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냐시오의 벗들
2013
예수회 후원회
7
상본설명
1 4 2 3
1
권오창 시몬 신부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1코린 13,8ㄱ)
2
김동일 안드레아 신부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
3
김학준 라우렌시오 신부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요한 15.4)
4
박준성 요한 신부 내 영혼이 사랑하는 이여, 내게 알려 주셔요. 당신이 어디에서 양을 치고 계시는지 한낮에는 어디에서 양을 쉬게 하시는지.(아가 1,7)
축하합니다! 사제 서품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예수회 :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와 초기 동료들에 의해 1540년에 창설 된 교황청립 수도회, 1955년 한국 진출
예수회 사도직 : 교육사도직(서강대학교, 이냐시오 야학 등), 영 성사도직(이냐시오 영성연구소, 말씀의 집, 순천 예수회 영성센 터, 전주 예수회 영성연수원 등), 사회사도직(노동자, 농민, 청소 년을 위한 사목 등), 선교(캄보디아, 미얀마, 동티모르,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 및 미디어 사도직 2
7
2013 July
예수회 후원회 행사
일 월 1
수
화 2
클래식 음악피정
7 8
14 15
21 22
토 6
4
5
서품식
첫미사(서울)
•첫미사(청주) •금요침묵피정
11
9
10 첫미사 (분당·용인)
16
17
23
금
3
첫미사(용산)
첫미사(광주) 첫미사(서초)
목
18
회장단회의
24
12
13
•첫미사(인천) •금요침묵피정
19
20
•첫미사(부산) •금요침묵피정
25
26
27
금요침묵피정
28 29
30
31
소식지발송작업
CONT E N T S 4 서품소감문1
사랑은언제까지나스러지지않습니다
권오창신부
6 서품소감문2
고맙습니다,후원회원여러분!
김동일신부
9 서품소감문3
무엇이나를소유하고있는가?
김학준신부
12 서품소감문4
인생이라는소풍
박준성신부
14 하늘사랑하늘마음
동사무소에다녀왔습니다
16 그리스도생애
주님의발을닦는마리아막달레나
김산춘신부
18 성경대학
사도시대의삶과영성
송봉모신부
20 예수회의성인들
베드로키베와동료순교자들2
구정모신부
23 선교지에서온편지
나의기도
이경용신부
26 영적독서
예수회영성으로살아가기
김병두
제임스마틴신부
31 교황님기도지향 3
서품 소감문 1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1코린 13,8ㄱ) 권오창 시몬 신부 / 미국 버클리 산타 클라라대학 예수회신학교
얼마 전 버클리 신학원 공동체의 원장 신부님과 동료 형제들 앞에서 미사 주례 예행연습을 할 때의 일입니다. 성찬의 전례 기도문을 읽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제대 위에 놓인 영어미사 경문의 글자들이 아른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당혹감과 함께 ‘어! 첫미사 때 돋보기를 제대 위에 놓아두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신 부님들의 미사 강론을 듣고 마음이 뿌듯해질 때마다 ‘나도 나중에 신부가 되어 저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선포하며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꿈을 품 곤 했는데, 이제 제 나이 마흔 중반을 넘어 돋보기가 필요할 때가 되어서야 하느님께서는 수도사제로서 제 가 그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습니 다. 돌이켜 보면 먼 길을 돌고 돌아 온 제 성소 여정 이지만, 그 모든 시간들이 하느님의 이끄심 안에 있 었음을 감사한 마음으로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실패와 좌절의 순간이라 여겨 되돌아보기 꺼리 던 시간들마저도, 제가 교회 안에서 수도자와 사제 로서,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 가는데 필요한 여정이었음을 깨닫습니다. 4
저는 사제서품을 받으면서 새로운 꿈을 품습니다. 그것은 형제 예수회원인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올해 성유축성 미사 강론을 통해 당부하신 것처럼 양떼들 속에서 ‘양들의 체취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양치기’가 되는 것입니다. 서품 후 ‘보다 더 큰 필요가 있는 곳’ 으로 파견받아 그곳에서 성삼위를 통해 드러나는 ‘언 제까지나 스러지지 않는 사랑’을 증거하며 살다가, 함 께 살아가던 하느님 백성들의 체취를 깊이 간직한 사 제로서 이 지상에서의 순례 여정을 마치고 싶습니다. 제가 그 꿈을 이루며 이 순례 여정을 걸어갈 수 있 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길 청합니다. 끝으로, 제 서품 상본에 담은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1코린 13,8 ㄱ)’라는 바오로 사도 의 고백을 지난 40여 년의 삶의 여정 안에서 깊이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사랑하는 부모님을 비 롯한 수많은 분들, 특히 예수회 안에서 좋은 양성을 받도록 큰 도움을 주신 후원회원님들께 머리 숙여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5
서품 소감문 2
고맙습니다, 후원회원 여러분! 김동일 안드레아 신부 / 필리핀 마닐라 로욜라신학대학
안녕하세요? 저는 2003년 입회하여, 10년의 양 성 기간을 보내고 2013년 7월에 예수회 사제로 태어 납니다. 이 얼마나 멋지고 감동적인 일인지요. 대학 3학년 때인 1996년에 사제성소의 길을 걷고자 예수 회 성소실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7년이 지나 입회하 게 되었고, 또 10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 나이 마흔이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40 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신약에 서 예수님은 40일간 광야에서 단식하셨고 부활하시 고 승천까지 40일, 구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에서 40년을 보냈습니다. 40이란 기다림, 인내, 성숙, 새로워짐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지난 40 년이 사제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써 온 제 기도 일기를 펼쳐보면 서 느낀 것을 후원회원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수련원에서 썼던 글들을 보면 제가 이렇게 심각하고,
6
완고하고, 당위를 중 요시하는 사람이 었나 하면서 놀랍 니다. 수련자로서 예수님을 알고 사랑 하고 따르려는 일념으 로 완전 용맹정진하는 모습이 곳 곳에 그려져 있어서 한편으로 대견하기 도 하고, 또 무모하고 공격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 다. 지금의 저를 보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밋밋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10년 전에도 그랬 을 것 같은데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가부좌 틀고 앉 아서 기도를 열심히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기 도를 제가 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지요. 철학기는 글이 많지 않습니다. 기도하기 어려웠 던 시절이었습니다. 수련 2년 동안 예수회 방식을 배 우고 익혔습니다. 그런데 서원을 하고 화곡동 신학원 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입회 전 30년 동안 몸에 배인 제 습관들이 그대로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예 수회원의 삶이 아닌데, 어 이게 어찌된 일인지! 2년 동안 배운 것들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이 두 가지 습관과 방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나아가 통 합하려고 애쓰다가 시간 다 보내버렸습니다. 다중인 격의 소유자가 아닌가 의심하기까지 했으니까요. 이런 과정을 보내다가 실습기에 들어왔습니다. 저 는 성소실에서 실습을 했는데, 성소자들을 만나면서 이상적인 예수회원의 삶을 그들에게 이야기했고 “그 럼 너는 그렇게 살고 있니?”란 질문을 제 자신에게 7
하면서 제 성소를 재차 묻게 되었습니다. 신학 공부를 필리핀 마닐라에서 했습니다. 어느 날 가난한 아이들과 한참을 노래 부르고 웃고 떠들 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노을이 아주 멋있었습니다. 그 렇게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사람들과 함께 웃고 떠들 고 그렇게 사랑하면서 이 아름다운 자연과 이 우주 를 아끼고 보존하면서 사는 것, 이것이 제 성소라는 것을 알아듣게 되었습니다. 공격적이고 완고했던 제가 사람과 자연, 우주를 바라보고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말랑말랑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은 10년 간의 예수회 양성 덕입니다. 제 가 입회한 첫날부터 오늘까지 제가 예수회원일 수 있 는 것은 후원회원 여러분의 영적, 물적 도움 때문이 었습니다. 제가 용맹정진해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오랜 기도가 저를 예수회 사제로 만들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후원회원 여 러분. 사제로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보답해 나가겠습 니다.
