사(파스코 한인장로교회)
‘아담의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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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발견하는 식물이야기 Ⅹ Ⅱ> 류모세 대표(열린다성경아카데미) <동행> 유인선 목사(십정교회) 사랑나눔, 느헤미야 프로젝트 | 권영국, 박준기, 이은갑, 박상현 목사, 유문현 전도사
‘함께 길을 여는 감리교 목회자, 독수리 5형제의 이야기’
164
한국 교회 믿음의 발자국 | 전인수 교수(KC대학교 前) 그리스도대학교 교회사)
‘3ㆍ1운동과 한국 교회 부흥운동’
175
내일은 통일 | 임창호 교수(고신대학교, 북한인권한국교회연합 공동대표)
‘통일선교를 일구어 가는 장대현 미니스트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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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를 위한 신앙지침 | 최재화 감독(기독교대한감리회 중앙연회, 명암교회)
‘교인생활의 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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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너니까 부르는 거야 : 죄사함과 구원 글 유태화 교수(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한국 교회 구원 이해의 특징과 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 고려해야 할 특징들
근자에 들어서 구원론과 관련 하여 한국 교회를 소란스럽게 만 든 사건은 구원파와 K교회의 경우 에서 찾아볼 수 있다. 둘 다 칭의 에 대한 오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는 점에서 공통된 출발점을 갖는 다. 전자는 칭의만을 고집하고 성 화를 희생시키면서 도덕적이고 윤 리적인 면에서 무책임한 신앙인을
초기 방송선교를 통해 양산했고, 후자는 성화의 바른 자리인 칭의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성화만을 강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칭의를 위태롭게 만드 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를 정면으로 비판했던 영화 <밀양>에 등장하는 감옥 속 살인자 도섭의 모습에서 구원파가, 아들을 잃고 용서를 실행에 옮기는 신애의 모습에서 K교회가 겹쳐 보이는 것은 우 연이 아닌 것이다. 칭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도섭, 칭의에 근거하지 않 은 성화를 추구하는 신애의 모습이 바로 두 집단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런 현상은 특정해서 두 집단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 교회 전반에서 발견되 는 문제가 조금 더 분명하고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에서, 이 지점에 대한 보다 집중적인 관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특별히 현재 한국 교회의 구원론적인 지형도를 파악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칭의와 성화 를 짚어보는 것은 더더욱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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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구원론의 구조
신앙고백의 역사를 가늠해 볼 때, 칭의론은 종교개혁과 함께 교회의 집중 적인 관심을 차지한다. 특별히 루터의 95개조 논박문이 게시되면서 칭의가 어떤 성격을 갖는 것인지에 대한 깊은 논의의 장이 만들어진다. 루터의 논 박문에서 촉발된 종교개혁은 1000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있는 중세교회 를 상정하지 않고서는 해명될 수 없는 특징을 내포한 운동이다. 따라서 루 터가 전개했던 칭의론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중세를 지배하는 구 원론의 구조가 무엇이고, 그 특징이 무엇인지 먼저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비판은 항상 이해에 뒤따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중세적인 구원론 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일에 상당한 역할을 한 토마스 아퀴나스적인 구원론 은 칭의의 시작과 그렇게 시작된 칭의의 완성이라는 구조에서 설명되었다. 적어도 아퀴나의 토마스(Thomas van Aquina)의 신학에서 칭의의 시작으로 부터 칭의의 완성에 이르는 전체 과정에 걸쳐 은혜의 우선성은 항상 유지되 었다. 그러나 그 이후의 토마스 주의자들(Thomists)에게서는 칭의의 완성과 관련하여 의도하지 않은 복잡한 합리적 사색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칭의의 완성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요구된 칭의의 완성을 넘어서서 초과공 덕을 만든 사람들까지 고려하게 되었고, 그에 미치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연 옥을 배정하고, 초과공덕을 쌓은 자들은 성자의 반열에 오르는 행위를 따르 는 공로(Ex condigno)의 등식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적어도 아퀴나의 토 마스까지만 해도 칭의의 완성과 관련하여 인간의 최선의 노력을 요구하되,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 그리스도의 완전한 공덕을 힘입어 은혜로 구원에 거 뜬히 이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신학자들은 구원에 미치지 못 하는 자들을 상정하고 그들은 사후에 연옥을 거쳐 낙원에 들어가고, 반면 에 누군가는 그리스도의 공덕을 넘어서 스스로의 힘으로 초과공덕을 쌓을 수 있고, 그것에 의해서 누군가의 사후 삶의 지위가 결정된다는 낯선 주장 을 늘어놓게 된 것이다. 여기에 ‘성도의 통공’ 사상을 확장하여 전개함으로 써 연옥에 들어갔거나 혹은 들어갈 사람들이 이미 초과공덕을 쌓은 마리아 로부터 시작하여 그 하위에 위치한 성자들로부터 공덕을 나눠받을 수 있다 는 야릇한 주장을 전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선한 공덕을 많이 혹은 넉넉하게 쌓아야 한다는 강박이 교회성장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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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너니까 부르는 거야 : 죄사함과 구원
신자들을 억압하게 되고, 율법을 따르는 행위(Ex condigno)를 기초로 한 선 량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구원의 넉넉한 완성에 이르게 된다는, 소위 ‘행위’ 를 중시하는 형태로 구원론의 변형이 일어나게 되었다. 사실 이런 문제는 아 우구스티누스에게서부터 배태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우구스 티누스는 작용하는 은혜(Gratia operans)와 협력적 은혜(Gratia cooperans) 로 구별하여 구원론을 설명하였는데, 전자는 중생의 은혜를 후자는 성화의 은혜를 가져오는 것으로 정의하였던 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비롯되는 칭의와 성화의 명확한 이해를 도출하는데 관심을 깊이 기울이지 않았기 때 문이다. 사실 아우구스티누스가 활동할 당시만 해도 그리스도인의 인격과 관련해서는 명확한 이해가 형성되었으나, 그의 사역과 관련해서는 캔터베 리의 안셀무스(Anselm of Canterbury)에게서 명확한 이해가 형성되었으니 어쩔 수 없는 문제였을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도 구원을 설명할 때 성령의 불가항력적인 사역으로 인한 중생과 유효적인 성화를 말할 수 있었을 뿐 칭의와 성화 사이의 명확한 구별과 연합을 도출해 낼 수 없는 시대의 아들로서의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우구스 티누스에게서 불명확했던 문제가 중세의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인간 쪽에 서의 구원의 노력을 위에서 언급했던 합리적인 구조로 바꾸는 일로 진행하 는 방향을 노정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칭의
