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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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벗

35 호

2013-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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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정현영 화가  파도의 끝으로부터 Wave breaks down into acrylic on canvas, 91.5 x 121.5 cm,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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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뉴저지통합한국학교 Korean School of Southern New Jersey 홈페이지:

http://kssnj.org

발 행 일:

2014 년 5 월

발 행 인:

김정숙

편 집 인:

정안젤라

Copyright © 2014 Korean School of Southern New Jers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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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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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학부모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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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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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청소년 포럼 대상 수상작

전국 학습 교육안 공모전 참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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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014 학년도를 마치면서…

김정숙  교장

다사다망했던 일년을 하나씩 떠올리면서 올해도 남부뉴저지 통합한국학교는 모든 선생님의 열정과 우리 학생의 학구열, 부모님의 도움으로 많은 업적을 성취 했습니다. 2009 년 통합 이래 5 년 동안 우리 지역사회의 뜨거운 관심과 지원 속에 크게 성장한 우리 학교는 통합 2 년차부터 2010 전미 한국학교 교사 교육안 공모전 대상,2011 전미 백범일지 독서감상문대회 최우수상, 지역협의회 백일장, 그림그리기, 동요대회 대상, 2012 뉴욕교육원 산하 역사교육시범학교 공모전 최우수교, 2013 전미 청소년포럼 독도논문 대상을 수상하는 등 지역사회의 의견일치로 통합된 실력있는 한국학교로서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학교는 지속적인 지역사회와의 교류활동으로 추석 대잔치 바자회, 삼일절 행사, 한국전쟁 기념행사, 입양아 가정 문화교육 후원행사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서 세대 간 유대감을 강화하고 한인 후세들의 정체성 함양에 이바지하는 등 한국학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모범학교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다가올 2014-2015 학기를 생각하면서 교육의 방향을 잡고자 한번 눈을 감고 생각해 봅니다. 세월호! 수많은 영혼들, 아직 피지도 못하고 사라진 꽃다운 우리 학생들을 생각하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 사건을 떠올리면서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고, 대사고를 대처하는데 개개인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가장 중요한 자질은 중의 하나가 희생정신, 남을 보호하고 도와주는 정신으로 요약할 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갔습니다. 제일 먼저 사고를 알리고 자기는 희생된 남학생, 교사가 된지 일년도 되지 않았는데 학생들을 구하고 살신성화한 교사의 이야기, 자기 구명조끼를 남에게 건네주고 자기는 죽은 아름다운 이 이야기들----- 문득 오늘이 현충일임을 알았읍니다. 조국을 위해서 자기 생명을 바친 그들을 위해서 우리는 감사해야 하고, 또 미래를 위해서 우리가 그들처럼 희생하는 아름다운 정신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할 것 입니다.. 그들의 희생을 밑거름으로 우리는 번영과 성장을 이루고 급속도로 성장하고 발전하는 나라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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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 학교가 가야 할 중요한 방향이 무엇인지도 다시 한 번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기주의가 판치고 글로벌 경쟁의 지배하는 이세상에서 남을 눌러 이기기 위한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의 약육강식의 논리를 따르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고 남을 먼저 보호하고 도와주는 정신이 바로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아닐까 합니다. 몸이 힘들고 고달프더라도 끊임없이 선을 행하는 사람들… 결정적으로 선과 진리에 어긋나는 것들은 하지 않고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선을 선택하여 이 세상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남은 몰라라 하고 자기 만을 아는 이기적인 사고방식이 꺼져가고 황폐해지는 사회에서도 우리 선생님과 어린 학생들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우리 인간의 양심과 인류를 구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은 이 여정은 결코 평탄하거나 수월한 것만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한 마음으로 힘과 지혜와 뜻을 모아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어간다면 의미 있는 일들이 될 것이고 훌륭한 열매들을 걷어낼 것입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도 각자 스스로가 행복하고 이 사회 전체가 행복해질 수 있는, 훨씬 더 큰 생명에 가득찰 수 있는 그리고 훨씬 더 아름다움을 빚어낼 수 있는 이런 일이 이루어질 것 입니다.

남부뉴저지 통합한국학교 또한 인성교육을 통해서 선생님, 우리 학생들, 우리 부모님이 함께 도와 가며 희생정신과 봉사정신을 함양한 학생들을 양성하는 교육의 장소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무더운 여름 잘 보내시고, 시원한 가을 다시 만남을 기약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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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만 아름답게, 나침반 같은 학교가 되어가기를” 한광호  재미한국학교 동중부지역협의회 회장

“우리의

미래,

아이들의

정체성에

달렸습니다.”

수년째

이어져오고

있는

동중부지역협의회의 캐치프레이즈입니다. 너무나 당연하고도 소중한 말이지만, 사실 많은 선생님들이 과연 정체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전해야 하는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로 보자면 ‘어떤 존재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을 일컫는 말이고, 이민의 삶을 살고 있는 재외동포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인으로서의 뿌리를 잊지 않는 것’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학교 측면에서는 ‘차세대에게 한민족의 말과 얼을 가르치는 일’이 정체성 함양의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겠습니다. 정의를 내리기도, 구체적 방안을 가지고 실천하기도 녹록치 않은 이 문제에 ‘묵묵히 몸으로 실천하며 나가는 학교’가 있으니 바로 남부뉴저지통합한국학교입니다. 그래서 많은

학교들이

따라하고

싶은

학교,

기대하는

학교가

아닐까

합니다.

역사교육시범학교 최우수교 선정을 필두로 청소년 독도포럼 대상 수상에 이르기까지 이제 남부뉴저지통합한국학교는 말이 필요 없는 역사교육의 메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어떤 것보다도 ‘좋은 선생님들이 있는 학교’ 라서 부럽습니다. 학교의 홈페이지를 방문할 때마다 잘 정돈된 사랑채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찾아올 손님을 맞는 주인의 정성이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홈페이지는 이것저것 둘러볼 재미도 많을뿐더러, 풍부한 교육 자료와 한국학교 살림에 필요한 참고자료까지 듬뿍 얻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웹과 교무를 담당하시는 선생님들의 정성이 아니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보물 같은 것입니다. 사진첩을 보면, 맞춤 맞은 시설과 밝은 학습 분위기속에 환하게 웃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모습이 참 보기에 좋습니다. 한벗 제 35 호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모쪼록 아름다운 지금의 모습을 잘 간직해 나가는 남부뉴저지통합한국학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늘 그래온 것처럼 남들보다 앞서 고민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나가는 나침반 같은 학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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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 년에 발간된 성경과 통합한국학교’ 전우철  열방교회 담임목사

지난주에 통합한국학교 설립에 공헌자이신 한분의 선생님으로부터 귀한 성경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1840 년도에 발간된 성경책... 무려 174 년된 영국에서 발간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지난 4-5 년 통합한국학교를 설립하시고 섬기시며 오직 ‘한국어’와 ‘한국역사’ 그리고 ‘한국의 문화’에만 관심과 미션이 있는줄만 알았었는데, 이렇게 성경책을 사랑하시고 영적인 관심과 사랑을 목사인 제게 베풀어주신 행복은 평생 잊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목사님, 이 귀한 성경을 제가 가장 존경하는 목사님에게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전 이제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심을 확실히 믿습니다. 제가 죽기전에 목사님에게 이 성경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제 대신에 맡아 주십시오…” 차마 말씀을 다 끝마치지 못하시면서 눈시울을 적시는 선생님을 보면서 참으로 통합한국학교는 비록 초교파적, 초종교적인 단체이지만, 하나님께서 시작부터 지금까지 돌보아주셨고, 인도해 주셨고, 또 앞으로도 계속해서 보호해 주시리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귀한 선생님 한분의 눈물을 보면서 말입니다. 물론 제게 주신 성경책 한권이 통합한국학교와 별 상관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반면에 이런 예쁜충격을 받고나서 학교에서 보내달라는 글을 쓰려고 하니 이번 글은 좀 제가 섬기는 열방교회가 어떻게 통합한국학교 때문에 아름다운 ‘통합한국학교의 열매’를 맺고 있는지 간증형식의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열방교회는 통합한국학교가 생기고나서 가장 혜택을 받은 교회이고, 전우철목사는 누가 뭐래도 가장 행복을 느끼는 최대의 수혜자일 것입니다. 통합한국학교가 생기기전까지의 이민목회는 1 세와 2 세 곧 부모와 자식간의 언어불통은 물론이고 예배와 찬양, 성경공부와 나눔이라는 영역에서까지 마치 두개의 타문화권의 사람들이 그저 몸만 한 장소에 머무는 이방인들처럼 느껴져 왔었습니다. 그런데 통합한국학교의 나이만큼 지난 4-5 년간의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놀랍게도 부모와 자녀간의 간격과 차이를 단순한 대화 정도뿐만아니라 ‘영적영역’에 있어서도 이젠 더 이상 이방인으로 못 느낄 정도로 한 가족을 이루어가는 것을 경험하면서 통합한국학교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와 발전의 예는 참으로 많이 있지만, 우선 대표적인 것 두 가지만 언급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아이들이 점차 영어 뿐만아니라 한국어 실력도 향상되기 시작하자, 기존에 어른들만 큐티를 해 오던 것을 ‘아이들과 함께’ 묵상나눔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같은 본문으로 같은 말씀으로 같은 공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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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간적으로 갖게 되는 묵상나눔은 영적인 교제 뿐만아니라 이것으로 인하여 가족의 대화가 정말 ‘수준높은 하나님의 이야기’로 가득차기 시작하면서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지나가는 아이들과 또 그들의 부모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갈등과 고민’들을 하나하나 처리해 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둘째, 주일예배시간의 설교메시지를 유년부부터 중고등부 그리고 대학청년부와 어른들에게 이르기까지 ‘같은 본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누는 아름다운 분위가 형성되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이전까지는 같은

교회건물에 부모와 자녀가 함께 출석하지만, 사실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통합적인 영적생활’을 영위하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그나마 자녀교육에 관심이 있는 부모들이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이들에게 던지는 질문 정도가 ‘오늘 뭐 배웠니?’ ‘오늘 뭐 들었니?’ 정도였고, 또 질문한 후에도 영어로 대답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더 이상 대화가 진전되지 못했던 것이 이민교회의 현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통합한국학교 이후에, ‘같은 본문’으로 큐티를 하고, ‘같은 본문’으로 주일마다 설교를 하기 시작하게 되면서, 이제는 차 안에서의 질문수준의 깊이와 넓이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넓어지는 것을 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뭘 배웠니?...뭘 들었니?...오늘 말씀이 무엇이니?” 그대신에… “이런 말씀에 대해서 넌 어떻게 생각하니?” “아빠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생각한단다.” “엄마는 오늘 설교를 통해 너희들에게 어떤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기타등등… 참으로 언어가 하나가 되니, 마음과 마음이, 가슴과 가슴이 통하는 대화로 나아가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교회안의 아름다운 변화는 통합한국학교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생각도 못했을 일입니다. 한국말을 잘하자고, 한국의 역사를 잘 이해하자고, 한국사람으로 잘 키우자고 시작했던 통합한국학교 때문에 이민교회가 아름답게 '작은천국'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축복이라 생각됩니다. 다시 제게 1840 년도에 발간된 성경책을 주신 선생님을 떠오르게 됩니다. 왜 이 책을 이 작은목사에게 주셨는지… 어쩌면 제가 생각하는 의미보다는 어쩌면 단순히 저를 사랑해 주셔서 주셨을지도 모르는데, 지금의 제게는 너무나 많은 의미와 가치가 제 심장속에서 불일듯이 일어납니다. 특별히 '한글과 성경책'간의 상관관계에 어떤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지는 않을까 스스로 상상을 해 봅니다. 통합한국학교를 설립하시고, 섬기시고, 가르치시고, 돌보시는 존경하는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 그리고 희생으로 최선으로 가르치시는 모든 선생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5 월말 또는 6 월초에 종강 할 때 즈음에 수고하신 모든 선생님들을 초대해서 따뜻한 밥한공기라도 대접해 드리면서 이 감사의 마음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꼭 와 주십시오. 사랑합니다. 샬롬 뉴져지열방교회 전우철목사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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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학부모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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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이민자들은 변두리 인생”? 아닙니다. (KAmerican 이 발표한 “시카고 한국방송 고정칼럼니스트인 김정일씨의 글”에 대한 나의 반박입니다.) 김치경  교감/교육학 박사

(입양아와 부모들과 함께 즐기는 Korean Culture Program) 김정일씨가 1996 년 저서 ‘타고난 낙천가’에서 당시 한인 이민자들의 모습을 소개한 칼럼을 잘 읽었습니다. 그러나 실망했습니다. ‘투나잇 쇼’와 “오늘은 좋은날”이 왜 그리도 중요해요? 사회학에서 말하는 Marginal Life 에 있는 핵심 문제는 흥행 쇼를 즐기거나 “마까레나” 춤을 추는 것 보다 아주 중요한 사회 활동, 정치활동, 경제 회동에의 참여 부족입니다. “60 년, 70 년대의 한국문화 속에 정지된 채로 옛날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은 지나치게 단순한 판단입니다. 현재 한인 1-2 세들은 한국의 문화, 전통, 역사와 언어를 전파시키기 위해 시간과 온갖 재정을 동원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 그러는지 알고 싶으면 즐거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한계인생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우리의 노력이 매우 부족하다” 구요? 한번 Dry Cleaning 해 보셨어요? 생선 가게, 야채 가게, 음식점 해 보셨어요? 왜 고생했냐고 물으시면 더 설명 해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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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을 잘 양육해서 잘 교육시켜서 잘 가르쳐서 이제는 우리 아이들이 부모보다 못지 않게 미국의 정치, 교육, 의학, 공학, 산업, 소 기업의 모든 분야에서 명성을 올리는 한국인으로 급진하고 있습니다. “생계와 법적인 책임 걸린 문제도 모른 채 살고 있는 한인들”이라니요? 이것은 한인 동포들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에서 방문하는 여자들이 불법적인 매춘행위를 하는 사례입니다. 부끄럽습니다. “이 한계인생 벗어나려는 노력 매우 부족..영어공부 너무 게을러”요? “한계인생” 벗어나려고 많이 노력했고 또 성공하고 있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물어 보세요! 누가 학교에서 수석으로 졸업했는가, 누가 우수한 대학으로 진학했는가, 누가 장학금을 탔는가…? 사실의 근거가 없는 이야기를 신문에 발표하는 것은 참으로 한심스럽습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습니다. 부지런히 벌어서 집 작만하고 아이들 좋은 학교 보내고 배고프지 않게 산다는 것은 인간 생활의 가장 근본적인 필요조건입니다. 그래서 무리 아이들이 착하고 행복하게 자라고 성장해서 좋은 학교에서 공부 많이 하고 사회로 진출해서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보여준다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나도 죽도록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자랐습니다. 미국에 와서 우리 아이들 다 키우고 다 성공하고, 나는 또 더 공부해서 고등하교 교사, 대학교 교수까지 지냈습니다. 그러나 조금도 부끄럽지 않습니다.누가 나를 “한계 인간”이라고 깔 볼 수 있을까? 20 년 전과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최근 칼리지보드가 발표한 ‘제 10 차 AP 시험 연례 보고서’ 분석결과 지난해 치러진 전국 AP 시험 합격률은 평균 57.4%로 전년도보다 약 0.6% 높아졌고, 인종 별로는 한국학생을 포함한 아시아계의 합격률이 전년도보다 2.2% 오른 67.6%로 합격률은 물론 상승폭이 가장 높았습니다. 동양 민족이 미국 평균 보다 10%가 높은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한계 인생”이 아닌 우수한 민족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우리민족의 희망이요 자랑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주변 인간”이 아닙니다.나는 한국인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이민 와서 50-60 년 만에 주변 인생에서 벗어나 핵심사회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KAmerican Post 가 이 같은 글을 발표했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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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Chuck Kim, 2005 in Maine

Spring In spring may I roam? Against the sea breeze may I roam? In the morning may I roam? When the wildflowers bloom, may I roam? In April I will roam!

봄이 오면 방랑할까? 바다의 미풍을 가슴에 안고 방랑할까? 아침마다 방랑할까? 야생화들이 피면 방랑할까? 4 월이 오면 나는 방랑할 거야! 김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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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꿈 너머 꿈”을 꿀래요 고숙희  고 I 반 몇 년 전부터 한글 학교 고등반 선생으로 일하다 보니 해마다 동중부 지역 나의 꿈 경시대회를 위해 학생들을 준비시켜야 했어요. 봄학기가 시작되면 항상 학생들에게 꿈이 무엇인지 물으며 작문을 해 오라고 숙제를 내 주곤 했죠. 한 번은 학생들의 꿈이 아닌 나의 꿈은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해 본 적이 있었지요. 하지만 저는 이미 꿈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원하는 회사에 들어 갔었고 결혼을 했고 아들과 딸이 다 커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니 아둥 바둥 살지 말고 그저 천국 바라보고 살면 되지”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였지요. 그러나 이 소리가 사탄의 소리라는 것을 필라델피아 밀알의 밤 공연에 온 복음성가 가수 소향을 통해 깨닫게 되었어요. 2013 년 가을, 2000 여 명이 모인 학교 강당에서 소향이 부른 멋진 고음의 노래에 감동이 되었을 뿐 아니라, 중간 중간 신앙간증으로 제 마음을 두드렸답니다. 소향은 꿈이 없이 안주하려는 그 같은 나의 생각이 사탄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한 단계 더 발전하는 것이나 영적으로 성숙하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에 꿈이 없이 살기를 바란다는 것이지요.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서“주님, 제 소박한 꿈은 이미 다 이루었지 않습니까? 저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 소향과 같이 원대한 꿈을 꿀 수 없는데요?”하면서 잠이 들었지요. 그런데 새벽에 주님께서 “또 꿈을 꾸어라. 꿈꾸며 끊임없이 도전하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 전에 읽었던 작가 고도원의 ‘꿈 너머 꿈’이란 글을 다시 읽게 되었어요. 그가 말하는 꿈 너머 꿈이란 ‘꿈을 이룬 후 그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까지를 생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꿈이란 ‘자기 성공, 자기 행복에만 머문 것이어서는 안되고 다른 사람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학생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무엇이 되는 것이 꿈이라 합니다. 청년들은 삶을 즐기는 것이 꿈이라 하고, 중년층은 어떤 지위에 오르는 것이 꿈이라 하고, 노년층은 대부분 이제 꿈이 없다고 하거나 저같이 이미 꿈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앞으로 제가 피나는 노력을 해도 백범 김구, 슈바이처 박사,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창업자 빌 게이츠 같이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없으므로 이 정도에서 꿈을 다 이루었다고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더 이상 꿈이라는 이름으로 저에게 스트레스를 주기 싫은 것일까요? 솔직히 말한다면, 이제 또다시 무엇이 되겠다고 혹은 무엇을 하겠다고 저에게 스트레스를 주기 싫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꿈꾸고 계속 도전하기를 바라십니다.

이미 소박한 꿈을 이루었다고

편안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의미있는 삶을 위한‘선한 스트레스 (Good Stress)’를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제가 꾸고자 하는 꿈은 이전과는 다른 “꿈 너머 꿈”입니다. 사람마다 꿈이 다 다르듯이 꿈 너머 꿈도 다르겠지요. 저의 꿈 너머 꿈은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로 인해 조금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그들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그들을 위해 따뜻한 마음의 표현과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동안은 자기 자신을 위해 바빴던 삶에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바쁜 삶으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로는 시간이 많이 들고 물질도 쓰일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인내심까지 요구되는 선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제 주위에 사는 사람들이 저와 더불어 가치있게 살면서 행~복한 모습을 상상하면 포기할 수 없답니다. 여러분! 저와 함께 꿈 너머 꿈을 꿉시다. 우리를 통하여 이 세상이 아름다와지고 발전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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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School of

Southern New Jersey

남부뉴저지통합한국학교 저 지 통 합 한

Adopted Korean Children Class March 2014 Newsletter “WE ARE ONE BIG, HAPPY FAMILY!”

국 From the Teacher’s Desk학 . . . By: Esther J. Kang (이진경)

“네, 선생님…” “Yes, teacher,” are two words that I often hear as I am K teaching at KSSNJ many Saturday mornings. o r

Hello, my name is Esther Kang, and e I am the teacher in charge of teaching a Korean language, culture, and history to the Korean Adopted Children Class n at KSSNJ. Although not new to the teaching profession, I was new to S KSSNJ, and I had much to learn this c year as I juggled life as mom, full-time h teacher, and Korean language teacher on Saturday mornings! Through othe Korean Adopted Children Class,o I discovered how deep my Korean roots l were despite not being born in Korea. o As a native English speaker, I didn’t think I was very Korean except for fmy S o u t h e r n

love of Korean food and my ability to communicate in Korean. Little did I know just how Korean I was! I recalled the many years of Korean School I had to go to when I was a child, how my parents would only speak to me in Korean, and how they always explained to me proper Korean etiquette so that I would never be accused of being improper to Korean elders. I never appreciated all that they taught me until I became a parent myself and I now had to teach my children how to speak, act, and behave properly to Korean elders. I didn’t realize just how beneficial it was and how much “Korean-ness” I actually carried around within me until I had to teach other children about my language, culture, and history.

