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문 박물관마을 이야기
우리가 ‘새문안동네’를 주목하는 이유
100년 골목 건축가 민현식
이곳은 동네 자체가 마치 박물관과도 같이 지난 100여년의 도시적 삶의 물질적, 비물질적 유물들이 그득하다. 경희궁 담장, 한양도성 그리고 새문안로로 구획된 ‘새문안동네’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도시조직의 물리적 요소들, 즉 골목길로 이어지는 소단위 필지에 건조된 축조물들은 당대를 대표하는 도시의 토속건조물urban vernacular들이다. ‘건축가 없는 건축’을 주목했던 버나드 루도프스키Bernard Rudofsky의 표현대로라면, ‘전통적인 계보에 기록되지 않은 족보 없는 서자(庶子) 건축’으로 건축역사에서 소외되고 외면되었다. 이곳은, 30년대의 일식주택, 60년대까지 도시주택을 담당했던 (도시형)한옥, 7-80년대의 세칭 ‘슬라브집’, ‘불란서식 집’ 등 근・현대의 ‘집장사집’들과 그것들의 변형들이 골목길을 따라 조직되고 100여년 진화를 거듭하며 변모되어온 이 땅의 기록된 기억들이다.
값 19,000원
93060
9 788997 285211 ISBN 978-89-97285-21-1
Copyright © 2017 All rights reserved by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100년 골목
한양 입성의 첫 동네, 새문안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과정
돈의문 박물관마을 홍보영상
100년 골목
돈의문 박물관마을 이야기
목차
100년 골목,
돈의문 박물관마을 이야기
006
012
Ⅰ. 새로운 도시재생을 생각하다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1. 배경
시대별로 본 돈의문 박물관마을
2. 도시재생의 방향
1. 조선시대~대한제국 2. 일제강점기 3. 해방이후~현재 4. 길 위의 역사, 새문안로
건물별로 본 돈의문 박물관마을 1. 조성 전 마을 현황 2. 조성 전 건물 이야기
004
086
290
340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Ⅳ. 과거를 간직하고 새롭게 태어나다
Ⅴ.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 기록
기획하기
1. 마을 풍경의 보존과 변화
1. 추진사업일지
2. 창의,문화,교육 공간
2. 만든 사람들
1. 시작은 뉴타운사업 2. 역사문화공원으로 변경
3. 체험문화 공간
3. 마을 전체를 박물관처럼
4. 공방,식문화 공간
4. 주민의 의견을 듣다
5. 생활,소매 공간 6. 마당,골목 공간
발간사
준비하기 1. 어떻게 마을을 구성할 것인가? 2. 과거의 흔적을 담은 공간: 리모델링 원칙 3. 디자인 지침 4. 구조 안전진단과 철거 5. 땅속에 묻힌 역사, 문화재 발굴
만든 이야기: 마을의 기억을 잇다 1. 설계구상 2. 창의,문화,교육 공간 3. 체험문화 공간 4. 공방,식문화 공간 5. 생활,소매 공간 6. 마당,골목공간
005
006
Ⅰ 새로운 도시재생을
생각하다
007
Ⅰ. 새로운 도시재생을 생각하다 1. 배경 전면철거 후 개발하는 방식에 대한 반성 서울시는 2002년 ‘뉴타운사업’이라는 새로운 도시정비사업을 시행하였다. 기존에 소규모로 진행되던 재개발과 재건축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관에서 주도한 사업으로 도로, 공원 등 기반시설을 정비하고 확충하는 새로운 개념의 주거정비사업이었다. 뉴타운 사업은 계획단위를 광역화하여 지역특성을 고려한 다양한 계획이 가능하고, 광역적 기반시설을 확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등 여러 긍정적인 면도 있으나, 기존 공동체의 해체, 원주민의 낮은 재정착률 등 많은 단점도 발생시켰다. 돈의문 박물관마을은 이웃한 종로구 교남동 일대와 더불어 2003년 돈의문 뉴타운 지역으로 선정된 곳이다. 교남동 일대의 돈의문 1구역은 2012년 관리처분 계획인가 후 2014년에는 기존에 살던 사람들은 이주했고, 동네에 있던 모든 건물이 철거되었다. 도심가에 드물게 남아있던 오래된 한옥, 한국전쟁 이후 원조를 받아 조성된 부흥주택, 꼬불꼬불한 골목길과 오래된 쌀집과 배달 자전거, 식당 등 모든 것이 없어졌다. 돈의문 박물관마을은 이러한 전면철거 후 개발하는 방식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한 도시재생사업이다. 2014년 도로와 공원으로 바뀔 예정지였던 한양도성 서쪽 성문 돈의문 안 첫 동네인 새문안동네에 대한 새로운 계획이 세워졌다. 오래된 도시 조직, 삶과 기억, 역사적 층위가 잘 보존되어 있는 작은 마을 그 자체를 박물관마을로 남겨 서울시민의 역사문화자산으로 남기고자 하였다.
추진 경위 2003. 11. 18
돈의문 1구역 재정비 촉진지구 지정
2006. 04. 13
돈의문 1구역 도시환경 정비구역 지정
2014. 01. 03
돈의문 1구역 정비계획 변경 <시장방침 제2호>
2014. 05. 13 새문안동네 기본계획 수립 착수 2014. 10. 16 시굴조사 2015. 05. 07
역사문화마을 조성계획 <시장방침 제100호>
2015. 06. 16 돈의문 1구역 역사공원 부지 조사 및 기록화 착수 2015. 07. 28 설계용역 계약체결
008
돈의문 뉴타운 1구역 교남동 한옥 해체
돈의문 박물관마을 건물 철거
009
Ⅰ. 새로운 도시재생을 생각하다
2. 도시재생의 방향 마을 전체가 살아있는 박물관인 동네 돈의문 박물관마을은 “마을 전체가 살아있는 박물관인 동네”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기존의 시간과 삶이 담긴 공간을 보존하고 활용함으로써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재에도 활발하게 문화를 이어가는 곳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기본방향 ▶ 역사의
흔적과 맥을 미래로 이어가는 삶터 공간 조성
•돈의문 성곽마을의 골목·필지·지형 등 역사도시조직 보존 •역사적 층위가 살아있는 한옥·근현대 건축물의 보존 및 활용 ▶ 한양도성
등 주변 역사자원의 중심(허브)공간 역할
•한양도성 서쪽 성곽의 시점으로, 성곽 진입·거점 공간 •경희궁, 정동, 서대문, 광화문 등 역사문화자원의 매개 공간 ▶ 시민과
방문객을 위한 체험·휴식 공간 기능 수행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는 공방, 디자인 가게 등 문화의 체험공간 •한양도성의 방문객, 등산객 등을 위한 공공 열린 쉼터
사업개요 ▶ 위치:
서울시 종로구 송월길 14-9 일원
▶ 사업기간: ▶ 면적:
2015. 05.~2017. 08.
10,324.9㎡
▶ 지역/지구:
제1종 일반주거지역, 방화지구, 중심미관지구, 정비구역(도시환경정비사업) 문화재보존영향 검토대상구역(경희궁지, 서울 경교장), 상대정화구역
▶ 주용도
•문화시설: 문화 및 집회시설(전시장, 박물관), 체험시설 •부대시설: 제2종 근린생활시설(사무소) •편익시설: 제1종 근린생활시설(소매점), 제2종 근린생활시설(일반음식점, 휴게음식점, 서점), 교육연구시설(도서관) •소공원: 녹지 및 산책로
010
오래된 길과 필지가 보존된 돈의문 박물관마을(붉은선은 골목길)
경성시가전도(1910년)_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지번구획입경성정도(1946년)_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011
012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013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시대별로 본 돈의문 박물관마을
1. 조선시대~대한제국 1422년 새로 세운 문 신문(新門), 돈의문(敦義門) 조선시대에 돈의문 박물관마을 일대는 한성부 서부 여경방(餘慶坊)에 해당하는 곳으로 경복궁과 인접한 곳인 적선방과 이웃하고 있다. 영조 27년(1751)에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都城三軍門分界總錄)에는 한성부 서 부 여경방을 신문내계(新門內契)와 장생동계(長生洞契)로 구분하였으며 18세기에 제작된 <도성대지도>에는 신문로 일대가 신문내계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신문로라는 지명의 유래는 1396년 돈의문이 처음 세워졌으나 1422년 현재 위치에 도성과 성문을 조성하 여 돈의문이 두 번째로 새로 지어지면서 새문을 뜻하는 한자어인 신문에서 유래되었다. 중종 때 편찬된 ‘신증 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정서쪽 문을 돈의문(敦義門)이라 하는데, 조일회(曺一會)가 현 판 글씨를 썼으며 민간에서 신문이라 부른다” 는 기록이 있으며 실록 내에서도 지역을 지칭할 때 신문 밖, 신 문 안 등의 일대 지역을 묘사하는 표현이 쓰이기도 하는 등 돈의문과 신문이 혼재되어 기술되었다. 새문이라는 지명의 다른 유래로는 첫 번째 돈의문의 이전과 관련해서 조선전기 문신 이숙번의 집 앞에 돈의문 이 세워지자, 인마(人馬)의 통행으로 인한 불편을 임금에게 건의하여 이전하고 문을 막았다는 의미의 색문(塞 門)에서 유래하여 일대가 새문동, 색문동(塞門洞)으로 불렸다는 설도 있다.
전차노선 개설 전 돈의문(19세기 말)
014
1623년 경희궁(慶熙宮)이 세워짐 경희궁은 새문동에 새 궁궐을 짓기로 하고 광해군 9년(1917) 건축을 시작하여 광해군 15년(1623)에 영건하였다. 영건초기에는 별궁으로 조성되었으나 실제 공역이 시작되면서 경덕궁(慶德宮)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규모가 확대되고 이궁(離宮)으로 성격이 변화되었다. 특히 숙종과 영조 대에는 법궁인 창덕궁과 함께 이궐(異闕)로 양궐 체제가 활발하게 운영되었다. 영조 36년(1760)에 ‘경덕’이 원종의 시호인 ‘원종공량경덕인헌정목장효대왕’ (元宗恭良敬德仁憲靖穆章孝大王) 과 같다는 이유로 경희궁으로 고쳤다. 광해군 15년(1623)에 경희궁이 영건되기 전 새문동 일대는 종친과 사대부의 집, 관청들이 산재해 있었다는 기 록으로 보아, 이 일대는 비교적 규모가 있는 사대부 가옥이 조성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궁궐을 조성할 당시 공역의 수고를 덜고 공사기간을 줄이기 위해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건물은 철거하지 않고 담장을 쌓아 경계 를 먼저 지은 뒤, 기존 건물을 수리하여 궁의 건물로 흡수시켜 활용하는 방법으로 조성하였다. 또한 궁역에 민 가가 많이 포함되자, 거주민에게 새로 옮겨 살 수 있는 빈터를 지급하도록 하였으며, 집이 궁 담장 안에 들어 온 사대부에게는 품계를 올려주었다.
서궐도안_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경희궁의 전경(全景)을 그린 그림으로, <동궐도>(국보 제249호)와는 달리 채색이 가해지지 않은 밑그림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015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1895년~1914년 자문동(紫門洞) 자문동은 1895년부터 1914년까지 신문로2가 일대 중 일부를 지칭하는 동명이다. 1907년 발행된 <최신경성전 도>나 1911년 발행된 <용산합병경성시가전도>, <경성시가도> 등의 지도를 참고하여 볼 때 지도의 경계 범위 가 명확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더라도, 돈의문 박물관마을 주변을 포함하여 자문동으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자문동이라는 이름은 고종 33년(1895) 기존 지방제도를 폐지하고 한성부 5부를 5서로 고치고 많은 동과 계를 신설함에 따라 서서(西署) 여경방(餘慶坊) 신문내계(新門內契) 자문동으로 바뀌었다. 자문동 거주자에 대한 자료를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대한제국관원 이력서1)에 따르면 자문동 주변에 있던 육 군무관학교, 정동의 한성 재판소 등 근대 시설에 재직했던 관원들이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최신경성전도(1907년)_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현 돈의문 박물관마을 일대의 지명이 신문내 자문동으로 표기되어 있다. 돈의문(서대문)과 성곽 등이 훼손되지 않은 상태이며, 돈의문 박물관마을 일대의 골목길은 현재와 유사한 형태이다.
1) 「새문안동네 돈의문 역사문화마을 기록화작업」, p43, 2017
용산합병경성시가전도(1911년)_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016
1899년 전차 개통 전차는 1898년에 한성전기회사가 설립되고 1899년 5월 2주간의 시범운행을 거쳐 20일부터 최초의 운행이 시작 되었다. 초기에는 경희궁 흥화문 앞에서 동대문 안까지 운행하고 성 바깥은 유보하였다가 이후 경교까지 연장 되었다. 전차의 등장은 단지 운송수단의 편리함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공간, 시간, 경계의 변화를 가져왔다. 전차 뿐만 아니라 1899년 최초 개통된 경인선의 종착점인 서대문정거장도 돈의문 밖 의주로에 있어 일대를 중심으로 서양 문물의 유입이 활발히 이루어지며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개통 당시 전차는 돈의문을 지나는 노선으로 계획되어 크게 훼철되지는 않았지만, 1939년 간행된 ‘경성부교통 량조사서’에 의하면 전차 상부의 전력선 높이를 전차의 5.45m로 정하고 있는데, 당시 돈의문의 홍예는 4.7m 내외로 추정되기 때문에 전차노선 부설시 지반을 파내고 그 높이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2)
돈의문을 지나는 전차
2) 정붓샘, 「새문안로 가로 변천 연구 조선시대 가로 조성부터 일제강점기 시구개수사업까지」, 『돈의문 복원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p114, 서울특별시, 2010
황성신문(1899년 5월 19일)_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흥화문 앞에서 동대문 안까지 왕복하는 전차 운행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기사이다.
017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1902년 경희궁-경운궁 운교 설치 1902년에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한 칭경식(稱慶式) 개최를 앞두고 경희궁이 주요 의전행사지로 부각되어 주변일대는 관련 시설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경운궁에서 경희궁까지 홍교(虹橋) 혹은 운교(雲橋)로 불리는 아치형의 다리를 만들었는데, 아치 아래에는 전차가 지나갈 수 있게 하였다. 운교는 대한제국의 황제로서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시각적으로도 화려하게 조성되었으며 고종황제가 머무르는 경운궁에서 경희궁까지 이 동을 원활하게 하고 궁의 공간을 연계시켜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1908년 통감부에 의해 철거되었다.
운교 및 신문로 일대(1903년)_ Carlo Rossetti 촬영
018
2. 일제강점기 1910년 경희궁터에 경성중학교 건립 1865년 고종의 중점 사업중 하나였던 경복궁 중건을 위해 경희궁의 숭정전, 회상전 등 일부만 남기고 나머지 는 훼철하여 내부 자재로 사용하면서 상대적으로 경희궁의 쇠락을 가져왔다. 1901년에 제작된 지도 <서울 부 분도>를 보면 경희궁터 부근에 뽕나무 공원이라고 표기되었음을 볼 수 있다. 1910년에 조선총독부 중학교가 경희궁 터에 새 교사를 짓고 이전했으며 1911년 경희궁 토지와 건물 전부가 총독부(總督府)에 인계되었다.3) 1913년에 경성중학교로 개칭하였으며 1915년에는 경성중학교 앞 도로확장공 사로 인하여 흥화문의 위치가 변경되었다. 이후 경희궁 부지에 관사가 조성되고 숭정전, 흥정당 등 기존에 있 던 전각들이 매각 후 이축되면서 지속적으로 공간변화가 이루어졌다. 서궐 안에 숭정전, 회상전, 정심합, 사현합, 흥정당 만을 남겼다. 그 나머지는 모두 훼손되어 온 목재는 썩고 부패한 것이 많아서 그 장점을 취해서 나인칸 및 각사에서 건조할 때 참고하여 사용하라. 이날부터 뽑아서 전 정에 깔 전석 및 계체의 돌은 먼저 광화문의 역소에서 사용하라.4) 『경복궁 영건일기』, 을묘년(1896) 8월 22일
서울부분도5) (1901년) 경희궁터가 뽕나무 공원(MULBERRY PARK)/ 구 궁궐(ANCIENT PALACE)로 표시되었다.
3) 순종실록 부록 2권, 순종 4년(1911) 6월 26일(양력) 4) 「경복궁 영건일기 번역본」, 『경복궁 석조조형물 학술연구 및 보존관리방안 연구』 별책3, p149, 2013 5) 김정동, 『고종황제가 사랑한 정동과 덕수궁』, 2004
경성중학교 엽서(1912년)_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임시소학교원양성소 기숙사로 쓰인 경희궁의 회상전(좌)과 경희궁터에 지어진 경성중학교 기숙사(우)
019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1915년 돈의문 철거 1912년 조선총독부가 발표한 ‘경성시구개수예정계획’(京城市區改修豫定計劃)은 경성의 도심을 격자형 공간 으로 정비해 재편하는 것이었다. 현재 새문안로인 길은 크게는 도심의 가로축인 제4노선 동대문-종로-경희궁 앞의 연장으로 제15노선인 경희궁앞-서대문-독립문통 구간이 포함된다. 경성시구개수사업 진행 중 도로의 직 선화 등을 이유로 돈의문의 철거를 결정하고, 1915년 3월 2일에 총독부 토목국이 돈의문 철거에 따른 경매공 고를 한 뒤 철거하였다. 기와와 목재는 205원 50전에 경성 거주자 염덕기에게 낙찰되어 목재와 부재 등이 팔 리고6) 6월에는 문루 하부의 체성마저 해체되어, 석재는 도로 지정에 이용되었다. 돈의문 철거 및 경성시구개수예정사업으로 인해 현 새문안로가 직선화되고 확장되면서 가로를 따라 불규칙하 게 세워졌던 가가(假家)들이 정비되었다. 『뮈텔주교 일기』7)에서도 돈의문이 철거된 후 원래 구릉지대였던 언덕 을 깎아 도로를 넓히는 공사현장을 묘사하고 있다. 이 기회에 동서로 난 간선 도로를 완공하기 위한 대대적인 공사현장을 볼 수 있었다. 새문이 서 있던 언덕을 넓게 깎아, 넓은 도로와 전차 선로를 함께 사용하는 길을 만들고 있었다. 『뮈텔주교의 일기』, 1915.09.06.
경성시구개정사업 회고 이십년 경성시구개정사업 전 돈의문과 주변 일대 모습(좌)과 사업 후 모습(우) 사진이다. 돈의문을 철거하고 비탈이 있던 길을 넓고 평평하게 정비한 모습이다.
6) 1915.3.7. 매일신보 7) 『뮈텔주교의 일기』 5, 한국교회사연구소 역주, 2008
경성시구개수예정계획노선도(1912년)_ 조선총독부관보 제81호
020
1924~1927년 7번지 일대, 사회주의 계열단체의 활동 돈의문이 철거된 후 1920년에서 1940년 사이에 7번지 일대에는 다양한 공간적 변화가 일어난다. 돈의문 박물 관마을의 비교적 넓은 대지인 7번지 일대에 이전에 어떤 시설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1910년대 지적도를 보면 넓은 터를 차지하고 있어 경희궁의 관련 시설이나, 돈의문을 관리하던 수문장청 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 된다. 1920년 초에서 1927년까지 일제강점기 동명인 서대문정 2정목 7번지로 당시 신문기사를 취합해 보면 경성노 동학원, 조선청년총동맹 사무소와 한성학습원 등이 위치한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7번지 일대를 근거로 활동 했던 단체는 조선청년총동맹, 서울청년회, 조선노동교육회, 무산자동지회 등이다. 대부분의 사상단체들은 뜻 을 같이 하는 소규모의 인원으로 구성된 집단으로 이러한 모임은 다시 파가 나뉘어 비슷한 사상단체들끼리 모여서 사무실을 운영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926년 후반 이후 관련 기사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데, 1930 년대에 강위수라는 사람이 7번지 일대의 토지를 매입하고 필지를 분할하여 도시 한옥을 조성하였다.
경성시가도 부분(1927년)_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도시한옥군이 조성되기 전 돈의문 박물관마을 일대의 지도이다.
021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1932년 6번지에 유한양행 건물 건립 유한양행은 유일한이 1926년에 설립한 회사로 초창기에는 종로2가에 사무실을 열고 염색약, 위생용품, 결핵 약, 진통소염제 등 미국에서 수입해 온 의약품류를 파는 곳이었다. 의약품 제조와 판매 등 점차 사세를 확장 하기 시작하여 1932년에는 서대문정 2정목 6번지 일대 부지를 매입하고 사옥을 신축하였다. 곡선으로 휘어지 며 언덕이 있는 지형을 따라 2개의 서양식 건물을 지었다. 서대문정으로 이주 후 유한양행은 ‘조선은행회사조 합요록’ 1937년판 자료에 의하면 1936년에 주식회사로 상장하였으며 1962년 신대방동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30년간 본사로 사용하였다.
1930~40년대 유한양행_ 유한양행 제공
022
3. 해방이후~현재 1949년 김구, 경교장(京橋莊)에서 서거 1938년에 지어진 경교장은 원래 죽첨장(竹添莊)이라는 이름이었으나 해방이후 김구가 거주하면서 동네에 있 던 경교라는 다리 이름을 따서 경교장으로 바꾸었다. 해방 이후 최창학이 김구에게 거처로 제공한 곳으로 1945년 11월부터 1949년 6월 26일까지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하였다. 경교장은 임시정부 요인들이 모여 국무회의를 개최하고 반탁운동과 남북통일운동 협상을 주도하는 등 해방 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 이승만의 이화장, 김규식의 삼청장과 더불어 혼란 정국을 수습하는 중요 정치 공간이었다. 김규식, 홍명희, 김붕준, 여운홍 등 주요 인사들과 모여 남북협상을 의논한 곳도 경교 장이었고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이동녕, 임시정부 요인 차리석의 유해가 이안되어 장례식을 치른 곳도 경교장 이었다. 1949년 이후 경교장은 1949년 11월부터 1950년 5월까지 중화민국 대사관저로 사용되기도 하고, 1950년 6월 부터 8월까지는 한국전쟁 중 미군특수부대 및 임시의료진이 주둔하기도 하였다. 1956년 10월부터 1967년 10월 까지는 월남대사관으로 사용되었다.
신탁통치 반대 시위(1946년) _ LIFE, Alfred Elsenstaedt 촬영
김구 서거 후(1949년)_ LIFE, Carl Mydans 촬영
023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1970년대 주택가 속 과외방 1960~70년대 과외는 개인교습보다는 10명 이내의 팀을 이루어 수업을 받는 형태였다. 10명 미만의 인원으로 교습소를 운영시에는 허가받지 않아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 당시 규정을 이용한 것이다. 과외방은 당시 학원가 가 발달했던 당주동과 인근의 신문로1,2가 주택가 사이에 널리 분포되었다고 한다. 일반 가정집의 방 한칸 을 따로 과외방으로 세를 주거나 혹은 과외방을 목적으로 가정집 전체를 세를 놓는 집들이 많았다고 한다. 신문로 일대의 과외방이 쇠퇴한 원인은 크게 2가지로 꼽을 수 있다. 첫째는 국가차원의 과외금지법이 발효된 것이다.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발표한 ‘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방안’은 모든 연령대의 학생 은 학교 수업이외의 과외 수업, 고교 재학생은 과외 교습 및 입시목적인 학원 수강을 금지시키는 법안이었다. 7월 30일에 발표되었기 때문에 일명 ‘7.30 조치’ 라고 불리던 과외금지법으로 인해 학원과 과외방은 선불로 받 았던 교습비를 학생들에게 환불하고 대다수의 과외방이 해체되었다. 문교부·내무부·국세청 등 관계직원들로 구성된 특별단속반을 편성하여 불법과외를 단속하고, 적발된 학생들은 무기정학, 과외교습자는 입건·구속형 등 강력한 조치가 시행되었다. 둘째는 인근에 있던 명문 고등학교가 강남지역으로 옮기고, 광화문과 종로일대에 있던 입시학원도 사대문밖 으로 이주하는 정책으로 인해 대다수의 과외방과 학원이 강남으로 함께 이전했기 때문이다.
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방안 공청회(1980년)_국가기록원 소장
024
1968년~현재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개원 강북삼성병원은 현재 돈의문 뉴타운이 개발되기 전 이 일대에서 가장 큰 건물로, 많은 유동인구가 발생하는 병원은 주변 식당과 상가에 영향을 주었다. 1981년 신관을 크게 건축하면서 병원 및 임대 사무실로 이용하는 회사원이 많아지자 주변은 식당의 비율이 높아졌다. 회사원뿐만 아니라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보호자들도 돈 의문 박물관마을의 식당을 자주 이용하게 되면서 기름기가 적은 담백한 음식·보양 음식 등을 특화하여 운영한 식당도 많은 편이었다. 2000년 본격적으로 의약분업이 시행되면서 강북삼성병원 주변이었던 돈의문 박물관마을과 평동 대로변을 따 라 처방받은 약을 조제할 수 있는 비교적 큰 규모의 약국상권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인근 슈퍼의 경우에도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와 보호자의 편의를 제공하는 물품 판매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편이었으며 방문객이 주로 사가는 음료세트, 호두과자 등도 구비하고 있었다.
1968년 경교장에 개원한 고려병원_ 삼성병원 소장 김구 선생의 서거 이후 여러 소유주를 거치면서 다용도로 사용되던 경교장은 1968년 병원이 세워지면서 건물 로비로 이용되었다.
1981년 신축한 고려병원_ 삼성병원 소장 많은 환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이 신축되면서 주변 식당 상권도 번성하게 되었다.
025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1980년대 중반~2000년대 초 식당골목의 전성기 1980년대 중·후반부터 돈의문 박물관마을 일대는 송월길 가로변을 중심으로 식당이 생기기 시작하여 점차 인 근의 회사원이 주로 이용하는 식당가로 발전하였다. 1981년 교육청이 송월동으로 이전되었으며, 같은 시기 송 월길과 접한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의 고층빌딩이 지어지면서 일대는 유동인구가 많아졌다. 기존부터 있 던 기상청, 강원산업, 당시 정동에 있던 MBC방송국(현 경향신문)을 비롯하여 고려병원 신관(보영빌딩)내 입주 회사, 새문안로를 두고 길 건너 충정로와 정동의 회사 등 큰 규모의 관공서와 회사를 상대로 요식업의 수요가 많아졌다. 1990년대 초부터는 주변 일대가 도심지와 식당가로 변하면서 점차 떠나는 동네 주민들이 내놓은 집을 구매하 여 식당으로 개조·운영하기 시작하였다. 가로변에서 몇 년간 식당을 운영하면서 어느 정도의 단골손님을 확보 한데다가, 주거용으로 쓰던 건물을 개조하면 권리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2009년 서 울역사박물관 조사 당시에는 경찰박물관과 구 강원산업 본사, 내일신문사 등 몇 개의 큰 건물을 제외하고는 41개의 식당이 운영되고 있어 사실상 대부분 식당으로 이루어진 마을이었다. 퇴거 종료일이었던 2015년 11월 까지도 9개의 식당이 운영되고 있었다.
화분이 있는 식당골목(2009년)_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2014년 이전까지는 다수의 식당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이지만 식당마다 화분을 가꾸고 청소하며 운치있는 골목길 풍경을 만들어냈다.
신평상우회 야유회_ 한소임 제공 신문로에 있던 식당들과 평동에 있던 식당들의 운영자들이 주축이 된 친목 모임이다. 1990년대부터 조직적으로 운영되어, 정기적으로 춘·추계 야유회를 가졌다.