이런 상황을 예리한 시선으로 파악한 이가 바로 마틴 루터(Martin Luther) 였다. 사실 루터도 중세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중세의 구원론의 구조 내에 서 자신의 구원을 생각하고 깊이 고민했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아도 자신이 구원을 위한 공덕을 충분히 쌓았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 것이다. 특별히 인간의 내면과 그 내면을 채우는 죄를 깊이 인식하던 아우 구스티누스 수도회에 속한 수도사였기에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20대의 젊 은 루터는 자신의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성적인 것을 포함한 다양한 욕망을 죄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강렬한 것으로 느꼈다. 자신 안에서 역동하 는 무질서는 실제 삶에서의 외식만 강화할 뿐 내면의 평화를 가져오지는 못 했기 때문에, 그는 과연 이런 상태로 세례와 함께 시작된 칭의가 사랑으로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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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단단하게 형성된 성숙한 믿음으로 그 완성에 이를 수 있을지, 실존적으로 회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면에 도사린 정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금 식, 철야, 노동, 고행, 차가운 곳에서 생활하기 등의 노력을 경주했으나, 해 결되지 않는 내면의 문제를 더욱 또렷하게 직시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그것 을 내재하는 내면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 었다. 그 무렵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비텐베르크대학에서 시작한 성경 강해에서 시편을 다루는 과정에 시편 안에서 자신과 매우 흡사한 경험을 가 졌던 성도들을 보게 되었고,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그러한 심각한 문제를 가진 죄인을 그 죄에도 불구하고 의롭다고 인정하시 는 하나님의 방법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달콤한 교환’(Sweet Exchange)에 근거한 칭의였다. ‘달콤한 교환’은 본래는 ‘놀라운 교환’(Wunderbare Tausche)이라는 단어 로 쓰였던 것이다. 루터가 이러한 단어를 사용하게 된 것은 그리스도 예수 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우리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로부터 해방 하였고, 또한 그 결과로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 칭의되도록 하셨다 는 사실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율법의 정죄 앞에 꼼짝없이 죄인인 우 리가 우리의 죽음을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죽음의 권세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또한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의 의가 되어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로 인정함을 받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죄는 그리스도에 게로, 그의 의는 우리에게로 각각 돌린다고 해서 ‘놀라운 교환’(Admirabile commercium)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놀라운 교환 안에서 하나님께서 죄인 을 의롭다고 인정하신다고 해서, 그것을 칭의라고 불렀다. 놀라운 교환을 깊이 인식하게 된다면 인간은 할 수 있는 한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 하기를 힘쓰고, 그런 인식 안에서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우고, 그리스도 예 수 안에서 베풀어진 은혜를 묵상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것인 바 이것을 루터는 믿음이라고 불렀다. 초기의 루터는 이 믿음조차도 인간의 행위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믿음을 ‘거지가 내민 손’(Beggar's Outstretched Hands)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일을 순 전한 마음으로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하여 소위 믿 음으로 말미암는 칭의, 곧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라는 신학언설이 교회성장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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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너니까 부르는 거야 : 죄사함과 구원
성립하게 된 것이다. 20세기의 위대한 루터교 신학자인 파울 틸리히(Paul Tillich)는 칭의를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죄인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용납하신 일을 의미한다고 해서 ‘용납’(Acceptance)이라고 불렀고, 또한 이 사실을 인간이 깨닫고 이 형언할 수 없는 은혜를 용납하는 것을 믿 음이라고 불렀다. 아주 재치스러운 말로 루터의 의중을 정확하게 표현했다 고 생각된다. 중세 약 1000년의 긴 세월을 지배했던 신인협력적인 칭의관이 이제는 그 리스도 안에서 행해진 것을 수납하고, 그 인식을 갖고 살아가는 것으로 일 대전환을 하게 된 것이다. 은혜로 시작되되, 은혜를 받은 사람이 그 은혜와 협력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행위에 근거하여 살아냄으로써 의로 우신 하나님 앞에서 공로를 따라서(Ex condigno) 의로운 자로 최종적인 인 정을 받아야 한다는 반(Semi)펠라기안적인 칭의론이 종식되고 새로운 칭의 관이 역사의 무대에 소개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기존의 신학의 구조, 그 러니까 세례와 함께 칭의가 시작되고 선행을 통하여 칭의가 최종적으로 완 성되어야 한다는 구조를 딛고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총이 궁극 적인 가치로 드러나고, 오직 그리스도의 죄 사함과 의의 전가에 근거해서만 인간은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로운 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새로운 구원론 의 구조가 개시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구원론의 구조와도 다른 구조를 갖는다는 점을 조금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펠라기우스라는 인물 과의 대결구도 가운데서 구원론을 형성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의 모든 강조 점은 인간의 자율과 책임을 강조했던 펠라기우스의 주장을 논박하는데 있 었고, 따라서 자율적 책임을 통해서 구원이 시작되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되고 완성된다는 사실만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따 라서 인간의 자율적 책임과 하나님의 은총의 승리라는 관점에서 구원을 설 명하다 보니 인간의 책임은 중생 이후로부터만 강조해야 한다는 사실, 그리 고 중생이후의 삶도 성령이 베푸는 은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강 조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그의 신학은 중생과 성화라는 도식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다른 말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에는 칭의와 성화라는 도식 이 세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에 루터는 중생과 성화가 아닌, 칭의가 언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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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제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문제로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아우 구스티누스의 중생-성화 구조에 근거한 중세의 신학이 제공한 구원론에서 는 완전한 칭의는 죽는 순간까지도 확신할 수 없는 문제였던 것은, 자신이 쌓은 선행이 어느 정도에 미쳤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 어떤 객관적인 근거도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중세의 그리스도인들은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하나님께서 나를 의로운 자로 인정하시고 받아주셨다는 확신 을 갖지 못 한 채 불안한 마음으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고, 루터 역시 그 런 삶의 구조 안에서 깊은 고민을 갖고 살았던 실제적인 문제를 가진 청년 이었던 것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루터의 신학은 죄인은 오직 은혜로만 구원 을 시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객관적인 사역으로서 놀라 운 교환에 근거하여 하나님 앞에서 칭의된다는 사실을 정확히 말해주었으 니, 중세의 신학의 구조에 비하여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인지 알 수 있 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하여 루터는 칭의의 근거와 시점에 대하여 명확하 게 언급하는 일에 실존적인 관심을 두었고, 그에 대해 괄목할만한 결과를 이끌어낸 인물이며 루터와 함께 그와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들은 ‘전혀 다 른 구원론의 구조를 가지고 신앙을 형성하고 교회공동체를 형성하여 신앙 생활을 함께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인식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중세는 왜 칭의의 완성을 맨 마지막 순간으로 미뤘는가? ’ 하는 문제이다. 그것은 성화에 참여하는 신앙 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로마 가톨릭교회의 신 앙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강조하는 일에 모든 수고를 집중한다. 사 랑으로 나타나는 믿음, 그것은 사실은 성화를 강조하는 믿음인 것이다. 다 른 말로는 성화를 강조하는 믿음을 매우 강조하는 것이 로마 가톨릭교회의 핵심적인 관심사이다. 그런데 루터는 칭의를 중심으로 신앙을 강조하는 사 이, 또한 로마 가톨릭교회와의 극단적인 대립 가운데서 칭의를 강조하는 사 이에 그도 의도하지 않았던 문제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성화의 바른 자리와 내용에 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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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