Teaching the Korean adopted children and their parents has been a tremendous experience. I can see how whole families have dived in to try to learn the language together. Parents and children study together in class and outside of class, watch educational videos together to improve their Korean, and even participate actively in as (Continued on page 2)

SEOLLAL CULTURAL LESSONS Students in the Korean Adopted Children Class learn how Koreans celebrate Seollal by bowing to the Assistant Principal of KSSNJ, Dr. Chuck Kim, and their teacher, and Mrs. Esther Kang. They sample rice cakes and receive “saebae” money in the form of toys and gifts, which they are so happy to rece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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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THE TEACHER’S DESK… (Continued from page 1) many Korean cultural events and activities as their schedules allow. They are fully on board with wanting their children to be around other Korean children and to learn about Korean language, culture, history, food, and music. While some parents often feel helpless that they cannot help their Korean adopted children more with acquiring the language, they are eager to learn themselves in order to be able to practice together with their children. It’s a beautiful sight to see the families of the Korean Adopted Children Class coming back week-toweek to keep on learning. While acquiring the language and vocabulary necessary to go deeper into the language has been a challenge since time is limited, they continue to persevere. For that level of commitment and dedication, I truly admire all of the families who participate regularly. This Korean Adopted Children Class is very crucial for these families, who are more comfortable with other children and families who also don’t have Korean speaking family members. For this reason, I hope this class will continue to grow and win the support of the greater Korean community.

KOREAN ADOPTED CHILDREN CLASS Students in the Korean Adopted Children Class stop to take a group picture.

“We were thrilled…and even more delighted when we learned there would be a class specifically geared to adopted children.” KOREAN SCHOOL IS FOR OUR WHOLE FAMILY! Since adopting children from Korea in 2005 and 2009, we have searched for a way to teach them about their culture in a way that will feel authentic to them as they grow older. We were thrilled to be introduced to the Korean School of Southern New Jersey last year, and even more delighted when we learned there would be a class specifically geared to adopted children. We feel so fortunate to be under the instruction of Mrs. Esther Kang. She is an outstanding teacher with a true affinity for teaching the Korean language to our children as well as several adults (including ourselves) who are also taking the class. She imparts not just the basics of the Korean language to us, but also a deeper understanding of Korean and Korean-American culture. While our children have always been

proud to be Korean, they seemed reticent and uncomfortable about native Korean speakers in the past. Learning the language and feeling so accepted by the community at KSSNJ has been a wonderful experience for all of us. They constantly talk about wanting to visit Korea and see their birth country in person. We feel confident that as they grow up, they will truly feel like they belong when surrounded by their peers. We also value the quality of the language and culture lessons they are getting. Those skills will open up many doors for them as they grow up and pursue college. Thank you so much for your care, concern, and commitment to our children! Karen and Rob Becker Sam (age 9) and Max (age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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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We are a family with 2 adopted children, one from Korea and one from China. We know how important it is to keep our children connected to their heritage. As a result, Korean culture is very important for our son. We are able to stay connected to the Korean community through the Korean School and the Culture classes that we attend. Our son, Tyler, enjoys attending school to learn about his culture and language. We are very pleased with his teacher. She understands that our son does not get any Korean language at home. Therefore, at times it is very hard for him. We appreciate her understanding and help with this. We love this program and are very happy that it is available for our son. We feel that it is very important for him to stay connected to his heritage and language to help him as he gets older and faces life’s challenges.

ULTURE IS JUST AS IMPORTANT AS LANGUAGE Through the “Treasures of Korea” art exhibit at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the AC Class was able to experience Korean culture on a deeper level. Our class learned about the Korean Joseon Dynasty through ancient scrolls depicting the emperor and his people, folding painted screens of symbols of longevity, antique furnishings used for ancestor worship, and costumes worn by men and women. Families experienced these works through a guided tour, which ended with the students being able to write their names in Hangeul. They had a great deal of fun doing this!

Thank you! Karen Glodowski

A Mom’s Perspective I am writing to hopefully explain a little about how much Yeong Jin and I are enjoying our Korean class and also how much it means to us. Yeong Jin is now nine years old and time has gone by so quickly since adopting him when he was only six months old. When he was little, we got to spend so much time together. Being a stay-at-home mom, I devoted all of my time to him. We did a lot of fun activities together and also a lot of “ Mom & Me” classes together. Then next thing you realize it’s school all day, and after school activities that come along with it. Almost every day, I’m driving him to swimming or karate. I also do not get to give him more undivided attention like I used to get since adopting his sister a year and a half ago. That’s why these classes are so special to us. Not only is Yeong Jin learning about his culture, history, and the language, but also we get to spend time together. I think it’s so important that he learn about his culture. He may not be able to appreciate [it] now, but I believe later in life he will. I wished I had learned more about the “Old Country” from my great grandmother when she was still around. Now it is too late, and I’ll always wonder about things. I think it’s wonderful how all of the teachers at the school are so kind and caring. Yeong Jin always says he looks forward to Korean School and likes to start his homework right away. He wants to please his teachers as well as please us. I hope I briefly explained some of the reasons why we enjoy our Korean class and think it’s important to us. Thank you,

“DOKDO IS OUR TERRITORY!” The Adopted Korean Children Class also participates in a monthly culture class with their teacher, Mrs. Angela Jung, where they learn about Dokdo being Korean territory through a dance. Here is a picture that shows the families practicing together during one of their classes.

Amanda El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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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과 격려로 자신감을 키워 주세요. 강정랑  2 반 이번 학기 우리반 친구들은 여학생과 남학생의 비율이 비슷해서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우리반 예쁜 여학생들은 하나 같이 수줍음이 많고 애교가

많았습니다. 특히 수업 중에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발표를 잘 했고, 숙제를 참 열심히 잘 해 와서 실력이 아주 많이 향상 되었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그림일기를 참 정성스럽게 매주 빠짐없이 해왔고, 내용 면에서도 아주 알찬 글짓기 솜씨를 자랑했습니다. 장난꾸러기 씩씩한 남학생들은 각자 개성이 강해 독립적이었습니다. 수업 준비를 위해 , 수업내용을 복사하는 아주 짧은 시간에도 생동감 넘치는 우리 반 남학생들은 한글학교 첫 수업시간인 한국어 시간에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다른 분들께서 보시면 여학생만 교실에 있는 것으로 착각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부르는 큰소리에 아이들은 배꼽을 잡고 웃으며, 하나 둘씩 나옵니다.

화장실과 교탁을 숨바꼭질 장소로 활용하지요.

이렇게 우리의 한글 첫 수업은 신명나게

활기차게 웃으며 시작된답니다. 올 한해도 우리반 친구들은 저를 참 보람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감과 칭찬으로 아이들을 인정하고 가르치니, 아이들의 실력이 아주 많이 향상되고 이해력이 높아져 가르치는 보람을 큰 행운으로 여기며 감사한 한 해 였습니다.

그런데 내 자식에게만은 감정이 앞서고 이성적이지 못해 인내심이 바닥을 들어내고 나서야

내려놓음의 지혜를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이론적인 교육방법이 전문가들의 가르침이 정답이구나 실감하면서도 매일매일의 현실에서는 전쟁이 계속됨을 인정합니다. 지금 우리 반 친구들은 부모님 말씀과 선생님 말씀을 참 잘 따르고, 순종하는 모습이 얼마나 예쁘고 기특한지요! 그러나 어느 순간 사춘기를 맞이하게 되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 부모님들은 참 당황하게 됩니다. 특히 첫 아이에게는 부모인 자신도 경험이 없어 더 많은 실수를 하는 것 같습니다. 사춘기를

우리 큰 아들이

겪으면서

저에게

도움이 되었던 책 중에 아주 좋은 글귀가 있어, 우리 학부모님과 함께

나누고

싶어

발췌해

올립니다. 우리 반 친구들 여름방학도 즐겁고, 신나게 건강하게 잘 보내고, 새 학기에

반가운

모습으로

다시

만나요. 우리 반 친구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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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시 아이를 기르게 된다면 그들의 버릇을 고쳐 놓으려고 애쓰기보다 내가 그들의 모범이 되는 일에 마음을 쏟으리라. 그들의 습관과 행동을 고치는 일에 시간을 빼앗기기보다 내 마음을 넓히는 일에 시간을 쓰리라. 그들을 꾸지람하고 야단치는 일에 마음을 쏟기보다 더 많이 성경 이야기를 들려 주리라. 내가 다시 아이를 기르게 된다면 잔소리로 그들의 마음을 박박 긁어 놓기보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리라. 간섭하고 끼어들어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흐트러뜨리기보다 그들을 하나님께 내맡기리라. 내가 다시 아이를 기르게 된다면 찬양 소리로 그들의 아침잠을 깨우고 하루를 마감하는 기도의 소리로 잠들게 하리라. 내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많이 기도하리라. 더 기도하리라. 그러나 내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기도하리라. 그들을 위해 무릎을 끓으리라. 기도로 나의 과오를 씻어 내고 그들의 상처를 감싸 주리라. 기도로 그들의 세계를 밝게 열어 주리라.

하나님의 다이어리 중에서 송길원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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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우리아이 한글 떼기” 김수미  유치반 지금껏 한국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 ‘한글 떼기’ 기초반을 가르치다 보니,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한글을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을까? 늘 생각해 왔던 같다. 그때 만났던 책 한 권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은 유아교육 전문가이자, 자녀들을 둔 엄마인 김효정, 김미랑 두 분의 저자들에 의해 쓰여진 책이다. 책의 전반부는 어른들의 한글 떼기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과 왜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가? 에 대한 질문으로 책을 시작하고 있다. 연이어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적절한 시기가 언제인지 그리고 시기에 적합한 방법은 무엇인지를 기술하고 있다. 저자는 한글을 가르치는 1

2

목적은 “글을 이해해 보다 폭 넓게 세상을 받아들이고 통찰” 해 나갈 수 있는 “생활의 도구” 요 “세계를 열어가는 3

통로” 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책의 후반부-단계 학습을 통한 실천 한글 떼기에서 아이들이 한글을 뗄 수 4 있도록 돕는 여러 실제적인 놀이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즉, “아이들이 세상을 알아가는 방식인 놀이” 를 통해 자라고 배우는 아이들의 발달 특성을 고려하여 부모님과 함께 한글을 깨쳐 나갈 수 있는 다양한 학습 놀이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 방법들 중 부모님들이 가정에서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른다면 ‘부모님과 함께 동화책 읽기’를 추천하고 싶다. 물론 이 방법 역시 한글 떼기를 위한 수단으로만 아니라, 아이들이 즐겁게 동참할 수 있는 놀이로 이끌어 가야 하며, 부모님들의 인내와 의지 없이는 이루어 질 수 없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아이와 함께 규칙적으로 책을 읽을 때, 아이들은 비단 한글 떼기뿐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가리라 생각된다. 또한, 한국과는 다른 환경에서 자라는 우리의 2 세들에게 한국어 다양한 문화를 쉽게 소개하고 이해 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통로라고 여겨진다.

1 2 3 4

김효정. 김미정, 『우리 아이 한글 떼기』,한울림, 1997. 33 쪽 위의 책, 32 쪽 위의 책, 30 쪽 위의 책, 91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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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박효정  PK 반 안녕하세요. 웃음은 세포등의 운동을 돕고, 면역력을 높여준다고 합니다. 또 모르핀보다 300 배 정도 강한 자연산 진통제라고도 합니다. 박장대소는 인체의 620 개의 근육중 200 개가 넘는 근육을 움직이고, 내장기관을 활발하게 하여 소화불량이나 변비도 예방 합니다. 바쁘고 힘든 생활 속에서 잠깐 아이들과 소리내어 웃어보세요. 웃음에는 놀라운 효능들이 많이 있답니다. 우리 아이들이 많이 웃게 해주세요. 즐거운 여름, 신나는 여름 건강한 여름…우리 친구들..화이팅!!!

Volunteering in KSSNJ Teaches So Much! 이재화  PK 반 보조교사 My name is Kevin (Jaehwa) Lee, and my time volunteering at the Korean School of Southern New Jersey is absolutely fantastic. My experience volunteering has taught me to show Gracious towards others, Regulate chaotic situation, be Energetic towards learning, Adept to other children (as no children is alike), and Tolerate others. Not only that, but the experience I learned taught me knowledge that will aid me later in my life. Teaching kids, especially 4-7 years old (I volunteered for three years now!), needs hand full of experience and knowledge. When I first started, I didn’t have any experience and knowledge towards handling youths that are way younger than me. But as time grew, I grew along, gaining experience and knowledge. This has also affected my outside life as well, as I grew up to be more patient and regulate chaotic situation with calm demeanor. Not only that, but being a volunteer at a Korean School also helps me keep in touch of my Korean side, which is always a good thing. Volunteering in the Korean School of Southern New Jersey teaches me so much, and I am thankful to be a volunteer at this amazing school. My experience here is fun and energetic and the knowledge I get is useful later in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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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조 선생님! 박다은  PK 반 보조교사 저는 한글학교에서 보조선생으로 학생들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한글학교에 다니는 어린 학생들의 공부를 열심히 잘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입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특히 공부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열심히 도와주고 있습니다. 보조선생으로 한글학교에서 도와주는 시간은 아주 즐겁고, 보람 있습니다. 특히, 우리 한국학교 학생들은 한글학교 선생님들과 친구들 사이에서 즐겁고, 재미있게 공부하는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학생들은 한글학교에서의 하루를 공부와 노래와 한국춤과 태권도등 여러가지를 배워줍니다. 저도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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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韓別曲(한국학교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시조) 이유정  6 반

벌써부터 끝난다니 돌아보니 아쉬웁다 시작한지 엊그저께 생각하니 훌쩍갔네 처음반을 맡고보니 어떨결에 선생됬네 아이들을 보고나니 불끈불끈 용기나네 이아이들 어찌하나 어찌하여 가르치나 이것저것 책을보고 교과서를 보고나니 아이디어 떠오르네 옳타구나 이거로군 학습자료 영상자료 인터넷에 무궁무진 고르기도 쉽지않군 골라보니 또보이네 한개두개 모아보니 제법많이 모아지네 학습자료 많이보니 아이들이 배운다네 배우고도 또배워서 점점실력 늘어나네 한과두과 지나나니 이제벌써 마지막과 마지막과 마쳐보니 아쉬운게 아직있네 똘망똘망 아이들눈 못배운게 산더미네 그리해도 시간지나 학기말이 다가왔네 한해동안 즐거움을 많이줬던 아이들이 고맙고도 고맙다네 한해동안 행복했네 아이들아 여름에도 한글공부 계속해서 자랑스런 대한혈기 잊지않고 기억해라 여름동안 건강하고 부모말씀 경청하고 아름답고 지혜롭게 자라기를 기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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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고향 친구 김은국  김하은, 김경진, 김경민 아버지 눈꽃이 너무 너저분하게 피었던 겨울의 마지막 저항을 돌격 앞으로 한 발자욱 옮겨 놓던 개나리꽃이 갑작스러운 봄날씨의 포근함의 도움으로 겨울의 지리함을 발로 뻥차면서 이곳 저곳에서 얼마 전부터 승리의 함성을 부르고 있었답니다 개나리라는 꽃이름은 고국에서는 너무나 많이 듣고 익숙해 져 있는 이름인데 이방 땅인 이곳에서는 Forsythia 라는 낯선 이름으로 불려 지는 것을 보니 이곳에서는 그렇게 의미 있는 꽃이 아닌 듯 보인답니다. 그러나 왠지 개나리를 보자마자 너무나도 친숙한 친구와도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어서 바쁘게 달리는 나의 마음을 잠깐 멈추고 그 친구를 잠깐 방문을 하게 되었답니다. 초등학교를 갓 시작한 등교길에 눈여겨 보아 두었던 뽀송뽀송한 노랑 병아리를 방과후 종이 울리자 마자 가방 둘러 메고 찾아 가 보았지만 벌써 다 팔렸는지 보이지 않았답니다 엄마에게 졸라졸라 사 놓아라고 땡깡 부리는 철부지인 나를 위해 모든 것의 해결사이신 엄마는 노랑 병아리를 신통하게 내 눈 앞에 만들어 놓으셨답니다.. 평생 영원히 함께 살 것처럼 한 보따리 사 놓은 모이를 주며 병아리를 고이 길렀던 어린 시절 참으로 많이도 이 노래를 불렀었지요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 떼 쫑쫑쫑 봄나들이 갑니다 이 노래로 그 병아리에게 공연도 해 주고. 혹시나 누가 밟을 까봐 이리저리 지맘대로 다니는 곳을 따라 다니며 병아리 가드를 해 주기도 하고 잠잘자라고 지붕 만들고 창 만들어 대궐 같은 방 하나 만들어 주면 자기들도 좋다고 삐악삐악하며 합창하던 그 소리가 재미 있어서 다시 먹을 것 주며 앵콜 공연을 신청하곤 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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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내 품속에 다섯 명의 병아리들이 거하고 있답니다.. 어제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첫째와 팔 씨름을 해 보았는데. 이제 병아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내년이면 차를 운전할 수 있다고 지금부터 독립의 그 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녀석에게 턴하고 싶으면 왼쪽 오른쪽 다시 왼쪽을 한번 더 점검하고 턴해야 된다고 누누히 당부해 보지만 금새 이어폰 귀에 꼽고 대수롭지 않은 냥 운전에 대한 진리를 물 흘리듯 흘려 보내는 녀석에게 또 다시 몇번이고 가르침의 인내를 포기 할 수 없음을 인식시켜 주고 싶답니다 그 뒤에 앉은 둘째는 요즈음 케이 팝에 완전히 정복 당하여서 혼자 우울해 하는 것을 보면 슬픈 노래를 듣고 있구나라고 생각 되고요 괜히 센티멘틀해져서 영화의 주인공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을 보면 사랑 노래를 듣고 있구나라고 알아 차릴수 있답니다 그리고 즐거워 방방 뛰고 있으면 댄스 노래를 듣고 있구나라고 알 수 있지요. 항상 자리 다툼을 하며 튀격튀격 싸우고 있는 한살 반 차이 셋째와 넷째는 형과 아우의 관계가 아니라 남자 대 남자라고 생각하는지 서로 손가락질 하며 놀려 대지만 컴퓨터 게임을 할 때면 이 세상의 둘도 없는 형과 아우로 젠틀하게 낮은 목소리로 의견을 주고 받기도 하고 새로운 게임의 정보를 교환하며 세상 평화를 나눈양 형제애를 지키며 잘 보전하고 생활하고 있답니다 내 아내가 시샘할 정도로 어여뿐 막동이는 매일 나의 시선의 주인공인데 그 주인공이 한 번 웃어 주거나 나에게 눈길을 한 번 던져 줄 때면. 하루의 짐이 공중으로 감쪽 같이 휘익 연기처럼 사라지면서 삶의 에너지를 다시 공급 받는 순간들을 얻게 되지요. 내 안에 있는 진짜 병아리 한 마리를. 오늘도 어떻게 하면 웃겨 줄까 고민하다가도. 판토 마임 한 장면을 재생해 주면 재미 있다고 다시 나를 쫑쫑쫑 따라 온답니다. 병아리를 키우듯 나를 키우신 우리 엄니도 이렇게 나를 애지 중지 돌보며 키우셨을것 같아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지만 물어 보신 것 또 물어 보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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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한 것 또 이야기를 도돌이표 반복하고 나면 어느새 감사한 느낌과 감정은 어색함의 물결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한답니다. 노란색은 마음의 공간을 환히 밝게 해 준다는데 봄의 거리를 변함없이 밝혀 주는 빛처럼 내 마음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모래로 덮혀있는 오래된 삭막한 사막 같을지라도 온통 순결, 깨끗한 마음, 희망으로 물들여 놓았던 격이 없는 고향 친구 개나리를 만나서 참 반가웠답니다. 항상 제 자녀들이 이런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 언젠가 나는 호수가에 그려져 있는 지는 석양의 붉은 노을 위로 바람에 날려 갈 곳을 몰라 떨어져 있는 한 조각 지프라기 같이 약해진 아내의 어깨 위에 아내는 세상살이라는 용광로에 달구어져 녹아 버린 나의 어깨 위에 고마워하는 손으로 살며시 토닥 토닥 두드리며 부모의 역할을 그런대로 괜찮게 잘 했다고 칭찬해 주고 싶은 날이 오겠지요 부모라는 직책을 통해.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알려 주시고 싶으신 것이 있으신데.. 오래 되었지만 퇴색되지 않은 아름다운 사랑을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왕창 받았다고 깨닫게 해 주고 싶어 하신답니다 무지개의 약속을 오늘도 이들에게 인내의 절제로 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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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 대회에 다녀와서 신혜원  신준용, 신지은 어머니

네! 정말 모두들 너무 수고 많으셨어요.^^* 지은 맘 예요. 아이들을 위해 늘 수고해 주시는 교장 선생님, 그리고 이번 동요대회를 위해 열정적으로 지도해 주신 박유미 선생님, 예쁘게 반주해 주신 박효정 선생님, 감사 드려요. 덕분에 아이들이 한국 동요를 가까이 할수 있었음에 감사해요. 집에서 학교에서 연습 했던 시간, 떨리는 마음으로 무대에 올랐던 시간들이 아이들에겐 귀한 추억이 될 거 같아요. 좋은 경험 하게 해 주신 음악선생님께 정말 감사 드려요.^^* 미국땅에서 미국시민으로 자라고 있지만, 한국인으로써 뿌리를 알게 해 주시는 귀한 일을 감당하시는 선생님들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신지은 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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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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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Must Speak the Truth 이경남  고 II 반 Words cannot describe the cruel and torturous

government.

actions of Japan and its people. Over the past

addition,

one hundred years, Korea has defended its rights

Japanese did not

and Japan has fought Korea over land to the

help revolutionize

point where they even denied their actions. Their

Korea

arrogance and non-acceptance of history will

they built railways

lead to another dispute, and, with the rising

for military use to

tensions between Russia and Ukraine, can help

attack

spark World War III. As a first generation

countries. Overall,

Korean-American, I want to be part of the

their actions get

solution to fix the problems and conflicts

better, but their

between Korea and Japan.

thoughts and beliefs not only change for the

In a general summary, Japan has denied their history with Korea, stating they did better for Korea, when in fact, they did not even help

In the

because

nearby

worse, but shows more arrogance and intolerable behavior. Today,

the

Japanese

population,

in

and instead, hurt Korea more than possible. In

general, have forgotten the past events in history

1910, Japan took over Korea and reigned until

and became very “stuck-up” about themselves.

the end of World War II. During their reign, they

They have also started many disputes involving

were tortured and killed. Anyone who rebelled

land and historical events. One of the most

was dead within a few days. Today, Japan does

notable land disputes was with the Liancourt

not recognize what they have done wrong.