8
서품 소감문 3
무엇이 나를 소유하고 있는가? 김학준 라우렌시오 신부 / 영국 런던대학교 히드롭칼리지
수련원에서 수련을 받을 때, 함께 산책을 하던 한 형제가 “과연 2013년이 올까?” 하고 농담을 던졌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그때는 10년 뒤의 일이 아주 까 마득하게 느껴졌고, 마치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처럼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렇 듯 저에게도 서품이라는 단어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사제품을 받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다른 형제들보다 늦게 한국에 귀국하는 관계로 서품 피정을 더블린에서 하게 되었는데, 덕분에 그 곳에서 피정 동반을 하시는 한 수녀님의 아주 인상 적인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치아치료를 받으 러 치과에 갔다가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된 수녀님 은 “이렇게 번 돈을 전부 어디에 쓰세요?” 하고 치과 의사 선생님께 농담 섞인 질문을 하셨답니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께서는 이 수녀님을 창가로 데려가시더니 밖에 있던 고급승용차를 가리키며 “저기 저 녀석에 게 모두 들어간답니다. 저 녀석이 저를 소유하고 있 는 셈이죠. 그런데 수녀님의 경우엔 무엇이 수녀님을 9
소유하고 있습니까?” 하고 말씀하셨답니다. 이 말씀 은 피정 기간 동안 저에게 화두가 되었습니다. ‘무엇 이 나를 소유하고 있는가? 하느님께서 나를 소유하 시도록 기꺼이 그분께 나 자신을 내어드리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무엇이 나를 소유하고 있는가?’ 피정 기간 중,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 수님과 잠에 빠진 제자들의 대비된 모습은 제 자신 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저 역시 이런 저런 이유로, 혹은 의도적으로 예수님의 고통을 외 면하고 그분의 고통에 함께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 지……. 그분을 바라보기보다는 제가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 더 중요했고, 결국 그 현실적인 이유들이 나 를 소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쓰라 린 감정이 밀려오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사 이의 거리가 물리적인 거리를 넘어서서 ‘함께하지 못 함’의 깊은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에 제가 그분 곁으 로 더 가까이 나아가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를 기도 중에 간절히 청하기도 했습니다. 예수회 입회 이후 10년 간의 수도생활은 제 삶에 서 가장 기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가 온전히 예수님께로 향해 있었다고 말하기에는 정 말 작고 부족한 제 자신을 마주하게 됩니다. 예수님 을 바로 옆에서 모시면서도 그분을 제대로 알지 못했 던 제자들처럼, 저 역시 수도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여전히 부 끄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과 성령의 은총으로 제자들이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증거했듯이, 저 역시 그렇게 예수님을 증거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10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하느님 께서 저를 소유하시고 주관하시어 당신 십자가의 지 극히 작은 한 부분이라도 제가 감히 들어드릴 수 있 도록 허락해주신다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 이라 믿습니다. 끝으로 저를 예수회와 사제직으로 불러주시고 늘 곁에서 함께해 주시는 하느님, 그리고 예수회 안에서 벗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신부님들과 수사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저의 가족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많은 만남과 인연을 통해 저를 일깨워주고 성장시켜주신 모든 분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 습니다. 특히 저희 예수회원들의 사명을 물심양면으 로 도와주시는 진정한 숨은 일꾼이신 예수회 후원회 원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11
서품 소감문 4
인생이라는 소풍 박준성 요한 신부 / 미국 버클리 산타 클라라대학 예수회신학교
어렸 을 때 부터 어머니께 저의 태몽 이야기를 자주 듣 곤 했습니다. 나이 가 많으셔서 아 이를 못 가질 줄 알았던 어머니가 저를 갖고서 꿈을 꾸었는데, 어느 여인이 물에서 저를 건져 주었다 고 합니다. 물론 그 여인은 성모님이셨구요. 그 덕에 어머니는 저를 사제로 키우시려 했고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제 제가 그 사제의 길 위에 서 있습니다. 평소 혼자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탓에 남들이 보 면 개똥철학이라고 할 만한 것들에 혼자 푹 빠져 있 곤 합니다. 그 가운데 특히 잊지 않고 오랫동안 남아 있던 의문은, ‘나는 왜 이 세상에 왔는가?’입니다. 물 론 이 화두에 대한 답은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 있지 만, 어느 순간 그 질문에 다가가는 조그만 길을 찾았 습니다. 그건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를 읽었을 때입니다.