이러한 문제를 끌어안고 씨름했던 교회의 지도가가 바로 존 칼빈(John Calvin)이다. 종교개혁신학자들은 이것을 조금 더 분명하게 다듬어서, 놀라 운 교환은 그리스도의 두 가지 핵심적 사역에 근거한 것인 바, 그리스도 예 수는 ‘수동적인 순종’과 ‘능동적인 순종’을 통하여 구속사역을 이루신 분임 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수동적 순종’은 무죄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음으로써 우리 죄를 제거한 것이고, ‘능동적 순종’은 율법 아래 오셔서 율법의 모든 요구를 충족함으로써 율법의 약속인 영생을 얻어내어 우리 몫으로 정해준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수동적이고 능동적인 사역을 행하신 그리스도와 연합되게 되면, 죄로부터 해방되고 의와 영생을 선물로 받게 되는 것이다. 환언하여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함으로써 죄와 상 관없는 의로운 자로 인정을 받을 뿐만 아니라 율법을 준수하여 획득하게 되 는 영생에 근거하여 성화에로 확정되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의인 으로 인정될 뿐만 아니라 성화에로 확정되어 성도라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 의 자녀 됨의 권리를 얻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함으로 죄인이 의인으로 간주되고 성도라고 불리게 되는 일이 은혜로 일어난 것이다. 이렇 듯 그리스도 예수와의 관계에서 받게 되는 은혜를 ‘이중적인 은혜’(Duplex gratia)라고 부른다. 하나는 ‘칭의’이고 다른 하나는 ‘성화’이다. 칼빈은 칭의와 관련해서는 루터와 완전히 일치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아 직 연약할 때,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아직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 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인간을 의로운 자로 인정해주는 일이 일어난다 는 사실에 칼빈도 완전하게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루터의 경우에서보 다 칼빈의 경우에서 더 균형 있게 강조된 것이 성화이다. 칼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칭의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곧바로 성화에로 확정된 다고 보았다. 따라서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필연적이다. 그러나 성화 의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칭의되고 자녀가 되었을 뿐 만 아니라 성화에로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죄가 용서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체의 일이, 아직 연약할 때,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어진 선물인 것을 깊이 인식하기 때문에, 성 화의 삶을 시작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연약하고 죄인 되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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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고 원수 된 나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받아주신 그 일이 너무나 감사해서, 그 감사 때문에 아들로서의 삶, 곧 성화의 삶을 기쁨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칭의를 다 설명한 후에, “그 러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으니 까 은혜를 더욱 더 경험하기 위하여 죄를 지어도 좋다는 말을 하려는 것일 까요?”라고 되물었던 바로 그 지점에서(롬 6:1) 바울과 마찬가지로 칼빈도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떻게 그 안에 더 힘 써 머물러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는 셈이다. 칭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이제 온 마음을 다하여 성화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삶을 결코 공로로 여기지는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칼빈은 강조했다. 오히려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매 순간, 매 사건마다 자신을 그리 스도 예수 안에서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 로, 의와 생명을 향하여는 산 자로 여기 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 그리고 그분의 부활하심과 연합하여 의와 생명을 향하여 다시 살아 났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매일의 삶을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삶, 그것이 바 로 성화의 삶이고,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 된 삶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칼빈은 성화의 삶에 정상적으로 머물러 있는 지를 확인하는 객관적인 기준을 제 안했는데 그것이 바로 십계명이다. 그리 스도 예수 안에서 발견한 하나님을 왕으 로 섬기고, 자신을 백성으로 간주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매우 중요 한 객관적인 기준이 바로 십계명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십계명 교회성장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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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너니까 부르는 거야 : 죄사함과 구원
을 준수함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 아니라, 십계명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 수와 바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면서 자신을 더욱 더 그리 스도에게로 밀착시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그리 스도인에게 있어서 율법은 ‘자유의 법’으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율 법을 지킴을 통해서가 아니라 율법을 통해서 더욱 그리스도와 밀착하게 되 도록 한다는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을 더욱 자유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십계명을 존중하며 성화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지는 조 금 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십계명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왜 냐하면 십계명은 하나님의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와 연 합함으로써 하나님을 자신의 삶의 중심에 모신 자는 다음과 같은 삶의 모습 을 견지하며 살아간다. 첫째 하나님만 섬긴다. 둘째, 세상의 어떤 것을 취하 여 하나님과 나란히 놓지 않는다. 셋째, 하나님의 이름을 무의미하게 부르 지 않는다. 넷째,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의 진정한 주인임을 인정하고 안식 함으로 예배한다. 다섯째,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와 질서를 존중한다. 여 섯째, 하나님께 속한 생명의 소중함을 인정한다. 일곱째, 성에 있어서 하나 님께서 원하시는 성결을 유지한다. 여덟째, 하나님께서 주신 정당한 재물의 정당한 가치를 인정한다. 아홉째,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언어생활을 힘쓴 다. 열 번째, 하나님께서 주신 분깃에 만족하는 삶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 한다. 이것이 십계명의 핵심적인 관심사이다. 그러므로 십계명을 통하여 그 리스도인은 자신의 삶이 이러한 가치를 견지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 보아 점검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인들에게 이러한 삶의 규범을 따라 살 것을 마음으로 원하시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는 한편으로는 칭의에로 너무 지나치게 경도되어 성화를 의식 하지 못하거나 혹은 칭의를 망각한 채 성화에로 너무 편향되어 있는 경우 를 보게 된다. 