Rocks, also known by the Koreans as Dokdo.

Japanese prime minister Abe Shinzo claims that

After watching “Dokdo, Beautiful Island of

Koreans were treated well and that anything

Korea,” with other classmates they both show

historians were stating were not true, and, in

Japanese and Korean documents that tell a

addition, state that without Japan, Korea would

complete story of who really owns the Liancourt

not have revolutionized. Shockingly, fifty women

Rocks. The Japanese claims ownership to the

who were raised in the era of the Japanese reign

Liancourt Rocks, but sources and maps disprove

came to speak about their own experiences. They

their claim. In the Japanese Map of 1877 and the

state

a

Doja-Kan, both show that the Liancourt Rocks

euphemism used to hide the actual meaning,

did not belong to Japan and indeed belonged to

which was being a sex slave. In addition, these

Korea. However, their views began to change

women were not forgiven at all and were paid

before the Japanese reign. In the Japanese

one United States dollar by the Japanese

Cabinet Decision, they state that the Liancourt

that

they

were

comfort

w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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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s were a “no-man’s land� and even later,

be a first-generation college student as well.

claim that it always belonged to Japan. With

However, I will never forget where I am truly

these

from, nor will I ever forget what happened to my

contradictions,

the

later

Japanese

documents cannot be held as reliable. From my personal views, I see the Japanese as savage bigots who are still oneminded and arrogant over their views. What they have done to my family is unforgivable. In 1951,

family. Every day, I keep imagining what it would be like to have my grandfather in my life again. I cannot change the past and will never be able to see him at all until my death when I go to heaven.

my grandfather suddenly passed away from an

Life as a Korean is hard. What makes it

unknown illness due to fighting in World War II

harder is the arrogance Koreans must face with

for the Japanese, something against his will.

when

Because of this, my family had a decline of both

knowing that we are still in a dispute with it. We

economic and social status. I was given a new

must speak the truth to help people in other

opportunity when I became a United States

countries

citizen. As of today, I will be going to college

evidence and what really happened during the

through the NJSTARS program, a renowned

Japanese reign of South Korea. We must show

program that pays for my college fully for the

others that Japan is wrong and we, as Koreans,

first two years if I attend a community college, if

demand an apology from Japan as well as

I graduate in the top 15% of the class. I will also

demanding the land that Korea formally owns.

Japan

claims

understand

the

the

Liancourt

large

Rocks,

amount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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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동네 추청명  고 I 반 내가 살고있는 동네는 Williamstown(윌리암스타운)이다. 윌리암스타운에는 초등학교가 네 개있고,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있다. 내가 6 살 때 여기로 이사를 왔고 많은 새로운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 Holly Glen (홀리 그랜)을 다녔고 지금은 윌리암스타운 중학교를 다니고 있다. 내가 토요일마다 다니는 남부뉴저지 통합 한국학교에서 윌리암스타운는 차로 30 분 걸린다. 내가 살고있는 곳에 대해 쓰라고 한글학교 숙제를 받았을 때 우리 동네에 대해서 자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윌리암스타운 사람들은 스포츠를 좋아해서 이 동네에서 하는 스포츠 종류가 많이 있다. 미식축구, 치어리더, 라크로스, 농구, 필드하키, 야구, 그리고 다른 스포츠도 있다. 주말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필드에 나와서 운동을 한다. 윌리암스타운 메인 스트리트에 그랜드 극장이 있다. 메인스트리트에 퍼레이드를 많이한다.

여기에 많은 가족들이 연극과 뮤지컬을 보러온다.

할로윈 때는 아이들이 여러가지 재미있는 할로윈 복장을 입고

길거리에서 퍼레이드를 하고 사탕을 받으러 다닌다. 윌리암스타운에는 큰집과 농장이 많이 있다. 경비행기장도 있다. 여기에 스카이다이빙 수업이 있다. 또한, 토마토 공장도 있어서 피자 소스를 많이 만든다. 우리 동네에서 만든 피자 소스로 피자을 만들면 정말 맛있다. 이곳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재미있고, 편안하고, 친절하다. 내가 살고있는 동네는 Monroe Township, New Jersey 에 속하는 조그마한 타운이지만 나는 윌리암스타운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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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살리는 바이오 메디컬 엔지니어 김유진  고 I 반 (나의 꿈 말하기 대회 대상) 저는 어릴 때 부터 로봇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4 학년때 부터 퍼스트 레고 리그(First Lego League)라는 로봇 경진대회에 참가해왔습니다.

이 대회에서는 특별하게

디자인된 레고를 이용하여 로봇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항상 새로운 프로젝트가 주어집니다.

몇 년 전에는 사람의

유전적인 질병을 조사하고 어떻게 고칠지에 대한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프로젝트이었지요.

그 결과를 가지고 제가

직접 만든 로봇으로 사람의 몸을 고치도록 프로그램을 했었고 모의 실험도 했었답니다. 이러한 경험들로 인해 생물 공학과 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바이오

메디컬

엔지니어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사실 이렇게 결심할 수 있도록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은 저희 아빠이십니다. 저희 아빠는 대학교에서 전기 공학과 컴퓨터 공학을 가르치세요.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이 매우 재미있고 의미가 있다고 하세요.

그래서 저는 아빠가 좋아하시는

공학에 대해 알고 싶어졌지요. 제 나름대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공학에는 아주 많은 분야가 있더군요. 그 중에서 전기공학, 컴퓨터공학, 기계공학을 의학에 적용한 공학이 바로 바이오 메디컬 엔지니어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분야를 잘 모른답니다. 저도 처음엔 생소했지만 인공 뼈나 인공 눈, 인공심장과 관계되는 것이라고 하니 쉬워졌어요.

오늘날 생명의 연장을 위해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최첨단 분야라고

합니다. 이 공학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될수록 더 많은 걸 배우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군요.

어서 빨리 최첨단

기술을 개발해서 오랫동안 심장질환으로 아프신 한국에 계신 저희 외할아버지를고쳐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매일 많은 약을 챙겨 드시지 않으면 위태로운 상황이 될 정도라고 하십니다. 요즈음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주요 사망 원인이 심장 질환이라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희 외할아버지뿐만 아니라 심장질환으로 고생하시는 다른 많은 분께 가장 완벽한 인공심장을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바이오 메디컬 엔지니어가 되면 인공장기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현재 있는 약품과 의학용품들을 더 잘 만들 수 있어요. 그리고 치료과정을 더 효과적이고 쉽게 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할 수 있어요. 주사기, 청진기같은 작은 의료 용품에서 스캐너, MRI 같은 큰 기계까지 그리고 새로운 백신 개발부터

암 치료제

개발까지도 모두 바이오 메디컬 엔지니어의 손을 거치게 된다고 합니다. 최근에 실제로 일어난 한 예를 들면 세계적인 아이티(IT)회사 구글이 당뇨병 환자의 당을 측정할 수 있는 콘택트렌즈를 개발한 프로젝트를 발표했어요. 콘택트렌즈 속에 머리카락보다 더 얇은 무선 칩과 센서를 넣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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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속에 있는 당을 측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놀라운 일이지요? 이것 또한 바이어 메디컬 엔지니어가 하는 일입니다. 연구를 거듭할 수록 새로운 분야에 새로운 기술이 생겨나지요. 앞으로 콘택트렌즈를 통해서 혈당 뿐만 아니라 체온이나 콜레스테롤 수치도 측정할 수 있다고도 합니다.

저는 지금 8 학년입니다. 수학을 아주 좋아하고 잘하고 있습니다. 화학과 생물도 좋아합니다.

바이오 메디컬

엔지니어가 되려면 그것뿐만아니라 더 어려운 많은 분야의 공학과 정보과학에 관한 지식이 풍부해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열심히 이 분야들을 공부할 생각입니다.

전 정말 이 꿈이 멋지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 일을 통해 많은 생명을 살리고 그 생명들이 이 세상을 위해 보람있게 산다면 이 세상은 점점 더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것 만큼 이 세상도 발전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제가 선택한 이 멋진 꿈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입니다. 여러분! 십 년 후에 저를 기대해 보세요.

병을 다 고쳐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저를 만나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지

감사합니다.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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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 김현영  고 I 반

한글학교에서 선생님이 나의 꿈에 대해 글을 써오라고 하셨을 때 곰곰이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이다음에 내가 자라서 "무엇이 되어있을까?"에 대해 그래서 또한 나는 "무엇을 꿈꾸어야 하는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엄마의 말씀이 생각났다.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면 좋겠다."라고... 4 년 전 아빠가 심장수술을 하셨다. 우리가족에게는 큰 사건이었다. 친척도 하나도 없는 미국에 와서 엄마 아빠는 무척 힘들어 하셨는데 아빠의 병은 우리 가족에게는 태풍이 닥치는 것 같았다. 엄마친구들, 교회분들이 아빠가 병원에 계시는 동안 많이 도와주셨다. 그때 엄마가 "베풀 때는 즐거웠는데 도움을 받는 자리가 되니 마음이 무겁다. 너희들은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고 하셨다. 그러면, 어떻게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엄마, 아빠는 걱정하고 있는 나에게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미래는 저절로 온다고 하셨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운동할 때는 운동 선수처럼 하고, 피아노칠 때는 피아니스트처럼 연습하고, 공부할 때는 최선을 다해서 할 생각이다. 나는 분명 부끄럽지 않는 아들이 되고 바른 한국사람이 될 것이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분명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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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게 된 김구 선생님 김민진 처음에 나는 김구 선생님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구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다’ 책에서 김구 선생님이 일본 중위 쓰치다를 죽였습니다. 나는 김구 선생님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나쁘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나쁘기 때문입니다. 그냥 그 사람을 때리기만 했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을 죽인 것이 계속 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책을 계속 읽다 보니 김구 선생님은 명성황후를 죽인 일본에 복수를 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쓰치다 중위를 죽인 것이 결국 나라를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해가 되고,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김구 선생님은 나라를 위해서 한 일로 감옥에 가게 되었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개인을 희생한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안중근 의거 후에도 다시 한번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순전히 나라를 위하다가 다시 감옥에 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내 이웃집에는 일본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책을 읽은 때쯤 나는 일본 사람들이 별로 안 좋게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나의 태도는 그들 앞에서 좋은 모습은 아닐 것이고, 이런 자세를 갖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나는 여기에 대해 좀 더 많은 생각을 했고, 부모님께 이런 마음을 알렸을 때 부모님께서는 이렇게 말씀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더 강해져야 한단다.” 우리가 강하다면 어느 누구도 우리를 컨트롤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이 강하고, 현명하고, 기술이 높다면 어떤 나라도 한국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 베트남, 러시아 어느 나라도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김구 선생님은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의 역사적 인물들 중에 정말 좋은 분, 정직한 분, 용감한 분입니다.

그 분은 대한민국을 일본으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해 새로운 길을 생각하셨던 분입니다.

때때로 어려움을 겪었을지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도 김구 선생님처럼 대한민국의 주권을 위해서 꿋꿋하게 일어설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 더 커서 김구 선생님과 같은 사람이 되어 독도를 지키고, 동해의 이름을 완전하게 찾아오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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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백범이 되고싶다 김유진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나는 이제까지 읽어본 한국책이라고는 창작동화나 과학동화밖에 없었다. 그런 나에게 백범 김구 선생님의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다’라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 하는 일은 그저 막막하고 두렵기만 한 일이었다. 들어보지도 못한 단어들이 너무 많았고 뜻을 찾아 알고 난 후에도 자꾸 잊어버려 몇번씩 반복해서 외우며 읽어야 했다. 어떤 단어들은 발음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그 어려운 과정을 통해 난 다 읽었다. 난 내 자신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책 속에서 나의 느낌을 찾기 위해 몇 번을 더 읽었다. 읽기 전에는 당연히 다른 위인전처럼 딱딱하고 지루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재미도 있고 흥미가 생기는 것을 느꼈다. 특히 선생님의 어린시절 이야기가 참 가깝게 느껴졌다. 떡을 사 먹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 돈을 훔친 일이며, 아버지 숟가락을 엿이랑 바꿔 먹은 일이 재밌었다. 그렇게 한 장씩 한 장씩 읽으며 나도 모르게 선생님이 사셨던 그 시간 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신기한 일이었다. 어떨땐 끔찍하고 놀랍기도 했고 어떨땐 가슴이 아프고 슬프기도 했고 또 어떨땐 가슴이 뜨거워지며 감격스럽기도 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백범 김구 선생님을 통해 배우고 느낀점들은 너무 많지만 그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들은 선생님의 배움에 대한 갈망, 교육에 대한 열정, 따뜻한 마음, 그리고 애국심이다. 배움에 대한 갈망 선생님은 어렸을 때부터 궁금한게 참 많았던 분이셨던 것 같다. 선생님의 “어찌하면 양반이 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학문을 익혀 과거에 급제하면 되는 것이다.” 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양반이 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셨다. 가난한 게 싫어서, 상놈이라고 놀림을 받고 멸시받던 게 싫어서였다. 선생님이 그냥 평범한 아이였다면 별로 궁금해 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의 배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과거를 위한 공부부터 관상 공부 그리고 스승 고능선으로 부터 가르침을 받은 마음 공부, 동학, 불교, 기독교… 정말 여러 분야를 공부하셨다. 선생님은 늘 폭넓게 책을 읽고 깊이 생각하는 자세를 가져야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선생님은 순수한 마음으로 새로운 것들을 배우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을 하셨고 또 적극적으로 배우셨다. 선생님은 정말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분이셨다. 교육에 대한 열정 선생님은 깨어있는 사람이 많아야 아름다운 나라가 되고 나라를 구하는 길은 교육에 있다고 믿으셨다. 그래서 선생님은 한평생을 교육사업에 헌신하셨다. 감옥에서도 글을 모르는 죄수들을 가르치셨고 마을 아이들도 모아 가르치셨다. 학교를 세우셨고 학생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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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후, 청년들을 교육하기 위해 건국실천원양성소를 세우셨고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을 도우셨고 백범학원과 창암학원을 세우셨다. 선생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교육에 대한 선생님의 뜻을 굽히지 않는 정말 훌륭한 교육자셨다. 따뜻한 마음 동학의 접주이셨을 때 총에 맞아 죽은 부하를 감싸 안고 우시는 모습을 보고 선생님은 정말 마음이 따뜻한 분이시라는 걸 알았다. 이봉창의사의 의거 전, 함께 이야기를 나누시고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으며 슬퍼하셨을 때, 윤봉길의사의 의거 전, 마지막 밥을 함께 드시며 목 메인 작별 인사를 하셨을때, 그리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들을 효창공원에 잘 모셔놓고 그 분들께 미안함을 느끼며 우실 때도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을 잘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의 호에도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드러나 보인다. 그 당시 가장 천대 받았던 가축을 잡는 백정의 백과 보통사람이라는 뜻의 범을 합쳐 백범이라고 선생님 스스로 지으셨다. 우리나라가 완전한 독립국이 되려면 가장 낮은 계층의 사람들인 백정과 범부들도 모두 깨어나야 한다는 뜻으로 백범은 선생님 한 분뿐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도 백범이라는 말이다. 애국심 선생님은 명성황후를 죽인 일본사람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치하포에서 일본사람 스치다를 맨손으로 때려 죽이셨다. 그래서 감옥 생활을 하게 됐고 다리에 뼈가 드러날 정도로 무서운 고문을 당하셨다 그런데도 자신이 복수를 하기 위해 죽였다고 당당히 밝히고 일본 순사까지 크게 꾸짖으셨다. 그런 모습을 보며 선생님의 애국심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선생님이 다음에 또 투옥이 되셨을 때 일본 사람들이 밤을 새워 가며 선생님을 끔찍하게 고문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런 일본 사람들을 보며 자신의 몸이 아파서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지 못한 것을 오히려 부끄러워하시며 우셨다. 정말 얼마만큼 나라를 사랑하면 그런 마음이 들 수 있는 지 난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었다. 정말 존경스러웠다. 선생님은 어머니도 아내도 자식들도 나라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셨다. 선생님은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다 희생해 가면서 전 생애를 조국와 민족을 구하려고 애쓰셨다. 선생님은 진정한 애국자시다. 난 아직 한국을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난 한국 사람인게 자랑스럽고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사랑한다고 생각해 왔다. 왜냐하면 한국은 내 부모님이 살다 오신 나라, 내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고 계신 나라, 내가 좋아하는 삼성 갤럭시 휴대폰을 만드는 나라, 내가 좋아하는 차 현대 제네시스, 에쿠스를 만드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생님을 통해 난 우리나라를 그냥 좋아하는 거지 사랑한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라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봤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우리 역사를 모르면 우리 나라를 지킬 수 없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해도 힘을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해 청소년 포럼에 참가해 독도 분쟁에 대해 공부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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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도 느꼈던 점이다. 독도 문제 역시 우리가 독도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우리나라 땅, 독도를 지키는 힘이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논리적으로 계속 증명을 하면 더이상 우길 수 없을테니까 말이다. 나는 이제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다. 그리고 난 정말 선생님을 닮은 삶을 살고 싶어졌다. 항상 새로운 걸 배우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 마음이 따뜻한 사람,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내가 꾼 꿈을 이루기위해, 어떤 어려움도 견디어 내는 사람, 그리고 나라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백범 김유진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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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나라의 조건 김하은 김구 선생님은 ‘깨어 있는 사람이 많아야 굳세고 아름다운 나라가 된다. 깨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배움이 있어야 한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배워야 한다.’라는 믿음으로 황해도에서 학교를 세우고 많은 아이들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가르치고, 도와주는 것에 힘쓰시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노숙자를 도와 주어서 내가 오히려 더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내 자신에 대해서만 계획하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을 좀 더 돌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임시정부를 만들 때 황해도 대표였던 김구 선생님은 유명해지는 길 보다는 임시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하셨다.

항상 다른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김구 선생님은 임시정부에서도 남들을 도와주고

지켜주는 문지기의 역할을 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재미있게 운동을 하는 동안에도 나는 악기 연습을 계속 한다. 나도 가끔은 운동을 하고 싶은데, 연습할 시간이 많이 없어서 악기만 연습하게 된다. 그래서 아쉬운 점이 많다. 그런데 김구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위로를 받게 된다. 김구 선생님도 하고 싶으셨던 것이 무척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 다 참으면서 오직 독립을 위해 사람을 키우시고, 남을 도우셨던 분이다. 내가 커서 무엇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이다. 김구 선생님이 일본 사람이 아니라 한국사람에게 죽을 뻔 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일본이 계속 김구

선생님을 죽이려고 했는데도 잘 피해 있었는데, 갑자기 한국 사람에게 죽을 뻔 하다니, 너무 화가 나고 슬펐다. 그 사람 누군지는 몰라도 차가운 사람이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그토록 남을 도우면서 열심히 살았던

김구선생님을 어떻게 한국 사람이 죽이려 했는지 모르겠다.

만약에라도 그 사람이 선생님을 죽이는 것을

성공했다면 우리는 임시정부를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김구 선생님의 마지막 역시 화가 나고 슬픈 장면이다. 결국은 한국 사람에게 총을 맞고 돌아가시다니…… 지금 선생님을 직접 만나 뵐 수는 없지만, 나는 그 분을 이제 잘 알게 되었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아는 지식을 쌓을 수 있게 되고, 아는 만큼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깨어 있어서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고, 그리고 나의 뿌리를 준 아름다운 나라인 대한 민국도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내가 좋아하는 것만을 배우는데 열중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방면에 호기심을 가지고 배우면서 다른 사람들을 도울 때, 나는 김구 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분의 귀한 교훈을 매일 잊지 말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열심히 배우는 시민이 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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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사랑한 백범 김구 신준용 백범 김구는 본받을 점이 많은 인물입니다. 백범이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만한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백범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열정을 잃지 않았습니다. 백범은 가르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교육에 열정이 있었습니다. 백범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는 지도력이 있었습니다. 백범은 나라가 절망에 빠졌을 때에도 희망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점들로 인해 백범은 당대의 영웅이라고 불릴 만 했습니다. 백범은 열정적인 젊은이였습니다. 갑옷을 입은 전사와 같은 모습은 아니었어도 평화를 갈망하는 지식과 용기를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김구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랐습니다. 가난한 가운데에서도 미래를 위해 공부를 하며 늘 새로운 도전을 하며 자신을 계발했습니다. 그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뽑아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저도 이러한 비슷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하룻밤 동안 해야 할 숙제가 너무 많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불평하는 대신에 그냥 숙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백범은 힘이 없고 권력도 없었지만 그러한 상황에서 불평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공부를 했습니다. 그는 절망에 빠지는 대신에 해야 할 일을 하곤 했습니다.