12
…… (전략)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런저런 철학적 고민을 해봤지만, 역시 질문의 해 답으로 가는 길은 단순한 곳에 있나 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사랑하고 사랑받고, 상처주고 상처받고……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주님 이 제게 주신 ‘인생이라는 소풍’ 안의 선물인 것 같습 니다. 마치 소풍에서 즐거운 일들도 있지만, 때론 넘 어져 다칠 때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분이 제게 인생이라는 좋은 선물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세상에 오기 전의 하늘 엄마 (성모님)의 품이 그리워 뒤를 돌아다보긴 하지만, 그럴 때마다 예 수님은 늘 제 곁에서 걱정하지 말라고 조용히 어깨에 손을 얹어주십니다. 걱정하지 말고 주위의 많은 사람 들과 소풍을 즐기라고…….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고 통이라는 어느 종교의 말보다는 하늘에 계신 그분의 선물이라는 표현이 제 마음엔 와 닿습니다. 왜냐하면, 이 소풍이 끝나는 날 제겐 돌아갈 하늘 엄마의 품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돌아가서 이렇게 말하고 싶답니 다. “예수님, 그리고 하늘 엄마! 덕분에 많은 사람들 을 만나 사랑하고 사랑받았답니다. 당신이 주신 인생 이라는 아름다운 소풍 덕분에…….” 제가 사제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저를 위해 기도 해주시는 후원회원들을 포함한 많은 분들께 이 자리 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3
하늘사랑 하늘마음
동사무소에 다녀왔습니다 김병두 프란치스코 / 서울대교구 대치2동성당
지난 해 12월 27일에 이어 금년에도 병무청 전화를 받았지요. 4월 24일 오후 5시 조금 지나서 지난 번 담 당자에게서 인수 인계받았다며, 월말까지는 기다리겠다 면서 이제 어떻게 하실 때가 되지 않았느냐며 조심스레 묻더군요. 마음에서는 해야 하고 몸은 움직이질 않았 었는데 오늘 동사무소엘 갔습니다. 굳이 아내 글라라가 따라옵니다. 신고서를 쓰기 전에 가족관계증명서와 주민등록등 본을 먼저 뗐습니다. 앞으로 영원히 서류상에는 나타나 지 않을 것이기에……. 그리고 작성한 서류를 담당자에 게 제출하고, 신고 지연에 따른 4만 원의 과태료를 내 고 절차를 끝냈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또 하나의 절차를 마쳤습니다. 1992 년 1월 어느 날에 출생 신고를 하였고, 2013년 5월 오 늘 또 다른 신고를 하여, 17년 11개월 19일을 가족과 아옹다옹하며 추억을 남겨주고 24일 동안 이별을 준비 하며 이 세상에 머문 18년 12일. 그리고 서류상으로만 존재한 4년 3개월 며칠……. 이젠 더 이상 가롤로는 서 류상으로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늘 중 마무리 해야 할 마지막 하나, 휴대전화를 해지할 일이 남았네 14
요. 조금 쉬었다가……. 큰 아들이 저녁에 한잔하자며 위로합니다. 그래요. 우린 가족이고, 힘들 때 서로에게 어깨를 빌려주는 그런 사이니까요. 어떤 물질로도 복구할 수 없고, 어떤 방법으로도 다 시 오게 할 수 없는 영원의 이별. 육신도 흩어졌고 서류 상으로도 이젠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롤로가 머물렀던 방만은 그대로 두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만의 공간이니 어느 누구의 간섭으로부터도 보호되는 공간이니까요. 그 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은 남아 있습니다. 2013. 5. 3. 휴대전화까지 해지하고 나서…….
하늘사랑 / 하늘마음 '하늘사랑'은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들의 모임이며 '하늘마음'은 자녀를 잃은 부모들의 모임입니다. 문의 : 예수회 관구본부 02) 3276-7701 하늘사랑 / 하늘마음 카페 http://cafe.daum.net/lossandgrief
15
그리스도, 그림으로 보는 생애
사본 삽화(부분), 슈바벤 파, 1110-1120년, 슈투트가르트 주립도서관
16
주님의 발을 닦는 마리아 막달레나 이 주제에 관해서 미술에서는 일반적으로 기술이 가장 상세한 루카복음(7,36-50)에 의거하고 있다. 그 런데 이 사본 삽화에서는, 시몬의 집 식탁에 앉은 사 람들조차 그리지 않았다. 순수하게 그리스도와 죄 많 은 여자 마리아 막달레나만이 등장하고, 그것을 한 천사가 지켜보고 있다. 이것은 이 이야기의 정신만을 순화하여 그림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묘사 의 간략화에는 이유가 있다. 사실 이것은 독립된 그 림이 아니고, 사본의 한 항목의 첫 문자를 장식화한 것이다. 문자에 휘감기게 한 그림이다. 우리 시대는 너무나도 문자만 눈에 익어, 문자가 가진 깊은 의미 나 그 커다란 사명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인쇄가 발달하지 못한 시대의 문자는 하나하나 손으 로 그렸기에 그 표현에는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다. 문자도 관념의 시각화라는 의미에서는 그림이나 조 각과 같았다. 문자는 많은 경우 그림에서 변화한 것 이다. 이 그림도 죄 많은 여자 이야기의 정신을 전하 는 문자이다. 회화 표현의 정신은 참으로 순수하다. 번역_ 김산춘 신부/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출전 : 柳宗玄,《キリストー 美術にみる生涯》(八坂書房, 2012年)
17
성경대학
사도시대의 삶과 영성 송봉모 토마스 신부 /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예루살렘의 초대교회 신자들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 람 스테파노와 그리고 필리포스와 프로코로스와 니카노르 와 티몬과 파르메나스와 안티오키아 출신으로 유다교로 개 종한 사람 니콜라오스를 뽑아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 들은 기도한 다음에 그들에게 손을 얹었다.(사도 6,5-6)
식탁 봉사자들은 부제副祭인가? 초대교회 안에서 식탁 봉사를 하기 위해서 뽑혀진 일곱 명의 봉사자들과 오늘날의 부제副祭는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가? 먼저 오늘날 성직자 중 하나인 부제에 대해서 잘 모 르는 이들을 위해 설명해 본다. 부제는 교회 성직계급 조직에서 보조 성직자로서 활동하는 서품받은 사람을 가리킨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부제직은 두 종류가 있다. 영 구직으로서의 부제직과 임시직으로서의 부제직이다. 영 구직으로서의 부제직은 일명 종신부제직이라 부른다. 이 것은 일생 동안 부제로 살면서 직무를 수행하는 직위다. 종신부제품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한 25세 이상이 되어 야 하고, 미혼자일 경우에는 성품을 받은 후에는 결혼을 할 수가 없다. 기혼자의 경우에는 부인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35세 이상이어야 한다. 18