전자가 구원파적인 성향을 지닌다면, 후자는 K교회적인 성향 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죄인에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어지는 칭 의의 은혜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 방식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길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죄인은 칭의에도 불구하고 내 면에서 활동하는 죄악 된 욕망을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다스리고 그리스도 예수와 깊은 인격적인 교제를 이루며 자신의 삶에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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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을 살아가고 있는지 여부를, 십계명을 통하여 부단히 확인하며 그리스도 예 수와의 인격적인 교제를 힘써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삶이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성도에게 마땅 한 삶이기 때문이다. 칭의만을 붙잡고 그것만을 추구하게 되면 방탕하고 무 책임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밖에 없고, 성화만을 움켜쥐고 칭의를 배제하면 행위를 통하여 구원을 추구하는 율법주의의 범주에 빠지고 말 것이다. 건강 한 그리스도의 교회는 칭의와 성화가 분리되지 않게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서 제공되는 은혜인 것을 깊이 기억하고,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한 인격적인 존재인 그리스도 예수와의 연합을 꼭 기억하면서, 칭의 된, 그러나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이 분할 불가한 은혜의 삶을 힘써 살아가 야 한다.
유태화 교수 네덜란드 자유대학교(De Vrije Universiteit te Amsterdam )에서 성령론을 전공하여 조직 신학으로 박사학위(Dr. Theol.)를 받은 유태화 교수는 현재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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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이
달
의
설
교
새해
성경적으로 설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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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위한 성경이해】
새해의 성경적 의미·김성규
17
【성경과 설교현장】
비전의 신을 신고·고명진
34
동서남북을 바라보라·이규현
46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조성민
52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이영훈
66
행복한 삶·조용기
82
【교회학교】
새해에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자!·반승환
86
【국외설교】
율법과 은혜(Law and Grace)·스코필드
111
이달의 유머예화·김진배
116
목회자가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한재욱
122
이달의 설교예화·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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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RCH GROW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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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지멘터리 설교 134
여호수아서 소개
142
새로운 시작·송병현
152
성결 = 기적의 전제조건·임우민 1
158
신앙의 랜드마크·임우민 2
164
라합의 믿음, 라합의 하나님·이우제 1
172
여리고는 어떻게 무너지는가?·이우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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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설교 | 새해
비전의 신을 신고 여호수아 1장 1-4절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 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고명진 목사_수원중앙교회
설교 한눈에 보기 1.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 • 비전은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일러주는 나침반이다. • 성경적인 비전과 인간적인 야망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2.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비전 •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얻는 것을 비전으로 삼 는다. • 지경이 넓어지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형통한 삶이다.
3. 비전이 실현되려면 • 꿈을 이루기 위해서 더불어 함께 실천해야 한다. •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담대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핵심 메시지 나의 비전이 아닌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는 새해가 되자.
청중의 적용 포인트 ‘나의 비전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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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해 첫 주일 예배를 드리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년 한해 동안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금년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또 하나님의 존귀하신 이름을 높여드리는 한해가 되기를 바 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게 나타나기를 위 하여 살아가는 그런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금년에는 사람을 존중히 여기 고, 영혼 구원을 최고의 사역으로 알고 살아가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금년에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대로 그 뜻대 로 순간순간 하루하루를 보내시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금년 한해 동안 영육 간에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온 가족이 평안하고 행복 하며 사랑이 가득한 가정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믿음의 성숙을 이루어 하나님 께 인정받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베풀어주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자녀들의 앞날에 찬란한 햇빛 같은 축 복이 임하여 여러분의 자녀들이 가는 곳마다 주님의 존귀하심이 드러나고, 세상 의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과 여러분 자녀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을 만나 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직장이 편안하고, 행복한 직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무너진 인간관계 가 회복되고, 병든 육신이 건강해지고, 희미하던 기억이 총명하게 되며, 어렵던 가정 경제가 넉넉하게 되고,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등경 위의 등불 같은 빛 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영적으로 신령한 자가 되어 정확한 분별력과 통 찰력으로 모든 일을 성경적 가치관으로 분석하고, 삶에 적용함으로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 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여러분의 기업이 흥왕하고, 왕성하고, 충만하여 주 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더 많이 흘려보낼 수 있는 그런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개인의 삶과 영적인 삶이 성령 충만, 말씀 충만, 은혜 충만, 권능 충만, 능 력 충만, 이런 생활 하시기를 바랍니다. 매일의 감사로 감사의 삶이 습관화 되고, 우리의 언어와 행동으로 예수 믿는 사람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주변의 사람들에게 보여주어, 그들도 주님 앞에 나오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으로 하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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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2016년이 되시기를 다시 한 번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은 해마다 연초가 되면 새해의 각오와 결심을
이달의 설교 | 새해
히 축원합니다.