백범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국 속담에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데 일단 시작하고 보는 게 낫다라는 것입니다. 백범은 훌륭한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있을 때에도 죄수들에게 글을 가르쳤습니다. 감옥이라는 가장 안 좋은 환경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교육에 힘썼습니다. “얼굴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라는 말에서 감명을 받은 김구는 건강한 마음과 정신을 가지면 나라가 번성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교회에서도 그는 가르쳤고, 감옥에서도 그는 가르쳤고, 상황이 될 때마다 가르치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백범은 때때로 좌절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한국의 상황은 많은 백성이 교육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러한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된 친구를 도와 영어로 통역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그 친구를 도왔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시간도 많이 걸렸습니다. 인내심도 필요했습니다.

백범은 인내심이 많은 열정적인

선생님이었습니다. 백범은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위기상황에서도 그는 국민을 위해 일했습니다.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세워졌을 때 백범은 임시정부를 도우러 갔습니다.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국가가 자신을 리더로 필요로 함을 느꼈습니다.

그는 임시정부 요원들이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그의 탁월한 지도력으로

임시정부는 번성했습니다. 일본이 패망하고 나서, 백범은 북한과 남한이 통일되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습니다. 전에 저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그룹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친구들은 주제와 다른 방향으로 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프로젝트를 이끌어 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은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프로젝트는 이상하게 끝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백범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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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은 애국자였습니다.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나서,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기 위해 ‘스치다’라는 일본 중위를 죽였습니다. 나라가 번성하기 위해서는 국민을 잘 가르쳐야 한다고 믿었던 그는 평생 동안 국민들의 교육에 힘썼습니다. 소련과 미국이 한국을 남한과 북한으로 나눠 놓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굽히지 않고 남한과 북한이 통일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저는 백범의 그와 같은 주장에 동의합니다. 완벽한 한 나라를 두 개로 나눈다는 것은 정말로 바보 같은 짓이지 않습니까? 비록 마지막에 그는 암살되었지만, 백범은 위대한 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열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훌륭한 교육자였습니다. 그는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애국자였습니다. 그는 한국 온 국민의 존경을 받을 만한 국민적 영웅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에게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요”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하면, 나는 또, “ 우리 나라의 독립이요”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 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요”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를 정말로 사랑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국사람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미국은 역사가 짧지만, 한국은 역사가 아주 깁니다. 그리고 한국은 고유의 전통문화와 현대적인 문화가 합쳐져 있습니다. 테크놀로지와 K-Pop, 경제부흥 등 자랑스러운 한국입니다. 저도 백범 김구처럼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중에 커서 대한민국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백범 김구가 미래를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한 것처럼 저도 공부를 열심히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한국어를 더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백범도 저와 같은 어린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을 바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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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짱, 몸짱 보다는 우선 맘짱이 되자! 윤도영 요즘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시간을 많이 쓰는 것이 무엇일까?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에 너무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가끔 텔레비전을 보면 얼굴이 잘생긴 얼짱들과 멋있는 몸매를 가진 몸짱들로 가득하다.

그런

사람들을 보다가 나를 보면 ‘나는 왜 이렇게 배가 나왔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한 때는 다이어트를 하려고 조금 덜 먹고, 운동도 더 많이 하려던 적이 있었다.

다이어트를 하려고는 했지만 별로 뱃살도 안 빠지고 힘만 들었다.

그래서 금방 포기했다. 그런데 백범은 젊을 때부터 ‘얼굴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 라는 말을 기억하고, ‘마음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맘짱이 되기로 한 것이다. 백범이 맘짱이었다는 것을 ‘치하포’ 사건에서 보았다. 스치다가 가지고 있던 돈이 800 냥쯤 되었다. 1 냥이 얼마나 큰 돈인지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더니 노비 한 명을 평생 쓸 수 있는 돈이라고 한다.

800 냥이면

어마어마한 돈인데, 그 돈을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라고 했다니…… 백범의 가족은 진짜 가난했는데 어떻게 한 푼도 자기가 갖지 않고 다 나누어 줄 수 있을까? 나는 세상에서 제일 잘 산다고 하는 미국에 살면서도 불평하는 것이 많다. 외식을 자주 안 한다고, 용돈을 많이 안 준다고, 컴퓨터가 없다고, 우리 집이 작다고 불평을 한다. 그런데 백범을 생각하면 참 어리석은 것 같다. 따뜻한 집에서 먹을 것 걱정하지 않아서 감사하고, 아프면 병원을 갈 수 있어서 감사하고, 좋은 학교에서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 항상 무엇을 받을까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시간을 더 가지면서 맘짱이 되어야겠다. 백범이 맘짱이었다는 것을 해주 감옥에서 탈옥할 때 알 수 있었다.

백범은 가장 먼저 밖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이 나올 수 있도록 감옥 담에 줄사다리를 매어 놓았다. 그 순간 함께 탈옥을 하기로 한 사람들을 데리고 나오다가 걸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 속 갈등이 있었다. 그러나 맘짱 백범은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감옥으로 들어갔다. 나는 매일 엄마가 퇴근하시기 전까지 숙제를 다 해 놓기로 약속을 한다. 하지만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쉬고 싶고, 숙제를 할 기분이 아니다. 엄마와의 약속을 기억하지만 그 약속을 잘 지키기는 쉽지가 않다.

백범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길로 향하는 작은 발걸음이라 생각하고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부터 시작하는 맘짱이 되어야겠다. 백범이 맘짱이었다는 것은 아버지가 아프셨을 때도 나타났다. 백범은 어머니 몰래, 자기의 넓적다리 살을 한 점 베어내어 그 살점을 구워서 아버지께 드렸다. 어머니 몰래 살을 베었다는 점에서 어머니에게 걱정을 시키지 않으려는 백범의 마음이 느껴진다.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 고통을 참고 살을 베는, 아버지를

생각하는 백범의 마음이 느껴진다. 나는 부모님께서 편찮으실 때 별로 도움을 드리지 못했던 것 같다. 어차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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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으실 거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부모님이 얼마나 아프실까 하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부모님이 건강하게 계시다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고 부모님 마음을 이해하는 맘짱이 되어야겠다. 백범이 맘짱이었다는 것은 큰아들 인이 폐병을 얻었을 때도 알 수 있었다.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백발의

동지들에게도 못해 주는 일을, 내 아들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할 수는 없다.”고 백범은 말했다. 나는 아들이 없어서 이것이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들을 형이나 동생으로 생각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형이나 동생에게 페니실린을 구해주었을 것이다. 내가 그 당시의 상황을 잘 알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야 할 페니실린을 중간에서 가로채어 아들에게 주어야 했을 때, 백범은 그러지 않았다는 것 아닐까?

아들이

죽어가는 상황도 슬픈데, 특별하게 행동하는 무리를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한 백범의 마음은 어땠을까? 일단 나는 이런 어려운 환경에 살지 않아서 감사하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고 나만을 위해서, 또 내 가족만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내가 하는 행동이, 우리 가족이 하는 행동이, 이웃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생각하며 사는 맘짱이 되어야겠다. ‘마음 좋은 사람’ 백범은 여러 가지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마음 좋은 사람으로서의 결정을 내린다. 내 나이 열두 살에 백범을 만나서 진정한 삶의 교훈을 얻었다. 항상 무엇을 받을까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맘짱, 작은 약속을 지키는 것부터 시작하는 맘짱, 부모님이 건강하게 계시다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고 부모님 마음을 이해하는 맘짱, 내가 하는 행동이 이웃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생각하며 사는 맘짱이 되어야겠다. 백범과 같이 어려운 환경은 아닐지라도 나에게 얼마든지 맘짱이 될 기회는 많다. 얼짱, 몸짱이 되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것 보다는 우선 맘짱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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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길을 가겠느냐, 쉬운 길을 가겠느냐?” 윤도웅 (백범 일지 독서감상문 쓰기 대회 우수상) 김구 선생님이 살아계신다면, 우리 외삼촌 보다 백 살이 많으시니까 138 세입니다. 나는 오늘 저녁 김구 선생님이 우리 집에 놀러 오셨다고 상상을 해 봅니다. 우리 집 식탁에 앉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갈비를 함께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는 김구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선생님과 대화를 하고 싶습니다. “선생님, 자랑할 것이 너무 많이 있어요! 선생님 시대에는 한국이 참 어려워서 문화라는 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겠지만 지금은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문화 강국이 되었어요.

싸이라는 아저씨가 작년에 ‘강남 스타일’이라는 노래로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유명해졌어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인 미국의

뉴욕에서 한국어로 공연을 했는데 수천 명의 미국사람들이 모여 공연을 즐기면서 그 한국 노래를 따라 불렀답니다. 믿어지세요? 그리고, 지난 달에는 제가 ‘별에서 온 그대’라는 한국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너무 좋아해서, 여기서 나온 음식과 옷, 가방을 사려고 끝없이 줄을 서서 기다렸대요. 믿어지세요? 많은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살면서 한국학교를 만들고 매주 토요일마다 한국어, 한국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고 있어요. 이제는 한국이 유명해져서 미국사람들도 한국어를 배우려 하기도 해요. 대단하지요?” 입을 못 닫으시고 눈을 동그랗게 뜨신 채 움직이지도 못하시는 김구 선생님이 보입니다. 선생님께서 기뻐하실 걸 생각하니, 흥분이 됩니다. ‘김구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다’를 읽기 전에는 한국학교 가는 것이 너무 힘들고 지겨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선생님은 어렵고 힘들어도 목표를 향해서 끝까지 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큰 깨달음이 있을 때마다 이름을 바꿔가면서까지 다시 태어난 사람으로 바른 길로 가십니다.

힘들었지만

한국학교를 계속 다녔기 때문에 김구 선생님과 같은 롤모델을 만날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다섯 명의 을사오적은 나를 참 화나게 했습니다.

공부도 많이 하고 집안도 좋은

사람들이 나라가 어려울 때 자신의 지식을 사용해서 나라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 잘 먹고 잘살려고 했다는 것이 비겁합니다. 이 사람들은 바른 길로 간 것이 아니라 쉬운 길로 향했습니다. 김구 선생님은 많이 배우지도 못하고 부유하지도 않았지만, 나라를 빼앗긴 후에도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서 중국에까지 나가 임시정부의 일을 하며 힘든 길을 가셨습니다. 나는 매일 학교를 다니며 영어, 수학, 과학, 역사 등 많은 과목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몇 년 후에는 대학교에도 가겠지요.

가끔 숙제를 안 해갔을 때 선생님께서 숙제 한 사람 손들라고 하시면 손을 들고 싶은 유혹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 손 들고 숙제 한 것처럼 쉽게 넘어간다면 바른 길로 간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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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가서 공부를 많이 하고 나서도, 쉬운 길로 가려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힘들 더라도 바른 길로 가겠습니다.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도 같이 행복한 길로 가겠습니다. 임시정부가 가장 어려웠을 때 독립운동을 하겠다던 사람들 대부분이 떠나가고, 독립운동을 할 돈도 없는데 김구 선생님은 끝까지 임시정부를 지키셨습니다. 편지를 쓰셨습니다.

중국에서 어려우니 해외 동포들에게까지 도움을 구하는

선생님께서 독립운동을 포기하시고 좀 더 쉬운 길을 선택하셨다면 나중에 광복군이라는

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유치원 다니다가 미국에 와서 학교에서 계속 영어만 쓰게 되니 이제는 영어가 점점 더 편해집니다.

김구

선생님의 실망하시는 얼굴이 떠오릅니다.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실 것 같습니다. “내가 그렇게 힘들게 대한의 것을 지키고 높은 문화의 힘을 원했는데, 한국어를 점점 잊어버리게 된다면 다음 세대에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 더 적어지지 않겠느냐?” 쉬운 길로 가자면 토요일에 늦잠을 실컷 자거나 게임을 하는 것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바른 길은 한국 고유의 것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계속해서 한국학교를 다니며 한국어,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것입니다. 이제는 김구 선생님이 저를 자랑스럽게 여기시는 것을 상상합니다. “바른 길을 가겠느냐, 쉬운 길을 가겠느냐?” 하고 김구 선생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바른 길을 가겠습니다” 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지겨워도 바른 길을 가겠느냐?” 하시면, 나는 또 “지겨워도 바른 길을 가겠습니다” 할 것입니다. 또 “어려워도 바른 길을 가겠느냐?” 하시는 셋째 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어려워도 지겨워도 항상 바른 길을 가겠습니다.” 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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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씨 좋은 사람, 백범 김구 조유리 김구

선생님의

개구쟁이였습니다.

어릴

이름은

‘김창암’이었습니다.

창암은

우리처럼

그래도 옳지 못한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항상 앞장서는

아이였죠. 그래서 그 당시 양반들의 횡포가 못마땅했던 창암은 과거시험에 급제하여 양반이 되서 상민들의 설움을 떨쳐 내려 했지요. 결과는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붙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어느 책에서 '얼굴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 는 구절을 읽고 마음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마음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요? 확실히 저는 아닙니다. 나라를 위해서 일한 김구 선생님 같은 분이시겠죠? 이 땅에 모든 사람들은 차별 없이 평등하다는 종교, 동학에 들어갔습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고자 이름도 ‘창암’에서 ‘창수’로 바꿨습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동학은 군대를 일으켰지만 실패하고 말았어요. 그 후 김창수는 고능선이라는 훌륭한 스승님을 만나 좋은 가르침을 받고 새로운 사람으로 용기를 내여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첫 번째 명성황후를 죽인 일본에 대항하여 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사람을 죽이고 도망가지 않고 당당히 집으로 돌아갔어요. '제가 한일은 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한 일이니, 조금의 부끄러움도 후회도 없습니다. 제 한 몸을 희생하여, 여러 사람이 나라의 위기를 깨달을 수 있다면, 죽어도 영광된 일입니다.'

그 말이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그 일로 감옥에 갇혔고 거기서도

죄수들에게 글을 가르쳐 주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지요.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탈옥을 했어요. 탈옥 이후에 ‘김창수’라는 이름을 쓰는 것이 위험하여 ‘김구’로 바꿨습니다. 고향으로 갔을 때 아버지께서 아프셔서 김구는 자신의 살을 베어 아버님을 살리려 했으나 돌아가셨지요. 만약 나라면 내 살을 베어 부모님을 살리려 했을까요? 이후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사람들을 가르치셨고 날마다 새로 깨어나는 사람이 되야 한다고 강조 하셨습니다. 일본이 안중근의사, 안명근 독립 투사들의 사건마다 김구 선생님을 붙잡아 심한 고문을 했지요. '너희가 내 몸을 욕보일 수 있어도 내 정신을 빼앗을 수 없다' 며 지독한 고문을 견디셨지요.

김구의 어머니 또한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지요. 일본이 독립

운동가들에 대한 탄압이 더욱더 강해져서 나라의 독립 운동을 위해 중국 상하이로 갔습니다. 이후 김구 선생님이 만든 청년 애국단에서 이봉창, 윤봉길 같은 젊은 청년들이 목숨을 바쳐 일본에 저항했습니다. 그 후 일본은 한국사람들을 더 많이 괴롭혔지요. 너무 힘든 이때, 큰아들이 폐병을 얻었고, 살릴 수 있었으나 특별한 대접을 해 줄 수 없다 해서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구선생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광복군까지 만들어 나라 독립을 위해 노력하던 어느 날 갑자기 일본이 망하자 우리 나라가 독립이 되었지요. 그러나 남과 북이 갈라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나의 나라를 만들려 노력했지만 한국사람 총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사는데, 김구선생님께서는 나라를 위해 항상 ‘마음이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고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김구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는 한국 사람인 게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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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놀라게 한 영웅 한예진 영웅이나 존경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사람들은 훌륭한 태도나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영웅 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는 어떤 사람들은 ‘영웅’이라는 이름을 얻기 위해 아주 놀랄 만큼 보람된 일을 하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백범 김구 선생님은 한국의 영웅으로 존경 받기 위해 어떤 일을 한 것일까요? ‘백범 김구’ 책을 읽기 전까지,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아마도 백범 김구선생님이 ‘아주 중요한 사람의 생명을 구했나 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 하신 일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김구 선생님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아주 놀라왔습니다. 먼저, 김구 선생님처럼 훌륭하신 분이 옛날에는 개구쟁이였다는 사실에 놀라왔습니다. 김구 선생님에 대한 저의 첫 생각은 평범한 아이들과 다른 용기 있는 아이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이 아주 상류층 부자여서 좋은 환경에서 자랐거나, 친구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 그런 특별한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웅이고 너무나 유명하신 분인데, 어릴 때는 개구쟁이였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어릴 때는 엄마 아빠 말씀도 잘 안 듣고, 학교에서는 거짓말도 하고, 학교 장난감이 너무 예뻐서 집으로 가져온 적도 있었습니다. 김구 선생님도 어릴 때, 부모님께 말도 안하고 집에 있는 숟가락을 엿으로 바꾼 이야기며, 아버지 돈으로 떡을 사려 했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와 같은 평범한 아이였다는 것이 놀라왔습니다. 개구쟁이라고 해서 미래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구쟁이가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모르고, 어릴 때는 말 안 듣는 개구쟁이가 김구 선생님처럼, 많은 사람들이 닮기를 원하는 인물이 될 수 있는 것이라서 개구쟁이를 과소평가 하면 안될 것 같습니다. 김구 선생님이 그런 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떻게 그렇게 개구쟁이가 훌륭한 사람으로 자랐는지도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김구 선생님이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고 싶어 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개구쟁이였던 김구 선생님이

공부를 하고 싶어 했다는 것이 말입니다. 학교 수업시간에 파키스탄의 열여섯 소녀 말라라 라는 소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파키스탄에서는 여자가 공부를 많이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소녀는 여자든 남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이든 어떤 사람도 공부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용감하게 말한 소녀입니다.

이것 때문에 머리에 총을 맞았습니다. 말라라는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 있게

자기가 믿는 것을 세상에 보여 주었습니다. 김구 선생님의 배움에 대한 생각은 저에게 말라라를 생각나게 하였습니다. 김구선생님과 말라라 모두 모든 사람은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리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계속적으로 배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열심히 공부한 결과로, 개구쟁이였던 김구선생님이 변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 받는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나도 공부를 이렇게 하는 것이 감사한 것인데, 숙제만 생각하면 불평이 자꾸 나옵니다. 김구 선생님과 말라라를 생각하면서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배움’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인지, 또 사람을 변하게 할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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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님이 일본 사람을 죽였을 때도 놀랐습니다. 나는 공격을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해도 정말 죽일 줄은 몰랐습니다. 꼭 죽여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일본 사람은 명성황후를 죽이고, 김구 선생님은 일본 사람을 죽였으니 어차피 마찬가지라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았더니, 사실은 같은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일본 사람은 약한 한 나라의 국모를 죽여, 한국의 정신력을 꺾고 파괴시키려고 한 것 입니다. 하지만, 김구 선생님은 나라를 위해서 그런 일을 했습니다. 김구 선생님은 이 일을 통해, 한국의 강한 의지를 일본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한국은 절대 부서지지 않을 것 임을 보여 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구 선생님의 이런 용기는 정말 놀랍다고 생각합니다. 김구 선생님이 조국과 다른 사람을 자신보다 사랑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을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김구 선생님은 달랐습니다. 김구 선생님은 아들이 아팠을 때, 약을 구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약이 없어서 많은 사람이 고통 받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아들이라고 특별하게 대하지 않았던 모습을 보면서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몇 주 전 학교에서, 나의 장점과 약점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시험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나의

약점은 용감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잘 생각하지 못하는 점들 이었습니다. 만약 김구 선생님이 내가 봤던 시험을 봤다면, 나의 약점들은 김구 선생님의 가장 강한 점들 일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김구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했고 또한 용감하셨습니다. 무엇보다, 김구 선생님은 자신 보다 조국인 대한민국을 먼저 생각하셨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조국과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김구 선생님께 용기를 주었고,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있게 만든 것 같습니다. ‘영웅’이란 무엇일까요? 아마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영웅’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 인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백범 김구 선생님을 만나 본 적도 없고 잘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김구 선생님의 용기, 다른 사람과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과 행동, 그리고 자신의 명예를 생각하지 않는 마음을 발견하고 정말 놀라왔습니다. 이런 분이야말로 진정한 한국의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김구 선생님이 한국을 위해 사셨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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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가을 조유리 (백일장 대상)

람들은 원래 겨울이랑 여름 좋죠? 여름은 바닷가를 가도 되고 겨울은 예쁜 눈 상큼하게 내리는 것도 보게 되고. 그런데 저는 가을이 제일 좋아해요. 가을은 좀 흐리잖아요? 그건 제일 예쁜 것 같아요. 흐린데 바람도 시원하고 나무에 이파리가 떨어지는 모습이 제일 편해요. 시간이 그냥 멈춰요. 가을