026
4. 길 위의 역사, 새문안로 중국으로 가는 길 돈의문 박물관마을를 지나는 새문안로는 조선이 세워지고 사대문이 만들어진 이후부터 조성된 오래된 길 중 하나이다. 흥인지문에서 돈의문을 연결하는 길이자 조선 제1로인 의주로와 연결되는 길로 특히 청으로 연행 (燕行)을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길이다. 또한 청에서 오는 사신도 영은문을 거쳐 돈의문 밖 모화관(慕華館)에 머물기 때문에 영접을 위해 왕과 사신들이 돈의문을 통해 왕래를 하던 외교적으로 중요한 공간이었다.
도성대지도(18세기)_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육조거리와 서쪽의 돈의문으로 이어진 길은 의주로와 연결되며 중국의 문화가 드나드는 길이었다.
027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상업도시의 길 <경기감영도병>은 현재 서대문 사거리에 위치했던 경기감영을 중심으로 돈의문과 돈의문 밖의 풍경을 그린 병풍이다. 현재의 의주로와 새문안로에서 상공업이 발달하였던 모습을 볼 수 있다. 길을 따라 쌀가게, 약국, 종이가게 등과 함께 집밖에 차양을 내어 지은 가게인 가가(假家)가 활발히 형성된 19세기의 상업도시 모습을 보여준다.
경기감영도병, 12폭(19세기)_ 리움 미술관 소장
경기감영도병 세부
028
기차-전차로 드나드는 새 문물길 1899년 우리나라 최초의 전차길이 경교에서 동대문까지 놓였다. 또한 돈의문 밖에는 1900년에 완공된 제물 포-서대문역간의 경인선이 있어 현재의 새문안로를 통해 근대 서양 문물과 사람들이 오가게 되었다. 전차의 등장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전차 운행이 시작되며 성문의 여닫음의 의미가 없어지자 성 안과 성 밖의 구분 이 없어지며, 시간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교통의 확장으로 종로 일대 상공업이 더욱 발달하게 되었다.
돈의문을 통과하는 전차(1901년)_ Burton Holmes 촬영
029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역사와 변화의 길 새문안로 일대는 광화문과 시청 등 주요 번화가와 인접한 관계로 근현대사의 주요 정치사건이 일어나고 시민 과 함께 한 길이다. 김구 서거 후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 마지막 조문을 드리기도 했던 길이자 4.19 혁명에 참 여한 학생들의 열기가 활활 불타던 길은 현재에도 여전히 시민들이 역사와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기붕의 집을 불태우는 시민(1960년)_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소장 평동에 있던 이기붕 집의 가재도구를 새문안로에서 꺼내고 불태우는 시민과 학생들의 모습이다.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 합동연설회(1985년)_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소장 돈의문 박물관마을과 경희궁 사이의 모습이다. 구 서울고 교정에는 제 12대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 합동 연설회 개최 이래 전국 최대의 청중(선관위 집계 6만여 명)이 모였다.
030
국민의료보장법 채택요구 농민시위 현장(1990년)_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소장 국민의료보장법 채택을 요구하며 새문안로 일대에 시위하고 있는 농민들의 모습이다. 돈의문 박물관마을의 1990년대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2016년) 2016년 11월과 12월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며 광화문 일대와 새문안로에 많은 시민들이 몰린 모습이다.
031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건물별로 본 돈의문 박물관마을
1. 조성 전 마을 현황 돈의문 박물관마을 일대는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2가 6번지~58번지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남쪽으로는 새문안로, 서쪽으로는 송월길이 맞닿아 있으며 주변보다 높은 구릉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송월길을 경계로 신문로2가와 교남동으로 나뉘며, 돈의문 박물관마을 북측은 경희궁과 인접해 있다. 주변 문화관광자원으로는 현재는 훼손되었지만 돈의문과 한양도성이 있던 자리로 돈의문터 표석이 있다. 송월길 건너에는 해방 후 김구가 거주하던 숙소이자 집무실이었던 경교장이 있다. 조선 5대 궁궐중 하나인 경희궁이 일부 복원되어 있으며 서울역사박물관, 정동, 광화문이 이웃하고 있어 문화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2가 7번지 일대 •면적: 11,691.2㎡ •용도: 제1종 일반주거지역 •건축물: 68채 •주변 일대 관광자원: 돈의문터, 한양도성터, 경교장, 4.19혁명 기념 도서관(이기붕 집터), 홍난파 가옥, 딜쿠샤, 월암바위, 서울역사박물관, 러시아공사관, 이화학당, 정동제일교회, 배재학당, 중명전, 구세군 중앙회관, 독립문 등
032
돈의문 박물관마을 일대
033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형태별 현황 돈의문 박물관마을은 1~2층의 근대 건축물과 개조 근대 건축물이 비교적 많은 편이며, 7번지 일대에는 한옥과 한옥형태의 개조 한옥 건물군이 비교적 잘 남아있다. 조적조 슬라브 1~3층 건물이 남아있는 것도 특징적이다. 경찰박물관, 내일신문, 인천제철 등 사무용으로 이용된 곳은 철근 콘크리트로 조성되었다. 구분
건물 수
한옥(1층)
11채
개조한옥(1층)
8채
근대건축물(1~2층)
15채
개조 근대건축물(1~2층)
13채
조적조 슬라브 건물(1~3층)
13채
철근 콘크리트
8채
총 건축물 수
68채
기존건축물 형태별 현황도
034
용도별 현황 2015년 12월 조사 당시 돈의문 박물관마을 일대는 일부 세입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거주·운영자가 퇴거한 상태였으므로 조사 당시 혹은 최종 운영 용도를 기준으로 하였다. 마을 내 68채의 건물 중 약 60%인 40채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식당과 주거가 공존한 경우까지 합치면 그 이상으로 볼 수 있다. 도심지 내에 인근 회사원이 주로 이용하던 식당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형태
건물 수
식당
40채
사무실
10채
주택
8채
약국
3채
가게
4채
숙박시설
3채
기존건축물 용도별 현황도
035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건축물 면적 조서 대지면적 건축물대장 현장실측 (㎡) 연면적(㎡) 연면적(㎡)
연번
지번
구조
구조 (추정구조)
층수
1
1-402
철근 콘크리트
철근 콘크리트
B1/4F
253.8
2
4
목조/시멘트벽돌조
조적+한옥(2F)
B1/1F
117.4
93.72
3
4-3
연와조
조적+철근콘크리트
B1/3F
143.8
236.65
4
5
목조
조적(2F)
2F
14.8
26.44
5
5-4
목조
조적(2F)
1F
12.6
19.84
6
6-가
7
6-나
8
6-다
9
6-3-가
석조, 연와조
10
6-3-나
11
1F 연와조
철근콘크리트
1F
590
14.88 494.5
39.67
692.4
2F
510.28
석조, 연와조
B1/2F
294.61
317
철근콘크리트
철근콘크리트
B1/2F
265.65
279.3
6-3-다
철근콘크리트
철근콘크리트
B1/5F
955.37
1003.7
12
7-3
목조
조적+기와
1F
79.3
42.85
101.04
13
7-4
목조
조적+기와
1F
88.2
56.53
84.05
14
7-5
목조
한옥(1F)
2F
109
77.39
135.9
15
7-7
목조
한옥(1F)
1F
111.5
43.96
114.5
16
7-8
목조
한옥(1F)
1F
104.8
40.68
108.3
17
7-10
목조
한옥(1F)
1F
52.9
30.04
51.9
18
7-11
목조
조적+기와(1F)
1F
69.4
42.96
65.0
19
7-12
목조
조적+기와(1F)
1F
66.1
42.96
62.89
20
7-13
목조
조적+기와(1F)
1F
52.9
29.47
102.98
21
7-14
목조
조적+기와(1F)
1F
52.9
32.83
22
7-15-가
목조
한옥(1F)
1F
23
7-15-나
목조
한옥(1F)
1F
24
7-17
목조
한옥(1F)
1F
25
7-18
목조
조적+기와(1F)
26
7-19
목조
27
7-20
28
842
35.96
68.5
34.05
56.2
56.2
34.05
59.5
1F
59.5
34.05
57.4
조적+기와(1F)
1F
56.2
34.05
57.8
목조/시멘트벽돌조
한옥(1F)
1F
82.6
78.21
72.7
7-22
철근콘크리트라멘조
철근콘크리트
B1/5F
261.2
727.09
29
7-23
철근콘크리트
철근콘크리트
B1/3F
178.5
327.41
352.08
30
7-24
연와조
조적(2F)
B1/2F
208.3
161.32
302.37
31
7-33
연와조
근대조적(2F)
B1/2F
89.3
108.86
187.8
32
7-50
목조
한옥(1F)
1F
90.2
33.24
91.7
33
8-1
목조,연와조
연와조
1F
34.4
33.05
32.78
34
17-1
연와조
철근콘크리트(3F)
3F
64.1
113.07
35
18-1
연와조,철근콘크리트
철근콘크리트(2F)
2F
56.5
106.4
036
135.3
연번 36
지번
구조
19-1외 1필 연와조,철근콘크리트시 지 멘트
대지면적 건축물대장 현장실측 (㎡) 연면적(㎡) 연면적(㎡)
구조 (추정구조)
층수
철근콘크리트(3F)
3F
52.9
217.2
212.46
37
19-7
철근콘크리트
조적+기와(2F)
1F
53.2
48.59
114.22
38
20-1
목조
한옥(1F)
1F
152.1
59.5
105
39
22-2
목조
조적(2F)
B1/2F
84.3
152.8
236.4
40
22-3
목조
조적(2F)
B1/2F
132.2
117.35
182.4
41
23-1
목조
조적(1F)
1F
40.7
21.85
45.3
42
23-2
목조
조적(1F)
1F
43
25-가
연와조
철근콘크리트
3F
33.06
44
25-나
시멘트블럭조
조적+기와(1F)
1F
45
25-다
시멘트블럭조
조적+기와(1F)
1F
46
27
연와조
근대조적(2F)
2F
56.2
84.82
47
28
연와조
근대조적(2F)
2F
56.2
99.18
274.2
48
30-1
목조
근대조적+기와(2F)
B1/2F
95.2
142.15
119.4
49
31
목조
조적+기와(2F)
2F
69.4
69.4
117.5
50
32-1
목조
근대조적+기와(2F)
2F
109.1
115.7
113.933
조적(3F)
B1/3F
158.3
196.35
204.92
200.82 261.4
62.61 59.52
51
33
연와조
52
34-가
목조
1F
53
34-나
목조
1F
54
34-다
시멘트벽돌조
1F
55
34-2
연와조
근대조적(2F)
2F
132.2
92.57
243
56
35
57
35-2
목조
조적(1F)
1F
87.9
52.89
79.87
58
37
시멘트벽돌조,철근콘크 리트
조적(2F)
B1/2F
226.2
336.43
586.3
59
40
목조
조적+기와(2F)
B1/2F
105.8
76.03
169.4
60
41
시멘트벽돌조
조적(2F)
B1/2F
109.1
184.86
191.46
61
43
목조
조적(1F)
1F
82.6
57.85
83.21
62
44-가
목조
1F
29.75
97.72
63
44-나
목조
1F
36.36
43.4
64
46
목조
조적+기와(1F)
1F
158.7
39.67
65
49
목조
조적+기와(2F)
2F
92.6
72.73
46.45 220.8
46.28 39.52
135.5
66
52
목조
조적+기와(2F)
2F
69.4
82.64
67
55
철근콘크리트
철근콘크리트
B1/5F
214.2
1,088,57
68
58
철근콘크리트
철근콘크리트
B2/13F
384
4,518.9
7423.9
8227.5
합계
총 68채
93
037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2. 조성 전 건물 이야기 돈의문 박물관마을은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여러 시대의 건축물과 삶의 흔적이 다양하게 혼재되어 있는 마을이었다. 도시재생을 통해 이런 역사성과 독특함은 그대로 보존하고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이어갈 예정이다. 조성 전 마을의 건물은 68채였다. 녹지공간과 마당 등 공유공간 확보를 위해 철거된 건물들은 이제 과거에만 존재하는 공간이지만, 그 기억을 이어가고자 1930년부터 2015년 12월 돈의문 박물관마을이 조성되기 전까지 있었던 건물의 쓰임, 변화, 특히 마지막으로 마을의 반 이상을 차지했던 식당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건물의 개요는 토지대장과 건축물대장, 구술 등을 참조하여 정리. •실제 건축시기와 차이가 있을지라도 시기를 가늠하기 위해 최초 대장 등기일을 표기. •건물별 명칭은 신문로2가의 기존 지번명으로 구분. •건물의 기술 순서는 <기본계획>의 블록별 순서. •조사촬영 당시 대부분의 공간은 운영중지 상태.
3
2 1
5
4
12
11
13
9 8
7
6
10 16
45 23
40
26
14
25 27
28 34 33
32
37 36
42
35
31
39 38
49
43
41
30
29
21
47 44
24
18
20
038
15
19 17
46
22
48
1-402
번지
1-402번지는 1970년대까지는 기존의 한옥골목과 유사한 형태의 한옥 2채가 있었으며, 과외방을 운영하기도 했던 주택이었다. 1983년에 주 변 토지와 합병하여 1984년에 4층 콘크리트 건물이 신축되었다. 1층 은 1984년부터 ‘안동장’(이후 안동회관)이라는 중국음식점이 있었고 2
1
서울시 종로구 송월길 22
주택 → 근린생활시설, 여관 → 녹지 ▹ 1970년대: 한옥(2채)형태의 주택/ 과외방 운영 ▹ 1983.03.: 토지합병 1-402(1-402, 2-53, 2-54, 7-9, 7-37)
층부터 4층까지는 ‘신라장’이라는 상호의 여관으로 오랫동안 운영되
▹ 1984.01.: 지하1층, 지상4층 신축
었다. 주변 관공서나 기업의 지방출장자, 병원 보호자 등이 이용하던
▹ 1984-2000: 1층 안동장(중식)/안동회관(한식)
숙소였다. 의약분업 이후 강북삼성병원과 맞닿은 가로변에 약국상권
▹ 1984-2010년대: 2~4층 신라장 모텔
이 조성되자 1층에 ‘메디칼약국’이 14년동안 운영되었다. 현재는 녹지
▹ 2000-2014: 1층 메디칼약국
공간으로 바뀌었다.
1990년대 신라장 전경
2015년 신라장 전경
039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7-8
번지
7-8번지는 1930년대 일대가 분할되며 일대가 한옥골목으로 조성되었 을 시기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960년부터 1990년까지 오랜 기간 주택으로 사용되다, 1990년에 대중음식점으로 용도가 변경되고 ‘서울곰탕’이란 식당이 1990년부터 2014년까지 25년간 운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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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송월길 20-1
주택 → 대중음식점 → 한옥 체험문화 공간 ▹ 1957: 건축물 등기평가 ▹ 1962.05.02.: 건축물대장 등기이전
인근에 있던 강북삼성병원의 환자나 보호자, 주변 회사원들이 쇠약해
▹ 1960-1990: 주택
진 몸을 보신하기 위해 들러서 식사를 하거나 포장을 해가곤 하였다.
▹ 1990.09.: 대중음식점으로 용도변경
곰탕 이외에도 점심식사용 한그릇 음식, 저녁 회식 손님을 위한 고기
▹ 1990.11.-2014.03.: 서울곰탕(한식)
구이 등 다양화된 메뉴를 제공하였다.
2009년 서울곰탕 전경_ 서울역사박물관 디지털 아카이브
040
2015년 서울곰탕집 전경
7-7
번지
7-7번지는 1989년부터 2013년까지 27년간 ‘문화칼국수’란 이름으로 운영되던 식당이었다. 당시 길건너 정동에 있었던 문화방송의 이름을 따서 가게이름을 지었다. 1980년대에는 하숙집으로 이용되다가 1989 년에 대중음식점으로 용도를 변경하여 사용하였다.
3
서울시 종로구 송월길 20-3
주택 → 대중음식점 → 한옥 체험문화 공간 ▹ 1931.10.: 목조와즙 등재 ▹ 1980년대: 주택, 과외방, 하숙집 운영 ▹ 2004.07.: 토지분할로 7-7에서 7-50번지로 변경
문화칼국수는 초기에는 현 경찰박물관 터(58번지)에서 1979년부터 운
▹ 1989–2013: 문화칼국수
영을 시작하다, 1989년에 현 위치로 이주하였다. 문화칼국수라는 이름 은 당시 정동에 있던 문화방송(현 MBC)에서 따왔다고 한다. 7-7번지 운영 초기에는 주거와 상업이 공존하는 형태로 활용하다가 이후 전체 공간을 터서 넓게 사용하였다. 식당 공간의 증축으로 인해 일부 변형이 있지만 비교적 원형이 잘 남아있는 공간이다. 충청도식으로 맑게 멸치 국물을 우려낸 칼국수와 파전이 직장인들의 점심메뉴로 인기였다.
문화칼국수의 대표 메뉴 칼국수
2009년 문화칼국수 전경
점심시간에 칼국수를 먹고 있는 인근 회사원들_ 서울역사박물관 디지털 아카이브
041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7-50
번지
1931년 목조주택으로 건축물대장에 등재된 후 2004년에 일반음식점 으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이곳에서 1998년부터 2013년까지 26년간 운영한 미조라는 식당은 점심시간에는 직장인들이 주로 찾는 백반집 중 하나로 낙지제육쌈밥이 인기메뉴였다. 7-50번지를 비롯하여 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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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송월길 20-5
주택 → 대중음식점 → 한옥 체험문화 공간 ▹ 1931.10.: 목조와즙 등재 ▹ 2004.07.: 토지분할로 7-7에서 7-50번지로 변경
궁과 맞닿은 쪽의 식당은 경희궁 녹지쪽으로 창을 넓게 두었는데, 오
▹ 2004.09.: 일반음식점 용도변경
래된 집 분위기와 어우러져 도심속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분위기도
▹ 1998–2013: 구담댁/ 미조(한식), 명품한우
식당골목의 인기비결이었다. 이후 ‘명품한우’라는 고깃집이 잠시 운영 되기도 하였다.
내부 전경
2015년 미조 전경
042
7-5
번지
7-5번지는 1930년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주택으로 1955년 증축 이 되었으며 용도변경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1989년부터 2013년 까지 ‘토방’이라는 식당이 23년간 운영되었다. 깔끔한 간장게장과 점 심시간이면 늘 매진되는 대나무통밥이 인기 메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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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송월길 20-7
주택 → 대중음식점 → 한옥 체험문화 공간 ▹ 1931.11.: 7-1번지에서 분할 ▹ 1955.09.: 목조와즙 증축 ▹ 2004.07.: 토지분할로 7-7에서 7-50번지로 변경 ▹ 1989-2013.07.: 토방(한식)
내부 전경
2015년 토방 전경
043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7-4
번지
7-4번지는 1930년대에 조성된 한옥 주택으로 1991년에 대중음식점으 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1991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10년 넘게 ‘서 라벌 보쌈’이라는 보쌈, 홍어와 모듬전을 파는 한식당이 있다가 2009 년을 전후로 한양삼계탕으로 바뀌었다. 한양삼계탕은 원래 송월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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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송월길 20-9
주택 → 대중음식점 → 한옥 체험문화 공간 ▹ 1931.11.: 7-1번지에서 분할 ▹ 1961.05.: 증축
로변에 있던 식당이었으나 주변이 월암공원 조성으로 철거되자 7-4번
▹ 1991.08.: 경희궁쪽 필지와 합병(2-48번지), 용도변경
지로 이전하여 2015년까지 운영되었다. 인삼을 넣은 찹쌀 삼계탕과
▹ 1991.11.–2000년대 중반: 서라벌 보쌈
서비스로 주는 인삼주, 반찬으로 나오는 깍두기가 인기였다. 저녁에
▹ 2000년대 후반–2015: 한양삼계탕
는 삼계탕 이외에도 삼겹살 등 고기 구이류를 판매하였다.
내부 전경
2015년 한양삼계탕 전경
044
7-3
번지
7
7-3번지는 1930년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주택이다. 작가 이태 준이 1931년 조선중앙일보 학예부 기자로 재직할 때 서대문정 2정목 7의3 다호에 거주하였다고 한다. 용도를 변경하여 대중음식점으로 사 용하였으나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다. 2009년까지 ‘봉평식당’이라는 메밀 음식 전문점이 있었으며 이후 2009년부터 2016년까지 ‘무진장’
서울시 종로구 송월길 20-11
주택 → 대중음식점 → 한옥 체험문화 공간 ▹ 1931.11.: 7-1번지에서 분할 ▹ ?-2009: 봉평식당 ▹ 2009-2016.03.: 무진장
이라는 한식당이 운영되었다. 점심에는 쌈밥정식, 뚝배기 불고기 등 백반메뉴가 있었으며 저녁에는 고기구이를 판매하였다.
메뉴간판
2015년 무진장 전경
045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4
번지
4번지는 1930년대에 지어진 목조 주택으로 1950년과 1977년에 건물 이 일부 손상되어 1978년에 기존의 건물을 증축하고 개조하였다. 지 하와 1층의 일부를 점포로 용도 변경하였다. 마을이 지닌 경사에 의해 지하 1층은 출입방향에서 보면 도로와 마주한 1층이다. 지하 1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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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송월길 18
주택 → 대중음식점 → 녹지 ▹ 1930년대: 목조주택 11.94평 ▹ 1950.09.: 멸실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져 왼쪽은 의약분업 이후 ‘화랑약국’이란 약
▹ 1977.08.: 일부 멸실, 주택 11.625평
국이 운영되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혈당기나 보청기, 병원의료
▹ 1978.03.: 증축 및 용도변경
기를 파는 ‘굿모닝의료기’가 운영되었다. 오른쪽 공간은 ‘진미식당’이
▹ ?-2008: 지하 1층 화랑약국
1999년부터 2015년까지 16년간 운영되었다. 아침 6시부터 문을 여는
▹ 2008-2015: 지하 1층 굿모닝의료기
백반집으로 병원 환자를 위해 콩나물국밥이나 북어국밥 등 맑게 끓인
▹ 1999-2015: 지하 1층 진미식당
국과 회사원을 위한 다양한 백반메뉴를 두었다. 1층에는 ‘다미락’ 이라는 일식 식당이 2000년부터 2015년까지 15년간
▹ ?-?: 1층 오솔집 ▹ 2000-2015: 1층 다미락
운영되었다. 다미락 운영 이전에는 한의원이 있었다고 한다. 2005년경 에는 일부 공간을 분할하여 ‘오솔집’이라는 죽과 건강즙을 전문으로 파는 식당이 있기도 하였다. 인근 회사의 회식장소로 애용되던 곳으로 병원 환자를 위한 전복죽, 잣죽을 팔기도 하였다.
2015년 굿모닝의료기 전경
2015년 다미락 전경
046
2015년 진미식당 전경
7-10
번지
7-10번지는 목조주택으로 1981년에 대중음식점으로 용도가 변경되 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11년간 ‘황우’라는 식당으로 운영되었다. 주변 직장인들이 즐겨 찾던 점심 메뉴는 상추쌈 샤브샤브로 각자 먹을 수 있도록 1인분씩 나오는 것이 특징이었다. 저녁에는 양곱창구이나 갈비 등 고기구이를 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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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송월길 20-4
주택 → 대중음식점 → 한옥 체험문화 공간 ▹ 1931.11.: 7-1번지에서 분할 ▹ 1957.07.: 등기이전 ▹ 1981.11.: 대중음식점으로 용도변경 ▹ 2000.01.–2012.06.: 황우
2015년 황우 전경
047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7-20
번지
7-20번지는 주택이었다가 1980년에 주택과 대중음식점으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1992년부터 2013년까지 20년간 ‘장수’라는 식당으로 운 영되었다. 설렁탕과 도가니탕이 주요 메뉴였으나 점심에 이용이 많은 직장인들의 입맛을 고려하여 김치찌개, 뚝배기불고기나 제육정식 등 의 식사메뉴와 저녁에는 소고기나 돼지고기 구이류를 판매하였다.
10
서울시 종로구 송월길 18-1
주택 → 주택, 대중음식점 → 한옥 체험문화 공간 ▹ 1958.11.: 등기이전 ▹ 1980.11.: 주택(10.91㎡),대중음식점으로 용도변경 ▹ 1983.09.: 증축 ▹ 1992.07.–2013.06.: 장수회관
2015년 장수 전경
048
7-11, 7-18, 7-19 7-11번지는 1981년부터 1990년까지 경향신문사에서 매입하여 지방에 서 올라와 자립하려는 청소년을 위한 기숙사로 운영되었다. 낮에는 서 울시내 곳곳에서 신문 가두판매를 하고, 밤에는 이곳에서 학교를 다 닐 수 있도록 숙식을 제공하였다. 이후 7-11번지와 7-19번지는 1990
번지
11
서울시 종로구 송월길 20-6
주택 → 대중음식점 → 한옥 체험문화 공간 ▹ 1941.06.: 7-18번지 등기이전 ▹ 1946.12.: 7-19번지 등기이전
년부터 2014년까지 25년간 ‘풍미’ 라는 추어탕 식당으로 운영되었다.
▹ 1954.07.: 7-11번지 등기이전
1994년에는 7-19번지를 연결하여 증축하였다. 7-11번지에는 조리공
▹ 1994.09.: 7-11번지 대중음식점으로 용도변경
간과 입식 테이블이 있는 공간이었으며 7-19번지는 방으로 구획되어
▹ 1980–1990: 경향신문사 경향배달소년의 집
좌식 테이블이 놓여졌었다. 7-18번지는 주거용으로 사용하였다.
▹ 1990.07.-2015.12.: 풍미추어탕
곱게 갈은 미꾸라지와 시래기를 넣은 경상도식 얼큰한 추어탕 단일 메뉴로만 판매되었으며 곁들여지는 김치가 맛깔스러워서 인근 회사의 중년층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2015년 풍미추어탕 전경/ 내부
풍미추어탕 내부
풍미추어탕 내부
추어탕
049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7-12, 7-13
번지
7-12, 13번지는 주택이었다가 1999년 대중음식점으로 용도가 변경되 었다. 1999년부터 2013년까지 14년간 ‘대복’이라는 상호의 복어요리 전문식당으로 운영되었다.
12
서울시 종로구 송월길 20-8
주택 → 대중음식점 → 한옥 체험문화 공간 ▹ 1931.11.: 7-1번지에서 7-13번지 분할 ▹ 1954.07.: 7-13번지 등기이전 ▹ 1957.03.: 7-12번지 등기이전 ▹ 1999.05.: 7-12번지 대중음식점으로 용도변경 ▹ 1999.12.–2013.12.: 7-12, 7-13번지 대복
2015년 대복 전경
050
7-17
번지
13
7-17번지는 주택이었다가 이후 대중음식점으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정확한 영업연도는 알 수 없지만, ‘은성부대찌개’ 식당이 마지막으로 운 영되었다. 상호는 부대찌개 식당이었지만, 직장인들이 주로 점심시간에 이용하는 식당골목으로 단일메뉴보다는 동태찌개, 김치찌개, 된장찌개
서울시 종로구 송월길 18-7
주택 → 대중음식점 → 한옥 체험문화 공간 ▹ 1959.11.: 등기이전 ▹ ?-?: 은성부대찌개
등 다양한 종류의 한식 백반메뉴를 갖추고 운영되었다.
2015년 은성 부대찌개 전경
051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7-15-가, 7-15-나 7-15번지는 2개의 필지로 분할되어 주택으로 사용하다 1991년에 대 중음식점으로 용도를 변경하였다. 7-15-가번지는 ‘미가’라는 식당이 2001년부터 2013년까지 12년간 운영되었다. 갈치조림, 생선백반, 청 국장 등 다양한 식단을 제공하는 가정식 백반을 제공하는 식당이었다.
번지
14
주택 → 대중음식점 → 공유공간 ▹ 1953.05.: 7-15-가번지 등기이전 ▹ 1978.01.: 7-15-나번지 등기이전
골목 모퉁이 방향으로 있던 7-15-나번지에는 1999년부터 2013년까지
▹ 2001.08.–2013.06.: 7-15-나번지 미가
14년간 ‘복터진 대구탕’이라는 식당이 운영되었다. 대구탕과 대구지리
▹ 1999.03.–2013.06.: 7-15-가번지 복터진 대구탕
등을 주 식단으로 하면서 쌈밥이나 굴비백반 등의 메뉴도 함께 제공 하는 곳이었다.