합니다. ‘올해에는 좀 이렇게 되었으면…’ 나름대로의 꿈과 비전, 생각들을 계 획합니다. ‘올해는 이것을 좀 더 가졌으면, 올해는 이렇게 좀 성숙하였으면, 올 해는 이런 것들을 좀 더 많이 누렸으면, 내가 올해는 이런 사람으로 변화되었 으면…’ 하는 소망을 갖습니다. 또 인간적인 욕망과 야망으로 여러 가지 소원 과 소망을 두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나 는 금년에 물질의 부요함을 좀 가졌으면 … 지위와 권세를 가지고 싶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영화를 누리며, 존귀한 명예를 얻고 싶어 하는 사 람도 있을 겁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겨, 오는 세대에 길이길이 기억되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더 많이 나누고 베풀고 섬기며 살아서 주변의 사람들과 후대의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 고 사표가 되는 그런 기념비적인 존재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우리 교회 성도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정직하고 성실함으 로 순결하고, 고결한 신앙의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이 짧은 시간 다 나열할 수 없는 수많은 마음의 소원들과 여러분의 간절한 기도 제목이 금년 한해 동 안에 주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지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2016년 새해에 여러분의 소원, 꿈, 비전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우리 교회와 가정, 우리 민족, 우리 대한민국 공동체는 도대체 어떤 꿈과 비전을 가져야 성 경적으로 합당할까요? 성경은 먼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잠 29:18)
참 어려운 말입니다. 쉬운 말로 번역하면 ‘비전이 없으면, 꿈이 없으면, 묵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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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없으면 망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비전이란 무엇입니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비전은 이런 것입니다.
1847년 12살 나이에 부모를 따라 스코틀랜드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전보배달 원으로 일하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여름날, 무덥게 아주 더운 날이었는데, 땀 을 뻘뻘 흘리며 전보를 배달하고 있었습니다. 한 수취인이 그 소년의 어깨를 두드리 며, 지금이야 몇몇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는 그런 사람이지만 언젠가는 모든 사람들에 게 희망을 전하여 주는 그런 훌륭한 인물이 되라고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소년은 미 래에 대한 꿈과 확신이 생겼고, 세월이 흘러 그는 사업가로 대성하여 교육과 사회 복 지에 크게 헌신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강철 왕 카네기 (Andrew Carnegie)가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7살 때 구두 수선공인 아버지를 잃은 한 아이가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조 그만 다락방에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동화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온 세상 어린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의 아름다운 세상을 들려주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꿈과 비전으로 벅찬 가슴을 안고 어떤 험하고 거친 환경에도 굴하지 않으며 글을 썼 습니다. 그의 작은 다락방은 어느덧 광대한 행복 생산지로 바뀌었고, 그의 꿈과 노력 으로 세상의 많은 어린 아이들이 그가 쓴 글을 읽으며 행복해 했습니다. 그가 바로 세계적인 동화작가 안데르센(H. C. Andersen)이었습니다.
1960년 바람이 매섭게 부는 초겨울 오후 미국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시내 길가에 있는 어떤 사무실 앞에 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한 소년이 꼼짝하지 않고 서있었습니 다. 그 소년은 유리창을 통해서 사무실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넋을 잃고 들여 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사무실 가운데 놓여 있는 커다란 테이블, 그 테이블에 앉아 있는 한 사람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책상 위에 수북이 쌓여있는 원고 뭉치, 쉴 새 없이 배달되어 오는 전보와 전신용지로 넘쳐나는 서류함, 바닥에 홍수처 럼 넘실대는 검은 활자의 신문지,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워보였지만 뭔지 모를 활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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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는 가득했습니다. 소년의 눈에는 가운데 책상에 앉아 있는 그 아저씨가 부
씨가 하는 말을 수첩에 받아 적고 어딘가로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모든 움 직임이 그 아저씨의 책상에서 시작되고 거기서 마무리되는 것 같았습니다. 소년은 저 아저씨가 가진 것이 아마도 힘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하, 힘이 바로 저기
이달의 설교 | 새해
르면 넥타이를 맨 멋쟁이들이 여기저기서 우르르 달려와 그 주변에 둘러서서 아저
서 저렇게 나오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한참동안 서있던 그 소년, 지나가는 경찰 관에게 “아저씨, 저 안에 있는 분이 누굽니까?” 물었더니 그 경찰관이 말하기를 “여기가 신시내티 인쿼리 신문사, 저분이 편집장이란다.” 소년은 넋을 잃고 바라보 다가 그날 집으로 돌아가 잠을 설쳤습니다. 다음 날부터 소년의 모습은 조금씩 달 라졌습니다. 눈빛도 걸음걸이도 말하는 태도도 공부하는 것도 확연히 달라지기 시 작했습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30년 뒤 소년은 마침내 그 신문사의 편집장을 역임 하고, 사장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가 저 유명한 신시내티 인쿼리 신문사 의 사장 로저 파거(Roser Parger)였습니다. 그가 30년 전 유리창을 통해서 본 것이 무엇이었나요? 큰 테이블? 힘?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비전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밤하늘의 북극성이 늘 북쪽을 가리켜주듯이 비전은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일러주 는 신비로운 나침반과도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과연 어떤 꿈을 가지고 있습니까? 과 연 우리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우리 공동체에 허락하신 꿈과 비전은 무엇입니 까? 어떻게 그 꿈과 비전을 이룰 수 있습니까? 성경적인 꿈과 비전, 그리고 인 간적인 욕망이나 야망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적인 야망, 그 것은 나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비전은 하나 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Ⅰ-1).