오면 TV 보다 더 신기해요. 어떤 날은 가을 안 같아요. 매일매일 안 똑같으니까 다음날 어떤 날씨인지 궁금해요. 여름이랑 겨울이 좋지만 가을은 제일 예뻐요. 가을 아니면 가끔씩 가을 되게 그리워요. 제가 제일 그리운 것은 가을비예요. 가을비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날씨에요. 바람도 불고, 태양이 좀 나와 있고, 비는 상큼하게 내려요. 비 오면 원래 태풍도 나고 태양이 안 보이고 비는 막 내려오잖아요? 가을비는 제가 그리워요. 가을비 오면 만화 속에 들어간 것 같아요. 진짜로 너무 완벽해요. 가을비 만날 오면 행복할 것 같아요. 가을에는 제 엄마 생일도 있어요. 무슨 날인지 모르겠지만, 가을에 있는지 알아요. 가을에서 제일 좋아한 날은 추석이에요. 밥도 많이 있고, 행사도 많이 하고, 그냥 즐거운 타임이에요. 할머니랑 송편 만들고 감도 많이 사요. 엄마는 식혜 만들고 가을이 겨울 되면 가을 무지하게 보고 싶어요. 노래가사가 하나 있는데 “찬바람 불어보니 너의 생각에 눈물짓네.” 그것이 가을 같아요. 흐리면 제가 모든 사람 그리워요. 가끔씩은 울어요. 가을은 제 인생에 한마디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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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을을 좋아하는 이유 한예진 (백일장 동상)

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다. 가을은 경치도 좋고, 날씨도 시원하고 추수감사가 있어서 좋다. 가을이 오면 낙엽이 떨어지고 단풍이 든다. 학교 가는 길에 낙엽이 살랑살랑 흔들리고 나무는 예쁜 단풍이 드는 것을 본다. 이 경치를 볼 때마다 꼭 그림에 들어간 느낌이다. 나는 경치가 멋있어서

가을이 좋다. 가을은 날씨가 시원하고 써늘하다. 나는 살짝 써늘한 날씨가 좋다. 겨울은 너무 춥고 여름은 너무 덥고, 봄은 비가 너무 많이 온다. 하지만 가을은 시원하고 비가 많이 오지 않는다. 나는 가을 날씨가 시원해서 좋다. 가을에는 추수감사절이 있다. 추수감사절 동안은 학교도 안가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는다. 친구들과 놀 수 있고 감사하는 것을 생각하면 추수감사절 저녁을 먹는다. 나는 가을에 추수감사절이 있어서 좋다. 가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다. 가을에는 사과 따러 가고, 동생이랑 낙엽을 모아서 낙엽에 뛰는 놀이도 한다. 하지만 꼭 그것 때문에 가을이 좋은 게 아니다. 나는 아름다운 경치, 시원한 날씨, 그리고 추수감사절이 있어 가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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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 그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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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부 금상 강성유 60

초등부 동상 윤도웅

중등부 금상 윤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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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청소년 포럼 “대상”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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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ths and Misconceptions about the Territorial Rights over Dokdo Lydia Cho Julie Chun Eugene Kim Doyle Yoon Supervising Teacher: Kiseok Yoon Korean School of Southern New Jersey Cherry Hill, New Jers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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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Which country does the territory of Dokdo belong to? Dokdo is administered by the Republic of Korea, and Koreans currently living on the island. It is under Korean effective control. However, the Japanese government recently claimed that Dokdo is their territory. Japan claims that (1) it has long recognized the existence of Dokdo, (2) There is no evidence that Korea recognized the existence of Dokdo in the past, (3) Republic of Korea is illegally occupying Dokdo, (4) Although Japan proposed to the Republic of Korea to refer this dispute to the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CJ�), the Republic of Korea rejects doing so. This study examined historical documents in an attempt to explore the truths about territory of Dokdo. It shows what the truths about Dokdo are. This paper concentrates on four major issues: Ancient Documents prove recognition of Dokdo as Korean territory; Korea has recognized the existence of Dokdo a long time ago; Korea has legitimate sovereignty of Dokdo; and Korea does not have to appeal to the ICJ to resolve this territorial issue. This study concludes that Dokdo cannot be Japanese territory, it is not Japanese territory, but it is Korean terri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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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ths and Misconceptions about the Territorial Rights of Dokdo

I.

Introduction

Which country does the territory of Dokdo belong to? Dokdo Island (also called Liancourt Rocks by some nations and Takeshima by Japan) is 216 km from mainland Korea and 250 km from Japan proper. Dokdo can be seen with a naked eye in clear, fine days from the island, Ulleungdo. Dokdo and Ulleungdo are 90 kilometers apart from one another. (http://english.visitkorea.or.kr/enu/SI/SI_EN_3_6.jsp?cid =623881, Steven J. Barber http://www.dokdotakeshima.com/) Dokdo is administered by the Republic of Korea, and Koreans living on the island currently. It is under Korean effective control. Japan recognized the strategic value of Dokdo in 1904 during the Russo-Japanese War. “Dokdo is in a great strategic location to establish a watchtower and install radio or submarine cables to detect the movements of Figure 1 Dokdo-Takeshima Island. Retrieved from enemy ships.” said Yamaza Enjiro (1866-1914), Director http://www.dokdo-takeshima.com/ of the Political Affairs Bureau, Japan. (Facts about Dokdo. http://korea.prkorea.com/wordpress/english/2012/10/26/facts-about-dokdo/) Japan’s attempt at incorporating Dokdo in 1905 through Shimane Prefecture Public Notice No. 40 was done in the process of and as part of its occupation of Korea. It was not only an illegal act, infringing on Korea’s sovereignty over the island, but also null and void under international law. Dokdo was restored as Korean territory after World War II, and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has been exercising Korea’s irrefutable territorial sovereignty over Dokdo ever sinc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Dokdo, Korean Territory (PP. 10-12). Retrieved from http://dokdo.mofa.go.kr/upload/eng1.pdf) The followings are four Japanese claims to attempt to raise territorial dispute on Dokdo. There are historical documents proving Japanese claims are false, but Dokdo belongs to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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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Japan Claims: Japan has long recognized the existence of Dokdo Japan has long recognized Dokdo as Korean territory. The Japanese government presents “The Revised Complete Map of Japanese Lands and Roads” serve as proof that Japan has long recognized Dokdo as Japanese territory. However, older maps like The Map of Japan Coastal Areas and The Complete Map of Joseon do not mark Ullengdo and Dokdo as Japan’s. Dokdo and Ullengdo are located outside the longitudinal and latitudinal lines of the grid in the 1846 edition of this map and in the original edition completed in 1779. Official Japanese government documents also clearly show that Japan had not recognized Dokdo as its territory until its illegal incorporation of the island in 1905. In 1877, Japan's most authoritative government office at that time, the State Council (Dakojan), issued an order which stated, “Concerning the inquiry about Takeshima and the other island, it is to be understood that this country [Japan] has nothing to do with them.” Here, Takeshima referred to Ulleungdo and the other island referred to Dokdo. Some Japanese scholars argue that the other island in this order is not Dokdo. However, The Simplified Map of Isotakeshima, completed in 1877 and submitted by Shimane Prefecture to the Ministry of Internal Affairs, made it clear that the other island was Matsushuma, that is, Dokdo. (Ten truths about Dokdo, Kim Hakjun, 2013)

Figure 2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n.d.). Ten Truth about Dokdo. Retrieved from http://www.nahf.or.kr/Data/board_100/dokdo_Truth/Eng lish.pdf

When Woosan State, which consisted of Ullengdo and Dokdo was merged into Shilla in 512, Dokdo historically became a territory of Korea. All the ancient records found in Japan are saying Dokdo is a territory of Joseon Dynasty. Even Japanese scholars admit this fact. All the eminent geographers in the west regarded Dokdo as a Korean territory. Many world maps record that Dokdo is a part of Korea. Takeshima is absolutely a misnomer. Japan must call Dokdo “Dokdo” because it is clearly a Korean territory. They made the word Takeshima to argue that Dokdo is Japanese. Takeshima is a product from Japan's shrewd way of distorting the truth. Nothing can substitute for the name of Dokdo. Dokdo is Dokdo. Takeshima must be deleted, Dokdo doesn't have another name. Although Dokdo has always been a Korean territory, Japan continuously says Dokdo had been officially recognized as a Japanese territory by international law. Japan doesn't have any true evidence proving Dokdo belongs to Japan. Only if Korea keeps sharpening its logic, which confirms its territorial right to Dokdo with a lot of evidence, Japan would finally stop this meaningless dispute. (VANK, 8 Core Facts about Dokdo, 2012) Korean title to Dokdo dates back to the 6th century. According to the records of Samguk Sagi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Korean sovereignty over the island was established with the incorporation of Usanguk -(“guk” means “state”) into the Kingdom of Silla, one of the three ancient kingdoms of Korea, in 512 A.D. Dokdo was clearly marked as belonging to Gangwon Province, one of eight provinces of the medieval Korean kingdom. It is particularly worth noting that Paldo Chongdo -(Map of Eight Provi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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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 Korea) and Gangwondo Jido -(Map of Gangwon Province), both of which mark Ullengdo and Dokdo as belonging to Korea's Gangwon Province. The first documented Japanese mention of Dokdo appeared in the mid-17th century. Onshū Shichō Gōki, the 1667 topographical survey, was edited by a local official in the Izumo region, which was then a part of the present day Shimane Prefecture. It contains the following passage: “Onshū of Japan (present-day Oki Island) lies in the middle of the northern sea… Not connected to anywhere to the north and east, Matsushima (Dokdo) is located at a distance of two days and one night. From here, located at a distance of one day is Takeshima (Ulleungdo). While no one lives on the two islands, looking at Goryeo (Korea) from this island is the same as looking at Onshū from the Izumo region. Therefore, the northern limit of Japan is this Shū (Onshū or Oki Island).” No document had been filed concerning Matsushima far back then. There was a case in which Takeshima had been leased from Joseon for settlement for some time during the Genroku era. At that time, it was still an uninhabited island, as it had been. According to the Japanese interpretation, Japan regained its ownership of Dokdo by such fault. In Article 2 of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it stated: “Japan shall renounce all right, title, and claim to Korea, including Jejudo, Geomundo, and Ullengdo” Japan asserts that Dokdo was not included in the list among the islands to be returned to Korea. Japan uses this interpretation as proof that Dokdo does not belong to Korea. Even bigger islands than Dokdo were not specifically listed in the treaty. If one follows the Japanese interpretation of the treaty, only three Korean islands would have been returned to Korea. Given the fact that there are more than 3,000 Korean islands, such an argument is invalid. (Part II: Korean Sovereignty over Dokdo - Facts and Evidence, Korea Awards, 2011) In the Cairo Declaration, it states: “Japan will be expelled from all other territories which she has taken by violence and greed.” The declaration indicates that Korea fully recovered its sovereign rights over its territories. Dokdo is no exception. Based on the Ullengo Boundary Dispute, the Daijokan stated the following, “Be assured that either Ullengdo or Dokdo has no relation to Japan.” About 7 years before, a Japanese official also filed a similar report. In the report titled Chosenkoku Kosai-Shimatsu Naitansho, he concluded that Ulleungdo and Dokdo had nothing to do with Japan. “How Takeshima (Ulleungdo) and Matsushima (Dokdo) became annexed to Joseon.” This statement shows that Japan recognized Ulleungdo and Dokdo as Korean territories. There was no disagreement over the sovereignty of these islands between Korea and Japan. Korea has long established its sovereignty to the court. Japan is constantly making claims of sovereignty over Dokdo. There is a real reason why Japan wants to take this issue to the international court. Japan is trying to make Dokdo a contested region. Dokdo will be brought into an unwanted territorial dispute. Dokdo is not a simple matter of a territorial dispute between Korea and Japan. It is instead a common issue of peace among all humanity. Japanese imperialism took the lives of many innocent people, and Japan has shown no regret for its past actions. The international community should encourage Japan to reflect on its history. Otherwise, imperialistic movements in Japan may gain momentum again. It should be ensured that imperialism will no longer be tolerated. (Facts about Dokdo, 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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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Japan claims: No evidence that Korea recognized the existence of Dokdo in the past

Ancient maps and documents prove that Dokdo has been rightfully owned by Korea in the past. It has been historically proven that Dokdo is recognized as a part of the island Ulleungdo. This is significant because during the Shilla Dynasty, the king of Shilla conquered Usan-guk in his thirteenth year of reign (www.dokdohistory.com). At that time Dokdo was referred to as Usan-guk and it is also known as Ulleungdo stating that Dokdo is Korea's land since Ulleungdo is Korea's. There are several historical documents that prove that Usando is the same as Dokdo. The documents that were issued by the Korean government were The Newly Enlarged Geographical Survey of Korea published during 1531, Reference Compilation of Materials on Korea (1770), The Book of Ten Thousand Techniques of Governance (1808), and the Revised and Enlarged Edition of the Reference Compilation of Documents on Korea (1908) (The Ten Truths). These documents clearly exemplify that Dokdo has been our land for a very long time and Japan has no right to take away the land that has belonged to Korea since the past. Not only does evidence lie in the historical documents, but there is also evidence in "The Map of the Eight Provinces of Korea." This map of Joseon clearly shows Ulleungdo and Dokdo are in the East Sea. Since these maps dated back a long time ago, the locations of the two islands are not evident, but it does show that they existed and had been mapped because they were recognized a long time ago. Not only does this map show the presence of the two islands Dokdo, also called Usando at that time, and Ulleungdo, but also maps that were published after the eighteenth century shows that Usando is east of the island, Ulleungdo. As these maps produced, the islands locations' grew more accurate. The Map of the Eight Provinces of Korea supports the fact that Usando has been recognized in the past. Also, King Figure 3 Figure 2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n.d.). Ten Sejong quoted in The Geographical Truth about Dokdo. Retrieved from http://www.nahf.or.kr/Data/board_100/dokdo_Truth/English.pdf Appendix to the Veritable Records, that Usan (that is Dokdo) and Mureung (that is, Ulleungdo) are located in the middle of the sea, due east of this country (The Ten Truths) There is also evidence found in the Takeshima Incident that explicitly demonstrates that Dokdo is an island that has rightfully belonged to Korea since the past. During the Takeshima incident, a man from Japan named Aizuya Hachiemon disobeyed the law that passage to foreign lands were controlled and forbidden without special voyage passes and traveled to Ulleungdo. In result to his defiance, Aizuya Hachiemon was executed. Japanese Takeshima lobbyists insist that â€œâ€ŚThe 1836 incident is important in the Dokdo/Takeshima debate because it shows that although travel to Takeshima (Ulleungdo) was ban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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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to Matsushima (Liancourt Rocks) was apparently not since Hachiemon traveled to Takeshima under the pretense of going to Matsushima…" From this belief, some Japanese go a step further stating “…because there was no travel ban, Matsushima (Dokdo) was thought to be part of Japan….” (Steven J. Barberhttp://www.dokdo-takeshima.com/the-takeshima-incident-of-1837.html). These claims made by Japan were proven to be false. It is evident that the Japanese involved in this Takeshima incident did regard Dokdo as an island that belonged to Joseon land. In Aizuya Hachiemon's testimony we see that there is no statement claiming that Japan considered Dokdo to be Japan's territory at all. Japan considered Dokdo as their land only because Aizuya Hachiemon disobeyed the laws and traveled there. In addition to Aizuya Hachiemon's testimony, there is a map that shows those who voyaged around Japan illegally. On this map Ulleungdo and Dokdo have been labeled as Joseon land. Ironically, Aizuya Hachiemon was the one who drew this map. He knew that these islands belonged to Korea because Japan declared that Ulleungdo and Dokdo could not be visited by the Japanese in 1695 without having a special voyage pass.

IV.

Japan claims: That the Republic of Korea is illegally occupying Dokdo

There is lots of legitimate evidence that Dokdo rightfully belongs to Korea, while there aren’t many supporting Japan’s claim. As described in the introduction above, Japan’s attempt at incorporating Dokdo in 1905 through Shimane Prefecture Public Notice No. 40 was done in the process of and as part of its occupation of Korea; it was an illegal act, infringing on Korea’s sovereignty over the island, and against international law. Dokdo is administered by the Republic of Korea, and South Koreans currently living on the island. Approximately 100,000 South Koreans visit the island annually. There are no permanent Japanese residents on Dokdo, or Takeshima as they call it, nor are there any Japanese tourists visiting Dokdo. “Dokdo” means “Rocky Island”, but “Takeshima” means “Bamboo Island.” Dokdo is a rocky island, but does not resemble a bamboo tree, or even have any bamboo trees on it. Japan has no right to call Dokdo, “Takeshima,” as the meanings of the two names are entirely different. Nevertheless, with evidence and historical facts against them, they continue to unjustifiably claim Dokdo. (Dokdo Takeshima Island Liancourt Rocks The Historical Facts of the Dokdo / Takeshima Island Dispute Between Korea and Japan. (n.d.). Dokdo Takeshima Liancourt Rocks The Facts of the Dispute RSS. Retrieved October 27, 2013, from http://www.dokdo-takeshima.com/dokdo-takeshima-related-historicaldata) During World War II, Japan took control over Korea, including Dokdo, but after the Allied Powers won World War II, Korea regained all of its land. Nearly 70 years have passed since Korea’s independence from Japan, yet they still argue that Dokdo is their land. Asahi Shimbun of Japan said, “An agreement between Japan and South Korea recognizes a wide area of the Sea of Japan as ‘provisional waters’ under joint administration, where fishermen of both countries are allowed to operate unencumbered by the dispute over sovereignty. This area does not include the 12- nautical-mile zone around the island, which South Korea claims as part of its territorial waters”. This “12-nautical-mile zone” around Dokdo is the territory that the Republic of Korea would lose, where there are many natural resources. Not only is this claimed as South Korea’s territorial waters, but they are administered to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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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den, M. (n.d.). Small Islets, Enduring Conflict: Dokdo, Korea-Japan Colonial Legacy and the United States 小さな島、長続きする葛藤−−日朝の植民地時代よりの遺物と米国 :: Japan Focus. Retrieved from http://www.japanfocus.org/-mark-selden/3520) In the late 17th century, “The Ulleungdo Boundary Dispute” book was created, recording interactions between Korea and Japan regarding Dokdo. In the year 1693, Japanese fishermen from the Tottori Domain were seen fishing near Ulleungdo, in Korean waters. They were seen by Korean fishermen, including Ahn Yong-Bok. Ahn traveled to Japan, and protested the trespassing of Japanese fishermen into Korean territory. In turn, the Japanese fishermen also reported to their government that Korean fishermen were in the area. The Japanese government requested that the Tottori Domain investigate the area, to see if it was the part of their territory. In the document below, in 1695, the “daimyo” lord of the Tottori Domain answered the Edo Shogunate of the Japanese Government: Ulleungdo and Dokdo do not belong to the Tottori Domain. Accordingly, the Japanese Government renounced permission for ships to enter the Ulleungdo and Dokdo Area.

Figure 4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n.d.). Ten Truth about Dokdo. Retrieved from http://www.nahf.or.kr/Data/board_100/dokdo_Truth/English.pdf (Ahn Yong-bok told of Dokdo, Ulleungdo. (n.d.). Ahn Yong-bok told of Dokdo, Ulleungdo. Retrieved October 27, 2013, from http://koreatimes.co.kr/www/news/issues/2013/04/139_134022.html, Facts about Dokdo. (n.d.). Friendly Korea. Retrieved October 27, 2013, from http://korea.prkorea.com/wordpress/english/2012/10/26/facts-about-dokdo/) Right after its establishment in 1948, the Republic of Korea made Dokdo’s address “1, Dodong, Nam-myeon, Ulleung-gun, North Gyeongsang Province”. The Republic of Korea made Dokdo’s occupancy clear, and no countries had a problem with that, including Japan. There are two Korean residents now living on Dokdo, Seong Do Kim, and his wife Shin Yeol Kim. There are about 37 people, with police officers and public officials guarding Dokdo. There is a lighthouse, radiation detector, and one large residential building. There are also telephone towers, for carriers such as SK Telecom, KTF, and LG Telecom. There are ferries on Ulleungdo that sail to Dokdo, carrying around 100,000 tour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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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year. The Republic of Korea has labeled Dokdo as the “Natural Monument No. 336: Dokdo Breeding Ground for Seabirds” in 1982 and as an “Environmentally Protected Area” in 1999.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n.d.). Ten Truths About Dokdo Not Known in Japan. Seoul, Korea) Many maps have been made recently in Japan, which include Dokdo as their land. This is an attempt to teach children in Japanese schools that Dokdo, or Takeshima, is owned by Japan. This is not true, as there are many maps made much earlier, in the 19th century which exclude Dokdo as Japanese territory. All Korean maps made in the past, and maps made currently include Dokdo as Korea’s land. This map (below), made by Matsuzuki Hanzo in 1881, shows no Japanese islands in the west of the Oki Islands. Many maps made before Japan’s misleading claim in 1904, such as the 1891 Map by Sagano Hikotaro, which omits both Dokdo and Ulleungdo, the 1899 Map by Nogiwa Kaoru, the 1893 Map by Izawa Komakichi, and the 1894 map by Yamamoto Homeji, which all do not have Dokdo on them. There are countless many more, but after 1904, maps have been changing little by little, with more of “Takeshima” than “Dokdo”, and more of “Sea of Japan” rather than “East Sea”.