2015년 미가 전경 / 폐업인사
2015년 복터진 대구탕 전경
052
서울시 종로구 송월길 18-9
7-14
번지
15
7-14번지는 1930년대 지어진 주택이었는데 이후 기록은 없지만 ‘제주 오름집’이라는 식당으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1991년부터 2014년까지 15년간 운영되었던 ‘제주오름집’은 항공편으로 공수해오는 제주도 돼 지고기 전문점으로 점심메뉴로는 보쌈정식과 쌈밥정식 등이 인기였다.
서울시 종로구 송월길 20-12
주택 → 대중음식점 → 공유공간 ▹ 1931.11.: 7-1번지에서 분할 ▹ 1991.07.–2014: 제주식당/제주오름집
2015년 제주오름집 전경
053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4-3
번지
4-3번지는 1967년에 세운 주택으로 1977년에 대중음식점과 점포, 주 택이 공존하는 형태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기존에 있던 2층 양옥집을 그대로 두고 근린생활시설로 개조한 독특한 모습이다. 지하층에는 의약분업이후 ‘삼정바로약국’ 이라는 대형약국이 있었으며 1층에는
16
서울시 종로구 송월길 14
주택 → 대중음식점 → 녹지 ▹ 1930년대: 목초초즙 주택 11.94평 ▹ 1936.04.: 등기등재 28평
2002년부터 2015년까지 13년간 ‘치킨뱅이’라는 치킨집이 있어 저녁시
▹ 1967.09.: 신축
간대에 퇴근한 직장인들이 가볍게 맥주와 함께 즐기는 곳이었다. 현
▹ 2000년대: 1층 삼정바로약국
재는 녹지공간으로 조성되었다.
▹ 2002-2015: 2층 치킨뱅이
2015년 치킨뱅이 전경
2015년 삼정바로약국 전경
054
7-22
번지
17
7-22번지는 1990년에 기존의 건물을 허물고 1991년에 현재와 같은 지하 1층, 지상 5층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을 세우고 대중음식점과 사 무실로 운영되었다. 1층은 2006년부터 2014년까지 8년간 ‘커피와 쟁이’ 라는 커피숍으로 운영되었다. 원두를 직접 볶는 로스터리샵을 겸하고
서울시 종로구 송월길 14-3
영업용 → 주택 → 대중음식점 → 도시건축센터 ▹ 1931.11.: 7-1번지에서 분할 ▹ 1930년대-1940년대: 일본인 소유, 등기등재 영업용 목조스레트즙 지하 1층, 지상 2층
있던 곳으로 진한 맛과 향으로 유명한 핸드드립 커피는 커피매니아 사이에서 꼭 한번 마셔봐야할 커피 중 하나였다고 한다. 지하에는
▹ 1960.12.: 주택으로 용도변경
2003년부터 근래까지 ‘미래향’이라는 중식집이 10여년간 운영되었다.
▹ 1981.02.: 대중음식점으로 용도변경
신문로와 현재 돈의문 뉴타운이 된 교남동 일대에는 음반녹음실이 꽤
▹ 1990.08.: 멸실
분포하던 곳이었는데, 1990년대 7-22번지에는 ‘국도레코드’라는 연예
▹ 1991.03.: 신축
기획사가 있어서 유명한 트로트 가수들이 인근 식당에도 자주 들렀다
▹ 2003.10.-2010년대: B1 미래향(중식)
고 한다.
▹ 2006.09.-2014.05.: 1F 커피와 쟁이
2015년 미래향 전경
055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7-23
번지
18
7-23번지는 1981년에 새로 지어진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지하와 1, 2 층은 목욕탕으로 운영하고 3층은 주택이었다. 2000년대 전후로 건물 을 개조하여 고시텔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마을 공유공간인 마당을
주택 → 한의원 → 주택, 목욕탕 → 마당 ▹ 1930년대: 최초대장정리, 목조주택 15.91평 ▹ 1977.07.: 용도변경 점포(한의원)
조성하였다.
▹ 1981.05.: 멸실 ▹ 1981.08.: 신축 지하,1층,2층-목욕탕, 3층 주택 ▹ 2000년대: 고시텔
2015년 고시텔 전경
056
7-24
번지
7-24번지는 1974년에 새로 지어진 주택으로 2015년까지 주거용으로 계속 이용되었다. 당시 1970년대 유행하던 2층 양옥 양식 형태의 집이 었다. 현재는 마을 공유공간인 마당을 조성하였다.
19 주택 → 마당 ▹ 1930년대: 최초 대장정리, 주택 17.94평 ▹ 1933.06.: 지하층 6평 용도변경 물치 ▹ 1974.05.: 멸실 ▹ 1974.07.: 신축 지하층, 1,2층
7-24번지 전경
057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5-4
번지
5-4번지는 1930년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영업용 목조건물이 있 던 곳으로 이후 주택과 점포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의약분업이후 ‘하 나약국’이 2015년까지 운영되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1층은 2개의 공간으로 분할되어 오른쪽은 ‘상미식품’이라는 조그만 구멍가게같은
20
서울시 종로구 송월길 12
영업용 → 주택 → 점포 → 녹지 ▹ 1935.02.: 5번지에서 분할 ▹ 1940년대: 최초 대장정리 2층 영업용 목조건물
소매점이 왼쪽은 ‘하나약국’이 있었으나 이후 ‘하나약국’이 확장하여
▹ 1962.10.: 주택으로 용도변경
공간을 전부 사용하였다. 현재는 녹지공간으로 조성하였다.
▹ 1977.06.: 일부 멸실 ▹ 1983.03.: 근생(점포)로 용도 변경 ▹ 2000년대-2015: 하나약국/상미식품
2015년 하나약국 전경
058
6, 6-3
번지
6번지는 1935년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이 회사를 확장하며 세운 석 조 건물을 그대도 둔 채 확장하고 개조하는 방식으로 현재까지 이어 져왔다. ‘유한양행’은 1962년에 신대방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27년간 본사로 이용하였으며 이후 석탄과 연탄 사업으로 회사를 확장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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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송월길 2, 송월길 10
영업용, 사무실 → 도시건축센터 ▹ 1935-1962: 유한양행 ▹ 1962-2013: 강원산업/인천제철/현대제철
‘강원산업’의 본사건물로(2000년이후 인천제철, 현대제철로 합병) 운
▹ 1977.02.: 6-3번지 증축
영하였던 곳이다. 옛 성곽길을 따라 형성된 이 곳은 우리나라에 근대
▹ 1990.07.: 6번지 증축
적 의미의 회사가 1930년대부터 최근까지 꾸준히 사무공간으로 이용 되었던 역사성을 가진다. 대로변과 접한 부분은 한때는 따로 세를 주 어 병원 세탁을 주로 맡아하던 세탁소, 구멍가게, 중고 LP판매점, 왕 만두 가게, 김원희 약국 등의 점포가 있었다.
2015년 6번지 일대 전경(좌,우)
1930-40년대 유한양행 전경(좌,우)_ 유한양행 제공
059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7-33, 34-2
번지
7-33번지와 34-2번지 두 공간은 원래 각자 주택으로 오랫동안 사용 되다 2000년 전후로 식당으로 용도가 변경되면서 하나의 공간으로 이 어진 것으로 보인다. 1998년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이탈리안 레스토 랑 ‘아지오(AGIO)’로 운영되었다. 아지오 운영자는 28번지에 있는 이
22
서울시 종로구 송월길 35-54, 송월길 35-52
주택 → 대중음식점 → 돈의문 전시관 ▹ 1932.08.: 7-33번지 7-1번지에서 분할 ▹ 1911.11.: 34번지 미국인 존카바노프 소유
탈리안 레스토랑 ‘비스(BIS)’를 개조한 뒤 이곳에 동일한 이탈리안 레
▹ 1918-1939: 34번지 일본인 소유
스토랑을 열어 두 건물의 내부 개조가 유사점이 있다. 주택의 외형을
▹ 1955.09.: 34번지 토지분할(34-2)
유지하면서 내부를 식당이나 카페로 리모델링하는 방식은 당시에는
▹ 1955.09.: 34번지 국가소유
드문 형태로 이색적인 유럽풍 인테리어와 어우러져 데이트 코스로 인
▹ 1955.12.: 34번지 2층 연와조평옥재 주택 신축
기가 많은 곳이었다.
▹ 1956.06.: 7-33번지 목조와즙 주택 등재 ▹ 1967.03.: 7-33번지 전부 멸실 ▹ 1967.11.: 7-33번지 연와조스라브 주택 신축 ▹ 1998년–2000년대 후반: 7-33번지, 34-3번지 아지오(AGIO)
2015년 아지오 전경, 내부
2015년 아지오 전경
060
33
번지
33번지는 1965년에 신축된 주택으로 1990년에 주택과 대중음식점으 로 용도변경을 하여 1990년부터 2015년까지 25년간 ‘한정’이라는 식 당으로 운영되던 곳이다. 1층은 주택으로 이용시 기존 구획된 방의 공 간감을 비교적 그대로 살렸으며 2층은 단체손님을 위해 넓게 확장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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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송월길 35-50
영업용 → 주택 → 주택, 대중음식점 → 돈의문 전시관 ▹ 1940년대: 일본인소유, 영업용 목조초즙 ▹ 1946.12.: 등기등재
조하여 운영하였다. 영업시간이 끝난 후에는 운영자의 거주 용도로
▹ 1950.09.: 멸실
사용하여 안방같은 경우에는 살림살이와 식사공간이 어우러져 있기도
▹ 1965.10.: 신축
하였다. ‘불란서식 주택’으로 불리던 1960-70년대 유행하던 2층 양옥
▹ 1990.12.: 주택,대중음식점으로 용도변경
양식으로, 곡면으로 처리된 창호와 경사지붕없이 조성된 지붕의 채광
▹ 1990.12.-2015.11.: 한정
구멍 등 독특한 요소를 지닌 건물이다. 주변 일대 관공서나 회사에서 손님접대용으로 자주 이용하던 식당으 로 전라도식의 깔끔한 한정식과 홍어찜이 인기 메뉴였다. 이곳에 오랫 동안 마당을 꾸미던 괴석은 경희궁의 흔적으로 밝혀져 서울역사박물 관에 기증하기도 하였다.
2015년 한정 전경
2015년 한정 내부
한정식 상차림
메뉴판
061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36-2
번지
36-2번지는 194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목조 2층 건물로 이 후 소매점과 주택으로 사용되었다. 이곳은 1910년대에는 부래상이라 는 프랑스 상인이 소유하던 곳이었으며, 1920년대에는 자동차를 판매 했던 미국인 W.W.테일러가 소유자로 기록되어 있어 돈의문 박물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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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41-8
주택 → 소매점 → 돈의문 전시관 ▹ 1910년대: 프랑스인 상인 부래상 소유 ▹ 1920년-1940년대: 미국인 W.W.테일러 소유
을에 외국인의 거주 혹은 소유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부래상은 정
▹ 1949.09.: 36번지에서 36-2번지로 분할
동 부근에 시탄시장을 운영하면서 나무장수들에게 양탕국이라 불리
▹ 1947.10.: 목조와즙 2층 주택 등기등재, 일부멸실
던 커피를 제공하며, 민간에게 커피를 보급시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오 고 있다.
36-2번지 전경
062
32-1
번지
32-1번지는 193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로 여러 번의 증 축을 거쳤다. 2000년부터 2014년까지 14년간 ‘연정가’라는 식당으로 운영되었는데 즉석 순두부찌개와 대구매운탕이 주요 메뉴였다.
25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35-48
주택 → 대중음식점 → 편의시설 ▹ 1922.09.: 32-1,32-2로 분할 ▹ 1920년대-1940년대: 일본인소유 ▹ 1954.01.: 국가소유 ▹ 1970.10.: 증축 ▹ 2000.08.-2014: 연정가
2015년 연정가 전경(좌,우)
내부(좌,우)
063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37
번지
37번지 일대는 1977년 지하1층과 지상2층인 현재의 형태로 새롭게 세 워졌다. 신축 당시에는 주택과 점포가 공존하는 형태로 사용되다가 1991년에 점포와 사무실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1980년대에는 ‘아이템 플 예비교사 연구회’ 본사 사무실로 운영이 되다가 여러번 용도가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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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41-6
주택, 점포 → 점포, 사무실 → 돈의문 전시관 ▹ 1910년: 독일인 A.E.칼리즈키 소유 ▹ 1920년-1930년대: 일본인 소유
뀌었다. 1층과 지하는 ‘한식뷔페’, ‘이조순대국’, ‘고인돌 생선구이’ 등
▹ 1923.05.: 38,38-1,39번지와 합병
의 식당이 운영되었으며 2층에는 ‘란과 생활’이라는 잡지사 사무실로
▹ 1956.09.: 목조와즙 주택 신축
사용되었다.
▹ 1977.02.: 멸실 ▹ 1977.06.: 신축 지하1층, 2층건물 (주택, 점포) ▹ 1980년대: 아이템풀 예비교사 연구회 ▹ 1991.11.: 용도변경 지하1층,1층(점포), 2층(사무실) ▹ 2008.12.-2013.05.: 1층 이조순대국 ▹ 2010.06.-2013.05.: 지하1층 고인돌 ▹ ?- ?: 란과 생활
2015년 이조순대국 전경
2015년 고인돌 전경
064
30-1
번지
30-1번지는 대부분의 건물이 식당으로 바뀐 돈의문 박물관마을에서 몇 안남은 주택 중 하나로 1956년에 신축되어 주택으로 오랫동안 사 용되었다. 마지막 거주자는 신문로 1가 흥국생명 일대 재개발로 밀려 나 이곳에 와서 정착하여 삼대가 함께 거주하였다. 이곳에서 아들이 태어나고 어머니를 여읜 곳이라 애착이 많았다. 한옥과 서양·일본식의
27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35-44
주택 → 도시건축센터 ▹ 1956.10.: 목조와즙 주택 2층 신축 ▹ 1970.10.: 증축 ▹ 1956-2015: 주택
건축 기법이 다양하게 섞여있으며 내외부의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한 편이다.
마당/ 부엌 내부
2015년 30-1번지 전경
065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31
번지
28
31번지는 1955년에 증축된 목조 건물로 주택으로 사용하다 대중음식 점으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13년간 ‘미르’라 는 식당으로 운영되었다. 직접 담근 간장게장 정식과 미리 전화주문을 해야 먹을 수 있던 홍합밥 정식, 가자미 식해 등이 주요 인기메뉴였다.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35-40
주택 → 대중음식점 → 편의시설 ▹ 1930년대-1940년대: 일본인소유 목조와즙 주택 2층 대장등록 ▹ 1950.08.: 멸실 ▹ 1955.04.: 증축 ▹ 1956.05.: 국가소유 ▹ 2000.04.–2013.10.: 미르
2015년 미르 전경
066
27, 28, 29
번지
28번지는 1956년에 새로 지어진 주택 건물로 1994년에 대중음식점으로 용도가 변경될 때 29번지 건물을 이어서 하나의 건물로 개조한 것으로 보인다. 1994년부터 2013년 경까지 20년간 ‘비스(BIS)’라는 이탈리안 레 스토랑이 운영되었다. 주택을 개조한 레스토랑 컨셉으로 마당에는 야외
29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35-26
주택 → 대중음식점 → 편의시설 ▹ 최초 대장정리 목조초즙 주택 ▹ 1950.09.: 28번지 멸실
테이블을 두고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당시 연인들이 인근
▹ 1957.08.: 28번지 연와조와즙 주택 2층 신축
정동 극장에서 영화를 본 후 들르는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 1961.07.: 27번지 주택 신축
점심시간에는 주변 직장인들이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돈까스와 철판볶음
▹ 1994.08.: 27번지 일반음식점으로 용도변경
밥을 판매하기도 하였다.
▹ 1994-2013: 비스(BIS)
2015년 비스 전경
2015년 비스 전경
외부 와인창고
067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22-2
번지
22-2번지는 ‘서대문여관’이라는 이름으로 여관을 운영하던 곳이었다. 1984년부터 2013년까지 29년간 여관으로 운영되어오던 곳이었으나 건축물 대장상에는 주택으로만 되어 있고 용도변경을 한 적은 없다. 1950년에 가옥이 멸실되어 1955년에 새로 짓고, 1961년 현재의 건
30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41-3
주택 → 스튜디오 체험문화 공간 ▹ 1936.04.: 22번지에서 분할 ▹ 1955.09.: 신축 목조와급도단즙 주택 2층
물로 증축하였다. 1937년 신문기사에 동일한 주소인 서대문정 2정목
▹ 1961.12.: 증축
22-2에 ‘서대문여관’이 있었다는 기사가 있어 정확한 연속성은 알기
▹ 1990.06.: 22-5, 22-6번과 합병
힘들지만, 예전부터 이곳에는 숙박업에 적합한 건물이 있었음을 추정
▹ 1984.05.–2013.05.: 서대문여관
해 볼 수 있다. 주로 주변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교육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 출장용 숙소로 이용하였다고 한다. 기존의 목재와 조적, 흙 벽으로 조성된 내부를 리모델링하여 구조 안정성을 높이면서 기존의 공간감을 재현하였다. ‘서대문 여관’간판을 남겨 과거부터 지속된 마 을 풍경의 역사를 살리고자 하였다.
2015년 서대문여관 전경
068
서대문여관 관리실 내부
22-3
번지
22-3번지는 1932년에 목조 기와건물로 신축되었으며 1965년에 2층을 증축한 건물이다. 1967년에 주택에서 영업용으로 용도를 바꾸어 사용하 였다. 이곳에서 20여년간 ‘빨간콩 하얀콩’이라는 상호의 콩요리 전문식 당으로 운영되었다. 2009년 화재로 일부 공간이 소실되어 1층은 주택을
31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35-32
주택 → 대중음식점 → 편의시설 ▹ 1932.11.: 목조와즙 2층 등기등재 ▹ 1965.11.: 증축
개조하여 식당으로 2층은 주거용으로 사용하였다. 국산 콩을 맷돌로 직
▹ 1967.12.: 영업용으로 용도 변경
접 갈아서 만든 콩탕을 맑게 한 하얀콩, 김치를 넣어 매콤하게 끓인 빨
▹ ?-2000년대 후반: 빨간콩 하얀콩
간콩과 수육이 인기메뉴였다.
2015년 빨간콩 하얀콩 전경
069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25-가
번지
25-가번지는 1956년에 지어진 3층 주택으로 이후 이용원과 사무실 등 으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2016년까지 ‘노다지 깡통 생오겹살’이라는 고깃집 식당으로 운영되었는데 인근 회사원들이 저녁 회식 장소로 애 용하던 맛집이었다. 점심에는 ‘쭈삼정식’이라 불리던 삼겹살과 쭈꾸미 볶음이, 저녁은 삼겹살과 오겹살 등 돼지고기 구이류가 인기였다.
32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35-2
주택 → 주택, 근린생활시설 → 편의시설 ▹ 1956.10.: 연와조도단즙 3층 주택 신축 ▹ 1983.04.: 1층 이용원, 2,3층 주택으로 용도변경 ▹ 1983.05.: 1층 이용원, 2층 주택, 3층 사무실로 용도변경 ▹ 1995.12.: 1층 이용원, 2층 일반음식점, 3층 사무실로 용도변경 ▹ ?-2016.: 노다지 깡통 생오겹살
2015년 노다지 깡통 생오겹살 전경
070
25-나,다
번지
1970년대에 새로 지어진 주택으로 이후 1984년에 일부 공간을 더 증축 하였다.
33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35-20
주택 → 편의시설 ▹1940년대: 최초대장정리, 목조주택 ▹1950.09.: 멸실 ▹1970.07.: 주택 신축 18.94평 ▹1984.01.: 주택 증축 1동 59.52㎡
2015년 25-나,다번지 전경
071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23-2
번지
34
23-2번지는 1958년에 목조 주택으로 신축되어 1983년부터 영업용으 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2003년부터 2015년까지 12년간 처음에는 ‘삼 성원 영양탕’이란 상호의 식당으로 영양탕과 삼계탕을 팔다가, ‘경희 마루’로 이름을 바꾼 뒤 삼계탕과 생선구이 정식으로 메뉴를 바꾸었다. 성인 두 명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 외부에 오븐을 두어 점심시간에 바쁘게 생선을 굽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메뉴간판 / 내부
2015년 경희마루 삼계탕 전경
072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35-16
주택 → 영업용 → 편의시설 ▹ 1958.09.: 목조와즙 주택 신축 ▹ 1983.05.: 영업용으로 용도변경 ▹ 2003.03.-2015.12.: 경희마루
20-1
번지
20-1번지는 2008년 ‘쿠이’라는 돈까스를 주로 한 음식을 파는 식당이 었다가, 같은 운영자가 내부공간을 수리하여 ‘LP BAR’라는 간단한 음 료 접대 및 음악을 틀어주는 카페 형태로 2015년까지 운영되었다. 그 이전에는 1964년부터 1990년대 말까지는 ‘창조사’라는 출판사가 운
35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20-1
주택 → 대중음식점 → 편의시설 ▹ 1951.01.: 20-1번지 목조와즙 멸실 ▹ 1954.08.: 20-2번지 최초대장정리
영되었다. 대표였던 최덕교는 『학원』지의 편집장과 주간을 맡은 시절
▹ 1964-1990년대 말: 창조사
부터 고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후원활동을 꾸준히 하여, 이곳에
▹ 2008–2015: 쿠이/LP BAR
감사인사를 하러 들르는 인사들이 많았다고 한다. 마을로 들어오는 계단을 올라오면 만나게 되는 회화나무와 느티나무 가 있는 마당을 가진 건물로 카페에서 잔잔히 나오는 음악소리와 겨 울철이면 쌓여있던 연탄 등 도심속에서 향수를 자극하는 분위기를 지 닌 곳이었다.
2015년 LP BAR 입구
2015년 LP BAR 전경
073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17-1
번지
17-1번지는 2001년에 대수선을 한 건물로 원래는 점포들이 있던 3층 건물이었는데 근린생활시설로 용도를 변경하였다.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지만 1990년대에 ‘천우식품’이라는 슈퍼와 화장품가게, 레코드 판재점 등 소매상이 있었다고 한다. 의약분업이 시행된 후 ‘한사랑약
36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35
공장→ 점포→ 근린생활시설 → 편의시설 ▹ 1910년대: 중국인 소유 ▹ 1920년대: 일본인 소유 / 최초대장정리 연와조와즙 공장 2층
국’이 1층 공간을 넓게 확장하고, 2,3층에 ‘한사랑의료기’라는 의료기
▹ 1938.12.: 점포 3층 연와조와즙 등기등재
판매점을 운영하였다.
▹ 1950.09.: 멸실(공장, 2층) ▹ 1977.01.: 일부수용멸실 3층 점포 ▹ 1990년대: 소매상 (슈퍼, 화장품, 치킨집, 간판가게 등) ▹ 2001.03.: 대수선(와즙→평스라브), 근린생활시설로 용도변경 ▹ 2004.02.: 창고용 무단증축 ▹ ?-?: 한사랑약국
2015년 한사랑약국, 한사랑 의료기 전경
074
18-1
번지
18-1번지는 1985년에 현재와 비슷한 형태로 건물이 지어져 여러 점포 가 운영되었다. 가로변과 맞닿아있는 1층은 여러 개의 공간으로 나뉘 어져 사용되었다.
37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37
점포, 사무실 → 편의시설 ▹ 1910년대: 일본인 소유 ▹ 1930년대: 조선농공주식회사 소유
1층 오른쪽에 위치한 ‘서대문 의수족 보조기’는 1970년대부터 40년 넘
▹ 1970년대-2015.12.: 1층 서대문의수족
게 운영되던 곳이었다. 광화문과 신문로 주변에는 많은 의수족가게들
▹ 1985.04.: 2층 콘크리트 건물 신축
이 분포하고 있었는데, 주변 일대가 개발되면서 현재는 서울역 주변 등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고 유일하게 번화가에 남은 의수족 가게였다. 1층 왼쪽 공간에는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삼성마트’라는 조그만 슈
▹ 2000-2015: 1층 삼성마트 ▹ 2009-2015: 1층 명품호두 ▹ ?-2015: 2층 자연건강백화점
퍼마켓이 15년간 운영되었다. 슈퍼이전에는 인쇄소로 운영되었다고 한다. 삼성병원이 인근에 있어서 그 이름을 따서 지은 슈퍼마켓은 인 근 회사원, 병원 방문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편으로 갑작스레 병원에 입원하게 된 사람들을 위한 생활용품도 구비하고 있었다. 2009년에 슈퍼마켓의 일부를 분할하여 호두과자 판매점을 운영하였 는데, 병문안 선물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2층에는 2015년까지 건 강보조식품을 파는 ‘자연건강백화점’이 운영되었다. 서대문 의수족 보조기 내부
삼성마트 내부
2015년 삼성마트, 서대문 의수족 보조기 전경
075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19-7
번지
19-7번지는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는 건물로, 2014년까지 ‘감미’ 라는 가정식 백반식당이 운영되었다. 김치찌개나 된장찌개같은 백반 류부터 라면이나 쫄면 등 분식류까지 저렴하고 다양한 메뉴를 갖추고 있어서 주변 직장인들이 와서 식사하기 편한 공간이었다. 2개의 공간 으로 분할되어 왼쪽의 작은 공간은 ‘감미’가 오른쪽은 ‘사카야’라는 일 식 주점이 있다가 이후 공간을 터서 ‘감미’가 사용하였다.
2015년 감미 전경
076
38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39
점포 → 편의시설 ▹ 1971.04.: 19-1번지에서 분할 ▹ 2000년대 초–2014: 감미
19-1
번지
19-1번지는 1960년에 신축된 3층의 철근 콘크리트 주택이었다. 1977년 에 1층은 점포, 2층은 한의원(접골원), 3층은 점포(의원)으로 용도가 변 경된 후 1998년에 1층은 부동산 중개업과 점포 2,3층은 점포로 다시 용 도변경을 하였다.
39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39-1
주택 → 점포 → 접골원, 의원 → 점포 → 편의시설 ▹ 1910년대: 프랑스인 소유 ▹ 1920-30년대: 일본인 소유 ▹ 1939.11.: 목조와즙 주택 대장정리
1층은 1996년부터 2009년까지 직장인들이 퇴근 후 즐겨찾는 ‘와바’라는 맥주전문점이 있었으며 2009년부터 2014년까지 2개의 공간으로 분할하 여 ‘예성부동산’과 ‘커피 다이어리’라는 테이크아웃 커피숍이 있었다.
▹ 1950.02.: 19-5번지에 영업용 목조와즙 2층 신축 ▹ 1950.09.: 전부 멸실(19-1,19-5) ▹ 1960.10.: 신축 주택 2층 (이후 3층으로 표기정정)
2층은 접골원이 있던 곳으로 이후 미용실이나 교복집, 피부관리실 등 다
▹ 1977.07.: 1층 점포, 2층 한의원(접골원), 3층 점포(의원)으로 용도변경
양한 직종의 점포가 운영되었다. 돈의문 박물관마을과 주변일대는 오래
▹ 1977-2000년대 후반: 동서한의원
전부터 도심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동네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접골원
▹ 1996.11-?: 1층 와바
과 한의원, 의수족 가게가 있던 평범한 일상의 풍경으로 기억하는 이들 이 많은 편이다.
▹ 1998.04.: 1층 부동산중개업, 점포, 2,3층 점포로 용도변경 ▹ 2009.08.-2014.07.: 1층 커피다이어리
3층은 1977년부터 한의원이 운영되었다. 원래 의원을 운영하던 입학동기 에게 자리를 이어받은 한의사가 ‘동서한의원’이라는 한의원을 2000년대 후반(2005년 추정)까지 운영하였다.