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고 출세하겠다고 하 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돈 벌기만을 원하시는지, 하나님께서 내가 세상의 높 은 지위와 명성의 자리에 오르기를 원하시는지 우리는 묻지 않습니다. ‘그냥 일단 돈 많이 벌겠다’, ‘높은 자리에 가겠다’는 목적만 있지 하나님으로부터의 출발은 없습니다. 성경은 비전을 이상이라고 말합니다. 묵시라고, 말씀이라고, 계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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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아주 신비스런 성경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보이신 것’, 다 르게 말하면 인생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꼭 하게 하려 하시는 것을 보 여주었을 때 그것이 내 삶의 비전이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가 오만 명이 되었으면…’ 그것이 목사의 욕망 인지 아니면 하나님도 정말 우리 교회 성도가 오만 명이 되기를 원하시는지는,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묻지 않고 행한다면 사람의 욕심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나를 위하여, 나의 부귀영화, 나의 명예, 나의 권세, 나 만의 평안, 나만의 안식, 나만의 부요, 나만이 흥왕하고 왕성하기를 원하는 것은 성경적인 비전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최소한 나를 벗어나 다른 사람을 위 하여,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존귀하신 영광과 이름을 드높이는 일을 감당 할 때, 그것이 내 삶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뜻인 줄 믿습니다(Ⅰ-2). 어떤 그리스도인이 ‘예수 꿈’이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꿈은 예수 꿈이어야 한다.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꿈, 내 조국이 예수의 나라가 되는 꿈,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모시고 여호 와를 하나님으로 삼으며, 성경을 민족의 교과서로 신앙과 행위의 표준으로 삼고, 성 령을 민족의 영으로 모시며, 예수 의식을 민족 의식화 하며, 십계명과 율법을 국민 윤 리의 기준으로 국가의 십일조를 세계 선교비로 쓰는 나라, 군 복무처럼 수십만의 젊 은이들이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의 십자군으로 땅 끝까지 나아가는 그런 민족의 꿈.’
그것이 예수의 꿈이라고 말했습니다. 과연 그 교회의 꿈은 무엇일까요? 이 땅에 단 한 명의 불신자가 남았다 하더라도 마치 개척 교회를 하는 심정으 로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애쓰는 그런 사람의 모습, 그것이 진정한 성경적 인 비전의 사람일 것입니다. 불신자를 새신자로, 새신자를 헌신된 성숙한 하나 님의 일꾼으로 세우는 그런 비전, 성경적 가치를 최고의 가치로 기독교적 세계 관을 가장 탁월한 세계관으로 갖게 되는 비전, 건강한 체력과 탁월한 역량을 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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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 기독교 사회의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하고,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도 좋아하고,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나그네와 객과 고아와 과부까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고, 그들이 정말 사모하는 그런 거룩한 삶의 비전, 그것이 성경적인 비전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이달의 설교 | 새해
그런 비전, 세상 역사에도 거룩한 흔적을 남기는 근사한 비전, 불신자도 좋아
군사, 교육, 도덕, 모든 분야에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 만약 나 하나가 희생하 여 더 밝은 세상, 더 좋은 세상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 이 런 비전, 그것이 성경적인 비전입니다. 내가 손해를 보고, 내가 희생하고, 내가 고생이 되더라도 욕을 먹고, 비난 받고, 조롱당하고, 곧 망할 것 같은 그런 위 기를 당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면 영혼이 구원받는 그 일이 된다면, 나는 기꺼이 그 일을 감당하겠다고 하는 각오와 결심이 있는 비전의 사람, 그들이 성경적인 비전의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비전 오늘 본문 여호수아 1장 1절 이하를 보면,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라 고 말씀합니다. 소위 비전의 1세대 모세가 죽은 겁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보여주었던 그 비전을 갖고 애굽에서 나와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며 지나 왔던 1세대는 사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비전은 죽지 않고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 도 여러분 사람은 끝날 수 있지만, 하나님의 꿈과 비전은 그대로 연속되는 줄 로 믿습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내게 주어진 만큼의 일을 하고 내가 떠나고 나면, 하나님은 또 다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2절을 보시면,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그 다음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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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모세가 죽었지만 너희는 내가 너희를 인도하겠다고 하는 그 땅으로 들어가라 고 말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 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가지고 있는 비전은 그 조상들에게 하나님께서 보여주 셨던 비전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 12:1)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창 12:4)
그 다음에 7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그런데 그 약속의 말씀을 아브람이 깜빡 잊습니다. 흉년이 드니까, 그 약속을 잊어버리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그 후대에 내려가서 야곱 의 때에, 아니 요셉이 종으로 팔려가 그 이후 400년 동안 그 애굽 땅에 삽니다. 하나님께선 애굽에 살고 있는 그들을 ‘내가 네게 보여준 땅’으로 다시 불러내 주 십니다. 창세기 13장 15절은 이렇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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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창세기 50장 24절에는 요셉의 죽음 장면이 나옵니다. 요셉은 어린 나이에 그 형들에 의해 팔려서 애굽으로 갔습니다. 애굽에서 시위장 보디발의 집에
이달의 설교 | 새해
네 눈에 보이는 이 땅을 너에게 줄 거야. 그 땅이 바로 약속의 땅입니다.