(Dokdo Through the Ages. (n.d.). Dokdo Through the Ages. Retrieved October 27, 2013, from http://dokdo-research.com/temp17.html, Dokdo Takeshima Island Liancourt Rocks The Historical Facts of the Dokdo / Takeshima Island Dispute Between Korea and Japan. (n.d.). Dokdo Takeshima Liancourt Rocks The Facts of the Dispute Japanese Ancient Maps Excluded Dokdo Takeshima Part I Comments. Retrieved October 27, 2013, from http://www.dokdo-takeshima.com/japanese-historicalmaps-excluded-dokdo-i.html) Dokdo has been a topic of controversy for centuries between Korea and Japan. Both sides have evidence, historical maps and documents to support their claims, but the legitimacy of their assertions are entirely different. There are Korean and Japanese documents and maps that both show how Dokdo is not Japanese territory, but Korean territory. Even though Japan is telling the world that Dokdo is theirs, and is trying to get the name “Takeshima” printed on maps to represent Dokdo, the historical and current reality is against them. Japan’s take on Dokdo became different as soon as they realized the economic and political advantages they could gain if they acquired the island. But before that, Japan left Dokdo alone, and recognized it as Korean terri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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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Japan proposed to the Republic of Korea to refer this dispute over Dokdo to the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the Republic of Korea rejects doing so

Japanese government declares that it is right to refer this dispute over Dokdo to the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CJ”). The republic of Korea, however, does not agree on doing so. Although the Japanese government proclaims that the Dokdo conflict should be submitted as a case to the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the South Korean government denies their suggestion because it is an obvious fact that Dokdo is an integral part of Korean territory through history and geography. Going to the court over a territorial dispute isn’t as easy as going to the court with any individual case. Territorial dispute is very sensitive both politically and emotionally to the county. It is notoriously difficult to resolve peacefully or enduringly. The result of settlement on border issues is unpredictable, and political leaders often are very unwilling to accept the risks of losing territory. The outcomes of ICJ can develop the conflict into serious conditions such as a war. Therefore, peaceful agreement among the countries directly involved is preferred to being dependent on the ICJ’s meaningless resolution. In a case of territorial dispute, both countries should agree to going to ICJ. As mentioned before, however, resolving territorial dispute peacefully is highly uncommon; it could lead up to another dispute and Dokdo is not exceptional. UN Security Council will intervene in the dispute in that case, and political solution is to be proposed regardless of the involved parties as shown in the next process in graphic. ICJ may make a legal decision based on Figure 5 Japan Submits political recommendations of the Takeshima/Dokdo Dispute to UN Security Council. Japan’s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Japan Probe. Retrieved from political force may also influence http://www.japanprobe.com/2012/08/17/j on this matter as they aim to be a apan-submits-takeshimadokdo-disputepermanent member of the UN to-international-court-of-justice/ Security Council. While Dokdo is in effective control of South Korea, it is not a sensible way to let ICJ make a legal decision which is not completely free from politics. Territorial disputes involving Japan are not only with Dokdo, but also with Diaoyu and Kurile Island. The disputes are linked to Japan’s 20th-century military expansion across Asia, which ended in World War II, and persist until today. While Japan submits Dokdo dispute to ICJ, Japan’s senior Foreign Ministry official indicated there is no need to refer a territorial dispute between Japan and China to the ICJ with the reason that Japan owns the Senkaku (Diaoyu) Islands in the East China Sea. Japan’s different attitude toward their territorial disputes tells how important effective control is on the ma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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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6 Territorial Disputes Involving Japan (2012) New York Times. Retrieved from http://www.nytimes.com/interactive/2012/09/20/world/asia/Territorial-Disputes-InvolvingJapan.html?ref=territorialdisputes&_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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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CONCLUSION

Japan claims Japan has long recognized the existence of Dokdo, but their recognition starts after the WWII. Japan claims there is no evidence that Korea recognized the existence of Dokdo in the past, but there are many historical documents of both Korea and Japan described as Dokdo belonged to Korea. Japan claims that Korea is illegally occupying Dokdo, but Dokdo rightfully belongs to Korea as it has always been. Japan’s attempt at incorporating Dokdo in 1905 through Shimane Prefecture Public Notice No. 40 was rather illegal and void under international law. Japan claims that Korea rejects against to Japan’s proposal to refer this dispute to ICJ, but it is not a matter for any judgment by third party. It is a matter of national sovereignty. Japan even has different attitude over three similar territorial disputes involving Japan. In order to continue to defend Korea’s sovereignty over Dokdo, Korea needs to reinforce effective control over Dokdo Island by improving on tourism business. Historical truth based-documents proving that Japan’s claim is a false statement are to be researched and developed to advertise internationally. Such documents written in Korean should be translated to English. Korean American youths should certainly be aware of the historical fact and be involved in programs such as class activities, forums, and debates over the international matters; so that they can generate more interest on truth over Dokdo. Spreading the truth all over the world peacefully by doing as shown above is one of the task Korean American youths should be responsible for. When this territory dispute is settled based on this kind of effort, it will positively influence on other international disputes. The claims of Japan proved as false. There are multifarious documents of historical facts that prove that Dokdo is territory of Korea. Throughout this essay we have expanded upon some of the truths and misconceptions about Dokdo that have not been cleared up with Japan. Many people may wonder what the big deal is about the island Dokdo, but that may be because they are not exposed to the relationship between Japan and Korea. Koreans must speak up in order to prosper and overcome those that try to take away Dokdo which rightfully belongs to Korea. As the future generations of Korea, what actions can Korean people make to help end this territorial dispute among Korea and Japan? Making a difference in the world and trying to come together to end this dispute peacefully is not easy; however, it is not impossible. We must continue to fight and prove to Japan that Dokdo has been and will always be our land. By dragging the matter and dispersing the true facts about Dokdo, we can convince other nations and other Koreans that Dokdo is ours. We must continue to fight this battle and not let Japan take away what belonged to Korea first no matter how hard it might be. Since our ancestors have completed this task, we can continue forward and do the same. Dokdo belongs to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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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Barber, Steven J. (2013) The Japanese 1870 Secret Report on Joseon (Korea). Retrieved from http://www.dokdo-takeshima.com/the-takeshima-incident-of-1837.html Barber, Steven J. http://www.dokdo-takeshima.com/gallery Barber, Steven J. http://www.dokdo-takeshima.com/the-takeshima-incident-of-1837.html Dokdo Takeshima Island Liancourt Rocks The Historical Facts of the Dokdo / Takeshima Island Dispute Between Korea and Japan. (n.d.). Dokdo Takeshima Liancourt Rocks The Facts of the Dispute Japanese Ancient Maps Excluded Dokdo Takeshima Part I Comments. Retrieved October 27, 2013, from http://www.dokdo-takeshima.com/japanese-historical-maps-excluded-dokdo-i.html Dokdo Through the Ages. (n.d.). Dokdo Through the Ages. Retrieved from http://dokdoresearch.com/temp17.html Facts about Dokdo, 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 2012 Japan Probe (2012) Japan Submits Takeshima/Dokdo Dispute to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Retrieved from http://www.japanprobe.com/2012/08/17/japan-submits-takeshimadokdo-dispute-tointernational-court-of-justice/ Korea Tourism Organization (2008) Dokdo Islet & Ulleungdo Island. Retrieved from http://english.visitkorea.or.kr/enu/SI/SI_EN_3_6.jsp?cid=623881 Ministry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2012). Dokdo, Korea’s Beautiful Island. Ministry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Retrieved from http://dokdo.mofa.go.kr/upload/eng1.pdf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2008). Ten Truths About Dokdo Not Known in Japan.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Part II: Korean Sovereignty over Dokdo - Facts and Evidence, Korea Awards, 2011 The New York Times (2012) Territorial Disputes Involving Japan. Retrieved from http://www.nytimes.com/interactive/2012/09/20/world/asia/Territorial-Disputes-InvolvingJapan.html?ref=territorialdisputes&_r=0 The Ten Truths About Dokdo. Seodaemun-gu, Seoul: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VANK (2012) 8 Core Facts about Dokdo. Retrieved from http://www.youtube.com/watch?v=54bZHHnUd8 Www.dokdohistory.com Seodaemun-gu, Seoul:Dokdo Research Institute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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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7, 2013

JOURNAL TRUTHS AND MISCONCEPTIONS ABOUT THE TERRITORIAL RIGHTS OVER DOKDO

KISEOK YOON LYDIA CHO, JULIE CHUN, EUGENE KIM, DOYLE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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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 Schedule 일자

내용

관계자/상세 내역

09/28

독도강연

동북아역사재단, 본교 학생들 및 교직원

09/30

포럼 신청서 제출

역사교사

10/05

논문 팀 확정

윤기석 교사, 조유리, 전해림, 김유진, 윤도일

10/19

1 차 회의

독도 수업, 주제확정, 부문별 논문 담당자 확정, 과제 배부

10/26

2 차 회의

초안 검토, 2 차 과제 배부

10/27

파트별 최종본

각자의 최종본 담당교사에게 제출

10/28

통합본 초안

통합본 초안 완성

10/29

논문 교정

파트별 흐름이 자연스럽게 필요한 경우 문단 재구성

10/30

논문 교정

오탈자 수정

10/31

논문제출

NAKS 에 논문 최종본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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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 Team Members

이름 윤기석

Name

학년

소개 및 논문집필 과정에서의 역할 지도교사, 본교 역사 교사, 역사교육위원회

Kiseok Yoon

2011 년 낙스 교사대상 역사문화퀴즈대회에서 은상 수상 2013 년 동중부 동북부 역사문화체험학교 운영위원회 실무진 전해림

Julie Chun

10

2012 년 동중부지역협의회 나의꿈 말하기 대회 대상 수상 도입, 결말, 독도가 한국의 땅이라는 근거자료가 없다는 일본의 주장에 반박

윤도일

Doyle Yoon

9

2012 년 전국 백범일지독서감상문쓰기대회 최우수상 수상 독도이슈를 ICJ 에 가져가자고 하는 일본의 제안을 거절하고 있다는 일본의 주장에 반박

조유리

Lydia Cho

8

2013 년 동중부지역협의회 백일장 대회 대상 수상 일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독도를 그들의 땅으로 인지하고 있었다는 일본의 주장에 반박

김유진

Eugene Kim

8

본교 역사교육 우수학생 한국이 독도를 불법적으로 점유하고 있다는 일본의 주장에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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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EOK YOON 우리학교의 독도포럼은 9 월 28 일 동북아재단 곽진오박사님의 강연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낙스에서 청소년 포럼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신청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중 독도 강연을 학생들과 함께 듣고 참가를 결정했다. 9 월 30 일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역사 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참여도, 평소 수업 발표 태도, 성적 등을 고려하여 네 명을 선정해서 팀을구성했다. 논문을 잘 써야 할 뿐 아니라, 수상할 경우 논문을 발표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를 표현하는 능력도 중요요소로 작용했다. 중간에 학생들의 일정 등을 고려하여 조금 조정이 있긴 했으나, 차후 네 명의 최종 팀일 결정되었다. 유진이는 수업시간에 자기의 생각을 분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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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하고 숙제 또한 성실하게 잘 하는 학생이다. 유리는 올 해 동중부 협의회 주최 백일장 대회에서 대상을, 해림이는 작년 말하기 대회에서 대상을, 도일이는 백범일지 전국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경력들이 있기에 이번 독도 논문 팀이 남부뉴저지 독도 드림팀이 되어주리라 기대가 된다.

독도 드림팀이 모두 모였다.

10 월 들어서면서

동중부 협의회 백일장과 그림이야기 대회 등이 겹쳐 본격적인 논문 준비 시작이 늦어져 마음이 급하다. 그래도 충분한 토론을 거쳐 우리가 써야 할 주제를 잡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역사시간에 들어오는 중등부 학생들과 함께 작년에 배웠던 독도에 대해 다시 한번 복습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우리가 시작하는 프로젝트를 공유했고, 이번 독도포럼 참가자들을 급우들에게 소개하여 본 프로젝트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도를 끌어올렸다. 이날 복습한 독도에 대한 학습자료는 본지 부록에서 다시 볼 수 있다. 복습 시간을 통해 충분하게 독도에 대해 이해를 했고, 지난 9 월 28 일에 곽진오 박사님의 강연도 들은 바 있으므로, 이날 모인 네 명은 논문의 주제를 선정하기 위해 각자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주제들에 대해 브레인스토밍 세션을 별도로 가졌다. 이 날의 회의에는 역사교사인 나를 포함한 본교 역사교육연구위원회 네 명이 교사팀으로, 논문 집필을 위한 학생 네 명이 학생 팀으로 모두 여덟 명이 참석했다. 아무도 내놓은 주제 후보들에 대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말한 주제들을 모두 기록했더니 14 개가 도출되었다. 우리는 다시 하나 하나씩 리뷰하며 어떤 것이 우리 논문의 주제로 적합한지 객관적 시각으로 세 개 정도를 다시 골라냈고, 최종 세 개의 주제들을 취합하여 “Truths and Misconceptions about the Territorial Rights over Dokdo”로 최종 의사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일본의 열 가지 주장 중 각자가 흥미 있고 관심 있다고 판단되는 주장을 하나씩 선택하여 연구하기로 했다. 10 월 25 일 자정까지 초안을 작성해서 이메일로 교사진에게 보내야 한다는 과제를 독도 드림팀에게 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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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진과 학생진 여덟 명은 이날 2 차 회의를 했다.

전날까지 보내준 학생들의 초안을

검토하면서 2 차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도출해 냈다. 먼저, (1) 주최측에서 원하는 APA 또는 MLA 스타일로 변환하는 것이다. 지난 주에는 MLA 로 하기로 했으나, 참고자료 등을 기술하기에 학생들에게 좀 더 용이한 스타일은 MLA 보다는 APA 라고 판단이 되어 네 명 모두 APA 스타일로 변환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2) 참고자료 기재가 미흡한 부분들을 찾아서 보완할 것을 요청했다. 마지막으로 (3) 조사연구 자료를 근거로 한 자신의 주장을 좀 더 자신의 말로 표현해 줄 것을 요구했다. 마감 일시는 바로 다음 날인 10 월 27 일 일요일 자정이었다.

자정까지는 아니더라도 학생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 모두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잘 해 주었다. 이제 이 좋은 글들을 어떻게 잘 흘러가게 하고 전체적 조율을 잘 해야 하는가가 남아있다.

우선 APA 스타일에 맞도록 전체를 보았다.

참고자료가 명확하지 않은

것들은 수정했다. 글 전개에 있어 상세한 정도의 차이가 나는 부분들을 조금씩 조율했다. 학생의 글에서 이해가 가지 않은 부분들은 이메일로 계속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이해하고 수정이 필요하면 학생과 합의하여 수정했다.

마감일이다. 공지사항을 모두 확인했고, 마감일이 연장된 저널만을 남긴 채 완성된 논문을 낙스 측에 송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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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DIA CHO October 19, 2013 This was the day where I was replacing my friend. She wasn't old enough for the supposed Dokdo presentation so I had to fill in for her. I was in a classroom with three other students and a few teachers. I had no idea what was going on. All I knew was that it was about Dokdo, and I would be doing an essay on it. I sat there for three hours not knowing what was going on. The teachers were going over topics. Everybody chose their own and we were told to write a draft about that topic and send it to the teachers by October 25th. I started to understand more about what was going on. The teachers were going to read our drafts and discuss them next time we all met, which is October 26th. October 24, 2013 I started to plan my essay this day. I read over the book the teachers provided for us which was Ten Truths about Dokdo. There was a good amount of information to write about one page, but I needed three. Therefore, internet was the answer. I searched up some websites and videos to learn more about Dokdo. There was also this one page in which it had all the information about my topic question. It was like a miracle from heaven. The website was created by an organization in Korea trying to stop Japanese from taking away Dokdo. The information there was simple but professional. I read through the whole website, took some notes, and I was ready to write. October 25, 2013 I started to write my essay this day. The reason being, I'm a huge procrastinator. I fell asleep after gathering information. I had all the information; I just had to type it. When I was finished, I sent the file to the teachers instantly. Then, I noticed my spell check wasn't on and I had a lot of grammar mistakes. I didn't even get the format right. Thus again, I sent it to the teachers 2 more times and I finally relaxed. October 26, 2013 I received about five emails telling me to alter my essay. I forgot to do the APA format. I didn't know what APA format was so I waited until the next meeting to discuss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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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6, 2013 At Korean school, I received a whole lecture about APA format. I was probably the only person who didn't know what it was. After the lecture, we discussed our topic question. We had a whole list on it. We erased the ones we didn't like, altered the ones were okay, and kept the ones that we did like. Everyone agreed on a topic question. Then, we went over how we needed to revise our essays again. The next due date for our essay was October 27th by midnight. October 27, 2013 I revised my essay, added citations, and sent it to the teachers again. Thankfully, I finished. November 2, 2013 The essay was completely finished. We all met up again and we were told that we had to write a journal. We received the requirements and the due date which was November 5th by midnight. November 5, 2013 Here I am, finishing my journal, procrastinating again. I worked on this for about 30 minutes. This was a lot easier than the essay, I can tell you that. But, before I finish, I would like to say, why we were told so late about this? We only had about 2 weeks to finish this. I was also the last person to be told about this so I had a little bit more pressure. Although we all had to rush, I'm glad all four of us were able to finish this. And I'm also thanking the teachers about telling me what was wrong so I can fix it to make it even better. This was an amazing experience to go through since I usually don't participate in these kinds of events. It taught me a lot about Dokdo and I was able to make more friends in Korean school. Even though everything was stressed and rushed, I'm glad that everyone was able to finish. National Association of Korean School, thank you for making this ev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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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E CHUN October 19, 2013 On October 19, three of my classmates and I were first introduced to the Dokdo essay held by the National Association of Korean School. At Korean school, we spent three hours talking about the topic. We came up with a list of question topics and assigned everyone in the group a topic to focus on. After reviewing the question and topics we had to write about, we set a date for the draft to be written by to pace ourselves and get the research paper done by the due date. We were to finish our draft by October 25 and to send it to our teachers so they could read it over and gather thoughts to discuss it the next time we would be meeting for Korean school which is October 26. October 24, 2013 This was the day I started planning my research essay. I read over the question that was supposed to be answers before I started so I could stay on topic. To begin my research essay, I had to start my research. I read the book, The Ten Truths about Dokdo, first. There was a lot of good information in the book; however, there wasn’t a sufficient amount of details so I decided to do more research online. I researched questions I had to be able to write more in my essay. After changing the topic I found a lot of great websites that had a lot of information the writer got from reliable sources. I noticed that one of the websites was published by the same publisher as the book I read earlier. I wrote down all the research information I needed to start my essay. October 25, 2013 I started writing my essay on October 25 because I didn’t have a lot of free time during the weekday due to a lot of school work. I had the basis for my essay. I just needed to add my opinion and transitions to finish it. After I finished drafting, I read it over to check for grammar and consistency and checked to make sure I cited sources correctly. Once that was completed, I sent it to my teachers. It was a lot of work, but I was glad that I was able to finish my draft on time. October 28, 2013 At Korean school we discussed the topic question again. From the list of questions and topics, we modified and then chose one topic question that we liked the best. After everyone agreed upon the topic question, we went over what needed to be added to meet the requirements for the essay. We each revised our essays and checked for the correct citation. The due date we set for this to be done is on October 27 by midnight. October 29, 2013 After communicating with the teachers via email and at Korean school, we completed our essay. It had been put together, revised, and then approved by all of us. Everyone worked diligently to get the essay done. Everything had been revised and edited and we were able to finish everything by having due dates set for oursel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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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 2013 Today all we have left to meet the requirements for the essay is the journal. At Korean school we started writing and some were able to finish writing the journal. We worked on this for about an hour. After evaluating the process we had done to complete the essay I thought two things. First, I wish that our Korean school had an earlier notice about this Dokdo essay. We found out about the competition on October 29 and we only had two weeks to complete it. We were all pushed for time; however, we were able to finish the essay and didn’t give up. I think that the content of our essay would have been better if we had more time to research. Secondly, I am glad that I was able to be apart of the essay and experience this even though we were pushed for time. It taught me a lot about Dokdo and that we were capable of doing anything we set our minds to. I am thankful for my teachers who helped revise and edit our essay and for my classmates who also worked hard to get their part done. Even though we started off a little late, we were able to complete and submit an essay for the Dokdo essay competition as students of our Korean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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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GENE KIM I contributed to the paper by researching and writing a section of the main body, "IV. Japan claims: That the Republic of Korea is illegally occupying Dokdo", and made some revisions to the paper. Before doing this project, I had heard some pieces and opinions of what was happening about Dokdo, but wasn't completely sure on the thorough details, and who is right. While doing this project, I learned many new things about one of our country's issues. I learned what is really happening between Korea and Japan, and why it is happening. I learned that Japan is illegally trying to occupy Dokdo, while Korea has a long history of having territorial rights over Dokdo. I think our team did great on putting everyone's sections together, and writing the Abstract, Introduction, and the Conclusion. The whole process was an amazing opportunity to learn more about Korea's history and present situation, and to gain thorough knowledge about Dokdo, an important issue in Korea. I'm very glad I chose to work on this project, because now I know all about Dokdo. I will retain the information I learned and use it in the future if there are every any issues around me on Dok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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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YLE YOON September 28, 2013 This day was when we had our Dokdo first seminar called ten truths about Dokdo not known in Japan. The speaker, Dr. Kwak from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came to our Korean school to speak about Japan’s false claims on Dokdo. October 19, 2013 On October 19th my classmates and I got together to start discussing about how we were going to write the essay for National Association of Korean School (NAKS). We spent two to three hours asking each other questions and coming up with our topic sentence for our essays. Then we were each assigned a topic to focus on. I chose the topic to write about why Korea had the right not to refer this dispute over Dokdo to the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The deadline for the rough draft was the 26th October 25, 2013 I started brain storming on how I was going to pull a three paged essay based on this little information that I had in the book. Then I realized I had chosen the hardest topic out of all ten of them. I knew the reason why Korean government refuses to take the case to the I.C.J. was because it was our land and we had the control over it. However, knowing that claiming Dokdo as our land without any evidence to support my thesis wasn’t going to prove anything, I started researching the laws of the I.C.J. October 26, 2013 In Korean school, we discussed about our topic questions, getting rid of the ones that we didn’t need. I was very frustrated because I didn’t even have my rough draft finished. My topic just got even more confusing for me as I got into the details. Everyone else had their paper to revise, making them fit to the requirement for the essay. Thankfully I was told I had to get it turned in on the 27th . This gave me an extra day to get my work 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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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7, 2013 I started writing at about 9:30 pm. It wasn’t fun writing a research paper by myself while both of my brothers was downstairs playing games and enjoying their so called “Work Free Sunday Night.” I remember I had to scream at them at least five times because they were both screaming as if it was their first time on a rollercoaster. The time when I finally got to focus on my essay was when they both fell asleep. It was about 10:45 pm and I was so mad that I still had two more pages to write about. Thanks to my parents I got helped tremendously and was able to finish by 2 in the morning. My parents still told me I had to go to school that day which was a little aggravating but I was glad that I finally got it over with. November 6, 2013 Now I am writing my journal. This was so much easier than the essay and was less time consuming since it is all based off of my experience. I actually had more fun writing the journal than the essay itself. Yet I am glad that I got to learn not only about Dokdo but the basic history behind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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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학습 교육안 공모전 출품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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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먹거리 1. 단원 제목: 먹고 배우고 2. 대상: 6 학년 초급 이유정  6 반 3. 단원 목표: ①. 먹는 것을 표현하는 여러 종류를 배운다 ②. 먹는 것과 관계된 어휘와 먹는 것 을 넣을 넣어서 간단한 문법표현을 익힌다 ③. 유명한 먹자 골목을 찾아가기 위해 지하철을 보며 익히는 것(2 차시부터) 과 음식이 연결되어 있는 속담을 배운다. 속담을 통해 먹거리의 역사와 먹거리를 통한 한국 문화를 습득한다. 4. 단원설정이유: 먹거리는 아이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이다. 학년이 높으나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딱딱한 문법이나 관계식을 배우면 자칫 지루하기 쉽다. 스터디 코리안에 먹는 것에 대한 유익한 학습안이 있어서 그것을 이용하여 음식과 문화를 동시에 배우며 시각적인 효과와 흥미를 동시에 유발시킬 수 있기에, 단원의 주제를 설정하였다. 이 단원의 주제를 통해 먹거리를 이용한 한국과 미국문화의 다른 점과 같은 점, 이민사회에서 인기 있는 먹거리와 한국 내에서 인기 있는 먹거리로 통해서 한국과 미국의 유대관계까지도 끌어 올릴 수 있다. 지하철문화가 또한 발달 되어 있는 한국의 대중교통문화를 먹거리 거리나 음식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지하철이나 버스 노선도를 이해하는 기회를 갖게 한다. 시각적인 효과를 위해 파워포인트를 이용해서 단원을 전개한다. 5. 차시: 3 차시 6. 스터디 코리언 : 교사 자료실 > e-교육자료 다운로드 > 청소년 초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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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청소년 초급/학습교안 (권쌤) 1. 손을 씻고 간식을 먹어. http://study.korean.net/servlet/action.pds.ProgAction (ch_youth_elementary_01.zip 다운받음)  (중)청소년 초급/학습교안 (권쌤) 2. 피자 먹고 싶어요. http://study.korean.net/servlet/action.pds.ProgAction (ch_youth_elementary_02.zip 다운 받음)  (중)청소년 초급/학습교안 (권쌤) 26. 팥빙수 먹으러 가기로 했어. http://study.korean.net/servlet/action.pds.ProgAction (ch_youth_elementary_26.zip 다운 받음) 교사 자료실-수업자료-수업에 날개 달기-음식맛 말하기 http://study.korean.net/servlet/action.pds.ClsWingAction 교사 자료실-수업자료-수업에 날개 달기-길 찾기 - 지도를 완성하면 만세를 외쳐요! http://study.korean.net/servlet/action.pds.ClsWingAction =>길 찾는 표현을 이용하여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간다. 교사 자료실-수업자료-수업의 달인 http://study.korean.net/servlet/action.pds.ClsWingAction 각종 파워포인트에 들어갈 그림자료와 속담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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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수업자료. 파워포인트 자료: 전체적으로 보기 편하게 각 단원의 수업자료 파워포인트를 동영상으로 만듦. 동영상 순서대로 수업을 진행하며, 다른 자료 동영상 같이 첨부되어 있음. (각각 60 분 분량의 수업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임) 학습안 1 차용 파워포인트 +동영상 https://drive.google.com/file/d/0ByDOc8_wXgzkREJFRlR2NGdEV2s/edit?usp=sharing 학습안 2 차용 파워포인트+동영상 https://drive.google.com/file/d/0ByDOc8_wXgzkT2gwbDZrbnZTNDg/edit?usp=sharing 학습안 3 차용 파워포인트+동영상 https://drive.google.com/file/d/0ByDOc8_wXgzkV3RKMWZnRGVvNk0/edit?usp=sh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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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학습지도안 1 차시 – 손을 씻고 간식을 먹어요 93 학습자료 1 – 연습문제 .......................................................................................................................... 97 학습자료 2 – 과제 .................................................................................................................................. 98