2015년 19-1번지 전경
077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40
번지
40번지는 1955년에 새로 지어진 목조 2층 건물로 2014년까지 ‘봄샘’ 이라는 생선구이 식당으로 운영되었다. 이전에는 ‘임가네 이동숯불갈 비’라는 고깃집이 있었다. 서류상의 용도변경은 없었으나 식당의 사용 공간을 넓히기 위해 일부 공간을 개조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식
40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43-20
주택 → 대중음식점 → 편의시설 ▹ 1920-30년대: 일본인 소유 ▹ 1930년대: 최초대장정리 목조와즙 주택 2층
당 출입구가 주요 골목에서 조금 들어간 안쪽에 있는데, 이 공간에서
▹ 1950.09.: 멸실
생선을 구워 준비하였다. 점심시간이면 바삭한 생선구이 정식과 된장
▹ 1955.06.: 목조 주택 신축 지하 1층, 지상 2층
찌개 등 백반 메뉴를 제공하고 저녁에는 동동주와 곁들이는 홍어삼합
▹ ?-?: 임가네 이동숯불갈비
이 인기였다.
▹ ?-2014: 봄샘
2015년 봄샘 전경
078
41
번지
41번지는 1959년에 새로 지어진 목조 2층 건물을 1976년에 지하와 2 층을 개축하여 대중음식점과 주택으로 이용하였다. 2000년부터 2015 년까지 16년간 ‘안동회관’이라는 이름으로 한정식 식당이 운영되었다. ‘안동회관’은 원래 신문로2가 1-402번지에서 중국음식점인 ‘안동장’을
41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41-2
주택 → 점포→ 주택, 대중음식점 → 편의시설 ▹ 1950.09.: 멸실 ▹ 1959.12.: 주택으로 등기등재
1984년부터 운영하다 한정식으로 메뉴를 바꾸어 이곳으로 이전하였
▹ 1959.12.: 점포로 용도변경
다. 안동출신이 아닌 전라도 부부가 ‘안동장’이라고 상호를 지은 것은
▹ 1976.03.: 부분멸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식당 ‘안동장’(서울미래문화유산)처럼 유명
▹ 1976.09.: 개축
해지고 싶은 마음에서 였다고 한다. 점심에는 버섯불고기, 뚝불고기나
▹ 1983.11.: 주택, 대중음식점으로 용도변경
된장찌개 등 가벼운 백반류를 팔고, 저녁에는 한우와 삼겹살 등 고기
▹ 2000.12.–2015.10.: 안동회관
구이류를 파는 곳이었다.
2015년 안동회관 내부
2015년 안동회관 전경
폐업인사
079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43
번지
43번지는 1958년에 새로 지어진 목조 주택으로 1980년대에 한의원으 로 사용되다 대중음식점으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봄샘’이 운영되다 40번지로 이전하였고 2000년대 중후반에는 ‘서림정’이라는 식당으로 운영되었다. 이후 옆의 돈까스 백반 식당이 확장하여 함께 사용하였다.
42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43-18
영업용 → 주택 → 한의원 → 대중음식점 → 편의시설 ▹ 1930년대: 최초대장정리 영업용 목조와즙 ▹ 1950.09.: 멸실 ▹ 1958.10.: 목조와즙 주택 신축 ▹ 1982.03.: 한의원으로 용도변경 ▹ ?-?: 봄샘 ▹ ?-?: 서림정/ 돈까스 백반
2015년 서림정 전경
080
44-가
번지
44-가번지는 1950년대에 새로 지은 목조 건물로 2000년대 중반부터 2013년까지 ‘돈까스·백반’이라는 식당이 운영되었다. 원래는 설렁탕을 팔던 곳이었으나 반찬으로 나오는 돈까스 반찬이 유명해지면서 돈까 스 백반집으로 바꾸었다. 돈까스를 반찬처럼 무한으로 먹을 수 있는 장점과 함께 된장찌개와 한식 반찬을 제공하는 독특한 구성으로 인근
43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43-16
주택 → 대중음식점 → 편의시설 ▹ 2003.12.: 45번지를 44번지로 합병 ▹ ?-?: 사랑채 ▹ ?-2013.10.: 횡성한우설렁탕/돈까스 백반
회사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2015년 돈까스 백반 전경
081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44-나
번지
1957년에 새로 지어진 목조 주택으로 2005년 관련 기록에는 일반 주 택이었으나 이후 주점으로 잠시 운영된 듯 보인다. 정확한 명칭과 운 영기간은 알 수 없다.
44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43-14
주택 → 대중음식점 → 편의시설 ▹ 1920-30년대: 일본인 소유 ▹ 1930년대: 최초대장정리 목조와즙 주택 2층 ▹ 1950.08.: 멸실 ▹ 1957.05.: 목조와즙 주택 등재 ▹ 2000년 중후반-?: 주택
2015년 44-나번지 전경
082
46
번지
45
46번지는 1955년에 신축된 목조 기와 주택이었다. 2013년까지 ‘청대문’ 이라는 식당이 운영되었다. 점심에는 삽겹살 김치찌개와 고등어 찌개 등 백반류를 팔고 저녁에는 한방유황오리백숙 등을 파는 곳이었다.
주택 ▹ 1910년대-1940년대: 일본인 소유 ▹ 1930년대: 최초대장정리 목조와즙 주택 2층 ▹ 1950.09.: 멸실 ▹ 1955.09.: 목조와즙 주택 신축 ▹ ?-2013: 청대문
49
번지
46
49번지는 1965년에 새로 지어진 목조 2층 주택이었다.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43-6
주택 → 편의시설 ▹ 최초 대장정리 목조초즙 주택 ▹ 1949.06.: 멸실 ▹ 1965: 목조와즙 주택 2층 등기등재
52
번지
47
52번지는 1950년대에 사라지고 남은 일대의 목조주택을 증축하여 만 든 주택 건물로 1981년에 식당으로 용도 변경이 된 후 1999년부터 2015년까지 16년간 ‘도원’이라는 일식 식당으로 운영되었다. 참치회 정 식이 인기메뉴로 저녁 회식에 인근 회사원들이 주로 이용하는 편이였 으며, 점심시간에는 비교적 값싼 점심정식 메뉴를 따로 마련해두었다.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43-4
주택 → 대중음식점 → 편의시설 ▹ 1920년대: 일본인 소유 ▹ 1950.09.: 52-가, 52-나 멸실 ▹ 1959.01.: 목조와즙 증축 ▹ 1981.08.: 대중음식점으로 용도변경 ▹ 1999.11.-2015.12.: 도원
2015년 도원 전경
083
Ⅱ. 마을의 역사를 말하다
58
번지
58번지 일대는 1980년대까지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건물이 남아 있던 주택가였다. 주변에 주택과 점포, 석재상이 있던 곳으로 1996년에 주 변 56, 57, 58번지 일대를 합병하여 13층으로 된 경찰청 업무시설 건 물을 새로 세웠다. 1~4층까지는 2005년부터 경찰박물관이 개관하여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48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41
업무시설 → 문화집회시설, 업무시설 ▹ 1950.09.: 멸실 ▹ 1957.10.: 목조와즙 주택 등재 ▹ 1991.11.: 대중음식점으로 용도 변경 ▹ 1996.05.: 멸실 ▹ 1997.10.: 13층 콘크리트 건물 (업무시설용) 신축 ▹ 2005.07.: 문화집회시설 용도 추가, 경찰박물관 개관(10.04)
2015년 경찰박물관 전경
084
55
번지
55번지는 1963년에 신축되어 현대자동차 지점 사무실로 오랜 기간 사용 하다가 2000년부터 2015년까지 내일신문사가 15년간 업무시설로 이용 하였다.
49 업무시설 → 녹지 ▹ 1963.12.: 5층 콘크리트 건물 신축 ▹ 1980-90년대: 현대자동차 지점 ▹ 2000-2015: 내일신문사
2015년 내일신문사 전경
085
086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087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기획하기
1. 시작은 뉴타운사업 자연과 역사, 문화가 함께하는 도로와 녹지공원 2003년 2차 뉴타운 계획이 발표될 당시 돈의문 박물관마을 일대는 서울성곽 복원을 고려한 녹지축을 형성하는 녹지근린공원과 마을을 지나는 도로를 조성할 예정이었다. 인왕산 자락을 따라서 사직터널에서 경희궁으로 이어지는 대규모 녹지축을 조성하고 녹지축 끝부분인 경희궁 앞쪽에는 문화시설이 많이 들어서 있는 정동길과 연계한 역사·문화공원 등 인왕산 녹지축을 따라 공원 2곳을 조성할 예정이었다.
교남뉴타운 계획의 기본방향 및 목표 1) 인왕산 숲을 도심 주거 생활 안으로 • 인왕산의 자연을 도심으로 연장한 녹원도시 주거공간을 형성 • 경희궁으로 이어지는 녹지공간은 새롭게 형성될 녹원도시와 시민공원으로 확장 • 인왕산 녹지와 연결된 서울공원축을 조성 • 천연냉천지구와 연접한 대규모 자연녹지조성으로 서대문역 생활권 녹지중심을 형성 2) 서울 도심 역사·문화·환경 자산 확충, 시민의 접근성 확보 • 서울시청 광장에서 정동문화벨트를 연결하고 살아있는 역사·문화공간 계획 • 자연·문화·의료 중심에 위치한 건강한 생활을 지향하는 well-being 주거단지의 조성 3) 보행중심 도심주거거점 조성 • 역세권과 연계한 연접부 도심기능 활성화 • 서대문역과 독립문역을 잇는 의주로변을 노선상업지역으로 개발 • 성곽 공원녹지축과 의주로 상업몰을 연결하는 공공보행공간 네크워크 조직 • 주거지와 주변 도시공간에서 성곽 녹지축으로 보행 및 시각 접근성 확보
088
도로 및 공원·녹지 계획 _ 2004년 개발기본구상(안)
공원·녹지
구분
위치
면적(㎡)
합계
5개소
15,568
공원
홍파동 10-4번지 일원
3,201
공원
신문로2가 37번지 일원
10,070
공원
교북동 10-38번지 일원
490
공원
교남동 10번지 일원
834
완충녹지
평동 108번지 일원
973
토지이용 계획도_ 『서울시 뉴타운사업 7년간의 기록』, 서울시 간행물, 2010
089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2. 역사문화공원으로 변경 마을의 근현대 건축, 한옥이 보존된 역사공원 교남동과 신문로2가 일대는 2003년 교남뉴타운으로 지정된 후, 2004년 개발기본구상(안)이 발표되고 2006년에는 돈의문뉴타운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2014년 4월 관리처분계획인가 후, 서울시는 2013년 12월 13일 당시 돈의문 1구역은 이주 94%, 철거 44%가 진행중이던 중 돈의문뉴타운 1구역의 역사·문화적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공원화 예정지였던 지역의 정비계획 변경을 추진하였다. 이곳은 한양 도성의 경계를 포함하고 있어 보존이 필요한 지역이다. 또한 일대 주변에 경희궁, 경교장, 홍난파 가옥, 딜쿠샤 등 다수의 문화재가 있고 보존가치가 높은 한옥이 골목을 형성하고 있으므로 역사자원과의 조화가 필요하였다. 기존 기본계획의 문제점이었던 주변 역사자원과의 연계성의 부족과 구릉지 지형을 고려하지 않았던 전면 철거 후의 공원 조성이 아닌 근현대 건축물 및 한옥의 유형을 보존하고 문화복합 형태의 역사공원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계획하였다.
수정 기본 방향 및 목표 1) 한양도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문화관광디자인본부) • 세계적 기준에 부합할 지속가능한 성곽 보존·관리·활용계획 수립 • 문화재 지정 구간*은 유산구역과 완충구역, 미지정 구간은 한양도성 경관지구 등 도성 전 구간(18.6㎞) 보존관리구역 설정 추진 * 월암공원 구간 문화재 사적구간 편입 추진 2) 주요 역사자원과의 조화 필요 • 구역 주변 경희궁, 경교장, 홍난파 가옥 등 다수 문화재 입지 • 구역 내 보존가치가 높은 한옥 다수
변경 계획안 1) 주변 역사자원을 활용한 공원조성(신문로2가 부지) • 성곽길과 주변 역사조직의 보존(성곽 발굴작업 버퍼존 설정) • 근현대 건축물 및 한옥 유형 보존 및 문화복합 형태 조성 ※ 경찰박물관은 철거 후 전시·숙박시설로 운영 • 한양도성 탐방 및 경희궁의 역사적 정체성 확립 공간으로 활용 2) 한양도성 터를 따라가는 역사공원 조성 • 미술관, 수련시설 등 교양시설과 휴게음식점, 전망대 등 편익시설 ※ 서울시 역사공원 조성현황 : 13개소(조성8, 미조성5) (사례 : 경희궁, 선농단, 사육신 묘, 백제초기적성총, 방이동고분 등)
090
역사문화공원 계획구상 초기안_ 『돈의문 1구역 역사공원조성 기본계획』, 서울특별시·돈의문 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 2015
091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3. 마을 전체를 박물관처럼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 전면 철거후 근린공원으로 조성할 부지였던 곳은 원래의 도시조직과 오래된 건축물 등 역사문화자원을 보존·활용하여 전체를 새로운 역사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새문안동네 기본계획’으로 변경되었다. 새문안동네에는 지금까지 해왔던 전면철거형 재개발사업을 반성하고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한 새로운 지역재생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공간을 조성하고자 마을 전체가 박물관처럼 보존되는 ‘돈의문 박물관마을’로 2016년에 조성계획을 세웠다.
기본 방향 및 목표 1) 가능한 현재의 모습이 유지될 수 있도록 건물 존치 2) 돈의문 일대의 역사를 담아 동네 전체를 박물관 형태로 조성 3) 한양 도성, 돈의문 복원과 주변 역사자원 연계
계획의 조정 1) 재생박물관 → 돈의문 전시관으로 명칭 변경 기존 대상건물 중 한옥 2동(7-3, 7-4)의 노후도를 고려하여 위치를 변경하였다. 또한 보다 많은 전시 컨텐츠 수용을 위해 공간 규모를 확대하고, 유보공간이있던 구 유한양행 건물을 서울도시건축센터로 계획
당초계획안
변경계획안
유한양행 부지 : 유보 / 재생박물관 면적 : 773㎡
유한양행 부지 : 도시건축센터 / 돈의문 전시관 면적 : 1,348.34㎡
092
2) 이축한옥 조정 교남동에서 철거된 도시한옥의 공간적, 장소적 특성을 감안하여 현 위치에 이축시 현재 돈의문 박물관마을의 도시조직과 순응하여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한옥 3동을 이축
당초계획안
변경계획안
3) 철거건물의 조정 기존 건축물을 최대한 활용하여 도시조직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조정 중심미관지구 제한기준(건축선 3m 이격)에 따른 계획 조정
당초계획안
변경계획안
093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4. 주민의 의견을 듣다 사전협의체 서울시는 재개발이나 재건축 등 정비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강제 철거를 예방하기 위해 이해당사자간의 충분한 사전협의가 가능하도록 자체적으로 2013년부터 사전협의체라는 제도를 마련하여 운영하였다. 2017년부터는 도시정비조례 개정안이 통과됨에 따라 법적으로 의무화된 사항이다. 현재는 사전협의체의 운영주체가 해당 구청으로 되어 있지만, 돈의문 박물관마을 내 사전협의체가 열렸던 시기는 2015년이므로, 조합이 주체가 되어 운영하였다. 중재문제에 따라 일반세입자와 전철연(전국철거민 연합)에 가입된 세입자 2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운영하였으며, 사전협의체 운영기간 내에 중재가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은 개별 민원으로 지속적 상담과 중재를 실시하였다.
운영주체 조합(조합장, 상임이사)
운영중재 서울시, 종로구 도시개발과
운영개요 ▶ 기간:
2015.6.24.(수)~8.4.(화)
▶ 장소:
서울시 종로구 교남동주민센터 2층 회의실
▶ 대상:
22명(돈의문 박물관마을 내 이주 대상자)
▶ 횟수:
5회차(운영대상별 매주 1회씩 운영)
094
주민설명회 돈의문 박물관마을은 돈의문 뉴타운 내 공원과 도로가 조성될 예정이었던 부지를 새로 계획한 것으로, 돈의문 뉴타운 내 입주 예정 주민들을 대상으로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에 관한 계획을 설명하고 의견을 공청하였다. 기존 계획대로 도로와 공원의 조성을 원하는 주민의견에 대한 설명으로 기존계획과 대안계획의 장단점을 비교 설명하였으며,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의 의미와 기대효과에 대해 발표하였다.
운영개요 ▶ 개최일자: ▶ 장소:
2016.5.3.(화) 19:30~21:00
서울시 종로구 교남동주민센터 4층 강당
▶ 참석자:
•주민: 약 80명 •관계자(참관인) 서울시: 도시공간개선단 도시건축센터장 외 2인 종로구: 도시개발과 2인 SH공사: 도시재생본부 역사도심재생팀장
095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준비하기
1. 어떻게 마을을 구성할 것인가? 비전: 마을 전체가 살아있는 박물관 • 기존 마을질서와 풍경을 보존하는 박물관마을 조성
공간조성 계획 1) 성곽녹지(완충녹지) • 유실된 서울성곽을 기억할 수 있는 마을 녹지 • 면적: 435.21㎡ • 식재계획: 단풍나무, 살구나무 등 • 장대석포장, 노출 콘크리트 포장 2) 문화시설 • A,B블록(체험문화 공간): 도시형 한옥과 체험문화 공간의 용도에 맞는 앞마당과 뒷마당(정원, 채원) 조성 • C블록(마을마당): 새문안동네와 커뮤니티센터를 지원하는 마당 • 골목길: 기존 동네의 질서와 풍경을 보존하는 골목길 계획 • D블록(서울도시건축센터): 서울도시건축센터에서 야외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관람객이 사용하는 휴게공간으로 조성 • E블록(돈의문 전시관): 돈의문 전시관의 전시개념과 활용도, 건축물의 외장재를 고려한 포장공간으로 조성 • F·G블록: 각 건물별 용도에 맞는 정원, 생산정원, 옥상정원, 텃밭 등을 조성 • I블록: J블록의 북카페에서 활용할 수 있는 온실과 옥상정원(생산정원)으로 계획 3) 문화시설-2단계 • J블록: 도시형한옥과 어울릴 수 있는 자생수종을 활용한 정원 및 마당 계획 4) 새문안공원(소공원) • 흥화문 전면부의 입구성을 고려한 공원계획 • 면적: 727.17㎡ • 식재계획: 회화나무, 단풍나무 등 • 화강석판석 포장
096
블록별 계획도_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사업 실시계획인가 (변경1차)』, 서울특별시, 2017
097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운영 프로그램 계획 1) 창의,문화,교육 공간 창의, 도시, 문화 이벤트 프로그램 도시, 건축학교 등 교육 아카이브 프로그램 협업, 창업 지원 프로그램 2) 체험문화 공간 장기체류 중심의 프로젝트형 레지던시 아카데미 프로그램, 숙박 문화체험 프로그램 문화, 미디어 이벤트 등
공간운영 계획도_ 『돈의문 박물관마을 관리운영계획 세부기준 수립』, SH공사, 2017
098
3) 공방,식문화 공간 서울 음식(기존 콘텐츠, 컨템포러리 세계음식) 식음 프로그램 식공방(교육, 판매), 콜렉터 전시, 제작 판매 프로그램 4) 생활,소매 공간 생활기반 판매, 편의시설(가로형 근린생활시설) 5) 마당,골목 공간 새문안동네의 기존 마을 질서와 풍경을 보존 성곽과 월암공원, 경희궁을 잇는 녹지축 조성
2. 과거의 흔적을 담은 공간 (리모델링 원칙) 기존의 도시조직(골목길, 필지, 지형 등)의 보전 및 활용
골목길
필지
지형
기존의 가치를 드러내고, 흔적을 보존(보전) • 주변 상황의 변화를 거치면서 주택들이 소규모 음식점과 카페로 변화 • 변화 과정 속에서 개별 건물 공간의 진화와 변태에 대한 가치 판단 건강한 진화는 적극 활용하여 리모델링 건강하지 않은 진화는 철거하여 원형을 복원
개별 임대건물의 용도에 대해 확정하지 않는 느슨한 계획 • 입주자가 추가 공사를 하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마감 • 화장실, 샤워실, 설비 샤프트 등 임대자가 변경 불가능한 고정요소의 기준 마련 • 임대자의 기능과 용도에 맞게 공간활용 후, 떠날 때는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대비되는 재료와 공법 선정 • 내부 공간구성은 최대한 유지 • 과거의 흔적을 가능한 보전하되, 부득이 기능의 변경 및 신축되거나 덧붙여지는 부분은 현대적인 재료와 공법으로 시공하여 과거와 확연히 구분 • 외벽의 마감재료는 가급적 유지 • 철거 후 신축하는 건물의 경우에는 기존 건물의 규모와 형태내에서 현대적 재료 및 공법으로 신축
099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개별 건축물의 내부공간 리모델링 기준 1) 벽체 • 내부 공간 구성은 가능한 유지하고, 벽체 상태가 불량한 것은 철거 • 기존의 벽체와 신설되는 벽체는 재료나 높이 등을 구분 2) 지붕재 • 현재 설치된 기와 형태를 유지 3) 문·창호 • 기존의 목재 창호는 보완하여 활용 • 보강이 필요한 복층유리는 내부에 알미늄 창호를 추가로 설치 • 추가로 설치한 창호는 프레임을 노출 4) 천장 • 보존이 필요한 천장이 아닐 경우, 천정 마감을 제거하여 기존 슬래브 또는 지붕구조를 노출 • 노후한 목재 트러스 등 사용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철골 트러스를 교체 5) 바닥 • 기존 바닥 난방의 경우에는 기존 난방배관 제거 후 재설치하고 시멘트 몰탈로 마감 • 추후 추가적인 마감은 임대자가 설치할 수 있는 기준 마련 6) 전기·조명 • 전선, 전기관을 노출하고 조명도 노출 • 기존 천장에 설치된 사기 애자 등 전기시설물 유지
도시 인프라시설의 개선 • 전기·통신: 공중에 얽혀있는 전선의 철거 후 지중화 • 상수: 기존의 상수관로 및 옥상 물탱크 철거 • 우수·오수: 마을전체의 오수와 오수 시스템을 신설 후 개별 건축물 연결 • 정화조: 개별로 설치된 기존 정화조는 철거 후 영역별 공동 정화조 2~3개소 설치
100
3. 디자인 지침 디자인 방향 • 돈의문 박물관마을에 남아있는 시간의 색으로 시간성을 지킴 • 획일화 되지 않은 돈의문 박물관마을의 다양성을 살림 • 기존 색상과 새롭게 더해지는 색상의 조화로움
색채 디자인 1) 기존 마감재 유지 • 기존 새문안동네의 시간성을 느낄 수 있도록 유지건물의 외벽 색채 유지 • 기존 마감재가 훼손된 경우는 동일한 마감재와 색상을 사용하여 이질감을 최소화하여 복원
2) 기존 색상 복원 • 기존 건축물의 기능적 가치가 남아있지 않아 동일한 형태로 복원될 경우 기존 색상으로 복원 • 개별 건축물의 기존 색상 복원이 주변경관과의 조화를 해칠 경우에는 주변 건물의 색상을 고려하여 비슷한 명도와 채도로 복원
101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3) 새로운 마감재와 색상 • 새로 덧붙여지는 부분은 본래 마감재가 갖고 있는 고유한 색상을 최대한 고려 • 기존 마감재와 새롭게 덧붙여지는 마감재의 조화로운 차이를 고려하여 적용 • 기존 건축물의 마감재가 유지되거나 복원되는 건축물에 덧붙여지는 마감재는 따뜻한 색채계통 사용 • 신축건물과 건물의 주조색이 차가운 계열 색채일 경우 새로 덧붙여지는 마감재 또한 동일한 계통의 색상을 사용
목재
벽체
기타
창호, 문
102
4. 구조 안전진단과 철거 개요 돈의문 박물관마을은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기존 마을 내에 있던 건축물과 골목길 등의 역사와 경관은 유지하면서 낙후된 환경을 보완하고 재정비를 하여 조성할 예정이다. 기존의 건축물의 구조가 노화됨에 따라 구조적 성능이 저하되고, 용도 변경에 따른 물리적, 기능적 결함을 발견하기 위해 구조 안전진단을 시행하였다. 건축물에 발생된 성능 저하 증상을 육안 및 계측 장비를 이용하여 실시하고, 장비를 이용하여 주요 부재에 대해서 비파괴 조사를 실시하였다 ▶ 대상: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2가 6-가~49번지 돈의문 박물관마을 건물
▶ 의뢰자:
서울주택도시공사
▶ 조사기간: ▶ 시행사:
2015년 12월 8일~2016년 3월 6일
㈜경재구조엔지니어링
▶ 조사방법:
분류 문헌분석
외관조사
세부수행 •각종 구조설계 기준 및 규준 검토
•기둥, 보, 벽체, 슬래브 및 기타 부재의 제원조사 •부재별, 위치별 상태조사 (균열, 박리, 백태, 누수 등) •균열유무, 균열의 진전 상태, 변형 특성 •Schmidt Hammer를 이용한 각 구조부재의
구성재료의 강도 및 손상상태 평가
콘크리트의 강도 및 물성 평가 •페로스캔을 이용한 철근의 위치점검 및 배근 상황 조사 •건물의 기울기 조사
주요부재의 구조적 성능점검
건물구조의 안정성, 사용성 평가
•육안관찰에 의한 각 부재의 구조적 성능보유 점검 •구조적 안정성 예측
•안전진단결과의 종합평가
103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조사과정 조사는 크게 현장조사와 구조 안정성 검토로 나눌 수 있다. 현장조사는 건축물 외관, 부재 치수 실측, 철근 백근 탐사, 콘크리트 압축강도, 탄산화 등을 조사하며, 구조 안정성 검토는 설계도서 및 현장조사 결과를 토대로 구조 내력을 검토하고 내진성능 등을 평가한다.