종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감옥 에 들어가서 꿈을 해몽하여 나중에 바로 앞에 서게 됩니다. 바로 앞에 설 때 요 셉의 나이가 서른 살, 요셉이 110세에 죽습니다. 80년 동안 애굽의 총리의 삶 을 살고 이제 마지막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자기의 아버지 야곱의 자녀들을 다 불러놓고 마지막 남기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권고하시고…” (개역한글)
여기 권고하다는 영어로 ‘To visit’(방문하다) 즉, 하나님께서 너희를 다시 방 문하시고 하나님께서 다시 심방하셔서,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 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고 하나님께서 약속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 야곱에게 그 열조에게 약속하신 그 땅으 로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들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3장 8절입니다.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 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모세야 내가 이 백성에게 내려와 그 애굽 땅, 애 굽 사람 가운데 그들을 건져내어 소위 가나안 일곱 족속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 그 땅의 족속들을 다 몰아내고 너희에게 그 땅을 주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나안은 그들이 원해서 간 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서 그들에게 보여주신 땅입니다(Ⅱ-1). 그래서 가나안은 그들에게 비전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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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내 마음에 드는 땅을 산다고 하나님의 비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 을 내게 주신 것인가’ 그럼 그게 비전이에요. ‘내가 내 욕심으로 얻는다’ 그럼 그 건 하나님하고 상관이 없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 부, 그건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 니다. 하나님께서 부를 주심으로 그 부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삶을 살 때 우리가 비전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믿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 니다. 출애굽기 23장 31절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너의 지경을 홍해에서부터 블레셋 바다까지, 광야에서부터 하수까지 정하고 그 땅의 거민을 네 손에 붙이리니 네가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낼찌라”
“그 땅의 거민을 네 손에 붙인다. 가나안 일곱 족속들을 너의 손에 다 붙일 거 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는 겁니다. 내가 내 마음에 안 들어서 가나안 족속을 죽이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족속을 내게 붙여 그들을 멸하신다.’ 그게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신명기 1장 8절입니다.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지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 비전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하나님께서 나타내 보여주신 그것을 얻는 것, 그것을 비전으로 삼고 있습니다. 자 여러분, 금년도 여러분과 제가 가지고 있는 목표가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것인지 아니면 내 가 원하는 것인지 점검해야 됩니다.
두 번째로, 그들이 갖고 있는 비전은 지경이 넓혀지는 비전입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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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1:3)
에 따라 우리의 것이 되는 겁니다. 4절에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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밟는 대로 준다는 겁니다. 원하는 만큼, 밟는 대로 우리가 얼마만큼 밟느냐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내가 욕심으로 땅으로 많이 차지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밟는 곳을 주시겠다고, 그곳을 밟으라고 말씀하시고 계시는 겁니다. ‘네 지경이 점점 넓 혀지리라’는 비전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입니다.
세 번째 그들의 비전은 어떤 비전입니까? 여호수아 1장 7-9절까지 보겠습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 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 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 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 느니라 하시니라”
여기 세 가지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너의 길을 평탄케 할 거야. 네 길이 형통할 거야. 내가 너와 함께 할 거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겠다 고 말합니다. 그리고 네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될 것이다(Ⅱ-2). 너의 길 이 평탄하게 된다. 무엇을 하든지 형통한다. 여러분 무엇을 하든지 형통한다 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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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손대는 일은 잘된다는 겁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갔을 때, 요셉 때문에 그 집의 모든 소유가 넘쳐나고 그 집의 가축들도 복을 받았습니다. 내가 예수를 잘 믿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되었을 때, 만약에 회사에서 나를 생 산과로 보내면 생산과가 잘되고, 총무과로 보내면 총무과가 잘되고, 내가 가는 곳마다 잘 풀리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비전입니다. 무엇 때 문입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형통한 삶이 됩니다.
비전이 실현되려면 이런 놀라운 비전, 하나님의 비전, 지경이 넓혀지는 비전. 우리가 어디로 가든 지 무엇을 하든지 잘된다는 비전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비전이 구체적으로 내 것이 되기 위하여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2절을 보시겠습니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제가 지금 힘주어 강조하는 부분이 중요합 니다. ‘더불어 일어나’ 다른 말로 하면, ‘함께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아주 핵심적인 것만 옮기면 이렇게 됩 니다. ‘너는 더불어 함께 일어나 내가 네게 주는 땅으로 가라’ 여기 중요한 두 가 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더불어 함께’라는 말입니다. 세상은 지금 개인주의가 만연되어 있습 니다. 세상은 이기주의가 만연해 있습니다. 나만 잘 되면, 나만 부자 되면, 나만 족하면 다예요. 그런데 교회는, 그리스도인은 ‘우리’입니다. 나 혼자가 아닙니 다. ‘더불어 함께’. 현대 사회를 복지사회라고 그럽니다. ‘복지’(Welfare)라는 말 뜻은 더불어 산다는 겁니다. 그래서 보십시오. 장애인 복지, 장애인과 함께 사는 거예요. 노인 복지, 노인과 함께 사는 겁니다. 아동 복지, 어린아이들도 함께 사 는 거예요. 여성 복지, 여성들도 똑같이 대우를 해주어 함께 삽니다. 그래서 복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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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라는 말은 ‘함께 산다, 더불어 산다’, 그게 복지라는 뜻이에요. 성경은 이렇
비전이 아닙니다. 생각 속에만 있는 비전은 온전한 비전이 아닙니다. 지식 속 에 있는 거. 내 상상 속에 있는 비전, 내가 그냥 갖고 싶은 그런 마음, 그건 온 전한 비전이 아닙니다. 그 비전이 내 것이 되기 위하여 ‘함께’ 그 다음에 ‘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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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말합니다. ‘더불어 일어나, 함께 일어나’. 머릿속에만 있는 비전은 온전한