임시직으로서의 부제직은 사제 서품을 받기 직전에 받는 성품이다. 부제직을 받은 사람은 한 1년 정도 부제 로서 맡겨진 성무를 수행한 다음 사제로 서품된다. 어떤 종류의 부제이든 상관없이 부제의 역할은 같다. 부제는 미사 집전, 견진성사, 고해성사, 병자성사, 성품성사를 제외한 영성체, 병자 영성체, 강론, 혼인성사, 장례 예절 등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 교회역사에서 서품받는 종신부제는 3세기 초(215 년 경)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 그러다가 5세기 말 에 사라진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종신부제직의 부 활을 제안했고 그로써 1967년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서 부활된다. 그러니까 종신부제직이 부활한 것은 지금 부터 46년 전이다. 종신부제직이 부활된 이후 미국과 유 럽, 남미 등에서 종신부제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종신부제를 부활시키지 않았다. 다음은 종신부제가 있는 나라와 그 숫자이다. 미국 (13,462), 이탈리아(2,594), 독일(2,365), 프랑스(1,684), 브라질(1,241), 캐나다(907), 칠레(603), 벨기에(559), 아 르헨티나(555), 영국(535), 오스트리아(508), 푸에르토리 코(407), 네덜란드(290), 도미니카 공화국(252), 콜롬비 아(219), 남아프리카 공화국(213), 스페인(203), 스위스 (148), 포르투갈(143), 체코(142), 파라과이(123). 다시금 우리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일곱 명의 봉사자 들은 오늘날 부제의 근원인가? 대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서 스테파노를 비롯한 일곱 봉사자들이 흔히 일곱 부제들로 불리게 되는가? 리옹의 이레네오 때 문이다. 그가 202년 경 쓴 글에서 ‘사도들에 의해서 첫 번째 부제로 선택된 스테파노’란 문장이 나온다. 그 이후 스테파노를 비롯한 일곱 명의 봉사자들이 부제로 불리게 된 것이다. 19
예수회의 성인들
베드로 키베와 동료 순교자들 2 구정모 마르코 신부 / 일본 상지대학교 교수
디오고 유키 료세츠는 1574년 현재의 토쿠시마 현 무사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무로마치 시대의 실력자인 아시카가 장군의 동생이었다. 그가 어 떤 경위로 세례를 받게 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어렸을 적에 타카스키에 있는 예비신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하였다. 1587년에 금교령이 내려 지자 타카스키의 예비신학교는 아리마에 있는 예비신학 교와 합병되고 그는 아리마에서 계속 공부하였다. 디오고는 1597년 아마쿠사에서 예수회에 입회하 여 수련을 마친 다음, 1601년부터 1604년까지 마카오 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같이 공부한 동료 중에는 지 난 호에서 소개했던 복자 쥴리안 나카우라와 나중에 일 본 관구장으로 임명되었으나 결국 고문에 못 이겨 신앙 을 포기하고 마는 크리스토파르 페레이라 신부(엔도 슈 사쿠의《침묵》에 등장하는 인물)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공부를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와서 후시미 교 20
회의 봉사자로 파견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얼마동안 봉 사한 후 고향인 토쿠시마를 방문하였다. 1612년에 사제 서품식 준비를 위해 나가사키로 향하였다. 그러나 마침 나가사키에 거주하던 주교가 사망하고, 또 1614년에는 모든 선교사들이 추방당하므로 인해 서품식이 연기되었 다. 디오고는 마닐라로 피신, 거기에서 1615년 서품을 받았다. 1616년 비밀리에 나가사키로 들어온 디오고 신부는 일본 전국을 돌면서 사목활동을 전개하였다. 교토, 오 사카, 에도(현재의 도쿄 지방)를 거쳐 일본 혼슈의 최 북단인 아오모리의 츠가루에 있는 신자들까지 방문하였 다. 1619년 10월 6일에는 교토에서 화형에 처해진 52 명의 순교를 목격하기도 했다. 사목활동을 정력적으로 전개하던 1636년, 시코쿠의 산중에서 체포되었고 곧바 로 오사카로 압송되었다. 같은 해 2월 26일 구멍에 매 달리는 혹독한 고문 속에 순교하였다. 니콜라오 후쿠나가 케이안은 현재의 사가 현 오우미 나가하라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아주키 예비신학교에서 공부한 후 1588년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아마쿠사 콜레 지오에서 공부를 하던 중, 성소를 사제직에서 평수사의 길로 바꾸고 교리교사가 되는 준비를 하였다. 첫 부임지 인 하카타로 갔으나 추방령이 내려지자 1614년 마카오 로 피신하였다. 1619년 비밀리에 입국한 니콜라오는 오무라 지방에 서 선교활동을 펼쳤다. 사람들은 그가 사제로 서품되 기를 바랐으나 당시의 박해받는 상황으로는 일본 안에 서 서품받기가 어려웠다. 선교활동 중이던 1633년 체포 되어 나가사키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구멍 에 매달리는 고문이 시작되었다. 고문을 담당한 사무라 21
이가 “후회되는 것은 없는가”라고 질문을 하자 그는 “있 습니다. 장군님을 비롯해서 모든 일본사람들을 그리스 도께 이끌지 못한 것이 후회될 뿐입니다”라는 말을 남겼 다. 같은 해 7월 31일, 즉 이냐시오 성인이 선종한 바 로 그날, 성모송을 바치며 순교하였다.
구멍에 매달리는 고문을 당한 복자 디오고 신부와 니콜라오 수사
22
선교지에서 온 편지
나의 기도 이경용 요한 신부 / 캄보디아 선교
캄보디아에 돌아와 회계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면서 그동안 미뤄 두었던 일들을 적어보았습니다. 몇 가지 꼭 해야 할 일들, 널려 있는 영수증 철들, 프로그램에 대한 직원들의 반복된 같은 질문들…… 조용히 책상을 정리하고 물러나옵니다. 시엠립행 버스에 올라탑니다. 지방 센터들의 회계정리 상황을 점검하러 가겠다는 이 유입니다. 달리는 차에서 졸다가 바라본 하늘은 어느덧 먹구름 사이로 검붉은 석양의 긴 여운을 토해냅니다. 처음과 끝을 잃어버린 듯한, 그렇지만 중요하리라 생각 되는 기억의 조각들과 또 뜻 모를 단어들이 나의 의지 와 무관하게 반복해서 오갑니다. 머리가 아프니 그마저 도 멈춥니다. 마치도 해탈이라도 한 듯 무심하게 앉아 있는 나를 봅니다. 이렇게 나는 나만의 기도방식을 즐 깁니다. 그렇게 멍하니 다시 잠에 빠져듭니다. 시엠립까지 갈 차비를 지불하고도 나는 중간 지점인 꼼뽕톰에서 내립니다. 두어 시간을 더 가야 시엠립인데 꼼뽕톰에서 내려도 같은 값을 내야 합니다. 무거운 가 방을 짊어지고 모토돕을 타지도 않고 걸어봅니다. 물건 이라도 살 것처럼 괜히 시장을 가로질러 가 봅니다. 시 장 거리는 어둑어둑해지고, 저녁거리를 사러온 몇몇 사 23