외관 조사 콘크리트 구조물의 주요 성능 저하의 증상인 균열, 박락, 변형 등을 직접 육안과 이력청취를 통해 조사한다. 목조 프레임 붕괴와 슬래브 철근 노출
부재치수 실측 대상 건물의 지하부터 지붕층 바닥까지 구조부재에 대해 줄자나 레이저 거리측정기 등의 계측장비를 이용하여 단면치수를 조사한다. 40번지 지상2층 보 실측
철근 탐사 철근 탐사기(FERROSCAN)를 사용하여 기둥 및 보, 슬래브의 철근 배근상태를 조사하는 과정이다. 종·횡방향의 철근간격에 대하여 조사한다. 34-2번지 지붕층의 보 철근 탐사
104
콘크리트 압축강도 조사 콘크리트 건물의 손상을 막기 위해 비파괴 검사시험 방법 중 널리 사용되고 있는 반발경도법을 시행하였다. 콘크리트의 표면을 해머로 타격하여 표면의 손상정도나 반발정도를 측정하는데 슈미트 해머(Schmidt Hammer)법이 널리 사용된다. 33번지 지붕층 바닥 슬래드 콘크리트 강도조사
콘크리트 탄산화 조사 콘크리트 절단면 또는 절취 콘크리트 공시체의 표면에 탄산화 깊이 측정용 시약을 분무하고 콘크리트 표면으로부터 붉은 착색부까지의 거리를 mm단위로 측정한다. 6-3-다번지 지상1층 기둥 탄산화 조사
수평변위 조사 수평변위(기울기)는 발생된 변형이 구조물의 기능 및 구조 내력적 측면에서 구조물에 끼칠 영향 및 현재 변형의 진행성에 중점을 두면서 조사하였다. 건물의 수평변위 조사
철근부식도 조사 콘크리트 내부의 철근부식에 대한 상태를 평가하는 것이다. 6-3-다번지 기둥의 철근부식 조사
105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건물별 구조진단 건축물의 종합평가등급은 상태평가 및 안전성평가의 결과를 종합하여 판정하며. A~E등급의 5단계로 구분하여 매긴다. 돈의문 박물관마을 대부분의 건물이 D등급(미흡)으로 주요부재에 결함이 발생하여 전체적인 보수.보강이 필요하며 사용제한 여부를 결정하여야 하는 상태가 많은 편이었다. 일부 건물은 E등급(불량) 판정을 받았는데 주요부재에 발생한 심각한 결함으로 인하여 건축물의 안전에 위험이 있어 즉각 사용을 금지하고 보강 또는 개축이 요구되는 상태였다. ▶종합평가
106
결과표
평가대상건축물(지번)
상태평가(등급)
안정성평가(등급)
종합평가(등급)
6-가,나,다
D
D
D
6-3-나
D
D
D
6-3-다
C
D
D
7-12
D
D
D
7-13,14
D
D
D
7-33
C
D
D
8-1
C
D
D
22-2
D
D
D
22-3
D
D
D
27,28,29
D
D
D
31
D
D
D
32-1
E
E
E
34-2
C
D
D
37
C
D
D
43
C
D
D
44-가
D
D
D
41
C
D
D
33
C
D
D
35-2 외 2필지
D
D
D
7-11
D
D
D
7-18
D
D
D
7-19
D
D
D
49
E
E
E
7-22
C
D
D
19-1
C
D
D
19-7
C
D
D
23-1
D
D
D
23-2
D
D
D
40
D
D
D
52
D
D
D
건물철거 돈의문 박물관마을은 기존의 전면 철거 후 조성 방식이 아닌 현재의 건축물과 마을길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조성되는 마을이다. 하지만 안전진단 후 노후되고 변형이 심해서 안전에 위험이 있는 건물은 철거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기존에 밀집된 건물 사이에 공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마을 건물과의 조화, 활용도, 안전도 등을 고려하여 일부 건물이 철거되었다. 보전가치가 있는 건물 중 철거가 필요한 건물일 경우는 안전성을 위해 철거를 한 후 기존 원형에 맞추어 신축하는 방향을 택하였다. 경찰박물관의 경우에는 차후 철거 예정으로 전체를 철거하기보다는 층고를 낮추는 부분 철거 방식을 택할 예정이다.
▶철거
건물 구분
건물 수
세부 위치(지번)
철거
18
신문로2가 1-402, 4, 4-3, 5, 6-3가, 7-4, 7-3, 7-23, 7-24, 34-나, 34-다, 55
부분철거 후 리모델링
1
신문로2가 58 (예정)
철거 후 신축
6
신문로2가 34-가, 32-1, 25-가, 25-다, 46, 49
합계
25
▶계획도
107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5. 땅속에 묻힌 역사, 문화재 발굴 개요 ▶ 유적명:
서울 종로구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사업부지 내 유적
▶ 조사지역:
서울특별시 종로구 송월길 20-12(신문로2가 7-14번지) 일원
▶ 허가번호:
제2016-0303호
▶ 조사면적:
시굴조사 면적(3,547.91㎡), 발굴조사 면적(536㎡)
▶ 조사기간:
2016년 3월 22일 ~ 2016년 9월 13일(*실조사일수 시굴 6일, 발굴 16일)
▶ 조사단:
한울문화재연구원
▶ 조사경과
• 2016년 3월 16일: 발굴허가(제2016-0303호, *실조사일수 5일) • 2016년 3월 22일: 1차 시굴조사 착수 및 학술자문회의 개최 • 2016년 3월 25일: 시굴조사 부분 완료(신문로2가 7-23번지, 7-24번지) • 2016년 5월 19일: 2차 시굴조사 착수 및 학술자문회의 개최 • 2016년 7월 25일: 발굴변경 허가(시굴조사 추가, *실조사일수 1일, 총 6일) • 2016년 7월 27일: 3차 시굴조사 착수 및 학술자문회의 개최 • 2016년 8월 8일: 발굴변경허가(2016-0303호, *실조사일수 16일, 총 22일) • 2016년 8월 9일: 발굴조사 착수 • 2016년 8월 12일: 발굴조사 1차 학술자문회의 개최 • 2016년 8월 23일: 발굴조사 2차 학술자문회의 개최 • 2016년 9월 8일: 발굴조사 전문가 검토회의 개최 • 2016년 9월 12일: 4차 시굴조사 착수 및 학술자문회의 개최 • 2016년 9월 13일: 발굴조사 완료 • 2016년 9월 20일: 전문가 검토회의 관련 조치사항 통보(문화재청) 2구역과 3구역 현지보존 및 활용방안 마련 • 2016년 9월 29일: 돈의문 박물관 조성사업부지 발굴조사 부분완료 통보(문화재청) • 2016년 10월 18일~10월 24일: 보존유구 보강 및 복토작업
108
시굴조사 시굴조사는 건설공사 면적 중,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유물산포지, 유적추정지) 면적의 10% 이하의 범위에서 굴토하여 매장문화재 유존 여부 확인하는 것이다. 시굴조사 범위는 ‘돈의문뉴타운 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중 경희궁의 흥화문 서측의 ‘돈의문 박물관마을(역사공원) 조성부지’로, 전체 사업면적 11,587㎡ 중 굴착 및 신축 행위가 진행되는 3,547.91㎡ 이다. 일부 건물이 철거된 곳을 순차적으로 실시하였다. 1) 범위: 전체 사업면적 11,587㎡ 중 굴착 및 신축 행위가 진행되는 3,547.91㎡ 2) 위치도
3) 조사내용 차수
위치(지번)
1차 시굴조사
신문로2가 7-23, 7-24
일제강점기 축대로 판단되는 석축 확인
신문로2가 34
근대에서 현대에 걸친 시기 건물지 확인
신문로2가 46
유구, 유물 확인 안됨
신문로2가 55, 55-2
유구, 유물 확인 안됨
신문로2가 1-402
유구, 유물 확인 안됨
신문로2가 4-3
유구, 유물 확인 안됨
2차 시굴조사
3차 시굴조사
신문로2가 2-47, 7-3, 7-4 신문로2가 7-14, 7-15
4차 시굴조사
내용
담장지, 근대건물지 확인 입사지정 1기 확인
신문로2가 25
유구, 유물 확인 안됨
신문로2가 4
유구, 유물 확인 안됨
신문로2가 5
유구, 유물 확인 안됨
도로
신문로2가 37-7번지 도로동측 일부 석렬 확인, 이외에는 유구 확인안됨
109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4) 시굴과정
7-23번지 및 7-24번지 조사 후 전경(서→동)
34번지 시굴트렌치 전경(북서→남동)
55, 55-2번지 시굴트렌치1 남벽 층위
1-402번지 전경(동→서)
7-14번지, 7-15번지 시굴트렌치 북벽 층위
110
37-7도로 동측 시굴트렌치 전경(서→동)
발굴조사
발굴조사는 시굴조사를 토대로 건설공사 면적 중,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유물산포지, 유적추정지) 면적의 2% 이하의 범위에서 굴토하여 매장문화재 유존 여부 확인하는 것이다. 시굴조사 면적 3,547.91㎡ 중 유구가 확인된 2-47번지, 7-3번지, 7-4번지, 7-14번지, 7-15번지, 34번지의 536㎡ 면적에 대하여 실시하였다. 1) 범위: 시굴조사 면적 3,547.91㎡ 중 유구가 확인된 536㎡을 3개 구역으로 구분 2) 위치도
3) 조사내용 구분
지역(지번)
1구역
신문로2가 7-14, 7-15
내용 •입사지정 1기 •경희궁의 궁장으로 추정되는 담장지 확인 담장지 동측에는 문지로 추정되는 유구 확인 담장지 남측에는 배수로, 담장지 주변에서는 주로 조선 후기에서 말기에 이르는 자기편 확인
2구역
신문로2가 2-47, 7-3, 7-4
•근현대 건물지 2기, 근대건물지 1기 근대건물지에는 조선후기에서 말기에 이르는 자기편 확인 근현대 건물지 사이에 조선 후기에서 말기에 제작된 기와를 사용하여 조성된 온돌 2기 확인 •우물 1기 확인 •북측 건물지 확인
3구역
신문로2가 34
•남측 건물지 확인 적벽돌로 조성된 아궁이, 화장실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도기호 2개가 나란히 확인
111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4) 발굴과정
2구역 추정 경희궁 궁장 전경(남→북)
2구역 추정 경희궁 궁장 전경(동→서)
112
2구역 추정 경희궁 궁장 문지(남→북)
2구역 근현대 건물지2 하부 고래 전경(동→서)
2구역 근대 건물지 하부 고래 전경(동→서)
2구역 남측 우물 전경(남→북)
3구역 근대 건물지 아궁이 전경(남→북)
3구역 근대 건물지 추정 화장실 전경(서→동)
113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복토 복토는 발굴조사가 끝난 후 흙으로 다시 덮는 것이다. 돈의문 박물관마을 발굴 구역 중 2,3구역은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심의결과에 따라 발견된 유구를 현지보존하고 향후 활용하기 위해 임시로 흙과 충전재를 덮어두어 향후 노출전시 및 활용하기까지 보존할 수 있도록 하였다. 1) 복토 범위 구분
2구역
3구역
면적
약 180㎡
약 180㎡
복토높이
약 1.2m
약 1m
복토량
180㎡×1.2m=216㎥
180㎡×1m=180㎥
2) 복토 방법 ① 복토지역 토사 반출 및 청소(기계작업+인력작업) ② 마대 만들기(인력작업) ③ 마대를 이용한 유구 보강 작업(인력작업) ④ 2차 부직포 보강 작업(인력작업) ⑤ 마사토 복토(기계작업+인력작업) - 1차 60~70cm 높이 - 복토지역 주변 마사토 운반 포함 ⑥ 기계다짐 : 상황에 따라 생략할 수 있음. ⑦ 일반 토사 복토(기계작업) - 2차 30~40cm 높이 3) 유구보강 및 복토 결과 활용 예정(안)
114
과정
2구역
발굴된 유구를 노출하여 전시
① 유구 및 주변 정리작업 → ② 유구 및 주변 모래마대로 보강작업 → ③ 1차 차광막 포장 → ④ 2차 비닐 포장 → ⑤ 3차 부직포 포장 → ⑥ 1차 모래 복토 → ⑦ 2차 모래 복토
3구역
화장실 유구를 제외하고 복토하여 보존하고 그 상부에 동일하게 재현하여 전시
① ② ③ ⑤ ⑦
유구 및 주변 정리작업 → 유구 및 주변 모래마대로 보강작업 → 1차 비닐 포장 → ④ 2차 부직포 포장 → 3차 천막 포장 → ⑥ 1차 모래 복토 → 2차 모래 복토
4) 복토과정
2구역 남측 유구 및 주변 모래마대 보강작업
2구역 남측 마사토 복토 작업
3구역 남측 1차 비닐 포장 후 전경
2구역 남측 1차 차광막 포장 후 전경
2구역 마사토 복토 완료 후 전경
3구역 남측 3차 천막 포장 작업
115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출토유물 •주요 출토유물: 백자접시편 외 34점 •출토유물 시대: 조선~근대
1구역 출토 백자청화‘壽福’문발편
1구역 출토 백자투각팔괘문뚜껑편
2구역 궁장 출토 백자녹유다채문접시편
2구역 궁장 출토 청기와편
2구역 궁장출토 수키와편
2구역 우물 출토 백자청화운문호저부편
116
2구역 근대건물지 출토 백자다채문저부편
3구역 출토 백자청화양각국화당초문발편
3구역 기단 출토 백자청화화조문변기편 내부
3구역 기단 출토 백자청화화조문변기편 외부
3구역 기단 석렬 출토 백자청화초화문변기편
3구역건물지 출토 도기음각문구연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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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만든 이야기 : 마을의 기억을 잇다
1. 설계구상 기억의 저장고, “새문안동네” 글_ 돈의문 박물관마을 설계 건축가 민현식(기오헌 대표)
기억의 저장고로서의 건축과 도시 기억을 실어 나르는 ‘매체’(媒體 media)는 밀랍판에서 양피지로, 현대에 들어서면서 사진, 영화 그리고 컴퓨터로 진화되었다. 그것들이 박물 관, 기념관, 기념물 및 기념비, 문학작품을 비롯한 각종 텍스트, 신화와 종교적 제의, 문서보관소 등의 형식에 저장됨으로써 기억이 제도적 으로 공고화되고 조직적으로 전승되어 왔다. 그러나 현장에서 오감을 통한 직접 체험의 인상들은 단순히 누군가를 통해서 듣거나, 다른 매 체를 통하여 받게 되는 느낌들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깊게 각인된다는 것을 누구나 공감한다. 이런 뜻으로 건축(공간과 장소)은 그 모든 매 체나 형식을 능가하는 기억의 저장고일 뿐 아니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기억 그 자체다.
‘새문안동네’는 서울의 근대적 삶이 실제로 어떠했는가를 읽어낼 수 있는 흔적들을 고스란히 보전(保全)하고 있는 특별한 장소이다.
118
모더니즘 그리고 ‘창조적 파괴’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 낳은 근대는 과거와는 철저하게 단절한 ‘새로운 것의 창조’라는 화두가 지배했던 시대였다. 세계를 과거와 상관이 없거나 과거가 끼어들더라도 그것을 지우고 새로운 것을 기록하는 백지(白紙 tabula rasa)로 보았다. 따라서 근대는 온건하고 민주적인 것 이든, 혁명적이고 권위적이며 상처를 남기는 것이든, 종류를 불문하고 항상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가 선행되었다. 수많은 아 방가르드들이 ‘새로운 것’, ‘다른 것’이라는 지고의 가치를 획득한다는 명분으로 기존의 것들을 파괴했다. 거기에 모더니즘의 건축과 도시가 앞장섰다.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발은 기존의 것(기억)을 싹 쓸어내어 백지를 만든 다음, 거기에 ‘새로운 건축과 도시’를 세 웠다. 지금 막바지에 이른 ‘돈의문 뉴타운’ 역시 창조적 파괴에 의해 개발이며, 아직도 자행되고 있는 우리 건축과 도시의 현실적 전형이다. 그러나 어떤 사회질서도 기존의 여건 속에 이미 잠복해 있지 않던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즉 새로운 것의 특징들이 기존의 상태에 이미 현존하지 않고서는 변화할 수 없으며, 철저한 단절처럼 보이는 것 아래에 깔려있는 깊은 연속성을 간파할 필요가 있다. 모든 기억을 지워버 린 근대건축과 도시가 크게 비판을 받는 것은, 바로 건축과 도시는 하나의 사물(a thing)로 물상화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a process) 이기 때문이다.
119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우리가 ‘새문안동네’를 주목하는 이유 이곳은 동네 자체가 마치 박물관과도 같이 지난 100여년의 도시적 삶의 물질적, 비물질적 유물들이 그득하다. 경희궁 담장, 한양도성 그리 고 새문안로로 구획된 ‘새문안동네’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도시조직의 물리적 요소들, 즉 골목길로 이어지는 소단위 필지에 건조된 축조물들 은 당대를 대표하는 도시의 토속건조물(urban vernacular)들이다. ‘건축가 없는 건축’을 주목했던 버나드 루도프스키(Bernard Rudofsky) 의 표현대로라면, ‘전통적인 계보에 기록되지 않은 족보 없는 서자(庶子) 건축’으로 건축역사에서 소외되고 외면되었다. 이곳은, 30년대의 일 식주택, 60년대까지 도시주택을 담당했던 (도시형)한옥, 7-80년대의 세칭 ‘슬라브집’, ‘불란서식 집’ 등 근·현대의 ‘집장사집’들과 그것들의 변형들이 골목길을 따라 조직되고 100여년 진화를 거듭하며 변모되어온 이 땅의 기록된 기억들이다. ‘새문안동네’를 구성하고 있는 도시형 단독주택들이 연접 도시적 상황의 변화와 필요에 따라 내부는 주거에서 용도 변환되어 대부분 식음료 점(식당 및 카페)들, 여관 등이 들어섰고, 새문안로변에는 소규모 석공장들과 의족의수점포들이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에 기생하는 약 방(의약분리에 의해 약방들의 생태에 큰 변화가 있었다)들과 도로변 작은 점포들로 변환되었다. 60년대의 잔재인 의수·의족 점포가 아직도 하나 남아있는 것이 기이하며, 경찰박물관 건물과 내일신문사는 별다를 표정 없는 도시대로변의 통상적 풍경이다. 진화와 변태는 주변의 도시상황의 변화에 종속되어 있다. 일제의 식민지경영방침에 의한 경성근대화 과정 중에 경희궁은 크게 훼철되어 ‘경 성중학교’(조선총독부학교)로, 전찻길 복선화를 이유로 돈의문과 성곽이 사라졌으며, 연접한 광화문 지역과는 달리, 서대문지역은 상대적 으로 개발에서 외면되어, 돌 가공장(加工場)과 의수의족점포, 접골원 등으로 채워졌던 이곳은 60년대 말에 이르러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 원) 개원(1968/1994 삼성의료원으로 편입)과 문화방송국 정동사옥(1969/설계 김수근) 건립으로 개발되기 시작하여, 80년대 서울고등하교 이전, 서울역사박물관 개관, 경희궁 복원 그리고 현재 돈의문 뉴타운 개발 등으로 획기적인 변화의 중심에 있다. 이러한 과정을 지나오는 동안, 개발에서 외면된 ‘새문안동네’ 내부는 주택들이 소규모 음식점과 카페 등으로 변환되어 왔고, 경희궁, 한양성 곽과 돈의문 등의 중요한 장소와 축조물들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중요도에 의해 주의 깊게 보존되거나 훼철되기도 하지만, ‘새문안동네’ 는 권력자의 이데올로기에서 외면되어 왔기 때문에 내부의 물리적 조직은 역설적으로 잘 보전되어 있다. 이는 오히려 도시적 상황의 변화를 다른 방법으로 증언하고 있다. ‘건축과 도시를 하나의 과정으로 인식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모더니즘으로 대표되는 현대건축이 우리의 생활과 의식, 정서 등과 일치하 지 않는다는, 즉 합리주의가 낳은 세계화 및 보편화로 추상화된 건축과 도시가 더 이상 일반대중과는 괴리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사유를 바탕으로 촉발된 ‘재생 담론’은 그 시대와 장소에 특별함(specific/singular)을 되살리려는 운동이다. 이들 토속건조물들은 철저하 게 장소특정적인(site specific)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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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사유에 따라 재해석된 동네 우리가 ‘새문안동네’를 조성한다는 것 즉 지금까지 지속되어온 이 동네를 재생한다는 것은, 이 동네의 물리적 공간조직(집, 길과 마당) 뿐 아 니라 여기에 깃들어온 삶의 조직 및 생산조직을 보전(保全)하는 것이다. 여기에 살아남은 건조물이나 도시구조의 문화재적 가치를 평가하 여 원래의 상태 그대로 보존(保存)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역사적 가치를 존중하여 그 기능을 계속해서 유지시켜, 필요한 경우에는 적절 한 개입을 행함에 따라 현재에 적합하도록 재생, 강화, 개선하는 것을 포함한다. 기억이 특별한 맥락에 귀속되는 사건에 대한 해석이고, 과거가 그때마다의 토양위에서 자유롭게 재구성되며, 이는 그 순간을 넘어서는 현재 적 해석을 통해 가치를 획득하듯이, 우리의 작업 역시 선택적이었다. 많은 부분이 보전되었으나, 현재적 판단에 의해 조심스럽게 철거되고, 긁어내고, 어떤 부분은 새롭게 덧붙여져서, ‘새문안동네’는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앞으로 새롭게 쌓여갈 기억들을 포함한 지속의 일부, 아직 도 새로운 것들이 계속해서 기록되는, 완성되지 않은 양피지가 되기를 바랐다. 총 68동으로 시작된 작업은, 15동이 전면 철거되었고, 대수선 10동, 증축 및 대수선 26동, 철거 후 개축 2동, 철거 후 신축 3동 한옥 이전 2 동 등으로 결과적으로 43동으로 이루어진 새 마을이 되었다. 물론 골목길은 그 스케일에서 철저하게 보전되었고, 중앙에 마을 공동체를 위 한 마당이 조성되었으며, 일부 조선시대의 유적이 발굴되어 현물로 전시될 것이다. 여기 ‘새문안동네’에 지난 한 세기 동안 쌓여온 ‘기억’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 시대를 달리하는 것들과 새롭게 덧댄 것들이 공존하고 있는 이 곳 의 풍경을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고, 냄새 맡는 감각행위를 통해 소외되었던 ‘과거’를 마주하는 통로가 되기를 바란다. 오감을 통하여 뇌에 전달되는 세상의 모습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뇌의 여과장치를 거친 가동된 실재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같은 ‘과거’를 대면하지만, 각자 ‘다 른’ 과거일 것이고, ‘다른’ 상상력을 부추겨서, ‘다른’ 다양한 것들이 여기 ‘새문안동네’에서 또다시 창조되어 가기를 염원한다. 베르가모트 향을 맡으면 이 향이 들어간 얼그레이 차를 함께 마시던 옛 친구의 기억이 되 살아나는 ‘프루스트 효과’가 넘치는 곳이 되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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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2. 창의,문화,교육 공간 개요 ▶ 용도:
창의,문화,교육 공간
▶ 위치:
6번지 외 8개소
▶ 면적:
4,029.97㎡
▶ 특징:
도시건축센터, 돈의문 전시관, 도시건축센터 협업공간 등으로 구성
▶ 기본방향
• 서울 도시 형성과 건축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전시, 아카이브 공간 • 신진 예술가를 위한 창업, 협업 공간 조성 • 돈의문 일대 지역의 역사 및 도시재생 관련 전시 공간 ▶ 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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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용도
위치(지번)
계획
돈의문 전시관
문화 시설
신문로2가 7-3, 7-32, 34-2, 33, 36-2, 37
도시 문화유산 기록관리 기획/상설 전시 교육 연구
도시건축센터
문화 시설
신문로2가 6, 6-3
건축 문화유산 기록 관리 도시건축 수장고 교육 연구
협업공간
문화 시설
30-1
도시건축센터 사무소. 협업공간
• 범례(Legend)
돈의문 제 1 재정비 촉진구역
문화 및 집회시설
부대시설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공사 사업부지
체험문화 공간
편의시설
창의,문화,교육 공간 위치도_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사업 실시계획인가 (변경1차)』, 서울특별시,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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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창의,문화,교육 공간
돈의문 전시관 1
건물개요 기존 현황
계획
위치(지번)
신문로2가 7-33번지, 34-2번지
대지면적
89.3㎡, 132.2㎡
•규모: B1/2F, 2F 건물변화 •건물면적: 49.75㎡, 66.12㎡ •연면적: 108.86㎡, 92.57㎡ 구조
조적조
조적조
용도
주택, 근린생활시설
문화 및 집회시설(전시장)
설계방향 • 리모델링(증축,대수선) • 외부를 남기고 내부를 용도에 맞게 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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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B1/2F •건물면적: 221.43㎡ •연면적: 448.40㎡
돈의문 전시관 1 이야기 7-33번지와 34-2번지는 서로 연결되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지오(AGIO)로 운영되었다. 아지오 운영자는 28번지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비스(BIS)를 만들기도 하여서 두 건물의 내부 개조가 유사점이 있다. 1997년 5월 22일 경향신문에 아지오의 인테리어가 신문에 실리기도 하였는데, 도심속 골목길에 숨어있는 가정집을 개조한 식당으로 내부는 유럽풍의 이색적인 특색이 있어 인기가 많았다. 7-33번지는 7번지 일대가 개발되던 1930년대에 건물이 세워졌으나 1967년에 기존의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었으며, 2004년에 일반음식점으로 용도를 변경하였다. 34번지 일대는 1910년대에는 미국인, 이후 일본인의 거주지로 쓰이다가 1955년 토지가 분할되어, 34-2번지에 연와조평옥개의 건물을 신축하였다. 2000년대에 식당으로 용도가 변경되면서 내부공간과 구조를 많이 바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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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돈의문 전시관 1 기존도면
입면도
지상 1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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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문 전시관 1 계획도면 7-33번지와 34-2번지 건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공간을 보존하며 건물 외형의 독특한 형태를 살려 돈의문 전시관으로 이용할 예정이다. 외부의 보존을 위해 내부에 단열을 보강하였으며 전시관 용도에 맞게 변형하였다. 시멘트 몰탈에 페인트를 칠했던 기존의 외벽은 회색 계열색으로 통일시켰다.
입면도
지상 1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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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조성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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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주택이었던 곳을 식당으로 개조한 공간이다. 이국적인 정사각형 창문 밖으로는 경희궁의 녹지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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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내부 구조의 안전을 위해 실내에 철골조로 보강하였다.
천장 설비를 하고 바닥은 콘크리트로 전체 미장을 하였다.
돈의문 박물관마을은 건축과 골목길 뿐만 아니라 마당 내 수목도 최대한 보존하여 조성하였다.
정문의 벽돌로 쌓은 원호형 아치 구조는 이전에 운영하던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분위기를 위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존에 확장된 테라스를 철거 후 재설치 하였으며 이전에 이탈리안 레스토랑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세운 아치형 벽도 일부 남겨두었다.
건물 1층의 외벽의 전면은 화강암을 벽돌 쌓기 방식으로 변화감 있게 장식되었다. 2층은 개조된 부분을 뜯어내고, 회색 계열의 페인트로 외벽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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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설치를 하기 위해 기존 건축에서 일부를 철골구조로 확장하여 다른 전시관으로도 이동이 가능하게 하였다.
돈의문 전시관 1과 2는 2층 통로를 조성하여 각각의 건물을 드나들 수 있게 하였다.
2층 테라스의 공간감을 유지하며 나무 창으로 재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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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인터뷰
과외방이기도 했던
7-33번지
진광준 씨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광화문과 신문로 일대는 학원과 과외방이 밀집해있는 공간이었다. 당시 서울시내 유명 초,중,고등학교들이 광화문 일대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신문로 일대에서 1967년에 경기중학교 입학을 위해 과외방을 이용했던 진광준씨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과외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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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밀조밀한 과외방 지역 과외방은 신문로 일대 주택가에 작게는 방 한 칸, 크게는 전체 건물을 세를 들어서 운영되었다고 한다. 과외방은 일종의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팀을 이루어 진행되었는데, 각 담당 과목 선생님이 따로 있어서 한 과목이 끝나면 다른 과목 선생님이 와서 수업을 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근데 여기 있는 사람들은 팀들이 많단 말이에요. 그럼 국어만 전공한 선생님들 따로 있고 과목마다 전공이 따로 있어요. 자기 담임 10명에 대한 책임은 지는데, 시간별로 국어시간에는 국어선생님이 와요. 우리는 그냥 그 방에 있고. 산수시간에는 산수선생님이 와요. 그 초등학교때 과목별로 선생들이 달랐다고. 그것만 하더라도 대단하지 않아요? 과외방이 오밀조밀 모여 있으니깐. 우리 국어시간 끝나면 이 선생님은 국어가리키고 딴 집으로 가요. 국어수업이 있는 집으로. 우리가 사회시간이다 하면 사회선생님이 와요. 그렇게 했다니깐요.”