학습지도안 2 차시 – 피자 먹고 싶어요 99 학습자료 3 – 연습문제 I ...................................................................................................................... 103 학습자료 4 – 연습문제 II ..................................................................................................................... 104 학습자료 5 – 과제 ................................................................................................................................ 105

학습지도안 3 차시 – 팥빙수 먹으러 가기로 했어요

106

학습자료 5 – 연습문제 ........................................................................................................................ 108 학습자료 6 – 과제 ................................................................................................................................ 110

단원 종합평가 112 정답 ...................................................................................................................................................... 115 평가방법. .............................................................................................................................................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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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지도안 1 차시 – 손을 씻고 간식을 먹어요 교과 한국어

차시

단원 명 먹거리-1. 손을 씻고 간식을 먹어요

1 /3

소요시간 60 분

학습 주제 ~하고 (그리고)를 통한 시간, 동작, 상태를 표현하는 여러 가지 문법표현과 간식을 통한 생활대화 익히기.

학습목표

1. 시간이나 동작, 상태를 이어주는 표현인 ~그리고를 동사와 동사로 연결하여 표현하기. 2. 간식의 종류로 한국의 전통 간식 떡을 배운다. 3. 간식을 통한 속담 익히기

학습재료/ 1)인터넷 가능 컴퓨터, 대형 스크린, 스피커. 준비물 2)단원을 가르치기 위한 파워포인트 쇼. (첨부 자료: 파워포인트 동영상)  https://drive.google.com/file/d/0ByDOc8_wXgzkREJFRlR2NGdEV2s/e dit?usp=sharing  http://issuu.com/kssnj/docs/01chapter_pp - 단원전체를 순서에 맞게 한 페이지씩 파워포인트를 만들어서 보기 좋게 진열하고 읽고 따라하기 쉽게 만듦. - 단원에 들어가 있는 단어를 보여주는 낱말을 보여주는 파워포인트. - 먹는 것과 관계 있는 속담 하나: 속담의 어원과 문화적/역사적 뒷 배경을 설명한 파워포인트 - 먹거리 동영상: 재미있는 한국 버라이어티 쇼에 들어있는 간식 표현 3)만든 파워포인트를 노트가 들어있는 제출용 pdf 파일로 만들어 복사후 아이들이 교재로 씀. http://issuu.com/kssnj/docs/01chapter 4)1 과에 들어있는 연습문제 복사물 (학습자료 1) 5)1 과에 들어있는 과제물 복사물 (학습자료 2) 6) 막대사탕 – 대답을 잘 하는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한 작은 선물 교수학습 활동 도입

파워 포인트가 들어 있는 내용을 노트 란이 있는 슬라이드가 한 페이지로 된 파워포인트를 학습 교재로 만든 것을 주고 파워포인트 시작과 함께 같이 펴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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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 1) 단원에 있는 대화 내용을 아이들에게 대화 하도록 한다

2) 내용 이해 질문을 통해 대화 내용을 이해하는지 알아본다

3) 단어 하나 하나를 보여주면서 읽고 그 다음 단어가 무엇일지 추측하게 한다.

약 15 분 소요. 4) 배운 단어들을 빈 종이에 생각나는 대로 써보게 한다. 약 5 분 5) ~하고 ~한다 내용을 가지고 문법을 공부한다.

6) 예문으로 나온 문장에 알맞은 동사를 말하게 한다.

7) 시간이나 동작 상태를 서술하게 위한 ~하고 ~한다 내용으로 대답할 수 있게 질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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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 분 8) 대화를 해봄으로써 문법을 복습한다. 9) 중간 점검으로 나눠준 연습 문제를 5 분안에 풀어본다. (학습자료 1) 약 10 분 10) 6 개의 문장을 다 같이 읽어본다

11) 읽은 6 개의 문장을 기억하여 그림을 보면서 말을 해보게 한다. 12) 한국의 전통 간식인 “떡” 에 관한 유래와 속담을 설명하고 집에서 떡을 먹을 때의 느낌과 맛을 서로 얘기해본다.

약 10 분 13) 한국의 “호떡”과 서양음식 “빵”을 조합한 간식에 관한 동영상을 보며 웃는 시간을 가져본다. 집에서도 만들어 보는 것을 권장한다.(10 분)

http://www.youtube.com/watch?v=aGp7RRf9S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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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및 평가 1) 단원 중간에 연습문제를 약 5 분의 시간을 주고 풀어보게 하다. (학습자료 1) 2) 한 명씩 돌아가면서 문제를 읽고 답을 말해본다. 틀린 답이 생기면 다른 아이에게 맞춰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3) 과제물에 대한 내용을 설명해주고 숙제로 해올 수 있게 한다. (학습자료 2) 4) 새로 나온 단어들을 다시 한 번 물어봄으로써 그날 배운 단어를 정리하게 한다. 5) 오늘 배운 내용을 가지고 ~하고 ~하다라는 서술식 문장을 세 개 이상 만들어서 선생님에게 이메일을 하거나 종이에 써서 제출하게 한다. 6) 마지막에 보여준 동영상 (출처 : 해피 투게도 야간매점 “홍석천의 홍떡”)을 보고 한국음식과 서양음식의 조합을 집에서도 해보길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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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자료 1 – 연습문제

1.

1. 보고 2. 하고 3. 먹고

2.

1. 3)

2. 2)

3.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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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자료 2 –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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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지도안 2 차시 – 피자 먹고 싶어요 교과

한국어

차시

2 /3

단원 명

먹거리-2. 피자 먹고 싶어요.

소요시간

60 분

학습 주제

먹고 싶은 소원이나 희망을 ~고 싶다라는 문법을 배우면서 표현한다.

학습목표

1. 소원이나 희망을 표현하는 문형” ~고 싶다”를 배운다. 2. 대화를 통해서 “~하고 싶다”를 완벽하게 표현하게 한다. 3. 길을 안내하는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

학습재료/

1)인터넷 가능 컴퓨터, 대형 스크린, 스피커. 지하철 안내도

준비물

2)단원을 가르치기 위한 파워포인트 쇼. (파워포인트 동영상)  https://drive.google.com/file/d/0ByDOc8_wXgzkT2gwbDZrbnZTNDg/e dit?usp=sharing  http://issuu.com/kssnj/docs/02chapter_pp - 단원 전체를 순서에 맞게 한 페이지씩 파워포인트를 만들어서 보기 좋게 진열하고 읽고 따라 하기 쉽게 만듦. - 단원에 들어가 있는 단어를 보여주는 낱말을 보여주는 파워포인트. - 먹는 것과 관계 있는 속담 하나: 금강산도 식후경(비슷한 영어속담 준비) - 먹거리 동영상: 떡볶이 만들기와 한류에 영향을 받아 떡볶이도 같이 유명해지는 것을 이해해 본다. 3)만든 파워포인트를 노트가 들어있는 제출용 pdf 파일로 만들어 복사 후 아이들이 교재로 씀. http://issuu.com/kssnj/docs/02chapter 4)2 과에 들어있는 연습문제 복사물(학습자료 3, 4) 5)2 과에 들어있는 과제물 복사물 (학습자료 5) 6)지하철 노선도 교수학습 활동 도입

어제 저녁으로 무슨 식사를 했는지 자유스럽게 얘기해 보면서 시작한다. 파워 포인트가 들어 있는 내용을 노트 란이 있는 슬라이드가 한 페이지로 된 파워포인트를 학습 교재로 만든 것을 주고 파워포인트 시작하여 자연스럽게 저녁식사로 무엇을 먹을 것인지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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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 1) 단원에 있는 대화 내용을 아이들에게 대화 하도록 한다

2) 내용 이해 질문을 통해 대화 내용을 이해하는지 알아본다

3) 단어 하나 하나를 보여주면서 읽고 그 다음 단어가 무엇일지 추측하게 한다. 약 15 분 소요.

4) 메뉴, 차림표, 피자, 불고기, 비빔밥 등 메뉴에 관한 단어들을 보고 익힌다. 약 5 분 5) “~하고 싶다”라는 내용을 가지고 문법을 공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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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시제는 동사가 아니라 “싶다”에 붙여 사용하는 것을 강조한다. 7) 원하는 것을 하고 싶은 동사와 형용사에 붙을 때 어떻게 변화하는지 설명한다.약 10 분 8) 대화를 해봄으로써 문법을 복습한다.

9) 중간 점검으로 나눠준 연습 문제를 5 분안에 풀어본다. (학습자료 3) 약 10 분 10) 신당동 떡볶이 집을 찾아가는 방법을 주고 이것을 길을 물어보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설명 해야 할 지 순서를 정해 연습한다.

11) 주어진 5 개의 문장을 기억하여 그림을 보면서 말을 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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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한국의 전통 간식인 “떡” 에 관한 유래와 속담을 설명하고 집에서 떡을 먹을 때의 느낌과 맛을 서로 얘기해본다. 약 10 분 13) 한류의 영항으로 인해 K-pop 이나 드라마가 유명해지는 것처럼 한국의 음식도 한류를 타고 유명해지는 동영상을 본다. 집에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떡볶이 요리를 본다.(10 분) https://www.youtube.com/watch?v=bdJQ6Ewic_M

정리 및 평가 1)단원 중간에 연습문제를 약 5 분의 시간을 주고 풀어보게 하다. (학습자료 3, 4) 2)한명씩 돌아가면서 문제를 읽고 답을 말해본다. 틀린 답이 생기면 다른 아이에게 맞춰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3)과제물에 대한 내용을 설명해주고 숙제로 해올 수 있게 한다. (학습자료 5) 4)새로나온 단어들을 다시 한 번 물어봄으로써 그날 배운 단어를 정리하게 한다. 5)오늘 배운 내용을 가지고 ~하고 ~하다라는 서술식 문장을 세 개 이상 만들어서 선생님에게 이메일을 하거나 종이에 써서 제출하게 한다. 6)마지막에 보여준 동영상을 보면서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한국의 떡볶이를 설명해보도록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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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자료 3 – 연습문제 I

1. 1.

가고

2.

앉고

3.

먹고 / 안 먹고

2.

2. 1. 3)

2. 2)

3. 1)

3. 1. 2. 3.

오늘 저녁 메뉴는 뭐에요? 피자 먹고 싶어요. 오늘은 김치찌개 먹고, 피자는 내일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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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자료 4 – 연습문제 II


105

학습자료 5 –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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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지도안 3 차시 – 팥빙수 먹으러 가기로 했어요 교과

한국어

차시

3 /3

단원 명

먹거리-3.팥빙수 먹으러 가기로 했어요.

소요시간

90 분(평가포함)

학습 주제

“~기로 하다”를 사용하여 약속이나 결정, 의지를 표현하며, 과거에 했었으면 했으나 현재 이루지 못한 표현까지 배운다.

학습목표

1.약속이나, 결정, 결심 등을 나타낼 때 “~기로 하다”를 통해 마음을 표현하는것과 문법을 같이 배운다. 2.대화를 통해서 “~하기로 했다”를 완벽하게 표현하게 한다. 3.팥빙수에 관한 기원과 노래 배우기.

학습재료/

1)인터넷 가능 컴퓨터, 대형 스크린, 스피커. 팥빙수.

준비물

2)단원을 가르치기 위한 파워포인트 쇼.(파워포인트 동영상)  https://drive.google.com/file/d/0ByDOc8_wXgzkV3RKMWZnRGVvNk0/ edit?usp=sharing  http://issuu.com/kssnj/docs/03chapter_pp - 단원전체를 순서에 맞게 한페이지씩 파워포인트를 만들어서 보기 좋게 진열하고 읽고 따라하기 쉽게 만듦. - 단원에 들어가 있는 단어를 보여주는 낱말”~인데요”, “바꿔주다”, “잠깐만 기다려”, “팥빙수”등을 보여주는 파워포인트. - 먹는것과 관계있는 속담 하나: 남 떡먹는데 팥고물 떨어지는 걱정한다.(속담에 담긴 의미 설명자료) - 먹거리 동영상: 팥빙수 노래와 팥빙수 기원과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이유를 배운다. 3)만든 파워포인트를 노트가 들어있는 제출용 pdf 파일로 만들어 복사 후 아이들이 교재로 씀. http://issuu.com/kssnj/docs/03chapter 4)3 과 파워포인트내용안에 연습문제를 넣어서 수업과 같이 진행함. 5)3 과 보충자료 (교재 맨 마지막장, 학습자료 7) 6)팥빙수 만들 재료(혹은 그림) 교수학습 활동 도입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간식이 무엇이 있을지 서로 얘기해본다. 파워 포인트가 들어 있는 내용을 노트 란이 있는 슬라이드가 한 페이지로 된 파워포인트를 학습 교재로 만든 것을 주고 파워포인트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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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 1) 단원에 있는 대화 내용을 아이들에게 대화 하도록 한다

2) 배울 내용을 간단히 보여주고 내용 이해 질문을 통해 대화 내용을 이해하는지 알아본다

3) 단어 하나 하나를 보여주면서 읽고 그 다음 단어가 무엇일지 추측하게 한다.약 15 분 소요.

4)”잠깐만 기다려”, “~인데요”, “~한건” “팥빙수” 등 3 과에 나온 단어들을 보고 익힌다. 약 5분 5) ~하기로 하다”라는 내용을 가지고 문법을 공부한다. 6) 과거를 표현하고자 할 때 “~았/었/였 + ~기로 하다를 사용하여 바른 표현이 무엇인지 학습한다.

7) 원래 했던 결심이나 약속을 하지 못했을 때 표현이 어떻게 바뀌는지 공부한다.약 10 분 8) 대화를 해봄으로써 문법을 복습한다. 장소 등의 정보를 주고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기로 했는지 문장을 만들어본다. 약 10 분


108

9) 듣고 쓰기와 연습문제파워포인트를 하나씩 풀어보면서 이해하고 있는지 점검한다. (학습자료 6) 약 10 분 10) 대화로 내용복습 “~하기로 하다” 사용하기. 11) 올해의 계획이 원래 무엇이었는지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말해보고,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 있는지, 다 잘 지켜지고 있는지 말해본다. 12) 맛있는 속담” 남 떡 먹는데 팥고물 떨어지는 걱정한다”를 보여주고 이것이 무슨 의미일지 추측해 서로 말해보고 토론 후 뜻을 설명해준다.

약 10 분 13) 팥빙수 노래를 동영상으로 보여주고 자막에 나온 대로 따라 부른다. 팥빙수의 기원과 만드는 방법 등이 있는 동영상을 본다.(10 분) https://www.youtube.com/watch?v=KWPyuQcpPho

(여기 까지 약 70 분)

정리 및 평가 1)단원 마지막에 보충자료를 약 5 분의 시간을 주고 풀어보게 하다. 2)한명씩 돌아가면서 문제를 읽고 답을 말해본다. 틀린 답이 생기면 다른 아이에게 맞춰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3)보충자료에대한 내용을 설명해주고 숙제로 해 올 수 있게 한다. 4)오늘 배운 내용을 가지고 “~하기로 했어” 라는 서술식 문장을 세 개 이상 만들어서 선생님에게 이메일을 하거나 종이에 써서 제출하게 한다. 5)마지막에 보여준 동영상을 보면서 집에서 만들어 볼수 있게 무슨 재료가 필요한지 보여준다. 팥빙수 들어 있는 캔을 보여주기도 한다. 6)단원종합 평가 문제로 그동안 배운 “먹고 배우고”에 관한 내용이 담겨져 있는 20 문항을 풀게 한다. (20 분)

학습자료 6 – 연습문제


109

2. 1. 3)

2. 2)

3. 1)


110

학습자료 7 – 과제


111


112

단원 종합평가 *알맞은 표현 고르기 1. 영화를 ___밥을 먹었어요. 보

 보고

봐

본다

2. 한국에 ____싶어요.  가고  갔었고 가려고 가 3.피자를 ____했어요.  먹으면  먹는  먹기로 먹 4.햄버거를 ______싶어요  안  먹는  먹기  안먹고 5.이영화는 _______재미있어요. (슬프다) 슬픈  슬  슬프고 슬펐 *알맞은 대답을 고르세요. 6.가: 지금 어디 가니? 나: ____________________  학원 끝나요  레슨 끝나고 집에 가요.  집에 안가요.  먹고 싶어요. 7. 가: 어제 학교에서 뭐했어? 나: ______________________  잠을 잤어요.  잘 먹겠습니다  놀러 갔어요.  시험보고 다시 수업했어요.

8. 지금 배고프니? ____________________?  간식 먹었다.  간식 먹고 싶니?  공부할래?  밖에 나가 놀래?