나’ 가야 됩니다. 일어나서 간다. 이건 행동을 의미하는 거예요. 행동하지 않 는 비전은 성취되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부족해도 함께 하면 하나님께서 그 뜻을 이루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어떤 큰 고갯길에서 두 사람이 만났습니 다. 한 사람은 신체가 건장한데 시력이 없는 맹인이에요. 또 한 사람은 눈은 아주 좋은데 한쪽 다리를 전혀 못 씁니다. 둘 다 호소합니다. “나 좀 도와주세 요. 이 고개를 넘어가야 합니다.” 둘 다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둘의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신체 건장한 맹인이 시력 좋은 지체장애인을 업고 그가 인도하 는 대로 걸으니 두 사람 모두 무사히 고개를 넘어갈 수 있었어요. 우리가 서로 부족하지만 함께 일어나 가면 하나님의 놀라운 꿈과 비전이 우리 가운데 현실 로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함께 행동해야 됩니다. 실천해야 됩니다. 행동으 로 옮겨지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다른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배 가 몹시 고픈 사람에게 진수성찬 고량진미가 가득한 상을 차려 주었습니다. “배가 고프죠?”,“예.”, “이것 먹으면 배가 부를 줄로 믿습니까?”, “아멘.” 아멘 하면 그냥 배가 불러오나요? 어떻게 해야 되죠? 떠 먹어야 하죠. 아무리 좋은 꿈과 이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아니라 누가 우리에게 준 거라도 우리가 함 께 일어나 그 땅으로 가서 밟지 않으면 우리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 님께서 주신 꿈이 이루어지도록 우리가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 안에 그 비전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두 번째로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에 보십시오.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 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수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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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Ⅲ-1). 여러분 보십시오. 가나안 땅이 젖 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이지만 이 땅을 점령할 때 그냥 얻어진 게 아닙니다. 여호수아 1장부터 11장까지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위한 끝없는 전쟁입니다. 하 나님께서 허락하여 주신 그 비전이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여러 가지 난관이 있습니다. 역경이 있습니다. 방해물이 있습니다. 문제 가 있습니다. 물론 부정적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세요.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전쟁이 있다고 두려워말고, 골짜기가 나타난다고 겁내 지 말고, 요단강 물이 깊다고, 여리고가 견고한 성이라고 떨지 마라. 강하고 담 대하게 나아가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주겠다고 하십니다. 드와이트 무디(Dwight L. Moody)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세상이 점점 멀어지니 천국 문이 열리는도다.” 그는 자기의 임종이 다가올 때 사람들에 게 말했습니다. “어떤 날 세상 신문은 무디가 죽었다고 하겠지만 무디는 죽은 것 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의 시민이 된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담력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비전을 성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말씀을 준수할 때에 하나님의 비전은 우리의 것이 됩니다(Ⅲ-2). 7절 이하를 다시 보십시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율법, 말씀이에요.
8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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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장발장』을 쓴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는 “성경이 영국 을 만들었고, 영국은 셰익스피어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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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율법 책을 떠나지 말게 하라. 하나님 말씀을 멀리하지 말라.
64년 동안 왕위에 있었습니다. 영국이 소위 대영제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빅토리아 여왕 때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대영제국을 만든 비결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독일에서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였는데, 종교개혁은 금속활자의 발명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1445년 독일에서 쿠텐베르그(Johann Hemme Gutenberg) 가 금속활자를 만들었습니다. 그 금속활자가 상용화 되면서 가장 먼저 한 일 이 성경책 인쇄였습니다. 당시에는 성경책 값이 노동자들의 2년 반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다 모아야 할 정도로 그렇게 비쌌어요. 그러니 큰 성의 성주 정도 는 되어야 성경책 한 권을 가지고 있고, 그 외에는 성경책이 없습니다. 루터가 신학교에 다닐 때도 성경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금속활자가 나와 성경을 많이 인쇄하게 되니까 서민들도 성경책을 읽게 되고, 성경이 널리 보 급되면서 독일이 바뀌었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간 나라들마다 놀라운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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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비전을 이 루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 그 일이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그 잊지 말아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 신 놀라운 이 비전이 성취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가 새해에 많은 꿈을 갖고 있습니다. 그 꿈이 하 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과 야망에서 온 것인지를 말씀에 다 시 한 번 비춰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게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가? 하나님 의 마음에 합한 꿈인가? 두 번째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더불어 함께 일어나 행동으로 옮기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 고 담대한 마음을 갖고 살아갈 때 우리는 금년 말에 놀랍도록 축복된 삶을 결산 할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고명진 목사 성결대학교 졸업(B.A.) 수도침례신학교 졸업(B.A.) 중앙대학교 대학원 졸업(M.A.) 성결대학교 대학원 졸업(M.Div.) Dallas University 명예신학박사(D.D.) Liberty University 명예신학박사(D.D.) 사회복지법인 중앙복지재단 이사장 사회복지법인 스완슨기념관 유지재단 이사장 H-net 아카데미 이사장 재단법인 극동방송 이사 미래목회포럼 대표 침례신학대학교 특임교수 KOSTA 강사 수원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 ■저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 20일』, 『그래, 그렇게 한걸음』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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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부상하는 미국의 젊은 교회 이야기! 위기에 직면한 미국 교회가 찾아낸 대안
‘Re_Form Church’ 청년이 북적거리는 교회를 꿈꾸는가? 지역사회 속에 어우러져 그들의 필요를 채우고 인정받는 교회를 꿈꾸는가? 매주일 깊은 예배를 드리는 교회를 꿈꾸는가? 능동적인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교회를 꿈꾸는가? 저자 이상훈 | 148*210 | 240면 | 값 11,000원
이상훈 교수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에서 신학(B.A., M.Div.)을 호주 Capernwray Torchbearers Australia에서 선교훈련을, 미국 Fuller Theological Seminary 선교대학원에서 선교학 신학석사(Th. M.in Missiology)와
철학박사(Ph.D.in Intercultural Studies) 과정을 마친 이상훈 교수는 현재 풀러선교대학원
한국학부 교수와 아카데믹 멘토(Academic Mentor)로 섬기면서 선교역사와 현대문화, 선교적 교회에 관 한 강의와 저술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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