무조건 다 외우니까 당시 중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교과서를 전부 외우는 것이 일반적인 공부방식이었다. 교과서 2권을 가져와서 한권은 단어를 점차 지워가는 방식으로 1학기부터 외우기 시작해서 2학기에는 책을 보지않고도 내용을 암기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고 한다. “어느 정도로 공부... 뭘 시키냐면은 처음부터 가서 공부하는게 난 참 지금 생각해도 한심한게 책이 누구든지 똑같은 책 두권씩이에요. 국어책 두권 다 두권씩이에요. 그러면 첨부터 열명이니까 “진광준 1페이지 읽어!” 하면 읽어요. 다 써 있잖아. 글씨도 다 있고. 그럼 하루하루 지나면서 처음엔 토씨만 지워요. 까만색 연필로. 하여간 조사가 있으면 은는에가 이런거만 지워요. 명사, 주어 이런거만 남겨놓고. 그럼 책이 점점 까매질꺼 아녜요. 그럼 2학기때쯤 되면은 책이 까매요. 하여간 쌔카맣게 다 칠해져 있어요. 그럼 인자 손도 안댄 책은 원본은 하나 있고. 학원 딱 가면 “진광준 국어책 1페이지 읽어” 그러면 요걸 딱 드는데 쌔카만데 읽어요. 여기 안보고 읽는다니깐. 다 외워진거야. 그게 국어뿐만이 아니라 모든 과목이 다 전과목이 다 새까매요. 그걸 애들이 다 외워요. (중략) 그런 공부를 시키는 거에요. 그니깐 나중에는 애들이 시험보는 시간이 공부하는 방식이 무조건 다 외우니까 뭘 어떤걸 갖다놓더라도 다 쓸꺼 아녜요.”
10명씩 수업 당시의 과외는 오늘날의 일대일이나 소규모 과외방식이라기 보다는 10명 내외의 인원정도로 운영되었다고 한다. 10명이내의 인원은 과외교습서로 따로 허가를 받지않고도 단속대상에서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학원이나 학교와 유사한 형태로, 주택가 방안에 칠판과 책상등을 마련해놓고 수업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여기 칠판이 걸려있잖아요. 여기 선생님 의자가 딱 있고. 10명이니깐..한 명씩 앉았을꺼에요. 다 이렇게 생겼어요 요기 문있구. 끝이에요. 선생님이 칠판에 쓰면서 우리는 뭐. 주로 선생님이 설명할 것도 없어요. 과외가면은 1페이지 읽어! 아니면 냄겨서 15페이지 읽기 시작해 순서대로 읽어내려가다가 못하면 터지고. 나무 책상. 학교 다니던 책상이랑 비슷해요. 그 당시 중학교에 가면 있던 책상 있죠? 책상 따로 걸상 따로. 나무로 된 거. 흔히 보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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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창의,문화,교육 공간
돈의문 전시관 2
건물개요 기존 현황
계획
위치(지번)
신문로2가 33번지
대지면적
158.30㎡
•규모: B1/3F 건물변화 •건축면적: 86.94 ㎡ •연면적: 196.35㎡ 구조
조적조
조적조
용도
주택, 근린생활시설
문화 및 집회시설(전시장)
설계방향 • 리모델링(대수선) • 외부를 남기고 내부를 용도에 맞게 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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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B1/2F •건물면적: 199.25㎡ •연면적: 187.97㎡
돈의문 전시관 2 이야기 33번지는 1990년부터 2015년까지 27년간 ‘한정’이라는 한정식 식당으로 운영되던 곳이다. 기존에 33번지 있던 건물은 멸실되고 1965년에 신축되었다. 원래 주택용도로 사용되던 곳을 식당으로 개조한 것으로 1층은 기존 구획된 방의 공간감을 비교적 그대로 살렸으며 2층은 단체손님을 위해 넓게 확장하여 운영하였다. 영업시간이 끝난 후에는 살림집의 용도로 사용하였다. 주변 일대 관공서나 회사에서 손님접대용으로 자주 이용하던 식당이었다. 이곳에 오랫동안 마당을 꾸미던 괴석은 경희궁의 흔적으로 밝혀져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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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돈의문 전시관 2 기존도면
입면도
입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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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1층 평면도
돈의문 전시관 2 계획도면 33번지는 7-33번지와 34-2번지의 연장선에 있는 돈의문 전시관으로 이용할 예정이다. 기존 경계에 있던 주택은 철거하여 마당으로 전환함으로써 드나듦이 쉬운 열린 공간성을 확보하였다. 외부의 보존을 위해 내부에 단열을 보강하였으며 전시관 용도에 맞게 변형하였다. 시멘트 몰탈에 페인트를 칠했던 기존 외벽은 돈의문 박물관마을의 공공적 성격 건물색인 그레이 톤으로 통일시켰다. 기존에 있던 수목과 정원의 정취를 살려 후정공간으로 활용하였으며 담장의 경계를 낮추어 골목길 분위기를 보존하되 시야를 확보 할 수 있게 하였다. 상설전시관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입면도
입면도
지상 1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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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조성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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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주택이었던 곳을 식당으로 개조한 공간이다. 건물의 담을 낮추고 출입문을 양 방향으로 두어 여러 방향에서 접근이 가능한 열린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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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낙상 방지 등 안전한 내부 철거 작업을 위해
내부 구조를 안정적으로 철골조로 보강하였다.
건물에 강관비계를 설치하고 안전 타포린을 둘렀다.
기존 건축물이 가지는 주택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각 층의 외벽 장식은 그대로 보존하였다.
기존의 몰탈에 페인트로 마감된 외벽은 페인트를 제거하고, 전시관은 회색 계열로 통일감을 주었다.
외벽이었던 부분을 증축하면서 만든 독특한 형태의 창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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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도시 조직이 가지는 공간감을 유지하며 마을 내에 오래된 수목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한 것이 특징이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 모습이다. (좌_ 조성 전, 우_ 조성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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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인터뷰
가정집에서 식당, 다시 전시관으로 바뀌는
33번지
답답한 서울 도심에서 넓게 트인 경희궁의 녹지공간을 볼 수 있는 옥상이 이 건물의 자랑이라고 말씀하시던 주인 할머니
33번지는 돈의문 박물관마을 내의 건물 중 마당이 비교적 넓은 곳 중 하나이다.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한정’이라는 식당을 운영하던 주인 할머니는 30여년간 식당과 주거용 주택으로 사용하였다. 원래는 높은 담장벽이었던 공간을 식당을 운영하면서 좀 더 사람들이 접근이 쉽도록 담장을 낮추고, 매년 방안의 도배와 장판을 새로 장만하면서 가꾸던 집과 정원의 나무 등 정이 담뿍 담긴 곳을 떠나게 되는 아쉬움을 자주 이야기해주시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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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엔 이 밑에 벽이 이 집이랑 같이 높았어. 이 대문같은것도 다 철문있고. 근데 장사해서 사람들이 살림집 같으니까 좀 낮찮게 하는게 좋겠다 해서 한 10년전에 헐어서 낮찮게 하고 전등같은것도 놓고 이런 문살을 집을 만들은거야. 밖에 벽이 이 집 지붕이랑 비슷하게 높았다니깐. 아주 유명한 집이었었어요. 이 동네에선 이런 집이 없었어” “이게 전부 다 유명한 사람들이 집을 지어갖고요 특이해요. 석조도 전문가들이 보고 진짜 유명한 사람들이 이 석조를 했다는거야. 저 위에서 끝에리까지가 한 장이야. 도중에 잇고 그러지도 않앴어. 한 장짜리야. 이렇게 긴 것을 갖다가 그대로 하고. 문짝도 전부 그때 헌건데 지금 그대로 우리가 갖고 써요. 그런데 이런것은 고쳤어. 이런게 분합문이라고 아는가 모르겠지만은 옛날에 양반가에서는 분합문이라고 문을 길게 해가지고 이방저방 우에까지 해가지고 분합문이 여섯 개 있었어. 분합문이라고 하믄 어른들은 옛날 양반가에 어른들은 알아요. 분합문이 여섯 개가 있었다고 이집에. 그런 정도로 좋은 집이었는데.”
한정의 마지막 운영 날, 평소처럼 골목길을 청소하는 주인 할머니의 큰 아들
한정의 마지막 운영 날, 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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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창의,문화,교육 공간
돈의문 전시관 3
건물개요 기존 현황
계획
위치(지번)
신문로2가 37번지
대지면적
87.90㎡
•규모: B1/3F 건물변화 •건축면적: 118.88㎡ •연면적: 336.43㎡ 구조
철근콘크리트, 조적조
조적조, 철근콘크리트
용도
제2종 근린생활시설(사무소)
문화 및 집회시설(전시장)
설계방향 • 리모델링(증축, 대수선) • 외부를 남기고 내부를 용도에 맞게 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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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B2/3F •건물면적: 180.73㎡ •연면적: 601.78㎡
돈의문 전시관 3 이야기 37번지는 1977년에 현재와 같은 형태로 신축되어 주택과 점포가 공존하는 형태로 사용되다 1991년 점포와 사무실로 변경되어 사용되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 1층에는 ‘이조순대국’이라는 순대국을 파는 식당과 지하에는 ‘고인돌’ 이라는 생선구이 집이 있었다. 37번지 일대는 1910년대 독일인 A.E.칼리즈키가 살기도 했으며 이후 일본인의 거주지이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아이템풀 예비교사 연구회’ 라는 학습지의 본사로 학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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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돈의문 전시관 3 기존도면
입면도
지상 2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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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문 전시관 3 계획도면 37번지는 여러 개의 돈의문 전시관 중 특별기획 전시를 주로 담당하는 기획전시관으로 이용할 예정이다. 문화시설 기준에 맞는 시설을 위해 장애인용 화장실을 사잇공간을 활용하여 증축하였다. 외부의 보존을 위해 내부에 단열을 보강하였으며 내부는 전시관 용도에 맞게 변형하였다. 기존에 시멘트 몰탈에 페인트를 칠했던 외벽은 돈의문 박물관마을의 공공적 성격 건물색인 그레이 톤으로 통일시켰다.
입면도
지상 1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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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조성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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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건물이 갖고 있던 독특한 테라스의 형태감을 살려 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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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외부의 공간감을 살리기 위해 외형은 그대로 유지하였으며 내부는 전시관으로 이용하기 위해 기존의 공간을 철거하였다.
내부 철거후 철골 구조로 보를 보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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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골조로 덧대어서 2층 테라스 입구를 조성하였다.
기존에 2층에 있던 슬레이트 지붕 공간의 형태를 옥상 위에 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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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내부 설비를 천장에 일부 노출하여 두고, 나무 내장 벽을 설치하였다.
천정을 막기 위한 틀을 나무로 짜서 맞추었다. 내부 면에는 단열을 위해 우레탄 폼을 발포한 상태이다.
내부 철거를 위한 외줄 비계를 설치하였다. 기존의 테라스를 철거한 자리에는 안전을 위해 안전 난간대를 설치하였다.
벽면에 부착되었던 기존 건물의 상호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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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문으로 막혀있던 현관을 철거하여 돈의문 전시관 2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또한 내부 마당과도 연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153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창의,문화,교육 공간
도시건축센터 1
건물개요 기존 현황
계획
위치(지번)
신문로2가 6-3-나, 6-3-다
대지면적
87.90㎡
•규모: B1/2F, B1/5F 건물변화 •건축면적: 88.30㎡, 253.59㎡ •연면적: 265.65㎡, 955.37㎡ 구조
철근콘크리트, 조적조
조적조, 철근콘크리트
용도
업무시설(사무소)
문화 및 집회시설(전시장) 제2종 근린생활시설(서점)
설계방향 • 리모델링(증축,대수선) • 외부와 내부의 흔적을 최대한 보존 154
•규모: B1/5F •건축면적: 839.93㎡ •연면적: 2114.18㎡
도시건축센터 1 이야기 6번지 일대는 철강 및 건설 자재 제조를 하던 강원산업이 기업합병을 통해 인천제철, 현대제철로 사명을 바꾸어 1962년부터 2000년대 초까지 40년간 영업용도로 운영하던 사무실이었다. 6번지는 건설업자인 정세권이 소유했던 곳으로 이후 1935년 유일한에게 소유권이 넘어가, 1936년 유한양행 사옥을 신축하였다. 유한양행은 1962년에 신대방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27년간 본사로 이용하였다. 옛 성곽길을 따라 형성된 이곳은 우리나라에 근대적 의미의 회사가 활성화되었던 1930년대부터 최근까지 기업형태로 운영되던 사무공간이라는 역사성을 가진다.
155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도시건축센터 1 기존도면
입면도
입면도(남측)
156
도시건축센터 1 계획도면 6번지는 도시건축센터로 운영되며 아카이브 수집과 전시기능을 담당할 예정이다. 비교적 원형이 잘 남아있어 내부와 외부를 최소한으로 보강하여 보존하였다. 기존 외벽은 방수를 목적으로 하여 몰탈에 페인트를 칠한 것이었으나 석조 건물의 원형을 드러내고 특징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몰탈을 제거하였다.
입면도
입면도(남측)
157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도시건축센터 1 기존도면
지상 1층 평면도
지상 2층 평면도
158
도시건축센터 1 계획도면
지상 1층 평면도
지상 2층 평면도
159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조성과정
160
구 유한양행 사옥의 지붕 트러스 구조를 해체 중이다. 지붕의 하중을 받는 보만 남기고 다 철거되었다.
161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기존 외벽은 몰탈에 페인트를 바른 것으로 몰탈을 제거하였다. 1936년에 세워진 이 건물은 당시 유행하던 이국적인 석조 건물의 형태를 보여준다.
기존 지붕의 박공형태를 철골조로 보강하여 설치하였다. 보행로와 인접하므로 비산먼지의 발생을 막기 위해 토목용 부직포를 설치하였다.
162
조적조로 지어진 내부의 모습이다. 구조 안정성을 위해 1층과 2층을 철골조로 보강하였다.
엘리베이터 설치를 위한 철골조를 외부에 설치하였다. 기존의 창호를 넓게 확장하였다.
163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몰탈을 제거하고 난 후 석조재질의 외벽이 드러난 모습이다. 기존의 형태가 변형되었거나 원형이 훼손되어 보수가 필요한 부분은 기존 석조 벽과 차이를 두기위해 회색의 전벽돌로 구분하였다.
박공형태의 지붕은 기존의 건물과 차이를 두기 위해 금속 재질의 징크 판넬로 조성하였다.
1977년에 증축한 건물로, 공공시설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였다.
바닥 슬래브를 보강하기 위해 철근을 설치하고 있다.
164
5층 옥상에는 기존 건물에 있던 광고탑의 공간감을 재현하기 위해 철골 구조로 공간을 만들었다.
165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철거를 앞두고 안전 및 비산먼지 발생을 막기 위해 비계와 가림막을 설치하고 있다.
이전에 주차장으로 사용하던 곳부터 철거를 시작하였다. 비산 먼지 발생을 줄이기 위해 살수를 하고 있다.
166
인근 돈의문 뉴타운의 입주가 시작되고, 유동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안전한 통행을 위해 기존의 건물을 철거하고 3.5m폭의 보행로와 1차선 도로도 신설하였다.
기존의 지형을 따라 곡선형으로 휘어진 건물과 석조건물 사이는 아트리움 공간으로 박공지붕 형태를 차용하였다.
167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도시건축센터는 석조 건물과의 조화를 위해 회색 전벽돌로 외벽을 장식하였다. 아트리움 공간의 박공지붕은 역시 같은 회색 계열의 징크판넬로 조성하였다.
168
아트리움 외부는 마당으로 가는 연결 공간이자 휴식의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169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창의,문화,교육 공간
도시건축센터 2
건물개요 기존 현황
계획
위치(지번)
신문로2가 7-22번지
대지면적
261.20㎡
•규모: B1/5F 건물변화 •건축면적: 131.00㎡ •연면적: 727.09㎡
•규모: B1/5F •건축면적: 142.54㎡ •연면적: 800.86㎡
구조
철근콘크리트
철근콘크리트
용도
근린생활시설, 대중음식점
문화 및 집회시설(전시장) 근린생활시설(사무소)
설계방향 • 리모델링(증축, 대수선) • 기존의 외부 형태를 유지하며 용도변경으로 인한 기능 추가 170
도시건축센터 2 이야기 7-22번지는 1990년에 기존의 건물을 멸실하고 1991년에 현재와 같은 지하 1층, 지상 5층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을 세웠다. 대중음식점과 사무실로 이용했었는데, 2006년부터 1층에 있던 커피숍은 커피 매니아 사이에서는 유명한 곳이었다. 최초 건축물 대장에는 영업용으로 목조 스레트집이 등기되었다. 신문로와 현재 돈의문 뉴타운이 된 교남동 일대에는 녹음실이 꽤 있던 편이었는데, 1990년대 7-22번지에는 ‘국도레코드’ 라는 연예 기획회사가 있어서 유명한 트로트 가수들이 인근 식당에도 자주 들렀다고 한다.
171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도시건축센터 2 기존도면
입면도
지상 1층 평면도
172
도시건축센터 2 계획도면 도시건축센터와 마을커뮤니티 센터 건물로 이용할 예정이다.
입면도
지상 1층 평면도
173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조성과정
174
1층은 돈의문 박물관마을 입구 및 마당과 연결된 공간으로, 차후 입주예정자나 방문자 모두 편하게 이용 가능하도록 경사로를 조성하고, 열린 공간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175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외단열을 위해 드라이비트 시공을 했던 기존의 외벽이 노후되고 탈락이 있어서 제거하였다.
기존 건물의 외형은 1980-1990년대 당시 유행하던 일반적인 근린생활시설이다.
176
설비 배관 공사를 끝내고 벽과 기둥에 페인트의 발색과 접착력을 상승시키는 프라이머를 도포한 상태이다. 지진에 대비하고 내진구조를 보강하기 위해 각 층마다 철골조를 일부 설치하였다.
철거하고 내부 공사를 위해 비계를 설치하였다.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져서 구조적으로 안정적이다.
내부에 탄소판을 보강하고 있다. 탄소섬유 시트를 콘크리트 단면에 부착하 여 구조물의 강도나 내구성, 내진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엘리베이터 시설을 추가하였다.
1층은 입구와 마당, 두 방향으로 접근이 가능한 개방된 공간으로 조성하였다.
177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창의,문화,교육 공간
도시건축센터 3
건물개요 기존 현황
계획
위치(지번)
신문로2가 30-1번지
대지면적
95.20㎡
•규모: B1/2F 건물변화 •건축면적: 84.96㎡ •연면적: 142.15㎡ 구조
목구조, 조적조
일반목구조
용도
근린생활시설, 대중음식점
근린생활시설(사무소)
설계방향 • 리모델링(대수선) • 내부와 외부의 형태를 최대한 보존
178
•규모: 2F •건축면적: 83.66㎡ •연면적: 130.19㎡
도시건축센터 3 이야기 30-1번지는 새문안동네에서 몇 안남은 주택 중 하나였다. 1956년에 신축되어 주택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마지막 거주자는 신문로 1가 흥국생명 일대 재개발로 밀려나 이곳에 와서 정착하여 노모, 부인, 자녀와 함께 거주하였다. 이곳에서 아들이 태어나고 어머니를 여읜 곳이라 애착이 많았다. 한옥의 배치와 서양식, 일본식의 건축 기법이 다양하게 섞여있으며 내외부의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한 편이다.
179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도시건축센터 3 기존도면
입면도
지상 1층 평면도
180
도시건축센터 3 계획도면 30-1번지는 도시건축센터로 운영될 예정이다. 다양한 건축 양식이 혼재되어 있으면서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으므로 공공적인 건물로 운영하여 보존 가치를 높이고자 하였다. 최소한의 보강을 통해 내부와 외부 모두 보존하는 방향으로 리모델링을 하였다. 기존에 설치된 방범창, 문의 경첩 등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여 다시 달았다.
입면도
지상 1층 평면도
181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조성과정
182
기존의 노후된 벽체를 제거한 뒤 내부 목구조가 드러난 모습이다.
183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30-1번지에서 나온 오래된 경첩들이다. 기존 부재 중 쓸 수 있는 것은 활용하였으며, 오래되어 부식이 심하거나 균열이 있는 것들은 새로 주문제작하여 달았다.
지붕의 습기를 막고, 보온을 위해 단열재를 시공하고 있다.
184
이 건물은 다양한 양식이 혼합되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천장은 한옥의 우물반자틀과 유사하며, 목조로 조각된 커텐 박스는 양식 생활 소품 중 하나이다.
기존의 1층 슬레이트 지붕은 빗물을 피하고 사용범위를 넓히기 위해 후에 사용자가 임의로 덧붙여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1층 주출입구 부분에만 그 흔적을 남겨 두었다.(상_조성 전, 하_조성 후)
185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일반 주택으로 사용하고 있어 내부가 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 하얗게 칠한 둥근 창은 원형으로 복원하였다.(좌_조성 전, 우_조성 후)
기존의 육각무늬 방범창을 활용하여 다시 달았다. 이전에 벽체와 같은 하얀색 페인트로 칠해진 창문 틀은 원래의 나무로 복원하였다.(좌_조성 전, 우_조성 후)
186
2층 복도의 창은 목조로만 되어 있던 것을 단열을 위해 내부에 이중으로 창호를 설치하였다. (상_조성 전, 중·하_조성 후)
187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3. 체험문화 공간 개요 ▶ 용도:
체험시설
▶ 위치:
신문로 7번지 일대 16채
▶ 면적:
1156.21 ㎡
▶ 특징:
기존한옥 15채,이축한옥 1채
▶ 기본방향
• 한옥 구조가 잘 드러나는 건물은 본래의 평면과 규모를 유지 • 한옥 구조일 것으로 추정되나 벽돌 등 기타 재료에 의해 가려진 건물은 가급적 원형을 추정하여 계획 • 기본 구조가 남아있지 않고 전체가 변형된 건물은 철거하고 동일한 블록의 다른 집과 유사한 규모 및 형태로 계획 • 필지규모, 골목길 폭 등 기존의 도시조직을 유지 • 지붕 LANDSCAPE를 유지 • A,B블록의 중심공간을 마련하여 기타 블록과의 동선 연계 및 이벤트 공간으로 가능하도록 계획 • 향후 용도변경에 대비하여 전체 공간이 하나로 사용될 수 있도록 구성
▶ 세부
위치(지번)
용도
계획
신문로2가 7-5, 7-6, 7-7, 7-8
숙박
원래 평면, 규모 유지
신문로2가 7-10, 7-15, 7-16, 7-17, 7-20
숙박
원형을 추정하여 계획
신문로2가 7-3, 7-4, 7-12, 7-13, 7-14
숙박
철거 후 유사 규모 및 형태로 계획
신문로2가 7-15
숙박
장애인을 고려한 평면으로 구성
신문로2가 7-11, 7-18, 7-19
관리동
철거 후 유사 규모 및 형태로 계획
188
비고
리셉션 로비 기능
• 범례(Legend)
돈의문 제 1 재정비 촉진구역
문화 및 집회시설
부대시설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공사 사업부지
체험문화 공간
편의시설
체험문화 공간 위치도_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사업 실시계획인가 (변경1차)』, 서울특별시, 2017
189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체험문화 공간
한옥 체험문화 공간 1
건물개요 기존 현황
계획
위치(지번)
신문로2가 7-7번지
대지면적
111.50㎡
•규모: 1F 건물변화 •건축면적: 43.96㎡ •연면적: 43.96㎡
•규모: 1F •건축면적: 52.88㎡ •연면적: 52.88㎡
구조
한옥
일반목구조
용도
근린생활시설
근린생활시설, 문화 및 집회시설
설계방향 • 리모델링(증축, 대수선) • 기존 한옥구조가 잘 드러나므로 원형을 살려 리모델링 • 일부 확장된 공간은 제거 190
한옥 체험문화 공간 1 이야기 7-7번지는 1931년 목조와즙 형태로 건축물대장에 최초 등록되었으며 1989년부터 2015년까지 27년간 ‘문화칼국수’란 이름으로 운영되던 식당이었다. 1989년 대중음식점으로 용도 변경 이전까지는 하숙집과 주택으로 사용되었다. 식당 운영 초기에는 주거와 상업이 공존하는 형태로 활용하다가 이후 전체 공간을 터서 넓게 사용하였다. 식당 공간의 증축으로 인해 일부 변형이 있지만 비교적 원형이 잘 남아있는 공간이다.
191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한옥 체험문화 공간 1 기존도면
입면도
평면도
192
한옥 체험문화 공간 1 계획도면 기존 도시한옥의 공간감을 존중하며 증축된 부분만 일부 철거하여 원형을 살려 한옥형 숙박시설로 이용될 예정이다. 기둥과 초석은 본래의 위치를 살리고 오래된 목재의 구조를 보강하였다. 기존의 타일로 마감된 외부 벽은 한옥의 통일감을 주기 위해 자연석 담장으로 조성하였다.
입면도
평면도
193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조성과정
194
원래는 ㄷ자형의 한옥이었던 곳을 넓게 터서 식당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195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원형 파악을 위해 골조만 남기고 지붕과 콘크리트 조적벽 등을 철거하였다. 원형 훼손이 심한 건물은 전체를 철거하였다.
오래된 목부자재를 해체하고 원래의 위치를 측량하였다. 건물 해체 후에는 재조립을 위해 목부재와 석축부재를 선별해두었다.
독립기초를 설치하고 있다. 한옥은 기둥이 상부하중을 받기 때문에 기둥 초석하부에만 기초를 하는 방식이 가장 일반적이다.
기존 한옥 건물의 초석을 원래의 위치에 설치하는 작업이다. 구조물을 올리기 위한 기준이 되는 규준틀을 만들었다.
196
기존의 부재와 새로운 부재를 적절히 활용한 구조가 돈의문 박물관마을의 특징이다. 이전에 있던 두겁주먹장을 활용하였다.
구조적으로 재사용이 가능한 구부재는 적극적 으로 활용하였다. 기둥, 주심도리, 중도리, 퇴량은 기존 건물의 부재를 사용하였다.
외벽은 단열과 방풍, 습기에 취약한 한옥의 특성을 고려하여 방습포를 처리하고 그 뒤에 흙과 돌을 바른 토담으로 조성하여 한옥 골목길의 정취를 살렸다.
197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기존의 초석 위에 그레질한 기둥을 설치하였다.
대부분의 시공과정이 마무리 된 후, 내부 창호와 바닥, 벽면에 한지를 도배하고 있다.
198
경희궁과 맞닿아 있는 곳은 기존의 증축된 부분을 제거한 후, 자연스럽게 뒷마당으로 경계를 두었다.
199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체험문화 공간
한옥 체험문화 공간 2
건물개요 기존 현황
계획
위치(지번)
신문로2가 7-11번지, 7-18번지, 7-19번지
대지면적
69.40㎡, 59.50㎡, 56.20㎡
•규모: 1F •규모: 1F 건물변화 •건축면적: 42.96㎡, 34.05㎡, 34.05㎡ •건축면적: 132.51㎡ •연면적: 42.96㎡, 34.05㎡, 34.05㎡ •연면적: 132.51㎡ 구조
목구조, 조적조
일반목구조
용도
근린생활시설, 주택
근린생활시설
설계방향 • 리모델링(증축, 대수선) • 원형이 많이 훼손된 상태이므로, 같은 블록내의 구조와 동일한 형태로 조성 • 리셉션 기능을 하는 공간으로 접근의 용이성 고려 200
한옥 체험문화 공간 2 이야기 7-11번지와 7-19번지는 1990년부터 2015년까지 26년간 추어탕을 주로 하는 ‘풍미추어탕’이라는 식당으로 운영되었다.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식당 운영을 위해 한옥식 집을 개조하고 1994년에는 7-19번지를 매입한 뒤 연결하여 증축하였다고 한다. 7-11번지는 조리공간과 입식 테이블이 있는 공간이었으며 7-19번지는 방으로 구획되어 좌식 테이블이 놓여졌었다. 7-11번지는 1981년부터 1990년까지 경향신문사에서 매입하여 지방에서 올라와 자립하려는 청소년을 위한 기숙사로 운영되었다. 낮에는 서울시내 곳곳에서 신문 가두판매를 하고, 밤에는 이곳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하였다.