*맞는것/틀린것 고르기 (O, X)


113

9. 날씬하고 싶어요. (

)

10. 예뻐지고 싶어요. (

)

11. 행복해 지고 싶어요. (

)

12. 예쁜 치마를 사고 싶었겠어요. (

)

*예문을 보고 문장을 만들어 보세요. 토요일, 아침 9 시,친구,한국학교, 한국어 공부

 토요일 아침 9 시에 친구와 같이 한국학교에 한국어 공부 하기로 했어요. (“~하기로 했다” 를 사용하기)

13. 일요일, 아침 10 시, 가족, 교회,예배.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4. 공휴일, 아침 11 시, 철수, 수락산, 등산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5. 일요일, 저녁 6 시, 가족, 할머니 댁, 저녁식사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6. 월요일, 오전 5 시, 영희, 수영연습, 헬스센터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알맞은 답 고르기 17. 가: 오늘 우리집에 올래? 나: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응, 진수네 집에 가기로 했어.  미안해. 내일 가기로 할거야.  미안해. 오늘 갈게  미안해 다른 친구 집에 가기로 했어. 18. 철수야, 오늘 우리 어디서 만나지?  영화관 앞에서 만나자.  오후 3 시에 만나기로 해.  누나랑 같이 가기로 했어.  학교 가야 돼.


114

19. 오늘 간식은 누가 만들기로 했어?  식당에 가자.  엄마한테 혼나.  안 만들기로 했어.  시험 보기로 했어. *길안내하기. 아래 길안내 순서를 보고 문장을 만들어 보세요. 20. 유명한 안경점 “잘 보여 안경점” 찾는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 주세요. - 버스 40 번 -후암동 정류소에서 내림 -지하철 4 호선 -남대문에서 내림, 2 번 출구 -북쪽으로 약 2 미터 걸음 -예쁜 옷 가게에서 우회전 -첫 번째 가게 “잘 보여 안경점”

 옆에 빈 종이에 쓰세요. 20 번 답은 여기에 쓰기

*보너스 점수 문제* -다음 속담의 뜻을 아는 대로 써보세요. 비슷한 뜻의 영어 속담을 적어도 됩니다.

1. 그림의 떡

2. 금강산도 식후경


115

3.

남 떡 먹는데 팥고물 떨어지는 걱정을 한다.

정답 1. 2.  3.  4.  5.  6.  7.  8.  9. X 10. O 11.O 12.O 13.일요일 아침 10 시에 가족하고 교회에 예배드리러 가기로 했어요. 14.공휴일 아침 11 시에 철수하고 수락산에 등산하기로 했어요. 15.일요일 저녁 6 시에 가족들과 할머니 댁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어요. 16. 월요일 오전 5 시에 영희와 수영연습을 헬스센터에서 하기로 했어요. 17.  18.  19.  20. 버스 40 번을 타고 후암동 정류소에서 내려서 지하철 4 호선을 타요. 남대문에서 내려 2 번 출구로 나가요. 북쪽으로 약 2 미터 걸어가서 예쁜 옷가게에서 우회전하면 첫번째 가게가 “잘보여 안경점” 이예요. (어느정도 말이 되게 쓰면 다 맞게 해줍니다.)

평가방법. 1) 1.~12: 각 3 점씩: 3 x 12=36 점 : 각 단원에서 배운 문법 표현을 복습하는 것임. 2) 13~16: 각 11 점씩: 4 X 11= 44 점 : “~하기로 했다”라는 표현을 정확하게 썼으면 점수를 다 준다. 3) 17~19: 각 3 점씩: 3 X 3 = 9 점 : 부정문을 이해하고, 문장 전체를 보고 이해 하는 점을 봄. 4) 20: 11 점 : 주어진 7 개의 요소를 다 썼으면 점수를 다 준다. 5) 보너스 문제: 속담의 뜻풀이나 영어로 비슷한 표현을 썼어도 (배운 대로) 보너스로 30 점씩 줍니다.


116

단원 1.

단원 제목: 한국 여행

2. 대상: 5 학년 3.

단원 목표:

한민경  4 반

④. 지하철 타기에 관련된 어휘와 표현을 익힌다. ⑤. 물건(기념품)을 살 때 관련된 어휘와 표현을 익힌다. ⑥. 한국 음식을 주문할 때 관련된 어휘와 표현을 익힌다. 4. 단원설정이유: 외국에 사는 우리 한국인 2 세들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까지 한류의 열풍으로 K-pop, 스포츠, 드라마, 음식 등의 한국 문화에 관심이 높아져 한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 여행을 할 때 기본적으로 접하게 되는 길 찾기, 특히 서울은 지하철이 대중 교통 수단으로 보편화 되어있어 지하철 타는 방법, 음식 사먹기로는 한국 음식점에서 주문하는 법, 그리고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쇼핑 중 기념품 사기에 관한 어휘와 표현법을 익힐 수 있도록 스터디 코리언의 한국어 학습과 일상회화에 이러한 내용이 재미있게 모두 포함하고 있어 단원의 주제로 설정하였다. 특히, 우리말 표현에서 문법적인 부분이 e-교육과정의 청소년을 위한 한국어 학습 초급에서 학습 주제별로 12 차시로 되어있는데 그 중에 학습하기를 원하는 문법이 있는 주제를 선택하여 4/12 ~9/12 차시를 활용함으로써 시각적, 청각적 체험을 통해 최대한의 학습효과를 볼 수 있도록 하였다. 5. 차시: 3 차시 6. 스터디 코리언 : 1) 교사자료실  우리말 윤내기  일상회화 2) e-교육과정  한국어 학습  청소년을 위한 한국어 학습 초급


117

한국 여행 학습지도안 1 차시 – 지하철 타기 ............................................................................................................ 118 학습지도안 2 차시 – 기념품 사기 ............................................................................................................ 121 숙제 – ‘인사동’ 글 번역해 오기 ...................................................................................................... 126

학습지도안 3 차시 – 한국 음식점 가기.................................................................................................... 127 메뉴판............................................................................................................................................... 130

단원 평가 문제 .......................................................................................................................................... 131 단원 평가 문제 정답 ........................................................................................................................ 133


118

학습지도안 1 차시 – 지하철 타기 교과

한국어

차시

1/ 3

단원 명

한국 여행

소요시간

90 분

학습 주제

지하철 타기

학습목표

1. 지하철을 이용할 때 필요한 표현들을 익히고 말한다. 2. 지하철 노선도를 보면서 찾아 가려는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을 말한다. 3. “ ~고 싶다 “를 문법 연습을 통해 익힌다.

학습재료/ 준비물

ㆍ 인터넷 가능 컴퓨터, 대형 화면 TV, 어휘카드 2 셋트(새로 나온 어휘, 뜻이 영어로 된 것), 지하철 노선도, 파워포인트, ㆍ http://issuu.com/kssnj/docs/transportation ㆍ ㆍ 3~4 명이 한 그룹이 되도록 책상배치. ㆍ 어휘 익힘표 및 힌트, 문화 배우기(자리 양보 문화), 지하철 노선도, 연습문제가 있는 프린트물 패키지를 나눠준다. 교수학습 활동

도입 1. 인사를 하고 출석 점검, 한 주 동안 지난 특별한 얘기를 한, 두 명 발표하게 한다. (5 분) 2. 서울 등 축제를 아는 학생이 있는지 물어보고 ‘서울 등 축제’ 동영상을 보여준다. (5 분) https://www.youtube.com/watch?v=j--te2RjT00


119

전개 1. 학생들에게 ‘서울 등 축제’를 보러 가고 싶은데 어떻게 가야 하죠? 란 파워포인트를 보여주며 남자, 여자 두 그룹으로 나눠 교대로 본문을 2 번 읽게 한다. (5 분)

2. 모르는 어휘들을 질문 받아 간단히 설명해 주고 그룹별로 함께 의논하면서 미리 나눠준 어휘 익힘표의 빈칸을 채우게 한다. 이 때, 먼저 완성한 그룹에게 어휘카드 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하여 어휘들을 익히게 한다. 모든 그룹이 완성되면 파워포인트를 보면서 어휘들을 정리해 준다.(10 분)

3. 다시 ‘서울 등 축제’를 보러 가고 싶은데 어떻게 가야 하죠? 파워포인트를 보면서 대화 내용을 간단한 질문에 대답하게 함으로써 완전히 이해시킨다. (5 분) 4. 문법 “~고 싶다” 를 스터디 코리언 (e-교육과정/한국어 학습/청소년을 위한 한국어 학습 초급/2 차시, 피자 먹고 싶어요) 을 활용하여 문법연습, 문장 듣기, 쓰기, 읽기를 한 명씩 시켜가면서 발표하게 한다. (20 분) 5. 우선 지하철 역 이름들을 읽어본다. 그리고 지하철 이용할 때 필요한 표현들을 설명해준다; ( )로 가세요. / ( )호선을 타고 가다 ( )역에서 ( )호선으로 갈아타세요. / ( )역에서 내리면 돼요. (5 분) 6. 지하철 노선 안내도를 보면서 출발역과 종착역을 주고 지하철 타는 방법을 말할 수 있도록 연습시킨다. 이 때, 너무 어렵고 복잡하지 않게 지하철을 갈아타는 건 한 번만 있도록 문제를 제시한다.(5 분) 문제 1)서울역에서 을지로 3 가까지 어떻게 가죠?


120

문제 2)여러분이 충무로에 있어요. 반포를 가려면 어떻게 지하철을 타야 되나요? 문제 3)여러분이 여의도에 있는데 신촌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어요. 지하철을 어떻게 타야 되죠? 7. 문화 배우기: 한 학생에게 파워포인트를 보며 자리 양보 문화를 읽게 하고 학생들에게 그런 우리 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는 서양의 문화와 얼마나 다른지 발표를 통해 비교해 본다. (10 분)

정리및 평가 그룹별로 연습문제 1 ~ 4 번까지 풀고 파워포인트를 보여주며 답을 맞춘다. 이 때, 연습문제 4 번은 그룹의 한 명이 발표하게 하여 가장 잘 번역한 그룹에게 간단한 보상을 해주고 교실 정리 정돈에서 제외시켜준다. ( 20 분)


121

학습지도안 2 차시 – 기념품 사기 교과

한국어

차시

2/3

단원 명

한국 여행

소요시간

90 분

학습 주제

기념품 사기

학습목표

1. 가게에서 선물을 살 때 필요한 표현들을 익히고 말한다. 2. 한국적인 기념품들의 종류가 무엇이 있는지 이름을 말한다. 3. 한국 화폐의 단위(\ 원)를 알고 물건의 가격을 말한다. 4. “~(으)려고 하다”를 문법 연습을 통해 익힌다.

학습재료/

인터넷 가능 컴퓨터, 대형 화면 TV, 어휘카드 2 셋트(새로 나온 어휘,

준비물

뜻이 영어로된 것), 파워포인트 http://issuu.com/kssnj/docs/shopping 3~4 명이 한 그룹이 되도록 책상 배치. 어휘 익힘표 및 힌트, 문화 배우기(인사동), 가게 전단지, 한국 전통 기념품의 종류들 사진, 연습문제, 숙제가 있는 프린트물 패키지를 나눠준다. 교수학습 활동 도입 1. 인사를 하고 출석 점검, 한 주 동안 지난 특별한 얘기를 한, 두 명 발표하게 한다. (5 분) 2. 학생들에게 한국 전통 기념품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이름을 묻고 그러한 물건들을 많이 볼 수 있는 장소는 어디인지 질문해 본다. 그리고 인사동 거리를 동영상으로 보여준다. (5 분 ) https://www.youtube.com/watch?v=GDb8XaquLGU


122


123

전개 1. 학생들에게 ‘다른 것도 보여주세요.’ 란 파워포인트를 보여주며 두 그룹으로 나눠 교대로 본문을 2 번 읽게 한다. (5 분 )

2. 모르는 어휘들을 질문 받아 간단히 설명해 주고 그룹별로 함께 의논하면서 미리 나눠준 어휘 익힘표의 빈칸을 채우게 한다. 이 때, 먼저 완성한 그룹에게 어휘카드 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하여 어휘들을 익히게 한다. 모든 그룹이 완성되면 파워포인트를 보면서 어휘들을 정리해 준다.(10 분)

3. 다시 ‘다른 것도 보여주세요.’ 파워포인트를 보면서 대화의 내용을 간단한 질문에 대답하게 하므로써 완전히 이해시킨다. ( 5 분 )

4. 문법 “~(으)려고 하다” 를 스터디 코리언 (e-교육과정/한국어 학습/청소년을 위한 한국어 학습 초급/ 19 차시, 무슨 선물을 사려고 하니?) 을 활용하여 문법연습, 문장 듣기, 쓰기, 읽기를 한 명씩 시켜가면서 발표하게 한다. (20 분) 5. 가게 전단지를 보면서 물건의 가격을 한국 돈으로 얼마인지 표현하는 방법을 설명해주고 2 명 씩 짝지어 연습하게 한다. (사과가 얼마예요? / 삼천 오백 원이에요. ) ( 5 분 )

6. 한국 전통 기념품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인터넷 쇼핑몰 싸이트


124

(http://www.shopia.co.kr/) 에 들어가 이름을 읽어 본다. ( 5 분 )

7. 문화 배우기: 한 학생에게 파워포인트를 보며 인사동 을 읽게하고 내용을 파악한 후 학생들에게 그런 우리 전통 문화 거리에 가본적이 있는 지, 있다면 그 곳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발표하게 한다. 아무도 없다면 인사동 거리의 동영상을 다시 보여준다. (10 분) https://www.youtube.com/watch?v=GDb8XaquLGU

정리및 평가  그룹별로 연습문제 1 ~ 3 번까지 풀고 답을 맞춘다. ( 5 분 )


125

  그룹에서 2 명을 뽑아 본문의 내용을 바탕으로 가게 점원과 손님이 되어 역할극을 준비한다. 이 때, 그룹의 모든 학생이 참여할 수 있도록 역할이 없는 학생은 소품이나 배경에 필요한 것을 준비한다. 그룹별로 발표한 후에 가장 잘 한 그룹에게 간단한 보상을 해주고 교실 정리 정돈에서 제외시켜준다. ( 15 분 ) 평가기준: 관객의 박수 <숙제> 연습문제 4. 인사동 글 번역해오기


126

숙제 – ‘인사동’ 글 번역해 오기 ‘인사동’ 글을 읽고 내용을 이해하여 다음을한국어로 번역하여 보세요. ` Hundreds of galleries consist of traditional Korean items from paintings to sculptures. Other items such as earthenware (clay pottery), antique furniture, Hanji (Korean traditional paper), Hanbok (Korean traditional clothing), tea, souvenirs, and cute accessories are sold. Watching the traditional performances and exhibits on the street, foreign tourists can experience and see traditional Korean culture firsthand.

표준 답: 수많은 미술관에는 그림에서부터 조각들까지 전통적인 한국 물품들을 가지고 있다. 도자기, 옛날 가구, 한지, 한복, 차, 기념품 그리고 귀여운 악세서리와 같은 물품들이 팔린다. 거리에서 전통적인 공연이나 전시회를 보면서 외국 관광객들은 전통적 한국 문화를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다.


127

학습지도안 3 차시 – 한국 음식점 가기 교과

한국어

차시

3/3

단원 명

한국 여행

소요시간

90 분

학습 주제

한국 음식점 가기

학습목표

1. 한국 음식 종류의 이름을 말한다. 2. 한국 음식점에서 필요한 어휘와 표현들을 사용하여 음식을 주문한다. 3. “~(으)면”란 표현을 문법 연습을 통해 익힌다.

학습재료/

인터넷 가능 컴퓨터, 대형 화면 TV, 어휘카드 2 셋트(새로 나온 어휘,

준비물

뜻이 영어로된 것), 파워포인트, 풀, 가위, A4 용지 http://issuu.com/kssnj/docs/koreanfood 3~4 명이 한 그룹이 되도록 책상 배치. 어휘 익힘표 및 힌트, 문화 배우기(고추장과 케첩), 한국 음식의 종류 사진, 한국 음식점 메뉴판,연습문제가 있는 프린트물 팩히지를 나눠준다. 교수학습 활동 도입 1. 인사를 하고 출석 점검, 한 주동안 지난 특별한 얘기를 한, 두명 발표하게 한다. (5 분) 2. 학생들에게 한국 음식점 동영상을 보여주고 각자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무엇인지 질문하여 한 사람씩 발표하게 한다. (5분) http://tvpot.daum.net/mypot/View.do?clipid=55904973&ownerid=NFCuTYsUzgw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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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 1.학생들에게 ‘여기요!’ 란 파워포인트를 보여주며 두 그룹으로 나눠 교대로 본문을 2 번 읽게 한다. ( 5 분 )

2.모르는 어휘들을 질문 받아 간단히 설명해 주고 그룹별로 함께 의논하면서 미리 나눠준 어휘 익힘표의 빈칸을 채우게 한다. 이 때, 먼저 완성한 그룹에게 어휘카드 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하여 어휘들을 익히게 한다. 모든 그룹이 완성되면 파워포인트를 보면서 어휘들을 정리해 준다.(10 분)

3. 다시 ‘여기요!’ 파워포인트를 보면서 대화 내용을 연습문제 1 의 간단한 질문에 대답하게 함으로써 완전히 이해시킨다. ( 5 분 ) 4. 문법 “~(으)면” 을 스터디 코리언(e-교육과정/한국어 학습/청소년을 위한 한국어 학습 초급/ 12 차시)을 활용하여 문법연습, 문장 듣기, 쓰기, 읽기를 한 명씩 시켜가면서 발표하게 한다. (20 분) 5. 미리 나눠 준 음식점 메뉴판을 보면서 한국 음식들의 이름을 읽어보게 한다. 그 다음 음식을 주문할 때 필요한 표현들을 설명해준다; “여기요” / “ ( )하고 ( ) 주세요.” / 셀프 서비스 / 반찬은 무료 (5분)


129

6. 그룹별로 학생들이 앉아있는 상태가 한 음식점의 식탁이라 가정하고 한 명이 종업원, 나머지 학생들은 손님이 되어 음식점 메뉴판을 보면서 손님이 된 학생 각자가 음식을 주문하고 이 때, 종업원이 된 학생은 그것을 노트에 받아 적어 그룹별로 발표하게 한다. ( 10 분 ) 7. 문화 배우기: 한 학생에게 파워포인트를 보며 고추장과 케첩을 읽게 하고 내용을 파악한 후 학생들에게 고추장을 사용한 우리 나라 음식과 케첩을 사용한 서양 음식이 무엇들인지 물어보면서 음식 문화를 자연스럽게 비교해 본다. (10 분)

정리및 평가 그룹별로 한국 음식 사진들(18 개), A4 용지, 풀, 가위를 나눠주고 음식점 이름, 사진의 음식 이름(8 개 이상), 한국 화폐 단위로 된 음식 가격이 들어있는 메뉴판을 만들게 한 후에 가장 잘 한 그룹에게 간단한 보상을 해주고 교실 정리 정돈에서 제외시켜준다. ( 15 분 ) 평가 기준 1. 음식의 종류는 8 가지 이상 2. 음식점 이름 3. 음식의 가격은 한국 화폐 단위 (원)으로 4. 음식의 이름은 한글로 정확히 쓸 것 <숙제> 1. 연습문제 2, 3 풀기. 2. 외국인이 좋아하는 한국 음식과 싫어하는 한국 음식의 종류 5 가지 이상 적어오기.


130

메뉴판


131

단원 평가 문제

다음 보기를 사용하여 빈칸을 채우세요, <보기> 충무로 지하철 4

싶은 된장찌개

육만

1.

기념품 으려고 면

도자기

3

공기밥

9

갈비 버스

김치찌개

한복인형

팔천

이번 여름 방학동안 슬기는 한국을 방문☐☐☐ 한다. 가장 가 보고☐☐ 곳은 서울의 인사동이다.

2.

교통편으로는 ☐☐☐을 타☐ 편리할 것 같아 출발은 명동역에서 ☐☐☐ ( )호선을 타고가다 ☐☐☐역에서 (

)호선으로

갈아타고

안국역에서

내릴

것이다.

3. 6 번 출구로 나와 인사동 갤러리를 구경하고 인사동 쇼핑몰인 쌈지길에 가서 친구에게 줄 ☐☐☐을 살 것이다. 가격은 한국돈으로 ☐☐원인 ☐☐☐☐으로 살 계획이다.


132

4.

마지막으로

한국

전통 음식점을

찾아가 맛있는

☐☐

1

인분과 ☐☐☐을

☐☐해야겠다. 왜냐하면 ☐☐☐을 시키면 ☐☐☐☐는 그냥 무료로 먹을 수 있다는 얘기를 친구가 말해주었다.


133

단원 평가 문제 정답

이번 여름 방학동안 슬기는 한국을 방문하려고 한다. 가장 가 보고싶은 곳은 서울의 인사동이다.

교통편으로는 지하철을 타면 편리할 것 같아 출발은 명동역에서 지하철 ( 4

)호선을 타고가다 충무로역에서 (

3

)호선으로 갈아타고 안국역에서 내릴 것이다.

6 번 출구로 나와 인사동 갤러리를 구경하고 인사동 쇼핑몰인 쌈지길에 가서 친구에게 줄 기념품을 살 것이다. 가격은 한국돈으로 육만원인 한복인형으로 살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전통 음식점을 찾아가 맛있는 갈비 1 인분과 공기밥을 주문해야겠다. 왜냐하면 공기밥을 시키면 된장찌개는 그냥 무료로 먹을 수 있다는 얘기를 친구가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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