람들만 오갑니다. 시장을 빠져나와 유난히 무거운 가방 을 내리고 잠시 쉬어봅니다. 걷는 나에게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가면서 타겠냐고 합니다. 한국 돈 500원이면 편하게 타고 갈 것인데…… 외면합니다. 돈이 아까웠을 까? 그 사람도 가난한 사람일 텐데…… 서글픈 생각이 등으로 흐르는 땀과 섞여 흘러내립니다. 본당 신부는 바탐방에서 돌아오는 길이고, 박 신부 는 꼼뽕꼬에 갔습니다. 주인이 없는 꼼뽕톰 성당에 객 이 혼자 앉아 저녁을 먹습니다. 그렇게 나는 홀로 침묵 의 기도를 계속합니다. 다음날 나는 잡 신부와 꼼뽕로떼에서 미사를 드렸 습니다. 그리고 아침을 먹으니 10시나 되었습니다. 사실 나는 미사가 끝난 9시 경에 아침을 먹었지만 잡 신부가 혼자 아침을 먹는 것이 보기 민망하여 한 번 더 먹었습 니다. 꼼뽕꼬에서 미사를 마치고 돌아온 박 신부는 미 안하다며 맛있는 음식을 더 준비해 같이 점심을 먹자고 했습니다. 1시가 되어도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점심이 니까…… 하면서 또 먹었습니다. 아침과 점심을 먹으며 신부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들; 꼼뽕톰 신부들은 농사꾼 이 되어가고, 논에서 논일을 하는 시간들이 많아졌고, 사람들과 다투기도 하고, 사람들의 건강을 걱정하며 한 국에서 치과 진료를 오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꼼 뽕꼬의 공동묘지에 있는 초가집 공동납골당이 무너질 지경에 있어서 다시 지어야 하는데 돈이 없다며 한숨 쉬고…… 박 신부는 만 달러라는 만만치 않은 돈이 필 요하다며 어떻게 되겠지요…… 하고 말끝을 흐립니다. 남들을 걱정하며 사람들 속에 살고 있는 두 신부는 사 람들을 위해 청원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정말 자연스러워 기도같지도 않은 청원기도를 너무나 간절히 24
하고 있었습니다. 나도 그렇게 청원의 기도를 드려 봅니 다. 박 신부와 함께 시엠립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표 파는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표를 사면 이만 리엘, 그 냥 타면 만 오천 리엘. 그냥 타면 오천 리엘이 절약됩 니다. 그래서 표를 사지 않겠다고 아주머니에게 말했습 니다. 아주머니는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졌다가 버스를 타고 왔습니다. 나에게 표를 살 것을 강요합니다. 사도 되고 사지 않아도 되는 표. 다음 버스를 타겠다고 하면 그만일 텐데 나는 표를 사고 버스에 오릅니다. 얼마를 갔을까, 환자를 데리고 한 가족이 오릅니다. 맨 앞자리 에 앉았던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자리를 양보 합니다. 바로 뒷자리에 동생과 앉았던 녀석이 같이 앉 기를 권했습니다. 가급적이면 나의 엉덩이의 최소 부분 만 의자에 붙여서 앉으려고 했습니다. 두 형제가 나 때 문에 너무 좁게 가지 않도록 배려하고 싶었기 때문입니 다. 졸음이 쏟아져 자꾸만 나의 몸이 두 아이에게 쓰러 져가면서도 아이들에게 더 많은 공간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몸으로 기도를 계속 했습니다. 시엠립에 도착한 나는 여전히 모토돕 요금을 깎습 니다. 그의 가족도 가난할 텐데…… 좀 더 관대해지면 좋을 텐데 하면서 그동안 했던 기도를 다시 떠올려 봅 니다. 캄보디아에서 이경용 드립니다.
25
영적독서
예수회 영성으로 살아가기 제임스 마틴 / 예수회 신부
성 이냐시오의 아주 간략한 생애 이니고 드 로욜라는 1491년 북부 스페인의 바스크 지 역에서 태어났으며 그는 젊은 날의 대부분을 임금의 신하 로서 기사가 되는 준비를 하며 보냈다. 일설에 의하면 이 젊은 바스크 인은 아주 성미가 급하지만 여성에게 인기를 누리는 탕아 기질을 다분히 타고 났다고 한다. 그의 자서 전의 첫 구절이 이렇게 서술되어 있다. “그는 주로 명성을 얻으려는 아주 어리석은 열망으로 세상의 허영을 추구하 였다.” 쉽게 말하면, 그는 세상의 성공에 관심을 두는 허 영심이 강한 별 볼일 없는 아류의 인간이었다. 당시 그는 기사의 문장이 박힌 갑옷을 입었겠지만 오늘날 20대의 젊은이의 모습으로 그를 그린다면, 아마 단추를 풀어헤치 고 옷깃을 세우고 밝은 색 모자를 쓰고 거리를 활보하는 약간 건달기가 있는 청년의 모습을 상상해도 되리라. 후에 이름을 이냐시오로 바꾼 이니고는 다른 많은 성 인들처럼 성인으로서의 품성을 타고난 사람이 전혀 아니 었다. 예수회 역사학자인 존 패드버그가 최근에 내게 이 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쩌면 성 이냐시오는 전과 기록 이 무성한 유일한 성인인지도 몰라.” 1521년에 팜프로나 전투에서 이 야심에 가득 찬 군인 은 포탄에 다리를 관통당하는 부상을 입고 고향으로 와 26
서 여러 달 동안 아주 고통스러운 치료와 회복기를 보내 게 되었다. 첫 수술이 별로 성공적이지 못해 다리가 짧 게 보이게 되자 그는 다리를 멋있게 보이게 하려고 소름 끼칠 만큼 아주 고통스러운 수술을 여러 번 감수했다. 그 수술의 결과로 평생 다리를 절게 된다. 로욜라에 있는 그 의 가문의 성에서 회복기를 보내고 있는 동안 그의 형수 가 그리스도의 생애와 성인들의 삶에 관한 책을 가져다주 었다. 이니고가 별로 읽고 싶은 책이 아니었다. 그는 기사 들의 무용담이 담긴 기사도에 관한 책들을 더 좋아했지 만 그의 자서전에 의하면, ‘읽을 만한 다른 책이 마땅히 없었기 때문에’ 그 책들을 읽게 되었다. 그가 별로 내키지 않으면서 성인들의 지루해 보이는 삶을 따라가 보며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만약 자기 가 그 성인들에 필적할 수 있는 삶을 산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내면 안에서 그로서는 아주 이상한 열망, 바로 성인들처럼 되어 하느님을 섬기고자 하 는 열망이 불현듯 일어났고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성 프란치스코가 이런 일을 했고, 성 도미니코가 저런 일을 했는데 만약 내가 그런 일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달리 말하면, 그는 ‘나도 그런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 다. 그는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 살았던 두 위대한 성인 을 본받고자 하는, 당시 종교적 심성에는 별로 특별한 관 심이 없던 그냥 평범한 젊은이였다. 그렇다면 그가 단순 히 기사로서의 삶에 대한 야망을 영성적 삶의 야망으로 전환시킨 것인가? 수련자였을 때 나의 지도 신부였던 데 이빗 신부님은 그와는 달리 본다. 하느님께서는 그가 지 니고 있던 자부심을 오히려 선한 것이 되도록 이용하셨다 고 한다. 어느 누구도 하느님의 사랑에 의해 바뀔 수 없 는 사람의 삶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심지어는 우리 자신 이 별로 가치 없고 죄스럽기까지 하다고 여기는 측면까지 27
도 그분은 가치 있거나 거룩하게 만드실 수 있다. 속담에 있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구부러진 곡선을 가지고도 똑 바르게 쓰시는 분이시다. 이것이 이니고가 새롭게 변하는 전환점의 시작이다. 어떤 귀부인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자 하던 기사로서의 영 웅적인 야망 대신에 이제 하느님을 섬기고자 하는 열망에 불타올라 그의 새로운 영웅인 성인에 필적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오늘날 로욜라에는, 성인의 회심을 기리고자 지어진 거대한 대성당에서 불과 수 미터 거리에 그의 가문의 성 이 위치하고 있다. 조금 보수 치장을 하였지만 여전히 16 세기 성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말하자면, 성의 아랫부분에는 2미터나 되는 아주 무겁고 두터운 돌로 만 든 벽이 있고 윗부분에는 가족이 살던 거실과 방들이 우 아한 붉은 색 벽돌로 지어져 있다. 그 성의 4층에 이냐시 오가 회복기를 보낸 침실이 있다. 널찍한 방에는 흰색으 로 치장된 벽이 있고 천장은 아주 단단한 나무로 된 대 들보들이 가로 놓여 있다. 이니고의 병상이 놓여 있던 장 소에는 세월의 먼지가 끼어 있지만 아름다운 무늬를 넣은 직물이 걸려 있다. 그 직물 아래에 다채로운 색채를 배합 하여 나무로 만든 몸져누워 있는 모습의 성인의 상이 있 다. 금색으로 그려진 머리 위의 후광은 하나의 전설을 상 징한다. 바로 로욜라의 이냐시오가 이곳에서 하느님께 부 복하였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자 그는 자기가 얻게 된 통찰에 대해 깊이 숙고했고,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사로 서의 삶을 접고 온전히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그의 나이 31세인 1522년에 몬세라트에 있는 베네딕토 수도원이 주관하는 성모 성지 28