201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한옥 체험문화 공간 2 기존도면
평면도
202
한옥 체험문화 공간 2 계획도면 7-11번지와 7-19번지 한옥 체험문화 공간의 관리동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기본구조가 남아있지 않고 원형을 추정하기 힘든 상태여서 동일한 블록의 유사한 규모와 형태로 조성하였다. 호텔의 리셉션과 로비 기능을 하며 투숙객에게 조식을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입면도
평면도
203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조성과정
204
기존 한옥 골목의 지붕 모습. 대부분 개조를 통해 ㄷ자형 구조를 넓게 확장하여 쓰고 있었다.
205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7-11번지와 7-19번지는 식당으로 운영되면서 원형이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목구조물을 올리기 위한 비계를 설치하였다.
한옥 블록의 건물과 유사한 형태로 조성하기 위해 전면 철거를 하였다.
기초 설치시에 배관공사를 미리 해두었다.
중도리와 종도리를 결구하고 있는 모습이다.
관리동으로 이용될 예정인 이 건물은 한옥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열린 구조로 조성하였다.
목구조 내에 현대적인 설비는 매몰하여 조성하였다.
206
송월길 도로면과 접해 있던 건물은 성곽길과 연계된 녹지축을 조성하기 위해 철거하였다. 돈의문 박물관마을의 진입로는 지형적으로 높낮이 차가 있으므로 이전처럼 계단을 조성하여 한옥 체험 시설로 접근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마당 공간의 활용을 높이기 위해 기와 지붕 사이로 투명 채광 지붕을 달았다.
207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인터뷰
1981년-1990년
경향
배달소년의 집
유청렬 씨
7-11번지는 1981년부터 10년간 ‘경향 배달소년의 집’으로 운영되었던 곳이었다.
경향신문사가 후원을 하고, 경향신문 가두 판매실에서 운영을 하던 곳으로, 지역 보급소 에서 신문을 받아서 서울 시내 곳곳에서 가두 판매를 하는 청소년과 청년을 위한 숙소로 운영되었다. 대부분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한 청소년들이 많았는데, 10대부터 30대까지 연 령층이 다양했다고 한다. 낮에는 신문 판매를 하고 밤에는 야간학교를 다니는 고학생들 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이후 경제발전으로 공장으로 유입되는 청년들이 늘어나면서 인원 이 점차 줄었으며, 회사의 지원중지로 인해 폐쇠되었다. “바로 이 자리가 조선집이었구요. 가운데가 마루가 있구요. 양쪽이 방이 하나씩 있고 툇마루에 방이 하나 둘...(인원은) 20명에서 30명 정 도. 많을 땐 한 40명 정도까지 있었습니다. 입주 조건이라는건 없어요. 성실하게 보이고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해서 말로 약속이 지켜지 면 받아들였죠. 특별히 뭐 어떠한 보호자나 어떠한 갖춘 건 없어요. 그때 “신문을 팔아서 돈 좀 벌겠습니다” 지금 경향신문이 조간이죠. 새 벽에 나오는 신문인데 그때 당시는 낮에 나왔었죠. 90년.....92년까진가? 그 전에는 낮에 석간이었어요. 그래서 일부 학생들은 낮에 신문을 팔아가지고 저녁에 또 야간학교를 다니고 청년들이 있었죠.” “밥해주는 아줌니가 살림을 했고. 관리하는 책임자가 기숙을 했고. 같이 애들하고 생활했죠. 단체라고 해서 다른 건 없구요. 한 달에 한 번 씩 모여서 운동장에서 공차기하고. 다른 특별한 건 없고 이벤트 같은 건 없고. 한 달에 한번정도는 애들이 모여서 공차고 그런 걸로 알고 있 습니다. ”
208
1990년-2015년
풍미추어탕 정삼선 씨
7-11,7-19번지는 1990년부터 풍미추어탕으로 25년간 운영되었다.
신문 가두판매를 하던 청년의 숙소였던 7-11번지는 1990년까지 주변 일대와 마찬가지로 도시형 한옥이었다. 1990년부터 풍미추어탕으로 25년간 운영되었는데, 1990년과 1994년에 7-18과 7-19번지를 추가 매입후 확장하여 사용하였다. 기존 한옥의 구조는 거의 사라지고 주방 과 입식, 좌식 식사 공간으로 새롭게 개조하였다. 식당 골목중 단일메뉴만 판매하던 드문 식당으로 특히 주변 중년 회사원에게 인기가 많은 식당이었다. “초창기엔 장사가 참 잘됐지요. 지금도 손님 많아요. 요즘 뭐 메르스 때문에 쪼금 주춤해서 그렇지. 청와대에서 많이 가져갔지. 000는 2~3 년전까지만 해도 많이 가져갔었는데. 연희동에서 온다하면 거기서 오는거야. 들통을 들고 와. 연희동에서 왔어요. 그래. 연희동이면 000야. 여 뭐 여기서 우리집에서 추어탕 사고 마포 주물럭 집으로 가. 그 당시에만 하더라도 주물럭이 많이 먹었으니깐. 옛날에는 교육청에 오시는 교육청이 주된 고객이었는데. 지금은 웰빙식품이라고 그래가지고 아가씨들 다이어트에도 좋다. 피부미용에도 좋다. 또 이거 칼슘이 많이 들어가 좋다. 그니깐 대중적으로 왜 추어탕만은 계절을 안타는거에요. 음식은 왜 그냐하면은 다 사계절 다 맛이 있는거야. 될수있는거는 그걸(계절을) 안 타는거. 그거 덕을 많이 본거지.”
209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체험문화 공간
스튜디오형 체험문화 공간
건물개요 기존 현황
계획
위치(지번)
신문로2가 22-2번지
대지면적
84.30㎡
•규모: 1F 건물변화 •건축면적: 80.89㎡ •연면적: 152.80㎡ 구조
목구조, 조적조
조적조
용도
주택
근린생활시설
설계방향 • 리모델링(증축, 대수선) • 외형을 최대한 보존, 내부는 구조 보강
210
•규모: 1F •건축면적: 90.99㎡ •연면적: 221.52㎡
스튜디오형 체험문화 공간 이야기 22-2번지는 ‘서대문여관’이라는 이름으로 여관을 운영하던 곳이었다. 정확한 영업 기간은 알 수 없지만 최근까지 거주하던 동네주민이 기억하는 것으로는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건축물 대장상에도 주택으로만 되어 있고 용도변경을 한 적은 없다. 1950년에 가옥이 멸실되어 1955년 새로 짓고, 1961년 현재의 건물로 증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1937년 신문기사에 동일한 주소인 서대문정 2정목 22-2에 서대문여관이 있었다는 기사가 있어 정확한 연속성은 알기 힘들지만, 예전부터 이곳은 숙박업에 적합한 위치와 건물이 있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최근까지 운영하던 분이 여관 곳곳에 재치가 돋보이는 장치를 마련해두기도 하였다.
211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스튜디오형 체험문화 공간 기존도면
입면도
지상 1층 평면도
212
스튜디오형 체험문화 공간 계획도면 22-2번지는 돈의문 박물관마을에서도 계속 스튜디오형 체험문화 공간으로 이용하여 숙박업의 역사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내부 구조를 최대한 보존하려 하였으나 조적벽돌과 흙으로 구성되어 구조안정성이 우려되므로 기존의 공간감을 살려 보강하였다. 타일로 마감이 된 외벽은 그대로 유지하였다.
입면도
지상 1층 평면도
213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조성과정
214
기존 건축물의 원형을 파악하기 위해 구조를 남기고 해체하고 있다.
215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오랜기간 동안 서대문여관을 운영했던 전 입주자는 버리는 물건을 이용해 손재주 좋게 이것저것 여관내에 필요한 물품을 만들어 두었다. (빨래집게로 만든 선반걸이, 바둑판뚜껑으로 만든 전원덮개, 장판으로 만든 파리채, 옥상문을 닫을 수 있는 끈)
216
목조 구조로 조성된 건물로, 내부 구조의 안정성이 떨어져 외벽만 남기고 내부는 철거하였다.
기존 목조건물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나무로 구조를 짠 뒤 흙을 채웠다.
하얀 타일로 장식된 외벽은 골목길을 구성하는 독특한 외형적 요소이므로, 외형을 남겨 조성하였다.
217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기존과 같은 공간감을 주기 위해 동일한 규모로 조성하여 콘크리트 벽을 양생중이다.
지붕 트러스 구조물을 설치하고 있다.
218
건물이 가진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간판은 떼지 않고 두었다.
옥상이 있던 형태를 박공지붕 형태로 조성하였다. 일체형 경량기와를 올린 모습이다.
서대문 여관만의 독특한 목구조 형태를 차용하여 새롭게 조성되었다.(좌_조성 전, 우_조성 후)
219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4. 공방,식문화 공간 개요 ▶ 용도:
공방 식문화 공간
▶ 위치:
17-1번지 외 19개소
▶ 면적:
1,998.16㎡
▶ 특징:
사용자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
▶ 기본방향
• 기존 식당이 가진 외부 풍경과 골목길 유지 • 최소한의 마감으로 차후 입주자의 용도에 맞게 공사 가능
▶ 세부
220
위치(지번)
용도
계획
신문로2가 32-1, 31, 27, 28, 29, 22-3, 40, 41, 43, 52
일반음식점
식당
신문로2가 25-가, 25-나,25-다, 23-1,2, 20-1, 18-1, 44-가, 44-나, 46, 49, 35
휴게음식점
식공방, 북카페 등
비고
• 범례(Legend)
돈의문 제 1 재정비 촉진구역
문화 및 집회시설
부대시설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공사 사업부지
체험문화 공간
편의시설
공방,식문화 공간 위치도_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사업 실시계획인가 (변경1차)』, 서울특별시, 2017
221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공방,식문화 공간
공방,식문화 공간 1
건물개요 기존 현황
계획
위치(지번)
신문로2가 27번지, 28번지
대지면적
115.70㎡, 56.20㎡
•규모: 2F 건물변화 •건축면적: 42.41㎡, 49.59㎡ •연면적: 84.82㎡, 99.18㎡ 구조
조적조
조적조
용도
근린생활시설
근린생활시설(일반음식점)
설계방향 • 리모델링(증축, 대수선) • 기존의 외형을 보존, 내부 단열보강
222
•규모: 2F •건축면적: 124.25㎡ •연면적: 221.52㎡
공방,식문화 공간 1 이야기 27~29번지는 1990년대 초부터 2012년 경까지 약 20년간 ‘비스(BIS)’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출입문과 마당은 27번지에 있으며 28, 29번지는 각자 다른 건물을 통로로 연결하였다. 27번지는 1960년, 28번지는 1956년에 신축하여 주택으로 이용하다가 1994년에 대중음식점으로 용도 변경을 하였는데 이때 개업한 것으로 추정된다. 도심 속에 주택을 개조한 레스토랑 컨셉으로 마당에 야외테이블을 두고 와인을 즐길 수 있어서 정동일대의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하였다고 한다.
223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공방,식문화 공간 1 기존도면
입면도
지상 1층 평면도
224
공방,식문화 공간 1 계획도면 28번지는 식공방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28번지는 2층 벽면을 장식한 눈썹지붕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외형을 보존하기 위해 내부에 단열을 보강하였다.
입면도
지상 1층 평면도
225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조성과정
226
기존의 외형은 최대한 보존하되, 높은 벽으로 인해 폐쇄적이던 건물 내 마당 공간을 개방하여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227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조적조의 개구부에서는 인장력이 가장 취약한 편이다. 철거시 이를 보강하기 위해 개구부 상부에 구조물을 설치하였다.
건축물 대장에는 1961년에 신축한 것으로 등재되어 있으나 발견된 상량문에는 ‘단기 4293년 입주상량(檀紀四二九三年十月十七日甲時 立柱上樑)’으로 되어 있어 1960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228
재사용이 불가한 부분은 철거하고 사용가능한 부재는 보강을 하여 사용하였다.
보강 철물로 구부재와 추가되는 목구조가 접합된 모습이다.
서까래처럼 보이는 구조물은 슬래브 역할을 하며 한국전쟁 이후 미군 경계 철책의 지지대로 사용된 것으로 1950년대 고물상에서 많이 거래되었다고 한다. 철책 사이에 시멘트 몰탈을 부어 인장과 압축강도를 보완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229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일본에서 생산된 아사노 시멘트 포대로 마감된 천정 벽면이다. ‘REPUBLIC OF KOREA’, ‘UNITED STATES OF AMERICA’ 등의 글자가 인쇄되었다.
1960년대 건물로 철근 대신 벽돌을 쌓아 벽체의 중심 구조를 만들고 그 위에 시멘트 몰탈로 공간 벽을 구획한 모습이다. 벽돌은 1매쌓기 방식이 변형된 것이며 기둥은 기존의 벽체에 장식적인 요소로 붉은 벽돌을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
230
기존 테라스의 공간감을 살리고, 안전을 보강하기 위해 철골조를 추가로 설치하였다.
벽면 내부에 나무틀을 설치하고 단열재를 넣기 위한 준비작업 중이다.
높은 담장과 창살문으로 폐쇄적이었던 출입 부분은 기존의 건물이 갖고 있는 분위기와 맞추어 접근이 가능한 낮은 담장으로 조성하였다.
231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공방,식문화 공간
공방,식문화 공간 2
건물개요 기존 현황
계획
위치(지번)
신문로2가 22-3번지
대지면적
132.20㎡
•규모: B1/2F 건물변화 •건축면적: 57.85㎡ •연면적: 117.35㎡ 구조
목구조, 조적조
조적조
용도
업무시설(사무소)
근린생활시설(일반음식점)
설계방향 • 리모델링(증축, 대수선) • 기존 외형을 유지, 내부는 구조보강
232
•규모: 2F •건축면적: 78.32㎡ •연면적: 145.69㎡
공방,식문화 공간 2 이야기 22-3번지는 ‘빨간콩 하얀콩’ 이라는 콩요리를 주로 하는 식당으로 2009년 화재가 나기전까지 운영되었다. 1층은 주택을 개조한 느낌의 식당이었으며 2층은 주거용으로 사용하였다. 1932년에 목조 기와건물로 신축되었으며 1965년에 2층을 증축하였다. 1967년에 주택에서 영업용으로 용도를 바꾸었으나 어떠한 세부용도로 사용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233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공방,식문화 공간 2 기존도면
지상 1층 평면도
234
공방,식문화 공간 2 계획도면 22-3번지는 식당 및 공방 공간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지상 1층 평면도
235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조성과정
236
출입구 부분을 개조하여 조리공간으로 사용하던 곳이었다.
237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건물의 구조가 불안정하여 철거가 불가피하였다. 기존의 공간감을 재현한 형태로 기초를 구성하고 있다.
철근, 설비배관, 철골조 고정을 위한 앵커 볼트 매입 후 기초 콘크리트를 조성하였다.
238
기존의 건물이 가지고 있던 모임지붕 형태를 기준으로 지붕 트러스를 설치하고 있다.
일체형 경량기와를 올린 모습이다.
구조는 철골로 구성하고 벽체는 벽돌을 쌓아 외벽과 공간을 조성하였다.
239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구조 안정성은 철골로 보강을 하되, 벽면 조성은 기존 건축물이 지닌 조적식 방식을 사용하여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조성하고자 하였다.
240
기존의 목구조로 제작된 계단은 구조를 보강하였다.
외벽에 도색작업을 완료하였다.
외부에도 건물 내부와 마찬가지로 벽돌을 쌓아서 발코니를 조성하였으며, 창문마다 창호를 설치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241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공방,식문화 공간
242
공방,식문화 공간 3
건물개요 기존 현황
계획
위치(지번)
신문로2가 25-가번지
대지면적
132.20㎡
•규모: 3F 건물변화 •건축면적: 66.94㎡ •연면적: 200.82㎡
•규모: 2F •건축면적: 59.1㎡ •연면적: 172.10㎡
구조
목구조, 조적조
조적조, 철골구조
용도
업무시설(사무소)
근린생활시설(일반음식점)
설계방향 • 리모델링(대수선) • 내부를 최대한 보존, 외부는 일부 변형
공방,식문화 공간 3 이야기 25-가 번지는 2016년까지 ‘노다지 깡통 생오겹살’이라는 식당으로 운영되었는데 인근 회사원들이 저녁 회식 장소로 애용하던 맛집이었다. 경찰박물관, 내일신문사 등 사무용 건물을 제외하고 돈의문 박물관마을 내 주변 건물들보다 전망이 높은 편이다.
243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공방,식문화 공간 3 기존도면
입면도
지상 1층 평면도
244
공방,식문화 공간 3 계획도면 25-가 번지는 식당 및 공방 공간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입면도
지상 1층 평면도
245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조성과정
246
목구조로 구성된 3층 건물이다. 1층부터 3층까지 ‘노다지 깡통 생오겹살’ 식당으로 사용되었다.
247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조적조 3층 건물로 구성된 건물은 도심내에 드물게 남아 있는 편으로 내부의 보존가치가 크다고 판단하였다. 내부의 구조 안정성을 위해 철골조로 보강한 상태이다.
철골조의 설치로 인해, 철거할 수밖에 없던 보는 흔적을 남겨두었다.
248
기존의 목재로 조성된 계단은 안정적인 스틸소재로 교체하여 조성하였다.
249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목재와 철심 등으로 구성되었던 기존 건물 구조의 부식이 진행되고 있어 구조보강이 필요한 상태이다.
내부의 조적은 결합부분이 유실되어 구조적 변형을 막기 위해 기존의 느슨해진 벽돌사이에 충전재를 넣어 결합성을 높였다.
250
외벽은 단열을 위해 드라이비트 시공을 하고 있다.
새롭게 조성되는 벽은 철골조로 구조를 만든 뒤, 기존 건물이 지닌 벽돌쌓기 방식을 이용하여 유사한 건축양식으로 조성하였다.
외부에 엘리베이터 공간을 증축하여 설치하였다.
새로 조성한 건물에는 옥상공간을 두지 않고 편평한 지붕으로 마감하였다.
251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공방,식문화 공간
공방,식문화 공간 4
건물개요 기존 현황
계획
위치(지번)
신문로2가 20-1번지
대지면적
152.1㎡
•규모: 1F 건물변화 •건축면적: 59.50㎡ •연면적: 59.50㎡
•규모: 2F •건축면적: 79.88㎡ •연면적: 79.88㎡
구조
목구조, 조적조
조적조
용도
근린생활시설
근린생활시설(휴게음식점)
설계방향 • 리모델링(증축, 대수선) • 기존 건물의 외형과 마당, 수목을 최대한 보존
252
공방,식문화 공간 4 이야기 20-1번지는 2008년 ‘쿠이’라는 돈까스를 파는 식당이었다가, 같은 운영자가 내부공간을 수리하여 ‘LP BAR’라는 간단한 음료 접대 및 음악을 틀어주는 카페 형태로 2015년까지 운영하였다. 1954년에 최초 건축물 대장에 등록이 되었고 1964년 최덕교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최덕교는 『학원』지 편집장과 주간을 맡았으며 이후 많은 잡지의 창간 및 간행에 앞섰다. 또한 ‘창조사’라는 출판사를 1964년부터 1990년대 말까지 운영하였다. 『학원』지에 근무할 당시 고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일을 맡은 뒤 꾸준히 후원활동을 했던 최덕교가 세상을 떠난 뒤, 유족들은 그 뜻을 이어받아 장학재단에 이곳을 기증하였다.
253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공방,식문화 공간 4 기존도면
평면도
254
공방,식문화 공간 4 계획도면 20-1번지는 식당·공방의 형태로 운영될 예정이다.
입면도
평면도
255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조성과정
256
노후된 기존 건물의 지붕과 내부 일부를 철거하였다. 입구 부분의 입면과 구조는 보존하였으며 연결된 건물의 조적벽도 일부 그대로 두고 조성하였다.
257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기존의 구조를 남기고 철골조로 내부를 보강한 모습이다.
기존 외벽에 덧붙인 부분은 회색 전벽돌로 차이를 두어 구분되도록 조성하였다.
258
기존 건축물의 공간감을 살려, 기존과 동일한 조적식 벽체로 구성하였다.
내부 단열재를 설치하기 위해 목조틀을 내부에 설치하였다.
기존 건물 마당에 심어져있던 회화나무와 느티나무는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 보존하였다.
259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지붕은 금속 재질의 징크 판넬로 마감하였다.
새롭게 조성되는 지붕 위에는 채광창을 달아 빛과 나무가 천장에서 보이는 풍경을 보여준다.
260
골목길과 마당을 구분짓던 기존의 낮은 담장도 재현하여 아늑한 마당을 만들었다.
마당에 나무를 보존하며 야외 데크를 조성하였다.
261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공방,식문화 공간
공방,식문화 공간 5
건물개요 기존 현황
계획
위치(지번)
신문로2가 41번지
대지면적
109.1㎡
•규모: B1/2F 건물변화 •건축면적: 60.30㎡ •연면적: 184.86㎡
•규모: B1/3F •건축면적: 60.50㎡ •연면적: 181.14㎡
구조
철근콘크리트, 조적조
조적조
용도
근린생활시설, 주택
근린생활시설(일반음식점)
설계방향 •리모델링(증축, 대수선) •기존의 외형과 공간감을 보존하고, 내부는 일부 변형
262
공방,식문화 공간 5 이야기 41번지는 2000년부터 2015년까지 16년간 ‘안동회관’이라는 이름으로 한정식, 고기를 파는 식당이었다. 운영자는 신문로 1-402번지 부근에서 중국음식점인 ‘안동장’을 1984년부터 운영하다 41번지로 업종을 바꿔서 이전하였다고 한다. 41번지는 1959년에 목조 2층 건물을 신축하였으며 이후 1976년에 지하와 2층을 개축하여 1980년대부터 대중음식점 및 주택으로 이용되었다.
263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공방,식문화 공간 5 기존도면
입면도
지상 1층 평면도
264
공방,식문화 공간 5 계획도면 41번지는 식당 및 공방 공간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입면도
지상 1층 평면도
265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조성과정
266
골목길을 구성하는 외형을 보존하고 내부는 용도에 맞게 사용하기 위해 내부를 철거하였다. 창호를 제거한 뒤, 인장력을 보강하기 위해 구조물을 설치하였다.
267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내외부 공사가 용이하도록 비계를 설치한 모습이다.
기존 구조를 보강하기 위해 철골조를 설치하였으며, 내부의 벽면은 단열재를 설치한 뒤 프라이머를 바른 상태이다.
기존의 난간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옥상 공간에 난간을 설치하였다.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넓은 공간으로 조성하되, 에어컨이나 전기시설 등 기본 시설은 미리 구성하였다.
268
기존에 나무로 만들어졌던 계단의 모양을 차용하여, 콘크리트로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을 조성하였다.
따로 단열재를 두지않고, 벽면에 신문지로 마감한 옥상은 내부를 콘크리트로 다시 마감하고 옥상 외부에 난간을 설치하여 옥상의 활용도를 높였다.
기존과 동일한 격자형 유리창호의 형태이다.
269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인터뷰
주변 직장인들의 일상 밥집
안동회관, 41번지
김여환, 한소임 씨
2000년부터 2015년까지 15년간, 41번지는 안동회관이라는 이름의 한우고기 구이전문점으로 운영되었다
270
2000년부터 2015년까지 15년간, 41번지는 ‘안동회관’이라는 이름의 한우고기 구이전문점으로 운영되었다. 낮에는 고기구이보다는 일상적으로 먹는 백반 식사류 메뉴가 더 잘 나가던 곳이었다. 식당을 운영하던 부부는 혼인 이후 신문로에 들어와 30여년간 자리를 옮겨가며 ‘안동장’이라는 중국집을 운영하다 식단 메뉴를 한식으로 바꾸면서 ‘안동회관’으로 상호를 바꾸었다. 인생의 전생기를 돈의문 박물관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가정집이 많던 골목이 식당으로 바뀌고, 주민들과 함께 야유회를 가던 추억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 당시 골목에서 장사하는 사람은 나뿐이었어. 다 핸길가에다 한 네집있었나. 한 세집? 자 나는 돈도 없고. 인자 거시기 그때 당시에는 짜장면 장사니깐 배달이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요쪽으로는 장사집이 없었고. 다 가정집이고, 과외 가르친 집인데 과외 선생이 자기가 보신탕집을 해 볼라고 하다가 아이고 우리가 식당은 어띃게 안된다 해갖고 우리 줘서 하다가. 수리하다가 우리 준거 같애. 짜장면 장사는 안동장. 안동회관은 한식집 하면서 돌린거지 회관으로. 내가 있는거는 옛날에 기상청이나 교육청에 80년도부터 있던 사람들헌티 물어보면 알아. 안동회관, 안동장.. 80년도에 있던 분들은 안동장이라 해고, 인자 90년도 들어오면서 인자 한식집 함서부터 안동회관이라고 했으니깐. 그니깐 다 알지.” “우리가 그래서 돈은 안별려도 그냥 입만 살아도 그냥 다 있는거지. 세월을 너무 많이 보내버렸재 돈 안벌고 여기서. 어째했냐면은 그냥 사는게 재밌었가지고, 동네사람들하고 막 한집 식구들마치로 어울려서. 그러고도 또 내가 나놔먹는것도 좋아핸거 같애. 막 비누같은 것도 집에서 막 부지런하니까 만들어서 노인네들 서너장씩 갖다주면 항시 좋아라 했어.
271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5. 생활,소매 공간 개요 ▶ 용도:
생활, 소매상점
▶ 위치:
신문로2가 17-1, 18-1, 19-7, 19-1, 58
▶ 면적:
1689.29㎡
▶ 특징:
가로형 근린생활시설
▶ 기본방향
• 기존 건물의 외형 보존 • 옥상 공간의 확장 설계
▶ 세부
272
위치(지번)
용도
계획
신문로2가 17-1, 18-1, 19-7, 19-1번지
근린생활시설
생활,소매 공간
신문로2가 58번지
근린생활시설
생활,소매 공간
비고
차후 2단계 조성 (~2018년까지예정)
• 범례(Legend)
돈의문 제 1 재정비 촉진구역
문화 및 집회시설
부대시설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공사 사업부지
체험문화 공간
편의시설
생활,소매 공간 위치도_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사업 실시계획인가 (변경1차)』, 서울특별시, 2017
273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생활,소매 공간
274
가로형 근린생활 공간
건물개요 기존 현황
계획
위치(지번)
신문로2가 19-1번지
대지면적
52.90㎡
•규모: 3F 건물변화 •건축면적: 72.40㎡ •연면적: 217.20㎡
•규모: 4F •건축면적: 72.40㎡ •연면적: 224.17㎡
구조
철근콘크리트
철근콘크리트
용도
근린생활시설, 주택
근린생활시설(소매점)
설계방향 • 리모델링(증축, 대수선) • 기존의 외형을 유지하되, 옥상공간 확장
가로형 근린생활 공간 이야기 19-1번지는 ‘부동산’과 ‘무궁화교복’ 가 마지막으로 운영되었다. 이 일대는 1950년 2층 영업용 건물이 있었으나 같은 해에 건물이 일괄 멸실되어 1960년에 신축되었다. 주민들의 제보에 따르면 접골원과 한의원이 꽤 오랫동안 있었다고 한다. 가로변에 위치하고 있어 이른 시기부터 점포로 오랫동안 운영되었다.
275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가로형 근린생활 공간 기존도면
입면도
지상 1층 평면도
276
가로형 근린생활 공간 계획도면 19-1번지는 가로형 생활, 소매 공간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입면도
지상 1층 평면도
277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조성과정
278
흰색 타일로 조성된 외벽의 외형을 보존하고, 내부는 용도에 맞게 고치기 위해 내부만 철거한 모습이다.
279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천정에 전기선을 구성하고 있다.
내부의 단열공사를 하기 위해 목재로 틀을 만들고 단열재를 설치하고 있다.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가스, 전기, 수도 등 기본 시설을 설치하였다.
캐노피의 지붕은 회색계열의 징크 패널로 조성하였다.
280
기존 옥상내에 있던 공간과 유사한 캐노피를 설치하기 위해 철골조로 구조를 세우고 있다.
건물 내부에 단열을 보강하는 방법으로 나무로 틀을 만든 뒤 우레탄 폼을 도포한 모습이다.
본래 조성된 하얀 타일 외벽을 최대한 보존하며 내부를 조성한 공간이다.
281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6. 마당,골목 공간 개요 ▶ 용도:
공유공간
▶ 위치:
돈의문 박물관마을 내 마당, 성곽녹지 등
▶ 특징:
마을의 기존 풍경과 관계를 보존
▶ 기본방향
• 유실된 한양 도성과 연결되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마을 녹지 • 기존 마을길의 풍경을 유지 • 마을 내부 모임과 외부 관계를 연결하는 공유공간 조성 ▶ 세부
위치(지번)
용도
계획
신문로2가 7-23, 7-24
마당
마을마당
공원
성곽녹지
길
마을 골목길- 아트페이빙
공원
새문안소공원
신문로2가 1-402, 4, 4-3 신문로2가 40, 41, 43, 44-가나, 48, 49, 52일환
282
비고
차후 2단계 조성 (~2018년까지 예정)
42.4
J2 J1 E2
E1
40.6
I7 I6
I8
E6 I5
E4
A2 A3
E3
A4
I4
B3
A5
I1
E5
B2
39.5
K I2
B7
B1
39.9
I3
B6 F1
B9
51.9
B8
40.4
G2
F3
F2
1
G7 G3
H4
C 1F
G6
G1
40.2
H3 40.6
G5
40.3
41.2
H2 50.3
G4 D
7F 3F
H1
40.5 41.6
41.7
41.2
1F
41.4 1
45.4 2F
마당,골목 공간 위치도_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사업 실시계획인가 (변경1차)』, 서울특별시, 2017
283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마당,골목 공간
마당
건물개요 기존 현황
계획
위치(지번)
신문로2가 7-23, 7-24번지
대지면적
178.50㎡, 208.30㎡
•규모: B1/3F 건물변화 •건축면적: 83.31㎡, 96.43㎡ •연면적: 96.43㎡, 161.32㎡ 구조
철근콘크리트
용도
목욕탕, 주택
•마당 조성
마당
설계방향 • 커뮤니티 센터와 연계된 마을 중심 공간으로 박물관 마을의 다양한 문화행사를 담는 공간으로 조성 • 기존 집터의 레벨차를 활용하여 윗마당과 아랫마당으로 계획
284
마을마당 이야기 마을마당은 돈의문 박물관마을의 중심 공간으로, 기존에 조성된 건물의 높낮이를 살려 윗마당과 아랫마당으로 이루어졌다. 윗마당은 커뮤니티 센터와 연계한 소규모 행사공간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아랫마당은 마을 전체가 활용할 수 있는 행사 공간으로, 높낮이차를 이용한 계단형의 장대석 스탠드를 조성하여 다양한 모임, 공연 등이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녹음과 공간감을 형성하기 위해 회화나무를 식재하였다.
285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마당,골목 공간
286
골목길(아트페이빙)
개요 • 내용: 투명 레진블록이나 플랜트 박스 등을 이용해서 마을 골목길의 일정구역 바닥을 공공미술로 표현 • 설치장소: 돈의문 박물관마을 내 출입구, 광장 일부 및 공유공간 2지점 • 진행방식: 아트페이빙 프로젝트 지명 공모 후(서울특별시 공고 제 2017-724호) 당선작 설치 • 주관부서: 서울특별시 문화본부 디자인정책과 • 당선작: Common and the Commons • 프로젝트팀 구성 - 총괄기획: 홍보라(gallery factory) / - 기획,개발: 남소영(기획/all:about place), 로와정(작가 듀오), 최정유(디자이너) - 디자인,설계: 김재윤+조소운(건축/Small Rooms), 김영진(엔지니어링/디자인펌) 황경선+김민아+장원(디자인/Hattern)
설계방향 • 골목길의 동선을 살려 진입과 교차부분의 페이빙 진행 • 열린마당 경계에 플랜트 박스 설치
골목길(아트페이빙) 이야기 2017년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와 연계하여 돈의문 박물관마을 방문객들이 아트페이빙이란 다소 생소한 장르를 눈으로 보고, 즐기고, 걸으면서 일상이 예술이 되는 공공 미술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도시에서 수집한 물건들을 투명한 수지로 굳혀 블록형태로 제작하여 바닥과 벽으로 구성하는 방식으로 구성한 페이빙 블록과 골목마다 문 앞에 화분을 내놓던 풍경을 차용한 투명 레진 화분(플랜트박스)으로 조성할 예정이다.
세부계획
벽체계획
287
Ⅲ. 박물관마을을 기획하고 조성하다
조성과정
마당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기존 건물을 철거중이다.(좌,우)
기존의 지형 높낮이를 이용해 윗마당과 아랫마당으로 구분하였다.(좌,우)
골목과 마당이 연결되는 곳으로 블록을 설치하였다.(좌,우)
288
마을 입구에 블록을 설치하는 모습이다.
마당 바닥과 벽면에 마을에서 수집한 물품을 이용하여 공공미술을 설치하였다.(좌,우)
289
290
Ⅳ 과거를 간직하고
새롭게 태어나다
291
Ⅳ. 과거를 간직하고 새롭게 태어나다
01
02
2015년 8월 10일
03
2016년 2월 23일
06
2016년 5월 14일
292
2015년 12월 16일
04
2016년 3월 26일
07
2016년 5월 31일
05
2016년 4월 29일
08
2016년 6월 15일
1. 마을 풍경의 보존과 변화
09
2016년 6월 29일
12
2016년 8월 29일
10
2016년 8월 1일
13
2016년 9월 13일
11
2016년 8월 15일
14
2016년 9월 26일
15
2016년 10월 13일
17
16
2016년 10월 30일
2016년 11월 16일
293
Ⅳ. 과거를 간직하고 새롭게 태어나다.
18
2016년 11월 29일
21
2017년 1월 17일
19
2016년 12월 15일
22
2017년 2월 18일
24
2017년 3월 21일
26
25
2017년 4월 12일
294
2017년 4월 28일
20
2016년 12월 28일
23
2017년 3월 4일
27
2017년 5월 15일
30
2017년 6월 27일
28
2017년 5월 28일
31
2017년 7월 26일
29
2017년 6월 11일
32
2017년 8월 12일
33
2017년 9월 4일
295
Ⅳ. 과거를 간직하고 새롭게 태어나다.
32-1번지(조성 전, 2016년 5월)
32-1번지(조성 후, 2017년 8월)
돈의문 박물관마을 입구(조성 전, 2015년 10월)
돈의문 박물관마을 입구(조성 후, 2017년 8월)
296
18-1번지(조성 전, 2015년 10월)
18-1번지(조성 후, 2017년 8월)
6번지(조성 전,2016년 9월)
6번지(조성 후, 2017년 8월)
30-1번지(조성 전, 2015년 7월)
30-1번지(조성 후, 2017년 8월)
297
Ⅳ. 과거를 간직하고 새롭게 태어나다.
7번지 일대(조성 전, 2015년 7월)
7번지 일대(조성 후, 2017년 8월)
298
마을 골목길(조성 전, 2015년 7월)
마을 골목길(조성 후, 2017년 8월)
52번지 일대(조성 전, 2015년 7월)
52번지 일대(조성 후, 2017년 8월)
299
Ⅳ. 과거를 간직하고 새롭게 태어나다.
2. 창의,문화,교육 공간
창의,문화,교육 공간은 도시건축센터와 돈의문 전시관, 도시건축센터 협업공간 등으로 구성되어 돈의문 박물관마을을 구성하는 가장 크게 보여지는 공간이다. 마을의 문화공간 축으로 마을의 역사와 도시재생 전시, 도시 건축과 관련한 아카이빙, 연구,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 용도:
창의,문화,교육 공간
▶ 위치:
6번지 외 8개소
▶ 면적:
4,029.97㎡
▶ 특징:
도시건축센터, 돈의문 전시관, 도시건축센터 협업공간 등으로 구성
▶ 운영:
• 서울 도시 형성과 건축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전시, 아카이브 공간 • 신진 예술가를 위한 창업, 협업 공간 조성 • 돈의문 일대 지역의 역사 및 도시재생 관련 전시 공간
300
301
Ⅳ. 과거를 간직하고 새롭게 태어나다.
창의,문화,교육 공간
302
돈의문 전시관
돈의문 전시관은 인근에 위치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운영할 예정으로, 근현대 도시공간의 형성과 성장 과 정을 시각화한 전시공간이다. 주택, 식당, 사무실 등 여러 용도로 사용되던 공간의 흔적을 최대한 보존하 면서 만든 장소의 특징을 살려 마을 전체가 박물관인 돈의문 박물관마을의 역사와 현재, 활용, 도시재생으 로 이루어진 활용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관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기존의 건물이 갖고 있는 낮은 층 고나 여러 건물을 이어서 조성되어 좁은 통로공간을 오히려 디자인요소로 활용하는 방법으로 평면을 구 성할 예정이다.
돈의문 전시관 1 전경
303
Ⅳ. 과거를 간직하고 새롭게 태어나다.
돈의문 전시관 1 내부
돈의문 전시관 1과 돈의문 전시관 2를 잇는 통로
돈의문 전시관 2
돈의문 전시관 2 내부
304
돈의문 전시관 3 전경
돈의문 전시관 3 내부
305
Ⅳ. 과거를 간직하고 새롭게 태어나다.
창의,문화,교육 공간
306
도시건축센터
도시건축센터는 서울시 공공건축 진흥을 위한 도시건 축의 종합 지원시설로 공공건축 통합 자료시스템을 운영하고 전시하는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산재되 어 있는 서울시 도시건축 아카이브의 보존 및 지속성 구축을 위해 공공건축 통합 자료를 수집하고 자료를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일반인부터 전문가까지 다양 한 계층을 대상으로 전시, 출판, 홍보 등 도시의 공 공건축 및 지식공유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도시건축센터 1 전경
307
Ⅳ. 과거를 간직하고 새롭게 태어나다.
도시건축센터 1 후경
도시건축센터 1 외부
308
도시건축센터 1 내부
도시건축센터 2 전경
도시건축비엔날레 전시작품이 설치된 도시건축센터 3 마당
도시건축센터 3 전경
309
Ⅳ. 과거를 간직하고 새롭게 태어나다.
3. 체험문화 공간
체험문화 공간은 한옥 체험문화 공간과 스튜디오형 체험문화공간으로 구성되어 운영될 예정이다. 돈의문 박물관마을에 오랫동안 있던 한옥의 역사를 이어 조성된 한옥과 40여년간 서대문여관으로 운영되었던 스튜디오형 공간은 체류, 교육, 문화 등 다양한 체험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 용도:
체험문화 공간
▶ 위치:
7-8번지 외 11개소
▶ 면적:
773.34㎡
▶ 특징:
한옥형, 스튜디오형 체험공간으로 구성
▶ 운영:
• 프로젝트형 레지던시 • 새문안동네 관련 아카데미 프로그램 운영 • 문화체험 시설 운영
310
311
Ⅳ. 과거를 간직하고 새롭게 태어나다.
체험문화 공간
312
한옥 체험문화 공간
한옥 체험문화 공간은 1930년대부터 이 구역에 조성 된 도시형 한옥을 해체하여 현대의 건축기준에 맞게 재생한 건물이다. 기존의 좁은 골목과 불법 개축한 곳은 편리하게 고치고 이전의 정취를 보전한 건축물 로 체류와 체험이 이루어지는 가변적인 공간으로 운 영될 예정이다. 프로젝트에 따라 체류가 가능하며 작 업공간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한옥이라는 공간의 특성을 활용하여 문화체험이나 아카데미 수업 운영 등 다양한 문화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다.
한옥 체험문화 공간 전경
313
Ⅳ. 과거를 간직하고 새롭게 태어나다.
한옥 체험문화 공간 전경
한옥 체험문화 공간 지붕 경관
314
한옥 체험문화 공간 내부
한옥 체험문화 공간 마루
315
Ⅳ. 과거를 간직하고 새롭게 태어나다.
체험문화 공간
316
스튜디오형 체험문화 공간
스튜디오형 체험문화 공간은 이전에 있던 서대문 여 관의 외형과 구조를 살린 곳이다. 한옥형 공간과 동일 하게 프로젝트에 따라 짧은 기간이나 긴 기간동안 체류가 가능하며, 특히 개별의 방으로 구별된 스튜디 오형으로 단기 숙박에 적합하다. 도시건축센터 교육 프로그램이나 공방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의 체류공간 으로 활용이 가능하며 1인 여행자나 교육생, 예비전 문가 등 1-2인에 맞는 체류, 체험 공간이다.
스튜디오형 체험문화 공간 전경
317
Ⅳ. 과거를 간직하고 새롭게 태어나다.
스튜디오형 체험문화 공간 1층
스튜디오형 체험문화 공간 출입구
318
스튜디오형 체험문화 공간 내부 복도
319
Ⅳ. 과거를 간직하고 새롭게 태어나다.
4. 공방,식문화 공간
기존 마을의 식음시설 활동을 중심으로 문화적으로 구성하는 공방,식문화 공간은 도시, 건축, 문화관련 연계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공간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 용도:
공방,식문화 공간
▶ 위치:
28번지 외 19개소
▶ 면적:
1,998.16㎡
▶ 특징:
스튜디오형 공방과 한식당으로 구성
▶ 운영
• 식문화 관련 스튜디오형 공방 • 다양한 형태의 식음공간 • 기존 새문안동네 식음시설 활동을 중심으로 문화적 구성
320
321
Ⅳ. 과거를 간직하고 새롭게 태어나다.
공방,식문화 공간
322
식당
식당은 기존 돈의문 박물관마을의 대다수를 구성하고 있던 상업형태의 특징을 반영한 프로그램이다. 돈의문 박물관마을은 장소성을 살린 문화공간이 조성되는 것만 아니라, 1980년대부터 주변 일대 직장인의 점심을 주로 해결하던 곳으로의 정체성을 살려 식당과 커피 숍 등 식음공간도 운영할 예정이다.
27, 28, 29번지 내부
323
Ⅳ. 과거를 간직하고 새롭게 태어나다.
27, 28, 29번지 2층 내부
40번지 옥상공간
324
40번지 전경
325
Ⅳ. 과거를 간직하고 새롭게 태어나다.
공방,식문화 공간
326
스튜디오형 공방
스튜디오형 공방은 식당이 많았던 돈의문 박물관마 을의 특징을 반영한 새로운 운영 프로그램이다. 직접 요리를 하는 것에 대한 현대인의 수요가 많아짐에 따라 공방형태로 쿠킹 스튜디오를 운영하여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체류,체험 공간과 연계 하여 숙박자들을 대상으로 단기 체험 등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요리뿐만 아니라 공예, 건축, 도시와 관련한 다양한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는 공방형태로 운영될 예정이다.
20-1번지 전경
327
Ⅳ. 과거를 간직하고 새롭게 태어나다.
25-가 전경
328
25-가 3층 내부
25-다 내부
20-1번지 내부
329
Ⅳ. 과거를 간직하고 새롭게 태어나다.
5. 생활,소매 공간
유동성이 많은 가로변을 중심으로 생활 중심 판매시설이 운영될 예정이다. 가로형 근생공간은 새문안로를 따라 형성된 가로에 조성되는 곳으로, 돈의문 박물관마을의 분위기를 크게 해치지 않는 선에서 수익창출형 생활편의시설로 구성될 예정이다.
▶ 용도:
생활,소매 공간
▶ 위치:
17-1번지 외 4개소
▶ 면적:
987.79㎡
▶ 특징:
새문안로 가로변에 위치
▶ 운영:
• 수익창출형 모집 방식으로, 큐레이팅형, 기획형 모집 방식 추진 • 주변 수요와 밀접한 생활편의시설
330
331
Ⅳ. 과거를 간직하고 새롭게 태어나다.
생활,소매 공간
332
가로형 근린생활 공간
가로형 근린생활 공간은 새문안로를 따라 기존에 생 성된 건물의 특징을 살려 소매점, 휴게음식점 등의 근 린 생활시설로 구성 될 예정이다.
19-7번지 옥상
18-1번지 전경
333
Ⅳ. 과거를 간직하고 새롭게 태어나다.
19-1번지 옥상공간
19-1번지 전경
334
17-1번지 전경
17-1번지 1층 내부
335
Ⅳ. 과거를 간직하고 새롭게 태어나다.
6. 마당,골목 공간
돈의문 박물관마을이 가진 매력 요소 중 하나는 도심 속에서 한 골목만 들어가면 향수를 자극하는 골목길과 주택이 있다는 점이었다.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사업은 오래된 도시조직을 보존하며, 기존의 골목길 분위기를 살리는 것이 핵심이었다. 마당과 골목길은 이전에 매력요소였던 특징을 살려 다양한 문화시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매개로써 공유공간과 새로운 문화 체험공간으로 확장할 예정이다.
▶ 용도:
공유공간
▶ 위치:
7-24번지 외
▶ 특징:
마을마당, 골목길, 녹지공간 등으로 구성
▶ 운영:
• 거주, 삶 중심의 활동 지원, 공용공간 • 마당, 골목길 적극 활용 • 마을 커뮤니티 부문별 협업 프로그램 운영
336
337
Ⅳ. 과거를 간직하고 새롭게 태어나다.
마당에 있는 아카이빙 블록
골목길 아트페이빙을 보고 있는 시민
338
제1회 도시건축비엔날레 개막식이 열린 마당
새로 조성된 한옥 골목길
339
340
Ⅴ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 기록
341
Ⅴ.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 기록 1. 추진사업일지 •2015.05.07.
돈의문 역사문화마을 조성계획: 서울시장방침 제 100호
•2015.05.28.
SH공사와 서울시 사업대행 계약체결
•2015.07.28.
설계용역 계약체결: ㈜기오헌 건축사사무소
•2015.09.24.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계획 자문회의
•2015.10.08.
돈의문 재정비촉진지구 총괄사업자 관리자 지정: SH공사
•2015.11.04.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신청
•2015.11.20.
주거사업과에서 도시공간개선단으로 업무이관
•2015.12.14.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을 위한 철거 시작
•2016.03.03.
박물관·미술관 사업회의: 돈의문전시관은 서울역사박물관이 운영
•2016.03.09.
문화재 현상변경 심의
•2016.03.10.
재정비 촉진계획 변경(안) 주민공청회
•2016.03.10.
발굴허가 (제2016-0303호)
•2016.04.28.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공사 입찰 공고
•2016.06.23.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공사 계약체결: ㈜한일건설
•2016.07.21.
도시건축센터 착수보고
•2016.07.26.
건축 허가: 종로구청
•2016.07.27.
공사 준공(착공 신고)
•2016.09.13.
발굴조사 완료
•2017.08.
준공
•2017.09.02
342
도시건축비엔날레 개막
2015.02.03. 이축한옥 보관창고 방문
2016.03.15. 부시장 보고
2016.05.19. 남재경 서울시의원 면담
2015.12.14. 돈의문 박물관마을 철거 시작
343
Ⅴ.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 기록
2016.07.21. 도시건축센터 착수보고
2016.07.29. 도시건축센터 중간보고
2016.09.03. 가림막 설치
2016.09.08. 발굴조사 진행중
2016.09.08. 한옥목재 점검 및 넘버링 작업
2016.09.08 건물별 초석정리
2016.09.22. 서대문여관 석축 검토
2016.12.08. 디자인 가림막 설치
2017.04.14. 현장방문회의
2017.05.30. 1차선 도로확장 및 보행로 공사
2017.06.13. 마을 내 가스배관 설치
2017.06.26. SH공사 변창흠사장 현장방문
344
2017.07.26. 도시건축비엔날레 회의
345
Ⅴ.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 기록
2017.06.28. 서울시의원 현장 방문
2017.08.30. 안전점검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개막에 맞추어 시민에게 개장된 돈의문 박물관마을
346
2017.09.13. 종로구 의원 현장 방문
2017.09.02 도시건축비엔날레 개막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개막과 돈의문 박물관마을 개장을 축하하는 이제원 서울시 행정2부시장
개막 공연을 즐기는 시민
347
Ⅴ.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 기록
2. 돈의문 박물관마을을 만든 사람들 서울특별시
설계
▹ 총괄건축가 김영준
▹ (주)건축사사무소 기오헌
▹ 도시공간개선단 김태형
도시공간개선단 단장
안재혁 도시공간개선반 반장, 윤용훈 도시건축센터 센터장 신명승
민현식, 김남형, 박시원, 문형규, 장요원, 김효정, 홍진석 ▹ (주)노바건축사사무소 강승희, 박태원, 엄혐
설계공모운영팀 팀장
이광백, 유지훈, 조범근 주무관
한일건설
▹ 도시재생본부
민병천 돈의문 박물관마을조성공사 현장소장
진희선 도시재생본부 본부장
이응주 부장, 이창하 차장, 변상철 차장, 표인수 차장,
김승원 도시재생본부 주거사업기획관
김복섭 차장, 한상민 과장, 박준삼 과장
박기범 도시재생본부 주거사업과장
오재환 과장, 윤석태 대리, 안병호 사원, 함영욱 사원,
윤옥광 총괄팀장, 김민경 주무관
김상재 사원, 김현호 사원
서울주택도시공사 변창흠 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 이용건 도시재생본부장, 강홍극 근린재생사업처장, 문명렬 주거재생사업부장 이은성 과장(건축), 윤종현 과장(건축), 김도현 과장(토목), 김정범 주임(토목), 정상호 팀장(기계), 민주현 차장(조경), 장재욱 대리(전기)
안재혁 도시공간개선반장, 이제원 서울시 행정2부시장, 류경기 서울시 행정1부시장, 알레한드로 자에라-폴로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 김영준 서울시 총괄건축가, 김태형 도시공간개선단장 (좌로부터)
348
서울시 도시공간개선단, 서울주택도시공사, 한일건설 돈의문 박물관마을 공사참여팀
행정 1부시장, 도시공간개선반장, 도시공간개선단장, 승효상건축가(좌로부터)
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 및 임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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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 기록
도시건축비엔날레 전시를 설명하는 배형민 총감독
서울주택도시공사 관계자
한일건설 관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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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351
Ⅴ.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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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이 가진 역사자원과 고유한 문화를 활용한 마을
<돈의문 박물관마을>은 조선시대부터 서울의 사대문인 돈의문이 세워지고 한양도성의 경계로 문 안에 생성된 마을입니다. 5대 궁궐 중 하나인 경희궁과 담을 마주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전차가 지나가고 돈의문과 한양도성이 훼철될 때에도, 주변에 고층 빌딩들로 둘러쌓인 도심지로 변한 지금까지도, 옛 길과 필지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다양한 시대 양식의 건물이 공존하는 지역입니다. <돈의문 박물관마을>은 전면 철거 후에 공원으로 운영될 예정이었던 곳이었지만, 도시재생 방식으로 지역이 가진 역사자원과 고유한 문화를 활용하기 위해 오래된 골목길이 지닌 특색있는 풍경을 살려 만들어 조성이 되었습니다. 마을 내의 건물은 최대한 부수지 않고 리모델링하였으며, 주택 마당내에 있던 오래된 나무도 보존하였습니다. 기존 마을내에 있던 건물을 활용하여 이 일대 지역의 역사와 도시재생의 대한 이야기를 담은 돈의문 전시관, 서울시의 공공건축에 대한 자료를 전시하고 수집하는 도시건축센터 등 다양한 문화시설과 기존의 문화를 살린 식당과 공방이 운영될 예정입니다. 도심지내에 오래된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시민들을 위한 역사문화마을로 조성한 첫 사례로 이 백서는 마을의 역사와 재생과정을 기록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서울시의 도시재생 사업을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2017년 11월 서울시장
박원순
353
새로운 방식의 도시공간
새로운 <돈의문 박물관마을>이 열렸습니다. 마을 전체가 근대와 현대의 골목길과 건물 공간 등의 구조를 그대로 간직한 <돈의문 박물관마을>은 기존의 옛 마을의 역사와 흔적을 보전하면서 새로운 방식의 도시공간으로 꾸며질 예정입니다. 도시 건축에 대한 여러 실험을 보여주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주제전 전시장으로 <돈의문 박물관마을>이 시민 여러분에게 첫 선을 보입니다. 도시건축비엔날레가 끝나고 난 뒤, <돈의문 박물관마을>은 일대 지역의 역사와 도시재생에 관한 전시를 담은 돈의문 전시관, 서울의 공공 건축에 관한 아카이빙과 다양한 문화활동이 펼쳐진 도시건축센터, 입주자들과 함께 꾸며나갈 열린 문화공간 등 옛것과 새것이 조화롭게 공존해나가는 역사문화공간으로 함께 하고자 합니다.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 백서는 마을의 역사, 계획수립과정, 갈등과 해결과정, 조성준비 과정을 사진과 도면 등을 수집하고 기록하였습니다. 특히 도시재생으로 이루어지는 사업의 특성을 담아, 어떤 것을 남기고 어떤 것을 재생하려고 했는지를 중점으로 담았습니다. 부족하나마, 앞으로 이루어질 지속적인 도시공간의 개선에 대한 자료로 이용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7년 11월 도시공간개선단장
김태형
354
서울시 도시재생의 새로운 모델 제시를 위한 첫 걸음 도시재생 선도기관으로서의 위상 구축
최근 도시재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 철거위주의 정비사업의 테두리에서 기존의 지역 정체성을 상실하고 점차 획일화된 주거지로 변모하고 있는 도시개발의 대한 반성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시재생은 과거 성장위주의 개발로 과밀화되고 노후된 도시 지역의 공간을 개선하는 것으로, 역사적으로 보존, 활용대상인 기존의 건축물 및 지역의 역사문화 유산을 보전, 활용하여 지역 역사와 문화가 공존할 수 있도록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돈의문 박물관마을 조성사업’은 서울시 도시재생사업의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돈의문 박물관마을>에는 근대건축물 및 한옥, 조선시대 골목길, 필지, 언덕 등이 고스란히 유지 되어있으며, 주변에는 경희궁, 경교장, 홍난파 가옥, 역사박물관 등 다수의 문화시설이 위치하고 있어 지리적으로도 역사문화적인 가치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돈의문 박물관마을>은 30~40년대 도시한옥을 복원한 한옥 체험관, 돈의문의 지역역사를 담을 돈의문 전시관, 서울의 도시형성 및 건축변화 등을 보여줄 서울도시건축센터, 마을 고유의 문화적 성격을 형성할 스튜디오형 공방 및 다양한 서울 음식들을 맛볼 수 있는 식음시설 등으로 활용되어 많은 시민들이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장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공사는 서울시의 도시재생사업을 선도하는 도시재생 전문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추진해 나아갈 것이며, <돈의문 박물관마을>과 같이 의미 있는 도시재생의 성과품이 늘어나기를 기대합니다. 모쪼록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성공적인 사업의 추진을 위하여 애쓰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2017년 11월 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
변창흠
355
발행정보 발행처
서울특별시청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10
www.seoul.go.kr
발행일
2017년 11월
발행인
박원순
기획
서울특별시 도시공간개선단
김태형 도시공간개선단 단장, 안재혁 도시공간개선반 반장, 윤용훈 도시건축센터 센터장,
신명승 설계공모운영팀장, 이광백, 유지훈, 조범근, 최현애 주무관
발주처
서울주택도시공사
시공사
한일건설 주식회사
설계·도면
㈜건축사사무소 기오헌, ㈜노바건축사사무소
제작
㈜한국기록문화연구소 조상민, 자료조사·원고 김정란, 사진 조상민·박현우
편집디자인
채연그래픽메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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