로 순례의 길을 떠났다. 거기서 그는 자기가 좋아하던 기 사도에 관한 책에서 읽은 내용에 따라 극적인 제스처로서 그가 입었던 옷을 벗어 거지에게 주고 투구와 칼을 성모 상 앞에 내려놓았다. 그 후 그는 만레사라고 불리는 조그만 읍내에서 거의 일 년을 보냈다. 말하자면, 이전의 욕망을 끊는 방법으 로 머리와 손톱도 깍지 않고 단식을 하거나 몇 시간 지속 적인 기도를 하는 등 일련의 혹독한 수행을 시작했다. 이 시기는 그의 생애에서 어두움을 체험한 기간이기도 했다. 영적인 메마름을 체험하면서 자기 죄에 대한 세심증에 빠 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살의 유혹까지도 받았다. 그가 성인처럼 살고자 하는 시도를 하면서 닥쳐온 어려움은 바 로 실망에로의 유혹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극적으로 삶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네가 인생 70년 동안 이런 새 삶 을 어떻게 견디어 낼 수 있을 것 같으냐?” 자기 내면 안 에 어떤 목소리가 있어 이런 속삭임을 들려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소리가 아니 라는 것을 알고 그런 생각들을 거부했다. 하느님의 도우 심으로 그는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을 지니며 결심을 굳히 게 되고 실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점진적으로 그는 극단적인 수행을 하기보다는 적절한 수행으로 바꾸어 나가면서 평정심을 되찾았다. 만레사에 서 보낸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기도 안에서 일련의 신비체 험을 하면서 하느님과 더 깊은 관계로 초대받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니고에게 있어 이 기간이 영성 생활 에 대한 첫 배움의 시기였다. 그는 감동적인 비유로 이렇 게 썼다. “그 무렵 하느님께서는 학교 선생님이 학생을 다 루듯이 그를 다루셨다.” 어느 날 그가 까르도네르 강가의 둑을 걸으면서 깊은 기도 안에 잠겨있을 때 하느님과 일치하는 신비로운 체험 29
을 하게 된다. 그의 자서전에 그의 삶에서 아주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된 체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길은 강가를 따라 길게 나 있었다. 길을 따라 걷다가 문득 깊은 봉헌심이 일었고 아래로 깊게 흐르는 강 쪽으 로 얼굴을 향하고 잠시 앉았다. 그렇게 앉아 있는 동안에 그를 깨달음으로 이끄는 마음의 눈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비록 환시를 보지는 못하였지만 그는 영성적 사항과 신앙 과 학식에 관한 문제들에 대해 많은 것을 이해하고 깨닫 게 되었다. 이것은 너무나 큰 깨달음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그에게 새로워 보였다. 비록 아주 큰 깨달음이었지만 그가 이제 이해력에서 더 없이 선명한 어떤 것을 체험했 다는 것 이외에는 자세하게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그의 온 생애, 말하자면 62년을 살면서 그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다 모으고 그가 알 고 있는 것을 다 합한다고 하더라도 그때 받은 것만큼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만큼 아주 큰 어떤 것이었다. 만레 사에서의 이 기간이 그를 새롭게 변모시켜 나갔다. 번역_ 류해욱 신부
30
교황님의 2013년
7월 기도지향 일반 기도지향
세계청년대회 : 브라질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를 통하여 모든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따르고 전하는 선교사 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교황 선출 이후 처음으로 이달에 그의 고향 대륙인 남미로 가십니다. 그분께서는 세계청년대회 를 위해 리우데자네이루에 모이는 수백만 명의 젊은이들을 만 나실 예정입니다. 세계청년대회 올해의 주제는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명령인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입니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폐막 때에, 주교님들은 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선 배들의 손에서 횃불을 건네받아 세계 역사에서 가장 커다란 변 화의 시기에 세상을 살아갈 것입니다. …… 그리고 열정을 가 지고, 여러분의 선배들이 살던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을 이룩 하십시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할 때에만 우리는 더 나은 세 상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그분의 제자가 되어서 세상 끝까지 그분의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교황 선출 직후 젊은이들을 독려 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우리에게 신앙 의 기쁨을 안겨주고 젊은 마음, 70, 80살의 나이에도 젊은 마 음을 갖고 우리가 신앙을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 줍니 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젊은이들이 세계청년대회를 잘 준비하도록 독려하십니다. “여러분들의 나라에서 무엇보다도 영적으로 잘 준비해 주십시오. 그래서 리우데자네이루에서의 우리의 만남이 온 세계를 위한 신앙의 표징이 되게 해 주십시
31
오. 젊은이들은 이 세상에 말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가는 것은 좋은 것입니 다!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좋은 것입니다! 세상 끝까지 가서 거 기서 예수님을 전하려고 우리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은 좋은 것 입니다!” (2013년 3월 24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미사 강론)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우리 젊은이들이 이 신앙의 해에 그리스도의 기쁨을 환히 비춰 주기를 바라며 기도에 동참 합니다. 성찰 : 젊은이들이 효과적인 복음의 선교사가 되기 위한 자질 은 무엇일까요? 성경 : 예레 1,7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저는 아이입니다.’ 하지 마라. 너는 내가 보내면 누구에게나 가야하고 내가 명령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말해야 한다.”
선교 기도지향
아시아 : 아시아 대륙 전체가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문을 열도록 기도합시다. 가톨릭은 전 세계 다른 어느 곳보다 아시아에서 더 빨리 성장하고 있습니다. 아시아는 땅 면적에서 가장 큰 대륙(대략 30%를 차지)이면서 인구도 가장 많은 곳(60% 40억 이상)입 니다. 하지만 이 40억 인구 가운데 3.3% 만이 가톨릭 신자입 니다. 이 대륙에서 가장 큰 종교는 이슬람교, 힌두교 및 불교입 니다. 중국의 13억 인구 중에서 59%는 스스로 종교가 없다고 말합니다. 중국인 중에 단 1%만이 가톨릭 신자입니다. 그리고 인도의 경우 12억 인구 중에서 1.5%가 가톨릭 신자입니다. 아시아에서 가톨릭의 성장과 거대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메시지가 들어가기에 많은 장벽이 있습니다. 많은 국가 에서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것과 공적으로 미사 등의 집회 를 하는 것이 불법입니다. 심지어 몇몇 국가에서는 그리스도인 32
들이 살해를 당하고 교회가 파괴되는 일이 아직도 자행되고 있 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시아의 닫힌 문을 열 수 있을까요? 하느님 께서 여셔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소아시아 지역에 복음을 전하려 하실 때 그는 “하느님께서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다”(사도 14,27)는 점을 신자들에게 분명히 말했습니 다. 우리는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문을 열어 주시고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평화와 안전을 마련해 주실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교구장으 로 일하시던 때에 신앙의 해 메시지를 통해 이런 말씀을 하셨 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마음을 변화시키는 은총으 로 마음이 움직여지게 되면 그 사람은 믿음의 문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 예수님께서는 문 앞에서 그를 부르셔서 그 사람 이 삶의 문턱을 넘도록 이끄십니다. 복자 요한 바오로 2세께서 교황 즉위 때에 말씀하신 것처럼, 두려워하지 말고 그리스도께 문을 열어 드리십시오.” 이제 우리가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우리 마음의 문을 열 어드릴 수 있도록 교황님과 함께 기도합시다. 성찰 : 우리 자신의 신앙의 성장은 세상의 다른 곳에서 신앙의 문이 열리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성경 : 2테살 3,1-2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서처럼 빠르게 퍼져 나가 찬양을 받 게 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번역_ 김도현 바오로 수사
신앙과 일상을 통합하는 평신도 영성, 기도의 사도직 http://www.jesuits.kr/aop/ 33
안 내 ■예수회센터 프로그램 안내 ❖ 7월 가족 피정
지도: 허귀희 글라라 수녀, 정규한 레오나르도 신부 제목: 사무엘기를 통해 보는 나와 가족 개요: 가족!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이, 그러나 가장 잘 모르는 사이. 자기 사랑을 통해 함께 사는 가족 사랑을 여는 피정 일시: 7/26(금) 14시~28(일) 17시 ❖7 월 영신수련 피정
지도 윤상용신부
일정 2박3일 7/8(월)-10(수)
주제 하느님과의만남
윤상용신부
3박4일 7/15(월)-18(목)
예수따라하기
❖ 주일피정
시간: 일요일 오후 2시-6시(미사포함) / 회비: 1회 1만 원 강사
일정
주제
정규한신부
7/7
잠심을통한하느님현존체험
정규한신부
7/14
하느님현존체험을위한우리의태도
정규한신부
7/21
이냐시오식기도와기도준비
정규한신부
7/28
영신수련의묵상과관상
문의 및 접수 : 센터 사무실 02)3276-7733 홈페이지 http://center.jesuits.kr/ 이메일 jesuitcenter@gmail.com
■청년 프로그램 안내 ❖ 예수회 젊은이 피정
주제: ‘아름다운 만남’ 일시: 8월 16일(금) 오후 5시-18일(일) 오후 5시 장소: 소래 성바오로 피정집(시흥) 대상: 대학생, 35세 이하의 미혼남녀 문의: 예수회성소실 02)3276-7706, 010-8969-3107
34
❖ 예수회 수도생활체험학교 ‘모하기’
일시: 8월 8일(목) 오후 2시-11일(일) 오후 3시 주제: ‘Finding God in all things’(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기) 대상: 남녀 고등학생 참가비: 10만 원(7월 1일부터 접수) 장소: 예수회센터(서강대학교 옆) 접수: cafe.daum.net/findinggod 문의: 02)3276-7706, 010-5507-1491 iuventutes.sj@gmail.com ❖ 예수회 성소식별피정 및 수련회
주제: ‘가서 그 세상에 불을 밝히라.’(GC35, 교령Ⅱ) 일시: 8월 3일-6일(성소식별 피정), 6일-9일(수련회) 장소: 횡성 도미니코 피정의 집(피정), 속초일대(수련회) 대상: 자신의 성소를 확인하고자 하는 젊은이 문의: daum카페 - 예수회성소실 02)3276-7715, 010-8589-9880
■ ❖
2013년 성지순례 안내 사도 바오로의 발자취를 따라서(터키, 그리스)
일 정: 9월 24일-10월 5일(11박12일) 순 례 지: 터키, 그리스 지도사제: 정구평 신부 / 예상금액: 360만 원 ❖
이냐시오 성인의 발자취를 따라서
일 정: 10월 18일-11월 1일(14박15일) 순 례 지: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예상금액: 420만 원 지도사제: 임헌옥 신부 ▪예상금액은 항공료, 환율에 따라 변동될 수 있습니다. ▪출발 3주 전 이후 취소할 경우 예약금 환불이 불가합니다. ▪여행경비에는 공동경비, 택스(Tax), 유류할증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접수 후 예약금 30만 원과 여권 사본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은행 : 1005-700-906149 (주)크로바여행사 문의 및 접수 : (주)크로바여행사 전화 : 02)722-8366 팩스 : 02)722-8365
35
예수회 후원회에 가입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후원회비는 예수회원 양성과 선교지역인 캄보디아와 미얀마 등 동남아 지역의 선교를 위하여 사용되고 있습니다.
기부금 5월 유승덕
1,000,000
익명
300,000
심순옥
500,000
익명
100,000
강은구
300,000
계선미
150,000
5월 예수회 신규 후원회원 국내(46명)
강성환,김경일,김기묘,김길순(한준덕),김석준,김숙희,김승복,
김영숙,김혜란,류소정,박명애,박옥순,박지나,방애숙,배순영,백영원,선우경,손운희, 송희선,신언주,안순원,안재형,안정숙,양정림,유혜숙,윤정심,이경희,이도재,이상진, 이영신,이종예,이혜진,이혜희,이화자,임은정,임향숙,장정자,정선숙,조귀숙,최경희, 최순금,최외정,한동화,홍혜숙,황영자,황호연
국외(2명) ■
장철희,전성욱
국외 후원회원 개인정보 변경 방법
개인정보 변경 시 후원회 전화 또는 이메일, 우편(후원회 주소)을 이용 하여 주십시오. 반송봉투 주소로 연락하시는 경우 전달되지 않습니다. 문의: 후원회 사무실 02)3276-7777
hoowon1004@gmail.com
(121-854) 서울특별시 마포구 서강대길 19
후원금 CMS 자동이체 안내 CMS 자동이체를 이용하시면 이런 점이 좋습니다. 1. 지로를 내기 위해 은행에 가야 하는 불편함이 없습니다. 2. 자동이체 수수료가 전혀 들지 않습니다. 3. 은행에 가지 않고도 CMS 자동이체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4. 해지를 원하시면 언제든지 후원회로 전화 한 통만 하시면 됩니다. 후원회원번호, 은행계좌번호, 예금주 성명, 예금주 주민등록번호를 후원회 사무실 02)3276-7777로 알려주시면 됩니다. * 회원들의 개인정보는 보호해 드립니다. 36
한 분씩만 더 예수회 후원회 가족으로 초대해 주십시오. 예수회 후원회 가족으로 한 분씩 더 초대해 주시는 것은 예수회 의 다양한 사도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관심과 사랑은 예수회가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일하는 데 많은 격려와 힘이 될 것입니다. 예수회 후원회원이 되고자 하시는 분들은 아래 예수회 후원회 전화번호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수회 후원회 121-854 서울시 마포구 서강대길 19 전화 : 02) 3276-7777 팩스 : 02) 3276-7783
예수회 성소 초대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마태 9,37) 예수회원은 맑은 눈동자 안에 온 세상을 담고, 깊 은 연민으로 아픈 영혼을 감싸 안았던 이냐시오 성인의 동료들입니다. 예수회원은 주님께서 심어 주신 사랑의 불씨를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교회의 최전선에서 봉사 하고 있는 사랑의 사도들입니다. 예수회에서는 그리스 도의 길을 함께 걸어갈 젊은이들을 초대합니다. 지금도 예수회원들이 영혼의 구원을 위해 봉사해야 할 곳이 세상 곳곳에 있습니다. 후원회원분들께서는 이 길을 걷 고자 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주님과 이 웃을 위하여 봉사할 수 있는 좋은 성품을 가진 청년들 에게 이 길을 널리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예수회 성소실 02)3276-7715
37
후원회 알림 ■기부금 영수증 신청 안내 소득공제용기부금 영수증은 예금주(입금자) 기준으로 발급됩니다. * 문의 : 후원회 사무실 02) 3276-7777
피정 및 교육프로그램 ■금요침묵피정
*미사봉헌
강의와 함께 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직접 체험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일시 : 매주 금요일 10-16시 장소 : 예수회센터성당(3층) *참가비 : 무료(중식제공)
날짜
강 사
7/5일 이한택 주교
피정주제 오늘도 이냐시오 성인처럼 살아보자!
12일 이진현 신부
달라서 문제가 아니라 멀어서 문제다 부제; 사랑에 관한 신학적 인간학
19일 이승훈 신부
레오 톨스토이 단편선
26일 신상은 신부
피조물의 길
■박병관 신부의 ‘클래식 음악피정’ 음악의 흐름을 통하여 하느님을 찾고 기도하며 하느님과 통교하고자 합니 다. 매월 주제에 따라 서양 고전음악에서 선별한 곡을 함께 듣고 감상하며 하느님을 찾는 우리 삶의 관계를 묵상합니다. 음악과 노래로 드리는 찬 미의 미사로 피정을 마칩니다. 주제 : 하느님은 아름답다 날짜 : 7월 1일(월) 오후 2-4:30 장소 : 예수회센터성당(3층) * ‘클래식 음악피정’은 박병관 신부의 제3수련으로 8월부터 당분간 없습니다. 38
■첫미사 일정
서울본부
청주
용산
.
분당 용인
인천
광주
서초
부산
날짜
7월 4일(목) 오후 1시 30분
장소
예수회센터(서울시 마포구 서강대길 19)
문의
02-3276-7777
날짜
7월 5일(금) 오후 1시 30분
장소
청주교구 청소년센터(구 교구청) (충북 청주시 상당구 중앙로 61번길 16)
문의
010-2966-1690
날짜
7월 9일(화) 오전 10시
장소
새남터성당(서울 용산구 이촌로 80-8)
문의
011-232-8800
날짜
7월 10일(수) 오전 10시
장소
성심교육관 (경기 용인시 수지구 고기로 45번길 38)
문의
010-7255-8588
날짜
7월 12일(금) 오후 2시
장소
주안1동성당(인천 남구 경인로 369)
문의
010-4900-8043
날짜
7월 15일(월) 오후 2시
장소
광주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 (광주 서구 상무대로 980)
문의
010-8925-5668
날짜
7월 16일(화) 오후 1시 30분
장소
포이동성당(서울시 서초구 논현로 5길 28)
문의
02-3276-7777
날짜
7월 19일(금) 오후 2시
장소
남천성당(부산 수영구 수영로 427번길 15)
문의
010-2572-9873
39
발행일 : 2013년 6월 24일 발행처 : 천주교 예수회 후원회 발행인 : 신원식 편집인 : 손우배 제8권 7호 [통권87호] 121-854 서울시 마포구 서강대길 19 www.jesuits.kr/benefactor 02)3276-7777 팩스 02)3276-7783 hoowon1004@gmail.com
IHS는 희랍어 IHSOUS에서 유래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표기 하는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IHS에 대하여‘Iesus hominum salvator(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의 약자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